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마의 가스 ******* 1. 요양지에서.. 어느날, 나는 여행을 떠난 홈즈로부터 다음과 같은 전보를 받았습니다. 와트슨, 자네는 왜 '코온월의 공포', 즉 '악마의 가스 사건'을 세상에 발 표하지 않는가? 내가 다룬 사건중에서 그만큼 기묘하고 끔찍했던 사건은 일찌기 없었잖는가. 나는 이 전보를 보고 무척이나 놀랐습니다. 홈즈는 원래 자기 공적에 대해 과장해서 말하는 것을 싫어했으며, 특히 경찰관들로부터 엉뚱한 칭찬을 받 으면 몹시 언짢아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웬일인지 홈즈가 스스로 '악마의 가스 사건'을 발표하라고 재촉해 온 것입니다. 나는 기꺼이 그의 뜻을 받아들여 낡은 기록 가운데 ' 악마의 가스 사건'에 관한것을 꺼내어 여러분에게 소개하기로 하였습니다. 그것은 지금으로부터 13년전, 그러니까 1897년 3월의일이었습니다. 그 무렵 홈즈는 지나치게 일을 했기때문에 몸이 몹시 쇠약해져 있었습니다. 그를 진찰한 하알리 거리의 의사는, "홈즈씨, 지금 당장 시골로 요양을 떠나십시오. 그렇지 ?으면 두 번 다시 탐정일을 할 수 없을 것이오." 하고 엄하게 말했습니다. 홈즈는 마지못해 이 명령에 쫓아 나와 함께 잉글랜드 서남부에 있는 코온월 반도로 갔습니다. 우리가 세든 집은 코온월 반도의 곶에서 가까운 한 항만의 기슭에 있어, 바 로 눈앞에 영국 해협이 바라다 보였습니다. 런던은 아직 겨울인데도 이곳은 매우 따뜻하여 봄꽃이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집 뒤로는 완만한 언덕으로 이어지는 거친 들판이 있었고, 신석기 시대의 유적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우리는 들판을 산책하거나 책을 읽으며 조용한 생활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곳에 간 지 얼마 안되어, 우리는 두 사람의 친구를 사귀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라운드헤이 목사로 이끼 낀 낡은 목사관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뚱뚱하고 붙임성이 있으며, 꽤 말이 많았습니다. 또 한 사람은 목사관의 방 2개를 빌려서 살고 있는 모오티머 트리제니스라 는 신사였습니다. 몸은 바싹 여위고, 거무튀튀한 얼굴에 안경을 끼고 있었 는데, 가엾게도 등이 몹시 굽었습니다. 말이 적은 그는 늘 외롭고 쓸쓸해 보였습니다. 3월 16일 아침, 우리가 식사를 막 끝냈을 때였습니다. 목사와 트리제니스가 마차를 타고 허겁지겁 달려왔습니다. "홈즈씨, 큰일났습니다! 이렇게 끔찍한 일은 처음 보았습니다." 뚱뚱한 목사가 이마의 땀을 훔치며 말했습니다. "목사님 진정하십시오. 대체 무슨 일입니까?" "트리제니스의 형님집에서 한 사람이 죽고 두 사람이 미쳐 버렸습니다. 어 젯밤 8시경, 트리제니스씨는 형님집에 가서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카드 놀이를 했습니다. 그때는 모두 기운이 넘쳐 있었습니다. 트리제니스씨는 1 0시가 지나 형님 집을 나와, 목사관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일찍 트리제니스씨가 들판 한가운데 있는 형님집에 갔더니, 형인 오웬씨와 조오지씨가 탁자에 마주 앉아서 껄껄 웃기도 하고, 이상한 노래를 부르기 도 하더랍니다. 미쳐 버린 거죠. 그리고 마을에서도 소문난 미인인 누이동 생 브렌다양은 의자에 기댄 채 싸늘한 시체로 변해 있었답니다. 그리고 무 엇인가 무서운것을 보았는지, 세 사람의 얼굴에는 공포의 빛이 서려 있더 랍니다." 목사는 새삼 온몸을 부르르 떨었습니다. "어째서 이렇게 기괴한 일이 일어났는지 도무지 영문을 알 수가 없습니다. 홈즈씨, 당신이 뛰어난 탐정인것은 이전부터 알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이 사건을 조사하여 해결해 주십시오." 목사가 간절히 부탁했습니다. 듣고 있던 나는 '이거 곤란한걸.'하고 생각했 습니다. 홈즈의 건강이 겨우 좋아져 가고 있는데 이런 사건을 맡으면 다시 건강이 악화되어 버릴 염려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홈즈는 마치 사냥꾼의 명령을 듣는 사냥개처럼 눈을 빛내면서 듣고 있더니, "좋습니다. 조사해 보죠. 목사님, 현장을 직접 보셨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아닙니다. 조금 전에 트래제니스씨에게서 이야기를 들었을 뿐, 아직 가보 지는 못했습니다." "그럼 당신은 잠시 잠자코 계십시오. 트리제니스씨로부터 상황을 듣기로 하 지요." 모오티머 트리제니스는 아까부터 의자에 걸터앉은 채 한 마디도 말이 없었 습니다. 검은 얼굴은 몹시 창백하고, 여윈 두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 습니다. 형제들에게 일어난 돌발적인 사고에 몹시 충격을 받은 듯 했습니 다. "트리제니스씨, 당신은 왜 형제들과 떨어져 목사관에서 사시죠?" 홈즈가 물었습니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죠. 우리는 전에 꽤 큰 주석 광산을 경영하 고 있었는데 몇 년 전에 그것을 정리했습니다. 광산을 판 돈을 네 형제가 나눌때에 약간의 말썽이 있었지만 곧 화해를 하여 지금은 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어제밤, 당신이 형님 집을 찾아갔을때의 일을 자세히 이야기해 주십시오." "목사님 말씀과 같이 나는 밤 8시경에 가서 저녁 식사를 한 다음 카드놀이 를 했습니다. 10시 15분쯤되었을때, 작별을 고하고 집을 나왔습니다." "누가 현관까지 배웅 나왔습니까?" "아닙니다. 가정부인 포오터 부인은 이층의 침실에서 자고 있었고, 형제들 은 카드놀이를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현관문을 열고 나온 다음, 다시 꼭 닫았습니다." "거실의 창문은 어떻게 되어 있었습니까?" "창은 닫혀 있었지만, 커튼은 걷혀져 있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갔을때는 창 문이 열려 있었는데 강도가 침입한 흔적은 전혀 없었습니다." "정말 별난 사건이로군요." 하며 홈즈가 고개를 갸우뚱거렸습니다. "트리제니스씨, 당신은 어째서 이런 비극이 일어났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건 분명 악마가 한 짓입니다. 홈즈씨,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그렇게 끔찍한 짓을 저지를 수가 없습니다. 밤중에 악마가 집안에 들어와 두 사람 을 미치게 하고, 누이동생을 죽여 버린 것입니다." "만일 악마가 한 짓이라면 인간인 나로서는 손을 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악마의 존재 따윈 믿지 않습니다. 이건 틀림없이 사람이 저지른 일입 니다. 트리지니스씨, 다시 한번 어젯밤의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뭔가 이 상한 점이 없었습니까?" "그러고보니, 한가지 생각나는게 있습니다. 어젯밤 우리가 카드놀이를 하고 있을때의 일입니다. 나는 창을 등지고 있었으며, 맞은편에는 동생인 조오 지가 앉아 있었습니다. 언제쯤이었는지 똑똑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조오 지가 문득 창 밖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습니다. 내가 뒤를 돌아보니, 어 두운 정운 구석의 나무 그늘에서 뭔가 움직인 것 같았습니다. 