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뚤어진 입술의 사나이 ***** 코난 도일 .. 1. 아편 중독자 와트슨은 평판이 매우 좋은 의사입니다. 친절하게 치료를 잘 해 줄 뿐만 아 니라, 명탐정 셜록 홈즈의 절친한 친구라는 것을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 있 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와트슨은 요즘 따분하고 지루한 듯한 표정을 짓는때가 많습니다. 결 혼하고 나서 조그만한 병원을 개업한 것은 좋았지만, 그 대신 홈즈와 좀처 럼 만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베이커가의 하숙집에서 홈즈와 함께 살던때는, 밤낮 없이 사건에 열중할 수 있었으므로, 하루하루가 그저 즐겁기만 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떨까요?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 까지 환자들을 치료하기에 바쁘고, 그 다음은 부인과의 단조로운 대화가 있을뿐 입니다. 오늘도 와트슨은 크게 기지개를 켜고 하품을 하면서, "아아, 벌써 10시로군. 오늘밤도 별다른 일이 없을것 같으니 이제 슬슬 잠 이나 잘까?" 하고 중얼거렸습니다. 바로 그때 초인종이 요란하게 울렸습니다. "이 밤중에 누굴까? 급한 환자일까?" "제가 나가 보고 오겠어요." 옆에서 뜨개질을 하고 있던 부인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이윽고 현관에서 몇 마디 이야기를 주고받는 소리가 들리더니, 부인이 손님 을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아니, 이거 휘트니 부인 아니십니까? 밤늦게 웬일이십니까?" "늦게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와트슨 선생님께 매달리지 않고는 어떻 게 할 도리가 없어서요...." 휘트니 부인은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 울먹였습니다. 와트슨은 휘트니부인에게 의자를 권했습니다. "부인,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근차근 이야기해 주십시오. 무슨 얘기든지 들 어 드릴 테니까요." 그리고는 자기 부인을 향하여. "여보, 휘트니 부인에게 포도주 한잔 갖다 드려요." 하고 말했습니다. "와트슨 선생님, 선생님을 뵙기만 해도 마음이 놓이는군요. 뭐니뭐니해도 선생님은 홈즈씨의 둘도없는 친구이니까요." 휘트니 부인은 와트슨 부인이 가져다준 포도주를 단숨에 들이키더니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선생님, 제 남편은 이틀이나 집에 돌아오지 않는군요. 이대로 있다간 내일 도 돌아오지 않을거여요. 그래서 오늘밤 안으로 남편을 꼭 좀 데려다 달라 고 선생님게 부탁드리러 온 겁니다." "아,그러셨군요." 와트슨은 맥빠진 소리로 말했습니다. 와트슨은 휘트니 부인의 남편이 아편중독에 걸려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 니다. 아편은 '악마의 약' 이라고 불리어질 정도로 무서운 약입니다. 아편은 대개 길다란 담뱃대에 넣어 피우게 되어 있는데, 이것에 중독이 되면 끊으래야 끊을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몸이 나른해져서 아무일도 할 수 없고, 늘 꾸 벅꾸벅 졸게 됩니다. "선생님, 제발 부탁이어요. 제 남편을 그 지긋지긋한 아편굴에서 구해 주셔 요." 휘트니 부인은 손을 모아 비는 시늉을 했습니다. 그러자 와트슨 부인도 곁에서, "여보, 어떻게 좀 도와 드리세요. 아편 소굴처럼 무시무시한 곳에 여자가 들어갈 수는 없지 않겠어요? 당신이나 홈즈씨 같은 힘센 남자분이 아니면 휘트니씨를 데려올수 없을 거여요." 하고 한 마디 거들었습니다. 와트슨은 휘트니 부인의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귀찮고 성가신 일 이지만, 원래 친절하고 인정이 많은 사람이라 남의 딱한 사정을 모른체할수 가 없었던 것입니다. "부인 염려하지 마십시오. 제가 휘트니씨를 모셔다 드리지요. 그분은 지금 스윈덤 골목의 아편굴에 있지요?" "예, 그렇습니다. 아, 이젠 안심입니다." 휘트니부인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습니다. 스윈덤 골목은 런던의 동쪽 변두루에 있는데 항상 건달이며 불량배들이 우글거리는 무시무시한 곳이입 니다. 또 어두컴컴한데다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러, 사람의 마음마저 음산 하게 만드는 곳입니다. 그렇지만 홈즈와 함께 끔찍한 사건들을 다루며 여러 번 위험한 고비를 넘긴 와트슨으로서는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와트슨은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곧장 아편굴로 뛰어들었습니다. 입구에서 망을 보던 사나이가 위협하는 듯한 눈초리로 와트슨을 노려보았지 만, 트집을 잡지는 않았습니다. 방안은 천장이 낮고 어두컴컴해서 3등선실 같았는데, 병실처럼 침대가 줄지 어 있고, 아편 중독에 걸린 사람들이 그곳에 나른해진 몸을 누이고 있었습 니다. 짙은 갈색 연기와 함께 달콤한 아편 냄새가 방안에 감돌아, 마치 악 마의 나라에 온 같은 착각이 들었습니다. 사나이들은 흐릿하고 윤기없는 눈으로 와트슨을 바라보았지만, 이내 다시 눈을 가늘게 뜨고는 아편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말레아지아 사람인듯한 안내원이 담뱃대와 아편을 들고 다가와서는. "이쪽으로 오십시오, 좋은 자리가 비어 있습죠." 하고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고맙네, 하지만 나는 아편을 피우러 온 게 아니야. 사람을 찾고 있는 중이 야." 와트슨은 안내원을 쫓아 버렸습니다. 그런데 제일 안쪽 침대에 있던 한 노인이 와트슨을 힐끗 쳐다보았습니다. 몹시 날카로운 눈빛이었습니다. 와트슨은 노인의 눈빛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습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데.....' 와트슨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다시 휘트니를 찾는데 열중하였습니다. 2. 수상한 노인.. 이윽고 와트슨은 휘트니를 찾아냈습니다. 휘트니는 너무나 비참한 몰골로 변해있었습니다. 더부룩한 머리카락은 아무렇게나 흐트러져 있었고, 얼굴은 창백하고 눈빛은 흐렸습니다. "자, 이제 돌아갑시다. 휘트니씨. 부인께서 몹시 걱정하고 있습니다." 와트슨이 이렇게 말하자, 휘느니는 힘없는 목소리로, "지금 몇 시지요?" 하고 물었습니다.. "밤 11시입니다." "무슨 요일이요?" "금요일입니다." 그러자 휘트니는, "공연히 나를 놀라게 하려고 거짓말을 하는거지요? 오늘은 수요일일겁니다. 여기 들어온지 두세시간 밖에 되지 않았으니까요." 하고 아직도 잠에서 덜 깬 듯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술주정꾼보다 다루기 힘든 아편 중독자를 다루려면 조그은 난폭한 짓을 하 는수 밖에 없습니다. 와트슨은 휘트니의 뺨을 힘껏 후려치고는, 비틀거리는 그를 부축하여 좁다 란 통로를 빠져 나갔습니다. 