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번의 핏자국 ?? 코난 도일 1. 비밀 서류의 분실.. 어느 해 가을의 화요일 아침, 전유럽에 이름을 떨치고 있는 인물 두 사람이 베 이커가에 있는 우리의 검소한 하숙집을 찾아왔다. 한 사람은 코가 높고 독수리 같은 눈을 가진 위엄있는 노인으로서, 영국 총리직을 두번째 지내고 있는 벨린저 경이었다. 또 한 사람은 거무스름한 얼굴에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아직 중년이 채 되지 않은 신사인데, 유럽 당담 장관인 트렐로니 호프 씨였다. 벨린저 총리는 푸른 혈관이 두드러진 손에 우산의 상아 손잡이를 거머진 채 괴로 운 얼굴로 홈즈와 나를 번갈아 가며 살펴 보았다. 호프 장관은 신경질적으로 콧 수염을 잡아 당기기도 하고, 시겟줄에 매달려 있는 도장집을 초조하게 매만지면 서 말했다. "홈즈 씨, 편지가 없어진 것을 발견한 건 아침 8시였는데, 곧바로 총리께 보고드 렸소. 우리 둘이 이곳을 찾아 온 건 각하의 의견에 따른 겁니다." "경찰에 알리셨나요?" 총리가 말했다. "아직 알리진 않았고, 앞으로도 알릴 생각이 없소. 경찰에 알리는 건 사회에 아 리는거나 다름이 없고, 정부로서는 그걸 피하고 싶소." "그건 왜 그렇습니까?" "그 편지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어서, 그 내용이 알려지면 유럽의 국제관계가 매 우 위태로워집니다. 평화냐 전쟁이냐가 여기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오. 아무도 몰래 편지를 되찾지 못한다면 차라리 덮어 두는게 낫소. 왜냐하면, 편지 를 훔친측은 편지의 내용이 널리 알려지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호프 장관께서 서류가 어떻게 분실되었는가 자세히 설명 해 주시지요." "간단히 설명드리지요, 홈즈 씨. 그 서류는 어느 외국의 국왕에게서 엿새 전에 온 것이오. 대단히 중요한 편지이기 때문에 금고에 넣어두지 않고 저녁마다 화 이트 홀 테라스에 있는 우리 집으로 가지고 가서 침실에 있는 문서함속에 넣고 자물쇠를 채웠소. 편지는 어제 저녁에 거기에 있었소. 그건 틀림이 없소. 저녁 식사 전에 옷을 갈아입으면서 확인을 했으니까. 그러던 것이 오늘 아침에 없어 진 거요. 문서함은 어제 저녁에 화장대의 거울 옆에 있었소. 나는 잠귀가 밝은 편이고, 아내도 그렇소. 따라서, 밤중에 침실에 들어온 사람 은 아무도 없다는 건 우리 부부가 확신할 수 있소. 그런데도 편지가 없어진 거 요." "저녁식사는 몇시에 드셨나요?" "7시반이오." "그리고서 얼마나 지나 침실에 드셨습니까?" "아내가 극장에 갔기 때문에 나는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소. 우리가 침실에 들어간 건 11시 반이오." "그러면 문서함에서 4시간쯤 눈을 떼고 계셨다는 말이군요?" "침실에 들어가는 건 어느 누구에게나 금하고 있소. 다만, 세탁부가 아침에 청소 하러 들어가고 집사와 아내의 하녀가 낮에 드나들 뿐이오. 이 세 사람은 오랫동 안 일을 해왔기 때문에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라오. 게다가, 문서함에 중요한 편지가 들어 있다는 건 아무도 알 리가 없고..." "누가 그 편지에 관해서 알고 있습니까?" "집안에 있는 사람은 아무도 모릅니다." "부인께서 알고 계셨나요?" "아니, 모르고 있었소. 아침에 편지가 없어질 때까진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 으니까." 총리는 믿음직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호프 장관이 공무에 대해서 강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건 일찍부터 알고 있었 소. 이러한 중대 비밀은 가까운 가족에게도 말해서는 안되는 게지." 호프 장관은 머리를 숙였다. "그런 말씀을 들을 수 있을 만큼은 한다고 했습니다. 아침 전까지의 일은 한마디 도 아내에게 하지 않았으니까요." 홈즈가 말했다. "그전에 편지를 잃으신 적은 없습니까?" "없소." "그 편지 건을 알고 있는 분은?" "어제의 각료 회의에서 각 장관에게 보고했소. 회의 내용은 항상 비밀이기 마련 이지만, 이 편지에 관해선 총리 각하께서 특별히 비밀을 지키도록 당부하셨습니 다. 그렇게까지 된 일을 몇 시간 뒤 내 자신이 그걸 잃어버리다니." 호프 장관은 단정하게 생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양손으로 머리칼을 쥐어뜯었다. 그러나 곧 마음을 가라앉히고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장관들 외에 관계 부서에서 아는 사람이 두셋 있습니다만,그밖엔 아무도 없소." "외국에서는요?" "외국에서 그 편지를 본 사람은 편지를 쓴 본인뿐이라고 생각하오. 그 나라의 장 관도 모를 게요." 홈즈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윽고 물었다. "흠, 좀더 깊이 들어가 물어도 괜찮다면, 그 편지는 어떠한 내용이며, 또 그게 분실되면 어째서 중대한 결과가 벌어지는지요?" 두 정치가는 재빨리 눈짓을 주고받았다. 총리는 시무룩한 얼굴을 하고서 짙은 눈 썹을 찌푸렸다. "홈즈 씨, 봉투는 길고 얇으며 연한 푸른색이오. 붉은 초로 봉해 놓았고, 웅크린 사자의 도장이 찍혀 있소. 수신자 이름은 커다랗고 대담한 필적으로...." "물론 그런 자세한 점에도 흥미가 있고, 또 실제로 필요도 합니다만, 제 질문은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에 관해서입니다. 편지의 내용이 어떠한가 하는 겁니다." "그건 국가 최고 기밀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얘기할 수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오. 당신의 뛰어난 능력으로, 지금 설명한 봉투와 그 내용물을 찾 아 준다면 정부로서 할 수 있는 데까지 보수를 드리겠소." 홈즈는 미소를 지으며 일어섰다. "두 분께선 영국에서도 가장 바쁘신 분이고, 저는 또 저대로 맡고 있는 사건이 많습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이 문제에 대해선 협력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 이 이상 이야기해도 시간 낭비입니다." 총리는 벌떡 일어서서 장관들까지 쩔쩔매게 하는 그 매서운 눈초리로 홈즈를 노 려보았다. "이런 일은 처음이오...." 그렇게 말을 꺼내다가 총리는 화를 가라앉히고는 다시 앉았다. 잠시 아무도 말문 을 열지 않았다. 이윽고 총리는 어깨를 움츠렸다. "홈즈 씨, 당신의 조건을 받아들이겠소. 당신 말이 분명히 맞소. 