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사건 1. 런던의 범죄왕.. 나는 지금 울적한 기분으로 펜을 들고서 명탐정 셜록 홈즈가 활약한 마직막 사건 을 기록하려 하고 있다. 나는 [홈즈와 주홍색 글씨] 사건에서 홈즈와 알게 되어, 그 뒤로 여러가지 사건에 관계해 왔다. 그리고 그동안 겪었던 진귀한 경험을 어 떻게든 세상 사람에게 알리려고 서툰 문장을 계속 써 왔다. 그러나 홈즈와 영원히 헤어지게 된 그 저주스런 사건에 대해서는 결코 쓰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최근 제임스 모리티어 대령이, 그 사건으로 죽은 자기 동생 을 변호하기 위하여 공개장을 썼기 때문에 나도 부득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정 확하게 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사건의 완전한 진상은 나만이 알고 있는데, 현재로서는 그 진상을 숨겨도 아 무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 내가 알기로는, 그 사건이 공공연하게 발표된 것 은 정확하게 세 번이었다. 1981년 5월 6일의 주르날 드 주네브 지, 5월 7일에 영 국의 각 신문에 실린 로이터 통신의 발신 기사, 그리고 마지막이 아까말한 모리 티어 대령의 공개장이었다. 이 중 처음 두 가지는 매우 간단한 기사였으며 마지막 것은 사실과 전혀 달랐다. 따라서 모리티어 교수와 홈즈 사이에 일어난 진상을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 나의 의무라고 생각한 것이다. 나는 [홈즈와 4개의 서명] 사건에서 알게 된 지금의 아내와 결혼하면서, 홈즈와 했던 공동 생활을 그만두고 새로 병원을 개업했었다. 그래서, 홈즈와 함께 있는 시간은 거의 드물었다. 홈즈는 함께 조사할 일이 있을 경우에 가끔 나를 찾아왔지만, 그러한 일도 점차 로 뜸해졌다. 1890년에는 함께 일해서 기록으로 실은 사건이 고작 세 건뿐이었 다. 이 해의 가을부터 1891년 봄에 걸쳐서 홈즈는 프랑스 정부의 부탁으로 매우 중요한 일을 하고 있었다. 나 역시 신문을 통해 그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또 홈 즈에게서도 프랑스에 좀 오랫동안 머무를 것이라는, 프랑스의 어느 마을에서 부 친 편지가 왔을 따름이었다. 따라서 4월 24일 저녁, 홈즈가 내 진찰실에 나타났을 때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평소보다 안색이 나빴고 많이 야위어 있었다. 홈즈는 내가 묻기도 전에 대답했다. "음, 무리한 것 같아. 요즘 좀 아팠거든. 덧문을 닫는 게 어떨까?" 방안에 빛이라고는 내가 책을 읽고 있던 테이블 위의 램프뿐이었다. 홈즈는 몸을 벽에 바짝 붙이고 방의 가장자리를 따라 돌아가더니 덧문을 탁 닫았다. 나는 물었다. "뭔가 두려운 것이 있나 보군." "응, 있어." "뭔데?" "공기총이야." "뭐? 홈즈 자네 무슨 말을 하는거야?" "와트슨 자네는 나를 잘 알고 있으니까, 내가 전혀 겁쟁이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겠지? 하지만 위험이 다가오고 있는데도 돌아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용기가 아 니고 경솔함이야. 잠깐 성냥불 좀 켜 주게나." 홈즈는 담배를 피우자, 기분이 좀 가라앉는 듯한 표정으로 연기를 깊게 빨아들였 다. "이렇게 늦게 찾아와서 미안하네. 게다가, 이제 곧 뒤뜰의 담을 넘어 돌아가야 하는데 이것도 이해해 주겠지?" "하지만, 도대체 무슨 일인가?" 홈즈는 한쪽 손을 내보였는데 손가락의 관절이 두 군데 찢어져서 피가 나는 것이 램프빛에 보였다. 홈즈는 빙긋이 웃으면서 말했다. "보게나, 평범한 일은 아니지. 다 큰 남자가 손가락을 다쳐서 온다는건 굉장한 일이잖나. 부인께선 집에 계시나?" "멀리 방문할 데가 있어서 갔네." "그래? 자네 혼자로군." "그래." "그렇다면 말하기 쉽겠는걸. 1주일정도 함께 대륙에 가지 않겠나?" "대륙? 어디 말인가?" "어디라고 정해진 건 아냐. 내게는 어디라도 마찬가지니까." 이 말에는 어딘가 이상한 데가 있었다. 홈즈는 목적 없이 휴가를 가질 남자도 아 니었고, 게다가 핼쑥하게 야윈 얼굴을 보면 몹시 긴장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 다. 홈즈는 의아하게 여기는 나의 눈빛을 읽었는지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모리어티 교수라는 이름을 들은 적이 있겠지?" "전혀.." "이 사람은 범죄왕으로서 영국 전체의 검은 세력을 흔들고 있는데도, 아무도 그 이름을 들은 적이 없어. 