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의 나폴레옹 정신 병자의 짓인가? 레스트레이드 경감은 날씨라든가 신문에 난 기사에 대해서 띄엄띄엄 이야기를 하더니, 갑자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홈즈가 이렇게 물었다. "경감, 아무래도 골치 아픈 사건이 있는 것 같아 보이는군요?" "아니, 뭐 그리 대단한 사건은 아닙니다." "그래도 속 시원히 말이나 해보십시오." 홈즈가 웃으면서 재촉했다.. "그럼, 이야기하지요. 그런데 아무래도 홈즈 씨에게는 너무 시시한 사건 같아서요. 이런 일로 당신에게 수고를 끼치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건이 하찮기는 하지만 정말 이상한 점이 많이 있답니다. 기묘한 사건이라면 당신이 매우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까 이야기만은 해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우리보다는 저기 계시는 와트슨 선생에게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무슨 병과 관계가 있는 사건입니까?" 하고 내가 옆에서 물었다. "정신 병자가 저지른 것이 틀림없거든요. 그것도 아주 이상한 정신 병자입니다. 나폴레옹을 몹시 미워하는지 그의 흉상만 골라서 부숴 버리는데,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 하는 짓이라고는 볼 수 없지 않겠습니까?" "흠, 역시 내가 나설 일은 아닌 것 같군요." 홈즈는 앞으로 내밀고 있던 몸을 다시 의자 등에 기대면서 말했다. "예, 그래서 내가 와트슨 선생에게 잘 어울리는 사건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말입니다. 그 녀석이 나폴레옹 흉상을 부수려고 밤에 남의 집으로 들어갔다면 이것은 경찰이 처리해야 할 사건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을 훔치러 남의 집에 들어갔단 말인가요? 이것 참 재미있게 되어가는군.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를 해주십시오." 홈즈가 다시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레스트레이드 경감은 수첩을 꺼내어 거기에 적어 놓은 것을 보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맨 처음에 신고가 들어온 것은 나흘 전이었습니다. 케닝턴 거리에서 그림과 조각을 파는 모스 허드슨이라는 가게에서 주인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가게 안 에서 '퍽퍽'하는 물건 깨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주인이 급히 달려가 보았더니 진열해 둔 몇 가지 석고상 중에서 나폴레옹 흉상만 산산조각이 나 있었던 것입니다. 주인이 급하게 밖으로 나가서 이러 저리 둘러보았습니다. 그러자 길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조금 전에 가게에서 수상한 남자가 나오는 것을 보았다고 알려 주었답니다. 그러나 그 녀석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습니다. 석고상이래야 겨우 2-3실링짜리이기 때문에 별로 크게 생각하지 않고 순찰 중인 경관에게만 보고를 했습니다. 그러나 경관도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지 그대로 흐지부지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홈즈 씨, 그 다음이 좀 이상야릇합니다." "저런!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바로 어젯밤에 일어난 일입니다만,이번에도 케닝턴 거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모스 허드슨 가게에서 겨우 몇 백 m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바니컷이라는 의사가 살고 있습니다. 그는 템스 강 남쪽에서는 제일 가는 의사이고, 거기에서 3km쯤 떨어진 브릭스턴 거리에도 병원을 가지고 있는 아주 유명한 의사입니다. 그런데 바니컷 박사는 나폴레옹을 몹시 존경해서 집에다 나폴레옹에 관한 책과 그림, 그리고 기념품을 많이 모아 두고 있습니다. 박사는 며칠 전에 바로 그 모스 허드슨 가게에서 나폴레옹 흉상 2개를 사서 하나는 케닝턴 거리에 있는 집에다 놓고, 또 하나는 브릭스턴 거리에 있는 병원에 다 놓아 두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바니컷 박사가 침실에서 내려오다 보니 홀에 진열해 놓은 흉상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없어진 물건은 나폴레옹 흉상뿐이고, 다른 값비싼 물건에는 손도 대지 않았더랍니다. 집안을 샅샅이 조사해 보았더니 그 흉상은 산산조각이 나서 정원 담 근처에 흩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경감은 잠시 숨을 돌리면서 홈즈의 얼굴을 슬쩍 쳐다보았다. 홈즈는 두 손을 계속 비벼 대면서, "보기 드문 사건이군." 하고 말하면서 매우 재미있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틀림없이 홈즈 씨가 매우 재미있어할 것이라고 짐작은 하고 있었습니다.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경감은 신이 나는지 목소리를 높여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오늘 낮에 박사가 브릭스턴 거리에 있는 병원으로 가 보았더니, 그곳도 누군가가 밤중에 창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난로 선반 위에 있었던 흉상을 가루로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세 가지 사건을 보아서는 범인이 누구라고 전혀 짐작할 수가 없습니다." "흐음, 확실히 기묘한 사건이로군요. 