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세 개의 보석> 어느 날 아침, 나는 창문 앞에 서서 거리를 내다보며 말했다. "여보게, 홈즈, 미친 사람이 오고 있어. 집안 사람들이 저렇게 혼자 돌아다니게 내버려두다니, 참딱 한 노릇이야." 홈즈는 팔걸이 의자에서 나른한 듯이 일어나, 실내복 주머니에 양손을 집어넣고서 내 어깨너머로 밖 을 내다보았다. 맑게 갠 상쾌한 2월의 아침이다. 전날 내린 눈이 아직도 두텁게 쌓여 겨울 햇살에 반 짝이고 있었다. 베이커 가의 한복판 아래쪽은 수 많은 자동차의 왕래로 파헤쳐져서 갈색 띠 모양을 이루고 있었지만, 도로 양변의 눈이 쌓이 보도 양쪽은 아직도 눈이 내릴 때의 흰색 그대로 빛나고 있 었다. 회색 보도에는 눈이 말끔히 치워져 있었지만, 미끄러지기 쉽고 위험했으므로 평소보다는 사람 들의 통행이 적었다. 지금도 지하철 역 쪽에서 걸어오는 사람은 신사처럼 보이는 남자가 한 사람 있 었을 뿐인데, 그 남자가 기묘한 거동을 하기 때문에 내 눈길을 끌었던 것이다. 나이는 쉰쯤 되어 보 였고, 키가 크고 늠름한 풍채에다, 검은 프록 코드에 최신식 실크 햇, 게다가 잘 디자인된 엷은 회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런데 그 행동은 복장이나 위엄 있는 용모에 어울리지 않게 우스꽝스러웠다. 길을 마구 달리고 있었는데, 평소에는 달려 보지 않은 사람인 모양이었는지 지친 듯이 이따금 깡총깡 총 뛰기도 했다. 그리고 달리면서 양손을 위아래로 휘젓거나 머리를 흔들기도 하고, 얼굴을 찌푸리고 기묘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내가 물었다. "도대체 저 사람은 뭘 하는 걸까? 문패를 쳐다보고 있군." 홈즈는 손을 비비면서 말했다. "저 사람은 반드시 여기로 올 걸세." "여기로?" "응, 아마 무슨 일이 있어서 내게 의논할 모양이야. 그런 것 같네. 그것 보게, 내가 말한 대로잖나. " 홈즈가 그렇게 말했을 때, 남자는 숨을 헐떡이며, 현관문 앞까지 달려 올라와, 온 집안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힘차게 초인종 끈을 당겼다. 이윽고 그 남자는 우리들의 방으로 들어왔는데, 아직도 숨 을 헐떡이며 자꾸만 기묘한 몸짓 손짓을 하고 있었다. 그 눈은 슬픔과 정말의 빛이 가득하여, 우리들 도 우스운 생각이 삽시간에 사라지고 연민의 마음이 생겼다. 그 남자는 잠시 동안 아무 말도 못하고, 금방이라도 미쳐 버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 몸을 흔들었다가는,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갑자기 펄쩍 뒤더니 머리를 벽에 힘껏 들어 받았으므로 우리들은 당황해 하며, 달려가 그를 방 한복판으로 데리고 왔다. 홈즈는 그 남자를 안락 의자에 앉히고 자기도 옆에 앉아, 그의 손을 가 볍게 두드려 주면서 부드럽게 달래는 어조로 말을 건넸다. "뭔가 말씀하실 게 있어서 오신 모양이군요. 너무 급히 오시느라고 지치셨나 본데, 마음을 가라앉히 신 뒤에 말씀하시지요. 어떤 문제라도 기꺼이 의논해 드리겠습니다." 잠시 동안 그 남자는 숨을 크게 쉬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다가, 이윽고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고 서 는 입을 꼭 다물고 우리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틀림없이 나를 미치광이라고 여기시겠지요?" 홈즈는 대답했다. "매우 괴로운 일이 있어 보이는데요?" "정말 그래요! 미쳐 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도 갑작스럽고 끔찍한 일입니다. 나는 나쁜 짓이라곤 털끝만큼도 한 적이 없는 사람인데, 이 사건 때문에 내 체면은 엉망이 될 겁니다. 그뿐 아 니라, 이것은 나 개인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이 무서운 사건의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이 나라의 가 장 고귀한 분에게도 화가 미치게 됩니다." "좀 진정하십시오. 그리고 당신이 어떤 분이며, 당신에게 일어난 사건이 무엇인가를 똑똑히 말씀해 주십시오." "내 이름은 당신도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스레드니들 가에 있는 홀더 스티븐슨 은행의 알렉산더 홀더 입니다." 런던에서도 두 번째로 큰 민간 은행의 은행장 이름은 우리들도 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무 슨 일이 있어났기에 런던의 일류 시민 중 한 사람이 이토록 가엾은 곤경에 빠졌을까? 우리들은 호기 심에 가득 찬 채, 홀더 씨가 자세한 사정을 얘기하기를 기다렸다. "한 시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경감이 당신의 협조를 구하라고 가르쳐 주기에 곧 이곳으로 달려왔지요. 베이커 가까지는 지하철로 왔지만, 거기서부터는 눈 때문에 마차도 느려서 내 발로 달려 왔습니다. 평소에 운동을 하지 않고 있었더니 이렇게 숨이 끊어질 지경입니다. 이제 겨후 기분이 나 아진 것 같으니, 될 수 있는 대로 간단 명료하게 사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신도 잘 아시겠지만, 은행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가는 데에는 거래ㅔ처와 예금인의 수효를 늘리는 것에 못지 않게 자금 을 유리하게 투자할 곳을 찾는 일도 중요합니다. 가장 유리한 자금 지출 방식의 하나로 담보가 확실 한 겨우 대부를 해주는 형식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지난 몇 년 동안 이 방면에 많은 거래를 해왔고, 특히 여러 귀족들을 상대로 그림, 장서, 식기들을 담보로 하여 많은 돈을 융자해 주었습니다. 어제 아침 은행의 내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사무원 하나가 명함을 한 장 들고 들어왔습니다. 난 그 성함 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 성함은 다름아니라-아마도 당신들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누구에게나 귀에 익 은 이름이라 해두는 편이 낫겠지요-영국에서 가장 높으시고 가장 고귀한 성함을 가진 사람 중 한 분 이었습니다. 나는 그 영광에 몹시 황송스러웠는데, 그분은 들어오시자마자 달갑지 않은 일을 빨리 끝 맺고 싶어 하는 모습이었으며, 곧바로 용건에 들어갔습니다. '홀더 씨, 당신은 돈을 융자해 준다고 들었는데요, 맞습니까?' 나는 대답했습니다. '우리들은 담보만 좋으면 융자해 드리고 있습니다.' '5만 파운드가 지금 당장 필요해요. 물론 작은 금액이기도 하고, 또 그 10배라도 친구에게서 빌릴 수 는 있지만, 사무적으로 처리하고 싶고, 또 나 혼자 해결하고 싶소. 당신도 잘 이해하시겠지만, 나 같 은 지위에 있는 사람으로서 남에게 신세를 진다는 것은 현명한 일이 못되니까 말이오.' '실레입니다만, 얼마 동안이나 필요하신지요?' '다음 월요일에 거래액이 들어오게 되어 있으니까, 당신에게서 빌린 원금에 이자를 덧붙여서 틀림없 이 지불하겠소.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돈이 지금 당장 필요하다는 것이오.' '제 개인이 가진 돈에서 융자해 들리 수 있다면 기쁘겠습니다만, 워낙 큰돈이라서요. 그런데 은행 명 의로 하신다면 공동 경영자에 대한 의므로서, 설사 어떤 분의 경우라도 모든 사무적인 절차를 밟으셔 야 되겠는데요.' '나로서도 그렇게 하는 편이 바람직하오.' 그분은 그렇게 말하시고서 의자 옆에 놓아 둔 검은 모로코 가죽을 댄 내모진 상자를 열면서 덧 붙이 셨습니다. '에메랄드 왕관에 대해서는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하오만.' '영국 제국의 국보 중에서도 가장 귀중한 것 중 하나라고 들었습니다.' '바로 그렇소.' 