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증권 거래소 직원 ?? 코난 도일.. 1. 굉장한 행운.. 나는 결혼한 뒤 병원을 개업했지만, 3개월 가량은 일이 바뻐 홈즈를 자주 만날 기회가 없었다. 그러던 6월의 어느 날 아침, 의학 회보를 읽고 있노라니 초인종 이 울리고 홈즈의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홈즈는 성큼성큼 걸어들어오며 말했 다. "오래간만일세. 부인이 [홈즈와 4개의 서명] 사건으로 꽤나 충격을 받았을 텐데, 이제는 좀 괜찮으신가?" 나는 그가 내미는 손을 마주잡으며 대꾸했다. "고맙네. 우리 두 내외는 모두 별일 없네." 홈즈가 안락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그런데 자네는 병원이 바쁘다고 내가 다루는 사건에는 더 이상 흥미를 갖지 않 는 건가?" "천만에, 어제 저녁에도 묵은 노트를 꺼내어 자네가 지금까지 해결한 사건을 분 류했었다네." "나와 함께 사건에 뛰어들 생각은 없고?" "왜 없겠나? 그런 경험을 좀더 맛볼 수 있다면 마다할 일이 아니지." "그럼 오늘은 어떤가?" "모처럼 한가한 편일세." "버밍엄까지 가야 할 일인데." "좋아, 따라나서지." "환자가 오면?" "이웃 의사가 일이 있어 외출할 때는 내가 대신 그의 환자를 봐 주기로 되어 있 어. 내가 병원을 비우게 되면 그가 내 환자를 봐 주고." 홈즈는 의자에 기대어 반쯤 감은 눈꺼풀 아래로 내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거 편리하군. 그런데 자네는 그 동안 몸이 불편했나 보구먼. 여름철 감기는 지독하기도 하지만." "실은 한 사흘 몸살이 실해서 누워 있었네. 이젠 다 나았지만." "흠, 이젠 건강한 것 같군." "그런데 어떻게 내가 앓았다는 것을 알았지?" "내 버릇을 알잖나?" "그럼 추리로?" "그렇다네." "어떤 단서로?" "자네의 슬리퍼를 보고 알았네." "슬리퍼가 어때서?" 나는 신고 있던 슬리퍼를 내려다보았다. 홈즈의 설명이 뒤를 이었다. "자네의 슬리퍼는 새것일세. 그것을 산지 3주정도나 되었을까. 그런데 지금 내 쪽에서 보이는 바닥에 약간 그을린 흔적이 있네. 나는 처음엔 슬리퍼가 물에 젖 어 그것을 말리다가 태운 것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발등쪽에 작은 상표가 그대 로 붙어 있더구먼. 물에 젖었다면 그것은 풀이 물을 먹어 떨어져 나갔을 테지. 따라서 자네는 벽난로에 불을 지펴 놓고 양쪽 발을 뻗고 있었다는 것이 되지. 감기 몸살이 아니고는, 멀쩡한 사람이 오뉴월에 난로를 피울 까닭이 없지." 늘 그랬었지만 홈즈의 추리라는 것은 설명을 듣고나면 지극히 간단한 것이다. 홈 즈는 내 얼굴에서 내 마음을 읽고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설명을 해버리면 마치 속임수를 공개한 마술처럼 싱거운 일이지. 원인을 말하지 않고 결과만 이야기해야 장사가 되는건데. 하여간 버밍엄에는 가는겐가?" "대체 어떤 사건인가?" "기차 속에서 이야기함세. 사건을 의뢰해 온 사람이 밖에 마차를 대고 기다리고 있어." "곧 준비하겠네." 나는 이웃 의사에게 뒷일을 부탁하고는 2층으로 달려 올라가 아내에게 사정을 말 하고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는 홈즈에게 갔다. 홈즈는 구리로 된 간판을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웃집도 의사인가?" "음, 나처럼 개업권을 샀지." "오래 된 병원인가?" "우리와 같네. 양쪽 모두 건물이 들어섰을 때부터 병원이었어." "그렇다면 자네가 좋은 쪽을 차지했군." "나도 그렇게 생각했네만, 어떻게 알았지?" "현관의 문턱을 보면 알지. 자네의 병원 문턱이 더 닳아 있더군. 좀더 병원이 잘 된다는 증거지. 자, 소개하겠네. 마차에 있는 이분이 사건을 의뢰해 온 홀 파이 크로프트 씨일세. 마부, 빨리 좀 달려 주시오. 기차 시간이 급합니다." 나와 마주앉은 사람은 체격이 좋고 늘름해 보이는 청년인데. 성실해 보이는 용모 에 곱슬곱슬한 작은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머리에는 윤이 나는 실크햇을 쓰고 품위 있는 검은 양복을 입은 품이, 젊은 사업가이거나 런던 토박이처럼 보였다. 둥글고 불그레한 얼굴은 활력이 넘치고 있었으나, 굳게 다문 입가에는 뭔가 걱정 스러운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그러나 버밍엄으로 가는 1등차에 올라타기까지는 이 청년에게 어떤 걱정거리가 있어서 홈즈를 찾아왔는지 물어 볼 수가 없었다. 이윽고 홈즈가 청년에게 말했다. "이곳에서 버밍엄까지는 70분이 걸리지요. 파이크로프트 씨? 그 동안에 내 친구 에게 당신의 이상한 경험을 나에게 이야기한 것처럼 아니 좀더 자세히 들려주시 겠습니까? 