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붉은 바퀴의 비밀 ====== 코난 도일 작. 1. 이상한 하숙인 "워렌 아주머니, 저는 아주머니가 왜 그렇게 겁을 내고 있는지 도무지 영 문을 모르겠군요. 이런 일에까지 제가 나설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는데요.. 전 여러가지 일로 바쁜 몸입니다." 셜록 홈즈는 마주 앉은 뚱뚱한 중년 부인에게 말했습니다. 그 무렵, 나는 모오스턴양과 결혼하여 딴 곳에서 살았는데, 그날은 마침 옛 하숙집으로 홈즈를 찾아왔던 참이었습니다. 워렌 부인은 심심풀이로 하숙을 치고 있는 아주머니였습니다. 꽤 끈기가 있 는 사람인지 홈즈가 달갑지않게 댐꾸하고 있는데도, 조금도 꺽이는 기색이 없이 열심히 부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봐요, 홈즈씨. 아무리 힘들고 큰 사건이라도 당신 손에 걸리기만 하면 해결된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런 당신에게 이번 사건은 정말 하찮은 것 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에겐 아주 중대한 일로서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잘 지경입니다. 어떻게 좀 도와 주시죠." 워렌 부인의 이마엔 구슬땀이 맺혀 있었습니다. 홈즈는 냉정하기 이를데 없는 사나이같이 보이지만, 부추겨 주면 뜻밖에도 잘 응하는 사나이이기도 했습니다. 워렌 부인이 그럴듯한 말로 부추기자, 홈즈는 몸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습니 다. "워렌 부인, 그러니까 아주머니 이야기는, 이번에 이층에 새로 하숙을 든 사나이가 일주일동안이나 방안에 틀어박힌 채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불안해 죽겠다는 말씀이죠? 하지만 워렌 부인, 만약 내가 아주머니 댁에 하 숙했더라도 일주일쯤 얼굴을 내밀지 않는 일은 흔히 있을 수 있잖아요?" "그 사람은 달라요. 얼굴을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침부터 밤까지 뚜 벅뚜벅 발소리를 내면서 방안을 돌아다닌답니다. 우리 집 양반이 아침마다 일하러 나가므로 혼자 남게 되는 저는 그 발소리가 무섭고 두려워서 견딜 수가 없답니다. 홈즈씨, 우리 집에 하숙하고 있는 사나이는 혹시 뭔가 무서 운 일을 저질러 놓고, 경찰의 눈을 피하기 위해 숨어 있는 게 아닐까요?" "으음....." 홈즈는 드디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기로 하죠. 아주 사소한 일이 때에 따라서는 중요한 일이 되는 수도 있으니까, 되도록이면 자세히 얘기해 보십시오. 그러니까 그 사 나이는 식사대를 포함한 2주일치 하숙비를 미리 치뤘단 말이죠?" "예, 그래요. 그 사람이 방을 보러 왔을 때, 나는 우리 집 이층의 가장 좋 은 방을 보여 주었습니다. 거실과 침실, 두칸으로 되어 있는 방을 일주일 에 50실링씩 받고 싶다고 말했죠. 그러자 그 사나이는 방이 마음에 드는 데 만일 자기가 말하는 조건을 들어 주기만 하면 일주일에 5파운드를 치르 겠다고 말하지 않겠어요? 저는 망설였습니다. 저야 하숙을 치고 있는 형편 이니 돈을 많이 주면 좋죠. 그러나 그 조건이란게 어떤 것인지 몰라서 망 설였습니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사나이는 10파운드짜리 지폐를 내보이며 만일 자기가 말하는 대로 해준다면, 2주일에 10파운드를 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돈의 매력에 이끌려 그만 그 사나이가 말하는 조 건을 승낙해 버렸습니다." "그 조건이란 무엇입니까?" "첫째는 대문 열쇠를 자기도 갖게 해달라는 것이었어요. 하숙하는 사람이 대문 열쇠를 가진다는 건 그다지 부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으므로 저는 고 개를 끄덕였죠. 두번째 조건은, 절대로 자기 방을 들여다보거나 청소하러도 들어가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도 대수로운게 아니었으므로 승낙하고 방을 내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나이는 이층방에 처박힌 채 일주일씩이나 모습을 뵈지 않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 일주일 동안에 외출을 안 했나요?" "꼭 한번 외출했습니다. 그러나 그건 이사 온 날 밤의 일입니다. 그는 저 녁때 집을 나서면서 오늘밤은 늦어도 꼭 들어올테니 문에 빗장을 채우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한밤중이 되어서야 올라가는 발소리를 분명히 들었습니다." "음, 발소리만 들은 셈이군요.....그 사나이의 식사는 어떻게 하고 있죠?" 홈즈가 점점 이야기에 이끌려 들어가는 듯,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나이가 시키는 대로 하고 있죠. 먼저 그가 초인종을 울립니다. 그러 면 저는 식사를 쟁반에다 담아 가지고 이층으로 들고 가서 문 앞에 있는 의자위에다 놓고 아래층으로 내려옵니다. 그 사나이는 내 모습이 사라지면 가만히 문을 열고 쟁반을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죠. 식사가 끝나면 그 사나 이가 다시 초인종을 울립니다. 제가 가 보면 복도의 의자위에 빈 그릇이 놓여 있습니다. 그 밖에 뭐 필요한게 있을 때에는, 역시 그 의자 인쇄체 글씨로 쓴 종이 쪽지를 놓아 두죠." "인쇄체 글씨로 쓴 종이 쪽지요? 그것 참 이상하군요. 펜으로 쓴 건가요?" "아뇨, 연필로 쓴 거죠. 꼭 인쇄한 것같이 반뜻한 활자체로 씌어 있지요. 군더더기 말은 쓰지 않고, 물건 이름뿐입니다. 참고로 두세장 가져왔어요.. 