그분이 상자를 여셔서 들여다보니 부드러운 장밋빛 빌로드를 깐 위에 훌륭한 왕관이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습니다. '커다란 에메랄드가 39개나 붙어 있고, 황금 조각도 헤아릴 수 없이 값진 것이오. 이 왕관의 값은 가 장 헐값으로 따져도 내가 요구한 금액의 곱절은 될 것이오. 이것을 담보로 맡길 작정이오.' 나는 얼떨떨하여 왕관과 고귀한 손님을 번갈아 보았습니다. 그분이 내게 묻더군요. '그 값에 의심이 가시오?' '천만의 말씁이니다. 저는 다만.....' '이것을 맡는 일이 정당한가 어떤가 망설이는 모양이군. 그 일이라면 안심해도 좋소. 나흘 뒤에 돈을 가지고 틀림없이 찾으러 올 테니까, 확신이 없다면 어찌 이런 짓을 하겠소. 그렇지 않으면, 담보로서 부족하단 말이오?' '아니, 충분합니다.' '홀더 씨, 당신의 소문을 듣고 깊이 신뢰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부탁을 한다는 걸 알아주시오. 당신 이라면 비밀을 지켜 주고, 무엇보다도 이 왕관을 보관하는 데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간직해 주리라고 믿고 있소. 말할 나위도 없이, 이 왕관에 조금이라도 손상이 간다면 백성들 사이에 큰 소문이 퍼질 것이오. 그렇게 되면 분실한 거나 다름없이 중대한 일이 될거요. 왜냐하면 전세계를 찾아보아도 이것 과 견줄 만한 에메랄드 없으니까, 바꿔 끼운다는 건 불가능하단 말이오. 하지만 당신이라면 충분히 믿고 맡길 수 있소. 다음 월요일 아침에는 내가 직접 찾으러 올 작정이오.' 그분은 빨리 돌아가고 싶으신 모양이었으므로, 나는 그 이상 아무 말씀도 드리지 않고, 출납 담당 직 원을 불러서 1천 파운드짜리 지폐 50장을 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돌아가신 뒤에 책상 위 에 있는 왕관을 보고 있노라니, 너무나 책임이 중대했으므로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국 보이기 때문에 만일의 경우 불행한 사태라도 일어나면, 복잡한 문제를 불러일으키게 될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으니까요. 나는 그러한 귀중품을 맡은 것을 그때부터 후회하기 시작했지요. 하지만 돌이키 기에는 너무 늦은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의 개인 금고 속에 넣어 버리고 나는 다시금 사무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저녁때가 되자, 그런 귀중품을 사무실에 두고 가는 것은 분별없는 짓이라고 느껴지더 군요. 은행의 금고가 털린 일이 전에도 있었으니까, 내 금고만이 예외라고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만일에 그런 일이라도 생긴다면 얼마나 난처한 입장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며칠 간만의 일이니까 그 상자를 들고 다니면서 한시라도 내 몸에서 떠나지 않게 하리라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작정했으므로, 나는 마차를 불러 상자를 들고 스트레덤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2층으로 들고 가서 화장실의 장롱에 넣고 열쇠를 채울 때까지 정말로 숨이 막힐 지경이었습니다. 여기서 자세한 상황을 알려 드리는 뜻에 서 우리 집안 사람들에 대해서 한마디하지요. 마부와 사환은 집 밖에서 자기 때문에 이들은 염두에 두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여러 해 동안 일해 온 세 명의 하녀들도 절대로 신임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 다. 또 한 사람, 루시라는 하녀가 있는데, 들어온 지 몇 개월밖에 안됩니다. 그러나 훌륭한 추천장을 갔고 왔고, 언제나 나무랄 데 없이 일해줍니다. 다만 대단히 아름다운 처녀여서, 그녀에게 마음이 끌 린 남자들이 이따금 집 그넟를 서성거릴 때가 있었지요. 이 점이 옥의 티라고 할 수 있지만, 우리 들 에게는 어디로 보나 아주 좋은 처녀라고 생각됩니다. 고용인에 대해서는 이 정도 입니다. 가족은 아 주 적은 식구니까 얘기하기도 간단합니다. 나는 아내를 잃고 혈육이라고는 아서라는 아들이 있을 뿐 입니다. 그런데, 홈즈 씨, 이 녀석이 아비를 닮지 않고 무어라고 말할 수 없이 한심스러운 놈입니다. 물론 모두 내 잘못이겠지요. 내가 지나치게 응석을 받아 주었기 때문이라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게 틀림없어요. 아내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나는 사랑할 건 그 녀석 하나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은 적은 없었지요. 좀더 엄하게 하는 편이 서로에게 좋았을 테지만, 나로서는 잘 되라고 한 일이었습니다. 내가 자식에게 내 사업을 물려주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 녀석은 실질적인 일에는 맞지 태어난 모양입니다. 난폭하고, 기분이 내키는 대로 행동하고....사실, 그 녀석을 믿고 사업을 맡길 수는 없었습니다. 그애는 어느 귀족 클럽의 회원이 되었는데, 남들과 금 방 사귀는 성격이어서, 돈도 많고 또 헤프게 쓰는 패거리들과 당장 어울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카 드 놀이에 빠지거나 경마에 돈을 낭비하게 되었고, 마침내는 노름빚을 갚기 위해서 나를 찾아와 용돈 을 미리 달라고 하기까지 했습니다. 아들도 그러한 위험한 교제에서 발을 빼려고 몇 번이나 시도하긴 했습니다만, 그때마다 친구인 조지 번웰 경에 대한 매력에 끌려서 원상태로 되돌아 버리곤 했습니다. 사실 조지 번웰 경쯤 되는 남자라면 자식놈이 끌려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습니다. 자식놈은 그 사람 을 때때로 집에 데리고 왔습니다만, 나까지도 그의 매력 있는 태도에는 끌리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 으니까요. 아서보다도 나이가 위였고, 세상 물정에 밝은 청년이며, 가보지 않은 곳이라고는 없고, 보 지 않은 것도 없는 사람이며, 말재주가 비상하고, 게다가 보기 드문 호남이었습니다. 그러자 조지 경 을 멀리하고서 차분히 생각해 보면, 그 비웃는 듯한 말투라든가, 이따금 보이는 빈틈없는 눈초리 등 은 조금도 믿을 수 없는 인물임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나뿐 이 아니라 메어리도 똑같았습니다-그애는 사람의 성격을 똑바로 보는 통찰력을 가지고 있지요. 이젠 메어리에 관해서 이야기하면 됩니다. 그애는 내 조카딸입니다. 5년 전에 형이 그애 하나를 남기고 세 상을 떠난 뒤부터 내가 양녀로 삼아 친딸처럼 보살펴 주고 있습니다. 메어리는 우리집의 태양입니다. 성격도 좋고, 다정하고 아름다우며, 집안일을 훌륭하게 꾸려 나가지요. 그러면서도 정숙하고 조용하 고, 순한 것이 정말로 기특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애는 내 오른팔입니다. 메어리가 없었더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을 겁니다. 다만 한 가지, 메어리가 나의 의사를 거역한 일이 있습니다. 자 식놈이 메어리를 진심으로 사랑하기에 두 번이나 결혼해 달라고 사정했지만, 메어리는 두 번 모두 거 절했습니다. 자식놈을 올바른 길로 이끌 수 있는 사람은 메어리밖에 없습니다. 그애들이 결혼했더라 면 자식놈의 생활은 아주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젠 늦었습니다. 