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한 사건 ?? (Strange Jest) - 애거서 크리스티 - 1...... ^^... "그리고 이분이----" 하고 제인 헬리어는 소개를 했다. "마플 양이에요." 여배우이니만큼, 그녀는 효과 있게 말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이것이 절정이었으 며 화려한 끝맺음이었다! 그 말씨에 경건한 위엄과 승리의 기쁨이 들어나 있었 다. 이상한 점이라면 이처럼 자랑스럽게 소개된 대상이 그저 온화하면서도 좀 까다롭 게 보이는 나이 많은 노처녀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제인이 친절하게 주선해 주 었지만 방금 그녀를 알게 된 두 사람의 눈에는 적이 의심스러웠던지 실망하는 기 색이 역력했다. 그들은 훌륭한 용모를 가진 사람들로, 살갗이 거무스름하고 검은 눈빛과 머리칼을 지닌 호리호리한 몸매의 차미언 스트라우드라는 아가씨와 에드 워드 로시터라는 금발의 큰 몸집을 가진 호감을 주는 청년이었다. 숨을 약간 몰아쉬며 차미언이, "오! 이렇게 뵙게 되어 정말 기뻐요." 라고 말했다. 그렇게 말은 했으나 그녀의 눈에는 의심하는 빛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제인 헬 리어에게 짐짓 따지는 듯한 시선을 던졌다. "마플 양은 틀림없는 분이세요." 제인이 그 시선에 답하듯 말했다. "그 분에게 모두 맡기세요. 약속한대로 이렇게 모셔왔으니까요." 그런 다음 그녀는 마플 양을 돌아보며 덧붙였다. "마플 양께서 틀림없이 이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리라 믿어요. 그 정도야 당신에게는 누워서 떡 먹기?아요." 마플 양은 청자처럼 푸른 눈으로 침착하게 로시터를 바라보며 말했다. "무슨 일로 그러는지 말해 주겠어요?" "우리는 제인의 친구들이랍니다." 차미언이 참을성 없이 끼어들고 나섰다. "에드워드와 저는 좀 곤란한 상태에 처하게 되었어요. 그러던 차에 제인이 자기 파티에 오면 어떤 분을 소개시켜 주겠다고 하더군요. 어려운 사건을 많이 해결 해 내신 분이라니까 우리 문제를 도와 주실 충분한 능력이 있다고 하면서." 에드워드가 그녀의 말을 거들었다. "제인 말이, 마플 양같은 탐정은 두 번 다시 만나기도 어렵다더군요!" 노부인의 눈이 한 순간 반짝였으나, 겸손하게 그 말을 부인했다. "오, 저런, 아니에요! 감히 그 정도야 되겠어요. 나처럼 한 마을에 오래 살다 보 면 사람들의 본성에 대해 자연히 알게 되기 마련이죠. 그나저나 나는 벌써 당신 들의 문제에 호기심이 느껴지는군요. 문제가 무엇이죠?" "너무 진부한 이야기가 돼놔서 어떨지---말하자면 보물이 묻혀 있다는 겁니다." 하고 에드워드가 말했다. "그래요? 정말 흥미롭게 들리는데요!" "그러시겠죠. '보물섬'을 상상하고 계실테니까요. 하지만, 우리 문제에는 그런 로맨틱한 면은 없습니다. 도표 위의 해골과 열십자 모양의 뼈다귀가 어느 지점 을 가리키고 있다거나, '왼쪽으로 네 발자국 가서 서북쪽으로 가라'라는 지시 따위는 없으니까요. 따분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지만---문제는 어느 곳을 파야 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그래, 파 보았나요?" "자그마치 2에이커는 팠을 거에요. 아마 그곳에다 야채를 심어 시장에 내다 팔아 도 될 겁니다. 그렇쟎아도 서양 호박을 재배할까 감자를 재배할까 의논하던 중 인걸요." 차미언이 불쑥 끼어들며 말했다. "문제를 다 말씀드릴까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아가씨." "그럼, 어디 조용한 곳으로 옮기죠. 자, 가요. 에드워드." 그녀는 담배 연기가 자욱한 그 북적거리는 방을 빠져 나와 3층에 있는 조그만 거 실로 올라갔다. 모두 자리를 잡고 앉자, 차미언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럼 말씀드리겠어요. 