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푸른 홍옥 ? 코난 도일.. 1. 모자와 거위.. 나는 크리스마스 이틀 뒤, 명절 인사도 할 겸 아침에 홈즈를 찾아갔다. 홈즈는 자주색 가운을 입고 소파에 기대어 있었는데, 오른팔이 닿는 곳에는 담뱃 대걸이가 있고, 그 바로 옆에는 방금 읽다가 놓은 듯한 구겨진 신문이 산더미처 럼 쌍여 있었다. 그리고 소파옆에 있는 나무 의자의 등받이 모서리에는 군데군데 흠집이 난 낡아 빠진 중절모가 걸려 있었다. 의자 위에 확대경과 핀셋이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중절모는 검사하기 위해 의자에 걸어 놓은 것 같았다. "일하고 있는 모양인데, 방해가 됬나보군." "아니야, 관찰 결과를 의논할 상대가 생겨서 반가운걸. 이건 아주 하찮은 사건과 관계된 물건이지만, 이런 것도 조사해 보면 흥미롭고 또한 배울 점도 있는 거라 네." 나는 의자에 앉아서 활활 타오르는 불에 손을 쬐었다. 짙은 서리가 내린 추운 날 씨로 창문에는 두텁게 성에가 끼어 있었다. "그렇다면 흔히 볼 수 있는 이 모자가 무서운 사건에 얽혀 있는 모양이군. 그래 서 자네는 이 모자를 단서로 하여 사건을 풀고 범죄를 밝혀내려는 거겠지." 홈즈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니야, 범죄와는 상관없어. 런던에는 4백만이나 되는 사람들이 좁은 땅덩이에 한데 몰려 살고 있으니까 범죄사건이 끊임없이 일어나지만, 범죄와는 상관없는 묘한 사건도 자주 생긴다네. 이번 일도 확실히 범죄와는 상관없다네. 자네도 우 편 배달부인 피터슨을 알고 있지?" "응, 알고 있어." "이 모자는 그 사람이 주워 온 거야.모자 임자가 누군지는 모른다네. 그런데 자 네, 이 모자를 단지 낡아 빠진 모자라고 생각지 말고 머리를 써서 잘 살펴보게 나. 우선 이 모자가 여기에 오게 된 내력을 말해 주지. 이 모자는 크리스마스날 아침에 살찐 거위 한마리와 함께 이곳에 왔다네. 지금쯤 그 거위는 피터슨네 집 에서 구워지고 있겠지만. 사정은 이러하다네. 피터슨은 자네도 알다시피 고지식한 사람이 아닌가. 그는 크리스마스 이브를 친 구들과 어울려 즐기다가 새벽 4시경 집으로 돌아가려고 토튼햄 재판소 앞길을 지나가는데, 가로등 불빛으로 앞에 걸어가는 사람이 보였다네. 하얀 거위를 어 깨에 둘러맨 키가 큰 사나이가 약간 비틀거리며 걷고 있었다는군. 그런데 구지 가 모퉁이에 이르렀을때 그 사나이와 불량배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네. 불량배 중 한 녀석이 모자를 쳐서 떨어뜨리자, 그 사나이는 맞서 싸우려고 지팡이를 머 리 위로 휘두르다가 그만 뒤에 있는 가게 유리창을 깨뜨렸단 말이야. 피터슨은 모르는 사람이지만 불량배들로부터 구해 주려고 뛰어들려고 했는데, 그 남자는 유리창을 깨뜨리고 놀란 터라 제복을 입은 피터슨을 경찰로 잘못 알고는, 거위 도 내팽게치고 토튼햄 재판소 거리와 이어진 미로 같은 골목길로 도망쳐 버렸다 는 거야. 불량배들도 피터슨을 보고 도망쳐 버려서, 결국 피터슨 혼자 싸움터를 점령한 꼴이 되었고, 이 낡은 모자와 나무랄 데 없는 크리스마스용 거위를 전리 품으로 얻게 된 거라네." "그래, 그것을 주인에게 돌려 주었나?" "그게 문제란 말이야. 거위 왼쪽 다리에 '헨리 베이커 부인'이라고 쓰여진 카드 가 달아 매어져 있었고, 모자 안에는 HB라는 머리글자가 새겨져 있었지만 런던 에는 베이커라는 성을 가진 사람이 수천명이나 되고, 헨리 베이커라는 이름도 수백 명이 되니까, 습득물을 돌려준다는건 쉬운일이 아니라네." "그래서 피터슨은 어떻게 했나?" "내가 아무리 하찮은 사건이라도 흥미 있어 하는걸 알고, 크리스마스날 아침 여 기로 모자와 거위를 갖고 왔다네. 거위는 오늘 아침까지 두었는데, 아무리 날씨 가 차다 해도 상하기 전에 빨리 먹어 버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피터슨 보고 가져가라고 했네. 그러나 멋진 크리스마스 요리를 못 먹게 된 그 신사의 모자는 내가 아직도 맡고 있는 형편이라네." "신문에 찾는 광고가 안 나왔던가?" "없었어." "그렇다면, 어디 사는 누군지 전혀 모르는 것이로군." "추리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는 거지." "이 모자에서 말인가?" "그렇지." "농담 말게. 이 낡아 빠진 모자로부터 도대체 무얼 알아낼 수 있단 말인가?" "여기 확대경이 있네. 내 방법을 자네는 알고 있겠지. 이 모자를 썼던 남자의 특 징에 관해서 자네가 추측한 바를 들려주지 않겠나?" 나는 낡은 모자를 손에 들고 이리저리 돌려 가며 살펴보았다. 흔히 있는 둥근 모 양의 검은 중절모로, 오래 써서 몹시 망가져 있었다. 안감은 붉은 비단이었는데, 그것도 상당히 빛이 바래어 있었다. 제조 회사의 이름은 없었고, 한쪽 귀퉁이에 HB라는 머리글자만이 휘갈겨 써 있었다. 모자 챙에는 붙들어 매는 끈을 꿰는 구 멍은 있었으나, 고무줄은 붙어 있지 않았다. 여러 군데 금이 가고 몹시 먼지가 끼어 있었으며, 얼룩이 져서 퇴색된 부분을 잉크칠로 감추려고 한 흔적도 보였 다. 나는 모자를 홈즈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아무것도 알 수 없는데.." "그렇지 않아, 와트슨. 