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어리 학교의 수수께끼 사건 쓰러져 버린 의뢰인 홈즈와 내가 살고 있는 베이커 거리의 하숙집에는 언제나 무척 많은 사람이 드나든다. 말하자면, 우리 하숙집은 인생의 커다란 무대와 같은 것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문학박사이며 철학박사인 헉스터블 씨가 나타났을 때만큼 우리 가슴을 조마조마하게 한 적은 없었다. 딱딱한 직함이 쓰여 있는 명함이 먼저 전해지고 그 다음에 헉스터블 박사가 들어왔다. 그는 몸집이 매우 건장하고 누구에게나 호감을 주는 얼굴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런데 방에 들어온 헉스터블 박사는 문을 닫자마자 비틀거리면서 몇 발자국 걷지 못하고 탁자에 부딪쳐 버렸다. 그리고 그의 큰 몸이 엎드리듯이 앞으로 푹 쓰러져 버렸다. 우리는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났지만, 잠시 동안은 어리둥절해져서 곰 가죽 위에 쓰러진 사람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기만 했다. 이윽고 홈즈는 재빨리 방석을 머리 밑에 깔아 주었고, 나는 브랜디를 입에 흘려 넣어 주었다. 쓰러진 사람의 얼굴은 매우 창백했으며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감고 있는 눈 밑은 거무스름했으며, 입은 반쯤 벌리고 있었고, 둥근 턱 주위에는 수염이 텁수룩하게 자라 있었다. 흰 와이셔츠의 깃은 긴 여행 때문인지 매우 더러웠고 머리카락도 더부룩했다. "어떻게 된 걸까, 와트슨?" 나는 그의 손목을 잡고 맥을 짚어 보았다. 희미했다. "대단히 지쳐 있는 모양이로군." 홈즈는 그 남자의 조끼 주머니를 뒤지더니 차표를 한 장 꺼냈다. "북 잉글랜드의 맥클턴에서 끊은 왕복 차표이네. 아직 12시도 안되었는데. 꽤 일찍 출발한 모양이군." 그때 그 남자는 축 늘어진 눈꺼풀을 바르르 떨면서 간신히 눈을 거슴츠레 하게 뜨며 우리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나더니, 부끄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런 모습을 보여 드려서 죄송합니다. 며칠동안 계속 무리를 했더니 몹시 지쳤나 봅니다. 홈즈 씨, 미안하지만 우유와 먹을 것 좀 주시지 않겠습니까? 뭣 좀 먹으면 기운이 날 것 같습니다. 실은 홈즈 씨를 만나려고 온 겁니다. 전보로 치기에는 일이 너무 긴박해서 실례인 줄은 알면서도 이렇게 달려왔습니다." "좀더 누워 계셔야 할 텐데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약해졌을까? 그보다도, 홈즈 씨, 다음 열차로 맥클턴까지 가주실 수 없겠습니까?" 홈즈는 머리를 저으면서. "여기 있는 와트슨 박사에게 물어 보아도 알겠지만, 지금 형편으론 갈 수가 없을 것 같군요. 사실은 여러가지 사건이 겹쳐 있어서 굉장히 바쁩니다. 어느 정도 큰 사건이 아니면 런던을 떠날 수 없습니다." "아니, 아닙니다. 굉장히 큰 사건입니다! 저 홀더네스 공작의 외아들이 유괴당했습니다. 이 사건에 대해서 아직 아무 것도 듣지 못하셨습니까?" "아, 전 총리인 홀더네스 공작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경찰에 알리지도 않고 은밀하게 수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녁 신문인 '글러브'지에 그에 대한 기사가 조금 실렸기 때문에 벌써 알고 계시리라 생각했습니다." 홈즈는 책꽂이에서 인명사전을 빼내어 어느 면을 펼치더니 소리 내어 읽었다. "홀더네스 제 6대 공작. 가터 일등 훈장 수여자, 추밀 고문관 등. 모두 어마어마한 직책들이군. 그리고 1888년에 애플도어 경의 딸인 이디스와 결혼하여 외아들 샐타이어를 두었다. 주소는 칼턴 하우스 테라스 핼람셔의 홀더네스 홀, 1872년에 해군장관. 총리..... 등. 정말 지위나 경력만큼은 굉장한 사람이군." "홈즈 씨, 나는 당신이 매우 점잖고 또한 일에만 몰두한다는 것을 잘 알고 왔습니다. 사실대로 말씀드리자면, 공작은 자식이 있는 곳을 알려주는 사람에게는 5천 파운드. 그리고 유괴한 범인의 이름을 알려주는 사람에게는 별도로 1천 파운드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과연 대귀족다운 사례로군요. 와트슨, 헉스터블 박사와 함께 잉글랜드 북부로 가보지 않겠나? 그러면 헉스터블 박사님, 우유를 드시고 나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사건의 줄거리를 자세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그리고 프라이어리 학교의 교장 선생님이신 당신이 이 사건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또 왜 사건이 일어난 지 며칠이 지난 다음에야---이것은 박사님의 텁수룩한 수염을 보고 알았습니다---나에게 부탁하게 되었는지 그 까닭을 설명해 주십시오." 헉스터블 박사는 우유와 과자를 먹고 나더니 어느 정도 기운을 차렸다. 그는 조용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꺼냈다. "먼저 두 분이 알아두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프라이어리 학교는 내가 세웠고, 또 내가 교장으로 있으며, 보통 초등학교와는 달리 주로 귀족의 어린이들을 맡아서 가르치고 있는 좀 특별한 학교이지요. 그럼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3주일 전이었습니다. 홀더네스 공작은 월더 비서를 학교에 보내 외아들이며 후계자인 10살 된 셀타이어 소년을 나에게 맡기고 싶다고 했습니다. 나는 우리 학교의 최대의 명예라고 생각하여 그 자리에서 당장에 허락을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내 인생의 가장 큰 불행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셀타이어 소년은 여름 학기가 시작되는 5월 1일에 학교에 도착했습니다. 귀여운 셀타이어 소년은 곧 학교 생활에 익숙해졌습니다. 음, 여기에서 또 한 가지 좋지 않은 일을 말씀 드려야겠군요. 셀타이어 소년의 가정 환경은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닙니다. 공작의 결혼생활은 순조롭지 못했는데, 끝내는 부부 합의로 헤어져서 공작 부인은 남프랑스로 갔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는 그 당시에는 비밀이었지만 지금은 널리 알려져서 그 주위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지요. 이 일은 바로 얼마 전에 일어난 겁니다. 셀타이어 소년의 말에 의하면 어머니는 항상 우울해 하고 힘이 없었기 때문에 공작이 셀타이어 소년을 우리 학교에 맡기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2주일이 지나자 셀타이어 소년은 학교 생활에 적응을 해서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5월 13일 밤, 그러니까 이번 주 월요일 밤에 그 아이가 사라져 버린 겁니다. 셀타이어 소년의 방은 2층인데, 그곳은 다른 두 학생이 쓰는 큰 방을 지나서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두 학생은 아무 것도 보지 못했고,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셀타이어 소년이 그 큰 방을 지나서 밖으로 나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셀타이어 소년의 방의 창문은 열려 있었으며, 굵은 담쟁이 덩굴이 바로 그 아래에 벽까지 올라와 있었지만, 그 밑에 땅에는 발자국이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으로 보아 셀타이어 소년이 나간 곳은 창문이 아니라 다른 곳인것 같습니다. 셀타이어 소년이 없어졌다는 것은, 다음날, 즉 화요일 아침 7시가 되어서야 알았습니다. 셀타이어 소년의 침대에는 잠을 잔 흔적이 없었습니다. 그 아이는 아마 교복인 검은 윗도리에 진한 회색 바지를 입고 나갔을 겁니다. 그 아이의 방에는 누가 들어온 흔적 같은 것은 전혀 없었습니다. 옆방에서 자고 있던 컨터라는 소년은 조그만 소리에도 잠이 깨는 민감한 학생이므로 셀타이어 소년의 방에서 무슨 소리가 났다면 못 들었을 리가 없을 겁니다. 셀타이어 소년이 없어졌다는 것을 알고 나는 곧 전체 학생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보았습니다. 그러나 없는 사람은 셀타이어 학생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이데거라는 독일인 선생 역시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하이데거 선생의 방도 셀타이어 소년의 방과 마찬가지로 2층의 맨 구석에 있습니다. 올라가 보니 하이데거 선생의 침대에도 잔 흔적은 없었습니다. 와이셔츠와 양말이 탁자에 흩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하이데거 선생은 단정한 차림으로 나간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이데거 선생은 덩굴을 타고 내려간 모양입니다. 