조오지에게 무얼 봤냐고 물었더니, 나뭇가지가 조금 흔들렸을 뿐인데, 아마 개나 고양 이가 지나갔을거라고 대답했습니다." "밖으러 나가 살펴보지 않았습니까?" "예. 카드놀이에 한창 열중하고 있었고, 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기 때문입 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나무 그늘에서 움직인 그것이 이번 사건과 관계가 있을 것 같군요." "알았습니다. 그런데 트리제니스씨, 당신은 오늘 아침 일찍 무슨 볼일로 형 님댁에 갔습니까?" "아니, 볼일은 없었습니다. 여느 날처럼 일찍 일어나 산책에 나섰는데. 뒤 에서 이 마을에서 유일하게 의사인 리처드박사의 마차가 왔습니다. 이렇게 일찍 어디를 가느냐고 인사를 했더니 그는 우리 형님댁에 급한 환자가 생 겼다는 연락을 받고 왕진을 가는 길이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깜짝 놀 라, 박사의 마차를 타고 함께 형님의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랬더니 간밤 에 카드놀이를 했던 거실에 브렌다가 죽어 있었습니다." 끔찍스러운 광경이 다시 머리에 떠오르는지 그는 몸을 움추리며 말했습니 다. "브렌다의 시체를 조사한 박사는, 상처도 없으며 죽은 원인도 모르지만, 죽 은지 적어도 6시간쯤 지났나고 하더군요. 미친 형과 동생은 마치 2마리의 커다란 원숭이처럼 고함을 지르고, 서로 할퀴고, 깔깔 웃고 있었습니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비참한 광경이었습니다. 리처드 박사도 기분이 언짢았는지 얼굴빛이 새하얗게 질리면서 비틀비틀 소파위에 쓰러져 버렸습 니다." "참으로 묘한 사건이로군요." 하고 홈즈가 말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현장에 가서 조사해 봅시다. 여러분도 함께 가십시다." 2.들판의 외딴집.. 사건이 일어난 집은 우리들이 묵고 있는 곳에서 2킬로미터가 채 못 되는 곳 에 있었습니다. 우리가 들판 가운데로 난 구불구불한 길을 걸어가고 있을 때, 앞에서 검은 마차가 덜커덕거리며 달려왔습니다. 그 마차가 우리 옆을 지나갈때, 쇠창살 사이로 이빨을 드러내고 히히덕거 리는 두 사나이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앗! 저건 형님과 동생입니다!" 트리제니스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소리쳤습니다. "가엾게도 정신병원에 실려가는 모양입니다." 나는 소름이 오싹 끼쳐 한동안 멀어져 가는 검은 마차를 바라보고 있었습니 다. 그들의 집은 들판 한가운데의 외딴집으로, 별장 같이 아기자기하게 멋 을 부려 지은 이층 건물이었습니다. 넓은 정원에는 온갖 꽃들이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며 피어 있었습니다. 홈즈는 집 주위를 한바퀴 돌아보았습니다. 어젯밤 트리제니스가 뭔가 움직 이는 것을 보았다는 나무 그늘을 비롯해, 창문 바로 앞에 있는 화단, 현관 앞의 좁은 길등을 샅샅히 조사했습니다. 그때 잘못하여 현관 앞에 놓여 있 던 물뿌리개를 뒤엎어 사방을 물바다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거 정말 실례했군요." 홈즈는 당황하여 이렇게 사과했지만, 나는 그가 무슨 까닭이 있어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라고 짐작했습니다. 우리는 트리제니스를 따라서 집안으로 들어갔습니다. 55,6살쯤 되어 보이는 가저우 포오터 부인이 우리들을 맞았습니다. 그녀는 홈즈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습니다. "예, 나는 어젯밤 9시경, 이층에 있는 내 침실로 자러 갔습니다. 그때 여러 분들은 거실에서 즐겁게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일찍 거실로 내려가 보니 아가씨는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었고, 오웬씨와 조오지씨는 미쳐서 괴상한 소리를 마구 질러대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끔찍 스러운 광경에 나는 그만 마룻바닥에 쓰러져 기절했습니다. 잠시 후, 정신 을 차린 나는, 창문을 열어 공기를 바꾼 다음, 이웃 농가의 소년에게 의사 인 리처드 선생을 모셔다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의사 선생을 따라 마을 사 람들이 달려 왔으나 형제분은 의자를 꽉 붙들고 놓지를 않았습니다. 장정 이 네 사람이나 달려들어 가까스로 마차에 태웠습니다." "이 집 형제들이 혹시 누군가에게 원한을 산 일은 없었나요?" "아뇨, 모두 착하고 정직한 분들이라, 남의 원한을 살 만한 일은 결코 하지 않아요." "고맙습니다. 브렌다양의 시체는 어디있죠?" "이층 침실로 옮겼어요. 경찰에서는 아직 아무도 오시지 않았습니다." 홈즈와 함께 우리들은 이층으로 올라갔습니다. 27살쯤 되어 보이는 브렌다 는 시골에서는 보기드문 미인이었습니다. 상처는 한군데도 없었으나, 크고 파란 눈에는 공포의 빛이 서려 있었고, 얼굴도 두려움으로 인해 일그러져 있었습니다. 뭔가 몹시 무서운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죽은 것 같았습니다. 다음에 홈즈는 사건이 일어난 거실을 조사했습니다. 탁자위에는 카드장이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었으며, 초는 모두 다 탄채 4개의 촛대만 세워져 있었 습니다. 탁자 앞에 놓인 4개의 의자는 약간 비뚤어지긴 했으나, 거의 바른 위치에 있었습니다. 아마 그들은 트리제니스가 돌아간 뒤에도 카드놀이를 계속하다가, 별안간 무엇인지 무서운것의 습격을 받아 변을 당한 모양입니 다. 홈즈는 마룻바닥과 창틀을 조사한 다음 날카로운 눈을 빛내며 방안을 서성거리더니, 문득 난로 앞에 멈춰섰습니다. 난로속에는 새까맣게 탄 숯덩 어리가 있었습니다. "아니, 어젯밤 난로를 피운것 같군. 봄인데, 왜 불을 피웠을까?" 홈즈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트리제니스가 대꾸했습니다. "어젯밤엔 6시가 지나자 비가 내려 날씨가 쌀쌀해졌으므로, 제기 조오지에 게 난롯불을 피우도록 했습니다." "그래요? 알겠습니다. 트리제니스씨, 현장 조사는 모두 끝났습니다. 이젠 집에 가서 잘 생각해 볼까 합니다. 목사님, 그럼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오솔길로 접어들었을때, 말없이 걷고 있던 홈즈가 갑자기 입을 열었습니다. "와트슨, 유감스럽게도 이번 사건은 아직까지 증거가 부족해. 적은 자료를 바탕으로 해서 결론을 내리는것은 위험해. 좀더 기다려보세. 지금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트리제니스씨가 저 집을 나온 지 얼마 안되어,즉 11 시전에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 뿐이야." "리처드 박사는 브렌다양이 죽은지 적어도 6시간은 지났다고 했다니, 대체 로 자네의 추리와 맞는것 같군." "와트슨, 자넨 어떻게 생각하나?" "글쎄, 브렌다양의 죽은 얼굴에는 짙은 공포의 빛이 서려 있었어. 뭔가 무 서운것을 보았을 거야. 트리제니스씨가 저 집을 떠난 뒤, 곧 강도가 든게 아닐까?" "아냐, 현관문과 창틀을 자세히 조사했는데 강도가 들어간 흔적은 없었어. 만일 강도가 그 거실에 들어갔었다면, 한 사람쯤은 의자에서 일어났을거 야. 그러데 세 사람 모두 의자에 앉은 채였어. 