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냥꾼 별장의 모험 ◀ ◀ The Mystery of Hunter's Lodge 결국--- 포와로가 중얼거렸다. 이번에 아마 난 안 죽으려나봐. 회복기의 유행성 독감 환자 입에서 이례적으로 낙관적인 말이 나온고로 나는 기분이 좋았다. 실은 내가 그 병을 먼저 앓았었다. 이어서 포와로가 앓게 된 것이다. 그는 지금 베개로 등을 받치고 침대에 일어나 앉아, 머리 에는 모(毛) 로 된 숄을 두르고서 그의 지시에 따라 내가 마련한, 무척이나 쓴 탕약을 천천히 들이키고 있었다. 그의 눈길은 기쁜 빛을 띠면서, 선반을 장식하고 있는 체계적으로 가지런히 놓인 깔끔하게 생긴 약병에 가 멎었다. 됐어, 됐어. 체구가 작은 내 친구가 계속해서 말했다. 다시 건강을 회복할 걸세---위대한 에르큘 포와로여, 공포의 악행 저지자! 명심해 둬, 친구. 나는 신문의 소사이어티 가십(사교계 소식) 란에 짤막한 문구를 실었다네. 아니, 정말이야! 여기에 있군! 가보시오---범인들을 모두 색출해 냅니다! 에르큘(Hercule) 포와로---저를 믿으십시오, 아가씨들. 그에겐 헤라클레스(Hercules) 적인 데가 있습니다!--- 우리가 아끼는 참신한 사립탐정은 당신을 붙잡지(grip)못합니다. 왜일까요? 이유는 그가 유행성 독감(la grippe) 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내가 웃었다. 좋습니다, 포와로. 점점 공인(公人) 이 되어가고 있군요. 게다가 다행스럽 게, 그 와중에서도 재미있는 일거리가 끊이질 않았어요. 그건 사실이야. 내가 거절하지 아니할 수 없었던 몇 가지 사건으로 인한 후회감은 없어. 하숙집 여주인이 문을 열며 얼굴을 디밀었다. 아래층에 손님이 와 계세요. 포와로 씨나 대위님을 뵈었으면 하는데요. 굉장한 소동에 휘말려 있나 봐요---그렇지만 그는 아주 신사에요--- 제가 명함을 받아 왔는데요. 그녀는 명함을 삐죽 내밀었다. 로저 헤이버링. 내가 읽었다. 포와로가 머리로 책장을 가리키자 나는 고분고분히 [인명 사전]을 끄집어 냈다. 포와로가 내게서 그 책을 받아다가 급히 페이지를 죽 훑어 넘겼다. 5대 남작 윈저 경의 차남. 1913년에 윌리엄 크랩의 네 번째 딸 조와 결혼 했음. 흐음! 내가 말했다. 프리볼리티 극장에서 연극을 하던 그 여자 아닌가요 ---자기를 그냥 조 캐리스브룩이라 불렀는데. 1차 대전 직전에 어떤 한량 이랑 결혼한 게 기억나는데요. 구미가 당기면, 헤이스팅스. 자네가 내려가서 방문객이 들고 온 문제가 어떻게 시시껄렁한 건지 들어 보고 오지 그래? 그에게 내 변명도 해주고. 로저 헤이버링은 마흔 살 가량 된 사람으로, 체격이 잘 잡혔고 외모가 준수 했다. 그렇지만 그의 얼굴은 몹시 초췌했으며, 극심한 혼란으로 괴로움을 당 하고 있는 것이 역력했다. 헤이스팅스 대위시죠? 포와로 씨와 함께 일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분은 오늘 꼭 나와 함께 더비셔 군으로 가주셔야겠는데요. (더비셔 군은 영국 중부에 위치) 그건 불가능할 것 같은데요. 내가 대답했다. 포와로는 몸이 아파서 누워 있습니다---유행성 독감으로요. 그는 고개를 떨구었다. 저런, 나로 봐선 그건 엄청난 타격인데요.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시려는 문제가 그렇게 심각한 겁니까? 그렇고말고요! 이 세상에서 나와 가장 절친한 외삼촌께서 간밤에 어이없이 살해당했어요. 여기 런던에서요? 아뇨, 더비셔 군에서요. 나는 시티(런던의 경제, 금융 중심부)에 나와 있었 는데, 오늘 아침 아내에게서 전보를 받았습니다. 그것을 받자마자 즉시 이리 로 와서 포와로씨게엑 그 사건을 맡아 달라고 부탁드려야겠다고 생각했죠. 잠시만 실례합니다. 갑자기 무슨 생각이 떠올라서 내가 말했다. 나는 2층으로 급히 뛰어 올라가서는 포와로에게 간단하게 몇 마디를 들려 주어 그 상황을 알려 주었다. 그는 내가 하려는 말을 앞질러 자기가 다해 버리고 말았다. 알았어, 알았어. 