영원히 돌이킬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그건 그렇고, 홈즈 씨, 우리 집안의 이야기는 모조리 말씀드렸으니 이번에는 그 사 건 이야기를 하지요. 어젯밤 저녁식사 뒤, 나는 거실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아서와 메리에게, 아침에 은행에서 있었던 이야기와, 그 왕간을 우리 집에 보관하고 있다는 것을 그분의 성함만을 덮어 두고 들려주었습니다. 커피를 날라온 루시가 방에서 물러난 것은 틀림없었습니다. 방문이 닫혀 있었는지는 확실히 않습니다만, 메어리도 아서도 대단히 흥미를 느낀 모양이었고, 또 그 유명한 오아관을 보고 싶어했지만, 나는 그런 짓은 하지 않는 편이 좋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서가 물었습니다. '어디에 두셨습니까?' '내 장롱이다.' '그렇다면 부디 오늘밤 도둑이 들지 않았으면 좋겠는데요.' '자물쇠를 채워 두었다.' '아아, 그 장롱이라면 어떤 열쇠라도 맞아요. 제가 어렸을 때 벽장 열쇠로 연 일이 있거든요.' 아서의 엉터리 같은 말을 자주 들어 왔기 때문에, 나는 그다지 마음에 두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애 는 내 방까지 따라와 몹시 조심스런 표정으로 말하더군요. '저어, 아버지 2백 파운드만 미리 주실 수 있겠어요?' '안돼. 돈에 대해선 네 요구를 너무 받아 주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너무나 많이 베풀어 주셨습니다. 하지만 이 돈만은 꼭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며 두 번 다시 클럽에 얼굴을 내밀 수 없게 돼요.' 나는 큰소리로 말해 주었습니다. '거 참 잘됐구나.' '그건 그렇습니다만, 제가 클럽에 쫓겨나게 되면 아버지의 체면도 곤란해지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런 모욕은 견딜 수가 없어요. 그 돈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마련해야 되니까, 아버지께서 주시지 않는 다면 딴 곳에 알아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 달에 들어서 벌써 세번이나 졸랐기 때문에, 나는 몹시 화가 치밀어 호통을 쳤습니다. '한 푼도 줄 수 없다!' 그러자 자식놈은 머리를 숙이고는 한마디 말도 없이 방을 나가 버렸습니다. 자식놈이 나가 버리자, 나는 장롱을 열고 왕관이 무사한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금 장롱에 넣고 자물쇠를 채웠습니다. 그리고 온 집안의 문단속을 확인하고 다녔습니다. 평소에는 메어리가 맡고 있는 일이었는데, 어젯밤에는 내 가 직접 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았습니다. 계단을 내려갔을때 홀 옆의 창문 곁에 메어리가 있어서 내가 다가가자, 그애는 창문을 닫고 빗장을 걸더군요. 그리고는 어쩐지 불안한 기색으로 말했습니다. '아버지, 하녀 루시에게 오늘밤 외출을 허락하셨나요?' '아니, 그러지 않았는데.' '루시가 방금 뒷문으로 들어왔어요. 누구를 만나러 옆문까지 갔다 온 모양인데, 그런 짓은 안심이 안 되니까 못하게 해야 될 거예요.' '내일 아침에 네가 잘 타일러라. 네가 싫으면 내가 말하지. 문단속은 완전하겠지?' '염려 마세요, 아버지.' '그럼 잘 가거라.' 나는 메어리에게 키스를 해주고 침실로 돌아와 곧바로 잠들었습니다. 홈즈 씨, 이 사건에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을 것 같은 일은 모조리 말씀드린 셈인데, 그래도 확실치 않은 점이 있으면 서슴지 마시고 물어보아 주십시오." "아닙니다. 아주 잘 들었습니다." "이제부터 하는 이야기는 더 자세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나는 평소부터 잠을 깊이 자지 못하는 버 릇이 있는데, 어젯밤에는 걱정되는 일이 있기 때문에 한결 더 잠을 설쳤습니다. 새벽 2시경이 되어, 집안에서 무슨 소리가 나서 잠을 깼습니다. 완전히 깻을 때는 이미 그쳐 있었지만, 어딘가의 창문이 짝 닫힌 것 같았습니다. 나는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았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옆방에서 몰래 걸어다 니는 소리가 또렷이 들려와 섬뜩했지요. 나는 겁이 나서 가슴을 두근거리며, 침대에서 살며시 내려와 화장실의 문틈으로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리고는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아서! 이 나쁜 녀석 같으니라고! 이 도둑놈아! 어떻게 감히 그 왕관에 손을 댈 수 있단 말이냐!' 가스등은 아까 내가 줄여 놓은 그대로였고, 자식놈은 바지에다 셔츠 차림으로 왕관을 손에 들고 불빛 옆에 서 있었습니다. 힘껏 왕관을 구부리려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자식놈은 내 소리에 놀라 왕곤을 떨어 뜨리고 새파랗게 질려 있었습니다. 나는 왕관을 주워 들고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러자, 황 금판의 모서리와 거기에 끼워진 세 개의 에메랄드가 함께 사라지고 없느 것이었습니다. '이 나쁜 녀석아! 네가 망가뜨렸구나! 아비의 명예를 더럽혔구나! 훔친 보석은 어디 있느냐!' 그러자 자식놈은 큰 소리로 대꾸하더군요. '제가 훔쳤다고요?' 나는 자식놈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면서 고함을 질렀습니다. '그렇고말고, 이 도둑놈아!' '아무것도 없어진 게 없어요. 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 '세 개가 없어졌잔아! 어디에 있는지 네가 알고 있겠지? 도둑질만으로는 부족해서 거짓말까지 하고 싶느냐? 다른 모퉁이도 망가뜨려 보석을 빼내려고 했잖아!' '이렇게까지 수모를 당하고는 참을 수 없습니다. 이 일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않겠어요. 날이 새면 집을 나가서 살겠습니다!' 나는 슬픔과 노여움으로 미치광이처럼 소리질렀습니다. '네가 갈 곳은 경찰서야! 이 문제를 철저하게 조사시키겠다!' 자식놈은 평소에 본 적이 없는 격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제게서 이 이상 알아내지는 못할 겁니다. 경찰을 부르시고 싶으면 실컷 부르세요!' 내가 화를 내고 소리를 질렀으므로 집안 식구들 모두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맨 먼저 방으로 달려온 것은 메어리였습니다. 왕관과 아서의 얼굴을 보더니 모든 것을 알아차리고는, '앗!'하고 소리를 지르 더니 그만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져 버렸습니다. 나는 하녀를 경찰로 보내어, 당장에 경찰에 조사 를 맡겼습니다. 경감이 순경을 데리고 왔을 때, 그때까지 팔짱을 끼고 시무룩하게 서 있던 자식놈이 내게 묻더군요. '저를 도둑으로 고발할 생각입니까?' 그래서 나는 대답했습니다. '망가진 왕관은 국보이기 때문에, 이 사건은 이미 사사로운 일이 아니라 공적인 문제가 된거다. 모든 것을 법률에 맡기겠다.' '당장 저를 체포시키지만 말아 주세요 5분만 밖으로 내보내 주시면, 저뿐만 아니라 아버지에게도 이 롭게 될 겁니다.' '달아날 생각이냐? 아니면, 훔친 것을 감추겠다는 게냐? 너 때문에 나 개인의 명에뿐만 아니라 아주 지위가 높은 분의 명에가 위험받고 있는 거야. 이 일을 알게 되면 온 나라가 떠들썩해지겠지. 제발 마음을 고쳐 먹거라. 왕관에서 뽑아낸 보석을 어떻게 했느냐? 그 말만 해주면 모든 것을 피할 수 있 을지도 모른다. 