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루스 파팅턴 설계도 ?? (The Bruce-Partington Plans) 코난 도일.. 1. 없어진 비밀 서류.. 1895년 11월 세째 주, 런던은 짙은 안개로 덮여 있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에 걸 쳐서는 베이커 가의 우리 집 창문에서 길 건너편 집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 도였다. 처음 사흘동안 홈즈는 서류를 조사하면서 잘 참으며 지냈다. 그러나 나흘째 되는 날 아침식사가 끝난 뒤, 끈끈하고 무거운 다갈색 안개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맴돌고 있는 것을 보더니, 활동적인 성격인 홈즈로서는 이토록 지루한 날들이 견 딜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는 손톱을 물어뜯으면서 거실을 공연스레 왔다갔다 했 다. 이윽고 홈즈는 나에게 물었다. "와트슨, 신문에 뭔가 재미있는 기사라도 없나?" 홈즈가 말하는 것은 범죄 사건으로서의 재미를 뜻하는 것이다. "그다지 별난 사건은 없네." 내가 그렇게 대답하자 홈즈는 다시 거실안을 서성거렸다. "런던의 범죄자들은 멍텅구리야. 이 창 밖을 보게나. 사람 모습이 어렴풋이 떠오 르다가 다시 안개 속으로 사라져 버리지 않는가. 도둑이든 살인자이든 이런날이 라면 호랑이가 정글 속을 마음대로 다니듯이 온 런던을 쏘다닐 수가 있지. 덤벼 들 때까지는 모습이 보이지 않고, 덤벼들었을때도 피해자에게만 보이는 걸로 끝 날수가 있단 말일세." 홈즈가 말하다가 문득 귀를 기울였다. "아, 드디어 왔군. 이 따분한 생활에서 나를 구해줄 것 같은데." 하녀가 전보를 들고 왔던 것이다. 홈즈는 전보를 읽더니 큰소리로 웃어댔다. "야아, 이게 웬일이지. 마이크로프트 형이 온다는군. 형의 생활은 시골길을 기차 가 달리는 것 같이 규칙적이고, 절대로 탈선을 하지 않지. 팰맬 가의 하숙집과 화이트홀 가(런던의 관청이 모여 있는 지역)의 직장 사이를 왔다갔다 할 뿐이 야. 그런데 탈선을 하다니. 무슨 일일까?" "뭐라고 했는가?" 홈즈는 형에게서 온 전보를 건네주었다. - 캐드건 웨스트 사건 관계로 만나고 싶다. 곧 가겠다. 마이크로프트.. - "캐드건 웨스트? 이 이름은 들은 적이 있는데." "나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아. 하지만 마이크로프트 형이 이렇게 갑자기 찾아오 다니! 여보게, 와트슨, 자네는 우리 형이 정부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나?" "모르네. 자네가 이야기해 주지 않았으니까." "국가의 중요한 문제라서 남에게는 이야기를 안했지만, 자네라면 말해도 되겠지. 형이 정부에 근무하고 있다는 건 사실이지만, 때로는 형이 정부 그 자체라고 해 도 어떤 의미로서는 잘못이 아니지." "뭐라고!" "놀랄 줄 알았네. 형은 연봉 450파운드를 받는 하급 관리로, 아무런 야심도 없고 명예욕도 없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정부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아주 중요한 인물 이라네." "어떤 식으로?" "글쎄, 말하자면 그 지위 자체가 유래 없는 자리거든. 형은 그것을 자기 스스로 쌓아 올렸다네. 전에도 그런 자리는 없었지만, 앞으로도 아마 없을거네. 드물게 보는 예리한 두뇌의 소유자인데다, 그의 뛰어난 기억력은 당해 낼 사람이 없을 정도야. 나는 그 기억력을 범죄 수사에 쏟고 있지만, 형은 그걸 특수한 일ㅇ에 사용하고 있다네. 각 부처에서 결의된 사항이 형에게 보내져 온다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자기 분 야에 대해 전문가이지만, 형의 경우는 여러 가지 일을 광범위하게 아는 것을 전 문으로 하고 있지. 가령, 지금 어떤 장관이 캐나다나 인도, 또는 해군에 관한 정보를 알고 싶어한 다고 하세. 각 부처에서는 제각기 맡고 있는 분야에 대한 정보를 제출할 뿐이지 만, 이 모든 정보를 종합해서 서로가 어떻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를 당장에 말 할 수 있는 건 마이크로프트 형뿐이라네. 마이크로프트 형은 처음엔 편리한 도구 정도로 여겨졌는데, 지금은 매우 중요한 존재가 되었지. 형의 위대한 머리속에는 모든 일이 분류 정리되어 있어서 금방 꺼낼 수가 있는 것일세. 형의 한마디로 정부의 방침이 결정된 일이 몇번이나 있 었는지 모른다네. 형은 일에 파묻혀 있을 뿐, 다른 것은 일체 생각하지 않아. 내가 찾아가서 시시한 문제에 대하여 조언을 부탁할 경우에는, 머리 훈련을 한 답시고 심심풀이로 해주지만 말일세. 그런데 오늘, 신처럼 훌륭한 그 형이 하계로 내려오신다니 도대체 어찌된 셈일 까? 캐드건 웨스트는 어떤 사람이고 또 마이크로프트 형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 까?" 나는 소파위에 흩어져 있는 신문에 손을 뻗으며 외쳤다. "아 참! 생각났어. 여기에 실려 있네. 이걸 보게. 캐드건 웨스트는 화요일 아침, 지하철에서 시체가 되어 발견된 젊은 남자라네." 홈즈는 입으로 가져가려던 담배를 내던지며 자세를 바로했다. "그건 틀림없이 중요한 일일 걸세. 와트슨, 형의 판에 박힌 습관을 바꿔 놓은 사 건이라면 결코 예사로운 것이 아닐세. 내가 기억하고 있는 한, 그 사건에는 이 렇다 할 특색이 없었네. 그 젊은이는 기차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모양이야. 소지 품을 도둑맞은 흔적도 없고, 폭행당한 것 같지도 않아. 그렇지 않은가?" "검시 결과 새로운 사실이 많이 나타났더군. 좀더 자세히 조사해 보면 이상한 점 이 나타날 것 같은데." 홈즈는 팔걸이 의자에 자리잡았다. "와트슨, 자세히 가르쳐 주게." "그 사람 이름은 캐드건 웨스트. 나이는 27세. 아직 미혼이며 울리지 병기 공장 의 직원이라네." "공무원이군. 그렇다면 형과 관련이 있긴 한데." "웨스트는 월요일 밤, 갑자기 울리지를 떠났다네. 마지막으로 그를 본 것은 약혼 녀인 바이올렛 웨스트베리 양인데, 그날 밤 7시 반쯤 안개 속에서 갑자기 헤어 졌다고 하네. 두 사람은 다투지도 않았는데, 어째서 웨스트가 별안간 가버렸는 지 그녀도 잘 모른다고 한다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런던 지하철의 올드게이트 역 부근에서 메이슨이라는 선로 공원이 웨스트의 시체를 발견했다는군." "그게 언제였나?" "시체는 화요일 아침 6시에 발견되었네. 역 근처의 동쪽으로 향한 선로 왼쪽 지 점에서였는데, 철로에서는 상당히 떨어져 있었다고 하는군. 그 지점은 지하철 터널에서 나오는 곳이기도 하네. 머리는 무참하게 뭉개져 있었는데, 열차에서 떨어졌을 때 받은 상처 같다고 하며, 또 그러한 형태로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군. 시체를 부근의 마을에서 운반해 온 것이라면 역의 목책을 통과해야만 하는 데, 그곳에는 언제나 개찰원이 서 있었다고 하네. 그 점은 절대로 틀림이 없는 모양이야." "좋아, 그건 분명해. 그 사람이 살아 있었든 죽어 있었든 간에 기차에서 굴러떨 어졌던가, 아니면 누가 떼밀어서 떨어졌던가 둘 중의 하나일세. 거기까지는 나 도 알겠네. 그 다음을 계속해 보게." "시체가 발견된 선로를 지나는 열차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달리는 것인데, 그 사 람이 죽은 시각으로 봐선 그날 밤 늦게 그 열차에 타고 있었다는 건 확실해. 그 런데 어디서 탔는지 그걸 모르는 모양이야." "차표로 알 수 있지 않은가?" "호주머니에는 차표가 없었다네." "차표가 없다니! 그것 참 이상한데. 차표를 보이지 않고 플랫폼을 들어갈 수는 없을 텐데. 웨스트를 죽인자가 그가 승차한 역을 숨기기 위해서 빼낸 게 아닐까 ? 아니면 차 속에서 떨어뜨렸거나. 그렇게도 생각 할 수 있지. 그 점은 흥미가 있는데. 도둑맞은 흔적은 없다고 했지?" "없는 모양이야. 여기에 소지품 일람표가 있네. 지갑에는 2파운드 15실링이 들어 있었고, 런던 앤드 카운티 은행의 울리지 지점 수표장도 한권 갖고 있었네. 그 것으로 인해 신원을 알 수 있었다는 거야. 그리고 그날 밤 날짜의 극장 입장권 이 두 장이 있고, 또 기술 관계 서류가 한 뭉치 있었다는군." 