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 지금 내가 올리고 있는 글들은 애거서 크리스트의 '헤라클레스의 모험' 이란 단편집에서 입니다. 그 단편집에는 그리스 신화의 헤라클레스가 풀어야 했던 12가지 모험을 본떠서 임무를 수행하는 것입니다. 제 1편 네메아의 사자에서 잠깐 말씀드렸는데 혹시 중간부터 읽으시는 분을 위해 다시 한번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12개의 단편의 제목을 살펴보면 1.네메아의 사자 =연재끝= 2.레르네의 히드라 =연재끝= 3.아르키디아의 사슴 =연재끝= 4.에라만토스으 멧돼지 5.아우게이아스 왕의 외양간 6.스팀팔로스의 새 7.크레타 섬의 황소 8.디오메데스의 말 9.히폴리테의 띠 10.게리온의 무리 11.헤스페리스의 사과 12.케르베루스를 잡아라 이상입니다.모두 연재할 예정이오니 만이 봐 주세요.... 에라만토스의 멧돼지 스위스에서 헤라클레스 제 3의 모험을 멋지게 마무리한 에르큘 포와로는 이왕 여기 까지 온 김에 지금까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곳들을 찾아 구경이나 해야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샤모니에서 기분좋은 이틀을 보내고,몽트루에서 하룬가 이틀을 어정쩡하게 보낸 다음,그의 친구들이 그렇게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해 마지 않던 앨더매트로 향했다 그러나 그의 기대와는 달리 앨더매트의 첫인상은 그리 썩 좋은 편이 못되었다. 그것은 계곡의 끝에 있었는데 눈을 뒤덮인 거대한 산봉우리들이 마을을 완전히 에워 싸고 있어서 외부세계와는 완전히 단절된 것 같아 보였다.그는 금방이라도 질식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여기서 머무를 순 없어." 하고 에르큘 포와로는 혼자 중얼거렸다.바로 그때 케에블 카가 그의 눈에 띄었다. "그래,저걸 타고 올라가야겠다." 그 케이블 카는 맨 먼저 레 자비레를 거쳐 코로셰를 지난 다음 최고 해발 1만 피트 (약 3km)높이의 로셰 네이지까지를 왕복 운행하고 있었다. 포와로는 그렇게까지 높이 올라가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그의 생각에는 레 자비레가 가장 적당할 듯싶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인생에서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는 우연의 요소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케이블 카가 출발하자 차장이 포와로에게 다가와 표를 보여달라고 했다. 차장은 살펴보고 나서 무섭게 생긴 구멍가위로 표에 구멍을 뚫더니 경례를 한 뒤 그것을 그에게 다시 돌려주엇다.그런데 포와로의 손바닥 촉감이 이상했다.표와 함께 웬 돌돌 말린 종이가 하나 손에 쥐어졌던 것이다. 에르큘 포와로의 눈썹이 위로 약간 치켜올라갔다.그러나 곧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그는 침착하게 그 종이쪽지를 반듯하게 폈다.연필로 몹시 급하게 휘갈겨 쓴 게 분명 했다. 자네의 그 코밑 수염을 몰라볼 리가 있겠나? 자네를 진심으로 환영하는 바이네.자네가 마음만 먹는다면 날 많이 도와줄 수 있을걸세.자네도 샐리 사건은 신문을 봐서 알고 있겠지? 믿을 만한 소식통에 의하면 그 살인범 --마라스코드--이 로셰 네이지에서 그 일당들과 함께 모이기로 했다는거야. 하고 많은 장소들 중에서 하필이면 그곳에서 말일세! 물론 그게 속임수일지도 모르는 일이지.하지만 우리의 소식통은 믿을 만하다네.어디건 항상 밀고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 아닌가? 그래서 말인데,이보게,눈을 좀 크게 뜨고 살펴봐 주게.그리고 그쪽 연락은 현장에 있는 드루에 경감을 통해서 해주게나. 그 사람도 잘하긴 하지.하지만 에르큘 포와로의 그 뛰어난 두뇌에 비할 수가 있겠나? 이보게,마라스코드를 체포하는 일은 정말 중요하다네.그 녀석은 인간 이 아냐---성난 멧돼지지---오늘날 살아 있는 살인범들 중에서도 둘째라면 서러워할 그렇게 흉학무도한 놈일세.앨더매트에서는 일부러 자네를 아는 척 하지 않았네.그건 내 뒤를 미행하는 놈이 있을지도 모르고 또 자네가 단순한 관광객인 것처럼 보여야 활동하기가 더 쉬울 것 같아서 말야. 그럼,멋진 사냥이 되기를 바라네! 옛 친구----르망투유 에르큘 포와로는 자신의 코밑 수염을 조심스레 쓰다듬었다.그럼,에르큘 포와로의 이 코밑 수염을 몰라볼 사람은 없지.그건 그렇고 이건 뭐지? 물론 샐리 사건의 전모는 신문을 통해 이미 알고 있는 터였다.그건 파리 토박이인 유명한 저술가가 무자비하게 살해된 사건이었다.살인범의 신원은 금방 밝혀졌다.마라스코드는 악명높은 경마장 폭련단의 한 일당이었다.그는 다른 수많은 살인 사건에서도 혐의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그래서 이번에는 그 혐의를 철저히 파헤칠 작정이었는데,그가 그만 도망을 쳐버렸던 것이다.경찰은 그가 프랑스를 벗어나 도망쳤다고 보고 유럽 모든 나라의 경찰에다 그의 체포를 협조해 달라고 도움을 청했다. 그런데 마라스코드가 로셰 네이지에서 비밀화합을 갖기로 했다는 것이다. 에르큘 포와로는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그는 난처한 심정이었다.왜냐하면 설선(만 년설의 최저 경계선)보다 더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 것이 로셰 네이지였가 때문이다 그곳에도 천길 만길 낭떠러지 계곡 바위 위에 호텔이 하나 서 있긴 하지만 그곳에서 외부세계를 연결해 주는 것은 케이블 카 하나밖에 없었다.게다가 6월에는 호텔이 문을 열지만 7--8월이 되기 전까지는 거의 손님이 없는 편이었다.따라서 언제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곳이 못 되었다.만약 그곳으로 도망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건 제발로 호랑이 굴 안으로 걸어들어가는 것과 다름이 없다.그런 것을 잘 알고 있 을 악당들이 굳이 그런 장소를 택했다는 것이 포와로는 잘 믿기지가 않았다. 그러나 르망투유가 믿을 만한 정보라고 한 이상 그것은 거의 틀림없을 터였다. 에르큘 포와로는 그 스위스 경찰관을 존경했다.그건 그가 착실한 데다 신뢰할 수 있 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마라스코드가 문명사회와 아주 동떨어진 이곳을 비밀화합 장소로 정한 데는 필시 무슨 이유가 있는 게 분명했다. 에르큘 포와로는 한숨을 쉬었다.이 좋은 휴일에 흉악한 살인범을 추적하게 되리라고 꿈에도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다.