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븐하임씨 실종 포와로와 나의 초대로 경시청의 잽 경감이 차를 마시러 오게 되어 있었 다. 우리들은 테이블 앞에 앉아 그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포와로는 하숙집 주인 아주머니가 평소처럼 테이블 위에 그냥 내던져 둔 컵이나 접 시들을 정성스레 진열해 놓았다. 그는 금속제 찻주전자도 입김을 불어가 며 헝겊으로 닦아내고 또 닦아냈다. 물은 끓고 있었고, 그 옆의 작은 법랑 남비에는 진하고 달콤한 초콜렛이 들어 있는데, 이것이 그가 말하는 소위 영국인이 좋아하는 그 '가공할 만한 독약'이었다. 커다란 소리를 내며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계단 아래에서 들리고, 2~3 분이 지나자 잽이 기세등등하게 들어왔다. "너무 많이 기다리게 한 것이 아닌지 모르겠군요." 하고 그는 인사를 하면서 말했다. "실은 데이븐하임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밀러와 이야기 좀 하고 오느라 고요" 나는 귀를 곤두세웠다. 최근 사흘동안 신문은 온통 그 유명한 금융기관 인 데이븐하임 서몬 은행의 은행장 데이븐 하임 씨의 실종사건을 떠들어 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주 토요일에 산책나간 채로 그는 행방불명된 것이다. 나는 잽으로부터 뭔가 재미있는 얘기를 들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 다. "요즘 세상에 '증발' 같은 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느낌이 드는 데......" 하고 나는 말했다. 포와로는 버터를 바른 빵 접시를 약간 밀면서 몹시 나무라듯이 말했다. "확실하게 말해, 헤이스팅스. '증발'이라는 것이 무슨 의민가? 어떤 증발 을 말하는 거지?" "증발에도 구분이나 종류가 있습니까?"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잽도 미소를 지었다. 포와로는 우리 두 사람을 보고 얼굴을 찌푸렸다. "그야, 있고말고! 세 종류로 나뉘지. 그 첫째는 극히 빈번히 일어날 수 있 는 것으로, 스스로 행방을 감추어 버린 것. 두번찌는 악성 '기억상실증'의 경우인데......이것은 극히 드문 일이지만 개중에는 진짜도 있지. 세 번째는 죽여 버리고서 어떻게 해서든 그 시체를 처리한 경우야. 자네는 이 세 가지 모두가 실행 불가능 하다고 말한 건가?" "아니, 대체로 그렇다는 거죠. 그야 기억을 상실하는 일이 있을지도 모르 지만,결국엔 그가 누구인지 확인하는 사람이 나타날 테죠......특히,데이븐 하임과 같은 유명인사인 경우는 말예요.그리고,시체를 흔적도 없이 없애버 린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어스름한 저녁 인적이 드문 곳에 파묻거 나,트렁크에 넣거나 한 것은 금세 발각이나 버리니까요. 그리고, 살인이라는 것이 명백히 드러나잖습니까.그와 마찬가지로, 증발 회사원이라든가 국내의 납치범 등도 오늘날의 무전 시대에서는 결국 꼼짝 달싹도 할 수 없게 되어 붙잡히는 것이 뻔한 결과 아닐까요? 외국으로부터 는 추방당할 것이며, 항구나 역은 철저히 감시될 테고요. 극내에서 숨어 지 낸다 해도 신문을 매일 보는 사람들이 인상이나 체격등을 전부 알아 버리기 때문이죠. 결국 범인은 문명과 싸워야 하는 겁니다." "이봐,이봐-------" 포와로가 말했다. "지금 자네는 오류를 한 가지 범하고 있어. 다른 사람을 죽이려고 마음먹 은자는 .......아니, 이것은 예를 든 것이지만, 자기 자신을 죽이려고 한 경 우도 마찬가지이지......그러한 자는 요즘 세상에는 드물게 머리가 좋은 인 간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자네는 계산에 넣지 않은 것은 아닌가? 이러한 녀석은 그 일에 온갖 꾀와 재능을 다 살려서 세세한 부분까지 면밀한 계산 을 세울 텐다, 그러한 인물이 어떻게 경찰의 의표를 찌르지 못하겠는가? 바로 그 부분이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일세." "그러나, 그것은 당신의 경우라도 마찬가지겠죠?" 잽이 나에게 눈을 껌벅거려 보이면서 애교있게 말했다. "당신의 의표는 찌를 수 없겠죠, 포와로?" 포와로는 겸손한 체해 보이려 했지만, 그것이 잘 되지 않았다. "분명히 나는 과학적이고 수학적인 정확함으로 문제에 부딪치기 때문에, 감히 내 의표를 찌를 수 없지. 하지만, 나라고 해서 당하지 말란 법이 있나 ? 이런 과학적인자세는 현대 탐정들에게는 좀 드문 것 같네만." 잽은 점점 더 비아냥 거렸다. "그거야 알 수 없죠. 이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밀러는 대단히 똑똑한 친굽 니다. 발자국이나 담뱃재나 빵 부스러기 하나라도 빠뜨리지 않고 조사를 한다는 것을 내가 보증하지요. 무엇 하나 빠뜨리지 않는 눈을 갖고 있다니 까요." "그럼,자네, 런던의 참새도 마찬가지란 말인가?" 