홈즈는 만족스러운 듯이 소리를 높였다. "드디어 알아냈네. 와트슨!~ 영국 정부---기술 관계 서류--- 마이크로프트 형, 이로써 완전히 연결되네. 그건 그렇고, 이제 형이 온 것 같군." 잠시 뒤, 키가 큰 마이크로프트 홈즈가 방으로 들어왔다. 늠름한 골격에 어딘지 느릿한 느낌이었으나, 그 몸 위에 얹혀 있는 얼굴을 말하자면, 수려한 이마에 깊 숙히 꺼진 회색눈은 날카로웠고, 입술은 꼭 다물고 있어서 매우 똑똑해 보였다. 그 뒤에 들어온 사람은 낯익은 레스트레이드 경감이었다. 두 사람 다 긴장된 얼 굴이었으므로, 무언가 중대한 문제를 가지고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경감은 아무 말 없이 악수를 했다. 마이크로프트는 외투를 벗고 팔걸이 의자에 앉았다. "매우 까다로운 일이야, 셜록. 나는 습관을 바꾸는 건 도저히 참을 수 없지만,그 런 푸념을 할 수 없는 다급한 형편이야. 총리가 그토록 당황해 하는 것을 본적 이 없어. 해군성 쪽은 벌집을 쑤셔 놓은 것 같아. 사건에 관한 신문 기사를 읽 었나?" "지금 막 읽었어요. 그 기술 서류란 무엇인가요?" "바로 그 점이야. 다행히 아직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알려지면 신문은 미친 듯이 소란을 피우겠지. 그 가엾은 젊은이의 주머니 속에 있었던 서류는 브루스 파팅 턴식 잠수함의 설계도였어." 마이크로프트의 긴장된 말투로 보아서 문제가 몹시 중대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 다. 홈즈와 나는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 소문은 들었겠지?" "이름만은 알고 있어요." "이 잠수함에 관해서는 정부의 모든 기밀 중에서도 엄중히 지켜 왔었지. 2년전에 국가 예산에서 많은 돈을 비밀리에 지출해서 그 발명 특허권을 사들였는데, 그 비밀을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어. 그 설계는 매우 복잡해서 30여개의 독립된 특허로 이루어져 있고, 그 하나하나 가 전체 공정에 없어서는 안되는 것으로, 공장 옆의 기밀실에 있는 정교한 금고 에 보관되어 있었어. 그 방에는 도난 방지용 문과 창문이 설치되어 있지. 어떠 한 일이 있더라도 그 기밀실에서 설계도를 가지고 나올 수는 없어. 해군의 건조 책임자라도 그 설계도를 보아야 할 경우에는 울리지의 기밀실까지 가야 했거든. 그런데 그것이 런던 한복판에서 죽은 하급 관리의 주머니에 들어 있다고 하잖 아. 이건 더없이 곤란한 일이야." "하지만 되찾지 않았습니까?" "아니야. 셜록. 되찾지 못했어. 기밀실에서는 열장의 서류가 분실되었는데, 캐드 건 웨스트의 주머니에 있는 건 일곱장이야. 가장 중요한 세 장이 없어진 것이 지. 셜록, 모든 일을 제쳐 놓고 힘써 줘야겠어. 사소한 범죄 사건같은 것엔 신 경쓰지 말고, 지금부터 해결해야 할 일은 국제적인 중대사야. 캐드건 웨스트는 어째서 서류를 훔쳤는가? 또 그 없어진 서류는 어디에 있는가? 웨스트는 어떤 방법으로 죽었는가? 시체는 왜 그런 곳에 있었는가? 어떻게 하면 이 사태를 막을 수 있는가? ---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줘. 그렇게 하면 국가에 크게 이바지하게 돼." "어째서 형이 직접 나서지 않습니까? 형도 나만큼은 추리력이 있을 텐데요?"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셜록. 세밀하게 재료를 모으는 게 문제거든. 상세한 자료를 알려 준다면, 나는 팔걸이 의자에 앉아서 그 보답으로 멋진 의견을 들려 주겠어. 나는 여기저기 돌아다닌다던가, 철도 감시원에게 물어 본다든가, 확대 경을 들여다보는 일 같은 건 서투르니까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어. 국가로부터 표창을 받고 싶으면...." 홈즈는 싱글거리며 머리를 흔들었다. "형, 나는 승부를 위해 싸울 뿐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흥미로운 점이 있으니 까 기꺼이 조사해 보겠어요. 좀더 자세히 얘기해 주시죠." "자세한 것은 이 편지에 써 왔다. 도움이 될 만한 주소도 두서너 개 적혀 있어. 서류의 보관 책임자는 그 유명한 제임스 월터 경이야. 오랫동안 관청에 근무한 훌륭한 신사로서, 나라를 팔거나 할 사람은 아니지. 금고 열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두명인데, 그 사람이 그중 하나야. 더 자세히 설명하면, 월요일 근무 시간중에는 서류가 분명히 기밀실에 있었고, 제임스 경은 3시경에 런던으로 갔어. 그 사건이 일어난 밤에는 버클리 광장에 있는 싱클레어 제독의 저택에 있었어." "확실한 증거가 있습니까?" "있지. 제임스 경이 울리지를 떠난 것은 동생인 발렌타인 월터 대령이, 그리고 런던에 도착한 건 싱클레어 경이 증언했어. 그러니까 제임스 경은 사관과는 직 접적인 관계는 없는 거지." "또 한 사람, 열쇠를 갖고 있는 건 누굽니까?" "주임 사무관이며 제도사인 시드니 존슨이야. 40세의 기혼자로 아이가 다섯 있 지. 과묵하고 무뚝뚝한 사람이지만, 대체적으로 근무 성적은 좋은 모양이야. 동 료간에는 평판이 좋지 않으나, 아주 부지런하다는군. 그의 말로는 월요일 근무 시간 뒤에는 줄곧 집에 있었고, 시곗줄에 매달아 놓은 열쇠는 한번도 풀어 놓은 일이 없었다는 거야." "캐드건 웨스트에 대해서 말해 주시죠." "근무한 지 10년이 되며, 성실하게 일해 왔어. 성미가 급하고 흥분하기 쉬운 사 람이라고는 하나 정직하고 착실한 사람으로, 나쁜 평판을 들은 일은 없어. 직장 에서는 시드니 존슨 다음의 지위에 있으며, 직무상 매일 설계도와 접촉할 기회 도 있었지. 그밖에 설계도를 취급한 사람은 없었다는군." "그날 밤 설계도를 집어넣은 사람은 누구지요?" "주임 사무관인 존슨이야." "그렇다면 설계도를 훔쳐 낸 건 캐드건 웨스트가 확실하군요. 그의 시체에서 설 계도가 발견되었으니까, 그것으로 결정적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납득이 가지 않는 점이 많이 있어. 첫째로 무엇 때문에 가지고 나왔느냐 하는 거야." "가치가 있기 때문이겠죠." "그걸 팔면 수천 파운드는 쉽게 손에 들어올 거야." "그밖에 설계도를 런던으로 가져갈 만한 이유는 없을까요?" "생각할 여지가 없어." "그러면 팔 작정이었다고 가정하고 생각해 봐야겠군요. 웨스트는 돈 때문에 설계 도를 꺼내어 갔다. 그런데 그것은 여벌 열쇠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열쇠는 여러개가 필요하지. 건물이나 사무실 문도 열어야 하니까." "그렇다면 여러 개의 여벌 열쇠를 가지고 있었겠지요. 그리고 설계도를 팔려고 런던으로 갖고 갔습니다. 다만 다음날 아침에 분실된 것이 탄로나기 전에, 금고 속에 도로 갖다 놓으려고 했을 겁니다. 그런데 런던에서 매국적인 행동을 하는 동안에 살해된 거겠지요." "어떤 식으로 살해됐다는 건가?" "울리지로 가려고 할 때 살해되어서 열차 밖으로 내던져진 것으로 가정해 보시지 요." "시체가 발견된 올드게이트는 울리지로 가는 방향인 런던 브리지 역에서는 상당 히 지나친 지점이야." "런던 브리지를 통과해 버린 상황에 대해서는 여러가지로 상상해 볼 수 있습니 다. 가령 차 안에서 누군가가 있어 그 사람과 이야기에 열중하고 있었다고 합시 다. 이야기 끝에 싸움이 벌어져 목숨을 잃고 말았다던가, 아니면 차에서 내리려 고 하다가 철로에 굴러떨어져 죽었는지도 모르죠. 어느쪽이건 안개가 짙어서 아 무것도 보이지 않았을 겁니다." "지금까지의 정보로는 그 이상의 설명은 없겠지만, 아직도 거론되지 않은 점이 얼마나 있나 생각해 조자. 이를테면, 결론을 끌어내기 위해 이러한 가정을 세워 보는건 어떨까? 말하자면 캐드건 웨스트는 그 설계도를 런던으로 가져갈 계획을 전부터 세우고 있었다고 하자. 그래서 외국의 스파이와 만날 약속을 했다면, 그 날 밤에는 다른 약속을 하지 않았겠지. 그런데 그는 극장표를 두 장 사서 약혼 녀와 함께 가다가 갑자기 모습을 감춰 버린거야." 초조해 하며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레스트레이드 경감이 말했다. "사람들의 눈을 속이려고 그런 겁니다." "정말 이상한 일이야. 그게 첫째 의문이고, 두 번째 의문은 웨스트가 런던에 가 서 외국 스파이와 만났다는 가정은 그대로 두고 생각해 보세. 