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라진 명마 ========== 코난 도일 작.. 1. 사라진 은성호.. "와트슨, 이제 내가 나설 때가 됐나 봐." 어느 날 아침, 식사를 하다가 홈즈가 불쑥 말했습니다. "나서다니, 어디로?" "다아트무어로." "다아트무어? 응, 알겠어. 지금 신문이 한창 떠들어 대고 있는,경마용 말 <은성호> 가 실종된 사건 말이지?" "맞았어, 그뿐만 아니라, 은성호의 조교사 존 스트레이커라는 사나이가 어떤 자에 게 머리를 얻어맞고 죽었어. 경찰에서는 지금 은성호를 훔친 범인과 스트레이커르 르 살해한 자가 같은 인물이라고 보고 있는 것 같아." "음, 재미난 사건이군. 이봐, 홈즈!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나도 함께 가보았으면 좋겠어." "자네가 함께 가 준다면 큰 도움이 되겠지. 지금 곧장 나서면, 기차 시간에 댈 수 가 있을 거야. 와트슨, 자네가 아끼는 쌍안경도 가지고 가세." 그로부터 약 한시간 뒤, 우리 두 사람은 패딩턴역을 출발해서 다아트무어 쪽으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싣고 있었습니다. 홈즈는 귓집까지 달린 여행용 모자를 눌러 쓴 채 출발역에서 산 여러가지 신문들을 읽고 있다가, 곧 그것들을 뭉쳐 좌석 밑으로 밀어 넣고는, 여송연을 꺼내어 나에게 도 권하였습니다. "와트슨, 자넨 이번 사건을 어느 정도 알고 있나?" "자세한 건 몰라. 두 가지 신문을 읽었을 뿐이야." "그래? 나는 구할 수 있는 신문은 죄다 구해 읽어 보았다네. 그런데 그 신문들이 하나같이 의견이 다르더군. 한 가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것은, 이번 사건이 매 우 색다르며 보기 드문 사건이라는 거야. 사건이 일어난 것은 월요일 밤이었는데, 화요일 밤에 나는 이 사건의 조사를 담당하고 있는 그레고리 경감과 <은성호>의 주인인 로스 대령으로부터 '꼭 다아트무어까지 와서 조사해 주십시오.' 라는 내용 의 전보를 받았어." "뭐, 화요일 밤에?" 나는 깜짝 놀라 소리쳤습니다. "오늘이 목요일 아닌가? 화요일밤에 부탁 전보를 받았다면 왜 진작 나서지를 않았 나? 자네답지 않군 그래." "와트슨, 사실 난 이번 사건을 간단히 생각하고 있었거든. '은성호같이 유명한 말 이 언제까지나 남의 눈에 띄지 않을 수는 없다. 하루 이틀 지나면 찾을 수 있겠 지. 그리고 은성호의 행방을 알면, 저절로 조교사 스트레이커를 죽인 범인도 잡히 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어." "음, 그래서?" "그런데 은성호의 행방은 여전히 표연하고, 오늘 아침에야 비로서 피츠로이 심프슨 이라는 청년이 유력한 용의자로 잡혔다는 신문기사를 봤어. 그러나 심프슨 청년이 말을 훔치고, 조교사인 스트레이커를 죽인 범인이라는 확증은 없어. 나는 이제야 말로 내가 나설 차례라고 생각하여, 이렇게 자네와 함께 다아트무어로 가는 기차 에 올라탄 걸세." 나는 홈즈가 준 여송연을 피우면서, "은성호란 도대체 어떤 말인가?" "더러브레드(영국산의 우수한 경주용 말)라는 품종으로 나이는 5살, 털빛은 밤색인 데, 이마에 크고 흰 별이 있기 때문에 실버 블레이즈(은빛 별,즉 은성호)라고 불 리고 있지. 은성호는 지금까지 여러 차례 경마에 나갔는데, 그때마다 우승하여 많 은 컵과 상금을 벌여들여 주인인 로스대령을 기쁘게 했지. 다음 주 화요일에 벌어 질 웨섹컵 쟁탈 경마에서도 은성호는 가장 인기있는 말로서, 수많은 사람들이 돈 을 걸고 있어. 그러니까 화요일까지 은성호의 행방을 찾지 못한다면, 주인인 로스 대령은 물론, 은성호에 돈을 걸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되지." "그렇겠군. 그런데 은성호의 마굿간은 어디 있나?" "킹즈 파일랜드라는 곳이야. 북다아트무어 지방의 황야 한복판에 있지. 눈에 띄는 것이라곤, 양치 식물과 키작은 나무들로 뒤덮인 쓸쓸한 황야 뿐이지만, 마을 기르 는데는 안성맞춤인 곳이지. 이 킹즈 파일랜드 조교장으로부터 서쪽으로 3킬로미터 쯤 떨어진 곳에 또 하나의 큰 조교장이 있어. 백워어터경이 가지고 있는 케이플런 조교장이야. 그곳에는 레스바라호라는 말이 있는데, 사일러스 부라운이라는 조교 사가 돌봐 주고 있어. 레스바라호는 은성호 다음가는 인기말이야.... 참, 그렇지. 와트슨.이야기를 알기 쉽게 하기 위해 그 부근의 약도를 그려 보겠네." 하며 홈즈는 수첩에다 약도를 그렸습니다. "와트슨, 귀찮겠지만 이 약도만은 외어두게. 이 두 조교장 사이는 쓸쓸한 황야로 인가는 한채도 없고, 어쩌다 방황하는 집시가 천막을 칠 정도지. 죽은 조교사 레 스트레이커는 기수로부터 시작하여, 조교사로 벌써 12년간이나 로스 대령을 모셔 왔어. 부지런하고 정직한 사나이라는군. 스트레이커 밑에는 세 사람의 젊은 마부 가 있어. 그중의 한 사람이 마굿간 옆방에서 불침번을 서게 되어 있었지." "스트레이커는 어디에 살고 있었나?" ┌────────────────────────────────────┐ │ │ │ 황야 │ │ │ │레스바라호의 마굿간 ? <--스트레이커의 시체 │ │ ? │ 은성호의 마굿간 │ │ ││ │ 400미터 │ ? │ │ ││ 케이플턴 조교장 │ │ ? 스트레이커의 집 │ ││ │<------------------>│ ? │ │ ││ ? │ 서쪽으로 3킬로정도 │ ? │ │ │└─────────┘ │ │ │ │ ? │ 킹즈 파일랜드 │ │ │ 사일러스 브라운의 집 ? │ 조교장 │ │ │ ? ? └───────────┘ │ │ 집시의 텐트 │ │ │ │ 황야 │ │ │ └────────────────────────────────────┘ (으~ 그림 어렵군요..넘 엉성하죠? ^^;;) "이 그림에 나와있는것처럼, 마굿간에서 180미터 쯤 떨어진 자그마하고 아담한 집에서 아내와 둘이서 살고 있었어. 아이는 없었으나, 젊은 하녀 하나를 데리고 편안하게 살았다고 하더군. 하녀의 이름은 앨리스야. 자, 와트슨! 이로써 현장과 인물소개가 끝났으니까, 다음엔 이번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그걸 설명해 주겠네." 2. 지팡이를 가진 사나이.. 홈즈는 여송연의 재를 털어 내고는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아까도 말한 봐와 같이, 사건이 일어난 건 월요일 밤이야. 세 마부 가운데 네드 헌터라는 젊은 사나이만이 은성호를 지키기 위해 마굿간에 남고, 나 머지 두 사람은 180미터 쯤 떨어진 스트레이커의 집으로 저녁 식사를 하러 갔었지. 그날 밤의 메뉴는 양고기로 만든 카레이 요리였어. 스트레이커의 아내는 마굿간에 있는 헌터를 위해, 카레이 요리를 큰 접시에 담아서 마굿 간에 가져가게 했지. 하녀인 앨리스를 시켜서 말이야. 그게 오후 9시경이 야." "양고기 카레요리 라고? 그걸 먹고 나면 목이 마를텐데, 마실 것은 어떻게 했을까?" "마굿간에 수도가 있으니까, 물이라면 얼마든지 마실 수 있지." 이렇게 시작된 홈즈의 설명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그날 밤은 당장이라도 비가 내릴듯이 하늘이 잔뜩 흐려 있었습니다. 하녀인 앨리스는 오른손에 등불을, 왼손에는 카레이 요리를 들고 마굿간 쪽으로 걸 어 갔습니다. 마굿간에서 25미터쯤 되는 곳까지 왔을 때였습니다. 별안가 어둠 속에서.. "아가씨, 잠깐만....."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한 사나이가 불쑥 나타났습니다. 앨리스는 깜짝 놀랐 으나 등불 빛으로 자세히 보니, 나이가 서른 한두살쯤 되어 보이는 인상이 좋은 사나이여서 조금 안심했습니다. 그는 사냥 모자를 쓰고 툡빛 나는 스코치 양복을 입었으며, 손잡이가 구슬 처럼 둥글고 굵어서 묵직하게 뵈는 지팡이를 들고 있었습니다. 사나이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아가씨, 여긴 대체 어디지? 황야를 돌아다니다가 길을 잃어서...." 하고 나직이 물었습니다. "여긴 킹즈 파일랜드 조교장 바로 옆이예요." 그러자 사나이는 기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랬군. 마침 잘됐어. 아가씨가 들고 있는 건 마굿간지기가 먹을 저녁밥이 겠군." 하며 사나이는 조끼 호주머니에서 접은 돈을 꺼내 보였습니다. "이걸 곧 마굿간지기에게 건네 주지 않겠나? 그에 대한 사례로 아가씨에게 도 멋진 드레스를 한 벌 맞추어 주겠어." 하녀인 앨리스는 깜짝 놀라 사나이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때 사나이의 목에 빨강과 검정이 섞인 목도리가 둘려 있는게 눈에 띄었습니다. 사나이의 태도가 너무나 진지했으므로 앨리스는 감자기 무서워졌습니다. 그 래서. 아무말도 하지 않고 사나이 곁을 빠져나가 마굿간으로 달려갔습니다. 마굿간에서는 젊은 마부인 헌터가 작은 창문을 열고 앨리스를 기다리고 있 었습니다. 헌터와 앨리스는 전부터 사이가 좋았습니다. 앨리스는 들고 온 요리 접시를 작은 창문으로 밀어 넣어 주면서, "방금 수상한 사나이가 와서 나에게....." 하고 이야기를 막 시작하려는데, 조금전의 사나이가 다가왔습니다. "자네가 이곳의 마굿간지기인가 보군. 여기에 웨섹스 경마에 나가는 은성호 가 있다던데, 말의 컨디션은 어떤가? 그걸 좀 알려 주면 인사는 톡톡히 하 겠어." 하며 사나이는 다시 돈을 슬쩍 내보였습니다. 그러자 헌터는, "이제보니 넌 말의 동정을 살피러 온 스파이로구나! 좋아. 이 킹즈 파일랜 드 조교장에서는 스파이를 어떻게 다루는지 맛 좀 보여주지." 