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  호 : 2 / 76           등록일 : 1999년 05월 12일 16:26 
등록자 : 귀니사랑         조  회 : 251 건           
제  목 : [귀니]앙베르부인의 금고                                      
                          
파리의 변두리,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의 조그만 집이 늘어선 곳으로 유 명한 베르티유 거리. 새벽 3시가 되었는데도 아직 여섯 대 가량의 마차가 어느 한 집 앞에서 있다. 문이 열리고 초대되었던 남녀 한 떼가 꾸역꾸역 밖으로 나왔고 네 대의 마차가 오른쪽 왼쪽으로 사라졌다. 한길에는 두 신사가 남았다.두 사 람은 쿠르세르 거리의 모퉁이까지 함께 걷고 거기서 헤어졌다. 한사람은 쿠르세르 거리에 사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남은 한 사람은 마이요 문까 지 걸어서 돌아가기로 작정을 했다. 신사는 비리에 거리를 가로질러 성벽을 따라 나있는 보도를 걷기 시작 했다. 맑게 겐 아름답고 차가운 겨울밤이었다. 걷는 것이 즐겁게 느껴졌 다. 공기가 맛있었다. 발소리가 경쾌하게 주위에 메아리 쳤다. 그런데 그로부터 몇 분 뒤, 신사는 누군가에게 미행을 당하고 있다는 언짢은 기분에 사로 잡혔다. 사실 뒤를 돌아보았더니 가로수 사이를 미끄 러지듯이 쫓아오고 있는 한 사나이의 그림자가 있었다. 신사는 결코 겁쟁 이가 아니었으나 그런데도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테르느 문의 입시세 장 수소까지 당도하려고 발길을 재촉했다. 불안해진 신사는 뛰어서 달아나기 보다도 오히려 멈춰 서서 상대방에게 권총을 들이대는 편이 현명할 것이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신사가 그렇게 할 만한 여유는 없었다. 사나이가 신사에게 덤벼 들어 순식간에 인적이 없는 노상에서 격투가 시작되었다. 신사는 곧 자기 가 불리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는 몸부림을 치며 도움을 청했다. 이윽고 자갈더미 위에 쓰러뜨려지고 목이 죄어진 뒤 입 속에 수건이 틀어넣어져 재갈에 물려지고 말았다. 눈이 절로 감기고 귀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는 정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러자 그때 목을 죄고 있던 손이 느슨해졌다. 올라타고 있던 사나이가 배후로부터 불의의 습격을 당한 것이다. 사나이 는 일어서서 몸을 사렸다. 사나이의 손목에 지팡이의 일격이 가해지고 뒤꿈치에 공격이 가해졌다. 사나이는 비명을 두 번 지르고는 욕설을 퍼부으며 절뚝거리면서 달아났 다. 새로 등장한 제 3의 인물은 사나이를 쫓아갈 것까지는 없다는 투로신 사의 몸 위에 몸을 굳히고는 이렇게 말했다. “다친 데는 없습니까?” 다친 데는 없었다. 하지만 어질어질해서 서있을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입시세 징수소의 직원이 고함소리를 듣고 달려와 주었다. 차가 불려 왔다. 신사는 자기를 도와준 인물과 함께 차에 탔다. 차는 그랑 다르메 거리에 있는 신사의 집까지 달렸다. 집 앞까지 오자 신사는 완전히 기운을 되찾고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당신은 생명의 은인입니다. 평생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지금은 이런 시간이어서 당신을 초대하더라도 다만 아내를 놀라게 할뿐이므로 삼갑니다만 밤이 지나면 곧 아내가 당신에게 직접 인사를 드리도록 할 생 각입니다.” 