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터리아 별장의 모험 위스터리아의 수수께끼 내 수첩을 보면 이 사건은 1892년의 2월 말이 가까운, 바람이 드세게 부는 날이 였다고 쓰여 있다. 점심을 먹고 있는데 전보가 배달되고, 홈즈가 무엇인가 답장을 썼다. 거기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이 없었으나, 무척 신경에 거슬리는 모양인지 식사가 끝나자 생각에 잠긴 얼굴로 벽난로 앞에 서서는, 파이프의 연기를 피워 올리면서 가끔 전보 쪽으로 눈길을 보내곤 했다. 내가 물었다. "그 전보에 뭐라고 쓰여 있나?" 홈즈는 큰 소리로 전보를 읽었다. - 믿을 수 없을 만큼 이상한 일을 당함. 조사 의뢰차 찾아갈 것임. 스콧 에클스 - "전보를 친 건 남자일까, 여자일까?" "남자가 틀림없지. 여자라면 돈들여 전보치지 않고 곧장 찾아온다고." "만날 생각인가?" "와트슨, 캐러더스 대령 사건이 정리되고 나서 내가 얼마나 심심해 하고 있는지 모르나? 내 마음은 헛도는 기계처럼 곧 고장날것만 같다네. 일을 하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그 일에 굶주리고 있으니 말일세. 이런 생활은 평범하며, 신문도 읽을 만한 것이 없네. 범죄의 세계에서 범죄다운 범죄는 자취를 감추어 버린 것이 아닌지 모르겠어. 그런데도 자네는 사건을 맡을 거냐고 물어 보는겐가? 비록 그것이 대수롭지 않은 거라고 해도 말일세. 하여간, 이게 그 사건 의뢰자가 도착한 모양인걸." 계단에 발소리가 들리고, 곧 방으로 안내된 사람은 다부진 체격에 키가 크고, 새치가 섞인 구레나룻을 기른 위엄을 갖춘 신사였다. 근엄한 표정에 점잖은 태도를 하고 있으나, 무엇인가 놀라운 일을 당한 모양인지 침착성을 잃고 있었으며, 머리칼이 흐트러지고, 얼굴에는 흥분의 빛이 짙었다. 신사는 화를 억누르는 듯한 태도로 곧 용건을 꺼냈다. "나는 설명하기 어려운 이상하고 불쾌한 일을 당했습니다. 홈즈 씨, 지금까지 이런 일은 처음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의문을 풀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요." 홈즈가 달래듯 말했다. "우선 앉으십시오. 스콧 에클스 씨. 먼저 물어보겠습니다만, 특히 어떤 이유로 나를 찾아오셨는지요?" "뭐 경찰에게 수고를 끼칠 만한 일도 아닌 것 같지만, 사실을 말씀드리자면 그대로 지나칠 수도 없다는 걸 아시게 될 겁니다. 사립탐정과 나와는 아무 인연이 없는 부류의 사람들로만 생각했는데 이런 일을 겪고 보니...." "그런데 왜 곧장 오시지 않았습니까?" "그건 무슨 뜻이지요?" 홈즈는 흘끗 회중시계를 꺼내어 보며 말했다. "2시 15분이 지났습니다. 전보를 친 건 1시경이지요? 그런데 당신의 머리나 복장이 흐트러져 있는 것으로 보아, 눈을 떴을 때부터 걱정스러운 일이 있었던 걸 알 수 있습니다." 에클스 씨는 빗질을 하지 않은 머리를 매만지고, 면도를 하지 않은 턱을 어루만졌다. "맞습니다. 홈즈 씨. 몸단장 같은 건 생각지도 못했지요. 그런 집에서는 한시바삐 나오고 싶었던 겁니다. 하지만 이곳에 오기 전에 이곳 저곳 돌아다니며 수소문해 봤습니다. 부동산업자에게도 가봤는데, 가르시아 씨는 집세는 밀린 것이 없으니 문제가 없다고 하더군요." 홈즈가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여기 내 친구 와트슨 같군요. 이 사람은 이야기의 앞뒤를 혼동하는 나쁜 버릇이 있답니다. 제발 머릿속을 가다듬고, 순서있게 이야기해 주십시오. 당신이 그토록 허둥지둥 상의하러 온 사건이라는 걸 차근차근히 말입니다." 에클스 씨는 서글픈 얼굴로 자신의 흐트러진 모습을 둘러보았다. "그렇군요. 이거 내가 엉망입니다. 홈즈 씨. 지금까지 이런 꼴을 당한 일이 없으니까요. 자, 그 이상야릇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듣고 나시면, 내가 왜 이렇게 허둥지둥거렸나를 이해하시게 될 겁니다." 하지만 에클스 씨의 이야기는 그 첫머리에서부터 중단되어야 했다. 현관이 어수선하더니, 여주인 허드슨 부인이 문을 열고 두 남자를 안내하고 들어 왔던 것이다. 한 사람은 낯익은 경시청의 그레그슨 경감이었다. 경감은 홈즈에게 악수를 청하며, 데리고 온 남자를 소개했다. "이분은 서리 군 경찰인 베인스 경감입니다. 우리는 서로 협력해서 범인을 수사 중입니다. 그리고 그 단서 중의 하나가 이리로 온 것을 알고...." 그렇게 말하고 불독을 닮은 눈을 에클스 씨에게 돌리며 물었다. "당신은 리 시의 포팜 하우스 저택에 사는 스콧 에클스 씨죠?" "그렇습니다." "아침부터 당신을 뒤쫓고 있던 중입니다." 홈즈가 말했다. "전보로 행방을 알아낸 모양입니다 그려." "그렇습니다. 홈즈 씨. 채링 크로스 우체국에서 단서를 잡고 이곳으로 직행했습니다."(채링 크로스는 런던의 한복판으로 가장 번화한 곳.) "그런데 왜 나를 뒤쫓는 겁니까, 무슨 용무로?" "가까이에 있는 위스트리아 별장에 사는 알로이시어스 가르시아가 어젯밤 죽은 사건에 관해 당신의 설명을 듣기 위해서 입니다." 에클스 씨는 눈이 휘둥그래지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 얼굴에는 핏기가 싹 가셨다. "뭐요? 죽었다고 했나요?" "그렇습니다. 죽었습니다." "왜 죽었나요? 사고입니까?" "틀림없는 살인입니다." "그럴 수가! 설마---나를 의심하는 건...." "죽은 사람의 주머니에서 당신의 편지가 발견되었고, 당신이 어제 그 집에서 묵으려 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묵었습니다." "역시 그랬군요." 경감은 경찰 수첩을 꺼냈다. 홈즈가 입을 열었다. "잠깐 그레그슨 경감. 당신은 이분에게서 있었던 그대로의 설명을 듣고 싶지는 않소?" "에클스 씨, 직무상 경고합니다만, 그 설명은 나중에 불리한 증거로 쓰일지도 모릅니다." "에클스 씨가 막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하던 참에 당신들이 들이닥친 겁니다. 와 트슨, 소다수를 탄 위스키를 준비해 주겠나? 자, 에클스 씨, 듣는 사람이 늘었다는 것에 신경쓰지 말고 이야기를 계속하시기 바랍니다." 에클스 씨는 위스키를 단숨에 들이켰는데, 곧 얼굴에 핏기가 돌았다. 에클스 씨는 경감의 수첩을 신경질적으로 쳐다보고는 곧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는 독신인데다가 사교성이 있는 편이어서 친구가 많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인 멜빌 씨는 켄싱턴의 앨브마를 저택에 살고 있는데, 원래 양조장을 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의 초대를 받아 놀러간 자리에서 가르시아라는 젊은 사람을 소개받았습니다. 스페인계의 사람으로, 대사관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영어도 잘하고, 태도도 공손하며, 아주 잘생긴 사람이었지요. 어떻게 된 일인지 나는 이 젊은 사람과 급속히 친하게 되었습니다. 가르시아는 처음부터 나에게 친근감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인지, 만난지 이틀만에 리 시의 우리 집으로 놀러 왔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내가 가르시아가 사는 위스터리아 별장으로 초청되었습니다. 위스터리아 별장은 에셔와 옥스숏 중간쯤에 있는데, 나는 그 약속을 지키려고 어제 저녁 그의 집으로 갔던 겁니다. 가르시아는 내가 방문하기 전에 자기 집 사정에 대해 들려주었습니다. 자기는 충직한 하인을 데리고 있는데, 그 사람도 스폐인 사람이지만 영어를 할 줄 알고, 자신을 대신해서 집안을 꾸려 나간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요리사는 혼혈인으로서 가르시아가 여행중에 만난 사람인데, 요리 솜씨는 나무랄 데 없으나 영어를 할 줄 모른다고 하더군요. 위스터리아 별장은 에셔에서 남쪽으로 3km가량 떨어진 곳에 있어서, 나는 그곳까지 마차로 갔습니다. 집은 길에서 약간 들어간 곳에 있는 상당히 큰 별장이었는데, 아름드리 떡갈나무 사이로 마차길이 나 있었습니다. 손질한 지가 언제인지 낡고 황량한 건물이었습니다. 마차가 비바람에 색바랜 현관 앞, 잡초가 무성한 앞뜰에 멎었을 때, 나는 아직 그리 절친하다고 할 수 없는 사람을 찾아간 것을 후회했습니다. 하지만 곧 가르시아가 달려나와 진심으로 나를 맞이해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얼굴색이 거무스름한 하인이 내 가방을 들고 침실로 안내해 주더군요. 집안은 어디를 보나 우중충했습니다. 