너는 훔치는 현장을 들켰으니, 자백했다고 해서 그 죄가 무거워 지는 건 아니니까. 에메랄드가 있는 곳을 밝히고 스스로 속죄를 한다면 모든 것을 용서해 주마.' '저는 용서 같은 건 받고 싶지 않습니다.' 자식놈은 이렇게 대답하고는 비웃으며 얼굴을 돌려버리더군요. 그렇게 고집을 부린다면 무슨 말을 해 도 소용이 없다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취할 길은 하나밖에 없었지요. 나는 경감을 불러 아들을 넘겨 주었습니다. 곧 조사가 시작되어 아들의 몸뿐 아니라, 방과 그 밖에 보석을 감출 만한 장소는 하나도 빼놓지 않고 뒤졌습니다. 그러나 보석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고, 위협을 해도 그 바보 녀석은 고집 을 부리고 입을 열지 않는 겁니다. 오늘 아침 자식놈은 유치장으로 끌려갔습니다. 나는 경찰에서 수 속을 마치고 당신의 힘으로 해결해 주십사 하고 급히 달려온 겁니다. 경찰은 현재로서는 아무런 해결 책이 없다고 말하더군요. 비용 문제는 얼마든지 써도 좋습니다. 이미 1천 파운드의 현상금까지 내걸 었습니다. 아아, 정말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명예와 보석과 아들을 하룻밤 사이에 잃어버렸습 니다. 아아, 이 일을 어쩌하면 좋을까요?" 홀더 씨는 머리를 두 손으로 부둥켜안고, 몸을 앞뒤로 흔들면서 슬픔으로 말이 나오지 않는 어린 아 이처럼 끙끙거리고 있었다. 홈즈는 눈썹을 찌푸리고 난로불을 지켜보며 잠시 묵묵히 앉아 있다가, 이 윽고 물었다. "댁에는 손님이 많이 오십니까?" "우리 은행의 공동 경영자가 가족 동반으로 오는 것고, 이따금 아서의 친구가 올 뿐입니다. 조지 경 은 최근 두세 번 다녀갔습니다. 그 정도이고, 그 밖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사교적인 교제에 자주 나가십니까?" "아서는 자주 나갑니다. 메어리와 나는 집에 있지요. 두 사람 모두 나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요." "젊은 아가씨로서는 드문 일인데요." "그애는 정숙한 성품이라서요. 게다가, 이제는 어리지도 않습니다. 스물네 살이니까요." "말씀을 들어 뵌, 메어리 양은 이번 일에 꽤 충격이 컸던가 봅니다." "대단했지요! 나보다도 훨씬 심했습니다." "아드님의 소행이란 것을 두 분께서는 확신하십니까?" "왕관을 들고 있는 것을 내 눈으로 보았으니까 의심할 여지가 없지 않습니까?" "그것만으로는 결정적인 증거라고 할 수 없지요. 왕관의 나머지 부분은 망가지지 않았습니까?" "약간은 비뚤어져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아드님이 그것을 똑바로 고쳐 놓으려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들지 않으십니까?" "친절은 대단히 감사합니다. 아들과 나를 위해 되도록 호의적으로 해석해 주시는 거겠지요. 그러나 그건 다소 억지입니다. 도대체 자식놈은 거기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나쁜 짓을 하고 있지 않았 다면, 왜 그렇게 말하지 않을까요?" "옳은 말씀입니다. 그러나 나쁜 짓을 하고 있었단면 오히려 거짓말을 생각해 낼 것이라고도 할 수 있 지 않을까요? 아드님이 잠자코 있었던 것은 이 두가지로 해석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건에는 이상한 점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당신이 잠을 깬 소리를 경찰에서는 뭐라고 하던가요?" "아서가 자기 침실의 문을 닫은 소리라고 하더군요." "그럴듯한 얘기군요. 커다란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집안 사람들의 잠을 깨우려고 일부러 문을 닫았다 는 셈이로군요. 그렇다면 보석이 보이지 않는 일에 대해서 경찰에서는 뭐라고 하던가요?" "마룻바닥을 두들겨 보거나 가구 등을 바늘로 후벼 보며, 아직도 찾고 있답니다." "집밖에도 찾아보려고 하던가요?" "예, 몹시 열을 올렸지요. 뜰은 이미 구석구석까지 조사가 끝났습니다." "그런데, 홀더 씨, 이 사건은 당신이나 경찰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뿌리가 깊다는 것을 이제 슬 슬 아실 때가 되셨을 텐데요? 당신은 간단한 사건이라고 생각하시는데, 내게는 그지없이 복잡한 것으 로 보입니다. 당신의 말씀대로라면 결과가 어떻게 되는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드님은 자기의 침실을 빠져나와서 대단한 위험을 무릅쓰고, 당신의 화장실로 들어가 장롱을 열고 왕관을 꺼내어 힘 을 다하여 일부분을 빼내고는, 어딘가 다른 장소로 가서 서른아홉 개 중에서 세 개의 보석만을 숨겼 습니다. 그것도 교묘하게 들키지 않을 장소에 말입니다. 그리고서 남은 서른여섯개를 가지고 들킬 위 험이 가장 큰 화장실로 되돌아온 셈이군요. 그럼 물어보겠습니다만, 이런 이론이 성립될 수 있을까요 ?" "그러나 그밖에 어떻게 해석할 수 있습니까? 자식놈이 그런 짓을 한 이유가 떳떳하다면 어째서 해명 을 하지 않을까요?" "그것을 밝히는 것이 우리들의 일입니다. 그러니까, 홀더 씨, 괜찮으시다면 나와 함께 스트레덤의 댁 으로 가서, 한 시간쯤 좀더 자세하게 조사해 보도록 하시지요." 홈즈는 내게 함께 가자고 권했고, 나도 얘기를 듣는 동안에 깊은 호기심과동정심이 일어나 있었다. 사실 나는 홀더 씨처럼 그 아들의 소행이라고 생각했지만, 한편 홈즈의 판 단도 전적으로 믿고 있는 터여서, 홈즈가 홀더 씨나 경찰의 설명에 만족하지 않고 있다면 뭔가 희망 을 가질 여지가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뜻밖의 범인> 남쪽의 교외로 나가는 도중, 홈즈는 거의 한마디도 하지 않고 가슴에 턱을 묻고 모자를 깊숙이 눌러 쓰고서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홀더 씨는 홈즈에게서 한 가닥 희망을 발견하고 기운을 되찾은 것 같았고, 나에게 자기의 사업에 관한 일 등을 두서없이 늘어놓았다. 기차를 잠깐 탄다음, 조금 더 걸 어서 이 대은행 가의 검소한 집에 도착했다. 홀더 씨의 저택은 도로변에서 약간 들어가 있었다. 하얀 석조 건물로 상당히 큰 집이었다. 두 줄기의 마차길이 눈에 넢인 잔디를 끼고서 현관에 딸린 커다란 두 개의 철문으로 통하고 있었다. 오른쪽에 조그마한 나무로 된 출입문이 있었는데, 거기엔 말쑥한 두 생울타리 사이로 좁은 오솔길이 나 있어, 주방의 뒷문으로 드나드는 장사꾼들의 통로로 되어 있었 다. 왼쪽의 오솔길은 마구간으로 통해 있었는데, 이것은 저택의 부지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왕래는 적었지만 외부 사람들의 통행로였다. 홈즈는 우리들을 현관 앞에 남겨 두고는 집 정면을 가로 질러 주방 쪽의 오솔길로 내려가서, 뒤뜰을 한바퀴 돌아 마구간의 오솔길 쪽으로 걸어갔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기 때문에, 홀더 씨와 나는 식당으로 들어가 난롯가에서 홈즈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말없이 앉아 있는데, 문이 열리더니 젊은 여성 한 사람이 들어왔다. 중키보다 약간 크고 날씬한 체격 으로, 검은 머리와 눈은 창백한 안색 때문에 더 한층 두드러지게 검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녀의 창 백한 얼굴색은 죽은 사람 같았고, 입술까지 핏기가 없었는데, 눈은 울어서 빨갛게 되어 있었다. 이 여성이 말없이 방안에 들어오자, 나는 몹시 딱한 생각이 들었다. 똑똑한 아가씨 같아 보였기 때문에, 그 안타까운 모습이 더욱 두드러져 있었다. 그 여성은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똑바로 홀더 씨 옆으 로 가서 그의 머리에 손을 두르고 정말 여자다운 모습으로 껴안았다. 