당신에게 사건 을 의뢰하자면 당신을 믿고 모든 걸 털어놓아야 했소." 호프 장관이 말했다. "총리 각하의 의견에 저도 찬성합니다." "그럼, 당신과 와트슨 박사를 믿고서 얘기하겠소. 이 이야기가 밖으로 새어 나가 면 우리 나라에 큰 불행이 되니 두 분께선 애국하는 마음으로 비밀을 지켜 주시 오." "믿으셔도 됩니다." "그 편지의 발신인은 어느 나라의 국왕인데, 최근 우리나라의 식민지가 발전하는 것에 화가 나서 보낸 편지요. 더군다나, 그분 혼자 생각으로만 쓰여진 편지요. 조사에 의하면 그 나라의 장관들도 그 편지에 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소. 편지 내용이 몹시 도전적이어서, 만일 공표되면 국민 감정을 자극하여 여론이 들끓어 1주일안에 전쟁에 휩쓸려 들게 될 거요." 홈즈는 종이에 이름을 적어 총리에게 보였다. "맞소. 이 사람이오. 편지 내용이 알려지면 적어도 10억의 전쟁 비용과 10만명의 인명을 잃게 됩니다. 그런 편지가 이렇게 감쪽같이 없어지다니." "발신인에게 편지가 분실된 걸 알리셨나요?" "암호 전보로 알렸소." "아마 그쪽에서는 편지가 공표되기를 바라고 있을 겁니다." "아니오, 그쪽에서도 분별 없이 감정에 치우쳤던 걸 후회하고 있는 모양이오. 편 지가 공표되면 그쪽이 더 큰 손실을 보게 될 테니까." "그렇다면 편지가 공표될 경우에 누가 이익을 봅니까? 왜 그걸 훔치거나 공표하 고 싶어할까요?" "그건 말이오, 홈즈 씨. 복잡한 국제 정치 문제요. 그러나 유럽의 현재 상태를 생각해 보면, 현재 유럽에는 두 군사 동맹이 있는데 양쪽의 힘이 거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소. 그런데 영국은 그 어느쪽에도 가맹하고 있지 않으니까, 만일 영 국이 한쪽 동맹과 전쟁을 하게 되면 다른 동맹은 자연히 이득을 보게 될 거요. 아시겠소?" "잘 알겠습니다. 그럼, 그 편지를 손에 넣어 공표하면 그 나라의 적에게 이익이 되겠군요. 그 나라와 우리 나라 사이를 나쁘게 만드니까 말입니다." "그렇소." "만일 그 편지가 적의 손아귀에 들어갔다고 하면,우선 누구에게 보내게 될까요?" "유럽의 총리라면 어느 누구에게라도 좋을 거요. 아마 이미 가장 빠른 방법으로 보내졌을지도 모르오." 호프 장관은 고개를 떨어뜨리고 크게 신음소리를 냈다. 총리는 부드럽게 그의 어 깨에 손을 얹었다. "운이 나빴소. 호프. 아무도 당신을 나무랄 순 없지. 당신은 할 수 있는 조심을 다 했소. 자, 이제 홈즈 씨, 어떠한 조처를 취하면 좋겠다고 생각하시오?" 홈즈는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 편지를 되찾지 못하면 정말로 전쟁이 일어난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럴 위험성이 지극히 큽니다." "그렇다면 전쟁 준비를 할 수 밖에 없겠군요." "그건 냉혹한 말인데요, 홈즈 씨." "사정을 잘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편지가 밤 11시 반 이후에 도둑맞았다고는 생 각되지 않습니다. 그 시간부터 아침에 편지가 없어진 것을 알 때까지 호프 장관 과 부인께서 방안에 계셨다고 하니까요. 그렇다면, 도둑맞은 건 어제 저녁 7시 반에서 11시 반 사이, 아마 7시 반에 가까운 무렵일 겁니다. 누가 가져갔건 간 에 그 도둑은 편지가 그 방에 있는 것을 알고 있었던게 확실합니다. 따라서, 알고 있다면 되도록 빨리 편지를 손에 넣으려고 했을 테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중요한 편지가 그 시각에 도둑맞았다면 지금쯤은 어디 있을까요? 그걸 가만히 숨겨 두려고 하지 않고, 그걸 탐내는 사람에게 당장 보내려고 할 테지요. 이렇게 되면 편지를 되찾기는커녕 행방을 찾는 것까지 전망이 없잖겠습 니까?" 총리는 소파에서 일어섰다. "당신 말대로요. 홈즈 씨. 이미 우리는 속수무책인 거요." 홈즈는 호프 장관에게 물었다. "편지를 훔친 사람이 하녀나 집사라고 생각되지 않나요?" "오랫동안 착실히 일해 온 사람들이라 믿을 수 있는 고용인이요." "장관님 방은 3층에 있고, 밖에서 들어가는 입구가 없다고 하셨으니까, 그 방에 들어가자면 반드시 누군가의 눈에 띄겠군요. 그렇다면 도둑은 집안에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그 사람은 편지를 누구에게 가져갔을까요? 아마도 국제 스파이에게 가져갔다고 봐야겠죠. 저는 그런 자들의 이름을 알고 있습니다. 주요 인물이 셋 있지요. 수 사를 시작하기 전에, 그 셋이 항상 있는 곳에 있는지 알아봐야겠습니다. 만일 그 중 하나라도 어제 저녁부터 자취를 감추었다면, 편지는 그자의 손으로 넘어 갔다고 생각해도 될 겁니다." 호프 장관이 물었다. "왜 자취를 감출 필요가 있겠소? 런던에 있는 자기네 대사관으로 편지를 가져가 면 될 텐데." "전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스파이란 늘 독립적인 입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데 다가, 자기네 대사관과 사이가 나쁜 경우가 많습니다." 수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오. 홈즈 씨. 그만한 값어치가 있는 물건을 입수하면 자기 손으로 스파이 본부로 가지고 갈거요. 당신의 추리력은 정말 놀랍소. 호프 장 관.이 사건 때문에 다른 임무를 소홀히 다루어서는 안되오. 홈즈 씨, 우리도 새 로운 사실을 알게 되면 당신에게 알릴 터이니, 당신의 수사결과도 꼭 알려 주시 기 바라오." 두 정치가는 고개를 숙이고 엄숙한 태도로 방에서 나갔다. 2. 수수께끼의 살인사건.. 홈즈는 잠자코 담배 파이프에 불을 붙이고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내가 조간신문 을 펴들고서 어제 저녁 런던 시내에서 일어난 범죄 기사 중 두드러진 것을 읽고 있는데, 홈즈는 무슨 소리를 외치더니 벌떡 일어나 파이프를 벽난로 위에 놓았 다. "그래, 상황은 급박하나 완전히 절망적인 것은 아니야. 지금부터라도 편지를 훔 친것이 누구라는 것만 확실히 알게되면 그 편지를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 네. 그 녀석들은 돈에 의해 움직이는데, 우리는 영국의 재무부가 뒤에 있잖은 가. 팔려고 내놓으면 사들이면 되는 거야. 외국에 팔기 전에 값을 흥정하느라고 아직까지 팔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그런 대담한 짓을 할 수 있는 거물급 스파이 는 셋밖에 없어. 오버스타인, 라 로티에르, 에두아르도 루카스... 이렇게 셋이 야. 일일이 알아 봐야지." 나는 읽고 있던 조간신문을 흘끗 쳐다보며 말했다.. "에두아르도 루카스라는 사람은 고돌핀가에 사는 녀석인가?" "맞네." "거기 가도 못 만날걸." "어째서?" "어제 저녁에 자기 집에서 피살되었네." 지금까지는 수사도중에 홈즈가 늘 나를 놀라게 했는데, 이번엔 내가 그를 놀라게 했다. 