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라진 신랑 ◀◁◀◁ 코난 도일.. 1. 신부가 의뢰해 온 사건.. 베이커가의 하숙집에서 벽난로앞에 앉아 있을때, 홈즈가 나에게 이야기를 걸어왔 다. "여보게, 와트슨. 인생이라는 것은 인간의 머리로는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묘한 것 같아. 만일 우리가 지금 서로의 손을 잡고 저 창문으로 빠져나가 이 대 도시 위를 날아다니며, 여기저기 지붕을 살며시 벗겨내고, 그 밑에서 이루어지 고 있는 야릇한 인생극을 볼 수 있다고 하면 과연 어떨까? 거기에 비하면, 소설 같은 건 줄거리가 단순하고 결과도 뻔하거든." 홈즈는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열린 커튼 사이로 어둡고 흐린 런던 거리를 내려다 보았다. 그러던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라, 저기 저 아가씨는 나를 찾아오는 손님이구먼." 홈즈의 어깨 너머로 내려다보니, 길 저쪽 보도위에 몸집이 큰 젊은 여인이 보기 에도 푹신한 모피 목도리를 두르고, 붉은 깃이 달린 폭 넓은 챙 모자를 쓰고 서 있었다. 여인은 화려하게 차려입은 몸을 앞뒤로 흔들면서 장갑의 단추를 매만지다가는 주 저하는 기색으로 이쪽 창을 올려다보는 것이었다. 그러다가는 마침내 마음을 정 한 듯, 곧장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곧 현관의 초인종이 울렸다. 홈즈는 담배 꽁초를 벽난로 불 속에 던져 넣으며 말했다. "저런 모습은 전에도 본 일이 있네. 길거리에 서서 망설이는 것은 반드시 애정 문제로 찾아오는 손님이지. 상의는 하고 싶지만, 사연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상대방이 이해해줄지 자신이 없는 걸세. 하지만 애정문제에도 두 가지 경우가 있네. 남자에게 당한 여자라면 주저하기는 커녕, 초인종이 끈이 끊어져라 잡아 당기고는 뛰어들기 마련이지. 그런 점을 감안해 볼 때 오늘의 상담은 애정문제이기는 하지만, 저 아가씨는 남 자를 원망하고 있는것이 아니라 뭔가 난처한 입장에 빠져 있는 것 같군. 어쨌거 나 본인이 온 것 같으니 직접 들어 보세." 홈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노크 소리가 나고 사환이 들어왔다. "메어리 서덜랜드라는 분이 찾아오셨습니다." 홈즈는 서덜랜드양을 맞아들여서 팔걸이 의자를 권하고는 날카로운 눈으로 관찰 하며 말했다. "아주 열심히 타자기를 치시는 모양인데, 눈이 근시여서 피로가 심할것 같습니 다." "처음에는 몹시 피곤했지요. 하지만 이제는 자판을 눈여겨보지 않고도 칠 수가 있답니다......" 서덜랜드 양은 무심코 말하다가, 문득 얼굴빛이 달라지며, 홈즈를 바라보며 목소 리를 높여 말했다. "어머, 홈즈씨!! 벌써 저에 대한 일을 들어 아시는 모양이네요.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홈즈는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모든것을 아는 것이 내 직업입니다. 다른 사람같으면 그냥 보아 넘기는 것도, 나는 세심히 관찰하는 훈련을 쌓아둔 덕분에 알 수가 있죠.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면 아가씨는 나에게 상의하러 오지도 않았겠지요." "실은 에서리지 부인의 소개를 받고 찾아왔습니다. 에서리지 씨가 행방 불명이 되어 경찰에서조차 어디에서 죽은 모양이라고 포기했을 때, 선생님이 쉽게 찾아 주셨다더군요. 저, 홈즈 씨, 저도 꼭 좀 도와 주셔야겠어요. 저는 부자는 아니 지만 타이피스트로서 버는 수입 외에도 유산으로 한 해에 100파운드씩 들어오므 로, 호즈머 에인절 씨의 행방만 찾아주시면 섭섭치 않게 사례하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경황없이 상의하러 온 이유는 무엇입니까?" 홈즈가 양쪽 손가락을 깍지끼고서 천장을 바라보며 물어보자, 서덜랜드 양의 얼 굴에 다시 한번 놀라운 표정이 스쳤다. "맞아요. 저, 정말 정신없이 뛰쳐나왔어요. 실은 윈디벵크 씨가-----이분은 저의 아버지에요----너무나 태평하게 계시는 바람에 제가 화가 나서 이렇게 달려온 거예요. 사람이 자취를 감추었는데도 경찰에 신고도 하지않고, 그렇다고 선생님 께 상의 해 볼 생각도 않는 거예요.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고 그저 말로만 걱 정하지 말라니, 참을 수가 있어야죠." 홈즈가 물었다. "지금 아버지라고 했는데, 성이 다른 걸 보니 양아버지인가요?" "그렇습니다. 아버지라고는 부르지만, 나이를 따지자면 저보다 5년 2개월 위일 뿐이라서 멋적기 짝이 없어요." "그래, 어머니는 아직 살아계십니까?" "예, 살아 계십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곧 15살이나 아래인 윈디뱅 크 씨와 재혼했습니다. 