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개의 서명 - 아서 코난 도일 - 1. 추리학 이제부터 여러분에게 이야기할 이상스러운 사건의 주인공이 우리를 찾아오 기 전까지, 나는 셜록 홈즈와 함께 따분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습 니다. 그래서 홈즈와 나는 관찰과 추리에 대해 여러가지 토론을 거듭했습니 다. 내가, 관찰과 추리는 결국 같은 것이라고 말하자, 홈즈는 머리를 가로저었 습니다. "아냐, 그건 큰 착오야, 와트슨. 자네는 오늘 아침 위그모어가의 우체국에 갔었던 것 같은데, 이런 것은 관찰만으로 알아낼 수 있지만, 거기에 가서 자네가 전보를 한 장 쳤다는 것을 알아 내기란 완전히 추리의 힘이 아니면 안된단 말이야." "야, 거참 놀랍군. 두가지 꼭 다 맞았어. 오늘 아침 갑자기 생각나는 게 있어서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우체국엘 다녀왔지."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이야기해 볼까? 자네의 구두코에 진흙이 조금 묻 었는데, 마침 위그모어가에서는 요새 도로 공사를 하고 있거든. 누구나 우체국에 가려면 그 곳을 가지 않으면 안되지. 그런데 그곳의 진흙은 다른 곳의 흙 빛깔과 다르단 말이야. 그래서 나는 이런 관찰로 자네가 우체국에 갔었다는 것을 곧 알 수 있었다네." "음, 그러면 전보를 쳤다는 것은 어떻게 알아냈나?" "나는 오늘 아침 죽 자네와 함께 있었지만 편지 쓰는 것도 못 보았고, 또 열어 놓은 책상 서랍에는 우표와 엽서가 많이 있더란 말일세. 그런데도 일 부러 우체국에 갔다는 것은 전보 치러 갔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지 않은가? 이런 것이 추리라는 걸세." "이제와 관찰과 추리의 구별을 알았네. 그런데 자네가 이토록 날카로운 추 리력을 갖고 있는 줄은 미처 몰랐네그려. 그럼 좀 더 어려운 문제를 내 볼 까? 나는 요즘 이런 회중 시계를 하나 얻었는데, 본래 이 시계의 주인이 누구였는지 알아맞혀 보게나." 나는 호주머니 안에서 시계를 꺼내 홈즈에게 내주었습니다. 홈즈는 그 시 계의 무게를 달아 보기도 하고 글자판을 들여다보기도 했습니다. 그뿐 아니 라 뒤뚜껑을 열어서 시계속을 살펴 보기도 하고, 나중에는 렌즈를 꺼내어 자세히 조사해 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시계를 내게 도로 돌려주었습니다.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 듯한 그의 표정을 보고, 나는 은근히 신이 났습니다. "그 시계는 요즘 분해 소제를 했군. 속이 아주 깨끗한걸." "그래 당초의 주인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나?" "글쎄,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얼마쯤 추리가 되었네. 우선 그 시계는 자 네 아버지가 자네 형에게 물려준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어떤가?" "맞았어. 뒤에 H.W 라고 새겨져 있지." "W 는 와트슨의 머리 글자야. 그리고 시계의 제작 날짜는 지금으로부터 50 년 전으로, 새겨 놓은 글자가 꽤 낡았어. 즉, 이것은 우리의 부모들이 살던 시대의 물건이란 말일세. 또한 귀중한 물건은 아버지로부터 장남에게 물려 주는 것이 순서이기 때문에, 자네의 맏형이 가지고 있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지." "거기까진 틀림없어. 그리고......?" "자네의 형이란 사람은 느리고 게으른 사람이었다고 생각되는군. 포부는 남 달리 컸지만 여러 번 실패를 했을 것이네. 때로는 돈도 벌었으나 대체로 가 난하게 산 편이고, 나중에는 주정뱅이가 되어 죽었어. 어떤가?" 이 말을 듣고, 나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방안을 왔다 갔다 했습니다. "홈즈, 나는 자네가 남의 험담을 하리라곤 미처 생각 못했네. 자네는 죽은 내 형의 일을 조사해서 알고 있다가, 지금 시계를 보고 안 듯 말하니 너무 심하지 않은가?" 내가 갑자기 화를 내자, 홈즈는 어쩔 줄 몰라했습니다. "와트슨, 기분을 상하게 했다면 용서하게. 내가 추리에 열중한 나머지 자네의 슬픈 기억을 건드리고 말았네그려. 그렇지만 자네에게 형이 있었다는 것조차 이 시계를 보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다네." "그렇지만 꼭 그대로가 아닌가, 어떻게 알아 냈는지 좀 이야기를 해 주게." "나는 아무렇게나 말한 것이 아닐세. 시계를 보고 알아 낸 것을 자네에게 말했을 뿐일세. 가령 자네의 형을 게으르다고 한 것도 시계의 아래쪽이 두 군데나 눌린 자국이 있어서 안 것이고, 여러 곳에 작은 상처가 난 것은 호주머니 속에 동전이나 열쇠 꾸러미와 함께 넣어 가지고 다닌 탓이라고 생각했네. 이렇게 값진 시계를 아무렇게나 굴린 것을 보아 허술한 사람이 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고, 그리고 이런 좋은 시계를 물려줄 정도라면 달리 많은 재산도 함께 물려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 나는 과연 그렇다고 수긍했습니다. 홈즈는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영국의 전당포에서는 시계를 담보물로 잡을 때, 시계 뚜껑 안에 작은 글씨로 전당포의 번호를 새겨 놓는다네. 확대경으로 들여다보니 그런 번호가 네 개나 있지 않은가? 그래서 자네 형이 가끔 돈에 쪼들렸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네. 그리고 시계 태엽을 감는 구멍엔 태엽을 잘못 감아서 생긴 많은 상처가 있지 않겠나? 이것은 시계 주인이 술에 취한 채 떨리는 손으로 태엽을 감았기 때문 일세." "아, 자네의 설명을 듣고 보니, 지레짐작으로 말한 게 아니라는 것을 잘 알았 네. 그것도 모르고 화낸 것을 용서하게." "아니, 그건 도리어 내가 해야 할 말일세. 하긴 요새 너무 따분하게 지내던 참이라, 시계의 추리만이라도 하고 나니 머리가 한결 개운해졌어. 무슨 재미 나는 사건이라도 일어나 주지 않나....? 원 참......" 홈즈가 막 얘기를 끝냈을 때, 문이 열리면서 하숙집 아주머니가 한 장의 명함을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저...... 젊은 여자분이 면회를 청하는데요." 홈즈는 명함을 받아 보았습니다. "메어리 모스턴 양이라? 처음 듣는 이름인데? 들어오시게 하십시오. 무슨 사건 을 가지고 온 모양이군요." 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나를 보고 빙그레 웃었습니다. 2. 사건의 시초 방 안으로 들어온 모스턴 양은 금빛 머리의 젊은 여자로 자그마한 몸매에 고급 양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아름답다곤 할 수 없으나 귀염성 있는 얼굴이었고, 특히 푸른 눈이 부드러웠습니다. 의자에 앉은 모스턴 양의 입술과 손가락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큰 걱정이라도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홈즈 씨, 저는 포레스터 부인 댁의 가정 교사로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부인이 언젠가 당신꼐 어떤 사건의 해결을 얻어,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좀 의논할 일이 있어 이렇게 찾아온 것입니다." "예, 포레스터 부인의 일이라면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스턴 양, 당신이 제게 의논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요? 얼마든지 의논 상대가 되어 드리겠습니다. 어디 말씀해 보십시오."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인디아에 주둔해 있던 어느 연대의 사관이었습니다. 저는 교육을 받기 위해 그땐 이미 어머니도 돌아가신 뒤 였고 친척도 별로 없는 터라, 에든버러 기숙 학교에 들어가서 17살 때까지 지냈습니다. 그해 12월 3일,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4년 전의 일입니다. 아버지께서 1년간의 휴가를 얻어 인디아에서 런던으로 오신다는 전보를 받 았습니다. 전보에는 랜검 호텔로 곧 오라고 씌어 있었습니다. 저는 기쁨을 억누르며 곧 그 호텔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안내원은 모스턴 대위가 묵고 있기는 하나 어제 저녁에 나간 뒤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았으니 기다려 보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꼬박 하루를 기다려 보았지만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하는 수 없어 경찰에 신고를 하고, 신문에다 아버지 를 찾는 광고를 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행방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모스턴 양은 눈물을 머금었습니다. 말소리도 점점 가늘어 졌습니다. "아버지의 짐을 보셨습니까?" "네. 호텔에 있는 짐 속에는 옷과 책이 조금 있었고, 인디아의 남쪽 앤다만 섬에서 주운 진기한 선물이 좀 있을 뿐이었습니다. 앤다만 섬은 사고를 낸 병정들을 귀양 보내는 곳인데, 아버지는 그곳의 경비대 대장을 했습니다." "런던에 아는 분이 계셨던가요?" "예, 아버지와 함께 인디아에 계시던 솔트 소령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아버지가 돌아오시기 조금 전까지 어퍼 노이드에 살고 있었기 때 문에 그분에게도 아버지의 소식을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아버지 가 돌아오신 것 조차 모르고 계셨습니다." "음, 이상한 일인데요." "이상한 일은 그 뿐이 아닙니다. 지금으로부터 6년전 5월 4일의 일입니다. 이상스럽게도 신문 광고란에 저의 현주소를 찾는 광고가 났습니다. 그때 저는 포레스터 부인 댁 가정 교사가 된지 얼마 안 되었을 때입니다. 광고 를 낸 사람의 주소가 없었기 때문에 저는 같은 신문에다 제 주소를 냈지요. 그러자 그날 안으로 저에게 작은 상자 하나가 소포 우편으로 도착되었어요. 그 안에는 대단히 아름다운 진주 하나가 있었을 뿐 편지 같은 것도 없었습 니다. 그후 해마다 같은 날이 되면 똑같은 소포로 똑같은 진주를 1개씩 보 내 왔지만, 저는 아직까지 그것을 보내 주는 사람이 누군지 모르고 있습니 다. 보석상에 물어 봤더니 그 진주는 아주 값진 것이라고 하더군요. 여기 가져왔으니 봐 주십시오." 모스턴 양은 손에 들고 있던 납작한 상자를 열어, 6개의 아름다운 진주를 보여 주었습니다. "얘기가 퍽 재미있군요. 그밖에 다른 일은 없었습니까?" "네, 오늘 아침 갑자기 이런 편지를 받았기에 부랴부랴 달려온 것입니다. 좀 읽어 봐 주세요." 홈즈는 편지를 받아 겉봉을 훑어보았습니다. "런던 남서구 우편국 7월 7일자 소인이 찍혔군요. 남자의 엄지손가락 지문이 남아 있는데, 아마 배달부의 것이겠죠?" 이윽고 겉봉을 뜯어 읽기 시작했습니다. - 오늘 밤 7시 리디엄 극장 바깥 왼편으로부터 세 번째 기둥이 있는 곳까지 나와 주십시오. 당신은 정당한 이유 없이 불행을 당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 댓가를 얻을 수 있습니다. 내 말이 수상스럽게 생각되시면 친구 두 사람을 데리고 나와도 좋습니다. 단, 경찰에게만은 알리지 마십시오. 만약 경찰에 알리는 날엔 모든 것이 허사로 돌아갑니다. 당신이 알지 못하는 친구로부터 - "음, 정말 이상한 편지인데...... 그래 당신은 어떻게 하실 작정이십니까?" "어떻게 해야 좋을지 선생님께서 좀 가르쳐 주세요." "그렇다면, 저와 이 와트슨 씨가 당신의 친구가 되어 오늘 밤 같이 가기로 합시다." "참으로 고맙습니다. 그럼 6시에 다시 오겠습니다." "예, 시간이 늦으면 안됩니다. 그리고 참, 소포에 쓰인 글씨와 이 편지의 글씨와는 닮은 점이 없는지요?" "예, 그렇지 않아도 소포의 포장지를 가지고 왔습니다." 모스턴 양은 6개의 종이를 꺼냈습니다. "참으로 당신은 빈틈이 없군요. 그런데 이 글씨는 같은 사람이 일부러 다 르게 쓴 글씨임이 틀림없습니다. 혹시 아버지의 글씨와 닮은 점은 없는지 요?" "전혀 다릅니다." "그래요? 그럼 6시에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편지는 제가 맡아 두었다가 나 중에 자세히 조사해 보겠습니다." 모스턴 양은 힘을 얻은 듯 바삐 돌아갔습니다. 홈즈는 모스턴 양이 돌아가기가 바쁘게 문제의 편지를 내게 보여 주었습니 다. "어때, 이 편지의 글씨를 보고 편지를 쓴 사람이 어떤 사람이라고 짐작되 는 게 없나?" 나는 편지를 찬찬히 들여다보았습니다. "깨끗하고 알기 쉽게 썼군 그래. 이 사람은 사무적이고 퍽 건실한 사람인 것 같아." 그러나 홈즈는 머리를 가로저었습니다. "그 반대인데...... 인격이 건실한 사람은 글씨를 쓸 때도 길고 짧은 것을 똑똑히 구별해서 쓰지. 그런데 이 편지의 글씨들은 높낮이가 모두 비슷비 슷하지 않은가?" 이윽고 홈즈는 외출 준비를 하며 나에게 말했습니다. "와트슨, 조사할 게 좀 있어서 나갔다가 한시간 후에 돌아오겠네." 홈즈는 나를 남겨 두고 나가 버렸습니다. 나는 다시 창가에 기대어 모스턴 양의 모습을 되새겨 보았습니다. 3. 수상한 마차 저녁 5시경, 홈즈는 아주 유쾌한 표정으로 돌아왔습니다. "모스턴 양의 사건은 비교적 간단한 것 같아. 설명은 단 하나밖에 없지." 나는 놀란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습니다. "벌써 해결됐나?" "아니, 아직 대체적인 조사만 했을 뿐이야. 묵은 타임즈 신문을 조사해 보 고, 어퍼 노이드의 솔트 소령은 6년전 4월 28일에 죽었다는 것을 알았네." "솔트 소령은 모스턴 대위의 단 한 사람의 친구였어. 그런데 소령은 대위 가 런던에 돌아온 것 조차 모른다고 하지 않았나? 혹시 소령이 대위의 행 방 불명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게 아닐까?" "응, 그럴지도 모르지. 모스턴 양이 별안간 진주를 선물로 받게 된 것도 5 월 4일의 신문 광고 때문이었는데, 그 엿새 전에 솔트 소령은 죽은 것으로 되어 있으니......" "아, 그래!" "오늘 본 모스턴 양의 편지에는 '당신은 정당한 이유 없이 불행을 당한 사 람' 이라고 씌여 있었는데, 그것은 그녀의 아버지의 행방 불명을 말하는 것 같아. 선물이 솔트 소령의 죽음과 무슨 관계가 있다면, 아무래도 대위 의 행방 불명 뒤에는 소령이 있지 않으면 안 되네." "그것은 모스턴 대위의 행방 불명이 소령 때문이라는 얘긴데, 그렇다면 곧 편지라도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6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야 갑자기 댓가를 얻을 수 있다니, 이상하지 않은가?" "그게 바로 어려운 점이야! 오늘밤 그곳에 가 보면 다 알 수 있을 걸세. 밖에 벌써 마차가 온 것 같군. 아, 모스턴 양이야. 어서 나가 보세." 나는 모자를 쓰고 굵직한 지팡이를 들었습니다. 홈즈는 책상 서랍에서 권 총을 꺼내어 호주머니에 넣었습니다. 모스턴 양은 이제부터 모험이 시작된다고 생각하는지 얼굴이 창백했습니다. 