홈즈는 잠깐 동안 눈을 크게 뜨고 있다가, 곧 내 손에서 신문을 가로챘다. 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나와 있었다. 웨스트민스터의 살인 어제 저녁 고돌핀 가 416번지에서 이상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그곳은 템스 강과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중간에 있는, 고풍이 깃들고 인적이 드 문 거리다. 에두아드로 루카스 씨는 몇 해 전부터 이곳에 살고 있었는데, 뛰어난 아 마추어 테너 가수로 사교계에 꽤 알려져 있었다. 루카스 씨는 34세의 독 신으로, 집에는 중년 가정부인 프링글 부인과 집사인 미턴이 있을 뿐이다. 프링글 부인은 언제나 일찌감치 가장 위층 방에서 잠자리에 든다. 집사는 어제 저녁 친구를 찾아갔었다. 따라서 밤 10시 이후에는 루카스 씨 혼자만 일어나 있었다. 그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지만, 12시 15분경에 고돌핀 가를 순찰하던 바렛 순경은 루카스 씨 댁의 현관문이 반 정도 열려 있는 것을 보았다. 노크해 봐도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집안 정면 쪽방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았으므로, 그쪽으로 들어가서 노크해 보았으나 역시 대꾸가 없었다. 그래서 순경은 방문을 밀치고 들어갔다. 방은 몹시 어질러져 있고 가구는 죄다 한쪽으로 밀쳐져 있는 한가운데에 의자가 하나 넘어진 채로 있었다. 이 의자 다리 하나를 쥔채 루카스 씨는 쓰러져 있었다. 심장을 찔렸기 때문 에 즉사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심장에 꽃힌 칼은 벽에 장식으로 걸어 두는 구부러진 인도식 단검이었다. 방안의 귀중품을 훔쳐간 흔적이 없으므로, 범행 동기는 단순한 절도로는 생 각되지 않는다. 루카스 씨는 이름이 알려져 있고, 많은 인기가 있었으므로 이번의 뜻밖의 죽음에 많은 친구들이 애통하게 여기고 있다. 홈즈는 오랜 침묵 끝에 물었다. "와트슨, 이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나?" "놀라운 우연의 일치야." "우연의 일치라고? 아까 이 사건에 관련되어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스파이 셋중의 하나가 수수께끼의 죽음을 당했어. 이건 우연의 일치가 아닐 가능성이 커. 와트 슨, 이 두 사건에는 틀림없이 연관이 있네. 이 연관을 찾아내는 게 우리의 임무 야." "지금쯤은 경찰에서도 알고 있겠지." "아니야, 루카스의 죽음에 대해선 얼마큼 수사가 진행뻍겠지만, 편지의 도난에 대해선 전혀 모르지. 또, 알려서도 안되고. 그 관계를 밝혀낼 수 있는 건 우리 뿐이야. 하여튼 내가 루카스에게 혐의를 두게 된 뚜렷한 이유가 한가지 있네. 루카스가 살고 있는 고돌핀 가는 호프 장관이 살고 있는 화이트 홀 태라스에서 걸어서 2-3분 밖에 되지 않아. 다른 두 스파이는 꽤 먼곳에 살고 있지. 그러므로 루카스 쪽이 다른 두 사람보다 호프 장관댁과 내왕하기가 쉽단 말이 야. 이것은 사소한 일일지 모르나, 사건이 두세 시간 사이에 연달아 일어난 경 우에는 깊은 뜻이 있다고 보아도 좋아. 여보게, 누가 온것 같네." 하숙집 주인인 허드슨 부인이 쟁반에 부인용 명함 한 장을 받쳐 들고 들어왔다. 홈즈는 퍼뜩 눈썹을 치켜 올리고 내게 명함을 건네 주면서 허드슨부인에게 말했 다. "힐다 트렐로니 호프 부인에게 올라오시라고 말해 주시지요." 우리의 검소한 방은 아까 유명한 두 정치가의 방문을 받은 직후였는데, 이번에는 런던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여성을 맞이하게 되었다. 호프 부인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종종 소문으로는 들어 보았으나, 그러한 소문 도 눈앞에서 보는 아름다운 여성의 다시없는 우아한 품위에는 못 미치는 것 같았 다. 그건 그렇지만 우리가 먼저 깨달은 것은 부인의 아름다움이 아니었다. 마음이 어 지러워서 그런지 안색이 창백하고, 눈에는 열기가 이글거리고, 입은 꼭 다물려 있었다. "홈즈 씨, 제 바깥 양반이 다녀가셨나요?" "예, 다녀가셨습니다." "제발 제가 여기에 온 걸 비밀로 해 주세요." 홈즈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손짓으로 부인에게 의자를 권했다. "이거, 제 입장이 매우 어려워졌습니다. 앉으셔서 용건을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부인은 창문을 등지고 앉았다. 키가 늘씬하고 여왕처럼 우아했다. 부인은 하얀 장갑을 낀 두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사실대로 말씀드릴 테니, 솔직히 대답해 주셔야 해요. 남편과 저 사이에는 정치 에 관한 것 이외에는 비밀이라는것이 없습니다. 남편은 정치에 관해서는 굳게 입을 다물고 저에게는 무엇 하나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어제 저녁 집에서 무서운 일이 일어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떤 편지가 분실되었는데, 그것이 정치와 관계가 있기 때문에 남편은 아무것도 가르 쳐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을 알아 둘 필요가 있습니다. 진상을 알고 있는 분은 정치가 외에는 당신뿐입니다. 홈즈 씨. 어떠한 일이 일 어났고, 또 어떻게 되어가는가를 가르쳐 주세요. 제가 그 일에 관해 모두 알고 있는 것이 남편을 위한 것도 되니까요. 분실된 편지는 어떠한 것인가요?" "부인, 저는 도저히 말씀 드릴 수 없습니다." 부인은 괴로운듯이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홈즈는 타이르듯이 말했다. "부인, 이해해 주셔야 합니다. 남편께서는 이 사건에 대해 부인에게 아무것도 알 리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십니다. 저는 비밀을 지키기로 하고 진상을 알게 되었으니, 제가 그 진상을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알고 싶으시거든 남편께 물 어 보십시오." "남편에게 물어 보아도 가르쳐 주지 않아요. 부탁할 데는 당신밖에 없다고 생각 했었지요. 그러시다면, 홈즈 씨, 중요한 점은 말씀 안 하시더라도 한 가지만은 가르쳐 주실 수 있겠어요?" "부인, 무엇인가요?" "이 사건 때문에 남편의 정치적 경력에 상처가 생기나요?" "그렇습니다, 부인. 만일 해결이 안되면 대단히 불행한 사태가 생기게 됩니다." 부인은 걱정이 되어 못 견디겠다는 듯이 숨을 급히 들이마셨다. "또 한가지 묻고 싶은게 있습니다. 