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뚤어진 집 제 1장 나는 전쟁이 끝날 무렵 이집트에서 소피아 레오니데스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녀는 그곳에 상주해 있는 외무성 파견기관의 상당한 고위직에 있었다. 처음에 나는 그녀를 공적인 업무로 만나게 되었는데,곧 그녀가 꽤나 유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당시 그녀는 겨우 스물두 살이었다) 그런 고위직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보는 이의 마음을 지극히 편안하게 해주는 용모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마음 또한 솔직담백했고 꾸밈없는 유머감각도 있었다. 나는 그녀의 그런 점이 매우 맘에 들었고 그래서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그녀는 전혀 부담이 느껴지지 않는 대화상대였다. 우리는 함께 저녁식사를 즐기기도 했고 가끔씩 춤을 추러가곤 했다. 이것이 내가 알고 있는 전부였다. 그러나 유럽전쟁이 끝나고 내가 동양으로 전근 명령을 받았을 때 나는 무언가 다른 느낌, 즉 소피아를 사랑하고 있으며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내가 그것을 깨달은 것은 셰퍼드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놀라움 같은 것은 없었고,아주 오랫동안 익숙해 있던 생각을 새삼스레 인식하게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새로운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이미 오랫동안 내가 알아온 바로 그 모습이었다. 나는 내 눈에 보이는 그녀의 모든 것이 좋았다. 이마로 시원스럽게 물결치며 흘러내린 검은 머릿결하며 반짝이는 푸른 눈,약간 각이 져서 도전적으로 보이는 턱,오똑한 콧날 등. 그녀가 입은 디자인이 잘 된 연회색의 정장하며 흰색의 빳빳한 셔츠도 좋아보였다. 그녀는 신선한 영국 여인의 분위기를 풍겼으며,그것은 3년 동안이나 고향을 떠나 있는 나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나는 그 누구도 그녀보다 더 영국인 다울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바로 그 때 나는 갑자기 그녀가 정말 겉보기처럼 내부도 그렇게 영국인다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무대에서 보이는 것처럼 실제로도 그렇게 완전함을 지니는 경우가 과연 있는가? 나는 그녀와 함께 서로의 이상을 논하고 싫어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자신의 미래,그리고 가까운 친구와 지인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소피아가 자신의 가정이나 가족에 대해 한번도 언급한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나에 관해서 모든 것을 알고 있었지만(앞에서도 지적했다시피 그녀는 남의 말을 아주 잘 들어주는 사람이었다.)내가 그녀에 관해서 아는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그녀도 아무 흠잡을 데 없는 배경을 갖고 있을 것이라 추측했지만 그녀는 그런 얘기는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이 순간까지도 나는 그점을 의식하지 못 하고 있었다. 소피아는 무얼 생각하고 있느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당신에 대해서."라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랬군요"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그럴 줄 알고 있었다는 듯 한 말투였다. "우린 한 2년동안은 만나지 못하게 될 거요. 언제 영국에 돌아오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돌아오는대로 당신에게 결혼을 신청하겠소." 그녀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내 얘기를 들었다. 담배를 피우며 앉아서, 나는 바라보지도 않은 채. 그렇게 1~2분이 흐르자 나는 그녀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초조했다. "들어봐요,지금 당장 결혼하자는 것은 아니오. 그건 현실적이 못 돼요. 첫째는 당신이 거절할지도 모르고,그렇게 되면 나는 비참한 심정으로 뒤돌아서서 그 공허함을 메꾸려고 어떤 끔찍한 여자에게 꽉 매달리게 될 테니까 말이오. 그리고 설사 당신이 거절하지 않는다 해도 지금 당장 어쩌겠소? 