창 밑의 잔디밭에는 발자국이 남아 있었고, 그 잔디밭 바로 옆의 오두막집에 항상 놓아두었던 그의 자전거도 없어졌습니다. 하이데거 선생은 우리 학교에 온지 2년이 넘었지만, 말이 없고 성격이 까다로와서 학생들 사이에서는 전혀 인기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셀타이어 소년과 하이데거 선생의 행방을 사방으로 찾아 보았지만 발자국조차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홀더네스 공작의 집에도 가보았습니다. 셀타이어 소년의 집은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셀타이어 소년이 없어졌다는 말을 듣고, 나는 그 어린 아이가 집이 그리워서 돌아갔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공작은 대단히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홈즈 씨, 이제는 내가 왜 이렇게 불안해하고 슬퍼하는지 아시겠습니까? 제발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이상한 사건 홈즈는 교장의 말을 한마디도 빠뜨리지 않고 들으려고 귀를 기울였다. 눈썹을 치켜 올리고 이마에 주름을 모으고 있는 것으로 보아 홈즈는 이 복잡하고 기괴한 사건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분명했다. 홈즈는 수첩을 꺼내서 무엇을 적어 넣더니 심각하게 말했다. "왜 좀더 빨리 오시지 않았습니까? 그 때문에 수사하기가 굉장히 어렵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당신들은 담쟁이 덩쿨이나 잔디밭에서 사건의 실마리를 아무 것도 알아내지 못했지만, 전문가가 본다면 결정적인 것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지요. 그건 그렇고, 공작은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매우 꺼리고 있습니다. 가정의 불행이 폭로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겠지요." "그곳 경찰들이 수사를 했습니까?" "예, 그렇지만 경찰에서도 그 이상은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한 소년과 젊은 남자가 아침 일찍 가까운 역에서 열차를 타는 것을 보았다는 신고를 받고 그 두 사람을 쫓아 리버풀까지 가보았지만, 사건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것은 어젯밤에 있었던 일입니다. 나는 너무 걱정이 되어서 뜬눈으로 밤을 꼬박 새우고 날이 새자마자 열차를 타고 곧장 이곳으로 달려온 겁니다." "그 동안 마을 경찰에서는 조용히 있었습니까?" "예, 나중에는 아예 모르는체 하더군요." "아, 그렇군요. 게다가, 당신은 사흘간이나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대로 보냈습니다. 좀더 빨리 오셨더라면 쉽게 해결할 수 있었을텐데..." "정말, 그러고보니 내가 어리석은 짓을 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사건 같지는 않습니다. 좋습니다. 내가 맡아 보겠습니다. 셀타이어 소년과 하이데거 선생과는 어떤 특별한 관계라도 있습니까?" "글쎄,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아무 사이도 아닐 겁니다." "그래요....? 이상하군요. 그 아이는 자전거를 가지고 있습니까?" "아니요." "그러면, 자전거가 없어지지는 않았습니까?" "아니오,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확실합니까?" "예. 틀림없습니다." "음, 그러면 당신은 그 독일인 선생이 한밤중에 셀타이어 소년을 안고서 자전거를 타고 도망 갔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설마, 그럴 리야 있겠습니까?" "그러면, 교장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자전거는 단순히 우리 눈을 속이는 수단일 겁니다. 아마 두 사람은 걸어서 도망 갔을 겁니다." 글쎄, 그런 자전거 한 대로 사람의 눈을 속일 수 있을까요? 오두막집에는 다른 자전거도 있었나요?" "4-5대 있었습니다." "자전거로 도망 갈 생각이었다면 아마 2대를 가지고 나갔을 겁니다." "그렇겠군요." "그러면 자전거를 어디에 숨겨 두었을까요? 그 두 사람이 걸어서 나갔다거나, 또는 자전거가 거리나 시간을 혼동시키기 위한 도구라고 생각한 것은 잘못 짚으신 겁니다. 하지만 제일 먼저 자전거를 찾아보았다는 것은 참 잘한 일입니다. 하여튼 자전거는 어디에 숨겨 두거나 부수기가 힘든 것이지요. 또 한 가지 여쭈어 보겠습니다. 셀타이어 소년이 없어지기 전날에 그 아이를 만나러 온 사람은 없었습니까?" "없었습니다." "그럼 편지는?" "한 통 왔었습니다." "누구에게서 왔습니까?" "홀더네스 공작에게서 왔습니다." "학생들에게 온 편지는 뜯어 보시겠지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공작에게서 왔다는 것을 알았습니까?" "봉투에 공작의 휘장이 찍혀 있었고, 또 그 딱딱한 글씨체를 보고 틀림없이 공작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전에 편지는 언제쯤 왔습니까?" "5-6일쯤 전에 왔습니다." "프랑스에 있다는 어머니에게서는 편지가 없었습니까?" "예, 한 번도 없었습니다."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아시겠습니까? 셀타이어 소년이 강제로 끌려갔는가, 아니면 스스로 도망 갔는가를 알아내려고 하는 겁니다. 자기 스스로 도망을 간다는 것은 10살 난 어린이 혼자의 생각으로는 결정할 수 없는 일입니다. 분명히 뒤에서 누가 슬쩍 부추겼을 겁니다. 찾아온 사람이 없었다고 하니, 틀림없이 그 편지에 무엇이 있을 겁니다. 그래서 그 편지를 보낸 사람을 찾으려고 하는 겁니다." "셀타이어 소년에게 편지를 보내는 사람은, 내가 알기로는 공작뿐입니다." "공작이 그 아이가 없어지기 바로 전날 편지를 보냈다는 것이죠? 공작은 아들을 어떻게 대해 주었습니까? 엄격했습니까, 아니면 무관심했습니까?" "공작은 누구와 특별히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아닌 모양입니다. 공적인 문제에는 열심이지만, 개인적인 감정으로는 전혀 움직이지 않는 분이지요. 그렇지만, 아들에게만은 아주 자상하게 대해 주었습니다." "흠, 그럼 셀타이어 소년은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있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 아이에게서 직접 들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공작이 이야기하시던가요?" "공작은 그런 이야기를 할 분이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알았습니까?" "윌더 비서가 이야기해 주더군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셀타이어 소년이 없어진 뒤에 공작에게서 왔다는 편지를 보셨습니까?" "아무리 찾아보아도 없었습니다. 아마 셀타이어 소년이 가지고 간 모양입니다. 그런데 홈즈 씨, 이제 슬슬 역으로 나가 보아야 할 것 같군요." "마차를 부를 테니, 15분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런데 헉스터블 씨, 여기에서 댁으로 전보를 치신다면 아직도 리버풀이라든가 다른 곳에서 수사를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면 비밀 수사를 할 수 있을 테지요. 와트슨과 함께 조사를 한다면 무언가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 겁니다." 현지에서의 조사 그 날 저녁 무렵, 우리는 헉스터블 박사의 학교가 있는 영국 북부 지방에 도착했다. 그곳의 공기는 런던과는 달리 매우 맑고 상쾌했다. 우리가 도착한 것은 벌써 날이 어두워진 뒤였다. 응접실에 들어가니 탁자 위에 명함이 한 장 놓여 있었다. 집사가 들어와서 박사의 귀에 대고 무어라고 소곤거리자 박사는 깜짝 놀라면서 우리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공작이 오신 모양입니다. 윌더 비서와 함께 서재에 계시다고 합니다. 그러면 소개해 드릴 테니 함께 가시죠." 나는 그 유명한 정치가의 얼굴을 사진으로 몇 번 보아서 알고 있었지만 직접 만나보니 사진과는 인상이 매우 달랐다. 홀더네스 공작은 키가 크고 체격이 당당했지만 얼굴은 몹시 야위었으며 얼굴 색은 마치 죽은 사람같이 창백했다. 붉은 턱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들어갔을 때 공작은 난로 앞에 우뚝 서있었다. 바로 옆에 젊은 남자가 서 있었는데, 이 사람이 바로 윌더 비서인 것 같았다. 몸집이 자그마하고 성격이 날카로워 보였지만, 꽤 똑똑한 젊은이 같았다. 그는 홈즈 일행을 보자마자 대단히 자신 있는 태도로 이야기했다. "헉스터블 박사님이 런던에 가는 것을 말리려고 아침 일찍 왔지만 이미 떠나셨더군요. 