그런데 바니컷 박사의 집과 병원에서 부서진 흉상은 둘 다 모스 허드슨 가게의 것과 똑같은 모양입니까?" "그렇습니다. 모두 똑같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흉상을 부순 사람은 반드시 나폴레옹을 미워하기 때문에 저질렀다고는 말할 수 없겠는데요! 런던에는 나폴레옹의 흉상이 몇 천 개나 있을 텐데 그중에서 어느 특정한 모양의 것만 노렸다면, 이것은...." "우리도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부근에서 나폴레옹 흉상을 팔고 있는 곳은 모스 허드슨 가게뿐입니다. 게다가, 최근 2-3년 동안 그 가게에 있었던 나폴레옹 상은 아직 그 3개뿐입니다. 그러니까 그 부근에 나폴레옹 상은 오직 그 3개밖에 없는 것입니다. 만일, 그런 짓을 저지른 미친 사람이 그 부 근에 살고 있다면 먼저 가까이에 있는 것부터 부수기 시작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단순히 정신 병자라면 어떻게 그 흉상이 있는 곳을 알아냈는지 궁금하군요." "그럼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내가 옆에서 끼어 들었다. "무슨 특별한 생각은 없네. 그런데 이 사람의 행동을 보면 한 가지 일정한 방식 같은 것이 있네. 예를 들면 바니컷 박사의 집에서는 식구들이 잠이 깨면 곤란하니까 뜰로 가지고 나가서 부수었네. 그런데 병원에서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바로 그 자리에서 부수지 않았는가? 이런 것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겠지만 뜻밖에 사건을 해결하는데 큰 도움을 줄 수도 있네. 하여튼, 레스트레이드 경감, 이 사건에 대해서 새로운 것을 알게 되면 꼭 연락해 주십시오. 웬일인지 나는 이번 일이 아주 재미있게 전개될 것 같습니다." 이상한 살인 다음날 아침, 내가 겨우 잠에서 깨어났을 때 홈즈가 허둥지둥 달려왔다. 손에는 전보를 들고 있었다. - 켄징턴 구 피트 거리 131번지로 즉시 오시오... 레스트레이드 - "도대체 무슨 일일까?" 나는 잠에서 완전히 깨어나지 않은 멍청한 눈을 비비면서 물었다. "모르겠네. 나폴레옹 사건이 또 일어났는지도 모르지. 만일 그렇다면 범인은 터무니없이 먼 곳으로 장소를 옮겼군. 하여튼 서둘러 외출 준비를 하게. 아무래도 급한 일이 생긴 것 같네." 우리는 30분쯤 뒤에 그 피트 거리에 도착했다. 피트 거리는 런던 번화가에서 조금 벗어난 곳으로 제법 큼직한 집들이 늘어서 있는 주택가이다. 도착해보니 집 앞의 난간에 사람들이 몰려서 지하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홈즈가 좀 놀란 얼굴로 내게 말했다. "저런! 살인사건이라도 있었나 보군. 그렇지 않다면 웬만한 일로는 서성거리지 않는 런던의 우체부가 저 속에 섞여 있을 리가 없어. 사람들이 몸을 잔뜩 구부리고 목을 쑥 잡아 빼고서 내려다보는 모습을 보게. 틀림없이 살인사건이 일어난 것이네. 게다가 다른 돌계단은 모두 말라 있는데 맨 위의 것만 물로 씻은 흔적이 있잖아. 음, 저기에 레스트레이드 경감이 있군. 곧 경감에게 자세히 설명을 들을 수 있겠지." 레스트레이드 경감은 매우 침착한 태도로 우리를 맞이했다. 경감의 안내로 우리는 그 건물의 거실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머리가 텁수룩한 중년 남자가 플란넬 실내복을 입은 채, 이리저리 정신 없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가 바로 이 집주인으로서 중앙 통신사 기자인 호레이스 하커라는 사람이었다. "또 나폴레옹입니다." 레스트레이드 경감이 중얼거렸다. 경감은 이젠 진절머리가 났는지 얼굴에는 아주 괴롭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살인까지 저질렀습니다. 하커 씨, 이분들에게 설명을 해드리시지요." "나도 남의 일을 기사로 쓰는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이렇게 내 일을 기사로 쓰려니까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더구나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모두 설명을 해주어야 하니 모처럼의 뉴스가 낡아 빠지게 될 것 같아도 무지 마음이 내키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홈즈 씨에게는 처음부터 모조리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대신, 기묘한 이 사건을 꼭 해결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커 기자는 심각한 얼굴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문제는 아마 네 달 전에 산 나폴레옹 흉상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 흉상은 하이 거리의 역 부근에 있는 하딩 형제 가게에서 산 아주 값싼 물건입니다." "음, 앞의 셋은 모스 허드슨 가게에서, 그리고 이번에는 하딩 형제의 가게에서라는 말이군." 홈즈가 머릿 속을 정리하고 있는 듯이 혼자서 중얼거렸다. 하커 기자가 말을 이었다. "아시다시피 나는 직업상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해야 합니다. 