와트슨이 서둘러 현관쪽으로 걷고 있을때 누군가가 와트슨의 한쪽 다리를 붙잡았습니다. 무심코 밑을 내려다본 와트슨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 다. 틀림없는 셜록 홈즈가 빙긋이 웃으면서 올려다보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와트슨, 아무 말도 하지 말게. 시치미를 떼고 있어." 홈즈는 빠른 말로 나직이 속삭였습니다. "그 사람을 마차에 태워서 돌려보내고 자넨 밖에서 기다리고 있게. 급히 의 논할 게 있으니까. 꼭 기다리고 있게." 와트슨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휘트니를 현관으로 끌 고 나왔습니다. 와트슨은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너무나 뜻밖의 장소에서 홈즈를 만났기 때문에 놀라움도 그만큼 컸던 것입니다. '그렇게 구질구질한 노인이 홈즈라니 아직도 잘 믿어지질 않는군. 아까 서 로 눈이 마주쳤을때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설마 홈즈일줄이야 꿈에도 몰랐었지.' 와트슨의 마음에는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홈즈는 어떻게 그처럼 감쪽같이 변장을 하고 있을까? 허리는 꼬부 라지고 온통 주름투성이의 얼굴에다 목소리까지 쉬어 있으니...' 와트슨은 마차를 불러세우고 휘트니를 그 속에 밀어 넣었습니다, 그리고는 마부에게 돈을 두둑이 주면서, "이분을 댁까지 꼭 모셔다 드리게. 그리고 이 편지는 우리 집사람에게 전해 주고." 하고 부탁했습니다. 마부는 말 등에 채찍질을 한번 하고는, 경쾌한 바퀴소리를 남기며 어둠 속 으로 사라져 갔습니다. 마차가 보이지 않게 되자, 노인이 아편굴에서 나왔습니다. 두 사람은 인기척이 드문 곳으로 가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섰습니다. "아이고, 이제 괜찮겠지?" 노인이 허리를 펴고 두세번 문지르자 그곳에는 키가 큰 홈즈가 우뚝 서 있 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홈즈? 나는 여간해서는 놀라지 않는데, 오늘밤엔 정말 까무라칠뻔 했다니까." 그러자 홈즈는 한바탕 큰소리로 웃고 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깜짝 놀란건 나도 마찬가지야. 자네가 느닷없이 이 아편굴에 들이닥쳤으니 까 말일세." "아니, 난 보다시피 이웃에 사는 부인의 부탁을 받고 그 사나이를 데리러 갔을 뿐이야. 한대 뜻밖에도 자네를 만났어. 여보게, 자네가 그곳에 변장 까지 하고 숨어들었으니, 무슨 사건이라도 있는 모양이지?" "응, 자네 말대로야. 어려운 사건이라서 좀처럼 단서가 잡히지 ?는군. 어 떻게 할까 생각하던 참이었는데, 마침 자네가 온 거야. 이봐, 와트슨, 좀 도와 주게. 뭐 특별히 해야 할 일은 없지만, 자네가 함께 있어 주면 난 마 음이 가라앉거든." "그런 말을 들으니 정말 기쁘군. 나도 매일 환자들만 돌보느라고 몹시 따분 하던 참이었네. 마침 잘됐어. 우리 집사람에게는 자네를 만나서 오늘밤에 는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쪽지를 써보냈어." "잘했군, 오늘밤엔 모처럼 자네와 둘이서 사건을 처리하게 됐는걸." 이렇게 말한 다음. 홈즈는 손가락을 입에 넣고, '휘익~!'하고 휘파람을 불 었습니다. 그러자 저쪽 어둠속에서 대답하는 휘파람 소리가 나더니, 마차 한대가 스르 르 나타났습니다. 홈즈는 젊은 마부에게 "존, 수고했어. 이젠 마차를 내게 맡기고 돌아가게." 하면 돈을 쥐어 주었습니다. "자, 올라타게. 와트슨. 목적지에 닿을때까지 사건의 내용을 이야기해 주겠 네. " 홈즈는 마부자리에 올라앉아 고삐를 잡았습니다. 와트슨도 그 옆자리에 올 라앉았습니다. "어딜 가는건가?" "켄트주의 리이시까지 달리는거야. 10킬로미터쯤 되지." 3. 사라진 신사.. 마차는 빠른 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사건은 리이시에서 일어났나?" "아냐. 사건은 아까 그 아편굴에서 일어났다고 해야 마땅하겠지. 센트클레 어라는 신사가 아편굴에서 증발해 버렸거든." "증발하다니?" "음, 갑자기 사라져버렸어. 그 아편굴은 수상쩍은 것 투성이야. 어쩌면 센 트클레어는 살아서 돌아오지 못할는지도 몰라." "그럼 살해당했나?" "아직은 분명히 말할 수 없어. 하지만 그 아편굴에 들어갔다가 두번 다시 나오지 못한 사람은 한두 사람이 아니야. 아편굴 뒤쪽엔 항구로 통하는 수 로가 있으므로, 뒤꼍으로 난 창문에서 물속으로 집어던지기만 하면, 시체 는 조수에 휩쓸려들어가 어디서 떠오를지 조차 모르거든." "그런데 리이시에는 뭘 하러 가는건가?" "센트클레어의 집이 그곳에 있거든. 이 사건에 대한 걸 조사하는 동안 나는 그 집에 묵을 예정이야. 침대가 두개 있으니까 자네도 함께 묵을 수 있어." 홈즈는 마치 와트슨을 자기 집에라도 데리고 가는 듯한 말투로 이야기했습 니다. 마차는 인적이 드문 밤길을 달려, 어느 결에 런던 교외를 달리고 있 었습니다. 밤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다리를 건너서 들길로 접어들자, 마침내 주위는 시골 풍경으로 바뀌었습니다. 이곳에서부 터는 런던 부호들의 별장 지대가 됩니다. "홈즈,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약속대로 사건의 내용을 이야기해 주게." "음, 이야기해 주지. 사건 자체는 퍽 간단해. 그래서 어디부터 손을 대어야 좋을지 통 모르겠어. 자네에게 말하면 무슨 좋은 단서라도 잡아 줄지 모르 겠군. 그전에 우선 한대 피우고...." 홈즈는 파이프에 불을 붙였습니다. "먼저 센트클레어에 대해서 설명하지. 그는 5년전부터 리이시에 있는 커다 란 저택에서 살고 있는데, 상당한 부자야. 나이는 37살이고, 아름다운 부 인과 두 아이가 있어." "어쩌다가 우연할 일로 아편 중독에 걸린 모양이로군.." "와트슨 너무 서두르지 말게. 아편중독은커녕, 그는 아주 착실한 신사로, 날마다 리이시에서 런던으로 통근하고 있었어. 몇 군데 회사에 관계하고 있었던 모양이야. 그는 매일 저녁 6시경에는 어김없이 집으로 돌아오곤 했 지. 동네 사람들도 모두 센트클레어가 착실한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고 있 어." "하지만 홈즈, 자넨 아까 센트클레어가 아편굴에서 증발했다고 말하지 않았 나? 아편굴에 드나드는 녀석들은 인간 쓰레기야. 말할 수 없이 타락한 사 람들이지." "음, 그 점이 좀 이상스럽긴 하지만, 아뭏든 좀 더 들어보게. 바로 지난 월요일의 일이야. 센트클레어는 여느때처럼 런던으로 출근했어. 상냥한 아 빠인 그는 집을 나설때 아이들더러, 오늘은 선물로 집쌓기 장난감을 사다 주겠다고 약속을 했지."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 어서 계속하게." 하고 와트슨이 재촉했습니다. "그런데 센트클레어가 나간지 얼마 안 되어 알바딘 기선 회사에서 전보가 왔어. 짐이 와 있으니까 찾으러 오라는 전보였어." "알바딘 기선회사라면 스윈덤골목 근처의 선창가에 있지 않나?" "맞았어. 어쨌든 짐을 찾는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거든. 게다가 그건 부인이 매우 기다리고 있던 짐이었다는군. 부인은 점심 식사를 마치고 부랴부랴 런던으로 갔지. 부인은 시내에서 일용품을 산 다음, 기선 회사로 가서 짐 을 찾았어. 