그러나 두려운 기색 없이 마차 안에서 홈즈가 묻는 말에 또박 또박 대답했 습니다. "솔트 소령은 아버지의 친구 중에서도 아버지와 가장 가깝게 지낸 분입니 다. 앤다만 섬에서도 아버지와 함께 일했지요. 아, 그리고 아버지의 서랍 속에서 이상한 종이 쪽지가 나왔어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여기 가져 왔습니다." 홈즈는 모스턴 양이 내민 종이 쪽지를 받아 무릎 위에 놓고 구김살을 폈습 니다. 그리고는 이중 렌즈로 천천히 조사했습니다. "이건 인디아에서 만든 종이로군요. 네 귀퉁이에 핀으로 꽂은 자국이 있습 니다. 커다란 건물의 평면도가 그려져 있는데, 방과 복도와 그 밖의 몇 군 데에 붉은 잉크로 작은 열십자 표지가 붙어 있고, 그 위에는 '왼쪽으로부터 3.37' 이라고 적혀 있군요. 왼쪽 구석에는 십자 비슷한 것 네 개가 한줄로 나란히 있는데, 그 옆에는 난잡한 글씨로 조나단 스몰, 마호멧 신, 압둘라 칸, 도스트 아크발이라고 네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이 종이 쪽지 는 사건과 무슨 관계가 있을 겁니다. 아주 소중한 것이어서 수첩 속에 적 어 둔 모양이군요." "예, 수첩 속에서 발견했습니다. 어떻게 그걸 아십니까?" "접은 종이의 양쪽 면이 아주 깨끗하기 때문입니다. 꼭 도움이 될 종이 같 습니다. 잘 간직해 두십시오." 홈즈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무슨 생각 속에 잠겼습니다. 이윽고 마차는 리디엄 극장 가까이까지 왔습니다. 9월의 밤은 짙은 안개로 자욱했습니다. 연극 구경을 가는 많은 사람들이 그 안개 속을 걸어가고 있 었습니다. 우리 세 사람은 마차에서 내려 편지에 적힌 대로 세째 기둥까지 걸어갔습 니다. 이때 마부의 옷차림을 한 키가 작은 사나이가 가까이 다가와 말을 걸 었습니다. "당신네들이 모스턴 양과 같이 오신 분들입니까?" "제가 모스턴이고, 이 두 분은 제 친구들입니다." 마부 차림의 사나이는 홈즈와 나를 힐끔 쳐다보았습니다. "실례올시다만, 경찰관은 아니시겠지요?" "네, 절대로 믿으십시오." 모스턴 양이 대답하자 사나이는 '휘익!' 하고 휘파람을 불었습니다. 그러 자 어디서인지 우락부락한 소년이 사륜 마차를 끌고 나와 문을 열었습니다. 우리가 올라타기가 바쁘게 마차는 안개 낀 거리를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혹시 위험한 곳으로 끌려가는 것이나 아닌가 하고 바짝 긴장하였습 니다. 그리고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는 마음에서 모스턴 양에게 맹 수잡이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들떠 있는 탓인지, 그만 총을 향해서 범을 쏘아 버렸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에 모스턴 양이 웃음을 터뜨려 우리의 마음은 적이 가라 앉았습니다. 마차가 가고 있는 곳이 어딘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런던의 구석구석을 샅 샅이 알고 있는 홈즈는 마차가 지나는 골목이나 거리의 이름들을 자세히 알 려 주었습니다. 이윽고 마차는 어느 모퉁이의 집 앞에서 멈추었습니다. 그 집의 초인종을 누르니 하인 한 사람이 나왔습니다. 터번을 머리에 두르고 푹신한 옷 위에 노란 띠를 맨 인디아 사람이었습니다. "주인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인이 이렇게 말하자, 안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안으로 들어오시라고 해요." . 4. 대머리 사나이 인디아 사람은 우리들을 어둠침침한 마루를 거쳐 오른편 방으로 안내했습 니다. 방 안에는 어떤 남자가 혼자 앉아 있었습니다. 몇 가닥의 머리칼만 남아 있을 뿐 반들반들한 대머리 사나이었습니다. 그는 우리들을 보자, 처음에는 싱글싱글 웃더니 이내 표정을 찡그리며 몹 시 당황하는 기색이었습니다. 나이는 한 30살 정도였습니다. "모오스턴 양, 잘 오셨습니다. 그리고 친구들도 잘 오셨습니다. 좀 답답할 정도로 좁은 방이지만, 내가 항상 자랑하는 장식으로 꾸민 방입니다." 그러고 보니, 커튼이나 바닥에 깔린 것 모두가 화려했습니다. 벽과 장롱 위에는 세계 각처에서 구해 온 미술품들이 즐비하게 놓여 있었습니다. "내가 새디어스 솔트입니다. 당신이 모스턴 양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친 구들은?" "이분이 셜록 홈즈 씨, 그리고 이분은 의사이신 와트슨 씨입니다." "예, 의사 선생님이시라고요? 초면에 안됐습니다만, 그러시다면 제 심장을 좀 봐주십시오. 어쩐지 좋지 않아서......" 나는 하는 수 없이 대머리를 진찰했습니다. 심장이 별로 나쁜 것은 아니고, 다만 몹시 흥분해 있을 뿐이었습니다. 내가 진찰한 결과를 이야기 하자, 그 는 마음을 놓는 듯 했습니다. "예, 그렇습니까? 이제야 안심이 됩니다. 모스턴 양의 아버님도 심장에 조 심했더라면 아직 살아 계셨을 텐데......" 갑자기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모스턴 양은 새파랗게 질려 입술을 파르르 떨었습니다. 그녀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며 조용히 말했습니다. "저도 아버지가 이 세상에 안 계실 것을 이미 각오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에 대해선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 그 이야기를 할 테니, 세 분은 제 이야길 잘 들어 주십시오. 이야기가 간단하지 않으니, 저는 우선 물담배를 한 모금 피우고 나서 시작하겠습니다." 물담배란 페르시아 사람들이나 인디아 사람들이 담배 피울 때 사용하는 방 법으로, 담배 연기를 한 번 물속에 뿜었다가 마시면 한결 맛이 난다는 것이 었습니다. 우리들은 대머리가 쭈룩쭈룩 물 소리를 내며 담배 피우는 것을 초조하게 바라보며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편지를 내며 이쪽 주소를 쓰지 않은 것은, 우리들의 일을 의심하 고 경찰에 연락하지 않을까 해서 그랬습니다. 경찰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공연히 법석거리는 것이 싫기 때문이지요." 모스턴 양의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하겠다던 대머리는 쓸데없는 이야기 만 늘어놓았습니다. 모스턴 양은 참다 못해 이야기를 재촉했습니다. "빨리 저의 아버지 이야기를 해 주세요." "예, 그런데 그게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이야기가 모두 끝나는 대로 저는 여러분을 어퍼 노이드에 있는 저의 형님 댁으로 모시겠습니다. 저는 여러 분의 편이라고 생각하셔도 좋지만, 저의 형님은 아마 적일지도 모릅니다." 이번에는 내가 참다 못해 말참견을 했습니다. "어쩐지 이야기가 갈팡질팡해서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는데, 당신은 모 스턴 대위와 친구가 되는 솔트 소령의 유가족이 되십니까?" "그렇습니다. 저와 저의 형 바솔뮤는 솔트 소령의 두 아들입니다. 그러면 모스턴 대위의 행방 불명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잠깐 저의 아 버지인 솔트 소령에 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11년 전에 인디아에서 돌아와 어퍼 노이드의 폰지셀 별장에 서 은거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 때는 인디아에서 손에 넣은 돈과 보물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늘 누구한테라도 습격당하지나 않을까 하는 공포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래서 집에다 권투 선수였던 사람을 둘씩이나 두어 신변을 보호하도록 했습 니다. 아버지가 두려워하던 사람은 나무 다리를 한 사람이었습니다. 한번 은 나무 다리를 한 행상이 물건을 팔려고 집 안에 들어온 것을 지레 겁을 먹고 총으로 쏘아 많은 배상금까지 치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지금으로부터 6년 전 정초에 인디아에서 한 통의 편지가 왔습니다. 그 편 지를 읽던 아버지는 갑자기 얼굴빛이 창백해 지면서 기절할 지경이 되었습 니다. 그 날부터 자리에 눕게 된 아버지는 4월 그믐께 마침내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편지에는 어떤 사연이 씌어 있었는지는 모르나, 극히 짤막한 글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병이 점점 심해져 드디어 의사마저 포기 하게 되었을 때, 아버지는 우리 형제를 머리맡에 불러 앉히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이제 저승으로 가지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다. 그것은 내 친구 모스턴의 딸아이에 대한 일이다. 욕심 많은 나는 그 아이가 받을 권리가 있는 보물들을 모두 빼앗아 버렸다. 저기 있는 약병 곁의 목걸이 도 모스턴의 딸에게 주려고 만든 것이지만, 다 된 것은 아까운 생각이 들 어 못 준 물건이다. 내가 죽으면 너희들이 그 아이에게 우리집 보물의 반 을 주어라.' 여기까지 말한 아버지는 잠시 동안 괴로운 숨소리를 내더니, 다시 이상한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모스턴 대위가 왜 죽었는지 그 까닭을 말하마. 나는 대위가 영국에 돌아 온 것 조차 모른다고 했지만, 사실은 대위가 런던에 도착한 날 밤 여기 서 만났다. 그가 이 곳에 온 이유는 뻔하지. 인디아에 있을 때 나와 모스 턴 대위는 많은 보물을 손에 넣었다. 그것은 우리 둘이서 나누어 가지기 로 약속되었던 것이다. 내가 보물을 가지고 한 발 먼저 돌아왔기 때문에 그는 자기 몫을 나눠 가지려 했었다. 대위와 나는 보물을 나누는 문제로 말다툼을 했다. 대위는 전부터 심장이 나빴기 때문에 화를 심하게 내자, 심장이 터지면서 '읔!' 하는 소리 한 마디를 남기고 쓰러졌다. 이 때 보 물 상자에 머리를 부딪쳐 그대로 숨이 끊어졌던 것이다. 큰일났다고 생각 한 나는 곧 경찰을 부르려 했다. 그렇지만 말다툼을 하다가 심장이 터졌 으며, 이 바람에 쓰러져 머리가 부딪쳐 죽은 것이라고 말해도 경찰이 믿 어 주질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또한 이 소문이 퍼지면 보물에 대한 이 야기도 세상에 드러날 것 같았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궁리 하던 끝에, 대위가 우리 집에 온 것을 본사람은 다행이 심부름꾼밖에 없 었으므로 그 심부름꾼에게 까닭을 이야기하고, 둘이 그 밤 안으로 시체를 묻어 버렸다. 그리하여 모스턴 대위는 인디아에서 런던으로 돌아온 날 그 날 연기처럼 사라지고 만 것이다. 나에게 사람을 죽인 죄는 없다. 그러나 시체를 감춘 일과 대위가 돌아와서 같이 나누어야 할 보물을 혼자 차지했 다는 것은 대위의 외딸에게 정말 못된 짓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 니 내가 죽으면 보물을 나눠 주어라. 그 보물을 감춘 장소는......" 아버지가 여기까지 이야기했을 때,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 버지는 무서운 얼굴이 되어, '저 놈을 쫓아내라, 저 놈을!' 하고 외쳤습니다. 창 밖을 내다보니 어두운 창문으로 안을 들여다보고 있 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텁수룩한 수염, 무얼 잡아먹으려고 하는 사나운 짐 승과 같은 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이 창가로 달려갔을 때, 이미 그 놈은 도망을 치고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아버지 곁으로 돌아 왔습니다만, 아버지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습니다. 우리는 또 뜰로 나가 샅샅이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나 발자국만 몇 개 발견했을 뿐입니다. 다음 날 아침에 둘러보니 아버지 방의 유리창이 깨져 있고, 선반과 상자 속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아버지의 시체 위에 <네 개의 서명> 이라고 쓴 종이 쪽지가 핀으로 꽂혀 있었습니다. 물론 우리는 그것 이 무슨 뜻인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잃어버린 것은 없나 하고 조사해 보았 으나 그런 것은 없고, 다만 서명을 한 네 사람이 아버지가 늘 두려워하던 사람들이란 것을 알았을 뿐입니다." 새디어스 솔트는 여기까지 이야기 하더니 다시 물담배를 쭈룩거리며 빨기 시작했습니다. 모스턴 양은 아버지의 비참한 최후를 처음으로 듣고 거의 기절할 뻔 했습 니다. 우리는 그녀에게 물을 마시게 하여 흥분을 진정시켰습니다. 의자에 기대 앉은 홈즈의 가느다란 눈은 불처럼 빛나고 있었습니다. 드디 어 그는 자기의 모든 지혜를 짜내지 않으면 안 되는 사건에 부딪친 것입니다. 새디어스 솔트는 다시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아버지가 말씀하시다 그친 보물을 감추어 둔 곳은 몇 달 동안 찾았으나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만들게 한 진주 목걸이만 보더라도 그 보 물들이 아주 훌륭한 물건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뒤 우리 형제는 진주 목걸이를 두고 말다툼을 했습니다. 형은 아주 값비싼 목걸이 니 모스턴 양에게 주지 말자고 우겼습니다. 어딘가 아버지를 닮은 형은 욕 심이 아주 많았습니다. 나는, 모스턴 양이 한꺼번에 이런 값비싼 목걸이를 가지면 소문이 퍼져 도리어 불행한 일이 생길 지도 모르니, 해마다 하나씩 보내 주자고 형을 설득시켰습니다. 그런데 어저께 큰일이 하나 생겼습니다. 보물이 있는 곳을 마침내 알게 된 것입니다. 아버지의 유언에 따르면 그 보물의 반은 모스턴 양이 가질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 나는 편지로 모스턴 양을 이 곳으로 부른 것이며, 모든 이야기를 한 뒤 저의 형이 있는 폰지셀 별장으로 가서 보물을 나누어 받을 생각입니다. 욕심이 많고 인색 한 형도 아버지의 유언에는 거역할 수 없으니까 보물을 나누어 주리라 생 각합니다." 나는 어떤 무서운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고 겁이 났습니다. 그러나 한편 모스턴 양이 하룻밤 사이에 백만 장자가 된다니 기쁘기도 했습니다. 모스턴 양은 마치 꿈이라도 꾸는 듯한 얼굴이었습니다. 홈즈만은 침착하게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새디어스 씨, 당신은 참 좋은 일을 하셨습니다. 시간도 늦었으니 이제 형 님에게로 가지 않으시렵니까?" "예, 가십시다." 대머리는 물담배를 치우고 외출 준비를 했습니다. 이윽고 우리 네 사람은 문앞에서 기다리던 마차에 올라타고 어퍼 노이드를 향해 떠났습니다. 새디어스 솔트는 마차 안에서도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우리 형은 아주 꾀가 많습니다. 보물을 어떻게 찾아 냈다고 생각하십니까? 형은 보물이 틀림없이 집 안에 있으리라고 믿고, 건물의 높이와 방의 높이 를 따로따로 계산했습니다. 