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탐정 호움즈 보헤미아의 왕비 등장인물 셔얼록 호움즈: 런던 제일의 사립탐정. 아무도 따를 수 없는 천재적인 두뇌와 굽힐 줄 모르는 의지의 소유자입니다. 얼핏 보 기엔 약한 것 같지만, 펜싱과 복상의 명수에다 유도까 터득하고 있어 위급할 때는 가슴이 후련해지는 활약을 합니다. 경찰을 무색케 하는 정확한 판단력과, 사물을 꿰뚫어보는 추리력으로 복잡한 사건을 척척 해결해 나 갑니다. 그러나 항상 뒤에서 도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공적은 경시청의 경감이나 형사들에게 돌립니다. 와트슨: 의학 박사로서 예비역군의관. 호움즈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조수로서, 항상 그림자처럼 호움즈를 따라다 니며 눈부신 활약상을 기록합니다. 정의를 사랑하는 그 는, 뛰어난 호움즈의 추리력에 번번히 경탄하며 열심히 그를 도와 사건을 풀어 나갑니다. 가끔 호움즈도 생각 지 못한 일을 일깨워 주어, 조수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합니다. 제1편 유럽의 위기 복면의 방문객 '호움즈는 요즈음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잠깐 들러 봐야겠군.........' 어느 날 밤, 정확히 말하자면 1888년 3월 20일 밤, 호움즈의 오랜 친 구이자 조수였던 와트슨은 왕진 나갔다 돌아오던 길에 언뜻 이렇게 생 각하였다. 저 유명한 <공포의 4> 사건이 해결된 다음, 와트슨은 메리 모오스턴 양과 결혼했다. 결혼이후 그는 홈즈의 하숙을 나와 그곳으로부터 마차 로 10분쯤 걸리는 곳에다가 병원을 개업했다. 개업한 지 얼마 안 됐지만, 병원은 잘 되었다. 찾아오는 환자들로 날 마다 눈코 뜰 사이 없이 바빴던 와트슨은 몇 개월 동안이나 홈즈를 만 나지도 못하고 있었다. 마침 그가 탄 마차는 홈즈의 하숙으로 가는 길목을 막 지나치려 하고 있었다. 와트슨은 급히 마부에게 말했다. "이봐, 베이커 거리 221 번지로 몰아주게." "예, 나리." 마부는 큰 소리로 대답하고 나서, 달리는 마차의 방향을 돌렸다. 몇 분 후, 마차는 그리운 홈즈의 하숙집 앞에 덜커덩거리며 멈추었고 와트슨은 마차에 앉은 채로 홈즈의 방을 올려다보았다. 홈즈의 방엔 불 이 환히 켜져 있었다. 그 밝은 창에 파이프를 입에 문 홈즈의 낯익은 모습이 비쳤다. 성급하게 방안을 걸어다니고 있는 듯 창에 비쳤던 홈즈 의 그림자는 금방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내가 함께 있던 때와 달라진 데가 없군.......' 와트슨은 싱긋 웃으며 마차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수십 명이 기대와 불안에 가슴을 죄면서 잡아당긴 초인종 줄을 손에 잡으니 곧 응답이 있 었다. 와트슨은 익숙한 계단을 재빨리 올라 홈즈의 방 앞에 섰다. 그리고는 노크도 없이 문을 열었다. "여어!" 홈즈는 한 손을 쳐들며 인사를 대신했다. 그러나 그뿐, 오래간만에 옛 친구를 만났는데도 그의 얼굴에는 별로 반가운 빛이 떠오르지 않았고 와트슨이 그와 함께 있을 때 즐겨 앉곤 했던 안락 의자를 손으로 가르 켰을 따름이었다. 하지만 오랬동안 홈즈와 함께 사건을 추적하며 생활을 같이해 왔던 와트슨은 조금도 언짢아하지 않았다. 홈즈라는 사나이는 아무리 반가운 사람일지라도 과장된 몸짓으로 환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홈즈는 조용히 다가와 와트스에게 담배갑을 내밀더니, 방 한 구석으로 가 스카치 위스키와 유리컵을 들고왔다. 그리고는 와트슨에게 권했을 뿐, 홈즈 자신은 마실 생각도 않고 방 한귀퉁이에 우뚝 선 채, 와트슨을 머리위서부터 발끝까지 뚫어지게 바 라보았다. "와트슨, 자네의 결혼은 성공이었던 모양이군." 불쑥 내뱉는 홈즈의 말에 와트슨은, "자넨 그걸 어떻게 알지?" 하고 되물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우선 첫째, 자네 혈색이 몹시 좋아졌네. 체중도 3.5킬로그램이나 불 었군그래 그렇지, 와트슨?" "아니, 3.25 킬로그램일세." 와트슨이 과장스럽게 부정해 보이자, 홈즈는 짐짓 퉁명스럽게 받아넘 겼다. "흥, 약간 틀렸을 뿐이야, 약간. 그리고 지금 자넨 왕진 갔다 돌아오 는 길인가 보군. 와트슨, 개업의 노릇도 꽤 힘들지?" 홈즈는 와트슨 곁으로 한 걸음 다가서며 다정하게 물었다. 그러자 이 렇듯 여유있는 홈즈의 태도와는 달리 와트슨은 몹시 당황해 했다. "잠깐, 홈즈. 난 자네에게 개업했다는 것을 알리지 않았을 텐데......" "통지를 받지 않았어도 다 알게 되어있지. 자네 스스로가 통지서나 마찬가지니까." 와트슨은 잠자코 홈즈를 바라봤다. "그만한 것을 몰라서 어떡하나. 그리고 말이 난김에 자네에게 한 마 디 충고해 두겠네. 자네가 지금 부리고 있는 하녀를 당장 그만두게 하 게 빠를수록 좋아. 게으름뱅이에다 일을 너무 거칠게 해." "뭐라구? 자네, 혹시 나 없는 동안 우리 집에 온일이 있나?" "그까짓 걸 알려고 자네 집까지 가는 수고를 할 필요가 어딨나. 그냥 이 자리에서 안 걸세. 자네가 지금 신고 있는 구두, 사흘 전 비에 흠뻑 젖었었지?" "응" "그걸 자넨 하녀에게 말끔히 닦아 놓으라고 일러지? 그런데 런던에서 제일가는 게으름뱅이인 네 집 중년 여인은 흙을 털려고 부지깽이 같은 것으로 득득 긁었지. 덕분에 뒤꿈치와 옆쪽에 보기 싫은 상처가 났어. 그리고는 장작불이 훨훨 타오르는 난로 바로 옆에 놓아, 가죽이 이렇게 보기 흉하게 바래 버린 거야." 하며 홈즈는 와트슨의 왼쪽 구두를 가리 켰다. 홈즈의 손길을 따라 구두를 내려다보던 와트슨은 씁쓸하게 웃었 다. 아닌게아니라 그의 왼쪽 구두는 그가 보기에도 몹시 흉했던 것이다. "그럼 내가 왕진을 다녀오는 길이란 건 어떻게 알았나?" "자네 몸에서 요오드포름 냄새가 물씬물씬 나고 있네. 그뿐인 줄 아 나? 이것 봐, 와트슨 자네 안주머니에 청진기가 들어 있지 않나. 이만한 걸 몰라서야 탐정이라고 할 수 있겠나?" "여전히 솜씨있는 추리라고 말하고 싶네만, 설명을 듣고 보니 어쩐지 우스꽝스러워지는군. 눈을 딱 부릅뜨고 머리를 조금만 쓰면 이내 알 수 있을 텐데, 번번이 자네 뒷전만 치고 만단말이야. 이래뵈도 시력이라면 남에게 지지 않는다고 자부하고 있는데........" "그건 말일세........." 홈즈는 득의 양양한 얼굴로 와트슨을 힐긋 쳐다보더니 말을 이었다. "자넨 그저 모 것을 눈으로만 보기 때문에 틀렸어.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 돼. 관찰하지 않으면 안된단말일세. 한 가지만 시험해 보겠는데, 자네가 여태까지 이 집 계단을 몇 번쯤 오르내렸을까?" "응, 아마 천 번 가까기는 오르내렸을걸." "그럼 계단이 몇 개나 되는지 기억하고 있겠지?" "몇 계단이냐고? 그런 것까지는 기억하고 있지 않는걸. 글세, 한 스무 계단쯤?" "그것 봐, 그래서 자넨 틀렸네." "그럼 자넨 몇 계단 있는지 기억하고 있나?" "물론이지. 열 일곱 계단일세." "정말 자넨 꼭 목수 같군그래. 용케도 그런 것까지 기억하고 있으 니....... 난 아무래도 그렇게는 안 돼." "자네도 그렇게 실망할 건 없네. 지금부터라도 온갖 사물을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느 훈련을 쌓아 가게. 그러면 저절로 그렇게 되네. 제아무 리 시시한 것이라도 기억해 두면 언젠가 반드시 도움이 되게 머련이 지." "그러고 보니, 아직도 자넨 보통 사람들이 무심히 보아넘기는 하찮은 것에서 힌트를 얻어 커다란 사건을 해결하는 태도를 버리지 않고 있 군." 와트슨의 말에, 홈즈는 마치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그렇지. 그런데 이것만은 절대로 하찮은 것이 아닐세. 한번 읽어 보 게." 하며 책상 서랍에서 분홍빛의 두툼한 봉투를 꺼내 와트슨에게 건 내 주었다. "아까 우편으로 왔네. 큰 소리로 읽어보게." 봉투에는 날짜도, 보낸 사람의 이름도, 주소도 적혀 있지 않았다. 와 트슨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머리를 끄덕거리더니, 커다란 소리로 편 지를 읽기 시작했다. 셜록 홈즈님 오늘밤 8시 15분 전에 한 사나이가 당신을 방문할 것입니다. 이러한 사정을 헤아리시어, 틀림없이 그 시각에 댁에 계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방문자는 사정이 있어서 복면을 쓰고 있으리라 생각되는데. 놀라지 마시기 바랍니다. "꽤 거만한 투군그래. 게다가 의뢰인이 복면을 하고 찾아온다는 것도 색다르고...... 도대체 무슨 용건일까?" 와트슨은 흥미를 느끼면서 말했다. 