홈즈 씨. 이번 사건이 생긴 직후에 남편 말로 는 그 사건이 사회에 무서운 영향을 끼칠 거라고 했는데, 정말로 그렇습니까?" "남편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제가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어떠한 영향인가요?" "부인, 그것도 대답해 드릴 수 없습니다." "그럼, 더 이상 방해는 하지 않겠어요. 홈즈 씨로선 확실히 대답해 주시지 못하 는건 별 도리가 없습니다만, 저도 남편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서 한 행동이니까, 주제넘은 여자라고 생각하시지는 말아 주세요. 한번 더 부탁드립니다만, 제가 여기에 찾아온건 비밀로 해주세요." 부인은 문간에서 호소하듯이 이쪽을 돌아보고 나갔다. 방문이 닫히고 치맛자락이 스치는 소리가 사라지자, 홈즈는 미소를 짓고 말했다. "저 아름다운 부인은 실제로 뭘 찾고 있었을까?" "그야 명백하지 않은가? 걱정이 되는게 당연하지." "와트슨, 부인의 모습을 기억해 보게. 그 부인은 자기 감정을 나타내지 않는 상 류사회 출신인데도, 저렇게 당황하여 끈질기게 묻는 건 무슨 이유에서일까?" "확실히 몹시 당황해 하더군." "그 부인은 자기가 사정을 알고 있어야 남편에게 이롭다고 했는데, 그건 무슨 까 닭일까? 게다가 와트슨 자네도 눈치챘겠지만 부인은 일부러 빛을 등지고 앉았었 어. 그건 우리에게 얼굴 표정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야." "그래, 의자를 그렇게 골라 앉더군." "그렇더라도 여자의 기분은 참으로 모를 일이야. 여자들의 사소한 행동이 깊은 뜻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반면에 여자의 화려한 행동이 아무런 뜻도 없는 경우 도 있지. 그럼, 나중에 또 만나세. 와트슨." "나가는가?" "응, 고돌핀 가에 가서 런던 경시청 친구들과 오전 시간을 보낼 작정이야. 이 사 건은 에두아르도 루카스와 관계가 있어. 어떠한 관계인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사실을 모으기 전에 이론을 세우는 건 큰 잘못이야. 와트슨, 뒤를 부탁하네. 새 로 손님이 오면 만나 주게. 되도록 점심때 돌아오겠네." 3. 핏자국의 수수께끼.. 그날도,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홈즈는 부산하게 집을 뛰쳐나갔다가는 바쁘게 뛰어들어와 줄담배를 피우고, 바이올린을 켜고, 생각에 잠기고, 샌드위치를 먹어 대고, 내가 무얼 물어도 제대로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수사가 잘 진행되고 있지 않은 듯 홈즈는 사건에 대해서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으려고 했으므로 나는 신문을 읽고 루카스의 검시 결과라든가 루카스의 집사 존 미턴이 체포되었다가 곧 석방된 것 등을 알았을 뿐이다. 검시 배심원단은 루카스의 죽음을 타살로 판명했지만 범인에 대해선 밝히지 못했 다. 동기에 대해서도 짐자깅 가지 않았다. 방에는 귀중품이 많았는데 도둑맞은 건 하나도 없다. 피해자의 서류도 누가 뒤진 것 같지 않았다. 서류를 자세히 조사해 보면 루카스는 국제 정치에 관해 매우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몇 나라의 일류 정치가와 편지를 내왕할 정도로 친했는데, 서랍 속에 가 득한 서류 속에서 특히 특별한 건 발견되지 않았다. 여성과의 교제는 많았으나 깊은 관계는 없었고, 애인이라고는 한 사람도 없었다. 일상 생활은 규칙적이었고 아리송한 데라고는 전혀 없었다. 어떻게 해서 피살되 었는지 전혀 수수께끼이며, 도무지 해결될 것같이 보이지 않았다. 집사 존 미턴을 체포한 건 경찰이 어쩔 수 없이 취한 수단이었는데, 그에게 불리 한 사실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그날 밤 미터은 해머스미스에 있는 친구를 찾 아갔었고, 알리바이도 완벽했다. 미턴이 집에 도착한 건 밤 12시이며, 그땐 이미 그 사건이 일어나 있었기 때문에 정신이 뒤집히고 넋이 나간 상태였다. 평상시에 주인 루카스와는 사이가 좋았다. 자세한 건 수사 결과 루카스의 물건이 미턴의 상자 속에서 발견되긴 했지만 미턴 의 설명으로는 그건 루카스에게서 얻은 것이라고 했고, 또 가정부도 그런 사실을 증언해 주었다. 미턴은 루카스에게 고용된 지 3년 쯤 된다. 루카스느 때로는 연거푸 세 달 동안 이나 파리에 머문 적도 있었다. 그 동안 고돌핀 가의 집은 미턴이 관리하곤 했 다. 가정부는 사건이 일어난 밤에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그리고 루카스에게 손님이 찾아올 경우에는 루카스가 직접 나가서 맞아들인 것 같다. 이런 식으로 내가 신문에서 주워들은 바로는, 사흘이 지난 지금까지도 수수께끼 는 풀리지 않았다. 홈즈는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레스트레이드 경감으 로부터 사건 내용에 대해서 일일이 보고받고 있어서 수사의 진행 결과를 소상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흘째에 다음과 같은 파리 발신의 전보 기사가 신문에 실 려, 이것으로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였다. - 최근 파리 경찰이 어떤 사건을 발견했기 때문에, 지난 월요일 밤 웨스트민스 터의 고돌핀 가에서 피살된 에두아르도 루카스 씨에 얽힌 비밀이 밝혀졌다. 그 사건을 다시 한 번 ?어보면 루카스 씨는 자기 방에서 피살되어 집사에게 혐의가 갔었지만, 알리바이가 있기 때문에 그 혐의가 풀렸다. 파리 경찰이 발견한 사실은 다음과 같다. 어제 파리의 오스테를리츠에 사는 앙리 푸르네이 부인의 정신이 이상해졌다고 하인들이 신고했다. 곧바로 진찰 한 결과, 병상이 위험한 데까지 진전되어 있었다. 경찰의 조사 결과, 앙리 푸 르네이 부인은 화요일에 런던에 갔다가 돌아왔는데, 웨스트민스터 살인사건과 관계가 있음이 밝혀졌다. 사진을 대조해 보니 앙리 푸르네이 씨와 에두아르도 루카스 씨는 동일 인물이 며, 무슨 이유에서인지 런던과 파리에서 이중 생활을 한 모양이다. 푸르네이 부인은 서인도 출신에다 흥분하기 쉬운 성격이며, 이전에도 질투심의 발작 때 문에 미친 사람처럼 된 적이 있었다. 전런던을 떠들썩하게 한 살인사건도 이 부인의 이러한 발작 때문이라고 여겨 진다. 사건이 있었던 월요일 밤 부인의 행동은 아직 밝혀내지 못했으나, 화요 일 아침 부인과 인상이 같은 한 여자가 채링 크로스 역에서 미치광이 같은 짓 을 했기 때문에 남의 이목을 끈 일이 있었다. 따라서, 부인은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루카스 씨를 죽였을지 모르며, 또한 루 카스 씨를 죽인 충격으로 실성했는지도 모른다. 