집의 높이는 22미터 20센티미터, 방의 높이는 2층과 3층을 합해 20미터 10센티미터, 그래서 필요 이상으로 높은 방 천장 위에 무엇이 있으리라는 사실을 알아 냈습니다. 과연 텅 비어 있는 천장 위에 보물 상자가 놓여 있었습니다. 보물은 모두 50만 파운드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50만 파운드의 반이라면 25만 파운드! 가정 교사를 하며 지내던 가난한 처 녀가 당장 영국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마차는 꿈 같은 이야기를 싣고 고요한 밤의 어둠을 뚫고 달렸습니다. 5. 폰지셀 별장의 살인 사건 11시 가까이 되어서야 마차는 어퍼 노이드에 닿았습니다. 그곳은 런던의 교외로 안개가 짙었습니다. 반달이 가끔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우리가 찾아간 폰지셀 별장은 외따로 떨어진 집이었습니다. 집 주위에는 날카로운 유리 조각을 촘촘히 꽂아 만든 담이 높이 둘려 있고, 대문에는 무 쇠로 장식한 작은 문이 또 하나 있었습니다. 앞장 선 새디어스가 무슨 신호처럼 문을 똑똑 두드렸습니다. "누구야?" 안에서 거친 목소리가 울려 왔습니다. "나야, 새디어스야. 맥마아드, 문 열어!" 열쇠가 철커덕거리는 소리에 이어 문이 열렸습니다. 키가 작고 가슴이 넓 은 사나이가 램프를 켜 들고 나왔습니다. "새디어스 님이신가요? 그런데 같이 온 분이 계시다고는 여쭈지 않았는데 요." "괜찮아! 어제 다른 손님을 데리고 온다고 말했으니까." "주인께서는 하루 종일 방 안에만 계시고, 한 번도 밖으로 나오시지 않았 습니다. 그래서 아무 말도 듣지 못했지요. 저로서는 어쩔 수가 없습니다. 새디어스 님만 들어오십시오. 다른 분들은 안 됩니다." "어허, 그럼 큰일이군. 이렇게 깊은 밤중에 여자 손님을 바깥에 세워 둘 수는 없지 않나?" "허락도 없이 들어오시게 하면 제가 곤란합니다. 곧 내쫓기게 되지요. 아 무리 친구분이라 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이때 홈즈가 한 발짝 썩 나섰습니다. "맥마아드, 4년 전 어느 날 밤, 너와 권투 시합을 한 사람을 기억하겠지?" "예? 당신이었습니까? 홈즈 씨, 이거 몰라 뵈서 죄송합니다. 자, 어서 들 어오십시오." 맥마아드의 얼굴은 금세 부드러워지면서 막아섰던 문에서 옆으로 비켜섰습 니다. 홈즈의 이 가벼운 한 마디로 우리는 쉽게 폰지셀 별장의 대문을 지나 안채 로 들어갔습니다. 마당 한쪽으로 나 있는 창문은 모두 캄캄했습니다. 정말 소름이 오싹 끼칠 만큼 음산했습니다. "이상하다? 형님 방에도 불빛이 보이질 않으니......" 새디어스는 창문 하나를 가리켰습니다. "그렇지만 새디어스 씨, 이쪽 작은 창에는 불빛이 비치고 있지 않습니까?" "저것은 가정부 버언스턴 부인의 방입니다. 그럼 부인에게 물어 봅시다. 응? 그런데 이건 무슨소리야?" 그것은 여자의 자지러지는 듯한 비명이었습니다. "버언스턴 부인입니다. 이 집에는 여자라곤 부인밖에 없으니까요.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곧 다녀오겠습니다." 새디어스는 집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건물의 문이 열리자, 키가 큰 늙은 여자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아, 새디어스 씨! 큰일났습니다!" 여자의 떨리는 말소리에 이어 새디어스는 여자와 함께 집 안으로 사라졌습 니다. 나와 모스턴 양은 사태가 어떻게 되는가 생각하면서 어둠 속에서 서 있었 습니다. 가끔 나타나는 반달의 희미한 빛에 비친 마당은 구석구석까지 파헤 쳐져 있어, 마치 광산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6년 동안이나 보물을 찾은 흔적이군!" 홈즈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말했습니다. 이 때 건물의 문 쪽에서 새디어스가 헤엄을 치는 듯한 몸짓으로 나타났습 니다. "형님이 어떻게 된 모양입니다. 빨리 와 보셔요!" 새디어스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떨며 말했습니다. 홈즈는 그를 도우려는 듯 집 안을 이리저리 살피며 가정부의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버언스턴 부인 은 모스턴 양의 침착한 얼굴을 홈즈의 어깨 너머로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당신네들을 보니 한시름 놓이는군요." 버언스턴 부인은 반가운 듯 모스턴 양의 손을 잡은 채, 이버에는 홈즈를 향해 말했습니다. "주인께서는 오늘 하루 종일 방문에 자물쇠를 채우고 꼼짝도 하지 않으셨 답니다. 그렇지만 이런 일은 가끔 있었던 일이어서 별로 걱정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만, 방 안이 하도 쥐죽은 듯 조용하기에 열쇠 구멍으로 들여다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주인님이 방 한가운데 게셨습니다. 그 때 그 분의 무서운 얼굴이란...... 벌써 제가 주인님을 모신 지도 10년 가까이 되었지 만, 그렇게 무서운 얼굴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자, 한번 보세요." 새디어스는 부들부들 떨며 어쩔 줄 몰라했습니다. 그래서 홈즈가 램프를 들고 주인 방에 가기로 했습니다. 모스턴 양과 가정부는 여자이므로 그냥 남아 있기로 했습니다. 둘째 계단을 올라갈 때, 홈즈는 호주머니에서 확대경을 꺼내어 먼지 위에 남아 있는 발자국을 조심스럽게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세째 계단을 거쳐 복도로 나왔습니다. 복도의 왼편에는 3개의 문이 나란히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세째 번 문이 바로 주인이 들어 있는 방입니다. 홈즈가 문을 두드려 보았지만 아무 대답이 없었습니다. 다시 손잡이를 돌 려 보았지만 굳게 잠긴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허리를 굽혀 방 안을 들여다보던 홈즈는 갑자기 숨소리 마저 죽였습니다. 나는 그가 이토록 놀라는 것을 이제까지 본 일이 없습니다. "와트슨 군, 자네도 좀 들여다보게!" 홈즈가 이렇게 권하므로 나도 허리를 굽혀 들여다보았습니다. 달빛이 흘러 드는 방 한가운데 의자에 이쪽을 향해 앉아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훌렁 벗어진 대머리와 이마, 창백한 두 볼, 흰 이를 드러내고 웃는 듯한 얼굴, 그것은 놀랍게도 우리들을 데리고 온 새디어스 솔트였습니다. 나는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뒤에도 새디어스가 공포에 떨며 서 있 는 것이었습니다. 웬일일까? 그렇습니다. 방 안에 있는 사람은 새디어스의 쌍동이 형 바솔뮤였습니다. "큰일났군! 저건 분명히 죽은 사람의 얼굴이야!" 나는 숨을 몰아쉬며 홈즈에게 말했습니다. "문을 부수고 들어가야겠군." 홈즈는 힘을 다해 문을 부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문은 끄떡도 하지 않 았습니다. 나와 새디어스가 힘을 합해 힘껏 부딪치자, 가까스로 문의 자물 쇠가 벗겨졌습니다. 방 안은 마치 화학 실험실 같았습니다. 유리병, 분젠등, 시험관 같은 것들 이 테이블 위에 죽 놓여 있었습니다. 또한 한쪽 방구석에는 산을 넣은 큰 병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 깨어진 병에서 검은 액체가 흘러나와 고약한 냄 새가 방 안에 가득찼습니다. 또 한쪽 구석에는 발판 하나가 있고, 그 위 천장에는 사람 하나가 드나들 수 있는 큰 구멍이 나 있었습니다. 그 밑에는 긴 밧줄이 동그랗게 감긴 채 내동댕이쳐져 있었습니다. 이 집 주인은 무서운 웃음을 띤 채 죽어 있었습니다. 얼른 보아도 죽은 지 벌써 몇 시간이 지난 것으로 짐작되었습니다. 시체는 얼굴 뿐만이 아니라 온몸이 굳어 있었습니다. 시체 옆 책상 위에는 이상한 도구 하나가 있었습니다. 다갈색의 단단한 나 무 끝에 돌멩이를 묶어 망치처럼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 곁에 종이 쪽지 한 장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홈즈는 얼른 그것을 집어 들었습니다. "으흠, 그 종이 쪽지와 같군!" "네 사람의 서명 말이지? 이건 무슨 암호 같은데......?" "살인 통지서야. 음, 역시 그렇군. 이것 좀 보게." 홈즈는 시체의 귀 근처에 꽂힌 커다란 나무못 같은 것을 가리켰습니다. "화살이 아닌가?" "응, 뽑아 보게. 독이 묻어 있을 테니까 조심하게." 나는 화살을 손가락으로 쑥 뽑았습니다. 그 자리엔 피가 맺혀 있었습니다. "뭐가 뭔지 통 모르겠군." 내가 답답해하니까, 홈즈는 싱긋 웃었습니다. "난 자네와는 반대로 모든 일이 쉽게 풀려 가는데......" 이 때, 여태껏 문 앞에 멍하니 서 있던 새디어스가 갑자기 큰 소리로 울부 짖었습니다. "앗, 보물이 없어졌다! 보물을 도둑맞았어요! 형이 천장에서 보물 상자를 내릴 때 내가 도와줬어요. 그러고 나서 형은 아무도 만나지 않았을 텐데?" "그게 몇 시였습니까?" "오전 10시였습니다. 내가 형을 만난 마지막 사람이라면, 경찰에선 나를 살인범으로 생각하겠군요. 홈즈 씨,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새디어스 씨,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금 곧 경찰서에 가서 신고하십시오. 우리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부드러운 홈즈의 말에 새디어스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방을 나갔습니다. 6. 홈즈의 증언 홈즈는 새디어스의 발소리가 계단 밑으로 사라지자 나를 돌아보며 말했습 니다. "와트슨, 경찰이 이 곳까지 오자면 30분은 걸릴 거야. 자, 그러면 그때까 지 내가 짐작했던 것이 맞아들어가나 조사나 해 보기로 하세. 이 사건은 간단한 것 같으면서도 의외로 힘드는 일이야." "간단하다고?" "응. 그건 그렇고 우선 범인이 어디로 들어왔다 어디로 나갔는지부터 살펴 보기로 할까? 문은 어젯밤 새디어스가 돌아갈 때 잠갔다니 수상한 것은 창 문일세." 홈즈는 램프를 들고 창가로 나갔습니다. "창은 안으로 닫혀 있군. 창틀이나 문 장식이 조금도 상하지 않았고 지붕 도 높아 손이 닿지 않았을 거고...... 아, 창에 올라섰던 자국이 있군! 어젯밤엔 이슬비가 내렸으니 창턱에 발자국이 생길 수 밖에...... 보이지 않나? 음, 방 아넹도 같은 자국이 있어, 와트슨 군." 나는 홈즈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습니다. "뭐야, 이건 발자국이 아닌데......?" "자넨 이게 뭔지 모르나? 바로 이게 나무 다리 자국이야." "아, 그래! 범인은 나무 다리 사나이란 말인가?" "하지만 범인은 한 사람이 아닐세. 또 한 사람의 공범자가 있네. 자넨 이 벽을 올라올 수 있겠나?" 나는 창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창의 높이는 땅 위에서 20미터나 되어 도저 히 기어오를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도저히 올라올 수 없지." "그냥은 안 되네. 그렇지만 공범 한 사람이 위에서 저기 보이는 저런 밧줄 을 내려보냈다면 올라올 수도, 내려갈 수도 있지. 그 공범자는 범인이 일 을 끝내고 내려간 다음, 밧줄을 감아 올려서 방에다 내버리곤 자기가 온 곳으로 사라진 거야." "그렇다면 공범이라는 자는 어디로 들어왔단 말인가? 닫혀 있는 창문으로 들어왔을 리도 없으니, 굴뚝으로라도 기어 들어왔단 말인가?" "저 천장 구멍으로 들어왔을 거야. 그러니까 몸이 아주 재빠른 녀석이지. 한 범인은 다리가 병신이므로 다른 범인으로부터 밧줄의 도움을 받았는데, 그 놈의 손바닥은 아주 부드러울 걸세. 왜냐 하면 밧줄에 피가 묻어 있단 말야. 손바닥 껍질이 벗겨지며 피가 난 것이지. 자, 이젠 공범자가 드나든 천장 구멍을 조사해 보세." 홈즈는 방 안에 있는 발판 위로 뛰어오르더니 '휙!' 하고 몸을 날려 천장 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는 나한테서 램프를 받아 들고 나보고도 올라오라고 했습니다. 천장 위에 있는 비밀의 방은 2미터에서 3미터 가량 됨직하게 넓었습니다. 바닥에는 서까래와 서까래 사이에 얇은 판자를 깔았을 뿐이어서, 용마루를 딛고 걷지 않으면 위험했습니다. 머리 위에는 지붕이 세모꼴을 이루고 있었 습니다. 홈즈는 손으로 지붕을 더듬었습니다. "맞았어, 여기 지붕 밖으로 나가는 창이 있군. 공범자는 이 곳을 통해 드 나든 거야." 홈즈는 들었던 램프를 바닥에 내려놓았습니다. 램프불이 비친 바닥에는 어 른 발의 반도 안되는 작은 맨발 자국이 수없이 나 있었습니다. "홈즈, 공범자는 아이가 아닌가?" "글쎄, 나도 놀랐는 걸! 그렇지만 자세히 보게. 이건 절대로 어린애의 발 자국이 아니야." "그렇지만 이렇게 작은 발자국이 어른으 기서이라면, 그 놈은 병신이란 말 인가?" 홈즈는 내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조심스레 바닥을 살피고 있다가 이 윽고 기쁜 듯 소리쳤습니다. "됐어, 됐어! 범인은 크레오소오트(백무나무를 증류하여 만든 말간 유액. 방부제나 진통제로 씀) 속에 발을 헛디뎠어. 이것 봐! 코를 찌르는 냄새가 나는 쪽에 발자국이 있지 않나? 여기 그릇이 깨져 약이 흐르고 있군." 크레오소오트는 독한 자극성 냄새를 풍기는 약입니다. "쏟아진 크레오소오트에 발을 헛디딘 것이 어찌 됐단 말인가?" "나는 이 냄새가 나는 한, 지구 끝까지라도 따라갈 수 있는 개를 알고 있 지. 아, 경찰이 온 모양이군!" 떠들썩한 소리와 어지러운 발자국 소리가 아래층에서 들려 왔습니다. "시체가 죽은 지 몇 시간이나 되는지 좀 봐 주게." "사람은 죽으면 몸이 곧 굳어지게 마련이지만, 이건 참 보통이 아니란 말 일세. 얼굴이 마치 웃고 있는 것 같은데, 실은 얼굴의 근육이 굳어져서 웃 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거야. 이건 분명히 독이 몸에 퍼진 까닭일세." "맞았어. 화살에 독을 발랐을 거야. 무슨 독약을 썼을까?" 나는 시체에서 뽑아낸 화살을 램프 곁으로 가져왔습니다. "이 화살은 영국에서 만든 게 아니로군." "그래. 나는 벌써 공범자가 짐작되네." 이 때, 진한 회색 양복을 입은 몸집이 큰 사람 하나가 거친 걸음걸이로 나 타났습니다. 그 뒤에는 경찰관 한 사람과 새디어스 솔트가 따르고 있었습니 다. 몸집 큰 사나이는 방 안으로 들어서면서, "야, 이거 참 지독한데...... 아니, 거기 서 있는 사람은 누구요?" 하고 우리 쪽을 노려보았습니다. "존스 경감님, 나를 몰라보십니까?" 홈즈가 한발 나서며 부드럽게 물었습니다. "오, 이론가이신 홈즈 씨군. 물론 당신은 벌써 이 사건을 조사해 보았겠지. 그래, 이 사나이가 죽은 까닭이 무엇인지 좀 말해 주오." 존스 경감은 홈즈를 놀리는 듯 이렇게 물어 보았습니다. "아직 아무것도 모릅니다." "이런 것 쯤이야 내가 조사하면 당장 알 수있지. 문은 닫혀 있었것다...... 50만 파운드나 되는 보물을 도둑맞았고. 참, 창문은 어때요?" "창은 안으로 잠겨 있었고, 바깥엔 흙 발자국이 있었지요." "잠겨진 창 밖에 있는 발자국은 소용이 없소. 이 사나이는 급한 발작을 일 으키고 죽었는지도 모르니까. 그런데 잠깐! 보석이 없어졌다는 것은 이상 한 일이야. 이봐, 경관! 새디어스 씨를 데리고 이 자리를 좀 비켜 주게." 그는 커다란 소리로 경관에게 명령했습니다. 그러고는 홈즈 곁으로 다가서 며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홈즈 씨, 저 새디어스 솔트가 어젯밤 이곳에서 형과 싸운 모양이오.