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탈리아 귀족의 모험 ◀ ◀ The Adventure of the Italian Nobleman 포와로와 나에게는 절친한 친구가 많이 있다. 호커 박사도 그중 한 사람인 데, 그는 가까이에 살고 있는 의사이다. 때때로 저녁 어스름한 때 찾아와서 포와로와 잡담을 나누는 것이 이 의사 의 습관으로, 그는 포와로의 뛰어난 재능에 대한 열렬한 예찬자이다. 호커 박사는 솔직하고 다른 사람을 의심할 줄 모르는 사람이어서, 자신에게 없는 재능에 감복하고 있는 것이다. 6월초의 그날 밤도 그는 8시 반경에 찾아오더니, 그냥 주저앉아 비소 중독 범죄가 늘어나고 있다고 하는 재미있는 화제로 열심히 이야기 꽃을 피웠다. 15분 정도 지났을 무렵이라고 생각되는데, 우리들이 있는 방문이 덜컥 열 리더니, 머리를 흐트러뜨린 여자가 황급하게 후다닥 소리를 내며 뛰어들었다. 아, 박사님, 여기 좀 있게 해주세요! 너무나 무서운 소리가 들렸습니다. 너무나 깜짝 놀라서요, 정말. 나는 지금 들어온 여자가 호커 박사집의 가정부인 라이더 양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 의사는 독신으로 두세 골목 건너 저편의 어두컴컴한 옛날 집에 서 살고 있었는데, 항상 진지하던 라이더 양이 지금은 반쯤 광란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어떤 무서운 소린데? 누가 그런 소리를 냈지? 도대체 뭐라고 하던가? 전화예요, 박사님. 제가 전화를 들자......무슨 소리가 들리며 이런 말이 나오는 거에요. 도와 주십시오, 선생님...도와 주십시오. 저 녀석들에게 죽을 것 같아요. 라고요. 그리고는 점점 목소리가 가늘어지더군요. 당신은 누구세요? 누구신데요? 라고 제가 물었습니다. 그러자 대답을 하더군요. 하지만, 마치 속삭이는 듯했어요. 포스카틴 ----이라고 한 것 같아요---- 리젠트 코트 라고도 하던데요. 의사는 깜짝 놀라 외쳤다. 포스카티니 백작이야! 그는 리젠트 코트에 플랫식 아파트를 가지고 있어. 빨리 가야겠는걸.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댁의 환자입니까? 하고 포와로가 물었다. 2-3주일 전에 몸의 상태가 좀 안 좋다고하여 진찰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탈리아 인입니다만, 영어는 아주 능숙하게 합니다. 그럼, 포와로 씨, 만일...... 그는 말을 꺼냈다가 얼른 입을 다물었다. 말씀하시려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포와로는 빙긋이 웃으면서 말했다. 기꺼이 함께 가죠. 헤이스팅스, 한발 먼저 나가 택시를 잡아 오지 않겠나? 택시란 놈은 이쪽이 급할 때는 좀처럼 잡히지 않는 법이다. 하지만, 간신 히 한 대를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들은 곧바로 리젠트 코트 쪽으로 차를 달렸다. 리젠트 코트는 세인트 존스 우드 로(路)를 지나 금방 나타나 는 곳에 있는, 최근의 아파트가 최신식의 공법으로 지어져 있는 곳이었다. 홀에는 아무도 없었다. 의사는 충분히 기다렸다는 듯이 엘리베이터의 벨을 눌러 엘리베이터가 내려오자 갑자기 제복을 입은 보이에게 물었다. 11호실, 포스카티니 백작이 있는 곳인데, 떠들썩한 일이 있진 않았소? 보이는 눈이 휘둥그래져서 그를 바라보았다. 금시초문인데요. 게다가, 포스카티니 백작님의 하인인 그레이브스가... 30분 정도 전에 밖으로 나갔습니다만, 그때는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그러면, 방에는 백작 혼자만 계신단 말이오? 아닙니다. 저녁식사 때 손님이 두 분 오셨습니다. 어떤 모습이었소? 나는 다그치듯이 물었다. 이것은 모두 11호실이 있는 3층을 향해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의 이 야기였다. 제가 직접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외국인이었다고 합니다. 보이가 쇠문을 열어 주자 우리들은 복도로 나왔다. 11호실은 바로 맞은편 에 있었다. 