자네는 모든 걸 보았네. 단지, 그 본 걸 가지고 추리를 하지 않는 것 뿐이야." "그렇다면 자네는 이 모자로부터 어떤 결론을 얻어냈는가?" 홈즈는 모자를 집어 들고 한참 동안 바라보더니 말했다. "모자가 너무 낡아서 좀 어렵겠지만, 그래도 두세 가지는 확실하게 장담할 수 있 고, 그 밖의 것도 십중팔구는 들어맞으리라고 생각하네. 이 모자 임자는 상당히 머리가 좋고, 지금은 생활이 궁핍하지만 2-3년 전만해도 꽤 넉넉했을 거야. 원래는 준비성도 있고 깔끔한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정신적으 로 해이해져 있는 것 같아. 아마도 몰락한 뒤로 술을 자주 마시게 되었나 보 네. 아내가 그를 사랑하지 않게 된 것도 그 때문인것 같네." "생각나는 대로 아무렇게나 말하는 건 아닌가?" 홈즈는 내 항의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말을 계속했다. "그러나 아직 어느 정도의 자존심은 남아 있네. 그는 앉아서 일을 하며, 별로 외 출을 하지 않고, 운동은 전혀 하지 않네. 나이는 중년으로 반백이 된 머리를 며 칠 전에 깎았으며, 라임이 섞인 크림을 바르고 있어. 그리고 그의 집에 가스 시 설이 없는 것도 거의 확실할 거야. 이 모자로부터 알아낼 수 있는 건 이정도라 네." "모두 농담이겠지." "농담이라니, 천만에. 이렇게까지 말해 주었는데도 자네는 어떻게 이런 결론에 도달했는지 모르겠단 말인가?" "그렇다네. 내가 우둔하다는 건 사실이지만, 솔직히 말해서 자네 말을 조금도 이 해하지 못하고 있네. 그 사람의 머리가 좋다는건 어떻게 추측한 건가?" 홈즈는 대답대신 모자를 머리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모자는 이마를 완전히 가리고 코 끝에 와서 닿았다. "이렇게 큰 머리를 가진 사람이라면, 그 속에 든 것도 상당할거야." "그럼 생활이 곤란해 졌다는건?" "이 모자는 3년전에 산 걸세. 챙이 넓고 끝이 말려 올라간 건 그 당시 유행일세. 이건 상당히 고급품이라네. 보게나, 리본은 무늬가 있는 비단이고, 안감도 좋은 천으로 되어 있잖나. 3년 전에 이런 값비싼 모자를 살 만한 사람이 그 뒤로는 새 모자를 사지 못하고 계속 써야만 했다면, 분명히 생활이 넉넉지 못하다는 걸 알 수 있지." "과연 자네 말대로군. 한데, 준비성이 있고 깔끔하던 사람이 지금은 그렇지 않다 는건 왜 그런가?" 셜록 홈즈는 웃으면서 손끝으로 모자끈을 꿰는 구멍을 가리켰다. "준비성이 있다는 건 이걸 보면 알 수 있을 거야. 모자에는 처음부터 이런 구멍 이 없다네. 그가 모자를 살때,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끈을 매려고 만들어 달 라고 부탁한 것일 거야. 상당히 깔끔한 편이라고 생각되네. 그러데 모자끈이 끊어졌는데도 새로 달지 않은 걸 보면, 최근에는 몸가짐이 흐 트러졌다는 증거라네. 그러나 한편으론 잉크칠을 해서 모자의 얼룩을 감추려고 애를 쓴 걸 보면 아직도 자존심을 아주 잃지는 않은것 같네." "확실히 타당성은 있네그려." "그 외에 머리가 반백이 된 중년 남자에다 최근에 머리를 깎았고, 라임이 섞인 크림을 사용한다는 건 모자안을 확대경으로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라 네. 이발소에서 사용하는 가위롤 잘린 머리카락이 많이 묻어 있는데다가 끈적끈 적하고 라임 크림 냄새가 난다네. 그리고 이 먼지는 길가에 있는 모래 같은 잿 빛 먼지가 아니고, 집안에서 생기는 갈색 먼지야. 따라서 모자는 대부분 방안에 걸려 있었다고 생각되며, 외출을 잘 안한다는 걸 알 수 있지. 모자 안이 땀으로 얼룩져 있다는 건 그가 땀을 많이 흘린다는 건데, 그것은 운 동 부족으로 몸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증거라네." "그 사람의 부인이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 모자는 몇 주일 동안이나 솔질을 안했네. 만일 자네 모자에 한주일동안의 먼 직 쌓여 있고, 게다가 그런 모자를 그냥 쓰고 외출하도록 내버려 둔다면 자네 부인이 애정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걸세." "하지만 그는 독신 일지도 모르잖나?" "아니야, 그는 아내와 사이좋게 지내고 싶어서 거위를 선물하려던 참이었어. 거 위 발목에 매달려 있던 카드를 생각해 보게." "자네는 무엇이든 알고 있군. 그런데 그 집에 가스 시설이 없다는건 어떻게 알 수 있었나?" "촛농 한두 방울은 우연히 모자에 떨어질 수도 있지만, 다섯 군데 이상이나 촛농 으로 얼룩진 걸 보면 촛불을 자주 사용한다는걸 알 수 있네. 밤중에 한 손에 모 자를 들고 다른 손에는 촛불을 들고서 계단을 올라가다 보면 촛농이 모자에 떨 어지는게 당연하지. 가스등이 있다면 그런 일은 없을 거야." "정말 훌륭하군. 하지만 조금 전에 자네가 말한 것처럼 범죄와 상관없는 거위 한 마리 손해본 사건이라면 모처럼의 추리도 헛수고인 셈이군." 홈즈가 대답하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문이 열리면서 우편 배달부 피터슨이 몹시 놀라서 벌개진 얼굴로 뛰어들어왔다. "거위가 말이에요. 