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리온의 무리들 1 "이렇게 불쑥 찾아와서 정말 미안합니다,포와로 씨." 카너비 양은 자신의 핸드백을 양손으로 단단히 움켜쥐고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그리고는 근심어린 눈길로 포와로 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여느 때와 같이 그녀의 목소리는 숨가쁘게 들렸다. 에르큘 포와로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그녀는 속이 타는 듯이 말했다. "저를 기억하시겠지요?" 에르큘 포와로의 눈이 반짝 빛났다. "내가 만난 범인들 중 가장 운이 좋았던 사람 가운데 하나라고 기억하고 있소!" (*카너비양은 첫째 사건 네메아의 사자의 주인공 글 올려놨스니 찾아읽어보세요) "어머나,포와로 씨.꼭 그렇게 말씀하셔야 돼요? 제게 친절하게 대해 주셨던 것은 늘 잊지 않고 있답니다.에밀리와 전 종종 포와로 씨 얘기를 하곤 해요.그리고 혹시 신문에 당신에 대한 기사라도 나면 오려서 철을 해놓곤 합니다.아우구스투스한테는 우리가 새로운 재주를 하나 가르쳤죠.우리가,'셜록 홈즈를 위해 죽어라,포튠 씨를 위해 죽어라,헨리 메이베일 경을 위해 죽어라 그리고 에르큘 포와로 씨를 위해 죽 어라.'라고 말하면 아우구스투스는 말을 할 때까지는 꼼짝도 하지 않고 그대로 누 워 있지요!" "그것 참 영광입니다." 하고 포와로가 말했다. "그래 그 귀여운 아우구스투스는 어떻 게 지냅니까?" 카너비 양은 양손을 깍지끼고는 자기 집 발바리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기 시작 했다. "오,포와로 씨,말도 마세요.얼마나 영리해졌는지 몰라요.모르는 게 없답니다. 얼마 전에 제가 유모차에 있는 어떤 아기를 보고 예쁘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있는데 갑자기 감각이 이상해서 돌아보았더니,글쎄 아우구스투스가 있는 힘을 다해 개끈을 물어뜯고 있지 않겠어요? 그것만 보도 얼마나 영리한지 아시겠죠?" 포와로의 눈이 반짝 빛났다. "아우구스투스도 우리가 지금 얘기하고 있는 그런 범죄 의 취향을 갖게 된 모양이지요!" 그러나 카너비 양은 웃지 않았다.대신 그녀의 통통한 얼굴에는 걱정과 슬픈 기색이 감돌았다.그녀가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포와로 씨.걱정이 돼서 죽겠어요." 포와로가 천천히 말했다. "무슨 일이지요?" "아시다시피,포와로 씨.전 두려워요---전 정말로 두렵습니다.제가 '상습적인 범죄 자'라는 사실 말이에요.그런 표현을 쓸 수 있는 자격이 제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수시로 착상들이 떠올라 미치겠어요!" "무슨 착상이요?" "아주 별난 착상들이에요! 예를 들면 어제는 우체국을 털 아주 구체적인 계획이 머 리에 떠올랐어요.그런 걸 염두에 둔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갑자기 그런 계획이 머리에 떠오르더라고요! 그리고는 세관에 침입할 수 있는 기발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겠어요.....전 확신이 서요.아주 확신이 온다고요.그 계획이 생각으로만 끝나지 않고 실행될 거라는 걸 말이에요." "아마 그럴지도 모르죠." 하고 포와로가 차갑게 말했다. "당신의 착상이 위험한 이 유가 바로 그겁니까?" "그래서 저도 얼마나 고민이 되는지 몰라요,포와로 씨.어릴 때 아주 엄격한 가정교 육을 받고 자란 저로서는 그런 법에 위배되는---진짜 나쁜---착상들이 머리에 떠 오르는 게 양심에 가책이 되어 죽겠어요.제가 생각하기에 문제는 물론 부분적인 것 이긴 하지만 제가 너무 한가한 시간이 많아서 그런 것 같아요.요새 전 호긴 부인댁 을 나와 한 노부인 밑에서 매일 편지를 읽어주고 또 그녀 대신 편지를 써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하지만 편지쓰는 일이란 게 금방 끝나기 마련이고,제가 책을 한두 줄 읽기가 무섭게 그녀는 잠이 들어버리니까 그만 할 일이 없어져 그냥 가만히 앉아 있 게 되거든요.다시 말해 빈둥거리며 그냥 시간을 보내는 거죠.그런데 악마는 바로 그 게으름을 이용한다는 사실은 모르는 사람이 없잖아요." "쯧쯧!" 하고 포와로는 혀를 찼다. "요 얼마 전에 아주 최근에 나온 책을 한 권 읽었어요.독일어를 번역한 책인데 인간 의 범죄성향에 대해 아주 시사적인 의미를 던져주고 있더군요.제가 이해하기로는 인 간은 누구나 자신의 충동을 승화시켜야 된다는 의미 같았어요! 사실은 그 때문에 선 생님을 찾아온 거예요." "뭐요?" 하고 포와로가 말했다. "포와로 씨는 아실 거예요.전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 그 자체는 그리 사악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제 일생은 불행하게도 아주 평범한 것이었어요.저어---그래서 그 발바리들과 함께 운동을 했을 때가 진짜 사는 것 같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 아요.물론 그건 비난받아 마땅하지만,제가 읽었던 책에도 써 있듯이 인간은 사실에 등을 돌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선생님을 이렇게 찾아온 것은,혹시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이 있어서예요.자극적인 것을 추구하는 저의 그런 성향 을 승화시킬 수 있도록 선생님께서 좀 도와주시면 안될까요? 그렇게 되면 천사의 편에서 그런 성향을 쓸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아하---" 하고 포와로가 말했다. "그러니까 자진해서 내 동료가 되겠다는 말이오?" 카너비 양의 얼굴이 붉어졌다. "주제넘은 말씀을 드리고 있다는 것은 저도 잘 알아 요.하지만 선생님이 너무 친절하게---" 그녀는 말을 끊었다.그녀의 엶은 푸른색 눈 빛은 혹시나 주인이 데리고 산책이라도 나가 주지 않을가 하고 요행을 바라는 강아 지의 눈빛을 닮아 있었다. "그것도 한 착상에 들어가겠군." 