이집트 ... (상) -엘러리 퀸 장편추리소설 ----- 차 례 ----- 머리말 제1부 국민학교 교장의 십자가형 1. 애로요의 크리스마스 2. 웨어턴의 새해 제2부 백만장자의 십자가형 3. 야들리 교수 4. 브래드우드 저택 5. 내부 사정 6. 체커와 파이프 7. 폭스와 영국인 8. 오이스터 섬 9. 100 달러의 선불 10. 템플 의사의 모험 12. 교수가 말하다 머리말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 의 여러 가지 주된 수수께끼에 관련하여 하나의 작은 수수께끼가 있는데, 그것은 이 이야기 자체와는 거의 관계가 없는 수수께끼이다. '제목의 수수께끼'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맞겠다. 그것은 원고에 첨부된 메모에 의해, 저자 자신 - 즉, 나의 친구 엘러리 퀸이 내 주의를 환기시킨 것이다. 원고는 저자의 극히 헌신적인 봉사자가 허둥지둥 갑자기 전보를 쳐서 간청한 뒤에 이탈리아에 있는 저자의 검소한 집에서 보내온 것이었다. 그 메모에는 다른 것들은 차치하고라도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었다. "이 원고를 이집트학적인 범죄로 세상의 흔한 인기를 끌기 위한 것이 아니라네. 피라미드도 등장하지 않고, 음침한 박물관에서 한밤중 어둠 속에서 흔들거리는 콥트 인의 단검도 없으며, '펠라힌'(felahin, 이집트 농민) 도 나오지 않고, 어떠한 종류의 동양적인 푸바 (오페라 '황제' 중의 인물) 도 나오지 않으며... 사실 이집트학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네. 그러면 왜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이냐고 자네는 물을테지? 지극히 당연하다고 나도 인정하네. 틀림없이 이 제목은 어느 의미에서는 좀 선정적이야. 정말 나를 매료시킨다네. 아니, 사실 이집트적인 의미는 없단 말일세! 아, 그래도 거기에는 그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이 있다네. 기다리게, 전형적인 엘러리야나 (엘러리적인 취미) 이다, 보시는 대로. 엘러리의 애독자 여러분은 이미 당연히 알고 있겠지만, 그것은 항상 흥미진진한 것이며 또한 신비적이기도 하다. 이러한 전율할 만한 살인사건의 수사는 내 친구의 마지막 사건 중 하나다. 이것은 소설 형태로 세상에 공표된 엘러리 퀸의 다섯번째 사건이다. 이 소설은 매우 특이한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고대 종교의 광신, 나체촌의 등장, 뱃사람, 중앙 유럽의 미신과 폭력의 온상에서 싹튼 복수마(復讐魔), 파라오 시대의 이집트에서 재생한 기괴하고 미친 '신의 화신' 등등 상당히 특이한 데가 있어서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혼합물 - 불가능하고 환상적인 여러 나타난다. 그리고 실제로 이 사건은 현대 경찰 사상 가장 교활하고 잔학한 일련의 범죄를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만일 여러분이 그 희한한 고집쟁이인 늙은 인간 사냥꾼 리처드 퀸 경감이 나타나지 않아서 실망했다고 하면 - 나는 항상 엘러리가 아버지에 대해서는 반도 평가해 주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싶다 - 내가 확신하는 바이지만, 경감은 또 돌아올 것이다. 그러나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에서 엘러리는 사건의 특수한 지리적 조건 때문에 뜻밖에도 고군분투하게 된다. 나는 이 소설 독자의 편의를 위하여 지도를 참조하도록 하거나, 아니면 책의 첫머리에 미국 지도를 삽입할 것을 출판사에 요청하기로 했다. 이 이야기는 웨스트 버지니아 주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나는 그냥 내버려두었다. 결국 이것은 엘러리의 이야기인 것이다. 엘러리로 하여금 말하게 해두자. J.J. 맥 1932년 8월 뉴욕주 라이에서 제1부 - 국민학교 교장의 십자가형 <정신의학의 실질적인 지식이 내 직업인 범죄학에 헤아릴 수 없이 귀중한 도움이 되었다> - 장 튀르코 1. 애로요의 크리스마스 웨스트 버지니아 주의 작은 마을 애로요에서 반 마일 정도 떨어진 두 개 도로의 교차점에서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한 개의 도로는 뉴컴벌랜드에서 퓨타운으로 통하는 주도로(主道路) 이고, 하나는 애로요로 통하는 갈림길이다. 엘러리 퀸은 이 지형이 중요하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그저 한번 바라본 것만으로도 여러 가지로 많은 것을 알아차리긴 했으나 여러 증거들이 서로 모순되어 혼란스럽기만 할 뿐이었다. 어느 것 하나 앞뒤가 맞지 않았다. 한 발자국 물러나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 코스모폴리탄의 엘러리 퀸이 어떤 (post meridiem, 오후) 2시에 스산한 추위와 먼지를 뒤집어쓴 웨스트 버지니아 주의 프라이팬 자루 (이 주는 이웃주로 홀쪽하게 들어가 있다) 언저리에서 덜커덕거리는 낡은 뒤센버그 경주용차 옆에 멀거니 서 있게 되었는지 설명할 필요가 있다. 여러 요인이 겹쳐져서 이 이상한 광경을 발생시킨 것이다. 그 중 하나 - 주된 요인은 - 엘러리의 아버지 퀸 경감의 부탁으로 휴가 아닌 휴가를 갔었기 때문이다. 그 노인은 경찰관 회의에도 참석할 만큼 깊게 관여하고 있었다. 시카고의 사정이 여느때처럼 혼란스러워서 경찰본부장이 자기의 관할구역 내의 한심스러운 무법상태에 대해서 논의하기 위해 주요 대도시의 유능한 경찰관들을 퀸 경감이 유난히 밝은 기분으로 호텔에서 시카고의 경찰 본부로 서둘러 가는 도중, 아버지를 모시고 가던 엘러리는 그때서야 애로요 근처에서 발생한 기괴한 범죄 사건 - 유나이티드 프레스 통신사가 적절히 'T 살인 사건'이라고 일방적으로 평가해 버린 범죄 얘기를 비로소 듣게 된 것이다. 이 사건의 신문기사에는 엘러리의 흥미를 끌 만한 요소가 많이 있었다 - 예를 들면, 크리스마스 날 아침에 앤드류 밴이라는 사람이 목이 잘린 채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사실 등 - 엘러리는 담배 연기가 자욱한 시카고의 회의장에서 억지로 아버지를 설득시켜서 뒤센버그 경주용차 - 중고이기는 하지만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속도가 나오는 차를 끌고 동쪽으로 달렸던 경감은 아들이 효자이긴 했지만 금새 그 좋은 기분을 잡치고 말았다. 시카고에서 톨레도를 지나고 샌더스키를 지나 클리블랜드, 레이브나, 리스본을 지나 일리노이 주와 오하이오 주 마을들의 손님이 되어 웨스트 버지니아 주의 체스터에 도착하기까지 노인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으며, 엘러리가 가끔 장난기 어린 혼잣말로 투덜거리는 소리와 뒤센버그에서 배출되는 증기와 가스가 윙윙거리는 소리를 낼 뿐이었다. 두 사람은 애로요에 도착한 것도 모르고 그냥 지나쳐 버렸다. 인구 200명 남짓한 작은 마을, 그리고... 그 문제의 교차점. 꼭대기에 가로막대가 붙은 표지판은 자동차가 도로 끝에 다다르기 전에 상당한 보였다. 애로요 도로는 거기서 끝나는데, 뉴컴벌랜드 - 퓨타운 가도(街道)와 직각으로 교차하고 있었다. 따라서 표지판은 애로요 가도의 출구에 세워진 채 한쪽은 북동쪽의 퓨타운을 가리키고, 또 한쪽은 남서쪽의 뉴컴벌랜드를 가리키고 있었다. 경감은 큰소리로 불평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마음대로 해라.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하다니. 도무지 어처구니가 없어! 나를 이런 곳까지 끌고오다니... 기껏 이런 미치광이가 저지른 살인사건을 가지고... 난 도대체가 모르겠다." 엘러리는 엔진 점화용 스위치를 끄고 성큼성큼 앞쪽으로 걸어갔다. 길에는 사람 그림자조차도 없었다. 맑게 갠 하늘에 솟아 있었다. 발밑의 먼지투성이 길은 금이 가 있고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 속에서 찌를 듯이 파고드는 바람이 엘러리의 외투 자락을 펄럭거리게 했다. 그리고 눈 바로 앞에는 애로요의 국민학교 괴짜 교장인 앤드류 밴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도로표지판이 우뚝 서 있었다. 도로표지판은 원래 하어었지만 지금은 더러운 회색에다가 진흙까지 달라붙어서 얼룩져 있었다. 높이는 6피트 정도인데 - 꼭대기는 엘러리의 머리 높이와 비슷했고 옆으로 뻗은 나무는 튼튼하고 길었다. 엘러리가 몇 피트 떨어져서 바라보니, 하긴 누가 바라본다 해도 그렇겠지만 그것은 거대한 T자로 보였다. 이제서야 UP 통신의 이름붙였는지 알 수 있었다 - 먼저 이 도로표지판이 T자 모양을 하고 있는 데다가, 도로표지판이 서 있는 막다른 길이 또한 T자 모습을 한 교차로여서, 마지막의 도로 교차로에서 수백 피트나 떨어져 있기 때문에 아까 엘러리의 자동차가 그 앞을 그대로 지나쳐 갔던 것이다. 게다가 죽은 남자의 집 현관문에도 기분나쁜 T자가 피로 휘갈겨 씌어져 있었다. 엘러리는 한숨을 쉬고는 모자를 벗었다. 그것은 적어도 조의를 표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엘러리는 이 추위와 바람에도 불구하고 땀을 흘리고 있었다.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으면서 이렇게 잔인하며, 논리적인 사고방식으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인물이 어떤 시체까지도... 엘러리는 시체를 발견했을 때의 모습을 보도한 신문기사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흉폭한 범죄 묘사에 대해서는 오랜 경험을 가진, 시카고에 있는 유명한 신문기자가 쓴 특별기사였다. '올해의 가장 참혹한 크리스마스 이야기가 오늘 발생했다. 크리스마스날 새벽, 웨스트 버지니아 주의 작은 마을 애로요의 국민학교 교장 앤드류 밴(46세)의 머리가 잘려나간 시체가 그 마을에서 가깝고 외진 교차로의 도로표지판에 십자가형을 당하듯이 매달려 있는 것이 발견된 것이다. 그 시체는 비바람에 낡은 도로표지판 가로막대의 양끝에 손바닥이 위를 향한 채 4인치짜리 쇠못이 박혀서 매달려 있었다. 아래쪽에 가지런히 모아진 채, 그 위에 두 개의 쇠못이 복사뼈에 박혀 있었다. 양겨드랑이 밑에도 두 개의 쇠못이 박혀 있어서 시체의 무게를 지탱해 주고 있었고, 또한 머리가 잘려 있었기 때문에 시체는 마치 큰 T자 모양을 하고 있었다. 도로표지판도 T자 모양이며, 교차로도 T자 모양이다. 교차로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밴의 집 현관문에는 살인범이 피해자의 피로 T자를 급히 휘갈겨써 놓았다. 그리고 도로표지판에는 그 미치광이에 의해 인간의 T자가... 왜 크리스마스날을 택했을까? 왜 범인은 피해자를 집에서 300 피트나 끌어내 도로표지판까지 시체를 운반해서 그곳에다 십자가 형에 처한 것일까? T자는 무엇을 그곳 경찰은 무척 당황해 하고 있다. 밴은 좀 특이한 인물이긴 하지만 온건하고 악의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곳 마을 사람들에게 미움을 산 일도 없었으며 - 또한 친구도 없었다. 유일하게 친하게 지낸 인물은 그의 하인으로 일한 클링이라는 지능이 낮은 남자뿐이었다. 클링은 현재 행방불명이 되어 있는데, 핸콕 군(郡) 지방검사인 크러밋 씨는 아직 공표되지 않은 증거에 기초해서 클링 또한 현대 미국의 범죄사상 드물게 볼 수 있는, 이 피에 굶주린 미치광이에 의해 희생되었을는지도 모른다고 믿고 있다...' 그 밖에도 이와 비슷한 기사가 많이 있었고, 그 중에는 이 불행한 국민학교 교장이 애로요에서 지낸 목가적인 생활에 클링의 생활에 대해서 경찰이 그러모은 자질구레한 정보들, 지방검사의 야단스런 성명 등도 있었다. 엘러리는 코안경을 벗어 렌즈를 닦고서는 다시 쓰고서 날카로운 눈매로 어쩐지 기분나쁜 이 범죄의 잔유물을 대강 둘러보았다. 가로막대 양쪽 끝 가까운 곳에 꺼끌꺼끌한 구멍이 뚫려 있어서 경찰이 못을 뽑은 흔적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구멍은 모두 다 구멍 주위가 녹슨 듯한 갈색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더러운 얼룩이 져 있었으며, 갈색의 가는 덩굴 같은 것이 구멍에서 나와 늘어져 있었다. 앤드류 밴의 피가 상처난 손에서 그 구멍으로 흘러 들어갔던 것이다. 가로막대가 세로 구멍이 두 개 더 있었지만 거기에서는 피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겨드랑이 밑에 박은 쇠못이 시체를 지탱해 주었던 것이다. 도로표지판 기둥은 위에서 아래까지 피해자의 목부분의 무참하게 입을 벌린 상처에서 흘러나와 변한 피가 말라붙어 세로의 줄무늬를 만들어 놓고 있었다. 기둥 중심의 밑부분 근처에 서로 4인치도 떨어지지 않은 채 두 개의 구멍이 나 있었는데, 거기에도 갈색 피가 묻어 있었다. 밴의 복사뼈가 기둥에 못박혔던 곳이다. 이들 구멍에서도 도로표지판이 박혀 있는 땅까지 피가 흘러 말라붙어 있었다. 엘러리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이 되어서 자동차로 되돌아왔다. 경감은 언제나처럼 가죽 시트에 축 늘어져서 기댄 채 기다리고 있었다. 노인은 낡아서 퇴색한 모직 머플러로 턱까지 감싸고 있었고, 뾰족하고 붉은 코가 위험신호처럼 튀어나와 있었다. "자 - " 하고 재촉하듯이 말했다. "가자. 추워서 얼어죽겠구나." "아니, 좀 흥미 있지 않으세요?" 엘러리는 운전석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면서 말했다. "조금도 흥미 없다." "아버지는 남이라니까요." 엘러리는 엔진에 시동을 걸었다. 그가 싱긋 웃자, 자동차는 그레이하운드처럼 앞으로 튀어나가며 두 개의 차 바퀴에 중심을 옮겨서 흙 속에 깊이 패인 채 원을 그리며 돌아서는 애로요를 향해서 돌진했다. 가장자리에 달라붙었다. "이상한 취미입니다." 엘러리는 엔진의 윙윙거리는 소리에 지지 않으려고 소리를 지르면서 말했다. "크리스마스날에 십자가에 매달다니." "흠." 경감은 흥미가 없는 듯이 대꾸했다. "왠지 - " 하고 엘러리가 큰소리로 외쳤다. "이 사건은 제 마음에 드는 것 같습니다." "운전에나 신경을 쓰거라." 노인이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자동차가 기우뚱하다가는 도로 가라앉았다. "마음에 들고 말고 할 것도 없어." 하고 경감은 얼굴을 찡그리며 덧붙였다. "나하고 뉴욕으로 돌아가자." "정말이지 - " 노인은 엘러리가 작은 목조건물 앞에서 뒤센버그를 급정거시키자 투덜거리면서 말했다. "여기 놈들이 하는 짓들은 한심해. 범죄현장에 도로표지판을 그냥 내버려두다니." 경감은 머리를 저었다. "넌 어디를 갈 거냐?" 하고 조그만 새와 같은 흰 머리칼이 섞인 작은 머리를 갸웃거리면서 물었다. "아버님에게야 별로 흥미가 없을 테지요." 말하고는 보도로 뛰어내렸다. "어이, 좀 봅시다." 엘러리는 푸른 작업복에 목도리를 두르고서 매우 낡은 마당비를 들고 보도를 걸어가는 시골 남자를 불렀다. "여기가 애로요 파출소요?" 상대방은 바보같이 입을 딱 벌리고 있었다. "물을 필요도 없잖소. 온 세상 있는데... 가봐요. 얼간이 같으니..." 조는듯이 한가하고 조그만 정착지에 얼마 안 되는 건물들이 엉겨붙듯 모여 있었다. 뒤센버그가 멈춘 목조건물은 옛날 서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정면만 겉치레로 꾸민 날림 성냥갑 같은 건물이었다. 옆은 잡화점이고, 낡아빠진 휘발유 판매대가 가게 앞에 하나 있었으며, 그 밖에 작긴 하지만 자동차 수리소가 옆에 붙어 있었다. 그 목조건물에는 자랑스럽게 손으로 쓴 간판이 걸려 있었다. '애로요 관공서' 퀸 부자(父子)가 찾는 남자는 건물 안의 '경찰'이라고 씌어 있는 문짝 맞은편에서 책상에 엎드려 낮잠을 자고 있었다. 뚱뚱하고 불그스름한 얼굴에다가 누런 경감이 한심한 듯이 킁킁거리자 순경은 무거운 눈을 떴다. 그리고는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쉰 듯한 굵은 목소리로 말했다. "매트 홀리스를 찾는다면 그는 나가고 없소." 엘러리는 웃었다. "우리는 애로요의 루든 순경을 만나보고 싶은데요." "호, 그렇다면 나요. 무슨 일이오?" "루든 순경 - " 엘러리는 감동적으로 말했다. "소개하겠습니다. 이쪽은 뉴욕 경찰본부의 살인과 과장인 리처드 퀸 경감입니다." "누구시라고?" 루든 순경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뉴욕?" "예, 그렇습니다." 엘러리는 아버지의 발끝을 지그시 밟고서 말했다. "그런데, "앉으시지요." 루든 순경은 의자를 경감 쪽으로 발로 밀면서 말했다. 경감은 콧방귀를 뀌고는 순순히 앉았다. "그 밴에 관한 것 때문이죠? 뉴욕에서 이렇게 관심을 갖고 있는지는 몰랐습니다. 무슨 얘기를 듣고 싶어서..." 엘러리는 담뱃갑을 꺼내어 순경에게 권했으나 거절했다. 그는 커다란 십는 담배를 입속 가득히 넣고서 십어댔다. "무슨 얘기든지 좋습니다." "아무 것도 얘기할 게 없어요. 시카고랑 피츠버그에서 우르르 몰려와서는 마을 전체를 휘저어놓고 가버렸습니다. 아주 질려버렸어요, 우리는." 경감이 놀리듯이 말했다. "무리도 아니겠구먼, 자네들." 꺼내어 활짝 펼치고서 안에 든 녹색 지폐를 의미 있는 듯 바라보았다. 루든 순경의 졸린 듯한 눈이 빛났다. "그렇지 - " 하고 당황해서 말했다. "질리기는 했지만 한 번 정도라면 얘기하지 못할 것도 없지." "시체를 발견한 사람은 누구죠?" "피트 노인입니다. 두 분은 모르겠지만 저 산속 어딘가에 있는 오두막집에서 살고 있지요." "그건 알고 있어요. 농부도 한 사람 있지 않습니까?" "마이크 오킨스 말이군요. 퓨타운의 가도 앞쪽에 1-2 에이커 정도의 밭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오킨스는 자기 포드 자동차를 타고서 애로요로 오는 도중이었는데 - 잠깐만, 오늘이 월요일이니까 - 그래요, 크리스마스날 아침 꼭두새벽이었지요. 피트 노인도 역시 애로요로 오고 있었고요 - 산에서 가끔 내려오거든요. 오킨스는 피트를 차에 태우고서 같이 오고 있었죠. 그런데 말입니다, 교차로까지 와서 오킨스가 애로요 쪽으로 구부러지려고 하는데, 그것이 도로표지판 위에 냉동고기처럼 딱딱하게 굳은 채 축 늘어져서 - 앤드류 밴의 시체가 말입니다." "우리들도 그 도로표지판을 보고 왔습니다." 하고 엘러리는 상대를 부추기듯이 말했다. "요 2-3 일 동안엔 거의 100 명이나 되는 외부 사람들과 마을 사람들이 그것을 구경하려고 몰려들었죠." 루든 순경이 푸념하듯이 말했다. "교통정리 하느라고 둘 다 부들부들 떨고만 있다가 정신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서...." "흠." 하고 경감이 말했다. "두 사람 다 시체에는 손을 대지 않았겠죠, 물론?" 하고 엘러리가 끼어들었다. 루든 순경은 백발 머리를 크게 흔들었다. "그 사람들이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마치 악마에게라도 쫓기듯이 여기로 뛰어 들어와서는 침대에 누워 있는 나를 문을 두드려 깨웠죠." "그것이 몇 시쯤이었나요?" 루든 순경은 얼굴을 붉혔다. "8시였습니다. 그 전날 밤에 매트 홀리스네 집에서 저녁을 잔뜩 차려주는 바람에.... 그만 늦잠을 좀 자서 - " 교차로로 달려갔겠군요?" "그랬지요. 매트 - 그 사람이 이 마을의 읍장인데 - 그 사람과 나는 젊은 사람을 네 명 데리고 달려갔습니다. 아주 끔찍하더군요, 그 남자 - 밴 말입니다." 순경은 머리를 흔들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그런 것은 본 적이 없어요. 게다가 크리스마스날에 말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녀석의 소행이 뻔하죠. 사실은 밴도 신앙이 없는 사람이었답니다." "흠." 하고 경감이 얼른 말했다. 빨간 코가 머플러의 접힌 곳에서 창처럼 삐져나와 있었다. "신앙심이 없는 사람이란 건 무슨 뜻이지?" "뭐 꼭 신앙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 순경은 설명하기가 좀 거북한 나가지 않는 편이지만, 밴은 단 한 번도 나간 적이 없죠. 목사님 얘기로는 - 뭐 그 얘기는 더 이상 하지 않는게 좋겠군요." "흥미 있는데요." 엘러리가 아버지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정말로 흥미 있습니다, 아버지. 어쩐지 이 사건은 광신자의 소행인 것 같은데요." "모두들 그렇게 말하고 있지요." 하고 루든 순경이 말했다. "나로서는 - 정말 모르겠단 말입니다. 난 평범한 시골 순경이어서 아무 것도 몰라요. 그렇지, 요 3년간 불한당 같은 녀석을 한 명 혼내주긴 했지요. 그렇지만 말입니다, 이보시오 - " 하고 순경은 마치 비밀이라도 털어놓는 듯이 말했다. "그 사건에는 보통 종교 이상의 것이 있어요."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용의자가 없나요?" "그런 인물은 아무도 없습니다만, 당신에게 하는 애긴데 - 그 놈은 분명히 밴의 과거와 관계가 있는 놈이에요." "최근에 외부인이 이 마을에 온 적이 있습니까?" "아무도.... 어떻든 말입니다, 매트와 나는 젊은 사람들과 그 시체의 크기나 체격, 입고 있는 옷과 가지고 있는 서류 같은 것들에서 시체의 신원을 확인하고는 그 남자를 끌어내렸지요. 그리고서 마을로 돌아오는 도중에 밴의 집에 들러보았는데...." "그래서요 - " 엘러리는 열을 내며 말했다. "그래서 무엇을 보았나요?" 광경이었답니다." 루든 순경은 입속의 담배를 마구 십으면서 말했다. "얼마나 엄청나게 싸웠는지 의자가 모두 뒤집혀져 있고 온통 피투성이인 데다가 현관문에는 신문에 대서특필된 것처럼 T자가 피로 쓰여져 있었고, 그 불쌍한 클링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 거였습니다." "하 - " 하고 경감이 말했다. "하인 말이군. 감쪽같이 없어졌단 말이지? 소지품은 갖고 갔나?" "그게 말입니다." 순경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대답했다. "나로서는 어떻게 해볼 수가 없어서 그 사건은 내 손을 떠나 검시관에게로 갔죠. 그 사람들이 클링을 찾고 있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만 - 내 생각으로는 말이죠 -" 순경은 천천히 한쪽 찾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말할 수 없는 입장이어서 -" 순경이 허둥대며 덧붙였다. "클링의 행방에 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습니까?" 하고 엘러리가 물었다. "난 아무 것도 몰라요. 전국에 수배해 놓긴 했지만 말이오. 그 시체는 군(郡) 관청이 있는 웨어턴에 옮겨놓았습니다. 여기에서 11 - 12 마일 떨어진 곳인데, 검시관이 보관하고 있지요. 검시관은 밴의 집도 출입을 금지시켰습니다. 주 경찰에서도 이 사건에 착수했고, 또 핸콕 군의 지방검사도." 엘러리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경감은 의자에 진득하게 앉아 있지 않고 몸을 뒤척이고 있었다. 루든 순경은 엘러리의 있었다. "게다가 머리가 잘려져 나갔으니." 이윽고 엘러리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이해할 수가 없군. 도끼로 잘랐나 보죠?" "그래요, 도끼는 집안에서 발견되었답니다. 클링의 것이죠. 지문은 없었고요." "그럼 그 머리는?" 루든 순경은 머리를 흔들었다. "그림자도 없습니다. 미치광이 범인이 기념품으로라도 삼으려고 가지고 갔나 보죠, 거 참." "그럼 - " 하고 엘러리가 모자를 쓰면서 말했다. "이젠 가야겠는데요, 아버지. 고맙습니다, 루든 씨." 엘러리가 손을 내밀자 순경이 칠칠치 못한 동작으로 그 손을 잡았다. 그리고서 손바닥에 입이 벌어지는 것이었다. 어지간히 기분이 좋았는지 낮잠도 포기하고 길까지 나와 배웅을 했다. 2. 웨어턴의 새해 엘러리 퀸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국민학교 교장 사건에 집요한 흥미를 느낀 것에 논리적인 이유는 없다. 그는 당연히 뉴욕으로 돌아가 있어야 했다. 경감은 휴가를 취소하고 센터 가(街) (경찰본부가 있는 거리) 로 돌아오라는 통지를 받았다. 평소 같으면 경감이 가는 곳에 엘러리도 따라갔을 것이다. 그러나 웨스트 버지니아 주의 군 관청소재지의 분위기 속에 있는 무엇인가가, 웨어턴 마을의 길거리를 소곤거리는 소문으로 가득차게 만든 억제된 흥분이 엘러리를 이 마을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고 말았다. 경감은 정나미도 떨어지고 질려 버려서 뉴욕행 열차를 탔다. 데려다 주었다. "도대체 - " 엘러리가 아버지를 풀먼 열차(미국식 침대차) 좌석에 억지로 밀어넣자 노인이 말했다. "무슨 일을 저지르려고 하는 게냐, 응? 말해 봐라. 벌써 그 사건을 다 해결했다고 말할 참이지?" "저, 아버지." 하고 엘러리는 달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혈압에 신경쓰시는 편이 더 낫겠어요. 저는 그저 흥미를 갖고 있을 뿐인걸요. 이렇게 온통 미치광이 같은 사건을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저는 검시재판을 기다렸다가 보고 싶어요. 루든이 넌지시 비친 그 증거라는 것을 들어보고 싶어서요." "어쨌든 넌 뒷다리 사이에다 꼬리를 경감은 흥미 없는 듯이 예언했다. "물론 그렇겠죠." 엘러리는 싱글싱글 웃었다. "그렇게 되면 그것대로 소설의 재료를 얻게 되겠죠. 이 사건은 여러 가지로 많은 가능성이 있어서 말예요...." 두 사람의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났다.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뒤에 남은 엘러리는 자유롭게 됨과 동시에 어딘지 차분하지 못한 기분으로 역 플랫폼에 서 있었다. 그리고는 바로 그날 웨어턴으로 자동차를 달려서 되돌아왔다. 화요일이었다. 엘러리는 새해 첫날 다음날인 토요일까지 핸콕 군의 지방검사에게서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정보를 캐내려고 여러 가지 손을 썼다. 크러밋 지방검사는 빈틈 없는 야심과 갖고 있는 신경질적인 노인이었다. 엘러리는 대기실 문가까지는 갔으나 아무리 비위를 맞추어도 그 안으로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지방검사는 지금 매우 바쁘다. 지방검사는 어느 누구와도 만날 수 없다. 내일 다시 와라. 지방검사는 어떤 사람과도 만날 수 없다. 뉴욕에서 온 - 퀸 경감의 아들인데, 미안하지만.... 엘러리는 입술을 깨물고서 길거리를 천천히 걸어가며 피로를 모르는 귀를 웨어턴 주민들의 소문에 기울였다. 호랑가시나무의 번쩍번쩍한 장식품과 어울리는 화려한 크리스마스 트리로 둘러싸인 웨어턴은 끝없는 공포 속에 푹 빠져 있었다. 그곳에는 두드러지게 여자들의 모습이 적었고, 아이들은 전혀 오므리고 허둥지둥 모임을 갖고서는 대책을 강구하고 있었다.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었으나 - 이 방안은 사형에 처할 상대방이 없는 탓에 계획이 허사가 되고 말았다. 웨어턴의 경찰들이 불안한 듯 거리를 방황하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주 경찰의 일부가 어수선하게 거리에 나왔다 들어갔다 했다. 가끔씩 크러밋 지방검사의 화난 얼굴이, 달려가는 자동차 속에서 불타는 복수심으로 굳어 있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주위의 와글와글 들끓는 소동 속에서 엘러리는 그 냉정함과 탐구적인 태도를 지켜 나갔다. 수요일, 엘러리는 군 검시관인 스테이플턴을 만나러 갔다. 스테이플턴은 쉬지 않고 일하는 젊고 뚱뚱한 사람이었으나, 그 역시 약아빠진 있는 것 이상은 알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엘러리는 남은 사흘 간을 피해자인 앤드류 밴에 대해서 될 수 있는 한 철저히 조사하며 보냈다. 하지만 그 인물에 대해서 거의 아무 것도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은 정말이지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생전에 그를 만나본 사람은 극히 적었다. 고독한 성격에다 집에 틀어박혀 있길 좋아한 남자라서 웨어턴에도 좀처럼 나오지 않았었다. 소문에 의하면 애로요의 주민들은 밴을 모범적인 교사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학생들에게 관대하지는 않았지만 자상했었다. 애로요 마을의 의견에 의하면, 그가 가르치는 태도는 만족할 만한 것이었다. 게다가 밴은 교회엔 정말로 나가지 않았지만, 술은 전혀 마시지 고지식한 시골 마을에서 밴의 지위를 확고하게 해주었던 것 같다. 목요일, 웨어턴에서 지도적인 지위에 있는 신문편집자는 약간 문학적인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다음날은 설날이었기에 그냥 보내기엔 너무도 기회가 아까웠던 것이다. 웨어턴에서 정신적인 양식을 공급해 주는 여섯 명의 성직자들이 신문의 제1면에다 설교를 실었다. 목사들의 설교에 의하면 앤드류 밴은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에게서 버림받아 죽음을 당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폭력으로 인한 행위는.... 편집자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0 포인트 짜리 굵은 활자로 된 사설이 실려 있었다. 그 사설은 뒤셀도르프의 색마, 아메리카의 괴인인 살인마 잭, 이 밖에 많은 실재 또는 가공 괴물들을 인용해서 요란스럽게 꾸며 놓았다. 웨어턴의 선량한 주민들에게 신년 파티에 디저트로서 제공된 재미있는 이야깃 거리였다. ('살인마 잭'은 1888년 영국 런던에서 8명의 여자를 죽인 살인범의 별명으로서, 범인은 잡히지 않았으나 범행 도중 피해자에게 살해당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 작품에서 '살인마 잭'을 미국인으로 표현한 것은 엘러리 퀸이 문장을 쉽게 연결시키기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 토요일 아침, 검시재판이 열리게 된 군(郡) 재판소는 정각 훨씬 이전인데도 불구하고 문에서 비어져나올 정도로 제일 먼저 들어온 사람 중 한 사람이었고, 자리는 제일 앞쪽 줄, 난간 바로 뒤였다. 9시 조금 전에 검시관인 스테이플턴이 모습을 드러내자 엘러리는 잠깐 좀 보자고 하고서 뉴욕 시의 경찰국장이 서명한 전보를 보여주었다. 이 참깨 (알리바바의 참깨) 덕분에 앤드류 밴의 시체가 놓여 있는 대기실에 갈 수가 있었다. "시체는 이렇게 처참한 모습이오." 하고 검시관은 흥분해서 말했다. "크리스마스 주간이라 검시재판도 열리지 않기 때문에 꼬박 일주일이나 지나버렸소. 시체는 이 마을 장의실의 시체안치실에 보관해 두었었습니다." 엘러리는 몸이 굳어진 채 시체를 덮고 있던 천을 젖혔다. 속이 메스꺼워지는 듯한 체구가 큰 남자였다. 머리가 있어야 할 곳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단지 구멍이 크게 입을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옆의 탁자에는 죽은 남자가 입고 있었던 옷가지가 놓여 있었다. 수수하고 거무스름한 회색 양복, 검은 구두, 셔츠, 양말, 속옷 등등 - 그 전부가 색이 바랜 피로 빳빳해져 있었다. 죽은 남자가 입었던 옷에서 꺼낸 물건 - 연필, 만년필, 지갑, 열쇠꾸러미, 몹시 구겨진 담뱃갑, 몇 개의 동전, 값싼 시계, 낡은 편지 한 통 등등 - 에 엘러리는 전혀 흥미를 느낄 수 없었다. 이들 물건의 두세 개에 'AV'라는 머릿글자가 새겨져 있고, 또 편지에는 - 피츠버그의 서점에서 온 것인데 - '앤드류 밴 귀하'라고 수신인의 이름이 쓰여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스테이플턴은 돌아보고서 그때 막 방에 들어와서는 수상하다는 듯이 엘러리를 쳐다보고 있는 키가 크고 신경질적인 노인을 소개했다. "이쪽은 퀸이고 - 이쪽은 크러밋 지방검사입니다." "누구라고?" 크러밋은 날카로운 어조로 물었다. 엘러리는 미소지으며 끄덕이고는 검시법정으로 되돌아왔다. 5분 정도 지나서 검시관 스테이플턴이 망치를 두드리자 초만원인 법정은 잠잠해졌다. 형식대로 시작 순서를 몹시 급하게 마치고서 검시관은 마이클 오킨스를 증인대로 불렀다. 오킨스는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보내고는 통로를 쿵쿵 소리를 내면서 나왔다. 그는 허리가 굽고 우락부락하게 생긴 늙은 농부로서 마호가니 나무색으로 피부가 그을어 있었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자리에 앉고서 커다란 양손을 모았다. "오킨스 씨." 하고 검시관이 소리를 지르듯이 불렀다. "고인의 시체를 발견했을 때의 모습을 얘기해 주시지요." 농부는 입술을 핥았다. "알겠습니다. 내가 지난 금요일 아침에 포드 자동차를 타고 애로요로 들어가는 중이었습니다. 애로요 가로변 가까이에 있는 산에서 내려온 피트 노인이 길을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는 것을 발견했지요. 그래서 태워주었습니다. 그리고서 도로의 길 모퉁이까지 갔는데, 그 - 시체가 십자가에 매달려서요. 손하고 다리가 - " 오킨스의 목소리가 쉬어졌다. "우리들은 - 우린 전속력으로 마을 쪽으로 달려갔습니다." 누군가가 방청석에서 소리를 죽이고 웃었다. 검시관이 망치를 두드려 조용히 하게 하고서 다시 물었다. "시체에는 손을 대지 않았습니까?" "물론입니다, 차에서 내리지도 않았는걸요." "좋습니다, 오킨스 씨." 농부는 후 하고 한숨을 내쉬고는 크고 붉은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으면서 통로로 비틀비틀 걸어갔다. "다음, 피트 노인은?" 법정이 술렁거리고 뒤쪽 좌석에서 기묘한 기르고서 눈썹이 차양처럼 드리워진, 자세가 꼿꼿한 노인인데 - 찢어지고 더러워진, 여기저기 기운 누더기옷을 걸치고 있었다. 노인은 통로를 비틀비틀 내려와서는 조금 서성이다가 머리를 흔들고는 증인석에 앉았다. 검시관은 찬찬히 살피는 듯했다. "당신의 이름을 정확히 말하시지요." "뭐라고요?" 노인은 밝고 공허한 눈으로 옆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의 이름 말이오! 뭐지요? 피트, 뭐라고 하지요?" 피트 노인은 머리를 흔들었다. "이름은 없어." 하고 선언하듯이 말했다. "피트 노인이 바로 나야. 나는 죽었어, 난 말이야. 20년 전에 죽었어." 당황하여 주위를 둘러보았다. 검시관이 앉아 있는 상단 근처에 앉아 있던, 몸집이 작고 교활하게 생긴 중년 남자가 일어섰다. "이젠 됐습니다, 검시관님." "어떻게 할까요, 홀리스 씨?" "됐습니다." 하고 상대방은 높은 목소리로 같은 말을 반복했다. "저 노인은 머리가 돌았습니다. 피트 노인 말이죠. 벌써 몇 년이나 저런 식인데, 산에 들어가고 나서 계속 그렇습니다. 애로요 산속 어딘가의 오두막집에서 살고 있지요. 한 달에 한 번 정도 나옵니다. 아마 덫으로 짐승들을 잡아먹고 사는 모양입니다. 애로요에서는 꽤 얼굴이 알려져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입니다, 검시관님." "그렇습니까? 고맙습니다, 홀리스 씨." 애로요의 읍장은 방청석에서 모두 그렇다고 웅성거리는 속에서 자리에 앉았다. 피트 노인은 얼굴이 밝아져서는 더러운 손을 매트 홀리스에게 흔들었다.... 검시관은 감정 없이 질문을 계속했다. 노인의 대답은 모호했지만, 그래도 마이클 오킨스의 진술을 정식으로 확인해 주긴 했다. 그런 뒤에 이 산속 노인은 풀려났다. 노인은 눈을 크게 뜨고서 껌벅거리며 다리를 질질 끌고 원래 자리로 되돌아갔다. 홀리스 읍장과 루든 순경이 각각 진술을 했다. 오킨스와 피트 노인에 의해서 어떻게 침대에서 깨어나게 되었는지, 어떻게 해서 교차로까지 가서 시체의 신원을 확인하고, 쇠못을 뽑고, 시체를 운반하고, 밴의 집에 들러 그 아수라장과 문에 피로 쓰여진 뚱뚱하게 살이 찌고 혈색 좋은 독일인 노인이 호출되었다. "루더 번하임 씨." 독일인은 금니를 보이며 빙긋 웃고는 배를 흔들면서 증인석에 앉았다. "당신은 애로요에서 잡화점을 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앤드류 밴을 알고 있습니까?" "알고 있습니다. 우리 가게에서 물건을 사갔습니다." "언제쯤부터 알게 되었습니까?" "아! 벌써 오래 되었습니다. 좋은 단골이었지요. 항상 현금으로 냈습니다." "물건은 항상 본인이 사러 왔습니까?" "가끔은 그랬죠. 대개는 하인인 클링이 왔죠. 그러나 계산은 항상 본인이 와서 ?? "인간관계는 원만했습니까?" 번하임은 눈을 치켜떴다. "그냥, 좋았다고도 할 수 있고 좋지 않았다고도 할 수 있죠." "결코 마음속을 터놓진 않았지만, 그래도 인간미는 좋았다는 뜻입니까?" "예, 예." "밴은 특이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예? 아,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예를 들면 언제나 캐비아 (철갑상어의 알젓) 를 사갔지요." "캐비아?" "예. 우리 가게에서 그런 물건을 사는 손님은 그 사람 뿐이었습니다. 나는 그 사람을 위해서 특별히 준비해 놓았었지요. 강가의 백용상어의 알젓) 라든가 제드 (연어나 송어의 알을 헤쳐서 소금물에 절인 식품) 라든가. 그렇지만 대개는 최상품인 블랙이었습니다." "번하임 씨, 미안합니다만, 홀리스 읍장님, 그리고 루든 순경도 함께 옆방으로 가셔서 시체를 정식으로 확인해 주셨으면 합니다." 검시관은 세 사람의 애로요 시민을 따라 일어섰다. 그들이 돌아올 때까지 잠시 법정 안은 웅성거리고 있었다. 선량한 상점주인의 불그레한 얼굴은 푸른 기를 띠고 눈에는 공포의 빛이 어려 있었다. 엘러리 퀸은 한숨을 쉬었다. 인구 200명 안팎의 시골 마을 국민학교 교장이 캐비아를 사먹었단 말이지? 루든 순경은 틀림없다. 