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르네의 히드라 1 에르큘 포와로는 자기 앞에 앉아 있는 남자를 격려라도 하듯이 쳐다보았다. 찰스 올드필드 박사는 나이가 사십쯤 되어보이는 남자였다.그는 관자놀이가 좀 희끗희 끗한 금발과,걱정스러운 표정이 완연한푸른눈을 가지고 있었다.몸은 약간 웅크리고 있 었는데 그 태도에는 어딘륚가 모르게 주저하는 기색이 엿보였다.게다가 그는 문제의 핵심을 조리있게 얘기하기가 꽤 어려운 모양이었다. 그는 더듬거리면서 말했다. "내가 포와로씨를 찾아온 건 좀 이상야릇한 문제가 생겼기 때문입니다.그런데 막상 여 기에 오니까 웬지 모든 걸 이야기 하기가 두렵군요.문제가 워낙 문제인 만큼 그 누구 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는 걸 내 자신이 너무나 잘 알고 있거든요." 에르큘 포와로가 그의 말을 받았다. "내가 당신을 도울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말이지요? 아,물론 내가 도움이 되어드릴 수 있을 겁니다.그러니까 얘기 해보시지요." 올드필드는 몸을 똑바로 세웠다. 포와로는 그가 아주 수척해 보인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올드필드는 절망에 가득찬 목소리로 다시 말을 잇기 시작했다. "아시겠지만,그건 경찰에 갈 만한 일이 못 됩니다.경찰이 뭘 하겠소......그런데 상황 이 매일 나빠지고 있습니다.난---난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소." "무슨 상황이 나쁘다는 거지요?" "소문...오,내가 너무 간단하게 말한 것 같군요,포와로씨.상당히 오랜 세월 동안 병석 에 누워 있던 아내가 세상을 떠난 건 지금부터 거의 1년 전 일입니다.그런데도 지금 까지도 온 동네 사람들이 나만 보면 수군거리는 거요.내가 아내를 죽였다고 말입니다. 글쎄,내가 아내를 독살했다는 겁니다!" "저런!" 포와로가 말했다. "그럼,정말 당신이 독살했습니까?" "포와로씨!" 올드필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마음을 가라앉히시고---"하고 에르큘 포와로가 말했다. "다시 앉으십시오.당신이 부인을 독살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둘 필요가 있어 서 그런 것뿐이니까.하지만 당신이 개업하고 있는 병원은 시골에 있을 텐데....." "그렇소,버크셔군 마켓 로브로 마을에 있습니다.시골에 사는 사람들이 워낙 남 얘기 하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쯤은 나도 알고 있어요.하지만 그런 소문이 그렇게 오래 가리 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소." 그는 의자를 약간 앞으로 잡아당겼다. "당신은 그동안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도저히 상상도 안될 거요.난 처음에는 일이 어 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눈치도 못 챘소.그런데 나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웬지 무뚝 뚝하고 피하려는 것 같더군요.하지만 난 단지 내가 상처한 것 때문에 사람들이 그런다 고만 여겼소.그런데 날이 갈수록 그런 현상이 심해졌어요.심지어는 길에서 만난 사람 도 인사하는 것조차 꺼리더군요.그러니 병원이야 말할것도 없소.온갓 악의에 찬 소문 이 퍼지면서 나는 하루도 마음 편하게 지낼 수가 없었답니다.나를 보기만 하면 사람들 목소리가 낮아지고 눈초리가 험악해지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소.심지어는 상스러 운 욕설로 가득찬 편지를 한두 통 받기까지 했습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계속했다. "그러니---대체 내가 어떻게 해야 될지 알 수가 있어야지요.이 악랄한 중상모략과 어 떻게 싸워야 될지 모르겠소.사람들이 나한테 직접 대놓고 얘기나 한다면 사실은 그렇 지 않다고 말이라도 하겠지만 그러지도 않으니 내가 어찌해야 되겠소? 난 의지할 곳도 없소.다른 사람이 파놓은 함정에 내가 빠진 겁니다.난 지금 조금씩 비참하게 파멸해 가고 있는 중이오." 포와로는 생각에 잠긴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소문이란 머리 하나를 자르면 그 자리에 머리가 둘 생기는 레르네의 머리가 아홉 개 달린 히드라와 똑같다고 할 수 있지요." 올드필드 박사가 말했다. "바로 그겁니다.문제는 내가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다는 거요.아무것도! 결국 최후 의 수단으로 당신을 찾아오긴 했습니다만---하지만 당신이라고 해서 별 뾰족한 수가 있을 것 같지는 않소." 에르큘 포와로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이윽고 그가 말했다. "그렇게 절망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당신의 얘기를 듣고 보니 흥미가 생기는군 요,올드필드 박사.머리가 많이 달린 그 괴물을 내 손으로 처치하도록 하지요.그럼,먼 저 악의에 찬 그러한 소문이 퍼지게 된 상황에 대해 자세히 얘기해 주십시오.한 일 년 전에 부인이 세상을 떠나셨다고 하셨지요? 그럼,사망 원인은 뭐였습니까?" "위궤양이었소." "시체를 해부했습니까?" "아니오,집사람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위장이 나빠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포와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위염과 비소중독은 그 증상이 아주 흡사합니다.요즘 사람들치고 그 사실을 모 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지난 10년 동안에만 해도 피살자의 사인을 위장병으로 가장 한 살인사건이 발생해 세상을 깜작 놀라게 한 게 네 번이나 됩니다.부인의 나이가 당 신보다 많았습니까?" "아내가 나보다 다섯 살이나 위였소." "결혼한 지는 얼마나 되셨습니까?" "15년." "부인께서는 유산을 남기셨습니까?" "예,아내는 아주 부자였소.그걸 금액으로 환산하면 대략 3만 파운드 정도는 될 거요." "상당한 액수로군요.그걸 당신이 모두 상속받게 됩니까?" "그렇소." "두 분 사이는 좋았습니까?" "그럼요." "부부싸움 같은 것도 하지 않았습니까?" "글쎄요---" 찰스 올드필드가 머뭇거렸다. "내 아내는 성질이 좀 까다로운 여자였어 요.자기 몸이 아퍼서 그런지 걸핏하면 화를 내거나 신경질을 부렸죠.그래서 아예 신경 을 쓰지 않는 게 차라리 속이 편했지요." 포와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예 어떤 사람인지 알겠습니다.아마도 부인은 사람들이 자기를 무시한다고 신경질을 내거나---자기가 귀찮지 않느냐,자기가 죽으면 얼마나 좋 겠느냐는 등 온갖 소리로 당신을 들볶았겠지요." 올드필드는 포와로의말이 맞다는 표정을 지었다.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마치 보시기라도 한 것처럼 정확하게 말씀하시는군요!" 