하고 소리치며, 마굿간 문을 열고 밖으로 뛰어나가 경비견을 매어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러자 앨리스도 조교사 스트레이커의 집 쪽으로 달려갔습니 다. 얼마쯤 가다가 뒤를 돌아보니 그 지팡이를 든 사나이가 마굿간의 작은 창문으로 목을 들이밀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로부터 1분쯤뒤, 헌터가 경비견을 데리고 돌아 왔을 때, 수상한 사나이는 벌써 어디론지 자취를 감추고 보이지 않았습니다. "잠깐만!" 하고 나는 홈즈의 이야기를 중단시켰습니다. "개를 데리러 마굿간을 뛰어나가면서 헌터는 문을 열어 두었나?" "호오, 와트슨! 정말 멋진 질문을 해주었어. 나도 그 점이 궁금해서 어제 북다으트무어의 경찰에 전보로 문의해 보니, '헌터는 마굿간을 나설때 분 명히 문을 잠갔음. 마굿간의 창문은 아주 작아서 사람이 들어갈 수 없음.' 이란 답장이 왔어." "그때, 은성호는?" "그대로 마굿간 안에 있었고, 지팡이를 든 사나이만 자취를 감췄다는군. 헌 터는 초조한 마음으로 동료 마부들이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가, 조교사인 스트레이커의 집으로 달려가 수상한 사나이의 이야기를 했었 지. 그러자 스트레이커는 몹시 흥분하여, 헌터에게 빨리 마굿간으로 돌아 가 식사를 하고 밤새 잠을 자지 말고 망을 보라고 일렀어. 헌터는 마굿간 으로 돌아오자, 카레 요리를 먹었어. 두 사람의 동료 마부는 마른풀을 넣 어 두는 마굿간의 다락방에서 잠을 잤지." 3. 조교사의 죽음.. 홈즈는 계속해서 그날밤에 일어났던 일들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날 밤 늦게, 정확히 말해서 화요일 새벽 1시, 스트레이커의 부인이 문득 눈을 떠 보니, 남편인 스트레이커가 어느새 침대를 빠져나가, 평상복을 갈 아 입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깜짝 놀라. "이 밤중에 어딜 가시려고 그래요?" 하고 물었습니다. "응. 아무래도 은성호의 일이 걱정스러워 안 되겠소. 잠시 동정을 살피고 와야겠소." 그때 마침 세찬 빗줄기가 창문을 두들기며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비가 많이 오나 봐요. 마굿간엔 아침 일찍 가도록 하셔요." "아냐, 말이 걱정이 돼 잠을 이룰 수가 없소. 곧 돌아올테니 당신은 자구 료." 스트레이커는 방수가 된 무거운 비옷을 걸치고 화장대 위에 놓여 있는 작은 칼을 호주머니에 넣은뒤, 밖으로 나갔습니다. 스트레이커 부이는 자기도 모르게 곧 잠이 들어 버렸는데, 아침 7시경에 눈 을 떠 보니 벌써 돌아와 있어야 할 남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때 는 이미 비도 완전히 그쳐 있었습니다. 부인은 갑자기 남편일이 걱정되어, 하녀 앨리스를 데리고 마굿간으로 달려 갔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마굿간의 문을 활짝 열려 있고, 은성호와 스트레이커의 모 습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또한 마굿간 옆방에서 불침번을 서고 있어야 할 마부 헌터는 작은 창문 바 로 곁에 있는 탁자 앞 의자에 기대앉은 채, 입을 딱 벌리고 곤하게 잠들어 있었습니다. 탁자위에는 먹다 남은 카레이 요리 접시가 놓여 있었습니다. "헌터씨, 일어나세요!" 부인과 앨리스가 몸을 마구 흔들었지만, 헌터는 축늘어진채 눈을 뜨지 않았 습니다. 앨리스는 건초를 놓아둔 방에서 자고 있던 두 마부를 깨워 데리고 왔습니 다. 두 사람은 번갈아가며 헌터를 흔들어 깨우려고 했지만, 역시 눈을 뜨지 않았습니다. 마부 중의 하나가, "아주머니, 헌터는 아무래도 누군가가 강한 수면제를 먹인 모양입니다. 저 절로 깨어날때까지 놔두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또 한 마부가, "나는 밤중에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습니다. 개가 짖는 소리도, 은성호가 우는 소리도.... 아주머니도 아다시피 스트레이커씨는 종종 아침 일찍 은 성호를 운동시키러 데리고 나가지 않습니까. 오늘 아침에도 비가 갠 걸 보 고 은성호를 데리고 나간 모양이죠. 마굿간의 벽에 걸려 있던 재갈과 고삐 가 없어진 걸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하지만 아무래도 나는 은성호를 도둑맞은 것 같 은 느낌이 들어요." 부인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습니다. "그럼 서쪽 언덕에 올라가 보기로 합시다. 곧 알 수 있을 테니까요." 일행은 자고 있는 헌터를 그대로 두고 마굿간엣 서쪽으로 400미터쯤 떨어진 언덕위로 올라갔습니다. 거기에선 넓은 황야가 한눈에 내려다보였습니다. 그러나 어느곳에도 은성호와 스트레이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갑자기 스트레이커 부인이 '앗!' 하고 외쳤습니다. 바로 옆에 우거져 있는 금작화 위에, 스트레이커가 나갈때 입었던 비옷이 걸쳐져 있었던 것입니다. 부인은 웬지 불길한 예감이 들어 가슴이 마구 두 근거렸습니다. 바로 그때 앨리스가. "앗, 저기 사람이....."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언덕 기슭의 움푹 팬 곳을 가리켰습니다. 웅덩이처럼 생긴 땅바닥에 한 사나이가 반듯이 하늘을 보고 드러누워 있는 게 보였습니다. 일행은 급히 언덕을 뛰어 내려갔습니다. 쓰러져 있는 사나이는 틀림없는 조교사 스트레이커였는데, 두 눈을 부릅뜬 채 몸이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습니다. 이마 한복판을 굵은 몽둥이로 얻어맞은 듯 뼈가 으스러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른쪽 허벅다리에는 날카로운 칼날에 벤 것 같은, 길고 깊은 상처 가 나 있었습니다. 그리고 스트레이커 자신도 범인을 상대로 쾌 격렬하게 싸운 듯, 오른손에 꽉 쥔 작은 칼의 자루 있는데까지 피가 묻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왼손엔 빨 강과 검정 무늬가 섞인 비단 목도리를 쥐고 있었습니다. "뭐? 빨강과 검정 무늬의 목도리라고??" 홈즈의 이야기에 취해 있던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리쳤습니다. "그건 은성호의 동정을 살피러 왔다던 그 수상한 사나이가 목에 감았던 것 아닌가?" "그렇지. 하녀 앨리스도 첫눈에, '아니, 이 목도리는 어젯밤 9시경 제가 마 굿간옆에서 본 사나이가 목에 감았던 거여요.' 라고 했다는군. 스트레이커 부인은 처참한 남편의 시체를 보고 기절할 지경이었는데, 앨리스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집으로 돌아왔다고 하더군. 한편, 마부중의 한 사람은 급히 말을 몰아 다시스톡시의 경찰에 이 사고를 알렸어. 그리하여 지방 경찰의 그레고리 경감이 사건을 담당하게 되었지." 홈즈는 다시 새 여송연에 불을 붙이며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4. 그레고리 경감의 활약.. "그레고리 경감은 나도 두세번 만난 일이 있지만, 맡은 일에 성실하고 머리 가 쾌 좋은 사람이더군. 거기에 상상력이 조금만 더 곁들여지면, 훌륭한 탐정이 될 수 있는 사람이야." 홈즈는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그레고리 경감이 사고 현장에 달려갔을때의 일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레고리 경감이 마굿간에 달려갔을 때에는 이미 마부 헌터가 잠에서 깨어 나 있었습니다. 그는 그레고리 경감에게, "저는 평소에 불침번을 서다가 존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깊은 잠에 빠진것은, 어젯밤 은성호의 동정을 살피러 온 사나이가 내가 먹을 카레이 요리속에 잠오는 약을 넣은게 틀림없습니다. 그 사나이는 굵은 지팡이를 들고 있었고, 빨강과 검정 무늬가 섞인 목도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고 증언하였습니다. 그러자 곁에서 앨리스도 거들었습니다. "제가 스트레이커씨 집으로 달려가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았더니, 그 사나이 가 마굿간의 작은 창문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있더군요. 그때 헌터씨가 먹 을 카레이 요리에 수면제를 넣은게 틀림없어요. 그 카레이 요리는 주인을 비롯하여 우리 모두가 먹었지만, 아무 탈이 없었습니다. 그 사나이는 헌터 씨가 음식을 먹고 깊이 잠들자, 곧 은성호를 마굿간에서 끌어내어 달아난 거여요." 그레고리 경감은 먼저 스트레이커가 살해된 현장으로 가서 주변의 상황을 자세하게 조사한 다음, 시체를 스트레이커의 집에다 옮겼습니다. 그리고는 스트레이커가 왼손에 쥐고 있던 빨강과 검정 무늬가 섞인 목도리를 가지고 다비스톡의 거리로 되돌아가서,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나이는 서른 두셋쯤 되었고, 회색의 스코치 양복에 사냥 모자를 쓴 사나이 가 범인이오. 