밴은 그 직업과 환경에서 보여진 것보다는 훨씬 화려한 과거를 갖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키가 크고 마른 모습의 크러밋 지방검사가 증인석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방청석에는 희미한 전율이 스쳐 지나갔다. 지금까지 있었던 증언은 아무래도 좀 하찮은 것이었다. 지금부터 폭로가 시작될 것이다. "지방검사님. " 스테이플턴 검시관은 쑥 몸을 앞으로 내밀면서 말했다. "당신은 고인의 과거를 조사했습니까?" "했습니다." 엘러리는 자리에서 지친 몸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그는 이 지방검사가 까닭없이 싫었다. 그건 그렇고, 크러밋의 얼음같이 "그럼 알아낸 것을 말씀해 주시죠." 핸콕 군 지방검사는 증인석 의자의 팔걸이를 꽉 쥐었다. "앤드류 밴이 애로요에 모습을 나타낸 것은 9년 전인데, 그 마을 국민학교 교사를 구하는 광고를 보고 왔었습니다. 신원조회 결과나 학력이 모두 만족할 만한 것이었기 때문에 마을회는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습니다. 밴은 하인인 클링이라는 남자와 함께 찾아왔는데, 애로요 가도에 집을 빌려서 죽을 때까지 거기에 살았습니다. 교사로서의 책임은 충분히 완수했었다고 봅니다. 애로요에서 사는 동안 행동거지는 나무랄 데가 없었습니다." 크러밋은 의미 있는 듯 이상하게 말을 끊었다. "내 부하 수사관들은 이 인물이 애로요에 오기 전의 오기 전엔 피츠버그의 공립국민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했었던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전엔?" "전연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민온 사람으로서 13년 전에 피츠버그에서 시민권을 얻었습니다. 피츠버그에 보존되어 있는 서류에 의하면 이민오기 이전 국적은 아르메니아이고 1885년에 태어났습니다." 아르메니아 인이라 - 하고 엘러리는 난간 뒤에서 턱을 어루만지면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갈릴리 (예수가 활동한 곳) 에서 그리 멀지 않지 - 여러 가지 기묘한 생각이 머릿속을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엘러리는 안타까운 듯이 그것을 쫓아버렸다. "당신은 밴의 하인인 클링에 관한 것도 조사했습니까, 지방검사님?" 피츠버그의 세인트 빈센트 고아원에서 자란 사람입니다. 어른이 되어서는 그 고아원에서 잡역부로 일했지요. 일생을 죽 거기서 보냈습니다. 앤드류 밴이 피츠버그의 공립국민학교를 그만두고 애로요에 올 때 그 고아원을 찾아가서 사람을 하나 쓰겠다고 했습니다. 클링이 적당했는지 밴은 자세히 조사한 뒤 마음을 정하고서 둘이 애로요에 가서 밴이 죽을 때까지 죽 거기에서 살았지요." 엘러리는 피츠버그와 같은 대도시에서 확고한 지위에 있었던 남자가 그것을 그만두고 애로요와 같은 시골구석에서 직업을 구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에는 그만한 동기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어렴풋이 이상한 느낌을 갖게 되었다. 것은 아닐까? 아니, 그런 것은 있을 수 없다. 몸을 숨기기에는 대도시야말로 더 안성맞춤이지 시골에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더 깊고 더 비밀스러운, 어쩌면 그 죽은 남자의 머릿속에 부리를 내려 제거할 수 없는 무슨 일인가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엘러리는 생각했다. 여러 가지 실패를 거듭한 인간이 고독을 느끼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인데, 캐비아를 먹는 애로요 국민학교 교장인 앤드류 밴의 경우에도 그럴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 "클링이라는 사람은 어떤 남자였습니까?" 하고 스테이플턴이 물었다. 지방검사는 다소 지겨워 하는 듯했다. "고아원의 보고서에 의하면 저능아이며 - 심리적으로 말하면 - 정신박약아 부류에 않는 인물이고요." "클링은 과거에 살인을 저지를 듯한 행동을 한 적이 있었습니까, 크러밋 씨?" "아니, 세인트 빈센트에서는 온순한 성격에다 꽤 둔하고 어리숙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고아원의 아이들에게는 자상했던 것 같습니다. 조심스럽고, 예절도 바르고, 고아원 내의 윗사람들도 잘 모셨던 것 같습니다." 지방검사는 새삼스럽게 입술을 축이고서 바야흐로 예정했던 새로운 사실을 진술하려는 듯한 모습이었는데, 그만 스테이플턴 검시관은 서둘러서 지방검사를 내보내고 애로요의 잡화점 주인을 또 불러냈다. "당신은 클링을 알고 있습니까, 번하임 "예, 알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꽤 조용한 사람이었습니다. 마음씨도 좋고, 황소처럼 과묵했지요." 누군가가 웃자 스테이플턴은 당황하는 듯했다. 그는 몸을 앞으로 쑥 내밀었다. "번하임 씨, 그 클링이라는 사람은 애로요에서는 힘이 센 장사라고 평판이 나 있는데, 그것이 사실입니까?" 엘러리는 혼자 키득키득 웃었다. 이 검시관은 꼭 꼬집어 말할 수는 없겠지만 무척 단순한 사람인 모양이었다. 번하임의 목구멍에서 킬킬거리는 소리가 났다. "예, 그렇습니다. 대단히 힘이 섶지요. 그 클링은 나무 설탕통도 들어올릴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파리 한 마리도 검시관님, 내 기억으로는 단 한 번도 -" "아, 좋습니다." 스테이플턴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홀리스 씨, 다시 한 번 증인석에 나와주십시오." 매트 홀리스는 득의만만했다. 마치 막힘 없이 술술 떠벌이는 난쟁이 같다고 엘러리는 생각했다. "당신은 마을회의 의장이죠, 홀리스 씨?" "그렇습니다." "배심원들에게 앤드류 밴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을 말씀해 주시지요." "나무랄 데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해를 입히는 일은 한 적이 없습니다. 근면성실하다는 거죠. 학교 근무시간 이외에는 내가 빌려준 훌륭한 집에서 혼자 지냈습니다. 개중에는 성격이 외국인이라서 그렇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만, 나는 그렇게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이 읍장은 뭐라도 된 듯한 모습이었다. "단지 무척 조용했습니다. 그뿐입니다." "이웃과의 교제는 없었습니까?" "그랬을 것 같습니다만, 그건 그 사람 마음입니다. 나랑 루든 순경과 함께 낚시가는 것을 거절하는 것도 역시 본인의 마음이지요." 홀리스는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게다가 그 사람은 나나 검시관님과 같이 훌륭한 영어를 구사했습니다." "손님이 찾아온 적이 있었습니까? 당신이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아뇨. 그러나 물론 나로서는 확실한 사람이었으니까요." 읍장은 골똘히 생각을 해가며 말을 계속해 나갔다. "두 번 정돈가 내가 볼 일이 있어 피츠버그에 나갈 때 책을 사다 달라고 부탁한 적은 있었습니다. 상당히 기묘하고도 고상한 책이었지요. 철학이라든지, 역사라든지, 아니면 별에 관한 책이었지요." "허, 대단히 재미있군. 홀리스 씨, 그런데 당신은 애로요 은행의 책임자가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홀리스는 얼굴을 붉히고서 쑥스러운 듯이 눈을 내리뜨고 자기의 다리를 바라보았다. 그 표정에서 엘러리는 이 읍장이 애로요 마을에서는 무엇이든지 관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앤드류 밴은 당신 은행에 예금을 "아닙니다. 항상 봉급은 현금으로 받아갔습니다만, 어느 은행에도 맡기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내가 한두 번 권해 봤었기 때문에 알게 된 거지요. 아시겠습니다만, 사업은 사업이니까요. 그 사람은 돈을 집에다 둔다고 했습니다." 홀리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은행은 믿을 수가 없다고 했지요. 사람에게는 각자의 취향이 있습니다. 나로서는 그것을 가지고 탓할 입장이 못 되는 까닭으로 -" "그 얘기는 애로요에서는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입니까?" 홀리스는 망설였다. "흠, 아마 내가 두세 사람에게는 그 얘기를 한 것 같습니다. 우리 마을 대부분의 주민들은 그 국민학교 생각합니다." 읍장은 손을 흔들고서 증인석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루든 순경이 또 불려나왔다. 순경은 몸이 긴장되어 굳어진 채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 할지 나름대로 생각을 하는 듯한 모습으로 앞으로 나갔다. "당신은 12월 25일 금요일 아침 앤드류 밴의 집을 수색한 적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돈은 있었습니까?" "아뇨, 없었습니다." 법정 전체에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도둑이었나? 엘러리는 눈썹을 모았다. 하지만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첫째로 이 범죄는 어느 점으로 보아도 그런데 돈을 훔치다니. 이 두 가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엘러리는 앞으로 몸을 내밀었다. 어떤 남자가 무엇인가를 상단으로 가져왔다. 그것은 찌그러진 초록색의 싸구려 양철 상자였다. 고리가 크게 휘어져 있었고 약해 보이는 자물쇠가 축 늘어져 있었다. 검시관은 상자를 담당관으로부터 받아들고는 뚜껑을 열고서 뒤집어 보았다. 속은 텅 비어 있었다. "순경, 당신은 이 초록색 양철 상자를 본 적이 있소?" 루든은 코를 킁킁거렸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순경은 굵고 쉰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과 똑같은 것을 밴의 집에서 보았습니다. 그 사람의 돈상자입니다, 분명합니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이 지방 사람들로 구성된 배심원들에게 보여주었다. "검시배심원 여러분은 부디 신중하게 이 증거물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이젠 됐소, 루든 순경. 애로요의 우체국장, 증인석에 앉아주십시오." 쭈글쭈글하고 몸집이 작은 노인이 증인석으로 깡총 뛰어 넘어갔다. "앤드류 밴은 많은 우편물을 받았습니까?" "아뇨." 우체국장은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광고 인쇄물이 오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죽기 전 일주일 안에 편지나 소포는 오지 않았습니까?" "편지는 가끔 부쳤습니까?" "뭐 가끔 그랬습니다. 한두 통 정도였는데, 요 서너 개월 동안엔 한 통도 부치지 않았습니다." 검시의인 스트랭 씨가 불려졌다. 그의 이름이 불려지자 방청객들이 갑자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주머니 사정이 안 좋은 듯한 초라한 모습이었는데, 마치 이 세상에 시간은 얼마든지 있다는 듯한 느긋한 표정으로 통로를 느릿느릿 내려왔다. 자리에 앉자 검시관이 물었다. "스트랭 박사님, 언제 고인의 시체를 조사했습니까?" "발견되고 나서 두 시간 뒤입니다." "배심원들에게 대강의 사망시간을 "교차로에서 발견된 것은 죽은 지 여섯 시간에서 여덟 시간이 지난 뒤라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그러면 타살된 것은 크리스마스 이브의 한밤중 전후가 되겠군요?" "예, 그렇습니다." "시체 상태에 대해서, 즉 이 심문에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배심원들에게 상세히 얘기해 주시겠습니까?" 엘러리는 웃었다. 스테이플턴 검시관은 지금이야말로 기다리던 순간이었다. 말이 장중하고, 또한 관리임을 나타내듯이 우쭐거리는 태도에다, 청중이 완전히 감명을 받고 있다고 여기는 것은 그 멍청히 벌린 입만 봐도 알 수가 있다. 스트랭 의사는 다리를 꼬고 앉아 귀찮은 목의 생생한 상처 자국과 양손과 발에 난 못자국 이외에는 시체에 별다른 상처 자국은 없었습니다." 검시관은 반 정도 몸을 일으키고서 쑥 나온 배를 책상 가장자리에다 밀어붙였다. "스트랭 박사님." 하고 쉰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 사실에서 박사님은 어떠한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까?" "고인은 필시 머리를 얻어맞았거나 아니면 흉기로 머리를 찔린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시체에는 다른 폭력이 가해진 흔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엘러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풀이 죽은 듯한 모습을 한 지방 의사는 우선 머리만은 믿을 수 있는 듯했다. "내 의견으로서는 -" 하고 검시의는 이미 죽어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목에 남겨진 상처의 상태로 보아 대단히 예리한 도구가 사용된 것이 틀림없습니다." 검시관은 자기 앞의 책상 위에 소중한 듯이 올려져 있는 물건을 들어올렸다. 긴 자루가 달려 있고, 어쩐지 섬뜩한 느낌이 드는 도끼였는데 피가 묻어 있지 않은 부분의 날은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다. "스트랭 박사님, 이 흉기로 피해자의 머리를 몸에서 잘라낼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가능하다고 봅니다." 검시관은 배심원석 쪽을 돌아다보았다. "이 증거물은 앤드류 밴의 집 뒤쪽 부엌의 마루 위에서 발견된 것으로, 살인은 그 부엌에서 행해진 겁니다. 배심원 여러분, 흉기에 지문이 없는 것은 범인이 장갑을 끼고 있었던지, 아니면 도끼를 사용한 뒤에 지문을 닦아낸 것을 의미합니다. 이 도끼는 밴의 소유물이며, 평상시에는 부엌에 놓여져 있었고, 행방불명이 된 클링이 장작을 패는 데 항상 사용했었던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스트랭 박사님, 수고하셨습니다. 피켓 총경, 증인석에 앉아주십시오." 웨스트 버지니아 주 경찰국장이 그 말에 응했다. 키가 크고 군인 같은 사람이었다. "피켓 총경, 보고해 주시지요." "애로요 근방을 철저히 수색했습니다만," 하고 총경은 기관총과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죽은 남자의 머리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실종된 클링의 인상서를 인접한 각 주에 구석구석 배포하고 현재 수색중입니다." "당신은 고인과 실종된 사람의 최근 동정에 관해서 수사를 담당하고 있지요, 총경? 무엇을 발견했습니까?" "앤드류 밴이 마지막으로 모습을 나타낸 것은 12월 24일 목요일 오후 4시입니다. 그때 그 사람은 애로요에 사는 레베카 트로브 부인 집을 찾아가서 자기 학교 학생인 그 부인의 아들 윌리엄이 공부를 게을리하고 있다고 하며 충고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수사한 바로는 그 집에서 나온 뒤로 어느 누구 한 사람 그 남자의 모습을 본 사람이 없습니다." "그럼, 클링은 어떻습니까?" 퓨타운의 중간에 사는 농부인 티모시 트레이너로, 같은 날 오후 4시 조금 지나서입니다. 클링은 감자를 1부셸 사고서 현금으로 지불하고는 어깨에 메고 얼른 돌아갔다고 합니다." "그 1부셸의 감자는 밴의 집에서 발견되었습니까? 그 점은, 총경, 클링이 정말로 집으로 돌아왔는지 안 왔는지를 결정하는 데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만." "발견되었습니다. 전혀 손을 안 댄 상태로 그냥 있었고, 트레이너 씨가 그날 오후에 자신이 판 것이라고 확인해 주었습니다." "이밖에 더 말씀하실 사항은 없습니까?" 피켓 총경은 대답하기 전에 법정을 죽 둘러보았다. "물론 있습니다." 하고 엄숙히 법정은 죽은 듯이 아주 조용해졌다. 엘러리는 피곤한 듯한 미소를 띠었다. 드디어 새로운 사실이 세상에 공개될 때가 된 것이다. 피켓 총경은 몸을 쑥 내밀고서 검시관의 귀에 무슨 말인가를 속삭였다. 스테이플턴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고 껌벅거리다가 미소지으면서 그 통통한 뺨을 닦은 뒤에 고개를 끄덕였다. 방청객들은 또 무슨 일인가가 일어나려는가 보다 하고서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흥분해 있었다. 피켓은 태연하게 법정 뒤쪽에 있는 누군가에게 신호를 했다. 키가 큰 모터사이클 순찰경관이 기묘한 사람의 팔을 붙잡고서 나타났다. 그 남자는 몸집이 작은 사람으로 갈색 머리칼과 갈색 턱수염을 더부룩하게 기르고 있었다. 그것은 광신자의 눈이었다. 피부는 더러운 청동색에다 평생 밖에서만 생활했는지 태양과 바람에 시달린 듯 주름살이 잡히고 거칠거칠했다. 입고 있는 옷은 - 엘러리는 눈을 가늘게 떴다 - 진흙투성이의 카키 색 반바지와 목을 둥글게 판 낡고 오래 된 회색 스웨터였다. 회색의 혈관이 불거져 나온 갈색 피부에다, 발에는 기묘한 모양의 샌들을 신고 있었다. 그리고 손에도 기묘한 것을 들고 있었다. 막대기 같은 지팡이인데, 끝에는 서툰 목수가 파서 만들었는지 엉성한 뱀 모양이 붙어 있었다. 갑자기 웅성거림이 일더니 이윽고 웃음 소리가 폭발했다. 검시관은 미친 듯이 망치를 두드리며 조용히 하라고 소리쳤다. 순찰경관과 그 기묘한 인물 뒤에서 기름 피부의 얼굴을 한 젊은 남자가 다리를 질질 끌면서 따라왔다. 그 남자는 대부분의 방청객에게 잘 알려져 있는 모양인지 통로를 내려가서는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하기도 하고, 격려해 주기라도 하는 듯이 어깨를 두드려 주는 사람도 있고, 법정 전체의 방청객들도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그 남자의 모습을 거리낌없이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세 사람은 난간의 통로를 빠져나와 자리에 앉았다. 갈색 턱수염의 노인은 분명히 심한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눈을 두리번두리번거리고 깡마른 갈색 손은 들고 있는 기묘한 지팡이를 경련이라도 일으킨 듯이 꽉 쥐기도 하고 느슨하게 풀기도 했다. 기름 얼룩이 진 노동자용 겉옷을 입은, 얼굴이 하얀 남자가 침을 꿀꺽 삼키고는 벌떡 일어나 증인석에 앉았다. "당신은 웨어턴 주도로(州道路) 에서 자동차 수리소와 주유소를 하고 있지요?" 하고 검시관이 물었다. "아니, 왜, 저를 잘 아시잖습니까." "질문에만 대답하시오, 어서." 스테이플턴은 위엄 있게 말했다. "크리스마스 이브 밤 11시쯤 어떤 일이 있었는지 배심원들에게 말하시오." 크로커는 깊이 한숨을 쉬고는 마지막으로 자기를 호응해 줄 눈을 찾는 것처럼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 말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문을 닫았습니다. 파티를 열려고요. 저는 자동차 수리소 바로 뒤에 아내와 바깥쪽 방에 있는데 밖에선지 거칠게 계속해서 뭔가를 두드리며 소리치는 게 들려왔습니다. 아무래도 우리 자동차 수리소에서 들려오는 것 같아서 제가 달려가 보았습니다. 아주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었지요." 젊은 남자는 또 꿀꺽 침을 삼켰다. 그리고는 서둘러서 계속 말해 나갔다. "나가 보니 어떤 남자가 우리 자동차 수리소의 문을 두드리고 있더군요. 그 남자는 저를 보고는 -" "잠깐만 기다리시오, 크로커 씨. 그 남자는 어떤 옷을 입고 있었소?" 자동차 수리소 주인은 어깨를 으쓱했다. "칠흑 같은 밤이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특별히 주의해서 볼 이유도 없어서요." "보았습니다. 마침 보안등 아래에 서 있었거든요. 그런데 머리를 완전히 뒤집어쓰고 있었습니다. 그날 밤은 굉장히 추웠거든요. 그렇지만 저에게는 아무래도 그 남자가 얼굴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듯이 여겨졌었습니다. 그러나 어떻든 제가 본 바로는 곱상한 얼굴에 좀 거무스름하고 어딘지 외국인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만, 훌륭하고 유창한 영어를 구사했습니다." "어느 정도의 나이였소?" "흠, 30대 중반 정도였는데, 그보다도 조금 많은지 적은지 확실한 것은 모르겠습니다." "무슨 일이었나요?" "애로요까지 자동차로 태워다 달라고 엘러리는 뒷줄에 앉아 있는 어깨가 딱 벌어진 남자의 천식 환자 같은 숨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다. 법정은 그 정도로 쥐죽은 듯 조용했다. 모두가 긴장하고 의자의 끝 쪽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리고 나서 어떻게 됐습니까?" 하고 검시관이 물었다. "그러니까 -" 하고 크로커는 다소 침착을 되찾고서 대답했다. "저는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았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11시인 데다가 아내를 혼자 내버려둬야 해서 말이죠. 그러나 그 남자가 지갑을 꺼내며, '태워다 주면 10달러 주겠소.' 하고 말하더군요. 저 같은 가난뱅이에게는 더할 수 없는 기회였지요. 그래서, '좋습니다. 그러지요.' 하고 "그래서 그 남자를 태우고 갔다고?" "그렇습니다. 외투를 가지러 들어가서 아내에게 반 시간 정도 집에서 나가봐야겠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가서 제 고물차를 꺼내어 그 사람을 태우고 출발했습니다. 애로요 어디를 가느냐고 물으니 그 사람은 '애로요 도로와 컴벌랜드 퓨타운 도로가 만나는 곳이 있죠?' 하고 묻더군요. 저는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 남자는, '그래요, 그곳에 가고 싶소.' 하고 말하더군요. 저는 거기까지 태워다주고는 그 남자가 차에서 내려 10달러를 주는 걸 받고서 차를 돌려 얼른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어쩐지 괜히 소름이 끼치고, 무서운 생각까지 들어서 말이죠." "당신이 그곳을 떠날 때 혹시 그 사람이 크로커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어깨 너머로 살펴보았습니다. 차가 도랑에 좀 빠졌을 때 말입니다. 그 사람은 애로요로 가는 샛길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꽤 심하게 다리를 절더군요." 순찰경관 옆에 앉아 있던 갈색 머리의 노인이 꿀꺽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눈은 도망칠 길이라도 찾는 것처럼 미치광이 같은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어느 쪽 다리였소, 크로커 씨?" "글쎄요, 왼쪽 다리를 절었던 것 같습니다. 중심이 완전히 오른쪽으로 쏠려 있었거든요." "그것이 그 남자를 본 마지막입니까?" "그렇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게 적이 없습니다." "좋습니다." 크로커는 홀가분한 듯이 증인석을 떠나 서둘러 통로를 지나 출입구 쪽으로 갔다. "다음은, " 하고 스테이플턴 검시관은 작고 반짝이는 눈으로 의자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갈색 턱수염을 기른 작은 남자를 꿰뚫어 보면서 말했다. "당신, 증인석에 앉으시지요." 순찰경관이 일어나서는 '갈색 턱수염의 사나이'를 재촉하듯이 일으켜 세우고 앞쪽으로 밀었다. 작은 남자는 버티지도 않고 나아갔지만, 그 미친 듯한 눈에는 당황한 빛이 어려 있었고 어떻게 해서든지 도망가려는 듯이 보였다. 경관은 힘도 들이지 않고 남자를 증인석에 앉히고는 "당신 이름은 어떻게 됩니까?" 스테이플턴 검시관이 물었다. 그 남자의 어딘가 기묘한 데가 있는 옷과 모습 때문에 증인석이라는 전망 좋은 자리에 강제로 끌려나가 앉혀져 사람들에게 모두 드러나자 방청객 사이에서 폭소가 터져나왔다. 조용하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그 동안 증인은 입술을 핥기도 하고 몸을 좌우로 흔들면서 뭐라고 혼잣말을 중얼거리기도 했다. 엘러리는 그 남자가 무슨 기도인가를 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고서 안심했다. 기도하고 있는 것이었다 - 아연실색하긴 했지만 - 지팡이 꼭대기의 나무 뱀에게 말이다. 스테이플턴은 신경질적으로 똑같은 가냘픈 어깨는 뒤로 젖힌 채, 있는 힘과 위엄을 다해 똑바로 스테이플턴의 눈을 응시하고서 아주 날카로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하라크트라는 사람인데, 대낮의 태양신이오. 라-하라크트라는 송골매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스테이플턴 검시관은 눈을 깜박거리고는 갑자기 누군가에게 원인을 알 수 없는 위협을 정면으로 받은 것처럼 두려움에 질려 움직이지 못했다.방청객들도 입을 딱 벌렸지만, 곧 히스테릭한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번엔 조소의 웃음이 아니라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공포에서 생긴 웃음이었다. 이 남자 주위에는 왠지 두렵고 불쾌한 느낌이 감돌고 있었으며, 그 진지함이 엿보였던 것이다. "누구라고?" 하고 검시관이 힘없이 물었다. 하라크트라고 자칭한 남자는 앙상한 가슴에다 팔짱을 끼고서 지팡이를 단단히 앞으로 꽉 붙잡고는 대답을 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스테이플턴은 얼굴을 닦고서 다음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쩔쩔매고 있었다. "흠 - 직업은 뭡니까? 저 - 하라크트 씨?" 엘러리는 의자에 깊숙히 허리를 묻고서 검시관을 대신해서 얼굴을 붉혔다. 그 광경을 차마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라크트는 위엄 있게 입술을 꽉 깨물고서 말했다. "나는 약한 사람을 건강하게 만들고 있소. 나는 '만제트' (Manzet, 여명의 배) 를 움직이는 사람이오. '메젠크테트' (Mesenktet, 황혼의 배) 를 움직이는 사람이오. 어떤 사람은 나를 천지 끝의 신 호러스 (이집트 신화에서 태양신) 라고 부르기도 하지. 나는 하늘의 신인 케브의 아내이며, 이지스와 오지리스의 어머니인 누트의 아들이오. 나는 멤피스 (이집트의 옛 도시) 의 최고 지상신이오. 나는 에톰과 함께 -" "그만두시오." 하고 검시관이 소리쳤다. "피켓 총경,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당신은 이 미치광이가 검시재판에서 중요한 진술을 할 것으로 생각한 모양인데, 나는 -" 주 경찰국장이 당황해서 일어났다. 갑작스런 사태에 놀라고 두려워서 당황해 했던 모습은 완전히 사라지고, 그 비뚤어진 뇌 속에서 자기가 이 고장의 지배자인 것을 깨달은 것처럼 태연자약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검시관님,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하고 총경이 급하게 말했다. "미리 말해둘 게 있습니다. 이 사람은 정상이 아닙니다. 당신과 배심원들에게 이 사람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말씀드리는 게 낫겠군요. 그러면 더 적절한 질문을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 사람은 일종의 주술 약장수입니다.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짓인데, 태양이라든가 별이라든가 달이라든가 이집트의 파라오(왕) 의 기묘한 그림 등을 그려주는 겁니다. 별로 나쁜 행위는 늙은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일리노이 주, 인디애나 주, 오하이오 주에서 웨스트 버지니아 주에 걸쳐 돌아다니며 설교도 하고, 머리카락까지 난다는 만병통치약을 팔기도 하는데 -" "그것은 불로장수의 영약이오." 라고 하라크트는 진지하게 말했다. "태양의 빛을 담은 병이오. 나는 신의 계시를 받고 태양신의 복음을 설파하고 있소. 나는 멘투이며 아트무이며, 또한 -" "내가 알고 있는 바로는 단지 대구의 간유입니다." 하고 피켓 총경은 한번 싱긋 웃고는 설명했다. "이 사람의 본명은 아무도 모릅니다. 자기도 잊어버렸다고 합니다." 보이며 말했다. 엘러리는 갑자기 어떤 것을 발견하고는 딱딱한 의자 속에서 뼛속까지 소름이 오싹했다. 미치광이의 손에 들려 있는 서툰 솝씨의 상징의 의미를 알아차린 것이다. 그것은 '우래우스'(uraeus) 로서, 고대 이집트 신앙의 중심이었던 신과 그 신의 자손인 여러 왕의 상징인 뱀이었다. 처음엔 뱀의 모습으로 보고 카두세우스 대용품일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머큐리 (로마 신화의 상인 도둑. 웅변의 신) 의 상징에는 반드시 날개가 붙어 있는데 이것을 잘 눈여겨보면 뱀이 한 마리인지 한 마리 이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틀어 올라간 위쪽에 어설픈 태양을 본뜬 원반이 놓여 있다. 파라오 시대의 이집트인 것이다. 이 우습게 생긴 이름도 귀에 익은 것으로서 호러스, 누트, 이지스, 오지리스 등등... 이 밖에 다른 것들도 이상하긴 하지만 이집트 냄새가 났다. 엘러리는 똑바로 고쳐앉았다. "음, 하라크트, 아니면 이름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모르겠지만 -" 하고 검시관이 말했다. "당신은 캐스퍼 크로커의 증언 중에서 피부색이 거무스름하고 깨끗이 면도한 절름발이 남자에 관한 얘기를 들었을 게요." 턱수염의 남자 눈에 조금 이성적인 빛이 감돌더니, 그것과 동시에 좀 전에 공포를 담은 표정이 되돌아왔다. "저, 저 - 절름발이 남자 말이죠?" 하고 남자가 입속에서 우물거렸다. "알지요." "그런 모습의 남자를 알고 있소?" "흠 -" 검시관은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이제, 하라크트, 이야기가 제대로 되고 있소." 검시관의 어조는 쾌활하고 친근감마저 띠고 있었다. "그 사람은 무슨 일을 하며, 당신은 어떻게 해서 알게 되었습니까?" "그는 내 사도(使徒)요." "사도라고?" 방청객 속에서 희미하게 술렁거렸다. 엘러리는 바로 뒤의 뚱뚱한 남자가, "이 벼락맞을 놈아!" 하고 소리치는 걸 들었다. "그 남자는 - 당신의 조수라는 겁니까?" "내 제자요. 나의 사도. 호러스 신의 고승(高僧) 이란 말이오." "알았소, 알았소." 스테이플턴은 서둘러서 말했다. "이름은 뭐라고 하지요?" "흠 -" 검시관은 눈썹을 모았다. "외국인 이름이구먼. 아르메니아 사람이오?" 하고 말하고는 갈색 턱수염의 작은 남자를 자세히 쳐다보았다. "이집트 외의 나라는 없소." 하고 하라크트가 조용히 말했다. "그럼," 스테이플턴은 반짝 눈을 빛냈다. "그 이름은 철자가 어떻게 됩니까?" 피켓 총경이 말했다. "스테이플턴 씨, 그것은 내가 자세히 알아냈습니다. 'V_e_l_j_a K_r_o_s_a_c'입니다. 이 사람의 마차 안에 있는 서류에서 찾아냈습니다." "어디에 있소, 그 벨랴 크로삭은?" 하고 검시관이 물었다. 하라크트는 어깨를 으쓱했다. "어디론가 가버린 모양이오." 그러나 엘러리는 그 있음을 알아차렸다. "언제?" 남자는 또 어깨를 으쓱했다. 피켓 총경이 또다시 끼어들었다. "스테이플턴 씨, 내가 대신 얘기하고 검시재판을 빨리 진행하는 게 낫겠습니다. 크로삭은 우리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항상 신원을 감추었던 모양입니다. 지금부터 2년 정도 전부터 그 남자는 이 사람과 함께 다녔습니다. 말하자면 수수께끼의 인물이지요. 그 사람은 말하자면 사업 매니저이고, 선전활동을 하면서 불량약품을 판매하는 것은 하라크트에게 맡긴 모양입니다. 하라크트는 그 남자를 서부 어딘가에서 데려왔다고 합니다. 크로삭이 하라크트와 마지막으로 함께 있었던 것은 할리데이 코브 부근에서 야영하고 있었습니다." 웨어턴 2 - 3 마일 앞에서 엘러리는 그 지명을 도로표지판에서 본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크로삭은 10시쯤 밖에 나갔는데, 그것이 그 남자를 본 마지막이었다고 이 '괴상한 이름을 가진 사람' 이 말했습니다. 시간도 제대로 맞습니다." "그 크로삭의 행방은 찾아내지 못했습니까?" 총경은 울화통터지는 모양이었다.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하고 간단하게 잘라 말했다. "땅이 삼켜버린 것처럼 사라져 버린 겁니다. 그러나 결국엔 발견되겠지요. 도망칠 순 없습니다. 그 남자와 클링의 몽타지가 완전히 돌려졌습니다." "당신은 애로요에 가본 적이 있소?" "애로요? 없습니다." "두 사람은 웨스트 버지니아 주에서 그렇게 북쪽까지 간 적은 없습니다." 하고 총경이 말했다. "크로삭은 어떤 인물이었소?" "그는 진짜 신자였소." 하고 하라크트는 태연하게 단언하듯이 말했다. "그는 제단에 공손하게 예배드렸소. '쿠피'(kuphi) 도 함께 하고 귀중한 가르침도 열심히 들었소. 그 남자는 나의 자랑이고 영광인 -" "흠, 이젠 됐소." 하고 검시관은 질린 듯이 말했다. "경관, 이 사람을 데리고 가시오." 순찰경관이 싱글벙글하며 몸을 일으켜서는 '갈색 턱수염의 사나이'의 야윈 검시관은 두 사람이 군중 속에서 모습이 사라지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엘러리도 따라서 한숨을 쉬었다. 아버지가 말한 대로였다. 양다리 사이에 꼬리를 감추지는 않는다 해도, 적어도 초상집 개 같은 모습으로 뉴욕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될 모양이었다. 모든 경위가 자못 미치광이 짓 같고, 아무리 해도 이해할 수 없고, 조리도 맞지 않아 빤히 들여다 보이는 것만 같았다. 게다가 무참하게 토막내듯 처참하게 목을 잘라 죽인 시체를 십자가에다 매달아놓다니. '십자가에 매달았다!' 엘러리는 휴! 하고 거의 남에게 들릴 정도로 숨소리를 냈다. 십자가 - 고대 이집트. 이 기묘한 사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총경은 하라크트의 마차에서 찾아낸, 하라크트가 크로삭의 것이라고 진술한 여러 가지 물건을 제출했다. 이들 물건은 하찮고 보잘것없는 것이며, 원래가 별 가치도 없는 것이어서 크로삭의 배경, 태생, 성격 등을 알아낼 만한 단서가 될 것 같지도 않았다. 검시관이 배심원들에게 지적한 것처럼 크로삭 사진은 한 장도 없었다. 그것은 이 남자의 체포를 더욱더 어렵게 만드는 것이었다. 게다가 더욱 어렵게 된 것은 당사자의 필적 견본조차 손에 넣지 못했던 것이다. 다른 증인들이 소환되었다. 여러 가지 자세한 점이 확인되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앤드류 밴의 집을 신경써서 살펴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자동차 수리소 헤어진 뒤 그 모습을 본 사람도 없었다. 밴의 집은 교차로 근처에 있는 유일한 주택이었는데, 그날 밤 그곳을 지나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밴을 십자가에 고정시켰던 쇠못은 항상 부엌 겸 식료품실에 있었던 밴 자신의 도구상자에서 꺼낸 것이었다. 그것은 오래 전에 클링이 잡화점 주인인 번하임에게서 산 것이라고 판명되었고, 대부분은 목장을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 엘러리는 스테이플턴 검시관이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할 때 비로소 자신의 주위 사정을 깨닫고는 깜짝 놀랐다. "배심원 여러분." 하고 검시관이 말했다. "여러분은 이 검시재판의 경과를 들으시고," 엘러리가 자리에서 갑자기 일어났다. 하며 말을 중단하고 장내를 둘러보았다. "무슨 일입니까, 퀸 씨? 당신은 검시재판에 참견할 -"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스테이플턴 씨." 하고 엘러리가 얼른 말했다. "검시배심원들에 대한 설명을 잠시 보류하시기 바랍니다. 전 당신들의 심리에 적절하다고 여겨지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하고 크러밋 검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외쳤다. "새로운 사실입니까?" "새로운 사실은 아닙니다, 검사님." 하고 엘러리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주 오래 된 사실입니다. 기독교보다도 더 오래 된 겁니다." 말했다. 방청객들은 기대하는 듯이 서로 속삭이고, 배심원들도 좌석에서 일어나서 이 뜻하지 않은 증인을 지켜보았다. "퀸 씨,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기독교와 이 사건이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겁니까?" "아무 관계도 없지요 - 바라건대 말입니다." 