사건이 어떻게 전개되었는가를 다시 한번 듣는 것은 내게도 유익합니 다. 그리고, 와트슨. 이 사건이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지 그렇지 못한지는 두 고 볼 일이지만, 적어도 자네에겐 흥미가 있을지도 모를 색다른 특색을 갖고 있 는 것만은 틀림없네. 자, 파이크로프트 씨, 더 이상 방해는 하지 않을 테니 이 야기를 시작하십시오." 청년은 나를 보고 나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이야기에서 가장 쑥스러운 것은 내가 병신같은 역할을 맡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수수께끼는 풀리겠지만, 나는 그럴 수 밖에 별 도리가 없었던 거지요. 하여 간 자기의 지위를 내동댕이친 댓가로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다는 건 바보짓이 틀 림없는 건 사실입니다. 와트슨 씨. 내가 왜 이런 먰두리를 하는지 이야기를 들어 보시면 알게 될 겁니다. 나는 트래퍼스 가든에 있는 콕슨 우드 하우스 회사에 근무했습니다. 아마도 기억 하고 계시겠지만, 그 회사는 지난 봄에 남미 베네수엘라 공채의 폭락으로 순식간 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나는 5년이나 근무했었지요. 그 회사가 도산하자 사장 인 콕슨 씨는 우리 모두에게 훌륭한 소개장을 써주기는 했으나, 우리 27명의 사 원은 모두 실업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나는 여기저기 직장을 구해 보았지만 마땅 한 곳이 없어 날로 곤궁한 입장으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콕슨 회사에서는 1주일에 3파운드씩 받아 그 동안 60파운드 가까이 저축을 했습 니다만, 그것도 차츰 바닥이 나고 마침내는 빈털털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젠 모집 광고에 붙일 우표값도 궁한 처지가 되었거니와. 구두가 헤어져도 새것을 살 여유도 없었습니다. 직장을 얻기가 힘들었지요. 그러던 중, 모슨 윌리엄슨 회사에서 직원을 구한다는 광고를 보았습니다. 이 회 사는 롬버드 가에 있는 증권 거래소로 런던에서도 일류급에 속하는 건실한 회사 입니다. 응모 신청은 우편으로 한정한다기에 나는 추천장과 응모 원서를 보내기 는 했지만 채용되리라곤 생각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답장이 왔는데. '다음 월요일에 방문해 주십시오. 신체상의 결 함이 없는 한 곧 채용할 예정입니다.' 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행운이 굴러들어왔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사장이 산더미 같은 응모 서류 속에서 제비 뽑기 식으로 뽑아냈을 거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여간 나는 운이 좋았고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습니다. 급료는 콕슨 회사 때보 다 1파운드 가량이 많으면서도 근무 시간은 같았습니다. 자, 여기에서 이야기는 이상한 방향으로 꺽여 들어갑니다. 나는 햄스테드의 구석 진 골목에서 하숙하고 있었습니다. 주소는 포터스 테라스 17번지입니다. 채용 예 정 편지가 온 날 마음이 들떠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하숙집 아주머 니가 '회계사 아서 피너' 라고 인쇄된 명함을 갖고 들어왔습니다. 나는 그런 사람을 알지 못했고, 그가 나에게 무슨 용무가 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 가 없었습니다만 일단 만나 보기로 했습니다. 방에 들어선 남자는 중키에다 보통 체격으로, 머리칼과 눈, 그리고 턱수염까지 검었는데 코의 생김새로 보아 유태인 이 아닌가 생각되었습니다. 그 남자가 말했습니다. '홀 파이크로프트 씨입니까?' '그렇습니다.' 나는 그렇게 대답하며 의자를 권했습니다. '얼마 전까지 콕슨 하우스 회사에 근무하셨지요?' '맞습니다만?' '그리고 이번에는 모슨 회사에 나가시게 되었다지요?' '그렇습니다.' '실은 당신이 유능한 경리 사원이라는 것을 소문으로 듣고 찾아 온 겁니다. 콕슨 회사의 지배인인 파커 씨를 기억하시겠지만, 그분이 당신 칭찬을 하시더군요.' 나는 그 소리를 듣고 내심 우쭐했습니다. 직장에서는 만사 실수 없이 일해 온 것 이 사실입니다만, 그런 칭찬을 받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 이 말을 이었습니다. '기억력도 뛰어나시다고요?' 나는 겸손하게 말했습니다. '별것 아닙니다.' '실직중에도 주식의 오르내림세에 관해서는 늘 신경을 쓰셨나요?' '예, 매일 주식 시세를 살펴보곤 있습니다.' '아, 무척 세심하시군요. 