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집의 모험 ?? 코난 도일 1. 살아서 돌아온 홈즈.. 로널드 어데어 경이 참으로 이상한 방법으로 살해 되어 런던의 전시민이 겁을 먹 은 것은 1894년 봄에 일어난 사건 때문이었다. 그 범죄 사건 자체도 흥미 있는 사건이었지만, 잇따라 발생한 사건들도 나에게는 한층 놀라운 것이었다. 모험에 가득찬 나의 일생 중에서도 이 사건에서처럼 놀라움을 맛보게 된 적은 다 시 없었다. 3년전에 홈즈는 스의스 여행중 범죄왕 모리어티 교수 일당의 습격을 받고 절벽에 서 떨어져 행방불명이 되어 있었다. 나는 홈즈가 죽은 것으로 여기고 슬픔 속에 잠겨 있었다. 어데어 경의 살인사건이 일어난 건 그 무렵의 일이었다. 나는 홈즈와 무척 친하 게 지냈기 때문에, 홈즈의 영향을 받아 범죄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따라 서, 홈즈가 없어진 뒤에도 세상을 놀라게 한 온갖 사건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 다. 그리고 나 자신을 즐기기위해 홈즈의 방법을 써서 사건을 풀어 보려고 시도 한 적도 여러 차례였다. 그러나 로널드 어데어 경의 끔찍한 최후처럼 나의 관심 을 끈 사건도 없었다. 배심원들은 검시 재판에서 한 사람내지 몇 사람에 의한 타살이라는 판결을 내렸 다. 나는 마차로 환자를 보러 다니면서 하루 내내 추리를 해보았지만, 아무리해 도 적당한 실마리를 잡을 수가 없었다. 사건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로널드 어데어 경은 오스트레일리아 식민지의 총독 메이누스 백작의 차남이다. 어데어의 어머니는 백내장 수술때문에 본국에 돌아와서 아들 로널드, 딸 힐다와 함께 런던의 파크 레인 427번지에 살고 있었다. 어데어는 상류사회의 사교계에 드나들고 있었는데 내가 알고 있는 바로는 그는 적도 없고, 이렇다 할 나쁜 소행을 저지른 적도 없었다. 조용한 인품이어서 감정 에 치우치는 성격이 아니었으므로, 그의 생활태도는 모나지 않았다. 그런데 1894년 3월 30일 밤 10시에서 11시 사이에 차분한 청년 귀족이 대단히 이 상한 뜻밖의 죽음을 당한 것이다. 어데어는 트럼프를 좋아해서 거의 매일같이 트럼프 놀이를 했어도, 자기 목숨을 위태롭게 할 정도의 큰 놀음은 하지 않았다. 그는 볼드윈, 캐븐디시, 바가텔 등 세 트럼프 클럽에 드나들고 있었다. 죽던 날은 저녁식사 뒤에 바가텔 클럽에서 휘스트의 3판 승부를 했다. 그날 오후 에도 같은 클럽에서 같은 게임을 했다. 상대를 한 머레이 씨, 존 하디 경, 모런 대령의 증언에 의하면, 게임은 역시 그 휘스트였고 어데어 경은 5파운드 정도 잃 었다고 했다. 이런 정도의 사실이 사건 직전의 어데어의 행동에 관해서, 검시 재판의 심리 결 과로 알게 된 것이다. 범행이 있었던 날 밤, 어데어 경은 10시 정각에 클럽에서 돌아왔다. 어머니와 누 이동생은 친척을 만나러 나가고 없었다. 식모는 어데어가 거실로 쓰고 있는 3층 정면을 향한 방으로 들어가는 소리를 들었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식모는 그 방의 벽난로에 불을 땠는데, 잘 타지 않고 그을음만 생기는 바람에 연기를 내보내려고 창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고 했다. 그 뒤 11시 20분, 즉 어머니인 메이누스 부인과 누이동생인 힐다가 돌아온 시간 까지 그 방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부인은 잠자기 전에 아들을 보려 고 3층으로 올라갔다. 방문이 잠겨 있기에 문을 두르리고 소리쳐 불러도 대답이 없었으므로, 사람을 불러 방문을 부쉈다. 어데어 경은 테이블 옆에 누워 있었다. 머리는 권총 탄환에 맞아 무참하게 으스 러져 있었는데, 방안엔 흉기 같은 것은 아무리 찾아봐도 나타나지 않았다. 테이 블 위에는 10파운드 짜리 지폐 두장과, 은화 금화 합쳐서 17파운드 10실링을 늘 어놓은 채였다. 그리고 한장의 종이에 클럽 친구들의 이름을 쓰고는, 그 이름옆에 숫자를 적어놓 았는데, 이건 살해되기 전에 트럼프의 승패를 계산했던 것 같다. 상황을 자세히 조사하면 할수록 사건은 더욱더 복잡해질 뿐이었다. 우선 어데어 경이 안에서 방 문을 잠근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따라서 그건 범인이 한 짓이며, 그 뒤에 창문 으로 도망쳤다고도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창문에서 땅바닥까지는 적어도 7m, 바로 밑엔 꽃이 만발해 있는 화단이 있었다. 게다가 화단도 땅바닥까지도 조금도 어질러진 데가 없고, 집과 도로 상 이에 있는 좁다란 풀밭에도 아무런 흔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자물쇠를 채운 건 어데어 경 자신이라는 얘기가 된다. 그렇다면 어떻 게 해서 살해되었을까?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창문까지 기어오른다는 것은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이 다. 