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게이아스의 외양간 1 "상황이 극히 미묘해서요,포와로씨." 에르큘 포와로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스쳐지나갔다.하마터면 그의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올 뻔했다. "누구나 항상 그렇게 말을 하더군요!" 그러나 그는 그 말 대신에 환자를 능숙하게 다루는 의사라도 되는 양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조지 콘웨이 경은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계속했다.마치 연설이라도 하는 것처럼 그의 입술에서 말이 술술 흘러나왔다.매우 미묘하게 된 정부의 입장---국민의 관심 당의 단결---통일된 모습을 보여줄 필요성---언론의 힘---국가의 안전과 번영...등 말은 아주 거창했지만---속 내용은 별로 없었다.에르큘 포와로는 하품을 하고 싶은 데도 예의상 억지로 참고 있을 때면 으례 아프기 마련이 턱이 쑤시는 것을 느꼈다. 때때로 의회 의사록을 읽을 때도 예외없이 그랬다.그러나 그런 때에는 굳이 나오는 하품을 참을 필요가 없었다. 그는 참을 수 있는 한 참고 견뎌내기로 마음을 굳게 먹었다.동시에 그는 조지 콘웨이 경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이 있긴 있는데---간략하게 요점만 간추려 말하는 기술이 그 남자한테는 없었던 것이다.그는 말을 사실 있는 그 대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오히려 뭐가 뭔지 도저히 구분이 가지 않게 만들어 버렸 다.그는 무의미한 관용구를 쓰는 데 숙달되어 있었다.다시 말해 그의 말은 귀에는 들어오지만 아무런 알맹이가 없는 게 태반이었다. 말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가엾은 조지 경은 얼굴까지 시뻘개져 있었다.그는 테이 블 상좌에 앉아 있는 다른 남자의 얼굴을 절망적인 눈길로 흘끗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 남자가 반응을 보였다.에드워드 페리어가 말했다. "됐어요,조지.내가 말하도록 하지요." 에르큘 포와로는 시선을 내무장관의 얼굴에서 수상한테로 옮겼다.그는 에드워드 페리어한테 강한 호기심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그것은 우연히 82세 된 노인한테 들은 이야기가 문득 생각났기 때문이었다.퍼거스 매클레오 교수가 살인사건의 법정 에서 유죄 판결의 결정 여부를 짓는 화학적인 문제에 대해 설명을 한 뒤에,잠시 정치 문제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었다.그당시 인기가 높고 유명 했던 존해미트---지금은 콘워시 경---가 은퇴한 뒤에 그의 사위인 에드워드 페리어가 내각의 수반으로 임명 되었다.수상치고는 꽤 젊은 편에 속했다.그의 나이 오십이 채 되지 않았으니까말이다 그때 매클레오드 교수는 이렇게 말했었다. "페리어는 옛날 내 제자였습니다.아주 솔 직하고 건실한 사람이지요." 그 말이 전부였지만 에르큘 포와로에게는 상당히 많은 것을 시사해 주는 대목이었다. 매클레오드가 건실한 사람이라고 했다면 그것은 대중들한테 인기가 있고 없고를 떠나 그 사람 인격에 대한 증명서라고 해도 좋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사람들에게 에드워드 페리어는 재기가 뛰어나거나 위대하지도 않았고,유창한 웅변가도 아니며,학식이 풍부한 사람도 아니지만,건실한 사람으로 여겨졌다.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정말 건실한 사람이 었다.전통 있는 가문에서 태어나---존 해미트의 딸과 결혼했으며---그의 정치신념을 그대로 이어받아 존 해미트의 오른팔로 활동,내각을 이끌 수 있는 인물로 인정받았다 한편 존 해미트는 유난히 국민과 언론의 사랑을 듬뿍 받은 인물이었다.그는 영국인 들이 좋아할 만한 자질을 충분히 갖고 있었다.사람들은 으례 그에 대해 이야기할 때 면 이렇게 말하곤 했다. "해미트가 정직하다는 건 안 봐도 알아." 그의 가정생활이 나 심지어는 취미로 한느 원예까지 일화거리가 될 정도였다.또 볼드윈(1867~~1947 수상을 세번 역임한 영국 정치가)하면 '파이프' 체임벌린(1869~~1940 영국 정치가) 하면 '우산' 하는 식으로 존 해미트 하면 으레 '레인코트'가 연상되었다.그는 항상 낡아빠진 레인코트를 걸치고 다녔던 것이다.그런데 어느 사이 그것이 그의 상징처럼 되어버렸다.즉,영국의 기후,영국 사람들의 신중한 태도,옛것을 굳이 고집하는 특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심벌로 여겨지게 되었던 것이다.게다가 그는 영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뛰어난 웅변가였다.조용하면서도 열정적인 그의 연설은 늘 판에 박힌 감상적인 문구로 되어 있었지만 영국인들은 한결같이 그이 연설에 열광했다.때로 외국인들 가운데는 그가 너무 위선적이고 귀족적인 척하는 것 같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었 다.사실,존 해미트는 귀족적인 분위기를 다분히 풍기고 있었다.스포츠를 좋아하는 점,사립 중학교 출신이라는 사실,최신 유행을 싫어하는 것 등등. 더욱이 그는 멋진 용모에 키가 크고 늘씬했으며 깨끗한 피부와 아주 푸른 눈을 갖고 있었다.그의 어머니가 덴마크 사람이었고 그 자신이 아주 오랫동안 해군장관을 역임 했기 때문에 그에게는 해적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그런 그가 건강이 많이 나빠져서 수상 자리를 사임하게 되자 많은 국민들은 걱정에 휩싸였다.