홈즈는 즐거워 못 견디겠다는 듯이 두 손을 비비면서 말했다. "나로서는 전혀 짐작이 가지를 않네. 그러나 찾아오는 사람의 신분은 이봉투와 편지지로써 대강 알 수 있네." "홈즈, 이 편지지는 아주 고급이군. 이거라면 20장에 반 크라운은 하 겠지? 편지지치곤 꽤 빳빳하군그래." 와트슨은 홈즈가 하는 식으로 종이를 이리저리 뒤집어 세밀히 살폈 다. "음, 자네도 역시 종이에 대해서 마음을 쓰는군. 나도 제일 먼저 그것 부터 조사해 보았네. 그 결과, 이 편지지는 영국제가 아니란 것을 알았 네." 홈즈는 종이를 가스등에 비쳐 보면서, "이걸 보게. 여기에 무늬가 들어 있네. Eg, 다음이 P, 그리고 마지막 의 것이 Gt 야. 와트슨, 이 글자들이 뭘 뜻한다고 생각하나?" 하고 물었 다. "음, 제지 회사이름의 머릿글자가 아닐까?" "그게 아니야. Gt.는 도이칠란트어의 약자로 회사를 뜻하고, P.는 종 이를 뜻하는 말일세. Eg.가 좀 어렵지. 여기에서 일단 지명 사전의 신세 를 지기로 하세." 홈즈는 책장에서 갈색의 표지호 꾸며진 두꺼운 사전을 뽑아, 재빨리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아아, 여기 있다! 카르스바드에서 별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보헤미 아국의 도시로, 유리 공업이 왕성하고, 우수한 품질의 종이를 대량으로 산출하며..........." "홈즈, 그렇다면 이 편지지는 바다 건너 유럽에 있는 보헤미아에서 만들어잔 것이란 말이지?" "그래, 맞았어. 물론 이 편지를 쓴 사람은 도이칠란트 사람이야. 문장 은 매끄럽지 못하지만, 요점만은 뚜렷한, 이런 문장을 쓸 수 있는 것은 도이칠란트 사람들뿐이거든." "그런데 왜 복면을 하고 온다는 걸까?" "그 까닭은 직접 본인한테 물어 보는 게 좋겠네. 옳지,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언다더니, 장본인이 나타났나 보군." 하며 창 밖을 가르켰다. "뭣?" 와트슨은 눈을 크게 떴다. 보헤미아 왕국의 비밀 이윽고 마차가 급하게 멈추어서는 소리에 이어 초인종이 울렸다. "오늘 복면의 의뢰인이 타거 온 마차는 쌍두 마차야. 자네가 타고다 니는, 한마리가 끄는 마차보다 훨씬 고급이지." 홈즈는 성큼성큼 창가로 걸어가 아래를 내려다 보며 말했다. "음, 2마리 모두 훌륭한 말이군. 한마리에 적어도 150기니는 가겠는 데. 와트슨, 이 사건이 아무리 시시한 것이라도 사례만은 두둑하게 받아 낼 수 있을 것 같군." "가난한 의사는 이제 그만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네. 자네의 일에 방해가 될 테니까." "그런 소리 말게. 위대한 인물은 전속 기록자가 옆에 있어 주어야만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 것이야." 홈즈는 몹시 기분이 좋아 보였다. "하지만 복면의 의뢰인이 내가 옆에 있는 게 싫다고 한다면?" "그런 소린 절대로 못 하도록 하겠네. 자넨 내 전속 기록자안 동시에 우수한 조수이기도 하니까 말이야." 와트슨은 마음을 돌린 듯 다시 주저앉았다. 묵직한 발소리가 17계단 을 올라 차츰 가까이 왔다. 마침내 방문 앞에서 발소리가 딱 멈추고, 곧 이어 노크소리가 났다. "예, 들어오십시오." 홈드의 대답에 벌컥 문이 열리며 방안으로 들어선 사람은, 그리스 신 화에 나오는 헤라클레스 처럼 건장한 몸집에 위엄있는 얼굴을 한 사나 이였다. 입고 있는 옷 또한 무척 호화로왔다. 저고리 소매와 깃 가장자 리에 값진 아스트라칸의 모피가 달려 있었으며, 어깨에 걸쳐진 청색 망 토의 안감은 눈에 확 띄는 노란 비단이었다. 그리고 아름다운 에메랄드 로 장식된 부로우치로 망토의 양쪽 깃을 여미고 있었다. 정강이 중간쯤 까지 올라오는 장화는 얼굴이 비칠 만큼 잘 닦여 있었고, 끝부분은 포 근해 보이는 다갈색 모피로 장식되어 있었다. 이 모든 호사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인상은 한껏 차려입은 벼 락부자 같았다. 하지만 그 사나이에게서 가장 색다른 것은, 편지로도 이 미 알려 왔지만, 얼굴의 위쪽 반을 덮은 복면이었다. 새까만 복면 사이 로 파랗고 날카로운 눈초리가 이쪽을 살피듯 지켜보고 있었다. 복면의 방문객은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편지는 보셨나요?" 하고 두툼한 입술을 떨면서 약간 쉰 목소리로 물 었다. "예" 홈즈는 먼저 자기 소개를 한 다음, 롸트슨을 조수로서 소개했다. "음.........." 복면 아래 보이는 손님의 뺨이 움직였다. "별 지장이 없으시다면, 당신의 이름을 말씀해 주십시오." 홈즈가 재촉하듯 말햇다. 복면의 의뢰인은 잠깐 망설이는 듯하더니, "난 보헤미아 왕국의 귀족, 폰 크람 백작입니다. 홈즈씨, 여기 계신 당신의 조수 와트슨씨는 신용할 만한 사람입니까? 될 수 있으면, 당신 과 단 둘이서 이야기하고 싶은데......" 하며 말끝을 흐렸다. 와트슨은 잠 자코 의자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러자 홈즈는 재빠릴 와트 슨의 손목을 붙잡아 앉히며, "와트슨을 신용하시지 않는다는 것은 저를 신용하시지 않는다는 말과 같습니다." 하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래요? 그렇다면 할 수 없군요." 백작은 어깨를 추썩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그럼 먼저 당신네들 두 분께서 약속을 해 줘야겠습니다. 이제부터 내가 털어놓는 비밀을 무슨 일이 있어도 2년간 지켜 주셔야 합니다. 2 년 뒤라면, 비록 비말이 새더라도 그때는 이 사실로 하여 유럽의 역사 는 별로 바뀌지 않으리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홈즈와 와트슨은 백작의 어마어마한 말투에 어리둥절했지만, "약속합니다." 하고 순순히 대답했다. "그 다음엔 이 복면에 대해서인데 의아하게 생각지를 마십시오. 내가 복면을 하고 있는 것은 어느 지체 높은 분의 명령에 의해서입니다." 그러자 홈즈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 전에 당신이 말씀하신 이름이 가짜 이 름이란 것도........" "아니, 그걸 어떻게........" 복면 안에서 파란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거짓말을 꿰뚫어보는 것이 우리들의 일입니다." 백작은 흠칫 몸을 떨었다. 잠시 후, 그는 흐트러졌던 숨결을 가다듬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우리 보헤미아 왕국은, 나라가 세워진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았습니 다. 만일 지금 그 재난의 싹을 뽑아 내지 않으면 왕국은 물론......." 손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홈즈가 말했다. "보헤미아 왕국을 가장 오랫동안 지배해 온 오름시타인가가 멸망한다 고 말씀하시려는 거지요?" "당신은 내가 말하려는 걸 모두 알고 있군요. 그렇다면 당신은 스파 이......." 복면의 의뢰인은 유럽에서 가장 뛰어난 두뇌를 가졌다는 사립 탐정의 얼굴을 두려움과 의심이 뒤섞인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저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유럽 안의 일쯤은 알수가 있습니다. 스파 이 짓 따위는 할 필요는 넚습니다. 제발 믿어 주십시오, 폐하." "뭐, 뭐라구?" 복면의 손님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방안을 바쁘게 왔다갔다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홈즈를 향햐 똑바로 서서, 복면을 잡아뜯어 팽개쳤다. 복면 밑에서 하얗게 질린, 그러나 잘생긴 얼굴이 드러났다. 그는 흥분 으로 입술을 떨며 소리치듯 말했다. "홈즈, 자네 말이 맞았네. 자넨 내 정체를 꿰뚫어보고 말았네. 나야말 로 보헤미아 왕국의 국왕이야." 홈즈는 침착하게, 방바닥에 떨어져 있는 복면을 주워 책상 위에 놓았 다. "전 한눈에 당신이 국왕 폐하임을 알아보았습니다. 태생이 고귀한 분 은 나무리 변장을 교묘하게 해도, 자연히 그 위엄이 드러나게 마련이 죠." 홈즈는 드물게 아첨의 말을 했다. 그리고는 국왕의 표정을 살피며 말 을 이었다. "폐하, 어찌하여 폐하께선 고귀한 신분을 감추시고 홀로 이런 누추한 곳에 행차하시었습니까? 폐하를 모시고 있는 신하 중 믿을 만한 사람이 없었습니까?" "물론 정치상의 문제라면 믿고 맡길 만한 사람이 몇 있지. 그러나 이 번 일만은 그들에게 맡길 수 없다네. 