아침까지는 서류 를 가지고 돌아가야만 하지. 그렇지 않으면 없어진 사실이 들통날 테니까. 그가 훔쳐낸 것은 열장이었는데 그의 주머니에서 발견된 것은 일곱 장 뿐이었어. 나 머지 세 장은 어떻게 했을까? 아무런 대가도 없이 순순히 내주지는 않았을 거 야. 그렇다면 스파이 행위의 대가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의 주머니에는 많은 돈이 들어 있어야 했을 텐데, 그렇지 않았거든." "웨스트는 서류를 팔 생각으로 스파이와 만났습니다. 그런데 흥정이 잘되지 ?아 서 그냥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스파이가 뒤를 밟았습니다. 그래서 열차안에 서 그를 죽이고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서류를 빼앗은 다음, 시체를 밖으로 던져 버렸습니다. 모든 것이 잘 설명되지 않습니까?" 하고 레스트레이드가 말했다. "그럼, 어째서 차표를 가지고 있지 않았지요?" "차표가 있으면 스파이의 집에서 가장 가까운 역이 알려지겠죠. 그래서 웨스트의 주머니에서 꺼냈을 겁니다." "레스트레이드 씨, 썩 훌륭한 추리요. 당신의 이론은 그럴듯 합니다. 그러나 그 게 진실이라면 우리는 이미 때를 놓친 거요. 웨스트는 죽었고, 브루스 파팅턴식 잠수함 설계도는 벌써 대륙을 건너갔을 테니까.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없는 거지 요." 홈즈의 말에 마이크로프트는 펄쩍 뛰면서 말했다. "그 설명에는 전적으로 반대야. 힘을 좀 써줘. 너는 범행 현장으로 가야 해. 관 계자를 만나야 해. 이잡듯이 샅샅히 조사하는 거야.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데 이같은 기회는 다시 없을 거야." 홈즈는 어깨를 움츠리며 말했다. "잘 알겠습니다. 자, 가세. 와트슨. 레스트레이드 경감도 한두 시간 시간을 내 줄 수 있겠소? 먼저 올드게이트 역으로 가봅시다. 그럼, 형님.. 안녕히 가십시 오. 저녁까지는 보고할 수 있겠지만, 너무 기대하지는 마시도록 미리 말씀드려 두겠습니다." 2. 세 개의 열쇠.. 한 시간 뒤, 홈즈와 레스트레이드와 나는 올드게이트 역 바로 앞에서, 지하철이 터널 밖으로 나오는 지점에 서 있었다. 불그스름한 얼굴의 점잖은 노신사가 지하 철 회사를 대표해서 입회했다. 그 사라은 레일에서 1m쯤 떨어진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청년의 시체가 있었던 곳은 여기입니다. 위에서 떨어진 것은 아닙니다. 여기 는 보시다시피 벽으로 막혀 있습니다. 그러니까, 열차에서 떨어졌다고밖에 생각 할 수 없습니다만, 지금까지 조사한 바로는 그 열차가 월요일 한밤중에 통과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차량을 검사했을 때 뭔가 폭행의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까?" "그런 것은 없었고, 차표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문이 열려 있었던 흔적은 없었습니까?" "없었습니다." 레스트레이드가 말했다. "오늘 아침에 새로운 증거가 들어왔는데, 월요일 밤 11시 40분경에 보통 열차를 타고 올드게이트 역을 통과한 어떤 승객의 말로는, 열차가 역에 도착하기 바로 전에 선로에 무엇인가 떨어지는 것 같은, 철썩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안개가 짙 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때는 그냥 있었지만 오늘 아침에 신 고해 왔더군요. 홈즈 씨, 무슨 단서라도 될까요?" 홈즈는 숨이 막힐 듯 긴장된 표정을 짓고, 철로가 터널에서 구부러져 나오는 곳 을 꼼짝않고 바라보고 있었다. 올드게이트는 갈아타는 역으로서, 철로가 그물눈 처럼 되어 있었다. 홈즈는 그것을 진지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는데, 날카롭고 활기에 넘치는 얼굴에는 우리에게 낯익은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꼭 다문 입술, 떨리는 콧구멍, 여덟 팔자로 찌푸려진 굵은 눈썹. 홈즈가 중얼거렸다. "전철기야. 전철기란 말이야." (전철기는 철로의 분기점에 붙여 차량을 다른 철 로로 옮기는 장치) 지하철 회사 사람이 물었다. "그것이 어쨌다는 겁니까? 무슨 뜻입니까?" "이와 같은 선에는 전철기는 별로 없겠지요?" "예, 별로 없습니다." "게다가 커브도 있군. 전철기와 커브. 그렇다면 틀림없다!" "뭡니까, 홈즈 씨? 단서가 있습니까?" "어떤 생각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뭐 조그마한 일이지만요. 하지만 사건은 점점 재미있게 되어가는데요. 색다른 사건이야, 확실히 특수해. 그렇게밖에는 생각할 수 없소. 선로 위에 핏자국이 없는데요."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상처가 꽤 심하다는 이야기였는데요?" "뼈가 부러졌지만 외부의 상처는 대단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해도 다소 피는 흘렸을 텐데요. 안개속에서 뭔가 철썩 떨어지는 소리를 들은 손님이 있었다는데, 그 손님이 탔던 열차를 조사할 수는 없을까요?" "할 수 없습니다. 홈즈 씨. 열차는 이미 떼어져서 차량은 사방으로 흩어져 있으 니까요. " 레스트레이드 경감이 말했다. "홈즈 씨, 책임지고 말씀드리지만, 모든 차량은 자세히 조사했습니다. 내가 직접 했습니다." 칭찬할 일은 아니지만, 홈즈는 자기보다 머리가 둔한 사람에 대해서는 견디지 못 하는 성미였다. 홈즈는 얼굴을 돌리면서 말했다. "그러셨겠죠. 하지만 공교롭게도 내가 조사해보고 싶었던 건 차량이 아니라오. 와트슨, 여기서 할 일은 다 끝났네. 레스트레이드 경감, 이젠 이 이상 당신께 수고를 끼칠 필요가 없겠습니다. 지금부터 울리지로 수사하러 가야하니까요." 런던 브리지에서 홈즈는 형 앞으로 전보를 써서는, 보내기 전에 나에게 보여 주 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씌여 있었다. - 단서를 잡았습니다. 영국에 있는 외국 스파이의 명단을 보내 주십시오. 베이커 가에서 회답을 기다림.. 셜록.. - 울리지행 좌석에 앉았을 때 홈즈가 말했다. "형 덕분에 재미있는 사건에 부딪치게 되었군." 홈즈의 진지한 얼굴에는 그 긴장된 표정이 감돌고 있었다. 아무래도 뭔가 중요한 실마리를 찾아낸 모양이다. 고작 몇 시간 전에 안개에 싸인 방안을 안달하면서 왔다갔다 했던 그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마치 사냥개가 사냥감의 냄새를 맡은 것 같았다. "단서는 바로 눈앞에 있네.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니 얼간이었어." "아직 확실한건 아니지 않은가?" "끝부분은 모르지만, 줄곧 더듬어 갈 만한 감이 잡혔네그려. 그 남자는 어딘가 딴 곳에서 죽었고, 시체는 열차의 지붕위에 얹혀 있었던 거야." "지붕이라고!" "놀라운 일이야.그렇지만 사실을 생각해 보게. 열차는 전철기가 있는 곳에 와서 덜컹거리게 되지. 그 지점에서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야. 그것이 지붕위에서 굴러떨어졌다면 말이지. 다음으로, 피 문제를 생각해 보게. 어딘가 딴 장소에서 피를 흘린 뒤라면, 물론 철로에는 피가 떨어져 있지 않을 걸세. 모든게 하나하나 이 추리에 들어맞는걸." "게다가, 차표도 말이지." "바로 그렇다네. 차표가 없는 것을 설명할 수 없었지만, 이렇게 생각하면 설명이 돼. 모든 것이 꼭 들어맞아."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그가 어째서 죽었는가 하는 수수께끼는 좀처럼 풀리지 않 아. 간단해지는 커녕 점점 더 이상해지는데." "그럴지도 모르지." 홈즈는 신중하게 말하고 생각에 잠겼다. 그의 깊은 생각은 느릿느릿한 열차가 울 리지 역에 당도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역에 닿자, 홈즈는 마차를 불러 세우고 주 머니에서 마이크로프트가 써준 메모지를 꺼냈다. "오후에 잠깐 들를 곳이 있지만, 먼저 제임스 윌터 경을 찾아가 보세." 