누가 그의 뒤를 이을 것인가? 재기가 뛰어난 찰스 델러필드 경? (하지만 그는 너무 재기가 뛰어났다.) 이반 휘틀러? (그는 똑똑하긴 하지만---도덕관념이 좀 부족했다.) 존 포터? (독재자 적인 기질이 있는 사람이었는데---정말 다행스럽게도 이 나라의 국민은 어떤 독재도 원치 않았다) 그래서 조용한 에드워드 페리어가 수상으로 임명되자 모두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들이 보기에 페리어는 무난한 사람이었다.그건 전임 수상 밑에서 경험을 쌓았을 뿐만 아니라 그의 사위이기도 했기 때문이다.고전적인 영국 관용어구 를 써서 표현하자면 페리어는 글자 그대로 '뒤를 이을 사람'인 셈이었다. 에르큘 포와로는 나지막하고 듣기 좋은 목소리를 지닌 조용하고 까만 남자의 얼굴을 자세히 뜯어보았다.그는 몹시 야위고 피곤해 보였다. 에드워드 페리어는 말을 하는 중이었다. "포와로씨,당신도 'X-레이 뉴스'라는 주간지 를 알고 계시겠지요?" "대충 훑어본 적은 있지요." 하고 포와로가 얼굴을 약간 붉히 며 말했다. 수상이 말했다. "그러시다면 그 내용이 어떠한지는 대강 아시겠지군요. 남의 사생활이나 내막을 들춰내는 기사가 많지요,물론 그 중에는 진실인 것도 있고 아무 해가 없는 것도 있긴 합니다만---아무튼 모든 것이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쪽으로 기사화됩니다.때로는---"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아까와는 조금 다른 어조로다시 말을 이었다. "때로는 그 도가 지나쳐 너무 심할 때도 있소." 에르큘 포와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페리어가 계속 말했다. "2주 전부터 그 주간 지에는 정부 최고위 당국자에 관한 사상 최대의 스캔들이 곧 폭로될 거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독직과 부정축제의 놀라운 실태'라는 제목으로 말이오." 에르큘 포와로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그야 늘 써먹는 수법 아닙니까? 폭로성 기사란 게 으레 사람들의 호기심을 한껏 자극하여 세상을 떠들썩하게 해놓고는 ,진상 이 밝혀지고 나면 사람들에게 실망만 시키잖아요." 페리어가 메마르게 말했다. "이번 것은 실망시키지 않을 겁니다." 에르큘 포와로가 물었다. "그럼,그 폭로기사의 내용이 무엇인지 아신다는 말입니까?" "아마 정확할 겁니다." 에드워드 페리어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이윽고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그는 아주 조 심스럽게 요점만 간추려 말했다.그것은 교훈적인 얘기가 아니었다.당 기금의 엄청난 도용과 파렴치한 책략에 대한 사기횡령 고발이 들어왔는데 그 비난의 화살이 모두 전임 수상인 존 해미트 씨에게로 향해 있다는 것이었다. 즉,그는 지독한 거짓말쟁이며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개인 재산을 어마어마하게 축적한 악랄한 사기꾼이라는 것이다. 마침내 나직나직하게 말하던 수상이 이야기를 모두 마쳤다. 그러자 내무장관이 신음소리를 내었다.그는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끔찍하다 마다요! 그런 넝마 같은 주간지를 발행하는 그 페리라는 친구는 총살형을 시켜야 마땅합니다!" 에르큘 포와로가 말했다. "그 소위 폭로성 기사라는 게 'X-레이지 뉴스' 주간지에 실리게 될 거라는 거죠?" "그렇소" "그럼,그것에 대해 어떻게 조치하실 생각입니까?" 페리어가 느릿느릿 말했다. "그 기사는 모두 존 해미트 씨를 개인적으로 공격하는 내용들입니다.따라서 그가 주간지를 명예훼손죄로 고소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겠죠." "그럼,해미트 씨가 그렇게 할까요?" "아니오." "왜요?" 페리어가 말했다. "그렇게 되면 'X-레이 뉴스' 주간지는 더 좋아할 거요.가만히 앉 아서 자기네 신문을 선전하는 셈이 되니까요.또 그렇게 되면 맞고소를 해서 진실을 가리자고 덤벼들 겁니다.그 결과 온갖 일이 모든 사람들 앞에 다 드러나게 될거요." "하지만 만약 그 잡지사가 패소하게 된다면 잡지사측으로서는 손해가 이만저만 아닐 것 아닙니까?" 페리어가 천천히 말했다. "그들이 패소하지 않을 수도 있지요." "왜요?" 조지 경이 재빨리 그 말을 받았다. "내 생각에는---" 그러나 그때는 이미 에드워드 페리어가 말을 시작한 다음이었다. "그들의 기사화하려는 내용이---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정치가답지 않게 너무 솔직한 그의 답변에 놀란 조지 콘웨이 경의 입에서 다시 신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그가 외치듯이 말했다. "아니,에드워드 수상,그렇게 말해서는 안됩니다.절대로---" 에드워드 페리어의 지친 얼굴에 얼핏 미소가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유감스럽게도 꼭 진실을 말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이오,조지.지금이 바로 그런때지요" 조지 경이 큰 소리로 말했다. "아시겠지만 이 모든 이야기는 절대 비밀로 해주셔야 합니다,포와로 씨.단 한마디도 남한테---" 페리어가 그 말을 가로막았다. "포와로 씨는 우리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잘 아실 분이오." 그가 천천히 말을 계속했다. "단지 이해하지 못하는 게 있다면 바로 이것일 거지요.포와로 씨,존 해미트 씨는 국민당이었어요.