안락의자에 않아 두뇌활동을 한다면 모를까,산허리 까지 성난 멧돼지를 쫓아가 함정에 빠뜨리게 하는 일 같은 것은 정말 딱 질색이라고 생각했다. '성난 멧돼지'---이 말은 르망투유가 한 표현이었다.정말 우연의 일치라고나 할까? 그는 혼자 중얼거렸다. "헤라클레스 제 4의 모험,에리만토스의 멧돼지?" 그는 자기와 함께 탄 다른 승객들을 주의깊게 한 사람씩 둘러보았다.그의 맞은편에 있는 미국인 관광객이 한 사람 앉아 있었다.그의 옷차림새나 순박한 표정으로 보나 또 손에 여행 안내서를 움켜쥐고서 연신 바깥경치에 탄성을 발하며 넋을 놓고 있는 폼을 보아,그는 유럽관광을 처음하는 미국 시골뜨기임에 분명했다.얼마 가지 않아 그는 분명히 수다스럽게 말을 늘어놓을 거라고 포와로는 지레짐작했다.그는 주위 경 관에 완전히 도취된 표정이었다. 케이블 카의 다른 쪽에는 키가 크고 회색 머리칼과 커다란 매부리코를 한 약간 특이 해 보이는 용모의 남자가 독일어 책을 읽고 있었는데,음악가나 외과의사의 손가락 처럼 생긴 손가락을 쉴새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좀더 앞쪽에는 똑같은 타입의 남자 세 사람이 타고 있었다.활처럼 휜 다리와 어딘가 모르게 경마광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 셋 다 똑같았던 것이다.그들은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다.아마 모르긴 몰라도 중간에 그들은 낯선 사람에게 카드놀이를 같이하자 고 은근히 권할 것이다.그러면 처음에는 그 낯선 사람이 이기게 되겠지.하지만 얼마 안 가서 그 낯선 사람이 갖고 있던 돈은 모두 털리게 될 것이 뻔한 이치였다. 그러나 그 세 사람 모두 특별히 이상한 점은 없었다.굳이 이상한 점을 하나 꼽으라고 한다면 그건 왜 하필이면 이런 장소에서 카드놀이를 하느냐는 거였다. 혹시 경마장행 열차 안이라거나---아니면 조그만 정기선 안이라면 모른다.그런 광경 은 심심찮게 볼 수 있스니까.그러나 거의 텅 비어 있다시피 한 케이블 카 안에서 카드놀이를 하다니---말도 안되지! 케이블 카 안에는 그들 외에 또 한 사람이 더 있었다.여자였다.키가 크고 피부가 가 무잡잡한 여자인데 아주 미인이였다.그러나 아주 감정이 풍부할 것 같아 뵈는 그녀 의 얼굴이 의외로 아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그녀는 사람들한테 시선도 돌리지 않 고 계속 창 밖의 계곡만 내려다 보고 있었다. 포와로의 짐작대로 얼마 가지 않아 미국인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그는 자기의 이름 이 슈바르츠이며,유럽은 초행인데 경치가 너무나 아름답다고 했다.특히 실론 성(스 위스 제네바 호 부근의 고성)을 보고 감명을 받았으며---과대평가하는 건지는 모르 겠지만---파리는 전혀 도시 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거였다.그리고 폴리 베르 제르와 루브르 박물관,그리고 노트르담에 들러 구경을 했으며,핫 재즈(hot jazz(악 보를 떠나서 즉흥적으로 변곡을 넣은 재즈))를 연주하는 레스토랑이나 카폐는 한 번 도 보지를 못했다고 했다. 또 샹젤리제(파리의 큰 거리 및 그 일대의 일류 상점가)는 너무나 멋있으며,특히 투광조명(건물 등에 여러 각도에서 강한 광선을 비추어 뚜렷이 드러나게 하는 조명) ,환하게 빛나는 분수는 정말 인상깊었다고 했다. 레 자비네 코로셰에서 내린 사람은 아무도 없엇다.그러니까 케이블 카에 타고 있는 승객들은 모두 로셰 네이지까지 올라가려는 사람들임에 틀림없었다. 슈바르츠 씨가 자기가 그곳까지 올라가려고 하는 이유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만년설로 뒤덮힌 산에 한번 올라가 보느 것이 평소 자기의 소원이었다는 것이다.그 리고 해발 1만 피트(약 3km)의 높이면 아주 대만족이라는 것이다.그 정도의 높이라 면 달걀도 익을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말이다. 사람좋은 슈바르츠 씨가 친절을 발휘하며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있는 키가 크고 회색머리의 남자에게 말을 걸어보려고 했지만 그 남자는 코안경 너머로 그를 냉랭하 게 한번 노려보고는 곧 자기가 읽던 책으로 시선을 돌려 버렸다. 그러자 슈바르츠 씨는 상대를 바꾸어 이번에는 그 가무잡잡한 숙녀에게 말을 걸었다 이제 더 멋진 경치를 보게 될 거라면서 말이다. 그녀가 영어를 알아들었느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어쨌든 그녀는 머리를 흔들 더니 깃에 털이 달린 외투 속으로 몸을 움츠렸다. 슈바르츠 씨가 포와로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자 혼자서 여행하는 것을 보면 꼭 무슨 나쁜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들거든요.즉,여자가 여행할 때는 옆에서 지 켜줄 사람이 꼭 필요하다는 거죠." 유럽 대륙에서 만났던 어떤 미국인 여자를 머리에 떠올리면서 에르큘 포와로도 그 말에 동의했다. 슈바르츠 씨는 한숨을 쉬었다.사람들이 모두 냉담하다고 느낀 모양이었다.그의 갈색 눈이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좀 친절하게 대하면 어디가 덧나나? 에리만토스의 멧돼지2 이처럼 세상과 완전히 격리된 곳,좀더 정확히 말해 하늘 바로 아래인 이 높은 곳 에서 프록 코트와 가죽구두로 정장을 한 호텔 지배인의 영접을 받는다는 것은 어딘가 우스꽝스러운 면이 있었다. 지배인은 덩치가 크고 핸섬한 사람으로 예의범절이 아주 깍듯했다.그는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했다. 철이 너무 이른데다가......온수공급장치마저 고장이나버렸다.아직까지 모든 시설이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고 있는데......물론 최선을 다하겠다.호텔 직원도 많이 모자 란 상태이다.이렇게 손님들이 여러 명 한꺼번에 들이닥칠 줄은 몰랐다 등등...... 입에서는 전문가답게 예의가 깍듯한 말들이 술술 흘러나왔지만 포와로가 보기에는 그의 세련된 태도 뒤에는 무슨 말못할 걱정거리가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말을 하는 동안 내내 그는 몹시 불안한 기색이었다.분명 무슨 걱정거리가 있는 모양이었다. 점심은 계곡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길다란 방에서 먹었다.웨이터로는 거스터브 라는 사람 하나밖에 없었는데 아주 능숙하고 솜씨가 좋았다. 그는 사람들 사이를 재빠르게 돌아다니며 식사 메뉴판을 보여주고 식사와 포도주를 무엇으로 정하면 좋을 것인지에 대해 시원시원하게 조언을 해주었다.