만일 이 일이 내 반대파들에게라 도 알려졌다간 왕위를 빼앗기는 것은 물론, 우리 집안은 망하고 마네. 그래서 난 아무도 몰래 혼자서 자네를 찾아온 걸세." 홈즈는 고개를 약간 끄덕이더니, "알았습니다. 그럼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 주십시오." 하고 말했다. 아름다운 여가수 보헤미아 국왕은 마음을 가라앉혔는제, 차분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5년쯤 전, 나는 바르샤바에서 얼마 동안 머무른 적이 있네. 그때 바르샤바의 한 극장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수 아이리인 아드라와 알게 되었네." 홈즈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와트슨에게로 얼굴을 돌리며 말했다. "와트슨, 인명 사전을 좀 찾아봐 주게." 와트슨은 책장에서 인명사전을 뽑아, 해당되는 페이지를 펼쳐 홈즈에 게 건네 주었다. 홈즈는 그것을 들여다보며, "과연 아이리인 아드라라고 ㅇ나와 있군." 하고 중얼거리더니. 커다란 소리로 읽기 시직했다. "1858년, 미국 뉴저지주 태생. 알토 가수. 스칼라 오페라단에 출연. 바 르샤바 제실 극장 전속 프리마돈나........" 홈즈는 문득 읽기를 멈추고 고객를 끄덕였다. "여기에서 국왕 폐하의 눈에 띄었겠군. 그리고 은퇴, 그후 런던으로 이주라....... 그뒤 폐하께서는 이 아이리인 아드라와 계속 사귀어 오셨군 요. 그 동안에 세상에 공포되면 곤란한 편지 같은 것을 여러 통 이 여 가수에게 주셨겠지요. 하지만 지금은 어떤 희생을 치러서라도 그것을 돌려 받았으면 좋겠다는 말씀이지요?" "자네가 말한 그대로일세. 그런데 자넨 어떻게 그렇게 모든 걸 미리 다 알고 있나?" 홈즈는 그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그래, 폐하께서는 그 여가수와 비밀리에 결혼하셨군요. 왕비가 되게 해주겠다는 약속이라도 하셨나요?" 하고 물었다. "무슨 소린가? 그 여자는 그걸 바라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난 결혼 같은 것은 생각지도 않았네. 신의 이름으로 맹세하지." "그럼 장래를 보장하는 무슨 증거 문서나 사인이라도 주셨습니까?" "그런 것도 주지 않았네." "그럼 폐하께서 그 여가수와 사귀는 동안 그녀에게 남기신 게 있다 면, 폐하가 직접 쓰신 편지뿐이겠군요." 국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 그런 일로 뭘 그렇게 고민하십니까? 그런일이라면 얼마든지 모면할 길이 있습니다. 만일 그 여인이 편지를 들고 나와, 돈이나 왕비 자리를 요구해 오면 가짜라고 버티십시오." "필적을 속일 수 없는 게 아닌가?" "누가 가짜로 썼다고 버티신다면?" "그게 쉽지 않을 것이, 내 전용 종이를 사용했거든." "궁전 안 서재에서 도둑멎은 것이라고 하신다면 어떨까요?" "아니. 내 봉인이 찍혀 있네." "봉인쯤 위조하는 건 마음만 먹으면 무척 쉬운 일입니다." "어러 가지로 도움말을 주어 정말 고맙네. 하지만 난 그 여자에게 사 진을 주고 말았어." "폐하, 사진이라면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그렇지 않아. 그건 나하고 그 여자 단둘이서 찍은 사진 이야. 게다가 내 사인이 들어 있네." "사인이 들어 있다, 게다가 두 분이 함께..... 폐하께서는 조금 경솔하 셨군요." "음, 난 그 여자에게 빠져 있었어. 미쳐 ㅇㅆ었던거야. 그 무렵 난 아 직 황태자로, 겨우 25살이었네. 철이 없었지. 지금은 꽤 후회하고 있네." "후회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한시바삐 사진을 돌 려 받지 않으면 안 됩니다. 돈의 힘으로도 안 될까요?" "그 방법도 써 봤네. 그런데 그 여인은 세계의 돈을 모두 긁어모아 그 절반을 준다 해도 그 사진과는 절대로 바꾸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거 절하고 있네." "돈의 힘으로 안 된다면, 스파이를 고용해서 훔쳐 내면 어떨까요?" "물론 그렇게도 해봈네. 한번은 바르샤바에서 첫째가는 소매치기를 매수하여 그녀의 집을 구석구석 뒤지게 했지. 그런데 빈손으로 돌아와 서 그 집안에는 절대로 없다는 거야. 자기의 솜씨로 못 찾아 낼 리가 없다는 거지. 그래서 다음에는 여행 중에 두 차례나 그 여자의 트렁크 와 핸드백을 가로채게 해서 철저히 조사해 봤네. 하지만 역시 허탕이었 네. 오히려 그 소매치기에게 내 금시계를 소매치기당했을 뿐이야." 홈즈는 터지려는 웃음을 참고. "참으로 흥미있는 사건입니다." 하며 국왕의 얼굴을 슬쩍 쳐다보았다. "자네에게는 재미있을지 모르지만, 나에겐 중대한 문제일세." "실레했습니다. 그래, 아이리인 아드라는 그 사진을 이용해서 무슨 일 을 꾸미고 있습니까?" 설마 그것을 미끼로 하여 왕비의 자리를 요구하 는 것은 아니겠지요?" "물론일세. 그 여자도 그러한 요구가 통하지 않으리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네. 그 여자의 목적은 오직 하나, 나를 파멸시키는 거야." "어떤 방법으로요?" "난 얼마 후에 결혼하기로 되어있네. 상대방은 스칸디나비아왕의 왕 녀인 크로칠드 로우즈만 폰 작세메닝겐이라네." "그 얘긴 들었습니다." "자네도 알겠지만, 스칸디나비아 왕가는 가풍이 엄격하기로 유명하지. 크로칠드 왕녀도 남달리 기품이 있는 여성으로, 만일 내가 황태자시절 에 여가수와 사귀었다는 말을 들으면 그날 중으로 정중하게 혼담을 거 절해 올 걸세." "알았습니다. 아이리인 아드라는 그 혼담을 어디선지 듣고, 폐하를 협 박하고 있군요." "맞았네. 그 여자는 나하고 함께 찍은 사진을 크로칠드 왕녀한테 보 내겠다는 거야." "화가 나서 한번 해보는 예사로운 협박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까?" "홈즈, 자넨 그 여자를 몰라. 그녀가 알마나 아름다운지, 또 얼마나 열정적인지, 그러다가 한번 토라지면 얼마나 싸늘하고 매몰찬지를 자네 는 모르지. 그녀라면 한번 하겠다는 일은 꼭 해내고 말 걸세." "그 사진은 벌써 스칸디나비아 왕가로 보내진 게 아닐까요?" "그럴리는 없네." "어째서 그렇게 믿으십니까? 혹시 무슨 그럴 만한....." "나하고는 왕녀의 약혼이 정식으로 발표되면 그날 보내겠다고 그녀가 편지로 경고해 왔거든. 그녀는 거의 기계처럼 자기가 말한 대로 할 걸 세." "그래, 약혼 발표는 언제입니까?" "이번 월요일이네. 그때까진 사흘밖에 남지 않았어." "사흘이면 충분합니다." 홈즈는 태평했다. "그럼 즉각 조사에 착수하기로 하겠습니다. 폐하께서는 그 동안 런던 에 머물러 계시겠지요?" "물론일세. 아까 말한 이름으로 랜험 호텔에 묵고 있네. 혹시 볼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해주게." "알았습니다. 그럼 조사의 진행 상황은 편지로 알려 드리겠습니다." "잘 부탁하네. 난 걱정이 되어 밤에 잠도 잘 못자고 있네. 괴로운 일 이야." "황송합니다. 전 조사비 쪽이 걱정인데........" "음, 필요하다면 내 수표장을 맡기겠네. 현급이 좋다면 여기 가지고 있는 걸 내 놓고...... 그 사진을 돌려 받을 수만 있다면 난 내 왕국의 절 반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것 같네." 국왕은 외투 밑에서 유피로 만든 지갑을 꺼내더니, 탁자 위에 금화와 지폐를 쏟아 놓았다. "모두 1만 파운드는 될 걸세. 이걸 조사비의 일부로 써 주게." "고맙습니다." 홈즈는 흩어진 금화와 지폐를 모아 잘 간수하면서, "아이리인 아드라의 현주소는 알고 계십니까?" 하고 물었다. "세인트 존즈우드구, 서펜타인 거리의 부라이어니 별장일세." 왕은 주소록을 꺼내 보지도 않고 줄줄 대답했다. 홈즈는 자기의 수첩에 그 주소를 적어 넣더니, "아, 폐하께 여쭤 본다는 것을 그만 깜박 잊고 있었습니다. 보헤미아 왕국을 뒤흔들고 있는 사진의 크기는 어느 정도입니까" 하고 물었다. "세로 16.5 센테미터, 가로 12 센티미처일세." "그럼 곧 좋은 소식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홈즈는 깊숙이 머리를 숙여 국왕을 배웅하였다. 국왕을 태운 쌍두 마차의 말발굽소리가 멀리 사라지자, 홈즈는 서둘 러 외출 준비를 하였다. "와트슨, 난 잠깐 조사할 일이 있어서 나가 봐야겠네. 내일 오후 3시 에 다시 와 주지 않겠나? 그럼 부인에게 안부 전해 주게." 제2편 환상의 왕비 홈즈의 변장 와트슨은 이튿날 오후 3시에 홈즈의 하숙집으로 갔다. 그러나 홈즈는 없었다. 하숙집 아주머니 허드슨 부인의 이야기로응, 아침 8시경에 집에 서 나갔다는 것이었다. 와트슨은 정든 방 난로 옆에 놓여 있는 안락 의자에 앉았다. 