의사가 벨을 눌렀지만 아무런 대답도 없었고,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의사는 계속 벨을 눌렀다. 안에서 벨이 요란하게 울리고 있는 것이 들리는데도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이건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데. 라고 의사는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엘리베이터 보이를 돌아보았다. 이 문의 마스터 키는 없소? 밑의 수위실에 있습니다. 그럼, 갖고 오겠소? 그리고, 가능하다면 경관도 부르는 편이 낫겠구면. 포와로도 그것이 좋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보이는 곧바로 되돌아왔는데, 지배인도 함께 왔다. 말씀 좀 묻겠습니다. 도대체 어찌 된 일로? 포스카티니 백작으로부터 누군가에게 습격을 당해 죽을 것 같다고 하는 전화가 왔었습니다. 한시도 지체할 수 없소, 빨리! 지배인은 그대로 아무 말 없이 열쇠를 돌렸고, 우리들은 방으로 들어갔다. 처음에 들어간 곳은 작은 사각형의 응접실 겸용의 홀인데, 오른쪽 문이 반 쯤 열려 있었다. 지배인은 그쪽을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식당입니다. 호커 박사가 선두에 서고 우리는 곧 그 뒤를 따랐다. 방에 들어가자 나는 갑자기 목히 확 막혔다. 한가운데의 둥근 테이블 위에는 식사하다 남은 것 이 놓여져 있었고, 삼각 의자는 뒤로 밀려져 있어서 거기에 앉아 있던 사람 이 방금 자리에서 일어선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난로의 오른쪽 구석에 커다 란 책상이 있고 한 사람이---아니, 사람이었던 물체가 그곳을 향해 앉아 있 었다. 오른손을 전화기에 댄 채로 뒤통수를 얻어맞고 엎드려 있었다. 흉기 는 찾을 필요조차도 없었다. 대리석 상이 황급하게 제자리로 놓인 듯한 상 태로 되어 있고, 그 위로 피가 얼룩져 있었다. 의사의 검진은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완전히 숨이 끊겼소.즉사에 가까웠을 것 같습니다. 용케도 전화를 걸었 군. 경관이 올 때까지 움직이지 앟는 것이 좋을 것 같소. 지배인의 안내로 우리는 각 방을 뒤졌지만, 역시 예상한 대로였다. 범인들 은 부지런히 도망을 쳤을 테니, 어딘가 숨어 있을 리도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식당으로 되돌아왔다. 포와로는 우리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그는 방 한가운데의 테이블을 열심히 조사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곁으로 갔다. 그것은 아주 멋진 빛깔을 띠고 있는 마호 가니 재(材)의 둥근 테이블로서, 한가운데에는 화병에 꽃힌 장미가 놓여 있고, 새하얀 레이스의 화병 받침이 번쩍번쩍하는 테이블 표면에 새초롬히 놓여 있었다. 과일이 한 접시 나와 있는데, 디저트는 세 접시 모두 손도 대지 않았다. 마시다 남은 커피 잔이 세 개---우유를 넣지 않은 것이 두 개며, 하나는 우유가 넣어져 있었다. 세 사람 모두 포도주를 마신 것 같고, 반쯤 들어 있 는 병이 한가운데 접시 앞에 놓여 있었다. 세 사람 중 한 사람은 궐련을 피운 것 같은데, 나머지 두 사람은 시가를 피웠다. 궐련과 시가가 들어 있 는 담뱃갑은 은으로 된 쇠붙이를 붙인 상자였는데, 열린 채로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이렇게 하나하나 살펴보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나의 상황 판단에는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포와로는 무엇을 보며 그렇게 골똘해 있는지 궁금해 져서 그에게 물어 보았다. 포와로가 대답했다. 헤이스팅스, 자네는 중요한 것을 빠뜨리고 있어. 