지난 밤에는 나는 2층 구석에 있는 서재에서 기사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새벽 3시쯤이었나, 밑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나이 탓인가 보다 하고 다시 일을 계속했습니다. 그런데 5분쯤 지나자 갑자기 끔찍한 비명이 들렸습니다. 나는 등골이 오싹 해졌습니다. 그 순간은 정말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하커는 침을 꿀꺽 삼키고 잠시 숨을 가다듬었습니다. "나는 너무 무섭고 몸이 떨려서 의자에서 꼼짝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래층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매우 궁금했어요. 그래서 무서움을 꾹 참고 난로의 석탄을 젓는 쇠막대기를 꼭 쥐고는 살금살금 아래층으로 내려갔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면서 조심조심 걸어갔지요. 그러다가 이 방으로 들어와 보니까 창문이 활짝 열려 있고 난로의 선반 위에 놓아 둔 흉상이 없어진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나는 그렇게 하찮은 물건을 훔쳐 가다니 정말 얼빠진 도둑이라고 생각하면서 방을 나와서 현관으로 가 보았습니다. 조금 있다가 보시면 알게 될 것입니다만, 이 방의 창틀에서 다리를 죽 뻗으면 현관으로 올라오는 돌계단에 발이 닿습니다. 도둑도 아마 그렇게 해서 방안으로 들어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현관 문을 열고 깜깜한 밖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나는 뭔가 물컹한 것에 걸려서 하마터면 넘어질뻔 했습니다. 급히 불을 밝히고 살펴보니 놀랍게도 그것은 남자의 시체가 아니겠습니까? 그는 목이 깊숙하게 찔려서 그 주위가 온통 피바다였습니다. 한쪽 무릎을 세우고, 입을 크게 벌리고 똑바로 누워 있는 그 모습은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칠 정도였습니다. 나는 정신없이 방범용 호루라기를 불고는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홀에 눕혀 있고 옆에는 경관 한 사람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허어! 그러면 피살된 남자의 신원은 밝혀졌습니까?" 홈즈가 레스트레이드 경감에게 물었다. "그에게는 신원을 알아낼 만한 물건이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지금 시체는 경찰의 시체 안치소에 있습니다. 그는 얼굴이 햇볕에 그을려 거무스름하고 체격이 건장한 남자입니다. 나이는 아직 서른 살도 안 된 것 같습니다. 옷차림은 그렇게 깨끗하고 단정하지는 않았지만,노동자는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의 옆에는 뿔로 된 자루가 달린 칼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칼이 범인이 버린 것인지, 아니면 죽은 사람의 것인지는 아직 모릅니다. 입은 옷에는 이름이 쓰여 있지 않았고, 주머니 속에는 사과 한 개,실, 싸구려 런던 시 지도, 그리고 사진 한 장이 들어있었습니다. 바로 이 사진입니다." 홈즈는 사진을 받아 들고 한참동안 들여다보았다. 그것은 작은 사진기로 찍은 사진이었다. 사진에 있는 사람은 눈썹이 짙으며, 원숭이처럼 얼굴의 아래쪽에 살이 많이 쪘고, 몹시 교활해 보였다. "하커 씨도 본 적이 없답니다." 하고 경감이 말했다. "그런데 그 흉상은 어떻게 되었나요?" 홈즈는 계속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물었다. "조금 전에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여기서 별로 멀지 않은 캠프턴 하우스 거리에 있는 어느 빈집 뜰에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있답니다. 지금 그리로 가려던 참인데, 같이 가 보시겠습니까?" "그랬으면 좋겠습니다만, 먼저 여기부터 자세히 조사해 보아야겠습니다." 홈즈는 창문과 현관으로 올라오는 계단 사이를 자세히 조사하기 시작했다. "범인은 유난히 다리가 길고, 매우 몸이 날랜 사람인 듯합니다. 여기서 창문으로 올라가다 자칫 잘못하면 지하실까지 굴러 떨어지고 말지요. 게다가, 여기에 서서 창틀을 짚고 창문을 열어젖히다니, 보통 사람으로서는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밖으로 나갈 때는 그렇게 어렵지는 않겠군요. 하커 씨도 부서진 흉상을 구경하러 가시겠습니까?" 맥빠진 표정을 짓고 있는 하커 기자는 의자에 걸터앉은 채로 꼼짝도 하기 싫은 모양이다. "이번 사건을 대강 기사로 써 두어야겠습니다. 물론 저녁 신문 초판에는 간단하게 기사가 실려있겠지만, 자기 집 현관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의 기사를 다른 신문사에게 뒤진다면 그야말로 체면이 안 서지요." 하커 기자가 펜으로 사그락 사르락 종이를 긁는 소리를 들으면서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부서진 나폴레옹 흉상이 발견된 곳은 하커 기자 집에서 200-300m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흉상은 마치 원수를 붙잡아서 때려 부수기라도 한 듯이 온통 가루가 되어 잡초들 사이에 흩어져 있었다. 홈즈는 몇 조각을 집어 들어서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가 흉상 조각을 살펴보는 심각한 표정으로 보아서는 아마 어떤 실마리라도 잡은 것 같았다. "어떻습니까?" 하고 레스트레이드 경감이 물었더니 홈즈는 어깨를 움츠렸다. "아직 멀었습니다. 하지만, 몇 가지 알아낸 것이 있습니다. 