포와로가 말했다. "그러나, 나라면 역시 그런 갈색의 조그만 새에게 데이븐 하임 사건의 해 결을 맡기지는 않을 거야" "잠깐만요, 포와로, 설마 당신은 사소한 단서들이 사건의 실마리로서 무 가치하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겠죠?" "천만의 말씀. 그러한 것도 그 나름대로 가치가 있기야 하지. 단지 그런 것 들을 필요 이상으로 중요시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말일세. 사소한 단서들이 라는 것이 대부분은 그리 대단치 않기 때문이야. 정말로 중요한 것은 한가 지뿐이지. 바로 이 머리......작은 회색의 뇌세표." 그는 톡톡 자기 이마를 두드려 보였다. "......의지가 된다는 말일세. 오감의 작용 같은 건 그다지 믿을 만하지 못 하지. 머릿속으로 진실을 좇지 않으면 아무 쓸모 없어. 머리 밖으로가 아 닌 바로 머릿속으로 말이야." "포와로, 설마 당신은 거기에 앉은 채로 사건을 해결해 보겠다는 말은 아 니겠죠?" "아니, 바로 그 말이야......정보만 잘 들려준다면. 나는 카운셀러라도 된 것 같은 기분으로 임한다네." 잽은 무릎을 쳤다. "좋습니다. 정말이지! 당신이 1주일 이내에,생사에 관계없이 데이븐하임 씨가 있는 곳을 알아 낸다면......아니, 어디에 가면 발견할 수 있는지만 알 아낸다면 내가 5파운드 드리겠습니다." 포와로는 잠시 생각한뒤, "좋아.걸어 보지. 이건 마치 사냥하는 것 같군.자네들 영국인이 무척이나 좋아하는 것 말이야.자, 그럼 빨리 정보를 알려주시지." "평상시와 같이 저번주 토요일 데이븐하임 씨는 빅토리아 역(런던 남쪽 으로 가는 열차는 이곳에서 출발한다)에서 12시 40분발 열차로 칭사이드 로 갔습니다. 거기에는 시더스 별장이라고 하는 그의 호화로운 저택이 있 죠. 점심식사 뒤 그는 정원을 어슬렁어슬렁 걸으며 정원사에게 무엇인가 를 지시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증언한 바에 의하면 그의 모습에는 전연 다 른 점이란 없었고, 그저 보통때와 같았다고 합니다. 차를 마시고 나서 잠 시 동안 아내의 방에 얼굴을 내밀고는, 산책도 할 겸해서 마을로 편지를 부치러 갔다 오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로웬이라는 남자가 볼일로 찾 아 올테니까 만일 자기가 돌아오기 전에 오면 서재에서 기다리게 하라고 말해 놓았죠. 그런 뒤에 현관을 나서서 천천히 별장 안의 찻길을 한 바퀴 돌고는 문을 나섰습니다. 한데......그리고서는 그만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겁 니다. 그 때를 시점으로 해서 행방이 묘연해진 것이지요." "좋아......아주 좋아......흠. 아주 재미있는 문제로군." 하고 포와로는 중얼거렸다. "자, 그리고 나서 어떻게 되었지?" "15분정도 지나고 나서 새까맣게 수염을 기를 키가 크고 까만 피부의 남 자가 벨을 누르고는, 데이븐하임 씨와 약속이 있다고 하더랍니다.그는 로 웬이라고 밝혔기 때문에 데이븐하임 씨 말대로 서재로 안내되었죠. 그러 나, 한시간 가까이 시간이 흘렀지만 데이븐하임 씨는 돌아오지 않았습니 다. 이윽고 로웬 씨는 벨을 눌러, 예정된 열차로 런던에 돌아가야 하므로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말했죠. 데이븐하임 부인은 남편이 돌아오지 않 은 것을 사과했지만, 남편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 어째서 돌아오지 않는가는 설명할 수가 없었습니다.로웬 씨는 계속 섭섭 해 하면서 돌아갔고요. 그런데, 모두가 알고 있듯이 결국 데이븐하임 씨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일요일 아침에 경찰은 신고를 받았지만 확실한 단서를 잡지 못했고, 데이 븐하임 씨는 글자 그대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으로 밖에는 생각되 지 않았습니다. 우체국에도 가지 않았고, 마을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모 습을 본 사람도 없고 말이죠. 열차를 타고 떠나지 않았다는 것은 역원들에 의해서 확인되었습니다. 차고에서 승용차를 끌어낸 흔적은 없으나, 다른 사람을 사서 어딘가 먼 곳으로 갔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에게는 막대한 사례를 하겠다고 했으니 만일 그를 태웠다면 그 운전사 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말해 주러 올 겁니다. 사실 5마일 앞의 엔트필드 에는 작은 경마장이 있기 때문에, 그가 그곳 역까지 걸어갔다면 많은 사람 들 틈 속으로 섞여 들어가서 눈에 띄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뒤 그의 사진이나 상세한 인상 들이 모든 신문에 실렸는데도 그에 대해 이렇 다 할 만한 이야기를 들고 온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겁니다. 