그러 다가 형이 죽자 보물 상자를 들고 도망친게 확실해. 이건 분명한 일이야." "형은 독이 묻은 화살에 찔려 죽었습니다." "아무래도 새디어스가 형을 죽인 것이 틀림없소. 이 집에는 인디아에서 가 져온 진귀한 물건이 많은데, 화살도 그 중에 하나일 거요. 그런데 형을 죽인 새디어스는 어디로 해서 이 방을 빠져나갔을까? 야, 천장에 구멍이 뚫려 있군! 음, 틀림없이 저 곳으로 도망쳤어." 몸집이 큰 존스 경감은 가볍게 발판을 딛고 천장으로 올라가, 거기에서 지 붕으로 뚫린 창을 발견했습니다. "경관, 새디어스 솔트를 데리고 오게." 이윽고 새디어스가 들어오자, 경감은 냉정하게 말했습니다. "솔트 씨, 안됐소만, 우리는 당신을 당신의 형을 죽인 살인범으로 체포해 야겠소." 이 말을 들은 새디어스는 금세 얼굴이 새파래졌습니다. "아, 내가 걱정한 대로 나는 드디어 범인이 되었군요! 홈즈 씨, 저를 좀 구해 주십시오!" 새디어스의 호소에 홈즈는 머리를 끄덕였습니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그 억울한 누명은 제가 깨끗이 씻어 드리지요." 그리고 나서 홈즈는 경감을 향해 말했습니다. "범인은 결코 새디어스 솔트 씨가 아닙니다. 어젯밤에 이 곳에 들어온 범 인은 혼자가 아니라 두 사람이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은 이름과 인상까지 알고 있습니다. 그 녀석은 조나단 스몰이라고 하는, 무식하고 몸이 작고, 동작이 날쌘 사람입니다. 오른쪽 발은 나무 다리이지요. 발은 끝이 뭉툭하 고 뒤꿈치에 굵은 대갈 (말굽에 편자를 신기는 데 박는 징) 을 박은 구두 를 신고 있습니다. 햇볕에 그은 얼굴을 한 전과자 입니다. 그리고 어제 저 녁의 일 때문에 손바닥이 벗겨졌다는 것도 덧붙여서 말해 둡니다." 홈즈가 너무도 자세하게 범인의 인상을 말하므로 존스 경감은 깜짝 놀랐습 니다. 그러나 새디어스를 체포할 욕심에서 홈즈의 설명을 곧이 들으려고 하 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또 한 사람은?" "또 한 사람은 전혀 다른 녀석이므로, 그 놈도 가까운 시일 안에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와트슨, 잠깐만!" 홈즈는 갑자기 말을 그치더니,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층계 가까이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목소리를 낮추어 조용히 말했습니다. "모스턴 양을 언제까지나 이 집에 있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자네가 집에 까지 데려다 주게. 난 여기서 자네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겠네." "응, 알았네. 그런데 존스 경감에게 너무 대들진 말게." "염러 말게. 그 사람도 결국은 나에게 가르침을 받으러 올 테니까. 그리고 모스턴 양을 바래다 주고 돌아오는 길에 핀친 옆골목 3번지까지 가서 오른 쪽으로부터 세 번째 집의 셔먼이라고 하는 새 박제 장수에게 들러 주게. 진열장에 토끼를 노리고 있는 족제비 박제가 있으니 쉽게 찾을 수 있을걸 세. 그 셔먼 노인에게 내 이름을 대고, 급히 더비가 필요하니 빌자고 말하 게." "더비는 개이름이 아닌가?" "응, 잡종 개야. 코가 발달하여 냄새를 아주 잘 맡지. 오늘 밤에 더비가 한몫 단단히 활약해 주어야 겠어." "알았네. 지금이 1시니까 3시까지는 돌아올 수 있을 거야." 나는 계단을 뛰어내려왔습니다. 7. 통 이야기 나는 모스턴 양을 존스 경감의 마차로 포레스터 부인의 댁까지 바래다 주 었습니다. 시간은 거의 2시가 가까웠습니다. 모스턴 양의 고용주인 포레스터 부인은 잠도 자지 않고 걱정스럽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음씨가 퍽 고운 부인인 듯 했습니다. 자기 집 가정 교사인 모스턴 양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도하 고 있었다는 것을 그 태도로 이내 알 수 있었습니다. 부인은 나에게 사건 내용을 자세히 이야기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 해야 할 일이 있고 해서 다음 기회로 미루고 다시 마차에 올랐습 니다. 마차는 옆골목을 향해 달렸습니다. 밤은 아주 깊었습니다. 셔먼의 가게 문 은 아무리 두드려도 인기척조차 없었습니다. 나는 다시 문을 힘껏 두드렸습 니다. 그제야 2층 창문이 열리며 어떤 사나이가 아래를 향해 소리쳤습니다. "어떤 놈이야! 썩 꺼지지 못해? 그렇지 않으면 40마리의 개를 한꺼번에 내 보낼 테다!" "아저씨, 개는 한 마리면 충분해요." "뭐라고? 개가 모자라면 뱀도 내보내겠다!" "전 셜록 홈즈의 부탁으로 왔어요." 그러자, 창문이 닫히고 이내 층계를 퉁탕거리며 내려오는 소리가 나더니 가게 문이 열렸습니다. 셔먼은 홀쭉하고 허리가 꾸부정한 노인이었습니다. "홈즈의 친구들이라면 언제라도 대환영이야. 이맘때쯤이면 동네 장난꾸러 기들이 오곤 하기 때문에 그 녀석들인 줄 알았어. 엇! 곰 곁으로 가까이 가면 안돼. 물어뜯는다네. 그런데 홈즈 씨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하던가?" "더비를 빌리자고 하더군요." "더비는 그 왼쪽 7호 개집에 있네." 셔먼 노인은 동물들이 갇혀 있는 우리를 지나 어느 개집의 문을 열었습니 다. 안에서 뛰어나온 개는 털이 길고 귀가 축 늘어진 험상궂은 잡종이었습 니다. 노인이 내주는 각설탕을 내가 더비에게 주었더니, 더비는 잠시 망설이다가 그것을 받아 먹었습니다. 나는 곧 더비와 친해졌습니다. 더비와 함께 마차로 폰지셀 별장에 돌아와 보니, 새디어스 솔트는 물론 이 집의 고용인들도 모두 바솔뮤 살해 공범자로 묶여 있었습니다. 홈즈는 파이프를 물고 문앞에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더비의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더비야, 잘 왔다. 이제부터 네가 한바탕 활약해라." 홈즈는 더비를 책상 다리에 매어 놓고, 나와 함께 시체가 있는 방으로 올 라갔습니다. 경찰관 한명이 혼자 지키고 있었습니다. 홈즈는 경관으로부터 램프를 받아 들고 내게 말했습니다. "와트슨 군, 그 종이 쪽지를 가슴에 늘어지도록 내 목에 걸어 주게. 그리 고 내 구두와 양말은 아래로 갖다 두고, 그 손수건을 크레오소오트에 적셔 주게. 자, 그럼 다시 천장 위로 올라가 보세." 우리는 천장으로 올라갔습니다. 홈즈는 천장 바닥에 난 발자국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자네는 이 발자국을 어린애 발자국이라고 했지만, 보통 어린애의 것과 좀 다르다고 생각되는 점이 없는가?" "발가락이 모두 흩어져 있군 그래." "바로 그거야. 그게 아주 중요한 점이라네. 다음에는 저 지붕으로 뚫린 창 가에 가서 냄새를 맡아 보게." 나는 그의 말대로 코를 창문 가까이에 대 보았습니다. 타르 냄새 같은 것 이 남아 있었습니다. 타르 냄새가 난다고 대답하자, 홈즈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럼 아래로 내려와 더비와 함께 기다려 주게. 그리고 마당에서 내 재주 를 구경해." 나는 더비를 데리고 마당으로 나왔습니다. 홈즈는 지붕 위를 이리저리 걸 어다니다가, 창이 있는 곳으로 와서 아래를 향해 소리쳤습니다. "와트슨, 어디 있지?" "여기야." "발자국을 따라 여기까지 왔는데, 거기 보이는 검은 물체가 무엇인가?" "물통이야." "뚜껑이 있나?" "있어." "사다리 같은 것은 없나?" "안 보이는데......" "으음, 이상하다......? 아냐, 됐다, 됐어! 홈통이 있어! 이 홈통을 따라 내려가겠네." 홈즈는 손에 램프를 든 채 홈통을 따라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나서 양말과 구두를 신더니, 나한테 무엇인가 자랑스럽게 내밀었습니다. 그것은 조그만 상자처럼 풀로 엮은 것인데, 그 안에는 죽은 바솔뮤의 귀에 꽂힌 독화살과 똑같은 화살 너덧 개가 들어 있었습니다. "범인이 서둘러 도망치다가 이것을 그만 지붕에 떨어뜨린 모양이야. 이것 이 우리 손에 들어온 것은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닐세. 그 녀석의 무서운 무 기가 그만큼 줄어든 셈이니까. 그런데 와트슨, 자네는 이제부터 10킬로미터를 꼬박 걸을 수 있겠나?" "암, 걸을 수 있고 말고." "그럼 됐네. 자, 더비야, 부탁한다. 이 손수건 냄새를 잘 맡아 둬라." 홈즈는 크레오소오트에 적신 손수건을 더비의 코 가까이 가져갔습니다. 그 러자 더비는 땅을 디딘 굽은 앞다리에 힘을 주며, 찡그리는 듯한 표정으로 코를 실룩거렸습니다. 홈즈는 손수건을 내버리고 더비를 물통이 있는 데로 데리고 갔습니다. 더 비는 코를 땅에 들이대고 꼬리를 꼿꼿이 세우며 앞장 서서 걷기 시작했습니 다. 냄새 나는 발자국을 찾은 모양이었습니다. 동쪽 하늘이 조금씩 밝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더비는 마구 파헤친 마당을 가로질러 오른쪽 담 밑까지 가더니, 참나무 옆에서 멈추었습니다. 담은 벽 돌이 서로 엇갈려 쌓여 있었으므로 넘기가 수월했습니다. 홈즈가 먼저 넘어 가 더비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 집 밖으로 나온 것입니다. 더비는 다시 코를 땅에 대고 열심히 길을 찾았습니다. "와트슨." 홈즈가 내게 말을 걸었습니다. "내가 더비만 믿고 있다고는 생각지 말게. 다른 방법을 써서라도 범인은 꼭 잡아낼 테니...... 그렇지만 이 개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 같 네." "그건 나도 짐작해. 그런데, 자네는 범인의 이름과 인상까지 미리 알고 있 지 않나? 어떻게 그걸 알아 냈지?" "뭐 그건 간단하다네. 인디아 경비대의 두 사관이 감춰져 있는 보물의 비 밀을 알고, 보물이 있는 장소가 표시된 지도를 스몰이라는 영국 사람이 만 들었지. 스몰이라는 이름이 지도에 똑똑히 적혀 있더군. 다른 세 사람의 이름도 있지만, 그건 모두 백인이 아니야. 그 중의 장교 한 사람이 보물을 꺼내 가지고 영국으로 돌아왔지. 스몰과 다른 세 사람이 보물을 꺼내지 못 한 것은 자유가 없는 죄수였기 때문이야." "감옥에 갇힌 네 사람의 죄수들은 나중에 고루 나눠 갖자는 약속을 하고 보물에 관한 비밀 이야기를 털어 놓은 것인데, 대장인 장교가 혼자 독차지 해 가지고 영국으로 도망쳤단 말이지?" "맞았어. 그 도망친 장교가 바로 솔트 소령이라네. 그런데 인디아에서 뜻 밖의 편지가 왔지. 어떤 편지인지 이젠 상상할 수 있겠나?" "죄수들이 감옥에서 풀려 나왔다는 소식이겠지......" "응, 그렇다네. 하지만 십중 팔구 탈옥했을 거라고 생각하네. 왜냐하면 솔 트 소령은 그들이 감옥에 갇혀 있을 기한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을 테 니까. 그래서 소령은 나무 다리 사나이를 경계하기 시작한 거야. 그 나무 다리 사나이만은 백인이란 것을 알 수 있다네. 그것은 소령이 나무 다리를 한 장사꾼을 보고도 권총을 쏘았다는 걸로 미루어 알 수 있지 않은가. 이 사람이 바로 스몰이란 말일세. 어때, 내 추리에 어디 이상한 점은 없는가?" "없어. 아주 정확한데!" "그럼 이번엔 스몰 편이 되어 생각해 보세. 그는 자기도 보물을 한 몫 가 질 권리가 있는데다 자기를 속인 소령에 대해 복수를 하려고 영국으로 돌 아왔네. 영국에 돌아오자마자 스몰은 솔트 소령의 주소를 알아 내고 그 집 안 사람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였지. 폰지셀 별장의 집사가 아무래도 그의 편인 것 같아. 가정부 버언스턴 부인에게 물어 보니, 그 놈은 몹시 성질이 사나운 사나이라는군. 그렇지만 스몰은 보물이 감춰져 있는 곳을 알 수는 없었지. 그런데 이 때 소령은 중병으로 앓아 눕게 되었네. 소령이 죽으면 보물의 행방을 영원히 모를 것 같아, 스몰은 창 밖에서 병실을 들여다보기 도 했지. 그러다가 마침내 소령은 죽었고, 이에 당황한 스몰은 그날 밤 폰 지셀 별장에 침입하여 방 안까지 다 털어 보았지만 보물은 나오지 않았던 것이라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자기가 나타났다는 쪽지만 남겨 놓고 사라 진 거야." "그런데, 종이 쪽지를 남겨 두면 자기가 누구란 것을 경찰에게 알리는 셈 이 되지 않나?" "복수를 하려는 사람은, 상대방에게 자기가 누구라는 것을 알리고 싶어하 는 심리가 있지. 스몰은 보물을 찾는 대 실패한 뒤에도 끊임없이 폰지셀 별장을 지키고 있다가, 솔트 소령의 아들인 바솔뮤가 끝내 보물을 찾아낸 기미를 알게 됐지. 그런데 자기는 오른쪽 다리가 병신이어서 높은 곳에는 올라갈 수 없으므로, 한 사람의 도움을 얻어 보물을 빼앗아 간 거야." "그럼 바솔뮤를 죽인 자는 스몰이 아니란 말이군." "그렇지, 스몰은 그냥 보물만 훔치는 것으로 만족했어. 그런데 그의 공범 자는 성질이 아주 사나와 끝내는 독이 묻은 화살로 바솔뮤를 죽이고 만 것 이라네." "그 공범자는 어떤 녀석인가?" "곧 보여줄 테니 그 때까지 기다려 주게. 아, 해가 떠오르고 있군. 벌써 아침이 됐네 그려. 그런데, 자네는 권총을 안 가지고 오지 않았나?" "응, 그 대신 스틱이 있네." "그럼 됐어. 권총은 내가 가지고 왔으니, 만일의 경우엔 내가 그 놈을 맡 지." 홈즈는 권총에 2발의 실탄을 잰 다음 다시 저고리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더비는 여전히 땅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으며 앞장 서서 걷고 있었습니다. 훤히 밝아 오는 아침 거리에는 하나 둘 사람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 다. 이윽고 우리는 광장으로 나왔습니다. 그 때까지 냄새를 맡으며 걸어오던 더비가 갑자기 머리를 쳐들고 그 근방을 빙빙 돌기만 했습니다. "이게 왜 이러지? 냄새를 잃어버렸구나. 범인들이 여기서 비행기를 타고 도망치진 못했을 텐데 웬일일까?" 홈즈는 더비를 보며 혼잣말처럼 뇌까렸습니다. 그러다가 잠시 후 더비는 냄새를 맡았는지, 먼저보다 더 자신 있게 걸어갔습니다. "됐어! 저것 봐, 이번에는 코를 땅에 대지 않고 걸어가는군. 냄새가 아주 강해진 모양이야. 이건 범인이 가까운 곳에 있다는 증거야. 자, 와트슨. 한판 벌어질지도 모르니 자네도 기운을 내게." 더비는 홈즈와 나를 어느 재목이 많이 쌓인 곳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산더 미같이 쌓인 재목 한가운데에 커다란 통이 하나 놓여 있었습니다. 더비는 그것을 향해 마구 짖어대기 시작했습니다. 통에는 아주 강한 크레오소오트 가 가득 들어 있습니다. 홈즈와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서로 마주보며 웃고 말았습니다. 더비는 범인의 발에 묻은 냄새와 이 크레오소오트 통의 냄새를 혼동했던 것입니다. 8. 베이커 거리의 특무대 "어디서 냄새가 엇갈렸을까?" 나는 당황하여 홈즈에게 물었으나, 그는 침착하게 말했습니다. "아까 그 광장에서 엇갈린 게 틀림없어. 더비가 망설이고 있지 않던가? 그 곳까지 되돌아가세." 우리는 다시 더비를 광장까지 데리고 갔습니다. 더비는 커다란 원을 그리 며 이리저리 냄새를 맡다가 방향을 잡고, 다시 기운차게 걷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엔 틀림없을 거야. 저것 봐. 아까는 차도를 걷더니 이젠 인도를 걷지 않나? 크레오소오트 통이 있는 데는 차도로 갔었지." 홈즈는 다시 빛나는 눈으로 더비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길은 점점 템즈강 가까이로 이어졌습니다. 얼마 만에 우리는 선창가로 나왔습니다. 