경마광처럼 보이는 세 남자가 식탁 중앙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그들은 불어로 방안이 떠나가라 웃고 떠들어댔다. 늙은 조지프가 좋지!--- 이봐,그 꼬마 데니스는 어때?---오트유에서 우리를 실망시 킨 그 돼지새끼 같은 말 생각나? 모두 우리 주변에서 아주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었다.정말 이런 장소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란 말이야! 식탁 모서리에는 미모의 그 여자가 혼자 앉아 있었다.그녀는 사람들 쪽으로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식사를 마친 뒤 포와로가 라운지에 앉아 있는데 지배인이 그에게 다가와 친숙한 어조 로 말을 걸었다.호텔을 너무 나쁘게 평가하지 말아달라.때가 아직 되지 않아서 그렇 다.6월말 이전에 여길 찾아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저 숙녀를 봤슬 거다.그녀는 해 마다 여길 찾아오는데 그건 3년 전에 그녀의 남편이 등산을 하다가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아주 금슬이 좋은 부부였는데 정말 안됐다.철이 되기 전에 그녀는 항상 여기에 온다.사람들이 붐비는 때를 피해서.그건 신성한 순례 여행이다.저 나이든 신 사는 비엔나에서 온 유명한 의사인 칼 루츠 박사이다.그는 조용한 휴식을 취하기 위 해 여기 왔다고 한다. "그것 참 평화스러운 얘기군요." 하고 에르큘 포와로가 맞장구를 쳤다. "그럼,저쪽에 있는 저 사람들은요?" 그가 경마광처럼 보이는 세 사나이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 사람들도 휴식을 취하러 여기 왔다고 생각하시요?" 지배인은 어깨를 으쓱했다.그의 눈에 다시 근심어린 빛이 나타났다.그가 애매모호 하게 말했다. "아,관광객들은 항상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어하죠.높은 곳에 있다는 것---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새로워지지요." 그러나 자기 기분은 그렇게 유쾌한 편이 못 된다고 포와로는 생각했다.진작부터 그는 호흡이 가빠진 것을 느끼고 있었다.우스꽝스럽게도 갑자기 동요의 한구절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렇게 높은 세상은 하늘에 떠 있는 찻쟁반과 같죠.' 슈바르츠가 라운지 안으로 들어왔다.포와로를 보는 순간 뉯의 눈이 반짝 빛났다. 그는 당장 포와로에게 다가왔다. "지금까지 그 의사와 얘기를 했는데요.어느 정도 영어로 얘기할 줄 알더군요.그는 유태인인데---오스트리아에서 살다가 나치에 의해 쫓겨났답니다.그 사람들이야 정말 미쳤죠! 그 루츠 박사는 보통 인물이 아닌 것 같 아요.신경과 전문의나---심리학자---뭐,그런 방면의 사람인 모양이에요." 그의 시선이 창 밖만 내다보고 있는 키가 큰 여자한테 가서 머물렀다.그녀는 자신 한테 잔인하기만 한 산을 하염없이 내려다보고 있었다.그는 목소리를 낮추었다. "웨이터한테 저 여자의 이름을 물었더니 그랑디에 부인이라고 하더군요.그 남편이 등산하다가 죽었는데 바로 그 이유로 여기 온다는군요.그녀가 기분전환을 하도록 우리가 도와주면 어떨까요?" 에르큘 포와로가 말했다. "내가 당신이라면 그런 일은 하지 않겠소." 그러나 사람좋은 슈바르츠 씨는 끈질기게 물고늘어졌다.포와로는 그가 그녀에게 가서 말을 걸어 단번에 그냥 퇴짜맞는 것을 보았다.두 사람은 잠시 불빛을 등지고 마치 그림자인 양 함께 서 있었다.여자가 슈바르츠씨보다 키가 더 컸다.그녀는 고개를 뒤로 제쳤다.그녀의 표정은 차갑다 못해 무서웠다. 그는 그녀가 말하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그러나 얼마 있지 않아 슈바르츠가 풀이 죽 은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소용이 없어요." 그가 말했다.그리고 곧 생각에 잠긴 음 성으로 덧붙였다. "우리가 모두 인간이라면 서로 친절하게 대하지 못할 이유가 없 을텐데요.안 그러세요,미스터---제가 당신의 이름을 모르잖아요?" "내 이름은---" 포와로가 말했다. "포와리에요." 그가 덧붙였다. "난 리용에서 온 비단장수지요." "포와리에씨,제 명함을 드릴테니까 만약 파운틴 스피링스에 오시게 되면 꼭 연락을 주십시오." 포와로는 명함을 받아든 뒤,손으로 주머니를 뒤지는 척하다가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내 정신 좀 보게.하필이면 이런 때 명함을 하나도 안 가져왔스니......" 그날 밤 자리에 들기 전에 포와로는 다시 한 번 르망투유의 편지를 주의깊게 읽었다 그런 뒤에 그는 그 편지를 반듯하게 접어 지갑속에 넣어두었다.그리고 침대 속으로 들어가면서 중얼거렸다. "이상하단 말이야---만약 그렇다면......" 에리만토스의 멧돼지3 거스터브라는 웨이터가 에르큘 포와로에게 아침식사로 커피와 롤 빵을 갖다 주었다. 그는 커피가 식었다며 미안해 했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는 정말 뜨거운 커피를 마 실 수 없다는 것을 손님도 아시지요? 슬프게도 물이 너무 빨리 끓어버려서요." 포와로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인간은 자연의 이런 변덕에 인내심을 갖고 순응해야 하지요." 거스터브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손님은 철학자시군요." 그느 문으로 걸 어갔다.그러나 그는 방에서 나가는 대신에 바깥을 재빨리 한번 살펴보고 다시 문을 닫고 침대 옆으로 되돌아왔다. "에르큘 포와로 씨? 전 드루에 경감입니다." "아하!" 포와로가 말했다. "안 그래도 그런 것 같았소." 드루에가 목소리를 낯추었다. "포와로씨,아주 불길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케이블 카에서 사고가 났어요.!" "사고?" 포와로가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무슨 사고죠?"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다행히도 밤에 사고가 일어났으나까요.아마 자연적인 원인에 의한 사고이기가 쉬울겁니다.간밤에 눈사태가 일어났을 수도 있거든요.그러 나 누군가 고의로 고장을 일으키게 했을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그거야 모를 일이죠.어쨌든간에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그 결과는 그걸 수리하려면 여러 날이 걸린다는 겁니다.따라서 우린 그동안 꼼짝없이 여기 갇혀 있어야 합니다 아직 철이 일러서 만약 폭설이라도 내리게 된다면 그때는 저 아랫마을과 연락조차 할 수 없게 되는 거죠." 