홈즈 선생님.. 거위가...." "무슨 일인가? 거위가 살아나서 부엌 창 밖으로 날아가기라도 했는가?" 홈즈는 소파에 앉은 채 몸을 돌려서 피터슨의 흥분한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것 좀 보세요. 집사람이 거위 뱃속에서 발견한 거랍니다." 피터슨이 내밀어 보인 손바닥 한가운데에 푸른 돌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콩 보다 약간 작은 돌이 손바닥의 움푹 패여 그늘진 곳에서 전기불처럼 번쩍이고 있 었다. 홈즈는 휙~ 하고 휘파람을 불면서 삐딱했던 자세를 바로했다. "호~ 피터슨, 좋은 걸 발견했군. 이게 뭔지 자네는 아는가?" "보석이지요. 유리도 척척 자를수 있다는 그런 보석 말입니다." "이건 보통 물건이 아니야. 바로 그 문제의 보석이라네." 나는 무의식중에 외쳤다. "모카 백작 부인의 푸른 홍옥이 아닌가?" "그렇다네. 바로 그걸세. 요즈음 날마다 타임스 신문에 광고가 나서 크기나 모양 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것으로 값을 얼마나 매겨야 할 지 모를 정도라네. 찾아 주는 사람에게 사례로 준다는 1천파운드는 그 보석값의 20분의 1도 못될 걸세." 피터슨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우리들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1천파운드! 히야, 요것이!" "코스모폴리턴 호텔에서 없어졌다는 그 보석이 틀림없나?" "그래 닷새 전 12월 22일에 없어졌다는군. 배관공 존 호너가 백작 부인의 보석 상자에서 훔쳐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네. 그리고 호너에게 불리한 증거까지 나 타나서, 사건은 순회 재판에 회부되었다네. 여기 그 사건에 관한 기사가 나와 있을껄." 홈즈는 날짜를 확인하면서 신문을 뒤적거리더니, 마침내 한 장을 꺼내어 반으로 접어 가지고 다음과 같은 기사를 읽었다. - 코스모폴리턴 호텔 보석 도난 사건 - 스물 여섯 살인 배관공 존 호너는 12월 22일 모카 백작 부인의 보석 상자에서 푸른 홍옥이라고 널리 알려진 보석을 훔친 혐의로 구속되었다. 호텔 사무장 제임스 라이더씨는 다음과 같은 증언을 하였다. 벽난로의 받침쇠 두개가 떨어졌기 때문에 땜질을 시키려고 호너와 함께 모카 백 작부인의 방으로 갔다. 그는 잠시 동안 호너와 함께 있다가 볼일이 생겨서 나갔 다가 돌아와보니, 호너는 보이지 않고 장롱이 억지로 열려져 있었으며, 부인이 평상시 보석을 넣어두는 모로코 가죽으로 만든 작은 상자가 텅 빈 채 화장대 위 에 놓여 있었다는 것이다. 라이더씨는 즉시 경찰에 신고를 했고, 호너는 그날 저녁에 체포되었다. 그러나 호너는 보석을 갖고 있지 않았고, 그의 방도 조사했으나 찾지 못했다. 라이더 씨가 도난 사실을 발견하고 당황해서 외쳐대자, 그 소리를 듣고 달려간 백작 부 인의 하녀 캐서린 쿠색도 사건 당시의 상황은 라이더씨가 진술한 바와 같다고 증언했다. 또한 B구역의 브래드스트리트 경감의 말에 의하면 호너는 체포하려 할때 맹렬히 저항하며 무죄를 주장했다고 한다. 하지만 호너는 절도 전과가 있음이 밝혀져 재판을 받게 되었다. 호너는 심리중에 극도로 흥분해 있더니, 심리가 끝나자 기 절해 버려 법정 밖으로 실려 나갔다. 홈즈는 신문을 내던지고 깊이 생각하는 듯이 말했다. "문제는 도난당한 보석이 어떤 경로를 거쳐 토튼햄 재판소 거리에 버려진 거위 뱃속으로 들어갔는가를 알아내는 일이네. 와트슨, 우리들의 심심풀이 추리 놀이가 갑자기 중대한 의미를 띠게 되었네. 게 다가, 범죄와 관련이 있을 듯도 하고, 여기 거위 뱃속에서 나온 보석이 있네. 그리고 그 거위는 낡은 모자의 주인이며, 아까 내가 설명했던 특징을 갖춘 헨리 베이커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던 것이네. 그러니까 우선 그 남자를 찾아내어 이 사건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확인해 봐 야겠지. 먼저, 제일 간단한 방법을 써 보기로 하세. 모든 석간 신문에 광고를 내는 걸세. 만일 이것이 실패하면 그때 가서 다른 방법을 취하도록 하고." "광고의 문구는 뭐라고 쓸텐가?" "연필과 종이 쪽지를 집어 주게.. ---- '구지 가에서 거위와 검은 중절모를 주웠 음. 헨리 베이커 씨는 오늘 저녁 6시 반에 베이커가 221번지 B호로 오셔서 찾아 가기 바람' ----- 이 정도면 되겠지." "그런데, 그가 광고를 보게 될까?" "그는 신문을 주의해서 볼 것 같아. 가난한 사람에게는 상당한 손실이니까. 그 당시는 불행하게도 유리창을 깨뜨린데다 피터슨이 달려오는 모습을 보았으니 당 황해서 달아날 생각밖에는 못했겠지. 그러나 지금쯤은 허둥거리다가 거위까지 내버린걸 후회하고 있을 거야. 게다가 이름을 신문에 내면 그를 아는 사람이 그에게 알려 줄 수도 있으니까. 피터슨, 서둘러 광고 취급소로 가서 이걸 석간 신문에 내 달라고 하게." "어느 신문에 낼까요?" "흐음, 글로브, 스타, 펠멜, 세인트 제임스 가제트, 이브닝 뉴스 스탠다드, 에 코. 그밖에 자네가 생각나는게 더 있으면 좋을 대로 하게."