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의 동쪽(하) 지은이: 존스타인벡, 옮긴이: 이성호(한양대 영문과 교수) 출판사: 범우사 이 책을 읽는 분에게 작가 존 스타인벡은 캘리포니아 주의 설리너스 계곡에서 태어났다. 그는 스탠퍼드 대학을 중퇴하고 뉴욕으로가서 신문기자, 벽돌공, 페인트공, 도로공사 인부 등 닥치는 대로 중노동 생활을 하면서 소설을 쓸 꿈을 가지고 경험의 폭을 넓혔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노동자 계급에 깊은 동정을 품고 <생쥐와 인간>을 발표하여 명성을 얻은 이래 대공항기의 미국의 불우한 소작농의 행활을 그린 <분노의 포도>로써 1949년의 퓰리처 문학상을 받아 작가로서 의 위피를 확고히 다졌다. 작가의 나이 쉰 살에 씌어진 이 작품은 그의 원숙하고도 포용적인, 인생에 대한 폭넓고 깊이 있는 이해의 결실로서, 인간 회복의 가능성을 추구한 20세기 미국 문학의 걸작이다. 이 직품에서는 작가의 고향인 설리너스 계곡을 무대로 하여 인간의 선악 투쟁이 카인과 아벨의 주제에 의해 상징적이고도 사실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선과 악의 투쟁 속에서 인 간애라는 미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구약성서의 20세기 판이라고 불릴 정도로 스케일이 웅대하고, 주제면에 있어서 도 관용과 인간애로 감싸여진 대작이다. 작가 자신도 이 작품을 가리켜 자신의 최대작, 대표 작이며, 이 작품 이전에 씌어진 다른 작품은 이 작품을 쓰기 위한 습작에 불과하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이 작품에는 캘리포니아 주의 설리너스 계곡에 사는 새뮤얼 해밀튼 일가족과 이 작품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아담 트래스크와 그의 가족이 등장한다. 아담 트래스크는 - 구약성서에 나오는 아담처럼 - 냉혹하고 사악한 여자 캐시에게 말려 들어 그 여자를 사랑하게 됨으로써 비로소 생의 보람, 생의 환희를 느낀다. 아담은 캐시와 함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 부친에게서 물려 받은 재산을 정리하고 고향을 떠나 새로운 땅을 물색하다가 설리너스 계곡에다 자리를 잡는다. 그는 설리너스에서 도 가장 비옥한 땅을 입수하여 거기에다 아내 캐시를 위해 이상적인 낙원을 건설할 꿈에 가 슴이 부풀어 있다. 그러나 아름다운 외모 속에 동물의 잔혹성을 감추고 있는, 괴물인 그의 아내 캐시는 이러 한 그의 꿈을 여지없이 짓밟아 버리고 만다. 그녀는 쌍둥이를 낳은 후 몸이 회복되자마자 갓난 쌍둥이 아들들을 내팽개치고 아담의 곁을 떠나 직업적인 창녀의 길을 택한다. 그녀는 창녀로서의 자질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명성과 돈을 얻는다. 그러나 아내의 배반으로 깊은 충격을 받은 아담은 생의 보람과 기쁨을 송두리채 잃고 암담한 좌절에서 헤어날 줄을 모른 다. 그러는 동안에 10여 년의 세월이 흐르고, 쌍둥이 형제 아론과 칼은 마치 구약성서의 아벨 과 칼 형제처럼 한 사람은 선을 한 사람은 악을 품고 자라고 있다. 칼은 자기 안에 도사리 고 있는 악에 대한 갈등 때문에 괴로워 한다. 그리고 아담은 자연히 천사 같은 외모에다 선 의 쪽에 서 있는 아들 아론을 사랑하게 된다. 칼은 아버지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 그리고 아 버지의 사랑을 받고 있는 아론에 대한 질투 때문에 마음속에서 끝없는 투쟁을 벌이며 몸부 림친다. 이브가 낳은 카인과 아벨이 질투 때문에 형제 살상을 벌이듯이 사악한 여자 캐시가 낳은 쌍둥이 아들 칼과 아론 역시 서로 반목하다가 마침네 칼은 아론을 전쟁터로 가서 전사 하게 한다. 아버지의 사랑를 받고 있는 아론에 대한 질투를 견디지 못한 칼은 자기들의 어 머니가 창녀라는 사실을 밝힘으로써 아론에게 복수하고 , 아론은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대학을 팽개친 채 군대에 자원 입대했다가 전사하고 마는 것이다. 이상이 이 작품의 대강의 줄거리를 요약한 것인데, 이처럼 이 작품에는 원죄를 짊어진 인 간의 선악, 애증의 운명이 농도 짙게 나타나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이 원죄를 주제로 하여 20 세기의 신화를 창조하려고 한 소설이라는 평을 받고있는 것도 당연하다 하겠다. 1982년 12월 저자 제 3 부 제 23 장 1 해밀튼 집안 사람들은 신경이 예민하고 성격이 유별난 사람들이었다. 그들 중에는 신경이 너무 예민하여 세상을 떠나게 된 사람들도 있었다. 이런 일은 세상에 흔히 있는 일이다. 새뮤얼은 딸들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아이가 우나였다. 그녀는 어렸을 때에도 어린애들이 오후 늦게면 쿠키를 먹고 싶어하듯 지식을 탐구했다. 부녀는 함꼐 지식을 탐구했다. 책을 몰 래 빌어다 읽고 나서 서로의 지식을 비밀리에 교환하기도 했다. 아이들 중에서 우나가 제일 적었다. 그녀는 성질이 격하고 피부가 검은 남자와 결혼했다. 그의 손에는 대개의 경우 초산은이었지만화학약품이 묻어 있었다. 그는 가난한 가운데에서 도 연구를 계속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다. 사진술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었다. 그는 유 령 같은 명암으로가 아니라 인간의 눈이 감지하는 원색으로 외계를 종이에 옮겨 놓을 수 있 다고 믿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앤더슨이었다. 그는 전달 재능을 별로 갖고 있지 않았었다. 대개의 기사들처 럼 그는 명성을 두려워하고 또 멸시했다. 귀납적 비약은 그에게 맞지 않았다. 마치 사람이 마지막 산등성이를 오를 때처럼, 그는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발판을 만들고야 한 발짝 올 라서는 그런 사람이엇다. 그는 해밀튼 집안 사람들에 대하여 두려움에서 나온 커다란 경멸 감을 품고 있었다. 그들은 인간이란 날개를 갖고 있다고 어렴풋이나마 믿고 있었기 때문이 다. 그래서 그들은 형편없는 추락을 하기도 했다. 앤더슨은 추락하는 일고, 미끄러지는 일도, 나는 일도 절대로 없었다. 그는 천천히 위를 향해 걸어 올라갔다. 결국 그는 그가 바라던 컬러 필름을 발견했다고 했다. 그는 우나와 결 혼했다. 어쩌면 그녀에겐 별로 유머가 없어서 안심하고 결혼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처가집 사람들이 그를 놀라게 하고 당혹하게 했기 때문에 그는 아내를 데리고 북쪽으로 이사했다. 그곳은 오레곤 주의 변방 어느 곳이었는데 암담하고 버림받은 지역이었다. 그는 유리병과 종이와 씨름을 하면서 아주 원시적인 생활을 했다. 우나는 기쁨도 연민도 없는 담담한 편지를 썼다. 자기도 잘 있으며 가족이 다 평안하기를 바란다는 편지였다. 남편의 연구 결실이 가까워졌다고도 했다. 그러다가 그녀는 요절을 했고, 그 시체가 배로 운구되어 왔다. 나는 우나를 보지 못했다. 그녀는 내가 기억할 수 있기 전에 세상을 떠났지만 조오지 해 밀튼이 여러 해 후에 이에 대하여 나에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목메인 소리로 이야기를 할 때 그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우나는 몰리만큼 예쁘지는 않았어. 그러나 손과 발이 참으로 예뻤지. 발목은 잔디같이 날 씬하였고 걸을 때에는 잔디 위를 걷듯 발을 옮겨 놓았어. 손가락은 길고 손톱은 복숭아 처 럼 갸름했지. 그리고 살결은 투명하여 빛나기까지 했다." "그애는 우리들처럼 웃거나 놀지도 않았어. 그애에게는 우리들과 다른 점이 있었어. 늘 무 엇인가 귀담아 듣고 있는 듯했어. 독서를 할 때면 그애의 얼굴은 음악을 듣는 사람의 표정 을 지었지. 그리고 어떤 질문을 받았을 때에는 자기가 아는 경우라면 명확하게 대답했지. 우 리들처럼 수식을 하거나 강조를 하거나 "어쩌면" 한다든지 "그럴지도 모르지" 하는 말을 하 지 않았어. 우리의 말이야 앞뒤가 안맞는 모순 덩어리 아냐, 우나에게는 순수하고 단순한점 이 있었어." 조지는 말했다. "그런데 그애의 유해가 집으로 운구되었지. 손톰은 속살이 보일 정도로 부러져 있었고 손 가락은 갈라지고 뭉개져 있었어. 예뻤던 발은 가련하게도 - " 조지는 잠시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다가 그는 자제하려고 애를 쓰며 거칠게 말했다. "그애의 발은 부러지고 자갈과 가시덤불에 갈라져 있었어. 그애는 예뻤던 발에 오랫동안 신도 신지 않고 지냈던 거야. 살갗 은 생가죽처럼 거칠어져 있었어." "우리는 그애가 사고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어." "굉장히 많은 화학 약품이 주위에 있었지. 틀림없을 거야." 그러나 사고라는 것은 바로 고통과 절망을 의미한다고 생각했지 때문에 새뮤얼은 더욱 슬 퍼앴다. 우나의 죽음은 마치 잔잔한 지진처럼 새뮤얼을 뒤흔들어 놓았다. 그는 호지있고 기운을 복돋우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홀로 앉아 몸을 앞뒤로 흔들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부주의 때문에 이 사고가 일어났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세월과 즐겁게 싸워 왔던 그의 건강도 이제는 다소 기울기 시작했다. 팽팽하던 피부는 쭈굴쭈굴하게 되었고 눈은 멍하게 되었고 건장하던 어깨는 다소 굽었다. 이제 무엇 이고 수용할 수 있게 된 라이저는 비극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년는 현세에 실제적인 희 망을 걸지 않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자연법칙에 웃으면서 대항할 수 있었던 새뮤얼이었으나, 우나의 죽음으로 그의 흉벽은 깨지고 말았다. 그는 이제 노인이 되어 있었다. 다른 자식들은 잘 살고 있었다. 조지는 보험회사에 다니고, 윌은 돈을 잘 벌었다. 조오는 동부로 가서 광고업이라는 새 분야를 개척했다. 조오의 단점이 바로 이 분야에서는 장점이 되었다. 그는 자기의 구체적인 백일몽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고 그것도 적절히 응 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이 바로 광고업이었다. 조오는 그 분야에서 큰 인물이 되 었다. 데시를 제외하고 모든 딸들이 결혼했다. 데시는 샐리너스에서 양장점을 성공적으로 운영 했다. 콤만이 일을 시작하지 않고 있었다. 새뮤얼은 톰이 논쟁의 명수라는 이야기를 아담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그는 아들을 지켜 보면 기력과 두려움, 전진과 후퇴를 동시에 느낄수 있었다. 그는 자신 속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톰은 아버지의 서정적 유연성이나 쾌활한 외모를 이어받지 않았다. 그러나 가까이 보면 콩에게서 강인함과 유연함과 강철 같은 고결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의 밑바 닥에는 움추림 - 수줍은 움추림이 잇었다. 그는 아버지처럼 쾌활할 수 잇었다. 그러다가도 그의 쾌활성을 도중에 마치 바이올린 줄이 끊어지듯이 갑자기 끊어지곤 했다. 그리고는 톰 은 소용돌이에 말려 들어 어둠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그는 얼굴이 검었다. 그의 피부는 햇빛 때문인지도 몰랐지만, 마치 고대 스칸디나비아인이 나 로마를 약탈한 반달족의 피가 그에게 스며들기나 한 것처럼 검붉었다. 머리칼과 턱수염 과 콧수염도 빛났다. 어깨와 팔은 거장했지만 엉덩이는 가냘펐다. 그는 누구 못지 않게 물건 을 들어올리고, 달리고, 말을 탈 수도 있었지만 경쟁의식은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윌과 조 오는 노름을 좋아하여 모험의 희비 속으로 동생을 꾀어들이려고 했다. 톰은 말했다. "노름을 해보았지만 지루하기만 했어. 왜 그런가 생각도 해보았지. 이겨도 승리감을 맛볼 수 없고 져도 패배감을 맛볼 수 없어. 이런 감정을 못 느낀다면 그것은 무의 미한 것이지. 그것이 돈을 버는 방법도 아니지 않아. 만일 그것이 생사나 희비를 만들어내지 않는다면, 적어도 나에게는 아무 느낌을 주지 못해. 내가 그 속에서 무엇인가 - 선이건 악 이건 - 느낄수만 있다면 나도 할꺼야." 윌은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전 생애를 경쟁하며 살아왔고 이런 저런 도박을 하 며 살아왔다. 그는 톰을 좋아했기 때문에 즐거운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면 무엇이나 그에 게 주려고 했다. 그는 톰을 사업으로 끌어들여 사고 파는 기쁨. 다른 사람들을 속이거나 다 른 사람들이 허풍치는 것을 알아내는 기쁨. 그리고 시위하며 살아가는 기쁨. 이런 기쁨들을 그도 느낄 수 있도록 만들려고 애를 썼다. 톰은 위채로움까지 느낀 것은 아니지만 어디에선가 길을 잃고 있었다는 생각에 당혹하여 목장으로 항상 다시 돌아왔다. 하기야 경쟁이라는 남성적 기쁨속에서 즐거움을 느껴야 한다 고 생각은 했지만, 그렇다고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 양 자기 위장을 할 수는 없었다. 톰은 욕심이 많아서 콩이건 여자건 지나치게 과식한다고 새뮤얼이 말했었다. 새뮤얼은 현 명했지만, 내 생각에 그는 톰의 일면만을 알고 있었다. 어쩌면 톰은 다른 자식들에 비해 더 계발되었는지도 모른다. 그에 대한 나의 견해는 기억과 사실과 거기에 근거를 둔 추측의 결 과일 것이다. 그것이 정확한지 어떤지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들은 샐리너스에 살고 있었다. 그리고 톰이 왔을 때에는 - 항상 밤에 토착했다고 생 각되는데 - 우리들은 곧 알 수 있었다. 메리와 나의 베개 밑에 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껌이 25센트였다. 그가 몇 달 동안 오지 않던 때도 있었지만, 우리들은 아침에 잠 을 깨면 껌이 있는 가를 보기 위해 베개 밑으로 손을 넣었다. 나는 지금도 그런 버릇이 있 다. 어쨌든 베개 밑에 껌이 있었던 것도 여러 해 전이 되었다. 나의누이 메리는 여자처럼 행동하기를 싫어했다. 여자처럼 되는데 익숙할 수 없었다는 것 은 하나의 불행이었다. 그녀는 완오우 캐트경기(양끈이 뾰족한 나무토막을 막대기로 쳐서 멀리 보내는 놀이)의 투수였는데 훌륭한 선수였다. 그녀는 여자가 다는 장신구를 달지 않았 다. 물로 이것은 그녀에게 소녀로서의 다른 보상 행위가 나타나지 훨씬 전일이었다. 어쩌면 팔밑인지도 모르지만 우리 몸 부위 어디엔가 단추가 하나 있어서 그것을 잘만 누 르면 하늘을 날 수도 있다고 우리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메리는 그녀가 선망 하는 대상인 억센 소년으로 자신을 둔갑시킨 마술을 고안해냈다. 무릎을 꾸부리고 머리를 비스듬한 각도로 눕히고 손가락을 서로 엇비껴 낀 마술적 자세로 잠을 자면, 아침에 깨어날 때 소년이 된다는 것이었다. 매일 밤 그년는 올바른 자세로 자려고 애를 썼으나 남자가 될 수 없었다. 나는 그녀가 손가락을 엇비끼는 것을 도와주곤 했다. 그녀가 요술을 제대로 부릴 수 없다고 절망에 바져 있던 어느 날 베개 밑에 껌이 있었다. 우리는 껍질을 벗기고 엄숙하 게 껌을 씹었다. 그것은 비이먼의 박하 껌이었는데 그렇게 맛있는 껌을 씹어본 적이 그 후 엔 없었다. 메리는 길고 까만 스타킹을 신으면서 크게 안도한 듯이 말했다. "그렇지." "무엇이 그렇다는거니!" 내가 물었다. "톰 아저씨 말야." 그녀는 딱딱 소리를 크게 내면서 껌을 씹었다. "톰 아저씨가 어떻다는 거니?" 내가 다그쳤다. "아저씨는 사내아이가 되는 방법을 알거야." 사실 그랬다. - 아주 쉬운 일이었다. 왜 내가 그런 생각을 미리 못했었나 하고 의아스럽 게 생각했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새로 일을 하러 들어온 키가 작은 덴마크 처녀를 보살피고 있었다. 이 곳 사람들은 처녀들을 계속 받아들이고 있었다. 새로 이주해 온 덴카프의 농가들을 딸들을 미국 가정에서 일을 배우도록 시켰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영어 자체를 익힐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식 요리법이나 식탁 차리는 법이나 예의 범절이나 샐리너스에서의 상류 사회의 모든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매월 12달러를 받고 이런 생활을 2,3년 하고 나면 그들은 미국 청년들의 훌륭한 규수감이 되었다. 그들은 미국식 범절을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계 속 들에서 황소같이 일도 할 수 있었다. 오늘날 샐리너스에 사는 몇몇 상류 가족들은 이러 한 처녀들의 후손들이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황갈색 머리카락을 한 매딜드에게 암탉처럼 잔 소리를 퍼부었던 것이다. 우리는 부엌으로 뛰어들었다. "아저씨 일어났어요?" "쉬! 아저씨는 늦게 오셨다. 자도록 내버려 뒤라." 그러나 뒷 침실의 세면기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아젔가 일 어난 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들은 그가 불쑥 나타나기를 기다리면서 고양이처럼 문턱에 쪼 그리고 앉았다. 처음에는 우리들 사이에 다소의 서먹함이 있었다. 톰 아저씨도 우리들처럼 수줍어 했다. 그도 달려나와 우리를 안고 높이 치켜 올려주고 싶었겠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고 아주 형식 을 차렸다. "아저씨, 껌 고마워요." "너희들이 좋아하니 기쁘구나." "아저씨, 여기 있는 동안 밤늦게 굴이 든 빵을 먹을까요?" "어머니가 괜찮다고만 하신다면 꼭 그렇게 하자." 우리들은 거실로 몰려 들어가서 앉았다. 부엌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얘들아, 아저씨에게 귀찮게 굴지 말아." "귀찮게 하긴요, 울리." 그가 되받아 소리쳤다. 우리들은 거실에서 삼각형 모양으로 앉았다. 톰의 얼굴은 아주 검고 눈은 아주 파랬다. 그 는 좋은 옷을 입고 있었지만 옷을 잘 입은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이 점에서 그는 그의 부 친과 아주 닮았다. 빨간 콧수염은 단정하지 못했고 머리카락은 들떠 있었으며 손은 일을 하 여 거칠었다. 베리가 물었다. "톰 아저씨, 어떻게 하면 사내아이가 되죠?" "어떻게라니? 이것 봐. 메리. 사내아이는 사내아이로 태어나는 것이지." "내 얘기는 그것이 아니예요. 내가 어떻게 하면 사내아이가 되느냐 하는 말이에요." 톰은 신중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네가?" 그녀는 말을 줄줄이 쏟아 놓았다. "나는 여자가 되고 싶지 않아요, 아저씨. 남자가 되고 싶어요. 계집애는 인형에 키스나 하 죠. 나는 여자가 되고 싶지 않아요." 그녀는 골이 난 나머지 눈에 눈물이 고였다. 톰은 자기 손을 내렫보면서 부러진 소톱으로 푸석푸석한 손의 못을 긁어냈다. 그는 그럴 듯한 말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는 그의 부틴터럼 달콤하고 사랑스럽고 날개돋친 듯한 말을 찾고 싶었다. "나는 네가 남자가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왜요?" "아저씨는 계집애인 네가 좋아." 메리의 신전 속에서 하나의 우상이 부서지고 있었다. "아저씨는 여자애를 좋아한단 말이에요?" "그렇지. 나는 여자아이를 아주 좋아하지." 혐오의 빛이 메리의 얼굴을 스쳤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톰은 바보였다. 그녀는 "그런 쓸데없는 말은 그만 두세요." 하는 눈빛을 띠었다. "좋아요." 그녀가 말했다. "그러나 내가 사내아이가 되면 어떨까요?" 톰은 말귀가 밝았다. 그는 메리가 자기를 신통치 않게 평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그녀의 사랑과 존경은 한몸에 받고 싶었다. 동시에 그의 마음 속에는 재빨리 떠오르는 거짓말을 처음부터 잘라내는 강철 같은 진실성이 있었다. 그는 색깔이 너무 엷어 거의 하얗 게 보이는 메리의 머리카락을 보았다. 걸리적 거리지 않게 단단히 묶어 놓은 그녀의 머리카 락은 머리 타래 끝이 더러워져 있었다. 어려운 구슬치기 놀이를 하기 전에 손을 거기에 닦 았기 때문이다. 톰은 그녀의 차갑고 적의에 찬 눈을 살폈다. "나는 네가 정말로 남자애가 되기를 바란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되고 싶어요." 톰의 말은 틀렸다. - 그년는 정말로 그렇게 되고 싶었다. "너는 남자애가 될 수 없다. 그러니 언젠가는 너도 그렇게 되지 않은 것이 기쁠 거야." "기쁘지 않을 거에요." 그녀는 나에게 몸을 돌리고 아주 멸시하는 어조로 말했다. "아저씨는 방법을 모르는 거야!" 톰은 주춤했다. 나는 격렬한 그녀의 책망에 몸서리를 쳤다. 메리는 누구보다도 용감하고 무자비했다. 그래서 샐리너스의 모든 구슬치기에서 이길 수 있었다. 톰이 불안하게 말했다. "어머니가 허락하시면, 아침에 굴이 든 빵을 주문해서 오늘 밤에 찾아와라." "나는 굴빵 같은 건 싫어요." 그녀는 침실로 거만스럽게 걸어가 문을 꽝하고 닫았다. 톰은 안 됐다는 듯이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저 애는 천상 여자야." 이제 우리들은 둘만이 있게 되었다. 메리가 남긴 상처를 이제 내가 고쳐 줘야먄 되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굴빵이 좋아요." 내가 말했다. "그럼 좋아하겠지. 메리도 좋아하고." "톰 아저씨. 메리가 사내애 되는 방법이 뭐 없을까요?" "몰라. 알고 있었다면 메리한테 말해주었게." "메리는 웨스트 엔드에서 제일 가는 피처에요." 톰은 한숨을 쉬면서 손을 내려다보았다. 아저씨가 실의에 차 있음이 역력했다. 아저씨에게 정말로 미안했다. 나는 여러 개의 핀응 내려 꽂아 가로막이로 만든 속이 빈 코르크를 끄집 어 내왔다. "아저씨, 내 파리 통을 갖고 싶어?" 그는 훌륭한 신사였다. "나에게 주고 싶어 그러니?" "그래요. 핀 하나를 빼서 파리를 집어넣고 다시 닫으면 파리는 안에서 윙윙대지." "정말로 갖고 싶구나. 고맙다. 존." 그는 하루 종일 날카로운 주머니칼로 작은 나무조각에 무엇인가를 새기고 있었다. 우리가 학교에 갔다 와서 보니 그는 작은 얼굴 모양을 새겨 놓았다. 움직이게 되어 있는 눈과 귀와 입술은 작은 횃대로 텅빈 머리 속으로 연결 되어 있었다. 목 밑의 구멍은 코르크로 막혀 있 었다. 그것은 정말 근사했다. 파리를 잡아 그 구멍으로 가만히 집어 넣고 코르크를 닫으면 머리가 갑자기 움직였다. 조급해진 파리가 작은 횃대 위를 기어다닐라치면 눈이 움직이고 입술이 말을 하고 귀가 좌우로 움직였다. 메리마저 그를 다소 용서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를 진심으로 믿지 않다가 나중에 야 자기가 여자인 것을 기뻐하게 되었다. 그러나 기뻐하게 되었을 때에는 이미 때가 늦었 다 그는 그 장난감 머리를 나에게가 아니라 우리들에게 주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어디 엔가 두었는데 그것은 지금도 움직이고 있다. 가끔씩 톰은 나를 데리고 낚시질을 하러 갔다 우리들은 해가 뜨기 전에 출발하여 곧장 프 레몽트의 산정으로 말을 몰았다. 우리가 산 가까이로 다가갈 때면 별들은 희미하게 사라지 고 햇빛이 비치면서 산상은 까맣게 되었다. 말을 몰던 일, 그리고 귀와 뺨을 톰 아저씨가 내 어깨 위에 팔을 얹던 일, 그리고 가끔씩 내팔을 잡아주던 일이 생각난다. 드디어 우리들은 어는 참나무 밑에서 멈추어, 말 굴레를 벗기고 개울가에서 말에 물을 먹이고, 그리고 마차 뒤에 말을 매어 놓았다. 톰이 말한 것은 기억에 없다. 지금 그것을 생각해 봐도 톰의 목소리나 말을 기억할 수 없 다. 조부를 생각해 보면 그의 목소리와 말을 기억할 수 있으나 톰을 생각해 보면 일종의 온 후한 침묵만이 있었다는 기억뿐이다. 그가 전혀 말을 하지 않았었는지도 모른다. 톰은 훌륭 한 낚시 도구를 갖조 있었고 자신의 생파리 미끼를 손수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우리가 송 어를 잡든지 못 잡든지 별로 상관하지 않았던 것같다. 반드시 고기를 잡을 필요는 없었다. 작은 폭포 밑에서 자라고 있던 다섯 손가락 모양의 양치식물이 생각난다. 그것은 작은 물 방울이 튀길라치면 논색 이파리를 까딱까딱 흔들었다. 그리고 나는 언덕의 향내, 진달래 향 기, 멀리 떨어져 있는 스컹크의 야릇한 냄새, 달콤한 루핀풀 냄새, 그리고 마구에 스며든 말 과, 톰이 그것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기억이난다. 그러나 그가 그것을 보고 무엇이라고 말 했는지는 기억하지 않는다. 톰이 말뚝을 박고 끈을 잇고 있는 동안 고기가 물어뜯는 낚시줄 을 내가 잡고 있던 일이 생각난다. 고기 바구니 속에 짓눌려 있는 양치 식물 냄새와 녹색 깔개 위에 가지런히 누워 있는 신선하고 물기에 차 있는 오색의 송어 냄새가 기묘했던 일을 나는 기억한다. 그리고 드디어 마차 있는 데로 돌아와 가죽 주머니에 보리를 넣고 말의 귀 뒤에 그것을 덮어 쒸우던 생각이난다. 나는 그의 말이나 목소리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내 기억 속에 그는 어둡고 과묵하지만 온정이 넘쳐 흐르는 사람으로 남아 있다. 톰은 자기의 침울함을 느끼고 있었다. 톰의 부친은 잘생기고 총명했으며 모친은 단구에 빈틈 없는 사람 이었다. 그의 형제 자매들은 각기 미모와 재능과 재산을 갖고 있었다. 톰은 그들을 정말로 사랑 했으나 자신은 마음이 무겁고 현세에 얽매여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황홀한 산을 기어오르고 산정 사이의 어두운 바위틈을 무작정 돌아다녔다. 그는 용솟음치는 용기를 갖고 있었으나 그 용기는 소심한 마음으로 묶여 있었다. 톰이 위대성 앞에서 몸을 그 냉엄한 책임을 짊어져야 할 지 결정을 짓기 위해 노력을 하 고 있다고 새뮤얼은 말했다. 새뮤얼은 아들의 자질과 폭력의 잠재력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 에 두려워했다. 새뮤얼은 폭력성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 주먹ㅇ로 아담 트래스크 를 때릴 때에도 그에게는 폭력성이란 전혀 없었다. 그리고 새뮤얼은 손에 들어오는 책들을. 하기야 그 중의 몇몇 책은 몰래 사들여 온 것이기는 하지만, 가볍게 읽어나가 마치 카누를 타고 격류 속을 저어나가듯 내용 사이에서 즐겁게 균형을 잡아갔다. 그러나 톰은 책 속으로 파고 들어가 책과 책 사이를 아첨하듯 기어다니고 두더지 처럼 사상 사이에 터널을 뚫고, 나중에는 온통 얼굴과 손에 책을 뒤집어 쓰고 나타나는 것이었다. 폭력과 수줍음 - 톰의 육신은 여자를 필요로 하면서도 자신은 한여자의 값어치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오랫동안 쓸쓸한 독신 생활에 탐닉하다가는 느닷없이 기차를 타고 샌프란시 스코로가서 여자들 사이에 빠져 딩굴다가 다시 허약하고 미흡하고 무가치한 허탈감만을 안 고 목장으로 묵묵히 돌아오곤 샜다. 그는 일로써 자학을 했다. 이윤도 없는 땅을 갈고 씨를 뿌리기도 하고 허리가 부러지고 손이 부르틀때까지 단단한 참나무를자르기도 했다. 어쩌면 새뮤얼이 톰과 태양 사이에 서 있었기 때문에 다을에게 그림자가 두리우게 했었는 지도 모르겠다. 톰은 남몰래 시를 쓰고 있었다. 그 당시만 해도 시 쓰는 일은 비밀로 해두는 것이 현명했다. 시인이란 무기력하고 창백한 인간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에 서부 사람들은 시 인을 멸시했다. 시라는 것은 나약함과 무기력과 부패의 상징이 되고 있었다. 시를 읽는 다는 건 사람들의 조롱을 불러일으키는 것과 같았다 시를 쓰면 의심을 받고 절교를 당해야만 했 다. 시라는 것은 일종의 비밀의 악이며, 사실이 그러했다. 톰의 사가 훌륭한 것이었는지 아 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는 오직 한 사람에게만 그의 시를 보여주다가는 죽기 전에 모두 불살라버렸기 때문이다. 스토브에 남은 재로 보아 그가 상당한 양의 시를 썼던 것만은 틀림없다. 톰은 가족 중에도 데시를 제일 좋아했다. 그녀는 명랑했다. 그녀에게서는 웃음이 떠날 때 가 없었다. 그녀의 양장점은 샐리너스의 독특한 명소였다. 그곳은 여자의세계였다. 여기에서는 모든 규칙, 그리고 철칙을 낳게 하는 공포도 없었다. 금남의 집이었다. 여자가 자기를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 있는 성역이었다. 그곳은 향수 냄새를 풍기고 허창하고 신비스럽고 뽐내고 진실 되고 제멋대로 취향을 나타낼 수 있는 곳있었다. 여기에서는 고래뼈 코르셋이 통용되지 않 았고 여인의 육체를 여신의 육체로 만들거나 왜곡시키는 신비의 코르셋이 필요 없었다. 데 시의 양장점에서는 여자들만이 화장실에 드나들고 과식하고 간지럼을 먹이며 낄낄대고 방귀 뀌고했다. 자유스럽게 웃고 폭소를 터뜨렸다. 남자들은 닫힌 문틈으로 흘러나오는 웃음 소리를 듣고는 혹시 자기네가 웃음거리가 된 것 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놀라기도 했다. 대부분의 경우, 남자들이 웃음거리가 된 것은 사실이 었다. 나는 지금, 코안 경을 쓰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코에 흔들거리는 금테 코안경을 쓰고 유쾌 한 웃음 때문에 나오는 눈물을 찔끔거리면서 웃음으로 얼굴 전면에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데시를 눈에 선하게 볼 수있다. 머리카락은 흘러내려 안경과 눈 사이에서 흔들 거리고, 안경 은 툭툭한 코 밑으로 흘러내려 까만 리본 끝에 매달려 빙빙 돌곤 했다. 데시에게서 옷을 해입으려면 몇 달 전에 미리 주문을 해야 했고, 천과 모양을 결정하기까 지에는 스무 번 정도는 그곳을 찾아야만 했다. 샐리너스에 데시만큼 건강한 사람도 없었다. 남자들에게야 집회소니 클럽이니 창녀집이니 하는 것이 있었지만 여자들에게는 데시가 나타 나기 전까지만 해도 제단조합이나 목사의 으스대는 교태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다가 데시가 사랑에 빠지게 되았다. 나는 그 사랑의 자세한 내용을 모른다. 남자의 이 름이 무엇인지, 형편이 어떠했는지, 불행한 결과가 종교 때문이어쓴지, 부인이 있어서였는지, 병이나 이기심 때문이었는지 나는 모른다. 어머니는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을 ㅏ 움 속에 집어넣고 나서는 들추는 일이 없었다. 설사 샐리너스 다른 사람들이 알고 있다손치 더라고 그들은 충실한 마을의 비밀로 감추어 놓았음이 틀림없다. 내가알고 있는 것은 그것 이 침울하고 두려운 실의라는 것이다. 1년 동안의 이런 일이 있고 나서는 데시에게서 기쁨 이 사라지고 웃음이 멈췄다. 톰은 무서운 고통에 싸인 사자처럼 미친 듯이 언덕을 쏘다녔다. 그는 어느 한밤중에 아침 기차를 기다리지도 않고 샐리너스 말을 타고 내달렸다. 새뮤얼이 그의 뒤를 따르다가 킹 시 티에서 샐리너스로 전보를 쳤다. 아침에 얼굴이 까만 톰이 지친 말에 박차를 가하면서 샐리너스의 존 스트리트를 달리고 있을 때, 보안관이 그를 기다리고  었다. 그는 톰에게서 총을 빼앗고 감방에 넣은 다음 새 뮤얼이 올 때까지 블랙커피와 브랜디를 들게 했다. 새뮤얼은 그에게 설교를 하지 않았다. 그는 아들을 집으로 데리고 와서도 그 일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해밀튼가는 조용해졌다. 2 1911년 추수감사절 날, 뉴욕에 있는 조오와 다른 가족이 돼 버린 리지와 타계한 우나를 제외하고 온 가족이 목장에 모였다. 데시와 톰을 제외하고는 모두 결혼을 했다. 어린아이들 은 해밀튼 집안을 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집안이 야단법석이었다. - 어느때보다도 시끄러웠 다. 어린아이들으 울고 소리치고 싸웠다. 남자들은 대장간으로 갔다가는 자의식을 느끼는 듯 콧수염을 닦으면서 돌아왔다. 라이저의 작고 둥근 얼굴은 점점 벌개갔다. 그녀는 계획을 짜고 지시를 했다. 부엌 스토브 의 불길은 한번도 꺼지지 않았다. 침대가 모자라서 마룻바닥에 베게를 놓고 그 위에 이불을 깔아 어린이들을 자게 했다. 새뮤얼은 지난날의 쾌활을 되찾았다. 그의 비유적 마음은 빝나고 옛날의 노래하는 듯한 율동적 화술은 계속되었다. 그는 노래하듯 이야기를 늘어놓고 추억담을 이어갔다. 그러다가 그는 한밤중이 되기도 전에 갑자기 피로감을 느꼈다. 피로감이 몰려오자 그는 라이저가 두 시간 동안 누워 있었던 침대로 갔다. 그는 취침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취침을 하고 싶었 기에 어리둥절하게 되었다. 부모들이 자리를 뜨자 윌이 대장간으로 가서 위스키 병을 들고 왔다. 가족들은 부엌에서 밑이 둥근 젤리 잔으로 위스키를 돌려 마시며 회합을 갖고 있었다. 어머니들은 침실로 들어가 아이들이 이불을 덮고 자는지 보살피고 돌아왔다. 그들은 어린아 이들과 노인들을 깨우지 않게 조용조용히 말했다. 거기에는 톰과 데시, 조지와 뎁시 사람이 된 그의 아름다운 마미, 몰리와 윌리엄 마틴, 올립과 어네스트 스타인백, 윌과 그의 테일라 등이 모였다. 그들은 한결같이 똑같은 것을 말하고 싶어했다. 열 사람 모두가 그랬다. 새뮤얼은 이제 노 인이었다. 그것은 마치 갑자기 유령이나 보게된 것과 같은 놀랄만한 발견이었다. 어쨌든 그 들은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다. 그들은 위스키를 마시면서 이 새 생각에 대하여 조용조용히 이야기 했다. 그분의 어개를 봐, 얼마나 축 늘어졌는지 보았니? 발걸음에는 탄력이 없어. 발을 좀 끄시던데. 그것보다는 문제는 눈에 있어. 눈에 생기가 없어요. 그분은 끝까지 취 침을 하지 않으시려고 했었는데. 말씀을 하시던 도중에 하시던 말을 잊어버리시던 것을 눈치챘어? 피부를 봐요. 주름이 지고 손등은 파리하게 되었지 않아. 그분은 오른발을 아끼고 계시던데. 맞았어. 말에 다친 발이야. 알고있어. 그러나 전엔 안 그러셨었어. 그들은 이런 말을 화를 내면서 말했다.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 그들은 말했다. 아버지는 노인이 될 수 없어. 새뮤얼은 동틀녘처럼 젊으셔 - 영원한 서광처럼. 그는 대낮처럼 늙어가실지도 모르는 일이야. 그러나 맹세코 저녁이 그에게 찾아들 수는 없어. 하물며 밤이야? 절대로 그럴 수는 없다! 그들의 마음이 비약을 했다가 뒤로 물러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말은 꺼내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새뮤얼이 없는 세상은 있을 수 없다."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를 알지 못하고 우리가 무엇에 대하여 생각을 할 수 있 었던가? 봄은 어떻게 될 것이며, 크리스마스는, 우기는? 그런 크리스마스는 있을 수 없었다. 그들의 마음은 이러한 생각에서 물러나 희생자 - 그 러니까 그들의 기분이 상했으니까 그들도 기분을 상하게 해줄 상대자 -를 찾았다. 그들은 톰에게 화살을 돌렸다. 너는 여기 있었지. 너는 여기 있었지. 너는 계속 여기 있었지 않니!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생겼니? 언제부터냐? 누가 아버지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만들었니? 네 그 광기 때문에 아버지가 그렇게 되 신 것 아니냐? 톰은 지금까지 그 고통과 함께 있어 왔기 때문에 그것을 참아낼 수 있었다. "우나 때문이었어요." 그는 목쉰 소리로 말했다. "아버지는 우나의 죽음을 이겨낼 수가 없었어요. 남자는, 진정한 남자라면 슬픔 때문에 몸 을 망쳐서는 안된다고 아버지는 말씀하셨어요. 하도 여러번 말씀하셨기 때문에 시간이 해결 해 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나 재삼 재사 그 말을 되풀이 하셨기 때 문에 아버지가 몸이 쇠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았어요." "그러면 왜 우리한테 그 말을 하지 않았니? 우리가 무슨 조치를 취했을 수도 있었던 것 아니냐?" 톰은 위축되면서도 무섭게 화를 냈다. "빌어먹을! 할 얘기가 무엇 있어요? 슬픔에 짓눌려 돌아간다고 하나요? 뼛속부터 정력이 녹아버렸다고 하나요? 할 얘기가 무엇이 있어요? 형님들은 여기 안 계셨죠? 나는 여기서 내 눈으로 아버지의 눈빛이 시들어가는 것을 보아야만 했어요 - 빌어먹을!" 톰은 방을 뛰쳐 나갔다. 밖에서 그의 발길에 돌이 채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부끄러웠다. 윌 마틴이 말했다. "나가서 데려오지." "그만둬요, 혼자 있게 두세요. 우리들은 그애를 뱃속에서부터 알고 있으니." 잠시 후에 톰은 돌아왔다. "사과하겠어요." 그가 말했다. "미안해요. 좀 취해 있었나 봐요. 내가 이렇게 하면 아버지는 "기분좋군." 이렇게 말씀하 시죠. 어느날 밤 내가 말을 타고 집에 돌아왔는데 - 이것은 하나의 고백이었다 - 비틀비틀 마당을 건너오다가 장미 덩굴에 걸려 넘어졌어요. 그래서 두 팔로 계당을 기어 올라와서는 침대 옆 마룻바닥에서 정신을 잃었어요. 다음날 아침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무엇 이라고 하셨는지 아세요? "톰 너무 기분이 좋더라." 내가 그런 짓을 했는데고 "기분이 좋더 라." 이렇게 말씀하셨죠. 술이 취한 사람은 집으로 기어오지 않아요. 기분이 좋으니까 오는 지." 그칠줄 모르는 이야기를 조지가 가로 막았다. "톰, 우리가 사과하고 싶다. 우리가 너를 질 책하는 것처럼 들렸겠지만 그런 뜻은 아니었어. 어쨌든 미안하다." 윌 마친이 말했다. "여기선 살기가 참 힘들어요. 그분은 오래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 두 분이 오셔서 우리와 함꼐 사셨으면 해요. 몰리와 나는 그렇게 해드리고 싶어요. "아버지가 그렇게 하시리라고 나는 생각지 않아요." 윌이 말했다. "아버지는 당나귀처럼 고집이 세고 말처럼 자존심이 강하죠. 아버지는 자신 만만하고 담이 크시지요." 올리브의 남 편인 어네스트가 말했다. "여쭤본다 해도 해될 것이야 없지. 내가 장인을, 아니 내외분을 함께 모시고 싶어요." 그러자 그들은 다시 침묵에 잠겼다. 이 농장, 사막과 같이 건조하고 돌투성이의 지루한 언 덕들과 이윤하나 나지 않는 계곡을 버린다고 생각하니 그들은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눈치 빠르고 사업에 경험을 갖고 있는 윌 해밀튼은 사람들의 사소한 충동을 잘 읽는사람 이 되어 있었다. 그가 말했다. "우리가 아버지에게 대장간을 닫으라고 말하는 것은 인생의 문을 닫으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될 거요. 그 분은 그렇게 하지 않으실 겁니다." "윌, 네가 맞아." 조지가 동의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 라고 생각하실 거야. 비겁한 행동이라고 생각할 거요. 절대로 팔지도 않을 테이지만. 만일 판다면 1주일도 못 사실거야." 윌이 말했다. "다른 방법이 잇어요. 방문 형식으로는 오실지도 모르지. 톰이 목장을 경영 할 수 있지. 부모들도 이제 세상을 구경하실 때도 됐지. 천태만상의 일들이 일어나고 있어. 그러면 아버지의 마음도 새롭게 되실 거야. 그러시다가 다시 돌아오셔서 일을 하실 수도 있 지. 어쩌면 얼마 후엔 돌아오실 필요도 없게 될 지도 모르고, 아버지는 시간이란 다이너마이 트도 손을 댈 수 없는 일을 해치운다고 생각하고 계시지요." 데시는 눈 위로 내려온 머리카락을 쓸어올렸다. "오빠는 정말 그분이 그렇게 바보라고 생 각해요?" 윌이 경험을 살려 말했다. "종종 사람들은 재기를 가지고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때에 는 바보스러워지기를 바라지. 어쨌든 해봅시다. 어떻게들 생각해요?"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으나 유독 톰만이 돌처럼 앉아서 생각에 잠겼다. "톰, 네가 이 목장을 인계받지 않겠니?" 조지가 물었다. "아, 그건 문제가 아니지요." 톰이 대답했다. "농장을 운영하는 덴 문제가 없어요. 