그리고 스윈덤 골목을 가로질러 역으로 향했어. 그때가 4시 30 분이었지." "그런 다음 어떻게 했나?" "월요일은 굉장히 무더운 날이었지.지저분한 스윈덤 골목의 집들은 모조리 창문을 활짝 열어 놓고 있었어. 센트클레어 부인은 양손에 짐을 잔뜩 들고 있었으므로, 차라리 마차라도 부를까 하고 걸음을 멈추어 주위를 둘러보았 어. 그때 어디선가 '앗!'하는 비명소리가 들려왔어." 홈즈는 잠시 말을 끊고, '드디어 이제부터 사건의 핵심으로 드어가는 거야. '라는 듯이 와트슨을 바라보았습니다. 와트슨도 긴장하여 침을 꿀꺽 삼켰습니다. 4. 창틀에 묻은 피.. "소리가 난 쪽을 올려다보던 센트클레어 부인은 전기에 감전이라도 된 듯 그 자리에 우뚝 서 버렸어. 바로 옆에 있는 건물의 삼층 창문에서 남편인 센트클레어가 눈을 크게 뜨고 자기를 내려다보고 있었던 때문이지. '앗!' 하고 외친것도 물론 센트클레어였을 거야. 부인은 큰 소리로 '아니 여보!' 하고 외쳤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센트클레어의 모습은 곧 창문 안으로 사 라져 버렸어. 부인의 말로는 누군가가 안에서 남편을 힘껏 끌어당긴 것같 이 보였다는거야." "센트클레어가 있었다는곳이 바로 그 아편굴의 삼층이란 말이지? 그런데 부 인은 곧 남편의 뒤를 쫓지 않았나?" "물론 쫓아갔지. 뜻하지 않은 곳에서 남편의 비명소리를 듣고, 더군다나 남 편은 웬일인지 미친 사람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까 말이야. 그런데다 센트클레어는 집을 떠날때와 똑같이 검은 양복을 입고 있었집만 가스의 단 추를 풀어 헤치고 넥타이도 매지 않았던 모양이야. 부인은 남편에게 엄청 난 일이 일어났구나 생각하며 아편굴로 뛰어들었어." "그래, 부인은 삼층으로 올라갈 수 있었나?" "아니, 부인이 이층으로 통하는 계단을 막 올라가려고 할때, 불량배인 인도 인과 그 부하가 합세아여 강제로 부인을 거리로 몰아 내었어." "그 집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경비원과 불량배들이 우글거리고 있어서 아 무나 들어가지 못할걸. 경찰에 신고하면 됐을텐데...." "자네 말대로 부인은 경찰에 구원을 청했지. 어쨌든 남편이 위태롭다는 생 각이 들자, 부인은 결사적이었어. 부인의 호소를 듣고 형사 한 사람과 경 관 두 사람이 아편굴로 들이닥쳤지." "그거 잘됐군." "그런데 말야. 하나도 잘되질 않았어. 그들은 기어코 삼층으로 돌진했지만 분명히 있어야할 센트클레어는 자취도 없었던거야. 다만 지저분한 그 방안 에는 험상뒜게 생긴 앉은뱅이 거지가 있을 뿐이었지. 거지는 전부터 그 방 에 세들어 살고 있었대. 경찰은 건물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져 보았지만 센 트클레어는 아무데도 없었어." "그것 참 이상하군.뭔가 수수께끼가 있을 것만 같아." "나도 같은 생각이야. 도대체 교외의 별장에서 부유한 생활을 하는 센트클 레어가 아편굴에 있었다는 사실부터가 이상해." 홈즈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센트클레어는 부자니까. 재산을 탐내는 나쁜 녀석들에게 납치된 게 아닐까 ?" "그럴지도 모르지. 그런데 아편굴에 있는 녀석들은 센트클레어를 본 일이 없다는거야. 물론 앉은뱅이 거지의 대답도 마찬가지였어. 그러자 부인이 이상한 예감이 들어 책상위에 있는 상자를 열어보니, 그 속에 집쌓기 장난 감이 들어 있었단 말야. 센트클레어가 선물로 사 오겠다고 약속한 장난감 이지." "그렇다면 센트클레어가 그곳에 있었다는 증거가 되는군." "음, 부인의 말을 듣고 경찰은 다시 삼층에 있는 방들을 이잡듯이 조사했 어. 그랬더니 방안쪽에 있는 커어튼뒤에 침대가 놓여 있고, 침대 머리맡에 창문이 하나 있었어. 그리고 창문 바로 밑은 양륙장(배의 짐을 육지로 운 반하는곳)이었어." "아무래도 수상쩍은 구조로군." "그래 형사들이 창문을 조사했더니. 창틀 군데군데에 피가 묻어 있었다는 거야." "뭐? 피가?" 와트슨이 놀라 소리쳤습니다. "창틀뿐만 아니라 자세히 보니 마룻바닥에도 피가 묻어 있었어. 형사들은 긴장하여 커튼을 힘껏 잡아당겨 보기도 하고, 침대의 요를 뒤집어 보기도 했지. 그랬더니 센트클래어의 물건들이 잇따라 나오질 않겠나. 구두, 양 말, 모자..... 그런데 양복은 없었네. 양복만은 그대로 입고 있었던 모양 이야." "홈즈, 이건 아무래도 살인 사건같아. 센트클래어는 살해되어 창문으로부터 바닷속으로 집어 던져진 거야." 하고 와트슨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음. 경찰도 살인사건으로 단정하고 수사를 폈어.그러나 범인은 잡히질 않 는거야." "경찰도 참 딱하군. 뭘 그렇게 우물쭈물하고 있는 거야?" "아냐, 이번엔 경찰도 제법 날쌔게 움직였어. 사건에 관계가 있음직한 녀석 들은 닥치는대로 붙잡아 조사를 했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센트클레어의 구두와 양말 따위가 발견된 이상, 범인은 그 집안에 있던 녀석일꺼야." "와트슨, 너무 흥분하지 말게. 자네 말대로 제일 수상한 녀석은 그 방에 있 던 앉은뱅이 거지야.녀석은 줄곧 삼층에 있었으니까. 그런데 난 그 거지에 대해서 조금은 알고 있어." 하고 홈즈는 이번에는 거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5. 앉은뱅이 거지.. "그 거지는 아주 험상뒜은 얼굴을 하고 있으며, 이름은 휴 부운이라고 하 지. 얼굴이 너무나 흉칙스러워 그 근처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야. 부운은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하루도 빠짐없이 거리 모퉁이에 앉아 몹시 더러운 모자를 앞에 놓고는 오가는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곤 있어. 나도 부 운의 가련한 모습을 종종 보곤 했어." "꽤 끈질긴 거지로군." "그게 본업이니까 하는 수 없을 거야. 하지만 와트슨, 거지라고 덮어놓고 무시할 순 없어. 그가 너무나 애처로운 모습을 하고 있으므로 지나가는 사 람들은 거의 모두가 동전을 던져 주는거야. 언젠가 내가 보고 있으려니까, 잠깐 사이에 모자가 가득 차곤 하더군." "부운은 그 돈으로 아편굴의 삼층에 세들어 살고 있는 셈이군. 그리고 남에 게 구걸한 돈으로 아편을 빨고, 앉은뱅이가 된 것도 아마 아편에 중독된탓 일꺼야. 틀림없어." "와트슨 자넨 그 거지가 아주 못마땅한 모양이로군." "못마땅하고말고! 하는 일 없이 남의 동정만 바라는 녀석이니까." "그러나 부운은 몹시 보기 흉한 얼굴을 하고 있어. 심한 화상을 입었는지 얼굴이 여기저기 일그러졌고, 입술은 휘말려 올라갔어. 그런 얼굴에 앉은 뱅이쯤 되면 일하려고 해도 써 줄 사람이 어디 있겠나? 결국은 구걸을 하 는 도리밖에 없는 거야." "자넨 거지를 무척이나 두둔하는군. 혹시 자네도 편안하게 먹고 살 수 있는 거지가 되고 싶은 건 아닌가? 자네는 변장술이 뛰어나니까 부운보다 더 애 처로운 거지로 둔갑할 수 있겠군그래." 와트슨이 이렇게 농담을 하자, 홈즈는 갑자기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입을 다물어 버렸습니다. "웬일이야, 홈즈? 설마 화가 난건 아니겠지? 이래봬도 난 자네 이야기를 진 지하게 듣고 있어." 하고 와트슨은 당황한 얼굴로 홈즈의 눈치를 살폈습니다. 그러자 홈즈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여보게 와트슨, 센트클레어를 마지막으로 본건 틀림없이 부운일꺼야. 