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테 안경의 비밀 1. 폭풍우치는 밤에 찾아온 손님 1894년은 정말 까다로운 사건이 잇따라 일어난 해였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욕슬리의 옛날 저택에서 일어난 사건만큼 이상하고 까다로운 것은 없었다. 그것은 심한 폭풍우가 있던 11월의 어느 날 밤에 일어난 일이었다. 홈즈는 돋보기를 들고 300년전에 쓰여진 흐릿한 문자를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고, 나는 최근에 발표된 의학 논문을 읽고 있었다. 우리 두 사람은 꽤 오래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렇게 자기 일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집 밖에서는 바람이 휘몰아치고, 비는 유리창을 세차게 두드리고 있었다. 나는 논문에서 눈을 떼고 창 너머의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가끔 자동차가 물이 홍건히 괸 곳과 비에 젖어 촉촉한 길을 비추면서 지나가고 있었다. 그때 옥스퍼드 거리쪽에서 어떤 마차가 물보라를 일으키며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 와트슨. 오늘 같은 밤에는 나가지 않는 것이 좋겠군!" 홈즈는 손에 쥔 돋보기를 내려놓으면서 나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은 종일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었지만 꽤 보람 있는 일을 했네. 300년 전에 쓰여진 글이 이렇게 재미 있을 줄은 정말 몰랐네. 돋보기를 오래 보고 있었더니 눈이 피로하군. 어, 그런데 저건 무슨 소리지?" 폭풍우가 잠깐 멈춘 사이에 말발굽 소리와 마차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우리 하숙집 앞에서 멈췄다. 창 밖을 내다보니 아까 내가 본 마차에서 어떤 남자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홈즈에게, "도대체 무엇하러 오는 것일까?" 하고 물었다. "우리에게 일이 있어서 오는 거겠지." 홈즈는 파이프에 담배를 재어 넣으면서 얼굴을 찌푸리고는, "이거 잘못하다가는 이 폭풍우를 맞으면서 밖에 나갈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군. 아, 마차가 그냥 돌아가 버렸잖아? 정말 다행이군. 이제 우리는 밖에 나가지 않아도 될 것 같네. 우리를 데려갈 것이라면 마차를 기다리게 해둘 텐데 말이야. 와트슨, 미안하지만 자네가 내려가서 문을 열어 주었으면 좋겠네." 나는 급히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거실의 불빛으로 손님의 얼굴을 본 순간, "난 또 누군가 했지. 이거 홉킨스 형사가 아닌가? 이렇게 폭풍우가 치는 밤에 무엇하러 왔나?" "홈즈 씨는 계십니까?" 홉킨스는 아직 젊지만, 매우 능력이 뛰어난 형사였다. 그런데 오늘은 보통때와는 달리 매우 초조하게 보였다. "어서 올라오게." 홈즈가 2층에서 외쳤다. 홈즈는 지금까지 몇 번이나 홉킨스 형사가 맡은 사건을 도와준 일이 있었다. 비에 흠뻑 젖은 비옷을 벗고 얼굴과 손을 손수건으로 닦고 있는 홉킨스 형사에게 홈즈가 말했다. "자, 이 난로 옆으로 와서 몸을 쬐게. 와트슨 선생이 곧 따뜻한 레몬 차를 가지고 올 걸세. 그런데 이런 폭풍우가 치는 밤에 나를 찾아온 것을 보니 꽤 까다로운 사건을 만난 모양이로군." "그렇습니다. 홈즈 씨. 오늘 저녁 신문에서 욕슬리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기사를 읽어 보셨습니까?" "아니, 오늘은 이 옛날문자를 보느라고 신문도 읽지 못했네." "하긴 뭐 읽어 보셨다 해도 그 기사는 짧은데다가, 또 내용도 엉터리였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곳은 켄트군의 차덤시에서 11km 정도 떨어진 곳이고 철도에서는 5km 정도 들어간 아주 시골입니다. 경찰서에 전보가 온 것은 오늘 오후 3시 15분이었고, 사건이 일어난 욕슬리의 옛날 저택에 내가 도착한 것은 5시였습니다. 그곳에서 대강 조사를 마치고, 마지막 열차로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홈즈씨를 찾아온 겁니다." "그런데 자네 혼자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사건인가 보군?" "그렇다기보다는 흔적이 전혀 없습니다. 너무 깨끗하게 해치웠다는 말입니다. 아무래도 제가 지금까지 취급한 사건 중에서 제일 귀찮은 일인 것 같습니다. "음, 좀더 자세히 말해 보게나." 홈즈는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의자에 깊숙하게 기대 앉았다. "사건이 일어난 욕슬리의 옛날 저택은 몇 년 전에 코람 교수라는 노인이 사서 살고 있습니다. 교수는 몸이 약해서 하루의 반은 침대에서 누워있고, 가끔씩 지팡이를 짚고서 정원을 거닐기도 하지만 거의 휠체어의 신세를 지고 있는 형편입니다. 교수와 친하게 지냈던 몇몇 이웃 사람들은 교수에게 그다지 나쁜 인상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학자로서는 성격이 조금 특이한 사람이라는 정도밖에 생각 하지 않더군요. 저택에는 교수외에 가정부인 마커 부인, 그리고 심부름하는 수잔이라는 처녀가 있었습니다만, 두 사람 모두 마음씨가 곱고 상냥한 사람들입니다. 교수는 무슨 책을 쓰려고 약 1년전에 어떤 남자를 고용했습니다만, 그 사람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그만두게 하고 새로 다른 남자를 고용했답니다. 그런데 이 남자는 무엇이 못마땅한지 곧 스스로 그만두고 나가 버렸답니다. 세 번째로 고용된 사람은 대학을 갓 졸업한 스미스라는 청년인데, 일을 잘해서 교수가 무척 좋아했다고 합니다. 스미스 청년은 오전에는 교수가 말하는 것을 받아써서 정리하고 밤에는 다음날에 도움이 될 만한 참고문헌을 조사하기도 하고, 또 독서를 하기도 했답니다. 