성공하자면 그래야지요. 실레지만 한 가지 시험을 해봐 도 될까요? --- 에어셔의 주식 시세는?' '105파운드 내지 105파운드 1/4가량 됩니다.' '뉴질랜드 정리 공채는?' '104파운드.' '그럼, 브리티시 브로큰 힐스 주는?' '7파운드 내지 7파운드 6실링.' 남자는 양손을 벌리더니 놀랍다는 표정이 되었습니다. '훌륭하십니다. 소문 그대로군요. 모슨 회사 직원으로는 아깝습니다.' 나는 목덜미가 간지러워지는 것을 느끼며 말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당신처럼 그렇게 나를 높이 평가하지는 않습니다. 피너 씨. 나느 고생 끝에 이번 취직이 되었기에 기꺼이 나갈 생각입니다.' '무슨 말씀을! 당신은 좀더 격이 높은 일자리를 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재능을 살려야 합니다. 내가 제의하려는 지위도 당신의 재능에 비하면 충분할 수 없지만, 모슨 회사에 비하면 한 단계 위입니다. 그래, 모슨 회사에는 언제부 터 나가기로 되어 있습니까?' '월요일부터입니다.' '하하, 내기를 해도 좋습니다만, 당신은 모슨 회사에는 가지 않을 겁니다.' '내가 취직을 포기한다고요?' '그렇습니다. 그때는 당신이 이미 프랑코 --- 미들랜드 금속회사의 지배인이 되 어 있을 테니까요. 이 회사는 프랑스 전국에 134개의 지점을 갖고 있습니다. 벨 길에와 이탈리아의 산 레모에도 지사가 있고.' 나는 숨이 콱 막히는 것 같았습니다. '들어 본 적이 없는 회사인데요.' '아마도 들어 본 적이 없을 겁니다. 영국에는 처음 지사를 설립하게 되었고, 주 식을 일반에게 공개하기에는 재미가 꽤 짭잘합니다. 우리 형인 해리 피너가 발 기인인데, 주식 부담액에 따라 전무로 이 회사에 나가고 있습니다. 내가 이곳 의 사정에 밝은 것을 알고, 젊고 능력있는 인물을 찾아보라는 부탁을 해왔더군 요. 그래서 파커 씨에게서 당신의 소문을 듣고 찾아온 겁니다. 처음 단계에서는 약소하게도 500파운드밖에 드릴 수 없지만....' '1년에 500파운드나?!' '우선 그 정도로 하고 당신의 거래 성적에 따라 1%의 수당을 받게 됩니다. 잘만 하면 그것이 급료보다 많을 수도 있지요.' '하지만 나는 금속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습니다.' '그 대신 당신은 숫자에 밝습니다.' 나는 머리가 멍해져서, 그냥 의자에 앉아 있을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냉 정한 이성이 지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생각 그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모슨 회사의 급료는 불과 200파운드지만 그런 업체라면 믿을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회사에 관해서는 아는 것이 없어 서....' 내 말에 피너 씨는 기쁜 듯 소리치는 것이었습니다. '아, 역시 똑똑하신 분이십니다. 당신처럼 빈틈없는 사람이 우리 회사에서는 필 요합니다. 당신이라면 형의 부탁이 없어도 모셔 가야겠습니다. 자, 이건 100파 운드 수표입니다만, 우리 회사에 와주신다면 급료의 선금으로 우선 드리고 갈 수 있겠습니다.' '이거 과분한 처사입니다. 그럼, 언제부터 출근해야 합니까?' '내일 1시에 버밍엄으로 가주십시오. 형에게 갖고 갈 소개장이 여기 있습니다. 코퍼레이션 가 126번지 B호입니다. 그곳은 런던에 지사를 설치하기 위한 임시 사무실입니다. 형은 일단 당신을 만나 뒤에 채용 여부를 결정할 겁니다. 이미 결정된거나 다를 바 없습니다만.' '그게 사실이라면 이렇게 고마울 데가....' '천만에요. 당신은 극히 당연한 대우를 받는 겁니다. 그런데 극히 형식상의 일입 니다만, 당신과 약속을 해 둘일이 있습니다 이 종이에 이렇게 적어 주십시오. '본인은 연봉 500파운드로 프랑코 --- 미들랜드 금속회사 지배인으로 취임할 것 을 승인함.' 이라고.' 내가 그대로 쓰자 피너 씨는 그것을 주머니에 챙겨 넣었습니다. '그러면 모슨 회사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는 과분한 일자리에 넋이 나갔던 모양입니다. '사절 편지를 내야겠지요.' '허, 그럴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나는 모슨 회사의 지배인과 말다툼을 했답니다. 그 회사에 가서 당신에 관해 조회했더니, 그쪽 지배인이 펄쩍 뛰며, '당신은 그 청년을 속여 우리 회사에 입사하는 것을 방해할 속셈이오!' 하고 화 를 내더군요. 나도 화가 났지요. '그 청년은 비록 보수가 당신들보다 적더라도 우리 회사로 올 것이오.' 라고 큰소리처기에 나는, '5파운드 걸어도 좋소. 그 청년이 우리의 채용 조건을 알면, 당신들에게는 말 한마디 없이 돌아설 것이오. '라고 해주었지요. 그러자 그쪽에서 뭐라고 했는지 압니까? '그 사람이 시궁창에서 허덕이는 것을 우리가 건져 준거나 다를 바 없는데 그렇 게 쉽게 취직을 포기하지는 않을 거요.' 