더비는 물을 내려다보며 화가 나는 듯 계속해서 으르렁거렸습니다. "이거 큰일났군! 그 놈이 배를 타고 갔네 그려." 홈즈는 기슭에 매어 둔 배를 보자, 더비로 하여금 그 배의 냄새를 맡게 했 습니다. 그러나 크레오소오트 냄새는 나지 않는 모양이었습니다. 짐을 높이 쌓아올린 선창가에는 2층 집이 한 채 있었는데, 그 집 대문에는 <스미스 삯뱃집> 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습니다. 홈즈는 그 집을 향해 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러자 집 안에서 6살쯤 되어 보 이는 남자 아이가 뛰어나오더니, 그 뒤에 그 아이의 어머니인 듯한 뚱뚱한 여자가 수건을 손에 든 채 따라 나왔습니다. "잭, 얼굴을 씻어야지. 아이, 참. 이 애를 어떡하나? 엄마 말을 안 들으면 아빠한테 일러 줄 테다." 홈즈는 재빨리 소년을 불렀습니다. "꼬마야, 엄마 말 잘 듣는 착한 애가 돼야지. 자, 아저씨가 돈 줄께." "정말?" "암, 정말이고말고. 떨어뜨리지 않도록 조심해." 홈즈는 돈을 소년의 손에 쥐어 주고, 그 여자를 향해서 말했습니다. "스미스 아주머니, 참 착한 아이입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아주 장난꾸러기에요. 아빠가 안 계시니까 말을 더 욱 안 듣는군요." "예? 스미스 씨는 지금 안 계십니까? 좀 얘기할 것이 있어서 왔는데요." "어제 아침에 나가신 뒤 여태껏 안 돌아오셨어요." "사실은 작은 증기선을 한척 빌려고 왔는데요." "어머, 이걸 어쩌지요? 증기선은 어제 아침에 아이 아빠가 타고 나가셨어 요. 석탄도 넉넉지 않던데 이렇게 늦는군요." "석탄이야 가다가도 얼마든지 살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다른 데서 사는 석탄은 너무 비싸요. 그보다 걱정이 되는 것은 배를 같이 타고 간 나무 다리 사나이군요. 어쩐지 마음이 꺼림직했어요." "예? 나무 다리를 한 사나이라고요?" 홈즈는 시치미를 떼고 슬그머니 물어보았습니다. "예, 얼굴이 빨간 것이 마치 원숭이처럼 생긴 녀석이었어요. 전부터 가끔 찾아와서는 아이 아빠하고 무엇인가 수군수군 말을 하더니, 어제 아침엔 새벽같이 찾아와서 자는 이를 깨웠어요. 아마 약속이 돼 있었던가 봐요. 증기선 준비도 다 되어 있더군요. 그러더니 큰아들 짐까지 데리고 떠났어 요." "그래요? 나무 다리 사나이는 혼자 왔던가요?" "글쎄 그건 잘 모르겠어요. 저는 아직 잠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이었으니까 요. 그 사나이의 목소리와 딱딱거리는 나무 다리 소리만 들었을 뿐이에요." "여하튼 야단났군요. 모처럼 증기선을 빌러 왔는데...... 그 배 이름은 무 엇이지요?" "오로라 호입니다." "노란 줄이 그어져 있는 푸른 빛깔의 배지요?" "아뇨, 새로 까만 칠을 했고 붉은 줄이 두 개 있어요." "아, 그래요? 스미스 씨는 곧 돌아오시겠지요. 만약 오로라호를 보게 되면 아주머니께서 걱정하고 계시더라고 말씀드리지요. 그러니까 모두 까만 칠 을 했단 말씀이지요?" "연통에 흰 줄이 하나 있어요." "그래요? 그럼 가 보겠습니다." 이윽고 강가에 있는 나룻배를 타자, 홈즈는 나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저런 여자와 이야기할 때는 이쪽의 속셈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될 수 있는 대로 엉뚱한 이야기를 늘어놔야 한단 말야. 안 그러면 아무리 졸라 봐도 저쪽에서 통 말을 해 주지 않을 테니까." "그 여자 덕분에 이제 오로라 호가 곧 발견될 것 같군." "아냐.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 템즈강을 모조리 뒤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까 말야." "그럼 경찰에 부탁해 볼까?" "실없는 소리! 나는 내 힘으로 끝까지 해 보겠네." "신문에라도 내면 어떨까?" "그런 짓을 하면 죽도 밥도 안 되네. 범인들이 눈치채면 외국으로 도망갈 지도 모르니까. 그 놈들은 지금 경찰에서 수사 방향을 잘못 잡고 있다고 생각하고, 유유히 런던에 머물러 있을 걸세." "그럼 자네는 어쩔 셈인가?" 마침내 나룻배는 강 기슭에 닿았습니다. 우리는 배에서 내려 마차를 집어 탔습니다. "자, 곧 집으로 돌아가 아침을 먹고 잠이나 한잠 푹 자세. 오늘 밤 또 밤 샘을 하게 될지도 모르니 말야. 여보시오, 마부 양반. 도중에 우체국이 있 으면 잠깐 섰다 갑시다. 그리고 더비를 또 데리고 가야 하네. 일이 있을지 도 모르니." 홈즈는 우체국에서 전보를 쳤습니다. "어디로 전보를 쳤는지 자넨 알겠나?" 다시 마차로 돌아온 홈즈는 내게 물었습니다. "글쎄, 모르겠는데......" "베이커 거리의 특무대장 이긴즈 소년에게 쳤다네. 아침 식사가 끝나기 전 에 많은 부하를 데리고 달려오겠지." "아니, 자넨 그 우락부락한 소년들을 이용하려는 건가? 음. 재미있는 생각 인데......" 나는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홈즈는 '베이커 거리의 특무대' 란 그럴듯한 이름을 가진 이 불량 소년들의 무리를 귀여워했습니다. 또한 그들도 홈즈의 부탁이라면 기꺼이 들어 주었습니다. 이윽고 우리는 하숙으로 돌아왔습니다.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신문을 펼쳐 든 홈즈는 나를 보고 웃으면서 말했습 니다. "내가 생각한 대로군. 존스 경감이 바솔뮤의 가정부와 심부름꾼까지 다 잡 아갔군. 신문도 이들이 저지른 범죄를 크게 떠들어댔어." 나는 신문을 받아들고 죽 읽어 보았습니다. "이렇게 되다가는 우리까지 붙잡히겠는데...... 아, 발자국 소리가 들리네. 경찰이 아닌가?" 나는 층계를 올라오는 요란한 소리에 움찔했습니다. "걱정할 것 없네. 베이커 거리의 특무대원들이야." 과연 10명도 더 되 보이는 소년들이 방 안으로 몰려들었습니다. 한결같이 누더기를 걸친 더러운 아이들이었습니다. 그 가운데서 가장 나이 들어 보이 는 소년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습니다. "전보를 받아 보고 곧 아이들을 집합시켜 데리고 왔습니다. 전차값이 3실 링 반 들었어요." "오냐 오냐, 수고했다." 홈즈는 돈을 내주며 소년들을 둘러보았습니다. "너희들에게 부탁할 게 있다. 앞으로 너희들은 일을 해 나가며 모든 것을 이긴즈에게 보고해라. 그러면 이긴즈는 나에게 와서 연락해 주는 것이다. 이런 좁은 곳에 너희들 모두가 드나들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너희들이 할 일은 지금부터 오로라호라는 이름을 가진 증기선을 찾는 것이다. 그 배의 주인은 스미스인데, 온통 검은 칠을 한 선체에 붉은 줄이 둘 있다. 연통도 역시 검은 색이지만, 흰 줄이 하나 있다. 알겠나? 증기선을 발견한 사람에 겐 1기니의 상금을 주겠다. 자, 이것은 오늘 하루 치의 수고비다." 홈즈는 그들 한 사람 앞에 1실링씩 주었습니다. 소년들은 신이 나서 방을 나갔습니다. "저 패들은 어떤 곳이라도 파고 들어가 여러 가지를 알아 가지고 올 걸세. 저녁때가 되면 틀림없이 증기선의 행방을 알아 가지고 올 거야." "자네는 그때까지 한잠 자게." "아니, 이젠 피곤이 풀렸어. 자는 대신에 다시 한 번 이번 일을 생각해 봐 야겠어. 나무 다리를 한 사나이도 희한한 놈이지만, 공범자가 더 그렇단 말야. 구두를 신은 적이 없는 어린애 발처럼 작은 발...... 발가락은 모두 밖으로 벌어졌고...... 런던에서도 맨발로 걸어다니는 놈이라...... 녀석 의 얼굴은 햇볕에 탔고, 몸은 아주 날쌔고, 돌을 단 막대기나 독을 묻힌 화살을 무기로 들고 있지." "토인 같은데, 토인! 인디아의 토인 아닐까?" "인디아에는 그런 발을 가진 토인이 없을 텐데...... 조사해 보면 곧 알 수 있지." 홈즈는 책자응로 가서 두꺼운 책을 꺼내 들었습니다. 그는 이리저리 책장 을 넘기더니 갑자기 소리쳤습니다. "여기 똑똑하게 씌어 있군! 한번 읽어 볼까? <앤다만섬의 토인은 지구에서 가장 키가 작은 인종으로서 평균 키가 120센 티미터 이하이며, 어른이라 해도 이보다 더 작은 사람도 많다. 성질은 잔 인하고 여간해서는 다른 사람과 어울리려 하지 않는다.> 이게 중요한 대목이야. 그리고 또 이렇게 씌어 있어. <그들의 얼굴은 흉하고 손발은 아주 작다. 그런데 그들의 성격은 어느 정 도로 흉폭한가? 영국은 오랫동안 그들을 평화스러운 백성으로 길들이려 했 지만 실패한 사실이 있다. 그들은 난파선을 습격해서 살아남은 사람을 막 대기로 치거나 독이 묻은 화살로 쏘아 죽이고, 그 고기를 먹는다.> 어때, 와트슨? 나무 다리가 어떠한 위험 인물을 앞잡이로 쓰고 있는가는 이것으로도 알 수 있지 않나?" 이 말을 들은 나는 소름이 오싹 끼쳤습니다. 우리들의 적은 식인종의 한 사람인 것입니다. 10. 토인의 최후 이날 저녁의 식사는 아주 즐거웠습니다. 범인이 있는 곳을 짐작한 홈즈도 마음이 좀 들떠 있는 듯했습니다. "와트슨, 자네 서랍에 권총 있나?" "있지. 책상 서랍에 옛날에 군대에서 쓰던 것이 있어." "그럼 그것을 가지고 가세. 만일의 경우라도 권총이 있으면 마음이 든든하 니깐 말일세. 자, 문 밖에 마차가 온 모양이군. 6시 반에 오도록 말해 두었 으니 어서 떠나세." 우리 세 사람은 웨스트민스터를 향해 마차를 몰았습니다. 선창가에 다다른 것은 7시가 좀 지났을 때였습니다. 경찰 증기선은 존스 경감이 명령한 대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홈즈는 증기 선을 둘러보며 말했습니다. "존스 경감님, 이 증기선에 경찰 것이란 표시가 어디에 있습니까?" "배 왼편에 켜져 있는 푸른 불이 경찰 증기선 표시입니다." "그럼 그걸 떼어 주십시오." 푸른 불은 곧 떼어졌습니다. 우리가 올라타자 증기선은 곧 강변을 떠났습 니다. 우리 세 사람은 증기선의 맨 뒤편에 앉아 있었고, 가운데는 운전사 한 사람과 기관사, 그리고 증기선 앞쪽에는 아주 건장하게 생긴, 보기만 해도 든든해 보이는 두 사나이가 떡 버티고 앉아 있었습니다. 모두 7명이었습니다. "방향은?" 존스 경갑이 물었습니다. "야콥슨 조선소 저쪽에 대도록 일러 주십시오." 증기선은 대단한 속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찌나 빨리 달렸던지 짐을 잔뜩 실은 똑딱선의 긴 행렬은 제자리에 멈추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홈즈는 매우 만족스러운 듯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이런 속력이라면 아무리 빠른 배라도 쫓아갈 수 있겠군. 고맙습니다, 존스 경감님." "예, 이 배는 우리 경찰에서도 자랑으로 삼고 있는 증기선입니다. 아마 이 강 위에는 당해낼 배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쫓아가야 하는 오로라호도 빠르기로 소문난 증기선입니다. 얕 잡아 보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나는 아까부터 홈즈가 어떻게 해서 오로라호의 행방을 알아 냈는지 몹시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기회를 보아 그 일을 물어 보았습니다. "그건 말야, 와트슨! 나도 죽을 고생 끝에 겨우 알아 냈다네. 나의 부탁을 받은 소년들은 강변 양쪽을 샅샅이 뒤졌으나 번번히 허탕만 쳤지. 이것으로 미루어 봐서 오로라호는 절대로 강가에도 대지 않았고, 집에도 돌아오지 않 았다는 걸 알았지. 그래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네. 즉, 범인 스몰은 폰지 셀 별장을 감시하기 위해 런던에 죽 있었을 정도이니, 보물을 손에 넣었다 고 해서 쉽사리 런던을 빠져 나가지는 않았을 거란 말야. 천천히 준비를 갖추어 가지고 떠날 것이 분명하단 말일세." "그렇다면 홈즈, 스몰이 일을 착수하기 전에 이미 런던을 빠져 나갈 준비를 해 두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나?" "아니지. 보물이 감추어진 장소를 안 것이 비교적 급작스러웠으므로, 미처 도망칠 준비를 해 두진 못했을걸세. 게다가 스몰은 아주 안전한 장소에 숨 어 있기 때문에, 허둥거리며 떠날 필요는 없었을 거야." "그건 그럴듯 해. 아무래도 남의 눈에 띄기 쉬운 난쟁이 같은 놈을 데리고 있으니, 여간 안전한 곳에 숨어 있지 않으면 안 되겠지." "맞았어. 그 꼬마 때문에 스몰은 곧 도망치지는 못할 거야. 왜냐하면 큰 사 건을 저질러 놓고 마구 떠들썩한 판에 이상하게 생긴 놈을 데리고 행동한 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니까. 스몰이 꼬마를 데리고 다닐 때는 늘 남에 눈에 띄지 않는 밤을 택하지. 그런데 스미스를 찾아간 시간은 새벽 3시가 아닌가? 3시라면 날이 새기 시작하고 사람들도 일어날 때니까, 두 사람은 거기서 멀 리 가진 못했을 거야. 스몰은 스미스와 그의 아들에게 많은 돈을 주어 입을 막았을 걸세. 그리고 증기선은 마지막으로 달아날 때 쓰기 위해 깊이 감추 어 두고, 자기는 어느 집에 숨어서 가만히 일을 살펴보고 있는 것이야. 더 구나 자기네들은 조금도 의심받고 있지 않다는 신문 보도를 보고, 그들은 오늘 밤쯤 런던을 빠져 나가려고 할 것일세." "그렇다면 오로라호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설마 그 놈들이 숨어있는 집 안에다 숨겨 놓지는 않았겠지?" "그야 물론이지. 그렇지만 그들이 숨어 있는 곳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있을 걸세. 나는 스몰의 입장이 되어 이런 생각도 해 보았네. 증기선을 강변에 매어 두면 곧 발견될 테니까, 제일 안전한 곳, 즉 조선소에 넣어 모 양을 조금 바꾸어 달라고 부탁했을 거야." "정말 그렇군. 그런데 어째서 나는 자네처럼 조선소를 생각하지 못했을까?" "너무 단순한 생각은 오히려 범인을 놓치기 쉽지. 나는 늙은 선원으로 변장 하고 강줄기에 있는 조선소를 모두 뒤졌어. 열 다섯 번이나 허탕을 치고, 열 여섯 번째야 겨우 야콥슨 조선소에서 오로라호가 스크루 고장으로 수선 을 받으러 들어와 있다는 것을 알아 냈다네. 이 때 마침 선주인 스미스가 술이 거나하게 취해 가지고 그곳의 직공들에게 말하더군. '오늘 밤 8시 정 각에 떠날 걸세. 그 때까진 모두 수리해 줘야 하네.' 라고 말이야. 그러자 조선소 직공들은 '염려 마십시오. 고장난 게 아니니까.' 하고 대답하더군. 나는 곧 스미스의 뒤를 따랐지. 그런데 어느 술집으로 들어가지 않겠나? 그래서 나는 다시 조선소로 돌아와 베이커 거리의 특무대의 한 소년을 감 시원으로 남겨 놓고 돌아왔다네. 증기선이 떠날 때는 그 소년이 강변에서 손수건을 흔들어 신호하기로 약속돼 있어. 그러니 우리는 손수건이 흔들릴 때까지 조선소 둘레를 왔다 갔다 하면 되는 거야. 이제 보물찾기와 범인 체포는 시간문제야." 이 때 홈즈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만 있던 존스 경감이 말했습니다. "대단히 치밀한 계획입니다. 그렇지만 이럴 경우, 나 같으면 곧장 조선소로 들어가서 증기선 안에 숨어 있다가 범인이 올라오면 모조리 잡아버리겠습 니다." "그건 안 됩니다. 스몰이란 녀석은 워낙 빈틈없는 사람이라, 증기선에 오르 기 전에 반드시 누굴 시켜서 자세히 살펴 볼 것입니다. 조금도 불안하면 절대 타지 않지요." "선주인 스미스를 꾀어서 스몰이 숨어 있는 곳을 알아보는 게 어떨까요?" "안 될 말씀입니다. 스미스도 아마 스몰이 숨어 있는 곳을 모를 것입니다. 스미스는 술이나 실컷 얻어 먹고 돈이나 두둑히 받으면 그것으로 족하지, 범인에 대해서는 도통 관심도 없을 테니까요. 그들은 일이 있을 때에만 스 미스에게 사람을 보냅니다.