스미스는 학문을 좋아하는 훌륭한 청년으로, 대학에서 받았다는 추천장도 보았습니다. 거기에는 '착실하고 침착하며 매우 진실함..' 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이 오늘 아침에 교수의 서재에서 시체로 발견된 겁니다." 폭풍우는 점점 거세져서 이제는 유리창이 덜커덩 덜커덩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홈즈와 나는 난로에 손을 쬐면서, 이 젊은 형사가 해주는 이상야릇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코람 교수는 책을 쓰는 일에만 열중하고 있었고, 비서인 스미스 청년도 젊은 사람 답지 않게 사람들을 사귀지않고 교수와 비슷한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가정부와 수잔이라는 처녀도 외출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그 밖에 정원 구석에는 방이 3개 딸려 있는 조그만 건물이 있는데 그곳에는 모티머라는 남자 하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크리미아 전쟁에 참가한 일도 있는, 성격이 매우 좋은 사람으로서 군인 연금을 받고 있습니다. 욕슬리의 저택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것이 전부입니다." 홈즈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약해진 난롯불을 돋우었다. 2. 그 여자입니다 홉킨스 형사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 저택의 대문은 런던에서 차덤으로 가는 길에서 100m 정도 들어간 곳에 있습니다. 대문이라고는 하지만 작은 빗장이 하나 살짝 걸쳐 있기 때문에 들어갈 마음만 먹는다면 누구라도 쉽게 들어갈 수 있지요. 수잔 양에게 물어 보았더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오전 11시부터 12시사이에 2층의 바깥 침실의 커튼을 바꾸어 걸고 있었어요. 그때 주인 어른은 침대에서 쉬시고 계셨어요. 주인 어른은 날씨가 좋지 않은 날엔 대게 오전중에는 일어나시지 않거든요.' 가정부인 마커 부인은 저택의 뒤뜰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비서인 스미스 청년은 자기 방에서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수잔양은, '커튼을 갈아끼우고 있을 때, 저는 스미스 씨가 자기방에서 나와서 침실 바로 밑에 있는 서재로 가고 있는 발자국 소리를 들었어요. 모습은 보지 못했지만, 그 종종거리는 발자국 소리로 보아 스미스 씨가 틀림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1분 정도 지났을 거예요. 서재의 문이 닫히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갑자기 서재에서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는 비명이 들려왔어요. 이어서, 꽝 하고 무언가 무거운 물건이 넘어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더니 갑자기 조용해졌어요. 그 뒤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요. 저는 깜짝 놀라서 꼼짝못하고 서 있다가 용기를 내어 서재로 내려갔어요. 서재문을 살짝 열어 보았더니, 스미스 씨가 바닥에 넘어져 있는 거였어요. 저는 무심코---괜찮아요, 스미스 씨?--- 라고 말하면서 일으키려고 했어요. 그런데 스미스 씨의 머리 밑에서는 새빨간 피가 뿜어 나오고 있는 거였어요.' 이것은 나중에 안 일입니다만, 상처 구멍은 작았으나 경동맥이 끊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피가 흘러나온 겁니다. 스미스 옆에는 편지 봉투를 자를때 쓰이는 상아 손잡이가 달린 작은칼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보통때에는 교수의 책상 위에 놓여 있었던 것인데, 범인은 그것으로 스미스 청년을 찌른 겁니다. 수잔은 계속 뿜어져 나오고 있는 피를 보고 스미스가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스미스가 희미하가 눈을 뜨고, 간신히 들릴락말락한 목소리로, '교수님, 그 여자입니다...'하고 말했습니다. 이 말이 틀림없다고 수잔 양은 확실히 잘라 말했습니다. 스미스는 무언가 말을 더 할 것처럼 오른손을 움직이더니 그냥 그대로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고 하더군요. 뒤이어 마커 부인도 급히 달려왔습니다만, 스미스의 최후는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물론, 마커 부인은 이 사실을 알리러 급히 교수에게 달려갔습니다. 교수도 비명을 듣는 순간, 뭔가 무서운 일이 일어났을 거라고 생각하고 잠옷 차림으로 침대위에 일어나 앉았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교수에게 많은 것을 물어 보고 싶었지만 교수는. '비명 소리를 멀리서 들었지만 그런 일이 일어났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소.---교수님, 그 여자입니다.---라고 스미스의 말뜻은 전혀 짐작도 가지 않소.' 라고만 하더군요.. 하여간 그 당시에 대단히 큰 사건이 일어난 것이라고 깨달은 모티머는 그 길로 경찰서로 달려갔습니다. 내가 사건 현장에 달려간 것은 그 경찰서장에게서 전보를 받은 다음이었습니다. 내가 도착했을때, 현장은 사건 당시와 똑같은 상태로 있었습니다." 홉킨스 형사는 긴 이야기를 마쳤다. 홈즈는 비웃는 듯한 얼굴로, "단지 한 가지 실수는 이 홈즈가 그곳에 없었다는 것이군. 그건 그렇고, 내가 무엇을 도와주어야 하나, 홉킨스?" "홈즈 씨, 이 그림을 보십시오." 홉킨스 형사는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어 홈즈의 무릎 위에 펴놓았다. 