자네가 직접 가고 싶다는 거지, 아니야? 그래, 안될게 뭐 있어? 지금쯤이면 내 수를 훤히 파악했을 텐데. 내가 부탁하는 건 오로지 자네가 매일 내게 철저히 상황 보고만 해주면 되고, 내가 전보로 지시사항 을 쳐서 보내면 그대로 따라주기만 하면 돼. 이 말에 나는 기꺼이 동의했다. 한 시간 뒤에 나는 런던을 전속력으로 출발한 미들렌드 레일웨이(중부철도) 의 1등칸 좌석에 헤이버링 시와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우선, 헤이스팅스 대위, 당신은 우리가 가고 있는 비극이 발생한 장소인 사냥꾼 별장 이 더비셔 황야 깊숙이에 있는 오두막집이라는 걸 알아두셔야 할 겁니다. 우리 집은 실은 거기에서 한참 떨어진 뉴마켓(영국 동부의 케임 브리지셔 군과 서포크 군 사이의 조그만 마을)에 있는데, 우리는 사교 시즌 (보통 초여름)동안엔 대개 시티에 아파트를 빌어 살죠. 사냥꾼 별장 은 우리가 간혹가다 주말을 보내러 내려가는데, 우리 일을 아주 잘 봐주는 가 정부가 관리하고 있어요. 물론 사냥철에는 뉴마켓에서 우리집 하인을 데리 고 갑니다. 나와 내 아내는 외삼촌되시는 해링턴 페이스 씨와(아시는지 모르 겠습니다만, 우리 어머니는 뉴욕에서 미스 페이스였죠)함께 지난 3년 동안 그분 집에서 살았어요. 우리 아버지나 형과는 별로 잘 지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나와는 내가 돌아온 탕아 가 되자 나를 향한 그분의 애정이 사그라 들지 않고 오히려 커진 것 같습니다. 물론 나는 가난한 사람이고 그분은 부자입니다---다시 말해서, 그분이 비용을 대신 거죠! 여러 면에서 성격이 꼬장꼬장하긴 해도 사이좋게 지내기가 그렇게 힘든 사람은 아니어서, 우리 세 사람은 별탈없이 아주 잘 지냈죠. 이틀 전에 외삼촌께서는 우리가 최근 들어 시티에서 떠들썩하게 지낸 일에 염증을 내시면서 하루 이틀 더비셔로 내려가 지내는 게 어떻겠냐고 했죠. 그래서, 아내가 그집 관리를 맡고 있는 미들턴 부인에게 전보를 치고서 그날 오후에 내려갔습니다. 어제 저녁 나는 부득이 시티로 올라가지 않을 수 없었는데, 아내와 외삼촌은 그대로 거기 남아 있었죠. 그런데, 오늘 아침 이런 전보를 받았습니다. 그는 그것을 내거 건네 주었다. 어젯밤 해링턴 외삼촌이 살해됐으니 될 수 있으면 명탐정을 데리고 즉시 와주세요---조. 그리고는 아직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십니까? 몰라요, 어쩌면 저녁 신문에 났을지도 모르겠군요. 틀림없이 경찰이 와 있을 겁니다. 우리가 엘머스 데일이라는 작은 역에 도착한 때가 3시가량 되었다. 거기서 차를 타고 5마일쯤 들어가니까 바위투성이의 황야 한복판에 조그만 회색 석 조 건물이 나타났다. "쓸쓸한 곳이로군요. 내가 부르르 떨며 바라보았다. 헤이버링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걸 없애 버려야겠습니다. 여기선 더 이상 못살 것 같아요. 빗장을 열고서 참나무 문에 이르는 좁은 길을 걸어가는데 친숙한 형상이 우리를 맞이하러 나왔다. 재프! 내가 갑자기 외쳤다. 그 런던 경시청 경감은 내 동반자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친근한 동작으로 날 보고 씩 웃었다. 헤이버링 씨 되시죠? 전 이 사건을 맡기 위해 런던에서 내려왔는데, 가능 하다면 몇 말씀 묻겠습니다. 제 아내는--- 부인은 됐습니다---그리고 가정부도요. 단 1분이라도 지체하고 싶지 않 습니다만, 거기서 파악한 것이라곤 여길 보는 것이 다였으니 마을로 돌아 가야겠습니다. 전 아직도 뭐가 뭔지 아무것도 모르--- 그렇겠죠. 재프가 진정시키면서 말했다. 별 것 아니지만, 그래도 선생님으로부터 한두 말씀 듣고 싶습니다. 여기 헤이스팅스 대위도 계십니다만, 이분은 저를 잘 알고 있죠. 이분이 집으로 올라가서 그분들에게 선생님이 오셨다고 알려 주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고, 그 작은 분은 어떻게 됐소, 헤이스팅스 대위? 