하고 에르큘 포와로는 천천히 말했다. "물론,전 그렇게 똑똑한 편이 못 됩니다." 하고 카너비 양이 덧붙였다. "하지만 제가 가진 능력 중---시치미떼는 능력 하나만은 우수하다고 자부해요.물론 그러지 않을 수 가 없었죠.그렇지 않으면 먹고 사는데 지장이 많았을 테니까요.그리고 제 경험상 좀 어리석은 척하는 것이 그렇지 않을 때보다 훨씬 더 결과가 좋다는 것을 알고 있죠." 에르큘 포와로는 웃었다. "아가씨가 몹시 마음에 들어요,마드무아젤." "어머나,포와로 씨.정말 친절하신 분이세요.그럼,이제 희망을 가져도 되는 거죠? 공교롭게도 바로 얼마 전에 유산을 조금 물려 받았어요.얼마 안되긴 하지만,그래도 동생과 제가 먹고 살기에는 충분한 금액이기 때문에 전처럼 제가 그렇게 열심히 일 을 하질 않아도 되게 되었답니다." "이제 내가 고려해야 할 사항은---" 포와로가 말했다. "당신의 재능을 어디에 가장 적합하게 써먹을 수 있는가 하는 점이오.당신한테 무슨 생각이 있을 법도 한데, 어떻소?" "선생님은 상대방의 마음속까지 꿰뚫어 보시는군요.안 그래도 요즘 제 친구 하나가 걱정이 되어 죽겠어요.그래서 선생님을 찾아 오려고 했었죠.물론 선생님은 한 늙은 하녀의 부질없는 공상이나 상상이라고 하실지도 모르겠어요.사람이란 원래 과장하는 버릇이 있어서 그냥 우연히 같이 일어난 사건들이라도 한데 엮어 줄거리를 만들어 보려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당신이 과장해서 생각한다고 보지 않소,카너비 양.그러니까 생각나는 대로 다 얘기 해 봐요." "저한테 친구가 하나 있는데 아주 절친한 친구예요.비록 최근 몇 년 간은 자주 만나 지 못했지만요.이름은 에멀린 클레그입니다.영국 북부에 사는 한 남자에게 시집갔 었는데 몇 년 전에 그 남편이 세상을 떠나서 제가 보기에는 혼자 조용히 살고 있 는 친구예요.하지만 친구는 그 남편이 죽은 뒤 외로움과 불행하다는 느낌에 사로 잡혔는지 어떤 면에서 보면,좀 바보스럽고 고지식한 여자가 된 것 같아요.신앙이 삶에 큰 도움이 되기는 하겠지요.하지만 그건 전통적인 종교일때나 그렇죠." "그리스 정교(카톨릭의 한 분파로 로마 교황을 인정하지 않고 교회와 의식을 존중함 얘기요?" 하고 포와로가 물었다. 카너비 양은 충격을 받은 듯했다. "오 아녜요.영국 국교 말입니다.전 카톨릭을 좋아 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인정은 해요.또 웨즐리 교(영국의 감리교)와 조합 교회 역시 유명한 종교단체들이지요.제 말은 아주 별난 신흥종교단체들에 대한 얘기예요.그들 은 요즘 막 세력을 확장하고 있어요.그들의 종교가 일종의 감정적인 호소력을 지니 고 있기는 하지만 그게 순수한 의미에서의 종교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은 의문점 이지요." "그럼 그 친구가 그런 신흥종교단체 때문에 희생되었을 거라는 거요?" "그래요.오,틀림없어요.그들은 스스로 '목자의 무리'로 자처한다더군요.그들의 본부 는 데븐셔에 있어요.바다와 접해 있는 아주 아름다운 마을이죠.그 신자들은 피정 (避靜 일정한 기간 동안 조용한 곳에서 하는 종교 수련)이라는 종교적 행사를 위해 그곳에 모입니다.그리고는 2주일 동안 거기서 예배와 독특한 의식을 행한답니다. 또 일 년에 세번 큰 축제가 있는데,그걸 목초도래제,총목초제,목초추수제라고 한다 나 봐요." "마지막 게 제일 우습군." 하고 포와로가 말했다. "목초를 추수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것만 우스운 게 아니라 다 우스워요." 카너비 양은 다소 흥 분된 어조로 말했다. "그 교파의 가장 중심인물은 신도들이 '위대한 목자'라고 부르 는 사람인데,앤더슨 박사라는 남자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직접 보면 인물이 아주 잘 생긴 남자인가 봐요." "그 외모가 여자들을 끄는 매력이란 말이군요?" "글쎄,그래서 걱정이 된다니까요." 카너비 양이 한숨을 쉬었다. "우리 아버지는 인 물이 아주 잘생긴 사람이셨어요.그런 까닭에 교구 내에서 난처한 일이 종종 생겼답 니다.같은 성직자들끼리 시샘하고---그래서 교구가 갈라지고....." 그녀는 회상에 젖은 채 머리를 저었다. "그 '위대한 무리' 신도들이 대부분 여자들이오?" "적어도 사분의 삼은 그럴 거예요.남자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얼치기 들이죠! 따라서 그 교단의 세력 확장을 위해 전도를 하는 것도 헌금을 내는 것도 여자들이죠." "아하---" 하고 포와로가 말했다. "이제 문제의 핵심에 이르렀군요.솔직히 말해 당 신은 그 단체가 엉터리 사기라는 거요?" "솔직히 말해서 그래요,포와로 씨.그리고 제가 걱정하는 이유가 또 있어요.그 불쌍한 제 친구가 그 종교에 빠져 최근에 자기의 모든 재산을 이 단체에 헌납하겠다는 유언 장을 작성했거든요." 포와로가 날카롭게 말했다. "그쪽에서 그런 걸---그녀에게 은근히 강요하거나 암시한 적은 있었소?" "공정하게 말한다면 없어요.그건 전적으로 제 친구의 의사였어요, '위대한 목자'가 새로운 삶의 길로 인도해 주었고---그렇게 때문에 자기가 죽으면 위 대한 운동을 위해 모든 재산을 교단에 바치겠다는 거예요.그런데 제가 정말 염려스러 운 점은---" "좋아요---계속하시오." "그런 유언장을 작성한 사람들 중에 아주 돈이 많은 여자들이 여럿 있었는데,작년에 그 중 세 명이 죽었어요." "자신들의 재산을 모두 교단에 남겨주고 말이지요?" "예." "그들의 친척들이 아무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습니까? 소송을 제기했을 법도 한데요." "아실는지 모르겠지만,포와로 씨.그 교단의 신도들은 대부분 독신녀들이에요.가까운 친척이나 친구들이 거의 없는 사람들이죠." 포와로가 생각에 잠겨 고개를 끄더경캚다. 카너비 양은 서둘러 얘기를 계속했다. "물론 제가 그런 것을 문제삼을 권리는 없어요.제가 알고 있는 한도 내에서는 그들의 죽음에 의문을 품을 만한 점이 없거든요.한 사람은 유행성 독감 후유증으로 급성폐 렴에 걸려 사망했고,또 한 사람은 위궤양으로 죽었죠.그들이 사망했을 때의 상황으 로 봐서는 이상한 점이 전혀 없어요.다시 말해 그들 모두 그린 힐 성소가 아닌 자기 집에서 숨을 거뒀다는 거죠.