에르큘 포와로는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그는 부드럽게 말했다. "그것 참 흥미 있 는 이야기군요." 경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우리 소식통이 입수한 정보 가 맞는 것 같군요.마라스코드가 여기서 비밀회합을 갖기로 했다는 것 말입니다.그 녀석은 여기라면 안전하게 모일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에요." 에르큘 포와로가 성급한 목소리로 크게 말했다. "그건 너무 공상적이 얘기지않소?"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드루에 경감이 두 손을 들었다. "상식적으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거든요.하지만 실상이 그런걸요.아시겠지만 그 마라스코드는 아주 엉뚱한 놈 입니다! 내가 보기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놈은 미친 게 틀림없어요." 포와로가 말했다. "미치광이에 살인자라!" 드루에가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별로 놀랄만한 일도 못 되죠.동감입니다." 포와로가 느릿느릿 말했다. "그 사람이 진짜로 여기서 비밀회합을 가진다고 칩시다 그렇다면 마라스코드는 이미 이곳에 와 있다는 말이 됩니다.왜냐하면 지금부터 며칠 간은 교통이 완전 두절되니까." 드루에가 조용히 말했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두 사람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이윽고 포와로가 물었다. "루츠 박사라는 그 사람이 혹시 마라스코드가아닐까요?" 드루에가 머리를 흔들었다.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루츠 박사라는 사람이 실제로 있거든요.신문에서 그의 사진을 본 적도 있는걸요. 아주 유명한 사람이죠 여기있는 사람은 그때 그 사진과 비슷해요." 포와로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마라스코드가 변장술에 능숙하다면 충분히 그 사람 흉내를 낼 수도 있지요." "그야 그렇지요.하지만 그 녀석이요? 난 그 녀석이 변장술에 능숙하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그 녀석은 뱀처럼 음흉하고 교활한 놈은 아닙니다.물불을 가 리지 않고 덤벼드는 잔인하고 사나운 성난 멧돼지지." 포와로가 말했다. "그래도..." 드루에가 재빨리 그의 말을 받았다 "아,예,그 녀석은 경찰망을 피해 다니고 있는 도망자죠.따라서 변장을 해야 숨어지내기가 편리하겠죠.그러니까 변장을 했을 가능성 이 있슬겁니다. 아니 그래 분명할지도 모르겠는데요." "그의 인상착의를 알 수 있소?" 상대방이 어깨를 으쓱했다. "대충.사실은 오늘 베르틸롱(프랑스의 범죄학자)식 인체 측정에 의한 범인을 식별하는 문서와 사진을 저한테 보내주기로 되어 있었는데,그만 제가 알고 있는 거라고는 나이는 30살 가량,키는 보통보다 약간 크며,가무잡잡한 피 부를 갖고 있다는 정도입니다.특별히 눈에 띌 만한 특징은 없는 것 같고요." 포와로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 다 그에 해당될 수 있겠군요.그 슈바르츠라는 미국인은 어때요?" "그건 제가 물어보려던 참이었는데요.당신은 그와 얘기도 나눈데다,미국인이나 영국 인하고 많이 사귀어 보셨을 것 같아서요.얼핏 봐서는 평범한 미국인 관광객처럼 보이더군요.그의 여권도 조사해 봤는데 아무 이상이 없어요.이곳을 여행지로 택한 저의가 좀 의심스럽긴 하지만---어디우리가 여행하는 미국인들의 기분을 예측할 수가 있나요? 당신 생각은 어떠십니까?" 에르큘 포와로는 난처하다는 듯이 머리를 흔들었다. "어떻든 겉으로 보기에는 지나 칙게 친절해서 탈이지 결코 나쁜 사람은 아닌것 같아요.사람을 좀 귀찮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를 위험인물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단 말입니다." 그는 말을 계속 했다. "그 밖에 세 남자가 더 있습니다." 그러자 경감이 갑자기 진지한 표정이 되어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우리가 찾고 있 는 타입의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죠.포와로씨,전 그 사람들이 마르스코드의 일당이라는 것을 맹세할 수도 있습니다.그들이 경마장의 깡패라는 것은 척 보면 알 수 있죠! 그리고 그 셋 중의 한 녀석이 마라스코드일 가능성도 있어요." 에르큘 포와로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그는 세 사람의 얼굴을 다시 머리에 떠올려 보았다.한 사람은 툭 튀어나온 이마와 살찐 턱에 넓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탐욕스럽고 야비해 보이는 얼굴이었다.또 한 사람은 날카롭고 좁은 얼굴과 차가운 눈에 몸이 아주 빼빼 말랐다.나머지 한 사람은 안색이 아주 창백한 친구였 는데 나름대로 꽤 멋을 부린 흔적이 엿보였다. 그래,그 셋 중의 한 녀석이 마라스코드일 수도 있겠지.그러나 왜? 마라스코드가 뭣 때문에 그 두 녀석이 함께 산꼭대기 이 쥐덫속으로 기어들어온단 말인가? 훨씬 더 안전하고 그럴듯한 장소에서 만날 수도 있었을 텐데.카페나 기차역---사람이 북적 거리는 영화관---공원 같은 곳에서 은밀히 만나는 것이 이렇게 눈으로 둘러싸인 높은 산속에서 만나는 것보다 훨씬 더 쉬울 텐데. 그는 자신의 이러한 생각을 드루에 경감에게 전달하려고 노력했다.경감도 그의 생각 에 쾌히 동의했다. "듣고 보니 그렇군요.정말 이해가 되지 않아요." 정말 비밀화합을 갖기로 했다면,그들이 구태여 함께 올 이유가 없잖소? 아냐,거 정 말 알 수 없는 노릇이군." 드루에가 걱정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두 번째 가정을 해보는 수밖에 없습니다.이 세 사람은 마라스코드의 일당이고 마라스코드를 만나러 여기 온 겁니다.그럼,누가 마라스코드죠?" 포와로가 물었다. "호텔 직원들은 어떻소?" 드루에가 어깨를 으쓱했다. "말할 만한 직원이 있어야지요.직원이랬자 주방 일하는 할머니와 그 남편인 자쿠밖에 없어요.그 두 사람은 여기서 50년 동안이나 산 모양 입니다.그리고 나면 웨이터인 저밖에 없지요.그게 전부에요." "그럼,지배인은 당신이 누군지 알겠군요?" "그야 당연하죠.그의 협조가 없이는 안되거든요." "그가 불안해 하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까?" 하고 포와로가 말했다. 