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의 갈기 1. 이상한 죽음. 지금부터 이야기하려는 괴이한 사건은, 홈즈가 은퇴한 뒤에 일어난 일입니다. 홈즈는 런던에서의 바쁜 생활로부터 해방되어,서섹스주의 조그만한 집에서 조용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영국 해협을 한눈에 구어볼 수 있는 벼랑위의 외딴 집에는 홈즈외에 가정부와 꿀벌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만일 '사자의 갈기'의 비밀을 둘러싼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홈즈의 생활 은 지극히 조용하고 평온했을 것입니다. 홈즈의 집에서 바다로 내려가는 길은 미끄럽고 험한 오솔길 하나뿐이었습니다. 풀워어드 마을로 가려면, 이 험한 길을 내려가서 해안을 몇백 미터나 걸어 가 야 했습니다. 1907년 7월 말이었습니다. 간밤에 폭풍이 몰아쳤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상쾌한 아침에,홈즈는 산책을 나섰습니다. 해변으로 이어지는 벼랑위의 오솔길을 천천히 걷고 있으려니까,뒤에서 그를 부 르는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홈즌씨 !" 뒤돌아보니,헤럴드 스택허어스트가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헤럴드 스택허어스트는 홈즈의 집에서 700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는 유명한 직업 훈련소 <더 게에블즈>의 소장이었습니다. 직업 훈련소에서는 20명가량의 청년이 몇 사람의 교사와 함께 살면서 여러가지 지업 교육을 받고 있었습니다. 스택허어스트는 대학 시절에 보우트 선수로 이름을 날린 사람이었습니다. 홈즈는 이곳에 살면서 곧 그와 친해졌는데,이젠 허물없이 왔다 갔다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상쾌한 아침입니다. 지금 나오면 틀림없이 당신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 했죠." "수영하러 가시는 길이군요?" 홈즈가 빙긋 웃으며 말했습니다. "또 당신 추리에 당했군요." 스택허어스트는 수영복이 들어 불룩한 주머니를 두드리며 웃었습니다. 이 해변에는 여기저기 후미진 곳이 있어 수영하기에 썩 좋았습니다. "아뭏든 부지런하시군요." "아닙니다. 맥파아슨은 나보다 한발 먼저 갔는데요. 아마 벌써 물에 들어갔을 겁니다." 맥파아슨은 직업 훈련소에서 물리를 가르치고 있는 젊은 교사였습니다. 자세가 바르고 늘 성실한 청년이었는데, 류머티즘을 앓은 뒤에 심장병에 걸려, 재능이 있으면서도 지금과 같은 생활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타고난 스포 츠맨으로, 심하지 않은 운동이면 무엇이든지 즐겨했습니다. 맥파아슨은 여름이나 겨울이나 수영을 즐겼으므로, 홈즈와 자주 이 바닷가에서 마주쳤습니다. "그 청년은 정말 원기 왕성하군요." "예.하지만 심장이 좋지 않으니 너무 무리하지 않는게 좋을텐데....." 스택허어스트가 이렇게 말한 순간,맥파아슨이 오솔길에 그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여보게, 맥파아......" 스택허어스트는 맥파아슨을 부르려다 말고 멈칫했습니다. 웬일인지 맥파아슨은 술취한 사람처럼 몸을 비틀거리고 있었습니다. "아니, 자네 어떻게 된 거야...." 스택허어스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맥파아슨은 두 팔을 허위적거리며, 말할 수 없이 무서운 비명을 지르면서 앞으로 고꾸라졌습니다. "앗, 큰일이다!" 스택허어스트는 50미터쯤 떨어져 있는 맥파아슨에게로 허둥지둥 달려갔습니다. 물론 홈즈도 뒤따라 갔습니다. 두 사람이 맥파아슨을 안아 일으켰을 때에는 막 숨을 거두려는 순간이었습니다. 촛점 없는 눈동자, 흙빛의 뺨.... 스택허어스트는 맥파아슨의 몸을 흔들어 댔 습니다. "정신차려, 맥파아슨!" 순간 맥파아슨의 입술이 힘없이 움직였습니다. 그러더니 아주 작은 소리로. "사자의 갈기....." 하고 중얼거렸습니다. "사자의 갈기....?" 홈즈는 그 말을 입 속으로 되뇌어 보았습니다. 맥파아슨은 무엇이라고 더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입술을 움직였으나,말을 잇지 못하고 눈을 감아 버렸습니다. "이봐! 맥파아슨!" 스택허어스트는 맥파아슨의 몸을 마구 흔들었습니다. 맥파아슨은 몸을 조금 일 으켜 무엇인가를 움켜지려는 시늉을 하더니, 이내 머리를 떨어뜨렸습니다. "죽었군......" 스택허어스트는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에 넋이 나간 듯 중얼거렸습니다. 별안간 이상한 사건에 휘말린 홈즈와 스택허어스트는 몹시 놀라고 당황하였습니다. 그러나 홈즈는 곧 정신을 가다듬고, 멍청해 있는 스택허어스트를 그대로 내버려 둔채 조사를 시작 했습니다. 맥파아슨은 셔츠도 입지 않고 바지위에 바바리 코트만 걸치고 있었습니다. 운동화 는 끈도 매지 않은 채 였습니다. 어깨에만 걸친 바바리 코트가 넘어지는 바람에 벗겨져서, 벌거벗은 몸이 드러나 있었습니다. 그 등을 본 순간, 홈즈는 깜짝 놀라 소리쳤습니다. " 아니,이게 어찌 된 일일까?" 맥파아슨의 등에는 마치 지러이처럼 검붉게 부르튼 상처가 나 있었습니다. "누구에게 당했을까요? 부드러운 채찍으로 맞은 것 같은데...." 스택허어스트가 다가와 상처를 들여다보며 말했습니다. 상처가 어깨에서 옆구리에 걸쳐 있는 것으로 보아, 그의 말이 맞는것 같았습니다. 또 다른 상처는 없었으나, 턱에 피가 많이 묻어 있었습니다. 고통을 못 이겨 아랫 입술을 물어뜯은 모양이었습니다. "가엾게도......" 홈즈는 무참한 주검을 눈앞에 보며 혀를 찼습니다. 잠시 시체 옆에 웅크리고 앉아 있던 홈즈는 사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바람에 퍼뜩 고개를 들었습니다. 어느 결에 왔는지, 아이언 머독이 옆에 서 있었습니다. 머독은 몹시 놀랐는지, 입술을 심하게 떨면서 말했습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 머독은 직업 훈련소의 수학 교사였습니다. 그는 키가 크고 깡마른 사나이로, 말수가 적고 남과 사귀길를 싫어했습니다. 게다가 늘 어려운 고등 수학에만 열중하고 있었 으므로, 학생들에게 괴팍한 사람이라는 평을 받았습니다. 그는 또한 굉장히 신경질적이고 성을 잘 내는 사람이었습니다. 언젠가는 맥파아슨이 기르는 강아지가 시끄럽게 짖어 댄다고, 몹시 화를 내며 창문 밖으로 집어던진 일도 있었습니다. 항상 온화한 스택허어스트 소장도 이때만은 참을 수 없었던지 머독을 그만두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실력면에서는 아주 우수했으므로, 결국 스택허어스트 소장이 참았습니다. 강아지 사건에 얽힌 일도 있었으므로, 맥파아슨과는 사이가 좋을 까닭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동료 교사가 비참한 죽음을 당하자, 머독은 매우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습 나다. "어제까지 그토록 원기왕성하던 맥파아슨 선생이 갑자기 이렇게 되다니.... 제가 할 만한 일이 있으면 뭐라도 시켜 주십시오." 