그러니까 문제가 있는 건 분명 아니겠지만,그래도 전-- 글쎄---에미한테 혹시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까봐 걱정이 돼서 그러는 거죠." 그녀는 손을 깍지끼고서 호소하는 눈빛으로 포와로를 바라보았다.포와로는 한동안 침 묵을 지켰다.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을 때 목소리에는 변화가 있었다.그는 심각하고 어두운 투로 말했다. "최근에 사망한 여자들의 이름과 주소를 알고 있으면 얼려주고 모른다면 찾아서 알려주겠소?" "그렇게 하고말고요,포와로 씨." 포와로가 느릿느릿 말했다. "마드무아젤,내 생각에 당신은 대단한 용기와 결단력이 있는 여성인 것 같소.또 연기력도 대단하고 말이오.그럼,상당한 위험이 뒤따를지도 모르는 일이 하나 있는데 그 일을 맡아 주겠소?" "그럼,맡다마다요." 하고 모험심에 가득찬 카너비 양이 말했다. 포와로가 경고하듯이 말했다. "만약 정말로 위험이 따른다면,목숨까지도 의험해질지 모르오.이게 아무것도 아닌 일인지,아니면 중대한 사건인지는 당신이 호랑이굴로 들 어가 살펴보면 알게 될것이오만,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당신이 그 위대한 무리의 신 도로 위장해야 할 것이오.내 생각으로는 당신이 요즘 물려받았다는 그 유산의 액수 를 좀 불리는 게 좋을 듯싶소.그럼,이제부터 당신은 인생의 아무런 목표없이 방황하 는 부유한 여인이 되는 것이오.그리고 당신의 친구인 에멀린이 푹 빠져 있는 그 종교 에 대해 그녀와 논쟁을 하는 거요.그 종교가 아주 잘못된 것이라고 하면서 말이오. 그러면 그녀는 그 말에 반박을 하면서 어떡해서든지 그 종교로 당신을 끌어들이려 하 것이요.그럼,당신은 그 말에 설복되어 그린 힐 성소로 내려가는 것처럼 행동하는 거 요.그리고 거기서 앤더슨 박사의 설교와 그 마술적인 매력에 사로잡힌 광신자가 된 척하는 거요.당신이라면 그 역할을 충분히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은데,어떻소?" 카너비 양이 겸손하게 미소를 지었다.그리고 나지막히 말했다. "그런 일이라면 자신 있어요!" 2 "어이,여보게,뭘 좀 알아낸 게 있는가?" 재프 주임경감은 그 물음을 건네온 자그마한 남자를 조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았 다.그리고는 좀 기가 죽어서 대답했다. "쓸 만한 정보는 전혀 없네,포와로.난 그 머 리를 길게 기른 광신자들이 독약만큼이나 싫다네.여자들에게 허황된 미신 같은 것을 잔뜩 주입시켰더군.그렇지만 그 친구 꽤나 용의주도하던걸.도무지 꼬투리 잡을 만한 게 없더라고.모든 게 약간은 비정상으로 보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크게 해가 될 만한 것도 없어." "그 앤더슨 박사라는 남자에 대해서는 좀 알아봤는가?" "그의 지난 과거를 조사해 봤지.한때는 총망받는 화확자였는데 독일 어느 대학에 있다가 밀려났더군.어머니가 유태인이었던 탓인가봐.그는 동양의 신비주의와 종교에 관해 항상 관심이 많아서 남는 시간을 모두 그 연구에 매달렸고 또 다양한 논물들을 썼다네.그 중 어떤 논문은 내가 보기에 미친 듯한 내용을 담고 있더군." "그럼,그가 진짜 광신자일 가능성이 있다는 건가?" "바로 그런 말이지!" "내가 자네한테 준 주소와 이름에 대해서도 알아봤는가?" "거기도 별 이상한 점은 없어.에버릿 양은 궤양성 대장염으로 사망했는데,의사 말로 는 그 사인에 이상은 전혀 없었다고 하더군.로이드 부인은 기관지 폐렴으로 사망했 다네.그리고 웨스턴 부인은 폐결핵으로 사망했는데,아주 오래 전부터 그 병을 앓았 다는 거야.그 교단에 들어가기 전부터 말일세.리 양은 장티푸스로 사망했네.영국 북 부의 어느 식당에서 먹을 샐러드가 아마 상했었나봐.네 사람 중 셋은 병이 들어 자 집에서 죽었고,로이드 부인은 프랑스 남부의 한 호텔에서 죽었네.그리고 그들의 죽 음에 '위대한 무리'나 데븐셔에 있는 앤더슨이 관계되었다는 증거가 전혀 없어. 아마 우연의 일치일 거야.정확히 말해 문제되는 건 하나도 없네." 에르큘 포와로가 한숨을 쉬었다. "그렇지만,이보게,난 이번 일이 꼭 헤라클레스의 열 번째 모험일 것 같은 느낌이 드네.그리고 그 앤더슨 박사라는 녀석은 내가 없애 야 할 괴물 게리온인 것 같고 말일세." 재프가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그를 쳐다보았다. "이보게,포와로.최근에 이상한 소설을 읽은 건 아닌가?" 포와로는 위엄 있게 말했다. "내 말이야말로 합리적이고 틀림없지 "자네도 종교나 하나 만들지 그래?" 하고 재프가 말했다. "이런 신조를 하나 내걸고 서 말일세. '세상에 가장 똑똑하신 에르큘 포와로님,아멘,아멘.몇 번이고 이걸 외워 야 하느니라!' 라고." 3 "여기는 정말 평화스러운 곳이구나." 하고 카너비 양은 황홀한 음성으로 말했다. "거봐,내가 뭐랬어,에이미." 하고 에멀린 클레그가 말했다. 두 친구는 깊고 푸른 바다를 굽어보며 언덕 경사진 곳에 앉아 있었다.파릇파릇한 잔디,태양빛을 받아 작열하는 듯한 시뻘건 지면과 낭떠러지들---그린 힐 상소라고 알 려진 이 조그만 땅은 약 6에이커 정도 되는 곶(바다나 호수로 가늘게 뻗어 있는 육 지의 끝부분)이 었다.대륙에서 이곳으로 들어오는 길이라곤 아주 좁다란 길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섬이나 거의 다를 바 없었다. 클레그는 감상적인 어조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어젯밤 예배는 정말 멋있더구나." "그건 아무것도 아냐." 하고 그녀의 친구가 말했다. "오늘밤 축제를 기다려 봐.풍요 로운 총목초제가 벌어진다고!" "안 그래도 잔뜩 기대하고 있어." 하고 카너비 양이 말했다. "놀라운 영적인 체험을 하게 될 테니까 두고 보렴." 그녀의 친구가 그녀에게 약속이 나 하듯이 말했다.카너비 양이 그린 힐 성소에 도착한 것은 일주일 전의 일이었다. 처음 여기 도착했을 때 그녀의 태도는 이러했다. '그게 얼마나 말도 안되는 소리니? 에미,어쩜 너처럼 분별력이 있는 애가'---등등. 앤더슨 박사와의 예비면담에서 그녀는 솔직한 자기의 심정을 그대로 털어놓았다. "앤더슨 박사님,난 내 감정을 속인 채 신도인 척하고 싶지는 않습니다.