또한 영국 국민들에게는 국민당을 대표하는 인물이기도 하고요.한마디로 그는 관용과 정직의 표상이었습니다.국민들은 우리 당이 뛰어나게 정치를 잘한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우리가 잘못하거나 실수한 적도 많으니까요.그러나 우리가 늘 최선을 다한다는 점과 공명정대하다는 점에서 많 은 국민들이 우리 당을 지지해 왔습니다.우리 당의 앞날이 위태하다고 한 이유가 바로 그겁니다.정직의 상징이었던 우리 당의 대표가 지금까지 들어본 적도 없는 놀랄 만한 전대미문의 사기꾼이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면 어떻게 될지는 뻔한 일 아니겠습니까?" 다시 조지 경의 입술에서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포와로가 물었다. "수상께서는 이 모든 것에 대해 전혀 모르고 계셨습니까?" 그러자 미소가 다시금 피곤해 보이는 페리어 얼굴에 얼핏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믿기지 않으시겠지만,포와로 씨,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정말 그런 줄 몰 랐습니다.이전부터 집사람이 장인을 대하는 태도가 이상스러웠는데 그때까지는 난 그 이유를 몰랐지요.하지만 이제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아요.집사람은 장인이 본래 본래 어떤 사람인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거지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다시 계속했다. "진실이 점점 드러나게 되면서 난 정말 기절초풍 할 것 같았습니다.도저히 믿기지가 않더군요.그래서 생각다 못해 건강이 나쁘다는 구실로 은퇴를 하는 게 좋겠다고 장인을 설득했습니다.그런 다음 우린 본격적으로 일에 착수---아니 대청소를 시작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군요." 조지 경이 신음소리를 내었다. "아우게이아스 왕의 외양간이나 다를 바가 없다는 말 입니다." 포와로는 깜짝 놀랐다. 페리어가 말했다. "난 우리가 헤라클레스의 모험을 해야 될 것이 두렵습니다.일단 모든 사실이 국민들에게 알려지는 날이면 그때는 온 나라가 발칵 뒤집힐 겁니다. 그렇게 되면 내각이 총사퇴를 안할 수가 없소.그럼,총선거를 다시 해야될 거고 십중팔구는 에버하드가 이끄는 당이 정권을 잡게 될 겁니다.에버하드의 정책이 어떤 지는 당신도 잘 아실 거요." 조지경이 입에 침을 튀기며 빠르게 말했다. "선동가---무책임한 선동가요!" 페리어는 침울하게 말했다. "에버하드는 재능 있는 사람이지요.하지만 그는 무모하고 호전적이며 너무 요령이 없소.또 그의 지지자들은 어리석고 우유부단합니다.따라서 그가 정권을 잡으면 독재정치를 실시하게 될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는 말이오." 에르큘 포와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지경이 푸념하듯이 말했다. "모든 게 조용히 수습만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수상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그것은 좌절의 몸짓이었다.포와로가 말했다. "이번 사태가 잘 수습될 거라고 생각지 않으시는군요?" 페리어가 말했다. "포와로씨를 이렇게 오시라고 한 건 당신한테 마지막 희망이나마 걸고 싶어서입니다.내가 보기에 이번 일은 그 규모가 너무 크고,또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언제까지나 비밀로 해둘 수는 없을 것 같소.그렇게 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딱 두가지,즉 잡지사에 강압적인 수단을 사용 하거나 아니면 뇌물로 매수하여 정부를 너무 몰아 세우지 못하게 하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그게 성공할 가망성은 거의 없소.내무장관이 우리의 문제를 아우게이아스 왕의 외양간으로 비유했는데,포와로씨,정말이지 이번 일은 홍수로 인한 강의 범람, 즉 자연의 대파괴력을 필요로 합니다.결국 기적밖에 없단 말이지요." "정말 헤라클레스를 필요로 하는 일이군요." 포와로가 즐거운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 이며 말했다.그는 덧붙였다. "제 이름이 에르큘이라는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에드워드 페리어가 말했다. "기적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포와로 씨?" "나를 보자고 하신 이유가 바로 그 때문 아닙니까? 나라면 기적을 이룰지도 모른다는 생각하셨기 때문에 이렇게---" "그것은 사실이오.난 구원의 길이 있다면 그건 어떤 공상적이고 아주 기발한 방법만 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던 거요." 그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이었다. "하지만,포와로 씨,이번 일이 윤리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시지요? 확실히 존 해미트 씨는 사기꾼이였고,따라서 존 해미트 씨의 신화는 깨어져야 합니다.부정적인 기초위에 정직한 집을 세울 수 있겠습니까? 난 모르겠어요.하지만 할 수만 있다면 한번 해 보고싶소." 그가 갑자기 쓰디쓴 미소를 지었다. "정치가라면 누구나 정권을 계속 잡고 싶어하죠.보통은 아주 숭고한 동기에 서 말입니다." 