박사님께선 셜록 홈즈 씨에게 이번 사건을 부탁할 생각이었겠지만, 공작님께서는 박사님이 아무 의논도 없이 그렇게 한 것에 대해서 매우 못마땅하게 여기고 계십니다." "경찰이 아무 것도 알아내지 못해서...." "공작님은 경찰의 수사가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다." "그렇지만, 윌더 씨...." "헉스터블 박사님, 공작님께서는 이 일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매우 꺼려 하신다는 것은 박사님도 잘 알고 있지 않으십니까? 이 일에 대해 아는 사람의 수를 될 수 있는 대로 적게 하려는 것이 공작님의 뜻입니다." "그러면, 홈즈 씨를 런던으로 돌아가게 할까요?" 하고 헉스터블 박사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박사님, 그건 좀 곤란합니다." 하고 홈즈는 온호한 목소리로 말을 가로막았다. "공기가 맑은 곳에서 2-3일 머물면서 머리를 식히고 싶습니다. 여기가 곤란하다면, 마을에 있는 여관에서 묵겠습니다." 그렇게 말하자, 박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마음을 결정하지 못하고 당황해 했다. 그러자, 붉은 수염의 공작이 식사를 알리는 종소리 같은 이상한 목소리로.. "헉스터블 박사, 나도 윌더 비서와 같은 생각이오. 그런 일은 미리 나와 의논을 하는 것이 좋았을 걸 그랬소. 그러나, 홈즈 씨. 이미 이번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니 수고를 해주시오. 그리고 여관 같은 곳에서 묵지 말고 홈즈씨만 괜찮다면 우리 집에서 묵는 것이 어떻겠소?" 홈즈는 가볍게 머리를 숙이면서, "감사합니다만, 수사의 형편상 오히려 현장인 이곳에 있는 편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좋으실 대로 하시오. 그리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서슴지 말고 나나 윌더 비서에게 물어 보시오." "저택에 대해서 여쭈어 보고 싶은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먼저 아드님이 없어진 것에 대해서 무언가 짐작 가는 것이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 일에 대해서 나는 아무 것도 모르오." "실례가 되는 줄 알지만 어쩔 수 없이 여쭈어 보아야겠습니다. 프랑스에 계신 부인께서 이 사건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까?" 공작은 매우 난처한 표정을 짓다가 한참 만에 더듬거리면서 말했다. "관계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소." "그렇다면 몸값을 받기 위한 유괴사건이 되겠군요. 그와 같은 요구를 받으신 적이 있습니까?" "없소." "그렇다면 한 가지만 더 여쭈어 보겠습니다. 혹시 사건이 일어났던 날에 아드님 앞으로 편지를 쓰셨습니까?" "편지를 쓴 것은 그 전날이오." "아, 그렇겠군요. 그리고 아드님이 그걸 받은 것은 사건 당일이었고요?" "그렇소." "그 편지에다 아드님이 충격을 받을 만한 그런 이야기를 쓰셨습니까?" "아니오, 다른 때와 똑같이 평범한 이야기를 썼소." 그러자 윌더 비서가 기분 나쁜 태도로 공작을 대신 해서 대답했다. "공작님께선 편지를 직접 부치지 않았습니다. 그 편지는 다른 것과 함께 서재의 탁자 위에 놓여 있는 것을 내가 부쳤습니다." "그 편지는 분명히 그 가운데에 있었습니까?" "예, 틀림없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날 공작님께서는 편지를 몇 통 정도 쓰셨습니까?" "20-30통 정도 썼을 거요. 이런 것은 사건과는 관계가 없지 않을까요?"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하고 홈즈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나는 이곳 경찰에게 프랑스에 있는 내 아내에게 주의를 돌리라고 충고를 준 적이 있소. 아내가 이런 엉뚱한 짓을 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외고집인 그 아이가 그 독일인 선생에게 충동질 당하여 제 어머니가 있는 곳으로 달려갈 수도 있지 않겠소? 헉스트블 박사, 나는 이만 집으로 가보아야 겠소." 홈즈는 아직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이 있었지만 공작이 이렇게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에 단념할 수 밖에 없었다. 공작은 가문의 명예 때문에 복잡한 가정의 일을 더 이상 알리기가 싫었던 것이다. 공작이 비서를 데리고 나가자 홈즈는 당장 수사를 시작했다. 셀타이어 소년의 방을 자세히 조사했지만 특별히 이상한 것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창문으로 나갔다는 것은 확인되었다. 독일인 선생의 방도 조사했지만 역시 실마리는 잡히지 않았다. 창문 바로 아래 벽에 붙어 있는 담쟁이 덩굴이 그의 몸무게로 휘어져 있었으며, 칸델라로 그 밑의 잔디를 비추어 보니 거기에는 발꿈치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 작은 잔디밭 위에 있는 단 하나의 움푹한 곳이 이 수수께끼 사건의 단 하나의 실마리였다. 그 길로 홈즈는 혼자 밖으로 나갔다가 11시가 넘어서야 돌아왔다. 그는 어디서 구했는지 이 마을의 큰 지도를 가지고 와서 그것을 침대 위에 펼쳐 놓았다. "와트슨, 사건이 점점 재미있게 되어가고 있네. 자네도 이 기회에 이 주변의 지리를 잘 익혀 두게. 나중에 큰 도움이 될 걸세. 이리 와서 이 지도를 좀 보게. 이 건물이 바로 프라이어리 학교라네. 이 선은 학교 앞을 지나가는 길인데, 학교에서부터 어느 쪽으로도 1.5km 이내에는 샛길이 없네. 그러니까, 그 두 사람이 길을 지나갔다면 이 길밖에는 없는 셈이지." "그렇군." "다행히 그 날 밤 이 길로 지나간 사람을 찾아낼 수 있었네. 이곳에서 경관이 밤 12시부터 아침 6시까지 경계를 하고 있었던 덕분이지. 이 지점은 샛길이 시작되는 곳이어서 그 경관은 여기에서 지키고 있었다고 하는군. 그런데 그 날 밤에는 아이건 어른이건, 아무도 그 길을 지나가지 않았다고 했네. 지금 나는 그 경관을 만나고 왔는데 믿을 만한 사람이더군. 그러니까 이쪽은 더이상 살펴보지 않아도 될 걸세. 다음에는 학교 건물의 서쪽 길을 살펴보았네. 이곳에는 적우 여관이 하나 있네. 그 날 밤에 그 여관의 주인 아주머니가 아파서 맥클턴 마을까지 의사를 부르러 사람을 보냈으나 공교롭게도 의사는 다른 곳으로 왕진을 가고 없었다고 하네. 그럭저럭 아침이 되었네. 그래도 혹시 의사가 올까하고 여관 주인은 이 길로 나가서 계속 살펴보았다고 하네. 그런데 아무도 지나가지 않았다는 걸세. 경관과 여관 주인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그 두 사람은 그 날 밤 이 길로는 지나가지 않은 것이 분명하네." "자전거를 타고 간 것이 아닐까?" "그렇지. 그 두 사람이 길을 지나가지 않았다면 이쪽 들판으로 지나갔을 텐데. 그곳은 도저히 자전거로는 갈 수 없는 곳이네. 지도를 보면, 들판은 학교의 남쪽에 있네. 그렇지만 그 들판의 둘레는 돌담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자전거로는 도저히 건너갈 수가 없네. 따라서, 이쪽도 더 이상 살펴보지 않아도 될 걸세. 그렇다면 북쪽을 보세. 지도에 의하면 넓지는 않지만 울창한 숲이 있고, 그 주위에는 넓은 로우어 길 황무지가 펼쳐져 있네. 그리고 그 건너편에 홀더네스 공작의 집이 있네. 그 집은 길을 따라서 가면 16km이고, 황무지를 가로질러 가면 기껏해야 10km밖에 되지 않네. 이 황무지에는 가난한 농부가 군데군데 양이나 소를 기르고 있으며, 체스터필드 거리에는 조그만 집이 2-3채 있고, 교회와 여관이 한 채씩 있네. 또 그 맞은편에는 가파른 언덕이 뻗어 있네. 아무래도 우리는 학교의 북쪽을 조사해야 될 것 같지 않나?" "그러나 그들은 자전거를 가지고 갔잖나?" "그래. 자네가 생각하는 서투른 자전거 솜씨로는 안되겠지만 숙달된 사람이라면 이런 황무지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을 걸세. 이 황무지에는 자전거가 지나갈 만한 오솔길이 몇 개 있고, 또 그 날 밤은 날씨도 맑고 달도 밝았다고 하네." 그때 문을 세게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헉스터블 박사가 급하게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푸른색의 운동 모자가 들려 있었는데, 모자 앞에는 흰색으로 산 모양의 마크가 새겨져 있었다. "홈즈 씨, 드디어 실마리를 찾아냈습니다. 바로 이겁니다. 셀타이어 소년의 모자입니다." "어디에 있었습니까?" "황무지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는 집시의 짐수레에 있었습니다. 집시들은 화요일에 황무지를 떠났는데, 경찰이 뒤쫓아서 오늘에야 붙잡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짐수레에서 이것이 나왔다고 하는군요." "그 집시들은 뭐라고 말했답니까?" "화요일 아침에 황무지에서 주웠다고 했다지만 그건 거짓말입니다. 그들은 틀림없이 셀타이어 소년이 있는 곳을 알고 있을 겁니다. 