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포 상자 ??? 코난 도일 1. 안개 속의 살인.. 8월의 타는 듯한 어느날의 일이었다. 런던의 베이커가는 마치 찜통처럼 무더웠 다. 홈즈는 창문을 열어젖히고 차양을 반쯤 내린 채, 소파 위에 몸을 기대고는 오전중에 배달된 편지 한 통을 거듭해서 읽고 있었다. 나는 홈즈가 그 편지에 열중하고 있는 것을 곁눈질로 보면서, 별로 읽을 것도 없 는 신문을 탁자위에 내던졌다. 그리고 의자에 등을 기대고 멍하니 생각에 잠기고 있자니, 갑자기 홈즈가 말을 걸어왔다. "와트슨, 런던 남쪽 크로이든의 크로스가에 사는 카싱이라는 부인 앞으로 별난 소포가 배달되었다는 신문기사를 읽었나?" "아니 못 봤는데." "그럼 그 기사를 빠뜨린 게로군. 그 신문을 이리주게. 아, 이걸세. 소리내어 읽 어 보게나." 나는 홈즈가 다시 던져 준 신문을 들고 홈즈가 지적한 기사를 읽기 시작했다. 제 목은 '으스스한 소포'였다. 기사는 다음과 같았다. 크로이든의 크로스 가에 거주하는 카싱 부인은 극히 불쾌한 놀림을 받았는데, 혹시 여기에는 단순한 장난을 넘어선 어떤 목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어제 오후, 카싱 부인에게 갈색 포장지에 싼 소포가 배달되었다. 포장지안에는 종이 상자가 있었고, 상자속은 굵은 소금으로 채워져 있었다. 소금을 헤쳐보니 놀랍게도 사람의 귀가 두개 나왔다. 자른지 얼마 안된 것으로 보였다. 상자는 전날 오전중에 벨파스트의 우체국에서 접수한 것인데, 보낸 사람의 주소 성명은 쓰여 있지 않다. 카싱 부인은 50세가 되도록 결혼한 일이 없는 독신 여 성으로, 혼자서 조용히 지내고 있으며, 우편물을 받는 일이 신기할 정도로 친한 사람이 없으므로 사건은 더욱 흥미를 자아내게 한다. 그런데 수년 전, 부인은 세 명의 젊은 의학생에게 방을 세준 일이 있었는데, 그 세명 중 누군가가 카싱 부인을 놀려 줄려고, 해부실에서 시체의 귀를 잘라 이런 짓을 하지 않았나 추측되고 있다. 이 견해를 뒷받침하는 일로서, 카싱 부인의 기억에 의하면 세 명의 의학생 중 하나는 아일랜드 북부 출신으로, 소포가 발송된 벨파스트에서 온 학생이었다고 한다. 이 사건은 런던 경시청에서도 이름난 레스트레이드 경감이 담당.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내가 다 읽자 홈즈가 말했다. "오늘 아침 레스트레이드 경감에게서 편지를 받았는데 이런 내용일세. '이 사건은 당신의 마음에 들 것으로 생각합니다. 경찰로서는 사건을 해결할 전 망은 충분합니다만 단서를 잡는 데 약간 애를 먹고 있습니다. 물론, 벨파스트 의 우체국에는 전보를 쳐서 조회를 해 봤습니다만, 그 소포가 접수된 날은 소 포 우편이 유달리 많아 그 소포에 대해 기억할 수도 없고, 접수시킨 사람도 알 수가 없다고 합니다. 상자는 반 파운드들이 담배 상자로, 단서가 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의학생 설이 가장 신빙성이 있기는 합니다만, 두서너 시간 짬을 내어 와 주신 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은 크로이든의 카싱 부인댁에 가 있을 예정이니 그 리로 오십시오.' 어떤가, 와트슨? 이 더위에 그렇게 쳐져만 있지 말고 가 보지 않겠나? 자네의 기록에도 보탬이 될 것 같네." "좋아. 무슨 일거리가 없을까 고대하던 참일세." "그럼, 자네에게 일거리를 주겠네. 벨을 눌러 마차를 부탁해 주게나. 나는 외출 준비를 할테니까." 마차를 타자 소나기가 퍼부었기에, 크로이든에 도착했을때는 한결 더위가 가셔 있었다. 홈즈가 전보를 쳐 두었기에, 깡마르고 몸집이 작으면서도 족제비처럼 몸 이 날쌘 레스트레이드 경감이 정거장에 마중나와 있었다. 5분정도 걸으니, 카싱 부인댁이 있는 크로스 가에 도착했다. 레스트레이드 경감이 경감이 현관문을 두드리자 젊은 가정부가 얼굴을 내밀었다. 카싱 부인은 현관 곁의 거실에 있는 모양인지, 우리는 그리로 안내되었다. 생김새가 온화한 부인으로 크고 상냥스러운 눈에 잿빛 머리칼이 양쪽 관자놀이를 덮고 있었다. 무릎위에는 뜨개질 감이 놓여 있었는데, 레스트레이드 경감이 들어 가자 부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 기분 나쁜 물건은 헛간에 갖다 두었습니다만, 당신들이 갖고 가 주시면 좋겠 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카싱 부인. 부인이 입회하는 가운데 홈즈씨에게 보여 드리려고 모시고 왔습니다." "왜 내가 입회해야 하나요?" "홈즈씨가 몇 가지 질문할 일이 있을 것 같아서 입니다만...."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이미 말씀드렸는데, 질문을 해서 뭐합니까?" 홈즈가 달래듯 말했다. "그러시겠군요. 이번 일로 번거로움이 크실 것으로 압니다." "그래요. 나는 내성적이어서 조용히 살아왔습니다. 신문에 이름이 나거나, 경찰 이 집안을 드나든 일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하여간 그런 끔찍한 물건을 집안에 놓아둔다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일이지요. 보시고 싶다면 헛간에 가 보십시오." 헛간은 집 뒤에 있는 작은 마당에 있었다. 레스트레이드가 안으로 들어가 노란 상자를 갈색 포장지와 노끈째 갖고 나왔다. 