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리머스 급행열차 영국 해군장교알렉 심프슨은 뉴턴 애봇 역의 플랫폼에서 플리머스행 급행열차의 일등차 객실에 올라탔다. 무거운 여행용 가방을 든 포터가 뒤따라와서 가방을 선반 위에 올 려놓으려 했지만 젊은 장교 심프슨은 만류하였다. "아니 자리에 놓아주기만 하게. 나중에 올릴테니까. 수고했네." "감사합니다." 선뜻 내주는 후한 팁을 받고 포터는 나갔다. 문이 닫히자 확성기 소리가 울려퍼졌다. "이 열차는 플리머스 항으로 직행합니다. 토케이 방면으로 가실 분들은 갈아타 주십시오. 다음 정거장은 플리머스항입니다." 길게 울리는 기적과 함께 기차는 천천히 플랫폼을 벗어났다. 객실에는 심프슨 내위뿐이었다. 12월의 공기가 차디찼으므로 대위는 창문을 닫았다. 그랬더니 어디선가 이상한 냄새가 대위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게 무슨 냄새지? 그것은 대위가 입원중 다리수술을 받던 때를 생각나게 했다. 뭐야,클로로포름 냄새로군. 대위는 창을 다시 열고 기차가 달리고 있는 반대쪽 자리로 옮겨 앉았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파이프를 꺼내어 불을 붙였다. 그대로 한참을 가만히 앉아서 밤경치를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다가는 마침내 일어서더니 여행용 가방을 열어서 신문,잡지류를 꺼내고 가방을 잠근 다음 맞은편 좌석 밑에 그것을 밀어넣으려고 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잘 들어가지 않았다. 뭔가 걸리는 것이 있는 모양이다. 대위는 짜증이 나서 더욱 힘껏 밀어 보았다. 그런데도 여전히 가방은 반밖에 들어가지 않았다. "도대체 왜 안 들어가지?" 대위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가방을 완전히 빼내고는몸을 구부려 좌석 밑을 들여다 보았다. 잠시 뒤 어둠속으로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비상벨이 황급히 울리고, 마침내 긴 열차는 마지못해 급정거를 하게 되었다. "헤이스팅스"하고 포와로가 말했다. "플리머스 급행열차의 비밀에 대해 굉장히 흥미를 가지고 있었지? 이것을 읽어 보게." 나는 테이블 너머로 포와로가 내밀어 놓은 편지를 집어 들었다. 간략하게 요점만적어놓은 편지였다. 친애하는 포와로 씨 시간이 나시는 대로 한시바삐 와주셨으면 감사하겠소. 에브니저 할리데이 그 사건과 이 편지와의 관련을 확실히 알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의아한 시선을 포와로에게 보냈다. 그는 대답 대신에 신문을 들고 소리내어 읽어나갔다. "'어젯밤 괴사건이 발생했다. 플리머스항으로 귀환도중인 젊은 해군장교가 자기 객실의 좌석 밑에서 심장을 찔린 여자 시체를 발견한 것이다. 그 장교는 즉시 비상벨을 눌렀기 때문에 열차는 급정거했다. 여자의 나이는 30세 전후,화려한 차림이었고 지금으로서는 신원불명이다.' 그리고 나중에 이런 사실을 알게 되었다네. '플리머스 급행열차에서 시체로 발견된 여성은 루퍼트 캐링턴 경의 부인으로 판명되었다. '이런 정도면 알겠지? 아니면 아직도 몰라? 루퍼트 부인의 결혼 전 이름은 플로시 할리데이. 즉,미국의 강철왕 할리데이 옹의 딸인거야." "아! 그래서 그녀의 아버지가 선생님에게 와달라고 한거로군요. 그거 대단한데요!" "나는 옛날에 할리데이를 위해서 일을 좀 한 적이 있었어. 무기명 채권사건으로 말이야. 그 뒤에 벨기에 국왕 방문을 위해서 내가 파리에 있을 무렵 플로시양에게 도움을 준 일이 있지. 학교 기숙사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었더. 게다가 굉장한 지참금도 가지고 있었고. 그런데 그것이 말썽의 원인이 되었다네. 그녀는 자칫 잘못될 뻔 했던거야." "무슨 말씀이시죠?" "로쉬푸르 백작인가 하는 사내가 있었는데,그자는 대단한 악당이었어. 말하자면 바람둥이었지. 순전히 호색가로서 로맨틱한 젊은 아가씨들을 꼬이는 솜씨가 아주 비상했다네. 다행히 큰일이 벌어지기 전에 그 소문이 아버지 귀에 들어갔어. 그래서 아버지는 황급히 따을 미국으로 다시 불러들였지. 그 뒤 몇 년이 지나서 나는 그녀가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그 남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네." "흐흠,루퍼트 캐링턴 경이라면 누구에게 물어보더라도 좋은소리는 안 할 겁니다. 