저녁식사는 가르시아와 마주 앉아 했습니다만, 그는 정신이 딴 데 팔려 있는 모양인지 동문서답 식으로 도무지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만 해댔습니다. 그리고 쉴 새 없이 식탁을 두드리고 손톱을 씹는 등, 신경이 곤두서 있는 게 분명했습니다. 음식도 별로 자랑할 만한 것은 아니었고, 무뚝뚝한 하인이 심각한 표정으로 시중을 들었기에, 도저히 즐거울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그 날 밤 안으로 어떤 구실을 붙여서라도 돌아가야겠다고 몇 번이나 생각했습니다. 참, 이 두 경감께서 수사하고 있는 사건과 관계가 있을 것 같은 일이 하나 생각납니다. 그때는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만. 저녁식사가 끝나갈 무렵, 하인이 편지 한 통을 갖고 들어왔습니다. 가르시아는 그것을 읽고는 정신이 나간 듯한 태도가 아까보다 더 심해진 것 같았습니다. 아예 나와의 이야기도 접어둔 채,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가 하면, 줄담배를 피워대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편지 내용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럭저럭 11시가 되어 침대에 들어가니, 그제서야 살 것 같은 기분이 들더군요. 잠시 뒤, 가르시아가 침실문을 조금 열고 물었는데, 그때는 이미 불을 껐기에 방안은 캄캄했습니다. '초인종을 눌렸나요?' '그런 일 없었는데요.' 내가 그렇게 대답하자 가르시아가 말했습니다. '잘못 알고 실례했습니다. 벌써 1시가 다 되었으니 푹 쉬십시오.' 그리고 그는 돌아갔습니다. 나는 피로가 몰려오면서 깊이 잠들었습니다. 음, 여기에서부터 실로 이상야릇한 일이 벌어집니다. 내가 눈을 떴을 때는 사방이 환했습니다. 시계를 보니 9시가 가깝더군요. 8시에 깨워 달라고 부탁해 두었는데 이럴 수가 있나 싶어 초인종을 눌러 하인을 불렀습니다. 응답이 없었습니다. 몇 번이고 다시 눌렀지만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초인종이 고장났나 싶어 급히 옷을 입고 화가 나서 아래층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무도 없지 뭡니까! 나는 현관까지 걸어가 큰소리로 사람을 불러 봤지만, 집안은 쥐 죽은듯 고요했습니다. 그래서 닥치는대로 방문을 열어 봤지만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가르시아가 어젯밤 자기 침실을 알려 주었기에, 그의 침실도 노크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응답이 없더군요. 나는 손잡이를 돌려 안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방안은 텅 비어 있었고, 침대는 사람이 잔 흔적도 없었습니다. 외국인인 집주인, 외국인 하인, 역시 외국인 요리사 모두가 하룻밤 사이에 자취를 감추고 만 겁니다." 홈즈는 이 이상한 이야기를 다 듣고 나더니, 자못 흥미롭다는 듯 두 손을 비비며 물었다. "당신이 경험한 바는 실로 기묘합니다. 그래, 그 다음 당신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습니다. 처음에는 장난치고는 괘씸하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짐을 챙 겨 현관 문을 쾅 닫고는, 가방을 손에 들고 에셔 마을로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마을에서 그 지방 부동산 소개소인 앨런 브러더스 사에 들러 물어보니, 가르시아가 그 소개소에서 위스터리아 별장을 빌렸다는것 을 알 수 있었습니다. 내가 부동산 소개소를 찾아가 본 것은, 나를 놀리기보다는 집세 때문이 아닌가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곳 사람 말에 의하면 집세는 이미 선불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런던에 돌아와서 그 길로 스페인 대사관을 찾아갔습니다. 대사관에서는 가르시아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다시 멜빌을 찾아갔지요. 그의 집에서 처음 가르시아를 알게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멜빌은 그에 대해서는 나보다 더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홈즈 씨에게 전보를 치고 이렇게 찾아 뵌 겁니다. 홈즈 씨는 난처한 입장에 빠진 사람들에게 지혜를 빌려 주신다기에.... 그런데, 경감님. 아까의 말씀으로는 살인사건이 일어난 모양인데, 명백히 밝혀두지만 지금 이야기 한 것은 틀림없는 진실이며, 그밖에 가르시아의 운명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습니다. 나로서는 가능한 한 경찰에 협력하겠다는 것밖에는 더 할말이 없습니다." 그레그슨 경감이 부드럽게 말했다. "그건 잘 알고 있습니다. 에클스 씨. 당신이 이야기한 것은 모두가 사실과 일치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저녁식사 때 가져왔다는 편지 말입니다. 그 편지는 어떻게 됐는지 아십니까?" "예, 압니다. 가르시아가 구겨 벽난로 속으로 던져 넣더군요." "틀리지 않는군요, 베인스 경감." 베인스 경감은 단단한 몸집의 혈색이 좋은 사람으로서, 얼핏 낙천적인 면이 엿보였으나 움푹 패인 눈만은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베인스 경감은 입가에 미소를 띠고서 주머니에서 그을린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가르시아가 벽난로 깊숙한 곳으로 던져 넣었기에 타버리지는 않았습디다." 홈즈가 빙그레 웃으며 감탄하는 투로 말했다. "벽난로 깊숙한 곳에까지 눈이 갔다니 정말 철저하십니다." "철저를 기한다는 것이 나의 수사 방침입니다. 홈즈 씨. 읽어 볼까요. 그레그슨 경감?" 그레그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편지는 크림 색의 보통 편지지이며, 작은 가위로 두 군데 가량 잘려져 있습니다. 세 번 접어 보라색 초로 봉인을 했는데, 초는 급히 칠한 것 같으며, 그 위에 무엇인가 평평하고 둥근 것으로 눌렀습니다. 받을 사람은 '위스터리아 별장의 가르시아 씨'로 되어있고,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의 색은 녹색과 백색. 녹색은 열리고, 백색은 닫힘. 정면 계단, 제 1 복도, 오른쪽에서 일곱 번째, 녹색 커튼, 부디 성공하기를. D로부터..' 여자가 쓴 모양인지 가는 펜으로 쓰여 있습니다만, 받을 사람의 주소는 다른 펜으로 썼던가. 아니면 다른 사람이 쓴 겁니다. 보시다시피 한결 글씨가 큽니다." 홈즈가 다시 한번 내용을 읽어 본 다음 말했다. "보기 드문 편지로군요. 그리고 세밀한 점에까지 주의를 기울인 것은 훌륭합니다. 베인스 경감. 그런데 두서너 가지 첨가할 수가 있겠습니다. 원형의 봉인 자국은 평평한 커프스 버튼으로 누른 겁니다. 달리 그런 모양을 갖고 있는 것은 없으니까요. 그리고 가위는 휘어진 손톱 화장용입니다. 가위 자국이 휜 것으로 보아 알 수 있습니다." 베인스 경감이 다소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철저히 조사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빠뜨린 점이 있었군요. 그 편지로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음모가 꾸며지고 있었고, 또 늘 그렇듯이 그 그늘에는 여자가 있었다는 것이 되는군요." 에클스 씨는 그 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 편지를 발견해 낸 것은 다행한 일입니다. 내 이야기가 진실이라는 것이 증명되었으니까. 그런데 가르시아 씨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고 싶군요." 그레그슨 경감이 말을 받았다. "가르시아의 운명은 이렇습니다. 오늘 아침 집에서 2km 가량 떨어진 옥스숏 커먼 공유지에서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머리를 모래 주머니 같은 것으로 강하게 얻어맞은 모양인지 형편없이 죽어 있었습니다. 