신사는 상대방에게 점심식사에 와 달라고 부탁을 하고 그런 다음 자기 의 이름은 루드비 앙베르라고 말했다. “그런데 선생님의 성함은 어떻게 되시는지 알려 주실 수 없겠습니까?” “네, 어려울 것 없지요.” 하고 상대방은 말했다. 그리고 나서 이렇게 자기소개를 했다. “아르센 루팡입니다.” 이 무렵의 아르센 루팡에게는 아직도 그 뒤의 그가 카오룬 사건이나 라 상테 교도소 탈옥사건 등 화려한 사건에 의해 획득하게 되는 그러한 명성 은 없었다. 아니, 아직 아르센 루팡이라는 이름도 아니었다. 미래에 찬연 한 영광을 부여 하게되는 이 이름은 이때 비로소 머리에 떠올랐던 것이었 다. 그리고 또 그가 실전의 세례를 받은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확실히 이 무렵의 그는 위에서 아래까지 완전히 무장하여 항상 전투준비가 갖추 어져 있었다. 하지만 돈도 없고 성공이 부여하는 신용도 없어서 아르센 루팡은 아직도 수습생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만큼 아침에 눈을 뜨고 밤 중에 받은 초대를 생각해 냈을 때는 몸서리 칠 만큼 기뻤다! 드디어 이것 으로 목적에 손이 미친 것이다! 드디어 이제 자기의 힘과 자기의 재능에 알맞은 일을 시작 할 수 있는 것 이다! 앙베르 부부가 소유하고 있는 수백만 프랑에 달한다는 재산. 그것은 자기와 같은 식욕을 지닌 사람에게는 무엇보다도 좋은 먹이었다. 그는 특별히 멋을 부렸다. 구깃구깃한 프록코트, 닳아빠진 바지, 약간 볕 에 바랜 실크 모자. 실밥 풀린 것이 보이는 소매, 역시 흐트러진 것이 보 이는 칼라. 모두 청결하기는 했으나 궁상스러웠다. 검은 리본을 넥타이 대 용으로 하고 인조 다이아몬드의 핀으로 고정 시켰다. 그리고 그러한 몸차 림으로 그는 자기가 살고있는 몽마르트르의 값싼 아파트 층계를 내려간 것이다. 4층까지 내려와서는 닫혀있는 도어의 하나를 지팡이의 손잡이로 두드렸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 특별히 멈춰 서지는 않았다. 밖으로 나오자 변두리에 있는 고리 모양의 큰길로 향했다. 전차가 왔다. 그는 거기에 탔 다. 그의 뒤를 따라온 4층 사람이 나란히 앉았다. 얼마 있다가 4층의 사나 이가 말을 걸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잘 됐어!” “어떻게 말입니까?” “난 지금부터 그 집에 점심을 먹으러 간다구.” “당신이 그 집에서 점심을?” “내가 위험을 무릅쓰고 한 일 이야. 그 정도의 대접을 받는 것은 당연 한 일 아닐까? 자네가 하마터면 죽을 뻔한 루드비 앙베르 씨를 내가 구출 한 거야. 루드비 씨는 은혜를 아는 사람. 즉 나를 점심에 초대하더군.”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4층의 사나이가 결심한 듯 물었다. “그럼 당신은 아직도 단념하지 않을 건가요?” “그야 물론이지. 어젯밤 조그만 습격사건도 연출한 것도 말하자면 그 때 문이지 밤 중 세시, 성벽을 따라 자네 뒤를 밟아 자네의 손목을 지팡이로 가격하고 자네의 정강이를 걷어차 단 하나뿐인 귀중한 친구를 어쩌면 병 신으로 만들지도 모를 모험까지 해냈어. 이렇게 멋지게 막을 올린 임명 구조 극을 여기서 깨끗이 단념 할 수는 없는 일이야.” “그 집 재산에 대해서는 꽤 좋지 않은 소문이 있는데…….” “소문 따윈 아무래도 좋아. 나는 이미 반년 전부터 이번 일에 대해서 연구해왔어. 정보를 수집하고 조사하고 그물을 쳐왔어. 하인이나 대금업 자, 명의인들에게서 여러 가지 얘기를 들어왔어. 즉, 나는 반년 전부터 그 부부의 그늘에서 생활에 온 거야. 