집시들은 지금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으니까, 곧 진상을 알아낼 수 있을 겁니다." 홈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박사는 이 말을 끝내자마자 바로 나갔다. "아무튼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야 할 곳은 북쪽이네. 경찰은 집시를 체포했지만, 그들에게서는 더 이상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할 걸세. 와트슨, 다시 한번 지도를 보게. 황무지에는 수로가 지나고 있고 늪도 몇 군데 있네. 그 가운데에서도 홀더네스 공작의 집과 학교 사이가 제일 질퍽한 곳 같네. 이곳은 날씨가 계속 맑았다고 하지만, 여기처럼 질퍽한 곳에서는 무슨 흔적이 있다면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을 걸세.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이곳을 조사해 보아야겠네." 시체의 발견 다음날 아침에 눈을 떠보니 홈즈는 벌써 일어나 있었다. 아직 이른 새벽인데도 홈즈는 단정하게 옷을 차려 입고 있었다. 그의 얼굴로 보아 벌써 한 바퀴 둘러보고 온 것 같았다. "잔디밭과 자전거가 있던 오두막집을 둘러보고 왔네. 작은 숲에도 가보았네. 자, 와트슨, 옆방에 코코아가 준비되어 있네. 오늘은 할 일이 무척 많으니까 빨리 일어나서 준비를 해야 되네." 홈즈의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으며, 흥분 때문인지 얼굴은 붉어져 있었다. 그것을 보고 나는 오늘 할 일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직감했다. 우리는 양들의 발자국이 어수선하게 나 있는 황무지를 지나서 드디어 늪지에 도착했다. 그곳은 프라이어리 학교에서 홀더네스 공작의 집으로 갔다면 틀림없이 이곳으로 지나갔을 것이고, 반드시 무슨 흔적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몇 번이고 늪지 주위에 조사해 보았지만 어느 누구도 지나간 흔적이 없었다. 홈즈는 늪 주위를 돌면서 이끼가 잔뜩 낀 땅바닥을 열심히 살펴보았다. 그러나, 발자국 하나 찾아내지 못하자, 홈즈의 얼굴이 우울하게 변했다. 땅에는 양의 발자국이 여기저기 있었고, 몇 km앞에는 소 발자국도 보였다. 넓게 펼쳐져 있는 황무지를 우울한 얼굴로 멀리 바라다보면서 홈즈는 이렇게 말했다. "와트슨, 여기를 보게. 이곳이 잘록하게 들어가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저쪽까지 늪이 이어져 있는 것 같네. 어~! 이건 뭐지?" 우리가 이끼 낀 길에서 옆의 작은 길로 빠져 나오니 그 주변에는 선명한 자전거 바퀴 자국이 나 있는 것이었다. "홈즈, 드디어 찾아 냈군!" 나는 이렇게 소리 질렀지만 홈즈는 머리를 옆으로 흔들었다. 기쁘다기보다는 무언가 매우 의심스럽다는 표정이었다. "자전거 바퀴의 자국은 틀림없지만, 하이데거 선생의 자전거는 아니네. 나는 자전거 바퀴에는 42종류가 있다고 알고 있네. 그런데 던롭사의 자전거 바퀴 같군. 하이데거 선생의 자전거 바퀴는 아래위로 긴 줄무늬가 있는 파머사에서 만든 것이야. 아벨링이라는 수학 선생이 알려주더군. 그러니까, 이것은 하이데거 선생의 자전거는 아니네." "그러면, 그 아이의 것인가?" "셀타이어 소년이 자전거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렇지는 않을 걸세. 왜냐하면 아직까지는 셀타이어 소년이 자전거를 탔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이야. 이 바퀴 자국으로 보아 학교 쪽에서 오고 있었던 것 같군." "학교 쪽으로 가고 있었는지도 모르지 않은가?" "와트슨, 잘 보게. 자국이 선명한 것은 몸의 중심이 실리는 뒷바퀴 자국이고, 흐린것은 앞바퀴 자국이네. 바퀴 자국이 이런 식으로 계속 이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이것은 학교 쪽에서 온 것이 틀림없네. 이 자전거의 흔적이 이번 사건과 관계가 있는지 없는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이 바퀴 자국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 보세." 그곳에서 자전거 바퀴 자국을 따라 200-300m 정도 올라가니 황무지의 늪지를 벗어나게 되었고 자전거 바퀴 자국도 없어져 버렸다. 다시 옆으로 난 작은 길로 들어가니 물이 솟아나는 작은 샘이 있었다. 그곳에도 자전거 바퀴 자국이 있었으나 소의 발자국으로 거의 지워져 있었다. 그 작은 길을 따라 계속 가니 학교 건물의 뒤쪽이 보였고, 그 길은 작은 숲과 통하게 되어 있었다. 자전거는 이 숲에서 나온 것이 틀림없었다. 홈즈는 두 손으로 턱을 괴고 돌에 앉아서 골똘히 무슨 생각에 빠져 버렸다. 그는 20분정도 꼼짝 않고 그렇게 앉아 있었다. 그러더니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과연 그렇군. 자전거 바퀴를 바꾸어서 다른 흔적을 남길 정도로 교활한 녀석이라면 한번 생각해 볼만하군. 그건 그렇고, 다시 한번 늪지로 가보세. 아마 우리가 찾아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 버린 것이 많이 있을 걸세." 우리는 다시 늪지로 가서 그 주위를 샅샅이 조사하며 걸었다. 늪지의 낮은 곳에는 질퍽거리는 샛길이 있었다. 홈즈는 그곳으로 다가가더니 갑자기 기쁜 소리를 질렀다. 그 길의 한가운데에는 전깃줄 뭉치 같은 무슨 흔적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파머사의 자전거 바퀴 자국이었다. "음, 역시 하이데거 선생의 짓이네! 이만하면 내 머리도 제법 쓸 만하군." "축하하네." "축하받기는 아직 이르네. 와트슨, 우리 이 자국을 따라가 보세. 내 생각으로는 그렇게 멀리까지는 이어져 있을 것 같지는 않네. 그리고 이 주변의 땅은 매우 질기 때문에 아마 바퀴 자국도 선명하게 남아 있을 걸세. 와트슨, 자전거의 주인은 아마 여기에서는 속력을 내지 못했을 거네. 이것을 보게. 앞바퀴와 뒷바퀴의 자국이 모두 확실하게 보이지 않나? 이것은 속력을 내기 위해서 핸들에 몸의 중심을 실었다는 증거일세. 저런, 여기서는 넘어졌었군!" 몇 m쯤 올라가다 보니, 갑자기 바퀴 자국이 어지럽게 뒤섞였고 바퀴 자국 주위에 사람 발자국이 몇 개 보였다. 그러나 자전거 바퀴 자국은 다시 이어졌다. "옆으로 넘어진 모양이군." 하고 내가 말했다. 하지만 홈즈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몸을 구부려서 진흙 위에 떨어진, 몹시 찌부러진 히드꽃 가지를 주워 올렸다. 나는 그것을 보는 순간 소름이 오싹 끼쳤다. 그 가지에 달려 있는 노란색 꽃이 피로 빨갛게 물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라서 길 주위를 다시 한 번 살펴보니, 저쪽 풀 위에도 피가 튀어서 시커멓게 굳어 있었다. "이거 정말 지독하군! 와트슨, 가까이 오지 말게. 쓸데없이 발자국이 생겨서 혼동될까 봐 그러네. 이 사람은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나서 자전거를 타고 갔군. 틀림없네. 다른 흔적은 아무 것도 없는데....혹시 길을 지나 가던 소의 뿔이라도 받힌 것일까? 그렇지만 소의 뿔에 받혀서 피를 흘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네. 조금만 더 앞으로 가보세. 와트슨, 자전거 바퀴 자국도 있고, 핏자국도 있으니까 반드시 무언가를 알아낼 수 있을 거네." 조사하는데는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자전거 바퀴 자국은 질퍽한 샛길 위를 구불구불 돌아 뻗어 있었다. 그 자국을 따라 눈길을 옮기던 순간, 무성한 히드 숲 가운데서 반짝 빛나는 금속성 물질이 눈에 띄었다. 자전거였다. 게다가 바퀴는 파머사 것이었고, 한쪽 페달이 구부러져 있었으며 핸들은 온통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숲의 건너편에는 구두가 한 짝 떨어져 있었다. 숲을 돌아서 달려가보니, 불행한 자전거의 주인이 쓰러져 있었다. 그는 키가 크고 수염이 잔뜩 난 얼굴에 안경을 쓰고 있었으나, 그 한쪽 알은 깨져 있었다. 머리를 세게 얻어맞고 죽은 것 같았다. 이런 상처를 입었으면서도 이만큼이나 달려온 것으로 보아 꽤 기운이 세고 강한 체력을 지닌 사람 같았다. 그는 맨발에 구두를 신고 있었으며 윗저고리는 벌어져 있었고 그 밑으로 잠옷이 보였다. 틀림없이 하이데거 선생이었다. 윌더의 수상한 행동 홈즈는 조심스럽게 그 시체를 옆으로 누이고 자세히 살펴보더니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홈즈가 이렇게 이마에 주름살을 모으고 무슨 생각에 잠기는 것은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늘 하는 습관이었다. 이윽고 홈즈가 입을 열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네. 조금씩 어려워지는군. 나는 여기에서 수사를 계속하고 싶네만, 지금까지 우리는 꽤 많은 시간을 쓸데없이 보냈기 때문에 이렇게 여기에서만 우물쭈물하고 있을 사이가 없네. 