매튜 백부님의 이야기부터 시작해야겠군요. 백부라기보다 는 대백부라는 편이 나을 거예요. 우리 둘 다 그 분의 조카지요. 고루하기 이를 데 없는 분이셨답니다. 그 분에게 친척이라고는 에드워드와 저밖에 없었어요. 우리를 얼마나 귀여워해 주셨던지 돌아가시게 되면 재산을 우리에게 남겨 주시 겠다는 말씀을 입버릇처럼 하셨죠. 그러다가 지난 3월에 돌아가시고 말았죠. 에 드워드와 저에게 재산을 똑같이 분배해 남기시고서는요. 제 말이 좀 무정하게 들리실지도 모르겠군요. 백부님이 돌아가신 게 뭐 당연하다는 것은 아니에요. 우리 역시 그 분을 무척 좋아했으니까요. 백부님은 오랜 기간 동안 편찮으셨지 요. 그런데 문제는 백부님이 남겨주신 '전재산'이라는 것이 알고보니 알고 보니 아 무것도 없더라는 거예요. 솔직히 말씀드려서, 우리는 타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 어요. 안 그래요. 에드워드?" 에드워드는 친절하게 동감을 표시하며 말했다. "우리는 사실 그것에 기대를 좀 갖고 있어죠. 막대한 돈이 생긴다는데---글쎄요- --아득바득 일에 매달리려 하겠습니까? 저는 군대에 있었습니다만 월급을 제외 하면 이렇다 할 수입도 없는 형편이고, 차미언은 그나마 한푼도 나올 데가 없는 실정이지요. 그녀는 레퍼터리 극장에서 무대 감독으로 일하고 있는데 꽤 재미가 있어서 그 일을 즐기고는 있습니다만, 돈을 벌자고 하는 일은 못 됩니다. 우리 는 장차 결혼을 약속한 사이지만 돈 걱정이라고는 해보지 않았어요. 때가 되면 남부럽지 않은 부자가 되리라는 것을 둘 다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보시다시피 우리는 지금 그렇지가 못해요!" 하고 차미언이 말했다. "설상가상으로, '앤스티스'라고 하는,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땅인데 에드워드와 제가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그 땅마저 팔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요. 에드워드 와 저로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지요! 그렇지만, 매튜 백부님이 남겼다는 유산을 찾아내지 못하면 결국 팔아야만 할 거예요." 에드워드가 말했다. "차미언, 그러고보니 우리가 아직 문제의 핵심은 꺼내지 못했어." "당신이 말해 보세요." 에드워드가 마플 양을 보며 말했다. "이야기를 하자면 이렇습니다. 매튜 백부님은 연세가 들수록 점점 의심이 많아지 셨답니다. 아무도 믿으려 들지 않으셨죠." "아주 현명한 분이셨군요." 하고 마플 양이 말했다. "인간의 부패 행위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정도이니까." "글쎄요, 그 말씀이 옳은지도 모르죠. 어쨌든 매튜 백부님은 그런 생각을 가지고 계셨어요. 백부님 친구 한 분은 은행에서 돈을 털리고, 또 어떤 분은 변호사가 달아나는 바람에 망해 버렸고, 백부님 자신만 해도 어떤 회사에 사기를 당해 얼 마간의 돈을 잃으신 모양입니다. 그리하여 가장 안전하고 현명한 방법은 의례 돈을 금괴로 바꿔 땅에 묻는 일뿐이라고 일장 연설을 하시곤 했죠." "아-----" 하고 마플 양이 말했다. "이제야 이해가 되기 시작하는군요." "그렇습니다. 그런 식으로 하다가는 아무 이익도 못 볼거라며 친구분들이 아무리 뜯어 말려도 막무가내로, 그래도 상관치 않겠다고 하셨죠. 돈이 있으면 모조리, '상자에 넣어 침대 밑에 넣어 두거나 정원에 묻어야 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것을 좌우명으로 삼고 계셨다니까요." 차미언이 그 말을 이어받았다. "실제로 돌아가신 뒤에 보니까, 그렇게 재산이 많았는데도 주식은 거의 없다시피 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백부님이 과연 말씀하시던 대로 하셨구나 하고 생각하 게 된 거예요." 