나는 홈즈의 뒤로 가서 어깨너머로 그림을 보았다. "이것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만 그린 욕슬리 저택의 간단한 그림입니다. 먼저, 범인이 집밖에서 들어왔다고 하면, 이 정원의 샛길을 통해서 저택의 뒷문으로 들어왔을 겁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뒷문에서는 복도만 지나면 바로 서재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쉽게 서재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도망갈 때도 범인은 뒷문으로 갔을 겁니다. 그때 계단에서는 수잔이 내려오고 있었고 2층에는 교수의 침실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하여튼, 범인은 상당히 머리가 좋은 놈입니다. 범인이 지나갔을 거라고 생각되는 정원의 샛길은 비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지만 발자국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샛길 양쪽에 덮여 있는 풀밭이 짓쨛힌 것으로 보아, 녀석은 풀밭을 밟고 지나간 것 같습니다. 비가 저녁때부터 내렸는데도 다른 발자국이 없는 것으로 보아 풀밭을 지나간 놈은 분명히 범인일 겁니다." 자신만만하게 말하고 있는 홉킨스에게 홈즈가 조용하게 물었다. "잠깐, 홉킨스. 그 샛길은 어디로 이어져 있던가?" "밖의 도로와 이어져 있습니다." "그곳까지는 어느 정도 떨어져 있는가?" "약 100M입니다." "그러면 뒷문 주위에는 발자국이 남아 있지 않았던가?" "나도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뒷문의 주변은 돌층계로 되어 있었습니다." "밖의 도로 쪽은 조사해 보았는가?" "도로에는 발자국이 너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전혀 조사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음, 풀밭에 남아 있는 발자국의 크기는 재보았는가?" "글쎄요, 유감스럽게도 단지 풀이 짓밟혀 있다는 것밖에는 모르겠습니다. 확실하게 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에...." "좀 곤란한데, 사건이 일어난 뒤 계속 비가 내렸기 때문에 발자국만으로 수사의 방향을 결정한다는 것은 무리이네. 이것은 아무래도 이 옛날 문자를 푸는 것보다도 더 어려운 문제인 것 같군. 그런데, 홉킨스. 그 다음에 자네는 어떤 조사를 했는가?" 3. 홉킨스 형사의 조사 홉킨스 형사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다음에는 복도를 조사해 보았습니다. 복도에는 야자나무 잎으로 만든 매트가 깔려 있었기 때문에 발자국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복도를 지나서 서재로 들어가 보니, 서재에는 큰 서랍이 달린 책상과 책장이 있을 뿐, 웬지 매우 허전해 보였습니다. 큰 서랍은 책상의 가운데에 달려 있었고, 그 양쪽으로는 작은 서랍이 나란히 있었습니다. 큰 서랍에는 중요한 서류가 들어 있는지 자물쇠로 잠겨 있었습니다. 교수는 이 서랍을 열어 보지도 않고, '아무것도 없어지지 않았소.' 라고 하더군요. 내가 보기에도 범인의 목적은 물건을 훔치는 것은 아닌것 같습니다. 다음은 스미스의 시체입니다. 그는 책상 앞에서 비스듬하게 머리를 문 쪽으로 향하고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 자세를 보아서도 스미스는 자살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칼 위에 넘어지지 않는 한 말이세." 홈즈가 끼어들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더구나 스미스가 죽으면서 한 말도 있고 해서. 자살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리고 홈즈 씨, 자살이 아니라는 중요한 증거품도 있습니다. 죽은 스미스가 오른손에 꽉 쥐고 있었던 것입니다만..." 홉킨스 형사는 주머니에서 조그만 종이 뭉치를 꺼내어 펴보았다. 그것은 검은 비단 실이 두 줄 달려 있는 금테 안경이었다. "스미스는 눈이 좋았다고 하니 이 안경은 범인의 것이 틀림없을 겁니다." 홈즈는 안경을 들고 주의 깊게 열심히 살펴보았다. 그는 그 안경으로 자신이 쓴 글자를 보기도 하고 창밖을 내다보기도 했다. 그러더니 불빛 가까이 가져가서 다시 한 번 조심스럽게 조사하고 빙긋이 웃었다. 홈즈는 책상앞에 앉아서 무엇인가를 쓰더니, 그 종이를 홉킨스 형사에게 주었다. "이것은 수사에 큰 도움이 될 걸세." 젊은 형사는 당황해하면서 종이를 받아 소리내어 읽었다. "찾아온 사람은 말을 잘하는 귀부인풍의 여자, 콧등이 넓고, 눈과 눈사이가 매우 좁음.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물건을 보는 버릇이 있음. 어쩌면 등이 매우 굽은 여자일지도 모름. 최근에 두 번 정도 안경점에 간 일이 있음. 안경 도수가 매우 높고 안경점이 그렇게 많지 않으므로, 그 여자를 찾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문제는 아닐 것임." 홉킨스 형사가 놀라는 것을 보고 홈즈가 웃으면서 말했다. "단순한 추리라네. 안경이 여자 것이라고 하는 것은 모양이 날씬하고, 스미스가 숨을 거둘 때 한 말로서 추측한 것이야. 그리고 이 안경의 금테는 도금한 것이 아니라네. 이 정도의 안경을 쓰는 여자라면 고상하고 훌륭한 옷차림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되네. 코에 닿는 부분이 이렇게 넓다는 것은 이 안경 주인의 콧등이 넓다는 증거이네. 그리고, 와트슨. 이 안경은 근시용이며 게다가 상당히 도수가 높네. 이런 안경을 끼는 사람들은 대개 이맛살을 찌푸리고 물건을 보기도 하고 등이 새우등처럼 구부정한 사람들이 많네. 그리고 코에 닿는 받침쇠에는 얇은 코르크가 붙어 있네. 그런데 한쪽은 약간 닳아서 떨어졌고 색깔도 변했지만, 다른 한쪽은 새것이네. 이것은 아마 얼마 전에 갈아 끼운 것일 거네. 