뒷마당에는 벤치가 있었기에, 우리는 거기에 앉아 경감이 건네주는 물건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홈즈는 노끈을 햇빛 에 비쳐보고 그 냄새를 맡았다. "이 끈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레스트레이드 경감?" "타르가 칠해져 있더군요." "맞아요. 타르를 바른 삼베 실입니다. 카싱 부인은 가위로 잘랐다고 했지요? 자 른 자리를 보니 틀림없습니다. 이 끈은 극히 중요합니다." 레스트레이드가 물었다. "뭐가 중요한가요?" "묶은 매듭이 그대로 남아 있고, 그 매듭이 특이하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단단히 매듭지어져 있다는 것은 이미 기록해 두었습니다." 홈즈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는 포장지 입니다. 갈색 종이로 커피 냄새가 나는군. 수취인 주소는 활자 체로 또박또박 쓰여 있고.....'크로이든, 크로스 가. S. 카싱 귀하.' 촉이 굵은 펜으로, 질이 좋지 않은 잉크로 쓰여 있습니다. 크로이든, 즉 Croydon의 y자를 처음에는 i로 썼다가 y로 고친 것을 알 수 있겠군요. 따라서 소포의 주소를 쓴 사람은 교육 수준이 낮고, 크로이든의 거리를 모르는 남자입니다. 활자체 글씨는 남자들이 흔히 쓰니까. 그리고 상자는 노란색으로 반 파운드들이 담배상자인데, 바닥 오른쪽에 엄지손 가락 흔적이 두 군데 찍혀 있을 뿐 눈에 띄는 특징은 없군요. 안에 채워진 소금 은 생가죽을 절이는 데나 쓰이는 거친 것으로, 그 속에 이 으스스한 물건이 들 어 있었단 말이지...." 홈즈는 그렇게 말하며 두 개의 귀를 끄집어내서는, 무릎 위에 깐 판자에 올려놓 고 면밀히 조사했다. 레스트레이드 경감과 나는 양옆에서 허리를 굽혀, 그 끔찍 한 신체의 일부와 홈즈의 진지한 얼굴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이윽고 홈즈는 그것을 다시 소금 속에 채우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레스트레이드 경감에게 말 했다. "이미 파악하고 있겠지만 귀는 같은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아, 그건 알고 있습니다. 하긴, 해부실 의학생의 장난이라면, 각기 다른 시체의 귀 하나씩을 잘라낼 수도 있는 일이지요." "그야 가능한 일이지만 이건 단순한 장난이 아닙니다." "그게 확실합니까?" "나로서는 실없는 장난설에는 반대합니다. 해부실의 시체에는 방부제를 주사하지 만, 이 귀에는 그런 흔적이 없어요. 그리고 막 잘라낸 것이고 잘라낸 자국으로 보아 예리한 메스가 아니라 날이 무딘 칼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의학생의 짓이 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의학생이라면 방부제로 석탄산이나 알콜을 쓰지 막소금 같은 건 쓰지 않을 겁니다. 거듭 말하지만 이 사건은 장난이 아닙 니다. 우리는 극히 중대한 범죄와 맞부딪힌 겁니다." 나는 홈즈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의 표저이 굳어지는 것을 보면서 까닭 모를 전율을 느꼈다. 첫머리부터 이렇듯 끔찍한 물건이 배달된 것으로 보아, 그 숨겨 진 무대에서는 얼마나 피비린내나는 일이 저질러졌을까? 하지만 레스트레이드는 머리를 갸우뚱했다. "하기야 장난설에 반대 의견이 없는것도 아닙니다만, 반대설로는 불합리한 점이 많습니다. 우선 카싱 부인은 근 20년 동안 세상을 등지다시피 조용한 생활을 해 오고 있습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하루도 문 밖에 나가 본 날이 없을 정도 입 니다. 그런 부인에게 범죄자가 범죄의 표시가 될 만한 물건을 보내 올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부인이 뛰어난 배우여서 연극을 꾸미고 있다면 몰라도, 부 인은 누구에게 원한을 살 성품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금부터 해결할 문제입니다. 나로서는 내 추리가 정확해서, 어디선가 두 사람이 살해된 일이 있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수사에 착수하는 것이 옳다 고 생각합니다. 이 귀 중 하나는 여자의 것으로 자그마하며, 귀고리를 위한 구 멍이 뚫려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남자의 것으로 햇볕에 탔으나, 여기에도 귀고 리 구멍이 나 있습니다. 이 두 남녀는 살해되었을 겁니다. 살해되지 않았다면 두 사람이 병원에라도 나타나, 그 소문이 자자했을 테지요. 오늘이 금요일이니 까 소포는 목요일 오전중에 부친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살인은 수요일이나 화 요일 아니면 그 이전에 있었을 겁니다. 두 사람이 살해되었다면, 그 증거를 카싱 부인에게 보낸 것은 범인 이외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사나이가 카싱부인에게 이 상자를 보낸 이상, 무엇인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누구를 죽였다는 것을 알리든가 겁을 주기 위한 짓이 틀림없습니다. 그런 이상 카싱 부 인은 상대가 누구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부인은 알고 있 을까요? 알고 있다면, 경찰에 신고할 것 없이 귀를 어디에 묻어 버리는 것이 간 단합니다. 그렇게하면 아무도 모르게 일을 숨길 수가 있으니까요. 