현재로는 부인은 이치에 맞는 이야기를 할 힘이 없으며, 의사는 부인이 제정신을 되찾을 가망이 없다고 보 고 있다. 게다가, 월요일 밤 한 여자가 몇 시간 동안이나 고돌핀 가의 집을 지켜보며 서 있었다고 말하는 증인도 있는데, 그 여자가 푸르네이 부인이었다 고 간주된다.- 나는 홈즈가 아침식사를 하는 사이에 이 기사를 큰 소리로 읽어 주고서 물었다. "이걸 어떻게 생각하나, 홈즈?" 홈즈는 식탁에서 일어서서 방안을 이리저리 거닐며 말했다. "이 사흘 동안 내가 자네에게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은 건, 실제로 이야깃 거 리가 없었기 때문이야. 지금까지도 이 파리 발신의 전보마저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네." "루카스의 죽음에 대해선 이것으로 매듭이 지어진 셈이야." "그 사람의 죽음은 조그만 사건이네. 우리 일은 그 편지를 추적하여 유럽의 전쟁 을 막는 일이야. 여기서 주의할 것은, 이 사흘 사이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 았다는 사실일세. 정부로부터는 거의 한 시간마다 보고를 받고 있는데, 유럽의 어디에서나 전쟁이 일어날 기미는 없는 것이 확실해. 그렇다면 그 편지는 아직 외국에 나가지 않았다는 셈이 되지. 그럼, 어디 있을 까? 누가 가지고 있는가? 왜 숨겨 둔 채로 있는가? 내 머릿속에는 이러한 문제 로 꽉 차 있네. 편지가 없어진 날 밤에 루카스가 피살된 건 우연의 일치에 불과했는가? 편지가 그의 손에 들어갔을까? 그럼 어째서 그의 서류 속에는 없었을까? 미친 여자가 가지고 갔는가? 그렇다면 파리의 그 여자 집에 있는가? 프랑스 경찰에 눈치채이 지 않고서 그 여자의 집을 수색할 수 있을까? 아, 무슨 새로운 정보가 들어온 모양이군." 홈즈는 전달된 편지를 얼른 펴보고 말했다. "레스트레이드 경감이 재미있는 것을 찾아낸 모양이야. 와트슨. 모자를 쓰게. 웨 스트민스터까지 함께 가는거야." 이 사건이 범행 현장에 가본 것은 처음이었다. 튼튼한 구식 건물이었다. 경관이 현관문을 열자 레스트레이드 경감이 나와서 반갑게 맞아 주었다. 우리는 범행이 있었던 방으로 안내되었으나, 지금은 흔적이라고는 양탄자에 밴 핏자국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이 양탄자는 방 한가운데에 깔린 조그마하고 네모진 인도산 제품인데, 그 주위는 반질반질하게 윤택을 낸 구식 마룻바닥이었다. 벽난로 위에는 무기가 장식되어 있고, 그 중의 하나가 살인에 쓰인 것이었다. 창가에는 탁자가 놓여 있고, 가구 들이며 그림이나 깔개나 벽걸이가 모두 사치스런 것들뿐이었다. 레스트레이드 경감이 물었다. "파리의 정보를 들으셨나요?" 홈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레스트레이드 경감은 말을 이었다. "이번엔 프랑스 경찰이 히트를 친것 같군요. 푸르네이 부인이 남편의 행방을 찾 아내어 급습을 한 셈입니다. 루카스는 그녀를 길가에 세워 둘 수가 없었으므로 할 수 없이 집안에 들여놓았는데, 그녀가 루카스에게 대들다가 흥분하여 정신이 이상해져서, 가까운 벽에 단검이 걸려 있은 걸 보고 그걸 뽑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죽인 게 아니고 의자가 죄다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것으로 보아 루카스는 의자를 들고 그녀의 공격을 막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마치 이 눈으로 보는 듯 뚜렷이 알 수 있어요." 홈즈는 눈썹을 치켜 올렸다. "그런데 왜 나를 불렀소?" "홈, 그건 좀 다른 일 때문이오. 아주 시시한 겁니다. 좀 색다른 점이 있어서, 당신이 흥미를 가지지 않을까 하고요. 주요 사실과는 관계가 없다해도." "도대체 무엇이오?" "이런 범행이 있은 뒤에는, 우리는 현장을 그대로 보존하는데 주의를 기울이죠. 이번 사건에서도 무엇하나 움직이지 않고 밤낮으로 망을 보게 했습니다. 오늘 아침 루카스의 매장도 끝났고, 조사도 일단락을 지어서 조금 걷어치우려고 했습 니다. 그런데 이 양탄자를 보십시오. 그저 마릇바닥에 깔기만 한 겁니다. 이걸 한번 들어 보았지요. 그랬더니...." "그랬더니....." 홈즈의 얼굴은 어떤 기대감으로 긴장했다. "양탄자에 이런 핏자국이 묻어 있더군요. 틀림없이 많은 피가 스며 들었을 겁니 다. 그런데 말입니다. 양탄자 밑의 마룻바닥에는 피자국이 묻어 있지 않단 말입 니다. 어떻습니까? 놀라셨지요?" "핏자국이 없다고?" "그렇습니다. 하나도 없습니다." 경감이 양탄자 한쪽 끄뜨머리를 들어올려 보이자, 정말로 핏자국은 묻어 있지 않 았다. 경감은 이어서 말했다. "하지만, 양탄자의 뒤쪽도 앞쪽처럼 핏자국이 묻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닥에도 핏자국이 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레스트레이드는 유명한 탐정의 머리를 흔들어 놓은것에 신이 나서 빙긋 웃었다. "또 하나의 핏자국이 있긴 있습니다만, 양탄자의 다른 데를 펼쳐보니 양탄자의 핏자국과 일치하지 않더군요. 직접 보시지요." 그렇게 말하며 양탄자의 다른 쪽을 들쳐 보이니 과연 구식 마룻바닥의 표면에는 핏자국이 크게 나 있었다. "이걸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홈즈 씨?" "그건 간단하오. 두 핏자국은 처음에는 일치했겠지만, 나중에 양탄자의 방향을 바꾸어 놓은거요. 양탄자가 네모진데다가 압정으로 눌러 놓지도 않았으니까." "양탄자의 위치가 바뀌었다는 것만 알려고 당신을 부른 건 아닙니다. 홈즈 씨. 그런 건 너무나 뻔한 겁니다. 내가 알고 싶은 건 누가 어떠한 이유로 움직였느 냐 하는 겁니다." 홈즈의 얼굴이 긴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홈즈가 몹시 흥분하고 있음을 나는 알았다. "이보시오, 레스트레이드 경감, 복도에 서 있는 경관은 줄곧 이곳을 감시하고 있 었소?" "그럼, 내 이야기를 잘 들으시오. 저 경관을 세심히 조사해 봐야합니다. 우리 앞 에서는 안돼요. 여기서 기다리겠소. 안방으로 데려가시오. 혼자 조사하는 게 말 하기가 쉬울테니까. '왜 다른 사람을 이 방에 불러 들여 혼자 있게 했느냐?' 하 고 묻는 겁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야 합니다. 빙 돌려서 물어서는 안돼요. ' 누가 이방에 들어온 것을 알고 있다.'하고 다그치는 거요. 죄다 털어놓지 않으 면 용서치 않는다고 하십시오. 내가 시키는 대로 하시지요." "놀랍군요. 하지만 저 녀석이 정말로 알고 있다면 불지 않고는 못 배길걸." 레스트레이드 경감은 그렇게 외치고 홀로 뛰어나가는가 했더니, 잠시 뒤에는 안 방에서 호통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와트슨. 지금이야!" 