에드워드가 덧붙여 설명했다. "자세히 알아보았더니, 주식을 매각하고 때때로 거액의 돈을 은행에서 찾으셨다 는데, 그 돈을 어떻게 하셨는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더군요. 아마도 평소에 주장하시던 대로 금괴를 사서 땅에 묻었을 것으로 추측할 뿐이죠." "돌아가시기 전에 아무 말씀도 없었나요? 서류도 없어요? 편지도?" "그게 바로 미칠 노릇입니다. 그런 것은 전혀 없었어요. 며칠 동안 혼수 상태에 빠져 있다가 돌아가시기 전에 제정신으로 돌아오긴 했었죠. 우리 둘을 물끄러미 쳐다보시더니 낄낄 웃으시는 거예요. 희미하고 무기력하기는 했습니다만, 그러 더니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귀여운 내 비둘기들아, 모든 게 다 잘 될 게다.' 그런 다음 눈을, 그것도 오른쪽 눈만 손으로 두드리며 우리에게 윙크를 하지 뭡 니까, 그리고는 숨을 거두셨죠. 가엾은 매튜 백부님." "눈을 두드리셨다고요?" 라고 말하며 마플 양은 생각에 잠겼다. 에드워드가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뭔가 생각나는 점이라도 있습니까? 저는 어떤 사람의 의안에 뭔가가 숨겨져 있 었다는 아르센 뤼팽의 소설이 생각나더군요. 하지만, 매튜 백부님의 눈은 의안 이 아니었거든요." 마플 양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글쎄요---지금으로서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군요." 차미언은 낙담하여 말했다. "제인 말로는, 마플 양이라면 어느 곳을 파야 할지 단번에 알아내실 거라고 했는 데요!" 마플 양은 미소를 지었다. "알다시피 나는 마술사가 아니예요. 두 사람의 백부님을 만난적도 없고, 또 어떤 사람이었는지도 모를 뿐 아니라 그 집과 땅도 본 적이 없잖아요." 차미언이 말했다. "그것들을 알고 계셨다면요?" "그렇다면 아주 간단하지 않을까요?" 하고 마플 양이 말했다. "간단하다고요!" 하고 차미언이 말했다. "그럼, 앤스티스로 오셔서 과연 간단하지 한번 보시죠!" 아마 그녀는 진심으로 초대할 작정으로 한 말이 아니었겠지만, 마플 양은 재빨리 응답을 했다. "어쩜, 정말 아주 친절한 아가씨로군요. 나는 늘 묻혀 있는 보물을 찾아낼 기회 가 없을까 하고 기다려 왔었다우. 게다가----" 그녀는 기쁨에 넘쳐 후기 빅토리아 시대 사람 같은 미소를 띠고서 그들을 쳐다보 며 이렇게 덧붙였다. "심상치 않게 흥미까지 곁들이다니!" "이해할 만하시죠!" 하고 차미언이 극적인 몸짓을 하며 말했다. 그들은 광활한 앤스티스를 막 한 바퀴 돌아보고 난 참이었다. 마구 들쑤셔 놓은 채마밭을 둘러보고, 거목 주위를 모조리 파헤쳐 놓은 숲속의 구석구석까지 가서, 한때는 평탄했을 잔디밭의 표면이 곰보투성이로 변한 광경을 애석하게 바라보기도 했다. 더그매에 있는 낡은 트렁크와 궤에 들어있던 내용물 들을 샅샅이 다 뒤져 놓았는가 하면, 지하실의 판석들을 무리하게 다 들어내 놓 기까지 했다. 벽이란 벽은 다 재고 두드려 보았으며, 비밀 서랍이 달려 있을만한 고가구란 고가구도 다 빠짐없이 마플 양에게 보여주었다. 거실은 또 어떨까---탁자위에다 고(故) 매튜 스트라우드가 남겨놓은 서류들을 하 나라도 빠질세라 모조리 꺼내어 산더미처럼 쌓아 놓았다. 차미언과 에드워드는 틈만 나면 그 탁자로 가서 아직까지 눈에 띄지 않은 단서를 혹시라도 찾을까 해 서 계산서며 초대장, 사무상의 서신들을 열심히 검토해 보았던 것이다. "혹시 우리가 미처 못 살펴본 데는 없을까요?" 차미언이 기대를 걸며 물었다. 마플 양은 머리를 저었다. "볼 만한 곳은 철저하게 다 본것 같은데요, 아가씨. 좀 지나치다 싶을 만큼 철저 하게 조사했군요. 나는 말이죠. 사람은 계획을 세워 행동해야 한다고 늘 생각해 요. 엘드리치 부인이라는 내 친구 이야기를 해드리죠. 그녀의 집에 어린 하녀가 하나 있는데, 얼마나 부지런한지 그 집에 가보면 마루가 반짝반짝 윤이 난답니 다. 그것까지는 좋았는데, 욕실 바닥을 너무 열심히 닦아놓은게 탈이었다우. 