첫째, 이 별난 범인에게는 하찮은 흉상을 손에 넣는 것이 사람의 목숨보다도 중요했습니다. 둘째, 만일 범인의 목적이 흉상을 부수는 것 만이라면 집안에서 바로 부수거나, 집을 나오자마자 즉시 부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이런 데까지 들고 왔을까요?" "집을 나오다가 누구와 마주쳤기 때문에 이 곳까지 도망쳐 온 것은 아닐까요?" "그럴지도 모르지요. 그렇지만 이 집의 위치를 잘 살펴보십시오." 레스트레이드 경감은 당황하여 사방을 둘러보고 나서 말했다. "빈집이니까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을 테죠." "그렇겠죠. 그러나 빈집을 골라서 들어갈 생각이었다면 이 집까지 오기 전에도 빈집이 한 채 있었습니다. 흉상 같은 것을 들고 다니면 남의 눈에 띄기 쉬우므로 조금이라도 빨리 숨기고 싶은 것이 보통 사람들의 심리가 아니겠습니까?" "휴! 정말 복잡하군요. 나는 전혀 모르겠습니다." 레스트레이드 경감이 두 손 들었다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홈즈가 웃으면서 바로 머리 위에 있는 가로등을 가리켰다. "여기에 있으면 발 밑이 훤히 보입니다. 하지만 저쪽의 빈집엔 가로등이 없어 깜깜합니다. 그러니까 그 흉상을 들고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그 말도 듣고 보니 그렇군요. 바니컷 선생 댁의 흉상도 현관의 전등 근처에서 부서져 있었습니다. 홈즈 선생, 이것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요?" "우선, 내가 지금까지 한 말을 잘 기억해 두십시오, 앞으로 수사를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그건 그렇고, 레스트레이드 경감. 앞으로의 수사 방침은 어떻습니까?" "먼저 피해자의 신원을 조사하겠습니다. 이것은 쉽게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다음에는 피해자의 친구들을 조사해서 피해자가 어젯밤에 피트 거리에서 무엇을 했는가를 알아보려고 합니다. 그러면 그가 호레이스 하커 씨 댁 현관에서 누구를 만났고, 어째서 목숨을 잃었나 그 까닭을 알게 될지도 모릅니다." "좋은 방법이로군요. 나는 다른 방법으로 알아보겠습니다." "어떻게 하실 작정입니까?" "아니, 그것은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렇지만 경감의 수사에는 절대로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나중에 결과를 비교해서 부족한 것이 있으면 서로 보충하도록 합시다." "그렇게 하지요." "아, 참! 레스트레이드 경감. 피트 거리로 가시거든 호레이스 하커 씨에게 내 말을 좀 전해 주십시오. 어젯밤에 하커 씨 댁에 숨어 든 도둑은 너무나 나폴레옹을 미워한 끝에 살인까지 저지른 정신 병자로 여겨진다고 말입니다." "아니,설마 진심은 아니시겠지요, 홈즈 씨?" 레스트레이드 경감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 "글쎄올시다." 홈즈가 빙그레 웃었다. "진심일지도 모릅니다. 하여튼 그렇게 말해 주면 하커 기자도 기뻐할 것이고 중앙 통신의 독자들도 좋아할 것입니다. 자, 와트슨, 오늘은 좀 바쁘게 움직여야 할 것 같군. 아마 좀 까다로운 일을 해야 할 걸세. 아! 그리고, 레스트레이드 경감, 오늘 저녁 6시에 베이커 거리로 나오실 수 있겠습니까?" "6시에요? 무슨 일이 있더라도 꼭 가겠습니다." 하고 경감이 대답했다. "참! 그리고 시체의 주머니에서 나온 이 사진은 그때까지만 빌려 주시지 않겠습니까?" "예, 좋습니다. 그런데 오늘 저녁 6시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습니까?" "내 추리가 틀리지 않는다면, 오늘 밤에는 좀 멀리 여행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니, 여행이라고요?" "예, 그렇습니다. 그때에는 당신도 꼭 함께 가서 힘을 빌려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다시 만납시다. 당신의 수사에 행운이 함께 하기를 빌겠습니다." 나폴레옹 흉상의 출처 홈즈와 나는 하이 거리에 있는 하딩 형제 가게로 갔다. 하커가 나폴레옹 흉상을 샀다는 바로 그 가게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하딩은 오후에나 나올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만난 점원은 그 가게에서 일을 한 지가 며칠되지 않아서 잘 모르는 것 같았다. "할 수 없군. 모든 일이 내 뜻대로 척척 되라는 법은 없지. 나중에 다시 오기로 하세. 와트슨, 그럼 이번에는 케닝턴 거리의 모스 허드슨 가게로 가 보세." 홈즈는 매우 실망한 것 같았지만 그 길로 마차를 타고 케닝턴 거리로 달려갔다. 1시간쯤 뒤에 우리는 모스 허드슨 가게에 닿았다. 허드슨은 몸집이 작고 얼굴이 붉으며 매우 성격이 괴팍스러워 보였다. "예, 예. 그렇습니다. 밝은 대낮에 부랑자가 가게 안에 들어와서 멋대로 물건을 때려 부순다면 무엇 때문에 저희가 많은 세금을 다달이 내야 하는지.... 예, 바니컷 선생께서 바로 저희 가게에서 나폴레옹 흉상을 2개 사 가셨습니다. 정말 나쁜 놈입니다. 그것도 사람들이 다 보고 있는 대낮에 그런 짓을 하다니.. 예? 제가 그 흉상을 사들인 도매상 말씀이신가요? 그게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꼭 알고 싶으시다고요? 예, 예. 그건 스텝니 구 처치 거리에 있는 겔더 상회에서 사들였습니다. 겔더 상회는 이 방면에서는 오래 된 도매상이고, 저도 벌써 20년 동안이나 거래하고 있습니다. 예, 모두 3개를 사왔습니다. 2개는 바니컷 선생 댁에서, 그리고 1개는 여기서 웬 불량배가 때려 부수고 말았습니다. 이 사진에 있는 남자 말씀이신가요? 글쎄, 앗 맞습니다! 베포입니다! 