에르큘 포와로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수상각하,제가 경찰에 몸 담고 있을 때 얻었던 경험은 정치가라는사람들을 그렇게 높이 평가하지 말라는 거였습니다 만약 존 해미트 씨가 아직도 수상 자리에 있었다면---난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않았을 겁니다.그럼요,움직이지 않고말고요.그러나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대강 알고 있습니다.오늘날 가장 위대한 과학자 중의 한 사람이자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인,정말 위대한 어떤 분한테 당신이---'건실한 사람'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거든요. 하여튼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그는 인사를 하고 그 방을 떠났다. 조지 경이 갑자기 절규하듯이 말했다. "저런,건방진 친구 같으니라고---" 그러나 에드워드 페리어는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그건 나를 칭찬하는 말이더군" 2 에르큘 포와로가 아래층으로 내려가는데,키가 크고 금발머리 여자가 앞을 가로막았다. "포와로씨,제 응접실로 잠깐만 들어오세요." 그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에 그녀 뒤를 따랐다. 그녀는 문을 닫은 뒤 그에게 몸짓으로 의자를 권했다.그리고 그에게 담배를 내밀 었다.그녀는 그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은 다음 조용히 입을 열였다. "방금 제 남편을 만나 보셨으니까---얘기를 들으셨을 거예요.우리 아버지에 대해-" 포와로는 그녀를 주의깊게 바라보았다.키가 크고 얼굴에 지성과 품위를 지닌 아름 다운 여인이었다.페리어 부인은 국민들에게 인기가 높았다.수상의 부인으로서도 그녀는 당연히 사람들의 관심을 한몸에 모으고 있었지만,존 헤미트의 딸이라는 점이 더더욱 그러했다.데이그머 페리어는 말그대로 모든 영국 여성의 이상인 셈이었다. 그녀는 헌신적인 아내요,다정한 어머니였으며,자기 남편과 같이 전원생활을 좋아했다 또 그녀는 일반적으로 여성의 활동영역이라고 생각되어지는 그런 공적인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었다.그녀는 옷에 대한 감각도 뛰어나서 옷을 멋지게 차려 입었지만 결코 호화찬란하거나 최신 유행을 쫓지는 않았다.그녀는 자신의 시간과 활동을 대부분 규모가 큰 자선사업에 바치고 있었으며,실업자 가족들을 구제하기 위한 특별 사업을 시작하기도 했다.그녀는 모든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으며 따라서 그녀도 국민당의 최고 보배였다. 에르큘 포와로가 말했다. "걱정이 무척 크시겠습니다." "그럼요---얼마나 걱정이 되는지 몰라요.오래 전부터 불길한 예감이 들긴 들었습니다 포와로가 말했다. "부인께서는 실제로 어떻게 된 일인지 전혀 모르셨습니까?" 그녀는 머리를 흔들었다. "예--물론 전부는 아니지만,내가 알고 있었던 건 단지 아 버지가--모든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분이 아니라는 거였어요.난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사기꾼 같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깊은 쓰라림과 고통이 베어 있었다. "문제는 저와 결혼한 것 때문에 에드워드가---에드워드가 모든 걸 잃어버릴 거라는 거예요." 포와로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부인에게는 적(敵)이 있습니까?" 그녀가 놀란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적? 그런 생각은 해본적이 없는데요." 포와로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제 생각에는 부인께서..." 그가 계속해서 말했다. "용기가 있으십니까,부인? 지금 부인의 남편과---그리고 부인에 대한---커다란 음모 가 시작되고 있습니다.그러니까 스스로 방어할 준비를 하셔야 할 겁니다." 그녀가 크게 소리쳤다. "난 문제가 되지 않아요.에드워드가 걱정이지요!" 포와로가 말했다. "두 분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지요.부인은 시저의 아내라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그는 그녀의 얼굴이 밝아지는 것을 보앗다.그녀가 몸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저한테 하시고 싶은 이야기가 뭐지요?" 3 'X-레이 뉴스' 주간지 편집장인 퍼시 페리는 담배를 피우며 책상 뒤에 앉아 있었다. 그는 족제비같이 생긴 조그만 남자였다.부드럽고 매끄러운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사건을 만들 수가 있겠는데,좋아 멋진 일이야! 오,이보게!" 그의 부사령관 격인 마르고 안경쓴 청년이 걱정스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너무 흥분하는 건 아니세요?" "저쪽에서 강압적인 수단을 쓸까 봐? 아니,그럴 수가 없을걸.그러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그래 봤자 자기들한테 덕되는 게 아무것도 없을 테니까.아무리 날고 기어봤자 별수없을 걸세.이 나라와 유럽,그리고 미국에서 가만 있을 것 같은가?" 청년이 말했다. "저쪽에서 아주 속을 태우겠군요.