홈즈가 서둘러 외쳤다. 마루에서 양탄자를 치우고 바닥에 바짝 엎드려 네모꼴의 마루 판자를 하나씩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한장의 모서리에 손톱을 걸고 떼어 내니까 마치 경첩을 붙인 상자의 뚜 껑처럼 열리는 것이었다. 그 밑에는 조그마한 검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홈즈는 정신없이 손을 집어넣었다가, 분노와 실망이 뒤섞인 신음소리를 내며 손을 꺼냈 다. 구멍속은 텅 비어 있었던 것이다. "빨리빨리! 와트슨, 원상태대로 해주게!" 간신히 양탄자를 제대로 깔았을때 복도에서 레스트레이드 경감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경감이 들어왔을 때에는 홈즈는 나른한 듯이 벽난로에 기대어 서서, 수사 는 단념이라도 한듯이 선하품을 억지로 참고 있었다. 경감이 다가섰다.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이 사건에는 재미를 못 느끼시는 것 같군요. 하지 만 그 친구는 모조리 실토했습니다. 맥퍼슨. 이리로 들어오게. 이분들에게 자네 가 한 행동을 말씀드려." 덩치가 큰 경관이 얼굴이 빨개져 가지고 겁먹은 듯이 말했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닙니다. 어제 저녁 한 젊은 여자가 찾아왔길래, 번지수를 잘 못 찾은 모양이라고 해주었지요. 그리고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온종 일 방만 지키고 있자니 하도 심심해서요." "그래서 어떻게 했소?" "그 젊은 여작 신문에서 읽었다고 하며, 범행 장소라는 걸 한번 보고 싶다고 하 더군요. 게다가, 말씨도 곱고 품위가 있는 여자였기에 조금 보여 줘도 상관없으 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는 양탄자의 핏자국을 보자 휘청휘청하더 니 그대로 양탄자위에 쓰러져 꼼짝도 하지 않는 거였습니다. 얼른 집안으로 들 어가 물을 가져와 먹여 보았지만, 그래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기에 브랜디를 사 러 집 밖으로 뛰어나갔지요. 급히 막 돌아와 보니 여자는 정신을 차리고 돌아갔 는지 그곳에 없었습니다. 틀림없이 부끄러워서 저에게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아 그랬을 겁니다." "이 양탄자가 움직여지진 않았소?" "아, 예... 제가 돌아와보니 약간 구겨져 있는것 같았습니다. 여자가 쓰러졌기 때문이겠지요. 반들반들한 마룻바닥에 그냥 깔려 있을 뿐 누르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나중에 반듯하게 펴 놓았습니다." 레스트레이드 경감은 엄한 태도로 말했다.. "나를 속이지 못한다는 걸 알았겠지. 맥퍼슨? 조금쯤 직무를 게을리 해도 들키지 않으리라고 생각했지만, 양탄자를 보기만 해도 누가 방에 들어왔다는 걸 안단 말이야. 하긴, 아무것도 없어진 것이 없어서 다행이었지만, 그렇지 않았으면 자 네를 혼내 주려고 했단 말이야. 홈즈 씨, 이런 시시한 일로 오시게 해서 죄송합 니다만, 두 번째 핏자국이 첫번째 핏자국과 일치하지 않는 점에 혹시 흥미를 느 끼시진 않을까 해서 말입니다." "확실히 흥미가 쏠리긴 하는군요. 맥퍼슨, 그 여자가 온건 한 번뿐이었소?" "예, 한 번뿐입니다." "어떤 여자요?" "이름은 모릅니다. 타이피스트 모집 광고를 보고 응모하러 간다는 게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고 하더군요. 애교도 있고 품위도 있었습니다." "키가 크고 미인이었소?" "예, 늘씬한 젊은 여자였지요. 미인이라고 할 수도 있고요. '경관님, 꼭 좀 보여 주시지 않겠어요?' 하고 말하더군요. 상냥하고 애교가 섞인 말투여서, 문간에서 조금 들여다보게 하는 것만이라면 별로 안될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었죠." "복장은 어떠했소?" "검소한 복장이었습니다. 발밑까지 내려가는 망토를....." "몇 시경이었소?" "막 해가 질 무렵이었습니다. 브랜디를 사들고 왔을 때 여기저기에서 불이 켜졌 으니까요." 홈즈가 말했다. "알겠소. 어서 가보세. 와트슨. 다른데에 중요한 일이 있는 것 같아." 우리가 그 집을 나올 때 레스트레이드 경감은 그대로 방에 남아 있었고 맥퍼슨 경관이 우리를 배웅했다. 홈즈는 돌계단에서 돌아보며 무언가를 손에다 받쳐 들었다. 경관은 눈을 동그랗 게 뜨고 그것을 보면서 외쳤다. "이거 놀라운데요.!" 홈즈는 손가락을 입에 물고 잠자코 있으라는 신호를 보내고서, 조끼 호주머니에 손을 다시 집어 넣고는 거리로 나가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굉장해! 자, 와트슨. 최후의 장면의 막이 오르고 있네. 이젠 전쟁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트렐로니 호프 장관도 출세길이 막히지 않을 걸세." 나는 놀라움과 기쁨에 가슴이 벅차서 외쳤다. "아니, 해결했군 그래?!" "거기까지는 아니야. 아직 확실치 않은 점이 몇 군데 있어. 그러나 꽤 알고 있으 니까. 그 나머지를 모른다면 내가 바보지. 곧바로 호프 장관 댁에 가서 결판을 내세." 4. 마술사.. 호프 장관댁에 도착해서 홈즈는 호프 부인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거실로 안내되었다. 부인은 화가 잔뜩 나 얼굴이 붉어지면서 말했다. "홈즈 씨, 이건 너무 가혹한 짓이 아닌가요?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남편에 게 여자가 설치고 다닌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서, 제가 당신을 찾아간 것을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드렸어요. 그런데 이렇게 직접 오시면 남편은 당신과 저하 고 어떤 연관이 있는줄로 여기게 되고 저는 난처해지지 않겠어요?" "부인, 유감스럽지만 이렇게 하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저는 지극히 중요한 편지 를 찾아 달라는 부탁을 받았거든요. 이제 그 편지를 내놓으시죠." 부인은 움찔하고는 벌떡 일어섰다. 아름다운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눈초리 는 굳어지고 몸이 휘청거렸다. 나는 부인이 기절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부인은 간신히 충격에서 벗어났는데, 얼굴에는 무어라고 말할 수 없는 놀라움과 노여움 의 빛이 나타나 있었다. "그건.... 그건 지독한 모욕이군요...홈즈 씨." "부인, 숨겨도 헛수고입니다. 편지를 내놓으시죠." 