이탈리아 사람인데 여기에서 얼마동안 일을 했습니다. 베포는 손재주가 아주 좋아서 조각도 할 줄 알고, 또 액자를 고치거나 자질구레한 일은 뭐든지 아주 잘합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는지 지난 주에 그만두었습니다. 그 뒤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글쎄, 어디서 왔는지는 전혀 모릅니다. 여기서 일하고 있는 동안에는 별로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여기를 그만둔 것은, 맞아요. 가게에 있는 나폴레옹 흉상이 부서지기 이틀 전이었습니다." "모스 허드슨에서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이제 다 알아냈네." 하고 가게를 나오면서 홈즈가 말했다. "우리는 이 가게와 하커 기자 사이에 베포라는 사람이 끼어 있다는 것을 알아냈네. 이 사실 하나만 해도 15km를 달려온 보람이 있지 않은가! 그럼, 와트슨. 다음에는 스텝리 구에 있는 겔더 상회로 가 보지 않겠나? 아마 그곳에서는 틀림없이 무엇인가를 알아낼 수 있을 걸세." 양장점, 호텔, 극장 등 화려한 거리를 지나서 우리는 냄새나고 지저분한 스텝니구에 도착했다. 여기는 유럽 각지에서 살기가 곤란한 사람들이 몰려와서 이루어진 마을이다. 겔더 상회는 스텝니 구 한가운데에 자리잡고 있었다. 넓은 뜰에는 기념비를 만들 돌이 어지럽게 널려 있고, 큼직한 공장 안에서는 50명쯤 되는 기술자들이 열심히 조각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겔더 상회에 도착하자 몸집이 큰 독일인 지배인이 예의바르게 우리 두 사람을 맞아 주었다. 그리고 그는 홈즈의 물음에 요령있고 정확하게 대답해 주었다. 장부를 조사해 보니, 드비느가 만든 나폴레옹 석고상의 모조품은 수백 개나 만들어졌다. 모스 허드슨 가게에 도매로 넘긴 석고상 3개는 1년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때, 똑같은 흉상 6개를 만들었는데 나머지 3개는 하딩 형제 가게에 팔았다고 했다. 이 6개가 지금까지 만든 수백 개의 석고상과 다른데가 있을 까닭이 없기 때문에, 특별히 그 6개만 골라서 부수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을 턱이 없다고 지배인이 웃으면서 말했다. 도매값은 6실링이지만 가게에서 팔 때는 12실링 이상을 받을 것이라는 말과, 또 만드는 방법은 본 2개로 오른쪽과 왼쪽을 따로따로 석고로 만든 다음, 그것을 맞붙이면 비로소 훌륭한 흉상이 된다고 했다. 이 일은 대개 손재주가 있는 이탈리아 사람이 한다. 완성된 것은 복도에 있는 탁자에 얹어 두었다가 완전히 마르면 창고에 보관한다. 지배인의 설명은 이것뿐이었다. 그런데 홈즈가 사진을 꺼내 보였더니 그 지배인은 갑자기 눈이 날카로워지면서 새빨갛게 변했다. "아니, 이놈 말씀이신가요? 잘 알다마다요. 저희들은 지금까지 한 번도 경찰에게 신세를 진 적이 없었는데, 이놈 때문에 아주 혼이 났습니다. 벌써 1년도 더 지난 일이군요. 이놈이 이 마을에서 같은 이탈리아 사람을 찌르고 경찰에게 쫓기다가 여기서 숨어 들어와 일을 하다가 공장 안에서 붙잡혔습니다. 베포라고 불리는 남자입니다. 제가 왜 이렇게 인상이 나쁜 사람을 채용했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기술 하나만은 훌륭했습니다. 정말 손재주가 뛰어난 놈입니다." "그 사건 이후로 이 사람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칼에 찔린 사람이 다행히 목숨을 건졌기 때문에 1년 정도만 형을 선고받았다고 합니다. 아마 지금쯤은 교도소에서 나왔을 겁니다. 저도 체면은 있는지 두 번 다시 여기에 나타나지는 않았습니다. 아, 그의 사촌이 여기서 일하고 있으니까 그 사람에게 한번 물어보시지요?" "아닙니다. 사촌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마십시오. 이 부탁만은 꼭 지켜 주십시오. 이번 사건은 아주 중요한 일과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당신이 장부를 조사할 때 얼핏 보았습니다만, 그 흉상이 팔린 날짜가 작년 6월 3일이더군요. 혹시 베포가 체포된 날짜는 모르십니까?" "글쎄요, 품삯 장부를 보면 대강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여기 있습니다. 베포가 마지막으로 품삯을 받은 날짜는 5월 20일 입니다." "감사합니다. 폐가 많았습니다." 홈즈는 떠나면서 우리가 찾아온 것을 절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도록 지배인에게 신신 당부했다. 우리는 공장을 나와 서쪽으로 가다가 도중에서 눈에 띄는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 켄징턴의 정신병자 살인사건! - 이라는 기사가 크게 실린 신문이 음식점 입구에 붙어 있었다. 하커 기자가 자기 집에서 일어난 사건을 기사로 쓴 것이었다. 안에 들어가서 신문을 펼쳐 보았더니 역시 중앙 통신지에다 하커 기자가 세상 사람들의 눈길을 끌도록 요란스럽게 2단을 꽉 채워 놓았다. 홈즈는 점심을 먹으면서 신문을 읽었다. "정말 재미있군. 와트슨, 들어 보게. - 이 사건에 대해서 각계 각층의 권위자들의 의견이 일치하였음은 실로 반가운 일이다. 경시청에서 가 장 유능하다는 레스트레이드 경감과 유명한 사립 탐정인 셜록 홈즈 씨는, 뒤숭숭하고 어리숙한 범행으로 보아 이번 사건은 미리 계획된 범죄가 아니라 정신병자가 순간적으로 저지른 것이라고 똑같이 결론 지었다. - " 와트슨, 신문이란 것은 잘만 이용하면 꽤 쓸모가 있다네. 그럼, 다시 하딩 형제 가게로 가 보세." 하딩 형제 가게의 주인은 태도가 분명하고 말솜씨가 훌륭했으며 무척 똑똑해 보이는 남자였다. "그 사건이라면 저녁 신문을 보아서 알고 있습니다. 하커 선생님은 저희 가게의 단골이며, 그 나폴레옹 흉상은 꽤 오래 전에 팔았습니다. 