일단 경찰에 알려서 이 불쌍한 시체에 대해서 수사를 하도록 해야 되겠어." "내가 다녀와야겠군." "아니, 자네는 여기에서 나를 도와주어야 하네. 잠깐 기다려보게. 저기 이탄(완전히 탄화하지 못한 석탄의 한 가지)을 캐고 있는 남자가 있잖나? 저 사람을 불러서 경찰에 보내는 것이 어떨까?" 내가 그 남자를 불러오자 홈즈는 편지를 써서 그에게 들려 헉스터블 박사에게 보냈다. "와트슨, 우리는 여기에서 단서를 두 개 찾았네. 하나는 파머사의 바퀴 자국인데, 우리는 이것이 어디로 갔나 까지 확인해 보았네. 또 하나는, 던롭사의 자전거 바퀴 자국이네. 다시 조사를 시작하기 전에, 지금까지 우리가 알아낸 것들을 한번 더 정리해 보세. 먼저, 셀타이어 소년은 자기 스스로 학교에서 도망 갔네. 그 아이는 누구에게 유괴당한 것이 아니라 제발로 도망간 것이 틀림없네. 다음에는 이 불쌍한 독일인 선생이네. 셀타이어 소년은 단정한 옷차림으로 도망 갔네. 이것은 그 아이가 미리 도망 갈 계획을 세웠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네. 그러나 이 독일인 선생이 양말도 신지 않은 채 나온 것으로 보아 하이데거 선생은 틀림없이 매우 급하게 나왔을 거네." "응, 거기까지는 아마 자네 말이 틀림없을 걸세." "그러면, 그 하이데거 선생은 어떻게 셀타이어 소년을 쫓아갔을까? 어른들은 대개 뛰지 않고도 쉽게 아이들을 따라갈 수 있네. 그런데 이 독일인 선생은 그렇지가 않았네. 선생은 자전거를 타고 셀타이어 소년을 따라갔네. 결국, 셀타이어 소년은 그냥 걸어서 도망간 것이 아니라, 속도가 빠른 것을 타고 도망 갔다는 이 야기이지. 예를 들어서, 자전거 같은 것 말이네." "그러면 그 아이도 자전거를 타고 간 것이로군." "생각해보게. 하이데거 선생은 학교에서부터 8km정도 떨어진 곳에서 피살되었네. 게다가, 그 선생은 힘이 센 사람에게 세게 얻어맞고 죽은 거네. 결국, 셀타이어 소년 외에도 또 누군가가 있었다는 이야기지. 그렇게 때문에 하이데거 선생이 자전거를 타고도 8km나 가서야 그들을 만난 것이네. 그런데 이 살인 현장에는 무엇이 있나? 소 발자국이 몇 개 있을 뿐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없네. 나는 이 주위를 몇 번이나 살펴보았지만, 50m정도 앞에 샛길이 하나 있을 뿐, 다른 자전거 바퀴 자국은 여기에서 훨씬 떨어진 곳에 있었네. 그러므로 그 자전거는 하이데거 선생이 피살된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네." "아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 "맞네! 그런 일은 틀림없이 있을 수 없어. 그러니까 나의 추리에는 어딘 가에 잘못이 있다는 거야." "자전거가 넘어지면서 머리를 부딪히고 쓰러진 것은 아닐까?" "어디에 부딪혔다는 건가? 이 부드러운 늪지에 부딪혔겠나?" "글쎄, 나는 전혀 모르겠네." "지금까지 우리는 더 어려운 문제도 많이 해결해 오지 않았나? 이번 사건에서도 우리들이 알아낸 것은 매우 많네. 이것을 잘 이용해서 다시 한 번 더 생각해 보세. 파머사 자전거 바퀴 자국은 이미 조사를 마쳤으니까 이번에는 던롭사 자전거 바퀴 자국을 살펴보세." 우리는 던롭사 자전거 바퀴 자국을 더듬으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이윽고 황무지는 비스듬한 오르막길 비탈이 되면서 늪지를 벗어나 히드가 무성한 언덕으로 나오게 되었다. 자전거 바퀴 자국은 더 이상 이어질 것 같지 않았다. 드디어 자전거 바퀴 자국이 사라졌다. 거기서 왼쪽으로 나가면 홀더네스 공작의 집이 나온다. 4-5km정도 앞에 공작의 집에 세워진 우람한 탑이 보였다. 오른쪽으로 곧장 가면 체스터필드 거리와 조그만 마을이 나온다. 우리는 그 조그만 마을 쪽으로 향했다. 조금 가다보니 문 위에 투계(싸움닭)라는 간판이 걸려 있는 지저분한 여관이 나왔다. 여관으로 들어서자마자, 홈즈는 갑자기 신음소리를 내고 비틀거리며 나의 어깨를 잡았다. "복사뼈가 어긋난 것 같아. 더 이상 걷지 못하겠네." 홈즈는 내 어깨를 잡고서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간신히 여관 현관까지 갔다. 그때 몸집이 땅딸막하고 얼굴이 검은 50살가량의 남자가 검은 색의 파이프를 물고 안에서 나왔다. 홈즈는 얼굴을 찡그리며 그를 향하여 큰소리로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헤이스 씨?" "누구신데 내 이름을 알고 있습니까?" 그 남자는 교활한 눈으로 의심스럽다는 듯이 우리들을 노려 보았다. "헤이스 씨의 머리 위에 걸린 간판에 적혀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집의 주인 정도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헤이스 씨 댁에는 마차가 없습니까?" "없어요." "발목을 삐어 발을 디딜 수가 없어서 그럽니다." "그렇다면 땅에 디디지 않으면 되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고는 걸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한쪽 다리로 뛰십시오." 투계 여관의 주인인 헤이스는 쌀쌀 맞게 말했다. 그러나 홈즈는 놀랄 정도로 유쾌하게 이렇게 말했다. "헤이스 씨, 보십시오. 이렇게는 한 발자국도 걸을 수 없습니다." "우리도 어쩔 수 없소." 정말 냉정한 주인이었다. "그럼, 자전거를 한 대 빌려 주신다면 1 파운드를 드리겠습니다." 주인은 1 파운드라는 말에 마음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어디까지 가실 겁니까?" "홀더네스 저택까지 갈 겁니다." "공작 어른과는 잘 아는 사이인가요?" 주인은 흙투성이가 된 우리의 옷을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말했다. 홈즈는 싱글싱글 웃으면서, "우리를 본다면 공작님은 매우 기뻐하실 겁니다." "어째서요?" "아드님이 있는 곳을 찾아냈으니까요." 그 말에 주인은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뭐라고요! 도련님이 있는 곳을 알아냈다고요?" "그렇습니다. 리버풀에 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여관 주인은 갑자기 상냥한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는 공작 어른이 고마운 분은 아닙니다. 나는 전에 공작 어른의 저택에서 마부로 일했습니다. 그런데 공작 어른은 간사스러운 잡곡상의 말만 믿고서 나를 쫓아냈습니다. 그러나 그 집 도련님이 리버풀에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하는 것이라면 기꺼이 도와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보다도 먼저 무엇이라도 좀 먹었으면 좋겠는데요. 자전거는 그 다음에 빌려 주셔도 괜찮습니다." "죄송하지만, 우리 집에는 자전거가 없어요." 홈즈는 1 파운드 짜리 금화를 꺼내 보였다. 그러나 주인은 고개를 저으면서, "정말입니다. 우리 집에는 자전거가 없어요. 그 대신 말 두 필을 빌려 드리면 어떨까요?" "그것도 좋겠군요. 그 이야기는 식사를 하고 나서 하십시다." 우리는 돌을 깔아서 만든 부엌으로 들어갔다. 부엌에서 나와 둘이서만 있게 되자 홈즈의 삔 발목은 놀랍게도 말끔히 나았다. 우리들은 아침 일찍부터 아무 것도 먹지 않았기 때문에 서둘러 식사를 시작했다. 식사를 마치고서도 홈즈는 곰곰히 생각에 잠기었다. 그리고 한두 차례 창문쪽으로 가서 밖을 쳐다보았다. 여관의 지저분한 마당 저쪽 구석은 대장간이었는데, 거기에는 어떤 소년이 일을 하고 있었고, 그 맞은편에는 마구간이 있었다. 홈즈는 계속해서 창 밖을 바라보다가 다시 의자로 돌아와서 무슨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갑자기 큰소리를 지르면서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알겠어! 와트슨, 이제 알겠네. 맞았어! 틀림없어. 자네, 오늘 소 발자국을 분명히 보았지?" "응, 군데군데 몇 개 있었지. 늪지에도 있었고, 샛길에도, 그리고 불쌍한 하이데거 선생이 쓰러진 곳에도 있었지." "맞아, 그런데 황무지에서 소를 본 적이 있나?" "글쎄, 난 본 기억이 없는데...." "그게 좀 이상하지 않나? 군데군데 소 발자국은 있는데 황무지의 어느 곳에서도 소를 볼 수 없다니. 정말 이상하지 않나?" "자네 말을 듣고 보니 이상하군." "와트슨, 잘 생각해 보게. 샛길 위에 있었던 소 발자국이 생각나나?" "물론이지." "그곳에는 발자국이 이런 모양으로 찍혀 있었지. 생각이 나나?" 홈즈는 그렇게 말하면서 빵 부스러기를 다음과 같이 늘어놓았다. □ □ □ □ □ □ □ □ □ □ "그리고 이런 모양으로 된 것도 있었지." □ □ □ □ □ □ □ □ □ "그리고 이런 모양도 있었는데, 생각이 나나?" □ □ □ □ □ □ □ □ □ "글쎄, 모양까지는 잘 생각나지 않는데....." "나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네. 틀림없어. 그때는 이것이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에 뭐라고 말을 하지 못했던 거야." "그 모양이 어떻다는 건가?" "그 소는 보통 걸음으로 걷기도 하고, 천천히 걷기도 하고, 빠른 걸음으로 달리기도 하는 이상한 소라는 것이네. 