드루에는 그 말에 놀란 눈치였다.그는 생각에 잠긴 어조로 말했다. "정말 그랬던것 같군요." "물론 웨이터로 변장하여 잠복근무한다는 데 대한 단순한 불안일 수도 있 소만." "그러나 당신이 생각하기에는 단순히 그래서만은 아닐 거라는 거죠? 그가 뭘 알고 있을 거라고---생각하시는 것 아닙니까?"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뿐이지---뭐,별 뜻은 없습니다." 드루에가 우울하게 말했다. "저도 그런 생각이 들긴 들었서요." 그가 잠시 멈췄다가 다시 계속했다.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면 어떻겠습니까?" 포와로가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자기를 의심한다는 내색은 보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군요.그의 행동이나 잘 감시하십시오." 드루에가 고개를 끄덕거렸다.그는 문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포와로씨,왜 자신의 추론은 내놓지 않으십니까? 전---당신의 명성을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포와로가 곤혹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당분간은 아무것도 추론할 수가 없기 때문이오.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를 모르겠단 말입니다.하필이면 이런 곳에서 비밀화합을 갖는 이유는 뭐지요?" "돈입니다." 하고 드루에가 간단하게 말했다. "그럼,그 사람은 그 가엾은 샐리를 살해하고 돈까지 강탈해 갔다는 말이오?" "예,상당한 액수의 돈을 갖고 도망쳐 버렸죠." "그래서 그 돈을 분배하기 위해 비밀화합을 갖는다,이 말이지요?" "그거야 두말하면 잔소리죠." 포와로가 마땅찮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흔들었다. "그렇다고 칩시다.그렇지만 왜 이 곳에서?" 그가 천천히 말을 계속했다. "범죄자들이 모이는 비밀장소로는 이곳처럼 나쁜 곳도 없어요.혹시 여자를 만나러 온다면 모를까...." 드루에가 긴장된 표정으로 한 발짝 다가섰다.그리고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 "설마...?" "난---" 포와로가 말했다. "그랑디에 부인이 무척 아름다운 여자라고 생각합니다.그래서 말인데 그녀를 위해서라면 어느 남자든지 해발 1만 피트나 되는 이 높은 곳도 마다 않고 서로 올라오려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즉,그녀가 그걸 원한다면 말이오." "그것 참 흥미로운 얘기군요." 드루에가 말했다. "전 그녀가 이번 일에 연관되었으 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뭐라고 하든 그녀가 이곳에 온 게 이번이 처 음이 아니거든요." 포와로가 부드럽게 말했다. "예---따라서 그녀의 존재는 말할 만한 게 못 된다는 말 이로군요.하지만 마라스코드가 이곳을 택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고 보면 어떻겠 습니까?" 드루에가 흥분해서 말했다. "포와로씨,드디어 당신의 의견을 내놓으셨군요.그 각도 에서 제가 조사해 보도록 하지요." 에리만토스의 멧돼지4 그날은 아무 사고없이 지나갔다.다행히도 호텔에 먹을 식량은 충분히 비축되어 있었다.지배인이 그 점에 관해서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그러니까 먹을 음식은 충분히 확보해 놓은 셈이다. 에르큘 포와로는 칼 루츠 박사와 얘기를 나눠보려고 애를 썼지만 보기좋게 퇴짜를 맞고 말았다.의사는 심리학은 자기 전문분야여서 아마추어와는 얘기하고 싶지 않다 는 뜻을 은근하면서도 분명하게 비쳤던 것이다.그는 구석진 곳에 앉아서 커다랗고 묵직해 보이는 책을 읽는 데만 온 정신이 팔려 있었다. 에르큘 포와로는 밖으로 나가서 주방 주위를 어슬렁거렸다.그러다가 그는 무뚝뚝하고 의심이 많은 자크 영감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곧 요리사인 그의 아내가 그들의 대화에 합세했다.그녀는 통조림이 많이 저장되어 있어 다행이긴 하지만 자기는 통조 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포와로에게 말했다.값만 끔찍하게 비싸지 무슨 영양가 가 있나요? 좋으신 하나님께서 인간들한테 통조림만 먹고 살라고 하셨을 턱이 없다 고요. 화제는 호텔 종업원들한테로 옮겨갔다.7월 초순이면 객실 하녀와 보조 웨이터들이 온다.그러나 앞으로 3주 동안은 거의 손님이 없다.여기 올라오는 손님들 대부분이 점심만 먹고 곧 다시 내려간다.그래서 그 동안은 자기와 자크,그리고 웨이터 한 사 람으로도 충분하다 등등. 포와로가 물었다. "그럼,거스터브가 오기 전에 웨이터가 한 사람 있었겠군요?" "물론이죠.하지만 정말 형편없는 웨이터였서요.기술도 없고 경험도 없는 친구였거든 요.정말이지 도저히 웨이터라고 할 수 없는 사람이었지요." "그 사람은 여기 얼마 정도 있었습니까?" "며칠---일주일도 채 안되었을걸요.그런 형편없는 친구가 해고되는 건 당연했죠. 그래서 우리는 놀라지도 않았다고요." 포와로가 나지막히 말했다. "부당하다고 항의는 하지 않았습니까?" "아,그럼요.아무런 소리도 않고 그냥 갔죠.그래봤자 자기 입만 아프지 뭐,얻는것도 없잖아요? 여긴 일류 호텔이고 따라서 거기에 걸맞는 서비스를 손님들한테 해 줄 의무가 있으니까요." 포와로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물었다. "그 사람은 어디로 갔습니까?" "로버트 말인가요?" 그녀는 어깨를 으쓱했다. "틀림없이 전에 자기가 일했던 그 어두 침침한 카페로 다시 돌아갔을 거에요." "케이블 카를 타고 내려갔겠죠?" 그녀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야 당연하죠,손님.그것 말고 밑으로 내려갈 수 있는 방법이 또 있나요?" 포와로가 물었다. "그렇다면 그가 내려가는 것을 본 사람은 있습니까?" 그러자 그들 부부는 그의 얼굴을 한참 동안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아이고! 손님은 우리가 그런 짐승 같은 인간을 전송하러 나갔을 것 같으세요? 거창한 송별식이라도 했을 것 같으냐고요? 어림없죠.해야 할 일도 많은데,언제 그런데까지..." "정말 그렇겠군요." 하고 에르큘 포와로가 말했다. 그는 밖으로 천천히 걸아나와 머리높이 솟아 있는 건물을 우러러 쳐다보았다.커다란 호텔로---지금은 한쪽 부분만 사용하고 있었다.그 나머지 부분에는 객실이 많이 딸 려 있었는데 모두 문이 꼭꼭 닫혀 있어서 사람이라고는 그림자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그는 호텔 모퉁이를 돌다가 하마터면 카드놀이를 하던 세 남자중 한 사람과 머리를 부딪칠 뻔했다.