유행성 독감으로 자리에 누워 있습니다. 그래요? 안됐군요, 마차에 말이 빠진 격이로구먼. 그가 없이---당신 혼자 여기 온 게 말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그의 뒷북치는 농담을 한 귀로 흘리면서 나는 집 쪽으로 갔다. 재프가 닫아 놓은 문에서 나는 벨을 눌렀다. 잠시 뒤에 검은색 옷을 입은 중년 부인이 문을 열어 주었다. 헤이버링 씨가 곧 이리로 오실 겁니다. 내가 설명했다. 경감에게 붙들려서 늦어지고 있어요. 난 이 사건을 조사하러 이 댁 주인과 함께 런던에서 왔습니다. 간밤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내게 간단히 설명해 주셨으면 합니다만. 안으로 들어오세요, 선생님. 그녀가 문을 닫아 우리는 어둠침침한 현관으로 들어섰다. 그 남자가 온 것은 어젯밤 저녁식사를 들고 난 뒤였어요. 그는 페이스 씨를 만나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말하는 투가 비슷하길래 저는 그가 페이스 씨의 미국인 친구쯤 되나 보다고 생각하고서 그를 총기실로 안내하고는, 페이스 씨에게 얘길 전하러 갔죠.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그가 자기 이름을 밝히지 않은 것이 약간 이상하긴 해요. 제가 페이스 씨에게 얘길 전하자, 그분은 약간 어리둥절한 듯하더니 이 댁 마님에게 말씀하시더군요. 잠깐만, 조. 이 친구가 뭣 때문에 왔는지 알아봐야겠는데. 그분은 총기실로 내려가고 저는 부엌으로 올라왔는데, 잠시 뒤에 두 분이 싸우시는지 언성을 높이는 소리가 들리길래 현관으로 나가봤어요. 동시에 마님도 밖으로 나오셨는데, 바로 그 때 총소리가 울리더니 무시무시한 정적 이 감돌았어요. 우린 둘 다 총기실로 달려갔는데, 문이 잠겨 있어서 할 수 없이 빙 돌아서 창문으로 갔죠. 그러자 창문은 열려 있었고, 방안에는 페이 스 씨가 총에 맞아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었어요. 그 남자는 어떻게 됐습니까? 그는 우리가 미처 가기도 전에 창문으로 도망친 게 틀림없어요. 그리고는? 헤이버링 부인이 경찰을 불러오라고 저를 보냈어요. 걸어서 5마일 걸렸죠. 그들과 함께 돌아와서는 경관이 여길 밤새 지키고 있었고, 오늘 아침 런던 에서 경감님이 도착하셨어요. 페이스 씨를 만나러 온 사람은 어떻게 생겼던가요? 가정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검은 턱수염을 기르고 있었어요, 선생님. 나이는 중년쯤 되었고요. 가벼운 오버코트 차림이었어요. 어투로 봐서는 두말할 것도 없이 미국 사람 같았 는데, 별반 신경써서 보지는 않아서 말이죠. 알겠습니다. 자, 헤이버링 부인을 뵐 수 있을까 모르겠네요? 2층에 계세요, 선생님. 말씀드릴까요? 실례가 안된다면요. 부인께 헤이버링 씨가 잽 경감과 함께 밖에 있다고 전해 주시고, 런던에서 남편과 함께 온 사람이 가능한 한 빨리 부인과 말씀 좀 나누고 싶어하더라고 전해 주시지요. 잘 알겠습니다, 선생님. 나는사건을 낱낱이 파악하고 싶다는 열망에 들떠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재프가 나를 두세 시간 정도 앞질렀는데, 뻐기기 좋아하는 그의 성격이 나로 하여금 신경을 곤두세우고 그를 바싹 뒤쫓게 부추겼다. 헤이버링 부인은 나를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았다. 몇분 뒤에 계단을 내려 오는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나서 쳐다보니, 아주 매력적인 젊은 여자가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는 야한 빛깔의 점퍼를 걸치고 있었는데, 그런 그녀의 몸매에서 날렵한 소년 같은 인상이 풍겼다. 그녀는 검은 머리에 가죽으로 만든 조그맣고 화려한 빛깔의 모자를 쓰고 있었다. 현재의 비극마 저도 그녀의 넘쳐 흐르는 개성을 가릴 수는 없었다. 