홈즈가 무슨 말을 하려는데, 먼저 스택허어스트 소장이 물었습니다. "자넨 아까 맥파아슨 선생과 함께 수영하러 가지 않았었나?" 머독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오늘 아침에 그만 늦잠을 잤기 때문에 이제 막 나오는 길입니다. 그보다 뭔가 도울 수 있는 일은..." 하며 그는 홈즈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속히 풀워어드 경찰서에 이 사실을 신고 해 주십시오." 홈즈가 말했습니다. 그러자 머독은 맹렬한 기세로 풀워어드 쪽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 했습니다.. 2. 젖지 않은 수건 홈즈는 부근의 조사에 나섰습니다. 스택허어스트는 아직도 얼떨떨한지, "이렇게 허무하게 죽다니....." 하고 중얼거리며,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습니다. 홈즈가 맨 먼저 한 일은, 해변에 누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이었습니다. 그곳에서는 해변이 한눈에 내려다보였습니다. 그러나 멀리 풀워어드 쪽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이 서너 명 눈에 뛸 뿐, 해변에는 사람의 그림자라곤 보이지 않았습니다. "스택허어스트씨, 시체를 부탁합니다." 홈즈는 멍청히 서 있는 스택허어스트에게 이렇게 말하고, 천천히 비탈길을 내 려갔습니다. 길에는 똑같은 발자국이 오르내린 흔적이 있었습니다. '어젯밤 푹풍이 휘몰아친 뒤이니, 오늘 아침엔 맥파아슨 이외에 이 비탈길을 지나간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손바닥을 펴서 땅을 짚은 자국이 한 군데 있었습니다. 손가락 끝은 비탈길 위 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홈즈는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습니다. "맥파아슨이 비탈길을 올라가다가 쓰러진 게로군." 그 밖에도 비틀거리다가 무릎을 끓은 것같이 둥글게 팬 곳이 몇 군데 있었습니다. 비탈길을 다 내려가 보니,수영하기에는 안성 맞춤인 장소가 있었습니다. 맥파아슨은 그 옆에서 옷을 벗었느지, 바위 위에 얌전히 접힌 수건이 놓여 있었 습니다. 홈즈는 그 수건을 만져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 했습니다. '맥파아슨은 물에 들어가지도 않았나? 수건이 이렇게 접힌 채 물에 젖지도 않았으니.....' 홈즈는 그 일대의 자갈밭을 샅샅이 살펴보았습니다. 자갈이 드문드문 뒹굴고 있는 모래땅에 맥파아슨의 운동화 자국이 찍혀 있었습니다. 그 옆에는 맨발 자국도 나 있었습니다. '이상하군. 이걸보면 물에 들어갈 준비가 다 되어 있었던 것 같은데 저 수건을 보니 물에 들어가지 않았던 것 같고...' 홈즈는 여태껏 부딪혀 본 일이 없는 괴이한 사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맥파아슨이 바닷가에 내려간 지 15분도 채 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스택허어스트가 곧 뒤쫓아왔으니까 틀림없습니다. 맥파아슨은 수영을 하기 위해 옷을 벗었습니다. 그것은 맨발 자국으로 보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서둘러 옷을 입었습니다. 옷을 입은 품은 흐 트러졌으며, 신발끈도 매지 않았습니다. 왜 갑자기 수영을 그만 두었을까요? 그 이유는 말할것도 없이, 지렁이가 기어다닌 것처럼 부르트게 한 심한 매질 때문이 었을 것입니다. 맥파아슨은 입술을 깨물며 고통을 견디었고, 마지막 힘을 다해 벼랑 위까지 달아나 다가 끝내 기진 맥진하여 쓰러진 것입니다. '누구일까? 이처럼 참혹한 짓을 한 자가....' 홈즈는 다시 찬찬히 주위를 둘러 보았습니다. 벼랑 밑에 작은 동굴이 하나 있었습 니다. 그러나 그곳에 사람이 숨어 있을 가능성은 없었습니다. 수평선위에 막 솟은 태양이 동굴 안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습니다. 바다 위에는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고기잡이 배가 2,3척 떠 있었습니다. '범인은 저 어선의 어부란 말인가?'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으로선 조사해 볼 도리가 없습니다. 그 밖에 단서가 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홈즈는 다시 맥파아슨의 시체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 갔 습니다. 시체 주위에는 구경꾼들이 몇 명 모여 있었습니다. 스택허어스트도 물론 그곳에 있 었습니다. 그때 마침 아이언 머독이 순경인 앤더슨을 데리고 왔습니다. 붉은 콧수염을 기른 앤 더슨은 겉으로는 미련하고 무뚝뚝해 보이지만 착하고 마음이 좋은 사나이입니다. 홈즈와 스택허어스트는 맥파아슨ㅇ르 발견했을 때의 상황을 앤더슨 순경에게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앤더슨 순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첩에 열심히 뭐라고 적더니, 홈즈를 슬쩍 옆으로 불러냈습니다. "홈즈씨, 저를 좀 도와 주십시오. 제에게는 너무 벅찬 사건입니다. 잘못하다간 또 루이스 경감에게 기합을 받겟습니다."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르지만, 아뭏든 거들어 드리죠." 앤더슨 순경은 이제 살았다는 듯, 안도의 표정을 지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우선 무엇부터 해야 할까요?" "글쎄요, 곧 루이스 경감에게 보고 해야겠죠. 그리고,의사를 불러와야 합니다.그샔 까지는 현장을 이 상태대로 유지시켜야 할텐데, 그러기 위해선 구경꾼을 멀리 쫓아 발자국을 함부로 찍지 않도록 해야 되겠죠." 앤더슨 순경은 즉각 행동을 개시했습니다. 홈즈는 시체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바바리 코트의 호주머니를 뒤져 보았습니다. 호주 머니에서 나온 것은 손수건과 주머니칼, 명함 지갑뿐이었습니다. 명함 지갑에는 작은 종이 쪽지 한 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여자 글씨로 "저도 가겠으니, 당신도 꼭 오세요. 모오드." 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시각이나 장소는 알 수 없었지만 데이트 약속인 것 같았습니다. 홈즈는 그것을 앤더 슨 순경에게 보이고 다시 본래대로 명함지갑에 꽃아 다른 것과 함께 바바리코트 호주 머니에 넣었습니다. "나는 이만 실례합니다. 아직 아침 식사 전이라서. 해변이나 어선을 자세히 조사하는 게 좋을 겁니다." 홈즈는 이런 말을 남기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후 2시간쯤 지났을때, 스택허어스트가 홈즈를 찾아왔습니다. "아까는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맥파아슨의 시체는 훈련소로 옮겼습니다. 곧 검시가 있을 것입니다." 