따라서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분명 히 알고 있어. 그 재산이 소문대로 브로포드 노인에게서 양도받은 것이든, 혹은 다른 사람에게서 양도받은 것이든, 어쨌든 존재하는 것만은 확실해. 존재하는 이상 그것은 내 것이야.” “굉장하군, 1억 프랑이라……” “1천만 프랑이라고 해두지. 아니, 5백만 프랑이라도 좋아! 어쨌거나 그곳 금고에는 주권 보따리가 가득 차 있거든. 그러니 가까운 시일 안에 내가 그 금고를열지 않고 배길 수는 없지.” 에르와트 광장에서 전차가 멎었다. 사나이가 속삭이듯이 말했다. “그래, 우선 어떻게 하면 될까요?” “우선은 아무 것도 할 필요가 없어. 곧 연락을 할게. 아직 시간은 충분 하니까.” 5분 뒤, 아르센 루팡은 앙베르 저의 호화로운 층계를 오르고 있었다. 드비가 부인을 소개했다. 제즈베르라는 이름의 그 부인은 몸집이 작고 오 동통하며 매우 재잘거리기를 좋아하는 여성이었다. 그녀는 진심으로 루팡 을 환영했다. “나는 우리 두 사람 이서 생명의 은인을 환대하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 지요.” 이런 식으로 부부는 처음부터 ‘생명의 은인’을 오랜 친구처럼 대했 다. 저트가 나왔을 때 세 사람은 이미 완전히 친숙해져서 속사정까지 털 어놓게 되었다. 아르센은 자기의 신분이나 청렴한 재판관이었던 아버지의 일생, 소년 시절의 고독과 현재의 생활고 등에 대해 얘기했다. 제르베즈 부인은 자기의 청춘 시절이나 결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다시 브로포드 노인이 그녀에게 남겨준 억 프랑의 재산에 대해서, 그리고 그 1억 프랑을 실제로 사용하는 것을 지체시키고 있는 갖가지 장애에 대해서, 눈알이 튀 어나올 만큼 비싼 이자로 빌리지 않으면 안되었던 빚에 대해서, 언제까지 나 해결되지 않는 브로포드의 카들을 상대로 한 계쟁에 대해서, 잇따른 압류에 대해서, 공탁에 대해서, 여하튼 모든 일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렇다 구요, 루팡 씨. 확실히 주권은 저기 남편의 서재에 있어요. 그 런데 그 주권의 한 장이라도 잘려 나가는 날엔 우리는 모두를 잃게 되는 거예요! 주권은 우리들의 금고 안에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만질 수도 없 어요.” 노리는 것이 바로 가까이에 있었다. 루팡은 저도 모르게 몸부림을 쳤다. 그리고 나서 이렇게 생각했다. ‘정말 선량한 부인이로군. 하지만 루팡 님 이라면 언제까지나 그런 양심의 전율 따위를 가질 수는 없을 테지.’ “어허! 그런가요. 흠 그렇군요.” 하고는 그는 목이 잠기면서 중얼거렸다. “그렇다니 까요. 바로 저기에 있어요.” 그렇게 해서 교제는 순조롭게 시작되었고 대화가 진전됨에 따라 세 사 람의 유대는 더욱 더 긴밀해졌다. 스스럼없이 질문을 받은 아르센 루팡은 자기의 빈궁상태를 솔직히 고백했다. 그러자 이 불행한 젊은이는 월급 백 50프랑으로 이 부부의 비서로 채용되었다. 그는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자택에서 생활은 하지만 매일 일을 하기 위해통근을 하게 되었다. 더욱 기막힌 것은 작업장으로서 3층의 한 방이 그에게 제공된 것이었다. 그는 방을 선택했다. 그랬더니 이 얼마나 반가운 우연인가. 선택한 그 방은 루드비의 서재 바로 위에 있었다! 아르센은 얼마 되지 않아서 깨달았다. 비서로서의 그의 역할은 한직이 라고 해도 좋을 정도라는 것을. 두 달 동안에 한 일이란 하찮은 편지를 4 통 옮겨 쓴 것뿐이었다. 주인의 서재에는 한 번 밖에 불려가지 않았다. 즉, 그 금고에 대해서는 아직 단 한 번밖에 정식 대면을 하지 않는 것이 었다. 