저는 못마땅했지만 할 수 없었지요. 돌아가신 아버지는 토튼햄 코트 로에서 상당히 규모가 큰 설비 가게를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돌아 가신 뒤 어머니는 책임자인 하디 씨와 가게를 계속했습니다만, 윈디뱅크 씨가 나타나 어머니에게 가게를 팔게 했습니다. 그는 근때 술회사의 외판원을 하고 있었는데, 보통 수단이 좋은게 아니었어요. 그 가게를 4700파운드에 처분한 모 양인데,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그렇게 헐값에 넘기지는 않았을 겁니다." 나는 이 아가씨의 사건과는 연과도 없을 성싶은 집안 이야기에 홈즈가 짜증을 내 지는 않을까 은근히 걱정이 되어 그의 기색을 살펴보았으나, 왠걸---그는 아주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럼, 아가씨의 유산에 의한 수입이라는 것은 그 가게를 판 돈에서 나오는 겁니 까?" "아뇨, 그건 전혀 다른 돈이에요. 뉴질랜드에 사시던 네드 삼촌이 저에게 남겨 준 거예요. 연 4.5%의 이자가 붙는 뉴질랜드의 공채입니다. 액면은 2500파운드 라고 하는데, 저는 이자만 받을 수 있어요." "재미있군요. 그럼, 아가씬 매년 이자만 해도 100파운드씩 들어오는 것 외에 직 업도 갖고 있으니, 마음내키면 여행도 할 수 있고, 그 밖의 하고 싶은 일도 할 수가 있겠군요. 여자 혼자라면 한 해에 60파운드면 넉넉히 살아 나갈 수 있으니 까." "아니, 그보다 적은 액수로도 충분해요. 하지만, 결혼하기 전까지는 어머니나 양 아버지의 짐이 되기 싫어, 이자는 어머니에게 드리고 있습니다. 윈디뱅크 씨가 3개월마다 은행에 가서 이자를 타 오고 있어요. 저는 타이피스트로 일하는 수입 만으로도 충분하거든요. 한장에 2펜스인데, 하루에 15장에서 20장은 칠 수 있습 니다." "아가씨의 사정은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와트슨 박사로서 나와는 절친한 친구이니 신경쓰지 말고 이야기하십시오. 자, 다음은 실종되었다는 호즈머 에인 절 씨와의 관계에 대해 말해 주시지요." 서덜랜드 양의 얼굴에 금방 붉은 빛이 감돌더니, 옷깃을 만지작거리다가 입을 열 었다. "가스 공사 관계의 댄스 파티에서 알게 되었어요. 주최자측에서는 아버지가 살아 계실때부터 초청장을 보내 오곤 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도 우리를 잊지 않고 어머니에게 보내 주었죠. 하지만 윈디뱅크 씨는 우리 모녀가 파티에 나가 는것을 몹시 싫어했습니다. 아니, 파티뿐만이 아니라,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참석하는 것을 반대하는 거예요. 하지만 저는 그때 파티에 나가기로 결심했어요. 저를 못 가게 할 권리가 양아버 지에게는 없으니까요. 돌아가신 아버지의 친구들이 많이 참석하므로, 그분들을 만나고도 싶었고요. 하지만 윈디뱅크 씨는 그런 쓰레기 같은 인간들을 만나 뭣 하겠느냐고 하더군요. 그리고는 입고 갈 옷이 있느냐고 물었어요. 저라고 해서 파티에 입고 갈 변변한 옷 한벌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지요. 장롱속 에는 한 번도 입지 않은 새 빌로드 드레스가 있었거든요. 마침내 도저히 저를 못 가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자, 윈디뱅크 씨는 마음대로 하라고 소리를 지르고는 프랑스에 볼일이 있다고 하며 집을 나갔죠. 그래서 저 와 어머니와 가게 책임자인 하디 씨, 이렇게 셋이서 파티에 갔습니다. 바로 거 기에서 호즈머 에인절 씨를 만나게 된 거예요." "윈디뱅크 씨가 프랑스에서 돌아와 그 이야기를 듣고는 좋지 않은 내색을 하진 않던가요?" "아뇨, 뜻밖에 기분이 좋았어요. 피식 웃고는 '여자라는 것은 어차피 말려도 소 용없어.'하고 말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어요." "그래요? 어쨌거나 아가씨는 그 가스 공사 관계의 댄스파티에서 처음 호즈머 에 인절 이라는 청년을 알게 되었다 이거군요?" "예, 그날 저녁 처음 만났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우리 집으로 찾아온 뒤로도 몇 번 만났고요. 두 번은 공원을 함께 산책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윈디뱅크씨가 프랑스에서 돌아오자, 그는 우리 집에 올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웹니까?" "윈디뱅크 씨가 그런 걸 싫어했거든요. 그분은 손님이 드나드는 것을 아주 질색 해요. 여자란 식구끼리만 지내는 것이 제일이라나요. 그렇다면 저도 결혼을 해 서 식구를 가져야겠다고 대들었죠." "호즈머 에인절 씨는 그런 일이 있은 뒤 아가씨를 만나려 하지 않았나요?" "아뇨, 사실은 윈디뱅크 씨가 1주일 뒤에 다시 프랑스로 가게 되어 있었기에, 호 즈머는 편지로 그때까지는 서로 만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연락해 왔어요. 