포와로가 계속했다. "부인을 돌보는 간호원이라든가 말상대 친구가 있었습니까? 아니 면 헌신적인 하녀라도?" "간호원 자격증이 있는 여자가 하나가 아내의 간호원 겸 말상대 친구로 있었죠.매우 똑똑하고 유능한 여자였어요.그 여자가 마을에 소문을 퍼뜨리고 다니지는 않았을 겁니 다." "아무리 똑똑하고 유능하다고 해도 신이 준 혀는 있을 겁니다.그리고 항상 그 혀를 현 명하게 쓸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요.본래 말이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하는 사람한테서부터 시작되는 법입니다! 그러고 보면 당신은 말많은 시골 사람들퀮이 좋아하는 그런 요소를 모두 갗추고 있는 셈이군요.그럼,한 가지 더 물어봅 시다.그 숙녀는 누구죠?"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소이다." 올드필드 의사의 얼굴은 화가나서 벌겋게 달아올랐다. 포와르는 부드럽게 말했다 "그럴리가 없을 텐데요.난 당신의 이름과 나란히 사람들의 입에 떠도는 숙녀가 누군지 묻고 있는 겁니다." 올드필드 박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그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 있었다. "이번 일에 숙녀는 없소.내가 당신 시간만 많이 빼앗았군요,포와로씨." 그는 문 쪽으로 걸어갔다. 에르큘 포와로가 말했다 "그건 나도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바입니다.처음에 당신의 얘기를 듣고 난 당신을 도와 주고 싶었습니다.하지만 나한테 모든 걸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는다면 나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사실대로 말했잖소?" "그렇지가 않습니다." 올드필드 의사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 "이번 일에 왜 여자가 끼어 있다고 주장하는 거요?" "이것 보십시오,박사님! 내가 여자의 심리를 모른다고 생각하십니까? 시골에서 떠도는 소문이란 것은 항상 그 밑바닥에 남녀관계가 깔려 있는 법이지요.만약 어떤 남자가 북 극으로 여행을 하거나 평화스러운 독신생활을 하기 위해 자기 아내를 독살한다면--그 런 것은 시골사람들한테 그렇게 큰 흥미거리가 되지는 않습니다.즉,소문이 꼬리에 꼬 리를 물고 퍼지는 것은 당신이 다른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 자기 아내를 죽였다는 확신 이 사람들한테 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올드필드는 화를 벌컥 내며 말했다. "남의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뭐라고 입방아를 찧던간에 난 아무런 잘못이 없단 말 입니다." "물론 그러시겠죠." 하고 포와로가 계속해서 말했다. "그러니까 다시 자리에 앉아서 지금 내가 한 질문에 대답하시는 게 나을 겁니다." 마지못해 하며 올드필드는 천천히 자리로 돌아와서 아까 그 자리에 앉았다.그가 얼굴 을 붉히면서 말했다. "사람들이 몬크리프양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뒷말이 많을 거라는 것은 나도 알고 있었 소.진 몬크리프는 우리 병원 약제사인데 아주 좋은 아가씨지요." "그 아가씨가 당신 병원에 근무한 지는 얼마나 됐지요?" "3년" "댁의 부인은 그 아가씨를 좋아했습니까?" "음---글쎄요.그렇지는 않은 것 같소." "부인은 질투가 심했습니까?" "말도 마십시오!" 포와로가 미소를 지었다. "마누라들의 질투는 천하가 다 알 정도로 유명하죠.하지만 당신이 알아야 할 게 있어 요.내 경험에 비추어 보면 질투는 그것이 아무리 터무니 없고 억지 같아 보일지라도, 항상 사실에 근거한다는 겁니다.왜 고객이 항상 옳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질투에 있서서는 남편이나 아내가 다 똑같습니다.결국 구체적인 증거가 없다고 할지라도 근본 적으로는 사람들 말이 옳다는 거죠." 올드필드 의사는 강하게 말했다. "무슨 말을 그렇게! 난 아내에게 의심받을 만한 말은 진 몬크리프에게 한마디도 한 적 이 없단 말입니다." "그야 그럴 수도 있겠죠.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실이 변하는건 아닙니다." 에르큘 포와로는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그의 목소리는 엄격하고 단호했다. "올드필드 박사,이번 일에 난 최선을 다 할 것입니다.그러나 그에 앞서 당신이 일반적 인 상황이나 자신의 느낌에 관해 최대한 솔직하게 얘기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당신 은 부인이 세상을 떠나기 훨씬 전부터 부인한테서 마음이 멀어져 있었지요?" 올드필드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이윽고 그가 입을 열였다. "이번 일은 나를 말려죽일 참인 모양입니다.그래서 한 가닥 희망이라도 붙잡고 싶은 마음입니다.이유는 모르겠지만 당신은 나를 도와 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군 요.포와로씨,당신에게는 모든 걸 솔직하게 털어놓겠소.전 아내를 깊이 사랑하지는 않 습니다.물론 좋은 남편 노릇을 해왔다고 생각합니다만,진정으로 아내를 사랑한 적은 한번도 없었소." "그런데 진이라는 그 아가씨와?" 의사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르 맺혔다. "난---난 본래 이런 소문만 없다면 그녀한테 청혼할 작정이었습니다." 포와로는 의자에 깊숙이 몸을 파묻었다. "드디어 사실을 말씀하시는군요! 좋습니다,올드필드 박사,제가 이번 일을 맡기로 하 죠.하지만 이건 기억해 두십시오----내가 찾고자 하는 건 진실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올드필드가 씁쓸한 어조로 말했다. "나를 해치려고 하는 건 진실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곧 입을 열어 말했다. "난 명예훼손죄로 고소하는 방법까지도 생각해 봤소! 어느 누구든지 분명한 혐의가 있 어 고소만 할 수 있다면---그때는 법정에서 내 결백을 입증해 보일 수 있지 않겠습니 까? 어떤 때는 그렇게 생각하다가도.....또 어떤 때에는 그렇게 해봤자 일만 더 커질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괜히 소문만 더 퍼지는 게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리 없지.'라는 말이 안 들어도 뻔하게 들리는 것 같았소" 그는 포와로를 쳐다보았다. "정말,이 악몽에서 벗어날 길이 있을까요?" "항상 길은 있는 법이죠."하고 에르큘 포와로가 말했다. 레르네의 히드라 2 "함께 시골에 내려가 봐야겠네,조지." 하고 에르큘 포와로가 하인에게 말했다. "정말이십니까,나리?" 언제나 침착한 조지가 말했다. "우리 여행의 목적은 아홉 개의 머리가 달린 괴물을 처치하는 걸세." "정말이십니까? 네스 호에 사는 괴물 같은 것 말입니까?" "그것보다는 덜 실체적이네.