만일 이 사람을 꺽어서 사회로부터 그 해를 제거할 수 만 있다면 나는 탐정이라는 자신의 사명을 다한 것으로 보고 좀더 평온하고 한 가로운 생활을 할 것이네. 자네에게만 하는 이야기인데, 내가 최근에 스칸디나비아 왕가와 프랑스 공화국 을 위해서 몇 가지 사건을 다루었다는 사실을 알지? 그 덕분에 난 내 취향에 맞 는 조용한 생활을 보내고 화학 연구에 몰두할 수 있게 되었다네. 그러나 모리어 티 교수 같은 자가 런던 전체를 휩쓸고 다니는 것을 생각하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그 사람이 도대체 무슨 짓을 했는데?" "화려한 경력을 가진 놈이야. 좋은 가문 태생으로 훌륭한 교육을 받았고, 현상 수학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지. 스물 한살에 이항 정리에 대한 논문을 썼는데, 이 것이 전 유럽의 명성을 얻게 되었어. 그 일로 영국의 어느 작은 대학의 수학 교 수 자리를 얻었고, 장래의 출세는 보장된 것이었어. 그런데 이 사람은 아주 보기 드문 악마 같은 성질을 조상으로부터 물려 받았던 거야. 본디 범죄자의 성질인데다가, 우수한 두뇌까지 가졌으므로, 가장 위험한 사람이 되어버렸지. 그런 이유로 대학에서 계속 좋지 않은 평판을 얻고, 마침내 는 교수직에서 쫓겨나 런던으로 와서 군대의 교관이 되었어. 지금까지 한 이야기 는 세상이 다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내가 혼자서 알아 낸 거야. 자네도 알고 있듯이 런던 범죄계의 사정을 나만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어. 몇 년 전부터 나는 모든 범죄의 뒤에는 뿌리 깊은 조직이 움직이고 있으며, 그것이 법을 무시하면서 범인을 감싸주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 사기, 강도, 살인 등의 사건은 물론, 미궁에 빠져 있는 많은 사건에 대해서도 이 힘이 작용하고 있었어. 그래서 나는 이 힘의 정체를 벗기려고 애쓰다가 마침내 실마리를 찾아냈고, 그것 을 더듬어 가는 동안 이 유명한 수학 교수 모리어티에 도달한 거야. 모리어티는 범죄의 나폴레옹이라 할 수 있어. 와트슨, 그는 이 대도시에서 일어 나는 거의 모든 범죄를 뒤에서 조종하고 있지. 천재이고 철학자이며, 최고급 두 뇌의 소유자야. 그는 거미줄 한가운데 있는 거미처럼 전혀 움직이지 않지만, 거 미줄은 수천 갈래로 뻗어 그 중 어느 하나라도 흔들리면 금방 알아차린다네. 자신은 거의 아무 일도 하지 않아. 다만 계획을 세울 뿐이야. 그러나 부하들은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고 철저하게 조직되어 있어. 뭔가 나쁜일을 하려고 할 땐, 가령 서류를 빼낸다든가 하는 어떤 집에 쳐들어가 강탈한다든가 사람을 해치 우려고 할 때, 그것을 교수에게 이야기하면 금방 계획이 세워지고 실행에 옮겨 져. 일당이 체포되었을 때는 석방이나 변호를 위한 돈이 나와. 그러니 그 조직을 움 직이는 두목은 절대로 잡히지 않고 의심조차도 받지 않지. 이것이 내가 알아낸 것이야. 와트슨, 이 자를 세상에 폭로하고 조직을 완전히 해체시키기 위해 나는 최선을 다할 생각이야. 그러나 모리어티는 매우 완벽한 방어 수단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해도 이 사람을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게 만들 정도의 증거를 얻지 못했어. 와트슨, 자 네는 내 능력을 알겠지? 나는 마침내 나와 적수가 될 정도의 두뇌를 가진 상대를 만났음을 인정해. 상대방의 솜씨에 몹시 감탄해서, 그 악에 대한 미움을 잊었을 정도니까. 그러나 그 모리어티가 한 가지 실수를 했어. 아주 작은 실수이긴 했지만, 마침 내가 가까운 곳에 있을 때여서 재빨리 꼬리를 잡았지. 그리고 거기에서 출발하여 모리어티 주위에 수사망을 펴기 시작했고 이제 그 그물을 거둘 때가 된거야. 3일 뒤, 그러니까 다음 주 월요일에 교수는 자기 조직의 핵심이 되는 동료들과 함께 경찰에 잡혀가게 되어 있어. 그리고 나서, 금세기 최대의 형사 재판이 벌어 지고 40건 이상의 풀리지 않은 사건이 해결되며, 그들 모두는 교수형으로 판결이 나는 거야. 그러나 여기에서 조금이라도 성급하게 행동하면 녀석들은 마지막 순 간에 재빨리 도망쳐 버릴지도 몰라. 그런데 모리어티 교수가 모르게 이 일을 진행했다면 매우 좋았을 텐데, 녀석은 너무나도 교활해서 내가 망을 치기 전에 한 조치를 하나하나 간파하고 있었어. 그리고 몇번이나 도망치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내가 막았지. 