내가 신분을 밝히자 그녀는 얼른 알아듣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선생님과 선생님의 친구분인 포와로 씨에 대해 많이 들어 왔어요. 함께 멋지게 일을 해결한 적이 여러 번 있다지요? 제 남편이 곧바로 선생 님을 모셔온 것은 아주 잘한 일이에요. 지금부터 제게 질문하실 거죠? 그게 가장 손쉬운 방법이죠, 아닌가요? 이 참극에서 선생님께 필요한 모든 것을 얻으시려고 말이에요. 감사합니다, 헤이버링 부인. 자, 그 남자가 도착한 것이 몇 시였습니까? 9시 직전이었을 거에요. 우리는 막 저녁식사를 마치고서,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면서 앉아 있었지요. 남편께서는 이미 런던으로 떠나신 뒤였습니까? 예, 그이는 6시 15분 차로 올라갔어요. 그분은 역까지 차로 갔습니까, 걸어서 갔습니까? 우리 차는 없어요. 엘머스 데일 역에 있는 주차장에서 한 대가 와서 열차 시간에 맞춰 그이를 태워 갔어요. 페이스 씨는 평상시와 상태가 똑같았습니까? 그럼요. 어느 모로 보나 지극히 정상적이었어요. 그럼, 그 방문객에 대해 제게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글쎄요. 전 그 사람을 못 봤어요. 미들턴 부인이 그를 직접 총기실로 안내 하고서는 외숙부님께 말씀드리러 왔으니까요. 외숙부께서는 뭐라 말씀하셨습니까? 그분은 좀 귀찮아하시는 듯한 표정이더니 즉시 가시더군요. 언성이 높아진 걸 들은 건 약 5분 뒤였어요. 저는 현관으로 달려갔는데, 하나터면 미들턴 부인이랑 부딪칠 뻔 했죠. 그때 우리는 총소리를 들었어요. 총기실 문이 안 으로 잠겨 있는 바람에 우리는 오른쪽으로 돌아서 창가로 갔죠. 그러다 보 니까 시간이 다소 걸리게 된 것은 당연했는데, 그게 살인자로 봐선 내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을 거에요. 가엾은 외숙부님---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머리에 관통상을 당했어요. 저는 외숙부님이 즉사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경찰을 부르러 미들턴 부인을 보냈죠. 저는 방안의 아무것도 건드리 지 않으려고 제가 본 그대로 두었어요. 나는 만족하여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면, 무기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저, 그거라면 추측이 가능해요. 총알을 추출해 내고 나면 더 확실히 알게 되지 않을까요? 제가 총기실로 가봐도 되겠습니까? 그럼요. 경찰이 이미 살펴봤어요. 그 대신 시체는 치워졌어요. 그녀는 나를 사건 현장으로 데리고 갔다. 그 순간, 헤이버링이 현관으로 들 어오자 그녀는 급히 사과의 말을 꺼내고는 자기 남편에게로 달려갔다. 나는 혼자 남아서 조사를 하게 되었다. 내 조사는 꽤나 실망스러웠다는 것을 고백해야겠다. 추리소설을 보면 단서 가 넘쳐나더라만, 여기서 내가 발견한 거라곤 오직 죽은 남자가 넘어져 있던 양탄자 위의 핏자국이 크게 번져 있는 것 말고는 특기할 만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방안의 모든 것을 허리가 펴지지 않도록 세밀히 살펴보고 나서, 가지고 간 소형 카메라로 사진을 두어장 찍어 두었다. 나는 또한 창 밖 마당도 살펴보았으나, 너무나 어지럽게 밟아 뭉갠 자국들뿐이라 거기에 시간을 허비 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판단을 나름대로 내렸다. 아니, 나는 사냥꾼 별장 이 내게 보여줘야 하는 그 모든 것을 보았다. 나는 앨머스 데일로 돌아가서 재프와 연락을 취해야 했다. 따라서, 나는 헤 이버링 부부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는, 역으로 달려가 우리를 태우고 온 차에 서 내렸다. 