경마로 빈털털이가 되어버렸죠. 마침 그렇게 아슬아슬한 때 그녀의 지참금이 들어가게 되지 않았나 싶어요. 빈틈없는 호색한인데,그렇게 차렴치한 건달에게시집가는 여자가 다 있으니!" "정말 가엾은 여자지. 그런 상대를 만났으니." "캐링턴 경은 결혼하자마자 자기가 끌리게 된 것은 그녀가 아니고 그녀의 지참금이라는 것을 노골적으로 입밖에 냈다는군요. 결혼 후 곧 부부는 별거로 들어갔을 겁니다. 두사람이 합법적으로 별거하려 한다는 소식을 최근에 들었거든요." "할리데이 옹은 바보가 아니야. 딸 지참금에 상당히 까다로운 조건을 붙였을거야." "그랬겠죠. 어쨌든 나는 루퍼트 경이 돈에 쪼들리고 있다는 소문은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아하,하지만" "뭐가 하지만이죠?" "이 사람아,자네 그렇게 일일이 군소리 할 것 없어. 자네가 이 사건에 흥미를 갖고 있다는 것은 나도 잘 알아. 뭣하면 나와 함게 할리데이 씨를 만나러 가면 어떻겠나? 저 모퉁이에 택시 타는 곳이 있군." 차를 타고 몇분 뒤에 두 사람은 미국 부호가 빌려쓰고 있는 파크 레인의 멋진 저택에 도착했다. 서재에 안내되자 잠시 뒤에 날카로운 눈과 고집스러워 보이는 턱을 가진 당당한 거구의 사나이가 들어왔다. "포와로 씨?" 하고 할리데이 씨가 말했다. "부탁드리고 자 하는 일의 줄거리는 새삼스럽게 얘기할 것도 없을 줄 아오. 신문에서 이미 읽으셨을 테니까. 그런데 나는 사태를 뒷짐지고 보고만 있는 성질이 못돼서 말이오. 마침 당신이 런던에 있다는 얘기를 듣고서 예전의 그 채권문제 때 당신이 보여주었던 기막힌 솜씨가 떠올랐소. 당신 이름은 그 동안에 잊어본 적이 없다오. 나는 런던 경시청에 이 사건을 의뢰했소만,그것과는 별도로 나를 위해서 일해줄 탐정이 필요하오. 비용에 대해서는 따지지 않겠소. 나의 전재산은 딸애를 위해서 모아온 것인데 딸애는 죽고 말았소. 그러니 마지막 1센트까지 다 털어서라고 그런 짓을 한 악당을 찾아야 하지 않겠소? 그러니가 내 부탁은 당신이 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협조해 달라는 게요." 포와로는 가볍게 머리를 숙였다. "따님은 전에 파리에서도 몇번 뵌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이 사건을 맡고 싶었습니다. 자,그러시다면 따님이 플리머스로 여행하게 된 상황이나 그 밖에 이 사건에 관계가 있어 봉는 세세한 점을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사실은 말이오" 하고 할리데이 옹이 입을 열었다. "딸에는 플리머스에 가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오. 딸애는 에이번미드 코트의 스완시 공작부인의 저택에서 열리는 하우스 파티에 참석하려 한 것이오. 패딩턴발 12시 14분 기차로 런던을 출발하여 갈아탈 역인 브리스톨에 도착한 것이 2시 50분, 플리머스행 급행열차인 본선은 웨스트베리를 경유하니까 브리스톨엔 근처에도 가지 않소. 12시 14분기차는 브리스톨까지는 논스톱이고 그 뒤로는 웨스턴,톤턴,엑서터,그리고 뉴턴 애보트 에 정거하지요. 딸애는 브리스톨까지 예약해 둔 객실에서 혼자 있었고,하녀는 다음칸에 있는 3등객실에 타고 대기하고 있었소." 포와로가 고개를 끄덕이자 할리데이 씨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에이번미드 코트의 파티는 무도회가 대여섯 번이나 열리는 상당히 호화판으로 벌릴 예정이었다오. 그래서 딸애는 자기 보석을 거의 전부 가지고 갔소. 그 가격은 적어도 10만달러는 될 게요." "잠깐만요."하고 포와로가 말을 가로막았다. "어느 분이 그 보석을 보관하고 있었나요,따님이었습니가, 아니면 하녀였습니까?" "언제나 딸애는 자기가 보관하지요. 파란 모로코 가죽의 조그만 케이스에 넣어 가지고." "계속하십시오,무슈." "브리스톨에서 하녀인 제인 메이슨은 맡아가지고 있던 딸애의 의상 가방과 숄을 챙겨가지고 플로시의 객실 문앞으로 갔지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딸애가 브리스톨에서 내리지 않고 좀 더 가겠다면서 메이슨에게 짐을 내려서 역 구내에 있는 임시보관서에 맡기라고 지시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내식당에서 차라도 마시면서 기다리고 있으면 자신은 오후의 상행열차로 되돌아오겠다고 했다더군요. 하녀는 너무 뜻밖이라 좀 놀라기 ㄴ했지만 명령대로 따른 게지요. 짐을 임시보관소에 맡기면서 차를 마시고 있었겠지요. 