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 보석은 어떻게 할까요?" "아, 그건 내가 맡아 두겠네. 수고하게. 피터슨. 아참,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거 위 한 마리를 사서 이곳으로 보내주게. 지금 자네 집에서 맛있게 먹고 있는 것 대신에 준비해 놓았다가 주인이 찾으러 오면 돌려줘야 하니까." 피터슨이 나가자 홈즈는 보석을 집어들고 햇빛에 비춰 보았다. "정말로 훌륭하군. 이 번쩍이는 빛 좀 보게나. 범죄의 원인이 되는 것도 당연하 네. 이것보다 좀더 크고 역사가 있는 보석이라면 피비린내나는 사건이 보석의 깍인 면의 수만큼 일어날꺼야. 이건 발굴된지 아직 20년이 채 못된다네. 중국 남부 아모이 강변에서 채굴된 거야. 이것이 유명해 진 이유는, 홍옥의 모든 특 성을 갖추기는 했지만 빛깔이 붉지 않고 푸르다는 거라네. 발굴된 햇수는 얼마 안되지만, 이 보석 때문에 살인사건이 두번, 황산을 끼얹은 사건이 여러차례 일 어났어. 이 아름다운 노리개가 사람들을 감옥이나 교수대로 보내는 임무를 맡고 있다고 어느 누가 생각이나 했겠나? 금고에 넣어 두어야지. 그리고 보석을 보관 하고 있다고 백작부인에게 편지를 써서 알려줘야겠네." "호너라는 젊은이는 결백할것 같은가?" "지금으로선 뭐라고 말할 수 없네." "그렇다면 헨리 베이커 쪽은 사건과 관계가 있을까?" "짐작컨대, 헨리 베이커는 자신이 갖고 있던 거위가 순금으로 만든 거위보다 더 값나가는 거라는 사실을 몰랐을 것 같아. 범죄와는 관계가 없다고 생각되네. 광 고를 보고 와 준다면, 그 문제는 간단한 시험으로 확인할 수 있지." "그럼 그때까지 달리 할 일은 없겠군." "그렇다네." "그렇다면, 나는 몇 군데 왕진을 다녀와야겠네. 이런 복잡한 사건이 어떻게 해결 되는지 꼭 알고 싶으니까. 자네가 말한 시간까지는 돌아오겠네." "기다리고 있겠네. 저녁식사는 7시에 하세. 산비둘기 요리가 나올걸세. 아 참, 이런 사건이 일어난 김에 허드슨 부인에게 산비둘기 위를 뒤져 보라고 해야겠는 걸." 2. 보석을 숨긴 장소.. 내가 베이커 거리로 돌아왔을 때는 저녁 6시반이 좀 지나 있었다. 홈즈의 집 가 까이 가니 외투를 입고 챙 없는 스코틀랜드 모자를 쓴 키 큰 남자가 현관 앞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내가 그 사람 곁으로 다가갔을때 마침 문이 열렸다. 우리 두 사람은 함께 홈즈의 방으로 들어갔다. 홈즈는 팔걸이 의자에서 일어서며 늘상 하듯이 쾌활하고 다정 한 태도로 손님을 맞이했다. "헨리 베이커씨죠? 날씨가 춥군요. 여기 불 옆에 앉으십시오. 당신의 혈색을 보 니 추위에 약한 것 같군요. 베이커씨, 이건 당신의 모자 아닙니까?" "예, 그렇습니다. 틀림없이 내 것입니다." 그는 체격이 크고 등이 약간 굽었으며 머리가 유난히 컸다. 뺨은 여위어 있고, 흰 털이 섞인 뾰족한 갈색 수염이 턱 밑에 나 있었다. 코끝과 뺨에 약간 붉은 빛 이 있고, 내민 손이 떨리는 것으로 보아 홈즈의 추측처럼 알코올 중독자 같았다. 낮고 또박또박 끊어지는 말투로 말을 골라 가면서 조심스럽게 대답하는 것으로 보아 지금은 몰락했지만 학력과 지식을 갖춘 사람임을 알수 있었다. "우리는 당신이 분실물 광고를 낼 줄 알고 며칠동안이나 이 물건을 보관해 두었 습니다. 어째서 광고를 안 내셨나요?" 베이커는 약간 겸연쩍은 듯이 웃었다. "전과는 달리 돈에 쪼들리고 있습니다. 게다가 나를 습격한 불량배들이 모자와 거위를 가져갔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가망없는 일에 헛된 돈을 쓰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셨을테죠. 그런데 거위는 어쩔수 없이 우리가 먹어 버렸습니다." "뭐라고요!" 베이커는 흥분하여 의자에서 몸을 반쯤 일으켰습니다. "빨리 먹지 않으면 상하니까요. 하지만 저 선반위에 다른 거위가 있습니다. 무게 도 거의 같고 아주 싱싱하니까. 만족해 하시리라 생각합니다만.." "아아, 그럼요, 좋고 말고요." 베이커는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대답했다. "물론, 잡아먹은 거위의 날개와 위는 남겨 놓았습니다. 그래도 만일 원하신다면. .." 그는 우스워서 못 견디겠다는듯이 크게 웃었다. "이번 소동의 기념물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달리 쓸모가 있으려고요? 당신이 주신다는 저 선반위의 거위나 갖고 가겠습니다." 홈즈는 어깨르 으쓱하면서 나에게 찡긋 눈짓을 했다. "그럼, 이 모자와 거위를 가져가십시오. 아 참, 그 거위를 어디서 사셨는지 말씀 해 주실 수 없을까요? 나는 새요리를 무척 좋아하는데, 그처럼 잘 생긴 거위는 좀처럼 보기 힘들던데요." 베이커는 돌아가려고 되찾은 모자와 거위를 옆구리에 끼면서 말했다. "말씀드리지요. 박물관 근처에 '알파'라는 술집이 있는데 나는 친구들과 함께 그 곳에 자주 갑니다, 우리들은 낮에 박물관에서 일하니까요. 금년에 알파 주인이 거위 클럽을 조직했습니다. 매주 몇 푼 정도의 회비를 내면 크리스마스 때 거위 한 마리씩 장만할 수 있는 거지요. 나는 꼬박꼬박 회비를 냈습니다. 그렇게 해 서 거위를 마련했는데 그 뒷일은 당신도 아시다시피 그렇게 되어버렸답니다. 