나는 매트록 암스 여관에서 재프를 만났는데, 그가 나를 즉시 시체 있는 데 로 데리고 갔다. 해링턴 페이스는 체구가 작고 호리호리하며 깨끗이 면도를 한 남자로, 전형적인 미국인으로 보였다. 그는 뒤통수에 총을 맞았는데, 리 볼버 권총이 아주 가까이에서 발사된 것이었다. 나 좀 보십시다. 재프가 말했다. 그 다른 친구가 리볼버 권총을 낚아채고서는 그를 쏜 모양입니다. 헤이버 링 부인이 우리에게 건네 준 총은 탄환이 다 재어져 있었는데, 나머지 것 도 그랬을 겁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지르는지 의아할 따름이에요. 탄환이 들어 있는 두 자루의 리볼버 권총을 벽에다 걸어 놓다니. 이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소름끼치는 방을 물러나오면서 내가 물었다. 글쎄요, 우선은 헤이버링을 주시해 봐야겠습니다. 아, 그래! 헤이버링은 과 거에 불미스러운 사건이 한두 가지 있었죠. 옥스퍼드 대학 재학 당시 자기 아버지 수표 한 장에다 사인을 위조했었습니다. 물론 모든 일이 쉬쉬하며 어물쩍 끝났지만요. 그리고, 그는 요즈음 빚에 몹시 쪼들리고 있다더군요. 더군다나, 자기 외숙부가 어떻게 좀 해결해 주었으면 하는 눈치였을 텐데, 외숙부의 유산이 그에게 요긴하리라는 거야 뻔한 사실 아뇨. 그래서, 난 그를 주시해 봐야겠습니다. 그게 바로 그 사람이 자기 아내를 만나기 전에 내가 먼저 그에게 얘길 좀 하고 싶다고 한 이유였지요. 그런데, 그들의 진 술은 꼭 들어맞더군요. 경찰서에 가봤더니 그가 6시 15분 차로 떠난 것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하는 거였습니다. 그 차를 타면 런던에 대략 10시 30분에 도착하지요. 그는 곧장 클럽으로 갔다고 말하던데, 그것만 사실이라 고 확인된다면야---검은 턱수염을 달고 9시에 여기서 자기 외숙부를 쏠 수 는 없겠지요! 아, 그래, 그 턱수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재프가 눈을 찡긋했다. 수염이 꽤나 빨리 자랐다고 생각되는군요---앨머스 데일부터 사냥꾼 별장 까지의 5마일이나 되는 거리를 오는 동안 자랐겠죠. 내가 만난 미국 남자 들은 대개 깨끗이 면도를 했던데 말입니다. 그래요, 우리가 살인자로 지목 해야 하는 사람을 페이스 씨의 미국인 친구 중에 있을 겁니다. 나는 처음에 가정부와 얘기를 했고 그 뒤에 여주인과 했는데, 그들의 이야기가 일치하 더군요. 하지만, 헤이버링 부인이 그 작자를 못 봤다는 게 좀 아쉽군요. 그녀는 똑똑한 여자라서 우리가 추적해 볼 만한 뭔가를 목격했을 수도 있 었는데 말입니다. 나는 앉아서 세세하고 길다란 편지를 포와로에게 썼다. 편지를 부치기에 앞서 여러 가지 진전된 사항을 덧붙일 수 있었다. 총알을 추출해 보니, 경찰이 가져간 것과 동일한 리볼버 권총에서 발사된 것임이 드러났다. 더욱이, 사건 당일날 밤의 헤이버링의 거동을 조사하고 확 인해 봤더니 그가 실제로 그 기차를 타고 런던에 도착했다는 것이 입증되었 다. 그리고, 세 번째로 획기적인 진전이 있었다. 일링에 사는 어떤 남자가 그날 아침 디스트릭트 레일웨이 스테이션(교외 전차역)으로 가는 길목인 헤 이븐 그린 공유지를 지나가다가 울타리 옆에 떨어져 있는 갈색 꾸러미를 보 게 되었다. 그는 그 꾸러미를 그 동네 경찰서로 넘겼는데, 밤도 되기 전에 그 것이 헤이버링 부인이 우리에게 얘기해 준, 우리가 찾고 있던 바로 그 총임 이 드러났다. 총알 하나는 발사되고 없었다. 이러한 사실도 나는 보고서에 첨가해 넣었다. 다음날 아침, 내가 아침식사 를 들고 있는데 포와로한테서 전문이 날아들었다. 물론 검은 턱수염의 사나이는 헤이버링이 아니었네. 자네나 잽이 그렇게 생각한 모양이구먼. 가정부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 주게. 오늘 아침 무슨 옷을 입고 있었는지도 말이야. 그리고, 헤이버링 부인에 대해서도. 집안의 사진을 찍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말게. 