난 살과 피를 가진 동물이라고는 안했네,조지." "제가 잘못 알았군요,나리." "그게 하나이기만 하면 무슨 문제가 있겠나? '소문'처럼 만질 수도 없고 붙잡아 맬 수도 없는 건 또 없지." "정말 그렇습니다.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될지 도무지 알 수 없을 때가 종종 있잖 습니까?" "맞는 말이야." 시골에 내려간 에르큘 포와로는 올드필드 박사의 집에서 지내지 않았다.대신 마을 여관에 숙소를 정했다.그가 도착한 다음날 아침 그가 맨 먼저 찾아가 만난 사람은 진 몬크리프였다. 그녀는 구리빛 머리칼과 침착해 보이는 푸른 눈을 지닌 키가 큰 아가씨였다.그녀는 눈에는 사람을 경계하는 빛이 잔뜩 어려 있었다. "결국 올드필드 선생님께서 당신을 찾아가셨군요.선생님께서 그런 생각을 하시는 줄 알고는 있었습니다만......" 포와로는 그녀의 말투가 웬지 시들하게 들렸다."그럼,아가씨는 반대했나요?" 그녀의 시선이 그와 맞부딪혔다.그녀는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포와로는 조용하게 말했다. "현재의 상황과 싸워 이길 길이 있을지도 모르죠." "무슨 갈?" 그녀가 냉소어린 투로 그에게 되물었다. "당신이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말많은 아줌마들을 붙들고서,'이제 그런 얘기를 더 이상 해서는 안됩니다.올드필드 박사가 너무 불쌍하지 않습니까?'라고 사정이라도 하겠다는 건가요? 그러면 그 아줌마들은 이렇게 대답하겠죠.'물론,난 그런 이야기를 믿지 않아요!'하지만 그게 더 나쁜 거라고요---당신한테는 직접 이렇게 얘기하지는 않겠죠.'당신은 올드필드 부인의 사인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안드세요?'라고 말이에요 아니,이렇게 말하겠죠.'아,물론 난 올드필드 박사와 그 부인에 관한 소문을 믿지 않 아요.그 의사가 자기 아내한테 좀 소홀했던 게 사실이라 해도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지 를 사람이라고는 생각지 않아요.그가 젊은 아가씨를 약제사로 둔 건 그리 현명치 못 했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요.물론 그들 두 사람사이가 무슨 불륜 관계라는 말은 절 대로 아녜요.오,그럼요.그럴리 없을 거예요.'라고요." 그녀는 하던 말을 멈추었다.그녀의 얼굴은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고 호흡 역시 매우 거칠어져 있었다. 에르큘 포와로가 말했다. "어떤 소문이 퍼져 있는지 잘 알고 있나 보군요." 그녀는 입술을 꼬옥 깨물었다.그러더니 통렬한 어조로 말했다. "다 알고 있죠!" "그럼,아가씨의 해결책은 뭡니까?" 진 몬크리프가 말했다. "그를 위한 최선의 방법은 여기 있는 병원을 팔고 딴 곳에 가서 새로 시작하는 거예 요." "그 소문이 계속 그 뒤를 따라다닐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으세요?" 그녀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거야 감수해야 하겠죠." 포와로는 잠시 말없이 앉아 있었다.이윽고 그가 말했다. "아가씨는 올드필드 박사와 결혼할 작정이오,몬크리프양?" 그녀는 그 말에 조금도 놀란 기색이 없었다.그녀가 간단히 대답했다. "그분은 저한테 청혼하지 않으셨서요." "왜요?" 두 사람의 시선이 서로 부딪치는 순간 그녀는 푸른 눈을 깜박거렸다.이윽고 그녀가 입을 열어 말했다. "제가 선생님이 그 말을 하지 못하도록 미리 막았기 때문이죠." "아,이렇게 솔직하게 말씀 해 주시니 정말 기쁘기 한량이 없군요." "그럼,모든 걸 솔직히 말씀드리겠어요.찰스 박사님이 저와 결혼하기 위해 부인을 죽 였다는 소문이 온 마을에 퍼진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저는 만일 우리가 결혼을 한다면 모든 게 끝장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그래서 그 말도 안되는 엉터리 소문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우리가 결혼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것도 소용이 없었군요?" "예 소용이 없었어요." "그것 참--" 하고 에르큘 포와로가 말했다. "이상한 일인데요." 진이 신랄하게 말했다. "이런 시골에서는 사람들이 즐길 만한 게 별로 없잖아요." 포와로가 물었다. "찰스 올드필드 박사와 결혼하고 싶습니까?" 아가씨가 아주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요,전 그분을 처음 본 순간부터 그분과 결혼하고 싶었어요." "그럼,당신으로 봐서는 그 부인이 죽은 게 차라리 잘된 셈이었겠군요?" 진 몬크리프가 말했다. "올드필드 부인은 정말 싫었어요.솔직히 말해,전 부인이 돌아가셨을 때 정말 기뻤어요." "정말----" 포와로가 말했다. "아가씨는 솔직해서 좋군요!" 그녀의 입가에 아까와 똑같은 냉소가 어렸다. 포와로가 말했다. "내가 제안을 하나 하지요." "예?" "이런 시골에서 과감한 방법이 필요합니다.누가----아가씨 자신이 좋겠지요.내무부에 편지를 띄웠으면 하는 겁니다." "도대체 그게 무슨 말씀이지요?" "이번 일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체를 다시 파헤쳐서 검시하는 겁니다." 그녀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그녀의 입술이 벌어졌다가 다시 닫혔다. 포와로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어떠시오.마드모아젤?" 결국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진 몬크리프가 조용히 말했다. "전 찬성할 수가 없어요." "왜 안된다는 거지요? 시체해부 결과 자연사라는 판결만 내린다면 모든 소문이 사라 지게 될 텐데요?" "그런 판결이 내린다면야 그렇겠죠." "지금 아가씨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건지 알고나 하는 겁니까,마드무아젤?" 진 몬크리프가 성급하게 말했다. "그럼 알고 말고요.당신은 비소중독을 생각하시나 본데요,부인의 사인이 비소중독이 아니라는건 증명할 수가 있겠죠.하지만 다른 독극물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베제터블 알칼로이드 같은 것 말이에요.또 죽은 지 1년이나 지난 지금 시체를 해부 한다고 해서 사인을 밝혀낼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아요.전 그런 검시의가 어떤지는 잘 알고 있거든요.아마도 사인의 결정적 단서가 될만한 것을 찾아내지 못했다는 식의 애매한 표현으로 검시보고서를 올릴 게 뻔해요.그렇게 되면 사람들 이야깃거리만 하나 더 늘게 된다고요!" 에르큘 포와로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열었다. "아가씨 생각에는 이 마을에서 가장 말많은 사람이 누구인 것 같습니까?" 그 말에 그녀는 잠시 생각을 해보는 눈치였다.이윽고 그녀가 말했다. "제 생각에는 사람들 중에서도 늙은 레더랜 양이 가장 삼술궂고 심한 것 같아요." "아하! 그럼,레더랜 양한테 나를 소개시켜 주시겠소? 