잘된 적 이 한번도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너는 왜 동의를 하지 않니?" "아버지를 모독하고 싶지가 않아서요. 아버지는 내용을 곧 알아차리실 텐데요." "그런 제안을 한다고 해서 나쁠 것은 없지 않아?" 톰은 핏기가 없어질 때까지 양쪽 귀를 문질렀다. 잠시동안 양쪽 귀는 하얗게 되었다. "말 리지는 않겠어요. 그러나 나는 못 하겠어요." 톰이 말했다. 조지가 말했다. "농담을 섞어 가면서 초정장 형식의 편지를 쓰면 어때? 한 집에서 싫증이 나시면 다른 집으로 가실 수도 있지 않아. 자식들이 많으니까 돌아 다니시기만 해도 여러 해를 지내 실수 있을 꺼야." 그들은 결론을 이렇게 내렸다. 3 톰은 킹시티에서 온 올리브의 편지를 들고 왔다. 그는 내용을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단 둘이 있을 때를 엿보아 아버지에게 건네 주었다. 새뮤얼은 대장간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손은 까맣게 반쯤 찬 물에 손을 씻었다. 그는 편자 못 끝으로 편지를 뜯고 나서 햇볕 속으 로 나가 읽기 시작했다. 톰은 마차의 바퀴를 떼어 노란 기름을 차축에 바르고 있었다. 그는 곁눈질로 아버지를 지켜보고 있었다. 새뮤얼은 편지를 다 읽고 접어서 봉투 속에 넣었다. 그는 대장간 앞에 있는 벤치에 앉아 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다가는 편지를 다시 꺼내 읽고는 다시 접어서 하늘색 샤쓰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고는 일어서서 땅에 깔린 차돌을 발길로 차면서 동쪽 언덕을 향해 천 천히 걸러 올라갔다. 이슬비가 내렸기 때문에 솜털 같은 풀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새뮤얼은 언덕을 반쯤 올 라가다가 쭈그리고 않아서 자갈이 섞인 거친 흙을 한 줌 집어서 집게 손가락으로 그것을 헤 집었다. 그 속에는 차돌과 굵은 모래와 번쩍이는 운모 조각과 연약한 잔뿌리와 줄이 있는 돌이 하나 있었다. 그는 손가락 사이로 흙을 떨어뜨리고는 손바닥을 털었다. 그리고 풀 싹을 하나 뽑아 잇새에 물고는 언덕 너머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회색 색빛의 불안한 구름 한점이 비를 내릴 나무를 찾아 동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새뮤얼은 일어서서 언덕을 내려왔다. 장구를 두는 헛간을 들여다 보고는 4인치 각목을 두 드려 보았다. 그는 톰 옆으로 와서 받침대로 받쳐놓은 마차 바퀴 하나를 빙빙 돌리면서 톰 을 마치 처음 보기나 하듯이 자세히 쳐다보았다. "너도 이제 어른이 되었구나." "모르셨어요?" "알고 있었을거야 - 알고 있었지." 새뮤얼이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갔다. 그의 얼굴에는 가 족들이 잘 알고 있는 냉소적인 모습이 떠올랐다 - 속으로 자신을 웃게 만드는 자신에 대한 냉소였다. 그는 초라한 정원을 지나 집 둘레를 돌았다. 이제는 새 집이 아니었다. 맨 나중에 이어붙인 침실은 낡고 비바람을 맞아 창틀에 붙인 퍼티가 말라 붙어 유리가 떨어질 지경이 었다. 그는 문간에서 몸을 돌려 컴처럼 생긴 목장을 둘러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라이저는 밀가루 반죽대에 파이 크러스트를 밀고 있었다. 그녀는 일에 아주 능숙했기 때 문에 밀가루 반죽이 살아 있는 듯 움직였다. 그것은 납작 해졌다가는 자체의 신축성으로 오 므라들었다. 라이저는 얄팍한 반죽을 집어들어 파이 판에 얹어 놓고 칼로 가장자리를 다듬 었다. 사발에 담아 놓은 빨간 쥬스에는 딸기가 준비되어 있었다. 새뮤얼은 부엌 의자에 앉아서 발을 꼬고 아내를 쳐다 보았다. 그는 눈웃음을 웃고 있었다. "대낮에 할 일이 없어요?" 그녀가 물었다. "할려면야 일이 있지." "그러면 거기 앉아서 성가시게 굴지 말아요. 할 일이 없ㅇ면 옆방에 가서 신문이나 읽어 요." "다 읽었소." "전부요?" "읽을 만한 것은 다." "무슨 일이 있어요? 할 얘기가 있는 모양인데. 얼굴에 쓰여져 있어요. 말해 봐요. 그래야 파이를 만들죠." 그는 발을 흔들면서 그녀에게 미소를 지었다. "참, 여자 치고는 조그마하군 당신 같은 여 자라면 세 사람이라도 한 입이 안 되겠는데." "그만둬요. 저녁때라면 가끔씩 농담을 받아줄 수도 있지만 열한 시도 안 되었잖아요. 당신 일이나 보세요." 새뮤얼이 말했다. "휴가 라는 말의 뜻을 아오?" "아침엔 농담일랑 집어 치우세요." "라이저, 알아?" "물론 알죠. 바보 취급하지 마세요." "그럼 그게 무슨 뜻이야?" "휴식을 취하러 해변으로 간다든지. 자, 허튼소리는 치우세요." "그 말 뜻을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한데." "무슨 이야길 하려고 하는지 말해 보세요. 내가 알면 안돼요?" "휴가 가본 일 있소?" "글세 나는 - " 그녀는 말을 멈췄다. "50년 동안 휴가를 가본 일이 있는냔 말야. 귀엽고 바보 같고, 반 파인트밖에 안되는 조그 만한 마누라야?" "제발 좀 나가 줘요." 그녀는 두려운 듯이 말했다. 그는 주머니에서 편지를 꺼내 펼쳤다. "올리브의 편지요. 그애가 우리 보고 샐리너스를 방 문해 달라는 것이야. 이층 방을 준비해 놓았다는 거야. 우리가 자기들에 대해서도 알았으면 하고 있어. 그리고 야외 문화 강연회의 관람권도 사 좋았대. 빌리 선데이가 악마와 레슬링도 하고 브라이언이 "황금의 십자가" 연설도 할 예정이래. 연설을 듣고 싶단 말이야. 하기야 바 보 같은 소리겠지만, 사람들이 그러는데 그는 마음을 짜릿하게 하는 연설을 한다는 거야." 라이저는 손가락으로 코를 문질러서 코에 밀가루가 묻었다. "비용이 많이 드나요?" 그녀는 걱정 스러운 듯이 물었다. "비용이라니? 올리가 관람권을 샀다니까. 선물이야." "우린 갈 수 없어요." 라이저가 말했다. "농장은 누가 보구요?" "톰이 보지. 겨울에 할 일이 뭐가 있어?" "그는 외로울 거예요." "어쩌면 조지가 와서 잠시 머무르며 메추라기 사냥을 할 거래요. 편지 속에 들어 있는 것 을 봐요." "무언데요?" "샐리너스 행 기차표 두장이야. 올리가 꼭 와달라는 거야." "도로 물러서 돈으로 되돌려 보내 줄 수도 있지요." "안돼. 나는 할 수 없소. 라이저. 그러지 말아요. 여기 - 여기 손수건이 있소." "그건 행주에요." 라이저가 말했다. "여보, 여기 앉아요. 여기! 휴가를 간다고 해서 충격을 받은 모양이구려. 여기! 그것이 행 주인지는 나도 알아요. 사람들이 그러는데 빌리 선데이가 무대마다 악마를 몰아 세운다는 군." "그건 불경한 일이에요." 라이저가 말했다. "그렇지만 난 보고 싶은데. 당신은 그렇지 않소? 무엇이라고 했소? 고개를 들어요. 안들려 요? 무엇이라고 했소?" "그러자고 했어요." 라이저가 말했다. 톰은 새뮤얼이 들어올 때 설계를 하고 있었다. 톰은 얼떨떨한 눈으로 아버지를 쳐다 보면 서 올리브의 편지가 준 효과를 읽으려 했다. 새뮤얼이 설계를 바라보았다. "그건, 무엇이냐?" "마차에서 내리지 않고 문을 여는 문따개를 그리고 있어요. 이것이 빗장을 여는 막대기 죠." "그것이 어떻게 열리지?" "강력한 스프링을생각했어요." 새뮤얼이 도안을 살폈다. "문은 어떻게 닫히고?" "이 빗장요. 반대 작용으로 스프링에 걸리죠." "알겠다. 그러나 그것이 재미있는 것이라는 것은 틀림없어." 톰이 히죽 웃었다. "한 대 얻어 맞았는데요." "톰, 만일 내가 네 엄마와 여행을 잠시 떠나는 경우 여기 농장을 돌볼 수 있겠니?" "아, 그럼요. 어디로 가실 작정인데요?" "올리가 샐리너스에서 잠시동안 지내자고 하는구나." "그거 좋겠군요, 어머니도 좋다고 그러세요?" "좋습니다. 얼마 동안이나 계실 작정이세요?" 새뮤얼은 반짝이지만 냉소적인 눈으로 톰의 얼굴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드디어 톰이 말했다. "아버지, 왜 그러세요?" "얘야, 아주 작은 소리였다. 아주 작아서 거의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말소리가 들렸어. 톰, 네가 형들이나 누이들 하고 어떤 비밀을 갖고 있다면 나는 상관하지 않겠다. 좋은 일이 니까."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는데요." 톰이 말했다. "배우가 되고 싶지 않았던 것을 너는 하느님께 감사해도 좋겠다. 아주 서투른 배우가 됐 을테니 말이야. 형제들이 모두 모였던 추수감사절 날에 꾸민 거겠지. 난 이 일에 윌이 관여 했던 것을 안다. 하고 싶지 않으면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거기에 찬성하지 않았어요." "너 답지 않구나. 너는 사실을 드러내어 내가 알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마라." 그는 돌아서서 가다가 다시 되돌아와 톰의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톰, 사실을 가지고 아버지를 기쁘게 해줘서 고맙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재치 있는 일이라 고는 할 수 없지만 영원성이 있는거야." "가시겠다니 기쁘군요." 새뮤얼은 대장간 문턱에 서서 땅을 내려다 보았다. "사람들이 말히기를 어미는 못난 자식 을 제일 사랑한다더라." 그는 이렇게 말을 하고는 머리를 저었다. "톰, 네가 보낸 경우에 대 해서 경의로 대하고 싶다 너는 너의 이 말을 너의 보이지 않는 비밀스러운 마음 속에 간직 해다오. 그리고 너의 형이나 누이들에게 말하지 말아라. 내가 떠나는 이유를 나는 알고 있다 는 것을 - 그리고 톰, 나는 나의 행선지를 알고 있다. 그리고 나는 만족하고 있다." 제 24 장 1 사람에 따라서 생사의 진실성에 대하여 덜 가슴 아파하는 이유를 나는 의아스럽게 생각해 왔다. 우나의 죽음은 새뮤얼을 허공에 뜨게 만들었고 그ㄹ 방어벽을 파헤쳐 놓고 드디어 노 쇠하게 만들었다. 한편, 남편만큼이나 가족들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라이저는 그래도 자신을 망쳐버리거나 비뚫어지게 하지는 않았다. 그녀의 생활은 고르게 지속되었다. 그녀도 뼈아픈 슬픔을 맛보기는 했지만 이것을 극복했다. 내 생각에 라이저는 역설과 모순이 들어있는 성경을 그대로 받아들이듯이 세상사를 그대 로 받아들였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죽음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죽음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죽음이 발생해도 그녀는 놀라지 않았다. 새뮤얼은 죽음을 생각해 보고 사색도 했겠지만 죽음을 진실로 믿지는 않았다. 죽음이 그 의 생활의 일부가 되어있지는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불멸한 존 재들이었다. 죽음이 정말로 나타났을 때 그것은 난폭한 불법행위자였으며 그가 깊이 느끼고 있던 불멸성의 도전자였다. 그가 쌓아 놓은 벽에 조금이라도 틈이 생기면 전체 구조에 금이 갔다. 그는 죽음에서 빠져 나올수 있다고 늘 생각했다. 죽음은 개인적인 적대자이며 그가 이 길 수 있는 적이었다. 라이저에게는 죽음이란 단지 예기된 것이었다. 그녀는 슬픔 속에서도 오븐에 콩을 넣기도 하고, 파이를 여섯 개나 굽기도 하고, 조객들에게 음식 대접을 하기 위해서 얼마만큼의 음식 이 필요한가를 정확히 계산하기도 하는 여자였다. 그리고 슬픔 속에서도 새뮤얼로 하여금 하얀 샤쓰를 입게 하고 검은 옷에 솔질을 하게 하고 먼지를 털게 하고 구두를 까맣게 닦도 록 보살필 수 있는 여자였다. 아마도 훌륭한 결혼 생활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이런 두 유형 의 사람들이 몇 가지 힘으로 단단히 뭉쳐져야 하는지도 모른다. 일단 받아들이면 새뮤얼은 아마도 라이저보다 더 멀리까지 갈수 있을지도 몰랐지만 받아 들이는 과정에서 그는 산산조각이 되고 말았다. 샐리너스로 가기로 결정을 짓고난 후 라이 저는 그를 자세히 살폈다.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그녀는 현모양처가 그러하듯이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철저한 현실주의 자였다. 다른 모든 것들이 변함 없다면 그녀는 자식들을 찾아가 만나보고 싶었다. 그녀는 자 식들에 대하여 호기심을 갖고 있었다. 그녀가 장소에 대하여 애착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 다. 장소란 천국으로 가는 길의 휴식처에 불과 했다. 그녀는 일 자체를 위하여 일을 하고 싶 었던 것이 아니라 해야 될 일이 있었기 때문에 일을 했다. 그녀는 지쳐 있었다. 아침이면 통 증과 경직 때문에 일어나기가 점점 힘들었다. 그렇다고 그런 것들 때문에 일어나지 못한 것 은 아니었다. 그녀는 천국에서는 옷이 더러워지지 않고 음식을 요리하거나 옷을 세탁할 필요도 없을 것 이라고 기대했다. 천국에도 그녀가 마음속으로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 노 래를 너무 많이 불렀다. 그녀는 하느님의 선민마저도 약속된 천상의 나태를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견디어 낼 것인가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천국에서도 할 일을 찾아낼 것이다. 시간을 보낼 일이 있음이 틀림없었다. 구름을 꿰맨다든가 지친 날개의 약을 바른다든가 하 는 일이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아마도 옷깃을 가끔씩 뒤집어 놓을 필요도 있을 것이고 어 떤 구석에는 천을 씌운 빗자루로 털어내야 할 거미줄도 있을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는 샐리너스를 방문하게 되어 즐겁기도 했지만 한편 두렵기도 했다. 그녀는 가고 싶 은 생각이 굴뚝 같았기 때문에 거기에는 죄에 가까운 무엇인가가 있음이 틀림없다고 생각했 다. 그리고 야외 문화 강연회라고? 그녀는 거기에 가야 할 필요도 없었지만 가지도 않을 것 이다. 새뮤얼은 화를 낼 것이다 - 그녀는 남편을 감시해야만 되겠다고 생각했다. 남편이 천 진하고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고 그녀는 늘 생각해 왔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마음 때문에 몸에 무슨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가를 그녀가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은 잘 된 일이었 다. 장소란 새뮤얼에겐 아주 중요한 것이었다. 농장은 친척과 같은 것이었다. 농장을 떠난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칼로 찌르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일단 결심을 했기 때문에 새뮤얼은 그일을 잘 해나갔다. 그는 옛 이웃들을 정식으로 방문했다. 그가 엣 친구들을 뒤에 두고 마차를 몰고 떠날 때 비록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그를 다시 보게 되리라고 생각 지 않았다. 마치 영원히 기억해 두기라도 하려는 듯이 그는 산과 나무와 친구들의 얼굴까지 도 여러 번 응시했다. 트래스크 농장 방문은 맨 나중으로 미루었다. 그는 몇 달 동안 그곳에 가보지 못했다. 아 담도 이제는 젊은 사람이 아니었다. 쌍둥이들은 이제 열 한 살이 되었다. 리이는 크게 변하 지 않았다. 리이는 새뮤얼과 함께 헛간까지 걸어갔다. "오랫동안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할 일이 많았어요. 적어도 한 달에 한번씩은 샌 프란시스코에 가야 했습니다." "자네는 잘 알고 있겠지만, 친구가 있을 때에는 보러 가지 않다가도 그가 없어지면 만나 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가슴아파 하게 마련이지." "따님의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안 됐습니다." "리이 자네 편지를 받았네. 지금도 갖고 있어. 좋은 말을 해주었어." "중국식 이야기죠. 저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중국식이 돼가는 것 같아요." "자네에게도 변한 것이 있구먼. 무엇이 변했나?" "변발이죠. 변발을 잘랐지요." "그렇군." "우리 모두가 잘랐어요. 못 들으셨어요? 황태후가 서거하셨지요. 중국은 이제 해방이 되었 죠. 만주인이 대군주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변발을 하지 않죠. 그것이 새 정부의 포공 입니다. 어디에고 변발은 없어졌어요." "리이, 좀 다른가?" "별루요. 지내기가 더 수월해요. 그러나 머리가 허전해요 불안하구먼. 편리하긴 하지만 익 숙해지기가 힘드는군요." "아담은 어떤가?" "안녕하십니다. 많이 변하지는 않았죠. 그분이 전엔 어떠했었을까를 생각도 해봅니다." "그래. 나도 그런 생각을 해보았어. 잠깐 동안 꽃이 폈던 적이 있었으니까. 어린아이들은 꽤 컸을 걸." "많이 컸죠. 여기 남아 있기를 잘 했어요.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보고 또 조금씩 도와 주 면서 많은 것을 배웠어요." "애들에게 중국말을 가르쳤지?" 아닙니다. 트래스크씨가 가르치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분이 옳았다고 생각해요. 쓸데없는 혼란을 일으켰을 겁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친구죠. 그래요, 친구지요 그들은 아버지를 칭 찬하지만 내 생각엔 나를 사랑하고 있어요. 그들은 서로 아주 판이합니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어떤 면에서?" "그애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보시게 될 겁니다. 그애들은 메달의 양면처럼 판이하죠. 카 알은 예리하고 어둡고 빈틈 없지요. 그런데 그의 형은 그가 입을 열기 전에도 좋아하게 되 지만 입을 열고 나면 더욱 좋아하게 되는 애죠." "그애에게선 나 자신을 방어해야 되죠. 그애는 그냥 싸우죠. 그러나 그애의 형은 싸울 필 요가 없어요." "내 자식들도 똑같아." 새뮤얼이 말했다. "이해할 수가 없단 말야. 같은 교육을 시키면 두 링 닮으리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아 - 전혀 달라." 잠시 후에 새뮤얼과 아담은 샐리너스 계곡이 보이는 골짜기 입구의 길을 걸어 내려갔다. 그 길에는 참나무 그늘이 져 있었다. "쉬셨다. 저녁을 들고 가시죠?" 아담이 물었다. "이 이상 닭을 죽이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새뮤얼이 말했다. "리이가 남비 구이를 했어요." "그렇다면 - " 아담은 옛 상처 때문에 아직도 한쪽 어깨를 늘어 뜨리고 다녔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 고 휘장을 쳐 놓은 듯했다. 그의 눈은 일반적인 것만을 대충 보았지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 았다. 두 사람은 길에 서서 일찍 내린 비로 파랗게 물든 계곡을 내다 보았다. "비옥한 저 땅을 내버려두고도 부끄럽게 생각지 않으니, 나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요." "곡식을 심을 이유가 없는 걸요." 아담이 말했다. "우리는 전에도 그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지요. 내가 변할 거라고 생각하셨죠. 나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상처입은 것을 자랑으로 여기시오?" 새뮤얼이 물었다. "그것이 당신을 위대하고 비극적인 인간으로 보이게 만드나요?" "모르겠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어쩌면 당신은 관객이라곤 당신 하나뿐인 커다란 무대에서 연극을 하고 있는지도 몰라요." 아담의 목소리에는 다소 화가 난 기색이 있었다. "왜 오셔서 나에게 설교를 하십니까? 이 렇게 찾아주신 것은 기쁘지만 왜 나의 속으로 파헤치고 들어오시려고 하죠?" "당신을 화나게 할 수 있는가를 보기 위해서요. 나는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람이오. 여긴 모든 땅이 묵혀 있고 내 옆에도 사람이 묵혀 있소. 그것은 낭비처럼 생각됩니다. 나는 낭비 할 여유가 없기 때문에 낭비를 싫어하죠. 당신은 인생을 묵히는 것을 좋게 생각합니까?"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다시 시도해 보라는 거요." 아담은 그를 마주 보았다. "그러기가 두렵습니다. 이렇게 그럭저럭 사는 것이 더 낫죠. 어 쩌면 기력이나 용기가 없는지도 모르죠." "아들들에 대해선 어떻습니까? 사랑합니까?" "그럼은요 - 그럼요." "더귀여운 애가 있습니까?" "왜 그런 말씀을 물으시죠?" "나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어조에서 무엇인가 - " "집으로 돌아갑시다." 아담이 말했다. 그들은 나무 밑을 서서히 걸어 내려왔다. 아담이 갑 자기 말했다. "캐시가 샐리너스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셨어요? 그런 풍문을?" "당신은요?" "들었어요. 그러나 나는 믿지 않아요. 믿을 수가 없어요." 새뮤얼은 바퀴자국이 난 모랫길을 아무 말 없이 걸어갔다. 그의 마음은 아담의 생각을 서 서히 뒤쫓았다. 그리고 거의 지루한 듯이 끝났으면 하고 바랬던 생각을 잡아냈다. 드디어 그 가 말했다. "그 여자 생각이 완전히 떠나지 않았구먼요?"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나 총에 맞은 생각은 잊고 있지요. 그 일은 더 이상 생각나지 않 습니다." "내가 인생 사는 방법을 가르칠 수는 없지요." 새뮤얼이 말했다. :비록 인생 사는 방법을 얘기하고 있긴 하지만 말이오. 당신이 그랬었으면 좋았겠다 하는 가정의 세계에서 벗어나 세상의 바람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 다. 내가 당신에게 이야기 하는 동안, 나 자신 나의 기억들을 체로 쳐내고 있어ㅛ. 마치 체 틈으로 떨어지는 금싸라기를 찾아 술집 마루 밑의 먼지를 선광 접시로 씻어내고 있듯이 말 이오. 하찮은 채금이죠. 당신은 기억을 씻어 내기에는 너무 젛ㅁ어요. 당신은 새로운 기억을 손에 넣어야 해요. 그러면 나이가 들 때 그 채금이 더욱 풍요해질 거요." 아담은 고개를 숙였다. 그의 턱뼈는 이를 악물고 있어서 관자놀이 밑이 툭 나와 있었다. 새뮤얼은 글ㄹ 힐끗 쳐다보았다. "그것이 옳아요. 이를 악물고 봐요. 우리가 얼마나 잘못 된 것을 옹호하고 있는가를! 당신 자신이 꾸며 냈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당신이 하는 일을 말해볼까요? 당신이 침대로 가서 불을 끄고 나면 그 여자가 엷은 불빝을 받으면서 문 앞에 들어서지요. 그 여자의 나이트 가운이 움직이는 것이 보이지요. 그 여자가 침대 쪽으로 황홀 하게 다가오면 당신은 거의 숨도 못 쉬고 이불을 걷어차고는 그 여자를 받아들이지요. 그 여자에게 배개머리를 내주죠. 달콤한 피부 향기가 나죠 - 세상에 둘도 없는 향기가." "그만 두세요." 아담이 그에게 소리쳤다. "빌어먹을. 그만 뒤요! 내 생활에 참견하지 말아 요. 당신은 죽은 소 주위에서 냄새나 맡고 있는 코요테 같은 사람이오." "내가 그걸 아는 것은." 새뮤얼이 조용히 말했다. "해마다, 달마다 지금까지 한결같이 나 를 찾아오는 여자가 있기 때문이오. 내 마음에 이중 빗장을 지르고 나의 가슴에 봉합을 해 서 그 여자가 못 들어오게 했어야 했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소. 지금 까지 나는 집사람 을 속여 왔던 것이오. 나는 아내에게 거짓과 허위를 안겨 주었소. 이 어둠에게도 비밀의 방 문객이 있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오. 그러나 그것을 절대로 알지 못할 것이오. 아내는 빗장을 질러 마음을 잠가 버리고 열쇠는 지옥으로 던져 버리지나 않았나 하고 생각하오." 아담은 두 손을 꼭 잡았다. 손마디는 핏기가 가시고 하얗게 되었다. "당신은 나 자신을 의 심하게 만들어요." 그는 격렬하게 말했다. "당신은 늘 그랬어요. 나는 당신이 두려워요. 새뮤 얼, 나는 어떻게 해야 좋죠? 말해 주세요! 당신이 어떻게 사실을 꿰뚫어 보았는지 모르겠어 요. 나는 어떻게 해야 되죠?" "나 자신은 실행에 못 옮기지만 해야 할 일은 알지요. 당신은 새로운 캐시를 찾으려고 노 력해야 하오. 새로운 캐시가 꿈 속의 캐시를 죽이도록 만들어야 하오. 두 여자가 결투를 벌 이도록 내버려 두시오. 당신은 옆에 앉아 있다가 승리자에게 당신의 마음을 결혼시켜야 하 오. 그것이 차선책이오. 최선책은 신선하고 새로운 애인을 찾아내서 옛사랑을 없어지게 만드 는 것이오." "그렇게 하기가 두렵습니다." 아담이 말했다. "전에도 그런 말을 했죠. 이제 나는 당신을 당신 마음대로 하게 놔두려고 해요. 아담, 나 느 떠납니다. 작별 인사를 하러 왔어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딸에 올리브가 집사람과 나를 샐리너스로 오라고 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내일 모레 떠납 니다." "그러면 돌아오시겠군요." 새뮤얼이 말을 이었다. "한두 달 올리브와 같이 있으면 조지에게서 편지가 올 겁니다. 파 소 로즐스로 그 애를 찾아가지 않으면 그에 마음이 상할 겁니다. 그러고 나면 몰리가 우리 를 샌프란시스코로 불러낼 것이고, 다음엔 윌이 그럴 것이고 우리가 그때까지 산다면 동부 에 있는 조오도 그럴 것입니다." "좋지 않으세요? 당신은 그럴 터를 닦아 놓았죠. 그 정도면 먼지구덩이에서 일하실 만큼 일을 하셨습니다." "나는 먼지구덩이 같은 그 땅을 좋아합니다. 나는 암캐가 허약한 새끼를 좋아하듯 그 땅 을 좋아합니다. 나는 차돌 하나를, 삽을 분지르게 하는 노출된 돌뿌리를, 황량하고 얕은 표 토를, 물이 나오지 않는 대지의 심장을 사랑합니다. 먼지 구덩이 어디엔가 풍요가 있어요." "당신은 이제 쉴 수 있는 자격이 있어요." "또 그런 말을 하는군요. 그것을 나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받아 들였어요. 쉴 자격이 있다고 하신다면, 나의 인생이 끝났다고 말씀하시는 것과 다름이 없지요." "그걸 믿으세요?" "내가 그것을 받아들였지요." 아담이 흥분하여 말했다. "받아들여서는 안 돼요. 그것을 받아 들이면 당신은 살지 못해 요!" "알고 있습니다." 새뮤얼이 말했다. "그러면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왜요?" "받아들이지 마세요." "나는 참견하기 좋아하는 노인입니다. 슬픈 일은 내가 남의 일에 점점 참견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오. 그래서 자식들을 찾아 다닐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나는 항상 남 의 일에 참견하고 있는체 해야만 합니다." "나는 당신이 힘이 없어질 때까지 그 먼저 구덩이에서 일을 하셨으면 해요." 새뷰얼은 그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듣기 좋은 얘기입니다! 고맙습니다. 늦게 나마 사랑 을 받는 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요." 아담이 갑자기 그의 앞으로 몸을 돌렸기 때문에 새뮤얼은 발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나 는 당신이 나를 위해 해준 일을 알고 있습니다." 아담이 말했다. "보답을 해드릴 수가 없구 먼요. 그러나 한가지만 더 부탁을 드렸으면 합니다. 부탁을 드릴 테니 한번만 더 친절을 베 풀어 주시렵니까? 어쩌면 나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될지도 모르죠." "할 수 있는 일이라면야." 아담은 손을 들어 소쪽을 향해 반원형을 그렸다. "저쪽 땅 말입니다 - 우리가 전에 이야 기했던 일입니다만 풍차의 우물과 알팔파 밭이 있는 정원을 만드는데 도와 주시겠어요? 꽃 씨를 재배할 수도 있죠. 돈벌이도 되죠. 어떻게 하시렵니까? 몇 에이커씩 향기로운 콩이 자 라고 금잔화가 금색으로 뻗어날 거예요. 북쪽 정원에는 10에이커쯤 장미를 심고 서풍을 타 고 퍼질 향내가 어떨지 생각해 보세요!" "당신은 나를 울리는구려. 노인에게 어울리지 않게스리." 사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아담, 고맙소. 당신의 향기로운 제안이 서풍을 타고 향기롭게 번지는구려." "그러면 하시렵니까?" "아니오. 하지 않겠소. 그러나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의 연설을 들으면서 샐리너스에 있 는 동안, 마음 속에 그것이 보일 겁니다. 정말로 그렇게 되었다고 믿게 되겠지요." "그러나 나는 그것을 하고 싶습니다." "톰을 찾아가 만나 보시오. 그애가 도와드릴 겁니다. 할 수만 있다면, 불쌍한 자식이지. 온 세상에 장미를 심으려 할 겁니다." "새뮤얼, 당신은 지금 하고 계신 일을 알고 계십니까?" "알지요. 내가 하는 일을 내가 알지요.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반은 된 셈입니다." "참으로, 고집이 센 분이구먼요!" "언쟁을 좋아하죠. 집사람은 나보고 언쟁을 좋아한다고 하오. 그러나 나는 자식들이 쳐 놓 은 거미줄에 걸렸어요. 그런데 그것이 마음에 드는 군요." 2 집안에는 저녁식사 준비가 되어 있었다. 리이가 말했다. "언젠가처럼 나무 밑에서 차릴까 했었지만 날이 차서요." "정말 차가운데, 리이." 새뮤얼이 말했다. 쌍둥이들이 들어와서 수줍은 듯이 손님을 쳐다보며 서 있었다. "본 지가 오래됐네. 하지만 우리가 너희들의 이름을 잘 지어 주었지. 네가 케이레브지, 안 그러니?" "전 카알이에요." "그래 카알이지." 그리고 나서 그는 다른 애에게 몸을 돌렸다. "너는 이름에서 등뼈를 빼 내는 법을 아니?" "네?" "아론이지?" "그렇습니다." 리이가 킬킬됐다. "이름을 쓸 때 "에이"자를 하나만 쓰죠. 두 개가 있으면 친구들에게 이 상하게 보이는가 봐요." "저는 베르기 산토끼를 서른 다섯 마리나 갖고 있습니다." 아론이 말했다. "보시렵니까? 토끼장은 저기 샘가에 있어요. 여덟 마리가 더 생겼어요. 바로 어제 새끼를 낳았거든요." "아론, 보고 싶구나." 그의 입이 씰룩거였다. "카알, 너는 농작불을 가꾸고 있다고는 말하 지 않겠지?" 리이는 고개를 홱 돌려 새뮤얼을 살폈다. "그런 말은 하지 마세요." 리리이가 신경질적으 로 말했다. 카알이 말했다. "내년에 아버지께서 평지의 땅 1에이커를 제게 주실 거예요." 아론이 말했다. "저는 무게가 15파운드가 나가는 커다란 토끼를 갖고 있어요. 생일 선물로 아버지에게 드릴 거예요." 아담의 침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에겐 말하지 마세요. 비밀이예요." 아론 이 재빨리 말했다. 리이는 남비 구이를 잘랐다. "새뮤얼, 선생님은 항상 마음의 고통을 가져다 주시는군요." 그러고는 말했다. "애들아, 앉거라." 아담이 소매를 내리면서 들어와 식탁머리에 앉았다. "잘들 다녀왔니?" 그가 말하자 아이 들이 합창하듯 대답했다. "잘 다녀왔습니다. 아버지." "말씀하지 마세요." 아론이 말했다. "하지 않을게." 새뮤얼이 그를 안심시켰다. "무엇인데?" 아담이 물었다. 새뮤얼이 말했다. "비밀 좀 가지면 안 되나요? 나는 당신 아들과 비밀이 있지요." 카알이 끼어들었다. "식사하고 나서 저도 비밀을 말해 드릴 께요." "듣고 싶은데." 새뮤얼 이 말했다. "그 비밀을 모르고 있으면 좋겠구나." 리이는 고기를 자르다 고개를 들고 새뮤얼을 노려보다가, 접시에 고기를 옮겨 놓기 시작 했다. 아이들은 늑대처럼 음식을 아무말 없이 재빨리 먹어치웠다. 아론이 말했다. "나가도 돼요. 아버지?" 아담이 고개를 끄덕이자 애들은 재빨리 나갔다. 새뮤얼은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열 한 살 치고는 숙성해 보이는군요. 생각이 나는데, 우리 애들은 열 한 살 때 고함치고 소 리지르고 쿵쿵 뛰어다녔어요. 아들이 어른같이 보이는군요." "그래요?" 아담이 물었다. 리이가 말했다. "이유를 알 성싶군요. 이 집에는 아이들을 소중히 다룰 여자가 없지요. 남 자들의 보살핌이란 대단한 것이 못된다고 생각해요. 따라서 이런 애들은 어린아이로 남는 것이 조금도 유리할 것이 없지요. 얻을 것이 하나도 없어요.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는 알 수 없지만." 새뮤얼은 접시에 남은 고깃국물을 빵조각으로 닦았다. "아담, 리이가 아주 훌륭한 사람이 라는 것을 알고 꼐신지 모르겠습니다. 요리할 줄 아는 사색가라고나 할까, 아니면 사색할 수 있는 요리사라고나 할까.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어요. 당신도 많이 배웠을 것이 틀림 없습니다." 아담이 말했다. "내가 귀담아 듣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왜 아이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치기 싫어하셨어요. 아담?" 아담은 잠시 생각했다. "정직하게 말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그건 평범한 질투였기 때문 이라고 생각되는군요. 다르게 표현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따라갈 수 없는 방향으 로 아이들이 나에게 멀어져가는 것을 바라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대단히 합리적이고 지나칠 정도로 인간적이구먼요. 그러나 그것을 인식한다는 것 은 대단한 비약입니다. 나도 그 정도까지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리이가 회색 에나멜 칠을 한 커피 포트를 들고 와 컵을 채우고 앉았다. 그는 둥근 컵에 손을 문질러 자기 손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웃음을 지었다. "해밀튼 선생 님, 당신은 난에게 커다란 고민을 안겨 주었어요. 그리고 중국의 정직을 뒤흔들어 놓았어 요." "무슨 뜻이오, 리이?" "말씀 드린 것 같은데요. 아니면 당신에게 말씀드릴 생각에서 마음속으로 꾸며낸 것인지 도 모르죠. 어쨌든 재미있는 이야기에요." "듣고 싶은데." 새뮤얼이 말하고 아담은 쳐다보았다. "아담, 당신은 듣고 싶지 않소? 아니 면 구름 같은 몽상 속으로 빠져 들고 있는 거요?" "몸상에 빠져 있었죠." 아담이 말했다. "재미있는데요 - 일종의 흥분이 나에게 밀려오고 있어요." "그건 좋은 거죠." 새뮤얼이 말했다. "그것은 인간에게 일어날 수 있는 좋은 일 중에 제일 좋은 일일지도 모르죠. 리이, 이야기나 하지." 중국인은 목덜미에 손을 대고 미소를 지었다. "변발이 없어도 지낼수 있을 지 모르겠습니 다." 리이가 말했다. "난 무의식적으로 변발을 꽤 사용했던 모양이에요. 그렇죠. 이야기를 해 야죠. 내가 점점 중국적이 돼 간다는 말씀을 드렸죠. 그런데 선생님은 점점 아일랜드식으로 되어가고 있는가요?" "그랬다 안 그랬다 하지." 새뮤얼이 말했다. "창세기 제 4장 16절을 읽어 주시고 난 다음 거기에 대해서 토론을 벌였던 일을 기억하시 나요?" "그럼, 오래 전 일이지." "10여년 전 이죠. 그 이야기는 깊숙이 나의 폐부를 찔렀기 때문에 한마디 한마디 음미해 보았어요. 그것은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나에게 점점 더 심오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나는 우 리가 갖고 있는 번역서와 비교를 해보았지요 - 거의 비슷했어요. 나의 마음에 걸리는 곳이 꼭 한 군데 있었는데, 흠정역 성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더군요 - 여호와께서 카인에게 왜 화 가 났느냐고 묻는 장면인데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 을 들지 못하겠느냐? 만일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니라. 죄ㅅ 소원은 네게 있 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나의 폐부를 찌른 것은 "너는 ... 다스리게 될지니라." 하는 구절이었어요. 이 말은 카인이 죄를 다스리게 되리라는 일종의 약속이었기 때문이죠." 새뮤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자손이 그 일을 완전히 완수하지 않았다. 그 말이지." 리이는 커피를 찔끔 마셨다. "그 후에 미국 표준 성서 한 권을 구입했죠. 그 당시로서는 새로운 책이었죠. 그런데 이 책에는 이 구절이 달랐어요. "그대는 죄를 다스리라." 이렇게 되어 있더군요. 이건 큰 차이입니다. 이것은 약속이 아니라 명령이에요. 곰곰히 생각해 봤죠. 이렇게 천양지 차이가 있는 두 번역이 가능하게 되었다니 원 저자의 원어는 어떤 것인가 하 고 의아스럽게 생각해 봤죠." 새뮤얼은 테이블에 손바닥을 얹고 몸을 굽혔다. 옛날의 그 젊은 눈빛이 그의 눈에 어렸다. "리이, 자네는 히브리어를 공부했다고 말하지 않았지!" 리이가 말했다. "말씀 드리려던 참이예요. 꽤 긴 이야기죠. 오가피주 맛을 좀 보시겠어 요?" "썩은 사과의 그 달콤한 냄새가 나는 술 말이지?" "네, 그걸 들면 나는 말이 술술 나오죠." "나는 이야기를 더욱 귀담아 들을 수 있을 지도 모르지." 새뮤얼이 말했다. 리이가 부엌으로 간 산이에 새뮤얼이 물었다. "아담 이야기를 알고 계시오?" "모릅니다. 나에게 이야길 하지 않았어요. 어쩌면 내가 귀담아 듣지 않았는지도 모르죠." 리이는 돌 술병이 아주 얇고 정묘하여 빛이 투명하게 비치는 사기잔 세 개를 들고 왔다. "중국식으로 마시세요." 그는 거의 새까만 술을 잔에 따랐다. "이 술에는 쑬이 많이 들어 있지요. 독한 술이에요. 많이 마시면 압상토주와 같은 효과가 있지요." 새뮤얼은 술을 홀짝홀짝 마셨다. "자네가 왜 그리 관심을 갖고 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네." "이런 위대한 이야기를 생각해 낼 수 있는 사람이면 자기가 표현하려 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을 거싱기 때문에, 표현의 혼란이란 있을수 없으리라고 생각되었어요." "자네는 사람이라는 말을 썼는데, 그렇다면 이것은 하느님이 잉크 묻은 손으로 쓴 성서가 아니란 말인가?" "이 이야기를 생각할 수 있었던 사람은 대단한 성인이라고 생각해요. 중국에도 이런 성인 이 몇 분 계시죠." "나는 알고 싶었네. 그러면 결국 자네는 장로 교인이 아니네." 새뮤얼이 말했다. "제가 점점 중국식으로 되어 간다는 말씀을 드렸어요. 말을 계속하자면 나는 샌프란시스 코에 있는 우리 종회 본부엘 갔었어요. 종회 본부에 대해서 알고 계세요? 우리 대가족은 상 부상조하는 본부를 갖고 있어요. 리이 종친은 대단히 크죠. 자급자족을 하고 있죠." "종회 이야기는 나도 들었네." "여자 노비 때문에 도끼를 들고 당파싸움을 하는 중국인 말씀이죠." "그렇게 생각하네." "정말 그것과는 다르죠." 리이가 말했다. "우리 종가에는 위대한 학자이신 노사가 여러분 계셨기 때문에 내가 거기를 갔었죠. 그분들이야말로 꼼꼼한 사상가들이죠. 공장의 문장 하나 를 놓고 여러 해 동안 사색을 하는 분도 계시죠. 말의 해석에 뛰어난 분이 계셔서 나에게 충고를 해주실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했죠. 훌륭한 노인들이시죠. 그분들은 오후에 두 번 아 편을 피우시는데, 피우고 나면 그들은 마음이 편안하고 예민하게 되죠. 그러고 나서 밤을 새 우면서 앉아 있으면 그들의 사고가 놀랄 만해지죠. 그분들 만큼 아편을 잘 활용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리이는 까만 술로 혀를 적셨다. "나는 경건한 마음으로 현인 한분에게 나의 문제를 말씀 드리고 이야기를 읽어 드리고 나대로 이해하고 있는 점을 말씀 드렸죠. 그 다음날 밤 네 분 이 회동을 하시고 나를 불러 들였어요. 우리들은 밤새도록 그 이야기를 토론했어요." 리이가 웃었다. "재미있었어요. 감히 많은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진 않겠어요. 네 노 사들이, 그 중에 제일 젊은 분이 90세가 넘으셨는데 히브리어 공부를 시작한다는 것을 상상 할 수 있으세요? 그들은 학식있는 율법박사 한 분을 고용했어요. 그분들은 어린애처럼 공부 를 시작했어요. 