강도가 들어왔다는 주장은 맞지 않아." 나는 문득 넘겨짚어 봤습니다. "홈즈, 난 아물래도 저 트리제니스씨가 수상하다고 생각되는데....." "아니 어째서?" "그 사나이는 등이 몹시 굽고 안경을 썼으며, 음흉한 표정을 짓고 있어. 아 무리 보아도 인상이 좋지 않아." "인상이 나쁘다고 범인으로 다루면 곤란해. 만일 투리제니스씨가 범행했다 면 그 동기가 뭘까?" "그 사나이가 말했었지. 주석광산을 팔았을때, 형제간에 불화가 있었다고.. .. 트리제니스는 자기 몫이 적은것을 불평하고 형제들을 원망해 오다가 세 사람을 위협한게 아닐까?" "음, 그럴듯해. 그러면 어떤 방법으로 위협했을까?" "그는 악마의 소행일 것이라고 몇 번이나 되풀이하지 않던가? 그래서 퍼득 생각난 일인데 트리제니스는 어젯밤 11시 전에 저 집을 나섰어. 일단 문 밖으로 나온 그는, 호주머니에서 악마나 괴물의 무서운 가면을 꺼내 쓰고 살그머니 그 집으로 들어갔어. 그리고 창 밖에서 갑자기 그 방을 들여다본 거지. 그 흉칙스러운 얼굴을 본 브렌다양은 겁에 질려 심장 마비를 일으켜 죽고, 두 형제는 미쳐 버린게 아닐까?" "핫하하, 와트슨, 안됐지만 그 추리는 틀렸어. 창문 바로 아래 화단에는 트 리제니스씨의 발자국은 물론 누구의 발자국도 남아 있지 않았어. 트리제니 스씨는 11시전에 그 집을 나서자, 그대로 곧장 목사관으로 돌아왔어." "어떻게 그걸 알아냈지?" "아까 내가 현관 앞의 좁은 길에서 일부러 물뿌리개를 뒤엎었지? 그건 트리 제니스씨의 발자국을 알기 위해 한 일이었어. 그는 물에 젖은 길을 건너 맨 먼저 집안으로 들어갔어. 길 위에는 분명히 그의 발자국이 남았지. 나 는 그 모양을 잘 기억해 두었다가 아까 문을 나오면서 조사해 보았지. 그 랬더니 트리제니스씨는 도중에서 멈추지 않고 곧장 목사관쪽으로 돌아갔더 군." "그래? 그렇다면 내 추리가 엉터리였군 그래. 홈즈, 자넨 누가 범인이라고 생각하나?" "아무도 의심하지 않고 있어. 동시에 모든 사람을 의심하고 있지. 트리제니 스씨는 물론, 말이 많은 목사나 의사인 리처드 박사도 수상하다면 수상하 니까 말야." "트리제니스씨와 조오지는 정원의 나무 그늘에서 뭔가가 움직이는 걸 보았 다고 했는데...." "그 나무 밑에는 발자국도 없고 나뭇가지 하나 부러져 있지 않았어. 와트 슨, 아뭏든 얼마 안되는 자료를 바탕으로 이것저것 추리를 하는건 그만두 게세. 쓸데없이 엔진을 마구 돌리는것같이 피로하기만 할 뿐이야. 잠시 모 든 걸 잊어버리고, 이 상쾌한 황야를 산책하기로 하세." 우리는 오전을 황야에서 보내고 오후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서는 손님 한 사람이 우리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3.거인과 같은 탐험가.. 손님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탐험가인 레온 스탕달박사였습니다. 몇 번이나 아프리카의 깊숙한 땅을 탐험한 그는 사자 사냥의 명수로도 알려져 있었습 니다. 마치 거인처럼 크고 우람한 몸집, 날카로운 눈에 매부리코, 반은 희 고 반은 금빛인 턱수염, 어디로 보나 보통 사람과는 달랐습니다. 우리는 들판에서 박사의 모습을 한두 번 본 적이 있었습니다. 박사는 약 1 년전에 아프리카에서 돌아와 이 고장에서 혼자 살고 있었는데, 멀지 않아 다시 탐험길에 오른다고 합니다. "여어, 홈즈씨! 당신이 뛰어난 탐정이란건 잘 알고 있습니다." 스탕달 박사는 여송연을 문 채 일어서더니, 곰처럼 큰 손을 내밀어 홈즈의 손을 덥석 잡았습니다. "정말 끔찍스러운 사건이 일어났군요. 홈즈씨. 나는 4번째 아프리카 탐험을 떠날 예정으로 프리머드 항구까지 가서 절반 이상의 짐을 배에 실었는데, 소식을 듣고 급히 돌아왔죠. 아프리카행은 잠시 연기 해야겠소이다." "실례지만, 스탕달 박사께서는 무엇때문에 이번 사건에 흥미를 가지시죠?" "흥미가 아니라 나에게는 중대한 사건이오. 죽은 브렌다와 미쳐 버린 두 형 제는 나의 외사촌이 됩니다." "아, 그랬었군요. 얼마나 걱정이 되시겠습니까? 그런데 당신은 언제 프리머 드 호텔에 가셨죠?" "사흘 전이오. 그랜드 호텔에 묵었죠." "이번 사건은 아직 신문에 발표되지 않았을 텐데요......" 박사의 표정을 살피며 홈즈가 말했습니다. "그렇소. 어떤 분이 전보로 알려 주었소." "전보를 친 사람이 누굽니까?" 스탕달 박사는 기분이 상했는지 굵은 눈썹을 꿈틀거렸습니다. "홈즈씨, 너무 꼬치꼬치 캐묻는군요. 마치 경찰관처럼....." "용서하십시오. 이게 바로 내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말하죠. 전보로 알려온 사람은 라운드헤이 목사요." "감사합니다. 잘 알겠습니다." "홈즈씨, 이번 사건은 아무래도 우발적인 사고는 아닌것 같소. 누군가가 브 렌다를 죽이고, 두 사람을 미치광이로 만든겁니다. 당신은 누구의 짓이라 고 생각합니까?" "그건 아직 모릅니다." "그래도 의심이 가는 사람은 있겠죠?" "그것도 아직 말할 수가 없습니다." "흥, 그렇다면 일부러 이 집을 찾아온 보람이 없군. 시간 낭비였어." 스탕달 박사는 화난 목소리로 그렇게 내뱉더니, 새 담배에 불을 붙여 물고 는 인사도 없이 휙 나가 버렸습니다. 홈즈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더니, 5분쯤 후에 잠자코 집을 나갔습니다. 어쩌면 박사의 뒤를 밟았는지도 모릅니다. 저녁때가 되어 돌아온 그의 낮빛으로 미루어 보아, 별로 수확이 없는 것 같 았습니다. "홈즈, 자네가 없는 사이에 이 전보가 왔어." 전문을 ?어본 홈즈는 언짢은 표정으로 전보를 찢어서 불태워 버렸습니다. "어디서 온 건가?" "프리머드의 그래드 호텔, 스탕달 박사의 말이 정말인지 호텔 지배인에게 전보로 조회했는데 그 답장이 온거야. 박사는 사흘전부터 호텔에 묵었고, 사건이 일어난 어젯밤에도 분명히 호텔에서 잤으며, 짐의 절반은 배에 있 고 나머지 반은 호텔에서 보관하고 있다는군." "그렇다면 스탕달박사는 이 사건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모양이군." "그건 아직 몰라. 뭔가 새로운 사실이 드러날 때까지 기다리기로 하세." 홈즈가 말하는 새로운 사실은 뜻밖에도 일찍 드러났습니다. 이튿날 아침, 내가 창가에서 면도를 하고 있을 때 덜커덕거리는 소리에 이 어 2륜 마차 한대가 집 앞에 멎었습니다. 마부 자리에서 뛰어내린 것은 라 운드헤이 목사였습니다. "홈즈씨, 큰일났습니다!" 목사는 숨을 헐떡이며 뛰어들어왔습니다. "이런 끔찍한 일은 이 마을이 생긴 이래 처음입니다. 이 마을은 신의 저주 를 받고 있습니다." "목사님, 진정하시고 의자에 앉으십시오. 대체 무슨 일입니까?" "모오티머 트리제니스씨가 어제까지 건재하던 트리제니스씨가 어젯밤 누구 에게 살해되었소. 갑자기 죽어 버렸단 말입니다." 4. 제 2의 살인.. 홈즈는 벌떡 일어섰습니다. 그 눈은 매의 눈같이 날카롭게 빛났습니다. "목사님, 트리제니스씨는 어디서 죽었습니까?" "목사관 아래층에 있는 거실에서입니다. 우리 집 하인이 발견했는데 제가 갔을 때는, 트리제니스씨는 의자에 앉은 채 이미 싸늘한 시체로 변해 있었 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죽은 브렌다양처럼 공포의 빛이 짙게 서려 있었습 니다." 홈즈는 입술을 꼭 깨물었습니다. 나 역시 홈즈 이상으로 놀랐습니다. 내가 이번 사건의 범인으로 의심하고 있는 트리제니스가 괴상한 죽음을 당했으니 놀라지 않을수가 없습니다. "홈즈, 사건은 점점 복잡해 지는군. 이렇게 되면 미궁에 빠지겠는걸." "아냐, 복잡해질수록 도리어 해결하기 쉬운 법이야. 아마 이번 사건으로 중 용한 단서를 잡을 수 있을거야. 목사님, 당신 마차로 목사관까지 가십시 다. 경찰이 오기전에 현장을 조사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합시다." 세 사람을 태운 마차는 곧 낮은 언덕위에 있는 목사관에 닿았습니다. 