부운 은 확실히 다른 거지들과는 달라. 머리가 좋거든. 지나가는 사람들이 놀려 대면 척척 말을 받아넘기는데 제법 재치가 있는 소리를 한단 말이야." "그렇다면 자넨 센트클레어를 죽인 범인은 부운일거라고 생각하나? 하지만 부운은 앉은뱅이야. 37살의 원기 왕성한 센트클레어가 앉은뱅이 거지 따위 에게 간단히 당할 수 있을까?" "와트슨 부운은 앉은뱅이라고는 하지만, 다리를 절면서 걸어다닐 수는 있을 정도라네. 다리가 부자유스러운것 이외에는 기운도 쓸 만하고 건장한 몸집 을 하고 있어. 자넨 의자이니까 잘 알겠지만. 팔다리가 부자유스러운 사람 은 다른 부분이 특별히 뛰어나거든. 그렇지 않나?" "그런 경우도 있긴 하지만, 부운을 직접 보지 않고는 뭐라고 단정할 수는 없네." 와트슨은 의사답게 신중하게 대답했습니다. "어쨌든 다음 이야기를 계속하게." "좋아, 이야기를 거슬러 올라가겠네. 창틀에 묻은 피를 보자 센트클레어 부 인은 기절해 버렸어. 그래서 경찰은 일단 부인을 마차에 태워 집으로 돌려 보낸 다음, 아편굴에서 얼쩡거리고 있는 녀석들은 모두 몸수색을 했어. 그 러나 단서가 될만한 것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지. 결국 다른자들은 모 두 풀려나고 경찰서까지 끌려간건 부운 혼자였어." "경찰도 부운을 제일 수상하게 생각했던 모양이로군." "음, 부운의 샤스 소맷부리에 피가 묻어 있었거든. 게다가 약손가락엔 심한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고 있었어. 그는 창틀에 묻은 것도 제 피라고 우겨 댄 모양이지만,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았어." "부운은 물론 다른 것에 대해서도 모른다고 딱 잡아떼었겠지?" "그는 아까도 말했지만 말솜씨가 뛰어난 사나이야. 경찰이 묻는 말에 대해 서도 능글능글하게 시치미를 떼어던 모양이야. '센트클레어 부인이 남편의 모습을 보았다니. 꿈이 아니면 환상이겠지요.' 하는가 하면, '도대체 센트 클래어라는 녀석은 어디 사는 말뼈다귀냐?'고 하면서 뿌루퉁해지기도 하 고, 아뭏든 만만치 않은 녀석이야." 그러자 와트슨은 갑자기 홈즈의 말을 끊었습니다. "잠깐! 아주 중요한 걸 한 가지 물어 보겠네." "뭔데?" "경찰은 창문뒤에 있는 양륙장을 조사하지 않았나? 바다속을 뒤졌다면 시체 가 나왔을지도 모르잖아?" "오, 과연 내 친구 와트슨이야! 멋진 질문이군." 홈즈는 과장된 말투로 이렇게 말하고는, 이야기를 계속 했습니다. "형사들이 열심히 조사를 하고 있는 동안, 바닷물은 썰물이 되기 시작했어. 이윽고 양륙장은 바싹 마른 연못같이 되었는데, 그곳에서 형사들은 센트클 레어가 입고 있었다던 양복 저고리를 발견했어." "양복 저고리를? 가벼운 양복 저고리가 어떻게 썰물에 휩쓸려 떠내려가지 않았을까?"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지. 그 저고리 호주머니에는 무거운 것이 잔뜩 들어 있었다네." "대체 무엇이 들어 있었길래?" "놀랍게도 호주머리란 호주머니에는 1페니짜리 동전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 어. 모두 합쳐 보니까 1페니짜리가 550개나 되었다더군. 그 정도의 동전이 들어 있었으니까 저고리는 물 속에 가라앉아 꿈쩍도 하지 않은거야." "음, 그랬었군." "난 동전이 가득 들어 있는 저고리가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시체는 틀림없이 썰물에 밀려 떠내려갔을 거라고 생각했네." "그러나 그의 구두나 샤스는 방안에 있었지 않아? 시체가 저고리만 입고 있 었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군." "아뭏든 센트클레어의 시체는 아무데서도 발견되지 않았어. 대체 시체는 어 디로 사라졌을까? 누구가 어떤 방법으로 센트클레어를 죽였을까?" 홈즈는 말을 끊고 어두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홈즈, 저고리 호주머니 속의 엄청난 동전은 어떻게 된 걸까?" "그건 부운이 구걸해서 모은 것이지." "그래? 그렇다면 부운은 애써서 모은 돈을 왜 센트클레어의 저고리에다 채 워 넣었지?" "문제는 바로 그 점이야. 부운은 그 동전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딱 잡아떼었 어. 구걸한 돈을 아무도 모르는곳에 숨겨 두었는데 누군가가 모조리 훔쳐 가 버렸다는거야." "골치 아픈 거지로군." "그래 결국 경찰은 손을 들고 말았어. 부운은 오래 전부터 거지 노릇을 하 고 있었지만 나쁜 짓을 저지른 적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야." "그렇다면 이 사건을 해결하려면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보는 도리밖에는 없 군." "그래서 나로서는 아편굴에 몰래 숨어들어가 조사해 보는 수 밖에 없었지. 도대체 센트클레어는 왜 그 아편굴에 있었을까?, 거기서 무엇을 하고 있었 을까?, 그는 과연 살해되었을까?, 거지 부운은 이 사건과 어떤 관계가 있 을까 하는 것들을 조사하려고 말이야." "그래서 그중 한 가지라도 알아 냈나?" "아냐, 전혀...." 홈즈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마차는 리이시의 별장 지대로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저기 불빛이 보이지? 저게 센트클레어의 저택이야. 그러데 부인을 대하기 가 좀 난처한걸. 반가운 소식을 갖고 오지 못했으니...." 홈즈는 센트클레어의 집 앞에 조용히 마차를 세웠습니다. 그러자 현관문이 활짝 열리며 센트클레어 부인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어서오세요. 홈즈씨. 무슨 단서라도 잡으셨나요?" "실망시켜드려서 매우 죄송합니다. 아직까지 아무런 단서도 잡지 못하고 있 습니다." "예...." 홈즈의 말에 무척 실망한듯 부인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고개를 숙였습니 다. "부인, 그 대신 아주 믿음직스러운 친구를 데리고 왔습니다. 와트슨이란 의 사인데 여러 번 저와 같이 사건을 해결한 친구입니다. 이번에도 많은 도움 이 될 겁니다." "정말 잘 오셨습니다. 와트슨씨." 하며 부인은 와트슨에게 악수를 청했지만, 얼굴 표정이 밝아지지는 않았습 니다. 와트슨은 부인이 매우 측은하게 느껴졌습니다. 불안과 공포와 슬픔에 젖어 있는 센트클레어 집안을 위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이 기묘한 사건을 해결해 주고 싶어졌습니다. 평화롭고 행복한 이 가정이 수수께끼같은 사건에 휘말 려 괴로움을 당한다고 생각하니 와트슨은 자기도 모르게 주먹이 불끈 쥐어 졌습니다. 6. 죽은 사람에게서 온 편지.. 친절한 센트클레어 부인은 밤참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홈즈와 와트슨은 몹시 배가 고팠으므로 맛있게 먹었지만, 풀이 죽어 있는 부인을 보니 목이 메었습니다. "부인, 홈즈는 오늘 좋은 소식을 가져오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나쁜 소식을 가져온 것도 아닙니다. 아직 희망은 있습니다." 와트슨이 이렇게 말하자. 부인은 스스로를 안심시키려는 듯 고개를 끄덕였 습니다. "정말 그렇군요. 