결혼하고 금방 떨어진다고? 약혼만 하고 오랜 시간을 서로 기다림 속에서 지낸다고? 오,당신을 그렇게 만들 수는 없소. 당신은 누군가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될 지도 모르는데,그러면 나와 약혼한 사실이 구속으로 느껴질 것이오. 우리는 모든 것이 열에 들뜬 드이 순식간에 이뤄지는 시류 속에서 살고 있소. 금방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가 금방 파경에 이르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숱하게 많아요. 난 당신이 아무 부담감 없이 자유로운 몸으로 고향에 돌아가서 전쟁 이후 의 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도 나름대로 가늠해 보고 그 때 마음을 결정해 주었으면 하오. 당신과 나 사이의 감정은 영원한 것이어야 하오. 영원하지 않은 결혼 은 내겐 소용이 없소. "저 역시도 그래요." 소피아가 말했다. "다른 한편으로는,난 내가 어떻게,음--- 어떻게 느끼는지를 당신에게 알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오." "하지만 낭만적인 말 한마디 없이요?" 소피아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소피아 -- 내 말을 이해 못하겠소? 난 사랑한단 말을 하지 않으려 애써왔소" 그녀가 내 말을 가로 막았다. "알아요,찰스. 그리고 당신의 그런 신중한 태도가 전 좋아요.고향에 돌아오시면 다시 절 보러오실 수도 있겠지요 ---그때까지도 절 원한다면" 이번에는 내가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 점에 대해선 의심할 게 없어요." "어떤 일에든지 다 의심할 점은 있어요, 찰스. 예상치 못했던 일이 계획을 완전히 뒤엎어버리는 경우가 늘 있다고요. 한 가지 예로,당신은 저에 대해 많이 알지도 못하잖아요?" "당신이 영국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조차 모르지." "전 스위리 딘에서 살고 있어요." 난 익히 알고 있는 곳이라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은 시티의 자본가들을 위한 훌륭한 골프장이 세 군데나 있기로 유명한 런던 외곽도시였다. 그녀는 생각에 잠긴 듯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덧붙였다. "작고 비뚤어진 집에서요..." 그때 나는 약간 놀랐던 게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녀가 놀라는 내 표정을 보고,재미있다는 듯이 애써 다음과 같이 설명했기 때문이다. "식구들 모두 그 작고 비뚤어진 집에서 살고 있어요. 우리 가족은 그래요. 사실은 그렇게 비뚤어진 집도 아녜요. 하지만 분명히 비뚤어지긴 비뚤어졌죠. 박공은 기울어지고,대들보도 한옆으로 쏠리고했으니!" "당신 집은 대가족이요? 형제 자매들이 많소?" "남동생 하나,여동생 하나,아버지 어머니,큰아버지 큰어머니, 할아버지와 이모할머니,그리고 새할머니가 계시지요." "놀랍군!"나는 약간 압도당한 듯한 기분으로 소리쳤다. 그녀는 웃었다. "물론 정상적으로 함께 모여 사는건 아녜요. 전쟁도 일어났고 또 독일군의 폭격도 있고 해서 그런 거니까요 하지만 모르겠어요." 그녀는 뭔가 기억해 내려는 듯이 얼굴을 찌푸렸다. "아마 우린 정신적으로는 늘 함께 살고 있을 거예요. 할아버지의 시선과 보호 하에서 말예요. 그 분은 한 사람 이상의 몫을 하시는 분이지요. 우리 할아버지 말예요. 80이 넘으셨고 키는 작지만 누구라도 그분 옆에 서면 다 작아보여요." "재미있는 분인 것 같군" 내가 말했다. "재미있는 분이시죠. 터키 스미르나 출신의 그리스 인이세요. 성함은 애리스티드 레오니데스고요."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이렇게 덧붙였다. "큰 부자세요." "전쟁이 끝난 뒤에도 그전의 부를 계속 유지할 사람이 있을까?" "우리 할아버지는 그런 분일 거예요." 소피아는 자신있게 말했다. "부를 축내려는 어떤 책략도 그분께는 아무 영향을 끼치지 못할 거예요. 그 분은 자기 재산을 축내려는 사람을 오히려 더 빨아들이실 거예요. 찰스,당신이 우리 할아버지를 좋아하실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당신은 어떻소?" 나는 대답대신 그렇게 물었다. "세상의 어떤 사람보다도 좋아하죠" 소피아는 대답했다. 제 2장 내가 영국으로 되돌아오기까지는 2년 이상이 걸렸다. 그 2년은 결코 편치 않은 세월이었다. 나는 소피아에게 편지를 썼고,그녀의 답장도 꽤 자주 받았다. 내 편지와 마찬가지로 그녀의 편지도 연애편지는 아니었다. 이념과 사상과 시류에 대한 논평이 담긴,가까운 친구간의 편지였다. 하지만 나는 내가 소피아에게 관심이 있는 만큼,그리고 그녀를 믿는 만큼 그녀도 내게 관심이 있고 나를 믿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서로에 대한 우리의 감정은 날로 깊어져갔고,또 강해졌다. 