가능하다면 우연히 만난 것처럼 해서 말이오." "그거야 쉬운 일이죠.오전 이맘때 쯤이면 노처녀들 모두가 쇼핑을 하느라 이리저리 돌아다니니까요.그러니까 우리는 중심가만 따라 걷기만 하면 되는 거죠." 진의 말대로 그다음 일은 별 어려움없이 진행되었다.우체국 앞에서 진이 발을 멈추 더니 길다란 코와 호기심 강하게 생긴 날카로운 눈을 가진,키가 크고 깡마른 중년 부인한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레더랜 양." "좋은 아침이야,진.아주 날씨가 좋지?" 그녀의 날카로운 눈은 진 몬크리프의 동반자를 아래로 훑어보고 있었다.진이 말했다. "이분은 포와로 씨라고 하는데 여기서 며칠 지내실 거예요." 에르큘 포와로는 무릎 위에 찻쟁반을 흔들리지 않게 잘 올려놓고서 스콘(핫 케익의 일종)을 조금씩 뜯어먹으면서 여주인과 아주 친숙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레더랜 양은 친절하게도 그에게 차까지 대접했다.물론 차를 내온 즉시 이 기묘하게 생긴 조그만 외국인이 왜 자기네 마을에 왔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몹시 허둥댔다. 처음 한동안 그는 그녀으 공격을 교묘하게 피해나갔다.그렇게 함으로써 그녀의 흥미 를 한껏 돋구었던 것이다.이윽고 때가 무르익었다는 판단이 서자 그는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아하,레더랜양." 하고 그가 말했다. "당신은 정말 머리가 좋으시군요! 내 비밀을 눈치채다니 말입니다.제가 여기 온 건 내무부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지요.하지만-- 이사실은 꼭 비밀로 해주십이오." "그러고말고요.물론이죠." 레더랜 양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몸을 들썩거렸다. "내무부라면-----혹시----가엾은 올드필드 부인 일로?" 포와로는 머리를 천천히 여러 번 끄덕였다. "어머나!" 레더랜 양의 기쁜 마음을 표현하기에는 그 한마디로도 족했다. 포와로가 말했다. "아시다시피 이건 미묘한 문제라서 아주 신중히 다뤄야 합니다.제가 여기 온 건 시체를 파헤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지 아닌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죠." 레더랜 양이 큰소리로 외쳤다. "그 죽은 시체를 파헤친다는 얘기군요.어머나,끔찍하 기도 해라!" 그러나 그녀의 말투는 '어머나 끔찍하기도 해라'라는 말 대신,'어머나 근사해라'라는 말을 했더라면 그게 훨씬 더 잘 어울릴 뻔했다. "레더랜 양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글쎄요,물론 떠도는 얘기야 많죠 하지만 전 그런 얘기는 한마디도 믿지 않아요. 소문이란 건 항상 그리 믿을 만한 게 못 되잖아요? 그 눍이 일어난 뒤로 올드필드 박사의 태도가 아주 이상해진 것은 틀림없지만,아까 말씀드린 대로 그렇다고 그가 '죄의식'때문에 그렇다고 무조건 단정할 수도 없는 일이죠.'슬픔'때문일 수도 있으 니까.물론 그 부부 사이가 아주 금슬이 좋았다고는 할 수 없었지요.제가 그런 것 까 지 아는 이유는----'믿을 만한 소식통'이 있었기 때문이죠.또 올드필드 부인이 숨을 거둘 때까지 3-4년 동안 그녀 옆에서 수발을 들던 해리슨 간호원도 그것을 상당히 인정했거든요.제 직감으로는 해리슨 간호원이 박사를 의심하는 것 같더라고요. 물론 직접 입으로 얘기한 건 아니지만 그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포와로가 침울하게 말했다. "그 정도로는 수사상 단서가 될 만한 게 없겠는데요." "그건 그래요.하지만 포와로씨,시체를 파헤친다면 모든 게 밝혀질 거에요." "그렇습니다." 포와로가 말했다."그때는 모든 걸 알게 될 겁니다." "물론 그전에도 이 같은 사건들이 여러 번 있었죠." 레더랜 양이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코를 씰룩거리면서 말했다. "암스트롱 사건이 있었고 그 다음에도 어떤 남자였는데---이름이 생각이 안나는군요 그리고 나서 물론 크리픈 사건이 있었죠.난 항상 에셀 르니브가 그 안에 그와 함께 있었는지 아닌지 궁금했답니다.물론 진 몬크리프는 아주 좋은 아가씨에요.하지만 예쁜 아가씨들만 보면 사족을 못쓰는게 바로 남자들이잖아요? 물론 그들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 많았던 게 탈이었을 거고요!" 포와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대신 그녀한테서 보다 더 많은 얘기를 끌어낼 요량 으로 그녀가 말하는 것이 흥미롭다는 듯 순진한 표정을 지은 채 그녀의 얼굴을 바라 보았다.그러나 속으로는 그녀가 '물론'이라는 말을 몇번이나 하는지 그 숫자를 헤아 리고 있는 참이었다. "물론 검시와 함께 다른 것도 조사해 보면 그 진상이 밝혀지겠죠.아마 하인들 같은 사람을 조사해 봐야 될 거예요.그 집 사정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바로 그들이잖아 요? 물론 주인이라고 해서 그들이 소문내고 다니지 못하도록 막을 방법은 없을 거예 요.그렇죠? 올드필드 박사 집에서 일하던 베아트리체도 장례식이 끝난 뒤에 곧 해고 되었답니다.그게 또 이상하게 생각되더라고요.특히 요새같이 하녀 구하기가 몹시 어려운 때에 말이에요.올드필드 박사는 그녀가 뭔가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지레 겁을 집어먹은 모양이에요." "말씀을 듣고 보니 정말 수사를 해볼 필요가 있겠는데요." 포와로가 점잖을 빼면서 말했다. 레더랜양이 끔찍한 얘기라도 들었다는 듯이 약간 몸을 떨었다. "그건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네요.이렇게 조용한 우리 마을 이름이--신문에 오르 내리고---세상사람이 다 알게 된다고 생각만 해도,아이고!" "그게 그렇게 싫으십니까?" "웬지,보다시피 전 옛날 사람이거든요." "하지만 당신 말처럼 그게 단순한 소문에 그칠 수도 있잖겠습니까?" "글쎄--내 양심상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군요.아시겠지만 전 그 소문이 모두 사실이 라고 믿고 있거든요.'아니 땐 굴뚝에 연기날 리 없다'는 속담도 있잖아요." "아닌게 아니라 그 점에는 나도 동감입니다."하고 포와로가 말했다.그리고 나서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마드무아젤,당신을 믿어도 되겠지요?" "오,그럼요!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을 테니까 걱정마세요." 포와로는 미소를 지으며 그 자리를 떠났다. 문 앞 층층대에서 그는 모자와 코트를 건네주는 조그만 하녀에게 말했다. "내가 여기 온 건 올드필드 부인 사망사건의 진상을 알아보기 위해서요.하지만 이건 아가씨만 알고 있어야 하는 비밀이야." 레더랜 양의 하녀인 글래디스는 얼마나 놀랐는지 하마터면 우산꽂이 안으로 나가 떨 어질 뻔했다.그녀는 흥분해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어머나 그러면 의사가 그랬단 말이에요?" "아가씨가 그렇게 생각했잖소?" "글쎄요,그건 제가 아녜요,베아트리체라고요.