그러므로 내가 생각하고 있는 방법이 제일 좋을 것 같아 이 방법을 택한 것입니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 증기선은 런던의 중심지를 빠져 나 왔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세인트 폴 사원 지붕 꼭대기의 십자가가 저녁놀을 받아 반짝거렸습니다. "자, 드디어 야콥슨 조선소가 보이는군." 홈즈는 망원경을 꺼내어 잠시 동안 조선소가 있는 강변을 바라보았습니다. "음, 감시원 소년이 보이긴 하는데, 손수건은 아직 흔들지 않는군." "그럼 강 아래로 내려가 증기선을 매어 둡시다." 존스 경감의 말에 홈즈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글쎄요. 오로라호가 강을 내려갈 것은 틀림없겠으나, 꼭 그렇다고 잘라 말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여기서는 조선소의 입구가 잘 보이지만 저쪽에 선 이쪽이 보일 리가 없으니 그대로 여기에 있기로 합시다. 보십시오. 많은 직공들이 가스등을 들고 왔다 갔다 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 저것 봐요! 손수건을 흔들어요!" "음, 드디어 손수건을 흔드는군!" 나도 뒤따라 외쳤습니다. 순간 홈즈의 눈은 날카롭게 빛났습니다. "아, 오로라호가 나온다! 악마처럼 살짝 나왔어. 여보게, 기관사. 전속력을 내어 저 배를 따라가세!" 강으로 나선 오로라호는 쏜살같이 무섭게 강을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정 말 뜻밖의 속력이었습니다. 존스 경감은 갑자기 얼굴을 찡그리며 오로라호를 바라보았습니다. "대단한 속력이야. 우리 증기선이 쫓아갈 수 있을까?" "아니, 무슨 일이 있더라도 붙잡아야 합니다. 자, 석탄을 집어 넣어요! 증기 선이 타 버릴 정도로!" 홈즈는 이를 악물고 외쳤습니다. 우리가 탄 증기선은 아주 느리게 달리는 것 같았습니다. 석탄 아궁이는 무쇠 심장처럼 울부짖기 시작했습니다. 엔진은 소나기 쏟아지는 소리를 냈습니다. 강물은 두 갈래로 크게 갈라지면 서 옆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이윽고 우리가 탄 증기선의 노란 불빛이 오로라 호를 비추기 시작했습니다. 증기선이 무섭게 달리자, 그 옆을 지나가던 작은 배에서는 위험하다고 외쳤습니다. "석탄을 더 넣어, 석탄을!" 홈즈는 기관실을 들여다보며 여전히 재촉했습니다. 홈즈의 얼굴은 석탄 아 궁이보다 더 붉게 타는 것 같았습니다. "조금 가까워진 것 같은데......" 존스 경감은 앞을 응시하며 말했습니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습니다. "그렇습니다. 조금만 더 속력을 냅시다!" 그런데 이때였습니다. 3척의 화물선이 우리가 탄 증기선 앞을 가로지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대로 곧장 달렸다가는 꼼짝 없이 부딪칠 것입니다. 우 리는 뱃머리를 왼편으로 돌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앞을 방해하는 화물선을 돌아 겨우 방향을 잡자, 오로라 호는 벌써 200미터 나 앞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배의 모습은 똑똑히 보였습니다. 역시 석탄을 가득 넣은 그 배의 아궁이도 터질 듯 타고 있었습니다. 존스 경감이 탐조등을 비추자 오로라호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배 뒤쪽에는 무릎 위에 무엇인가 검은 것을 올려놓고 들여다보는 사나이가 있고, 바로 그 옆에 개처럼 웅크린 검은 그림자가 있었습니다. 선주인 스미스는 아들 짐으로 하여금 키를 잡게 하고, 자기는 시뻘겋게 단 아궁이에 연방 석탄을 퍼 넣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오로라호에서도 처음에는 우리가 뒤따르고 있는 줄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자기들 뒤에서 계속 탐조등을 비춰 대는 것을 보고는 우리가 뒤따른다는 것 을 눈치챈 듯 했습니다. 오로라 호와 우리 배와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습니다. 나는 이때까지 여러 곳에서 많은 사냥을 해 보았지만, 이 템즈강에서의 사 람사냥처럼 손에 땀을 쥔 적은 없었습니다. 정말 아슬아슬한 사냥이었습니다. 우리의 증기선은 오로라호와의 거리를 조금씩 좁혀 갔습니다. 오로라호의 엔진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습니다. 배 뒤쪽에 웅크리고 앉아 있던 사나이는 여전히 두 손을 바쁘게 움직이며, 가끔 얼굴을 들어 우리와의 거리를 눈으로 재고 있었습니다. 두 증기선의 거리는 점점 좁혀졌습니다. 이윽고 존스 경감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거기 서라!" 두 증기선의 사이는 불과 4,5 미터밖에 안 되었습니다. 존스 경감의 외치는 소리를 듣고 배 뒤쪽에 앉았던 사나이가 벌떡 일어섰습니다. 그러더니 이 쪽 을 향해서 주먹을 휘두르며 큰 소리로 거칠게 외쳤습니다. 퍽 힘이 세어 보 였으나 한쪽 다리는 분명히 나무 다리였습니다. 그가 소리치자, 그의 발 밑에 쪼그리고 앉아 있떤 검은 그림자가 벌떡 일어 났습니다. 개인줄 알았던 그것은 개가 아니라 키가 작달막한 사람이었습니 다. 이 세상에 이렇게 작은 사람도 있단 말인가! 이상하게 큰 머리에는 머리 카락이 더부룩하게 헝클어져 있었습니다. 홈즈는 어느새 권총을 꺼내들었습니다. 나도 곧 권총을 꺼냈습니다. 담요를 뒤집어쓴 토인은 얼굴만 내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얼굴만 보고 도 온몸에 소름이 오싹 끼치면서 머리카락이 쭈삣 섰습니다. 눈을 번뜩이며 두터운 입술사이로 붉은 잇몸을 드러낸 꼴이 아무래도 금방 달려들려는 짐 승 같았습니다. "저 녀석이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이면 망설일 것 없이 즉각 방아쇠를 당기 게." 홈즈가 침착한 목소리로 나에게 속삭였습니다. 이 때 우리의 증기선은 오로 라호와 불과 2,3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배 뒤쪽에 있는 두 사나이의 모습도 환히 볼 수 있었습니다. 나무 다리를 한 스몰은 두 다리를 버티고 서서 연방 고함을 질렀고, 난장이 사나이는 괴상한 소리로 울부짖었습니다. 난장이의 모습이 똑똑히 보인 것은 정말 우리에게 다행한 일이었습니다. 이 때, 그 놈이 담요 속에서 무언가 꺼내는 것을 보았으니 말입니다. 다음 순간 우리들의 권총은 똑같이 불을 뿜었습니다. 그러자 그 토인은 두 손을 축 늘 어뜨리고 외마디 소리를 지르면서 물 속으로 빠졌습니다. 물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순간 그 토인의 눈은 무섭게 빛났습니다. 이 끔찍한 광경을 본 나무 다리 사나이는 갑자기 키에 달려들어 대담하게 도 배를 왼쪽으로 돌렸습니다. 그것은 오로라 호의 고물을 우리의 증기선과 맞부딪치게 하려는 수작이었습니다. 우리는 아슬아슬하게 그 충돌을 피했습 니다. 그러자 오로라호는 템즈강 남쪽을 향해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우리 의 배도 곧 방향을 돌렸으나, 오로라호는 벌써 강변 쪽으로 가고 있었습니 다. 그 곳은 수렁이 있는 곳으로, 한번 빠지면 좀처럼 빠져 나올 수 없는 곳 이었습니다. 아니나다를까, 오로라호가 '쿵!' 하고 무거운 소리를 내며 수렁 지대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나무 다리 사나이는 갑자기 배에서 뛰어 내렸습니다. 뛰어내린 곳이 수렁이었으므로, 나무 다리는 이내 깊숙이 빠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빠져 나오려고 허우적거렸지만, 그럴수록 두 다리 는 더 깊이 빠지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들이 증기선을 조심스레 대어 놓고 그 곳으로 가까이 갔을 때, 스몰은 수렁속에서 움직이지도 못했습니다. 우리는 큰 고기라도 낚아 올리듯, 밧줄을 던져서 그를 건져 올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스미스와 그의 아들은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배 안에 우뚝 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우리들의 명령에 따라 순순히 경찰 증기선으로 올라왔습니다. 그 증기선에는 무쇠 상자가 실려 있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솔트 씨 집에 있었던 보물 상자임에 틀림없었습니다. 열쇠는 아무 데서도 보이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 상자를 조심스레 경찰 증 기선으로 옮겼습니다. 배는 다시 강을 올라가면서 탐조등으로 이곳 저곳을 살펴 보았습니다. 그러 나 토인의 시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이상한 난쟁이 토인의 몸뚱이는 템 즈강 수렁 밑에 영원히 묻혀 버리고 만 모양이었습니다. "이것 보게, 아주 아슬아슬했어!" 홈즈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뜻밖에도 독이 묻은 화살이 꽂혀 있었습니 다. 우리가 서 있는 바로 옆이었습니다. 우리가 권총을 쏘았던 순간, 토인도 화살을 쏜 것이었습니다. 홈즈는 태연스레 웃고 서 있었으나, 나는 나의 목숨이 위험했던 순간을 생 각하자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습니다. 11. 아그라의 큰 보물 붙잡힌 나무 다리 스몰을 무쇠 상자 앞에 꿇어앉혔습니다. 그의 새까만 얼 굴에서는 눈만이 유난히 반짝거렸습니다. 많은 주름살로 보아 가지가지의 고 생을 겪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수염을 기른 턱은 의지가 굳어 보이 는 성격을 잘 나타내고 있었고, 희끗희끗한 머리는 벌써 나이가 쉰이 넘었다 는 것을 말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커다란 머리와 네모진 턱은 화를 낼 때면 악마처럼 무섭게 보였지만, 조용히 있을 때는 그리 나쁜 인상이 아 니었습니다. 그는 수갑이 채여진 손을 무릎 위에 얹고 머리를 숙인 채 앉아 있었습니다. 이 사나이의 얼굴은 모든 감정이 사라진 표정이었습니다. "이봐 조너던 스몰, 이렇게 되어서 참 억울하겠어." 홈즈가 담배를 피워 물며 이렇게 말을 건네자, 스몰은 조금도 우물쭈물 하 는 기색 없이 대답했습니다. "그렇소. 그렇지만 난 내 목이 달아나지 않을 것을 굳게 믿고 있소. 그건 하느님께라도 맹세할 수 있소. 바솔뮤 씨를 죽인 것은 내가 아니니까. 난쟁 이 토인 동가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화살을 내쏘았소. 나는 나중에 그런 사 실을 알고 내 혈육이 죽은 거나 다름 없이 슬퍼했다오. 그래서 그 악마 같 은 녀석을 마구 때려 주었지. 일을 일단 저지른 다음이라, 아무리 때려 줘 도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날 리는 없을 테지만 말이오." "자, 담배나 한 대 피우게. 그리고 술이라도 한 잔 마시게 해 줄까? 물에 빠졌으니 몹시 추울 거야. 자네가 폰지셀 별장에 몰래 들어가서 밧줄을 타 고 내려오는 사이에, 그 토인 난쟁이가 바솔뮤 씨를 죽였지?" "예, 선생께서는 마치 그 자리에서 보신 것처럼 말씀하시는구료. 그 때 방 안에는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바솔뮤 씨가 저녁 식사를 하러 아래로 내려가는 시간이었소. 바솔뮤 씨의 아버지에게는 원한이 좀 있지만, 그 아 들에게는 아무런 원한도 없었소. 그래도 서로 얼굴이 마주치는 것은 좋아 하지 않았다오." "자네는 이제 존스 경감의 손에 붙잡혔지만, 우선 자네를 우리 집으로 데리 고 갈 걸세. 거기서 자네가 한 일을 자세히 이야기하도록 하게나. 무엇이든 다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면 자네에게 나쁘게 하진 않겠네. 토인이 쏜 화살 의 독은 자네가 밧줄을 타고 방 안으로 내려가기 전에 바솔뮤 씨의 온몸에 퍼질 정도로 빠르게 효과가 나타난 것이라고 내가 증명해 줄 테니까." "과연 말씀대로요. 내려가 보니 벌써 그 사람은 무서운 얼굴로 이쪽을 노려 보고 있었소." 이 때 존스 경감이 한 몫 끼었습니다. "흥, 아주 친해지셨구료. 범인 하나를 죽인 것은 매우 아까운 일이지만 할 수 없지요. 하여간 오늘 밤 홈즈 씨의 솜씨는 아주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저도 오로라호가 그렇게 빠를 줄은 몰랐습니다." "스미스가 말하더군요. 템즈강에서는 어느 배에게도 지지 않을 증기선이므 로, 조수가 한 사람만 더 있었다면 붙잡히지 않았을 것이라고요. 그렇지만 그는 이 사건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스몰은 존스 경감의 이야기를 듣고 내뱉듯이 말했습니다. "스미스는 아무 것도 모르오. 속력이 빠른 증기선을 갖고 있길래 돈을 좀 많이 주고 빌렸을 뿐이오. 그레브센드까지 가서 브라질로 가는 기선만 타 게 되면 돈을 더 주기로 약속했소." "그럼 그렇지. 스미스가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면 처벌도 간단히 끝나겠지." 갑자기 엄한 표정으로 스몰에게 대답한 존스 경감은 홈즈와 나를 향해 말 했습니다. "증기선은 복스홀 다리에 댈 테니까, 와트슨 씨는 그 무쇠 궤짝을 들고 일 단 배에서 내려 주십시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만, 규칙을 어기고 증거 물인 궤짝을 내드리는 것이니 소중하게 취급해 주십시오. 나도 걱정이 되어 그럽니다. 경찰관을 한 사람 같이 보내겠습니다. 물론 마차로 가시겠지요?" "예, 마차로 갑니다." "그런데 한 가지 곤란한 것은 궤짝을 열 열쇠가 없다는 것입니다. 열쇠가 있다면 우선 안을 조사해 볼 텐데. 참, 스몰, 열쇠는 어쨌지?" "강물 속에 있소." 스몰은 무뚝뚝하게 대답했습니다. "심술궂은 녀석 같으니라고! 그럼 와트슨 씨, 궤짝의 자물쇠를 부수도록 하십시오. 모스턴 양에게 일단 보이고 난 뒤에는 그것을 곧 베이커 거리로 가지고 오시기 바랍니다." 나는 한 사람의 경관을 데리고 복스홀에서 증기선을 내린 뒤, 마차를 불러 타고 포레스터 부인 집으로 달렸습니다. 문간에 나온 하녀는 밤이 늦은 탓인지 의아스런 표정으로, "부인은 지금 안 계십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모스턴 양은 집에 있었습니다. 나는 경찰관을 마차에 남겨둔 채 무거운 무 쇠 궤짝을 들고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모스턴 양은 나를 보자 무척 반가워했습니다. "마차 소리를 듣고 부인이 돌아오시는 줄 알았는데 당신이 오셨군요. 무슨 기쁜 소식이라도 있나요?" "기쁜 소식보다 더 좋은 것을 가지고 왔습니다." 나는 테이블 위에 궤짝을 내려 놓고 기운차게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이것이 보물 상자입니다." 모스턴 양은 궤짝을 흘끔 볼 뿐 그리 반가운 기색이 아니었습니다. "대단히 무거웠지요?" "물론이죠. 아그라의 막대한 보물이 속에 들어 있으니까요. 그 절반은 당신 것입니다." "이건 모두 당신 덕분이에요." "아니, 아닙니다. 제 덕분이 아니지요. 셜록 홈즈 씨가 고생 끝에 간신히 찾 아 낸 것입니다. 하마터면 다 찾은 마지막 순간에 놓칠 뻔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해 주세요." 나는 모스턴 양을 찾아온 뒤에 생긴 일을 대강 말했습니다. 