굵은 지팡이를 들고 빨강과 검정 무늬가 섞인 목도리를 감고 다니는 사나이를 본 적이 없습니까?" 그러자 너댓 사람이 입을 모아, "예, 그 사나이라면 잘 알고 있읍죠. 피츠로이 심프슨이라는 청년인데. 집 안도 좋고, 교육도 많이 받았지요. 경마에 손을 대어 돈을 몽땅 날린뒤에 는, 런던에서 마권 장사를 하고 있다는군요. 웨섹스에서 경마가 열릴때마 다 이곳에 나타나 교외의 호텔에서 묵곤 하였지요." 하고 말했습니다. 경감은 당장 호텔로 달려가, 마침 잠자고 있던 심프슨 청년을 체포했습니 다. 과연 벽에는 비에 흠뻑 젖은 스코치 직물로 만든 양복이 걸려 있고, 한 쪽 구석에는 손잡이 있는데가 구슬처럼 된 굵은 지팡이가 세워져 있었습니 다. 그 지팡이는 흉기로도 충분히 쓸 수 있을만한 것이었습니다. 경찰서에 붙들려온 심프슨 청년은 그레고리 경감의 심문에 다음과 같이 변 명하였습니다. "나는 분명히 어젯밤 9시경 로스 대령의 마굿간에 가서 하녀와 마부를 만나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는 마권 장수이므로, 가장 인기있는 은성호의 동정 을 조사해 둘 필요가 있었죠. 마부에게 10파운드짜리 지폐를 주려 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마부는 돈을 받지 않았을뿐 아니라, 상대로 하려 하지 않더군요. 그래서 나는 그대로 마굿간을 떠났어요." "거짓말 마! 자넨 마부 헌터가 개를 데리러간 사이에 작은 창문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마부가 먹을 카레이 요리속에 잠 오는 약을 넣었지? 하녀 앨리스 가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단 말이야." "터무니없는 소리 하지 마시오! 난 그런짓을 한 적이 없소." "그럼 왜 작은 창문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나?" "단 한 번만이라도 은성호의 모습을 보아 두고 싶었기 때문이죠. 요리 접시 는 있었지만 은성호는 옆의 마굿간에 들어있었으므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변명은 듣기 싫어. 네 양복은 비에 젖어 있어! 비기 오기 시작한 시간은 오늘 새벽 1경부터야. 너는 그때에 마굿간에서 은성호를 훔쳐 가지고, 황 야를 지나 서쪽으로 달아나려고 했겠지. 그런데 조교사인 스트레이커가 따 라왔으므로 격투가 벌어졌어. 너는 저 굵은 지팡이로 스트레이커의 이마를 때려 죽인거야. 그렇지?" "예엣? 제가 그런 짓을 했다고요?" 심프슨 청년은 깜짝 놀라 소리쳤습니다. "조교사 스트레이커가 죽었다는 소리는 금시초문이오. 나는 마부에게 수면 제를 먹인 일도 없으며, 조교사를 지팡이로 때려 죽이는 잔인한 일을 생각 해 본 적도 없소." "그럼 이것은 뭐라고 변명할 테냐?" 그레고리 경감은 빨강과 검정 무늬가 섞인 목도리를 들이대며 윽박질렀습니 다. "이건 네 것이지? 죽은 스트레이커는 왼손에 이 목도리를 꽉 움켜쥐고 있었 어!" 순간, 심프슨 청년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습니다. "그, 그건 분명히 제것입니다. 그러나 스트레이커가 어째서 그걸 쥐고 있었 는지는 통 알 수가 없군요. 그 목도리는 제가 황야의 어딘가에서 잃어버린 것입니다." "9시가 지나서 로스 대령의 마굿간을 나와, 비가 내리기 시작한 새벽 1시까 지 어디있었나?" "로스 대령의 마굿간에서 서쪽으로 3킬로쯤 떨어진 곳에 백워어터경의 케이 플턴 조교장이 있습니다. 그 마굿간에는 레스바라호라는 은성호 다음가는 인기말이 있습니다. 나는 그 레스바라호의 모습을 보아 두고 싶었기 때문 에 케이플턴 조교장으로 갔습니다만, 경계가 엄중하여 마굿간에 접근하지 도 못했습니다. 단념하고 호텔에 돌아가는 도중에 심한 비를 만났던 것입 니다." 그레그로 경감은 곧 심프슨의 젖은 웃옷을 뒤져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호주머니에서 마권의 매상 장부가 나왔습니다. 그 장부에 의해, 심프슨이 두 번째 인기말인 레스바라호에 5천 파운드를 걸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 다. 그건 심프슨에게는 매우 불리한 점이었습니다. 첫번째 인기말인 은성호가 행방 불명이 되면 제2의 인기말인 레스바라호가 우승을 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저절로 심프슨에게는 큰 돈이 굴러들어올 것입니다. 심프슨이 말을 유괴하였고, 조교사인 스트레이커를 죽인 범인이라는 것은 이것으로 더욱더 확실해진 셈입니다. 그레고리 경감은 심프슨 청년을 자신있게 유치장에 집어 넣었습니다. 그런 데 조금 이상한 점은, 그때 심프슨의 신체 검사를 철저히 했는데 죽은 스트 레이커가 오른손에 피투성이의 작은 칼을 쥐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심프 슨의 몸에는 조그마한 상처 하나 없었다는 것입니다. "와트슨, 이야기가 꽤 길어졌지만 여태까지 이야기한 게 이번 사건의 줄거 리야. 이 약도는 내가 신문 기사를 바탕으로 그린 것일세. 자아, 와트슨, 이 사건에 대해 무슨 의견이 없나? 죽은 스트레이커가 피 묻은 칼을 쥐고 있었는데도, 심프슨 청년의 몸에는 상처 하나 없었다는 게 이상하지 않나? 더우기 스트레이커의 오른쪽 허벅지에는 날카로운 칼날에 벤 것 같은 깊은 상처가 있었어. 누가 이 상처를 냈다고 생각하나?" "글쎄... 만일 심프슨이 다른 칼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머리를 얻어 맞 고 쓰러져 정신없이 몸부림을 치다가 들고 있던 칼로 스트레이커 자신이 자기 허벅지를 찌른게 아닐까?" "과연 그럴듯한 생각이야. 그럴 가능성은 충분해. 아뭏든 한시바삐 그 작은 칼을 보고 싶어..... 가만 있자. 목적지인 다비스톡역에 도착한 모양이야. 자아, 내리세." 5. 로스 대령.. 다비스톡은 오래된 조용한 마을이었습니다. 역 앞에서는 포장을 걷어 올린 사륜 마차와 두 신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여어, 홈즈씨, 어서 오십시오!" 키가 크고 살결이 희며, 사자의 갈기 같은 머리털과 구레나룻을 기른, 날카 롭고 파란 눈을 가진 사나이가 성큼성큼 다가와 홈즈와 악수를 나누었습니 다. 그가 바로 이번 사건을 맡고 있는 그레고리 경감임은 한눈에 알 수가 있었습니다. "홈즈씨, 소개합니다. 이분이 은성호의 주인이신 로스 대령입니다." 하고 경감은 옆에 서 있는 신사를 소개했습니다. 로스 대령은 땅딸막한 키에 고급 포록코트를 입고 안경을 끼고 있었습니다. "홈즈씨, 이렇게 먼 곳까지 일부러 오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로스 대령은 홈즈에게 악수를 청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레고리 경감 덕분에 스트레이커의 살해 용의자는 잡혔습니다만, 은성호 의 행방은 아직도 묘연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경마가 벌어지는 내주 화 요일까지는 말을 찾아 내야만 하는데..." "잘 알겠습니다. 힘 자라는 데까지 힘껏 노력해 보겠습니다." 하고 나서 홈즈는 경감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뒤, 뭔가 새로운 발견이라도 있었습니까?" "별로 대단한 것은 없습니다. 자세한 건 마차 안에서 말씀 드리죠." 우리들 네 사람을 태운 마차는 고풍이 감도는 다비스톡 거리를 지나, 곧 널 따란 다아트무어 지방의 황야로 나섰습니다. 홈즈의 앞자리에 앉은 그레고리 경감은 열심히 이번 사건의 경위와 자기가 조사한 결과를 이야기했습니다. 그것은 기차안에서 홈즈에게 들은 이야기와 거의 비슷한 내용이었습니다. 그의 이야기가 끝나자, 홈즈가 말했습니다. "그레고리 경감, 당신은 마권 장수인 심프슨 청년을 체포했다지요?" "그렇습니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니까요. 나는 십중팔구 심프슨이 말을 훔 쳐가고, 조교사 스트레이커를 죽였다고 생각합니다." "살해된 스트레이커는 오른손에 피묻은 칼을 들고 있었으며, 오른쪽 허벅다 리에 깊은 상처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 는지요?" "머리를 맞고 쓰러진 스트레이커가 몸부림치다가 잘못하여 자기 허벅지를 찔렀을 것이라고 모든 사람의 의견이 일치했습니다." "그럴듯한 생각입니다. 여기 있는 와트슨 박사도 그와 같은 말을 하더군요. 그런데 경감, 당신은 어떤 이유로 심프슨 청년을 용의자로 체포하셨죠?" "우선 은성호가 없어지면 그에게 대단한 이익이 온다는 점입니다. 심프슨은 두번째로 인기있는 레스바라호에 5천파운드나 걸고 있었으니까요. 둘째로 그는 마부가 먹을 저녁 식사에 수면제를 넣은 혐의가 있습니다. 그리고 살 인 도구로서 충분한 굵고 무거운 지팡이를 들고 있었습니다. 내가 지팡이 를 조사했을때 핏자국은 보이지 않았지만, 손잡이가 구슬처럼 되어 있는데 안에는 납덩이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 무거운 지팡이로 세게 얻어 맞으면 아무리 머리가 단단한 사나이라도 뼈가 으스러질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으로 죽은 조교사인 스트레이커는 왼손에 빨강과 검정 무늬가 섞인 심프슨 의 목도리를 꼭 쥐고 있었습니다. 