무슨 방법을 강구하지 않을까요?" "아마 말 잘하는 사람을 우리한테 보낼지도 모르지." 그때 벨이 울렸다.퍼시 페리는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누구라고? 좋아,들여보내게 그는 수화기를 제자리에 내려놓았다.그리고 싱긋 웃었다. "그들이 그 고고한 척하는 벨기에 녀석을 이리로 보냈어.녀석은 자기가 맡은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지금 이리로 올라오고 있는 중이네.우리가 게임을 시작한 것인지 알아내려고 하겠지." 에르큘 포와로가 안으로 들어왔다.그는 티 하나 없이 깔끔하게 옷을 차려 입었다. 단춧구멍에는 하얀 동백꽃까지 꽂혀 있었다. 퍼시 페리가 말했다. "당신을 만나게 되어 반갑소,포와로씨.애스콧 경마장의 귀빈석에 초대를 받았나 보지요? 아닌가? 내가 실수했군요." 에르큘 포와로가 말했다. "괜히 기분이 우쭐해지는데요.사람은 누구나 외모가 멋있게 보이기를 바라는 법이지요.그래서 옷차림이 더더욱 중요하기도 하고요." 그의 눈길이 편집장의 얼굴과 좀 단정치 못해 보이는 복장에 흘끗 가 닿았다. "특히 타고난 인물이 변변치 못할 때는 더욱 그렇지요." 페리가 짧게 말했다. "나한테 무슨 용건이 있는 거요?" 포와로가 몸을 앞으로 구부려 그의 무릎을 가볍게 쳤다.그리고 환한 미소를 띄운 채 말했다. "이 공갈협박꾼 같으니라고!" "공갈협박이라니,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요?" "내가 듣기로는---어떤 사람이 내게 해준 얘기요.당신의 그 고상한 주간지에다가 어떤 정치인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는 그런 기사를 곧 실을 거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이상한 일은 당신의 예금잔고가 엄청나게 늘어났다더군---그래서 결국 그 기사가 신문에 게재되지 않게 될 거라던데?" 포와로는 몸을 뒤로 젖히고 만족스럽 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지금 무슨 중상모략을 하는지 알고나 하는 말이오?" 포와로는 자신만만하게 미소를 지었다. "당신이 화낼 까닭이 없을 텐데." "화가 나도 이만저만 나는 게 아니오! 공갈협박이라고 했는데 내가 남한테 공갈협박 했다는 증거가 어디 있소?" "아니,아니,난 분명히 알고 있어요.지금 당신은 나를 오해하고 있어요.난 당신한테 협박을 하려는 게 아니라 간단한 질문을 하나 하려는 거요.얼마요?"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난 도무지 모르겠소." 하고 퍼시 페리가 말했다. "국가의 중대사가 걸린 문제요,페리씨." 그들은 의미 있는 눈길을 서로 교환했다. 퍼시 페리가 말했다. "포와로씨,난 개혁자요.난 깨끗한 정치를 보고 싶은거요. 부정부패는 정말 싫단 말입니다.당신은 이 나라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나 있소? 아우게이아스 왕의 외양간과 전혀 다를 바 없단 말이오." "그것 참!" 에르큘 포와로가 불어로 말했다. "당신 역시 똑같은 말을 하는군요." "그래서---" 편집장은 계속해서 말했다. "그 더러운 외양간을 깨끗이 청소하는 데 필요한 것은 깨끗한 여론의 대홍수라는 게 내 소신이오." 에르큘 포와로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당신의 그 의기투철한 정신에 감복했소이다." 그리고 나서 덧붙였다. "당신이 돈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건 참 유감이오." 퍼시 페리가 서둘러 말했다. "아니,잠깐만---꼭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니었...." 그러나 에르큘 포와로는 이미 방을 나가고 없었다.그가 그렇게 방을 떠난 이유는 그 자신이 공갈협박꾼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4 '브렌치' 잡지의 기사로 일하는 명랑한 청년인 에버리트 대시우드는 에르큘 포와로를 반갑게 끌어안았다. "아,정말 더러워요.너무 더러워서 입에 올리기도 싫을 정도예요 그게 전부입니다." "자네가 퍼시 페리와 같은 사람은 아니겠지." "그사람은 흡혈귀입니다.우리 세계에서는 얼룩과 같은 존재죠.할 수만 있다면 그 녀석을 몰아내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우연히---"하고 에르큘 포와로가 말을 꺼냈다. "난 이번에 불명예스러운 정치가의 사건을 깨끗이 청소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네." "아우게이아스 왕의 외양간을 청소하시겠다고요?" 하고 대시우드가 말했다. "너무 힘드실텐데요,템스 강을 끌어들여 국회의사당을 깨끗이 씻어내겠다면 또 모를까." "자네 날 비꼬는군." 하고 에르큘 포와로가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그 세계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까요.그뿐입니다." 포와로가 말했다. "자네야말로 내가 찾고 있는 바로 그런 사람일세.앞뒤 가리지 않고 돌격하는 자네의 성격,게다가 자넨 특이한 일을 좋아하지 않는가?" "그렇다면요?" "나한테 어떤 계획이 있네.내 생각이 옳다면 그의 가면을 벗길수 있는 센세이셔널한 방법이 될 걸세.여보게,그렇게 되면 자네 기사는 아마 특종감이 될걸?" "말씀만 하십시오." 하고 대시우드가 즐겁게 말했다. "그건 어떤 여자에 대한 야비한 음모에 관한 내용일세." "그렇다면 더더욱 좋죠.섹스 스캔들이야 언제나 인기가 좋으니까요." "그렇다면 앉아서 내 얘기를 들어보게나." 5 사라들이 떠들어대고 있었다. 