나는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을 찾고 있는 거야. 무엇을요? 실수......아주 약간의 실수 말이야......범인이 저지른 실수. 그는 재빨리 옆의 좁은 부엌으로 가서 안을 들여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잠깐만--- 그는 지배인에게 말했다. 미안합니다, 이 아파트에서 식사를 제공해 주는 방식을 알고 싶습니다만. 지배인은 벽에 붙어 있는 작은 해치식 문으로 걸어갔다. 여기에 식사를 들어올리고 내리고 하는 장치가 있습니다. 옥상의 요리실 로 연결되어 있지요. 이 전화로 주문하면 식사가 한 그릇씩 승강기로 내려 집니다. 식사를 마친 식기류도 이것으로 들어 올려지지요. 보이들을 시키 지 않아도 되고, 또 일일이 밖에 나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해야 하는 번 거로움도 줄일 수 있지요. 포와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오늘 저녁에 사용한 식기류는 위의 요리실에 있겠군요. 거기에 가보아도 괜찮겠습니까? 예, 일이 있으시다면 물론이고말고요. 안내를 해서 그곳에 있는 사람을 소개해 드릴 수 있도록 엘리베이터 보이인 로버트에게 일러 놓겠습니다. 그러나, 도움이 될만한 걸 찾아내실지 모르겠군요. 거기에서는 몇백 개나 되는 식기류를 취급하고 있고, 또 모두 한꺼번에 정리해 두고 있어서요. 그러나, 포와로는 역시 가보겠다고 말했기 때문에, 우리들은 모두 요리실 로 가서 11호실에서 주문받은 남자를 만나 보았다. 주문은 일급 요리 메뉴에서 고른 것이었으며 3인분이었습니다. 라고 그 남자가 설명했다. 쥘리엔 수프(잘게 썬 당근, 파 등을 넣은 수프), 노르망디 넙치, 등심살 요리에 쌀을 넣은 수플레입니다. 시간 말입니까? 정각 8시경이었습니다. 아니, 그 식기류는 이미 전부 씻어 버렸을 겁니다. 안됐군요, 지문이 문제 겠죠? 꼭 그렇지는 않소. 포와로는 미소를 띠고서 말했다. 포스카티니 백작의 식욕이 문제라오. 자기 몫의 식사는 전부 끝냈는가요? 예, 하지만 한 접시 중 어느 정도 먹었는지를 물으신다면 확실하게 대답 할 수 없습니다. 작은 접시는 조금 남아 있었고, 큰 접시의 요리도 전부 치워져 있었습니다......쌀을 넣은 수플레만이 특이하게 꽤 많이 남아 있었 지요. 흐음! 하고서 포와로는 말했지만, 꽤나 만족한 듯 보였다. 한 번 더 백작의 방으로 내려가는 도중에 그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이번 상대는 상당히 머리가 좋은 녀석이야. 범인 말입니까? 아니면, 포스카티니 백작 말입니까? 백작은 아주 꼼꼼한 신사였던 게 틀림없어. 도움을 요청하고 죽음이 임박 한 것을 알린 뒤에도, 똑바로 수화기를 제자리에 돌려놓았을 정도니까 말 이야. 나는 깜짝 놀라 그를 보았다. 그의 지금 말도 그렇고, 아까 그가 요리실에 서 물은 것도 그렇고, 나는 그저 무엇인가 어렴풋이 이해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독살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군요? 나는 작은 소리로 물었다. 머리를 내리친 건 속임수였겠죠? 포와로는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백작의 방으로 돌아와 보니 그 동네 경찰의 경감이 형사를 둘 데리고 와 있었다. 경감은 우리들이 온 것을 보고 접근을 막으려 했지만, 포와로가 경시청 친구인 재프 경감의 이름을 들어 설명했기 때문에 우리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마지못해 승낙했다. 어떻든 우리들에게 있어선 행운이었다. 그리고 나서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당황한 중년 남자가 비탄과 경악으로 어 쩔 줄 몰라하는 모습으로 뛰어들어왔다. 이 남자는 포스카티니 백작의 하인 겸 집사를 맡고 있는 그레이브스였다. 그의 이야기는 너무나 놀랄 만한 것이었다. 전날 아침, 두 사람의 신사가 주인을 찾아왔다. 