제임스 경이 살고 있는 곳은 푸른 잔디가 템스 강 기슭까지 이어지는 훌륭한 저 택이었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안개가 걷혀 가고 있었고, 엷고 축축한 햇살이 비추기 시작하고 있었다. 우리를 맞이하러 나온 것은 집사였다. 집사는 엄숙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제임스 경은 오늘 아침에 돌아가셨습니다." 홈즈는 깜짝 놀라 소리를 높였다. "아니, 뭐라고요! 어째서 돌아가셨습니까?" "들어오셔서 동생되시는 발렌타인 대령님을 만나 보십시오." "그렇게 하십시다." 우리는 조명을 어둡게 한 응접실로 안내되었는데, 잠시 뒤에 들어온 사람은 키가 크고 용모가 단정한, 50세쯤 되어보이는 남자였다. 제임스경의 동생인 발렌타인 대령이었다. 미쳐서 쓰러질 것 같은 눈, 젖은 볼, 흩어진 머리카락 등을 보아 형 의 죽음을 깊이 슬퍼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령은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 다. "그 무서운 사건 때문입니다. 형님은 각별히 명예를 소중히 여기시는 분이었으니 까요. 그와같은 사건을 견디지 못한 겁니다. 마음이 산산히 부서진 거지요."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될 만한 말씀을 형님에게서 들을 수 있을까 하고 찾아왔습 니다만." "내가 보장합니다만, 이번 사건은 형님에게도 전적으로 수수께끼 였습니다. 형님 은 이미 알고 있는 일은 모조리 경찰에 말했습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캐드건 웨스트의 소행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밖의 일은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당신은 어떻습니까? 뭔가 단서가 될 만한 일이 생각나지 않으십니까?" "나로서도, 신문에서 읽었거나 사람들에게서 들은 것밖에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홈즈 씨, 실례라고 생각합니다만, 알고 계시는 바와 같이 지금은 집안이 아주 어 수선하니 일을 빨리 끝내 주시기 바랍니다." 마차 있는 곳으로 돌아와서 홈즈가 말했다. "사건은 뜻밖의 방향으로 나가는군. 자연사인가, 아니면 자살을 한 것일까? 자살 이라면 직무 태만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라고 봐야겠지. 그 문제는 뒤로 미루기 로 하세. 자, 지금부터 캐드건 웨스트의 집으로 가보세." 울리지의 교외에 손질이 잘되어 있는 자그마한 집에는 캐드건 웨스트의 어머니가 살고 있었다. 나이 많은 어머니는 슬픔에 싸여 있었다. 아무것도 알아낼 수는 없 었지만, 그 곁에 얼굴이 하얀 아가씨가 있어 스스로 자기 이름을 밝혔다. 그녀는 웨스트의 약혼녀이며, 그날 밤 웨스트를 마지막으로 본 사람이기도 한 바이올릿 웨스트베리 양이었다. 바이올릿이 말했다. "홈즈 씨, 저는 아무래도 까닭을 알 수 없습니다. 캐드건은 다시없이 성실하고 용감하며, 애국심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자기가 맡고 있는 나라의 비밀을 남 에게 팔 정도라면, 오른팔을 잘라내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을 거에요. 그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도무지 상상할 수도 없고,또한 이치에도 맞지 않는 일입니다." "그러나 사실이 있습니다. 웨스트베리 양." "예, 하지만, 저도 그 점은 알 수 없습니다." "웨스트 씨는 돈을 탐내는 편이었나요?" "아닙니다. 뭐 그리 큰 욕심을 내는 분도 아니었고, 봉급은 충분했습니다. 또, 200-300파운드의 저금도 있어서, 내년 1월에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었습니다." "뭔가 마음이 흔드리고 있었던 일은 없었습니까? 웨스트베리 양 모조리 말씀해 주시지요." 홈즈의 날카로운 눈은 바이올릿의 태도가 다소 달라진 것을 보고 놓치지 않았다. 바이올릿은 얼굴을 붉히면서 망설이고 있었다. "예, 있었습니다. 그 사람에게 뭔가 걱정이 있는 것 같다고 느꼈었습니다." "그전부터였습니까?" "바로 지난 주부터였습니다. 뭔가 심각하게 생각에 잠겨 있었고, 걱정되는 일이 있는 것 같기도 했어요. 저는 무슨 일인지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습니다. 그러 자 직장 일에 관해서 염려되는 일이 있다고 하더군요. '당신에게조차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중대한 일이야.'라고 했어요. 저는 그 이상은 듣지 못했습니다." 홈즈는 엄숙한 얼굴을 했다. "그 다음을 이야기해 주시지요. 웨스트베리 양. 설사 웨스트 씨에게 불리한 일이 라고 생각되더라도 말해 주셔야 합니다. 그것이 반드시 불리하게 되지는 않을 테니까." "이 이상 말씀드릴 이야기는 없습니다. 한두 번 그 사람은 저에게 뭔가 말하려고 는 한 것 같았습니다. 어느 날 밤엔가 그 비밀이 중대하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 었습니다만, 외국 스파이라면 그것을 수중에 넣기 위해 막대한 돈을 낼 것이라 고 한 게 기억나요." 홈즈의 얼굴은 점점 더 엄숙해졌다. "뭔가 그밖에는 더 없습니까?" "그런 점에 관해서는 관청이 부주의하다고 말했어요. 나라를 팔 수 있는 인간이 쉽게 설계도를 가져갈 수 있다고도 했고요." "그런 말은 한 것은 바로 최근의 일이었습니까?" "예, 바로 최근의 일입니다." "그럼, 마지막 밤의 이야기를 들려 주시지요." "우리는 극장에 가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안개가 짙었기 때문에 마차를 타고 갈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그냥 걸어갔는데, 관청 바로 앞에 이르 자 그 사람은 갑자기 안개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었습니다." "아무 말도 없이 말입니까?" "무슨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것뿐입니다. 저는 그대로 기다렸습니다만, 그 사람 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냥 집으로 돌아왔어요. 그리고서 12시 경에 그 끔찍한 소식을 듣게 된 거예요. 아아, 홈즈 씨.제발 그 사람의 명예를 되찾아 주세요. 그 사람은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분이었습니다." 홈즈는 슬픈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 와트슨. 여기에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네. 다음 장소는 서류가 도난당한 관청이야." 마차가 덜컹거리며 달리기 시작하자 홈즈가 말했다. "그 청년은 벌써부터 수상하긴 했지만, 조사해보니 더욱더 수상해. 결혼을 바로 앞두고 있었다는것도 범죄의 동기가 돼. 돈을 탐내더라도 이상할 건 없지. 돈 이야기를 했다니까. 머릿속에 그 생각이 있었을 걸세. 그 아가씨에게 자기의 계 획을 이야기하고, 나라를 파는 일에 끌어들이려고 했던거야. 이거, 아무래도 수 월치 않겠는데." "하지만 홈즈. 웨스트는 성실하고 애국심이 강한 사람이었다고 하잖나. 게다가, 약혼녀를 거리 한복판에 내팽개쳐 두고 그런 짓을 저지르다니 어찌된 까닭일까 ?" "확실히 그 점은 의심스러워. 그러나 그 의문만으로는 웨스트가 무죄라고 할 수 는 없네." 관청에서는 주임 사무관인 시드니 존슨 씨가 정중하게 우리들을 맞이했다. 앙상 하게 마르고 성미가 까다롭게 생긴 안경을 낀 중년 남자로, 양손을 신경질적으로 떨고 있었다. "이건 너무 심합니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일입니다. 부장님이 돌아가신 것을 알고 계십니까?" "부장 댁에서 오는 길입니다." "관청은 엉망입니다. 부장님은 돌아가시고, 캐드건 웨스트는 죽고, 서류는 도난 당했습니다. 