현장은 외진 곳으로, 400-500m 이내에는 집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뒤쪽에서 때린 것으로 보이나, 범인은 상대가 죽은 뒤에도 계속 내리친 것 같습니다. 대단히 지독한 범행입니다. 발자국은 없었고, 그밖에 범행의 단서가 될 만한 것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도난당한 것은?" "무엇을 훔쳐 간 흔적은 없습니다." 스콧 에클스 씨가 울상이 되어 말했다. "어떻게 그런 끔찍한 일을....이거 내가 무척 곤란한 처지가 되었군요. 가르시아가 밤중에 나가 그런 봉변을 당한 것은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는 하나, 내가 그 사건에 말려든 결과가 되었으니..." 베인스 경감이 말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시체의 주머니 속에서 발견된 거라고는 당신의 편지뿐이고, 또 거기에는 그날 밤 가르시아의 집에 당신이 묵겠다는 말이 적혀 있었습니다. 피살자의 이름과 주소를 알게 된 것도 당신이 보낸 편지 덕분입니다. 오늘 9시가 지나 피살자의 집으로 갔었으나, 집안에는 당신도 없었고 다른 사람들도 없었습니다. 나는 그레그슨 경감에게 런던에서 당신을 찾아봐 달라고 요청을 해놓고, 위스터리아 별장을 샅샅이 조사했습니다. 그리고 그레그슨 경감은 에클스 씨가 친 전보를 근거로 해서 당신이 이곳에 온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그레그슨 경감이 일어서며 말했다. "전신국의 협조가 컸습니다. 하여간, 이 사건의 수사상 에클스 씨의 구술서를 받아 두어야 겠으니 경찰서까지 가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러지요. 하지만, 홈즈 씨. 계속 이 사건의 진상을 캐봐 주십시오. 비용은 아끼지 마시고......." 홈즈가 베인스 경감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이 사건 수사에 관여해도 이의가 없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에클스 씨의 정식 의뢰를 받은 이상." "경감은 현재까지 철저하게 수사를 전개해 온 것 같은데, 피살자가 죽은 정확한 시간에 관한 단서가 있었습니까?" "새벽 1시부터 시체는 현장에 있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 시각부터 비가 내렸으니까요. 가르시아가 1시 이전에 살해된 것은 확실합니다." 에클스가 외쳤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내가 가르시아의 목소리를 잘못 알아들었을 리가 없습니다. 그는 내 침실에 와서, 1시가 되었으니 자라고 말했는걸요." 홈즈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상하기는 하지만,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그레그슨 경감이 의아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근거라도?" "얼핏 보기에 이 사건은 그렇게 복잡한 건 아닌 것 같습니다. 하기야, 좀 특이하고 흥미로운 특색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마지막 결정적인 의견을 내놓기 전에, 좀더 사실을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베인스 경감. 집안을 조사했을 때 편지 외에 무엇인가 이렇다 할 물건은 없었나요?" 베인스 경감은 놀란 눈으로 홈즈의 얼굴을 바라보고 말했다. "두어 가지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습니다. 우리 경찰서의 일이 끝날 무렵, 오셔서 의견을 나눌 수 있겠습니까?" 홈즈가 초인종을 누르며 대답했다. "그러기로 하지요. 허드슨 부인, 손님들이 가신답니다. 손님들이 돌아가시거든 곧 사환을 시켜 전보를 치게 해주십시오. 반신료 5실링을 첨가해서." 현장 부재 증명 손님들이 돌아간 뒤, 우리는 잠시 말없이 앉아 있었다. 홈즈는 담배를 뻐끔거리며 이마에 깊은 주름을 잡고 있더니, 갑자기 나를 보고 물었다. "자네는 이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나?" "뭐가 뭔지 모르겠는걸." "하지만 살인에 대해서는?" "그야, 피살자의 하인들이 자취를 감춘 것으로 보아 그들이 이번 살인에 어떤 관계가 있어 도망간 것이 아닌가 생각하네." "그것도 생각에 넣을 수는 있지. 그러나 자네도 인정하겠지만, 두 하인이 주인을 배신하고, 더구나 손님이 온 날 밤에 해치운다는 건 좀 이상하지 않나? 다른 날 밤에 혼자 있을 때 얼마든지 해치울 수가 있을 텐데 말일세." "그렇다면 왜 도망갔을까?" "왜 도망 갔는지가 문제지. 다음 문제는 에클스 씨의 기묘한 체험일세. 자, 와트슨. 이들 사실을 연결지어 가설을 세워 보세. 만일 그 가설로 그 이상야릇한 글귀가 적힌 수수께끼의 편지도 설명할 수 있다면 그건 가설로서 인정할 가치가 있을 걸세." 홈즈는 눈을 지그시 감고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에클스 씨가 기묘한 일을 겪은 것은 단순한 장난으로는 생각되지 않네. 그 뒤에서 중대한 사건이 진행되고 있었다는 것은 가르시아가 죽은 것으로도 짐작이 가는 일이야. 에클스 씨를 위스터리아 별장으로 오게 한 것도 그 사건과 관계가 있어." "어떤 관계가?" "하나하나 생각해 보세. 가르시아가 에클스와 갑자기 친해진 것에는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러운 구석이 있네. 적극성을 띤 것은 가르시아 쪽이었는데, 그는 에클스와 만난 바로 다음날에 런던의 반대쪽 끝에 있는 에클스의 집을 방문했네. 가르시아는 그 뒤에도 에클스와의 친분을 애써 두텁게 하고는, 마침내 위스터리아 별장으로 초대를 했지. 에클스에게 무엇을 바란 것일까? 나는 에클스에게 남다른 인간적인 매력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네. 오히려 유머가 풍부한 스페인사람과는 도저히 친해질 것 같지 않거든. 가르시아가 알게 된 사람은 그 밖에도 많이 있을 텐데, 그 중에서 왜 에클스가 가장 목적하는 바에 적합하다고 선택되었을까? 무슨 특별한 특성이 있는가? 나는 있다고 생각하네. 에클스 씨는 전형적인 영국 특유의 근엄한 신사일세. 증인으로서 다른 영국인들을 믿게 하기에는 안성맞춤격이지. 자네도 들은 것처럼, 에클스의 진술에는 상식을 벗어난 내용이 있었지만, 두 경감은 그것을 의심하려 들지 않았지." "그럼 에클스가 어떤 일의 증인이 되었다는 건가?"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되었지만, 만일 다른 결과가 되었다면 중대한 증인이 되었을 것 같네. 이게 내 생각일세." "알겠어. 가르시아가 에클스의 침실에 들른 시각에는 다른 장소에 없었다는 알리바이가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바로 그걸세. 와트슨. 에클스가 초대된 까닭은 바로 가르시아의 알리바이를 위해서 였을거야. 지금, 가령 위스터리아 별장 사람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어떤 계획을 세웠고, 그 시각을 밤 1시 이전으로 잡았다고 가정해 보세. 벽시계를 조금만 앞으로 돌려놓으면, 에클스를 진짜 시간보다도 그만큼 빨리 자리에 들게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 하여간 가르시아가 1시라고 말했을 때의 실제 시간은 12시쯤이었을지도 모를 일이야. 가르시아가 어떤 일을 했든 간에, 그 일을 끝내고 그 시각까지 돌아와 있었다면, 나중에 비록 심문을 받게 된다 해도 걱정할 것이 없지 않을까? 흠잡을 데 없는 근엄한 영국 신사가, 가르시아는 그 시각에 집에 있었다고 증언해 줄 테니 말일세." "음, 그것은 이해가 가네만, 하인들이 자취를 감춘 것은 무슨 이유일까?" "아직 사실을 모두 밝혀낸 것은 아니지만, 설명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네." "그리고 그 편지에는 어떤 의미가 있지?" "이런 글귀였지. '우리의 색은 녹색과 백색'....경마와 비슷하군. '녹색은 열리고, 백색은 닫힌다'...이건 분명히 어떤 신호일세. '정면 계단. 첫번째 복도, 오른쪽에서 일곱 번째, 녹색의 커튼'... 이건 장소의 지정일세. 위험한 모험인 것 같아. 그렇지 않고서는 '부디 성공하기를'이라고 기원까지 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D로부터'....이건 안내를 맡은 사람일꺼야." "그 남자는 스페인 사람이었다고 했지? 