그 애는 올드필드 부인이 죽었을 때 그 댁에 있었거든요." "그럼,그 아가씨 생각에---"포와로는 일부러 멜로드라마 같은 단어를 골랐다. "'반칙'이 있었다는 거요?" 글래디스는 흥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예,그래요.그 애 말로는 해리슨 간호원 의 태도가 이상하게 변했다고 하더군요.아무리 그 간호원의 태도가 이상하게 변했다고 하더군요.아무리 그 간호원이 올드필드 부인을 좋아했고,또 그래서 부인이 죽었을 때 몹시 슬퍼했다 하더라도 부인이 죽은 뒤부터 의사를 대하는 태도가 그렇게 적대적으 로 변했다는 것은 그 간호원이 뭔가를 알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고 베아트리체는 입 버릇처럼 말했어요.사실,잘못된 게 없다면 그녀가 그런 식으로 행동할 리가 없잖겠 어요?" "지금 해리슨 간호원은 어디 있지요?" "마을 끄트머리에 있는----나이든 브리스토 양 댁에 있어요.기둥과 베란다가 있는 집이라서 찾기가 쉬울 거예요." 레르네의 히드라 3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에르큘 포와로는 어느 누구보다도 소문이 퍼지게 된 경위에 대해 확실히 알고 있을 여자와 마주앉아 있었다. 해리슨 간호원은 아직도 상당한 미모의 소유자로 나이는 사십 가까이 되어보였다. 그리고 호소하는 듯한 커다란 검은 눈동자와 고요한 표정이 마차 성모 마리아 같은 인상을 주었다.그녀는 그가 하는 말을 주의깊게 귀기울여 들었다.이윽고 그녀가 천천 히 입을 열었다. "예,마을에 온갖 나쁜 소문들이 떠돌고 있다는 건 저도 알고 있어요.그런 소문을 막아보려고 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어요.아시다시피 시골 사람 들은 자극적인 이야기를 좋아하거든요." 포와로가 말했다. "그러나 그런 소문이 발생하게 된 원인은 있었을 게 아닙니까?" 그는 그녀의 표정이 더 한층 고통스럽게 변하는 것에 주목했다.그러나 그녀는 단지 난처하다는 듯이 고개만 흔들 뿐이었다. "혹시---" 포와로가 넌지시 말을 꺼냈다. "올드필드 박사와 그 부인 사이가 나빠서 그런 소문이 생기게 된 건 아닙니까?" 해리슨 간호원은 단호하게 머리를 흔들었다. "오,아녜요.올드필드 선생님이 사모님 한테 얼마나 잘해 줬다고요." "그가 자기 부인을 정말로 사랑했나요?" 그녀는 잠시 머뭇거렸다. "아니--꼭 그렇다고 말씀 못 드리겠군요.올드필드 부인은 성격이 몹시 까다로워서 비위맞추기가 무척 힘든 분이었거든요.또 사람들의 동정과 관심을 끌려고 해서인지 늘 사람들을 들볶았죠." "그 부인은 자신의 건강상태를 좀 과장해서 생각했다는 말입니까?" 라고 포와로가 물었다.간호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사모님의 건강이 더 나빠졌던 것도 따지고 보면 자기 병에 대한 상상력이 지나쳤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죠." "그런데---" 하고 포와로가 침통한 어조로 말했다. "그녀가 죽었다...." "네,저도 알아요---알죠....." 그는 그녀를 잠시 지켜보았다.그녀의 이해할 수 없는 괴로운 표정--어딘가 모르게 주저하고 불안해 하는 기색이 느껴졌던 것이다. "내 생각에는---이건 확실하오만--- 이런 소문이 퍼지게 된 원인을 당신은 알고 있을 것 같은데요." 해리슨 간호원은 얼굴이 확 붉어졌다. "글쎄요---추측은 해볼 수가 있겠죠.이런 소문 맨 처음 퍼뜨린 사람은 제가 보기에는 베아트리체밖에 없어요.아마 그 일 때문일 거예요." "예?" 해리슨 간호원이 좀 두서없이 말했다. "아시다시피 전 올드필드 선생님과 몬크리프 양이 얘기하는 내용을 우연히 엿듣게 되었답니다.베이트리체도 그때 그걸 들었을 거예요.물론 그 얘가 직접 그런 얘기를 한 건 아니지만." "그 내용이 뭐였습니까?" 해리슨 간호원은 자신의 기억을 더듬기라도 하는 것처럼 침묵을 지켰다.이윽고 그녀 가 말했다. "그러니까 올드필드 부인이 세상을 떠나기 3주일 전에 일어난 일이었어 요.제가 층계를 내려오다가 우연히 진 몬크리프가 얘기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죠. 그녀는 이렇게 말하더군요.'얼마나 더 오래 기다려야 하죠? 전 이제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어요.'그러니까 선생님은 이렇게 대답하시더라구요.'이제 얼마 안 남았어, 달링.맹세하지.'그러자 그녀가 다시 말하더군요.'이렇게 기다리는 건 정말 지긋지긋 해요.정말 잘될 거라고 생각하세요?'그 말에 다시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물론이고말고 잘못될 게 뭐가 있어.내년 이맘때쯤에는 결혼하게 될 거야.'라고요." 그녀가 말을 멈추었다. "포와로씨,제가 선생님과 몬크리프양이 보통 관계가 아니라는 걸 눈치채게 된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요.물론 선생님이 그녀를 좋아하고 그 둘 사이가 아주 친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이상의 관계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죠.본의 아니게 그런 얘기를 엿듣게 된 저는 아래층으로 내려갈 수도 없어서 도로 2층으로 올라갔습니다. 전 그 얘기에 무척 충격을 받았거든요.그런데 그때 부엌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게 되었고 그래서 전 베아트리체도 그 얘기를 들었을 거라고 생각한 거죠.그런데 문젠 그런 얘기를 두 가지로 해석할 수도 있잖아요? 물론 선생님은 사모님의 병이 너무 심하셔서 오래 살지 못할 것을 이미 알고서 그런 말씀을 하셨을 거예요.저도 그걸 믿어 의심치 않아요.하지만 베아트리체 같은 사람한테는 다른 뜻으로 들리기가 십 상이죠.의사와 진 몬크리프가 공모해서---말하자면---두 사람이 올드필드 부인을 죽일 계획이라도 짜는 것처럼 들었을지도 모른다는 거죠." "하지만 당신은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이 말이군요?" "그럼요---전,물론...." 포와로는 탐색이라도 하듯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당신이 알고 있는 게 더 있을 텐데 요.나한테 얘기하지 않은 게 또 있지요?" 그녀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지더니 난폭한 어조로 말을 내뱉었다. "무슨 말씀을! 아녜요.절대로 그렇지 않아요.무슨 얘기가 더 있다는 거예요?" "그건 모르죠.하지만 내 생각에는 다른 얘기가 더 있을 법한데요?" 그녀는 머리를 흔들었다.그런 그녀의 얼굴은 아까 고통스러워 하는 그 표정으로 다시 돌아와 있었다.에르큘 포와로가 말했다. "내무부에서 올드필드 부인의 시체를 파헤치라는 명령이 내려올지도 모릅니다!" "오,안돼요!" 해리슨 간호원의 얼굴이 두려움으로 가득찼다.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군요!" "왜 안된다는 거죠?" "그 일로 해서 또 얼마나 말들이 많을까 생각하니 정말 끔찍하군요! 가엾은 올드필드 선생님이 그 일로 얼마나 더 당할지 생각만 해도----정말 몸서리가 쳐져요." "당신은 차라리 그러는 편이 그를 위해서 더 좋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나 보군요?" "무슨 말씀이죠?" 