창문사이로 총을 쏘아 한발에 맞추는 것도 아무리 총 솜씨가 좋다 해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파크 레인은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도로이고 집에서 100m 못 미친 곳에 마차 를 빌려 주는 곳이 있다. 그런데 아무도 총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파크 레인 괴사건의 상황인데 이미 말했듯이 어데어 청년에게는 적이 없었다고 생각되며, 또 실내에 돈이나 귀중품을 훔쳐간 흔적이 없었으므로 더욱 더 사건은 어려워졌다. 저녁 나절, 나는 산책삼아 하이드 파크 공원을 지나 6시쯤 파크 레인의 옥스포드 가 쪽 끄트머리까지 갔다. 한가한 사람들이 보도 위에 모여서 한결같이 창문을 쳐다보고 있었으므로, 내가 찾는 그 집은 쉽사리 알 수 있었다. 사복 형사로 보이는 키가 큰 남자가 자기 의견을 늘어놓고 있는 중이었는데, 다 른 사람들은 그 남자를 둘러싸고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나는 되도록 가까이 가 보았으나, 그의 의견이 납득이 가지않아 실망을 느끼고 뒤로 물러났다. 그 순간 나는 뒤에 서 있던 웬 노인과 부딪쳐, 노인이 손에 들고 있던 몇 권의 책이 땅에 떨어졌다. 나는 크게 사과했으나 추하게 생긴 그 노인은 조롱하는 듯 이 중얼거리며 외면해 버렸다. 이윽고 구부러진 등과 하얀 턱수염의 노인은 사람 들 틈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파크 레인 427번지를 조사해 보았지만 이 사건의 수수께끼를 풀 단서를 알 아내지는 못했다. 짐과 도로 사이에는 위가 나무 울짱으로 된 낮은 담뿐인데, 높 이는 1m 반 정도다. 그러니까 누구나 쉽게 정원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 된 다. 그러나 창문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수도관 같은 것이 있어서 아주 날쌘 사 람이라면 기어오를 수 있을 지도 모르나, 그러한 것도 전혀 없었다. 나는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아 아예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러나 서재로 돌아와 5분도 못되 어 하녀가 들어와 손님이 왔다고 알렸다. 이게 웬일인가! ---- 손님이란 아까의 그 기묘한 노인이었던 것이다. 노인은 앙 상하고 쭈글쭈글한 얼굴을 백발 사이로 드러내 보이며 열 권 가량의 책을 오른팔 에 힘겹게 안고 있었다. 노인은 기묘하게 쉰 소리로 말했다. "내가 찾아와서 놀란 모양이구료?" "그렇습니다." "하기야 내게도 양심이란 건 있단 말이오. 그래서 당신뒤를 밟아 살금살금 따라 와 보니 이 집으로 들어오지 않겠소? 그래서 잠깐 들러, '아까는 실례를 저질렀 지만, 결코 무슨 악의가 있었던 건 아니오. 책을 집어 준건 고마웠소.' 하고 한 마디하고 싶은 생각이 나서요." "별일을 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말씀하진 마십시오." "아닙니다. 나는 이 근처의 처치가 모퉁이에 조그만 책방으로 차려 놓고 있습니 다. 한번 들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보아하니 선생께서도 책을 모으시는 모양 이군요. 다섯권만 더 있으면 책장 두 번째 단이 찰것 같은데, 저대로는 이가 빠 진 것 같군요." 나는 뒤쪽의 책장을 보려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서 뒤돌아보니 셜록 홈즈가 책 상 저쪽에서 빙긋이 웃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일어서서 몇 초 동안 멍청히 홈 즈를 쳐다보다가 그냥 기절해 버렸다. 정신을 차려 보니 칼라 끝이 풀려 있고, 입술에 브랜디의 독한 뒷맛이 남아 있었다. 홈즈는 브랜디 병을 손에 들고 나를 들여다보며 반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와트슨, 참 미안하게 됐네. 이렇게까지 자네가 놀랄 줄은 몰랐어." 나는 홈즈의 팔을 붙잡고 외쳤다. "홈즈! 정말로 자넨가? 아니, 세상에, 자네가 살아있다니! 그 무서운 골짜기 밑 에서 어떻게 기어오를 수가 있었나?" "서두르지 말게. 복잡한 이야기를 해야하는데, 기분은 좀 어떤가?" "말짱해. 그런데 정말로 내 눈을 믿을 수가 없네.자네가 정말로 이렇게 내 서재 에 와서 서 있다니." 나는 다시 한번 홈즈의 옷소매를 붙잡고서 옷 위로 가느다란 근육질의 팔을 만져 보았다. "흠, 도깨비는 아닌것 같군. 여보게. 이런 기쁜일이 또 어디 있겠나? 어서 앉게. 어떻게 살아 나왔는지 얘기해 주게." 홈즈와 나는 마주보고 의자에 걸터앉으며 옛모습 그대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늙 은 책방 주인답게 낡은 프록코트를 입고 있었으나 변장용 백발과 헌책은 테이블 위에 쌓아 놓았다. 홈즈는 그전보다 훨씬 더 야위고, 독수리 같은 얼굴은 무척 창백해 보였다. "이렇게 허리를 펴게 되니 몸이 다 시원하구먼. 와트슨. 