그런데 이쪽 코르크도 그렇게 낡은 것이 아니라, 기껏해야 5-6개월 정도 된 것이네. 더구나, 두개가 같은 종류인 것으로 보아 나는 이 안경의 주인이 최근에 같은 안경점에 두 번 고치러 갔을 거라고 짐작했네." "정말 놀랍습니다. 나는 이 안경을 손에 넣으면서도 그런것에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습니다. 나는 막연하게 런던의 안경점을 모두 조사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물론, 그것도 좋은 방법이지. 그런데 사건에 대해서 더 이상 알고 있는 것은 없나?" "없습니다. 알고 있는 것은 모두 말씀드렸습니다. 홈즈 씨는 내 이야기로 아마 내가 알고 있는 이상의 것을 알아차리셨겠지요? 나는 그 부근의 도로나 역등에서 수상한 사람이 서성거리고 있는 것을 본 사람은 없는가 조사해 보라고 시켰는데, 지금까지 아무런 보고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건 그렇고, 지금 내가 무엇보다도 의문이 가는 것은 범인이 왜 스미스를 살해했을까 하는 점입니다." "지금으로서는 나도 스미스가 살해된 이유를 전혀 짐작하지 못하겠네. 그건 그렇고, 홉킨스. 자네는 내가 사건 현장에 가기를 바라나?" "예, 꼭 부탁드립니다." 4. 홈즈 탐정의 조사 다음날은 폭풍우가 완전히 가라앉았다. 비가 내린 뒤의 쌀쌀한 겨울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했을때, 런던을 출발한 우리 세 사람은 8시를 조금 넘어서 차덤에서 몇 km 떨어진 조그만 역에서 기차를 내렸다. 마차를 타고 욕슬리 저택에 도착하니, 문 앞에서 한 경관이 우리를 맞아 주었다. 홉킨스 형사는 큰소리로, "아, 수고하네. 뭔가 알아낸 것은 없나?" "아니오, 아무것도 없습니다." "수상한 사람에 대한 보고는?" "그것도 없습니다. 역까지 가서 조사해 보았지만, 그런 인물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합니다." "음, 그러면, 차덤까지 걸어가서 거기에서 기차를 탔을지도 모르니까 그것도 조사해 주게. 무언가 있으면 곧 알려 주어야 하네." 홉킨스 형사는 앞장서서 문으로 들어갔다. "여기가 어제 말씀드린 샛길입니다." "누가 밟은 자국이 있다는 풀밭은 어느 쪽인가?" "이쪽입니다. 샛길과 꽃밭 사이에 있는 좁은 풀밭입니다. 지금은 아무것도 없습니다만, 어제는 확실하게 밟은 자국이 있었습니다." 홈즈는 풀밭에서 몸을 잔뜩 구부리고, "음, 상당히 조심해서 걸은 모양이군. 보통 걸음으로 지나갔다면 이 샛길이나 꽃밭처럼 부드러운 흙에는 발자국이 분명히 남아 있을 텐데....흠, 그럼 도망갔을때도 이곳을 지나갔다는 말인가. 홉킨스?" "예, 이곳 말고는 달리 도망갈 길이 없습니다." "이 좁고 부드러운 풀밭에 발자국 하나 남기지 않고 지나갔다니, 정말 기술이 좋은 범인인 모양이군." 홈즈는 혼자서 정원은 한바퀴 돌아보고 나서, "이 정원은 거의 항상 열려 있기 때문에 범인은 아무 거리낌없이 안으로 들어왔을 거네. 그렇지만 범인은 처음부터 스미스를 죽일 생각으로 온 것은 아닌것 같군. 그럴 계획이었다면 흉기를 준비해 가지고 왔을 텐데. 범인은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칼을 사용했네. 범인이 서재에서 얼마나 있었는지는 모르나?" "불과 몇 분입니다. 제가 미처 이야기를 못 드렸는데, 마커 부인은 사건이 일어나기 15분쯤 전에 서재를 청소했다고 했습니다." "음, 15분 전에 청소를 했다...." 홈즈는 종종걸음으로 복도를 지나가서 서재로 들어갔다. "범인은 이 방으로 들어와서 먼저 책상 쪽으로 갔네. 목적은 무엇일까? 자물쇠로 잠겨져 있는 큰 서랍속의 물건일까? 어! 서랍에 긁힌 자국이 있군, 어이, 와트슨, 성냥불 좀 켜주게. 홉킨스. 왜 이 자국이 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나?" 홈즈의 주의를 끈 것은 열쇠 구멍에서 시작하여 니스를 칠한 서랍 표면에 12cm정도 나 있는 긁힌 자국이었다. "물론, 나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열쇠 구멍 주위에 이런 자국이 있다는 것은 별로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말씀드리지 않은 겁니다." "그러나 이 자국은 아주 최근에 생긴 것이네. 이 돋보기로 살펴보게. 그건 그렇고, 마커 부인은 집에 있나?" 홈즈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이때 50살 가량의 가정부가 우울한 표정을 지으면서 들어왔다. 홈즈는 물었다. "마커 부인, 당신은 어제 아침에 이 큰 서랍을 닦으셨습니까?" "예." "그때 이 자국을 보셨습니까?" "아니오, 보지 못했는데요." "걸레로 닦아 냈다면 벗겨진 니스는 씻겨 버렸겠군요. 이 큰 서랍의 열쇠는 누가 가지고 있습니까?" "주인 어른이 시계 고리에 끼워 가지고 다니세요." "예, 잘 알겠습니다. 이제 됐습니다." 마커 부인이 방을 나가자 홈즈는 나에게, "이제 조금씩 알겠네. 와트슨. 범인은 이 서재로 몰래 들어와서 곧 큰 서랍 앞으로 다가갔네. 그리고 열려고 했는지 닫으려고 했는지 모르지만 하여튼 열쇠를 열쇠 구멍에 집어넣고 있을 때, 공교롭게도 스미스 씨가 갑자기 들어왔네. 범인은 급하게 열쇠를 빼려고 하다가 열쇠로 서랍을 긁고 말았네. 스미스는 곧 그 수상한 여자에게 덤벼들었네. 범인은 가까이에 있던 칼을 들고 휘두르면서 스미스에게서 빠져나가려고 몸부림을 쳤을꺼네. 그리고 스미스는 범인이 휘두른 칼에 맞아서 쓰러진 거지. 그것을 본 범인은 깜짝 놀라서 도망쳤네. 범인이 원하던 것을 손에 넣었는지는 아직 모르겠네. 이번에는 수잔 양을 불러 주게." 수잔이 들어오자 홈즈는, "수잔 양, 비명을 듣고서 이곳으로 오는 도중에 누군가가 달아나는 뒷모습을 보지 못했나요?" "아니오, 그때 제가 있던 2층에서는 아래층이 잘보이는데, 서재에서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어요." "그러면 다른 쪽이겠군. 그 복도는 교수님의 방으로 통하게 되어 있지요?" "예, 주인 어른의 방으로 가는 통로예요." "자, 이번에는 2층으로 올라가서 교수를 만나보세." 홉킨스 형사의 안내를 받아 홈즈와 나는 교수의 방으로 향했다. 