그밖에도 스택허어스트는 여러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홈즈가 예상하고 있었던 대로 벼랑 아래의 작은 동굴에서는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맥파아슨의 책상 서랍을 조사해 보았더니 풀워어드 마을의 모오드 벨라미라는 아가씨에게서 온 편지가 몇 장 나왔다고 합니다. "중요한걸 발견했군요. 그러니까 시체의 호주머니에 들어있던,명함 지갑속의 종이 쪽지를 쓴 여자는 그 모오드 벨라미란 아가씨이군요." 홈즈의 말에 스택허어스트는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경찰이 편지를 가져갔지 때문에 지금 보여 드릴 수는 없지만, 두사람은 꽤 진지한 교제를 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요? 그건 그렇고, 여느 때 같으면 맥파아슨 선생과 함께 수영을 가던 학생들이 오늘 아침엔 하나도 따라가지 않았으니 왠일일까요?" 그러자 스택허어스트는 망설이는 듯한 어조로 대답했습니다. "오늘 아침에 학생들이 따라가지 않은 것은 정말 우연입니다." "그것이 단순한 우연이었을까요?" 홈즈가 날카롭게 물었습니다. 스택허어스트는 이맛살으 찌푸리고 잠시 생각하고 나서 말했습니다. "아이언 머독이 학생들에게 가지 말라고 했답니다. 아침 식사전에 대수 공부를 한다 고..." 그 순간, 홈즈의 눈이 번쩍 빛났습니다. 그러자 스택허어스트는 당황하여 얼른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머독은 그 때문에 몹시 가슴 아파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하나라도 따라갔으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말입니다." 홈즈는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그 두 사람은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했잖습니까?" "한때는 분명히 그랬습니다만,지난 일년 동안,사교성이 없는 머독으로서는 드물게 맥 파아슨과 가까이 지냈습니다." 홈즈는 그래도 미심쩍은 생각을 떨쳐 버릴수가 없었습니다. "맥파아슨의 개를 머독이 집어던져 두 사람 사이가 몹시 나빠졌다고 들었는데..." "그 일은 벌써 잊어버렸을 겁니다." "그래도 감정의 지꺼기는 남아 있겠지요?" "그런 것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완전히 화해를 했으니까요." "그랬군요..... 그럼 이번엔 여자에 관한 건데,당신은 모오드라는 아가씨를 알고 계십니까?" 스택허어스트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습니다. "이 근방에서 그 아가씨를 모르는 사람은 없죠.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미인 이니까요." "미인이라는 것을 강조 하시는 군요." "게다가 마음씨도 매우 곱고 상냥한 아가씨죠. 맥파아슨의 마음이 끌린 것은 눈치 채고 있었습니다만, 그렇게 편지까지 주고받는 사이인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어느 집 아가씨지요?" "풀워어드 마을에 사는 톰 벨라미의 딸입니다. 톰 벨라미는 원래 가난한 어부였는데, 열심히 노력하여 지금은 재산을 상당히 모은 것 같습니다. 아들 윌리엄과 함께 장사를 하고 있죠." 홈즈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습니다. "풀워어드에 가서 모오드양을 만나봅시다." 스택허어스트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만나러 갈 구실이 없지 않습니까?" "구실 같은건 어떻게든 붙일 수 있습니다. 한시바삐 범인을 밝혀 내야 하지 않겠습 니까?" "그건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맥파아슨이 그토록 잔인한 방법으로 자기 몸에 스스로 상처를 냈 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홈즈의 단정적인 말에 스택허어스트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물론입니다. 자기가 자기 몸에 그렇게 매질을 할 수는 없는 일이죠." "맥파아슨이 알고 있는 사람은 그 숫자가 빤합니다. 그 사람들은 이 잡듯 조사해 나가면 반드시 동기를 알 수 있을 것이고, 동기를 알면 쉽게 범인을 밝혀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홈즈는 다시 한번 스택허어스트를 재촉했습니다. "자. 어서 가십시다!" 3. 벨라미 일가 그런 끔찍한 사건만 아니었더라면, 풀워어드까지 걷는 일이 퍽 즐겁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윽한 풀냄새,빛나는 햇살이 마음을 안정시켜 주었습니다. 풀워어드 마을은 반원형으로 쑥 들어간 해안선의 만을 따라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마을의 좀 높은 곳에 현대식 건물이 몇 채 있었는데, 스택허어스트는 그중의 한 집으로 홈즈를 안내해 갔습니다. "저 집입니다. 탑이 있는...." 매우 훌륭한 집이었습니다. 과연 돈을 많이 모은 모양이라고 홈즈는 혼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니, 저 사람이..." 하며 스택허어스트가 문득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 집엣서 한 사나이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아이언 머독이었습니다. 이윽고 그들은 길 한가운데서 딱 마주쳤습니다. "여어!" 스택허어스트가 말을 걸었습니다.머독은 가볍게 인사를 하고 그냥 지나치려고 했 습니다. 스택허어스트는 황급히 그를 불러 세웠습니다. "여보게. 무슨 일로 여기 왔었나?" 그러자 머독은 불끈 하여 "내가 당신의 직원임에는 틀림없지만, 직장을 떠난 곳에서까지 지시를 받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대답하기 싫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 말에 스택허어스트는 얼굴을 붉히며 화를 버럭 냈습니다. "아니,무슨 대답이 그런가? 홈즈씨도 계시는 자리에서 실례도 이만저만이 아니군." 머독도 지지 않고 대들었습니다. "소장님이야말로 실례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남의 사생활까지 간섭하려 하시니 말입니다." 이렇게 되자 스택허어스트는 거의 이성을 잃을 지경이었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냥 보아 넘겼지만, 이젠 더 참을 수 없네. 하루라도 빨리 다른 일자 리를 찾아보게." "저도 그럴 생각입니다. 맥파아슨이 없는 훈련소엔 더 머무를 생각이 없으니까요." 머독은 어깨를 으쓱 올렸다 놓고 천천히 걸어 갔습니다. 그 뒷 모습을 쏘아보며 스택 허어스트는 내뱄듯이 중얼 거렸습니다. "정말 버릇없는 녀석이야....." 그 순간 홈즈의 머리속에 어떤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아이언 머독은 달아나려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벨라미의 집에 가면,무엇인가 알 수 있을 것 입니다. 