키가 큰 남자가 몇 시간 동안이나 30cm가량 키를 줄여야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그런데, 자네, 오 늘밤 지금부터 어렵고 위험한 일이 있는데 좀 도와주겠나? 그러면 내가 어떻게 살아 나왔는지는 그 일이 끝난 뒤가 좋지 않을까 하네." "난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야. 그 이야기는 당장 듣고 싶네." "그럼, 오늘 밤 함께 가주겠나?" "언제든지, 어디든지 원하는 대로." "옛날과 다름없군. 나가기 전에 저녁을 좀 먹고 갈 시간 여유는 있네. 그럼, 그 절벽 얘기를 해주지. 거기서 빠져 나오는 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네. 그도 그럴것이, 원래부터 떨어지지 않았으니 말이야." "떨어지지 않았다고?" "그러이, 와트슨. 떨어지지 않았다네. 그때 자네에게 유서 대신에 쪽지를 남겨 두었는데, 그건 틀림없이 진짜야. 안전한 곳으로 통하는 샛길에 그 모리어티 교 수가 서 있는 것을 보았을 때 이젠 내 인생도 끝장이라고 생각했지. 그 교수의 잿빛 눈에는 어떻게 해서라도 나를 죽이려는 의지가 담겨 있었거든. 그래서 나는 교수와 두서너 마디 말을 나누고서 나중에 자네에게 보낼 몇 마디 말을 쓸 수 있는 여유를 받아냈다네. 그걸 담배갑과 지팡이와 함께 남기고서 뒤 를 따라오는 모리어티 교수와 샛길로 걸어갔지. 절벽 끄트머리께가지 갔을 때 나는 독안에 든 쥐가 된 셈이었네. 상대방은 무기 같은 건 꺼내지 않고 긴 두팔 로 달라붙는 거였네. 그 교수는 자기의 운수도 그때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서 나를 처치하려는 생각밖에는 없었던 모양이야. 두 사람은 하나로 뒤엉켜 폭포 가장자리에서 맹렬히 싸웠네. 하지만 나는 동양 의 고유 무술인 유도 기술을 약간 익혀 두었었다네. 내가 그의 손에서 빠져 나 오는 순간 그는 몸의 균형을 잃고서 기우뚱거리더니 소름이 끼치는 외마디 소리 를 지르며 거꾸로 떨어지는 거였어. 그리고는 물속에 가라앉았네." 홈즈가 담배를 피우면서 사건의 경위를 이야기하는 동안 나는 잠자코 귀를 기울 이고 있다가, 이 대목에서 끼어 들었다. "하지만, 발자국은 어떻게 된건가? 두 사람의 발자국이 샛길을 내려간 채 되돌아 온 흔적이 없는 걸 내 눈으로 확인했는데." "그건 이렇게 된 걸세. 그 교수의 몸이 떨어진 순간, 운명의 신이 내게 다시없는 기회를 베풀어 주었다고 나는 생각했네. 나를 죽이려고 마음먹고 있는 사람은 모 리어티 교수 혼자만이 아니야. 두목의 죽음을 알게되면 내게 복수를 하려는 녀석 이 적어도 셋은 나올거야. 모두 지극히 위험한 녀석들이지. 그들 중 어느 누군가 가 나를 해칠지도 모르잖나. 그러나 내가 죽었다고 세상 사람들이 인정하게 되면 그 녀석들은 제멋대로 놀아 날 거야.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시기를 보아서 놈들을 해치울 수 있을테지. 그샔 가서야 내가 아직 살아 있다고 나서도 되겠다고 생각했네. 나는 일어나 뒤의 암벽을 살펴보았지. 절벽은 무척 높아 기어오른다는 건 아무래 도 불가능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샛길로 돌아가면 발자국을 남기지 않을 수 없었 네. 결국 위험을 각오하고서라도 절벽을 기어오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지. 쉬 운일이 아니었어. 발밑에는 폭포소리가 진동하고 있었네. 손에 잡힌 풀뿔리가 빠 지거나 젖은 바위 모서리에 발이 미끄러져, 이젠 끝장이구나 하고 생각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어. 그래도 나는 위로 위로 끈질기게 기어올라가 끝내는 깊이 2m가량의 암반에 이르 렀네. 거기서 나는 아무에게도 들킬 걱정없이 편히 누워 있을 수 있었지. 자네들 이 내가 죽은걸로 생각하고 아래만 조사하고 있는 동안, 나는 거기서 쉬고 있었 던 셈이야. 이윽고 자네들은 단념하고 호텔로 철수해 버리고 나는 혼자 남았지. 그래서 지금 까지의 모험도 이제는 끝났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거대한 바위가 위 에서 굴러떨어져서는 으르렁 소리를 내며 내 옆을 스쳐 샛길에 떨어진두에 다시 한번 튀어 폭포 속으로 떨어지는 것이었네. 처음에 나는 우연히 일어난 일로 생각했네. 그러나 위를 쳐다보니 어두운 하늘을 등지고 한 남자의 머리가 보이고, 이어서 두번째 바윗돌이 바로 내가 누워 있는 암반 위, 내 머리에서 30c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떨어지는 것이었네. 모리어티 교수는 혼자가 아니었던 거야. 교수가 나와 싸우는 동안, 부하 한 사람 이 멀리서 감시하고 있다가 교수만이 죽고 내가 살아 남은 걸 보았던 걸세. 그래 서 그는 얼른 절벽 꼭대기에 올라 교수가 실수한 일을 자기가 수행하려고 하는 게 틀림없었어. 이런 생각을 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 건 아닐세. 다시 그 끔찍한 얼굴이 절벽위에 나타났는데 그건 다음 바윗돌이 떨어진다는 예 고였지. 나는 샛길을 향해 다시 기어내려가기 시작했네. 오르기보다 백배는 어렵 더구만. 