그 1주일동안, 그분은 매일처럼 편지를 보내 왔고, 저는 매일 아침마다 직접 우편 함에서 편지를 꺼내왔기 때문에 윈디뱅크씨는 거기에 대해선 모르는 것 같았습 니다." "그때는 이미 에인절 씨와 결혼을 하기로 약속해 두었겠군요?" "예, 홈즈 씨. 둘이서 처음 산책을 한 날, 우리는 결혼을 약속했어요. 호즈머-- 즉, 에인절 씨는 리든홀 가의 어느 회사 경리 사원인데...." "그 회사 이름은?" "그건.....저도 몰라요." "그럼, 그의 숙소는?" "그는 회사에서 묵고 있다고 했어요." "그러면 아가씨는 상대방의 주소도 모른다는 겁니까?" "예---- 단지 리든홀 가라는 것밖에는요." "그럼 답장을 쓸때는 어디로 보냈습니까?" "리든홀 우체국 사서함이었습니다. 회사로 여자에게서 편지가 오면 남들이 놀린 다는 거였어요. 그렇다면 자기도 편지를 타자로 쳐서 보내니, 나도 타자쳐서 보 내면 되지 않겠냐고 물으니, 그건 싫다고 하데요. 직접 손으로 쓴 편지여야 정 말 저한테 보내온 느낌이 들지, 타지기로 쳐서는 우리 두 사람 사이에 기계가 들어선 기분이 난다는 거예요. 홈즈 씨, 그분은 그토록 저를 사랑한 거예요. 세 밀한 데까지 신경을 써서요." "실로 의미가 깊은 이야기로군요. 나는 그전부터 '세밀한 부분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하다'라는 격언을 믿어 오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찮은 일이라도 좋으니, 에 인절 씨에 대해서 생각나는 일은 무엇이든지 이야기해 주시지요." "홈즈 씨, 그분은 몹씨 내성적인것 같았어요. 남들의 눈에 띄는 것을 싫어해서, 만나는 것도 늘 밤에, 어두운 곳에서 만나는걸 좋아했어요. 목소리마저 소근거 리듯 작아요. 어렸을때에 편도선을 몹시 앓은적이 있어서 그것 때문에 정상적으 로 이야기하기가 어렵다나 봐요. 하지만 저처럼 눈이 나빠서 선글래스를 쓰고 있어요." "호, 그렇습니까? 그래, 윈디뱅크 씨가 프랑스로 다시 간 뒤에는 어떻게 했습니 까?" "호즈머 에인절 씨는 그제야 집에 찾아와서, 윈디뱅크씨가 돌아오기 전에 결혼해 버리자고 하더군요. 하도 열심히 조르기에 저는 그러기로 했지요. 그러자 그분 은 저더러 성서에 손을 얹고, 사랑이 변하지 않겠다고 맹세하라고 하더군요. 어 머니는 그러한 맹세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며, 그런것까지 말하는 걸 보면 그분의 사랑이 진실된 증거라고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처음부터 에인절 씨에게 호감을 갖고, 그분의 일이라면 쌍수를 들고 환영했어요. 에인절씨가 1주일 내에 결혼식을 올렸으면 좋겠다고 어머니께 얘기하자, 어머니 도 좋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프랑스에 간 윈드뱅크 씨가 마음에 걸린다고 하니까, 어머니는 우리 두 사람은 걱정할 필요 없다고 하면서, 나중에 이야기하 면 된다고 하시더군요. 특히, 어미니는 양아버지에 대해서는 자기가 책임지겠다 고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어요. 불과 다섯 살 위인 양아버지에게 허락을 맡는 것도 이상하지만----그러나 저는 무슨 일이든 은밀히 하는 것을 좋 아하지 않아요. 그래서 프랑스의 보르도에 있다는 지점으로 윈디뱅크 씨에게 편 지를 보냈지요. 그러나 그 편지는 결혼식 전날 되돌아왔어요." "어째서였을까요?" "그건 잘 모르겠는데요. 그분이 영국으로 떠난 뒤에 편지가 도착해서 그런지도 모르죠." "그것 참 유감이로군요. 결혼식은 금요일이었나요? 장소는?" "킹스 크로스 역에서 가까운 세인트 새비어 교회에서 식을 올리고, 그 뒤 세인트 팬크래스 호텔에서 식사를 할 예정이었어요. 그날 호즈머는 2인승 마차를 타고 왔는데, 저와 어머니 두사람이 그 마차를 타고 가고 에인절씨는 다른 마차를 타 고 가기로 했어요. 우리가 교회에 도착하자마자 곧 그 마차가 뛰따라 오더군요. 우리는 신랑인 에 인절 씨가 마차에서 내리기를 기다렸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내리질 않는거예요. 마침내 마부가 내려와 마차안을 들여다보았는데, 글쎄 그 안에 아무도 없다는 거예요~! 마부는 '신랑이 마차에 타는 것을 틀림없이 봤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는데요.'하고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지 뭡니까. 그것이 지난 금요일의 일입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어요. 그 분이 어떻게 되었는지 종잡을 수가 없는 거예요." "그것 참, 희한한 일이군요." "에인절 씨는 마음이 착해서, 저를 애먹일 사람이 아니에요. 그날 아침에도 '무 슨 일이 있어도 마음이 변하지 맙시다. 