거기 앉 아 불을 쬐며 홈즈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다. 와트슨 난롯불을 바라보며, 우연하게 관련을 맺게 된 이번 사건에 대 하여 생각해 봤다. 순간, 뭐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는 기분이 되면 웃음 이 나왔다. '보헤미아 국왕은 스칸디나비아 왕녀에게 홀딱 빠져 있는 모양이야.어 떻게 해서든지 결혼하려고 생각하고 있어. 그런데 어쩌다 잘못 사귄 여자가 말썽을 부리기 시작한거야. 주위에 알랑거리는 사람은 많아도 괴로움을 털어놓고 그 처리를 부탁할 만한 사람은 하나도 없고, 알랑 거리는 사람일수록 더욱 못 미더운 법이거든. 그래, 혼자서 여러 가지 로 손을 써 보았지만 도리어 당하기만 했어. 그 말을 들었을 때의 홈 즈의 표정이라니.......' 생각만 해도 우스운지, 와트슨은 또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생각다 못해 무슨 일이든지 귀신같이 해결해 낸다는 사립 탐정을 찾 아왔것다. 그랬는데 그만 약점을 드러내어 듬뿍 선금을 빼앗기고 말 았어. 홈즈도 더러는 그렇게 재미있는 손님이 찾아 주어야 하겠지. 끔 찍스러운 사건만 계속 대하다 보면 정신이 이상해져 버릴 테니까.' 와트슨은 생각을 이어 가다 말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뭏든 홈즈의 자신은 굉장하단말이야. 실패한다는 것은 전혀 생각지 도 않고 있다니까. 이번 일만 해도 사흘이면 충분하다니...........' 와트슨은 어느새 끄덕끄덕 졸고 있었다. 난로의 떠뜻한 온기에 온몸 이 풀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졸음이 왔던 것입니다." 4시가 조금 지났을 때였다. 방문이 거세게 열리며, 곤드레만드레 취한 마부가 방안으로 뛰어드는 바람에 와트슨은 퍼득 잠을 깼다. 놀라 소리를 지르려던 와트슨은 이내 실소를 터뜨렸다. 술 취한 마부 는 다름아닌 홈즈였던 것이다. 홈즈의 머리카락은 참새 둥지 모양으로 헝클어져 있었다. 시꺼먼 구 레나룻은 자랄 대로 자라 더부룩했으며, 얼굴은 술이 몹시 취한 뜻 발 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누가 보아도 초라하고 ㅋ거친 마부 그래로였다. 홈즈의 변장 솜씨를 늘 보아 와서 익숙해져 있는 와트슨마저 감탄하 여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었다. "여, 와트슨! 그만 자넬 기다리게 하고 말았군." 홈즈는 미안쩍은 듯 싱긋 웃더니, 옆에 딸려 있는 침실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채 5분도 못되어 와트슨이 있는 방으로 다시 건너온 홈즈는, 어느새 평소와 다름없이 단정하게 양복을 입고 있었다. 홈즈는 두 손을 호주머니에다 찌른 채 난로 앞으로 다가오다가 더 이 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아하하........" 하고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그는 거의 1분 가까이나 난로 곁에 선 채로 웃더니, 그대로 의자 위에 쓰러지듯 주저앉아 버렸 다. "홈즈,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이젠 제발 그만 웃고 어서 애길 좀 해 보게." "와트슨, 오늘 아침에 내가 무슨 짓을 했을 것 같은가, 응? 자네가 만 일 그때의 내 모습을 보았더라면 지금처럼 그렇게 점잖게 앉아 있지 못 할걸." "뭘 어떻게 했는데그래? 기껏해야 아이리인 아드라의 집을 살펴볼 겸 그 부근을 어슬렁거렸겠지." "맞았어. 난 오늘 아침 8시에, 초라한 마부로 변장하고 나섰네. 자네 도 알고 있겠지만마부 패거리란 저희들끼린 무척 친하지. 일거리가 없 어 놀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모두들 서로 도와 주고 취직 뒷바라지까지 도 해 준다네. 서펜타인 거리에는 부자들이 많이 살고있어, 대개는 마부 들을 고용하고 있지." 홈즈는 웃음기 걷힌 어조로 말을 이었다. "서펜타인 거리에 이르자, 브라이어니 별장이 보이더군. 자그마하고 아담한 이층집이었어. 현관은 바로 거리에 면해 있었고, 문에는 견고한 자물쇠가 걸려 있었네. 그래서 철책 너머로 슬쩍 들여다봤지. 현관 바로 오른쪽이 널찍한 거실이었는데, 땅바닥까지 닿을 듯한 커다란 창문이 달려 있었네. 뒤꼍으로 돌아가 보니, 자그마한 뜰이 있고 구석에 마굿간 이 있더군. 난 마굿간 지붕으로 올라가면 안채의 복도로 향한 작은 창 문에 손이 닿을 수 있다는 것도 확인했네." "홈즈, 자넨 좀도둑의 재능도 풍부하군그래." 와트슨은 감탄한 듯 머리까지 끄덕이며 말했다. 홈즈는 못 들은 척 말을 이었다. "그런 뒤, 나는 그 주위를 마치 산책이라도 하는 사람처럼 어슬렁어 슬렁 돌아다녔네. 그러다가 말에 솔질을 하고 있는 합승 마차의 마부를 만났어. 나는 재빨리 거들어 주었지. 그러자 그 마부는, '젋은 사람이 잘 하는군. 상당히 오랫동안한 모양이지?' 하며 칭찬까지 해 주더군. 나는 일을 거들면서 슬며시 브라이어니 별장에 대해서 묻기 시작했네. 이야 기는 쉽게 풀렸지. 일이 끝나자, 그 마부는 고맙게도 '잚은 사람이 놀고 있으니, 호주머니가 허전할걸.' 하며 동전 두 닢을 주고, 맥주까지 사 주 더군. 후훗, 오랫동안 탐정노릇을 했지만, 정보를 얻으러 갔다가 반대로 팁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야." "자네도 꽤 뻔뻔스러워졌군, 그런데 아깐 왜 그렇게 웃었나? 난생 처 음 팁을 받아서?" "흐음, 그럴 리가? 그뒤로 계속 엉뚱하게 일이 풀려 나간 거야. 아뭏 든 수확은 굉장했네. 난 보헤미아 국왕의 연인이었던 아이리인 아드라 라는 여성을 한시바삐 만나보고 싶어졌네." "호오, 그래? 그건 여성을 싫어하는 자네로선 드문 일인데?" 홈즈는 와트슨의 말을 흘려 버리고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아이리인 아드라는 기막히게 아름다운 여성이라네. 그 근처에 사는 남성들 모두가 그 여자만 보면 공연히 싱글벙글 좋아한다는 거야. 지금 은 극장에 정기적으로 나가는 것 같지는 않대. 그런대도 매일 오후 5시 가 되면 아름답게 차려입고 외출했다가 틀림없이 7시 정각에 마차소리 도 상쾌하게 돌아온다는 거야." "날마다 2시간의 외출이라......... 5시에서 7시까지라면 만찬회에 가기 엔 너무 이르고........ 도대체 어딜 갔다오는 걸까?" 와트슨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아이리인한테는 거의 날마다 한 사나이가 찾아온대. 하루에 두 차례일 때도 있다는군. 머리카락도 눈도 새까만 그 젊은 사나이는 몹시 잘생겼다는데, 이름은 고드프리 노오튼이고, 템플 법학원에 근무하 고 있대." "홈즈, 어떻게 해서 그런 것가지 알아 낼 수 있었지? 믿어지지 않는 군." "모두 그 합승 마차의 마부가 이야기해 준 거라네. 그 사람들이야 온 갖 사람을 댜 태우고 다니니까, 그런 일에는 환하지. 그 마부도 여러차 례 브라이어니 별장과 템플 법학원간을 왕복하였다는군." "그렇겠지." "알아 낼 것을 웬만큼 알아 낸 나는, 다시 아이리인 아드라의 집으로 되돌아갔네." 세기의 마녀 "걸으면서 난 작전 계획을 차분히 짰지." 홈즈는 마른 입술을 축인 다음, 말을 이었습니다. "고드프리 노오튼이란 법학원의 사나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아 이리인 아드라의 변호사일까, 아니면 아이리인 아드라의 연인일까? 만 일 변호사라면, 그 사진을 보관하고 있을 거야. 보헤미아 국왕이 고용했 던 소매치기들이 문제의 사진을 손에 넣지 못한 건 아이리인만 노렸기 때문일세. 그래서 난 이 수수께끼의 인물 쪽에 수사의 촛점을 맞추기로 했네. 와트슨, 지루하겠지만, 좀더 참고 들어 주게." "지루하다니, 재미있기만 한데......" "난 우선 템플 법학원엘 가 보기로 작정했네. 바로 그때, 길 저쪽에서 마차 한대가 달려와 브라이어니 별장 앞에 멈추었네. 마차가 멈추자마 자 새까만 머리의 한 늠름한 젋은이가 급하게 마차에서 뛰어내렸어. 고 드프리 노오튼이 분명했네. 난 재빨리 길 옆 건물의 으슥한 곳으로 몸 을 숨겼어." 홈즈의 말은 갑자기 빨라졌습니다. "노오튼은 무척 서두르고 있었네. 그는 마부더러 '자네, 여기서 잠깐 기다리고 있게.' 하고 소리치더니, 브라이어니 별장의 초인종 줄을 힘껏 잡아당겼어. 곧 늙은 하녀가 얼굴을 내밀었네. 그러자 고드프리 노오튼 은 안내를 기다리지도 않고 마치 자기 집이나 되는 것처럼 성큼성큼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네." 홈즈는 무엇을 생각하는지 잠깐 이야기를 멈추었다가 다시 이었다.