물론 경찰서에 는 전국에서 많은 편지가 날아왔지만, 현 시점까지는 아무런 단서도 잡지 못하고 이는 실정입니다. 그런데, 월요일 아침이 되어 더욱 센세이셔널한 일이 발견되었습니다. 데이븐하임 씨의 서재 간막이 뒤쪽에 금고가 놓여져 있었는데, 그것이 부 서져 있었던 겁니다. 창문은 안쪽에서 단단히 잠겨져 있었기 때문에 보통 강도의 침입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고요.물론, 내부에 공범자가 있어서 나중에 다시 문을 걸어 잠갔다면 별 문제지만 말 입니다.한편,그 사이에 일요일이 끼어 있었다는 것돠, 집안도 꽤 혼잡했다 는 것을 미루어 보아 실제 범행은 토요일에 이루어졌으나 월요일까지 발견 되지 않은 채 있었다는 것으로 생각되는 점도 있습니다.." "흠, 알겠네." 포와로는 쌀쌀맞게 대꾸했다. "그런데, 그는 체포되었나? 그 애석해 하며 떠났다는 로웬 씨 말이야." 잽은 빙긋이 웃었다. "아직요. 하지만,엄중한 감시를 받고 있죠." 포와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금고에서 무언가를 도둑맞았겠지? 당신, 알고 있나?" "은행의 부행장과 데이븐하임 부인이 함께 조사해 보았지만, 정확한 내 용은 모르고 있습니다. 하지만,상당액의 무기명 채권과 막대한 지폐가 들 어 있었던 것이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재산이 될 만한 보석류도 약간 있었고요. 데이븐하임 부인의 보석은 전부 그 금고에 들어 있었답니 다. 최근에 그녀의 남편은 보석을 사모으는 것이 고질병처럼 되어, 거의 매달 무언가 진귀한 고가품의 보석을 그녀에게 사다 주곤 했다는 겁니다." "허, 그거 꽤 큰 수확인걸." 포와로는 생각에 잠긴 얼굴로 말했다. "그런데, 로웬은 어찌 된 거지? 그날 저녁 데이븐하임에게 어떤 용건이 있었는지 알고 있나?" "글쎄요. 아무래도 그 두사람은 그다지 친한 사이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로웬이라는 사람은 아주 조그만 거래처더군요. 그래도 한두 번은 거래 시 장에서 크게 성공하여 데이븐하임의 코를 납작하게 한 적이 있답니다.하 지만, 두 사람은 거의......아니, 그보다도 사실은 한 번도 얼굴을 마주 대 한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데이븐하임이 약속한 것은 어떤 남미의 주식에 관 한 거랍니다." "그러면, 데이븐하임은 남미에 흥미를 갖고 있었단 말인가?" "아마도 그렇겠죠. 어떤 이야기 끝에 데이븐하임 부인이 말했는데, 그는 작년 가을에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보냈다고 하니까요." "가정생활에 트러블은 없었는가? 부인과의 사이는 좋았고?" "그의 가정생활은 더할 나위없이 평온해서 바람 한 점 부는 적이 없었다 고 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부인은 다른 사람에게 주는 인상은 괜찮지만,머 리가 좋은 편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러니, 전연 싸움이 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럼, 그쪽에서는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 나가려 해도 소용이 없겠군. 그 에게 적은 없었는가?" "금융상의 라이벌이라면 꽤 많겠죠. 그리고, 그에게 골탕먹은 사람들 중 에 그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얼마든지 적이 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에게 살의를 가질 만한 사람은 없슴니다. ......게다가, 만일 그를 죽였다면 시체는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긴 그것도 그렇군. 헤이스팅스가 말하는 것처럼 시체라는 것은 진절머 리가 날 정도로 끈질기게 발견되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야." "그건 그렇고, 정원사 한사람이 집 옆에서 장미 정원 쪽으로 돌아가는 사 람의 그림자를 보았다고 하는데, 서재의 프랑스식 창문(바닥까지 닿아 있 어서 문 대신 사용할수 있다)을 통해 그 장미 정원으로 나갈 수 있기 때문 에 데이븐하임 씨는 곧잘 그런 식으로 드나들곤 했었다는군요.그러나.그 정원사는 꽤 떨어진 곳에서 오이 울타리를 만들고 있었기 때문에,그 그림 자가 과연 주인의 모습이엇는지 아닌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고 합니다.또, 시간도 정확히 알고 있지 않고, 정원사가 일을 마치는 것은 6시이기 때문 에, 그 이전인 것은 틀림이 없겠지만 말입니다." "그래,데이븐하임 씨가 외출한 것은 몇 시였나?" "5시 반경입니다." "장미 정원 건너편에는 무엇이 있지?" "호수요" "보트를 두는 오두막도 있겠지?" "그래요. 작은 배가 두 척 놓여있더군요. 당신은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건가요,포와로? 