연습책이니, 문법, 어휘, 단문 공부를 시작한거에요. 중국식으로 붓을 가지고 쓴 히브리어를 보셔야 할텐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글을 쓴다는 것이 당신을 괴롭히는 만 큼 그들을 괴롭히진 않았어요. 우리는 위에서 아래로 쓰기 때문에죠. 아, 정말 그분들은 완 전주의자들이었어요." "자네는?" 아담이 물었다. "나도 그분들을 따라서 공부했지요. 자랑스럽고 명석한 그분들의 두뇌에 감탄했어요. 그래 서 우리 민족을 사랑하게 되었지요. 처음으로 중국적이 되고 싶었어요. 2주에 한 번씩 만나 러 갔죠. 그리고 나는 여기 내 방에서 글을 쓰면서 공부를 했지요. 알고 있는 히브리 사전이 란 사전은 모두 샀어요. 그러나 노사들이 늘 나를 앞질렀어요. 얼마 안가서 그분들은 율법박 사까지도 앞질렀어요. 그는 동료 한 사람을 데리고 오게 되엇어요. 해밀튼 씨, 선생님도 여 러 밤을 새면서 논의와 토론에 참가하셨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랬어요. 질의, 사색, 정말 멋있는 사고 - 아름다운 사색이었습니다. 2년 후에 우리들은 창세기 제 4장 16절을 다룰 수 있다고 생각했지요. 노사들도 이 구절 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느꼈어요 - "다스릴지니라" "다스리라" 하는 구절 말씀이에요. 그런 데 우리가 캐낸 결과는 "그대 죄를 다스릴 수도 있으리라." 하는 것입니다. 노사들은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세월을 허송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셨어요. 이것이 계기가 되어 중국 의 껍데기 속에서 벗어나, 그분들은 지금 희랍어를 공부하고 계시죠." 새뮤얼이 말했다. "그것 참 맹랑한 이야기구먼. 나는 이야기 줄거리를 따라가려고 애를 썼 으나 어디선가 놓쳐버린 듯해. 어째서 그 말이 그리 중요한가?" 리이가 섬세한 컵에 술을 따를 때 그의 손이 떨렸다. 그는 자기 술을 단숨에 꿀꺽 삼켰다. "모르시겠어요?" 그가 소리쳤다. "미국 표준성서에는 인간이 죄를 다스리라고 명령을 하고 있어요. 이 경우 죄는 무지라고 할 수 있죠. 인간은 확실히 죄를 다스리게 된다는 뜻이죠. 그러나 팀쉘이라는 희랍어는 "그대 다스릴 수도 있으리라" 하는 뜻으로 선택의 기회를 주었 어요. 이것이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단어인지도 모르죠. 길은 열려 있다는 말이죠. 그 책 임을 사람에게 돌리고 있는 것이죠. 만일 "그대 다스릴 수도 있으리라." 하는 것과 사실이라 면 "그대 다스리지 못할 수도 있으리라." 하는 것도 진실이죠. 모르시겠어요?" "알겠네, 잘 알겠네. 그런데 자네는 이것이 신법이라고 믿지 않는 구먼. 어째서 자네는 그 중요성을 느끼나?" "아! 오랫동안 이 점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이미 이런 질문을 얘기하고 준비를 단단히 해놓았죠. 무수한 사람들의 사고와 생활에 영향을 끼쳐온 글이면 어떤 것이나 중요하죠. 교 과서나 교회에서 "그대 다스리라." 하는 명령을 느끼고 복종하는 사람이 수백만 명이나 됩 니다. 그리고 "그대 다스릴지니라" 하는 신의 예정을 느끼는 사람은 더욱 많습니다. 인간의 의지가 앞날에 끼어들 수 없지요. 그러나 "그대 다스릴 수도 있으리라" 하는 것은 그렇지 않아요! 이 말은 인간을 위대하게 만들고 인간을 신들에 비길 수 있도록 만들고 있지요. 인 간은 양심에 있어서나 더러운 행위에 있어서나 형제 살상에 있어서나 위대한 선택권을 그대 로 갖고 있기 때문이죠. 인간은 자기의 길을 택할 수 있고 투쟁을 별여 승리를 거둘 수 있 습니다." 리이의 목소리는 승리의 노랫소리 같았다. 아담이 말했다. "리이, 자넨 그것을 믿나?" "그럼요. 믿죠." "태만과 나약 때문에 자신을 신의 무릎 위로 던져 버리고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길이 정해진 걸요." 이렇게 말하기란 쉽습니다. 그러나 선택의 영광을 생각해 보세요! 선택이야말 로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죠. 고양이에게는 선택권이 없습니다. 꿀벌은 꿀을 만들어야 하죠. 거기에는 신성함이란 없습니다. 천천히 사경 속으로 빠져들어가던 노사들이 이제 너무나 흥 미를 갖게 되어 죽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아십니까?" 아담이 말했다. "그 중국 사람들이 구약성서를 믿고 있다는 뜻인가?" 리이가 말했다. "그 노사들은 진실한 이야기를 믿고 있지요. 그분들은 진실한 이야기를 들 으면 그것이 진실함을 알지요. 이 16절이 시대와 문화와 민족을 초월한 인류의 역사임을 그 분들은 알고 있어요. 그분들은 15와 4분의 3절의 진실을 쓴 사람이 동사 하나를 잘못 써서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지 않죠. 공자께선ㄴ 인간이 선량하고 성공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방법을 일러주고 계시죠. 그러나 이것은 별이 반짝이는 천계로 올라가는 일종의 사다리죠." 리이의 눈은 빝나고 있었다. "당신은 이것을 읽어서는 안 되시죠. 이것은 나약과 비겁과 태 만과의 관계를 절단시키죠." 아담이 말했다. "자네는 요리도 하고 애들도 키우고 내 뒷바라지도 하고 그리고도 이러한 것들을 어떻게 해내는지 알 수 없군."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지요." 리이가 대답했다. 그러나 나는 선배님들처럼 오 후면 더도 덜도 아닌 꼭 두 모금씩 아편을 피우지요. 그러면 내가 인간이구나 하는 것을 느 끼지요. 그리고 인간이란 대단히 중요한 존재 - 그러니까 별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존재라 는 것을 느끼죠. 이것은 신학이 아닙니다. 나는 신을 믿을 의향이 없어요. 하지만 번쩍이는 용기, 다시 말하면 인간의 정신에 대하여 새로운 애착을 갖고 있지요. 인간의 정신이야 말로 우주 가운데에서 제일 사랑스럽고 독특한 것이죠. 그것은 늘 공격을 받고는 있지만 파괴되 지 않죠. 그건 "그대 할 수도 있느니라" 때문이죠." 3 리이와 아담은 헛간 까지 걸어나와 새뮤얼을 전송했다. 리이는 길을 밝히기 위해 양철 랜 턴을 들고 나왔다. 하늘에는 별들이 야단스럽게 반짝이고 있어서 대지가 이중으로 어둡게 보이는 맑은 초겨울 밤이었다. 주위의 언덕에는 적막이 내리덮고 있었다. 육식동물이건 초식 동물이건 간에 아무것도 얼씬 거리지 않았다. 대기는 하도 고요하여 참나무 가지 하나, 잎사 귀 하나 움직이지 않고 은하수를 배경으로 서 있었다. 랜턴의 손잡이가 빛이 흔들릴 때마다 리이의 손에서 작은 소리를 냈다. 아담이 물었다. "언제 돌아오실 생각이십니까?" 새뮤얼이 대답하지 않았다. 독솔로지는 고개를 숙이고 우유빛 눈으로 발 밑의 짚을 바라보며 참을성있게 서 있었다. "당신은 저 말을 오랫동안 부리시는 군요." "서른 세 살이나 되었죠. 이제는 이빨도 늙었어요. 손수 따뜻한 말죽을 만들어 먹여야 하 지요. 그런데 저놈은 악몽을 꿔요. 잠결에 몸을 떨기도 하고 울부짖기도 해요." "내가 본 중에서 제일 추한 말이에요." 아담이 말했다. "나도 알고 있어요. 그래서 그놈을 망아지 때 택했지요. 33년 전에 그놈을 2달러를 주고 산 것을 아시오? 모두가 형편없지요. 말굽은 핫케이크 같고 뒷다리 무릎은 굉장히 뭉뚱하고 짧고 곧아서 관절이 전혀 없는 것 같지요. 머리는 망치 같고 등은 매우 우묵하고 가슴은 오 그라 붙었고 엉덩이는 크지요. 입은 강철 같은 놈이 지금도 껑거리끈과 싸움을 하지요. 안장 을 얹고 타면 자갈길 위로 수레를 몰고가는 것 같지요. 타박타박 걷지도 못하고 걷다가는 제발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죠. 33년 동안 저놈에게서 좋은 점을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어요. 성질까지도 고약해요. 이기적이고 싸움 잘하고 비열하고 복종심도 없지요. 오늘까지도 뒷발 질을 하니까 뒤따라 걷지를 못해요. 말죽을 먹일 때라도 내 손을 깨물려고 하지요. 그래도 나는 저놈이 좋단 말이오." 리이가 말했다. "그래서 독솔로지(영광의 찬미)라는 이름을 붙이셨군요." "그렇지." 새뮤얼이 말했다. "추하게 태어난 동물이라도 한가지 멋있는 것은 소유할 자격 이 있다고 생각했지. 저놈도 나하고 같이 있을 날이 얼마 납지 않았어." 아담이 말했다. "당신은 저놈을 불행에서 벗어나도록 해줘야 할 것입니다." "어떤 불행에서요?" 새뮤얼이 다그쳐 물었다. "저놈이야말로 내가 만난 것 중에서 몇 안 되는 행복하고 모순 없는 놈 중의 하나지요." "저놈도 아픔과 고통을 갖고 있음이 들림없어요." "글쎄요. 저놈은 그렇게 생각지 않죠. 독솔로지, 저놈은 지금도 자기가 대단한 말이라고 생각하죠. 아담, 당신이 저놈을 죽여 주겠소?" "그러죠. 그렇게 하겠어요. 그렇게 하죠." "책임을 지겠소?" "그럼요. 책임을 지죠. 서른 세 살이라죠. 수명도 오래 전에 끝났어요." 리이는 랜턴을 땅에 내려 놓았다. 새뮤얼은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아 노랗게 깜박거리는 불 빛에 손을 녹이기 위해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다. "나는 오랫동안 고통을 겪어 왔소." 그가 아담에게 말했다. "무엇 때문에요?" "죽음이 더욱 편안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당신은 나의 말을 정말로 쏘아 죽이고 싶다고 했지요?" "글세, 내 뜻은-" 새뮤얼이 재빨리 말을 가로 막았다. "아담, 당신은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십니까?" "물론 아니죠." "만일 나에게 당신의 병을 고칠 수도 있고, 아니면 당신을 죽게 만들지도 모르는 약이 있 다면 그것을 당신에게 주어야 할까요? 자신을 잘 살펴 보세요." "무슨 약인데요?" "아니." 새뮤얼이 말했다. "내 말을 믿으시오. 내가 말하면, 그것 때문에 당신이 죽을지도 몰라요." 리이가 말했다. "해밀튼 선생님, 조심하세요, 조심하세요." "무엇인데요." 아담이 다그쳤다. "무엇을 생각하고 계신지 말씀하세요." 새뮤얼이 조용히 말했다. "단 한 번 난 조심을 하지 않으렵니다. 리이, 만일 내가 틀렸다 면 - 잘 들어요- 만일 나의 잘못 이라면 그 책임은 내가 지겠조. 어떤 비난이고 감수하리 다." "옳다고 확신하세요?" 리이가 불안한 듯이 물었다. "물론 자신할 수는 없지. 아담, 당신은 그 약을 원하시오?" "그렇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나에게 주세요." "아담, 캐시는 샐리너스에 있소. 그 여자는 세상에서 제일 사악하고 제일 악랄한 창녀집을 하고 있소. 사악하고 추잡한 것. 비뚤어지고 비열한 것. 인간이 생각해 낼 수 있는 최악의 것들이 거기에서 거래되고 있소. 않은 뱅이와 곱추가 만족을 구하러 그곳에 오지요. 아니 그 이상의 사악이야. 캐시는 케이트라는 가명을 가지고 생기에 차 있고 젊고 늘씬한 젊은이를 들여다가 결코 온전한 인간이 될 수 없도록 병신으로 만들어 놓고 있소. 자, 당신의 약이 이 것이오. 어떤 효과를 주나 봅시다." "당신은 거짓말쟁이입니다." 아담이 말했다. "아닙니다. 아담, 나는 여러 면을 잦고 있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거짓말쟁이 만은 아니오." 아담이 리이 쪽으로 몸을 홱 돌렸다. "사실이야?" "나는 해독제는 아닙니다만, 그것은 사실입니다." 리이가 대답했다. 아담은 랜턴 불빛 속 에서 흔들거리며 서 있다가 몸을 돌려 달아났다. 달려가다가 넘어지는 무거운 발소리가 들 렸다. 다시 숲속으로 넘어지더니 기어가기도 하고 할퀴기도 하면서 언던 위로 올라가는 소 리가 들렸다. 언덕 위를 넘어가고야 그 소리가 멎었다. 리이가 말했다. "선생님의 약의 독 같은 역할을 하는 구먼요." "내가 책임을지지. 오랜 전에 이런 것을 배웠네. 맹독성 스티리키닌을 먹은 개가 죽으려고 할 땐 도끼를 들고 그 개를 도마로 끌고 가야 하네. 다음번 경련을 기다리고 있다가 꼬리를 도끼로 잘라버려야 하는 법이야. 만일 독이 그 이상 퍼지지 않으면 그 개는 회복할 걸세. 고 통의 충격이 독에 반격을 가할 수 있으니까 말이네. 충격이 없으면 개는 반드시 죽어요." "이것이 그것과 같은 경우라는 것을 어떻게 아세요?" 리이가 물었다. "나도 모르지. 하지만 이런 일이 없으면 그는 반드시 죽을꺼야." "용감 하십니다." "아니야, 나는 이제 노인이야. 양심에 걸리는 것이 생긴다 하더라도, 그것은 오래 가지 않 을꺼야." 리이가 물었다. "그분이 어떻게 할 것 같아요?" "모르지. 그러나 적어도 쭈그리고 앉아 울적해 있지는 않을 거야. 랜턴을 좀 들어 주겠 나?" 노란 불빛을 받으며 새뮤얼은 독솔로지의 입에 재갈을 밀어 넣었다. 재갈이라야 아주 얇 게 닮아서 쇳조각처럼 보였다. 고삐는 집어치운 지가 이미 오래 되었다. 망치 같은 늙음 머 리는 제멋대로 코를 끌기도 하고 길옆에 멈튀서 풀을 뜯을 수도 있었다. 새뮤얼은 상관하지 않았다. 그가 부드럽게 껑거리끈을 채우자 말은 돌아서서 그를 차려고 했다. 독스가 마차 굴대 속에 들어서자, 이리가 물었다. "얼마 동안 함께 타고 가도 꽨찮을까요? 걸어서 돌아오겠어요." "같이 감세." 새뮤얼이 리이가 부축하여 마차에 태우는 일에도 관심을 두려 하지 않았다. 밤을 칠흑 같았다. 독스는 몇 발자국마다 비틀거려서 밤 여행이 싫음을 나타냈다. 새뮤얼이 말했다. "말을 계속하세, 리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 리이가 놀란 기색이 없었다. "선생님이 그러하시다고 한 것처럼 나도 참견하기를 좋아하 는 사람인가 봐요. 생각을 해야만 하니 말씀이에요. 여러 가지 가능성을 저도 알고 있습니다 만 오늘 밤에는 나를 완전히 바보로 만드셨어요. 선생님만은 그 이야기를 아담에게 하지 않 으시리라고 장담을 했었죠." "그 여자에 대해서 알고 있었나?" "물론이죠." "아이들도 아는가?" "모를 겁니다. 그러나 시간 문제죠. 어린아이들이란 얼마나 짓궂은 가를 아시지 않아요. 언젠가는 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그애들에게 소리칠 겁니다. "애들은 여기서 옮겨야 되겠네. 그 일을 생각해 보게." "제 질문에 아직 대답을 하지 않으셨어요. 어떻게 그렇게 하실 수 있었어요?" "내가 잘못됐다고 생각하는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어떤 일에 그렇게 부동의 자세를 취하시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 죠. 이것이 제 판단이었어요. 흥미 있으세요?" "자기 얘기를 하는데 흥미를 느끼지 않는 사람도 있던가? 계속하게." "해밀튼 선생님은 참으로 친절한 분이세요. 그것은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은 데서 나타 나는 친절이라고 나는 늘 생각했어요. 선생님의 미음은 국화 밭에서 뛰어 노는 어린 양처럼 유순하시죠. 내가 아는 한 선생님은 어떤 일에도 복독처럼 우악스럽게 대들지 않으셨어요. 그런데 오늘 밤에는 선생님에 대한 나의 이미지를 갈기갈기 찢어놓는 일을 하셨어요." 새뮤얼이 채찍꽃이에 꽂아놓은 막대기를 고삐를 감자, 독솔로지는 바퀴자국이 난 길 위를 비틀비틀 내려갔다. 노인은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수염은 별빛을 받아 하얗게 빛났다. 그는 검은 모자를 벗어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그 행동이 자네를 놀라게 만든만큼 나도 놀라게 만들었네. 그 이유를 알고 싶으면 자네 자신을 살펴보게."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는데요." "자네가 그렇게 연구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일찍만 말해주어도 사정이 훨씬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네." "아직도 말씀을 못 알아 듣겠습니다." "리이, 조심하게. 자네는 나에게 이야기를 시키고 있네. 나의 아일랜드 기질이 들락날락하 고 있나는 말을 했을 걸세. 그 기질이 지금 고개를 내밀고 있네." 리이가 말했다. "해밀튼 선생님, 이제 떠나시면 다시 돌아오시지 않으시겠죠. 오래 사시려 고 하지 않으시겠죠." "사실이네. 어떻게 알았나?" "선생님 주위에는 죽음이 깃들어 있어요. 죽음이 비치고 있어요." "그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여보게 나는 나의 인생을 일종의 음악이라고 생각하네. 항상 좋은 음악은 아니지만 그래도 형식과 멜로디를 갖춘 음악이야. 나의 생활이 완전한 오케스트라가 되지 못한지도 오래 되었네. 유일한 음뿐이지 - 슬픔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음이야. 나와 같은 태도를 나 혼자만이 취하는 것은 아니네. 많은 사람들 이 인생을 하나의 패배로서의 종말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애." 리이가 말했다. "사람들은 지나치게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죠. 부자들의 불만만 한 불만이 있는 것을 보지 못했어요. 사람에게 훌륭한 의식주를 마련해 줘 보세요. 그는 절 망 때문에 죽을 겁니다." "자네가 번역한 말 때문이었어. "그대 다스릴 수도 있윽리라." 그것이 내 목을 쥐어 잡고 흔든거지. 현기증이 끝나자 새롭게 밝은 새 길이 트였어. 종말을 걷고 있는 나의 인생은 찬 란한 종말을 향해 내닫고 있는 것 같아. 나의 음악에서 마치 밤에 우는 새 소리처럼 새로운 마지막 멜로디가 울려 나오고 있어." 리이는 어둠을 뚫고 그를 들여다 보았다. "그것은 우리집 가문의 노인들 귀에 들렸던 것 과 같은 것입니다." ""그대 죄를 다스릴 수도 있으리라." 바로 그거야. 나는 모든 인간이 파멸할 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아. 파멸되지 않은 분들의 이름을 여럿 들 수 있어. 그 분들이야말로 세상 사람들 이 의존하고 사는 분들이야. 그것은 전쟁에서도 사실이지만 정신에서도 진리야. 다만 승리자 만이 기억될 뿐이지. 확실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파멸 되었지만 불기둥처럼 어둠을 뚫고 겁 에 질린 인간을 인도 하는 사람도 있어. "할 수도 있으리니라, 그대 할 수도 있으리라." 얼 마나 영광된 일이야! 우리가 나약하고 병들고 호전적인 것도 사실이지만, 그러면 우리가 모 두 그랬었다면 우리는 몇천 년 전에 이 지구 표면에서 사라졌어야 했을 거야. 화석이 된 턱 뼈가 남아 있거나 석회암 속에 남아 있는 부러진 이빨이, 인간이 지상에 존재 했었다는 유 일한 표지가 되었을 거야. 그러나 선택, 승진의 선택! 나는 전에 이것은 이해하지 못했었거 나 결코 받아들이지 않았었어. 이제 내가 오늘 밤 아담에게 이야기한 이유를 알겠나 나는 선택권을 행사한 거야. 어쩌면 내가 틀렸는지도 모르지. 그러나 그에게 말을 해줌으로써 그 로 하여금 살든지. 아내면 죽는 길을 택하도록 강요한거야. 그 단어가 무엇이었지? 리이?" "팀쉘이었죠." 리이가 말했다. "마차를 멈춰 주시겠어요?" "돌아갈 길이 멀겠네." 리이가 마차에서 내렸다. "새뮤얼 선생님." "여기 있네." 노인은 껄껄 웃었다. "내가 그걸 이야기한 것을 집 사람이 알면 미워하겠는 데." "새뮤얼 선생님, 선생님은 나보다 훨씬 앞섰습니다." "돌아보게, 리이." "안녕히 가십시오. 새뮤얼 선생님." 리이는 길을 따라 서둘러 되돌아 걸었다. 쇠바퀴가 강 에 부딪쳐 나는 덜커덕 소리가 들렸다. 그는 돌아서서 뒷모습을 보았다. 언덕 위에 하늘을 배경으로 새뮤얼 노인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하얀 머리카락이 별빛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제25장 1 샐리너스 계곡에는 겨울에 비가 많이 왔다. 비에 젖은 게곡은 장관이었다. 비는 얌전하게 내려 땅에 스며들뿐 범람하는 일이 없엇다. 1월에는 목초가 우거지며, 2월에는 언덕이 풀로 뒤덮이고 가축의 가죽은 팽팽하고 윤기 있게 보였다. 3월에는 보슬비가 계속되다가 기승을 부렸다. 그런 마음 따뜻한 온기가 계곡으로 밀려 들면서 대지는 노랗고 파랗고 황금색 꽃들 로 온통 뒤덮였다. 톰은 농장에 혼자 있었다. 먼지더미의 농장은 풍요하고 아름답게 되었고 차돌은 풀 속에 숨어버렸다. 해밀튼가의 소들은 살찌고, 양들의 축축한 등에서는 유모가 자라났다. 3월 5일 정오, 톰은 대장간 밖에 있는 벤치에 앉아 있었다. 햇빛 찬란한 아침이 지나가자 비를 머금은 회색 구름이 대양에서 부터 산을 너머 밀려와 해맑은 대지에 그림자를 안고 왔 다. 말굽 소리가 들리더니 한 작은 소년이 팔굽을 휘두르며 지친 말을 재촉하여 집 쪽으로 향 해 오는 모습이 보였다. 톰은 일어서서 길 쪽으로 걸어 갔다. 그 소년은 집까지 전속력으로 말을 몰고 와서 모자를 벗더니 노란 봉투 하나를 땅에 떨어뜨리고는 말을 되돌려 다시 내달 렸다. 톰은 소년의 뒤에 대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지친 듯이 허리를 굽혀 전보를 집어 들었다. 그는 전보를 손에 든 채 햇빛을 받으며 대장간 밖의 벤치에 앉았다. 그는 무엇인가 를 아끼려는 듯이 언덕과 고독을 둘러보고는 봉투를 뜯어 피할 수 없는 네 단어와 사람과 사건과 시간 등을 읽었다. 톰은 천천히 전보를 접고 또 접어 엄지손가락만하게 만들었다. 그는 집으로 들어가 부엌 을 지나고 작은 거실을 지나 자기 침실로 들어갔다. 그는 옷장에서 검은 옷을 꺼내 의자 등 에 걸쳐 놓았다. 그리고 하얀 와이샤쓰와 검은 넥타이를 의자 등에 걸쳐 놓고 침대에 드러 누워 얼굴을 벽쪽으로 향했다. 2 4인승 마차와 경마차는 샐리너스 묘소를 떠나고 없었다. 가족과 친지들은 중앙로에 있는 올리브의 집으로 돌아가 요기를 하고 커피를 마시고 각자가 이 슬픔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면서 정중히 조의를 표했다. 조지가 아담에게 4인승 마차에 타기를 권유했으나, 그는 사양했다. 그는 묘소 주위를 방황 하다가 윌리엄즈 집안 묘지의시멘트 모퉁이에 앉았다. 고풍의 시꺼먼 삼목들이 묘소 가에서 애도하듯 서 있었으며 하얀 바이올렛들이 길가에 제멋대로 피어 있었다. 누군가가 그 꽃들 을 심었겠지만 잡토가 되고 말았다. 찬바람이 불어와 삼목 사이에서 울고 있었다. 전몰 장병의 무덤을 표시하는 주물 별들이 많았는데 그 위에 1년 전 현충일에 꽅은 깃발이 바람에 시달리고 있었다. 아담은 프레몽트 산붕우리가 의젓하게 솟아 있는 샐리너스 동쪽 산맥을 쳐다보며 앉아 있 었다. 대기는 비가 온 후면 가끔 그러하듯이 수정처럼 투명했다. 하늘에는 구름이 많지 않았 지만 가랑비가 바람을 타고 내리기 시작했다. 아담은 아침 기차로 달려왔다. 처음에는 올 생각이 없었지만, 어쩔 수 없는 힘에 끌려 오 게 된 것이었다. 새뮤얼의 목소리 때문에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윤기있고 서정 적인 목소리가 그의 귀에 들려왔다. 그의 입에서는 이국적인 억양의 음조, 다음 말을 전혀 예기할 수 없도록 묘하게 선택된 언어의 기묘한 음악이 슬슬 흘러나왔다. 일반적으로 대부 분의 사람들의 말은 다음 말을 확실히 예측할 수 있지 않았던가. 아담은 관 속에 든 새뮤얼을 보고 자기는 그가 죽지 않았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알았 다. 관 속에 든 그의 얼굴이 새뮤얼의 얼굴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아담은 홀로 있으면 서도 그의 모습을 생시대로 간직하고 싶어 딴 곳으로 걸어갔다. 그는 묘소까지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상례에 어긋난 행위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말이 들리지 않는 곳에 멀찌 감치 떨어져 있다가 아들들이 묘소 주위를 채우자 하얀 바이올렛이 피어 있는 오솔길로 빠져 나왔던 것이다. 묘지에는 아무도 없었다. 침울한 바람 소리가 묵직한 삼나무를 휘감았다. 빗방울은 점점 커지면서 주위에 휘몰아쳤다. 아담은 일어섰다. 그는 몸을 떨었다. 그리고 하얀 바이올렛꽃 위에 천천히 걸어 새 무덤 곁을 지났다. 조금 전만 해도 새로 파헤친 축축한 흙의 문턱에는 꽃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 었으나 바람은 꽃봉오리를 휘몰아갔고 작은 조화다발들을 날려 보냈다. 아담은 그것을 집어 들어 흙 둔덕 위에 갖다 놓았다. 그는 묘지 밖으로 나왔다. 비바람이 그의 등에 몰아쳤으나 옷속으로 스며드는 습기를 아 랑곳하지 않았다. 로미레인 길은 진흙투성이가 되어 있었고 새로 난 마차 바퀴 자국에는 물 이 고여 있었다. 길가엔 키가 큰 야생 구리와 겨자초가 자라고 있었으며, 야생무우가 사납게 튀어나와 있었고, 자주빛 엉겅퀴 꽃송이가 비를 맞은 춘록 위로 솟아 있었다. 꺼먼 진흙이 아담의 구두를 뒤덮고 검은 바짓가랑이에도 튀어 있었다. 몬터리 가까지는 거의 1마일이나 되었다. 그가 그곳에 다다라 샐리너스 마을 쪽을 향해 동쪽 길로 접어들었을 때에는 아담은 흙투성이에다 비로 흠뻑 젖어 있었다. 모자의 굽은 챙에는 빗물이 고여 있었고 칼라는 비에 젖어 늘어져 있었다. 존 스트리트에서 길이 꺾이면서 메인 스트리트가 되었다. 아담은 보도에 다다르자 발을 굴러 구두에서 진흙을 털였다. 길가의 빌딩이 바람을 막아주자 그는 오한으로 떨기 시작했 다. 그는 걸음을 재촉했다. 메인 스트리트 반대 끝 가까이에서 그는 애보트주점으로 들어가 브랜디를 주문하여 재빨리 들여마셨지만 오한은 점점 더했다. 바아 뒤에 있던 라피에를 씨가 그의 오한을 보고 말했다. "한 잔 더 하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독감에 걸리시겠습니다. 핫 럼은 어떠십니까? 오한이 가실 겁니다." "네, 그렇게 하죠." 아담이 말했다. "자, 코냑 한 잔을 더 마시세요. 그동안 나는 더운 물을 가져올 테니까요." 아담은 술잔을 들고 테이블로 와서 젖은 옷 채로 불안한 듯이 앉았다. 라피에르 씨는 김 이 나는 주전자를 부엌에서 가지고 왔다. 그는 납작한 유리잔을 쟁반에 얹어 들고 테이블로 왔다. "뜨거울 때 드세요. 이것 포플라 나무에서도 오한을 가시게 하죠." 그는 끌고 와서 앉았다 가는 일어섰다. "당신을 보니 나도 춥군요. 나도 한잔 들어야겠어요." 그는 유리컵을 가지고 와서 아담의 맞은편에 앉았다. "효과가 있지요." 그가 말했다. "당신이 들어올 때는 하도 창 백하여 나를 놀라게 했어요. 초행이신가요?" "킹 시티 근처에서 왔습니다." 아담이 말했다. "장례에 참석하러 오셨나요?" "그렇습니다. 오랜 친구였죠?" "성대한 장례였던가요?" "그렇죠." "당연하죠. 그 분에게는 친구가 많았죠. 날씨가 나빠서 아주 안됐어요. 한 잔 더 하시고 잠자리에 드세요." "그래야겠어요." 아담이 말했다. "술을 드니 마음이 편안해지는군요." "가치있는 거죠. 폐렴에 걸릴 걸 막아 주었는지도 몰라요." 그는 토디 한 잔을 가져다 주고는 주대 뒤에서 젖은 천을 들고 나왔다. "흙을 좀 털어내세 요. 장례식이란 유쾌한 것이 못돼죠. 게다가 비라도 오면 정말 구슬프죠." "끝날 때까지 비가 오지 않았어요. 돌아오다가 비를 맞았죠." "이 근처에서 좋은 방 하나를 얻어 들지 그래세요? 자리에 드시면 토디를 올려 보내드리 죠. 아침이면 거뜬하실 겁니다." "그렇게 할까 합니다." 아담이 말했다. 마치 따뜻한 이질 액체가 몸을 점령하나 하듯이 그 는 치가 뺨을 쑤시고 팔 속을 뜨겁게 내닫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따뜻한 액체가 비밀을 간직해 둔 비장의 상자 속으로 녹아 들어가자, 갖가지 비밀들이 마치 받아들여서는 안될지 모르는 어린애처럼 표면으로 겁을 내며 나타났다. 아담은 젖은 수건을 집어들고 몸 을 꾸부려 바짓가랑이에 묻은 흙을 닦아냈다. 피가 돌며 눈 속이 팔딱팔딱 뛰었다. "토디 한 잔을 더 들어야 할까 봅니다." 라피에르 씨가 말했다. "감기 때문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하지만 한 잔 더 하시고 싶으시면 오래 된 자마이카 럼이 있어요. 스트레이트로 드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50년 묵은 것이지요. 물을 타면 향기가 없어지죠." "한 잔 마시고 싶군요." 아담이 말했다. "나도 한 잔 들고 싶습니다. 그 술병을 딴 지가 여러 달 됩니다. 주문이 많지 않아요. 여 기는 위스키만 찾지요." 아담은 구두를 닦고 수건을 마루에 던졌다. 그는 시꺼먼 럼을 한 잔 마시자 기침이 났다. 독한 술이 달콤한 향기를 뿜으며 머리를 감쌌다. 그리고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코끝이 찡 했다. 방이 비스듬하게 기우는 듯하더니 다시 제자리를 잡았다. "좋지요?" 라피에르 씨가 물었다. "한 잔으로도 녹아 떨어질 수 있어요. 나는 한 잔 이상 은 안 들지요. 물론 취해 떨어지고 싶으면 모르지만, 그러는 사람도 더러는 있지요." 아담은 팔꿈치를 테이블에 대고 몸을 굽혔다. 그는 수다스러워 지려는 기분을 느끼고 깜 짝 놀랐다. 목소리가 자기 목소리같이 들리지 않았다. 그는 자기 말에 놀랐다. "나는 여기에 자주 오지 않죠. 케이트의 집을 아시오?" "저런! 럼의 효력이 생각보다 낫구먼." 라피에르 씨는 이렇게 말하고 엄숙하게 말을 이었 다. "농장에 사세요." "네, 킹 시티 근처에 가지고 있지요. 내 이름은 트래스크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결혼 하셨습니까?" "아직 안 했습니다." "홀아비십니까?" "그렇소." "제니의 집으로 가세요. 케이트는 그만두세요. 그곳은 당신한테 좋지 않습니다. 제니의 집 은 바로 옆집입니다. 거기에 가면 당신이 필요로 하는 것 무엇이든 얻을 수 있지요." "바로 옆집이라구요?" "맞아요. 한 블록 반을 동쪽으로 가다가 오른편으로 도세요. 그 골목이 어딘지 누구라도 알려줄 거예요." 아담의 목소리가 탁하게 들렸다. "케이트의 집은 어때서 그래요?" "제니의 집으로 가세요." 라피에르 씨가 말했다. 3 돌풍이 부는 궂은 저녁이었다. 케스트로빌 가는 찐득찐득한 진흙이 깊이 빠지고 차이나 타운은 물이 범람하여 그곳 주민들은 집과 집 사이의 좁은 길에 판자를 걸쳐 놓고 있었다. 저녁 하늘에는 쟂빛 구름이 덮여 있고 대기는 축축하다기보다는 눅눅했다. 두말의 차이를 생각해 보면, 축축하다는 것은 위에서 내려오는 습기를 뜻하면 눅눅하다는 것을 썩은 데서 올라오는 습기일 것이다. 오후가 되자 바람은 잦아졌지만 대기를 습랭하게 만들어 놓았다. 하기야 공기는 아담의 머리에서 럼의 취기를 가셔낼 만큼은 싸늘했지만 비겁한 마음을 되돌 아오게 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진흙탕물을 피하느라고 땅을 바라보면서 포장하지 아니한 보도를 재빨리 걸었다. 골목은 철로횡단을 예고하는 랜턴과 제니의 집 현관에서 타고 있는 작은 탄소선 전구로 희미하게 밝혀지고 있었다. 아담은 위치를 대강 짐작하고 있었다. 그는 두 채의 집을 세며 가다가 집을 놓칠 뻔했다. 그 짐 앞의 시꺼먼 숲이 하도 높고 울창했기 때문이다. 그는 문틈으로 어두운 현관을 들여 다보고는 천천히 문을 열고 풀이 우거진 길을 걸어 올라갔다. 어스름 속에서도 축 처지고 파손된 베란다와 흔들거리는 계단이 보였다. 벽 널빤지는 페인트색이 바랜지 이미 오래 됐고 정원은 손질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내려진 차일 가장자리에 희미한 불빛마저 보이지 않았었다면 폐가로 오해하고 지나쳤을 지 도 몰랐다. 계단은 그의 몸무게를 받아 비틀거리는 것 같았고 베란다 판자는 그가 가로 질 러 갈 때 삐걱이는 소리를 냈다. 앞문이 열리자 문고리를 잡고 서 있는 희미한 모습이 보였 다.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우비를 입으셔야 했을 것을 그랬어요. 단골 손님이시던가요?" "아니야." 아담이 말했다. "누가 일러 주었어요?" "호텔 사람이." 아담은 앞에 서 있는 여자를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그녀는 검은 옷을 입 고 있었고 장식물은 하나도 걸치고 있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은 예쁘고 날카로와 보였다. 그 여자는 어떤 동물 - 밤에 돌아 다니는 동물을 생각나게 했기 때문에 그는 그것을 생각해 내려고 애썼다. 그것은 어떤 비밀스러운 육식 동물이었다. 여자가 말했다. "좋으시다면 내가 좀더 램프 가까이로 가지요." "아니야." 그녀가 웃었다. "앉으세요. 이리로요. 당신은 무엇인가를 구하려고 여기에 오셨죠? 바라는 것을 말씀하시면 적당한 여자를 불러드리죠." 낮은 목소리는 정확하고도 탄력이 있었다. 그 년는 꽃이 뒤섞인 정원에서 꽃을골라내듯이 말을 골라냈다. 그리고 선택하는 데에 시간이 걸렸다. 그녀는 아담을 어색하게 만들었다. 그는 불쑥 말을 꺼냈다. "케이트를 만나고 싶소." "미스 케이트는 지금 바빠요. 약속이 있으신가요?" "아니." "나도 당신을 모실 수 있어요." "케이트를 만나고 싶소." "무엇 때문에 만나시려고 하는지 말해 줄 수 있어요?" "안돼." 그녀의 목소리는 숫돌에 간 칼날 같이 날카로웠다. "만날 수 없어요. 그분은 바빠요. 만일 여자라든지 또는 다른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나가는 것이 좋을 거예요." "그러면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전해 주겠소?" "그분이 당신을 아시나요?" "모르겠소." 그는 용기가 없어지는 것을 느꼈다. 한때의 오한이 생각났던 것이다. "모르겠 지만, 아담 트래스크가 만나보고 싶다고 전해주겠조? 그러면 내가 그 여자를 알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지 그녀도 알게 될 테니까." "알겠어요. 그러면 그렇게 말을 전하죠." 그녀는 오른쪽 문으로 조용히 가서 문을 열었다. 몇 마디의 낮은 말소리가 들리더니 한 남자가 문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년는 아담이 혼자 있지 않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문을 열어 놓았다. 방 한쪽 입구에는 묵직한 검은 휘장이 쳐 있었다. 그년는 커다란 커튼 주름을 헤치고 사라졌다. 아담은 의자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한 남자가 머리를 내밀었다가는 집어넣은 모습이 아담의 눈에 비쳤다. 케이트의 개인 방은 아늑하고 효율적이었다. 페이가 살았을 때의 방같이 보이지 않았다. 사방 벽은 사프란색 비단으로 되어 있었고 커튼은 연한 녹색이었다. 비단 일색으로 꾸민 방 이었다. 푹신한 의자들에는 비단 방석이 깔려 있었고 램프에는 비단 등갓이 씌워 있었다. 방 한쪽 끝에는 번쩍번쩎하는 하얀 공단 커버를 씌운 커다란 베개가 몇 개 있었다. 벽에는 사 진이나 그림이나 개인 소품이 걸려 있지 않았다. 침대 옆에 있는 화장대의 흑단대 위에는 화장품 하나, 약병 하나 없었다. 다만 그 광택이 삼면경에 반사되고 있었다. 깊고 오래된 중 국에 융단에는 사프란 판에 연록색 용이 그려져 있었다. 방 한쪽 끝이 침실이고, 가운데가 접대실이고, 다른 끝이 사무실이었다. 사무실에는 금빛 참나무로 만든 서류 정리용 캐비넷이 몇 개 있고 금박 글씨가 쓰인 커다란 검정색 금고가 하나 있고 녹색 등피가 달린 쌍 램프가 있는 덮개접이 책상이 하나 있고 그 두에는 회전의자 하나, 그 옆에는 드이 곧은 의자 하나 가 있었다. 케이트는 책상 뒤의 회전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아직도 예뻤다. 그녕의 머리카락은 다시 금발이 되어 있었다. 그녀의 입은 작고 꼭 다물려 언제나처럼 양끝이 치켜 올라가 있 었다. 그러나 그녀의 윤곽에는 날카로운 데가 전혀 없었다. 손은 여위고 주름이져 있었지만 어깨는 퉁퉁했다. 뺨은 토실토실 했으나 턱 밑에는 잔주름이 져 있었다. 유방은 여전히 작았 지만 배는 지방이 생겨 약간 튀어나와 있었다. 엉덩이는 ㄴ날씬했지만 다리와 발은 퉁퉁하 게 굽이 낮은 구두 위로 살이 불룩 나와 있었다. 스타킹을 통해 희미하기는 하지만 살이 늘 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고무밴드가 보였다. 아직도 그녀는 예쁘고 깔끔했다. 다만 손님이 늙어, 손바닥과 손가락 끝이 딱딱하게 빛났 고 손등은 주름이 지고 갈색 얼룩이 져있었다. 그녀는 소매가 기다란 검은색 드레스를 단정 히 입고 있었다. 다만 소매와 목에 단 하얀 드레스만이 옷색과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세월은 미묘한 일을 해 놓았다. 곁에서 보았다 하더라도 변화라고는 전혀 눈에 띄지 않을 수도 있었다. 케이트의 뺨에는 주름살이 없었고 눈은 날카롭게 천박했으며, 코는 섬세하고 입술은 엷고 야무졌다. 이마의 흉터는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케이트의 살결에 맞는 분을 발랐기 때문이었다. 케이트는 뚜껑이 달린 책상에서 한 무더기의 사진을 보고 있었다. 같은 카메라로 찍은, 같 은 크기의 사진으로 플래시를 터뜨려 찍은 것이기 때문에 밝은 사진들이었다. 사진마다의 인물은 달랐지만 자세는 지루할 정도로 같았다. 한결같이 여자들의 얼굴은 카메라를 향하고 있지 않았다. 케이트는 사진을 네 가지로 분류하여 따로따로 마닐라 산 삼봉투에 넣었다. 노크 소리가 들리자 그녀는 봉투를 책상의 서류 분류함에 넣었다. "들어와, 에바, 들어오라니까. 그 분이 오셨나?" 그 여자가 미처 대답도 하기 전에 책상 앞으로 왔다. 더 밝은 불빛에서 보니 그녀의 얼굴 은 탄탄하고 눈은 빛났다. "처음 보는 손님이 왔어요. 마담을 만나고 싶다는군요." "못만나. 누가 오는지 알고 있지 않나?" "만날 수 없다고 말했어요. 언니를 알고 있다는 거예요." "에바 이름이 뭐래?"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사람인데 취기가 좀 있어요. 이름이 아담 트래스크래요." 케이트는 몸 하나 움직이지 않고 소리 하나 내지 않았지만 무엇인가가 그녀의 정수리를 내리쳤다는 것을 에바는 알았다. 케이트의 오른손 손가락은 천천히 손바닥으로 굽어지고 왼 손은 쭉 마른 고양이처럼 책상 끝을 더듬고 있었다. 그녀는 숨을 쉬지 않는것처럼 꼼짝 않 고 앉아 있었다. 그녀의 마음은 피하 주사기가 들어 있는 옷장 서랍 속의 상자에 가 있었다. 드디어 케이트가 입을 열었다. "에바, 저기 큰 의자에 앉아 잠깐만 가만히 앉아 있어." 에바 가 꼼짝 않고 서 있자, 케이트는 소리를 질었다. "앉아!" 에바는 움칠하고 큰 의자로 가서 앉았다. "손톱 파지 말아라." 케이트가 말했다. 에바는 두 손을 떼고 의자 팔걸이를 꽉 잡았다. 케이트는 램프의 녹색 유리 등갓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녀가 갑자기 움직이자 에바는 벌떡 일어서서 입술을 떨었다. 케이트는 책상 서랍을 열고 접은 종이 뭉 치를 끄집어 냈다. "여기 있다! 네 방에 가서 네가 해. 다 쓰지 말아 - 아니야. 너를 못믿겠 어." 케이트는 종이를 탁 치고 나서 둘로 갈았다. 종이 끝을 접어 한쪽에 에바에게 넘기기 전에 하얀 가루가 조금 떨어졌다. "자 서둘러라! 아래층에 내려가면 랄프에게 말해. 목소리 는 들리지 않지만, 종소리는 들리는 곳을 잡아 호울에 와서 있으라고. 너는 그가 기어올라가 지 않나 살펴. 종소리가 들리면 - 아니야. 그에게 말해. 아니야. 그 나름대로 하라고 해. 그 런 연후에 아담 트래스크 씨를 나에게 올려 보내." "케이트 언니, 괜찮겠어요?" 케이트는 고개를 돌릴 때까지 그녀를 쳐다 보았다. 그녀는 에바 뒤에 대고 말했다. 그가 가면 바로 다른 반쪽도 주마. 자, 서둘러." 문이 닫히자 케이트는 책상 오른쪽 서랍을 열어 작은 권총을 꺼냈다. 탄창을 옆으로 밀어 탄약을 들여다본 다음 그것을 다시 닫고 책상 위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 그 위에 종이를 덮 었다. 그녀는 불 하나를 끄고 의자에 기대 앉았다. 그녀는 책상 위에서 두손을 움켜 잡았다. 노크 소리가 들리자 입술을 거의 움직이지 앉고 말했다. "들어오세요." 에바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고 몸은 늘어져 잇었다. "이분이에요." 그녀는 아담 뒤에 서 문을 닫았다. 그는 주위를 잽싸게 둘러보고는 책상 뒤에 가만히 앉아 있는 케이트를 보았다. 그녀를 뚫 어지게 쳐다보고는 그녀에게로 서서히 걸어갔다. 움켜쥐고 있던 그녀의 손이 풀리면서 오른손은 종이 쪽으로 옮아갔다. 냉정하고 무표정한 그녀의 눈은 그의 눈에 떠나지 않았다. 아담은 그녀의 머리카락, 이마의 흉터, 입술, 주름진 목덜미, 팔, 어깨, 그리고 펑퍼짐한 앞 가슴을 보았다. 그는 한숨을 깊이 내쉬었다. 케이트의 손이 약간 떨렸다. 그녀가 물었다. "무슨 일이죠?" 아담은 책상 옆에 있는 등이 곧은 의자에 앉았다. 그는 안도의 소리라도 치고 싶었지만 이렇게 말했다. "이젠 아무일도 없소. 당신을 만나보고 싶었을 뿐이오. 샘 해밀튼이 당신이 여기 있다고 알려 주었소." 