아 무튼 대단히 감사합니다." 홈즈는 손님을 배웅하고 문을 닫으면서 나를 향해 말했다. "헨리 베이커 쪽은 이제 끝났어. 사건과는 전혀 관계가 없음이 분명하네. 자네, 시장한가?" "아니, 별로.." "그러면 저녁은 밤참으로 미루고 열기가 식기전에 새로 얻은 정보로 사건을 더듬 어 보세." 몹시 추운 밤이어서 우리들은 외투 깃을 올려 목을 둘러쌌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는 별이 차갑게 반짝였고, 오가는 사람들이 내뿜는 입김은 권총을 쏠 때 나오는 하얀 연기 같아 보였다. 우리들은 얼어붙은 길을 힘차게 밟으면서 걸었 다. 15분뒤에 박물관 근처에 있는 알파라는 작은 술집 앞에 도착했다. 안으로 드 어가서 구석에 자리를 잡자, 홈즈는 얼굴이 붉고 하얀 앞치마를 두른 주인에게 맥주 두잔을 주문했다. "이 집 맥주가 당신네 거위 같다면 아주 훌륭할텐데..." "거위라뇨?" "그렇소. 우리는 바로 30분전에 헨리 베이커시한테서 그 이야기를 들었지요. 그 분은 거위 클럽의 회원이지요." "아아, 그러세요? 그렇지만 손님, 그 거위는 우리 집 거위가 아니랍니다." "그럼, 어느 가게 물건인가요?" "코벤트 가든 도매상에서 두 다스 사온겁니다." "그래요? 나도 그곳 도매상을 두어군데 알고 있는데, 누구 가게요?" "브레킨리지 가게입니다. " "그 사람은 잘 모르겠군. 그건 그렇고 주인장. 당신의 건강과 이 가게의 번영을 위해 축배합시다. 건배~ 잘 마셨소. 또 봅시다." 밖으로 나오자 홈즈는 외투 단추를 끼우면서 말했다. "이번엔 브레킨리지 차례야. 이 사건의 시작은 단지 거위 한 마리였지만, 이제 우리는 경찰도 놓쳐 버린 단서를 쥐고 있는 걸세. 끝까지 추적해 보세. 자, 남 쪽을 향해 앞으로 전진!" 우리들은 코벤트 가든 시장으로 갔다. 어느 큰 가게에 브레킨리지라는 간판이 붙 어 있었다. 주인은 경마 같은 노름을 좋아할 것같이 뵈는 사람으로 구레나룻을 길렀고. 매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점원과 덧문을 내리려 하고 있었다. "안녕하시오. 날씨가 춥군요." 홈즈가 인사말을 건네자 주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상한 듯이 우리쪽을 쳐다보 았다. 홈즈는 아무것도 없는 대리석으로 된 판매대를 가리키며 말했다. "거위가 다 팔렸군요." "내일 아침이면 500마리라도 드릴 수 있소." "곤란하게 됐는 걸." "그럼 저기 가스등이 켜진 가게로 가 보슈. 몇 마리는 남아 있을 거요." "하지만 당신네 물건이 좋다는 말을 듣고 온 겁니다." "누가 그러던가요?" "알파 주점 주인이 그럽디다." "아, 알겠습니다. 그곳으로 두 다스 보냈었죠." "아주 멋진 거위였소. 그런데 어디서 그 거위를 사들였소?" 이 질문에 뜻밖에도 도매상 주인은 몹시 성을 냈다. 그는 머리를 젖히고 뒷짐지 며 소리를 질렀다.. "이보쇼, 당신들. 대체 무슨 용건으로 온 거요? 솔직히 말해 보시오?" "내 말이 뭐가 이상하오? 당신이 알파 주점 주인에게 보낸 거위를 어디서 구입했 는지 알고 싶은 거요." "흥, 그런 건 말하기 싫소. 어서 돌아가요! 가란 말이오!" "아니, 별일도 아니잖소. 한데, 어째서 그까짓 일로 버럭버럭 화를 내는지 모르 겠군요." "왜 화를 내냐고? 당신도 나같이 시다림을 당해보구료. 울화통이 터질 거요. 장 사라는 건 좋은 물건을 사들이고 적당한 값을 지불하면 그것으로 거래는 끝나는 거요. 그런데 그걸 가지고 거위는 어디서 샀는냐, 어디에다 팔았는냐, 몇 마리 나 팔았느냐는 둥 꼬치꼬치 캐묻다니, 대체 왜 그리 소란을 피우는지 모를 일이 군. 남들이 들으면 세상에서 거위는 우리집에만 있는 줄 알겠소." 홈즈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나는 앞서 거위에 대해 묻던 사람과는 아무 상관없소. 당신이 말해 주지 않으면 내기에 지게 된다오. 그 뿐이오. 나는 새요리로 내기를 거는 걸 좋아하지요. 요 전에 먹은 거위로도 5파운드의 내기를 걸었다오. 나는 시골에서 키운 거위의 맛 같다고 했소." "그렇다면 당신은 5파운드를 잃은거요. 그 거위는 도심지에서 기른 거요." "설마!" "확실해요." "아니오, 그럴리가 없소." "손님은 어릴때부터 새들을 주물러온 나보다 거위에 대해서 더 안다는 거요? 알 파 주점에 보낸 거위는 모두 도심지에서 기른 거요." "당신이 아무리 그렇다 해도 난 못 믿겠소." "그럼 내기할테요?" "내가 이길게 뻔한데 당신은 괜히 손해볼 뿐이오. 그러나 하도 큰소리치니까 당 신 코를 납작하게 해주기 위해 1파운드 걸겠소." "빌, 장부를 가져와라!" 거위도매상 주인은 음침하게 낄낄거리며 웃었다. 어린 점원은 얇고 작은 수첩과 기름때 묻은 큰 장부를 가져와서는 등잔불 아래에 놓았다. "잘난척하는 양반, 당신은 멍청이요. 자, 그럼 이 작은 수첩을 보시오. 이건 거 래처 일람표요. 이 쪽에 있는게 시골 거래처의 이름들이고, 이름 옆에 있는 번 호는 큰 장부쪽의 숫자입니다. 그리고 붉은 잉크로 쓴 곳을 보십시오. 그건 도 심지에 있는 거래처의 명단이오. 그 세 번째 이름을 읽어 보시겠소?" "브릭스턴 로 117번지 오크숏 부인 ---- 249" 하고 홈즈가 소리내어 읽었다. "됐소. 그 다음은 큰 장부의 249쪽을 찾아보시오." 