우리 아버지는 영국 국교의 성직자이셨고 내 믿음이 흔들린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따라서 이교도 의 교리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덩치가 크고 금발인 남자가 그녈르 보고 미소를 지었다.아주 달콤하고 모든 걸 다 이 해한다는 듯한 미소였다.그는 의자에 매우 당당하게 앉아 있는 토실토실하고 약간은 도전적인 태도의 중년여자를 관대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친애하난 카너비 양." 그가 말했다. "클레그 부인의 친구시라고요? 여기 오신 걸 환영하오.우리의 교리는 결코 이교도의 교리가 아니오.여기서는 모든 종교를 환영하며 모든 사람이 평등하오" "믿을 수가 없는데요." 하고 고(故) 토마스 카너비 목사의 믿음직한 따님이 말했다. 의자에 몸을 뒤로 기대며 그 교주가 퐁부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는 집이 많이 있소...그것을 기억하시오,카너비 양." 그들이 면담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자 카너비 양이 자기 친구에게 속삭였다. "그 사람 정말 멋있게 생겼던데." "응." 하고 에멀린 클레그가 말했다. "그리고 영적인 능력도 놀라우신 분이셔.영적 으로 거룩해 보이시잖니?" 카너비 양도 그 말에 동감이었다.그가 이 세상 사람 같지 않은 신비한 분위기를 지니 고 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아니,그렇게 느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영적인 성품 을 지녔다고 할까? 그녀는 마음을 단단히 다져 먹었다. '위대한 목자'의 신비스러운지 뭔지는 모르겠지 만 하여튼 그 마력에 이끌려 희생의 제물이 되고자 그녀가 여길 찾아온 것은 결코 아 니었기 때문이다.그녀는 에르큘 포와로의 모습을 마음속에 그려 보았다.순간 이상스 럽게도 그가 자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것과 동시에 몹시 세속적 인 사람으로 여겨졌다....... "에이미!" 하고 카너비 양이 혼자 중얼거렸다. "넌 마음을 굳게 먹어야 돼.네가 뭣 때문에 여길 왔는지 명심해." 그러나 날이 갈수록 그녀는 너무나 쉽게 자신이 그린 힐에 매료되어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평화스럽고 소박한 생활 간소하지만 맛있는 음식,'사랑과 경배'의 노래와 함께 거행하는 아름다운 예배의식,가장 고귀하고 숭고한 인간성에 호소하는 교주의 간결하면서도 감동적인 설교---세상의 분쟁과 추함이 이곳에는 없었다.오직 평화와 사랑만이 있을 뿐........ 오늘밤은 중요한 여름행사인 총목초제의 축제가 벌어지는 날이었다.그리고 에이미 카너비가 그들의 의식에 따라 세례르르 받기로 한 날이기도 했다.다시 말해 '위대한 무리'에 정식으로 가입하기로 한 날이었던 것이다. 축제는 '신령한 성도들의 집'이라고 불리우는 화려한 백색 콘크리트 건물에서 열렸다 사람들은 모두 양가죽으로 만든 망토를 걸치고 발에는 샌들을 신었다.또 양팔은 맨살 을 그대로 드러내 놓았다.'신령한 성도들의 집' 중앙에 있는 높은 대에는 앤더슨 박 사가 서 있었다.아름다운 금발,푸른 눈,멋있는 턱수염,당당한 체구---녹색 법복을 입 고 목자의 금지팡이를 들고 있는 그의 멋진 모습은 그렇게 매력적일 수가 없었다. 그가 그 금지팡이를 높이 쳐들자 주위가 쥐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나의 양들아,어디 있느뇨?" 그러자 모인 회중둘이 똑같이 입을 열어 대답했다. "여기 있나이다,목자시여." "너희들의 가슴에 기쁨과 감사가 충만할지어다.오늘밤은 '기쁨의 축제'니라." "'기쁨의 축제',저희가 기쁨이 넘치나이다." "너희들에게 더 이상의 슬픔과 고통은 없을지어다.기쁨만 있도다!" "기쁨만 있나이다......" "목자의 머리가 몇이뇨?" "셋이나이다.금(金)머리,은(銀)머리,소리나는 동(銅)머리." "양의 몸은 몇이뇨?" "셋이나이다.육의 몸,타락의 몸,빛의 몸." "'목자의 무리'는 어떻게 맹세를 하느뇨?" "피로 맹세하나이다." "너희들은 그 맹세를 할 준비가 되어 있느뇨?" "그러하나이다." "눈을 가리고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지어다." 온 회중이 하나같이 각자에게 배급된 녹색의 스카프로 자기 눈을 가렸다.카너비 양도 다른 사람들처럼 손을 뻗었다.위대한 목자가 그의 양떼들 사이를 차례로 지나갔다. 고통인지 희열인지 모를 그런 비명과 신음소리들이 여기저기에서 들렸다. 카너비 양은 마음속으로 외치고 있었다. "이건 신을 모독하는 짓거리야! 이런 광신적 인 히스테리를 보이다니 정말 다들 미쳤군.정신을 바짝 차리고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 어떤지 지켜봐야겠어.마음을 놓지 말아야지---난....." 위대한 목자가 그녀에게 다가왔다.그녀의 팔이 잡혀지는가 싶더니 갑자기 바늘로 콕 콕 찌르는 듯한 예리한 통증이 그녀를 엄습했다.목자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피의 맹세는 너희들에게 기쁨을 주도다....." 그는 지나갔다.이윽고 명령이 떨어졌 다. "눈 가린 것을 떼어내고 영혼의 기쁨을 누릴지어다." 해가 막 지려는 중이었다.카너비 양은 주위를 둘러보앗다.다른 사람들 속에 섞여 그 녀는 천천히 집 밖으로 걸어나왔다.갑자기 그녀의 몸이 붕 뜨는 것과 같은 황홀한 느 낌을 맛보았다.그녀는 부드러운 잔디가 덮여 있는 둑 위에 풀썩 주저앉았다.전에는 내가 왜 '외롭고 쓸모없는 중년여자'라고 내 자신을 비하했었지? 인생이 이렇게 멋 진데---내가 얼마나 멋진 여자란 말인가? 난 생각하는 능력이 있는 여자야.꿈도 있다 고.이 세상에서 내가 이루지 못할 게 뭐가 있담! 그녀는 기분이 몹시 유쾌해졌다.그녀는 자기 주위의 동료 신도들을 둘러보았다.갑자 기 그들의 키가 무진장 커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무들이 걸어다는 것 같군." 