그가 의자에 앉는 순간, 그녀의 떨리던 손이 멎었다. "전엔 들은 적이 없나요?" "없었소. 처음 들었을 땐 나를 미치게 만들었지만 이제는 괜찮소." 케이트는 긴장을 풀고 입가에 미소를 띠자 작고 하얀 이가 드러났다. 길다란 견치가 날카 롭게 보였다. 그녀가 말했다. "당신 때문에 놀랐어요." "왜?" "당신이 무슨 짓을 할지 몰라서요." "나도 그랬소." 그는 그녀를 마치 살아있지 안한 여자이기나 한 것처럼 계속 쳐다보았다. "오랫동안 당신이 오리라고 기대하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오지 않길래 잊고 있었지요." "나는 당신을 잊지 않고 있었소. 그러나 지금은 잊을 수 있겠소." "무슨 뜻이죠?" 그는 유쾌한 듯이 웃었다. "나는 이제 당신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오. 내가 진실한 의미에 서 당신을 보지 못했다고 새뮤얼이 말했는데 그것이 사실이오. 나는 당신의 얼굴은 기억하 고 있었지만, 진정한 의미로서의 당신의 얼굴은 이해하진 못했었소. 이제 나는 당신의 얼굴 을 잊을 수 있소." 그녀의 입은 일자로 다물어졌고 미간이 넓은 두 눈은 잔인 스럽게 가늘어졌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럴 수 있지." 그녀는 태도를 바꾸었다. "그럴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죠. 만일 당신이 모든 것에 대하여 올바르게만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재회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소." 아담이 말했다. "당신은 지독한 바보였어요. 어린애처럼. 당신의 일을 어떻게 처리 해야 할지도 몰랐어요. 이제 나는 당신을 가르칠 수 있어요. 이젠 어른처럼 보이니까요." "당신은 지금까지 나를 가르쳐 왔소. 아주 좋은 교훈이었소." "한 잔 하시겠어요." "그러지." 아담이 말했다. "술 냄세가 나네요. 럼을 드셨구먼요." 그녀는 일어서서 술병과 술잔 두 개를 가지러 캐비 넷으로 갔다. 그리고 그녀가 몸을 돌렸을 때 아담이 자기의 퉁퉁한 발목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갑자기 화가 솟아 올랐으나 입가의 미소를 바꿀수는 없었다. 그녀는 방 가운데 있는 둥근 테이블로 술병을 들고 와서 큰 의자로 옮겨 오면서 그가 자 기의 불쑥 튀어나온 비를 쳐다보고 있는 것을 그녀는 알았다. 그녀는 그에게 술잔을 건네주 고 자리를 잡고는 배 위에 두 손을 포개었다. 그는 술잔을 들고 앉았다. 그녀가 말했다. "드세요. 참 좋은 술이에요." 그는 그녀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한 번도 본적이 없는 미소였다. 그녀가 말했다. "당신이 여기 왔다는 소리를 에바에게서 전해 들었을 때, 처음엔 쫓아낼까 하고도 생각했지요." "그럼 다시 왔을 걸." 그가 말했다. "당신을 봐야 했으니까. 새뮤얼을 못 믿었기 때문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말이오." "럼이나 드세요." 그는 그녀의 술잔을 힐끗 보았다. "독약이라고 탔다고는 생각지 않으시겠죠." 그녀는 말을 멈추고 그런 말을 내뱉은 자기 자신에 대해 속으로 화를 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면서 아직도 그녀의 술잔을 응시하고 있었다. 노기가 그녀의 얼굴에 나 타났다. 그녀는 술잔을 집어들고 입술을 갖다 댔다. "술을 마시면 속이 아파요. 그래서 술을 절대로 안 들어요. 술은 나에게 독약과 같은 것이 죠." 그녀는 입을 꼭 다물고 뾰족한 이빨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아담은 그녀를 보고 계속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녀는 억제할 수 없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럼을 단숨에 들이켜고는 기침을 했다.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다. "당신은 나를 조금도 믿지 않는군요." "그럼, 안 믿지." 그는 술잔을 들어 럼을 마시고 나서 일어나 두 잔을 다시 채웠다. "난 그만 들겟어요." 그녀는 두려워하며 말했다. "마실 필요 없어요." 아담이 말했다. "내가 마시고 갈테니까." 톡 쏘는 알콜이 목 속에서 불타는 듯했다. 그녀는 온몸이 들끓는 것을 느기고 겁이 났다. "나는 당신이건 누구건 무서운 사람이 없어요.: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두 번재 잔을 마셨 다. "당신은 나를 두려워할 아무 이유도 없소. 당신은 이제 나를 잊을 수 있소. 아, 이미 나를 잊었었다고 했지." 아다믕ㄴ 근년에 느끼지 못했던 안도감을 훈훈하게 느꼈다. "나는 샘 해 밀튼의 장례식에 왔소. 그는 정말로 훌륭한 사람이었소. 난 그분을 그리워하게 될 거요. 캐 시. 그분이 쌍둥이를 받아내던 일을 기억하오?" 케이트의 몸속에는 술이 발광을 했다. 그녀는 싸움을 벌이고 있었고 그 긴장이 얼굴에 나 타났다. "왜 그래요?" 아담이 물었다. "술이란 나에겐 독약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잖아요. 술을 먹으면 몸이 아프다고 말했죠." "나는 운을 걸고 일을 할 수 없었소." 그는 침착하게 말했다. "당신은 언젠가 나에게 총을 쏘았었소. 당신이 또 무슨 짓을 했는지 나는 모르오." "무슨 소리예요?" "나는 추문을 들었소. 더러운 스캔들이오." 잠시동안 그녀는 몸 안을 돌아 다니는 알콜과의 의지의 싸움을 잊었다. 이제 그녀는 그 싸움에 패배했다. 머리 속이 빨갛게 달아 오르고 두려움은 사라졌다. 대신 조심성도 없는 잔 인성이 들어섰다. 그녀는 술병을 잡아채고 자기 잔을 채웠다. 아담은 일어서서 자기 잔을 채워야 했다. 전혀 익숙지 않은 감정이 발동했다. 그는 그녀의 속에서 부터 나타나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몸부림을 즐겁게 보고 있었다. 그는 그녀가 괴로워 하는 것이 기뻤다. 그러나 그는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젠 조심해야 지. 말을 말아야지. 암, 말아야지." 그는 혼자 중얼거렸다. 그는 큰 소리로 말했다. "샘 해밀튼이야말로 여러 해 동안 나에게 좋은 친구 였었소. 난 그분이 그리워 질거요." "왜? 우리에게 친절했었는데." "그는 나를, 내 속마음을 꿰뚫어 보았어요." "왜 안 그래? 그는 나의마음을 꿰뚫어 보고도 나를 도와 주었는데." "나는 그를 증오해요. 그가 죽어서 기뻐요." "내가 당신의 마음 속을 들여다볼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아담이 말했다. 그녀의 입술이 꾀어 올라갔다. "당신은 바보예요. 나는 당신을 증오하지는 않아요. 형편없 는 바보니까." 그녀의 긴장이 고조되어 감에 따라 아담의 마음은 오히려 차분해졌다. "저기 앉아서 비웃기나 해요." 그녀가 소리쳤다. "당신, 마음이 자유뷴방해진 것 같지요? 몇 잔 들고 나니 사내답게 된 것 같지요! 내가 새끼 손가락 하나만 까딱하면 당신은 벌벌 떨며 기어올 거예요." 그녀의 의지력은 힘을 잃고 암여우 같은 조심성이 없어졌다. "나는 당 신의 비겁한 마음을 잘 알고 있어요." 아담은 계속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가 술을 마시자, 그것을 보고 그녀는 자기 잔에 또 술 을 따랐다. 병 모가지가 그녀의 술잔에 부딪치며 소리를 냈다. "내가 부상을 당했을 때는 당신이 필요했죠. 그러나 당신은 멍청이었어요. 내가 더 이상 당신이 필요 없게 되었을 때 당신은 나를 잡아두려고 했죠. 그 보기 흉한 웃음일랑 집어치 워요." "난 당신이 그토록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군." "모른다구요? 모르세요?" 그녀의 조심성은 이제 온전히 사라졌다. "그건 증오가 아니라 멸시예요. 난 내가 어렸을 때, 사람들이란 얼마나 멍청한 거짓말쟁이 인가를 알았어요. 내 부모도 선량한 체만 했죠. 실제론 선량하지 않았어요. 나는 그 사람들을 알고 있었어요. 내 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고 그 사람들을 시켜서 할 수 있었어요. 내가 반 어른이 되었을 때 나는 한 남자를 자살하도록 만들었어요. 그도 선량한 체 했지만 그가 바랐던 것은 나와 함 께 잠자려는 것뿐이었어요. 나이도 어린 계집애와." "그러나 당신은 그가 자살했다고만 말하지만 그는 무엇엔가 아주 가슴이 아팠을 것임에 틀림없소." "그는 바보였어요." 케이트가 말했다. "난 그가 우리 집 문 앞에 와서 애걸하는 소리를 듣 고 밤새도록 웃었어요." 아담이 말했다. "나는 내가 누군가를 세상 밖으로 몰아낸다는 건 생각도 하기 싫소." "당신도 바보니까요. 나는 그들이 말하는 상투적인 말을 기억해요 "저 애는 참으로 예쁘 고 상냥하고 멋있는 계집애야." 그런데 정말로 나를 안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내가 그들 에게 굴렁쇠 넘기를 시키고 있었는데도 그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말이에요." 아담은 술잔을 비웠다. 그는 멀리서 그녀를 관찰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는 그녀의 갖가 지 충동이 개미처럼 기어 다니는 것을 보고 읽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따금 술기운이 가져다 주는 깊은 이해력이 그에게 생겼다. 그가 말했다. "당신이 샘 해밀튼을 좋아했든 안 했든 상관없이 나는 그가 현명한 분이었다고 생각하오. 남자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고 생각하는 여자는 평생 그 한 부분만을 잘 알고 다른 부분들은 생각하지 못한다고 언젠가 새뮤얼이 한 말이 생각나는 구먼. 그렇다고 다른 부분이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지." "그는 거짓말쟁이며 위선자예요." 그녀는 말을 되는 대로 내뱉었다. "내가 증오하는 것은 거짓말쟁이에요. 그런데 모두가 거짓말쟁이죠. 그것은 사실이에요. 나는 그들을 폭로하고 싶 어요. 그들의 코를 자신의 더러운 곳에다 문지르게 하고 싶어요." 아담이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이 세상에는 악과 어리석음만이 있다는 말이오." "바로 내 얘기가 그거예요." "당신은 그렇게 생각지 않아요." 아담이 조용히 말했다. "당신은 믿지 않죠! 당신은 그렇게 믿지 않죠." 그녀는 그의 말을 흉내냈다. "내가 그것을 증명해 드릴까요?" "당신이 어떻게 그걸 증명할 수 있단 말이오." 그녀는 벌떡 일어나 책상으로 가 갈색 봉투를 들고 돌아왔다. "이걸 보세요." 그녀가 말했 다. "보고 싶지 않소." "어쨌든 보여 주겠어요." 그녀는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이 사람은 주 상원의원이에요. 그 는 국회의원에 출마한대요. 이 기름진 배를 보세요. 젖가슴은 여자 같지요. 그는 매맞기를 좋아하죠. 저 자국을 보세요. 채찍자국이에요. 얼굴 표정 좀 봐요. 이런사람이! 아내와 자식 을 넷이나 둔 이 사람이 국호의원에 출마한대요. 그래도 당신은 믿지 않죠! 이걸 보세요! 이 하얀 비계덩어리 같은 사람은 시의원이래요. 이 빨간 얼굴의 키가 큰 스웨덴 사람은 블랑코 근처에 농장을 갖고 있대요. 여길 보세요! 이 사람은 버클리 대학의 교수에요. 화장수를 얼 굴에 뒤집어 쓰려고 여기까지 오지요. 철학 교수가 그리고 이걸 봐요! 예수의 귀여운 형제 인 목사예요. 그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집을 태우곤 했죠. 우리는 지금 다른 방법 으로 원하는 것을 그에게 주고 있지죠. 뼈가 앙상한 옆구리 밑에 붙어 있는 성냥을 봐요?" "나는 이런 것들을 보고 싶지 않소." "이것들을 보고도 그런 것을 믿지 않아요! 당신도 애걸하며 여길 기어들어오게 만들 거예 요. 달을 보고 소리도 치도록 만들겠어요." 그녀는 자기의 의지를 그에게 강요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그녀는 그가 초연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의 분노는 응결하여 독이 되었다. "빠져나간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그녀의 표정은 담담하고 싸늘했지 만 손톱 끝은 의자의 장식물을 뜯어내고 비단 솔기를 풀어내고 있었다. 아담은 한숨을 쉬었다. "만일 내가 이런 사진을 갖고 있고 또 그들이 이 사실을 알고 있 다면 내 목숨은 안전치 못할 거요." 또 그가 말했다. "이 사진들 중 어떤 것이건 간에 한 사 람의 전생애를 망칠 수 있을텐데. 당신, 위험하지 않소?" "내가 어린앤 줄 아세요?" "이제는 그렇게 생각지 않지. 비뚤어진 인간, 아니 전혀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소."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당신 말이 정곡을 찔렀는지도 모르죠. 내가 인간이 되고 싶은 줄 아세요? 이 사진들을 보세요! 차라리 내가 개라면 좋겠어요. 그러나 나는 개가 아니예요. 나 는 인간보다는 더 영리 하죠. 나를 헤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위험에 대해서는 걱 정 마세요." 그는 사진 정리요 캐비넷을 가리켰다. "저기에 아름다운 사진이 백 장이나 있어 요. 만일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면 백 자의 편지가 사진과 함께 커다란 해를 끼칠 장소로 우송될 것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지요. 천만에, 그들은 나를 헤치지 못할 것예요." 아담이 물었다. "당신에게 어떤 사고가 일어난다든가 병에 걸릴 수도 있는 것 아니오?" "그래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그녀는 그에게 몸을 굽혔다. 이 사람들이 전혀 모르고 있는 비밀 하나를 말씀드리죠. 2,3년 후면 나는 여기를 떠날 거예요. 그때에는 어쨌든 편지가 우 송될 거예요." 그녀는 웃으면서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아담은 몸소리를 쳤다. 그는 그녀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녀의 얼굴과 웃음은 어린애같 이 천진난만했다. 그는 일어서서 술을 따랐다. 얼마 안 되는 술이었다. 술병은 거의 비어 있 었다. "당신이 증오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겠소. 당신이 이해할 수 없는 그 사람들 마음 속의 무엇을 당신은 증오하고 있는 거요. 그들의 악을 당신이 증오하고 있는 것이 아니오. 당신이 이해할 수 없는 그들 속의 선을 증오하고 있는 거요. 나는 당신이 원하는 무엇인지, 마지막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소." "내가 필요로 하는 만큼 돈을 벌겠어요. 그리고는 뉴욕으로 갈거예요. 난 늙지 않을 거예 요. 지금도 늙지 않았지만 좋은 동네에 멋있는 집을 사고 말 잘 듣는 하인을 둘 거예요. 그 리고 먼저 아직 살아있는지 모르겠지만 한 남자를 찾을 거예요. 천천히, 그리고 고통을 주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그의 생명을 빼앗을 거예요. 조심스럽게만 하면 그는 죽기 전에 미쳐 버릴 거예요." 아담은 참지 못하고 발을 굴렀다. "말도 안 되는 소릴 하고 있구먼. 거짓말이오. 미친 생 각이오. 새빨간 거짓말이오. 나는 전혀 믿지 않소." 그녀가 말했다. "나를 처음 보았을 때를 기억하시죠?" 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아, 물론 기억하지!" "턱이 깨지고 입술이 터지고 이빨이 빠져나갔던 나를 기억하시죠?" "기억하고 싶지는 않지만 기억하지." "나를 그 꼴로 만든 사나이를 찾고 싶은 거예요." 그녀가 말했다. "그런 연후엔 - 하고 싶 은 또다른 일이 있을 거예요." "가야겠소." 아담이 말했다. "가지 마세요. 여보, 지금 가지 마세요. 내 시이트는 비단이에요. 당신의 피부로 이 시이트 의 촉감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그런 뜻이 아니겠지?" "아, 정말이에요. 당신은 사랑에 대한 재주는 없지만, 내가 가르쳐 줄 수 있어요. 내가 가 르쳐 주지요." 그녀는 불안하게 일어서는 그의 팔에 손을 얹었다. 그녀의 얼굴은 생기있고 젊게 보였다. 아담이 그녀의 손을 내려다보자 그것은 창백한 원숭이 앞발처럼 주름이 져 있 었다. 그는 반사적으로 물러났다. 그녀는 그의 몸짓을 보고는 그 뜻을 이해하고 입을 단단히 다물었다. "이해를 못하겠는데, 알고는 있지만 믿을 수가 없어. 나는 아침이 되면 믿지 못하게 되리 라는 것을 알고 있어. 악몽이 될 거야. 그러나 안돼. 악몽이 될 수 없어. 당신이 내 아들에 대해선 한마디도 묻지 않았어. 당신은 내 아들의 에미란 말이오." 케이트는 팔꿈치를 무릎 위에 얹고 손을 턱 밑에 컵 모양으로 괴었다. 뾰족한 귀가 손가 락에 가리워졌다. 그녀의 눈은 승리감으로 반짝였다. 목소리는 조롱하듯이 부드러웠다. "바 보에게는 항상 구멍이 있죠. 난 어렸을 때 그것을 알았지요. 내가 당신 아들의 에미다. 당신 아들의? 그렇지, 나는 에미지 - 그런데 당신이 그애들의 아버지라는 것을 어떻게 알아요?" 아담의 입이 딱 벌어졌다. "캐시, 무슨 뜻이야?" "내 이름은 케이트에요. 여보세요, 잘듣고 기억하세요. 내가 어린애를 배도록 당신을 몇번 이나 가까이 했던가요?" "당신은 부상을 입었었지 않아. 그것도 심하게." "한 번이었죠. 딱 한 번." "임신을 해서 당신은 아주 불편했었지 않았어." 그는 항변하듯이 말했다. 그녀는 부드럽게 그에게 미소지었다. "당신 동생을 상대하지 못할 정도로 부상이 심하진 않았어요." "동생?" "찰스를 잊으셨어요?" 아담은 웃었다. "너는 악마야. 하지만 내 동생ㅇㄹ 내가 의심할 것 같아?"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상관 없어요." 아담이 말했다. "나는 믿지 않아." "믿게 될 거예요. 찰스를 다시 생각하게 될 거예요. 그에 대한 모든 것을. 난 찰스는 사랑 할 수 있었을 거예요. 어떤 면에서는 나와 비슷하니까요." "너하곤 같지 않아." "기억날 거예요. 언젠가 쓰디쓴 차를 마신 기억이 날 거예요. 잘못 하여 내 약을 먹었죠. 기억나요? 푹 잠들었다가 아침 늦게 서야 잠이 깼죠. 머리는 띵했고?" "부상이 심해서 그런 짓을 꾸밀 수 없었을 텐데?" "나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어요. 지금 당장 옷을 벗어요. 내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어 요. 지금 당장 옷을 벗어요. 내가 무슨 짓을 할 수 있는 가를 보여줄테니." 아담은 눈을 감았다. 럼 술 기운으로 머리가 핑 돌았다. 그는 눈을 뜨고 머리를 세게 흔들 었다. "상관 없어. 비록 사실이라 하더라도 전혀 상관없어." 그가 말했다. 아무래도 좋다는 것을 알았기 ㄸ문에 그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불쑥 일어섰다. 현기증이 일어났기 때문에 의자 등을 잡아야 했다. 케이트는 뛰어 일어나 두 손으로 그의 팔꿈치를 붙잡았다. "옷벗는 것을 도와 드리죠." 아담은 그녀의 손을 마치 철사줄이나 되는 것처럼 그의 팔에서 비틀어 떼었다. 그는 비틀 거리며 문 쪽으로 향해 걸었다. 억제할 수 없는 증오의 빛이 케이트의 눈에서 빛났다. 그녀는 비명을 질렀다. 길고 날카로 운 동물의 소리였다. 아담은 발을 멈추고 뒤를 돌아다 보았다. 문이 꽝하고 열렸다. 뚜장이 가 들어와 균형을 잡더니 전 체중을 실은 주먹으로 아담의 귀밑을 후려 갈겼다. 아담은 바 닥에 꽈당 나자빠졌다. 케이트가 소리쳤다. "발길로 차! 발길로 차란 말이야!" 랄프는 넘어진 사람 쪽으로 다가가서 거리를 쟀다. 그는 둥그래진 아담의 눈이 자기를 노 려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케이트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녀의 목소리 차가웠다. "발길로 차라니까 그래. 얼굴을 뭉게!" 랄프가 말했다. "저놈은 싸울 수가 없어요. 싸울 힘이 다 빠졌어요." 케이트는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입으로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의 두 손은 무릎 위에서 꿈 틀거렸다. "아담, 나는 당신을 증오해요. 증오해! 아담, 듣고 있는 거예요? 증오해!" 아담은 일어나려고 하다가는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려고 하다가는 또 넘어지곤 했다. 결국 그는 일어나려다가 바닥에 앉은 채로 케이트를 쳐다 보았다. "상관없어. 전혀 상관없어." 그는 무릎을 꿇고 일어나 앉아 마루를 짚고 쉬었다. "당신은 내가 세상이 누구보다도 당 신을 사랑했었다는 것을 알지? 전엔 그랬지. 그 사랑이 너무도 강렬했었기에 그것을 없애기 란 살인하는 것만큼이나 힘이 들었지." "당신은 기어 들어올 거예요. 배를 바닥에 질질 끌면서 애원, 애원할 거예요!" "미스 케이트, 발길로 찰까요?" 랄프가 물었다.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담은 조심스럽게 발의 균형을 잡으면서 문 쪽으로 서서히 움직였다. 손으로 문기둥을 더듬었다. 케이트는 불렀다. "아담!" 그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는 추억에 미소를 던지듯 그네에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 나 서 그는 문 밖으로 나와 가만히 문을 닫았다. 케이트는 문을 응시하며 앉아 있었다. 그녀의 눈은 쓸쓸해 보였다. 제 26 장 1 샐리너스에서 킹 시티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아담 트래스크는 구름같이 희미한 형태와 소리, 그리고 색깔 속에 휩싸여 있었다. 그는 어떤 생각도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인간의 마음에는 기교라는 것이 있어서 이것이 어둡고 깊은 곳에서 문제를 조사하고 부정 하거나 긍정하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이러한 활동은 자기가 갖고 있는지조차도 모른느 면 에 가끔씩 관계를 맺는다. 원인도 모르는 고통과 괴로움에 싸여 잠들었다가도 아참이면 새 로운 방향과 명료함이 나타나는 경우가 자주 있다. 그것은 어두운 이성 작용의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황홀감이 핏속에서 고동치고 배와 가슴이 기쁨으로 짜릿해지는 아침이 많 은데, 그 원인과 합당성이 아무로 생각해도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새뮤얼의 장례와 케이트와의 상면으로 아담은 슬픔과 괴로움을 겪어야 했는데 실은 그렇 지 않았다. 회상의 소용돌이 속에서 일종의 황홀감이 솟아올랐다. 그는 젊고 자유록보 대단 히 쾌활감에 차있는 것을 느꼈다. 그는 킹 시티에서 기차를 내려서 곧바로 자기의 마차와 말을 찾으러 보관소로 가지 않고 윌 해밀튼의 새차고로 갔다. 윌은 작업의 소음을 듣지 않고도 직공이 하는 일을 감시할 수 있는 유리벽으로 된 사무실 에 앉아 있었다. 윌의 배는 뚱뚱해지고 있었다. 그는 쿠바에서 가끔씩 직접 수송되어 오는 담배 광고를 살피고 있었다. 그 자신의 부친의 사망에 대하여 슬픔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장례식을 마치 고 샌프란시스코로 간 톰을 약간 걱정하고 있었다. 어쩌면 톰이 그러고 있을 지도 모르지만 술에 빠지는 것보다는, 그가 애쓰고 있듯이, 일에 열중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고 그는 생 각했다. 아담이 사무실에 들어서자 그는 아담을 쳐다보고 커다란 가죽의자를 손으로 가리키며 앉 으라고 했다. 그 의자는 고객들이 후에 지불하여야 하는 거액의 지불서를 놓고 가도록 마음 을 가라 앉혀 즈는 것이었다. 아담은 자리에 앉았다. "내가 조의를 표했는지 모르겠군." "슬픈 일이었지요." 윌이 말했다. "묘소에는 2백 명이 넘는 조객이 오셨었죠. 2백 명은 훨 씬 넘었을 거예요." "그런 분은 사실상 돌아가신 게 아니지."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그 사실을 마음 속에 되 새겼다. "난 그분이 돌아가셨다는 생각이 들지 않네. 나에겐 어쩌면 그분은 생전보다도 더 살아 계신 듯이 생각되는군!" "사실 그래요." 윌은 이렇게 말은 했으나 그에겐 그렇지가 않았다." 윌에게는 새뮤얼은 죽 어 있었다. "그분이 말씀하신 것들이 생각나네." 아담이 말을 이었다. "그분이 말씀하실 때에는 나는 사실 귀담아 듣지 않았었지만, 이제 그분의 말씀이 다시 생각나는군. 말씀하실 때의 모습니 눈에 선하네." "사실이에요." 윌이 말했다. "나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농장으로 돌아가시렵니까?" "그럴 생각이네. 그런데 자동차 구입 문제를 좀 의논할까 해서 들렸네." 묘한 변화가 윌의 표정에 나타났다. 일종의 무언의 민첩성이라고 할까. "이 계곡에서 당신 이야말로 자동차를 구입하지 않을 분이라고 생각했었지요." 윌은 눈을 반쯤 감고 아담의 반 응을 살폈다. 아담이 웃었다. "그럴 만했었지. 나에겐 변화가 일어나게 한 것은 자네 선친 덕인지도 모 르지." "무엇인데요?" 내가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어쨌든 자동차에 대해서 이야길 하세."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사실은 채우자니 정말 힘드는 군요, 주문한 사람들의 명단 을 갖고 있지요." "그런가? 나도 그 명단에 끼워 주게." "그렇게 해드리죠. 트래스크 씨. 그리고 - " 그는 말을 멈췄다가 계속했다. "당신은 우리 가족과 가까운 분이시니까 - 만일 다른 사람이 취소하는 경우가 생기면 앞당겨 해 드리죠." "고마운 일이구먼." 아담이 말했다. "어떤 형식으로 주문하시겠어요?" "무슨 말인가?" "한 달에 얼마씩 돈을 지불하시도록 해드릴 수도 있지요." "그렇게 하면 비싸지 않은가?" "이자와 운송비가 포함되지요. 그것이 편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요." "현금으로 살 생각이야. 연체를 할 이유가 없지." 윌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분은 많지 않아요. 그리고 내가 현금으로 팔면 손 해를 볼 때가 올 겁니다."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군. 나도 명단에 끼워 주겠니?" 윌은 그에게로 몸을 굽혔다. "트래스크씨, 명단 맨 앞에 끼워 드리죠. 먼저 오는 차를 드 리지요." "고맙네." "기꺼이 해드리죠." 윌이 말했다. 아담이 물었다. "모친께서는 어떻게 참고 견디시나?" 윌은 의자 등에 몸을 기대고 애정이 넘치는 미소를 지었다. "어머니는 대단한 분이에요. 바위 같으시죠. 어려웠던 때가 생각나는 군요. 어려웠던 때가 많았죠. 아버지께는 현실적이 못되셨어요. 항상 구름속을 떠다니시지 않으시면 책에 파묻혀 계셨죠. 어머니가 우리들을 하 나로 묶어 놓으셨기 때문에 해밀튼 집안 사람들이 구빈원 신세를 면하게 되었었죠." "훌륭한 분이셔." 아담이 말했다. "훌륭하신 것만이 아니죠. 강인하시기도 하죠. 두 발로 버티고 서서 끄떡도 하지 않으시 죠. 힘의 탑이라고나 할까요. 장례식 후, 올리브의 집으로 가셨다 오시는 길이신가요?" "아니, 가지 않았어." "글세, 백 명 이상이 갔었지요. 어머니는 손수 치킨 프라이를 하여 모든 사람이 충분히 먹 도록 대접했어요." "그래?" "정말이예요. 그렇게 하셨어요. 생각해 보세요. 남편이 세상을 떠난 게 아닙니까?" "대단한 분이셔." 월이 한 말을 아담이 되풀이했다. "어머니는 실제적인 분이에요. 손님들에게 식사 대접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고 대접을 한 거지요." "내 생각에 그분은 괜으시겠지만, 그래도 커다란 슬픔이었음엔 틀림없을 걸세." "괜찬으시겠죠. 뿐만 아니라 체구는 작으시지만 우리들보다도 더 오래 사실 거예요." 아담은 말을 몰고 농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여러 해 동안 눈에 띄지 않던 것들을 보았다. 빽빽한 풀 사이에 피어난 야생꽃과 언덕배기에서 빨간 소들이 밋밋한 갈을 따라 올라가면서 풀을 뜯는 모습이 보였다. 그가 농장에 도착하였을 때는 기쁜 마음이 밀어닥쳤다. 그 가쁨이 하도 예리해서 그는 그것을 이리저리 생각해 보았다. 그는 달리는 말발굽 소리에 맞추어 자기가 크게 소리치고 있는 것을 자각했다. "나는 자유다, 자유야. 이제는 걱정할 것이 없다. 나는 자유다. 그 여자는 사라졌다. 나에게서 없어졌다. 전능하신 하나님, 이제 나는 자유롭습 니다." 그는 손을 뻗어 길가에 있는 은회색 샐비어 잎을 꺽었다. 손락이 잎즙으로 끈적끈적하게 되자, 그는 예민하게 스며드는 향기를 맡고 깊이 숨을 들이켰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기뻤다. 이틀 동안에 쌍둥이들이 얼마나 자랐는지 보고 싶었다. 쌍둥이가 보고 싶었다. 쌍둥 이가 보고 싶었다. "나는 이제 자유롭다. 그 여자는 사라졌다.!" 그는 큰 소리로 노래 부르듯 말했다. 2 리이가 집에서 나와 아담을 맞이했다. 그는 아담이 마차에서 내리는 동안 말머리 앞에 서 있었다. "아이들은 어떤가?" 아담이 물었다. "잘 있어요. 활과 화살을 만들어 주었더니 강기슭으로 토끼 사냥을 나갔군요. 남비를 불에 올려 놓았습니다만." "여기는 별일 없지?" 리이는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소리를 지를 뻔했으나 마음을 바꾸고 물었다. "장례식 은 어떘어요?" "사람들이 많이 왔더구먼." 아담이 말했다. "친구들이 많았어. 그런데 그분이 돌아가셨다 는 생각이 통 들지 않는군." "우리 나라 사람들은 장례식 때 악귀를 혼란시키기 위해 북을 치고 종이를 뿌리죠. 그리 고 묘소 위엔 꽃 대신 삶은 돼지를 놓지요. 우리들은 실용적인 국민이고 또 항상 다소 굶주 리고 있는가 봐요. 그러나 우리의 악귀는 그리 현명하지 못하죠. 우리들은 악귀를 앞질러 생 각할 수 있죠. 그것은 약간의 진보죠." "새뮤얼은 그런 식의 장례식을 좋아했었을 거요. 그를 흥미롭게 만들었을테니까." 그는 리 이가 자기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을 알아 차렸다. "리이, 말을 매고 들어와서 차를 좀 끓 여주게. 할 말이 있네." 아담은 집 안으로 들어가서 검정 옷을 벗었다. 몸에서는 럼주 냄새가 났으나 이제는 그 냄새로 메스꺼웠다. 그는 옷을 전부 벗고 땀구멍이 밴 냄새가 완전히 없어질 때까지 노란 비누로 피부를 닦았다. 그러고 나서 그는 깨끗한 청색 샤쓰와 너무 빨아서 부드럽고 엷은 청색이 된데다가 무릎이 닳아진 작업복을 입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면도를 하고 머리를 빗 었다. 그동안 부엌에서는 리이가 스토브 위에서 덜거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거실로 갔다. 큰 의자 옆에 있는 테이블 위에 리이가 컵 한 개와 설탕 단지를 갖다 놓았다. 아담은 여러 번 세탁을 하여 꽃송이가 바랜 꽃무늬 커튼을 둘러보았다. 바닥에 깐 낡은 융단과 홀 에 깐 리놀륨 위의 갈색 보도가 눈에 띄었다. 모든 것이 그에게는 새로웠다. 리이가 차주전자를 들고 들어왔을 때 아담이 말했다. "자네 찻잔도 가져오게. 그리고 자네 술이 남았으면 좀 마시고 싶네. 어제 밤엔 술이 취했었어." 리이가 말했다. "술에 취하셨었다고요? 거의 믿을 수가 없는데요." "글세 그랬었다니까. 그 얘기를 하고 싶네. 자네가 쳐다보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네." "그러셨어요?" 리이는 자기 찻잔과 술잔, 그리고 오가피주 술병을 가지러 부엌으로 갔다. 리이가 돌아와서 말했다. "수 년간 내가 이 술을 마신 건 당신과 해밀튼 씨와 동석했을 때 뿐입니다." "우리 쌍둥이들 이름을 지어 줄 때 마신 그 술인가?" "네, 그렇습니다." 리이가 따뜻한 녹색 차를 따랐다. 아담이 설탕 두 숟가락을 찻잔에 넣 는 것을 보고 리이는 얼굴을 찌푸렸다. 아담은 차를 젓고 설탕 덩어리가 빙빙 돌면서 차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 여자를 만나 보러 갔었지." "그러시리라고 생각했죠." 리이가 말했다. "사실이지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 릴 수 있었는지 전 이해를 못하겠어요." "사람이 아니었는지도 모르지."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죠. 그분은 어땠어요?" 아담이 천천히 말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어. 세상에 그런 여자가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어." "서양 사람들에게는 사건을 설명할 악마가 없다는 것이 문제지요. 그 후에 술에 취하셨던 가요?" "아니야, 만나기 전과 만났을 때지. 용기를 내기 위해 술이 필요했던 것 같아." "지금은 괜찮으신 것 같은데요." "지금은 괜찮지. 그것을 자네에게 말하고 싶은 거야." 그는 멈췄다가 슬픈 듯이 말을 이었 다. "작년 이맘 때쯤면 샘 해밀튼에게 달려가 말했을 텐데." "어쩌면 그분의 일부가 우리 두 사람에게 남아 있는지도 모르죠. 그것이 영원불멸이라는 것일 거에요." "나는 잠 속에서 깨어난 것 같았지. 어떤 이상한 방법으로 나의 눈은 명료하게 되엇따. 무 거운 집이 나에게서 없어졌지." "해밀튼 씨 같은 말씀을 하시는군요. 난 나의 불멸의 철인들에 관한 이론을 세워야 겠어 요." 아담은 그 까만 술을 마시고 핥았다. "나는 이제 자유로워. 이것을 누구에겐가 말해야 되 겠어. 아들들과 함꼐 살 수 있겠어. 여자를 맞아 들여도 괜찮을 거고. 내 이야기를 알겠나?" "그럼요. 알지요. 당신의 눈빛과 몸짓에서도 그것을 읽을 수 있어요. 사람은 그런 것에 대 해선 거짓말을 할 수 없는 것이요. 아이들을 좋아하시게 될 겁니다." "적어도 나는 새 출발을 할 작정이네. 술 한 잔 하고 차를 좀더 주게." 리이는 차를 따르고 나서 자기 컵을 들었다. "뜨거운 차를 들면서도 입술을 데지 않으니, 나는 이유를 모르겠네." 리이는 속으로 웃었다. 아담은 그를 쳐다보며 이젠 리이도 젊은 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 았다. 뺨은 팽팽하고 살갗은 불타는 듯 빝났다. 눈언저리는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리이는 손 안에 들어 있는 조개 껍데기처럼 얇은 잔을 들여다 보았다. 기억을 더듬는 미 소가 떠올랐다. "자유롭게 되셨다면 나도 자유롭게 해 주시겠군요." "리이, 무슨 말인가?" "나를 보내주실 수 있으신지요?" "물론 갈 수 있지. 여기서는 행복하지 않은가?" "난 서양 사람들이 무엇을 행복이라고 말하는지 잘 모릅니다. 우리들은 만족을 바람직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것은 소극적인 생각인지도 모르죠." 아담이 말했다. "그러면 만족이라고 하세. 여기서는 만족하고 있지 않은가?" 리이가 말했다. "인간이란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도 완성하지 못했을 때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하고 싶은 일이 뭔데?" "한 가지 일은 너무 늦었어요. 처자식을 갖고 싶었죠. 부모 마음 속의 지혜로 통하는 어리 석은 생각을 전수하고 싶었어요. 나의 무력한 자식들에게 그것을 강요하고 싶었어요." "자네 나이로 보아 너무 늦지는 않았네." "아, 신체적으로야 아버지가 될 수 있겠죠. 내가 생각하는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나는 조 용한 독서 등에 너무 가까이 하고 있는 모양이에요. 트래스크씨, 알고 계시다시피 나에겐 아 내가 있었지요. 나는 당신이 그랬듯이 마음속에 그 여자를 만들어 놓고 있었어요. 나의 아내 만은 내 마음 밖에서는 생명을 갖고 있지 않았어요. 그 여자는 내 작은 서재 안에서는 훌륭 한 친구 였었죠. 내가 이야기를 하면 그 여자는 귀담아 듣고, 또 이야기를 하고, 여자의 세 계에서 오후에 일어난 일들을 모두 이야기 했죠. 그 여자는 예쁘기도 했지만 애교있는 농담 을 귀엽게 말했죠. 이제 와서 생각하니 내가 그 여자의 말에 귀를 기울였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그 여자를 슬프거나 외롭게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나의 첫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지요." "그럼 다른 소원은 무엇이었나?" "해밀튼 씨에게는 이야기를 했지요. 샌프란시스코의 중국촌에 책방을 내고 싶습니다. 그리 고 난 뒷방에 살면서 토론과 논쟁을 벌이며 세월을 보내고 싶어요. 용이 새겨진 송대의 먹 을 얼마간 갖고 싶어요. 먹통은 벌레가 갉아 구멍이 나 있고, 먹은 전나무 진과 애생 나귀에 서만 나오는 아교로 만든 것이고요. 그것은 보는 눈에 여러 가지를 암시해주고 세상의 온갖 색채를 눈에 들어오게 해주죠. 어쩌면 화가 들러서 가볍게 대한 논쟁을 벌이다가 가격을 깎 자고 덤벼들지도 모르죠." 아담이 물었다. "그것을 자네 머리 속으로만 생각하고 있는가?" "아닙니다. 건강이 좋고 자유스럽다면, 나는 조촐한 책방을 차리고 싶어요. 그곳에서 죽고 싶어요." 아담은 미지근한 차에 설탕을 넣고 저으면서 잠시 동안 묵묵히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입 을 열었다. "우스운 일이야. 자네가 노예여서 자네의 요구를 내가 거절할 수 있었으면 하고 생각햇네. 물론 자네가 원하면 갈 수 있지. 책방을 차릴 돈도 빌려 줄 수 있네." "돈은 있습니다. 오랫동안 갖고 있었어요." "자네가 떠나리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 못했었네. 자네는 당연히 여기 있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지." 그는 어깨를 쭉 폈다. "잠시 동안 기다려 줄 수 있겠나?" "왜요?" "내가 아이들과 친할때까지 자네가 도와 주었으면 하네. 이곳을 제대로 가꾸든지, 아니면 팔든지 또는 누구에게 빌려줄까 하네. 돈이 얼마나 남았는가도 알고 싶고, 그 돈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도 알아보고 싶네." "나에게 덫을 씌우려고 하시는 것은 아니시겠지요?" 리이가 물었다. "나의 소망이 옛날같 이 강력하지는 않으니까요. 내가 설득당한다든가, 아니면 안될 일이겠만 더욱 필요하기 때문 에 주저 물러 앉게 될까봐 두렵습니다. 제발 내가 필요하지 않게 해 주세요. 외로운 사람에 게는 가장 나쁜 미끼지요." 아담이 말했다. "외로운 사람이라. 그런 것을 생각지 못했었다니. 내가 나 자신 속에 너무 깊이 빠져 있었던 것이 틀림없구먼." "해밀튼 씨는 알고 계셨습니다." 리이는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서는 두 줄기 불꽃만이 두툼한 눈꺼풀을 통해 빛나고 있었다. "우리 중국 사람들은 자제력이 강하지요. 감정 표시를 전혀 하지 않습니다. 나는 해밀튼 씨를 좋아했습니다. 허락해 주신다면 내일 샐리너스에 가보고 싶습니다." "하고 싶은 대로 하게. 자네가 나를 위하여 할 만큼 일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네." "악마를 쫓아내는 종이 쪽지를 뿌리고 싶군요. 선친의 무덤위에 삶은 돼지고기 조각이라 도 놓고 싶군요." 아담은 느닷없이 일어나 컵을 엎어 놓고는 리이를 거기 앉아 있게 내버려둔 채 밖으로 나 갔다. 제 27 장 1 그 해에는 폭우가 내리지 않아 샐리너스 강은 범람하지 않았다. 가느다란 물줄기가 회색 모래로 된 넓은 하상 위를 구불구불 흐르고 있었다. 물은 진흙 찌꺼기로 우유빛처럼 보이지 는 않았으나 그런데로 맑고 상쾌했다. 강가에 자라난 버드나무들은 잎이 파랗게 돋아났고, 야생의 검은 딸기 덩굴은 흙을 따라 가시 돋친 새 가지를 내밀고 있었다. 3월 치고는 꽤 따뜻한 날이었다. 연을 날리기 좋은 바람이 남쪽에서 일정하게 불어오면서 은색 아파리를 드러나게 하고 있었다. 나무덩굴과 가시덤불과 바람에 흩날려서 뒤엉킨 나뭇가지를 배경으로 작은 회색 토끼 한 마리가 아침 풀을 뜯다가 이슬에 젖은 앞가슴의 털을 말리며 햇볕 속에 가만히 앉아 있었 다. 