나는 9월의 약간 흐린 어느 날 영국으로 돌아왔다. 거리의 나뭇잎들은 저녁의 불빛속에 황금빛으로 빛나보였고,바람은 희롱하듯 불고 있었다. 나는 비행장에서 소피아에게 전보를 쳤다. "방금 도착했소. 오늘밤 9시 마리오 식당에서 저녁을 함께 했으면 하오 찰스." 두시간쯤 뒤 나는 타임스 지를 읽으며 앉아 있었다. 출생,결혼,사망을 알리는 난을 훑어 보다가 내 시선은 레오니데스란 이름에 고정되었다. '9월 19일,스윈리 딘의 스리 게이블스 저택에서 애리스티드 레오니데스 사망.향년 87세 미망인 브렌다 레오니데스' 그 광고 바로 아래에는 또 하나의 광고가 실려 있었다. '레오니데스 ---- 애리스티드 레오니데스가 스윈리 딘의 스리 게이블스 자택에서 급서함. 조화는 스윈리 딘의 세인테 엘드리드 교회로 보내주시기 바람 아들및 손자 일동' 나는 이 두개의 부고 광고에서 뭔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장례를 집행하는 사람들 사이에 착오가 있어 광고가 중복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소피아였다. 나는 급히 그녀에게 두번째의 전보를 쳤다. '할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방금 신문에서 보았소. 매우 유감이오. 언제 당신을 만날 수 있을지 알려주시오. 찰스' 6시쯤 소피아의 전보가 내 아버지의 집으로 배달되었다. '9시에 마리오 식당으로 가겠어요. 소피아' 소피아를 다시 만난다는 생각은 나를 초조하게 했고 들뜨게 만들었다. 시간이 너무 느리게 가 나는 거의 미칠 듯 했다. 결국 20분이나 빨리 마리오 식당으로 갔다. 소피아도 내가 도착한 지 겨우 5분 뒤에 나타났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지만 마음속에서는 늘 생생하게 살아있는 사람을 다시 만난다는 것은 사실 하나의 충격이다. 마침내 소피아가 회전문을 열고 나타났을 때 그녀는 검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그 야릇한 분위기가 나를 놀라게 했다. 아무리 가까운 친척의 죽음이지만 소피아가 상복을 입어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나는 놀라웠다. 우리는 예약된 좌석을 찾아 앉아서 칵테일을 마셨다. 카이로시절의 옛 친구들에 대한 안부를 물으면서 우리는 빠르게,그리고 흥분된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피상적인 대화였으나 그로 인해 우리는 오랫만에 만난 어색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는 할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소피아에게 애도의 뜻을 표했고,그녀는 그것이'너무도 갑작스런'일이었다고 침착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우리는 다시 옛날을 회상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뭔가 문제가 있다는 불편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오랫만에 만난 사람들사이에 흔히 있기 마련인 어색함과는 다른 것이었다. 분명 좋지 않은 일이 있는 듯했다. 나말고 다른 사람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닐까? 나에 대한 그녀의 감정은 모두 '실수'였단 말인가? 하지만 나는 그런 일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모른 채 우리는 계속 겉도는 대화를 나누었다. 그때,웨이터가 커피를 날라주고 인사를하며 물러가려던 그때,갑자기 모든 것이 확실히 초점이 잡혔다. 전에도 자주 그랬던 것처럼 이 레스토랑의 작은 테이블에 소피아와 나는 앉아 있었던 것이다. 서로 떨어져 있던 기간은 존재치 않았던 것 같았다. "소피아" 나는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찰스" 그녀 역시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전쟁이 끝난 건 참 고마운 일이오. 그런데 우리에게 무슨 일이 생긴거지?" "제 잘못일 거예요. 제가 어리석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다 좋지 않소?" "그래요.지금은 다 좋아요."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언제 나와 결혼해 주겠소,소피아?" 내가 물었따. 그러자 그녀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무슨 문제인지 모르지만 좀 전의 그 문제가 다시 끼어든 것 같았다. "모르겠어요. 