이게 성냥, 이건 이사 온 다음날 놓아 둔건데, <데일리 가제트>신문이죠. 그날부터 저는 아침마다 <데일리 가제트>신문을 갖다 놓습니다. "와트슨, 점점 재미있어지는군." 홈즈는 빙긋 웃으며 인쇄체로 쓰인 종이 쪽지를 보고 있더니, "뭣 때문에 일부러 쓰기 힘든 인쇄체로 썼을까?" 하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렷습니다. 나는 잠시 생각한 후, "필적을 숨기려고 그런 것이 아닐까?" 하고 말했습니다. "필적을 숨길 필요가 있을까? 하숙집 아주머니에게 필적이 알려져도 아무 상관 없잖아. 그리고 무슨 까닭으로 이렇게 물건 이름밖에 쓰지 않았을까?" "글쎄, 통 짐작이 가지 않는걸." "잘 조사해 봐야겠어..... 가만있자. 이 글씨는 뭉뚝한 보랏빛 연필로 쓴 것이군. 글씨를 쓰고 나서 한쪽 부분만 종이를 뜯어 냈어. 자,보게. 소우프 (비누)의 S자가 조금 찢어졌잖아." "왜 종이를 찢었을까?" "아마 종이에 지문 같은 게 묻었을까 봐, 그걸 없애기 위해서 그랬을거야. 워렌 아주머니, 그 사나이의 인상을 상세히 말해 보십시오." "나이는 서른쯤 되어 보이고,중키에 몸집도 보통이었습니다. 그리고, 피부 는 약간 검은 편인데다 멋진 콧수염을 기르고 있습니다," "복장은 어땠습니까?" "몸에 잘 맞는 검은 색 계통의 옷을 입고 있었어요." "말씨는요?" "영어를 하지만, 억양이 약간 이상한 것 같더군요. 어쩌면 외국인일지도 모르겠어요." "이름을 알고 있습니까?" "몰라요. 그가 말하지 않았으니까요." "편지가 오거나, 누가 찾아 오지는 않았습니까?" "그런 일은 없었어요." "그는 방을 자기 손으로 청소하고 있나요?" "예,뭐든지 혼자서 하고 있습니다." "아주 괴짜군요. 짐은 많이 있나요?" "커다란 갈색 구두 한 켤레 뿐입니다. 그밖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홈즈는 한숨을 쉬었습니다. "이정도 자료론 어떻게 해 볼 수가 없군. 그 방에서 뭔가 밖으로 내버려진 건 없습니까?" "있긴 합니다만, 그야말로 하찮은 것뿐입니다. 여기 가져왔어요." 워렌부인은 핸드백에서 타다 남은 성냥개비 몇개와 담배 꽁초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이게 식사한 뒤의 쟁반위에 놓여 있었어요. 홈즈씨는 늘 아주 하찮은 것 에서 멋진 실마리를 잡아낸다는 소릴 들은 적이 있어서, 혹시나 해서 가져 왔어요." "허허....." 홈즈는 겸연적은듯이 웃고는 타다 남은 성냥 개비를 들고 살펴보기 시작했 습니다. "탄 부분이 적은 걸 보니, 이 성냥으론 보통 담배에 불을 붙였군요. 여송 연이나 파이프 담배라면 불이 잘 안붙으니까 더 많이 탔을겁닌다." 홈즈는 다음엔 담배 꽁초를 집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곧, "아니, 이건!" 하고 놀란 듯이 소리쳤습니다. 홈즈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꽁초는 매우 흥미있군요. 워렌 부인, 아까 아주머니는 그 사나이가 멋 진 콧수염을 기르고 있다고 말씀하셨죠?" "예, 그래요." "그렇다면 이상하군요. 수염을 깨끗이 깎은 사나이가 아니고서는, 이렇게 짧아질 때까지 담배를 피울수가 없어요. 이것 보게,와트슨! 이렇게 짧아지 도록 담배를 피우면 자네의 그 짧은 콧수염이라도 타버릴껄." "담배를 파이프에 끼워 가지고 피운 건 아닐까?" "아냐, 달라. 끝이 침에 젖어서 더러워졌어. 워렌 부인, 그 방에 또 한 사 람이 있는게 아닙니까? 즉 두 사람이 있는게 아니냐고요?" 워렌 부인은 당치도 않다는 듯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니어요, 그런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식사는 한사람 몫밖에 올라가지 않으며, 그것도 늘 절반 이상 남기는 걸요. 그렇게 먹고도 살 수 있을까 걱정될 정도죠." "으음 대충 알 수 있을 것 같지만, 좀더 자료가 갖추어진 다음에 마지막 결 론을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워렌 부인, 아주머니는 하숙비를 제대로 받고 있으며, 또 그 사나이가 난폭한 짓을 하는 것도 아니니까 당분간 아무 내 색도 하지 말고 계십시오. 방안에 꼼짝 않고 처박혀 있다는 이유만으로 경 찰에 상의하러 간다면 그야말로 웃음을 살 뿐입니다. 아무쪼록 안심하시 고, 오늘은 우선 돌아가십시오. 만약 무슨 일이 일어나면 곧 알려 주십시 오. 당장 달려가겠습니다." 홈즈는 이렇게 말하며, 아직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워렌 부인을 배웅했습니다. "이건 정말 재미있는 사건인데...." 단둘이 남게 되자 홈즈가 손을 비비면서 말했습니다. "내 생각으론 처음에 방을 보러 왔던 사나이와 지금 살고 있는 사나이는 전혀 다른 인물인 것 같아." "뭐라구! 그럼 사람이 바뀌었단 말인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 지?" "이 담배 꽁초에 대한 것은 그만두고라도, 그는 이사온 날 밤에 외출하여 워렌 부인이 잠든 무렵에 돌아왔어. 그러나 아무도 그 모습을 본 사람은 없어. 이점이 가장 수상쩍어. 즉, 나간 사람과 들어온 사람이 똑같다는 증 거가 없단 말이야. 그리고 찾아온 사나이는 영어를 썩 잘했는데, 이 종이 쪽지에 쓰인 글씨는 서투르기 짝이 없어. 게다가 잘못 쓴 것 투성이가 아 닌가. 성냥을 매치스(matches)라고 복수형으로 써야 할 것을 매치(match) 라고 단수형으로 썼어. 사전을 보고 쓴 것 같아. 일반적으로 사전에는 단 수형만 나와 있고 복수형은 없으니까 말이야. 또 성냥이라든가 비누 따위 의 단어밖에 씌어 있지 않은 것은, 영어를 잘 못한다는 증거야. 아무리 생 각해 보아도 처음에 방을 보러 온 사나이와 이 쪽지를 쓴 사나이는 다른 인물일거야. 어느 사이엔가 하숙인이 바뀐거야." "하지만 무엇 때문에 그런 묘한 짓을 했을까?" 