'D' 는 스페인에 흔한 여자 이름인 돌로 레스(Dolores)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그럴듯하군, 와트슨. 하지만, 그 가정은 들어맞지 않겠는걸. 스페인 사람끼리의 편지라면 스페인어로 쓰는 것이 상식이지. 편지를 쓴 사람은 분명히 영국인일세. 어쨌거나, 그 베인스라는 유능한 경감이 부르러 올 때까지는 잠자코 기다리는 걸세." 베인스 경감이 되돌아오기 전에 홈즈가 치게 한 전보의 회신이 도착했다. 홈즈는 그것을 읽고 주머니에 넣으려 하다가, 내가 궁금해 하는 것을 알고는 웃으면서 그것을 넘겨 주었다. "사건은 신분이 높은 사람 쪽으로 옮겨 가는걸." 전보 내용은 이름과 주소를 나열한 것이었다. - 핼링바이 경 --- 딩글 저택. 조지 포리옷 경 --- 옥스숏 저택. 치안판사 하인스 씨 --- 퍼디 저택. 제임스 베이커 윌리암스 씨 --- 포턴 올드 홀 저택. 헨더슨 씨 --- 하이 게이블 저택. 조슈어 스톤 교수 --- 니더 윌슬링 저택. - "이것이 우리가 수색해야 할 구역일세. 조직적인 머리를 갖고 있는 베인스 경감도 틀림없이 같은 손을 쓰고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무슨 말인지....?" "그래? 가르시아가 저녁식사를 할 때 받은 편지는 어느 집인가 그 구조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 확실하네. 그런데 정면 계단을 올라가 복도에서 일곱번째 문이라면, 그 집이 꽤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지. 또한, 그 집이 옥스숏에서 2-3k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도 확실해지네. 왜 그런가 하면, 가르시아는 그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고, 알리바이가 성립되도록 1시까지는 위스터리아 별장에 돌아올 생각이었기 때문일세. 옥스숏 부근의 규모가 큰 저택이라면 그 수가 뻔하므로, 에클스가 들러 봤다는 부동산 소개소에 전보를 쳐서, 그럴 만한 저택의 주인과 그 명칭을 적어 보내주도록 부탁한 것이라고. 그게 바로 이 전보인데. 문제의 저택은 이 중의 하나일 걸세." 그 날 저녁, 홈즈와 나는 베인스 경감과 함께 서리 군의 에서라는 아름다운 마을에 도착했다. 홈즈와 나는 불 여관에 방을 정하고 나서, 베인스 경감의 안내로 위스터리아 별장으로 향했다. 춥고 어두운 3월의 밤이어서, 차가운 바람과 이슬비가 옆으로 얼굴을 때렸다. 사라진 버넷 부인 추위에 떨며 어두운 기분으로 3km 가량 걸어, 도로로 향한 높은 나무문이 있는 곳까지 왔다. 문을 들어서서 어두운 마차길을 나아가니, 잿빛 하늘을 배경으로 낮은 집 한 채가 검게 웅크리고 있고, 현관 왼쪽 창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경관 한 명을 집안에 배치해 두었습니다. 창을 두드려 봅시다." 베인스는 그렇게 말하고 잔디밭을 가로질러, 창 밑으로 가서 창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벽난로 앞의 의자에서 한 사람이 벌떡 일어서는 것이 보이더니, 뭐라고 소리를 지르며 허둥지둥 현관으로 달려나와 문을 열었다. 그 경관의 얼굴은 창백했고, 촛대를 들고 있는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베인스 경감이 날카롭게 물었다. "무슨 일인가, 윌터스?" 경관은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고, 안도의 숨을 몰아쉬었다. "오셨으니 살 것 같습니다. 시간이 가는 것이 왜 그리 더디든지..." "자네는 담력이 큰 줄 알았는데, 잘못 봤군." "그야....이렇게 쓸쓸하고 쥐 죽은 듯한 집안에서 혼자 있어 보십시오. 그리고 부엌 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지 뭡니까. 그러고 있는데 갑자기 경감님이 창문을 두드리는 바람에 또 나타난 줄 알고 기겁을 할 수밖에요." "또 나타나다니, 뭐가?" "틀림없는 악마에요. 창문밖에 나타났었어요." "창문밖에 뭐가 나타났었단 말인가? 언제쯤이지?" "두 시간쯤 전입니다. 어둠이 짙어지기 시작할 무렵이었지요. 의자에 앉아 소설책을 읽고 있었는데, 문득 고개를 들어 보니 유리창 너머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얼굴이 있는 겁니다. 아, 그 기괴한 얼굴! 나는 아마도 매일 밤 그 얼굴을 꿈에 볼 것 같습니다." "여보게, 윌터스! 경관답지 않게 무슨 소린가!"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거짓말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검정도 아니고 흰색도 아니고....흙덩이에 우유를 엎지른, 그런 이상한 색깔이었습니다. 그 얼굴의 크기가 경감님의 두 배는 됐습니다. 또, 그 얼굴....주먹만한 눈을 부릅뜨고, 굶주린 짐승 같은 흰 이가 드러나 보였습니다. 정말입니다. 경감님, 그놈이 홱 사라지기 전까지는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고, 숨이 꽉 막혔습니다. 그놈의 모습이 사라지고 나서야 밖으로 달려나가 정원수 속을 살펴보았습니다만, 다행이 아무 것도 없더군요." "자네가 착실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지 않았다면 점수가 깎일 일인걸. 비록 진짜 악마였다고 하더라도, 근무 중의 경관이 그놈을 잡지 못하고 사라진 것이 다행이라니...혹시 피로해서 잘못 본 건 아닌가?" 홈즈가 소형 칸델라에 불을 붙여 잔디 위를 살펴보고 나서 말했다. "윌터스 경관이 한 말은 사실입니다. 여기에 굉장히 큰 발자국이 있습니다. 다른 신체 부위도 발만큼 크다면, 대단한 거인일 겁니다." "그래요, 그럼 어디로?" "덤블 속을 빠져 나가 도로 쪽으로 간 모양입니다." 베인스 경감은 심각한 얼굴이 되어 말했다.. "그놈이 누구든, 또한 무슨 일로 왔든 간에 지금은 도망 가고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당장 할 일이 있습니다. 자,홈즈 씨, 집안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침실이나 거실을 샅샅이 살펴보았으나 아무 것도 찾아낼 수가 없었다. 가르시아는 자기의 소유물은 아무 것도 없이, 모든 도구와 가구까지 갖춘 상태에서 집을 빌린 모양이었다. 런던의 막스 회사의 상표가 붙은 의류가 몇 벌 나왔다. 이 회사에서도 이미 전보로 조회해 보았지만, 그 회사에서는 지불이 깨끗한 손님이라는 것밖에는 가르시아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가르시아의 개인 소유물로서는 담배 파이프와 서너 권의 스페인어 소설, 구식 권총, 기타 등이 전부였다. 베인스 경감은 촛불을 들고 방에서 방으로 돌아다니며 말했다. "이런 잡동사니로는 도움이 안되겠군요. 그럼, 홈즈 씨, 부엌 쪽을 살펴봐 주시기 바랍니다." 부엌은 뒤뜰 쪽으로 난 음침한 방으로, 한구석에 짚이 깔려 있는 것은 요리사의 잠자리로 쓰인 것으로 생각되었다. 테이블 위에는 먹다 남은 음식 찌꺼기로 지저분한 접시가 몇 개 놓여 있었다. 경감이 말했다. "이걸 보십시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촛불을 들어 식기 선반 위에 놓여 있는 묘한 물건을 가리켰다. 말라 비틀어져 줄어들고 주름이 간 그것이 원래 무엇이었는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검은 가죽 같은 것으로 만든 작은 인형으로 보였다. 얼핏 보기에는 미라가 된 흑인의 갓난아이 같기도 하지만, 자세히 보니 얼굴이 일그러진 나이 먹은 원숭이 같기도 했다. 그 한가운데에 흰 조개 껍질을 엮은 띠가 이중으로 말려 있었다. 홈즈가 그 이상한 물건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흥미 있군요, 뭐, 다른 것도 있습니까?" 베인스 경감은 말없이 하수도 쪽으로 걸어가 불을 밝혔다. 큼직한 흰 새가 깃털이 여기저기 흩어진 채 죽어 있었다. 홈즈가 새를 집어 들고 머리 위의 벼슬을 가리키며 말했다. "흰 수탉입니다. 흥미 진진하군요. 아주 재미있는 사건입니다." 베인스 경감은 조리대 밑에서 들통을 끌어냈다. 거기에는 피가 가득했다. 이번에는 큰 쟁반을 들어냈는데, 거기에는 자잘한 뼈가 수북했다. "무엇인가 살해되고 태워진 겁니다. 이건 모두 불 속에서 긁어낸 것인데, 오늘 아침 의사의 자문을 구해 보았습니다. 