또 이 한직 자는 앙크티 의원이나 구르베르 변호사 같은 명사들 가 까이에 모습을 나타내서는 안 된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는 그러한 명사들 이 모이는 파티에는 결코 불려 나가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사실을 슬퍼하지 않았다. 자기만의 조촐한 위치에 틀어박혀 있는 편이 좋 았다. 그는 행복하고 자유롭게, 그러면서도 조용하게 살았다. 그렇다고는 하나 그는 결코 시간을 낭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우선 루드비의 서재 의 은밀한 방문을 몇 차례 시도하여 금고에 경의를 표했다. 그러나 금고 는 언제나 굳게 닫혀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벌레를 씹을 것 같은 표정을 한 거대한 주철과 강철의 덩어리였다. 줄칼도, 끌도, 쇠망치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물건이었다. 그러나 아르센 루팡은 융통성이 없는 인간은 아 니었다. “힘이 실패하더라도 책략은 성공한다.” 라고 그는 자신에게 말했다. “중요한 것은 눈과 귀를 적절하게 사용하는 일이다.” 그는 필요한 책략을 강구하기로 했다. 자기 방의 바닥을 조심스럽게, 그 리고 고심끝에 깊이를 재고 목표하는 서재의 천장과 벽 경계에 있는 돌출 장식을 도려낸 부분에 연관을 통하게 했다. 그는 이제부터 청음관이기도 하고 잠망경이기도 한 이 파이프를 사용해서 보거나 들을 생각인 것이다. 사실 그는 이때부터 자기 방의 마루바닥에 달라붙어서 지냈다. 그리고 앙베르 부부가 금고 앞에서 장부를 조사하거나 서류를 펼치면서 의논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었다. 부부가 자물쇠를 움직이는 네 개의 단추를 하 나하나 돌릴 때는 어떻게든지 암호 숫자를 알아내려고 통과하는 눈금의 수를 필사적으로 세었다. 그는 부부의 몸짓을 응시하고 그들의 말을 엿들 었다. 그들은 열쇠를 어떻게 할까? 그들은 그것을 숨기는 걸까? 어느 날 그는 급히 아래로 내려갔다. 부부가 금고를 닫지 않고 서재 바깥으로 나 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결심하고 서재로 들어갔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미 돌아와 있었다. “앗! 이거 큰 실례를 했습니다. 문을 착각했습니다.” 하고 그는 말했 다. 그러나 제르베즈는 곧 그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요, 들어오세요. 여기에서는 댁에서와 마찬가지로 사양하실 것 없어요. 그보다도 우리들에게 조언을 해주세요. 우린 어느 주권을 팔아야 할까요? 외채로 할까요? 아니면 국채를 팔아야 할까요?” “하지만 현재로서는 아직 팔아선 안 되게 되어 있지 않아요?” 하고 루팡은 깜짝 놀라서 물었다. “아 아뇨. 모든 주권이 압류되어 있는 것은 아니에요.” 그녀는 금고 문을 잡아 당겼다. 선반 위에 가죽끈으로 묶은 주권 다발 이 쌓여있었다. 그녀는 그 중의 하나를 손에 들었다. 그러나 그녀의 남편 은 항의했다. “안돼, 안 된다구. 제르베즈, 외채를 판다는 건 미친 짓이야. 그건 곧 값 이 뛸게 뻔해. 하지만 국채는 지금이 최고의 시세야. 어때요. 루팡 씨, 당 신 생각은?” 물론 루팡은 그런 일에 대해 어떤 의견도 갖고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 는 국채를 파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다. 그러자 그녀는 다른 다발을 집 더니 그 속에서 아무렇게나 한 장의 주권을 잡아땠다. 그것은 액면 천3백 74프랑, 이식 3푼의 공채였다. 