두 사람 모두 이탈리아 인으로, 연상의 남자는 40대 정도이며 아스카니오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고, 연하의 남자는 24세 정도에다 옷차림이 좋았다. 포스카티니 백작은 그들의 방문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 같았고, 곧이어 사소한 심부름으로 그레이브스를 내보냈다. 거기까지 이야기하더니, 그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이윽고 입을 다시 열어 이렇게 말했다. 그는 그 모임의 목적에 의심을 품었기 때문에 곧바로 심부름하러 가지 않고, 이 야기의 내용을 조금이라도 들으려고 꾸물거렸다는 것이다. 대화는 아주 낮은 목소리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생각만큼 들을 수는 없었 지만, 무언가 금전상의 이야기였으며, 더구나 그것이 협박이라는 것을 추측 할 수 있었다. 대화하는 모습도 결코 온화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마지막에 백작이 약간 언성을 높였기 때문에, 이러한 말이 확실하게 그레이브스의 귀 에 들어왔다. 이봐요, 지금은 이 이상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할 시간이 없소. 내일 밤 8 시에, 식사를 하러 와서 한 번 더 이야기해 봅시다. 대화를 엿듣는 건 안 좋겠기에 그레이브스는 심부름을 마치기 위해 급히 외출했다. 오늘밤 두 사람은 정확히 8시에 왔다. 식사중 세 사람은 정치나 날씨나 극단 따위의 두루뭉실한 이야기만 주고받았다. 그레이브스가 포도주 를 테이블 위에 놓고 커피를 다 나르자 주인은 그에게 오늘밤은 쉬라고 말 했다. 손님이 오면 항상 그렇소? 하고 경감이 물었다. 아니오, 그런 일은 없습니다. 제 생각입니다만, 아주 중요한 일로 손님 들과 나눌 이야기가 있었던 게 틀림없습니다. 이것으로 그레이브스의 이야기는 끝났다. 그는 8시 반경 외출했다가 친구 를 만나서는 함께 에지웨어 로(路)의 메트로폴리턴 뮤직 홀에 갔다고 했다. 두 손님이 돌아가는 것이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범행 시간은 분명히 8시 47분으로 단정되었다.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소형 탁상시계가 포스카티니의 팔에 의해 마루로 떨어지는 바람에 시간이 멈춰져 있었는데, 그 시간은 라 이더 양이 전화를 받은 시간과도 일치되었다. 경찰 의사의 시체 부검이 끝났기 때문에, 시체는 긴 의자에 눕혀 있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시체의 얼굴을 보았다. 올리브 색의 얼굴, 긴 코, 짙고 검은 수염, 그리고 하얀 이가 반짝반짝 빛나고, 비뚤어진 새빨간 입술, 그 다지 좋은 느낌을 주는 얼굴은 아니었다. 좋아.....그럼. 경감은 수첩을 닫고서 말했다. 이 사건은 간단한 것 같군. 문제는 그 아스카니오라는 이탈리아 인을 체 포하는 거야. 설마 이 녀석의 주소가 피해자의 수첩에 적혀 있는 건 아니 겠지? 그런데, 아까도 포와로가 말했듯이 포스카티니는 아주 꼼꼼한 남자였다. 작고 정확한 글자로 파울로 아스카니오. 그로스브너 호텔 이라고 정확히 적혀 있었던 것이다. 경감을 황급히 전화를 걸고서는, 싱글벙글거리면서 되돌아왔다. 마침 시간이 딱 맞았군요. 그 녀석은 유럽 대륙으로 도망치려고 열차를 타로 막 나가는 참이었습니다. 자, 여러분, 이곳에서의 일은 대체적으로 끝난 것 같습니다. 대단한 사건이었습니다만, 간단히 끝날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탈리아식 복수극일지도 모르겠군요. 이러한 밝은 전망 속에 헤어져서 우리들은 계단 아래로 내려왔다. 호커 의 사는 너무 흥분해 있었다. 마치 소설 제목 같군요. 너무나 가슴 두근거리는 사건입니다. 이런 것을 책으로 읽었다 해도 믿을 수 없을 것 같군요. 포와로는 잠자코 계속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뒤로 도 그날 밤엔 별로 말을 하지 않았다. 어떻게 된 겁니까, 명탐정 씨, 예? 