홈즈가 드디어 오로라호의 행방을 찾아낸 일과, 오늘 밤 강 위에서 벌어졌던 아슬아슬한 모 험극도 말해 주었습니다. 모스턴 양은 가슴을 죄어 가며 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더구나 독이 묻은 화살이 내 곁에 꽂혔다는 이야기를 듣자, 그야말로 기절이라도 할 듯 얼굴빛 이 변했습니다. 나는 이야기를 끝내고 궤짝을 열기로 했습니다. "자, 이제 궤짝을 열어 봅시다. 열기만 하고 곧 경찰에 맡겨야 합니다." "궤짝도 퍽 아름다운 장식으로 꾸며졌군요. 궤짝만 해도 굉장히 비싸겠어요. 열쇠는 갖고 계신가요?" "열쇠는 스몰이 강물에 던져 버렸답니다 할 수 없이 부수어야지요." 나는 부젓가락을 자물쇠 구멍에 넣고 마구 비벼 댔습니다. 한참 동안을 그 렇게 하자, 마침내 자물쇠는 '찰칵' 소리를 내며 뜻밖에도 쉽게 열렸습니다. 우리는 떨리는 손으로 궤짝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그 순 간 우리는 깜짝 놀라 한 걸음 뒤로 물러섰습니다. 궤짝 속이 텅 비어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텅 비어 있는데도 그렇게 무거웠던 것은 궤짝의 둘레가 무쇠로 되어 있었 기 때문입니다. "어머, 보물이 없네요?" 모스턴 양은 좀 놀란 듯 했으나, 그다지 실망하지는 않은 듯 조용히 말했습 니다. 나는 오히려 뛸 듯이 기뻤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나는 무심코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그러자 모스턴 양은 이상스럽다는 표 정으로 나를 보며 물었습니다. "이상하시네요. 왜 그런 말씀을 하시죠?" "모스턴 양, 전 당신에게 사랑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곧 구혼하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갑자기 수많은 보물의 임자가 된다면, 누구나 나를 보고 그 보물이 탐나서 구혼했다고 말할 것이 아닙니까? 보물 이 탐나서 사랑하는 체 한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차라리 보물이 없어 진 것을 하느님께 감사드린 것입니다." "정말 그러시다면 저도 하느님께 감사드려야겠어요." 모스턴 양은 방긋 웃으며 말했습니다. 나의 사랑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12. 조너던 스몰의 이야기 (1) 내가 텅 빈 무쇠 궤짝을 베이커 거리로 가지고 가자, 존스 경감은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홈즈는 홈즈대로, 그런 일 쯤 있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듯이 담배만 피우고 있었습니다. 자기는 수수께끼만 풀면 될 따름이지, 그까짓 보물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한 태도였습니다. 그 앞에 앉아 있는 스몰은 무엇이 우스운지 연방 히히덕거렸습니다. 존스 경감은 눈치를 채고, "스몰, 네가 상자를 비웠지?" 하고 나무 다리 사나이에게 달려들었습니다. "아무렴, 당신들이 손댈 수 없는 곳에 감추어 두었소. 그 보물은 내것이란 말이오. 앤다만섬의 감옥에 있는 세 사람과 나 이외에는 그 보물에 절대로 손댈 수 없다는 말이외다. 나는 감옥에 있는 세 사람을 대표해서 보물을 찾 느라 온갖 고생을 다 했으니, 보물을 어떻게 처리하든 그건 내 마음대로가 아니겠소?" "그래 보물을 어디에다 감추었나?" "템즈강 밑에 감추었소. 지금쯤은 그 보물이 열쇠와 난쟁이 토인 동가와 함 께 어디엔가 잠겨 있을 것이오." "거짓말 마라! 보물을 템즈강에 내던졌다면 궤짝까지 송두리째 버리는 것이 훨씬 쉽고 빨랐을 것이 아니냐?" "그야 그렇소. 내던지기도 빠르고 쉬울 뿐만 아니라, 당신들이 다시 건져 내기도 쉬울 거요. 내가 한 일을 냄새맡고 쫓아다닐 정도로 지혜로운 당신 들이니, 물 속에서 궤짝을 끌어 내기도 잘 할거요. 그래서 강물에 뿌려 버 리고 만 거요. 그때는 눈물이 날 정도로 아까웠지만, 이젠 누구의 손에도 들어가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하오." "바보 같은 녀석! 그따위 미련한 짓만 하지 않았어도 재판에서 가벼운 판결 을 받을 게 아닌가?" 그 말을 듣자 스몰은 고개를 번쩍 쳐들었습니다. "그건 어림도 없는 소리요! 내가 어떻게 해서 보물을 손에 넣었는가를 얘기 할 테니 한번 들어 보시오. 걷잡을 수 없이 열병이 퍼지는 진흙 땅에서 난 20년이란 세월 동안, 죽을 고비를 몇 번씩이나 겪으면서 아그라의 보물을 손에 넣었던 거요. 그런데, 나의 이 보물을 가로챈 사람으로부터 도로 찾아 가지고 아무에게도 넘겨주기 싫다는 것이 왜 미련한 짓이오? 말씀을 좀 삼 가시오!" 스몰은 경감의 말에 몹시 화가 난 듯, 얼굴이 시뻘개지고 성을 냈습니다. 눈에는 번쩍번쩍 불꽃이 튀고, 수갑이 철컥 철컥 울릴 정도였습니다. 이런 사나이에게서 협박을 받은 솔트 소령은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이때까지 무엇인가 생각에 잠겨 있던 홈즈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이봐요, 스몰! 우리는 당신이 인디아에서 얼마나 고생을 해서 보물을 얻었 는지 잘 알지 못하오. 그러니 당신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서는 누가 옳은지 누가 그른지 알 수가 없소. 어디, 우리가 알아 들을 수 있게 한 번 얘기해 보구료." "아, 선생께선 사리가 참 밝으신 것 같소. 내가 붙잡힌 것은 선생 때문이라 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선생을 원망하진 않소. 모든 것은 운수에 달려 있 는 것이오. 내 이야기가 듣고 싶다면 얘기를 해 보리다. 나는 생김새는 이 래도 거짓말이라고는 모르는 사람이오. 그럼 얘기를 들어 보시오." 스몰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13. 조너던 스몰의 이야기 (2) "나는 우스터셔 주의 어느 정도 이름 있는 집안에서 태어났소. 어렸을 때 부터 성격이 난폭해서 18살 때부터 군인이 되고 싶었소. 그래서 마침 인 디아로 가기로 되어 있던 제 3 연대에 자원해서 들어갔소. 그러나 난 곧 군인 노릇을 단념하지 않을 수 없었소. 뜻하지 않은 불행이 닥쳐 왔던 것 이오. 인디아에 가서 제법 총쏘기에 익숙해졌을 무렵, 나는 수영을 하러 갠지즈강으로 나갔소. 그런데 갠지즈강에는 악어가 많기로 유명하지 않소? 강 한복판으로 나갔을 때 그만 나는 오른쪽 무릎을 악어에게 물리고 말았 소. 함께 갔던 홀더가 다행히 수영 선수였기에, 나를 재빨리 강변으로 끌 어 내서 간신히 목숨만은 구할 수 있었소. 그렇지만 다섯 달 동안 병원 신세를 지고 나무 다리를 딛고 병원을 나왔을 때, 나는 이미 군인 자격이 없어져 버렸소. 20살도 못 되었던 나는 이렇게 병신이 되고 만 것이오. 그런데 농장을 경영하던 화이트라는 영국 사람이 그러한 나를 불쌍히 여 기고 농장지기로 써 주었소. 이 농장지기란, 말을 타고 넓은 밭을 둘러 보기도 하고, 밭에서 일하는 인디아 사람을 감독하기도 하는 것이었소. 다리가 부자유스러운 사람이라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이므로, 나는 기꺼이 일생을 그 일로 보낼 작정이었소. 주인 화이트 씨도 마음이 좋은 분이어서 나를 잘 돌봐 주었소. 그렇지만 늘 좋은 일만 계속돼지는 않는 모양이오. 그 지방 가까운 데서 인디아 사람들이 크게 폭동을 일으켰으니 말이오. 즉, 백인에게 고용되어 있던 인디아 사람들의 그들의 불만을 폭 발시켜 토인 병정들과 함께 싸움을 벌인 것이오. 당시 내가 있던 곳은 마루투였소. 토인들은 밤마다 백인들의 집에 불을 질렀다오. 무서운 불 길이 하늘을 찌르듯 타오르고, 가족을 거느린 백인들이 군대 주둔지 근 처인 아그라라는 곳으로 가기 위해 우리 밭을 지나갔소. 화이트 씨는 인 디아 사람의 폭동은 곧 멈춰질 것이라고 하면서, 도망칠 준비조차 하지 않았소. 그래서 나는 물론, 화이트 씨 집안일을 거들던 백인 도오손 부부 도 아그라로 도망칠 것을 참고 있었소. 그러던 어느 날, 내가 밭에서 일 을 하고 돌아오는데, 조그만 시냇물에 칼을 맞은 백인 여자의 시체가 떠 다니고 있었소. 자세히 보니 그것은 도오손의 아내였단 말이오. 깜짝 놀 라 조금 더 가니, 거기에는 도오손이 손에 권총을 쥔 채 쓰러져 죽어 있 었소. 그 근처엔 네 사람의 토인 병사가 쓰러져 있었소. 큰일났다고 생각 한 내가 집 쪽을 바라보니, 화이트 씨 집은 이미 불길에 싸여 있었소. 그리고 그 주위에는 수백 명이나 되는 시커먼 토인 병사들이 모여 미친 듯 날뛰며 춤을 추고 있었소. 그런데 누군가가 말을 타고 있는 나를 발견했는 지, 와아 하고 함성을 지르며 나를 향해 몰려오지 않겠소? 그래서 나는 죽 을 힘을 다해 도망을 쳤다오. 그날 밤 늦게야 겨우 아그라 마을에 다다랐소. 그렇지만 아그라 마을도 안전하다고 할 수는 없었소. 폭동은 인디아 전체에 퍼졌고, 가는 곳마다 벌집을 쑤셔 놓은 듯, 토인들이 들끓는 바람에 영국 사람들은 그저 벌벌 떨고만 있을 뿐이었소. 토인 병정들의 총이나 나팔, 입고 있는 옷들은 모두 영국에서 받은 것이었는데, 얄궂게도 그들은 그것을 가지고 영국을 공격하는 것이었소. 한편, 아그라에서는 피난해 온 사람들 이 모여 의용군을 만들었다오. 나도 부자유스러운 몸이었지만 거기에 한몫 끼었소. 아그라에는 낡은 성 하나가 있었소. 일부는 군대 건물로 고쳐 수비대가 사 용하고 있었으나, 그 나머지 부분은 드나드는 사람 하나 없이 그냥 텅 비 어 있었소. 그 성에는 깜깜하고 구불구불한 복도와 길이 여러 갈래로 뻗어 있어서, 한번 길을 잃어버리는 날이면 나오는 길을 영영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오. 성 앞에는 바로 갠지즈 강이 흐르고 있어서 자연히 방어가 되었지 만, 오른쪽과 왼쪽, 그리고 뒤쪽에는 여러 개의 입구가 있어서 그 곳을 지 키지 않으면 안 되었소. 나는 두 사람의 시이크 병사와 함께 서남쪽에 외 따로 떨어져 있는 성문을 맡았소. 우리는 매일 밤 몇 시간씩 그곳을 지키 지 않으면 안 되었다오. 비상시에는 총소리로 신호를 해서 본부에 알리면 그곳에 있는 주력 부대가 오기로 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방금 말씀드린 대 로 성 안이 무척 넓고 길이 구불구불해서 여간 겁이 나지 않았다오. 내 부 하는 두사람 다 키가 큰 토인 병사로서, 한 사람은 마호멧 신이고, 한 사 람은 압둘라 칸이라고 했소. 처음 이틀동안은 무사히 지났소. 그런데 사흘 째가 되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밤이었소. 새벽 2시, 주력 부대의 순시관 이 다녀간 다음 나는 담배를 한 대 피우려고 총을 옆에 세워 놓았지요. 그 런데 그 순간, 부하 두 사람이 기다렸다는 듯이 양쪽에서 내게로 달려드는 것이 아니겠소? 한 사람은 총으로 나를 겨누고, 또 한 사람은 칼로 내 목 을 겨누는 것이었소. '이게 무슨 짓인가, 자네들 나를 배신할 참인가?' 이렇게 내가 고함을 치자, 그 놈들은 뜻밖에도 한 발짝 물러나며 조용히 말했소. '음, 떠들 건 없소. 우린 배신자가 아니니까. 우리들의 요구만 들어 주면 되는 거요.' '뭐? 총과 칼을 들이대고 무조건 요구를 들어달라는 것은 너무하지 않나?' 그러자 압둘라 칸은 이렇게 말합디다. '우리들의 동지가 되겠는가? 그렇지 않으면 목숨을 버리겠는가? 둘 중 하 나를 택해라!' '너희들의 동지? 만약 그것이 이 성을 적에게 넘겨 주는 것이라면, 나는 대영 제국 사람으로서 죽어도 너희들의 동지가 될 수 없다. 자, 그 칼로 어서 나를 찔러 죽여다오!' 나는 비장한 결심을 하고 대답했소. '아니오. 성을 적에게 내주자는 따위의 일이 아니오. 당신은 돈을 벌기 위 해 인디아에 온 것이니, 우리와 함께 돈벌이를 하자는 것이오. 좋다고 대 답만 하면, 보물의 4분의 1을 당신에게 주겠소.' '뭐? 보물이라고? 그야 나라고 해서 부자가 되는 게 싫다고 하겠는가?' '그럼 당신은 어떤 일이 있어도 오늘 밤의 일을 입 밖에 내지 않겠다고 약 속할 수 있겠소?' '약속하고말고! 지금 말한 대로 이 성을 적에게 내주는 일이 아니라면.' '좋소. 그럼 이제 보물을 꺼내어 당신에게 4분의 1을 나눠주겠소.' '아니 여긴 세 사람밖에 없는데....' '또 하나, 도스트 아크발이라는 사람이 있소.' '어디 있는가?' '곧 올 것이오. 또 한사람을 데리고.' '그럼 다섯 사람이 아닌가?' '자, 이야기를 자세히 해 주겠소. 저 북쪽 지방에 아주 돈 많은 왕이 있었 소. 그런데 이번 폭동이 일어나자 왕은 영국의 비위도 맞춰야 하고 토인들 의 비위도 맞추어야 겠다는 교활한 생각을 품었던 것이오. 그래서 그 왕은 어느 쪽이 이기든 재산의 절반은 남의 것으로 될 거라고 생각했소. 그래서 보물의 반은 왕궁 지하실에 넣었고, 나머지 절반의 보물은 무쇠 궤짝에 넣 은 다음 부하를 장사꾼으로 위장시켜 이 아그라성 깊은 곳에 감추었단 말 이오. 그러니까 토인이 이기면 왕궁 지하실의 보물이 남는 것이고, 영국이 이기면 이 아그라성의 보물이 남는단 말이오.' '음, 그럴듯한 생각이군.' '재산 정리를 마친 왕은 가만히 정세를 살피고 있다가 토인 편이 우세하자, 그쪽으로 붙어 버린 것이었소. 그러니 자연히 이 성에 감춘 보물 궤짝은 포기해 버린 셈이 되었소. 그런데 왕의 명령을 받아 이곳으로 보물을 감추 러 온 사람은 아크메라는 부하였는데, 그는 내 친구인 도스트 아크발에게 이 비밀을 말하고 둘이 함께 이 곳으로 보물을 찾으러 오기로 되어 있소. 아크메만 죽여 버리면 보물은 나머지 네 사람의 것이 되는 것이오.' '그건 그렇지만 말야, 아크메를 죽일 것이 없이 보물을 그냥 다섯 몫으로 나누는 것이 더 낫지 않겠나?' '아, 그건 안될 말씀이오. 왜냐하면, 그 놈은 보물을 독차지하려고 하고 있소. 도저히 우리들과는 의견이 맞지 않소. 그러니 자, 우리들 편에 끼겠 소?' '음, 한몫 끼지!' 14. 조너던 스몰의 이야기 (3) "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 밖에 없었소. 이렇게 약속하고 나서 내가 망을 보 고 있는데, 어둠 속에서 희미한 초롱불이 보이기 시작했소. '오는 모양이다!' 내가 압둘라 칸에게 속삭이자, 그는 고개를 끄덕입디다. '당신은 저 놈들을 순서대로 불러 세우시오. 그리고 당신이 망을 보고 있 는 사이에 우리들이 감쪽같이 처치해 버리는 거요.' 초롱불은 점점 가까워졌소. 두 사람이 둑에 올라오는 것을 기다렸다가, '누구냐!' 하고 내가 고함을 쳤소. 그러자 상대방이 곧 대답했소. '우리들일세.'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초롱불로 상대방을 비추었소. 앞에 서 있는 사람은 검은 수염을 가슴까지 기른 뚱뚱한 시이크 사람인데, 마치 씨름 선수처럼 늠름했소. 이 사람이 아크메라고 하는 사람으로서, 손에 짐을 들고 있었소. 그는 두려운 듯 손을 부들부들 떨었고, 쥐새끼처럼 눈을 번들거리고 있었 소. 이 사람이 이제 죽음을 당할 왕의 부하란 말이오. 그 순간 나는 불쌍 한 마음이 들었소. 그는 내가 백인이라는 것을 알자 반가운 듯 나에게 다 가옵디다. '살려 주십시오. 저는 불쌍한 장사꾼 아크메입니다. 난을 피해 이 아그라 성으로 온 것입니다. 아내와 아이들은 모두 토인 병사들의 손에 죽고, 남 은 것이라고는 이 짐 뿐입니다.' '그 짐은 무엇인가?' '무쇠 궤짝입니다. 남들에게는 하찮은 것일지 몰라도 제게는 소중하기 짝 이 없는 물건입니다. 살려 주시기만 한다면 그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이 사나이와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까 점점 불쌍한 생각이 들었소. 그래서 빨리 이야기를 끊어 버리고, '이 사나이를 본대로 데리고 가라!' 하고 부하인 시이크 사람에게 명령을 했다오. 