그리고 범인을 감싸야 할 입장이라고 해도, 그렇게 했을 겁니다. 한편, 감쌀 상 대가 아니라면 이미 상대방의 이름을 말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것도 저것도 아 니기에 그 의문은 규명할 필요가 있는 겁니다." 홈즈는 힘차게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는 안채 쪽으로 걸어가며 레스트레이드에게 말했다. "카싱 부인에게 몇 가지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그럼, 나는 먼저 가 보겠습니다. 다른 일거리가 겹쳐서 들러 볼 곳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로서는 부인에게서 더 이상 들어 볼 이야기도 없고요. 그럼, 다시 뵙 겠습니다." "그럼, 또 연락합시다." 홈즈와 내가 아까의 거실로 돌아왔을 때, 카싱 부인은 여전히 뜨개질을 하고 있 었다. 하지만 우리가 들어오는 것을 보자 일손을 멈추고 푸른 눈을 크게 뜨고는 우리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분명히 이번 일은 무슨 착오가 확실하며, 소포는 나에게 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경찰 관계자에게 몇 번이고 말을 했지만, 웃고 흘려 버리고 말더군요. 내가 아 는 한, 나에게는 이 세상에 단 한 사람의 적도 없어요. 따라서 나에게 이런 몹 쓸 장난을 할 사람은 없다고 생각됩니다." 홈즈가 부인 곁의 의자에 앉으며 맞장구를 쳤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이 듭니다. 부인의 말씀이 옳다는......." 홈즈는 여기에서 말을 끊었기에 문득 그를 바라보니, 홈즈는 카싱 부인의 옆 얼 굴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그의 얼굴에 놀라움과 만족의 빛이 스치 고 지나갔다. 하지만 왜 홈즈가 갑자기 말을 멈추었는지 카싱 부인이 의아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에는 다시 그의 침착한 표정으로 돌아가 있었다. 나는 부인의 회색 머리칼과 작은 모자, 진주 귀고리, 온화한 얼굴 등을 살펴 보았지 만, 홈즈가 그토록 흥미를 느낀 까닭을 알아낼 수는 없었다. 홈즈가 말을 이었 다. "몇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만..." 카싱 부인은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이 짜증을 냈다. "질문에 답변할 게 있어야지요." "동생이 두 분이신가요?" "예, 그걸 어떻게 아시죠?" "이 방에 들어왔을 때, 벽난로 위에 세 명의 부인들 사진이 놓여 있는 걸 보았습 니다. 그 중의 한 분은 틀림없는 부인이시고, 다른 두 분은 모습이 비슷하고 나 이가 아래인 것으로 보아 동생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맞습니다. 동생인 세알라와 메어리입니다." "그리고 그 곁의 사진에는 동생 한 분과 남자가 함께 찍은 사진이 있습니다. 제 복을 입은 것으로 보아, 남자는 어느 기선의 선원인 모양이군요. 저 사진을 찍 었을 때만 해도 동생은 결혼하기 전이었지요?" "상당히 정확히 보시네요." "직업이 직업이라서..." "맞습니다. 메어리의 결혼 전 사진입니다. 그 뒤 곧 저 짐 브라우너와 결혼했습 니다. 저 사진을 찍었을 때 짐은 남 아메리카 항로의 기선을 타고 있었는데, 동 생은 짐을 너무나 사랑하는 나머지, 오래 떨어져 살 수 없다고 해서, 짐은 리버 풀과 런던을 왕복하는 정기 여객선으로 일자리를 옮겼지요." "콘칼라호 말인가요?" "아뇨, 메이 데이호입니다. 짐은 이 집에 온 일도 있습니다. 그건 그가 술을 끊 겠다고 맹세했을 때였죠. 그러나 상륙할 때마다 다시 술을 마시게 되었고, 술에 취하면 행패가 심했습니다. 아무튼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한 것이 탈이었습니 다. 먼저 내가 그와 절교를 했고, 그 뒤 동생 세알라도 그를 미워하게 되었습니 다. 지금은 메어리도 소식이 끊어진 지 오래라,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군 요." 카싱 부인은 마음이 몹시 아픈 모양이었다. 혼자 외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 에게 흔히 볼 수 있듯이, 처음에는 말을 잘 하지 않으려 했으나, 차츰 마음을 터 놓기 시작하면서 기선의 선원으로 일한 다는 짐 브라우너에 관해서도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전에 세주었다는 세 명의 의학생에 관해서도 조목조목 이야기를 한 끝에, 그들의 이름과 병원까지도 알려 주었다. 홈즈는 가끔 질문을 곁들이면서, 부인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귀담아 들었다. 그 리고 대충 부인의 이야기가 끝나자 물었다. "다음은 세알라 부인에 대한 일입니다만, 그분도 독신으로 한평생 지내고 있는 모양인데, 왜 함께 이 집에서 사시지 않는지요?" "어머! 그건 세알라의 성미를 몰라서 하는 말이에요. 약 두달 전까지만 해도 둘 이 이 집에서 함께 살았습니다만, 도저히 같은 지붕 밑에서는 살 수가 없었어 요. 동생의 험담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늘 소란스럽고 짜증이 심해서..." "세알라 부인은 동생 메어리 부부와도 사이가 나빴나요?" "그럼요. 