홈즈는 아직도 화가 가라 앉지 않은 스택허어스트를 재촉했습니다. "자, 저 사나이에 관한 건 다음으로 미루고,어서 가도록 합시다." "예, 저 녀석의 말투에 하도 기분이 상해서 그만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냈습니다.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하며 스택허어스트는 얼굴을 붉혔습니다. "그럴 수도 있죠. 아뭏든 빨리 가 봅시다." 이윽고 그들은 벨라미의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벨라미는 붉은 턱수염을 기른 중년 사나이였습니다. 무슨 일 때문인지 몹시 화가 나 있었습니다. 수염 빛깔 「지 않게 뺨이 붉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홈즈가 맥파아슨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려 하자, 그는 고개를 저으며 소리쳤습니다. "아무 말도 듣기 싫소! 맥파아슨에 대해선 전부터 못마땅하게 생각해 왔소. 청혼도 하지 않고 다 큰 처녀를 불러 내곤 해서 말이오. 하긴 청혼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런 빈털털이에게 내 딸을 주진 않았을테지만...." 그때 아름다운 아가씨가 안에서 나왔습니다. 모오드 벨라미 엿습니다. 홈즈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놀랐습니다. 듣던 것 이상으로 매혹적이었습니다. 모오드는 잠깐 스택허어스트와 홈즈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스택허어스트 앞으로 다가 갔습니다. 그가 누구라는 것을 안 모양이었습니다. "직업 훈련소 소장님이시죠? 맥파아슨씨가 죽은 것은 이미 알고 있으니, 자세한 말씀 을 해주셔요." "조금 전에 어떤 분이 와서 알려 주고 갔소." 톰 벨라미가 대신 설명했습니다. 그가 머독이라는 것은 곧 알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자 그때까지 벨라미 곁에 잠자코 서 있던 사나이가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그런 소동에 구태여 모오드를 끌어들일건 없잖소!" 벨라미의 아들인 모양이었습니다. 그러자 모오드는 오빠를 노려보며, "오빠가 상관할 일이 아니어요!" 하며 쏘아 붙였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내버려 두셔요. 어쨌든 지금 한 사람이 죽었어요. 그것도 제가 좋아하는 분이 말이어요. 저도 범인 찾는 일을 돕고 싶어요." 그래서 스택허어스트? 사건의 경위를 간단히 설명했습니다. 모오드는 조용히 귀를 기 울이고 잇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홈즈는, 모오드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머리도 좋고 영리한 여자라 고 생각했습니다. 스택허어스트의 이야기가 끝나자 모오드는 홈즈를 돌아다보며 말했습니다. "홈즈씨, 저는 선생님을 알고 있어요. 범인들을 꼭 잡아 주셔요. 부탁이어요. 범인이 누구든지 저는 어디까지나 선생님 편입니다." 모오드는 아버지와 오빠 쪽을 도전하듯이 바라보았습니다. '범인이 벨라미와 그의 아들일지도 모른다는 말인가?'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홈즈는 곧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고맙습니다. 이런 사건일수록 여자의 직감이 매우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아가씨는 방금 '범인들'이라고 이야기 했는데 범인을 두 사람 이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맥파아슨씨에 관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분은 용기도 있고 힘도 센 분이었습니 다. 심장이 좀 나쁘긴 했지만 상대가 사람이라면 절대로 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홈즈는 이 모오드란 아가씨에게 깊은 호감이 갔습니다. 스택허어스트가 입에 침이 마 르도록 칭찬한것도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햇습니다. "잠깐 둘이서 이야기하고 싶은데, 어떨까요?" 홈즈가 모오드에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톰 벨라미가 나무랏습니다. "모오드, 쓸데없는 일에 말려들지 말아라!" 모오드는 난처한 듯이 홈즈를 바라보았습니다. "무슨 이야기인지 여기서 하면 안 되나요?" "어차피 모든게 세상에 알려질 테니까,여기서 이야기해도 상관은 없습니다." 하고 홈즈는 , 시체의 호주머니에서 모오드가 쓴 것으로 생각되는 종이 쪽지가 나와 그것을 경찰이 조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건 반드시 심문할 때 문제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 여기서 미리 맥파아슨과의 관 계를 이야기해 줄 수 없을까요?" 모오드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그 일이라면 대수로운 일도 아니고, 또 지금에 와서 숨길 이유도 없습니다. 우린 결혼하기로 약속한 사이입니다." "언제 그런 약속을 했지?" 벨라미가 깜짝 놀라 소리쳤습니다. 그러나 모오드는 상관하지 않고 이야기를 계속했 습니다. "맥파아슨에겐 늙은 삼촌이 계셨습니다. 만일 그 분이 우리들의 결혼에 반대하게 되 면 맥파아슨은 유산을 물려받을 수 없게 될지도 몰랐습니다. 그래서,신중을 기하기 위해 비밀에 붙여 두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벨라미가 불만을 토했습니다. "사실대로 말하지 그랬니? 그렇다면 나도 반대하진 않았을 텐데..." "아버지가 저희들을 좀더 이해해 주셨더라면 숨기지 않았을 거여요. 아버지께서는 무조건 맥파아슨을 미워하셨잖아요." "그야 당연하지. 그렇게 가난한 사람에게 너를 맡길 수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유산을 받을 수 있단 말을 했더라면 이야기는 달라졌겠지." 모오드는 그런 말을 하는 아버지를 부끄럽게 여기는 것 같았습니다. "재산이 있는냐. 없는냐에 따라 사람을 평가한다는 건 좋지 않은 일이어요." 가슴속에 맺혀 있던 말을 따끔하게 한 마디 하고 나서, 모오드는 가슴께를 더듬어 꾸 겨진 종이 쪽지를 꺼냈습니다. "맥파아슨씨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쪽지라면, 이 편지의 답장일 거여요." 그녀가 내민 편지에는 다음과 같이 간단한 내용이 씌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이에게 화요일 밤. 바닷가의 늘 만나던 장소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그때 밖에는 나갈 기회가 없습니다. - 맥파아슨 - "화요일은 바로 오늘입니다. 오늘밤 맥파아슨씨와 만날 예정이었어요." 하며 모오드가 눈물을 글썽거렸습니다. 홈즈는 그 편지를 뒤집어 보았습니다. "이건 우편으로 온 게 아니군요. 누구를 통해 받으셨지요?" 