그러나 상행열차가 여러번 도착했는데도 딸애가 돌아오지 않은 거요.그래서 막차가 도착한 뒤에 메이슨은 가방을 그냥 맡겨둔 채 그날 밤은 역 가까이에 있는 호텔에서묵은 겁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이 되어 이 참사를 신문에서 읽고는 허둥지둥 런던으로 돌아왔다는 게요." "따님의 갑작스러운 계획변경을 설명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까?" "아니,이런 일이 있었소. 제인 메이슨의 말로는 브리스톨에 도착했을 때 객실 안에 플로시 혼자 있지는 않았다고말이오. 한 남자가 서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는게요. 메이슨은 그 남자의 얼굴은 보지 못했다는군요." "그 기차는 복도가 한쪽으로만 죽 붙어 있었겠죠,물론?" "그렇소." "그러면 그 복도는 어느 쪽에 붙어 있었습니까?" "플랫폼 쪽이었소. 딸애는 메이슨과 이야기 할 때 복도에 서 있었답니다." "그래서 그 예기치 않은 사람과 만난 것이--아,잠깐 실례합니다." 그렇게 말한 포와로는 일어서서 약간 비스듬히 놓여있는 잉크 스탠드를 똑바로 고쳐 놓았다. "실례했습니다." 포와로는 다시 자리에 앉아서 말을 계속했다. "비뚤어진 것이 눈에 뜨면 자꾸만 신경이 쓰여서요. 묘한 버릇이지요. 그런데 제가 말씀드리려고 한 것은,무슈,그 뜻밖에 보게 된 사람이 따님께서 계획변경을 하게된 원인일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것이 유일하고 타당한 가정 아니겠소?" "그 문제의 신사가 누구인지,마음에 짚이는 것은 없으신지요?" 부호는 잠깐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아니--전혀 없소." "그렇다면 시체 발견 당시의 상황에 대해선?" "젊은 해군 장교가 발견해서 즉시 연락했다는군요. 마침 차 안에는 의사가 타고있어서 검시도 했다오. 딸애를 먼저 클로로포름으로 마취를 시켜서 정신을 잃게 한 다음 찔러죽인거라고 합디다. 의사는 사후 약 네 시간 경과되었다고 소견서에 적어 놓았습디다. 그렇게 되면 범행이 저질러진 것은 브리스톨을 출발하고 나서 바로--아마 브리스톨에서 웨스턴 사이가 아니면,웨스턴에서 톤턴 사이가 틀림없을거라고 생각되오만." "그래,보석상자는요?" "그 보석상자가 말이오,포와로 씨,보이질 않소." "한가지 더 물어보겠습니다. 따님의 재산은 돌아가시면 누구의 손에 넘어가게 됩니까?" "플로시는 결혼 직후에 전재산을 남편에게 물려준다고 유언장을 만들었소." 부호는 거기서 잠깐 머뭇거리다가 이야기를 계속 했다. "포와로 씨,이것은 얘기해 두는 게 좋을 것 같은데,나는 사위 녀석이 파렴치하기 짝이 없는 악당이라고 생각하고 있소. 그래서 내 권유로 딸애는 현재 합법적인 방법에 의해서 자유로운 몸이 되기 직전에 있었던 것이오. 그것은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오. 그리고 딸애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남편이 딸애의 돈에 손을 대지 못 하도록 조건을 붙여서 재산을 양도해 두었었소.하지만 지난 몇년동안 그 둘은 완전히 별거를 해 오면서도 나쁜 소문이 나는게 싫은 딸애는 남편이 돈을 요구하면 가끔 주고는 했었던 모양입디다. 그래서 나도 그 문제에 매듭을 지을 결심을 했고,플로시도 결국 거기에 동의했기 때문에 변호사들에게 소송 절차를 밟도록 지시해 두었었소." "그럼,캐링턴 씨는 어디에 계시죠?" "런던에 있소. 분명 어제 시골에 갔다가 밤에 런던으로 다시 돌아왔을 게요." 포와로는 잠깐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이상 더 물어볼 것은 없습니다,무슈," "하녀인 제인 메이슨을 만나보시겠소?" "괜찮으시다면 만나게 해 주시죠." 할리데이가 벨을 눌러서 하인에게 간단히 명령을 내렸다. 얼마뒤에 제인 메이슨이 방으로 들어왔다. 품위가 있고 예리해 보이는 얼굴이었으며 정말로 훌륭한 고용인답게 슬픈 일을 당하고도 그것을 내색하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 "수고스럽지만 한두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소. 돌아가신 마님은 어제 아침 출발 전에 여느 때와 달라보이는 점은 없었소? 흥분해 있었다거나 동요하고 있는 듯한 기색이라도?" "아니,없었어요." "하지만 브리스톨에서는 전혀 다른사람 같았다면서요?" "그렇습니다. 