의사의 말로는 사람의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홈즈는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경감, 이건 까다로운 사건에 손대고 있다는 것을 축하드립니다. 당신의 능력은 시골 경찰로는 아까울 정도입니다." 베인스 경감의 작은 눈이 기쁜 빛을 띠었다. "그렇습니다, 홈즈 씨. 우리는 지방에 묻혀 이렇다 할 기회도 없이 한평생을 썩고 말지요. 워낙 조용한 시골이니까요. 하지만, 이런 사건이 일어나면 출세의 기회가 주어질 수도 있지요. 나는 그걸 잡아 볼까 합니다. 그런데 이 뼈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양일까요, 아니면 송아지?" "그럼, 흰 수탉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묘합니다. 경감. 실로 이상야릇합니다." "맞습니다. 이 집에는 묘한 짓을 하는 묘한 자들이 모여 있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 중 하나가 죽었습니다. 하인이 뒤쫓아가 죽였을까요? 그렇기만 하다면 붙잡을 수 있습니다. 항구마다 감시망을 쳐두었으니까요. 하지만 내 생각은 전혀 다릅니다." "그럼, 어떤 짐작이라도?" "한번 부딪쳐 볼 생각입니다. 홈즈 씨. 성공하면 내 명예가 오르겠지요, 당신은 이미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만, 나는 이제부터입니다. 당신의 도움 없이 해결할 수 있다면 그게 가능해 집니다." 홈즈가 기분 좋게 웃었다. "그렇습니다. 경감. 이 사건에서 당신은 당신의 소신을 밀고 나가고, 나는 나의 길을 가보기로 합시다. 내가 조사한 자료는 언제든 기꺼이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요청만 하시면 됩니다. 자, 이 집에서는 볼 만한 것은 다 본 것 같으니, 어딘가 다른 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럼, 이만 실례합니다. 경감의 행운을 빕니다." 다른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짐작할 수가 없는 일이겠지만, 나는 홈즈가 지금 몇 가지 단서를 잡고 그것을 맹렬히 뒤쫓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겉으로는 달라진 것이 없지만, 눈에 빛이 더하고 태도가 기민해진 것으로 보아, 그는 이미 사냥감을 눈앞에 보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늘 그래 왔지만 홈즈는 내게 아마 말도 하지 않았고, 나 역시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나로서는 사냥감을 잡는데 동행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서, 홈즈의 팽팽히 긴장한 신경을 쓸데없는 말참견으로 흐트러뜨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때가 오면 다 알게 될 테니까. 그래서 나는 마냥 기다렸지만, 그런 보람도 없이 며칠이 지나도록 홈즈는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았다. 어느 날 아침 홈즈는 런던에 다녀 왔는데, 그가 무심코 흘린 말로 그가 대영 박물관에 다녀왔다는 것을 알았다. 그 밖에는 혼자 산책을 하거나 친해진 마을 사람들의 잡담으로 시간을 보냈다. 이윽고 홈즈가 말했다.. "와트슨, 시골에서 이렇게 1주일을 지내는 것은 자네에게도 크게 도움이 될 걸세. 생울타리에 새싹이 돋고, 개나리가 노랗게 꽃을 피우는 것을 지켜 본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 아닌가. 작은 부삽과 채집함, 그리고 식물학 입문서를 들고 돌아다니면 유익한 나날을 보낼 수 있다네." 홈즈는 그런 소도구를 마련하여 어딘가를 쏘다니다가 해 저물녘에 돌아왔지만 채집한 식물은 별것이 없었다. 어쩌다가 함께 마을을 어슬렁거리다가 가끔 베인스 경감을 만나는 일도 있었지만, 경감도 사건에 대해서는 별말이 없었다. 그런데 사건이 있고 닷새 정도가 지난 뒤 아침 신문을 보다가, 다음과 같은 제목을 보고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옥스숏 사건 해결.. 살인 용의자 체포... - 내가 소리내어 제목을 읽자, 홈즈가 무엇에 찔린 사람처럼 후다닥 일어섰다. "뭐라고? 베인스 경감이 범인을 잡았다고?" "그런 것 같은데...." 나는 그렇게 말하고 기사를 읽기 시작했다. - 어제 저녁 늦게 옥스숏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체포됨으로써, 에셔의 주민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미 보도한 것처럼, 위스터리아 별장의 가르시아씨가 옥스숏 커먼 공유지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는데, 시체에는 심한 폭행을 당한 흔적이 있었다. 더구나 그 날 밤 하인과 요리사가 도주함으로써 그들이 범죄에 관계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위스터리아 별장에는 무엇인가 귀중품이 있었고, 그것을 탈취하려는 것이 범행 동기가 아닌가 생각되나, 아직 그 증거는 드러나지 않고 있다. 사건을 담당한 베인스 경감은 도주한 범인의 은신처를 찾는 데 수사의 촛점을 맞추었다. 그래서 두 하인이 멀리까지는 도망가지 못하고 미리 준비한 은신처에 숨어 있으리라는 확신을 가졌다. 범인 중 한 사람인 요리사는, 그의 얼굴을 본 증인들의 말에 의하면 황갈색 피부에 흉하게 생긴 거인이라고 한다. 이 남자는 범행이 있었던 다음날 밤, 대담하게도 위스터리아 별장에 나타나서 이를 윌터스 경관이 그를 목격한 바 있다. 베인스 경감은 거기에도 무슨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고 다시 나타날 것을 예상하여,위스터리아 별장의 경계를 풀고 정원수 그늘에 경관을 잠복 시켰던 것이다. 범인은 어젯밤 이 덫에 걸려 격투 끝에 붙잡혔는데, 다우닝 순경은 그 과정에서 범인에게 몰려 중상을 입기도 했다. 이 용의자의 체포에 의해 사건 수사는 크게 진전될 것으로 전망된다. - 홈즈는 모자를 집어 들며 외쳤다.. "곧 베인스 경감을 만나야 해. 그 사람이 나가기 전에 어떻게든 만나봐야 한다고." 둘이 마을 길을 급히 가보니, 예상대로 경감은 막 숙소를 나서려는 참이었다. 경감은 조간신문을 내보이며 물었다. "신문을 보신 게로군요. 홈즈 씨." "아, 보았습니다. 친구와 함께 한마디 충고를 해 드릴 말이 있는데, 무례하다고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충고라니요, 홈즈 씨?" "나는 이 사건을 세밀히 조사해 왔는데, 아무래도 경감의 수사 방향이 잘못된 것 같습니다.확신이 서지 않는 한, 그 방향으로만 너무 깊이 파고 들지 마십시오." "친절을 감사합니다." "당신을 생각해서 하는 말입니다." 베인스 경감의 작은 눈 위의 눈썹이 찌푸려지는 것 같았다. "각기 자신의 방식대로 하기로 약속된 거 아닙니까? 나는 그대로 이행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홈즈 씨." "그건 그렇습니다. 나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물론입니다, 홈즈 씨의 호의는 잘 압니다. 하지만 사람마다 각기 방법이 다르게 마련이지요, 홈즈 씨는 홈즈 씨의 방법이 있듯이." "그 이야기는 그만둡시다." "이쪽의 정보는 언제든지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체포된 용의자는 야만인이나 다를바 없으며, 그 힘이 말보다도 더 세고, 거칠기가 악마 같은 거인입니다. 다우닝 순경의 엄지손가락을 물어뜯을 뻔했는데, 영어는 한마디도 못하고 으르렁거리기만 합니다. 그래서 아직 아무 것도 알아내지를 못하고 있어요." "그래 그 거인이 주인을 죽였다는 증거는 찾아냈나요?" "나는 그런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홈즈 씨. 단지 사람에게는 각기 자기 방식이 있다는 걸 주장하고 싶습니다. 당신은 당신 방식대로 해 나가십시오. 나는 내 방식을 따를 뿐입니다. 약속이 그렇지 않았던가요?" 베인스 경감과 헤어지고 나서 홈즈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난 저 사람을 통 알 수가 없단 말이야. 엉뚱한 토끼를 쫓고 있는 것 같거든. 