포와로가 말했다. "만약 그가 결백하다면---그 결백이 증명될 거라는 뜻이지요." 그는 말을 중단했다.그리고 무슨 생각엔가 잠겨 있는 해리슨 간호원의 얼굴을 쳐다 보았다. 이윽고 눈살을 잔뜩 찌푸리고 있던 그녀가 얼굴을 폈다.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쉰 뒤 그를 쳐다보았다. "미쳐 그건 생각지 못했군요." 그녀가 간단하게 말했다. "물론 그렇게 되면야 모든 문제가 해결되겠지요." 그때 머리 위에서 마룻바닥이 쿵쿵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그러자 해리슨 간호원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브리스토 양이 잠에서 깨어났나 봐요.이젠 그만 올라가 봐야겠군요.저 할머니가 차를 드실 수 있도록 부축도 해드리고 산보도 나가봐야 하거든요.그래요,포와로씨, 당신 말씀이 옳다고 생각해요.검시가 모든 걸 해결해 주겠죠.그래서 가엾은 올드필 선생님을 둘러싼 온갖 나쁜 소문들이 사라졌으면 좋겠어요." 그녀는 악수를 한 뒤에 서둘러 그 방을 나가버렸다. 에르큘 포와로는 우체국 앞 공중전화 박스안에서 런던으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선을 타고 들려오는 목소리로 미루어 보아 상대방은 화가 나 있는 것 같았다. "선생님이 꼭 이런 일을 맡아야 했나요.포와로씨? 이게 우리한테 맞는 사건이라고 확신하시느냐고요? 그런 시골 구석의 소문이란게---보통 별볼일 없다는 걸 잘 아시면서." "이건---" 하고 포와로가 말했다."예외요." "오,물론 선생님이 그렇다면 그렇겠죠.아닌 것도 그렇게 만드는 게 선생님의 지겨운 습관이니까요.하지만 그게 모두 한낱 소문에 불과하다면 정말 실망하실 텐데요." 에르큘 포와로는 혼자 미소를 지었다.그가 중얼거기듯이 말했다. "천만에,내가 실망할 리가 있나?" "뭐라고요? 잘 들리지 않아요." "아무것도 아니오." 그는 전화를 끊었다. 우체국 안으로 들어선 그는 카운터 앞으로 다가갔다.그리고 아주 매력적인 어조로 말을 꺼냈다. "부인,혹시 전에 올드필드 박사 집에서 일했던 하녀가 지금 어디 살고 있는지 아십니까?---세례명은 베아트리체라고 하는데요." "베아트리체 킹 말인가요? 그 얘는 그 뒤로 두번이나 일하는 집에 옮겼죠,지금은 잉글랜드 은행 맞은편에 있는 머레이 부인 댁에서 일하고 있어요." 포와로는 그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엽서 2장과 우표책 1권,그리고 지방 특산 도자기를 1점 샀다.그렇게 물건을 사면서 그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올드필드 부인의 죽음을 은근 슬쩍 화제로 끌어들였다.순간 여자 우체국장의 얼굴에 언뜻 알 듯 모를 듯한 기묘한 표정이 스쳐지나가는 것을 포와로는 놓치지 않았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었죠? 그래서인지 말도 무척 많답니다." 그녀는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물었다. "혹시 그 일 때문에 베아트리체 킹을 만나시려 고 하시는 건 아니세요? 우리도 그 얘가 그렇게 갑작스럽게 그 집에서 해고당한 게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었죠.어떤 사람은 그 얘가 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랬을 거라더군요.하긴 그 애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는 눈치이긴 했어요.결국 그얘가 사람 들한테 대강 암시를 준 셈이죠." 베아트리체 킹은 키가 작고 편도선 증세가 있는 약간은 교활해 보이는 소녀였다. 전체적으로는 상당히 멍청한 바보같이 생겼지만 그녀의 눈빛만은 의외로 반짝이고 있었다.그러나 베아트리체 킹한테서 별다른 이야기를 기대하기란 애시당초 무리인 것 같았다.그녀는 같은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전 아는게 없어요.거기서 무슨 일이 생겼다고 말하라는 건지 전 모르겠어요.의사 선생님과 몬크리프 양이 이야기하는 것을 제가 엿들었다고 하시는데 그건 전 모르는 일이랍니다.전 남의 말을 몰래 엿듣는 그런 사람이 아니란 말이에요.또 그렇다 치더 라도 선생님은 그런 말을 할 권리가 없어요.전 아무것도 모른다니까요." 포와로가 말했다. "비소중독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은 있소?" 그러자 샐쭉해 있던 그 소녀가 처음으로 얼굴이 흥미롭게 변했다. "그럼,약병 속에 들어있던 게 바로 그거였나요?" "무슨 약병?" 베아트리체가 말했다. "몬크리프 양이 마님한테 조제해 준 약병준 하나인데요,간호원 이 그걸 모두 쏟아버리는 걸 제가 본 적이 있어요.글쎄,그걸 맛을 보고 냄새를 맡더 니 하수구에다 그 약을 쏟아버리는 거예요.그리고나서는 수도꼭지를 틀어 그 병에다 물을 가득 채우더라고요.어쨋든 물같이 생긴 흰 약이었어요.그런 일이 있고 나서 또 한번은 몬크리프양이 마님께 찾주전를 갖다 주었는데 그때도 간호원은 그 주전자의 물을 쏟아버리고 새 물을 넣더라고요.저한테 말하기는 끓인 물이 아니어서 그렇다고 했지만 제가 보기에는 결코 그런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고요! 물론 그때는 저도 으례 간호원들이라면 저렇게 유난스럽게 일해야 하나보다라고만 여겼죠.하지만 이젠 모르 겠어요.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었는지도 모르잖아요?" 포와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베아트리체,아가씨는 몬크리프 양을 좋아했나?" "싫어하지는 않았어요.좀 쌀쌀맞기는 했지만.물론 전 그녀가 의사 선생님한테 홀딱 반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죠.그건 의사 선생님을 쳐다보는 그녀의 눈빛만 봐도 대번 에 알 수 있어요." 포와로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나서 그는 여관으로 되돌아갔다. 거기서 그는 조지에게 몇가지 지시를 내렸다. 레르네의 히드라 4 내무부 해부학자 앨랜 가르시아 박사는 손을 문질러 닦은 다음 눈을 빛내며 에르큘 포와로를 쳐다보았다. "포와로씨,이것도 당신한테 걸맞는 일인 것 같은데요? 항상 결과가 틀린 적이 없으시니까." 포와로가 말했다. "너무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어떻게 해서 그걸 알게 됐습니까? 소문?" "말씀 그대로입니다.온갖 소문이 난무하는 소문 속에 뛰어든 덕분이죠." 그 다음날 포와로는 다시 마켓 로브로행 열차를 탔다. 마켓 로브로는 마치 벌집을 들쑤셔 놓은 것 같았다.시체를 파헤치기 시작된 이래로 마을 사람들의 흥분은 그 절정을 달해 있었다. 포와로는 여관에 약 1시간 동안 머물면서 스테이크와 키드니 푸딩을 점심으로 푸짐 하게 먹었다.그리고 맥주를 한 잔 입가심으로 마시고 있는데 어떤 숙녀가 그를 만나 러 왔다는 전갈을 받았다. 그 사람은 해리슨 간호원이었다.몹시 수척해 보이는 그녀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 했다.그녀는 곧장 포와로에게로 다가왔다. "그게 정말이세요,포와로씨? 그게 정말이냐고요?" 