만일에 뜻밖의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헤어져 있게 되는 일이 있더라도 사랑의 약속은 잊지 말아야 해요. 언제고 당신 을 데리러 올테니까.' 라고 말했거든요. 결혼식날 아침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좀 이상하긴 했지만, 아마도 말못할 사정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해요." "분명히 뭔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가씨는 예상외의 불행이 에인절 씨에게 일 어났다고 생각합니까?" "예, 그래요. 틀림없이 어떤 위험이 자기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바로 그 예감이 맞아떨어진 거예요." "그런데 그것이 어떤 일인지 아가씨는 전혀 짐작이 안 간다는 겁니까?" "가지 않아요." "그럼 하나 더 물어보겠습니다. 어머니는 이번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 요?" "어머니는 화가 나서, 그분에 대해서는 다시는 입 밖에 내지 말라고 하세요." "윈디뱅크 씨는 뭐라고 하던가요? 양아버지에게도 그 일을 말했습니까?" "말했습니다. 윈디뱅크 씨도 저의 의견과 비슷해요. 무슨 사정이 있는 모양이니, 지그시 기다리고 있으면 무슨 소식이 있을 거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에인절 씨도 그렇지, 저를 교회 앞에 내팽개친다고 해서 무슨 이득이 있 겠어요? 혹시 그분이 저에게서 무슨 돈을 빌어 썼다던가, 그리고 결혼하면 제 재산이 자기 것이 된다면 몰라도 말입니다. 하여간 에인절 씨는 돈에 관해서는 깨끗한 분으로, 단 1실링도 제 돈을 쓰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런데도 왜 자취 를 감추었을까요? 하다 못해, 왜 편지 한 장 보내지 않는 걸까요? 아아. 생각하 면 할수록 미칠 것만 같아요." 서덜랜드 양은 핸드백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눈물을 닦았다. 홈즈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조사해 드리겠습니다. 나에게는 명백한 결과를 밝혀낼 자신이 있습니다. 그러 니, 나에게 맡기고 아가씨는 더 이상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기 바랍니다. 특히 호즈머 에인절에 대한 미련은 깨끗이 버리십시오, 그 사람은 아가씨 앞에서 사 라진 것이니까요." "그럼, 저는 다시는 그분을 만날 수 없나요?" "그럴 겁니다." "그럼, 그 분은 어찌 되었을까여?" "그 문제는 나에게 맡겨 주십시오. 그보다도, 에인절씨의 정확한 인상을 알려 주 십시오. 그리고 그에게서 온 편지도 보여 주면 도움이 되겠습니다." "저는 지난 토요일ㅇ 크로니클 신문에 사람을 찾는 광고를 냈습니다. 이것이 그 걸 오린 겁니다. 여기에 그분의 인상이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편지는 네 통 갖 고 왔습니다." "됐습니다. 그리고 아가씨의 주소는 어디지요?" "런던 캠버웰 구, 라이온 플레이스 31번지입니다." "에인절 씨의 주소는 모른다고 하셨고--- 윈디뱅크 씨의 직장은?" "펜처치 가에 있습니다. 주류 도매업을 하는 웨스트 하우스 마뱅크 사의 외무 사원입니다." "잘 알겠습니다. 그럼 신문 오린 것과 편지는 내가 잠시 보관하겠습니다. 그리고 아까의 충고를 잊지 않도록 하십시오. 이 사건에 대해서는 더 이상 심각하게 생 각지 말아야 합니다. " "홈즈 씨, 여러 가지로 감사합니다. 하지만 에인절 씨와의 약속을 져버릴 수는 없습니다. 그분이 다시 저에게로 돌아오기를 언제까지고 기다릴 생각입니다." 서덜랜드 양의 때묻지 않은 마음에 나는 감동을 느꼈다. 서덜랜드 양은 신문의 광고 조각과 편지 네 통을 테이블 위에 놓고는 일이 있으면 언제라도 연락해 달 라고 말하며 눈물을 닦고 돌아갔다. 2. 와트슨 박사의 추리.. 서덜랜드 양이 돌아간뒤, 홈즈는 팔짱을 끼고 발을 죽 뻗고는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러다가 잠시 뒤, 담뱃진으로 얼룩진 도자기 파이프를 집 어 들고는, 거기에 불을 붙여 푸른 연기를 내뿜으며 나에게로 얼굴을 돌리더니 입을 열었다. "그 아가씨는 연구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걸. 사건 그 자체보다도 그 아가씨가 더 흥미가 있었네. 그래, 사건 자체는 별것이 아니야. 내 참고 서류철을 뒤져 보면 알겠지만, 똑같은 예가 있네. 1877년 햄프셔 군의 앤도버에서 같은 일이 있었고, 네덜란드의 헤이그에서도 작년에 비슷한 사건이 있었네. 오늘의 그 사 건도 낡은 수법이지만 두어 가지 새로운 점도 엿보이더군.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 아가시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네." "자네는 그 아가씨에 대해서 내가 모르는 여러가지 일을 꿰뚫어본 모양이군 그 래." "자네가 몰랐다기보다는 주의력이 부족했다는 것이 옳겠지.