당신과 결혼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어요,찰스" "아니,소피아,왜 확신을 못한다는 거요? 내가 낯선 사람처럼 느껴지기 때문이오? 다시 친숙해지기까지 시간을 달라는 거요? 다른 사람이 생겼소? 아니----" 나는 잠시 말을 끊었다. "내가 바보요. 그런 일은 아닐테지." "그래요,그런 일은 아녜요."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그녀가 말을 해주기를 기다렸다. 곧 그녀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의 죽음 때문이예요." "할아버지의 죽음때문이라고? 아니,왜? 그 일이 당신과 내 관계에 도대체 무슨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단 말이오? 돈 때문이란 의미는 아닐테지? 할아버지께서 한 푼도 안 남겨놓으셨소? 하지만 그건-------" "돈 때문이 아녜요." 그녀는 얼핏 미소를 지었다. "언젠가 제가 했던 말을 믿으셔야 해요. 할아버지는 생전에 재산을 한푼도 축내지 않으셨어요." "그럼 도대체 뭐가 문제요?" "단지 그분의 죽으 때문이에요--찰스,그분은 그저 돌아가신게 아녜요. 제생각에 그분은 살해당하셨어요..." 나는 그녀를 똑바로 응시했다. "하지만 그건 엉뚱한 생각이오. 도대체 왜 그런 생각을 하게됐소?" "그건 제 생각이 아니에요. 담당의사는 첨부터 이상하게 생각했어요. 그분은 사망진단서를 떼어주려고 하지 않았다고요. 이제 검시를 할 예정인가봐요.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하는게 분명해요." 나는 그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그녀와 논쟁하지 않았다. 소피아는 머리가 좋았다. 그녀가 이끌어낸 결론은 무엇이든지 신뢰할 만 했다. 논쟁대신 나는 그녀를 설득했다. "그 사람들의 의심은 아마도 분명히 증명되지 않을 거요. 하지만 설사 증명된다고 해도 그것이 당신과 나한테 무슨 영향을 끼친단 말이오?" "결혼은 환경의 영향을 받아요. 당신은 외교관이죠. 그런 사람들은 아내를 고르는 일에 있어 특별해요. 제발--아무말도 하지 마세요. 당신은 말하려 하겠지만--당신은 진정으로 그런건 아무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줄 저도 알아요. 그리고 이론적으로는 저도 당신 생각에 동감해요. 하지만 전 자존심이 강해요--지독하게 자존심이 강하다고요. 저는 우리의 결혼이 모든 사람들이 보기에 좋은 결혼이 되길 원해요. 사랑을 위해서 어느 한 쪽이 희생당하는 건 원치 않아요! 그리고 아까 말한 건 잘 될 거예요....." "의사가 착오를 했을지도 모른다는거요?" "착오가 없었다고 해도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죽일만한 사람이 죽였다면." "무슨 말이오,소피아?" "입에 담기엔 너무도 불쾌한 일이예요. 하지만 사람은 정직해야죠." 그녀는 얼른 내 말을 가로 막으며 급히 말했다. "아녜요,찰스,더 이상 얘기하지 않겠어요. 이미 너무 많은 걸 이야기 한 것 같아요. 하지만 오늘밤 전 여기와서 당신을 만나기로 했고,또 직접 당신을 만나서 당신에게 이해를 시켰어요. 이 일이 깨끗하게 정리될 때까지 우리는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어요." "그렇더라고 이야기는 해 줄 수 있지 않소?"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고 싶지 않아요." "아니--소피아--" "아녜요 찰스. 전 당신이 우리 집 사건을 제가 보는 각도에서 보는 건 원치 않아요. 당신이 객관적 입장에서 우리 집 사건을 판단했음 해요." "내가 어떻게 해야 객관적인 판단을 하는 거란 말이오?" 그녀는 그 푸른 두 눈에 무언가 야릇한 빛을 담고 나를 쳐다보았다. "당신의 아버님께 여쭤보면 알 수 있을 거계요." 나는 카이로에 있을 때 내 아버지가 런던 경시청의 부총감이라는 사실을 소피아에게 이야기해 준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아직 그 자리에 있었다. 나는 그녀의 말에서 뭔가 차가운 기운이 내려와 앉음을 느꼈다. "그 정도로 상황이 나쁘단 말이오?" "그런 것 같아요. 저기 문 옆 테이블에 앉아 있는 남자 보이죠--전직 군인처럼 무표정해 보이는 얼굴 아녜요?" "그렇군" "제가 여기 오는 기차를 탈 때 저 사람도 스윈리 딘의 정거장에 있었어요." "저사람이 당신을 미행하고 있다는 말이오?" "그래요 제 생각엔 우리 둘은--어떻게 표현할까요--그러니까,감시를 당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저 사람을 보니 우리 둘 다 오늘 외출을 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하지만 어쨌든 전 당신을 만나기로 결심 했어요." 그녀는 싸움이라도 걸려는 듯한 표정으로 작고 네모진 턱을 앞으로 내밀었다. "전 욕실 창문을 통해 송수관을 타고 내려왔거든요." "맙소사!" "하지만 경찰도 아주 민첩하더군요. 