그것은 스텝니 구에 있는 겔더 상회에서 한꺼번에 3개를 사들였는데 모두 팔았습니다. 사 가신 분들 말씀인가여?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매상 장부를 조사해 보겠습니다. 아, 여기 있군요. 하커 씨와, 치즈윅 구 레버넘 베일에 있는 레버넘 별장의 브라운 씨, 그리고 레딩 시 글로브 거리에 사는 샌드퍼드 씨가 사가셨습니다 '예? 이 사진의 남자요? 글쎄, 잘 모르겠는데요. 얼핏 보아도 쉽사리 잊을 얼굴은 아니군요. 이탈리아 사람들 말씀이십니까? 청소부로 일하고 있는 사람이 몇 명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장부를 볼 마음만 있다면 이 따위 장부는 아무라도 훔쳐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엄중하게 챙겨 둘 만한 것은 아니니까요 이번 사건은 정말 어렵겠군요' 제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주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홈즈는 수첩에다 계속 뭔가를 적었다. 홈즈는 자기 생각대로 일이 잘 되어가는지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딩 형제 가게 주인과 헤어져서 우리는 급히 베이커 거리의 홈즈 하숙집으로 돌아왔다. 레스트레이드 경감은 기다리다 지쳐서 이리저리 서성이고 있었다. "여어, 잘 되어갑니까, 홈즈 씨?" "예, 그럭저럭....정말 바쁜 하루였습니다. 우리는 하딩 형제 가게와 모스 허드슨 가게, 그리고 흉상을 만드는 공장에 가서 그 나폴레옹 흉상이 어떻게 팔렸는지를 알아보았습니다." "흉상 말씀입니까? 글쎄....그것이 수사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나는 피해자의 신원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이건 아마 수사에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아, 그러셨습니까?" "신원뿐만이 아니고 살해된 동기도 알아냈습니다." "그것 참 많은 도움이 되겠군요." "내 동료 중에 이탈리아 사람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경감이 있거든요, 피해자를 보였더니 '아, 이놈이었군!' 합디다. 목에 십자가를 걸고 있는 것과 얼굴이 검게 탄 것을 보고 나도 그 남자가 남쪽에서 온 사람일 것이라고 짐작은 했습니다. 그는 나폴리 태생의 피에트로 베누치라는 사람인데 런던에서도 손꼽히는 불량배라고 합니다. 게다가 명령에 따르지 않는 부하는 무조건 죽여 버린다는 유명한 비밀 조직인 마피아 단원입니다. 아마 그를 죽인 범인도 이탈리아 사람이며 마피아 단원일 것 같습니다. 범인은 뭔가 조직의 규칙을 어겼기 때문에 피에트로의 미행을 당하게 된 겁니다. 그러다가, 하커 씨 댁을 나올 때 피에트로가 나타나서 칼을 들도 위협하자 오히려 피에트로를 죽여 버린 것 같습니다." "훌륭합니다! 정말 그럴듯한 추리입니다." 하고 홈즈가 손뼉을 쳤다. "하지만, 흉상이 부서진 것에 대해서는 조사를 안 하셨군요?" "또 흉상입니까? 그런 하찮은 도둑놈은 붙잡아 봐야 겨우 6개월 형에 지나지 않아요. 중요한 것은 그놈을 살인범으로 붙잡는 일입니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탈리아인 담당 경감과 이탈리아인 거리로 가서 그 사진의 남자를 찾아보겠습니다. 홈즈 씨, 함께 가지 않으시렵니까?" "글쎄, 이번에는 사양하겠습니다. 그보다 더 쉽게 범인을 체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밤에 우리와 함께 가시지 않겠습니까?" "이탈리아인 거리에 말입니까?" "아니오, 치즈윅 구입니다. 오늘 밤에는 우리와 함께 치즈윅 구를 조사해 보고, 이탈리아인 거리는 내일 함께 가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거기는 좀 늦게 가더라도 별일은 없을 겁니다. 11시 정도에 출발하면 아마 내일 아침까지는 돌아올 수 있을 겁니다." 드디어 붙잡다 레스트레이드 경감과 내가 안락 의자에서 쉬고 있는 동안 홈즈는 2층 자료실에서 뭔가를 조사하고는 의기 양양한 표정을 지으면서 내려왔다. 11시 정각에 예약된 마차가 우리를 태우러 왔다. 나는 품속에 권총을 집어넣었고, 홈즈는 위험한 경우라고 생각되는 때만 가지고 다니는, 납이 든 사냥용 채찍을 손에 들었다. 우리는 해머스미스 다리를 건너서 마차를 세우고 마부에게 기다리고 있으라고 일러 둔 다음, 홈즈를 따라서 어느 집에 도착했다. 그 집 문기둥에는 '레버넘 별장'이라고 쓰여 있었으며, 사람들이 모두 잠이 들었는지 불이 모두 꺼져서 깜깜했다. 다만, 현관의 유리문에서만 희미한 빛이 새어 나와서 뜰의 오솔길을 흐릿하게 비추고 있었다. 널빤지로 된 담 안쪽이 특히 어두웠으므로 우리는 그곳에 쭈그리고 앉았다. "꽤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어야 할 걸세." 홈즈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무엇보다도 비가 오지 않아서 다행이군." 우리는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다.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검은 그림자가 원숭이처럼 날쌔게 뜰의 오솔길로 뛰어들었다. 검은 그림자는 잠시 유리문에서 새어 나오는 빛에 모습을 드러냈으나 곧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잠시 숨을 죽이고 있었더니 '끼익 끼익'하는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창문을 억지로 여는 소리같았다. 그 소리가 그치고 조금 있으려니 집안에서 밝은 칸델라 불빛이 보였다. 