홈즈씨, 이만한 이유가 있으면 심프슨 청년을 범인으로 단정해도 되리라고 생각하는데요...." "글콅요... 설령 재판이 열린다고 하더라도 능숙한 변호사가 나서면 그만한 증거는 단번에 뒤집힐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심프슨 청년은 왜 은성호를 마굿간에서 황야로 끌고 갔을까요? 경마에 내보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라면,마굿간안에서 은성호의 발에다 조그만 상처만 입히면 되잖소." "그건 그렇습니다. 하지만 홈즈씨, 우리는 심프슨이 은성호를 황야로 끌고 나갔다고 생각될 만한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호오, 그래요?" "사건이 일어난 월요일밤, 집시으 한 무리가 스트레이커가 죽은 곳에서 2킬 로미터 쯤 떨어진 황야에서 모닥불을 피웠던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집시들 은 월요일에 천막을 쳤다가 화요일 밤에 벌써 어디론지 떠나 버렸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심프슨 청년이 은성호를 끌고 집시들이 있는 곳으로 가는 도중에 조교사인 스트레이커에게 추적당하여 격투가 벌어진게 아닐까 생각 하고 있습니다." "그럴듯 하군요. 그래,은성호는?" "둘이서 격투하고 있는 사이에 움푹 팬 곳을 빠져 나가 황야를 헤메다가 집 시들 눈에 띄어 어디론지 잡혀 간 게 아닐까요? 현재 제 부하들이 집시들 의 행방을 찾고 있습니다. 그간에 우리는 다비스톡 거리를 중심으로 하여 반경 16킬로미터의 원을 그려 그안에 들어있는 모든 마굿간을 찾아 보았지 만, 은성호는 없었습니다." "로스 대령의 마굿간으로부터 서쪽으로 3킬로미터 쯤 떨어진 곳에 백워어터 경의 케이플턴 조교장이 있죠? 그 마굿간도 조사해 보았습니까?" "물론 조사해 보았습니다." "조교사는 사일러스 브라운이라는 사람인데 레스바라호에 큰돈을 걸었다더 군요. 마굿간 안을 자세히 조사해 봤지만 이마에 흰 별이 있는 은성호는 없었습니다. 나는 은성호를 틀림없이 집시가 끌고 갔다고 생각합니다." "그레고리 경감, 당신은 아까 심프슨 청년이 마굿간의 문을 열고 은성호를 데리고 나갔다고 하셨죠? 그문은 마부 헌터가 개를 데리러 가기 전에 틀림 없이 자물쇠를 채워 두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나 심프슨은 미리 거기에 맞는 열쇠를 준비했다가 그것으 로 문을 열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그 열쇠가 심프슨의 호주머니에라도 있었나요?" "아니,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아마 황야의 어딘가에 버렸겠죠." "아마라는 말로는 그가 범인이라도 단정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경감, 헌터 는 강한 수면제를 먹고 깊은 잠에 빠졌다는데, 그 약이 어떤 것인지 조사 해 보았나요?" "물론입니다. 헌터가 먹다 남은 음식을 경찰서로 가져가 분석해 본 결과, 아편 가루가 들어 있었다는 것이 밝혀 졌습니다." "아편을 썼다고요?" 홈즈가 뜻밖이라는 듯 소리쳤습니다. "아편이라면 마약입니다. 보통 사람은 여간해서 구할 수가 없을 텐데, 도대 체 심프슨은 어느 약국에서 아편을 샀을까요?" "다비스톡 거리의 약국을 모조리 뒤져 보았지만, 아무데서도 아편을 판 일 이 없다는군요. 아마 런던에서 가져왔겠죠." "그렇다면 런던의 약국이란 약국은 모조리 조사해야만 되겠군요." 하며 홈즈는 팔짱을 끼었습니다. 6. 현장 조사.. 얼마 뒤, 마차는 죽은 스트레이커의 집 앞에 멈추었습니다. 벽돌로 지은 아 담하고 작은 이층집이었습니다. 로스 대령을 선두로 우리는 잇달아 마차에서 내려섰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홈즈느느 내릴 생각을 하지 않고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웬일이야? 빨리 내리지 않고." 내가 잡아 흔들자, 홈즈는 그제서야 깜짝 놀란 듯이 펄쩍 뛰어내리면서, "로스 대령, 대단히 실례했습니다. 저는 때때로 대낮에도 꿈을 꾸는 버릇이 있습니다." 로스 대령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홈즈를 바라보았습니다. 아마 마음속으로 는, '대낮부터 졸다니 형편없는 탐정이로군!' 하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러나 홈즈의 눈동자는 마치 먹이를 쫓는 매의 눈처럼 번뜩이고 있었습니 다. 또한 그 태도에는 솟아오르는 기쁨을 억누르는 듯한 기색이 엿보였습니 다. 홈즈를 잘 알고 있는 나는, '흐음, 뭔가 중요한 실마리를 잡았구나.' 하고 눈치챘습니다. "홈즈씨, 지금 당장 스트레이커가 살해되었던 곳으로 가 보시겠습니까?" 그레고리 경감이 물었습니다. "아닙니다. 그보다 먼저 이 집안에서 조사하고 싶은게 있습니다. 경감, 당 신은 스트레이커의 시체를 우선 이 집에다 옮겨놓았겠지요?" "예. 이층에 놓아 두었습니다. 보시겠습니까?" "아니, 시체를 볼 필요는 없습니다." 홈즈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로스 대령에게.. "스트레이커는 충시한 사나이였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물론이지요. 12년동안 열심히 일해 주었습니다." "잘 알았습니다. 그런데 경감, 스트레이커의 시체 호주머니에는 어떤게 들 어 있었죠?" "한데 모아 상자속에 넣어 두었습니다. 자, 이리 오시죠." 경감은 우리들을 한 방으로 안내했습니다. 탁자위에 양철을 입힌 상자가 놓 여 있었습니다. 경감은 뚜껑을 열고 죽은 스트레이커의 소지품을 하나씩 꺼 내여 탁자위에 늘어놓았습니다. 납성냥이 한통, 길이 5센티미터쯤되는 양초가 한 개, 파이프, 담배 쌈지, 양장점에서 보낸 청구서가 두 세장, 그리고 마지막에 아주 가늘고 끝이 날 카로운 칼이 한 자루 나왔습니다. 상아로 만든 자루가 달려있고, 칼날에는 <런더 와이스 회사 제조> 라고 새겨져 있었습니다. "야아. 이건 보기 드문 칼이군.!" 홈즈는 열심히 칼을 조사했습니다. "피가 많이 묻은 흔적이 있어.죽은 스트레이커가 오른손에 쥐고 자기 허벅 지를 찔렀다는 게 바로 이거로군. 와트슨, 자넨 이 칼을 어떻게 생각하나 ?" "그건 외과 의사나 안과 의사가 수술을 할때 쓰는 메스야.."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아주 섬세한 수술을 하기 위해 이렇게 날 카롭게 만들어져 있지. 그레고리 경감, 스트레이커는 집을 나설 때 이 칼 을 둘고 나갔다는데, 이렇게 날카로운 칼을 칼집에 넣지도 않고 호주머니 에 넣다니 위험하지 않을까요?" "칼끝에 콜크가 끼워져 있었습니다. 나는 시체 옆에서 그 콜크를 찾아 냈습 니다. 스트레이커 부인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 칼은 2,3일전부터 화장대 위 에 놓여져 있었던 것을, 스트레이커가 나갈때 호주머니 속에 넣어 나갔답 니다." "무슨 목적으로 이 칼을 가지고 나갔을까요? 이렇게 가늘고 작은 칼은 호신 용으로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텐데...." "그 칼외에 손쉽게 가져갈 만한 게 없었기 때문이겠죠." "그럴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여기 런던의 폰드가에 있는 양장점에서 윌리엄 다아비셔씨 앞으로 보낸 청구서가 있는데, 다아비셔씨란 누구인가요?" "스트레이커 부인의 이야기에 따르면, 죽은 스트레이커의 친구로 가끔 다이 비셔씨 앞으로 편지도 왔다고 하더군요." 홈즈는 청구서를 이리저리 뒤적이다 놀란듯이 말했습니다. "야아, 대단한 사람이군. 드레서 한 벌을 21파운드나 들여 만들다니! 다아 비셔씨 부인은 여간 사치스럽고 호화로운 여자가 아닌 모양이군. 이번엔 스트레이커가 죽은 장소로 안내해 주십시오." 우리들이 복도로 나가자 30살쯤 되어 보이는 부인이 슬픈 표정으로 힘없이 서 있었습니다. 첫눈에 죽은 스트레이커의 아내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어, 경감님, 주인을 죽인 범인은 붙잡혔나요?" "아직은 증거가 확실치 않아서....하지만 셜록 홈즈씨가 일부러 런던에서 와 주셨으니, 가까운 시일내에 반드시 진범을 찾아 주실 겁니다." 경감이 달래듯이 말했습니다. 홈즈는 물끄러미 스트레이커 부인을 바라보다 가, "부인, 언젠가 프리머드의 야유회에서 뵌 적이 있는 것 같군요." 하고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홈즈씨, 당신을 만난것은 오늘이 처음입니다." "아니, 분명히 뵌 적이 있습니다. 그때 부인은 타조의 깃털 장식이 달린 비 둘기색 비단 드레스를 입고 계셨죠?" "전 그렇게 좋은 옷은 없어요." "그랬던가요? 그럼 제 착각이었던 모양입니다. 대단히 실례했습니다." 홈즈는 사과를 하고 나서, 경감 일행의 뒤를 따라 집을 나갔습니다. 마굿간 옆을 지나 400미터쯤 서쪽으로 가니, 스트레이커의 시체가 발견된 움푹 팬 곳이 나왔습니다. "그레고리 경감, 스트레이커가 집을 나갈때 입고 있었던 비옷은 여기에 걸 쳐져 있었다고 했죠?" 