물론 제가 당신에게 보낸 전보도 있었 으니까 절 추적하기 쉬웠겠죠. 하지만 염려친 마세요--우린 여기 이렇게 둘이 같이 있으니까요--그러나 이제부터는 각각 떨어져서 행동해야 해요." 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이렇게 덧붙였다. "불행하게도--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사실엔--의심할 바가 없는데" "전혀 의심할 게 없지" 내가 말했다. "불행하게도라고는 말하지 말아요. 당신과 나는 전쟁중에도 살아남았고 죽을 고비도 많이 넘겼소--그런데 단지 한 노인의 죽음이 왜 우리 사이를--그런데,할아버지는 연세가 어떻게 되셨었소?" "여든 일곱" "타임즈 지에서 이미 읽었소 그런데 왜 묻느냐 하면 그분은 단지 노령으로 인해 돌아가셨다는 걸 말해주고 싶어서라고 대답하겠소. 자존심 있는 의사라면 그 사실을 인정할거요." "당신이 저희 할아버지에 대해 미리 아셨다면 돌아가실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을 거예요." 제 3장 나는 경찰이라는 내 아버지의 일에 늘 어느 정도의 관심을 갖고 있긴 했지만,이렇게 직접적이고 사적인 일로 그 일에 개입을 해야 할 경우에 대해서는 전혀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난 아버지를 아직 만나보지조차 못했다. 내가 집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는 외출중이었고 나는 목욕과 면도를 마친 뒤 옷을 갈아입고는 곧장 소피아를 만나러 나왔기 때문이다. 소피아와 헤어져 집에 돌아와 보니 글로버가 아버지가 서재에 계시다고 알려주었다. 아버지는 책상에 앉아 잔뜩 찌푸린 얼굴로 서류뭉치를 들여다보고 있다가 내가 들어서자 벌떡 일어서면서 말했다. "찰스! 잘 왔다. 정말 오랜만이구나." 프랑스 인이라면 5년간의 전쟁이 끝난 후의 우리 부자의 만남에 실망을 금치 못 했을 것이다. 사실 재회의 기쁨은 결코 부족하지 않았다. 아버지와 나는 서로를 아주 좋아하고 또 잘 이해하고 있었다. "위스키를 좀 들겠지? 생각 있으면 말하거라. 집에 도착했을 때 내가 맞아주질못해서 미안하구나. 일이 너무 바빠 꼼짝을 못한단다." 나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으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애리스티드 레오니데스 사건 말입니까?" 순간 아버지는 눈썹을 치켜뜨며 뭔가 짚이는 것이 있다는 듯한 시선으로 나를 쏘아 보았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됐지,찰스?" "제 말이 맞았단 말입니까?" "어떻게 그 일을 알았니?" "정보를 얻었습니다." 아버지는 더 자세한 설명을 기다리는 듯 했다. "제 정보는 마구간에서 얻은 겁니다." "계속해라,찰스. 들어보자꾸나" "기분이 안 좋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전 카이로에서 소피아 레오니데스를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는 곧 그녀를 사랑하게 됐죠. 그녀와 결혼할 겁니다. 오늘밤에도 그녀를 만났어요. 저녁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저녁식사를 했다고? 런던에서? 그 여자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의문스 럽구나. 가족들은 집안에만 있으라고 그렇게 정중하게 부탁을 했는데 말이다." "맞습니다. 그녀는 욕실 창문으로 빠져나와 물통을 타고 내려왔답니다." 아버지는 입술을 씰룩거리며 잠깐 미소를 지었다. "꽤 기지가 있는 숙녀로구나" "하지만 아버님의 경찰력도 대단했습니다. 아주 그럴듯한 군인 타입의 남자 하나가 마리오 레스토랑까지 그녀를 뒤쫓아 왔거든요. 아버지가 받으실 보고서를 설명해 볼까요? 상대 남자는 5피트 11인치 정도의 키에 갈색 머리 갈색 눈 짙은 청색의 세로줄무늬 양복등등." 아버지는 굳은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깊은 사이냐?" "예. 아버지." 잠깐 침묵이 흘렀다. "걱정이 되십니까?" "일주일 전이었다면-- 걱정 안했을 거다. 일주일 전만 해도 그 집은 별 문제가 없는 가정이었고 -- 그 여자는 -- 재산을 물려받을게도 --그리고 난 너를 안다 넌 여간해서는 경솔한 행동을 하지 않는 애니까 말이다. 그런데 -- 만일--" "만일 뭡니까?" "만일 그럴만도 한 사람의 짓이라면" 그날 밤 나는 두 번째로 그런 말을 들었다. 나는 호기심이 가기 시작했다. "그럴만도 한 사람이 대체 누굽니까?" 아버지는 날카로운 시선을 내게 던졌다. "넌 이 사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느냐?" "아무것도 모릅니다." "아무것도 모른다고?" 