봐야 할 곳을 보지 않 았으니까. 중요한 것은 모르고 넘어가게 되지. 옷소매 주위나 손톱, 그리고 구 두끈 같은 것에서 굉장한 결론을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자네는 무심코 지나친 걸세. 어쨌거나, 자네는 그 아가씨의 겉모양에서 어떤 것을 알 수 있었는지 들 려주겠나?" "글쎄..... 쥐색의 챙 넓은 밀짚 모자에 붉은 깃털 하나를 장식하고 있었지. 그 리고 윗도리는 검은색으로 앞자락에는 역시 검은 구슬 장식이 붙어 있었고, 스 커트는 커피색보다 약간 진했고, 목 둘레와 소매끝에는 보라색 빌로드를 댔지, 아마? 장갑은 쥐색에 가까운 것으로, 오른쪽 둘째 손가락 부분이 약간 닳았더 군. 구두는 보지 못했고, 귀에는 작고 둥근 금귀고리가 달려 있었네. 전체적인 느낌으로는 고생을 모르는 소시민층으로서 궁색하지 않은 아가씨더군." 홈즈는 가볍게 손뼉을 치며 빙그레 웃었다. "와트슨, 자네도 많이 발전했는걸. 예상외로 정확히 보기는 했지만, 유감스럽게 도 중요한 것을 놓치고 말았네. 자네도 관찰 방법은 어느 정도 몸에 익힌 것 같 지만, 전체적인 느낌에 사로잡히지 말고 세부적인 점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라 고. 나는 상대방이 여성일 경우, 옷 소매 끝을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고 있네. 남성이라면 바지의 무릎이 관찰 대상이 될 수 있지. 자네도 보았겠지만, 그 아 가씨는 소매 끝에 빌로드를 대고 있었는데, 그것은 가장 해지기 쉬운 천이지. 타자기를 칠 때는 손목 바로 위쪽이 책상을 스치게 되는데, 그 아가씨의 소매 끝에는 두 줄의 선이 명백히 나 있었네. 손재봉틀에서도 비슷한 흔적이 남는데, 그 경우에는 왼손쪽으로, 그것도 새끼 손가락 가까운 곳에 흔적이 남지. 그런데 그 아가씨는 오른손 쪽에 폭 넓은 흔적이 나 있더군. 그리고 얼굴을 보 니, 코 양쪽에 안경을 쓴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네. 그래서 '근시여서 타자 를 치려면 피로를 느끼겠다.'고 말해 주었더니 놀라는 표정이더군." "나도 자네의 말에 놀랐네." "뭐, 한눈에 알 수 있는 일이지. 그런데, 아래쪽으로 시선을 옮겨 관찰해 보니, 신고있는 구두가 비슷은 하지만 서로 다른 것이라는 것을 알았네. 즉, 한쪽에는 코끝에 작은 장식이 붙어 있었는데, 다른 한쪽에는 그것이 없었네. 나는 그것을 확인하고는 마음속으로 약간 놀랐지. 더구나, 다섯 개 달린 단추가 한쪽 구두에 는 두개밖에 없었거니와, 다섯개의 단추에서도 첫번째 것과 세번째 것은 채워지 지도 않았더군. 깃 달린 모자까지 쓴 젊은 아가씨가 구두를 짝짝이로 신고 단추 까지도 제대로 채우지 않았다면, 황급히 뛰쳐나온 것으로 쉽게 추리가 가지 않 는가." 나는 늘 그랬던 것처럼 홈즈의 날카로운 추리에 감탄하면서 물었다. "그 밖에 뭐 또 알아챈 것은 없나?" "그 아가씨는 외출 준비를 끝내고, 집을 나오기 전에 편지를 썼다는 것도 알아냈 네. 장갑의 오른쪽 둘째 손가락 끝이 닳아서 작은 구멍이 나 있었다는 것은 자 네도 본 모양이지만, 그 부근에 잉크 자국이 있었다는 것을 못 본 모양이지? 급히 편지를 쓰려고 펜을 너무 깊이 잉크 병에 넣었던 것 같아. 그리고 손가락 에까지 잉크가 묻은 것으로 보아 오늘 편지를 쓴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네. 초보적인 관찰 방법이지만,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생각하면 흥미 있는 일이 아 닌가. 어쨌거나 일로 되돌아가세. 우선 신문 광고에 냈다는 호즈머 에인절의 인 상서를 읽어주지 않겠나?" 나는 신문을 오린 쪽지를 집어 들었다. '찾는 사람' 란에 실린 광고 내용은 다음 가 같았다. '14일 아침 이래 호즈머 에인절이라는 남자가 행방 불명임. 키 170cm가량. 뼈대가 굵으며 혈색은 나쁜 편. 머리칼은 검고, 한복판이 약간 벗겨졌음. 검고 풍성한 콧수염과 턱수염이 인상적임. 행방 불명 당시 복장은 검은 예복 차림에, 조끼에는 금으로 된 시계줄을 늘어뜨리고, 회색 바지를 입고 있었음. 리든홀 가의 어느 회사 사원이라고 함. 그분의 주소를 알려주시면---' "그만, 그걸로 됐네." 홈즈는 나의 낭독을 중단시키고, 이번에는 에인절의 편지를 살펴보며 말했다. "편지는 극히 단순해. 에인절에 대해 알아낼 것이 아무것도 없군. 그러나 한 가 지만 두드러진 점이 있네. 그것을 알면 자네도 놀랄걸." "모두 타자기로 쳤군." "서명까지 타자기로 쳤어. 보라고. 편지 끝에 호즈머 에인절이라고 타자기로 쳤 지 않은가. 날짜는 정확히 밝혔으면서도 주소는 모호하게 리든홀 가라고만 표시 했네. 왜 서명을 펜으로 하지 않았을까....이건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네. 