엘 드리치 부인이 욕조에서 나오다가 바닥에 깔아놓은 코르크 깔개가 밀리는 바람 에 그만 미끄러지고 말았다니까요. 그래서, 운수 사납게도 다리가 부러졌지 뭐 예요! 공교로운 일이지만, 욕실문을 잠그고 목욕을 했을테니 정원사가 사다리를 놓고 창문으로 들어갔을밖에요. 정숙하기가 이만저만하지 않은 엘드리치 부인이 엄청난 곤혹을 치른 셈이죠." 에드워드가 초조하게 왔다갔다 했다. 그것을 눈치채고는 마플 양이 얼른 이렇게 말했다. "내 정신 좀 봐. 갑자기 이야기가 옆으로 빗나갔군요. 용서해요. 그러나, 한 가 지 일을 생각하다 보면 다른 것이 떠오르게 되죠. 그게 가끔 도움이 되기도 한 답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지혜를 한데 모아 보물이 숨겨져 있을 만한 장 소를 꼽아본다면...." 에드워드는 불쾌한 듯이 이렇게 내뱉었다. "그건 마플 양께서 꼽아 보시죠. 차미언과 제 머리는 지금 텅 빈 백치같단 말입 니다!" "저런, 가엾게도. 오죽하겠어요. 당신들은 몹시 지쳐 있을 거예요. 괜찮다면, 내 가 이것들을 모두 살펴보죠." 그녀는 탁자 위의 서류더미를 가리켰다. "비밀로 해야 할 서류가 없다면 말이에요. 남의 비밀을 들추어 낸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거든요." "오, 비밀은 없으니 마음놓고 살펴보십시오. 그렇지만,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하 실 겁니다." 그녀는 탁자 앞에 앉아 서류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그리고 조사한 서류는 분 류하여 작은 더미위에 착착 쌓아 정리해 나갔다. 작업을 다 끝낸 뒤 그녀는 잠시 동안 앞만 골똘히 쳐다보며 앉아 있었다. 에드워드가 약간 심통이 섞인 말투로 물었다. "어떻습니까, 마플 양?" 마플 양은 움찔하며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아이고, 잠시 딴 생각을 하느라고. 굉장히 도움이 뻍어요." "이 문제와 관련된 것을 찾아냈다는 말입니까?" "오, 아뇨.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 매튜 백부님이 어떤 분이셨는지는 알겠어요. 우리 헨리 백부님과 좀 비슷한 분인 것 같군요. 악의 없는 농담을 좋아하는 점 이라든가, 평생을 독신으로 지낸 것을 보면, 왜 독신으로 지내셨는지는 모르겠 으나, 아마 젊었을 때 실연이라도 당했겠죠. 꼼꼼하기 이를 데 없는 성격이었지 만, 어딘가에 속박당하는 것을 너무 싫어했답니다. 하기야 독신자치고 그런 것 을 좋아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마플 양이 이야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동안 차미언은 에드워드에게 눈짓을 하고 있었다. '노망 들렸나 봐.' 마플 양은 그것도 모르고 죽은 헨리 백부 이야기를 신나게 하고 있었다. "재담은 또 얼마나 좋아하셨다고요. 그러나, 재담을 굉장히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말을 가지고 장난한다는 게 아마도 무척 짜증나는 일인지도 모르죠. 그런데, 우리 백부님 역시 의심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하인들이 항상 자기 물건을 훔치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으니 말이죠. 물론 이따금 그런 하인 들도 있었겠지만, 늘 그랬다고는 볼 수 없잖아요. 그런데도, 그 분의 의심은 날 로 짙어만 갔어요. 종국에 가서는 하인들이 그 분이 먹을 음식에 독약을 넣을지 도 모른다는 생각에까지 미쳤고, 결국 삶은 달걀밖에는 아무것도 안드셨답니다! 아마두 삶은 계란안에는 독약을 넣을 수 없다는 거였어요. 가엾은 헨리 백부님. 한때는 무척이나 유괘한 부인었는데----식사 뒤에는 커피를 꼭 드시곤 했었다 우. 그 분은 이렇게 말을 하시곤 했어요. '이 커피는 굉장히 훌륭해. 