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명:만찬회의 13인 저자:아가다 크리스티 역자:문수정 출판사:풍림 차례 1 기막힌 연기 2 놀라운 청탁 3 편지의 행방 4 제 1의 살인 5 완벽한 알리바이 6 또 하나의 죽음 7 상속자 8 괴전화의 뜻 9 가짜의 조건 10 제 3의 사나이 11 무너진 부재증명 12 공범자 13 제 3의 살인 14 안경의 임자를 찾아라! 15 교묘한 트릭 16 엄청난 진상 머리말 -풍림명작 추리소설 발간에 즈음하여- 이 만찬회의 13인 은 아크로이드 , ABC 살인사건 , 쥐덫 등의 작품으로 이제는 우리 나라 독자들과는 낯익은, 영국이 낳은 위대한 추리소설의 여왕 아가다 크리스티의 대표작으로서, 그 범행수법의 기발한 복합트릭으로 온 세계의 추리소설 독자들을 흥분시킨 본격장편추리소설의 결정타이다. 크리스티 여사의 작품에는 독자들의 의표를 찌르는 트릭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는 것이 두드러진 특징이며, 그리하여 실상 독창적인 트릭의 개발에 있어 아무도 감히 여사를 따를 수 없을 정도이거니와, 이 작품도 그런 수법에 의한 전형적인 문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발단의 괴사건, 제2, 제3의 연속살인에 의한 서스펜스, 그리고 추리소설의 가장 찌릿한 묘미인 범인의 의외성... 이런 식으로 본격추리소설이 갖추어야 할 모든 요소를 구비하면서 이중, 삼중의 빈 틈 없는 트릭을 유감없이 구사하여 우리를 놀라게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막판에 가서 드러나는 범인의 정체와 교묘한 알리바이 조작은 가히 일품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과연 기막힌 재주라고 할 밖에 없으며, 여사의 숱한 작품 중에서도 단연 대표작의 하나로 꼽히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추리소설은 모든 선진국에서 온통 붐을 이루고 있으며, 현대인의 빼놓을 수 없는 읽을거리로 각광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우리 나라에서만은 그 동안 거의 버림을 받다시피 되어 있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우리 나라 사람들이 아직도 추리소설의 참된 묘미를 모르고 있고, 추리소설에 대해 그릇 인식하고 있었던 탓이거니와, 크리스티 여사의 작고를 계기로 뒤늦게나마 서서히 추리소설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어 가고 있음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아무튼 이 풍림명작소설 시리즈는 이러한 추리소설 부재의 이 나라에 세계각국의 뛰어난 작품을 계속 소개함으로써 추리소설의 꽃을 피워 보고자 기획된 것으로서, 그 동안 10여종의 작품을 내놓았고, 또한 앞으로도 꾸준히 발행해나갈 예정인바, 이 일련의 책들이 이 땅에 추리소설 붐을 조성하는 밑거름이 되어 준다면 천만다행이겠다. 독자들의 아낌없는 성원을 지면을 빌어 거듭 부탁드리는 바이다. 1967년 7월 풍림출판사 나오는 사람들 엣지웨어경 - 영국의 부호 제인 윌킨슨 - 그의 아내. 여배우 제럴딘 머어슈 - 그의 딸 로널드 머어슈 - 그의 조카 카아롯타 아담즈 - 연극배우. 미국처녀 브라이언 마아틴 - 영화배우 도널드 로스 - 연극배우 제니 드라이버 - 부인모자점 여주인 미스 캐럴 - 엣지웨어경의 여비서 마아튼 공작 - 독신의 귀족 에리스 - 제인 윌킨스의 가정부 재프 - 런던경시청 경부 에르큐르 포와로 - 사립탐정. 벨기에인 헤이스팅즈 - 포와로의 친구 기막힌 연기 소문이라는 것은 이내 잊혀지게 마련인가 보다. 엣지웨어 남작 4세, 죠오지 센트 뷘센트 머어슈 살인사건으로 일깨워졌던 그렇듯 강한 관심과 흥분도 이제는 아득한 과거사로 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더욱 새로운 사건들이 관심의 대상으로 되고 있는 것이다. 나의 벗 에르큐르 포와로의 이름이 이 사건에 관련되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일은 없었다. 그는 자기의 이름이 나오는 것을 마다했다. 그리하여 공로는 다른 사람에게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는 포와로 본인의 희망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포와로의 견해에 의하건대, 이 사건은 그의 실패의 한 가지였다. 그는 노상 단언하거니와, 그를 올바른 판단으로 일깨워 준 것은 어쩌다가 길거리에서 마주친 사람이 던진 한 마디였다는 것이다. 그것은 어떻든 사건의 진상을 파헤친 것은 그의 천재적인 재능이었다. 에르큐르 포와로가 없었드라면, 그 사건의 범인이 잡혔을 리가 만무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까닭에 나로서는 이 사건에 대해서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밝혀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나는 사건의 전모를 완전히 알고 있으며, 그렇게 하는 것으로 기막히게 아름답고 매혹적인 어떤 여성의 소망을 채워 주게도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작년 6월, 런던의 어느 극장에서의 일이었다. 그 무렵 런던에서는 카아롯타 아담즈가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었다. 그녀는 그 전 해에 두 가지 주간흥행에 출연할 기회를 얻었었고, 그것이 대히트를 한 바 있었다. 그리고 이야기가 시작되는 이 때에는 그녀는 3주일간의 연속공연에 출연하고 있었으며, 그 날밤이 마지막 공연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카아롯타 아담즈는 미국 처녀였는데, 메이크업이나 배경 따위의 보조도 없이 원맨쇼우를 하는 데 있어 정말 놀라운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온갖 나라의 말을 유창히 해냈다. 그녀는 어느 외국 호텔의 밤장면을 묘사해 보였는데, 그것은 참으로 기막힐 정도였다. 미국인 여행자, 도이치인 여행자, 중류의 영국가족, 수상스러운 숙녀들, 몰락한 러시아귀족, 힘이 하나도 없어 보이면서도 정중한 웨이터들, 이런 인물들이 눈부시게 등장했다. 그녀의 연기는 심각한 것으로부터 명랑한 것으로, 다시금 심각한 것으로 쉴 사이 없이 변했다. 체코슬로바키아 여자가 병원에서 죽어가고 있는 장면에 관객은 목이 막혔다. 그러나 1분 후에는 치과의사가 환자와 주고받는 기막힌 익살에 배를 움켜쥐며 모두들 웃어젖히는 판이었다. 프로그램의 마지막 제목은 명사의 흉내 였다. 다시금 그녀는 놀라운 연기력을 발휘했다. 아무런 메이크업도 없이, 그녀의 얼굴표정은 느닷없이 헝클어져, 이름난 정치가며, 여배우, 사교계의 미녀 따위로 둔갑했다. 각기의 인물에 알맞는 짧은 스피이치도 곁들여졌거니와, 그 성대모사도 일급이었다. 마지막 프로는 제인 윌킨슨 - 런던에서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인기스타아인 유능한 미국 여배우 - 의 흉내였다. 그것은 참으로 기막힌 연기였다. 그 목소리는 미묘한 억양을 지니고 있었고, 낮은 허스키한 음조를 띠우고 있어 듣는이를 황홀케 했다. 하나 하나가 묘하게 뜻 있어 보이는 억제된 몸짓, 어렴풋이 흔들리는 상체 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매우 아름답다는 인상 - 그녀가 어떻게 그 연기를 해냈는지, 나로서는 알 재간이 없다. 전부터 줄곧 나는 아름다운 제인 윌킨슨의 찬미자였다. 나는 그녀의 정열적인 연기에 매혹되고 있었으므로, 그녀는 아름답지만 배우가 아니라고 헐뜯는 무리들에게 그녀는 상당한 연기력의 소유자라고 주장해 왔었다. 여배우 중에는 결혼하여 무대에서 물러났다가도 이내 무대로 되돌아오는 자가 있거니와, 제인 윌킨슨 역시 그런 여배우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3년 전, 부유하기는 해도 좀 괴팍한 엣지웨어 경과 결혼했다. 그 뒤 이내 그녀가 남편과 별거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어찌 되었건 결혼한 지 18개월 뒤에 그녀는 몇 가지 미국영화에 출연을 했고, 이 해에는 런던에서 대단한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는 연극의 주역을 맡고 있었던 것이다. 카아롯타 아담즈의 기막힌 흉내를 보고 있는 사이에 나는 문득 의문을 품었다. 이런 흉내는 선택당한 본인이 보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그들은 이 쇼우로 빚어내어지는 선전효과를 기쁘게 생각할까? 아니면 말하자면 그것은 그들의 직업의 꿍꿍이속을 우정 들추어 내고 있는 것이니까 난처하게 생각할까? 나는 만일 자기가 본인이라면 몹시 거북스럽게 느낄 것이라고 판단했다. 물론 화를 얼굴에 드러내지는 않을 테지만 절대로 마음에 안들을 것이 분명하다. 내가 이런 결론을 내린 바로 그 때 무대에서의 즐거워 보이는 허스키 보이스에 호응하듯 나의 등 뒤에서 똑같은 웃음소리가 일었다. 나는 서둘러 목을 돌렸다. 내 바로 뒷자리에서 입술을 약간 열고, 몸을 내밀고 있는 것은 바로 흉내의 주인공 - 제인 윌킨슨으로서 더한층 잘 알려져 있는 엣지웨어 부인 - 바로 본인이 아닌가! 나는 이내 나의 짐작이 전혀 헛짚고 있었음을 알았다. 그녀는 몸을 내밀고 입술을 열고는 눈에 기쁨과 흥분의 표정을 잔뜩 띄우고 있었던 것이다. 흉내 가 끝나자 그녀는 열심히 박수를 치고는 웃으면서 자기 옆자리의 동행을 보았다. 그리이스 신화에 나오는 아폴론 같은 타이프의 매우 잘 생긴 키가 큰 사나이로서 그 얼굴은 무대 위에서보다는 스크리인 위에서 더한층 잘 알려져 있었다. 그것은 그 무렵 가장 인기 있는 영화배우 브라이언 마아틴이었다. 그와 제인 윌킨슨은 몇 가지 영화에서 공연한 사이였다. 그 여자 기막히쟎아요? 엣지웨어 부인은 말하고 있었다. 마아틴은 웃었다. 제인 - 굉장히 흥분한 모양이구먼? 그래요, 그녀는 정말 기막혀!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기막히다구요. 브라이언 마아틴은 재미 있는 듯이 대꾸를 했는데 내게는 들리지가 않았다. 카아롯타 아담즈는 새로운 즉흥연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뒤에 일어난 것은 참으로 기묘한 암합이었다고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연극이 끝난 뒤, 포와로와 나는 사보이 호텔로 저녁식사를 하러 갔다. 우리 옆 식탁에는 엣지웨어 부인과 브라이언 마아틴, 그리고 내가 모르는 인물이 두 사람 있었다. 나는 포와로에게 그들을 가리켰는데, 그러고 있는 사이에 다른 한 쌍의 남녀가 들어와서 그 건너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여자의 얼굴은 낯이 익었으나, 이상하게도 본 순간에는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 때 문득 나는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다름 아닌 카아롯타 아담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남자쪽은 본 기억이 없었다. 빈 틈 없는 차림새에 명랑한, 얼마간 얼간이 같은 얼굴생김이었다. 내가 좋아할 타이프는 아니다. 카아롯타 아담즈는 눈에 띄지 않는 검은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이내 사람들의 주의를 이끌게 하거나, 쉽게 기억할 수 있는 얼굴은 아니었다. 그것은 남의 흉내에는 가장 적합한, 표정이 풍부하고 민감한 얼굴이었다. 남의 특징을 손쉽게 흉내낼 수 있지만, 그것 자체에는 이내 가려낼 수 있는 특징이 없는 것이다. 나는 이런 느낌을 포와로에게 전했다. 그는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며 계란모양의 머리를 약간 한쪽으로 기울고는 화제의 두 식탁을 재빨리 보았다. 그렇다면 저것이 엣지웨어 부인이구먼? 맞아, 기억이 나는군 - 그녀의 연극을 본 일이 있지. 미인인데. 게다가 훌륭한 여배우지. 글세. 자네는 곧이듣질 않는구먼? 그건 상황에 달렸다고 생각하는군. 만일 그녀가 극의 중심인물이라면, 매사가 그녀를 중심으로 회전한다면 - 그렇지, 그렇다면 자기 역을 무난히 소화시킬 수 있을 테지. 하지만 바이플레이어로서도 해낼 수 있을지, 아니 소위 성격적인 역할을 감당해낼 수 있을지 의심스럽구먼. 그녀는 자기에게만 관심을 품는 여자 같단 말야. 그는 말을 끊더니 이윽고 얼마간 당돌하게 덧붙였다. 그런 인간은 매우 위험한 인생을 보내게 마련이라네. 위험하다구?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놀란 모양이군? 여보게, 맞아, 위험하고말구. 그럴 것이 저런 여자는 한 가지 밖에 안 보지 - 자기 자신이야. 그런 여자는 온갖 위험이나 불운이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한단 말일세. 따라서 - 조만간 재액이 일어난다,이거야. 나는 약간 흥미가 이끌렸다. 나는 물었다. 저기 저 여자는 어떤가? 미스 아담즈 말인가? 그의 시선은 그녀의 테이블로 달렸다. 그래서 뭘 알고 싶나? 포와로는 웃으면서 물었다. 그녀에 대해 어떤 말을 듣고 싶나? 그녀에게 어떤 느낌을 받았느냐는 것 뿐이지. 그녀는 예술가야. 포와로는 간단히 말했다. 그리고 이내 덧붙였다. 그것으로 거의 전부야. 그녀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은 자네도 깨닫고 있겠다?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 말을 듣고 보니 딴은 셈 족의 혈통이 어렴풋이 엿보였다. 포와로는 끄덕였다. 그것은 성공으로 통하고 있지 - 그 사실은 말일세. 하지만 위험한 길과도 통하고 있단 말야. 우리가 현재 위험에 대해 말하고 있으니까 하는 말이지만. 그렇다면? 금전욕이지. 저런 여자는 금전욕에 이끌려, 현명하고 조심스러운 길에서 자칫 벗어날는지도 모른단 말야. 우리는 모두 금전욕에 이끌릴 가능성이 있단 말야. 그야 그렇지만, 자네나 나 같으면 거기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을 깨달을 거란 말야. 이해득실을 저울질해 볼 거야. 그런데 지나치게 돈독이 올르고 보면 보이는 것이라곤 돈뿐, 나머지는 가려져서 안보인단 말야. 나는 그의 진지한 태도를 웃었다. 성격에 대한 심리분석은 재미 있지. 포와로는 태연히 대답했다. 범죄에 흥미를 지니게 되면, 심리분석에 흥미를 품지 않을 수 없게 마련이지. 전문가의 마음을 끄는 것은 단순한 살인행위가 아니라, 그 사건의 배후에 있는 것이라네. 알겠나, 헤이스팅즈? 나는 알 수 있다고 대답했다. 노상 깨닫고 있는 일이지만, 자네하고 같이 사건을 다루고 있으면, 자네는 번번이 나를 구체적인 행동으로 몰아넣으려든단 말야. 발자국 사이즈를 잰다거나, 담뱃재를 분석한다거나, 배를 깔고 자질구레한 것마저 조사시키려든단 말일세. 자네에겐 아마 이해가 안갈 테지만 안락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있는 편이 문제해결에 훨씬 다가설 수 있는데 말일세. 난 그렇지 않다구. 안락의자에 기대앉아 눈을 감으면 한 가지 상태가 일어나지. 자는 상태밖엔 안일어난단 말야. 그 사실은 벌써부터 알고 있었지. 포와로는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정말 기묘한 일이군. 그럴 때면 뇌가 휴식을 취하기커녕은 활발하게 작용할 텐데말야. 마음의 작용이란 놈은 매우 복잡하고 미묘한 것이라네. 잿빛의 작은 뇌세포를 작용시키는 일이란 정신적인 쾌락이지. 뇌세포는, 아니, 뇌세포만이 안개를 꿰 어 진실로 인도해 주는 믿을 만한 안내자라구 - 나는 포와로가 그 작은 잿빛 뇌세포에 대해서 말할 때에는 언제나 주의를 돌려 버리는 버릇이 들어 있었던 모양이다.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은 탓이다. 이 때도 나의 주의는 곁의 식탁에 앉아 있는 네 사람 쪽을 헤매다니고 있었다. 포와로의 자랑섞인 잔소리가 끝나갈 무렵, 나는 킥킥 웃고 있었다. 자네 대단한 인상을 줬구먼. 아름다운 엣지웨어 부인의 시선이 거의 자네한테 못박혀 있으니 말야. 그녀는 내 정체를 안 모양이군. 포와로는 겸손한 표정을 지으려고 했으나, 제대로 되지 않았다. 아마, 그 소문난 입수염 탓일걸. 그녀는 입수염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있는 게야. 포와로는 넌지시 수염을 어루만졌다. 이놈이 개성적인 것은 사실이라구. 그는 자신하고 덧붙였다. 이봐, 자네가 달고 있는 그 칫솔수염 이란 놈 말야 - 그건 좀 다시 생각해 볼 문제라구 - 좀 지나치단 말야. - 자연이 내리신 물건을 멋대로 개조하려드니, 그게 어디 말이 돼야지. 아니, 이것 참 - 나는 포와로의 부탁을 무시하면서 말했다. 부인이 일어섰어. 아마 우리하고 얘기를 하러 올 모양야. 브라이언 마아틴은 반대하고 있지만 부인은 귀담아듣질 않는구먼. 분명히 제인 윌킨슨은 성급하게 자리를 떠나 우리 식탁으로 왔다. 포와로가 일어서서 고개를 숙이기에 나도 덩달아 일어섰다. 에르큐르 포와로씨죠? 그녀는 부드러운 허스키 보이스로 물었다. 그렇습니다마는. 포와로씨, 나, 상의할 말씀이 있어요. 좀 드릴 말씀이 있군요. 좋고말구요, 마담. 앉으시죠. 아뇨. 여기선 곤란해요. 좀 은밀히 말씀드리고 싶은 일이 있는 걸요. 당장 위층에 있는 내 방으로 가시지요. 브라이언 마아틴이 그녀 곁으로 다가왔다. 그는 비난하듯 웃으면서 말했다. 좀 기다려야 한다구, 제인. 우리는 식사 중이야. 포와로씨도 그렇구. 그러나 제인 윌킨슨은 쉽사리 고집을 꺾지 않았다. 어머, 브라이언, 그게 어떻다는 거죠? 식사를 방으로 운반시키십시다. 그렇게 일러 주지 않겠어요? 그리고 말야, 브라이언 - 그가 저쪽으로 가려고 하자 그녀는 뒤좇아가서 무언가를 권하는 것 같았다. 부인은 그에게 말을 걸고 있는 사이에 카아롯타 아담즈가 앉아 있는 테이블을 한두 번 보았으므로 나는 부인이 지시하고 있는 것이 무언가 그 미국처녀와 관계가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했다. 제인은 명랑한 밝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곧 위로 올라가실까요? 그녀는 그러면서 내게도 생긋 미소를 던졌다. 이쪽이 그녀의 제안에 찬성하느냐 안하느냐 하는 문제는 전혀 안중에도 없는 눈치였다. 그녀는 앞서서 걷기 시작했다. 오늘밤 여기서 마침 당신을 생각쟎게 만나뵙게 되다니, 정말 더 할 나위 없는 행운이에요, 포와로씨. 글쎄요, 도움이 돼드릴 수 있을는지 모르겠군요. 포와로가 한 마디 했다. 당신 같으면 아마 가능하실 거에요. 당신은 누구보다도 기막힌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어요. 누구건 나를 이 골머리아픈 문제에서 헤어나게 해줘야 돼요. 그리고 당신이야말로 그럴 분이라 생각하고 있죠. 이층에서 엘리베이터를 내리자 그녀는 성큼성큼 복도를 걸어가더니 어떤 도어 앞에 멈추어서서 사보이 호텔에서도 가장 호화스러운 방으로 들어갔다. 여배우는 흰 모피로 된 쇼올을 의자 위에 던지고 보석이 박힌 작은 핸드백을 테이블 위에 동댕이치고는 의자에 주저앉아 소리쳤다. 포와로씨, 나, 어떤 일이 있어도 주인을 몰아내야만 해요! 놀라운 청탁 순간적인 놀라움 뒤에 포와로는 냉정을 되찾았다. 하지만, 마담. 그는 눈을 깜짝깜짝했다. 바깥어른을 몰아내는 일은 내 본직이 아니올시다. 어머, 물론 그건 알고 있어요.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변호사입니다. 그게 잘못이에요. 나 이제 변호사한텐 넌더리가 나요. 정직한 변호사도, 악덕변호사도 고용해 봤지만, 누구 하나 쓸모라곤 없었지요. 변호사는 법률은 알고 있는지 몰라도 인간다운 상식은 전혀 없는 걸요. 그런데, 나는 갖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녀는 소리내어 웃었다. 그럼요 - 당신은 갖고 있어요. 마담, 내게 슬기가 있건 없건 - 하긴 있기는 합니다마는 - 당신의 그 사소로운 사건은 내 분야가 아니올시다. 당신은 어려운 일에서 꽁무니를 뺄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당신의 통찰력엔 찬사를 드립니다, 마담. 하지만 역시, 나로서는 이혼을 위한 조사는 할 수 없습니다. 기분좋은 일이 못되니까요 - 그 일은. 어머나, 스파이 같은 일을 부탁드리고 있는 게 아녜요. 그런 짓을 해봤자 소용 없을 걸요. 하지만 난 어떤 일이 있어도 주인을 몰아내지 않으면 안돼요. 아마 당신 같으면 어떻게 해야 좋을지 가르쳐 주시리라 믿어요. 포와로는 대답하기 전에 잠시 사이를 두었다. 그리고 대답했을 때 그의 말투는 완연히 달라져 있었다. 마담, 먼저 어째서 그렇듯 남편을 몰아내셔야 하는지, 그 까닭을 말씀해 주시지요. 그녀의 대답에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었다. 어머, 뻔한 일이죠 뭐. 다시 결혼하고 싶기 때문이에요. 달리 무슨 이유가 있죠? 그녀는 파란 눈을 순진스럽게 떴다. 하지만 이혼승낙을 얻기는 수월하리라 여겨지는데요? 그건 남편을 모르시기 때문이에요, 포와로씨. 그 사람은 - 그 사람은 - 그녀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모르겠군요. 그는 아주 이상한 사람이죠 - 여느 사람들과는 전혀 달라요. 그녀는 말을 끊었다가 덧붙였다. 그는 결혼하지 말았어야 했어요 - 누구하구도요. 말로 나타낼 수는 없지만, 그는 - 좀 다른 사람이죠. 첫 번째 부인은 아시다시피 그에게서 도망쳤지요. 석달 되는 갓난아기를 놔두고 가버렸답니다. 그는 그 뒤 나하고 결혼했어요. 하지만 - 난 참을 수 없었죠. 무서워진 거죠. 난 그의 곁을 떠나 미국으로 갔어요. 내겐 이혼을 내세울 법률적인 원인은 없었고, 설사 그렇드라도 그는 눈도 거들떠보지 않을 걸요. 그는 - 일종의 미치광이에요. 미국의 어떤 주에서라면 당신은 이혼하실 수 있을 겝니다, 마담. 그래가지곤 아무런 도움이 안돼요. 내가 영국에 살게 되지 않는 이상. 영국에서 사실 작정인가요? 그래요. 당신이 결혼하고자 하는 상대방은 누굽니까? 바로 그거예요. 마아튼 공작이에요. 나는 나도 모르게 흑!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마아튼 공작이란 이제까지 딸을 결혼시키려고 안달을 피우고 있는 어머니들의 절망의 씨였다. 그는 수도승 비슷한 청년으로서 열광적인 가톨릭 교도였는데, 그의 모친인 압제적인 공작미망인에게 완전히 지배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었다. 그의 생활은 매우 간소했다. 중국도자기를 수집하고 있으며, 미술적인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여자 따위는 아예 안중에도 없었다. 나, 그 분한테 아주 빠져 버렸답니다. 제인은 감상적으로 말했다. 그는 이제까지 만난 그 어떤 사람하고도 틀리고, 또 마아튼 성은 기막히거던요. 게다가 그 사람 대단한 미남자에요. 그녀는 잠시 말을 끊었다. 나, 결혼하면 무대를 버릴 작정이에요. 그건 어떻든 간에. 포와로는 쌀쌀스럽게 말했다. 엣지웨어 경이 그 로맨틱한 꿈의 실현을 방해하고 있다는 말씀인가요? 그래요 - 그래서 이렇게 미칠 것만 같은 거죠. 그녀는 눈살을 찌푸리고 의자에 기대어 앉았다. 도어가 노크되고 웨이터가 저녁식사 접시를 가지고 왔다. 제인 윌킨슨은 보이의 존재에는 아랑곳없이 다시금 이야기를 계속했다. 아마 당신이라면 뭔가 현명한 방법으로 그와 교섭해 주시리라 생각한 거에요. 그를 설복시켜 이혼승낙을 받아내 주실 거라구요. 당신 같으면 충분히 가능할 거에요. 내 설득력을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고 계신 것 같군요, 마담. 어머나! 하지만 어떤 묘안을 생각해내실 수는 있을 거에요. 그녀는 몸을 내밀었다. 그리고 다시금 파란 눈을 크게 떴다. 당신은 내가 행복해지기를 바라실 테죠?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럽고도 낮았으며, 황홀할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저는 여러분이 행복해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포와로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래요. 하지만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여러 사람의 일이 아녜요. 내 생각만 하고 있었던 거죠. 당신은 언제나 그럴 것이라 여겨지는군요. 내가 이기적이라는 건가요? 아아! 그렇게 말씀드린 게 아닙니다, 마담. 나, 내가 이기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요. 하지만 아실 테죠? 나, 불행해지는 것 질색이에요. 주인이 이혼을 승낙하든가, 죽든가 - 그렇지 않고는 아마 난 언제까지나 불행할걸요. 전체적으로는. 그녀는 나른한 듯이 말을 계속했다. 주인이 죽어 주는 편이 훨씬 안성마춤일 거에요. 결국 아주 깨끗이 몰아내 버릴 수 있으니까요. 그녀는 동정을 구하듯 포와로를 보았다. 날 도와 주시겠죠, 포와로씨? 그녀는 일어서서 쇼올을 손에 들고는 호소하듯 그의 얼굴을 지켜보았다. 복도에서 사람들의 웅성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 도어가 활짝 열렸다. 만일 도와주시지 않는다면 - 그녀는 포와로를 쏘아보면서 덧붙였다. 만일 도와드리지 않으면, 마담? 그녀는 생긋 웃었다. 내가 택시를 불러 집으로 쳐들어가서 직접 주인을 몰아내는 수밖에요. 그녀는 웃으면서 옆방으로 통하는 도어로 모습을 감추었는데, 마침 이 때 브라이언 마아틴이 미국처녀인 카아롯타 아담즈와 그녀의 동행자인 남자를 데리고 들어왔다. 마아틴과 제인 윌킨슨하고 함께 저녁식사를 들고 있던 두 사람도 역시 같이 들어왔다. 이 두 남녀는 위드번 부처로 소개되었다. 제인은 어디 있나요? 브라이언 마아틴이 말했다. 그녀의 분부대로 거행했다고 보고를 드려야 할 텐데. 제인이 침실 도어께에 나타났다. 그녀는 한 손에 루우즈를 들고 있었다. 그녀를 잡았구먼? 기막혀. 미스 아담즈, 당신 연기엔 정말 탄복했어요. 아무래도 당신하고 사귀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생각한 거죠. 어서 이리 들어와서 내가 얼굴을 고치고 있을 동안 편히 좀 쉬셔요. 카아롯타 아담즈는 그녀의 말에 따랐다. 브라이언 마아틴은 의자에 몸을 던졌다. 포와로 선생님, 당신은 그럴 만한 까닭이 있어 잡히신 겝니다. 제인은 당신이 그녀를 위해 싸우도록 설복했나요? 아마, 일찌감치 항복하는 편이 좋을 걸요. 그녀에겐 노우 라는 말이 통하질 않으니까요. 아마도 이제껏 그런 말에 부딪친 적이 없으신 모양이죠. 아주 흥미깊은 인물이죠, 제인은. 마아틴이 말했다. 그는 나른한 듯이 담배연기를 천정쪽에다 불어올렸다. 그녀에게 있어 터부우란 아무 뜻도 없습니다. 그 어떤 도덕도 말씀입니다. 인생에 있어 단 한 가지 밖엔 보질 않으니까요 - 그것은 결국 제인이 무엇을 바라느냐 하는 것이죠. 그는 씁쓸한 웃음을 띄었다. 그녀는 살인이라도 명랑하게 해치울 걸요 - 그리고 세상이 그녀를 잡아 교수형에라도 처하려든다면 골을 낼 테죠. 문제는 어차피 그녀는 잡힐 것이라는 겝니다. 그녀는 아무런 분별도 없지요. 그녀의 살인방법이란 보나마나 택시를 집어타고 달려가서 자기 이름을 대고는 권총을 쏘아대는 게 고작일 테죠. 그런데 왜 그런 생각을 하시나요? 포와로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네? 당신은 그녀를 잘 알고 있군요? 아마, 그럴 겝니다. 그는 또다시 웃었는데, 그 웃음이 몹시 씁쓸해 보였다. 당신들도 아마 그렇게 생각하실 걸요? 그는 다른 두 사람을 돌아보았다. 아아! 제인은 고집장이에요. 위드번 부인이 그 말에 이내 찬성했다. 하지만 여배우란 그래야 해요. 결국 자기의 개성을 표현하려면 말예요. 포와로는 아무 말도 안했다. 그의 눈은 마아틴의 얼굴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그 때 제인이 카아롯타 아담즈와 함께 옆방에서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그 뒤의 저녁식사는 매우 즐거운 것이었는데, 그 밑바닥에는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분위기가 어려 있는 것처러 느껴졌다. 나는 제인 윌킨슨에게 한 점의 교활함도 없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분명히 그녀는 한 때에 한 가지 밖에 보지 않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포와로를 만나기를 바랐고, 이내 계획을 실행에 옮겨 소망을 이루었다. 그녀는 분명히 기분이 흡족해 보였다. 카아롯타 아담즈를 이 저녁식사에 부른 것은 단순한 변덕이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그녀는 자기가 교묘하게 흉내내어진 사실로 어린아이처럼 들떠 있었다. 그렇다. 내가 느낀 저류는 제인 윌킨슨에게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이다. 그러면 누구와 관련이 있는 것일까? 나는 손님들을 차례로 관찰했다. 브라이언 마아틴일까? 확실히 그는 자연스럽지가 못했다. 하지만, 하고 나는 자신에게 타일렀다. 저것은 영화배우의 특성인지도 모른다. 자기 역할을 연기하는 일에 익숙해 버려, 그것을 손쉽게 벗어던질 수 없게 된, 허영심이 강한 사나이의 과장된 자의식인 것이라고. 그것은 어떻든 간에 카아롯타 아담즈는 매우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있었다. 그녀는 느낌이 좋은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조용한 처녀였다. 나는 그녀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므로 상당히 주의해서 관찰했다. 그녀에게 매력이 있음은 분명하지만, 그 매력은 얼마간 소극적인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부드러운 검은머리, 빛이 없어 보이는 엷은 청색의 눈, 푸르스레한 얼굴, 표정이 풍부하고 민감한 입. 그 얼굴은 반반하지만 그녀가 다른 옷차림을 하고 있을 때 만난다면 아마 이내 그녀임을 알아내기는 힘드리라. 그녀는 제인의 상냥한 태도와 칭찬을 기뻐하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어떤 처녀라도 기뻐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 그런데 - 마침 그 때 - 나의 얼마간 성급한 판단을 고치게 하는 일이 일어났다. 그 때 이 자리의 여주인은 뒤돌아보고 포와로와 말을 나누고 있었는데, 카아롯타 아담즈는 그것을 테이블 너머로 보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에는 무언가를 캐내는 것 같은 기묘한 데가 있었다. 한편 나는 그 엷은 청색눈에 매우 뚜렷한 적의가 나타나 있음을 보고 적지않이 놀랐다. 아마 기분 탓이리라. 아니면 직업상의 질투이리라. 제인은 스타아의 지위를 획득한 일류의 여배우다. 카아롯타는 이제 막 성공으로의 사다리를 올라가고 있는 햇병아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자리에 있는 다른 세 사람을 보았다. 위드번 부처는 어떤 사람들인가? 남편은 키가 큰 말라빠진 사나이였고, 아내는 쉴 사이 없이 지껄여대는 뚱뚱한 금발의 여자이다. 보기에 부자 같고, 연극에 관계되는 모든 일에 대단한 흥미를 품고 있는 모양이다. 실상 이 부부는 그 외의 어떤 화제도 입에 담지를 않았다. 내가 최근 영국에 없었던 탓으로 연극계의 사정에 몹시 어둡다는 사실을 알고나자 부인은 다시는 나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마지막 한 사람은 둥근 얼굴에 머리카락이 검은 청년이었는데, 카아롯타 아담즈의 동행이었다. 그 청년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 나는 그가 정상적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샴페인을 거듭 마심에 따라 그 사실은 더욱 뚜렷해졌다. 그는 마음이 몹시 상해 있는 것 같이 보였다. 식사의 전반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는데, 한 동안 지나자 아무래도 내가 만만하게 생각되었는지 사뭇 떠들어대는 것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말입니다. 그는 말했다. 그의 말이 분명치 않았던 부분은 생략하기로 하자.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는 혀꼬부라진 소리로 말했다. 자네한테 묻겠는데, 결국 만일 여자애를 잡고 - 그렇지, 결국 - 간섭하는 게지. 내가 그 여자한테 입에 담지 못할 말을 한 셈은 아니지. 그녀는 그런 종류의 여자가 아니라구. 암 - 청교도야 - 쳇 - 내 말뜻은 - 가만 있자, 무슨 말을 하고 있었지? 운이 나빴다는 얘기야. 나는 진정시키듯이 말했다. 그렇지. 쳇! 그렇다구. 난 이 축제소동 때문에 양복점 친구한테서 돈을 빌려야 했어. 아주 친절한 놈이라구요, 그 양복점 주인 녀석은 말씀야. 난 벌써 몇 년째 돈을 빌려쓰고 있지. 우리 사이엔 일종의 계약이 돼있죠. 여보게, 자네와 나. 나와 자네. 가만 있자, 그런데 당신은 대체 누구죠? 내 이름은 헤이스팅즈. 그럴 리가 없지. 자네가 스펜서 죤즈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구. 왜 그 때 오 파운드 빌렸쟎아? 내 말은 썩 닮은 얼굴이 있다는 거라구 - 그 말이라니까. 그는 슬픈 듯이 고개를 흔들더니 이윽고 갑자기 명랑해져서 다시금 샴페인을 마셨다. 이 청년에게는 어딘지 모르게 이끌리는 데가 있었다. 얼굴은 둥글고, 우스울 정도로 작은 검은 입수염은 사막 한가운데에 고립해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나는 카아롯타 아담즈가 그에게 아까부터 주의를 하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그녀는 그쪽을 힐끗 보고나서 돌아갈 채비를 했다. 여기까지 와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제인이 그녀에게 말했다. 나, 갑자기 생각난 일을 실행하는 걸 아주 좋아한다구요. 당신은? 어머. 미스 아담즈가 말했다. 저라면 무엇을 하기 전에 조심스럽게 계획을 세울 거라 생각해요. 그러면 - 나중에 귀찮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 걸요. 그녀의 태도에는 어렴풋한 불쾌감이 있었다. 제인이 생긋 웃었다. 그건 그럴는지도 몰라. 그건 어떻든 오늘밤의 당신 쇼우만큼 즐거웠던 일은 없군요. 미국처녀의 얼굴에 기쁜 기색이 감돌았다. 어머, 친절하신 말씀입니다. 정말 고마워요. 그녀는 진심으로 말했다. 그런 말씀을 해주시니 정말 기뻐요. 격려를 받을 필요가 있으니까요. 카아롯타. 검은 수염의 청년이 지루한듯 말했다. 제인 큰엄마하고 악수하고 인사를 드리고 나오라구. 그렇듯 취한 그가 곧장 걸어서 방문을 나선 것은 기적적인 일로 생각되었다. 카아롯타는 급히 청년의 뒤를 따랐다. 그것 참. 제인 윌킨슨이 말했다. 그 남자 말하는 품이라니. 난데없이 따라들어와서 날보고 제인 큰엄마라는 건 또 뭐야? 난 여지껏 그 사람이 있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구요. 이봐요, 제인. 위드번 부인이 말했다. 그런 사람 일에 신경 쓸 필요 없어요. 학생 때 옥스퍼어드 대학 연극부에서 가장 재능이 있었던 사람이라구요. 하지만 현재의 그 사람, 도저히 그렇게 보이질 않죠? 그건 그렇고 우리도 이제 그만 물러가야겠군요. 위드번 부처는 물러가고, 마아틴도 함께 돌아갔다. 그래서요, 포와로씨? 포와로는 부인을 향해 웃었다. 그래서요, 엣지웨어 부인? 제발 그런 식으로 부르지 말아 주셔요. 그런 이름은 잊어버리셔요! 만일 당신이 유럽에서 가장 무자비한 남성이 아니라면! 천만에요, 나는 무자비하지는 않습니다. 나는 포와로가 취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필경 샴페인을 과음한 것이 분명하다. 그럼 주인을 만나러 가주시는 거죠? 그에게 내가 바라는 대로 설득하시는 거죠? 만나뵈러 가겠습니다. 포와로는 조심스럽게 약속했다. 그리고 주인이 당신 얘기를 거절하면 - 보나마나 거절할 - 테지만 - 그러면 뭔가 현명한 방법을 가르쳐 주실 테죠? 당신은 영국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이라고들 하니까요, 포와로씨. 포와로는 간청하듯 한 손을 들었다. 마담, 나는 아무런 약속도 않습니다. 심리학상의 흥미에서 주인을 만나뵙도록 하지요. 바라시는 만큼 그를 심리분석해 주셔요. 하지만 제발 잘 해주셔요 - 나를 위해서. 나, 로맨스를 수중에 넣어야 하는 걸요. 그녀는 꿈을 꾸듯 덧붙였다. 홋호. 그 때의 세상사람들 소동을 생각해 보셔요. 얼마나들 놀라겠어요? 편지의 행방 이삼 일 후, 우리가 조반식탁에 앉아 있을 때 포와로는 겉봉을 뜯은 편지를 내게로 던져 주면서 말했다. 여보게, 그걸 어떻게 생각하나? 편지는 엣지웨어 경한테서 온 것으로서, 딱딱한 형식적인 말로 이튿날 11시에 만나겠다고 적혀 있었다. 나는 기절초풍을 했다. 그 때의 포와로의 말을 술자리에서의 농담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으므로 그가 실제로 약속을 이행하고자 행동에 옮기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던 탓이었다. 머리의 회전이 빠른 포와로는 내 마음을 이내 꿰뚫어보고는 말했다. 암, 여보게, 그건 샴페인 탓만이 아니었던 거라구. 난 진정이라곤 생각지 않았어. 그렇고 말구 - 암, 여부가 있나 - 자네는 속으로 생각한 거야. 딱하게도 영감쟁이, 파아티 분위기에 들떠 실행할 엄두도 없는 약속을 해버렸구먼, 이렇게 말일세. 하지만 여보게, 에르큐르 포와로의 약속은 신성합니다요. 마지막 말을 하면서 그는 점잔을 빼는 태도로 몸을 젖혔다. 알았어. 알았다구. 알아모셨나이다. 나는 서둘러 덧붙여 말했다. 그렇지만 난 이렇게 생각하지. 아마 자네의 판단력은 얼마간 - 뭐랄까 - 영향을 받았으리라고 말야. 내 판단력은 자네가 말하는 것처럼 영향을 받는 일이란 없지. 헤이스팅즈, 제아무리 상등품 강한 샴페인이라도, 제아무리 금발에다 매혹적인 여자라도 - 그 어떤 것도 에르큐르 포와로의 판단력에 영향을 줄 수는 없어. 그게 아니지. 여보게, 나는 흥미를 이끌린 게야 - 그뿐이라구. 제인 윌킨슨의 연애놀이에 말인가?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니지. 자네가 말하는 그녀의 연애놀이는 흔해빠진 문제야. 그것은 엄청 예쁜 여성이 반드시 겪게 되는 한 단계라구. 헤이스팅즈, 나를 이끄는 것은 이 사건의 심리분석이라네. 난 엣지웨어 경을 이 눈으로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환영하는 바라구. 헤이스팅즈, 나는 내 지능을 작용시키는 것을 언제나 즐기고 있단 말일세. 나는 또다시 그 작은 잿빛 뇌세포가 인용되는 것이 아닐까 은근히 겁이 났었는데, 그 말이 안나오고 보니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내일 열 한 시에 리젠트 게이트로 가게 되겠구먼? 우리들이라니? 포와로는 장난스럽게 나를 보았다. 나는 큰 소리로 말했다. 포와로! 설마하니 나를 따돌리고 갈 작정은 아닐 테지? 만일 이것이 범죄라면, 이상한 독살사건이라든가, 암살이라면 - 아아, 물론 자네 마음을 사로잡고도 남음이 있을 테지.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인간관계의 문제가 아닌가? 더 이상 여러 말 말라구. 나는 딱 잘라 말했다. 난 동행하고 말 테니까. 포와로는 조용히 웃었거니와, 마침 그 때 손님이 찾아왔다는 전갈이 왔다. 놀랍게도 방문객은 브라이언 마아틴이었다. 그는 대낮의 햇살 밑에서는 나이가 들어 보였다. 역시 미남자였지만, 거칠어진 그런 미모였다. 아무래도 약물중독 같다는 것이 나의 느낌이었다. 안녕하십니까, 포와로 선생? 그는 우리를 번갈아 보며 명랑한 투로 말했다. 당신도, 헤이스팅즈 대위도 좋은 시간에 조반을 드시는군요. 그건 그렇고 요즘 몹시 바쁘실 테죠? 포와로는 상냥하게 미소를 지었다. 아뇨. 목하 중요한 일은 거의 없습니다. 브라이언 마아틴은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십상 잘 됐군요. 저를 위해 일꺼리를 맡아 주시겠습니까? 포와로는 청년을 주의깊게 관찰하면서 의자를 가리켰다. 청년은 거기에 앉았다. 나는 포와로 옆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마아틴은 우리와 마주보고 앉은 것이 되었다. 포와로가 여전히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경위를 들려 주실까요? 마아틴은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거북스러운 것 같았다. 난처하게도 과히 말씀드릴 게 없답니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고 더듬거렸다. 좀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럴 것이 문제는 모두 미국에서 비롯되었으니까요. 미국에서요? 그래서요? 내가 그 일에 비로소 주의를 이끌린 것은 대수롭쟎은 이유에서였습니다. 실은 기차로 여행을 하고 있는 도중 어떤 남자를 만났지요. 못생긴 작은 사나이였는데, 수염을 말끔히 밀고, 안경을 끼고 있었고, 금이빨이였어요. 아아! 금이빨이라? 그렇죠. 실상 그게 문제의 요점입니다. 포와로는 거듭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계속하시지요. 나는 이내 그 사나이의 존재를 깨달았죠. 그런데 나는 그 때 뉴요크로 가고 있었지요. 육개월 뒤, 나는 로스엔젤리스에 있었는데, 다시금 그 남자를 봤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라면 문제가 안됩니다. 계속하시오. 한 달 뒤 시애틀에 볼일이 있어서 갔는데, 거기서 또 그 사나이를 만났단 말씀입니다. 단 이번엔 턱수염을 달고 있더군요. 분명히 묘하군요. 그렇죠? 물론 그 때까지도 그 사실을 대단하게 여기지는 않았었는데, 다시금 로스엔젤리스에서 그 사람을 만나고, 시카고우에선 입수염이 난 그를 만나고 보니 - 그렇죠, 아무래도 심상치 않게 생각더군요. 당연한 일이군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 그래요, 의심할 여지가 없죠. 나는 소위 말하는 미행을 당하고 있었던 겝니다. 매우 분명하군요. 그렇죠? 그 후 나는 그 사실을 확인해 봤습니다. 내가 어디를 가건 반드시 주위에 그 미행자가 다른 모습으로 붙어다니고 있더란 말씀입니다. 다행히 금이빨 덕분으로 항상 가려낼 수는 있었습니다마는. 아아! 그 금이빨은 매우 다행한 우연인데요. 그건 그렇습니다. 대체 누가 무슨 목적으로 그렇듯 끈질기게 당신을 미행하고 있는지, 전혀 짐작이 안간다는 말씀인가요? 도무지 짐작 못할 일입니다. 적어도 - 계속하시지요. 포와로는 격려하듯 말했다. 한 가지 생각나는 게 있기는 있습니다. 마아틴은 눈살을 찌푸리며 천천히 말했다. 내 일방적인 추측일 뿐이니까 그리 아십쇼. 추측도 때로는 매우 도움이 되는 수가 있지요. 마아틴은 다시금 천천히 말했다. 그것은 약 이 년 전에 런던에서 일어난 어떤 일과 관계가 있습니다. 대수로운 일은 못 되지만, 야릇하고 잊혀질 수 없는 일이었죠. 가끔 이상히 생각하고 고개를 갸웃하곤 하지요. 다만 그 무렵 그 일에 대한 해석을 내리지 못했던 탓으로 이번 미행이 혹시 그 일과 연관이 되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이 자꾸 드는군요 - 그렇기는 하지만 왜그런지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나는 알 수 있을는지도 모르죠. 그렇죠. 하지만 실은 - 마아틴은 다시금 더듬거렸다. 난처하게도 그 일에 대해 말씀드릴 수가 없군요 - 현재로서는 그렇다는 겝니다. 며칠 지나면 아마 말씀드릴 수 있으리라 봅니다마는. 그는 포와로의 매우 궁금한 것 같은 시선에 자극되어 하는 수 없는 듯 될 대로 되라는 듯이 말을 계속했다. 실은 - 거기엔 어떤 처녀가 관계돼 있지요. 허어, 딴은! 영국처녀겠군요? 그렇죠. 적어도 - 그렇지만 그걸 어떻게 아셨나요? 지극히 간단한 일입니다. 당신은 지금은 말할 수 없지만, 며칠 지나면 말할 수 있게 되리라 기대하고 있소이다. 결국 당신은 그 처녀의 승낙을 얻을 셈인 겝니다. 따라서 그녀는 영국에 있다, 이렇게 되지요. 하긴 그렇군요. 그렇데 포와로씨, 만일 그녀의 승낙을 얻으면, 이 문제를 맡아 조사해 주시겠습니까? 포와로는 잠시 생각하고 있더니 그렇게 하지요. 그리고는 이윽고 물었다. 당신을 미행하고 있는 그 남자 말씀인데, 몇 살 쯤 돼보이던가요? 젊은 녀석이었죠. 서른 살 정도였으니까요. 허어! 그것 참. 맞아, 그래야 훨씬 재미 있어지지. 나는 그를 보았다. 마아틴도 바라보았다. 마아틴은 나를 향해 묻듯이 눈을 추켜떴다.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암, 그래야지. 포와로는 여전히 중얼거렸다. 그래야 매사가 훨씬 재미 있어질 수밖에. 마아틴은 포와로의 이상한 말에 멍청해져 다음 말을 잊어버린 것 같았다. 그러더니 그는 전혀 다른 말을 지껄이기 시작했다. 지난번 밤엔 재미 있는 파아티였죠? 제인 윌킨슨은 보기드문 고집장이 여자지요. 그녀는 단순한 머리의 소유자올시다. 포와로는 미소지으며 말했다. 한 때에 하나 밖에 안보이지요. 그런데도 훌륭히 세상에서 통하단 말씀입니다. 마아틴이 알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모두들 그걸 어떻게 참고 넘기는지 까닭을 모르겠단 말야. 누구건 아름다운 여성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참게 마련이지요, 마아틴씨. 하긴 그렇기도 합니다만. 마아틴은 순순히 사실을 인정했다. 그래도 이따금 몹시 화가 나지요. 하긴 나는 제인을 아주 좋아합니다. 단 미리 말씀드리거니와, 어떤 뜻에서 그녀는 모자라는 데가 있다고 생각하죠. 