루드비는 그것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그 날 오후 그는 비서를 데리고 환전상을 찾아가 그것을 팔았다. 4만 6천 프랑을 받았다. 제르베르가 어떻게 대해 주어도 아르센 루팡은 도무지 느 긋한 기분이 될 수 없었다.아니, 그렇기는커녕 앙베르 가에 있어서의 그는 그야말로 기묘한 위치에 있었다. 고용인들은 그의 이름조차도 몰랐다. 그 는 그것을 몇 번이나 깨달아야 했다. 하인들은 그를 그분’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루드비 자신이 언제나 다음과 같이 하인들에게 말하고 있었기 때 문이다. “그 사람에게 알려주도록 해요…….”혹은 또 “그 사람 나와 있는가?” 어째서 이렇게 수수께끼 같은 칭호를 쓰는 것일까? 게다가 또 앙베르 부 부 자신, 처음에는 그토록 살뜰하게 대해 주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거의 그에게 이야기조차 걸어오지 않는 것이다. 생명의 은인답게 취급은 하고 있었지만 전혀 그의 일에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방해받 기 싫어하는 괴짜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주변 사람들은 이 고립을 그 자신이 정한 규칙이나 변덕이기라도 한 것처럼 이것을 존중했 다. 어느 날 그가 현관 홀로 들어서자 제르베즈가 두 내객에게 이렇게 말 하고 있는 것이 들렸다. “워낙 그 사람은 낯가림을 많이 해서요!” ‘그런가? 나는 낯가림을 잘하는 사람인가?’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더 이상 그들의 이상한 태도를 이해하려는 생각은 집어치우고 오 로지 자기계획을 실현하는 데에 주력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확신하고 있었다. 우연은 결코 바랄 것이 못된다. 또 금고열쇠는 노상 몸에 지니고 자물쇠의 암호문자를 미리 뒤죽박죽을 만들어 놓지 않고서는 절대로 금 고에서 떠나지 않는 제르베즈의 방심도 바랄 것이 못된다. 따라서 자기 편에서 행동을 일으키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어떤 사건이 사태를 급전시 켰다. 몇몇 신문이 앙베르 부부를 비난 공격하는캠페인을 벌인 것이다. 부 부는 사기꾼으로 몰렸다. 아르센 루팡은 드라마의 추세와 부부의 당황하 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관찰하였다. 그리고 이해했다. 더 이상 우물쭈물하 다가는 모든 것을 잃고 만다는 것을. 그로부터 5일 동안, 그는 여느 때 처럼 6시경에 저택을 떠나지 않고 자기 방에 그냥 틀어박혀 있었다. 사람 들은 언제나 그가 돌아간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바닥에 엎 드려서 루드비의 서재를 관찰하고 있었다.그 닷새 동안에 그가 기대한 것 같은 유리한 상황은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한밤중이 되었을 때 안뜰 로 통하는 작은 문을 거쳐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작은 문의 열쇠를 가지 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6일째에 그는 알았다. 앙베르 부부가 적 측의 악의에 찬 폭로에 도전하여 적측에게 금고를 열고 금고 안에 있는 것의 목록을 만들어 달라고 제안한 것을.‘드디어 오늘밤이다.’하고 루팡은 생 각했다. 니나 다를까 저녁을 먹고 나자 루드비는 곧 서재에 틀어박혔다. 제르베즈도 함께였다. 두 사람은 금고에서 꺼낸 장부를 조사하기 시작했 다. 