리틀 윔플링턴에 있는 '구스 앤드 피더스' 시장 안이었다. "글쎄,난 도무지 믿기지가 않아.존 해미트,그 사람이 얼마나 정직한 사람이었다고 시시한 정치가들과는 달랐단 말이야." "글쎄,감쪽같이 그렇게 사람들을 속였다는 거예요." "팔레스타인 석유 사업에 관여해서 수천만 달러를 벌었대요.정말 그런 사기꾼은 또 없다니까요." "정치가라는 게 다 똑같지,뭘 그래.하나같이 다 더러운 사기꾼인걸." "에버하드라면 그렇게는 안할 거예요.그는 보수파의 한 사람이니까." "음,하지만 난 존 해미트가 나쁜 사람이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어.신문에 난 기사를 다 믿을 수는 없다니까." "페리어의 아내는 그의 딸이에요.그 여자에 대해 뭐라고 났는지 봤서요?" 사람들은 'X-레이 뉴스' 주간지의 복사판에 우르르 모여들었다. '시저의 아내? 우리는 정부 최고위층 인사의 부인을 며칠 전 아주 이상한 장소에서 목격했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그것은 정부(情夫)로 보여지는 남자와 함께 말이다.오,대이그머,대이그머,어떻게 그대가 그런 추잡한 행동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떤 사람이 소박한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페리어 부인은 그런 여자가 아니야. 정부? 그런 건 이런 스컹크 같은 작자들이나 하는 짓거리지." 다른 사람이 말했다 "여자에 관해서라면 자넨 말할 자격이 없어.나한테 물어본다면 난,여자란 다 그렇고 그렇다고 대답하겠네." 온갖 말이 다 돌아다녔다. "하지만,여보,난 그게 모두 사실이라고 믿어요.나오미는 그 얘기를 폴한테 들었고, 또 폴은 앤디한테서 들었대요.그 여자가 정말 타락했다니까요." "하지만 그녀는 항상 검소하게 살면서 자선바자회를 많이 열었어." "그게 다 위선이라니까.그 여자는 색정광이래요.어쩜 세상에! 'X-레이 뉴스' 주간지 에 다 나와 있대.오,드러내 놓고 노골적으로 그렇게 표현은 안했지만 뭐,그런 뜻이나 조금도 다를 바 없다는 거야.그들이 어떻게 이런 사실을 알아냈는지 정말 알 수가 없어." "정치가의 이런 스캔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사람들 말로는 그녀의 아버지가 당의 기금을 횡령했다더군." 사람들은 떠들어대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그게 모두 사실이랍니다,로저스 부인.내 말은 난 항상 페리어 부인이 멋진 여자라고 생각했다는 뜻이지요." "이런 끔찍한 얘기가 정말 모두 사실이라고 믿는 거예요?" "아까도 말했지만,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는 않아요.왜 지난 6월에는 펠체스터 에서 바자회도 열었잖아요? 난 그때 그녀 가까이에 있는 소파에 앉아 있었어요. 그녀가 나를 보더니 아주 환하게 미소를 짓더라고요." "그래요,하지만 내 말은 아니 땐 굴뚝엔 연기가 날리가 없다는 거예요." "물론 그거야 그렇죠.하지만 누구라도 그 사실이 믿기지 않을 거예요!"] 에드워드 페리어가 창백하게 굳어진 얼굴로 포와로에게 말했다. "내 아내한테 그런 공격을 하다니! 야비해요.정말 야비해! 난 이런 못된 신문사를 고소할 생각입니다." 에르큘 포와로가 말했다.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어처구니없는 중상모략은 그만두게 해야지요." "그 기사가 거짓이라는 것을 확신하십니까?" "아니,이 사람이? 그렇소!" 포와로가 머리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부인께서는 뭐라고 하시던가요?" 순간 페리어는 놀란 표정이 되었다. "무시해 버리는 게 최선이라고 하더군요.하지만 난 그대로 내버려 둘 수가 없소.모든 사람들이 입방아를 찧는 걸---" 에르큘 포와로가 말했다. "예,모든 사람들이 입방아를 찧고 있지요." 6 얼마 뒤 모든 신문에 다음과 같은 간단한 발표문이 실렸다. '페리어 부인은 가벼운 신경성 증세로 스코틀랜드로 요양하러 떠났다.' 온갖 추측과 소문이 무성했다.페리어 부인이 스코틀랜드에 있지 않다는 것이 확실 하다는 정보도 끼어 있었다. 페리어 부인이 진짜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이 모든 사람들의 관심거리가 되었고, 온갖 얘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앤디가 그녀를 보았대.아주 끔찍한 장소에서 말이야! 그녀가 술에 취했는지 마약에 취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아르헨티나 인 정부하고 함께 있더라는 거야.이름이 시뇨르(남자한테 붙이는 이탈리아 호칭) 라몬이래.어쩜 그럴 수가 있을까!" 그 외에도 수많은 얘기들이 돌아다녔다. 페리어 부인이 아르헨티나 인 무용수하고 도망을 쳤다더라.그녀가 마약을 맞고 취해 있는 것을 파리에서 본 사람이 있다더라.그녀는 오래 전부터 상습 복용자라더라. 알콜 중독자라더라 등등. 이렇게 되자 처음에는 그 사실을 믿지 않았던 사람들마저 점차 페리어 부인을 보는 시각이 달라져 갔다.뭔가 구린 구석이 있는 모양이야! 수상 부인의 체통에 먹칠을 하는 행위를 하다니! 그 여자가 하는 짓을 보면 영낙없는 제제벨(이스라엘 왕의 방탕한 왕비)이군.조금도 다를 바가 없어. 그런데 이번에는 사진까지 신문에 실려 나왔다. 파리에서 찍은 사진인데---페리어 부인이 나이트 클럽에서 가무잡잡한 올리브 색의 피부의 부도덕해 보이는 청년의 어깨를 두 팔로 끌어안고 뒤로 누워 있는 장면을 찍은 사진이었다.다른 스냅사진은---해변가에서 그녀가 반은 벌거벗은 차림새로 그 정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있는 장면이었다. 