엘러리는 코안경을 벗어서 검시관 쪽으로 내밀었다. "이 끔찍한 범죄의 가장 현저한 특징으로는," 하고 엘러리는 엄숙한 어조로 말했다. "제가 이렇게 말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검시재판에서는 전연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사항은, 실은 범인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 범인은 범죄현장 근처에 T문자, 또는 겁니다. 도로 교차로의 T자형, 도로표지판의 T자 모습, 시체의 T자 모습, 피해자의 현관문에 피로 휘갈겨쓴 T자, 이런 사항들은 신문에 보도되었듯이, 모두 사실 그대로입니다." "아, 물론이지요." 하고 크러밋 지방검사가 비웃는 듯한 웃음을 띠고서 끼어들었다. "우리들도 모두 그것을 알고 있소. 그렇지만 당신이 말하려는 사실은 어디에 있는 겁니까?" "그것을 지금부터 말씀드리려고 하는 중입니다." 엘러리는 지방검사 쪽을 쳐다보았다. 크러밋은 얼굴을 붉힌 채 앉았다. "저로서는 어떻게 연결시켜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사실은 당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T자 표시는 것을 여러분은 깨닫고 계신지요?" "그 말은 무슨 의민가요, 퀸 씨?" 스테이플턴 검시관이 불안한 듯 물었다. "저는 그 T자 표시에는 종교적인 의미가 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종교적 의미?" 스테이플턴은 앵무새처럼 퀸이 한 말을 그대로 되풀이했다. 목사 칼라를 단 옷을 입은 풍채당당한 노신사가 꽉 찬 방청객 속에서 벌떡 일어났다. "박학한 신사분의 이야기를 중도에서 방해하는 것이 실례라고 생각됩니다만," 하고 노신사는 날카로운 어조로 말했다. "나는 복음 전도사입니다. 나는 T자 표시에 종교적인 의미가 있다는 말은 아직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누군가가, "그거야 당신 얘기지요, 붉히며 앉았다. 엘러리는 웃었다. "박학하신 성직자분의 말씀에 반대를 해야 될 것 같습니다만, 바로 이 점이 중요합니다. 수많은 종교적인 심볼 중에 T 형태를 한 십자가도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어로 '타우'(tau) 십자가라고도 하고 '크룩스 코미사'(crux commissa) 라고도 합니다." 목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렇소." 하고 외쳤다. "바로 그대로요. 그러나 그것은 원래는 기독교의 십자가는 아닙니다. 이교도 표시이지요." 엘러리는 미소지었다. "확실히 그렇습니다. 그리고 기독교 이전의 시대 몇 세기 동안은 기독교인 이전의 사람들에 의해서 그리스 십자가가 사용되었잖습니까? 그리스 십자가보다도 수백 년이나 앞서부터 있었던 겁니다. 일설에 의하면 원래는 남근(男根) 숭배사상의 표시라고도 합니다만... 그러나 내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이렇습니다."(주: 그리스 십자가는 상하좌우가 똑같고 '크룩스 심플렉스'(crux simplex, 단순십자가) 라고 하는데, 이것에서부터 여러 가지 '크룩스 콤팍타' (crux compacta, 복합십자가) 가 파생되었다. '크룩스 코미사' (crux commissa) 도 그 중 하나로서, T자 모양을 하고 있다. 기독교에서 사용하는 십자가는 '크룩스 이미사' (crux immissa) 라고 하며, 그리스 십자가는 이것이 변형된 것이다. 한편, 가로막대가 비스듬히 교차하는 것은 '크룩스 데스쿠사타'(crux descussata) 라고 하며, 머리에 둥근 고리가 있는 것은 '켈트 십자가' 라고 한다.) 모두가 소리를 죽이고 기다리고 있는 동안 엘러리는 잠시 쉬고서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나서 코안경을 검시관 쪽으로 쑥 내밀며 명쾌한 어조로 말했다. "<타우> 또는 T 십자가만이 그 명칭은 아닙니다. 때에 따라서는," 엘러리는 잠시 멈추었다가 조용히 말을 맺었다. "이집트 십자가 라고도 불리어진다는 말입니다." 제2부 - 백만장자의 십자가형 "범죄가 비상습범에 의해서 저질러진 경우야말로 경찰이 조심해야 한다. 이미 터득한 법칙들이 하나도 통용되지도 않으며, 오랜 세월에 걸쳐 암흑가를 조사해서 모은 정보들이 썩은 나무토막과 다름없이 되어버린다."- 데이닐로 리카 3. 야들리 교수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상하고 믿을 수 없는 일이겠지만, 사건은 거기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엘러리 퀸이 웨어턴 주민들에게 지적해 준 신비적인 관계는 수수께끼에 광명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수수께끼를 더욱 깊게만 했다. 엘러리 자신도 아무런 해답을 찾아내지 못했다. 미치광이의 탈선방식에는 도저히 논리를 적용시킬 수 없다고 생각하고서 스스로 자신을 위로했다. 문제가 엘러리에게 너무 힘겹다고 한다면 스테이플턴 검시관이나 크러밋 지방검사, 피켓 총경, 검시배심원들, 애로요 및 웨어턴 주민들, 또 그 검시재판날에 신문기자들에게 있어서도 역시 너무 힘에 겹다는 것이 된다. 명백한 듯이도 보이지만, 그러나 뒷받침이 될 만한 확실한 증거가 하나도 없다는 쪽으로 기울어지고 싶은 유혹을 억제한 검시관에게 이끌리어 배심원들이 모여서 의논한 결과 '미지의 한 사람 또는 한 사람 이상의 범인에 의한 살인'이라는 판결을 냈다. 신문기자들이 하루이틀 돌아다니기도 했지만 피켓 총경과 크러밋 지방검사의 수사가 점차 맥이 빠지게 되어 결국 사건은 신문지상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글자 그대로 미궁에 빠져버리게 된 것이다. 엘러리도 체념한 상태에서 어깨를 늘어뜨리고 뉴욕으로 돌아왔다. 이 문제는 곰곰이 생각하면 할수록 해석이 매우 의심할 만한 이유는 없다고 판단되었다. 상황증거는 분명하긴 하지만 거기에는 상당히 함축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그 벨랴 크로삭이라는 남자, 그 사람이 아무래도 자신만이 알고 있는 비밀스런 이유에서, 이 역시 똑같이 외국 태생인 시골의 국민학교 교장에 대해서 음모를 꾸며 기회를 노리다가 마침내 그 생명을 빼앗아버린 듯이 보인다. 그 수법은 범죄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흥미 있는 일이지만 꼭 중요한 것은 아니다. 전율할 만한 사건이긴 하지만 미치광이의 심리는 알 수 없는 불길에 의해 일그러진 정신의 표현이기에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다. 무엇이 그 배후에 깔려 있는가? 환상적인 원한인가 종교적인 광신인가, 그렇지 이야기가 숨어 있는가. 어쩌면 영구히 알 수 없을 것이다. 크로삭은 그 끔찍한 사명을 달성한 뒤로는 모습을 감춰버린 것이다. 어쩌면 지금쯤은 아득히 먼 해상에서 자기가 태어난 고향으로 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 그 남자 하인인 클링은? 의심할 여지도 없이 무고한 희생자일 테지. 두 불꽃의 사이에 끼어서 범죄를 목격했거나, 살인범의 얼굴을 문틈으로 살짝 보았거나 하여 사형집행인의 손에 결말이 나고 말았을 것이다. 크로삭은 모든 점에서 보아 연결 고리가 될 클링을 후환이 없게 하기 위해 없애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복수에 대한 표시를 남기기 위해 인간의 머리를 서슴없이 잘라낸 그 남자는 자기 아무런 망설임이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엘러리는 경감의 호된 질책을 받기 위해 뉴욕으로 돌아왔다. "내가 그렇게 말했잖느냐고 하지는 않겠다." 하고 경감은 엘러리가 돌아온 날 밤 저녁식사를 하면서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만 한 가지 교훈을 얘기해야겠다." "좋습니다." 하고 엘러리는 고기 토막을 푹푹 찌르면서 대답했다. "그건 말이다, 살인은 살인이라는 거다. 이 지구상에서 저질러지는 살인의 99%, 10분의 9는 파이처럼 간단히 설명할 수 있는 거야, 이 어리석은 녀석아. 신기할 것도 없어, 알겠느냐?" 경감은 득의만만했다. "난 네가 그 신에게서 버림받은 곳에서 무엇을 하려 했는지 경찰일지라도 해답을 얻었을 게다." 엘러리는 포크를 놓았다. "그러나 논리상 말이죠." "제발 그만해라, 제발." 경감은 코를 킁킁거렸다. "자, 자, 어서 먹고, 이젠 좀 자자." 6개월 뒤, 그 동안에 엘러리는 그 기묘한 애로요 살인사건 일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여러 가지 일이 많이 있었다. 뉴욕은 펜실베이니아 주에 있는 사람들과는 달리 '동포애의 마을'(필라델피아 주의 별명)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좀 멀고 살인사건도 많이 생겨서 경감은 수사 때문에 정신없이 뛰어다녔으며, 엘러리도 그 뒤를 쫓아다니면서 흥미를 느낀 했다. 웨스트 버지니아 주에서 앤드류 밴이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뒤 6개월이 지난 6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엘러리는 애로요의 살인사건을 좋아하든 않든간에 생각해 내게 되었다. 그 도화선이 된 것은 그 달 22일 수요일의 일이었다. 엘러리와 퀸 경감이 아침식사를 하고 있는데 현관문의 벨이 울렸다. 퀸 집의 모든 일을 맡고 있는 아이인 듀나가 현관에 나가 보니 우체부가 엘러리 앞으로 된 전보를 주었다. "이상한데." 엘러리는 누런 봉투를 찢으면서 말했다. "이런 이른 아침에 도대체 누가 전보를 보냈을까?" "누구에게서 온 거냐?" 노인이 토스트를 물었다. "이 무례한 사람은," 엘러리는 전보를 펴고서 통신문의 마지막에 타이프로 친 이름을 흘끗 보았다. "야들리 교수님인데요." 하고 매우 깜짝 놀라 외치듯이 말했다. 그리고는 아버지에게 빙긋 웃었다. "야들리 교수님입니다. 기억하고 계시죠, 아버지? 제가 다녔던 대학의 교수님입니다." "기억하고말고. 고대사(古代史) 교수 아니냐? 언젠가 주말에 뉴욕에 왔을 때 우리 집에 머물다 갔었지. 턱수염을 기르고 못생긴 사람이었다고 기억하고 있는데." "최고죠. 더 말할 것도 없죠." 하고 엘러리가 말했다. "정말로 몇 년 만에 온 소식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말했다. "내용을 읽어봐라. 상대방이 왜 소식을 보냈는지 알려면 그렇게 해야 하는 게지. 어떻게 보면 넌 도둑보다도 더 멍청하구나." 엘러리의 얼굴을 지켜보고 있는 동안 노인의 눈은 점점 생기를 잃어갔다. 경감의 턱은 두드러지게 축 늘어졌다. "무슨 일이냐?" 하고 아버지가 급히 물었다. "누가 죽기라도 했냐?" 경감은 아직까지도 전보는 좋은 소식이 아니라는 중류계층의 선입관을 갖고 있었다. 엘러리는 누런 종이쪽지를 테이블 너머로 내던지고는 의자에서 튀어나가며 내프킨을 듀나에게 집어던졌다. 그리고는 급히 걸어가면서 실내복을 벗어던지고 침실로 뛰어들었다. '자네는 변함없이 일과 취미를 함께 하고 있겠지? 이렇게 오랫동안 왜 한 번도 찾아오지 않는 게지? 내 판잣집에서 비스듬히 건너다보이는 곳에서 아주 흥미 있는 살인사건이 발생했네. 오늘 새벽의 일인데, 경찰도 아직 오지 않았어. 정말 흥미 있는 사건일세. 이웃의 남자가 목이 잘린 채 토템 기둥에 십자가 모양으로 묶여서 죽었어. 즉시 오게나. 야들리' 4. 브래드우드 저택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낡아빠진 고물 뒤센버그가 목적지에 다다르기 몇 마일 전에 이미 확실해졌다. 엘러리가 여느때처럼 무모할 정도로 속도를 내어 달리고 있는 롱 아일랜드 가로변에는 이 군(郡)의 순찰경관들이 잔뜩 나와 있었지만, 그들은 시속 55마일로 달리고 있는 키가 크고 엄숙한 표정의 청년에게는 도대체 관심을 갖지 않는 모습이었다. 엘러리는 과속으로 달려도 괜찮은 특별허가증을 갖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가 좀 세워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모터사이클을 타고 있는 상대방의 코앞에서 '경찰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것은 엘러리가 경감에게 사정을 해서 범죄현장에 전화를 걸어 경감이 요령껏 '나의 유명한 아들'이 그곳으로 가니 그 젊은 영웅에게 편의를 좀 봐달라고 나소 군(郡)의 본 경감에게 부탁을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노인은 특별히 덧붙여서 이 유명한 친구가 본과 지방검사에게 대단한 흥미가 있을 만한 정보를 갖고 있다고 말해 두었던 것이다. 경감은 그 밖에 나소 군의 지방검사 아이셤에게도 전화를 걸어 똑같이 아들 자랑을 늘어놓고는 특별히 부탁을 해두었다. 아이셤은 그날 아침 매우 낙담이 되어 있던 차에, "경감님, 지금은 어떤 정보라도 좋습니다. 아드님을 보내주시죠." 라고 머뭇거리듯이 말하고서 엘러리가 옮기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뒤센버그가 롱 아일랜드의 먼지 하나 없는 개인도로로 미끄러져 들어가 모터사이클을 탄 순찰경관을 붙잡은 것은 정오 때였다. "브래드우드 저택은 이 길로 갑니까?" 하고 엘러리가 큰소리로 물었다. "그래요. 그렇지만 그쪽으로는 갈 수 없습니다." 하고 순찰경관이 정중히 말했다. "차를 돌리시지요, 어서." "본 경감과 아이셤 지방검사가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고 엘러리는 싱글싱글 웃으면서 말했다. "아, 그럼, 당신이 퀸 씨요? 실례했습니다. 빨리 가시죠." 신분이 밝혀지자 의기양양해진 엘러리는 개의 고급주택이 있는 포장도로로 들어갔다. 한쪽에 관공서 차가 몰려 있는 것으로 보아 그곳이 분명히 살인이 저질러진 브래드우드 고급주택이고,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비스듬히 서 있는 주택이 엘러리의 친구이며 스승인 야들리 교수의 집이 분명했다. 그 교수는 껑충하게 키가 크고 못생긴 사람인데, 에이브러햄 링컨을 놀랄 정도로 꼭 빼어닮았다. 그는 엘러리가 뒤센버그에서 뛰어내리는 것을 보고서 달려와서 손을 덥석 잡았다. "퀸, 와주어서 고맙네." "예, 교수님, 꽤 오랜만이군요. 롱 아일랜드의 이런 곳에서 무엇을 찾고 계신 겁니까? 제가 들은 바에 의하면 아직 대학 계신다던데요." 교수는 짧고 검은 턱수염 속에서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나는 길 맞은편의 저 타지 마할 (인도에 있는 왕묘) 을 빌려서 산다네." 엘러리가 돌아다보니 야들리 교수의 엄지손가락이 가리키는 쪽의 나무숲 위로 몇 개의 뾰족한 탑과 비잔틴식의 둥근 지붕이 보이는 것이었다. "미쳐버린 내 친구의 것이라네. 동양 벌레에 물려서 저런 엄청난 것을 지었지. 그 친구는 지금 아시아 쪽을 정처없이 헤매고 있기 때문에 이번 여름에 내가 여기에 와서 일을 하게 된 게야. 조용히 지낼 수 있게 되어 오랫동안 미뤄둔 '아틀랜티스 전설의 기원'에 대한 논문을 정리하려고 한 거지. 플라톤이 그에 관해서 "기억하고 있습니다." 엘러리는 웃었다. "베이컨에게도 <뉴 아틀랜티스> 라는 것이 있지요. 그러나 제 흥미는 과학 방면보다도 문학적인 분야입니다." 야들리는 납득이 가지 않는 듯 코를 킁킁거렸다. "여전히 건방진 풋나기 같으니... 그런데 조용하기는커녕 이런 상황에 빠지게 되었으니." "그런데 어떻게 해서 저를 생각하시게 되었습니까?" 두 사람은 브래드우드의 몹시 혼잡한 자동차 도로를 따라 천천히 걸어가면서 한낮의 태양 아래에서 기둥만 있고 벽이 없는 넓고 훌륭한 복도가 빛나는, 커다란 식민지풍의 건물 쪽으로 갔다. "우연히 긴 팔걸이 덕분에," 하고 교수는 있는 일을 흥미 있게 지켜보고 있었다네. 그리고 자네의 업적에 항상 감탄하고 있었기 때문에 6개월 전의 그 웨스트 버지니아 주의 희한한 살인사건에 대한 기사도 자세히 읽었지." 엘러리는 대답하기 전에 주위의 모습을 머리에 새겨두었다. 브래드우드 저택은 구석구석까지 잘 손질된 정원이 있어서 대단한 부호의 고급주택 같았다. "몇천 개나 되는 '파피리'(papyri, 고문서) 와 '스텔라이'(stelai, 옛 비석) 를 조사하신 눈에서는 어느 것 하나도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 두었어야 하는 건데 그랬습니다. 그래, 교수님은 그 지나치게 소설화한 저의 단기간 애로요 체험기를 읽으셨군요?" 실패담도." 교수는 껄껄 웃었다. "그와 동시에, 내가 자네의 고집센 머리에 주입시키려고 했었던 근본원칙을 자네가 적용하고 있는 것을 알고서 기뻤다네. 항상 물건의 근원을 찾으라는 것 말이야. 이집트 십자가란 말이지, 응? 난 자네의 유별난 행동이 순수과학적인 진리의 목을 졸라 죽이는 것은 아닐까 하고 걱정했다네. 자, 여길세." "그것은 또 무슨 말씀입니까?" 하고 엘러리는 마음에 걸리는 듯이 눈썹을 모으며 물었다. "<타우> 십자가는 확실히 원시 이집트의," "그 얘기는 뒤에 논하기로 하세. 아이셤을 만나고 싶지? 그 사람은 꽤나 자상해서 내가 이렇게 설치고 다니는 것을 나소 군 지방검사 아이셤은 중년의 땅딸막한 남자인데, 물과 같은 푸른 눈을 가지고 있고, 머리 주위에 말발굽 모양의 반백의 머리칼이 남아 있었다. 그는 옛날 식민지풍의 포치 (서양식 건축에서 지붕이 있는 현관 앞의 차 대는 곳) 계단에 서서 양복을 입은 키가 크고 힘이 세어 보이는 남자와 무엇인가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었다. "저 - 아이셤 씨 -" 하고 야들리 교수가 말했다. "이쪽은 나의 '프로테제'(사랑하는 제자) 인 엘러리 퀸입니다." 두 남자가 얼른 뒤돌아보았다. "아, 그래요?" 아이셤이 무엇인가 다른 일을 생각하고 있는 듯이 말했다. "잘 오셨습니다, 퀸 씨. 어떠한 도움을 어깨를 으쓱했다. "나소 군 경찰의 본 경감을 소개하겠소." 엘러리는 두 사람과 악수했다. "빈둥거리며 돌아다녀도 용서해 주십시오. 결코 당신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 것을 약속드립니다." 본 경감은 누런 이빨을 내보였다. "우리는 누군가가 방해라도 했으면 하고 있었소. 지금으로서는 그냥 이렇게 멍청히 서 있을 뿐이라오, 퀸 씨. 제일 중요한 그 증거물부터 보시겠소?" "그것이 순서겠죠. 자, 가시죠." 네 남자는 포치 계단을 내려가서 그 고급주택의 동쪽 모퉁이로 나 있는 자갈길을 따라서 걷기 시작했다. 엘러리는 이 고급주택의 웅장함에 감탄했다. 안채를 개인도로와 바다의 후미(물가의 휘어서 굽어진 곳)의 중간에 있었고, 안채의 높은 건물 너머로 태양으로 채색된 잔물결이 보이고 있었다. 이 후미는 아이셤 지방검사의 설명에 의하면 롱 아일랜드 만 중 하나이고 '케첨의 코브(후미)'라고 불린다고 한다. 후미의 물을 사이에 둔 맞은편엔 울창한 숲이 우거진 작은 섬의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오이스터 섬이라고 교수가 설명했다. 그곳엔 기묘한 집단이 살고 있는데... 엘러리가 의심스러운 듯이 교수 쪽을 바라보니 아이셤이, "그 녀석은 나중으로 미루시죠." 하고 쌀쌀하게 말하자 야들리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더 이상은 말에 끼어들지 않았다. 식민지풍의 건물에서 30 피트도 가지 않았는데 일행은 우거진 나무숲에 둘러싸이게 되었다. 100 피트 정도 좀더 앞으로 가자 갑자기 밝은 빈터가 나오며, 그 한가운데에 보기에도 끔찍한 것이 우뚝 서 있었다. 일행은 끔찍한 시체를 보았을 때 누구라도 그렇듯이 딱 멈추어서서는 이야기를 그쳤다. 그 시체 주위에는 이 군의 순찰경관과 형사들이 서 있었지만, 엘러리는 그 시체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것은 높이 9피트 남짓한 것으로서 한 면에 조각을 새긴 기둥이었다. 남아 있는 모습으로 추측해 보면 원래는 요란한 색채가 있었던 것 같은데, 몇백 년이나 비바람에 휩쓸렸는지 지금은 색도 바랬고 괴물의 얼굴과 상상의 동물들의 모습 등을 섞은 것으로, 그 꼭대기에는 부리를 아래로 향하고 날개를 편 무서운 독수리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날개가 거의 수평으로 뻗어 있어서 엘러리는 곧 기둥과 그 꼭대기에 펼쳐져 있는 날개가 T 대문자와 똑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기둥에는 목이 잘린 남자 시체가 매달려 있었는데, 양팔은 굵은 줄로 독수리 날개에 붙들어 매어 있고, 다리도 역시 비슷한 상태로 세로 기둥의 바닥에서 3피트 정도 올라간 곳에 동여매져 있었다. 독수리의 날카로운 나무 부리가 시체의 머리가 있었던 곳에 난 피투성이의 빈 구멍에서 1인치 정도 위쪽에 앞으로 나와 있었다. 어쩐지 기분 나쁜 그 광경에는 것이 있었다. 불구가 된 시체는 목이 떨어져 나간 헝겊 인형처럼 안타깝고 가련한 느낌을 발산하고 있었다 . "이거 정말," 하고 엘러리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끔찍하군요." "소름이 끼치지요." 하고 아이셤이 중얼거렸다. "이런 것은 본 적이 없어. 피가 얼어붙을 것만 같군." 지방검사가 몸서리쳤다. "자, 이 시체는 이제 치우도록 합시다." 그들은 기둥에 가까이 갔다. 엘러리는 그 빈터에서 몇 야드 떨어진 곳에 작은 초가지붕의 여름 피서용 별장인 '서머하우스'가 있고, 그 입구에 경관이 한 사람 서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나서 눈을 시체 쪽으로 향했다. 중년 양손은 울퉁불퉁한 게 노인의 손 같았다. 시체는 회색의 모직 바지를 입고 있었으며 실크 와이셔츠의 목 언저리는 벌어진 채였다. 하얀 구두에 하얀 양말, 그리고 담배 피울 때 입는 지저분한 실내용 윗도리인 '스모킹 재킷'을 입고 있었다. 목에서 발끝까지 몸체는 피그릇에서 씻어낸 것처럼 참담한 모습이었다. "'토템 막대'로군요, 그렇죠?" 그 시체 밑을 지나가면서 엘러리가 야들리 교수에게 물었다. "'토템 기둥'이야." 하고 야들리가 엄숙한 어조로 말했다. "보통 그렇게 부르는 경우가 많지......그래, 나는 토템 의식 전문가는 아니지만, 이 유물이 극히 원시적인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의 것인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이와 같은 형태의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저 독수리는 '독수리족(族)'을 표시하는 것이겠구먼." "시체의 신원은 확인되었겠죠?" "물론이오." 하고 본 경감이 말했다. "당신이 보고 있는 시체는 브래드우드 저택의 주인이며 백만장자인 양탄자 수입업자 토머스 브래드입니다." "시체를 끌어내리지 않았는데," 하고 엘러리는 참을성 있게 말했다. "어떻게 그렇게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까?" 아이셤 지방검사가 깜짝 놀란 듯했다. "음, 브래드인 것은 틀림없소. 옷 입은 것도 조사했고, 저 배는 속이려고 해도 속일 수 없는 것 아니겠소?" "그렇겠군요. 시체는 누가 발견했나요?" 아침 7시 반에 브래드의 하인 중 한 명이 발견했소. 운전사 겸 정원사로 일하는 남잔데, 이름은 폭스라고 합니다. 폭스는 안채 반대쪽의 숲속에 있는 오두막집에 살고 있지요. 오늘 아침에도 여느때처럼 자동차를 꺼내려 안채로 가서 - 차고는 집 뒤쪽에 있습니다만 - 이 저택에 살고 있는 조나 링컨이라는 사람이 차를 끌고 오라고 시켰는데 준비가 채 되지 않아서 화단의 모습을 살펴보려고 이쪽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여기에 와서 이걸 보게 되었다는군요. 아주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그렇겠지." 하고 야들리 교수가 말했다. 교수는 구토감 같은 것은 조금도 느끼지 않는지 놀랄 만한 무신경을 발휘하고 한 존재로 되어버린 끔찍한 것을 마치 진기한 역사적 유물이라도 보는 것처럼 무심히 세밀하게 조사하고 있었다. "그래도 - " 하고 본 경감이 계속했다. "폭스는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서 집으로 달려갔답니다. 그 뒤는 순서대로 되었고, 온 집안이 난리가 났었다고 하는군요. 그래도 어느 누구도 손을 대지 않았답니다. 링컨이라는 사람은 신경질적이긴 하지만 분별 있는 남자여서 우리들이 올 때까지 처신을 잘한 모양입니다." "그 링컨이라는 사람은 어떤 인물입니까?" 하고 엘러리가 흥미 있게 물었다. "브래드 씨의 총지배인입니다. '브래드 앤드 메가라' 상사(商社) 말입니다." 하고 수입상이지요. 링컨은 이 집에 살고 있습니다. 브래드가 그 사람을 무척 좋아했었다는군요." "양탄자업계의 유망기업이었나 보군요. 그럼 메가라는 그 사람도 여기에 살고 있습니까?" 아이셤은 어깨를 으쓱했다. "여행을 하지 않을 때는 그렇다는군요. 그 사람은 지금은 어딘가를 항해하고 있답니다. 벌써 몇 개월이나 집을 비웠다는군요. 브래드가 실무 쪽 일을 떠맡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럼 그 여행가인 메가라 씨가 토템 막대를 - 아니, 교수님이 감탄하신 저 기둥을 갖고 온 모양이군요. 뭐 아무래도 상관없겠지만 말입니다." 궁상맞고 몸집이 작은 남자가 검은 어슬렁어슬렁 다가왔다. "럼센 박사로군." 하고 아이셤이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소 군의 검시의이지요. 이보세요, 박사님, 이것을 한번 보시지요." "보고 있소." 하고 럼센 박사가 씁쓰레한 어조로 말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시카고의 도살장 같군." 엘러리는 시체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완전히 굳어 있는 것 같았다. 럼센 의사는 전문가다운 모습으로 시체를 쳐다보고는 코를 킁킁거리며 말했다. "이젠 내려놓으시지요, 내려놓으세요. 설마 이 기둥으로 올라가 저 꼭대기에서 조사하라는 건 아니겠죠?" 본 경감이 두 형사에게 지시하자 서머하우스로 모습을 감춘 지 얼마 되지 않아 촌스러운 의자를 갖고 돌아왔다. 그것을 토템 기둥 옆에 놓고는 올라가서 칼을 들어올렸다. "경감님, 잘라도 좋습니까?" 형사는 시체 오른팔의 끈에 칼을 대기 전에 물었다. "밧줄을 자르지 말고 한쪽으로 밀어두는 게 좋지 않을까요? 매듭이 풀어질 것 같아요." "잘라도 좋아." 경감이 날카롭게 말했다. "매듭을 한번 보고 싶네. 단서가 될지도 모르니까." 다른 사람도 앞으로 나가서 침묵 속에서 시체를 끌어내리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그런데," 하고 엘러리는 일행이 그 작업을 지켜보고 있을 때 말을 꺼냈다. "범인이 어떻게 해서 시체를 저기까지 날개에 손목을 동여맬 수 있었을까요?" "형사들이 지금 하고 있는 것과 똑같은 방법을 썼겠지." 하고 지방검사가 쌀쌀하게 대답했다. "서머하우스 안에서 지금 사용하고 있는 것과 똑같은 피투성이의 의자를 발견했소. 범인이 둘이었든지, 그렇지 않으면 한 사람이라고 해도 이 일을 한 놈은 대단한 장사가 틀림없어요. 의자가 있었어도 저 높이까지 시체를 끌어올린다는 건 큰일이었을 테니까." "의자는 어디에서 별견했습니까?" 하고 엘러리가 골똘히 생각하면서 물었다. "서머하우스입니까?" "그렇소. 일을 끝내고 나서 그곳에다 갖다놓은 거겠지. 서머하우스에는, 퀸 씨, 조사해 볼 만한 물건들이 그 밖에도 많이 "당신이 흥미를 가질 만한 것이 하나 있소." 하고 본 경감이 말했을 때 시체가 겨우 떼어져 풀 위에 눕혀졌다. "바로 이거요." 경감이 주머니에서 작고 둥근 빨간 것을 꺼내어 엘러리에게 건넸다. 나무로 된 체커 (서양장기의 일종) 용 빨간 말이었다. "흠." 하고 엘러리가 말했다. "평범한 것이군요. 어디서 발견하셨습니까?" "이 빈터의 자갈 위에서였소." 하고 경감이 대답했다. "토템 기둥 오른쪽에서 몇 피트 떨어진 곳입니다." "어째서 이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엘러리는 말을 손끝으로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본이 웃었다. "우리들의 생각은 이렇소. 그렇게 오래 여기에 떨어져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 깨끗한 자갈 위에 붉은 것이 있으면 엄지손가락에 상처가 난 것과 같이 금방 발견이 됩니다. 이 근처는 매일 폭스가 구석구석까지 청소하기 때문에 그 말이 어제 낮부터 여기에 있었다고는 생각할 수가 없지요. 아무튼 폭스는 그런 것은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는 그 말이 어젯밤 사건과 관계가 있다고 봐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어둠 속에서는 안 보였기 때문이지요." "뛰어난 식견이십니다." 엘러리는 웃었다. "완전히 탄복했습니다." 엘러리가 체커의 말을 돌려주었을 때 럼센 의사가 갑자기 날카로운 소리를 질렀다. 그는 직업에 어울리지 않게 독살스런 저주를 "무슨 일입니까?" 아이셤이 당황해 하며 들여다보면서 물었다. "뭐 좀 발견된 게 있습니까?" "이런 괴상한 것은 본 적이 없소." 하고 검시의가 내뱉듯이 말했다. "이것을 보시오." 토머스 브래드의 시체는 토템 기둥에서 몇 피트 떨어진 풀밭 위에 넘어진 대리석상처럼 가로누워 있었다. 아무리 보아도 부자연스럽게 굳어진 모습에서 엘러리는 그 슬퍼해야 할, 그러나 더할 나위 없는 경험으로 미루어 판단하면 '리고르 모르티스'(rigor mortis, 사후경직) 가 아직 진행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양팔은 아직 펼쳐진 채 있었는데, 튀어나온 배와 옷을 제외하고는 밴의 시체와 놀랄 정도로 흡사했다. 두 시체 모두 T자 모양으로 잘려진 인간의 모습이었다. 그것을 엘러리는 이해할 수 없는 마음으로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머리를 흔들고서 다른 일행과 함께 럼센 의사를 깜짝 놀라게 한 것을 웅크리고 앉아서 쳐다보았다. 의사는 죽은 사람 오른손을 들어올려서 창백하고 생명 없는 손바닥을 보여주었다. 그 한가운데에 도장을 찍은 것처럼 또렷한 윤곽이 아주 약간밖에 지워지지 않은 채 둥글고 붉은 얼룩이 있었다. "도대체 이것은 뭐죠?" 하고 럼센 박사가 신음하듯이 물었다. "피는 아니고, 페인트나 물감같이 생각되는데. 그렇지만 도대체 어째서 이런 것이 묻어 있는지 "아무래도 -" 하고 엘러리가 천천히 말했다. "경감님의 예상이 맞은 것 같습니다. 체커용 말 말입니다. 기둥의 오른쪽에 있었다는 그것... 그리고 이건 죽은 사람의 오른손입니다." "정말 그렇구먼." 하고 본 경감이 외쳤다. 그리고는 그 말을 꺼내어 그것을 죽은 사람의 손바닥 얼룩 위에 올려놓았다. 딱 들어맞았다. 경감은 만족감과 의아함이 뒤섞인 듯한 표정을 하고서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해서 -" 아이셤 지방검사가 머리를 가로저었다. "나로서는 이것은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지 않는데. 본 씨, 당신은 아직 브래드의 서재를 조사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잘 모를 거요. 거기에는 체커 게임을 한 흔적이 자세히 알 수 있을 겁니다. 브래드는 살해당할 때 무슨 이윤가로 해서 체커용 말을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범인이 그것을 몰랐던 겁니다. 그래서 여기다 매달 때 손에서 떨어진 거겠죠." "그렇다면 살인은 집안에서 일어난 겁니까?" 하고 엘러리가 물었다. "아니, 그렇지 않소, 저쪽의 서머하우스 안입니다. 이 생각에는 많은 증거가 있지요. 그래요, 체커에 대한 설명은 간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싸구려라서 아마 땀이나 브래드의 손의 온기 때문에 칠이 녹은 거겠지요." 일행은 럼센 의사가 말없이 서 있는 담당 형사들에게 둘러싸인 채 풀밭 위에 드러누운,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하고 서머하우스로 향했다. 그곳은 토템 기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엘러리는 낮은 입구로 들어가기 전에 대충 주위를 훑어보기도 하고 둘러보기도 했다. "밖에는 전기를 끌어들이는 장치가 없는 것 같군요. 내가 보기엔 -" "범인은 손전등을 사용한 게지." 하고 경감이 말했다. "어둠 속에서 정말로 여기서 그랬을까요? 럼센 박사님이 브래드가 죽은 지 몇 시간 정도 지났는지 알려주면 그 점은 확실해지겠죠." 입구에 있던 순찰경관이 경례를 한 뒤 한쪽으로 비켜섰다. 일행은 안으로 들어갔다. 서머하우스는 작은 원형 모양을 살려 써서 시골풍 냄새가 물씬 풍겼다. 뾰족한 초가지붕이며, 둘레는 아래 반쪽이 벽이고 위쪽은 초록색의 격자를 댄 구조로 되어 있었다. 내부에는 아무렇게나 생긴 테이블 하나와 의자가 두 개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거의 의심할 여지가 없구먼." 하고 아이셤 지방검사가 마루를 가리키면서 힘없이 신음하듯이 말했다. 마루 한가운데에는 불그스름하게 퇴색된 큰 얼룩이 나 있었다. 야들리 교수는 비로소 신경이 예민해지는 모습을 보였다. "설마 사람의 피는 아닐테지? 저 - 섬뜩하고 매우 지저분한 것이 -" "분명히 사람의 피입니다." 본이 흘렀는지에 대한 유일한 설명은 브래드의 머리가 이 마루에서 잘려졌기 때문이지요." 엘러리의 날카로운 눈은 투박한 테이블 바로 옆의 마루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곳에 피로 휘갈겨쓴 대문자인 T자가 있었던 것이다. "끔찍하군." 엘러리는 중얼거리고서 침을 꿀꺽 삼키고는 시선을 그 T자에서 떼었다. "아이셤 씨, 이 마루에 쓰여진 T자의 의미를 아십니까?" 지방검사는 전혀 모르겠다는 듯이 양손을 펼쳐 보였다. "내가 당신에게 물어보고 싶은 거요, 퀸 씨. 난 이렇게 말하는 것에는 아주 서툰데, 들은 바에 의하면 당신은 이런 것에는 많은 경험이 있다고요? 보통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라도 이것이 않을 겝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겠죠." 하고 엘러리는 말했다. "그밖에는 달리 생각할 수가 없죠. 당신이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아이셤 씨. 게다가 토템 막대도 멋지게 만들어지지 않았습니까, 교수님?" "기둥이야." 하고 야들리가 말했다. "자네는 거기에 무슨 종교적인 의미가 있다는 것이지?" 교수는 어깨를 으쓱했다.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주물숭배의 표시와 기독교, 그리고 원시적인 남근 숭배사상을 어떻게 연결시켰는진 모르지만, 이것은 미치광이의 상상력을 벗어난 거야." 본과 아이셤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러나 야들리나 엘러리는 두 사람에게 엘러리는 쭈그리고 앉아서 굳은 피 옆에 떨어져 있는 것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것은 길다란 브라이어 담배 파이프였다. "그것도 한 차례 조사해 봤소." 하고 본 경감이 말했다. "브래드의 지문이 있더구먼. 그 남자 거요, 틀림없이. 여기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겠지. 당신 때문에 원래 있던 장소에 그대로 놔둔 게요." 엘러리는 끄덕였다. 참으로 희한한 파이프였는데, 모양이 아주 특이했다. 담배를 넣는 구멍에는 넵튠(로마 신화에 나오는 바다의 신)의 머리와 삼지창이 교묘하게 조각되어 있었다. 반 정도 흰, 피우다 만 재가 채워져 있고, 담배를 넣는 구멍 바로 옆에는 본이 이야기한 대로 똑같은 색과 질의 담뱃재가 떨어져 있었다. 모양이다. 엘러리는 손을 뻗어 파이프를 주우려고 했다. 그러다가 문득 손을 멈추고서 경감 쪽을 보았다. "경감님, 확실합니까, 이것이 죽은 사람의 파이프라는 것 말입니다?이 집 사람들에게 확인해 보셨습니까?" "실은 아직 확인해 보진 않았소." 하고 본이 딱딱하게 굳어서 대답했다. "그러나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해요. 지문도 있고 하니..." "게다가 그 남자는 스모킹 재킷을 입고 있었소." 하고 아이셤이 지적했다. "그리고 다른 담배는 하나도 갖고 있지 않았소. 궐련도 여송연도. 나로서는 도무지 모르겠는데, 퀸 씨, 어째서 당신은 -" 야들리 교수는 턱수염 속에서 대답했다. "그런 의미로 말씀드린 게 아닙니다. 단지 제 습관이라서요. 아이셤 씨, 아마도..." 엘러리는 파이프를 들고 조심스럽게 두드려서 재를 테이블 위에다 모두 다 털어냈다. 휴대용 작은 상자 ('프랑스 가루분의 비밀' 에서 베를린 경시총감으로부터 받은 선물) 에서 반투명 봉투를 꺼내어, 담배 구멍 제일 아래에서 피우다 남은 담배를 긁어내어 그것을 봉투 안에다 쏟아부었다. 다른 사람들은 잠자코 쳐다보고만 있었다. "저는," 하고 엘러리는 몸을 일으키면서 말했다. "어떤 일이든 그대로 받아들이질 않아서요. 이것이 브래드의 파이프가 아니라는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나 파이프 될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싶군요. 이것이 브래드의 파이프일지라도 담배는 범인에게서 받았을지도 모르는 거니까요. 그런 일은 흔히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이 담배는 큐브 컷입니다. 이건 보통 커팅과는 다르죠. 브래드의 휴미더 (담배통) 를 조사해 보시지요. 큐브 컷 담배가 들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만일 들어 있다면 이것은 그 사람의 것이고 범인에게서 받은 것이 아니지요. 어떻든 손해볼 건 하나도 없잖겠습니까. 처음에 생각한 사실이 확인되는 셈이니까요. 그러나 큐브 컷 담배가 발견되지 않는다면 담배는 범인에게서 나온 거라는 추정이 성립되고, 그렇게 되면 이것이 중요한 단서가 죄송합니다." "대단히 재미있구먼." 하고 아이셤이 말했다. "정말로." "범죄과학 수사의 정수지." 야들리 교수가 껄껄 웃었다. "그럼 지금까지 살펴본 것으로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하고 본 경감이 물었다. 엘러리는 정성들여 코안경을 닦고 있었다. 그 갸름한 얼굴에는 무엇인가 생각에 잠겨 있는 듯한 표정이 있었다. "지금은 이 이상으로 구체적인 것을 언급하는 것이 오히려 우습죠. 