나는 고개를 갸웃뚱거리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그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열쇠는 신문에 숨겨져 있어. 자네도 들었겠지 만, 그 이상한 하숙인은 매일 아침 <데일리 가제트>신문을 받아 본다고 워 렌 부인이 말했었지. 내 생각으론 <데일리 가제트>신문의 안내 광고란을 통 해 외부로부터 그 수수께끼의 하숙인에게 무었인가 비밀 통신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와트슨, 미안하지만 거기 있는 신문철을 좀 집어 주게." 홈즈는 <데일리 가제트> 신문의 안내 광고난을 펴고, 거기 나와 있는 광고 문을 닥치는 대로 소리내어 읽기 시작했습니다. 지미에게 알림. 어머니가 걱정하고 있음. 곧 집으로 돌아오라. 프린스 스케이트 클럽에 있는 검은 모피의 부인에게 알림. "이 두가지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아.... 야아. 나왔군! 이건 어때?" 주의 바람. 참을성 있게 기다려라. 며칠 안에 확실한 통신 방법을 지상을 통해 알리겠음. G. "음, 이거야. 날짜는 사나이가 이사 온 날로부터 이틀 뒤야. 어때 와트슨? 확실히 무슨 관계가 있는 것 같지? 그 수수께끼의 하숙인은 쓸 줄은 몰라 도 읽을 줄은 아는 모양이야. 가만 있자, 이게 그로부터 사흘째 되는 날의 통신이군." 만사 순조롭다. 참고 견디며 주의 하라. 구름은 곧 개겠음. G. "그 뒤 일주일은 아무것도 안 실렷어.... 이것 보게. 이렇게 뚜렷한 게 나 와 있군." 길은 열리고 있음. 기회 있으면 곧 암호 통신하겠음. 부호는 1이 A, 2가 B, 3이 C, .... 앞으로는 이에 따르겠음. G. "이게 어제 아침의 통신이야. 와트슨, 내 생각이 틀림없어. 아마 내일 아 침 신문을 보면 결론을 내릴 수 있을거야. 자,이제 밤도 꽤 깊은 것 같으 니 잠이나 자세." 홈즈가 한 말은 꼭 들어맞았습니다. 다음날 아침의 <가제트 데일리>신문 안내 광고난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었습니다. 흰 돌벽이 있는 높은 집. 3층, 왼쪽으로부터 두번째 창을 보라. 해가 진 뒤. G. "어때, 와트슨? 드디어 오늘밤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군." 홈즈는 빙그레 웃으면서 파이프 담배에 불을 붙였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 다. 쿵쿵거리는 발소리와 함께 워렌 부인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급히 뛰 어들어왔습니다. "워렌 부인, 웬일입니까? 뭔가 새로운 소식이라도 있습니까?" 홈즈가 물었습니다. "새로운 소식이라구요? 그렇게 한가한 이야기가 아니어요. 홈즈씨, 당신이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큰일이 벌어졌어요. 이제 누가 뭐라든 경찰에 부탁해 야 되겠어요. 이렇게 된 것도 다 그 이상스런 하숙인을 두었기 때문이어 요. 이젠 하루빨리 내보내야 하겠어요. 마치 폭탄을 안고 있는거나 다름없 습니다. 내보내기 전에 한번 홈즈씨의 의견을 들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서 이렇게 달려왔어요." "잘 하셨습니다. 워렌 부인. 그런데 대체 무슨일이 일어났죠?" "우리 주인 양반이 몰매를 맞았어요." "뭐라구요? 아니, 누구에게요?" "누구에게 당했는지 전혀 알 수 없어요.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난 일이죠. 우리 주인은 토테햄 코우트로오드에 있는 모턴 회사에 다니므로 매일 아침 7시전에 집을 나섭니다. 오늘 아침에도 기분 좋게 집을 나섰는데, 채 열걸 음도 못 가서 두 사나이의 습격을 받앗어요. 그들은 주인의 머리에 옷을 뒤집어어씌우고 마구 때린 다음, 마차에 태웠답니다. 그리고 한시간쯤 이 리저리 끌고 다니다가 한적한 길가에 내던져 버리더라는 거여요. 주인은 반쯤 정신을 잃고 있었기 때문에 그 마차가 어느 쪽으로 해서 어떻게 달렸 는지 전혀 기억이 안 난다고 하더군요. 때마침 지나가던 마차를 타고 집으 로 돌아왔으나, 아직도 끙끙 앓고 있습니다." "이거 정말 재미있게 뻍군!" 홈즈가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주인께선 달려든 두 사나이의 인상이나 목소리의 특징을 기억하고 계신가 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신답니다. 너무 갑자기 당한데다가, 정신이 들었 을땐 길가에 내동댕이쳐저 있었기 때문에 마치 요술에 걸린 것만 같다고 하는 군요." "그런데 왜 아주머니는 주인께서 습격당한게 이층의 수상한 하숙인 탓이라 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그 집에서 15년이나 살았습니다만, 이렇게 혼이 나 보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우린 남에게 원한을 살 만한 일을 한 기억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 하숙인 탓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지요. 아뭏든 저 사나이에 게 오늘 당장 나가 달라고 해야 겠어요." "워렌 부인, 좀 진정하십시오. 이번 사건은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중대한 것 같습니다. 댁에 하숙하고 있는 사나이는 이 사건을 풀 수있는 단 하나의 열쇠입니다. 지금 여기서 그 열쇠를 놓쳐 버리면, 돌이킬 수 없 는 사태가 일어날 겁니다. 나는 아주머니 댁의 하숙인이 무서운 적에게 쫓 기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릅니다. 그 적 은 노리고 있는 사나이가 일주일이고 열흘이고 통 집 밖으로 나오지 않으 므로 초조해 하고 있는게 틀림없습니다. 