목사 관 남쪽으로는 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트리제니스는 아래층과 이층에 가가 방 하나씩을 빌어 쓰고 있었는데,이층 이 침실, 아래층이 거실로 되어 있었습니다. "시체는 아래층 거실에 있습니다. 그곳으로 가 보실까요?" 목사의 안내로 거실에 들어가자, 웬지 모르게 가슴이 답답하고 메스꺼웠습 니다. 탁자위에 켜져 있는 램프 탓인것 같기도 하였습니다. 심지를 너무 많이 돋우어 놓아서 램프의 유리가 새카맣게 그을려 있었습니다. 트리제니스는 의자에 앉은채 턱수염이 텁수룩하게 난 턱을 위로 치켜들고 죽어 있었습니다. 작고 검은 눈은 무엇인가 무서운 것을 보았는지, 겁에 질린 듯 부릅뜩 있었 습니다. 모든 것이 브렌다의 경우와 같았습니다. 팔은 축 늘어져 있었으며, 손가락은 무엇인가를 꽉 움켜쥐려는 듯이 구부려 져 있었습니다. 낮에 입었던 양복을 입고 있었는데, 바삐 입었는지 칼라도 넥타이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습니다. "트리제니스씨는 오늘 아침 날이 밝은 후에 죽은것 같군. 그런데 어째서 램 프를 켰을까?" 홈즈는 트리제니스의 시체에서 눈길을 돌려 주위를 살펴보았습니다. "저기 창문이 열려있군요. 목사님, 저 창문은 누가 열었죠?" "우리 집 하인이 열었습니다. 이 끔찍스러운 시체를 보고 충격을 받았는지 자기 방에 누워 있습니다. 불러올까요?" "뭐, 그럴 필요까진 없습니다. 지금부터 조사를 시작하겠으니, 잠깐 조용히 들 해주십시오." 홈즈는 곧 활동을 개시했습니다. 그의 행동은 마치 여우의 뒤를 쫓는 사냥 개처럼 날쌔고 민첩했습니다. 이층에서 정원의 잔디밭에 이르기까지 집안을 샅샅히 살피며 뛰어다녔습니다. 이층 침실에서는, 잠겨 있던 창문을 열고 창틀을 조사하면서 기쁜듯이 빙그 레 웃었습니다. 정원의 잔디밭에서는 개처럼 사방을 기어다니더니 이윽고 잔디속에서 잿덩이 같은 것을 찾아내서는 소중하게 종이에 싸서 호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그런 다음 홈즈는 시체가 있는 거실로 돌아왔습니다. 탁자위의 램프는 여전 히 새까만 그을음을 내며 타고 있었습니다. 홈즈는 램프를 끄고 돋보기로 램프의 갓을 세밀히 조사했습니다. 그 갓의 가운데 쪽에는 하얀재가 묻어 있고, 둘레에는 다갈색 가루가 묻어 있었습니 다. 홈즈는 다갈색 가루를 칼로 긁어서 봉투에 담아 수첩 사이에 끼웠습니 다. "이로서 단서가 잡힌 셈이죠." 홈즈가 밝은 목소리로 말한 순간, 멀리서 마차 달리는 소리가 들려왔습니 다. "오. 지방 경찰관들께서 오시는 모양이군. 목사님, 우린 일대로 돌아가겠으 니 경감님에게 이렇게 전해 주십시오. 런던에서 온 셜록 홈즈가 이층 창문 과 거실의 램프 갓에 특히 주의를 기울이면 사건 해결에 반드시 도움이 될 거라고 말하더라고 전해 주십시오. 와트슨, 이만 물러가세." 우리는 뒷문으로 해서 목사관을 빠져 나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로부터 이틀동안 홈즈는 거의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자기방에 틀어박혀 파이프를 빨아대며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가 하면, 말없이 어딘가 다녀오기 도 했습니다. 그러더니 이틀째 되던 저녁에는 시내 잡화점에 가서 트리제니스의 거실에 있던 램프와 똑같은 것을 한 사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는 목사관에서 트 리제니스가 쓰던 석유와 똑같은것을 얻어다가 램프의 기름통에 붓고 심지에 불을 붙여 1시간에 석유가 얼마나 줄어드는지 시험해 보았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하는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5. 홈즈의 추리.. 사흘째 되던 날 오후, 홈즈는 밝은 표정으로 내게 말을 건넸습니다. "와트슨, 상당히 복잡한 사건이었으나 마침내 해결했어." "그래? 참 잘뻍군. 두 차례에 걸친 사건은 모두 우연히 일어난게 아니라 누 군가가 계획적으로 한 것 같아." "맞았어. 범인은 두 사람이야." "뭐, 두 사람? 그게 누구야?" "글콅, 너무 서두르지 말게. 나는 이 두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면밀히 생각 해 보았어. 그랬더니 두 사건 사이에 있는 공통점을 발견했네." "공통점이라니?" "같은 일이 일어났었어. 그것은 시체가 있는 방에 들어간 사람이 모두 쓰러 지거나 기절했다는 사실이야. 따라서 두 방안에 독이 있는 공기, 즉 독가 스 같은게 꽉 들어차 있었다고 볼 수 있어. 먼저 첫번째 사건에서 브렌다 양의 시체가 있는 거실에 처음으로 들어간 가정부 포오터 부인은 가슴이 답답해서 마룻바닥에 쓰러져 기절해 버렸다고 말했었지." "응, 생각나는군. 하지만 가정부는 너무 처참한 거실안의 광경에 놀라 기절 했다고 말했었는데...." "맞았어. 그러나 조금뒤에 거실에 들어간 리처드 박사가 쓰러진것은 어떻게 설명하지? 트리제니스씨의 말의 따르면, 리처드 박사는 브렌다양의 시체를 조사하고, 미쳐 버린 두 형제를 보고 있는 사이에 기분이 나빠져 낯빛이 새하얗게 질리면서 비틀비틀 소파위에 쓰러졌다고 했어. 숱하게 시체를 보 아 왔고, 정신 병자도 꽤 여럿 다루었을 의사가 기절한 건 그 거실안에 독 가스가 꽉 차 있었기 때문이라고 판단해도 좋을걸세." "과연 그렇겠군. 그래서?" 나는 궁금하여 이야기를 재촉하였습니다. "제 2의 사건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어. 트리제니스의 거실에 처음으로 들어간 목사관의 하인도 가슴이 울렁거려서 누워 있었다고 하지 않았나. 그 방에 독가스가 남아 있었다는 증거야." "아참, 이제 생각나는군! 나도 그 방에 들어갔을때 뭐라고 말할수 없이 가 슴이 답답하고 메스꺼워서 간신히 참았어. 램프가 그을음을 내며 타고 있 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독가스가 남아 있었군그래." "응, 나 역시 속이 메스꺼웠지만, 하인이 창을 열어 놓은 덕분에 기절하지 않았던 거야. 그리고 두 사건의 공통점은 또 있어. 사건 당시에 방안에서 불이 타고 있었다는 점이야. 자네 기억나나? 황야 가운데 외딴집에서 내가 난로 속에 타다 남은 장작개비를 보고 봄인데 아직도 불을 피우냐고 물었 지? 그러자 트리제니스는 간밤에는 비가 내려 추웠으므로, 자기가 조오지 에게 부탁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게 했다고 말했었지." "응, 그랬어." "제 2의 사건에서는 램프가 타고 있었어. 나는 똑같은 모양의 램프를 사용 하여 1시간동안의 석유 소비량이 얼마쯤인가를 실험해 보았어. 그 결과, 그 램프는 날이 샌 뒤에 켜 놓은 것을 알았어. 이런 공통점을 연관시켜 생 각해 보면, 두 번 다 방안에 불이 켜져 있었으며, 방안에 있던 사람들이 독가스를 마시고 어떤 사람은 미쳤고, 어떤 사람은 죽어 버렸다는 것을 알 수 있어. 이것은 독가스를 발생시키는 어떤 물질이 불에 탔거나, 또는 불 로써 뜨거워졌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돼." "응,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군." "첫번째 사건에서는 그 독가스를 발생시키는 물질이 난롯불 속에 던져졌어. 독가스의 대부분은 연통을 통해 밖으로 새어나갔지만, 일부분은 방안에 퍼 졌어. 밀폐된 방안에서 그 독가스를 마시고 한 사람이 죽고, 두 사람이 미 쳐 버리거야." "어째서 브렌다양만이 죽었을까?" "여자이기 때문이야. 여자는 남자보다 약하거든. 아뭏든 이 독가스를 들이 마시면 처음 한동안은 심한 공포에 사로잡혀서 미쳐 버려. 