모오드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건 대답하고 싶지 않군요. 왜냐하면 선생님께서 조사하시는 문제와 관계가 없는 일이니까요." 홈즈의 얼굴에 얼핏 실망의 빛이 감도는 것을 보고, 모오드는 얼른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그 밖에는 어떤 질문이라도 응하겠어요." 그 말대로 모오드는 홈즈의 질문에 척척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사건을 푸는 데 크게 도움이 될만한 말은 없었습니다. 홈즈는 조금 망설이다가 물었습니다. "맥파아슨씨 이외에도 당신에게 구혼을 한 남자가 있었겠지요?" 모오드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여러 사람이었습니까?" 이번에도 모오드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습니다. 홈즈는 계속 캐물었습니다. "실례지만 아이언 머독씨도 그중의 한 사람입니까?" 모오드는 더욱더 얼굴이 빨개져 망설이더니. "예, 하지만 저와 맥파아슨씨의 관계를 알고 난 뒤로는 절대로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어요." 하고 말했습니다. 홈즈의 머리속에 또 다시 머독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머독을 둘러싼 의혹의 안개는 점점 짙어가기만 했습니다. 잠시 후, 홈즈와 스택허어스트는 벨라미의 집을 나왔습니다. "아이언 머독에 대한 걸 좀더 조사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홈즈의 말에 스택허어스트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 하였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뭔가 도와 드릴 일이라도 있습니까?" "글쎄요, 머독이 방을 비운 틈을 타서 그의 방을 몰래 조사해 보고 싶은데..." "그 일이라면 걱정마십시오." 두 사람은 얼마쯤 기운을 되찾아, 각자 집으로 돌아 갔습니다. 4. 개의 죽음 사건이 일어나 지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그 동안 조사가 계속되었지만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였습니다. 이젠 새로운 증거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머독에 대한 조사도 아무 성과가 없었습니다. 홈즈는 실망하였습니다. 사건이 난 지 일주일이 지나도록 단서조차 못 잡은 것은, 홈즈로서도 처음 있는 일이었습 니다. "내 실력이 부족하다는걸 이번 일로 절실히 느꼈습니다." 하고 스택허어스트에게 탄식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럴 즈음에 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홈즈는 시중드는 늙은 가정부로부터 그 소문을 듣었습니다. 이 가정부는 신비한 안테나라도 갖고 있는지, 마을의 온갖 소문을 용케도 잘 알아 가지고 전해주곤 했습니다. 어느 날 밤, 가정부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죽은 맥파아슨씨의 개가 참 가엾게 되었어요." 홈즈는 마을의 소문 따위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이말에는 문득 마음에 짚이 는 게 있었습니다. "맥파아슨의 개가 어떻게 되었다고요?" 가정부는 홈즈가 자기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 주는 것이 기쁜지 신이나서 말했 습니다. "주인의 죽음을 슬퍼한 나머지 그 개도 따라서 죽었다는군요. 얼마나 가엾어요." "그 말을 누구에게서 들었소?" "이 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인걸요." "그랬던가?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 줘요." "그 사건이후 개는 몹시 슬퍼하여 일주일이나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군요. 그러 더니 오늘 아침, 맥파아슨씨가 죽은 바로 그 바닷가에서 시체로 발견되었 다는 군요." "맥파아슨이 죽은 그 바닷가에서?" 홈즈는 고개를 갸우뚱거렸습니다. "예. 개는 정말 충직한 동물이어요. 주인의 뒤를 따라 주인이 죽은 장소에서 죽 다니, 도저히 인간이 흉내낼수 없는 일인 것 같아요." 홈즈의 귀에는 이미 가정부의 이야기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개가 주인의 뒤를 따라 죽는 일은 가끔 있다. 그러나 같은 장소에서 죽다니, 우연치고는 묘한 우연이군. 누군가가 그 개를 죽여서 같은 장소에 끌어다 놓은 것은 아닐까? 분명히 머독은 그 개를 창문 밖으로 집어던진 일이 있었다.. 그렇다고 설마..." 아뭏든 가서 조사해 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홈즈는 즉시 직업 훈련소로 갔습니다. 홈즈가 용건을 말하자 스택허어스트는 개의 시체를 발견했다는 학생을 불러 주었습 니다. "아마 주인의 냄새를 맡으며 뒤를 쫓은 것 같습니다. 이젠 기분 나빠서 수영도 못 하겠습니다." 하며 학생은 얼굴을 찡그렸습니다. 홈즈는 개의 시체를 보러 갔습니다. 개는 테리어종으로, 매트위에 눕혀져 있었습니다. 이미 몸은 굳었으며,눈이 튀어나오고 다리가 뒤틀려 있었습니다. "굉장히 고통스러웠던 모양이군." 하고 홈즈가 중얼거렸습니다. 훈련소를 나온 홈즈는 벼랑을 따라 맥파아슨이 변을 당한 바닷가로 내려갔습니다. 해는 이미 기울고 벼랑의 그림자가 수면에 비쳐 납빛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바닷새 한 쌍이 울면서 머리위를 맴돌 뿐, 생물이라곤 그림자도 없었습니다. 어슴푸레한 어둠 속에서 바닥을 살피던 홈즈는 겨우 개의 발자국을 발견했습니다. 발자국은 맥파아슨이 수건을 놓았던 바위 근처 모래 위에 찍혀 있었습니다. '맥파아슨은 여기서 옷을 벗었다. 맨발 자국이 이를 증명하고 있어. 그리고 그가 물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건, 수건이 접힌 채 물에 젖지 않았던 것으로 알 수 있다.' 홈즈는 오랫동안 그곳에 서서 열심히 생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주위는 점점 어두워졌으나,홈즈느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그 자리를 떠날 마음이 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이 나지 않자,홈즈는 터덜터덜 집을 향해 걸음을 옮겼습니다. 홈즈가 마침내 어떤 생각을 붙잡은 것은, 가파른 비탈길을 올라가 벼랑 위에 다다랐 을 때였습니다. "아!" 머리를 무엇으로 힘껏 얻어맞은 느낌이었습니다. 홈즈는 우뚝 멈춰 서서 떠오른 생각 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그렇다!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런일도 있을수가 있다!' 홈즈의 머리속은 여러가지 물건이 꽉 찬 창고 같아서, 무엇이 들었는지 자신도 자세히 는 몰랐습니다. 그런데, 방금 홈즈는 그 중의 하나를 끌어 냈습니다. '좋아, 집에 돌아가서 조사해 보자. 