하지만 월요일 저녁에 문을 잠갔을 때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습니 다. 정말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칩니다. 웨스트가 그런 짓을 하다니!" "그러시다면, 틀림없이 웨스트의 소행이라고 생각하시는군요?" "그렇게밖에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의 일이라면 내 자신의 일처럼 믿고 싶지만요." "월요일에 관청은 몇 시에 닫았습니까?" "5시입니다." "당신이 잠갔습니까?" "내가 언제나 마지막으로 퇴근합니다." "설계도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저 금고 속입니다. 내가 직접 넣었습니다." "감시인은 없습니까?"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부서도 돌아보고 다닙니다. 군인 출신으로서 가장 신용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날 밤에 이상은 없었다고 합니다. 물론 짙은 안개가 끼어 있었습니다만." "캐드건 웨스트가 몇 시간 뒤에 사무실로 들어왔다고 가정하고, 설계도를 꺼내려 면 열쇠는 세 개가 필요하겠군요?" "그렇습니다. 세 개가 필요합니다. 이 사무실에 들어오는 열쇠와 기밀실의 열쇠, 그리고 금고의 열쇠.. 이렇게 말입니다." "제임스 월터 경과 당신만이 그 열쇠를 가지고 계셨군요?" "나는 문 열쇠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금고의 열쇠뿐이지요." "제임스 경은 성격이 깔끔한 분이셨습니까?"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세 개의 열쇠가 쇠고리에 달려 있었던 것을 몇번이나 보 았으니까요." "그 열쇠 꾸러미를 가지고 런던으로 돌아가신 거군요."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은 열쇠를 몸에서 떼어 놓은 일은 없었나요?" "한 번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웨스트가 범인이라고 하면 여벌 열쇠를 가지고 있었던 셈이군요. 그런 데 시체에서는 탂쇠가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 사 무실 직원이 설계도를 팔려고 생각했다면, 원도면을 훔쳐내는 일보다는 자기가 베끼는 편이 간단하지 않을까요?" "설계도를 정확하게 베끼려면 상당히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제임스 경이나 당신이나 웨스트는 그 전문적인 지식이 있지 않습니까?" "물론 있긴 합니다만, 제발 나를 의심하지는 마십시오. 원도면이 웨스트의 시체 에서 발견되었는데, 이런 식의 토론이 무슨 도움이 된단 말입니까?" "그건 그렇습니다만, 간단하게 베낄 수 있으며, 또 그것이 원도면과 똑같이 쓸모 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웨스트가 위험을 무릅쓰고 원도면을 가지고 나가다니, 정 말 이상한 일입니다." "정말로 이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가지고 나간걸 어떡합니까?" "이 사건은 조사하면 조사할수록 까닭 모를 일만 뛰어나오는군요. 그런데 아직도 잃어버린 채 돌아오지 않는 설계도가 세 장 있습니다. 그것은 확실히 중요한 것 이겠지요?" "그렇습니다." "그 세 장이 있으면, 나머지 일곱 장이 없어도 브루스 파팅턴식 잠수함이 건조된 다고 하던데요?" "해군성으로 그런 뜻이 담긴 보고를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설계도를 다시 보았 더니, 그렇다고만은 할수 없게 되었습니다. 자동 조절 구멍의 이중 밸브가 되돌 아온 서류 중 하나에 있더군요. 따라서 외국인은 그것을 스스로 고안하기 전에 는, 그 잠수함을 만들 수는 거의 없습니다. 물론, 언제가는 그 문제를 해결하겠 지만." "그러나 없어진 세 장의 설계도도 매우 중요한 것이겠군요?" "물론입니다." "당신의 허락을 맡고서 지금부터 관청 내부를 돌아볼 생각입니다만? 그밖에 물어 볼 만한 일은 없을 것 같으니까요." 홈즈는 금고의 자물쇠, 기밀실의 문, 창의 덧문 등등으로 모두 조사해 보았다. 그 뒤에, 앞뜰의 잔디밭에 나와서 몹시 관심을 쏟는 것이었다. 창 밖으로 월계수 숲이 있었는데, 여러 나무의 가지에 구부러졌거나 부러뜨린 흔적이 있었다. 홈즈 는 확대경을 꺼내어 그것을 자세히 조사하고, 그 나무 밑의 땅바닥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발자국도 조사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임 사무관에게 쇠덧문을 닫아 달라고 부탁하고서, 내게 얼굴을 돌리고 말했다. "쇠덧문이 창틀에 꼭 맞지 않으니까, 밖에 있는 사람은 방안에 있는 사람이 무엇 을 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네. 사흘이나 엿보았기 때문에 발자국이 엉망이라 잘 모르겠는걸. 중대한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고, 또한 아무것도 아닌지도 모르지. 그런데, 와트슨. 이 이상 울리지에 있어 보았자 시간 낭비야. 런던으로 돌아가 서 좀더 나은 조사를 해보세." 그러나 울리지를 떠나기 전에 우리는 또 하나의 사실을 알아내게 되었다. 역의 직원이 월요일 밤에 낮익은 캐리건 웨스트를 보았는데, 웨스트는 8시 15분발 런 던 브리지행 열차를 탔다는 얘기였다. 웨스트는 혼자였고, 3등 열차표를 한장 샀 다. 역직원은 그때 웨스트가 겁에 질린 얼굴에다 흥분해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부들부들 떨고 있어 거스름돈도 받지 못할 정도였다. 시간표를 조사해 보니, 웨스트가 약혼녀와 7시 반경에 헤어지고 차를 탔다면 그 8시 15분발의 열차가 처음으로 나가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와트슨, 원점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세. 이번 사건처럼 까다로운 것은 없었 던 것 같군. 한 가지를 해결했는가 싶으면, 그 뒤에 또 새로운 문제점이 나타나 곤 하니 말일세. 하지만 다소 진행되기는 했지. 울리지에서의 수사 결과는 대체적으로 캐드건 웨스트에게는 불리했지만, 창문 밑의 발자국만은 웨스트에게 유리해. 예를 들어, 외국의 스파이가 웨스트를 유 혹했다고 가정해 보세. 약혼자에게 어렴풋이 암시를 준 것으로 보아 알 수 있듯 이, 웨스트는 그것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망설이고 있었어. 그건 틀림없어. 다 음으로 웨스트는 약혼녀와 극장에 가는 도중, 안개 속에서 그 스파이가 관청쪽 으로 가는 것을 얼핏 보았다고 가정하세. 성급한 사람이었으니까 마음을 결정하 는 것도 빠를 테지. 역시 자기 임무가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거야. 그래서, 그 스파이의 뒤를 따라 창문으로 다가가, 서류를 훔쳐내는 것을 보고는 스파이를 추적했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사본을 만들 수 있었는데도 어째서 일부러 원도면을 훔 쳤는가 하는 의문을 풀 수 있지. 전문 지식이 없는 스파이라면 원도면을 훔쳐야 만 하니까. 여기까지는 제대로 줄거리가 성립되는 셈이지." "그리고 다음은 어떤가?" "그리고는 막혀 버리는 거야. 그런 상황에서 웨스트가 먼저 취해야 할 조치는 그 도둑을 붙잡고 사람을 부르는 일이라고 생각되네. 그런데 어째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혹시, 서류를 훔쳐 낸 것은 그 부장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웨스트의 행동은 납득이 가는데.... 아니면 부장이 안개속으로 사라져 버려서 부장이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먼저 앞 질러 가려고 곧장 런던으로 갔을까? 하여간에 어지간히 절박한 사정이 있었던 모양이야. 안개속에 약혼녀를 팽개쳐 두고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으니 말일 세. 