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이디 프랜시스 카팍스의 실종 ?? (The Disappearance of Lady Frances Carfax) 코난 도일.. 1.. 와트슨의 활약.. 어느날 홈즈가 밑도끝도 없이 이런 말을 꺼냈다. "와트슨, 자네는 요즈음 기분이 흐릿해서 여행이라도 하고 싶다고 말했었지? 그 래서 하는 말인데, 스위스의 로잔은 어떤가? 일등칸에 여비는 귀족급으로 쓸 수 있거든." "굉장한걸, 어떻게 그럴수가...." 홈즈는 의자에 등을 기대며,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어 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위태로운건 동행도 없이 이곳저곳으로 흘러다니는 여인이지. 남 에게 해를 끼치진 않지만, 남으로부터 해를 입기가 쉬워, 재산은 있기 때문에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이 호텔에서 저 호텔로 돌아다니는 중에 질이 좋지 않 은 사람들의 목표가 되기 십상이지. 여우굴에 발을 들여 놓는 병아리 같은 존재 라고. 레이디 프랜시스 카팍스는 그런 여성이네. 이 여자에게 어떤 불길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는지 걱정을 하고 있는 참일세." 홈즈는 잠시 노트를 뒤적이다가 말을 이었다. "레이디 프랜시스 카팍스는 고 러프턴 백작의 혈통을 이어받은 귀한 신분이지. 부동산은 남자 자손이 상속받아 관리하고 있지만, 이 레이디에게 돌아간 재산도 적지는 않을 걸세. 그 중에는 은과 다이아몬드로 만든 희귀한 스페인의 장신구 도 포함되어 있다네. 레이디는 이것을 몹시 애지중지해서 은행에도 맡기지 않고 늘 갖고 다닌다네. 그리고 레이디 프랜시스는 막 중년에 접어든 아름다운 귀부 인이라는 걸세." "그래, 그 귀부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겐가?" "레이디 프랜시스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났느냐---살았는지 죽었는지, 그것을 규 명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일세. 그녀는 규칙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최근 4년동안 은 옛날의 가정교사였던 도브니 양에게 2주마다 편지를 보내는 것이 습관이었 네. 그리고 나에게 레이디 프랜시스에 대해 상의를 해온것도 도브니 양이었네. 그런데 5주가 지났는데도 소식이 없다는 것일세. 마지막 편지는 로잔의 내셔널 호텔에서 온 것이고, 레이디 프랜시스는 그곳을 떠났는데도 행선지를 알리지 않 았던 것 같아. 그녀의 친척들이 무척 걱정을 하고 있는데, 워낙 부자들이라 수 사에 들어가는 돈은 아끼지 말라고 하는군." "레이디 프랜시스는 도브니 양 외에도 편지 왕래를 하는 사람이 있을 만하지 않 은가?" "확실한 단서가 될 만한 곳이 하나 있기는 하지. 그건 은행일세. 은행의 통장은 일기와 같아서 추적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지. 레이디 프랜시스의 거래 은행은 실베스타일세. 나는 그녀가 돈을 인출한 자료를 검토해 보았네. 끝에서 두 번째 수표는 로잔에서 결재받아 비용에 썼는데, 액수가 크니까 아직 현금을 지니고 있을 것이고, 그 뒤에 끊은 수표는 단 한 장뿐일세." "누구에게 어디서 끊었던가?" "마리 드뱅 양에게 준 것일세. 어디에서 끊었는지는 알 수 없고, 그 수표는 남 프랑스의 작은 도시 몽펠리에의 리용 은행에서 현금으로 인출되었는데, 아직 3 주가 되지 않았네. 액수는 50파운드." "그래, 그 마리 드뱅이라는 여자는 누군가?" "마리 드뱅은 레이디 프랜시스의 하녀였네. 왜 그녀가 드뱅에게 수표를 주었는지 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자네가 조사해 준다면 문제 해결은 수월하겠네." "내가 조사를 한다고?" "그래서 로잔으로 여행을 가라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 에이브러험스 노인 사건 으로 시간도 없고, 또 내가 없으면 경시청 친구들이 안절부절 못할테고, 반면에 범죄자들은 기를 펼게 아닌가. 그래서 자네에게 가보라는 걸세. 영국과 스위스 사이의 전신은 단어당 2펜스나 하지만, 나와 상의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언제라 도 전보를 쳐주게나." 그로부터 이틀 뒤, 나는 로잔의 내셔널 호텔에 도착, 지배인인 모세 씨의 영접을 받았다. 그의 이야기에 의하면, 레이디 프랜시스는 이곳에 몇 주일동안 묵었다고 한다. 나이는 마흔이 가깝지만 아직도 아름다워서, 젊었을 때는 정말 대단한 미 인이었을 것이라고 하며 수선을 떠는 것이었다. 모세 씨는 레이디 프랜시스의 귀중한 장신구에 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지만, 종 업원들의 소문으로는 그녀의 침실에 있는 튼튼해 보이는 여행용 가방에는 늘 자 물쇠가 채워져 있었다고 한다. 레이디 프랜시스의 하녀인 마리 드뱅은 이 호텔의 급사장과 약혼을 한 사이라, 그녀의 주소를 알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몽펠리에의 트라장 가 11번지였다. 곧 그 주소를 적어 두었는데, 홈즈라고 해도 이만큼 신속하게 자료를 모으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되었다. 