너무 허둥대고 계셨으며 마님 자신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고 계시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안절부절 못하고 계셨어요." "정확히 뭐라고 말씀하셨소?" "예,제가 기억하고 있는것은 대가 이런 것이었어요. '메이슨,난 예정을 바꾸어야겠어. 볼일이 좀 생겼거든--내말은 여기서 내리지 않겠다는 거야. 이대로 더 갈 필요가 있어서말이야. 네가 가방을 들고 내려서 구내의 임시보관소에 맡겨 줘. 그리고 차라도 마시면서 내가 돌아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려 줘.' '여기서 기다릴까요,마님?'하고 제가 물었죠. '그래,역에서 기다려 줘. 다음 기차로 돌아올 테니까. 언제쯤이 될는지 확실히는 모르지만,아주 늦진 않을거야.' '알았습니다,마님'하고 전 말씀드렸습니다. 제 쪽에서 질문을 할 처지는 아니었지만 아주 이상한 기분이 들더군요." "평소의 마님 같지 않았다는 뜻이오?" "예,정말 그랬어요." "당신은 어떤 생각을 했소?" "예,저는 객실 안에 계시던 신사분과 무슨 관계가 있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마님이 그분에게 말을 걸지는 않았지만,한두 번 그 쪽을 보고 이렇게 하면 되겠느냐는 듯이 그분의 의향을 묻고 계신 듯 했거든요." "하지만,그 신사의 얼굴은 못 봤다는 말이지요?" "예,그 동안 계속 제게 등을 보이고 서 있었으니까요." "그 신사의 모습을 설명할 수 있습니까?" "밝은 아기사슴빛 코트에 여행용 모자를 쓰고 있었어요.키는 크고 비쩍 마른 체격에 뒷머리는 검은색이었답니다." "누군지 짐작도 안 갑니까?" "예,모르겠어요." "혹시 주인어른인 캐링턴 씨는 아니었소?" 메이슨은 약간 놀라는 듯 했다. "설마 그렇지는 않겠지요." "그러나 확신이 있는 건 아니죠?" "하긴 키는 주인어른 정도였지만 설마 주인어른이라고는 생각지도 못 했어요.그러나 분명히 주인어른이 아니었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포와로는 양탄자에서 핀을 하느 주워들고는 그것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이 마님의 객실에 가기 전 브리스톨에서 그 남자가 그 기차에 탔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소?" 메이슨은 생각에 잠겼다. "예,아마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제가 있던 객실은 너무 혼잡했기 때문에 밖으로 나가자면 몇 분이나 걸리거든요. 게다가 플랫폼엔 대단한 인파로 붐비고 있어서 더 늦어지고 말았지요. 하지만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 그분이 마님과 이야기한 시간은 고작 1~2분이었다고 생각해요. 물론 복도 쪽에서 오셨겠지만." "대강 그렇게 되었겠지." 포와로는 여전히 눈살을 찌푸리고 입을 다물었다. "마님이 어떤 옷을 입고 계셨는지 알고 계세요?" 하고 메이슨이 말했다. "신문에 대강 나 있더군. 하지만 당신 입으로 직접 듣고 싶소." "마님은 하얀 베일이 붙은 백여우털 모자를 쓰고 계셨어요. 거기에 푸른 프리즈코트와 스커트를 입으셨어요. 형광색이라고들 하는,비치는 방향에 따라 푸르게 보이는 옷이랍니다." "흐흠,그렇다면 상당히 남의 눈에 띄기 쉬운 복장이로군" "그렇소"하고 할리데이 씨가 말했다. "재프 경감도 그것이 범행이 저질러진 장소를 찾아내는 단서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있소. 딸애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하고 있을 테니까." "옳은 말씀입니다. 아,수고가 많았습니다. 마드무아젤." 하녀는 방에서 나갔다. "자!" 포와로는 기세좋게 일어났다. "이것으로 제가 묻고 싶은 것은 다 물었습니다.- 단지 말입니다,무슈- 이번에는 선생님이 모든 것을 빼놓지 않고 말씀해 주셔야겠습니다." "나는 다 말했소." "틀림없습니까?" "틀림없소." "그렇다면 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저는 이 사건에서 손을 떼야겠습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이오?" "선생님이 다 털어놓지 않으시니까요." "나는 분명히--" "아니,선생님은 뭔가 숨기고 있습니다." 잠깐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는 할리데이가 주머니에서 종이 한장을 꺼내 포와로에게 건네 주었다. "당신이 추정하고 있는 건 이거겠군. 