이 시점에서 우리들의 실마리는 끊어져 버린 거야. 지금 세워 본 두 개의 가설과, 웨스트가 일곱 장의 서류를 주머니속에 넣은 채 열차 지붕위에서 시체가 되어 있었다는 것과의 사이를 연결짓는 것이 아주 곤란 하단 말일야. 그래서 이번에는 반대 방향에서 조사를 해볼 생각이네. 마이크로프트 형이 스파 이의 주소 일람표를 보내 주면,의심스러운 사람을 골라서 그쪽을 더듬어 보세." 3.. 은신처.. 런던의 베이커 가로 돌아와 보니 아니나다를까 편지 한 통이 와 있었다. 정부의 문서 배달원이 속달로 배달한 것이었다. 홈즈는 대충 읽고 나서 내게 던져 주었 다. - 송사리는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이와 같은 큰일을 취급하는 거물급은 적다. 의심해 볼 만한 사람은 다음의 세 사람뿐이다. 웨스트민스터 지구 그레이트 조지 가 13번지의 아돌프 마이어. 노팅 힐의 캠딘 아파트의 루이 라 로티르. 켄싱턴 지구 콜필드 가든 13번지의 휴고 오버스타인. 이 오버스타인은 월요일 에 시내에 있었던 것은 알고 있지만, 지금은 없다는 보고다. 단서를 발견했다 는 말을 들으니 기쁘다. 정부는 사건이 해결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가장 신분이 높은 분으로부터 절박한 의뢰를 받았다. 필요하다면 국가는 전력을 다 해 지원하겠다. 마이크로프트..- 홈즈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사건에는 여왕의 말이나 병사를 모조리 내준다고 해도 쓸모가 없을거야." 그리고 런던의 지도를 펼치고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더니, 이윽고 만족스런 목소 리로 말했다. "됐다. 이젠 좀 밝아진 것 같아. 와트슨, 결국에는 멋지게 해결되리라고 나는 믿 네." 홈즈는 갑자기 쾌활해지면서 내 어깨를 툭 쳤다. "나는 잠깐 나갔다 오겠네. 그냥 살펴볼 뿐이야. 자네같이 믿을 만한 단짝이 옆 에 없다면야 중대한 일은 하나도 못하겠지만, 그래도 자네는 여기에 있어 주게. 한두 시간이면 돌아오게 될 걸세. 견딜 수 없이 지루하면 종이와 펜을 내놓고, '우리는 어떻게 해서 국가의 위기를 구했는가?' 라는 이야기에 대해서 쓰기 시 작하게나." 홈즈가 득의에 찬 모습을 보이자, 나 역시 유쾌해졌다. 홈즈는 웬만큼 기쁘지 않 는 한, 언제나 무뚝뚝한 태도가 달라지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 기나긴 11월 밤을, 나는 홈즈가 돌아오기를 마음졸이며 이제나저제나 하고 기다 렸다. 9시가 조금 지나서야 간단히 사람을 통해 짤막한 편지를 보내왔다. - 켄싱턴 지구 글로스터 로의 골디니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있네. 곧 와주 게. 조립식 지렛대, 칸델라, 끌, 권총을 가지고 올 것. 홈즈 - 선량한 시민이 더구나 안개에 싸인 컴컴한 거리를 그와 같은 물건을 들고 다닌다 는 것은 사실 난처한 일이었다. 나는 그것들을 조심스럽게 외투 속에 감추고서 그 장소로 마차를 달렸다. 굉장히 화려한 이탈리아풍의 레스토랑 입구에서 가까 운 작은 테이블에 홈즈가 자리잡고 있었다. "식사는 했나? 그럼, 커피라도 함께 하지. 이 식당의 자랑인 여송연을 피워 보 게. 생각보다는 나쁘지 않아. 연장은 가지고 왔나?" "여기에 있네. 외투속에." "멋지군. 지금부터 우리가 할 일과 함께, 지금까지 내가 한 일을 간단히 설명하 겠네. 와트슨, 자네도 분명히 알고 있겠지만, 그 웨스트 청년의 시체는 열차의 지붕 위에 놓여 있었네. 그 청년이 굴러 떨어진 것은 지붕에서였지. 차안이 아 니라는 것은 확실해." "신호대에서 떨어진 건 아닐까?" "그런 일은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되네. 열차의 지붕은 약간 둥그스름하고 둘레 에는 난간이 없어. 그러니까, 웨스트는 그곳에 얹혀졌던 모양이야." "어째서 거거에 얹혀 졌을까?" "그게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네.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야. 자네도 알고 있겠지만, 지하철은 웨스트 엔드의 어딘가에서 터널로부터 나온다네.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내가 지할철을 탔을 때 바로 머리위에 집들의 창문이 있는 것을 본 적이 있거든. 열차가 그와 같은 창문 밑에서 멈췄다고 가정한다면 지붕에 시체 를 얹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야." "가당치 않은 이야기야." "달리 가능성이 없는 경우에는, 아무리 있을 것 같지 않은 일이라도 남은 것이 진실이 된다네. 사실, 그외에는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네. 게다가 런던을 얼마 전에 떠나 버렸다는 국제 스파이의 거물급이, 지하철 선로 변에 있는 집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나는 비로서 가능성이 있다 고 생각한 걸세." "아아, 그랬었군." "그렇다네. 콜필드 가든 13번지의 휴고 오버스타인이 내 목표가 된 거야. 나는 글로스터 로의 역에서 행동을 시작했어. 아주 도움이 되는 역원이 함께 선로를 걸어 준 덕택ㅇ 확실한 사실을 파악할 수가 있었다네. 콜필드 가든의 저택들 뒷 계단의 창문은 선로로 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선로가 이 부근에서 교차 되고 있기 때문에 지하철 열차는 때때로 그곳에서 몇분 동안 정차하는 일이 있 다는 거야." "굉장한데, 홈즈. 드디어 찾아냈군." "지금까지론 봐서는 전진 상태이긴 하지만, 결승점은 아직 멀었어. 그건 그렇고 콜필드 가든의 뒤쪽을 모조리 보고 나서 정면으로 돌아가니, 사냥감이 이미 달 아나 버린것을 알았지. 상당히 큰 집이었는데 2층의 방에는 내가 판단하기로는 가구가 없었네. 오버스타인은 하인 한 사람을 두고 그 집에서 살고 있었는데, 그 하인도 스파이였던 모양이야. 그러나 오버스타인이 대륙으로 건너간 것은 입수한 물건을 처분하기 위해서였 지. 달아날 생각은 아니었어. 체포당할 염려도 없으며 가택 수색을 받으리라고 는 꿈에도 생각지 않을 테니까. 그런데 지금부터 우리가 할 일이란, 바로 가택 수색이라네." "정식으로 체포장을 발부받을 수는 없는가?" "증거가 거의 없기 때문이야." "가택 수색을 하면 어떤 일을 알 수 있겠는가?" "단서가 될 만한 편지가 발견될지도 모르지." "홈즈, 나는 그런 짓은 싫네." "여보게, 와트슨. 자네는 거리에서 감시만 하면 돼. 범죄적인 짓은 내가 할 테니 까. 사소한 일에 구애받을 때가 아니야. 마이크로프트 형도, 해군성도, 내각도, 여왕 폐하까지도 정보를 기다리고 계시네." 나는 테이블에서 일어섰다. "자네 말이 옳아. 홈즈. 무슨 일이 있어도 가야만 하겠군." 홈즈는 펄쩍 뛰듯이 손을 내밀었다. "오오, 와트슨. 자네가 최후의 순간에 망설일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 었 네." 홈즈의 눈빛엔 여지껏 보지 못했던 다정함이 어려있었는데, 다음 순간에는ㄴ 다 시금 여느때와 다름없는 태도로 돌아갔다. "여기서 1km 가량 되지만, 서둘 건 없으니 걸어가세. 연장은 떨어뜨리지 말게나. 수상쩍은 녀석이라고 붙들리게 되면 귀찮아지니까." 우리는 콜필드 가든에 닿아 목표로 한 집 앞에 당도했다. 주위에는 안직도 안개 가 자욱해서 우리의 모습을 감춰 주었다. 홈즈는 칸델라에 불을 붙이고 육중한 현관을 비춰 보았다. "이건 만만찮은데. 열쇠를 채운데다가 빗장까지 끼워 놓았군. 지하의 뒷문으로 들어가는 편이 낫겠어." 이윽고 두 사람은 지하의 뒷문으로 내려갔다. 어두운 곳에 몸을 숨기자, 위쪽 안 개 속에서 순찰 경관의 발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사라지자 홈즈는 뒷문을 부 수는 작업을 시작했다. 몸을 구부리고 뭔가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이 보였는데, 이 윽고 끼익 하고 소리가 나며 문이 열렸다. 우리는 뒷문을 닫고 어두운 복도로 들어갔다. 홈즈는 양탄자가 깔려 있지 않은 계단을 앞장서서 올라갔다. 칸델라의 부채 모양을 한 노란 빛이 낮은 창문을 비 추었다. "겨우 찾았어. 와트슨. 이것인 모양이야." 