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났는데도 노오튼이 나오는 기척은 없었네. 마부에게 곧 돌아오겠다고 하고 말일세. 나는 살그머니 브라이어니 별 장의 철책 곁으로 다가갔네. 아까 자네에게 얘기한 거실의 커다란 유리 창을 통해서 안이 환히 들여다보였네. 노오튼은 무엇인지 열심히 이야 기하면서 방안을 서성거리고 있었어. '아하, 지금 저 안에 아이리인 아 드라가 있구나.' 하고 생각한 나는, 그걸 확인하려고 좀더 높은 곳으로 자리를 옮겼네. 하지만 아이리인 아드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네. 바로 그때, 현관 문이 열리며 고드프리 노오튼이 뛰어나왔어." 와트슨은 홈즈의 뛰어난 이야기 솜씨에 취한듯 귀를 귀울리고 있었 다. "노오튼은 금시계를 꺼내 들여다보더니, 기다리다 그새 잠이 든 마부 를 두드려 깨우며 말했네 '이봐, 서둘러 주게. 리이젠트 거리 그로스 앤 드핸키 상점에 잠간 들렀다 에지웨어 거리의 세인트 모니커 교화로 몰 아 주게. 만일 20분 이내에 세인트 모니커 겨회에 닿으면 팁으로 반 기 니를 주겠네.' 하고 말하자 반 기니라는 소리에 졸음이 달아나 버렸는 지,마부는 기운차게 고삐를 잡았어. 잠간 사이에 마차는 덜커덕거리며 내 눞앞을 지나 거리 저쪽으로 사라져 버렸네. 나는 마차가 사라져 간 쪽을 지켜보며 뒤를 쫓을까 말가 망설였네. 브라이어니 별장 쪽이 아무 래도 마음에 걸려서 말이야." 홈즈는 그때의 난처했던 자기 처지가 생각난듯 눈살을 찌푸렸다. "와트슨, 바로 그때였네. 이번에는 그 옆길에서 아름답게 칠을 한 작 은 마차가 나타났네. 그런데 그 마부의 모습이 가관이더군. 저고리 단추 는 하나밖에 채워져 있지 않고, 모자도 삐딱하게 머리에 얺혀 있었어. 마차의 장식문도 한쪽에만 달려있더군. 마굿간에 불이라도 나서 몸만 빠져 나오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네. 그 마차가 브라이어니 별장 앞에 멈춰서기가 무섭게 집안에서 한 여인이 내달아 나와 사뿐히 올라탔어. 언뜻 보았지만, 그 아름다움이 하늘의 천사와 같았네. 난 그 녀가 아이리인 아드라라는 걸 한눈에 알아보았네. 보헤미아의 황태자 전하가 반한 것도 무리가 아니야." "지금까지 여성에 대해선 한마디도 칭찬한 일이 없는 자네가 그렇게 말하는 걸 보면, 아이리인 아드라는 정말로 아름다운 모양이지?" 하며 와트슨은 놀리듯 싱긋 웃었다. 그러나 홈즈는 거기엔 아무 대꾸도 없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아이리인 아드라는 몹시 조급한 목소리로, '세인트 모니커 교회까지 급히 가줘요. 20분 이내에 닿으면 팁으로.......' 라고 노오튼과 똑같은 말을 마부에게 했네. 순간, 내 가슴은 무섭게 뛰었어. 그건 정말 바라지 도 않았던 요행이었으니까. 그런데 마침 그때 합승 마차가 한 대 나타 났지. 선을 들었더니, 마부는 멈추려다 말고 내 옷차림을 의심스러운 눈 초리로 바라보았네. 아마 '이런 녀석을 태웠다간 요금도 받지 못할 거 야' 라고 생각한 모양이야. 그대로 줄달음치려고 하더군. 하지만 그 순 간에 나는 벌써 마차 안 객석에 앉아 있었네. 나는 재빨리 마부의 손에 은화를 쥐어 주고 나서, 세인트 모니커 교화까지 18분에 가면 한 닢 더 주겠다고 소곤거렸지. 마부는 빙그레 웃으며 말고삐를 잡았어. 그때 시 각은 12시25분 전이었네." 홈즈의 이야기는 점점 더 흥미와 열기를 더해갔다. "난 그 두사람이 어째서 20분 이내에 겨회로 가지 않으면 안 되는지 대충 짐작하고 있었네. 오전 중에 보헤미아 국왕과 스칸디나비아국 왕 녀와의 약혼을 무효화하기 위한 수속을 밟으려고 하는 게 틀림없었어. 그래서 나도 필사적이었지. 아이리인 아드라의 마차도, 노오튼의 마차도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렸나 보더군. 내 마차가 교회에 닿았을 때, 두 사 람 모두 도착해 있었네. 그들을 태워다 준 마부들이 자기 애마의 땀을 씻어 주고 있는 참이었지. 난 마부에게 돈을 지불하기가 무섭게 곤두박 질하다시피 해서 교회로 뛰어들었네." 홈즈는 이야기를 하다 말고 벌떡 일어서더니, 방안을 서성거리기 시 작했다. "내가 들어가자, 그 두사람은 구석 쪽에서 휜옷을 입은 목사와 이야 기하고 있었어. 그러다가 내 발소리를 듣고서 노오튼이 홱 돌아보았네. 난 재빨리 오르간 뒤에 숨으려 했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네. 노오튼은 성큼성큼 내게로 다가오더니 , '잠깐!' 하며 내 옷소매를 꽉 움켜쥐었 어. '마침 잘 왔네. 자넨 신이 보내 주신 사자야.' 뜻밖에도 노오튼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어. 이렇게 되어 난 다음에 무슨일이 일어날지 짐작 조차 하지 못한 채, 목사 앞으로 질질 끌려가고 말았다네. 노오튼은 내 옷소매를 붙잡은 채, '목사님, 자, 아직 3분 남았습니다. 이젠 되었지 요? 목사님, 제발 부탁합니다.' 하고 목사에게 무언가를 거듭 부탁했어. 그러자 목사도 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성서를 들고 강단으 로 올라갔네. 그 다음엔 어떻게 되었으리라고 생각하나, 와트슨?" "글쎄, 전혀 짐작이 안 가는걸." "난 강단 아래 세워졌네. 목사는 뭐라고 중얼거리고 나서는 나더러, '당산은 증명하지요?' 하고 물었어. 내가 대답을 않자, 목사는 똑같은 물음을 되풀이앴어. 난 통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옆에 선 노오튼이 안 타까운 얼굴로 눈짓을 보내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예!' 하고 대답했네. 결국은 나는 아이리인 아드라양과 고드프리 노오튼군의 결혼식에서 증 인이 된 거야. 식은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났지. 신 앞에서 맺어진 두 사 람은 기쁜 듯이 나에게 절을 하고, 목사도 싱글벙글 웃으면서 나를 바 라보았네. 정말이지, 그런 일은 난생 처음이야." "그게 어떻게 된 일인가?" 와트슨은 물었다. "으응, 막 식을 오리려는게 결혼 허가증에 부족한 데가 있다고 목사 가 식 올려 주기를 거절했다는 거야. 하지만 고드프리 쪽에 남자 증인 이 한 사람 있으면 어떻게 해보겠다는 판에 내가 어슬렁어슬렁 들어간 거야." "아, 그러니까 어릿광대 노릇을 했군 그래. 그래서 아까 그렇게 미친 듯이 웃었군. 그때의 자네 얼굴을 보았더라면 좋았을걸. 으하하....." 와트슨은 배를 움켜쥐며 웃자 홈즈도 따라 웃었다. "하지만 좋은 일도 있었다네." 홈즈는 아직도 온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채로 호주머니에서 금화 한 닢을 꺼내어 와트슨에게 보였다. "신부가 고맙다고 하면서 준 거야. 기념으로 시계줄에 꿰어 놓을 작 정일세." "그거 좋은 생각이로군. 그래, 그 다음은 어떻게 됐나?" "음, 나는 금화를 받아 가지고 밖으로 나오다가 그들이 자기들 일에 정신이 팔린 틈에 슬쩍 몸을 숨겼네. 정식으로 부부가 된 두 사람은 교 회 앞에서 헤어졌어. 노오튼은 법학원으로 가고, 아이리인은 브라이어니 별장으로 돌아간 거야. 헤어질 때, 아이리인이 노오튼에게, '그럼 여느 때와 같이 5시에 공원으로 가겠어요.' 하는 소리가 똑똑히 들렸네. 그 래, 나도 채비를 하기 위해 돌아온 것일세." "채비라니, 무슨?" "뱃속 채비말이네. 난 아침부터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했거든. 게 다가 오늘밤엔 더욱 활발하게 활동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와트슨, 자네도 거들어 주겠지?" "물론이지." "어쩌면 법을 어기게 될지도 몰라." 하며 홈즈는 와트슨의 표정을 살 폈다. "난 자네를 믿고 있네, 홈즈." "서투르게 하다간 경찰에 끄려갈지도 몰라." "그게 인간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일이라면 상관없네." "고맙네, 와트슨. 난 정말 좋은 친구를 두었다니까. 자넨 머리의 회전 은 보통이지만, 내겐 어떤 친구보다 의지가 되네." "아첨은 그쯤 해 두게. 그래, 내가 해야 할일은 뭔가?" "식사하면서 이야기하지." 비밀병기 홈즈는 허드슨 부인이 날라다 준 음식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시작했 다. "10분 후면 5시네. 7시가 되면 여주인이 공원에서 돌아오지. 우리는 그보다 조금 먼저 브라이어니 별장에 가 있지 않으면 안 되네." "아이리인 아드라가 없는 틈을 터 집을 뒤지자는 것이라면 나도 쉅게 납득하겠네만, 어째서 조금전에 가 있지 않으면 안 되는 거지?" 