부인은 초인종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돌아가 주세요. 집사를 부르겠어요." 홈즈는 또박또박 말했다. "초인종을 누르면 안됩니다. 저는 부인에게 나쁜 소문이 돌지 않게 하려고 노력 하고 있는데, 초인종을 누르면 그 노력도 수포로 돌아가고 맙니다. 편지를 내놓 으시면 모든 일이 원만하게 수습됩니다. 제가 하라느 대로 하시면 제가 수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에게 반발하신다면 저는 진상을 밝히지 않을 수가 없습 니다." 부인은 마치 여왕처럼 의젓한 태도로 서서, 똑바로 홈즈의 눈을 응시하며 상대방 의 마음속을 캐내려고 하는 것 같았다. 한쪽 손은 초인종의 위에 있었으나, 누를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절 위협하시는군요. 홈즈 씨. 여자를 위협하다니 남자답지 않아요. 무언가 아시 는 모양인데 그게 도대체 뭔가요?" "앉으시죠, 부인. 그렇게 서 계시면 쓰러질 때 상처를 입습니다. 앉으실 때까지 는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부인은 의자에 앉아서 말했다. "홈즈 씨. 5분간만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1분만이라도 좋습니다. 부인, 저는 알고 있습니다. 부인이 에두아르도 루카스를 찾아간 것도 또 그자에게 편지를 건네준것도, 그리고 어제 저녁 그 방에 교묘한 방법으로 들어가 양탄자 밑의 비밀 장소에서 편지를 꺼내어 간 것까지도.... 죄다 알고 있습니다." 부인은 송장과 같이 사색이 되어 홈즈를 노려보며, 두 번씩이나 침을 삼키고 나 서 간신히 말문을 열었다. "홈즈 씨, 당신 미쳤나 보군요... 미쳤어요!" 홈즈는 주머니에서 조그마한 마분지 조각을 꺼냈다. 여자의 초상화에서 얼굴만 도려낸 것이었다. "쓸모가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이걸 가져왔습니다. 어제 저녁에 온 여자와 이 초 상화의 여자가 같다고 인정했습니다." 부인은 숨을 죽이고 고개를 의자 등에 기댔다. "부인은 지금 그 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은 수습할 수 있습니다. 전 지금 부인을 괴롭히려고 하는게 아닙니다. 편지를 남편에게 돌려주기만 하면 제 임무는 끝납니다. 제 충고를 받아들여 정직한 사람이 되어 주시지요. 기회는 지금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부인은 이렇게 되었어도 진 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홈즈 씨, 거듭 말씀드리지만, 당신은 무슨 오해를 하고 있는 모양이군요." 홈즈는 의자에서 일어섰다. "유감입니다. 부인. 부인을 위해 최선을 다하려고 했는데 모두 헛수고로군요." 홈즈는 초인종을 눌렀다. 집사가 들어왔다. "트렐로니 호프 장관께선 언제 오시오?" "12시 45분에 돌아오십니다." 홈즈는 회중시계를 꺼내어 보았다. "아직 15분 남았군. 알겠소. 가보시오. 그때까지 기다리겠소." 집사가 방문을 닫자. 호프 부인은 홈즈의 발밑에 무릎을 끓고서 두 손을 뻗고 아 름다운 얼굴을 눈물로 적시며 미친 듯이 호소했다. "용서해 주세요. 홈즈 씨. 용서해 주세요. 제발 부탁입니다. 남편에겐 말하지 말 아 주세요. 저는 진심으로 남편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이 일이 알려지면 그분의 고귀한 마음이 깨집니다." 홈즈는 부인을 부축하여 일으켰다. "부인, 마지막 순간에라도 본심으로 돌아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제 시간이 없 습니다. 편지는 어디 있습니까?" 부인은 책상으로 뛰어가 열쇠로 서랍을 열고 기다랗고 푸른 봉투를 꺼냈다. "이겁니다. 홈즈 씨. 이런 건 애당초 제 눈에 띄지 말았어야 했어요!" 홈즈는 중얼거렸다. "이걸 어떻게 돌려줄지, 빨리 방법을 생각해 내야하는데... 문서함은 어디 있나 요?" "아직 침실에 두었습니다." "그거 다행이군요. 부인. 빨리 가져오십시오." 부인은 곧 붉은색의 납작한 문서함을 가지고 돌아왔다. 홈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먼젓번에는 어떻게 열었죠? 여벌 열쇠를 가지셨겠죠? 어서 열어 주시죠." 부인은 가슴속에서 조그마한 열쇠를 꺼냈다. 문서함은 가볍게 열렸다. 안에는 서 류가 가득 들어 있었다. 홈즈는 푸른색 봉투를 그 밑바닥 깊이 다른 서류갈피속 에 집어 넣었다. 그리고는 문서함을 잠그고 침실에 돌려놓은 뒤에 입을 열었다. "이제 호프 장관을 만날 준비가 됐군요. 아직 10분이 남아 있습니다. 부인, 저는 보호해 드리려고 이렇게 무리한 짓을 하고 있습니다. 그 대신 지금 당장에 이 사건의 진상을 숨김없이 이야기해 주셔야겠습니다." 부인은 외치듯이 말했다. "무엇이든 숨기지 않고 말씀드리겠어요. 아아, 홈즈 씨, 남편의 마음을 한순간이 라도 괴롭히느니, 차라리 이 오른팔이 잘리는게 낫겠습니다. 런던에서 저만큼 남편을 사랑하는 사람도 없을 겁니다. 그런데도 저는 이런 짓을 해야 했어요. 그걸 알면 남편은 저를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명예를 무척 존중하는 분이니까요. 남의 잘못을 잊지도 용서하지도 못 합니다. 홈즈 씨, 제발 도와주세요! 제 행복, 남편의 행복, 저희들 생활 자체가 위험속에 빠져 있습니다." "빨리 말씀하시지요. 부인. 시간이 촉박합니다." "홈즈 씨, 이 사건의 원인은 저희 철없는 편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결혼 전 사 춘기의 어린 마음으로 경솔하게 쓴 편지 때문이었지요. 그 안에 철딱서니 없는 말을 써놓았는데, 만일 남편이 읽게 되면 제게 무슨 잘못이라도 있는 것처럼 생 각하고 저를 다시는 믿지 않을 겁니다. 그 편지를 쓴건 아주 옛날이어서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지요. 그런데 지금와 서, 그 루카스라는 사람이 그 편지를 손에 넣고서 남편에게 보이겠다고 협박하 는 거였습니다. 저는 그 사람에게 제발 그러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랬 더니 그는 남편의 문서함에 있는 이러이러한 그 편지를 넘겨주면 그 편지를 돌 려주겠다는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관청에 스파이를 집어넣어 그런 편지가 있다 는 것을 알아낸 거예요. 그는 남편에게는 피해를 입히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 다. 홈즈 씨, 제 입장에서 생각해 보세요. 어떻게 했으면 좋았을까요?" "남편에게 모든 것을 얘기했으면 좋았을 겁니다." "그건 안돼요, 홈즈 씨! 그런 짓을 하면 남편과 제 사이는 끝장이 나버리고 말아 요. 