이런 거야 말해도 상관없겠지만, 밀러도 그 호수 밑을 뒤지러 내일 일부러 가겠답니다. 밀러는 바로 그런 사람이지요." 포와로는 희미하게 미소를 띠고서 나를 바라보았다. "헤이스팅스, 미안하지만 '데일리 메가폰' 지를 갖다 주지 않겠나. 내 기 억이 틀리지 않다면 행방불명인 남자의 똑똑한 사진이 실려 있을 테니까." 나는 일어서서 그 신문을 갔다 주었다.포와로는 사진의 얼굴을 열심히 들여다 보았다. "흐음! 머리는 길게 흐트러져 있구먼. 짙은 수염과 구레나룻. 짙고 굵은 보기 흉한 눈썹에다, 눈은 검은 편이라고 할까......" "글쎄요.." "머리칼과 턱수염이 하얗게 되기 시작했군,응?" 경감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포와로, 무었 대문에 일일이 그런 것까지 얘기하는 겁니까?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요." "모두 알고 있기는커녕, 너무나도 애매모호하지." 그것을 듣자 잽은 유쾌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포와로는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바로 그래서 해결의 보람도 클 것 같다고 말하려는 걸세." "예?" "내게는 말이지, 사건이 애매모호하다는 것은 오히려 좋은 징조란 말이 야. 일목요연할 때는...... 그래도 그런 생각을 하면 안되지! 그런 식으로 째 째한 녀석이 되어서는 안되겠지." 불쌍하게도 이렇게 말하고 있을 때 잽은 고개를 가로젓고 있었다. "아니, 생각하는 것은 각자의 자유이니까요. 뭐 당신의 안목을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죠." "나는 눈 겉은 건 쓰지 않아." 포와로가 말했다. "나는 눈을 감고.......생각하지." 잽은 한숨을 쉬었다. "흠, 아무래도 좋습니다. 1주일 동안은 충분히 생각할 만한 시간이 있으 니까." "그럼, 자네는 새로운 정보가 생기면 나에게 알려줄수 있겠나?...예를 들 면, 자기 일에 열심이고 번뜩이는 눈을 가진 밀러 경감이 고심해서 얻은 결과 등도 말이야." "물론이죠. 그것은 계약 안에 들어있는 것이니까요." "이거 영 씁슬한데......." 내가 입구까지 배웅을 나가자 잽이 말했다. "이렇게 해서 5파운드를 주게 되다니 어린애한테 당한 것 같소." 나는 동감의 미소를 지어 주지 않을 수 없었다. 방으로 되돌아왔을 때도 여전히 그 미소는 지울 수가 없었다. "이봐, 이봐!" 포와로는 즉시 나에게 말을 걸었다. "자네는 이 파파 포와로를 바보 취급하는 겐가?" 그렇게 말하더니, 나를 향한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렸다. "나의 회색 뇌세포를 믿어 주지 않으려나? 아이고, 이 덜렁이 친구야! 이 사건을 한번 연구해 보잔 말이야......아직 불충분 하기는 하지만, 한두 가 지는 재미있는 점이 보이고 있어." "호수겠죠!" 나는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아니,호수보다도 중요한 건 보트를 넣어두는 오두막집이야." 나는 옆눈으로 포와로를 보앗다. 그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묘한 미소를 띠 고 있었다.나는 그에게 그 이상은 말을 걸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음날 저녁때까지 잽에게서는 아무런 소식도 없다가 9시경이 되어서야 그가 찾아왔다.그의 표정을 보고 나는 곧 반가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좀 이 쑤시고 있다는 것을 눈치챌수 있었다. "어떤가, 자네?" 포와로가 말했다. "만사가 잘 되어가고 있는 것 같은데? 하지만 데이븐하임의 시체가 호수 속에서 떠올랐다는 따위의 말을 해서는 안 될 걸세. 그런 말은 믿지도 않을 테니까." "시체가 아니고, 옷이 발견되었습니다...그날 그가 입었던 옷 말예요.이것 에 대해 어찌 생각하시는지?" "그밖에 없어진 의류는 없는가?" "그래요, 그 점은 집사가 장담하고 있습니다. 옷장 안의 것은 그대로 있다 고 하더군요. 아직 또 있습니다. 경찰은 로웬을 체포했어요. 침실 창문 단 속을 맡고 있는 하녀의 이야기에 의하면, 6시 15분경에 로웬이 정원을 통 해 서재쪽으로 오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것은 그가 그 집에서 나가기 10분 정도 전에 해당하죠." "로웬은 그것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나?" "맨 처음에는 서재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안았었다고 부정했죠. 그러 나,하녀가 틀림없다고 주장하자 나중에는 진귀한 장미를 보러 프랑스식 창문으로 잠시 나갔다 들어온 것을 깜빡 잊고 있었노라고 둘러대더군요. 납득이 가지 않는 이야기죠! 바로 거기에서 그에게 불리한 증거가 나왔습 니다.