만약 내 생각이 틀림없다면....' 홈즈는 힘차게 집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5. 또 하나의 희생자 홈즈의 집에 있는 지붕 밑 다락방에는 온갖 분야의 책들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집에 도착하자, 홈즈는 곧 이 다락방으로 뛰어들어가 한 시간쯤 이 책 저 책을 뒤적였습니다. "있다! 이거다!" 홈즈는 초콜렛색 표지의 책을 한권 찾아 들고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희미한 기억 을 더듬어 열심히 책장을 넘겼습니다. 어떤 페이지에서 홈즈는 마침내 생각했던 바를 확인할수 있었습니다. '날이 밝는 대로 바닷가에 나가서 조사를 해 봐야지.' 홈즈는 너무나 흥분하여 제대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 홈즈는 차도 마시는 둥 마는 둥 바닷가로 나갈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방해자가 나타났습니다. 서섹스주 경찰의 바아들 경감이 찾아온 것 이었습니다. 튼튼한 체격에 침착한 눈빛이 마치 소처럼 우직한 느낌을 주는 사나이 였습니다. "뵙기는 오늘이 처음 이지만,선생의 훌륭한 활약에 대해선 전부터 많이 들어 왔습 니다. 진심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그가 지나칠 정도로 격식을 차리자 홈즈는 조금 거북스러워졌습니다. "아, 그보다도 찾아온 용건을 말씀해 주시죠." "참, 그렇군요. 사실 격식 따윈 제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용건이란 다름이 아니라,맥파아슨 사건의 범인을 체포해야 될 것인가, 안 해야 할 것인가 의논을 드리려구요." "범인이라니,아이언 머독 말입니까?" 바아들 경감은 뻔하지 않으냐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 사나이 밖에 없습니다. 이런 시골에선 용의자도 매우 한정된 범위로 좁힐 수 가 있죠." "어떤 증거가 있습니까?" 홈즈가 물었습니다. 바아들 경감이 말하는 증거라는 것은 여태까지 홈즈가 생각해온 것과 똑 같았습니다. 화를 잘내는 성격, 맥파아슨과 결혼을 약속한 모오드 벨라미에게 마음을 두고 있었 다는 것이 훌륭한 증거가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머독이 가까운 시일 안에 이 고장을 떠나려 하는 것 은 모르고 있었 습니다. "이만큼 증거가 갖추어져 있는데 도망이라도 간다면 제 입장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머독이 틀림없는 범인이라면 책임 추궁을 당할 것이 뻔합니다. 바아들 경감은 그 점에 몹시 신경을 쓰고 있었습니다. 홈즈가 말했습니다. "저도 한때는 경감님과 같은 추리를 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잘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만으로는 헛점투성이입니다." "헛점투성이라구요?" 바아들 경감은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첫째, 머독에게는 훌륭한 알리바이가 있습니다. 그날 아침, 그는 줄곧 학생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대수를 가르치고 있었지요. 그리고 맥파아슨이 벼랑아래에서 나타난 지 2,3분 만에 뒤쪽, 즉 반대 방향에서 걸어왔단 말입니다." "그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알리바이가 아무래도 수상쩍은 생각이 들어서..." "또 한가지 잊어서는 안 될 것은 자기와 비슷한 상대에게 혼자서 저 정도로 난폭한 짓을 가할 수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공범자가 있었겠죠." 홈즈는 거기에는 대꾸하지 않고 말을 이어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상처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범인은 어떤 흉기를 사용했을까요?" 바아들 경감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부드러운 채찍을 쓴 것 같더군요." "상처를 잘 보셨습니까?" 홈즈가 말했습니다. "물론이죠." "저는 렌즈로 자세히 들여다 보앗는데, 좀 별난 상처더군요. 부드러운 채찍 따위로 당했다고는 생각할수 없었습니다." 바아들 경감은 눈을 둥그렇게 떴습니다. "그래요" 홈즈는 잠자코 확대된 사진 한장을 바아들 경감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이런 때 저는 사진을 이용한답니다." 바아들 경감은 감탄했습니다. "과연 철저하시군요." "그렇지 않으면 범인을 잡지 못합니다. 언젠가는 경찰에서도 채택해야 할 수사법이라 생각합니다만.... 그건 그렇고,오른쪽 어깨의 이 부르튼 자리 말인데, 뭔가 눈에 띄는게 없습니까?" 바아들 경감은 눈만 껌벅거렸습니다. "글쎄요, 전혀..." 홈즈는 손가락으로 짚어 가며 설명했습니다. "여긴 피가 나와 있습니다. 여기도 그렇습니다. 이쪽 부르튼 자리도 역시 그렇죠? 상처가 심하고 약한 것이 사진에 뚜렷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건 무엇을 뜻할까요? 부드러운 채찍이 흉기로 사용되지 않았다는 것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바아들 경감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무엇으로 그랬을까요? 선생은 알고 계시겠죠?" 홈즈는 입가에 야릇한 웃음을 띄고 말했습니다. "글쎄, 알고 있기는 하지만, 혹시 틀릴지도 모르지요. 지금으로선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홈즈는 빨리 바닷가로 나가 보고 싶었으므로, 어서 이야기를 끝내려는 투로, "어쨋든 이 상처가 무엇에 의해 생긴 것인지만 알면, 이 범인을 밝혀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바아들 경감은 홈즈의 기분도 모르고,눈치 없이 이야기를 계속하였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웃으실지 모르겠습니다만, 혹시 벌겋게 단 철사 같은 것을 등에 갖다 댄 것은 아닐까요?" 바아들 경감으로서는 꽤 그럴듯한 생각을 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홈즈는 자기도 모르게 다시 이야기에 끌려 들었습니다. "과연 그러듯한 생각이군요. 그렇지만 그와 전혀 다른 원인도 아직은 생각지 않을 수 없죠. 어쨋든 지금 머독을 체포할수는 없어요. 맥파아슨의 마지막 말도 마음에 걸리고. '사자의 갈기'라는 말 말입니다." "혹시 잘못 들으신건 아닙니까?" 바아들 경감이 물었습니다. "글쎄, 그럴 수도 있겠지만, 분명히 사자의 갈기라고 말했어요. 스택허어스트씨도 함께 들었습니다." 홈즈는 그만 바닷가로 나가 보려고 일어섰습니다. 그러자 바아들 경감이 거의 매달리다시피, "무엇인가 짐작되시는 점이 있나 본데, 말씀해 주실 수 없겠습니까?" 하고 말했습니다. 홈즈는 잠깐 망설이다가 말했습니다. "글쎄요... 좀더 확실한 증거를 잡기 전에는 말하기 싫습니다. 