그런데 그렇게 사람의 눈을 속이는 교묘한 방법을 하잘것없는 시골 여관 주인의 머리로서 생각해 낼 수 있을까? 아, 대장간에 있는 소년말고는 마당에 아무도 없군. 살짝 밖에 나가서 조사해 보고 오세." 여기저기 부서진 허름한 마구간에는 손질을 하지 않아서 털이 몹시 거친 말 두 마리가 있었다. 홈즈는 그 가운데 한 마리의 뒷다리를 올려보고는 큰소리로 웃었다. "헌 편자를 박았군. 이것 보게. 편자는 헌것인데 못은 새 것이네. 사건이 점점 재미있어져 가는군. 자, 대장간으로 가 보세." 대장간에 있는 소년은 우리가 가까이 온 것도 모르고 열심히 일을 했다. 홈즈는 마루 위에 흩어져 있는 편자와 나무를 재빨리 훑어보았다. 그때 뒤에서 급하게 걸어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여관 주인이 굵은 눈썹을 치켜 세우고 눈을 부릅뜨고 우리를 노려보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그가 쇠붙이가 달린 짧은 막대기를 움켜쥐고 있는 것을 보고 나는 주머니에 숨긴 권총을 꼭 잡았다. "이런 곳에서 뭘 하고 있는거요?" "아, 헤이스 씨, 여기에는 우리가 보아서는 안될 비밀이라도 있습니까?" 홈즈가 그렇게 말하자, 여관 주인은 겨우 마음을 가라앉히고 기분 나쁜 듯이 입술을 일그러 뜨리면서 억지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그 표정은 찡그린 얼굴보다도 더 기분이 나빴다. "아니오, 그런 일은 없습니다. 대장간을 보고 싶다면 얼마든지 보여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허락없이 집안을 휘젓고 다니는 것을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서 음식 값을 내고 이곳을 나가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헤이스 씨. 그러나 특별한 뜻은 없었습니다. 그저 잠깐 말을 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걸어서 가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먼 곳도 아니니까요." "3km도 안됩니다. 길 왼쪽으로 가면 더 빨리 갈 수도 있습니다." 헤이스는 우리들이 밖으로 나갈 때까지 무뚝뚝한 표정으로 계속 쏘아보았다. 우리는 별로 멀리 가지 않았다. 모퉁이를 돌아서 여관 주인이 보이지 않게 되자 홈즈는 곧 걸음을 멈추었다. "여관에서 멀어질수록 사건의 실마리도 멀어져 가는 것 같네. 아무래도 저 여관에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은 기분이야." "나도 헤이스라는 주인이 무언가 알고 있는 것 같아. 보기에도 인상이 고약스러워 보이지 않나?" "와트슨, 자네도 그런 느낌을 받았나? 말이 있고, 대장간이 있고, 저 투계 여관에는 분명히 무언가가 있어. 돌아가 보세." 길 뒤로는 낮은 언덕이 뻗어 있었고, 회색 석회암이 드문드문 있었다. 길에서 벗어나 언덕에 있는 투계 여관 쪽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뒤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홀더네스 공작의 집 쪽에서 자전거 한 대가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와트슨, 얼른 몸을 숙이게." 홈즈는 나의 어깨를 움켜잡고 세게 눌렀다. 그 순간 어떤 남자가 탄 자전거가 마차 경주를 하듯이 길을 지나갔다. 뭉게뭉게 일어나는 흙먼지 사이로 창백하고 흥분된 얼굴이 보였다. 그는 입을 벌리고 매섭게 앞을 노려보고 있었지만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공작의 비서인 윌더였다. "공작의 비서다! 자, 와트슨. 저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 살펴보세." 재빨리 여관의 입구가 보이는 곳으로 올라가 보니 윌더 비서의 자전거는 여관 입구의 벽에 기대어져 있었다. 여관의 주위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홀더네스 저택의 높은 탑 뒤에 숨어 있던 황혼이 조용하고 부드럽게 여관의 주위에 퍼지기 시작했다. 그 엷은 어둠 속에서 갑자기 마차의 등불이 두 개 켜지는 것이 보였다. 이어서 말발굽 소리가 들리고 마차 한 대가 바깥으로 나와서 체스터필드 거리를 무서운 속도로 달려갔다. "와트슨, 저것을 어떻게 생각하나?" "도망가는 것 같군." "마차 안에는 남자 한 사람이 탄 것 같은데. 윌더 비서가 아니네. 아, 윌더 비서는 여관의 문 앞에 서 있군." 사방으로 퍼지고 있는 황혼을 등지고 서 있는 검은 그림자는 분명히 윌더 비서였다. 목을 빼고 어두컴컴한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는 것으로 보아 누군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이윽고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예상대로 한 사람의 그림자가 보이더니 재빨리 집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5분 정도 지나자 2층의 한 방에 불이 켜졌다. 홈즈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이 여간에는 어울리지 않는 손님 같군. 그건 그렇고 대체 윌더 비서를 만나러 온 사람은 누구일까? 사건을 해결하려면 이것을 꼭 알아내야 하는데." 우리는 길에서 내려와 여관 쪽으로 살그머니 다가갔다. 자전거는 아직도 벽에 기대어져 있었다. 홈즈는 성냥불을 켜서 자전거 바퀴를 비춰 보았다. "던롭사 제품이로군." 홈즈는 빙그레 웃으면서, 바로 머리 위에 있는 불이 켜진 2층 창문을 쳐다보았다. 높이가 매우 낮았다. "와트슨, 저 방안을 들여다보고 싶은데 미안하네만 벽을 붙잡고 서 있어 주지 않겠나? 다음에는 내가 멋지게 할테니." 홈즈는 내 어깨를 밟고 올라가서 그 방안을 슬쩍 들여다보고 내려왔다. "와트슨, 오늘은 아침부터 일이 잘 풀리는군. 알고 싶은 것은 대강 알아낸 것 같으니 그만 돌아가세. 학교까지는 꽤 머니까 서둘러야 할 걸세." 무거운 발걸음으로 황무지를 지나오는 동안 홈즈는 거의 입을 열지 않았다. 학교에 도착해서도 홈즈는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전보를 치러 가겠다며 혼자서 멕클턴 역쪽으로 갔다. 홈즈는 밤늦게 들어왔지만 그의 얼굴은 아침에 나갈 때처럼 매우 흥분되어 있었다. "일이 잘 풀리고 있네. 와트슨, 내일 저녁때쯤이면 완전히 해결을 지을 수 있을 거네." 뜻밖의 범인 다음날, 아침 11시에 우리는 은행나무가 나란히 서있는 홀더네스 저택의 정원을 지나 현관으로 향하고 있었다. 오래 되기는 했지만 화려하게 꾸며진 현관에서 안내를 받아 우리는 공작의 서재로 들어갔다. 서재에는 윌더 비서가 정중한 태도로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그런데 안정되지 못한 그의 눈빛과 굳어진 얼굴 표정으로 보아 어젯밤의 공포가 아직도 남아 있는 듯했다. "지금 공작님은 매우 불편하십니다. 그 슬픈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으신 모양입니다. 우리들은 어제 헉스터블 박사님의 전보를 받고 여러분들이 발견한 것에 대해 이미 알고 있습니다." 홈즈는 엄숙한 말투로. "윌더 씨, 나는 꼭 공작님을 만나 뵈어야 합니다." 하고 말했다. "공작님은 지금 침실에 계십니다." "그러면, 그 방으로 가겠습니다." "아마 침대에 누워 계실 겁니다." "상관없습니다. 누워 계시더라도 좋으니까 만나 뵙고 싶습니다." 홈즈의 냉정하고 끈질긴 태도에는 윌더 비서도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면 전해 드리겠습니다." 30분 정도 지나서 공작이 서재로 들어왔다. 창백한 얼굴에 양볼이 쑥 들어간 것이 어제 보았던 그 당당한 공작과는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공작은 정중하게 우리에게 인사를 한 다음 의자에 앉았다. 그의 길고 붉은 수염이 책상 위에 닿았다. "무슨 일입니까, 홈즈 씨?" 홈즈는 공작의 바로 옆에 있는 윌더 비서를 쳐다보면서, "공작님, 윌더 비서가 없는 편이 말씀드리기에 편할 것 같습니다." 윌더 비서는 창백한 얼굴로 홈즈를 노려보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공작님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좋아, 자네는 나가 있게. 자, 홈즈 씨. 이젠 됐소? 어떤 이야기인가요?" 윌더 비서가 나가고 문이 닫히자 홈즈는 이야기를 꺼냈다. "공작님, 우리는 이 사건에 현상금이 붙어 있다고 헉스터블 박사에게 들었습니다만, 그것에 대해서 공작님에게 직접 듣고 싶습니다." "그 말대로요." "확인해 보고 싶어서 그럽니다. 아드님이 있는 곳을 알려주는 사람에게는 5천 파운드를 주시겠다고 하셨습니까?" "그렇소." "그리고 범인의 이름을 알려주면 별도로 1천 파운드를 주시겠다고 하셨습니까?" "그렇소." 공작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초조한 듯이. "홈즈 씨, 일을 확실하게 처리해 주기만 한다면 나는 결코 서운하게 대접할 사람은 아니오." 