데이븐하임 씨는 항상 오른손 새끼손가락에 다이아몬드를 한 개 박 은 두꺼운 금반지를 끼고 있었는데, 토요일 밤 런던에서 빌리 켈렛이라는 남자가 그반지를 저당잡혔습니다.그는 이미 경찰의 블랙 리스트에 실려 있는 인물이었는데.....작년 가을에 어느 노신사의 시계를 날치기해서 3개 월 정도 감옥 신세를 진 적이 있죠. 그는 그 반지를 저당잡히려고 다섯 군 데 정도 흥정을 하고다닌 끝에 겨우 마지막 전당포에 가서 저당잡히고는 그 돈으로 술을 잔뜩 마시고서 경관에게 폭행을 가했기 때문에 유치장에 갇혔죠. 나는 밀러와 함께 보 가(중앙 경찰재판소가 있는 런던의 코벤트 가든의 동네 이름)에 가서 그 친구를 만났습니다. 이미 취기가 깨어 있더군 요. '자네는 살인범으로 체포될지도 몰라.' 하고 꽤 으름장을 놓았죠.그러자, 그 녀석이 이렇게 묘한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 녀석은 토요일에 엔트필드에 갔었는데, 진짜 목적은 경마로 돈을 버 는 것이 아니고 넥타이핀을 소매치기 하는 것이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 날은 운이 나빠서 좋은 징조가 보이지 않았다나요. 그래서 칭사이드로 가는 길을 어슬렁어슬렁 걸어가다가, 마을 바로 앞에서 잠시 쉬려고 도랑 에 걸터 앉아 있었답니다. 한 5~6분정도 지났는데, 어떤 남자가 마을로 들어가는 길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는 군요. 그 녀석 말에 의하면 인상은 '검고 멋있는 수염을 기른 까무잡잡한 얼굴의 남자로,도시의 일류 멋장이 신사' 였다는 겁니다. 켈렛의 모습은 높은 바위더미 그늘에 가려 길에서는 보이지 않았답니다. 그 남자는 그의 바로 옆까지 오더니,재빨리 길 양옆을 살피고 나서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 주머니에서 작은 물건을 꺼내어 울타리 너머로 집 어던지고는 역 쪽으로 가버렸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남자가 던져버린 물 건이 툭하고 작은 소리를 내며 떨어졌기 때문에, 도랑에 걸터앉아 있었던 그 녀석은 호기심이 발동되었다는 거죠. 그래서, 그것을 찾아나섰는데, 글 쎄 그 반지가 발견되더라 그 말입니다.사실, 로웬이 범행을 부인하는 것도 지극히 당연한 일인 것이, 켈렛 같은 녀석의 발을 도통 믿을 수가 없기 때 문이죠.그 녀석이 길거리에서 데이븐하임을 만나서는 그를 죽여버리고 그 반지를 빼앗을 수도 있음직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포와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너무 무리가 있어. 첫째로, 시체 처리가 문제가 되지 않겠나? 만일 그렇다면 지금쯤 시체가 발견되었을거야. 두번째로,당당하게 저당을 잡히 려고 한 점을 보면 반지를 빼앗기 위해 살인을 범했다고는 생각되지 않지. 세번째로, 좀도둑이 사람을 죽이는 경우는 좀처럼 있을 수 없지. 네번째로, 토요일부터 유치장 안에 갇혀 있었다면서 로웬의 인상을 그렇게 정확히 말 할 수 있다는 것이 미심쩍어." 잽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틀렸다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배심원들에 게 전과자의 증언을 믿게 할 수는 없죠.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 째서 로웬이 좀더 반지를 제대로 처리할 수 없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포와로는 어깨를 움츠렸다. "요컨데, 집 가까이에서 발견되었다면 데이븐하임이 직접 떨어뜨렸다고 도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다면, 어째서 시체에서 반지를 빼낸 걸까요?" 나는 큰소리로 물었다. "거기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겁니다." 잽이 말했다. "알고 있는지 모르겠는데요, 그 호수 건너편에 산 쪽으로 나가는 조그마 한 문이 있습니다.......거기에서 걸어서 3분도 채 안되는 곳에.......무엇이 있을 것 같습니까?......석회를 태우는 가마가 있더군요." "뭐라구요?" 나는 외쳤다. "당신은 석회로는 시체를 없앨 수 있겠지만,반지와 같은 금속은 녹일 수 없다고 말하려는 겁니까?" "물론이오." "그것으로 모든 설명이 되는 것 같구먼. 너무도 무서운 범죄야!." 하고 나는 말했다. 두사람의 생각이 일치되었기 때문에 우리들은 뒤를 돌아 포와로를 보았 다. 그는 정신을 집중시키려고 양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나 는 드디어 그의 예리한 두뇌가 활동을 시작했다고 생각했다. 어떤 것부터 이야기 할 것인가?우리들의 그러한 의혹은 그렇게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한숨을 한번 쉬고 나더니 그의 팽팽한 긴장이 풀어졌다.그리고는 잽 쪽을 향하더니 이렇게 물었다. "데이븐하임 부부가 똑같은 침실을 사용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가?" 