천만에. 그녀는 매우 영리하다고 생각하는데요. 내 말은 반드시 그런 뜻만은 아니죠. 그녀는 자신의 이해관계는 분명히 가려낼 줄 압니다. 사업상의 빈 틈 없는 능력은 충분하죠. 그런 뜻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말씀입니다. 아, 도덕적이라? 그녀는 소위 도덕을 초월해 있지요. 그녀에게 있어 선악은 존재치 않습니다. 아아! 지난번 파아티 때 당신이 그런 말을 한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만일 제인이 범죄를 일으켰다고 하더라도 난 아마 손톱만큼도 놀라지 않을 걸요. 그럴 테죠. 당신은 그녀와 자주 공연하고 있으니까 잘 알 겝니다. 맞습니다. 나는 그녀의 속속들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요. 그녀가 지극히 간단히 살인을 하는 장면을 상상할 수도 있습니다. 허어! 그녀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성격인 모양이죠? 천만에. 아니죠. 그녀는 냉정하기 짝이 없습니다. 결국 만일 누군가가 방해가 되면 그녀는 그를 간단히 처치해 버릴 걸요 - 아무 분별도 없이요. 그리고 그 누구도 그녀를 비난하지는 못합니다 - 도덕적으로 라는 뜻입니다. 그의 마지막 말에는 이제까지에는 없었던 자포자기한 데가 있었다. 당신은 그녀가 하리라 보나요 - 살인을? 포와로는 그를 뚫어지게 보았다. 마아틴은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물론이죠. 아마 불원 내 말이 생각나실 겝니다 - 그럴 것이 나는 그녀를 모조리 알고 있으니까요. 그녀는 마치 아침코오피를 마시듯 손쉽게 사람을 죽일 걸요. 난 진정입니다. 포와로 선생. 그는 아까부터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그는 잠시 눈살을 찌푸리고 서 있더니 이윽고 달라진 투로 말했다. 방금 말씀드린 부탁건에 대해선 이삼 일 안에 알려드리겠습니다. 포와로 선생, 맡아 주시겠죠? 포와로는 대답을 않고 잠시 그를 보았다. 그러더니 말했다. 좋소이다. 맡지요. 보기에 - 썩 재미 있는 사건이니까요. 그가 마지막 말을 한 투에는 어딘지 기이한 데가 있었다. 마아틴이 돌아가기가 무섭게 나는 좀이 쑤셔서 물었다. 포와로, 미행자의 나이가 그렇게 문제가 되나? 도대체 자네의 그 이상한 말투는 무엇을 뜻하는 거야? 모르나? 정말 딱하구먼, 헤이스팅즈! 그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는 반문했다. 전체로서 지금의 면회를 어떻게 생각하나? 판단의 재료가 너무 적구먼. 좀더 알아야 할 것 같은데? 더 알아 보지 않더라도 알 수 있을 텐데 그래? 그 순간 전화가 울렸으므로 나는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 사실을 인정치 않아도 되었다. 나는 수화기를 들었다. 여자의 목소리가 요령 있는 투로 말을 걸어왔다. 이곳은 엣지웨어 경의 비서입니다. 실례의 말씀입니다만, 엣지웨어 경께서는 내일아침에 있을 포와로씨와의 면회약속을 부득이 취소하지 않을 수 없게 되셨습니다. 내일 갑자기 빠리에 가실 일이 생겨서 그럽니다. 만약 형편이 닿으신다면 오늘 낮 열 두 시 십오분에서 십분간 포와로씨를 만나시겠답니다. 나는 포와로에게 그 뜻을 전달했다. 좋고말구, 오늘 가기로 하세. 나는 그 말을 송화기를 향해 되풀이했다. 좋습니다. 명확하고 사무적인 목소리가 또렷하게 말했다. 그럼 오늘 낮 열 두 시 십오분에. 상대방은 전화를 끊었다. 나는 포와로를 따라 기대에 가슴을 사뭇 두근거리면서 리젠트 게이트에 있는 엣지웨어 경의 저택에 도착했다. 저택은 으리으리했다 - 우람스럽고 아름다왔다. 그러나 약간 음산한 느낌이 들었다. 도어는 이내 열려졌는데, 그것을 연 것은 건물의 겉보기에 어울리는 백발이 성성한 집사는 아니었다. 정반대로 좀체로 보기드문 잘 생긴 청년이다. 키가 늘씬하고 금발에 헤르메스나 아폴론의 조각 모델이 될 만한 미남이었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용모에도 불구하고, 청년의 목소리는 어딘지 여성적인 것이 나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또한 묘하게도 그는 누군가를 닮은 것처럼 생각되었다 - 그것도 내가 최근에 만나 본 인물이다 - 그러나 그것이 누구였는지는 생각이 나지를 않았다. 청년은 우리를 안내하여 호올을 빠져 층계를 지나 안쪽 도어께로 갔다. 안내된 방은 서재 같은 곳이었다. 벽에는 책이 줄줄이 꽂혀 있고, 가구는 거무틱틱하고 육중해 보였으나 훌륭했다. 의자는 어마어마할 정도로 크고 해묵은 것이었으나 앉기에 과히 편하지는 않았다. 일어서서 우리를 맞은 엣지웨어 경은 50세쯤 되는 키가 큰 사나이였다. 검은 머리에는 잿빛이 섞여 있고 얼굴은 갸름했으며, 사람을 없신여기는 것 같은 입매를 하고 있었다.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고, 초조한 것 같았다. 그의 태도는 답답하고 형식적이었다. 에르큐르 포와로씨군요? 헤이스팅즈 대위시죠? 앉으시지요. 우리는 자리에 앉았다. 방은 써늘했다. 하나밖에 없는 들창으로는 거의 햇살이 들어오지를 않았다. 엣지웨어 경은 한 통의 편지를 들고 있었는데, 그 필적은 포와로의 것이었다. 물론 당신 성함은 익히 알고 있습니다, 포와로씨. 모르는 사람이 있을 리 없죠. 포와로는 이 의례적인 말에 고개를 숙여 보였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당신의 역할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를 않는군요. 당신이 나를 만나시려는 까닭은 - 그는 잠시 말을 끊었다. - 아내의 대리로서인가요? 경은 아내라는 말을 매우 특이한 투로 했다 - 마치 그 말을 입에 담는 것이 무척이나 힘이 드는 것처럼. 그렇습니다. 나의 벗이 그 말에 대꾸했다. 당신은 - 범죄전문의 사립탐정으로 알고 있었는데요, 포와로씨? 나는 여러 문제를 다룹니다, 엣지웨어 경. 물론 범죄문제도 있습니다. 그밖의 문제도 있구요. 딴은. 그래 이번 문제는 무엇인가요? 경의 말에는 비웃는 투가 역력히 나타났다. 포와로는 그런 것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나는 엣지웨어 부인의 대리로서 왔습니다. 아시다시피 부인께서는 - 이혼을 바라고 계십니다. 그건 잘 알고 있소이다. 엣지웨어 경은 냉정하게 말했다. 하지만 아무 것도 할 말은 없소. 그럼 거부하시는 건가요? 거부한다? 천만에! 포와로는 이런 대답은 전혀 짐작 못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그가 완전히 의표를 찔린 것을 거의 본 적이 없었는데, 이 경우는 예외였다. 그의 태도는 익살스러웠다. 입을 멍하니 벌리고, 두 손을 늘어뜨린 채였다. 마치 만화신문의 만화와 똑같지 않은가? 뭐라구요? 그는 어이없이 외쳤다. 그건 무슨 뜻인가요? 거절하시는 게 아닌가요? 당신이 놀라는 까닭을 모르겠군요, 포와로씨. 그렇다면 결국 부인을 이혼하실 셈입니까? 물론이요. 아내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게요. 나는 그녀한테 편지를 보내 분명히 그렇게 말해 줬으니까. 편지를 보내 승낙하셨다? 그렇소. 육개월 전에. 하지만 모르겠군요. 전혀 영문을 알 수 없는 걸요. 엣지웨어 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당신이 이혼에 반대하신다고 듣고 있었는데요? 포와로씨, 내가 첫 번째 아내를 이혼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요. 그렇게 하는 것은 양심이 용서치 않았소. 두 번째 결혼이 잘못이었음은 솔직하게 인정하리다. 아내가 이혼을 요구해왔을 때 난 딱잡아 거절했소. 육개월 전 그녀는 또 편지를 보내와 이혼을 허락해 달라고 했소. 그 무렵엔 내 생각도 많이 달라져 있었지. 그래서 허리우드에 있는 그녀한테 편지를 보내, 그렇게 말해 준 거요. 그런데 그녀가 뭣 때문에 당신을 보냈는지, 도무지 모를 일이요. 필시 금전문제일 테죠? 마지막 말을 할 때, 경은 또다시 입술을 비웃듯이 오무렸다. 매우 기묘하군요. 포와로가 묘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매우 기묘합니다. 거기엔 무언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점이 있습니다. 금전문제라면. 엣지웨어 경은 덧붙였다. 나는 그 어떤 교섭도 할 용의가 없소이다. 아내는 멋대로 나를 버린 거요. 그녀가 내게서 단 한 푼이라도 받아낼 이유는 없는 것이고, 그녀 역시 아마 받지는 못할 걸요. 금전문제에 대해서는 말씀드릴 게 없습니다. 엣지웨어 경은 고개를 쳐들었다. 아마 제인은 부자하고 결혼할 모양이죠? 그는 또다시 비꼬아 중얼거렸다. 여기엔 무언가 이해하기 힘든 점이 있습니다. 포와로는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어리둥절한 빛이 떠올랐고, 생각하려는 노력으로 주름이 잔뜩 잡혔다. 엣지웨어 부인은 변호사를 통해 수차 교섭을 했다고 하시던데요? 하고말구요. 엣지웨어 경은 쌀쌀하게 말했다. 영국 변호사, 미국 변호사, 가장 낮은 무뢰배 같은 자를 포함해서 온갖 종류의 변호사가 찾아왔었소.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제 말한 것처럼 그녀 자신이 편지를 보내왔소이다. 당신은 그 때까지는 거절하셨단 말씀이죠? 그렇소. 그런데 부인의 편지를 받고 생각을 바꾸셨다? 왜 바꾸셨나요, 엣지웨어 경? 그 편지에 적혀 있던 어떤 것 때문은 아니었소. 경은 날카롭게 말했다. 어쩌다가 내 생각이 달라져 있었다, 그뿐이요. 어떤 특수한 사정이 있으셔서 생각을 바꾸셨나요, 엣지웨어 경? 그건 결국 나만의 문제요, 포와로 선생. 그 문제에 대해 당신에게 말할 의무는 없소. 그녀와의 관계를 끊는 것이 이익이라는 사실을 차츰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경은 이야기는 이제 끝났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섰는데, 우리가 작별인사를 하자 그의 태도는 얼마간 누그러졌다. 약속을 변경시킨 점을 용서하시오. 내일 빠리로 떠나야 하기 때문에. 천만의 말씀을 - 실은 미술품매매가 있소이다. 난 어떤 작은 조상에 눈독을 들이고 있소 - 그 나름대로 기막힌 물건이요 - 하긴 좀 괴기한 성질의 것인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나는 괴기한 것을 좋아하는 성미라놔서. 옛날부터 그랬소. 괴기취미를 갖고 있는 거죠. 경은 다시금 그 기묘한 미소를 띄었다. 그는 매우 정중하게 작별인사를 나누면서 벨을 눌렀다. 우리는 방 밖으로 나왔다. 그리이스의 신상 같은 집사가 호올에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서재의 도어를 닫으면서 내실을 힐끗 보았다. 그리고 자칫하면 소리칠 뻔했다. 그 부드럽게 미소를 짓고 있던 얼굴은 표정을 완전히 바꾸고 있었다. 입술은 뒤틀려올라가 이빨이 드러나 있었고, 눈은 격렬한 노여움에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엇다. 나는 이제는 두 아내가 엣지웨어 경에게서 사라져간 사실을 조금도 이상히 여기지는 않았다. 내가 놀란 것은 그의 무쇠 같은 자기억제였다. 우리와 만나고 있는 사이, 줄곧 그렇듯 엄한 자기억제와 냉정한 정중함을 유지하고 있었다니! 우리가 현관에 닿았을 때, 그 오른쪽 방의 도어가 열렸다. 한 처녀가 그 방에서 나오더니 우리를 보고 뒤로 물러섰다. 키가 큰 가냘픈 몸매의 처녀였고, 머리는 검었으며 얼굴은 창백했다. 놀라움을 띈 검은 눈이 순간 내 눈과 마주쳤다. 이윽고 그녀는 그림자처럼 방 안으로 들어가 도어를 닫았다. 우리는 이내 행길로 나왔다. 포와로는 택시를 세웠다. 차를 타자 그는 운전사에게 사보이 호텔로 가도록 일렀다. 여보게, 헤이스팅즈. 그는 눈을 깜짝거리며 말했다. 우리의 면회는 짐작대로는 되질 않았단 말야. 맞아. 엣지웨어 경은 상식을 완전히 벗어난 인물이더군. 나는 서재의 도어를 닫을 때 본 일을 그에게 소상히 알렸다. 그는 천천히 생각하면서 고개를 거듭 끄덕였다. 내 짐작으로는 그런 광기의 경계에까지 와있다고 보는군. 아마 그는 많은 나쁜 버릇에 익숙해져 있고, 그 냉담한 표정 밑엔 틀림없이 뿌리깊은 잔학성이 숨어 있을 거란 말야. 포와로, 아까 그 처녀 봤나? 머리가 검고, 얼굴이 창백한 아가씨 말야. 아아, 봤지. 묘하게 겁을 집어먹고 있었고, 불행해 보이는 아가씨였어. 그의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다. 누구일까? 아마 그의 딸일 테지. 분명히 겁먹은 태도였어. 나는 천천히 말했다. 그 집은 젊은 여자가 살기엔 좀 음산한 곳이야. 응, 그건 사실이야. 그건 어떻든 자아! 닿았네, 여보게. 이 기쁜 소식을 어떤 식으로 마님한테 전한다? 제인은 마침 방에 있었다. 도어를 연 것은 안경을 낀 잿빛머리를 말끔히 간추린 중년여자였다. 제인의 허스키 보이스가 침실에서 그녀를 불렀다. 누구? 포와로 선생야, 에리스? 앉으시라고 해요. 내 곧 누더기를 걸치고 갈 테니까. 제인 윌킨슨이 말하는 누더기란 몸을 감싸기는커녕 오히려 훤히 비추어 보이는 네그리제였다. 그녀는 성급하게 들어오면서 말했다. 그래 어떻게 됐나요? 포와로는 일어서서 그녀의 손 위에 몸을 굽혔다. 마담, 순풍에 돛을 단 격이올시다. 어머 - 그게 무슨 뜻이죠? 엣지웨어 경은 이혼에 전면적으로 찬성입니다. 뭐라구요? 그녀의 놀라움은 진정인지, 아니면 그녀는 진짜 명배우인가? 포와로씨! 기막혀요! 이렇게 속히 그런 식으로! 어머나, 당신은 천재군요! 대체 어떤 식으로 매듭을 지셨길래요? 마담, 이것은 내가 이룬 것은 아니니까 칭찬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주인은 육개월 전에 당신한테 편지를 보내 이혼에 찬성하셨습니다. 뭐라구요? 내게 편지를 보내요? 어디로요? 당신이 허리우드에 계실 때라고 생각합니다. 안받았어요. 아마 공중에 뜬 거겠죠. 그런데 그 동안, 자그마치 몇 달을 그 생각만 하고 조바심을 하고 있었다니? 그녀는 어린애처럼 기뻐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더니 이내 불안스러운 표정으로 변했다. 저어, 포와로씨, 나하고 마아튼 공작 관계를 밝히시진 않았을 테죠? 네, 안심하십쇼. 나는 조심스러운 사람이올시다. 입 밖에 내선 좋지 않을 테죠? 그럼요. 남편은 심술궂은 묘한 성격인 걸요. 그 사람은 내가 마아튼하고 결혼하는 것을 아마 일종의 출세라고 느낄 걸요 - 그렇게 되면 의당 그 실현을 방해하려 들 거에요. 그렇지만 상대방이 영화배우가 되면 문제는 달라지죠. 그건 어떻든 간에 정말 놀랐어요. 그렇고말구요. 에리스, 당신은 놀라지 않았어? 나는 아까부터 눈여겨 보고 있었거니와, 가정부는 침실을 드나들면서 의자에 던져져 있는 울긋불긋한 갖가지 외출복을 치우고 있었다. 그녀는 우리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눈치였다. 제인이 완전히 신용하고 있는 여자인 모양이다. 네, 옳은 말씀이에요, 부인. 나리께서는 그 동안 무척 달라지신 모양이죠? 가정부는 악의를 담아 말했다. 맞아. 그런 모양야. 당신으로선 주인의 태도가 미심쩍다, 이상하다고 생각하시는군요? 포와로가 윌킨슨에게 물었다. 그럼요. 정말 귀신 곡할 노릇이에요. 하지만 이제는 그런 걸 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따질 필요는 없는 것이죠. 당신은 그런 것에 관심이 없으신지도 모르지만, 나는 있단 말씀입니다, 마담. 제인은 그 말에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소중한 것은 내가 이제 자유의 몸이 됐다는 사실이에요 - 마침내. 아직이올시다, 마담. 그녀는 따분한 듯이 포와로를 보았다. 어머, 불원 자유로운 몸이 되는 걸요. 그게 그거죠. 포와로는 같다고는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공작은 빠리에 있어요. 제인 윌킨슨은 말했다. 곧 전보를 쳐야지. 아아 - 그의 늙은 어머님이 보나마나 쌍지팡이를 들고 나올걸! 포와로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담, 만사가 뜻대로 이루어져 잘 됐습니다. 안녕히 가셔요, 포와로씨. 그리고 정말 고마왔어요. 나는 아무 것도 한 게 없습니다. 아뭏든 내게 좋은 기별을 가져다 주셨는 걸요. 포와로씨,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제 끝났구먼. 그녀의 방을 나오자 포와로가 말했다. 한 가지 밖엔 생각지를 않는단 말야 - 자기 자신의 일뿐야! 그녀는 그 편지가 왜 중간에서 없어졌는지 전혀 생각해 볼 꿈도 안꾸고 있고, 아무런 호기심도 품질 않는단 말이거던. 알겠지 헤이스팅즈? 그녀는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선 믿을 수 없을 만큼 빈 틈이 없지만, 지성이라곤 손톱만큼도 없다, 이걸세. 암, 너그러운 하느님이라 할지라도 전부를 줄 수는 없는 거야. 우리가 개울을 따라 걷기 시작했을 때 그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 편지 말인데. 그건 내 흥미를 제법 이끄는군. 그 문제엔 네 가지 해석이 있다네, 여보게. 네 가지라구? 그렇지. 첫째는 우체국에서 없어졌다는 해석이야. 실상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있으니까. 주소가 틀리다면 옛날에 엣지웨어 경한테 되돌아갔을 거란 말야. 두 번째 해석은 그 아름다운 부인이 편지를 안받았다는 게 거짓말이라는 게지. 물론 그럴 가능성은 크다구. 하지만 어째서 그게 그녀의 이익이 되는지 전혀 알 수 없구먼. 만일 남편이 이혼을 승낙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그녀는 뭣 때문에 새삼스럽게 나를 그에게 보내 이혼승낙을 받도록 부탁했느냐? 그건 아무런 뜻이 없지. 세 번째 해석은 엣지웨어 경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거야. 그리고 만약에 누군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 부인보다는 남편쪽일 가능성이 크다고 할 밖에. 하지만 그런 거짓말에 별 뜻이 있어 보이진 않는군. 왜 육개월 전에 편지를 보냈다는 거짓말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었느냐? 내 부탁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될 터인데 말야. 그렇지, 나는 그가 편지를 보냈다고 생각하고 싶어. 물론 그가 갑자기 생각을 고친 동기는 알 수 없지만. 이리하여 네 번째 해석이 나오네 - 누군가가 그 편지를 없애 버렸다는 해석이지. 그렇다면 말일세, 헤이스팅즈, 여기서 매우 흥미깊은 추리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되네. 그 편지는 발신지를 지나 수신지에서 - 미국이나 영국에서 - 없어졌다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지. 누가 그 편지를 없애 버렸건 간에 그 인간은 그들의 이혼을 바라지 않았던 게야. 헤이스팅즈, 나는 이 사건의 배후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어 견딜 수 없네. 무언가가 있어 - 틀림없이 무언가가 있을 거야. 그는 말을 끊더니 이윽고 서서히 덧붙였다. 나는 그 무엇인가를 이제 막 들여다보게 됐을 뿐이지. 제1의 살인 다음날은 6월 30일이었다. 아침 9시 반 경, 재프 경부가 난데없이 포와로를 찾아왔다. 이 런던경시청의 경부와 알게 된 지도 벌써 몇 해가 된다. 그는 우리 두 사람에게 진정어린 인사를 했다. 마침 조반을 시작하시는 중이군요? 포와로는 웃으면서 말했다. 이렇게 식전아침부터 찾아오시다니, 대체 웬일인가요, 친애하는 재프씨? 식전아침이라뇨? - 벌써 두 시간이나 잔뜩 일을 하고 왔는데요. 당신을 만나러 온 용건은 - 그래요, 살인 때문이죠. 살인이라구요? 재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엣지웨어 경이 어젯밤 리젠트 게이트 자택에서 살해된 사건이 일어났지요. 부인의 손에 목덜미를 찔린 겝니다. 부인의 손에? 나는 깜짝 놀라 외쳤다. 그렇죠. 그 여배우 말씀입니다. 유명한 제인 윌킨슨이올시다. 삼 년 전에 결혼했죠. 결혼은 실패였어요. 그녀가 남자를 버린 겝니다. 포와로는 어리벙벙한 모양이었으며, 진지한 얼굴이었다. 어째서 범인이 그녀라고 생각하죠? 생각하고 자시고가 없죠. 모습을 보이고 있거던요. 게다가 숨기는 체하지도 않았단 말씀입니다. 그녀는 택시에서 내려 - 택시에서? 나는 그날밤 사보이 호텔에서 그녀가 한 말을 되생각하면서 나도 모르게 되풀이했다. - 벨을 울려 엣지웨어 경한테 면회를 요청했죠. 그 때가 열 시였습니다. 집사가 알아보고 오겠다고 했어요. 어머나! 그녀는 차분하게 말했다는 겝니다. 그럴 필요 없어요. 난 엣지웨어 부인이라구요. 주인은 서재에 있을 테죠? 그러고는 서재로 가서 안으로 들어가 방문을 닫았다는군요. 그래서 집사는 좀 이상하기는 하지만, 별 일 없을 거라 생각하곤 아래층으로 내려갔죠. 십분쯤 지나 현관문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그렇다면 부인은 금새 볼일을 본 모양이군, 이렇게 생각했고, 여느때처럼 열 한 시 경에 문단속을 했죠. 서재의 도어를 열어 봤지만, 캄캄했기 때문에 주인은 침실로 물러간 모양이라 생각했다는 겝니다. 오늘아침에서야 가정부가 시체를 발견했죠. 목덜미, 머리가 나기 시작하는 부분을 예리한 칼에 찔렸더군요. 외침소리는 안들렸었나? 아무 소리도 안들렸단 말인가요? 안들렸답니다. 서재는 족히 방음이 되는 도어가 달려 있으니까요. 게다가 밖엔 자동차도 달리고 있죠. 그런 식으로 찔리고 보면, 순식간에 죽을 걸요. 그렇다면 어디를 노리면 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고 할 수 있겠구먼. 말하자면 의학적인 지식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 된단 말야. 글세 - 딴은 그렇습니다. 그 점에 관한 한, 그녀에게 유리합니다. 하지만 십중팔구는 우연이었을 걸요. 그녀는 재수좋게 급소를 찌른 것이죠. 그럴 것이 기막히게 운이 좋은 인간이 있으니까요. 그 결과 그녀가 교수형에 처해진다면 과히 운이 좋은 것도 아니구먼. 그렇죠. 그녀는 얼간이였어요 - 그런 식으로 버젓이 집 안으로 들어가서 이름을 내세우곤 찔렀으니까. 정말 기묘한 일이군요. 아마 애초부터 살의는 없었을 테죠. 뜻하지 않은 부부싸움 끝에 그만 흥분해버려서 펜나이프로 찔렀다, 그쯤 될 걸요. 흉기는 펜나이프였나요? 그런 종류일 거라는 겝니다. 의사의 말이지요. 흉기는 무엇이었건, 그녀는 그걸 가져가 버렸습니다. 현장엔 없었죠. 포와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아냐, 아니지. 여보슈, 그런 상황일 리가 없을 게요. 나는 그 부인을 알고 있소이다. 그녀가 그렇듯 성급하고 충동적인 행동을 하다니, 도무지 까닭을 모르겠군. 게다가 펜나이프를 지니고 다니다니, 이건 어불성설이요. 그녀를 알고 있단 말씀이군요, 포와로씨? 그렇죠. 알고 있지요. 포와로는 그 이상은 말하지 않았다. 그는 조간쪽으로 손을 뻗쳤다. 그의 눈은 신문을 훑고 있었는데, 마음은 어떤 의문에 집중되고 있었다. 그는 이윽고 눈을 들고 말했다. 매사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데, 왜 나한테 왔소? 당신이 어제 리젠트 게이트에 간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죠. 딴은 그랬었구먼. 그 말을 들은 순간 난 생각했죠. 아무래도 무언가 있다 이렇게 말씀입니다. 엣지웨어 경이 포와로씨를 불렀다, 왜 그랬을까? 경은 무엇을 의심하고 있었느냐?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었느냐? 뭔가 결정적인 처치를 취하기 전에 포와로씨를 한 번 만나보는 게 좋겠다, 이렇게 말입니다. 결정적인 처치란 어떤 뜻인가요? 부인을 체포하는 일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아직 그녀를 못만났나요? 천만에. 벌써 만났죠. 기별을 받자 먼저 사보이 호텔로 갔었지요. 그녀가 꿍꿍이를 부리기 전에 말씀입니다. 부인은 뭐라고 하던가요? 히스테리를 일으켰죠 - 그게 그녀가 한 짓입니다. 비틀거리는가 싶으면, 두 손을 벌리고는 마루바닥에 꿇어엎드리더군요.그렇죠! 기막힌 연기였죠 - 아주 멋진 쇼우였어요. 그러자 포와로가 부드럽게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은 그 히스테리가 진짜가 아니라는 인상을 품었다? 재프는 천스러운 윙크를 해보였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죠? 난 그 따위 쇼우엔 속지 않죠. 그녀는 기절하지 않았죠 - 암, 연극을 하고 있었을 뿐이죠. 그녀가 연기를 즐기고 있었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럴 테죠. 포와로는 생각하는 얼굴로 말했다. 그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죠. 그리곤 어떻게 했나요? 그녀는 제 정신이 들었죠 - 결국 정신을 차린 체한 겝니다. 그리고 한탄하는 외마디소리를 냈죠 - 신음소리도 냈구요. 그 집 못생긴 가정부가 안정제를 먹여 주자, 잠시 후 기운을 차리곤 변호사를 불러달라는 거에요. 변호사하고 상의하기 전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는 겝니다. 히스테리를 일으켰나 싶으면 이내 변호사에요. 그래 이게 자연스러운 행동이라 할 수 있습니까? 이번 경우엔 매우 자연스럽다고 생각되는데요. 포와로는 차분하게 말했다. 그녀가 유죄이고, 자기 자신 알고 있다는 뜻인가요? 천만에. 그녀의 성격으로 미루어 자연스럽다는 겝니다. 그녀는 우선 느닷없이 남편의 죽음을 알게 된 아내의 역할을 어떻게 나타내 보이느냐에 대해 자신의 해석을 내린다, 그리고는 연극본능을 만족시킨 뒤 현실적인 문제로 돌아와 변호사를 부른다, 그것은 그녀가 타고난 배우라는 사실을 나타내는 데 불과하지요. 천만에요. 그녀가 무죄일 까닭이 없죠. 그건 분명합니다. 당신은 대단히 확신을 품고 있군요? 그야 물론이죠. 하지만 되도록 많은 사실을 알고 싶은 겝니다. 이 사건은 굉장한 센세이션을 일으킬 걸요. 신문들은 살판났다고 떠들어댈 테구요. 신문이 어떤 것인지는 잘 아실 줄 믿습니다만. 신문이라는 말이 났으니 하는 말인데. 포와로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이걸 어떻게 생각하나요? 당신은 조간을 과히 눈여겨 읽질 않은 모양이죠? 그는 테이블로 몸을 굽히면서 신문의 한 귀퉁이를 가리켰다. 재프는 그 기사를 소리내어 읽었다. 몬타규 코우너 경은 어젯밤 치즈위크 개울가 자택에서 성대한 만찬회를 베풀었다. 이 파아티에는 유명인사들이 많이 참석했다. 출석자 중에는 죠오지 듀 휙스 경 부처, 유명한 연극평론가 제임스 브랜트씨, 영화제 작자 오스카 하머휄트 경, 미스 제인 윌킨슨(엣지웨어 부인) 그 밖의 사람이 있었다. 순간 재프는 멍청한 것 같았다. 그러나 이내 기운을 되찾고는 말했다. 그게 무슨 상관이 있나요? 이 기사는 미리 신문사에 보내진 것이라구요. 이제 곧 드러날 걸요. 부인이 참석을 안했거나, 뒤늦게 - 열 한 시쯤에 왔거나 - 그런 사실이 말입니다. 아, 신문에 실려 있다고 그걸 무조건 진실이라 믿어선 곤란하죠. 하긴 그렇군요. 난 그저 이상하다고 생각한 겝니다. 그뿐이올시다. 이런 우연의 일치는 흔히 일어나게 마련이죠. 그건 어찌됐건 포와로씨, 가르쳐 주지 않겠습니까? 왜 엣지웨어 경이 당신을 불렀는지 말해 주시죠. 포와로는 고개를 흔들었다. 엣지웨어 경이 나를 부른 게 아니외다. 내쪽에서 그를 만나러 간 거요. 헤에? 아니, 뭣 때문에요? 포와로는 잠시 망설였다. 그러더니 천천히 말했다. 당신 질문에 대답해드리리다. 하지만 내 나름의 방법으로 하고 싶소. 재프는 신음소리를 냈다. 포와로는 가끔 사람을 몹시 감질나게 만드는 일이 있었던 것이다. 부탁을 드리고 싶은데. 포와로는 다시금 말했다. 어떤 사람한테 전화를 걸어, 이리 오도록 했으면 싶군요. 그게 누굽니까? 브라이언 마아틴씨입니다. 영화배우군요? 그하고 무슨 관계가 있죠? 내 생각으로는 그는 뭔가 흥미 있는 얘기를 - 그리고 아마 도움이 될 얘기를 - 해줄겝니다. 헤이스팅즈, 전화를 걸어 주겠나? 나는 전화번호부를 뒤졌다. 배우는 센트 제임스 공원 근처 커다란 빌딩에 세들어 살고 있었다. 얼마 후 브라이언 마아틴의 약간 졸린 것 같은 목소리가 응답했다. 여보세요 - 누구십니까? 뭐라고 말하면 되나? 나는 수화기를 손으로 막고 물었다. 이렇게 말하라구. 포와로가 즉각 말했다. 엣지웨어 경이 살해됐는데, 즉시 이곳까지 와주셨으면 고맙겠다고 말일세. 나는 그 말을 그대로 되풀이했다. 상대방의 외침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뭐라구요! 마아틴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그렇다면 그녀는 기어코 해치웠단 말씀이군요? 곧 가겠습니다. 그가 뭐라고 하던가? 포와로가 물었다. 나는 그 말을 알렸다. 딴은! 포와로는 매우 만족스러운 것 같았다. 그렇다면 그녀는 기어코 해치웠단 말씀인가요? 라? 그가 그렇게 말했단 말이지? 역시 생각한 대로야. 생각한 대로였어. 재프는 이상한 듯이 그를 쳐다보았다. 당신이 말씀하시는 뜻을 모르겠군요, 포와로씨. 아니, 처음엔 그녀의 소행이 아니라는 듯한 말투였는데, 이번엔 진작부터 그녀의 짓임을 알고 있었다고 하니, 이거 도무지. 포와로는 다만 미소짓고 있었다. 브라이언 마아틴은 약속을 지켰다. 그는 미쳐 10분도 안되어 우리에게로 달려왔다. 그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는 사이, 포와로는 사건과는 관계 없는 말을 했을 뿐, 재프의 호기심을 조금도 만족시켜 주지를 않았다. 마아틴이 기별을 받고 몹시 허둥대고 있음은 분명했다. 그의 얼굴은 파랗게 질려 있었다. 큰 일이군요, 포와로씨. 그는 고개를 흔들면서 말했다. 무서운 사건입니다. 정말 대단한 쇼크를 받았지요 - 하지만 뜻밖이라곤 할 수 없군요. 혹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나 않을까 은근히 겁내고 있었으니까요. 어제 내가 한 말을 기억하고 계실 테죠? 물론이죠. 그렇고말구요. 포와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제 당신이 하신 말을 완전히 기억하고 있죠. 이번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재프 경부를 소개합니다. 브라이언 마아틴은 포와로에게 나무라는 것 같은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는 경부에게 냉담하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는 자리에 앉아 입술을 깨물었다. 나로선 까닭을 모르겠군요. 그는 불만스러운 듯이 말했다. 왜 날보고 오라고 하셨나요? 이 사건은 나하곤 아무런 관계가 없는데 말씀입니다. 나는 관계가 있다고 보는데요. 포와로가 부드럽게 말했다. 살인사건 때엔 개인적인 불쾌감은 누를 필요가 있지요. 아뇨. 난 모르는 일입니다. 물론 나는 제인하고 여러 영화에 출연해 왔지요. 난 그녀를 잘 알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그녀는 내 친구올시다. 그런데 당신은 엣지웨어 경이 살해됐다는 말을 들은 순간, 범인은 그녀라는 결론으로 비약하셨소. 포와로가 비꼬았다. 배우는 흠칫했다. 결국 당신이 말씀하시는 것은 - 그의 눈은 당장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내가 잘못 생각했다는 뜻인가요? 그녀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말씀입니까? 재프가 한 마디 했다. 아니죠, 마아틴씨. 틀림없이 그녀가 한 짓입니다. 청년은 다시금 의자에 기대앉았다. 난 내가 당챦은 착각을 한 줄 알았군요. 그는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이런 문제가 생겼을 때엔 우정에 좌우되서는 안되지요. 포와로가 단호하게 말했다. 마아틴씨, 당신은 설마하니 살인을 저지른 여자한테 편들 생각은 안하실 테죠? 브라이언 마아틴은 한숨을 쉬었다. 그는 이윽고 말했다. 옳은 말씀입니다. 그럼 무슨 말을 하면 될까요? 포와로는 재프쪽을 보았다. 당신은 그 동안 엣지웨어 부인이 - 아니, 미스 윌킨슨이라고 부르는 편이 좋겠군요 - 남편에 대해 협박을 한다거나 욕지거리를 하는 것을 들은 일이 있습니까? 재프가 마아틴을 쏘아보며 질문했다. 네, 몇 번 들었습니다. 그녀는 뭐라고 하던가요? 만일 남편이 자유를 주지 않으면 그를 처지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지요. 그게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니었소? 농담이 아니죠. 진정으로 말한 거라 생각합니다. 언젠가는 택시를 집어타고 가서 남편을 죽여 버리겠다고도 했습니다 - 당신도 들으셨죠, 포와로 선생? 그는 나의 벗의 동의를 구했다. 포와로는 끄덕였다. 재프는 질문을 계속했다. 그런데 마아틴씨, 그녀는 다른 남자하고 결혼하고자 이혼하고 싶어했다는 말이 있는데요. 당신은 그 남자가 누군지 알고 있습니까? 브라이언 마아틴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굽니까? 그건 - 마아튼 공작입니다. 마아튼 공작이라구요? 허어! 경부는 휘파람을 불었다. 굉장히 크게 바랐군요, 네? 공작은 영국에선 손꼽히는 부자라던데. 마아틴은 더한층 불쾌한 듯이 끄덕였다. 나는 포와로의 태도가 이해되지를 않았다. 그는 의자에 기대앉아 두 손을 마주잡고 고개를 리드미컬하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그 모양은 지극히 만족스러워 보였다. 이제 그쯤 해두고 - 갑자기 포와로가 사이에 끼어들었다. 이제 내 역할을 말하겠소, 재프군. 나는 엣지웨어 부인한테 그녀의 남편을 만나 이혼승낙을 받게 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게요. 그리고 이 문제로 오늘아침 엣지웨어 경과 면회할 약속이 돼 있었소이다. 마아틴은 고개를 흔들고는 말했다. 설사 면회를 했더라도 아마 별 도움은 안됐을 걸요. 그는 자신 있게 장담을 했다. 엣지웨어 경은 절대로 승낙을 안했을 테니까요. 승낙을 안했으리라 보시나요? 포와로는 상냥하게 마아틴쪽을 돌아보았다. 나는 어제 엣지웨어 경을 만났고, 경은 이혼을 승낙했단 말씀입니다. 마아틴은 이 말로 완전히 멍청해져 버렸다. 그는 눈이 휘둥그래져서 멀거니 포와로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 당신은 어제 그를 만나셨단 마, 말씀입니까? 그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렇소. 열 두 시 십오분에요. 그런데, 그는 이혼을 승낙했다는 겐가요? 그렇죠. 당장 제인한테 알려 주셨어야 하는 건데. 청년은 혼잣말처럼 그러나 꾸짖듯이 말했다. 그야 알렸죠, 마아틴씨. 알렸다구요? 마아틴과 재프가 동시에 외쳤다. 포와로는 싱긋 웃으면서 중얼거리듯 말했다. 이제 동기가 수상스러워지는구먼. 그런데 마아틴씨, 이걸 좀 보시지요. 그는 그 신문기사를 가리켰다. 마아틴은 그것을 읽었으나, 별다른 관심은 나타내지 않았다. 이게 알리바이가 된다는 말씀인가요? 그는 이내 확신에 찬 투로 말했다. 엣지웨어는 어제 밤 사이에 살해됐으리라 생각하는데요. 마아틴은 천천히 신문을 내려놓았다. 아마 이 기사는 별 도움이 안될 걸요. 제인은 이 파아티에 안갔으니까요. 어떻게 그걸 아십니까? 누군가가 그러더군요. 누구였는지는 잊어버렸습니다만. 그것 참 안타깝군요. 포와로가 생각에 잠기면서 말했다. 재프는 이상한 듯 그를 보았다. 당신 말씀은 도무지 이해가 안가는군요, 포와로씨. 이번엔 마치 그녀가 무죄라는 식 아닙니까? 아니죠, 재프군. 나는 당신처럼 내 생각을 중심으로 추리하지는 않소.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번 사건은 이성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소이다. 무슨 뜻인가요, 이성과 동떨어져 있다뇨? 나는 포와로가 무어라고 말하려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억제했다. 여기 한 젊은 여자가 있고, 당신 말처럼 남편과 이혼하고 싶어하고 있소이다. 그 점은 나 역시 반대하지 않아요. 그녀가 내게 그렇게 터놓고 말했으니까. 그러면 그녀는 어떤 방법으로 일을 시작하느냐? 남편을 죽일 작정임을 여러 사람 앞에서 거듭 되풀이 말한다, 그리고는 어느날 밤 남편의 집을 찾아가서 자기 이름을 대고 남편을 찔러죽이고는 사라진다, 이렇게 되는 셈이요. 경부님, 이 행동을 어떻게 생각하슈? 여기엔 상식의 찌끄러기조차 없단 말씀이요. 물론 다소 어리석긴 해요. 어리석다구? 정신박약이에요! 그건 어떻든. 재프가 일어서면서 말했다. 범죄자가 이성을 잃으면 만사가 우리 경찰에게 형편이 좋아지게 마련이죠. 그만 사보이 호텔로 가봐야겠군. 당신과 동행해도 되겠소? 재프는 반대하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같이 떠났다. 마아틴은 마지못해 작별을 했다. 그는 신경이 몹시 날카로워져 있는 것 같았으며, 새로운 사실이 알려지면 연락해 달라고 열심히 부탁했다. 사보이 호텔로 가자 법률가 같은 생김의 신사가 막 도착해 있었으므로 함께 제인의 방으로 올라갔다. 미망인이 된 엣지웨어 부인은 거울 앞에서 여러 모자를 써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는 아름다운 미소로 우리를 맞았다. 어머나, 포와로 선생, 와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목슨씨(변호사를 가리킴)도 잘 와주셨어요. 어서 자리에 앉으셔서 내가 어떤 질문에 답변해야 되는지 가르쳐 주셔요. 거기 그 사람은 내가 남편을 죽인 것으로 알고 있는 모양이거던요. 잠깐 여쭤 보겠습니다마는, 경부. 목슨씨가 법률가 특유의 묵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이 - 결국 한심스러운 -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난 것은 언제였나요? 어젯밤 열 시 경입니다. 어머, 그렇다면 조금도 염려 없어요. 제인 윌킨슨이 재빨리 말했다. 나 파아티에 있었으니까요 - 어머나! 그녀는 갑자기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런 말 안하는 게 좋았죠? 그녀는 겁먹은, 호소하는 것 같은 눈으로 변호사를 보았다. 만일 부인께서 어젯밤 열 시에 파아티에 참석하고 계셨다면 - 나로서는 - 그렇습니다 - 당신이 그 사실을 경부한테 알려도 지장 없으리라 생각하는군요. 그렇습니다. 재프가 재빨리 사이에 끼어들었다. 나는 당신한테 다만 어젯밤의 행동에 대해 말씀해 달라는 부탁을 드렸을 뿐입니다. 그 파아티 말씀인데요, 엣지웨어 부인? 몬타규 코우너 경 댁의 파아티였어요 - 치즈위크에 있는. 몇 시에 그리 가셨나요. 만찬은 여덟 시 반이었어요. 여기서 떠나신 것은 - 몇 시였죠? 여덟 시 경이에요. 도중에 피카디리 파레스 호텔에 잠깐 들려 미국으로 떠나는 친구를 만나 작별인사를 나눴죠 - 봔 도우센 부인이에요. 그리고는 아홉 시 십오분 전에 치즈위크에 닿았어요. 몇 시에 돌아오셨나요? 열 한 시 반 경이었어요. 곧장 이리 돌아오셨던가요? 네, 그래요. 택시로? 아뇨. 내 차에요. 다이믈러 사에서 세를 내고 있어요. 그런데, 만찬회에 참석하고 계시는 사이에 자리를 뜨지는 않으셨나요? 어머 - 나 - 그럼 자리를 떴었군요? 마치 테리아가 쥐에게 덤벼드는 것같이 재프가 물었다. 당신이 말씀하시는 뜻을 알겠어요. 나, 전화를 받으러 자리를 떴었어요. 누구한테서 온 전화였죠? 아마 누가 장난을 한 것이라 생각해요. 누군가의 목소리가 엣지웨어 부인이십니까? 그러더군요. 그래서 네, 그렇습니다. 이랬더니 그냥 웃기만 하곤 전화를 끊었어요. 얼마 동안 자리를 떠나 있었죠? 일분 삼십초 가량이에요. 재프는 그 뒤에는 아예 입을 다물어 버렸다. 내게는 그가 제인의 진술을 한 마디도 믿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일단 제인의 이야기가 그런 이상 그것을 확인하거나 반증할 때까지는 그로서는 아무 방도도 취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제인에게 아무렇게나 인사를 하고 물러갔다. 우리도 작별을 고했거니와, 그녀는 포와로를 불러세웠다. 포와로 선생님, 나를 위해 일좀 해주시겠어요? 물론입니다, 마담. 내 대신 빠리에 있는 공작한테 전보를 쳐주셔요. 그는 끄리욘 호텔에 있어요. 이번 사건에 대한 일을 알릴 필요가 있지만, 직접 전보를 치고 싶진 않군요. 일주일이나 이주일 동안은 미망인답게 보여야 할 테죠? 전보를 치실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마담. 포와로가 그녀를 보고 상냥하게 말했다. 그쪽 신문에도 보도될 테니까요. 어머나, 정말 그 머리는 기막히셔! 물론 신문에 날 거에요. 전보를 안치는 편이 훨씬 나아요. 그건 그렇고, 그 경시청 경부님 정말 너무 하다구요. 글세 날 겁주지 않겠어요, 포와로씨?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불쑥 말했다. 내가 생각이 달라져 그 파아티에 참석한 것은 정말 재수좋은 일이었어요. 포와로는 도어쪽으로 가고 있었는데, 이 말을 듣자 갑자기 돌아섰다. 뭐라구요, 마담? 생각을 고쳤다는 말씀인가요? 네. 나, 결석할 작정이었어요. 어제 오후 두통이 몹시 났었거던요. 포와로는 침을 꿀꺽 삼켰다. 당신은 -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하셧나요? 물론 얘기했죠. 여럿이 차를 마시고 있었을 때, 머리가 깨지는 것처럼 아프기 때문에 그만 돌아가야 하겠고, 만찬회에도 실례할 작정이라구요. 그런데 왜 그런 생각을 고치셨단 말입니까, 마담? 에리스가 날 꾸짖었어요. 만찬회에 빠질 수는 없다구요. 난 상관 없다고 말했었죠. 하지만 에리스는 노상 조심스럽거든요. 몬타규 경은 여러 방면에 숨은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고 - 화를 잘 낸다면서 안가면 좋지 않다는 거에요. 결국 내 고집이 꺾이고 만 거죠. 당신은 에리스한테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마담. 포와로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해요. 에리스! 제인이 웃으면서 불렀다. 가정부가 옆방에서 들어왔다. 포와로씨 말씀이 어젯밤 네가 나보고 파아티에 가야 한다고 권한 일이 대단한 행운이었다는 거야. 에리스는 포와로에게는 거의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그러문요. 약속을 어겨선 안되고말구요, 부인. 부인은 약속을 어기는 일을 식은 죽먹듯이 하십니다. 여러분이 언제건 용서해 주시리라고만 생각할 수는 없지요. 제인은 아까 우리가 들어왔을 때 써보고 있던 모자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다시 써보았다. 깜장은 질색이야. 그녀는 불만스러운 듯이 말했다. 나, 써 본 일이 없는 걸요. 하지만 점잖은 미망인으로 보이려면, 안 쓸 재주가 없을테지. 포와로와 나는 조용히 방에서 나갔다. 완벽한 알리바이 우리가 재프 경부를 만난 것은 그것이 마지막은 아니었다. 1시간쯤 지나자 그는 또다시 나타났고, 모자를 테이블에 던지면서 완전히 손 들었다는 것이었다. 심문을 하고 왔군요? 포와로가 동정하듯이 물었다. 재프는 어두운 표정으로 끄덕였다. 자그마치 열 네 명이나 되는 인간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절대로 그녀는 범인이 아닙니다. 그는 신음하면서 덧붙였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포와로씨, 나는 엉터리 조작이 폭로될 거라 믿고 있었죠. 모든 점으로 보아, 그녀 외엔 엣지웨어 경을 죽일 만한 사람이 없다고 본 겝니다. 다소라도 동기가 있는 것은 그 여자 뿐이니까요. 난 그렇게 생각지 않는군요. 하지만 어쨌든 계속하시오.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나는 조작이 이내 드러날 거라 보고 있었죠. 그런 배우들이 어떤가는 잘 아실 테죠? 그들은 서로 동료를 감싸려고 법썩을 떨게 마련이죠. 그렇지만 이번 증인들은 좀 색다른 무리들입니다. 어젯밤 만찬회에 모인 사람들은 한결같이 유명인들이고, 그녀와 자별한 사람은 하나도 없죠. 심지어 개중엔 서로 얼굴조차 모르는 사람도 있었단 말씀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삼십분쯤 자리를 빠져나간 사실이 판명될 거라 잔뜩 기대하고 있었죠.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그녀는 전화를 받고자 자리를 떴지만, 집사가 곁에 있었죠. 또 그 전화의 내용은 그녀가 말한 것과 똑같았습니다. 집사는 그녀의 말을 듣고 있었지요.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인데요. 흠. 아무튼 재미 있군요. 전화를 걸어온 것은 남자였나요, 여자였나요? 여자였다는 겝니다. 기묘한 일이구먼. 포와로가 생각에 잠기면서 말했다. 그런 것은 문제가 아니죠. 재프가 따분한 듯이 말했다. 중요한 문제로 돌아가십시다. 파아티는 그녀가 얘기한 대로 진행됐어요. 그녀는 아홉 시 십오분 전에 그 집에 닿아, 열 한 시 반에 떠났고, 열 두 시 십오분 전에 호텔로 돌아왔죠. 난 그녀를 태운 운전사를 만나고 왔습니다 - 그는 다이믈러 사의 사원이었죠. 또한 사보이 호텔의 종업원은 그녀가 돌아온 것을 목격하고 있고, 확인도 하고 있지요. 딴은. 상당히 확실한 것 같군요. 그렇다면 리젠트 게이트의 그 두 사람의 증언은 어떻게 되죠? 집사뿐이 아닙니다. 엣지웨어 경의 여비서도 그녀를 봤단 말입니다. 두 사람 모두 열 시에 찾아온 것은 엣지웨어 부인이 틀림 없다고 단언하고 있는데요. 집사는 그 집에 근무하는 지 얼마나 됐나요? 육개월입니다. 대단한 미남이던 걸요. 그건 어떻든 이거 정말 난처한데. 하긴 그렇군요. 그런데 그가 그 집에 온 지 육개월밖에 안됐다면, 엣지웨어 부인을 본 일이 없을 테니까 그녀를 가려낼 수가 없었을 텐데요? 