홈즈는 평상시에는 돈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가 이렇게 돈에 대해서 욕심을 내고 있는 것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저는 책상 위에서 공작님의 수표장을 보았습니다. 죄송합니다만, 6천 파운드짜리 수표를 끊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제가 거래하는 은행은 카운티스 은행의 옥스퍼드 지점입니다." 공작은 굳은 얼굴로 의자에서 일어나서 홈즈를 쳐다보았다. "홈즈 씨, 농담하지 말아요. 이것은 섣불리 생각할 그런 문제가 아니지 않소?" "알고 있습니다. 저는 농담같은 것은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무슨 뜻이오?" "현상금을 받고 싶어서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아드님이 있는 곳을 알고 있고, 또 누가 유괴했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 내 아들은 어디에 있소?" 공작의 창백한 얼굴이 아주 새파랗게 질려 버렸고, 눈은 놀라서 동그래졌다. "공작님의 저택에서 3km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투계 여관에 있습니다. 적어도 어젯밤에는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 말에 공작은 비틀거리면서 의자를 붙잡았다. "그러면, 범인은 누구요?" 홈즈는 분명히 아무도 생각하지 못할 뜻밖의 대답을 할 것이다. 홈즈는 재빨리 앞으로 나가서 공작의 어깨에 손을 얹고, "바로 당신입니다! 자, 이제는 약속대로 수표를 주십시오." 공작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매우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 방안을 왔다갔다 했지만 곧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의자에 앉았다. 공작은 잠시동안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이제 당신도 어느 정도 눈치를 챘군요." "어젯밤 아드님을 보았습니다." "당신들 이외에도 또 누가 알고 있소?"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공작은 떨리는 손으로 펜을 쥐고 수표장을 펼쳤다. "홈즈 씨, 나는 약속을 지키겠소. 당신의 그 정보가 나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약속된 돈은 드리겠소. 처음에 현상금을 걸 때에는 일이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소." "무슨 말씀이신지요?" "사건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이 당신들뿐이라면 그것이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 알져지지 않을 거라는 뜻이오. 여기, 만 2천 파운드 짜리 수표요. 이것으로 사건을 마무리짓고 싶소." 홈즈는 빙긋이 웃으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이 사건으로 하이데거라는 독일인 선생이 죽었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윌더 비서의 짓이 아니오. 그 독일인 선생의 죽음은 윌더 비서의 책임이 아니란 말이오. 그것은 윌더 비서가 고용한 불량배가 저지른 짓이오." "저의 의견을 말씀드려 보지요. 사람이 어떤 범죄에 끼어 들었다면 거기에서 일어나는 어떤 범죄에도 도덕상의 책임을 져야 합니다." "물론, 도덕상으로는 책임이 있다고 하지만 법률상으로는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이오. 사건의 현장에도 없었던 사람이 형을 선고받을 수는 없는 일 아니오. 더구나, 윌더 비서는 그러한 죄를 저지르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그런 죄를 저지를 생각조차 하지 않았소. 하이데거 선생이 죽었다는 것을 알고서 윌더 비서는 나에게 모든 것을 고백했소. 그 일이 있은 다음, 윌더 비서는 그 불량배 녀석과 손을 끊어 버렸소. 홈즈씨, 어떻게 그를 구해 줄 방법이 없을까요? 이렇게 부탁합니다. 윌더 비서를 구해 주십시오." 공작은 자신의 신분을 완전히 잊은 듯 붉어진 얼굴로 주먹을 휘두르면서 방 주위를 빙빙 돌아다녔다. 잠시 뒤, 공작은 겨우 마음을 가라앉히고 책상으로 다가가서 앉았다. "당신이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곧장 이곳으로 온 것은 참 잘하신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좋지 못한 일을 세상에 널리 알리지 않고서도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오?" "그건 그렇지요." 하고 홈즈는 말했다. "그러나, 공작님. 그렇다고 해서 사건을 완전히 숨길 수는 없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저도 공작님을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러면, 이 사건의 뒤에 얽혀 있는 이야기를 제가 알아야 합니다. 윌더 비서에 대한 공작님의 기분은 잘 알겠습니다. 저도 윌더 비서가 하이데거 선생을 죽이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소. 윌더 비서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소. 진짜 범인은 이미 도망가 버렸소." 홈즈는 미소를 지으면서 침착하게 말했다. "공작님은 저에 대해서 전혀 모르시고 계신 것 같군요. 투계 여관의 주인인 헤이스는 어젯밤 11시에 체스터필드 거리에서 저에게 연락을 받은 경찰들에게 체포 되었습니다. 오늘 아침 이곳으로 오기 전에 마을 경찰서장으로부터 헤이스가 체포되었다는 전보를 받았습니다." 공작은 눈을 커다랗게 뜨고서 홈즈를 쳐다보았다. "당신은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대단한 힘을 갖고 있군요. 헤이스가 정말 체포되었단 말이오? 그 때문에 윌더 비서의 신변에 어떤 불길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윌더 비서 말입니까?" "아니, 사실 윌더는 내 아들이오." 이번에는 홈즈가 깜짝 놀랄 차례였다..... 차례차례로 진상이 "이건 정말 놀랄만한 이야기로군요. 좀더 자세하게 들려주시지 않겠습니까?" 하고 말하면서 홈즈는 공작 앞으로 바짝 다가갔다. "당신에게는 아무 것도 숨기지 않겠소. 이런 일이 일어난 것도 사실은 모두 윌더 때문이오. 홈즈 씨, 나는 젊었을 때 어떤 처녀와 결혼하려 했었소. 그런데 나의 부모님은 그 처녀와 나와는 신분이 다르다면서 절대로 허락해 줄 수 없다고 하시는 거였소. 할 수 없이 나는 집을 빠져 나와서 그 처녀와 함께 숨어 버렸지요. 아, 만일 그 여자가 살아 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오. 그런데 그 여자는 병으로 죽고 말았지요. 그녀가 죽기 전에 아들을 하나 낳았는데, 그가 바로 윌더라오. 나는 그 여자를 생각하면서 윌더를 아주 잘 키우려고 애를 썼소. 비록 세상에는 알리지 못할 아들이지만, 윌더가 대학을 졸업하면서부터는 계속해서 내 곁에 있게 했지요.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윌더는 이 비밀을 알고 말았어요. 그 다음부터 윌더는 이 약점을 이용해서 무슨 일이든지 멋대로 했소. 그리고 그걸 들어주지 않으면 그 비밀을 폭로하겠다고 나를 협박하기도 했소. 나는 그 뒤에 결혼을 했지만 윌더 때문에 아내와의 사이가 항상 좋지 않았소. 윌더는 내 후계자인 셀타이어를 무척 미워했소.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왜 윌더를 내보내지 않고 그냥 두었느냐고 당신은 묻겠지만, 그것은 윌더의 얼굴에 그 아이의 어머니의 모습이 있기 때문이오. 윌더의 어머니를 생각하면, 나는 도저히 윌더를 내보낼 수 없었던 것이오. 그렇지만 혹시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몰라서 셀타이어를 헉스터블 박사의 학교에 맡겼던 것이오. 그리고 헤이스라는 녀석에 대해서도 말을 해야 되겠군요. 그는 우리 집의 마부로 있을 때부터 질이 좋지 않은 녀석이었소.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윌더는 그 녀석과 친하게 지내더군요. 윌더는 헤이스와 짜고 셀타이어를 유괴할 생각을 한 것이오.내가 사건 바로 전날 셀타이어에게 편지를 보낸 사실을 알고 있지요? 그 편지는 윌더가 봉투를 뜯어서 알맹이를 몰래 바꾼 것이었소. 윌더는 밤중에 학교 뒤 숲속으로 살짝 빠져 나오라는 내용을 써서 프랑스에 있는 어머니의 이름으로 보냈소. 셀타이어는 그 편지를 보고, 정말 자기 어머니가 보낸 것이라고 믿고서 학교에서 몰래 도망쳐 나왔던 것이지요. 나는 윌더가 고백한 것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오. 윌더는 그 날 밤에 자전거를 타고 숲으로 가서 셀타이어를 만났소. 