그들은 오늘 아침 일찍 안개 속에 서 부인의 주인이 나오는 것을 보고, 하숙인으로 착각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옷을 덮어씌우고 몰매를 때려 마차에 밀어 넣었는데, 곧 사람이 다 르다는 것을 알고 주인을 마차에서 내던진게 틀림없습니다." "어머나, 이야기를 들을수록 무서워지는 군요. 도대체 우린 앞으로 어떡 하면 좋죠?" 워렌 부인은 울상을 지었습니다. "아무 염려 마십시오. 워렌 부인, 지금부터 제가 댁을 찾아가서 모든 걸 조사해 보겟습니다. 우선 그 하숙인이 얼굴을 보고 싶은데, 무엇인가 좋은 생각이 없습니까?" "글쎄요, 그건 좀 무리겠어요. 문이라도 때려 부수기전엔.... 저는 늘 쟁 반을 문앞에 놓기가 무섭게 도망치듯 아래로 내려오거든요." "그럼 그 때를 노리죠. 그 사나이가 쟁반을 방안으로 가지고 들어갈 때, 문이 좀 열릴 겁니다. 그때 복도 모퉁이에서 훔쳐 보죠." 워렌 부인은 잠깐 생각하더니, "좋은 수가 있습니다. 홈즈씨. 마침 맞은편에 방이 비어있으니까 그곳에 거울을 걸어 놓으면 이 쪽 모습은 들어나지 않고 상대방을 볼 수 있을 것 입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과연 좋은 생각이군요. 그런데 점심 식사는 대개 몇 시경에 하죠?" "늘 1시경에 합니다." "그럼 12시 반쯤, 와트슨과 함께 댁으로 찾아가겠습니다. 아주머니는 먼저 돌아가셔서 거울을 준비해 주십시오." 2.거울에 비친 얼굴 우리 두 사람은 12시 반 정각에 워렌 부인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저길 보게. 와트슨. 저게 바로 신문에 났던 흰 돌벽의 집이야." 홈즈는 워렌 부인의 집 바로 앞에 있는 3층 아파트를 손으로 가리켰습니다. "3층의 왼쪽으로부터 두 번째 창문이 암호의 발신소야. 오늘밤 저 창문에 서 워렌 부인 집의 이층으로 통신이 보내질 거야. 부호도 모두 알고 있으 니 수수께끼는 곧 풀릴 걸세." 워렌 부인은 우리르 반갑게 맞이하여 곧 이층으로 안내하였습니다. 수수께기의 하숙인이 들어있는 방은 조용했습니다. 그 방 바로 앞엔 정말 빈 방이 있었는데, 반쯤 열린 문엔 벌써 거울이 달려 있었습니다. 우리는 어두컴컴한 빈방에 숨어서 긴장한채 거울을 들여다 보고 있었습니 다. 10분쯤 지나자, 수수께끼의 하숙인인 들어 있는 방에서 초인종이 울렸 습니다. 점심을 가져오라는 신호 였습니다. 곧 워렌 부인이 쟁반에 식사를 담아 가지고 계단을 올라왓습니다. 그녀는 천천히 문 앞으로 가더니, 쟁반을 의자위에 놓고 내려갔습니다. 곧 '찰칵!' 하고 열쇠 돌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살그머니 열렸습니다. 그 틈으로 두 개의 여윈 팔이 쑥 나와 의자위의 쟁반을 잡으려 하다가, 갑 자기 무엇에 놀란 듯 손을 얼른 움추렸습니다. 그 순간, 우리는 상대방의 얼굴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이었습니다. 흑수 정같은 눈동자가 반짝 빛나며 거울을 노려보앗습니다. 그와 동시에 문이 ' 쾅!' 하고 높은 소리를 내며 닫혔습니다. 홈즈는 내 팔을 꽉 붙잡고는 발소리를 죽이며 아래층으로 내려갔습니다. "어떻게 뻍죠, 홈즈씨? 보앗나요?" 워렌 부인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물었습니다. "예, 보았습니다. 자세한 것은 오늘 밤 다시 이리로 와서 이야기해 드리 죠." 홈즈와 나는 무엇인가 더 듣고 싶어하는 워렌 부인을 뒤에 남기고 재빨리 베이커거리의 하숙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와트슨, 내 상상이 꼭 들어맞았어." 홈즈는 의자에 편히 기대앉아 파이프에 불을 붙이면서 입을 열었습니다. "그 하숙인은 역시 바뀌어 있엇어. 그러나 설마 여자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했지." "응, 그래. 여자 얼굴이 나타났을 때 하마터면 소릴 지를 뻔 했어." "이제야 이 사건의 대강 줄거리를 알 수 있게 되었어, 한 쌍의 부부가 무 서운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전한 은신처를 찾고 있는 거야. 어떤 자 가 부부의 목숨을 노리고 있어. 그러나 남편은 늘 아내 곁에 있을 수가 없 었던 거야. 이 런던에서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는 모양이지. 그 일을 끝 낼 때까지 아내를 안전하게 적의 손으로부터 지키려며 어떻게 해야 할까? 그건 정말 힘든 일이었을 거야. 그러나 남편은 그것을 훌륭하게 해냈어. 식사를 갖다 주는 워렌 부인조차 전혀 하숙인이 바뀐 것을 눈치채지 못했 거든. 인쇄체로 글씨를 쓴 것도 하숙인이 여자라는 걸 눈치채지 못하게 하 기 위한 방법이었을거야. 남자 글씨와 여자 글씨는 누구든 바로 알아볼 수 있으니까 말이야. 남편은 멋지게 아내를 숨기기는 했지만 매일 찾아가 거나 편지를 보내거나 하다간 곧 적의 눈에 띌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저 기발한 신문 광고로 아내와 통신 하고 있었던 거야." "음.... 하지만 홈즈. 그 부부는 어째서 그렇게 피해 다니는 걸까?" "그 점이 가장 중요한데 그 이유는 아직 몰라. 아뭏든 아까 문틈으로 잠 깐 엿본 여자의 얼굴에는 공포에 질린 빛이 서려 있었잖아. 그것만 보아도 두 사람의 적이 얼마나 무서운 놈인지 대개 짐작할 수가 있어. 그러나 단 한가지 다행한 것은, 적이 아직도 남자와 여자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모르 고 있다는 점이야. 그걸 알고 있는 건 자네와 나 두 사람뿐이야." "그런데 홈즈. 자넨 무슨 목적으로 이사건에 그토록 열심인가? 저 <아그라 의 보물>사건처럼 보물 찾기가 목적인가?" "핫핫하. 이 사건에 보물 같은 게 있을 리가 있나. 나는 그저 일이 재미 있어서 뛰어다니고 있을 뿐이야. 자네도 그렇잖아. 의사가 환자를 치료할 때, '이사람의 병을 낫게 하여 돈을 많이 벌어야지.' 