노출도 부족하고 예술적이지도 못해. 내가 보기에 그 전문은 포와로가 쓸데없이 주책을 부린다는 느낌을 주었다. 또한, 나는 이 사건을 다룸에 있어서 현시점의 내가 재능을 십분 발휘하는 데 대해 그가 은근히 시기 질투하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들었다. 두 여자 가 입은 옷에 대해서 알려달라는 것이 내겐 꽤 어리석어 보였다. 그러나 나 는 단순한 사람인지라 그대로 해주었고, 또 그럴 능력도 갖추고 있었다. 11시에 포와로에게서 답신이 왔다. 재프에게 너무 늦기 전에 가정부를 체포하라고 이르게.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서 그 전문을 들고 재프한테로 갔다. 그는 목소리를 죽이고 부드럽게 말했다. 그는 기막힌 사람입니다, 포와로 씨 말이죠! 그분께서 그렇다고 말하면 뭔가가 있는 겁니다. 그런데, 그 여자를 눈여겨 볼 생각은 거의 못 했군요. 그녀를 과연 체포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감시는 해야겠죠. 즉시 가서 그녀를 다른 각도로 살펴보십시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미들턴 부인, 그렇게 평범하고 사람 좋아 보이던 조용 한 중년 여인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자기 상자를 고스란히 남겨둔 채. 그 속에는 평상복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그녀 의 신원이라든가 그녀의 소재지를 파악하는 데 아무런 실마리가 되지 않았다. 헤이버링 부인에게서 우리는 가능한 한 많은 사실을 끌어냈다. 우리 집의 그전 가정부인 에머리가 떠나는 바람에 3주전에 그녀를 고용 했어요. 그녀는 런던의 마운트 가에 있는 셀번 직업소개소에서 왔죠--- 아주 유명한 곳이죠. 저는 하인들을 몽땅 거기다 의뢰해서 쓴답니다. 그들은 제게 여러 여자를 보냈는데, 제 눈에 그 미들턴 부인이 가장 좋아 뵈고, 또 소개장도 아주 잘 쓰여 있더군요. 저는 그 자리에서 바로 그녀를 고용하고 는 소개소에 그 사실을 통고했어요. 그녀에게 뭐 잘못된 점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하겠어요. 얼마나 참한 여잔데요. 그 일은 확실히 오리무중이었다. 그녀가 직접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건 확 실하겠지만, 총이 발사된 그 순간 헤이버링 부인이 그녀와 함께 현관에 있었 음에도 불구하고 그 살인자와 어떤 연관이 있었음이 틀림없는 것이다. 아니 면, 왜 그녀가 부리타케 내빼야 했단 말인가? 나는 최근의 지전 사항을 포와로에게 전보로 보내면서, 런던에 가서 셀번 직업소개소로 조회나 해봐야겠다고 했다. 포와로의 대답은 즉시 왔다. 소개소에 조회해 봤자 그들은 아무 것도 모를 테니까 아무 소용이 없으니, 그녀가 첫날 사냥꾼 별장 에 도착했을 때 무슨 차를 타고 왔는지나 알아 보게. 어리벙벙한 가운데 나는 그 말을 따랐다. 앨머스 데일의 운송수단은 제한 되어 있었다. 그 동네 주차장에는 찌그러진 포드차 두 대에 역마차가 두 대 있었다. 사건 당일 이 차들 중에서 움직인 차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에 관 해 물어 보니, 헤이버링 부인이 그녀에게 더비셔까지 오는 차비를 주었기 때문에 사냥꾼 별장 까지 타고 올 수 있는 차는 충분히 세낼 수 있었을 거라고 했다. 보통은 정거장에 호출될 때를 대비해서 포드 차 한 대가 나와 있었다. 더구나, 역에서는 아무도 검은 턱수염을 길렀건 아니건 그 끔찍한 일이 벌어진 날 저녁에 낯선 사람의 도착을 본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놓고 볼 때, 모든 것이 살인자는 그 장소에까지 차를 직접 몰고 와서 근처에 세워 놓고는 도망가기 쉽게 했으며, 또 그 차로 수수께끼의 가정부가 안전한 장 소로 달아나지 않았는가 하는 결론 쪽으로 집약되는 것처럼 보였다. 