자네가 만일 이 조용한 싸움을 상세하게 기록할 수 있다면, 지금까지 볼 수 없었 던 눈부신 탐정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네. 이번 일은 나의 힘을 최대한으 로 발휘한 것이며, 또한 적에 의해 막다른 골목까지도 갔었지. 나는 적이 깊숙 이 쳐들어오는 것을 즉시 되받아 공격했다네. 오늘 아침 계획의 마지막 단계가 이루어졌고 3일만 있으면 일이 완성될 예정이 야. 내가 방에 앉아서 이 문제의 마무리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갑자기 문이 열리면서 모리어티 교수가 들어왔어.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했지만, 그때까 지 계속 뒤쫓아 다니면서 노려왔던 상대가 정작 문 입구에 서 있는것을 보고는 너무나 놀랐어. 얼굴은 전부터 잘 알고 있었지. 상당히 키가 크고 야위었으며, 흰 이마가 앞으로 튀어나와 있었고, 눈은 움푹 들어가 있는 사람이야. 면도를 깨끗이 했고 얼굴은 창백했으며, 어딘가 교수다운 데가 있었어. 연구 생 활로 인해 등이 구부러졌고, 몸은 언제나 먹이를 노리는 뱀처럼 천천히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지. 호기심에 가득 찬 가느스름한 눈으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더 니 결국 입을 열더군. '생각보다 머리가 나쁜 사람인것 같군요. 실내복 주머니 안에서 총알을 넣은 권 총을 만지작거리는 것은 위험한 버릇입니다.' 사실 모리어티가 들어온 순간 나는 큰 위험에 빠졌다는 것을 직감했어. 모리어티 가 도망갈 유일한 길이 있다면 바로 나를 죽이는 것이지. 그래서 나는 재빨리 서 랍 속의 권총을 주머니에 넣고 옷 속에서 겨냥을 하고 있었던 거야. 나는 상대방의 말에 권총을 꺼내서 테이블 위에 놓았어. 모리어티는 여전히 싱긋 이 웃으면서 눈을 깜박거렸는데 그 눈에는 사람을 오싹하게 하는 무엇이 있었지. '나라는 사람이 누군지 잘 모르겠지요?' '천만에요. 잘 알고 있소이다. 자, 좀 앉으시지요. 할 이야기가 있으면 5분 정도 는 해도 좋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러 왔는지 잘 알고 있을 텐데요.' '그러면 이쪽 대답도 알고 있겠군요.' '끝까지 해볼 생각이군.' '물론.' 그러자 모리어티가 재빨리 손을 주머니에 넣기에, 나도 테이블 위의 권총을 얼른 집었다네. 그러나 모리어티가 꺼낸 것은 날짜를 적어 둔 수첩이었어. '당신은 1월 4일에 내 일을 방해했어. 23일에도 방해를 했고, 2월 중순에는 상당 한 손해를 끼쳤지. 그리고 3월 말에는 계획을 완전히 망치게 했고, 게다가 4월 말 현재, 나는 당신의 끈질긴 추적으로 자유를 잃을 위험에 처해 있어. 참을 수 없는 일이야.' '내게 뭐 의논할 일이라도 있나?' 모리어티는 고개를 흔들면서 말했네. '손을 떼, 홈즈. 그래야만 한다는 것을 분명 알고 있겠지?' '월요일 이후에는 손을 떼겠다.' '흥! 당신 정도의 머리를 가진 사람이라면, 이 상황에서 결과가 하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텐데. 당신을 절대로 손을 떼야만 해. 당신이 이런식으로 일 을 방해한 덕분에 우리에게는 한 가지 길만 남게 되었어. 솔직히 말해서, 부득 이하게 비상 수단을 취해야 한다면 나로서도 괴로운 일이야. 웃고 있군. 하지만 나는 진심이야.' '나에게는 위험도 하나의 일이야.' '이것은 위험 정도가 아니야. 피할 수 없는 파멸이지. 당신은 지금 나라는 개인 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강력한 조직의 일을 방해하고 있어. 이 조직이 얼마나 거 대한지는 아무리 영리한 당신이라도 모든 걸 알수는 없을 거야. 손을 떼, 홈즈.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끝장이야.' 나는 일어서면서 말했지. '이야기는 재미있지만, 다른 곳에 중요한 볼일이 있어서.' 모리어티도 일어서서 슬픈 듯이 고개를 저으며 잠자코 나를 바라보더니 이윽고 입을 열더군. '좋아, 매우 유감스럽지만 나도 할 만큼은 다 한셈이야. 난 당신의 계획을 모조 리 알고 있어. 월요일까지 당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이것은 당신과 나의 결 투야, 홈즈. 당신은 나를 피고석에 세울 생각인 모양인데, 분명히 말해 두지. 나는 절대로 피고석에 서지 않아. 당신은 나를 파멸시킬 생각을 하고 있어. 그 러나절대로 그럴수는 없어. 나를 파멸시킬 생각이라면, 나도 당신을 파멸시킬 수밖에 없어.' '여러가지 칭찬의 말을 고맙네, 모리어티. 