홀더 씨의 조카딸이며 양녀인 메어리인 모양이었다. 그녀가 물었다. "아버지, 아서를 석방하도록 말씀해 주셨겠죠?" "아니다, 얘야. 사건을 철저하게 조사해 보아야 해." "하지만 아서는 정말로 결백해요. 여자의 직감이라는 걸 아시겠죠? 아서는 나쁜 짓 같은 건 하지 않 않았는데도 그렇게 심하게 하시면 반드시 후회하실 거예요." "결백하면 어째서 잠자코 있을까?" "그건 알 수 없죠. 아버지께서 의심을 하셨으니 몹시 화가 난 게 아닐까요?" "왕관을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내 눈으로 보았으니까, 의심하지 않을 수 없잖니." "아니에요, 잠깐 손에 들어 보려고 했을 뿐이에요. 아버지, 아서는 결백해요. 제발 믿어 주세요. 이 번 사건은 그만해 두시고, 아무 말씀도 이 이상 하지 마세요. 아서가 형무소에 들어가디니, 생각만 해도 가슴 아픈 일이에요." "아니다, 보석을 찾을 때까지는 절대로 그만두지 않을 테다. 너는 아서 입장만 생각하고 나의 괴로운 입장은 모르고 있어. 이 사건을 덮어두기는커녕 더 자세히 조사하기 위하여 런던에서 일부러 사람을 모셔왔다." 메어리는 뒤돌아서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분이신가요?" "아니, 이분의 친구이시다. 혼자 조사하고 싶다며 마구간의 오솔길 쪽에 가셨다." 메어리는 짙은 눈썹을 치켜 올렸다. "마구간 쪽 오솔길이라요? 그런 곳에 뭐가 있다는 것일까요?" 메어리는 홈즈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이렇게 말을 걸었다. "저어, 선생님께서는 아서가 결백하다는 것을 꼭 증명해 주시겠죠?" 홈즈는 구두에 묻은 눈을 털려고 신발닦개가 있는 곳으로 오면서 대답했다. "나도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당신의 힘을 빌려서 증명도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메어 리 홀더 양이로군요. 한두 가지 질문을 하고 싶은데요." "예, 그러세요. 이 무서운 사건의 해결에 도움이 된다면 무엇이든지요." "어젯밤에 당신은 아무 소리도 못 들었나요?" "예, 아버지가 큰소리를 지르실 때까지 아무것도 듣지 못했어요. 저는 그 소리를 듣고 바로 내려 갔 어요." "어젯밤에 당신이 창문이나 문을 닫았나요?" "예." "오늘 아침에도 모두 닫혀 있었습니까?" "예." "이 댁에 애인이 있는 하녀가 있다지요? 당신은 어젯밤에, 그 하녀가 애인을 만나러 밖으로 나갔다고 아버님께 말씀드렸다고요?" "그렇습니다. 게다가 거실에 커피를 나른 것도 그 하녀였으니까, 아버지가 왕관 이야기를 하신 것을 들었는지도 모르죠." "그렇군요. 그 하녀가 애인에게 그 얘기를 하려나가, 둘이서 도둑질을 꾸몄다고 얘기하려는 것이 지 요?" 홀더 씨는 초조한 듯이 외쳤다. "그러나 그런 모호한 추측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아서가 왕관을 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말씀드 리지 않았습니까." "잠깐 기다려 주십시오, 홀더 씨. 얘기를 되돌려야 합니다. 그 하녀가 말입니다, 홀더 양, 부엌 문으 로 돌아오는 것을 보셨겠지요?" "예, 부엌 문이 잠겨 있나 살피러 갔다가, 하녀가 들어오는 것과 마주쳤습니다. 어둠 속에 남자가 서 있는 것도 보였습니다." "아는 사람입니까?" "예, 알고 있어요. 야채를 가지고 오는 채소 장수에요. 이름은 프로스퍼라고 해요." "그 사람이 서 있었던 곳은 부엌문의 왼쪽, 다시 말해 오솔길을 돌아와서 샛문을 지나온 곳이군요." "예, 그래요." "그리고 한쪽 다리가 나무 의족이지요?" 표정이 풍부한 메어리의 검은 눈에 두려움에 가까운 빛이 떠올랐다. "어머나, 마치 마법사 같은 분이시네요! 어떻게 그런 걸 아셨나요?" 메어리는 미소지었다. 하지만 홈즈의 여위고 진지한 얼굴에는 그것에 대답하는 웃음이 떠오르지 않았 다. "이번에는 2층을 보고 싶은데요. 그리고 집 밖에도 한 번 더 조사를 하고 싶습니다. 2층으로 올라가 기 전에 아래층 창문을 보아 두는 게 좋을 것 같군요." 홈즈는 창문 하나하나를 재빨리 돌아보고는, 마구간 오솔길이 내다보이는 큰 창문 앞에 이르자 걸음 을 멈추었다. 그는 창문을 열고 성능이 좋은 그의 확대경으로 창문턱을 세밀하게 조사했다. 이윽고 그는 말했다. "그럼 2층으로 가지요." 홀더 씨의 화장실은 간소하게 꾸며진 작은 방으로, 회색 양탄자, 커다란 사무용 책상, 긴 거울 등이 배치되어 있었다. "이걸 여는 데 사용하는 열쇠는 어떤 겁니까?" 홈즈는 먼저 장롱에 다가가서 자물쇠를 자세히 살펴보며 물었다. "자식놈이 말했던 열쇠입니다-그러니까, 장롱 열쇠이지요." "지금 가지고 계십니까?" "화장대 위에 있는 게 그겁니다." 홈즈는 그 열쇠로 장롱을 열었다. "소리가 나지 않는 자물쇠로군요. 당신이 잠을깨지 않으신 게 당연합니다. 이것이 왕관의 상처로군요 . 잠깐 보겠습니다." 홈즈는 상자를 열고 왕관을 꺼내어서 테이블 위에 놓았다. 귀금속 공예의 걸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훌륭한 것으로서, 서른여섯 개의 보석도 일찍이 보지 못한 가장 멋진 것들이었다. 그 왕관의 한쪽에 세 개의 보석이 달려 있었던 모서리는 뜯겨지고 금이 가 있었다. 홈즈가 말했다. "그런데, 홀더 씨, 이 모서리는 없어진 모서리와 한 쌍을 이루고 있는 셈입니다. 이걸 뗴어 주셨으면 좋겠는데요." 홀더 씨는 겁에 질려 망설였다. "당치도 않을 일입니다." "그러시다면 내가 해보지요." 홈즈는 힘을 주었지만 왕관은 까닥도 않았다. 홈즈가 말했다. "약간 굽은 듯합니다만 내 손가락의 힘이 남보다는 강한데, 이걸 떼어내는 건 여간해서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보통 사람으로선 도저히 할 수가 없을 겁니다. 그런데 홀더 씨, 내가 만일 이것을 망가뜨 린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 같습니까? 권총을 쏘는 것과 같은 큰소리가 나겠죠? 침대에서 거고작 몇 m떨어진 곳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데도, 그런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고 하시느는 겁니까?" "어떻게 생각해야 좋을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 "아니오, 이제 점점 감이 잡혀 가고 있습니다. 아가씨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실은 저도 아버지와 같이 어떻게 생각해야 좋을지를 모르겠어요." "아서 씨를 당신이 보셨을 때, 구두도 슬리퍼도 신지 않으셨다지요?" "바지와 셔츠만 걸치고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번 조사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운이 좋았습니다. 이 사건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그건 전적으로 우리의 잘못입니다. 홀더 씨, 허락해 주신다면 바깥 조사를 한 번 더 하고 싶은데요." 홈즈는 불필요한 발자국은 조사하는 데 방해가 된다며, 혼자 나가 버렸다. 그리고는 한 시간 남짓 해 서 구두가 눈투성이가 되어 돌아왔는데, 그의 얼굴에서는 역시 아무것도 알아볼 수 없었다. "홀더 씨, 보아야 할 건 모조리 본 것 가습니다. 이젠 집으로 돌아가서 일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 다." "하지만 보석은 어떻게 됩니까? 홈즈 씨, 보석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건 모릅니다." 홀더 씨는 손을 쥐어뜯으며 외쳤다. "다시는 보석을 찾을 수 없겠구나! 그리고 아들놈은 어떻게 되지요? 