이 질문은 너무나 예상 밖이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잠시 동안 우리 들은 눈이 휘둥그래져서 잠자코 있었다. 그러자, 잽이 갑자기 웃음을 터 뜨렸다. "아니,포와로, 무언가 깜짝 놀랄 만한 것을 이야기할 것이라고는 생각하 고 있었지만 말입니다...... 그런 문제는 도저히 알 수가 없죠." "확인할 마음만 있다면 알 수 있겠지?" 포와로는 묘하게도 끈질기게 물었다. "뭐, 그런거야 알 수 있고말고요......정말 알고 싶다면 말입니다." "고마워. 그걸 확인만 해준다면 고맙겠네." 잽은 2~3분 정도 질린 듯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포와로는 이미 우리들의 존재 따위는 잊고 있는 것 같았다. 경감은 나에게 슬픈 듯 이 고개를 흔들어 보이더니, "안됐어요! 너무 깊이 생각하다 머리가 이상해져 버린 게 틀림없어요!" 라고 중얼거리면서 조용히 방을 나갔다. 포와로가 변함없이 멍하니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것 같아, 나는 기분전환으로 종이쪽지를 한 장 들고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포와 로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 나는 번쩍 정신이 들었다. 그는 깊은 생각에서 깨어나 생동감 넘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자네, 무얼 하고 있었지?" "이번 사건에서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점을 메모하고 있었는데요." "자네도 이젠 재치가 번득이는군....역시." 포와로는 만족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기뻤지만, 얼굴에는 드러내지 않았다. "읽어 볼까요?" "부탁하네" 나는 기침을 했다. "1. 모든 증거가 로웬이 금고를 열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2. 그는 데이븐하임에게 원한을 품고 있었다. 3. 최초의 진술에서 그는 한 번도 서재에서 나가지 않았었다는 거짓말 을 했다. 4. 빌리 켈렛의 이야기를 사실이라고 보면,로웬은 망설일 필요도 없이 범인이다." 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어때요?" 내 손가락이 결정적인 사실을 하나하나 지적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 었기 때문에, 나는 그런 투로 그에게 물었다. 포와로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불쌍히 여기는 듯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미안하네! 그러나, 자네에겐 재능이 없으니까 별수가 없지.중요한 점에 서 자네는 조금도 그를 알고 있지 못해. 게다가,자네의 추리는 틀렸어." "어째서요?" "자네가 든 네가지 점을 생각해 보지. 1. 로웬은 금고를 열 기회가 자신에게 주어지리라고는 애당초부터 알 수 가 없었어.그는 다만 거래상의 문제로 만나러 갔던 거야.데이븐하임이 편 지를 부치러 나가서 집에 없었다는 점이나,그것 때문에 서재에서 혼자 있 게 되리라는 것도 미리 알 수가 없지!." "절호의 기회라 생각하고 일을 저질렀을지도 모르잖습니까?" "그러면 도구는? 버젓한 신사가 만일을 대비하여 도둑질하는 데 필요한 일곱 가지 도구를 갖고 다니지는 않네." "흠, 그럼 두 번째는요?" "자네는 로웬이 데이븐하임에게 원한을 품고 있었다고 말했는데,그것은 그가 한두 번 데이븐하임의 코를 납작하게 한 적이 있다는 것을 두고 말한 거 겠지. 하지만, 아마도 그러한 거래 결과 그가 돈을 벌게 되자 다른 사람 들의 주목을 받게 된 정도라고 생각해.그거야 어쨌든, 보통의 경우라면 자 신이 코를 납작하게 만든 상대방에게 원한을 품는 일은 있을 수도 없지.... 그 반대라면 몰라도. 어떠한 원한이든 있었다고 하면, 그것은 데이븐하임 쪽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가 서재를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었다고 거짓말을 한 것은 당신도 부정할순 없겠죠?" "응. 그거야 무서웠기 때문일지도 모르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보기도 전에 실종된 남자의 옷이 호수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일쎄. 물론 평소라면 사실을 말했을 거야." "그럼, 네 번째 점은?" "그것은 자네가 말한 대로일세. 켈렛의 이야기가 진실이라면, 로웬은 틀 림없이 범인이야. 그래서, 이사건도 아주 재미있게 된 것이지." "그럼, 나도 중요한 점을 한 가지 정도는 포착한 셈이네요?" "흠......그러나, 자네는 가장 중요한 점을 두 가지나 완전히 빠뜨리고 말 았어. 