이쪽에서도 한 가지 말해 두겠는데, 만일 당신을 피고석에 세우기만 한다면 공공의 이익을 위해 나는 기꺼이 파멸되 어도 좋아.' '당신을 틀림없이 파멸시키기는 하겠지만 나는 피고석에 설 생각이 없어.' 모리어티는 그렇게 외치고 휙 돌아서서 방을 나가더군. 이것이 모리어티 교수와의 괴이한 만남이었다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 뒤로 기분이 몹시 불쾌했어. 단순한 불량배와는 달리 부드러우면서도 강압적인 말투였 기 때문에 오히려 무시무시했어. 물론 자네는 경찰에게 수배를 부탁하면 된다고 말하겠지. 그러나 내가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나를 위협하는 것이 모리어티가 아니라 그 부하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야. 틀림없이 그렇다는 명백한 증거도 있어." "벌써 시달렸나?" "모리어티 교수는 발 밑에 풀이 자라도록 잠시라도 일손을 멈출 사람이 아니야. 점심 무렵, 나는 볼일이 있어서 옥스퍼드가를 걷고 있었네. 길모퉁이를 돌려고 하는데, 말두마리가 끄는 짐마차가 굉장한 속도롤 내게 달려왔어. 재빨리 인도로 뛰어올랐기 때문에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했지. 마차는 내 옆을 지나서 눈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버렸어. 그리고 나서, 다시 걸어서 비어 가를 지나고 있는데, 어느 집의 지붕에서 벽돌이 떨어지더니 내 발 아래에서 산산히 부서지는게 아닌가. 나는 경찰을 불러서 그 부근을 조사하게 했네. 경찰은 집 수리를 하느라 지붕에 쌓아 놓은 슬레이트와 벽돌이 바람에 흔들려 떨어졌을 거라고 하더군. 물론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증거가 없었어. 그리고 나서 다시 마 차를 타고 팰 맬 가에 있는 형의 집에 찾아 갔네. 거기 있다가 바로 이곳으로 오 는데, 도중에 곤봉을 든 괴한에게 습격을 당했어. 그 녀석을 두들겨 팬 뒤에 경 찰에 넘겨 버렸지. 그 녀석이 이빨로 무는 바람에 이 관절을 다치 거야. 모리어티는 아미 15km쯤 떨 어진 곳에서 칠판에 문제를 풀고 있었겠지만, 모리어티와 이 괴한 사이에는 틀림 없이 뭔가 관계가 있어. 이제는 알았겠지. 와트슨. 그래서, 이방에 들어와서 덧문을 닫고 정문이 아닌 좀 더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나가도 되겠느냐고 부탁한 거야." 나는 홈즈의 용기에는 항상 감탄했지만 지금까지 잇달아 무서운 상황에 부딪치고 도 그것을 하나하나 생각해 내어 이야기하면서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새삼스럽 게 감탄했다. 나는 말했다. "오늘밤은 여기서 자고 가게나." "아니, 곧 가야 돼. 나는 위험한 손님이야. 이쪽은 완전한 준비가 되어 있고 모 두 잘될 거야. 법정에는 내가 꼭 나오게 되겠지만, 체포할 때는 내가 관여하지 않아도 되게끔 손을 써 놓았어. 그러니까, 경찰이 자유로이 활동할 수 있도록 이 삼일 동안은 내가 모습을 감추고 있으면 되는 것이지. 그래서 말인데, 자네 가 대륙에 함께 가 주면 좋겠는데." "진찰은 쉬고, 환자들은 이웃 의사에게 부탁하면 돼. 기꺼이 가겠어." "내일 아침이라도 떠날 수 있을까?" "필요하다면." "물론, 꼭 필요해. 그러면 자네에게 지시를 하겠어. 유럽 전체에서 가장 빈틈없 는 악당과 가장 강력한 범죄 조직을 양쪽 다 상대하는 것이니까. 아무쪼록 내가 말한 대로 하는 게 좋을 거야. 자, 좋아. 갖고 갈 짐은 전부 믿을 수 있는 사환에게 부탁해서 이름은 쓰지 말 고 오늘밤 안으로 정거장에 갖다 놓게 해. 아침에 자네와 나는 거리에서 마차를 타는데, 처음에 온 마차와 두 번째의 것은 그냥 지나쳐 보내는 거야. 그리고 마차에 뛰어올라 로우더 아케이드가 있는 스트랜드 거리까지 가는데, 차 비를 미리 준비해 두었다가 주고는 마차가 멈추자마자 아케이드를 빠져 나가는 거야. 반대편 거리로 나가는 시간이 9시 15분이 되도록 해야 해. 그곳에 가면 작은 사륜 마차가 기다리고 있는데, 칼라에 붉은 테두리를 한 투박 한 검은 외투를 입은 사람이 타고 있을꺼야. 그 마차를 타면 대륙 연결 급행열 차 시간에 맞추어 빅토리아 역에 도착할 수 있어." "자네와는 어디에서 만나지?" "역에서야. 앞에서 두번째 1등실에 예약되어 있을 거야." "그럼, 그 객실에서 만나는 거군." "그래." 우리 집에서 자고 가라고 권유했지만, 홈즈는 듣지 않았다. 머무르게 되면, 우리 집에 귀찮은 사건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억지로라도 나가려고 했음이 틀림없다. 