하지만 위험하다고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 암반 모서리에 손을 걸고 매 달린 순간, 다음 바윗돌이 휙 하고 아슬아슬하게 스쳐 떨어졌으니 말이야. 하지만 손이 온통 벗겨지고 피투성이가 되면서도 간신히 샛길로 내려갈 수가 있 었네. 그리고는 곧 달음질쳐 어둠속에서 15km나 도망갔네. 그리고서 1주일뒤에 이탈리아의 피렌체에 나타났는데, 누구 한 사람 내가 어떻게 되었는지 아는 사람 이 없는 건 확실했어. 나는 한 사람에게만 이야기했네. 형인 마이크로프트에게 야. 와트슨, 자네에겐 두고두고 용서를 빌어야 하지만, 그때는 내가 죽었다고 인 정되는 것이 절대로 필요했네. 이 3년간 자네에게 편지를 쓰려고 몇 번이나 펜을 들었다가 그만둔 건, 자네가 나를 아끼는 나머지 비밀을 누설하는 실수를 저지를 까 봐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야. 아까 자네가 내 책을 떨어뜨렸을 때 내가 얼른 도망건 것도, 그때 내가 위태로운 입장에 있었기 때문이야. 조금이라도 자네가 놀란 표정이라도 지으면 나의 정체 가 드러나,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될지 몰랐거든. 하지만 필요한 돈을 마련해야 했기 때문에 형 마이크로프트에겐 이야기 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 런던의 형편은 흐지부지되어, 모리어티 일당의 재판은 나를 끈질기게 노리는 두 사람을 풀어주 는 결과가 되었지. 그러므로, 나는 2년간 티벳과 페르시아를 여행했었네. 그리고 잠시 프랑스에 머물다가 귀국하려는 참에 이번의 파크 레인 사건의 소식을 듣게 되어 서둘렀네. 이 사건 자체에도 관심이 쏠렸지만 나 개인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이 생각되었기 때문이야. 그런 까닭에 오늘 오후 2시에 그리운 옛 방에 돌아와 그리운 옛 친구 와트슨이 있기만 하면 된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네." 나는 이 놀라운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홈즈의 키가 크고 깡마른 모습과 예리 하고 민첩한 얼굴이 눈앞에 있지 않았다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홈 즈는 이야기를 끝내고 말했다. "그래서 오늘 저녁 지금부터 우리 둘이 할 일이 하나 있는데, 이건 정말로 보람 있는 일이야." "좀더 자세히 말해 주게." "밤이 셀때까지 실컷 보고 듣게 될거야. 이 3년간 쌓이고 쌓인 이야기가 있지 않 은가. 9시 반까지는 그 이야기로 시간을 메꾸고 그리고 나서 그 '빈집의 모험' 에 착수하세나." 시간이 되자 나는 이륜마차에 홈즈와 나란히 걸터 앉아 호주머니속에 권총을 넣 고 어떠한 모험이 기다리나 하고 가슴을 두근거리려니 정말로 옛날 그대로로 돌 아간 느낌이 들었다. 2. 맹수 사냥의 명수.. 홈즈는 냉정하고 근엄하고 말수가 적었다. 가로등 불빛에 그의 근엄한 얼굴이 비 칠때마다 이마를 찌푸리고 입술이 굳게 다물려 있는 것이 보였다. 그의 그러한 태도를 본 것만으로도 이번 모험이 보통이 아님을 알 수가 있었다. 홈즈의 하숙집이 있는 베이커 가로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홈즈는 훨씬 앞에 서 마차를 멈추게 했다. 마차에서 내릴때 홈즈는 지극히 날카로운 눈초리로 좌우 를 살피는 것을 나는 느꼈다. 그 뒤에도 길모퉁이를 지날때마다 몹시 주의를 기 울여 뒤를 밟는 자가 없는 것을 확인했다. 뿐만 아니라, 가는 길이 또한 참으로 별다른 것이었다. 런던의 샛길에 관한 홈즈 의 지식은 대단한 것이었는데, 이번에도 내가 전혀 모르는 복잡한 골목길을 재빨 리, 또한 자신있는 걸음걸이로 누비고 가는 것이다. 이윽고 음침한 낡은 집들이 즐비한 조그만 거리에 나오자, 홈즈는 좁은 골목길을 재빨리 돌아들어 나무문을 지나 인기척이 없는 안뜰로 들어가서는 열쇠로 어떤 집의 뒷문을 열었다. 우리 두 사람은 안으로 들어가고 홈즈는 문을 잠갔다. 집안은 캄캄했으나 빈집이라는 것은 알 수가 있었다. 마룻바닥을 걸어가는데 삐 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손을 뻗으면 벽에 갈기갈기 찢어진 채 매달려 있는 벽지 가 닿았다. 홈즈의 차갑고 여윈 손이 내 손목을 잡은 채 길다란 복도로 나를 끌 고 갔는데, 이으고 문위의 채광창이 희미하게 보였다. 여기서 홈즈는 갑자기 오른쪽으로 돌아, 우리는 커다랗고 네모진 방에 들어섰다. 구석은 캄캄한데, 가운데는 거리에서 비쳐 들어오는 광선으로 어슴푸레하게 밝았 다. 하지만 실은 서로의 얼굴을 분간하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홈즈는 내 어깨위 에 손을 대고 입을 귓가에 갖다 댔다. "이곳이 어딘지 알겠나?" 나는 흐린 창문 너머로 내려다보며 대답했다. "틀림없는 베이커 가인데." "맞았네. 우리는 옛날 그 집의 건너편에 있는 캠든 하우스에 와있네." "아니, 그런데 왜 이곳에 왔지?" "건너편 건물을 실컷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야. 