그보다 지금부터.." 바아들 경감은 홈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물었습니다. "언제쯤이나 확실한 증거를 잡게 될까요?" "한시간 아니 좀더 빠를 지도 모릅니다. 저를 빨리 놓아 주시면 그만큼 빨리 알 수 있습니다." 경감은 의심스럽다는 표정으로 홈즈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렇게 숨기시지 말고, 어서 말씀해 주십시오. 선생이 조사하시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군요... 혹시 앞바다에 있던 어선 아닙니까?" "아닙니다. 그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어요." 바아들 경감은 고개를 약간 갸우뚱했습니다. "그럼 벨라미 부자죠? 두 사람 다 맥파아슨을 좋지 않게 생각하고 있던것 같은데..." 홈즈는 빙긋이 웃었습니다. "뭐라고 하든 이쪽 준비가 갖추어질 때까지는 말할 수가 없소." 그리고는 결말을 짓듯이. "그보다 서로 바쁜 몸이니 점심때쯤 이리로 다시 오시지 않겠습니까? 아까도 말했다시피 난 어떤 것을 빨리 확인해 봐야 하니까요." 하고 말했습니다. 바아들 경감은 서운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렇다면 할 수 없군요. 이따가 다시 오도록 하겠습니다." 바로 그때, 뜻밖의 일이 일어났습니다. 현관 문이 '쾅!' 하고 열리더니 복도를 허둥지둥 달려오는 소리에 이어, 누군가 방안으로 굴러들어 왔습니다. 얼굴이 새파랗 게 질리고 머리가 마구 헝클어진 아이언 머독이었습니다. 머독은 두 손으로 탁자를 붙들어 겨우 몸을 지탱한 채, "브랜디를 ...." 하고 소리치더니, 그대로 소파에 쓰러져 버렸습니다. 체포해야 하느냐, 그냥 두어야 하는냐 하던 화제의 주인공이 별안간 굴러들어왔으므로 두 사람은 그쪽으로 정신을 빼앗겼습니다. 그러나 머독은 혼자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뒤에 스택허어스트가 머독에 못지않게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숨을 헐떡이며 들어 왔습니다. "자, 자! 브랜디를! 정신을 차리게 맣이 좀 먹여 주십시오. 가까스로 여기까지 데리고 왔습니다. 오다가 두번이나 기절을 했었습니다." 스택허어스트가 소리쳤습니다. 홈즈는 서둘러 브랜디를 컵에 따라 머독에게 먹여 주었습니다. 머독은 브랜디를 절반쯤 마시더니 조금 기운을 차렸습니다. 그는 한 손을 짚고 일어나 어깨를 드러내 보이며 외쳤습니다. "손을 좀 써 주십시오! 기름을 바르든가, 아편이나 모르핀을 마시게 해 주십시오. 부탁입니다! 아파서 죽겠습니다." 바아들 경감과 홈즈는 '앗!' 하고 동시에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의 어깨에는 맥파아슨 이 입었던 것과 똑같은 상처가 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6. 범인의 정체 머독의 이마에서는 구슬땀이 흘러 내렸습니다. 아픔을 참기가 힘든 모양이었습니다. 머독은 브랜디가 목을 지나갈때마다 죽음의 길목에서 되돌아오는듯 느껴졌습니다. 내쉬는 숨은 거칠었으며, 때때로 가슴을 주어뜯기도 했습니다. 금방이라도 죽는 건 아닐까 걱정하면서 홈즈는 브랜디를 계속 조금씩 입 속으로 흘려 넣어 주고, 스택허어스트를 시켜 상처에 샐러드유를 바르게 하였습니다. 얼마 후, 머독은 마침내 조용해졌습니다. 아픔이 어느 정도 가신 모양이었습니다. "통증이 가라앉은 모양입니다. 다행히 목숨은 건질 수 있을 것 같군요." 눈을 감고 있는 머독을 내려다보며 홈즈가 말했습니다. "정말 놀랐습니다! 어떻게 된 걸까요? 도대체 누구에게 당했을까요?" 아직도 놀라움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스택허어스특 말했습니다. "어디 있었죠, 머독은 ?" 홈즈가 물었습니다. "바닷가에 있엇습니다. 맥파아슨이 당한 바로 그 장소입니다." "같은 장소라구요?" 바아들 경감이 갑자기 눈을 빛내며 큰 소리로 물었습니다. "이 사람도 만일 맥파아슨 처럼 심장이 약하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겁니다. 훈련소 까지는 너무 멀기 때문에 우선 이곳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소장님은 그때 어디 계셨습니까?" 홈즈가 스택허어스트에게 물었습니다. "예, 난 벼랑 위를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별안간 밑에서 고함 소리가 들려 내려다 보니, 머독이 마치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올라오고 있더군요. 그래서 얼른 뛰어내려가 부축해 데려온 겁니다. 홈즈씨, 부탁이니 온 힘을 기울여 이 고장의 액운을 제거해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여긴 사람이 살지 못하는 곳 이 되어 버릴 겁니다." 스택허어스트의 얼굴은 심한 두려움으로 일그러졌습니다.홈즈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안심하십시오. 잘 해결될 겁니다. 자, 함께 갑시다. 경감님도 가시지요. 이제 곧 살인범을 넘겨 드리겠습니다." "참말 입니까? 정말 고맙습니다." 바아들 경감은 매우 기뻐했습니다. 정신을 잃고 있는 머독으 간호를 가정부에게 맡기고 세 사람은 참극의 현장인 바닷가 로 내려갔습니다. 모래 사장에 머독의 옷과 수건이 놓여 있었습니다. 홈즈는 그것을 보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물가를 따라 걸어갔습니다. "범인이 어디에 숨어 있다는 거죠?" 바아들 경감이 주위를 둘러보며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주위에는 사람의 그림자라곤 하나 없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보십시오." 벼랑 아래 수정처럼 맑고 푸른 물이 가득 괴어 있었습니다. 홈즈는 바위에서 바위로 건너 뛰며 열심히 물 속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바아들 경감이 답답하다는듯 물었습니다. "홈즈씨 범인이 물 속에 숨어 있다는 겁니까?" 홈즈는 잠자코 물 속만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렇게 오래도록 물 속에 숨어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경감이 이번에는 조금 짜증스러운 얼굴로 말했습니다. 그래도 대꾸가 없던 홈즈는 가장 깊고 고요한 곳에 이르더니, 깜짝 놀랄 만큼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것을 좀 보십시오!" 스택허어스트와 바아들 경감은 빨리 다가가서 홈즈가 가리키는 곳을 들여다보았습니 다. "저것이 사이아네아 입니다!" 홈즈가 말했습니다. "사이아네아라뇨?" 스택허어스트가 물었습니다. "사이아네아 해파리 입니다. 이게 '사자의 갈기'의 정체 입니다!" 사자의 갈기를 뜯어 낸 것으로 밖에 생각할 수 없는 그것은,1미터쯤 되는 물 속 바위 위에서 흔들흔들 하고 있었습니다. 노랑색의 더부룩한 것이 부풀었다가 오그라 들었 다가 하면서 천천히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홈즈는 그것을 노려보며 말했습니다. "범인은 바로 이 놈 입니다!" 