희망이 있을까요?" "내 의견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간밤에 우리 집에서 일어난 그 끔직한 일은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내일 아침, 9시에서 10시 사이에 베이커 가에 있는 우리 집에 오시면 좀더 확실한 말씀을 드릴 수가 있겠습니다. 보석을 되찾는 조건으로 당신을 대리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또한 거기에 드는 경비는 얼마든지 써도 괜찮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보석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전재산을 내놔도 좋습니다." "대단히 고맙습니다. 내일 아침까지 잘 조사해 놓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혹시 저녁에 한 번 더 여길 찾아뵚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홈즈가 어떤 결론을 내렸는지 나는 어슴푸레게나마 짐작할 수 없었으나, 이미 결론을 내린 것은 분명 했다. 돌아가는 도중, 나는 몇 번이나 속을 떠보았으나, 그때마다 홈즈는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기 때문에, 나는 끝내 단념하고 말았다. 집으로 돌아온 것은 3시 전이었다. 홈즈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 더니 2~3분 뒤에 부랑자 차림을 하고 나왔다. 번들번들 빛나는 싸구려 옷의 깃을 세우고, 목에다 빨 간 스카프를 매고, 낡아빠진 구두를 신고 있었다. 어느 모로 보나 틀림없는 부랑자 차림이었다. 정말 로 완벽한 변장 솜씨였다. 홈즈는 거울을 보면서 말했다. "이 정도면 되겠지. 와트슨, 자네도 함께 가고 싶겠지? 그러나 나 혼자 가는 편이 좋을 것 같아. 같 아. 제대로 이 사건을 좇고 있는 건지, 여우에게 홀려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건 곧 알게 되겠지. 두 세 시간이면 돌아올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찬창에 있는 커다란 고깃덩어리에서 조각을 잘라 내더니, 빵 사이에 끼워 넣고 샌드위치를 만 들어, 그 변변치 않은 도시락을 주머니 속에 쑤셔넣고는 밖으로 나갔다. 홈즈가 돌아온 것은 내가 막 차를 마시고 나올 때였는데 매우 기분이 좋아 보였고, 낡은 고무 장화 한 짝을 흔들고 있었다. 그는 장화를 한구석에 내팽개치고는 차를 한잔 따라 마셨다. "지나가는 길에 잠시 들렸을 뿐이야." "어디로?" "응, 웨스트 엔드의 건너편이야. 돌아올 때까진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네. 늦어지면 기다리지 말고 먼 저 자게."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 "그저 그래. 자네와 헤어져서 스트레덤에 갔다 왔는데, 그 집엔 들르지 않았어. 꽤 재미있는 사건이 야. 이걸 그냥 놓쳐 버릴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네. 지금 여기서 노닥거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이런 꼴 사나운 옷은 벗어 버리고 본래의 멋진 나 자신으로 돌아가야겠군." 그의 태도를 보니, 홈즈가 말하는 것보다는 훨씬 만족하고 있음을 알았다. 눈은 빛나고 누르스름한 뺨에는 핏기까지 떠오르고 있었다. 아래츠응로 달려 내려가더니, 이윽고 현관문이 힘차게 닫히는 소 리가 들렸다. 다시금 그의 장기인 수사에 나선 것이다. 나는 자정이 넘도록 기다렸으나, 홈즈가 돌아 오는 기색이 없었으므로 먼저 잠자리에 들었다. 수사에 열중하면 며칠이고 계속해서 집을 비우는 것 은 예삿일이었기 때문에, 늦게 돌아오는 것 쯤에는 놀라지도 않았다. 아침식사를 하러 식당에 내려가 보았더니, 홈즈가 어느 사이에 돌아왔는지 한 손에 커피 잔을 들고, 한 손에는 신문을 들고서 활기찬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미안하지만 먼저 식사하고 있었네, 와트슨. 홀더 씨가 아침 일찍 오기로 되어 있어서. 벌써 9시가 지났군. 슬슬 나타날 때가 되었네. 때마침 종이 올리는군." 생각한 대로 홀더 씨였다. 놀랍게도 그는 사람이 완전히 사람이 완전히 달라진 것처럼 보였다. 통통 하던 얼굴은 홀쭉해지고, 머리카락도 내 생각 탓인지는 몰라도 조금 더 하애진 것 같았다. 어제 아침 에 미친 듯이 말하던 것과는 반대로 지쳐서 축 늘어진 모습으로 돌아왔는데, 한결 더 딱하게 느껴졌 다. 홀더 씨는 내가 권한 팔걸이 의자에 털썩 주저 앉으며 말했다. "무슨 운명으로 이런 끔찍한 일을 당할까요? 이틀 전까지는 이 세상에 아무런 근심 걱정도 없었고, 행복하고 평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게 지금은 늙은 몸으로 수치를 안고서 홀로 살게 되었 습니다. 슬픈 일은 한꺼번에 닥치는 모양입니다. 조카딸 메어리까지 나를 버리고 떠나 버렸습니다." "떠나다니요?" "그렇게 되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메어리의 방에 가보았더니,침대에는 잠을 잔 흔적도 없고 방은 텅 비어 있으며, 홀의 테이블 위에 내 앞으로 된 편지가 있었습니다. 어젯밤 나는 화가 나서가 아니라, 너무도 슬픈 나머지 메어리에게, '만일에 네가 내 아들과 결혼해 주었더라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 았을 거야.'하고 넋두리를 했습니다. 그게 경솔한 짓이었지요. 편지에도 그 말에 대해 언급이 되어 있더군요. 읽어 보시지요." '사아하는 숙부님- 저 때문에 걱정을 끼쳐 드려서 죄송합니다. 제가 좀더 신중하게 행동했더라면 이런 무서운 불행은 절 대로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숙부님의 슬하에서는 다시는 행복해질 수 없고, 영원 히 숙부님 곁을 떠나야만 할 것 같습니다. 저의 장래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말아 주세요. 준비는 되어 있으니까요. 부디 저를 찾지 말아 주세요. 부질 없는 짓일 뿐더러, 저를 위하는 일도 아니기 때문입 니다. 살아 있는 죽든 저는 언제까지나 숙부님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메어리 올림' "어쩔 작정으로 이런 편지를 썼을까요? 홈즈 씨, 그애가 자살이라도 할 셈일까요?" "아니, 아니, 그런 일은 없습니다. 아마 이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인 것 같습니다. 홀더 씨, 당신의 불운도 이제 결말에 가까워지는 것 같습니다." "호오! 정말인가요! 홈즈 씨, 뭔가 알아내셨군요. 보석은 어디 있습니까?" "그 보석 한 개에 1천 파운드라면 너무 비싼가요?" "1만 파운드라도 내겠소." "그렇게는 필요치 않습니다. 3천 파운드면 충분 합니다. 그리고 보수를 약간만, 수표장을 가지고 계 십니까? 여기 펜이 있습니다. 4천 파운드라 적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홀더 씨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요구한 금액을 적었다. 홈즈는 자기의 책사으로 다가가 세 개의 보석이 달린 삼각형의 황금 덩어리를 꺼내어 테이블 위에 놓았다. 홀더 씨는 기쁨에 넘친 소리를 지 르며 그것을 집어들었다. "찾았구나! 난 살았다! 살았어!" 홀더 씨는 그 도안 몹시 괴로워해끼 때문에 기쁨의 반응도 강렬했다. 그는 돌아온 보석을 가슴에 꼭 껴안고 있었다. 홈즈는 약간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당신은 또 하나 빚진 것이 있습니다, 홀더 씨." 홀더 씨는 다시 펜을 들며 말했다. "금액을 말씀해 주십시오. 지불해 드릴 테니." "아니오, 나에 대한 빚이 아닙니다. 고매한 청년인 당신의 아드님에게 겸허한 마음으로 사과하지 안 으면 안됩니다. 