홈즈가 그가 시키는 대로 그 쪽을 찾아 읽었다. "여기 있군. 브릭스턴 로 117번지 오크숏 부인. 달걀과 가금류 도매상." "그 아래도 계속 읽어 보시오." "12월 22일 거위 스물네 마리 7실링 6펜스 --- 알파 주점의 윈디게이트씨에게 12 실링에 팔다." "아직도 할 말이 남았소?" 홈즈는 몹시 분해하며 호주머니에서 1파운드를 꺼내더니 판매대 위에 내던지고는 불쾌해서 말도 하기 싫다는 듯이 돌아섰다. 그리고는 그 가게에서 5 ~ 6m 떨어진 곳에 있는 가로등 아래까지 가서 멈추더니 소리내지 않고 웃었다. "구레나룻을 저런 모양으로 기르고 호주머니에 경마 신문을 찔러 넣고 있는 사람 은 내기를 걸어서 꾀어내면 틀림없이 걸려든다네. 아마 100파운드를 그 사람앞 에 쌓아 놓아도 이처럼 완벽한 정보는 얻기 어려울걸. 저 사람은 내가 지는 꼴 이 보고 싶어서 죄다 떠들어댄 거야. 그건 그렇고, 와트슨, 우리의 조사도 그럭 저럭 끝나가는 것 같은데, 이제 남은 문제는 지금 곧장 오크숏 부인을 찾아가는 냐, 아니면 내일로 미루느냐를 결정하는 걸세. 저 퉁명스런 가게 주인 말로는, 우리 외에도 이 사건에 관심있는 사람이 또 있는 모양이야. 그래서 되도록이면. ..." 홈즈의 말이 별안간 중단된것은 우리가 막 나온 가게에서 욕하는 소리가 들려왔 기 때문이다. 뒤돌아보니 달아맨 등불의 노란 불빛 아래 쥐같이 생긴 작은 남자 가 가게 앞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가게 주인 브레킨리지는 입구에 버티고 서서 굽실거리는 상대방을 향해 사납게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다. "이젠 자네도 거위도 진절머리가 나. 모두 지옥에나 가버려! 앞으로 또 와서 허 튼소리를 지껄여대면, 그때는 개를 풀어놓을 거야. 오크숏 부인을 데려와. 그러 면 대답해 줄께. 그러나 너 같은게 그 부인과 무슨 관계가 있겠어? 네 녀석이 그 거위를 팔기라도 했단 말이냐?" "그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 중 한마리가 내 것이란 말이에요." "흥, 그렇다면 오크숏 부인에게 물어보면 되잖아." "그기서는 여기로 가서 물어보라고 했어요." "그런 거 내가 알게 뭐야. 이젠 정말 지겨워. 쳇, 쳇, 어서 꺼져!" 가게 주인이 사납게 덤벼들자, 그 남자는 재빨리 몸을 날려 어둠 속으로 도망쳐 버렸다. 홈즈가 속삭이듯 말했다. "하하, 브릭스턴 로까지 안가도 일이 끝날 것 같은데. 자. 어서 저 남자에게 무 언가를 좀 캐내어 보세." 홈즈는 모여든 구경꾼들을 헤치고 빠져나가서는, 금방 그 사나이를 따라잡아 그 의 어깨를 툭 쳤다. 깜짝 놀라 돌아다보는 그의 얼굴엔 핏기 한 점 없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 었다. "누구십니까? 왜 그러십니까?" 홈즈는 부르럽게 말했다. "실례하겠소. 지금 막 당신이 저 가게에서 하는 이야기를 무심코 듣게 되었지요. 경우에 따라선 내가 당신에게 도움이 될 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누굽니까? 내 용건이 대체 무엇인지나 알고 하는 말입니까?" "내 이름은 셜록 홈즈 입니다. 아무도 모르는 일을 아는 것이 내 직업입니다." "그렇다면, 이 일을 알고 계십니까?" "모두 알고 있지요. 당신이 찾고 있는건 어떤 거위의 행방이지요. 그것은 브릭스 턴 로에 있는 오크숏 부인이 브레켄리지라는 상인에게 팔았으며, 그 상인은 알 파 주점의 윈디게이트 씨에게 팔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거위 클럽 회원인 헨리 베이커 씨에게 그 거위를 주었습니다." 작은 사나이는 떨리는 두 손을 내밀며 외쳤다. "아! 당신이야말로 내가 만나고 싶어하던 분입니다. 내가 이번 일로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모를 겁니다." 홈즈는 지나가는 사륜 마차를 불러 세웠다. "그렇다면 잘됐군요. 이렇게 바람이 몰아치는 시장 거리에서 이야기할 게 아니 라, 따뜻한 방으로 장소를 옮기는게 어떻겠소? 하지만 그전에 당신의 이름을 말 해 주시오." 그는 약간 머뭇거리더니 곁눈질을 하면서 대답했다. "존 로빈슨입니다." "아니, 본명을 대주시오. 나는 언제나 가명으로 일하는 걸 싫어한답니다." 홈즈가 상냥하게 말하자, 남자의 핼쑥한 뺨이 잠시 홍조를 띠었다. "예, 말씀드리지요. 내 본명은 제임스 라이더입니다." "그랬군요,. 코스모폴리턴 호텔 사무장이시죠? 자, 마차를 타세요. 당신이 알고 싶어하는 걸 모두 이야기해 드리겠습니다." 그 남자는 뜻하지 않은 행운에 걸려들은 건지, 아니면 불행에 빠진 건지 몰라 어 리둥절해 있는 것 같았고, 불안과 희망이 뒤섞인 눈빛으로 우리들을 번갈아 쳐다 보았다. 세 사람은 마차를 타고 베이커가로 향했다. 마차를 타고 가는 동안 아무 도 입을 열지 않았으나 그 작은 남자는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손을 쥐었다 폈다 하는것이, 몹시 초조해 하는 것 같았다. 우리들은 30분뒤에 홈즈의 집에 도착했 다. 방으로 들어서며 홈즈가 명랑하게 말했다. "드디어 돌아왔군.! 이런 밤에는 따뜻한 불길이 제일 그립다네. 라이더 씨. 무첩 춥죠? 