와트슨, 수고스럽겠지만 밖에서 안 보이게끔 조심하면서 조금 더 창문 가까이 다가서게. 그리고 우리의 옛날 그 방을 살펴보게." 나는 기다시피 해서 앞으로 나가 그리운 옛집의 창문 언저리를 쳐다보다가 시선 이 방에 닿는 순간, 숨막힐 정도로 놀라 소리를 질렀다. 차양이 내려져 있고 방안에는 전등이 빛을 내며 켜져 있었다. 그리고 의자에 앉 아 있는 남자의 모습이 또렸한 검은 그림자가 되어 하얗고 밝은 차양에 비치고 있었다. 고개의 움직임이라든가, 어깨를 치켜드는 것이라든가, 코가 커다란 모습 등이 홈즈와 똑같았다. 나는 너무도 놀란 나머지 손을 뻗어 진짜가 옆에 서 있는 가를 확인했을 정도였다. 홈즈는 웃음을 억누르느라고 몸을 비틀고 있었다. "어떤가?" "참으로 놀랍군." 홈즈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나하고 무척 닮았지,응?" "바로 자네 자신이야." "밀랍으로 만든 인형이야. 오늘 오후 베이커 가의 집에 돌아왔을 때 앉혀 놓았 네." "아니, 무슨 이유로?" "그건, 와트슨. 내가 실은 바깥에 있으면서 안에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서야." "그 방을 감시하는 사람이 있단 말인가?" "확실해." "누가 감시하지?" "옛날의 적들이야. 와트슨. 놈들은 내가 살아있는 걸 알고 있네. 조만간 내가 집 으로 돌아오리라고 놈들은 생각하고 있어. 그래서 항상 감시하고 있다가 오늘 아침에 내가 도착한 걸 보았다네." "어떻게 알지?" "창에서 내려다보니까 내가 얼굴을 알고 있는 녀석이 내 방을 쳐다보고 있더군. 파커라는 노상강도인데, 그다지 흉폭하지는 않은 녀석이야. 유태 거문고의 명수 지. 그 녀석만 같으면 신경을 쓰지 않아. 신경쓰이는 건 뒤에 있는 훨씬 무서운 자들이야. 그놈은 모리어티 교수의 수제자이며, 절벽에서 바윗돌을 굴려 떨어뜨 린 놈이야. 런던에서도 손꼽히는 위험한 범죄자지. 와트슨, 그 녀석이 오늘밤 내 뒤를 밟고 있는데, 거꾸로 놈은 우리가 그의 뒤를 밟고 있다는 걸 모른단 말 이야." 홈즈의 의도는 점점 확실해졌다. 자기를 감시하고 있는 자를 미끼로 해서 우리가 사냥꾼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어둠속에 말없이 서서 부산하게 지나다니는 사람 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홈즈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꼭 바람이 불 것만 같은 날씨의 밤인데, 어김없이 바람은 비명을 지르며 기다란 거리에 불어대고 있었다.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대개가 윗도리와 옷깃으로 목을 감싸고 있었다. 몇 차례나 아까 지나간 것 같은 통행인을 본 듯하기는 했지만, 특히 좀 떨어진 집 입구에서 바람을 피하고 있는 듯한 두 남자가 눈에 띄었다. 홈즈의 주의를 끌어보려고 했으나 그는 안타까운 듯한 조그만 소리를 냈을 뿐, 여전히 길거리를 내다보고만 있었다. 때때로 서성거리며 손가락으로 벽을 두드리 기도 했다. 생각대로 일이 되어가지 않아 점점 불안해지는 모양이었다. 드디어 한밤중이 가까이 되어 거리에 인적이 끊어질 무렵이 되자, 홈즈는 불안감 을 이기지 못하고 실내를 이리저리 거닐기 시작했다. 나는 홈즈에게 말을 걸어 보려고 생각하고서 문득 건너편 밝은 창문을 쳐다보았는데, 아까보다 더욱 놀랍 게도 홈즈의 그림자가 움직이고 있는게 아닌가? 나는 홈즈의 팔을 붙잡고 위를 가리켰다. "아니, 그림자가 움직이잖나?" 어느 사이엔가 옆얼굴이 아니라 등이 이쪽을 향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거야 움직이고 말고, 와트슨. 유럽에서 으뜸가는 악한을 속이는데 이 셜록 홈 즈가 한눈에 알 수 있는 허수아비를 세워 둘 리가 있겠는가? 우리가 이 방에 와 서 한시간이 지났지만, 그 사이에 하숙집 주인 허드슨 부인이 여덟 번이나, 즉 15분마다 저 인형을 움직여 주고 있다네. 자기 그림자는 비치치 않도록 하고 말 이야. 앗!" 홈즈는 흥분한 듯이 소리를 지르며 숨을 죽였다. 머리를 내밀고 온몸이 굳어진 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이 어슴푸레한 불빛에도 보였다. 아까의 두 사람은 아직도 남의 집 입구에 웅크리고 서 있을지 모르나 내게는 이젠 보이지 않았다. 모든게 고요하고 어둡고, 건너편 집 창문의 차양만이 가운데에 검은 사람 그림자 를 뚜렷이 나타내며 노랗게 빛나고 있었다. 다음 순간, 홈즈느 가장 캄캄한 방구석으로 날 끌어당기고서 한쪽 손을 내 입술 에 대고 소리를 지르지 못하게 했다. 나를 붙든 손은 떨리고 있었다. 홈즈가 이 처럼 신경을 곤두세운건 여태까지 없었던 일이다. 눈앞의 어두운 골목길에는 인 기척이 없고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는데.... 그런데 그때 문득 나도 홈즈가 알아차린 것을 깨달았다. 아주 낮은 목소리가 들 려왔는데, 그 소리는 베이커 가 쪽에서가 아니고 우리가 숨어 있는 이 집 뒤편에 서 나고 있지 않은가! 문이 열리고 닫혔다. 이어서 복도를 살며시 거니는 소리.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해도 빈집 속에서는 메아리가 치기 마련이다. 