아라비아 산이로군.' 그건 좀더 마시고 싶다는 뜻이었죠." 에드워드는 헨리 백부의 이야기를 한 마디라도 더 들으면 미처 버릴 것 같은 표 정을 지었다. 그러나, 마플 양은 계속해서 말했다. "젊은 사람들을 좋아하면서도, 툭하면 짓 은 장난을 치셨지요. 과자 봉지를 어 린애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얹어두기 일쑤였다니까요." 예의차릴 것 없이 차미언이 대놓구 말했다. "정말 심술 은 분이셨군요!" "오, 그렇진 않아요. 다만 일생을 독신으로 지내시다 보니 어린애들을 다루는 법 을 몰랐을 뿐이지요. 그러나, 결코 어리석은 분은 아니었어요. 집에다 거액의 돈은 보관하고 계셨는데, 그것 때문에 금고까지 마련하셨다니까요. 돈을 안전하 게 보관하는데는 그게 상책이라며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었죠. 얼마나 법석을 떨 었으면 도둑들이 그걸 알고 집에 들어와서 화학 약품으로 그 금고에 구멍이 뚫 어 놓았겠어요." "당연한 일이죠." 하고 에드워드가 말했다. "오, 그러나 그 금고에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마플 양이 말했다. "정작 그 돈은 다른 곳에 숨기셨던 거예요. 알고 보니, 서재에 설교서가 몇 권 꽃혀 있었는데, 바로 그 뒤에 감춰 두셨더군요. 그 분 말씀이, 책자에서 그런 책을 꺼내어 보는 사람은 결코 없다는 거예요!" 에드워드가 갑자기 흥분한 목소리로, "아하, 그럴수도 있겠군요. 서재를 한번 찾아보면 어떨까요?" 라고 말했다. 그러자 차미언이 한심하다는 듯이 고개를 젓는 것이었다. "내가 그 생각을 안 해본줄 아세요? 지난 주 화요일 당신이 포츠머스에 갔을 때 그 책들을 모조리 살펴보았다고요. 모두 꺼내어서 흔들어 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단 말예요." 2........ ^^ ..... 에드워드의 입에서 한숨이 나왔다. 그리고는 벌떡 일어서서 자기들을 실망시킨 이 손님을 어떻게 하면 쫓아 버릴 수 있을까 곰곰히 생각했다. "이렇게 오셔서 저희들을 도우려고 애를 써주셨으니 정말 뭐라고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유감스럽게도 모두 허사로 돌아가고 말았지만요. 어쨌든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은 것 같습니다. 제 차로 역까지 모셔다 드리지요. 지금 가면 3 시 30분 기차를 타실 수 있을 겁니다." "어머나." 마플 양이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돈을 찾아내지 못했잖아요. 안 그래요? 포기하지 말아요. 로시터 씨, 첫번째에 성공을 못했다 하더라도, 2차, 3차, 4차 계속 시도를 하는 거예요." "그럼 마플 양께서는 계속해서 찾아---보시겠다는 말씀인가요?" "엄격하게 말한다면, 나는 아직 시작도 안 한걸요." 마플 양이 말했다. "'먼저 토끼부터 잡아라----' 이건 비턴 부인인 쓴 요리책에 나오는 말인데---훌 륭한 책이기는 하지만 엄청나게 비싸지요. 조리법은 대개 이런 말로 시작된답니 다. '크림 1쿼트와 달걀 12개를 준비할것.' 가만 있자, 내가 어디까지 이야기했 더라? 아, 맞아요. 그러니까 우리는 먼저 토끼부터 잡아야 한다는 거예요---그 토끼란 물론 당신들이 매튜 백부님이 될 것이며, 이제 그 분이 돈을 어디에다 감춰 두었을 것인가만 알아내면 돼요. 그건 아주 쉬운 일이죠." "쉽다고요?" 차미언이 되물었다. "그렇다니까요. 그 분은 빤히 보이는 곳에 두신 게 분명해요.나는 비밀 서랍이라 고 결론을 내렸어요." 에드워드가 비꼬듯이 이렇게 말했다. "비밀 서랍에다 금방이를 넣어 둘 사람은 없을걸요." "예, 물론 그렇죠. 그러나 그 돈이 꼭 금붙이로만 되어 있다고 볼 수는 없잖아요 ?" "그래도 백부님이 늘 하시던 말씀으로 봐선----" "우리 백부님도 언제나 금고 타령을 하지 않으셨던가요? 내 생각으로는 그건 단 지 깜쪽같은 속임수에 불과해요. 