다음날의 계획에 대해서 몇가지 서둘러서 이야기를 하고 나도 함께 정 원에 나와서 모티머 가로 향한 담을 뛰어넘었다. 곧이어 휘파람을 불어 마차를 세우고, 그것을 타고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 왔다. 2. 홈즈의 최후.. 다음날 아침, 나는 홈즈의 지시에 충실하게 따랐다. 모리어티의 부하가 망을 치 고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므로, 나는 잘 살펴서 마차를 타고 곧 로우더 아케이 드로 가서 그곳을 빠른 속도로 빠져나갔다. 사륜 마차에는 검은 외투를 입은 굉장히 덩치가 큰 남자가 타고 있었는데 내가 올라타자 말에 채찍을 가해 빅토리아 역으로 달렸다. 내가 내리자, 그는 마차를 돌려서 다시 쏜살같이 달려갔다. 여기까지는 모두 잘 진행되었다. 짐은 도착해 있었고, 홈즈가 말한 객실도 쉽게 찾았다. '예약' 표시가 붙어 있었다. 여행자와 배웅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모여 있는 데를 가보았지만 홈즈의 부드러운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림지조차도 없 었다. 그때 이탈리아인 늙은 목사가 짐 운반부에게 짐을 파리까지 수하물로 보내 고 싶다는 뜻을 전달하기 위해 서툰 영어로 애쓰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것을 통 역해 주느라고 다시 이삼분이 지나가 버렸다. 그리고 나서, 다시 주위를 둘러보면서 객실로 돌아와 보니, 차장이 차표도 보지 않고 태웠는지 아까의 그 늙은 이탈리아인이 앉아 있었다. 나의 이탈리아어는 상 대방의 서툰 영어보다 서툴렀기 때문에 자리가 바뀌었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소용 이 없었다. 단념하고 어깨를 늘어뜨린 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밖을 내다보았 다. 홈즈가 오지 않는 것은 밤 사이에 습격당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자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그리고 문은 모두 닫혀 버렸고 기적이 울렸다. 그때 귀에 익은 소리가 들렸다. "이봐, 와트슨. 자네는 아침 인사도 할 줄 모르나?" 나는 깜짝 놀라서 뒤돌아보았다. 늙은 목사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눈깜짝할 사이에 주름살이 펴지고, 축 늘어져 있던 코는 뾰족하게 섰으며, 앞으로 나와 있 던 아랫입술은 들어가고, 입은 우물쭈물 하던 것을 멈추고 흐리멍텅한 눈은 다시 예리하게 빛났으며 굽었던 등도 똑바로 펴졌다. 분명히 홈즈였다. 나는 소리를 질렀다. "깜짝 놀랐잖아!" 홈즈가 속삭였다. "아직은 조심해야 돼. 녀석들은 틀림없이 정거장까지 왔을 꺼야. 저런. 모리어티 가 직접 오는군." 홈즈가 말을 하는 동안에,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흘끗 돌아보니 키가 큰 남 자가 굉장한 기세로 인파를 헤치며, 기차를 세우라고 소리지르면서 뛰어오고 있 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기차는 점점 속도를 더하면서 눈깜짝할 사이에 정거 장을 벗어났다. "어휴, 아슬아슬한 고비였어." 홈즈는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일어서서 변장에 썼던 검은 목사 옷과 모자를 벗어 손가방에 집어넣었다. "이봐, 와트슨. 오늘 조간 신문을 보았나?" "아니." "그럼 베이커가의 일을 모르겠군?" "베이커 가라고?" "어젯밤에 놈들이 우리 방에 불을 질렀어. 대단한 피해는 없었지만." "뭐라고?" "곤봉을 들고 나를 습격했던 괴한이 체포된 뒤. 그들은 내가 어디로 갔는지 전혀 몰랐던 것 같아. 그러니 내가 베이커 가의 하숙집으로 돌아갔다고 생각했겠지. 그러나 놈들은 신중하게도 자네를 감시하고 있었고, 그래서 모리어티가 빅토리 아 역으로 뛰어온거야. 올때는 시킨 대로 했겠지?" "자네가 말한 그대로 했어." "사륜 마차가 있던가?" "응, 기다리고 있더군." "그 사람을 알아보겠던가?" "아니" "형 마이크로프트야. 이런 일은 다른 사람에게 돈을 주고 맡기지 않는 편이 좋으 니까. 그러면 이제부터는 모링어티에게 어떻게 대항할 것인지 대책을 세워야 해." "이 기차는 급행이고 프랑스행 배와 연결되어 있으니까, 이제는 쫓아온다 해도 소용없지 않을까?" "와트슨. 그 사람의 두뇌는 나와 견줄 수 있을 정도야. 내가 추격자라고 생각해 봐. 이 정도에서 패배를 인정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자네도 잘 알고 있잖나? 