와트슨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그 시각에 닿으면 사진을 손에 넣을 수 없어서 그래." "흠. 그렇게 생각대로 될까?" "물론 승산은 충분해. 다만 조금 엉뚱한 계략을 써야 하지만...... 그러 기 위해선 자네도 단단히 한몫을 맡아야 해." "호오, 어떤일인데?" "좀 어려우니까 귀담아 들어 주게. 와트슨, 난 계략에 의해 아이리인 의 집안으로 운반되는 거야. 그 계략은 이미 다 세워져 있어/" "그 다음엔?" "집안으로 들어간 나는 틈을 보아 거실의 유리창을 열고 자네에게 신 호를 보낼꺼야. 그러면 자네는 내가 미리 자네에게 준, 그건 곧 자네에 게 주겠네만, 그 비밀 병기를 방안으로 던지고는, '불이야, 불이야!' 하고 외쳐 대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았나?" "응. 알았네. 그런데 비밀 병기라니, 그건 위험한 건가?" "아이들 장남감 같은 거니까 워험하진 않아." 하며 홈즈는 주머니에 서 릴레이의 바톤과 같이 생긴 것을 꺼냈다. "이건 하수도 공사 하는 사람들이 쓰는건데, 자동적으로 발화되도록 양쪽 끝에 신관이 달려 있어. 그래서 던지면 그 충격으로 연기가 나며 불꽃이 일지." "도화선에 불을 당겨애 한다면 궈찮겠지만, 이거라면 아무라도 쉅게 다룰 수 있겠군. 연기가 나면 '불이야, 불이야!' 하고 고함을 질러야 된 다는 말이지?" "그렇지. 그 다음 일은 구경꾼들이 맡아 줄 걸세. 자넨 시치미를 떼고 현장을 떠나 둿길로 가게. 10분쯤 후에 나도 그리로 가겠네, 사진을 들 고......." "말은 쉅지만, 그대로 될까?" "문제없네, 와트슨. 안심하게." 하며 홈즈는 와트슨의 호주머니에다 비밀 병기를 넣어주었다. "준비를 하고 나올테니, 잠깐만 기다리게." 침실을 들어갔던 홈즈는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나왔다. 그런데 딴사 람이 되어 있었다. 이번에는 사람이 좋아 보이는 크리스트교의 목사로 바뀌어 있었다. 차양이 넓은 모자, 자루와 같이 헐렁헐렁한 바지, 눈과 같이 새하얀 깃, 세상사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듯한 온화한 얼굴, 온갖 사물을 다 사랑 하는 듯한 부드러운 미소....... 정말 놀라운 변장술이었다. "홈즈, 자넨 변장도 잘하지만 연기도 후륭하네, 순식간에 자네 혼마저 목사님이 되어 버린 것 같네." 와트슨은 감탄한 어조로 말했다. 홈즈와 와트슨은 하숙집을 출발한 건 6시 15분이 지나서였고, 서펜타 인 거리에 도착한 것은 6시50분이었다. "아이리인이 돌아오려면 아직 10분 남았네." 하며 홈즈는 길가 벤치 에 걸터앉았다. 때마침 해질녘이라, 집을 향해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아이리인 아드라의 집 앞에서는 칼갈이와 수위 차림의 사나이가 무슨 일로인지 서로 다투고 있었다. "됐어. 이정도면 구경꾼으론 옹색하지 많아." 홈즈는 옆에 앉아 있는 와트슨에게 마치 설교라도 하는 투로 말했다. 정말 목사치고는 그지없이 세속적인 이야기였다. "이 사건을 해결의 방향으로 이끈 것은 아이리인 아드라와 노오튼의 결혼이었네. 그 결혼 덕분으로 수사 범위가 훨씬 좁아진 거야. 아이리인 과 보헤미아 국왕이 함께 찍은 사진은 이제 양쪽에 날이 있는 칼이 되 었네. 그 사진이 노오튼에게 발각되었다간 아이리인도 역시 파멸되고 말 테니까. 그러니 아이리인은 그 사진을 노오튼도 알수 없는 곳에다가 감춰 두었을 걸세." "그래, 그렇다면 아이리인에 대해서만 수사하면 되겠군. 그런데 도대 체 그 사진은 어디에 두었을까? 설마 몸에 지니고 다니지는 않겠지?" "사진이 커서 그럴 수는 없을 거야." "혹시 핸드백 안에 넣고 다니는 건 아닐까?" "그건 생각할 필요조차 없네. 보헤미아 국왕은 그 사진을 되찾고 싶 어서 미친 사람과 같이 되어있거든. 소매치기를 써서까지 빼앗아 내려 고 했었네. 만일 핸드백에 들었다면, 그 사진은 벌써 국왕의 손에 있을 거야." "그럼 어디다 두었을까?" "은행이나 변호사에게 맡기는 방법도 생각해 보았네. 하지만 난 곧 그 생각을 부장했어. 여자란 본시 비밀을 좋아하는 낭만주의자일세. 아 마 이번 경우도 예외는 아닐 거애. 아이리인 아드라는 틀림없이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다가 그 사진을 놓고, 이따금 들여다보며 즐거웠던 시절을 생각하고 있을 걸세. 하지만 보헤미아 국왕에게 보낸 편지로 보 아, 아이리인은 그 사진을 곧 사용할 생각임이 분명해, 그러니까 쉅게 손이 미치는 곳으로 옮겨놓았을 거야. 그 말은, 사진은 확실히 집안에 있다는 뜻일세." "하지만 두 번이나 전문가가 숨어들어가 찾아봤지만 실패했다지 않 나?" "전문가라지만 내 생각엔 장님이나 마찬가지 같은걸, 놈들은 찾는 법 의 기초마저 모르고 잇어." "그럼 자넨 어떤 방법으로 찾을 셈인가?" "굳이 내가 찾을 필요가 어디 있어." "뭐라구?" 와트슨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말햇다. "아이리인이 스스로 가르쳐 줄 거야." "자네, 무슨 소릴 하는 건가?" "글세, 보고만있으라니까. 옳지, 아이리인의 마차가 돌아오는군." 길목의 소동 마차는 말밥굽소리도 요란하게 달려오더니, 브라이어니 별장 앞에서 멈추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아까부터 길 어귀에서 서성거리고 있던 한 부랑 자가 쏜살같이 마차로 달려가 문을 벌컥 열었다. 그리고는 추근추근 구 걸을 했다. 그런데 거기에 또 한사람의 부랑자가 나타나며 소리쳤다. "이놈아, 여긴 내 구역이야!" 하고 외치기가 무섭게 그 사나이는 먼 저의 부랑자를 냅다 들이받았다. 그러자 그때까지 옥신갓신 말다툼을 하고 있던 컬갈이가 먼저 나타난 부랑자의 편을 들었고, 수위가 나중에 부랑자에게 합세했다. 그리하여 시끌시끌한 패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때 마차에서 막 내린 아이리인은 아차 하는 사이에 싸움판 가운데 로 휩쓸리고 말았다. 그러나 아이리인은 조금도 당황한 기색이 없이 차 가운 얼굴로 싸우는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흥분한 칼갈이는 주머니칼을 휘두르며 날뛰고 있었다. 잘못 몸을 움직여 그 칼에 닿았다간 크게 다 칠 판이었다. 싸움을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몹시 위험하게 보였 다. 그때, 홈즈는 벤치에서 벌덕 일어나며, "안 되겠어, 저대로 두었다간 죽을지도 몰라." 하며 무시무시한 속력 으로 길을 가로질러 싸움판에 뛰어들어 자기 몸으로 아이리인을 감쌌 다. 그와 동시에 수위가 휘두른 지팡이가 '우지끈!' 하는 소리를 냐며 가짜 목사의 머리에 명중했다. 홈즈의 머리에서 왈칵 피가 솟았다. 그러자 여태까지 무서운 기세로 치고받던 사나이들이 잽싸게 흩어져 달아나 버렸다. 싸움패들이 흩어져 가자, 멀리에서 싸움 구경을 하고 있던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뛰어왔다. 그들은 먼저 아이리인을 부축해 피가 번진 싸움판에서 떼어놓고, 이어 목사 차림의 홈즈를 안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아이리인은 쫓기듯 돌 계단을 올라 현관으로 들어가려다 말고 홱 돌아섰다. "그분, 괜찮을까요?" 맑고 고운 목소리였다. "까무러친 모양입니다. 아니, 벌써 죽었는지도 모르겠군요." 홈즈를 안은 사람이 대답했다. 그러자 그옆에 서 있던 사람이 맥을 짚어보면서, "아니, 죽지는 않았습니다. 아직 숨이 붙어 있어요. 하지만 병원으로 옮기는 동안 죽을지도 몰릅니다." 하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정말 훌륭하신 분이었어요. 만약 이분이 아니었더라면.........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 여러분께선 수고스러우시겠지만 이분을 저희 집안으로 좀 옮겨 주십시오." "그렇게 하죠." 구경꾼들은 힘을 합쳐 홈즈를 집안으로 옮겼다. "거실에다 눕혀 주셔요. 그 긴의자 위가 좋겠군요." 피투성이가 된 홈즈는 커다란 창문이 있는 거실 겸 응접실의 긴의자 에 눕혀졌다. 와트슨은 아까부터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상황을 지켜 보고 있었다. '홈즈의 연기도 대단한걸. 피가 왈칵 솟는 장면 따위는 진짜와 흡사했 어. 부랑자들을 비롯해서 조연진도 조연상 감이었고.........' 아이리인이 커튼을 치지 않아서 와트슨은 방안의 광경을 환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아이리인은 정성스럽게 홈즈를 돌보고 있었다. '저렇게 아름답고 착하게 생긴 여자에게 속임수를 쓰다니.......' 