라고 말합디다.' 나는 울컥 화가 치밀었습니다. '오만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아직 정식으로 취직을 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사람 을 얕보다니.... 사절 편지 같은건 쓸 필요도 없겠군요.' 피너 씨는 의자에서 일어나며 말했습니다. '그럼, 그렇게 알겠습니다. 형을 위하여 이렇게 훌륭한 인물을 만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이건 100파운드의 선금이며 이것이 소개장입니다. 장소를 적 으시죠. 코퍼레이션 가 126번지 B호. 그리고 내일 1시가 약속시간이니까 잊지 마십시오. 그럼, 행운을 빕니다.' 두 사람 사이에 오간 이야기는 대충 이상과 같았습니다. 그런 굉장한 행운에 정 말 시궁창을 허우적거리던 내가 얼마나 좋아했는지 상상도 못할 겁니다. 나는 기 뻐서 그날 밤은 잠까지 설쳤습니다. 이튿날 기차로 버밍엄으로 출발했는데, 도착해서도 약속 시간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더군요. 그래서 뉴 가의 호텔에 짐을 옮기고 나서 약속된 장소로 갔습니다. 약속 시간까지는 15분 가량 더 남아 있었습니다만 나는 사무실이라도 미리 찾아 놓을 생각을 했습니다. 126번지의 B호는 두 개의 큰 상점 사이의 통로로 들어가니 돌계단이 있고 그 위 에 잡다한 회사와 의사, 변호사 등의 사무실이 즐비했습니다. 하지만, 프랑코--- 미드랜드 금속 주식회사라는 명칭은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여우에게 홀린 것 같은 기분이 되어 어리둥절해 있는데 어떤 남자가 다가와서 이 야기를 걸더군요. 어젯밤에 하숙집을 찾아온 사람을 꼭 닮은 얼굴이었는데, 모습 이나 목소리도 똑 같았고, 다만 수염을 깨끗이 깍고 머리칼은 금발에 가까워 보 였습니다. '홀 파이크로프트 씨이십니까?' '예, 그렇습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동생에게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무척 칭찬을 하더군요.' '그런데 사무실이 보이지 않던데요.' '아직 간판을 내걸지 않았습니다. 이 임시 사무실을 얻은 것이 불과 1주일전이라 서요. 자, 올라 가서 이야기하십시다.' 내가 그의 뒤를 따라 비좁은 계단을 올라가 보니, 맨 위층에 먼지투성이의 빈방 이 두개 있었습니다. 융단도 깔려 있지 않고, 커튼도 걸려 있지 않았는데, 그 남 자는 나를 그곳으로 안내했습니다. 나는 번쩍거리는 책상과 죽 늘어앉은 사원들을 머리에 그렸었는데, 가구다운 가 구라고는 허술한 테이블 하나만 덜렁 놓여 있고, 의자가 두개 있을 뿐이어서 어 안이벙벙해질 수밖에 없었지요. 남자는 나의 실망한 얼굴을 살피며 말했습니다. '실망하기에는 아직 이릅니다. 파이크로프트 씨. 아직 사무실을 치장하기 전이지 만 자금은 넉넉합니다. 자, 앉아서 소개장을 보여 주시지요.' 내가 소개장을 건네주자 남자는 잠시 그걸 ?어 보고는, '나는 해리 피너입니다. 당신은 내 동생인 아서 피너 마음에 꼭 든 모양이군요. 하기야 동생은 사람을 보는 눈이 보통이 넘지요. 당신을 채용하기로 결정하겠습 니다.' '무슨 일을 하게 됩니까?' '나주에는 파리 본사의 관리부를 맡아 줘야겠지만 지사가 기능을 발휘할때 까지 는 이곳에서 일해 주십시오.' '그게 무슨 일입니까?' 해리 피너는 서랍에서 두툼한 붉은 표지의 책을 꺼냈습니다. '이건 파리의 인명사전인데 이름과 함께 직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숙소에 돌아 가서 이들 중에 금속과 관계되는 사람의 명단을 모조리 빼 주십시오. 그래야 고 객 확보에 크게 도움이 됩니다.' '직업별 명단이 나온 것이 있을 텐데요?' '그건 별로 신빙성이 없어서 그럽니다. 우리가 하는 방법은 철저해야 합니다. 다 음 월요일 12시까지는 나에게 제출되도록 서둘러 주시오. 그럼, 돌아가도 좋습 니다. 열심히 일해 주시면 회사로서도 그만한 보상은 해 드릴 겁니다.' 나는 묵직한 사전을 안고 어리벙벙한 심정으로 호텔에 돌아왔습니다. 오래간만에 직장이 생기고 주머니에는 100파운드라는 목돈이 들어 있었으나, 간판도 달지않 은 초라한 사무실을 보고는 웬지 불안하 마음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하지만 일이 어떻게 돌아가든 돈은 받은 것이니, 마음을 가라앉히고 일을 시작했 습니다. 일요일까지도 꼬박 일을 했지만, 약속한 월요일이 되어서도 H항목까지 밖에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정된 날짜에 보고를 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찾아가 보았더니 처음 그대로의 텅 빈 사무실에서 전무가 수요일까지는 완성해 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수요일이 되어서도 일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난 금요일까지 밤 을 새우다시피 일해서 그것을 들고 피너 씨에게로 갔습니다. '수고했오. 