그 남자를 얕봐선 안돼." "그럼 어떻게 할껀데?" "나라면 이렇게 하겠어." "어떻게?" "특별 열차를 준비하는 거야." "시간이 제대로 맞을까?" "어쨌든. 이 기차는 켄터베리에 정차해. 게다가 배를 타려면 최소한 15분은 걸리 거든. 그는 거기서 우리를 따라잡을 거야." "마치 우리가 범인 같군. 녀석이 찾아왔을 때, 체포하면 어떨까?" "그러면 3개월동안 진행해 온 계획이 엉망이 되어버려. 큰 물고기는 잡아도, 작 은 것은 그물에서 사방으로 흩어져 버릴 테니까. 월요일에 그들을 몽땅 잡는 거 야. 녀석만 체포해서는 안돼." "어떻게 하지?" "캔터베리에서 내리는 거야." "그리고 나서는?" "시골길을 지나서 뉴해븐 항으로 가서 그곳에서 프랑스의 디에프 항으로 건너가 는거야. 이 경우에도, 모리어티는 우리가 할 듯한 일을 하겠지. 그는 우선 파리 에 가서 우리의 짐을 주시하면서 정거장에서 이틀동안 우리를 기다리겠지. 한 편, 그 동안에 우리는 새로운 가방을 2개 사들고 여기저기 돌아다닌 뒤에, 천천 히 스위스로 가면 되는 거야." 나는 여행하는 데 익숙하므로 짐을 잃어도 그다지 불편을 느끼지 않겠지만 솔직 히 말해서 최고의 악당을 눈앞에 보고도 도망다녀야 한다고 생각하니 별로 기분 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홈즈의 판단이 옳다는 것은 분명했다. 캔터베리에 내렸 더니, 뉴해분행 기차가 오려면 약 1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내가, 나의 옷 트렁크를 실은 채 점점 멀어져 가는 기차를 아쉬운 마음으로 지켜 보고 있는데, 홈즈가 팔을 당기면서 반대편을 가리켰다. "이봐, 벌써 특별 열차가 왔어." 아득히 멀리 캔트 주의 숲속에서 희미한 연기가 한 가닥 피어오르고 있었다. 1분뒤에 한 대의 객차만을 매단 기차가 커브를 돌아 역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 다. 우리는 서둘러서 역의 잔뜩 쌓인 짐 뒤로 몸을 숨겼다. 그러자 곧 기차가 열 기를 우리 얼굴에 뿜어내면서 요란하게 지나갔다. 흔들거리며 달려가는 객차를 바라보면서 홈즈가 말했다. "녀석이 타고 있어. 녀석의 머리에도 한계가 있는 모양이군. 내가 생각한 것과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대단한 솜씨라고 할 수 있지." "이렇게 뒤를 쫓아와 도대체 어쩌겠다는 거지?" "틀림없이 나를 죽이려 할꺼야. 이쪽에서도 점잖게 대하지는 않겠지만. 그런데 당면한 문제는 여기에서 미리 점심식사를 할 것인가, 아니면 뉴해븐의 식당까지 굶고 가는가 하는거야." 그날 밤 우리는 벨기에의 브뤼셀에 도착해 그곳에서 이틀을 보내고, 3일째에는 스위스에 가까운 프랑스 마을 스트라스부르로 옮겼다. 월요일 아침이 되자 홈즈 는 런던 경시청에 전보를 쳤고, 저녁 무렵에 호텔로 돌아와 보니 답장이 와 있었 다. 홈즈는 봉투를 뜯어서 보고는 심한 욕설과 함께 편지를 난로 속에 쳐 넣었 다. "녀석이 도망쳤어." "모리어티가?" "그 일당을 모조리 체포했는데, 녀석만은 놓쳤다는거야. 경찰을 따돌리고 물론 내가 런던을 떠나 여기에 있으니, 녀석과 겨룰 수 있는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었 겠지. 와트슨, 자네는 영국으로 돌아가는 편이 좋겠네." "어째서?" "나와 함께 있으면 위험하기 때문이지. 나의 판단이 맞는다면, 그는 틀림없이 모 든 힘을 다해서 나에게 복수하려 할거야. 그 짧은 만남때도 그렇게 말했듯이 그 건 정말일거야. 그래서, 자네에게 돌아가라고 권유하는 거야." 나는 홈즈를 두고 혼자 돌아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스트라스부르의 식당 에서 이 문제를 가지고 30분정도 서로 의논한 끝에 함께 스위스의 제네바로 가기 로 결정했다. 우리는 1주일동안 스위스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가, 이윽고 중부 마이링겐을 찾아갔다. 산 아래에는 봄의 싱그러움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고, 산 위에서는 겨울의 눈을 감상할 수 있는 즐거운 여행이었다. 그러나 홈즈가 잠시라도 모리어티를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홈즈 는 알프스의 작은 마을에 있던지,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산마루 같은 곳에 있던 지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았고 마주치는 얼굴들을 모두 날카롭게 응시하기도 했 다. 실제로 위험에 부딪힌 적도 있었다. 