그야 신문의 사진으로 알고 있었죠. 게다가 여비서가 그녀를 알고 있으니까요. 그녀는 그 집에서 벌써 오륙 년이나 일해오고 있고, 틀림 없다고 증언하고 있단 말씀입니다. 그 비서를 만나보고 싶군요. 그럼 이제 나하고 같이 가보시죠. 고맙소. 헤이스팅즈도 함께 가도록 해주실 테죠? 재프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이내 리젠트 게이트로 향했다. 누가 작위를 이어받게 되나요? 도중에 내가 물었다. 조카인 로널드 머어슈 대위죠. 아마 씀씀이가 어지간히 헤픈 모양이더군요. 의사는 사망시간에 대해 뭐라고 하고 있나요? 이번에는 포와로가 물었다. 정확한 것은 검시를 기다려 봐야 할 테죠. 그렇지만 아마 열 시쯤 될 겝니다. 엣지웨어 경이 살아 있는 것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아홉 시 조금 지나서였고, 집사가 위스키소오다를 서재로 갖다 줬지요. 열 한 시에 집사가 침실로 물러날 때엔 서재의 불은 꺼져 있었다는군요 - 그러니까 경은 그 때는 이미 죽어 있었을 테죠. 포와로는 사색하는 얼굴로 끄덕였다. 우리는 이윽고 저택에 닿았다. 그 미남인 집사가 도어를 열었다. 재프는 선두에 서서 안으로 들어갔다. 포와로와 나는 뒤를 따랐다. 도어는 왼쪽으로 열려져 있었으므로 집사는 그쪽에 몸을 비켜 서 있었다. 포와로는 오른쪽에 있었는 데다가 나보다 키가 작았기 때문에 집사가 그를 본 것은 우리가 호올로 들어선 뒤였다. 갑자기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리기에 재빨리 그쪽을 보니, 집사는 얼굴에 겁에 질린 표정을 띠우고 포와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이 무언가 도움이 될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기억에 새겨 두었다. 재프는 호올 오른쪽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가자 집사를 불러들였다. 알턴, 다시 한 번 조사해 보고 싶다구. 그 부인이 온 것은 열 시였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어떻게 부인인 줄 알았나? 포와로가 곁에서 물었다. 성함을 대셨고, 게다가 신문에서 사진을 봤으니까요. 영화도 본 일이 있습죠. 포와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옷차림이었나? 검은 옷이었습죠. 검은 외출복에 검은 모자였습니다. 그리고 진주 목걸이에 글레이의 장갑을 끼셨구요. 어젯밤 다른 사람이 주인을 찾아온 일이 있나? 아뇨. 아무도 안오셨습니다. 현관문은 어떤 식으로 닫고 있나? 에르 장치입죠. 평소에는 침실로 가기 전에 볼트를 내려놓습니다. 결국 열 한 시에 그렇게 하지요. 그렇지만 어젯밤엔 미스 제럴딘이 오페라 구경을 가셨기 때문에 볼트는 내리지를 않고 그대로 놔뒀었습죠. 오늘아침엔 어떻게 돼있던가? 볼트가 내려져 있었습죠. 제럴딘 아가씨가 돌아오셨을 때 내리신 겝니다. 언제 돌아오셨나? 알고 있나? 열 두 시 십오분 전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어젯밤 열 두 시 십오분 전까지는 도어는 열쇠 없이는 밖에서 열 수 없었던 셈이군? 안쪽에서라면 노프를 당기기만해도 열어지지만. 그렇습죠. 열쇠는 몇 개 있나? 나리께서 하나 갖고 계셨고, 또하나는 호올의 서랍에 있습니다만, 어젯밤엔 제럴딘 아가씨가 그걸 갖고나가셨습죠. 그밖엔 열쇠를 갖고 있는 사람은 없나? 그렇습죠. 비서인 미스 캐럴은 언제나 벨을 울립니다. 포와로가 자기가 알고 싶은 것은 그 뿐이라고 말했으므로 우리는 여비서를 찾으러갔다. 그녀는 커다란 책상에서 분주하게 글을 쓰고 있었다. 미스 캐럴은 45세 정도의 빈 틈 없이 생긴 여자였다. 금발은 잿빛으로 변해가고 있었고, 코안경을 끼고 있었다. 어머나! 포와로 선생님. 그녀는 재프의 소개를 받고 말했다. 알고 있어요. 어제 낮에 당신과 면회 약속을 했쟎나요? 맞습니다, 마드모아젤. 나는 포와로가 그녀에게 좋은 인상을 받았음을 알 수 있었다. 분명히 그녀는 간결과 정확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재프 경부님. 미스 캐럴이 여전히 서글서글한 목소리로 물었다. 제가 무얼 거들어드릴 수 있나요? 이것뿐입니다, 미스 캐럴. 어젯밤 여기에 온 것이 엣지웨어 부인이라는 것은 틀림 없는 사실입니까? 당신이 그 말씀을 묻는 것은 벌써 세 번째에요.물론 틀림 없지요. 내 눈으로 똑똑히 본걸요. 어디서 부인을 보셨나요, 마드모아젤? 포와로가 불쑥 물었다. 호올에서 봤어요. 부인은 잠시 집사하고 얘기를 하더니 호올을 지나 서재의 도어를 열고 들어갔으니까요. 틀림 없습니다. 당신은 그 때 어디 계셨던가요? 이층이에요. 내려다보고 있었죠. 잘못 보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합니까? 절대로 틀림 없어요. 재프는 그것 보라는 듯이 포와로쪽을 보았다. 포와로는 개의치 않고 물었다. 미스 캐럴, 현관 열쇠는 몇 개 있습니까? 두 개에요. 여비서는 망설임없이 대답했다. 엣지웨어 경이 한 개를 갖고 계셨고, 또하나는 호올 서랍에 들어있어, 밤늦게 돌아오는 사람은 누구건 갖고나갈 수 있었지요. 또 한 개 있었지만, 머어슈 대위가 잃어버리셨어요. 정말 경솔한 일입니다. 머어슈 대위는 자주 오시나요? 그 분은 삼 년 전까지 여기 살고 계셨지요. 왜 이 집을 나갔죠? 재프가 궁금한 듯 그녀에게 물었다. 모르겠군요.백부님과 여러 모로 뜻이 안맞은 모양이에요. 당신은 좀더 상세히 알고 계시는 것 같군요, 마드모아젤? 포와로가 상냥하게 말했다. 그녀는 재빨리 포와로쪽을 보았다. 난 수다장이가 아니에요, 포와로씨. 하지만 엣지웨어 경과 조카가 뜻이 안맞았다는 소문에 대해 진상을 알고 계실 테죠?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지요. 하지만 머어슈 대위의 경우는 - 포와로는 거듭 재촉을 했다. 미스 캐럴은 어깨를 흠칫했다. 그 분은 낭비가 심했지요. 빚을 잔뜩 짊어지고 있었답니다. 그밖에도 복잡한 사연이 있었습니다마는 - 자세히는 모르겠군요. 두 분은 말다툼을 하셨습니다. 엣지웨어 경이 그 분을 내쫓았지요. 그 뿐이에요. 그녀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우리가 그녀와 만난 방은 이층에 있었다. 방을 나설 때 포와로가 나의 팔을 잡았다. 잠깐. 여기 남아 있게나, 헤이스팅즈. 난 재프 경부하고 밑으로 내려가겠네. 우리가 서재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있다가 나중에 내려오라구. 나는 포와로에게 왜? 라는 질문을 않기로 옛날에 단념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는 집사가 훔쳐보지 않을까 의심을 품고 있고, 그 사실을 확인해 볼 셈이리라.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난간 너머로 내려다보았다. 포와로와 재프는 먼저 현관 도어쪽으로 갔다. 이내 보이지 않더니, 다시금 모습을 나타냈고, 호올을 따라 서서히 걸어갔다. 나는 그들이 서재로 들어갈 때까지 보고 있었다. 집사가 나타나지 않을까 하고 잠시 기다려 보았으나, 아무도 안보이기에 층계를 내려 서재로 갔다. 시체는 물론 치워져 있었다. 커어튼이 젖혀지고 전등이 들어와 있었다. 포와로와 재프는 한복판에 서서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여기엔 아무 것도 없군. 재프가 말했다. 그러자 포와로가 웃으면서 대꾸했다. 아아! 담뱃재도 없어 - 발자국도 없어 - 여자의 장갑도 없어 - 향수 냄새조차 없군! 추리소설의 탐정이 안성마춤으로 찾아내는 그 아무 것도 없소이다. 추리소설에선 경찰은 노상 박쥐 취급을 당하고 있죠. 재프는 싱긋이 웃었다. 나는 그제서야 나의 사명을 생각해냈다. 염려 말라구, 포와로. 내내 감시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엿보는 자는 없었으니까. 나의 벗 헤이스팅즈의 눈이라면 안심이지. 포와로는 농담하는 것 같은 투로 말했다. 그런데 여보게, 내가 입에 물고 있던 장미를 못봤나? 입에 문 장미라구? 나는 놀라서 물었다. 재프는 옆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말했다. 여보슈, 포와로 선생. 그만 좀 웃기시구려. 난 칼멘의 흉내를 낼 셈이었죠. 포와로는 태연히 말했다. 나는 그들이 돈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멍청히 서 있었다. 정말 못봤나, 헤이스팅즈? 포와로의 음성에는 나무라는 것 같은 울림이 있었다. 나는 그를 보면서 말했다. 못봤다구. 그럴 것이 자네 얼굴은 안보였단 말야. 그렇다면 됐네. 그는 조용히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여전히 멍청히 그를 보았다. 재프가 말했다. 여기선 이제 할 일이 없을 테구. 다시 한 번 처녀를 만나보고 싶군. 아까 만났을 때 너무 흥분해 있어, 아무 말도 못들어 봤거든요. 그는 집사를 호출하는 벨을 울렸다. 미스 머어슈한테 만날 수 없겠느냐고 물어봐 주게. 집사는 나갔다. 그러나 몇 분 뒤에 방으로 들어온 것은 미스 캐럴이었다. 제럴딘 아가씨는 주무시고 계십니다. 심한 쇼크를 받으셨기 때문이에요. 딱하게도 아까 당신이 돌아가신 뒤 수면제를 드렸거든요. 그래서 지금 주무시고 계시답니다. 아마 두어 시간 지나면 깨어날 거에요. 재프는 끄덕였다. 그러자 포와로가 불쑥 물었다. 집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내가 그를 과히 좋아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에요. 미스 캐럴은 이내 대답했다. 우리는 현관 도어께에 와있었다. 어젯밤 당신은 저 위에 계셨죠, 마드모아젤? 포와로는 느닷없이 층계 위를 가리키면서 물었다. 그래요. 왜 그러시나요? 그리고 엣지웨어 부인이 호올을 지나 서재로 들어가는 것을 봤단 말씀이죠? 그래요. 그리고 부인의 얼굴을 분명히 보셨다? 물론이죠. 하지만 당신이 부인의 얼굴을 봤을 리가 없죠, 마드모아젤. 당신이 서 있던 곳에선 부인의 머리밖엔 안보였을 테니까요. 미스 캐럴은 노여운 듯 얼굴을 붉혔다. 부인의 머리와 목소리, 그리고 걸음걸이에요! 같은 얘기죠. 절대로 틀림 없어요! 그 사람이 제인 윌킨슨이었음은 분명한 사실이고말구요. 그리고 등을 돌리자 이층으로 성큼성큼 올라갔다. 재프와 헤어진 우리는 리젠트 공원에 들러 조용한 벤치에 앉았다. 입에 문 장미의 뜻을 이제야 알겠어.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아까는 자네가 발광한 줄만 알았지. 포와로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여보게, 헤이스팅즈, 그 비서는 위험한 증인이라구. 그녀는 방문자의 얼굴을 봤다고 했쟎나? 그 때 나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지. 서재쪽에서 오는 것이라면 - 얼굴이 보이지만, 서재쪽으로 가는 것을 볼 수는 없단 말야. 그래서 좀 실험을 해본 거라네. 그렇지만 그녀의 신념엔 조금도 변화가 없었어. 게다가 목소리나 걸음걸이는 얼굴과 마찬가지로 잘못 볼 수가 없단 말야. 아니, 그렇지가 않지. 하지만 여보게, 목소리나 걸음걸이는 가장 특징적인 것이란 말야. 맞아. 그렇기 때문에 손쉽게 모방할 수 있지.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이삼 일 전의 일을 생각해 보라구. 우리는 극장 안 특별석에 앉아 있었지 - 카아롯타 아담즈 말인가? 아아! 하지만 그녀는 천재니까. 유명한 인간은 흉내내는 게 그리 힘든 게 아니라구. 물론 그녀가 비상한 재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될 테지. 그녀라면 스포트 라이트나 거리의 도움 없이도 모방할 수 있을 게 틀림 없어 - 갑자기 나의 마음에 한 가지 생각이 번득였다. 나는 외쳤다. 포와로! 설마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 테지? - 암, 그렇다면 너무나도 지나친 우연의 일치라구. 그건 보기에 달린 게야. 헤이스팅즈, 어떻게 보면 그건 조금도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구. 그렇지만, 왜 카아롯타 아담즈가 엣지웨어 경을 죽이려드나? 그녀는 그를 알지도 못했어. 안그런가? 그녀가 엣지웨어 경을 모르고 있었다고 어찌 단언하나? 매사를 가정해선 안된다구, 헤이스팅즈. 두 사람 사이엔 우리가 전혀 모르는 어떤 연결이 있을지도 모르지. 그럼 자네는 이론을 세우고 있나? 나는 처음부터 카아롯타 아담즈가 이번 사건에 관계되고 있을지 모른다는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었어. 그렇지만, 포와로 - 기다리게나, 헤이스팅즈. 몇 가지 사실을 연결지워 보세. 엣지웨어 부인은 침묵을 지키고 있지 못하는 성격이어서, 자기와 남편의 관계를 터놓고 드러냈고, 심지어 남편을 죽이겠다는 말까지 했지. 그 말을 들은 것은 자네와 나뿐이 아니라구. 그녀의 가정부는 아마 수없이 들었을걸. 브라이언 마아틴도 듣고 있고, 내 짐작으로는 카아롯타 아담즈 자신도 듣고 있었을 게란 말야. 게다가 이 사람들한테 전해들은 사람들도 있지. 그리고 근래 카아롯타 아담즈의 제인 흉내가 기막히다는 점도 입에 오르내렸어. 엣지웨어 경을 죽일 동기를 갖고 있는 게 누구냐? 그의 아내야. 그런데 누군지 다른 인간이 엣지웨어 경을 처치하고 싶어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세. 그 인간으로선 썩 손쉬운 대리가 있는 셈이지. 낮에 제인 윌킨슨이 두통이 심해서 오늘 밤엔 집에서 편히 쉬고 있어야겠다고 했을 때 - 이 계획은 실행으로 옮겨진 게야. 엣지웨어 부인은 리젠트 게이트의 저택에 들어가는 것을 남에게 보일 필요가 있는 게야. 그래서 그녀는 우정 남의 눈에 띄게끔 행동했지. 그녀는 자기의 이름마저 말했어. 아아! 그게 좀 지나쳤던 게야! 그것이 의혹을 불러일으킨단 말일세. 그리고 또 한 가지 문제가 있지 - 적은 문제지만. 어젯밤 그 저택에 온 여자는 검은 옷차림이었어. 제인 윌킨슨은 절대로 검은 옷은 안입는 여자라구. 우리는 그녀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어. 따라서 어젯밤 그 집에 찾아온 것은 제인 윌킨슨이 아니라고 가정해 보세 - 제인 윌킨슨을 모방한 다른 여자였다고 말일세. 그럼 그 여자가 엣지웨어 경을 죽였느냐? 아니면 제삼자가 죽였느냐? 만약 그렇다면 그 인간은 가짜 엣지웨어 부인의 방문 전에 침입했느냐, 만일 뒤라면 그녀는 엣지웨어 경을 만나 뭐라고 했느냐? 그녀는 자기의 방문이유를 어떻게 해명했느냐? 자기를 잘 모르는 집사나, 가까이에서 자기를 본 일이 없는 비서를 속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남편까지 속일 수 있으리라곤 생각지 않았을 테니까 말일세. 기다리라구, 포와로! 나는 얼결에 소리쳤다. 자네 얘기를 듣고 있으면 머리가 빙빙 돈단 말야. 사람, 그까짓 걸 가지고 뭘 그러나? 우리는 온갖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는 것뿐이지. 자네는 그런 악마적인 계획을 누가 세웠다고 생각하나? 아아! 그 말을 하기엔 아직 일러. 그 전에 엣지웨어 경의 죽음을 바라는 동기를 지니고 있는 게 누구냐는 문제로 들어갈 필요가 있지. 물론 상속인이 되는 조카가 있어. 하지만 좀 지나치게 노골적인 것 같군. 그리고 적의 문제가 있네. 엣지웨어 경은 매우 적을 만들기 쉬운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겠다? 맞아. 자네 말대로야. 범인이 누구건 간에 놈은 자기가 절대 안전하다고 생각했을 게 분명해. 여보게, 헤이스팅즈, 만일 제인 윌킨슨이 마지막 순간에 마음이 달라져 파아티에 참석 안했드라면, 알리바이가 없었을걸. 그녀는 꼼짝없이 잡혀 - 아마 교수형에 처해질 테지.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렇지만 한 가지 이상한 일이 있단 말야. 포와로는 고개를 갸웃하고 말했다. 그녀를 함정에 빠뜨리려는 뜻은 분명한데 말야 - 그럼 그 전화는 대체 뭘까? 어째서 누군가가 치즈위크 파아티 석상에 있는 그녀한테 전화를 걸어, 그녀가 그곳에 있는 것을 확인하자 전화를 끊었을까? 마치 누군가가 무엇에 착수하기 전에 그녀가 그곳에 있는 것을 확인한 것 같단 말야. 그것은 아홉 시 반 경이었으니까 살인이 일어나기 전이었음은 거의 틀림 없는 것 같군. 그렇다면 그 전화의 뜻은 그녀를 위해서 건 것 같단 말야 - 그 외의 해석은 내릴 수 없지. 전화를 건 게 범인일 리는 없어 - 살인자는 제인에게 죄를 덮어 씌울 작정이었으니까. 그럼 그것은 누구였느냐? 나는 완전히 어리둥절해졌다.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는지도 모른다구. 천만에. 모든 게 우연의 일치일 수는 없지. 육개월 전엔 편지가 없어져 버렸어. 어째서? 이번 사건엔 설명할 수 없는 게 너무 많다네. 그런 것을 연결지우는 어떤 이유가 반드시 있을 거란 말야. 그는 한숨을 푹 쉬었다. 아냐. 그럴 까닭이 없어. 나는 갑자기 한 마디 했다. 카아롯타 아담즈가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어. 그녀는 그렇듯 - 맞아, 그렇듯 선량해 보이는 처녀인데. 그러나 이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포와로가 그녀의 금전욕에 대해 한 말을 생각해 냈다. 금전욕 - 보기에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의 근본에는 그게 있었을까? 그러자 포와로가 또다시 말했다. 나는 그녀가 살인을 저질렀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구. 그녀는 그런 짓을 하기엔 냉정하고, 분별이 지나치게 많지. 아마 그녀는 살인이 있으리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을걸. 그녀는 죄를 저질르는지는 모르고 이용당한 게야. 하지만 - 그는 입을 다물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그녀는 현재 사후종범이 돼있어. 결국 그녀는 오늘의 뉴우스를 알게 될 테지. 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 되면 아마 가만 있지는 않을 거란 말야. 포와로의 입에서 목쉰 외침소리가 튀어나왔다. 큰 일 났어. 헤이스팅즈! 서둘러야해! 난 장님이였어 - 천치 바보였어. 택시를 잡으라구 당장. 나는 멍하니 그를 보았다. 그는 두 팔을 마구 흔들어댔다. 택시야 - 당장! 마침 택시 한 대가 지나갔다. 그는 불러세우자 나와 함께 집어탔다. 그녀의 주소를 알고 있나? 카아롯타 아담즈 말인가? 물론이지. 빨리, 헤이스팅즈, 서둘러야 한다구, 모르나? 아아, 도무지 알 수 없는데. 포와로는 입 속으로 마구 투덜댔다. 전화번호부는? 아냐 거기엔 실려 있지 않을 테지. 극장이야. 극장에서는 아담즈의 주소를 가르쳐 주지 않으려고 했으나. 포와로는 솜씨있게 알아냈다. 스론 스퀘어 근처의 맨션이였다. 우리는 다시금 그곳으로 차를 달렸는데, 포와로는 잠시를 차분하지 못하고 안절부절 흥분하고 있었다. 늦지 않으면 좋겠는데, 헤이스팅즈, 늦지 말아야 할 텐데. 왜 이렇게 서둘지? 난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군. 대체 왜 이러나? 내가 지나치게 꾸물댔다는 뜻이지. 뻔한 사실을 깨닫는 게 너무나 뒤늦었다는 게야. 아아! 신이여, 늦지 않게 해주소서. 또하나의 죽음 맨션에 닿기가 무섭게 포와로는 차에서 뛰어내려 빌딩으로 달려들어갔다. 게시판에 붙여 있는 명함으로 알았거니와, 미스 아담즈의 방은 이층에 있었다. 포와로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사이도 없이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그는 노크를 하고 벨을 울렸다. 잠시 후 머리를 뒤로 단단히 잡아맨 정갈한 차림새의 중년여인이 도어를 열었다. 여자의 눈은 운 것처럼 부어 있었다. 미스 아담즈는? 포와로는 성급히 물었다. 여자는 그를 바라보았다. 아직 못들으셨나요? 못듣다니? 무얼 말인가? 포와로의 얼굴은 죽은 사람처럼 창백해져 있었으므로, 나는 무슨 영문인지는 몰랐으나 이것이 그가 두려워하고 있었던 일이었음을 깨달았다. 여인은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그 분은 돌아가셨습니다. 잠자고 있는 사이에 숨이 끊어진 것입니다. 무서운 일예요. 포와로는 도어의 기둥에 몸을 의지했다. 그는 중얼거렸다. 한 발 늦었어. 그의 흥분이 너무나 뚜렸했으므로 여자는 다시금 그를 유심히 보았다. 실례지만 그 분의 친구신가요? 아직 한 번도 뵌 일이 없습니다만. 포와로는 이 질문에는 직접 대답하지 않고 물었다. 의사를 불렀었나요? 의사는 뭐라든가? 수면제를 지나치게 복용했다는군요. 아아! 딱하셔라! 그렇게 젊고 예쁜 분이. 정말 무서운 일이에요 - 수면제라는 것은. 베로날이라든가요. 포와로는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그의 태도는 새로운 권위를 띠었다. 그는 말했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야 하오. 나는 탐정이니까 당신 주인의 사망상황을 조사할 권한이 있소이다. 조사하지 않으면 안되오. 여자는 잠시 멍청했다. 그녀가 비켜섰으므로 우리는 방으로 들어갔다. 포와로가 물었다. 우선 당신이 부른 의사의 이름과 주소를 가르쳐 주시오. 카알라일 스트리트 십칠 번지의 히이스 선생님이에요. 그럼, 당신 이름은? 베넷 - 아리스 베넷이에요. 당신이 미스 아담즈를 몹시 좋아하고 있었다는 것은 잘 알 수 있지, 미스 베넷. 오오! 좋아했고말구요! 상냥한 젊은 레이디였어요. 저는 그 분이 이리 오신 뒤 일 년 동안 섬겨왔지요. 그 분은 여느 여배우 같지는 않았답니다. 전혀 달랐어요. 교양이 있으시고, 우아한 분이었지요. 포와로는 주의와 동정을 담아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는 이제 조금도 초조해하고 있지 않았다. 당신에겐 굉장한 쇼크였을 게요. 포와로는 상냥하게 말했다. 아아! 정말 대단한 쇼크였어요. 나, 그 분한테 코오피를 갖고왔었지요 - 여느때처럼 아홉 시 반이었고, 그 분은 누워 계셨답니다 - 잠이 드신 줄만 알았지요. 그래서 커어튼을 열었는데, 고리가 한 개 걸려서 힘껏 잡아당겨야 했어요. 소리가 몹시 났지요. 그런데도 그 분이 잠을 깨지 않기에 이상하게 생각했어요. 그 때 문득 무언가 이상하게 느껴지더군요. 그래서 침대 곁으로 가서 만져 봤지요. 그랬더니 얼음장처럼 차갑기에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답니다. 그녀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말을 끊었다. 딴은, 그랬었구먼? 포와로는 동정하듯이 말했다. 아마 무서웠을 게야. 그런데 미스 아담즈는 잠들기 전에 늘 약을 먹었나요? 가끔 두통 때문에 약을 드셨지요. 병에 들어있는 작은 알약인데, 어젯밤에 잡수신 것은 뭔지 다른 약이었어요. 어젯밤 혹시 손님이 없었소? 아뇨. 어젯밤엔 외출을 하셨는 걸요. 어디엘 가는지, 당신한테 말을 합디까? 아뇨. 일곱 시 경에 나가셨어요. 흠. 그래 어떤 옷차림이었소? 검은 드레스를 입으셨지요. 까만 드레스와 까만 모자였어요. 포와로는 나의 얼굴을 보았다. 뭔가 액세서리를 달고 있었소? 언제나 목에 거시는 진주목걸이뿐이었지요. 그리고 장갑은 - 글레이의 장갑이 아니었소? 네, 맞아요. 장갑은 글레이였군요. 딴은! 그럼 그 사람이 어떤 태도였는지 말해 보시오. 명랑하던가? 흥분해 있었던가? 아니면 짜증스러워 보이던가요? 뭔지 썩 재미있어 하시는 것 같았어요. 혼자 싱글벙글 하시는 폼이. 뭔가 장난을 하려는 것 같았어요. 몇 시에 돌아왔나요? 열 두 시 조금 지나서였어요. 그 때의 태도는? 역시 같았소? 몹시 피로해 보이셨어요. 흥분해 있진 않았는가요? 또는 난처해 한다거나? 어머! 아아뇨. 뭔가 몹시 재미 있어 하시는 것 같았지만, 굉장히 피로해 보였죠. 상대방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전화를 거시더니, 이내 기다리기도 귀찮으니 내일아침에 걸기로 하겠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옳거니! 포와로의 눈은 흥분으로 빛났다. 그는 몸을 내밀고 대수롭지 않게 보이려고 하면서 물었다. 전화를 걸려던 상대방 이름은 못들었소? 아아뇨. 번호를 대시기만 하고 기다리셨는데, 아마 통화중이었던 모양이죠. 그 분은 갑자기 하품을 하시면서 아아, 피로해 죽겠어 하시곤 옷을 벗기 시작했어요. 그럼 그녀가 불러낸 번호는? 그걸 기억하고 있소? 잘 생각해 봐요. 혹시 중요한 일일지도 모르니까. 미안하지만 생각이 나질 않아요. 빅토리아 국 번호였는데, 그것 밖엔 생각나질 않는군요. 워낙 주의를 안했으니까요. 그 사람 잠들기 전에 뭔가 먹지 않았소? 노상 잡수시듯, 따끈한 우유를 한 잔 잡수셨어요. 누가 데웠죠? 제가 했어요. 그 우유는 언제 온 거요? 어젯밤에 그녀가 마신 우유 말요. 잡수신 것은 새 우유였어요. 오후에 배달된 놈이지요. 하지만 우유에 아무런 이상이 없었던 것만은 분명해요. 오늘아침 저도 마셨는 걸요. 게다가 의사는 미스 아담즈가 그 무서운 약을 드셨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으니까요. 내가 잘못 생각했는지도 모르겠군. 포와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아마 내가 잘못 생각했는지 몰라요. 의사를 만나 봐야겠군. 그건 그렇고 - 그의 시선은 작은 백으로 떨어졌다. - 그것은 의자 위에 놓여 있었다. 미스 아담즈는 어젯밤 외출할 때 저걸 들고 갔었소? 오전 중에 갖고나가셨어요. 낮에 돌아오셨을 때는 빈 손이었죠. 하지만 밤중엔 갖고오셨어요. 딴은! 저걸 열어 봐도 될 테죠? 아리스 베넷은 이제는 하자는 대로 내맡기고 있었다. 백은 잠겨져 있지 않았다. 포와로는 그것을 열었다. 나는 몸을 내밀고 그의 어깨 너머로 들여다보았다. 보라구, 헤이스팅즈, 어떤가? 그는 흥분해서 중얼거렸다. 분명히 알맹이는 암시적이었다. 메이크업 재료가 든 상자. 구두 속에 넣어 키를 1인치쯤 크게 보이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두 물건. 한 쌍의 글레이의 장갑. 금발의 가발. 그 빛깔은 제인 윌킨슨의 금발과 똑같이 한가운데가 갈라져 있고, 목 뒤에서 커어르되어 있었다. 이래도 여전히 의심하나, 헤이스팅즈? 포와로가 물었다. 나는 그 순간까지도 의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된 마당에야 이제는 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포와로는 백을 잠그고 가정부를 돌아보았다. 어젯밤 미스 아담즈가 누구하고 식사를 했는지 모르나요? 모르겠네요. 점심 때는 누구하고 함께였는지 모르겠소? 아마 미스 드라이버하고 같이 드신 것 같습니다만. 미스 드라이버? 네, 그 분의 오래된 친구분이에요. 폰드 스트리트에서 조금 떨어진 모팟트 스트리트에서 모자가게를 경영하고 계시답니다. 제느비에이브 라는 가게에요. 포와로는 수첩을 꺼내 의사의 주소 밑에 그 주소를 적어넣었다. 또 한 가지 묻고 싶은데요, 마담. 마드모아젤 아담즈가 오후에 돌아왔을 때 그녀의 얘기나 태도로 미루어 뭔가 여느때와 다른 점을 느끼지 않았었나요?... 아무 거라도 좋으니 생각해내 보시지요. 가정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생각나질 않는군요. 그녀는 이윽고 미안한 듯이 말했다. 차를 드시겠느냐고 물었더니 벌써 마셨다고 하시면서. 딴은! 벌써 마시고 왔다고 말했단 말이죠? 포와로는 그리고는 다시금 말했다. 실례. 계속하시오. 그리고 그 뒤 외출하실 때까지 내내 편지를 쓰고 계셨지요. 편지를? 누구한테 쓴 것인지 몰라요? 알고 있어요. 한 통 뿐이었지요. 워싱턴에 있는 여동생한테 보내는 편지였어요. 일주일에 두 번씩 꼬박꼬박 편지를 쓰셨답니다. 그리고 그 편지를 갖고 나가셨지요. 하지만 포스트에 넣는 것을 잊어버리셨지 뭡니까? 그럼 아직 여기 있겠구먼? 아뇨. 제가 포스트에 넣은 걸요. 어젯밤 침대에 들 때 편지 생각을 하신 거죠. 그래서 제가 잠깐 부치고 오겠다고 말씀드렸죠. 딴은! - 그래 포스트는 먼 데 있나요? 아뇨. 바로 행길 모퉁이에 있어요. 방문을 잠그고 나갔었나요? 아리스 베넷은 의아한 듯 눈을 크게 떴다. 아뇨. 잠그진 않았어요 - 편지를 부치러 갈 땐 노상 그러는 걸요. 포와로는 무어라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우리의 다음 행동은 가정부가 주소를 가르쳐 준 의사를 방문하는 일이었다. 만나 보니 의사는 약간 태도가 애매한, 뚝뚝해 보이는 지긋한 나이의 사나이였다. 그는 포와로의 소문을 듣고 있어, 본인을 만난 사실에 강한 기쁨을 나타내 보였다. 그래 어떤 용건으로 오셨나요, 포와로씨? 그는 초면인사 뒤에 궁금한 듯이 물었다. 선생님, 당신은 오늘 카아롯타 아담즈한테 불리워가셨죠? 아아! 그래요, 가엾은 처녀올시다. 게다가 좋은 여배우였죠. 난 그녀의 쇼우를 보러 두 번 갔었지요. 그녀의 무대가 이런 식으로 끝나 버린 것은 생각만해도 안타깝군요. 그건 그렇고 배우들이 뭣 때문에 마약을 먹을 필요가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군요. 그럼 그녀가 마약을 상습적으로 쓰고 있었다고 생각하시는군요? 아뇨. 직업적으로 보아선 그렇게 생각되지는 않소이다. 아무튼 마약주사는 맞고 있질 않았죠. 바늘 자국이 없으니까. 아마 입으로 복용하고 있었을 테죠. 그녀가 매일밤 베로날을 복용하고 있었다곤 생각되지 않지만, 훨씬 전부터 사용하고 있었음은 분명하외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이겁니다. 쳇 - 어디에 넣어 뒀던가? 의사는 작은 가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아, 여기 있구먼. 그는 검은 모록코 가죽의 작은 핸드백을 꺼냈다. 물론 검시가 있으니까요. 가정부가 만지지 못하도록 갖고왔지요. 그는 백을 열어 금빛깔의 작은 케이스를 꺼냈다. 그 위에는 루우비를 집어넣어 C A라는 이니셜이 적혀 있었다. 값진 화려한 케이스였다. 의사는 그것을 열었다. 안에는 흰 분말이 거의 가득 들어있었다. 베로날이올시다. 그는 짧게 설명했다. 안쪽에 뭐라고 적혀 있는지 보시지요. 작은 상자 뚜껑 안쪽에는 다음 같은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D로부터 C A에게 11월 10일 빠리 십일 월 십일이라? 포와로가 멍한 얼굴로 말했다. 그렇소이다. 그리고 지금은 유 월. 이 사실은 그녀에겐 적어도 육개월 전부터 이 약을 사용하는 습관이 있었음을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되는군요. 게다가 연도는 적혀 있지 않으니까 십팔개월 전인지, 이 년 반 전인지도 모르지요 - 아니, 훨씬 전인지도. 빠리. D로부터라? 포와로는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그렇소이다. 뭔가 짚이는 게 있으신가요? 그런데 참, 당신이 이 사건의 어디에 흥미를 품으시는지 아직 못들었군요. 물론 상당한 이유가 있으시리라 생각되지만. 자살인지 아닌지, 알고 싶으신 게 아닌가요? 내 소견으로는 사고사군요. 베로날은 매우 불안정한 약이지요. 많이 복용해도 죽지 않는 수가 있고, 아주 적은 분량으로도 죽는 수가 있으니까요. 결국 위험한 약이라고 할 밖에요. 아무래도 나로서는 이 이상 도움이 돼드릴 수는 없을 것 같군요. 미스 아담즈의 백을 조사해도 되겠습니까? 좋을 대로 하시지요. 포와로는 백 안에 들어있는 물건을 하나하나 내놓았다. 귀퉁이에 M A라는 이니셜이 새겨진 고급 손수건, 화장용 파프, 루우즈, 1파운드짜리 지폐 한 장과 잔돈이 약간, 그리고 코안경. 포와로는 마지막 물건을 흥미 있는 듯이 조사했다. 금테였고 모양은 볼품이 없었으며 고풍스러운 해묵은 것이었다. 아무래도 묘하군. 포와로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미스 아담즈가 안경을 사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단 말야. 하긴 독서용인지도 모르겠군. 그러자 의사는 안경을 들어올렸다. 아니지, 이건 밖에서 끼는 안경이야. 그는 이내 단정했다. 게다가, 제법 도수가 강하군. 포와로 선생, 이걸 끼고 있던 사람은 틀림없이 강한 근시였겠는 걸요. 포와로는 의사에게 인사를 하고 그곳을 물러났다.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띠우고 있었다. 내가 잘못돼 있는지도 모르겠군. 이렇게 포와로는 인정했다. 가짜 말인가? 아니, 그게 아니라구. 그 문제는 증명됐다고 보네. 내 말은 그녀의 사인이야. 그녀는 분명히 베로날을 갖고 있었어. 어젯밤 그녀는 피로해 있었고, 흥분해 있었으니까, 한 잠 푸욱 자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단 말야. 그 때 그는 느닷없이 걸음을 멈추었다. 통행인들이 몹시 놀라고 있었지만, 그는 한 손으로 또 한쪽 손바닥을 힘껏 쳤다. 천만에! 그럴 리가 없어! 그는 힘주어 단언했다. 어째서 그 사고가 그렇듯 안성마춤으로 일어났는가? 그건 사고가 아니었어. 자살도 아니지. 맞아. 그녀는 가짜 역할을 연출했고, 그렇게 하는 것으로 자기의 사형집행영장에 사인한 거야. 베로날이 살해의 수단으로 선택된 것은 다만 그녀가 그것을 가끔 사용하고 있었고, 그 케이스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 범인에게 알려져 있던 탓이었는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렇다고 한다면, 살인자는 그녀를 잘 알고 있는 인간이었음이 분명하군. D란 과연 누구일까? 나는 정신없이 생각에 잠겨 있는 그에게 말했다. 여보게, 걷는 편이 좋지 않을까? 모두들 우리를 보고 있다구. 뭐라구? 아아, 아마 그럴 테지. 하긴 나는 남들이 힐끔거려도 조금치도 겁날 게 없지. 모두들 웃기 시작했다구. 나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런 것은 문제가 아냐. 아무튼 택시를 타세. 포와로가 단장을 휘둘르면서 말했다. 한 대의 택시가 멈추어 서자 포와로는 성급히 모팟트 스트리트의 제느비에이브라는 모자 가게로 가자고 했다. 제느비에이브 란 아래층 쇼우윈도우에 과히 눈을 끌지도 않는 모자 한 개와 스카아프가 장식되어 있고, 실제의 영업장소는 먼지 내음이 나는 해묵은 층계를 올라간 위층에 있는 그런 가게의 하나였다. 층계를 올라 모자가 가득 찬 작은 방으로 들어서니, 키큰 금발의 아가씨가 의심스러운 듯이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미스 드라이버는 계신가? 포와로가 그녀에게 물었다. 마담은 만나실는지 어떤지 모르겠군요. 무슨 일로 오셨나요? 미스 드라이버에게 미스 아담즈의 친구들이 좀 뵙자고 한다고 전해 주구려. 금발의 미인은 이 심부름을 할 필요가 없었다. 검은 비로오도의 커어튼이 힘차게 흔들리면서 타는 것 같은 빨간머리의 작은 여자가 모습을 나타냈다. 왜그러시죠? 그녀는 의아한 듯 물었다. 당신이 미스 드라이버신가요? 그래요. 카아롯타가 어떻게 됐나요? 당신은 그 슬픈 뉴우스를 들으셨습니까? 어떤 슬픈 뉴우스죠? 미스 아담즈는 어젯밤 잠을 자고 있는 사이에 돌아가셨지요. 베로날을 과용해서요. 여자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어머나, 무서워라! 그녀는 얼굴이 창백해서 외쳤다. 가엾은 카아롯타. 믿어지질 않을 정도야. 어머나, 어제는 그렇듯 멀쩡했었는데. 유감이지만 그게 사실이올시다, 마드모아젤. 포와로는 심각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그건 그렇고 - 마침 한 시군요. 어떨까요, 우리하고 함께 점심식사를 드시지 않겠습니까? 몇 말씀 묻고 싶어서 그럽니다마는. 여자는 그를 보았다. 재빠른 느낌의 작은 처녀였다. 당신은 어느 분이신가요? 그녀는 불쑥 물었다. 포와로가 말했다. 내 이름은 에르큐르 포와로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친구인 헤이스팅즈 대위올시다, 마드모아젤. 나는 절을 했다. 그녀의 시선은 우리 사이를 한 동안 오갔다. 당신 얘기는 들었어요. 그녀는 느닷없이 말했다. 그럼 가겠어요. 5분 후 우리는 작은 레스토랑에 앉아 있었다. 포와로는 식사를 주문했고, 세 사람 앞에는 칵테일이 놓여 있었다. 포와로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당신과 미스 아담즈가 친한 친구였다기에. 그래요. 자별한 사이였지요. 좋습니다.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 마드모아젤, 내가 하는 일은 당신의 돌아가신 친구를 위한 일입니다. 나는 그것이 진실임을 보증합니다. 제니 드라이버는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기더니 이윽고 승낙했다는 듯이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을 믿겠어요. 어서 계속해 주셔요. 무얼 알고 싶으신가요? 마드모아젤, 친구는 어제 당신과 함께 점심을 들었다죠? 네, 맞아요. 그녀는 밤의 스케줄에 대해 말을 하던가요? 뚜렷하게 말하지 않았어요. 그럼 뭔가 말을 한 게군요? 네. 그녀는 필경 당신이 궁금해 하고 있을 그런 내용의 말을 했어요. 딴은. 에에, 잠깐 기다려주세요. 나, 내 나름의 말로 설명하는 편이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드니까요. 알겠습니다, 마드모아젤. 그럼 말하겠어요. 카아롯타는 흥분하고 있었어요. 그 사람 좀체로 흥분을 안하는 성미죠. 그런 그 애가 흥분을 했어요. 하지만 그 말을 하려고들질 않았어요. 내가 절대로 남한테 말 않겠다고 약속했는데도 어떤 일을 계획하고 있다고만 말했죠. 뭔가 매우 장난스러운 것인 모양이라 생각했지만. 장난이라구요? 그녀가 그랬어요. 미스 드라이버는 눈살을 찌푸리고 말을 끊었다. 그래요 - 아실 테지만 - 카아롯타는 농담이나 장난 따위를 즐기는 사람이 아니죠. 진지하고, 마음씨가 상냥하고, 일에 열중하는 처녀에요. 내 생각으로는 누군가가 그녀한테 그 장난을 하게끔 충동인 게 틀림 없다는 거죠. 흠, 흠. 알만 합니다. 그래 당신 생각엔 어떤 내용 같던가요? 내가 생각한 것은 - 틀림없이 그러리라 생각했어요 - 은연중에 돈이 얽혀 있구나, 이렇게요. 카아롯타는 돈 외의 일로 흥분한 적이 없는 걸요. 그녀는 그런 성미랍니다. 내가 받은 느낌으로는 어떤 내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죠 - 게다가 그녀는 내기에 이길 것을 확신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그녀는 뚜렷이는 말을 안했단 말씀이죠? 네, 그래요. 그 일을 무난히 해낼 수 있으리라느니, 또한 불원 있을 일을 얘기했을 뿐이에요. 그 사람은 미국에 있는 여동생을 불러, 빠리에서 만날 작정이었죠. 여동생을 몹시 사랑하고 있었으니까요. 아주 얌전하고, 음악에 소질이 있는 모양예요. 이제 그만,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이상이에요. 이것이 당신이 듣고 싶은 얘기인가요? 포와로는 끄덕이고나서 말했다. 당신은 엣지웨어 경의 이름을 알고 계십니까? 뭐라구요? 살해된 사람 아녜요? 삼십분 전에 호외를 봐서 알았죠. 그렇습니다. 미스 아담즈가 그 피해자와 아는 사이였는지 어떤지 아십니까? 아는 사이였다곤 생각되질 않아요. 분명히 안그럴 거에요! 어머나! 잠깐 기다려요. 왜 그러십니까, 마드모아젤? 포와로는 허둥지둥 물었다. 그게 뭐였던가 몰라? 그녀는 생각해내려는 듯 얼굴을 찌푸리고 생각했다. 그래, 생각났어요. 그녀는 딱 한 번 그 사람 말을 했어요. 몹시 불쾌해하면서 말예요. 불쾌해하면서? 그래요. 그녀가 한 말은 - 뭐라던가? - 그런 무자비하고 이해성이 없는 인간이 다른 사람들의 생활을 파괴하는 것은 용서될 수 없어, 아마 이랬을 거에요. 그녀는 - 그래요, 이렇게 말했어요 - 그런 인간이 죽는 것은 아마 선량한 다른 여러 사람을 위해 퍽 다행스런 일이 될 거라구요. 그 말을 한 게 언젭니까, 마드모아젤? 어머! 달포쯤 전이라 생각하지만. 왜 그런 화제가 나왔죠? 제니 드라이버는 잠시 머리를 짜내고 있더니, 이윽고 고개를 흔들었다. 도저히 생각해낼 길이 없군요. 그녀는 단념한 듯이 말했다. 어쩌다가 그 남자의 이름이 나왔거나 했을 거에요. 신문에 났는지도 모르구요. 아무튼 카아롯타가 그 사람을 잘 알지도 못할 텐데 갑자기 화를 내다니 이상하구나, 이렇게 생각한 기억이 나요. 분명히 이상하군요. 포와로는 잠시 생각하더니 물었다. 미스 아담즈가 베로날을 복용하는 습관이 있었는지, 아시나요? 난 몰라요. 먹는 걸 본 일도 없고, 그런 말 하는 걸 들은 일도 없군요. 그녀의 백 안에서 루우비들이 C A라는 이니셜을 새겨넣은 금빛 작은 케이스를 혹시 보신 일이 없으십니까? 금빛 케이스라구요? 아뇨, 본 적 없어요. 작년 십일 월에 미스 아담즈가 어디 있었는지 모르십니까? 잠깐 기다려요. 그녀는 십일 월에 미국으로 돌아갔었을 거에요 - 월말에. 그 전엔 빠리에 있었어요. 혼자였나요? 물론, 혼자죠. 그런데 마드모아젤, 매우 중대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미스 아담즈가 특히 관심을 품고 있던 남자가 있었나요? 그 대답이라면 노우에요. 제니 드라이버가 천천히 말했다. 내가 알고난 뒤로 카아롯타는 자기 직업과 여동생한테만 정신이 팔려 있었어요. 그녀는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죠. 그러니까 그 대답은 두 말 없이 노우에요. 이제 아실 테죠? 옳거니. 포와로는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고맙습니다, 마드모아젤. 또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미스 아담즈의 친구 중에 D라는 이니셜의 사람이 있습니까? D라구요?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D? 아뇨, 생각나질 않아요. 나는 포와로가 한 질문에 대해 그가 다른 대답을 기대하고 있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아무튼 그는 낙심천만이라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제니 드라이버는 팔꿈치를 테이블에 대고 묻듯이 몸을 내밀었다. 그럼 이번엔 뭔가 얘기를 들려 주시겠어요? 그러자 포와로가 말했다. 마드모아젤, 먼저 당신에게 찬사를 드리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나의 질문에 대한 당신의 답변은 매우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분명히 당신은 머리가 아주 좋으신 분이군요, 마드모아젤. 그는 말을 끊더니 잠시 후 조용히 말했다. 엣지웨어 경은 어젯밤 자기의 서재에서 피살됐습니다. 어젯밤 열 시에 당신 친구인 미스 아담즈로 보이는 여자가 집으로 찾아와서 엣지웨어 경을 만나겠다고 했으며, 엣지웨어 부인이라고 말했지요. 그녀는 금발인 가발을 쓰고, 엣지웨어 부인과 똑같은 메이크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부인이란 아시다시피 여배우인 미스 제인 윌킨슨이올시다. 미스 아담즈는 (만일 그 여자가 그녀였다고 한다면 말씀입니다만) 불과 몇 분 동안 그 집에 있었습니다. 그녀는 열 시 오분 경에 집을 나섰고, 자기가 사는 맨션으로 돌아온 것은 한밤중이었지요. 그녀는 베로날을 과용하고 침대에 들었습니다. 마드모아젤, 이제 내가 당신한테 한 몇 가지 질문의 뜻을 아실 수 있으실 테죠? 미스 드라이버는 흑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네, 이제 알만 해요. 당신 생각은 맞는다고 생각되는군요, 포와로씨. 그 여자가 카아롯타였다고 짐작한 사실이 맞는다는 뜻이죠. 그 한 가지 이유로서 그녀는 어제 우리 가게에서 새로운 스타일의 모자를 사갔어요. 새로운 스타일의 모자라구요? 그래요. 얼굴 왼쪽을 가리고 싶다나요. 그 모자는 보통은 머리 오른쪽에 쓰는 것이었군요? 포와로가 물었다. 부인모자 디자이너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반대쪽으로 쓰는 것도 가게에 약간 놔두고 있거든요. 그녀는 차근차근 설명했다. 자기 오른쪽 옆얼굴이 왼쪽보다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또 머리를 한쪽 끝에서 가르는 버릇이 있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카아롯타가 얼굴 한쪽을 숨기려고 한 데에는 뭔가 까닭이 있었나 몰라? 나는 리젠트 게이트 저택의 도어가 왼쪽으로 열리는 사실을 생각해냈다. 따라서 도어에서 들어가는 사람은 집사에게 좌반신을 모조리 보이게 되는 것이다. 또한 제인 윌킨슨의 왼쪽눈 한 귀퉁이에 작은 점이 있는 사실도 생각났다. 나는 흥분하면서 그 이야기를 했다. 포와로는 고개를 끄덕여 찬성의 뜻을 표명해 보였다. 맞아. 자네 말대로야, 헤이스팅즈. 그렇지, 이제 모자를 산 이유를 알 수 있구먼. 포와로 선생? 제니가 느닷없이 몸을 꼿꼿이 세웠다. 설마 - 설마하니 카아롯타가 그 짓을 했다고 생각하시는 것은 아닐 테죠? 엣지웨어 경을 죽였다는 뜻이에요.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다만 그녀가 그 남자를 악평했다는 사실만 가지고 말예요. 그렇게 생각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아무튼 묘하군. 그녀가 그런 표현을 했다는 것은 엣지웨어 경에 대해 무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모르겠군요 - 하지만 그녀가 죽인 건 아녜요. 그녀는 - 아아, 그녀는 - 맞아, 그런 짓을 하기엔 취미가 고상했어. 포와로는 칭찬하듯이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좋은 말을 하셨군요. 그것은 심리상의 문제올시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것은 과학적인 범죄올시다 - 하지만 취미가 고상한 범죄는 아니죠. 과학적이라구요? 살인자는 두개골 기부에서 치명적인 신경중추가 척수로 결합되고 있는 곳에 이르려면, 어디를 찔러야 좋은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지요. 