이번 사건에서 아드님이 취한 태도는 참으로 훌륭했습니다. 만일 내게 자식이 있어서 그런 태도를 보았다면, 정말 자랑스럽게 여길 겁니다." "그럼 보석은 아서가 훔친 게 아니었습니까?" "어제도 말씀드렸지만, 그렇지 않았다고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요." "정말이군요! 그렇다면 곧 아들한테로 달려가서 진상이 밝혀졌다고 알려 줘야겠습니다." "벌써 알고 있습니다. 진상이 모두 드러난 뒤, 나는 아드님을 만났습니다. 저쪽에서 얘기해 주지 않 았으므로 내가 먼저 얘기해 주었더니, 아드님께서도 내가 얘기한 일이 옳다고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 지요. 그리고 내가 모르고 있었던 두세 가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오늘 알려주신, 메 어리 양이 집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면 입을 열지도 모릅니다." "그럼 부탁이니 제발 말씀해 주십시오, 어서요. 이 수수께끼 같은 사건은 어떻게 된 영문인가를!" "말씀드리고말고요. 내가 결론에 이른 순서를 얘기해 드리지요. 우선 말씀 드릴 것은, 정말 얘기하기 도 거북하고 당신도 듣고 싶지 않은 일입니다. 즉, 조지 번웰 경과 당신의 조카딸인 메어리 양 사이 에 어떤 약속이 되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그 두 사람은 손을 잡고 도망쳤습니다." "우리 집 메어리가요? 그럴 리가 없소!" "유감스럽지만 사실입니다. 당신과 아드님은 그 남자가 집안에 드나드는 것을 허락면서도, 그 남자의 정체를 모르고 계셨어요. 그는 영국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 중 한 사람입니다. 그는 노름으로 인생을 망쳐 버린 인정도 양심도 없는 사람입니다. 집안에서만 있었던 순진한 메어리는 양은 그런 종류의 인 간들 이야기는 들어 보지도 못했으므로, 그가 사랑을 속삭이자 자신이 진실로 사랑을 받고 있다고 믿 었ㄷ선 겁니다. 그리고 모든 게 그 사람의 뜻대로 되어버렸고, 매일 밤 몰래 만났던 거지요" 얼굴이 잿빛이 되어 홀더 씨가 외쳤다. "믿을 수 없어요! 그리고 믿고 싶지도 않고!" "그럼 다음에는 그저께 밤에 일어난 일을 얘기해 드리지요. 메어리 양은 당신이 침실로 들어가자 살 며시 아래츠응로 내려가, 마구간의 오솔길이 보이는 창문을 열고 자기 애인과 얘기를 나눴습니다. 꽤 오랫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것을 나는 알아 냈습니다. 메어리 양은 왕관에 관한 얘기도 했습니다. 조지 경은 그 말을 듣고, 돈을 탐내는 사악한 욕심이 치밀었습니다. 그래서 메어리 양을 설득하여 자 기 뜻대로 움직인 겁니다. 메어리 양이 당신을 사랑하고 있었던 건 나도 의심하지 않습니다만, 애인 에 대한 애정 때문에 당신에 대한 애정이 소홀해진 모양입니다. 메어리 양이 애인의 지시를 받고 있 던 바로 그때, 당신이 아래로 내려오는 것을 보고는 급히 창문을 닫고서 하녀가 의족을 단 남자와 몰 래 만나고 있다고 말했지요. 물론 그건 그것대로 틀림없는 사실이었습니다. 아드님인 아서는 당신과 얘기를 하고 나서 잠자리에 들어습니다만, 클럽의 빚이 마음에 걸려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러고 있는데, 한밤중에 문앞을 사렴시 지나가는 발소리가 들렸기 때문에 일어나서 내다보았더니, 놀랍게도 메어리 양이 발소리를 죽이며 복도를 걷고 있었고, 이윽고 당신의 화장실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습 니다. 아서는 그 모습을 보고 놀라 자지러질 정도였지요. 그래서 근처에 있던 옷을 아무거나 걸치고, 그 일이 어떻게 되어가는가를 보기 위해 어둠 속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메어리 양이 방에 서 나오는 것이 보였는데, 그 귀중한 왕관을 들고 있지 않겠습니까! 메어리 양이 계단을 내려갔으므 로, 아서는 얼른 복도를 달려 당신 방 옆의 커튼 뒤에 숨었습니다. 거기서라면 아래층 홀에서 일어나 는 일이 잘 보이지요. 아서가 살펴보고 있노라니, 메어리 양이 살며시 창문을 열고서 어둠 속에 누군 가에게 왕관을 넘겨주고는, 다시금 창문을 닫고 다시금 창문을 닫고 아서가 숨어 있는 커튼 앞을 지 나, 급히 자기 방으로 돌아갔습니다. 아서로서는 메어리 양이 그 자리에 있는 동안에 뛰어나가면, 사 랑하는 메어리 양의 아픈 곳을 정면으로 찌르는 것이 되므로, 그대로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메어리 양의 모습이 사라지자 마자, 곧바로 이 사건은 당신에게 다시없는 불행을 가져오기 때 문에 무엇보다도 왕관을 되찾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맨발로 계단을 달려 내 려가 창문을 열고 눈 위에 뛰어내려, 달빛에 검게 떠오른 사나이의 그림자를 향해 마구 달려갔습니다 . 그 남자는 물론 조지 번웰 경이었습니다. 조지 경은 달아나려고 했지만, 아서가 필사적으로 쫓아와 붙잡았으므로 두 사람은 맞붙어 싸우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아서가 왕관의 한쪽 끝을, 상대는 다른 쪽 끝을 쥐고 서로 잡아당기게 되었죠. 그러는 동안에 아서는 아서 조지 경을 때려눕히고 그의 눈 위 에 상처를 입혔습니다. 그때 무슨 소리가 나면서 왕관이 아서의 손에 들어오게 되자, 아서는 황급히 집으로 돌아와 창문을 닫고 당신의 화장실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는 왕관이 비뚤어진 것을 보고 똑 바로 해놓으려는 순간, 갑자기 당신이 나타났던 겁니다." 홀더 씨는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그런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아서는 정말로 용감한 행동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당신이 마구 욕설을 퍼부었으므로 잔뜩 화 가 났던 겁니다. 게다가 진상을 밝히게 디면 사랑하는 메어리 양의 죄상도 폭로됩니다. 그래서 아서 는 자기가 메어리 양의 죄를 뒤집어쓰고 비밀을 지켰던 겁니다." 홀더 씨가 외쳤다. "이제야 메어리가 왕관을 본 순간 비명을 지르고 졸도한 까닭을 알겠스빈다. 오오, 하느님! 나는 어 쩌면 이다지도 바보였을까요! 아들이 5분만 밖으로 내보내 달라고 부탁한 일도 그렇군요! 그애는 밖 에서 싸울 때, 혹시 그 조각이 땅에 떨어지지나 않았는지 찾아보려고 했던 겁니다. 왜 나는 그때 그 렇게 눈치를 못 챘을까!" 홈즈가 말을 이었다. "댁에 도착했을 때 집 주위를 세밀히 살펴보면서, 단서가 될 만한 흔적이 눈 위에 있지 않을까 조사 했습니다. 전날부터 눈은 멈춰 있었고, 게다가 몹시 추웠기 때문에 발자국이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 했지요. 장사꾼들이 드나드는 통로를 다녀 보았지만 발자국이 온통 뒤범벅이 되어서 아무것도 분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길에서 집 쪽으로 들어가 보았더니, 주방 쪽 부근에 어떤 여자와 웬 남 자가 서서 얘기한 흔적이 있더군요. 남자의 한쪽 발자국이 동그란 점으로 보아, 나무 다리임을 알았 습니다. 게다가 이 두 사람 앞에 방해자가 나타났다는 것도 알 수 있었지요. 여자는 바삐 문으로 뒤 돌아 같으니까요. 그건 여자의 발끝 쪽은 길게, 뒤꿈치는 엶게 자국이 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니무 다리를 단 남자가 한참 기다리다가 떠났다는 것도 짐작이 갔습니다. 그때 나는 당신이 말씀하신 하녀 와 그 애인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조사해 보았더니 정말로 그랬습니다. 