어떻게 보더라도 이 사건 전체를 풀 수 있는 열쇠가 되는 점을 말이 야." "그럼, 말해 주시죠. 도대체 어떤 것인지?" "첫번째는 데이븐하임이 최근 1~2년간 병적일 만큼 보석을 사모으고 있 었다는 점. 두번째는 그가 작년 가을에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여행을 갔다 는 점이야." "농담이겠죠!" "아니, 진심으로 말하는 거야. 그건 그렇고, 정말로 잽이 내 부탁을 잊지 말아 주었으면 좋으련만." 그러나, 경감이 포와로의 농담 어린 말의 숨은 뜻을 잊지 않았던 증거로 는, 다음날 11시경 포와로 앞으로 전보 한 통이 온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의 부탁대로 나는 전보를 펴서 소리를 내어 읽었다. "그 부부는 작년 가을부터 별도로 방을 썼음." "흐음!." 포와로는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지금은 유월 중순이란 말이야! 이로써 만사는 해결되었네!" 나는 깜짝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 "자네는 데이븐하임 서몬 은행에 예금하진 않았겠지?" "없어요. 그러나, 그것이 어때서?" 나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예금이 있으면 인출하도록 권하려고.....한발 늦기 전에." "도대체 무슨 말이죠?" "2~3일 안에....아니, 좀더 빠를지도 모르지만, 거대한 도산 사건이 일 어날 거야. 자네, 미안하지만 연필과 전보 용지를 한 장 가져다 주지 않 겠나. 어때! '문제의 은행에 예금이 있으면 꺼낼 것.' 잽이 이걸 보면 어 리둥절하겠지! 그리고 눈을 부릅뜨겠지....정말로. 전연 뭐가 뭔지 모를 거야........내일이나 모레가 될 때까지는 말이야." 나는 반신반의했지만, 이튿날이 되자 포와로의 훌륭한 두뇌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신문이 커다란 제목으로 데이븐하임 은행 의 충격적인 도산을 보도하고 있었다.이 은행의 금융상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자 그 유명한 은행가의 증발사건도 양상이 뒤바뀌었다. 우리들이 한참 아침식사를 하고 있는데 문이 세차게 열리더니 잽이 뛰 어 들어왔다.왼손에는 신문을, 오른손에는 포와로의 전보를 쥐고 있었 는데, 그는 그 전보를 포와로 앞의 식탁위에 거칠게 던져 놓았다. "어떻게 해서 알았습니까, 포와로? 도대체 어떻게 해서 알았느냐 말입 니다." 포와로는 온화한 미소를 그에게 보냈다. "그거야 자네의 그 전보 덕분에 내 나름대로 확신을 얻었지!처음부터 그 금고가 부서진 것에 뭔가 이상한 점이 있다고 생각했거든. 보석,현금,무기 명 채권.....이것저것 모두 알맞게 준비가 되어 있는데....도대체 누구를 위 한 것일까? 그런데, 데이븐하임은 '자신을 아끼는' 남자 일세! 그래서,우선 틀림없이 이것은......그 자신을 위해 준비된 것이라고 하는 느낌이 들었어. 그리고,최근 1~2년간 보석을 사모으기에 열을 올렸다면 그건 너무나 간단 명료하지 않은가! 그가 써버린 공금은 보석에 쏟아넣은 것인데, 아마 차례 차례 모조보석으로 바꿔치기를 했을 테지. 그렇게 해두고서 다른 이름으로 안전한 장소에 감춘 뒤, 모든 이들의 주의가 다른 곳으로 쏠렸을 때 기회를 보아 막대한 재산을 감쪽같이 가로채려고 한 것이지. 준비가 다 되고 나서 는 과거에 아니꼽게도 재계의 거물인 자기에게 한두번 찬물을 먹였던 로웬 과 약속을 한 거지.그리고는 금고에 구멍을 뚫고,손님을 서재에서 기다리게 하라고 말을 해놓고는 외출하는 거야......그럼,어디로 갔다고 생각하나?" 포와로는 입을 꼭 다물더니 손을 펼쳐 삶은 달걀을 한 개 집어들었다.그리 고는 얼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암탉이 마구잡이로 크기가 다른 알을 낳는다는 것은 정말 참을 수 없는 일이야! 그러면 아침식사 때 테이블 위에서의 멋진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 거든. 적어도 가게 주인이라도 몇십 개씩 똑같은 크기의 달걀을 갖추어 두 면 좋을 텐데!" "달걀 같은 거야 무슨 상관입니까." 잽은 마음이 조급해져서 재촉했다. "낳고 싶기만 하다면 사각형의 달걀도 낳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 고,시더스 별장을 나와서 그가 어디로 갔는지나 가르쳐 주시죠.....알고 있 다면 말입니다!." "좋아, 좋아.그는 은신처로 간 거야.그래, 그 데이븐하임 말이야. 그의 회 색 뇌세포엔 아주 살짝 약한 부분이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그래도 어쨌든 일품이야." "어디에 숨어 있는지 알소 있습니까?" "알고 있고말고! 참으로 멋지게 생각을 짜냈더군!" "그럼, 빨리 가르쳐 주시죠!" 포와로는 접시에 흐트러져 있는 달걀 껍질을 긁어모아 삶은 달걀용 컵 에 넣더니,그대로 컵을 거꾸로 뒤집었다.그리고는 껍질이 동그랗게 모여 있자 싱글벙글 웃으면서 부드러운 미소를 나에게 지어 보였다. "자, 그럼, 자네들도 꽤 머리가 좋잖나. 