아버지는 놀란 듯 했다. "그 아가씨가 말해주지 않더냐?" "예. 그녀는 제가 3자의 입장에서 그 사건을 보길 원했습니다." "왜 그래야 하는지 궁금하구나" "이유야 분명치 않습니까?" "아니다,찰스.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얼굴을 찌푸린 채 방안을 왔다갔다 했다. 담배에 불을 붙였으나 불은 곧 꺼졌다. 그것은 아버지가 얼마나 혼란에 빠져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 집안에 대해 어느 정도나 알고 있느냐?" 아버지가 불쑥 물었다. "모릅니다. 아무것도. 노인과 여러명의 아들과 손자들,그리고 인척들이 있다는 것 밖에는요. 자세한 것까지 듣지는 못했습니다. 제게 사건의 전모를 좀 들려주시는게 좋을 것 같군요 아버지." "그래" 아버지는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처음부터 시작하겠다. --애리스티드 레오니데스부터. 그는 24살에 영국에 왔지." "스미르나 출신의 그리스 인이죠." "그것까지 아니?" "예. 하지만 그게 제가 아는 전부입니다." 그 때 방문이 열리면서 글로버가 들어와 태버너 주임경감이 왔다고 알려 주었다. "그가 이 사건 담당이지" 아버지가 말했다. "들어오라고 해야겠다. 가족들을 맡아 조사중이거든. 그들에 대해서는 나보다도 많이 알고 있단다." 나는 지방경찰이 런던 경시청으로 일을 맡겼는지 물어보았다. "이 사건은 우리 관할이야. 스윈리 딘은 런던 시에 편입되어 있으니까." 나는 방으로 들어서고 있는 태버너 주임경감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나는 오래 전부터 그를 알고 있었다. 그는 무사히 돌아온 것을 축하한다며 반갑게 인사를 했다. "찰스한테도 다 얘기를 했다네. 잘못했다면 용서하게. 레오니데스는 1884년에 영국에 왔어. 소호(런던의 한 구역. 외국인이 많이 살며, 음식점이 많다.)에서 작은 레스토랑을 하나 시작했지. 돈을 꽤 벌어 또 하나를 사들였다. 그렇게해서 그는 일고여덟개나 되는 레스토랑을 거느리게 된 거야. 그게 모두 하나같이 장사가 잘 됐지." "그가 하는 일엔 결코 실수가 없었습니다." 태버너 경감이 말했다. "그는 타고난 장사꾼이야." 아버지가 말했다. "마침내 그는 런던에 있는 유명 레스토랑 대부분을 거느리게 되었거든. 그리고는 대규모의 음식점 사업을 하기 시작했지." "그가 관여하고 있는 사업은 그 외에도 수없이 많습니다." 태버너가 말했다. "헌 옷 장사,값싼 보석 판매,그 외에도 많죠,물론." 그는 신중한 어조로 덧붙였다. "그는 늘 교묘한 사람이었습니다." "부정직한 사람이었단 말입니까?" 내가 물었더니 태버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뜻은 아니오. 부정직하다--그렇지,그러나 사기꾼은 아니었습니다. 법에 벗어나는 일은 결코 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는 법망을 교묘히 이용하는 방법을 늘 생각하는 작자였지. 이번 전쟁 때만 해도 그는 그 나이 에도 불구하고 그런 방법으로 한 몫 단단히 잡았으니까. 물론 불법적인 일을 한 적은 없습니다.--하지만 그가 일단 어떤 일을 시작하면 그게 불법 인지 합법인지는 쉽게 분간을 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그에 대한 법을 보강해 놓으면 그는 다른 일에 착수해 있는 상태였지요." "그리 호감이 가는 타입의 사람은 아니었던 모양이군요." "재미있는건,그 영감이 아주 매력있는 사람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를 보았다면 당신도 그 점을 느꼈을 겁니다. 외모는 사실 볼품없었어요. 키는 난장이만하고--하지만 자석같은 힘을 갖고 있었습니다.--여자들은 그 사람한테 쉽게 반하곤 했으니까요." "결혼도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만했단다." 아버지가 말했다. "지방 대 지주의 딸하고 했거든." "돈을 노리고요?" 나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 "아니,연애결혼이었단다. 그 여자는 친구 결혼식에서 출장요리때문에 나와있던 그와 만났지. 금방 그에게 반했단다. 여자의 부모는 완강히 반대 했지만 그 여자는 그와 결혼하기로 굳게 맘먹었지. 그의 주위에 감도는 뭔가 이국적이고 다이내믹한 분위기가 그녀의 마음을 끌었던 게지. 그 여자는 자기가 그때까지 함께 살아온 동족들의 분위기에 싫증을 느끼고 있 었던 게야." "결혼생활은 행복했나요?" "아주 행복했지. 이상할 정도로. 물론 그 두 사람의 친구들까지 서로 어울 리는 않았지만.(그 당시만 해도 돈이 모든 신분차를 뒤덮어버리기 전이었 으니까.) 그래도 그들은 그들 부부를 걱정하진 않았어. 그들은 친구없이 지냈지. 그리곤 스윈리 딘에다 상상을 초월한 집을 지었어. 그리고 여덟 아이를 낳았지." "이건 정말 한 가족의 연대기군요." "노련한 레오니데스가 스윈리 딘을 택해서 정착한 건 정말 똑똑한 행동이었어. 