토끼는 코를 찡긋거리기도 하고 귀를 가끔씩 휘젓기도 하면서 위험이 될지도 모르는 작 은 소리에 주의하고 있었다. 앞다리를 통하여 감지할 수 있는 규칙적인 율동이 땅에서 들려 왔기 때문에 토끼는 귀를 내젓고 코를 찡긋했다. 그러다가 그 소리가 멈췄다. 25야드쯤 떨어 진 곳에서 버드나무 가지가 움직였으나 바람이 불고 있었기 때문에 토끼는 위협을 느끼지 못했다. 2분 동안 주의를 끄는 소리가 들렸으나 위럼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 찰칵 하는 소리 가 났다. 들비둘기의 날개 소리와 같았다. 토끼는 따뜻한 햇볕 속에서 느슨하게 뒷다리를 뻗 었다. 찰칵하는 소리와 윙하는 고리가 다시 들리더니 무엇인가 털 위로 둔탁하게 떨어졌다. 토끼는 꼼짝 않고 앉아 있었으며 눈은 점점 커갔다. 대 화살이 가슴을 뚫고 지나가 그 끝이 반대편 땅 속에 깊이 박혔다. 토끼는 옆으로 넘어지면서 발을 잠시 동안 허공에 허우적 거 렸으나 이내 꼼짝 못하게 되었다. 버드나무 밑에선 두 소년이 허리를 굽히고 기어왔다. 그들은 각기 4피트 짜리 활을 들고 있었다. 그들은 작업복에 빛바랜 청색 샤쓰를 입고 있었고 관자 놀이에는 칠면조 꼬리털 하 나씩을 테이프로 달고 있었다. 그들은 인디언처럼 허리를 낮게 굽히고 발끝으로 조심조심 움직였다. 그들이 몸을 굽혀 사냥감을 조사할 때에는 토끼의 마지막 숨이 끊어져 있었다. "심장을 관통했어." 카알은 그것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일이기나 한 것처럼 말했다. 아론 은 아무 말 없이 내려다 보고 있었다. "형이 잡았다고 말하겠어. 나는 칭찬을 받지 않을 테 니까. 힘든 사냥이었다고 말하겠어." 카알이 말했다. "그랬지. " 아론이 말했다. "내가 하는 얘기는 그것이 아니야. 리이 아저씨와 아버지 앞에서 칭찬을 해줄게." "칭찬을 받고 싶지 않아 - 아무 칭찬이든." 아론이 말했다. "이렇게 이야기하자. 한 마리 더 잡으면 각자가 하나씩 잡았다고 말하고. 더 잡지 못하면 함께 쏘았는데 누군의 화살이 맞았는지 모르겠다고 하자." "칭찬을 받고 싶지 않아?" 카알이 어정쩡하게 물었다. "혼자만 받고 싶지는 않아. 칭찬을 나누어 받으면 되지 않나?" "어쨌든 그것은 내 화살이었어." 카알이 말했다. "아니야, 그렇지 않아." "털을 봐. 새감눈을 봐. 그것은 내것이었어." "그럼 그게 어떻게 내 화살통에 있었지? 새김눈을 기억 못하겠는데." "생각나지 않을 지도 몰라. 그러나 형이 칭찬을 받게 해주겠어." 아론은 고맙다는 듯이 말했다. "아니야, 카알.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 둘이 동시에 쏘았다고 말하겠어." "글쎄, 형이 그렇게 하고 싶다면야. 그러나 그것이 내 화살이 었다는 것을 리이 아저씨가 알면 어떻게 하지?" "화살이 내 화살통에 있었다고 하지." "아저씨가 그런 이야기를 믿으리라고 생각해? 형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할꺼야." 아론은 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햇다. "네가 쏘았다고 아저씨도 생각하면 그렇게 하도록 놔 두지." 카알이 말했다. "아저씨가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 형이 알고 있기를 바랄 뿐이야." 카알이 화살을 토끼에서 빼어들자 화살의 하얀 털에 토끼 심장의 검붉은 피가 묻어 있었다. 그는 화살을 자기 화살통에 넣었다. "형이 화살을 들고 가도 좋아." 그는 도량이 넓은 듯이 말했 다. "돌아가야해." 아론이 말했다. "아버지가 지금쯤 돌아오셨을지도 모르니까." 카알이 말했다. "저 늙은 토끼를 요리해서 저녁식사 대신 먹고 밤새도록 밖에 나와 있자." "카알, 저녁엔 너무 추워. 오늘 아침에 네가 얼마나 떨었는지 생각 안나니?" "나에겐 너무 춥다는 것은 있을 수 없어. 나는 추위를 느껴본 적이 한번도 없어." 카알이 말했다. "아침에 떨었잖아." "아니야, 안 떨었어. 젖먹이 어린애처럼 떨면서 지껄여 가지고 형을 놀렸을 뿐이야. 나를 거짓말 장이라고 부를 거야?" "아니야, 난 싸우고 싶지 않아." 아론이 말했다. "싸우기가 무서워?" "아니야, 싫을 뿐이야." "내가 형이 겁을 집어 먹고 있다고 말한다면, 나를 거짓말 장이라고 부를 거야?" "아니." "그러면 겁을 먹고 있는 거지. 그렇지 않아?" "그런 모양이지." 아론은 토끼를 땅에 내버려두고 천천히 걸어갔다. 그의 눈은 부리부리 하고 입은 부드럽 고 아름다웠다. 푸른 눈 사이의 간격은 천사와 같이 순진한 인싱을 주었다. 머리카락은 보드 랍고 금빛이었다. 햇빛이 머리 위를 밝게 비치는 성 싶었다. 그는 어리둥절했다. 그는 가끔씩 어리둥절했었다. 그는 동생이 무엇인가 속이려 하고 있다 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그것이 무엇인지는 몰랐다. 그에게 있어 카알은 수수께끼 같은 사람 이었다. 그는 동생의 생각을 뒤따를 수 없었다. 그의 추론하는 접선에 그는 항상 놀랐다. 카알은 아담을 많이 닮았다. 머리칼은 암갈색이었다. 체격은 형보다 크고 뼈도 굵었으며 어깨도 묵직했다. 척은 아담의 턱을 닮아 네모지도 단단했다. 카알의 눈은 갈색이고 주의 깊 었을 뿐만 아니라 새까맣게 빛날 때도 가끔 있었다. 그러나 카알의 손은 다른 부분이 커다 란 데 비해 아주 작았다. 손가락은 짧고 가냘펐으며, 손톱은 섬세했다. 카알은 손을 아꼈다. 그는 무슨 일에도 우는 일이 별로 없었으나, 손을 베면 울어댔다. 손을 가지고 모험을 벌이 는 일이 없었다. 벌레를 만진다든지, 뱀을 잡아 빙빙 돌리는 일이 없었다. 싸울 때도 돌을 집어 들든지 막대기를 가지고 싸웠다. 형이 걸어가는 것을 보고 카알은 자신만만한 작은 미소를 입가에 지었다. 그가 불렀다. "아론, 기다려!" "카알은 형을 따라와서 토끼를 내밀었다. "가지고 가." 그는 형의 어깨 위에 손을 잡으면 서 부드럽게 말했다. "나한테 화내지 마." "너는 항상 싸우려고 하니까 그렇지." 아론이 말했다. "아니야, 장난을 쳤을 뿐이야." "그랬어?" "정말이야, 이것 봐 - 토끼를 들고 가, 가고 싶으면 돌아가." 결국 아론은 미소를 지었다. 동생이 긴장을 푸는 경우, 그는 항상 마음을 놓았다. 두 소년 은 터덜터덜 걸어 강기슭을 빠져나와 부서지기 쉬운 벼랑을 기어올라 평지로 나왔다. 아론 의 오른쪽 바지가랑이는 토끼 피로 젖어 있었다. 카알이 말했다. "우리가 토끼를 잡은 것을 보면 놀랄거야. 아버지가 집에 오셨으면 아버지에게 드리자. 아버지는 저녁식사로 토끼고기 를 좋아하셔." "그러자." 아론이 기쁜 듯이 대답했다. "이렇게 이야기하자. 둘이서 이것을 아버지에게 드 리고 누가 잡았다는 말은 하지 말자." "형이 그렇게 하고 싶으면 좋아." 카알이 말했다. 그들은 얼마동안 아무 말없이 걸었다. 그러다가 카알이 말했다. "이것이 전부 우리 땅이야 - 저 강 너머까지야." "아버지 땅이지." "그래.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우리 거야." 아론에게는 처음 듣는 말이었다. "아버지가 죽으면이라니 무슨 말이지?" "누구나 죽는거야." 카알이 말했다. "해밀튼 씨도 죽었어." "그래, 그분은 죽었어." 아론은 두 생각을 연결시킬 수 없었다. 죽은 해밀튼 씨와 살아 있 는 아버지. "사람들이 상자 속에 그를 집어 넣고 구덩이를 파고 그 상자를 땅 속에 묻었어." 카알이 말했다. "나도 알아." 아론은 다른 것을 생각하기 위해 화제를 바꾸고 싶었다. "나는 비밀을 알고 있어." 카알이 말했다. "무언데?" "말하려고?" "아니야, 하지 말라면 안 하겠어."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말해 봐." 아론이 졸랐다. "말하지 않겠지?" "안 할께." 카알이 말했다. "우리 어머니는 어디 있다고 생각해?" "돌아가셨어." "아니야." "그래." "도망갔어." 카알이 말했다. "사람들이 하는 소리를 들었거든." "그 사람들 거짓말쟁이 들이야." "아냐, 도망갔어. 내가 말했다는 것을 말하면 안돼!" "나는 믿어지지가 않는데." 아론이 말했다. "아버지가 그러셨는데 어머니는 하늘 나라에 계시대." 카알이 가만히 말했다. 나도 곧 도망을 가서 어머니를 찾아 가지고 데려올거야." "사람들은 어머니가 어디 계시다고 그러던?" "모르지만 찾을 거야." "어머니는 하늘에 계셔." 아론이 말했다. "아버지가 왜 거짓말을 하시겠니?" 동생이 동의 하기를 은근히 바라면서 그는 동생을 쳐다보았다. 카알은 대답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천사 들과 함께 하늘에 계시다고 너는 생각지 않니?" 아론이 계속 자기 말을 내세웠다. 카알이 계속 대답하지 않자 그가 물었다. "어떤 사람이 그런 소리를 하던?" "킹 시티의 우체국에서 사람들이 그랬어. 내가 못 들으리라고 생각했지만 내 귀에 예민하 지. 리이 아저씨가 그러는데 나는 풀이 자라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대." 아론이 물었다. "어머니는 왜 도망을 가셨대?" "내가 어떻게 알아? 우리가 싫었는지도 모르지." 아론은 이 엉뚱한 말을 생각해 보았다. "그럴 리가 없어. 그 사람들, 거짓말쟁이 들이야. 어머니는 하늘에 계시다고 아버지가 말씀하셨어. 아버지가 어머니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너도 알지?" "어머니가 도망갔으니까 그러시는지도 몰라." "아니야. 내가 리이 아저씨한텐 물어 보았어. 아저씨가 무어라고 했는지 알아? "어머니는 너희들을 사랑했고 지금도 그렇다." 라고 했어. 그러고는 내가 쳐다볼 별 하나를 지적해 주 었어. 저것이 우리의 어머니이고 별이 빛나는 한, 우리를 사랑해 주실 거라고 말했었어. 넌 리이 아저씨도 거짓말쟁이 라고 생각하니?" 아론은 눈물 속에서도 동생의 눈을 볼 수 있었 다. 냉혹한 눈이었다. 카알의 눈에는 눈물이 없었다. 카알은 기분좋은 흥분을 느꼈다. 그는 필요로 할 때 어떤 목적에든 사용할 수 있는 또다 른 도구, 비밀의 무기를 발견했던 것이다. 그는 아론을 이모저모로 뜯어 보았다. 그는 아론 의 입술이 떨리는 것을 보았다. 얼마 후에 그는 그의 콧구멍이 벌렁거리는 것을 보았다. 아 론은 울음을 터뜨리곤 했지만 눈물이 날 때까지 몰아 붙이면 그도 싸움을 벌이곤 했다. 아 론이 울음을 터뜨리면서 싸움을 벌일라치면 그는 무서운 존재가 되었다. 그를 해칠 수 있는 것도 그를 말릴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언젠가는 리이가 그의 무릎을 꼭 잡고 도리깨질을 하 듯 주먹으로 옆구리를 때려 주고서야 한참 만에 싸움을 멈춘 일이 있었다. 그때에도 그의 콧구멍이 벌렁댔었다. 카알은 새로운 도구를 집어넣었다. 그는 언제든 그것을 끄집어 낼 수 있었다. 그것이야말 로 가장 날카로운 무기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시간이 있을 때 그것을 조사하여 언제 어떻게 그것을 사용할까를 결정지으면 되었다. 그러나 그가 결정을 내렸을 때는 이미 늦었다. 아론은 그에게 덤벼 들어 보드라운 토끼로 그의 얼굴을 내갈겼다. 카알은 뒤로 펄쩍 물러나면서 소리쳤다. "농담이었어. 정말이야. 아 론, 농담이었어." 아론이 멈췄다. 고통과 당혹함이 그의 얼굴에 나타났다. "그런 농담 싫다." 그는 훌쩍거리 며 소매로 코를 닦았다. 카알은 그에게 다가와 껴안고 뺨에 키스를 했다. "다시는 안 할께. " 소년들은 얼마 동안 묵묵히 길을 따라 걸었다.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카알은 산마루 위에 신경질적인 3월의 바람을 타고 시커먼 먹구름이 모여드는 것을 어깨 너머로 보았다. "폭풍 우가 내리려는가본데. 지독한 폭풍우인가봐." 아론이 말했다. "사람들이 하는 소리를 정말 들었니?" "들었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카알이 재빨리 말했다. "빌어먹을, 저 구름 좀 봐!" 아론은 몸을 돌려 괴물 같이 시커먼 구름을 보았다. 위쪽에는 구름이 커다랗게 부풀어 시 커먼 두루마리가 되어 있었고, 그 밑에는 길다란 비의 자락을 끌고 있었다. 그들이 쳐다보았 을 때 구름이 으르렁대며 번갯불이 번쩍거렸다. 바람에 실린 소나기가 계곡을 가로질러 펼 쳐진 비옥한 언덕 위를 공허하게 내리치더니 평지쪽으로 이동해 왔다. 소년들은 돌아서서 집으로 내달렸다. 그들 뒤에서는 소나기가 소리를 내며 내리고 번개가 대기를 산산조각으로 흩뜨려 놓았다. 소나기가 그들을 뒤쫓아 잡았다. 처음에는 굵다란 빗방울이 찢어진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졌다. 향긋한 오존냄새가 풍겼다. 그들은 달려가면서 우뢰의 냄새를 맡았다. 그들이 시골길을 가로질러 마차바퀴 자국이 있는 길을 따라 집으로 달려올 때 그들은 비 를 만났다. 비는 물기둥을 이루며 퍼부었다. 당장에 그들은 흠뻑 젖었다. 머리카락이 머리에 찰싹 달라 붙고 눈 속으로 흘러들었다. 관자놀이에 단 칠면조 털이 물에 젖어 꾸부러졌다. 그들은 비에 젖은 대로 젖자 뛰기를 멈췄다. 비를 피하기 위해 달릴 이유가 없었다. 그들 은 서로 쳐다보고 유쾌하게 웃었다. 아론은 토끼를 쥐어 짜서 하늘로 올려 던졌다가는 다시 잡아 카알에게 던졌다. 카알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토끼를 목에 걸고 머리와 뒷다리를 턱 밑으로 내렸다. 두 소년은 몸을 앞으로 굽히고 히스테리컬하게 웃었다. 집 골짜 기에 있는 참나무들 위에 비가 큰 소리를 내며 쏟아졌다. 바람은 참나무의 높은 위엄을 뒤 흔들고 있었다. 2 쌍둥이들이 농장 건물이 보이는 곳까지 왔을 때 마침 리이가 보였다. 그는 노란 유포 우 비 한가운데로 머리를 내밀고 낯선 말과 약한 고무 타이어가 달린 경마차를 헛간으로 끌어 가고 있었다. "누가 왔다." 카알이 말했다. "저 마차를 봐." 그들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방문객에게 호기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들은 계단 가까이 에 이르러 발걸음을 늦추고 조심스럽게 주위를 돌아갔다. 그들은 방문객에게서 어떤 두려움 도 느꼈기 때문이다. 그들은 뒷길로 들어가 아버지의 목소리와 한 남자의 목소리였다. 그리 고 또 다른 목소리가 들리자 그들의 배가 굳어지고 순간적으로 등골에 오한이 지나갔다. 그 것은 어떤 여자의 목소리였다. 그들은 여자를 대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들은 발끝걸음으 로 그들의 방으로 들어가 서로 얼굴을 마주 쳐다 보았다. "누구 같아?" 카알이 물었다. 불빛과 같은 감정이 아론의 마음 속에서 터졌다. 그는 "어머니 인지도 몰라. 어머니는 하 늘에 계시고, 하늘에 있는 사람은 돌아올 수 없다는 생각이 되살아났다. "모르겠는데. 옷을 갈아 입어야겠어." 소년들은 깨끗한 새 옷을 갈아 입었다. 방금 벗어 놓은 젖은 옷과 똑같은 옷이었다. 그들 은 젖은 칠면조 깃을 나지막한 두 사람의 목소리의 높은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를 듣다가 그들은 몸이 얼어붙는 듯했다. 소녀의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렇게 흥 분해 있었기 때문에 그 목소리를 들었다는 소리조차 하지 못했다. 그들은 조용히 복도로 나가 거실의 문 쪽으로 갔다. 카알이 손잡이를 아주 천천히 돌리고 나서 문소리가 들리지 않게 문을 들어올렸다. 문틈이 조금 생겼을 때 리이가 우비를 벗고 복도를 따라 발을 끌면서 뒷분으로 들어오다 가 그들을 잡았다. "꼬마들이 들여다 보는가?" 그는 중국식으로 말했다. 카알이 문들 닫자 걸쇠 소리가 났을 때 리이가 재빨리 말했다. "아버지가 들으셨다. 나가 뵙는 것이 좋겠다." 아론이 목쉰 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누구에요?" "지나가던 분들이 비를 피해 들어오셨어." 리이가 손잡이를 잡고 있는 카알의 손 위를 잡고 문을 열었다. "애들이 돌아왔군요." 그는 아이들을 들여보내고 나서 방을 나갔다. 아담이 소리쳤다. "얘들아, 들어오너라! 들어와!" 두 소년은 머리를 숙이고 낯선 사람들을 보고는 발을 질질 끌고 갔다. 도회지 옷을 입은 남자와 아주 멋지게 옷을 입은 여자가 있었다. 그녀의 겉옷과 모자와 베일은 옆 의자에 놓 여 있었다. 소년들이 보기에 그녀는 온통 검은 비단과 레이스로 휘감고 있는 것 같이 보였 다. 까만 레이스가 목덜미를 휘감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하루를 놀라움으로 보내는데 충분 했으나 그 뿐만이 아니었다. 그 여자 옆에는 쌍둥이 보다 나이가 다소 어릴지 모르지만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소녀가 앉아 있었다. 그녀는 앞에 레이스가 달린 하늘색 체크 무늬가 있 는 햇볕을 가리는 보닛을 쓰고 있었다. 그녀의 드레스는 꽃 같았다. 주머니가 달린 작은 에 이프런을 허리에 두르고 있었다. 스커트가 접혀져 태팅으로 레이스를 단 빨간색 방사 페니 코트가 보였다. 햇볕 가리는 보닛 때문에 그녀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으나, 두 손을 무릎 위 에 얹고 있어서 가운데 손가락에 낀 작은 금반지가 쉽게 눈의 띄었다. 소년들은 크게 숨을 쉬지 못했다. 숨을 쉬지 않고 있어서 그들의 눈 속에는 빨간 고리 모 양들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제 아들놈들입니다." 그들의 아버지가 말했다. "쌍동이죠. 저 애가 아론이고, 이 애가 케이레브죠. 손님들과 인 사를 나누어라." 소년들은 항복하여 절망에나 빠진 사람처럼 고개를 숙이고 손을 쳐들고 앞으로 갔다. 그 들의 힘빠진 손은 신사에 의하여 그리고 레이스 옷을 입은 여자에 의하여 위아래로 흔들렸 다. 아론이 먼저였다. 그가 소녀에게서 몸을 돌리려고 하자 부인이 말햇다. "내 딸하고는 인 사하지 않니?" 아론은 몸을 떨고 얼굴을 돌린 채 소녀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 다. 소시지 같이 무력한 손이 잡히지도, 비틀려지지도, 흔들려지지도 압착되어지지도 않았다. 그녀 앞에서 힘없이 늘어져 있을 뿐이었다. 아론은 어떻게 되는가를 속눈썹 사이로 살그머 니 내다보고 있었다. 그 소녀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녀는 보닛의 이점을 보고 있었다. 가운데 손가락에 반 지를 낀 그녀의 작은 오른손 역시 내밀어 있지 않았다. 아론의 손 쪽으로 전혀 움직이지 않 았다. 그는 부인을 훔쳐 보았다. 그녀는 입을 벌리고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방 안은 침묵으로 터 지는 듯했다. 그때 아론이 카알의 찢어지는 듯한 웃음 소리를 들었다. 아론은 손을 뻗어 소녀의 손을 잡고 위아래로 세 번 흔들었다. 소녀의 손은 한 줌의 꽃잎 처럼 보드라웠다. 그는 타오르는 듯한 기쁨을 느꼈다. 그는 소녀의 손을 놓고 작업복 주머니 에 자기 손을 감췄다. 그가 서둘러서 물러날 때 카알이 걸어나가 정식으로 손을 흔들면서 "안녕하세요." 하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아론은 인사말을 잊어 버렸었기 때문에 동생이 한 다음에야 말을 했다. 그 소리는 이상하게 들렸다. 아담과 손님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담이 말했다. "베이컨 내외분께서는 하마터면 비를 맞으실 뻔하셨단다." "우리가 여기서 길을 잃은 것이 다행이었단다. 롱 농장을 찾고 있던 중이었다." 베이컨 씨 가 말했다. "그곳은 더 멀리 있지요. 국도에서 왼쪽으로 꺾어 가지고 남쪽으로 가셨어야 했어요." 아 담은 아이들에게 말을 이었다. "베이컨 씨는 군 감독관이시다." "이유는 모르겠습니다만 나는 그 일을 아주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베이컨 씨는 이 렇게 말하고 나서 역시 아이들에게 말을 건냈다. "내 딸에 이름은 에이브라다. 재미있는 이 름이 아니냐?" 그는 어른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사용하는 어조로 말했다. 그는 아담에게 몸 을 돌리고, 노래하듯 시적인 어조로 말했다. "내가 이름을 부르기도 전에 에이브라는 준비를 갖추었다고. 내가 다른 이름을 불렀지만 에이브라가 왔도다." 영국의 시인 매슈 프라이어의 시구죠. 내가 사내아이를 바라지 않았었다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 에이브라는 우리에게 위 안이 되는 아이죠. 어디 보자." 에이브라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두 손을 마주 잡고 무릎 위에 올려 놓았다. 그 녀의 아버지는 뽐내듯이 되풀이 했다. "내가 다른 이름을 불렀지만 에이브라가 왔도다." 아론은 동생이 전혀 겁도 없이 작은 보닛을 쳐다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론이 목쉰 소 리로 말했다. "에이브라가 우스운 이름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아저씨가 우습다는 뜻으로 말씀하신 게 아니야." 베이컨 부인이 설명을 했다. "단지 재미 있다는 뜻이야." 그러고 나서 그녀는 아담에게 설명했다. "우리 집 양반은 책에서 아주 이상 산 것들을 끄집어내죠. 여보, 가야 되지 않아요?" 아담이 열심히 말했다. "부인, 좀 쉬었다가 가십시오. 리이가 차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차 를 드시면 몸이 훈훈해질 겁니다." "아, 그것 참 좋구먼요." 베이컨 부인이 말을 이었다. "애들아, 비도 멎었구나. 나가서 놀 거라." 그녀의 목소리는 하도 엄격하여 그들은 줄을 지어 나갔다. 아론이 앞에 서고 다음에 카알이 서고 그리고 에이브라가 뒤를 따랐다. 3 거실에서 베이컨 씨는 다리를 포개었다. "여기는 전망이 좋습니다. 땅이 넓은가요?" 아담이 말했다. "꽤 넓지요. 강 건너까지입니다. 꽤 넓은 땅이죠." "국도 건너까지가 당신 땅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말씀드리기가 좀 부끄럽습니다. 그냥 내버려 두고 있지요. 전혀 경작을 하지 않았어요. 어렸을 때 농사일을 너무 많이 해서 그랬는지도 모르죠." 베이컨 부부는 아담을 그냥 쳐다보고 있었기에 그는 좋은 땅을 내버려두게 된 이유를 설 명해야 되겠다는 것을 알았다. "난 게으른 사람인 모양입니다. 내가 일을 하지 않고도 살아 갈 수 있을 정도로 부친께서 유산을 남겨 놓은 것이 나에겐 도움이 되지 않았죠." 그는 눈 길을 떨어뜨렸으나 베이컨 부부 쪽에서 안심을 하고 있다는 것을 그는 느낄 수 있었다. 만 일 그가 부자라면 그것은 나태가 아니었다. 가난한 사람만이 게으른 부자는 버릇이 없거나 제멋대로 였다. "어린애들은 누가 보살피나요?" 베이컨 부인이 물었다. 아담이 웃었다.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을 보살피는 건 리이의 일이지요." "리이라뇨?" 아담은 그 질문에 다소 초조하게 되었다. "남자를 한 사람 데리고 있죠." 그는 간단히 대 답했다. "우리가 본 그 중국 사람을 말씀이신가요?" 베이컨 부인은 충격을 받았다. 아담은 그녀에게 미소를 지었다. 처음에는 그녀가 두려웠으나 이제는 더한층 안도감을 주 었다. "리이가 애들을 키웠을 뿐만 아니라 나도 보살펴 주었죠." "애들은 여자의 보살핌을 받아 본적이 없느가요?" "없습니다." "가련한 양들이구먼요." 그녀가 말했다. "애들이 거칠기는 하지만 건강한 것 같아요." 아담이 말했다. "우리들은 모두가 저 땅처럼 거칠어졌나 봐요. 그런데 리이가 떠나겠다 합니다. 어떻개 해야 좋을지 모르겠군요." 배이컨 씨는 말을 할 때 가래가 튀어나오지 않도록 기침을 했다. "아들들의 교육 문제를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베이컨 부인이 말했다. "모든 것은 배운 사람에게 오는 법입니다. 네, 나는 배움의 횃불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는 가까이 몸을 굽히고 비밀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경작을 하지 않 으시려면 땅을 다른 사람들에게 빌려 주시고 군청 소재지로 이사를 오시지 그래요. 좋은 공 립학교 근처로?" 잠깐 동안 아담은 "빌어먹을, 당신 일이나 간섭하시오." 이렇게 말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 다. 그러나 그러지 않고 물었다. "그것이 좋은 생각이란 말씀이시죠?" "믿을 만한 소작인을 구해드릴 수 있어요." 베이컨 씨가 말했다. "그걸 가지고 생활을 하 지는 않는다손 치더라도 토지에서 얼마간 수입이 생겨서는 안 된다는 법도 없지 않습니까?" 리이가 소리를 내면서 차를 들고 들어왔다. 그는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어조를 듣고 아담 이 지리해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리이는 그들이 차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 을 확신했다. 설령 좋아해도 그가 끓인 종류의 차를 좋아할 것 같지 않았다. 그들이 칭찬을 하며 차를 들고 있을 때, 그는 베이컨 부부가 무엇인가 걸리적거리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리이는 아담의 눈길을 잡으려고 애썼으나 할 수 없었다. 아담은 발 사이의 융단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베이컨 부인이 말했다. "이분은 여러 해 동안 교육위원회에서 일을 했어요 - " 그러나 아 담은 뒤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그는 세계라는 커다란 지구가 참나무 가지에 매달려 흔들거리고 있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 다. 무슨 이유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의 마음은 의족을 딛고 뒤뚱뒤뚱 돌아다니며 주의를 끌기 위해 지팡이로 다리를 툭툭 치고 있는 그의 아버지에게로 비약해 갔다. 아버지가 자식 들에게 강훈련을 시키고 어깨를 튼튼히 만들기 위해 무거운 짐을 나르도록 하던 때의 엄격 하고 군인다운 얼굴 모습이 떠올랐다. 베이컨 부인의 목소리가 그의 회상 속에서 늘어지게 계속 되었다. 아담은 보따리가 들로 채워지는 것을 느꼈다. 비꼬는 듯 웃고 있는 찰스의 얼 굴이 떠올랐다. 찰스 - 비열하고 사나운 눈, 불같은 성질, 그는 갑자기 찰스가 보고 싶었다. 여행을 떠나자, 아이들을 데리고, 그는 흥분하여 무릎을 탁 쳤다. 베이컨 씨는 도중에서 말을 멈췄다. "무엇이라고 하셨죠?" "아, 미안합니다." 아담이 말했다. "소흘히 했던 일이 생각났었죠." 베이컨 부부는 참을성 있게, 그리고 정중하게 그의 설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담은 생각 했다. "못할 게 뭐야? 내가 감독관에 입후보한 것도 아닌데. 교육위워뇌에 근무하는 것도 아 니고 왜 못해?" 그는 손님에게 말했다. "10년 넘어나 편지 쓰는 일을 잊고 있었다는 생각이 났어요." 그들은 그의 이야기를 듣고 몸을 떨면서 서로 눈짓을 나누었다. 리이가 다시 찾잔을 다시 채우고 있었다. 아담은 그가 뺨을 부풀게 하고 즐거운 듯이 콧 소리를 내면서 복도로 나가는 것을 보았다. 베이컨 부부는 그 일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남아 그 토론을 하고 싶어했다. 리이는 일이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예견했다. 그는 서둘러 나가 말의 장구를 갖추고 고무 타이어가 달린 경마차를 앞문 앞에 대었다. 4 에이브라와 카알과 아론은 밖으로 나와서 지붕이 있는 조그마한 베란다에 나란히 앉아 넓 게 퍼진 참나무에서 투닥투닥 떨어지고 있는 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먹구름은 멀리 지나가 천둥소리를 울리고 있었지만 오랫동안 내릴 것 같은 비를 뒤에 남기고 있었다. 아론이 말했다. "그 부인은 비가 멎었다고 우리에게 말했는데." 에이브라가 재치있게 대답했다. "우리 엄마는 보지 않았어. 말할 때는 절대로 보지 않아." 카알이 물었다. "몇 살이니?" "열 살, 열 한 살이 돼가." 에이브라가 말했다. "호!" 카알이 말했다. "우리는 열 한 살이야. 열 두 살이 돼가지." 에이브라는 보닛을 뒤로 젖혔다. 머리에는 모자 때문에 달무리 같은 둥근 모양이 생겨 있 었다. 검은 머리칼을 두 갈랙로 땋은 그년는 예뼜다. 작은 이마는 돔처럼 둥그랬으며 눈썹은 반듯했다. 지금은 단추모양ㅇ지만 언젠자는 위로 올라가 예쁘게 될 코였다. 그러나 두 가지 의 모습은 그녀에게 항상 남아 있을 것이다. 턱은 다부지고, 입은 크고 핑크색이었으며 꽃처 럼 예뻤다. 담갈색 눈은 예리하고 지적이며 전혀 두려움을 느끼는 기색이 없었다. 그녀는 두 소년을 번갈아 가며 얼굴과 눈을 직시했다. 집안에서 꾸미고 있었던 수줍는 표정은 전혀 없 었다. "너희들은 쌍둥이 같지 않아. 닮지 않았어." 그녀가 말했다. "우리는 쌍둥이야." 카알이 말했다. "우리는 쌍둥이야." 알론이 말했다. "개중에는 닮지 않은 쌍둥이도 있지." 카알이 우겼다. "많은 쌍둥이가 그렇지." 아론이 말했다. "리이 아저씨가 설명을 해주었어. 만일 여자에게 알이 하나밖에 없으면 쌍둥이는 닮고 알이 두 개면 닮지 않는 다는 거야." "우리는 알이 두 개야." 카알이 말했다. 에이브라는 이 시골 아이들의 꾸민 이야기에 재미있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하하, 알이 둘이라." 그녀는 이 말을 크거나 거칠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리이의 이론은 뒤흔들렸다. 그러 자 그녀는 그 이론을 산산히 부서뜨렸다. "어느 알이 프라이 되고, 어느 알이 반숙됐지?" 두 소년은 불안한 눈초리를 서로 건넸다. 그들은 처음으로 용서 없는 여자의 논리를 경험 했던 것이다. 그 논리란 틀렸더라도, 아니면 특히 틀렸을 때 압도적인 것이 되는 것이다. 이 논리는 그들에게 흥분되고 놀라운 새 경험이었다. 카알이 말해따. "리이 아저씨는 중국사람이야." "아, 그래." 에이브라가 친절하게 말해따. "왜 너는 그렇게 말하지 않니?" 너희들은 도자기 알인지도 몰라. 마치 둥우리에 넣는 것 같은." 그녀는 말을 멈추고 공격의 화살을 거두어 들 였다. 그들에게 반격의 표정이 사라지는 것을 그녀는 보았다. 에이브라는 좌중을 좌지우지 했다. 그녀가 대장이었다. 아론이 제안했다. "저 집으로 가서 놀자. 비는 좀 세지만 좋은 곳이야." 그들은 빗방울을 떨어뜨리는 참나무 밑을 달려 산체즈 구옥으로 가서 열려진 문 안으로 들어섰다. 녹이슨 경첩에서는 불안한 소리가 났다. 아도브 벽돌로 된 그 집은 제 2의 황폐기에 들어가 있었다. 전면에 있는 커다란 방은 반 쯤 회벽칠이 되어 있었다. 반쯤 칠하다만 하얀 벽칠이 10년 전에 일꾼들이 손을 뗀 그대로 였다. 창틀을 새로 박은 깊숙한 창은 유리가 없는 채 남아 있었다. 새로 깐 마루에는 비얼룩 이 져있었고, 옛 신문지 뭉치와 가시돋친 공처럼 녹이 슨 못 무더기가 방구석에 쌓여 있었 다. 그들이 입구에 서 있을 때 박쥐 한 마리가 집 뒤에서 날아왔다. 회색의 박쥐는 이쪽저쪽 을 날다가 문입구를 통해 사라졌다. 소년들은 에이브라에게 집안 구경을 시켰다 - 다락문을 열어 설치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세면대와 화장대와 샨데리야를 보여 주었다. 곰팡이와 젖은 신문지 냄새가 났다. 세 아이들 은 발돋움을 하며 걸었다. 그들은 빈 집의 벽이 울리는 것이 두려워 말을 하지 않았다. 커다란 방으로 돌아오자 쌍둥이는 꼬마 손님과 마주 섰다. "마음에 드니?" 울림 때문에 아론이 조용히 말했다. "그래." 그녀는 망설이면서 대답했다. "우리들은 가끔씩 여기서 놀지." 카알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마음에 들면 여기 와서 같이 놀아도 좋아." "나는 샐리너스에 살아." 에이브라가 이런 말투로 말을 했기 때문에, 그들은 시골뜨기 장 난에 시간을 할애할 여유가 없는 높은 상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에이브라는 자기가 그들의 최고의 낙을 산산히 부숴 놓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년 느 일면 사내아이들의 약점을 알고 있었지만, 다른 일면 그들은 좋아했고 또 자기가 예의바 른 여자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여기를 지나게 되면 가끔씩 와서 함께 놀꼐. 잠시 동안이기 는 하겠지만," 그녀가 친절하게 말하자 두 소년들은 고마움을 느꼈다. "내 토끼를 줄게." 갑자기 카알이 말했다. "아버지에게 드리려고 했었는데 너에게 줄게." "무슨 토낀데?" "오늘 우리가 잡은 거야. 화살로 심장을 꿰뚫었어. 발길질도 못하고 죽었단다." 아론은 화가 나서 그를 쳐다보았다. "그것은 내 - " 카알이 말을 가로팼다. "우리가 줄 테니 집으로 갖고 가. 꽤 큰 놈이야." 에이브라가 말했다. "피가 온통 붇은 늙어빠진 토끼를 무엇하니?" 아론이 말했다. "내가 씻어서 상장 넣어가지고 줄로 묶어줄게. 먹기 싫으면 시간 있을 때 장사를 지낼 수도 있어 - 샐리너스에 가서 말야." "나는 진짜 장례식에도 간단다." 에이브라가 말했다. "어제도 갔었어. 이 지붕만큼 높게 꽃이 쌓여 있었어." "우리 토끼를 갖고 싶지 않니?" 아론이 물었다. 에이브라는 그의 밝은색 머리카락이 이제 말끔한 곱슬머리로 되고 눈물이 글썽이는 것을 보고 사랑의 씨앗인 그리움이 자기 가슴속에서 불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아론을 만 져보고 싶었다. 그래서 만져 보았다. 그녀는 그의 팔에 손을 얹었을 때 그의 몸이 그녀의 손 가락 밑에서 떨리는 것을 느꼈다. "상자에 넣어 준다면야." 그녀가 말했다. 이제 그들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에이브라는 주위를 둘러보고는 자 기에게 정복당한 두 소년을 살폈다. 남성의 고집이 이제는 그녀을 위협하지 않게 되었기 때 문에 허세를 부릴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소년들에게 친절히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 녀는 하도 빨아서 닳아빠지고 리이가 여기저기 꿰매 준 그들의 옷을 보았다. 그녀는 동화 같은 이야기를 꺼냈다. "불쌍한 애들아, 아버지가 때리시니?" 그들은 머리를 가로 저었다. 그들은 흥미를 느끼고 있었으나 어리둥절 하기도 했다. "너희들은 아주 가난하니?" "무슨 말이니?" 카알이 물었다. "너희들은 잿더미 속에 낮아 있고 물을 긷고 나뭇단을 날라야 하느냔 말야?" "나뭇단이 뭐야?" 아론이 물었다. 그녀는 대답을 피하고 말을 이었다. "불쌍한 애들아." 그녀는 반짝이는 별이 끝에 달린 작 은 요술 지팡이를 손에 들고 있는 듯 했다. "마음씨 고약한 계모가 너희들을 미워하고 죽이 려고 하니?" "우린 계모가 없어." 카알이 대답했다. "계모라는 사람 없어." 아론이 말했다. "우리 어머니는 돌아가셨어." 그녀가 꾸며낸 가공의 이야기는 그의 대답으로 산산조각이 났다. 그러나 곧 이어서 그녀 는 다른 이야기를 생각해냈다. 요술지팡이는 사라졌지만, 그녀는 타조 깃이 달린 모자를 쓰 고 칠면조 다리가 밖으로 취어나온 커다란 바구니를 들고 이었다. "어머니가 없는 작은 고아들아." 그녀는 부드럽게 말했다. "내가 너희들의 엄마가 되어줄 게. 너희들을 안고 흔들면서 옛날 이야기를 해줄꼐." "우리들은 너무 큰데. 네가 넘어질 거야." 카알이 말했다. 에이브라는 그의 거친 모습에서 눈길을 돌렸다. 그러나 아론은 그의 이야기에 매혹되어 있는 것을 그녀는 보았다. 그는 두 눈에 미소를 지으면서 그녀의 팔에 안겨 흔들거리고 있 는 듯이 보였다. 그녀는 그에게 사랑의 감정이 솟아나는 것을 다시 느꼈다. 그녀는 쾌활하게 말했다. "어머니 장례식은 멋있었니?" "생각이 안 나. 너무 어렸으니까." 아론이 말했다. "어디에 묻히셨니? 산소에 꽃이라도 놓아드리지. 우리들은 할머니와 앨버트 아저씨에게 항상 그렇게 한단다." "우리는 몰라." 아론이 말해따. 카알의 눈에는 새로운 흥미의 빛이 떠올랐다. 승리감에 가까운 빛나는 흥미였다. 그는 천 진스럽게 말했다. "꽃을 가지고 가게 어머니의 산소가 어디 있는지 아버지에게 물어보겠어." "나도 같이 갈게." 에이브라가 말했다. "나는 화환을 만들 수 있어. 만드는 법을 가르쳐 줄꼐." 아론이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을 그녀는 알아차렸다. "너는 화환을 만들고 싶지 않니?" "만들고 싶어." 그녀는 다시 만져 보아야 했다. 그녀는 그의 어깨를 두드려 보고 뺨을 어루만졌다. "네 엄 마가 좋아하실 거야." 그녀가 말했다. "하늘에 있어도 내려다볼 수 있대. 아버지가 그러셔. 아버지는 그런 시도 알고 계셔." 아론이 말했다. "토끼를 싸 줄게. 팬티가 들어 있던 상자가 있어." 그는 고옥에서 뛰어나 갔다. 카알은 그가 나가는 것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뭘 보고 웃니?" 에이브라가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카알은 그녀를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눈싸움을 하여 그를 이기려고 애썼다. 그녀는 눈싸움에 선수였으나 카알은 눈을 돌리지 않았다. 그는 처음엔 수줍음을 느꼈으나 이제는 그렇지 않았다. 에이브라의 자제력을 깨뜨리는데 성공했다는 생각에 그는 웃었다. 그는 그녀가 형을 더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나 그것은 새로운 사실이 아니었다. 거 의 모든 사람이 금발에다 강아지처럼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는 솔직함을 갖고 마음속 깊숙이 숨어 있다가는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는 에이브라가 형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녀에게 벌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 역시 새로운 것이 ㅏ니었다. 그는 그런 능력을 처음 발견한 이래 계속 그렇게 해왔다. 남모르게 벌을 주는 일은 그에게 있어서 일종의 창조물이 되어 있었다. 두 소년의 차이점은 이렇게 설명하는 것이 제일 나은지도 모르겠다. 만일 아론이 숲속의 작은 공지에서 개미탑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 경우, 그는 배를 깔고 누워 복잡한 개미의 생활을 관찰할 것이다. 몇몇 놈은 길을 따라 음식을 나르고 다른 놈들은 하얀 알을 나르고, 그는 두 놈이 만나서는 촉각을 마주대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양을 볼 것이다. 몇 시간이고 그는 누워서 대지의 경제 생활에 몰두할 것이다. 한편 카알이 같은 개미탑을 우연히 대하게 되는 경우, 그는 탑을 발길로 차서 산산조각이 나게 하고는, 개미들이 미친 듯이 날뛰면서 발길로 차서 산산조각이 나게 하고는, 개미들이 미친 듯이 날뛰면서 재앙에 대처하는 꼴을 지켜볼 것이다. 아론이 그의 세계의 일원이 되어 만족한다고 한다면 카알은 그것을 변화시켜야만 했다. 카알은 사람들이 형을 더 좋아한다는 사실에 대한 이론을 제기하지는 않았지만, 이 사실 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만드는 방법을 발전시켰다. 그는 계획을 꾸미고서 칭찬을 하는 당사 자가 자신의 약점을 드러낼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고 있으면 어떤 일이 일어났는데, 피해자는 그 이유와 방법을 까맟게 모르게 되었다. 카알은 복수십에서 강력한 힘을, 그리고 그 힘에서 기쁨을 유출해냈다. 이것이야말로 그가 알고 있는 가장 강력하고 고철저한 감정이었다. 그는 아론을 미워하기는커녕 좋아했다. 아론 은 카알에게 승리감음을 안겨주는 원천이기 때문이다. 그가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가 앙갚음을 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아론 만큼 사랑을 바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 을 까맣게 잊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아론이 갖고 있는 것보다도 자기가 갖고 있는 것을 더 좋아했다. 에이브라는 아론을 어루만지고 부드러운 말을 꺼냄으로써 카알의 마음 속의 어떤 작용에 불을 질러 놓았다. 카알의 반응은 자동적이었다. 그는 머리속으로 에이브라의 약점을 찾고 있었따. 그는 하도 영리했기 때문에 그녀의 말 속에서 약점을 곧 잡아냈다. 어떤 아이들은 어른이 되고 싶어했다. 자기 나이에 만족하는 아이는 별로 없었다. 