윌더는 셀타이어에게 어머니가 만나고 싶어한다면서, 말을 가지고 온 사람이 황무지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그를 따라가면 어머니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했소. 그리고 시간이 조금 남았으니 학교로 들어갔다 다시 나오라고 했던 것이지요. 불쌍한 셀타이어는 윌더의 속임수에 빠졌소. 약속 시간에 학교를 빠져나와 보니, 윌더의 말대로 헤이스가 말을 데리고 기다리고 있었소. 셀타이어는 그 말을 타고 나왔지요. 그리고 이것은 윌더도 어제서야 안 것이지만, 두 사람은 하이데거 선생에게 쫓기고 있었던 것이오. 성격이 거친 헤이스는 하이데거 선생을 막대기로 내리쳐서 쓰러뜨렸소. 그리고 셀타이어를 투계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2층방에 가두어 놓고 자기 아내에게 지키게 했던 것이오. 헤이스의 아내는 마음씨가 무척 좋지만 남편이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지 하는 여자라오. 홈즈 씨, 이 일은 모두 이틀 전에 일어난 일이오. 그때는 나도 당신과 마찬가지로 사건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몰랐었소. 그러면, 윌더가 왜 이런 짓을 저질렀겠소? 윌더는 내 후계자인 셀타이어를 굉장히 미워하고 있었던 거요. 그는 전재산이 자기의 것인데, 그것을 인정해 주지 않는 사회에 대해서 불만을 품고 있었던 모양이오. 그리고 다른 이유도 있지요. 그것은 나와 흥정을 하려는 생각이었소. 내가 재산을 모두 자기에게 물려준다는 유언장을 쓴다면 셀타이어를 돌려보내겠다는 것이었소. 내가 경찰에 신고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윌더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멋대로 일을 벌여 놓았던 거요. 그렇지만, 그 흥정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사건이 벌어진 것이지요. 그 사건 때문에 윌더는 흥정 같은 것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소. 윌더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당신이 하이데거 선생의 시체를 발견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부터 이지요. 윌더는 그 사실을 알고 매우 두려워했소. 당신이 보낸 그 남자가 시체가 발견되었다고 헉스터블 박사에게 알리고, 박사는 나에게 이 사실을 전보로 알려 주었소. 윌더는 그 충격으로 몹시 당황해서 나에게 모든 것을 고백하면서 앞으로 사흘 동안만 비밀을 지켜 달라고 애원했소. 그것은 그 사이에 헤이스를 도망시키려는 생각이었을 것이오. 내가 그렇게 해주겠다고 하자, 윌더는 곧 투계 여관으로 달려가서 헤이스를 멀리 도망치게 했소. 나는 그 날 낮에 당장 투계 여관으로 달려가서 셀타이어를 만나고 싶었지만 해가 저물기를 기다렸다가 아이를 만나러 갔소. 셀타이어는 무사했지만 하이데거 선생이 죽은 것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았기 때문인지 두려움으로 벌벌 떨고 있었소. 셀타이어를 곧 집으로 데려오고 싶었지만, 윌더의 말대로 그 아이를 사흘동안 헤이스의 여관에 두기로 했소. 경찰이 셀타이어가 있는 곳을 알게 되면 헤이스가 체포될 것이고, 그러면 불행한 윌더도 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이것이 내가 알고 있는 전부요.다음은 홈즈 씨의 의견을 듣고 싶소." "알겠습니다. 그런데 공작님은 지금 대단히 중요한 입장에 있습니다. 헤이스가 살인범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도망 가게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살인범이 도망 가는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체했다는 것입니다." 공작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또, 공작님의 잘못은 자식을 그렇게 무서운 곳에 다 사흘동안이나 가두어 두기로 했다는 겁니다." "나는 윌더와 약속을 했기 때문에....." "약속이고 뭐고 없습니다. 그런 나쁜 사람에게도 약속이 있을까요? 윌더가 셀타이어 소년을 다시 유괴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아무데도 없지 않습니까? 공작님은 죄를 저지른 아들 때문에 아무 죄도 없는 아드님을 위험한 곳에 사흘씩이나 가두어 두기로 했습니다. 그것은 정말 이치에 맞지 않는 일입니다." 한 나라의 총리까지 지낸 홀더네스 공작이 자신의 집안에서 이렇게 심한 책망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공작은 얼굴이 빨개지고 입술을 떨면서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도움을 받고 싶소, 홈즈 씨." "저도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집사를 불러서 그에게 제 마음대로 명령을 하게 해주십시오." 공작은 아무 말도 않고 벨을 눌렀다. 잠시 뒤, 집사가 들어왔다. 홈즈는 그에게 또박또박 이야기했다. "대단히 반가운 소식이네. 셀타이어 도련님을 찾았네. 지금 곧 마차로 투계 여관으로 가서 도련님을 데려오라는 공작님의 말씀이시네." 그 집사가 몹시 기뻐하며 나가고 나자 홈즈가 말을 이었다. "이제부터 과거의 일은 모두 관대하게 처리될 겁니다. 저는 경찰과는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정의를 위해서 제가 알고 있는 것을 반드시 발표해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헤이스에 대해서 아무 것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헤이스가 붙잡힌다면 교수형을 받겠지만 그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습니다. 그가 붙잡히면 무슨 이야기를 할지는 모르지만, 공작님은 아무 말도 하시지 않고 있는 편이 이로울 겁니다. 경찰에서는 아마 헤이스가 몸값을 노리고 셀타이어 소년을 유괴했을 거라고 생각할 겁니다. 경찰이 사건을 정확하게 해결하지 못한다고 해서 제가 경찰에게 사실대로 알려 줄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충고를 드리자면, 공작님의 저택에서 더 이상 윌더를 둔다면 더 큰 불행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나도 홈즈 씨와 같은 생각이오. 나는 윌더가 여기를 떠나서 새로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오스트레일리아로 보낼 예정이오." "그렇다면 프랑스에 계신 부인을 모셔와도 되겠군요. 될 수 있는대로 빨리 모셔 오는 것이 셀타이어 소년에게도 좋을 겁니다." "나도 그 생각을 하고서 오늘 아침에 아내에게 편지를 보냈소." "우리가 이곳으로 와서 공작님 댁에 조금이나마 행복을 가져다 드리게 된 것을 무척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조그만 일이지만 확실히 해두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헤이스는 자신의 말에 쇠발굽의 편자를 박아서 자기의 범행 흔적을 속이려고 했습니다. 이런 뛰어난 생각은 확실히 윌더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겠지요?" 공작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곧 무슨 생각에 잠겼다. "음, 그랬었군..." 공작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우리를 옆방으로 안내했다. 그곳은 박물관과 같이 장식물이 많이 진열되어 있었다. 공작은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유리 상자 앞으로 우리들을 데리고 갔다. 그 앞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문이 쓰여 있었다. - 이 편자는 홀던네스 저택의 바깥 해자에서 발굴된 것으로 말을 발굽에 끼웠던 것이다. 이 편자의 특징은 추적자의 눈을 속이기 위해서 뒤쪽이 소의 발굽 모양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은 중세에 전쟁을 많이 했던 홀더네스 집안의 선조 중의 한 사람이 고안해 낸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 홈즈는 유리 상자를 열어 편자를 집어 들고 어루만져 보았다. 손가락 끝에 진흙이 묻어 나왔다. 홈즈는 뚜껑을 닫으면서. "감사합니다. 이것은 제가 이곳에 온 후, 두 번째로 제 관심을 끄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라고요? 그러면, 첫번째는 무엇이었소?" 공작은 의심스럽다는 듯이 홈즈를 쳐다보았다. 홈즈는 조금 전에 공작에게서 받은 수표를 접어 조심스렇게 봉투에 넣고는, "이겁니다. 저는 가난한 사람이니까요." 라고 말하고는 대단히 중요한 것처럼 봉투를 안주머니에 깊숙이 집어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