의사 같군요. 제니가 생각에 잠기면서 말했다. 미스 아담즈는 누군가 의사를 알고 있었나요? 말하자면, 누군가 특정한 의사가 친구였느냐는 뜻입니다마는. 제니는 고개를 가로흔들었다. 그런 사람 들어 본 일 없어요. 또 한 가지 묻겠습니다. 미스 아담즈는 안경을 쓰고 있었습니까? 안경이요? 천만에요. 옳거니! 포와로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데 미스 아담즈는 영화배우 브라이언 마아틴을 알고 있었나요? 네, 알고 있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는군요. 하지만 그리 자주 그를 만나고 있었다곤 생각되질 않아요. 그저 어쩌다가에요. 그를 몹시 자만심이 강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었죠. 그녀는 팔목시계를 보고는 놀라서 소리쳤다. 에그머니! 날아가야겠네. 약간은 도움이 됐나요, 포와로씨? 도움이 되고말구요, 마드모아젤. 그럼 조만간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러셔요. 틀림없이 누군가가 이 무서운 음모를 꾸민 게 분명해요. 그게 누군지를 꼭 알아내야 해요. 그녀는 우리와 재빨리 악수를 나누자 웃으면서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상속자 생각할수록 흥미 깊은 인물이군. 포와로는 계산을 마치면서 말했다. 난 그녀가 좋구먼. 나는 이렇게 말하고 포와로에게 물었다. 뭔가 기대한 사실을 알아냈나? 그는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 나는 몹시 기대하고 있었지 - 카아롯타에게 그 금빛 작은 케이스를 보내준 D라는 인물의 단서를 잡을 수 있으리라고 말야. 그런데 제대로 되질 않았어. 하필이면 카아롯타는 입이 무거운 처녀였지. 그녀는 친구들이나 연애문제에 대해 지껄이는 여자는 아니었어. 하긴 그 장난을 사주한 인물은 친구가 아니었는지도 모르지. 그저 어쩌다가 한두 번 만난 사이였는지도 모르네 - 단순한 장난 이라는 이유를 붙여서 - 그리고 돈으로 매수하면서 말야. 그 인물은 그녀가 갖고 있는 금빛 케이스를 어쩌다가 봤고, 그래서 그 안의 것을 알게 됐는지도 모르는 일이지. 안그런가? 그렇지만 대체 어떤 방법으로 그녀에게 약을 먹였단 말인가? 그리고 언제? 글쎄, 그녀의 방문이 잠겨 있지 않았던 때가 있었어 - 가정부가 편지를 부치러갔을 때야. 그 해석으로 만족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는 너무 우연적이니까. 그건 어떻든 지금은 일을 할 때야. 아직 두 가지 가능성 있는 단서가 있단 말일세. 그게 뭔가? 하나는 빅토리아 국번으로 건 전화야. 카아롯타 아담즈가 돌아오는 길로 즉시 자기의 성공을 알리기 위해 전화를 걸으려고 한 가능성은 크다고 볼 수 있지. 또한 그녀가 열 시 오분부터 한밤중까지 사이에 어디 있었느냐는 문제가 있어. 장난을 시킨 인물과 만날 약속이 있었는지도 모르지. 하긴 이렇게 되면, 다만 사건하곤 무관한 친구한테 전화를 걸려고 했다고 봐야 될 테지만 말일세. 두번째 키이는 뭔가? 아아! 그거야말로 내가 가장 기대하고 있는 것일세. 편지라구, 헤이스팅즈. 동생한테 보낸 편지야. 그 편지 속에 그녀가 모든 사정을 설명했을 가능성이 다분히 있지 - 단순한 가능성이지만. 만약에 그렇다면 기막히군! 그걸 과히 기대해선 안되네, 헤이스팅즈. 다만 가능성이 있다는 것뿐이니까. 그렇지, 오늘밤엔 반대측에서 조사하지 않으면 안될 게야. 반대측이라니? 엣지웨어 경의 죽음으로 다소라도 이익을 얻는 인간을 검토해 보는 일이지. 나는 어깨를 흠칫했다. 그의 조카와 아내를 제외하면 - 그리고 그 아내가 결혼하고자 생각하고 있는 상대방 사나이야. 포와로가 이렇게 덧붙였다. 공작 말인가? 그는 빠리에 있다구. 맞아. 하지만 그가 이해관계자의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구. 그리고 그 집안의 여러 인물들이 있지 - 집사, 심부름꾼. 그들이 어떤 원한을 품고 있었는지 어찌 아나? 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최초의 공격목표는 제인 윌킨슨과 다시금 만나 보는 일이야. 그녀는 현명하니까 뭔가 힌트를 줄지도 모르지. 우리는 다시금 사보이 호텔로 향했다. 제인 윌킨슨은 상자며 포장지에 둘러싸여져 있었고, 의자의 등마다 검은 우아한 옷이 널려 있었다. 그녀는 황홀해 보이는 진지한 표정을 띠우고는 거울 앞에서 열심히 또다른 검고 작은 모자를 써보고 있는 중이었다. 어머나, 포와로씨. 어서 앉으셔요. 만일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있으면, 이라는 뜻이에요. 에리스, 좀 치워 주련? 마담, 아름답게 보이시는군요. 제인은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나, 반드시 위선자를 연출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포와로씨, 하지만 겉치장은 해야 되지 않겠어요? 결국 조심스럽게 굴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아아! 그건 그렇고, 공작한테서 다시없이 상냥한 전보를 받았답니다. 빠리에서인가요? 그래요. 빠리에서요. 물론 애도의 형식은 취하고 있었지만, 행간의 뜻을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었죠. 축하합니다, 마담. 포와로 선생님. 그녀는 두 손을 모아쥐고 허스키한 목소리를 낮추었다. 나 생각하고 있었어요. 매사가 기적만 같아요. 이 뜻을 아실 수 있을까 몰라. 그 외 내 고민은 완전히 사라졌어요. 이혼 따위 골칫거리도 없어졌죠. 이제 성가신 일이란 없어요. 내 앞길은 깨끗이 열리고, 만사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거죠. 내 말뜻을 아실까 몰라?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포와로는 얼굴을 약간 한쪽으로 기울이고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진지하기 짝이 었었다. 당신은 그런 투로 느끼셨군요, 마담? 매사가 안성마춤으로 진행되는 걸요. 제인은 일종의 외포의 심정을 담아 속삭였다. 나, 요즘 툭하면 생각하는 것이었어요 - 만일 엣지웨어가 죽어 줬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구요. 그랬더니 - 그가 죽었어요! 마치 - 마치 내 기도가 이루어진 것처럼. 포와로는 헛기침을 했다. 나로서는 그런 생각은 할 수 없군요, 마담. 누군가가 바깥어른을 죽인 것입니다. 그녀는 끄덕끄덕했다. 그야 물론이죠. 그 누군가가 과연 누군지 생각해 보신 일은 없습니까? 그녀는 포와로를 보았다. 없어요. 그녀에게 있어 포와로의 질문은 전혀 뜻밖이었던 모양이다. 그 점을 알고 싶다는 관심이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과히 그런 생각은 안들었다고 생각해요. 그야 경찰이 찾아낼 테죠. 그 사람들 기막히게 솜씨가 좋챦나요? 그렇다더군요. 그리고 나도 범인을 찾아낼 작정입니다. 당신이? 정말 웃기는 얘기네요. 왜 우습단 말씀인가요? 글쎄, 왜 그럴까? 그녀의 눈은 다시금 의상쪽으로 쏠려갔다. 당신은 반대하지 않으실 테죠? 포와로는 눈을 깜짝깜짝하면서 말했다. 어머, 물론 반대할 리가 없죠, 포와로씨. 당신이 솜씨 있게 해결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성공을 빌죠. 마담, 나는 당신의 의견이 듣고 싶은 겝니다. 의견이라구요? 제인은 어깨 너머로 목을 틀면서 건성으로 말했다. 무슨 의견인가요? 누가 엣지웨어 경을 죽였으리라 생각하시나요? 제인은 또다시 고개를 흔들었다. 전혀 알 수 없어요. 마담. 포와로는 힘을 주어 큰 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누가 바깥어른을 죽였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번에는 효과가 있었다. 제인은 겁먹은 시선으로 돌아보았다. 제럴딘이라 생각해요. 제럴딘이 누굽니까? 그러나 제인의 주의는 다시금 빗나가 있었다. 에리스, 오른쪽 어깨를 좀 들어올려 줘. 됐어. 뭐라구요, 포와로씨? 제럴딘은 주인의 딸이에요. 아냐, 에리스. 오른쪽 어깨야. 그게 낫겠어. 어머나! 돌아가실려구요, 포와로씨? 여러 가지로 정말 고마웠어요. 나 언제까지나 당신을 기막힌 분이라 생각할 거에요. 기막히구먼. 둘이서 개울가 행길로 나왔을 때 포와로가 감탄한 듯이 말했다. 우리가 집으로 돌아오자 편지 한 통이 테이블에 놓여 있었다. 포와로는 그것을 들어올려 여느때처럼 꼼꼼히 봉을 뜯고 읽고나더니 이윽고 껄껄 웃었다. 뭐라던가 -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 고 하겠다? 보라구, 헤이스팅즈. 나는 그에게서 편지를 받았다. 편지지에 리젠트 17번지라는 도장이 찍혀 있고, 직립된 특징 있는 자체로 다음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오늘아침 선생님이 경부님하고 함께 집에 오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었음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만일 형편이 닿아, 오늘 오후에 시간을 내주실 수 있으면 매우 고맙겠습니다. 제럴딘 머어슈 당장 가기로 하세, 여보게. 포와로는 이렇게 말하고는 모자에서 있지도 않은 먼지를 정중히 털어 머리에 올려놓았다. 우리는 이내 리젠트 게이트에 닿았고, 이층의 커다란 객실로 안내되었으며, 곧 제럴딘 머어슈를 만날 수 있었다. 먼젓번에 받은 강렬한 인상이 이번에는 더한층 강화되었다. 커다란 검은 눈을 지닌, 이 큰 키에 가냘픈 창백한 얼굴의 처녀는 남의 눈을 이끄는 용모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매우 차분했다 - 그 젊음으로 볼 때 대단히 침착해 있었다. 이렇게 속히 와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포와로 선생님. 그녀는 약간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아침엔 뵙지를 못해 실례했습니다. 누워 계셨던 모양이죠? 네, 미스 캐럴이 - 아시다시피 아버님 비서입니다만 - 누워 있는 게 좋겠다고 하기에. 매우 친절히 대해 준답니다. 처녀의 목소리에는 묘하게 분해 하는 투가 있기에 나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무슨 용건이신가요, 마드모아젤? 포와로가 물었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고나서 말했다. 아버님이 살해되기 전날, 당신은 아버님을 만나러 오셨었죠? 네, 그렇습니다만. 왜 찾아오셨었나요? - 아버님이 - 오시라고 하던가요? 포와로는 잠시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는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와서 생각하건대, 그것은 교묘히 계산된 행위였다. 그는 처녀를 초조하게 만들어 더 좀 이야기를 시키려고 한 것이다. 아버님은 무얼 두려워하고 있었나요? 말씀해 주셔요. 꼭 좀 알고 싶어요. 아버지는 누구를 두려워하고 있었죠? 왜 그랬나요? 당신한테 무슨 말을 하던가요? 아아! 왜 말씀해 주시지 않나요? 나는 그녀의 그 억지로 꾸민 것 같은 차분함은 자연스럽지가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의 냉정함은 이미 무너져내린 뒤였다. 이제 그녀는 몸을 내밀고, 두 손을 무릎 위에서 신경질적으로 모아대고 있는 것이다. 엣지웨어 경과 나 사이에 어떤 얘기가 오고갔는지는 비밀로 돼있습니다. 포와로가 천천히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가족의 일 - 결국 뭔가 가족하고 관계가 있는 일이었을 거에요. 아아! 왜 말씀해 주시지 않나요? 나는 알 필요가 있어요. 정말 알 필요가 있지요. 포와로는 극도로 낭패스러운 듯이 또다시 고개를 천천히 흔들었다. 분명히 상대방을 혼란시키기 위한 미끼였다. 포와로 선생님. 제럴딘은 정색을 하고 말했다. 나는 엣지웨어의 딸이에요. 내겐 알 권리가 있어요 - 아버님은 죽기 전날 무얼 두려워하고 있었나요? 말씀해 보셔요. 그럼 당신은 그렇듯 아버님을 사랑하고 계셨군요, 마드모아젤? 그녀는 몸을 흠칫했다. 아버지를 사랑하고 있었다구요? 그녀는 모기가 우는 것 같은 소리로 말했다. 아버지를 사랑하고 있었다, 내가? - 이 내가? - 그리고 느닷없이 그녀의 자제심이 사라졌다. 그녀는 터질 것처럼 웃어댔다. 의자에 등을 기대고는 미친 듯이 웃어젖혔다. 정말 너무도 우스워요. 그녀는 헐떡이면서 말했다. 정말 우스워요 - 그런 질문을 하시다니. 도어가 열리고 미스 캐럴이 들어왔다. 미스 캐럴은 차분하고도 엄숙했다. 이제 그만. 제럴딘, 안돼요. 안되고말구요. 조용히 하셔요. 암요. 이제 그만 웃어요. 그 꼬장꼬장한 태도는 효과가 있었다. 제럴딘의 웃음은 그쳐졌다. 그녀는 말했다. 미안해요. 여지껏 이런 짓을 한 적이 없었는데. 미스 캐럴은 다시금 근심스러운 듯 그녀를 지켜보았다. 이제 괜찮아요, 미스 캐럴. 정말 바보 같은 짓을 했군요. 그녀는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 그 입술은 쓰디쓴 기묘한 미소로 뒤틀렸다. 그녀는 앞쪽을 하염없이 보았다. 포와로씨가 물으신 거에요. 그녀는 냉정한, 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아버지를 몹시 사랑하고 있었느냐구요. 미스 캐럴은 공연히 헛기침을 했다. 제럴딘은 비웃는 것 같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거짓말을 해야 한담, 참말을 해야 한담? 나, 사실대로 말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요. 난 아버지를 사랑하고 있지 않았어요. 미워하고 있었죠! 어머나, 제럴딘. 왜 거짓말을 해야 하나요? 당신이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은 것은 아버지가 당신은 맘대로 다루질 못했기 때문이에요! 아버지가 맘대로 못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얼마 없었지만, 당신은 그 중 한 사람이었어요. 당신은 아무 때건 이 집에서 나갈 수 있었지만, 난 그럴 순 없었어요. 이 집에 묶여 있었기 때문이죠. 이봐요, 제럴딘. 그런 얘기까지 끄집어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아버지와 딸 사이가 나쁜 일은 흔히 있는 걸요. 아무튼 나는 그런 얘기는 안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군요. 제럴딘은 미스 캐럴에게 등을 돌렸다. 그리고 포와로를 향해 말했다. 포와로 선생님, 나 아버지를 미워하고 있었어요. 아버지가 죽어 주어 기뻐하고 있답니다. 그건 내게 있어 자유가 된다는 사실을 뜻하지요 - 자유로이 살아나갈 수 있다는 거죠. 난 아버지를 죽인 사람을 찾아내는 일 따위엔 관심조차 없어요. 아마 아버지를 죽인 사람에겐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테죠. 포와로는 생각하는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 그것은 받아들이기엔 위험한 생각이군요, 마드모아젤. 살인범을 찾아내어 교수형에 처하면 아버지가 되살아나나요? 아니죠. 포와로는 냉정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죄 없는 다른 사람들이 살해되는 것을 막는 것이 될 테지요. 나로서는 알 수 없군요. 마드모아젤, 한 번 사람을 죽인 인간은 대개 또다시 살인을 하게 마련입니다 - 때로는 몇 번씩 말씀입니다. 그렇게는 생각지 않아요. 설마 - 설마하니,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결국 - 살인광이 아닌 이상은, 이라는 뜻인가요? 아니죠, 실은 내 말대로 올시다. 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 아마 살인자의 양심과의 격렬한 갈등이 있을 겝니다. 그리고 - 살인자의 신변에 위험이 다가오면 - 제이의 살인은 도덕적으로 좀더 수월해집니다. 나아가서 불과 사소한 의심을 품게 돼도 제삼의 살인이 일어나지요. 그러는 사이에 조금씩 예술가적인 긍지가 생깁니다 - 예술이 되는 겝니다 - 죽이는 것이 말씀입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즐거움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게 되지요. 처녀는 재빨리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무서워라. 무서워요. 그럴 리가 없어요. 그런 일이 이미 일어나고 있다고 말씀드려도 말입니까? 이미 - 자기 목숨을 살리고자 - 범인이 두 번째 살인을 범하고 있다고 해도 말입니까? 그건 무슨 뜻인가요, 포와로씨? 미스 캐럴이 소리쳤다. 또 살인이 있었나요? 어디서요? 누가요? 포와로는 조용히 고개를 흔들었다. 그럴 수가 있다는 얘기올시다. 용서하십시오. 어머! 난 정말인 줄만 알았죠. 제럴딘은 일어서서 멋적은 듯 머리카락을 뒤로 쓸었다. 미안합니다. 좀 바보 같은 짓을 했다고 생각해요. 아버지가 왜 선생님을 불렀는지, 아직도 대답해 주시지 않겠어요? 포와로씨를 부르셨다구요? 미스 캐럴이 놀란 듯이 말했다. 당신은 오해하고 계십니다, 미스 머어슈. 당신한테 그 사실을 가르쳐드리는 것을 결코 거부한 것은 아니올시다. 포와로는 털어놓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면회가 어느 정도로 비밀이라고 할 수 있느냐를 생각하고 있었던 겝니다. 아버님이 나를 부르신 것은 아닙니다. 내쪽에서 어떤 의뢰인을 위해 아버님을 만나뵙자고 한 것이지요. 그 의뢰인이란, 엣지웨어 부인이었습니다. 어머나! 그랬었군요? 처녀의 얼굴에 두드러진 표정이 나타났다. 처음 나는 그것을 실망의 표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윽고 안도의 빛임을 알았다. 나, 정말 바보였어요. 제럴딘은 천천히 말했다. 아버지는 자기가 누군가에게 위협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라 짐작하고 있었으니까요. 생각만 해도 정말 바보스러운 짐작이었어요. 이 순간 노크도 없이 도어가 활짝 열리고, 한 사나이가 들어왔다. 그는 입장이 난처한 듯 우뚝 멈추어섰다. 사나이는 말했다. 실례, 여러분이 계신 줄 몰랐군요. 제럴딘은 기계적으로 그를 소개했다. 사촌오빠인 엣지웨어 경이에요. 이 분은 포와로 선생님이에요. 괜찮아요, 로널드. 방해는 안되니까요. 그래, 디나? 안녕하십니까, 포와로씨? 당신의 잿빛 뇌세포는 우리 집안의 괴사건을 해결하고자 활동하고 있나요? 나는 기억을 더듬어 생각해내려고 애썼다. 저 명랑하고 좀 얼간이 같은 둥근 얼굴, 아래쪽 눈꺼풀이 약간 쳐진 눈, 넓은 얼굴 한복판에 무인도처럼 고립해 있는 작은 입수염. 물론 기억하고 있다! 제인 윌킨슨의 방에서의 야식회 밤, 카아롯타 아담즈와 같이 있었던 사나이다. 전의 로널드 머어슈, 새로운 엣지웨어 경이다. 새로운 엣지웨어 경의 눈은 재빨랐다. 그는 내가 나타낸 어렴풋한 놀라움을 깨달았다. 아아, 이제 생각나는군요. 그는 상냥하게 말했다. 제인 백모님의 야식회였죠. 난 좀 취해 있었죠? 하지만 여러분이 눈치를 못챘으리라 생각했지요. 포와로는 제럴딘 머어슈와 미스 캐럴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있었다. 밑에까지 같이 가십시다. 로널드가 말했다. 그는 앞서서 층계를 내려가면서 말을 걸었다. 정말 묘한 것이군요 - 인생이란 놈은. 어제는 내쫓김을 받고, 오늘은 장원의 주인이 된다, 죽어도 애통할 수 없는 그 백부는 삼 년 전에 나를 내쫓았지요. 하지만 그 사실은 모두 알고 계실 테죠, 포와로씨? 화제가 된 사실을 들은 적이 있소이다 - 그렇지요. 포와로가 조용히 말했다. 당연하죠. 이런 일은 반드시 꼬치꼬치 들춰지게 마련이니까요. 포와로씨 같은 명탐정이 그런 걸 놓칠 리가 만무하죠. 그는 이를 보이며 웃었다. 그리고는 식당 문을 활짝 열었다. 돌아가시기 전에 한 잔 드시죠. 포와로는 사양했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청년은 우리를 안으로 안내하고는 자기를 위해 한 잔 믹스한 다음 말을 계속했다. 살인에게 브라보! 그는 명랑하게 말했다. 불과 하룻밤 사이에 나는 채권자들의 골칫거리에서 일약 장삿군들의 희망의 별로 달라졌지요. 어제는 파멸의 나락에 빠질 직전에 놓여 있었는데, 오늘은 풍성하기 짝이 없습니다. 제인 백모님에게 신의 자비가 있으시길. 그는 술잔을 들어 마셨다. 그리고는 약간 태도를 고치고 포와로에게 물었다. 그런데 이건 진지한 얘기올시다. 포와로씨, 여기서 뭘 하고 계시는 겝니까? 나흘 전에 제인 백모는 연극 대사나 외우듯이 선언했지요. 그 누가 내게서 그 오만한 폭군을 몰아내 줄 것인가? 이렇게 말씀입니다. 그러자 보십쇼, 그녀는 남편을 몰아낸 겝니다! 설마하니 당신의 공로는 아닐 테죠? 명탐정 에르큐르 포와로에 의한 완전범죄. 포와로는 싱긋 웃었다. 내가 오늘 오후 이곳에 들른 것은 미스 제럴딘의 부탁을 받은 까닭이올시다. 조심스러운 대답이시군. 아니, 포와로씨, 솔직히 얘기해서 여기서 무얼 하고 계시는 겁니까? 어떤 이유로 당신은 백부의 죽음에 흥미를 품고 계시죠? 나는 언제나 살인에 흥미를 품지요, 엣지웨어 경. 그렇지만 당신은 제인 백모한테 조심스러움을 가르칠 일입니다. 용의주도하게 하는 것과 좀더 속임수를 쓰는 일을 말씀입니다. 그녀를 제인 백모라고 부르는 것을 용서해 주실 테죠? 일전에 나한테 그 말을 들었을 때의 그녀의 그 멍청한 얼굴을 보셨나요? 내가 누군지 전혀 짐작조차 못하는 눈치더군. 정말입니까? 물론이죠. 내가 여기서 좇겨난 것은 그녀가 들어오기 석 달 전이었으니까요. 그의 호인 같은 멍청한 표정이 순간 사라졌다. 이윽고 쾌활하게 말을 계속했다. 미인이에요. 하지만 교활함이 없단 말야. 수법이 좀 거칠군요. 안그렇습니까? 포와로는 어깨를 흠칫했다.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로널드는 그를 뚫어지게 보았다. 당신은 마치 그녀가 한 짓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계시는 것 같군요? 그렇담 그녀는 당신마저 녹여 버렸다? 나는 미인을 매우 존중합니다. 포와로는 이렇게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다시금 덧붙였다. 동시에 - 증거도 말씀입니다. 증거라구요? 상대방은 날카롭게 물었다. 엣지웨어 경, 당신은 아마 모르실 테지만, 엣지웨어 부인은 어젯밤 이곳에 나타났다고 믿어지는 시간에 치즈위크의 모 파아티에 참가하고 계셨지요. 로널드는 흥분해서 소리쳤다. 그렇다면 그녀는 역시 갔단 말이군? 여자가 할 법한 짓이야! 여섯 시 경 그녀는 호들갑을 떨면서, 어떤 일이 있어도 파아티엔 안간다고 선언하고 있었는데, 불과 십분도 안돼 변덕이 생겼군. 살인을 계획할 때는 여자의 장차 행동을 믿었다간 골탕먹기 십상이겠는걸. 제아무리 교묘히 계획된 살인음모라도 뒤틀려 버리지. 아니, 포와로씨, 나는 자신을 가리키고 있는 것은 아니올시다. 암, 그렇고말구요, 당신의 마음에 떠올라 있는 것을 내가 눈치채지 못한다고 생각했다간 큰 코 다치죠. 그렇다면 용의자는 누구냐? 성질이 고약하고, 좋은 일을 해본 역사가 없는 것으로 유명한 조카녀석일까? 그는 의자에 기대어 킥킥거렸다. 나는 당신의 작은 잿빛 뇌세포를 귀찮게 하지 않으려 하고 있단 말씀입니다, 포와로씨. 그는 그 자리의 상황을 즐기고 있듯이 우리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포와로는 고개를 갸웃하고 상대방을 주의깊게 보고 있었다. 내겐 동기가 있지 - 암! 명백한 동기올시다. 그리고 매우 중요하고 뜻깊은 정보를 제공해드리죠. 어제 오전 중 나는 백부를 찾아왔었지요. 왜? 돈을 빌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요, 구미가 당길 걸요. 돈을 빌리기 위해서였죠. 게다가 나는 돈 한 푼 못꾸고 돌아갔지요. 그리고 그날밤 - 그날밤입니다 - 엣지웨어 경은 죽었단 말씀입니다. 그는 한 숨 돌렸다. 포와로는 잠자코 있었다. 당신이 눈독을 들이게 돼서 정말 기쁘다구요, 포와로씨. 헤이스팅즈 대위는 마치 유령을 본 것 같은 - 아니, 당장 볼 것 같은 - 얼굴을 하고 계시구먼. 그렇게 긴장할 필요는 없시다, 여보슈. 그건 그렇고 어디까지 얘기했죠? 그렇지! 성질이 고약한 조카에게 불리한 진술입니다. 죄는 증오할 백모한테 뒤집어 씌우기로 한다, 전에 여자역을 연출해서 호평을 얻은 바 있는 조카는 최고의 연기력을 기울인다, 그는 여자다운 목소리로 엣지웨어 부인입네 하고는 집사 앞을 지나 서재로 빠진다, 물론 아무런 의심도 받지 않고 말입니다. 제인! 이렇게 백부는 소리친다, 죠오지 나는 이렇게 목쉰 소리를 낸다, 나는 팔을 백부의 목에 돌리고 솜씨 있게 나이프를 찔러넣는다, 가짜부인은 퇴장, 그리고 휴우, 잘 됐다면서 침대로 들어간다. 그는 웃으면서 일어나 위스키소오다를 또 한 잔 만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의자로 돌아왔다. 기막히게 잘 꾸며져 있죠, 안그래요? 하지만 말씀입니다, 여기엔 난점이 있지요. 완전실망이에요! 헛물만 실컷 켠 것 같은 기분이지요. 그럴 것이 포와로씨, 알리바이에 부딪친단 말씀입니다. 그는 술잔을 비우고 말을 계속했다. 나는 언제나 알리바이를 좋아하지요. 이번 경우는 대단히 훌륭한 알리바이올시다. 세 사람의 유력한, 게다가 유대계의 증인이지요. 좀더 분명히 말하자면 도오트하이머 내외와 따님이올시다. 부자에다 대단한 음악애호가지요. 코벤트 가아든 극장에 보즈를 갖고 있죠. 그리고 그 복스에는 장래성 있는 청년들을 초대하는 것입니다. 포와로씨, 나는 장래성 있는 청년의 한 사람입니다 - 그들의 손이 닿는 한 장래성이 있다고나 할까요. 아시겠죠, 포와로씨? 백부의 생명의 피가 흐르고 있을 때 나는 코벤트 가아든 극장 복스에 있었다, 이겁니다. 아실 테죠? 내가 이렇게 노골적으로 얘기하는 까닭을요. 그는 의자에 기대었다. 내 얘기로 지루하시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뭔가 질문이 있으신가요? 분명히 무료하지는 않았소이다. 포와로가 싱긋 웃으면서 조용히 말했다. 모처럼 친절히 말씀해 주시니, 한 가지만 물어보지요. 좋고말구요. 엣지웨어 경, 당신은 미스 카아롯타 아담즈와 언제부터 사귀셨나요? 청년이 이런 질문을 전혀 짐작 못했으리라는 것은 분명했다. 그는 우스울 정도로 어리둥절한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대체 뭣 때문에 그걸 알고 싶으신가요? 그게 지금 얘기하고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흥미를 품었을 따름이올시다. 그밖의 것에 대해서는 당신이 모조리, 게다가 완전히 설명하셨으니까요. 이쪽에서 물을 필요가 없지요. 로널드는 포와로에게 재빠른 시선을 던졌다. 그것은 마치 포와로가 자기의 설명을 액면 그대로 인정해 준 사실이 마음에 안드는 것 같았다. 그는 오히려 더한층 의심을 받고 싶었었다고 생각한다. 카아롯타 아담즈요? 잠깐. 일 년쯤 됐군요. 좀더 됐을까? 그녀와 친하게 사귀고 계셨나요? 제법 자별한 편이죠. 하지만 그녀는 아주 친밀해질 그런 처녀는 아닙니다. 매사를 재는 성질이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그 처녀한테 뭣 때문에 흥미를 품으시는지 알고 싶군요. 지난밤 내가 그녀와 함께 있었기 때문인가요? 하긴 나는 그녀를 아주 좋아하지요. 그럴 것이 그녀는 동정심이 있어요. 인자한 데가 있단 말씀입니다. 포와로는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슬퍼하시겠군요? 슬퍼하다뇨? 그건 또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립니까? 그녀는 죽었습니다. 아니, 뭐라구요? 로널드는 놀라서 펄쩍 뛰었다. 카아롯타가 죽어? 그는 이 소식에 망연자실했다. 날 놀리시는군요, 포와로씨? 카아롯타는 며칠 전에 만났을 때도 말짱했단 말입니다. 그게 언제였나요? 포와로가 여유를 주지 않고 물었다. 그저께였던가? 생각이 안나는군요. 아무튼 간에 그녀는 죽었습니다. 몹시 급한 일이 벌어진 모양이군. 뭐였나요? 교통사고였습니까? 포와로는 딴전을 부리듯 천정을 올려다보았다. 아뇨. 베로날을 너무 많이 복용한 탓이지요. 아아! 가엾게도. 정말 슬픈 일입니다. 그럴 테지요. 정말 슬픈 일입니다. 그녀는 매사가 대단히 순조로워져가고 있는 중이었지요. 가까운 장래에 여동생을 부른다거나,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우고 있었거든요. 아아, 이루 말할 수 없이 슬픈 일이군. 그렇고말구요. 젊어서 죽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장래에 온갖 인생이 열려, 생명력에 넘쳐 있을 때 죽는다는 것은. 말씀하시는 뜻을 잘 모르겠군요, 포와로씨? 그런가요? 포와로는 일어서서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저 단순히 감상을 말한 것입니다 - 아마 좀 지나치게 감정적이었는지도 모르겠군요. 그럼 안녕히. 아아 - 저어 - 안녕히 가십쇼. 로널드는 약간 어리둥절한 것 같아 보였다. 나는 도어를 열었는데, 자칫하면 미스 캐럴과 부딪칠 뻔했다. 어머! 포와로씨, 아직 안돌아가셨다기에 잠깐 말씀드리고 싶어서요. 제 방까지 가주실 수 없겠습니까? 우리가 그녀의 방으로 들어서자 그녀는 도어를 닫고나서 말했다. 그 애, 제럴딘에 대해서랍니다. 아, 그러신가요? 말씀하시지요, 마드모아젤. 그녀는 아까 여러 가지 바보스러운 말을 했습니다. 아뇨, 말하게 해주셔요. 바보스러운 것이지요! 그렇고말구요. 그녀는 욱하는 성미랍니다. 게다가 꽁한 편이죠. 그건 알고 있었습니다. 포와로가 상냥하게 말했다. 그래요 - 실은 그녀는 이제까지 과히 행복하지를 못했답니다. 포와로씨, 엣지웨어 경은 이상한 분이었어요. 그 분은 -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모르지만 - 그래서 자기가 누군가에게 두려움을 받고 있는 것을 보는 걸 좋아하셨지요. 그런 것이 다시 없는 즐거움 같았어요. 부인이 그 분을 버린 것도 그리 이상하다고는 생각되지 않는군요. 이번 부인 말씀이에요. 하지만 부인이 올바르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그녀는 남편 곁을 떠났습니다 - 말하자면 별다른 피해를 안받구요. 하지만 제럴딘은 부친 곁을 떠날 수가 없었지요. 경은 오랫동안 딸의 일을 잊고 계셨는데, 갑자기 생각해낸 것입니다. 저는 가끔 생각합니다마는 - 하지만 이런 것은 입 밖에 낼 일이 못될지도 몰라요. 아뇨. 그렇지는 않습니다, 마드모아젤.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가끔 생각한 것은 경은 그 딸을 괴롭히는 것으로 그 모친에게 - 경의 첫 번째 부인에게 - 복수하고 있는 것이라는 것이었어요. 매우 고마웠습니다, 마드모아젤. 생각건대 엣지웨어 경은 결혼하지 않는 편이 훨씬 좋았을 사람 같군요. 훨씬 좋았지요. 경은 세 번째 결혼을 생각하고 있지 않았나요? 그 분은 두 아내만으로도 신물이 나셨을 거라 생각해요. 미스 캐럴은 엄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세 번째 결혼문제는 없었다고 생각하신단 말씀이군요? 아무 것도 없었다구요? 생각해 주십시오, 마드모아젤. 아무 것도 없었습니까? 미스 캐럴의 얼굴이 빨개졌다. 그 사실을 되풀이해서 물으시는 뜻을 모르겠군요. 물론 아무 것도 없었지요. 괴전화의 뜻 엣지웨어 경이 또다시 결혼할 가능성에 대해 왜 미스 캐럴한테 질문을 했나?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나는 얼마간 흥미를 이끌려 물었다. 그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떠오른 것이라네. 어째서? 엣지웨어 경이 이혼문제에 대해 갑자기 방향전환을 한 사실을 설명해 주는 무언가를 모색하고 있었던 게야. 뭔가 기묘한 점이 있으니까 말야. 그건 그래. 나는 생각에 잠기면서 말했다. 좀 이상하다구. 여보게, 헤이스팅즈, 엣지웨어 경은 부인이 우리한테 얘기한 것을 사실이라고 인정했어. 그녀가 여러 변호사를 고용해서 교섭을 했는데도 경은 한 걸음도 양보하려들지 않았지. 그렇지, 이혼을 승낙지 않았던 게야. 그런데 갑자기 양보했어! 혹은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게야. 맞아, 헤이스팅즈. 자네의 관찰은 지극히 정확해. 그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게야. 그 편지가 쓰여졌다는 증거는 하나도 없어. 어떤 이유에서 우리에게 거짓말을 했는지도 모르지. 그 정말 사실은 모르는 거야. 하지만 그가 사실 그 편지를 썼다고 가정하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란 말야. 그런데 그 이유로서 지극히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짐작은 그가 누군지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상대방을 갑자기 만났다, 이거야. 그렇다면 그가 느닷없이 태도를 바꾼 까닭이 완전히 납득되네. 그래서 그런 질문을 한 게야. 미스 캐럴은 그런 가능성을 딱 잘라 부정했단 말야. 그래. 미스 캐럴은 말야 - 포와로는 생각에 잠긴 투로 말했다. 자네는 무얼 노리고 있나? 나는 참다못해 물었다. 포와로는 목소리의 투로 의혹을 암시하는 것이 노상 자랑거리였다. 그녀에게 그 점에서 거짓말을 한 어떤 이유가 있나? 나는 거듭 질문했다. 딴은 아무 것도 없어 - 아무 것도. 하지만 말일세, 헤이스팅즈, 그녀의 증언은 사실이라 믿기는 좀 어렵다네. 그녀가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하나? 하지만 왜지? 매우 털털한 사람으로 보이는데. 그건 그래. 고의로 거짓말을 하는 것과 무관심하게 부정확한 말을 하는 것과는 때에 따라 가려내기가 몹시 힘든 경우가 있으니까. 무슨 뜻이지? 자네도 아다시피 그녀는 우리에게 이미 거짓말을 한 가지 했어. 제인 윌킨슨의 얼굴이 보일 리가 없는데도 봤다고 했지. 그럼 왜 그렇게 됐느냐? 이런 식으로 생각해 보게나. 그녀는 이층에서 내려다보다가 호올에 제인 윌킨슨의 모습을 본다, 그녀의 머리는 의심도 없이 그것이 제인 윌킨슨이라는 관념이 생기지. 그녀는 그렇게 생각해 버리는 게야. 그녀에게 제인의 얼굴이 보였을 리가 만무하다는 사실이 지적되네. 어머나, 그랬던가? 제인의 얼굴을 보고 안보고는 문제가 아닙니다 - 그것은 제인 윌킨슨이었으니까요. 이렇게 말일세. 다른 질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지. 그녀는 생각해 버리는 게야. 따라서 그녀는 이성이나 기억하고 있는 사실에 바탕을 두고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관념에 의지해서 대답하는 거라네. 확신이 있는 증인은 노상 의심을 품고 다룰 필요가 있지. 놀랐구먼, 포와로. 내가 증인에 대해 지니고 있던 개념이 완전히 뒤틀려 버렸쟎아? 엣지웨어 경이 또 결혼하려고 한 게 아니냐는 내 질문에 대해 그녀는 당치않은 일이라고 일소해 버렸어 - 그녀에게는 뜻밖의 얘기였기 때문이었지. 그리고 그런 가능성을 나타내는 무언가 사소한 조짐이라도 있었는지 아닌지, 그녀는 우정 노력을 기울이지는 않을걸. 따라서 그녀의 증언은 과히 참고가 되질 않지. 자네가 제인 윌킨슨의 얼굴을 봤을 리가 없다고 지적했을 때, 분명히 그녀는 조금도 허둥대는 폼은 없었어. 나는 생각에 잠기면서 말했다. 그렇지.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그 무의식적으로 부정확한 말을 하는 인간의 하나이고, 고의로 거짓말을 할 사람이 아니라고 판단한 게야. 고의로 거짓말을 할 만한 동기가 안보이니까. 만일 - 그렇지, 그것도 한 가지 사고방식이군! 뭐가? 나는 힘주어 물었다. 그러나 포와로는 고개를 흔들었다. 하나의 추측이 문득 떠오른 거야. 하지만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지 - 암,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그리고 그는 그 이상 말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 처녀애를 몹시 사랑하고 있는 것 같지? 잠시 후 나는 말했다. 음. 그 애가 우리와 면회하는 것을 응원할 작정이었음은 분명하구먼. 그런데 그 제럴딘 머어슈에 대해서는 어떤 인상을 받았나, 헤이스팅즈? 그녀를 딱하게 생각했어 - 진심으로 딱하게 생각했다구. 자네는 항상 동정심이 강하구먼, 헤이스팅즈. 미인이 고민하고 있는 것을 보면, 무척 마음이 움직여지는 거야. 자네도 그렇게 안느끼나? 그는 지나치게 진지한 표정으로 끄덕였다. 맞아 - 그녀는 행복하지는 않았어. 그것은 그녀의 얼굴에 뚜렷이 나타나 있지. 어쨌든 간에 제인 윌킨슨의 발언이 그 얼마나 불합리한 것이었는지 알 수 있어 - 그 애가 이번 사건과 관계가 있다니, 온. 아마 그 처녀의 알리바이는 틀림 없는 것일 테지. 하지만 재프 경부는 아직 그 점을 내게 전하고 있질 않단 말야. 여보게, 포와로 - 그 애를 직접 만나고났는데도 자네는 아직도 만족지 않고 알리바이를 요구할 셈인가? 이 사람아. 그녀를 만나 얘기를 나눈 결과 무얼 알게 됐나? 우리는 그녀가 커다란 불행에 견디어 온 사실을 알았어. 그녀는 부친을 미워하고 있었던 사실을 인정했고, 그가 죽은 것을 기뻐하고 있지. 그리고 어제아침에 부친이 우리보고 무슨 얘기를 했는지 무척 궁금해 하고 있어. 그런데도 자네는 말하는 거야 - 알리바이는 필요가 없다, 어쩌구! 그 솔직함이 그녀의 무죄를 증명하고 있는 게야. 나는 그녀를 위해 열심히 역설했다. 솔직함은 그 일족의 특징이라네. 새로운 엣지웨어 경은 - 그 얼마나 요란한 몸짓으로 손 안의 카아드를 테이블에 펴보였느냐 말일세. 정말 그래. 나는 그 점을 생각해내고 미소를 지었다. 분명히 독창적인 수법야. 포와로는 끄덕끄덕했다. 그가 카아롯타 아담즈가 죽은 소식을 들었을 때의 공포나 놀라움은 진짜라고 생각되는군. 자네는 그것마저 교묘한 쇼우였다고 말할 테지? 왈, 말하기 힘드노라. 진짜처럼 보였다는 자네 의견엔 찬성하지만 말일세. 그가 그렇듯 노골적으로 털어 놓은 것은 무슨 까닭이라고 생각하나? 장난삼아? 그럴 가능성은 항상 있지. 자네들 영국인은 몹시 동떨어진 유우머의 센스를 갖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전술이었는지도 모르지. 숨겨진 사실은 어쩐지 중요한 것 같은 의혹을 불러일으키게 마련야. 반면에 솔직하게 털어놓아진 사실은 실제보다도 오히려 중요치 않은 것처럼 생각되게 마련이구. 그 사나이는 겉보기보다는 바보가 아니구먼. 아아! 조금도 바보가 아니지. 그럴 작정만 한다면 충분히 머리를 움직일 수 있고말구. 자기 입장을 알고 내가 말한 것처럼 카아드를 테이블 위에 펼쳐 보인 게야. 헤이스팅즈, 내겐 말일세, 그 지나친 솔직함이 몹시 흥미롭다구. 그런데 벌써 식사시간이군. 작은 오무렛은 어떤가? 그리고 그 뒤, 아홉 시 경에 또 한 군데 찾아갈 데가 있다네. 어디 말인가? 우선 식사를 하세, 헤이스팅즈. 그리고 코오피를 마실 때까지는 이 문제를 더 이상 논하지 않도록 하세. 식사 중엔 뇌는 위의 심부름꾼이어야 하지. 포와로는 약속을 지켰다. 우리는 그가 잘 다니는 작은 레스토랑으로 가서 맛있는 오무렛과 치킨과 포와로가 무척 좋아하는 작은 램주들이 케이크를 먹었다. 그리고는 코오피를 마시고 있을 때 포와로가 식탁 너머로 상냥하게 웃음을 던졌다. 여보게, 나는 자네가 생각하고 있는 이상으로 자네를 의지하고 있다구. 나는 이 뜻밖의 말에 어리둥절했고, 또한 기뻐했다. 이제껏 그는 그런 말을 입 밖에 낸 일이 없었다. 때로는 나는 은근히 속상하는 일이 있었다. 그의 태도가 우정 나의 지능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이는 수조차 있었던 것이다. 암, 그렇고말구. 그는 나른한 듯이 말했다. 자네는 실상 이따금 길안내를 해주고 있지. 나는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나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나는 기막히게 기쁘다네. 하긴 그 동안 이것저것 자네한테 배운 탓일 테지만 -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그렇쟎아. 자네는 아무 것도 배우고 있지 않아. 뭐라구? 나는 멍청해져서 외쳤다. 그건 그렇다구. 어떤 사람도 남에게서 배우는 게 아닐세. 각자가 다른 사람의 능력을 흉내내려고 않고 자기 능력을 힘껏 발달시킬 일이지. 나는 자네가 아류라고 할까, 이류의 포와로가 되는 것을 바라지 않지. 자네가 최고의 헤이스팅즈가 되기를 바라는 게야. 그리고 자네는 최고의 헤이스팅즈지. 나는 말일세, 여보게, 자네 가운데에 정상적인 마음의 거의 완전한 도해를 찾아낸다네. 난 이상은 아니라고 생각해. 그래, 그렇지. 자네는 훌륭하게 완벽하게 균형이 잡혀 있다구. 자네는 건전하기 짝이 없지. 실은 이렇다네. 범인이 내게 믿게 하려는 그대로의 일이 마치 거울에 비치듯 자네 마음에 반사해 보이는 거야. 그게 기막히게 도움이 되고, 암시적이라네. 나로서는 뜻을 잘 알 수 없었다. 포와로의 말은 거의 칭찬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재빨리 나의 마음에서 그 인상을 씻어냈다. 내 표현이 서툴렀구먼. 그는 서둘러 말했다. 자네는 범죄자의 마음에 파고드는 통찰력이 있지만, 내겐 그것이 없어. 자네는 범죄자가 내게 믿게 만들고 싶어하는 것을 나타내 주는 게야. 그것은 위대한 재능이지. 통찰력이라? 나는 생각에 잠기면서 말했다. 그래, 아마 내겐 통찰력이 있을 거야. 나는 테이블 너머로 그를 보았다. 그는 짧아진 담배를 피우면서 몹시 정답게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기분이 흡족했지만, 쑥스러워져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이제 그만 사건 얘기를 하세. 좋을 테지. 포와로는 목을 뒤로 젖히고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 천천히 연기를 토해냈다. 나는 몇 가지 의문을 자신에게 제출하고 있다네. 그래서? 나는 힘차게 물었다. 자네도 그럴 테지, 아마? 물론이지. 나는 그러면서 똑같이 의자에 기대어 앉아 눈을 가늘게 떴다. 누가 엣지웨어 경을 죽였느냐? 포와로는 이내 몸을 일으키고 힘껏 고개를 흔들었다. 노우, 노우라구. 전혀 틀려. 그게 질문인가? 자네는 마치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줄거리도 통하지 않고 등장인물을 모조리 의심하고 덤비는 독자처럼 따분하군. 그건 어떻든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지? 자네가 자신에게 제출하고 있는 의문이지. 나는 비꼬았다. 포와로에게 있어 나의 진짜 역할은 그의 자랑을 들어 주는 일일 테지? 이 말이 혀 끝까지 나와 있었으나 꾹 참았다. 나는 재촉했다. 시작하게나, 들어 보세. 인간의 허영심에 호소하는 데에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는 만족한 듯 다시금 의자에 기대어 앉았다. 첫째의 의문은 우리가 이미 논한 문제야. 엣지웨어 경이 이혼문제에 대해 생각을 고친 것은 무엇 때문이냐? 그 의문에 대해서는 한두 가지 추측이 떠오르네. 그 하나는 자네도 알고 있지. 내가 자문하고 있는 두 번째 의문은 그 편지는 어떻게 됐느냐, 일세. 엣지웨어 경과 그 아내가 결혼관계를 계속하는 것은 누구의 이익이 되느냐? 셋째, 어제 낮 자네가 엣지웨어 경의 서재를 나오다가 뒤돌아봤을 때 그의 얼굴에 나타나 있던 표정의 뜻은 뭐냐? 그것에 대해 해답이 있나, 헤이스팅즈?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전혀 모르겠군. 좋아. 네 번째 의문은 그 안경에 관계가 있지. 제인 윌킨슨도, 카아롯타 아담즈도 안경을 끼고 있지 않아. 그럼 그 안경이 카아롯타 아담즈의 백 안에 들어있던 것은 왜냐? 그리고 다섯 번째의 의문이야. 누군가가 제인 윌킨슨이 치즈위크에 있는지 없는지 알려고 전화를 건 것은 무슨 이유인가? 그리고 그것은 과연 누구였느냐? 여보게, 이런 것들이 내 머리를 노상 어지럽히고 있는 의문이라구. 이 의문에 대답할 수 있다면 마음이 편해지련만. 이것들을 만족하게 해명할 수 있는 추론을 생각해낼 수만 있다면, 내 자존심은 과히 괴롭힘을 안당할 거란 말일세. 그밖에도 몇 가지 의문이 있지. 가령? 카아롯타 아담즈를 사주해서 그 장난을 시킨 것은 누구냐? 그녀는 그날밤 열 시 전과 후에 어디에 있었느냐? 그녀에게 금빛 케이스를 준 D란 누구냐? 그런 의문은 자명하다구. 그 문제엔 아무런 이상함도 없지. 우리가 모른다는 것 뿐이야. 그것들은 사실에 대한 의문이지. 내 의문은 말일세, 여보게, 심리적인 것이라구. 잿빛의 작은 뇌세포가 - 포와로, 여보게. 나는 필사적으로 말했다. 다시금 그 말을 듣는 것은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오늘밤 누구를 찾아간다고 했지? 포와로는 자기의 시계를 보았다. 옳거니. 전화를 걸어 형편을 알아 보세.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1분쯤 되어 돌아왔다. 가세. 만사 오우케이야. 어디로 가나? 치즈위크에 있는 몬타규 코우너 경 댁이라네. 그 전화를 걸어온 문제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확인해 보고 싶단 말야. 우리가 치즈위크 개울가에 있는 몬타규 코우너 경의 저택에 닿은 것은 10시 경이었다. 으리으리한 저택으로서 부지 안쪽에 서 있었다. 우리는 아름다운 경판이 깔린 호올로 안내되었다. 오른쪽에는 열려진 도어 너머로 식당이 보이고, 번쩍거리는 긴 테이블이 촛불에 비추어져 있었다. 이리 오십시오. 집사는 선두에 서서 폭넓은 층계를 올라 개울을 내려다보는 긴 방으로 들어갔다. 에르큐르 포와로씨가 오셨습니다. 집사가 이렇게 알렸다. 아름답게 조화가 잡힌 방으로서, 깊숙이 삿갓이 씌어진 램프의 둔한 빛 때문에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떠돌고 있었다. 