그 복도에는 야자나무잎으로 만든 매트가 깔려 있었고, 뒷문에서 서재로 이어져 있는 복도와 똑같았다. 우리는 복도를 지나 계단을 올라가서 코람 교수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 방은 책이 잔뜩 꽃힌 책장이 여러 개 놓여 있는 넓은 방이었다. 책장에 들어 갈 수 없는 책은 방 구석구석과 책장앞에 차곡차곡 쌓아 놓았다. 우리가 들어가자 방 한가운데에 놓여 있는 침대에서 교수가 베개를 등에 받치고 몸을 일으키고 있는게 보였다. 그의 얼굴은 바짝 말랐고, 아래로 축 늘어진 눈꺼풀 사이로 눈만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머리카락과 수염은 새하얗지만 입 언저리의 수염만은 누런색이었다. 그 누렇고 텁수룩한 수염 사이로 담뱃불이 빨갛게 빛나고 있었다. 방안은 담배연기로 온통 안개가 자욱하게 낀 것 같았다. 홈즈에게 손을 내민 교수의 손끝은 담뱃진으로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홈즈 씨, 당신도 담배를 좋아하십니까?" 고상한 영어였지만 약간 점잖을 빼는 말투였다. 교수는 담배 상자를 내밀면서, "이 담배는 알렉산드리아의 이오니데서 상점에서 특별 주문을 하여 사온 것이오. 한번에 천 개비씩 사오지만, 불과 2주일밖에 가지 못한다오. 담배가 몸에 나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나이를 먹고 보니 담배와 일밖에는 다른 즐거움을 찾지못했소." 홈즈는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날카로운 눈매로 방안을 구석구석까지 민첩하게 관 찰하고 있었다. "홈즈 씨, 정말 애석한 일입니다. 죽은 스미스군은 나이는 얼마 안됐지만 재능이 있는, 훌륭한 비서였소. 누구에게 원한을 살 만한 사람도 아닌데 그렇게 끔찍한 최후를 맞다니, 나같이 늙고 몸이 약한 노인에게는 너무 큰 충격이라오. 그러나 어떤 어려운 사건이라도 해결하는 당신과 같은 분이 와주셨으니, 잘 해결될 것이라고 믿소." 교수는 혼자서만 이야기하고 있었다. 홈즈를 쳐다보니, 알렉산드리아의 담배가 마음에 드는지 매우 조급하게 피우면서 책장 앞을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홈즈 씨, 거기 조그만 책상 위에 쌓아 놓은 것이 내가 지금까지 연구한 원고라오. 시리아와 이집트의 수도원에서 발견한 옛 기록을 조사해서 분석하는 작업이지요.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요즈음엔 몸의 상태도 좋지 않고. 게다가 스미스 비서까지 그렇게 되어버렸으니, 내 생전에 끝낼 수 있을지 모르겠소. 그런데, 홈즈 씨, 당신도 꽤 담배를 좋아하는 것 같군요." 홈즈는 웃으면서 담배 상자에서 또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벌써 4개비째이다. "코람 교수님, 사건이 일어났을 때 교수님이 침대에 누워 계셨다는 것은 형사에게 들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두 가지 여쭈어 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스미스 비서가 숨을 거둘때 말한, '교수님, 그 여자입니다.' 라고 하는 말은 어떤 뜻입니까?" "수잔은 그렇게 영리하지 못한 아이라오. 아마, 스미스가 뭔가 엉겁결에 말한 것을 그 아이가 잘못 들은 것 같소." 교수의 대답을 들었는지 말았는지 홈즈는 그 말에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않고 계 속 담배만 피우면서 책장앞을 서성거렸다. "교수님, 큰 서랍안에는 무엇이 들어있습니까?" "주로 서류나 편지가 들어있소. 뭐 중요한 것이라고 하면 학위 증서라오. 하여튼, 도둑놈이 탐낼 만한 것은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소. 여기에 열쇠가 있으니까 의심스러우면 한번 조사해 보시오." 하면서 열쇠를 건네주었다. 홈즈는 그 열쇠를 받아 들고 잠시동안 만지작거리더니만 다시 교수에게 돌려 주었다. "그보다는 정원에 나가 산책이나 하면서 다시 한번 사건을 정리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대단히 실례했습니다. 그러면 2시경에 다시 와서 그 동안 조사한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말을 마치자마자 홈즈는 교수의 말도 듣지 않고 급하게 방을 빠져 나갔다. 5. 수수께끼를 푸는 홈즈 홈즈와 나는 정원을 산책하면서 오전 시간을 보냈다. 그 동안 홈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참을 수 없어서 몇 번 이렇게 물어 보았다. "홈즈, 단서는 잡았나?" "찾는 중이네." 하고 홈즈는 똑같은 대답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드디어, "아까 내가 피웠던 담배가 아무래도 단서가 될 것 같군." "뭐라고?" "글쎄, 내 짐작이 틀렸다고 해도 상관없네. 뭐, 확실하게 하려면 안경점을 조사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되겠지만, 내게 조금 짐작되는 것이 있어서 지름길로 가려고 하는 것일세. 거기에 마커 부인이 있군. 혹시 무엇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잠깐 물어 보세." 홈즈는 상대방에게 허물없이 말하게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마커 부인도 금방 오래 전에 사귄 친구처럼 홈즈에게 이야기했다. "예, 말씀하신 대로예요, 홈즈 씨. 교수님은 지독하게 담배를 많이 피우세요. 하루 종일, 어떤 때는 밤새도록 담배를 피우시는 적도 있어요. 아침에 그 방에 들어가 보면, 마치 안개가 낀 것처럼 담배 연기가 방안에 가득 차 있곤 해요." "그렇게 많이 피우면 몸에 해로울 텐데.... 그렇다면 교수님은 식사를 잘 못하시겠군요." "예, 항상 식사가 고르지 못했어요." "마커 부인, 교수님은 오늘 아침에 아무것도 드시지 않은데다가, 점심 식사도 드시지 않겠다고 하셨다지요?" "아니에요. 