사건 의 열쇠가 될 만하지." "그래?" "자네는 이 서명을 왜 타자기로 찍었는지 짐작이 안 가나?" "부끄럽네만, 잘 모르겠는걸. 결혼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다고 고소를 당할 경우, 자기는 서명을 한 일이 없다는 구실을 삼으려고 그랬을까?" "아니, 그런것이 아닐세. 하여간 이제 내가 편지 두 통을 쓸 참인데, 그걸로 이 사건은 해결이 날 걸세. 한 통은 런던 중심구에 있는 어떤 회사로 보내고, 다른 한 통은 서덜랜드 양의 아버지인 윈디뱅크에게 보내어 내일 오후 6시에 와 달라 고 부탁하는 내용이지. 사나이끼리 결말을 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그러네. 자, 와트슨 박사, 답장이 올 때까지는 할 일이 없으니까, 이 별볼일 없는 사건은 그 만 덮어두기로 하세나." 나는 홈즈의 예리한 추리와 남다른 정력을 깊이 믿고 있었으므로, 이 묘한 사건 의 조사에 관해 홈즈가 그만큼 자신을 갖고 여유 만만하게 대처하는 것을 보자, 그에게는 이미 확실한 전망이 선 것으로 생각했다. 나는 곧 파이프를 물고 있는 홈즈를 남겨 두고 집으로 돌아왔으나, 내일 저녁 그 곳에 갈 때는 메어리 서덜랜드 양의 사라진 신랑의 정체가 밝혀질 것이라는 점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3. 신랑의 정체.. 그 무렵 나는 상당히 중한 환자를 맡고 있었기에, 이튿날은 하루 종일 그 환자에 게 매달려 있었다. 가까스로 틈이 난 것이 오후 6시경이어서, 이 묘한 사건의 해 결을 보는 장면에 입회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하며, 지나가던 마차를 집어 타고 베이커가로 달려갔다. 그러나 도착해 보니 홈즈는 그 호리호리한 몸을 팔걸이 의자에 파묻고 잠들어 있 었다. 방안에는 약병과 시험관이 여기저기 널려 있고, 짜릿한 염산 냄새가 풍기 고 있었다. 하루 종일 취미인 화학 실험을 하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나는 실 눈을 뜬 그에게 물어보았다. "어때? 사건은 해결되었나?" 홈즈는 잠이 덜 깼는지, 엉뚱한 대답을 했다. "음, 염화 바륨의 중황산염이었네." "아니, 화학 실험이 아니고 어제의 괴사건 말일세." "아, 그거? 그 사건이라면 두어 가지 그럴듯한 점도 있으나, 괴사건이라고까지 할 것은 없지. 단지, 이 범인을 옭아 넣을 법률이 없다는 것이 유감이라네." "그럼, 그 범인이 누구지? 왜 그 아가씨를 버렸을까?" 홈즈가 대꾸하기전에 복도에서 무거운 발소리가 들리더니 노크 소리가 났다. "그 아가씨의 양아버지 윈디뱅크가 왔네. 6시에 오겠다는 답장이 왔었지--- 어서 들어오십시오." 들어온 사람은 30세 가량의 체격이 좋은 중키의 남자였다. 혈색이 좋지 않은 얼 굴이었지만 깔끔하게 면도를 했고, 그의 태도는 은근했지만 회색 눈이 찌를 듯 예리했다. 사나이는 우리를 눈부신 듯 흘끔 쳐다보고는,손때가 묻은 실크햇을 탁 자위에 놓고, 가볍게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가 의자에 앉자, 홈즈가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윈디뱅크씨. 이 타자기로 친 편지는 당신이 보낸 거죠? 6시에 오 시겠다는 내용입니다만." "예, 그렇습니다. 약간 늦어서 죄송합니다. 하던일이 미처 끝나지 않아서, 딸아 이가 상의를 하러 다녀간 모양인데, 낯부끄러운 일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이런 집안 망신은 덮어두고 싶었는데.... 딸이 선생을 찾아뵙는 일에 대해서 나는 반대를 했습니다. 하지만 그애의 성미 는 아시다시피 불 같아서 일단 작정한 일은 하고 만답니다. 하기야 선생은 경찰이 아니어서 약간은 마음이 놓입니다만, 이러한 가정 일은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것이 사실이지요. 게다가, 호즈머 에인절을 찾아낸다 는 것도 어려운 일일 테니, 돈만 낭비하는 일 아니겠습니까?" 홈즈가 조용히 말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나는 호즈머 에인절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 말에 윈디뱅크는 몸을 움찔하는 바람에 장갑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러시다면 다행이군요." "의아스럽게 생각하실지 모르나, 타자기의 활자에도 손으로 글씨를 쓰는 것처럼 분명히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답니다. 신제품 타자기가 아니면, 같은 기종이 라 하더라도 찍힌 활자가 똑같을 수가 없지요. 어느 활자가 다른 활자보다 유난 히 닳았다든가, 비뚤어졌다던가 하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런데 윈디뱅크 씨, 당신이 보내 준 이 편지 말입니다만, e자는 모두 머리쪽이 희미하고, r자는 꼬리가 문드러져 있군요. 