지금으로선 그렇게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범인이 브래드가 서머하우스에 왔을 때 함께 왔는지 안 왔는지 그 점에 대해서는 현재로서는 아무 것도 말할 수가 없습니다. 서머하우스 쪽으로 어슬렁거리며 걸어왔을 때 한 손에다 붉은 체커 말을 하나 갖고 있었죠. 무엇인가 좀 특별한 이유로 집에서 그 말을 갖고 온 것이 틀림없습니다. 아무래도 남아 있는 체커를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서머하우스에서 그 남자가 공격당해 죽었습니다. 공격당했을 때는 아마 담배를 피우고 있었겠지요. 그래서 파이프가 입에서 떨어져 마루에 굴렀을 겁니다. 그리고 아마 그때까지도 주머니 속에서 체커 말을 쥐고 있었을 겁니다. 죽을 때에도 역시 손에 그 말을 쥐고 있었는데, 목을 자르고 토템 기둥까지 끌고가서 독수리 날개에 묶을 때까지도 죽 그대로 쥐고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나서 묶인 뒤에 그 말이 자갈 위로 떨어진 것을 치고, 왜 체커 말을 갖고 있었는가? 바로 이것을 알아내는 것이 가장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됩니다. 혹시 사건에 결정적인 단서를 줄지도 모르니까요. 그다지 빛을 발하는 해석은 아닌 것 같군요. 어떻습니까, 교수님?" "빛의 본질은 아무도 모른다네." 하고 야들리가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럼센 의사가 서머하우스에 허둥지둥 들어와서는, "일이 끝났소." 하고 알렸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박사님?" 하고 아이셤이 힘차게 물었다. "몸에는 폭력을 당한 흔적이 없어요." 하로 럼센 의사가 내뱉듯이 말했다. "그것으로 보아, 무엇을 사용했는지는 분명하군." 하고 엘러리가 소리쳤다. 몇 개월 전 웨어턴의 검시재판에서 스트랭 의사가 한 증언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었다. "목졸린 가능성이 있습니까?" 하고 엘러리가 물었다. "지금으로서는 뭐라고 말할 수 없소. 해부해서 허파의 상태를 조사하면 알 수 있을 게요. 시체가 딱딱하게 굳어 있는 것은 단순한 '리고르'(rigor, 사후경직) 로서 앞으로 12시간에서 24시간 안에는 풀리지 않지요." "죽은 지 어느 정도 지났습니까?" 하고 본 경감이 물었다. "14시간 정도입니다." "그러면 한밤중이구먼." 아이셤이 외쳤다. 것이 틀림없어." 럼센 박사가 어깨를 으쓱했다. "내 얘기를 먼저 들어보시지요. 난 빨리 돌아가고 싶소. 오른쪽 무릎 7인치 정도 위에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붉은 멍이 있습니다. 이상입니다." 일행이 서머하우스에서 나올 때 본이 갑자기 말했다. "그래, 지금 생각났는데, 퀸 씨, 당신 아버님이 전화로 한 이야기에는 당신이 우리들에게 줄 중요한 정보를 갖고 있다고 하던데요?" 엘러리와 야들리 교수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그렇습니다." 하고 엘러리가 대답했다. "경감님, 갖고 있습니다. 경감님은 이 범죄에 이상한 점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셨습니까?" 있는 중이오." 본이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당신이 말하는 것은 어떤 의미요?" 엘러리는 생각에 잠긴 채 길에 있는 작은 돌을 하나 걷어찼다. 일행은 잠자코 토템 기둥 옆을 지나왔다. 토머스 브래드의 시체는 천으로 씌워진 채 몇 사람의 손에 의해 들것에 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일행은 안채 쪽으로 향했다. "두 분은 생각해 보지 않으셨나요?" 하고 엘러리는 계속했다. "왜 사람의 목을 잘라 토템 기둥에 묶어놓지 않으면 안 되었는지 말입니다." "생각은 해봤소.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더군." 하고 본이 냉소적으로 말했다. "미친 짓이라고 밖에는 할 말이 없소." "그러면 경감님은," 하고 엘러리는 나왔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셨다는 말입니까?" "T자가 계속해서 나왔다고?" "기둥, 그것이 - 기묘하게도 T자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기둥이 세로줄이고, 수평으로 뻗은 날개가 가로줄입니다." 일행은 눈을 깜박거렸다. "시체는 머리가 잘려 나가고, 팔은 양옆으로 뻗쳐 있고 양다리는 가지런히 모아져 있었습니다." 일동은 또 눈을 껌벅거렸다. "범행장소에는 피로 T자가 휘갈겨 쓰여져 있고요." "하긴," 하고 아이셤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그것은 보았지. 그러나 -" "더군다나 장난과도 같은 결론으로 가게 되면 -" 하고 엘러리는 조금도 웃지 않고 T자로 시작된다는 겁니다." "허, 웃기는 일이군!" 하고 지방검사가 얼른 말했다. "단순한 우연이오. 기둥이나 시체의 모양이 그렇더라도 그냥 그렇게 된 게요." "우연이라는 겁니까?" 하고 엘러리는 한숨을 쉬었다. "그럼 좋습니다. 6개월 전쯤에 웨스트 버지니아 주에서 살인사건이 있었는데, 그 피해자도 머리가 잘려진 채 T자형의 교차로, T자형의 도로표지판에 묶여 있었고, 거기에서 100 야드도 떨어지지 않은 피해자의 집 문에 T자가 피로 휘갈겨 쓰여져 있었습니다. 이 말을 들으시고도 우연이라고 하시겠습니까?" 아이셤과 본이 갑자기 멈춰섰다. 지방검사는 새파랗게 되었다. "농담이 "내가 보기엔 당신들이 좀 어이없군요." 하고 야들리 교수가 덤덤하게 말했다. "내가 이렇게 말한 것은 당신들은 전문가란 뜻입니다. 나나 이 아주 풋나기조차도 그 정도의 일은 완벽하게 알고 있고, 또 미국 내의 신문에 몽땅 보도되었던 일인데 말이오." "그렇게 말씀하시니" 하고 아이셤은 투덜거리듯이 말했다. "생각이 나는 것 같군요." "그렇다 치더라도, 도대체, 퀸 씨." 하고 본이 소리쳤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요. 그건 너무 엉뚱합니다." "엉뚱하다고요? - 사실 그렇습니다." 하고 엘러리는 투덜거리듯이 말했다. "그러나 있을 수 없다고 하는 것과는 이상한 남자가 있었는데, 라 하라크트라던가 하라크트라던가 하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만...." "그 노인에 관해서 자네에게 얘기하고 싶었다네." 하고 야들리 교수가 말했다. "하라크트라." 본 경감이 큰소리로 말했다. "그런 이름을 가진 미치광이 노인이 후미 건너편 오이스터 섬에다 나체족 마을을 만들었는데!" 5. 내부 사정 잠시 동안 입장이 역전됐다. 어안이 벙벙해진 것은 이번엔 엘러리였다. 그 갈색 턱수염을 기른 미치광이가 브래드우드 저택 근방에 있다니. 처음의 범죄를 그대로 복사한 듯한 이번 범죄도 너무너무 얘기가 잘 맞아 들어가고 있었다. "다른 관계 인물도 그곳에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군요." 일행이 포치의 계단을 올라가고 있을 때에 엘러리가 말을 꺼냈다. "어쩌면 우리는 처음의 살인사건과 똑같은 등장인물을 갖고 있는 연속살인사건에 처했는지도 모릅니다. 하라크트는...." "자네에게는 아직 얘기해 줄 기회가 사건을 이집트와 연결시킨 자네의 기발한 사고방식으로 보면, 자네는 이미 나와 똑같은 결론에 도달해 있는 모양이군." "그렇게 빨리요?" 하고 엘러리는 내키지 않는 듯 말했다. "그럼 교수님 결론은 어떤 겁니까?" 야들리의 그 우스울 정도로 못생긴 얼굴 전체가 벌어졌다. "그 하라크트라는 남자 말일세, 나는 함부로 헐뜯는 것은 싫어하지만, 그래도 확실히 그 남자에게는 십자가형과 T자가 붙어다니고 있단 말이야." "크로삭이 있다는 것을 교수님은 잊고 계시는군요." "허, 자네 -" 하고 교수가 급히 되받았다. "자네도 나라는 사람에 대해 잘 잊지 않았다네. 크로삭이 있다 하더라도 내가 방금 조심스럽게 얘기한 견해가 왜 적당치 않다는 겐가? 범죄에는 공범자가 있어도 상관없잖은가 말이야. 여기에 매우 원시적인 인물이 한 사람 있어. 그것이 -" 본 경감이 뛰어와 포치에서 그들이 나누던 이야기를 중단시켰다."지금 오이스터 섬을 감시하라는 지시를 하고 왔소." 경감이 숨을 헐떡이면서 말했다. "만일을 대비하기 위해서요. 이쪽 일이 끝나면 빨리 그 일당을 조사하도록 합시다." 지방검사는 사건의 급속한 전개에 당황해 하는 모습이었다. "그럼 그 하라크트의 영업 매니저가 그 범죄의 용의자란 말이오? 도대체 어떤 모습의 인물입니까?" 진지하게 들었다. "신상명세에 대해서는 피상적인 것만으론 알 수 없어요. 실제로 그것을 토대로 해서 수사를 진행하기에는 불충분합니다. 그 남자가 절름발이라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말이오. 그래요, 아이셤 씨, 문제는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한에서는 크로삭이라는 수수께끼의 인물을 확인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인물은 하라크트라고 자칭하는 남자뿐이겠군요. 만일 우리의 친구인 그 태양신이 고집을 부린다면 -" "집으로 들어갑시다." 하고 본이 불쑥 말했다. "이제 나로서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것 같습니다. 집안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 여러 가지 물어보았으면 식민지풍의 고급주택의 응접실에는 슬픔에 싸인 사람들이 모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엘러리와 그 밖의 사람이 들어서자마자 세 사람이 의자를 삐걱거리며 일어섰다. 모두 충혈된 눈에 얼굴은 굳어 있고, 매우 신경질적인 그 동작은 온통 두려움과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허 이거 참." 하고 거기에 있던 남자가 메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남자는 키가 크고 그리 마르지 않은 건강한 사람이었는데, 30대 중반쯤 되어보였다. 선이 뚜렷한 얼굴과 약간 코멘 소리로 보아 뉴 잉글랜드 출신 같았다. "하 -" 하고 아이셤이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부인, 이쪽은 엘러리 퀸 씨로 엘러리는 통상적으로 조의를 표하는 말을 건넸다. 아무도 악수는 하지 않았다. 마거릿 브래드는 무서운 악몽 속을 헤매는 듯이 몸을 뒤척이기도 하고 서성거리기도 했다. 45세 정도의 여자였는데, 잘 가다듬어지고 또한 성숙하고 탄력 있는 몸매가 꽤 아름다웠다. 그녀는 굳은 입술로, "참으로 감사합니다, 퀸 씨. 저는 -" 하고 말했다. 그리고는 그 뒤의 말은 다 잊은 것처럼 끝맺지 못하고서 그대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이쪽은 저 - 브래드 씨의 양녀이고" 하고 지방검사는 계속했다. "브래드 양, 이쪽은 퀸 씨." 헬레네 브래드는 어색하게 엘러리에게 미소짓고는 야들리 교수에게 끄덕여 가서 앉았다. 그녀는 똑똑해 보이며 어딘지 모르게 사랑스러운 눈을 한 순수한 용모의 젊은 여자로, 약간 붉은 빛을 띤 머리카락을 갖고 있었다. "어떻게?" 하고 키가 큰 남자가 물었다. 목소리는 아직 목구멍에 걸려 있었다. "적절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고 본이 투덜거리듯이 말했다. "퀸 씨, 이쪽은 링컨 씨입니다. 퀸 씨에게 납득할만한 설명도 부탁드리고 싶고, 또한 한 시간 전 쯤에 여기서 한 우리들의 회의도 아직 처리되지 않고 해서 말이죠." 일동은 모두 연극의 등장인물처럼 진지하게 끄덕였다. "퀸 씨, 당신이 이끌어 주시겠소?" "아니, 그런 것은" 하고 엘러리가 말했다. "아무 거라도 생각이 나시면 마시고." 본 경감은 눈은 링컨에게로 향한 채 양손을 느슨하게 뒷짐지고 난로 옆에서 딱 벌어진 등을 펴고 서 있었다. 아이셤은 앉아서 머리가 벗겨진 부분을 손수건으로 닦고 있었다. 교수는 한숨을 쉬고 조용히 창가로 가 거기에 서서 앞뜰과 자동차 도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집안은 마치 떠들썩한 파티나 장례식을 치른 뒤처럼 쥐죽은 듯 조용했다. 소란함도 없고 우는 소리도, 히스테리도 없었다. 브래드 부인, 양녀, 조나 링컨 외에 다른 가족은 아무도 - 하인들도 -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자, 그럼 먼저," 하고 아이셤이 피곤한 듯이 말을 꺼냈다. "링컨 씨, 어젯밤 극장표에 관한 일부터 마무리짓는 게 "극장표라.... 흠, 그렇습니다." 링컨은 폭탄으로 충격을 받은 병사처럼 얼빠진 눈으로 아이셤의 머리 위 벽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어제 톰 브래드 씨가 사무실에서 부인에게 전화를 걸어 부인과 헬레네와 저를 위해 브로드웨이의 연극표를 구했다고 하셨습니다. 부인과 헬레네는 시내에서 저와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브래드 씨가 갑자기 집에 돌아가야겠다고 하시더군요. 제가 그분에게서 그 얘기를 들은 것은 몇 분 뒤였습니다. 왜 그런지 저에게 꼭 두 모녀를 모시고 가달라고 하시는 듯한 말투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거절하기가 어려웠지요." "왜 거절하고 싶으셨습니까?" 하고 경감이 재빨리 물었다. "사실은 그 시간에 그런 기묘한 말씀을 하시는 게 조금 의외였기 때문입니다. 사무실 쪽에 좀 성가신 일이 있었거든요. 경리문제였는데, 저는 어제 늦게까지 남아서 감사와 함께 일을 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얘기를 톰에게 해주었지요. 그러나 그분은 그런 것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시더군요." "저로서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하고 브래드 부인이 액센트가 없는 억양으로 말했다. "마치 우리들을 내쫓고 싶었던 모양이에요." 부인이 갑자기 몸을 떨자 헬레네가 가볍게 그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부인과 헬레네는 롱셤 레스토랑에서 저와 만나 함께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뒤에 저는 두 분을 극장에 모시고 갔지요." "어느 극장입니까?" 하고 아이셤이 물었다. "파크 극장입니다. 저는 거기서 두 분과 헤어져서" "흠" 하고 본 경감이 말했다. "미리 계획했던 일을 하기로 했단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저는 두 분에게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연극이 끝날 무렵 다시 오겠다고 하고서 사무실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감사와 함께 일을 했단 말이죠, 링컨 씨?" 하고 본이 부드럽게 물었다. 링컨은 눈을 크게 떴다. "그렇습니다. 흠 -" 링컨은 머리가 헝클어진 채 물에 빠진 사람처럼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러다가 링컨이 말을 침착해 있었다. "일 정리가 늦어져서 극장에 되돌아가니 -" "감사는 어젯밤 죽 당신과 함께 있었습니까?" 하고 경감이 똑같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링컨은 움찔했다. "글쎄요." 링컨은 현기증이라도 난 것처럼 머리를 흔들었다. "그것은 무슨 말씀이신지요? 아뇨, 감사는 8시쯤 돌아갔습니다. 저는 혼자서 일을 계속했지요." 본 경감은 헛기침을 했다. 눈이 빛나고 있었다. "극장에서 부인을 만났을 때는 몇 시였습니까?" "11시 45분이었어요." 헬레네 브래드가 갑자기 침착해져서는 점잖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는 꼼짝도 하지 않고 딸 당신이 말씀하시는 것은 온당치 않아요.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조나를 의심하시면서 말꼬리나 실언을 잡고 늘어지려고 하시는 것 같네요." "진실은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본이 냉정하게 말했다. "계속하시지요, 링컨 씨." 링컨은 두어 번 눈을 껌벅거렸다. "저는 휴게실에서 부인과 헬레네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함께 돌아왔지요." "자동차로 말입니까?" 하고 아이셤이 물었다. "아뇨. 롱 아일랜드 철도로 말입니다. 열차에서 내렸으나 폭스가 차로 마중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택시를 타고 돌아왔습니다." "택시로?" 본은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잠자코 방을 나갔다. 브래드 집안의 두 여자와 링컨은 눈에 공포의 빛을 띠고서 그 뒤를 지켜보고 있었다. "계속하시지요." 하고 아이셤이 초조한 듯이 말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무엇인가 변한 것은 없었습니까, 그리고 몇 시쯤이었나요?" "실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새벽 1시쯤이었다고 생각합니다만." 링컨의 어깨가 힘없이 늘어졌다. "1시가 지났어요." 하고 헬레네가 말했다. "생각 안 나세요, 조나?" "그렇군요. 아무 이상도 없었습니다. 서머하우스로 가는 샛길도...." 링컨은 몸을 떨었다. "그쪽은 제대로 살펴볼 생각도 하지 않았지요. 뭐 하나도 보이지 우리들은 곧 잠이 들었습니다." 본 경감이 조용히 돌아왔다. "부인," 하고 아이셤이 물었다. "부인은 남편이 없어진 것을 아침까지 몰랐었다고 아까 말씀하셨는데, 그게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우리는 바로 옆에 있는 침실에서 따로 자거든요." 하고 부인이 핏기 없는 입술로 설명했다. "그래서 저는 몰랐던 거지요. 토머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비로소 안 것은 오늘 아침 폭스가 깨웠을 때였어요." 본 경감이 다가와서 몸을 구부리고 무슨 일인지 아이셤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지방검사는 멍청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집에서는 얼마나 오래 사셨습니까, "꽤 오래 되었습니다. 몇 년이 되죠, 헬레네?" 키가 큰 뉴 잉글랜드 남자가 헬레네 쪽을 돌아보았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면서 순간 언뜻 동감의 빛이 스쳤다. 남자는 눈을 돌리고서 깊은 숨을 들이마시더니 눈에서 반짝임이 사라졌다. "8년쯤 돼요, 조나." 헬레네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비로소 눈물이 그 눈을 덮었다. "저, 전 꼬마였어요, 당신과 헤스터가 오셨을 때는요." "헤스터?" 본과 아이셤이 동시에 물었다. "헤스터가 누구입니까?" "제 여동생입니다." 하고 링컨이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여동생과 저는 아주 어렸을 적에 고아가 됐습니다. 저는 그래서 - 그애는 저하고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纛?시간이 없을 거예요, 여러분. 우린 한시 반 전에 같은데?" 링컨이 부드럽게 말했다. "저 섬에 있습니다." "오이스터 섬 말입니까?" 하고 엘러리가 놀랍다는 듯이 물었다. "그거 희한하군요. 글쎄, 설마 태양숭배자가 된 것은 아니겠죠, 링컨 씨?" "아니, 어떻게 그걸 알고 계세요?" 헬레네가 깜짝 놀라 물었다. "조나, 당신이 설마 -" "동생은," 하고 링컨이 말하기 거북한 듯이 설명했다. "말하자면 새것을 좋아하고, 또 받아들이지요. 그런 것들을 잘 따릅니다. 그 하라크트라고 하는 미치광이가 케첨에게서 - 옛날부터 그 섬에 살고 있는 집안인데, 사실은 그 섬의 새로운 종교를 연 겁니다. 태양교라고... 즉, 나체주의자들입니다만." 링컨은 어쩐지 목이 메인 듯한 소리를 냈다. "헤스터는 - 그래서 헤스터는 거기 있는 녀석들에게 - 뭐라고 할까요, 흥미를 갖게 되어 우리들은 그것 때문에 싸움도 했지요. 동생은 고집쟁이여서 브래드우드 저택을 나가 그 종교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못된 사기꾼들이지요." 하고 링컨이 거칠게 말했다. "그 녀석들이 이번의 이 불쾌하고 끔찍한 사건에 관련이 있다고 해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을 겁니다." "좋은 생각이오, 링컨 씨." 하고 야들리 교수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엘러리는 노인네처럼 헛기침을 하고서 브래드 부인의 굳어 있는 모습에 눈을 물어보겠습니다. 대답해 주시겠죠?" 부인은 눈을 들었다가는 다시 무릎 위의 손으로 눈을 내리깔았다. "제가 알기로는, 따님은 부인의 따님이며 남편께는 양녀죠? 두 번째 남편입니까, 부인?" 아름다운 부인이 대답했다. "예." "브래드 씨는 이전에도 결혼했었습니까?" 부인은 입술을 깨물었다. "우리들은 결혼한 지 12년이 됩니다. 톰은 - 저는, 남편의 처음 부인에 대해서는 잘 몰라요. 유럽에서 결혼했을 거라고는 생각됩니다만. 그러나 첫번째 부인은 아주 젊어서 죽었을 거예요." "쯧쯧..." 하고 엘러리는 안됐다는 듯이 눈썹을 모으고서 말했다. "유럽 엘러리를 바라보고 있는 부인의 뺨이 천천히 붉어졌다. "실은 잘 몰라요. 토머스는 루마니아 인이었답니다. 그러니까 아마 - 그쪽에서...." 헬레네 브래드는 머리를 들고서 화가 난 듯이 말했다. "정말 우스운 분이로군요. 남이 어디에서 왔건, 몇 년 전에 누구와 결혼했건 무슨 상관이죠? 그것보다도 누가 그분을 살해했는지 왜 수사하려고 하지 않는 거죠?" "어쩐지, 부인," 엘러리가 힘없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지리문제가 중요하게 될지도 모른다고는 생각지 않으십니까? 메가라 씨도 루마니아 태생입니까?" 브래드 부인은 멍청하게 있었다. 링컨이 얼른 대답했다. "그리스 인입니다." 없다는 듯한 모습으로 말을 꺼냈다. 본 경감은 웃었다. "그리스 인이라. 당신들은 모두 미국 태생이죠?" 모두들 끄덕였다. 헬레네의 눈은 분노로 타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불처럼 반짝이는 것이 한층 더 빛을 발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조나 링컨을 향해 항의를 기대하는 모습으로 쳐다보았다. 그러나 링컨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단지 눈을 내리뜨고는 구두 끝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메가라 씨는 어디에 있습니까?" 하고 아이셤이 계속해서 물었다. "어느 분인가가 항해중이라고 한 걸 듣긴 했는데. 어떤 항해입니까. 세계일주입니까?" "아뇨." 하고 링컨이 천천히 대답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메가라 씨는 탐험가입니다. 자가용 요트를 갖고 있어서 그것을 타고 항해하고 있는 겁니다. 그냥 무턱대고 떠나서는 3~4개월 동안 여행하시지요." "이번 여행은 어느 정도 되었습니까?" 하고 본이 물었다. "거의 1년 가까이 됩니다." "지금은 어디에 있습니까?" 링컨은 어깨를 으쓱했다. "모르겠습니다. 편지도 결코 쓰지 않는 분인 데다가, 불쑥 연락도 없이 돌아오시곤 해서요. 이번엔 어째서 이렇게 긴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하고 헬레네가 이마에 주름을 만들면서 말했다. "남양 (말레이 제도, 필리핀 제도 등의 총칭) 에 가셨다고 떨고 있었다. 엘러리는 이상한 느낌으로 헬레네를 바라보며 왜 저럴까 하고 의심스럽게 생각했다. "요트 이름은 어떻게 되나요?" 헬레네가 얼굴을 붉혔다. "'헬레네'예요." "증기기관 요트입니까?" 하고 엘러리가 물었다. "예." "라디오는 - 무선장치는 있습니까?" 하고 본이 물었다. "있습니다." 경감은 수첩에 무엇인가를 적어넣고는 매우 만족해 하는 모습이었다. "직접 운전합니까?" 경감이 글씨를 쓰면서 물었다. 승무원이 있습니다. 스위피트 선장과는 벌써 몇 년간이나 함께 지내고 있지요." 엘러리는 갑자기 자리에 앉으며 긴 다리를 쭉 뻗었다. "그렇군요... 메가라 씨의 첫 이름은 어떻게 됩니까?" "스티븐입니다." 아이셤은 목구멍에서 신음하는 듯한 소리를 냈다. "허, 이게 어떻게 된 거지. 핵심에서 옆길로 좀 새지 않을 순 없소? 브래드 씨와 메가라 씨는 양탄자 수입업을 몇 년간 공동으로 하셨습니까?" "16년 됐습니다." 하고 조나가 대답했다. "함께 사업을 시작하셨지요." "사업은 잘 돼가고 있었나요? 재산상의 분쟁은 없었습니까?" 링컨은 머리를 흔들었다. "브래드 씨나 모으셨습니다. 요즘의 불경기에는 어느 누구라도 타격을 받을 텐데, 이 사업만은 튼튼합니다." 하고 링컨이 대답했다. 갸름하고 건강한 얼굴 표정이 묘하게 바뀌었다. "이번 사건에는 금전상의 분쟁이 얽혀 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러면 -" 하고 아이셤이 신음하듯이 말했다. "당신은 이 사건 밑바탕에 무엇이 얽혀 있다고 생각합니까?" 링컨은 깜짝 놀란 듯이 입을 다물었다. "링컨 씨, 당신은 어쩌면 -" 하고 엘러리가 의심스러운 듯이 말했다. "이 사건 배후에 종교가 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까?" 링컨은 눈을 껌벅거렸다. "아니, 저는 범죄 자체가 - 십자가형이어서 -" 엘러리는 동감한다는 듯이 미소지었다. "그런데 브래드 씨의 종교는 어떻게 됩니까?" 브래드 부인은 그 널찍한 등을 펴고 가슴을 내민 채 앉아서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남편은 어렸을 땐 그리스 정교(正敎)에 다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열심히 믿는 편은 아니었답니다. 사실 예배 같은 건 전혀 믿지도 않았고, 남편을 무신론자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메가라 씨는?" "음, 그분은 아무 것도 믿지 않아요." 그 어조에는 일동에게 갑자기 부인을 돌아보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러나 부인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으로 말했다. "그것은 루마니아와 일치하는 것 같은데...." "교수님은 일치하지 않는 점을 찾고 계시는가 보죠?" 엘러리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본 경감이 헛기침을 하자 브래드 부인은 경감 쪽을 긴장한 채 바라보았다. 부인은 지금부터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지 알아차린 듯했다. "부인, 남편은 몸에 무슨 특징 있는 표시 같은 거라도 갖고 있습니까?" 헬레네는 속이 메슥거리는 듯 얼굴을 돌렸다. 브래드 부인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른쪽 넓적다리에 붉은 반점이 하나 있어요." 경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이야기가 일치하는군요. 그럼, 여러분, 조사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브래드 씨에게 적이 있었습니까? 브래드 씨를 죽이고 싶어했던 인물은 없습니까?" "십자가에 매단 거라든지 그 밖의 일들은 당분간 잊으시고 말입니다. " 지방검사가 덧붙였다. "살인 동기를 가질 만한 사람은 없었습니까?" 어머니와 딸은 서로를 마주보았다. 그리고는 거의 동시에 딴 곳으로 눈을 돌렸다. 링컨은 잠자코 양탄자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엘러리는 그것이 '생명나무'(창세기 2장 9절에 나오는 것)의 모습을 훌륭하게 짠 멋진 동양 양탄자임을 알아차렸다. 그 양탄자의 주인에게 일어난 사건을 생각하니 그 상징과 현실이 불행한 비교로 여겨지는 것이었다. "토머스는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적 같은 건 없었어요." "부인은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들도 초대하셨습니까?" "아뇨, 아이셤 씨. 우리들은 여기에서 세상과는 접촉하지 않고 생활을 하고 있어요." 또다시 그 어조에는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예리하게 부인 쪽을 바라보게 하는 무엇인가가 들어 있었다. 엘러리는 한숨을 쉬었다. "여러분 중 아무라도 이 집에 - 손님으로서든 아니면 다른 무슨 일이라도 좋습니다만 - 절름발이가 왔었던 것을 기억하고 계신 분은 없습니까?" 또다시 모두들 부인했다. 브래드 부인은 다시 반복해서, "토머스에게는 적이 없었어요." 그 사실을 듯이 엄숙하고 무게 있게 애써서 말하는 것이었다. "마거릿, 부인은 잊으신 게 있습니다." 라고 조나 링컨이 천천히 말했다. "로메인 말입니다." 링컨은 이글거리는 눈으로 부인을 바라보았다. 헬레네는 링컨의 윤곽이 뚜렷한 옆얼굴에서 무서운 힐책의 표정을 보고서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스며나왔다. 네 남자는 점차 고조되는 흥미와 무엇인가 밑바닥에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지켜보았다. 어쩐지 불건전한 것이 있는 듯했다. 브래드의 가정 자체에 아픈 상처가. "그래, 로메인이 있었군요." 부인은 10분 동안이나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잊고 있었어요. 남편과 한 번 다툰 적이 있었답니다." "도대체 그 로메인이라는 사람은 누굽니까?" 하고 본이 물었다. 링컨이 낮은 목소리로 빠르게 말했다. "폴 로메인이에요. 오이스터 섬의 하라크트가 '수제자'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아!" 하고 엘러리는 외치며 야들리 교수 쪽을 보았다. 못생긴 교수는 의미 있게 어깨를 으쓱하고는 미소를 지었다. "그놈들은 그 섬에다 나체주의자 촌을 만든 겁니다. 나체주의자 말입니다." 링컨은 불쾌한 듯이 외쳤다. "하라크트는 미치광이입니다. 그 사람은 아마 자기 로메인은 엉뚱한 인간입니다. 가장 나쁜 부류의 사기꾼이지요. 자기 몸을 파는 겁니다. 타락한 영혼을 감춘 외투에 지나지 않는 몸을 말이죠." "그렇지만 -" 하고 엘러리가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홈즈는 이렇게 권했는데요. '더욱더 넓고 훌륭한 저택을 지어라. 오오, 내 영혼이여.' 라고 말입니다."(홈즈는 올리버 웬델 (1809-1894, 미국) 을 가리키며, 시인이자 수필가이다. 여기 나오는 인용구는 <아침 식탁의 독재자> 제2장에 나오는 대사이다.) "그거야 그렇죠." 본 경감이 이 기묘한 증인을 진정시키려고 애쓰며 말했다. "알고 있소. 그런데, 링컨 씨, 다투었다뇨?" 그 갸름한 얼굴의 남자가 딱딱하게 책임자입니다. 모든 일을 맡고 있지요. 그 남자는 자기를 신이라고 생각하거나, 철저히 감정이 눌려진 채 알몸으로 뛰어다니는 불쌍한 바보들을 희생물로 해서...." 링컨은 갑자기 말을 끊었다. "미안해요, 헬레네, 마거릿. 이런 말은 하는 게 아니었는데. 헤스터는..... 아니, 그 패거리들은 여기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아무런 피해도 끼친 적은 없습니다. 그것은 저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톰이나 템플 의사는 그 녀석들에 대해서는 저와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흠" 하고 야들리 교수가 말했다. "'나'에게는 아무도 상의하지 않았었는데." "템플 의사라고?" "동쪽 이웃에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 모습을 한 염소같이 알몸으로 오이스터 섬을 이리저리 뛰어다닌다더군요. 우리는 예의를 갖춘 사회에서 살고 있는데 말입니다." 오 - 엘러리는 생각했다 - 청교도같이 말하고 있군. "톰은 후미 이쪽 땅은 모두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참견할 권리가 있다고 판단한 거지요. 그래서 로메인과 하라크트를 상대로, 말하자면 약간의 말썽이 있었던 겁니다. 그 일당을 섬에서 쫓아버리기 위해 법적 절차를 밟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일당에게도 그 사실을 알렸지요." 본과 아이셤은 얼굴을 마주보고 나서 엘러리 쪽을 보았다. 브래드 모녀는 매우 조용히 앉아 있었다. 링컨은 억눌렀던 울분을 모조리 털어내기라도 한 듯이 못하는 모습이었다. "좋습니다. 그 사건은 좀 나중에 조사하기로 하지요." 하고 본이 얼른 말했다. "그 템플 의사라는 사람은 동쪽에 있는 저택을 가지고 있단 말이지요?" "가지고 있는 게 아니에요. 그냥 빌려사는 거지요. 토머스가 빌려주었어요." 브래드 부인의 눈이 침착성을 되찾았다. "벌써 오랫동안 이곳에서 살고 있답니다. 퇴역한 군의관이에요. 토머스와는 친한 친구 사이랍니다." "서쪽 이웃집에 살고 있는 사람은 어떤 분인가요?" "예, 린이라는 영국인 부부예요. 퍼시와 엘리자베스라고 해요." 브래드 부인이 대답했다. 가을 제가 로마에서 사귀어 아주 친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분들이 미국에 와보고 싶다고 하길래 제가 돌아올 때 함께 와서 이곳에 머무는 동안에는 저희 집 손님으로 와 계시라고 했습니다." "당신은 언제 돌아오셨습니까, 아가씨?" 엘러리가 물었다. "추수감사절 때였습니다. 린 씨 부부는 저와 함께 배로 왔다가 뉴욕에서 헤어져서 두 분이 잠깐 국내여행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1월달에 이쪽으로 오셨지요. 이 고장이 대단히 마음에 드신다면서 -" 링컨이 코를 킁킁거리자 헬레네는 얼굴을 붉혔다. "그래요, 조나, 그분들은 그렇게까지는 우리들의 대접을 받을 수 없다고 해서요 - 물론 그런 거야 어리석은 영국인들은 그렇게 고집들이 세잖아요 - 서쪽에 인접한 집을 빌리게 된 거예요. 그 집은 아버지 소유의 집이랍니다. 그런 뒤에 두 분은 죽 거기서 살고 있어요." "그렇습니까? 어쨌든 만나서 이야기해 보기로 하지요." 아이셤이 말했다. "그 템플 의사 말입니다, 부인, 당신 말로는 남편과 사이좋은 친구라고 했습니다만, 아주 친했었던 모양이죠?" "아이셤 씨, 당신이 그렇게 물으시는 게 무슨 의심이 가는 것이 있어서 그런 거라면." 하고 부인이 딱딱하게 말했다. "그것은 잘못 짚으신 거예요. 저는 템플 의사를 그렇게 좋아했다고는 생각지 않지만 그 곧은 어깨하며 - 토머스는 사람을 알아보는 데에는 명수였지요 - 그분을 자주 체커도 했답니다." 야들리 교수는 자기라면 더 예리하게 파고들 텐데, 단지 이웃 사람들의 미운 점 고운 점에 대해서만 이렇게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것이 정말 따분하다고 항변이나 하듯이 한숨을 쉬었다. "체커라...." 본 경감이 무의식중에 커다란 소리를 냈다. "그거 정말 흥미 있군. 다른 사람 중에 브래드 씨와 게임을 한 사람은 없었습니까? 그 템플 의사하고만 했나요?" "그렇지는 않아요. 우리들도 가끔 토머스와 함께 두었거든요." 본은 실망한 듯했다. 야들리 교수는 검은 링컨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경감, 그런 얘기들을 시시콜콜 캐봤자 아무 것도 솝씨가 뛰어난 사람이어서 이 집에 오는 사람에게는 아무에게나 게임을 하자고 했답니다. 상대가 하는 방법을 모르면 억지로라도 - 악착같이 말이죠 - 하나하나 가르쳐 주기까지 했지요." 교수는 껄껄 웃었다. "이 집에 와본 사람치고 그 사람의 말에 넘어가지 않은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겝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또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가서 입을 다물어 버렸다. "남편은 정말로 잘했어요." 브래드 부인이 슬픈 듯하면서도 좀 자랑스럽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전국 체커 선수권을 갖고 있는 분이 그렇게 말했답니다." "그럼 부인도 꽤 잘 두시겠군요?" 아이셤이 즉시 물었다. 아이셤 씨. 그래도 우리는 요전 크리스마스 이브 때 그 챔피언을 초대했었답니다. 토머스는 그분과 계속해서 게임을 했지요. 나중에 그 챔피언은 토머스가 자기와 대등하게 두었다고 말했답니다." 엘러리는 얼굴을 긴장시키며 갑자기 고쳐앉았다. "아무래도 우리가 이 선량한 분들을 너무 괴롭히는 것 같군요. 다음에 두세 번 더 찾아뵙기로 하고 이제 더는 폐를 끼치지 않겠습니다. 부인, 혹시 언젠가 벨랴 크로삭이라는 이름을 들어보신 적 없습니까?" 브래드 부인은 정말로 당황한 것 같았다. "벨랴 크로삭? 아주 기묘한 이름이군요. 아뇨, 퀸 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요." "아뇨." "당신은, 링컨 씨?" "없습니다." "클링이라는 이름도 들어보신 적이 없습니까?" 모두 머리를 저었다. "앤드류 밴이라는 이름은?" 또다시 반응이 없었다. "웨스트 버지니아 주의 애로요에 대해서는?" 링컨이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도대체 뭐 하는 겁니까? 이거, 게임입니까?" "어떤 의미로는 그렇습니다." 말하며 엘러리는 미소지었다. "여러분 중 누구라도 알고 계시지 않나 해서요." "아뇨." 겁니다만, 하라크트라고 하는 그 미치광이가 오이스터 섬에 온 것은 정확하게 언제입니까?" "오, 그것은 -" 링컨이 말했다. "3월달이었지요." "그 폴 로메인이라는 남자도 함께 왔었나요?" 