이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건 나도 잘 알고 있어요. 이게 크게 도움 이 되겠습니다.' '시일이 너무 걸려서 죄송합니다.' '그럼, 이번에는 가구상의 명단을 작성해 주시오. 특히 철제 가구상에서는 우리 제품을 많이 쓰니까.' '그러겠습니다.' '그럼, 내일 오후 7시까지 와서 일이 어느 정도 진행뻍는지 보고해 주시오. 그렇 다고 무리할 필요는 없어요. 이 길로 뮤직 홀에라도 가서 두어 시간 지내는 것 도 나쁘진 않을 게요.' 그렇게 말하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는데 왼쪽에서 두번째 이가 번쩍 빛나는 것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홈즈는 흥미가 동한 얼굴로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으나, 나는 그것이 왜 놀 라운 일인지 의아스러운 표정으로 파이크로프트 청년을 바라보았다. "와트슨 씨가 의아해 하시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거기에는 이런 이유가 있습 니다. 런던의 내 하숙집에 동생인 아서 피너 씨가 찾아와서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내가 '모슨 회사에는 가지 않을 겁니다.' 라고 말하자 그가 껄껄 웃었는데, 그때 본 그의 금으로 된 틀니의 모양과 위치가 형과 똑 같았던 겁니다. 모습과 목소리도 같고, 다른 점이라고는 깨끗이 면도한 턱과 머리 모양인데, 그 것은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혹시 같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던 겁니다. 아무리 형제는 닮을 수 있다고 하나, 같은 모양의 틀니를 같은 위치에 박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사무실을 나온 나는 머리가 이상해진 느낌이었습니다. 호텔에 돌아와 찬물로 세 수를 하고는 이것저것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가 동일인물이라면 어떤 이유로 나를 런던에서 버밍엄까지 오게 했으며, 또 한 걸음 먼저 와서 자기가 자신에게 보내는 소개장을 읽는 시늉을 했을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문제에 골머리를 앓다가, 나로서는 짐작할 수 없는 문제 라도 홈즈 씨라면 쉽게 풀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떠오르더군요. 그래서 밤차를 집어타고 런던으로 돌아와 오늘 아침 홈즈 씨를 만나뵙고, 이렇게 버밍엄 까지 모셔 가게 된 것입니다." 파이크로프트 청년의 이상야릇한 이야기가 끝나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자 홈즈는 맛있는 포도주를 입속에 가득 머금은 애주가와 같은 흐믓한 표정으로 등 받이에 기대고서 나를 흘끔 바라보며 말했다. "무척 재미있지, 와트슨? 나를 즐겁게 해주는 요소가 한둘이 아닌걸. 자네도 나 와 같은 생각이겠지만, 프랑코---미들랜드 금속 주식회사의 임시 사무실에서 아 서 피너 씨인지 해리 피너 씬지 모를 인물과 만나다는 것은 흥미있는 일이겠는 걸." "하지만 무슨 구실로 만나다?" 내말에 파이크로프트가 선뜻 의견을 제시했다. "그건 간단합니다. 두 분은 직장을 원하는 내 친구라고 하면 됩니다. 그런 일이 라면 당신들을 전무한테 데리고 가는 게 이상할 것이 없지 않습니까." 홈즈가 맞장구를 쳤다. "좋은 생각입니다. 만나기만 하면 그 자가 어떤 음모를 꾸미고 이런 짓을 하는지 꼬리를 잡을 수 있을 겁니다." 홈즈는 손톱을 깨물며 창 밖을 내다보면서, 버밍엄에 도착하기까지 말이 없었다. 2. 무서운 음모... 그날 저녁 7시에, 우리 세 사람은 코퍼레이션 가에 있는 그 회사를 향해 걸어갔 다. 파이크로프트가 말했다. "약속 시간전에 가봐야 헛일입니다. 그는 나를 만나기로 한 시간에만 사무실에 나타나는 모양입니다. 지정된 시간전에는 아무도 없어요." 홈즈가 고개를 끄덕였다. "까닭이 있겠지." 그때 파이크로프트가 외쳤다.. "저기 보십시오. 저 앞에 급히 걸어가고 있는 것이 그 사람입니다." 청년은 도로 저쪽에서 걸어가고 있는 보통 키의 금발에 잘 차려입은 남자를 가리 켰다. 우리는 그를 지켜보았다. 그런데 그 남자는 미참 석간 신문이 나와 그것을 팔고 있는 소년에게로 가서는 신문을 샀다. 그리고 그것을 말아쥔 채 어느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파이크로프트가 말했다. "저곳이 회사가 세든 건물입니다. 