포와로씨 하긴 어떻게 해서 이 일을 알고 있는지 난 잘 모르겠소만 말이오." 포와로는 빙긋 웃으며 그 종이를 받아서 펼쳤다. 그것은 가는 필체로 비스듬히 쓴 편지였다. 포와로는 소리를 내어 읽어나갔다. "친애하는 부인, 부인과 다시 만나게 된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더없는 기쁨입니다. 부인의 자상한 답장을 받고부터는 나의 이 뛰는 가슴을 누를 수가 없습니다. 부인이 내일 런던으로 떠난다는 것은 너무 잔인한 일이 아닐까요.하지만 머지않아,그것도 부인이 생각하시는 것보다는 훨씬 빠른 시간 안에 꿈에도 잊지 못할 부인과의 재회의 기쁨을 갖게 되겠지요. 영원히 변치않는 경애의 마음을 다해서 아르망 드 라 로쉬푸르" 포와로는 목례만 하고 할리데이에게 그 편지를 돌려주었다. "무슈,선생님은 따님이 로쉬푸르 백작과 옛날 사이로 되돌아가려고 한 것을 모르고 계셨군요." "정말 청천벽력이었소. 나는 딸애의 핸드백에서 이것을 발견했지요. 당신도 잘 아시겠지만,포와로 씨,백작인가 하는 이 사나이는 성미가 아주 고약하고 여자 문제가 복잡해요." 포와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어떻게 이 편지가 온 것을 당신은 알고 있었는지 궁금한데?" 포와로는 미소지었다. "무슈,저는 몰랐습니다. 하지마 탐정이라는 것은 발자국을 추적하기도 하고 담뱃재를 가려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지요. 탐정은 또한 뛰어난 심리학자여야만 합니다. 저는 선생님이 사위를 싫어하고 그를 믿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따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득을 보는 사람입니다. 조금 전 하녀의 이야기를 통해 그 수수께끼의 인물은 그와 아주 비슷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그의 행적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으시더군요. 왜 그럴까? 그것은 아무리 보아도 선생님의 혐의가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선생님은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이 됩니다." "맞았소,포와로 씨. 이 편지를 발견하게 되기 전까지는 나도 루퍼트가 범인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오. 하지만 이 편지로 그것이 송두리째 흔들리게 된 것이오." "그렇군요. 백작은 '머지않아,그것도 부인이 생각하시는 것보다는 빠른 시간 안에'라고 썼습니다. 그는 분명히 자신이 다시 따님에게 접근하고 있다는 것을 선생님이 눈치챌 때까지 기다릴 마음은 없었던 겁니다. 12시 14분 열차로 런던을 출발하여 기차 복도로 해서 따님 객실로 들어간 남자는 정말로 그 사람일까요? 로쉬푸르 백작도 제가 알기로는 분명히 큰 키에 검은 머리를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만." 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무슈,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런던 경시청에는 잃어버린 보석 리스트가 있겠죠?" "있소. 이제 곧 재프 경감이 이리로 올 때가 되었는데,괜찮으시다면 만나보시오." 재프와 나는 이미 오래 전부터 아는 사이이다. 그는 존경하면서도 달갑지 않은표정으로 포와로에게 인사했다. "건강하시군요,포와로 씨. 우리는 사건에 대한 견해 차이는 있습니다만,그렇다고 해서 서로 나쁜 감정이 있는 건 아니죠. '회색 뇌세포'는 어떻습니까,예? 여전히 건재하시지요?" 포와로는 빙그레 웃었다. "자기 소임은 다 하고 있다네,재프. 그 점은 염려 놓으시게."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그런데 범인은 루퍼트 경일까요,아니면 다른 악당일까요? 물론 우리는 의심가는 곳에슨 이미 철저하게 경계하도록 수배해 놓았습니다. 범인 또한 그가 누구든 그렇게 언제까지나 보석을 감추어두고 있을 수만은 없을 겁니다. 만일 보석류가 처분된다면 그 사실은 우리의 귀에 즉시 들어오게 되겠지요. 그런데 그런 일은 당장은 있을 수 없죠. 우선 루퍼트 캐링턴이 언제 어디에 있었는가 현재 조사중입니다. 알리바이에 약간 미심쩍은 부분이 있거든요. 