홈즈는 벽을 등지고 몸을 움츠리며 권총을 거머쥐었다. 나도 그의 행동을 쫓아했 다. 어둠 속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으려니까 열린 문의 어둠 속에 한층 검게 떠 오른 괴한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는 잠시 멈췄다가 이윽고 몸을 낮추고 경계하는 자세로 방안으로 한발 한발 들어왔다. 이 그림자가 3m가까이까지 다가왔으므로 나는 방어 태세를 갖추었지만, 곧 나는 그쪽이 우리를 아직 눈치채지 못한 것을 알았다. 그는 우리 두 사람의 옆을 지나 창가로 살며시 다가서더니, 소리도 내지않고 창 문을 15cm가량 밀어 올렸다. 창문이 열린 곳에서 몸을 움츠렸으므로 거리의 불빛 이 이젠 먼지투성이의 유리에 방해받지 않고 정통으로 그의 얼굴을 비추었다. 괴한은 흥분하고 있는 것 같았다. 두 눈은 별처럼 반짝이고, 얼굴은 경련을 일으 키며 움직였다. 뼈만 앙상하게 튀어나온 코와, 높이 벗겨진 이마, 굵은 백발이 섞인 콧수염을 기른 중년이 지난 남자였다. 오페라 모자를 눌러쓰고 앞을 열어 놓은 외투 밑에 야회복셔츠의 가슴이 하얗게 보였다. 얼굴은 바짝 말라 거무스름 하고 독살스런 안색이었다. 손에는 지팡이 같은 것을 들고 있었는데, 마룻바닥에 내려놓으니까 금속성의 소 리가 났다. 괴한은 외투 호주머니에서 큼직한 물건을 꺼내어 만지작거렸는데, 용 수철이나 나사못이 끼어졌을 때처럼 찰칵 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그리고는 그 일은 끝난 모양이었다. 다음엔 마룻바닥에 무릎을 끓고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는 무언가 지렛대와 같은 것에 힘껏 힘을 주더니 끽끽 문지르는 소리가 났는데, 이것도 맨 나중에 찰칵하는 소리가 힘차게 나더니 이 일도 끝난 모양이었다. 그리고 괴한은 이상하게 보기 흉한 개머리판이 붙은 총신과 같은 것 속에 무엇인 가를 집어넣고는 마개를 찰칵하고 막았다. 그리고 웅크린 채 총신 끝을 열린 창 턱에 걸었다. 과녁을 노리는 눈초리가 날카롭게 번뜩였다. 개머리판을 어깨에 대 고 저 앞의 노란 커튼에 비친 사람 그림자를 보면서 만족스러운 듯이 한숨을 내 쉬었다. 잠시 괴한은 굳은듯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는 방아쇠를 잡은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그 순간, 홈즈는 비호처럼 괴한의 등을 공격하여 쓰러뜨렸다. 괴한은 곧 일어나 필사적으로 홈즈에게 덤벼들어 홈즈의 멱살을 잡았다. 하지만 내가 권총의 손잡이로 뒷통수를 내리치자 다시 마룻바닥에 나가 떨어져 기절해 버렸다. 나는 그위를 덮치고 홈즈는 호각을 세게 불었다. 구둣발 소리가 쿵쿵쿵 나면서 제복 경관이 둘, 사복 형사가 하나 정면 현관에서 방으로 뛰어들었다. "레스트레이드 경감이오?" "예, 홈즈 씨. 이 사건은 내가 맡았습니다. 런던에는 잘 돌아오셨습니다." "나는 숨어서 경찰을 도와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소. 한 해에 미궁에 빠진 살인 사건이 셋이나 생기면 참으로 난감하겠죠. 레스트레이드 경감?" 괴한은 양옆을 우람한 두 경관에게 붙잡혀 숨을 몹시 헐떡이고 있었다. 거리에는 벌써 구경꾼이 모여 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홈즈는 창가로 다가가서 창문을 닫고 차양을 내렸다. 레스트레이드 경감은 양초를 두 자루 꺼내어 불을 켰고, 경관들 은 칸델라의 덮개를 벗겼다. 나는 겨우 괴한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었 다. 우리를 노려보는 괴한의 얼굴은 무척 강한 인상이었으나, 역시 악질적인 얼굴이 었다. 좋든 뒜든 간에 큰일을 할 얼굴이었다. 하지만 싸늘한 푸른 눈, 매부리 코, 깊은 주름이 잡힌 도전적인 이마 등을 보면 누구나 위험 인물임을 느끼리라. 괴한은 증오와 놀라움이 섞인 표정을 띠며 홈즈를 노려보고 외쳤다. "이 건방진 악마 같으니라고!" 홈즈는 구겨진 칼라를 고치며 대꾸했다. "여어, 대령. 이렇게 만나는건 스위스의 폭포에서 암반에 누워있다가 바윗돌 선 물을 받은 뒤 처음인것 같구먼." 괴한은 어이가 없는 듯 홈즈의 얼굴을 쳐다볼 뿐이었다. 홈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아직 소개하지 못했군요. 여러분. 이 양반이야말로 대영 제국 인도의 육군에 있 었던 그 유명한 시베스천 모런 대령, 맹수 사냥에 있어서는 세계 최고의 명수 요. 대령, 당신이 잡은 호랑이 수에는 아무도 미치지 못할게요." 모런 대령은 입을 다물고 홈즈를 노려볼 뿐이었다. 사나운 눈초리하며, 빳빳한 코밑수염하며, 이 남자 자신이 바로 호랑이와 꼭 닮았다. 홈즈가 말했다. "이런 간단한 계략에 당신과 같은 빈틈없는 사냥꾼이 걸려들다니 이상한 일이오, 당신도 잘 안텐데. 나무 밑에 새끼 양을 매놓고서 총을 들고 호랑이가 미끼에게 덤비는 것을 기다리는 계략 말이오. 말하자면, 이 빈집이 나무고 당신은 호랑이 인 셈이지." 모런 대령은 으르렁거리며 홈즈에게 덤비려고 했지만 두 경관이 막았다. 홈즈가 말했다. "정직하게 말해서 한 가지 놀란 것이 있소. 