하지만 내 능력으로는 어째서 레이디 프랜시스가 갑작스럽게 이 호텔을 떠나갔는 지, 그 원인을 밝힐 수가 없었다. 그녀는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특실을 잡고 여름 한철을 계속 머물러 있을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난데없이 내일 출발하겠다 고 말하고는 호텔을 떠나버린 것이다. 그 때문에 선불한 호텔 비용을 날려 버리 게 되었다. 하녀의 애인이 된 급사장이 단서가 될 만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레이디 프랜시스 가 급히 떠난 것은 떠나기 이틀전에 키가 크고 살갗이 검으며 턱수염을 기른 남 자가 호텔을 찾아온 것과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대단히 거칠어 보이 는 남자로, 그녀에게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다고 했다. 그 남자는 호숫가의 산책로에서 그녀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튿날 호텔로 찾아왔으나, 그녀는 만나 주려하지 않았다. 영국인이었는데, 이름은 밝히 지 않았다. 그녀는 그 뒤 곧 호텔을 떠났다. 급사장의 이야기로는 하녀인 마리도 레이디 프랜시스가 서둘러 떠난 것은 그 남자와 관계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급사장은 마리가 그녀의 하녀 일을 그만 둔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거기 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거나, 말하고 싶지 않거나 둘중 하나일 것이다. 그것 을 알고 싶다면 별수없이 몽펠리까지 찾아가서, 직접 마리에게 물어 볼 수밖에 없었다. 그것으로 나의 활동 첫 단계는 끝났다. 다음에는 레이디 프랜시스가 로잔을 떠나 어디로 가려했는지를 조사해 보리고 했다. 쿡 여행사 지점의 담당자를 조사해 조 회해 본 결과, 아마도 그녀는 누구에겐가 자기의 행방을 감추기 위해서 이곳을 떠났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까닭인즉. 그녀의 짐이 그 행선지를 확실히 하지 않은 채 여기저기를 경유해서, 라인 강가의 온천 휴양지 바덴에 도착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곧 바덴 으로 갔다. 그전에 홈즈에게 전보를 쳐서 조사의 진전 상태를 알렸다. 홈즈에게 서는 비꼬는 투로 칭찬의 답장이 왔다. 바덴에서는 그녀의 발자취를 추적하는데 별로 힘들 것이 없었다. 그녀는 앵리셔 라는 호텔에 묵고 있었다. 지배인의 설명에 의하면 그녀가 2주가량 묵고 있는 동 안 남아메리카에서 온 선교사 슐레징거 박사 내외와 친해졌다고 한다. 외로운 여 자에게 흔히 있는 일이지만, 그녀는 종교에 몰두함으로써 위로와 격려를 느끼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슐레징거 박사는 신앙에 몸과 마음을 바쳐 지나칠 정도로 선교 활동을 하다가 건 강을 해쳐, 휴양차 이곳에 와 있었다고 하는데, 그녀는 그러한 박사에게 감동을 받은 것 같았다. 그리고 슐레징거 부인과 함께 박사를 돌보아 주었다. 박사는 두 여인의 시중을 받으며, 베란다에 놓여있는 안락의자에 기대어 나날을 보냈다. 마침내 박사는 어느정도 건강을 회복해서 그 부부는 런던으로 돌아갔는 데, 그때 레이디 프랜시스도 그들과 동행했다. 그건 정확히 3주전의 일로, 그 뒤로 지배인은 그녀에 관해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하녀인 마리의 경우는 그 며칠 전, 다른 손님의 하녀들에게 이제 그만두게 되었다고 눈물을 글썽이며 떠났다고 한다. 슐레징거 박사가 출발 전에 일행 모두의 경비를 지불했다는 것이다. 호텔 지배인은 그런 이야기를 하고 난 뒤에 말했다. "레이디 프랜시스 카팍스에 대해 물어 오신 분은 당신만이 아닙니다. 열흘쯤 전 에도 당신과 같은 일로 여기에 오신 분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이름을 말하던가요?" "아뇨, 하지만 영국인이었습니다. 좀 색다른 분이긴 했습니다만." 나는 홈즈의 추리 방법을 흉내내어, 그때까지 알아낸 사실을 이것저것 연결지으 며 물었다. "거친 성격의 사람이 아니던가여?" "아주 거칠어 보였습니다. 몸집은 크고, 까맣게 탄 얼굴에 턱수염을 길렀더군요. 우리를 뛰쳐나온 사자처럼 난폭하게 보여, 이야기를 나누기에도 조심스러웠습니 다." 안개가 걷힘에 따라 사람의 모습이 드러나 보이는 것처럼, 수수께끼가 차츰 확실 해지기 시작했다. 차분한 인품에 신앙심까지 두터워진 레이디 프랜시스는 질이 나쁘고 거친 남자의 집요한 시달림을 받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녀는 그 남자가 두려웠던 것이 다. 그렇지 않고는 로잔에서 도망치지는 않았을 것이다.사나이는 계속 그녀를 뒤 쫓고 있다. 조만간 따라잡을 것이다. 아니, 이미 따라잡았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친지에게 편지를 보내지 않게 된 것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그녀와 일행이 된 친 절한 슐레징거 박사 내외가 그 남자로부터 그녀를 지켜 줄 수 있을까? 