하고 생각하나? 그렇 진 않겠지? 나도 마찬가지야. 아뭏든 이 사건은 좀 복잡하긴 같지만, 오늘 밤 안으로 꼭 해결해 보이겠어." 홈즈는 자신 만만하게 말했습니다. 3. 위험 신호, 우리가 다시 워렌 부인이 집을 찾아간 것은 주위가 완전히 어두워진 뒤였습 니다. 거리엔 런던의 명물인 안개가 잿빛 커튼처럼 드리워 있었습니다. 집 집의 창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이 희미하게 골목길을 밝혀 주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워렌 부인 집 아래층의 한 방으로 들어가, 불을 끄고 바로 앞에 솟 아 있는 3층 건물로 지켜보았습니다. 잠시 후, 왼쪽에서 두 번셉 창문에 희미하게 사람의 그림자가 나타났습니다. 홈즈는 창문의 유리창에 이마를 착 붙이고, "와트슨, 저게 암호의 발신지야. 이쪽 이층에 여자가 있나 없나를 확인하 고 있는거야." 하고 낮은 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럼 저 쪽에 있는게 남편이고 이쪽에 있는 게 아내인 셈이군." "그렇지...... 저봐, 신호가 시작되엇어. 와트슨, 자네도 수를 잘 세어보 게. 불빛이 한 번 반짝이면 A이고, 두번 반짝이면 B하는 씩이야." 3층의 사나이는 손에 든 촛불을 열심히 올렸다 내렷다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마다 불빛이 보였다가 꺼졌다가 했습니다. "처음엔 한 번이니까 A 로군. 다음은 하나, 둘, 셋 , 넷, .... 모두 스무 번이군. 그럼 T이야. 다음엔 또 스무번이라. T . 다음은 E. 다음은 N...." 이렇게 차레로 세어 나갔더니, 결국 ATTENTA(아텐타)가 되었습니다. "홈즈, '아텐타'란 무슨 뜻일까? 영어는 아닌 것 같군." 홈즈는 가만히 생각하고 있더니, 별안간 무릎을 탁 치면서, "알았어! 이탈리아어야!" 하고 소리쳤습니다. "영어로 고치면 정신 차리란 뜻이야. 두 사람의 몸에 어떤 위험이 닥쳐오 고 있군 그래." 신호는 잠시 끊겼다가 다시 계속되었습니다. 홈즈는 눈을 부릎뜨고 수를 세 었습니다. 이번엔 아주 빨랐습니다. "음,PERICOLO(페리콜로)로군. 영어로 말하면 '위험!'이야. 와트슨, 이거 야단났군. 또 하고 있어. PERI.... 앗! 어떻게 된거지? 도중에 중단되 었어!" 홈즈가 외쳤습니다. 과연 조금 전까지 번쩍이던 빛이 사라져 버리고, 건물 만이 밤하늘에 시커멓게 떠올라 있었습니다. 한참을 기다려봐도 불빛은 두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거 안 되겠어." 홈즈가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저 방에서 분명히 무슨 사건이 일어났어. 어쩌면 암호의 발신자가 누구에 겐가 습격당했는지도 몰라. 와트슨, 얼른 가 보세." 말을 마치자 마자 홈즈는 사슴같이 날쌔게 방에서 뛰어나갔습니다. 나도 그 뒤를 따랐습니다. 4. 미국의 탐정. 워렌 부인의 집을 나와 문득 뒤를 돌아보니, 이층 창문에 아름다운 여자의 얼굴이 어른거렸습니다. 그녀는 도중에 끊긴 통신이 다시 시작되기를 숨을 죽이며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아파트에 도착해 보니, 현관의 돌계단 옆에 검은 외투를 입은 키가 큰 사나 이가 서 있었습니다. 그는 홈즈를 보더니, "아니, 당신은 셜록 홈즈씨로군요!" 하고 소리쳤습니다. "당신은 그레그슨 경감 아니오?" 홈즈도 약간 놀란 듯이 말했습니다. 상대방은 경시청의 유능한 형사인 그레 그슨 경감으로,홈즈와는 오래 전부터 잘 아는 사이였습니다. "여행길에 친구를 만난 셈이군." 홈즈는 빙그레 웃으면서 그레그슨과 악수를 나누더니, 곧 진지한 표정으로, "그런데 무슨 일로 이런 곳에 와 있소?" 하고 물었습니다. "당신이야말로 어느틈에 이 사건을 냄새맡았죠? 늘 그렇듯이 재빠르군요." 그레그슨 경감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홈즈도 따라 웃었습니다. "하하하. 이 사건은 마치 엉클어진 실 같군요. 당신과 내가 다른 가닥을 찾아 가지고 풀어 나가다가 끝에 가서 만난 겁니다. 그런데 그레그슨 경 감, 당신은 저 위험 신호가 도중에서 끊긴 걸 알고 있소?" "위험 신호라뇨? 그런 건 모르겠는데요." 그레그슨 경감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이 아파트의 3층 창문에서 위험신호가 보내지고 있었소. 그것이 도중에서 뚝 끊겨 버렸기에, 우린 그 이유를 조사하러 달려온 겁니다. 자, 빨리 3층 으로 올라가 봅시다." 그레그슨 경감은 긴장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알았습니다. 홈즈씨, 당신이 와 주셔서 아주 마음 든든합니다. 이 아파트 의 문은 하나밖에 없으니까 만일 놈이 달아난다고 해도 곧 잡히고 말 겁니 다." "당신이 말하는 놈이란 누굴 가리키는 거요?" 홈즈가 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이거 참 별난 일이군요. 명탐정인 홈즈씨가 나에게 질문을 다하시다니, 난생 처음으로 당신에게 이긴 것 같군요. 자, 잠깐만 기다려 보십시오." 그레그슨 경감은 들고 있던 지팡이로 땅바닥을 딱딱딱 세번 두들겼습니다. 그러자 50미터쯤 떨어진 곳에 서 있던 마차에서 한 마부가 사뿐히 뛰어내 려. 이쪽으로 다가왔습니다. "레버튼씨, 사립탕정이신 셜록 홈즈씨를 소개합니다..... 그리고 홈즈씨, 이분은 미국 핀커튼 탐정국의 레버튼씨입니다." 그레그슨 경감이 둘 사이에 서서 말했습니다. "예, 알고 있습니다. 롱아일랜드 사건을 멋지게 해결하신 분이군요. 잘 부 탁드립니다." 홈즈가 쾌활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레버튼은 27,8세쯤 되어보이는 날렵한 청년 탐정이엇습니다. 