런던에 있는 직업소개소에 조회해 본 결과, 포와로의 예견이 실증되었음에도 부득이 언급해야 되겠다. 미들턴 부인 이라는 사람은 아예 명단에도 올라 있지조차 않다는 것이다. 그들은 가정부를 구한다는 헤이버링 부인의 편지를 받았기 때문에 그녀에게 그에 알맞은 여러 지원자를 보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 가 그들에게 소개비를 보내면서도 어느 여자를 선택했는지에 대해선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다소 맥이 빠진 채 나는 런던으로 돌아갔다. 나는 포와로가 야한 빛깔의 실크 실내복을 입고 불 곁에 놓인 안락의자에 푹 파묻혀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나를 굉장한 애정을 기울여 맞아 주었다. 친구, 헤이스팅스! 자네를 보는 게 이렇게 기쁠 줄이야. 내 애정이 얼마나 참다운 건지 모르겠지! 자, 그래 좀 즐기긴 했나? 그 선한 재프와 동분서주 했겠지? 마음내키는 대로 심문하고 수사를 했겠구먼. 포와로---- 내가 외쳤다. 그 사건은 정말로 난감한 미스터리입니다! 결코 해결되지 않을 거에요. 우리가 성공리에 그 일을 완결한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건 사실이지. 예, 정말로 그래요. 깨기가 여간 어려운 호두가 아니라니까요. 오, 일 돌아가는 꼴을 보아 하니 나라면 얼마든지 그놈의 호두를 깰 수 있겠는데 그래! 귀여운 다람쥐야! 나를 당황하게 만드는 건 그게 아니라고. 나는 누가 해링턴 페이스 씨를 죽였는지 아주 잘 알아. 안다고요? 어떻게 알아냈어요? 내 전보에 대한 자네의 계시적인 답신에서 그 사실을 깨달았지. 여길 보라 고. 헤이스팅스. 우리, 그 문제를 놓고 차근차근히 하나하나 따져 보자고. 해링턴 페이스 씨는 자기가 죽으면 어김없이 조카에게 가게 되어 있는 엄 청난 재산을 소유한 사람이야. 지적 사항 제 1번. 그의 조카는 극심한 경제 난에 허덕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지적 사항 제 2번. 또한 그의 조카는 알려져 있기를---좀 도덕심이 결여된 사람이라고 말해도 될는지? 지적 사 항 제 3번. 그렇지만, 로저 헤이버링은 곧장 런던으로 간 것으로 판정이 났잖아요. 그야 그렇지---헤이버링 씨는 앨머스 데일을 6시 15분에 출발했는데, 그 가 떠나기 전에는 페이스 씨가 죽을 수가 없었어. 혹시 의사가 시체를 검사 하고서는 범죄가 일어날 시각을 잘못 추정하여 말했을 수도 있긴 하지만, 우리는 헤이버링 씨가 외삼촌을 쏘지 않았다는 것을 아주 똑바로 결론내릴 수 있지. 왜, 그 헤이버링 부인이 있잖나, 헤이스팅스? 말도 안 됩니다! 총소리가 울렸을 때 가정부가 그녀랑 함께 있었어요! 아, 그래 가정부. 그래도 그녀는 사라졌잖나. 발견될 겁니다. 아닐 것 같은데. 그 가정부에 대해선 뭔가 정의내리기 힘든 특이한 점이 있어. 그렇게 생각지 않나, 헤이스팅스? 나는 금방 눈치챘는데. 내 생각에는 그녀가 자기 역할을 해내고는 아슬아슬하게 때맞춰 빠져 나 간 것 같은데요. 그녀의 역할이 뭔데? 그러니까, 자기 공모자인 검은 턱수염의 남자를 들어오게 하는 거겠죠. 오, 아냐, 그건 그녀의 역할이 아냐! 그녀의 역할이란 자네가 방금 얘기한 총소리가 울린 그 순간에 헤이버링 부인의 알리바이를 제공하는 것이었어. 그런데, 아무도 그녀를 찾을 수는 없을 거야. 친구, 왜냐하면, 그런 여자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런 사람은 없어. 자네가 그토록이나 숭배해 마지않 는 셰익스피어가 말했지. 그건 디킨스가 한 말입니다. 내가 웃음이 터져 나오는 걸 참지 못하고 웅얼거렸다. 그런데 말씀하시는 요지가 대관절 뭡니까, 포와로? 