와트슨은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한시바삐 그곳으로부터 달아나고 싶 은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저 여자는 사진을 이용햐서 보헤미아 국왕을 협박하고 있는 거야. 협박은 범죄야. 우리는 어떤 경우에든지 범죄를 증오하지 않으면 안돼. 게다가 만일 지금 내가 여기에서 달아나 버리면 홈즈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나는 나를 믿고 있는 그의 신뢰를 저버리는게 돼.' 와트슨이 이렇게 스스로를 타이르고 있는 동안, 아이리인이 밖으로 나가고, 대신 늙은 하녀가 들어와 홈즈를 돌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홈즈 가 괴로운 듯이 상반신을 일으켰다. 답답하니 창문을 좀 열어 달라고 하는 듯 홈즈가 손을 들어 창문을 가리키자, 하녀가 잽싸게 달려와서 창문을 열었다. 그 순간, 홈즈는 손을 번쩍 쳐들고 날쌔게 흔들었다. 와트슨의 가슴은 몹시 두근거렸다. 그것은 비밀병기를 던지라는 신호였던 것이다. 벽 속의 사진 와트슨은 비밀 병기를 꽉 움켜쥐고는 열린 창을 통해 방안으로 힘껏 내던졌다. 다음 순간, '꽝!'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 어올랐다. 그 검은 연기는 곧 창문으로 시꺼멓게 밀려 나왔다. "불이야, 불!" 와트슨이 미처 소리치기도 전에 밖에 있던 구경꾼들이 일제히 고함을 질렀다. 순식간에 브라이어니 별장은 벌집을 쑤셔 놓은 것같이 되었다. "아이구머니나!" 호움즈를 돌보던 늙은 하녀는 비명을 지르면서 이리 뛰고 저리 뛰었 다. 수많은 구경꾼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구경꾼들의 떠들썩한 소리에 섞여 호움즈의 침착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불이 아니오. 그냥 연기만 나고 있소. 부랑자들이 창문으로 장난감 폭 탄을 집어던진 거요. 침착들 하시오." 귀를 기울이고 있던 와트슨은 흠칫 몸을 떨었습니다. 부랑자란 바로 자기를 두고 하는 말이었던 것이다. 와트슨은 허겁지겁 그 자리에서 달 아났다. 호움즈하고 약속한 장소에 이른 와트슨은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 때까지도 그의 가슴은 마구 뛰고 있었다. 잠시 후, 언제 그런 일을 했느냐 싶게 시치미를 뗀 말숙한 얼굴로 홈 즈가 나타났다. 와트슨과 홈즈는 잠자코 달리다시피 걸었다. 그러다가 아무도 뒤쫓아 오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뒤, 겨우 걸음을 늦추었다. "와트슨, 성공일세, 대성공이야." 이상하게도 홈즈는 몹시 들떠 있었다. 와트슨은 그러한 홈즈가 슬며 시 얄미워졌다. "그럼 사진을 손에 넣었겠군." 와트슨은 시큰둥하게 말했다. "아냐, 아직 손에 넣은 건 아냐." "그럼 뭐가 대성공이라는 건가?" "숨겨 둔 곳을 알아 냈으니, 대성공이 아니고 뭔가, 아니. 내가 알아 낸 게 아니라, 아이리인 자신이 가르쳐 주었네." "어디야? 내게만은 일러 주어도 되겠지." "물론이지." 하며 홈즈는 만족스러운 듯이 씨익 웃었다. "오늘을 위해서 고용한 구경꾼들이며, 싸움하던 녀석들 모두 잘해 주 었네. 와트슨, 자넨 금방 알아차렸겠지, 연극이라는 걸." "그럼, 금방 알았지. 자네 머리를 적신 그 피는 붉은 물감이었지? 붉 은 물감을 손에 꼭 쥐고 있다가 쓰러지자마자 머리에 그것을 댔지?" "응, 낡은 수법이지만 감쪽같았어. 내 생각대로 중상을 입은 목사는 아이리인 아드라의 집으로 운반되었지. 그것도 전부터 눈독을 글여 놓 았던 거실로말일세. 난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 거실을 관찰했네. 하지 만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어. 그래서 마지막 수를 쓰기로 했네. 하 녀에게 숨이 차다고 알렸더니, 친절한 그녀는 재빨리 창문을 활짝 열어 주었어. 그래서 자네에게 신호를 한건야." "내가 비밀병시를 던진 것이 이번 일에 무슨 도움이 되었나?" "물론일세. 여자란 신분의 상하를 막론하고 불이 났다든가 하는 위험 한 순간에는 언제나 자기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을 찾게 마련이지. 이건 거의 본능이야. 이를테면 어머니는 모든 것을 다버리고 자기 아이 를 안을 것이고, 보석에 빠진 여자는 보석 상자 있는 데로 내닫는 법이 지. 아이리인 아드라에게 있어 현재 가장 소중한 것은 보헤미아 국왕과 함께 찍은 사진이야." "그렇겠군." 와트슨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불이야!' 하는 소리가 들리자, 아이리인 아드라는 마치 먹이에 게 덤벼드는 검은 표범처럼, 날쎄게 거실로 돌아와 초인종 줄 있는 바 로 위 벽에 붙은 널빤지를 움직였어. 벽처럼 보이도록 감쪽같이 만들어 진 벽장이었네. 아이리인은 그 안으로 급하게 손을 집어 넣어 뭔가를 끄집어 내려 했네. 그건 꽤 큰 봉투였어." "바로 그거였군!" "그렇지. 사진 숨겨 놓은 곳을 안 나는, 침착한 목소리로 불이 아니라 고 소리쳤네. 그러자 아이리인은 힐끗 불꽃으로 눈길을 돌리더니, 벽에 둘러친 널빤지를 전대로 놓고는 그대로 나가 버렸어. 난 벌떡 일어나 사진을 꺼낼까 생각했지만, 그때 마침 마부인 듯한 사나이가 들어와서 나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어 그만두었네. 서두르다가 일을 그르칠까 겁 나서말일세." "그래, 이제 어떻게 할 작정인가?" "조사는 이걸로 끝났네. 내일 보헤미아 국왕을 모시고 브라이어니 별 장을 방문하겠네. 와트슨, 자네도 별 지장이 없다면 함께 가지. 우린 곧 거실로 안내되어 잠시 기다려야겠지. 여자란 옛날 연인과 오래간만에 만날 떄는 특히 곱게 화장을 할 테니까. 화장을 겨우 끝나고 그녀가 설 레는 마음으로 거실로 들어섰을 때는 이미 우리들의 모습은 없어진 뒤 가 될 거야. 물론 사진과 함께 말이야. 폐하는 기뻐하겠지." "그래, 내일 몇 시에 갈 건가?" "오전 8시." 두 사람은 이윽고 베이커 거리의 하숙집 앞에 이르렀다. 그때였다. 마 침 지나가던 사람이 인사를 해 왔다. "안녕하십니까, 셜록 홈즈씨?" 그 사람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장 걸어가 버렸다. 그는 검고 기다 란 외투를 입은 몸집이 호리호리한 젊은이였다. "가만 있자, 어디서 들은 듯한 목소린데......." 홈즈는 젊은이가 사라진 어둑어둑한 한길 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도망친 새색시 그날 밤, 와트슨은 홈즈와 함께 잤다. 이튿날 아침, 두 사람이 커피와 토스트로 식사를 하고 있는데, 보헤미아 국왕이 뛰어들어왔다. "사진은 찾았나?" 국왕은 몹시 서둘러 댔다. "아직은 찾지 못했 습니다." "가능성은 있나?" "물론입니다. 그 일로 아이리인 아드라를 찾아가려고 합니다." "그럼 식사를 뒤로 미루고 출발하지." "마차를 금방 탈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그거라면 염려 말게. 내 마차를 기다리라고 했으니까." "국왕 폐하의 마차를 이용하게 되다니, 셜록 홈즈 평생의 영광입니 다." 홈즈는 커피를 단숨에 마시고는 재빨리 일어났다. 마차 안에서 홈즈는 보헤미아 국왕에게 은근하게 말했다. "사실은 아이리인 아드라는 결혼했습니다." "뭐, 결혼? 언제, 어디서, 누구하고인가?" "어제, 세인트 모니커 교회에서 영국인 변호사 노오튼하고 결혼했습 니다. 제가 증인이 되었죠." 순간, 보헤미아 국왕의 얼굴에는 안심한 듯한, 그러면서도 맥이 풀린 듯한 기묘한 표정이 떠올랐다. "노오튼이라고? 전혀 모르겠는데. 아이리인이 그런 이름도 없는 사나 이하고 결혼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네. 아이리인은 정말 그 사 나이를 사랑하고 있을까?" "그렇다면 좋겠습니다만......" "어째서?" "앞으로 국왕 폐하께 폐를 끼칠 우려가 없아질테니까요. 필경 폐하에 대해서는 추억만 간직하게 되겠지요." "자네 말이 맞네. 하지만......." 보헤미아 국왕은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아이리인이 미국 태생이 아니고, 유럽의 귀족 출신이기만 했더라면, 난 많은 장애를 무릅쓰고라도 내 왕비로서 맞아들였을 거네. 그 뛰어난 아름다움과 지성으로 아이리인은 누구보다 훌륭한 왕비가 되었을 텐 데....... 결국 그녀는 환상의 왕비였던 거야." 