지금 형사를 한 사람 붙여서 계속 감시하고 있습니다." "정말 철저하시군. 그러나 아무래도 하루 늦은 것 가구먼." 포와로는 시치미를 떼고 그렇게 말했다. "농담은 여전하시군요. 포와로 시. 저는 지금부터 패딩턴역으로 가서 브리스톨과 웨스턴,그리고 톤턴으로 가볼 생각입니다. 그럼 실례합니다." "오늘밤 내게 그 결과를 알려주지 않겠나?" "좋습니다. 만일 돌아오게 된다면요." "저 경감은 돌아다녀야만 좋은 결과를 얻게 된다고 믿고 있거든." 재프가 나가자 포와로는 이렇게 중어거렸다. "현장에 간다,발자국 크기를 잰다,흙과 담뱃재를 모은다 그런 일로 법석을 떨지. 신경이 온통 그 일에만 곤두서 있거든. 그렇기 때문에 만일 내가 심리학이라도 들고 나서면 그가 뭐라고 하는지 아나? 그는 빙긋 웃겠지. 그리고 혼잣말을 할 거야. 불쌍한 포와로! 나이는 어쩔수가 없군! 그도 이젠 다 됐어! 하고. 그러면서 재프 자신은 '새시대에 문을 두드리는 젊은 세대'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러나 가엾게도 그는 그 문이 이미 열려있는 것도 모르고 열심히 노크하고 있다네." "그럼 이젠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리들은 백지위임을 받은 것이니까 3펜스를 들여서 리츠 호텔에 전화를 해보자고.거기에 그 백작이 묵고 있다는 이야기니까. 그것이 끝나면 다리도 좀 지쳤고 재채기도 두어번 나왔으니 내 방으로 돌아가 내 손으로 알콜램프를 켜서 약이라고 닳여 먹어야겠어." 그 뒤로 나는 다음날 아침가지 포와로와 만나지 못했다. 그 다음날 아침가서 보니 그는 태연히 앉아서 아침식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무슨 일이 있었나요?" 나는 열심히 그의 눈치를 살피며물었다. "아무 일도 없었네." "하지만 어제 재프는?" "그와 만나지 않았네." "백작은?" "엊그제 호텔을 떠났어." "바로 살인이 일어난 날이군요." "그렇다네." "그렇다면 알겠군! 남편인 루퍼트 캐링턴은 혐의가 없어요." "로쉬푸르 백작이 리츠 호텔을 떠났기 때문인가? 자네는 아무래도 결론이 너무 성급해." "여하튼 백작을 미행하고 있으니 체포될 것이 분명해요. 하지만 동기는 뭘까요?" "10만달러의 보석이라면 누구에게나 충분한 동기가 되지. 그러나 내 자신에게 묻고있는 의문은 이런거야. 괘 그녀를 죽였을가? 왜 보석만을 훔치지 않았을까? 설령 보석을 훔쳐간다고 해도 그녀가 신고하지는 못할 텐데 말이야." "그건 또 무슨 말씀입니까?" "여자이기 때문이야. 그녀는 옛날에 한때 그를 사랑한 적이 있었어. 따라서 보석을 잃어버려도 입을 다물고 참을 수밖에 없지. 게다가 백작도 여자에 대해선 일류 심리학지이니까 이것이 그의 성공의 비결이지만. 그러니,그런점은 잘 알고 있을 거야. 한편,만일 루퍼트 캐링턴이 그녀를 죽였다고 하면 왜 보석을 훔쳤을까?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될 텐데 말이야." "범행을 감추기 위한 짓이겠죠." "어쩌면 자네 말이 옳을지도 몰라. 잠깐,재프가 왔군. 그의 노크 소리에는 버릇이 있거든." 경감은 기분좋은 듯이 웃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포와로 씨. 이제 막 돌아오는 길입니다. 일 한가지를 끝내고 왔지요. 당신은?" "나 말인가? 나는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네." 포와로는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재프는 신난다는 듯이 소리내어 웃었다. "나이를 이기는 장사는 없군요." 하고 소리를 죽여 내게 말하고는 큰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그런 일은 우리들 젊은 사람에게는 별로 도움이 안 됩니다." "도움이 안된다고?" 포와로가 다시 물었다. "그럼,제가 한 일을 들어보시겠습니까?" "내가 한 번 맞춰볼까? 자네는 범행에 사용된 칼을 웨스턴과 톤턴 사이의 기차 선로변에서 발견했겠지. 그리고 웨스턴에서는 캐링턴 부인과 말을 주고받은 신문팔이 소년을 만났을 게고." 재프의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대체 그걸 어떻게 아셨지요? 또 그 전지전능한 회색 뇌세포 덕분이라고는 하지 마십시오." "자네가 결국 인정해 주었다는 것은 기분좋은 일일세. 그래,그 부인이 신문팔이에게 팁을 1실링쯤 주었다던가?" "아닙니다. 반크라운(2.5실링)이었습니다." 