근처에 우거진 금작화를 가리키며 홈즈가 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날 밤에 바람이 불었던가요?" "바람은 불지 않았지만 비가 몹시 내렸습니다." "그렇다면 비옷은 바람에 날린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여기에 놓아 두었다고 생각할 수 있겠군요." "그렇죠." "그거 참 재미있군. 중요한 단서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그레고리 경감, 움 푹 팬 땅바닥에 발자국이 많이 찍혀 있는데 당신과 부하들의 발자국도 섞 여 있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여기에 가마니를 한 장 깔고, 그위에 서 있었습니다." "그것 참 잘하셨군요!" "홈즈씨, 이 가방속에 스트레이커가 신고 있던 장화 한 짝, 심프슨 청년이 신고 있던 단화 한 짝, 그리고 은성호의 낡은 말굽쇠 하나를 넣어 가지고 왔습니다." "경감! 당신은 정말 빈틈없는 분이군요." 홈즈는 가마니와 가방을 받아들자, 움푹 팬 땅바닥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리 고 가마니를 앞으로 밀어 놓고 그 위에 엎드린 다음, 양손으로 턱을 괸 채 막 짓밟힌 진창을 열심히 조사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별안간, "야아. 찾아냈어!" 하고 기쁜듯이 소리치며, 가느다랗고 작은 나뭇가지 같은 것을 집어 올렸습 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반쯤 타다 만 납성냥 개비였습니다. "허어, 그런게 있었던 걸 몰랐군요." 그레고리 경감은 무안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진흙 속에 들어있었으니까, 몰랐던 게 당연하죠. 나는 '아마 이런 것이 있 을 거다.' 하고 생각하며 찾았거든요..." 홈즈는 가방에서 스트레이커의 구두와 심프슨의 구두를 꺼내어, 진창위의 발자국에 하나하나 대어 보더니 이번에는 언덕위로 올라가 양치 식물의 수 풀 속을 마치 사냥개처럼 기어다녔습니다. "홈즈씨, 아무리 찾아보아도 이젠 발자국은 없을 겁니다. 그 근방은 제가 세밀히 조사를 했으니까요...." 그레고리 경감이 말했습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이 이상 찾는것은 실례가 되겠군요. 대신 나와 와 트슨 박사는 해가 질때까지 이 근처를 산책이나 할까 합니다." 로스 대령은 초조한듯 연방 시계를 들여다보며 "그레고리 경감, 홈즈씨는 아직 말의 행방도 알아보지 못한 이때, 산책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군요. 우리는 먼저 스트레이커의 집으로 물러납시다. 당신에게 여러가지 상의하고 싶은게 있습니다. 우선 이번 화요일의 경마에 서 은성호의 이름을 빼야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은성호에 돈을 걸고 있 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입히게 될 테니까요." 하고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로스 대령,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화요일까지 은성호를 반드시 찾아 내도록 하겠습니다." 홈즈의 태도는 자신감에 넘쳐 있었습니다. 그러자 로스 대령은 지나칠이만 큼 공손하게 말했습니다. "고맙기 그지없는 말씀이십니다. 그럼 산책이 끝나는 대로 스트레이커의 집 으로 오십시오." 로스 대령은 그레고리 경감과 함께 조교사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해는 이미 서산에 걸려 넓은 황야가 온통 귤빛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그 러나 홈즈는 이 아름다운 경치도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었습니다. "와트슨, 우리는 누가 스트레이커를 죽였나 하는 점은 잠시 제쳐 놓고, 은 성호의 행방에 대해서만 생각해 보세. 스트레이커가 죽은뒤, 홀로 된 은성 호는 어디로 갔을까? 원래 말은 한군데 모이는 성질이 강한 동물이야. 그 러므로 홀로 남은 은성호는 본디 자기가 있었던 로스대령의 마굿간으로 돌 아갔거나, 아니면 여기서 가장 가까운 백워어터경의 케이플턴 조교장으로 갔을거야. 언제까지나 홀로 이 황야를 헤메지는 않았을 걸세." "하지만 그레고리 경감은 심프슨 청년이 말을 훔쳐 내어 황야에 있던 집시 에게 데리고 갔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던가...." "천만의 말씀일세. 집시들은 경찰에 걸려드는걸 가장 싫어한다네. 그러므로 무슨 사건이 생겼다는 소리를 들으면, 당장 천막을 걷어 어디론지 가 버리 곤 하지. 게다가 은성호처럼 유명한 말은 팔려고 내놓아도 사려는 사람이 없을거야. 집시들은 이번 사건과는 아무 관계도 없네." "그럼 말은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아까도 말했듯이 은성호는 제 마굿간으로 돌아오지 않았으니 갈 곳이라고 는 한군데 밖에 없어. 틀림없이 저쪽에 보이는 케이플턴 조교장으로 갔을 거야. 그곳에는 말들이 많이 모여 있으니까 말이야. 저길 보라고. 저쪽에 움푹 팬 땅이 있지? 내 생각으로는 은성호가 반드시 저곳을 가로질러 케이 플턴 조교장으로 갔을 것 같아. 자 가 보세!" 과연 홈즈가 말한 대로 였습니다. 움푹 팬 곳엔 말굽 자국이 나 있었습니 다. 은성호의 낡은 말굽쇠를 꺼내 맞춰보니 꼭 들어맞았습니다. "어때? 와트슨. 상상력의 고마움을 이제 알았겠지? 그레고리 경감은 훌륭한 형사이긴 하지만 상상력만은 조금 부족하단 말이야. 자아, 이 말굽 자국을 따라가 보세." 7. 제 3의 사나이.. 서쪽을 향해 나아가니, 다시 축축하게 젖은 음푹 팬 땅위에 은성호의 말굽 자국이 찍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말의 발굽과 나란히 사람의 발자국 이 뚜렷이 찍혀 있었습니다. "홈즈, 이건 누구의 구두 발자국일까? 조교사인 스트레이커의 것도 아니고, 또 심프슨의 것도 아닌데 말일세." "응, 제 3의 사나이가 낸 구두 발자국이야. 나는 틀림없이 이런 구두 발자 국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지. 이거 보라고! 구두 끝이 모가 나 있지 않나. 이게 특징이야. 아니. 그런데 이거 이상하군. 제 3의 사나이가 은성 호를 데리고 로스 대령의 마굿간으로 가고 있어. 이럴리는 없는데..." 홈즈는 이상하다는듯이 동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습니다. 홈즈와 나란히 걷 고 있던 나는 얼마 가지 않아서 말과 사람의 발자국이 갑자기 방향을 바꾸 어 다시 케이플턴 조교장쪽으로 향해져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홈즈, 이것 좀 봐! 은성호와 제 3의 사나이는 역시 케이플턴 조교장 쪽으 로 간 모양이야." "그러면 그렇지! 와트슨, 고맙네. 자네 덕분에 헛걸음을 치지 않아도 좋게 생겼어. 과맙네." "그런데 홈즈. 도대체 어떻게 된거야?" "제 3의 사나이는 은성호를 데리고 처음에는 로스 대령의 마굿간으로 가려 고 했어. 하지만 도중에서 마음이 변하여 케이플턴 조교장으로 간 걸세." 그곳에서 케이플턴 조교장까지는 금방이었습니다. 마굿간 문앞에서 청소를 하고 있던 한 마부가, "이봐. 일없이 어슬렁거리면 혼날 줄 알라고!" 하고 우리를 향해 소리쳤습니다. 홈즈는 조끼 주머니에서 반 크라운짜리 은전을 꺼내 보이며 말을 걸었습니 다. "이 조교장의 감독은 사일러스 브라운씨지? 어때, 내일 아침 5시에 오면 브 라운씨를 만날 수 있을까?" "그야 만날 수 있지. 우리 감독님은 매일 아침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기 때 문에 5시라면 만날 수 있을거야... 앗, 야단났군. 감독님이 나왔어. 여보, 어서 그 돈을 도로 집어 넣어요!" 마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마굿간안에서 키가 땅딸막하고 눈초리가 날 카로운 사나이가 나왔습니다. 그는 사냥할때 쓰는 채찍을 휘익휘익 휘두르 며, "이봐, 도오슨! 뭐라고 지껄이고 있는거야? 얼른 일이나 하지 않고." 하고 소리쳤습니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이봐. 너희들은 어디 사는 녀석들이야? 썩 꺼지지 못하겠나? 빨리 꺼지지 않으면 개를 데려와 물게 할테다!" 하고 눈을 부릅떴습니다. "여, 당신이 조교사인 사일러스 브라운씨로군요. 한 10분만 이야기를 했으 면 하는데요." "쓸데없는 수작 걸지 마! 난 그럴 틈이 없어." "너무 그러지 마시오." 하며 홈즈는 몸을 구부려 키가 작은 브라운의 귀에다 대고 무슨 말인지를 속삭였습니다. 그러자 브라운은 몹시 놀란 듯 귀밑까지 새빨개지며 "거짓말이야! 터무니없는 소리야!" 하고 고함쳤습니다. "그래요? 그럼 브라운씨, 당신이 화요일 아침 일찍 여기서 뭘 했는지 모두 에게 들리도록 큰 소리로 이야기해 버릴까요? 아니면 당신 방에서 단둘이 서만 이야기를 나눌까요?" "좌, 좌우간 안으로 들어갑시다." 브라운이 당황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와트슨, 곧 끝날테니 잠깐만 기다려 주게." 홈즈는 빙그레 웃으며 조교사인 브라운과 함께 집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두 사람은 20분쯤 지난 후에 나왔습니다. 