조금 뒤, 그 빛은 이 방 저 방으로 돌아다녔다. "창 문 밑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붙잡읍시다." 레스트레이드 경감이 속삭이고 있는데, 수상한 남자가 창문을 넘어서 나왔다. 불빛 아래로 지나가는 모습을 보니 그는 겨드랑이에 뭔가 하얀 물건을 끼고 있었다. 그가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피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순간 갑자기 '쾅'하는 소리가 울렸다. 이어서 '후드득~'하고 부서진 석고 조각이 떨어지는 소리... 그는 그 일에 너무 열중하고 있었으므로 우리가 슬그머니 다가서는 것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재빨리 홈즈가 등뒤에서 그를 덮쳤다. 거의 동시에 나와 레스트레이드 경감이 달려들어서, 그의 팔을 하나씩 꽉 잡았다. '찰칵'하는 수갑 소리! 그의 얼굴을 들어올리고 보았더니 그는 우리를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그 푸르스름한 얼굴빛과 위로 올라간 눈으로 보아 알 수 있듯이, 바로 그 사진에 있던 사람이었다. 홈즈는 그를 거들떠 보지도 않고 부서진 석고 조각을 하나씩 주워 불빛에 비춰 보았다. 그것은 전에 보았던 나폴레옹의 흉상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보아도 하찮은 석고 조각일 뿐 별것도 아니었다. 홈즈가 석고 조각을 하나하나 조사하고 있는데, 눈앞이 환해지면서 현관문이 열렸다. 뚱뚱한 이 집 주인이 셔츠에다 바지 차림으로 나타난 것이다. "저....브라운 씨 되시지요?" "그렇습니다. 당신이 셜록 홈즈 씨입니까? 심부름꾼에게 보내신 편지를 받고, 문단속을 단단히 하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도둑이 붙잡혀서 다행입니다. 자, 여러분, 들어오셔서 차라도 한잔 드십시오." 그러나, 레스트레이드 경감이 범인을 빨리 경시청으로 데려가고 싶어했으므로 우리는 즉시 마차를 타고 경시청으로 갔다. 범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텁수룩한 머리카락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우리를 계속 쏘아보기만 했다. 어쩌다가 내 손이 놈의 몸에 닿자 내 손을 물려고 했다. 경시청에서는 즉시 신체검사를 했지만 나온 것이라곤 2-3실링의 돈과 자루에 피가 묻은 칼뿐이었다. "소지품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헤어질 때 레스트레이드 경감이 말했다. "이탈리아인 담당 경감에게 물어보면 금방 알 수 있겠습니다만, 마피아 단과 관계된 사건임이 틀림없습니다. 그건 그렇고, 홈즈 씨, 이놈을 붙잡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떻게 범인의 행적을 미리 알아내셨는지 궁금합니다. 나는 이놈이 거기에 가리라고는 짐작도 못했습니다." "오늘 밤은 너무 늦었으니 그 얘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지요. 게다가 아직 할 일이 몇 가지 남아 있습니다. 내일 오후 6시에 한번 더 우리 집으로 오십시오. 그러면 당신이 생각지도 못했던 사실을 알게 될 겁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아마 범죄사에 오래도록 남게 될 겁니다." 흑진주의 비밀 다음날 저녁에 레스트레이드 경감은 범인의 신상에 대한 자세한 보고를 가지고 왔다. 이름은 베포, 성은 아직도 모름. 이탈리아인 들의 거리에서는 이름이 널리 알려진 불량배이다. 본디 그는 솜씨가 좋은 조각가였으나 어쩌다가 나쁜 길로 빠져서 경범죄로 한 차례, 동료를 찌른 죄로 한 차례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영어는 잘하지만 절대로 입을 열지 않으므로 흉상을 부순 까닭은 아직 모르고 있다. 이 남자가 겔더 상회의 공장에서 일한 적이 있으므로 그 흉상들은 어쩌면 자기가 만든 물건인지도 모른다고 경찰이 짐작하고 있는 정도이다. 홈즈는 벌써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은 그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홈즈는 뭔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몹시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드디어 홈즈가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이 나타났다. 시뻘건 얼굴에 턱수염이 희끗 희끗한 그 손님은 기차 때문에 늦었다고 변명하면서 낡고 큼직한 여행 가방을 탁자 위에 놓았다. 그런데 그의 가방에서 나온 물건은 놀랍게도 나폴레옹 흉상이었다. 이것은 전혀 흠이 없는 완전한 흉상이었다. 홈즈는 10파운드를 주고 그 사람에게 그 흉상을 산 다음, 영수증에 서명을 받고 나서 돌려보냈다. 그 다음에, 홈즈는 이상한 행동을 했다. 하얀 보자기를 탁자 위에 깔고 나폴레옹 흉상을 그 위에 얹어 놓은 다음, 사냥용 채찍으로 세게 내리친 것이다. 나폴레옹 석고상은 순식간에 부서지면서 하얀 석고 조각이 보자기 위로 우르르 떨어졌다. 홈즈는 그 조각 하나하나를 뚫어지게 살펴보기 시작했다. 잠시 뒤에, 홈즈는 무슨 소리를 지르면서 조각 하나를 높이 쳐들어 보였다. 그 하얀 석고 조각 속에는 푸딩에 들어 있는 건포도처럼 검고 둥근 것이 박혀 있었다. "여러분!보르지아 집안의 그 유명한 흑진주를 보십시오!" 레스트레이드 경감과 나는 어리둥절해 있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서는 열심히 박수를 보냈다. 홈즈는 창백한 얼굴을 좀 붉히면서 무대 위에서 박수를 받는 배우처럼 두 사람에게 고개를 숙였다. "여러분!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진주입니다. 