당신까지도 이 빈집을 이용하리라곤 나도 예기치 못했소. 거리에서 쏘리라고 생각하고서 레스트레이드 경감과 부하 들에게 망보게 했는데, 당신이 이곳에 들어온 것 외에는 모두 계획대로 된 셈이 오." 모런 대령은 형사 쪽을 향했다. "나를 체포할 정당한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더라도 이 사람의 조롱을 받고 있을 이유가 없잖소. 내가 법망에 걸려 들었다면 모든 걸 어서 법대로 처 리해 주시오." 레스트레이드 경감이 말했다. "옳은 말씀이오. 그럼 가봅시다. 홈즈 씨, 하실 말씀이라도?" 홈즈는 마루에서 고성능 공기총을 집어들고 그 구조를 조사하고 있었다. "무서운 무기야.소리도 나지않고 성능 또한 기막히겠군. 나도 알고 있는 '폰 헤 르더'라는 독일의 장님 기사에게 모리어티 교수가 주문하여 만들게 한 총이야. 이런 것이 있다는 소문은 전부터 듣고 있었지만, 만져 보는 건 처음이군. 레스 트레이드 경감, 조심해서 맡아 주시오. 그리고 이 특제 탄환도." "잘 보관할 테니 염려 마십시오." 레스트레이드 경감 일행은 방문쪽으로 가면서 모런 대령에게 말했다. "할말이 있소?" "무슨 혐의로 이러는 거요.그것만 듣고 싶소." "무슨 혐의냐고? 그야 물론 셜록 홈즈에 대한 살인 미수 혐의요." 홈즈가 끼어들었다. "그건 안돼요. 레스트레이드 경감. 난 이 사건에 전혀 얼굴을 내놓고 싶지 않소. 이 멋진 체포는 당신이 해냈으니까 공적은 당신 것이오. 그렇고말고, 레스트레 이드 경감. 축하하오. 늘 그렇지만 멋지고 대담한 체포 솜씨였소. 이 사나이가 바로 그 수수께끼 사건의 범인이란 말이오." "수수께끼 사건의 범인이라니? 누구 말입니까, 홈즈 씨?" "경찰이 전력을 다해도 붙잡지 못한 사람 말이오. 지난 달 30일 파크 레인가 427 번지 3층의 열린 창 사이로 공기총으로 덤덤탄을 쏘아 로널드 어데어 경을 살해 한 범인 말이오. 그것이 이 사람을 체포한 이유요, 레스트레이드 경감. 그럼 와 트슨, 부서진 창 틈으로 스미는 바람을 참아도 좋다면 내 서재에 가서 여송연을 피우며 반 시간쯤 재미있고 유익한 이야기를 들려주겠네." 3. 모리어티 교수.. 우리가 예전에 살던 방은 홈즈의 형 마이크로프트 홈즈의 부탁으로 하숙집 주인 허드슨 부인이 관리하고 있었으므로, 예전과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한구석에 화학 실험용 도구와, 산 때문에 더러워진 판자 테이블이 있다. 선반에 는 런던의 범죄자들이 태워 버리고 싶어하는 스크랩과 메모가 나란히 놓여 있다. 도표류, 바이올린 상자, 담배 파이프걸이 등도 들어 있었다. 방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은 허드슨 부인인데, 우리가 들어가니까 반가 운 미소를 지으며 맞이해 주었다. 또 한 사람은 이날 밤의 모험에 중요한 구실을 맡은 기묘한 인형이었다. 홈즈에 맞추어 만든 인형인데, 홈즈와 꼭 닮았다. 조그만 테이블을 받침대로 하여 그위에 세워 홈즈의 낡은 옷을 입혔는데, 한길에 서 쳐다본다면 꼭 홈즈로밖에는 볼 수가 없었다. 홈즈가 말했다. "내 말대로 해주셨군요. 허드슨 부인." "말씀대로 인형 옆에 다가갈 때는 무릎을 끓고 갔어요." "고맙습니다. 참 잘해 주셨어요. 총알은 어디에 박혔는지 보셨습니까?" "예, 이 훌륭한 인형을 망가뜨렸더군요. 머리를 관통하고 벽에 부딪쳐 납작해졌 어요. 양탄자 위에서 주워 두었지요. 이겁니다." 홈즈는 받아서 내게 보여주었다. "하, 보다시피 권총용 덤덤탄이야. 참으로 천재적인 착상이로군. 공기총에서 이 런 게 튀어나오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할 테니까. 허드슨 부인. 정말로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자, 와트슨. 그 위자에 예전대로 걸터앉게. 자네에게 할 이 야기가 몇 가지 있으니까." 홈즈는 초라한 프록 코트를 벗고, 인형에게 입힌 가운을 걸치고서 예전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갔다. "모런 대령은 신경이 예리한 것이나 눈이 날카로운 것이나 모두 예전대로야." 홈즈는 부서진 자기 인형의 이마를 찬찬히 바라보고 웃으며 말했다. "후두부의 한가운데를 명중하여 꿰뚫었어. 인도에서 으뜸가는 명사수였는데, 런 던에서도 그에게 따를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을껄.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나?" "없네." "명성이란 허망한거야. 하지만 내 기억이 틀림없다면 금세기 최대의 범죄자 모리 어티 교수의 이름도 자넨 그때 처음으로 들었다고 했으니까. 선반에서 내가 만 든 범죄자 사전을 좀 내려다 주게." 홈즈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 여송연에서 구름 같은 연기를 내뿜으며 지루한 듯이 책장을 넘겼다. 홈즈가 스크랩을 내게 건네주기에 나는 스크랩을 읽었다. "시베스천 모런 --- 육군 대령. 퇴역. 본래는 인도 제 1공병대 소속. 아버지는 전 페르시아 공사인 준남작 오거스터스 모런. 이튼 고교 및 옥스퍼드 대학 출 신. 인도의 전쟁에서 공을 세움. 저서 [서부 히말라야의 맹수 사냥], [밀림의 3 개월]. 