그는 창백한 얼굴과 흐릿한 눈을 가진 남자였다.그가 무표정하게 포와로를 쳐다보았다.입술이 위로 말려올라가 이빨이 드러나보이는 그이 얼굴은 버릇이 고약한 말 같다는 인상을 주었다. 포와로는 그의 곁을 지나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그러자 저만치 앞에 사람 모습이 하나 보였다. 그것은 바로 키가 큰 그랑디에 부인의 우아한 자태였다. 그는 걸음을 약간 빨리 해서 그녀를 따라잡았다. "케이블 카가 사고가 생겨서 속상 하군요.혹시 부인도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 아닙니까?" 그녀가 말했다. "난 아무 상관없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굵고 낮았다---완전 콘트랄토(알토)였다.그녀는 포와로를 쳐다보지도 않고 그이 옆을 지나 조그만 쪽문 을 통해 호텔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에리만토스의 멧돼지5 에르큘 포와로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그러나 자정이 조금 지나서 잠이 깨었다. 누가 문의 자물쇠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던 것이다.그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불을 켰다.그 순간 문이 벌컥 열림과 동시에 카드놀이하던 세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들 술에 좀 취한 모양이라고 포와로는 생각했다.바보스러우면서도 심술이 뚝뚝 흐르는 얼굴들이었다.그는 면도칼 날이 번쩍이는 것을 보았다.덩치가 크고 제일 뚱뚱한 남자가 앞으로 다가왔다.그는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찢어죽일 탐정 새끼 같으니라고! 흥!" 그는 심한 욕지거리를 한참 퍼부었다.세 남자가 침대에서 꼼짝 못하고 있는 포와로 한테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얘들아,이 녀석을 토막토막 낼까? 어떠냐? 먼저 이 탐정 나리의 뻔뻔스런 얼굴부터 그어버리도록 하지.잘난 체하지 못하도록 말야." 그들이 단호한 태도로 점점 앞으로 다가왔다.면도칼 날이 불빛에 ......번쩍거렸다. 바로 그때 미국식 말투가 분명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들고 꼼짝 마!" 그들이 옆으로 비켜섰다.알록달록한 줄무늬가 있는 잠옷을 입은 슈바르츠가 문간에 서 있었다.그의 손에는 자동권총이 들려 있었다. "꼼짝 마.여차하면 그대로 쏘아버리겠다." 그는 방아쇠를 잡아 당겼다.그러자 총알 이 덩치 큰 남자의 귀 옆을 자나 창문틀에 가서 박혔다. 세 남자가 재빨리 손을 치켜들었다. 슈바르츠가 말했다. "포와리에씨,좀 도와주시겠습니까?" 에르큘 포와로는 번개처럼 침대 밖으로 빠져나왔다.먼저 그는 날이 번쩍거리는 무기 들을 압수한 뒤 세 남자의 몸을 뒤져 또 다른 흉기가 없는지 알아보았다. 슈바르츠가 말했다. "그럼 앞으로 가! 복도를 죽 따라가면 커다란 벽장이 하나 있다 거기에는 창문이 달려 있지 않다.그 속에 들어가도록." 그는 그들을 벽장 속에 몰아넣고서 열쇠로 잠궈버렸다.그리고는 재빨리 포와로에게 달려와 기쁨에 들뜬 목소리로 떠들기 시작했다 "보셨죠? 포와리에씨,파운틴 스프링스에는 내가 여행을 할 때 권총을 가져가겠다고 하니까 비웃던 친구들이 있었다는 것을 아십니까? '너 어디로 갈 생각인데?'하고 그들이 물었죠.'정글로?' 그리고는 배를 잡고 웃어대는 거예요.그렇게 못된 사람들 을 보신 적이 있으세요?" 포와로가 말했다. "슈바르츠씨,정말 아슬아슬한 순간에 와 줬소.한 편의 서부극에서 처럼 말입니다! 목숨을 구해 줬으니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군요." "별 말씀을 다 하시는군요.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죠? 이 녀석들을 경찰에 넘겨 줘야 할 텐데 우리 힘으로는 그럴 수가 없으니! 아무래도 지배인한테 그 문제를 의논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에르큘 포와로가 말했다. "아,그 지배인? 내 생각으로는 그 거스터브라는 웨이터한테 먼저 알리는 게 좋을 것 같소만---그 사람은 드루에 경감이 웨이터로 변장한 거요. 그러니까 거스터브라는 그 웨이터는 진짜 형사지요." 슈바르츠가 그의 얼굴을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아,그래서 그 녀석들이 그랬군요!" "누가 뭘 어쨌다고요?" "그 악당들이 거스터브를 마구 난도질했답니다.그 다음에 당신을 찾아온 거죠." "뭐라고요?" "함께 가보시죠.지금 의사가 그를 치료해 주고 있을 겁니다." 드루에의 방은 맨 꼭대기 층에 있는 조그만 방이었다.화장복을 입은 루츠 박사가 온통 피에 젖은 드루에의 얼굴을 붕대로 싸매고 있었다. 그들이 들어서자 드가 고개를 돌렸다. "아! 슈바르츠씨? 이거 상처가 아주 심해요 짐승 같은 놈들! 어쩜 이렇게 잔인할 수가!" 드루에는 약한 신음소리를 내면서 누워 있었다. 슈바르츠가 물었다 "위험한가요?" "목숨은 건질겁니다.하지만 말을 해서는 안돼요.흥분시켜서는 더더욱 안됩니다.상처 가 난 곳은 내가 소독했기 때문에---패혈증(화농균이 혈액이나 임파액 속으로 들어 가 심한 중독 현상이나 급성 염증을 일으키는 병)에 걸릴 염려는 없어요." 세 사람은 함께 그 방을 떠났다.슈바르츠가 포와로에게 물었다. "거스터브가 형사라고 하셨죠?" 에르큘 포와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로셰 네이지에 와 있는 거죠?" "아주 흉악한 범인을 쫓느라고요." 하고 포와로가 간단하게 상황 설명을 해주었다. 루츠 박사가 말했다. "마라스코드? 신문에서 그 사건에 대해 읽은 기억이 나는군요 난 그 남자를 한번 꼭 만나봤으면 좋겠어요.성격적으로 아주 심한 이상이 있는 사람 이 분명하거든요! 그 사람 어린 시절 얘기를 한번 들어보면 좋을 텐데." "나를 위해서라도---"라고 에르큘 포와로가 말했다. " 그 녀석이 지금 이 순간에 어디 있는지를 꼭 알고 싶군요." 슈바르츠가 말했다. "벽장 속에 갇혀 있는 그 세 녀석 중 한명이 아닐까요?" 포와로가 불만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그럴 수도 있겠죠.예,하지만 내 생각에는... 좋은 생각이 하나 떠올랐소---" 그가 돌연 말을 멈추고 카펫을 내려다보았다.카펫은 밝은 담황색이었는데 짙은 갈색 자국이 나 있었다.에르큘 포와로가 말했다. "발자국---내 생각에는 피묻은 이 발자국이 호텔의 사용하지 않은 쪽에서 나온 것 같군요.빨리요---빨리 서둘러야 합니다." 