나는 데이크리 호텔에 묵었던 이탈이아의 캘로나 공작의 침실에서 없어진 이 진주가 스텝니 구에 있는 겔더 상회의 공장에서 만든 6개의 나폴레옹 흉상 가운데 마지막 하나, 즉 이 흉상 속에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레스트레이드 경감. 이 흑진주가 도난당했을 때의 상황을 기억하고 계시겠지요? 나도 실은 그때 사건을 의뢰받았으나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공작 부인의 하녀였던 이탈리아 여자에게 혐의가 있으며, 그녀의 오빠가 런던에 있다는 사실까지는 알았으나 두 사람 사이에 연락이 있다는 증거가 없었기 때문에 흐지부지 끝나 버렸습니다. 그 하녀의 이름은 루크레치아 베누치입니다. 나는 그저께 밤에 죽은 피에트로 베누치가 바로 그녀의 오빠가 틀림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때의 신문을 읽어 보았더니 진주가 없어진 것은 베포가 동료를 찌르고 체포되기 이틀 전이었습니다. 그때, 베포는 경찰에 쫓기다가 나폴레옹 흉상을 만들고 있는 공장 안으로 들어갔던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때, 베포가 진주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베포가 피에트로에게 빼앗은 것인지, 또는 이 두 사람이 처음부터 한패였는지, 아니면 단순히 피에트로 누이동생의 부탁을 받고 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경찰에 쫓기고 있을 때 베포는 이 흑진주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붙잡히면 그 진주는 당장 빼앗겨 버리겠지요. 그렇다고 느긋하게 어디에 숨겨둘 틈도 없었습니다. 이 순간에 베포의 눈에는 공장의 복도에 늘어놓고 말리던 6개의 나폴레옹 석고상이 들어왔습니다. 석고상들은 아직 굳지 않아서 말랑말랑했지요. 조각 솜씨에는 자신이 만만한 베포는 석고상에 재빨리 구멍을 뚫고 진주를 밀어 넣은 다음 두세 번 그 위를 만져서 매끈하게 다듬었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비밀 창고입니다. 절대로 발견될 염려가 없을 테니까요. 그러나 베포가 교도소에 1년간 갇혀 있는 사이에 나폴레옹 흉상은 다른 가게로 팔려 버렸습니다. 석고상 6개 중에서 어느 것에 진주가 들어 있는지는 베포 자신도 몰랐습니다. 6개를 모두 부수고 찾아볼 수밖에 없게 된 것이지요. 진주는 석고와 함께 굳어 버렸기 때문에 흔들어 보아도 알 수가 없는 겁니다. 베포는 교도소를 나온 뒤, 나폴레옹 흉상이 팔려 간 곳을 찾아보려고 했습니다. 먼저 겔더 공장에서 일하는 사촌에게 부탁해서 6개의 나폴레옹 석고상이 도매로 팔려간 곳을 알아냈습니다. 모스 허드슨 가게에는 점원으로 취직해서 석고상 3개가 팔려간 곳을 조사했습니다. 그러나 그 3개에는 진주가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다음에는 하딩 형제 가게에서 일하고 있는 이탈리아 사람에게 부탁하여 나머지 3개가 팔린 데를 알아내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간 곳이 하커 기자 댁이었습니다. 그런데 진주를 빼앗긴 피에트로가 놈의 행동이 수상하다고 보고 그의 뒤를 따라다녔습니다. 그 결과로 일어난 것이 바로 살인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피에트로는 베포의 사진을 가지고 다녔을까?" 내가 옆에서 이렇게 물었다. "그건 다른 사람에게 사진을 보이면서 이런 사람을 아느냐고 물어볼 경우가 있지 않겠나? 그런데 베포는 피에트로를 죽인 다음부터는 신변에 위험을 느끼기 시작했네. 그래서 그는 살인사건의 열기가 식을 때까지 잠시 진주 찾기에서 손을 뗄 것인가 또는 빨리 서둘러야 될 것인가 망설였을 거네. 나는 나중의 것으로 짐작 했지. 자칫 잘못하면 경찰이 그 진주를 눈치채고 찾아낼지 모르기 때문이네. 물론, 하커 기자가 가지고 있는 나폴레옹 상에 진주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나는 알 수 없었네. 그러나 만일 없었다고 하면 남은 흉상은 2개뿐인데, 그 둘 중에서 가까운 런던 시내의 것에 먼저 손을 대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는 브라운 씨에게 문단속을 단단히 하고 있으라고 주의를 시켜 놓고 그가 나타나기를 기다린 것이네. 물론, 그때는 이미 베포가 찾고 있는 물건이 보르지아 집안의 흑진주라고 분명히 알고 있었네. 그 조금 전까지는 베포가 뭔가를 찾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정확하게 무엇을 찾는지는 몰랐었지. 하지만 베포에게 찔려 죽은 사람이 피에트로 베누치란 것을 알고 나는 즉시 이 사건과 흑진주를 연결 시킬 수 있었던 거야. 그렇게 해서 나머지 석고상 속에 진주가 있다는 것이 확실해 진 것이라네. 그래서 나는 그 마지막 나폴레옹 석고상을 여러분이 보는 앞에서 레딩 시의 샌드퍼드에게서 샀던 것일세." 우리는 홈즈의 이야기를 듣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말 훌륭합니다!" 레스트레이드 경감이 겨우 입을 열었다. "나는 당신이 여러 사건을 해결하는 것을 많이 보았지만 이렇게 훌륭하게 해결하는 것은 처음 봅니다.... 예? 아, 아닙니다. 우리 경시청은 당신을 질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신같은 분이 영국에 계시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레스트레이드 경감." 홈즈는 조금 얼굴을 돌렸으나 그 얼굴에는 여느 때와는 달리 뜨거운 감동의 빛이 떠오르고 있는 것을 나는 알아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