링컨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렇습니다." 엘러리는 코안경을 닦아서 곧게 뻗은 코 위에 얹어놓고서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T라는 글자에서 무엇인가 짚이는 것은 없습니까?" 모두들 엘러리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T?" 하며 헬레네가 다시 물었다. "무슨 뜻이죠?" 웃으며 무슨 말인가를 귀에 대고 속삭이자 엘러리가 말했다. "아, 좋습니다. 부인, 남편은 루마니아 어를 자주 하셨습니까?" "아뇨.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 제가 알고 있는 것은, 남편이 18년 전에 스티븐 메가라와 함께 루마니아에서 미국으로 왔다는 것뿐이에요. 그 두 분은 그 나라에서도 친구 사이였었는지 일을 함께 했었던 것 같았어요." "어떻게 그것을 아십니까?" "아니, 뭐, 토머스가 그렇게 말해 주었거든요." 엘러리의 눈이 반짝 하고 빛났다. "사사로운 일을 캐물어서 죄송합니다만, 혹시 중요한 사항일지도 몰라서 말이죠... 남편은 이 나라에 이민오실 때에 브래드 부인은 얼굴을 붉혔다. "모르겠군요. 우리가 결혼할 때에는 부자였습니다만." 엘러리는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흠 -" 하고 자기 생각과 일치했는지 몇 차례 머리를 끄덕이고는 잠시 뒤에 지방검사 쪽으로 돌아섰다. "그런데, 아이셤 씨, 어디 지도라도 있으면 여러분들을 방해하지 않고 금방 끝낼 수 있을 텐데요." "지도라고?" 지방검사는 어처구니없는 얼굴을 했고, 야들리 교수까지도 당황해 하는 것 같았다. 본 경감은 얼굴을 찌푸렸다. "도서실에 하나 있는데요." 링컨은 만사가 귀찮은 듯이 말하고는 응접실에서 머금고 왔다갔다 했다. 다른 사람들은 이유를 몰라 엘러리를 눈으로 좇고 있었다. "부인!" 하고 엘러리가 멈추어서서 물었다. "그리스어나 루마니아어를 할 줄 아십니까?" 부인은 당황하며 머리를 저었다. 링컨이 커다란 파란 표지의 책을 들고 되돌아왔다. "링컨 씨-" 하고 엘러리가 불렀다. "여러분들은 주로 유럽과 아시아를 상대로 해서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그리스어나 루마니아어를 할 줄 아십니까?" "아뇨. 우리에겐 외국어를 사용할 기회는 없어요. 유럽이나 아시아의 거래처는 영어로 통지하며, 국내의 판매점도 마찬가지이지요." "그렇습니까?" 엘러리는 그렇게 집어들었다. "내가 꼭 듣고 싶었던 것은 이것 뿐입니다, 아이셤 씨." 지방검사는 피로한 듯이 손을 저었다."부인, 이제 이것으로 됐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 이것은 해결하기 어려운 사건입니다만, 우리는 전력을 다할 생각입니다. 단, 집에서 떠나지는 마십시오. 링컨 씨도. 그리고 당신, 아가씨도. 하여간 잠시 동안은 저택에서 나가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브래드 모녀와 조나는 머뭇머뭇거리며 얼굴을 마주보았으나, 곧이어 일어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방에서 나갔다. 그 뒤에 문이 닫힘과 동시에 엘러리는 팔걸이 의자에 몸을 파묻으며 파란 표지의 지도를 펼쳤다. 야들리 교수는 눈썹을 시선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엘러리는 꼬박 5분간 지도에 몰두했다. 그 동안에 세 개의 다른 면과 찾아보기를 펼쳐서는 각 페이지 모두 면밀히 살펴보았다. 그러더니 곧 얼굴이 밝아졌다. 엘러리는 책을 아주 조심스럽게 의자의 팔걸이에 놓고서 일어섰다. 모두가 기대로 가슴을 부풀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틀림없이 그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엘러리는 이렇게 말하고 교수 쪽으로 뒤돌아보았다. "우연이라 하기에는 놀랄 만한 일치입니다. 판단은 교수님에게 맡기겠습니다. 교수님, 우리가 기묘하게 연결시킨 등장 인물들의 이름에 대하여 뭐 짚이는 것은 없으십니까?" "이름이라고, 퀸?" 야들리가 정말로 "그렇습니다. 브래드 - 메가라. 브래드는 루마니아인이고. 메가라는 그리스인. 이렇게 연결시키면, 그 음의 진동으로 무엇인가 짚이는 것이 없으십니까?" 야들리는 고개를 가로저었고, 본과 아이셤은 어깨를 으쓱했다. "잘 아시겠지만," 엘러리는 담배갑을 꺼내어 한 개비에 불을 붙여 뻑뻑 짙은 연기 고리를 만들어 내뿜으며 말했다. "그러한 사소한 것들이 인생을 즐겁게 만들고 있지요. 저는 어떤 것에 미친 친구를 한 명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리라는, 대화가 없는 어린애 같은 게임입니다. 왜 그 남자가 그런 것에 흥미를 갖고 있는지는 하나님만이 아실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그 게임에 빠져 버리는 겁니다. 브래드의 경우엔 그것이 체커였고, 그 밖의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골프입니다. 그것이 그 친구에게 있어서는 지리였던 겁니다. 그러한 결과로 그 친구는 몇천 개나 되는 지리상의 작은 이름들을 기억하게 되었지요. 바로 얼마 전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만...." "자네는 늘 울화통을 치밀게 한단 말이야." 하고 야들리 교수가 토해내듯이 말했다. "뜸들이지 말고 말하게." 엘러리는 빙긋 웃었다. "토머스 브래드는 루마니아 인이었습니다. 루마니아에는 브래드라는 도시가 있더군요. 그럼 뭐 좀 짐작이 가시는 게 없습니까?" "손톱의 때만큼도." 본이 불만스러운 "스티븐 메가라는 그리스 인입니다. 그리스에도 메가라라고 하는 마을이 있더군요." "그래서" 아이셤이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그것이 어쨌다는 게요?" 엘러리는 아이셤의 팔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럼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요? 우리의 백만장자인 양탄자 수입업자와 백만장자인 요트광, 또한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 같은 인물, 즉 6개월 전에 애로요에서 살해된 불쌍한 국민학교 교장, 한마디로 말해서 앤드류 밴이...." "당신이 말하려는 것이, 설마 -" 본이 열을 올리며 말했다. "밴의 이민증명서에는 고향이 아르메니아에는 밴이라는 도시가 있더군요. 덧붙여 말하면, 그런 이름의 호수도 있습니다." 엘러리는 태도를 부드럽게 바꾸고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사항에서 두 가지는 표면적으로 관계가 있고, 나머지 하나는 지금 말한 두 가지 중 하나와 살인 방법에서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또한 세 가지 모두 같은 특징을 갖고 있다면...." 엘러리는 어깨를 으쓱했다. "이것이 우연의 일치라면 저는 시바의 여왕이라 해도 좋겠습니다." "분명히 이상하군." 야들리 교수가 중얼거렸다. "아마도 국적을 증명하기 위해 일부러 그런 이름을 붙여놓은 것 같구먼." "마치 모든 이름이 지도에서 따온 것 같습니다." 엘러리가 고리 모양의 연기를 세 사람이 본명을 감추려고 애쓴 데다가, 더욱이 그 묘한 상황을 생각해 볼 때 자신들이 정말로 태어난 곳은 감추고서 교수님 말씀대로 국적을 나타내는 듯한 흔적을 남겼으니." "놀랍군요." 아이셤이 탄성을 질렀다. "그런 다음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또 의미심장한 것은," 엘러리는 신나게 말했다. "밴, 브래드, 메가라. 이 세 명이 이름을 바꾸었다면, 이 비극의 네 번째 외국 배우이며 행방불명된 크로삭도 그 이름을 '랜드 맥널리'(유명한 지도출판사) 에서 빌려왔다고 추정하고 싶어지죠. 그러나 그 남자는 그렇지 않더군요. 적어도 유럽이나 중동에는 크로삭이라는 이름의 도시가 없습니다. 도시든 호수든 그런 건 할까요?" "세 개의 가명이라 - " 야들리 교수가 천천히 말했다. "하나는 본명 같은 이름인데, 그 본명 같은 이름의 주인공이 가명을 가진 세 인물 중 한 사람의 살인에 의심할 여지없이 관계되어 있단 말이야. 퀸, 아무래도 우리는 상형문자를 해독할 열쇠를 잡은 것 같구먼." "그럼 교수님은," 하고 엘러리가 흥미를 나타내며 말했다. "이 사건을 둘러싼 공기에 이집트 냄새가 난다는 것에 찬성하시는 거죠?" 야들리는 깜짝 놀랐다. "오, 저런. 아니, 자네, 교사가 문학적인 해득 없이 단순히 언어의 뉘앙스만 보고 말할 순 없지 않겠나?" 6. 체커와 파이프 일행은 응접실을 나가면서 모두 생각에 잠겨 있었다. 아이셤이 앞장서서는 죽은 토머스 브래드의 서재가 있는 저택의 오른쪽으로 갔다. 형사 한 사람이 잠겨진 도서실 문앞의 복도를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일행이 문앞에서 멈춰서자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검은 옷을 입은 뚱뚱하고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의 부인이 뒤쪽에서 나타났다. "저는 박스터 부인입니다." 그녀가 안절부절 못해 하며 말했다. "선생님들에게 점심식사를 대접해 드려야겠기에." 본 경감의 눈이 빛났다. "이거 천사께서 오셨군요. 식사하는 것도 완전히 "예, 그렇습니다. 다른 분들도 드시겠습니까?" 야들리 교수는 머리를 저었다. "나에겐 그런 폐를 끼칠 권리는 없지. 우리 집이 바로 도로 쪽에 있어요. 집에 돌아가지 않으면 내니 아주머니가 불같이 화를 낸답니다. 모처럼 만든 진수성찬이 식어버려서 말이지요. 나는 이쯤에서 실례하기로 합시다. 퀸, 자네는 내 손님이야. 잊지 말게." "정말 돌아가시겠습니까?" 하고 엘러리가 물었다. "천천히 이야기라도 나누고 싶었는데요......" "오늘밤 또 만나세." 교수는 손을 흔들었다. "자네 가방은 그 고물 자동차에서 꺼내두었네. 차는 우리 집 교수는 두 공무원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고는 자리를 떴다. 점심식사는 엄숙한 행사였다. 밝은 식당에서 세 남자는 식사 대접을 받았다. 가족은 아무도 식당에 없었다. 세 사람은 거의 말없이 식사를 했다. 박스터 부인이 직접 시중을 들어주었다. 엘러리는 급히 먹었다. 머릿속은 행성과 같이 빙빙 돌면서 정말로 터무니없는 생각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엘러리는 그것을 자신의 가슴속 깊숙히 간직해 두기로 했다. 아이셤이 좌골신경통 때문에 몇 번 투덜거렸을 뿐이다. 집안은 죽은 듯이 고요했다. 세 사람이 식당을 나와 저택 오른쪽으로 돌아갔을 때는 2시였다. 도서실은 널찍한 사람의 서재다웠다. 네모 반듯했으며, 먼지 하나 없이 잘 닦여진 떡갈나무로 된 마루는 가장자리에 3피트 정도를 남기고는 두꺼운 중국 양탄자로 덮여 있었다. 두 개의 벽에는 마루에서 대들보가 보이는 천정까지 닿는 붙박이 책장이 있었고, 또한 책이 가득차 있었다. 두 개의 벽이 닿는 구석에 칼로 도려낸 듯이 오목한 곳이 있는데, 그곳에 작은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져 있었고, 뚜껑이 열려져 있어서 반들반들한 건반이 보였다. 분명히 토머스 브래드가 어젯밤에 열어놓은 상태 그대로인 듯이 보였다. 방 한가운데에는 낮고 둥근 독서용 테이블이 있었고, 잡지류와 담배도구가 그 위에 올려져 있었다. 한쪽 벽 앞엔 소파가 하나 있었는데, 그 앞다리가 양탄자에 책상이 있고, 테이블보가 드리워져 있었다. 엘러리는 테이블 위에 금방 눈에 뛰게 빨간색과 검은색 잉크병이 놓여 있는 걸 보고서, 둘 다 거의 차 있다고 확인하지 않고서도 알아차렸다. "저 사무용 책상은 확대경으로 샅샅이 조사해 보았습니다." 아이셤이 소파에 몸을 내던지면서 말했다. "물론 처음에 말이오. 저것이 브래드의 사무용 책상이라면 수사하는 데 참고가 될 서류라도 들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해서 말이오." 검사는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성과는 없었습니다. 모두 수녀의 일기와 같이 청렴결백한 사람이더군요. 이 방의 나머지 부분은 - 자, 당신이 지금 보는 대로요. 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게다가 살인은 서머하우스에서 일어났죠. 문제는 저 체커뿐입니다." "어쨌든," 하고 본 경감이 덧붙였다. "토템 기둥 근처에서 빨간 말을 발견했으니." "집 이외의 장소는 완전히 조사가 끝났겠죠?" 엘러리는 천천히 걸어가면서 물었다. "그래요, 조사했다오. 형식적이지만 일단은. 브래드의 침실 같은 곳도 말이오. 하지만 주의를 끌 만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엘러리는 둥근 독서용 테이블 쪽으로 주의를 기울였다. 서머하우스에서 찾아낸, 담배 파이프에 남아 있었던 피우다 남은 꺼내고서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커다란 휴미더 뚜껑을 비틀어 올려서는 손을 그 안에다 집어넣었다. 그리고서 한줌 꺼낸 담배는 색이나 모양이 - 희귀한 큐브 컷으로서 - 파이프에 있었던 담배와 같은 것이었다. 엘러리는 웃었다. "흠, 이 고약한 풀잎사귀는 문제가 없군요. 또 단서가 하나 굴뚝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담배는 브래드의 것이었어요. 이 휴미더가 브래드의 것이라면 말입니다." "브래드 것이오." 아이셤이 말했다. 엘러리는 시험삼아 테이블의 둥근 위판 밑으로 보이는 작은 서랍을 열어보았다. 안을 들여다보니 그야말로 수집이라는 이름에 어울릴 만큼의 수많은 파이프가 고급품으로서 잘 손질해 놓았으나, 전부 다 흔히 볼 수 있는 형태로 - 보통 모양의 담배를 채워넣는 구멍에다 쪽 곧은 손잡이, 또는 구부러진 손잡이가 붙어 있을 뿐이었다. 해포석(海泡石) 이나 브라이어, 베이클라이트 등 여러 가지의 것이 있었다. 그 중 두 개 만은 가늘고 상당히 긴 - 낡은 영국풍의 도기(陶器) 제품인 처치워든이었다. "흐음!" 하고 엘러리가 말했다. "브래드는 꽤 내적으로 특이한 인물이었던 모양입니다. 체커와 파이프, 이 두 개는 언제라도 따라다니기 마련이지요. 난로 앞에 개가 앉아 있지 않으면 이상하지요. 그처럼 이것들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삼지창이 새겨진 파이프를 꺼내면서 물었다. 엘러리는 머리를 저었다. "그런 것이 또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죠. 그런 것을 두 개씩이나 갖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런 도깨비를 입에 물고만 있어도 턱이 빠질걸요. 선물 같은 것으로나 받았을 겁니다." 엘러리는 중요한 물건으로 주의를 기울였다. 그것은 소파와 방 사이에, 그 열려 있는 사무용 책상과 같은 벽면의 왼쪽에 놓여 있었다. 진짜 교묘한 장치였다. 접게 되어 있는 체커 테이블인데, 경첩에 의해 접어서 고정시키면 벽에 얕게 파낸 곳에 꼭 맞게 되어 있는 것을 첫눈에 알 수 있었다. 패인 곳 위로 끌어올려져 있으나 내리면 모든 걸 감출 수가 있었다. 더군다나 테이블 양쪽에는 벽에 부착된 의자가 각각 있고, 또한 벽 속으로 접어 붙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브래드는 집착이 강한 성격이었던 게 틀림없습니다." 하고 엘러리는 감탄한 듯 말했다. "벽에 부착시키는 장치까지 만들다니. 호, 이것은 그 사람이 남겨둔 그대로군요. 물론,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겠죠?" "우리는 손대지 않았소." 아이셤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것을 당신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테이블 표면은 멋진 세공이 되어 있고, 검은색과 흰색의 사각 무늬가 64개 교대로 그리고 그 둘레에는 아주 아름다운 진주 모양의 테두리가 붙어 있었다. 게임하는 사람이 앉는 쪽에 충분한 공간이 있었고, 사용하지 않는 말도 놓을 수 있게끔 되어 있었다. 사무용 책상에 가까운 쪽의 테두리에는 아홉 개의 빨간 말 - 흑(黑)이 잡은 빨간 말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반대쪽 가장자리에는 적(赤)이 잡은 세 개의 검은 말이 있었다. 체커판 위에는 게임 도중인 듯 세 개의 검은 '킹'(검은 말 위에 또 하나의 검은 말을 올려서 만든 것)과 세 개의 보통 검은 말, 또 두 개의 보통 빨간 말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흑 편의 첫번째 칸, 즉 출발선에 놓여 있었다. 엘러리는 체커 판과 가장자리를 매우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다. "말이 들어 있는 아이셤은 사무용 책상 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열려진 뚜껑 위에 싸구려 두꺼운 종이로 만든 사각형의 빈 상자가 놓여 있었다. "빨간 말이 열한 개 있군." 엘러리가 벽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열두 개가 아니면 안 되지. 모양이 같은 빨간 말 하나가 토템 기둥 옆에서 발견되었으니까 말입니다." "바로 그대로요." 아이셤이 한숨을 쉬었다. 가족에게 물어보았습니다만, 이 집에는 다른 체커 도구는 없더군요. 그럼 우리가 발견한 빨간 말은 여기에서 나온 것이 틀림없을 게요." "그렇겠죠, 확실히." 엘러리가 말했다. "재미있군요. 정말 재미있습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오?" 하고 아이셤이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잠시만 기다리시오.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난 잘 알아요. 그렇지 않습니까? 브래드의 집사가 올 때까지 기다려 보시오." 지방검사는 문 옆으로 가서 형사에게 말했다. "다시 한 번 그 스톨링스라고 하는 사람을 이리로 데려오게. 집사 말이야." 엘러리는 입보다도 웅변으로 말을 한다는 듯 눈썹을 치켜올렸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무용 책상 옆에 가서 멍하니 두꺼운 종이로 된 체커 상자를 들어올렸다. 아이셤이 약간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으면서 그것을 지켜보았다. "그것도 같은 것이라오." 아이셤이 엘러리는 눈을 들었다. "그렇군요. 전 여기에 들어온 순간부터 이것을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손도 많이 가고 돈도 들인 훌륭한 체커 도구를 구비한 집착이 강한 사람이 왜 싸구려 나무 말을 사용했을까요?" "조금 있으면 알게 될 게요. 놀랄 만한 일도 아닙니다. 내 약속할 수 있소." "형사가 복도에서 문을 열자 키가 크고 볼이 홀쪽하며 온화한 눈을 가진 늘씬한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까맣고 단순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순종하는 듯한 태도였다. "스톨링스." 하고 아이셤이 서두도 없이 말했다. "여기 계신 분들에게 당신이 오늘 아침에 나에게 말한 얘기를 다시 한 번 "잘 알겠습니다." 그는 온화하고 듣기 좋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선 브래드 씨가 어째서 이런 싸구려 체커 말을 사용했는지 그 이유부터 설명해 주시오." "그건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지극히 간단한 일입니다. 브래드 씨는" 스톨링스는 한숨을 쉬며 눈을 천정 쪽으로 돌려서 흘끔 쳐다보았다. "항상 고급품밖에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테이블과 의자도 특별주문으로 해서 만드셨고, 벽도 또한 딱 들어맞게 파내셨습니다. 그리고 대단히 비싼 상아로 된 말을 한 세트 사셨습니다. 그것은 아주 공을 많이 들인 문신 세공으로 되어 있었는데, 벌써 몇 년간이나 그것을 사용하셨지요. 그런데 바로 얼마 대단히 칭찬하시자 브래드 씨가 언젠가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스톨링스는 또 한숨을 쉬었다. "그것하고 똑같은 말을 박사님에게 선물해서 깜짝 놀라게 하시겠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바로 2주일 전에 브래드 씨는 자신의 말을 브루클린에 있는 조각사에게 보내어 그 24개의 말을 전부 똑같이 한 벌 더 만들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지요. 그리고는 이런 싸구려밖에 구할 수가 없어서 임시로 이것을 사용하셨던 겁니다." "그리고 나서 스톨링스," 하고 지방검사가 말했다. "다음에는 어제 저녁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해 주시오." "예." 스톨링스는 빨간 혀끝으로 입술 말씀을 듣고서 집을 나서기 전에," "잠깐만요." 엘러리가 날카롭게 말했다. "저녁때 당신은 집에서 나가 있으라는 분부를 받았군요?" "그렇습니다. 어제 브래드 씨는 시내에서 집에 돌아오셔서는 폭스와 박스터 부인과 저를 이 방으로 부르셨습니다." 스톨링스는 무엇인가 다정한 추억에 목이 메었다. "부인과 아가씨는 벌써 외출하신 뒤였지요. 확실히는 모르지만 극장에 가셨다고 생각됩니다. 링컨 씨는 저녁식사에 돌아오시지 않았고요......브래드 씨는 무척 피곤한 듯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10달러 지폐를 꺼내서는 저에게 주시면서, 폭스와 박스터 부인과 저에게 저녁식사가 끝나면 밤 외출을 하라고 말씀하시는 싶으시다고 하시면서요. 폭스에게는 작은 차를 사용해도 좋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외출하게 된 겁니다." "알겠습니다." 엘러리가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체커 이야기는 어떤 거요, 스톨링스?" 하고 아이셤이 재촉했다. 스톨링스는 긴 머리를 끄덕였다. "제가 집을 나서기도 전에 폭스와 박스터 부인은 벌써 차에 타고서 바깥의 자동차 도로로 나갔습니다만, 저는 나가기 전에 브래드 씨가 무슨 시키실 일이라도 있는지 몰라서 서재로 와보았습니다. 제가 와보니 아무 일도 없다고는 말씀하셨지만, 어쩐지 초조한 듯이 보였습니다. 그리고는 저에게 다른 사람들하고 빨리 나가라고만 "무척 자상한 분이시군요, 당신은." 엘러리가 미소지으며 말했다. 스톨링스는 얼굴이 밝아졌다.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고 있지요. 예, 어떻든 오늘 아침 아이셤 씨에게 말씀드린 대로 어제 저녁때 제가 이 방에 들어왔을 때에 브래드 씨는 체커 테이블에 앉으셔서 뭐라고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혼자 게임을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 누군가 상대가 있어서 게임을 한 것이 아니로군." 본 경감이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아이셤 씨, 왜 그 말을 나에게 해주지 않았소?" 지방검사는 양손을 펼쳐보였다. 엘러리가 얼른 말했다. "당신이 말하는 것이 무슨 뜻인가요, 스톨링스?" 검은 말과 빨간 말을 모두 나란히 늘어놓고서 혼자 두 사람 역할을 하고 계셨습니다. 게임은 막 시작하는 것 같았고요. 처음엔 그분이 앉아 계시던 편의 말을 움직였고, 그리고 나서 잠시 생각하더니 반대쪽의 말을 움직이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두 수밖에는 보지 못했습니다." "그럼," 하고 엘러리는 말하고서 입술을 꽉 다물었다. "그분은 어느 쪽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까?" "저 사무용 책상에 가까운 쪽 의자입니다. 그러나 빨간 말을 움직일 땐 일어나서 반대쪽 의자에 가서 앉으셔서는 언제나 하시던 대로 체커판을 물끄러미 바라보셨습니다." 스톨링스는 입술을 노련하셨습니다. 게다가 대단히 신중한 분이었지요. 자주 그런 방법으로 혼자서 연습하셨답니다." "좋소, 이야기는 알겠소." 아이셤이 지친 듯이 말했다. "체커가 그 불행의 근원일 리는 없겠지." 지방검사가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당신들은 그 뒤 어떻게 지냈소, 스톨링스?" "예." 하고 집사가 대답했다. "우리들은 곧바로 시내로 나갔습니다. 폭스는 저와 박스터 부인을 록시 극장에 내려주고는 영화가 끝날 즈음에 데리러 오겠다고 했습니다. 그가 어디에 갔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폭스는 당신들을 데리러 왔었소?" 본 경감이 갑자기 긴장하고서 "아뇨,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은 꼬박 30분이나 기다렸다가 사고나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다고 생각하고서 기차를 타고 돌아와서는, 정거장에서 택시를 타고 왔습니다." "택시를 타고 왔다고?" 경감은 재미있어하는 듯했다. "역에 있는 운전사들은 어젯밤에 상당히 경기가 좋았었겠군. 당신들이 돌아온 것은 몇 시였소?" "자정 무렵이었지요, 예, 조금 지나 있었을지도 모르고요. 확실한 것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당신들이 여기에 도착했을 때 폭스는 돌아와 있었소?" 스톨링스의 얼굴 표정이 굳어졌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후미 근처에 있는 숲속의 작은 오두막집에 살고 있거든요. 설령 불이 켜져 있다 해도 나무숲 때문에 보이질 않지요." "그래요? 그것은 나중에 조사해 보도록 하겠소. 아이셤 씨, 당신은 폭스의 이야기는 아직 듣지 않았나 보군요?" "시간이 없었소." "제가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엘러리가 말했다. "스톨링스, 브래드 씨는 어제 저녁때 당신에게 손님이 올 거라는 말을 하지 않았나요?" "아뇨. 그냥 밤에 혼자 있고 싶다고만 하셨어요." "그분은 그런 식으로 해서 당신과 폭스, 그리고 박스터 부인을 내보낸 적이 자주 "아뇨. 어제 저녁이 처음이었습니다." "이제 하나 묻겠습니다." 엘러리는 둥근 독서용 테이블로 다가가서는 손가락 끝으로 휴미더를 가볍게 두드렸다. "이 통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고 있습니까?" 스톨링스는 어이없는 듯한 모습이었다. "알고말고요. 예, 브래드 씨의 담배입니다." "좋습니다. 이 집에 파이프 담배는 이것뿐입니까?" "예, 그런데요. 브래드 씨는 담배에 대해서는 상당히 까다로우셔서, 그것은 특별히 만든 블렌드 (혼합한 것) 인데 영국에다 주문하신 겁니다. 다른 담배는 무슨 이유에선지 모르겠으나 전혀 피우시지 않았습니다." 스톨링스는 자신만만하게 돈을 내고 사고 싶지 않다고 늘 말씀하셨지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엉뚱한 생각이 엘러리의 마음속에 순간적으로 떠올랐다. 앤드류 밴과 캐비아. 토머스 브래드와 수입담배.... 엘러리는 머리를 흔들었다. "스톨링스, 또 하나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경감님, 그 넵튠의 머리가 새겨진 파이프를 스톨링스에게 보여주시지 않겠습니까?" 본은 조각된 파이프를 다시 꺼냈다. 스톨링스는 잠시 그것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이 파이프는 본 기억이 있습니다." 세 남자가 일제히 한숨을 쉬었다. 행운은 벌을 내리는 쪽보다도 오히려 죄를 범한 역시 그랬어. 이것이 브래드 씨의 물건이었단 말이지?" 아이셤은 신음하듯이 말했다. "예, 틀림없습니다." 하고 집사가 대답했다. "브래드 씨는 어떤 파이프라도 하나를 오래 사용하지는 않았습니다. 파이프도 사람과 같아서 휴식이 필요하다고 언제나 말씀하셨지요. 저쪽 서랍에는 아주 고급 파이프가 잔뜩 들어 있습니다. 예, 그 파이프는 본 기억이 나는군요. 확실히는 모르나 눈에 뛰었었습니다. 최근에는 보지 못했지만 생각은 납니다." "좋아요. 알았소." 아이셤이 초조한 듯이 말했다. "그럼 이제 돌아가도 좋아요." 스톨링스는 긴장한 채 굳은 몸으로 가볍게 인사를 하고서 다시 본래의 집사 모습으로 "이것으로 체커에 관한 일은 정리되었군." 하고 경감은 짐짓 점잔을 빼며 말했다. "게다가 파이프와 담배에 관한 것도. 정말 대단한 시간낭비였어. 그러나 이제 폭스에 대해서는 재미있는 단서가 생겼습니다." 경감은 양손을 비벼댔다. "그렇게 나쁘지는 않구먼. 그리고 저 오이스터 섬의 일당을 잡아다 조사하게 되면 상당히 바쁜 하루가 될 것 같소만." "며칠 걸리지 않겠습니까?" 엘러리는 미소지었다. "옛날 일이 생각나는데요."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본 경감이 방을 가로질러 문을 열어주러 갔다. 잔뜩 찌푸리고 답답한 얼굴을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무슨 일인가를 본에게 속삭이자 본이 문을 닫고 되돌아왔다. "무슨 일이오?" 아이셤이 물었다. "중요한 일은 아닙니다. 괜히 헛수고만 한 것 같습니다. 부하들 보고로는 이 저택 내에서는 그 지긋지긋한 것은 찾아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림자도 말이죠. 제기랄, 그럴 리가 없는데." "무엇을 찾고 계신가요?" 엘러리가 물었다. "머리요, 목 말이오." 오랫동안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참극의 으스스한 바람이 방안에 스며들었다. 태양이 눈부시게 내리쬐는 정원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 모두가 평화이고 아름다움인데, 이 호사스러운 저택의 주인이 목이 없는 뻣뻣한 시체가 누구도 알지 못하는 부랑자와 같이 군(郡)의 시체공시소에 길게 누워 있다는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그밖에 다른 것은?" 이윽고 아이셤이 물었다. 지방검사는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나 있었다. "부하들은 철도 관계자들을 모조리 심문했습니다." 하고 본이 태연하게 말했다. "그리고 나서 5마일 이내의 주민들도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심문했습니다. 퀸 씨, 어제 저녁때 이곳에 찾아온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서 조사하고 있는 중입니다. 링컨과 스톨링스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해 보니, 브래드가 저녁때 누군가가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거의 확실합니다. 참 기묘한 자기 아내와 양녀, 또 사업상의 동료, 고용인들을 모두 내보내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게다가 지금까지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하잖습니까." "그 점은 정말 확실합니다." 엘러리가 말을 받았다. "그렇습니다. 경감님, 당신의 추리는 완벽하게 들어맞습니다. 브래드는 어제 저녁때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요." "그렇지만 단서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만나질 못했으니. 열차 차장이나 정거장의 친구들도 어젯밤 9시를 전후해서 기차에서 내린 외부 사람은 없다고 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 근처 사람들일까요?" 경감은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왔다가 갔단 말입니다." "사실은," 하고 지방검사가 말했다. "당신은 불가능한 시도를 하고 있는 게요, 본. 밤중에 범죄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는데 가장 가까운 역에서 내리는 바보 같은 짓을 누가 하겠소? 하나나 둘 앞쪽의 역에서 내려 걸어온 게 분명해요." "그 사람이 자동차로 왔을 가능성은 어떻습니까?" 엘러리가 물었다. 본이 머리를 저었다. "그 점은 오늘 아침에 자세히 조사해 보았소. 그러나 저택 안은 자갈이 깔려 있어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가도(街道) 쪽은 쇄석(碎石) 포장도로인데다 비도 내리지 않아서 어찌해 볼 수가 없어요. 퀸 씨, 물론 차로 왔을 엘러리는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또 다른 가능성도 있습니다, 경감님. 저 만(만) 말입니다." 경감은 창 너머로 밖을 내다보았다. "저런 것까지 생각 못할 줄 알았소?" 경감은 비웃는 듯한 작은 웃음 소리를 냈다. "정말 어렵지 않게 올 수 있는 방법이지. 뉴욕이나 코넥티컷에서 모터보트를 빌려... 방금 부하 둘을 보내어 저 방면을 조사시켰소." 엘러리는 빙긋이 미소를 띠었다. "'쿠오드 푸지트, 우스케 세쿠오르'(Quod fugit, usque sequor - 도망치는 자는 어디라도 쫓아간다) 그렇죠, 경감님?" "뭐라고요?" 아이셤이 일어섰다. "여기서 얼른 7. 폭스와 영국인 일행은 다시 깊은 안개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어디에서도 빛이 보이지 않았다. 가정부인 박스터 부인을 조사했지만 참고가 될 만한 아무런 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그러나 철저를 기하기 위해서는 일단 가정부라도 심문할 필요가 있었다. 일행은 다시 응접실로 되돌아가서 그 극히 따분한 일을 되풀이했다. 박스터 부인은 당황해 하면서 전날밤의 외출에 대하여 스톨링스의 이야기를 뒷받침해 주었다. 아뇨, 브래드 씨는 손님에 대해서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뇨, 브래드 씨는 식당에서 혼자 식사를 하셨는데, 제가 시중을 들어 드렸습니다만 뭐 흥분하시거나 못했습니다. 그냥 멍하니 계셨다고 생각되는군요. 예, 폭스는 우리들을 록시 극장 앞에서 내려주었습니다. 예, 저와 스톨링스는 기차로 브래드우드로 돌아와서, 거기서 택시를 타고 자정 조금 지나 집에 왔습니다. 아뇨, 부인이나 다른 분들은 아직 돌아오시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만 확실하게는 모르겠네요. 집안은 캄캄했나요? 예. 아무 것도 변한 것은 없었나요? 예. 그럼, 이젠 됐습니다, 박스터 부인. 중년의 가정부가 급히 물러나자 경감은 투덜거렸다. 엘러리는 묵묵히 지켜보다가 자신의 손톱의 하얀 부분을 내려다보았다. 앤드류 밴이라는 이름이 머릿속의 주름에 달라붙어 "나갑시다." 아이셤이 말했다. "운전사인 폭스를 만나봅시다." 지방검사는 본과 함께 집에서 지체없이 나갔고, 엘러리도 뒤에서 어슬렁어슬렁 걸어가며 6월의 장미꽃에 코를 벌름거리면서 두 사람이 언제쯤에나 자신들의 꼬리를 물고 돌아가는 것을 멈추고서 저 만 안에 떠 있는 아주 볼품없는 땅과 나무, 즉 오이스터 섬을 향해 출발할 것인지 궁금해 했다. 아이셤은 앞장서서 안채의 왼쪽을 돌아 좁은 자갈길을 지나 곧바로 손질이 잘 된 숲 사이로 들어갔다. 조금 걸어가니 나무숲 아래를 빠져나가 빈터가 나왔는데, 그 한가운데에 통나무로 만든 아담하고 깨끗한 오두막집이 세워져 있었다. 군(郡)의 쪽에 거만한 자세로 서 있었다. 아이셤이 튼튼한 문을 두드리자 남자의 묵직한 목소리가 대답했다. "들어오시오." 일행이 들어가 보니 상대는 주먹을 꽉 쥐고, 묘하게 푸른 기가 도는 반점이 있는 얼굴을 하고서 떡갈나무와 같이 야무지게 우뚝 서 있었다. 날씬하고 키가 큰, 대나무같이 가늘고 간들간들한 남자였다. 찾아온 사람들이 누군지를 알자 주먹쥔 손을 풀고서 어깨를 늘어뜨리고는 뒤에 있는, 손으로 만든 의자의 등을 손으로 더듬어 찾았다. "폭스!" 아이셤이 거만하게 말했다. "오늘 아침엔 시간이 없어서 당신의 말을 듣지 못했소." "그렇습니까?" 폭스가 말했다. 엘러리가 나쁜 것은 일시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피부색이 그렇다는 점이었다. "당신이 시체를 발견했다는 것은 벌써 들어서 알고 있소." 지방검사가 오두막집 안에서 단 하나 남은 의자에 앉으면서 말했다. "예." 폭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끔찍한 일이었지요." "그래서 좀 알아보고 싶은 것이 있는데 -" 아이셤이 억양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어젯밤 왜 스톨링스와 박스터 부인을 내려주고 갔는지, 그리고 어디에 갔었으며 몇 시에 돌아왔는지를 말해 주겠소?" 이상하게도 상대방은 안색도 변하지 않고 움츠러들지도 않았다. 반점이 있는 얼굴 돌아다녔을 뿐입니다." 하고 말했다. "자정 바로 전에 브래드 씨에게 돌아왔습니다." 본 경감이 천천히 다가가서 폭스의 축 늘어져 있는 팔을 홱 잡아당겼다. "잘 듣도록." 하고 재미있는 듯 말했다. "우린 당신을 겁주려거나 죄를 덮어씌우려는 게 아니야. 알겠소? 당신이 아무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으면 당신을 내버려둘 거요." "나는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폭스가 말했다. 엘러리는 폭스의 발음이나 말의 액센트엔 어딘지 모르게 교양의 흔적이 있는 것같이 생각되었다. 그래서 더 한층 흥미를 갖고 상대를 지켜보았다. "그렇다면 좋소." 본이 말했다. "아주 그만두시지. 솔직히 말하시오. 어디에 갔었지?" "솔직히 말씀드렸습니다." 폭스는 가느다란 아무런 감정도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5번가 쪽으로 차를 몰아서 센트럴 공원을 빠져나가 강변도로를 오랫동안 달렸습니다. 