금이 아니고 다이아몬드라고 한다면---비밀 서 랍에 숨기기가 아주 쉽죠."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이미 비밀 서랍이란 서랍은 다 뒤져 보았어요. 비밀 서랍을 찾아내려고 가구업자까지 불렀다니까요." "그래여? 정말 예리하군요. 나는 당신들의 백부님이 쓰시던 책상이 가장 가능성 이 크다고 봅니다. 저쪽 벽에 붙여 놓은 저 키 큰 책상인가요?" "예, 제가 보여 드리죠." 차미언이 그쪽으로 갔다. 그녀는 경첩으로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날개판을 내렸다. 그 안에 는 여러개로 나누어진 작은 간과 조그만 서랍들이 달려 있었다. 그녀는 중앙에 있는 조그만 문을 연 다음 왼쪽 서랍 안에 있는 용수철을 톡 건드 렸다. 그러자, 중앙에 쑥 들어가 있던 서랍이 삐걱 소리를 내며 앞으로 밀려 나 왔다. 차미언이 그것을 꺼내어 깊이가 얕은 간을 보여 주었다. 텅 비어 있었다. "이건 정말 놀라운 우연의 일치로군요!" 마플 양이 탄성을 발했다. "헨리 백부님도 이것과 똑같은 책상을 가지고 있었어요. 다만 그것은 호두나무로 만들어진 것이고, 이것은 마호가니다 뿐이지---" "어쨌든, 이 속에는 아무것도 없잖아요. 보시다시피." 하고 차미언이 말했다. 마플 양은, "그 가구업자는 젊은 사람이었나 보군요. 그러니 다 알고 있지는 못했을 거예요. 옛날 사람들이 비밀 장소를 만든 것을 보면 아주 기가 막히죠. 비밀 안에 또 비 밀이 숨겨져 있는 식이라고요." 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희끗희끗한 머리를 틀어 올려 단장하느라고 꽂은 머리 핀을 빼내 어 그것을 곧게 편 다음, 핀 끝으로 그 비밀 서랍 한쪽의 조그만 벌레 구멍처럼 보이는 곳을 찔러댔다. 잠시 씨름을 하더니, 그녀는 조그만 서랍 하나를 빼냈다. 그 속에는 낡은 편지 한 묶음과 접어놓은 종이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에드워드와 차미언은 뜻밖에 발견된 그 백부의 유품에 와락 달려들었다. 에드워드가 손가락을 가늘게 떨며 종이를 펼쳤다. 그러더니 진저리치듯 탄성을 지르며 그것을 떨어뜨렸다. "빌어먹을 요리법이 적혀 있잖아. 햄구이라고!" 차미언은 편지를 한데 묶어 놓은 리본을 풀어 그 중 하나를 꺼내어 ?어 보았다. "연애 편지에요!" 마플 양의 반응은 다분히 빅토리아 시대풍의 취미를 드러낸 것이었다. "정말 흥미진진하군요! 그 편지에 백부님이 끝내 결혼하지 않은 이유가 들어 있 을지도 몰라요." 차미언이 편지를 크게 소리내어 읽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나의 매튜. 당신의 지난 번 편지를 받은게 까마득한 옛날 일처럼 느 껴지는군요. 나는 내게 주어진 여러 가지 일에 몰두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리고, 세상을 이렇게 두루 구경할 수 있으니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고 되 뇌어 보기도 한답니다. 그러나, 지난 번 미국에 갔을 때만 해도 이렇게 멀리 떨 어져 있는 섬으로 오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답니다.'" 차미언은 읽던 것을 멈췄다. "어디에서 온 걸까? 오, 하와이로군요!" 하고는 계속해서 읽었다. "'슬프게도 이곳 원주민들은 아직도 문명과는 동떨어진 생활을 하고 있어요. 아 무것도 걸치지 않은 미개한 상태로, 몸에 화환으로 치장을 하고서는 온 종일 수 영을 하지 않으면 춤을 춘답니다. 그레이 씨가 몇몇 사람을 겨우 개종시키긴 했 지만 어려운 일이에요. 성과가 없으니 그레이 씨 부부도 이만저만 낙심하고 있 는 게 아니지요. 나도 그를 격려하여 용기를 내게 하려고 최선을 다하고는 있지 만, 나 역시 서글픈 심정을 가눌 수 없을 때가 많아요. 이유는 짐작하시겠죠. 사랑하는 매튜,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없다는 것은 정말 가혹한 시련이에요. 