이렇게 끈 질기게 그녀을 뒤따르는 것으로 보아, 그 자는 무서운 음모를 품고 있는 것 같 다. 나는 그것을 밝혀야 한다. 나는 홈즈에게 편지를 써서, 내가 신속하게 이 사건의 대체적인 진상을 파악했다 는 것을 알려 주었다. 그런데 홈즈는 그 답장으로 뚱딴지 같은 전보를 보내왔다. - 슐레징거 박사의 왼쪽귀는 어떤 모양인가? - 나는 이 실없는 전보 내용에 약간 화가 치밀었다. 더구나, 슐레징거 박사는 바덴 에는 없었기에 홈즈의 밑도끝도없는 전보 같은 건 묵살하기로 했다. 그리고 레이 디 프랜시스의 하녀였던 마리를 만나기 위해 몽펠리에로 향했다. 마리를 찾아내어 그녀가 알고있는 바를 물어보는 일은 식은죽 먹기였다. 마리는 충성스러운 여자로, 레이디 프랜시스의 밑을 떠난 것은 레이디가 친절한 슐레징 거 박사 내외와 일행이 된 것이 마음 든든했거니와, 자신도 곧 결혼을 해서 어차 피 그녀와는 헤어지게 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마리는 약간 당혹스러운 얼굴로 털어놓았다. "레이디 프랜시스는 바덴에 머무르는 동안 저에 대해서 못마땅한 기색을 보이기 시작하셨는데, 한번은 저의 신용을 의심하는 투의 말씀을 하시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일이 있었기에 그만두겠다는 말을 올리기가 수월했어요. 레이디 프 랜시스는 헤어질 때 결혼 비용에 보태 쓰라고 50파운드 짜리 수표를 끊어주셨습 니다." 한편, 마리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그 정체 모를 영국인을 수상하게 생각하는 모 양인지 이런 말을 했다. "호숫가의 산책로에서 그 남자가 억지로 레이디 프랜시스의 손목을 잡는 것을 제 눈으로 보았어요. 난폭하고 무서운 사람이예요. 레이디 프랜시스가 슐레징거 내외분과 함께 런던으로 가는 것을 승낙하신 것도, 그 남자를 두려워했기 때문 이라고 생각합니다. 레이디 프랜시스는 저에게 그런 말씀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 지만, 늘 불안하고 초조한 생활을 하신 것은 확실합니다." 마리는 거기까지 이야기를 하다말고 벌떡 의자에서 일어나서, 놀라움과 두려움으 로 얼굴이 굳어지며 외쳤다. "어머! 그 악당이 나타났어요. 저 사람이 바로 그 남자예요." 활짝 열린 거실의 창 밖을 내다보니 검은 턱수염을 기르고 살갗이 검은 거한이 거리를 천천히 걸어오며 집집마다 그 번호표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 역시 나 와 마찬가지로 마리의 집을 찾고 있는것이 분명했다. 나는 앞뒤를 가릴 시간도 없이 달려나가 그를 불러 세웠다. "당신은 영국인이지요?" 남자는 험악한 얼굴이 되어 말했다. "그게 어떻다는 게요?" "이름을 말해 주시겠소?" 남자는 깨끗이 거절했다. "못하겠는데."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레이디 프랜시스 카팍스는 어디 계시오?" 남자는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물고 늘어졌다. "그녀를 어떻게 했소? 왜 뒤를 따라다니는 것이오....?" 순간, 남자는 호랑이처럼 덤벼들었다. 나도 싸움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지 만, 상대방은 강철과도 같은 힘을 갖고 있어서 나는 순식간에 목이 눌려 하늘이 노래지는 것을 느꼈다. 그때 길 건너 선술집에서 작업복을 입고 수염이 무성한 노동자 하나가 곤봉을 들 고 달려와서는 남자의 어깨를 내리쳤다. 그 틈에 나는 급히 그의 손에서 빠져나 왔다. 그러자 화가 머리 끝까지 난 그는 다시 나에게 덤벼들 것인지를 잠시 망설이며 생각하는 듯하더니, 으르렁거리며 방금 내가 나온 마리의 집쪽으로 걸어가 버렸 다. 나는 옷의 먼지를 털며, 내 곁에 서 있는 은인에게 감사의 말을 하려고 돌아 섰다. 그러자 노동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허허 와트슨. 꼴이 말이 아니로군. 오늘밤의 급행열차로 나와 함께 런던으로 돌 아가는 게 신상에 좋을 것 같구먼." 노동자는 홈즈가 변장한 모습이었다. 그로부터 한 시간 가량 지난 뒤, 홈즈는 평상시의 옷으로 갈아입고 호텔의 내 방 에 앉아 있었다. 홈즈는 자기가 갑자기 적절한 순간에 나타난 이유를 간단히 설 명했다. 홈즈는 런던에서 하던 바쁜 일을 대충 마무리짓고, 내가 바덴에서 몽펠 리에로 갈 것을 예상하고는 한걸음 먼저 이곳에 와서 노동자로 변장하고 선술집 에서 내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홈즈가 말했다. "지금 현재까지 자네는 가능한 한도의 실패라는 것은 모조리 저질러 온 셈일세. 자네의 그 수사라는 것은 어디에 가든 소동만 일으켰지. 아무것도 성과가 없지 않은가." 나는 심통이 나서 말했다. "자네라고 해도 아마 이 이상 잘할 순 없었을 걸세." "'아마'는 덤이라고. 나는 실제로 멋진 성과를 올렸으니까. 그런데 이 호텔에는 필립 그린이라는 귀족이 한분 묵고 있네. 그분으로부터 보다 확실한 단서를 얻 을 수 있을 걸세." 그때 보이가 명함 한 장을 들고 들어왔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몸집이 큰 남자 가 나타났는데, 놀랍게도 아까 나를 목졸라 죽이려던 그 남자였다. 그도 나를 보고 놀란 모양이었다.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홈즈 씨? 편지를 받고 찾아왔습니다만, 이분이 사건과 어떤 관계라도?" "이 사람은 나의 오랜 친구인 와트슨 박사입니다. 