더욱 악화되면 브렌다양같이 죽어 버리는 것이지. 그 증거로, 그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두 려움에 질려 있었지 않나. 남자들은 몸도 튼튼했지만, 독가스를 비교적 적 게 마셨기 때문에 죽지 않았을거야." "음......." 정말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두 번째의 사건에서는 독가스를 내기 위해 램프가 사용되었어. 램프의 갓 은 활석으로 되어 있었지. 활석은 납처럼 매끄러운 광석으로 열은 전달하 지만 타지 않는 성질을 지니고 있어. 그 램프의 등피 근처에는 흰재가, 가 장자리 쪽에는 다갈색의 가루가 묻어 있었지. 난 그 다갈색 가루를 칼로 절반만 긁어서 봉투에 담아 수첩 사이에 끼웠지." "왜 절반만 가져왔나?" "나중에 조사하러 올 경찰을 위해 남겨 둔 거야. 내가 다 가지면 불공평하 니까 말이야. 두 번째 사건에서는 먼저 램프에 불이 붙여졌어. 그리고 뜨 거워진 갓위에 독가스를 내는 물질, 아마 가루 같은 게 얹어졌을거야. 물 론 트리제니스를 죽이려는 범인이 올려놓은 거지. 가루는 램프의 열을 받 아 독가스를 냈어. 그것을 마신 트리제니스는 공포로 미친 상태가 되었다 가 곧 죽었어. 연통이나 공기 구멍이 없었으므로 독가스의 효과가 금방 나 타났어. 와트슨, 내가 세운 추리가 어떤가?" "글쎄, 확실히 그럴싸한 추리이기는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하나의 가 정이지. 뒷받침이 될 만한 결정적인 증거가 없잖아." 6. 위험한 실험.. "결정적인 증거?" 홈즈의 눈이 빛났습니다. "좋아! 그럼 이 방안에서 실험을 해 보세." "무슨 실험 말인가?" "이 탁자위에 트리제니스의 거실에 있던 것과 똑같은 모양의 램프가 있지. 램프에 불을 켜고 내가 갖고 온 다갈색 가루를 얹어서 독가스가 발생하면 내 추리가 틀림없어. 그러나 이 실험은 대단히 위험해. 두 사람은 다 미치 거나 죽을 우려가 있어. 자네는 밖에 나가서 유리창으로 들여다보면 어떨 까?" "아냐, 나도 방에 있겠어. 실험 결과를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그래? 과연 자네답군. 그럼 되도록 조심하세. 자네는 그 창문을 열고 바로 옆에 있는 의장에 앉아 있게. 나는 문을 열고 탁자의 반대쪽에 앉아 있겠 네. 램프에서의 거리는 똑같아, 서로 상대방의 동정을 잘 살피고 있다가 조금이라도 이상한 기미가 보이면 곧 상대방을 안고 뜰로 뛰어나가는거야. 알겠네? 자, 시작하겠네." 홈즈는 램프에 불을 켠 다음 나사를 돌려 불꽃을 크게 돋우었습니다. 그리 고 수첩사이에 끼워 둔 봉투속의 다갈색 가루를 램프의 갓 위에 뿌렸습니 다. 10초도 못되어 사향과 같은 독한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나는 별안간 속이 메스꺼워지고 머리가 멍해졌습니다. 그와 동시에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두려움이 밀물처럼 덮쳐 왔습니다. 몰려든 먹구름 속에서 정체를 알 수 없 는 괴물이 달려드는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머리털이 곤두서고, 눈알이 튀어 날올것만 같았으며, 입이 딱 벌어져 혀가 악어가죽처럼 굳어 버렸습니다. 살려 달라고 소리쳤지만, 그것이 제대로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미칠듯한 심정으로 홈즈를 바라보았습니다. 홈즈의 증세는 나보다 더 심했습니다. 무섭게 부릅뜬 눈과 창백한 얼굴은 두려움에 질려 흉하게 일그 러져 있었습니다. 그것은 브렌다나 트리제니스의 즉은 얼굴과 똑 같았습니 다. 손가락은 꺽인 못처럼 구부러지져 허공에서 무엇인가를 움켜쥐려 하고 있었습니다. '앗, 홈즈가 위험해!' 나는 허겁지겁 홈즈를 끌어안고 비틀거리면서 가까스로 뜰로 뛰어나왔습니 다. 아니, 뛰어나왔다기보다 굴러나왔다는 편이 옳을 것입니다. 우리들은 정신없이 잔디 위에 엎어져 숨을 몰아쉬었습니다. 30분쯤 지났을 까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는 따사로운 오후의 햇살이 우리의 등에 내리쬐고 있었습니다. "와트슨 고맙네." 홈즈가 목쉰 소리로 말했습니다. "독가스의 효력이 그렇게까지 빨리 나타날줄은 꿈에도 몰랐어.그렇게 까지 위험한 실험은 나혼자서 해야 되는건데. 자네까지 끌어들여서 정말 큰일날 뻔했어. 용서해 주게.." 홈즈가 이처럼 부드럽고 약한 감정을 나타내는 것은 드문 일이었으므로, 나 는 감격했습니다. "괜찮아. 홈즈. 조금이라도 자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나는 무슨 일이 든지 기꺼이 하겠네." "그렇게 말하니 더욱 고맙네. 그런데 램프를 저대로 놓아두면 위험하니 처 리해야겠어." 홈즈는 물에 적신 손수건으로 입과 코를 막고는 독가스가 자욱한 방안으로 뛰어들어갔습니다. 램프를 들고나온 그는 잔디밭의 끝에 있는 둑으로 달려가 램프를 힘껏 내동 댕이 쳤습니다. 등피가 깨어지면서 불이 꺼졌습니다. "와트슨, 방안에는 한동안 들어가면 위험해. 저쪽으로 가서 이야기를 계속 하기로 하세." 정원 구석에는 초라한 나무 탁자와 의자 3개가 놓여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홈즈는 여러번 심호흡을 하고 나서, "저 독가스는 정말 대단해. 아직도 목 근처가 따끔 따끔해. 그러나 걱정할 것 없어. 여기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있으면 저절로 낫겠지. 실험 결과, 두 사람이 죽고, 두 사람이 미쳐 버린 것은 저 다갈색 가루에서 발생하는 독가스 때문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어. 와트슨, 그런데 누가 이렇게 무서운 범죄를 저질렀을까? 범인은 두 사람이야. 먼저 첫번째 사건부터 설 명하지." 7. 첫번째 범인.. "첫번째 사건의 범인은 자네가 말한대로 모오티머 트리제니스야." "역시 그랬었군! 내 육감이 들어맞은 셈이군." "맞았어. 자네는 모오티머 트리제니스의 인상이 좋지 않다고 그를 의심했는 데 틀린 생각은 아니야. 그 사나이는 쥐새끼처럼 검고 작은 눈을 움직이며 늘 음흉한 표정을 짓고 있었어. 무엇인가 음모를 꾸밀 만한 사나이야. 범 죄의 동기 또한 자네 말대로 재산이 탐이 났던 거야." 그것 보라는 듯이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트리제니스 형제는 주석 광산을 팔아서 목돈이 생겼어. 그 돈을 나눌때 약 간의 말썽이 있었으나, 곧 화해를 했다고 모오티머 자신이 말했지. 내가 라운드헤이 목사로부터 들은바에 따르면, 돈을 나눌때, 오웬과 조오지는 광산을 팔때 아무 역할도 하지 않은 모이티머의 몫은 적어도 된다고 주장 했더군. 그래서 형제간에 칼싸움이 벌어졌어. 당행히 누이동생인 브렌다양 이 사이에 들어서 화해를 시켰으므로 모우티머의 몫은 조금 더 많아졌으 나, 형이나 동생에 비하면 훨씬 적었어. 화해는 했지만, 모이티머는 형과 동생을 원망하면서 언제가 앙갚음을 해야겠다고 벼르고 있었지. 그러던 중 우연히 무서운 독가스를 발생시키는 독물이 손에 들어오자 그는 '옳지, 됐 다! 이걸로 앙갚음을 해주자.' 고 결심을 했던 거야."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추측이겠지. 증명할 사람은 없잖아. 브렌다양은 죽고 형제는 미쳐 버렸으니까......." "아냐, 잇달아 일어난 두 번째 사건으로 미루어 생각하며, 첫번째 사건의 범인이 모오티머 트리제니스라는 결론이 나와." "그럼 그는 어떤 방법으로 범행을 저질렀을까?" "그날 밤, 모오티머는 형님 집에 가서 저녁 식사를 대접받고, 모두 함께 카 드놀이를 즐겼어. 10시반쯤되자 모오티머는 일어나서 작별 인사를 하고 난 로 앞을 지나 현관으로 향했어. 