당 신이 다시금 사랑의 굳은 맹세를 써 보내 준 것이 내게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 큼 힘이 되었답니다. 언제나 변함없이 당신만을 깊이 사랑하고 있어요. 매튜--- 당신의 진실한 사랑, 베티 마틴. 추신 - 이 편지는 늘 하던 대로 우리 둘의 친구인 마틸다 그레이브의 주소로 부 칩니다. 하나님의 작은 속임수를 용서해 주시길 바라면서....'" 에드워드가 휘파람을 불며 말했다. "여선교사였구먼! 그러니까 그게 매튜 백부님의 로맨스였군요. 그런데, 왜 결혼 을 안 했을까?" 차미언은 편지를 뒤적이며 말했다. "세계 곳곳을 안가본데가 없는 것 같은데요. 모리시어스(아프리카 남동쪽 인도양 에 있는 섬나라)에서 온 편지도 있고, 별의별 지역에 다 가봤나 봐여. 그러니, 아마 황열병 같은 병에 걸려 돌아가신 거겠죠." 그 때 그들은 킬킬거리는 웃음 소리에 깜짝 놀랐다. 마플 양은 뭔가 굉장히 재미 있는 것을 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원, 세상에. 이럴 수가!" 하고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햄구이 요리법을 읽고 있었는데, 그들이 궁금해 하는 표정을 보고는 소리 내어 읽었다. "'시금치를 곁들인 햄구이. 훈제 햄을 좋은 것으로 준비하여 정향을 듬뿍치고 흑설탕을 뿌린다. 그것을 오븐에 넣어 서서히 구운 다음 가장자리에 시금치 퓌 레를 담아 낸다.' 자, 어때요? (퓌레는 야채, 고기를 삶아서 거른 진한 스프)" "맛이 형편없을 것 같은데요." 하고 에드워드가 말했다. "아니, 그렇지 않아요. 의외로 맛있을 것 같은데요---그보다도 문제를 전반적으 로 볼 때 무슨 생각이 안 들어요?" 에드워드의 얼굴에 갑자기 광채가 감돌았다. "그러니까, 그게 암호 같은 거라는 말씀이죠?" 그리고는 그 종이를 휙 빼앗아갔다. "이것 좀 봐, 차미언. 그럴지도 몰라! 그렇지 않다면 요리법 따위가 비밀 서랍에 들어 있을 이유가 없잖아." "맞아요. 그건 아주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요." 하고 마플 양이 말했다. 차미언이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 "그게 뭔지 알 것 같아---눈에 안 보이는 잉크로 썼을 거예요! 불을 쬐어 봐요. 전기 난로를 켜 봐요." 그러나, 그런 방법으로도 필적은 나타나지 않았다. 마플 양이 헛기침을 했다. "정말 너무 어렵게들 생각하는군요. 그 요리법은 그저 암시에 지나지 않는 거예 요. 내 생각으로는----중요한 것은 오히려 편지 쪽인 것 같은데." "편지?" "특히 그 서명이." 그러나 에드워드는 그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차미언! 이리 와 봐! 마플 양 말이 맞았어. 이것 좀 봐---봉투들은 굉장히 오래 되었는데, 편지는 훨씬 뒤에 쓰여진 것들이야." "맞았어요." 하고 마플 양이 말했다.. "편지는 일부러 오래 된 것처럼 위조한 거야. 틀림없이 매튜 백부님이 직접 쓰신 거라고." "뻔한 일이죠." 하고 마플 양이 말했다. "이건 모두 속임수야. 여선교사 같은 건 있지도 않았을걸. 그건 암호가 틀림없다 고." "이봐요, 그렇게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대도요. 당신의 백부님은 정말 아주 단 순한 사람이었어요. 그냥 가볍게 장난을 친 것 뿐이라고요." 그들은 처음으로 그녀의 말에 주의를 기울였다. "정확하게 무슨 말씀인가요, 마플 양?" 하고 차미언이 물었다. "사실대로 얘기하자면---지금 그 돈은 바로 당신들의 손에 들어 있다는 말이에 요." 차미언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빤히 쳐다보았다. "서명한 것을 봐요. 그걸 보면 진상이 다 드러나잖아요. 그 요리법은 암시에 불 과한 것이고, 거기서 정향이니 흑설탕이니 하는 것들을 빼고 나면, 뭐가 남죠? 햄과 시금치라고요! 그건 허튼 소리라는 뜻도 가지죠!