나쁜 소식이 없다는 것으로 그런대로 위안이 되어요. 홈즈 씨에게 너무 무리한 부탁을 드려서 죄송하군요. 하지만 전 홈즈씽가 힘이 되어 주시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해요." "간단한 사건이지만, 아직 이렇다 할 단서가 잡히지 않아 어디서부터 손을 대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며 홈즈는 천천히 홍차를 마셨습니다. "홈즈씨.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저는 무슨 일이 일어난다 해도 이젠 절대로 당황하지 않겠어요. 설령 남편의 신상에 최악의 상태가 일어났다고 해도 말이어요. 그러니 제가 묻는 말에 사실대로 대답해 주세요." "좋습니다. 뭐든지 물어 보십시오." "홈즈씨, 당신은 제 남편이 아직 살이 있다고 생각하셔요? 솔직하게 말씀해 주세요." "그건 현재로서는 아직...." 홈즈도 이 질문에는 매우 난처한 듯 입 속으로 우물쭈물하고 말았습니다. "숨기지 말고 이야기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러면 저의 진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홈즈는 부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이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센트클레어씨가 살아 있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습니다." 그러자 부인의 창백한 얼굴은 더욱 파랗게 변했습니다. "그렇다면 홈즈씨는 그이가 죽었다고 생각하시는군요?" 그때 와트슨이 재빨리 말을 받았습니다. "부인, 홈즈의 말은 센트클레어씨가 살아있다는 증거도 없지만 죽었다는 증 거도 없다는 뜻입니다." "와트슨씨, 저에게 위로의 말씀은 하지 않으셔도 되요. 홈즈씨, 그럼 그이 는 살해당한 걸까요?" 부인은 뚫어지게 홈즈를 쳐다보며 물었습니다. "그것도 확실히는 알 수 없습니다. 좀더 조사해 봐야겠습니다." "살해되었다면 언제쯤이었을까요?" "월요일이겠지요. 부인께서 아편굴에서 그이 모습을 언뜻 보신 다음일 겁니 다." "오늘이 금요일이니까, 벌써 닷새가 지났군요.그런데 그이가 월요일에 죽었 다면 오늘에야 이런 편지가 올 리가 없어요. 죽은 사람한테서 편지가 왔다 는 말을 들어 본 일이 있으셔요?" "아니, 뭐라고요? 센트클레어씨로부터 편지가 왔습니까?" 홈즈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와트슨도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숨을 죽였습니다. 와트슨은 부인의 정신이 이상해진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랬동안 괴로움을 당하면 정신이 이상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인은 냉정했습니다. 얼굴빛은 창백했지만 눈빛이나 목소리, 그리 고 그들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도 미친 사람 같지는 않았습니다. 부인은 어리둥절해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차분한 목소리로, "보셔요, 이게 오늘 그이한테서 온 편지입니다." 하며 한 통의 편지를 내 보였습니다. 홈즈는 편지를 받아 들자마자 탁자위에 펼쳐 놓더니, 눈을 번뜩이며 들여다 보기 시작했습니다. 7. 남편과 아내.. 봉투는 좀 구겨졌지만, 소인은 읽을수가 있었습니다, 스윈덤 골목 근처에 있는 우체국에서 보낸 것이었습니다. "겉봉의 글씨는 매우 서투르군. 부인, 이건 센트클레어씨의 글씨가 아니지 요?" "예, 하지만 편지 내용은 분명히 남편이 쓴 것이어요." "겉봉의 글씨는 누구의 것인지 짐작되는 사람이 없나요?" "누가 썼는지 통 모르겠어요." 그러자 홈즈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습니다. "흠, 이름을 먼저 쓴 뒤에 이 집 주소를 썼군." "어머, 그걸 어떻게 아시지요?" "이것 보십시오, 이름은 잉크 색깔이 진하지요? 쓴 다음에 저절로 잉크가 말랐지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소는 글자가 희미하지요? 압지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이름과 주소를 단번에 쓰고 압지로 눌렀다면 이름만 진하게 될 리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것이 무슨 단서가 될까요?" "되고 말고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사건을 푸는 중요한 실마리가 될 수 있습니다. 이 겉봉을 쓴 사람은 먼저 당신의 이름을 쓰고 펜을 내려놓은 다음, 당신의 주소를 묻거나 조사를 해서 나중에 적어 넣은겁니다." "그이는 왜 겉봉을 딴사람에게 쓰게 했을까요?" "아뭏든 편지를 읽어 봅시다." 그런데 홈즈는 편지를 펼치면서, "아니, 부인! 봉투속에 편지외에 뭐 다른게 들어 있지 않았나요?" 하고 물었습니다. "예, 사실은 반지가 들어 있었어요. 그이의 이름이 새겨진 반지 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편지는 센트클레어씨가 쓴 게 틀림없군요." "급히 서두른 듯 갈겨쓰긴 했지만, 이건 틀림없는 제 남편의 글씨입니다. 글씨체가 독특하여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부인은 자신있게 말했습니다. 홈즈는 소리를 내어 편지를 읽었습니다. 여보, 내 일일랑 조금도 걱정하지 마시오. 우연히 묘한 사건에 말려들었 지만, 멀지 않아 해결 될 거요. 일이 까다롭게 된 것은 내 실수였소.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려 주구료. 정말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센트클레어 "어떤 책의 겉장에 붙은 흰 종이를 뜯어서 쓴 모양이군. 연필로 갈겨 쓴 걸 보니 무척 서두른 것 같아. 그리고 편지를 우체통에 넣은자는 엄지손가락 이 더러워져 있군. 담배를 질겅질겅 씹으면서 봉투에 풀칠을 한 자국도 있 어." 이렇게 중얼거리던 홈즈는 부인을 향해 다지하듯 물었습니다. "부인, 다시 한 번 확인하려는 건데, 이 편지의 글씨는 정말 센트클레어씨 으 글씨인가여? 혹시 잘못 보신건 아니겠지요?" "홈즈씨, 저를 믿어 주세요. 저는 센트클레어의 아내 입니다. 남편의 글씨 를 잘못 볼 리가 없어요." "그렇다면 부인. 기뻐하시기엔 아직 이를지는지 모르지만, 센트클레어씨는 살아 계신 것 같습니다. 우리들과 경찰의 눈을 속이기 위해서 누군가가 교 묘하게 가짜 편지를 썼다면 이야기는 달라 지겠지만 말입니다." "가짜 편지는 절대로 아니어요." 부인은 한사코 우겨댔습니다. 그러자 와트슨이 몹시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그러나 봉투의 글씨가 다른 것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는군요. 여보게 홈 즈, 센트클레어씨가 월요일에 쓴 편지를 어떤자가 오늘에야 부친 게 아닐 까?" "음, 그렇게 생각하면 센트클레어씨가 과연 지금도 무사할지 모르겠는걸." 홈즈도 염려스러운듯이 말했습니다. 그때 부인이 두 사람의 말을 가로막으며 나섰습니다. "아니어요, 두 분께서 뭐라고 하셔도 제 남편은 무사해요. 