그 말을 끝으로, 국왕은 서펜타인 거리에 닿을 때까지 한 마디도 입 을 떼지 않았다. 이윽고 마차가 브라이어니 별장 앞에서 멈췄다. 홈즈는 현관에 있는 초인종 줄을 당기자 곧 60살쯤 되는 노파가 나타났다. 노파는 홈즈를 보자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셜록 홈즈씨죠?" 하고 물었다. "예, 그렇습니다먼. 그런데 어떻게 제 이름을 아십나까?" 홈즈는 깜짝 놀라 새삽스럽게 노파를 바라보았다. 노파는 태연한 얼 굴로 홈즈의 날카로운 시선을 받았다. "아씨께서 이르셨습니다. 당신이 오실 테니, 실례되는 일이 없도록 조 심하라고요." "그럼 아씨는?" "정말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아씨께서는 오늘 아침 도련님과 함께 채 링크로스발 5시 15분 열차로 외국으로 떠나셨습니다." "뭐라고요?" 홈즈의 얼굴빛이 달라졌다. "그럼 한동안을 돌아오지 못하겠군요." "한동안 아니라, 두 번 다시 영국에는 돌아오시지 않겠다는 말씀이었 습니다." 그때까지 말없이 서 있던 보헤미아 국왕이 말했다. "그럼 사진은? 편지는?" 하고 다급한 어조로 물었다. 노파가 미처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홈즈는 노파를 밀치고 거실로 뛰어들었다. 어제 그토록 깔끔하던 거실은 마치 하루 사이에 도둑이라도 들어왔던 것처럼 어질러져 있었다. 서랍이란 서랍은 모두 열려 있었고, 바닥엔 옷 가지가 흐트러져 있었다. "무척 서둘러 도망쳤군." 홈즈는 신음하듯 중얼거리면서 초인종 줄이 있는 곳으로 급히 갔다. 그리고는 널빤지를 힘껏 잡아떼었다. '그래도 사진만은 남겨 두고 갔을지도 몰라. 결혼을 했으니까........' 하는 기대와 함께 홈즈는 비밀의 벽장 안으로 손을 들이밀었다. 홈즈의 가슴은 기대로 부풀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홈즈는 눈을 딱 부릅떴다. 그의 손은 와들와들 떨리고 있었다. 아이리인의 편지 홈즈의 손에 들려 있는 봉투 표면에는, '셜록 홈즈님에게. 두 번째 방 문할 때 보시겠죠?' 라고 젹혀 있었다. 홈즈는 봉투를 뜯었다, 그 안에서 이브닝드레스 차림의 아이리인의 사진과 편지 한 통이 나왔다. 이제 평정을 되찾은 홈즈는 거의 무표정한 얼굴로 편지를 펼쳤다. 국 왕과 와트슨도 좌우에서 들여다 보았다. 어제 오후 11시에 쓴 것으로 되어 있는 그 편징의 내용은 다음과 같 았다. 목사님, 아니 셜록 홈즈님 당신의 변장과 연기와 그리고 작전은 정멀 훌륭했습니다. 저도 99% 까진 감쪽 같이 속았으니까요. '불이야!' 하고 외치는 소리를 들을때까지 는...... '불이야!' 하는 소리를 듣는 순간, 제 머리속에는 한 사람의 이름이 번 개같이 떠올랐다가 사라졌습니다. 전 1개월쯤 전부터 저를 아끼는 어떤 사람으로부터 주의를 받고 있었습니다. 런던에는 셜록 홈즈라는 사립 탐정이 있다, 국왕폐하는 마지막엔 틀 림없이 셜록 홈즈한테 부탁하러 갈 것이다, 만일 셜록 홈즈가 승낙하기 만 한다면 그는 몇백 명의 사립 탐정이나 소매치기보다 훨씬 무섭다, 제아무리 사진을 잘 감추어도 반드시 찾아 내고 말 것이라고요. 그 충고대로 당신은 참으로 그럴 듯한 작전으로 우리를 기십하셨습니 다. 하지만 당신네들은 너무나도 감쪽같이 해내셨습니다. 마치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 인기 좋은 무대극 같이요. 저는 이와 같은 연극을 꾸밀 수 있는 이는 이 런던에 단 한 사람, 셜 롯 홈즈씨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비밀의 벽장 문을 닫자마자, 뒤꼍으로 달려가, 마부 존을 시켜 당신을 감시토록 하고, 이층으로 뛰어 올라갔습니다. 저는 당신과 마찬가지로 연극과 변장에는 아주 익숙하답니다. 전 재 빨리 남장을 하고 당신과 와트슨 선생(병원 개업을 축하합니다.) 의 뒤 를 밟았습니다. 그리고는 그 유명한 홈즈씨의 하숙집 앞에서 인사를 드 렸던 것입니다. 그때의 홈즈씨의 멍하던 얼굴은 아직도 제눈에 선하군요. 호즈씨의 하숙 앞을 지나쳐, 저는 곧 템플 법학원으로 가서 남편을 만났습니다. 남편은 제 얘기를 듣더니,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면서, '여 보., 아이리인! 당신, 엉뚱한 짓을 했구료. 홈즈는 무슨 일이든 마음먹은 일은 꼭 해내고야 마는 끈덕진 사나이라는데..... 그는 틀림없이 앙갚음 을 하러 올 거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저도 갑자기 제가 저지른 일이 두려워졌습니다. 그래서 남편과 둘이서 런던에서 달아나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유럽행 일번 열차의 특등석이 비어 있어, 그걸 타기로 했습니다. 홈즈씨, 이번에는 남의 힘을 빌지 않고 홈즈씨의 두 발로 정정 당당 히 저를 찾아오시리라고 믿습니다만, 그때는 벌써 저희들의 보금자리는 텅 비어 있을 것입니다. <추신> 사진에 관한 것이라면 이젠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평소에 바라던 이상적인 남성과 결혼했습니다. 그도 저를 사랑하고, 저도 그를 사랑합니다, 이 세상의 어느 연인들보다 더. 폐하께서는, 젊은 시절에 잠시 가까이 지냈던, 신분이 미천한 여자의 일일랑 말끔히 잊으시고, 스칸디나비아 왕녀님을 왕비로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사진은 돌려드려야 마땅하겠지만, 그건 제게 추억이 되는 것입니다. 평생토록 몸에 지니고 싶습니다. 실례인 줄 알고 있습니다만, 그 대신 제 독사진을 동봉합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아이리인 노오튼 "아, 얼마나 훌륭한 여성이냐!" 보헤미아 국왕은 긴 한숨을 내쉬며 탄식하듯 말했다. "홈즈, 아이리인과 같은 여성은 이 세상에 다시 없을 거야. 물론 자네 도 동감이겠지. 아, 만일 아이리인이 나하고 같은 수준이었다면......" "그렇습니다, 폐하." 홈즈는 냉정하게 또박또박 잘라 말했습니다. "분명히 아이리인은 폐하보다 훨씬 수준이 높습니다. 지능에 있어서 나 인격에 있어서말입니다. 물론 저보다도 훨씬 낫지요. 모처럼 부탁하 셨는데, 아무런 도움도 되어 드리지 못한 것을 깊이 사과드립니다." 그러자 보헤미아 국왕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닐세, 홈즈. 자넨 정말 잘해 주었네. 난 자네에게 부탁하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하네. 자넨 이 세상에서 둘도 없는 명탐정이야." "고맙습니다, 폐하." "그래서 감사의 표시로 자네에게 이걸 주고 싶은데....." 하며 보헤미 아 국왕은 손가락에서 에메랄드 반지를 빼어 홈즈에게 내밀었다. 그러 나 홈즈는 반지를 받을 생각은 하지 않고, "폐하는 지금 더욱더 귀중한 것을 가지고 계시네, 그것을 주셨으 면....." 하고 말끝을 흐렸다. "보석이 박힌 시계말인가? 아니면........" 그러자 홈즈는, "이 사진입니다." 하고 국왕이 들고 있는 아이리인의 독사진을 가리 켰다. 국왕은 어이가 없다는 듯 홈즈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소원이라면 주지." 하며 선선히 아이리인의 사진을 내주었다. "고맙습니다. 그럼 저희들은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홈즈는 깊이 머리를 수그리고는 와트슨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이것이 보헤미아 왕국을 뒤흔들어 놓은 사건의 전모입니다. 떠한 이 사건은 홈즈의 전생애를 통한 단 한 번의 패전이기도 했습니다. 그때까 지 홈즈는, "여자의 지혜는 얕아." 하고 입버릇처럼 말해 왔지만, 그 사건 이후 로는 그런 말을 입 밖에도 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따금 아이 리인의 이야기가 나오면, 벽난로 위를 힐끗 바라보면서, "저 여성은.........." 하고 존경이 담긴 어조로 말하곤 하였습니다. 홈즈의 존경 어린 눈길이 머무르는 곳에는 환하게 웃고 있는 아이리 인의 아름다운 모습이 있었습니다. 타이핑 후기? 에구.......... 이제야 겨우 끝났네여.... 원래 1월 15일 쯤 끝났어야 됐는데 제가 약간 게으르고 또 약간의 일이 생겨서 약간 늦었네여...........^^; 이 작품은 그다지 재미는 없지만 그래두 제가 구할수 있는 홈즈 시리즈는 이거 밖에 없어서요........ 이거 다 치고 오리엔트특급사건 이나 칠려구 했는데 다른 책을 치구 있는중이라 한참 걸릴거 같네여.......... 그럼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