그 동안에 브라운의 태도는 완전 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아까까지 거드름을 피우던 태도는 어디로 가버렸는지 새파랗게 질린 얼굴에 이마에는 구슬땀까지 흘리며 마치 주인에게 꼬리치는 개처럼 굽실거렸습니 다. "홈즈씨, 모든 걸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아뭏든 다음 화요일의 경마에는 꼭 그 말을 데리고 나와야 하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색깔은 어떻게 할까요? 본디대로 해 둘까 요?" 홈즈는 잠시 망설이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며 유쾌한 듯이 말했습니다. "아니, 색깔은 바꾸지 않아도 좋소. 지금 그대로 출전시키도록 하시오. 그 대신 당신이 한 짓은 비밀에 붙여 줄 테니까." "고맙습니다. 홈즈씨!" 사일러스 브라운은 떨리는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으나, 홈즈는 거들떠보 지도 않고, 로스 대령이 기다리는 스트레이커의 집 쪽으로 걸음을 옮겼습니 다. "저 사일러스 브라운같이 거드름 잘 피우고 겁장이에다 교활한 사나이는 일 찌기 본 적이 없어." 홈즈가 말했습니다. "그럼 그 사나이가 은성호를 숨겨 둔 장본인이란 말인가?" "맞았어. 자네도 보았겠지만 그 사나이가 신고 있던 구두 끝이 모가 나 있 지 않던가. 제 3의 사나이의 발자국과 똑 같았어." 하며 홈즈가 들려 준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홈즈는 방안으로 들어가자 대뜸 큰 소리로 호통을 쳤습니다. "나는 당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다 알고 있소! 당신은 화요일 아침에 늘 하 듯이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뜰로 나왔소. 그때 조교장 울 밖의 황야에 한 마리 말이 헤메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지요. 가까이 가보니 그 말은 이마 에 흰 별이 있는 은성호였소. 당신도 처음에는 은성호를 로스 대령의 마굿 간으로 데려다 주려고 했었소. 하지만 도중에 마음이 변했지. '가만 있자. 이 은성호를 숨겨 두면 우리 마굿간의 레스바라호가 승리할 테고, 그렇게 되면 나도 큰돈을 벌 수 있을 거다.' 라고 생각했겠지. 그래서 은성호를 몰고 돌아와 많은 말 속에다 숨겼지?" 브라운은 얼굴빛이 갑자기 새파랗게 질렸습니다. 홈즈가 어딘가에 숨어서 자기가 한짓을 몰래 보고 있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습니다. 브라운은 태도가 금세 달라지며, "정말 잘못했습니다. 홈즈씨, 말을 유괴하면 어떤 죄가 되는지요? 어떻게 죄를 가볍게 할 방법은 없을까요?" 하고 사정하듯 말했습니다. "은성호를 화요일의 경마에 출전시키면 당신이 한 짓을 눈감아 줄 수도 있 소." 그러자 브라운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하며 몇 번이나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랬었군. 그런데 그 마굿간은 그레고리 경감이 자세히 조사했다는데 어째 서 그 말을 찾아내지 못했지?" "사일러스 브라운 같은 조교사가 말을 변장시키는 것쯤은 그다지 어려운 일 은 아니야. 아마 못 알아보았겠지." "그렇게 교활한 사나이에게 그대로 은성호를 맡겨 놓아도 괜찮겠나?" "걱정마. 사일러스 브라운은 죄를 가볍게 하기 위해 말을 제 눈 아끼듯이 소중하게 다룰 테니까." "그러나 로스 대령이 이 사실을 알면 틀림없이 불같이 화를 내겠지." "와트슨, 이번 사건은 로스 대령 마음대로는 되지 않을걸세. 자네도 깨달았 겠지만 대령은 내 솜씨를 깔보고 있어. 나는 그 앙갚음으로 잠깐 대령을 놀려 주어야겠어. 은성호가 사일러스 브라운의 마굿간에 있다는 걸 대령한 테는 말하지 말게." "좋아! 그런데 말을 행방을 알았으니까, 이젠 스트레이커를 죽인 범인을 알 아낼 차례군." "아냐, 그것도 해결뻍어. 우린 오늘밤에 런던으로 돌아가면 돼."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다아트무어에 도착한 지 불과 몇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이 힘든 사건을 해결해 버렸다니 말입니다. 자세한 것을 묻 고 싶었지만, 홈즈는 사건 도중에는 그 내용을 밝히지 않는 습관이 있었으 므로 잠자코 있었습니다. 로스 대령과 그레고리 경감은 스트레이커의 집에서 우리가 돌아오기를 기다 리고 있었습니다. "로스 대령, 덕분에 다아트무어의 맑은 공기를 듬뿍 마셨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오늘밤에 런던으로 돌아갑니다." "뭐라고요?" 그레고리 경감은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로스 대령은 코웃음을 치면서, "그럼 말의 행방도 모르고 스트레이커를 죽인 범인도 잡을 수 없단 말입니 까?" 하고 말했습니다. "힘든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화요일의 경마에 당신의 은성호는 틀림없이 출전 할 겁니다. 그러니까 기수를 준비해 두십시오....그리고 그레고리 경 감, 죽은 스트레이커의 사진이 있으면 잠깐 빌려 주십시오." 그레고리 경감은 호주머니에서 사진 한장을 꺼내어 홈즈에게 건내 주었습니 다. "고맙소. 당신은 내가 원하는 것을 모두 갖추어 두셨군요. 이제부터 나는 이집의 하녀인 앨리스에게 잠깐 물어 보고 싶은게 있습니다." 홈즈가 방을 나가자 로스 대령은 여전히 빈정거렸습니다. "런던에서 일부러 탐정을 불러왔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어." 나는 기분이 상하여 대들듯이 말했습니다. "하지만 홈즈는 은성호가 경마에 나갈 수 있다는 것만은 보증해 주었습니 다." "보증이라고요? 나는 입으로 하는 보증은 필요없어요. 말이나 얼른 찾아 주 었으면 해요." 그러고 있는데 홈즈가 돌아왔습니다. 그는 유쾌한 표정으로, "여러분, 조사는 모두 끝났습니다. 자아, 함께 다비스톡으로 갑시다." 이윽고 우리는 밖으로 나와 마차에 올랐습니다. 홈즈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마차의 문을 잡아 준 젊은 마부에게. "저 울안에 양이 대여섯 마리 있는것 같은데 누가 돌보고 있나?" 하고 은근히 물었습니다. "제가 하고 있읍죠." "요즘 양들의 거동이 좀 달라지지 않았나?" "글쎄요, 무슨 까닭인지 그중 3마리가 절름발이가 되었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홈즈는 아주 기뻐하며 연방 두손을 비볐습니다. "와트슨, 나의 상상이 들어맞았어. 멀리서 쏜 총알이 멋지게 명중한 기분이 야. 자, 마차를 출발시켜 주시죠." 로스 대령은 여전히 홈즈를 깔보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레고리 경감은 방 금 한 홈즈의 말에 대단한 흥미를 느낀 모양이었습니다. "홈즈씨, 3마리의 양이 절름발이가 된 게 그렇게 중요합니까?" "그렇습니다. 사건의 수수께끼를 푸는 중요한 열쇠중의 하나입니다." "그밖에 달리 중요한 것은 없습니까?" "은성호가 있었던 마굿간에는 경비견이 메어져 있었습니다. 은성호가 끌려 나갈때 그 개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날 밤 개는 전혀 짖지 않았답니다." "그게 이상하다는 겁니다. 그날 밤의 저녁 식사가 카레이 요리였다는 것, 짖어야 할 개가 짖지 않았다는 것. 3마리의 양이 절름발이가 되었다는 것. 이 세가지를 종합하면 당신도 아마 수수께끼를 풀 수 있을 겁니다. 당신이 잡아 놓은 심프슨 청년은 아무런 죄도 없습니다. 자세한 것은 화요일의 경 마가 끝난 뒤에 이야기하죠." 8. 은성호의 출전.. 기다리고 기다리던 화요일이 왔습니다. 그날, 홈즈와 나는 서남 쪽으로 가 는 기차를 타고 웨섹스컵 쟁탈 경마가 벌어지는 도시로 향했습니다. 미리 연락을 해 두었으므로 역 앞에선 로스 대령이 훌륭한 사륜 마차를 준 비하여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교외의 경마장으로 가는 도중. 대령이 언짢은 듯이 말했습니다. "홈즈씨, 약속한 화요일이 되었으나, 은성호는 아직도 행방을 알 수 없군 요." "아닙니다. 대령. 내가 보증한 대로 은성호는 반드시 경마에 출전할 것입니 다. 자아, 저 게시판을 보십시오." 관중석 정면에 높이 걸려 있는 게시판에는 경마에 출전할 6마리의 말 이름 이 쭉 씌여져 있었습니다. 첫번째부터 차례로 읽어 내려가다보니 세 번째와 네번째에 레스바라호와 은성호의 이름이 있었습니다. (3) 레스바라호 소유주 백워어터경, 기수 (모자 노랑, 자켓 노랑) (4) 은 성 호 소유주 로스 대령, 기수 (모자 검정, 자켓 빨강) "이거 참 놀랍군! 버젓이 은성호의 이름이 나와 있다니!" 로스 대령은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하지만 은성호의 모습은 아무데도 보이지 않잖아. 내 말은 이마에 흰 별이 있고 앞발에도 흰 점이 있어. 그런 말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하고 목쉰 소리로 외쳤습니다. "자아, 진정 하시죠. 