불 가까이 와서 앉으십시오. 거위의 행방이 몹시 궁금하시죠?" "예." "당신이 찾으시는 건 꼬리에 검은 줄무늬가 있는 흰 거위가 아닙니까?" "예, 예, 맞습니다. 그게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라이더는 감격한 듯 몸을 떨었다. "이리로 왔답니다." "여기에!" "그렇습니다. 정말로 잘생긴 거위더군요. 당신이 그토록 흥미를 가질 만도 합니 다. 그런데, 그 거위가 죽은 뒤에 알을 낳았지요. 여태까지 보지 못했던 아름답 고 번쩍거리는 푸른 알이랍니다. 지금,나의 개인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라이더는 비틀거리며 일어나더니 오른손으로 벽난로위의 선반을 붙들었다. 홈즈 는 금고를 열고 푸른 홍옥을 꺼냈다. 그 보석은 차가운 빛을 내뿜으면서 별같이 반짝거렸다. 라이더는 보석을 달라고 해야 좋을지, 그만두어야 할지를 정하지 못 하고 얼굴을 찡그리며 보석을 쳐다보았다. 홈즈가 조용히 말했다. "라이더씨, 당신의 계획은 실패했소. 얌전히 굴지 않으면 불 속으로 던져 버리겠 소. 와트슨, 이분을 의자에 앉혀 주게. 엄청난 죄를 저지르기에는 너무나 원기 가 부족하군. 브랜디를 조금 주게. 됐네. 이제는 조금 사람 같아졌군. 정말 형 편없는 친구야." 라이더는 신음 소리를 내며 쓰러지려고 하다가, 브랜디를 마시고는 얼굴에 혈색 이 돌았다. 그리고는 의자에 앉아서 자기를 책망하는 홈즈를 두려운 듯이 바라보 았다. "나는 사건의 줄거리를 대체로 알고 있고, 증거도 다 갖추고 있소. 그러니까 당 신에게 별로 물어 볼 건 없소. 하지만, 몇 가지 확실히 해두는 편이 좋을 것 같 아서 묻겠소. 라이더, 당신은 모카 백작부인의 보석에 대해서 전부터 알고 있었 소?" "캐서린 쿠색한테서 들었습니다." "그렇게 됐군. 백작 부인의 하녀였지. 당신보다 영악한 사람이라도 큰 돈을 쉽게 벌려고 나쁜 짓을 할때는 당황하게 된다오. 하물며, 당신같은 겁쟁이가 그런 짓 을 했으니 실패하는 건 당연하지. 허점이 많았소. 그러나 당신은 악당이 될 소 질도 꽤 있더군. 당신은 배관공 호너가 절도 전과자이므로 무슨 혐의든 받기 쉽 다는 걸 알고는, 캐서린 쿠색과 짜고서 계획을 세웠소. 그리고는 백작 부인 방에 들어가 벽난로 받침쇠를 일부러 떼어 놓고 수리공 호 너를 부르도록 했지. 호너가 벽난로 수리를 끝내고 돌아간 뒤에 보석 상자에서 푸른 홍옥을 훔친 다음, 장을 뒤진 거처럼 꾸며 놓고는 경보를 울려서 도난 사 건을 알렸소. 물론 혐의는 호너에게 돌아갔지요." 라이더는 갑자기 양탄자위에 끓어앉더니 홈즈의 무릎을 붙들고 사정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제 부모를 생각해 주십시오. 그분들은 매우 낙담하실 겁니 다. 지금까지 나쁜 짓은 하지 않았습니다. 다시는 하지 않겠습니다. 맹세합니 다. 맹세합니다. 성서에 걸고 맹세하겠어요. 경찰에 넘기지 말아 주십시오. 제 발 부탁합니다." 홈즈는 엄하게 말했다. "의자에 앉으시오. 늦게나마 죄를 뉘우치는 건 좋습니다. 하지만, 저지르지도 않 은 죄 때문에 가엾게도 법정으로 끌려간 호너를 생각해야지." "저는 멀리 도망가겠습니다. 이 나라를 떠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호너의 혐의 는 풀리겠지요." "흠. 그 이야기는 좀 미룹시다, 그보다도 먼저 보석을 훔쳐 낸 다음 무엇을 했는 가를 말해 주시오. 어떻게 해서 그 보석이 거위 뱃속에 들어갔으며, 그 거위가 어떤 경로를 통해서 시장에 팔려 나왔는가를 말이오. 도움을 받고 싶다면 솔직 히 말하는게 좋아요." 라이더는 바싹 마른 입술을 핥으면서 말했다. "바른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호너가 체포되자, 경찰이 언제 내 몸과 방을 조사 할는지 몰라서 얼른 보석을 숨기는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호텔에는 안전하 게 숨길만한 장소가 없었지요. 그래서 볼일을 보러 나가는 체하고 호텔을 빠져 나와서 누님 댁으로 갔습니다. 누님은 오크숏이라는 사람과 결혼해서 브릭스턴 로에서 가금류를 길러 시장에 내다 팔고 있습니다. 누님 집으로 가는 도중, 길 에서 마주치는 사람은 모두 경찰이나 형사로 보이더군요. 추운 날인데도 얼굴이 온통 땀투성이가 되어 그곳에 도착했습니다. 누님이 왜 얼굴이 창백하냐고 묻길래, 호텔에 도난 사건이 발생해서 마음이 혼 란해져서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뒤뜰로 나가 담배를 피우며 어떻게 하 면 좋을까 궁리를 했지요. 전부터 알고 지내던 모즐리라는 친구가 있는데, 그는 나쁜 길로 빠져들어 최근 에도 징역을 살다 나온적이 있습니다. 나는 그 녀석의 약점을 쥐고 있는 터라, 안심하고 모즐리에게 가서 털어놓고 의논을 하리라 마음먹었습니다. 모즐리라면 보석을 돈으로 바꾸는 방법도 잘 알고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어떻게 하면 무사히 그에게로 갈 수 있는가가 문제였습니다. 누님 집에 올때 겪었던 무서움 때문이었지요. 언제 어느때 붙잡혀 몸수색을 당할지도 모를 는 일이고, 그렇게 되면 조끼 주머니에 있는 보석이 발각될 건 뻔하니까요. 