바깥 날씨가 좋아 공기를 실컷 들이마셨죠." 경감은 갑자기 상대의 팔을 놓고는 아이셤에게 빙긋이 웃음을 보냈다. "공기를 마셨다고? 그럼 영화가 끝난 뒤에 왜 스톨링스와 박스터 부인을 맞으러 가지 않았지?" 폭스의 넓은 어깨가 살짝 움츠러든 듯했다. "아무도 내게 그런 말을 하지 아이셤과 본은 서로 마주보았다. 그러나 엘러리는 폭스 쪽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상대의 눈이 - 믿을 수 없을 정도로 - 눈물로 가득차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좋아." 아이셤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그게 당신 말이고, 꼭 그렇게 버티겠다면 그래도 좋소. 나중에 그렇지 않다고 판명된다면 하나님밖엔 도와줄 수 없을 테지. 당신은 여기에서 얼마 동안이나 일했소?" "올해초부터 일했습니다." "신원조회처는 있소?" "있습니다." 폭스는 무뚝뚝하게 발뒤꿈치를 돌려서 낡은 식기장 옆으로 갔다. 그리고는 서랍 속을 뒤져서 깨끗하고 지방검사는 그것을 열고서 속에 든 편지를 대충 훑어보고는 본에게 건넸다. 경감은 좀더 꼼꼼하게 읽고 나서 테이블 위에다 내려놓자마자 어찌된 일인지 성큼성큼 오두막집에서 나가는 것이었다. "착실한 사람 같구먼." 아이셤이 말하며 일어섰다. "그런데 이 집에 사는 사람은 당신과 스톨링스, 그리고 박스터 부인뿐이오?" "그렇습니다." 폭스는 눈을 들지 않은 채로 대답했다. 그리고는 소개장을 주워들고서 봉투와 편지를 손가락 사이에 끼운 채 흔들고 있었다. "저, 폭스 씨." 엘러리가 말을 꺼냈다. "어젯밤에 돌아왔을 때 무엇인가 달라진 것을 보았거나 들은 것이 없었습니까?" "당신은 이 집에 가만히 있으시오." 오두막집을 나가면서 아이셤이 말했다. 엘러리도 밖으로 나가 본 경감이 있는 것을 보고는 출입구에서 멈춰섰다. 안에 있는 폭스는 꿈적도 하지 않고 있었다. "저 친구의 어젯밤 이야기는 완전히 거짓말입니다." 본이 큰소리로 말했다. 폭스에게 들리지 않을 리가 없었다. "즉시 조사해 봐야겠습니다." 엘러리는 선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이 두 사람의 태도는 어딘지 지나친 감이 있었다. 엘러리는 폭스의 눈에 괴어 있었던 눈물을 잊을 수가 없었다. 세 명은 잠자코 숲을 빠져나와 서쪽으로 향하는 길로 들어섰다. 폭스의 오두막집은 케첨의 후미 쪽 해안에서 그렇게 멀지 걸어가니 나무 사이에서 태양에 반짝이는 파란 수면이 보였다. 그 오두막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울타리도 치지 않은 좁은 도로가 있었다. "브래드의 땅이오." 아이셤이 말했다. "그런데 왜 담이 없을까? 린이 빌린 집은 이 도로 저쪽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일행이 도로를 가로지르자마자 곧바로 울창한 숲속으로 들어섰다. 5분도 걷지 않았는데 본은 빽빽히 우거진 잡초 속에서 사방으로 뻗어 있는 샛길을 발견했다. 곧 도로 폭이 넓어지고 나무들이 드문드문해진 숲 한가운데에 낮고 볼품없는 석조로 된 집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천정이 없는 포치에 앉아 있었다. 남자는 세 방문객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는 당황한 듯이 일어섰다. "린 씨 부부입니까?" 세 사람이 포치 어귀에서 멈춰서자 지방검사가 말했다. "그렇습니다만." 하고 남자가 말했다. "내가 퍼시 린이고, 이쪽은 제 아내입니다. 여러분은 브래드우드 저택에서 오시는 길입니까?" 린은 키가 크고 거무스름하며 예리한 표정을 지닌 영국인으로, 짧게 깎은 윤기나는 머리카락에 가늘고 긴 눈을 가지고 있었다. 엘리자베스 린은 금발의 뚱뚱한 여자였는데, 얼굴에 늘 미소를 띠고 있는 것 같았다. 아이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린이 말했다. "아, 그렇습니까. 들어가시겠습니까?" 쾌활하게 말했다. "아주 조금만 실례하고 곧 떠나겠습니다. 사건 얘기는 들으셨겠죠?" 영국인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끄덕였다. 그러나 아내의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소름이 끼치더군요, 정말." 린이 말했다. "그 이야기를 처음 들은 것은 도로 쪽으로 산책하러 나갔다가 이웃 사람과 우연히 만났을 때였지요. 그 사람이 그 끔찍한 이야기를 해주더군요." "물론," 하고 린 부인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우린 그때에는 거기에 가볼 생각도 하지 못했답니다." "그래요, 물론이지요." 남편도 맞장구를 쳤다. 잠깐 동안 침묵이 흐르는 동안 아이셤과 그러나 린 부부는 꿈적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키가 큰 남자의 손에는 담배 파이프가 들려 있었다. 한 줄기 희미한 연기가 흔들리지도 않고 똑바로 얼굴 쪽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남자가 갑자기 파이프를 흔들었다. "거 참. 정말 일이 성가시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만, 당신들은 경찰분들이시죠?" "그렇습니다." 하고 아이셤이 말했다. 지방검사는 린 쪽에서 먼저 이야기를 하게 하려는 듯해 보였고, 본은 뒤로 물러나 있었다. 엘러리는 여자의 얼굴에 나타난 소름끼치는 미소에 마음이 쓰였다. 그러나 곧 빙긋이 웃고 말았다. 여자의 미소가 왜 어색한지를 알게 된 것이다. 부인은 틀니였던 것이다. 다시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가까운 이웃 사람이나 친구 등, 그런 사람들을 조사하시겠죠, 그렇죠?" 여권은 깨끗했다. "우리들이 - 아내와 내가 - 왜 여기에 살게 되었는지도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만...." 지방검사가 여권을 돌려주자 영국인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브래드의 따님에게서 들었습니다." 하고 아이셤이 말했다. 그리고는 갑자기 두 계단을 올라갔다. 린 부부는 몸을 잔뜩 긴장시켰다. "당신들은 어젯밤에 어디에 계셨습니까?" 린은 목을 가다듬었다. "아, 예. 실은 우리는 시내에 나가 있었는데...." "뉴욕 말입니까?" 연극을 보러갔었습니다. 무언극으로 말이죠." "이곳에는 몇 시에 돌아오셨습니까?" 린 부인이 느닷없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오, 돌아오지 않았어요. 어젯밤에는 호텔에서 묵었답니다. 너무 늦어서 말이죠." "어느 호텔입니까?" "루즈벨트 호텔이에요." 아이셤은 미소를 지었다. "그렇습니까? 늦으셨다고 하셨는데, 어느 정도 늦으셨는지요?" "예, 자정은 지났었지요." 영국인이 대답했다. "연극이 끝난 뒤에 한잔하고 나서 -" "좋습니다." 경감이 말했다. "이곳에 둘은 함께 머리를 저었다. "거의 아무도 없습니다." 린이 말했다. "브래드 씨하고, 그 - 아주 유쾌한 분인 야들리 교수, 그리고 의사인 템플 씨 정도밖에. 정말 그분들뿐입니다." 엘러리는 친근하게 미소지었다. "혹시 오이스터 섬에 가보신 적은 없습니까?" 영국인은 다시 미소를 지었다. "당치도 않아요. 나체주의라는 건 우리에겐 희귀하지도 대단하지도 않아요. 독일에서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보았답니다." "게다가" 린 부인이 불쑥 끼어들었다. "저 섬 사람들 말이죠," 부인이 품위 있게 어깨를 으쓱했다. "전 저 사람들을 내쫓아야 한다고 했어요. 브래드 씨도 찬성하시더군요, 가엾은 브래드 씨." 사건에 대해서 혹시 짐작가는 점은 없습니까?" "전혀 짐작도 안 갑니다. 정말 끔찍해요. 대단히 야만스런 일입니다." 린은 혀를 찼다. "당신들의 훌륭한 나라가 얼룩지는 것 같군요, 유럽 대륙에서 보면." "분명합니다." 아이셤이 냉정하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자, 이만 실례가 많았습니다." 8. 오이스터 섬 '케첨의 후미'는 토머스 브래드의 소유인 해안을 약간 반원형으로 깎아지른 듯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활 모양으로 된 해안 한가운데에 커다란 부두가 튀어나와 있고, 모터보트 몇 척과 런치 한 척이 매어져 있었다. 엘러리는 두 친구의 뒤쪽에 붙어서 서쪽으로 향한 길을 더듬어 해안 쪽으로 걸어가서는 그 큰 부두에서 수백 야드 떨어진 작은 부두 위로 나왔다. 물을 사이에 두고 1마일도 채 안 되는 곳에 오이스터 섬이 가로놓여 있었다. 섬의 해안선은 본토에서 비틀어 떼어놓은 것이 마치 조금씩 부풀어가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섬의 맞은편은 보이지 않았으나, 이름에 걸맞게 생겼다. 오이스터 섬은 롱 아일랜드 만의 터키석과 같은 해면에 녹색의 보석과도 같이 끼워져 있어서, 밖에서 보면 울창한 원시림으로 덮인 것 같았다. 나무들과 야생 관목들이 거의 바닷가까지 뻗어 있었다. 아니, 작은 선착장이 하나 보였다. 눈을 모아서 자세히 살펴보니 회색을 띤, 확실치는 않지만 희미한 윤곽이 보였다. 그밖에는 인간이 만든 건조물 같은 것은 하나도 눈에 뛰지 않았다. 아이셤은 부두 위로 성큼성큼 나아가서 본토와 오이스터 섬 사이를 한가하게 왔다갔다 순항하고 있는 경찰증기선을 향해, "이것 봐!" 하고 소리쳤다. 서쪽의 좁은 물길 저편에 벌써 경찰증기선 한 척이 엘러리에게 보였다. 섬의 그림자에 가려진 곳을 살펴보니 섬의 해안을 따라 순찰하고 있는 것 같았다. 처음의 증기선은 본토 쪽으로 향해 와서는 부두 옆에 나란히 댔다. "자, 갑시다." 하고 본이 증기선에 타면서 약간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가십시다, 퀸 씨. 이것으로 끝날지도 모르니까." 엘러리와 아이셤이 뛰어들자 증기선이 커다랗게 활 모양을 그리며 돌고서 오이스터 섬의 중앙부분으로 곧바로 뱃머리를 돌렸다. 일행은 후미를 가로질러 나아갔다. 섬과 본토의 모습을 모두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멀지 않은 곳에 똑같은 부두가 또 하나 있었다. 분명히 린 부부가 사용하고 있는 것이리라. 배를 붙들어매는 기둥에 손으로 젓는 배가 한 척 매인 채 태양 아래에 드러나 있었다. 린의 부두가 있는 곳의 맞은편인 후미의 동쪽에도 똑같은 부두가 하나 더 있었다. "템플 의사가 저기에 살고 있나요?" 엘러리가 물었다. "그렇소. 저곳이 의사의 선착장이죠." 동쪽 부두에 배의 그림자는 없었다. 증기선은 물을 꿰뚫고 나아갔다. 오이스터 섬의 작은 선착장이 가까워짐에 따라 점차 확실하게 보였다. 일행은 잠자코 앉아서 그것이 점점 커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띠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커다란 소리로 외쳤다. "저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일행은 깜짝 놀라 선착장을 보았다. 어떤 남자가, 발버둥치며 희미한 비명을 지르는 여자를 팔에 안고서 관목 숲에서 뛰어나오더니 선착장 서쪽에 매어져 있던 모터를 배 밖에 엔진이 붙어 있는 보트에 연결하고 뛰어 들어가서는 여자를 아무렇게나 배 뒤쪽의 판자에다 내동댕이치곤 엔진을 돌리는 것이었다. 보트는 맹렬한 속도로 선착장을 떠나자마자 곧바로 경찰증기선을 향해 돌진해 왔다. 여자는 기절한 듯이 조용히 누워 있었다. 남자가 섬 쪽을 갑자기 돌아다볼 때 그 거무스름한 얼굴이 보였다. 내 담당 식탁의 탈출이라고 한다면 - 탈출해서 10초도 되지 않았는데 도망자들이 나온 것과 같은 길을 통해서 숲속에서 놀랄 만한 것이 튀어나왔다. 완전 나체의 남자였다. 키가 크고 어깨가 넓으며 갈색의 울퉁불퉁한 근육을 지닌 남자인데, 새까만 머리카락이 뛰어가는 데 따라서 바람에 날렸다. 타잔 같다고 엘러리는 생각했다. 그 남자 바로 뒤의 숲에서 조금 있으면 타잔의 기상천외한 친구인 코끼리가 튀어나오지는 않을까 하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런데 가죽 옷은 어떻게 되었을까? 남자는 선착장 위에서 우뚝 멈춰서서는 멀어져 가는 보트를 노려보았는데, 일행은 그가 퍼붓는 욕설을 들을 수 있었다. 남자는 그 억세 보이는 팔을 축 늘어뜨린 채, 자신이 완전 그대로 서 있었다. 눈은 보트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보트 속의 남자 또한 자기 배 앞쪽에 무엇이 가로놓여 있는지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듯이 긴장한 채 뒤쪽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엘러리의 눈이 놀라서 휘둥그래질 만큼 갑자기 나체 남자가 모습을 감추었다. 선착장 끝에서 마치 작살과 같이 물을 뚫고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곧 물 위로 모습을 나타내더니 스피드 있게 헤엄을 치면서 도망자를 목표로 하여 나아가기 시작했다. "당치도 않은 바보 같은 짓이야." 하고 아이셤이 외쳤다. "모터보트를 따라잡을 작정인가?" "모터보트가 멈춰 있는데요." 하고 아이셤은 깜짝 놀라 모터보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보트는 해안에서 100 야드 정도 떨어진 물 위에 가만히 멈춰 있었는데, 그 안에 탄 남자는 말을 듣지 않는 모터를 미친 듯이 주물러대고 있었다. "긴급해!" 본 경감이 경찰증기선의 조종사에게 고함쳤다. "저 사람의 눈매를 보니 살인을 저지를지도 몰라." 증기선이 으르렁거리자 기적이 힘차게 뿜어져 나오면서 그 처량한 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섬 전체를 뒤흔들었다. 증기선의 존재를 비로소 알아차렸는지 보트 속의 남자와 물속의 남자가 동작을 멈추고서 그 경고 소리가 나는 곳을 살펴보는 것이었다. 헤엄치던 남자가 물 위로 얼굴을 내밀고 한순간 살펴보더니, 퉁기며 물속으로 들어갔다. 곧바로 또 머리를 물 위로 내밀고서 또다시 기세좋게 헤엄쳐 나아가기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지옥의 악마가 총출동해서 쫓아오기라로 하는 듯이 섬을 향해 도망가는 것이었다. 보트의 뱃머리에 누워 있던 여자가 일어나 앉아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남자는 배 뒤쪽에 있는 자리에 녹초가 되어 앉아서는 증기선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증기선을 보트 옆에 갖다대었을 때 나체 남자는 물속에서 물가로 뛰어올랐다.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숲속을 헤치면서 그 그림자에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어처구니없게도 경찰증기선이 엔진이 속의 남자가 머리를 뒤로 젖히고서는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꽤 안심했는지 신나게 웃어젖히는 것이었다.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매끈한 근육에 야무지게 생긴 남자로서, 짧게 깎은 갈색 머리카락에 얼굴은 햇볕에 타서 거의 검붉은색이 되어 있었다. 오랫동안 적도 바로 밑에서 지낸 듯한 피부색이었다. 눈까지도 햇볕에 탄 듯, 거의 색이 없고 물과 같이 짙은 회색을 띠고 있었다. 입은 살로 만든 올가미와 같았고, 턱의 근육은 칼집의 고리같이 검붉은 색의 볼을 당기고 있었다. 엘러리는 너무 재미있어서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보트에서 배를 움켜쥐고 웃고 있는 남자를 지켜보면서, 이 남자는 비록 도망치기는 했지만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이 놀랄 만한 인물이 납치해 온 여성이 조나 링컨과 아주 닮은 점으로 보아 그 고집이 세다는 헤스터가 틀림없었다. 미인이라고는 할 수 없겠으나, 멋진 몸매의 아가씨였다. 몸매가 좋은 것은 경찰증기선에 탄 남자들이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별로 힘들이지 않고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남자의 윗도리를 어깨에 걸쳐입고 있었으나 - 엘러리가 살펴보니 웃고 있는 남자는 윗도리가 없었다 - 그 아래는 더러운 천조각으로 가려져 있어서 환히 다 보이는 것이, 누군가가 근처에 굴러다니던 천조각으로 그냥 가려준 듯한 모습이었다. 그 여자는 남자들이 쳐다보는 것을 난처한 표정의 파란 눈으로 바라보다가, 곧 얼굴을 붉히고는 몸을 떨며 얼굴을 숙였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재미있소?" 경감이 물었다. "그리고 당신은 누구요? 어째서 그 여자를 납치했소?" 윗도리가 없는 남자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묻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요." 남자는 숨을 몰아쉬면서 말했다. "하, 정말 재미있는데!" 상대방은 머리를 흔들어 거무스름한 머리에서 쾌활함의 잔재를 털어버리며 일어섰다. "실례합니다. 나는 템플이라는 사람입니다. 이 여자는 헤스터 링컨 양이고요. 구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쪽 배로 옮기시오." 본이 고함쳤다. 아이셤과 엘러리는 손을 내밀어 말없이 있는 여자를 증기선에 옮겨태웠다. "아니, 잠깐 기다려요." 하고 템플 얼굴엔 유머가 사라지고 의혹으로 흐려져 있었다. "당신들은 도대체 누구십니까?" "경찰이오. 자, 자, 빨리." "경찰?" 남자는 눈을 가늘게 뜨고서 천천히 증기선에 기어올랐다. 한 형사가 모터보트를 증기선의 밧줄에 묶었다. 템플 의사는 본에서 아이셤, 아이셤에서 엘러리로 시선을 옮겼다. 여자는 녹초가 된 채 의자에 기대어 마루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 참 이상하군요. 어떻게 된 겁니까?" 아이셤 지방검사가 사건을 이야기해 주었다. 템플 의사의 얼굴은 무서우리만큼 창백하게 변했고, 헤스터 링컨은 공포가 가득찬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브래드." 템플 의사가 낮은 목소리로 일입니다. 어제 아침에도 만났었는데. 게다가 -" "조나는, " 하고 헤스터가 말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떨고 있었다. "오빠는 무사한가요?" 아무도 거기에 대답하지 않았다. 템플 의사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깊은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이 그 창백한 눈에 떠올랐다. "혹시 만나보셨는지요? 린 부부 말입니다." 의사는 기묘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요?" 템플은 잠자코 있었다. 잠시 뒤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아, 아무 것도 아닙니다. 단지 그냥 물어봤을 뿐입니다. 주저앉으며 수면 너머의 오이스터 섬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브래드의 선착장으로 되돌아가게." 본이 명령했다. 증기선은 물을 휘저으며 방향을 바꾸어 본토 쪽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엘러리는 큰 부두 위에 서 있는 야들리 교수의 키 큰 모습을 보고는 손을 흔들었다. 그에 답하여 야들리도 긴 팔을 흔들었다. "아니, 템플 씨." 아이셤 지방검사가 점잖은 투로 말을 꺼냈다. "당신은 매우 기분이 좋은 모양이군요. 그 굉장한 납치 소동은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게다가 당신을 뒤쫓아왔던 그 나체의 미치광이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것은 말하기가 좀 곤란한데.... 낫겠군요. 헤스터 - 용서하시오."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토머스 브래드의 죽음을 듣고 대단히 놀란 것 같았다. "이 링컨 양은," 하고 햇볕에 탄 남자가 계속해서 말했다. "뭐라고 할까요.... 하는 행동이 좀 충동적입니다. 아무래도 젊으니까. 젊은 사람은 엉뚱한 것에도 결사적으로 덤벼들잖습니까." "오, 빅터." 헤스터가 가냘픈 목소리로 말했다. "조나 링컨은" 템플 의사는 눈썹을 찡그리며 말을 이었다.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 내가 보는 관점에서는 동생에 대한 의무를 게을리했다고 하겠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보시는 것뿐이에요." "그래요. 헤스터. 내 생각은" 의사는 또 입술을 깨물었다. "일주일이 지나도 헤스터가 저 울화통터지는 섬에서 돌아오지 않기에 나는 누군가가 이 여자를 제정신으로 돌아가게 할 가장 좋은 시기라고 생각한 겁니다. 그러나 아무도 어떻게 해볼 수가 없어서 내가 그 역할을 맡고 나선 겁니다. 나체주의라고!" 의사는 흥 하고 콧소리를 냈다. "저 일당이 하는 짓은 변태라고요. 나는 겉멋으로 의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놈들은 착실한 사람들의 억압감정을 희생양으로 하고 있어요. 사기꾼들이지요." 여자는 숨을 삼켰다. "빅터 템플, 당신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거예요?" 경감이 온화하게 말했다. "링컨 양이 아무 것도 입지 않고 돌아다닌다고 해서 그것이 당신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이 여자는 성년인 것 같은데?" 템플 의사는 턱을 쑥 내밀었다. "내 감히 말하지요." 템플은 화가 난 듯이 말했다. "나는 간섭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정적으로 이 여자는 아주 어린애이며 또한 사춘기입니다. 그 멋진 몸매에 눈이 팔려서 달콤한 말에 속아 넘어간 겁니다." "그건 폴 로메인을 말하는 거겠죠?" 엘러리가 희미한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 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못된 악당이지요. 저 엉터리 같은 태양교의 살아 있는 간판이죠. 태양은 정확하게 저 장소에 있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나갔었습니다. 로메인과 나는 한바탕 대결했지요. 마치 혈거족과 같은 놈입니다. 우습더군요. 그래서 아까 그렇게 웃었던 겁니다. 그러나 그때는 진지했었습니다. 그놈은 나보다도 무척 세더군요. 도저히 그놈은 당할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틈을 노렸다가 링컨 양을 납치해서 도망친 겁니다." 템플은 쓴웃음을 지었다. "로메인이란 놈이 헛발을 디뎌 그 돌대가리를 바위에 부딪치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대로 뻗어버렸을 겁니다. 이 거창한 납치 소동은 바로 이렇게 된 거지요." 헤스터는 멍하니 의사를 지켜보았다. 그리고는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그래도 나는 아직 모르겠는데. 무슨 권리로 당신은" 아이셤이 말을 꺼냈다. 태도로 나왔다. "당신들이 누군진 몰라도 이것은 당신들이 끼어들 일이 아닙니다. 난 이 젊은 아가씨를 언젠가는 내 아내로 맞아들일 작정입니다. 바로 이것이 권리입니다. 이 여자는 나를 사랑하고 있지만, 이 여자는 그것을 모르고 있어요. 하나님께 맹세코 나는 이 여자에게 그것을 깨우쳐 줄 생각입니다." 템플 의사가 여자를 노려보자 그것을 맞받아 노려보는 그녀의 눈에서 잠시 불꽃이 튀었다. "이게," 하고 엘러리가 아이셤에게 속삭였다. "사랑의 황홀감 아니겠습니까." "그렇겠군." 아이셤이 말했다. 큰 부두에 있던 경관 한 사람이 배를 잇는 줄을 잡았다. 야들리 교수가 말했다. 궁금해서 보러 왔네. 아니, 템플, 어찌된 게요?" 템플 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헤스터를 납치해 오는 겁니다. 그래서 이분들이 저를 묶어서 목을 베려고 하는 거죠." 야들리의 미소가 사라졌다. "저런, 안됐구먼...." "저, 교수님, 우리와 함께 가시지 않겠습니까?" 엘러리가 말했다. "저 섬에는 교수님을 필요로 하는 일이 있을 겝니다." 본 경감이 덧붙였다. "그래요, 좋은 생각이오. 교수님은 어제 아침 브래드를 만났다고 하셨죠?" "아주 잠깐 동안이었소. 그가 시내로 막 나가려는 참이었습니다. 월요일 밤에도 아무 것도 변한 점이 없었고, 언제나처럼 그대로였습니다. 나는 모릅니다. 진짜 모릅니다. 용의자는 있습니까?" "이쪽이 묻겠습니다." 하고 본이 말했다. "당신은 어젯밤 어떻게 지냈습니까?" 템플은 씁쓸하게 웃었다. "우선 나부터 시작하겠다는 겁니까? 저녁 내내 집에 있었습니다. 혼자서 살고 있지요. 여자가 한 사람 매일 찾아와서 요리와 청소를 해줍니다." "그냥 형식적인 질문입니다." 아이셤이 말했다. "좀더 자세히 당신에 관해 듣고 싶은데요." 템플은 힘없이 팔을 흔들었다. "무엇이든지 원하시는 대로." "여기에 얼마나 오래 사셨습니까?" 장교입니다. 군인이지요. 세계대전 (제1차) 이 일어났을 때 이탈리아에 가 있어서 이탈리아 군의관으로 참가했습니다. 좀 충동적이라고 하시겠습니다만, 당시엔 아직 젖비린내 나는 풋나기여서 의대를 막 나왔을 때였지요. 계급은 소령이었습니다. 한두 번 총도 잡았습니다. 발칸 반도 전선에서 포로가 되었습니다. 별로 재미있진 않았지요." 템플은 잠시 미소지었다. "이렇게 해서 나의 군경력은 끝났습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오스트리아 군에 의해 그라츠에 갇혀 있었지요." "그리고 나서 미국으로 건너왔나요?" "몇 년 동안 여러 곳을 정처없이 돌아다녔습니다. 전쟁중에 대수롭지 않은 돌아왔습니다. 우리들 중 많은 사람이 어떻게 되었는지 잘 아실 겁니다. 옛친구들은 죽었고, 가족도 없죠. 흔한 일입니다. 나는 여기에 자리잡은 이래 줄곧 시골 신사 노릇을 해오며 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사님." 아이셤이 한층 격의없이 말했다. "당신들은 여기서 내리십시오. 그리고," 지방검사는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오른 모양이었다. "링컨 양, 당신은 브래드우드 저택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소. 저 섬에서 난리가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당신 소지품은 나중에 보내드리지요." 헤스터 링컨은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러나, "난 여기에 있지 않겠어요. 돌아가겠어요." 하고 말했을 때 그 들어가 있었다. 템플 의사의 미소가 사라졌다. "돌아가다니...." 하고 소리쳤다. "헤스터, 당신은 미치기라도 한 건가? 모든 일이 이렇게 되었는데도...." 헤스터는 어깨에서 윗도리를 벗어던졌다. 태양이 갈색 어깨를 태웠고, 그녀의 눈도 그에 못지 않게 이글거리고 있었다. "템플 씨, 당신에게서든 어느 누구에게서든 난 하고 싶은 일에 지시를 받지 않겠어요. 돌아갈 거예요. 당신이 왜 막는 거죠? 막지 마세요." 본은 힘이 빠진 듯이 아이셤을 바라보았다. 아이셤은 기분이 언짢은 듯 뭐라고 투덜거리면서 그 근방을 걷기 시작했다. 그것도 좋겠는데요. 모두 돌아가시죠. 그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증기선은 케첨의 후미 바다의 수면 위를 가로질러 갔다. 이번에는 무사히 그 작은 부두에 도착했다. 일행이 부두에 도착했을 때 헤스터는 단호하게 부축해 주는 것을 거절했다. 그런 뒤에 일행은 얼핏 보았을 때에는 유령이 아닌가 하고 생각되는 것이 출현한 데에 깜짝 놀랐다. 그것은 텁수룩한 머리에 갈색 턱수염을 기르고, 미치광이 같은 눈을 가진, 몸집이 작은 노인이었다. 그는 새하얀 긴 옷에 싸여 있었으며, 기묘한 모양의 샌들을 신고 있었다. 오른손에는 위쪽에 뱀의 형상을 특이한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그는 관목 숲에서 나오자마자 뼈와 가죽만 남은 가슴을 쑥 내밀고서 멸시하듯이 일행을 무섭게 쏘아보는 것이었다. 그 뒤에는 아까의 바로 그 나체 수영선수가 탑과 같이 우뚝 서 있었다. 이번에는 하얀 즈크 바지에 언더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러나 갈색 발은 맨발 그대로였다. 양쪽 진영이 서로를 노려보았으나, 잠시 뒤에 엘러리가 먼저 감동해 마지 않는 듯이 친밀하게 말했다. "아니, 하라크트 아니세요?" 야들리 교수가 턱수염 사이로 미소지었다. 몸집이 작은 유령은 깜짝 놀라 눈을 그러나 그 눈에서는 엘러리를 적으로 간주하는 듯한 빛은 나오지 않았다. "그게 내 이름이오." 하고 노인은 날카롭지만 분명한 소리로 말했다. "당신들은 내 신전의 참배자요?" "당신 신전에 참배하겠소, 이 땅콩 같은 양반아." 하고 본 경감이 성큼성큼 앞으로 가서 하라크트의 팔을 움켜잡으면서 소리쳤다. "당신이 이 난리법석의 장본인이란 말이지? 당신 오두막은 어디요. 당신에게 할 이야기가 있어." 하라크트는 깜짝 놀란 모습으로 동료 쪽을 뒤돌아보았다. "폴, 이것 봐, 폴?" "저 사람은 폴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드는 모양인데." 하고 야들리 교수가 중얼거렸다. "대단한 사도야."(성경에 폴 로메인은 시선을 움직이지 않고 잠자코 템플 의사를 쏘아보고 있었다. 템플도 큰 흥미를 가지고 같이 쏘아보고 있었다. 엘러리가 정신을 가다듬고 주위를 살펴보니 헤스터는 숲속으로 기어 들어가 버리고 없었다. 하라크트는 다시 돌아섰다. "당신들은 누구요? 무엇을 하러 여기에 왔소? 우리는 여기서 평화롭게 지내고 있는데." 아이셤은 울화통을 터뜨렸고, 본은 신음소리를 냈다. "이 노인네가 마치 모세라도 될 작정이군. 이것 봐, 영감, 우리들은 경찰이야. 알았어? 살인범을 찾고 있단 말이야." 노인은 마치 본에게 얻어맞기라도 한 듯이 움츠러들었다. 얇은 입술을 부들부들 폴 로메인은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그는 하라크트를 난폭하게 밀어젖히고는 앞으로 나와 경감 앞에 우뚝섰다. "당신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할 말이 있으면 내가 듣겠소. 이 노인은 좀 정상이 아니오. 살인범을 찾고 있다고 했는데, 어디든지 마음대로 찾으시지. 그런데 도대체 우리들이 그것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거요?" 엘러리는 이 남자에게 감탄했다. 훌륭한 몸매를 지니고 있으며 자석과 같이 사람을 끌어당기는 남성미를 지니고 있어서 감정이 억압되어 있거나 감상적인 성격을 지닌 여자들이 이 남자에게 정신을 잃는 이유를 잘 알 것만 같았다. 아이셤은 부드럽게 말했다. "당신과 이 "정확하게 이 섬에 있었습니다. 누가 살해당했다고요?" "모르고 있소?" "모르는데요. 누구죠?" "토머스 브래드요." 로메인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브래드라! 흠... 그렇게 될 만한 사람이었지. 그것이 어쨌다는 겁니까? 우리들은 아무런 상관도 없어요. 본토의 우거지상 할머니들에게는 볼일이 없어. 우리는 그냥 내버려두기만 바랄 뿐이오." 본 경감은 부드럽게 아이셤을 한쪽 옆으로 밀어냈다. 경감은 결코 약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로메인의 눈을 강하게 맞받으며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아니, 이 녀석이," 하고 말하며 로메인의 자네와 얘기하는 분은 이 군의 지방검사야. 그리고 경찰의 최고 간부고. 착한 아이같이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하란 말이야." 로메인은 팔을 비틀어 빼내려고 했으나, 본의 손은 강철 같았다. 그의 손가락이 로메인의 튼튼한 손목 주위를 꺾쇠 모양으로 꽉 죄고 있었다. "아, 알겠소." 하고 로메인이 우물거리면서 대답했다. "당신들 말대로 하겠소. 아무도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아서 그런 거요. 도대체 무엇을 알고 싶습니까?" 당신과 뒤에 있는 저 축 늘어진 노인이 최근에 이 섬을 떠난 것이 언제였지?" 하라크트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폴, 이쪽으로 와. 그놈들은 신앙심이없는 "조용히 하세요. 여기에 있는 노인은 우리가 여기에 오고 나서는 섬을 떠난 적이 없어요. 우리는 일주일쯤 전에 물건을 사러 마을에 갔었습니다." "좋아, 알겠어." 경감은 로메인의 팔을 놓았다. "자, 가시지. 자네들의 본부인지 신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곳을 보고 싶군." 일행은 일렬로 서서 기묘한 모습을 한 하라크트의 뒤를 따라 해안에서 섬의 중심부를 향해 관목 숲속으로 나 있는 작은 길을 더듬어 나아갔다. 섬은 이상하게 조용해서 작은 새나 곤충, 사람이 살고 있는 것 같지가 않았다. 대담하게 걸어가는 로메인은 바로 뒤에서 자기 발자국을 바라보며 따라오고 있는 템플 의사의 존재 같은 건 벌써 잊은 것 같았다. 수사대가 도착하기 전에 로메인이 말해 둔 것이 분명했다. 일행이 숲속으로부터 넓은 빈터로 나가자 바로 그곳에 문제의 집 - 조잡하게 판자를 붙여 만들어 날림식으로 지은 커다란 목조 건물이 있었고, 하라크트의 신자들은 모두 옷을 입고서 기다리고 있었다. 황급히 명령을 받은 듯, 나이와 모습들이 서로 다른 20명 가량의 이 새로운 종교의 신자들은 모두 천조각을 걸치고 있을 뿐이었다. 로메인이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내자 그 패거리들은 혈거족과도 같이 건물의 여러 구역으로 종종걸음으로 들어가 버렸다. 경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분간은 하라크트는 무아지경의 모습으로 천천히 나아갔다. 그는 손으로 만든 '우래우스'(uraeus, 뱀의 띠) 를 높이 들어올리고는 기도를 하듯이 입술을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앞장서서 중앙 건물의 계단을 올라갔다. 그 안이 분명히 '신전'인 모양인데, 참으로 놀랄 만한 방이었다. 휑뎅그렁하게 넓은 데다가 갖가지 천체도(天體圖), 매의 머리를 지닌 이집트의 신 호러스의 석고상, 소의 뿔, 시스트럼 (이지스가 만들었다고 하는 이집트 악기), 옥좌를 떠받치고 있는 상징적인 원반, 엘러리로선 무엇에 사용하는지 용도를 모르는, 판자로 둘러싸인 기묘한 설교단과 같이 생긴 것이 있었는데 한쪽 면이 화려하게 꾸며져 태양이 벽에 긴 그림자를 던지고 있었다. 하라크트는 그것만이 안전한 것인지 곧바로 제단으로 가서는 울퉁불퉁한 뼈와 가죽만 남은 양팔을 하늘로 향해 높이 치켜들고서 무슨 말인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엘러리는 묻는 듯한 시선으로 야들리 교수 쪽을 보았다. 교수는 하라크트로부터 1피트도 떨어지지 않은 바로 옆에서 볼품없는 큰 몸을 똑바로 세운 채 긴장하고서 귀담아듣고 있었다. "놀라운데." 하고 교수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사람은 시대를 거꾸로 살고 있어. 20세기의 인간이 고대 이집트어를 말하는 걸 듣게 되다니...." 엘러리는 깜짝 놀랐다. "그럼 저 사람은 있단 말입니까?" 야들리는 한심스러운 듯이 미소지으며 속삭였다. "저 사람은 미치광이야. 하긴 미치광이가 된 것도 당연하지. 게다가 진짜 이집트어를 말하고 있으니.... 저 사람은 자신을 라_하라크트라고 자칭하고 있는데, 사실은 세계 최고의 이집트 학자 중 한 사람이라네." 노인의 주문은 계속해서 낭랑하게 울려퍼졌다. 엘러리는 머리를 저었다. "자네에게 말해 주고 싶었는데 -" 하고 교수가 속삭였다. "우리 둘만 있을 기회가 없었잖은가. 나는 저 사람을 한번 본 순간부터 누구인지 알았다네. 2-3주일 전에 단순히 호기심 때문에 보트를 저어서 이 섬을 조사하러 왔었거든. 이상한 스트라이커라고 해. 몇 년 전에 '왕가의 골짜기'로 발굴을 갔다가 극심한 일사병에 걸린 채 회복되지 못했다네. 불쌍한 사람이지."('왕가의 골짜기'는 이집트 중앙부에 있는데, 그 중심에 기원전 1600년경 대단히 번창한 테베의 고도(古都) 가 있다.) "그래도 고대 이집트어를 할 수 있다니." 엘러리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저것은 호러스에게 바치는 승려의 기도문을 외우고 있는 거야. 그것도 고대 이집트 어로, 이 남자가." 야들리는 진지하게 말했다. "정말이야, 믿어도 돼. 물론 지금은 머리가 돌았지. 기억도 확실하지 않겠고. 미쳤기 때문에 이전에 알고 있는 것이 몽땅 뒤죽박죽이 된 거야. 방 같은 건 없거든. 완전히 뒤죽박죽이야. 시스트럼이나 소의 뿔은 이지스에 있어 신성한 것이고, '우래우스'는 천제의 표상이지. 게다가 호러스의 상이 엉터리야. 저 시설, 즉 판자가 '사랑의 단'인데 저것은 아마도 신자들이 기도할 때나, 저 사람이 감사의 주문을 올리는 예식을 할 때 기대는 걸 거야...." 교수는 어깨를 으쓱했다. "무엇이든 저 사람의 상상과 미친 머리에서 엉망으로 뒤섞여 나오는 게지." 하라크트는 팔을 올려 제단의 구석에서 이상한 향로를 끄집어내서는 자기 눈꺼풀에 끼얹고 나서 매우 조심스럽게 기도대에서 내려왔다. 미소를 머금은 모습이 다소 힘을 되찾은 듯이 보였다. 바라보았다. 미치광이인지 아닌지는 별도 문제고, 이 사람이 권위 있는 인물이라 한다면 문제는 완전히 달라진다. 스트라이커라는 이름은 기억을 잘 더듬어보니 희미하게 생각이 날 듯도 했다. 몇년 전 예비학교 (대학 진학 코스의 사립학교) 에 다닐 때 - 그래, 당시 이 인물에 대하여 쓰여진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이집트학자인 스트라이커. 벌써 몇천 년 전에 사라진 언어를 중얼거리는 인물.... 