자, 들어가서 잘해 주십시오." 파이크로프트의 뒤를 따라 5층으로 올라가 반쯤 열린 문을 노크하자, 안에서 '들 어오시오'하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파이크로프트의 말대로 텅 빈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하나뿐인 테이블 위에 신문을 펼쳐 놓고,아까의 그 남자가 앉아 있었다. 남자는 얼굴을 들어 우리 를 바라보았는데, 그 얼굴은 공포로 일그러져 있었다. 이마에서는 진땀이 흐르 고, 볼은 생선의 뱃가죽처럼 핏기를 잃고, 눈은 중심을 잃고 번득였다. 파이크로 프트를 보고도 그가 누군지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파이크로프트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가 편찮으십니까, 피너 씨?" "으음,... 약간...." 피너는 기운을 차리려고 안간힘을 쓰며, 바짝 마른 입술을 침으로 축였다. "그건 그렇고...당신이 데리고 온 사람들은 누구요?" 파이크로프트가 소개의 말을 했다. "이분은 버몬지에 사는 해리스 씨이고, 저 분은 이곳에 사는 프라이스 씨입니다. 두 분다 제 친구인데, 경력은 풍부하지만 실직중이어서, 혹시 우리 회사에서 필 요하지 않을까 하여 데리고 왔습니다." 피너 씨는 죽은 사람과도 같은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으음, 생각해 보지요. 그래, 당신의 전문은 뭐요, 해리스 씨?" "회계입니다." "아, 그런 사람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프라이스 씨는?" 내가 대답했다. "사무직입니다." "어떻게든 채용하도록 해보겠습니다. 결정이 되면 통지해 드리지요. 그럼. 이만 돌아가 주시오. 부탁이니, 나 혼자 있게 해 달란 말입니다." 그 마지막 말은 마치 잡아당긴 실이 툭 끊어지는 것처럼 입에서 튀어나왔다. 홈 즈와 나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그러자 파이크로프트가 테이블 쪽으로 한 걸음 다가서며 말했다. "피너 씨, 전무님의 지시를 받기 위해 약속된 시간에 제가 왔다는 걸 잊으신 건 아닙니까?" 피너는 앞서보다 약간 진정된 목소리로 말했다. "아, 그랬지. 여기에서 잠시 기다려 주시오. 친구들과 함께 기다려도 됩니다. 한 3분 동안이면 되오." 그리고는 천천히 일어나 우리에게 목례를 하고는 옆방으로 들어가 안에서 문을 잠궜다. 홈즈가 소근거리듯 말했다. "무슨 일일까? 우리를 따돌릴 셈인가?"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어째서?" "저 방에는 다른 출입문이 없거든요." "창은?" "없습니다." "가구는 있나요?" "어제까지는 텅 비어 있었습니다." "그럼 무엇하러 빈방에 들어가 있을까? 납득이 안 가는걸. 두려움 때문에 정신이 이상해 진걸까? 왜 그렇게 겁에 질려 있지?" 내가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우리를 경찰로 안 것이 아닐까요?" 파이크로프트 역시 이해가 안 가는 모양이었다. 홈즈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 자는 우리를 보고 겁을 집어먹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방에 들어갔을 때에 그는 이미 사색이 되어 있었소. 혹시...." 그때 옆방에서 우당탕 소리가 들렸다. "자기가 들어간 문을 두드리다니, 어쩌자는 셈일까요?" 이번에는 파이크로프트가 고개를 갸우뚱 했다. 그러자 먼저보다도 더 크게 문이 부서지는 듯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숨을 죽이고 닫힌 문을 지켜 보았다. 홈즈의 기색을 살펴보니 긴장된 표정이었 다. 그때 다시 한번 낮은 신음과 함께 우당탕 소리가 나고는 조용해졌다. 그 순간 홈즈는 미친 듯 뛰어나가면서 문에 몸을 부딪쳤다. 문은 안에서 잠겨 있 었다. 우리도 힘을 합해 문에 몸을 부딪혔다. 곧 경첩이 망가지며 문이 안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방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방 한구석에 문이 닫힌 옷장을 보고서 홈즈는 그리로 달려가 문은 열어젖혔다. 윗도리와 조끼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아까의 그 남자가 바지 멜빵에 목을 맨 체 늘어져 있었다. 무릎이 구부러지고, 목이 어깨위로 쳐져 있었는데, 숨이 막혀 몹시 고통스럽게 되자 마룻바닥을 발로 차면서 발버둥 친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우당탕 하는 소리가 났던 것이다. 