한때는 유별나게 사이가 좋기도 했지만요. 그래서 세알라는 동생 내외 곁에서 살고 싶다며 리버풀에 가서 산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세알라가 지금 은 짐 브라우너를 원수처럼 미워하고 있답니다. 이 집에 6개월 가량 묵었었습니 다만, 그 동안 계속 짐의 험담만 늘어 놓았더랬어요. 아마도 세알라가 동생을 편들어 짐의 술버릇을 나무랐기에, 서로의 사이가 나빠진 것 같습니다." 홈즈는 일어서서 정중히 인사를 하며 말했다. "여러 가지로 감사합니다. 카싱 부인, 동생 세알라 부인은 웰링턴의 뉴 가에 살 고 있다고 하셨지요? 어쨌거나 이번 일은 부인의 말마따나 부인과는 전혀 관계 가 없는 것이 확실합니다. 쓸데없는 일로 신경을 쓰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밖으로 나오자, 마침 빈 마차가 지나가기에 홈즈는 마차를 불러 세웠다. "웰링턴까지는 얼마나 되오?" "1Km 가 약간 넘을 겁니다." 마부가 대답했다. "타세, 와트슨. 쇠는 달았을 때 두드리라고 했네. 문제는 간단해졌지만 몇가지 확인할 것이 있네. 마부, 어디 전신국이 있거든 잠시 들렀다가 갑시다." 홈즈는 전신국에서 어디론가 전보를 치고 마차로 돌아왔는데, 그때부터는 모자를 콧등까지 끌어올려 햇빛을 가리고는, 좌석에 깊숙이 파묻혀 콧노래를 불렀다. 마침내 마차가 어느 집 앞에서 멎었다. 홈즈가 마부에게 기다리라고 이르고는 현 관으로 성큼성큼 걸어갔을 때, 마침 현관 문이 안에서 열리며 검은 양복에 가방 을 든 남자가 나왔다. 홈즈가 물었다. "세알라 카싱 부인은 집에 계신가요?" "세알라 부인은 몹시 편찮으십니다. 어제부터 뇌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의사로서 나는 누구와 만나는 것을 금하고 싶습니다. 10일정도 지나서 한번 와 보십시오." 의사는 그렇게 말하고는 뚜벅뚜벅 자기의 갈 길을 가버렸다. "이거야 할 수 없는 일이군. 만나봐야 이야기를 들어 볼 수도 없겠고. 또한 이야 기하려 들지도 않겠지.... 하기야, 세알라에게 뭐 새로운 사실을 알아내려는 것 은 아니었고, 어떻게 생긴 여자인지 한번 봐 두고 싶었을 뿐이니까. 마부, 어디 가까운 식당에 대주시오. 점심을 먹고, 경시청에 들러 레스트레이드 경감을 만 나기로 하세." 우리는 가벼운 식사를 했다. 식사중 홈즈는 사건에 대해서는 말끔히 잊어버린 사 람처럼 바이올린에 관한 이야기만 했다. 우리가 경시청에 도착했을 때는 시간이 상당히 흘러, 타는 듯한 더위도 많이 수 그러져 있었다. 경시청에서는 레스트레이드 경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보가 와 있습니다. 홈즈 씨." "아, 답장이 왔군." 홈즈는 봉투를 뜯어 전문을 흩어보고는 주머니에 넣었다. "이제 되었습니다." "뭘 좀 알아냈습니까?"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경감은 놀란 눈으로 홈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설마! 농담이시겠지." "농담이 아닙니다. 무서운 살인이 있었고, 나는 그것을 해결했습니다." "그렇다면 범인은?" 홈즈는 종이쪽지에 펜을 놀리더니, 그것을 경감에게 주었다. "그것이 범인의 이름입니다. 체포할 수 있는 것은 빨라야 내일 밤이 되겠군요. 이 사건에 관해서는 내 이름을 숨겨 주시기 바랍니다. 너무 손쉬운 사건이라 이 름을 내기도 쑥스러우니까. 자, 가세, 와트슨." 레스트레이드는 홈즈가 건네준 쪽지를 흐뭇한 표정으로 들여다보고 있었다. 우리 는 그런 경감을 뒤에 남기고 경시청을 나왔다. 2. 짐 브라우너의 자백.. 그날 밤, 홈즈는 베이커가의 하숙집에서 담배파이프를 입에 물고 말했다. "이 사건은 '홈즈와 주홍색글씨'나 '홈즈와 4개의 서명' 사건에서와 마찬가지로 결과에서 원인으로 거꾸로 추리를 해 올라가야 하네. 레스트레이드에게는 편지 를 보내어 결과를 알려 달라고 부탁해 놓았지. 아직 분명치 않은 점이 있어서, 범인이 체포되어야 알 수 있는 것들이 몇 가지 있거든. 그 정도는 경감에게 맡겨두어도 괜찮겠지. 추리하는데는 엉망이지만 일단 목표 가 정해지면 찰거머리처럼 집요하거든. 경시청에서 그가 인정을 받는 것도 그의 집요한 성격 때문이라네." "그럼, 이 사건은 아직 완전히 해결된 것이 아닌가, 홈즈?" "중요한 점은 모두 해결을 보았네. 이 피비린내 나는 살인극의 주인공이 누구라 는 것은 이미 드러났지만 살해된 사람 중 하나가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없다네. 물론, 자네도 나름대로 결론을 내리고 있겠지만." "자네는 리버풀 기선의 선원 짐 브라우너를 지목하고 있겠지?" "그가 범인이 틀림없네." "하지만 이렇다 할 증거가 없고, 막연한 추측 분이잖나." "막연하다니? 내가 보기에는 이렇게 명백한 사건도 드물다네. 주된 내용을 간추 려 보세. 카싱 부인댁에 갔을 때, 우선 무엇을 보았는가? 부인은 비밀 같은 것 은 지니고 있을 수 없을 만큼 온화하고 품위가 있었네. 그러나 사진에서 두 동 생이 있다는 것을 알았네. 그래서 곧 귀가 든 소포는 동생 중 누군가에게 보내진 것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지. 하지만 그 생각은 그대로 두고 나중에 확인해 보기로 했네. 그리고 자 네도 알다시피 뒷마당으로 가서 소포와 그속의 끔찍한 내용물을 살펴보았던 것 이네. 노끈은 배에서 돛을 꿰멜 때 쓰이는 것이었어. 그래서 이 사건은 바다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직감했다네. 