한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또다시 한 시간, 루팡은 하인들이 침대에 들어가는 소리를 들었다. 이것으로 이층에는 이제 아무도 없는 셈이었다. 12시가 되었다. 앙베르 부부는 여전히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자아, 시작하는 거다.” 하고 루팡은 중얼거렸다. 그는 자기 방의 창문을 열었다. 창문은 안뜰에 면해 있었다. 밖은 달도 없 고 별도 없는 캄캄한 밤이었다. 그는 선반에서 줄사닥다리를 꺼내어 발코 니 난간에 걸쳤다. 난간을 타고 넘어 홈통에 발을 걸치고는 조용히 자기 방창문의 바로 밑에 있는 서재의 창문까지 미끄러져 내려갔다. 플란넬로 만든 커튼이 두꺼운 베일처럼 방을 가리고 있었다. 그는 발코니에 선 채 잠시 귀를 곤두세우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주위의 정적으로 안정을 되찾 은 그는 여닫이문을 살그머니 밀어 보았다. 여닫이문은 만일 누군가가 조 심스럽게 이것을 살피지 않았다면 밀기만 해도 열릴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그날 오후 이 창문의 자물쇠 고리가 받침 쇠에 들어가지 않도록 조 작해 놓았던 것이다. 여닫이창이 조금 열렸다.그러자 그는 아주 조심스럽 게 그것을 반쯤까지 열었다. 머리가 들어갈 만큼 열리자 그는 손을 멈추 었다. 두 장의 커튼 사이로 빛이 조금 새어 나왔다.제르베즈와 루드비가 금고 옆에 앉아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두 사람은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어쩌다가 한 번씩, 그것도 속삭이듯이 말을 나눌 뿐이었다. 아르 센은 자기와 그들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계산하여 도움을 청할 여유를 주지 않고 연속적으로 한 사람 또 한 사람을 무력하게 만들기 위해 필요 한 움직임을 정확하게 상정, 금새라도 뛰쳐나가라고 몸을 사렸다. 그러나 마침 그때 제르베즈가 이렇게 말했다. “이 방이 어쩐지 아까보다 썰렁해졌어요! 난 그만 자겠어요. 당신은 어 쩌겠어요?” “난 정리를 끝내고 싶군.” “끝낸다 고요? 그러려면 발을 세워야 할 텐데요.” “아니, 그렇지 않아. 이제 한 시간이면 충분해” 그녀는 나갔다. 20분이 지나고 30분이 지났다. 아르센은 창문을 또 조금 열었다. 커튼이 흔들렸다. 그는 또 조금 열었다. 루드비가 돌아보았다. 커 튼이 바람을 머금고 부풀은 것을 보고 일어섰다. 창문을 닫기 위해……. 소리조차 지르지 못했다. 격투다운 것도 없었다. 아르센은 정확하게 움직 였다. 아무런 고통도 주지 않고 상대를 기절시키고는 커튼을 목으로 싸고 전신을결박하고 말았다. 따라서 루드비는 가해자의 얼굴조차 보지 못했다. 루팡은 곧 금고로 다가가 주권 다발을 두 개 움켜쥐고는 그것을 옆구리에 끼고 서재에서 나왔다. 층계를 내려가 안뜰을 가로지르고 쪽문을 열었다. 한 대의 마차가 한길에 기다리고 있었다. "우선 이걸 챙겨. 끝나면 따라와.” 하고 그는 마부에게 말했다. 그는 서재로 되돌아갔다. 두 번 왕복으로 두 사람은 금고를 비웠다. 그런 다음 루팡은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줄사닥다리를 제거하고 자기가 다닌 흔적을 완전히 지웠다. 그것으로 모든 것은 끝났다. 몇 시간 뒤 아르센 루 팡은 동료의 도움을 받아 가며 주권 다발을 세고 있었다. 진작부터 예상 하고 있었으므로 앙베르 부부의 재산이 세상 소문만큼 막대한 것은 아니 라는 것을 알고서도 낙심하지는 않았다. 백만 단위의 주권 다발은 백으로 세기는커녕 십으로 셀 정도로 적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총계는 대 단한 액수였다. 