난롯불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어. 모오티머 가 춥다고 조오지를 시켜서 불을 피운거지. 모오티미는 난로를 지날때 주 머니에서 독물을 집어 꺼내어 얼른 난로 속에 집어 넣었지. 형제들은 카드 놀이에 열중해 있었으므로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어. 모오티머는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서 문을 다시 꼭 닫고 그대로 목사관으로 돌아가 버렸어. " "그건 무엇으로 추리할 수 있나?" "모오티머의 발자국이 증명하고 있어. 참극은 모오티머가 그 집을 나선 지 얼마 안 되어 일어났어. 독가스의 대부분은 연통을 통해 빠져나갔지만, 그 중의 일부가 밀폐된 방안에 차서 형제는 미치고, 브렌다양은 죽어 버린거 야." "정말 끔찍한 일을 저질렀군. 브렌다양은 모오티머를 위해 중재해 주었는데 왜 죽였을까?" "모오티머는 세 형제를 죽일 생각이 아니라, 모두 미치광이로 만들 생각이 었는지도 몰라. 독가스의 대부분이 연통으로 빠져 나간다는 것을 알고 있 었을테니까 말이야. 미치광이로 만들기만 해도, 세 사람의 재산은 당연히 자기에게로 돌아오지. 그러나 몸이 약한 브렌다양이 독가스를 조금 마시고 도 죽어 버렸어." 나는 문득 생각나는 점을 말해 보았습니다. "모오티머는 브렌다양의 죽음에 양심의 가책을 느껴 자살해 버린게 아닐까? 같은 독가스를 써서 말이야......." "아냐, 와트슨. 그건 틀린 생각이야. 교활한 모오티머가 자살 같은 걸 할 리 있나. 살해당한 거야. 증거도 벌써 갖추어져 있어. 그럼 모오티머를 죽 인 건 누구인가? 그걸 알고 있는 사람은 나 이외에 또 한 명 있어..... 이봐, 바로 그 인물이 찾아오셨어. 중요한 손님이니까 내게 맡겨 주게." 8. 두번째 범인.. 울타리 너머로 거인처럼 키가 크고 몸집이 우람한 신사의 모습이 보였습니 다. 아프리카 탐험가인 레온 스탕달 박사였습니다. 그는 늘 그러는 것처럼 여송연을 입에 문 채 못 마땅한 듯이 내뱉았습니다. "홈즈씨, 도대체 무슨 볼일이오? 방문해 달라는 당신의 편지를 보고 이렇 게 찾아오긴 했지만 나는 바쁜 몸이오. 내일 아프리카로 출발할 예정이니 까" "결코 오래 끌지 않겠습니다. 박사님. 이런 호젓한 곳에 오시라고 한 것은 이곳이라면 누가 엿듣거나 비밀이 새어나가는 열려가 없기 때문이죠." "비밀이라니. 무슨 말이오?" "모오티머 트리제니스를 죽인건 누구일까 하는 문제입니다. 박사님은 그 범 인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뭐라구?" 박사는 물고 있던 여송연을 집어 던지고, 무서운 눈초리로 홈즈를 노려보았 습니다. 나는 뭔가 무기를 가져오지 않은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였습니다. 박사의 얼굴은 분노로 푸르락붉으락했으며, 이마에는 파란 심줄이 섰습니 다. 그는 두 주먹을 휘두르며 금방이라도 홈즈에게 달려들 기세였습니다. 홈즈도 빈틈없이 몸을 도사렸습니다. 숨막힐 듯한 몇초가 흘렀습니다. 그때 갑자기 생각을 바꾸었는지, 박사는 주먹을 내리며 부드럽게 말했습니 다. "홈즈씨, 내가 잘못했소. 나느 오랫동안 아프리카 토인을 상대로 살아온 탓 으로, 걸핏하면 폭력을 휘두르는 버릇이 생겼소. 나는 당신을 해칠 생각은 전혀 없소." "나도 당신을 해칠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그 증거로 나는 모든 사실을 알 고 있으면서도 이곳에 경찰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자아, 어서 앉으시죠." 홈즈의 말은 조용했지만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위엄이 어려 있었습니다. 박사는 얌전히 나무 의자에 앉으며 홈즈를 바라보았습니다. "홈즈씨,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거요?" "나는 당신을 모이티머 트리제니스 살해의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있습니다. 당신이 왜 모오티머를 죽였는지, 그 이유를 듣고 싶군요." "뭐라고?" 박사는 벌떡 일어나 홈즈를 노려보았으나 가까스로 진정하고 다시 의자에 앉았습니다. "흥! 홈즈씨. 당신은 넘겨짚거나 겁주는 덴 명수로군요. 당신이 탐정으로 성공한것도 그 때문이겠죠." "남의 마음을 넘겨 짚는건 바로 당신이요." 홈즈가 거침없이 말했습니다. "당신은 어제 나를 찾아와서 브렌다양을 죽이고 두 형제를 미치게 한 범인 이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자신은 범인을 정확하게 알고 있으면서도 내가 누구를 의심하고 있나 알아보려고 했던 것입니다. 내가 지금으로서 알 수 없다고 대답하자, 당신은 화를 내며 돌아갔죠. 그 뒤를 내가 밟은 겁니다. " "뭐, 미행이라고? 난 누구에게도 미행당한 기억이 없는데....." "당신에게 들킬 만큼 서투른 짓은 하지 않소. 당신 집 앞에는 도로 공사에 사용되는 붉은 자갈 더미가 있죠. 당신은 그 자갈 더미를 유심히 바라보다 가 집안으로 들어갔소." 스탕달 박사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떴습니다. "지금부터 내가 추리한 것을 이야기하겠습니다. 만약 틀린점이 있다면 지적 해 주십시오. 당신은 오늘 새벽, 동이 틀 무렵에 집을 나섰소. 그리고 집 앞의 자갈 더미에서 붉은 색 자갈 한 움큼 호주머니에 넣은 후, 모오티머 트리제니스가 세들어 있는 목사관으로 갔소. 당신은 목사관 뒤꼍에 있는 과수원을 가로질러 울타리의 틈을 비집고 정원으로 스며 들었소. 그 증거 로 당신이 지금 신고 있는 밑창에 줄이 쳐진 테니스화의 자국이 과수원에 뚜렷이 남아 있습니다." 박사의 얼굴에는 점점 두려운 빛이 나타났습니다. "주위는 벌써 밝아졌으나, 목사관에는 아직 아무도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 죠. 당신은 트리제니스가 자고 있는 이층 침실 창문을 향해 호주머니 속에 있던 붉은 자갈을 던졌습니다." 그 순간, 스탕달 박사는 벌떡 일어서며, "홈즈, 넌 안마야! 악마가 아니고선 그렇게까지 자세히 알리가 없어!" 하고 미친듯이 고함을 질렀습니다. 홈즈는 빙그레 웃으면서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습니다. "칭찬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당신이 침실 창문에다 돌을 여러번 던지는 바 람에 모오티머는 겨우 눈을 뜨고 창문을 열었소. 당신은 아래층 거실로 내 려오라고 신호했죠. 모오티머는 서둘러 옷을 입고 거실로 내려와 창문을 열었습니다. 당신은 그 창문으로 들어가서 탁자위에 있던 램프에 불을 켜 고 등갓위에 어떤 독물을 얹어 놓고 재빨리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온 다음 창문을 꼭 닫았죠. 그리고 정원에 앉아 방안을 가만히 지켜 보았소. 박사, 거기 대해서도 증거가 있습니다." 홈즈는 주머니에서 종이 봉지를 꺼내어 펼쳤습니다. 거기에 하얀 여송연의 재가 들어 있었습니다. "나는 이재를 정원의 잔디밭에서 찾아냈습니다. 누가 보아도 당신이 피우는 여송연의 재라는 것을 환히 알 것입니다. 모오티머 트리제니스는 10분도 채 못 되어 램프에서 내뿜는 독가스 때문에 죽어 버렸습니다. 당신은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고 난 뒤 자택으로 돌아갔습니다. 어떻습니까, 제 추 리가? 사실과 거의 틀리지 않지요? 자, 이제 모오티머를 죽인 이유를 말해 주십시오. 만일 조금이라도 속이려 든다면, 나는 당신을 곧장 경찰에 넘기 겠소." 