카너비 양이 속으로 생각했다.그녀는 손을 들어올렸다.그건 마치 자신이 지구를 지배 하기라도 하는 것 같은 몸짓이었다.시저,나폴레옹,히틀러---불쌍하고 지지리도 못난 친구들 같으니라고! 나,에이미 카너비한테는 할수 없는 게 없다는 걸 몰랐을 테지! 내일 난 세계의 평화를 위해,인류의 행복을 위해 일어서리라.전쟁도---가난도--- 질병도 더이상 없는 나라.나,에이미 카너비는 신세계를 건설할 것이다. 하지만 서두를 필요야 없지.시간은 얼마든지 있으니까....1분이 지나면 또 1분이 오 고 한 시간이 지나면 또 한 시간이 오거든! 카너비 양의 사지는 무겁게 가라앉았지 만 그녀의 기분만은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온 세상을 훨훨 날아다닐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그녀는 잠이 들었다.그러나 잠을 자면서도 꿈을 꾸고 있었다.광대한 땅.. 거대한 빌딩들...멋진 신세계...... 이윽고 점점 세상이 오므라들자 카너비 양이 하품을 하였다.그녀는 뻣뻣하게 굳어 있 던 사지를 움직였다.어제 무슨 일이 일어났었더라? 어젯밤에 꿈을 꾸긴 꾸었는데... 달이 떠 있었다.카너비 양은 달빛에 손목시계를 비쳐 보았다.정말 놀랍게도 시계바늘 은 15분 전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그녀가 알기로는 해가 진 시각이 8시 10분이었기 때문이다.그렇다면 겨우 한시간 35분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말인가? 그럴 리가 없어. 하지만---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군." 하고 카너비 양은 혼자 중얼거렸다. 4 에르큘 포와로가 말했다. "당신은 내 지시대로 따라야 해요,알았소?" "오,그럼요,포와로 씨.절 믿으세요." "그 교단에다 재산을 바칠 의향을 비춰봤겠지요?" "예,포와로 씨.제가 대교주,아니 앤더슨 박사에게 직접 얘기를 했죠.모든 게 너무나 놀라운 계시로 이루어지는데 내가 감히 어떻게 그 종교를 비웃을 수가 있으며 다른 종교를 믿을 수 있느냐는 식으로 감정을 풍부히 섞어 그에게 얘기를 했던 거죠.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제가 진짜로 그에게 고백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 뭐겠 어요.아실지 모르겠지만 앤더슨 박사는 매력이 철철 넘치는 남자예요." "그러리라고 짐작하고 있소." 하고 에르큘 포와로가 냉정하게 말했다. "그의 태도는 너무나 당당해서 어느 누구도 그의 앞에서 굴복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리고 진짜 도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이 없는 사람처럼 보여요.'형편이 되는 대로 바치시오.아무것도 바칠 게 없다 해도 문제가 되지는 않아요.여기서는 누구나 평등 하니까.'하고 그가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그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하더군 요.그래서 내가 이렇게 말했죠.'오,앤더슨 박사님,전 그렇게 가난하지는 않습니다. 먼 친척에게 상당한 유산을 상속 받았거든요.물론 법적인 절차가 완전히 다 끝날 때 까지는 그 돈에 손을 댈 수 없지만,제 소망은 단 하나에요.' 그리고는 내가 갖고 있 는 재산을 모두 교단에 기증하겠다는 유언서를 작성하고 싶다고 했지요.물론 내게 는 가까운 친척이 하나도 없다는 얘기까지 덧붙였죠." "그 사람은 유산을 기중하겠다는 그 뜻을 우아하게 받아들였겠군?" "거기에 대해서 아주 초연하게 행동하던데요.그의 말로는 이제 내가 장수할 것이며, 세속을 초월한 영적인 생활과 기쁨이 충만한 삶을 오래도록 살아가게 될 거라고 하더군요.그런데 그 말이 그렇게 감동적으로 들리더라고요." "그거야 당연하겠지." 포와로의 어조는 무뚝뚝했다.그는 계속헤서 말했다. "당신의 건강상태에 대해서도 언급했겠지요?" "예,포와로 씨,본래 결핵환자로 치료를 했었지만 여러 번 재발했었다고요.그러나 몇 년 전 요양소에서 치료받은 뒤로는 지금까지 한 번도 재발하지 않았다고 말해 줬죠" "아주 그럴듯하군!" "그렇지만 내 폐가 얼마나 건강한데 하필이면 결핵환자라고 말해야 할 필요가 있었 는지 난 모르겠군요." "꼭 그럴 필요가 있음은 물론이오.당신 친구에 대해서도 언급했소?" "예,그에게---이건 아주 극비라는 단서를 붙여 얘기했죠---에멀린은 자기 남편한테서 물려받은 재산 말고도,그녀를 끔찍히 생각하는 고모로부터 조만간 아주 상당한 유산 을 상속받게 될 거라고 말이에요." "아주 좋아요! 당분간 그게 클레그 부인의 생명을 지켜주겠구먼!" "오,포와로 씨,정말 무슨 흑막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내가 알아내려고 하는 게 바로 그거요.성소에서 콜 씨라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소?" "지난번에 내려갔더니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더군요.정말 특이한 사람이더라고 요.항상 짧은 연두색 반바지를 입고 음식도 양배추만 먹는다는데,아주 열렬한 신 도예요." "아하,모든 게 척척 잘 맞아들어가는군---지금까지는 정말 일을 훌륭하게 해냈소. 이제 준비는 끝났으니 가을 축제만 기다립시다." 5 "카너비 양---잠깐만!" 콜 씨는 열광적으로 번득이는 눈빛으로 카너비 양을 붙잡았 다. "환상을 봤다고요---그렇게 놀라운 환상은 처음 봤서요.당신한테는 그 얘길 꼭 들려주고 싶소이다." 카너비 양은 한숨을 쉬었다.콜 씨가 봤다는 환싱이 좀 두렵게 느껴졌기 때문이다.그 녀는 콜 씨가 미친 사람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더구나 그가 봤다는 환상들은 참 으로 터무니없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그녀는 자신이 데븐셔에 내려오기 전에 읽었던 독일인 저자의 신간도서에 나오는 한 구절이 연상되곤 했다. 그 책에는 인간의 잠재의식에 대해 매우 솔직하게 표현한 구절이 있었던 것이다. 