더욱이 모두가 철도 공채라든가 파리 시채, 국채, 수에즈 운하채, 북부 광산주 등 우량 주뿐이었다. 그는 만족했다. '최종 매각하는 단계에 가면 상당히 깎일 것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되겠 지.방해도 있을 테니까 무척 까까일 것이 틀림없어. 하지만 그래도 괜찮 아.처음으로 손에 넣은 이 자본으로 나는 내가 생각한 대로 살아갈 꺼야 …….지금까지 품어 온 꿈을 실현하는 거지.” “나머지는 어떻게 하죠?” “불태워 버려. 그런 휴지 조각은 금고 속에 있을 때는 그럴싸하지만 우 리들한테는 무용지물이야. 매각할 주권은 벽장 속에 잘 넣어둬. 좋은 기회 를 기다리자고.” 다음날 아르센 루팡은 자기가 앙베르 저택에 출근하지 않을 이유는 전혀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신문을 보았더니 뜻하지 않은 뉴스가 실려 있 었다. 루드비와 제르베즈가 행방을 감추었다는 것이었다. 금고 조사는 엄 숙하게 행해졌다. 관리들은 거기에서 아르센 루팡이 남긴 것……즉 아주 약간의 것을 발견했을 뿐이었다. 이상이 진상이다. 또 동료 사이에서 아르센 루팡이의 공로로 전해지고 있 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나는 그 자신의 입을 통해 이 사건을 직접 들었다. 그날 그는 속에 있는 것을 털어놓고 싶은 기분이 되었던 것 같다. 그는 잠시 내 작업실 안을 왔다갔다. 하고 있었으나 그 눈에는 그때까지 볼 수 없던 얼마간의 열기가 담겨 있었다. “결국 이 사건이 자네의 최고 걸작이라는 얘기인가?” 하고 나는 말했다. 그는 이 질문에는 직접적으로 대답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몇 가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있어. 내가 자네에게 사건을 자세히 설명했는데도 아직 분명하지 않은 점이 있을 테지? 어째서 그 두 사람은 도망쳤지? 어째서 그들은 내가 본의 아니게나마 도와 준 것을 이용하지 않았지?‘확실히 몇 억이라는 재산이 금고 속에 있어요. 그것이 없어진 것은 도둑맞았기때문이에요.’그들은그렇게 말하기만하면 되었던거라고.” “그들은 이성을 상실했던 거겠지.” “맞아, 그들은 이성을 잃고 있었어.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어…….”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니?” “아니, 아무 것도 아냐.” ‘어째서 일까? 어째서 분명히 말하지 않은 것일까?’ 그는 모든 것을 말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분명하다. 말하지 않은 부분은 그에게 있어 말하기가불쾌한 사항인 것이다. 나는 당황하고 있었다. 이 사나이에게 망 설이는 마음을 일으키게 할 정도라면 일은 자못 심각한 것이리라. 나는 나오는 대로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자네는 그 뒤 그 부부하고는 만나지 않았는가?” “응.” “그 뒤 이 불행한 부부에 대해 몹쓸 짓을 했구나 하는 마음을 먹은 적 은 없나?” “어째서 내가 그런 생각을 하겠나!” 하고 그는 펄쩍 뛰면서 소리를 질렀다. 그의 화난 모습을 보고 난 놀랐다. 내가 그의 아픈 곳을 찌른 것일까? 나는 계속 다그쳤다. “그렇지 않은가. 자네가 없었더라면 그 두 사람은 위기를 모면할 수 있 었을지도 모르잖아……. 적어도 주머니를 두둑하게 해 가지고 달아 날 수 도 있었을 테고.” “그러니까 나는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한다, 결국 자네는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건가?” “물론.” 