주소 컨듀잇 가. 소속 클럽 -- 앵글로 인디언 클럽. 탱커빌 클럽, 바가 텔 카드 클럽." 빈칸에는 홈즈의 필적으로 '런던의 제 2의 위험 인물'이라고 기입되어 있었다. 나는 책을 홈즈에게 돌려주면서 말했다. "이건 놀라운데. 명예로운 군인 경력이 아닌가?" "그대로야. 어느 시기까지는 올바르게 살아왔지. 무쇠와 같은 강한 신경의 소유 자로서, 부상당한 식인 호랑이를 추적하다 도랑에 빠진 이야기는 지금도 인도의 화젯거리야. 와트슨. 어느 높이까지 자라다가 갑자기 밉게 가지를 뻗는 나무가 있잖나, 응? 인간에게서도 그런 걸 종종 볼 수 있지. 원인이야 어쨌든 모런 대 령은 갑자기 나쁜 쪽으로 내달은 거야. 눈에 띄는 사건은 일으키지 않았으나, 점점 인도에서는 있기 어렵게 되었지. 퇴역하여 런던에 돌아와 여릭에서도 악명 을 떨치게 되었다네. 그때 모리어티 교수에게 발견되어 한동안 참모 역할을 했 었지. 모리어티는 모런에게 아끼지 않고 돈을 주어 보통 범죄자가 감당치 못하 는 최고급의 일에만 이용했네. 1887년에 로더의 스튜어트 부인이 죽은 사건을 기억하나, 못한다고? 그렇지. 그 것도 틀림없이 모런이 한 짓이었지. 하지만, 도저히 확증을 잡을 수가 없었네. 하도 교묘하게 뒤에 숨어 있어서. 모리어티 일당이 송두리째 법망에 걸렸을 때 도 그 대령만은 유죄로 만들지 못했다네. 그 무렵 내가 자네 집을 찾아갔을 때, 그 공기총이 두려워 차양을 내리게 한 것 을 기억할거야. 자넨 내가 지나치게 신경이 예민하다고 생각했을지 몰라도, 나 로서는 충분히 이유가 확실히 있어서 그랬던 걸세. 나는 그 무서운 총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또 세계에서 손꼽히는 명사수가 그 총을 쥐고 있는 걸 알고 있었 기 때문이야. 우리 둘이 스위스에 갔을 적에도 모런은 모리어티와 함께 나를 쫓 고 있었고, 그 아슬아슬한 암반위에서 공포의 5분간을 내게 겪게 한것도 바로 그 모런 이라고 생각하면 틀림이 없을 거야. 나는 프랑스에 머물로 있을 때, 어떻게 해서 그를 감옥에 보낼 방법이 없는가 하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서 신문을 읽고 있었지. 그가 런던에서 판을 치고 있는 동안엔 나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으니 말이야. 그때 바로 이번 로널드 어데어 경 사건이 터진 거야. 나는 그걸 기회로 보았지. 내가 알고 있는 것만 가지고서도 모런 대령이 범인이라는 건 충분히 추리할 수 있었네. 대령은 어데어와 트럼프를 했어. 그리고서 클럽에서 집까지 어데어를 미행했지. 그리고 창문사이로 어데어를 쏘았네. 나는 그렇게 판단하고 곧바로 돌아왔지. 그러나 모런의 부하가 나를 찾아내어 모런에게 보고할 것은 불을 보 듯 뻔한 일이었네. 대령은 내가 갑자기 돌아온 것을 안다면 자기의 범죄가 드러날 위험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서두를 것임이 틀림없지. 그래서 대령에게 창가에 알맞은 표적 을 만들어 주고, 경찰에는 내가 도움을 받을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말해 두었 지. 그리고서 나는 감시하기에 알맞은 장소에 진을 친 셈이었는데, 상대가 같은 장 소를 공격에 이용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어. 자, 와트슨 아직 설명이 모 자란 데가 있나?" "있지, 모런 대령이 로널드 어데어 경을 죽인 동기를 아직 밝혀 주지 않았네." "아아, 와트슨. 그 동기는 지금 알고 있는 증거에서 추리할 수 있을 뿐이야. 하 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을 설명하는건 어렵지 않아. 모런 대령과 어데어 청 년이 한 편이 되어 상당한 돈을 딴 건 증언에 나와 있네. 그런데 모런이 속임수 를 쓴 것이 틀림없어. 사건 당일, 어데어가 모런의 속임수를 알아차린 것 같아. 어데어는 아마 모런이 요란을 떨지 않고 살짝 그 클럽에서 탈퇴하고, 다시는 속 임수를 쓰지 않는다고 약속하지 않으면 죄다 불어 버리겠다고 모런에게 강경히 말했을지도 모르지. 어데어와 같은 젊은이가 나이 많은 유명한 인물의 비밀을 폭로하여 사회에서 매장시킨다는 건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아마 지 금 말한 것처럼 어데어는 모런에게 심한 말을 했을 거야. 모런은 사기 트럼프의 수입으로 살고 있으니까, 클럽을 쫓겨나면 파멸하는 거 지. 그래서 어데어를 죽인 것인데. 그때 그 청년은 자기 편의 속임수로 이득을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자기가 물어 줄 금액을 계산하고 있는 중이었어. 열쇠 를 채운 건 어머니나 누이 동생이 캐물을까 봐 그런건데. 대강 그렇게 된게 아 닐까?" "그게 틀림없겠군." "맞는지 안 맞는지는 재판에서 밝혀지겠지. 어느쪽이든 모런 대령이 우리를 괴롭 히는 일은 앞으로 없을 것이고, 폰 헤르더의 유명한 공기총은 런던 경시청의 진 열장을 장식하게 될 것이네. 그래서 셜록 홈즈는 런던에서 일어나는 온갖 사건 을 다시 안심하고 연구할 수 있단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