호커 의사는 그의 등을 치며 말했다. 이번에는 당신의 회색 뇌세포를 일하게 할 필요도 없었나 보죠? 그렇게 생각하고 있나 보군요. 아니, 그렇지 않습니까? 글쎄요, 예를 들면 창문이 있죠. 창문? 하지만 그것은 닫혀 있었는데요. 아무도 그곳을 통해 드나들 수는 없습니다. 나는 창문에는 특히 신경을 쓰고 보았기 때문에 자신있게 말씀 드릴 수 있어요. 그러면, 어째서 당신은 그곳에 신경을 쓰고 보게 되었습니까? 의사가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지었기 때문에 포와로가 황급히 설명을 했다. 내가 말하는 것은 커튼입니다. 커튼을 쳐놓지 않았어요. 그건 좀 이상하 죠. 그리고 커피도 있었습니다. 너무나 진했어요. 그런데, 그것이? 너무나 진했습니다. 포와로는 한 번 더 그렇게 말했다. 동시에 쌀을 넣은 수플레엔 거의 손을 안 댔다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다. 그러면 결국.....어떻게 되리라 생각합니까? 정말 어처구니없군요. 하고 의사는 웃었다. 나를 놀리는 겁니까? 절대로 놀리려는 생각은 없습니다. 내가 진심이라는 것은 이 헤이스팅스 가 알고 있습니다. 그건 그렇지만, 나도 당신이 말하는 것을 잘 모르겠는데요. 나는 솔직히 말했다. 설마, 당신은 그 하인을 의심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죠? 그가 악당들과 짜고서 커피에 독을 넣었을지도 모른다고요. 하지만, 경찰은 그의 알리바 이를 조사하겠다고 했는데? 그건 물론이지.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아스카니오의 알리바이야. 그에게 알리바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그 점이 좀 성가신 문제지. 그러나, 그 점도 이제 곧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네. 그 뒤의 일은 [데일리 뉴스몽거] 지(紙)에 자세히 실렸다. 아스카니오는 체포되어 포스카티니 백작 살해범으로서 기소당했다. 경찰에 체포되자 그는 백작과는 일면식이 없고, 사건이 발생한 날 밤이나 그 전날 아침에도 리젠트 코트 근처에는 전혀 간 적이 없노라고 주장했다. 한편, 나 이어린 남자 쪽은 도무지 행방을 알 수 없었다. 아스카니오는 살인사건이 일어나기 이틀 전에 혼자 대륙에서 건너와 줄곧 그 호텔에 묵고 있었다. 또 한 남자의 소재는 전력을 기울여 수색했지만 결국 밝혀내진 못했다. 그러나, 아스카니오는 재판에 회부되지 않았다. 경창재판 수속중에 이탈리 아 대사가 자진 출두하여 아스카니오가 자신과 함께 사건 당일날 8시부터 9시까지 대사관에 있었다고 증언했기 때문이다. 아스카니오는 석방되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세상 사람들은 이 범죄가 국제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렇고 그렇게 무마된 것이라고 수군거렸다. 이러한 점에 포와로는 이상한 관심을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그가 느닷없이 11시에 손님이 찾아올 텐데 그가 바로 다름아닌 아스카니오라고 말했을 때에는 아무리 담력이 센 나라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상담할 것이 있다고 하던가요? 천만의 말씀. 헤이스팅스, 상담하고자 하는 쪽은 바로 날세. 무슨 일로? 리젠트 코트의 살인사건이지. 그가 범인이라고 하는 증거를 잡으려는 건가요? 한 인간이 살인죄로 두 번이나 재판에 회부될 리는 없네. 상식적으로 생 각해 보도록. 아, 벨이 울리는군. 2-3분이 지나자 아스카니오가 안내되어 왔다---마른 체격의 작은 남자였는 데, 무엇엔가 쫓기는 듯하며 내향적인 눈매를 갖고 있었다. 그는 우뚝 선 채로 수상쩍은 눈초리로 재빨리 우리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살펴보았다. 포와로 씨는? 포와로는 가볍게 자기의 가슴을 두드렸다. 앉으십시오, 아스카니오 씨. 내 편지는 읽으셨겠지요? 나는 이번 사건을 철저하게 씻어 내려고 결심했습니다. 