방 한쪽 구석가에는 브릿리용 테이블이 열려진 창가에 놓여 있었고, 그 둘레에 네 사람이 자리잡고 있었다. 우리가 방으로 들어가자 그 중의 한 사람이 일어서서 이쪽으로 왔다.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 기쁘군요, 포와로씨. 나는 다소의 흥미를 담아 몬타규 코오너 경을 보았다. 그는 분명히 유대계의 얼굴생김으로, 매우 작은 지적인 눈에 꼼꼼히 손질된 토오페(앞머리 부분의 가발)를 달고 있었다. 키는 낮았다. 고작 5피이트 8인치쯤 되리라. 그의 태도는 극도의 꾸밈이 엿보였다. 소개하겠습니다. 위드번 부처올시다. 전에 뵌 적이 있었지요. 위드번 부인이 명랑하게 말했다. 그리고 로스씨입니다. 로스란 스물 두세 살의 젊은 사나이였고, 느낌이 좋은 얼굴생김의 금발이었다. 게임의 방해가 되어 대단히 죄송합니다. 포와로가 정중히 말했다. 천만의 말씀을. 아직 시작하고 있질 않았지요. 막 카아드를 나눠주기 시작했을 뿐이올시다. 코오피를 드시겠습니까, 포와로씨? 포와로는 사양했는데, 해묵은 브랜디를 권하자 호의를 받아들였다. 브랜디는 제법 커다란 술잔에 담겨져 들어왔다. 우리가 그것을 마시고 있는 사이에 몬타규 경은 강의를 시작했다. 그가 지껄인 것은 일본의 판화, 중국의 칠기, 페르샤의 카아펫, 프랑스의 인상파, 현대음악, 아인슈타인의 이론 따위였다. 이윽고 그는 의자에 기대어 자애에 넘친 미소를 우리에게 쏟았다. 분명히 그는 자기의 연기를 즐기고 있었다. 방의 둘레에는 예술이나 문화의 우미한 실예가 잔뜩 늘어서 있었다. 그런데 몬타규 경. 포와로가 한 마디 했다. 이 이상 호의를 받고만 있을 수도 없는 일인즉, 이제는 제가 방문한 용건으로 들어갈까 합니다. 몬타규 경은 맹수의 발톱 같은 모양의 기묘한 손을 흔들었다. 서두르실 것은 없습니다. 시간은 얼마든지 있소이다. 여기에 와있으면 노상 그렇게 생각되는군요. 위드번 부인이 한숨을 쉬었다. 정말 기막힌 걸요. 난 백만 파운드를 받아도 런던 시내엔 살고 싶지 않소이다. 몬타규 경이 말했다. 여기 있으면 해묵은 시대의 평화로운 분위기를 느끼지요. 그런데 - 아아! - 이 소란스러운 현대의 인간은 그런 것을 헌신짝처럼 모조리 던져 버리고 말았소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범죄 이야기를 드리는 것은 죄송한 일이라 생각합니다마는. 포와로가 변명하듯 말했다. 그렇지는 않소이다. 몬타규 경은 관대한 듯 손을 흔들었다. 범죄도 예술작품일 수 있고, 탐정도 예술가일 수 있지요. 물론 경찰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외다. 오늘 묘한 경부가 여기엘 왔었지요. 묘한 사나이였소. 그는 제인 윌킨슨 일로 찾아온 거라 생각해요. 위드번 부인이 이내 호기심을 나타내며 말했다. 그 부인에게 있어서는 어젯밤 이 댁에서 있었던 파아티에 참석한 사실이 참으로 다행한 일이었습니다. 포와로가 말했다. 그러자 몬타규 경은 말했다. 그런 것 같군요. 나는 그녀가 매우 아름답고 재능이 있음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녀의 도움이 된다면 싶어 모임에 초대한 것이었소. 헌데 나는 몹시 다른 형태로 그녀의 도움이 될 운명에 있었던 것 같소이다. 제인은 재수가 썩 좋은 거에요. 위드번 부인이 재빨리 끼어들어 말했다. 그녀가 엣지웨어를 몰아내 버렸으면 하고 바라고 있자 누군가가 나타나 그렇게 해준 걸요. 이번엔 마아튼 공작과 결혼할 테죠. 그런 소문이 자자하던데요. 공작 모친은 그 일로 매우 화를 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마는. 나는 그녀에게서 좋은 인상을 받았소이다. 몬타규 경이 점잔을 빼면서 말했다. 그녀는 그리이스 예술에 대해 조예가 제법 깊었소. 누구의 말을 들어도 엣지웨어는 좀 이상한 사나이였던 것 같군요. 위드번이 한 마디 했다. 그러자 부인이 물었다. 그게 사실인가요, 포와로씨? 누군가가 엣지웨어 경의 목덜미를 예리한 나이프로 찔렀다는 게요? 그렇습니다, 마담. 매우 솜씨 있는 효과적인 수법입니다 - 그야말로 과학적이지요. 당신의 예술가적인 기쁨은 이해가 가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포와로씨. 몬타규 경이 말했다. 그건 그렇고. 포와로가 다시금 말을 꺼냈다. 제 방문목적으로 들어가게 해주십쇼. 엣지웨어 부인은 만찬 석상에 있었을 때 전화로 호출됐었습니다. 제가 알고 싶은 것은 그 전화에 대해서입니다. 그 문제에 대해 댁의 심부름꾼에게 질문해 보고 싶습니다만, 허락해 주실 테지요. 좋고말구요. 로스군, 그 벨을 좀 눌러 주게나. 벨에 응해 집사가 나타났다. 성직자 같은 모습의 키가 큰 중년의 사나이였다. 몬타규 경은 용건을 설명했다. 집사는 공손히 귀를 기울이고나서 포와로쪽으로 돌아섰다. 전화가 울렸을 때 누가 먼저 받았나? 제가 받았습죠. 전화는 호올을 나선 구석쪽에 있습니다.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엣지웨어 부인과 말하고 싶다고 했나, 아니면 미스 제인 윌킨슨을 대달라고 하던가? 엣지웨어 부인이라고 말씀하셨습죠. 정확하게 말해서, 어떤 말투였나? 집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기억하고 있는 한으로는 저는 여보세요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누군가의 목소리로 거기가 치즈위크의 사삼사삼사냐고 물으셨습죠. 그렇다고 했더니, 그럼 전화를 끊지 말아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다른 분의 목소리로 엣지웨어 부인이 그곳 만찬회에 와계신가요? 이렇게 말씀하더군입쇼. 저는 부인이 파아티에 참석하고 계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저쪽은 부인하고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마는 이렇게 말씀하셨습죠. 저는 식당으로 가서 부인에게 전달했습니다. 부인이 자리에서 일어서시기에 저는 전화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 드렸습죠. 그리고는? 부인은 수화기를 들고 여보세요 - 누구십니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네, 그렇습니다. 제가 엣지웨어 부인이에요 이렇게 말씀하셨습죠. 제가 부인 곁을 떠나려고 했을 때 부인은 저를 부르시고는 전화가 끊어졌다고 하셨습니다. 저쪽에서 웃으면서 전화를 끊었다는 것입니다. 부인은 전화를 걸어온 사람이 이름을 대드냐고 물으셨습죠. 저는 못들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뿐입니다. 포와로는 납득이 안된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그 전화가 살인사건하고 어떤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포와로씨? 위드번 부인이 물었다. 아직은 잘 모르겠군요, 마담. 다만 기이한 상황이라고 할 밖에요. 이따금 농담으로 전화를 거는 실없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나 역시 가끔 그런 봉변을 당하는 걸요. 그런 일은 흔히 있지요, 마담. 그는 다시금 집사에게 물었다. 전화를 걸어온 것은 남자 목소리였나, 아니면 여자 목소리였나? 여자분의 목소리였습죠. 어떤 종류의 목소리였지? 높았나, 낮았나? 낮은 목소리였습니다. 차분하고, 어지간히 뚜렷했습죠. 집사는 입을 다물고나서 말했다. 제가 잘못 들었는지는 모릅니다만서도 외국인 목소리처럼 들렸습죠. R음이 묘하게 귀에 거슬렸습니다. 고맙군. 이제 됐네. 천만의 말씀을. 집사는 머리를 숙이고 마지막까지 성직자 같은 태도로 물러났다. 몬타규 코우너 경은 계속 친절히 대해 주었다. 그는 우리보고 브릿지를 하고 가도록 권했다. 나는 사양했다. 판돈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젊은 로스도 자기 자리를 메꾸어 줄 사람이 생겨 안심하는 것 같았다. 그와 나는 자리에 앉아 다른 네 사람이 게임을 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날밤의 게임은 포와로와 몬타규 경의 대승으로 끝났다. 그 뒤 우리는 집주인에게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로스는 우리와 같이 물러났다. 좀 색다른 사나이구먼. 어둠 속으로 나섰을 때 포와로가 말했다. 맑게 갠 밤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전화로 차를 불러 달라지 않고 택시를 타는 데까지 걷기로 한 것이다. 돈 많은 작은 사나이죠. 로스가 감탄한 듯이 말했다. 그런 것 같군요. 그는 제가 마음에 드는 모양입니다. 로스는 또다시 말했다. 그게 계속돼 주면 정말 좋겠습니다만. 그런 인물이 뒤를 밀어 준다는 것은 저 같은 경우 굉장한 이익이니까요. 당신은 배우군요, 로스씨? 로스는 그렇다고 했다. 그는 자기의 이름이 이내 상대방에게 통하지 못한 사실을 슬퍼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 최근 어떤 심각한 연극에 출연해서 주목을 끌었던 모양이다. 포와로와 내가 그를 격려한 뒤에 포와로가 불쑥 물었다. 당신은 카아롯타 아담즈를 잘 아시나요? 아뇨. 오늘밤 그녀의 사망보도가 신문에 나있는 것을 봤지요. 뭔지 약을 과용했다나요. 그런 처녀들은 무척 약을 복용하거든요. 그렇습니다. 게다가 그녀는 연기가 훌륭했지요. 그런 것 같더군요. 그는 자기 이외의 그 누구의 연기에도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포와로가 말했다. 아, 택시가 왔군. 난 걷기로 하겠어요. 로스가 말했다. 그러더니 그는 문득 신경질적인 웃음소리를 냈다. 이상하군요. 어젯밤의 만찬회 말씀입니다. 왜요? 출석자가 열 세 사람이었거든요. 만찬이 끝날 때까지 우리는 그 사실을 몰랐지요. 그래 누가 제일 먼저 자리를 떴나요? 내가 물었다. 그는 기묘한 투로 짧게 신경질적으로 웃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나였습니다. 가짜의 조건 우리가 집으로 돌아오니 재프 경부가 기다리고 있었다. 자기 전에 이쪽에 들러 당신과 얘기를 해볼까 해서요, 포와로씨. 그는 명랑하게 말했다. 그런데 어떤 식으로 진행되고 있소? 과히 신통치가 않군요. 그게 사실이올시다. 그는 맥이 풀린 얼굴을 했다. 뭔가 내게 조언을 해 줄 게 있나요, 포와로씨? 뭐 그리 대단치 않은 생각이지만, 당신한테 가르쳐 주고 싶은 게 몇 가지 있지요. 그 가짜문제에 대해 뭔가 명안이 있나요? - 그게 제일 궁금하단 말씀야. 어때요, 포와로씨? 그 여자는 누구였나요? 그거야말로 바로 당신한테 알려 주고 싶은 문제지요. 그는 재프에게 카아롯타 아담즈에 대해 들은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이름은 들어 본 일이 있죠. 하지만 당장엔 이름과 얼굴이 연결지워지지 않는군. 포와로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 여자가? 그 여자가 윌킨슨의 가짜가 된다? 어째서 그녀라고 눈독을 들였죠?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나요? 포와로는 우리가 취해온 순서와 이끌어낸 결론을 말했다. 분명히 당신 판단이 바른 것 같군요. 옷, 모자, 장갑 따위, 그리고 금빛머리의 가발. 맞아, 그게 틀림 없겠군. 아무래도 - 움직일 수 없는 증거군요, 포와로씨. 정말 기가 차게 해치웠군! 하지만 그녀가 살해된 사실을 나타내는 자취가 있다곤 생각되질 않는군. 그건 좀 지나친 비약인 것 같단 말야. 이 점에선 당신과 의견이 일치되질 않는군요. 당신의 의견은 좀 공상적인 것 같아. 나는 당신보다 많은 경험을 쌓고 있시다. 카아롯타 아담즈가 가짜였다는 건 분명하지만, 나는 두 가지 가능성 중 또다른 쪽을 취하겠소. 그녀는 자기의 목적 때문에 저택으로 갔다 - 그녀는 돈이 들어온다는 얘기를 비쳤다니까 아마 협박을 하러 간 것일 테지. 두 사람은 가끔 말다툼을 했다, 엣지웨어 경이 골을 내자 그녀는 흥분해 버려 그를 처치했다, 그리고 아마 집에 돌아가자 걷잡을 수 없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녀는 죽일 생각은 없었다, 내가 믿는 바로는 그녀는 가장 편히 죽는 방법으로서 고의로 약을 많이 복용한 것이라구요. 그것으로 모든 사실이 설명된다고 생각하나요? 그야 물론 아직 모르는 점이 더러 있지요. 하지만 이것은 앞뒤가 맞는 가정이올시다. 또하나의 해석은 그 장난과 살인이 서로 아무 관계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 참으로 기묘한 우연의 일치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는 일이죠. 그건 있을 수 있는 일이요. 아니면 이런 것은 어때요? 그 장난은 그야말로 순진한 것이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그 얘기를 듣고, 이거 잘 됐다고 생각한다, 어떻습니까? 포와로는 그저 웃기만 하고, 가정부가 부친 미국으로의 편지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재프는 그것이 큰 도움이 될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당장 손을 쓰도록 합시다. 그는 수첩에 그것을 적어넣었다. 달리 아무도 용의자가 없으니, 그 여자가 점점 범인일 가능성이 크구먼. 그는 수첩을 포켓에 넣으면서 말했다. 이번에 엣지웨어 경이 된 머어슈 대위. 이 친구에겐 명백한 동기가 있죠. 게다가 소행도 나쁩니다. 돈은 궁색했는데도 돈은 잘 썼죠. 게다가 어제 오전 중 백부와 싸움질을 했단 말야. 하긴 그 자신이 이런 말을 했지만 - 그래서 오히려 혐의가 줄어들죠. 물론 그는 범인일 가능성이 있어요. 하지만 그에겐 알리바이가 있죠. 도오트하이머 사람들과 오페라를 보고 있었단 말입니다. 돈 많은 유대인이죠. 난 그 집에 들러 봤는데, 그의 진술대로였지요. 그는 그 집안 사람들하고 만찬을 든 뒤, 오페라를 보러 갔고, 소브러니스에 가서 야식을 들었어요. 그뿐이죠. 그럼 마드모아젤쪽은? 그 처녀 말인가요? 그녀도 집에 없었죠. 카슈 웨스트라는 집안 사람들과 만찬을 들었답니다. 그 사람들이 그녀를 오페라 구경을 데리고갔고, 집에까지 전송해 줬죠. 돌아온 것은 열 두 시 십오분 전. 그러니 그녀도 제외될 밖에요. 여비서는 전혀 대상 밖인 것 같습니다 - 아주 능률적이고 우아한 여자니까요. 그리고 집사가 있죠. 과히 느낌이 좋다곤 할 수 없어요. 그렇게 잘 생긴 것은 자연스럽지가 못하죠. 놈에겐 어딘지 수상한 데가 있단 말야 - 게다가 엣지웨어 경을 섬기게 된 경위도 어쩐지 미심쩍구. 그렇죠, 놈을 캐고 있는 중입니다. 하긴 살인의 동기는 발견되지 않습니다만. 새로운 사실은 아무 것도 나타나지 않았나요? 아뇨. 한두 가지 있죠. 뜻이 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첫째로 엣지웨어 경의 열쇠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죠. 현관 열쇠인가요? 그렇죠. 맞아요. 그건 재미 있군요, 분명히. 매우 큰 뜻이 있는 일인지도 모르고, 또 아무런 뜻이 없는 일인지도 모르죠. 때와 경우에 달렸지요. 더 중요해 보이는 것은 이런 일입니다. 엣지웨어 경은 어제 수표를 현금으로 바꿨지요 - 과히 큰 액수는 아닙니다 - 실은 백 파운드였죠. 그는 그 돈을 프랑스 지폐로 받았어요 - 오늘 빠리로 여행하고자 수표를 현금으로 만든 것이죠. 그런데 그 돈이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죠. 누가 그 얘기를 합디까? 미스 캐럴이죠. 그녀는 수표를 현금으로 바꿔서 갖다 줬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조사해 봤더니 없어진 뒤였죠. 어젯밤엔 어디에 뒀었나요? 미스 캐럴은 모릅니다. 그녀는 세 시 경에 그것을 찾아다가 엣지웨어 경한테 넘겨줬답니다. 은행 봉투에 들어있었죠. 경은 그 때 서재에 있었구요. 그는 돈을 받아 곁의 테이블 위에 놨지요. 그건 확실히 생각해 볼 문제군요. 얘기가 엉켜드는군. 혹은 단순해졌는지도. 그런데 - 상처말씀인데요. 아, 참, 어떻던가요? 의사가 말하기를 여느 펜나이프로 찔린 게 아니라는군요. 그런 종류의 것이지만 모양이 다르고, 굉장히 날카롭다나요. 포와로는 고개를 갸웃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새 엣지웨어 경은 장난을 좋아하는 모양이던데요. 재프가 역시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살인용의를 받는 것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단 말야. 자기가 의심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단 말씀입니다. 아무래도 묘하단 말야. 그저 머리의 회전이 빠른 것뿐인지도 모르지. 그보다도 죄의 의식이라는 편이 맞을 것 같군요. 그에겐 백부의 죽음이 안성마춤이었으니까요. 그건 그렇고, 그는 저택으로 옮겨왔지요. 그 전엔 어디 살고 있었나요? 센트 죠오지즈 도오드의 마아틴 스트리트. 과히 고상한 곳이 못돼죠. 그걸 적어놔 두게, 헤이스팅즈. 나는 시키는 대로 했지만, 좀 이상하게 생각했다. 로널드가 리젠트 게이트로 옮겨왔다면 그 전의 주소는 필요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그 아담즈라는 처녀가 한 짓이라 생각되는군요. 재프는 일어서면서 말했다. 그 여자를 찾아낸 것은 정말 잘 한 짓이군요, 포와로씨. 그렇지만 물론 그것은 당신이 연극을 즐길 수 있는 그런 신분이기 때문이죠. 당신은 내가 부딪칠 기회가 없는 그런 것에 부딪치죠. 뚜렷한 동기가 없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좀 파헤치면 드러날 테죠. 동기가 있는데 당신이 아직 주의를 돌리지 않는 인물이 한 사람 있소이다. 포와로가 말했다. 누구죠? 엣지웨어 부인과 결혼하고 싶어한다는 신사. 결국 마아튼 공작이요. 흠, 동기는 있어 보이는군요. 재프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지만 그 같은 지위의 신사가 살인을 범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죠. 게다가 그는 빠리에 있으니까요. 그럼 공작을 중요한 용의자로는 보질 않는군요? 그럼 포와로씨, 당신은 그렇게 보나요? 재프는 그 생각의 어리석음을 비웃고는 사라졌다. 다음날 포와로와 나는 과히 활동을 안했지만, 재프는 무지무지하게 돌아다녔다. 그는 티이 타임에 우리를 찾아왔다. 그는 얼굴이 벌개져 화를 내고 있었다. 정말 바보 같은 실수를 저질렀다구요. 설마하니? 포와로가 위로하듯 말했다. 아뇨. 저질렀시다. 그 집사 녀석을 놓쳐 버렸단 말입니다! 종적을 감춰 버렸나요? 그렇다니까요. 내가 거듭 얼간이였다고 생각하는 것은 놈을 과히 의심하지 않았던 점이죠. 아무튼 침착하시오 -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는 거요. 입으로 말하긴 쉽죠. 아마 당신 역시 본청에서 한바탕 시달림을 받으면 그렇게 태연할 수는 없을 걸요. 아아! 재빠른 놈이야. 놈이 경찰을 따돌린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냐. 상습범이라구요. 재프는 이마를 닦으며 낙심천만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포와로는 힘껏 동정하는 소리를 했다. 나는 영국 사람의 국민성에 포와로보다 통하고 있었으므로 강한 위스키 소오다를 만들어 실망하고 있는 경부 앞에 놓았다. 그는 얼굴이 환해졌다. 글쎄요, 해도 될 테죠. 그는 말했다. 이윽고 그는 훨씬 명랑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난 아직도 놈이 살인자라고는 믿어지질 않아! 물론 녀석이 그렇게 도망친 것은 수상쩍지만, 거기엔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도 모르지. 아무튼 나는 놈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었으니까요. 아무튼 그렇다고해서 그가 범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소. 맞아요! 뭔가 떳떳지 못한 짓을 하고 있었을 테지만, 범인이라 단정할 수는 없죠. 내겐 더한층 그 아담즈라는 처녀의 소행으로 보이는군요. 하긴 아직 그걸 뒷받침할 만한 것은 없지만. 오늘 부하를 시켜 그녀의 방을 샅샅이 조사시켰지만 참고가 될 만한 것은 하나도 없군요. 정말 조심스러운 여자였어요. 금전적인 계약에 대한 편지가 조금 있었을 뿐 전혀 없었단 말입니다. 워싱턴의 여동생한테서 온 편지가 몇 통 있었죠. 일기는 없었구요. 따분하게도 그 처녀에겐 사적인 생활이 전혀 없었던 것만 같단 말씀입니다! 그녀는 매사에 소극적인 성질이었소. 포와로가 생각하면서 말했다. 우리 입장에서 보자면, 안타까운 일이올시다. 나는 그녀의 가정부를 만나 얘기를 들었죠. 소득은 제로. 모자점을 하고 있는 여자도 만나봤죠. 카아롯타는 그녀와 친했던 모양 같군요. 아아! 그래 미스 드라이버를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현명하고 빈 틈 없는 여자일 테죠. 하지만 그녀 역시 도움은 되지 못했죠. 한 숨 돌리고자 그가 입을 다물기에 나는 그의 술잔을 채워 주었다. 고맙소, 헤이스팅즈 대위. 이렇게 되면 마셔야 할 밖에. 그래요, 철저하게 조사해야 하고말구요. 카아롯타가 함께 식사를 했거나 댄스를 한 젊은 사나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유난히 절친했던 남자는 없는 것 같아요. 결국 그녀가 단독으로 살인을 했다는 사실이 아마 판명될 걸요. 포와로씨, 나는 지금 그녀와 살해된 남자와의 사이의 연줄을 캐내고 있죠. 뭔가 있을 게 분명하죠. 나는 빠리로 가야 할 걸요. 그 금빛 케이스엔 빠리라고 적혀 있었고, 미스 캐럴의 얘기로는 죽은 엣지웨어 경은 작년 가을 수차 빠리에 가서 골동품을 산 바 있습니다. 그래요, 난 빠리로 갈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기막힌 스태미너군요, 재프군. 정말 놀랍소. 암요. 당신은 좀 게을러져 있죠. 그저 앉아서 생각하고 있다니! 잿빛 작은 뇌세포를 작용시킨다, 그 뜻이죠? 안돼요, 밖에 나가 몸으로 부딪쳐야지. 저쪽에선 이쪽으로 와주진 않으니까요. 키작은 메이드가 도어를 살며시 열었다. 브라이언 마아틴씨가 오셨습니다. 만나시겠습니까? 난 그만 가겠어요, 포와로씨. 재프는 일어서면서 말했다. 연극계의 스타아들이 모두 당신한테 상의를 하러오는 모양이죠? 포와로가 겸손해하며 어깨를 흠칫하자 재프는 웃으면서 말했다. 아마 벌써 옛날에 백만장자가 되셨을 텐데, 포와로씨. 그 돈을 다 어떻게 하나요? 모아두나요? 물론, 나는 검소를 신조로 삼고 있죠. 그런데 참, 돈의 처리라니까 생각이 나는군. 죽은 엣지웨어 경은 재산을 어떻게 처리하고 있었나요? 작위에 관계 없는 재산은 딸한테 남겼죠. 미스 캐럴에겐 오백 파운드. 달리 유증은 없군요. 지극히 간단한 유언장이었죠. 그럼 유언이 만들어진 것은 언젠가요? 부인이 그의 곁을 떠나고난 직후죠 - 꼭 이 년 전이 되는군요. 그런데 그는 부인을 유산분배에서 완전히 제외해 버렸습니다. 지독한 사나이군. 포와로는 혼잣말을 했다. 재프는 명랑하게 사라졌다. 브라이언 마아틴이 들어왔다. 그는 빈 틈 없는 옷차림을 하고 있어, 대단한 미남자로 보였다. 그렇기는 하지만, 나는 그의 초췌한 느낌으로 미루어 과히 행복하지는 못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찾아뵙는 게 너무 늦어서 미안합니다, 포와로씨. 그는 변명하듯이 말했다. 게다가 결국은 공연히 당신의 시간만 낭비시켜드려 폐만 끼치게 됐으니까요.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나는 그 문제의 여인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설득도 해보고, 호소도 해봤지만, 헛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일전에 부탁드린 건은 중단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정말 미안하군요 - 당신한테 공연히 폐를 끼쳐드려 - 천만에요. 천만의 말씀을. 포와로는 상냥하게 말했다. 그렇게 되리라 생각했지요. 네? 청년은 헛점을 찔린 것 같았다. 그렇게 되리라 생각하고 계셨다구요? 그는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그렇죠. 당신이 그 여자분과 상의를 하겠다고 말씀하셨을 때 - 나는 이런 결과가 오리라 예측할 수 있었지요. 그럼 뭔가 추리를 하신 게군요? 마아틴씨, 탐정이란 노상 추리합니다. 추리하지 않으면 안되지요. 나 자신은 그것을 추리라고는 부르지 않습니다. 사소한 생각이라는 것이지요. 그것이 첫 번째 단계올시다. 그럼 두 번째 단계는요? 그 사소한 착상이 올바른 사실이 판명되면 - 이내 그것을 알 수 있지요. 매우 간단한 일입니다. 당신의 추리 - 아니, 사소한 착상을 가르쳐 주셨으면 싶은데요. 포와로는 조용히 고개를 흔들었다. 거기엔 또한 원칙이 있지요. 탐정은 결코 비밀을 밝히지 않는 법입니다. 냄새를 풍기게 할 수도 없습니까? 안되죠. 다만 당신이 금이빨에 대한 얘기를 한 순간 내 나름의 추리가 이루어졌다는 것으로 끝내두십니다. 브라이언 마아틴은 포와로를 보았다. 그는 고백했다. 전혀 까닭을 알 수 없군. 약간의 힌트를 주시면 좋을 텐데. 포와로는 웃으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화제를 바꾸십시다. 제가 층계에서 만난 것은 그 경부죠? 그렇죠. 재프 경부 올시다. 불이 어두워서 잘은 보이질 않았죠. 그런데 그는 내게 와서 그 가엾은 카아롯타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했지요. 그녀를 잘 아셨나요? 미스 아담즈를? 잘은 모릅니다. 그녀가 어렸을 때 미국에서 알게 됐지요. 이곳에서도 한두 번 만났지만 장시간 만난 적은 없군요. 그녀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매우 딱하게 생각했죠. 좋아했나요? 네, 아주 말하기 수월한 상대였으니까요. 당국에선 자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죠? 저는 경부의 도움이 될 만한 것은 전혀 모르고 있었죠. 카아롯타는 자기에 대해서는 통 말을 안했으니까요. 나는 자살이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포와로가 장담하듯 이렇게 말했다. 나 역시 과실사라는 편이 훨씬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잠시 이야기가 중단되었다. 이윽고 포와로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엣지웨어 경의 죽음은 이상해졌죠? 정말 이상합니다. 제인은 결정적으로 사건과 관계가 없어졌으니까요 - 누가 그 짓을 했는지 아시나요? - 당국은 뭔가 단서를 잡고 있습니까? 그렇죠 - 당국은 매우 강한 혐의를 걸고 있습니다. 마아틴은 흥분한 얼굴로 물었다. 사실입니까? 누구를 의심하고 있죠? 집사가 행방을 감췄지요. 아실 테지만 - 도주는 자백과 마찬가지니까요. 집사라구요? 그것 참, 뜻밖이군요. 아주 잘 생긴 남자올시다. 당신 비슷하지요. 그는 찬사를 나타내어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렇다! 나는 처음 집사의 얼굴을 보았을 때 어디서 본 기억이 났었거니와, 이제야 그 이유를 깨달았다. 집사는 마아틴과 영락없었던 것이다. 농담의 말씀을. 브라이언 마아틴은 웃으면서 벌떡 일어섰다. 정말 고마웠습니다, 포와로씨. 수고를 끼쳐드린 점을 거듭 사과드립니다. 그는 우리 두 사람과 악수를 나누었다. 나는 호기심에 쫓겨 있었으므로 그가 밖으로 나가기가 무섭게 서둘러 물었다. 포와로, 자네는 정말 그가 다시 찾아와서 미국에서 당한 그 묘한 일의 조사의뢰를 그만둬달라고 말할 줄 알았단 말인가? 내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을 텐데 그래? 헤이스팅즈. 그렇지만 - 나는 일의 순서를 세워 생각했다. 그럼 자네는 그가 상의해야 한다고 한 그 처녀가 누구였는지 알고 있구먼? 그는 싱긋 웃고나서 말했다. 내겐 약간의 생각이 있다네, 여보게. 전에도 자네한테 말했듯이, 그 사건은 금이빨 문제에서 비롯됐는데, 만일 이 사소한 착상이 바르다면, 그 처녀가 누구인지 알 수 있고, 왜 그 처녀는 마아틴씨가 내게 상의하는 것을 허락지 않았는지도 알게 되어, 사건 전체의 진상이 드러나게 마련이지. 그리고 자네 역시 자비로운 하느님이 점지해 주신 뇌세포를 작용만 시킨다면, 그걸 알 수 있다네. 제3의 사나이 나로서는 엣지웨어 경의 검시재판에 대해서도, 카아롯타 아담즈의 그것에 대해서도 상세히 말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카아롯타의 사건에서는 배심의 답신은 과실사 였다. 엣지웨어 경의 사건에서는 시체검인에 대한 증언과 의학상의 증언 뒤에 검시재판이 연기되었다. 위의 내용물 분석 결과 사망시각은 저녁식사 뒤 적어도 1시간 후, 가능성으로서는 그로부터 1시간 범위내에서 발생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따라서 사망시각은 10시부터 11시 사이이며, 그것도 비교적 빠른쪽 시간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이 나왔다. 카아롯타가 제인 윌킨슨의 가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어둠 속에 묻혀 버리고 말았다. 수배 중인 집사의 몽타즈가 신문에 발표되었으므로 세상에서는 집사가 범인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사건 당일 제인 윌킨슨이 찾아왔다는 그의 진술은 뻔뻔스러운 거짓으로 간주되었다. 그 진술을 뒷받침하는 여비서의 증언에 대해서는 아무런 발표가 없었다. 신문마다 이 살인사건의 기사로 떠들썩했지만, 사실에 맞는 보도는 거의 없었다. 그 사이에 재프가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포와로가 몹시 무기력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을 보고 좀이 쑤셔서 견딜 수 없었다. 그는 그것에 대해 변명했지만, 납득이 가지 않는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내쯤 되는 나이의 사람은 몸을 아끼는 법이라네. 그는 이렇게 설명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말야, 포와로, 자신을 늙은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라구. 나는 항의했다. 그에게는 격려가 필요한 것이다,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암시요법 - 그것이 현대식 사고방식인 것이다. 자네는 옛날과 마찬가지로 건장하다구. 나는 열심히 설득했다. 인생의 클라이맥스라구, 포와로. 능력의 절정에 있단 말일세. 그럴 작정만 한다면, 이번 사건을 솜씨 있게 해결할 수 있고말구. 포와로는 집에 앉아 해결하는 편이 났다고 대답했다. 그렇지만 그건 불가능하다구, 포와로. 그렇다고만 할 수는 없지. 내가 말하는 뜻은 우리가 아무 것도 안하고 있다는 게야! 재프는 온갖 수를 쓰고 있는데 말일세. 어쩌자고 이러고만 있나? 그게 나로서는 매우 형편이 좋단 말일세. 내겐 조금치도 형편이 좋질 않구먼. 나는 자네가 활동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구. 활동하고 있지. 뭘 하고 있나? 기다리고 있는 게야. 뭘 기다리지? 내 사냥개가 미끼를 가져오는 것을 말일세. 도대체 무슨 소리야? 사람좋은 재프라네. 재프는 자네가 칭찬하는 육체적 에너지의 성과를 우리한테 갖다 준단 말야. 그는 여러 가지 수단을 이용할 수 있지만, 내게 그 일이 불가능하지. 그는 아마 불원 정보를 제공해 줄걸. 사실 재프는 끈질기게 탐문수사를 벌이는 것으로 조금씩 정보를 모으고 있었다. 그의 빠리행은 실패였지만, 이틀 후 그는 흐뭇한 얼굴로 찾아왔다. 그는 들어오기가 무섭게 자랑스러운 듯이 말했다. 시간이 걸리는 일입니다. 하지만 불원 결론이 나올 걸요. 축하합니다, 재프 경부. 그래 어떻게 됐나요? 그날밤 아홉 시에 유우스턴 소화물취급소에 금발의 여자가 아탓슈케이스를 맡겼던 사실을 알아냈죠. 담당계원에게 카아롯타 아담즈의 케이스를 보였더니, 틀림없이 그 때 맡긴 물건임을 확인하더군요. 미국제라서 이내 식별이 가능했지요. 아아! 유우스턴이군? 맞아, 커다란 역 중에서는 리젠트 게이트에 제일 가까운 곳이죠. 그녀는 그곳으로 가서 화장실에서 변장을 하곤 케이스를 맡기고 간 셈이군. 케이스를 찾으러 온 것은 언제였나요? 열 시 반입니다. 계원은 같은 여자였다고 말하고 있죠. 포와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또다른 사실도 알아냈죠. 카아롯타 아담즈가 열 한 시에 강가인 리욘즈 코우너 하우스에 있었다고 믿을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허어! 그것 참 기막히군. 어떻게 그걸 알아내셨나요? 실은 약간 우연이었죠. 루우비의 이니셜이 있는 금빛 케이스에 대한 기사가 신문에 실려 있었죠? 어떤 기자가 그것을 크게 다루었지요 - 젊은 여배우들 사이에 마약이 유행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논평한 것입니다. 일요신문 기사꺼리 같은 통속적인 것이죠. 죽음의 알맹이가 들어있는 치명적인 금빛 케이스 - 빛나는 미래를 지닌 비극적인 처녀! 그리고 그녀가 마지막 밤을 어디서 보냈는가, 그녀가 어떤 생각으로 있었는가? 어쩌고 그런 감상적인 글이었죠. 그런데 코우너 하우스의 웨이트레스가 그 기사를 읽고, 그날밤 자기가 시중을 든 레이디가 그런 케이스를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낸 모양입니다. 그녀는 그 케이스에 C A라는 이니셜이 적혀 있던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죠. 그래서 그녀는 흥분해서 친구들한테 그 얘기를 했죠. 젊은 신문기자가 이내 달려들었으니까 오늘밤 이브닝 슈리크지엔 기막힌 기사가 실릴 걸요. 그런데 그걸 어떻게 그렇게 속히 알아냈죠? 그야, 우리는 이브닝 슈리크지와 친구죠. 그 신문사에 있는 머리 좋은 젊은 기자가 다른 문제에 대해 내게서 어떤 정보를 캐내려고 했을 때 알려 준 겝니다. 그래서 나는 당장 코우너 하우스로 날아갔죠 - 그렇다, 일이란 그렇게 진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포와로가 딱해져 가슴이 아팠다. 난 그 처녀애를 만났단 말씀입니다. 그녀의 증언에 의문은 없다고 보는군요. 그녀는 카아롯타 아담즈의 사진을 골라내진 못했죠. 그 여자의 얼굴을 유심히 보질 않았다나요. 그 여자는 젊고, 머리카락이 검었으며, 약간 말른 편에 고급옷을 입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최신형 모자를 쓰고 있었답니다. 여자들이 좀더 상대방의 얼굴을 보고, 모자 따위에 정신이 안팔렸으면 좋으련만. 미스 아담즈의 얼굴은 특징이 없는 얼굴이죠. 포와로가 생각하면서 말했다. 표정이 풍부하고, 민감하고 - 유동적인 성질을 지니고 있으니까요. 아마 그 말씀이 맞을 겝니다. 난 그런 것을 분석하는 취미는 없지만. 여급 얘기로는 그 여자는 검은 드레스를 입고, 아탓슈케이스를 들고 있었답니다. 그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그렇듯 고급 옷차림을 한 레이디가 케이스를 들고 있는 게 이상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죠. 레이디는 연상 팔목시계를 들여다봤죠. 웨이트레스가 그 작은 케이스를 알게 된 것은 여자한테 계산서를 갖고갔을 때입니다. 레이디는 그 케이스를 백에서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그걸 보고 있었죠. 그녀는 그 뚜껑을 열었다가 다시금 닫았어요. 그리고 황홀한 듯이 웃고 있었죠. 웨이트레스가 특히 그 케이스에 마음이 이끌린 것은 아주 예쁘장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나도 루우비의 이니셜이 새겨진 금빛 케이스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말하던데요. 그건 어떻든 미스 아담즈는 계산을 치르고나서도 잠시 앉아 있었다는군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시계를 보곤 단념한 듯이 밖으로 나갔다는 겝니다. 어떻습니까? 포와로는 눈살을 찌푸렸다. 랑데브였구먼. 그는 중얼거리듯이 맥없이 말했다. 누군가하고 밀회를 했는데, 상대방은 나타나지 않았다, 카아롯타 아담즈는 뒤에 그 인물을 만난 것일까? 아니면 못만나고 집으로 돌아가 그 인물에게 전화를 걸려고 한 것일까? 그걸 알 수 있으면 좋은데 - 아아, 그걸 알 수만 있다면. 그건 당신의 가설이죠, 포와로씨. 수수께끼에 싸인 흑막의 사나이. 그런 흑막의 사나이 같은 건 없시다. 그녀가 누군가를 기다렸다는 것마저 부정하지는 않겠소.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니까. 그녀는 엣지웨어 경을 처치해 버리곤 그곳에서 누구하고 만날 약속을 했는지도 모르죠. 암,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훤하죠. 그녀는 흥분 끝에 엣지웨어 경을 찔렀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당황하고 있을 그런 성질은 아니었다, 역에서 케이스를 받아 모습을 고치고는 랑데브를 떠났는데, 이윽고 이른바 반작용 에 엄습된다, 자기가 저지른 일이 무서워진다, 게다가 친구마저 나타나지 않아 그녀는 더한층 맥이 풀린다, 랑데브의 상대방은 그녀가 그날밤 리젠트 게이트로 가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다 틀렸다고 단념한다, 그래서 마약이 들어있는 금빛 케이스를 꺼낸다, 그걸 여분으로 삼키면 만사는 끝장이다, 교수형을 당하는 것보다는 나을 테지, 맞아요. 이것은 당신 얼굴 위의 코처럼 분명한 사실이고말구요. 포와로의 손은 의심스러운 듯이 자기의 코 근처를 더듬고 있었는데, 이윽고 손가락이 입수염께로 갔다. 그는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그것을 살며시 어루만졌다. 재프는 자기의 설에 유리한 점을 집요하게 추구하면서 말했다. 그녀와 엣지웨어 경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아직 증거를 못잡았지만, 조만간 알아낼 수 있을 테죠. 단순한 시간문제라구요. 빠리행은 빗나갔었다고 안할 수 없지만, 구개월 전이라면 어지간히 오래 된 일이죠. 난 아직도 사람을 시켜 조사를 계속하고 있는 중이올시다. 뭔가 할 말이 있나요? 포와로는 싱긋이 웃었다. 부탁할 말은 없구요. 조언이라면 - 있지만. 허어, 그게 뭔가요? 말해 보라구요. 택시를 이잡듯이 조사하라는 조언이요. 살인이 있었던 날 밤에 코벤트 가아든 근처에서 리젠트 게이트까지 손님을 한 사람 - 그보다는 아마 두 사람 - 그렇지, 손님을 두 사람 - 태운 택시를 찾아내는 거요. 시간은 아마 열 한 시 이십분 전쯤 될 게요. 재프는 눈을 깜짝깜짝하고는 영리한 테리아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럼 그게 당신의 묘안이란 말이군요? 좋소, 해보죠. 밑져봐야 본전일 테니까. 그가 나가자 포와로는 자리에서 일어나 모자에 솔질을 힘차게 하기 시작했다. 오늘 조간을 보니, 마아튼 공작이 빠리에서 돌아왔다는군. 그는 영국 귀족 중에선 최고의 가문 사람인 모양이야. 왜 갑자기 마아튼 공작을 찾아가나? 만나보고 싶기 때문이지. 그에게서 알아낼 수 있었던 것은 그것뿐이었다. 마아튼 하우스에 닿자 포와로는 유니폼을 입은 심부름꾼에게서 면회약속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포와로는 없다고 대답했다. 심부름꾼은 명함을 들고 들어가더니 잠시 후에 돌아와서 공작 각하는 오늘아침 몹시 바쁘시다고 전했다. 포와로는 의자에 걸터앉았다. 그는 말했다. 좋습니다. 기다리기로 하지요. 필요하다면 몇 시간이라도 기다릴 밖에. 그러나 그럴 필요는 없었다. 필시 상대방은 귀찮은 방문객을 속히 몰아내야 한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이내 우리를 불러들였다. 공작은 27세쯤 되는 호감이 안가는 풍채의 말르고 허약한 인물이었다. 눈에 띄지 않는 엷은 머리카락은 관자놀이께가 희끗희끗했고, 괴팍해 보이는 작은 입에 꿈을 꾸는 것 같은 멍청한 눈을 지니고 있었다. 실내에는 몇 개의 십자가상과 온갖 종교미술이 있었다. 넓은 책꽂이에는 신학적인 책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았다. 공작이라기보다는 말라빠진 젊은 장사치라는 편이 훨씬 더 어울린다. 이 사람이 미모의 여배우 제인 윌킨슨이 한 눈에 반한 사나이라니! 그야말로 우습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그의 태도는 지나치게 딱딱했고, 우리에 대한 인사는 몹시 거칠고도 볼품이 없었다. 아마 제 이름은 아사리라 생각합니다. 포와로가 먼저 입을 열었다. 모르겠군요. 저는 범죄심리학을 연구하고 있지요. 공작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책상 앞에 앉아 있었고, 쓰다가 만 편지가 놓여 있었다. 그는 초조한 듯 펜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무슨 이유로 나를 만나시려는 겝니까? 그는 냉정하게 물었다. 포와로는 공작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그는 창을 등지고 있고, 공작은 그 창쪽을 보고 있었다. 저는 현재 엣지웨어 경의 죽음에 관한 일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공작의 약하디약한, 그러면서도 고집스러워 보이는 얼굴은 꼼짝달싹도 안했다. 그러신가요? 나는 엣지웨어 경과는 면식이 없습니다. 그러나 경의 부인 - 미스 제인 윌킨슨 - 과는 면식이 있으실 테지요? 그렇소, 있소이다. 그녀가 남편의 죽음을 바라는 강한 동기를 지니고 있었다고 믿어지고 있는 사실은 알고 계신가요? 그런 것은 전혀 모르겠소. 각하, 터놓고 말씀드리건대, 각하는 불원 미스 제인 윌킨슨과 결혼할 작정이 아니십니까? 내가 누군가하고 결혼하게 되면, 그 사실은 신문에 보도될 게요. 당신의 질문은 지나치게 무례하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만 실례하겠소. 포와로도 일어섰다. 그는 당황해하고 있었다. 머리를 숙이고 더듬거렸다. 그, 그럴 셈이 아니었습니다 - 저는 - 용서하십시오. 실례하겠소. 공작은 언성을 높여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이번에는 포와로도 체념했다. 그는 독특한 절망의 제스처를 하며 물러났다. 참으로 명예스럽지 못한 후퇴였다. 나는 포와로가 좀 딱한 생각이 들었다. 그의 여느때의 수법이 빗나가고 만 것이다. 과히 뜻대로 안됐군? 나는 동정하듯이 말했다. 그 사나이는 정말 고집불통이구먼. 자네 뭣 때문에 그런 인간을 만나러갔나? 그와 제인 윌킨슨이 정말 결혼할 작정인지 아닌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지. 온 참, 그녀가 그렇게 말했쟎아? 그렇지, 그녀는 그런 말을 했어. 하지만 내 말을 들으라구. 그녀는 자기한테 형편이 좋은 것은 뭐든지 떠들어내는 인간이지. 그녀는 공작하고 결혼할 작정인지는 몰라도 상대방쪽은 아직 그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지도 모르니까. 그건 어떻든 공작은 되게 매몰차게 자네를 몰아냈어. 그는 신문기자한테 말하는 그런 대답을 했지 - 응. 포와로는 킥킥 웃었다. 천만에. 난 알고 있지! 사정이 어떻게 돼있는지 뚜렷이 알고 있다네. 어떻게 알았나? 그의 태도로? 천만에. 그가 편지를 쓰고 있는 것을 봤겠다? 응, 봤지. 결국, 나는 벨기에 경찰에 들어간 애숭이 때 필적을 거꾸고 읽는 게 무척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지. 그가 그 편지에 무슨 말을 썼는지 가르쳐 줄까? 다시없이 그리운 사람, 나는 앞으로의 긴 몇 개월을 기다리고 있을 수 없을 정도요. 제인,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나의 천사, 당신이 내게 있어 그 얼마나 소중한가를 어찌 글로 나타낼 수 있으리. 당신은 그렇듯 괴로워했소! 그대의 아름다운 마음씨는 - 포와로! 나는 화를 내며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는 거기까지 밖엔 쓰질 않았지. 그대의 아름다운 마음씨는 - 나만이 알고 있소 이렇게 말야. 나는 몹시 당황해졌다. 그는 자기가 한 짓을 지극히 순진하게 즐기고 있는 것이다. 나는 한참만에 소리쳤다. 포와로! 그런 짓을 해선 안되네. 남의 사신을 훔쳐보다니! 자네 말은 사리에 닿질 않아, 헤이스팅즈. 나는 지금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구. 그건 자네도 알고 있을 게야. 살인은 게임이 아니지. 중대한 문제일세. 나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포와로가 그렇듯 홀가분하게 해치운 일이 도저히 견딜 수 없이 불쾌했던 것이다. 그보다도 자네가 제인 윌킨슨의 의뢰를 받고 엣지웨어 경을 만나러 갔었다는 얘기를 공작한테 했드라면, 그의 태도가 훨씬 달랐을걸. 아니지, 그렇게 할 수는 없었어. 제인 윌킨슨은 내 의뢰인이었네. 자기의 의뢰인 문제를 남에게 말할 수는 없지. 나는 본시 의뢰받은 일을 비밀로 처리하고 있네. 그것을 남에게 털어놓는다면, 신의에 어긋날 거란 말야. 신의라구? 암, 그렇지. 온, 세상에 별 놈의 신의도 다 보겠군. 이튿날 아침에 우리가 받은 방문은 내게 있어 이 사건 전체를 통해서 가장 뜻밖인 일의 하나였다. 내가 방에 있을 때 포와로가 눈을 빛내며 살며시 들어왔다. 여보게, 손님이 오셨다네. 누군가? 마아튼 공작 미망인이야. 이거 정말 놀랐는데! 대체 무슨 일인가? 함께 밑으로 내려가 보면 알 테니, 안그래? 우리는 서둘러 밑의 객실로 들어갔다. 