그러고는 스택허어스트에게 말했습니다. "자, 이 살인자를 다시는 나쁜 짓을 못하도록 죽여 버립시다." 두 사람은 힘을 합해, 크고 둥근 돌을 들어 물속으로 밀어 넣엇습니다. 파문이 가라앉은 뒤에 보니 돌은 물 속 바위 위에 얹혀 있었습니다. 그 돌 밑에서 노란 헝겊 같은 것이 펄럭펄럭 움직였습니다. "제대로 맞은 것 같군요." 스택허어스트가 말했습니다. 이윽고 진한 기름 같은 것이 돌 밑에서 번져 나와 차차 표면으로 떠올랐습니다. "죽은 모양입니다." 홈즈는 안도의 숨을 쉬며 말했습니다. 잠자코 지켜보던 경감이 소리쳤습니다. "정말 놀랍군요! 뭡니까, 이게?"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사이아네아 해파리란 것입니다." "나는 이 지방에서 자랐지만 이런 건 아직 본 적이 없습니다. 이건 서섹스주의 것이 아니겠죠?" "서섹스주에 있어도 이상할 건 없지요. 폭풍에 밀려 올 수도 있으니까요. 맥파아슨이 죽기 전날 밤, 굉장한 폭풍이 있었던 걸 기억하십니까? 두 분 다 우리 집으로 가십시다. 이놈에게 죽을 뻔한 사람이 쓴 체험담을 보여 드리지요." 그들이 홈즈의 집에 이르자, 머독은 그 동안 기운을 되찾고 일어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멍청해 있었고, 가끔 심한 통증에 몸을 떨곤 했습니다. 머독은 무엇이 어떻게 되었는지 전혀 모르는것 같았습니다. 수영하다가 갑자기 심한 아픔을 느껴 가까스로 뭍으로 기어 올라왔다는 것 밖엔 아무것도 기억 하지 못했습니다. 홈즈는 고개를 끄덕이며 책장에서 책을 한권 빼가지고 왔습니다. "그것에 대한 것을 쓴 책입니다. 이 책 덕분에 수수께끼 같은 이번 사건을 해결 할 수 있었습니다." "그게 무슨 책입니까?" 바아들 경감이 물었습니다. "유명한 생물 학자인 우드가 쓴 <<야외 생활>>입니다. 우드도 이 괴물에 찔려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답니다. 학명은 사이아네아 카피라타라고 하는데 이놈에게 당하면 코브라에게 물린 것과 똑같다고 합니다. 자, 조금만 읽어 볼까요?" 수영할때 사자의 갈기 같은 황갈색 물체를 보면 경계하지 않으면 않된다. 그것은 무서운 독침을 가진 사이아네아 카피라타이기 때문이다. 이것에 쏘이면 피부에 빨간 줄이 생기는 데, 그 상처를 자세히 살펴보면 작은 물집이 잇달아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작은 물집 하나하나가 마치 빨갛게 단 바늘에 찔린 것 처럼 몹시 아프다. "아뭏든 이 독해파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발을 15미터나 뻗기 때문에 그 안에 접근하면 찔려 죽을 위협이 있다고 합니다. 우드는 거기까지는 접근하지 않 앗는데도 죽을 뻔했답니다." 홈즈가 책을 덮으며 말했습니다. 그러자 머독이 소리쳤습니다. "저도 바로 그놈한테 당했습니다." "아뭏든 그때, 우드는 브랜디 한병을 거의 숨도 쉬지 않고 마셨는데, 그 덕택에 목숨을 건진 것 같다고 썼군요." 하며 홈즈는 바아들 경감에게 그 책을 건네 주었습니다. "경감님, 이 책을 빌려 드릴테니 한 번 읽어 보십시오. 그러면 맥파아슨의 죽음에 대한 의문이 풀릴것입니다." 그러자 머독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동시에 저에 대한 의혹도 풀리겠죠." "그건 또 무슨 말이죠?" 홈즈가 시치미를 떼고 물었습니다. "숨기실 필요 없습니다. 선생이나 경감님의 입장에선 저에게 의심을 품는 게 당연 합니다. 맥파아슨과 같은 변을 당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내일쯤은 체포 되었을 테죠." 홈즈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니, 그렇게 되지는 않았을 거요. 나는 이미 진상을 파악하고 있었으니까요." "아니, 어떻게?" 머독은 눈을 휘둥그렇게 떴습니다. "나는 책이나 신문 따위를 읽으면, 그것을 자세한데까지 욀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자의 갈기'도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게 무엇인지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맥파아슨이 말한 이상 그것이 그를 습격했음에 틀림없다고 생각한 나는..." 홈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머독이 천천히 일어나며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저에 대한 혐의는 풀린 것 같군요." 그러자 바아들 경감은 당황하여, "물론이죠. 나는 다만 당신이 모오드양과 결혼하고 싶어했다기에..." 하고 말끝을 흐렸습니다. "그 점에 대해 분명히 말씀드리죠. 저는 맥파아슨과 모오드가 결혼하게 된 걸 알고 오히려 기뻐했습니다. 그래서 모오드의 아버지가 싫엇하는 맥파아슨 대신 편지를 전해 주고 회답을 받아 오기도 했죠. 그리고 훈련소를 떠나려 한 것은, 그토록 좋아하던 맥파아슨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 모든 것이 저를 의심케 하는 이유가 된 것 같군요." 겉보기에는 괴짜같지만 머독은 그야말로 사나이다운 사나이였습니다. 스택허어스트는 머독의 손을 굳게 잡았습니다. "우린 맥파아슨의 죽음으로 신경이 너무 날카로와져 있었네. 지난날의 나쁜 감정 은 모두 잊고 훈련소에 남아서 내 일을 도와 주게." "소장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머독은 스택허어스트의 부축을 받으며 직엄 훈련소로 돌아갔습니다. 뒤에 남은 바아들 경감은 홀린 듯 홈즈를 바라보고 있더니. "정말 훌륭합십니다!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는 자주 들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만들어 낸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소문 이상으로 훌륭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참으로 놀랄 만한 일입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홈즈는 여태까지 이렇게 정직한 칭찬을 들은 적이 없엇습니다. 그는 재빨리 머리를 가로 저었습니다. "천만에요. 바아들 경감! 이번엔 중요한 점을 착각하여 엉뚱하게 헤멘 걸요." "엉뚱하게 헤맸다구요?" 바아들 경감은 의아스러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시체가 물 속에서 발견되었더라면, 그런 착각을 하지 않앗을 텐데... 게다가 마른 채 접혀 있던 수건 때문에 완전히 그릇 판단을 했죠. 맥파아슨은 물기도 채 닦지 못하고 달아났던 겁니다. 그런데 나는 물에 들어가지 않은 걸로 착각했지요." "그렇지만 선생이 아니었다면 독해파리의 짓이라는 걸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홈즈는 미소를 지었습니다. "아닙니다. 경감님. 나는 여태까지 경찰관들을 곯려왔습니다. 그 벌로 이번엔 내가 사이아네아 카피라타라는 독해파리에게 한대 얻어맞을 뻔했습니다. 가까스로 받아넘긴 셈이 되기 했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