그리고 그 매듭 역시 뱃사람들이 흔히 메는 방식이었 거든. 그리고 소포를 발송한 곳이 항구가 있는 벨파스트였고, 남자의 귀에도 귀 고리를 다는 구멍이 뚫려 있다는 것은 그것이 뭍 사람보다는 항구 도시의 젊은 이에게 흔한 것으로 보아, 사건의 인물들이 바다와 인연이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네. 소포의 수취인 문제에서는 그것이 성은 카싱이지만 이름은 약자 S로 처리했다는 점에 흥미가 쏠렸지. 우리가 만난 가장 위인 수잔 카싱 부인의 이름의 머리글자 도 S이지만, 둘째인 세알라도 그 머리글자가 S가 아닌가? 그렇다면, 수사는 새로운 방향에서 다시 시작할 필요가 있었지. 그래서 그 점을 명백히 하기 위해 거실로 되돌아갔던 것일세. 그때 내가 카싱 부인에게 아무래도 상자는 잘못 보내진 것 같다는 말을 하려고 했을 때, 내가 갑자기 말을 중단했던 것을 기억하나? 실은 그때 무엇인가를 보았기에 수사 범 위가 훨씬 좁아졌던 것일세. 자네는 의사니까 잘 알겠지만 인간의 귀는 사람에 따라 그 형태가 천태 만상 이 라고 할 수 있지. 작년도의 [인류학회보]를 보면 여기에 관한 논문이 실려 있 네. 따라서 나는 상자 속의 귀를 전문가의 눈으로 살펴보고, 해부학적 특징을 세밀하게 기억해 두었던 것일세. 그런 까닭에 카싱 부인의 귀를 보고 조금 전의 상자 속 귀와 너무나도 일치하는 데 놀랐던 것일세. 우연한 일치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지. 귀 위쪽의 날개 가 짧은 것이나, 귓밥이 두툼한 모양이나, 귓구멍의 달팽이 모양의 연골이 감도 는 모양까지 완전히 일치했던 것일세. 나는 그 발견이 극히 중요하다는 것을 직감했네. 피살자가 카싱 부인과 아주 가 까운 동기간일 것일라는 확신이 서게 된 거지. 카싱 부인은 내가 가족에 대해 물었을 때, 대단히 중요한 사실을 이야기해 주었네. 우선 둘째인 세알라가 극히 최근까지 한 집에서 살았다는 것이었네. 그 때문에 착오가 생긴 걸세. 즉, 그 끔찍한 소포는 언니인 카싱 부인이 아니라 바로 세알 라 카싱에게 보내진 것이 확실해졌던 것일세. 다음에는 막내인 메어리와 결혼한 선원 짐 브라우너와 세알라의 관계가 관심을 끌었지. 세알라는 처음에는 짐에 대해서 호감을 갖고, 그들이 사는 리버풀까지 가서 함께 살 정도였지만, 어느 사이엔가 틈이 벌어져 동생의 남편에 대해 험담 을 늘어 놓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 따라서 짐 브라우너가 세알라에게 그 런 소포를 보냈다면 언니와 함께 사는 크로스가의 카싱 부인댁일 수밖에 없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문제는 분명해 졌네. 짐 브라우너는 아내 메어리를 깊 이 사랑했지만 때때로 술을 퍼마셨네. 그런데 그 메어리가 어떤 사나이와 함께 살해된 것일세. 범행 동기로 곧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질투에 얽힌 남녀 관계였지. 그렇다면 살인을 암시하는 물건을 왜 세알라에게 보낼 필요가 있었을까? 아마도 세알라가 리버풀에서 동생 내외와 함께 사는 동안, 이번의 비극을 불러 일으킬 씨앗을 뿌린 것이 아닌가 생각했네. 알다시피 그 기선은 벨파스트, 더블린, 워터퍼드의 순으로 기항을 하지. 따라 서, 짐 브라우너가 일을 저지르고서 곧 자기의 배인 메이 데이 호를 탔다면, 우 선 그 끔찍한 소포를 우송할 수 있는 항구는 벨파스트가 되네. 이 단계에서 또 다른 가능성도 생각할 수 있었지. 즉, 소포 속의 남자의 귀가 브라우너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일세. 누군가가 브라우너와 그의 아내 메어 리를 욕심냈다가 일이 잘못되어 그들 부부를 순간적으로 살해했을 가능성 말일 세. 물론 조리가 맞지 않는 점은 많으나, 있을 수 있는 일이기는 하지. 그래서 나는 리버풀 경찰에 근무하는 친구 앨거 경감에게 전보를 쳐서, 브라우 너의 부인 메어리가 집에 있는지, 브라우너는 메이 데이호를 타고 떠났는지의 여부를 조회했던 것일세. 그리고 그 길로 웰링턴에 있는 세알라 집을 찾아갔었 네. 나는 그들 자매의 귀의 특징이 세알라에게는 어떻게 나타나 있는가를 보고 싶었던 것일세. 그리고 또한, 세알라에게서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 점에 대해서 큰 기대는 하지 않았네. 신문에 그 끔찍한 소포 사건이 보도된 이상, 세알라도 이미 그 소식을 듣고 그 소포가 누구에게 보내 온 것인지 알고 있었을 것일세. 그리고 경찰에 협력할 생 각이 있었다면 벌써 경찰에 신고했어야 했지. 하지만 세알라의 집 문전에서 소포 때문에 뇌에 이상이 생길 정도의 충격을 받 았다는 것을 알았네. 그래서 세알라가 소포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는 것이 더욱 명백해졌지. 그래서, 세알라를 만나볼 필요는 더더욱 없어졌던 것일세. 그러자 앨거 경감에게 부탁한 조회 내용이 내가 지정한 레스트레이드 경감 앞으 로 도착했지. 곁봉을 뜯어보니 짐 브라우너의 부인 메어리는 집을 비운지 3일이 나 된다는 것이었네. 한편 선박 회사에 확인해 본 결과, 메이 데이 호를 탄 브라우너는 내일 밤 런던 에 도착할 예정이라는 것이었네. 그 기선이 도착하면 머리는 둔하지만 용감한 레스트레이드 경감이 마중나갈 테니까 곧 끝장이 날 걸세." 홈즈의 예상은 보기좋게 맞아 떨어졌다. 이틀 뒤에 두툼한 봉투가 배달되었는데, 봉투속에는 레스트레이드 경감으로부터 온 짧은 편지와 타자기로 친 서류가 들어 있었다. 홈즈는 흘끔 나를 바라보고 말했다. "레스트레이드가 무슨 소리를 썼는지 읽어줄까?" '셜록 홈즈 귀하.. 