공작미망인은 높은 코와 부리부리한 오만해 보이는 눈의, 몸집이 작은 여자였다. 유행에 뒤떨어진 검은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역시 구석구석이 귀부인 티가 났다. 또한 가차 없는 엄한 성격의 소유자로 느껴졌다. 아들이 소극적인 대신 그녀는 적극적이었다. 미망인은 안경을 눈에 대고는 먼저 나를, 이어 나의 친구를 관찰했다. 그리고는 포와로에게 말을 걸었다. 그 목소리는 시원시원했고, 누르는 것 같은 데가 있었다. 명령하고 복종당하는 것에 익숙한 목소리였다. 당신이 에르큐르 포와로씨군요? 친구는 정중히 머리를 숙였다. 그렇습니다, 공작부인. 미망인은 나를 보았다. 이 사람은 친구인 헤이스팅즈 대위올시다. 제가 다루는 사건을 도와주고 있지요. 미망인의 눈은 한 동안 의심스러운 표정을 띠었다. 그러나 이윽고 승인한 듯이 고개를 거듭 끄덕였다. 그녀는 포와로가 권한 의자에 앉았다. 나는 매우 미묘한 문제에 대해 당신과 상의하고자 왔어요, 포와로씨. 그리고 이제부터 하는 이야기의 내용은 절대로 비밀로 해주셔야 합니다. 그것은 두 말할 여지가 없습니다, 마담. 당신 얘기를 내게 해준 것은 야아드리 부인이었지요. 부인이 당신에 대해 말한 그 말투나, 당신에게 나타낸 감사의 정으로 보아, 나는 당신이야말로 나를 도와 줄 유일한 사람이라 생각했지요. 안심하십쇼, 마담. 제 힘껏 해보겠습니다. 그래도 부인은 여전히 망설이고 있었다. 이윽고 마침내 자신을 채찍질하듯 하면서 요점을 꺼냈다. 포와로씨, 나는 아들이 여배우인 제인 윌킨슨과 결혼하지 못하도록 하고 싶습니다. 포와로는 깜짝 놀랐는지도 모르지만, 그것을 겉으로 나타내지는 않았다. 그는 공작부인을 잠시 보고 있다가 말했다. 제게 어떤 일을 시키고 싶으신지 좀더 상세히 말씀해 주실 수 없겠습니까? 그것을 말하기란 손쉬운 일이 아닙니다. 나는 그 같은 결혼이 커다란 불행을 가져오리라 생각해요. 그런 결혼을 하면 아들의 생활은 파탄을 일으킬 걸요.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마담? 틀림 없어요. 아들은 매우 높은 이상을 품고 있지요. 세속에 대해서는 무지와 다름 없어요. 아들은 자기 같은 계급의 처녀들에게 마음을 이끌린 적이 없답니다. 그 처녀들이 머리가 텅 비어 있고 경박스럽다고 생각하고 있지요. 하지만 그 여자에 대해서는 - 물론 그녀가 매우 아름답다는 사실은 나 역시 인정합니다. 그리고 남성의 마음을 사로잡는 힘을 지니고 있어요. 그 여자는 아들을 홀려 버린 거에요. 나는 아들이 냉정을 되찾기를 기대해 왔지요. 다행히 그 여자는 자유의 몸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여자의 남편이 죽어 버렸기 때문에 - 미망인은 말을 끊었다. 그들은 석 달 이내에 결혼할 작정입니다. 아들의 일생의 모든 행복이 바야흐로 위태로워져 있는 것입니다. 미망인은 독단적으로 말했다. 그것을 막아야 합니다, 포와로씨. 포와로는 어깨를 흠칫했다. 마담, 당신의 말씀이 잘못이라고는 말씀드리지 않습니다. 그 결혼이 어울리는 것이 못된다는 사실은 저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곁에서 과연 막을 도리가 있을까요? 당신이 꼭좀 막아 주셔야 합니다. 포와로는 다시금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나를 꼭좀 도와주셔야 해요. 수를 써도 별 도움이 못되리라 생각합니다, 마담. 필시 아드님은 그 여자에게 불리한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겝니다. 게다가 그녀에게 불리한 일은 그리 없다고 생각하는군요. 그녀의 과거에서 뭔가 신용을 떨어뜨릴 만한 허물을 찾아낸다는 것이 말씀입니다. 그녀는 이제까지 - 말하자면 조심스럽게 행동해 온 것이 아닐까요? 그것은 알고 있어요. 공작부인은 비위가 상한 듯이 말했다. 아아, 그럼 이미 그 방면의 조사를 하셨군요? 그녀는 포와로의 날카로운 시선을 받고 얼굴을 붉혔다. 아들을 이번 결혼에서 구하기 위해서라면, 난 어떤 짓이라도 할 셈이에요, 포와로씨. 그녀는 힘주어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무슨 짓이라도! 미망인은 말을 중단했다가 다시금 덧붙였다. 이 문제에 대해 돈은 문제가 아닙니다. 수수료가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말씀하세요. 아무튼 결혼은 막아야 합니다. 당신이 그 일을 해주셔요. 포와로는 안되었다는 듯이 서서히 고개를 흔들었다. 이것은 돈문제는 아니올시다. 저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지요 - 그 이유에 대해서는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마 어찌 할 도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힘이 되어 드릴 수가 없군요, 공작부인. 실례의 말씀이지만 충고를 드릴까요? 어떤 충고인가요? 아드님에게 반대하지 마실 일입니다. 아드님은 자신이 선택을 하실 나이입니다. 아드님의 선택이 당신의 선택과 틀리다고해서 당신쪽이 바르다고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당신은 전혀 모르고 있군요. 미망인은 벌떡 일어섰다. 그 입술이 떨리고 있었다. 실례하겠어요, 포와로씨. 그녀는 냉정하게 말했다. 나는 실망했습니다. 도와드리지를 못해 죄송하군요, 마담. 저는 실은 난처한 입장에 있습니다. 결국, 이미 엣지웨어 부인이 제게 조언을 의뢰해 왔으니까요. 아아! 이제 알겠어요. 미망인의 목소리는 비수처럼 날카로웠다. 당신은 결국 적의 편이군요? 엣지웨어 부인이 아직도 남편살해죄로 체포되지 않고 있는 까닭도 그것으로 이제 뚜렷해졌어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공작부인? 내 말은 들었으리라 생각해요. 그녀는 어째서 체포당하지 않죠? 그 여자는 사건 당일 그곳에 있었어요. 그 집에 들어가는 것을 - 서재로 들어가는 것을 발견당했어요. 그녀 말고는 아무도 서재에 가지를 않았고, 엣지웨어 경은 시체로 발견되지 않았나요? 그런데도 그 여자가 체포되지를 않다뇨? 경찰은 부패해 있는 거에요.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스카아프를 목에 감자,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방을 나갔다. 나는 혼잣말처럼 했다. 되게 성깔이 드센 여자군! 하지만 감탄했어! 안그래? 그렇지, 그녀는 아들의 행복 밖엔 염두에 없다네. 포와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지만 말야, 헤이스팅즈, 공작에게 있어 제인 윌킨슨과 결혼하는 것은 정말로 그렇듯 불행한 일일까? 그럴 것이 윌킨슨이 진정으로 공작을 사랑하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을 테지? 아마 사랑하고 있지는 않겠지. 하지만 그녀는 공작이라는 지위엔 잔뜩 구미가 동해 있다구. 그러니까 자기의 역할을 조심스럽게 연출할 거란 말야. 그녀는 미인이고, 매우 야심적이지. 그렇게 파멸적인 결혼은 아니라구. 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내가 받았다. 나의 응답은 길고 짧은 시간을 두고 맞장구를 치는 일이었다. 나는 잠시 후 수화기를 놓고 허둥지둥 포와로는 돌아보았다. 재프한테서 왔어. 첫째로 자네는 여느때처럼 기막히다 는 게야. 둘째로 그는 미국에서 전보를 받았어. 셋째로 문제의 택시운전사를 찾아냈다네. 넷째로 자네보고 그 택시운전사의 말을 들어 보지 않겠느냐는 거야. 다섯째로 자네는 거듭 기막히다 는구먼. 그는 자네가 이번 사건의 배후에 남자가 있다고 지적한 것은 귀신 같은 추리였다고 말하고 있네. 포와로는 생각에 잠기면서 중얼거렸다. 내가 다른 유력한 가설을 찾아내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에 흑막의 사나이 가 등장한 사실이 증명되다니, 참으로 묘하군. 어떤 가설인가? 살인동기가 엣지웨어 경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가설이지. 누군가가 제인 윌킨슨을 미워하고 있다, 그녀에게 살인죄를 뒤집어씌울 만큼 미워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라구. 이것은 하나의 착상이라구! 그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벌떡 일어섰다. 자아, 헤이스팅즈, 재프의 말을 들어 보세. 무너진 부재증명 우리가 가보니 재프는 털북숭이 입수염에 안경을 낀 노인을 심문하고 있었다. 여어! 오셨군요. 재프가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만사 호조올시다. 이 사람은 - 이름은 슨이라고 합니다만 - 유 월 이십구일 밤에 롱에커에서 두 손님을 태웠답니다. 그렇습죠. 슨이 목쉰 소리로 그 사실을 인정했다. 좋은 밤이었습니다유. 달이 떠 있었지유. 젊은 레이디와 신사가 지하철 역 곁에 서있다가 날 불러세웠습죠. 야회복을 입고 있었나? 예, 신사쪽은 흰 조끼고, 처녀쪽은 새를 자수한 흰 드레스였습죠. 로이열 오페라에서 나온 거라고 생각했습니다유. 그게 몇 시 경이었나? 열 한 시 조금 전이었을 겝니다. 그래서? 리젠트 게이트로 가라고 하더군입쇼. 거기 닿으면 어느 집인지 가르쳐 주겠다구요. 그리고 서둘르라고 했습죠. 손님은 언제건 그런 말을 합니다만서도. 빨리 계속하라구. 재프가 초조한 듯 외쳤다. 예, 알았습니다유. 리젠트 게이트에 닿자 - 아마 칠분 이상은 안걸렸습니다마는. 차를 세우더군유. 그곳은 팔 번지쯤 됐습죠. 신사와 레이디는 내렸지유. 신사는 멈추어서서 나보고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습죠. 여자는 길을 가로질러 저쪽 집들이 늘어서 있는 곳으로 가더군유. 신사는 차 곁에 남아 있었습죠 - 보도에 서서 내게 등을 돌린 채 여자를 보고 있었는디, 오분쯤 지났을까, 그가 뭐라고 하는 소리가 들려왔습죠 - 입 속에서 외치는 것 같았는디, 자기도 저쪽으로 걷기 시작하는 것이었어유. 난 차삯을 떼어먹히고 싶지 않아 신사를 눈으로 좇았습죠. 그 사람은 어떤 집 층계를 올라 안으로 들어갔습죠. 어떻게 들어가던가? 벨을 울리고? 아닙죠. 열쇠를 갖고 있었습죠. 그래? 그 집은 몇 번지였나? 십칠이나 십구 번지일 테지유. 이렇게 되고 보니, 난 그대로 기다리고 있으라는 말이 의심스러운 생각이 들더군입쇼. 그래서 줄곧 지켜보고 있었습죠. 오분쯤 지나서 신사와 처녀가 함께 나오더군유. 그들은 차로 돌아와 내게 코벤트 가아든 오페라로 되돌아가자고 했습죠. 그리고 그곳 조금 못미처 지점에서 차를 세우고 요금을 치러 줬습니다유. 재프가 그에게 말했다. 이 사진을 보고 그 안에 그 처녀가 있는지 가려내 달라구. 거의 비슷비슷한 타이프의 사진이 대여섯 장 있었다. 나는 호기심에 좇겨 재프의 어깨 너머로 들여다보았다. 이게 그 여자입니다유. 슨이 말했다. 그는 이브닝 드레스를 입은 제럴딘 머어슈의 사진을 손가락질했다. 분명한가? 암요, 얼굴이 창백하고 머리카락이 검었습죠. 이번엔 남자쪽이야. 또다른 사진들이 운전사의 손에 넘겨졌다. 그러나 그는 사진을 한 동안 보고나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글쎄올시다, 잘 알 수 없구먼유. 이 두 사람 중의 한쪽이 그럴는지도 모르겠지만. 사진들 속에는 로널드 머어슈, 즉 새로운 엣지웨어 경의 것도 섞여 있었으나, 슨은 그것을 골르지 않았다. 그 대신 약간 머어슈 비슷한 타이프의 두 사나이를 가리켰다. 슨은 물러가고, 재프는 사진을 테이블 위에 집어던졌다. 흠, 제법 수확이 큰걸. 새로운 엣지웨어 경의 확인이 좀더 분명해지면 좋겠는데. 물론 이것은 오래된 사진, 칠판 년 전에 찍은 놈이죠. 이것밖엔 입수할 수 없었거던요. 아무튼 상황은 뚜렷하구먼. 두 사람의 알리바이는 날아갔단 말씀야. 그건 그렇고 이런 생각을 해내다니, 정말 빈 틈 없으시군요, 포와로씨. 포와로는 겸손한 표정을 지었다. 제럴딘과 사촌오빠, 이 두 사람이 똑같이 오페라에 간 사실을 알았을 때 두 사람이 막간에 함께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하긴 그들과 같이 있었던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이 극장에서 나가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삼십분이면 리젠트 게이트에 충분히 갔다올 수가 있죠. 로널드 머어슈가 자기의 알리바이를 지나치게 강조했을 때, 나는 어딘지 구리다고 생각했지요. 당신은 기막히게 의심을 하는 사람이군. 재프는 감탄한 듯 말했다. 하긴 그래요. 당신 생각이 맞습니다. 범죄세계에선 아무리 의심해도 그 의심이 지나치는 법은 없으니까. 그건 어떻든 이걸 보시지요. 그는 한 장의 종이를 꺼냈다. 뉴요크에서 온 전보올시다. 그쪽 경찰이 미스 루우시 아담즈한테 연락을 취한 겝니다. 그녀는 경찰관이 편지의 카피를 만들어 이쪽으로 전보로 알리는 일을 기꺼이 허락했지요. 이게 바로 그 카피인데, 상당히 희망이 있지요. 썩 고무적이란 말씀입니다. 포와로는 굉장한 관심을 담아 전보를 받아쥐었다. 나는 그의 어깨 너머로 그것을 읽었다. 이하는 런던 S W 로즈듀 맨션 8호발 6월 29일자 루우시 아담즈 앞으로 보내어진 카아롯타의 원문이다. 그리운 루우시, 지난 주에는 아주 짧은 편지밖에 보내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 하지만 이것저것 바쁜 일이 있었단다. 무대는 대성공이었어. 비평은 그만하면 만족할 정도이고, 표는 날개돋치듯 팔리고 있으며, 모두들 아주 친절히 대해 주고 있단다. 여기서 정말 좋은 친구가 몇 사람 생겼고, 내년에는 어떤 극장에서 2개월간 공연할 작정이라구. 지금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를 만큼 흥분해 있단다. 너도 이제 곧 그 까닭을 알 수 있을 테지만, 그 전에 여러 사람이 어떤 비평을 했는지를 알려야 할 거야. 허그스하이머씨는 아주 친절하여 나를 점심에 초대해 주셨고, 불원 몬타규 코우너 경한테 소개를 해주시겠다고 하셨어요. 코우너 경이 틀림없이 내 큰 힘이 돼주실 거라는 거야. 얼마 전에는 제인 윌킨슨을 만났는데, 그녀는 나의 쇼우며 그녀의 흉내를 낸 연기를 굉장히 칭찬해 주었단다. 이제부터 네게 알리려는 일의 계기가 된 것은 바로 그 일이란다. 실은 말야, 난 그녀가 과히 좋게 여겨지지를 않아요. 근래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사람한테서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말야 - 하지만 지금은 그 이야기를 길게 할 수가 없구나. 그녀에 대해서는 나중에 또 얘기할게. 제인 윌킨슨이 엣지웨어 부인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을 테지? 엣지웨어 경에 대해서도 요즈음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해. 경은 전에 네게 알려 준, 조카인 머어슈 대위를 아주 냉혹하게 다루었어요. 글세 대위를 집에서 쫓아내 버렸단다. 대위는 나보고 그 사정이야기를 모두 해주었는데, 정말 딱한 생각이 들더구나. 그는 내 쇼우를 굉장히 재미있어 했어. 글세 이렇게 말하는 거야. 그 정도라면 아마 엣지웨어 경 자신도 속아넘어갈 걸요. 어때요, 안걸겠어요? 난 웃으면서 얼마를 거시겠어요? 이렇게 물었지. 그리운 루우시, 그 대답을 듣고 난 숨이 막힐 정도였단다. 글세 1만 달러라는 거에요. 자그마치 1만 달러라구. 어머나! 난 대답했어. 그렇담 버킹검 궁전에서 임금님한테 장난을 걸어 불경죄라도 서슴치 않겠어요. 우리는 그에 대해 상세한 의논을 했단다. 내주에는 모두 알려 줄게. 내가 가짜임이 탄로나든 안나든 간에 말야. 그리운 루우시, 성공을 하건 실패를 하건 나는 그 1만 달러를 받게 되는 거야. 아아! 그리운 루우시, 그것이 우리들에게 있어 그 얼마나 기쁘고 대견한 일이니? 더 이상 쓸 시간이 없어 - 이제부터 장난 을 하러 간단다. 산 더미 같은 애정을 담아 나의 그리운 동생에게. 그대의 카아롯타 포와로는 편지를 밑에 놓았다. 그가 감명을 받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를 잡아야지. 재프가 자랑스러운 듯이 말했다. 그렇구먼. 포와로가 말했다. 그 목소리는 묘하게 맥없이 울렸다. 재프는 이상한 듯이 그를 보았다. 왜그래요, 포와로씨? 별로. 다만 어딘지 내 짐작대로가 아니요. 그뿐이올시다. 그는 몹시 불만스러워 보였다. 재프가 영문을 모른다는 듯 물었다. 당신은 이번 사건의 배후에 누군가가 있고, 그가 카아롯타로 하여금 그 순진한 장난을 하도록 만들었다고 했쟎소? 그렇지요. 아니 그렇다면, 그 이상 무얼 또 바란단 말요? 포와로는 한숨만 쉬었을 뿐이었다. 당신은 이상한 사람이군요? 어떤 일에도 만족을 안한단 말야. 아무튼 그 처녀가 이 편지를 쓴 것은 행운이었소. 포와로는 힘주어 끄덕였다. 그렇소. 이는 범인이 짐작못한 일이올시다. 미스 아담즈는 이 일만 달러를 받았을 때 자신의 사형집행영장에 사인한 셈이지요. 살인자는 만반의 주의를 했소 - 그런데 아담즈는 전혀 의식 않고 살인자를 앞질르고 있었단 말입니다. 죽은 사람이 입을 연 거요. 그렇소, 때로는 사자가 입을 열지요. 난 그녀 혼자의 일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시다. 재프는 뻔뻔스럽게 말했다. 암, 그렇고말구요. 포와로의 대답은 건성이었다. 어쨌든 당장 일을 시작해야지. 당신은 머어슈 대위 - 즉 현재의 엣지웨어 경 - 을 체포할 작정인가요? 물론. 그를 유죄로 하는 상황이 완전히 증명됐다고 생각하는데요. 그건 그렇소. 별나게 신이 안나는군요, 포와로씨? 당신은 매사를 어렵게 만드는 것을 좋아한단 말씀야. 아, 이렇게 당신의 추리가 증명됐는데, 당신은 그래도 만족을 안하니, 온 기가 차서. 우리가 입수한 증거에 결점이라도 있나요? 포와로는 고개를 흔들었다. 미스 머어슈가 공범이었는지 어떤지는 모르죠. 재프가 신이 나서 말했다. 그렇지만 사정을 알고 그와 함께 오페라좌에서 그곳으로 간 게 분명한 것 같소. 만일 공범이 아니라면, 뭣 때문에 그가 현장으로 데리고 가나요? 자아, 그들이 뭐라고 현명할는지 어디 들으러 가보십시다. 그는 테이블 위의 전보를 부리나케 챙겼다. 나는 포와로의 태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재프의 말마따나 이는 그가 애초부터 줄곧 예언해 온 것이 아닌가? 리젠트 게이트로 향하는 도중 그는 내내 어리둥절한 것처럼 눈살을 찌푸리면서 재프의 자기만족에는 하등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리젠트 게이트에 닿자 당자가 집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식구들은 아직 점심식탁에 앉아 있었다. 재프는 엣지웨어 경과 조용히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서재로 안내되었다. 이내 청년이 들어왔다. 그의 얼굴에는 여유 있는 미소가 떠오르고 있었으나, 우리를 재빨리 훑어보고나자 그 표정이 싹 달라져,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는 말했다. 경부님, 웬일이시죠? 재프는 형식적인 태도로 짤막하게 사정을 알렸다. 딴은, 그렇게 된 거군요? 로널드는 의자를 끌어당겨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담배케이스를 꺼냈다. 경부, 난 공술하려고 생각합니다. 그건 뜻대로 하시지요, 엣지웨어 경. 저기 테이블과 의자가 있습니다. 청년은 말을 계속했다. 경부님, 자리에 앉아 자초지종을 기록해 주십쇼. 재프는 엣지웨어 경의 권고에 따랐다. 먼저 말씀드리거니와. 청년은 서두를 꺼냈다. 나도 그리 바보는 아니니까요. 아마 내 기막힌 알리바이가 무너진 게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연기처럼 사라진 셈이지요. 택시운전사한테 알아내셨겠죠? 당신의 그날밤 행동은 모조리 알려져 있단 말씀입니다. 재프가 쌀쌀하게 말했다. 런던경시청에 대해 최대의 찬사를 드리겠어요. 그렇지만 이것만은 알아 주셔야 합니다. 만일 내가 어떤 범죄행위를 진정으로 꾀하고 있었다면, 택시를 타고 곧장 현장으로 가거나, 운전사를 대기시켜 두거나 하지는 않았을 걸요. 그 생각을 해보셨습니까? 아아! 포와로 선생은 생각하셨군요? 그 생각을 한 것은 분명합니다. 포와로가 긍정하면서 말했다. 그런 행동은 계획적 범죄에 어울리는 방법이 못돼죠. 로널드 - 새 엣지웨어 경이 말했다. 아뭏든 말씀드리지요. 나는 몹시 돈에 궁색해 있었죠. 그것은 주위에서도 잘 알고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상당히 절망적인 상태였지요. 이튿날까지 돈을 손에 넣지 않으면, 파산할 판국이었죠. 나는 백부에게 부딪쳐 봤습니다. 그는 내게 아무런 애정도 없었지만, 나로서는 그가 자신의 체면을 생각할지 모른다고 믿어 본 거죠. 그런데 난처하게도 백부는 한 마디로 거절해 버리는 것이었어요. 그런 판에 우연히도 사촌여동생을 오페라에서 만난 것입니다. 그녀와 얼굴을 마주치는 일은 과히 없지만, 내가 전에 이 집에 살고 있었을 무렵 그녀는 노상 친절했지요. 나는 그녀에게 사정얘기를 했습니다. 어차피 그녀는 부친한테 얘기를 들었을 테니까요. 그러자 그녀는 대뜸 그녀의 진주를 이용하도록 권하더군요. 그것은 모친의 유물이었죠. 그는 잠시 말을 끊었다. 그 목소리에는 어딘지 실감이 어려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지 않다면 기막힌 연출일 것이다. 그렇죠, 나는 친절한 그녀의 말에 따랐습니다. 진주를 저당잡히면 필요한 돈은 조달됩니다. 하지만 진주는 리젠트 게이트의 집에 있었지요. 그래서 우리는 부리나케 택시를 타고 달려간 것입니다. 택시를 현관에 댔다간 발견당할 것 같기에 행길 반대쪽에 세우게 했지요. 제럴딘은 차에서 내려 행길을 건넜습니다. 그녀는 현관 열쇠를 갖고 있었지요. 아무도 모르게 살며시 들어가서 진주를 꺼낼 작정이었죠. 심부름꾼은 혹시 만날지도 모르지만, 그밖의 인물을 만나는 일은 없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여비서 미스 캐럴은 언제나 아홉 시 반에 취침하기 때문입니다. 백부는 아마 서재에 있을 겝니다. 제럴딘은 집 안으로 들어갔죠. 나는 보도에 서서 한 동안 담배를 피우고 있었지요. 그 뒤에 일어난 얘기는 당신들이 믿건 안믿건 자유올시다. 그는 좌중을 둘러보고 마른 침을 삼키고나서 다시금 말해나갔다. 한 사나이가 보도를 따라 내 곁을 지나가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그 사나이는 백부의 집인 십칠 번지 계단을 올라가 안으로 들어가질 않겠습니까? 물론 나는 좀 떨어진 곳에 있었으니까 분명하게 본 것은 아닙니다. 아무튼 나는 두 가지 이유에서 몹시 놀랐습니다. 첫째는 그 사람이 열쇠로 열고 들어갔다는 것이고, 둘째는 어느 유명한 배우처럼 보였다는 점입니다. 나는 너무나 놀라운 일이라 사정을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죠. 우연히 포켓에 그 집 열쇠가 있었습니다. 삼 년 전에 그것을 잃어버린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며칠 전에 찾아냈기에 그날 오전 중 백부를 만나러갔을 때 돌려줄 셈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백부와 말다툼을 벌이는 통에 잊어버리고 그대로 갖고 있었던 것이지요. 나는 운전사보고 기다리고 있으라고 일르고는 급히 십칠 번지 백부의 집 층계를 올라 그 열쇠로 문을 열었습니다. 호올엔 아무도 없더군요. 방금 누군가 찾아온 그런 흔적은 없었습니다. 잠시 두리번거리다가 서재쪽으로 갔지요. 그 사나이가 필경 서재에서 백부를 만나고 있으리라 생각한 겝니다. 그런데 도어 앞에 서 있어도 아무런 기척이 없더군요. 그 때 나는 내가 당챦은 바보짓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물론 그 사나이는 다른 집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 아마 옆집일 테지. 리젠트 게이트는 불빛이 좀 희미합니다. 나는 바보짓을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한 숨 돌리고나서 말했다. 만일 백부가 갑자기 서재에서 나와 나를 발견하면, 어떻건다? 나 때문에 제럴딘은 입장이 곤란해질 것이다, 다행히 아직 아무한테도 발견당하지 않았다, 속히 밖으로 나가자. 내가 살금살금 현관쪽으로 걷기 시작했을 때 제럴딘이 진주를 손에 들고 층계를 내려오더군요. 그녀가 나를 보고 깜짝 놀란 것은 두 말할 여지가 없지요. 나는 그녀를 급히 밖으로 데리고나가 사정을 설명했습니다. 우리는 서둘러 극장으로 돌아갔지요. 마침 막이 올르는 직전에 그곳에 닿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극장 밖으로 나갔다 온 사실은 아무도 몰랐죠. 무더운 밤이라 바람을 쏘이느라 밖에 나가 있던 사람들이 제법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또다시 이야기를 중단했다. 당신들이 말씀하시는 뜻은 알 수 있습니다. 왜 그 사실을 진작 말하지 않았느냐는 것이겠죠? 그래서 지금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살인의 동기를 갖고 있는 인간이 문제의 밤, 살인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솔직히 말해서 무서웠던 것입니다! 설령 우리 두 사람의 말을 믿어 준다고 하드라도 나나 제럴딘에게 있어 매우 성가신 결과가 됐을 걸요. 우리는 살인하곤 아무런 관계도 없고, 아무 것도 못봤고, 아무 것도 듣지 못했어요. 당연한 일일 테지만, 나는 제인 백모가 한 짓이라 여긴 것입니다. 그런 판에 뭣 때문에 나 자신을 골치아픈 살인사건으로 끌어들이죠? 내가 백부와 다툰 일, 또 돈에 궁해 있었다는 얘기를 당신들한테 한 것은 조만간 그 사실이 드러날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가 그런 것마저 숨겼다면, 당신들은 더한층 의심을 품고 알리바이를 조사했을 걸요. 미스 제럴딘은 그래 극장을 떠났던 사실을 숨기는 일에 동의하던가요? 동의했지요. 나는 사건 소식을 듣자 곧 그녀한테 가서 어젯밤 극장에서 같이 집으로 간 사실에 대해 절대로 말해선 안된다고 주의했지요. 마지막 막간 동안 나하고 함께 극장 안에 있었던 것으로 해두자구요. 그녀는 사정을 짐작하고 완전히 동의했습니다. 그는 한 숨 돌리고나서 말했다. 수상쩍게 보인다는 것은 압니다 - 하지만 지금 한 얘기는 모두가 진실입니다. 그 이튿날 제럴딘의 진주를 잡고 돈을 빌려준 사람의 이름과 주소를 가르쳐드릴 수 있지요. 그리고 그녀한테 물어보면, 내가 한 말을 모조리 뒷받침해 줄 겝니다. 그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 재프를 보았다. 재프는 여전히 무표정했다. 그는 잠시 얼굴을 찌푸리고 있더니 불쑥 물었다. 미스 아담즈와의 내기는 어떻죠? 미스 아담즈와의 내기라구요? 카아롯타 아담즈 말씀입니까? 그녀가 이번 사건하고 무슨 관계가 있죠? 당신은 그녀가 그날밤 미스 제인 윌킨슨으로 변장해서 죽은 엣지웨어 경을 만나는 일로 그녀한테 일만 달러를 제공한 사실을 부정합니까? 로널드는 눈을 크게 떴다. 그녀한테 일만 달러를 제공했다구요? 온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여보시오, 내겐 제공할 일만 달러가 없단 말요. 당신은 그야말로 당챦은 생각을 하고 있소. 그녀가 그렇게 말하던가요? 앗차! 제기랄 - 깜빡 잊고 있었군. 그녀는 죽었겠다? 포와로가 곁에서 조용히 말했다. 그녀는 죽었습니다. 로널드는 우리를 보았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다. 눈에는 겁먹은 표정이 떠올랐다. 뭐가 뭔지 도무지 모르겠군요. 그는 멍청한 얼굴로 말했다. 지금 한 얘기는 사실입니다. 당신들은 보나마나 믿지 않을 테죠? - 아무도요. 그러자 그 때 놀랍게도 포와로가 앞으로 몸을 내밀고는 말했다. 아뇨. 나는 믿습니다. 공범자 포와로와 나는 우리들의 방에 있었다. 도대체 어째서 그 따위 - 나는 이렇게 항의를 시작했다. 포와로는 일찍이 본 일이 없을 정도의 요란한 제스처로 나의 말을 가로막으며 두 팔을 흔들었다. 제발 부탁이야, 헤이스팅즈! 지금은 아무 말도 말아 달라구, 제발. 그러더니 그는 모자를 움켜잡아 아무렇게나 머리에 얹고는 방을 뛰어나가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1시간쯤 지나 재프가 나타났다. 꼬마영감님께선 외출 중이신 모양이죠? 경부는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했다. 재프는 의자에 앉아 손수건으로 이마를 가볍게 두드렸다. 따사한 날씨였다. 영감님께선 웬 변덕에 사로잡혔나요? 재프는 나를 똑바로 보고 물었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말씀입니다,헤이스팅즈 대위. 포와로씨가 그 친구쪽으로 몸을 내밀고 나는 믿습니다 이랬을 때 난 너무나 놀라와 기절해 버릴 정도였다구요. 정말 곤란한 일입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고 했다. 재프는 물었다. 나리께선 그 일에 대해 뭐라고 하던가요? 아무 말도 없었는데요. 한 마디도 없단 말이죠? 그렇죠. 내가 그 얘기를 꺼낼라치면, 손을 흔들며 입닥치라는 거에요. 그래서 내팽개쳐두는 게 상책이라 생각했죠. 집에 돌아와서 또 물으려고 했단 말입니다. 그랬더니 그는 두 팔을 흔들며 잠자코 있으라고 하고는 밖으로 나가 버렸죠. 우리는 얼굴을 마주보았다. 재프는 뜻 있는 듯이 자기의 이마를 가볍게 두드렸다. 영락없이 돌았구먼. 그는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그 영감쟁이는 늘 이상했죠. 자기만의 각도에서 본단 말씀입니다 - 그것도 아주 기묘한 각도로요. 일종의 천재라구요. 그 점은 나 역시 인정해요. 그렇지만 흔히 말하듯이 천재와 미치광이는 종이 한 장의 차란 말씀야. 그 나리는 노상 일을 어렵게 만드는 것을 좋아하죠. 단순한 사건으론 절대로 만족을 않죠. 그렇죠, 뒤엉킨 사건이 아니면 만족지 않거든요. 현실생황에서 벗어나 있는 거죠. 나는 대답에 궁했다. 머리가 몹시 어지러워 사고를 할 수 없었다. 나 역시 포와로의 행동을 이해할 길이 없었다. 게다가 나는 이 색다른 작은 친구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으므로, 이번 일로는 적지않이 가슴이 아팠던 것이다. 음산한 침묵에 잠겨 있는데 포와로가 돌아왔다. 나는 그를 보고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는 정상을 되찾아 차분해져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모자를 벗어 단장과 함께 테이블에 올려놓고는 여느때의 의자에 앉았다. 여어, 와계셨군요, 재프 경부? 마침 잘 됐군. 그렇쟎아도 되도록 속히 당신을 만나보고 싶었는데 말씀이요. 재프는 잠자코 포와로를 보았다. 그 말이 뜸을 들이기 위한 시작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포와로가 스스로 설명할 때까지 기다렸다. 나의 벗은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들으시오, 재프 경부. 우리는 잘못돼 있소이다. 완전히 잘못돼 있는 겝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괴롭지만, 잘못 짚은 게요. 그건 잘못이 아니라구요. 재프는 당치않다는 듯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아뇨. 잘못이올시다. 슬픈 일이요. 나는 가슴이 아픕니다. 그 젊은이 때문에 가슴아파할 필요는 없는 것이죠. 벌을 받는 게 당연하니까. 내가 가슴아파하는 것은 그 때문이 아니올시다 - 당신 때문이에요. 나 때문이라구요? 내 일로 근심할 필요는 없는 것이죠. 아뇨. 근심 안할 수 없죠. 당신한테 이런 방향을 취하게 한 것은 누구냐? 그것은 에르큐르 포와로였소이다. 그렇소, 내가 당신으로 하여금 이 길로 오게 만든 겝니다. 여기에 이르기까지의 한 걸음 한 걸음을 내가 지시한 게요. 아무튼 내가 이 길을 따라올 것은 뻔한 일이었죠. 재프가 쌀쌀스럽게 말했다. 당신쪽이 나보다 조금 앞서가고 있었다, 그것뿐이지요. 그건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내 위안은 되지 않소. 만일 당신이 나의 착상에 귀를 기울인 덕분으로 피해를 입는다면 - 면목을 잃는다면 - 난 차마 얼굴을 들을 수 없소이다. 재프는 다만 재미 있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을 뿐이었다. 그는 포와로의 몹시 우울한 표정을 보고 있더니 느닷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포와로는 골을 냈다. 미안하군요, 포와로씨. 그는 눈을 닦고나서 말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웃음을 참으려고해도 당신은 오리가 벼락을 맞아 죽어가고 있는 것 같은 몰골이였으니까요. 자아, 그런 것은 모두 잊어버립시다. 나는 이번 사건에 대해 명성이건 비난이건 기꺼이 받겠어요. 물론 대단한 소문을 낳을 테죠. 그건 당신 말씀이 옳아요. 그러나 저러나 나는 확증을 얻고자 백방으로 뛰어다닐 겝니다. 포와로는 부드럽지만 슬픈 눈매로 재프를 보았다. 당신은 확신을 품고 있소 - 노상 확신이지! 당신은 내 몸을 돌아보고 스스로 묻는 일이 없소 - 과연 그럴까? 이렇게 말이외다. 의심을 안해요 - 수상히 여기지를 않지요. 물론 나는 그 따위 어벙한 짓은 않죠. 그리고 바로 그 점에서 당신은 언제나 탈선해 버린단 말씀입니다. 포와로는 그를 보고 한숨을 쉬고는 두 팔을 절반쯤 벌이고나서 고개를 흔들었다. 그만 두겠소! 이제 더 이상 왈가왈부 않겠소이다. 좋습니다. 암, 그래야죠. 재프는 만족스러운 듯이 말했다. 자아, 문제의 줄거리로 들어갑시다. 내 수사결과를 듣고 싶겠죠? 물론. 여부가 있겠소? 에에, 나는 제럴딘 공주를 만나뵈었는데, 그녀의 얘기는 머어슈 대위의 얘기하고 똑같았지요. 두 사람 모두 사건에 관계하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내가 보기엔 그렇지 않죠. 그가 그녀를 위협했다는 것이 내 의견이다, 이겁니다. 그럴 것이 그녀는 사분의 삼쯤 남자한테 반하고 있죠. 그가 체포됐다는 사실을 알자 대단한 쇼크를 받았단 말씀입니다. 그래요? 그럼 여비서쪽은 - 미스 캐럴은? 과히 놀라지 않는 것 같았죠. 하긴 그것은 그저 내 느낌뿐이지만. 진주 문제는 어떻습디까? 내가 한 마디 물었다. 그의 진술의 그 대목은 사실이었나요? 완전한 사실이었죠. 그는 이튿날 아침 일찍 진주를 맡기고 돈을 빌렸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 사실이 사건의 줄거리와 관계가 있으리라곤 생각지 않죠. 내 짐작으로는 그가 극장에서 사촌동생을 만났을 때 살인계획이 떠오른 것으로 봅니다. 아마 그는 그런 생각을 노상 하고 있었을 테죠. 그렇기 때문에 그 집 현관열쇠를 갖고 있었던 거죠. 생각쟎게 열쇠가 나왔다는 그 얘기를 신용할 수는 없으니까. 아무튼 그는 동생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에 그녀를 끌어들이면 보다 안전하다고 생각한 거죠. 그녀의 감정에 호소하고 진주 얘기를 꺼내자 그녀가 이내 응했고, 그래서 그 길로 집으로 달려간 겝니다. 그녀가 집 안으로 들어가자 그도 뒤따라 들어가 서재로 간다, 아마 엣지웨어 경은 의자에 앉아 졸고 있었을 테죠. 그는 이초쯤 걸려 목적을 이루고는 밖으로 재빨리 나온다, 운전사에겐 그가 담배를 피우며 서성거리고 있었다고 믿게 할 작정이었죠. 택시가 반대방향을 향하고 있었던 사실을 생각해내시라구요. 물론 이튿날 아침 그는 진주를 저당잡힐 필요가 있었죠. 돈에 궁해 있는 것처럼 보여야 했기 때문이죠. 그러자 포와로가 말했다. 내가 보기엔 머어슈 대위의 입장에선 막간에 혼자 극장을 나선 편이 훨씬 수월하고 간단했을 게요. 자기의 열쇠로 집 안으로 몰래 들어가서 백부를 죽이고 극장으로 돌아가는게 좋질 않겠소? - 그런데 그러는 대신 거추장스럽게 택시를 밖에 세우는가 싶으면, 신경질적인 처녀를 데리고 갔으니 말입니다. 재프는 싱긋 웃었다. 당신이나 나라면, 그렇게 했을 테죠. 그렇지만 우리는 로널드 머어슈 대위보다 약간 머리가 좋단 말씀입니다. 폐일언하고 만일 그가 범인이 아니라면, 뭣 때문에 그 아담즈를 시켜 그 따위 쇼우를 하게 했죠? 재프는 다시금 말했다. 그 쇼우의 이유는 딱 한 가지 밖엔 생각할 수 없죠 - 진범을 숨기는 일이지요. 그 점에서는 정말 동감입니다. 이거, 당신하고 의견이 일치하다니, 기쁘군요. 미스 아담즈를 꼬인 것은 실상 그인지도 모르겠군. 포와로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렇지만, 정말 - 아니지, 그건 말도 안되는 소리야. 그리고는 느닷없이 재프를 돌아보자 빠른 투로 질문했다. 그녀의 죽음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죠? 재프는 헛기침을 몇 번 했다. 난 믿고 싶습니다 - 과실사라구요. 물론 안성마춤의 사고라는 것은 인정합니다. 머어슈 대위가 그 여자의 죽음과 관계가 있었다고는 생각될 수 없어요. 오페라가 끝난 뒤의 그의 알리바이는 완벽하다구요. 그는 도오트하이머 일가와 함께 한 시까지 소브러니스에 있었단 말입니다. 만일 아담즈가 사고로 죽지 않았다면, 그는 그녀와 흥정을 할 작정이었을 겝니다. 먼저 그녀한테 공포심을 일으키게 한다 - 그녀가 만약 진상을 폭로하면, 그 때의 살인용의로 체포될 거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단단히 못을 박아 놓고 돈을 듬뿍 쥐어주어 매수해 버리는 겝니다. 당신은 그렇게 생각한단 말이죠? 포와로는 한심한 듯이 물었다. 정말 한심하군요, 포와로씨. 당신은 무조건 로널드 머어슈가 나쁜 짓을 전혀 못하는 정직한 청년이라 믿어 버리고 있는 거에요. 다른 사나이가 몰래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봤다는 그의 말을 믿는단 말씀입니까? 포와로는 어깨를 흠칫했다. 그가 그것을 누구라고 생각했는지 아십니까? 재프가 물었다. 포와로가 말했다. 대략 짐작은 갑니다마는. 아마도. 그는 그게 영화스타아인 브라이언 마아틴이라고 생각했다는 거에요. 이 사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엣지웨어 경하곤 피차 안면조차 없는 사나이란 말씀입니다. 그런 사나이가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을 본다면, 분명히 기묘한 일일 테죠. 허어! 재프가 말했다. 경멸하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그럼 마아틴씨가 그날밤 런던에 없었다는 말을 들으면, 당신도 놀라실 테죠? 그는 젊은 레이디를 데리고 모르지의 만찬회에 참석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밤중까지 런던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어때요? 딴은! 포와로가 부드럽게 말했다. 천만에. 난 놀라지 않소. 그 젊은 레이디도 같은 배우인가요? 아니죠. 모자점을 경영하고 있는 처녀올시다. 실은 말씀입니다, 미스 아담즈의 친구인 미스 드라이버에요. 그녀의 증언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는 것은 당신도 필경 찬성하실 거라 생각하는데요. 하긴 그렇군요. 이제 당신이 졌다는 사실을 아실 수 있을 테죠? 재프는 웃으면서 말했다. 엉겁결에 만들어낸 거짓말이었단 말씀입니다. 십칠 번지에는 아무도 들어가지 않았다 -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죠? 머어슈 대위가 거짓말장이라는 것이올시다. 포와로는 슬픈 듯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재프는 일어섰다 - 그는 기운을 되찾고 있었다. 이제 만사는 규명된 셈입니다. 그는 우리에게 명랑하게 끄덕여 보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포와로는 눈살을 찌푸리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런데. 포와로가 잠시 후 말했다. 점심을 먹으러 가세. 그는 손을 나의 팔 사이에 끼우고는 싱긋 웃었다. 우리는 사이좋게 점심을 들러 나갔다. 약간 재미있게 생각한 것은 저쪽편 식탁에 함께 점심을 들고 있는 브라이언 마아틴과 제니 드라이버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재프가 한 말이 생각나 두 사람 사이에 로맨스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들은 이내 우리를 알아 보았고, 제니가 손을 흔들었다. 우리가 코오피를 마시고 있을 때 제니가 동행자를 남겨놓고 우리의 식탁으로 왔다. 그녀는 여느때처럼 매우 활동적이었다. 여기 앉아 잠시 입방아를 찧어도 될까요, 포와로 선생님? 좋고말구요, 마드모아젤. 당신을 만나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마아틴씨도 동석하시면 좋을 텐데요? 아녜요. 제가 그보고 그냥 앉아 있으라고 한 거에요. 실은 카아롯타의 일로 몇 가지 말씀드리고 싶어요. 무슨 말씀을 하시려구요, 마드모아젤? 당신은 그녀의 남자친구에 대해 알고 싶어하셨어요. 그렇죠? 네, 그렇지요. 나, 그 뒤로 줄곧 생각해 봤죠. 때로는 직접 생각나지 않는 수가 있거던요. 그럴 때는 회고해 보지 않으면 안되지요. 그 때에는 과히 주의를 안했던 사소한 말을 생각해내는 거죠. 그래요, 그렇게 해봤죠.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어요. 그 결과 하나의 그럴듯한 결론에 도달한 거에요. 그래서요, 마드모아젤? 그녀가 사랑하고 있었던 - 라기보다는 사랑하기 시작하고 있었던 - 남자는 로널드 머어슈였다고 생각해요 - 왜 이번에 작위를 계승한 사람 있쟎아요? 어째서 그가 그렇다고 생각하시나요, 마드모아젤? 첫째로 언젠가 카아롯타가 일반적인 표현으로 말한 적이 있어요. 불운을 당한 남자의 일과 그것이 성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말씀이에요. 본시 진실한 사람이라도 몰락하는 수가 있다, 부당하게 학대받는 일이 있다는 거에요. 모두 일반적인 얘기였죠. 하지만 그 뒤에 이내 그녀는 로널드 머어슈 얘기를 끄집어내면서 그가 모진 취급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거였어요. 아주 냉정한 말투로요. 그래서 나도 그 때는 양쪽을 연결지워 생각지 않았었죠. 그렇지만 지금은 - 수상하다고 생각해요. 그녀는 바로 로널드를 가리킨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포와로 선생님? 그러자 포와로는 말했다. 마드모아젤, 아마도 당신은 매우 중대한 정보를 제공해 주신 거라고 생각합니다. 잘 됐군요. 제니는 손뼉을 쳤다. 포와로는 상냥하게 그녀를 보았다. 아마 아직 모르실 테죠? - 당신이 방금 말씀하신 신사, 로널드 머어슈 - 즉 엣지웨어 경은 - 살인용의로 체포당했습니다. 어머나! 그녀는 놀라서 입을 멍하니 벌렸다. 그렇담 내 생각도 때늦은 셈이군요? 절대로 늦지는 않습니다. 내게 있어서는, 이라는 뜻이올시다. 고맙소, 마드모아젤. 그녀는 우리 곁을 떠나 브라이언 마아틴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나는 포와로에게 다급하게 말했다. 여보게, 지금 그 얘기로 자네의 자신도 흔들릴 테지? 천만에, 헤이스팅즈. 그 반대야 - 덕분으로 자신이 굳어졌다네. 그의 용감한 단언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가 보나마나 남몰래 동요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딴전을 부리고 있다고 여긴 것이다. 그로부터 며칠 동안 그는 엣지웨어사건에 대해 한 마디도 입을 열지 않았다. 내가 그 이야기를 끄집어내도 흥미 없다는 듯 아무렇게도 대답할 뿐이었다. 바꾸어 말해서 그는 사건에서 손을 떼고 만 것이다. 내가 그의 태도를 엉뚱하게 오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그로부터 근 2주일이나 지나서였다. 그것은 아침식사 때였다. 포와로의 접시 곁에는 여느때처럼 편지 뭉치가 놓여 있었다. 그는 재빨리 그것을 가려냈다. 이윽고 그는 기쁜 듯이 외마디소리를 올리며 미국의 우표가 붙여진 한 통의 편지를 들어올렸다. 그는 작은 가위로 봉을 잘랐다. 그가 그 편지를 보고 몹시 기뻐하기에 나는 흥미를 품고 지켜보았다. 한 통의 편지와 두툼한 뭉치가 들어있었다. 포와로는 편지를 열심히 읽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었다. 이걸 보고 싶나, 헤이스팅즈? 나는 그에게서 편지를 받았다. 거기에는 다음같이 적혀 있었다. 포와로 선생님 - 친절하신 - 매우 친절하신 - 편지, 감동깊게 보았습니다. 그 동안 여러 가지 일로 마음이 몹시 어지럽혀져 있었어요. 슬픔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마는 카아롯타에 대해서 - 다시없이 그립고 자상했던 언니에 대해서 - 이러쿵 저러쿵 좋지 않은 소문이 퍼져 있는 것 같아, 몹시 화를 내고 있었답니다. 아뇨, 포와로 선생님, 언니는 약 같은 것은 절대로 먹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에요. 언니는 그런 것을 아주 싫어했지요. 만일 언니가 그 딱한 분의 죽음에 관계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사정은 전혀 모르고 한 짓입니다. 그럴 것이 언니가 제게 보낸 편지로 그 사실을 알 수 있는 걸요. 선생님이 부탁하시니 진짜편지를 보내드립니다. 언니가 쓴 마지막 편지를 내놓기는 싫지만, 당신이 소중히 간직해 두셨다가 돌려주신다기에, 당신이 말씀하시듯 이 편지가 언니의 죽음에 대한 수수께끼를 푸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 그래요, 그렇다면 보내드려야죠. 카아롯타가 편지 안에서 친구들에 대해 특히 이름을 들더냐고 물으셨지요? 물론 언니는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들었습니다만, 특히 두드러지게 이름을 든 사람은 하나도 없군요. 