이번 사건에도 협력하고 있지 요." 정체 모를 그 남자는 검게 탄 큰 손을 내밀어 사과했다. "어디 다치신 데는 없는지요? 선생께서 내가 레이디 프랜시스를 못살게 군다는 투로 말씀하기에 그만 화가 나서.... 사실 요즈음의 나는 무슨 행동을 해야하는 지, 나 자신도 모르는 상태입니다. 내 신경은 마치 전류가 흐르는 전선처럼 곤 두서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일이 이렇게 돌아가는지도 알수가 없습니다그려. 무엇보다도, 홈즈 씨. 도대체 어떻게 해서 나에 관해서 아셨습니까?" "레이디 프랜시스의 가정교사였던 도브니 양을 통해서입니다." "아, 그 수잔 도브니 할멈 말입니까? 예, 잘 알고 있지요." "그분도 당신에 관해 잘 알고 있더군요. 옛날 당신이 미국에 건너가기 전의 일부 터 말입니다." "어허, 당신은 나의 신상 문제에 관해서 환히 조사를 끝낸 모양이군요. 그렇다면 뭘 숨기겠습니까. 나만큼 레이디 프랜시스를 진정으로 사랑한 사람도 없을 것이 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내가 멧돼지처럼 괄괄한 성격의 젊은이였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비단결처럼 고운 마음씨의 소유자라, 나와 같은 거 친 녀석에겐 견디기 어려웠겠지요. 그래서 처녀 시절에 그녀는 가끔 울기도 했 습니다. 마침내 프랜시스는 나와는 이야기도 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 는 홧김에 미국으로 건너갔지요, 그러나 프랜시스 역시 나를 깊이 사랑했기에, 끝내 독신을 지키고 살아왔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나는 그동안 나이도 먹고 미국 오하이오 주에서 사업에 성공하자, 차분한 마음 으로 생각했습니다. 프랜시스를 찾아내어 그녀의 마음을 돌이켜 봐야겠다고. 그 리고 마침내 로잔에서 프랜시스를 만나, 어떻게든 설득해 보려고 했습니다. 그녀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다시 마음의 문을 닫고서 두 번째 찾아갔을 때는 행방도 알리지 않고 떠나고 없는 것이었습 니다. 그래서 바덴까지 찾아가 허탕을 치고, 수소문끝에 프랜시스의 하녀였던 아가씨가 이곳에 산다는 것을 알아냈던 것입니다. 하지만 길거리에서 별안간 와트슨 박사가 모욕적인 말을 하기에, 옛날의 성격이 되살아나 그런 추태를 보이고 말았지요. 어쨌거나, 레이디 프랜시스가 그 뒤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홈즈는 진지한 얼굴로 대꾸했다. "그건 우리도 궁금해 하는 일입니다. 당신의 런던 숙소는 어디입니까. 그린 씨?" "랭검 호텔입니다." "그럼, 런던으로 돌아가서 내가 연락할 때까지 기다려 주십시오. 나로서는 레이 디 프랜시스의 안전을 위하여 가능한 일은 다할 겁니다. 지금 현재로서는 그 이 상의 말은 할 것이 없습니다. 연락을 위해 이 명함을 드리겠습니다. 자, 와트슨. 자네도 짐을 챙켜 떠날 준비를 해주게. 나는 하숙집 허드슨 부인에 게 전보를 치고 오겠네. 내일 7시반쯤 허기가 져서 뱃가죽이 등에 닿아서 돌아 갈 테니까, 식사를 장만해 놓으라고 말일세." 2. 선교사의 귀... 런던 베이커 가의 우리 집으로 돌아와 보니 전보 한 통이 와 있었다. 홈즈는 그 것을 읽고는 자못 재미있다는 듯 장난기가 어린 표정으로 나에게 던져 주었다. 내용은, - 갈기갈기 찢어져 있었음. - 이라고 되어 있고, 발신지는 바덴이었다. 나는 고개를 꺄우뚱했다. "이게 뭔가?" "기억하고 있겠지만, 내가 자네에게 전보를 쳐서 슐레징거 박사의 왼쪽귀가 어떻 더냐는 질문을 했는데, 자네는 답장도 없었지." "그야....박사 일행은 이미 바덴을 떠나서 살펴볼 수가 없었잖아." "맞아, 그래서 나는 다시 엥리셔 호텔의 지배인에게 같은 질문의 전보를 쳤지. 이게 그 회답일세." "이 회답에서 뭘 알았단 겐가?" "우리의 상대가 극히 교활하고 위험스러운 인물이라는 것을 알았네. 남미에서 왔 다는 선교사 슐레징거 박사란 '예수 파는 피터스'라는 바로 그 작자일세. 이 남 자는 호주에서 손꼽히는 악당으로 알려져 있네. 마음이 약하거나 신앙심이 깊은 독신녀를 상대로 사기를 치는데, 프레이저라는 여자가 그 조수 노릇을 하고 있 네. 이번 사건에 선교사가 등장했다고 하기에 감이 잡히더군. 그래서 그의 특징인 왼쪽 귀의 모습을 물어 본 것인데, 너덜거리는 귀라니까 이제 확증을 잡았네. 귀가 그렇게 된것은 술집에서 행패를 부리다가 술집 아가씨가 물어뜯어서 그런 꼴이 되었다더군. 레이디 프랜시스가 이런 악당의 손에 걸려든 이상 마음을 못 놓겠는걸. 그녀는 이미 살해되었거나, 아니면 어딘가에 갇힌 상태이기에, 도브 니 양을 비롯한 친지들에게 편지 한 통 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네. 현 재 런던에 있겠지만, 그 은신처는 알 길이 없고... 하여간, 허드슨 부인의 특별 요리를 배불리 먹고나서 찾아나서 보세. 경시청의 레스트레이드 경감에게도 알 려주고." 수백만명이 들끓는 런던에 섞여 들어온 세 사람을 찾아낸다는 것은 사실 쉬운 일 이 아니었다. 여러 갈래로 수소문을 해 봤지만 알길이 없었고, 슐레징거가 출입 할 만한 장소는 이잡듯 뒤져 보았으나 허사였다. 초조한 나날이 1주일 가량 흐른 어느 날, 갑자기 한 줄기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웨스트민스터 로에 있는 보빙턴 전당포에 옛 스페인 양식의 은과 다이아몬드로 된 목걸이가 들어온 것이다. 