그 사람의 말대로, 각기 자기의 방식대로 해봐서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지켜볼 수밖에, 하여간에 베인스 경감에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점이 있네." 불 여관에 돌아오자 홈즈가 말했다. "거기 의자에 앉게나. 자네에게 상황을 알려 주고 싶네. 오늘 밤에는 자네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을 것 같으니까. 이 사건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을 설명해 두겠네. 줄거리는 간단하지만, 범인을 체포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아직 그 점은 더 확인을 해봐야겠지만. 우선 가르시아가 살해된 날 밤에 온 편지로 되돌아가 보세. 베인스 경감은 가르시아의 하인들이 사건에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 혐의점은 잠시 젖혀 두기로 하세. 그 증거로는 스콧 에클스 씨를 초대한 것은 가르시아였고, 그 목적은 자기의 알리바이를 세우기 위해서 였기 때문이야. 따라서, 가르시아에겐 그 날 밤 어떤 범죄 계획이 있었는데, 그 계획을 수행하다가 오히려 당한 것으로 생각되네. 그러면 가르시아에게 반격을 가해 살해한 자는 누구일까? 그건 가르시아가 노렸던 대상자가 뻔하지. 여기까지의 내 추리는 틀림없다고 생각하네. 다음에 가르시아의 하인들이 모습을 감춘 이유를 생각해 보세. 간단히 말해서 두 하인은 가르시아의 협조자일세. 범죄 계획이 성공하고 가르시아가 무사히 돌아오면, 에클스 씨라는 든든한 증인이 있는터라 만사가 잘 되었을 것일세. 하지만 그 계획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것으로, 가르시아가 정해진 시간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십중팔구 살해된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세. 따라서, 그런 경우에는 두 하인은 미리 정해 놓은 장소로 피하여, 다시 계획을 세우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지. 대충 납득이 가나?" 나는 홈즈의 설명으로 얽히고 설킨 수수께끼가 모두 풀리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런데 그 요리사가 왜 혼자 되돌아왔을까?" "몸을 피할 때 너무나 다급한 나머지 무엇인가 중요한 것,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물건을 잊고 간 것으로 생각되네. 그가 거듭 그곳에 나타난 건 그것 때문이야." "그래, 다음 문제는?" "다음은 가르시아가 식사 도중에 받은 편지일세. 그건 적의 소굴에 숨어 들어가 있는 한패거리가 보낸 것일세. 그럼, 적이 살고 있는 집은 어디인가? 그것은 그 부근의 상당히 큰 저택이 틀림없는데, 그런 저택은 숫자가 뻔하지. 여기에 대해서는 이미 이야기한 바가 있었다고 생각하네. 나는 이 마을에 와서 매일 산책을 하며 지내고, 식물 채집을 하면서 그럴 듯한 저택을 정찰하며 거기에 사는 주인의 내력을 조사해 보았네. 그 결과, 한 저택이 내 주의를 몹시 끌더군. 하이 게이블 이라는 오래 된 저택으로, 옥스숏으로부터 1.5km, 살인 현장에서 1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곳이네. 다른 저택에 살고 있는 사람은 극히 평범하고 건실한 사람들로 어두운 범죄와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하이 게이블 저텍의 핸더슨 씨는 아무리 보아도 비정상적이고, 무슨 비밀을 지니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네. 그래서 나는 그 집에 주의를 집중시켰지. 모두가 별난 사람들이더군. 와트슨, 그 중에도 가장 심상치 않은 자가 주인이었네. 그럴 듯한 구실을 만들어 간신히 만나보았는데, 그의 검게 푹 꺼진 눈을 바라보니 왠지 오금이 저려 오더군. 50이 넘은 당당한 몸집을 한 남자로, 머리는 희끗 희끗 하지만 눈썹을 검고 짙으며, 방안을 서성이는 폼이 사슴처럼 민첩하고, 그의 태도는 황제처럼 위험이 가득하더군. 검게 탄 얼굴에 불꽃처럼 격렬한 정신을 가지고 있는 듯했네. 그는 외국인이 아니면, 열대 지방에서 오래 생활한 사람으로 짐작되었지. 한편, 그의 친구이자 비서인 루카스는 틀림없는 외국인으로, 살갗은 초콜릿 색이었네. 여간내기가 아닌 모양인지, 고양이처럼 부드럽지만 독기를 품은 얼굴을 하고 이야기를 하더군. 와트슨, 이로써 우리는 두 패의 외국인들과 맞부딪치게 된 걸세. 한 패는 위스터리아 별장에 있었고, 다른 한 패는 하이 게이블 저택에 있었네. 이렇게 해서 의문은 한 겹 더 벗겨지는 것이 되는 걸세. 핸더슨과 루카스는 아주 밀접한 사이로 보였고, 집주인 핸더슨 에게는 열한 살과 열세 살 된 딸이 있었네. 그 애들의 가정교사로는 버넷이라는 40세 가량의 영국인 여자가 있고, 그 밖에 하인이 세 명---이상이 그 집의 식구 모두였네. 핸더슨은 여행을 좋아하는지, 늘 여행을 하는 모양이었네. 그가 거의 1년에 가까운 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것이 불과 2-3주 전이라고 하더군. 그리고 핸더슨은 어마어마한 부자로,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가능한 사람인 모양이더군. 이상의 내용을 나는 마을 사람들의 말과 나의 관찰로 알아냈네. 집에서 쫓겨나 그 집의 주인을 원망하는 하인이야말로 그 주인에 관한 일을 캐내기에 안성맞춤이네. 다행히 그런 사람을 하나 찾아냈지. 하이 게이블 저택의 정원사였던 존 워너인데, 헨더슨의 비위를 건드려 쫓겨난 것을 알아냈던 것일세. 하이 게이블 저택에는 워너의 친구가 아직도 일하고 있는데, 하인들은 모두가 헨더슨을 두려워 하고 싫어하는거야. 이로써 나는 그 집의 비밀을 푸는 열쇠를 손에 쥐게 된 셈이었지. 워너의 말에 의하면, 하이 게이블 저택은 두 채의 집으로 되어 있는데, 작은 쪽을 하인들이, 큰 쪽을 자기네들이 쓰고 있다네. 두 채 사이에는 아무런 연결도 없으며, 가족의 식사는 반드시 출입구까지 운반되는데, 그것이 유일한 연락 장소로 되어 있네. 가정교사와 아이들은 거의 외출하는 일이 없으며, 헨더슨은 결코 혼자서는 나돌아다니지 않는 모양일세. 살갗이 검은 비서가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는 거 야.그런데 하인들이 보는 바로는 주인은 뭔지 몹시 겁을 내는 것 같다고 하네. 워너는 '그 양반은 돈을 받고 영혼을 악마에게 팔아 넘긴 터라, 그 악마가 찾아오는 것이 두려워서 늘 겁을 집어먹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요.' 라고 말하더군. 헨더슨이 어디에서 왔는지, 어떤 인물인지 아는 사람은 없네. 무척 성격이 거칠어서, 마채찍으로 두 번 사람을 매질한 일이 있는데, 충분한 돈으로 배상을 해 주었기에 간신히 재판까지는 가지 않았다더군. 자, 와트슨. 이 새로운 정보에 근거를 두고 상황을 판단해 보기로 하세. 그 편지는 이 묘한 집에서 온 것으로, 사전에 계획했던 일을 실행에 옮기도록 가르시아에게 내통한 것으로 여겨도 무방할 걸세. 그러면 그 편지를 쓴 사람이 누구일까? 헨더슨 가까이에 있는 여자라고 하면 가정교사인 버넷 부인밖에는 없네. 버넷 부인이 그 편지를 썼다면, 그녀는 가르시아와 한 패로 공모자가 틀림없겠지. 그렇다면 가르시아가 살해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 어떤 행동을 취할까? 가르시아가 불법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을 때 살해되었다면, 버넷 부인은 입을 다물고 있을 걸세.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가르시아를 죽인 사람에 대하여 원한을 품고, 복수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일을 하려 들 것이 틀림없네. 그렇다면 버넷 부인을 만나 이용해 볼 수는 없을까? 제일 먼저 내가 생각한 것은 그것이었네. 하지만 거기에서 이상한 사실에 부딪히게 되었네. 버넷 부인은 살인사건이 있었던 날 밤부터 한번도 모습을 나타낼 일이 없다는게 아닌가. 살아있는 건지, 아니면 그 날 밤 가르시아와 마찬가지로 목숨을 잃었는지....또는, 갇혀 있는지 알 수가 없다는 말일세. 우리가 부딪쳐 있는 상황이 극히 어렵다는 것은 이것으로 이해가 가나, 와트슨? 체포 영장이나 가택 수색을 해도 증거가 될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어. 우리의 추측이나 상상을 치안판사에게 이야기해 봤자, 근거도 없는 이야기로 비웃음만 살게 뻔하거든. 