이번에는 홈즈 씨의 말이 틀렸어요. 오늘 아침은 깜짝 놀랄 정도로 많이 드셨고, 점심으로는 커틀렛 큰 것을 드시고 싶다고 하셨어요. 요즈음 교수님의 식욕은 아주 왕성하시거든요. 저희들은 스미스 씨의 사건이 있는 다음부터 거의 식사를 못하고 있지만..." 그때 마을로 조사하러 나간 홉킨스 형사가 돌아왔다. 그는 어제 아침 차덤 길가에서, 어떤 아이가 안경을 낀 수상한 여자를 보았다고 하더라고 이야기했다. 그 말에도 홈즈는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는 듯이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그것보다는 점심 때 수잔이, "스미스 씨는 어제 아침에 산책을 나갔다가 사건이 일어나기 약 30분전에 저택으로 돌아왔습니다만, 정말 사람의 운명이란 알 수 없는 것 같아요. 30분뒤에 그런 끔찍한 일이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요?" 라고 한 말에 대해서 아직도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잠시 뒤 홈즈는 시계를 보더니. "벌써 2시로군. 자, 이제 코람 교수의 방으로 올라가 보세." 홈즈가 교수의 방으로 갔을 때, 교수는 마침 점심을 끝마치고 있었다. 과연 가정부의 말대로 코람 교수는 음식 접시를 비웠다. 우리가 들어가자, 교수는 백발머리를 돌려 우리를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은 보기가 끔찍할 정도로 창백해 있었다. 번쩍번쩍 빛나는 눈, 입 언저리의 수염 사이로 물고 있는 담배! 어느새 갈아입었는지 양복을 단정하게 입은 채 난로 옆의 팔걸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교수는 탁자위에 놓여 있는 담배 상자를 홈즈에게 내밀면서 말했다. "어떻소? 사건의 수수께끼는 잘 풀려 가고 있소?" 홈즈는 그 말에는 아무 대답도 하지않고 가만히 담배 상자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갑자기 그 상자를 뒤집어 버렸다.. 우리는 몹시 당황해서 무릎을 꿇고 여기저기에 흩어진 담배를 주워 모았다. 그 순간, 나는 홈즈의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을 보고 아차 하고 생각했다. 홈즈의 뺨은 빨갛게 되어 있었고, 눈이 번쩍 빛나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이것은 홈즈가 자신을 가지고 사건을 해결하기 시작할 때의 모습이었다. "교수님, 사건의 수수께끼는 모두 풀렸습니다." 홈즈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홉킨스 형사와 나는 얼떨결에 얼굴을 마주 보았다. 코람 교수는 엷은 웃음을 지으면서, "아, 드디어 정원에서 무엇이 나온 모양이군요." "정원이 아니라 교수님 방에서 나왔습니다." "내 방이라고? 언제?" "바로 지금입니다." "홈즈 씨, 농담은 하지 마시오. 이것은 아주 중대한 사건이지 않소!" "중대한 사건이기 때문에 저는 하나하나 확실한 증거만을 모았습니다. 저는 농담이나 실수따위는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이번 사건에서 아직도 확실히 모르고 있는 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것은 교수님이 가르쳐 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면, 먼저 제 나름대로 알아낸 사건의 내용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나면 교수님은 제가 어떤 것을 모르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어제 어떤 부인이 교수님의 서재에 들어갔습니다. 그 여자는 큰 서랍안에 들어있는 어떤 서류를 가지고 나가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그 여자는 그 서랍의 열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까 교수님이 가지고 있는 열쇠를 보았지만 그 열쇠는 오랬동안 사용했기 때문에 서랍에 상처를 낼 만큼 예리한 것은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그 부인이 가지고 있었던 열쇠는 교수님의 것이 아니라는 거지요. 부인은 살짝 그 방에 들어가서 서류를 훔쳐 가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교수는 담배 연기를 내뿜고는. "흠, 꽤 흥미있는 이야기군, 그래. 그 다음엔 어떻게 되었소?" "그런데 그 부인은 서재에서 교수님의 비서인 스미스에게 들켜 버렸습니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스미스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려고 하던 부인은 그만 스미스를 찌르게 된 겁니다. 이것은 참으로 엉겁결에 일어난 일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그 부인이 처음부터 사람을 죽일 목적으로 들어갔다면 당연히 흉기를 준비해 왔을 겁니다. 하여간 생각지도 않은 사태에 깜짝 놀란 부인은 급히 서재에서 나왔습니다. 실은, 부인은 아주 눈이 나쁩니다. 그런데 청년과 다투다가 안경을 떨어뜨리고 말았지요. 당황한 데다가 안경까지 잃어버린 부인은 엉뚱하게도 이 방으로 통하는 복도로 도망갔던 겁니다. 양쪽 복도에 모두 똑같은 야자나무 잎으로 만든 매트가 깔려 있는 것도 그 부인이 실수하게 된 이유중의 하나지요. 그리고 이 방 앞까지 왔을때 2층에서 누군가 내려오고 있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습니다. 부인은 우선 숨어야겠다는 생각에 무심코 이 방으로 뛰어들어왔습니다." 홈즈가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 코람 교수는 놀람움과 불안한 표정을 지은 채로 멍하니 홈즈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곧 큰 소리로 어색하게 웃었다. "허어! 