재프는 평정을 되찾고 싱긋 웃었다. "그런 미국 부자들은 돈 씀씀이가 대단하거든요." "그래서 신문팔이는 부인에 대한 것을 특별히 잘 기억하고있었던 게로군." "맞는 말씀입니다. 반 크라운이라니! 그리 쉽게 얻어지는 팁이 아니니까요.부인은 소년을 불러서 잡지를 두 권 샀더군요. 잡지 하나에는 표지에 파란색 옷을 입은 여자 사진이 실려 있었습니다. '이런 것이 내겐 어울려'하고 부인은 말했답니다. 그래서 소년은 부인에 대해서 아주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답니다. 자,이렇게 되면 내겐 이미 충분합니다. 의사의 검진에 의하면 범행은 톤턴 도착 이전에 저질러졌다더군요. 나는 범인이 범행 뒤에 곧 칼을 버렸을 것으로 보고 그것을 찾으려고 기차 선로를 따라 걸었습니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가 발견되더군요. 톤턴에서 범인에 대한 것을 물어보긴 했습니다만,하긴 워낙 큰 역이라 역원이 눈치채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요. 범인은 아마 다음 기차로 런던으로 돌 아갔겠지요." 포와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강 그렇게 되었겠지." "하지만 제가 돌아와서 다른 정보를 하나 얻었습니다. 범인들은 역시 보석을 처분한 것 같습니다. 어젯밤 커다란 에메랄드가 전당포로 나왔거든요. 맡긴 사람은 경찰이 의심하고 있었던 패거리 중 하나입니다. 대체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난 모르겠네. 체격이 작은 사나이일 거라는 것 말고는." 재프의 눈이 동그래졌다. "정말 제대로 맞췄습니다. 아주 작은 사나이입니다. 레드나키였지요." "레드 나키가 누굽니까?"내가 물어보았다. "뛰어난 보석도둑이지요. 살인도 가리지 않는답니다. 언제나 그레이시 키드라는 여자와 짝이 되어 일을 벌이는데,이번에는 여자가 가담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녀가 장물 나머지를 가지고 네덜란드로 날아버리지 않았다면 말입니다." "나키를 체포한 거로군요." "하고말고요. 하지만 우리가 잡아야 할 것은 다른 사람입니다. 캐링턴 부인과 기차에서 함께 있었던 사나이 말입니다. 그 사나이가 이번 일의 장본인인 것이 확실하니까요. 하지만 나키는 입을 열어 공범을 배신하진 않겠지요." 포와로의 눈이 짙은 녹색이 되는 것을 나는 보았다. "아무래도--" 하고 포와로가 부드럽게 말했다. "자네를 위해서 나키의 공범인가 하는 녀석을 찾아줄 수 있을 것 같군." "그 언제나처럼 문득 떠오른 생각으로 말입니까?" 재프는 포와로에게 날카로운 시선을 던졌다. "어쨌든 당신 연세로 범인을 가려낼 수가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물론 언제나 그런 건 아니겠지만." "그럴지도 모르지." 포와로는 중얼거렸다. "헤이스팅스,내 모자와 솔을 가져다주지 ㅇ낳겠나? 참! 아직도 비가 오고 있으면 오버슈즈(비올 때에 구두 위에 덧신는 신발)도. 약까지 먹었는데 조심해야지. 그럼 또 보세,재프." "성공을 빌겠습니다,포와로 씨." 포와로는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타고 운전사에게 파크레인으로 가자고 했다. 할리데이의 저택 앞에 차가 멈추자 포와로는 재빨리 뛰어내려 운전사에게 돈을 지불하고는 벨을 눌렀다. 문을 열어준 하인에게 낮은 목소리로 포와로가 방문한 이유를 말하자 두 사람은 곧 위층으로 안내되었다. 그리고 그 저택의 가장 위층까지 올라가서 조용하고 자그마한 침실로 인도되었다. 포와로의 시선은 실내를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마침내 조그마한 검은 트렁크에 고정되었다. 포와로는 그 앞에 구부리고 앉아 붙어 있는 라벨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구부러진 철사를 꺼냈다. "할리데이 씨에게 수고스럽지만 이리로 와 주십사고 전해 주시오." 포와로는 어께 너머로 하인에게 말했다. 하인이 나가자 포와로는 익숙한 솜씨로 철사를 트렁크의 열쇠구멍에 꽂고는 이리저리 돌렸다. 마침내 자물쇠가 열리고 그는 트렁크의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있는 옷가지를 휘저어 마룻바닥 위에 펼쳐놓았다. 층계에서 무거운 발소리가 들리고 할리데이 씨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대체 뭘 하는 거요?" 눈이 휘둥그래진 할리데이가 물었다. "무슈,이것을 찾고 있었지요." 