나는 즉시 남자의 허리를 안아 들었다. 그리고 홈즈와 파이크로프트가 흙빛으로 변한 목덜미 깊숙이 파고 들어간 멜빵을 풀었다. 그리고는 곧 남자를 옆방으로 옮겼다. 남자는 아직 숨이 붙어 있어서, 푸른색으로 변한 입술이 떨리고 있었다. 그 처절 한 모습은 불과 5분전의 그 사람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홈즈가 물었다. "상태가 어떤가?" 나는 그의 몸을 살폈다. 맥박이 미약하고 가끔 멈추기도 했지만 호흡이 점점 길 어지고 눈꺼풀을 떨면서 그 사이로 눈의 흰자위가 보였다. "위험한 고비는 넘겼네. 살아날 수가 있어. 어디 물이 없나?" 파이크로프트가 뛰어나가 주전자 가득 물을 떠왔다. 나는 남자의 와이셔츠 앞자 락을 풀어 헤치고 물을 뿜고서는 양팔을 들어 인공호흡을 시켰다. "숨을 돌리는 것은 이제 시간 문제라고." 홈즈는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은 채 테이블 옆에 서서 말했다. "그렇다면 경찰을 불러도 되겠군. 그런데 경찰이 오면 이 내막에 대하여 모른체 해서, 그들이 어떻게 수사를 하는지 구경하는 것이 어떨까 하네." 홈즈는 이번에도 경찰이 어떤 바보짓을 하는지 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파 이크로프트는 울상이 되어 소리쳤다. "이게 뭡니까! 무슨 까닭으로 나를 끌어들여서는...." 홈즈가 말했다. "그 까닭은 명백하지만, 문제는 이 사람이 왜 갑자기 자살하려고 했는지, 그게 의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까닭을 홈즈 씨는 안다는 말씀입니까?" "대충 압니다. 자네는 어떤가 와트슨?"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대꾸했다.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걸." "그래? 우선 지금까지 일어난 일을 잘 생각해 보면 결론은 하나밖에 없네." "어떻게 생각해서 말인가?" "두 가지 점을 잘 생각해 보게나. 하나는 파이크로프트 씨에게 지배인이로 취임 하겠다는 승낙서를 쓰게 한 일일세." "그게 어때서?" "그건 사무적인 구비 서류로서 필요한 것이 아닐세. 그 정도는 말로 끝낼 수도 있는 일이지. 짐작이 안 갑니까, 파이크로프트 씨? 그들은 당신의 필적이 필요 했기에 그것을 서면으로 쓰게 했던 겁니다." "내 필적을 뭐에 쓰려고요?" "바로 그 점입니다. 무엇에 필요했을까요? 그 의문에 대답이 나온다면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를 쥐는 것이 됩니다. 왜 그랬을까요? 딱 들어맞는 이유는 하나밖 에 없습니다. 여기에서 두번째 문제점과 연관시키면 둘 사이에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두 번째 문제점이라는 것은 피너가 당신에게 '모슨 회사에 사퇴서를 써 보내서는 안된다.'고 한 말입니다. 즉, 모슨 회사로서는 월 요일에 당신이 회사에 나오는 것으로 알게 할 필요가 있었다는 거지요." 그 말에 파이크로프트가 외쳤다. "그렇다! 나는 왜 거기에 생각이 미치지 못했을까?" "자, 이만하면 그들이 왜 당신의 필적을 원했는지 알겠습니까? 당신이 입사 원서 를 쓴 필적과 판이한 글씨를 쓰는 사람이 당신으로 가장하고 모슨 회사에 나타 난다면 곧 의심을 받게 될 게 아닙니까? 그래서 서둘러 당신의 필적을 익혀 둘 생각이었지요. 모슨 회사에서 당신의 얼굴을 아는 사람이 있습니까?" "전혀 없어요." 파이크로프트가 신음하듯 말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런 기미를 당신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일과, 가짜 당신이 모슨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당신에게 알려줄 만한 사람으로부터 멀리 떼어 놓는 일입니다. 그래서 당신에게 상당한 금액의 선금을 주고, 기차로 한 시간이 넘는 버밍엄까지 오게 하고서, 벅찬 일거리를 맡겨 런던에 갈 틈을 주지 않으려고 했던 겁니다. 당신이 런던에서 어슬렁거렸다가는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기 쉬우니까요." "하지만 이 사람이 왜 형 행세를 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그것도 뻔한 일입니다. 이 사건에는 분명히 두 사람이 관계하고 있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모슨 회사에서 당신으로 둔갑을 하고 입사한 사람입니다. 여기에 있 는 사람은 당신과 계약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만,당신을 고용하고 일을 시킬 또 다른 사람을 등장시켜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 계획에 또 다른 인원을 참가시키 는 것은 달갑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변장을 하기로 하고서는, 얼굴이 닮 은 것은 피를 나눈 형제인 탓으로 돌리려 했습니다. 