홈즈가 창문을 열자 칙칙폭폭 하는 소리가 들리고 그것이 점점 커지면서 울려 퍼 지는 듯한 소리가 되어 어둠속을 열차가 지나갔다. 홈즈는 창틀을 비춰 보았다. 거기에는 기관차의 검댕이 쌓여 있었는데 그 검은 표면이 군데군데 벗겨져 있었 다. "여기에 시체를 두었을 걸세. 어, 이게 뭐지? 틀림없는 핏자국인데." 홈즈는 창틀에 묻어 있는 얼룩을 가리켰다. "계단의 돌에도 묻어 있어. 이제 증거는 갖춰졌네. 열차가 멈출 때까지 여기서 기다려 보세." 오래 기다릴 것도 없었다. 다음 열차가 앞서간 열차처럼 땅을 울리며 터널에서 나왔다. 그리고 터널을 나오자 속력을 줄이고 삐걱 소리를 내며 창문 바로 밑에 서 멈췄다. 창문에서 차의 지붕까지는 1m 50cm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홈즈는 조용히 창문을 닫았다. "여기까지는 틀리지 않았어.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나, 와트슨?" "걸작이야. 이토록 훌륭한 성적을 올린 적은 없었네." "그렇지도 않아. 시체가 지붕위에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내는 일은 그다지 어려 운건 아니지만, 그렇게 생각한 순간부터 다른 일은 모두 당연히 알게 된것이지. 국가의 중대사가 아니라면 이 사건은, 지금의 시점에선 사실 시시한 일에 불과 해. 그러나 앞으로도 곤란한 일은 있을 걸세. 하지만, 이 집에서 단서가 될 만 한 것이 발견될 게야." 우리는 부엌의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갔다. 방 하나는 식당인데, 별로 흥미를 끌 만한 것은 없었다. 또 하나는 침실인데 이것 역시 별다른 것은 없었다. 나머지 방에 다소 뭔가 있을 것 같아서 홈즈는 세밀한 수사에 착수했다. 책이나 서류등이 흩어져 있는 것을 보니 서재로 쓰고 있는 모양이었다. 홈즈는 재빨리 차례차례 서랍이나 찬장을 열고서 그 안에 들어 있는 물건을 뒤엎어 놓고 뒤져 보았으나, 그의 침울한 표정은 좀처럼 밝아지지 않았다. 한 시간이 지났으나 단 서가 될 만한 물건은 발견되지 않았다. "교활한 녀석 같으니라고! 흔적을 모조리 감춰 버렸군. 죄상을 나타낼 만한 것은 하나도 남기지 않았어.위험한 편지는 찢어 버렸거나 가지고 간거야. 이제, 이것 이 마지막 희망일세." 그것은 책상에 놓여 있는 양철로 만든 작은 금고였다. 홈즈는 그것을 끌로 비틀 어 열었다. 안에서 나온 것은 돌돌 말아 둔 몇 개의 종이였다. 숫자나 계산이 가 득 쓰여 있었으나 아무런 설명도 없었다. '수압'이라든가 '2.5㎠ 에 압력'이란 단어가 몇 번이나 나와 있는 것을 보니 잠수함과 관계가 있는 것 같았다. 홈즈는 몹시 안달하며 그것을 던져 버렸다. 이제 남은것은 봉투 하나뿐이었고, 그 안에는 신문에서 오려 낸 것이 들어 있었다. 그것을 보더니 홈즈의 얼굴이 밝아졌다. "이건 뭘까, 와트슨? 신문 광고를 이용한 연속 통신이야. 인쇄와 종이로 보아 데 일리 텔리그래프지의 개인 광고란일세. 신문위의 오른쪽 끝에 있는 거야. 날짜 는 없지만 통신문의 순서는 알 수 있지. 아마 이것이 맨 처음일꺼야. '통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건을 승낙함. 카드의 수신인에게 상세하게 알려주 기 바람 --- 피에로' 다음은 이렇네. '복잡해서 이해하기 힘들다. 자세한 설명을 바람. 현품과 교환 조건으로 사례금 을 준비하겠다. --- 피에로.' 그 다음은, '사정이 긴박해졌다. 계약을 수행하지 않으면 취소할 수밖에 없다. 만난 날짜를 편지로 통지 할 것. 이쪽에서는 광고로 알리겠다. --- 피에로.' 마지막은.. '월요일 밤 9시 이후. 두 번 두드릴 것. 우리 둘뿐이다. 의심할 필요없음. 현품 과 교환으로 현금 지불함. --- 피에로.' 모조리 갖춰져 있네. 와트슨. 광고의 상대를 잡을수만 있다면 말이야." 홈즈는 테이블을 손끝으로 두드리면서 생각에 잠겨 있었으나, 이윽고 펄쩍 일어 섰다. "뭐, 결국 그다지 어려운 건 없겠지. 이 집은 이 정도로 충분해. 데일리 텔리그 래프 신문사로 마차를 몰아 오늘 일의 결말을 내기로 하지." 4. 검은 그림자.. 다음날 아침, 식사가 끝나자 약속한 대로 마이크로프트 홈즈와 레스트레이드 경 감이 찾아오자, 셜록 홈즈는 우리가 어제 한 행동을 설명해 주었다.우리가 강도 와 같은 행위를 했다고 하자, 경감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우리 경찰관은 그런 짓을 못합니다. 홈즈 씨, 당신이 우리가 할 수 없는 성과를 올리는 것도 당연하군요. 하지만 너무 지나치면, 두 분은 머지 않아 곤경에 빠 지게 될겁니다." "그건 다 아름다운 조국 영국을 위해서지요. 여보게, 와트슨. 그렇지 않은가? 그 건 그렇고, 형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훌륭한 일이야. 셜록. 감탄했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이용할테냐?" 홈즈는 테이블 위에 있는 데일리 텔리그래프지를 집어 들었다. "오늘 나온 피에로의 광고를 보셨습니까?" "뭐라고, 또 나왔는가?" "아, 이겁니다. '오늘밤, 장소와 시간 같음. 두 번 두드릴것. 매우 중요함. 당신 의 신상이 위험하다. --- 피에로.'" 레스트레이드가 외쳤다. "굉장한데! 상대가 이에 응하고 나와 준다면 독 안에 든 쥐야." "그러한 생각으로 내가 광고를 낸 겁니다. 두 분께서 오늘밤 8시경에 콜필드 가 든에 오시면 사건의 해결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이건 홈즈의 버릇이지만, 몰두하고 있었던 사건에 해결의 전망이 보이면, 얼른 생활을 바꿔 버리고 자기의 취미 활동으로 들어가 버린다. 이날도 홈즈는 고대 교회 음악에 관한 논문을 부리런히 마무리짓고 있는 중이었다. 나로 말하자면, 그와 같은 마음의 여유는 조금도 갖지 못했으므로 그날은 유달리 길다고 생각되었다. 사건이 국가적으로 중대한 것임을 생각하니 가만히 앉아 있 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가벼운 식사를 마치고 드디어 모험에 나섰을 샔에야 간 신히 마음이 안정되는 것이었다. 약속대로 레스트레이드 경감과 마이크로프트가 글로스터 로의 역에서 우리를 맞 이했다. 오버스타인 저택 지하의 뒷문은 어제 우리가 열어놓았지만, 마이크로프 트가 난간을 넘어가는 일은 싫다고 거절했기 때문에 내가 안으로 들어가서 현관 문을 열어 주어야만 했다..9 시에는 모두 서재에 앉아서 상대가 나타나기만을 기 다리고 있었다. 한 시간이 지나고, 또 한 시간이 지났다. 11시가 되자, 교회의 큰 시계가 정확하 게 시간을 알려 주었는데, 그 소리는 우리를 비웃는 것 같았다. 레스트레이드 경 감과 마이크로프트는 의자에서 불안한 듯이, 1분안에 두 번이나 회중시계를 꺼내 어 보았다. 홈즈는 입을 다물고 유연하게 앉아 있었다. 눈은 반쯤 감고 있었으 나, 신경은 면도날처럼 예민하져 있는 것이었다. 갑자기 홈즈가 머리를 들었다.. "온다!" 현관을 살금살금 지나가는 발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되돌아왔다. 밖에서 발을 질 질 끄는 소리가 들리고, 다음에는 당목(옛날의 초인종 같은것)이 두 번 날카롭게 울렸다. 홈즈는 우리에게 그대로 앉아 있으라고 손짓을 하며 일어섰다. 불빛이란 현관에 가스등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 홈즈는 현관문을 열고 검은 그림자가 미끄 러지듯 들어오자, 문을 닫고 열쇠를 채웠다. "이쪽으로!" 홈즈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우리가 기다리던 남자가 눈앞에 서 있었다. 홈즈는 바로 그의 뒤에 있었다. 남자가 놀라 외치며 달아나려고 하자, 홈즈가 목 덜미를 잡아 방안으로 끌고 왔다. 그리고 상대가 아직 휘청거리고 있을 때, 문을 닫고 등을 거기에 기대고 가로막았다. 그 남자는 일어서서 주위를 둘러보고, 다시금 비틀거리더니 기절해서 바닥에 쓰 러져 버렸다. 쓰러지는 순간, 머리에서 챙이 넓은 모자가 벗겨지고 입가에서 목도리가 미끄러 져 내리면서 발렌타인 윌터 대령의 턱수염과 기품있고 단정한 얼굴이 나타났다. 홈즈는 놀라 혀를 찼다. "와트슨, 이번에는 내 얘기를 멍청이라고 써도 좋아. 이같은 범인을 잡으리라고 는 상상도 못했네." 