우리 자매가 몇 년 전부터 알고 있는 브라이언 마아틴, 제니 드라이버, 그리고 로널드 머어슈 대위 등이 언니가 제일 많이 만나고 있던 사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무언가 선생님의 도움이 되는 일을 생각해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어 안타까울 뿐이에요. 당신은 매우 친절하시고, 동정에 넘치는 편지를 보내주셨으니, 카아롯타와 제가 서로 얼마나 사랑하고 있었는지 틀림 없이 아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루우시 아담즈 추신 - 방금 경찰에서 편지를 받으러 왔군요. 저는 그 사람에게 벌써 우편으로 당신한테 보냈다고 했습니다. 물론 거짓말을 한 것이지요. 어쩐지 당신에게 제일 먼저 편지를 보여드려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그랬답니다. 그러니 선생님이 먼저 보시고 넘겨주셔요. 하지만 부탁이니 나중에 편지를 당신한테 돌려달라고 다짐을 해주십시오. 이 편지는 카아롯타가 제게 보내준 마지막 편지니까요. 그럼 자네는 그 여동생한테 편지를 보낸 것이구먼? 나는 편지를 책상 위에 놓으면서 말했다. 왜 그런 짓을 했나, 포와로? 왜 카아롯타 아담즈의 편지 원문을 보내달라고 새삼스럽게 부탁했지? 그는 봉투에 들어있던 원문 위로 몸을 굽히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 역시 모른다구, 헤이스팅즈. 편지의 원문이 어쩐지 수수께끼를 풀어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지. 그 편지의 본문에서 무얼 이끌어내려는 것인지 영문을 알 수 없군. 카아롯타 아담즈가 직접 가정부한테 넘겨줬고, 그녀는 그 길로 우체통에 넣었단 말야. 거기엔 아무런 조작도 없지. 그리고 분명히 자필의, 이상한 점이라곤 없는 편지 같은데 말야. 포와로는 한숨을 쉬었다. 알고 있어. 알고 있지. 그래서 몹시 어렵다는 게지. 그럴 것이 이 사람아, 이대로는 이 편지는 앞뒤가 맞질 않는단 말일세. 온, 무슨 당챦은 소리야? 아냐, 그렇지 않다구. 전부터 설명하고 있듯이, 몇 가지 일에는 필연성이 있지 - 그것들은 이해가 가능한 방법으로 서로 순서있게 연결돼 있게 마련이라구. 그런데 이 편지는 앞뒤가 안맞아. 연결이 안된단 말일세. 그럼 어느쪽이 잘못돼 있느냐? 에르큐르 포와로냐, 아니면 편지냐? 자네는 에르큐르 포와로가 잘못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테지? 나는 되도록 어렴풋이 표현했다. 포와로는 비난하는 시선을 던졌다. 나 역시 잘못 생각한 적은 있지 - 그러나 이번에는 안그렇다구. 그러면 이 편지가 앞뒤가 안맞는 것처럼 보이는 이상에는 분명히 앞뒤가 안맞는 게야. 이 편지에는 우리 눈에 안띄는 어떤 사실이 있지. 나는 그 사실을 발견하려는 걸세. 그리고는 그는 작은 돋보기를 꺼내 다시금 문제의 편지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한 페이지를 조사할 때마다 그는 그것을 내게로 돌렸다. 분명히 아무런 이상도 발견되지를 않았다. 뚜렷한, 제법 읽기 수월한 필적으로 쓰여져 있고, 지난번 전보로 보내진 것과 한 마디도 틀리지 않는 문장이다. 포와로는 땅이 꺼질 듯이 한숨을 쉬었다. 어떤 종류의 위조도 없어 - 그렇지, 모두 같은 필적으로 적혀 있어. 하지만 앞뒤가 안맞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 - 그는 입을 다물고 초조한 듯 편지를 돌려달라는 몸짓을 했다. 내가 돌려주자 그는 또다시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는 갑자기 괴상한 소리를 질렀다. 나는 조반식탁을 떠나 창에서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 소리를 듣고 재빨리 돌아보았다. 포와로는 흥분한 나머지 몸을 떨고 있었다. 눈은 고양이처럼 녹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내민 손가락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 알겠나, 헤이스팅즈. 이걸 보라구 - 속히 - 속히 와서 보라니까. 나는 그의 곁으로 달려갔다. 그의 앞에는 편지의 중간 한 장이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나로서는 별로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래도 모르나? 다른 편지지는 모두 끄트머리가 곧바로야 - 싱글 폭의 종이라구. 그런데 이 종이는 - 보게나 - 한쪽 끄트머리가 들쑥날쑥 꺼칠꺼칠하단 말야 - 잘려내어진 거라구. 무슨 뜻인지 아나? 이것은 더블 폭의 종이였단 말야. 이제 알 수 있을 테지? 이 편지는 한 페이지가 부족해 있는 거라네. 나는 멍하니 생각하면서 말했다. 그렇지만 뜻은 잘 통한단 말야. 그렇지, 뜻은 통해. 거기에 이 기막힌 간계의 빈틈 없는 점이 나타나 있는 게야. 읽어 보라구 - 그러면 알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여전히 알 재간이 없었다. 그래도 모르나? 포와로가 답답한 듯이 말했다. 이 편지는 그녀가 머어슈 대위의 이야기를 적고 있는 부분에서 잘려진 거라구. 그녀는 머어슈를 딱하게 생각하며 적고 있지. 그는 나의 쇼우를 아주 재미있어 했단다. 이렇게 말일세. 그리고 새로운 페이지에 글세 그가 말야 - 이렇게 계속하고 있지. 하지만 여보게, 그 사이의 한 페이지가 비어 있는 게야. 새 페이지의 그 는 앞의 페이지의 그 와는 다른지도 모르지. 실은 앞의 페이지의 그 는 아닌 거라구. 그 장난을 획책한 것은 전혀 다른 사나이야. 보라구, 그 뒤에는 한 군데도 이름이 적혀 있질 않아. 아아! 기막힌 솜씨야! 범인은 어떻게해서 이 편지를 입수한다, 편지에는 범인의 정체가 드러나 있다, 물론 그는 편지를 없애 버리려고 한다, 그러다가 편지를 되읽어 보는 사이에 다른 처리방법을 생각해낸다, 한 페이지를 잘라내 버리면 편지의 내용이 엉뚱해져 다른 사나이한테 - 역시 엣지웨어 경을 살해할 동기를 갖고 있는 사나이한테 - 혐의를 뒤집어씌울 수가 있다고 말일세. 그것 참 기막힌 아이디어라구. 그리하여 그는 그 페이지를 잘라내고 편지를 도로 넣어 둔다. 그러나 나는 그의 추리의 과정에 놓여 있는 몇 가지 난점을 생각하고 그 사실을 지적했다. 그렇지만 그 사나이가 누구건 간에 그는 어떻게 편지를 손에 넣었지? 미스 아담즈는 편지를 백에서 직접 꺼내 가정부한테 넘겨줬단 말일세. 그러니까 두 상황 중의 하나를 가정해야지. 가정부가 거짓말을 했거나, 아니면 그날밤 안에 카아롯타 아담즈가 범인을 만난 게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포와로는 다시금 말했다. 내겐 뒤쪽의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되는군. 카아롯타 아담즈가 집에서 나와 아홉 시에 유우스턴 역에서 수우츠케이스를 맡길 때까지 어디에 있었는지 아직 모르니까 말일세. 내가 믿는 바로는 그 시간까지 사이에 그녀는 약속한 장소에서 범인과 만난 게 분명해. 아마 함께 뭔가 먹었을 테지. 그는 미스 아담즈한테 무언가 마지막 지시를 내렸어. 편지에 대해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군. 짐작은 할 수 있지만 말야. 그녀는 그것을 우체통에 넣을 셈으로 손에 들고 있었는지도 몰라. 그리고 레스또랑의 식탁 위에 놓아 두었는지도 모르지. 살인자는 행선지의 주소를 보고 의구심을 느낀다, 그는 편지를 몰래 가지고는 식탁을 떠나는 구실을 만들어, 편지를 뜯어 내용을 읽고는 한 페이지 잘라낸 다음 제 자리에 놓아둔다, 아니면 카아롯타가 일어설 때 그녀가 떨어뜨린 것이라고 하면서 내밀었는지도 모르지. 정확하게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는 문제가 아닐세 - 하지만 두 가지 사실은 뚜렷해져 있는 것 같군. 카아롯타 아담즈는 그날밤 엣지웨어 경이 살해되기 전에 살인자를 만났거나 뒤에 만났거나 둘 중의 하나야. 또한 내 잘못인지는 몰라도 나는 그녀에게 금빛 케이스를 보낸 게 범인이라 짐작하고 있네. 만약 그렇다면 살인자는 D라는 인물이 틀림 없어. 나로선 금빛 케이스의 뜻을 알 수 없는데. 여보게, 헤이스팅즈. 카아롯타 아담즈는 베로날을 장복하고 있진 않았어. 루우시 아담즈가 그렇게 말하고 있고, 나 역시 그게 사실이라 믿고 있네. 그녀의 친구들도, 가정부도 그 케이스를 본 일이 없었어. 그럼 어째서 그녀가 죽은 뒤 그것이 나왔느냐? 그녀가 베로날을 사용하고 있으며, 게다가 상당한 기간 - 결국 적어도 육개월간 - 그것을 먹고 있었다는 인상을 만들어내기 위해서였지. 그녀가 엣지웨어 경이 피살된 뒤 한 오분간이라도 살인자와 만났다고 생각해 보세. 두 사람은 계획의 성공을 축하하며 함께 음식을 들었어. 그리고 살인자는 처녀의 음식 속에 베로날을 듬뿍 섞어 넣어, 이튿날 아침 그녀가 다시는 눈을 뜨지 못하도록 한 게야. 알아듣겠나? 무서운 일이군.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맞아. 비열한 방법일세. 포와로는 조금도 감정을 섞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제3의 살인 다음날 우리는 뜻밖의 방문객을 맞았다. 제럴딘 머어슈가 찾아온 것이다. 포와로가 그녀를 위해 의자를 고쳐놓았을 때 나는 그녀를 딱하게 생각했다. 그 크고 검은 눈은 여느때보다 훨씬 크고 검어 보였다. 잠을 못이루었는지, 그 둘레에는 거므스레한 눈고리가 생겨 있었다. 젊은 처녀 - 실상 어린애보다 약간 나이가 더 많은 처녀 - 로서는 얼굴이 이상하게 초췌하고 피로에 지쳐 있는 것 같았다. 포와로 선생님, 어떻하면 좋을지 몰라 선생님을 뵈러왔답니다. 너무나 염려스러워 견딜 수가 없어서요. 그러실 테죠, 마드모아젤. 그의 태도는 몹시 동정적이었다. 로널드는 그날 당신이 하신 말씀을 제게 해줬어요. 그가 범인으로 지목받고 체포된 그 무서운 날의 얘기지요. 그녀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의 얘기를 듣자면, 자기의 말을 아마 아무도 못믿을 거라고 그가 말한 순간, 선생님이 나는 믿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셨다면서요? 그게 사실인가요, 포와로 선생님? 사실입니다, 마드모아젤. 나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포와로는 다시금 조용히 말했다. 나는 당신 오빠가 엣지웨어 경을 죽였다고는 믿지 않습니다. 아아! 그녀의 얼굴에 혈색이 올르고, 눈은 크게 뜨여졌다. 그럼 당신은 틀림없이 - 누군지 다른 사람이 한 짓이라고 생각하시는군요? 물론이올시다, 마드모아젤. 난 바보에요. 표현을 잘못 했지 뭡니까? 제가 말하는 뜻은 -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 아시나요? 그녀는 열심히 몸을 내밀었다. 약간의 착상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용의라고나 할까요. 말씀해 주시지 않겠어요? 제발 부탁입니다. 포와로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할 수는 없군요. 마아튼 공작은 아직 내 의붓엄마의 짓이라고 믿고 있답니다. 처녀는 생각에 잠기면서 이런 말을 불쑥 하고는 묻는 것 같은 눈으로 포와로를 힐끔거렸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반응도 나타내지 않았다. 하지만 저로서는 어째서 그런 가능성이 있는지 모르겠답니다.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당신 의붓어머니를요. 저어 - 그 분을 거의 몰라요. 아버님이 의붓어머니와 결혼했을 때 저는 빠리에 있었지요. 제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 사람 아주 친절했어요. 결국 제가 있는 것을 전혀 염두에 두질 않았던 거죠. 나, 의붓어머니가 굉장히 무식하고 게다가 타산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포와로는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당신은 마아튼 공작부인 얘기를 하셨죠? 부인을 자주 만나십니까? 네. 공작부인은 아주 친절히 대해 주셨어요. 이 이주일 동안엔 자주 만났지요. 그리고 그 분도 상냥하게 감싸 주셨어요 - 공작부인의 아드님 얘기에요. 공작을 좋아하나요? 그 분은 꽁한 분이라 생각해요. 어색하고 좀 사귀기가 힘들어요. 하지만 그 분 어머님께 그 분 얘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요. 딴은 그렇군요. 그런데 마드모아젤, 당신은 사촌오빠를 좋아하십니까? 로널드 말씀이군요? 물론이죠. 그는 - 한 동안 통 못만났지만 - 전에는 한 집에 살았었지요. 나, 그를 기막힌 사람이라 생각하고 있었어요. 노상 우스갯소리를 하거나, 익살스런 짓을 하는 걸요. 아아! 그 음산한 집안에서는 기분을 돌리는 데 썩 도움이 됐답니다. 포와로는 동정하듯 끄덕였다. 그녀는 일어섰다. 포와로는 그 손을 잡았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마드모아젤. 그 심정 이해하고 남음이 있습니다. 헤이스팅즈, 마드모아젤을 위해 택시를 불러 주게나. 나는 처녀와 함께 밑으로 내려가서 택시를 불러 태워 주었다. 돌아와 보니 포와로는 눈살을 잔뜩 찌푸리고 생각에 잠긴 채 방 안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전화의 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누구신가요? 아아, 재프 경부시군? 안녕하십니까? 여러 가지 감탄사를 연발한 뒤에 포와로는 말했다. 옳거니! 그래 그것을 누가 주문했나요? 대답이 어떤 것인지는 몰라도 그것이 그의 짐작과는 동떨어진 것이었음은 분명했다. 그는 우스울 정도로 멍청한 얼굴을 했다. 그게 분명한가요? ... 아뇨. 좀 뜻밖이었다는 것뿐이죠. ... 뭐라구요? ... 역시 내가 옳았다? ... 아니올시다. 나는 역시 같은 의견이죠. 좀더 탐문해봐 주시오. ... 내가 돼지처럼 고집스럽다는 말은 정말 고맙지 않군요. 어쨌든 그 방면의 수사는 당신한테 일임하겠습니다. ... 그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무슨 얘긴가? 나는 조급하게 물었다. 헤이스팅즈, 그 금빛 케이스는 빠리에서 구입된 거라네. 그것은 편지로 주문이 됐었고, 빠리에서 발송된 거야. 주문 편지를 낸 것은 아카리 부인이라는군. 물론 그런 인물은 없지. 편지는 살인 이틀 전에 닿았는데, 거기엔 케이스에 루우비로 이니셜을 새겨넣을 것과 안쪽에 헌사를 넣어달라고 주문해 있었다는 걸세 - 그 다음날 찾으러 오겠다고 했다는게야. 결국 살인 전날이지. 그래 찾으러왔었구먼? 그렇지. 찾으러와서 현금을 지불했어. 누가 찾으러왔단 말인가? 나는 흥분해서 물었다. 진장에 다가서고 있음을 느낀 것이다. 여자가 왔다는 게야, 헤이스팅즈. 아니, 여자라구? 나는 깜짝 놀라 반문했다. 그렇지. 여자야 - 키가 작고, 중년이며 안경을 끼고 있었다는군. 우리는 어이가 없어 멍하니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우리가 클라릿지 레스또랑에서 개최된 위드번가의 주식회에 마지못해 참석한 것은 그 다음날이었다고 생각한다. 포와로도, 나도 과히 마음이 내키지 않았었다. 우리가 초대를 받은 것은 실은 그것이 여섯 번째쯤 되었던 것이다. 위드번 부인은 끈질긴 여자였고, 유명인을 좋아했다. 그녀는 수차의 사양에도 불구하고 마침내는 많은 초대일 중의 어느 하나를 선택해 달라고 독촉이 성화 같아, 별 수 없이 승낙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빠리로부터의 정보가 있은 뒤로 포와로는 숫제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내가 사건에 대해 말을 꺼내도 그는 노상 똑같은 대답을 했다. 여기엔 뭔가 이해하기 힘든 것이 있단 말야. 그리고 한두 번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안경, 빠리에서의 안경. 카아롯타 아담즈의 백 안의 안경. 실상 나는 주식회를 기분풀이의 수단으로 환영했다. 몬타규 코우터 경이 와있었고, 도널드 로스 청년도 와있었는데, 그는 내게로 다가와서 명랑하게 인사를 했다. 여자보다 남자가 많았으므로 그는 내 옆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제인 윌킨슨은 우리의 거의 정면에 마주앉았고, 그 옆, 그녀와 위드번 부인 사이에 젊은 마아튼 공작이 앉았다. 그는 약간 어색해 보였다. 자리를 같이 한 사람들이 아마 그의 기호에 맞지 않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매우 보수적이며, 약간 시대에 뒤떨어진 청년이었다. 그런 그가 몹시 현대적인 제인 윌킨슨에게 정신을 빼앗기고 있는 것은 자연의 여신이 흔히 하고 싶어하는 시대착오적인 장난의 하나이리라. 제인의 아름다움을 보거나, 그 미묘하게 허스키한 목소리 탓으로 그녀의 극히 대수롭지 않은 말조차 매력적으로 들리는 사실에 감탄하고 있자니, 그가 사랑의 포로가 된 것도 과히 이상히는 여겨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완벽한 미모나,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목소리에도 조만간 싫증이 나기 마련이다. 이런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쳤다. 내게 그런 인상을 준 것은 어쩌다가 던진 말 - 제인이 저지른 당치않은 실수 - 탓이다. 누군가가 - 누구였는지 잊었지만 - 파리스의 심판(그리이스 신화에 나오는 왕자로서 그의 심판이 원인이 되어 트로이전쟁이 일어났음)이라는 말을 하자마자 제인의 쾌활한 목소리라 울렸다. 파리스(영어로는 빠리를 파리스로 발음함)라구요? 그녀는 신바람이 나서 말했다. 어머, 이제는 빠리의 유행은 과히 문제가 안되지요. 인기가 있는 것은 오히려 런던과 뉴요크인 걸요. 어쩌다가 일어나는 일이거니와, 그 말은 하필 여러 사람의 대화가 일시적으로 중단되고 있을 때에 나왔다. 입장이 몹시 거북한 순간이었다. 나의 오른쪽에서 도널드 로스가 숨을 급히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려왔고, 위드번 부인은 러시아 오페라에 대해 갑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이 허둥지둥 중구난방으로 말을 꺼냈다. 제인만은 자기가 저지른 실수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태연히 좌중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공작에게 주의를 이끌린 것은 그 때였다. 그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얼굴을 붉히고 있었으며, 제인에게서 약간 몸을 비킨 것처럼 보였다. 그는 자기 같은 지위의 사람이 제인 윌킨슨 같은 여자와 결혼을 하게 되면, 무언가 난처한 입장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느꼈을 것이 분명하다. 흔히 있는 일이거니와 나는 왼쪽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생각난 말을 무턱 지껄여댔다. 그것은 뚱뚱한 부인이었다. 내가 건 말은 다음 같았다. 테이블 저쪽 끄트머리에 계신 보라색 옷을 입은 저 이상한 부인은 어느 분이신가요? 그런데 그것은 기가 차게도 이 레이디의 형제였다! 나는 더듬더듬 사과를 하고, 이번에는 로스에게 말을 걸었는데, 그는 어찌된 셈인지 그저 건성으로 대답할 뿐이었다. 이렇게 양쪽에서 코가 납짝해졌을 때 나는 브라이언 마아틴의 존재를 깨달았다. 조금 전까지도 못보았으니까 늦게 도착한 모양이었다. 그는 나와 같은 줄 식탁의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고, 몸을 내밀고 금발미인에게 열심히 말을 걸고 있었다. 그를 가까이에서 본 것은 오래간만이었는데, 나는 이내 그의 얼굴이 매우 건강해져 있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초췌한 표정은 거의 없었다. 전보다 젊어 보였고, 모든 점에서 훨씬 기운이 있어 보였다. 나는 그 이상 그를 관찰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그럴 것이 마침 그 때 옆자리의 뚱뚱한 레이디가 나의 아까의 실례를 용서하고는 그녀가 자선을 위해 계획하고 있는 행사에 대해 수다를 떨었기 때문이다. 포와로는 약속이 있어 속히 돌아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는 어느 대사의 장화분실사건을 조사하고 있었고, 2시 반에 면회를 하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는 내게 위드번 부인에 대한 작별인사를 대신 해달라고 하고는 자리를 떴다. 내가 그 때문에 기다리고 있자 - 위드번 부인은 그 때 연거푸 다알링을 연발하며 작별을 고하는 친구들에게 둘러싸여져 있어 인사를 하는 것도 수월치는 않았거니와 - 누군가의 손이 나의 어깨에 와닿았다. 그것은 로스 청년이었다. 포와로씨는 안계신가요? 말씀드릴 게 있는데요. 나는 포와로가 방금 돌아간 사실을 설명했다. 로스는 망설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좀더 자세히 관찰해 보니 무슨 일로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얼굴이 창백하고, 잔뜩 긴장하고 있었으며, 눈에는 묘하게 불안한 빛이 있었다. 그를 꼭 만나보고 싶은가요? 나는 물었다. 그는 천천히 대답했다. 그게 도무지 - 알 수가 없습니다. 매우 우스운 대답이어서 나는 약간 놀라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얼굴을 붉혔다. 이상하게 들리실 테지만, 실은 어떤 기묘한 일이 일어났지요.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나는 - 그 일로 포와로 선생의 조언을 구하고 싶습니다. 그는 매우 어리둥절했고, 또한 불안해 보였으므로 나는 서둘러 그를 안심시켰다. 포와로는 약속이 있어서 먼저 갔습니다. 하지만 다섯 시에는 돌아올 예정입니다. 그 때 집으로 전화를 거시든가, 만나러 오시면 될 겝니다. 고맙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기로 하죠. 다섯 시라구요? 먼저 전화를 거는 편이 좋을 것 같군요. 오시기 전에 확인하시는 편이.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죠. 고맙습니다, 헤이스팅즈씨. 이것은 자칫하면 - 어디까지나 가정입니다만 - 아주 중대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위드번 부인이 여러 손님과 악수를 나누면서 지껄여대고 있는 쪽을 거듭 돌아보았다. 나는 잠시 후 혼자 천천히 하이드 파아크 공원을 빠져나갔다. 4시 경에 집에 닿았다. 포와로는 아직 돌아와 있지 않았다. 그가 돌아온 것은 5시 20분 전이었다. 눈을 빛내고 있었고, 분명히 기분이 좋아 보였다. 알겠어, 홈즈 선생. 나는 농을 섞어 말했다. 대사의 장화를 알아냈구먼? 코카인 밀수사건이였다구. 과연 독창적이야. 난 한 시간 정도 미장원에 있었다네. 그러는데 전화의 벨이 울렸다. 아마 도널드 로스한테서 온 걸 게야. 나는 전화쪽으로 가면서 말했다. 도널드 로스? 그렇지. 우리가 치즈위크에서 만난 그 청년이지. 뭔가 자네한테 상의할 일이 있다는군. 나는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헤이스팅즈 대위올시다. 역시 상대방은 로스였다. 아아! 당신이군요? 포와로씨는 돌아오셨나요? 네, 여기 있습니다. 전화로 말씀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이리 오시겠습니까? 대단한 일은 아닙니다. 전화로 말씀드려도 될 것 같군요. 좋습니다. 잠깐 기다리시죠. 포와로가 내 대신 수화기를 손에 들었다. 나는 바로 곁에 있었기 때문에 로스의 목소리를 어렴풋이 들을 수가 있었다. 포와로 선생님이십니까? 목소리는 조급스럽게 들렸다 - 흥분해 있는 것 같았다. 네, 그렇습니다. 당신을 공연히 괴롭혀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좀 이상하게 여겨지는 일이 있어놔서요. 엣지웨어 경의 죽음과 관계가 있는 일입니다. 포와로의 몸이 잔뜩 긴장되었다. 그래서요? 어서 계속하십쇼. 아마 당신한텐 아주 바보스러운 일이라 생각되실 테지만 - 아뇨. 그럴 리가 없습니다. 어쨌든 말씀해 보시지요. 빠리이야기로 문득 깨달은 게 있습니다. 실은 - 매우 어렴풋이 벨이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기다려 주십쇼. 이렇게 로스가 말했다. 수화기가 놓여지는 소리가 났다. 우리는 기다렸다. 포와로는 수화기를 손에 들고. 나는 그 곁에 뻐쩡다리로 서서. 그렇다. 우리는 기다렸다. 2분이 지났다 - 3분 - 4분 - 5분. 포와로는 불안한 듯 발의 위치를 고쳤다. 그는 벽시계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는 허둥지둥 교환대를 불렀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았다. 저쪽 수화기는 아직 풀려 있지만, 응답이 없어. 불러도 대답이 없다는 게야. 서둘러, 헤이스팅즈, 전화번호부를 들춰 로스의 주소를 조사하는 거야. 당장 그쪽으로 가봐야 하네. 잠시 후 우리는 택시에 앉아 있었다. 포와로는 잔뜩 흥분해 있었다. 염려가 되는군. 헤이스팅즈, 아주 염려스럽다구. 자네가 말하는 뜻은 설마 - 나는 더 이상 말을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우리는 벌써 두 번 살인을 한 인물을 상대하고 있는 거야 - 그 인물은 또다시 살인하는 일을 망설이지는 않을걸. 그는 쥐처럼 몸을 번뜩이면서 결사적으로 싸우고 있다네. 그에게 있어 로스는 위험인물이야. 따라서 로스는 제거될 운명에 있지. 로스가 말하려던 것이 그렇게 중대한 일이었담? 나는 의심스러운 듯이 말했다. 그는 과히 중대한 일이라곤 생각지 않는 것 같았는데? 그렇다면 그가 잘못 생각한 거야. 그가 말하려던 것은 매우 중대한 일이였단 말일세. 그렇지만 그 사실을 제삼자가 어찌 알았지? 로스가 자네한테 발설하려는 사실을 말야. 그는 자네한테 얘기를 걸었쟎나? 클라릿지에서 말일세.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어. 그것 참, 말도 안되는 얘기야.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구. 아아! 왜 그를 데리고오질 않았단 말인가? 그를 보호해서 말야 - 내가 그의 얘기를 들을 때까지 아무도 그에게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말야. 생각조차 못했다네. 상상조차 못했었다구. 나는 더듬거렸다. 포와로는 재빨리 말했다. 자신을 꾸짖을 필요는 없네 - 자네에겐 무리야. 그걸 알아챌 수 있을 리 없지. 나 같으면 - 나라면 알았을 테지만 말야. 알겠나, 헤이스팅즈, 이 살인자는 호랑이처럼 교활하고 무자비하다네. 아아! 왜 이리 더디담? 우리는 가까스로 닿았다. 로스는 켄진턴의 이층 아파아트에 살고 있었다. 현관의 도어는 출입이 자유로워, 아무나 드나들 수 있게 되어 있고, 호올에는 커다란 층계가 위로 통해 있었다. 드나들기가 쉽군. 아무한테도 눈에 띄지 않고 오르내릴 수 있단 말야. 포와로는 층계를 뛰어올라가면서 중얼거렸다. 이층은 각기 칸이 막혀 있었고, 그 한가운데쯤의 도어에 로스의 명함이 붙여져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 멈추어섰다. 둘레는 죽음 같은 정적으로 덮여 있다. 나는 도어를 눌렀다 - 놀랍게도 그것은 열렸다. 안으로 들어갔다. 좁은 호올이 있고 한쪽 도어가 열려 있었다. 정면의 도어는 거실 같은 방을 향해 열려 있었다. 그 거실로 들어갔다. 그것은 커다란 객실을 절반으로 줄여서 만든 것이었다. 싸구려지만 쾌적한 가구가 놓여져 있고, 아무도 없었다. 작은 테이블 위에 전화가 있고, 수화기가 그 옆에 풀려진 채 놓여 있다. 포와로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서서 한바퀴 둘러보고나서 고개를 흔들었다. 여기엔 아무도 없군. 가보세, 헤이스팅즈. 우리는 뒤로 돌아 호올을 나와서 또하나의 도어를 빠져나갔다. 방은 작은 식당이었다. 식탁 한쪽에, 의자에서 떨어져내려 식탁과 반대방향으로 쓰러져 있는 것은 로스였다. 포와로는 그 위에 몸을 굽혔다. 그는 몸을 일으켰다 - 그 얼굴은 창백해져 있었다. 벌써 죽었어. 두 개골 밑쪽, 목덜미 위를 찔렸군. 안경의 임자를 찾아라! 그날 오후에 일어난 일은 내내 나의 마음에 악몽처럼 남아 있었다. 나는 내 책임이라는 가책을 좀체로 씻어 버릴 수가 없었다. 몇 시간이 지나 밤이 되어 두 사람만 있게 되었을 때, 나는 더듬거리면서 포와로에게 도무지 배길 수 없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재빨리 대답했다. 아니지, 가책을 받을 필요는 없어. 그 사실을 자네가 어찌 짐작할 수 있었겠나? 자네 같으면 아마 예상했을 테지? 그건 문제가 다르지. 그럴 것이 나는 일생을 살인자를 추적해왔으니까. 아무튼 어떤 살인범이건 살인의 충동은 차츰 강해지기 마련이지. 마침내는 지극히 사소한 동기로도 - 그는 말을 끊어 버리고 말았다. 우리가 무서운 발견을 하고난 뒤로 그는 매우 냉정했다. 경찰의 도착, 같은 아파아트 입주자들에 대한 심문, 살인사건에 따르는 갖가지 귀찮고 번잡한 문제를 통해 포와로는 초연해 있었다 - 묘하게 냉정했다. 헛되이 뉘우치고 있을 여유란 없다네, 헤이스팅즈. 그는 다시금 조용히 말했다. 만약에 따위 가정을 세우고 있을 여가는 없지. 죽은 그 가엾은 청년은 뭔가 우리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었던 거야. 그리고 이제 바야흐로 그 무엇인가가 매우 중대한 일이었다는 사실이 판명돼 있지 - 그렇지 않다면 그는 살해되지 않았을 테니까. 그는 이제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 우리는 추리해야 하네. 추리하지 않으면 안되는 게야 - 하나의 작은 단서만을 더듬어서 말일세. 빠리구먼? 나는 힘차게 말했다. 그렇지, 빠리야. 그는 일어서서 방 안을 서성거렸다. 이 사건에서는 수차 빠리가 문제로 부각했었는데, 유감스럽게도 전후관계가 각기 다르단 말야. 금빛 케이스엔 빠리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지. 작년 십일 월, 빠리, 이렇게 말일세. 당시 미스 아담즈가 빠리에 있었어 - 아마 로스도 있었을 테지. 그밖에 로스가 알고 있는 다른 인간도 있었느냐? 그는 그 사람이 무언가 특수한 상황 밑에서 미스 아담즈와 함께 있는 것을 봤느냐? 영원히 알 수 없는 일이야. 나는 맥이 풀려서 말했다. 아니, 천만에. 알 수 있네. 불원 알 수 있고말구! 인간의 뇌의 작용은 말일세, 헤이스팅즈, 거의 무한이라구. 이 사건에 관해 그밖에 빠리가 문제가 된 것은 어떤 경우인가? 안경을 낀 키작은 여자가 저쪽 보석상에 케이스를 받으러 갔어. 로스는 그 여자를 알고 있었는가? 범죄가 행해졌을 때 마아튼 공작은 빠리에 있었어. 빠리, 빠리, 빠리. 엣지웨어 경은 빠리로 떠나려는 중이었지. 맞아! 아마 빠리엔 무언가가 있을 게야. 그가 살해된 것은 빠리로 떠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을까? 포와로는 눈살을 찌푸리면서 다시금 자리에 앉았다. 그 파아티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그는 이내 또다시 중얼거렸다. 무언가 대단치 않은 일이 계기가 되어, 도널드 로스는 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그 때까지는 까맣게 모르고 있던 어떤 사실의 참된 뜻을 깨달은 게 분명해. 뭔가 프랑스에 대한 얘기가 나왔었나? 빠리에 대해서? 결국 자네 테이블 근처에서 말일세. 빠리라는 말은 나왔지만 그 뜻은 아니었어. 나는 제인 윌킨슨의 실수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마도 그것으로 설명이 가능할 거야. 그는 생각에 잠기면서 말했다. 빠리라는 말만으로 충분했을 테지 - 다른 어떤 일과 관련지워 생각하면 말일세. 하지만 그 다른 일이란 뭐냐? 로스는 뭘 보고 있었나? 그 말이 나왔을 때 그는 어떤 얘기를 하고 있었지? 그는 스코틀란드의 미신 얘기를 하고 있었다구. 그래 그의 눈은 - 어디를 보고 있었나? 분명치는 않아. 위드번 부인이 있는 테이블쪽을 보고 있었던 것도 같은데. 부인 옆에는 누가 있었지? 마아튼 공작하고 제인 윌킨슨, 그리고 누군지 잘 모르는 남자가 있었어. 공작각하라? 빠리라는 말이 나왔을 때 로스는 공작을 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군. 알겠나? 살인이 있었을 때 공작이 실제로 빠리에 있었거나, 빠리에 있다고만 생각해왔어. 로스가 갑자기 어떤 사실을 생각해냈고, 그 결과 마아튼 공작이 빠리에 없었다는 사실이 판명됐다고 가정해 보세. 설마하니, 여보게! 자네는 이 가정을 당챦은 것이라 생각하지. 누구나가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공작에겐 살인을 저지를 만한 동기가 있었느냐? 암, 대단히 강한 동기가 있었어. 엣지웨어 경이 죽어 주면, 제인 윌킨슨하고 결혼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그가 살인을 저질렀다고 생각하는 것은 - 맞아! 어리석은 생각이지. 그는 부자에다 신분도 매우 높고, 고상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점으로 유명하단 말야. 그 누구도 그의 알리바이를 꼼꼼이 조사하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큰 호텔에서 알리바이를 조작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세. 여보게, 로스는 파리스의 심판 얘기가 나왔을 때 무슨 말을 않던가? 아무런 감정도 나타내지 않았나? 제법 강하게 숨을 들이마시더군. 그 뒤 자네한테 말을 걸었을 때의 태도는? 어리둥절해 하던가, 당황해 하던가? 맞아. 자네 말대로 당황해 했지. 그렇다면 분명하군. 그는 어떤 사실을 문득 깨달은 거야. 불합리하다! 앞뒤가 안맞는다! 이렇게 말일세. 그러나 - 그 말을 입 밖에 선뜻 낼 수는 없었던 거야. 그래서 우선 내게 얘기하려고 했지. 하지만 아아! 그가 단안을 내렸을 때, 나는 이미 돌아간 뒤였어. 그가 좀더 내게 얘기를 해줬드라면 좋았을 텐데. 나는 그 사실이 안타까웠다. 그렇지. 그렇기만 했드라면 - 포와로는 또다시 일어섰다. 내가 전혀 잘못 짚고 있었던 것일까? 그는 다시금 서성거리면서 중얼거렸다. 애초부터 줄곧 잘못 생각해왔단 말인가? 나는 동정하는 마음으로 그를 보았다. 그의 머리 속을 어떤 생각이 오가고 있는지 나로서는 알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잠시 후 말했다. 아뭏든 이번 살인은 로널드 머어슈한테 죄를 덮어씌울 수는 없겠지? 그것은 그에게 유리한 점이지. 나의 벗은 건성으로 말했다. 그렇지만 그 일은 현재의 내겐 관심이 없어. 그는 갑자기 또다시 자리에 앉았다. 내 생각이 전혀 잘못돼 있을 리가 없지. 헤이스팅즈, 언젠가 내가 다섯 가지 의문을 스스로에게 던진 사실을 기억하고 있나? 뭔가 그런 말을 한 기억이 나는군. 그 의문이란 이랬어. 엣지웨어 경은 왜 이혼문제에 대해 생각을 고쳤느냐? 그는 그것에 대해 아내한테 편지를 보냈다고 했고, 그녀는 안받았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무어냐? 그 날 우리가 그의 방에서 물러날 때 그의 얼굴에 어째서 분노의 표정이 나타나 있었느냐? 카아롯타 아담즈의 핸드백에 안경이 들어있는 것은 무슨 까닭이냐? 치즈위크에서 누군가가 엣지웨어 부인한테 전화를 걸고는 이내 끊어 버린 것은 무슨 까닭이냐? 그렇지, 이제 생각이 나는군. 헤이스팅즈, 나는 처음부터 줄곧 어떤 생각을 품고 있었어. 그 사나이 - 배후의 사나이 - 가 누구냐 하는 것에 대한 생각이지. 나는 다섯 가지 의문 중 세 가지 의문에 해답을 내렸네 - 그리고 그 해답은 이 사소한 생각과 일치하고 있지. 하지만 말일세, 헤이스팅즈, 두 가지 의문엔 대답할 길이 없단 말야.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을 테지? 내가 그 사람을 잘못 짚었기 때문에 따라서 그 인물이 범인일 리가 없거나, 아니면 내가 해답을 못내리고 있는 두 의문의 답이 애초부터 줄곧 거기에 있거나 어느쪽일 테지. 헤이스팅즈, 어느쪽일까? 그는 일어서서 자기의 테이블로 가더니, 서랍을 열어 루우시 아담즈가 미국에서 보내온 편지를 꺼냈다. 그는 재프 경부에게 그것을 며칠 동안 갖고 있겠다고 했고, 재프가 승낙한 것이다. 포와로는 그것을 눈 앞 테이블 위에 놓고 뚫어질 듯이 바라보았다. 몇 분이 흘렀다. 나는 하품을 하면서 책을 집어들었다. 나는 포와로가 이 검토에서 별다른 성과를 끌어낼 수는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는 벌써 몇 차례나 편지를 조사한 바 있었던 것이다. 나는 책의 페이지를 건성으로 펼쳤다. 아마 나는 졸고 있었을 것이다 - 갑자기 포와로가 낮은 외마디소리를 올렸다. 나는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그는 빛나는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몹시 흥분하고 있었다. 헤이스팅즈, 여보게. 응, 왜그러나? 난 잘못 생각하고 있어. 이 범죄엔 처음부터 줄곧 질서와 방법이 있다네. 이 잘려내어진 페이지는 꼼꼼하게 오려내지 않고, 찢어낼 필요가 있었던 게야. 나는 편지를 들여다보았다. 보라구, 알 수 있을 테지?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범인이 서둘르고 있었다는 뜻인가? 서둘렀건 아니건 마찬가지일 테지. 모르겠나, 여보게? 이 페이지는 반드시 찢어낼 필요가 있었다네 - 나는 역시 고개를 흔들었다. 포와로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난 바보였어. 장님이었지. 그렇지만 이번엔 - 이번엔 세상 없어도 - 캐내고 말 테다. 1분쯤 지나자 그의 기분은 달라져 있었다. 그는 벌떡 일어섰다. 나도 덩달아 일어섰다 - 까닭은 전혀 모르면서도 용기백배해서. 택시를 타세. 아직 아홉 시야. 방문하는 데 늦을 것은 없지. 나는 그를 따라 층계를 내려갔다. 누구를 방문하나? 리젠트 게이트로 가는 거야. 나는 잠자코 있는 것이 상책이라고 판단했다. 그가 몹시 흥분하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택시 안에 나란히 앉아서도 그는 초조한 듯이 손가락으로 무릎을 두드리고 있었다. 리젠트 게이트의 저택에서는 새로운 집사가 도어를 열어 주었다. 포와로는 미스 캐럴을 만나러 왔다고 했다. 분명히 미스 캐럴은 포와로의 방문에 몹시 놀라고 있었다. 아직도 여기 계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기쁘군요, 마드모아젤. 포와로는 그녀의 손 위에 머리를 숙이면서 말했다. 벌써 이 댁에서 나가신 게 아닐까, 은근히 염려하고 있었지요. 제럴딘이 제가 나가는 것을 허락지 않는답니다. 미스 캐럴은 다시금 덧붙였다. 저보고 같이 있어 달라는 거에요. 게다가 실상 이런 경우 그 가엾은 처녀에겐 누군가 상냥하게 보살펴 줄 필요가 있지요, 포와로씨. 그녀는 입을 강하게 오무렸다. 마드모아젤, 당신은 노상 봐도 능률의 모범처럼 보이는군요. 그런데 미스 제럴딘은 실무적인 성격이 못돼죠? 그녀는 몽상가에요. 아주 비실제적이지요. 노상 그랬답니다. 다행히 생계를 꾸려나갈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하긴 그렇군요. 하지만 당신이 찾아오신 것은 누가 실무적이니, 비실무적이니 그런 것을 따지러 오신 것은 아니라 생각하는군요. 무슨 용건으로 오셨나요, 포와로씨? 그녀는 돗수가 강한 안경 너머로 캐듯이 눈을 깜짝깜짝했다. 몇 가지 점에 대해 확실한 것을 알고 싶습니다. 엣지웨어 경은 작년 십일 월에 빠리엘 가셨습니까? 네, 그래요. 그 날짜를 알고 계신가요? 조사해 보지 않고는. 그녀는 일어서서 서랍 하나를 열어 작은 수첩을 꺼내자 잠시 들추어 보고나서 알렸다. 엣지웨어 경은 십일 월 삼일에 빠리로 떠나셨고, 칠일에 돌아오셨습니다. 십일 월 이십구일에도 가셨다가 십이 월 사일에 돌아오셨군요. 아직 더 물어보실 말씀이 있나요? 있습니다. 경은 어떤 목적으로 가셨나요? 먼젓번엔 사고 싶으신 물건을 미리 보아두시기 위해서였죠. 그것은 뒤에 경매에 부쳐지게 돼있었답니다. 두 번째 때는 제가 알고 있는 한, 뚜렷한 목적은 없었습니다. 제럴딘 머어슈는 그 양쪽 때 부친과 함께였나요? 그녀는 어떤 경우에도 아버님과 같이 간 일은 없어요. 포와로씨, 엣지웨어 경은 그런 것은 꿈에도 생각지 않으셨습니다. 그 무렵 그녀는 빠리의 수도원에 있었지만, 아버님이 그녀를 만나러 갔었다고도, 그녀를 데리고 나왔다고도 생각되지 않는군요 - 만일 경이 그런 짓을 했다면, 적어도 제게는 뜻밖의 일이라고 할 밖에요. 당신은 엣지웨어 경과 동행하지 않으셨나요? 아아뇨. 그녀는 이상한 듯이 포와로를 보고 있다가 느닷없이 말했다. 왜 그런 질문을 하시나요, 포와로씨? 대체 어쩔 셈이죠? 포와로는 이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엉뚱한 질문을 했다. 당신은 현재의 엣지웨어 경을 좋아하지 않으십니까? 그렇다고 말씀드리진 않아요. 나는 그 분의 도움이 안된다는 것뿐이지요. 진지하질 않아요. 그 분이 명랑하다는 것은 나 역시 나쁘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그 분에겐 남을 설득하는 힘이 있지요. 하지만 내 생각엔 제럴딘이 좀더 착실한 사람한테 관심을 품어 주었으면 싶답니다. 가령 마아튼 공작 같은 사람인가요? 저는 공작을 몰라요. 아무튼 공작은 당신의 지위의 책임을 충실히 이루고 있다고 생각되는군요. 하지만 공작은 그 여자를 뒤좇고 있지요 - 그 기막힌 제인 윌킨슨을. 공작의 모친은 - 공작부인은 아드님을 차라리 제럴딘과 결혼시키고 싶어하시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모친이 무얼 할 수 있나요? 아들이란 모친이 좋아하는 처녀들하곤 결혼 안하는 걸요. 너무 오래 실례할 수는 없는 노릇이구. 포와로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데 당신은 카아롯타 아담즈를 알고 계셨나요? 연기를 본 일이 있어요. 아주 잘 하더군요. 맞아요. 잘 했지요. 그는 회상에 잠겨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아아! 장갑을 놓고 갈 뻔했군. 그는 장갑을 놓아 둔 테이블에서 그것을 주으려고 몸을 내밀었는데, 팔 소매가 그만 미스 캐럴의 안경테에 걸려 안경을 날려 버리고 말았다. 포와로는 안경과 떨어뜨린 장갑을 주워올리고는 허둥대면서 사과를 했다. 이거 대단히 죄송합니다. 그는 거듭 허리를 굽히고는 말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마드모아젤. 우리가 문간에 닿았을 때 미스 캐럴의 목소리가 불러세웠다. 포와로씨, 이건 내 안경이 아닌데요. 눈에 맞지를 않는 걸요. 뭐라구요? 포와로는 놀란 듯이 그녀를 보았다. 그러더니 이내 얼굴에 미소를 담으면서 말했다. 그것 참, 정말 바보 같은 짓을 했구먼! 장갑과 당신 안경을 주으려고 몸을 굽혔을 때, 내 안경이 미끄러져내린 모양입니다. 그리곤 당신 안경을 내것으로 알고 집어넣었군요. 영락없이 비슷해놔서요. 두 사람은 웃으면서 안경을 교환하고 작별을 고했다. 여보게, 포와로. 밖으로 나서자마자 나는 말했다. 그건 카아롯타 아담즈의 핸드백에서 찾아낸 안경이었지? 맞아. 과연 센스가 빠르군. 뭣 때문에 미스 캐럴 것하고 바꿔쳤었나? 포와로는 어깨를 흠칫했다. 이번 사건 관계자 중에서 안경을 끼고 있는 것은 그 여자뿐이니까. 그렇지만 그 놈은 그녀의 것이 아니었어. 나는 생각에 잠기면서 말했다. 맞아. 그렇지 않다면 바꿔친 사실을 알 수 없었을 테지. 나는 썩 솜씨 있게 감쪽같이 바꿔쳤으니까. 우리는 발길이 닿는 대로 어슬렁어슬렁 걸어갔다. 나는 택시를 타자고 했으나 포와로는 고개를 흔들었다. 생각할 필요가 있다네, 여보게. 걷고 있으면 생각에 도움이 되지. 나는 그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무더운 밤이었으므로 나 역시 서둘러 집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아직도 D라는 이니셜의 수수께끼가 풀리지 않고 있단 말야. 나는 생각하면서 말했다. 기묘하게도 이번 사건의 관계자 중엔 D라는 이니셜을 가진 사람은 하나도 없어 - 성이건 이름이건 - 다만 - 아아! 그렇군, 이상한데? - 도널드 로스뿐이야. 그런데 그는 죽어 버렸어. 그렇지. 죽어 있어. 포와로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언젠가의 밤, 셋이서 밤길을 걷던 사실을 생각해냈다. 그러다가 나는 문득 어떤 일을 생각해내고 숨을 흑하고 들이마셨다. 놀랐는데. 포와로, 자네 기억하고 있나? 무얼 말인가? 로스가 식탁의 열 세 사람에 대해 한 말 말야. 그리고 그는 최초로 자리를 떴다구. 포와로는 대답하지 않았다. 미신이 바르다고 판명되었을 때에 누구나가 그렇듯이, 나도 약간 불안을 느꼈다. 우리는 커다란 극장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군중들이 극장에서 쏟아져 나왔고,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다. 그 중에는 방금 본 영화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유우스턴 로오드를 가로질렀다. 참 좋았어. 한 처녀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브라이언 마아틴은 정말 기막히다고 생각해요. 그가 출연하는 영화는 모두 보기로 하고 있다구요. 그가 그 벼랑을 말을 타고 내려가서 늦기 전에 서류를 갖고 그곳에 닿은 아슬아슬한 장면, 정말 근사했죠? 그녀의 동행자인 남자친구는 과히 감격하고 있지 않았다. 바보 같은 얘기라구. 만일 그들이 이내 에리스한테 물어볼 만한 분별이 있었다면, 분별있는 인간이라면 누구건 그렇게 했을 거란 말야 - 그밖의 말은 들을 수가 없었다. 