남편의 편지를 꺼내는 게 나쁜 건 분명하지만 정치에 관련된 일이라면 그게 어떠한 결과가 되는지 전 몰랐어요. 그래서 저는 루카스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결심을 한 거예요. 제가 남편 열쇠의 본을 뜨고 루카스가 여벌 열쇠를 만들었어 요. 그리고는 문서함을 열어 편지를 꺼내서 고돌핀 가로 가져갔던 겁니다." "그래서요?" "미리 정한대로 현관문을 두드렸어요. 루카스가 직접 열어 주더군요. 그의 뒤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갔지만 현관문을 좀 열어 놓았습니다. 둘이만 있는 것이 무 서워서요. 그런데 제가 들어갈때 문밖에 웬 여자가 혼자 서 있는게 눈에 띄더군 요. 교환은 곧 끝났어요. 루카스가 제 편지를 책상 위에 내놓았기에 저는 편지 를 넘겨 주었지요. 바로 그때 문간에 소리가 나더군요. 그리고는 복도에서 발소 리가 났어요. 루카스는 재빨리 양탄자를 젓히고 그 밑에 있는 비밀 장소에 편지 를 쑤셔 넣고 양탄자를 덮더군요. 그 뒤에 일어난 일은 악몽 같았어요. 지금도 살갗이 거무스름한 여자의 그 미친 얼굴이 눈앞에 선해요. 그 여자는 프랑스어 로, '이렇게 되는걸 지금까지 기다렸어! 드디어 딴 여자와 함께 있는 걸 잡았어 !' 하고 외치더군요. 지금도 그 목소리가 귀에 생생해요. 그리고는 무시무시한 싸움이 벌어졌어요. 루카스는 의자를 들어올리고 여자의 손에는 단도가 번쩍였어요. 저는 그 무서운 곳에서 정신없이 도망쳐 나왔어요. 하지만 루카스가 살해된건 이튿날 신문을 볼 때까지는 몰랐어요. 그날 밤 저는 몽롱한 기분으로 보냈지요. 그 편지를 되찾은 데다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는지 전혀 몰랐으니까요. 이튿날 아침에 저는 한 가지 불행을 피하기 위해서 또 하나의 불행을 끌어들인 것을 깨달았어요. 편지가 없어졌기때문에 남편이 괴로워하는 걸 보고서 저는 가 슴이 칼로 찔리는 것 같았어요. 당장 무릎을 꿇고 고백하고 싶을 정도였어요. 하지만 그렇게 하면 옛날일까지도 털어 놓아야만 해요. 저번날 제가 당신에게 찾아간 건 제가 저지른 것이 얼마나 큰가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어요. 그걸 확실히 안 뒤부터 저는 그저 남편의 편지를 되찾아야겠다는 일념에 사로잡혔어요. 서류는 아직 루카스의 양탄자 밑에 있는 비밀 장소에 있는 게 틀림없었어요. 그 여자가 나타난 바람에 숨겨 둔 곳을 알게 됐죠. 하지만 그 방에 들어가려면 어 찌하면 좋을까? 이틀동안 저는 그 집 동태를 살펴보았으나 한번도 현관이 비어 있지 않더군요. 그래서 어제 저녁에 마지막 운을 시도해 보았어요. 그때 제가 어떻게 했는가는 당신도 이미 알고 계시죠? 저는 편지를 가지고 돌아와 그걸 태워 버릴까도 생각해 봤어요. 남편에게 돌려 주면 제 잘못을 털어놓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죠. 어머, 계단에서 남편 발소리가 나는데요!" 호프 장관은 흥분하여 방안으로 뛰어들었다. "홈즈 씨, 무슨 정보라도 있나요?" "얼마만큼의 희망이 있습니다." 호프 장관의 얼굴이 빛났다. "아, 고맙소! 총리께서 점심때 오실 겁니다. 그분에게 희망이 있다는 말을 해도 좋겠습니까? 그분은 무쇠와 같은 신경을 갖고 계시지만, 이번에 일어난 끔찍한 사건 때문에 밤에 잠도 못 주무신 것 같아요. 제이콥스, 총리께 이곳으로 오시 도록 해주게. 아, 여보, 정치적인 이야기를 잠시 나눠야 하니 자리를 좀 피해 주겠소? 식당에서 기다리면 곧 가겠소." 총리의 태도는 침착하긴 했으나 매서운 눈초리나 뼈가 굵은 손이 떨리고 있는 것 으로 보아 호프 장관과 마찬가지로 무슨 커다란 걱정거리가 있는 것을 알 수 있 었다. "무슨 보고할 얘기가 있다고요, 홈즈 씨?" "지금까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그러나 편지가 넘어갈 만한 곳을 샅샅히 조사해도 못 찾아냈으니 우선은 위험이 없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오. 홈즈 씨. 언제까지나 이렇게 불안한 기분 으로 있는 건 견딜 수 없소, 무슨 뚜렷한 증거가 없고서는." "그건 입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찾아온 겁니다. 이 사건을 추리하면 할수록 편지는 이 댁에서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는 확신이 섭니다." "설마, 홈즈 씨?" "밖에 나가 있다면, 지금쯤이면 공개되지 않았겠습니까?" "그걸 훔쳐 내고서 집안에 숨겨 둔다는 것이 말이나 되오?" "아니, 아무도 편지를 훔치지 않았다는 걸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럼, 문서함에선 왜 없어졌겠소?" "문서함에서 없어진게 아닙니다." "홈즈 씨, 그건 지나친 농담이오. 내가 문서함에서 확실히 없어졌다고 말했잖소 ?" "화요일 아침 이후에 문서함을 조사한 적이 있으신가요?" "아니, 그럴 필요는 없었소." "혹시 잘못 보시기라도...." "말도 안되는 얘기요." "그러나 저는 그런 예도 몇 가지 알고 있습니다. 문서함 속에는 다른 서류도 들 어 있을 거고 그렇다면 다른 것들과 뒤섞인게 아닐까요?" "제일 위에 두었었소." "상자를 움직였으면 위치가 바뀔수도 있잖겠습니까?" "아니, 그럴리가 없소! 전부 꺼내 보았으니까." 총리가 끼어들었다. "그건 간단히 알 수 있는 일이 아니오. 문서함을 가져오라고 하시오." 호프 장관은 초인종을 눌러 집사를 불렀다. "제이콥스, 문서함을 가져오게. 이건 시간 낭비지만, 총리께서 그렇게 말씀하시 니 조사해 보지요. 수고했네, 제이콥스. 이곳에 놔두게. 열쇠는 언제나 제 시곗 줄에 붙어 있습니다. 자, 이게 서류들입니다. 메로우 경의 편지, 찰스 경의 보 고서, 베르갈드 각서, 마드리드에서 온 편지, 플라워스 경의 편지....아니~! 벨 린저 경이라고!" 총리는 호프 장관의 손에서 푸른 봉투를 낚아챘다. "이거군~! 알맹이도 그대로야~! 호프 장관, 천만다행이오." "고맙소! 고마워요! 이제야 무거운 짐이 풀렸소! 그렇지만 이런 일은 상상밖이 오. 홈즈 씨, 당신은 마술사요, 마술사~! 그런데 이속에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 소?" "이곳밖에는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호프 장관은 미친듯이 문간을 뛰어갔다. "힐다! 힐다!" 총리는 놀라면서 홈즈를 탐색하듯이 쳐다보았다. "이보시오. 이런 뜻밖의 결과가 된건 무슨 까닭이 있을 텐데? 이 편지가 어떻게 해서 문서함으로 돌아왔소?" 홈즈는 빙긋이 웃으면서 대꾸했다. "우리에게도 외교상의 비밀이 있습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홈즈는 모자를 집어들고 문 쪽으로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