박사의 얼굴은 흙빛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탁자에 팔꿈치를 괸 채 생각에 잠겨 있던 박사는 마침내 결심을 한 듯 호주머니에서 사진 한장을 꺼내어 탁자위에 놓았습니다. 그것은 매우 아름다운 여자의 사진이었습니다. 홈즈가 들여다보며, "브렌다양이군요." 하고 말했습니다. "예, 모오티머 트리제니스의 누이동생인 브렌다 트리제니스입니다. 우린 오 랫동안 서로 사랑해 왔습니다. 내가 아프리카 탐험에서 돌아와 이 고장에 살게 된 것도 브렌다 때문입니다." "그렇게 서로 사랑하면서 왜 결혼을 하지 않았죠?" "나에게는 아내가 있었는데, 10년전에 나를 버리고 달아난채, 아직 행방을 모르고 있습니다. 까다로운 영국의 법률때문에 나는 이혼을 할 수가 없었 으며 따라서 결혼도 할 수 없었습니다. 나와 브렌다는 10년동안이나 기다 렸는데, 그 결과가 이런 비극을 가져오고 말았군요. 브렌다는 이제 영원히 만날 수 없는 먼 나라로 가 버렸습니다." 박사는 별안간 흐느껴 우기 시작했습니다. 넓은 어깨와 금빛 턱수염이 마구 흔들렸습니다. 홈즈는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습니다. "박사님, 브렌다양은 독가스로 살해되었을 것입니다. 그 가스를 내는 독물 은 어떤 것입니까?" 9. '악마의 다리'의 뿌리.. 스탕달 박사는 호주머니에서 작은 종이 봉지를 꺼내어 책상위에 올려놓았습 니다. 겉봉에 '악마의 다리의 뿌리'라 씌어 있고, 그 밑에 '독약'이란 빨간 표지가 붙어 있었습니다. "와트슨씨, 당신은 이 독약을 아십니까?" 박사가 물었습니다. "모르겠군요. '악마의 다리'란 이름조차 들은 기억이 없습니다." "모르는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이 독약에 대해선 어떤 책에도 씌어 있지 않 으며, 이것을 알고 있는 이는 유럽에서 한두 사람뿐입니다. 서아프리카에 서 나는 이 식물의 뿌리가 사람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으므로, 어느 선 교사가 '악마의 다리'라는 별난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토인 점장이들은 죄인을 자백시킬때 이것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악마의 다리'의 뿌리를 말 려서 가루로 만들어 불 속에 집어 넣으면 독가스가 발생합니다. 그 가스를 마신 죄인은 공포로 미친 사람처럼 되어, 뭐든지 다 불어 버리고 말지요. 나는 온갖 고생끝에 겨우 이것을 손에 넣었습니다. 자, 보십시오. 이게 바 로 그 식물의 가루 입니다." 박사가 봉지를 열자 가루가 나왔습니다. 홈즈는 엄한 어조로 물었습니다. "모오티머 트리제니스는 어디서 이 가루를 손에 넣었죠?" "홈즈씨, 이렇게 된 이상 뭐든지 사실대로 이야기 하겠습니다. 난 사촌인 남자 형제들과는 마음이 맞지 않았으나 브렌다를 봐서 겉으로는 사이좋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잠시 생각에 잠겨 먼 곳으로 시선을 주고 있던 박사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 를 들려 주었습니다. 약 2주일전. 모오티머가 느닷없이 박사의 집으로 놀러 왔습니다. 박사는 토 인의 활과 화살, 창 따위의 아프리카 탐험 기념품들을 모우티머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모오티머가 매우 흥미를 느끼는 바람에 박사는 그만 마음이 풀려 독약 가루 를 보여 주었습니다. 게다가 이 가루를 불 속에 넣으면 독가스가 발생하여, 이것을 마시면, 미치거나 심하면 죽기까지 한다는것을 모조리 털어놓고 말 았습니다. 큰 실수를 저지른 것입니다. 그러나 박사는 모오티머가 언제 그 가루를 훔쳤는지 몰랐습니다. 그가 다른 기념품을 보여 주려고 선반을 뒤지고 있을때 살짝 빼낸 모양입니다. 그런 일이 있은 지 얼마 후, 박사는 최후의 아프리카 탐험길에 오르기위해 프리머드항으로 갔습니다. 배에다 짐을 절반쯤 실었을때, 라운드헤이 목사 가 브렌다의 죽음을 전보로 알려 주었습니다. 그는 허둥지둥 마을로 돌아와, 목사로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두 사람이 미치고 한 사람이 죽어 버린것은, 틀림없이 '악마 의 다리'의 뿌리 가루를 사용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박사는,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은 모오티머 트리제니스뿐이라고 확신했습니다. 범행의 목적은 물론 돈이었습니다. 형제들이 미쳐버리기만해도 재산은 모두 모오티머의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박사는 사랑하는 브렌다를 잃어버린 슬픔과 모오티머에 대한 분노로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좋아, 꼭 원수를 갚고야 말겠다!' 하고 마음속으로 굳게 맹세했습니다. 그러나 모오티머가 범인이란 것을 경찰에 알리지는 않기로 했습니다. 이런 조그만한 시골의 재판관들은 아무도 '악마의 다리'의 뿌리같은 독약이 있다 는 것을 모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박사가 독물을 가지고 가서 그들 앞에서 그 무서운 작용을 실험해 본다 해도 모오티머가 그 독약을 사용했다는 확증이 없습니다. 따라서 모오티머는 무죄가 되고, 형제들의 재산을 독차지해서 평생을 편안 하게 살아갈수 있는 것입니다. 박사는 유명한 탐정인 홈즈는 이 사실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브렌다를 죽인 범인은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하고 물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홈즈 마저도, "지금으로선 알 수 없소." 하고 말했습니다. 결국 모오티머가 '악마의 다리'라는 독약을 사용한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 은 박사 자신 뿐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박사도 아프리카 탐험에 나서면 당분간은 돌아오지 못할 것입니다. 모오티머를 처벌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밖에 없다고 생각한 박사는, 하늘을 대신하여 그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날 아침 일찍, 그는 집 앞에 쌓인 자갈 더미에서 붉은 자갈을 한줌 쥐어 호주머니에 집어 넣고 목사관으로 갔습니다. 홈즈가 말한 것과 같이, 그는 과수원을 가로질러 목사관의 정원으로 숨어들었습니다. 주위는 이미 밝아졌는데도, 모오티머는 그때까지 이층 침실에서 자고 있었 습니다. 박사는 호주머니에서 붉은 자갈을 꺼내어 이층 침실 유리창에다 던졌습니 다. 여러번 던지자, 모오티머는 잠을 깨어 아래층으로 내려와 거실의 창문 을 열었습니다. 그 창문을 넘어 거실로 들어간 박사는 아프리카 탐험때 쓰 던 커다란 회전식 권총을 들이대고. "브렌다를 죽이고 두 형제를 미치게 한 건 너지?" 하고 소리쳤습니다. 권총을 본 모오티머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와들와들 떨면서. "예, 제가 저지른 일입니다. 돈은 얼마든지 드릴테니 제발 용서해 주십시 오." 하고 자백했습니다. 박사는 더 이상 생각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탁자위에 있던 램프에 불을 붙이고, 심지를 돋구워 놓았습니다. 그리 고 램프의 갓에다 '악마의 다리'의 뿌리 가루를 뿌리고는 재빨리 밖으로 나 온뒤 창문을 닫았습니다. 10. 