그 사진 밑에는 이런 글까지 씌어 있었다. '페리어 부인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로부터 이틀 뒤 'X-레이 뉴스' 주간지의 발행 책임자는 명예 훼손죄로 고소당했다. 7 그 소송사건에 대한 공판은 왕실고문변호사인 모티머 잉글우드경의 변론에서 시작되었다.그는 위엄 있고 정의감이 충만한 사람이었다.페리어 부인은 악랄한 음모의 희생자다.이번 사건은 알렉산더 뒤마의 독자들에게는 친숙한 그 유명한 '여왕의 목걸이' 사건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그 '여왕의 목걸이'사건은 대중의 눈에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의 위신과 체통을 깎아내리기 위해 꾸민 계략이었다. 마찬가지로 이번 사건 역시 이 나라에서 '시저의 아내'라는 위치에 있는 한 기품있고 정숙한 여인을 파멸시키기 위한 의도적인 음모이다.모티머 경은 온갖 부당한 책략 으로 민주주의를 말살시키고자 하는 파시스트와 공산주의자들을 심하게 비난한 다음 증인들을 차례로 불러세웠다. 첫번째 증인은 노섬브리아 군(郡)의 주교였다. 노섬브리아 군의 주교인 핸더슨 박사는 영국 국교회에서 유명한 인물중의 하나로, 성품이 고결하고 덕이 높은 사람이었다.그는 마음이 넓고 관대한 훌륭한 성직자로서 그를 아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그를 사랑하고 존경했다. 그는 증언석에 들어가 문제의 그 기간 동안 에드워드 페리어 부인이 자기 부부와 함께 교구관저에서 지냈다고 증언했다.자선사업에 너무 심혈을 기울인 나머지 그녀의 건강에 무리가 생겨 충분히 쉬어야 한다는 의사의 충고를 받았으며,그녀의 방문을 비밀로 했던 것은 극성스런 기자들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주교의 뒤를 이어 유명한 의사가 증언석에 섰다.그리고 자신이 페리어 부인에게 세상 모든 일을 다 잊고 잠시 휴양 할 것을 권했다고 증언했다. 그 지방 의사는 자신이 교구관저에 있는 페리어 부인을 진찰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그 다음에 소환된 증인은 델머 앤더슨이었다. 그녀가 증언석으로 들어서자 법정 안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순간 사람들은 그녀가 너무나 에드워드 페리어 부인을 쏙 빼닮앗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름이 델머 앤더슨이지요?" "예" "덴마크 사람입니까?" "예,코펜하겐이 제 고향이에요." "전에 거기 있는 카페에서 일한 적이 있지요?" "예." "지난 3월 18일에 일어났던 일을 하나도 빼놓지 말고 다 얘기해 주십시오." "그러니까 웬 신사---영국 신사였어요.그 분이 제 테이블로 와서는 자신은 영국 주간지의 기자라고 하더군요.'X-레이 뉴스'주간지라고 했어요." "분명히 'X-레이 뉴스'주간지라고 했습니까?" "예,그건 확실합니다.왜냐하면 전 처음에는 그게 의학신문인줄 알았거든요.그런데 알고보니 그게 아니더라고요.그 사람 얘기로는 영국의 어떤 여배우가 자기의 "대 역'을 구하고 있는데,제가 바로 그 역에 적합하다는 거예요.전 영화를 자주 보러 가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사람이 말하는 배우가 누군지 알 수 없었지만,그 사람 얘기로는 그녀가 아주 유명한 배우인데 요즘 건강이 좋지 않아서 대신 사람 들 앞에 내세울 자기와 똑같이 생긴 사람을 찾고 잇다는 거였어요.그리고 보수는 후하게 주겠다는 거예요." "그 신사는 당신한테 얼마를 줬습니까?" "영국 돈으로 500파운드.처음엔 그 말을 믿지 않았죠.무슨 속임수를 쓰려나 보다라고 만 생각했는데,글쎄 그 자리에서 250파운드를 내놓지 뭐겠어요.그래서 전 제가 일하 던 그 가게를 그만두었죠." 그녀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그녀는 파리로 가서 멋진 옷을 해입고 그 멋진 기사(騎 士)와 함께 지냈다는 것이었다. "정말 멋진 아르헨티나 기사였어요.얼마나 친절하고 예의 바른지 몰라요." 그녀가 신사와 함께 철저히 즐겼다는 것은 보지 않아도 뻔했다.그녀는 비행기를 타고 런던으로 가서 올리브빛 피부를 한 그 기사를 따라 어떤 나이트 클럽에 들어갔다. 그녀는 이미 파리에서 그와 함께 있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었었다.그녀가 갔던 몇몇 장소는 정말 좋지 못한 곳이었다는 사실을 긔녀도 인정했다.진짜,좋지 않은 곳이라 고요! 그러나 그들은 '선전'을 위해서는 그런 사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시뇨르 라몬이 얼마나 정중했었는지를 말하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그녀는 페리어 부인이라는 이름을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으며, 더욱이 자신이 대역을 맡기로 한 그 숙녀가 바로 부인인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고 잘라 말했다.그리고 부인에게 해를 끼칠 의도는 조금도 없었다고 덧붙였다.그런 뒤 그녀는 증거물로 제시된 사진은 파리와 라비에라 해안에서 찍은 자신의 사진이라고 확인해 주었다. 델머 앤더슨이 정직하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그녀는 무척 명랑했지만 좀 바보스러운 면이 있는 여자였다.그녀 자신도 지금에 와서 알게 되었지만,그녀가 이용당했다는 사실은 누가 보아도 명백했다. 피고측 항변은 들어보나마나였다.자기네는 앤더슨이라는 여자를 매수한 적이 결코 없다는 것이었다.문제의 그 사진은 런던 본사로 우송되어 온 것인데 페리어 부인의 사진이 틀림없다는 확신이 들었다는 것이다.