홈즈 씨,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때 나는 이 방에 있었소." "예, 말씀대로입니다." "그렇다면 뭔가요? 침대에 누워 있었던 내가 그 부인이 들어왔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했단 말입니까, 홈즈 씨?" "아닙니다. 교수님은 그 부인을 보았고, 또 이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물론 부인이 누구인지도 잘 알고 계십니다. 더구나, 교수님은 그 부인을 숨겨 주기까지 했습니다." 홈즈는 침착한 말투로 계속했다. 그러나 교수는 다시 날카로운 목소리로 바보처럼 크게 웃어 젖혔다. 6. 교수의 정체는...? 교수는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벌떡 일어났다. 그의 눈은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다. "홈즈 씨, 당신은 미친 모양이군요. 내가 범인을 숨겨 주었다고요? 그렇다면 범인은 지금 어디에 있단 말이오?" "저기에 있습니다." 홈즈는 방구석에 있는 큰 책장을 가리켰다. 그 순간 교수는 두 손을 높이 쳐들었다가, 경련을 일으키듯 그대로 의자에 푹 주저앉아 버렸다. 그와 동시에,. 홈즈가 가리킨 책장이 문과 같이 열리면서 안에서 한 여자가 나왔다. "그렇습니다. 그 말대로입니다!" 하고 그 여자는 외국 사투리가 섞인 이상한 목소리로 말했다. 숨어 있었던 책장안이 몹시 더러운지 그 여자의 머리와 옷은 온통 먼지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그 여자의 얼굴 생김새는 어젯밤에 홈즈가 홉킨스 형사에게 설명해 준 그대로였다. 넓은 코, 주름진 이마, 그리고 등이 몹시 구부러진 여자였다. 게다가 턱이 길어서 고집이 매우 세어 보였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그런 고약한 얼굴을 하고는 있었지만 어딘지 기품이 있어 보이는 점이었다. 홉킨스 형사는 그 여자의 팔을 붙잡고는, "부인을 체포하겠소!" 하고 외쳤으나, 그 여자는 형사의 손을 뿌리쳤다. "맞아요, 제가 범인이예요. 지금까지 저 책장안에서 전부 듣고 있었어요. 그 청년을 죽인 사람은 틀림없이 저예요. 그러나 그것은 누군가가 말씀했듯이 정말 엉겁결에 한 짓이예요. 저는 그때 손에 잡힌 것이 칼이라는 것조차도 몰랐어여. 단지 빠져나가야겠다는 마음으로 손에 쥔 물건을 미친 듯이 휘둘렀을 뿐이에요. 이건 정말이예요.!" "나도 그렇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결과가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하고 홈즈가 조용히 말했다. 그 여자의 얼굴색은 갑자기 창백해졌다. 먼지투성이의 얼굴이 창백해지자 더욱 무섭게 보였다. 여자는 침대에 힘없이 앉으면서, "아, 이제 모든것을 말씀드리겠어요. 저는 이 남자의 아내예요. 이 남자는 영국인이 아니라 러시아 사람이에요! 이름은..... 아니, 그만두겠습니다." 그 순간 교수는 당황해서. "안나! 이봐, 안나! 무슨 말을 하는거야?" 그러나 여자는 경멸하는 눈초리로 교수를 쏘아보았다. "세르기우스! 당신은 아직도 이런 생활에 미련이 남아 있어요? 그렇게 많은 사람 들을 괴롭혔으면서도 뉘우치지 못하고 있다니, 당신 같은 사람은 신께서 부르기 전에 미리 목숨을 끊어야 해요. 당신이 못하겠다면 저라도 목숨을 끊어서 속죄를 해야 해요. 저는 어리고 순진한 처녀였을 때, 50살 먹은 이 사람과 결혼했어요. 그때 우리는 러시아에서 많은 동지들과 함께 지하 혁명 운동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우리에게 불리한 사건이 일어났어요. 경찰이 살해된 거예요. 확실한 증거가 없는데도 우리의 많은 동지가 체포되었어요. 그러나 남편은 자신의 목숨 하나를 건지기 위해서, 또 막대한 상금을 타려고 많은 동지들과 자기 아내까지 경찰에 밀고해 버린 거예요. 그래서 어떤 사람은 교수형을 받고, 또 어떤 사람은 시베리아로 유배되었지요. 저도 시베리아에 유배되었다가 얼마전에 풀려 났어요. 동지를 팔아서 얻은 부정한 돈을 손에 쥔 남편은 영국으로 건너와서 이 시골에서 숨어 살고 있었어요. 만일 동지들 중의 한 사람이라도 자기가 숨어 있는 곳을 알아낸다면, 곧 복수의 칼이 올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남편은 지금 말씀드린 것보다 더욱 나쁜일을 하고 있었어요. 저는 동지 가운데 한 사람과 친하게 지냈어요. 그는 언제나 동지들의 일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깊은 사람이었어요. 그는 우리에게 과격한 일을 하지 말라고 언제나 말렸어요. 알렉시스라는 그 사람은 성격이 남편과는 반대였고,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었지요. 저에게도 때때로 자신의 생각을 쓴 편지를 보내곤 했어요. 지금 그 편지가 있다면 그의 인품이 증명되어서 알렉시스는 아마 유배지에서 돌아올 수 있을 거예요. 저는 그와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서 서로 의논한 것을 일기장에 적어 두었어요. 그 일기장만이라도 있다면 그를 구제해 줄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남편은 그 일기장을 숨겨 버리고, 터무니없는 말까지 덧붙여서 그를 밀고했던 겁니다. 그 때문에, 알렉시스는 시베리아로 유배되어 지금까지도 소금 광산에서 강제 노동을 하고 있어요. 남편은 아주 나쁘고 비열한 남자예요. 누가 인간 쓰레기 같은 이런 사람의 목숨을 없애버린다고 해도 벌을 받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동지에게 이곳을 알려 주었으면 좋겠어요. 제 손으로는 차마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흥, 당신은 옛날부터 아주 다정한 여자였으니 물론 그렇겠지." 교수는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부인은 일어났다가 괴로운 신음소리를 내며 다시 의자에 주저앉았다. "끝까지 말씀드리겠어요. 