내가 묻는 것을 자네들도 스스로 에게 물어보게. 그것은,' 내가 그 남자였다면 어디에 숨을까?' 하는 것이 야.헤이스팅스, 어때?" "글쎄요..나라면 도망치지는 않습니다.그대로 런던에 있겠죠.... 모든 것 의 중심부에 있으면서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돌아다닙니다. 그렇게 하 면 만에 하나라도 발견될 리가 없지. 군중에 섞여 있으면 안전하기 때문 입니다." 포와로는, '자네는?' 하듯이 잽을 보았다. "나는 그 반대입니다. 나라면 즉시 내뺄겁니다.....그렇지 않으면 도망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죠.도망칠 여유는 충분히 있었을 테니까요. 그리 고,언제라도 출항할 수 있도록 요트를 대기시켜 놓고서 떠들썩 해지기 전 에 이 세상 어느 깊숙한 곳으로 도망가 버리는 겁니다." 두사람은 포와로를 바라보았다. "어떻습니까?" 잠시동안 그는 잠자코 있었다. 그 사이에 아주 묘한 미소가 언뜻 그의 얼굴에 비쳤다. "자네들, 만일 내가 숨는다면 어디에 숨으리라고 생각하나? 바로 '형무 소야. 형무소." "뭐라고요?" "자네들은 데이븐하임을 형무소에 집어 넣으려고 찾고 있는 것이기 때문 에, 그가 거기에 들어가 있는지를 조사해 보려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겠 지?" "그렇다면?" "잽, 자네는 데이븐하임 부인은 머리가 좋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었지. 그 러나, 그녀를 보 가에 데리고 가서 그 빌리 켈렛이라는 남자와 만나게 하면 그가 누구라는 것 정도는 금세 알 수 있을거야. 아무리 구레나룻이나 턱수 염이나 그 더부룩한 눈썹을 깎거나, 머리를 짧게 잘라도, 자신의 남편만은 십중팔구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지." "빌리 켈렛이라뇨? 아니, 그 친구는 경찰이 잘 알고 있는 사람이잖습니까?" "그렇게 때문에 데이븐 하임은 똑똑한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았었나? 그는 훨씬 전부터 알리바이를 준비하고 있었던 거야. 작년 가을 부에노스 아이레 스로 갔다는 것도 거짓말이야....... 드디어 때가 왔을 때에 경찰이 수상쩍게 여기지 못하도록 '징역 3개월'로 빌리 켈렛이라는 인물을 준비해 놓고 있었 던 거지. 큰손을 흔들며 걷는 것 뿐만 아니라, 그 거대한 재산을 손에 넣기 위해 그는 거창한 연극을 꾸민거야. 그런 연극 정도라면 그런 대로 괜찮지. 단지......." "단지?" "그래. 그 뒤에도 가짜 수염이나 가발을 쓰고 그전의 자신과 똑같은 모습 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가짜 수염을 붙인 채로 잠잔다는 것은 별로 편치 않았을 테지. 꼬리를 잡힐 수도 있고 말이야! 그래서, 도저히 아내의 침실에서 잔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던 거야. 이건 자네가 조사해 준 것인데, 최근 반년 동안이라는 것은 결국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돌아왔 다고 보여진때부터 지금까지야. 데이븐하임 부부는 침실을 별도로 쓰고 있었어. 그래서,나는 확신을 가지게 된 거지! 모든 것이 딱 들어맞네, 주인 이 집 옆쪽으로 돌아가는 것을 본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했다던 정원사의 말은 틀림이 없었던 거야. 그는 보트를 두는 조그마한 오두막집에 가서 집 에서 입는 막옷을 갈아입었어...... 이 옷은 자네들도 그렇게 생각했겠지만, 집사의 눈에 띄지 않도록 잘 감추어 둔게 틀림없지.........그리고는 드디어 계획대로 일에 착수하여 반지를 당당하게 저당잡히고 경관에게 폭행을 가 한 뒤, 감쪽같이 보 가의 피난처로 도망을 친 것이지..... 거기까지 그를 찾 으러 가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 "불가능합니다!" 잽이 중얼거렸다. "데이븐하임 부인에게 물어보게." 포와로는 빙긋이 웃으면서 말했다. 이튿날 포와로의 음식 접시 옆에 등기 우편이 놓여져 있었다. 펼쳐보니 5파운드짜리 지폐가 나왔다. 그는 양미간을 찌푸렸다. "아이고, 이친구! 이거 어떻게 하지? 그에게 미안한 일을 저질렀구먼! 불 쌍하게도! 아, 좋은 생각이 났네! 함께 맛있는 식사를 하는 것이 어떤가,셋 이서 말이야! 그러면, 나도 마음이 편할 것 같아. 그런 사건 정도는 누워서 떡먹기였는데, 참으로 미안한 일을 저질렀구먼. 나같은 사람이 어린아이 들 우려먹는 일을 해서야............에잇!! 이봐, 이봐. 왜그래? 뭐가 그렇게 재미있다는 듯이 웃고 있는 거지?" 출처 http://forum6.thrunet.com/share/mmbbs/asp/board.asp?sid=55&bid=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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