저당을 잡힌 사람은 목사 차림의 체구가 크고 수염 이 없는 남자였다는데, 장부에 적힌 주소와 이름은 가짜였다. 귀가 잘 보이지 않 았다고 하나, 인상으로보아 슐레징거가 틀림없었다. 필립 그린은 레이디 프랜시스가 걱정이 되어 그 동안 세번이나 홈즈를 찾아왔었 다. 그 세 번째는 그러한 새로운 사실을 알아낸 지 한 시간도 안되어서였다. 그 린 씨의 그 큰 몸집에 걸친 옷이 헐렁해 보였다. 근심 걱정으로 살이 빠진 것이 다. 홈즈는 그린과 얼굴을 대하기가 무섭게 말했다. "놈은 레이디 프랜시스의 보석들을 전당포에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손을 쓸때가 왔습니다." "내가 할 일은?" "그들은 당신을 모르고 있겠지요?" "얼굴을 마주친 일이 없으니까요." "놈은 또 어느 전당포에든 나타날 것입니다. 그럴경우, 우리는 놈을 물고 늘어져 야 합니다. 하지만 돈을 후하게 쳐주었고 까다로운 질문도 하지 않았다니까, 돈 이 궁하면 다시 보빙턴 전당포로 찾아올 겁니다. 전당포 주인에게는 내가 편지를 써서 당신이 전당포 안에 잠복해 있을 수 있도 록 부탁해 두겠으니, 그 자가 나타나거든 뒤를 밟으십시오. 하지만 경솔한 짓은 절대 삼가십시오. 특히 폭력을 쓰면 일을 그르치게 됩니다. 은신처만 알아내고 는 곧장 이리로 오십시오." 이틀이 지나도록 그린으로부터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그러나 사흘째 되던 날 저녁, 그린이 흥분한 나머지 부르르 몸을 떨며 뛰어들어왔다. "나타났어요!....빨리..!" 얼마나 당황하고 있는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홈즈가 그린의 손목을 잡고 의자에 앉히며 물었다. "일어난 일을 순서대로 이야기해 보십시오." "불과 한 시간 전의 일입니다. 이번에는 여자가 나타났는데, 갖고 온 목걸이가 요전의 그것과 짝을 이루는 것이었기에, 전당포 주인이 나에게 눈짓을 해주었습 니다. 여자는 키가 크고 얼굴이 푸르며, 족제비 같이 작은 눈을 가지고 있었습 니다." 홈즈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 여자입니다." "여자가 전당포를 나서자, 곧 뒤를 밟았습니다. 여자는 케싱턴 로를 지나 어느 가게로 들어가던군요. 홈즈 씨, 그건 장의사였습니다." 홈즈가 흠칫 놀라며 물었다. "그래서요?" "여자가 장의사 주인과 이야기 하더군요. 나도 시치미리 떼고 장의사안으로 들어 가서 관을 고르는 체 했습니다. 그러자 여자가, '너무 늦는군요.' 라고 푸념하자, 주인이 굽실거리면서 변명을 합디다. '그럴 수밖에 없는것이, 흔한 물건이 아니어서 시간이 걸립니다.' 그때 여자가 흘끗 나를 바라보았기에, 나는 관의 값을 물어보고는,먼저 밖으로 나와 골목 속에 몸을 숨겼습니다. 여자는 경계를 하기 시작한 모양인지, 그곳을 나오자 주위를 둘러보고는, 지나가던 마차에 올라탔습니다. 나도 늦을세라 마차 를 집어타고 그 뒤를 밟았지요. 여자는 브릭스턴 로의 폴트니 광장 36번지에서 내렸습니다. 나는 그대로 그 앞 을 지나쳐, 길이 구부러진 곳에서 마차를 내려서는 그 집을 감시하고 있었습니 다." "누굴 봤나요?" "창은 모두가 캄캄하고 아래층 방 하나에만 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덧문 이 닫혀 있어서 안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집 주위를 서성거리며 어찌할 것인가 를 궁리하고 있는데, 포장을 두른 짐마차가 와서 집 앞에 멎었습니다. 두 사람 이 내리더니, 마차 안에서 무엇인가를 내려 현관의 계단 위로 끌어올렸는데 그 것은 관이었습니다." "뭐라고요!" "나는 곧장 안으로 뛰어들려고 했지요. 그때 문이 열리고는 인부들이 관을 들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문을 연것은 그 여자였습니다. 그 여자는 문득 나를 바라 보았는데, 내가 아까의 그 남자라는 것을 눈치챈 것 같았습니다. 여자가 흠칫 놀라며 황급히 문을 닫았으니까요. 당장에 쫓아 들어가고 싶었으나, 당신과 한 약속도 있기에 이렇게 이곳으로 달려왔지요." 홈즈는 편지지에 급히 무언가를 쓰면서 말했다. "잘하셨습니다. 영장 없이는 정식으로 수색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편지 를 갖고 가, 경찰에게 법적인 영장을 받아와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다소 문제가 있을지 모르나 보석을 강탈한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꼭 레스트레이드 경감을 만나십시오." "하지만, 그 사이에 프랜시스가 살해될지도 모릅니다. 그 관을 왜 사들였을까요? 프랜시스가 아니면 누구를 넣으려고 한 걸까요?" "우리가 곧 그리로 갈 생각입니다.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쪽 길은 우리에게 맡기십시오." 3. 홈즈의 패배.. 그린이 달려나가자 홈즈가 말을 이었다. "자, 와트슨. 그린이 가면 경찰이 출동할 걸세. 우리는 그전에 유격대로서 독자 적인 행동을 취해야 되겠네. 사정이 급하니까 법적인 시비는 나중 문제일세. 한 시바삐 폴트니 광장으로 달려나가자고." 마차가 전속력으로 웨스트민스트 다리를 건너고 있을 때 홈즈가 말했다. "피터스는 자기 특기인 선교사로 가장, 레이디 프랜시스의 마음을 사로잡은 뒤 교묘하게 속임수를 써서 충직한 하녀 마리를 해고 시키게 하고는, 레이디 프랜 시스를 런던으로 유인하여 미리 얻어 놓은 그 집으로 끌어들인 것일세. 