그 밖에도 14군데의 특징을 알아냈습 니다만, 이 두 활자의 특징은 누가 봐도 명백합니다." "회사에서 통신문을 작성할때는 모두가 같은 타자기를 쓰므로, 조금 닳아서 그럴 겁니다." "그럼, 여기에서 아주 재미있는 사실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홈즈는 자세를 고쳐 앉고는 말끝을 이었다. "----나는 가까운 장래에 타자기와 범죄와의 관계에 대한 논문을 쓸 예정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전부터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었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윈 디뱅크 씨. 여기에 행방불명된 에인절이 보낸 네 통의 편지가 있습니다. 모두가 타자기로 친 편지입니다. 그런데 네 통 모두 e자의 머리쪽이 희미하고 r 자의 꼬리는 문드러져 있습니다. 더구나 확대경으로 보면 조금전에 당신의 편지 에 대해서 말씀드린 14가지의 특징도 관찰할 수가 있습니다." 윈디뱅크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모자를 움켜 쥐었다. "홈즈씨, 이런 잠꼬대 같은 이야기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습니다. 에인절을 찾 아낼 수 있거든 찾아내십시오. 그리고 나서 나에게 통지 바랍니다." "그러지요." 홈즈는 그렇게 대답하고 나서, 문 쪽으로 걸어가 쇠를 채웠다. "자, 에인절을 찾았으니 알려 드리겠습니다." 윈디뱅크는 입술까지 새파래지더니 덫에 걸린 쥐처럼 사방을 ?어보며 외쳤다. "뭐라고요? 그자가 어디 있습니까?" 홈즈가 차분하게 말했다. "흥분하지 마시오. 도망갈 수는 없습니다. 윈디뱅크 씨, 속임수의 진상은 뻔합니 다. 자, 앉아서 이야기합시다." 윈디뱅크는 핏기를 잃고, 의자에 무너져 내리듯 앉더니 말을 더듬었다. "이, 이건 범죄가 되지 않습니다." 홈즈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범죄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윈디뱅크 씨. 이 토록 간사하고 무자비한 장난은 처음 보겠습니다. 어쨌거나 내가 사건의 줄거리 를 대충 이야기해 볼테니 틀린 점이 있거든 지적하십시오." 윈디뱅크는 의자 속에서 몸을 웅크리고 머리를 숙인 폼이 무척이나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홈즈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는 그 부근을 서성거리며 마치 혼잣말처럼 이야기를 시작했다. "윈디뱅크라는 사나이는 금전을 목적으로 자기보다도 훨씬 나이가 많은 과부와 결혼했습니다. 또한, 의붓딸 메어리 서덜랜드의 돈도 메어리가 결혼하지 않는 한 자기가 마음대로 할 수가 있었지요. 하지만, 메어리가 결혼한다면 윈디뱅크 는 1년에 100파운드를 손해보게 됩니다. 그래서 윈디뱅크는 메어리의 결혼을 방 해하기 위해 어떤 수단을 썼느냐 하면, 그건 다음과 같습니다. 처음에는 메어리를 외출하지 못하게 하여 젊은 남자와 교제하지 못하게 하는,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수법을 썼습니다. 그러나 그런 수법에는 한계가 있었습 니다. 메어리는 차차 말을 듣지 않게 되었고, 자기 권리를 주장하며 마침내는 댄스 파티에 나가겠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그러자 교활한 윈디뱅크는 어떤 비상 수단을 강구했을까? 이번에는 아내까지 설 득시켜 교묘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메어리가 눈이 나쁘다는 것을 이용하여 선그 래스를 써서 날카로운 눈을 가리고, 콧수염과 턱수염을 멋지게 붙인 다음, 목소 리까지 변화시켜서는 호즈머 에인절이라는 가명으로 메어리앞에 나타난 겁니다. 그리고는 메어리에게 구혼함으로써, 달리 애인이 생기지 않도록 했습니다." 윈디뱅크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변명했다.. "처음에는 장난삼아 해본 일입니다. 메어리가 설마 그렇게까지 빠져들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랬을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이성 교제가 없었던 노처녀 메어리로서는 외관상 멋진 남성의 구혼에 약할 수밖에 없었고, 더구나 양아버지가 프랑스로 간 것으 로 알고 있었기에, 아버지라는 사람이 그런 음모를 꾸미고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입니다. 더구나 어머니까지 에인절을 추켜 세우는 판이니, 더 욱 열중할 만도 했지요. 이제 가장 바람직한 일은, 이 연애를 극적인 형태로 끝내는 일이었습니다. 그렇 게 하면, 메어리의 마음속에는 에인절과 지냈던 추억이 뿌리깊게 남게 되므로 한동안은 다른 남자와 결혼할 생각을 하지 않게 되겠지요. 