은성호는 틀림없이 출전합니다. 이제 관중석으로 갈 시간이 없으니, 이 마차에서 봅시다. 아, 저기 출전하는 말들이 나오고 있 군요." 기수를 태운 말들이 당당한 모습으로 차례차례 관중석 앞을 지나 출발점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내 말은 없어!" 대령이 다시 소리쳤습니다. "이제 5마리가 지나갔습니다. 마지막 게 틀림없이 당신 말일것입니다." 그 순간, 밤색 말 한 필이 체중 검사장으로부터 나와 관중석 앞을 느린 걸 음으로 지나갔습니다. 안장위엔 누구나가 알고 있는 대령의 기수가 검은 모 자에 빨간 자켓을 입고 걸터앉아 있었습니다. "응, 저건 틀림없는 내 기수야. 그러나 말은 은성호가 아냐! 온몸을 ?어보 아도 그 아름다운 흰 털이 한 가닥도 없잖소? 홈즈씨, 그런데도 저게 은성 호라니 당신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거요?" "로스 대령, 저 뱀색 털의 말이 어떤 일을 하는지 천천히 두고 봅시다." 홈즈는 내 쌍안경으로 출발점 근처를 뚫어지게 보고 있더니, 별안가 큰소리 로 외쳤습니다. "야아! 멋진 출발이다. 저것 봐. 모서리를 돌았어! 로스 대령, 자세히 보십 시오. 곧 직선 코스로 들어갑니다." 마지막 직선 코스에 접어들었을때 6마리의 말은 한덩어리가 되어 한 장의 융단으로 모두 덮어씌울 수 있을 만큼 접근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백워어턱경의 레스바라호가 선두를 달리고 있더니, 결승점까지 불 과 200미터 정도 남긴 지점에서 지쳤는지 차차 뒤로 처졌습니다. 그러자 두 번째를 달리던 로스 대령의 말이 마치 바람처럼 앞질러, 넉넉잡아 6마리말 의 몸 길이 정도의 차로 결승점에 뛰어들었습니다. "휴유, 좌우간 내 말이 우승한 것 같군." 로스 대령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리고는 기쁨에 넘친 얼굴로, "홈즈씨, 어떻게 된 영문인지 나는 통 모르겠군요. 이제는 사실을 털어놓아 주시죠." 하고 말했습니다. "좋습니다. 그러나 그러기 전에 먼저 말을 살펴보러 갑시다." 체중 검사소에 가보니 한 마부가 열심히 밤색말의 목덜미와 가슴을 문질러 주고 있었습니다. "로스 대령, 포도주로 말의 이마와 앞발을 씻어 보십시오. 그러면 포도주의 알콜때문에 물감이 빠질 겁니다." 로스 대령은 홈즈의 말대로 포도주를 손수건에 적셔 가지고 말의 이마와 앞 발을 씻어 주었습니다. 그러자 과연 이마에는 크고 흰 별이, 그리고 앞발에 는 흰 얼룩이 나타났습니다. "아니, 이건...... 분명히 은성호다! 홈즈씨,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영문입 니까?" "은성호는 어떤 사기꾼에 의해 숨겨져 다른 색으로 칠해진 것입니다. 내가 일부러 그대로의 모습으로 달리게 했습니다." "홈즈씨, 당신이 하신 일은 기적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말은 전보 다 훨씬 원기가 있어 보이는군요. 당신의 솜씨를 의심해서 정말 죄송합니 다. 뻔뻔스런 부탁입니다만, 조교사 스트레이커를 죽인 범인도 붙잡아 주 시면 더욱 고맙겠습니다만....." 홈즈는 빙그레 웃었습니다. "범인은 벌써 붙잡아 놓았습니다." "예엣! 잡았다고요? 어, 어디에 있죠?" "여기 있습니다." "옛, 여기요?" "그렇소. 내 눈앞에 있습니다." 순간 로스 대령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면서 소리쳤습니다. "홈즈씨, 나는 분명히 당신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잃었던 말을 찾아 주셨으 니까요. 그러나 방금 당신이 하신 말씀은 참을 수가 없습니다!" "핫하하, 대령님. 나는 당신이 범인이라고는 말한 적이 없습니다. 스트레이 커를 죽인 범인은 당신 뒤에 있습니다." 9. 뜻밖의 범인.. 홈즈는 대령의 뒤에 있는 은성호의 반들반들한 목을 쓰다듬어 주면서, "이 말이 당신의 조교사 존 스트레이커를 죽인 범인입니다." 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아니. 말이 살인범이라고요?" 대령과 나는 동시에 소리쳤습니다. "그렇습니다. 은성호가 스트레이커를 죽였습니다. 그러나 은성호는 제 몸을 지키기 위해 정신없이 한 짓이기 때문에 설령 재판에 붙여진다해도 무죄가 될 것입니다. 물론 용의자인 심프슨 청년에게는 아무 죄가 없습니다. 내가 그레고리 경감에게 편지를 보내 진상을 알려 두었으므로, 지금쯤은 석방되 었을 것입니다." "홈즈씨, 좀더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좋습니다. 런던으로 돌아가는 기차안에서 이야기해 드리죠." 런던행 기차안에서 홈즈는 로스 대령과 나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 습니다. 그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었으므로 로스 대령과 나는 시간이 흐르는 것도 잊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사실 처음엔 나도 그릇 판단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고 홈즈는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나는 이번 사건의 내용을 여러 신문을 통해 읽고 난 뒤, 그레고리 경감과 마찬가지로 마권 장수인 심프슨 청년이 가장 수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심 프슨은 월요일 밤에 은성호의 동정을 살피러 마굿간으로 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충분히 흉기로 쓸 수 있는 굵고 무거운 지팡이를 가지고 있었습니 다. 그리고 끝으로, 죽은 스트레이커는 심프슨 청년의 목도리를 꽉 움켜쥐 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심프슨이 범인이라 의심받는 것도 당연한 일이죠. 그러나 나는 무엇인가 석연치 않은 것이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래서 현 지에 가 볼 생각을 한 것입니다. 다비스톡에서 사륜마차를 타고 조교사인 스트레이커의 집으로 가는 도중에, 스트레이커 집안의 월요일 저녁 식사가 양고기 카레 요리였다는 것, 마부인 헌터가 먹고 잠든 약이 아편 가루였다 는 것을 나는 이때 생각해 냈습니다. 나는 이 카레 요리와 아편과의 사이 에 깊은 관계가 있다는 걸 깨닫고 깜짝 놀랐습니다. 와트슨, 마차가 스트 레이커의 집에 닿았을 때, 모두 내렸는데 나 혼자만 뒤에 남아 멍청하게 있었지? 나는 그때 '이렇게 멋진 실마리가 있었는데 어째서 지금까지 못 알아차렸을까?' 하고 나의 어리석음을 탓하고 있었던 거야." 그러자 로스 대령이 "홈즈씨, 그렇게 말씀하셔도 저는 무슨 이야기인지 통 모르겠군요. 카레 요 리와 아편과의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나요?" 하고 물었습니다. "아편 가루는 독특한 맛이 있습니다. 만일 보통 요리에 아편을 섞는다면 ' 아니 이 요리는 이상한 맛이 나는걸.'하고 곧 알아차릴 겁니다. 하지만 카 레 요리에 아편을 섞는다면 카레 가루의 독한 맛 때문에 아편의 맛이 없어 져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마부인 헌터도 전혀 모르고 아편이 든 카 레 요리를 먹은 것입니다. 그날 밤, 스트레이커의 집안 사람 모두가 카레 요리를 먹었는데, 잠든 것은 헌터뿐입니다. 헌터가 먹은 카레 요리의 접시 에다 아편을 넣은 것은 누구일까요?" 홈즈는 우리 두 사람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며 말을 이었습니다. "그레고리 경감은, '헌터가 경비견을 데리고 간 사이, 마권 장수인 심프슨 청년이 작은 창문으로 목을 들이밀어 카레 요리에 아편을 섞었을 것이다.' 라고 말했지만,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먼 런던에서 찾아온 심프슨 청년이 그날 밤 스트레이커의 저녁 식사가 카레 요리라는 것을 알 까닭이 없었습니다. 또 아편을 준비해 가지고 마굿간에 갔더니, 때 마침 카레 요리였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그날 밤 저녁 식 사를 카레 요리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스트레이커 부부 뿐입니다. 부부 중 어느 한 사람이 헌터 몫으로 덜어 놓은 접시에 아편을 섞은 것입니다.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문득 그날 밤 개가 취한 이상한 행동을 깨달았습니 다. 누군가가 밤중에 마굿간으로 찾아와서 은성호를 끌고 나갔는데 개가 전혀 짖지 않았습니다. 만일 심프슨 청년이 말을 훔쳐 내려고 했다면 개가 몹시 짖어서 마굿간의 다락방에서 자고 있던 두 사람이 잠을 깼을 것입니 다. 개는 왜 짖지 않았을까요? 그건 말을 끌고 나간 사나이가 개를 잘알고 있는 인물, 즉 개를 기른 존 스트레이커 였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때부터, 마부인 헌터에게 잠오는 약을 먹이고 은성호를 마굿간에서 끌어 낸 것은 대령님의 조교사인 스트레이커가 틀림없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나와 대령은 홈즈의 조리있는 추리에 침을 꿀꺽 삼키며 계속 귀를 기울였습 니다. "스트레이커가 왜 한밤중에 말을 끌어냈을까? 