포와로는 트렁크에서 푸른 프리즈 코트와 스커트,거기에 백여우털로 된 조그만 여자용 모자를 꺼냈다. "제 트렁크를 어쩌자는 건가요?" 내가 뒤돌아보니 하녀인 제인 메이슨이 방안에 들어와 있었다. "헤이스팅스,그 문을 닫아주게. 고맙네. 그럼 문을 등지고 서주게. 자,할리데이 씨,그레이시 키드를 소개합니다. 일명 제인 메이슨이라고도 하지요. 이 여자는 조금 뒤에 재프 경감에게 호송되어 공범인 레드 나키와 다시 만나게 될 겁니다." 포와로는 천만의 말씀이라는 듯이 한 손을 저었다. "아주 간단했습니다."그렇게 말하고 그는 철갑상어 알젓을 집었다. "그 하녀가 처음부터 여주인의 복장에 너무 집착하는 것 같아서 난 이상하다고 생각했지요. 무슨 이유로 우리들의 주의를 그 쪽으로 끌게 하려고 애쓰고 있는가,그리고 브리스톨에서 객실에 있었다는 그 의문의 남자에 대한 것은 하녀의 증언뿐이라는 점을 나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의사의 검진 증언으로 미루어보아 캐링턴 부인은 브리스톨 도착 이전에 살해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하녀가 공범임이 틀림없지요. 그리고 만일 공범이라고 한다면 그녀는 그 점을 그녀 자신의 증언만으로 안심하고 있을리가 없는 거지요. 캐링턴 부인의 복장은 상당히 사람 눈을 끄는 것이었습니다. 하녀는 보통 여주인이 입는 의상에 대해서 꽤 참견을 하는 법이지요. 그런데 브리스톨을 지난 뒤에 만일 누군가가 푸른 코트와 스커트,거기에 백여우털로 된 모자를 쓴 여인은 보았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자기가 캐링턴 부인을 목격했다고 서슴지 않고 증언하겠죠. 나는 사건을 재구성해 보기로 했습니다. 하녀는 여주인과 똑같은 복장을 준비했을 겁니다. 그녀와 공범자는 런던과 브리스톨 사이에서 캐링턴 부인에게 클로로포름을 맡게 하고는 찔러죽인 것이지요. 그것도 아마 터널을 지날 때를 이용했겠죠.그리고 시체를 좌석 밑에 밀어넣고는 하녀가 여주인으로 둔갑합니다. 웨스턴에서는 사람들 눈에 뜨일 필요가 있으니까요. 어떻게 했을까요? 신문팔이 소년을 이용한 겁니다 그에게 팁을 넉넉히 주어서 자기의 인상을 강력히 심어준 거지요. 그리고 두 권의 잡지 중 한권의 표지에 해한 이야기를 함으로써 자신의 복장에 주의를 끌게 했습니다. 웨스턴을 출발해서 창밖으로 칼을 버리고 마치 그 지점에서 범행이 일어난 것처럼 보이게 하고는 자기 옷으로 갈아입었거나,아니면 그 복장 위에 긴 레인코트를 걸쳤겠지요. 그 담에는 톤턴에서 내려서 되도록 빨리 브리스톨로 돌아왔습니다. 거기에는 공범자가 짐을 임시보관소에 보관해 두고 있었겠지요. 그자는 보관함 짐표를 그녀에게 건네주고 자신은 런던으로 되돌아갔습니다.여자는 사람을 기다리는 척하며 플랫폼에 남아서 자신의 역할을 해내고는 그날밤 호텔에서 묵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그녀는 자기 말마따나 런던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재프가 조사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그가 나의 추리를 모두 뒷받침해 주었지요. 게다가 유명한 악당이 보석을 전당포에 맡긴 사실가지도 가르쳐 주었습니다. 나는 그것이 누구이든 제인 메이슨이 진실한 남자와의 모습과는 완전히 반대일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그자가 언제나 그레이시 키드와 한패가 되어 일하는 레드 나키라는 사나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어디로 가면 그 여자를 찾아낼 수 있는지를 알았지요." "그러면 백작은?" "백작에 관한 것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 사건과는 아무 관계도 없다는 확신이 더 강해졌습니다. 이 신사는 살인같은 위험한 짓을 하기엔 너무도 신중한 사람이지요. 그의 성격과는 도저히 들어맞지 않습니다." "포와로 씨" 할리데이가 말했다. "정말 감사하오. 점심식사 뒤에 수표를 떼어드리긴 하겠지만 그것만으론 당신에게 진 빚을 도저히 다 갚을 수가 없을 것 같구려." 포와로는 겸손하게 미소지으며 나에게 이렇게 소곤거렸다. "공식적으로는 재프에게 꽃다발을 들려주지. 재프가 그레이시 키드를 잡긴 했지만,미국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이 나는 그를 한방 먹인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