마이크로프트는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도대체 누군가?" "잠수함 건조 부장이었던 고 제임스 윌터 경의 동생입니다. 그렇군, 속셈을 알만 한데. 아, 깨어났군. 조사는 내게 맡겨 주는 편이 좋겠어요." 우리는 대령의 축 늘어진 몸을 소파 위에 올려놓았다. 대령은 일어나 앉더니, 공 포에 질린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고서 이마에 손을 대며, 흡사 자기의 감각이 믿 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나는 오버스타인 씨를 찾아왔는데요." 홈즈가 말했다. "이미 모든것을 알고 있소. 윌터 대령. 영국 신사라는 사람이 그런 짓을 하다니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이오. 오버스타인과 당신의 관계는 모두 밝혀졌소. 캐드 건 웨스트 청년의 죽음에 대한 상황도 마찬가지요. 남자답게 죄를 자백하고 조 금이라도 속죄를 하시도록 충고하겠소. 상세한 일에 관해 당신에게 직접 들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오." 대령은 신음소리를 내고 양손으로 머리를 가렸다. 우리는 기다렸지만 대령은 말 이 없었다. 홈즈가 말했다. "분명히 말하지만, 기본적인 것은 모조리 알고 있소. 당신이 돈에 쪼들린 일도, 당신 형님이 보관하고 있던 열쇠의 본을 뜬 것도, 오버스타인과 연락을 취하기 시작하고, 오버스타인은 데일리 텔리그래프지의 광고란으로 연락했던 사실도 알 고 있어요. 월요일 밤, 당신은 관청에 갔었는데, 캐드건 웨스트 청년이 당신의 모습을 보고 뒤를 밟았소. 웨스트는 전부터 당신을 의심하고 있었던 거지. 웨스트는 당신이 서류를 훔쳐내는 것을 보았지만, 그것을 런던의 형님에게 가지고 갈 경우도 있 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던 거요. 웨스트는 선량한 시민이었기 때문에 약혼녀를 팽개쳐 두고 안개 속에서 당신의 뒤를 밟았는데, 당신은 이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웨스트는 여기까지 따라와 당 신의 일을 방해했기 때문에, 당신은 국가 기밀을 판데다가 무서운 살인죄까지 저질렀습니다." 대령이 외쳤다. "내가 아니오! 내가 아니야! 하나님께 맹세코 아닙니다." "그렇다면 캐드건 웨스트가 열차의 지붕위에 얹혀지기 전에 어째서 죽었는가 말 해 주시오.." "얘기하겠소. 자백합니다. 그 밖의 짓은 내가 했습니다. 당신의 말대로입니다. 주식 거래소의 빛을 갚아야만 했어요. 나는 돈에 쪼들려 고민했습니다. 오버스 타인은 5천 파운드를 내겠다고 했습니다. 나는 파산을 피하기 위해서 그 말에 따랐지요. 그러나 살인에 관해서는 결백합니다." "그럼, 어떻게 된 겁니까?" "웨스트는 전부는 나를 의심하고 있었고, 당신이 말했듯이 내 뒤를 미행했습니 다. 내가 미행당한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현관에 당도했을 때였습니다. 안개가 짙어서 3m 앞도 보이지 않았거든요. 문을 두 번 두드리자 오버스타인이 나타났 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 웨스트가 뛰어나와, 서류를 어떻게 할 작정이냐 고 따지더군요. 오버스타인은 짧지만 속에 칼을 장치한 지팡이를 가지고 있었는 데, 그것을 손에서 떼어 놓는 일이 없었습니다. 웨스트가 우리 뒤에서 집안으로 들어오려고 했을 때, 오버스타인은 웨스트의 머리를 향해 내리쳤습니다. 그 바 람에 웨스트는 5분도 못 가서 죽어 버린 겁니다. 그가 죽어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우리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망설이고 있었습니 다. 그때 오버스타인은 뒤쪽 창문 밑에 열차가 머무는 것이 생각났던 모양이지 만, 먼저 내가 가지고 간 서류를 조사해 보더군요. 그리고는 세 장은 중요한 것 이니까 자기가 갖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말했습니다. '줄 수는 없소. 그것을 제자리로 돌려놓지 않는다면 울리지에서는 대소동이 벌 어질 거요.' 오버스타인은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아니,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갖겠소. 아주 전문적인 것이니까, 한정된 시간내 에 베끼는 것은 불가능하오.' '하지만 오늘밤에 전부 돌려 놓지않으면 곤란해요.' 오버스타인은 한참 생각에 잠기더니, 이윽고 알겠다고 하더군요. '이 세 장은 내가 갖겠소. 남은 일곱장은 이 사람의 주머니 속에 넣어 두기로 합시다. 그렇게 하면 시체가 발견되었을 때 다들 모든것이 이 사람의 소행이라 고 생각할거요.' 그밖에는 방법이 없었으므로 나는 그가 하자는 대로 했습니다. 우리는 창가에서 30분이나 열차가 멈추기를 기다렸습니다. 안개가 짙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 지 않았고, 웨스트의 시체를 열차 지붕위에 얹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습니 다. 나에 관한 한 이것으로 끝입니다." "그럼, 당신 형님은?" "형은 아무런 말도 없었지만, 내가 열쇠를 가지고 있는 것을 한 번 발각당한 일 이 있으니까 의심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형의 눈빛을 보고 그것을 알 수 있 었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그 뒤로 형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못했으니까요." 방안은 침묵으로 가득했다. 그 고요함을 깨뜨린 것은 마이크로프트였다. "속죄를 할 수 없을까요? 그렇게 되면 양심의 가책도 다소 적어질 거고, 처벌도 가벼워질 텐데." "내가 어떻게 속죄를 할 수 있을까요?" "오버스타인은 설계도를 가지고 어디로 갔지요?" "모릅니다." "행선지를 말하지 않았습니까?" "파리의 루브르 호텔 앞으로 편지를 내면 닿는다고 하더군요." 셜록 홈즈가 말했다. "그렇다면 죄의 보상을 할 수 있는 셈이오."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 나는 그 녀석에게 그다지 좋은 감 정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요. 그 녀석 때문에 나는 이꼴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종이와 펜이 있소. 내가 지시하는 대로 써주시오. 봉투의 수신처는 그가 말한대로 쓰시오. 그것으로 족해요. 편지의 문구는 이렇게 쓰시오. - 앞서의 거래에 관해서 지금쯤은 아마 알아차렸으리라고 생각합니다만, 중요한 것이 한 가지 빠져 있습니다. 여기에 복사판이 한 장 있습니다만, 그것이 있 으면 당신의 서류는 완전한 것이 됩니다. 하지만, 이것을 수중에 넣기 위해서 고생을 했으니까, 500파운드는 받아야겠소. 우편 송금은 믿을 수 없으니, 금화나 지폐로 받고 싶소. 그쪽으로 찾아가도 되지만, 지금 본국을 떠나면 주목을 끌게 됩니다. 그러니까, 토요일 정오에 채링크로스 호텔의 다방에서 만나고 싶습니다. - 그것만으로 됐소. 이걸로 상대가 오지 않는다면 말도 안되지." 아니나다를까 오버스타인은 나타났다~! 오버스타인은 손에 넣은 설계도를 완전한 것으로 만들려다 꾐에 걸려, 영국의 감옥에 15년간 투옥되었다. 오버스타인의 큰 가방 속에서는 귀중한 브루스 파팅턴 설계도도 발견되었다. 오버스타인은 이것을 온 유럽의 해군에 경매로 내놓으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윌터 대령은 형기 2년째 끝무렵에 병으로 죽었다. 사건이 해결되고 몇 주일이 지나자, 홈즈는 여왕이 살고 있는 윈저 궁으로 불려 갔다. 그가 돌아왔을 때에는 눈부신 에메랄드의 넥타이핀을 꽃고 있었다. "샀나?" 내가 물었더니 홈즈는 빙긋 웃었다. "어느 자비로운 귀부인께서 주신 거야. 그분을 위해 조그마한 일을 해드렸더니 말이야." 홈즈는 그 이상은 아무말도 없었지만, 나는 그 귀부인이 누군가는 금방 알아차렸 다. 그 에메랄드의 넥타이핀은 브루스 파팅턴 설계도 사건을 언제까지나 홈즈에 게 생각나게 할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