물론 좋지 못한 일을 꾸미기 위해서입니다. 로스 대령, 잘아시지만, 조교사 가운데는 때때로 경쟁의 상 대가 되는 말에 돈을 걸어 놓고, 자기들의 말에 상처를 입혀 큰 돈벌이를 하는 자가 있죠. 스트레이커도 그와 같은 짓을 한 겁니다. 그러나 어떤 방 법으로 은성호에 상처를 입히려 했는지. 그때까진 몰랐습니다. 그것을 알 게 된 것은 죽은 스트레이커의 호주머니에 들어있던 물건을 조사하고 난 뒤였습니다. 호주머니에는 납성냥 한통과 양초 한 자루, 그리고 양장점에 서 보낸 청구서가 들어 있었습니다. 또 그레고리 경감은. 스트레이커가 오 른손에 쥐고 있던 가늘고 날카로운 칼을 보존해 두었습니다. 그 칼은 여기 있는 와트슨 박사가 증명했듯이 외과 의사가 수술할 때 사용하는 메스 였 습니다. 아주 섬세한 수술을 하기 위해 특별히 가늘고 날카롭게 만든 것입니다. 그 메스를 본 순간, 나는 스트레이커가 어떤 방법으로 말에 상처를 입히려고 하였는지 똑똑히 알았습니다. 대령님도 알고 계시겠지만 말의 뒷다리의 넓 적다리건에 아주 작은 상처를 내면 말은 가벼운 절름발이가 되는데 전혀 그 상처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말을 돌보는 사람이라도 운동이 지나쳤거나 아니면 가벼운 류머티즘 정도로 생각하고 신경을 쓰지 않을 것입니다. 물 론 달릴수는 있지만 정작 경주가 시작되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 합니다. 지는게 뻔한 일이죠. 스트레이커는 경쟁말인 레스바라호에 많은 돈을 걸어 두고 은성호가 경주에서 지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괘심한 놈 같으니! 내가 12년 동안이나 돌보아 주었는데, 그런 나쁜 짓을 꾸미다니!" 로스 대령은 주먹을 불끈 쥐고 분노에 몸을 떨었습니다. 그러나 쉽게 믿어 지지 않는듯. "말의 넓적다리에 상처를 입히는 것쯤 마굿간안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었 을 텐데 왜 일부러 밖으로 끌어 냈을까요?" 하고 물었습니다. "은성호처럼 민감한 말은 메스 끝으로 조그만 찔러도 큰 소동을 벌여 다락 방에서 자고 있던 마부를 깨울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 눈에도 띄지 않고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저 움푹 팬 곳까지 말을 데리고 갔던 것입니다." "그랬군요. 그래서 그의 호주머니에 납성냥과 양초가 들어 있었군요. 그런 데 홈즈씨, 나는 스트레이커에게 매달 충분한 급료를 지불했습니다. 그런 데 무슨 돈이 그렇게 필요했을까요?" "여자 때문입니다. 스트레이커에게는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비밀 애 인이 있었던 것입니다. 죽은 스트레이커의 호주머니에서 런던의 양장점에 서 윌리엄 다아비셔씨 앞으로 보낸 청구서가 들어 있었죠? 드레스 한 벌에 21파운드나 들였어요. 나는 스트레이커 부인에게 슬쩍 드레스에 대해 물어 보았더니, '저는 그렇게 좋은 옷을 입어 본 적이 없습니다.' 라고 대답하 더군요. 그러니까 스트레이커에게는 사치를 즐기는 애인이 있어서, 그 여 자 때문에 많은 빚을 진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이번 경마에서 한몫 잡 으려고 일을 꾸민 것이죠. 나는 윌리엄 다아비셔라는 것은 가공의 인물로 사실은, 스트레이커 자신이 틀림없다고 생각했으므로 그레고리 경감에게서 스트레이커의 사진을 빌려 가지고 런던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양장점의 마 담 르쉬리에게 가서 스트레이커의 사진을 보이면, 모든 걸 알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죠." "음, 과연....." 로스 대령은 신음하듯 중얼거리며 홈즈를 쳐다보았습니다. "자, 다음엔 월요일 밤에 스트레이커가 무슨 짓을 했는지 간단히 설명해 드 리죠. 스트레이커는 먼저 마부 헌터몫으로 덜어 놓은 카레 요리에 아편 가 루를 섞었습니다. 그리고 한밤중에 일어나 호주머니에 납성냥, 양초, 수술 할 때 사용하는 메스 등을 넣고 비옷을 마굿간으로 갔습니다. 불침번인 헌 터는 깊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개도 짖지 않았습니다. 스트레이커는 유유 히 은성호를 마굿간에서 끌어 내어 저 움푹 팬 곳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 도중에 심프슨 청년이 떨어뜨린 빨강과 검정 무늬가 섞인 목도리를 주 운 것입니다." "심프슨의 목도리를요?" 뜻밖이라는듯 로스 대령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습니다. "그렇습니다. 심프슨은 '어디서 목도리를 떨어뜨렸는지 기억에 없다.'고 말 했는데 그건 사실이었습니다. 그 결과, 스트레이커 살인에 대한 혐의가 더 욱 짙어졌지요." "스트레이커는 그 목도리를 주워서 무얼 하려고 했을 까요?" "혹시 말이 날뛰면 그 목도리로 말의 발을 묶을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럴 듯 하군요. 그 다음엔 어떻게 되었나요?" "움푹 팬 땅 근처에 도착하자 스트레이커는 입고 있던 비옷을 벗어서 금작 화 위에다 걸쳐 놓았습니다. 무거운 옷이 거추장스럽기 때문이겠죠. 그리 고 나서 은성호를 데리고 움푹한 곳으로 내려갔습니다. 그곳이라면 불을 켜도 아무데서도 보이지 않습니다. 스트레이커는 은성호의 뒤로 돌아가 납 성냥을 켰습니다. 제가 진창속에서 찾아 낸 것은 타다 남은 그 납성냥이었 습니다. 갑자기 밝아지자 은성호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동물이 지닌 신비한 본능으로 '좋지 못한 일을 당할 것 같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던지 날뛰기 시작했습니다. 스트레이커는 당황하여, 오른손엔 메스, 왼손에 심 프슨의 목도리를 쥔채 말을 진정시키려 했습니다. 그 순간 은성호 말굽에 이마 한복판을 걷어 챈 것입니다. 로스 대령, 당신의 말의 뒷발질이 얼마 나 센 것인지 잘 알고 계시겠죠? 게다가 단단한 말굽쇠가 붙어 있으니, 스 트레이커의 이마가 박살이 난 것도 당연한 일이죠. 기절하여 넘어지는 순 간, 스트레이커는 오른손에 든 수술용 메스로 자기 허벅지를 찌른 것입니 다... 로스 대령, 이상이 이번 사건의 대강 줄거리입니다." "홈즈씨, 당신은 정말 소문 이상으로 명탐정입니다. 마치 그자리에서 목격 한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당신의 솜씨를 의심해서 참으로 죄송했습니다. " 대령은 솔직히 사과했습니다. 그러자 홈즈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저었습 니다. "아닙니다. 대령님. 저도 처음에는 그레고리 경감과 똑같이 심프슨 청년을 의심했으니 그리 뽐낼건 없습니다. 이번 사건은 상상에서 출발했죠. 양에 대한 것도 그중의 하나죠. 나는 '스트레이커와 같이 용의주도한 사나이가 곧바로 어려운 수술을 할 리가 없어. 뭔가 다른 동물을 써서 실험을 해 보 았을거야.' 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들이 스트레이커의 집에서 나올 때 내 가 젊은 마부에게 '요즘 양들의 거동이 좀 달라지지 않았나?' 하고 물었더 니 '웬일인지 3마리가 절름발이가 뻍습니다.'라고 대답했죠? 그때처럼 기 뻤던일은 없습니다. 내가 먼데서 쏜 총알이 멋지게 과녁을 맞추었기 때문 입니다. 스트레이커는 은성호의 넓적다리에 상처를 입히는 훈련을 양에게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과연 그럴 듯 하군요. 이야기를 들을수록 당신의 멋진 추리에 감탄할 뿐입 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알수 없는게 있습니다. 은성호는 화요일 아침 일찍 행방 불명이 된뒤 오늘 경마장에 나타날 때까지 대체 어디 있었죠?" "당신 조교장 가까이에 있는 어떤 사나이가 몰래 숨겨 놓았었죠." "예? 숨겨 놓았다구요? 그, 그게 누굽니까?" "대령님, 그 사나이에 대해서는 눈감아 주셨으면 합니다. 그 사나이는 오늘 까지 말을 소중하게 보관해 주었습니다. 스트레이커는 당신의 신뢰를 배반 하고 나쁜 짓을 하다가 천벌을 받았습니다. 은성호는 멋지게 우승하여 컵 을 땄고, 당신은 많은 상금을 받았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하며 홈즈는 얼핏 창밖을 내다보았습니다. "벌써 크래팸 교차점입니다. 종점인 빅토리아역까지는 10분도 채 안남았군 요. 대령님, 베이커가의 우리집에 들러서 담배라도 한 대 피우시지 않겠습 니까? 아직도 궁금한 점이 있으시다면 얘기해 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홈즈씨.당신 이야기는 참으로 재미 있었습니다. 이젠 궁금한 점은 없지만 잠깐 들렀다 가겠습니다." 하며 로스 대령은 빙그레 웃었습니다. 이번 사건 동안, 줄곧 으스대던 대령이 처음으로 보인 부드러운 웃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