어느 날 몹시 적막한 호숫가를 거닐고 있는 데, 오른쪽 산등성이에서 커다란 바위가 와르르 무너져 내리더니 커다란 소리를 내면서 호수로 굴러 들어갔다. 홈즈는 재빨리 산등성이를 기어올라가 정상에 우 뚝서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안내인이 이 부근에서는 봄이 되면 돌이 자주 떨어진다고 설명했지만. 홈즈는 아 무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예상했던 일이라는 듯이 나에게 미소를 띠어 보였다. 그러나 홈즈는 이렇게 긴장해 있으면서도 결코 건강을 잃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더 건강해진 것 같았다. 홈즈는 입버릇처럼 이런 말을 했다. "모리어티를 사회에서 제거할 수만 있다면, 탐정일을 기꺼이 그만두겠어.지금까 지 지내온 나의 생애는 헛수고가 아니었어.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런던 의 공기는 내 덕분에 맑아지고 있다고 할 수 있었어. 그 동안 천여 가지의 사건 을 다뤄왔지만, 나의 힘을 나쁜일에 쓴 적은 결코 한 번도 없었어. 요즘 나는, 사회 문제보다도 자연에 관련된 문제를 연구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 유럽에서 가장 위험하고 쓸모없는 그 범죄자를 잡든지 파멸시키게 되면, 자네의 회고 기록도 끝을 맺겠지?" 마이링겐의 작은 마을에 있는 '영국관'이라는 곳에 묵게 도니 것은 5월 3일의 일 이었다. 주인은 눈치가 빠른 남자로 영어에 능숙했다. 이 사람의 권유로 4일 오 후에는 산을 넘어 로젠라우이 마을로 가서 하룻밤 머물 생각으로 출발했다. 도중 에 길을 약간 돌아서, 라이헨바흐 폭포를 보고 가기로 했다. 라이헨바흐 폭포는 정말로 장관이었다. 봄이 되어 눈이 녹자 물의 양이 더욱 불 어서 거센 흐름이 무섭게 가장자리까지 밀려 나왔다. 폭포 아래에는 물안개가 자 욱했다. 폭포 양쪽에는 검은 빛이 나는 바위가 깍아지른 듯이 절벽을 이루고 도 무지 깊이를 알 수 없는 용소에는 물이 거품을 내며 흘러 넘치고 있었다. 초록빛을 띤 커다란 물줄기는 굉장한 폭음을 내면서 계속 떨어졌고, 뿌연 물보라 는 흔들리는 커튼처럼 춤추며 올라가고 있었다. 우리는 낭떠러지의 끝 부근에 서 서, 저 아래의 검은 바위에 부딪쳐 부서지는 물거품을 보면서 인간의 거대한 외 침과도 같은 울림에 귀를 기울였다. 폭포 전체를 둘러 볼 수 있도록 작은 길이 만들어져 있었는데, 그 길은 폭포의 절반까지만 나 있어서 거기서 걸음을 되돌려야만 했다. 우리가 등을 막 돌렸을때 편지를 손에 든 스위스 젊은이가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지금 막 떠나온 호텔의 마크가 찍혀 있는 봉투였다. 그 주인이 보낸 편지였다. - 두분이 막 떠나신후, 결핵으로 사경을 헤메는 영국 부인이 도착하셨습니다. 아 무래도 몇 시간밖에 살지 못할 것 같은데, 꼭 영국인 의사의 진찰을 받고 싶다 고 합니다. 그래서, 와 주셨으면 하고 이렇게 편지를 드리는 겁니다. 스위스 의사는 절대로 싫다고 하는군요. 저도 아주 부담스런 부탁인지는 알고 있습니 다만, 아무쪼록 부탁드리겠습니다. - 모르는 체 할수 없는 부탁이었다. 외국에서 죽어가고 있는 동포의 부특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홈즈를 혼자 두고 가는 것이 영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결 국, 내가 마이링겐까지 갔다 올 동안 심부름하러 온 스위스 젊은이가 홈즈와 함 께 남아 있기로 결정했다. 홈즈는, 잠시 폭포를 구경하다가 천천히 산을 넘어 로젠라우이로 갈 테니까 밤에 거기서 만나자고 말했다. 내가 그 장소를 떠날 때, 홈즈는 팔짱을 끼고 바위에 기댄 채, 거센 폭포의 흐름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것이 이 세상에서 본 홈즈의 마지막 모습이 될 줄이야. 언덕길을 다 내려가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서 폭포는 보이지 않았지만 산허 리를 빙글빙글 돌아서 폭포에 이르는 길이 보였다. 그 길을 한 남자가 몹시 급하 게 걸어 올라가고 있었다. 그 검은 모습은 녹색 배경에 선명하게 아로새겨진 듯 했다. 왜 저렇게 서두를까 하고 생각은 했지만, 길을 재촉하는 동안 그 일은 까 맣게 잊어버렸다. 마이링겐에 도착하는 데는 1시간이 조금 더 걸린 것 같았다. 주인이 현관에 서 있었다. 나는 급하게 걸으면서 말했다. "환자는 어떤 상태입니까?" 주인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떠오르며 눈썹이 약간 움직였다. 