그 여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는 이유가 되지 않는 걸세. 그 묘한 집에서는 주인도 몇 달이고 행방을 감추니 말이야. 어쨌거나, 버넷 부인이 살해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모진 고생을 하고 있을 걸세.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그 집을 주목하고, 우리 편의 스파이인 워너로 하여금 그 집 문 앞을 감시하게 하는 것이 고작일세. 이런 소극적인 방법으로는 아무런 결론을 내릴 수도 없는 일이고, 법률이 손을 쓸 수 없다면 우리 스스로 뛰어들 수밖에 없는 일이 아니겠나." "그래, 뭘 하자는 겐가?" "나는 버넷 부인의 방을 알고 있네. 별채의 지붕으로 들어갈 수가 있지. 오늘밤, 자네와 둘이서 수수께끼의 진상을 알아보러 갈까 하네." 솔직히 말해서, 이건 별로 마음이 내키는 일은 아니었다. 살기가 감도는 낡은 저택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서운 사람들이 도사리고 있어서 잘못 가까이 갔다가는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르거니와, 법률적으로도 우리는 불리한 입장에 서는 것이다. 하지만 홈즈의 냉철한 추리에 따라 사태를 생각해 보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하는 방법밖엔 다른 도리가 없다는 것은 확실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홈즈의 손을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산 페드로의 호랑이 하지만 우리는 그런 모험을 치르지 않아도 되었다. 해가 지는 오후 5시경, 어떤 남자가 흥분한 얼굴로 방에 뛰어들었다. "놈들이 떠났습니다. 홈즈 씨. 막차로 말입니다. 그런데 그 여자분이 도망치기에 마차로 모셔왔지요." 남자는 하이 게이블 저택을 감시하던 워너였다. 홈즈가 펄쩍 뛰며 소리쳤다. "그거 다행이군! 이제 수수께끼는 풀리게 됐어." 달려나가 보니 마차 안에 한 여인이 축 늘어져 있었다. 초췌한 모습으로 보아 말할 수 없는 시달림을 받았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숙였던 고개를 들어 멍한 눈을 우리에게 돌렸을 때, 회색빛 눈의 동공이 검은 점으로 움츠려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편을 먹인 것이리라. 워너가 말했다. "홈즈 씨,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문 앞을 감시하고 있는데 마차가 달려나오더군요. 저는 역까지 뒤따라가 보았습니다. 이 부인은 마치 술 취한 것 같았는데, 놈들이 기차에 태우려 하자 갑자기 정신이 드는 모양이었습니다. 모두가 기차 안으로 밀어 넣으려 했으나 부인은 발버둥쳤고, 나는 부인의 편을 들어 마차에 태 우고 모셔온 것입니다. 부인을 낚아채올 때, 떠나는 그 기차에서 노려보던 놈의 무서운 얼굴은 당분간 잊지 못할 것 같구먼요. 헨더슨, 그 악마가 노려보면 소름이 끼치거든요." 우리는 버넷 부인을 업어서 2층으로 올려가, 소파에 뉘고 진한 커피를 두 잔 마시게 했다. 그제야 부인의 마약 기운이 가라앉고, 비로서 정신을 가다듬는 것 같았다. 홈즈는 급히 사람을 보내어 베인스 경감을 오게 하여 대충 사태를 설명해 주었다. 경감은 홈즈의 손을 덥석 잡고 말했다. "내가 잡으려고 했던 증거를 잡으셨습니다. 나 역시 처음부터 당신이 뒤쫓던 사냥감을 노렸습니다." "뭐라고요? 경감도 헨더슨을?" "놀라실 것 없습니다. 홈즈 씨. 당신이 하이 게이블 저택의 풀섶을 기어 다니고 있을 때, 나는 나무 위에 올라앉아 당신을 내려다보고 있었으니까요. 누가 먼저 증거를 잡느냐의 경쟁이었지요." "그럼 무엇 때문에 그 거인을 체포했습니까?" 베인스는 씩 웃었다. "나는 헨더슨이란 사람이 자기에게 혐의를 두었다고 생각하면 꼬리를 내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엉뚱한 거인을 체포해서, 경찰은 그 자를 범인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믿게 하려 한 거지요. 그래야 놈들은 안심하고 멀리 달아날 생각을 하고, 또 그래야만 버넷 부인을 증인으로 확보할 기회가 있을 것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홈즈는 경감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당신은 경찰계에서 곧 출세할 겁니다. 탐정으로서의 본능과 직감력이 예민하니까요." 베인스 경감이 기쁜듯이 약간 얼굴을 붉혔다. "최근에 사복 형사를 계속 역에 배치해 두었습니다. 하이 게이블 저택의 일당이 어디로 가든, 그 뒤를 밟게 할 생각이었지요. 그때 당신 부하가 버넷 부인을 낚아채 감으로써 만사는 잘 풀렸습니다. 버넷 부인의 증언 없이는 그들을 체포할 수 없으므로, 부인의 진술서는 속히 받아야겠습니다." 홈즈는 가정교사 쪽을 흘끗 바라보고는 말했다. "곧 기운을 차릴 겁니다. 그런데, 경감. 그 헨더슨은 어떤 인물입니까?" "'산 페드로의 호랑이'라고 알려진 '돈 무릴로'입니다." '산 페드로의 호랑이'란 아메리카 대륙의 중간에 위치한 서인도 제도의 아이티 섬 산 페드로 지방의 독재자로, 주민들이 악마처럼 두려워했던 인간이다. 성격이 난폭하고 겁을 모르는 이 사나이는, 10여 년에 걸쳐 무자비한 힘으로 주민을 탄압하여 막강한 권세를 누렸다. 그러나 너무나 가혹한 정치에 시달린 주민들은 마침내 독재자 돈 무릴로에 대한 반항 운동을 벌였다. 하지만 그는 꽤나 교활하기도 해서, 더 이상 주민을 억누를 수 없다고 판단하고서는, 미리 빼돌린 재산을 배에 싣고 탈출했다. 그런 줄도 모르고 궁전을 습격한 반항군은 이미 궁전이 텅 비어 있는 것을 알았다. 돈 무릴로는 물론, 그의 두 딸과 심복인 비서는 감쪽같이 빠져 나가고 없었던 것이다. 베인스 경감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산 페드로의 호랑이' 돈 무릴로 그 사람입니다. 산 페드로의 국기는 그 편지에도 있다시피 녹색과 백색입니다. 헨더슨이라는 가명을 썼지만, 나는 그 자의 발자취를 따라 로마, 마드리드, 바르셀로나를 더듬어 보았습니다. 그 자의 배는 1886년에 바로셀로나에 입항했더군요. 주민들은 복수를 위해 계속 그 자를 추적했는데, 근래에 와서 비로소 그가 숨은 곳을 알아낸 겁니다." 버넷 부인은 어느 틈 엔가 몸을 일으켜 열심히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그 자를 찾아낸 것은 1년 전입니다. 그전에도 한 번 암살 계획이 실천에 옮겨진 일이 있으나, 악마에게라도 보호를 받는 듯 돈 무릴로는 위기를 넘겼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 정의감에 불타는 용감한 가르시아 씨가 암살을 계획했으나, 그 자는 죽음을 면하고 오히려 가르시아 씨가 살해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투사가 뒤를 이어 언제고 그자에게 국민의 복수를 하고 말 것입니다. 그것은 또다시 태양이 뜨는 것처럼 틀림없는 일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버넷 부인의 초췌한 얼굴은 격한 증오심으로 창백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홈즈가 물었다. "하지만, 부인은 어째서 이 사건에 관여하게 되었는지요. 당신은 영국인인데 왜 이 피비린내 나는 복수극에 말려들었는지 궁금합니다." "내가 이 사건에 관여하게 된 것은 정의를 위해서 입니다. 그 독재자는 몇 년 전 산 페드로에서 국민의 피를 강물처럼 흘리게 하고, 배에 가득히 재물을 싣고 도망쳤습니다. 거기에 대해 영국의 법률은 무슨 조치를 취했습니까? 당신들은 그런 일은 다른 별나라에서의 일처럼 무관심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슬픔과 고통을 받으며 진실을 배웠습니다. 지옥에서조차도 돈 무릴로와 같은 악마는 없을 겁니다. 그 자에게 희생된 사람들이 복수를 부르짖는 한, 우리는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홈즈가 다시 물었다. "돈 무릴로가 잔혹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라는 것은 소문으로 들어 알고 있습니다만, 부인은 어떤 학대를 받았다는 겁니까?" "말씀드리지요. 그 악당은 장차 자기에게 장애가 될 만한 사람은 어떻게 하든 구실을 붙여 죽여 버렸습니다. 