그는 홈즈의 칭찬에 얼굴을 붉혔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홈즈가 자신이 해결한 사건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 여간 기쁘지 않은 모양이었습니다. "홈즈씨, 나는 지금 목숨을 건 추적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내 손으로 고르지아노를 잡고 싶습니다." 레버튼 탐정은 다소 흥분된 듯 열띤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고르지아노라구요? 저 유명한 <붉은 바퀴>의 고르지아노 말입니까?" 홈즈가 뜻밖이라는듯 소리쳤습니다. "아니, 고르지아노 녀석은 유럽에서도 그 이름이 알려져 있습니까? 나는 미국에서 놈이 저지른 나쁜 짓을 모조리 다 조사했죠. 살인혐의만도 50가 지 이상이 됩니다. 그러나 확실한 증거가 없어서 체포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뉴요오크에서 이 런던까지 놈을 추격해 왔습니다. 그리하여 그레그슨 씨와 협력하여, 놈을 이 아파트로 몰아 넣는데 성공했습니다. 고르지아노 가 아무리 재빠르다해도, 이제는 절대로 달아나지 못할 것입니다. 출구는 여기 한 군데 뿐입니다. 우리가 지키고 있는 동안 세 사람이 나왔지만, 그 중에 고르지아노는 없었습니다. 이건 제가 장담할 수 있습니다." 레버튼 탐정이 힘주어 말했습니다. "레버튼씨 홈즈씨는 우리가 모르는 중요한 것을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으 니, 자세한 이야기를 듣도록 합시다." 그레그슨 경감의 말에 레버튼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는게 좋겠군요, 홈즈씨. 어디 당신이 조사하신 걸 들어 볼까요?" 홈즈는 지금까지의 경위를 잘 간추려서 이야기해 주엇습니다. 그러자 레버 튼은 유감스럽다는 듯이 손뼉을 딱 치면서, "아차! 그렇다면 우리가 여기 온 걸 고르지아노가 알아차린 모양이군!" 하고 소리쳤습니다. "어셉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홈즈가 물었습니다. "이 런던에도 고르지아노의 부하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 부하들에게 창문에서 주의 신호를 보내다가 홈즈씨에게 들켰으므로 이번에는 위험 신 호를 보낸 것이 분명합니다. 고르지아노는 이탈리아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이탈리아어로 신호를 보낸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홈즈씨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하며 레버튼은 홈즈를 똑바로 바라보았습니다. 홈즈는 잠자코 있었으나, 나는 한눈에 홈즈가 이 주장에 반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홈즈는 그런 내색을 하지 않고, "어떻든 한시바삐 이 아파트의 3층을 덮치도록 합시다. 그러면 모든 걸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홈즈씨, 우린 고르지아노의 체포영장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레버튼이 난처하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레그슨 경감이, "지금 고르지아노를 체포하느냐 안 하느냐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 아파트 안에서 누군가가 생며의 위험에 직면해 있소. 우리 경시청에서는 무엇보다 사람의 목숨을 귀중하게 여깁니다. 홈즈씨의 말씀대로 덮치도록 합시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습니다." 하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그의 형사로서의 재질은 대단하지 않앗으나, 용기와 결단력은 높이 살 만 했습니다. 그레그슨 경감은 마치 경시청의 계단을 올라가듯 자신있는 걸음걸이로 아파 트의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레버튼탐정이 앞으로 나서려 했지만, 그레그슨에게 선두를 빼앗기고 말았습 니다. '런던에서 일어난 범죄 사건은 우선 런던 경찰이 손댄다.'는 굳은 결의가 그레그슨 경감의 얼굴에 나타나 있었습니다. 3층의 목적하는 방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습니다. 방안은 캄캄하여 무덤처럼 고요했습니다. 나는 성냥을 그어 휴대용 램프에 불을 붙였습니다. 방안이 밝아진 순간, 우리는 일제히 '앗!' 하고 소리쳤 습니다. 융단이 깔리지 않은 마룻바닥에 여기저기 피묻은 발자국이 찍혀 있었던 것 입니다. 그 발자국은 안방에서 나와서 곧장 출입문 쪽으로 향해 있었습니 다. 안방으로 통하는 문은 닫혀 있었습니다. 그레그슨 경감은 성큼성큼 다가가서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문을 열었습니 다. 5. 붉은 바퀴 텅 빈 방 한가운데 빨간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고, 그 안에 체격이 몹시 큰 사나이가 천정을 향한 채 쓰러져 있었습니다. 검은 얼굴은 차마 볼 수 없을 정도로 흉하게 일그러져 있고, 목에는 칼이 꽃혀 있었습니다. 죽기전에 살인자와 싸웠는지, 검은 자루의 단도가 시체 옆에 놓여 있었습니 다. "아! 이자는 고르지아노다!" 레버튼이 흥분된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그러나 홈즈는 침착하게 방바닥에 떨어져 있는 양초에 불을 붙여 가지고 창가로 다가갔습니다. 그리고는 마주 보이는 워렌 부인의 집을 향해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홈즈씨, 어째서 그런 짓을 하시는 거죠?" 