아주 조금만 협조해 주시길 부탁드 리겠습니다. 자, 이제부터 묻겠습니다. 당신은....친구분과 함께....9일 화요일날 아침 포스카티니 백작을 찾아가셔서...... 이탈리아 인은 분연히 말했다. 그런 일은 없습니다. 재판정에서도 맹세했듯이--- 흠......아니, 나는 당신이 위증했다는 느낌이 좀 들어서 말이죠. 협박하는 겁니까? 어이가 없군요! 나는 당신에게서 그런 일을 당할만한 게 없소. 나는 무죄로 석방되었단 말입니다. 그랬죠. 그리고 나 역시 공범자도 아니고 당신을 위협하려는 것도 아닙 니다. 단지 공적인 일로 이러는 겁니다. 공적인 일로! 이 말은 당신의 마 음에는 들지 않을 겁니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말입니다. 그저 단순한 내 생각입니다만, 이러한 것이 내겐 아주 중요한 것들이죠. 자, 아스카니오 씨, 당신으로서는 솔직하게 말씀하시는 수밖에 도리가 없 을 겁니다. 누구의 조종을 받고 영국에 오셨는지 따위의 질문은 하지 않 겠습니다.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으니까......즉, 당신은 포스카티니 백 작을 만나려는 특수한 목적으로 온 거지요. 그 녀석은 백작이 아니오. 이탈리아인은 신음하는 듯한 목쇨로 말했다. 아니, 그의 이름이 [고타 연감](1763년 이래 독일의 고타에서 발행되어 독일어, 불어 2개 국어로 쓰여 있는 연감. 유럽의 왕족 계보 등이 실려 있다)에 실려 있지 않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신경쓰지 마십시오. 공갈로 먹고 사는 친구들은 백작이라는 이름을 종종 사용하니까요. 솔직해지는 게 낫겠군. 당신은 꽤 알고 있는 것 같소. 나는 이 회색 뇌세포를 약간 움직였을 뿐입니다. 그런데, 아스카니오 씨. 당신은 그 피해자를 찾아갔었습니다, 그렇죠? 그렇소. 그러나, 다음날 밤엔 절대로 가지 않았소.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죠. 죄다 얘기하겠소. 이탈리아의 어느 신분 높은 분에 관련된 서류 가 그 악당의 손에 들어간 겁니다.그 녀석은 그 서류와의 교환 조건으로 막대한 돈을 요구했습니다. 나는 그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영국으로 건너 온 거지요. 그리고, 그날 아침 약속대로 그를 찾아갔습니다. 대사관의 젊 은 서기관이 한 사람 동행했죠. 그 엉터리 백작은 내가 예상한 것 이상으 로 합리적인 사람이더군요. 하지만, 그렇다 해도 내가 낸 금액은 막대한 것이었습니다. 실례지만, 지불 방법은? 소액권 이탈리아 지폐로 지불했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주었지요. 그리 고 그는 협박의 무기였던 서류를 건네 주었지요. 그렇게 해서 그 뒤로는 다시는 그를 만나지 않았습니다. 어째서 체포되었을 때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습니까? 나의 미묘한 입장에서 보아, 그 남자와는 전연 관계가 없는 것으로 해 두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날 밤의 일은 어떻게 된 걸까요? 누군가가 내 흉내를 낸 것으로밖에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경찰에선 그 방에는 현금은 전연 남아 있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포와로는 상대방의 얼굴을 바라보며 머리를 흔들었다. 정말 이상한데...... 그는 중얼거렸다. 작은 회색 뇌세포는 누구에게나 있는데, 그 사용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 은 거의 없단 말이야. 아니, 이거 실례했습니다. 아스카니오 씨. 당신의 이야기는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대개 내 상상대로였습니다. 하지만, 일 단 확인할 필요가 있어서 말이죠. 정중하게 손님을 보내고 난 뒤, 포와로는 되돌아와서 싱글벙글 웃으며 나 에게 말했다. 