그들은 그의 뒤를 따라 회전문을 통해 어두침침하고 지저분한 복도를 따라 걸어갔다 그들이 모퉁이를 돌아서자 그때까지 확연히 남아 있던 발자국이 반쯤 열려진 문안으 로 이어져 있었다.포와로가 문을 밀어젖혀 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순간 그이 입에서 저도 모르게 끔찍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그 방은 침실이었다 침대에는 사람이 잔 흔적이 있었고 테이블위에는 음식 그릇이 놓여 있었다. 방 한가운데에 남자의 시체가 놓여 있었다.키는 중간쯤 되어 보였는데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야만적이고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된 것 같았다.팔이며 가슴,그리고 머리와 얼굴을 얼마나 난도질을 해놓았는지 그 참혹한 모습을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었다.슈바르츠는 외마디 비명소리를 지르고는 금방 토할 것 같은지 창백해진 얼굴 로 돌아섰다.루츠 박사는 독일어로 비명을 질렀다.슈바르츠가 숨넘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이 사람은 누구죠? 아는 사람 있어요?" "내 생각에는---" 하고 포와로가 말했다. "로버트라는 웨이터 같은데요.아주 서투르 기 짝이 없었다는..." 루츠가 시체 곁으로 다가가 살펴보더니 손가락으로 시체의 가슴 부근을 가리켰다. 죽은 남자의 가슴에 종이가 한 장 핀으로 꽂혀 있었던 것이다.그 종이에는 펜으로 마구 휘갈겨 쓴 글자가 몇 자 적혀 있었다. '마라스코드는 이제 더 이상 사람을 죽잊 못할 것이다.또 자기 친구들의 돈도 중간에서 가로채지 못할 것이다.' 슈바르츠가 비명을 지르듯이 외쳤다. "마르스코드? 그러니까 바로 이 사람이 마라스 코드군요! 하지만 무엇 때문에 이런 곳까지 왔을까요? 그리고 당신은 왜 이 사람이 로버트라고 하시는 거죠?" 포와로가 말했다. "그는 여기서 웨이터로 변장하고 있었어요.누구 말을 들어봐도 아주 형편없는 웨이터였다는 겁니다.그래서 사람들은 그가 갑자기 해고당했을때도 어느 누구 하나 놀라지 않았습니다.그리고 그는 떠났지요.아마도 앨더매트로 되돌아 갔을 거라는 추측만 남기고서 말입니다.그러나 그가 가는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 었습니다." 루츠가 못마땅한 투로 느릿느릿 말했다. "그래서---당신은 무슨 일이 생겼다고 생각 하는 겁니까?" 포와로가 대답했다. "우리가 여기 처음 도착했을 때 호텔 지배인의 얼굴에 근심이 어려 있는 것을 보셨을 겁니다.마라스코드가 사용하지 않는 호텔 객 실에서 자신이 숨어 지낼 수 있게 해달라고 지배인에게 상당한 뇌물을 주었을 게 뻔하니까요......." 그는 생각에 잠긴 어조로 덧붙였다. "그러나 지배인은 그 일 때문에 마음이 편치가 못했습니다.그렇지요.마음이 여간 불안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럼,마라스코드가 지배인만 빼고 아무도 모르게 계속 이곳에서 지냈다는 겁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아시다시피 충분히 그럴 수 있으니까요." 루츠 박사가 말했다. "그런데 왜 그가 살해 되었슬까요? 누가 그를 죽인 거죠?" 슈바르츠가 큰소리로 말했다. "그거야 쉽죠.본래 돈을 자기 일당과 나누기로 해놓고 그는 그렇게 하지 않은 거지요.즉,그가 그들을 배반한겁니다.그리고 이렇게 외딴 곳에 와서 잠시 숨어 지내려 한 게 뻔합니다.설마 이런 곳까지 그들이 찾아오리랴 싶었겠죠.하지만 그건 그가 잘못 생각한 겁니다.누군가가 그 낌새를 채고 여기까지 그를 따라왔으니까요." 그가 구두 끝으로 시체를 건드렸다. "그리고 그와 계산을 끝냈죠.이렇게요." 에르큘 포와로가 나지막히 말했다. "예,그건 확실히 우리가 생각했던 식의 비밀회합 이 아니었소." 루츠 박사가 못 참겠다는 투로 말했다. "그런 식의 추리도 매우 흥미 있습니다만 지금 중요한 건 현재의 상황이에요.여기는 시체가 있고 또 치료해야 할 중환자가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속수무책입니다.필요한 의약품이 제대로 있어야지요. 게다가 우리는 세상과 완전히 격리되었다는 말입니다! 이런 상태가 얼마나 계속될 까요?" 슈바르츠가 보태서 말했다. "그뿐인 줄 압니까! 벽장 속에는 살인자 세 녀석이 갇혀 있다고요! 이거야말로 흥미로운 상황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루츠 박사가 말했다 "어떻게 해야하죠?" 포와로가 말했다. "우선,지배인을 설득해야 합니다.그는 돈을 탐내었다 뿐이지 범죄 자는 아니니까요.또 겁쟁이기도 하죠.그러니까 우리가 시키는 대로 다 할 겁니다. 그리고 자크나 그이 부인 역시 우리를 도와줄 겁니다.세 악당은 사람들이 우리를 도와주러 올 때까지 우리가 안전하게 감시할 수 있는 곳에 가둬놓도록 합시다. 내 생각에는 슈바르츠씨의 자동권총이 큰 역할을 할 것 같은데요." 루츠 박사가 말했다. "그럼,난요? 난 뭘 하죠?" "의사 양반은---" 포와로가 침울하게 말했다. "환자만 돌봐 주십시오.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보초를 서도록 하지요.그리고 기다릴 수밖에요.그외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에리만토스의 멧돼지6 그로부터 사흘이 지난 이른 아침에 몇몇 남자들이 호텔 앞에 나타났다. 그들에게 과장된 몸짓을 해가며 현관 문을 열어준 사람은 바로 포와로였다.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경찰간부 르망투유가 포와로를 얼싸안았다. "아,여보게! 이렇게 자내를 만나 너무 너무 기쁘네! 이렇게 엄청난 사건을 겪어---얼마나 마음 고생이 심했겠는가? 밑에서 우리도 얼마나 애를 태우고 걱정을 했는지 모른다네.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으니 정말 답답해서 미칠 뻔했지.무선잔화도 없지.대체 연락할 방법이 없 잖은가? 그런데 회광통신기(빛의 반사를 이용한 통신법)을 생각해 내다니 자네 머린 정말 천재적이야." "뭐,그런 걸 가지고." 하고 포와로가 겸손하게 말했다. "인간은 자신이 발명한 문명 의 이기를 쓰지못하게 되면 결국 자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네.하늘에 태양은 항상 떠 있으니까." 경시청 사람들이 호텔 안으로 들어왔다.르망투유가 말했다. "우리가 이렇게 올 줄은 몰랐지?" 그의 미소가 약간은 징그러워 보였다. 포와로도 미소를 지었다. "그럼! 케이블 카가 수리되려면 아직 한참 있어야 할 줄 알았네." 르망투유가 감정을 넣어서 말했다. "아,오늘이야말로 위대한 날! 자네, 틀림없다고 생각하나? 