계획에 따라 나는 오늘 6시, 앨버트 선착장에 나가 리버풀, 더블린, 런던 기선 회사 소속의 여객선 메이 데이 호에 승선했습니다. 조사 결과, 메이 데이 호에 짐 브라우너라는 선원이 근무하는 것이 확인되었으나, 선장의 말에 의하면 이번 항해에서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여 일을 쉬게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의 방으 로 가보니 옷상자위에 걸터 앉아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쪼그리고 앉아 있더군 요.우람한 체격에 잘 생긴 사나이였습니다. 내가 신분을 밝히자 도망치려 하기 에 미리 배치한 수상 경찰의 도움을 받아 갑자기 기운을 잃은 그의 손목에 쉽게 수갑을 채울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브라우너를 유치장에 수감하고, 무엇인가 증거가 될 만한 물건을 확보하 기 위해 그의 옷 상자를 압수했습니다. 선원들이 흔히 갖고 있는 대형 재크 나 이프밖에는 별것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증거물을 갖출 필요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를 신문하자 순순히 모든 사실을 자백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브라우너의 자백을 속기해서 그것을 세통 타자쳐, 한 통을 여기에 동봉 합니다. 사건은 예상한대로 극히 간단한 것이었습니다만, 수사에 있어서 당신이 협조해 주신데 대하여 감사하는 바입니다. G. 레스트레이드' 홈즈가 중얼거렸다. "흥! 사건은 극히 간단한 것이었다고? 하지만 나에게 편지를 보내어 원조를 청했 을때는 간단히 생각하지 않았을텐데.. 어쨌거나 짐 브라우너가 순순히 자백했다 는 것이 어떤 내용일까?" 홈즈는 나도 들을 수 있게끔 타자쳐진 자백서를 소리내어 읽기 시작했다. -뭐 할 말이 있느나고요? 있지요. 그것도 많이 있습니다. 속에 있는 것을 다 털 어 놓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교수형에 처하든, 형무소로 처박히든 상관 없습니다. 실은 사람을 둘 씩이나 죽이고 나서는 마음 편히 자본일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죽는 날까지 제대로 잠을 이룰 것 같지도 않습니다. 때때로 그 녀석의 얼굴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대게는 메어리의 얼굴이 더욱 눈앞에 어른거립니다. 메어리가 크게 놀란 얼굴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럴 거예요. 그녀가 깜짝 놀란것도 무리가 아니지요. 나는 그전까지만 해도 애 정에 찬 웃음 띤 얼굴만 보여왔는데, 그때의 내 모습은 마치 악마처럼 험악했을 테니까요. 하지만 만사는 메어리의 언니 세알라의 잘못이기에, 나는 그녀를 저주합니다. 내 죄를 가볍게 할 욕심으로 그녀를 끌여들이는게 아닙니다. 세알라가 우리집에만 기어 들어오지 않았어도, 메어리의 마음이 나에게서 떠나가지는 않았을 겁니다. 실은 세알라가 나를 좋아하게 되었던 겁니다. 비극의 발단은 바로 그것입니다. 세알라는 나를 좋아하게 되었으나, 내가 거들떠보지도 않고 메어리만 일편 단심 사랑하자, 그녀는 나를 증오하게 된 겁니다. 그들 자매는 세 명이었습니다. 제일 위인 수잔 카싱 부인은 온화한 분이었으나, 둘째인 세알라는 악마고, 메어리는 천사였습니다. 내가 결혼했을 때, 세알라가 3 3살, 메어리가 29살이었습니다. 나는 행복했으며 리버풀의 어디를 뒤져 보아도 메어리만큼 사랑스러운 여인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결혼 후 1주일이 못되어 세알라가 우리집에 왔는데, 곧 돌아갈줄 알았던 것이 1 주일이 지나고 한 달을 넘기자 어느덧 눌러 살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 무렵 술을 끊었고 목돈도 모아 둔 것이 있어, 그야말로 장미빛 인생을 꿈꾸고 있었기에 일이 이렇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나는 대게 주말에만 집에 돌아왔는데, 화물 관계로 배의 출항에 차질이 생기면 한 주일 동안 내내 집에 머물러 있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는 매일처럼 세알라와 얼굴을 마주 대해야 했습니다. 그 여자는 키가 늘씬하게 크고 검은 머리에 성미가 불 같은 여자로, 눈에서는 부 싯돌에서 튀는 불꽃같은 것이 번뜩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랑스러운 메어리가 곁에 있는 한, 나는 그 요사스러운 여자를 생각해 본 일은 단 한번도 없었습니 다. 이건 하나님에게라도 맹세할 수 있습니다. 때때로 세알라는 나와 단둘이만 남아 있고 싶어 하고 함게 산책을 나가자고 말하 기도 했지만, 나는 코방귀만 뀔 뿐 상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배에서 돌아와보니 메어리가 집을 비우고 세알라만 있었습니다. "메어리는 어디에 갔죠?" "장보러 간 모양이야" 하고 대답했습니다. 내가 할 일 없이 방안을 서성거리자, "단 5분만이라도 메어리가 보이지 않으면 못 견디는 모양이군. 짐? 나도 여잔데 이럴 때는 여자 대우를 해 줄 수는 없을까." 