그래서 에인절은 메어리에게 성서를 걸고 변치 않을 사랑의 맹세를 시키고, 결 혼식날에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암시를 주었습니다. 즉, 윈디뱅크는 메 어리가 에인절에 대한 마음의 상처로,그가 혹시 다시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기 대감으로 한 10년은 다른 남자와 결혼할 생각을 못하게 만들려고 한 겁니다. 윈디뱅크는 메어리를 교회 앞까지 가게 하고는, 자신은 마차의 한쪽 입구로 타 서 다른쪽 문으로 빠져나가는 낡은 수법을 써서 모습을 감추었지요. 어떻습니까 ? 윈디뱅크 씨? 내 이야기가 맞아 들어갑니까?" 홈즈가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 윈디뱅크는 어느 정도 마음을 진정시키고는 그 창 백한 얼굴에 한가닥 웃음까지 띠고 있었다. "홈즈 씨, 당신의 이야기는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무척 예리한 사람이니까 잘 알고 있겠지만, 지금 법을 어기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니고 당신이라는 것을 아셔야겠습니다. 나는 처음부터 범죄가 될 만한 짓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이 문을 열지 않는 한, 불법 감금과 협박 죄를 범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겁니다." 홈즈는 문의 자물쇠를 돌려 열면서 말했다. "분명히 법으로써는 당신에게 벌 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만큼 벌을 받아 마땅한 사람도 없죠. 만일 메어리 양에게 어머니나 오빠가 있었다면 당신을 뼈 가 으스러지도록 때렸을 겁니다." 홈즈는 상대방의 얼굴에 비웃는 듯한 웃음이 떠오르는것을 보자, 벌컥 언성을 높 였다. "나는 이런 부탁까지는 받지는 않았지만, 여기에 채찍이 있으니 한 여성이 분풀 이를 해줘야겠소." 홈즈는 이렇게 말하며, 벽에 걸린 승마용 채찍쪽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그 순간 윈디뱅크가 후다닥 방안을 뛰쳐 나갔다. 그리고는 우당탕 계단을 달려 내려가는 소리가 나더니 현관문이 덜컹 열렸다. 창 너머로 바라보니, 윈디뱅크가 거리 한 복판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가는 모습이 보였다. "몹쓸 인간 같으니..." 홈즈는 혀를 차며 말하고는. 다시 의자에 돌아와 앉았다. "저 자는 저렇게 계속 나쁜 짓을 거듭하다가는, 언제고 교수대에 올라갈 만큼 무 거운 죄를 지울 걸세. 하여간, 이번 사건은 약간 흥미있는 요소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 "나는 자네의 추리 과정을 속속들이는 모르고 있는데...." "그런가! 호즈머 에인절이 어떤 명백한 목적이 있어서 수상한 행동을 취했을 것 이란 점은 처음부터 짐작하고 있었네. 또한, 메어리 양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이번 사건에서 실제적인 득을 보는 것은 양아버지밖에는 없다는 것도 분명했지. 그런데 이 두 남자가 결코 동시에 등장하지 않고, 한쪽이 나타날때는 다른 한쪽 은 어떤 구실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했네. 또한, 에인절이 선글래스를 쓰고 멋진 수염을 달고 있다는 사실로 곧장 변장이 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지. 서명까지 타자기로 친것은 자기의 필적을 메어 리가 알고 있으므로 손으로 쓰면 에인절의 정체가 드러날지도 모른다는 계산에 서였네. 이러한 요소를 종합해 보면, 나의 추리는 확신으로 굳어질 수가 있었던 것일세." "그런데 증거를 어떻게 잡았나?" "일단 범인이 누구라는 확신이 서면 증거를 갖추는 일은 쉬운 일이라네. 그래서 신문 광고에 낸 인상서에서 변장에 흔히 쓰이는 선글래스와 수염 따위를 제거해 보았지. 그리고는 나머지 인상을 써서 윈디뱅크가 다닌다는 주류 회사에 외무사 원중에서 이런 사람이 있느냐는 문의 편지를 냈지. 한편, 나는 평소부터 타자기 활자에 대한 것을 알고 있었기에, 한 통은 그 주류 회사의 주소로 윈디뱅크에게 이곳에 와 줄 수 있겠느냐는 편지를 보냈네. 그러자 오겠다는 내용의 타자기로 친 회신을 보내왔기에 대조해 보니 에인절의 연애 편지를 친것과 같은 타자기를 사용했다는 것을 알았지. 한편, 그 주류 회사로부터도 답장이 왔는데, '조회한 사람은 본사의 제임스 윈 디뱅크입니다.' 라는 내용이더군. 그걸로 만사 해결이 아닌가." "서덜랜드 양은 어떻게 하지?" "진실을 알려 줄 수밖에..... 그 아가씨로서는 속히 마음을 정리하고 새로운 결 혼 상대를 만나는 것이 행복한 일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