그러자 그는 책상을 힘껏 내리쳤다. “뉘우치라는 얘기인가?” “양심의 가책이건 뉘우침이건 상관없지만 어떻든 어떤 심정이……” “그런 것들에게 어떤 심정이라니……” “자네가 한 밑천 뜯어 낸 사람들이야.” “한밑천이라고?” “그래,자네가 빼앗은 그 두다발, 또는 세다발의 주권을 말하는 거야.” “두 다발 세 다발의 주권이라고? 내가 그것들로부터 주권 다발을 빼앗았 단 말인가? 그러니 난 나쁘고 죄가 있다는 말인가? 정말 머리가 둔하군. 자네는 아직도 눈치를 못 챘나? 그 주권은 모두 가짜였어! 알겠어? 모두 위조주권이었다고!” 나는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4,5백만 프랑의 주권이 모두 가짜였단 말인가?” “그렇다고! 그럴 듯한 가짜였어.” 하고 그는 외쳤다. “파리 시채도, 국채도, 채권이라는 채권 모두가 휴지 조각이었어. 종이 조각이었다고! 한 푼도 돈이 되지 않았어. 나는 그렇게 많은 채권을 가지 고 있으면서 한푼도 손에 넣을 수 없었어! 근데 나보고 뉘우치라고? 뉘우 쳐야 할 사람은 바로 그들이야! 나는 갓 올라온 촌놈처럼 속았어! 그들은 날 바보로 만들고 돈까지 우려먹었다고!” 그는 원한과 상처를 받은 자존심에서 오는 분노로 온몸을 떨고 있었다. “그렇다고, 하나에서 열까지 처음부터 내가 진 거라고! 그 사건에서 내 가 놀아난 역할, 아니 오히려 그들이 나로 하여금 놀아나게 한 역할을 알 고있어? 그건 앙드레 브로포드라는 역할이었어! 게다가 난 그걸 모르고 있었어! 깨달은 것이라곤 후에 신문을 읽고 여러 가지 일을 해 보고 나서 의 일이었어. 난 은인인 체하고, 놈은 악한의 손에서 구출하기 위해 몸을 던진 내가 신사인체 하고 있는 동안에 그들은 날 브로포드 일족의 한 사 람으로 만들어 놓고 있던 거야! 기막힌 솜씨였지. 3층에 방을 배정 받은 괴짜, 모두가 경원하고 있는 낯가림을 잘하는 사람, 그건 브로포드이며 그 가 바로 나였어. 그리고 그런 내가 있기 때문에, 혹은 또 내가 브로포드라 는 이름으로 부여하는 신용 때문에 은행가들은 돈을 빌려주고 공증인들도 자기들의 단골에게 권해 돈을 융통하게 했던 거야. 초심자를 위해서는 안 성맞춤의 학교였지. 나는 이 사건에서 많은 교훈을 얻었어.” 그는 여기 서 입을 다물고는 내 팔을 붙들었다. 그리고는 빈정거림과 감탄이 뒤섞인 못 마땅한 어조로 말을 했다. “이봐, 제르베즈 앙베르는 지금 나에게 천 5백 프랑의 빚이 있어.” 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농담이 어디 있어?.’ 하고 생각했기 때 문이다. 그도 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사실이라고. 자네, 천 5백 프랑이야! 난 월급도 받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녀에게 천 5백 프랑을 꿔 주기까지 했어. 젊은 내 인생적금의 전액이 라고! 왜 그런지 알아? 가르쳐 주지. 그녀가 보살피는 가난한 사람에게 준다는 것이었어. 그녀는 남편 몰래 보살피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는 것 이라고 했다고! 그리고 난 완전히 곧이 들었지.재미있지 않나? 아르센 루 팡이 천 5백 프랑을 빼앗겼다. 더욱이 자신이 4백만 프랑의 가짜주권을 빼앗은 바로 그 부인에게 빼앗긴 것이다! 이런 멋진 결말에 도달하기까지 나는 왜 얼마나 많은 계략과 노력, 천재적인 지혜가 필요했던 거였는지. 이게 내 일생을 통해서 내가 속은 유일한 사건이야. 하지만 이때만은 꽤 곤욕을 치렀어.멋지고 그리고 어마어마하게!”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