전 그이가 살아 있다는걸 알고 있어요. 남편과 저는 이상스럽게 마음이 늘 통하고 있어요.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무슨 일이 생기면 서로가 육감으로 알 수가 있 어요. 월요일 아침에도 그이는 면도를 하다가 얼굴을 다쳤습니다. 그때 전 아래층 부엌에 있었는데 퍼뜩 불길한 예감이 들어 세면장으로 뛰어들어갔 어요. 그런 조그마한 일이라도 예감으로 알수 있는데, 하물며 그이가 살아 있다는 걸 왜 모르겠어요?" 홈즈와 와트슨은 한동안 어리둥절해 있었습니다.이윽고 홈즈가 부드러운 목 소리로 말을 건넸습니다. "부인의 이야기는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센트클레어씨는 살아서 편지까지 쓸 수 있는데 어째서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까요?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군요. 남편은 왜 돌아오지 않을까요?" 부인은 또다시 풀이 죽었습니다. "그날 집을 나갈때 센트클레어씨는 별다른 말이 없었나요?" "예, 여느때처럼 명랑한 얼굴이었어요." "그분은 전에 스윈덤 골목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었나요?" "그런 불결한 거리에 대해서는 한번도 입에 담은 적이 없었어요."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묻겠습니다. 센트클레어씨는 혹시 아편을 피우지 않 았나요? 솔직하게 대답해 주십시오." "그건 당치도 않은 말씀이세요. 그이는 무척 가정적이고 착실한 분입니다." 하고 센트클레어 부인은 약간 뽀로통해져서 대답했습니다. "여러가지로 정말 고마왔습니다. 실례되는 질문에도 부인께서 성의꺼서 대 답해 주셔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내일쯤은 모든게 해결될 것 같습니 다. 그럼 안녕히 주무십시오." 홈즈는 매우 기분이 좋은 듯 밝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와트슨, 우리도 푹 자 두세, 내일은 바빠질 테니까." 하고 와트슨을 재촉하여 침시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홈즈는 침대에 눕기는 커녕 책상앞에 앉아 담배를 물고 깊은 생각에 잠겨 버렸습니다. 날카롭게 빛나는 홈즈의 눈초리는 천장의 한 곳을 궤뚫을 듯 노려보았습니다. 그는 정밀한 기계처럼 머리를 작동시켜, 사건 추리에 몰두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8. 새벽길.. 와트슨은 잠결에 누군가가 자기를 부르는 소리를 어렴풋이 들었습니다. 잠 에 취한 눈을 겨우 뜨니 눈부시니 아침 햇살이 침실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 습니다. "와트슨, 이제 그만 일어나게." 그것은 다름아닌 홈즈의 목소리였습니다. "으음, 알았어." 와트슨은 그제서여 몸을 일으키며, "자넨 결국 밤샘을 했나?" 하고 홈즈를 바라보았습니다. "사건에 대해 이것저것 생각하는 동안 날이 새어버렸네." 홈즈는 태연한 얼굴로 대답했습니다. 그는 어젯밤과 같은 자세로 책상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담배는 거의 바닥 나 있었습니다. "놀랐는걸. 한잠도 안잤는데도 얼굴빛이 좋군." 와트슨은 침대에서 내려와 창문을 열었습니다. 상쾌한 아침공기가 흘러들어와서 자욱한 담배 연기를 밖으로 날려버렸습니 다. "자, 와트슨. 잠이 달아났으면 곧 떠날 차비를 하게. 한달음에 런던까지 마 차를 몰 테니까." "뭐, 런던으로?" 와트슨은 뜻밖이라는 듯이 시계를 바라보았습니다. 해가 막 떠올랐을 뿐 아 직 5시도 되지 않았습니다. 홈즈는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습니다. "와트슨, 집안 사람들은 아직 자고 있어. 하지만 마차는 당장 꺼낼 수 있 어. 마차로 달리면서 시골 아침의 상쾌함을 마음껏 즐기도록 하게." 홈즈는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습니다. "자넨 드디어 수수께끼를 풀었군 그래." 와트슨은 이렇게 말하면서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습니다. 밤새도록 생각해도 제대로 생각이 정리되지 않을때, 홈즈는 눈에 핏발이 서 고 무서운 얼굴이 됩니다. 그러나 얼굴에 생기가 넘쳐흐르면 사건의 실마리 를 잡았다는 증거입니다. "홈즈, 준비가 다 됐어." "그럼 출발하세. 갈 길이 급하니까 아침 식사는 뒤로 미루지." "좋아." 두 사람은 집안 사람들이 깨지 않도록 발소리를 죽여 가며 밖으로 나왔습니 다. 그리고는 말이 시끄럽게 굴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마차를 밖으로 끌어냈 습니다. 마차는 맹렬하게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런던을 향해 달려가는 마차를, 밭에서 일하던 농부들이 우두커니 바라보았 습니다. 새벽같이 일어나 드에 나온 농부들 외에는 인적이 없어 시골길은 한없이 고요했습니다. "홈즈, 자네에게 뭘 좀 물어봐도 좋겠지?" 흔들리는 마차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애쓰며 와트슨이 입을 열었습니다. "혀를 깨물지 않도록 조심하게." 홈즈가 채찍질을 하면서 대꾸했습니다. 맹렬한 속력으로 달리는 마차는 풍랑이 심한 바다의 조각배처럼 몹시 흔들 렸습니다. "이렇게 이른 아침에 도대체 어딜 가는거야?" "앉은뱅이 거지가 갇혀 있는 경찰서 유치장으로 직행하는거야." 마차가 너무 빨리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말소리는 덜덜 떨리는 것처 럼 들렸습니다. "범인은 역시 부운이었군그래." "범인이 아니야. 사건의 주인공이지." "난 바보였어. 그러나 오늘 새벽에 목욕을 하다가 문득 해결의 실마리를 잡 았어." "그 실마리라는 게 어떤건가?" "목욕용 솔 말이야. 지금 내 주머니에 들어 있어." "뭐, 솔이라고?" "음, 이 솔로 그 이상한 수수께끼를 문질러서 벗겨 줄거야." 어느덧 마차는 런던 시내로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거리는 아직도 잠에서 깨어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별안간 무시무시 한 기세로 달려온 마차를 보고 경찰서 문앞에 서 있던 순경은 깜짝 놀랐습 니다. "아니, 홈즈씨로군요? 아침부터 웬일이십니까?" "급한 볼일이 있어서 왔소. 당직은 누구요?" "브래드스트리트경감 이십니다." 그때 벌써 요란한 마차소리를 듣고 브래드스트리트경감이 현관에 모습을 드 러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경감님? 의논할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홈즈는 마차에서 뛰어내리며 말했습니다. "예.좋습니다, 내 방으로 가시지요." "아니오, 곧 부운을 만나게 해 주십시오. 샌트클레어 실종 사건에 관련된 혐의로 체포된 사나이 말입니다." "그래요? 좋습니다. 이리로 오십시오." 9. 거지의 얼굴.. 유치장은 지하실에 있었습니다. 벽은 새하얗게 칠해져 있고, 등불이 환하게 켜져 있어서, 무척 밝고 깨끗해 보였습니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경감이 입을 열었습니다. "부운은 아직 자고 있을겁니다. 