그리고 둘은 돌아다니면 서 발견한 것은 그 부근의 온통 어지럽게 나 있는 발자국뿐이어서, 그건 경찰의 것이라고 생각했습니 다. 그런데 마구간의 오솔길로 들어서자 바로 내 앞의 눈 위에는 길고도 복잡한 사연을 나타내는 발 자국이 남아 있었습니다. 구두를 신은 남자의 발자국이 왔다갔는 되돌아가고, 그리고 맨발을 한 남자 의 발자국이 역시 갔다가 되돌아온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얘기가 생각나서 맨발 자국은 아드 님의 것이라고 확신 했습니다. 구두 자국은 흔적이 뚜렷했지만, 맨발 자국은 급히 달려간 것이었고, 또 그것이 이따금 구두 자국 위를 덮고 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히 구두를 신은 남자의 뒤를 쫓은 것이 것이었습니다. 그 발자국을 더듬어 가니 현관 홀의 창문으로 이어져 있었는데, 거기서 구두를 신은 남자는 기다리고 있는 동안 주위에 있는 눈을 밞아 뭉갰더군요. 그래서 다시금 반대 방향으로 더듬어 가며 마구간의 오솔길을 100m 가량 가보았습니다. 거기서 구두의 남자는 뒤돌아선 모양이고, 또 격투 라도 벌어졌는지 눈이 짓밟혀 있었고, 게다가 핏방울까지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서 내 짐작이 틀림없 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구두를 신은 남자는 오솔길 끝의 한길로 달아난 모양인데, 거기에도 핏방울이 떨어져 있어서, 상처를 입은 사람은 구두를 신은 남자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뒤를 따라 한길 쪽으로 가보았는데, 보도의 눈은 말끔히 치워 버렸기 때문에 거기서 실마리는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집안으로 들어가 홀의 창틀이나 문턱을 확대겨응로 검사해 보았더니, 누군가가 그곳으로 뛰어넘어간 것을 금방 알게 되었습니다. 힌 님지기 칭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누군가가 왕관을 그 남자에게 넘 겨준다. 그 현장을 아서가 보았다. 그리고는 도둑을 쫓아가 맞붙어 싸운다. 둘이서 왕관을 잡아당기 다가 두 사람의 힘이 합쳐져서, 한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가할 수 없는 손상을 왕관에 입히게 된다 . 아서는 왕관을 가지고 돌아왔지만, 상대방의 손에는 떨어진 조각이 남아 있었다. 거기까지는 확실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구드를 신은 남자는 누구며, 그 남자에게 왕관을 건네준 것은 또 누구인 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전부터 범죄의 수사에 대해 하나의 공식이 있는데, 그것은 있을 수 없 는 일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아무리 믿을 수 없는 일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바로 진실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당신이 왕관을 꺼낼 까닭이 없으니, 남은 것은 조카딸과 하녀들뿐입니다. 그러나 하녀들의 짓 이라면 아서가 대신하여 죄를 짊어질 이유가 없습니다. 그럴 까닭이 있을 리가 없지요. 한편, 아서 는 메어리 양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메어리 양의 비밀을 지켜 준 것이라면 훌륭히 이론이 성립됩니다. 게다가, 그 비밀에 불명예가 따른다면 더욱 그렇겠지요. 메어리 양이 그 창문 옆에 있었 던 것을 당신이 보았다는 일과, 또 왕관을 보고서 졸도했다는 점으로 미루어 내 추측은 확신으로 굳 었습니다. 그렇다면 메어리 양의 공범자는 대체 누구였을까요? 애인이 틀림없습니다. 메어리 양은 당 신에게 깊은 애정과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와 같은 마음을 잊고 그런 죄를 저지르는 것 은 애인이 아니고는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당신들은 사교계에 드나들지도 않으며, 또 교제 범위도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좁은 교제 속에 조지 번웰 경이 있었습니다. 이 남자가 여성들 사이에 좋지 않은 평판이 있다는 건 전부터 듣고 있었습니다. 이쯤 되면 그 구두를 신은 남자, 분실된 보석 을 가지고 달아난 남자는 조지 경이 분명합니다. 조지 경은 아서에게 들킨 걸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자기는 안전하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었겠지요. 아서가 한마디라도 입을 열면 가문의 명예가 손 상되니까요. 그건 그렇고, 내가 어떤 수단을 취했는가 이젠 당신도 이해가 가시겠지요? 나는 부랑자 로 변장하고 조지 경의 집을 찾아가 하인에게 접근하여, 주인이 간밤에 머리에 상처를 입었음을 알아 냈습니다. 그리고 6실링을 집어 주고는 조지 경의 낡은 구두를 한 켤레 샀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스 트레덤으로 가서 눈 위의 발자국과 꼭 맞다는 것을 확인했지요." 홀더 씨가 말했다. "어젯밤 오솔길에서 누더기를 입은 부랑자를 보았습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그게 나였으니까요. 나는 범인이 누군지를 알았으므로 집으로 가서 옷을 갈아 입 었습니다. 그 다음부터 해야 할 역활이 어려워지게 되었지요. 소문을 내지 않기 위해서는 경찰의 개입을 피해야 하고, 게다가 상대가 악랄한 악당이기 때문에 이쪽에서 꼼짝 못할 약점을 노리고 있다는 것도 짐작했 지요. 나는 그자를 만나러 갔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모두 다 부정하더군요. 그러나 사건의 과정을 낱 낱이 설명해 주었더니 벽에 있던 호신용 지팡이를 들고 왔습니다. 그러나 나도 상대가 어떤 인물인가 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먼저 권총을 그의 머리에 들이댔습니다. 그러자 그가 다소 누그러지면 서 얘기가 통하게 되었지요. '당신이 가지고 있는 보석을 내게 주면 한 개에 1천 파운드 내겠소.' 조지 경은 분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쳇, 약오르는군. 세 개를 600파운드에 팔아 버렸으니!' 나는 절대로 경찰에 신고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서, 그것을 사들인 사람의 주소를 알아냈습니다. 그 리고는 그곳으로 찾아가서 한참 흥정한 끝에 한 개에 1천 파운드씩 주고 보석을 손에 넣었습니다. 그 리고서 아서를 찾아가 모든 일이 잘 해결되었는 얘기를 하고서, 일을 모두 끝마친 뒤에 잠자리에 든 것이 새벽 2시경이었습니다." 홀더 씨는 일어서서 말했다. "당신은 영국과 나의 명예를 구해 주었습니다. 감사의 말을 찾을 길이 없군요. 이 은혜는 영원히 잊 지 않겠습니다. 당신의 솜씨는 소문보다도 훨씬 훌륭하십니다. 그럼 지금부터 아들한테로 뛰어가, 나 의 그릇된 처사에 대해 용서를 빌어야겠습니다. 가엾은 메어리의 일에 대해서는 가슴이 에는 듯한 느 낌입니다. 당신의 수완으로서도 그애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르시겠지요?" 홈즈가 대답했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조지 번웰 경이 있는 곳이라면 메어리 양도 어디건 함께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또한, 메어리 양과 조지 경은 머지 않아 죄의 대가를 받을 거라는 말씀도 분명히 드릴 수 있 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