그레이스 경감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습니다. "이 사건 해결에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을 부르고 있는 겁니다." 하며 홈즈는 촛불을 훅 불어 껐습니다. 그레그슨 경감과 레버튼은 곧 시체를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동안 무엇 인지 골똘하게 생각하고 있던 홈즈가 두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아파트 현관에서 망을 보고 있을 때, 세명의 사나이가 안에서 나왔다고 하셨는데, 그 중에 혹시 콧수염을 기른 중키 정도의 사나이가 없었습니까?" "아, 있었습니다. 그가 맨 나중에 나왔습니다." 레버튼이 대답했습니다. "바로 그 사나이가 고르지아노를 죽였소." 홈즈가 단정적으로 말한 순간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렸습니다. "아, 벌써 오는 모양이군." 하며 홈즈는 문쪽으로 다가갔습니다. 우리들은 일제히 문 쪽을 바라보았습니다. 몸매가 날씬하고 아름다운 여인 이 방안으로 들어섰습니다. 워렌 부인의 집 이층에서 언뜻 본 일이 있는 그 수수께끼의 하숙인이었습니다. 부인은 우리를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고르지아노의 시체를 한참 동안 내려 다보고 있더니, "아, 죽었구나! 드디어 죽엇어!" 하고 소리를 지르며 펄쩍펄쩍 뛰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우리의 존재를 의식한 듯, "당신들은 경찰이죠? 제나로는 어디 있나요?" 하고 물었습니다. "제나로라니, 누구 말입니까?" 그레그슨 경감이 굳어진 얼굴로 반문했습니다. "제 남편 제나로 루커 말이어여. 어서 제나로를 만나게 해주셔요. 전 그 이가 보낸 신호를 받고 쫓아온 거여요." 그때 홈즈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습니다. "부인, 당신을 부른 것은 바로 나요." "뭐라구요! 당신이.....? 그럴 리가 없어요, 그 신호는 저와 남편만이 알고 있는 거여요." "난 당신네들의 암호를 진작 풀었소. 그리고 또 이탈리라어에도 능숙하오. 'VIENI(오시오)'라는 신호를 보내면 당신이 곧 달려올 거라고 생각했죠." 루커 부인은 눈을 크게 뜨고 홈즈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습니다. "부인, 고르지아노를 죽인 건 우리가 아닙니다. 우리가 이 방에 들어왔을 땐 이미 죽어 있었소." "그렇다면 고르지아노를 죽인 건 우리 주인이로군요. 아아, 나의 제나로! 당신은 마침내 악마를 쓰러뜨렸군요!" 부인은 다시 미친 듯이 손뼉을 치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부인, 당신은 지금 주인의 범행을 인정하셨습니다. 경시청까지 함께 가 주실까요?" 하며 그레그슨 경감은 루커 부인의 팔을 꽉 잡았습니다. "잠깐, 이 사건에는 깊은 사연이 있는 것 같으니, 그 이야기를 좀 들어봅 시다." 홈즈의 의견에 따라 그로부터 30분뒤, 우리는 워렌 부인의 이층방에 모여 루커 부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에밀리아, 즉 지금의 루커 부인은 이탈리아의 나폴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 녀의 아버지는 재판관이었는데, 제나로 루커는 그 무렵 재판소의 서기로 일 하고 있었습니다. 에밀리아와 제나로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 결혼을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에밀리아의 아버지는 제나로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둘의 결혼을 허럭 하지 않았습니다. 생각다 못한 에밀리아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보석을 모두 팔아, 사랑하는 제나로와 함께 뉴요오크로 건너가 결혼을 했습니다. 그것이 지금으로 부터 4년전의 일입니다. 제나로는 이탈리아 사람이 경영하는 과일 수입 회사에 다녔는데, 월급이 꽤 많아 곧 아담한 집을 장만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 계속되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검은 구름이 그들의 밝은 앞날을 온통 새까맣 게 뒤덮어 버린 것입니다. 어느 날 밤의 일이었습니다. 제나로가 아무런 예고도 없이 몸집이 큰 이탈 리아인을 집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가 바로 고르지아노였습니다. 그는 몸집이 클 뿐만 아니라, 사소한 일에도 곧잘 화를 내어 옆의 사람들을 불안하게 했습니다. 그날 이후 고르지아노는 자주 찾아왔습니다. 에밀리아는 그가 올때마다 남 편 제나로가 우울해 하는 것을 눈치챘습니다. 처음 한동안은 남편이 고르지아노와 성격이 맞지 않아서 그러는가 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곧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남편 제나로가 고르지아노를 친구처럼 여기는 것이 아니라, 무서워하고 있 었던 것입니다. 어느 날밤 고르지아노가 돌아간 뒤, 에밀리아는 남편에게 그 까닭을 물었습 니다. 제나로는 한참 동안 괴로와하다가 모든 사실을 털어 놓았는데, 이야 기를 듣고 난 에밀리아는 하마터면 정신을 잃고 쓰러질뻔 하였습니다. 그만큼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제나로는 결혼하기 전에 몹시 가난했기 때문에 <붉은 바퀴>라는 무서운 범 죄 단체에 가입했습니다. 그 단체의 규칙에는 일단 단원이 되면 죽을 때까 지 빠져 나갈 수 없다는 조항이 있었습니다. 제나로는 이 규칙을 어기고 미국으로 도망쳐 와 에밀리아와 결혼한 것입니 다. 미국으로 건너온 그는 안심했습니다. 