나의 부하 두 사람은 그 사 람의 양쪽에 바짝 붙어서고, 사나이와 같이 온 사람은 그 뒤를 따라 성문 으로 들어갔소. 발걸음 소리가 멀어지자, 이내 소란스러운 소리에 이어 서 로 때리는 소리가 났소. 그러더니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발걸음 소리가 나 지 않겠소? 그래서 초롱불을 비춰 보니까 맨 앞에서 피투성이가 된 아크메 라는 사나이가 달려오는데, 내 부하들이 칼을 휘두르며 그 뒤를 쫓아 오고 있었소. 나는 뚱뚱보 사나이가 이렇게 빨리 뛰는 것을 본 적이 없었소. 그 는 내 부하들을 점점 더 멀리 떨어뜨리며, 내 옆을 바람처럼 지나가려고 했소. 그 순간 나는 재빨리 총대를 들어서 그 사나이의 뒤통수를 냅다 내 리쳤소. 그러자 앞으로 쓰러졌던 사나이는 곧장 일어서려고 하지 않겠소? 마침 그때 뒤따라오던 내 부하가 칼로 그의 옆구리를 찔렀소. 이내 그 사 나이는 찍 소리도 못하고 숨을 거두었소. 이렇게 해서 보물 상자는 네 사 람의 차지가 되었던 거요." 여기까지 이야기한 스몰은, 옆에 있던 위스키 잔을 들어 마른 목을 축였습 니다. 그의 손에는 수갑이 채워진 채였습니다. 나는 사람 죽인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하는 그가 미워 견딜 수 없었습니다. 홈즈나 존스 경감도 같은 기분이었던 모양입니다. 스몰은 그런 생각을 알아챈 듯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를 나쁜 놈들이라고 생각하시겠지요? 물론 나쁜 놈들임에는 틀림 없소. 그렇지만 우리들은 그때 전쟁을 겪고 있었소. 정말 생명이 오 락가락하는 판이었소. 수상한 녀석을 성 안에 들여보내도 우리들의 목숨은 없어지고 또 그 녀석이 성에서 도망을 쳐도 우리들은 상관에게 붙잡혀서 총살을 당하는 판이었소." "음, 어서 이야기를 계속해 봐." 홈즈가 재촉했습니다. "예, 그러지요." 스몰은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나는 곳 마호멧 신을 성문지기로 남겨두고, 압둘라 칸과 도스트 아크발과 함께 아크메의 시체를 성 안으로 운반했소. 복도를 지나 벽이 떨어진 크고 넓은 방에 이르면, 그곳은 마룻바닥이 떨어져 마치 지하 무덤처럼 되어 있 었소. 아크메를 그곳에 집어 넣은 뒤 자갈로 덮어 버렸소. 그런 다음 다시 보물 상자가 있던 곳으로 와서 상자를 열어 보았소. 상자 안에는 눈부신 보석이 가득 들어 있지 않겠소? 우리들은 그 자리에서 보석의 목록을 만들었소. 1등품 다이아몬드가 143개, 아름다운 에메랄드 97개, 루비 117개, 사파이어가 219개, 그 밖에도 터어 키석 같은 것이 있었고, 진주도 300개 가까이 되었으며, 그중 12개는 황금 관에 장식되어 있던 것이었소. 이번에 궤짝을 찾아 조사해 보니 이 12개의 진주만이 없었소. 보석에 대한 조사가 끝나자 성문에 있는 마호멧 신에게 로 가서 그것을 보여 주며, 우리 네 사람은 이 보석의 비밀을 굳게 지키기 로 약속하였소. 그리고 궤짝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성 안에 감추어 두기로 했다오. 아크메의 시체를 파묻은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의 벽을 파 서 궤짝을 집어 넣고, 나중에 곧 알 수 있도록 넉 장의 지도를 만들어 각 자가 한 장씩 가지기로 했소. 궤짝은 네사람의 것이니 누구라도 독차지 할 수 없도록 네 사람이 똑같이 서명을 했던 것이오. 한편, 처음에는 토인군 이 우세했던 인디아인의 폭동은, 결국 영국군이 지원군을 얻어 다시 세력 을 회복하는 바람에, 토인군은 끝내 항복하고 말았다오. 우리들은 보물을 꺼낼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기뻐했지만, 막상 그 때가 되자 아크메를 죽인 사실이 그만 폭로되어 네 사람은 붙잡히고 말았던 것이오. 아크메를 죽인 것을 어떻게 알았느냐 하면, 아크메에게 보물을 맡긴 왕이 그를 신용 할 수 없어서 또 한 사람의 부하에게 아크메를 감시하게 했던 것이오. 그 런데 아크메가 아그라성에 들어간 다음 다시 나오지 않자, 뒤따르던 감시 원이 이 사실을 사령관에게 일러바쳤던 것이오. 그래서 곧 성 안을 뒤져 아크메의 시체를 찾아 냈으며, 따라서 우리들의 소행이라는 것도 곧 알려 졌던 것이라오. 그래서 곧 성 안을 뒤져 아크메의 시체를 찾아 냈으며, 우 리들의 소행이라는 것도 곧 알려졌던 것이라오. 우리는 붙잡혀 감옥에 들 어갔지만, 보물에 대해서만은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궤짝 은 그대로 성 안의 벽 속에 남아 있었소. 그 후 우리 네 사람은 영영 감옥 에서 떠날 수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았소. 그리고 우리들은 앤다만 섬으로 유형을 당하게 되었는데, 그 곳에는 백인 죄수가 드물었고 나는 아주 온순 하게 굴었기 때문에, 감옥에서 풀려나와 자유스럽게 살 수 있었소. 자유스 럽다고는 하지만, 사방이 바다여서 도저히 도망칠 수는 없었소. 나는 군의 관 서머튼 박사 밑에서 조수로 있으면서 약 만드는 법을 배웠다오. 사관들 은 밤이 되면 한가하기 때문에 자주 트럼프놀이를 했소. 나는 트럼프 놀이 를 하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남이 하는 것을 보는 것도 퍽 재미있었기 때 문에 곧잘 구경하곤 했소. 트럼프 놀이를 하는 패에는 솔트 소령, 모스턴 대위, 브라운 중위, 그리고 방금 말한 서머튼 군의관, 그리고 간수들도 끼 어 있었소. 그런데 사관들은 솜씨가 서툴렀기 때문에, 간수들에게 늘 지곤 했으며 돈도 모두 털리었소. 특히 솔트 소령은 한번도 이긴 적이 없었소. 내기라는 것은 지면 질수록 더욱 열중하기 마련이오. 그렇소. 솔트 소령은 누구보다도 열중했소. 어느 날 밤인가, 솔트 소령은 정말 다 털리고 말았 소. 그는 그와 친한 모스턴 대위에게 이런 말을 하면서 내 앞을 지나갔소. '모스턴 대위, 나는 군인 노릇을 그만둬야겠어. 이젠 파산이야, 파산!' 그러자 모스턴 대위는 소령을 위로했소. 나는 소령의 말을 듣고 이틀이 지 난 뒤, 소령이 혼자 산책을 하고 있는 바닷가로 가까이 다가갔다오.." 15. 조너던 스몰의 이야기 (끝) "'대장님, 의논할 일이 있습니다.' '뭐냐, 스몰?' '임자가 없는 보물을 찾아 내면, 그건 찾아낸 사람의 것이 되나요?' '아냐, 그건 그렇지 않아. 그건 정부의 것이 되는 거야.' '아, 그래요? 그런데 실은 제가 50만 파운드나 되는 보물이 묻혀 있는 장 소를 알고 있거든요.' '뭐, 50만 파운드?' 소령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소. '예, 보석과 진주가 무더기로 파묻혀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정부에게 빼 앗기다니 억울하지 않습니까?' '잠깐만! 도대체 너는 어떻게 해서 보물이 묻혀 있는 곳을 알게 되었지? 우선 그것을 얘기하 봐.' 그래서 나는 그가 보물이 묻혀 있는 장소를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이 때 까지의 이야기를 대략 들려 주었소. 소령은 대단히 열심히 이야기를 들읍 디다그려. '음, 스몰. 그것은 대단한 이야기다. 내가 잘 생각해 가지고 너에게 좋도 록 도와줄 테니,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잠자코 있어라.' 소령은 이렇게 말하고 나서 나와 헤어졌소. 그리고 이틀째 되는 날 새벽, 소령은 모스턴 대위와 함께 나를 찾아왔소. '스몰, 그 이야기를 한번만 더 모스턴 대위에게 들려 줄 수 있겠나?' 그래서 나는 아그라성 이야기를 다시 되풀이해서 들려 주었소. 소령과 대 위는 서로 마주보며, '어때, 한번 일해 볼 만 하지 않은가?' 하고 말하더니 나에게 물었소. '이봐 스몰, 모스턴 대위와 내가 의논한 결과, 네 비밀은 어디까지나 너 혼자만의 비밀이기 때문에 정부에는 알릴 필요가 없다고 결정했다. 그리하 여 우리 둘이서 네 비밀을 사기로 결정했는데, 그래, 얼마면 팔겠는가?' '안 됩니다! 대장님! 이런 섬에 일생 동안 갇혀 있을 사람이 돈은 받아 무 엇 하겠습니까? 저의 소원은 이 섬을 벗어나 자유롭게 되는 것입니다. 그 리고 나머지 세 사람도 감옥에서 나오게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네 사람 에 당신들까지 합해 보물의 5분의 1을 두 분에게 드리기로 하겠습니다. 5분의 1이라 해도 10만 파운드나 됩니다.' '그렇지만 너하고 세 사람의 시이크 인을 자유롭게 해 준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바다를 건널 수 있는 배와 먹을 것만 있으면 섬을 빠져 나가기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음, 그건 쉽지 않은 일이지만 잘 생각해 보겠다. 그런데 우선 네 말이 거 짓말인지 아닌지 알아봐야겠다. 궤짝이 묻힌 곳을 말해 봐라. 내가 휴가를 얻어서 인디아에 한 번 갔다 오겠다.' '그럼 세 친구와 의논해 보겠습니다. 한 친구라도 반대한다면 이야기가 안 되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나서 나는 마호멧 신과 압둘라 칸, 그리고 도스트 아크발 등 세 사 람과 함께 의논했소. 의논한 결과는 다음과 같소. 우선 보물을 감춘 곳을 그린 지도를 만들어 솔트 소령에게 주어, 이 이야 기가 거짓말인지 사실인지를 확인시킨다.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소 령은 곳 먹을 것을 실은 배를 준비하여 우리들을 섬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 그리고 소령이 모르는 체 하고 섬으로 돌아오면, 이번에는 모스턴 대위가 휴가를 얻어 아그라에서 우리들과 만난다. 그리고 보물을 분배한다. 이렇게 하면 소령이나 대위는 상관으로부터 아 무런 의심도 받지 않고 일을 무사히 치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들은 솔트 소령을 굳게 믿었소. 그러나 인디아에 간 솔트 소령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오. 모스턴 대위의 이야기에 의하면, 솔트 소령은 부자였 던 큰아버지의 유산을 물려 받았기 때문에 갑자기 군대에서 제대하여 본국 으로 돌아갔다는 것이었소. 신문에 그렇게 보도된 것을 보았다는 거요. 그 후 모스턴 대위가 아그라성까지 가서 보물 궤짝을 조사했지만, 궤짝은 이 미 없어지고 말았던 것이오. 솔트 소령은 우리들을 배신하고 보물을 독차 지한 다음 영국으로 돌아간 것이오. 개보다도 못한 비겁자라는 것은 바로 솔트 소령 따위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겠소? 그 때부터 우리는 어떻게 해 서든 솔트 소령에게 복수하려고 마음먹었소. 그리하여 날이면 날마다 섬에 서 탈출할 생각만 했다오. 보물을 도로 빼앗겠다는 것 보다는 솔트 소령을 깨끗이 죽여 버리고 말겠다는 생각이었소. 나는 어느 날, 산 속에서 토인 한 사람이 중병에 걸려 죽어 가는 것을 발견하고, 막사로 데리고 와서 간 호를 해 줬소. 이 토인은 식인종이라 별로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그는 자기를 살려 준 은인이라 해서 나를 잘 따르게 되었소. 다시는 산에 가지 않겠다고 하기에 나와 함께 살자고 했소. 동가가 바로 그 토인이었소. 동 가는 통나무배 한척을 가지고 있었소. 음식과 술을 장만한 우리들은 열흘 동안이나 바다를 헤메었다오. 그러다가 열 하루째 되는 날 마침내 상선의 구조를 받아 런던으로 오게 된 것이오. 그렇지만 사실 그 동안 동가와 함 께 얼마나 괴로운 모험을 계속했는지는 여기서 다 말 할 수가 없소. 그러 니까 지금으로부터 6년 전, 드디어 우리들은 영국에 도착했소. 이 때 솔트 가 있는 곳을 알아 내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소. 우리들은 아직 솔트 가 보물을 가지고 있는지를 조사하기 위해 폰지셀 별장의 심부름꾼 한 사 람을 우리편으로 끌어넣었소. 보물을 어디다 숨겨 놓았는지는 알아 내지 못했지만, 아직 솔트가 보물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아 냈던 것이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솔트에게 접근하려고 했소. 그러 나 그는 집에 권투 선수를 두 사람이나 두고 언제나 조심을 하고 있어서 쉽게 접근할 수가 없었소. 그러던 어느 날, 그 녀석이 죽어 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오. 나는 내 손으로 솔트를 죽여 버릴 작정이었기 때문에, 적이 당황해서 폰지셀 별장에 숨어들었다오. 그런대 그 때가 바로 솔트 소 령이 두 아들에게 무엇인가 말하고 숨을 거두려는 순간이었소. 그때 나는 몰래 그녀석 방으로 들어가 보물을 빼앗으려고도 생각했지만, 이것은 실패 하고 말았소. 할 수 없이 지도에 서명한 네 사람의 이름을 종이 쪽지에 써 서 시체의 가슴에 핀으로 꽂아 두었던 것이오. 솔트 소령이 죽었으니 이제 내가 해야할 일은 오직 보물을 찾는 일 뿐이었소. 보물은 솔트의 큰아들이 끈질기게 찾았으나 여간해서 발견되지 않다가, 6년이 지난 요즘에 와서야 간신히 천장 위에서 발견되었던 것이오. 그런데 진짜 보물의 주인은 내가 아니겠소? 그러나 나는 다리 때문에 천장 위에 올라갈 수가 없어서 동가를 데리고 들어갔던 것이오. 그런데 동가가 그만 지레짐작을 해서 솔트의 아들을 활로 쏘아 죽이고 말았던 것이오. 그 래서 나는 동가를 얼마나 꾸짖었는지 모르오. 마침내 보물 궤짝을 되찾은 나는 스미스의 오로라호를 타고 도망을 쳤던 것이오. 그러나 운수가 사나 웠던지 일이 잘 되다가 그만 여기 있는 명탐정에게 붙잡히고 만 것이오." 스몰은 길고 긴 이야기를 끝마치고, 이젠 더 할 말이 없다는 듯이 후련하 게 웃었습니다. 홈즈도 만족한 듯 웃으며 말했습니다. "이야기는 참 잘 들었네. 그런데 동가는 독이 묻은 화살을 다 썼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증기선에서 우리들을 향해 화살 하나가 날아왔으니 어찌된 일 인가?" "아, 그건 단 한개 남았던 화살이오." 스몰이 대답했습니다. "그래? 그 화살에 하마터면 내가 죽을 뻔 했지." 존스 경감은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그럼 홈즈 씨, 이제는 스몰을 경찰서에 데리고 가도 괜찮겠지요?" 존스 경감이 홈즈에게 물었습니다. "예, 그렇게 하십시오." 홈즈는 시무룩하게 대답했습니다. 스몰도 일어서서 우리를 향해 "두 분,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하며 쓸쓸히 웃었습니다. 그들이 사라진 다음 홈즈는 아주 우울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말했습니다. "아.. 이것으로 재미있던 사건도 모두 끝이 났군! 나는 사건이 끝나면 따 분해서 견딜 수 없단 말야. 나의 즐거움이란 쓰라린 고생을 겪어 가며 복 잡한 수수께끼를 푸는 일이거든." 나는 약간 망설이듯 대답했습니다. "사건이 이제 끝났으니 난 여간 즐겁지가 않네. 여보게 홈즈, 나는 이미 모스턴 양과 결혼할 약속이 되어 있다네." "음, 그래? 나도 얼마쯤은 짐작했지." 홈즈는 그렇게 한 마디 했을 뿐, 축하한다는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셜록 홈즈 탐정은 범죄에 관련된 일 외에는 전혀 흥미가 없었던 것입니다. P.s 드디어 기나긴(?) 연재가 끝났습니다. ^^; 게으르기 짝이 없는 제 성품에... 이걸 연재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쥐만.. 우와~ 다 끝내고 나니 참 즐겁군여. ^^ 그럼 이만.... ^_^ = 홈즈를 영원히 존경하는 홈즈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