저는 형을 마치고 나서, 일기장과 편지를 남편에게서 받아 러시아 정부에 보내어 알렉시스가 풀려나는 것을 도와주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래서 몇달이나 걸려서 간신히 남편이 있는 곳을 알아냈지만, 본디 성격이 나쁜 남편은 순순히 건네주지는 않는 거였어요. 그래서 저는 사립탐정을 고용해서 비서로 일하게 했어요. 곧 그만두어 버린 비서가 바로 제가 고용한 탐정이었지요. 그 탐정은 일기장과 편지가 큰 서랍에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고, 그 서랍의 열쇠모양도 본떠 주었어요. 그리고 저택 안의 약도를 주면서, '오전중에 비서는 주인의 방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서재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하고 가르쳐 주었어요. 그래서 저는 용기를 내어 서재로 살짝 들어가서 일기장과 편지를 꺼냈지요. 그런데 서랍을 잠글 때, 그만 그 청년이 서재로 들어온 거예요. 그날 아침, 저는 산책을 하는 그 청년을 길에서 만났어요. 그때 남편의 비서인 줄도 모르고 코람 교수의 집이 어디냐고 물어 보았지요." "잘 알겠습니다. 이젠 되었습니다." 7. 담뱃재가 범인을 "스미스 씨가 숨을 거두면서 '교수님, 그 여자입니다.'라고 한말의 뜻도 이제 알겠습니다." "저는 그 청년에게 붙잡혔을때, 빠져나오려고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치다가 그 청년을 찌르게 되었어요. 상대방이 쓰러지자, 저는 급히 서재에서 뛰어나왔지만, 안경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문을 잘못 알고 이 방으로 들어오고 말았어요. 그때 남편은 저를 경찰에 넘기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동지에게 이집을 알려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순간 남편의 태도는 홱 변하더군요. 물론, 저를 숨겨주는 편이 자신에게도 안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지요. 남편은 자기밖에 모르는 비밀 장소라면서 책장 뒤에 저를 감추어 주고, 자신의 식사를 나누어 주었지요. 그리고 경찰이 돌아가고 나면, 이 집을 나가서 다시는 나타나지 않겠다고 약속했어요.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렇게 들키고 말았군요." 부인은 품에서 조그만 서류 뭉치를 꺼내어서, "마지막으로 부탁이 한 가지 있어요. 이것이 알렉시스를 구해 줄 서류에요. 당신의 정의를 사랑하는 마음을 믿고 이것을 맡기겠어요. 이것을 러시아 대사관으로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으로 내 임무는 끝났어요." "앗, 기다려요!" 하고 외치면서 홈즈는 부인의 손에서 조그만 병을 빼았았다. "이미 늦었어요." 부인은 침대에 쓰러지면서 힘없이 말했다. "책장뒤에서 나올 때, 나는 이미 독약을 마셨습니다. 이젠 틀렸어요. 그 서류를 잘 부탁해요." "간단한 사건이었지만, 꽤 많은 것을 가르쳐 준 사건이었네." 런던으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홈즈가 이렇게 말했다. "이번 사건은 그 금테 안경이 실마리가 되었네. 그 안경이 없었더라면 과연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었을까 의문이네. 생각해 보게. 그렇게 도수 높은 안경을 쓰는 사람은 안경이 없으면 거의 장님과 마찬가지네. 홉킨스 생각나나? 범인이 정원의 좁다란 풀밭위를 한 발자국도 빗겨 밟지 않고 도망갔다고 자네가 말했을 때, 내가 그것을 의심스럽다는 듯이 말한 것 말일세. 미리 안경을 준비했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도저히 같은 풀밭 위를 똑같이 조심스럽게 지나갈수는 없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어. 게다가, 집 밖에는 발자국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네. 그래서 나는 범인이 아직 집안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지. 그래서 조사를 하면서 나는 서재로 통하는 두개의 복도가 똑같다는 것을 알아냈네. 안경을 잃어버린 범인이면 있을 법 한 착오지. 복도를 잘못 알았다면 범인은 틀림없이 교수의 방으로 들어갔을 것이네. 그래서 교수의 방을 조심스럽게 조사해 본 것이야. 양탄자나 침대 밑에는 숨을 만한 곳이 없었네. 그러나 책장뒤에는 비밀 장소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 교수의 방에는 책이 가득 꽃혀 있는 책장이 여러개 있었고, 그 앞에는 꽃히지 못한 책이 쌓여 있었네. 그런데 어떤 책장앞에만 책이 쌓여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네. 나는 그곳이 이상하다고 미리 짐작을 하고 그 책장 앞의 양탄자에 담뱃재를 잔뜩 떨어뜨려 두었었네. 그 다음은 간단하지. 정원으로 나가서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렸지. 수다스러운 가정부에게서 교수의 식사량이 많아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나는 교수가 범인에게 식사를 나누어 주고 있다고 직감했네. 이윽고 교수의 방으로 들어가서 일부러 담배 상자를 뒤집어엎어서 바닥에 떨어진 담배를 줍는 체하면서 양탄자 위를 조사해보니, 이상하다고 생각한 그 책장 앞에다 떨어뜨린 담배재가 밟혀 눌려저 있더군. 범인이 비밀장소에서 나왔다는 증거를 발견했단 말이야. 이번 사건은 담뱃재 덕분에 쉽게 해결한 셈이지. 아, 벌써 도착했군. 홉킨스. 사건을 해결하고 나니기분이 무척 좋군. 그래 자네는 곧바로 경찰서로 돌아가겠나? 나는 와트슨과 함께 러시아 대사관으로 갈거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