그리고 나서 태도를 바꿔 그녀의 귀금속을 빼앗았을 테지. 피터스는 누군가가 그녀의 운명을 걱정하고 뒤쫓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기 에, 장신구를 팔아도 아직은 위험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던 모양이야. 레이디 프 랜시스를 놔주면 물론 그 길로 고발당할 테니까 그럴 가능성은 없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붙잡아 둘 수도 없는 일이지. 그래서 그 유일한 해결 방법은 죽이는 일일세." "틀림없는 이야기야." "여기에서 또 하나, 다른 추리를 해 보세. 두 개의 판이한 생각을 따라가 보면 어디선가 교차하는 점에 도달할 수도 있거든. 그래서 그녀가 아니라 관의 일에서 출발하여 거꾸로 생각해 보세. 관을 구입한 것으로 보아 레이디 프랜시스가 이미 죽었다고 볼 수도 있네. 그렇다면 그 시체 를 다루는 데 있어 사망 증명서나 매장 허가증을 갖춘 정정당당한 것이 되니 좀 이상하지 않은가. 뒷마당이라도 파서 몰래 묻어 버릴텐데 말이야. 그렇다면 그 들은 의사를 속여 자연사로 보이게 하는 방법--- 예를 들어, 특수한 독약등으로 그녀를 죽였을 걸세. 그렇다고 의사가 그렇게 호락호락 넘어갈까? 일당이 아니 고서야....." "사망 진단서를 위조한 것은 아닐까?" "그럴 가능성도 있지. 하지만 그럴 것 같지는 않네. 와트슨. 참, 저기에 그 장의 사가 있군. 자네의 의젓한 모습이라면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걸세. 폴트니 광장 에서 치르는 장례는 내일 몇 시에 있는지 물어봐주게." 점원은 아무런 의심도 없이 내일 아침 8시라고 대답했다. 홈즈가 고개를 꺄우뚱 했다. "어떤가, 와트슨. 만사가 다 공공연하지? 어떤 재주를 부렸던, 법률에 따른 수숙 을 밟았으니 두려울 것이 없다는 투야. 자, 이렇게 되면 정면 공격으로 쳐들어 갈 수밖에 도리가 없네. 무장은 되어 있나?" "지팡이가 있네." "좋아, 이쪽은 강하다고. '정의의 싸움이라면, 그 힘은 세 배' 라고 했지. 경찰 이 올때까지 기다리거나, 법을 지킨답시고 구경만 할 틈이 없네. 와트슨. 서로 의 행운을 빌자고." 우리는 마차에서 내려, 폴트니 광장 36번지의 집 현관 벨을 힘차게 눌렀다. 곧 문이 열리고, 어두컴컴한 현관에 키가 큰 여인이 문 뒤에서 우리를 엿보듯 내다 보며 물었다. "무슨 일로?" 홈즈가 말했다. "슐레징거 박사와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 분은 여기에 살지 않아요." 여자는 그렇게 말하며 문을 닫으려 했으나 홈즈는 이미 발 하나를 들이밀고 있었 다. "이름을 어떻게 바꿨는지 모르겠지만, 이 집 주인에게 볼일이 있어서 왔소." 여자는 멈칫하더니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그러시다면 들어오세요. 주인께선 누가 찾아오든 겁날 게 없는 분이니까요." 여자가 우리를 거실로 안내하고는 가스등에 불을 붙이고 나가면서 말했다. "피터스는 곧 내려올 겁니다." 우리가 먼지가 뽀얗고 곰팡내나는 방안을 둘러 보고 있는데, 곧 문이 열리면서 수염이 없고 대머리에 체구가 큰 사나이가 들어왔다. 큼직하고 불그레한 얼굴로, 얼핏 보기에는 자애로운 느낌을 주지만 그 입가에는 잔혹하고 심술뒜은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남자는 아주 부드럽고 점잖은 목소리로 말했다. "뭔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혹시 집을 잘못 찾아 오신 건 아닌지요?" 홈즈가 쏘아붙였다. "능청은 그만! 당신의 이름은 헨리 피터스. 바덴이나 남아프리카에서는 슐레징거 박사로 행세했소. 내 이름이 셜록 홈즈인 것처럼, 그런 틀림없는 사실일 거요." 피터스는 찔끔 해서 홈즈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마음을 가다듬고 나서 역습을 해왔다. "당신의 이름을 들었다고 해서 겁을 낼 일이 있나요, 홈즈 씨? 양심의 가책을 받 을 일이 없을 바에야 말이외다. 그래, 내 집에는 무슨 볼일이 있어서 오셨소?" "레이디 프랜시스 카팍스를 어떻게 했는지 알고 싶소. 그녀를 바덴에서 데리고 왔을 텐데?" 피터스는 차갑게 대답했다. "그 여자가 어디에 있는지는 오히려 내가 물어보고 싶소이다. 100파운드에 가까 운 빛을 지고는, 전당포에서도 거들떠보지도 않는 싸구려 목걸이를 두개 맡기고 갔으니까, 바덴에서는 나와 집사람에게 몹시 친절히 대하고, 런던까지도 따라오 기에 숙박료와 여비까지도 내가 부담해 주었는데, 배은망덕하게도 런던데 도착 하자마자 목걸이 두 개를 놔두고 행방을 감추었다 이겁니다. 그러니 그 여자를 찾아 주면 고맙겠소. 홈즈 씨." "부탁하지 않아도 찾아낼거요. 우선. 이 집안에서부터 찾아봅시다." "수색영장은 가지고 계신가?" 홈즈는 주머니에서 권총을 반쯤 내보였다. "진짜 영장이 도착하기까지 이걸로 대신하겠소." "강도 흉내를 내는구먼." 홈즈가 재미있다는 듯이 말을 받았다. "탐정이 강도짓을 하면 그 솜씨가 보통은 넘겠지. 자, 와트슨. 시작하세." 피터스가 문을 막아서며 안에다 대고 소리를 질렀다. "경찰을 불러, 애니!" 여자가 밖으로 달려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홈즈가 말했다. "서둘자고 와트슨. 피터스, 방해를 했다가는 다쳐. 이 집에 들여 놓은 관은 어디 있지?" "관은 왜? 