번쩍거리는 눈빛으로 말하려는 콜 씨의 입술이 비틀려졌다.그는 흥분된 어조로 말하 기 시작햇다. "내가 묵상을 하고 있을 때였어요.생의 충만함과 하나됨이라는 최고의 기쁨을 마음속에 다시 새기고 있었지요.그런데 갑자기 내 눈이 열리더니 보이더라고 요--------" 카너비 양은 바짝 긴장하면서 콜 씨가 지난번에 보았던 것이 아닌 제발 다른 것을 봤 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했다.저번에는 고대 슈메르에서 남신과 여신이 결혼의식을 치루 는 장면을 봤다는 것이다. "난 봤다고요." 콜 씨는 그녀 쪽으로 몸을 구부리며 말했 다.그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었고 그의 눈은(정말 그랬다) 완전히 미친 사람의 눈처럼 보였다. "엘리야 선지자가 불마차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카너비 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엘리야가 차라리 나았던 것이다. "그 밑에는---" 콜 씨는 계속해서 말했다. "바알의 제단이 있었어요.수백 개가 넘는 제단들이 나란히 놓여 있더란 말입니다.그런데 어떤 목소리가 나한테 들려왔습니다. '지금부터 네가 보는 것을 기록해서 다른 사람들한테 알리도록 해라.' 라고요." 그가 말을 멈추자 카너비 양은 예의상 한마디 거들었다. "그런데요?" "제단 위에는 결박되어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산 제물들이 놓여 있었어요.처녀들--- 수백명의 처녀들---젊고 아름다우며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처녀들이---" 콜 씨는 입맛을 다셨고,카너비 양은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북쪽에서 오딘 신(지식 문화,군사를 맡아보는 최고의 신)의 갈가마귀 떼(불길한 징조의 까마귀)가 까맣게 몰 려 왔어요.그리고 엘리야가 갈가마귀들과 함께---하늘에서 커다란 원을 그리더라고요 그러더니 갑자기 모든 까마귀 떼가 제물들한테 내리덮쳐 그들의 눈을 쪼아버렸지요. 그러자 비명과 울부짖고 통곡하는 소리가 온 세상을 진동했어요.그때 목소리가 또 들려왔지요.'제물을 바라보라---이로써 오늘 여호와와 오딘 신이 피로써 형제의 약속 을 맺었느니라!' 라고요.그리고는 사제들이 칼을 높이 치켜들고 제물들한테 덤벼들 었어요.제물들의 손과 발을 자르고----" 카너비 양은 사디즘(이성을 학대함으로써 쾌감을 얻는 가학증)적인 광기가 도는 입술 로 군침을 흘리고 있는 그 고문자에게 어떡해서든지 빠져나가야겠다는 심정뿐었다. "잠깐 실례하겠어요." 그녀는 얼른 그린 힐 성소 입구의 문지기 집에 사는 림스콤에 게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그 남자는 사람들이 그린 힐에 입장하는 것을 하가하는 문 지기인 셈이었다. "혹시---" 하고 그녀가 말했다. "내 브로치 못 봤어여? 어디 바닥 에 떨어진 모양인데." 림스콤은 그린 힐이 친절하고 즐거운 일반적인 분위기와는 영 동떨어진 남자였다.그는 브로치 같은 것은 보지 못했다고 으르렁 거리듯이 말했다. 그런 물건을 찾는 일 같은 것은 자기 일이 아니라는 태도였다.그가 카너비 양을 떨 어뜨리려고 했지만 그녀는 기를 쓰고 그를 따라가며 브로치에 대해 이것저것 떠들어 댔다.그건 콜 씨의 광기어린 눈빛을 피해 그녀가 안전하다 싶은 곳까지는 어떻게 해 서든지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바로 그때 대교주가 그레이트 폴드에서 나오다가 그녀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그 자비 로운 미소에 용기가 생긴 카너비 양은 그에게 자기의 생각을 말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대교주님은 콜 씨가 아주---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느냐고 말이다. 대교주는 그녀의 어깨에 한 손을 내려놓았다. "두려움을 떨쳐버려야 하오." 하고 그 는 말했다. "완전한 사람은 두려움을 물리치나니......." "하지만 제가 보기에 콜 씨는 미친 사람이에요.그가 보는 환상이라는 게----" "아직은---" 대교주가 말했다. "불완전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러는 것 뿐이오.... 자기 자신의 육욕과 본능의 창을 통해 세상을 보니까 말이오.그러나 그가 영적으로 보게 될 날이 곧 오게 될 거요.순수한 마음의 창으로 말이오." 카너비 양은 겸연쩍어졌다.물론 그렇다고 하겠지---그녀는 기운을 차려 다른 문제를 건드려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녀가 말했다. "립스콤 씨의 태도가 그 렇게 무례해도 될 이유라도 있나요?" 대교주는 예의 그 자비로운 미소를 다시 지었다. "립스콤은---" 그가 말했다. "집지키는 충실한 개와 같은 사람이오.성격이 좀 거칠고 원시적인 사람이긴 하지만 정말 충실하다오.그럴 수 없을 정도로 말이오." 그는 성큼성큼 걸어가 버렸다. 카너비 양은 그가 콜 씨에게 다가가 그 어깨에 한 손을 올려놓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대교주의 능력으로 콜 씨가 앞으로 또 보게 될 환상의 영역을 좀 변화시켜 줬 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어쨌든 가을 축제까지는 이제 겨울 일주일 남았다. 6 축제 바로 전날 오후에 카너비 양은 뉴턴 우드베리라는 한적한 조그만 마을의 조그 만 찻집에서 에르큘 포와로를 만났다.카너비 양의얼굴은 빨개져 있었고 보통때보다 훨씬 더 숨가쁜 목소리였다.그녀는 자리에 앉아 로크 케이크(표면이 거칠하고 단단한 과자)를 손가락으로 뜯어 차와 함께 먹고 있었다. 포와로는 그녀가 한 단어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을 먼저 몇 가지 했다. "그 축제에 몇 사람이나 모일 것 같소?" "한 120명 정도예요.물로 륚에멀린도 거기에 참가할 거랍니다.