에이브라는 어른이 되고 싶어했다. 그녀는 어른이 쓰는 말을 했고 할수만 있다면 어른의 태도와 감정을 가졌다. 유아 기는 저 뒤에 남겨 놓고 있었으나 그렇다고 선망하고 있는 어른이 될 수는 없었다. 카알은 이것을 감지했다. 이것이 그녀의 개미탑을 부숴버릴 도구를 마련해 주었다. 형이 상자를 찾는데 얼마나한 시간이 걸릴지를 그는 알고 있었다. 일이 되어가는 것을 속 으로 그려 볼 수 있었다. 그는 토끼의 피를 닦아내려고 할텐데. 그러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 릴 것이다. 끈을 찾는데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나비 모양으로 끈을 매는 데는 더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는 그동안 자기가 승리를 거두게 될 것도 알고 있었다. 에이브라의 확신이 흔들리고, 또 그것을 더욱 자극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드디어 에이브라는 그에게서 눈길을 돌리면서 말했다. "왜 그렇게 사람을 뚫어지게 쳐다 보니?" 카알은 그녀를 마치 의자이기나 한 것처럼 냉정하게 발끝에서부터 위쪽으로 훑어 올라가 며 보았다. 그는 이렇게 하면 어른이라도 신경질나게 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나를 얕보는 거니?" 카알이 물었다. "너 학교에 다니니?" "물론이지." "몇 학년이냐?" "5학년." "몇 살이냐?" "열 한 살이 돼." 카알이 물었다. "뭐 안된 것 있니?" 그녀가 다그쳤다. 그래도 그는 대꾸하지 않았다. "말해 봐! 뭐가 우스 워?" 대답이 없었다. "꽤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야." 그녀가 말했다. 그가 계속 웃자, 그녀는 불안한 듯 말했다. "네 형은 무엇하느라고 이렇게 시간이 걸리지. 이것 봐. 비가 그 쳤어." 카알이 말했다. "찾고 있는 중일 거야." "토끼 말이니?" "아니, 그것은 있는 걸. 죽었으니까. 그러나 다른 것은 잡을 수 없을 거야. 도망을 가니 까." "무엇을 잡아. 무엇이 도망간단 말이야?" "형은 내가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걸." 카알이 말했다. "그것을 뜻밖의 선물로 하고 싶을 거야. 지난 금요일에 잡았지. 그도 물렸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야?" 카알이 말했다. "상자를 열어보면 알게 될 거야. 그는 너더러 바로 열지 말라고 할 거야." 이것은 추츶이 아니었다. 카알은 형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에이브라는 자기가 이 싸움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싸움에서 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녀는 이 소년을 미워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기가 알고 있는 치명적인 반격을 새각해 보았 으나 아무 효과도 거둘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힘없이 포기하고 말았다. 그녀는 문 밖으로 걸어나가 부모가 있는 집을 바라보았다. "나갈 테야." 그녀가 말했다. "기다려." 카알이 말했다. 그가 쫓아오자 그녀는 몸을 뒤로 돌렸다. "왜 그래?" 그녀가 냉정하게 물었다. "나한테 화내지 마. 여기서 일어나는 일을 너는 몰라. 형의 등을 봐야해." 그의 달라진 말투가 그녀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그는 그녀가 한 가지 태도를 취하게 놔두지 않았다. 그는 그녀가 낭만적인 상황에 흥미를 느끼고 있다는 것을 간과했다. 그의 목 소리는 은밀하게 낮아졌다. 그의 목소리에 맞추어 그녀도 목소리를 낮추었다. "무슨 뜻이니? 등이 어떻게 됐다는 거니?" "흉터 투성이야." 카알이 말했다. "중국 사람이 그랬어." 그녀는 몸서리를 쳤다. 그리고 흥미로워서 몸을 긴장시켰다. "그가 어떻게 하는데 때리니?" "그 정도가 아니야." 카알이 대답했다. "왜 아버지한테 이르지 않니?" "감히 못 그러지. 이르면 어떻게 될지 알지?" "몰라. 어떻게 되는데?" 그는 머리를 저었다. "안돼." 그는 주의깊게 생각하는 듯했다. "너한테도 감히 말 못해." 그때 리이가 고무 타이어가 달린 높고 기다란 마차를 끄는 베이컨의 말을 끌면서 마굿간 에서 나왔다. 베이컨 부부는 집 안에서 나와 기계적으로 하늘을 쳐다보았다. 카알이 말했다. "지금 이야기해 줄 수는 없어. 얘기해 주면 리이 아저씨가 알 테니까." 베이컨 부이이 소리쳤다. "에이브라! 서둘러라! 우린 간다." 리이가 다루기 힘든 말을 잡고 있는 동안, 베이컨 부인은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아론이 줄을 나비 모양으로 묘하게 맨 마분지 상자를 들고 집위에서 뛰어나왔다. 그는 상 자를 에이브라에게 내밀었다. "여기 있어. 집에 가서 열어 봐." 카알은 에이브라의 얼굴에 동요의 빛이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손을 움츠리고 상 자를 받지 않았다. "받아라." 그녀의 아버지가 말했다. "서둘러야지. 너무 늦었다." 그는 상자를 그녀의 손에 뒤어 주었다. 카알이 그녀의 곁으로 바짝 다가갔다. "가만히 할 이야기가 있어." 그는 입을 그녀의 귀쪽 으로 가까이 대었다. "네 팬티가 젖었다." 그가 이렇게 말하자 그녀는 얼굴을 붉히면서 보닛을 푹 눌러썼다. 베 이컨 부인은 그녀를 안아서 마차 위에 올려 놓았다. 리이와 아담과 쌍둥이들은 말이 재빨리 걸어나가는 것을 지켜 보고 있었다. 첫 모퉁이를 돌아가기도 전에 에이브라의 손이 올라오더니 상자가 뒤로 미끄러지면서 길 위로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카알은 형의 얼굴을 보았다. 비참한 모습이 아론의 눈에 나타났다. 아담이 집 안으로 들어 가고 리이가 쟁반에 병아리 모이를 들고 닭장으로 떠나자, 카알은 형의 어깨를 안심이나 시 키듯이 얼싸안았다. "나는 그애와 결혼하고 싶어서 상자 안에 구혼장을 넣었는데." 아론이 말했다. "슬퍼하지마. 내 총을 빌려 줄게." 카알이 말했다. 아론이 고개를 홱 돌렸다. "너는 총이 없지 않아." "내가 없다고?" 카알이 말했다. "내가 없다고?" 제 28 장 1 아버지에게 변화가 일어난 것을 소년들이 발견한 것은 저녁시사 때였다. 그들은 아버지를 그저 있는 존재 - 들어도 귀담아 듣지 않고 보아도 인식을 못하는 존재로 알고 있었다. 구 름과 같은 아버지였다. 소년들은 자기들의 흥미나 발견이나 필요에 대하여 그에게 말을 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리이가 성인 세계와 접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리이는 그들 을 키우고, 먹이고, 옷을 입히고 훈련을 시켰을 뿐만 아니라 부친에 대한 존경심도 심어 주 었다. 아버지는 아이들에게서 신비스러운 존재였다. 아버지의 말과 지시는 리이를 통하여 수 행되었다. 물론 리이는 자기가 그것을 만들어 냈었지만 아담의 말이라고 돌렸다. 아담이 샐리너스에서 돌아온 첫날밤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질문을 하고 쳐다보고 이 해하려고 애쓰는 것을 보고, 카알과 아론은 처음엔 놀랐고 다음에는 당황하기까지 했다. 이 러한 변화 때문에 그들은 겁이 났다. 아담이 말했다. "너희들, 오늘 사냥을 갔었다지?" 새로운 상황에 부딪치면 누구나 그러하듯이 소년들은 조심스럽게 되었다. 잠시 머뭇거리 다가 아론이 긍정했다. "그랬습니다." "뭐 잡은거라도 있니?" 이번엔 오래 있다가 말했다. "잡았어요." "무엇을 잡았는데?" "토끼입니다." "화살로? 누가 잡았니?" 아론이 말했다. "둘이 쐈어요. 누구의 화살이 맞았는지 모르겠어요." 아담이 말했다. "제 화살을 제가 몰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제 화살엔 표시를 해놓았었 지." 이번엔 아론이 문제가 생길까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카알이 기다리고 있다가 말했다. "그것은 내 화살이었어요. 틀림없어요. 그러나 내 화살이 아론의 화살통에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우리는 생각하고 있죠." "어떻게 돼서 그렇게 생각을 하게 되었니?" "모르겠어요." 카알이 말했다. "그러나 저는 토끼를 맞춘 것은 아론이라고 생각해요." 아담은 눈길을 돌렸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내가 맞췄는지도 모르죠. 그러나 확실치는 않죠." "너희들은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는 것 같구나." 두 소년의 얼굴에서 걱정이 사라졌다. 그것이 함정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토끼는 어디 있니?" 아담이 물었다. 카알이 말했다. "아론이 에이브라에게 선물로 주었어요." "그런데 그애가 내버렸어요." 아론이 말했다. "왜?" "모르겠어요. 그애와 결혼하고 싶었어요." "그랬어?" "네." "카알, 너는 어땠니?" "아론에게 양보할래요." 카알이 말했다. 아담이 웃었다. 아버지가 웃는 소리를 들은 기억이 그들에겐 없었다. "그애가 예쁘던?" 그 가 물었다. "그랬어요." 아론이 말했다. "그애는 훌륭해요. 틀림없어요. 착하고 예쁘죠." "내 며느리가 된다면야 기쁜일이지." 리이는 식탁을 치우고 나서 부엌에서 재빠른 소리를 내더니 이내 돌아왔다. "잘 준비들 됐니?" 리이가 물었다. 소년들이 항의하듯 쳐다 보았다. 아담이 말했다. "앉아요. 애들도 잠깐 앉아 있게 하고." "장부를 정리해 놓았어요. 검사는 나중에 하죠." 리이가 말했다. "무슨 장부를?" "집과 농장에 관한 계산 이죠. 현재의 상태를 알고 싶다고 말씀하셨지 않아요." "지난 10년간의 재산은 아니겠지?" "전에는 골치를 썩히고 싶지 않다고 하셨지요?" "맞는 소리야. 어쩄든 잠깐 앉아. 아론이 오늘 여기 왔던 어린 처녀와 결혼을 하고 싶다는 거야." "약혼을 했나요?" 리이가 물었다. "그 여자애가 아직 수락을 하지 않은 것 같아." 아담이 말했다. "그래서 우리가 시간적 여 유를 갖게 되었는지도 모르지." 카알은 집안의 변화한 분위기에 대해서 갖고 있었던 외경을 재빨리 거두고, 이 개미캅을 차 굴릴 방법을 결정하려고 고심하면서 개미탑을 용의주도하게 살피고 있었다. 그는 결정을 내렸다. "그 여자아이는 정말로 좋은 아이에요. 나도 좋아요. 이유를 아세요? 우리 어머니의 무덤 이 어디 있는지 아버지에게 물어 보라고 했어요. 그러면 우리가 꽅을 가지고 갈 수 있도록 요." "아버지, 할 수 있어요?" 아론이 물었다. "화환 만드는 법도 가르쳐 주겠다고 했어요." 아담의 마음은 줄달음질을 쳤다. 그는 거짓말을 잘 꺼내지 못했다. 그는 연습이 되어 있지 않았었다. 거짓말을 풀려 나오자 그는 깜짝 놀랐다. 거짓말이 너무도 빨리 생각났고 입심좋 게 흘러 나왔기 때문이다. "얘들아,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내가 말 해 주지. 어머니의 무덤은 저 멀리 고향에 있단다." "왜요?" 아론이 물었다. "자기들이 태어난 곳에 묻히기를 바라는 사람이 많지." "어머니는 거기를 어떻게 갔어요?" 카알이 물었다. "기차에 태워 고향으로 보냈지. 리이, 그랬지?" 리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도 그래요. 중국 사람들도 거의가 죽으면 고향으로 보내지 죠." 리이가 말했다. "알고 있어. 전에 나에게 이야기해 주었잖아요." 아론이 리이에게 말해따. "그랬지?" 리이가 말했다. "틀림없어." 카알이 말했다. 그는 막연히나마 실망했다. 아담이 재빨리 화제를 바꾸었다. "네이컨 씨가 오늘 오후에 제안을 하셨다. 너희들도 생각 해 봤느면 좋겠다. 우리가 샐리너스로 이사를 가면 너희들에게 더 좋아질 지도 모르겠다고 말씀하셨어. 학교도 더 좋고 같이 늘 놀 친구도 많고." 이 말이 쌍둥이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카알이 물었다. "여기는 어떻게 하구요?" "글세, 돌아오고 싶을 때를 생각하여 농장은 그대로 둘까 한다." 아론이 말했다. "에이브라는 샐리너스에 산대요." 아론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는 이 미 미끄러져 떨어지던 상자를 잊고 있었다. 그의 생각은 작은 에이프런과 보닛과 보드랍고 작은 손가락뿐이었다. 아담이 말했다. "너희들도 생각해 봐라. 자, 이제는 너희들은 자러 가야 할까보다. 오늘은 왜 학교엘 안 갔니?" "선생님이 아프세요." 아론이 말했다. 리이가 그것을 확인했다. "컬프 선생님은 사흘 동안이나 아프세요. 월요일까지는 학교에 갈 필요가 없어요. 애들아, 가자." 그들은 순순히 그를 따라 방 밖으로 나갔다. 2 아담은 앉아서 막연히 램프로 보고 미소를 지으며 집게 손가락으로 무릎을 치고 있을 때 리이가 돌아왔다. 아담이 물었다. "애들이 무얼 아나?" "모르겠는데요." 리이가 대답했다. "글세, 소녀 때문이겠지." 리이는 부엌으로 갔다가 커다란 마분지 상자를 들고 돌아왔다. "여기에 계산서가 있어요. 1년 분마다 고무 밴드로 묶어 놓았지요. 훑어 보았는데 완전해요." "계산서 전분가?" 리이가 말했다. "1년마다 장부가 있고 영수증이 모두 붙었죠. 현재의 상태를 아시고 싶다 고 하셨죠. 여기 있습니다. 전부예요. 정말로 이사를 하실 생각이십니까?" "글세, 생각중이야." "아이들에게 사실을 이야기할 어떤 방도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되면 어머니에 대한 좋은 생각을 뺏아버리는 꼴이 될거야." "다른 위험을 생각해 보셨어요?" "무슨 말인가?" "글세, 애들이 나이가 더 들면 말하기가 더 쉬울 텐데."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그것이 최악의 위험은 아니죠." 리이가 말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리이?"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거짓말 그것입니다. 거짓말이 다른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죠. 만일 이 일에 대해서 당신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경우, 그 사실에 고 통을 겪게 될 거예요. 그렇게 되면 그들은 아무것도 믿지 않을 테니까요." "알겠네. 그러나 내가 무엇을 얘기할 수 있겠나? 전모를 밝힐 수는 없고." "부분적으로 사실을 얘기할 수도 있지요. 그들이 알게 되어도 당신이 괴롭지 않을 정도 로." "생각해 봐야겠군" "샐리너스에 살게 되면 더욱 위험하게 될 겁니다." "생각해 봐야겠네." 리이는 끈덕지게 말을 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 부친께서는 어머니 얘기를 해주셨지요. 나 에게 틈을 남겨 주시지 않았죠. 내가 자라면서 여러 번 얘기를 해주셨죠. 물론 이야기가 똑 같지는 않았죠. 그러나 꽤 무서운 이야기였어요. 하지만 이야기를 해주셔서 고마워요. 모르 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 얘기를 해주겠나?"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를 하면 아들에 대한 당신의 태도를 바꾸어 놓게 할 지도 모르죠. 그 여자가 집을 나갔는데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할 수도 있죠." "내가 전모를 알고 있는데?" "그것이 문제예요. 전부를 얘기하느냐, 부분적인 거짓말을 하느냐에 달려 있지요. 내가 당 신한테 강요할 수는 없어요." "그것도 생각을 해봐야겠어." 아담이 말했다. "자네 어머니 이야기는 어떤 것인가?" "정말 듣고 싶으세요?" "하고 싶다면야." "간단한 이야기를 하죠." 리이가 말했다. "나의 첫 기억은 내가 가자밭 가운데 있는 작은 오두막집에서 아버지와 단둘이서 살고 있다는 것과 아버지가 어머니 이야기를 해주던 것이 지요. 아버지는 광둥어를 했지만, 그 이야기를 할 때에는 언제나 가락이 높고 아름다운 북경 관화를 사용하셨죠. 그러면 말씀드리죠 - " 리이는 기억을 더듬었다. "먼저 말씀드려야 할 것은, 여기 서부에 철로를 건설할 때 땅을 고른다든지 침묵을 놓는다든지 철도를 박는 것 같은 고된 일은 수천명의 중국인들에 의하여 이루어졌다는 것이죠. 중국인들은 노임이 싸고 열심히 일을 하고 죽더라도 누구 하나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죠. 그들은 대부분 광동에서 징발되어 왔었는데 광동인들은 체구가 작고 힘이 세고 끈덕진데다가 싸움은 좋아 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들은 계약을 맺고 들어왔는데 아마도 제 부친의 역사야말로 그 대 표적인 것일 겁니다. 중국 사람들은 설날이나, 아니면 그 이전에 모든 빚을 갚아야 한다는 것을 아셔야 하죠. 새해를 새로이 시작하는 것이죠. 만일 갚지 못하면 그는 체면을 잃게 되죠. 뿐만 아니라 온 가족의 체면이 깎이죠. 변명의 여지가 없어요." "나쁜 생각이 아니구먼." 아담이 말했다. "나쁘든 좋든 사실이 그랬죠. 부친은 운이 나빴어요. 빝을 갚을 수 없었어요. 가족이 모여 사후책을 논의했죠. 우리 집은 훌륭한 가문이었어요. 불행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어요. 그 러나 갚지 못한 빚은 전 가문의 빚이었어요. 그들이 부친의 빚을 갚아 주고 부친은 되갚아 야 했지요. 그러나 그것도 거의 불가능했어요. 철도 회사의 노동자 모집원은 한가지 일을 하는 데 계약을 맺고 많은 돈을 즉석에서 지불 해 주었죠. 그들은 이렇게 하여 밎더미에 앉은 많은 사람을 잡았죠. 이것은 전적으로 합리적 이고 명예스러운 것이었죠. 그러나 암담한 슬픔이 남았을 뿐이지요. 부친은 갓 결혼한 청년이었는데 아내와의 사이는 대단히 강하고 깊고 따뜻했었죠. 남편에 대한 그분의 관계도 정말 압도적이 었던 것이 틀림없어요. 그러나 그들은 가족이 모인 가운 데에서 예의바르게 작별인사를 나누었죠. 어쩌면 공식적인 예의범절이 가슴이 터질 듯한 괴 로움을 덜어주는 완충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저는 가끔씩 했지요. 남자들은 떼를 지어 동물처럼 컴컴한 선창에 실리어 6주를 항해한 끝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지요. 이 선창이 어떠했었는가는 상상하실 수 있을 거예요. 이 인간 상품들은 일을 할 수 있는 조건에서 배달 되어야만 했기 때문에 학대받지는 않았죠. 그리고 우리 중국사람들 은 여러 세대를 거쳐 참을 수 없는 조건하에서도 함게 살고 몸을 깨끗이하고 연명하는 것을 배워 왔죠. 1주일을 바다에서 지낸 후에 부친께서는 어머니를 발견하셨죠. 어머니는 남자처럼 옷차림 을 하고 변발 모양 머리카락을 땋고 있었죠. 꼼짝 않고 앉아서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 머니는 발각되지 않았었죠. 그 당시만 해도 검진이니 종두니 하는 것은 물론 없었죠. 어머니 는 부친 곁으로 요를 옮겼어요. 어둠 속에서 입을 귀에 대고밖에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었 어요. 부친께서는 어머니가 마릉ㄹ 듣지 않는다고 화를 냈지만, 역시 기쁘기도 하셨죠. 일이 이렇게 되었어요. 그들은 5년동안 중노동을 하도록 되어 있었죠. 일단 미국에 발을 들여논 이상 도망을 갈 수는 없었어요. 그들은 명예로운 민족이거니와 계약에 서명을 했었 으니까요." 리이가 말을 멈췄다. "몇 마디로 말을 끝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러나 당신은 배경을 모르고 계시죠. 물 한 잔 마시고 싶은데요 - 안드시겠어요?" "들지." 아담이 말했다. "그런데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군. 여자가 어떻게 그 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 "곧 돌아오겠습니다." 그는 부엌으로 가서 양철 컵에 물을 들고 돌아와서 테이블 위에 놓 았다. "무엇을 알고 싶으셨죠?" "자네 모친께서 어떻게 남자 일을 할 수 있었느냐 말이야?" 리이가 미소를 지었다. "부친 말씀이 어머니는 강인하셨다고 해요. 나는 강한 여자는 오히 려 남자보다도 힘이 세다고 믿고 있지요. 특히 마음 속에 사랑을 품고 있으면 말이죠. 사랑 을 하는 여자는 거의 불사조처럼 되지요." 아담이 얼굴을 찌푸렸다. 리이가 말했다. "언젠가는 알게 되실 겁니다. 아시게 될 겁니다." "나쁘게 생각한 것은 아니야. 한 번 경험으로 내가 어떻게 알 수 있겠나? 계속하게." "지루했던 항해 중에 어머니가 부친에게 귓속말로 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잇어요. 많은 사 람들이 지독한 배먹미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의 몸이 불편하였지만 전혀 눈에 띄지 않았죠." 아담이 소리쳤다. "임신을 했던 것은 아니겠지!" "어머니는 임신을 하고 있었어요.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더한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던 거죠." "모친은 떠날 때 알고 계셨던가?" "모르고 계셨죠. 나는 가장 불편했던 때에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던 거죠. 생각보다 이야기 가 길어지는 군요." "이제 중단할 수 없네." 아담이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살과 뼈만 가진 인간들이 홍수처럼 가축 화차에 실려 산 위로 올라갔죠. 그들은 산맥의 작은 언덕을 깎아내고 산정 밑에 터널을 파 도록 되어 있었죠. 어머니는 다른 화물차에 실려 갔기 때문에 높은 산꼭대기 목초지에 있는 숙소에 가성 부친을 만날 수 있었구요. 그곳은 푸른 풀이 자라고 꽃 들이 피어 있고 주위는 눈에 싸인산들로 둘러싸여 있어 대단히 아름다웠죠. 그때 가서야 어머니는 부친에게 내 이 야기를 했던 거예요. 그들은 일을 시작했어요. 여자의 근육도 남자처럼 단단하게 되는 법이죠. 나의 어머니는 남성 같은 정신력을 갖고 있었죠. 어머니는 자기에게 할당된 곡팽이질과 삽질을 했지만, 끔 찍한 일이 었음에 틀림 없어요. 그러나 두 분은 출산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무서운 걱정 에 싸여 있었죠." 아담이 말했다. "그들은 무지했던가? 왜 자네 모친은 감독에게 가서 자기는 여잔데 임신 중이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가? 틀림없이 모친을 돌봐주었을 텐데." "모르시겠어요? 내가 충분히 말씀드리지 않았구먼요. 그래서 말이 길어지는 것이 것이죠. 그들이 무지했던 것이 아니죠. 이 인간 가축들은 일을 시키겠다는 한가지 목적 ㄸ문에 수입 된 거예요. 일이 끝나면 죽지않고 살아 있는 사람들은 회송하도록 되어 있었죠 남자들만 왔 죠 - 여자들으 아니예요. 이 나라는 그들이 번식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죠. 남자와 여자와 자식이 있으면 그들은 열심히 일을 하여 주위에 있는 땅을 모르고 집을 마련하게 되죠. 그 러면 그들을 뿌리째 뽑아버리기란 불가능하게 되죠. 그러나 산경질적이고 육욕적이고 불안 하고 여자가 그리워 반 미쳐 있는 남자들의 무리란 어디든 가게 되죠. 특히 고향으로 가려 고 하죠. 어머니야말로 반 미처 있고 반 야만적인 남자들 무리 중에 유일한 여자였죠. 남자 들이란 오랫동안 일을 하고 먹고 하면 더욱 불안하게 돠죠. 감독들이 보기에 이들은 사람이 아니라 제재를 하지 않으면 위험스럽게 되는 동물들이었죠. 나의 어머니가 왜 도움을 청하 지 않았는지 아시겠어요? 그들은 어머니를 숙소 밖으로 쫓아내지 않았으며 - 누가 알아요? - 사살을 하여 병든 소 처럼 매장을 했을지도 모르죠. 조그마한 소동을 피웠다고 해서 열다 섯 명이나 사살되었죠. 우리 불쌍한 종족들이 질서를 유지하 위해 익혀온 그 유일한 방법으로 그들은 질서를 유 지했지요. 더 좋은 방법들이 있는 것을 확신하면서도 우리들은 배우지 않았죠 - 채찍과 밧 줄과 총이 항상 있었을 뿐이죠. 이런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어야 했을 것을 - " "나에게 이야기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아담이 물었다. "나에게 이 말씀을 해주시던 때의 부친 얼굴이 눈에 선허군요. 옛날의 처참함이 생생하게, 그리고 아픔을 안고 되돌아오는군요. 부친께서는 이 이야기를 하실 때는 말을 멈추고 정신 을 차려야 하셨죠. 다시 말을 계속하실 때에는 엄숙하게 이야기를 하셨죠. 그리고 생경하고 날카로운 말을 사용하셨는데 마치 그 말로 자신을 자르기라도 하고 싶은 듯했었지요. 두 분은 숙질간이라고 우겨 가까이서 함꼐 있을 수 있었지요. 여러 달이 흘렀지만 다행히 도 어머니는 배가 그리 부르지 않으셨어요. 어머니는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고통 속에서 일 을 했지요. "내 조카는 어린데다가 뼈가 약하다고 변명을 늘어놓고서 부친은 어머니를 약간 도와줄 수 있었죠. 그들은 아무 계획도 없었어요. 무엇을 해야 될지도 몰랐어요. 그러다가 부친께서 한가지 계획을 짜냈어요. 높은 산 속의 목초지로 도망을 가서 한 호수 가에 굴을 파고 어머니가 안전하게 되고 어린아이가 태어난 후에, 부친꼐서는 되돌아와 벌 을 받는 것이었죠. 그리고 과오를 저지른 조카 대신 5년간을 더 일하겠다는데 서약을 할 생 각이었죠. 도피야말로 기막힌 일이었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죠. 그리고 영일한 생각으로 보였 죠. 그 계획에는 두 가지 필수 조건이 있었죠 - 적시를 택하는 것과 음식 공급이 필요했었 죠." 리이는 "나의 부모님은 - " 이렇게 말을 하다가, 그 말을 한 거에 대해 미소를 지어 그만 두었다. 그 말이 아주 좋은 듯 느껴져서 뜸을 들였다가 말을 이었다. "나의 사랑하는 부모님 께서는 준비를 하기 시작했지요. 일급 쌀을 조금씩 아껴서 요밑에 감추었죠. 지급되는 성냥 을 아끼기 위해 담배를 끊었죠. 어머니꼐서는 눈에 띄는 헝겊 조각이라곤 죄다 모으시고 올 이 풀리는 헝겊에서 실을 뽑고 나무 가시로 꿰매어 나를 위한 포대기를 만드셨죠. 어머니를 알았었으면 해요." "나도 그래." 아담이 말했다. "이 이야기를 햄 해밀튼에게 했던가?" "안 했어요. 했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 분은 인간 영혼의 찬양을 좋아하셨으니 말이지 요. 그분에게는 이런 일이 개인의 승리 같았을 거예요." "그분들이 거기에 도착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담이 말했다. "알겠어요. 부친께서 이야기를 해주실 때, 나는 이렇게 말햇었지요. "호수에 가게 해주세 요 - 엄마를 그곳에 가세요 - 그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해주세요. 이번만은 그런 일 이 일어나지 않게 해주세요. 어떻게 아버지가 호수엘 가서 전나무 가지로 집을 짓게 되었는 지 말해 주세요." 그러면 아버지는 더욱 중국인답게 됐지요. "비록 두려운 미라 하더라도 진 실 속에 더한 미가 있는 법이다. 성문밖에 있는 이야기꾼들은 인생을 뒤틀리게 하여 게으른 자와 어리석은 자와 나약한 자에게 달콤하게 보이도록 만든다. 그러면 그것은 그들의 약점 을 더욱 허약하게 만들고 교훈적이 못되고 아무것도 치유하지 못하고 마음을 고양시키지도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야기를 계속하게." 아담이 초조한 듯이 말했다. 리이는 일어서서 창가로 갔다. 그는 3 월 바람에 흔들리면서 빛나고 있는 별들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끝냈다. "제법 큰 돌이 언덕에서 굴러내려와 부친의 다리를 부숴 놓았어요. 그들은 뼈를 맞춰 주 고는 절름발이가 할 수 있는 일을 맡겼어요. 헌 못을 바위 위에 펴놓고 망치로 펴는 일이었 지요. 걱정 때문이었는지, 고된 일 때문이었든지 - 그건 상관없는 일이지만 - 어머니는 달 이 차기도 전에 산기가 일어났죠. 반 미치광이 남자들은 이를 알고 모두 미쳐 버렸어요. 허 기는 허기를 낳고 죄는 앞서의 죄를 지워버렸죠. 허기에 찬 사내들 앞에 저지른 작은 죄드 이 하나의 커다란 광적 죄악으로 불타올랐죠." 부친은 "여자다." 하고 소리치는 고성을 듣고 알았죠. 부친은 뛰어 가려다가 다리를 다시 부러뜨렸지만 울퉁불퉁한 비탈길을 기어올라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철로 노상으로 갔죠. 부친이 그곳에 도착했을 때에는 일종의 슬픔이 하늘을 이미 뒤덮고 있었죠. 광동 사나이 들은 인간이 이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을 감추고 잊기 위해 슬금슬금 도망치고 있었죠. 부친 은 혈암 더미에 있는 어머니에게로 갔죠. 어머니는 눈을 뜨고 볼 수도 없는 형편이었지만 그래도 입을 움직여 지시를 했죠. 부친은 형편없이 된 어머니의 몸에서 손가락으로 나를 끄 집어냈어요. 어머니는 오후에 혈암 위에서 세상을 떠났지요." 아담은 거칠게 숨을 쉬고 있었 다. 리이는 노래하듯 말을 이었다. "그들을 증오하게에 앞서 이것을 아셔야 해요. 부친께서 는 늘 마지막엔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나처럼 보실핌을 받은 아이도 없을 거라구요. 야영지 의 전체 사람들이 나의 어머니가 되었죠. 이것은 하나의 아름다운 일이죠. 두려운 미라고나 할까요. 이제 주무시죠. 더 이야기를 할 수 없구먼요." 3 아담은 집안에서 불안하게 서랍을 열기도 하고 선반을 쳐다보기도 하고 상자 뚜껑을 열기 도 했다. 그는 결국 리이를 불러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잉크와 펜이 어디 있지?" "없어요. 몇 년이 지나도록 글 하나 쓰지 않으셨잖아요. 필요하시다면 제것을 빌려 드리 죠." 리이는 자기 방으로 가서 땅딸막한 잉크병과 무딘 펜과 편지지와 봉투를 들고 와서 테 이블 위에 놓았다. 아담이 물었다. "편지를 쓰려고 하는 것을 어떻게 알았지?" "동생에게 편지를 쓰려고 하시는 것 아닙니까?" "맞았어." "편지를 쓰지 않다가 쓰기란 힘들 겁니다." 사실은 힘이 들었다. 아담은 펜을 물어 뜯었다. 입은 긴장하여 비뚤어져 있었다. 몇 줄 쓰 다가는 찢어버리고 다시 시작했다. 펜대로 머리를 긁었다. "리이ㅡ 동부에 좀 갔다 올테니 돌아올 때까지 애들과 같이 좀 있겠나?" "편지를 쓰는 것보다는 가는 것이 더 나을 겁니다." 리이가 말했다. "네, 있지요." "아니야, 편지를 써야겠어." "동생보고 이리로 오라고 그러지 그러세요?" "그것 참 좋은 생각이네. 난 그걸 생각하지 못했군." "편지 쓰는 구실도 될 거고, 그것이 좋을 겁니다." 그러자 편지가 술술 나갔다. 정정을 하고 다시 잘 베꼈다. 그는 혼자 천천히 읽고 나서 봉 투에 넣었다. "찰스에게" 편지는 이렇게 나갔다. "오랫동안 소식이 없다가 내소식을 듣고 놀랄 것이다. 여러 번 마음은 있었지만 여의치 못했다. 편지를 뭉기적뭉기적 못 쓰게 되는 이유를 너도 알지 않니. 이 편지가 닿을 때에는 네가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궁금하구나. 건강하리라고 믿는다. 지 금쯤은 네게도 자식이 다섯, 아니 열까지도 딸려 있는지 모르겠구나. 하! 하! 나에겐 아들 둘이 있는데 쌍둥이야. 에미는 여기 없단다. 시골 생활이 그 여자에게 맞지 않았던 거야. 그 여자는 가까운 읍에 사는데 종종 만난다. 나는 좋은 농장을 갖고 있다. 부끄럽게도 경작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 지금부터 잘 해 볼 작정이다. 나는 항상 결심을 잘했지. 그러나 몇 년 동안 비참했어. 지금은 잘 지내고 있다. 너는 어떻게 지내고 있으며 일은 잘돼 가느냐? 보고 싶구나. 여기 한 번 오지 않겠니? 좋 은 고장이양 정착하고 싶은 곳을 발견할지도 모르지. 여기엔 추운 겨울이 없다. 우리들같이 늙은 사람들에게는 큰 차이가 있지. 하! 하! 찰스야. 잘 생각해 보고 알려 주려무나. 여행을 하면 너에게도 좋을 거야. 보고 싶다. 글로 쓸 수는 없지만 할 얘기가 많다. 찰스, 옛집의 소식을 모조리 적어 보내거라. 많은 일들이 일어났으리라고 생각된다. 너도 늙어가면서 네가 알고 있던 사람들이 세상을 떠난 이야기를 대부분 들었을 거다. 세상 만사 가 다 그런 것 아니냐. 올 수 있는지를 빨리 알려다오. 형 아담 씀." 그는 편지를 들고 앉아서 이마에 흉이 진 동생의 검은 얼굴을 그려 보고 있었다. 동생의 갈색 눈에서는 열기가 반짝이고 있었다. 그가 쳐다볼 때 입술이 올라가며 이빨이 나타났고 맹목적인 파괴적 동물성이 드러났다. 그는 머리를 저어 그 모습의 기억을 지워버리고 다시 미소짓는 얼굴을 다시 그려보려고 애를 썼다. 흉터가 있기 전의 이마를 기억해 내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어떤 것하나 제대로 초점이 맍지 않았다. 그느 펜을 들어 사인 밑에 추신을 적 었다. "추신. 나는 어쨌든 너를 미워하지 않았다. 너는 내동생이기에 항상 사랑했다." 다암은 편지를 접고 손톱으로 싹싹 문질렀다. 그리고 봉투를 주먹으로 눌러 붙였다. "리 이!" 그가 불렀다. 중국인이 문틈으로 들여다보았다. "편지가 동부까지 가려면 얼마나 걸릴까? 동부 끝까지 갈려면?" "잘 모르겠는데요. 2주는 걸리겠죠." 2 아담은 앉아서 막연히 램프로 보고 미소를 지으며 집게 손가락으로 무릎을 치고 있을 때 리이가 돌아왔다. 아담이 물었다. "애들이 무얼 아나?" "모르겠는데요." 리이가 대답했다. "글세, 소녀 때문이겠지." 리이는 부엌으로 갔다가 커다란 마분지 상자를 들고 돌아왔다. "여기에 계산서가 있어요. 1년 분마다 고무 밴드로 묶어 놓았지요. 훑어 보았는데 완전해요." "계산서 전분가?" 리이가 말했다. "1년마다 장부가 있고 영수증이 모두 붙었죠. 현재의 상태를 아시고 싶다 고 하셨죠. 여기 있습니다. 전부예요. 정말로 이사를 하실 생각이십니까?" "글세, 생각중이야." "아이들에게 사실을 이야기할 어떤 방도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되면 어머니에 대한 좋은 생각을 뺏아버리는 꼴이 될거야." "다른 위험을 생각해 보셨어요?" "무슨 말인가?" "글세, 애들이 나이가 더 들면 말하기가 더 쉬울 텐데."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그것이 최악의 위험은 아니죠." 리이가 말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리이?"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거짓말 그것입니다. 거짓말이 다른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죠. 만일 이 일에 대해서 당신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경우, 그 사실에 고 통을 겪게 될 거예요. 그렇게 되면 그들은 아무것도 믿지 않을 테니까요." "알겠네. 그러나 내가 무엇을 얘기할 수 있겠나? 전모를 밝힐 수는 없고." "부분적으로 사실을 얘기할 수도 있지요. 그들이 알게 되어도 당신이 괴롭지 않을 정도 로." "생각해 봐야겠군" "샐리너스에 살게 되면 더욱 위험하게 될 겁니다." "생각해 봐야겠네." 리이는 끈덕지게 말을 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 부친께서는 어머니 얘기를 해주셨지요. 나 에게 틈을 남겨 주시지 않았죠. 내가 자라면서 여러 번 얘기를 해주셨죠. 물론 이야기가 똑 같지는 않았죠. 그러나 꽤 무서운 이야기였어요. 하지만 이야기를 해주셔서 고마워요. 모르 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 얘기를 해주겠나?"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를 하면 아들에 대한 당신의 태도를 바꾸어 놓게 할 지도 모르죠. 그 여자가 집을 나갔는데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할 수도 있죠." "내가 전모를 알고 있는데?" "그것이 문제예요. 전부를 얘기하느냐, 부분적인 거짓말을 하느냐에 달려 있지요. 내가 당 신한테 강요할 수는 없어요." "그것도 생각을 해봐야겠어." 아담이 말했다. "자네 어머니 이야기는 어떤 것인가?" "정말 듣고 싶으세요?" "하고 싶다면야." "간단한 이야기를 하죠." 리이가 말했다. "나의 첫 기억은 내가 가자밭 가운데 있는 작은 오두막집에서 아버지와 단둘이서 살고 있다는 것과 아버지가 어머니 이야기를 해주던 것이 지요. 아버지는 광둥어를 했지만, 그 이야기를 할 때에는 언제나 가락이 높고 아름다운 북경 관화를 사용하셨죠. 그러면 말씀드리죠 - " 리이는 기억을 더듬었다. "먼저 말씀드려야 할 것은, 여기 서부에 철로를 건설할 때 땅을 고른다든지 침묵을 놓는다든지 철도를 박는 것 같은 고된 일은 수천명의 중국인들에 의하여 이루어졌다는 것이죠. 중국인들은 노임이 싸고 열심히 일을 하고 죽더라도 누구 하나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죠. 그들은 대부분 광동에서 징발되어 왔었는데 광동인들은 체구가 작고 힘이 세고 끈덕진데다가 싸움은 좋아 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들은 계약을 맺고 들어왔는데 아마도 제 부친의 역사야말로 그 대 표적인 것일 겁니다. 중국 사람들은 설날이나, 아니면 그 이전에 모든 빚을 갚아야 한다는 것을 아셔야 하죠. 새해를 새로이 시작하는 것이죠. 만일 갚지 못하면 그는 체면을 잃게 되죠. 뿐만 아니라 온 가족의 체면이 깎이죠. 변명의 여지가 없어요." "나쁜 생각이 아니구먼." 아담이 말했다. "나쁘든 좋든 사실이 그랬죠. 부친은 운이 나빴어요. 빝을 갚을 수 없었어요. 가족이 모여 사후책을 논의했죠. 우리 집은 훌륭한 가문이었어요. 불행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어요. 그 러나 갚지 못한 빚은 전 가문의 빚이었어요. 그들이 부친의 빚을 갚아 주고 부친은 되갚아 야 했지요. 그러나 그것도 거의 불가능했어요. 철도 회사의 노동자 모집원은 한가지 일을 하는 데 계약을 맺고 많은 돈을 즉석에서 지불 해 주었죠. 그들은 이렇게 하여 밎더미에 앉은 많은 사람을 잡았죠. 이것은 전적으로 합리적 이고 명예스러운 것이었죠. 그러나 암담한 슬픔이 남았을 뿐이지요. 부친은 갓 결혼한 청년이었는데 아내와의 사이는 대단히 강하고 깊고 따뜻했었죠. 남편에 대한 그분의 관계도 정말 압도적이 었던 것이 틀림없어요. 그러나 그들은 가족이 모인 가운 데에서 예의바르게 작별인사를 나누었죠. 어쩌면 공식적인 예의범절이 가슴이 터질 듯한 괴 로움을 덜어주는 완충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저는 가끔씩 했지요. 남자들은 떼를 지어 동물처럼 컴컴한 선창에 실리어 6주를 항해한 끝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지요. 이 선창이 어떠했었는가는 상상하실 수 있을 거예요. 이 인간 상품들은 일을 할 수 있는 조건에서 배달 되어야만 했기 때문에 학대받지는 않았죠. 그리고 우리 중국사람들 은 여러 세대를 거쳐 참을 수 없는 조건하에서도 함게 살고 몸을 깨끗이하고 연명하는 것을 배워 왔죠. 1주일을 바다에서 지낸 후에 부친께서는 어머니를 발견하셨죠. 어머니는 남자처럼 옷차림 을 하고 변발 모양 머리카락을 땋고 있었죠. 꼼짝 않고 앉아서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 머니는 발각되지 않았었죠. 그 당시만 해도 검진이니 종두니 하는 것은 물론 없었죠. 어머니 는 부친 곁으로 요를 옮겼어요. 어둠 속에서 입을 귀에 대고밖에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었 어요. 부친께서는 어머니가 마릉ㄹ 듣지 않는다고 화를 냈지만, 역시 기쁘기도 하셨죠. 일이 이렇게 되었어요. 그들은 5년동안 중노동을 하도록 되어 있었죠. 일단 미국에 발을 들여논 이상 도망을 갈 수는 없었어요. 그들은 명예로운 민족이거니와 계약에 서명을 했었 으니까요." 리이가 말을 멈췄다. "몇 마디로 말을 끝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러나 당신은 배경을 모르고 계시죠. 물 한 잔 마시고 싶은데요 - 안드시겠어요?" "들지." 아담이 말했다. "그런데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군. 여자가 어떻게 그 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 "곧 돌아오겠습니다." 