이 사건에 대한 헤이스팅스 대위의 의견을 들어 볼 수 있을까? 글쎄요. 나는 아스카니오의 이야기는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누군가 가 그 사람으로 변장한 겁니다. 그런 식으로밖에 생각 못하나? 하나님께서 큰 맘 먹고 내려주신 머리가 울어요, 울어. 그날 밤 아파트를 나온 뒤에 내가 한 말을 생각해 보게. 창문의 커튼이 쳐 있지 않았다고 말했었지? 지금은 유월이야. 8시에도 밖 은 훤하지. 8시 반경이 되어야만 밖이 어두워진단 말이야. 어때? 뭔가 감 이 잡히는가? 아무리 자네라도 언젠간 알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만, 내 이야기를 계속하지. 커피는 전에도 말했듯이 너무 진했어. 그런데 포스카 티니 백작의 이는 새하얗단 말이야. 커피는 이를 물들게 하는 거지. 그 점으로 보아, 포스카티니 백작은 커피는 전연 마시지 않았다고 생각하네. 그러나, 컵에는 세 잔 모두 커피가 남아 있었어. 포스카티니 백작이 마시 지 않은 것을 어째서 마신 것처럼 보이게 하려 했을까? 나는 어찌 할 바를 몰라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그럼, 지혜의 힘을 빌어 볼까? 아스카니오와 그 친구가....또는 그 두 사람으로 변장한 다른 두 남자가 그날 밤 그 방에 찾아왔다고 하는 증거 는 어디에 있지? 그들이 들어오는 것을 본 사람도 없을뿐더러, 나가는 것 을 본 사람도 없어. 단지 한 사람과 많은 무생물의 증언이 있을 뿐 아닌 가? 무생물이라니? 나이프나 포크, 작은 접시, 그리고 요리를 다 비운 큰 접시. 아니, 그러 나 훌륭한 생각이었어! 그레이브스라는 녀석은 도둑은 아니지만 아주 두뇌 가 명석한 친구야! 그날 아침, 주인의 대화 중 일부를 훔쳐 들은 것만으로 도 아스카니오가 자신의 결백함을 입증하려 해도 그럴 수 없는 입장에 놓 인다는 것을 잘도 간파했기 때문이지. 다음날 밤 8시경 그는 주인에게,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라고 말하지. 포스카티니가 전화 앞에 앉아 수화기에 손을 댔을 때 등 뒤 에서 대리석 상으로 내리치는 거야. 그리고, 곧 구내 전화로 요리실에... 식사를 3인분 시키지! 식사가 왔어......그것을 식탁에 늘어 놓고 접시나 나이프, 포크 등을 사용하는 거야. 그러나, 음식물도 대충 처리하지 않으 면 안 되겠지. 그 녀석은 머리가 좋을 뿐만 아니라, 위장도 튼튼하고 아주 큰 녀석이야.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등심살 요리를 3인분 대충 먹어치운 뒤라면 제아무리 위가 크더라도 쌀을 넣은 수플레에는 항복했던 것 같아. 감쪽같이 속이기 위해 궐련을 한 대, 시가를 두 대 피워 놓았지. 그건 너무 나도 철저했어! 그리고 시계바늘을 8시 47분으로 맞추고 나서 마구 두들 겨서 시간을 멈추게 했지. 그 녀석이 하지 못한 일이 있다면, 커튼을 치는 것을 잊은 것 뿐이야. 정말로 만찬이 있었다면 밖이 어두워지기 시작하게 되면 곧바로 커튼을 쳤겠지. 그리고 나서 그는 방을 뛰쳐 나와 손님이 온 다는 것을 엘리베이터 보이에게 이야기해 두는 거야. 그리고는 공중 전화 로 달려가서 8시 47분경 주인의 숨넘어가는 소리를 흉내내어 의사에게 전 화를 거는 걸세. 그의 계획은 너무나도 기막히게 성공해서, 그 시간에 11 호 실에서 전화가 걸려 왔는지 아닌지조차 조사하는 사람이 없었단 말야. 에르큘 포와로를 제외하고 말이죠? 나는 빈정거리듯이 말했다. 아니, 에르큘 포와로조차도 그랬네. 그는 빙긋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 점은 지금부터 조사해 보려고 하는데, 그전에 우선 자네에게 내 추리 를 이야기해 두지 않으면 안되겠어. 그러나, 아마 맞을 걸세. 그리고, 재 프에게도 벌써 말해 두었네. 그 존경할 만한 그레이브스를 체포할 수 있을 거야. 돈은 어느 정도 써버렸을까? 포와로의 추리는 정확했다. 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언제나 그의 추리는 정확한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