그는 그녀를 편안하게 의자에 앉혔다. "예,치사량의 비소가 검출되었습니다." 해리슨 간호원이 큰소리로 외쳤다. "전 생각도---정말 꿈에도 생각 못했다고요." 그러더니 울음을 와락 터뜨렸다. 포와로가 부드럽게 말했다. "진실은 밝혀져야 하는 법이죠." 그녀는 흐느끼며 말했다. "선생님을 교수형에 처할까요?" 포와로가 말했다. "아직은 더 밝혀져야 할 게 있습니다.독약을 손에 넣게 된 경로-- 같은 것 말입니다." "하지만 포와로씨,만약 선생님이 그 일과는 아무 상관 없다면---정말 아무 상관이 없다고요." "그렇다면야---" 하고 포와로가 어깨를 으쓱했다. "당연히 석방되죠." 해리슨 간호원이 천천히 말했다. "사실은 말씀드렸어야 하는 건데---전에 제가 당신 한테 얘기하지 않은 게 있어요.하지만 전 그걸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거든요. 어쨌든 좀 수상스러운 일이 있었어요." "당신이 나한테 얘기하지 않은 게 있다는 걸 난 알고 있었소." 포와로가 말했다. "지금이라도 좋으니까 다 얘기해 봐요." "별 대수로운 일은 아녜요.언젠가 한 번 제가 무슨 일 때문에 조제실로 내려갔더니 진 몬크리프가 좀----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더라구요." "예?" "바보같이 들릴지 모르겠는데요,그녀가 자기 콤펙트에 무엇인가를 가득 채우고 있 더군요.분홍색 에나멜로 된 것이던데---" "예?" "하지만 그녀가 콤펙트에 넣고 있던 건 가루분이 아니었어요.화장품 말이에요.그녀 는 독극물이 놓여 있는 선반에서 병 하나를 꺼내 그 병 속에 든 내용물을 콤팩트에 쏟아붓고 있다가 내가 들어서는 것을 보고 소르라치게 놀라더군요.그리고는 재빨리 그 콤팩트를 자기 백 속에 집어넣기가 무섭게 그 병을 본래 있던 자리에 도로 올려 놓더라고요.아마 그 병에 뭐가 들었는지 제가 아는 게 싫었나봐요.정말 대수로운 일은 아니었어요---하지만 올드필드 부인의 사인이 독약중독으로 판명된 이상--" 그녀는 말을 멈추었다. 포와로가 말했다. "잠깐 실례좀 해도 될까요?" 그는 밖으로 나가 버크셔 군 경찰서의 수사과 그레이 경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에르큘 포와로는 머릿속에 빨간머리 아가씨의 얼굴을 그려보았다.그러자 그녀의 딱딱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는 것 같았다. "전 찬성할 수가 없어요." '진 몬크리프 양은 검시를 원하지 않았어.' 그녀가 그럴듯한 말로 그에 대한 이유를 둘러대긴 했지만 사실은 사실인걸.유능하고---지적이며 의지가 강한 아가씨. 그녀가 불평만 하는 병든 아내를 둔 남자와 사랑에 빠지지만 않았어도 그 아내는 수년은 족히 살았을 것이고----이건 해리슨 간호원의 말인데---그녀 또한 아무 문제 없이 살아갔을 것을! 에르큘 포와로는 한숨을 내쉬었다. 해리슨 간호원이 말했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세요?" 포와로가 대답을 했다. "안됐다는 생각......" 해리슨 간호원이 말했다. "전 그분이 그 일에 대해 알고 계셨다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아요." 포와로가 말했다. "그렇소.나도 그렇다는 걸 확신하는 바요." 문이 열리면서 수사과 그레이 경사가 안으로 들어왔다.드는 손에 실크 손수건으로 둘둘 싼 물건을 들고 있었다.그가 그 포장을 벗기고 속의 내용물을 조심스레 내려놓 았다.그것은 붉은 분홍 색깔의 에나멜 콤팩트였다. 해리슨 간호원이 말했다. "제기 본 게 바로 이거예요." 그레이가 말했다. "몬크리프 양이 책상 서랍 뒤 오른쪽에 숨겨 놓은 것을 찾아냈습니 다.그래도 신중을 기해야죠." 그는 손가락에 손수건을 감고서 스프링을 눌렀다.그러자 콤팩트 뚜겅이 활짝 열렸다 그레이가 말했다. "이건 화장분이 아닙니다." 그는 손가락으로 가루를 살짝 찍어 혀끝에 대고 아주 조심스럽게 맛을 보았다. "뭐 특별한 맛은 없군요." 포와로가 말했다. "하얀 비소가루는 본래 맛이 없지요." 그레이가 말했다. "당장 분석을 해봐야 되겠습니다." 그는 해리슨 간호원을 쳐다 보 았다. "이게 바로 그 콤팩트라는 걸 맹세할 수 있습니까?" "예 그건 자신할 수 있어요.올드필드 부인이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쯤에 제가 조제실 에서 봤던 몬크리프양의 그 콤팩트가 틀림없다고요." 그레이 경사는 한숨을 쉬었다.그리고 포와로를 쳐다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포와로가 수화기를 들었다. "우리 집 하인한테 이리 오라고 해주시오." 사려가 깊고 신중하여 완벽한 하인 역할을 해내는 조지가 들어와 궁금한 표정으로 자기 주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에르큘 포와로가 말했다. "해리슨 양,당신은 거의 1년 전에 몬크리프 양이 이 콤팩트 를 갖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그런데 메서즈 울워스 상점에서는 이것을 겨우 몇 주 전에 팔았다고 합니다.게다가 이런 모양과 색깔을 지닌 콤팩트가 만들어져 나오기 시작한 게 이제 3개월 됐다고 합니다.그렇다면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셜명하시겠소?" 해리슨 간호원은 경악했다.그녀는 눈을 커다랗게 뜬 채로 포와로의 얼굴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포와로가 말했다. "조지,자넨 전에 이 콤팩트를 어디서 본 적이 있는가?" 조지는 한발짝 앞으로 걸어나왔다. "예,나리.전 해리슨 간호원이 18일 금요일 울워스 상점에서 이걸 사는 걸 지켜보았습니다.그리고 나리 분부대로 이 숙녀가 가는 곳마다 따라다녔지요.콤팩트를 샀던 그날 해리슨 양은 다닝턴으러 가는 버스를 잡아탔습니다 자기 집으로 그걸 갖고 간 거죠.그리고 얼마 뒤에---같은 날입니다.그녀는 몬크리프 양의 하숙집으로 갔습니다.물론 저는 나리께서 시키는 대로 이미 그 집에 있었지요. 그리고 그녀가 몬크리프 양의 침실로 들어가 이걸 책상 서랍 뒤쪽에 숨겨놓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물론 문 틈새로 몰래 본 거죠.그런 다음 제가 보고 있다는 사실은 까맣게 모른 채 그녀는 의기양양하게 그 집을 빠져나갔습니다.한 말씀 더 드리자면 이 마을에서는 현관 문을 잠그는 집이 하나도 없다는 것과 그 시간은 날이 저물 때 였다는 겁니다." 포와로가 딱딱하고 호되게 질책하는 목소리로 해리슨 간호원에게 말했다. "해리슨 간호원,이래도 부정할 수 있겠소? 그럴 수는 없을거요.당신이 메서즈 울워스 상점에서 이걸 샀을 때만 해도 그 속에는 가루분이 들어 있었지만 브리스토양 집에 이걸 두고 나왔을 때 그 속에는 가루분 대신 비소가 들어 있었소." 그는 부드럽게 덧붙였다. "당신이 계속 비소를 갖고 있었던 건 아주 어리석은 짓이 었소." 해리슨 간호원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그녀는 잘 알아들을 수 없는 흐릿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이---에요.모두 사실이라고요.제가 죽였어요.그런데 결과가 이렇게 끝나다니---아무것도 된 게 없는데......제가 미쳤서요." 진 몬크리프가 물었다. "포와로씨,어떻게 사과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군요. 