여기는 교도소와 달라서, 범인이라는게 밝 혀질 때까지는 아무리 수상한 사람이라도 함부로 다룰수 없습니다. 날마다 목욕도 할 수 있지요. 호텔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부운이 말썽을 피우지 않습니까?" "예, 아주 얌전합니다. 그러나 지저분한 데는 질렸습니다. 그렇게 더러운 녀석은 본 적이 없으니까요. 녀석은 목욕은 커녕 세수도 하지 않습니다. 사정사정해서 간신히 손만 씻겼지만 얼굴에는 땟국이 줄줄 흐릅니다." 이윽고 경감은 커다란 철문을 열고, 똑같은 방들이 줄지어 있는 복도로 두 사람을 안내했습니다. "홈즈씨,이 방입니다. 보십시오, 무사 태평이군요. 깊이 잠들어 있습니다." 부운은 얼굴을 문쪽으로 향한 채 코를 골고 있었습니다. 경감의 말대로 부운은 너무나 더러웠습니다. 생전 목욕탕에는 들어간 적이 없는 것처럼 온몸이 때투성이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얼굴은 더욱 흉측스럽 게 보였습니다. 눈에서부터 턱까지 찢어진 상처는 허옇게 부풀어 있었으며, 웃입술이 삐뚜름하게 휘말려올라가는 바람에 이빨3개는 금방이라도 상대방 을 물어 뜯으려는듯이 드러나 있었습니다. 또한 몽당비 같은 붉은 머리카락 은 이마와 눈을 내리 덮고 있었습니다. "과연 지저분하기 짝이 없군요. 내 그럴줄 알고 세수를 시켜 주려고 도구를 갖고 왔지요." 홈즈가 속삭이듯 말했습니다. "세수를 시킨다고요?" "예, 이걸로 벅벅 문질러서 저 녀석을 아주 멋장이로 만들어 놓을 작정이 오." 홈즈는 주머니에서 솔을 꺼내 보이며 뜻깊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아니, 그건 목욕용 솔이 아닙니까? 참 재미나는 일이 벌어질 것 같군요." 경감은 호기심에 찬 얼굴로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럼 이 문을 열어 주십시오. 녀석이 깨지 않게 말입니다." 경감은 조심스럽게 열쇠를 돌려 문을 열었습니다. 홈즈는 숨을 죽이고 부운 에게 다가갔습니다. 홈즈는 솔을 물에 적시더니 부운의 얼굴을 벅벅 문질렀습니다. "아아......" 부운은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나더니. "도대체 무슨 짓이야!" 하고 화를 버럭 냈습니다. 그는 무척이나 아팠던지 두 손으로 얼굴을 어루만졌습니다. "센트클레어씨, 이제 연극은 집어치우시오. 더 이상 소란을 피우면 해롭습 니다." 홈즈가 위협하듯 말했습니다. 와트슨과 경감은 부운의 얼굴을 본 순간 "앗!" 하고 동시에 소리쳤습니다. 부운의 더럽기 짝이 없던 얼굴은 껍질이라도 벗긴 것처럼 하얗게 변해 있었 습니다. 더러운 땟국도 무서운 흉터도 없어지고, 비뚤어진 입술도 자취를 감추었으며, 빨간 머리카락도 검게 변해 있었습니다. 지금 침대에 앉아있는 사람은 앉은뱅이 거지가 아니라 창백하고 슬픈듯한 얼굴의 품위 있는 사나 이였습니다. 사나이는 눈을 비비며 두리번거리다가 문득 모든것을 깨달았는지 '앗!'하며 베게에 얼굴을 파묻었습니다. "경감님, 소개하지요. 이분이 바로 수수께끼처럼 행방불명이 된 센트클레어 씨입니다." "아니, 뭐라고요?!" "대체 어떻게 된일인가?" 경감과 와트슨은 너무나 어이가 없었으므로 신음소리를 냈습니다. "자세한 것은 센트클레어씨 스스로가 아야기해 줄걸세. 자, 센트클레어씨. 연극은 이제 끝났습니다. 남은 일은 당신의 설명을 듣는것 뿐입니다." 홈즈의 말에 센트클레어는 모든것을 체념한듯 얼굴을 들었습니다. 10. 누더기를 쓰고.. "여러분,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센트클레어는 얼굴을 붉혔습니다. 그러자 홈즈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정말 교묘하게 변장을 하고 있었군요. 옛날에 배우였나요?" "아닙니다. 신문기자였습니다." "호오, 신문기자까지 하신 분이 어째서 거지 흉내를 냈습니까? 하마터면 당 신은 당신을 살해한 죄로 사형을 당할 뻔했어요. 지금은 거지 부운과 센트 클레어씨가 같은 인물이라는게 밝혀졌으므로 범죄사건으로 취급되진 않겠 지만...." "홈즈씨, 이건 범죄는 되지 않지만, 세상을 소란케 하고 부인을 걱정시켰으 며 우리 경찰을 희롱했다는 점에서 용서할 수 없습니다." 브래드스트리트 경감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경감님, 저는 어떤 벌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거지 노릇을 했다는 것만은 비밀로 해 주십시오. 저는 교도소도 좋고 그보다 더 한 사 형대 위라도 서겠습니다. 그러나 이 수치스러운 비밀만은 제 아이들에게 제발 감추어 주십시오. 그애들이 가엾어서 그럽니다.뻔뻔스러운 부탁인줄 은 잘 알지만....." 샌트클레어는 경감에게 애원하다시피 말했습니다. 그러자 홈즈가 말을 받았 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경감님은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지만, 마음씬 비단결같이 고운 분입니다. 틀림없이 당신의 부탁을 들어 주실 겁니다. 그런데 무슨 까닭으로 당신은 창피스로운 거지 노릇을 하게 되었습니까?" "아까도 말씀드린것처럼 저는 어느 일간지의 기자였습니다. 어느날 저는 편 지장의 명령으로 거지에 대한 기사를 연재하게 되었습니다." "아. 그래서 당신은 거지 생활을 실제로 하면서 경험담을 곰군요?" "그렇습니다. 전 어떤 배우에게 변장술을 배워 살색 반창고로 입술을 말아 올려 비뚤어직 하고, 그림물감을 얼굴에 발라 징그러운 흉터를 만들었지 요. 그리고 가발을 쓰고 누더기를 걸치니 영락없는 거지가 되었습니다. 그 리하여 재미있는 읽을거리를 신문에 연재했습니다. 그 기사는 매우 인기를 끌었으므로 편집장도 칭찬을 해 주더군요." "그러고보니 나도 몇년전에 당신이 쓴 거지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납니다." 하고 와트슨이 말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때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거지가 엄청난 돈 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첫날부터 제 모자 속에는 겨우 5,6시간 동안에 무려 26실링 4펜스난 되는 돈이 모였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땅바닥에 앉아서 굽실거리고만 있기만 하면 얼마든지 돈이 쏟아져 들 어오는 것입니다." "호오, 그렇게 벌이가 좋은줄은 미처 몰랐는걸, 내 월급쯤은 열흘이면 벌수 있겠군그래." 하고 경감이 흥미를 보였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그 무렵 저는 일주일에 2파운드의 급료를 받고 있었습니 다. 그런데 거지 노릇을 해보니 그렇게 힘든 일을 하면서 쥐꼬리 만한 급 료를 받고 있다는게 어리석은 일로 생각 되었습니다." "그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아무리 적은 액수라도 착실히 일해서 번 돈과 빈 둥거리며 편안히 앉아서 번 돈은 값어치가 달라요." 홈즈가 못마땅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부끄럽습니다. 그런데 그 무렵 저는 친구의 빛 보증을 섰다가 잘못되어 25 파운드의 빛을 떠맡게 되었습니다. 