그때까지만 해도 그곳은 사교계 사람들이 겨우 모이기 시작하는 곳이었거든. 제2,제3 골프장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던 때야. 그곳에선 땅을 무척이나 아끼는 레오니데스 부인과 그곳사람들,그리고 레오니데스하고 교분을 맺고 싶어하는 돈많은 도시사람들이 위섞여 살게 되었지. 그래서 그들은 주위와 친해질 수 있었던 거야. 내가 생각하기론 그들은 무척 행복했을 거야. 그녀가 1905년에 폐렴으로 죽기까지는 말이다." "8아이들을 남겨놓고 말입니까?" "한 아이는 어릴 때 죽었지. 아들중 둘은 지난 전쟁 때 목숨을 잃었고 딸 하나는 결혼해서 오스트레일리아에 가서 살다가 거기서 죽었단다. 아직 미혼이었던 또 다른 딸은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고,다른 딸 또 하나도 1년인가 전에 죽었단다. 지금까지 살아 있는 자식은 둘이다. 장남 로저는 결혼은 했지만 아이는 없고 필립은 유명한 여배우하고 결혼해서 세 아이를 두고있다. 네가 좋아하는 소피아,그리고 유스테스,조세핀이 바로 그 애들 이지." "그들 모두가 지금 스리 게이블스 저택에서 살고 있습니까?" "그렇단다. 로저 레오닉데스 가족은 전쟁 초기에 집이 폭격으로 소실됐고, 필립하고 그 가족은 1927년부터 그 집에 살고있다. 드 하빌랜드라고 하는 레오니데스의 전처 언니인 늙은 이모도 함께 살고 있지. 그 여자는 레오니데스를 아주 싫어하지만,동생이 죽으면서 아이들을 돌봐달라고 한 말을 받아들이는 것이 자기 의무라고 생각한 거야." "그 여자는 의무 이행에 아주 충실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에 대한 자기 생각을 쉽게 바꾸는 성격은 아니었지요. 함께 살면서도레오니데스와 그의 생각에 늘 반대했으니까." 테버너가 말했다. "흠..문제가 많은 집안이군요. 누가 그를 죽였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내 물음에 태버너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때가--" 그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그걸 말하기엔 때가 이릅니다." "말씀해 보시지요. 누가 그랬는지 당신은 알고 있잖습니까. 여긴 법정이 아녜요." "그게 아닙니다. 결코 법정까진 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럼 살해된 게 아닐 수도 있다는 말입니까?" "아,살해된 건 분명하지요. 독극물 중독이었으니까. 하지만 독극물에 의한 살인이 어떤 건지,찰스 당신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증거를 얻기가 아주 복잡해요,아주. 모든 가능성이 한 가지 방향을 가리키긴 하지만." "그게 내가 알고 싶은 겁니다. 경감님은 모든 걸 마음속에선 결정해 두시지 않았습니까?" "이번 사건은 아주 개연성이 큽니다. 완전히 계획적인 살인입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확신할 수가 없는 겁니다. 꽤나 복잡해요." 아버지는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네가 알다시피 찰스, 찰인사건에서 올바른 단서는 대개 눈에 보이는 뚜렷한 사실뿐이다. 늙은 레오니데스는 10년 전에 또 한번 결혼을 했단다." "77살 때 말입니까?" "그래. 24살의 젊은 여자하고." 나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어떤 여자였습니까?" "다방에서 일하던 여자였지. 아주 훌륭한 여자였다. 창백하고 애처로운 분위 기를 풍기는 용모를 지녔지." "그 여자에게 가능성이 많습니까?" "그건 사실 내가 묻고 싶은 겁니다." 태버너가 말했다. "그 여자는 이제 서른 네살밖에 안 됐습니다. --위험한 나이지요. 그 여자는 달콤하게 사는 걸 좋아합니다. 게다가 그 집엔 젊은 남자가 하나 있습니다. 아이들 가정교사죠. 전쟁엔 나가지 않았습니다. 심장이 안 좋다나 뭐 그런 걸로 말입니다. 두 사람은 아주 가까운 사이지요." 나는 신중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구태의연한 사건임이 확실했다. 진상은 지금가지의 이야기 그대로다. 그리고 레오니데스의 두번째 아내, 아버지가 특히 강조하고 있는 그 여자는 아주 훌륭하다고 했다. 훌륭하 다고 믿었던 사람에 의해 얼마나 많은 살인이 저질러졌는가. "뭐였습니까,비소였습니까?" "아닙니다.감식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의사의 말로는 에제린(안약 으로도 사용됨)이라고 하ㅓ군요." "좀 색다르군요. 그걸 사간 사람을 추적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텐데요." "이번 경우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건 레오니데스의 약이었거든요. 