그리고 콜 씨도---그 사람은 요즘 들어 더 이상해졌어요.자기가 환상을 본다나요,뭐.그 중 몇 개는 나한 테 얘기를 해줬는데---진짜 괴상망칙한 얘기들밖에 없어요.그가 정말 미친 사람이 아니길 바랄 수밖에요.그 밖에 새로 들어오는 신자들이 꽤 될 거예요.한 20명 정도" "좋아요,그럼,당신이 뭘 해야 되는지는 알고 있소?" 카너비 양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열었다.그런데 그 목소리가 어딘가 이상했다 "선생님이 저한테 해주셨던 얘기는 잘 알고 있어요,포와로 씨." "그럼 됐소!" 그런데 에이미 카너비가 딱 잘라 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전 안할 거에요." 에르큘 포와로는 그녀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카너비 양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녀의 목소리는 빨라지면서 히스테릭했다. "선생님 이 이곳에 나를 보낸 까닭은 앤더슨 박사의 동정을 살펴보라는 거였어요.선생님은 그분의 모든 것에 대해 의심을 했어요.하지만 그분은 훌륭한 분이세요.위대한 교주 시라고요.난 그분의 마음과 영혼을 믿어요! 그래서 이제 더 이상 당신의 스파이 노릇 을 안하겠다는 거라고요,포와로 씨! 나도 목자의 양떼 중 하나예요.대교주는 앞으로 다가올 세상에 대한 메시지를 주셨고,나의 몸과 영혼은 그분께 속해 있단 말이에요. 그럼,내 찻값은 내가 내고 나가겠어오."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카너비 양은 1펜스와 3펜스짜리 은화를 탁자에 꺼내 놓고 헹하니 찻집 밖으로 나가버렸다. "저런,저런!" 하고 에르큘 포와로는 불어로 중얼거렸다. 웨이스트리스가 그를 두 번이나 불렀을 때에야 그는 비로소 그녀가 계산서를 내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는 옆자리의 고약하게 생긴 남자가 흥미 있는 눈초리로 빤히 쳐다보는 것을 알고서 얼굴이 시뻘개졌다.그래서 얼른 계산을 하고서 밖으로 나갔다. 그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있었다. 7 다시금 양들이 그레이트 폴드에 모였다.그리고 예배의식의 문답이 되풀이되었다. "너희들은 그 맹세를 할 준비가 되어 있느뇨?" "그러하나이다." "눈을 가리고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지어다." 녹색 법의를 입은 위대한 목자가 위엄 있는 모습으로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는 사이 를 지나갔다.양배추만 먹고 환상을 보는 콜 씨는 카너비 양 옆에 서 있다가 바늘이 그의 몸을 찌르자 고통에찬 환희의 비명을 내질렀다. 위대한 목자가 카너비 양 옆에 섰다.그의 손이 그녀의 팔에 닿았다. "안돼,그만둬.이런 짓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 말이었다.그런 말을 하는 선례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서로 맞붙어 싸우며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녹색 띠가 그녀의 눈에서 떨어져 나가자 믿기지 않는 광경이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위대한 목자가 낯선 신자들과 양가죽을 쓴 콜 씨의 손에 붙잡혀 버둥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온 콜 씨가 아주 형사다운 어조로 말하고 있었다. "여기 당신을 체포하라는 영장이 있소.또한 법정에서 진술할 권리와 아울러 법정에 가기 전에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겠소." 쉽 폴드의 출입문에 낯선 사람들의 모습이 나타났다.푸른 경찰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었다.누군가가 외쳤다. "경찰이야.경찰이 대교주를 잡아가려 하고 있어.경찰이 대교 주를 잡아가려 하고 있어......" 모든 신도들이 충격을 받은 듯했다.모두들 경악에 찬 비명을 질러댔다...... 그들에게 위대한 목자는 순교자였다.다시 말해 무지몽매한 외부 세상의 박해로 고통 당하는 순교자였던 것이다. 그 동안에 콜 수사경감은 위대한 목자의 손에서 굴러떨어진 피하 주사기를 조심스럽 게 종이에 싸고 있었다. 8 "나의 용감한 동지여!" 포와로는 카너비 양과 반갑게 악수를 하고는 그녀를 재프 경 감에게 소개했다. "최고의 작품이었소,카너비 양." 하고 재프 경감이 말했다. "당신이 아니었더라면 우린 엄두도 못 내었을 거요.이건 아첨이 아니오." "어머나!" 카너비 양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다니 정말 고맙군요. 솔직히 얘기하자면 정말 재미있었어요.그 짜릿한 흥분,그리고 제가 맡은 그 배역-- 그런데 전 때때로 정신이 나가버려요.제가 느끼기에도 저 역시 그 멍청한 여자들이나 조금도 다를 박 없었다니까요." "하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당신이 성공했다고 할 수 있어요." 하고 재프가 말했다. "당신의 연기는 정말 일품이었소.그러니까 대교주가 감쪽같이 속아넘어간 것도 무리 는 아니지! 사실 그 사람도 보통 약아빠진 악당이 아닌데." 카너비 양이 포와로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 찻집에서는 정말 아찔했어요.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그냥 임기웅변식으로 어떻게 넘길 수밖에 딴 도리가 없더라고요" "당신은 정말 멋졌소." 하고 포와로가 따뜻하게 말했다. "처음에는 당신이나 나나 어 느 한쪽이 제정신이 아닌 모양이라고 생각했지.그러나 곧 당신의 행동에 무슨 의미가 들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소." "정말 충격이었어요." 하고 카너비 양이 말했다. "우리가 비밀얘기를 하고 있는데 언 뜻 유리컵에 립스콤의 모습이 비치지 뭐예요.