하고 빈정거리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무시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고 말하며 손을 내젓는데, 그 여자가 내 손을 꽉 잡았습니다. 내가 얼굴을 찡 그리며 기급을 해서 손을 빼자, 그녀는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두고 보시지, 짐. " 하고 비웃는 듯 말하고는 방을 뛰쳐나갔습니다. 그뒤로부터 세알라는 마음속 깊이 나를 미워하게 되었는데 그 여자는 누구를 미 워하는 데 있어서도 철저했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뒤로는 세알라와 한 집에서 지내는 것이 꺼림칙했지만 메어리에게 이야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표면상 평온한 날이 계속되었습니다만, 어느덧 메어리의 행동이 이 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언제나 나를 믿고 따랐던 아내가 갑자기 지나치게 의심 이 많아져서 어디에 갔다 왔는냐, 무엇을 했는냐, 누구에게서 온 편지냐, 주머니 에 든 것이 무엇이냐 등, 쓸데없는 일을 꼬치꼬치 캐묻는 것이었습니다. 날로 메어리는 화내는 일이 잦아지고 우리는 별일도 아닌 것으로 부부싸움을 벌 이곤 했습니다. 나는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리고 세알라는 나를 피하게 되었지만 메어리와는 전보다 더욱 사이가 가까워진 것 같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녀가 음모를 꾸며 메어리의 마음을 나로부터 멀어지게 한 것이 었는데, 나는 장님이나 다름없어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속이 상한 나는 다시 술을 입에 대기 시작했는데, 메어리가 변하지만 않았던들 그렇게 되지는 않 았을 겁니다. 그렇게 되자, 메어리가 내게서 멀어져 갈 구실이 생긴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우리 부부간의 틈은 깊어만 갔습니다. 거기에 그 알렉 페어베언이라는 사나이가 개입 함으로써 사정은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페어베언은 처음에는 세알라는 만나기 위하여 드나들었는데, 사교술이 좋아 곧 우리 부부와도 친해졌습니다. 그 녀석은 성격이 활달하고 말솜씨가 뛰어나서, 세 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흥미 진진하게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그럭저럭 한 달 가량 우리 집에 들락거리더니, 알게 모르게 메어리에게 접근하는 눈치가 보였습니다. 나는 처음에는 그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으나, 의심이 생기기 시작 하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게 되었습니다. 내가 의심을 하게 된 것은 극히 하찮은 일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예고도 없이 방문을 열자, 메어리가 반가운 웃음을 머금고는 돌아보다가 나를 보자 실망 한 얼굴이 되어 딴전을 부리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짐작이 갔습니다. 메어리는 내가 문 여는 소리에 페어베언이라고 생각한 것 이 틀림없었지요. 나는 그때 그자가 나타났더라면 죽여 버렸을지도 모릅니다. 나 는 분통이 터지면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성미이니까요. 메어리는 내 눈빛이 심상치 않은 것을 보고는 나에게 매달렸습니다. "왜 그래요, 짐?" "세알라는 어디 있소?" "부엌에요." 나는 부엌으로 달려가 세알라에게 소리쳤습니다. "그 페어베언이란 놈, 다시는 우리 집에 못 오게 하시오!" "왜 못 오게 하지?" "나의 명령이오." "그래? 나의 남자 친구를 이 집에 못 오게 한다면 나도 마찬가지겠지." "마음대로 하시오. 하여간 페어베언이라는 자가 얼굴을 내밀기만 한다면 놈의 한 쪽 귀를 도려내어 기념으로 당신에게 보내 주리다." 세알라는 나의 험악한 말에 겁을 먹었는지, 그날 중으로 짐을 싸들고 나가 버렸 습니다. 그 여자는 메어리를 꾀어 부정한 짓을 시킴으로써 나와의 인연을 끊어 놓을 생각이었는지는 모르나, 하여간 우리 집 가까운 곳에 집을 세내어 선원들을 상대로 하는 하숙집을 차렸습니다. 페어베언은 자주 그 집에 드나드는 모양인지, 메어리는 수시로 그곳에 찾아가서 언니와 페어베언과 함께 차를 마시는 눈치였습니다. 어느 날은 메어리의 뒤를 밟 아 느닷없이 뛰어들어갔더니 겁에 질린 페어베언이란 놈이 뒷담을 넘어 도망간 일도 있었습니다. 나는 메어리에게.. "또다시 그놈과 함께 있는 것을 보면 죽이고 말겠다." 하고 말하고, 메어리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 흐느껴 우는 것을 끌고 돌아왔습 니다. 일이 이렇게까지 되고 보니, 우리 둘 사이에는 애정 같은 것은 남지가 않았습니 다. 나는 메어리가 나를 미워하고 겁을 내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으 므로, 술로 마음을 달랠 수 밖에 없었고, 술을 마시니 메어리는 더더욱 나에게서 멀어져 갔습니다. 그런데 그런 북새통에서 세알라는 장사가 신통치 않아 크로이든의 언니댁으로 돌 아갔고, 나의 가정은 싸늘한 공기속에 며칠이 흘러갔는데 마침내 파국이 몰아닥 쳤습니다. 