나는 담에 기대어 발 언저리를 뒤뚱뒤뚱 걷고 있는 거위를 보고 있었는데, 문득 어떤 형사라도 감쪽같이 속여 넘길 수 있는 명안이 떠올랐습니다. 얼마전에 누 님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가장 좋은 거위를 한마리 주겠다고 했지요. 그래서 나 는 지금 거위를 달라고 해서는, 그 거위에게 보석을 먹여 가지고 모즐리에게로 가면 안전하리라 생각했습니다. 나는 헛간 뒤쪽으로 가서 희고 꼬리에 검은 줄 이 있는 살찐 놈을 붙잡아서 억지로 주둥이를 벌리고는, 그 보석을 손가락으로 목구멍 깊숙이 밀어넣었습니다. 거위가 꿀꺽 삼키자 보석이 식도를 지나서 위로 내려가는 것을 손으로 만져 보 고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거위가 놀라서 버둥거렸기 때문에 누님이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뒤뜰로 달려왔습니다. 누님에게 말하려고 뒤돌아보는 사이에 거위 는 도망쳐서 다른 거위들과 섞여 버렸지요.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제임스?' '크리스마스 선물로 한 마리 주신다고 했잖아요, 어느 놈이 살이 더 쪘나 비교해 보았어요.' '네게 줄 것은 따로 골라 놓았단다. 우리들은 '제임스의 거위'라고 부르지. 저 기 있는 크고 하얀 거야. 모두 스물여섯마리인데, 한 마리는 너에게 주고, 또 한마리는 우리가 먹고, 나머지는 시장에 내다 팔 거란다.' '고마워요, 매기 누님. 그런데 별 지장이 없으면 내가 조금전에 붙들었던 놈으 로 주세요.' '그렇지만 우리가 골라 놓은게 3파운드나 더 무겁단다. 너에게 주려고 특별히 길렀으니까.' '상관없어요. 내가 고른 걸 같겠어요. 지금 가져 가도 돼요?' '마음대로 하렴, 네가 고른건 어떤 거냐?' '저기 한가운데에 있는 희고 꼬리가 검은 줄무늬가 있는 거예요.' '그래, 좋아. 지금 죽여서 갖고 가려무나.' 일이 잘되어서 나는 그 거위를 죽여서 모즐리에게 갖고 갔습니다. 그리고는 모 든 사정을 털어놓았습니다. 그 녀석은 그런 일을 의논하기에 아주 적당한 상대 였으니까요. 모즐리는 숨이 넘어갈 정도로 웃어대더니, 칼로 거위 배를 갈랐습 니다. 그런데 거위 뱃속을 보니 보석은 커녕 그 비슷한 것도 없었습니다. 온몸에 힘이 죽 빠지더군요. 무언가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게 틀림없었어요. 나는 거위를 그대로 둔 채, 누님 집으로 달려가서 곧바로 뒤뜰로 갔습니다. 그 러나 거위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 거였습니다. '누님. 거위는 모두 어디 갔나요?' '도매상으로 넘겼다.' '어느 도매상으로요?' '코벤트 가든의 브레킨리지에게..' '팔려간 것 중에도 꼬리에 검은 줄무늬가 있는 게 있었나요? 내가 가져간 것과 닮은 것 말이에요.' '그래, 있었지. 꼬리에 검은 줄무늬가 있는 건 두마리였어. 너무 똑같아서 나도 분간하기 어려웠단다.' 그러니까 거위가 바뀌었던 것입니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브레켄리지 가게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이미 거위는 다 팔려 버렸고, 또 어디다가 팔았는지 아무 리 물어도 말해 주지 않는 겁니다. 나는 지금 미칠 것만 같습니다. 탐내던 보석 도 내 손에서 빠져나갔고, 게다가 이제는 도둑놈이 되어버렸으니....하나님 맙 소사! 오오, 하나님!" 라이더는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울음을 터뜨렸다. 오랫동안 침묵이 계속되었다. 라이더의 거친 숨소리와 홈즈가 손끝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한참뒤에 홈즈가 벌떡 일어서더니 방문을 활짝 열며 말했다. "나가시오!" "예! 오오. 정말 고맙습니다." "꾸물거리지 말고 빨리!" 그 이상 아무 말도 필요없었다. 라이더는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리고 계단을 내 려가는 소리, 현관문이 탕 닫히는 소리, 얼어붙은 거리를 달리는 발소리가 들렸 다. 도자기로 된 담뱃대를 집으려고 팔을 뻗치면서 홈즈가 말했다. "나는 경찰의 결함을 보충하기 위해서 일하는 건 아니야. 라이더는 더 이상 법정 에서 호너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지 못할 테니까. 호너는 유죄 판결을 받지 않 아. 그리고 사건은 흐지부지되어 버릴테지. 내가 범인을 놓아 준 셈이지만, 이것으로 한 영혼이 구제받았다고 생각해야겠 지. 라이더는 두번 다시 나쁜짓을 못할 거야. 몹시 후회하고 있으니까. 지금 감 옥으로 보내면 상습범이 되어 버리겠지. 게다가 지금은 크리스마스가 아닌가? 관용을 베푸는 계절이라네. 대수롭지 않은 일이 매우 색다른 사건으로 발전했지 만, 해결이 되었으니 그것으로 만족한다네. 달리 보상은 필요없어. 와트슨, 미안하지만 벨을 울려 주게나. 우리 저녁 식사를 하세. 거위는 아니지만 산비둘기 요리가 나올 걸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