('gammon'에는 훈제 햄이 라는 뜻외에 '엉터리', '허튼 소리, 사기' 라는 뜻이 있음) 자, 그럼 편지가 중 요하다는게 분명해 졌죠? 그리고, 당신들의 백부님이 돌아가시기 직전에 어떤 행동을 하셨는지 곰곰히 생각해 봐요. 눈을 두드렸다고 했죠. 자, 바로 그거예 요---그게 이 문제를 푸는 실마리라고요. 알겠어요?" "우리가 미친 거예요, 당신이 미친거예요?" 하고 차미언이 말했다. "당신들도 뭔가 사실이 아닌 것을 의미하는 표현을 들어 본 적이 있을 텐데요. 요즘은 그런 말을 안 쓰나요? '내 눈과 베리 마틴'이라는 표현 말이에요." 에드워드는 그의 손에 쥐고 있던 편지에 시선을 떨구며 헉 하고 숨을 몰아쉬었 다. "베티 마틴이라면-----" "맞아요. 로시터 씨. 당신이 좀 전에 말했다시피, 그런 사람은 현재에도 없고 과 거에도 존재하지 않아요. 편지는 백부님이 쓰신 거지요. 그걸 쓰면서 얼마나 재 미가 있으셨겠어요! 당신 말대로 봉투가 훨씬 오래 되었어요---사실, 그 봉투에 그 편지가 들어 있었을리가 없죠. 당신 손에 있는 봉투의 소인만 해도 1851년에 찍힌 것이거든요." 그녀는 그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말을 끊었다. "1851년---이만하면 다 알겠죠?" "난 아직 모르겠는데요." 하고 에드워드가 말했다. 마플 양이 말했다..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죠. 나도 내 증조카 라이오넬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테니 까. 어린 녀석이 대단한 우표 수집광이죠. 우표에 대해서라면 모르는게 없을 정 도예요. 값비싸고 희귀한 우표들에 관한 이야기도 모두 그 애한테서 들었는데, 한번은 굉장히 오래 된 우표가 새로 발견되어 경매에 붙여졌다는 이야기를 해주 더군요. 그 애가 말한 우표 하나가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데, 그게 아마 25000달 러쯤 되었을 걸요. 엄청나죠? 다른 우표들도 역시 귀하고 값비싼 것들일 거예 요. 당신 백부님은 업자들을 통해 우표를 사들인 다음 그것을 감추려고 감쪽같 은 속임수를 쓴 거예요. 추리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말이에요." 갑자기 에드워드가 신음 소리를 내며 주저앉더니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왜 그래요?" 하고 차미언이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생각해 보니 너무 끔찍해서 그래. 마플 양이 아니었다면, 우 리는 예의를 지킨답시고 점잖게 이 편지들을 태워 버렸을 것 아니야!" 마플 양이 말했다. "아! 장난을 좋아하는 이 노인 양반이 바로 그 점을 깨닫지 못했군요. 기억나는 일이 하나 있는데, 언젠가 우리 헨리 백부님이 평소 귀여워하던 조카딸 하나에 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5파운드짜리 지폐를 보낸 일이 있었죠. 그런데, 그것을 크리스마스 카드사이에 끼워서 그 카드를 고무풀로 붙여 놓고는, 그 위에다가 ' 사랑하는 조카딸의 행복을 빈다. 유감스럽지만 올해는 이것밖에 줄 것이 없구 나.' 라고 쓰신 거예요. 그 아이는 그것을 모르고 백부님이 인색하다고만 생각하고 화가 나서 카드를 불 에 홱 던져 버렸지여. 결국 백부님은 그 애에게 다시 선물을 주어야 했답니다." 헨리 백부에 대한 감정이 갑작스레 바뀐 에드워드가 이렇게 말했다. "마플 양, 제가 샴페인 한 병을 준비하죠. 우리 모두 헨리 백부님의 명복을 빌며 잔을 드십시다." < End~~~ > 출처 http://forum6.thrunet.com/share/mmbbs/asp/board.asp?sid=55&bid=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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