진짜 마라스코드겠지?" "틀림없이 마르스코드라네.자,가보세." 그들은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문이 하나 열리면서 슈바르츠가 화장복을 입은 채로 나타났다.그는 사람들을 보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말소리가 들려서 나왔소.도대체 이 사람들은 누구죠?" 에르큘 포와로가 과장된 어조로 말했다. "드디어 구원군이 도착했소! 자,우리와 함께 갑시다.아주 볼 만한 구경거리가 있을 거요." 그는 층계를 펄쩍 뛰어올라갔다.슈바르츠가 말했다. "드루에한테 가는 건가요? 그런데 그 사람 몸은 좀 어때요?" "어젯밤 루츠 박사 말로는 점점 회복이 되고 있다더군요." 그들은 드루에의 방문 앞에 도착했다.포와로가 문을 활짝 열어 젖혔다.그리고 큰 소리로 외쳤다. "신사 여러분,여기 성난 멧돼지가 있습니다.그를 생포해서 단두대로 보내도록 하시지요." 얼굴에 붕대를 감고서 침대에 누워 있던 남자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그러나 이미 그가 꼼짝하지 못하도록 사복 경찰관들이 덮친 다음이었다. 슈바르츠가 당황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그 사람은 거스터브라는 웨이터인데요.그 사람이 드루에 경감이라고요." "거스터브인 것은 맞아요----하지만 드루에는 아니오.드루에는 바로 첫번째 웨이터 로버트였고,그는 호텔에서 사용하지 않은 방에 감금되어 있다가 나를 죽이려 한 바로 그날 밤에 마라스코드한테 살해당한 겁니다." 에리만토스의 멧돼지7 아침식사를 마친 뒤에 포와로는 어리둥절해 하는 미국인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모든 것을 설명해 주었다. "인간은 전문가적 입장애서 본능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법이지요.예를 들어 형사와 살인자 간의 차이점을 특별히 말하지 않아도 은연중에 느낄 수 있습니다! 거스터브는 웨이터가 아니었어요.그건 그를 본 순간 즉시 알수 있었죠.또한 경찰관도 아니었어요.난 평생 동안 경찰관들을 많이 상대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경찰관인지 금방 알 수 있지요.그가 문외한들한테는 형사로 행세할 수 있었겠지만---경찰의 생리를 잘 알고 있는 나 같은 사람한테는 어림없는 일이었지요 하여튼,난 그를 본 순간 즉시 의심이 갔습니다.그래서 그날 저녁 난 커피를 마시지 않고 몰래 쏟아 버렸지요.그런 내 행동은 옳았어요.그날 저녁 늦게 한 남자가 내 방에 들어왔으니까.다시말해,그 방의 임자가 마취약을 탄 커피를 마시고서 잠에 골 아떨어졌다는 것을 알고 내 방에 들어온 거지요.그는 내 소지품을 뒤지다가 내 지 갑에서 그 편지를 발견했습니다.그의 눈에 띄도록 내가 일부러 그 속에 넣어둔 그 편지를 말입니다! 그 다음날 아침 거스터브는 커피를 가지고 내 방으로 옵니다. 그리고는 내 이름을 친근하게 부르며 자신 있게 드루에 경감 행세를 한 거지요. 그러나 그는 걱정이 되었습니다.말로 다하지 못할 정도로 말입니다.왜냐하면 어떻게 해서든지 경찰이 그웳 뒤를 쫓아오려고 했기 때문이었지요! 그가 어디 있다는 것을 경찰이 알게 되는 날이면 그야말로 그는 끝장이니까요.즉,그렇게 되면 그가 세운 계획도 모두 수포로 돌아가 버리고 덫에 걸린 쥐처럼 꼼짝없이 체포되어야 할 판이 니까요." 슈바르츠가 말했다. "정말 어리석게도 이런 곳에 오다니! 왜 그랬을까요?" 포와로가 우울하게 말했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 사람은 바보가 아닙니다. 꼭 그럴 수밖에 없는 필요에 의해서,다시 말해 사람의 인적이 드문 아주 한적한 곳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 꼭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이곳을 택한 거죠." "어떤 사람?" "루츠 박사" "루츠 박사? 그럼,그도 한패입니까?" "루츠 박사는 진짜 루츠박사요.하지만 그는 신경 전문의가 아니오.그러니까 심리학 자가 아니란 거죠.그는 권위 있는 안면 성형외과 의사입니다.바로 그게 그가 이리로 마라스코드를 만나러 온 이유요.그는 자기 나라에서 쫓겨났기 때문에 지금 가난합니 다.그래서 그는 여기서 어떤 남자를 만나 그의 얼굴을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성형 시켜 주기로 하고 상당한 액수의 사례금을 받기로 한 거지요.그 남자가 범죄자라는 것을 그가 알았을지도 모르겠지만 만약 그렇다 해도 그는 모른 체하기로 아마 마음 먹었을 겁니다.외국에 있는 사립병원을 이용한다고 해도 그만큼 위험이 따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요.그래서 생각해 낸 게 바로 이 높은 곳,다시 말해 철이 되기 전에는 아주 별난 사람을 제외하고는 거의 찾아오는 사람이 없는 한적한 데다가 그리고 돈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지배인만 있는 이곳이야말로 자기들한테 정말 안성 맞춤이라고 생각한 겁니다. 한데 그 계획이 중간에 틀어지기 시작했습니다.마라스코드의 본색이 드러나 버렸거 든요.그래서 여기서 만나기로 한 그의 세 보디가드들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지만 그는 즉시 행동에 들어갑니다.즉 웨이터로 변장한 사복 경찰관을 납치해서 감금해 놓고 마라스코드 자신이 웨이터로 변장한 거죠.그런 다음에는 케이블 카를 일부러 고장나게 만듭니다.그건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지요.그 다음날 저녁 그는 드루에 경감을 살해한 다음 그 시체에 쪽지를 남겨 놓습니다.그건 드루에 경감의 시체를 마라스코드인 양 꾸며 매장 할 속셈에서 그런 것이지요.그리고 루츠 박사는 계획대 로 수술을 집도합니다.그런데 입을 막아 버려야 할 사람이 하나 더 있었어요. 그건 바로 이 에르큘 포와로였습니다.그래서 그 깡패들이 나한테 쳐들어온 겁니다 정말 당신한테 뭐라고 감사의 말을 해야 좋을지---" 에르큘 포와로는 슈바르츠에게 정중한 태도로 고개를 숙였다. 슈바르츠가 말했다. "그러니까 당신이 진짜 에르큘 포와로라는 말입니까?" "그렇소." "그럼,당신은 처음부터 그 시체가 마라스코드가 아니라는 걸 알고 계셨다는 말인가요?" "물론이오." "그런데 왜 그렇게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에르큘 포와로의 얼굴이 갑자기 근엄해졌다. "진짜 마라스코드가 경찰 손에 체포 되는 것을 봐야 안심할 수가 있기 때문이었소." 그는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에리만토스의 성난 멧돼지를 생포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