엘러리가 다시 돌아다보니 헤스터 링컨이 짧은 스커트와 스웨터를 입고서 제단이 있는 방 맞은편의 낮은 출입구에서 이쪽을 향해 서 있었다. 얼굴빛은 창백했지만 어디라고 꼭 꼬집어서 말할 순 없으나 그 템플 의사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방을 가로질러 와서는 보라는 듯이 폴 로메인 옆에 바싹 다가섰다. 그리고는 남자의 손을 잡았다. 깜짝 놀란 로메인은 홍당무같이 되어 한 발자국 한쪽 옆으로 비켜섰다. 템플 의사는 빙긋 웃었다. 본 경감은 그런 사소한 일에 신경쓸 처지가 아니었다. 조용히 서서 경찰을 바라보고 있는 스트라이커 옆으로 성큼성큼 다가가서 말했다. "두세 가지 간단히 물어볼 테니 대답해 주시오." 미치광이는 머리를 갸웃했다. "알겠소." "당신은 언제 웨스트 버지니아 주의 웨어턴을 떠났소?" 노인의 눈이 반짝 하고 빛났다. "5개월 전 '쿠피'(kuphi) 의식이 끝난 뒤였소." 야들리 교수가 헛기침을 했다.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내가 설명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소. 이 사람이 말하고 있는 '쿠피' 의식이라는 것은 고대 이집트의 승려가 해가 질 때 행했던 의식입니다. 매우 손이 많이 가는 의식인데, 당시에는 16가지 정도의 재료 - 꿀, 포도주, 포도, 몰약이나 그 밖에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그런 것들로 만든 '쿠피'라고 하는 당제를 청동으로 된 향로 속에서 뒤섞으면서 경문을 읽는 겁니다. 바로 그것과 똑같은 의식을 이 사람이 5개월 전 해가 질 때 했었다고 하는 거지요. 그럼 1월달이 되겠군요." 본 경감이 고개를 끄덕이자 스트라이커가 교수에게 엄숙한 미소를 지었다. 그때 모두들 깜짝 놀라고 말았다. "크로삭!" 태양신과 그 매니저를 지켜보는 엘러리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스트라이커의 미소는 사라지고 입가의 근육이 비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도움을 요청하듯이 제단 쪽을 살폈다. 로메인은 아무런 동요도 나타내지 않았다. 표정에서 보면 오히려 그 자신도 깜짝 놀란 듯했다. "실례했습니다." 하고 엘러리가 내키지 않는 듯이 말했다. "가끔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합니다. 계속하시지요, 경감님." "나도 그렇게 바보는 아니오." 본이 싱글거렸다. "하라크트, 벨랴 크로삭은 어디에 있소?" "크로삭.... 아니오, 몰라. 난 몰라. 그 남자는 신전을 버렸어. 도망쳤소." "이런 얼간이하고는 언제부터 함께 다녔소?" 아이셤이 집게손가락을 로메인에게 들이대며 물었다. "크로삭이라니,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로메인이 신음하듯이 물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이 노인과 나는 2월달에 만났다는 것뿐이오. 상당히 좋은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이죠." "어디서 만났소?" "피츠버그였소. 나에게는 아주 좋은 기회라고 생각되었거든요." 로메인이 그 넓은 어깨를 약간 으쓱하고는 앞의 말을 이었다. "물론 이런 게 모두," 로메인은 목소리를 높였다. "태양신 같은 건 죄다 안성맞춤이더군요. 내가 흥미를 가졌던 것은 단지 동료들에게 땀냄새나는 옷을 벗게 하고 햇볕을 쬐게 하는 것뿐이었소. 자, 나를 보시오!" 로메인이 크게 숨을 들이쉬자 그 멋진 가슴이 풍선과 같이 부풀어올랐다. "건강해 보이지요? 그래요. 이것은 태양의 고마운 광선을 피부에 닿게 하여 피부 속에까지 스며들게 한 덕분이지요." "오, 그런가?" 하고 경감이 말했다. "줄거리는 알고 있어. 흔히 쓰는 그런 수법이지. 나는 요람에서 나온 이래 죽 옷을 입어 왔지만 자네들 정도는 새끼손가락 끝으로도 비틀어 버릴 수 있어. 어떤 이유로 당신은 이곳에 왔지, 이 오이스터 섬에?" 로메인의 배가 불룩해졌다. "좋소, 경찰이든 아니든 누구든지 좋아요. 언제 한번 해보시겠소? 나는 -" "벌써 정해졌소." 스트라이커가 걱정스러운 듯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정해졌다고?" 아이셤이 눈썹을 찡그렸다. "누가 정했소?" 스트라이커는 뒷걸음질쳤다. "정해진 게요." "아, 이 사람이 말하는 건 들을 필요 없어요." 로메인이 소리치듯이 말했다. "억지를 부리기 시작하면 이치에 닿는 이야기는 꺼낼 수가 없어요. 내가 만났을 때에도 똑같은 말만 했으니까. 정해져 있다는 겁니다, 오이스터 섬으로 오는 것이." 되기 전이었소?" 하고 엘러리가 물었다. "그렇소." 벽에 부딪쳐 버린 것 같았다. 미치광이이든 아니든간에 일사병에 걸린 이 이집트학자에게서는 더 이상 사리에 맞는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가 없는 게 분명했다. 로메인은 6개월 전의 사건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 아니, 모른다고 주장했다. 조사해 보니 섬에는 23명의 나체주의자가 살고 있었는데, 대부분이 뉴욕에서 그럴 듯한 신문광고와 로메인의 개인적인 전도에 이끌려서 이 해괴한 '아르카디아'(Arcadia, 고대 그리스의 이상향) 로 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열차로 역까지 와서는 택시로 템플 의사의 집 맞은편에 있는 주인인 케첨에게 얼마 안 되는 돈을 주고서 낡은 평저선 (밑바닥이 평평한 배) 으로 이 섬에 오게 된 것이었다. 케첨 노인은 아마도 이 섬의 동쪽 끝에서 부인과 함께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본 경감은 태양숭배와 나체주의인 이 새로운 종교에 들어온, 두려움에 떨고 있는 23명의 태양신 신자들을 급히 모아들였다. 그 많은 사람들은 대단한 혼란에 빠져 있었다. 금지된 나체의 기쁨에 젖어 있다가 이제는 경찰의 취조를 받는 처지가 된 지금, 그들 중 대부분은 진정으로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 같았다. 몇몇 사람은 완전한 복장을 갖추고서 짐까지 들고 나타났다. 그러나 경감은 엄숙하게 머리를 흔들며 허락이 있을 때까지는 아무도 이 사람들의 이름과 도시의 주소를 써넣으면서 스미스라든가 존이라든가 브라운이라는 그 흔해빠진 이름들이 차례로 수첩의 페이지를 메워가는 것을 보고는 심술은 미소를 지었다. "당신들 중 누구라도 어제 이 섬을 떠난 사람이 있소?" 하고 아이셤이 물었다. 일제히 당황해 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도 요 며칠 간 본토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수사반은 돌아가기로 했다. 헤스터 링컨은 아직 로메인 옆에 서 있었다. 그때까지 한마디도 말을 하지 않고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있던 의사가 입을 열었다. "헤스터, 자, 이리 오시오." 헤스터는 머리를 저었다. 말했다. "헤스터, 나는 당신을 잘 알고 있소. 분별을 가져야 해. 이런 데에서 협잡꾼, 사기꾼이나 변변치도 않은 녀석들과 어울려서는 안 돼요." 로메인이 앞으로 불쑥 나왔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하고 흥분해서 고함을 질렀다. "지금 나를 두고 뭐라고 했지?" "잘 들었지, 이 터무니없는 거짓말쟁이 바보야." 이 선량한 의사의 혼에 숨어 있었던 독액과, 억누르고 있었던 분노가 한꺼번에 노도처럼 용솟음치듯 오른팔을 휘두르자 그의 주먹이 로메인의 턱에 둔탁한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헤스터는 잠시 동안 마루에 얼어붙은 듯이 우뚝 서 있었는데, 얼마 안 있어 입술을 떨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몸을 돌리고서 발작적으로 흐느끼면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 본 경감이 뛰어왔다. 그러나 로메인은 한동안 멍하게 있다가 어깨를 뒤로 젖히고서 웃기 시작했다. "이 정도가 고작이야, 이 조무라기 같은 놈..." 그는 귀까지 새빨개졌다. "템플, 잘 들어. 이곳에는 얼씬도 하지 마. 다음에 이 섬에서 네놈을 붙잡으면 온몸의 뼈를 꺾어버릴 테니까. 자, 어서 꺼져!" 엘러리는 한숨을 쉬었다. 9. 100 달러의 선불 점점 더 짙어가는 안개. '중요한' 방문은 끝났다. 일행은 어두운 마음으로 섬을 떠났다. 세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교활함과 모순이 뒤범벅이 된 미치광이, 행방이 묘연한 행방불명된 사나이... 수수께끼는 더욱 깊어졌다. 그러나 브래드우드 저택 근처에 하라크트라고 자칭하는 남자가 있는 데에는 무엇인가 의미가 있다고 누구나 느끼고 있었다. 우연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몇백 마일 떨어진 시골 국민학교 교장의 살인과 백만장자의 살인과는 어떤 관계가 있단 말인가 ? 경찰증기선은 부두에서 물을 헤치며 바닷가를 둘러싸고 있는 오이스터 섬 해안을 따라서 동쪽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섬 동쪽의 쑥 튀어나온 곳에 똑같은 부두가 바다 쪽으로 나 있는 것이 보였다. "저것이 케첨의 개인 부두가 틀림없어." 하고 본이 말했다. "배를 대게." 그 주변의 경치는 서쪽보다도 더 살벌했다. 나무로 된 부두에 서서 바라보면 무엇 하나 장애물은 없고 만이 한눈에 바라다보였으며, 북쪽으로는 뉴욕의 해안선이 보였다. 바람이 강하고, 공기는 소금기를 머금고 있었다. 템플 의사는 흥분이 좀 누그러졌는지 야들리 교수와 함께 증기선에 남았다. 아이셤 지방검사, 본, 엘러리. 이렇게 세 사람만 삐걱거리는 부두를 건너 꼬불꼬불 빠져나갔다. 숲속은 살벌했고, 오솔길 외에는 - 마치 옛날 인디언들의 발길이 닿았던 당시 그대로인 것 같았다 - 원시림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150 야드 정도 걸어가니 허술한 문명과 만나게 되었다. 세월에 바래진 거친 통나무로 지은 오두막이 있었다. 입구의 계단에 햇볕에 탄 몸집이 큰 노인이 의자에 앉아 한가로이 콘 파이프를 피우고 있었다. 사람들이 찾아온 것을 보고는 얼른 일어서서 하얗고 더부룩한 눈썹을 놀랄 만큼 맑디맑은 눈 위로 모았다. "당신들, 여기에 무엇 하러 왔소?" "경찰입니다." 하고 본 경감이 딱 잘라 말했다. "당신이 케첨 씨인가요?"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경찰? 허, 저 나하고 집사람에게 무슨 볼일이라도 있소? 나는 단지 이 메마른 땅을 가지고 있을 뿐인데. 땅을 빌린 사람들이 어떻게 까불어댔어도 그것은 다 자기들이 운이 나빴을 뿐이오. 내가 아는 것은 없어." "아무도 당신을 탓하지는 않습니다." 아이셤이 딱 잘라 말했다. "당신은 본토에서 - 브래드우드 저택에서 - 살인사건이 있었던 것을 모르십니까?" "아니, 뭐라고요?" 케첨의 턱이 떡 벌어졌다. 파이프가 갈색 이빨 사이에서 올라갔다 내려갔다 했다. "들었소, 마누라?" 노인은 오두막 안쪽으로 뒤돌아보았다. 노인이 쑥 내민 팔과 문의 문설주 사이로 나이든 노파의 주름투성이의 얼굴을 알아볼 수가 있었다. 있었다니... 그거 참, 안된 일이군. 그게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소?" "아무 상관도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셤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토머스 브래드가 살해당했습니다." "브래드 씨라고!" 오두막 안에서 노파가 소리치며 머리를 내밀었다. "무서운 일이야. 그래, 내가 늘 말했잖수." "당신은 그쪽에 가 있어." 케첨 노인이 말했다. 눈은 서릿발같이 차가웠다. 노파의 머리가 집안으로 사라졌다. "그렇지만, 여러분, 나는 당신들이 어떤 말을 해도 놀라지 않아요." "저런." 하고 본이 말했다. "왜 그렇죠?" "그게, 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오." "무슨 뜻이죠? 그럴 만한 사정이 케첨 노인은 한쪽 눈을 찡긋했다. "그것은 말이오, 브래드 씨와 저 미치광이들은 -" 노인은 진흙투성이의 엄지손가락을 쑥 내밀고서 어깨 너머로 뒤를 가리켰다. "저 녀석들이 여름 동안 오이스터 섬을 내게서 빌렸을 때부터 양쪽에서 싸움이 붙었지요. 나는 이 섬의 주인이오. 우리 집은 벌써 4대 이전부터 여기에 살고 있지. 인디언 시대부터란 말이오. 말해 드릴까?" "그건 알고 있습니다." 하고 본이 초조하게 말했다. "그럼 브래드 씨는 하라크트와 저 일당이 자기 집 근처에 있는 걸 좋아하지 않았었군요? 당신이 어쩌면 -"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경감님." 하고 엘러리가 말했다. 그의 눈은 빛났다. "케첨 누구인가요?" 케첨의 콘 파이프가 노란색 연기를 토해냈다. "저 미친 남자가 아니었소. 대단히 이상한 이름을 가진 남자였지. 외국인 같은 이름인데. 크로삭이라고 했다오." 노인은 어려운 듯이 그 이름을 발음했다. 세 남자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크로삭 - 드디어 실마리가 잡혔다. 애로요 살인사건의 수수께끼의 절름발이 남자.... "절름발이인가요?" 엘러리가 물었다. "그게 말이지," 하며 케첨은 멍청한 어조로 말했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어서 나는 뭐라고 말할 수가 없다오. 잠깐 기다려 봐요. 당신들 마음에 들지도 모르는 게 있으니까." 노인은 방향을 바꾸어 "흠, 그래요, 퀸 씨." 하고 지방검사가 생각에 잠기며 말했다. "어쩌면 당신이 노리는 것이 맞을 것 같소. 크로삭.... 밴이 아르메니아 인이고, 브래드가 루마니아 인이라 -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중앙 유럽 사람들이 확실해요 - 크로삭은 처음의 범죄현장에서 마지막으로 모습을 나타낸 이후로는 어딘가로 행방을 감추었다가.... 이젠 거의 가까이 갔소, 본." "그런 것 같군." 경감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즉시 손을 써야겠는데.... 노인이 나오는군." 케첨 노인이 땀으로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손때로 매우 더러워지고 지저분해진 종이조각을 득의만만하게 휘두르면서 다시 "이것이 그 편지요." 하고 말했다. "크로삭에게서 온 것이오. 직접 읽어보는 게 좋겠구먼." 본이 노인에게서 그것을 낚아채자 엘러리와 아이셤이 경감의 어깨 너머로 들여다보았다. 뭐 색다를 것도 없는 흔한 종이에 타이프친 편지로서, 날짜는 작년 10월 30일로 되어 있었다. 여름 동안에 오이스터 섬을 빌려주겠다고 뉴욕 신문에 난 광고를 보고 보내온 편지였다. 그리고 다음해 3월 1일 자기들이 도착하기 전까지 선불로 우편환으로 100 달러를 동봉한다고 쓰여 있었다. 편지의 서명은 - 타이프로 - 벨랴 크로삭으로 되어 있었다. "우편환은 들어왔겠지요, 케첨 씨?" 하고 본이 즉시 물었다. "그거 아주 잘 됐군요." 하고 아이셤은 손을 비비며 말했다. "그것을 조사해 보십시다. 어디인지는 모르겠으나 크로삭이 우편함을 보낸 우체국에 가서 그 녀석이 만든 전표를 찾아보면 서명이 틀림없이 있을 겁니다. 그것만 찾으면 큰 도움이 될 겝니다." "그러나 걱정스러운 것은," 하고 엘러리가 마음이 내키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수사하고 있는 벨랴 크로삭이라는 우리의 그 존경할 만하고 미꾸라지 같은 적은 지금까지의 행동으로도 알 수 있을 만큼 매우 교활한 인물이라, 어쩌면 동료인 하라크트의 이름으로 우편환을 보냈을지도 모릅니다. 밴 사건의 수사 때에도 크로삭의 필적은 전혀 "그 크로삭이라는 사람은 3월 1일에 직접 나타났습니까?" 지방검사가 물었다. "아뇨.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오지 않았어요. 다만 그 바보 같은 늙어빠진 영감하고 - 하르 - 하라크트라고 했나, 그 사람 이름이? 그리고 또 한 사람 로메인이라는 남자가 와서는 임대료 잔액을 현금으로 내고는 지금까지 눌러앉아 있는 게지요." 본과 아이셤은 무언의 합의에 의해서 크로삭에 대해 질문은 그만두기로 했다. 이 노인이 그 방면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아무 쓸모가 없는 게 확실했기 때문이다. 경감은 편지를 주머니에 집어넣으면서 브래드와 하라크트가 다툰 이유를 묻기 시작했다. 하라크트의 종교가 실제로는 나체촌을 섬에까지 와서는 본토에 사는 사람들의 합의된 의견을 대표해서 항의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라크트는 달래기도 하고 으르기도 하다가 나중에는 아예 상대도 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로메인도 이를 드러내고 덤벼들었다. 브래드는 필사적인 태도로 몇 갑절로 금액을 변상해 주겠다고 하고 그들의 임대료에 대한 변상조로 엄청난 금액까지 제시했던 것이다. "그때 임대계약에 누가 서명했나요?" 하고 아이셤이 물었다. "저 족제비 같은 늙은이예요." 케첨이 대답했다. 하라크트와 로메인은 브래드의 제의를 거절했다. 그러자 브래드는 그 두 사람이 공공사회의 질서를 파괴시킨다면서 자기들이 어느 누구에게도 피해를 끼치지 않은 점, 섬은 공공 도로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점, 섬을 빌린 기간에는 섬이 사실상 그들의 것이나 다름없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대항했다. 그래서 브래드는 케첨을 설득시켜서 자신과 같은 이유로 소송을 걸어서 그 패거리를 내쫓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 녀석들은 나에게나 우리 할멈에겐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았다오." 하고 노인이 말했다. "브래드 씨에게는 소송을 거는 걸 싫다고 했지, 내가 말이오. 재판 같은 건 딱 질색이거든." 마지막으로 가장 큰 싸움이 일어난 것은 바로 사흘 전 일요일이었다고 케첨이 이야기했다. 브래드는 마치 트로이 성으로 물살을 가르고 쳐들어와서는 숲속으로 가서 스트라이커와 만나 지독한 입씨름을 했다. 덕분에 그 작은 갈색 턱수염의 노인은 완전히 광란의 상태가 되었다. "난 그 남자가 발작을 일으킨 줄 알 았답니다." 하고 케첨이 침착하게 말했다. "그때 로메인이라는 그 힘이 세고 난폭한 사람 말이에요, 끼어들어서는 브래드 씨에게 섬에서 나가라고 소리쳤지요. 난 숲속에서 구경하고 있었답니다. 그래서 알게 되었지. 그러나 브래드 씨가 가려고 하지 않자 로메인은 브래드 씨의 목을 잡고서, '자, 나가라면 나가! 안 나가면 네놈 에미도 몰라 볼 정도로 만들어서 두 번 다시 태양도 보지 못하도록 해주겠어.' 하고 소리치더군요. 그래서 브래드 씨는 만들겠다고 큰소리치고 돌아갔지요." 아이셤은 또다시 손을 비볐다. "케첨 씨, 당신은 훌륭한 분이십니다. 당신과 같은 분이 이 근처에 살아서 다행이군요. 그래서 말인데요, 혹시 그밖에도 본토에서 온 사람 중에서 하라크트나 로메인과 싸운 사람은 없었나요?" "있었고말고." 노인은 만족스러운 태도로 능글맞게 웃었다. "그 조나 링컨이라는 사람 말이에요, 브래드우드 저택에 살고 있지. 그 사람이 저번주에 이 섬에 와서 로메인과 치고받고 싸웠답니다." 노인은 무두질한 가죽 같은 입술을 핥았다. "허, 그거 아주 대단한 싸움이었지. 마치 진짜 타이틀 매치 같았답니다. 링컨이라는 사람은 이 섬에 그때 막 들어온 헤스터라는 "그래서요?" 케첨 노인은 신이 나서 계속했다. 그의 눈이 빛났다. "멋진 몸매를 갖고 있었지, 그 아가씨. 그 두 남자 앞에 나오자마자 자기 옷을 몽땅 찢어버리더군요. 꼭 잡아찢은 건 아니지만 하여간 홀딱 벗어버리더라고요. 오빠가 간섭하는 바람에 그렇게 미친 듯이 되어버린 게지. 어렸을 때부터 오빠가 이런 핑계 저런 핑계로 사사건건 간섭해 왔으니, 이제부터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고 소리치더군. 정말 볼만했지. 난 나무 그늘에서 보고 있었는데...." "케첨, 당신은 호색가야!" 오두막 안에서 날카로운 여자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창피하지도 않수?"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그렇게 여동생이 돌아가지 않겠다고 버티자, 게다가 태어날 때 그대로의 알몸으로 로메인 앞에 버티고 서 있는 것을 보고는 링컨이 치미는 화를 참지 못하고 갑자기 로메인에게 대들면서 한 방 먹였죠. 그래서 두 사람이 한바탕 붙게 되었다오. 링컨은 신나게 두드려 패기도 하고 맞기도 했지. 정말 남자다운 사람이에요. 하지만 로메인이 그 사람을 후미 속에다 처박고 말았지요. 하여간 힘이 센 작자더군, 그 로메인 말입니다." 이 수다쟁이 노인에게서 더 이상은 캐낼 만한 것이 없었다. 일행은 증기선으로 되돌아갔다. 야들리 교수는 조용히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템플 의사는 험악하고 검붉은 얼굴을 하고서 갑판을 걸어다니고 있었다. "뭐 좀 알아냈소?" 하고 야들리 교수가 부드럽게 물었다. "조금밖에는." 증기선이 물보라를 일으키며 본토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을 때 일행은 모두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10. 템플 의사의 모험 오후의 해도 저물었다. 아이셤 지방검사는 돌아갔다. 본 경감은 명령을 내리기도 하고, 계속해서 - 쓸모없는 것이긴 했으나 - 보고가 들어오는 것을 듣고 있었다. 오이스터 섬은 조용했다. 브래드 부인은 침실에 틀어박혀 있었다. 몸이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딸인 헬레네가 간호를 해주고 있었다. 조나 링컨은 저택 안을 안절부절 못하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경찰과 형사들은 브래드우드 저택 근방에서 하품을 하고 있었다. 신문기자들도 나왔다 들어갔다 했다. 그리고 저녁 공기에는 플래시라이트 같은 연기가 자욱히 끼었다. 엘러리는 몹시 피곤해서 야들리 교수 두른 문을 빠져나가서 자갈길을 올라가 야들리의 집으로 갔다. 둘 다 녹초가 되어 각자 수심에 잠겨 있었다. 날이 저물고 별도 뜨지 않은 새까만 밤, 오이스터 섬은 어두워지면서부터 만 사이로 잠겨가는 것 같았다. 무언의 합의에 의해 엘러리와 집주인은 자신들을 붙잡고 있는 기묘한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둘의 화제는 오래 되고 재미있는 추억 - 대학 재학중의 일, 융통성이 없는 노총장에 관한 일, 엘러리가 범죄수사에 처음 착수했을 때의 경험담, 둘이 만나지 못한 동안 야들리 교수의 평온무사한 생활 등이었다. 11시가 되자 엘러리는 이야기를 마치고 마직으로 된 파자마로 갈아입고서 시간 정도 서재에서 조용히 담배를 피우며 편지를 몇 통 쓰고 나서 침실로 갔다. 자정이 가까워졌을 때 템플 의사의 석조 건물 포치에서 인기척이 났다. 그리고 문제의 그 의사는 검은 바지, 검은 스웨터, 검은 모카신 (밑창과 겉이 가죽 한 장으로 된 구두) 을 신고서 자기의 담배 파이프의 불을 끄고는 소리도 없이 포치로 살그머니 나와, 자기 집과 브래드우드 저택 동쪽 경계 사이에 있는 어두운 숲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주위에서는 귀뚜라미의 애타는 노래소리만 날 뿐, 모두 잠들어 고요해진 것 같았다. 나무숲과 덤불숲이 배경이 되어 의사의 모습은 보이지가 않았다. 살금살금 피부색조차도 불명확하게 어둠이 삼켜 버렸다. 동쪽 도로의 가장자리에서 몇 피트는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의사는 나무 그늘에서 조용히 멈춰섰다. 누군가가 의사 쪽으로 도로를 따라 어슬렁어슬렁 걸어왔다. 그 희미하고 검은 윤곽으로 보아 템플 의사는 분명히 순찰하고 있는 군(郡)의 제복 경관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경관은 그대로 지나쳐 '케첨의 후미' 쪽으로 갔다. 순찰하는 사람의 발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되자 템플 의사는 경쾌하게 달려서 도로를 가로지른 뒤 브래드우드 숲 그늘로 파고 들어가 소리를 내지 않고 서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따금 우연히 만나는 경관의 검은 그림자에 의심받지 데에 반 시간이나 걸렸다. 서머하우스와 토템 기둥을 지나쳐서는 테니스 코트를 구획짓는 높은 철조망, 안채와 브래드우드 부두로 통하는 중앙보도, 그리고 폭스의 작은 오두막을 차례로 지나 브래드우드 저택의 경계로 되어 있는 서쪽 도로로 나왔다. 거기까지 더듬어가서는, 템플 의사는 그 긴장해서 철사같이 꼿꼿한 몸을 조심스럽게 구부리고 망령과도 같이 린의 집을 둘러싼 나무 사이로 숨어 들어가 그 집의 검은 그림자가 맞은편에 떠오르는 지점까지 갔다. 처음에는 정면으로 해서 집 가까이까지 갔다가, 잠시 뒤 어둠 속을 살피면서 숲이 거의 집에 바짝 붙은 북쪽으로 나아갔다. 가장 가까운 창을 비추고 있었는데, 의사는 플라타너스 줄기를 방패로 해서 웅크리고 서 있었다. 창의 블라인드는 모두 내려져 있었다. 방안에서 희미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침실이었다. 린 부인의 뚱뚱한 그림자가 창의 블라인드를 가로질렀다. 템플 의사는 납작 엎드려서 눈앞의 땅을 1인치씩 손으로 더듬으면서 창 바로 밑까지 가서 웅크리고 앉았다. 그것과 동시에 문을 닫는 소리가 나면서 린 부인의 평소보다 더 날카로운 예리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퍼시, 그거 묻었어요?" 템플 의사는 이를 악물었다. 땀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러나 소리 하나 내지 "그래. 제발, 베스, 그렇게 커다란 소리를 내면 어떻게 해." 퍼시 린의 목소리는 긴장되어 있었다. "정말 끔찍하군. 주위는 경찰로 꽉 차 있어." 발소리가 창으로 다가왔다. 템플 의사는 벽의 밑부분에 꼭 달라붙어 숨을 죽였다. 차일이 걷어올려지고 나서 린이 바깥을 살폈다. 그리고는 또다시 차일이 내려지는 소리가 났다. "어디에요?" 하고 엘리자베스 린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템플 의사는 온몸의 근육을 긴장시키며 몸이 떨릴 정도로 온 힘을 다해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린의 낮은 목소리는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린이 다소 보통의 어조가 되어 말했다. "우리들은 가만히 있기만 하면 안전해." "그렇지만 템플이 - 난 무서워요, 퍼시." 린은 화가 치미는 듯이 저주의 말을 내뱉었다. "기억하고 있어, 자세히. 전쟁이 끝난 뒤 바로 부다페스트였어. 분델라인 사건 때에.... 분명히 그놈의 눈이야. 그 남자야. 틀림없어." "그러나 그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린 부인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 잊어버렸나 보죠." "그놈은 그럴 놈이 아니야. 지난주에 브래드의 집에서, 우리만을 쳐다보고 있었어. 조심해야 돼, 베스. 우리들은 엄청난 구렁텅이 속에 -" 빛이 갑자기 꺼졌다. 침대의 스프링이 없는 소곤소곤하는 속삭임으로 바뀌었다. 템플 의사는 오랫동안 그대로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그러나 그 이상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린 부부는 잠이 든 것 같았다. 템플 의사는 벌떡 일어서서 다시 몇 초간 귀를 기울여 보다가 이윽고 숲속으로다시 살짝 돌아갔다. 검은 그림자가 나무에서 나무로 미끄러져 나아갔다. '케첨의 후미'의 반원을 두른 숲을 빠져나와 살금살금 나아가자 브래드우드의 부두에 밀려와 부서지는 철썩철썩하는 파도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나서 다시 한 번 템플 의사는 나무 그림자에 꼼짝않고 붙어 있었다. 희미한 사람 소리가 선착장 쪽에서 쪽으로 좀더 가깝게 살며시 다가갔다. 갑자기 거의 바로 곁에서 검은 물이 철썩철썩 소리를 내고 있었다. 눈여겨 살펴보니 물가에서 3 미터 정도 떨어진, 어두운 부두 바로 가까이에 보트 한 척이 흔들리고 있었다. 보트 한가운데에 앉아 있는 희미한 두 그림자가 보였다. 남자와 여자였다. 여자는 팔을 남자에게 감고서 무엇인가 열심히 설득하고 있었다. "왜 그렇게 싸늘하지. 나를 섬에 데려가요. 거기라면 안전하니까 - 나무 그늘로......" 남자의 목소리는 낮고 조심스러웠다. "당신 말대로는 할 수 없어요. 위험해요. 왜 하필이면 오늘밤입니까? 마음이 달라졌나요? 누군가가 당신이 없어졌다는 말입니다. 적어도 이 사건이 잠잠해질 때까지는 만나지 않기로 약속했잖아요." 여자는 남자의 목에서 갑자기 팔을 떼어내고는 히스테릭한 높은 목소리로 외쳤다. "그건 알고 있어. 당신은 이젠 나 같은 건 사랑하지 않는 거야. 그래, 바로 그거야." 남자는 여자의 입에 얼른 손을 갖다대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큰소리를 내지 말아요. 주변에는 경찰이 있습니다." 여자는 남자의 팔 속에서 꼼짝 못하고 있었다. 잠시 뒤 양손으로 남자를 밀어내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가 다시 앉았다. "아뇨, 당신은 그녀를 차지하지 못할 거예요. 내가 그렇게 할 거야." 남자는 잠자코 있었다. 그리고 노를 손에 서 있었다. 남자는 난폭하게 여자를 배에서 밀어냈다. 그리고는 매우 급하게 배를 물가에서 떼어내자마자 오이스터 섬을 향해 노를 저어갔다. 그때 달이 떠올랐다. 템플 의사는 노를 저어가는 남자가 폴 로메인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창백한 얼굴로 물가에 서서 떨고 있는 여자는 브래드 부인이었다. 템플 의사는 얼굴을 찡그리고는 나무 사이로 모습을 감추었다. 11. 쉿! 다음날 아침 엘러리가 브래드우드의 자갈길을 올라가 보니 자동차길에 아이셤 지방검사의 차가 멈춰 있는 것이 보였다. 주변에 서 있는 형사들의 얼굴에는 진지한 기대의 표정이 어려 있었다. 무언가 중대한 일이 일어난 모양이라고 짐작을 한 엘러리는 서둘러서 식민지풍의 포치를 올라 집안으로 들어갔다. 창백한 스톨링스의 옆을 지나 응접실로 향했다. 거기에는 늑대같이 찡그린 얼굴을 한 아이셤과 노기등등한 경감이 정원사 겸 운전사인 폭스를 난폭하게 다그치고 있었다. 폭스는 잠자코 양손을 꼭 쥔 채 아이셤 앞에 서 있었다. 단지 눈만이 부인, 헬레네, 조나 링컨은 '세 명의 운명의 신'과 같이 한쪽 옆에 몰려 서 있었다. "안녕하시오, 퀸 씨." 하고 아이셤이 쾌활하게 말했다. "마침 좋은 때 왔소. 폭스, 당신은 물건을 지닌 채 붙잡혔어. 왜 자백하지 않지?" 엘러리는 살짝 방으로 들어갔다. 폭스는 몸을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입술만이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난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나 모든 걸 죄다 알고 있었고, 또한 충격을 피하려 하는 것은 확실했다. 본이 이빨을 드러냈다. "시치미떼지 말고. 자네는 화요일 밤, 패치 맬론의 집에 갔었어. 브래드가 살해당한 날 밤에." 듯이 덧붙여 말했다. "당신은 스톨링스와 박스터 부인을 록시에서 내려주었어. 8시였지, 폭스?" 폭스는 바위와 같이 우뚝 서 있었다. 입술은 창백해져 있었다. "어때?" 경감이 비웃는 듯이 말했다. "뭐 말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말해 보시지, 이 얼간아. 성실한 운전사가 어째서 뉴욕 갱들의 본거지에 찾아갔느냔 말이야." 폭스는 깜짝 놀라서 눈이 휘둥그래지긴 했지만 대답은 없었다. "말하고 싶지 않은가?" 경감이 문 있는 데로 갔다. "마이크, 저 잉크 스탬프를 이쪽으로 가져와." 사복형사가 즉시 잉크 스탬프와 종이를 가지고 나타났다. 폭스는 이상한 소리를 사복형사가 잉크 스탬프와 종이를 내버리고 폭스의 팔을 붙잡았고, 경감은 폭스의 양다리를 꼭 끌어안고서 완강하게 반항하는 상대방을 바닥에 넘어뜨렸다. 운전사는 넘어지자 더 이상은 반항하지 않고 본에게 몸을 내맡긴 채 순순히 일어섰다. 헬레네 브래드는 겁먹은 눈으로 폭스를 바라보았다. 브래드 부인은 아무런 동요도 나타내지 않았다. 링컨은 일어나서 등을 돌렸다. "이자의 지문을 찍어." 하고 경감이 대단히 불쾌한 듯이 말했다. 사복형사가폭스의 오른손을 붙잡고서 손가락을 잉크 스탬프에 꽉 누른 뒤에 노련한 동작으로 종이에 눌러찍었다. 그리고는 왼손도 똑같은 방식으로 있었다. "곧바로 그것을 조사해 보게." 지문을 찍은 형사가 허둥지둥 나갔다. "자, 폭스. 그것이 진짜 이름이라면 말이야.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어. 자네도 조금은 알아차렸겠지. 내 질문에 대답해. 맬론을 찾아갔었지?" 대답이 없었다. "자네의 진짜 직업이 뭐지? 어디에서 왔지?" 대답이 없다. 경감은 또 문 있는 쪽으로 가서 복도를 살펴보고는 두 형사를 손짓으로 불렀다. "이 녀석을 오두막에 데리고 가서 가두어 둬. 나중에 처리할테니." 두 형사들 사이에 낀 채 비틀거리며 그러나 브래드 부인과 헬레네의 눈은 피하고 있었다. "그런데," 경감은 눈썹을 닦았다. "실례했습니다, 부인. 댁의 응접실에서 이런 소동을 일으켜서. 그러나 저 남자는 아무리 보아도 연극이 서툰 것 같지 않습니까?" 브래드 부인은 머리를 저었다. "전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요. 저 사람은 언제나 착한 젊은이였는데. 예의도 바르고, 일도 잘했어요. 설마 당신들은 저 남자가 저질렀다고...." "정말 그놈이 한 짓이라면 하나님밖엔 도와줄 사람이 없을 겁니다." "절대로 저 사람은 아니에요." 헬레네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눈에는 동정심이 갱단일 리가 없어요. 전 믿고 있어요. 언제나 무뚝뚝한 것은 사실이지만. 술은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고, 방종한 생활을 하거나 불평을 한 적도 한 번도 없었는걸요. 게다가 교양도 있었고요. 훌륭한 책과 시를 읽는 것을 자주 보았답니다." "저런 녀석들은 아주 빈틈이 없게 행동한답니다, 아가씨." 아이셤이 말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저 녀석이 여기에서 일하게 된 뒤로 계속 연극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신용조회처를 조사해 보았습니다만 진짜였습니다. 그러나 거기서는 불과 몇 개월밖에 일을 하지 않았더군요." "증명서를 떼기 위해 일한 건지도 녀석들은 그런 짓에는 도통해 있으니까." 경감이 엘러리 쪽으로 돌아섰다. "퀸 씨, 이건 당신 아버지 덕분입니다. 이 정보는 퀸 경감에게서 받았거든요. 그분은 경찰 끄나불이나 정보제공자를 갖고 있는 것으로는 전 뉴욕 경찰 중 어느 누구도 따르지 못할 정도 아닙니까?" "아버지는 가만히 내버려두지 못하는 성미인 걸 잘 알고는 있죠." 엘러리가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경감님이 얻은 정보가 쓸모 있나 보죠?" "폭스가 맬론의 본거지에 들어가는 것을 경찰 끄나불이 보았답니다. 그것뿐이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요." 엘러리는 어깨를 으쓱했다. 헬레네가 말했다. "당신들의 나쁜 점은 생각한다는 거예요." 링컨은 앉아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경감은 씁쓰름하게 웃었다. "그럼 이거라도 보시지요." 그렇게 말하며 주머니에서 타이프친 편지 뭉치 몇 통을 꺼내어 엘러리에게 건네주었다. "그 속에서 아무거라도 찾아내면 당신은 천재요. 하지만...." 경감은 날카롭게 말을 하고는 갑자기 링컨 쪽을 돌아다보았다. 링컨은 그때 일어서서 방에서 나가려고 하는 중이었다. "링컨 씨, 아직 나가지는 마십시오. 이것 봐요. 내 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소." 아주 시기를 잘 잡는 경감의 노련한 솝씨에 엘러리는 탄복했다. 링컨은 얼굴을 붉히며 그 자리에 멈춰섰다. 두 여자는 그 방안의 공기는 침체상태에서 가슴이 터질 듯한 긴장상태로 바뀌었다. "무슨 일이신지요?" 링컨이 머뭇머뭇하며 물었다. "그게 말입니다." 본이 재미있는 듯이 말했다. "어제 당신은 월요일날 밤에 부인과 아가씨와 함께 돌아왔다고 했는데, 그것은 거짓말이란 말이오." "내가 거짓말을? 그건 또 무슨 뜻입니까?" 아이셤이 말했다. "아무래도 당신들은 모두 이 집 주인의 살해범 수사를 돕는다기보다는 오히려 방해하는 데에 열심인 것 같습니다, 부인. 경감의 부하들이 월요일 밤 당신들 중 두 명을 역에서 이 저택까지 태워다 주었다는 택시 "두 명이라고요?" 엘러리가 놀란 듯이 물었다. "부인, 택시에 타신 분은 링컨 씨와 아가씨였다고 그 운전사가 말했습니다." 헬레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브래드 부인은 자포자기한 듯이 말도 못하고 있었다. "어머니, 잠자코 계세요, 세상에 이런 일이! 아이셤 씨, 당신은 우리들 중 한 사람이 이 살인사건에 관련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링컨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헬레네, 우린 차라리 -" "조나." 헬레네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링컨 쪽으로 몸을 돌렸다. "당신이 쓸데없는 참견을 하시면 난, 난 이제 당신과는 절대로 말을 하지 않겠어요." 피하며 방에서 나갔다. 브래드 부인은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희미한 신음소리를 냈고, 헬레네는 어머니를 지키려고 그런 것인지 그 앞을 가로막았다. "이것 참," 아이셤이 양손을 들면서 말했다. "퀸 씨, 보시는 대롭니다. 