안약이 었죠." "레오니데스는 당뇨병을 앓고 있었단다. 그는 정기적으로 인슐린 주사를 맞았 는데,인슐린은 고무뚜껑이 달린 작은 병에 들어 있었다. 그 병을 거꾸로 해 서 뚜껑에 연결된 주사기로 인슐린을 빨아 들이지." "그런데 그 병에 담경ㅆ었던 게 인슐린이 아니라 에제린이었군요." "그거다." "누가 주사를 놓아주었습니까?" "그의 아내지." 나는 소피아가 '그럴만한'사람이라고 한 말의 의미를 그제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그 집 식구들은 두번째 부인과 사이가 좋았습니까?" "내가 추측컨데 그들은 서로간에 거의 대화가 없었다." 모든 것이 점점 분명해져 갔다. 하지만 태버너 주임경감은 그리 탐탁치많은 않은 표정이었다. "어디 석연치 않은 거라도 있습니까?" 하고 나는 그에게 물어 보았다. "찰스 씨,만일 그 여자의 짓이라면 범행 뒤에 그 병을 다시 진짜 인슐린이 담긴 병과 바꿔 놓았을 겁니다. 그녀가 범인이라면 왜 그렇게 하지 않았는 지 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아,그것도 그렇군요. 인슐린은 충분히 있었습니까?" "그럼요. 인슐린이 가득 든 병도 있었고 빈 병들도 있었습니다. 그녀가 만일 병을 다시 바꿔놓았더라면 의사는 십중팔구 그걸 알아차리지 못 했을 겁니다. 시체를 조사해서 에제린으로 독살되었다는 판단을 내리기는 극히 힘들거든요. 의사는 당연히 인슐린의 양이 과다했다거나 뭐 비슷한 이유 등 으로 사인으 추정하겠죠. 그런데 그 용액이 인슐린이 아니었다는 걸 곧 알 아 차릴 수 있었던 겁니다." "그렇다면-- 레오니데스 부인은 우둔하거나 영리하거나 둘 중의 하나겠군요." "무슨 말씀이신지.." "그녀는 경감님께서 어떤 결론을 내릴지에 대해 도박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도 자기가 그렇게 어리석게 행동했으리라고는 생각치 않을 것으로 믿은 거죠. 또 달리 생각되는 건 없습니까? 달리 의심이 가는 사람 이라도?" 아버지가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실제적인 면에서는 그 집안 사람의 범행일 가능성이 높아. 집안에는 늘 충분 한 양의 인슐린이 비축되어 있었거든..적어도 2주일은 쓸 수 있지. 약병 하 나에다 누군가가 내용물을 바꿔넣고 진짜 인슐린이 든 병과 바꿔치기한 것 일수도 있어." "그 약병 있는 곳 가까이에 간 사람이 있습니까?" "약병은 늘 그 노인 방 욕실의 약품 찬장 선반 위에 놓아두곤 했지. 그 집 식구라면 누구나 쉽게 드나들 수 있는 이다." "강력한 동기라도 있었습니까?" "찰스,애리스티드 레오니데스는 엄청난 부자였다. 가족에게 상당액을 주고는 있었지만,누군가가 그보다 더 많은 돈을 원했을 수도 있지." "돈을 가장 많이 원한 사람은 지금의 그 미망인 아닐까요? 그 여자의 애인은 돈이 없는 사람입니까?" "지독하게 가난한 사람이지." 무언가 퍼뜩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소피아가 흥얼거리던 것이 생각났다. 아이를 잠재울 때 부르는 가락에 담겨 있었던 가사가 생각난 것이다. 비뚤어진 사나이가 비뚤어진 길을 가다 비뚤어진 문설주 옆에서 비뚤어진 은화를 주웠네. 그 사나이에게는 비뚤어진 쥐를 잡는 비뚤어진 고양이가 있었지. 그들은 모두 작고 비뚤어진 집에서 살았다네. 나는 태버너에게 말했다. "그 여자 -- 레오니데스 부인이 경감님께는 어떻게 보입니까? 그 여자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는 천천히 대답했다. "말하기가 어렵군요--아주 어려운데요. 그녀는 쉽게 뭐라 말 할 수 있는 여자가 아닙니다. 워낙 조용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저히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여자는 안락한 생활을 좋아합니다. 그건 맹세할 수 있어요. 가르랑거리는 커다랗고 게으른 고양이를 생각나게 하거든요. ...난 고양이에 대해서는 아무 반감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고양이는 나쁠 게 없는 동물이니까..." 그는 한숨을 내쉬고 중얼거렸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증거입니다." 그렇다.우리들은 모두 레오니데스 부인이 남편을 독살했다는 증거를 원하고 있었다. 소피아도 그것을 원했고,나도 그것을 원했으며 태버너 경감도 그것 을 원했다. 그러면 모든 것이 다 순조롭게 풀릴 것이었다! 하지만 소피아도 확신을 못 했고 나도 확신을 못 했으며 태버너 경감 역시 확신을 못 하는 것 같았다.... 출처 http://forum6.thrunet.com/share/mmbbs/asp/board.asp?sid=55&bid=986 etext down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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