내 말은 조 헤이버링이 결혼 전에 배우였다는 사실을 말하는 건데, 자네와 재프는 어두침침한 현관에서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하는, 검은 옷을 입은 중년쯤 되어 보이는 희끄무레한 형상의 가정부를 보지 않았나 그 말 이야. 그런데, 결국 자네도 그렇고 재프도 그렇고 미들턴 부인과 여주인이 한 번도 같이 있는 걸 본 적이 없었어. 그 영악하고 대담한 여자의 어린애 같은 연극이었어. 자기 여주인을 부르러 간다는 핑계로 그녀는 2층으로 달 려가서는 야한 점퍼를 걸쳐 입고 회색으로 바꾼 머리를 꾸겨서 집어넣을 수 있는, 검게 퍼머한 머리를 붙여 놓은 모자를 썼던 거야. 능숙한 솜씨로 약간 화장을 지운 다음 루즈를 조금 바르고는, 그 영악한 조 헤이버링은 그 녀 특유의 은방울 굴리는 목소리를 내면서 밑으로 내려왔어. 아무도 특별히 가정부를 주시하진 않았지. 어디, 그럴 필요가 있었겠나? 그녀를 범죄와 연 관시킬 거라곤 아무것도 없어. 그렇다면, 그녀는 알리바이가 성립된 거지. 그러면 일링에서 발견된 리볼버 권총은 어떻게 된 거죠? 헤이버링 부인이 그걸 거기다 갖다 놓을 수는 없을 텐데요? 아니, 그건 로저 헤이버링의 역할이었지---그런데, 거기서 실수를 한 게야. 그 바람에 내가 제대로 추리해 낼 수 있었지. 즉석에서 발견한 리볼버 권 총으로 살인을 저지른 그 남자는 그것을 즉시 던져 버리고는, 런던으로는 가지고 오지 않을 거야. 그래, 그 동기는 아주 명확해. 범인들은 경찰의 관 심이 더비셔에서 멀찍이 떨어진 그 지점으로 돌려지기를 바란 거야. 그들은 가능하면 사냥꾼 별장 부근에서 경찰이 얼쩡거리지 않았으면 하고 몹시 바랐지. 물론 일링에서 발견된 리볼버 권총으로 페이스 씨를 쏜 건 아니야. 로저 헤이버링이 아무데나 한 발을 쏘고서는 그걸 런던으로 가져가 자기 알리바이를 내세우려고 곧장 클럽으로 갔다가, 얼른 인근의 일링으로 버리러 갔는데, 단지 20분이면 그 꾸러미를 발견된 장소에 갖다 놓고 도로 런던으 로 돌아올 수 있었어. 그리고, 매력적인 그의 부인은 저녁식사를 마치고는 조용히 페이스 씨를 쏜 거야---자네, 그가 뒤에서 총을 맞았다는 것을 기억 하나? 또 다른 중요한 문제는 바로 그거야!---그리고서 그 리볼버 권총에 탄환을 채우고는 그걸 제자리에 갖다 놓은 거야. 그런 다음, 그녀가 세밀히 조작한 촌극을 연출한 거지.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아요. 내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래도 그렇지--- 그래도 그렇지가 아니라, 그건 사실이라고. 물론이지, 친구, 사실이고 말고. 하지만, 그 희귀한 한 쌍을 법에 회부하는 건 별개의 문제야. 저 재프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지---나는 그에게 충분히 알아듣도록 편지 를 써 보냈네---그렇지만, 헤이스팅스, 난 우리가 네메시스(복수의 여신) 나 그게 아니라면 아무튼 자네 좋을 대로 하나님한테라든지 그들을 회부할 의무가 있는지가 지극히 의심스러워. 무성한 월계수처럼 보이도록 사악하게 윤색된 거로군요. 내가 그의 기억을 일깨웠다. 그렇지만 대가는, 헤이스팅스, 언제나 대가라니까. 아무렴! 포와로의 예상은 적중했다. 그가 제시한 이론이 진실이라는 걸 확신하는 바이나, 재프는 그 확증을 뒷받침할 물증을 잡을 수 없었다. 페이스 씨의 어마어마한 재산은 자기를 살해한 자의 손에 넘어갔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인과응보의 신이 그들을 시기했는지, 신문에서 로저 경과 그의 부인이 파리로 가다가 비행기가 추락하는 바람에 죽었다는 기사를 읽고서, 나는 죄값은 치르고야 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출처 http://forum6.thrunet.com/share/mmbbs/asp/board.asp?sid=55&bid=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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