그는 부엌으로 가서 양철 컵에 물을 들고 돌아와서 테이블 위에 놓 았다. "무엇을 알고 싶으셨죠?" "자네 모친께서 어떻게 남자 일을 할 수 있었느냐 말이야?" 리이가 미소를 지었다. "부친 말씀이 어머니는 강인하셨다고 해요. 나는 강한 여자는 오히 려 남자보다도 힘이 세다고 믿고 있지요. 특히 마음 속에 사랑을 품고 있으면 말이죠. 사랑 을 하는 여자는 거의 불사조처럼 되지요." 아담이 얼굴을 찌푸렸다. 리이가 말했다. "언젠가는 알게 되실 겁니다. 아시게 될 겁니다." "나쁘게 생각한 것은 아니야. 한 번 경험으로 내가 어떻게 알 수 있겠나? 계속하게." "지루했던 항해 중에 어머니가 부친에게 귓속말로 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잇어요. 많은 사 람들이 지독한 배먹미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의 몸이 불편하였지만 전혀 눈에 띄지 않았죠." 아담이 소리쳤다. "임신을 했던 것은 아니겠지!" "어머니는 임신을 하고 있었어요.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더한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던 거죠." "모친은 떠날 때 알고 계셨던가?" "모르고 계셨죠. 나는 가장 불편했던 때에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던 거죠. 생각보다 이야기 가 길어지는 군요." "이제 중단할 수 없네." 아담이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살과 뼈만 가진 인간들이 홍수처럼 가축 화차에 실려 산 위로 올라갔죠. 그들은 산맥의 작은 언덕을 깎아내고 산정 밑에 터널을 파 도록 되어 있었죠. 어머니는 다른 화물차에 실려 갔기 때문에 높은 산꼭대기 목초지에 있는 숙소에 가성 부친을 만날 수 있었구요. 그곳은 푸른 풀이 자라고 꽃 들이 피어 있고 주위는 눈에 싸인산들로 둘러싸여 있어 대단히 아름다웠죠. 그때 가서야 어머니는 부친에게 내 이 야기를 했던 거예요. 그들은 일을 시작했어요. 여자의 근육도 남자처럼 단단하게 되는 법이죠. 나의 어머니는 남성 같은 정신력을 갖고 있었죠. 어머니는 자기에게 할당된 곡팽이질과 삽질을 했지만, 끔 찍한 일이 었음에 틀림 없어요. 그러나 두 분은 출산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무서운 걱정 에 싸여 있었죠." 아담이 말했다. "그들은 무지했던가? 왜 자네 모친은 감독에게 가서 자기는 여잔데 임신 중이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가? 틀림없이 모친을 돌봐주었을 텐데." "모르시겠어요? 내가 충분히 말씀드리지 않았구먼요. 그래서 말이 길어지는 것이 것이죠. 그들이 무지했던 것이 아니죠. 이 인간 가축들은 일을 시키겠다는 한가지 목적 ㄸ문에 수입 된 거예요. 일이 끝나면 죽지않고 살아 있는 사람들은 회송하도록 되어 있었죠 남자들만 왔 죠 - 여자들으 아니예요. 이 나라는 그들이 번식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죠. 남자와 여자와 자식이 있으면 그들은 열심히 일을 하여 주위에 있는 땅을 모르고 집을 마련하게 되죠. 그 러면 그들을 뿌리째 뽑아버리기란 불가능하게 되죠. 그러나 산경질적이고 육욕적이고 불안 하고 여자가 그리워 반 미쳐 있는 남자들의 무리란 어디든 가게 되죠. 특히 고향으로 가려 고 하죠. 어머니야말로 반 미처 있고 반 야만적인 남자들 무리 중에 유일한 여자였죠. 남자 들이란 오랫동안 일을 하고 먹고 하면 더욱 불안하게 돠죠. 감독들이 보기에 이들은 사람이 아니라 제재를 하지 않으면 위험스럽게 되는 동물들이었죠. 나의 어머니가 왜 도움을 청하 지 않았는지 아시겠어요? 그들은 어머니를 숙소 밖으로 쫓아내지 않았으며 - 누가 알아요? - 사살을 하여 병든 소 처럼 매장을 했을지도 모르죠. 조그마한 소동을 피웠다고 해서 열다 섯 명이나 사살되었죠. 우리 불쌍한 종족들이 질서를 유지하 위해 익혀온 그 유일한 방법으로 그들은 질서를 유 지했지요. 더 좋은 방법들이 있는 것을 확신하면서도 우리들은 배우지 않았죠 - 채찍과 밧 줄과 총이 항상 있었을 뿐이죠. 이런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어야 했을 것을 - " "나에게 이야기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아담이 물었다. "나에게 이 말씀을 해주시던 때의 부친 얼굴이 눈에 선허군요. 옛날의 처참함이 생생하게, 그리고 아픔을 안고 되돌아오는군요. 부친께서는 이 이야기를 하실 때는 말을 멈추고 정신 을 차려야 하셨죠. 다시 말을 계속하실 때에는 엄숙하게 이야기를 하셨죠. 그리고 생경하고 날카로운 말을 사용하셨는데 마치 그 말로 자신을 자르기라도 하고 싶은 듯했었지요. 두 분은 숙질간이라고 우겨 가까이서 함꼐 있을 수 있었지요. 여러 달이 흘렀지만 다행히 도 어머니는 배가 그리 부르지 않으셨어요. 어머니는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고통 속에서 일 을 했지요. "내 조카는 어린데다가 뼈가 약하다고 변명을 늘어놓고서 부친은 어머니를 약간 도와줄 수 있었죠. 그들은 아무 계획도 없었어요. 무엇을 해야 될지도 몰랐어요. 그러다가 부친께서 한가지 계획을 짜냈어요. 높은 산 속의 목초지로 도망을 가서 한 호수 가에 굴을 파고 어머니가 안전하게 되고 어린아이가 태어난 후에, 부친꼐서는 되돌아와 벌 을 받는 것이었죠. 그리고 과오를 저지른 조카 대신 5년간을 더 일하겠다는데 서약을 할 생 각이었죠. 도피야말로 기막힌 일이었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죠. 그리고 영일한 생각으로 보였 죠. 그 계획에는 두 가지 필수 조건이 있었죠 - 적시를 택하는 것과 음식 공급이 필요했었 죠." 리이는 "나의 부모님은 - " 이렇게 말을 하다가, 그 말을 한 거에 대해 미소를 지어 그만 두었다. 그 말이 아주 좋은 듯 느껴져서 뜸을 들였다가 말을 이었다. "나의 사랑하는 부모님 께서는 준비를 하기 시작했지요. 일급 쌀을 조금씩 아껴서 요밑에 감추었죠. 지급되는 성냥 을 아끼기 위해 담배를 끊었죠. 어머니꼐서는 눈에 띄는 헝겊 조각이라곤 죄다 모으시고 올 이 풀리는 헝겊에서 실을 뽑고 나무 가시로 꿰매어 나를 위한 포대기를 만드셨죠. 어머니를 알았었으면 해요." "나도 그래." 아담이 말했다. "이 이야기를 햄 해밀튼에게 했던가?" "안 했어요. 했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 분은 인간 영혼의 찬양을 좋아하셨으니 말이지 요. 그분에게는 이런 일이 개인의 승리 같았을 거예요." "그분들이 거기에 도착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담이 말했다. "알겠어요. 부친께서 이야기를 해주실 때, 나는 이렇게 말햇었지요. "호수에 가게 해주세 요 - 엄마를 그곳에 가세요 - 그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해주세요. 이번만은 그런 일 이 일어나지 않게 해주세요. 어떻게 아버지가 호수엘 가서 전나무 가지로 집을 짓게 되었는 지 말해 주세요." 그러면 아버지는 더욱 중국인답게 됐지요. "비록 두려운 미라 하더라도 진 실 속에 더한 미가 있는 법이다. 성문밖에 있는 이야기꾼들은 인생을 뒤틀리게 하여 게으른 자와 어리석은 자와 나약한 자에게 달콤하게 보이도록 만든다. 그러면 그것은 그들의 약점 을 더욱 허약하게 만들고 교훈적이 못되고 아무것도 치유하지 못하고 마음을 고양시키지도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야기를 계속하게." 아담이 초조한 듯이 말했다. 리이는 일어서서 창가로 갔다. 그는 3 월 바람에 흔들리면서 빛나고 있는 별들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끝냈다. "제법 큰 돌이 언덕에서 굴러내려와 부친의 다리를 부숴 놓았어요. 그들은 뼈를 맞춰 주 고는 절름발이가 할 수 있는 일을 맡겼어요. 헌 못을 바위 위에 펴놓고 망치로 펴는 일이었 지요. 걱정 때문이었는지, 고된 일 때문이었든지 - 그건 상관없는 일이지만 - 어머니는 달 이 차기도 전에 산기가 일어났죠. 반 미치광이 남자들은 이를 알고 모두 미쳐 버렸어요. 허 기는 허기를 낳고 죄는 앞서의 죄를 지워버렸죠. 허기에 찬 사내들 앞에 저지른 작은 죄드 이 하나의 커다란 광적 죄악으로 불타올랐죠." 부친은 "여자다." 하고 소리치는 고성을 듣고 알았죠. 부친은 뛰어 가려다가 다리를 다시 부러뜨렸지만 울퉁불퉁한 비탈길을 기어올라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철로 노상으로 갔죠. 부친이 그곳에 도착했을 때에는 일종의 슬픔이 하늘을 이미 뒤덮고 있었죠. 광동 사나이 들은 인간이 이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을 감추고 잊기 위해 슬금슬금 도망치고 있었죠. 부친 은 혈암 더미에 있는 어머니에게로 갔죠. 어머니는 눈을 뜨고 볼 수도 없는 형편이었지만 그래도 입을 움직여 지시를 했죠. 부친은 형편없이 된 어머니의 몸에서 손가락으로 나를 끄 집어냈어요. 어머니는 오후에 혈암 위에서 세상을 떠났지요." 아담은 거칠게 숨을 쉬고 있었 다. 리이는 노래하듯 말을 이었다. "그들을 증오하게에 앞서 이것을 아셔야 해요. 부친께서 는 늘 마지막엔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나처럼 보실핌을 받은 아이도 없을 거라구요. 야영지 의 전체 사람들이 나의 어머니가 되었죠. 이것은 하나의 아름다운 일이죠. 두려운 미라고나 할까요. 이제 주무시죠. 더 이야기를 할 수 없구먼요." 3 아담은 집안에서 불안하게 서랍을 열기도 하고 선반을 쳐다보기도 하고 상자 뚜껑을 열기 도 했다. 그는 결국 리이를 불러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잉크와 펜이 어디 있지?" "없어요. 몇 년이 지나도록 글 하나 쓰지 않으셨잖아요. 필요하시다면 제것을 빌려 드리 죠." 리이는 자기 방으로 가서 땅딸막한 잉크병과 무딘 펜과 편지지와 봉투를 들고 와서 테 이블 위에 놓았다. 아담이 물었다. "편지를 쓰려고 하는 것을 어떻게 알았지?" "동생에게 편지를 쓰려고 하시는 것 아닙니까?" "맞았어." "편지를 쓰지 않다가 쓰기란 힘들 겁니다." 사실은 힘이 들었다. 아담은 펜을 물어 뜯었다. 입은 긴장하여 비뚤어져 있었다. 몇 줄 쓰 다가는 찢어버리고 다시 시작했다. 펜대로 머리를 긁었다. "리이ㅡ 동부에 좀 갔다 올테니 돌아올 때까지 애들과 같이 좀 있겠나?" "편지를 쓰는 것보다는 가는 것이 더 나을 겁니다." 리이가 말했다. "네, 있지요." "아니야, 편지를 써야겠어." "동생보고 이리로 오라고 그러지 그러세요?" "그것 참 좋은 생각이네. 난 그걸 생각하지 못했군." "편지 쓰는 구실도 될 거고, 그것이 좋을 겁니다." 그러자 편지가 술술 나갔다. 정정을 하고 다시 잘 베꼈다. 그는 혼자 천천히 읽고 나서 봉 투에 넣었다. "찰스에게" 편지는 이렇게 나갔다. "오랫동안 소식이 없다가 내소식을 듣고 놀랄 것이다. 여러 번 마음은 있었지만 여의치 못했다. 편지를 뭉기적뭉기적 못 쓰게 되는 이유를 너도 알지 않니. 이 편지가 닿을 때에는 네가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궁금하구나. 건강하리라고 믿는다. 지 금쯤은 네게도 자식이 다섯, 아니 열까지도 딸려 있는지 모르겠구나. 하! 하! 나에겐 아들 둘이 있는데 쌍둥이야. 에미는 여기 없단다. 시골 생활이 그 여자에게 맞지 않았던 거야. 그 여자는 가까운 읍에 사는데 종종 만난다. 나는 좋은 농장을 갖고 있다. 부끄럽게도 경작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 지금부터 잘 해 볼 작정이다. 나는 항상 결심을 잘했지. 그러나 몇 년 동안 비참했어. 지금은 잘 지내고 있다. 너는 어떻게 지내고 있으며 일은 잘돼 가느냐? 보고 싶구나. 여기 한 번 오지 않겠니? 좋 은 고장이양 정착하고 싶은 곳을 발견할지도 모르지. 여기엔 추운 겨울이 없다. 우리들같이 늙은 사람들에게는 큰 차이가 있지. 하! 하! 찰스야. 잘 생각해 보고 알려 주려무나. 여행을 하면 너에게도 좋을 거야. 보고 싶다. 글로 쓸 수는 없지만 할 얘기가 많다. 찰스, 옛집의 소식을 모조리 적어 보내거라. 많은 일들이 일어났으리라고 생각된다. 너도 늙어가면서 네가 알고 있던 사람들이 세상을 떠난 이야기를 대부분 들었을 거다. 세상 만사 가 다 그런 것 아니냐. 올 수 있는지를 빨리 알려다오. 형 아담 씀." 그는 편지를 들고 앉아서 이마에 흉이 진 동생의 검은 얼굴을 그려 보고 있었다. 동생의 갈색 눈에서는 열기가 반짝이고 있었다. 그가 쳐다볼 때 입술이 올라가며 이빨이 나타났고 맹목적인 파괴적 동물성이 드러났다. 그는 머리를 저어 그 모습의 기억을 지워버리고 다시 미소짓는 얼굴을 다시 그려보려고 애를 썼다. 흉터가 있기 전의 이마를 기억해 내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어떤 것하나 제대로 초점이 맍지 않았다. 그느 펜을 들어 사인 밑에 추신을 적 었다. "추신. 나는 어쨌든 너를 미워하지 않았다. 너는 내동생이기에 항상 사랑했다." 다암은 편지를 접고 손톱으로 싹싹 문질렀다. 그리고 봉투를 주먹으로 눌러 붙였다. "리 이!" 그가 불렀다. 중국인이 문틈으로 들여다보았다. "편지가 동부까지 가려면 얼마나 걸릴까? 동부 끝까지 갈려면?" "잘 모르겠는데요. 2주는 걸리겠죠." 제 29 장 1 10여년이 지나고 나서야 처음으로 동생에게 편지를 부치고 나서, 아담은 회답을 목이 빠 지게 기다렸다. 그는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잊고 있었다. 편지가 샌프란시스코에도 미처 도착하기 전에 그는 리이에게 큰 소리로 묻고 있었다. "왜 회답을 안 할까? 편지를 쓰지 않 았다고 화가난 걸까? 하지만 저도 편지를 쓰지 않고서. 아니지 - 여기 주소를 모르지. 이사 를 갔는지도 모르지." 리이가 대답했다. "며칠밖에 안 됐는 걸요. 기다리시죠." "동생이 정말 여기에 올까?" 그는 자문도 해보았다. 그리고 찰스가 오는 것을 자기가 정 말 바라고 있는지도 생각해 보았다. 편지를 부쳤기 때문에 그는 찰스가 수락을 할지도 몰라 서 겁이 났다. 그는 챙겨놓지 않은 물건이면 아무데나 손가락을 대보는 어린아이와 같았다. 그는 쌍둥이들을 간섭하기도 하고 학교에 관해서 수많은 질문을 했다. "오늘은 무엇을 배웠니?" "아무것도 안 배웠어요!" "저런! 무엇이든 배웠을 테지. 책을 읽었니?" "네." "무엇을?" "메뚜기와 개미 얘기에요." "재미 있지?" "독수리가 아기를 채가는 이야기도 잇어요." "나도 기억나는구나. 줄거리는 잊었다만." "아직 거기까지 나가지는 않았어요. 그림을 봤죠." 소년들은 싫증이 났다. 아담이 서투른 아버지 노릇을 하고 있는 동안, 카알은 아버지가 잊 어버리고 되돌려 달라고 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주머니칼을 빌었다. 버드나무에는 물이 잘 올라 있었다. 나뭇가지에서 껍질이 쉽게 벗겨졌다. 아담은 칼을 되받아 버들피리 만드는 법 을 가르치고 있었다. 3년 전에 리이가 이미 가르쳐 준 것이었다. 그런데 아담은 자르는 법을 잊고 있었다. 버들 피리에서 소리를 나게 할 수 없었다. 어느날 오후 윌 해밀튼은 엔진 소리도 크게 새 포드 차를 몰고 왔다. 자동차는 저속 기어 로 달리고 있었는데 차 꼭대기는 폭풍에 몰리는 배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차체에 달린 놋쇠 라디 에이터와 프레스토라이프 탱크가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손 브레이크를 잡아당기고 스위치를 끈 다음 가죽 의자에 등을 기댔다. 차가 과열되어 있었기 때문에 점화를 하지 않았어도 여러 번 역발을 일으켰다. "차를 가져왔습니다!" 윌은 거짓 열의를 부렸다. 그는 코드차를 지독하게 싫어했지만 그것 때문에 날마다 거액을 벌고 있었다. 윌 해밀튼이 비대하게 되어 식식 대면서 자신도 잘 알지 못하는 자동차 작동 방법을 설명 하고 있는 동안, 아담과 리이는 눈에 띄는 차 내부를 들여다 보았다. 자동차의 시동을 걸고 운전하고 보존하는 방법을 배우기란 힘들었다. 전 과정이 복잡했을 뿐만 아니라 영에서부터 시작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오늘의 어린이들은 어려서부터 내연 엔 진의 이론과 관성의특징을 알면서 자라지만 그 당시만 해도 엔진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현대 자동차의 엔진을 시동하기 위해서는 키이를 돌리고 시전기를 연결시키기만 하면 된다. 다른 모든 것은 자동이다. 그 당시에는 작동과정이 더욱 복잡했다. 좋은 기억과 힘센 팔과 천사 같은 성질과 맹목적인 희망분만 아니라 어느 정도의 마술적 훈련을 필요로 했기 때문 데, T형 크랭크를 돌리다가 땅에 침을 뱉고 주문을 외우는 사람들도 볼 수 있었다. 윌 해밀튼은 자동차 설명을 재차 했다. 그의 손님들은 크게 눈을 뜨고 테리어 개처럼 흥 미를 갖고 협조적이어서 말을 중단시키지 않지만, 세 번째 설명을 시작했을 때 설명이 잘되 지 않고 있는 것을 알았다. "말씀 드리죠!" 그는 쾌활하게 말했다. "이것은 나의 전문이 아닙니다. 다만 배달하기 전 에 자동차를 보여드리고 또 엔진소리를 들어보시도록 하고 싶었죠. 자, 나는 지금 돌아갔다 가 내일 차와 ka께 전문가를 보내드리죠. 내가 1주일 걸려 할 수 있는 것을 그는 몇 분만에 더 많은 설명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윌은 자기가 해야 할 주의사항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얼마 동안 크랭크를 돌리다가 아담 에게서 마차와 말을 빌려 타고 마을로 내려갔다. 다음날 기술자를 보내겠다고 약속했고. 2 다음날 쌍둥이를 학교에 보낼 여지가 없었다. 보내려 했어도 가지 않았을 것이다. 포드 차 는 윌이 세워두었던 참나무 밑에 초연하고 냉담하게 높이 서 있었다. 새 자동차 주인들은 빙 둘러서서 위험한 말을 달래기나 하듯이 가끔씩 만져보았다. 리이가 말했다. "나도 이것에 익숙하게 될지 모리겠군요." "물론 익숙하게 되지." 아담이 자신 없게 말했다. "제일 먼저온 동리를 몰고 다닐 텐데." "알려고 노력은 하겠어요." 리이가 말했다. "그러나 몰고 다니지는 않겠어요." 두 소년들은 차 안으로 들락날락하면서 무엇인가 손을 댔다가는 뛰어나왔다. "이 장치는 뭐예요. 아버지?" "손대지 말아라." "무엇에 쓰는 거예요?" "모르겠다. 그렇지만 손대지 말아라. 무슨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 아저씨가 아버지 한테 설명을 해줬지 않아요?" "잊어버렸다. 자, 비켜라. 안 비키면 학교엘 보내겠다. 카알, 내 소리가 들리니? 그걸 열지 마." 그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준비를 했다. 열 한시가 되자 신경질적인 초조감에 휩싸였다. 점심때를 맞추어 기계공이 마차를 몰고 왔다. 그는 복스 구두 와 더치스 바지를 입고 있었 다. 넓고 네모진 코트는 거의 무릎까지 내렸왔다. 마차에 탄 그의 옆에는 작업복과 도구가 든 가방이 놓여 있었다. 열 아홉 살난 그는 담배를 씹고 있었다. 그는 자동차 강습소에서 3 개월 동안 강습을 받고 나서 인간에 대해지루 하지만 커다란 경멸감을 품고 있었다. 그는 침을 뱉고 나서 고삐줄을 리이에게 던졌다. "이 형편없는 말을 데리고 가요. 앞뒤가 어딘지 어떻게 알죠?" 그는 특별 열차에서 내리 는 대사이거나 한 것처럼 마차에서 내렸다. 그는 쌍동이를 비웃고 나서 냉담하게 아담 쪽으 로 몸을 돌렸다. "식사 때에 맞춰 왔죠." 리이와 아담이마주 쳐다보았다. 그들은 점심식사를 잊고 있었다. 이 작은 신은 집안에서 마음내키지 않게 치즈와 빵, 냉고기와, 파이, 커피, 초콜렛 케이크 를 받아 들었다. "나는 더운 점심에 버릇이 들어놔서요. 자동차를 갖고 싶으면 어린애들은 쫓으시죠." 식사 를 유유자적하게 들고 베란다에서 잠시 쉰 후에 기계공은 가방을 들고 아담의 방으로 들어 갔다. 잠시 후에 그는 줄무늬 작업복에다 정면에 포드라고 쓰여 있는 하얀 모자를 쓰고 나 타났다. "공부 좀 하셨습니까?" 그가 말했다. "공부라니?" 아담이 물었다. "시트 밑에 있는 설명서를 읽지도 않으셨어요?" "있는지도 몰랐는데." 아담이 말했다. "아이고." 젊은 친구는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이 말해다. 그는 직업적인 도의심을 가다듬고 단호하게 차를 향해 갔다. "시작하는 것이 좋겠군요.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군요." 아담이 말했다. "해밀튼 씨는 어젯밤에 발동을 걸지 못했지." "그분은 항상 자기 시동기로 발동을 걸려고 하죠." 현명한 체하며 청년이 말했다. "좋아 요. 시작 합시다. 내연기관의 원리는 알고 계시죠?" "모르는데." 아담이 말했다. "아이고!" 그는 양철 뚜껑을 열었다. "이것이 내연 엔진이예요!" 리이가 조용히 말했다. "젊은 사람이 박식하군." 청년은 그에게 몸을 홱 돌려 얼굴을 찌푸렸다. "뭐라고 했소?" 그가 다그쳤다. 그러고 나서 아담에게 물었다. "중국놈이 뭐라고 했어요?" 리이는 손바닥을 펼치고 온화하게 미소를 지었다. "아주 영리한 친구라고 했소." 그는 조 용히 말했다. "대학엘 다니는 모양이지. 아주 현명해요." "조우라고 불러 줘!" 청년은 아무 이유 없이 말했다. "대학이라고! 그 친구들이 뭘 알아? 점화기를 달 줄 아나, 줄로 깎을 줄 아나! 대학이라!" 그는 갈색 침을 땅바닥에 퇘 하고 뱉 었다. 쌍둥이들은 그를 부럽게 생각했다. 카알은 자기도 연습을 해보기 위해 혀 속에 침을 모았다. 아담이 말했다. "리이는 자네가 일을 잘 파악하고 있다고 칭찬을 하는 걸세." 청년에게서 잔인성이 사라지고 대신 아량이 나타났다. "나는 조오야. 그것을 알아야 했어. 시카고에 있는 자동차 학교엘 다녔지. 그것이 진짜 학교야 - 대학 같은 것이 다 뭐야. 우리 주인이 그러는데 훌륭한 중국놈을 데리고 있대요 - 내 뜻은 중국 사람이야 - 그는 누구보 다도 훌륭하대요. 정직하니까." "그러나 정직하지 못한 사람은 나쁜 사람이오." "아니야. 나쁜 사람은 정직하지 않은 거요. 그러나 좋은 중국인은 정직하지." "나도 그런 부류에 포함되었으면 좋겠소." "착한 중국 사람같이 보이는데 뭐. 조오라고 불러 줘." 아담은 그 대화에 어리둥절했으나 쌍둥이는 그렇지 않았다. 카알이 시험삼아 아론에게 말 했다. "조오라고 불러 줘." 그러자 아론도 시험 삼아 입을 놀렸다. "조오라고 불러 줘." 기계공은 다시 직업적이 되었으나 어조는 더욱 친절해졌다. 즐거운 듯한 우정이 앞서 경 멸 대신 나타났다. "이것이 내연 엔진이에요." 그들은 외경심을 가지고 볼썽 사나운 쇠뭉치 를 보았다. 이제 청년의 말은 빨라지면서 새 시대의 위대한 노래처럼 들렸다. "밀폐된 공간에 가스가 폭발하여 작동되죠. 폭발력은 피스톤에 작용되고 연결쇠와 크랭크 샤프트를 통하여 뒷바퀴 로 연결돼요. 아시겠어요?" 그들은 물 흐르듯 흐르는 말을 멈추게 하기를 두려워하면서 멍 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2기통과 4기통, 두 종류가 있는데 이것은 4기통이에요. 아시겠어 요?" 그들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쌍둥이들도 선망의 눈초리로 그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고개 를 끄덕였다. "재미있는데." 아담이 말했다. 조오는 서둘러서 설명을 계속했다. "포드 차가 다른 차들과 다른 중요한 점은 혁신적인 원칙에 따라 작동하는 유성 전동장치가 있다는 거예요." 그는 얼굴에 긴장한 빛을 띠면서 잠시 동안 말을 멈췄다. 네 사람이 다시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그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이 것으로 전부를 알게 되었다고는 생각지 말아요. 유성 전동장치란 걸 잊지 마세요. 혁신적인 것이에요. 설명서를 자세히 연구하는 것이 좋아요. 이제 알았으면 자동차 작동으로 들어갑시 다." 그는 이것을 강조하며 말했다. 그는 설명의 제 1부를 끝내게 되어 기뻐하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그보다도 듣는 사람들이 더욱 기뻐했다. 집중력이 그들에게 작용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한마디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해서 집중력을 더 향상시켰던 것은 아니다. "돌아서 이리 오세요. 저기 저것이 보이죠. 점화 키이예요. 저걸 돌리면 앞으로 나갈 준비 가 된 거죠. 자, 이 장치를 왼쪽으로 돌려요. 그러면 배터리로 연결되죠. 봐요. 전자가 써 있 죠. 배터리라는 뜻이에요." 그들은 목을 차 안으로 길게 뽑았다. 쌍둥이들은 디딤대를 밟고 서 있었다. "아니 - 가만 있자. 내가 너무 앞질렀구먼. 먼저 스파크를 줄이고 가스를 늘리세요. 그렇 지 않으면 빌어먹을 놈의 팔을 날려 보낼테니까요. 이게 보이죠? 이게 스파이크에요. 이걸 올려요 - 아시겠죠? - 위로 완전히 위로, 이것이 가스에요. 이것은 아래로 내려요. 설명을 하고 나서 실제로 해보겠어요. 관심을 가져 주세요. 아이들은 차에서 내려요. 햇빛을 막고 있으니 말이야. 내리라니까. 빌어먹을." 아디들은 싫지만 디딤대에서 내려 문너머로 쳐다보 았다. 그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준비됐죠? 스파크를 줄이고 가스를 올리고, 스파크를 올리고 가스를 내리고, 이번엔 배터리에서 스위치를 넣어요. 왼쪽이에요. 기억하세요." 커다란 벌 샅 은 소리가 들렸다. "들려요? 저것이 코일 복스 하나에 연결됐다는 거에요. 이해가 안 되면 요점을 정리해 놓고 요점을 철해 두어도 좋지요." 그는 아담의 얼굴에 놀란 표정이 일고 있 는 것을 보았다. "설명서를 자세히 연구하세요." 르는 친절하게 말했다. 그는 차 앞으로 갔다. "이것이 크랭크에요. 그리고 라디에이터에서 삐죽 나와 있는 작은 철사가 보이죠? 저게 초크에요. 해보일 테니 잘 보세요. 크랭크는 이렇게 잡고 걸릴 때까지 계속 눌러요.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하고 있는 것이 보이죠? 반대로 엄지 손가락을 크랭크 주위에 대고 누르면 튀어나와 엄지 손가락을 뭉개 놓지요. 알겠지요?" 그는 쳐다보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세히 보세요. 압축을 느낄 때까지 눌렀다 놓았다 해요. 그리고 이 철사를 빼고 나서 가 스를 빨아올리도록 조심스럽게 들려요 빨아올리는 소리가 들리죠? 저게 초크에요. 너무 많 이 잡아 당기지 마세요. 그렇게 하면 가스가 넘칠 테니까요. 이제 철사를 놓고 초크를 막 돌 리세요. 엔진이 걸리면 빨리 돌아가서 스파크를 늘리고 가스를 줄이지요. 그러고 나서 손을 뻗어 자석 발동기에 스위치를 넣어요. "자" 라고 쓴 것을 아시죠? 그러면 된 거에요." 듣는 사람들은 기운이 빠졌다. 이런 일들을 다 하고 나서야 엔진이 걸린 것이다. 청년은 그들을 쉬게 하지 않았다. "배울 수 있도록 나를 따라서 해요. 스파크 위로 - 가스 아래로." 그들은 일제히 따라했다. "스파크 위로 - 가스 아래로." "배터리에 스위치." "배터리에 스위치." "압축될 때까지 크랭크, 엄지손가락 아래로." "압축될 때까지 크랭크, 엄지손가락 아래로." "천천히 돌려서 - 초크를 ㅃ고." "천천히 돌려서 - 초크를 빼고." "빙빙 돌려." "빙빙 돌려." "스파크 아래로 - 가스 위로." "스파크 아래로 - 가스 위로." "자기에 스위치." "자기에 스위치." "자, 다시 하겠어요. 조오라고 불러 줘." "그건 아니야. 스파크 위로 - 가스 아래로." 그들이 네 번째 반복을 하고 있을 때 아담에게는 일종의 권태가 몰려왔다. 그에게는 이런 과정이 어리석게 보였다. 잠시 후에 윌 해밀튼이 나지막하고 경쾌한 빨간색 차를 몰고 올 때 그는 해방된 기분이었다. 청년은 다가오는 차를 보고 경애하는 어조로 말했다. "저 차에 는 밸브가 열 여섯 개나 있지요. 특제에요." 윌은 차에서 몸을 내밀었다. "어떻게 돼 가나?" "잘 돼 갑니다." 기계공이 말했다. "빨리들 배워요." "로이, 자네를 태워 가야겠어. 새 장의차의 베어링이 나갔어. 호크 부인을 위해 내일 열 한 시까지는 준비를 해놔야 하니까 자넨 늦게까지 일을 해야겠어." 로이는 효율적으로 몸을 재빨리 움지였다. "옷을 가져 오겠어요." 그는 집으로 달려갔다. 그가 가방을 들고 달려올 때 카알이 길을 막고 서 있었다. "이것봐요. 아저씨 이름이 조오라고 생각했는데?" 카알이 말했다. "조오라니, 무슨 말이야?" "조오라고 불러 달라고 했는데 해밀튼 씨는 로이라고 부르지 않아요?" 로이는 웃으면서 차에 뛰어 탔다. "조오라고 불러달라는 말을 왜 했는지 아니?" "모르겠는데, 왜요?' "내 이름이 로이니까." 그는 웃음을 거두고 아담에게 엄중히 말했다. "시트 밑에 있는 설명서를 자세히 읽으세요. 아시겠죠?" "그렇게 하지." 아담이 말했다. 제 30 장 1 성경에 나오는 시대처럼 그 당시에도 기적들이 있었다. 교습을 받고 난 1주일 후 포드 한 대가 킹 시티 중심가에 큰 소리를 내며 나타나 우체국 앞에 덜덜거리며 멈췄다. 운전대에는 아담이 앉아 있고 그 옆에는 리이가, 그리고 뒷좌석에는 두 소년이 몸을 꼿꼿이 세우고 의 젓하게 앉아 있었다. 아담이 차대를 내려다보고 있을 때였다. "브레이크를 밟고 - 가스를 올리고 - 스위치를 끈다." 작은 엔진이 소리를 내다가 멈췄다. 아담은 나른해 있었지만 그래도 자랑스러운 듯이 잠시 동안 등을 기대고 앉았다가 밖으로 나왔다. 우체국장이 금빛 창살 틈으로 내다보았다. "당신도 그 빌어먹을 놈의 차를 샀구려."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으려고요." 아담이 말해따. "트래스크씨, 말을 볼 수 없을 때가 올 것 같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시골의 면모가 달라지겠소이다. 모든 것이 덜거덕대고 있으니 말입니다." 우체국장이 말 을 이었다. "여기서도 그걸 느껴요. 편지를 찾으러 1주일에 한 번씩 오던 사람들이 이제는 매일 오고 있어. 매일이 뭐야. 하루에 두 번씩일 때도 가끔 있지요. 빌어먹을 넘의 카탈로그 를 기다리지 못하고 돌아 다니는 거지. 늘 돌아 다니는 거예요." 그의 증 오가 하도 격심하 여 그가 아직도 포드를 사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암담은 알았다. 일종의 시기심이 고개를 내 밀고 있었다. "나는 사지 않겠소이다." 우체국장의 이 말은 그의 부인이 차를 사자고 졸라대 고 있다는 뜻이었다. 압력을 가하고 있는 것은 여자들이었다. 차에는 사회적 지위가 내포되 어 있었다. 우체국장은 화가 나서 T복스에서 편지를 뒤적이다가 긴 편지 봉투를 던졌다. "병원에서나 만납시다." 그는 사악스럽게 말했다. 아담은 그에게 미소를 지으면서 편지를 받아들고 나왔다. 편지를 별로 받지 않는 사람은 편지를 가볍게 뜯는 법이 아니다. 무게를 들어보고 발신자 의 성명과 주소를 읽고 필적을 살피고 소인과 날짜를 바라보는 것이다. 아담은 우체국을 나 와 보도를 가로질러 차로 와서야 이런 일들을 했다. 봉투 왼쪽 구석에는 "법률 변호사 벨 로우스 앤드 하비"라고 인쇄도어 있었다. 조소는 아담의 고향인 코네티컷트의 마을 이었다. 그는 유쾌한 어조로 말했다. "벨로두스 앤드 하비는 내가 잘 알지. 무슨 용건일까?" 그는 봉투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내 주소를 어떻게 알았을까?" 그는 봉투를 뒤집어 뒤를 보았 다. 리이가 그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내용을 읽어보시면 알 텐데요." "그렇겠군." 일단 뜯어보기로 결심을 하자 그는 주머니칼을 꺼네 커다란 날을 꺼냈다. 칼 이 들어갈 곳이 있나를 살폈으나 빈곳이 없는 것을 알고, 편지 알맹이를 짜르지 않도록 편 지를 햇볕에 비취보고 나서 한 쪽으로 가볍게 친 다음 다른 쪽을 잘랐다. 끄트머리로 바람 을 불어 넣고는 두 손가락으로 편지르 꺼낸 다음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캘리포니아, 킹 시티, 아담 트래스크 씨 귀하." 편지는 다소 퉁명스럽게 시작되었다. "지난 6개월 동안 우리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당신의 주소를 수소문해 보았습니다. 전 국의 신문에 광고도 내보았으나 헛 일이었습니다. 지방 우체국장이 당신이 동생에게 보낸 편지를 우리에게 전송하고서야 당신의 거처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아담은 그들의 조바 심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 글은 완전히 글투가 달랐다. "알려드리기 슬픈 일입니다만 계씨 인 찰스 트래스크는 작고했습니다. 그는 폐를 2주간 앓다가 10월 12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묘비도 없습니다. 당신이 이 슬픈 일을 맡으시리라 확신합니다." 아담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 는 다음 글을 계속 읽었다. 한숨소리가 되지 않도록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동생 찰스가 죽 었어." "안 됐습니다." 리이가 말했다. 카알이 말했다. "우리 삼촌이에요?" "찰스 삼촌이었다." 아담이 말했다. "나의 삼촌도 되죠?" 아론이 물었다. "물론이지." "삼촌이 있었는지를 몰랐어요." 아론이 말했다. "무덤에 꽃을 가져다 놔야지. 에이브라가 도와줄 거예요. 그 앤 좋아할 거예요." "아주 먼 데다. 이 나라 맨 끝이야." 아론이 흥분하여 말했다. "알았어요. 어머니한테 꽃을 가지고 갈 때 찰스 삼촌에게도 가지 고 가야지." 그는 다소 슬픈 듯이 말을 했다. "죽기 전에 삼촌을 알았으면 좋았을 것을." 그 는 죽은 친척이 많아져 가는 것을 느꼈다. "훌륭한 분이었어요?" "아주 훌륭했지." 아담이 말했다. "카알이 너의 유일한 동생인 것처럼 그도 나의 유일한 동생이었단다." "아버지도 쌍둥이였어요?" "아니야 - 쌍둥이는 아니었어." 카알이 물었다. "부자였어요? 부자였다면 우리가 물려받을 거 아니예요." 아담이 엄중하게 말했다. "사람이 죽었을 때 돈 이야기를 하는 것은 좋지 않아요. 삼촌이 죽었으니까 우리는 슬픈 거야." "어떻게 내가 슬플 수 있어요?" 카알이 말했다. "한 번도 못봤는데." 리이는 웃음을 감추기 위해 손으로 입을 막았다. 아담은 편지를 다시 보았다. 글투가 또 달랐다. "고인의 변호사로서 알리기에 즐거운 일이 있는데, 계씨는 근면과 판단력으로 대단한 재 산을 남겼습니다. 토지와 유가증권과 현금으로 되어 있는 유산은 10만 달러가 넘습니다. 본 사무실에서 작성 날인된 유서는 우리가 갖고 있으며 요구가 있을 때 송부하겠습니다. 내용 에 따르면 모든 재산은 당신과 당신 부인에게 균배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당신의 부인이 사 망한 경우 모든 재산은 당신에게 유산되고, 당신이 사망할 경우 당신 부인에게 유산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편지를 보건대 당신이 생존하고 있기에 축하를 보냅니다. 대리인, 벨로우스 앤드 하비, 조지 하비 씀." 그리고 편지 끝에 휘갈겨 쓴 글얘 있었다. "친애하는 아담? 경기 가 좋다고 해서 당신의 축복을 잊지 말게. 팔스는 한 푼도 낭비하지 않았소. 한 푼을 쪼개 쓰면서 큰 돈을 전 거요. 당신과 부인이 이 돈에서 다소의 기쁨을 얻기 바라오. 그곳에 좋은 변호사가 일할 자리라도 있는지 모르겠소. 내 얘기요. 옛친구 조지하비." 아담은 편지 너머로 아들들과 리이를 쳐다 보았다. 세 사람은 그자 말을 계속하기를 기다 렸다. "무슨 복잡한 일이라도?" 리이가 물었다. "아니." "걱정을 하고 계신 얼굴 같아서." "아니야, 동생 때문에 슬퍼하고 있는 거지." 아담은 마음 속에서 편지의 내용을 정리하려 했으나 남의 둥지에서 알을 낳으려는 암탉 처럼 불안을 느꼈다. 골똘히 생각하기 위해서는 혼자 있어야 되겠다고 새가했다. 그는 차 안으로 들어가 차 장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순서 를 하나도 기억할 수 없었다. 리이가 물었다. "도와 드릴까요?" "우스운 일이구먼!" 아담이 말했다. "어떻게 시작해야 되는지 잊어버렸단 말이야." 리이와 소년들이 부드럽게 말했다. "스파크 위로 - 가스 밑으로, 배터리에 스위치를 넣 고." "아, 그렇지." 코인 복스에서 벌소리 같은 것이 크게 들리는 동안 아담은 크랭크를 걸 고 스파크를 올리고 배터리에 스위치를 젛었다. 그들이 골짜기의 고르지 않은 길을 지나 참나무 밑을 지날 때 리이가 말했다. "고기 사는 것을 잊었구먼요." "그랬나? 다른 것은 먹을 게 없나?" "베이컨과 계란은 어떠세요?" "그것 좋지." "내일이면 편지를 부치셔야 할 텐데, 그때 사시죠." "그래야 하겠군." 저녁식사 준비되고 있는 동안, 아담은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듣는 사람의 도움이 자신 의 생각을 명료하게 만드는 정도에 그친다 하더라도, 리이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하겠다고 아담은 생각했다. 카알은 아론을 밖으로 끌고 나와 높직한 포드가 주차되어 있는 차고로 데 리고 갔다. 카알은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았다. "타라구!" 그가 말했다. 아론이 항의했다. "아버지가 가까이 가지 말라고 했어." "아버진 모르실 거야, 타라니까!" 아론은 겁을 내면서 안으로 들어가 의자에 앉았다. 카알은 운전대를 좌우로 돌렸다. 그는 뛰뛰 자동차 소리를 내면서 말했다. 아론이 항의했다. "아버지가 가까이 말라고 했어." "아버진 모르실 거야, 타라니까!" 아론은 겁을 내면서 안으로 들어가 의자에 앉았다. 카알은 운전대를 좌우로 돌렸다. 그는 뛰뛰 자동차 소리를 내면서 말했다. "내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아? 찰스 삼촌은 부자였다 고 생각해." "아니야." "틀림없다니까." "그러면 아버지가 거짓말쟁이란 말야?" "그렇게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틀림없이 삼촌은 부자였더." 그는 잠시 동안 말이 없었다. 카알은 상상으로 커어브를 돌면서 운전대를 거칠게 돌렸다. "나는 반드시 알아낼 수 있어." "무슨 뜻이야?" "뭐 내기 할래?" "안 할래." 아론이 말햇다. "사슴 다리 호각을 걸지? 그 호각에 나는 돌차기 돌을 걸 테니. 저녁식사 직후에 우리들 보고 자러 가라고 하는지 내기하는 거야. 그렇겠지?" "그럴 것 같아." 아론은 막연히 대답했다. "이유는 모르겠어." 카알이 말했다. "아버지는 리이에게 말하실 거야. 그러면 나는 들을 거야." "못할지 알고?" "내가 고자직이라도 하면." 카알의 눈빛이 싸늘해지고 얼굴색이 검어졌다. 그는 아주 가까이 몸을 굽혔기 ㄸ문에 목 소리는 속삭임이 되었다. "너는 말하지 못할 거야. 만일 고자질하면 아버지 칼을 네가 훔쳤다고 할 테니까." "칼을 훔친 사람이 없는데, 아버지가 갖고 계셔. 칼로 편지를 잘랐는데." 카알은 싸늘하게 웃었다. "내일 말이야." 아론은 그의 말뜻을 알고 고자질을 할 수 없겠다 고 생각했다. 거기에 대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카알은 완전히 안전했다. 아론의 얼굴 에 혼란과 무력함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카알은 기뻐했다. 그는 형을 앞질러 생각하고 계획 을 할 수 있었다. 그는 아버지에게도 똑같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카알의 책략이 리이에게는 먹혀 들어가지 않았다. 리이의 유순한 마음은 힘 안들이고 그를 앞질러 가서 기다리거나 이해하고 있다가 마지막 순각에 가서 "그렇게 하면 안된다." 하고 조용하 게 주의를 주었기 때문이다. 카알은 리이에게 존경심을 품고 있었으나 다소의 두려움도 갖 고 있었다. 그러나 무력하게 그를 쳐다보고 있는 아론은 그의 손아귀에 든 진흙 덩어리나 마찬가지였다. 카알은 갑자기 형에 대하여 깊은 사랑을 느끼고 그의 연약함을 보호해 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는 아론을 팔로 얼싸안았다. 아론은 움찔하지도, 응하지도 않았다. 그는 뒤로 조금 물러서서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카알이 말했다. "어설픈 생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 아론이 말했다. "네가 왜 그런 짓을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무슨 말이야? 무슨 짓을?" "교활하고 비겁한 짓 말이야." "비겁하다니?" "토끼에 대해서도 그렇고, 자동차에 살금살금 타는 일도 그렇고, 너는 에이브라에게 무슨 짓을 했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상자를 버리게 만든 것도 너임에 틀림없어." "허어! 