내 본명은 빅토리아 두란도라고 합니다. 남편은 산 페드로의 런던 공사였지요. 나는 남편과 런던에서 알게 되어 결혼했습니다. 이 세상에 그분만큼 훌륭한 인격자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무릴로는 남편을 괴롭히고는 온갖 구실을 만들어 본국으로 소환하여 사살해 버렸습니다. 남편은 자기의 운명을 짐작하고, 나를 본국으로 데리고 가지 않았습니다. 남편의 재산은 몰수되고, 나에게 남은 것은 슬픔뿐이었습니다. 마침내 돈 무릴로가 몰락하는 날이 왔습니다. 그리고 아까 말한 것처럼 그는 비열하게 도망쳤습니다. 하지만 그 악마에게 학대받은 사람들이 가만히 놔 둘 리가 없지요. 그들은 뜻을 모아 비밀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무릴로에게 복수하기로 결의했습니다. 무릴로가 헨더슨으로 가장한 것을 이 단체에서 밝혀 내자, 나는 그 자의 동태를 감시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그리고 운 좋게 그의 딸들을 위한 가정교사로 그의 집에 들어가는 데 성공한 겁니다. 돈 무릴로는 매끼 식사 때마다 나와 얼굴을 마주쳤습니다만, 내가 자기가 죽인 남자의 아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겁니다. 나는 무릴로에게는 태연스럽게 대하고 아이들에게는 내가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면서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파리에서도 한 번 암살을 꾀했습니다만 실패하고 말았지요. 무릴로 일가는 추적자의 눈을 속이기 위해, 유럽 여러 곳을 옮겨 다니다가 은밀히 하이 게이블 저택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집은 무릴로가 영국으로 도망 왔을 때 사둔 집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도 우리 쪽 동지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산 페드로의 고관의 아들이었던 가르시아가 무릴로가 이곳에 돌아올 것을 알고, 충실한 동지 두 사람과 함께 위스터리아 별장을 세내어 복수의 기회를 엿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가르시아는 낮에는 손을 쓸 수가 없었죠. 온갖 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서인 루카스는 산 페드로에서는 살인마 로페스라는 이름으로 통했는데, 무릴로는 심복인 그 로페스의 경호 없이는 결코 외출을 하지 않았지요. 하지만 밤에만은 무릴로도 혼자 잡니다. 어느 날 밤, 미리 짜둔 계획에 따라 내가 가르시아에게 최후의 신호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무릴로는 늘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고 자주 침실을 바꾸기 때문입니다. 내가 문이 열려 있는지를 알리고, 마차길 쪽으로 난 창문에 녹색과 백색 등불로 신호를 보내서 안전한지, 아니면 계획을 연기할 것인가를 알려주기로 되어 있었던 겁니다. 그러나 만사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나는 이미 교활한 비서인 로페스의 의심을 받고 있었던 겁니다. 로페스는 내가 편지를 쓰고 있는 것을 엿보고 있다가, 내가 편지를 다 쓴 순간 덮쳤지요. 로페스는 나를 무릴로의 방으로 끌고 갔습니다. 두 악당은 그 자리에서 나를 찔러 죽이려고 했지만, 여러 가지로 뒷처리가 곤란하다는 것을 알고는, 우선 가르시아를 살해하기로 합의를 본 겁니다. 두 사람은 나의 팔을 비틀고 가르시아의 거처를 자백시켰습니다. 그것이 가르시아에게 어떤 위험이 닥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팔이 부러져도 실토를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만, 그 괴로운 고문을 당해 낼 수가 없었습니다. 로페스는 내가 쓴 편지를 봉투에 넣고 커프스 버튼으로 봉인을 한 다음, 하인인 호세에게 주어 보냈습니다. 무릴로가 어떤 방법으로 가르시아를 죽였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로페스는 남아서 나를 감시했으니, 직접 살인을 한 것은 무릴로였을 겁니다. 무릴로는 가르시아가 후미진 오솔길을 걸어올 때까지 덤불 속에서 몸을 숨기고 기다렸다가 뒤에서 습격했을 겁니다. 처음에는 가르시아를 집안으로 들어오게 해서 강도를 살해한 것으로 가장하려 했으나, 경찰이 개입하면 자기들의 신분이 들어 나고, 오히려 앞으로 습격을 쉽게 받을지도 모른다는 결론을 내렸던 것이지요. 나는 골방에 갇혀서 무수한 학대를 받았습니다. 보시다시피 어깨에는 칼자국이 있고, 팔다리는 멍이 들어 감각이 없습니다. 식사는 간신히 목숨을 이어갈 만큼만 주더군요. 그렇게 닷새가 지났어요. 그러다가 어제 오후, 오래간만에 음식을 잔뜩 먹게 해 주더군요. 하지만 곧 거기에 마약이 들어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몽롱한 의식 속에 역으로 끌려갔던 일을 기억합니다. 나는 기차에 올라타려는 순간, 지금밖에 도망 갈 기회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필사적이었습니다. 무릴로는 강제로 나를 차 안으로 끌고 들어가려 했으나, 여기에 계신 이 친절한 분이 막 움직이는 기차의 승강구에서 나를 구해 준 겁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지 모릅니다." 우리는 부인의 놀라운 이야기에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먼저 입을 연 것은 홈즈였다. "문제는 아직 해결된 것이 아닙니다. 경찰의 일은 이걸로 끝났지만, 이제부터는 재판소의 일이 시작되어야 합니다." 내가 말했다. "흠, 말재주가 교묘한 변호사라면 가르시아를 죽인 것을 정당방위로 우길 수 있겠는걸. 그들에게는 과거의 무수한 범죄가 있었겠지만, 이곳 영국에서 재판에 걸 수 있는 것은 이번 사건 뿐이잖나." 베인스 경감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법이라는 것이 그렇게 만만치는 않습니다. 정당방위라는 것이 있기만 하지만, 살해할 목적으로 유인한다는 것은 비록 자신의 목숨이 위험하다고 해도 범죄가 성립됩니다. 이번 길드퍼드의 순회 재판에서 하이 게이블 저택의 일당을 재판하게 된다면, 그런 주장이 먹혀들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산 페드로의 호랑이'는 법의 심판을 받지 않았다. 교활하고 대담한 무릴로와 로페스는 경찰을 따돌리고 런던의 뒷문을 통해 감쪽같이 영국을 빠져 나갔다. 그 뒤 6개월 가량 지나, 마드리드의 에스쿠리알 호텔에서 몬탈바 후작과 그의 비서인 롤리라는 사람이 살해되었다. 범행은 혁명당원이 한 것으로 추측되었으나, 끝내 범인은 체포되지 않았다. 베인스 경감은 일부러 베이커 가를 찾아와 그 후작과 비서의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그것은 틀림없는 무릴로와 로페스의 얼굴이었다. 늦기는 했으나 마침내 정의의 심판이 내려진 것이다. "정말 얽히고 설킨 사건이었네. 와트슨. 두 대륙이 관계되고, 두 패의 정체 모를 외국인이 등장하고, 게다가 전형적인 영국신사 에클스 씨가 조역으로 출연하는 바람에 일이 더욱 복잡해졌지. 그 신사를 끌어들인 것으로 보아, 죽은 가르시아가 철저하게 일을 계획하여 자신을 지킴으로써, 범인이 누구라는 것을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기려 한 것을 알 수 있네. 이번 사건에는 여러 가지 의문이 밀림처럼 얽혀 있었지만, 그 명석한 베인스 경감의 협력으로 사건의 핵심을 놓치지 않고 구불 구불한 미로를 더듬어 갈 수가 있었네. 뭐 달리 납득이 가지 않는 점이 있나?" "그 거인 요리사가 되돌아온 이유가 뭘까?" "부엌에 있던 그 묘한 미라 같은 물건을 가져가기 위해서 였겠지. 그 거인은 산 페드로의 원주민으로, 자신의 미신적인 수호신 같은 것이었을 게야. 동료와 함께 미리 정해 둔 은신처로 도망 갈 때, 그만 잊고 갔던 걸세. 그래서 그는 밤에 다시 숨어 들어갔다가 윌터스 경관에게 들켰고, 사흘 뒤에는 끝내 베인스 경감 의 덫에 걸리고 말았던 것일세. 그리고 부엌에서 발견된 죽은 수탉이나 양의 피는 그들의 관습에서 나온 거사 전의 의식에 쓰이는 속죄양 같은 것이 아니었나 생각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