당신이 공교롭게도 금으로 된 틀니에 주목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속아 넘어갔을 겁니다." 파이크로프트는 주먹을 불끈 쥐고 탄식했다. "아아! 내가 여기에서 바보 노릇을 하고 있는 동안, 또 하나의 나 홀 파이크로프 트는 모슨 회사에서 뭘 하고 있는 것일까? 홈즈 씨.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모슨 회사에 전보를 쳐야 합니다." "토요일에는 12시에 문을 닫는 걸요." "수위나 당직자는 있을 겁니다." "그렇군요. 값비싼 유가 증권을 보관하고 있으므로 1년 내내 밤낮 교대로 수위가 지킨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좋습니다. 곧 전보를 쳐서 이상이 없는지, 당신으로 둔갑한 직원이 있는지를 확 인해 봅시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확실한데 나로서도 알 수 없는 것은 이자가 옆방으로 가서 목을 매단 이유가 무엇인지...." 그때 등뒤에서 쉰 목소리가 들렸다. "신문을........" 돌아다보니 바닥에 뉘어 놓았던 남자가 으스스한 몰골로 윗몸을 일이키고 있었 다. "신문? 그렇구나..!" 홈즈가 손뼉을 딱 치며 다시 한번 외쳤다. "그래, 신문이다! 난 자살 소동에 정신이 팔려 신문을 잊고 있었어. 비밀은 신문 에 있다." 홈즈는 급히 테이블 위의 구겨진 신문을 펴 들고서 흥분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걸 보라고, 와트슨. 이브닝 스탠더드지의 속보판일세. 여기의 이 기사 제목을 보게... '시티에서 범죄. 모슨 윌리엄스 회사의 살인사건. 대규모 강도 미스. 범인은 체포.'... 와트슨, 모두가 궁금할 테니 자네가 크게 읽어 주게." 큰 활자로 보아 그건 런던에서 중대 사건이 발생한게 틀림없었다. 기사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오늘 오후 시티에서 흉악한 살인, 강도 미수 사건이 발생하여 한 명이 목숨을 잃고 범인은 체포 되었다. 유명한 증권 거래소인 모슨 윌리엄스 회사는 항상 총액 100만 파운드가 넘는 유가 증권을 보관하고 있는데, 지배인은 만일의 경 우에 대비하여 최신식 금고를 설치하고 건물 내에는 밤낮 구별없이 수위를 무 장시켜 요소요소에 배치해 두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지난 주 이 회사에서는 홀 파이크로프트라는 새로운 직원을 채용했 는데, 이 남자는 유명한 위조 및 강도 상습범인 베딩턴이었던 것이다. 베딩턴 은 형과 함께 5년간의 복역을 마치고 최근에 출옥한 바 있다. 베딩턴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어떤 수단을 써서 가명으로 이 회사에 입사하는 데 성공한 뒤, 여러개의 열쇠의 본을 뜨고 금고실이나 금고의 구조에 관해 은 밀히 지식을 쌓았다. 모슨 회사의 관례로 토요일 오후에는 휴뮤인데도, 한 신사가 가방을 들고 그 회사에서 나오는 것을 목격한 경시청의 터슨 경사는 이를 수상히 보고 그 남자 를 미행했다. 그리고 순찰중인 순경의 협조를 얻어 격투 끝에 그를 체포하는 데 성공했다. 취조해 본 결과, 아주 대담한 강도 사건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 고, 가방에서는 10만 파운드에 가까운 미국 철도 채권을 비롯해서 광산 및 기 타 유력 기업체의 증권이 발견되었다. 한편, 이 회사 내를 조사한 바에 의하 면, 수위 한 사람의 시체가 금고 속에 숨겨져 있었다고 한다. 처슨 경사의 민첩한 활동이 없었다면 이 범죄는 월요일까지 발견되지 않았을 것이다. 피살된 수위는 등뒤에서 당한 것이다. 범인은 회사 직원으로서 동료가 모두 퇴근한 뒤 금고실 앞의 수위에게 접근하여 그를 살해한 뒤에 금고를 연 것으로 추측된다. 형인 베딩턴은 늘 동생과 공범자로 암약해 오던 과거로 보아 당국은 그의 행방 을 수사중이나 현재로는 행방이 묘연한데, 이번 살인 강도에는 직접 참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홈즈는 축 늘어져 있는 형인 베딩턴을 바라보며 말했다.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은 이상한 혼합물이지. 와트슨, 아무리 냉혹한 악당이나 살인자라도 자기 가족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 자살을 꾀하기도 하니 말 일세. 그런데 파이크로프트 씨, 이번 일은 운명으로 돌리고 경찰을 불러 주시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