제가 당신한테 너무 화를 내서 말이에요.그렇게 화를 내서 정말 죄송해요.제가 보기 에는 당신 때문에 사태가 악화되는 것 같았거든요." 포와로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이 일을 맡은 이유가 바로 그겁니다.소문은 마치 신화에 나오는 레르네의 히드라와 같다고 할 수 있지요.머리 하나를 자르면 그 자리에 머리 두 개가 나오니 말입니다.하여튼 그렇게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소문이 커져 버렸소.따라서 내가 해야 할 일은 헤라클레스의 이름을 딴 내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첫번째 머리,그러니까 본래 머리를 찾아내는 것이었지요.이 소문을 맨 처음 퍼뜨린 사람은 과연 누군가? 해리슨 간호원이 그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 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습니다.난 그녀를 만나러 갔었지요.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멋진 여자 같더군요.지적이고 인정 있게 생겼습니다.하지만 그녀가 치명적인 실수를 한 게 있소.아가씨와 의사가 주고받는 대화를 자기가 엿들었다고 나한테 되풀이해서 말한 게 화근이 된 셈이죠.심리학상 그런 일이 일어날 수가 없거 든요.만약 아가씨와 그 의사가 공모해서 올드필드 부인을 죽일 작정이었다면 계단이 나 부엌에서 누가 듣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문을 열어놓고 그런 이야기 를 하지는 않았을 거요.왜냐하면 당신들 두 사람이 그렇게 바보는 아니니까.게다가 아가씨와 했다는 그 얘기도 도대체 아가씨 성격에 어울리지가 않아요.그런 얘기는 아가씨보다 훨씬 더 나이가 많고 또 아가씨와는 완전히 다른 타입의 여자한테나 어울리지요.따라서 그 이야기는 모두 해리슨 간호원의 머릿속에서 나온 게 틀림없다 고 생각했소.즉,그녀가 그와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했을 이야기를 한 셈이지요. 그때가지 난 전체적인 사건이 아주 간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해리슨 간호원이 나이는 들었지만 상당히 젊어보이고 여전히 아름답다는 사실을 깨달았지요.그녀는 거의 3년 동안이나 올드필드 박사와 얼굴을 마주 대하고 지냈습니다.의사는 재치 있고 인정 있는 그녀에게 고마워하면서 아주 잘해 줬겠지요.그러는 동안에 그녀는 올드필드 부인이 죽는다면 의사가 자기한테 청혼을 할지도 모른다는 상상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런데 올드필드 부인이 죽자,그녀는 올드필드 의사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 게 되었습니다.분노와 질투심에 사로잡힌 그녀는 올드필드 의사가 자기 아내를 독살 했다는 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합니다. 지금 내가 한 이야기는 맨 처음의 상황을 한번 상상해 본 거지요.이번 사건이 질투심 많은 여자가 근거없는 소문을 퍼뜨린 데서 시작되엇다는 것은 확실해졌습니다.그런데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리 없다'라는 옛날 속담이 웬지 마음에 걸렸소.해리슨 간 호원이 소문을 퍼뜨린 일 이상의 것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란 말입니다. 그녀 말로는 올드필드 부인은 몸에 진짜 병이 있었던 게 아니라 자기가 병에 걸렸다 고 상상한 것 뿐이라고 했지요.그러니까 그 부인이 병 때문에 육체적인 고통을 당 하지는 않았다는 말입니다.하지만 의사인 그 남편은 자기 아내가 병에 걸렸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그러니까 그 아내가 죽었을때 별로 놀라지 않았지요.그는 그녀가 숨을 거두기 얼마 전에 다른 의사를 불러와 진찰을 시켰는데 그때 그 의사도 그녀의 병세가 심상찮다고 했다더군요.시험삼아 난 시체를 파헤치는 게 좋겠다는 얘 기를 해봤습니다.그 이야기에 대경실색한 사람은 바로 해리슨 간호원이었어요.그와 동시에 또다시 질투와 증오심이 그녀의 가슴 깊은 곳에서 끓어올랐습니다. '사람들이 비소를 발견한다 해도---날 의심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지.'라고 그녀는 생각했습니다.그 일로 고통을 받게 될 사람은 의사와 진 몬크리프가 될 게 틀림없을 테니까요.그러자 좋은 생각이 하나 떠올랐습니다.'해리슨 간호원으로 하여금 무리 하게 하여 실패하게 만들자.'진 몬크리프를 없앨 수만 있다면 해리슨 간호원은 수단 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라고 내 나름대로 생각했던 거요.그래서 난 정말 겸손하 고 믿음직한 우리 조지에게 명령을 내렸습니다.그녀는 조지의 얼굴을 모르지요.그는 그녀의 뒤를 미행했습니다.그래서 결국---이렇게 모든 게 잘 해결되었지요." 진 몬크리프가 말했다. "당신은 정말 굉장한 분이세요." 올드필드 박사가 옆에서 맞장구를 쳤다. "정말 그렇소.어떻게 이 은혜를 갚아야 할 지 모르겠군요.내가 정말 눈먼 바보였소!" 포와로가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마드무아젤,아가씨도 눈이 멀었나요?" 진 몬크리프가 느릿느릿 말했다. "전 걱정이 돼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아시다시피 독약 찬장 속에 들어있던 비소가 조금씩 없어지길래......." 올드필드가 외쳤다. "진---당신 설마---?" "오,아녜요----당신이 아녜요.전 단지 올드필드 부인이 그걸 몰래 가져갔을 거라고 생각했었지요.비소를 극소량 먹으면 몸이 아픈 사람처럼 되는데,전 부인이 사람들의 동정을 사려고 그러다가 부주의하게 너무 많은 양을 먹은 줄로만 알았거든요.하지만 제가 두려웠던 것은 검시 결과 시체에서 비소가 검출되면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범 인으로 지목할 거라는 사실이었어요.그래서 비소가 없어지는 줄 알면서도 아무 내 색을 할 수가 없었던 거죠.심지어는 극약 장부까지 조작해서 기록했는걸요! 그렇지 만 전 그 범인이 해리슨 간호원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답니다." 올드필드가 말했다. "나 역시 그렇소.그녀는 정말 여자다웠거든요.마치 성모 마리아 처럼 말이오." 포와로가 침통한 어조로 말햇다. "그렇습니다.그녀는 훌륭한 아내와 어머니가 될 수 있는 여자였는데....자신의 감정을 주체하기가 어려웠던 게 탈이었지요." 그는 한숨을 내쉰 뒤에 다시 한 번 중얼거렸다. "정말 안됐어." 그리고 나서 그는 자기 앞에 앉아 있는 행복해 보이는 중년남자와 열렬한 감정에 휩싸인 아가씨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미소지었다.그가 혼자 중얼거렸다. "이 한 쌍의 연인이 이제야 태양을 보게 되었군.그리고 난---이제 헤라클레스의 두 번째 모험을 마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