그 사람은 성소를 지키는 문지기인데 바로 내 뒤 테이블에 앉아 있었던 거예요.지금 생각해 봐도 그게 우연이었는지,아니 면 그가 일부러 내 뒤를 미행했던 것인지는 모르겠어요.아까 말했지만 그 순간의 위 기를 모면하는 방법은 임기응변으로 대처하는 수 밖에 없었어요.그래서 그렇게 행동 했지만 포와로 씨가 저를 이해하게 되리라 믿었었죠." 포와로는 미소를 지었다. "난 그때 알아차렸소.우리 얘기를 엿들을 수 있을 만큼 가 까운 자리에 있는 사람은 딱 한 사람뿐이었고,그래서 찻집을 나와 그의 뒤를 미행해 볼 생각을 했던 거지요.그가 곧장 성소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서 난 당신이나를 실망 시키지 않으리라 믿었던 거요.그러나 그로 인해 당신의 신변에 위험이 닥칠까 봐 무 척 걱정이 되었소." "그때는---정말 위험했던 거예요? 주사기 속에는 뭐가 들어 있었는데요?" 재프가 말했다. "당신이 설명하겠소,아니면 내가 할까?" 포와로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마드무아젤,그 앤더슨 박사라는 남자는 이 미 사람을 유인해서 살해할 계획을 다 세워 놓았소.아주 과학적인 살인방법인 셈이 오.그는 아주 오래 전부터 박테리아 연구를 하고 있었소.셰필드에다 다른 이름의 화 학 실험실을 하나 차리고는 거기서 여러 가지 균을 배양했던 거요.그리고 축제 때에 는 그가 직접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소량이지만 효과를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만큼 의 대마초를 주사해 줬던 거지.시중에서는 해시시 또는 블랭으로 알려져 있는 마약 이죠.사람들로 하여금 장엄하고 기쁨에 찬 환희의 환각을 보게 하는 게 바로 그 마 약의 효능이었지.결국 그가 추종자들을 꼼짝 못하도록 붙들어 둘 수 있는 비결이란 게 바로 그거였던 셈이오.또 그가 사람들에게 약속한 영적인 기쁨이라는 것도 바로 그거였소." "아주 근사했어요." 하고 카너비 양이 말했다. "그렇게 황홀한 느낌일 수가 없었다고요." 에르큘 포와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으니까 사람들한테 먹혀들어 갔겠지.그 마 약이 사람 몸속에 들어가게 되면 어느 누구나 자신이 최고라는 기분에 젖어들게 되 고 군중의 선동에 말려들게 되네.그 사람은 그 점을 이용해 사람들을 자기의 노예 로 만들었던걸세.하지만 그의 목표는 그 외에 또 한 가지가 더 있었네. 그는 혼자 사는 여자들에게 광신적인 감사의 마음을 불어넣어서 자신들의 재산을 모두 교단에 바치겠다는 유언서를 작성하게 했네.물론 그 여자들은 하나씩 차례로 죽어갔지.그들이 죽은 곳이 모두 자기 집이었기 때문에 외견상으로는 그들의 죽음에 아무런 하자가 없었지.그럼,너무 기술적인 사항은 빼고 얘기하겠네.전문가의 얘기로 는 특정 박테리아 균만을 강력하게 배양할 수가 있다고 하더군.예를 들면 콜리 코뮤 니스 균 같은 것은 궤양성 대장염의 원인이 될 수 있다네.장티푸스 균이나 폐렴균 역시 그런 식으로 써 먹었던 걸세.그리고 구식 투베르쿨린 주사약 중에는 건강한 사람한테는 해가 없지만 오래 된 결핵병소를 활동성으로 자극시키는 약이 있다네. 그 녀석의 영악함을 알 수 있겠지? 그 피해자들이 사망한 곳은 각기 다른 지역이었 고,따라서 각기 다른 의사들이 그들을 진찰했을 거니까 어느 누가 감히 그런 것을 의심이나 해봤겠는가? 그뿐만 아닐세.그 남자는 특정 병균의 작용을 지연시키면서 동 시에 강화시킬 수 있는 특수한 물질을 배양하고 있었네. "정말 악마가 있다면,그 녀석이 바로 악마일세그려!" 하고 재프 경감이 말했다. 포와로는 계속헤서 말을 이었다. "내 지시에 따라 당신은 앤더슨 박사에게 자신이 결 핵환자였다고 얘기를 했소.그 결과 콜 경감이 그를 체포했을 때 주사기에는 그 구식 투베르쿨린 약이 들어 있었던 거지요.물론 그걸 맞았다 치더라도 당신은 건강한 사람 이니까 아무런 해가 없었을 거요.내가 당신더러 자신의 결핵 병력을 그자에게 자꾸 강조하라고 시킨 이유가 바로 거기게 있었던 거지.난 그 녀석이 다른 종류의 균을 선택할까 봐 몹시 걱정이 되었소.하지만 난 당신의 용기를 높이 샀고,그래서 그런 위 험을 감수하게 할 수밖에 없었소." "오,그건 괜찮아요." 하고 카너비 양이 밝게 말했다. "전 그런 위험은 무섭지 않거 든요.들판에 있는 커다란 황소 같은 것이나 무섭지.그런데 그 악마 같은 남자를 감 옥으로 보낼 증거는 충분한가요!" 재프가 싱글싱글 웃었다. "증거야 많지요." 그가 말했다. "우리가 그의 실험실을 덮 쳐서 그가 배양하던 균과 모든 도구들을 증거물로 압수했거든요!" 포와로가 말했다. "내 생각으로는 그자는 오래 전부터 살인을 해왔을 가능성이 있을 것 같네.어쩌면 그 녀석이 독일 대학에서 해고당한 것은 자기 어머니가 유태인이었다 는 것이 이유가 아닐지도 모르지.그런 핑계를 댄 것은 자기가 여기에 오게 된 이유를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였을 걸세.물론 사람들의 동정도 받을 겸 말일세. 내가 보기에 그자는 순수한 아리안 혈통이야." 카너비 양이 한숨을 쉬었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러오?" 하고 포와로가 불어로 말했다. "그 생각이 나서요." 카너비 양이 말했다. "첫번째 축제때 경험했던 그 놀라운 꿈 말이에요.아마 해시시였나 봐요.온 세상을 정말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꿈을 꾸었다고 요! 전쟁도,가난도,아픈 사람도,못생긴 사람도 없는 그런 세상을......" "아주 멋진 꿈을 꾸셨구려." 하고 재프가 부럽다는 듯이 말했다. 카너비 양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에 가봐야 해요.에밀리가 무척 걱정하고 있 을 거예요.또 귀여운 아우구스투스가 죽도록 나를 찾고 있을 텐데.....그 소리가 들 리는 것 같군요." 에르큘 포와로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마,그 녀석은 자기처럼 당신도 에르큘 포 와로를 위해 죽으러 간 게 아닐까 하고 걱정에 차 있을 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