시체가 들어있다." "그 시체를 봐야겠어." "못하겠다면?" "그럼 강제로라도 볼 수 밖에." 홈즈는 피터스의 거구를 밀어젖히고 홀쪽으로 들어갔다. 홀 안은 가구도 없이 텅 비어 있었으나, 반쯤 열린 문이 있어서 그곳으로 들어가 보니 대형 테이블 위에 관이 올려져 있었다. 홈즈는 가스등의 불빛을 올리고서 지체없이 관두껑을 열었다. 그러나 관속에 누 워 있는 것은 유난히 작은 시체였다. 그것도 나이가 들고 주름살 투성이이 노파 였던 것이다. 레이디 프랜시스가 그 동안 아무리 시달림을 받았다해도 이렇게까 지 비쩍 마른, 주먹만한 시체로 변할 수는 없을 것이다. 홈즈의 얼굴에는 놀라움 과 함께 안도의 그림자가 스쳤다. "다행이다! 노파의 시체야!" 뒤따라 들어온 피터스가 비꼬듯 말했다.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졌습니다그려, 홈즈 씨." "이 노파는 누구지?" "꼭 알고 싶다면 말해 드리지. 이건 아내의 유모였던 할멈인데, 이름은 로즈 스 펜더, 브릭스턴 양로원에 있는 것을 이리로 모셔다가 퍼뱅크 교외주택지 13번지 의 호섬 박사의 치료를 받게 해줬지. 그러나 여기에 온지 사흘 만에 죽었는데, 사망진단서에는 '노쇠에 의한 자연사'로 나왔으니, 설마 내가 때려 죽였다고 억 지를 쓰지는 않으시겠지. 그래서 켄싱턴가의 스팀슨 장의사에게 부탁해서 장례식을 치르기로 했는데. 그 게 내일 아침 8시. 이래도 더 할말이 있소이까, 홈즈 씨? 짚어도 아주 크게 짚 었으니, 이제 그만 항복하시지그래. 레이디 프랜시스 카팍스가 누워 있을 것으 로 지레짐작하고 두껑을 열어보니 아흔 살 노파라? 흐흐흐.... 입을 헤벌린 당 신의 얼굴을 사진으로 찍어두면 볼 만하겠는걸...." 홈즈는 비웃는 피터스의 독설에 태연한 체하고는 있었지만, 움켜진 두 주먹이 부 르르 떨리는 것으로 보아 분을 삭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 집안을 샅샅이 뒤져 보겠어." "그래도 더 설치겠다는 건가!" 피터스가 맞서는 순간. 복도에서 여자의 말소리가 들리고 어지러운 발자국 소리 가 울렸다. "설치다니, 누구 마음대로---- 경찰관들, 이리로 오십시오. 이 사람들이 강제로 밀고 들어와서 행패를 부립니다. 어서 쫓아내 주십시오." 입구에는 경사와 경관이 서 있었다. 홈즈가 명함을 내보였다. "이것이 나의 주소와 이름입니다. 이분은 와트슨 박사." 경사가 말했다. "뜻밖입니다. 홈즈 씨. 성함은 익히 들었습니다. 하지만 영장 없이는 가택 침입 이 되니 더 이상 이곳에 머무를 수는 없습니다." "그건 나도 잘 압니다." 피터스가 끼어들었다. "체포해야 합니다." 경사가 위엄을 갖추고 대답했다. "이분을 체포할 필요가 생기면 틀림없이 체포할 겁니다. 하여간 홈즈 씨, 일단은 이 집에서 물러나셔야 겠습니다." "별수없군. 와트슨. 밖으로 나가세." 곧 우리는 거리로 나왔다. 홈즈는 냉정을 되찾고 있었으나, 나는 속이 끓어올랐 다. 경사가 뒤따라 나오면서 말했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홈즈 씨. 그러나 법규상 어쩔 수가 없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경찰관으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겠지요." "아시면서도 그러셨을때는 충분한 이유가 있을 텐데, 혹시 제가 도와드릴 일은?" "어떤 귀부인이 행방불명되었습니다. 그 부인이 저 집에 갇혀 있는 것으로 압니 다. 곧 영장이 나올것 같은데..." "저 집을 감시하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알려 드리지요." 그때가 아직 초저녁이었기에, 우리는 좀더 수사를 계속하기로 했다. 우선 마차를 달려 브릭스턴에 있는 시립 양로원으로 가보았으나, 며칠전에 어떤 자비로운 부 부가 찾아와서 임종이 가까운 노파 하나를 유모라고 하며 데려간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뿐이었다. 다음 차례는 의사였다. 그의 이야기에 의하면, 왕진을 청해 왔기에 가보니 노쇠 하여 죽어가는 노파가 있었고, 곧 숨을 거두었기에 정식으로 사망 진단서를 써 주었다는 것이다. "내가 보장합니다만, 그건 자연사였지. 독살과 같은 범죄의 흔적은 없었습니다. 다만, 그렇게 큰 집에 하인도 없고, 가구도 없는 것이 썰렁했다는 점이 좀..." 의사에게서는 더 이상 아무것도 알아낼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간 곳은 경시청이었다. 수색 영장은 수속 문제가 있어서 아무 래도 늦어진다는 것이었다. 장관의 서명이 내일 아침이 되어야 떨어지므로, 9시 경 경시청에 와서 레스트레이드 경감과 함께 영장을 가지고 현장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그날일은 끝났는데, 한밤중이 가까운 시각에 그 경사가 찾아와서, 피터스의 집 창문틈으로 불빛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은 보았지만 집으로 들어간 사람도, 집에서 나온 사람도 없었다고 알려 주었다. 하지만 우리는 꾹 참고 날이 밝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4. 위기일발.. 홈즈는 초조감 때문인지 한숨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내가 침실로 가려 했을 때, 그는 이맛살을 찌푸리고는 가늘고 긴 신경질적인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르리며 담 배연기에 휩싸여 있었다. 