일의 발단은 이러했습니다. 나는 7일간의 항해 예정으로 메이 데이 호에 승선했 는데 기관에 고장이 생겨서 수리하기 위해 다시 항구로 돌아왔습니다. 나는 집으 로 돌아가며, 혹시 메어리가 내가 뜻밖에 며칠 집에서 묵게 되는 것을 기뻐할지 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집에 바라보이는 길 모퉁이를 막 돌아섰을 때, 한 대의 마차가 집앞에서 떠나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늘에 숨어 바라보니 메어리와 페어베언이 나란히 앉 아 시시덕거리며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분명히 말해서 그때부터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만사가 멍한 꿈속에서 일어난 일 같습니다. 요즘에는 술이 늘어, 그야말로 머릿 속이 엉망입니다. 지금도 머릿속은 철공소 직공이 망치로 두드리는 것처럼 꽝꽝 울립니다. 나는 종종걸음으로 마차 뒤를 쫓아갔습니다만, 어느틈엔가 몽둥이를 손에 쥐고 미칠 정도로 흥분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뛰어가다보니 제딴에 지혜가 생겨, 내 모습이 그들의 눈에 띄지 않게 조심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차는 기차 역 앞에서 멎었습니다. 마침 승객이 붐벼, 나는 그들이 눈치채지 않 게 접근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뉴 브라인드까지 가는 차표를 샀습니다. 나도 같은 차표를 사고서, 그들이 탄 다음 칸에 탔습니다. 뉴 브라인드에 닿자, 약 100m 정도 떨어져 그들의 뒤를 밟았습니다. 두 남녀는 바닷가에 가더니 보트를 빌어 타더군요. 조금 더 있으면 날씨가 무더워질 테니 까, 바다가 시원할 것으로 생각한 모양입니다. 이렇게 되면 그들은 독안에 든 쥐나 다름없었습니다. 바다에는 안개가 깔려서 10 0여미터 저쪽은 보이지 않을 정도였으니까요. 나도 보트를 빌어 그들의 뒤를 쫓았습니다. 둘이 탄 보트는 희미하게 보였으나, 나는 천천히 뒤따라 갔기 때문에 내가 거의 따라잡을 때는 기슭에서 1km는 떨어 진 바다 위에 나와 있었습니다. 그 근처는 바다 안개가 커튼처럼 둘러쳐져 있 어, 거기에 떠 있는 것은 그들과 나 셋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가까이 온 보트에 내가 타고 있는 것을 알아보았을 때의 그들의 얼굴은 두고두고 잊을 수 있을것 같지가 않습니다. 메어리는 비명을 질렀습니다. 페어베언은 미친 듯 노를 쳐들어 나를 떼밀려고 했 습니다. 그는 내가 자기를 죽일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던 겁니다. 나는 몸을 비틀어 그의 공격을 피하고는, 몽둥이로 그자의 머리를 내리쳤습니다. 그 녀석은 그 자리에서 쓰러지더군요.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메어리를 헤 치고 싶은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죽은 사내를 끌어안고는, "알렉! 알렉!" 하고 울부짖는 것이었습니다. 눈이 뒤집힌 나는 그만 그녀마저 내리치고 말았습니다. 그때 나는 미친 맹수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세알라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틀림 없이 그녀도 죽였을 겁니다. 주위가 조용해졌을 때, 나는 칼을 꺼내어--- 말하지 않아도 아시겠습니다만, 세 알라에게, '너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는 증거로 그들의 귀를 잘라 보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잔혹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시체는 보트에 붙잡아메고 배 밑에 구멍을 뚫어 시체와 보트가 바닷속으로 가라 앉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보트 주인이 두 사람이 방향 감각을 잃고 멀리 떠내 려간 것으로 생각하기를 기대했던 겁니다. 나는 옷매무새를 고치고 아무런 의심도 받지 않고 보트를 내려 집에 돌아와서는 메이 데이 호에 승선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에 소포를 만들어 이튿날 그것을 벨파스트에서 우송했습니다. 사건의 진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무슨 형벌을 내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마음속에 서 이미 무서운 가책을 받고 있으니까, 그 이상 무서운 벌은 내릴 수 없을 겁니 다. 눈을 감으면 그 둘의 얼굴이 나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내가 안개 속에서 나 타났을때 겁에 질려 나를 바라보던 그들의 눈이 어른거립니다. 나는 그들을 단숨에 죽였습니다만, 그들은 나를 두고두고 말려 죽이려 합니다. 이 상태가 계속된다면 나는 곧 미치거나 자살하고 말 것 같습니다. 나를 쓸쓸한 독방에 넣지 마십시오. 부탁이니 독방만은 면하게 해 주십시오.- 홈즈는 서류를 내려놓으면서 신음하듯 말했다. "인간에게는 이성이 있는데, 어째서 이런 바보짓을 하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