미국에까지 <붉은 바퀴>의 마 수가 뻗쳐 오리라곤 생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생각지 않았던 일이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어느 날, 제나로는 거리를 걷다가 고르지아노와 마주 쳤습니다. 살인마라는 별명이 붙은 고르지아노는 <붉은 바퀴>의 지부를 미국에 만들기 위해 뉴요오크에 왔다가 제나로를 만난 것입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마친 제나로는 붉은 바퀴가 그려져 있는 종이 쪽지를 에 밀리아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거기에는 9월 13일에 비밀 회의를 주최하니 출석하라는 명령이 적혀 있었습 니다. 에밀리아는 경찰에게 신고하라고 권했습니다. 그러나 제나로는 <붉은 바퀴>의 복수가 두려워 비밀회의에 참석하고 말았습 니다. 비밀회의에 참석하고 돌아온 제나로의 얼굴은 죽은 사람처럼 창백했습니다. 비밀회의에서 무서운 계획이 결정된 것입니다. <붉은 바퀴>는 뉴요오크에 살고 있는 이탈리아인 부자들을 협박하여 지부의 자금을 거두어들이려고 했습니다. 제나로가 다니는 회사의 사장 카스타로 트도 이들에게 협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정의를 사랑하는 카스타로트는 이들의 요청을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붉은 바퀴>는 자기들의 청을 거절한 사람에 대한 복수의 본보기로 카스타 로트가 살고 있는 집을 다이너마이트로 폭파하여, 그들 일가를 몰살시킬 계 획을 세웠습니다. 제나로가 참석한 이번 비밀 회의에서는 카스타로트의 집 마루 밑에 다이너 마이트를 장치할 사람을 정하는 제비뽑기가 있었습니다. 제나로는 떨리는 손으로 제비가 들어있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습니다. 그때 옆에 있던 고르지아노가 히죽 웃었습니다. 미리 속임수르르 써 놓은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짐작했던 대로 제나로가 뽑은 것은 <붉은 바퀴>가 그려져 있는 살인 명령의 쪽지였습니다. 단체의 규칙을 어긴 자에게는 가장 위험한 일을 시킨다는 것 이 <붉은 바퀴>의 철칙이었던 것입니다. 제나로는 이제 은인인 카스타로트를 죽이거나, 아니면 <붉은 바퀴>단에서 빠져 나와 자신과 아내의 목숨을 그들의 복수 앞에 내던지거나 어느 한 쪽 을 선택해야만 하는 곤경에 빠졌습니다. 그날 밤, 제나로와 에밀리아는 뜬눈으로 밤을 세우며 고민했습니다. 태양은 그들의 이런 심중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느때와 다름없이 동쪽 하늘 에 떠올랐습니다. 이제 해만 서산으로 기울면 끔찍한 계획을 실행해야 합 니다. 제나로는 마침내 고르지아노를 배반하고 뉴요오크를 떠날 결심을 하였습니 다. 한낮이 되자, 그들은 남몰래 배를 타고 런던으로 출발했습니다. 출발하기 전에, 카스타로트에게 위험이 닥쳐온것을 알리고, 경찰에도 그 비 밀을 폭로한 것은 물론입니다. 제나로와 에밀리아는 무사히 런던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안심할 수는 없 었습니다. 뱀처럼 차갑고 집념이 강한 사나이 고르지아노가 언제 그들 앞에 나타나 복수를 할는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제나로와 에밀리아는 고르지아노의 눈을 피하기 위해 많은 애를 썼습니다. 우선 두 사람이 함께 있으면 눈에 띄기 쉬우므로 떨어져 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제나로가 워렌 부인의 집에 방을 얻어 밤중에 몰래 에밀리아와 바꿔 치기 했던 것입니다. 그후로는 신문의 광고난이 유일한 연락 방법이었습니 다. 어느 날, 에밀리아가 하숙집 창가에서 밖을 내다보니, 두 사람의 이탈리아 인이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드디어 고르지아노의 무서운 손이 뻗쳐 온 것입 니다. 제나로는 자기가 빌어 쓰고 있는 아파트의 3층에서 에밀리아에게 열 심히 위험 신호를 보내 왔는데 그 신호가 중도에서 끊어졌습니다. 에밀리아는 제나로가 살해된줄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와서 보니, 죽은 것은 제나로가 아니라 악마 같은 고르지아노였습니 다. 그녀는 역시 하나님의 심판은 공정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에밀리아, 즉 루커 부인의 긴 이야기가 끝났습니다. 방안에는 한도안 침묵이 흘렀습니다. 얼마 후, 홈즈가 입을 열었습니다. "부인 감사합니다. 이제는 모든 것을 잘 알았습니다. 부인이 고르지아노의 시체를 보았을 때 기뻐했던 것도 무리가 아니군요. 남편께선 아마 정당바 위로 무죄가 될 것입니다." "미국에서라면 생각할것도 없이 무죄입니다. 신문이란 신문은 한결같이 제 나로씨의 용기를 칭찬할 것입니다." 레버튼의 말에 그레그슨 경감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과연 칭찬할만 합니다. 하지만 부인께선 일단 경시청까지 가 주셔야 하겠 습니다. 부인의 말씀이 사실임이 밝혀지면, 주인은 물론 무죄입니다. 그럼 홈즈씨, 이제는 작별해야겠습니다. 나로선 당신이 왜 이런 사건까지 손을 댔는지, 그 까닭을 잘 모르겠습니다." 홈즈는 빙긋 웃었습니다. "당신도 와트슨과 같은 말을 하는 군요. 내가 이 사건에 손을 댄 데엔 이 유가 없습니다. 다만 재미가 있어서 해본 것 뿐입니다. 덕분에 시간이 잘 갔습니다. 와트슨도 이로써 또 한가지 새로운 자료를 잡은 셈이고요. 가 까운 시일내에 책으로 써서 발표하겠죠..... 아니, 아직도 8시 전이 군. 서두르면 코벤트 가아든의 음악회에 갈 수 있겠군. 자아, 와트슨. 어 서 가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