살인자의 최후.. 박사는 정원의 잔디에 웅크리고 앉아 여송연을 물고 오른손으로는 권총을 겨누었습니다. 만일 모오티머가 의자에서 움직이기만 하면 한 방에 쏘아 죽 이려고 방안의 동정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박사는 자기에게 덤벼든 사자를 권총으로 쏘아 죽인적이 있었 습니다. 그는 사격의 명수였던 것입니다. 총소리가 나는 것을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달려온다고 해도 달아 날 생각은 없었습니다. 모오티머는 5분도 안되어 방안에 가득찬 독가스 때문에 심한 공포에 사로잡 혀 미친듯이 날뛰더니, 잇달아 손발이 굳어지며 죽었습니다. 공포에 일그러 진 얼굴로 죽어가는 모오티머의 얼굴을 보면서도 돌처럼 차갑게 굳어진 박 사의 마음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모오티머가 죽은것을 확인한 다음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홈즈씨, 이로써 모든것을 다 털어놓은 셈입니다. 만일 당신이 한 여자를 깊이 사랑한 경험이 있다면,아마 당신도 내가 한것과 똑같은 일을 하였을 것입니다. 어떻든 내 목숨은 홈즈씨, 당신 손에 달렸습니다. 나를 경찰에 넘기든지 말들지, 그것은 당신 마음대로 하십시오. 재판 결과, 사형을 당 해도 좋습니다. 브렌다가 없는 이 세상에서 더 살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으니까요." 스탕달 박사는 그것으로 이야기를 끝냈습니다. 한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않 았습니다. 얼마 후, 홈즈가 물었습니다. "박사님, 복수가 끝나면 어떻게 할 작정이셨나요?" "곧 배를 타고 최후의 아프리카 탐험에 나설 작정이었습니다. 아프리카에는 내가 해야할 일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 일을 끝내고 나서 정글 깊숙한 곳에 뼈를 묻을 각오였습니다." "박사님, 그럼 그 계획대로 곧 아프리카로 건너가서 남을 일을 끝내십시오. 나는 당신을 여기 잡아 둘 생각이 없습니다." 홈즈가 조용히 말했습니다. 스탕달 박사는 천천히 큰 몸을 일으키며 홈즈를 바라보았습니다. 나는 박사가 홈즈의 따뜻한 조처에 감사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박사는 고맙다는 말 한 마디 없이. 떠나갔습니다. 홈즈는 잠시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생각난듯, 호주머니에서 파이프를 꺼 내어 불을 붙였습니다. 그리고는 담배쌈지를 나에게 건네 주면서, "와트슨, 한대 피워 보게. 독없는 연기도 기분 전환에 좋을 테니까. 이번 사건에서 난 경찰과는 관계없이 혼자 조사해 왔어. 그러니까 박사를 놓아 주어도 별로 책망은 듣지 않겠지. 그 대신 내가 발견한 단서를 모두 뒤에 남겨 두었어. 만일 이곳 경찰에 능력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러한 단서를 바탕으로 해서, 모오티머 살인범을 밝혀 내어 체포할 수 있을 테지. 자넨 어떤가? 내가 스탕달 박사를 놓아 준 것이 못마땅한가?" 하고 물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잘했다고 생각하네. 박사는 두번 다시 영국으로 돌아오지 않 고, 아프리카의 깊숙한 정글속에서 일생을 마치겠지. 그 편이 박사를 오랫 동안 감옥에 넣거나 사형시키는것보다 훨씬 인류를 위해 도움을 주겠지." "그렇게 생각해 주니 고맙네. 와트슨, 그런데 난 자네와는 달리 연애 감정 이 전혀 없어. 만일 내가 사랑하는 여성이 브렌다양과 같이 처참한 죽음을 당했다면, 나도 스탕달 박사와 같은 짓을 할지 몰라. 사람이란 자기가 그 런 환경에 놓여 보지 않고서는 스스로 장담할 수 없으니까 말이야." "그건 그렇고, 자게가 스탕달 박사를 모오티머 살해범으로 보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나?" "응, 거기에는 다섯 가지 이유가 있어, 첫째가 이 붉은 빛이 도는 자갈이 야." 홈즈는 주머니에서 작을 돌을 꺼내 보이며 말을 이었습니다. "목사관에 갔을때, 내가 모오티머의 침실 창문을 조사하던 일을 기억하나? 유리창에는 희미하게 금이 가 있었고, 창가에는 이 붉은 자갈이 2개 놓여 있었어. 누군가가 정원에서 이층 창문에다 던진게 틀림없어. 나는 그 돌 하나를 주머니에 넣고 목사관 주위는 물론 온 마을의 길들을 샅샅히 조사 해 보았지. 그런데 이렇게 붉은 빛이 도는 작은 돌은 스탕달 박사의 집 앞 외에는 아무데도 없었어. 나는 스탕달 박사가 모오티머를 죽인 범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지." "음, 그랬었군. 그럼 두번째 이유는 뭔가?" "다음에 나는 목사관 정원 잔디밭에서 하얀 여송연 재를 찾아냈어. 그건 박 사가 피우던 여송연의 재와 같은 것이었네. 그곳은 모오티머의 거실이 똑 똑히 들여다보이는 장소였어. 그리고 세째로, 모오티머의 거실 탁자위에서 타고 있던 램프를 조사해 보았지. 기름통의 석유는 거의 줄어 있지 않았 어. 이것은 그 램프가 켜진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걸 말해 주고 있어." 나는 새삼 홈즈의 추리에 감탄하며, 다음 이야기를 재촉했습니다. "그 다음 나는 램프의 갓끝에 묻어 있던 다갈색 가루를 칼로 긁어내어 집으 로 가져왔어. 그리고 자네와 둘이서 타고 있는 램프의 갓위에 다갈색 가루 를 얹어 놓고 위험한 실험을 했지. 우린 하마터면 미치거나 죽을뻔했지. 이로써 두번의 사건에 모두 같은 독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아냈지. 와트 슨, 자네도 알다시피 나는 독물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연구를 하여 넓은 지 식을 갖고 있어. 그런데 램프의 갓에서 긁어낸 다갈색의 가루는, 유럽은 물론 아시아에도 남북아메리카에도 없는 것이야. 그렇다면 여러 차례 아프 리카 탐험에 나섰던 스탕달 박사가 가져온 것이 아닐까하는 의심이 생겨날 껀 뻔하지 않나." "듣고 보니 그렇군, 아직 한가지 더 남아 있지?" "나는 목사관 뒤에 있는 과수원의 부드러운 따위에서 스탕달 박사가 늘 신 고 다니는 테니스화의 발자국을 발견했지. 그 발자국은 돌아가는 길과 돌 아와는 길 둘 가닥으로 나 있었지. 이상 다섯 가지의 단서를 바탕으로 나 는 모오티머를 죽인 것은 스탕달 박사가 틀림없다고 단정을 내린거야. 어 떤가, 와트슨? 무슨 의견이라도 있나?" "아냐, 없어, 참으로 멋진 추리야." "하하하, 그렇게 칭찬받으니 쑥스럽군. 스탕달 박사의 이야기를 듣기 전에 는 독물의 이름도, 그가 모오티머를 죽인 이유도 몰랐거든. 그런데 와트 슨, 아까 박사가 돌아갈때의 뒷모습을 보았나? 거인같은 사나이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가는 모습은 여간 쓸쓸해 보이지 않더군. 애인을 잃어버린 것이 몹시 충격이 컸던 모양이야. 나머지 탐험을 무사히 끝내 주었으면 좋 으련만....." 그러다가 홈즈는 갑자기 활기를 띈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이봐, 와트슨! 저녁놀이 아주 아름답군. 저녁 식사때까지 벌판을 산책하며 사건에 대한걸 말끔히 잊어버리지 않겠나?" 스탕달 박사가 아프리카로 떠난지 5년째 되는 해, 박사가 깊은 정글에서 행 방불명이 되었다가 곧 늪 근처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왔습니다. 탐험을 모두 끝마치고 애인의 뒤를 쫓아간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