정상적인 수입만으로는 도저히 25파운 드의 돈을 마련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 좋지 못한 짓인줄 알면서도 거지 노릇을 해서 돈을 모았습니다. 그 빛은 열흘만에 깨끗이 갚을 수 있 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는 그만 거지 노릇에 재미를 붙이게 되었습니다. "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당신은 정신마저 거지가 되어 버린 겁니다." 홈즈가 내뱉듯이 차갑게 말하자, 센트클레어는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이제와서 이러쿵저러쿵 말해 보았자 무슨 소용이 있겠소. 그보다는 아편굴 과 당신과의 관계를 설명해 주실까요?" "예, 아편굴의 삼층방은 제가 거지로 둔갑하기 위해 세들어 있었던 곳입니 다. 집을 떠날때는 멋진 양복을 입고 나와서, 그곳에서 흉측스러운 거지로 변장했습니다. 제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은 아편굴의 주인인 인도인 한 사 람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충분히 방값을 치렀으므로 비밀이 폭로될 염 려는 없었습니다." "그런 녀석들은 돈만 주면 무슨 짓이든 하지요. 어서 다음 이야기를 계속하 십시오." 홈즈의 재촉을 받자 센트클레어는 괴로운듯이 말을 이었습니다. 11. 부끄러운 비밀.. "신문사를 그만두고 완전히 거지가 된 저는, 가련한 몰골로 남의 동정을 받 으며 잔돈을 긁어모았습니다. 재수가 없는날도 하루에 2파운드는 벌 수 있 었습니다. 신문기자가 일주일동안 열심히 일해서 받는 급료를 거지는 편안 히 앉아서 하루에 모을수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저는 분장술도 뛰어나고 재치있게 대꾸할 수 있는 말재주도 있어서 어느결에 런던의 명물거지가 되 었습니다. 물론 돈벌이는 더욱 좋아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리이시에다 저 택을 사들여 결혼까지 했던 것입니다." 와트슨과 경감은 '휴유!'하고 한숨을 크게 내쉬었습니다. "부인과 아이들은 당신이 거지 노릇을 하고 있다는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습 니까?" 홈즈가 물었습니다. "아내도 아이들도 제가 런던의 몇몇 회사를 상대로 훌륭한 사업을 하고 있 다고 믿고 있습니다. 교외에 있는 훌륭한 저택에서 부유하게 생활하고 있 으므로, 설마 내가 거지 노릇을 하고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의심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당신은 월요일에 우연히 부인에게 들키고 말았군요?" "그렇습니다. 그날은 다른 날보다 특별히 돈벌이가 잘 되었으므로 일찌감찌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아편굴 삼층 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었습니다. 그 러다가 문득 창밖을 내다보니, 아내가 이쪽을 바라보고 서 있질 않겠습니 까! 저는 너무나 당황해서 '앗!'하고 외치면서 두 순으로 얼굴을 가렸지 만, 아내는 저를 알아보고 말았습니다. 저는 재빨리 인도인에게 돈을 주 어,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삼층으로는 절대로 들여보내지 말아달라고 부탁 했습니다." "아.그래서 인도인은 부인을 내몰았군요." "아내에게는 미안한 일이었지만, 저는 제 비밀을 지키는데 급급했습니다. 제가 거지 노릇을 하고 있다는걸 알면, 아내는 자살해 버릴지도 모릅니다. 또 아이들은 세상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어 평생동안 손가락질을 면치 못 할 것입니다. 저는 인도인이 아내를 쫓아내고 있는 동안에 재빨리 양복을 벗어 던지고 다시 거지로 변장했습니다. 그집은 몸을 숨길데가 전혀 없기 때문에 그 수 밖에 없었습니다." "부인이 형사들을 데리고 갔을때는 당신은 가발을 쓰고 그림 물감을 칠한 후 였군요?" "예, 눈깜짝할 사이에 완전한 거지가 된 거죠. 그런데 벗어 놓은 옷가지들 때문에 들키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저고리를 창밖으로 내던졌습니다. 저고 리 주머니에는 그날 구걸해 모은 돈이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너무 당황하여 서두르다가 창틀에 손을 다쳐 피를 흘렸습니다." "음, 핏자국을 보고 형사들은 살인 사건이라고 단정을 내렸군." "그런데 구두와 샤스 따위를 미처 버릴 겨를도 없이 형사들이 우르르 몰려 왔습니다. 아이들에게 선물할 집쌓기 장난감을 그대로 둔 것도 큰 실수였 습니다. 그래서 저는 틀림없이 정체가 탄로날 것이라고 체념하고 있었는 데. 다행히도 정체가 탄로나는대신 센트클레어를 살해한 혐의를 받게 되었 습니다." "결국 당신은 엄청난 소란만 피운 셈입니다.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니까, . 그때 모든걸 털어 놓았더라면 좋았을게 아니오?" "용기가 없었습니다. 구걸을 해서 돈을 벌었다는 사실을 아내와 아이들이 알게 될 까봐 두려워 견딜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차피 이렇게 된 이 상, 사건의 열기가 식을 때까지 그럭저럭 얼버무리려고 결심했습니다. 그 동안 아내가 걱정하지 않도록 편지에 반지를 넣어 인도인에게 부쳐 달라고 부탁해 두었죠." "그 편지는 어제서야 부인에게 배달되었습니다." "아니,어제라고요?!" "인도인은 줄곧 경찰의 감시를 받고 있었으니까 좀처럼 편지를 부칠 틈이 없었을 겁니다. 덕분에 난 이사건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었지요." "죄송합니다." "당신, 죄송하다는 말 한 마디로 간단히 끝날 문제가 아니오." 경감이 엄숙한 목소리로 윽박질렀습니다. "그 동안 고생한 걸 생각하면 당신은 단단히 벌을 받아야 하겠지만, 홈즈 씨의 부탁도 있고하니 이번만은 너그럽게 봐 주겠소. 하지만 이 기회에 거 지 노릇을 집어치우지 않으면, 당신일을 세상에 폭로하겠소." "경감님, 홈즈씨. 그리고 와트슨 선생님. 이 자리에서 맹세하겠습니다. 아 내와 아이들에게서 참으로 존경받는 인간이 되겠습니다." 센트클레어는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가족한테도 이번 일은 비밀로 해주겠소." 경감은 한쪽눈을 찡긋 하더니 홈즈를 향해 말을 건넸습니다. "그러면 센트클레어 실종사건은 이걸로 완전히 해결된 것으로 합시다. 그런 데 홈즈씨. 당신의 솜씨는 소문댈 놀랍군요. 저에게도 명탐정의 비결을 좀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자 와트슨이 경감의 말을 받았습니다. "명탐정이 되는 비결이란 알고보면 정말 간단합니다. 밤새도록 뜬눈으로 앉 아서 천장을 잔뜩 노려보며 담배를 뻑뻑 피워대면 됩니다." "예? 뭐라고요? 하하하....." 경감은 멍청한 얼굴로 되물었으나 이내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홈즈와 와트 슨, 그리고 부운 아니, 센트클레어까지도 유쾌하게 웃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