그 순간, 나는 온 몸이 얼어붙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편지를 꺼내며 물었다. "이 편지 당신이 쓴 것 아닙니까? 호텔에 환자가 없나요? 영국 부인말입니다." 주인이 외쳤다. "아뇨, 제가 쓴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봉투에 호텔 마크가 찍혀 있군요! 아, 그 래! 그 키가 큰 영국분이 쓰신 겁니다. 두 분이 떠나자 곧 도착했었지요. 아무 래도....." 그러나 나는 주인의 설명을 기다릴 수 없었다. 걱정과 두려움으로 가슴을 두근거 리며 마을 길을 달려 나가서, 내가 좀전에 내려왔던 길을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내려오는 데는 1시간이 걸렸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서 서둘렀지만 러이헨바흐 폭포까지 올라가는 데는 길이 서툴러 2시간이 더 걸려 버렸다. 헤어질 때 있던 그 바위에는 홈즈의 등산 지팡이가 그대로 세워져 있었지만 홈즈의 모습은 아무 데도 없었고 아무리 외쳐 보아도 대답이 없었다. 나의 목소리가 주위의 절벽에 부딪쳐서 슬픈 메아리로 되돌아올 뿐이었다. 나는 그 등산 지팡이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결국, 홈즈는 로젠라우이에 가지 않은 것이다. 한쪽은 절벽이고 한쪽은 깍아지른 듯한 계곡인 이 1M폭의 좁은 길에서 적에게 습 격당한 것이다. 젊은 스위스인도 없었다. 아마 모리어티에게 돈을 받고 심부름한 녀석일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나는 이 무서운 생각에 미쳐 버릴 것만 같아서 잠시 그대로 있었다. 그리고 나 서, 잠시 뒤에 홈즈의 방법을 떠올리며 이 비극의 끝을 더듬기 시작했다. 슬프게 도 그것은 매우 쉬웠다. 얼만 전까지 우리가 서서 이야기를 하던 장소에 홈즈의 등산 지팡이가 무슨 표지 처럼 서 있었다. 끝없이 내뿜는 물보라 덕분에 검은 빛의 흙은 언제나 부드러워 서, 새가 앉아도 발자국이 남을 것 같았다. 폭포 위 좁은 길을 따라 분명하게 두 사람의 발자국이 이어져 있었는데 돌아선 흔적은 없었다. 그 길의 끝의 약간 앞쪽에 진흙이 짓쨛혀서 뭉개진 자국이 있었 고, 벼랑 가장자리에는 몇 그루의 가시덤불과 고사리가 잡아뜯겨져서 엉망이 되 어 있었다. 나는 엎드린 채 내뿜는 물보라를 뒤집어쓰면서 밑을 내려다보았다. 마을로 내려 갈때부터 어둑어둑해지더니, 이제 제법 어두워졌다. 물에 젖은 검은 바위가 여 기저기에서 번쩍번쩍 빛나고 저 아래의 용소에서 물이 희뿌옇게 부서지는 것이 보일 뿐이었다. 나는 소리쳐 홈즈를 불러 보았다. 그러나 사람의 외침 같은 폭포 소리만이 되돌아올 뿐이었다. 그러나 역시 나는 홈즈의 마지막 인사만은 받을 운명이었다. 등산 지팡이가 세워 져 있는, 길로 튀어나온 바위 위에 뭔가 빛나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홈즈가 항 상 갖고 다니던 은으로 된 담배 상자였다. 그것을 집고 보니, 그 밑에 놓여 있던 네모나게 접은 종이 쪽지가 팔랑거리며 땅 으로 떨어졌다. 수첩을 세장 찢어서 나에게 쓴 편지였다. 너무나도 홈즈다웠고 수신인도 정확하게 표시되어 있었으며, 마치 서재에서 쓴 것처럼 글씨도 또박또 박 쓰여져 있었다. - 친애하는 와트슨. 나는 모리어티 교수의 양해를 얻어 이 편지를 쓰고 있네. 교수는 나와 마지막 대결을 벌이기 위해 지금 기다리고 있다네. 그는 어떻게 영국 경찰의 포위망을 뚫고 나왔으며, 우리 뒤를 따라왔는지를 모두 얘기하더 군. 역시 교수의 능력은 내가 평가하고 있던 그대로였어. 나는 나 자신을 희생시키면서까지라도 그의 존재가 사회에 끼치는 나쁜 영향 을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자네를 슬프게 한다는 것을 깨달으면서도 그 일에 만족을 느꼈다네. 그러나 이미 말했듯이. 어차피 나의 생애에 위험이 닥쳐왔고, 결말을 짓기에 는 지금이 가장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마이링겐에서 온 편지가 가짜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러한 결과가 되리라고 짐작하면서 자 네를 되돌려 보낸 걸세. 패터슨 경감에게 모리어티 일당의 유죄 판결에 필요한 서류는, '모리어티'라 고 슨 푸른 봉투에 넣어서, 서류함의 M항에 넣어 두었다고 전해 주게. 재산은 영국을 떠나기 전에 완전히 정리해서 형 마이크로프트에게 건네주고 왔네. 자 네 아내에게도 안부를 전해 주게.. 자네의 진실한 친구 셜록 홈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