내가 보도에 닿아 뒤돌아보니, 포와로는 행길 한복판에 서 있고, 그 양쪽에서 버스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본능적으로 두 손으로 눈을 가렸다. 브레이크가 요란하게 걸리고, 버스운전사가 큰 소리로 욕지거리를 퍼붓는 소리가 들렸다. 포와로는 그런데도 여전히 어슬렁어슬렁 보도쪽으로 걸어왔다. 마치 몽유병자 같았다. 포와로.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미치기라도 했나? 아니. 그저 - 어떤 생각이 문득 떠오른 게야. 거기서, 그 순간에 말야. 기막히게 나쁜 순간이었군. 게다가 자칫하면 자네의 마지막 순간이 될 뻔한 곳이었단 말일세. 그런 것은 문제가 아냐. 아아! 여보게 - 나는 장님이고, 귀머거리고, 얼간이었어. 이제야말로 그 의문의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을 내릴 수 있다네 - 암, 모든 것을 말일세 - 아주 단순하지. 어린애 장난처럼 단순하다구 - 교묘한 트릭 우리는 집으로 돌아갔다. 포와로는 분명히 마음 속에서 사고의 실마리를 더듬고 있었다. 그는 이따금 입 속으로 낱말을 중얼거렸다. 나는 그 중의 한두 가지를 들었다. 한 번은 촛불 이라고 했고, 또 한 번은 12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만일 내가 좀더 현명했다면, 그의 사고가 더듬고 있는 줄거리를 꿰뚫고 있었을 것이다. 실상 그것은 지극히 뚜렷한 줄거리였다. 그러나 당시의 내게는 그저 헛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기가 무섭게 포와로는 전화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는 사보이 호텔을 불러내어 엣지웨어 부인을 대달라고 했다. 그건 어림 없는 일이라구, 선배. 나는 농을 섞어 말했다. 그는 세상물정에 너무나 어두운 것이다. 그녀는 새 연극에 출연하고 있다구. 지금쯤 극장에 있을걸. 아직 열 시 반이란 말야. 포와로는 내 말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도 않고, 호텔의 프런트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있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 그렇군요? 그럼 미스 윌킨슨의 가정부를 대주시지요. 잠시 후 그는 또다시 말했다. 엣지웨어 부인의 가정부신가요? 나는 포와로올시다. 에르큐르 포와로. 기억하시죠? - 좋습니다. 그런데 좀 중대한 일이 일어나서요. 곧 나한테 좀 와줬으면 싶은데요. - 그렇죠.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럼 주소를 가르쳐드리죠. 그는 주소를 두 번 되풀이하고나서 수화기를 놓았다. 나는 호기심이 일어나서 물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했길래? 정말 그녀한테 알려 줄 일이라도 있단 말인가? 아닐세, 헤이스팅즈, 가정부쪽에서 정보를 제공해 줄걸. 어떤 정보를? 어떤 인물에 대한 정보라네. 제인 윌킨슨 말인가? 아아! 그녀의 일이라면 필요한 정보는 모조리 손에 넣고 있지. 그럼 누구 말인가? 포와로는 그러나 여느때의 남을 초조하게 만드는 그 감질나는 미소를 띠우면서 기다리고 있으면 곧 알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니 기다려 보는 수밖에. 10분 후 가정부가 찾아왔다. 그녀는 약간 불안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검은 옷을 입은 작은 키의 깔끔한 그녀는 겁먹은 듯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포와로가 급히 앞으로 나섰다. 아, 오셨군요?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앉으시죠, 마드모아젤 - 에리스, 였지요? 네, 에리스에요. 그녀는 포와로가 권한 의자에 앉았다. 두 손을 짝 지워 무릎 위에 올려놓으면서 그녀는 우리를 번갈아 보았다. 우선 묻고 싶은데요, 미스 에리스, 당신은 엣지웨어 부인을 언제부터 섬기고 있나요? 삼 년 된답니다. 내 생각대로구먼. 그럼 부인에 대해 여러 모로 알고 있겠죠? 에리스는 대답을 안했다. 그녀는 꾸짖는 것 같은 눈짓을 했다. 내가 말하는 것은 당신이라면 어떤 사람이 부인을 미워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뜻이올시다. 에리스는 입술을 더한층 굳게 다물었다. 대개의 여자들이 흔히 부인을 미워하고 있어요. 네, 모두들 미워하고 있었지요. 몹시 질투하고 있는 거랍니다. 같은 여자들한테 호감을 못받는군요? 그래요. 부인은 너무 아름다우십니다. 그리고 언제나 필요한 것을 손에 넣으시지요. 무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몹시 질투심이 강하답니다. 남자들은 어떻소? 에리스는 윤기 없는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부인은 신사분들을 뜻대로 하실 수 있지요. 그것은 사실이랍니다. 나 역시 동감이요. 포와로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더니 그는 말투를 바꾸었다. 당신은 영화배우 브라이언 마아틴씨를 알고 있죠? 어머나! 알고있고말구요. 일 년쯤 전에 마아틴씨가 당신 주인한테 반해 버리고 있었다고 해도 틀림 없으리라 믿는데요? 네, 그래요. 아주 좋아했었지요. 그 무렵 마아틴은 부인이 자기와 결혼해 주리라 믿고 있었나요? 네, 그렇습니다. 부인은 진정 그와 결혼할 생각이었소? 그래요. 엣지웨어 경한테서 자유의 몸이 되었드라면, 아마 결혼하셨을 걸요. 그런 판에 마아틴 공작이 나타난 셈이군요? 네. 공작은 한 눈에 반해 버리신 거죠. 그렇게 되어 마아틴은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겠군요? 에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마아틴씨는 막대한 재산을 만드셨지요. 하지만 마아튼 공작에겐 지위도 있습니다. 그리고 엣지웨어 부인은 지위를 매우 중히 여기고 계십니다. 공작과 결혼하시면, 영국의 퍼스트 레이디의 한 사람이 될 수 있지요. 가정부의 목소리는 흐뭇한 만족감을 띠우고 있었다. 그렇다면 브라이언 마아틴씨는 - 뭐랄까 - 하루아침에 버림을 받은 셈이군요? 그는 분개하던가요? 그 분은 미치광이 같은 짓을 하셨지요. 옳거니! 언젠가는 권총으로 부인을 겁주었지요. 저는 어찌나 무서웠던지. 게다가 그 분은 술이 고주가 돼있었거던요. 그러나 나중엔 마음을 돌렸단 말이죠? 네, 그런 것 같았어요. 요즘 그 분을 만나는 일은 드물어요. 제 생각으로는 좋은 일이에요. 실연의 상처가 아물기 시작한 거겠죠. 글쎄요. 포와로의 말투 속의 무엇인가가 가정부를 섬 하게 만든 모양이었다. 그녀는 근심스러운 듯이 물었다. 부인의 신변이 위태롭다고 생각하시는 게 아닙니까? 그렇소. 포와로는 심각하게 말했다. 부인은 현재 매우 위험한 입장에 있다고 생각하는군요. 하지만 부인은 그 위험을 자청한 겝니다. 그의 손은 난로가를 따라 맥없이 움직여가다가 장미 꽃병에 닿아 그것을 뒤집어 놓고 말았다. 물이 에리스의 얼굴이며 머리에 튕겼다. 나는 포와로가 실수를 저지르는 것을 좀체로 본 적이 없었으므로 그가 커다란 정신적 동요의 상태에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몹시 당황해하며 수건을 가지러 뛰어갔다 - 상냥하게 가정부를 도와 얼굴이며 목을 닦아 주고 연거푸 사과를 했다. 이윽고 그는 에리스에게 지폐를 한 장 넘겨주고, 문간까지 따라나가 우정 와준 데 대해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 그러다가 그는 갑자기 화제를 바꾸었다. 마드모아젤, 실례지만 다리를 져시는군요? 아무 것도 아니랍니다. 다리가 좀 아플 뿐이에요. 티눈인 모양이죠? 포와로는 동정하듯 친절하게 말했다. 분명히 티눈이었다. 포와로는 일종의 치료법을 상세히 설명했거니와, 그의 말에 의한건대 그것은 효과 만점이라든가. 에리스는 마침내 돌아갔다. 나는 호기심을 누를 수 없었다. 포와로, 결과가 어떤가? 그는 허둥지둥 묻는 내게 싱긋 웃어 보였다. 오늘밤엔 이제 아무 것도 않겠네. 내일은 아침 일찍 재프한테 전화를 걸어야지. 그보고 와달라고 하는 게야. 그리고 브라이언 마아틴한테도 전화를 거는 걸세. 난 그에게 빚을 갚아 주고 싶다네. 헤에? 나는 포와로를 곁눈으로 보았다. 그는 기묘한 표정으로 웃음짓고 있었다. 어쨌든 간에. 나는 이렇게 말을 꺼냈다. 그에게 엣지웨어 살인사건의 혐의를 씌울 수는 없을걸. 더욱이 오늘밤의 얘기를 듣고난 뒤에는 말일세. 그렇게 되면 그야말로 제인이 바라는 대로야. 그녀를 다른 남자와 결혼시키고자 남편을 죽여 준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니까. 기막히게 현명한 판단이야. 놀리지 말라구. 나는 약간 부아가 났다. 게다가 아까부터 대체 무얼 만지작거리고 있지? 포와로는 문제의 물건을 내밀었다. 사람좋은 에리스의 안경이라네. 그녀가 두고 간 거야. 바보 같은 소리를! 그녀는 돌아갈 때 안경을 쓰고 있었다구. 그는 조용히 고개를 흔들었다. 천만에! 전혀 달라! 그녀가 끼고 간 것은 말일세, 헤이스팅즈, 카아롯타 아담즈의 백 안에서 나온 안경이었다네. 나는 너무나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튿날 아침 재프 경부에게 전화를 거는 것은 내 일이 되었다. 그의 목소리는 약간 맥이 없었다. 아, 당신이군요, 헤이스팅즈 대위? 그래 이번엔 또 무슨 일이 시작되나요? 나는 포와로의 전갈을 알렸다. 열 한 시에 들러 달라? 글쎄요, 아마 가게 될 테죠. 포와로씨는 설마 로스 청년의 죽음에 대해 내 도움이 될 만한 일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닐 테죠? 터놓고 말해서 뭔가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천만다행이겠군요. 젠장, 단서라곤 쥐뿔도 없다, 이겁니다. 정말 야릇한 사건이에요. 뭔가 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적당히 얼버무려 두었다. 아뭏든 그는 매우 만족한 상태라구요. 허어, 그래요? 알겠습니다, 헤이스팅즈 대위. 찾아뵙겠어요. 다음 일은 브라이언 마아틴에게 전화를 거는 일이었다. 나는 포와로가 시킨 대로의 말을 그에게 전했다. 무슨 일이냐는 질문을 받고 나는 전혀 모르겠노라 대답했다. 포와로는 내게 아무 것도 밝히지를 않았던 것이다. 잠시 말이 끊겼다.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브라이언이 말했다. 찾아뵙도록 하지요. 그는 전화를 끊었다. 이윽고 포와로는 놀랍게도 제니 드라이버에게 전화를 걸어, 그녀에게도 와달라고 하라는 것이었다. 그는 냉정하고도 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아무 말도 묻지 않았다. 브라이언 마아틴이 제일 먼저 찾아왔다. 그는 몸과 마음이 더불어 건강해 보였다. 거의 때를 같이하여 제니 드라이버도 찾아왔다. 그녀는 마아틴을 보고 놀랐는데, 마아틴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포와로는 의자를 두 개 끌어내어 두 사람에게 권하고 자기의 시계를 보았다. 아마 곧 재프 경부가 올 겝니다. 재프 경부라구요? 마아틴은 흠칫 놀라운 얼굴을 했다. 그렇습니다. 비공식으로 - 친구로서 참석해 달라고 했지요. 마아틴은 입을 다물었다. 제니는 재빨리 그를 보고나서 눈을 돌렸다. 이내 재프가 방으로 들어왔다. 여어, 포와로 선생, 대체 무슨 일인가요? 뭔가 기막힌 일이 벌어질 모양인가요? 포와로는 경부를 향해 싱긋 웃었다. 아니올시다, 경부. 별로 기막힌 일도 없소이다. 아주 단순한 대수롭쟎은 얘기올시다 - 허락해 주신다면 사건의 경과를 처음부터 더듬어 보고 싶군요. 재프는 한숨을 쉬고 자기의 시계를 보았다. 한 시간 이상 안걸린다면 - 안심하시오. 포와로는 여전히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소. 당신은 알고 싶으실 테죠? 누가 엣지웨어 경을 죽였느냐, 누가 미스 아담즈를 죽였느냐, 누가 도널드 로스를 죽였느냐? 나는 제일 나중 놈이 궁금하군요. 내 얘기를 들으면 모든 것을 알 수 있소이다. 우선 사건의 줄거리를 설명하겠소 - 내가 그 얼마나 눈이 어두웠었는지, 그 얼마나 무능했었는지, 나를 올바른 추리로 이끌어 준 것이 친구인 헤이스팅즈나 전혀 낯붙이도 모르는 생소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말씀이외다. 그는 한 숨 돌리더니, 이윽고 점잖게 헛기침을 몇 번 하고나서 내가 강의 라고 부르고 있는 말투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사보이 호텔의 모임부터 말하겠소. 엣지웨어 부인은 내게 남편과 이혼하는 일에 협조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이대로 나가다간 택시를 타고 달려가서 남편을 죽이게 될는지도 모른다고 했지요 - 약간 분별 없는 말입니다마는. 마침 방으로 들어온 브라이언 마아틴씨가 그 말을 들었습니다. 포와로는 힐끗 뒤돌아보았다. 마아틴씨, 그렇지요? 모든 사람이 들었지요. 배우가 변명하듯이 말했다. 위드번 부처도, 머어슈도, 카아롯타 아담즈도 - 모두가요. 그건 그렇습니다. 이 문제는 그쯤 덮어두고, 다음날 마아틴씨가 나를 찾아와서 우정 그 말을 내 머리에 새겨넣고 돌아가셨지요. 온, 천만에요. 마아틴이 약간 화를 내며 소리쳤다. 내가 방문한 것은 - 포와로는 한 손을 들어 제지했다. 당신이 오신 그럴듯한 목적은 자기가 미행을 당하고 있다는 그 엉터리 얘기를 하기 위해서였죠. 어린애라도 이내 알 수 있는 얘기올시다. 미행자를 금이빨로 가려냈다느니, 어떤 처녀의 승낙을 얻어야 한다느니. 여보시오, 젊은 남자는 금이빨 따위는 안끼웁니다 - 그건 옛날 얘기에요 - 특히 미국에서는 말씀이요. 요즘 금이빨을 만들어끼는 사람이 있나요? 그렇소! 그 애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웃음꺼리 밖에 안됩니다. 당신은 그 엉터리 얘기를 늘어 놓은 뒤에 방문의 진짜 목적으로 들어갔지요 - 내 머리 속에 엣지웨어 부인에 대한 혐오를 심는 일이었소. 터놓고 말하자면, 당신은 그녀가 남편을 살해할 경우에 대비해서 정지작업을 해둔 겝니다. 무슨 소리인지 도통 모르겠는데요. 브라이언 마아틴은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의 얼굴은 백짓장 같았다. 당신은 엣지웨어 경이 이혼을 승낙할 리가 만무하다면서 비웃습니다. 당신은 내가 이튿날 엣지웨어 경을 만나러 갈 것이라 생각했을 테지만, 실제로는 면회약속은 변경되었고, 나는 그날 낮에 엣지웨어를 만났으며, 그는 이혼에 동의했지요. 뿐만 아니라 이미 엣지웨어 부인에게 이혼을 승낙하는 편지를 보낸 사실을 알렸소. 그런데 부인은 그런 편지를 받은 일이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그녀가 잡아떼고 있는지, 그녀의 남편이 거짓말을 한 것인지, 아니면 제삼자가 그 편지를 없애 버렸는지 - 그것은 누구냐? 나는 자문해 볼 밖에요. 마아틴씨가 왜 우정 찾아와서 그 따위 엉터리 얘기를 했는가? 그래서 말입니다. 마아틴씨, 나는 당신이 그 부인을 사랑했었다는 가정을 세워 봤지요. 부인은 당신의 사랑을 받아들였었는데 변심해 버렸다, 다른 사나이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말씀입니다. 자아, 이렇게 되면 당신이 그 편지를 쓱싹해 버릴 가능성이 큰 셈이지요. 난 절대로 - 가만, 가만 계십시오. 당신 얘기는 모두 들어드릴 테니까요. 에에, 그 경우 당신은 어떤 심정일까? - 실연을 맛본 일이 없는 쟁쟁한 인기스타아인 당신의 심정은? 그것은 보나마나 부인을 골탕먹이고 싶다는 누를 수 없는 욕구올시다. 그런데 그녀에게 살인죄를 씌워 교수형에 처하게 만드는 이상의 복수가 있겠습니까? 그것 참, 어이없는 일이구먼! 재프가 어안이 벙벙해서 말했다. 포와로는 그를 돌아보았다. 그렇소이다. 그것이 내 마음에 자연히 형성되기 시작한 사소한 착상이었던 것입니다. 몇 가지 상황이 그 가정을 뒷받침해 주었지요. 카아롯타 아담즈에게는 두 다정한 남자친구가 있었지요 - 머어슈 대위와 마아틴입니다. 그러면 그녀한테 그 장난을 권하고 대가로 일만 달러를 제공하겠다고 말한 인물이 부자인 마아틴일 것이라는 가능성이 농후해지지요. 빈털털이인 머어슈가 일만 달러를 내놓을 수 있으리라고 미스 아담즈가 믿었다고는 아예 생각할 수조차 없으니까요. 내가 아니라구 - 정말 내가 아니라구요! 영화배우의 입에서 비명 같은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미스 아담즈가 동생한테 보낸 편지의 내용이 미국에서 전보로 발송되었을 때 - 아아, 그것 참! 나는 몹시 어리둥절했습니다. 내 해석이 전혀 맞지를 않았기 때문이올시다. 하지만 뒤에 가서 나는 한 가지 발견을 했지요. 진짜 편지가 내게 온 것인데, 그것은 연속이 되어 있지 않았고, 중간의 한 장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그 라는 것은 머어슈 대위가 아닌 인물을 가리키고 있다고도 생각됐지요. 또 한 가지 증거가 있었습니다. 머어슈 대위는 체포되었을 때 그날밤 브라이언 마아틴이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봤다고 진술한 것입니다. 그러나 용의자가 한 말이라 신빙성이 없었지요. 게다가 마아틴씨에게는 알리바이가 있습니다. 그야 그럴 수밖에요! 만일 마아틴씨가 살인을 했다면, 알리바이의 조작은 절대로 필요했으니까요. 그리고 그 알리바이를 증언한 사람은 단 한사람 뿐이었습니다 - 여기 계신 미스 드라이버올시다. 그게 뭔가 잘못되기라도 했나요? 처녀가 날카롭게 물었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마드모아젤. 다만 사실이 그렇다는 것이지요. 포와로는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건 그렇고 다음 문제로 옮아가십시다. 로널드 머어슈는 체포되었지요. 마아틴씨는 이렇게 되어 이내 힘을 되찾았습니다. 혹시나 하는 불안이 사라졌기 때문이올시다. 다만 엣지웨어 부인이 파아티에 참석할 뜻이 없다고 비쳐놓고는 막판에 가서 변덕을 부리는 바람에 마아틴씨의 계획 - 부인을 살인범으로 옭아넣으려는 - 은 뒤틀렸지요. 하지만 다른 엉뚱한 인물이 당신 대신 범인으로 지목되었기 때문에 당신은 모든 불안을 떨쳐 버릴 수 있었던 겝니다. 그러는 판에 - 어떤 파아티 석상에서 - 도널드 로스라는, 명랑하지만 좀 얼간이인 청년이 헤이스팅즈한테 흥분해서 말하는 것을 듣고, 요컨대 아직도 안전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소이다. 그건 말도 안되는 소리요! 배우는 짖어대듯이 소리쳤다. 그 얼굴은 구슬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눈은 공포로 미친 것 같은 빛을 띠우고 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못들었소 - 아무 것도 - 난 절대로 결백하다구요! 그 때 참으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옳은 말씀이십니다. 포와로가 시침 뚝 떼고 이렇게 말한 것이다. 당신은 내게 - 이 에르큐르 포와로한테 당챦은 엉터리 얘기를 가지고 왔었는데, 이제 그만하면 충분히 벌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일동은 아연했다. 포와로는 나른한 듯이 계속했다. 여러분, 나는 여러분한테 내 실패담을 모조리 들려드린 것입니다. 처음 나는 다섯 가지 의문을 자신에게 물었지요. 헤이스팅즈는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중 세 가지에 대한 대답은 잘 들어맞았습니다. 누가 그 편지를 쓱싹해 버렸느냐? 브라이언 마아틴이라는 대답은 분명히 그 의문에 부합되었지요. 또하나의 의문은 엣지웨어 경이 갑자기 생각이 달라져 이혼에 동의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였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어떤 가정을 세우고 있었지요. 그는 재혼하려 했는가? 그러나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가 없다 - 그렇다면 어떤 협박을 받았는가? 엣지웨어 경은 괴이한 취미를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사실을 쥐면 그것으로 아내에게 이혼의 권리가 생기지는 않드라도 그녀는 그것을 세상에 퍼뜨리겠다고 위협하는 것으로 그를 움직이는 지렛대로 삼을 수 있지요. 나는 실상 그런 사태가 일어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엣지웨어는 스캔들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그는 타협했지만 남의 눈이 없을 때엔 타협을 안할 수 없었던 안타까움과 노여움이 터져나와 얼굴에 나타났다, 이렇게 말씀입니다. 그는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아내의 편지에 적혀 있던 그 어떤 것 때문은 아니었소 이렇게 재빨리 말했지요. 그 수상한 성급함도 이것으로 설명이 됩니다. 두 가지 의문이 남았습니다. 미스 아담즈의 백 안에 그녀의 것이 아닌 묘한 안경이 들어 있었다는 의문. 그리고 엣지웨어 부인이 치즈위크의 만찬회 석상에 있을 때 전화로 호출된 것은 왜냐는 의문. 이 두 가지 의문이 어느 한쪽에도 브라이언 마아틴씨를 혐의자로 옭아 넣을 수는 없었지요. 이리하여 나는 내 생각을 고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고심 끝에 미스 아담즈의 편지를 거듭 주의깊게 읽어 봤지요. 그러자 중요한 사실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렇죠, 아주 중요한 사실을! 여러분, 직접 확인해 보십시오. 자아, 이거올시다. 종이가 찢겨져 있죠? 찢어낸 언저리가 이 들쑥날쑥한 선이올시다. 이 편지는 찢어낼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포와로는 자랑스러운 얼굴로 좌중을 보고나서 서둘러 말했다. 제일 위쪽 줄의 H 앞에 S가 있었다고 가정하면 - 그렇소이다! 이쪽의 승리지요! 아실 테죠? 그(he) 가 아니올시다 - 그녀(she) 인 것입니다! - 이 장난을 카아롯타 아담즈한테 사주한 것은 여자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들 아연했다. 멍청한 우리의 귀에 포와로의 말이 울려왔다. 나는 이번 사건에 다소라도 관계가 있는 여성 전부의 리스트를 만들었습니다. 제인 윌킨슨 외에 네 사람이 있었지요 - 제럴딘 머어슈, 미스 캐럴, 미스 드라이버, 그리고 마아튼 공작부인이올시다. 이 네 명 가운데에서 가장 관심을 끈 것은 미스 캐럴이었습니다. 그녀는 안경을 끼고 있으며, 그날밤 저택에 있었다, 엣지웨어 부인에게 혐의를 덮어씌우고자 이미 엉터리 증언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범죄를 수행할 만한 유능하고 냉정한 여자였다, 동기는 뚜렷하지 않지만 - 몇 년을 엣지웨어 경 밑에서 일해왔으니까 이쪽에서 전혀 깨닫지 못하는 동기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 이상입니다. 나는 또한 제럴딘 머어슈를 이 사건에서 완전히 제외할 수 없다고 생각했지요. 그녀는 부친을 미워하고 있었다, 신경질적이고 흥분하기 쉬운 성격이었다, 그날밤 그녀가 집 안으로 들어갔을 때 부친을 찌르고는 태연히 이층으로 진주를 가질러갔었다고 가정해 보시오. 그밖에도 또 있소. 미스 아담즈의 백 안에 들어있던 금빛 케이스에는 D라는 이니셜이 새겨져 있었지요. 나는 머어슈 대위가 그녀를 디나 라고 부르는 소리를 들은 일이 있소이다. 게다가 그녀는 작년 십일 월에는 빠리의 기숙학교에 있었으니까 빠리에서 카아롯타 아담즈를 만나고 있었는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마아튼 공작부인을 이 리스트에 실리는 것을 가당치 않은 일이라 생각할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를 찾아왔기 때문에 그녀가 광신적인 성격임을 알게 됐지요. 그녀의 온 생애의 애정은 아들에게 쏠려 있으니까 아들의 일생을 파멸시키려드는 여자를 죽일 계획을 꾸밀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스 드라이버가 있었습니다 - 그는 입을 다물고 제니를 보았다. 그녀는 지지 않으려는 듯 고개를 갸웃하고 그를 보았다. 그래서 내게 어떤 혐의가 있나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마드모아젤. 당신이 마아틴의 친구이고 - 성이 D로 시작된다는 사실 이외에는 말씀입니다. 그건 대단한 일이 못돼요. 또 한 가지 있습니다. 당신은 이번 같은 범죄를 저지를 만한 머리와 베짱을 갖고 있다는 것이지요. 처녀는 담배에 불을 당겼다. 그리고는 명랑하게 말했다. 다음을 계속하셔요. 마아틴씨의 알리바이가 진짜였느냐? 그것이 내가 결정해야 할 문제였습니다. 진짜였다면 로널드 머어슈가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목격한 사나이는 누구였는가? 나는 문득 어떤 생각을 했습니다. 리젠트 게이트 저택의 미남자 집사는 마아틴씨와 아주 비슷했다, 머어슈 대위가 목격한 것은 이 집사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하나의 가설을 세웠지요. 내 추측으로는 그는 주인이 살해당한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주인의 시체 곁에는 일백 파운드 상당의 프랑스 지폐가 든 봉투가 있었지요. 그 돈뭉치를 갖고 나가 누군가에게 그것을 맡기고는 엣지웨어 경이 갖고 있던 열쇠로 안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이것을 머어슈가 목격한 것이지요. 그는 살인사건이 이튿날 아침 가정부에 의해 발견되도록 놓아뒀습니다. 그는 엣지웨어 부인이 살인을 한 것으로 믿고 있던 터라 조금도 불안한 생각을 안했지요. 그런데 엣지웨어 부인한테 난데없이 알리바이가 생겨, 런던경시청이 그의 신원을 캐내기 시작하자 겁을 먹고 줄행랑을 친 것입니다. 재프는 찬성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아직 안경에 대한 의문을 해결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만일 미스 캐럴이 그 임자라면, 문제는 해결되리라 생각했지요. 그러나 안경은 아무래도 미스 캐럴과는 관계가 없어 보였소이다. 나는 약간 낙심하고는 헤이스팅즈와 함께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면서 추리를 거듭했지요. 그러자 그 때 기적이 일어난 겝니다! 그 때 우리는 행길을 가로지르고 있었는데, 통행인 한 사람이 여자친구보고 누군가가 에리스한테 물었으면 좋았을 텐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순식간에 나의 가슴 속에 사건의 전모가 번뜩인 것입니다. 그는 일동을 돌아보고나서 말했다. 그렇소이다. 안경, 전화의 호출, 빠리에서 금빛 케이스를 찾으러 간 키작은 여자. 물론 제인 윌킨슨의 가정부인 에리스입니다. 모든 것이 드러난 것입니다! 엄청난 진상 그는 우리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부드럽게 말했다. 여러분, 그럼 그날밤에 일어난 일의 진상을 말해드리지요. 카아롯타 아담즈는 자기방을 일곱 시에 나섰습니다. 그녀는 그곳에서 택시를 타고 피카디리 파레스 호텔로 갔지요. 아니, 뭐라구? 나는 놀라운 나머지 소리쳤다. 피카디리 파레스 호텔이라구. 그날 낮에 그녀는 봔 도우센 부인이라는 이름으로 방을 예약해 둔 것입니다. 그녀는 돗수높은 안경을 끼고 있었는데, 아시다시피 그렇게 하면 얼굴생김이 굉장히 달라져 보이지요. 그녀는 방을 예약하고는 밤의 기선연락열차로 리버플로 갈 예정이며 짐은 먼저 보냈다고 해뒀지요. 여덟 시 삼십분 경에 엣지웨어 부인이 도착, 그녀에게 면회를 요청한다, 부인은 그녀의 방으로 안내된다, 두 사람은 옷을 바꿔입는다, 금발의 가발을 쓰고 흰 드레스와 쇼올을 걸치고는 제인 윌킨슨이 아니라, 카아롯타 아담즈가 호텔을 나서 치즈위크로 차를 달리게 한다, 그렇죠, 충분히 가능한 일이올시다. 나는 밤에 코우너 경 댁에 간 일이 있습니다. 만찬 테이블은 촛불로 비춰져 있을 뿐이고, 램프는 어두웠으며 한 자리에 보인 사람들은 모두가 제인 윌킨슨을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금발에 그 유명한 허스키 보이스와 거동. 아아! 아주 수월한 일이었지요. 그리고 만일 그것이 성공 못하는 경우 - 누군가가 가짜임을 꿰뚫게 되면 - 그렇지요, 그 때의 경우의 대비도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아무튼 엣지웨어 부인은 검은 가발을 쓰고 카아롯타의 옷과 안경을 갖추고는 카아롯타의 숙박비를 지불한 뒤, 카아롯타의 수우츠케이스를 택시에 싣고 유우스턴으로 향한다, 그녀는 화장실에서 검은 가발을 벗고 소하물교환소에 케이스를 맡긴다, 리젠트 게이트로 가기 전에 그녀는 치즈위크에 전화를 걸어 엣지웨어 부인을 불러낸다, 이것은 두 사람 사이에 타협이 이루어져 있던 일이올시다. 만사가 순조롭게 진행되어 카아롯타가 가짜임이 드러나지 않을 경우 그녀는 다만 그렇습니다 이렇게 대답하기로 정해 놓은 것이지요. 물론 미스 아담즈는 이 전화로 불러내는 일의 참뜻을 몰랐을 겝니다. 그것은 어떻든 카아롯타의 대답을 들은 뒤, 엣지웨어 부인은 출발한다, 그녀는 리젠트 게이트로 가서 엣지웨어 경에게 면회를 요청, 이름을 대고는 서재로 들어간다, 그리고 제일의 살인을 저지른다, 그녀는 그 길로 유우스턴으로 돌아가 케이스를 찾고는 다시금 금발을 벗고 검은 가발을 쓴다, 이번엔 카아롯타 아담즈가 치즈위크에서 돌아올 때까지 시간을 보내야 한다, 두 사람은 대략적인 시간약속을 해뒀다, 그녀는 코우너 하우스 레스또랑으로 갔는데, 시간이 좀체로 가지를 않아 자주 시계를 본다, 그 때 그녀는 두 번째 살인을 준비한다, 그녀는 물론 카아롯타의 백을 들고 다녔고, 그 안에 빠리에 주문해서 찾아 둔 금빛 케이스를 넣는다, 그녀가 그 편지를 발견한 것은 아마 그 때일 걸요. 아니면 훨씬 전이었는지도 모릅니다만. 아무튼 그녀는 그 수취인의 이름을 본 순간 위험을 느낀다, 뜯어 보니 영락없이 위험천만한 내용이었지요. 아마 처음엔 그 편지를 몽땅 없애 버리려고 했을 겝니다. 하지만 이윽고 더 좋은 방법이 생각난다, 그 중의 한 페이지를 찢어내면, 로널드 머어슈에게 혐의가 돌아간다 - 머어슈에게는 살인을 저지를 만한 강한 동기가 있었다, 설령 머어슈에게 알리바이가 있드라도 she의 S를 찢어내면 남자한테 혐의가 돌아간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리하여 그녀는 그렇게 해놓고는 편지를 봉투 안에 넣고, 봉투를 또한 백에 넣어둔 것입니다. 시간이 되자 그녀는 사보이 호텔로 간다, 그리고는 층계를 올라간다, 카아롯타 아담즈도 와있다, 가정부는 자기방에서 자고 있다, 자라고 한 것입니다. 두 사람은 옷을 갈아입고는 아마 뭔가 마실 것을 들었을 겝니다. 성공을 축하하면서 말씀입니다. 그 마실 것 속에 베로날이 들어있다, 부인은 수표는 틀림없이 내일 보내주겠다고 한다, 카아롯타는 집으로 돌아간다, 그녀는 몹시 졸립다 - 친구한테 전화를 걸려고 한다, 기분이 들떠 있었으니까요. 아마 마아틴씨나 머어슈 대위한테 걸려고 했을 테죠. 두 사람 모두 빅토리아 국번이니까요. 그러나 그녀는 귀찮아져서 그만 둔다, 몸이 너무 나른했던 겝니다. 베로날이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거죠. 그녀는 침대에 들어간다 - 그리고 다시는 잠을 깨지 않는다. 두 번째 살인에 성공했습니다. 이번엔 세 번째 살인입니다. 그것은 어느 파아티 석상에서 비롯된다, 몬타규 코우너 경은 살인이 있었던 날 밤에 엣지웨어 부인과 나눈 대화를 꺼낸다, 그런데 난데없는 복수의 여신이 그녀에게 덤벼든다, 파리스의 심판 이 화제에 올랐는데, 그녀는 그 파리스가 패션과 유행의 본고장인 프랑스의 수도 빠리인 줄로만 알고 당찮은 소리를 지껄인 겝니다. 그러나 그녀의 맞은편에는 역시 치즈위크의 만찬회에 참석했던 로스 청년이 앉아 있었다 - 그 청년은 그날밤 엣지웨어 부인이 호우머니 그리이스 문명 전반에 걸쳐 논하는 것을 듣고 있었던 것입니다. 가짜 역할을 한 카아롯타 아담즈는 교양이 있는 박식한 처녀였지요. 청년은 이상하게 생각하고 부인을 바라본다, 그리고 느닷없이 어떤 생각에 미친다, 저 여자는 같은 여자가 아니다, 자아 이렇게 되자 그는 몹시 어리둥절해졌지요. 자기의 판단에 확신이 없거던요. 누구한테 상의를 해야겠다, 그는 이렇게 생각하고 나를 찾은 겝니다. 결국 내가 돌아간 뒤라 그는 헤이스팅즈한테 말했지요. 그러나 부인은 그의 얘기를 엿듣는다, 그녀는 머리의 회전이 빠르고 빈 틈이 없는 여자올시다. 이내 자기가 정체를 드러내 버린 사실을 깨달았지요. 그녀는 내가 다섯 시까지 집에 안돌아올 것이라고 말한 헤이스팅즈의 얘기를 엿듣는다, 다섯 시 이십분 전에 그녀는 로스의 방으로 간다, 그는 도어를 열고 그녀가 찾아온 사실에 놀라지만,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그럴 것이 사지가 멀쩡한 청년이 여자 한 사람을 두려워하지는 않게 마련이지요. 로스는 그녀와 함께 식당으로 간다, 그녀는 이러쿵 저러쿵 지껄여댄다, 아마 무릎을 꿇고 연극이라도 하는 양 두 팔을 그의 목에 던진다, 그리고는 재빨리, 확실하게 목덜미를 찌른다 - 먼젓번과 똑같이 말씀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재프가 목쉰 소리로 말했다. 결국 - 처음부터 그녀의 소행이라는 거군요? 포와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남편이 이혼을 승낙했잖습니까? 그런데 뭣 때문에 그런 짓을 한 거죠? 마아튼 공작이 독실한 가톨릭 교도였기 때문이지요. 남편이 살아 있는 여자와 결혼한다는 것은 그로서는 꿈도 못꿀 일이었기 때문이올시다. 그녀는 미망인이 되면 그와 결혼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럼 뭣 때문에 당신을 엣지웨어 경한테 보낸 거죠? 아아! 뻔한 일 아닙니까? 포와로는 괘씸하다는 듯이 말했다. 내 눈을 속이기 위해서였지요! 나를 살인동기가 없다는 사실의 증인으로 삼기 위해서였단 말씀입니다! 그렇소이다, 그녀는 뻔뻔스럽게도 이 나, 에르큐르 포와로를 도구로 삼으려고 한 것입니다! 게다가 분명히 그것에 성공했지요. 아아, 그 기묘한 머리는 어린애 같으면서도 교활하고 영리했던 것입니다. 그럼 D의 이니셜과 빠리, 십일 월이라는 글씨가 있는 그 금빛 케이스는 도대체 어떻게 된 거죠? 재프가 멍한 얼굴로 물었다. 그녀는 편지로 그것을 주문하고, 가정부인 에리스를 보내 찾아오게 한 것입니다. 물론 에리스는 케이스를 받고 돈만 치루었을 뿐이었지요. 또한 엣지웨어 부인은 봔 도우센 부인으로 변장하고자 에리스의 예비안경을 빌렸습니다. 그런데 그만 카아롯타의 핸드백 속에 넣어 버렸지요 - 그녀의 한 가지 실수올시다. 그렇지요, 나는 그 사실을 행길 한복판에서 깨달은 것입니다. 에리스! 에리스의 안경. 에리스는 빠리로 케이스를 찾으러 간 것이다, 이렇게 말이외다. 그런데 제인 윌킨슨은 에리스한테 안경말고 또 빌린 게 있지요. 그게 대체 뭡니까? 티눈을 잘라내는 나이프올시다 -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순간 무거운 침묵이 찾아들었다. 이윽고 마아틴이 입을 열었다. 그렇지만 말씀입니다. 그는 볼멘 소리로 말했다. 왜 나를 불렀나요? 왜 나를 그토록 놀라게 했죠? 포와로는 냉정하게 그를 보았다. 당신의 무례를 응징하기 위해서였소. 뻔뻔하게도 에르큐르 포와로를 우롱하려던 것에 대한 따끔한 벌이올시다. 그러자 제니 드라이버가 깔깔거렸다. 배를 움켜잡고 웃어젖혔다. 스스로 판 무덤이라구요, 브라이언. 그녀는 가까스로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는 포와로쪽을 보았다. 나, 머어슈가 범인이 아니어서 정말 기뻐요. 그리고 카아롯타 아담즈 살인사건의 진상이 밝혀 진 게 어찌나 기쁜지! 이 브라이언 말씀입니다만, 포와로씨. 나 이 사람하고 곧 결혼하게 됐답니다. 포와로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 그녀의 의지가 강해 보이는 턱을 보았다 - 그리고 타는 것 같은 머리를. 마드모아젤, 당신은 어떤 일에도 견딜 수 있을 만한 베짱을 가지셨지요. 물론 영화배우하고 결혼하는 일도 말씀입니다. 그로부터 이삼일 뒤, 나는 갑작스러운 볼일이 생겨 알젠틴으로 가게 되었다. 따라서 나는 다시는 제인 윌킨슨을 만나보지 못했고, 그녀의 재판과 유죄판결을 다만 신문에서 읽을 수밖에 없었다. 까닭에 내가 제인 윌킨슨을 만난 것은 클라릿지 레스또랑에서의 파아티가 마지막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일을 생각할 때에는 언제나 같은 모습을 떠올리는 것이다 - 사보이 호텔 자기방에 서서 황홀한 듯이 진지한 표정으로 값진 검은 옷을 입어 보고 있던 아름다운 장면이다. 나는 그 모습이 제스처는 아니었다고 믿고 있다. 그녀는 아주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계획이 성공했으므로 그 이상 아무런 불안이나 의심도 품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에 그녀가 자기가 죽은 뒤 포와로에게 보내달라고 당부한 수기를 실어 둔다. 이 글이야말로 그 기막히게 아름답고, 반면 기막히게 양심이 없는 여성을 남김없이 상징하는 것이 될 것이다. 친애하는 포와로 선생님 - 여러 가지로 생각한 끝에 이 수기를 당신에게 드리기로 했습니다. 당신이 이따금 자기가 취급한 사건의 기록을 발표하시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범인 자신이 쓴 수기를 공표하신 일은 없으실 거에요. 내가 그 범죄를 어떻게 해치웠는지를 세상에 똑똑히 알리고 싶은 것입니다. 나는 지금도 그것은 매우 기막히게 계획되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당신이 안계셨다면 만사가 순조롭게 끝났을 걸요. 그 점이 좀 분한 생각이 들지만, 하는 수 없는 일이지요. 이 수기를 당신에게 보내면, 널리 세상에 알려 주시리라 믿어요. 그렇게 해주실테죠? 나, 세상 사람들에게 기억당하고 싶어요. 일의 시초는 미국에서 마아튼 공작을 만났을 때 비롯되었지요. 나는 이내 내가 미망인이라면, 그는 결혼해 줄 것이라 눈치챘습니다. 하필이면 그는 결혼에 대한 묘한 편견을 지니고 있었지요. 나는 남편이 죽어 주지 않으면,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결혼이라 생각했습니다만, 어떻게 그 계획을 세워야 좋을지 몰랐습니다. 나는 궁리에 궁리를 거듭했지요. 그러다가 카아롯타 아담즈가 내 흉내를 기막히게 잘 내는 것을 보고 멋진 꾀를 생각해낸 것입니다. 그녀의 도움만 있다면, 나는 알리바이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게다가 당신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고, 당신을 남편에게 보내 이혼을 교섭하게 한다면, 기막힐 거라 생각했지요. 동시에 나는 남편을 죽여 버려야 할 것 같다는 말을 아무 데서나 함부로 하기로 했어요. 사실을 조금 얼간이 같은 투로 지껄이면, 아무도 신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두 번째로 카아롯타 아담즈를 만났을 때 나는 계획을 실천에 옮기기로 했습니다. 내기를 하자고 한 거에요 - 그녀는 대뜸 구미가 당겨 바싹 대들더군요. 그녀가 어떤 파아티에 나 대신 참석하고, 만일 가짜임이 드러나지 않으면 1만 달러를 주겠다고 한 것이지요. 그녀는 굉장히 열중해서 몇 가지 아이디어를 제공했습니다. 옷을 바꿔입는 것도 그녀의 아이디어였답니다. 그런데 내방에는 에리스가 있으니까 거기서 옷을 바꿔입을 수는 없었고, 그녀 역시 가정부가 있어 형편이 나빴지요. 물론 그녀는 꼭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가 이해되지를 않아 좀 이상히 여기는 투였지만, 나는 그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못을 박다 뒀어요. 아무튼 우리는 다른 호텔을 쓰기로 했습니다. 나는 에리스의 안경을 갖고 갔지요. 물론 나는 애초부터 카아롯타 역시 처치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좀 불쌍한 생각도 들었지만, 어차피 그녀의 그 흉내는 무례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어요. 나는 나 자신은 어쩌다가 쓸 뿐인 베로날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아주 손쉬운 일이었어요. 나는 그 때 기막힌 묘안을 생각해냈지요. 그녀가 베로날을 장복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면, 훨씬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나는 약병케이스를 주문했어요 - 내가 선물로 받은 것과 똑같은 것으로서 위에 그녀의 이니셜을, 안쪽에 달콤한 말을 넣게 했지요. 안쪽에는 엉터리 이니셜과 빠리, 11월이라는 글자를 넣으면 더한층 그럴듯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어느날 릿쯔에서 점심을 먹을 때 케이스를 주문하는 편지를 썼지요. 그리고 에리스를 시켜 그것을 찾아오게 한 것입니다. 물론 에리스는 포장 안의 물건을 알 까닭이 없지요. 그날밤은 만사가 아주 뜻대로 척척 이루어졌어요. 나는 에리스가 빠리에 가 있는 사이에 그녀의 티눈 깎는 나이프 한 개를 빌렸습니다. 모양이 좋고, 날카로웠기 때문입니다. 쓰고난 뒤 도로 넣어뒀기 때문에 그녀는 그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했지요. 내게 사람의 몸의 어디를 찌르면 좋은가를 가르쳐 준 것은 샌프란시스코의 의사였습니다. 나는 그 의사에게 거듭 정확한 위치를 가르쳐 받았지요. 필시 언젠가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의사에게는 그 아이디어를 영화에서 써먹을 셈이라고 해뒀지요. 카아롯타 아담즈가 동생한테 편지를 쓴 것은 아주 잘못된 일이었습니다. 그녀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노라 약속한 것입니다. 나는 그 한 페이지를 찢어내어 she 대신 he를 남겨두는 것이 기막힌 아이디어였다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답니다. 나는 그것을 다른 어떤 방법보다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지요. 모두들 나보고 머리가 둔하다고들 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생각을 궁리해내는 것이 과연 둔한 머리로 될 수 있었을까요? 아무튼 그 뒤로 나는 매우 즐겁고 행복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매사가 척척 이루어져나가는 판이었지요. 공작부인은 내게 모질게 대했지만, 마아튼은 상냥하게 감싸주었답니다. 그는 되도록 속히 나하고 결혼하고 싶어했고, 조금도 의심을 품고 있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몇 주일 만큼 행복했던 일도 드물었다고 생각합니다. 남편의 조카가 체포되는 것으로 나는 이제는 다리를 쭉 뻗고 자도 된다고 생각했지요. 그리고 카아롯타 아담즈의 편지를 찢어낸 것은 정말 천만번 잘한 짓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도널드 로스의 일은 정말 운수가 나빴던 거에요. 대체 그 사람이 어떻게 나의 트릭을 꿰뚫었는지 아직도 모르겠군요. 파리스란 사람이지 장소가 아니라는 것인 모양이죠? 나 아직도 파리스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요. 아무튼 사람의 이름치고는 좀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이상하게도 행운이 떨어져 나가면, 불운이 이어지게 마련이지요. 나는 로스 역시 속히 처치하지 않으면 안되었고, 그것은 제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미처 알리바이를 조작할 틈은 없었지요. 물론 에리스는 당신에게 불리워 질문을 받은 사실을 내게 말해 줬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아마 브라이언 마아틴과 관계가 있는 일이라고만 생각했지요. 설마하니 당신이 나를 지목하고 있으리라곤 전혀 생각조차 안했던 것입니다. 당신은 에리스가 빠리로 그 물건을 찾으러간 일에 대해 그녀에게 질문을 안하셨지요? 당신은 그녀가 내게 그런 말을 전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내가 이상히 여길 거라 생각하신 거죠? 그래서 나는 모든 진상을 폭로당하자 정말 놀라고 말았답니다. 한 동안 그 사실이 좀체로 믿어지지를 않았지요. 그러다가 당신이 내가 한 짓을 하나에서 열까지 모조리 알고 게신 것 같아 몸이 오싹할 정도였어요. 나는 완전히 단념햇습니다. 그럴 것이 운명과 싸울 수는 없는 걸요. 한 마디로 운이 나빴던 거에요. 안그래요? 당신은 자기가 한 일을 후회한 적이 있었나 몰라? 아무튼 나는 내 나름 대로 행복해지고 싶다고 생각한 것뿐이라구요. 게다가 만일 내가 당신한테 그 교섭을 안했드라면 당신은 이번 사건에 아무런 관계도 없었을 거에요. 당신이 그렇게 머리가 좋다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머리가 좋아보이지는 않았는 걸요. 이제 그만 안녕을 하지 않을 수 없군요. 정말 우스운 일이에요. 내가 교수대에 올라가야만 하는 사정이 아직도 어리벙벙하니까요. 내일은 목사를 만날 셈이에요. 마지막으로 당신을 용서하면서 - (왜라니, 적은 용서하지 않으면 안되잖아요?) 제인 윌킨슨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