우리 수사관들이 부딪치는 일들이 언제나 이런 것들입니다. 아, 좋습니다, 아가씨. 그러나 한 가지 알려주고 싶은 것은, 지금 이 순간부터 당신들을 한 명도 남기지 않고 - 알겠습니까, 한 명도 남기지 않고 말입니다 - 토머스 브래드의 살해 용의자로 보겠습니다." 12. 교수가 말하다 먹이를 찾는 동물의 본능을 지닌, 다소 마음이 거칠어진 특별수사관 엘러리 퀸은 진행중인 수사 경과 보고서를 들고서 길을 건너 교수의 집으로 황급히 돌아갔다. 정오의 태양이 뜨거워서 입고 있는 옷이 더워 보이기에 충분했다. 엘러리는 휴 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실내의 시원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야들리 교수는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그대로 따온 듯한 방에 앉아 있었다. 대리석을 깎은 돌을 깔아놓고 터키 풍의 당초 무늬를 그려넣은 파티오와 같은 구조였다. 마치 '제나나'(zenana, 인도의 여자의 방) 의 내실과 같이 꾸며져 있는데, 무엇보다도 만든 가득히 물을 채워넣은 수영장이 있는 것이었다. 교수는 짧고 꽉 끼는 수영복을 입고서 긴 다리를 물속에 집어넣고 한가히 흔들며 느긋하게 파이프를 빨고 있었다. "와!" 하고 엘러리가 말했다. "교수님, 이 작은 '하렘'(harem, 회교국의 여자의 방) 이 정말 마음에 드는데요." "늘 그렇듯이" 하고 교수는 엄숙하게 타이르듯이 말했다. "자네 말은 터무니없어. 남자의 방은 '셀라믹'(selamik) 이라고 한다는 걸 잘 알잖나? 옷을 벗고 이리 오게, 퀸. 그런데 무엇을 갖고 왔나?" "가르시아에서 온 편지입니다. 그곳에 계십시오. 함께 이것에 대해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곧 오겠습니다." 허버드가 1899년 쿠바의 혁명가인 가르시아에 의해서 쓰여진 문장을 비유한 말. 이 문장으로 인해 당시 미군정하에 있던 쿠바가 독립한 계기가 되었다.) 엘러리도 잠시 뒤에 수영복 차림으로 나타났다. 윗몸은 땀으로 미끌거리며 빛나고 있었다. 그는 실내수영장 속으로 풍덩 뛰어들어 교수도 흠뻑 젖고, 파이프의 불도 꺼질 정도로 요란하게 물을 퉁기고서 요란한 동작으로 물보라를 일으켰다. "이것도 자네의 업적 중 하나인가?" 야들리는 화가 난 듯이 소리질렀다. "자네는 늘 수영 실력이 형편없었잖나. 빨리 나오게. 나까지 익사시키지 말고." 엘러리는 씩 웃고서 기어 올라가 대리석 위에 길게 엎드려서 본 경감의 보고서를 긴 연극계에서 행운을 상징하는 "도대체 무슨 내용이 들어 있을까?" 엘러리는 제일 위에 있는 종이에 눈을 보냈다. "흠, 대단한 것은 아닌데요. 경감이 게으르지 않다는 점에는 감탄했습니다. 핸콕 군 관공서에 조회를 했군요." "오라," 하고 교수가 파이프에 불을 붙이려고 애를 쓰면서 말했다. "그 사람들이 그랬단 말이지? 그래서 뭐라고 했다던가?" 엘러리는 한숨을 쉬었다. "제일 먼저 앤드류 밴의 시체 부검 결과인데, 흥미 있는 점은 정말 발톱의 때만큼도 없군요. 교수님이 저만큼 많은 부검 보고서를 읽으셨다면 아실 겁니다만.... 이건 첫번째 조사가 완전한 허사라는 뜻이지요. 제가 보도되지 않은 것은 전혀 없어요. 아, 그런데 이건 뭐지? '이렇게 사료됨' - 잘 들어보세요. 마치 그 크러밋이라는 친구같이 들리는데요. '애로요의 국민학교 교장 앤드류 밴과 최근 살해된 롱 아일랜드의 부호 토머스 브래드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을 가능성에 관한 아이셤 지방검사의 조회에 대해서 아무런 관계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알리게 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적어도 우리는 죽은 밴의 오랜 서신왕래를 신중하게 검토한 결과 그렇게 단정하게 되었습니다.' 어떻습니까?" "모범 답안이군." 교수는 빙긋이 웃었다. "그렇지만 그게 그겁니다. '알로스'(Alors, 그래서) 우리는 애로요는 돌아가야겠습니다." 엘러리는 네번째 종이를 넘겼다. "토머스 브래드의 시체에 관한 럼센 의사의 검시보고입니다. 우리들이 알지 못하는 것은 하나도 없군요. 전혀 몸에 폭력의 흔적은 없고, 내장에는 독물의 흔적도 없고, 기타 등등, '아드 노제암.'(ad nauseam, 지긋지긋하군요) 늘 그렇듯이 평범한 것들 뿐입니다." "자네는 그날 럼센에게 브래드가 목졸리지는 않았느냐고 물었는데, 그것에 관한 얘기도 있나?" "있습니다. 허파에 질식한 흔적은 없다는군요. '에르고'(Ergo, 따라서) 목졸려 죽은 것은 아닙니다." "그럼 왜 자네는 그런 걸 물었지?" 엘러리는 물이 뚝뚝 떨어지는 팔을 다른 부분에 폭력을 가한 흔적이 없다고 한다면 어떻게 해서 죽었는지 아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아시다시피 공격을 받은 곳이 머리뿐이거든요. 그렇다면 목졸려 죽은 것도 생각해 봐야겠지요. 그러나 럼센은 이 보고서에서 둔기로 머리를 때렸거나 권총을 쏘았거나 하는 것 이상은 생각할 수도 없다고 하는군요. 모든 점으로 보아 전 앞쪽의 가능성을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야들리 교수는 물을 차올렸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 밖의 다른 것은?" "범인이 지나간 행적에 대한 조사가 있었군요. 한데 헛수고랍니다. 완전히 헛수고라는군요." 엘러리는 머리를 저었다. "범행시각에 이 숲 근처의 역에서 기차를 불가능하다고 하는군요. 도로를 순찰하는 경관이나 이 도로 근처와 가로변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아무런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답니다. 화요일 밤 케첨의 숲이나 그 부근을 조사한 것도 성과가 없는 모양입니다. 화요일 오후부터 저녁에 걸쳐서 만 안을 항해한 요트에 탔던 사람들과 그 밖의 사람들도 의심스럽거나 수상한 것을 보지 못했고요. 범인을 바다에서 그 숲에 내려주었을지도 모른다고 여길 만한 배는 한 척도 찾을 수 없었답니다." "자네 말대로 헛수고로군." 야들리 교수가 한숨을 쉬었다. "범인은 기차로 왔을지도 모르고, 자동차라든가 배로 왔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정확한 것은 해보면 수상비행기로 왔을지도 모르긴 하겠지만." "그거 좋은 생각인데요." 엘러리가 미소지었다. "설마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하시는 어리석은 실수를 하셔서는 안 됩니다, 교수님. 저는 정말로 상상 밖의 일이 일어나는 것을 가끔 보았거든요. 그건 그렇고, 이걸 한번 보세요." 엘러리는 서둘러서 다음 종이를 대충 훑어보았다. "여기에도 아무 것도 없군요. 브래드의 팔과 다리를 토템 막대에 붙잡아맨 것은...." "자네가 '토템 기둥'이라고 말해 주길 바란 것도," 하고 야들리가 불만스럽게 말했다. "완전히 헛수고로구먼." "토템 기둥에 붙잡아맨 것은" 하고 상점이나 철물점에서 살 수 있는 흔하고 값싼 빨랫줄이랍니다. 브래드우드 저택 주변 10마일 이내의 상점에서는 어디에서도 여기에 단서가 될 만한 정보는 없었답니다. 그러나 아이셤은 본의 부하들을 시켜 넓은 지역을 탐문수사토록 하겠다고 보고서에 써놓았군요." "그 친구들 정말 철저하구먼." 하고 교수가 말했다. "저는 그런 것은 받아들이지 못하겠는데요." 하고 말하며 엘러리는 빙긋이 웃었다. "그렇게 늘상 하는 철저한 수사로 수많은 일반 범죄는 해결되겠지요. 그 매듭은 본이 좋아하는 아이디어겠지만 결과는 제로입니다. 본과 같은 전문가의 말에 효과는 있다고 합니다. 교수님이나 제가 묶는 매듭 같은 거랍니다." "나는 다르네." 하고 야들리가 말했다. "나는 이래봬도 옛날에는 배를 탔단 말이야. 옭매듭이나 반결삭(半結索) 등등 어떤 거라도 좋아." "교수님은 지금도 옛날과 마찬가지로 H2O에 가깝게 있을 뿐이지요. 항해 능력에서 말입니다. 아, 폴 로메인에 대한 것도 있군요. 재미있는 인물입니다. 선량하고, 건강비법을 터득한 아주 단호한 남자랍니다." "자네의 말버릇은" 하고 교수가 말했다. "정말로 한심스럽군." "과거가 명확하지 않다고 본 경감님의 보고서에 쓰여 있는걸요. 그 녀석이 스스로 이집트학의 권위자를 만났다고 하는 사실 이상의 것은 그 남자에게서 밝혀낼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 이전의 경력은 백지입니다." "린 부부는?" 엘러리는 서류를 잠시 내려놓았다. "예, 바로 그 린 부부 말입니다." 하고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교수님은 그 부부에 대해서 뭐 좀 알고 계신가요?" 교수는 턱수염을 어루만졌다. "수상하단 말이지, 자네는? 어차피 자네의 눈을 속일 수는 없겠지. 그 부부에게는 뭐랄까,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확실히 있어. 꼭 꼬집어서 말하기는 어렵지만.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바로는 생트집잡을 것까진 없네." 이겁니다. 런던 경시청에서는 그렇게 많은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좀 달리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제가 아이셤에게 충고해 주었지요. 그래서 아이셤이 런던 경시청에 전보를 쳤는데, 그 보고에 의하면 런던 경시청이 전문을 보내왔으나 이쪽에서 보내준 퍼시와 엘리자베스 린이라는 이름의 부부에 대해서는 어떤 자료도 없다고 하더라는 겁니다. 두 사람의 여권도 조사해 보았는데, 그것도 예상대로 들어맞았습니다. 아마도 좀 불친절한 행동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런던 경시청에서는 역시 계속해서 신원, 전과 등도 조사해서 린 부부가 영국인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두 사람의 영국 국내에서의 행동에 관해서, 그러한 방면의 "저런, 성가시게 됐군." 엘러리는 얼굴을 찡그렸다. "교수님은 이제서야 그것을 알아차리셨습니까? 저는 지금까지 기간이야 짧지만 꽤 성과 있게 보냈고, 여러 가지 복잡한 사건을 다루었습니다만, 이번처럼 묘한 사건을 만난 것은 처음입니다. 교수님은 물론 운전사인 폭스와 브래드 부인에 관한 최신 정보는 듣지 못하셨지요?" 교수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엘러리는 한 시간 정도 전에 브래드우드 저택의 응접실에서 일어난 일을 얘기해 주었다. "확실해지지 않았습니까, 어떻습니까?" "갠지스 강의 물 같군." 야들리가 으르렁대듯이 말했다. "지금에야 다시 생각해 본 것이지만 이렇게 하면 어떨까?" 교수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 한번에 결론이 내려지는 건 아니니까. 자네가 가지고 있는 백과사전에는 아직 좀 다른 것이 쓰여 있을 것 같은데." "본 경감도 일솝씨가 꽤 빠르더군요. 파크 극장 입구의 안내원이 화요일 밤 제1막 중간에, 9시쯤 말입니다. 브래드 부인의 인상과 비슷한 여자가 극장을 나갔었다고 증언했습니다." "혼자서 말인가?" "그렇다니까요. 아직까지는 그렇습니다. 본 경감의 부하들이 오이스터 섬의 임대료를 접수시켜서 케첨에게 보낸 100 달러 우편환 전표의 원본을 찾아냈습니다. 일리노이 주의 피오리아 우체국에서 벨랴 크로삭이라는 명의로 되어 있었다는군요." 그 남자의 필적 견본은 손에 넣었나?" 엘러리는 한숨을 쉬었다. "결론으로 비약하셨군요. 교수님, 그 점은 신중하게 생각하셔야 합니다. 이름은 활자체로 쓰여 있었답니다. 주소는 단지 피오리아로 되어 있을 뿐이고 - 분명히 스트라이커의 만나 (구약성서 '출애굽기'에 나오는, 하나님이 내려준 음식) 를 나눠주면서 가는 남자가 그곳 사람들에게 팔아먹으려고 그곳에 가서 멈춘 겁니다. 단지 한 가지 이 방면의 정보는 갖고 있습니다. 회계사에게 브래드 앤드 메가라 상사의 장부를 조사하도록 해놓았습니다. 물론 수사의 연장선상에서 자연스런 겁니다만. 그렇지만 지금까지 알아낸 것으로는 모든 게 공명정대한 모양이더군요. 회사는 유명하고, 또 굉장히 건전합니다. 그래서 말입니다만, 낯선 곳을 여행하는 걸 좋아하는 스티븐 메가라는 지금쯤은 어딘가 '대해'의 물결을 가로지르며 항해하고 있을 테지만 그 사람은 직접 사업에는 관계하지 않았습니다. 벌써 5년 전부터 그랬다는군요. 브래드가 눈을 크게 뜨고 감독하는 가운데 그 젊은 조나 링컨이 거의 회사를 혼자서 휘어잡고 운영해 왔습니다. 저는 그 남자가 무슨 꿍꿍이속으로 그 회사를 꾸려왔는지 미심쩍군요." "미래의 양어머니와의 싸움?" 교수는 대수롭지 않게 단정지었다. 엘러리는 야들리의 셀라믹 대리석 마루에 서류철을 집어던졌다. 그러나 다시 생각나는 부분이 있어서 급히 집어들었다. 종이 한 장이 떨어진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건 뭐지?" 엘러리는 탐욕스런 눈으로 그것을 한참 읽었다. "허, 이거 참 재미있는데." 야들리는 멍하니 파이프를 허공에 멈춘 채, "뭔가?" 엘러리는 흥분해 있었다. "크로삭에 관한 구체적인 정봅니다. 날짜를 보니까 나중에 추가된 보고인 것 같군요. 크러밋 지방검사는 처음의 회답에서는 감춰놓은 것을, 나중에는 이 사건에서 완전히 손을 씻고 그 가엾은 아이셤에게 몽땅 떠맡기기로 마음을 굳힌 겁니다. 6개월간의 조사. 자료는 충분히 모아져 있었을 테니까. 벨랴 크로삭은 몬테네그로 "몬테네그로 인? 거기서 태어났단 말이지? 지금은 이미 몬테네그로라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네." 야들리는 호기심이 생겼다. "현재는 유고슬라비아의 정치적인 일부분으로 흡수되었다네. 1922년에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가 정식으로 통합되었지." "흠, 크러밋의 조사 결과로 크로삭은 1918년, 정식으로 평화가 선언된 뒤에 몬테네그로에서 제1차 이민으로 미국에 건너온 것이 밝혀졌습니다. 미국에 입국할 때 여권에는 고향이 몬테네그로 인으로 되어 있었으나, 다른 참고가 될 만한 것은 기입되어 있지 않았다더군요. 그 남자는 투트(Tut) 의 석관(石棺) 에서 우연히 출현했나 봅니다." ('투트의 석관'은 의해 발굴된 이집트 '왕가의 골짜기'의 투탄카멘 왕의 묘를 가리킨다.) "크러밋은 그 남자의 미국에서의 경력에 관해서는 뭐 좀 알아냈나?" "대략적인 것이지만 충분히 참고는 되겠군요. 도시에서 도시로 옮겨다니던 사이에 자신이 선택한 나라의 사정에도 훤해졌고 언어소통도 가능해졌던 것 같습니다. 몇 년간은 싸구려 행상을 했었던 것 같은데, 이것은 건전한 장사였던 모양입니다. 오밀조밀한 바느질용품들과 조그만 직물 깔개 같은 것들을 팔았답니다." "모두 이민온 사람들이 하는 일이지." 하고 교수가 말했다. 엘러리는 그 다음에 쓰여 있는 것을 4년 전에 테네시 주의 차타누가에서 하라크트, 즉 스트라이커를 만나서 둘이 협력하게 된 겁니다. 당시 스트라이커는 '태양약'을 팔러다녔는데, 간유에 제멋대로 이름을 붙인 거였지요. 크로삭은 스트라이커의 영업 매니저가 되었는데, 흔히 말하는 '제자'가 됨으로 해서 그 가엾은 미치광이 노인은 태양숭배와 건강종교를 만들어내게 되었고, 그의 협조로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설교를 한 겁니다." "애로요 살인사건 뒤에 크로삭의 행동에 관해서는 뭐 좀 써 있나?" 엘러리의 얼굴이 흐려졌다. "그것이 빠져 있습니다.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겁니다. 참으로 기묘하게도 짐승 같은 놈입니다." "그 사람의 행적은 하나도 잡히지 않았습니다. 둘 다 땅속으로 꺼져버린 건 아닐 텐데. 클링이 얽혀 있는 것이 제게는 매우 조바심을 일으키게 합니다.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요? 크로삭이 그 남자의 영혼을 '저 세상'으로 보냈다면 육체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크로삭은 어디에다 그 사람을 파묻었을까요? 교수님, 제가 장담하지만, 클링의 현실적인 운명을 밝혀내지 않는 한 이 사건은 해결할 수 없습니다. 크러밋은 클링과 크로삭 사이의 관계를 알아내려고 그렇게 모범적으로 노력을 했던 겁니다. 혹시 그 둘이 공범자가 아닌가 하고 생각했던 거지요. 그러나 어떤 한쪽도 알아낼 수가 없었던 거죠." 없다고는 할 수 없지." 하고 교수가 지적했다. "물론 그렇죠. 그래서 지금까지도 크로삭에 관한 한, 그 남자가 스트라이커와 계속 연락을 해왔는지 어땠는지 우리들로서는 확인할 방법이 없는 겁니다." "스트라이커라.... 그건 신의 노여움을 불러일으킨 좋은 예지." 하고 야들리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불쌍한 친구야." +엘러리는 픽 웃었다. "확실히 해주십시오, 교수님. 이건 살인사건입니다. 그것은 그렇고, 이 마지막 보고서에 의하면 웨스트 버지니아 주 당국은 하라크트의 정체를 밝혀냈다고 합니다. 크러밋의 말을 빌리면 그 남자는 유명한 이집트 학자인 말씀하신 대로 몇 년 전에 이집트의 '왕가의 골짜기'에서 일사병에 걸려 미쳤답니다. 지금까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인척은 아무도 없고 이제까지 죽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은 미치광이라고만 생각해 왔다는 겁니다. 이것은 크러밋의 단서인데 잘 들어보십시오. '핸콕 군 지방검사의 견해에 의하면 자칭 하라크트, 또는 라_하라크트라고 하는 앨바 스트라이커라는 인물은 앤드류 밴 살인사건에 책임이 없다고 보인다. 그러나 그 이상한 외모와 약간의 정신이상, 그리고 왜곡된 신앙에 대한 망집을 갖고 있으며, 보통의 규범에서 벗어나 있는 데다가 부정한 사기행위에 이용되어 오랜 세월 동안 희생물이 되어왔다고 생각된다. 또 당국에서는 밴 가지의 동기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 피해자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된다. 모든 사실은 그 인물을 벨랴 크로삭으로 지적하rh 있다.' 자, 어떻습니까? 명문장이지요." "크로삭에 대해서는 상황증거 뿐이지 않은가?" 하고 교수가 말했다. 엘러리는 머리를 저었다. "상황증거든 아니든 밴의 살해용의자로서 크로삭을 지명한 것은 크러밋이 핵심을 찌른 거지요." "어째서 자네는 그렇게 생각하지?" "여러 가지 사실에 근거해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크로삭이 앤드류 밴을 죽였다는 것만으로는 우리들이 규명하려고 하는 사건의 본질을 파악할 수는 없습니다. 좀더 기울였다. "크로삭은 어떤 인물인가 - 라는 문제입니다." "그건 또 무슨 뜻인가?" 야들리 교수가 물었다. "그것은 이 사건에서 벨랴 크로삭은 단지 한 사람에게만 진짜 얼굴과 용모가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엘러리는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것은 스트라이커입니다. 게다가 스트라이커에게서는 신뢰할 만한 증언을 기대할 수 없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크로삭은 어떤 인물인가? 또 '현재' 크로삭은 누구인가? 어쩌면 그는 우리들 주변의 누구인지도 모르지요." "바보 같구먼." 하고 교수는 우울한 크로아티아 사투리를 쓰고 왼쪽 다리를 절름댄다고 하는데...." "이치에 맞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교수님. 이 나라에서는 국적 같은 건 물처럼 쉽게 융화될 수 있습니다. 크로삭은 웨어턴에 있는 자동차 수리소 주인 크로커와 얘기할 때에는 확실히 사투리가 아닌 영어로 이야기했습니다. 크로삭이 우리들 바로 옆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에 대해서 - 교수님은 아직 브래드 살해사건의 요소를 충분히 분석하시지 않으신 것 같군요." "호, 내가?" 야들리는 딱 잘라서 말했다. "아니, 그럴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자네, 이것만은 알아두게. 자네는 조금 전에 지나치게 억측을 했다는 점을." 엘러리는 몸을 일으켜서 또 수영장 안으로 뛰어들었다. 물속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머리를 살짝 내밀고서 엘러리는 교수 쪽을 보고 의미 있는 미소를 지었다. "제가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지만, 브래드우드로 태양교 모조품을 가지고 들어가라고 해놓은 인물은 크로삭입니다! 그것도 밴이 죽기 전에 말입니다. 의미심장하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한다면 그 남자는 어딘가 그 주변에 있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젠 아셨죠?" 하고 엘러리는 태연히 말하고 수영장 안에서 나와 양손을 머리 뒤로 깍지끼었다. "함께 생각해 보시죠. 크로삭부터 생각해 보는 겁니다. 그 사람은 몬테네그로 인이에요. 거기에서 누가 루마니아 태생임을 가장한 중앙 유럽 인과 죽였는가라는 문제가 생기지요. 그럼 중앙 유럽 인이 세 사람 있게 되고, 그들 모두가 같은 나라 태생인지도 모른다고 상정할 수 있습니다. 저는 현재까지의 여러 가지 점으로 보건대 밴과 브래드가 아르메니아와 루마니아에서 온 것은 아니라는 확신이 생깁니다." 교수는 신음 같은 소리를 내면서 성냥을 두어 번 그어서 파이프에 불을 붙였다. 엘러리는 뜨거운 대리석 위에 엎드려서 담배에 불을 붙이고 눈을 감았다. "지금부터 이 상황을 동기면에서 생각해 보지요. 중앙 유럽? 발칸 반도라고 하면 어떤 곳일까요? 미신과 폭력의 고장이지요. 거의 일상다반사라고 해도 좋을 정돕니다. 거기서 교수님은 짐작되시는 것이 "나는 발칸 반도에 관해서는 전혀 아는 것이 없네." 하고 교수는 무감각하게 말했다. "자네 말을 듣고 보니 이 세상의 어떤 지방은 어쩐지 기분 나쁜 전설들의 발생지였다는 생각이 드는군. 그런데 그것은 일반적으로 지능 정도가 낮고 황폐한 산악지대라는 공통점에 기초하고 있지." "하하! 그거 좋은 착상이군요." 엘러리는 껄껄 웃었다."흡혈귀 전설입니까? 교수님은 '드라큘라'를 기억하고 계십니까? 그것은 우매한 시민에게 악몽의 씨를 부린 브랜 스토커의 불멸의 역작이지요. 중앙 유럽을 무대로 한 인간 흡혈귀 이야기 말입니다. 그 이야기 가운데에도 역시 목이 잘리죠!" "유치한 잠꼬대." 야들리는 불안한 듯 "정말 그렇군요." 하고 엘러리는 즉시 대답했다. "허튼 얘기지요. 밴과 브래드의 심장에 말뚝이 박혀 있지 않았다는 사실에 관한 한은. 자존심이 있는 흡혈귀였더라면 그 유쾌한 작은 의식을 결코 생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만일 그 말뚝이 발견된다면 우린 인간 흡혈귀 무리를 없애겠다고 나선 미신에 사로잡힌 미치광이를 상대하고 있다고 확신해도 좋습니다." "자네, 장난하고 있나?" 하고 야들리가 항의했다. 엘러리는 잠시 동안 담배를 피웠다. "장난을 치고 있는가 아닌가는 제 자신이 알겠지만 중요한 것은요, 교수님, 이 신성한 문명개화 세상에서 흡혈귀 전설 상대도 해주지 않겠지만, 그렇더라도 만일 크로삭이 흡혈귀를 믿고 있고 앞뒤 가리지 않고 인간의 목을 잘라내고 있다면, 그 남자의 신앙에 눈을 감고 있을 수만은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참으로 실용주의 철학의 소견과 필적할 만하지 않나요? 만일 그 남자에게 흡혈귀가 존재하는 거라면..." "자네의 이집트 십자가에 관한 고견은 어떻게 된 건가?" 교수는 심각하게 물었다. 교수는 마치 긴 논의를 예상하고 거기에 부응하려는 듯이, 좀더 편한 자세를 취하기 위해 똑바로 앉았다. 엘러리도 일어나 앉아서 자기 무릎을 껴안았다. "그런데 교수님은 어떻습니까? 마음에 짚이는 것이라도 있으신가요? 어제 그런 말씀을 넌지시 하셨잖아요. 그렇지 않으면 교수는 신중하게 파이프의 재를 털고서, 수영장 가장자리에 파이프를 내려놓고는 검은 턱수염을 어루만지며 어느 때보다도 대학 교수다운 모습을 갖추었다. "자네는," 하고 엄숙하게 말했다. "당치도 않은 예측을 하고 있네." 엘러리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면 '타우' 십자가는 이집트 십자가가 아니라는 말씀입니까?" "그렇다네." 엘러리는 조용히 몸을 앞뒤로 흔들었다. "권위자의 말씀이시니까.... 흠. 교수님, 어떻습니까, 조그만 내기를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나는 내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네. 자네는 '크룩스 코미사'(crux commissa, 불린다는 것을 어디서 배웠나?" "대영 백과사전에서요. 1년쯤 전에 저는 십자가에 대해 좀 조사할 필요가 있었죠. 그때 전 소설을 한 권 쓰고 있었거든요. 지금도 생각이 납니다만, '타우' 또는 T자 십자가는 이집트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종종 이집트 십자가로도 불리고 있다고 설명해 놓았더군요. 제 기억으로는 그 내용에서는 십자가에 관해서 '타우'라는 말과 이집트 등이 확실히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교수님도 찾아보시겠습니까?" 교수는 웃었다. "자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확실히 그렇겠지. 그 내용을 누가 썼는진 모르겠지만 아마 박식한 사람일 걸세. 그러나 대영백과사전이라고 해도 인간이 최고의 권위를 갖고 있다고는 할 수 없지. 나 자신은 이집트 예술의 권위자는 아니지만, 그 점은 이해해 주기 바라네만, 그쪽도 내 연구의 한 토막을 이루고 있다네. 그래서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집트 십자가라고 하는 어구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걸세. 잘못 쓰여진 것이 확실해. 그런 T자 모양을 한 것이 이집트에 있다는 것이...." 엘러리는 의아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럼 교수님은 왜 '타우' 십자가가 이집트 십자가가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지 않기 때문이지." 야들리는 미소지었다. "고대 이집트 사람이 사용한 신성한 도구 중 하나에 그리스 문자의 T자와 닮은 형태를 한 것이 있긴 하지. 가끔 나온다네. 그러나 그것을 '타우' 십자가라고 할 수는 없지. '타우' 십자가는 오랜 기독교의 표상이라네. 그와 같은 우연의 일치는 많이 있어. 예를 들면, '타우' 십자가에는 성 앤터니 십자가라고 하는 이름이 붙여져 있는데, 그것은 단순히 그림과 조각 속의 성 앤터니가 흔히 갖고 있는 지팡이가 '타우' 십자가와 너무나 닮았기 때문에 붙여진 것에 불과한 게야. 엄밀히 말한다면 '타우' 십자가가 성 앤터니 십자가가 아닌 것은 자네와 나의 십자가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라네." "그러면 T자 십자가는 정말은 이집트 십자가도 아무 것도 아니라는 건가요?" 엘러리는 투덜거리듯이 말했다. "허 참, 당치도 않은 실수를 저지르다니." 교수가 말했다. "나는 그것을 말릴 수는 없지. 그 형태의 십자가는 오랜 옛날부터 흔히 사용되어 온 것은 사실이고, 무엇보다도 원시적인 시대에서부터 세계 다른 곳에서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되어 왔다네. 십자형을 변형한 상징은 얼마든지 예를 들 수도 있어. 예를 들자면 스페인 사람이 건너오기 전에 서반구의 인디언들도 사용하고 있었다네. 그러나 그것은 지금 적절한 예는 아니지. 이 점이 중요한 거야." 교수는 눈을 부릅떴다. "자네가 억지로 맞춰서 이집트 십자가라 부르고 싶다면, 그렇게 불러도 좋은 십자형의 상징은 하나뿐이야. 그것은 '앙크' (ankh) 야." "앙크라고요?" 엘러리는 생각하듯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앙크'라고 하는 것은 T 십자가의 꼭대기에 붙어 있는 고리가 아닙니까?" 야들리는 고개를 저었다. "원형이 아니야. 물방울 또는 배 모양이라고 불리는 형태의 작은 것이지. '앙크'는 열쇠 비슷한 거야. '크룩스 안사타'(crux ansata) 라고 불리고, 이집트의 비문 가운데에 가끔 나오지. 신이라든가 왕위를 나타내는 것인데, 특이한 점은 그것을 갖고 있는 사람은 생명의 창조자로서 인식된다는 거야." "생명의 창조자요?" 엘러리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리고는, "그래!" 하고 외쳤다. "그래, 역시 이집트 십자가입니다. 이제 우리들은 그것으로 올바로 추적하고 있는 "설명해 보게." "모르시겠습니까? 아니, 헤로도투스 (BC 484(?)-425, 그리스의 역사가) 처럼 확실하잖습니까." 하고 엘러리는 힘주어 말했다. "'앙크'는 생명의 상징이죠. T의 가로대는 팔입니다. 세로 기둥은 몸통이고요. 꼭대기의 배 모양은 머리입니다. 그리고 머리는 잘려 있습니다. 거기에 하나의 의미가 있지 않습니까? 크로삭은 일부러 생명의 표상을 죽음의 표상으로 바꾼 겁니다." 교수는 잠시 엘러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우스워서 견딜 수 없다는 듯이 킬킬 웃었다. "뛰어난 생각이군. 악마 같은 예리함이야. 그러나 진리에서 백만 파라상 (페르시아의 거리 단위) 이나 떨어져 엘러리의 흥분은 가라앉았다. "어디가 틀린 겁니까?" "크로삭이 피해자의 목을 자른 동기에 관한 자네의 영감이 번득이는 해석은 '앙크' 또는 '크룩스 안사타' 가 인간 형상의 상징이었다면 그게 가능했을지 모르는데, 실은 그렇지가 않다네, 퀸. 기원은 좀더 산문적인 거야." 교수는 한숨을 쉬었다. "자네는 스트라이커가 신고 있던 샌들을 기억하고 있겠지. 그것은 전형적인 고대 이집트 신발의 모방품이야. 사실 이러한 점에 인용하고 싶지는 않은데 - 결국 내가 인류학자가 아닌 것은 이집트 학자가 아닌 것과 같은 거야. 그러나 '앙크'는 어떤 전문가에 의하면 스트라이커가 신고 있는 샌들 끈을 꼭대기의 원형은 발목 주위를 자른 부분이 되는 거야. 원형 아래 수직부분은 발등 위를 지나 발끝으로 가서 엄지발가락과 둘째발가락 사이에서 샌들 밑으로 연결되는 끈인 거지. 옆의 짧은 가로 부분은 발등의 양쪽에서 샌들 밑으로 연결되는 끈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고." 엘러리는 기가 죽어 버렸다. "그러나 그 상징이 원래는 샌들에서 온 것이라면, 아무리 비유적인 의미에서라도 어떻게 생명의 창조를 나타내도록 된 것인지 저는 아직 이해가 되질 않는데요." 교수는 어깨를 으쓱했다. "말이라든가 관념 따위의 기원은 때로는 현대적인 의식을 갖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있어. 과학적 견지에서 보면 뭐가 뭔지 표시가 차츰 '삶'이라는 의미를 갖는 어간에서 나와서 여러 가지 언어를 나타내는 것에 사용되고 있는 점으로 본다면, 결국 어느 사이엔가 생활이라든가 생명의 상징으로 보이도록 된 것이지. 진짜 기원이 되는 재료는 유연성을 갖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 샌들은 보통은 파피루스를 가공해서 만든 것이지만, 이집트 인은 그 표시를 굳은 형체, 즉 나무나 도기 같은 것으로 만들어서 부적으로 사용하게 되었을 거야. 그러나 이 상징 자체는 결코 인간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 아님은 확실해." 엘러리는 코안경의 흐린 렌즈를 닦으면서 생각에 잠긴 듯이 태양에 빛나는 수면을 바라보고 있다가, "좋습니다." 하고 실망한 포기하지요. 그런데, 교수님, 고대 이집트 인은 십자가형을 집행했습니까?" 교수는 웃었다. "자네는 끝까지 항복하지 않는군, 응? 내가 알고 있는 바로는 없었네." 엘러리는 코안경을 코 위에 살짝 얹었다. "그럼 우리들은 이집트학에 관한 설은 포기하는 거로군요. 적어도 저는 포기하겠습니다. 지레짐작을 했군요. 최근엔 흔하지 않던 징훈데요. 완전히 둔해진 것 같습니다."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야, 자네 -" 교수가 주의를 주었다. "포프의 말에 의하면 위험한 일이라는 거야." "그래서, 생각이 났습니다만" 하고 엘러리는 반복했다. "'faciunt nae intelligant'-'어떤 것을 지나치게 아는 것은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 라는 문구가 있지요. 물론 이것은 특정한 개인을 두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요." (영국의 시인 알렉산더 포프 (1688-1744) 가 쓴 '비평에 의한 수상' 제1장에서 인용한 구절.) "물론 그래." 야들리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터렌스도 그런 뜻으로 말한 것은 아닐 걸세, 그렇겠지? 어떻든 자네는 이번 사실들을 이집트학적으로 해석하려고 해서 옆길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네. 내 알고 있지만 자네는 강의실에서도 일체의 사물을 낭만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지. 언젠가 플라톤과 헤로도투스가 얘기한 아틀랜티스 전설의 기원에 대해서 논의했을 때만 해도 -" 중간에서 방해해서 죄송합니다만" 하고 엘러리는 조금 초조한 듯이 말했다. "저는 지금 수렁에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교수님은 엉뚱한 고전적 취미로 얘기를 혼란시켜 놓았습니다. 크로삭이 피해자의 머리를 자르고 범죄현장에 T자 표시를 부려놓은 것이 십자가의 상징을 남기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확실히 '앙크'는 아니고 '타우' 십자가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파라오 시대의 이집트에 '타우' 십자가가 존재했었던 흔적이 설령 있었다 해도 극히 의심스럽게 생각되고, 크로삭이 이집트학적 의미를 갖는 종교적인 사물에 집착해 있는 미치광이와 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크로삭은 생각해도 좋겠지요. 증거 말입니까? 좋습니다. 토머스 브래드는 토템 막대 - 죄송합니다, 기둥이군요. 이것도 종교적 상징이긴 하지만 고대 이집트학과는 다른 겁니다. 아직 다른 증거도 있습니다. 크로삭이 '앙크' 십자가 표시를 남길 생각이었다면 그 남자는 머리를 자르는 것보다도 오히려 그대로 두었겠지요. 그것으로 인해 이집트설에는 의문이 생기는 겁니다. 아메리카 토템설에 관해서는 브래드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장소가 토템 기둥이었다는 사실을 빼고는 아무런 근거도 없습니다. 토템 기둥이 선택된 것은 종교적인 의미보다도 오히려 그것이 T자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선택된 것에 불과한 것이죠. 그리고 우리들은 또 없습니다. 기독교의 교리에서 '타우' 십자가가는, 제가 알고 있기로는 순교자를 참수하는 데 이용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종교적 이론은 이 기회에 모두 포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자네의 신조는" 하고 교수는 껄껄 웃었다. "어쩐지 라블레의 신앙과 닮은 것 같군. 그 위대한 '아마'주의까지도." (라블레는 프랑스 풍자작가로, '라블레 신앙' 이라고 하면 모방자, 연구가라는 뜻으로 씀) "- 그리고 처음부터 코앞에 매달려 있었던 것을 역으로 되돌리고요." 엘러리는 조용히 웃으며 결론을 지었다. "그것은 또 무슨 말인가?" "T는 T만의 의미이지 다른 어떤 의미도 의미밖에 없는 겁니다. T, T는," 엘러리는 말을 끊었다. 교수는 미심쩍게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엘러리는 아무런 생각이 없는 듯한 눈으로 수영장의 푸른 물과 햇빛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하고 교수가 물었다.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엘러리는 중얼거렸다. "아니, 너무도 얘기가 지나칠 정도로 잘 맞아. 그런데 증거는 하나도 없어. 그전에도 한 번 이런 일이 있었지." 엘러리의 목소리는 어느샌가 기어 들어갔다. 야들리가 묻는 말이 귀에 들어가지 않는 것 같았다. 교수는 한숨을 쉬면서 또 파이프를 집어들었다. 두 사람은오랫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그렇게 계속 앉아 있었다. 조용한 가까운 모습으로 있는 두 남자. 그때 한 흑인 노파가 검은 광채를 띤 얼굴에 아주 재수없는 표정을 띠고서 탁탁 발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야들리 교수님." 흑인 노파는 온화하게 호소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떤 사람이 문을 두드리며 들어오겠다고 하고 있는데요." "뭐라고?" 교수는 깜짝 놀라서 머리를 저어서 꿈을 꾸는 듯한 황홀한 감정을 떨쳐버렸다. "누가 말이오?" "그 경감 말입니다. 굉장히 흥분한 것 같은데요, 교수님." "좋아요. 들여보내 주시오." 잠시 뒤에 본이 작은 종이쪽지를 흔들면서 두 사람 쪽으로 뛰어왔다. 얼굴은 하고 그가 큰소리로 불렀다. "빅 뉴스요!" 엘러리는 멍청한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아, 경감님이시군요. 무슨 뉴슨데요?" "이것을 읽어보시오." 경감은 대리석 위에 종이쪽지를 펼치고서, 어떤 기대를 갖고 '세라리요'(seraglio, 회교도의 후궁) 에 불법으로 들어온 침입자처럼 헐떡거리면서 수영장 가장자리에 앉았다. 엘러리와 교수는 얼굴을 마주보고 나서 함께 종이쪽지를 들여다보았다. 그것은 자메이카 섬에서 온 무선 전보였다. '오늘 이 항구에 입항해서 브래드의 사망을 알았소. 곧 뉴욕을 향해 출항하겠소.' 발신인 서명은 '스티븐 메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