이 사건에 대하여 이것저것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 다. 그리고 그 뒤에도 홈즈가 방안을 서성거리는 발소리가 간간히 들렸다. 아침이 되 어 내가 막 잠에서 깨어났을때, 얼굴이 창백하고 눈이 움푹 팬 것으로 보아 뜬눈 으로 밤을 지새운 것이 분명했다. 그는 숨가쁘게 물었다. "장례식이 몇 시였지? 8시라고 했지, 아마. 지금은 7시 20분일세. 큰일났어. 서 둘러야 해! 레이디 프랜시스의 생사가 달린일이라고. 때가 늦는다면 나는 스스 로를 용서하지 못할 것일세." 그로부터 5분도 못되어, 우리가 잡아탄 마차는 베이커 가를 질주해 나갔다. 마부 를 재촉하고 또 재촉했지만, 의사당의 시계탑 앞을 지날때 시계는 25분 전 8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브릭스턴 로를 달리고 있을 때는 8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렸 다. 하지만 늦은 것은 우리만이 아니었다. 8시에서 10분이 지났는데도 영구차는 아직 현관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탄 마차의 말이 흰 거품을 물고 멎었을 때에야, 세 사람의 인부가 둘러멘 관이 입구에 나타난 것이다. 홈즈가 달려가 그 앞을 막아섰다. 앞에 선 인부에게 홈즈가 소리쳤다. "관을 갖고 다시 들어가!" 뒤따라나오던 피터스가 크고 불그레한 얼굴에 핏대를 세우고 미친듯 소리쳤다. "무슨 소리하는거야! 다시 한번 묻겠는데 영장이 있는가?" "영장은 곧 발부된다. 영장이 올때까지 관은 집밖으로 나갈 수 없다!" 홈즈의 엄숙한 말투에 인부들은 주춤했다. 피터스는 갑자기 집안으로 달려 들어 갔고, 관이 다시 탁자 위에 놓이지자 홈즈가 외쳤다. "서두르게, 와트슨. 여기 드라이버가 있네. 1분동안 뚜껑을 열면 금화 1파운드다 ! 아무 소리도 묻지마, 관을 여는 거다! 그쪽의 나사도 빨리! 자,모두 힘껏 잡 아당겨! 열린다, 열려!" 우리는 인부들과 힘을 합쳐 관 두껑을 열어젖혔다. 그러자 관속에서 지독한 클로 로포름 냄새가 풍겨나왔다. 그 속에는 얼굴에 솜을 덮은 시체가 보였다. 마취제 클로로포름을 적신 솜이 분명했다. 홈즈가 솜을 걷어내자 아름답고 품위있는 여인의 얼굴이 대리석 조각처럼 나타났 다. 홈즈는 지체없이 여자를 안아 올렸다. "죽은 건 아닌가, 와트슨? 이미 때가 늦은건 아니지?" 이미 때가 늦어 도저히 살아날 가망이 없어 보였다. 레이디 프랜시스는 클로로포 름의 독기에 심장이 마비되어 숨을 돌릴 가망이 없어 보엿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온갖 수단을 다 동원했다. 인공호흡을 하고, 에테르 주사를 놓는 등. 분주히 손을 쓰자 희미하나마 심장의 고동이 느껴졌다. 눈꺼풀이 바르르 떨 리더니 입가에 댄 손거울에 흐릿하게 김이 서렸다 숨을 쉬기 시작했다는 증거였 다. 그때 밖에 마차가 멎는 소리가 나자 홈즈가 급히 창가로 갔다. "레스트레이드가 영장을 가지고 왔네. 하지만 티터스는 이 북새통에 도망쳤을껄. 그리고 레이디 프랜시스를 돌보는 일이라면 우리보다 자격이 월등한 사람이 함 께 나타났다네." 복도를 성큼성큼 걸어오는 그린의 육중한 모습이 보였다. 홈즈가 농담을 섞어 말 했다. "어서 오시오. 그린 씨, 레이디 프랜시스를 모셔 가시기에는 좋은 날씨입니다. 그리고 이 장례식은 그대로 진행하기로 합시다. 관속에는 의지할 데 없는 할머 니의 시체가 있습니다." 그날 저녁 홈즈가 말했다., "아무리 뛰어난 머리라도 때로는 구름이 끼기도 하며, 실패는 어떤 인간에게도 있기 마련이지. 하지만 그것을 깨닫고 잘못을 바로 잡는 사람이야말로 현명한 것일세. 간밤에는 밤새도록 무엇인가 소홀히 한 점이 없었는지 생각해 보았네. 그러다가 갑자기 새벽이 다 되어서야 어떤 생각이 떠오르더군. 그것은 장의사 주인이 피터스의 아내인지 비서에게 했다는 말을 그린이 엿들은 내용이었네. '그럴 수 밖에 없는것이, 흔한 물건이 아니라서 시간이 걸립니다.' 라는 변명이었는데 흔한 물건이 아니고 시간이 걸린다면, 특별하게 관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는 것이 되지 않겠나? 무슨 이유일까? 나는 번개처럼 머릿속에 우리가 피터스의 집에서 본 관을 그려 보았네. 조막만 한 할머니를 넣기 에는 관이 너무 깊게 만들어져 있었던 것일세. 또 하나의 시 체를 넣기 위해서였단 말이야. 사망 진단서 한통으로 두 사람을 매장시킬 수 있는 교묘한 방법이지. 8시가 지나면 레이디 프랜시스는 마취된 상태로 매장될 운명이었던 것일세. 다행히 그녀는 살아날 수가 있었지. 내가 아는한, 그들은 선교사의 탈을 써서 그런지 직접 손에 피를 묻히는 살인을 하는 일은 없네. 그들은 그녀를 영원한 행방불명 상태로 땅에 묻는 것으로 족했던 것일세. 그동안 그녀는 어느 골방에 감금되어 있었겠지. 그리고 노파가 죽고 관이 준비되자, 그들은 클로로포름을 들이대어 그녀를 의식 불명 상태에 빠뜨리고 다시는 깨어나지 못하게 약을 적신 솜을 얼굴에 덮어 관에 넣고, 철저를 기하기 위해서 나사못까지 박아 두었던 것 일세. 그냥 두껑을 덮으면 혹시 두껑이 미끄러지거나, 누가 열어보기 쉬우니까 말이야. 하여간 빈틈없는 수법이었네. 와트슨, 범죄 기록상으로도 이런 경우는 드물지. 현재 레스트레이드 경감이 그들이 뒤를 슛고는 있지만, 무사히 빠져 나 갈 수만 있다면 그 일당은 앞으로 보다 교묘한 범죄를 계획할 걸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