모티머 경의 마지막 변론은 사람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그는 이번 사건이 수상 부부를 깎아내리기 위한 비열한 정치적 음모라고 열변을 토했다.가엾은 페리어 부인한테로 모든 사람들의 동정이 쏟아졌다.예상했던 대로 배심원들의 판결은 극적인 장면을 연출했다.즉,피고는 원고측에 막대한 손해배상금을 지불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던 것이다.수상 부처와 그 아버지가 법정을 떠나자 수많은 사람들이 환호하며 그들 주위에 몰려들었다. 8 에드워드 페리어는 두 손으로 포와로를 반갑게 끌어안았다. "포와로씨,정말 감사합니다.이제 'X-레이 뉴스'주간지는 끝장이지요.더러운 주간지 같으니라고! 그렇게 야비한 술책을 부려 돈을 버는 잡지사는 이 세상에서 없어져야 마땅합니다.세상에 그렇게 착한 데이그머에 대한 악랄한 음모 좀 보세요.그 악랄하 고 야비한 술책을 당신이 밝혔기에 망정이지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그런데 그들이 대역을 사용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셨는지요?" "그건 그렇게 새삼스런 일이 아닙니다." 하고 포와로는 그에게 말했다 "이미 잔 드 라 모트 사건에서 그녀가 마리 앙투아네트의 역을 해낸 적이 있으니까요 "참 그렇군요! '여왕의 목걸이'를 다시 한 번 읽어야겠어요.그런데 어떻게 그들이 매수한 그 여자를 찾아낼 수 있었지요?" "덴마크에서 그녀를 찾아냈지요." "하필이면 왜 덴마크에서?" "그건 페리어 부인의 할머니가 덴마크 인이었고 또 부인의 용모가 덴마크 인의 특징 이 뚜렷한 얼굴이기 때문이었지요." "정말 깜짝 놀랄 정도로 닮았더군요.어쩌면 사람이 그렇게 악마 같은 생각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어떻게 그 족제비 같은 작자가 그런 생각을 해냈는지 정말 궁금합 니다." 포와로는 미소를 지었다. "그가 그런 생각을 해낸 게 아닙니다." 그는 자기의 가슴을 탁 쳤다. "내가 바로 그 장본인이죠!" 에드워드 페리어는 깜짝 놀란 모양이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데요.무슨 말씀입니까?" 포와로가 말했다. "우리는 '여왕의 목걸이' 이야기보다 더 오래 전으로 되돌아가야 합니다.아우게이아스 왕의 외양간을 청소하는 이야기로 말입니다.헤라클레스가 청소 에 사용했던 것은 강물이었습니다.즉,자연의 위대한 힘 중의 하나를 사용한 거죠. 난 그것을 현대판으로 옮긴 겁니다! 그럼,현대적인 자연의 힘은 뭘까? 섹스 스캔들이 면 어떨까? 소설을 파리게 하고 뉴스의 초점이 되는 것이라면 섹스 스캔들이 최고다. 섹스와 관계되는 스캔들이라면 단순한 정치적 횡령이나 독직 사건보다 훨씬 더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들일 것이다.적어도 내 생각은 그랬습니다.그렇다면 그 다음은 제가 나설 차례였지요! 먼저 강물의 흐름을 돌릴 댐을 쌓기 위해서 헤라클레스처럼 진흙구덩이에 손을 집어넣었습니다.물론 언론계에 있는 내 친구 한 사람이 나를 도와주었지요.그는 온 덴마크를 돌아다니며 대역을 맡길 수 있는 적당한 사람을 찾 았습니다.그러다가 그녀를 발견하게 되자 그너에게 접근하여 슬쩍 "X-레이뉴스" 주간 지 기자라는 말을 흘렸지요.물론 그녀가 그 이름을 기억해 주기를 바라면서 말이죠. 그런데 과연 그 뜻대로 되었습니다.그 다음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고요? '진흙'--- 그것도 엄청난 진흙이 '시저의 아내'를 향해 덮쳤습니다! 사람들에게는 그 어떤 정 치적 스캔들보다 더 흥미로운 사건이었죠.그리고 그 결과는---그 결과는 어떻게 되 었지요? 두말할 것도 없이 완전한 역전이었죠! 혐의가 완전히 벗겨져 부인이 정숙한 분이라고 새롭게 입증된 겁니다! 감동의 대 파노라마가 아우게이아스 왕의 외양간을 깨끗이 청소해 버린 셈이지요.이제는 이 나라의 모든 신문이 존 해미트 씨의 공금 횡령 기사를 내보낸다고 해도 누구 하나 그걸 믿으려 하지 않을 겁니다.그 대신 정 부의 위신을 떨어뜨리려는 또 다른 정치적 음모라고 여기게 될 겁니다." 에드워드 페리어는 숨을 깊이 내쉬었다.순간 에르큘 포와로는 금방이라도 그가 덮칠 것 같은 위기감을 느꼈다. "내 아내를! 감히 내 아내를 이용해서----" 다행스럽게도 바로 그 순간에 페리어 부인이 방안으로 들어왔다. "이젠----" 하고 그녀가 말했다. "모든 일이 다 순조롭게 될 거예요." "대이그머,당신은---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다는 거요?" "물론이죠,여보." 하고 대이그머 페리어가 말했다.그런 다음 그녀는 헌신적인 아내 다운 표정으로 부드럽고 자비로운 미소를 한껏 지었다. "나한테 한마디 말도 없었잖소!" "에드워드,당신이 그걸 허락 할 리가 없잖아요?" "암,어림없고말고!" 대이그머는 미소를 지었다. "우리도 당신이 그럴 줄 알았죠." "우리?" "예,저와 포와로씨." 그녀가 에르큘 포와로와 자기 남편을 번갈아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그녀는 덧붙였다. "덕분에 그 친절한 주교 댁에서 푹 쉬었지 뭐예요.이젠 기운이 펄펄 나는데요.사람 들이 저보고 다음달 리버풀에 들어오는 새 군함의 이름을 지어 달라는군요.나는 좀 대중적인 이름이 좋겠다고 생각해요." 출처 http://forum6.thrunet.com/share/mmbbs/asp/board.asp?sid=55&bid=986 etext down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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