알고 싶지 않아?" 그러나 그는 불안했다. 아론이 천천히 말했다. "그런건 알고 싶지 않아. 다만 네가 왜 그런 짓을 하는지 이유를 알고 싶어. 너는 항상 무엇인가 꾸미고 있어. 네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그것이 무엇에 이 로운지 모르겠어." 카알은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팠다. 그의 계획이 갑자기 비열하고 더러운 것같아 보였다. 그는 형이 자기 정체를 알아냈다고 생각했다. 아론이 그를 사랑해 주었으면 하는 그리움이 떠올랐다. 그는 방향을 잃었고 사랑에 굶주렸음을 느꼈다. 그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아론은 차 문을 열고 내려서 차고 밖으로 걸어나갔다. 잠시 동안 카알은 운전대를 돌리면 서 길을 내닫는 듯 상상했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는 곧 아론을 따라 집으로 향했 다. 2 저녁식사 후 리이가 설거지를 끝내자 아담이 말했다. "너희들은 자러 가거라. 오늘은 큰 일이 있었단다." 아론은 카알을 재빨리 보고는 호주머니에서 사슴다리 호각을 천천히 꺼냈다. 카알이 말했다. "나 그것 안 갖겠어." 아론이 말했다. "이젠 네 꺼다." "글ㅆ, 갖고 싶지 않아. 안 갖는다니까." 아론은 뼈로 된 호각을 테이블 위에 놓았다. "네 것 여기 있다." 아담이 끼어들었다. "무슨 얘기들이냐? 일찍 자러 가라고 말했지 않니?" 카알은 귀여운 소년의 얼굴 모습을 지었다. "왜요? 자러 가기는 너무 이르지 않아요?" 아담이 말했다. "사실은 리이 아저씨하고 개인적으로 할 이야기가 있다. 너무 어두워서밖 에 나가서 놀 수는 없으니까. 자러 가라는 거야. 적어도 너희들의 방에라도 가 있으라는 거 야. 알겠니? "알겠어요." 그들은 리이를 따라서 복도를 지나 집 뒤쪽에 있는 그들의 방으로 갔다. 그들 은 잠옷을 갈아 입고 다시 나와 아버지께 밤인사를 했다. 리이는 거실로 돌아와 복도로 향하는 문을 닫았다. 그는 사슴다리 호각을 집어들고 살핀 다음 다시 놓았다. "무슨 이야기가 왔다갔다 했을까?" 리이가 말했다. "리이, 무슨 말이야?" "저녁식사 전에 내기를 걸았나봐요. 식사 후에 아론이 졌기 때문에 이것을 내 놓은 거지 요.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했던가요?" "자러 가라고 이야기한 것밖에 없는데." "후에 알게 되겠죠." 리이가 말했다. "아이들의 일을 지나칠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군. 별뜻이야 없겠지." "아니예요. 무슨 뜻이 있어요. 트래스크씨, 사람의 생각이 어느 나이가 되면 갑자기 중요 해진다고 생각하세요? 열 살 때보다도 지금의 감정이나 생각이 더욱 예민하고 명료하신기 요? 그때 만큼 잘 보이고, 잘 들리고, 맛을 잘 느낄 수 잇으신가요?" "자네가 옳은지도 모르겠어." 아담이 말했다. "시간이 인간에게 나이와 슬픔 이외에도 다른 많은 것을 준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커다 란 과오인 것 같습니다." "추억을 남겨 주지." "맞아요. 추억이 없다면 시간은 우리에게 무력할 것입니다. 나에겐 무슨 말씀을 하시라고 하셨죠?" 아담은 편지를 호주머니에서 꺼내 테이블 위에 놓았다. "이 편지를 차근차근 읽어보게. 그 런 다음에 이야기를 하세." 리이는 안경을 꺼내 썼다. 램프 밑에서 편지를 읽었다. 아담이 물었다. "어때?" "여기 변호사 일자리가 있어요?" "무슨 뜻인가? 아, 알았네. 농담을 하는 거지?" "아닙니다. 농담을 하지 않았습니다. 모호하기는 하지만 예의바른 동양식으로 내 의견을 말씀드리기 전에 당신의 의견을 알고 싶다는 이야기죠" "틀림없는가?" "틀림없습니다. 동양적인 태도는 집어치우려고 합니다. 나는 나이를 먹으면서 심술궂게 되 어가고 있죠. 참을성이 없어져 가요. 모든 중국인 하인들이 나이를 먹어가면 충성심은 그대 로 갖고 있지만 비열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못들으셨습니까?" "자네 감정을 건드리고 싶지는 않네." "괜찮습니다. 이 편지 이야기를 하고 싶으시죠. 그러면 정직하게 의견을 말씀드릴 수 있을 지, 또는 당신의 의견을 재확인해 드리는 것이 좋을지 알게 될 겁니다." "나는 편지를 이해할 수 없네." 아담이 힘없이 말했다. "당신은 동생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당신이 편지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분을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내가 어떻게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분을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내가 어떻게 이 해를 합니까?" 아담은 일어서서 복도 문을 열었으나 그 뒤로 숨어 버린 그림자를 보진 못했다. 그는 자 기 방으로 가서 퇴색한 갈색 은판사진을 들고 나와 리이 앞에 있는 테이블 위에 놓았다. "이것이 내 동생 찰스네." 그는 다시 복도 문으로 가서 문을 닫았다. 리이는 램프 밑에서 반사를 피해 이리저리 움직이며 번쩍이는 사진을 살폈다. "오래 된 사진이야. 내가 입대하기 전 것이지." 아담이 마했다. 리이는 사진 쪽으로 몸을 바짝 굽혔다. "알아보기 힘든데요. 그러나 표정으로 보아 유모가 많다고는 할 수 없겠군요." "전혀 없지." 아담이 말했다. "전혀 웃지를 않지." "내 뜻은 바로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동생의 유서 조항을 읽었을 때 대단히 잔인한 장 난기가 있는 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신을 좋아했던가요?" "모르겟어." 아담이 말햇다. "나를 좋아했다고 가끔씩 생각했지. 하기야 언젠가는 나늘ㄹ 죽이려고도 햇지만." 리이가 말했다. "그래요. 얼굴에 쓰여 있군요. 사랑과 잔인 두 가지가. 두 가지가 그를 인 색한 사람으로 만들었군요. 인색한 사람이란 돈이라는 요새 속에 숨어 있는 겁쟁이 죠. 그분 이 부인을 알고 있었나요?" "알고 있지." "좋아했었나요?" "미워했지." 리이는 한숨을 지었다. "그것은 정말 문제가 안 되죠. 당신의 문제가 아니죠?" "내가 알 바 아니지." "문제를 꺼내서 생각해 보고 싶으세요?" "내가 바라는 것이 그것이야." "그러면 해보세요." "생각이 명료하게 되지 않는데." "그러면 당신 대신 내가 카드를 내놔 볼까요? 제 3자는 가끔씩 그렇게 할 수 있지요." "그렇게 했으면 좋겠네." "그러면 좋습니다." 리이는 갑자기 중얼거리더니 얼굴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는 여위고 작은 손으로 둥근 척을 잡았다. "저런! 그것에 대해선 생각지도 않았네요." 아담은 불안하게 몸을 움직였다. "빨리 얘기해 주었으면 좋겠어." 그는 조바심이 나는 듯 말했다. "칠판에 쓰여진 숫자처럼 난해하게 만들고 있구먼." 리이는 갸름한 흑단 물뿌리 컵 모양의 작은 놋쇠 대통이 달린 파이프를 호주머니에서 꺼 냈다. 잘 썰어서 머리카락처럼 보이는 잎담배를 골무 모양으이 대통에 채우고 불을 붙인 다음 길게 네 모금 빨고 나서는 불을 껐다. "아편인가?" "아니에요. 싸구려 중국산 잎담배입니다. 고약한 냄새가 나지요." "그런데 왜 피우나?" "모르겠어요. 무엇인가 생각나게 만든다고 믿고 있지요 - 무엇인가 명료하게 연상시키죠. 복잡한 것은 아니지만요." 리이의 눈까풀이 반쯤 덮였다. "그러면 됐엉. 당신의 생각을 계란 국수처럼 끌어내서 햇볕에 말리도록 하죠. 그 여자는 아직도 생존해 잇는 당신의 부인입니 다. 유언에 따르면 5만 달러 이상을 유산으로 받게 되어 있지요. 만일 동생이 그 여자가 어 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는 경우, 그래도 그 여자에게 돈을 남겨 주려고 할까요? 법정은 항상 유언자의 의사에 따르죠." "동생은 그걸 원치 않을 걸." 아담은 찰스가 술집 위층에 있던 여자들을 주기적으로 찾아 가던 일을 생각했다. "당신은 동생을 위해서 생각해야만 될지도 모르죠. 부인이 하는 일은 선한 것도 악한 것 도 아닙니다. 성자는 흙 속에서도 나올 수 있지요. 그 여자는 이 돈을 가지고 어떤 훌륭한 일을 할지도 몰라요. 박애로의 도약대로써 악심만한 것도 없습니다." 아담은 몸서리를 쳤다. "그 여자가 돈이 있다면 어떤 짓을 하려고 하는지를 나에게 말해주더군. 자선이라니, 천만 에. 살인에 가까운 짓을 할 걸세." "그러면 그 여자에게 돈을 줄 수 없는 겁니까?" "샐리너스에 있는 많은 유명인들을 파멸해 버리겠다고 그 여자는 말했어. 그 여자는 그런 일을 족히 할 수 있어." "알겠어요. 이 문제를 초연하게 볼 수 있어서 기쁩니다. 명사들의 팬티에 보잘 것 없는 곳 이 있음이 틀림없군요. 그래서 도덕적으로 그 여자에게 돈을 줄 수 없다는 거죠?" "그렇지." "그러면 이걸 생각해 보시죠. 그 여자는 이름도, 배경도 없습니다. 창녀는 땅에서 솟아나 는 거죠. 그 여자가 이 사실을 안다 하더라도 당신의 도움 없이는 돈을 요구할 수 없습니 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그렇지 내 도움 없이는 돈을 요구할 수 없겠지." 리이는 담뱃대를 꺼내 작은 양철 핀으로 재를 긁어낸 다음 다시 대통을 채웠다. 그는 네 모금을 천천히 빨면서 무겁게 덮였던 눈까풀을 치켜 올리고 아담을 살폈다. "대단히 미묘한 도덕적인 문제군요. 허락을 해 주신다면 나의 영예로운 친지들에게 생각 해 봐 주십사 하고 싶군요. 물론 이름은 밝히지 않고요. 애들이 개의 진드기를 잡듯이 그분 들은 이 문제를 조사할 겁니다. 그분들이면 흥미로운 결과를 끌어낼 것이 틀림없어요." 그는 담뱃대를 테이블 위에 놓았다. "망설일 필요가 없으시죠?" "무슨 말인가?" "글쎄요. 나보다도 자신을 그렇게 모르세요?" "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르겠네. 생각을 많이 해봐야겠어." 리이는 화를 내며 말했다. "내가 시간을 낭비했구먼요. 당신은 자기에게서 거짓말을 하고 계신 겁니까, 아니면 나에게만 거짓말을 하고 계신 겁니까?" "나한테 그렇게 말하지 말게." "왜 못해요? 나는 항상 거짓을 싫어해 왔어요. 당신의 길은 결정됐어요. 당신이 한 일은 명백해요 - 당신의 입김에 나타나 있어요. 나는 하고 싶은 대로 말하겠어요. 괴팍하니까요. 나는 몸이 근질거려요. 고서의 추악한 냄새와 명석한 사고와 향기를 예견하고 있어요. 도덕 적 갈림길에 직면하는 경우, 당신은 훈련된 대로 행동할 거예요. 소위 사색이라는 것이 그 훈련을 바꾸어 놓진 못할 거요. 부인이 샐리너스의 창녀라는 사실도 사태를 변경시키진 못 할 겁니다." 아담은 벌떡 일어섰다. 얼굴에는 노기가 등등했다.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인지 무 례하구먼." 그가 소리쳤다. "돈을 어떻게 할 지 마음의 결정을 못 내렸네." 리이는 깊은 한 숨을 쉬었다. 그는 무릎을 짚고 일어서서 작은 체구를 꼿꼿이 세웠다. 그는 지친 듯이 걸어가서 앞문을 열었다. 그는 돌아서서 아담에게 미소를 지었다. "빌어먹을, 어리석기는." 그는 상냥하게 말하고는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3 카알은 어두운 호올을 조용히 기어서 형이 자고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더블베드의 베개 위로 형의 머리 모습이 보였으나 그가 잠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아주 조용히 자기 이불 속으로 들어가서 머리 뒤로 손가락을 받이고 수 많은 유색 미립자로 구성된 어두움을 응시했다. 차일대가 봉긋해지더니 밤바람이 불어들고 낡은 차일 대가 조용히 펄럭였다. 회색의 부드러운 우울이 그를 엄습했다. 아론이 차고에서 나오지 않았었더라면 하고 마음 속으로 바랬다. 그리고 자기가 문에 쭈 그리고 앉아 엿들은 일을 후회했다. 그는 어둠 속에서 입술을 움직여 그 말을 조용히 내뱉 었다. 그러나 그 소리가 들렸다. "주여, 나로 하여금 아론과 같이 되게 해주십시오. 나를 비열하게 만들어 주지 마십시오. 그렇게 되고 싶지 않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드릴 테니, 모든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게 해 주십시오. 그렇게 되지 않으면 내가 나아가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비열하게 되고 싶지 않습니다. 외로워지고 싶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따뜻한 눈물이 서서히 그의 두 뺨에 흘러내렸다. 그는 울음이나 훌쩍이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몸을 긴장하여 애를 썼다. 아론이 어둠 속 베개에서 속삭였다. "너무 춥구나, 싸늘한데." 그는 손을 뻗어 카알의 손 을 잡았다. 소름이 돋아 있었다. 그가 부드럽게 물었다. "찰스 삼촌은 돈이 많던?" "아니야." 카알이 대답했다. "오랫동안 나가 있었는데, 아버지가 무슨 말씀을 하시던?" 카알은 가만히 누워서 숨결을 죽이려고 애를 썼다. "이야기해 줄게." 카알이 속삭였다. 그는 등을 대고 돌아누웠다. "아버지가 어미니에게 꽃 다발을 보내실 작정이야. 아주 커다란 카네이션 꽃다발을." 아론은 몸을 반쯤 일으키고 흥분하여 물었다. "그래? 그 먼 곳싸지 어떻게 보내실 작정이 시지?" "기차에 실어서. 그렇게 크게 말하지만." 아론은 목소리를 낮추었다. "시들지 않을까?" "꽃다발 주위에 얼음을 채우신데." 아론이 물었다. "얼음이 많이 들지 않을까?" "많이 들겠지." 카알이 말했다. "이제 자." 아론은 아무 말도 없다가 다시 말을 꺼냈다. "꽃이 싱싱하게 그곳 까지 갈 수 있으면 좋 겠다." "그렇게 되겠지." 카알이 말했다. 그는 마음 속으로 울부짖었다. "나를 비열하게 되지 않 도록 해주십시오." 제 31 장 1 아담은 오전 내내 집안을 서성거리며 생각에 잠겼다가 점심때가 되어서야 리이를 찾으러 밖으로 나갔다. 그는 퇴비를 주어 검어진 야채밭을 갈아 당근, 근대, 무, 콩, 양배추와 같은 봄 채소를 심고 있었다. 팽팽하게 맨 줄을 따라 채소 이랑이 쪽 고르게 되어 있었으며, 이랑 끝에는 말뚝을 박아 채소 이랑을 알 수 있도록 씨봉지를 매어 놓았다. 채소밭 끝에 있는 묘 포에는 토마토와 벨 페퍼와 캐비지 모종이 이삭될 준비를 갖추고 위험한 서리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담이 말했다. "내가 어리석었던가봐." 리이는 삼지창 삽에 몸을 기대고 그를 조용히 쳐다보았다. "언제 가시렵니까?" "2시 40분 차를 타고 갔다가 여덟 시 차로 돌아오겠어." "편지로 사연을 전하시지요." 리이가 말했다. "그런 생각도 했지. 자네 같으면 편지를 쓰겠나?" "아니오. 당신이 옳습니다. 그 점에 대해선 제가 잘못 생각했지요. 편지론 안 되겠군요." "가야겠네." 아담이 말했다. "여러 모로 생각을 해봤으나 가죽끈에 매달린 사람처럼 항상 되돌아오지." 리이가 말했다. "다른 여러 가지 면에 있어서는 정직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 점에 있어 서는 정직할 수밖에 없지요. 행운을 빕니다. 그 여자가 무슨 말을 하고 어떻게 행동을 햇는 가를 들으면 재미 있겠습니다." "마차를 타고 가겠어. 킹 시티의 보관소에 맡겨야지. 혼자서 포드를 몰면 신경이 쓰여서." 아담이 케이트 집의 흔들거리는 계단을 올라 폭우에 시달린 문을 두드렸을때는 4시 15분 이었다. 전과는 다른 사람이 문을 열었다. 그는 얼굴이 네모진 필란드 사람드로 샤쓰와 바지 차림이었다. 넓은 소매에 빨간 비단 팔 밴드를 두르고 있었다. 그는 아담을 현관에 세워논채 안으로 들어갔다가는 잠시 후에 돌아와서 식당으로 안내했다. 장식을 하지 않은 큰 방이었다. 벽과 나무 벽관은 하얗게 칠해져 있었다. 길고 네모진 테 이블이 방 가운데 있고 하얀 유포 위에는 접시와 캅그 받침접시가 있었다. 컵은 받침접시 위에 거꾸로 놓여 있었다. 케이트는 자기 앞에 장부를 펼쳐 놓고 테이블 머리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옷은 수수했다. 그녀는 보안용 눈가리개를 쓰고 노란 연필을 불안한 듯 손가락 안에서 돌리고 있었다. 그녀 는 문간에 서 있는 아담을 차갑게 쳐다보았다. "이번엔 무슨 용무죠?" 필란드 남자가 아담 뒤에 서 있었다. 아담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테이블로 걸어가서 그녀 앞에 있는 장부 끝에 편지를 내밀 었다. "이건 뭐예요?" 그녀는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편지를 재빨리 읽어나갔다. "문을 닫고 나가요." 그녀는 필란드 사람에게 명령했다.] 아담은 그녀 옆에 잇는 테이블에 앉았다. 그는 접시를 밀어내고 모자를 놓았다. 문이 닫히자 케이트가 말했다. "이건 농담이에요? 아니지. 당신은 농담을 한 일이 없지." 그녀는 생각에 잠겼다. "당신 동생이 농담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죠. 정말 죽었어요?" "편지만을 받았을 뿐이오." "이걸 나더러 어떻게 하란 말이에요?" 아담은 어깨를 움츠렸다. 케이트가 말했다. "나더러 서명을 하라고 한다면 시간 낭비밖에 안될 거예요.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아담은 모자 테의 까만 리본 주위를 천천히 만졌다. "법률 사무소로 넘어간 거요. 거기에 쓰여 있는 대로요." "추신을 쓴 사람은 당신의 친구 같은데, 그에게 무어라고 편지를 썼어요?" "아직 회답을 쓰지 않았어." "무어라 회답을 쓸 작정이에요?" "똑같은 말을, 당신은 다른 마을에 산다고." "이혼을 했다고 쓸 수는 없어요. 이혼을 하진 않았으니까요." "이혼을 했다고 쓸 생각은 없소." "나를 매수하는 데 얼마나 비용이 드는지 알겠어요? 현금으로 4만 5천 달러를 받겠어요." "안 되오." "아니라니 무슨 말이에요? 깎을 수는 없어요." "값을 깎는 것이 아니야. 당신이 편지를 갖고 있으니, 나만큼 당신도 알고 있어. 당신 마 음대로 하시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뽐내게 됐지요?" "안도감을 갖고 있으니까." "그녀의 투명한 녹색 눈가리개 밑으로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짧은 그녀의 곱슬머리가 논 색 지붕에 매달려 있는 덩굴처럼 코위에 늘어져 있었다. "아담, 당신은 바보예요. 당신만 입을 다물고 있으면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몰랐 을 거예요." "나도 알고 있소." "알고 있어요? 내가 돈 요구를 하기가 두려울 거라고 생각했던가요? 그렇게 생각했다면 참 지독한 바보군요." 아담은 참을성 있게 말했다. "나는 당신이 무슨 짓을 하든 상관하지 않아." 그녀는 비꼬듯이 그에게 미소를 지었다. "상관하지 않는다고요?" 쳇! 먼저의 보안관이 남 겨논 영구 지령이 보안관 사무실에 있는 데, 그것은 만일 내가 당신의 이름을 쓴다든지, 또 는 내가 당신의 부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경우, 나는 이 군에서 뿐만아니라 이주에서 쫓겨 나게 된다는 것이에요. 어때요. 당신을 유혹할 만한 가요?" "내가 무슨 짓을 하도록 유혹한단 말이오?" "나를 쫓겨나게 하고는 돈을 전부 가로채는?" "내가 편지를 들고 왔어." 아담은 참을성 있게 말했다. "그 이유를 알고 싶은 거예요." 다암이 ㅁ라했다. "당신이 무엇을 생각하든지 또는 당신이 나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든 지 나는 관심없소. 찰스가 유언으로 그 돈을 당신에게 남겨 놓았어. 찰스는 아무 조건도 제 시하지 않았어. 내가 그 유서를 보지는 않았지만 당신이 그 돈을 갖도록 되어 있소." "당신은 5만 달러를 가지고 아슬아슬한 놀음을 하고 있으면서도 결판을 내버리려고 하지 않는 구먼요. 속셈이 무엇인지 모르겠군요. 알아내겠어요." 그녀는 계속해서 말했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당신은 별로 영리하지 못한데. 누가 충고를 하고 있어요?" "아무도 없어." "중국 사람은 어때요? 영리한데." "그도 아무 충고를 하지 않았어." 아담은 자신이 전혀 무감정 한 데 재미가 났다. 자기가 여기에 와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가 그녀를 흘낏 보았을 때 그녀의 얼굴에는 전에는 전혀 보지 못했던 어떤 감정의 표시가 나타나는 것을 보고 놀랐다. 케이트는 두려워 했다. 그가 두려웠다. 그러나 이유는? 그녀는 얼굴 표정을 억제하여 두려움을 쫓아냈다. "당신은 정직하기 때문에 이렇게 한다 는 거죠? 당신은 설탕처럼 너무 달콤하여 이 세상에서 살 수 없을 지경이군요." "그런 걸 생각해 본 적도 없어. 이것은 당신의 돈이야. 그리고 나는 도둑놈이 아니야. 당 신이 그것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든 나에겐 상관없어." 케이트는 눈가리개를 머리 위로 젖혔다. "당신이 이 돈을 내 무릎위에 떨어뜨리고 있다고 내가 생각하기를 바라고 있죠. 무슨 꾀를 부리고 있는지 알아내고 말거예요. 내가 이런 어리 석은 미끼에 걸려들거라고 생각했던가요?" "당신의 우편주소는 어디요?" 그가 참을성 있게 물었다. "당신에게 무슨 소용이에요?" "당신과 접촉할 수 있는 주소를 변호사에게 알릴 작정이오." "그런 짓 말아요!" 그녀는 회계장부 속에 편지를 넣고 표지를 덮었다. "이것은 내가 보관 하겠어요. 법률적 조언을 받겠어요. 내가 안 하리라고 생각지 말아요. 이제 그 순진한 모습 은 집어치워요." "당신이 좀 순진해봐요." 아담이 말했다. "당신 것은 당신이 가져요. 찰스가 그 돈을 당신 에게 유언으로 남긴 거야. 내 것이 아니야." "내, 기어코 속임수를 찾아내고 말 걸." 아담이 말했다. "당신은 이해를 못하는구먼. 난 상관없어. 나는 많은 일들을 이해하지 못 하겠어. 어떻게 나를 쏘았는지. 어떻세 자식들을 버렸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단 말야. 어떻게 이런 꼴로 살아가는지도 이해 못하겠소." 그는 손을 저어 그 집을 가리켰다. "누가 당신 보고 이해하랬어요?" 아담은 일어서서 테이블에서 모자를 집어들었다. "그 얘긴 끝난 것 같군. 잘 있소." 그는 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녀가 뒤에서 소리쳤다. "꽁생원님, 많이 변했네요. 드디어 여자가 생긴 모양이죠?" 아담은 멈춰 서서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의 눈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아깐 미처 생각을 못했는데." 그는 위에서 내려다봐야할 정도로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녀는 고개를 젖 히고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나는 당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소." 그는 천천히 말 을 이었다. "그런데 이제야 당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생각나는군." "꽁생원님, 내가 뭘 이해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당신은 인간의 추악한 면을 알고 있소. 나에게 그 사진들을 보여주기도 했고, 당신은 인 간이 가진 서글픈 모든 약점을 갖고 있다는 것은 아무도 모르지." "누구나 다 - " 아담은 말을 이으면서도 자신의 생각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당신은 - 그렇지, 맞 아 - 당신은 나머지 것을 모르고 있어. 내가 당신의 돈을 탐내지 않고 편지를 손수 들고 왔 다는 것을 당신은 믿지 않소. 당신은 내가 당신을 사랑했었다는 것을 믿지 않아. 추악한 것 을 찾아 여기에 찾아드는 사람들, 사진에 나타나 있는 이 사람에게도 착한 면과 아름다운 면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아, 당신은 일면만을 보고서 그것이 전체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녀는 조롱하듯 깔깔 웃었다. "멋대로 비난을 해봐요. 꽁생원님은 정말 달콤한 공상가이 시군! 꽁생원님, 설교를 해보시죠." "아지, 그만두겠어. 당신은 어딘지 모자라는 면이 있는 듯하니까. 녹색을 보지 못하는 사 람이 자기네들이 못본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는 수도 있지. 당신도 그런 사람인 것 같 군. 그런건 나도 어떻게 할 수가 없지. 내가 이상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주위에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당신이 느낀 적이 있는가 하는 거야. 만일 주위에 그것이 있다는 것을 알 면서도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다면 정말 무서운 일이지. 무서운 일이고 말고." 케이트는 의자를 밀어젖히고 일어섰다. 양 허리에 두 주먹을 불끈 쥐고는 스커트 주름 뒤 에 숨겼다. 그녀는 자기 목소리 속으로 기어드는 째지는 소리를 억제하느라고 애썼다. "우리 꽁생원님은 철학자시네. 그런데 다른 일에도 그렇지만 철학엔 신통치 않네요. 환각 이라는 말 들어봤어요? 만일 내가 볼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병든 당신 마음 속에서 만들어낸 꿈일 것이라고 생각지 않아요?" "천만에, 당신이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아." 그는 문 밖으로 나가 문 을 닫았다. 케이트는 앉아서 닫힌 문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기가 주먹으로 하얀 유포 위를 가 만히 내려치고 있는 것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네모진 하얀 문이 눈물 속에서 뒤틀려 보이 고 자신의 몸이 분노 같기도 하고 슬픔 같기도 한, 무엇 때문에 떨리고 있다는 것만은 깨닫 고 있었다. 2 아담은 케이트의 집을 나온 후, 두 시간 이상이나 기다려서 킹시티로 가는 기차를 탔다. 그는 어떤 충동에 못이겨 메인 스트리트를 벗어나 중앙로를 걸어서 130번지의 높고 하얀 어 니스트 스타인벡의 집으로 향했다. 꽤 장엄하지만 허식이 없는 깨끗하고 정다운 집이었다. 하얀 담장 안에 자리잡은 그 집은 말끔한 잔디에 둘러싸여 있었고, 장미와 카터니아스가 하 얀 담을 뒤덮고 있었다. 아담은 넓은 베란다의 계단을 올라가 초인종을 눌렀다. 올리브가 문으로 나와 문을 빠끔 히 열었다. 메리와 존이 그녀의 양곁에서 내려다 보고 있었다. 아담이 모자를 벗었다. "저를 모르시겠지만, 아담 트래스크라는 사람입니다. 선친의 친구 였죠. 해밀튼 부인에게 인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저의 집 쌍둥이 애들을 보살펴 주셨죠." "아, 그렇구먼요." 올리브는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잠깐만 기다리 세요. 어머니에게 거처방을 따로 만들어 드렸지요." 그녀는 넓은 앞 복도에서 떨어져 있는 방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어미니! 손님 오셨어요." 그녀는 문을 열고 라이저가 거처하는 밝은 방으로 아담을 안내했다. "전 이만 실례하겠어 요." 그녀가 아담에게 말했다. "카트리나가 닭찜을 하고 있어서 돌봐줘야겠어요. 존! 메리! 가자. 가자!" 라이저는 전보다도 더 작아 보였다. 그녀는 고리버들로 만들 흔들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정말 늙어 있었다. 검정색 알ㅍ로 만든 넓은 스커트를 입고 있었으며 목에는 "어머니" 라고 쓰여진 금으로 된 핀을 달고 있었다. 아늑한 침실 겸용 방에는 사진들, 화장품 병, 레이스 바늘꽃이, 솔, 빗, 수많은 생일과 크 리스마스 때 받은 도자기와 은제품들이 꽉차 있었다. 벽에는 음영이 잘 나타낸 새뮤얼의 커다란 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 사진에는 생전에는 찾 아볼 수 없었던 차고 고원한 위엄 - 깨끗하게 정장을 하여 나타나는 소원함이 나타나 있었 다. 그러나 사진에는 그의 얼굴에서 반짝이던 빛도, 탐구하는 희열도 엇ㅂ었다. 두툼한 금박 틀에 들어 있는 사진의 눈초리가 방 어디에 있거나 뒤쫓아 온다고 어린아이들은 대경실색하 였다. 라이저 옆에 잇는 고리버들 테이블 위에는 앵무새 새장이 있었는데, 톰이 어떤 선원에게 서 사온 앵무새가 그 안에 있었다. 쉰살이나 되었다고 하는 그 늙은 앵무새는 야비한 생활 을 하는 선원들의 야비한 말들을 알고 있엇다. 라이저는 그놈이 어렸을 때 배운 우스꽝스러 운 말 대신에 시편을 가르치려고 애를 썼으나 헛일이었다. 폴리라는 그 앵무새는 머리를 갸 우뚱대면서 아담을 살피다가 주둥이 밑의 털을 조심스럽게 앞발로 긁었다. "고만둬, 바보 야." 폴리는 아무 감정도 없이 말했다. 라이저가 새를 보고 얼굴을 찡그렸다. "폴리." 그녀가 엄하게 말했다. "점잖지 못해." "더러운 바보!" 폴리가 지껄였다. 라이저는 저속한 말을 무시했다. 그녀는 작은 손을 내밀었다. "트래스크 씨, 만나봐어 반 갑습니다. 앉으세요." "지나가다가 조의를 표하고 싶어서요." "꽃은 받았습니다." 라이저는 이렇세 세월이 흘렀어도 보내온 화환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 다. 아담은 시들지 않은 좋은 꽃다발을 보냈었다. "생활을 재정리하시는데 어려움이 많았겠습니다." 라이저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글썽 했다. 그년느 약한 마음을 감추려고 작은 입을 꼭 다물 었다. 아담이 말했다. "아픈 마음을 되새기시게 해드린 것 같습니다만. 나는 그분이 그립습니 다." 라이저는 고개를 돌렸다. "그곳은 사정이 어떻습니까?" "올해는 좋습니다. 비가 많이 왔지요. 목초가 이미 많이 자랐습니다." "톰의 편지에도 그랬더군요." "입 닥져." 앵무새가 말했다. 라이저는 자식들이 버릇없이 굴 때 하듯이 그년는 앵무새를 노려보았다. "샐리너스에 무슨 일로 오셨는지요. 트래스크씨." "일이 좀 있어서요." 그가 앉아 있는 의자가 몸무게를 받아 삐걱소리를 냈다. "이리 이사 를 올까 합니다. 자식들에게 좋을 것 같아서요. 농장에서는 외로워하죠." "우리가 농장에 있을 때는 외롭지 않았어요." 그녀가 거칠게 말했다. "여기의 학교가 더 낫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죠. 쌍둥이에게 도움이 될지도 몰라서." "우리 딸 올리브가 피치트리와 플레이토와 더 빅서 등의 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었지요." 그녀의 말투로 보아 그 학교보다 더 좋은 학교는 없다는 것이 명백했다. "그저 그런 생각을 해봤을 뿐입니다." "시골에서 자란 아이들이 훨씬 더 좋습니다." 이것은 법칙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것을 자기 아들로써 증명할 수 있었다. 그녀는 그를 자세히 쳐다보았다. "샐리너스에서 집을 구할 작정이세요?" "글세, 그럴까 합니다." "우리 딸, 데시를 만나 보세요. 그 앤 농장으로 되돌아가서 톰과 같이 살 속셈이지요. 레 이노드 베이커리 다음 골목에 아담한 집을 갖고 있지요."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담이 말했다. "그럼 가볼까 합니다. 이렇게 잘 지내시는 것을 보니 반갑습니다." "고맙습니다. 나는 편안해요." 그녀가 말했다. 아담이 문 쪽을 향해 일어섰을 때 그녀가 말했다. "트래스크씨, 톰을 만나보셨어요?" "못 봤습니다. 아시다시피 제가 집을 떠나본 적이 없어서요." "한 번 그애를 만나 보셨으면 좋겠어요. 그애는 외로워요." 그녀는 이런 말을 터놓은데 대 하여 놀란 듯이 입을 다물었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그가 문을 닫을 때 앵무새가 지껄이는 소리가 들렸다. "입 닥쳐, 형편없는 바보야!" 라이 저가 야단을 쳤다. "폴리야, 말조심하지 않으면 때려줄 테다." 아담은 집을 나와 메인 스트리트를 향해 저녁 길을 걸어갔다. 레이노드 프렌치 베이커리 옆 골목에서 아담한 정원 안에 자리잡은 데시의 집을 발견했다. 아당에는 쥐똥나무가 하도 무성하여 집이 보이지 않았다. 말끔하게 페인트 칠한 간판이 앞문에 걸려 있었다. 간판에는 "의상실 데시 해밀튼" 이라고 쓰여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간이 식당은 메인 스트리트와 센트럴스트리트 모퉁이에 있었다. 그 양쪽에 창문이 나 있었다. 아담은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그 안으로 들어갔다. 윌 해밀튼이 구석 테 이블에 앉아 스테이크를 먹고 있었다. "이리 오세요." 그가 아담에게 소리쳤다. "일이 있어 오셨어요?" "응" 아담이 말했다. "자네 어머니를 만나 뵙고 오는 길이네." 윌은 포크를 내려 놓았다. "나는 여기 한 시간 정도 ㅁ무르고 있어요. 어머니가 흥분하실 까봐 만나뵈러 가지 않았어요. 올리브 우니 역시 내가 가면 특별식을 준비한다고 야단을 떨 기 때문에 가지 않았지요. 게다가 곧 돌아가야 하기도 하고요. 스티이크를 주문하세요. 잘합 니다. 어머니는 어떠세요?" "용기가 대단하시더군. 만날 때마다 더 존경심을 갖게 된다니까." "어머니는 그러세요. 자식들과 남편에 대해서 대단한 분별력을 가지고 대하셨죠." "스테이크를 중간치로 해주게." 아담이 웨이터에게 말했다. "감자는요?" "프렌치 프라이드로 하지. 자네 어머니는 톰 걱정을 하고 계시던데, 그는 어떤가?" 윌은 스테이크에서 기름을 잘라내 접시 옆으로 밀어냈다. "걱정하실 이유가 있지요. 톰에 게 문제가 있어요. 그는 마치 기념물 처럼 배회하고 다니죠." "내 생각에 그는 아버지에게 의지하고 있었던 거 같다." "지나칠 정도로 그랬죠." 윌이 말했다. "거기서 헤어나지를 못하는 것 같아요. 어떤 의미 에서 톰은 덩치 큰 어린애죠." "가서 그를 만나 보겠네. 어머니 말씀이 데시가 농장으로 돌아 가려고 한다지?" 윌은 나이프와 포크를 내려놓고 아담을 쳐다보았다. "그렇게 할 수 없지요. 그렇게 못하게 하겠어요." "왜 안되나?" 윌은 내심을 감추었다. "글쎄요, 그앤 여기서 좋은 직업을 갖도 또 잘 살고 있지요. 그것 을 집어치운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요." 그는 다시 나이흐와 포크를 집어들고 고기를 잘 라 입에 넣었다. "나는 여덟시 기차로 돌아갈 생각이네." "나도 그래요." 윌은 더 이상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제 32 장 1 데시는 가족들의 사랑을 독차지 했었다. 귀여운 말괄량이 몰리, 마음이 단단한 올리브, 몽 상가 우나 등도 사랑을 받았지만, 데시는 따뜻한 사랑을 받았다. 그녀의 반짝이는 눈빛, 널 리 쾌활한 웃음은 수두처럼 번져 갔으며 쾌활한 성격은 하루를 즐겁게 하고 그것이 사람들 에게도 파급되어 그들도 그녀의 쾌활을 몸에 지니고 돌아갔다.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샐리너스, 처치 스트리트 122번지에 애그니스 모리슨이란 부인이 살고 있었는데, 그녀에게는 세 자녀와 포목상을 하는 남편이 있었다. 아침식사때 가 끔씩 애그니스 모리슨은 "식사 후에 데시 해밀튼 의상실로 가봉을 하러 가야지." 이렇게 말 하곤 했다. 어린아이들은 기뻐서 동전같은 발부리로 테이블 다리를 걷어 차다가 주의를 들었다. 모리 슨 씨는 그날 도부장수라도 찾아오기를 기대하면서 손을 비비고 가게로 나갔다. 아니나 다 를까 도부장수가 찾아와서 많은 주문을 했다. 어린애들과 모리슨씨는 왜 그리 운좋은 날인 가를 잊어버렸을지도 모른다. 모리슨 부인은 두 시에 레이노드 베이커리 옆 집에 갔다가 네시에 돌아왔다. 돌아올때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빨갛게 된 코에서는 콧물이 흘렀다. 돌아오면서 그녀는 콧물을 닦고, 눈물을 닦고, 웃음을 지었다. 대시가 한 일은 그저 쿠션에 까만 바늘 몇 개를 꽅아 침례교 목사처럼 보이게 하고, 그 바늘 겨레 로 하여금 무미건조한 짧은 설교를 하도록 만들었는지 도 모른다. 아니면 데시가 테일러 할아버지를 만났을 ㄸ의 이야기를 했는지도 몰느다. 그 할 아버지는 고옥을 여러 채 사서 그가 소유하고 있는 공지에 옮겼는데 하도 집이 많이 들어서 서 그 땅이 마치 육지의 해초섬처럼 보였다는 이야기였다. 아니면 (수다장이) 라는 잡지에서 시 한 편을 몸짓을 하며 읽었는지도 몰느다. 어떤 일이든 그것은 상관없었다. 그녀의 그러한 것들은 마음을 훈훈하게 하고 사람들을 매혹시킬만큼 우스웠다. 학교에서 돌아온 모리슨 씨 댁 어린아이들에게는 어디 아픈데도 잔소리도 두통도 없었다. 떠들어도 더러운 얼굴을 해도 아무 주의도 듣지 않았다. 킬킬대고 웃으면 어머니도 따라서 웃었다. 귀가한 모리슨 씨는 그날의 일을 가족들로 하여금 듣게 하고, 도부장수의 이야기를 했다 - 적어도 몇 건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저녁식사 맛은 일품이었다 - 오믈렛은 조금도 풀어지 지 않았고 케이크는 가볍게 풍선처럼 부풀어올랐고 비스킷은 바삭바삭 보풀이 있었고애그니 스 모리슨이 만든 스튜는 누구도 따를 수 없을 만큼 맛있었다. 식사 후에 아이들이 낄낄 대 고 웃다가 잠들고 나면 모리슨 씨는 오래된 사랑의 표시로 애그니스 어깨에 손을 얹고 침실 로 들어가 사랑을 나누고 행복해 했다. "데시를 방문했던 기분은 이틀 동안 더 계속되다가 점점 사그라지고 열은 두통이 되돌아오고 사업은 작년만큼 좋지 않게 되었다. 이것이 데시 의 모습이며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녀는 새뮤얼처럼 팔에 흥분을 안고 다녔다. 그 녀는 가족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데시는 예쁘다고 할 수 없었지만, 남자들로 하여금 여자들을 따라 다니게 만드는 마음의 훈훈함을 갖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게 되면 첫사랑의 상처를 이겨내고 다른 사랑을 찾아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도 하겠지만 실제로 그녀는 그러지 못했다. 해밀튼 가족은 비록 다재다 능했지만 사랑의 문제에 있어서는 그러지 못했다. 누구 하나 가볍고 변하기 쉬운 사랑을 할 수 있을 성 싶지 않았다. 데시는 단지 손을 들고 포기하고 있는 것만이 아니었다. 그 이상으로 비참했다. 그녀는 하 던 일을 계속하고 옛날의 모습 그대로였다 - 그러나 훈훈함은 없었다. 그녀를 사랑하던 사 람들은 그녀가 실의를 이겨내려고 애쓰는 것을 보고 괴로워했다. 그리고 그녀를 위하여 여 러 면으로 마음을 써 주었다. 데시의 친구들은 선량하고 의리가 있었지만, 그들도 인간이라 즐거운 기분을 느끼기 좋아 하고 슬픈 기분을 느끼기 싫어하기 마련이었다. 얼마 후, 모리슨 부인은 어쩔 수 없는 몇 가 지 이유를 발견하고 나서 데시의 아담한 집에 발길을 끊었다. 그들이 불성실했던 것은 아니 었다. 그들은 행복하게 되고 싶은 만큼 슬퍼지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하고 싶지 않은 일 을 하지 않는다는 논리적이고 도덕적인 이유를 찾아내기란 쉬웠다. 데시의 사업은 기울기 시작했다. 옷을 맞춰 입고 싶던 여자들은 행복하고 싶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세대가 바귀면서 기성복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기성복을 입는다는 것 은 이제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모리슨 씨가 기성복을 쌓아놓고 있을 때 애그니스 모리 슨이 기성복을 입는다는 것은 이치에 맞는 일이었다. 가족들은 데시를 걱정했지만, 그녀 자신이 자기에게 잘못된 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때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그녀는 옆구리에 심한 통증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 통증은 잠시 동안 지속되다가는 간헐적으로 나타났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새뮤얼이 세상 을 떠나자 세상은 산산이 부서졌다. 그의 자녀들과 친구들은 부서진 조각들을 주워 모아 어 떤 종류의 세계를 맞추어 만들려고 애를 썼다. 데시는 가게를 팔고 농장으로 돌아가 톰과 함꼐 살기로 결심햇다. 팔 만한 것도 그리 많 지 않았다. 라이저도 이 결심을 알고 있었다. 올리브도 데시도 톰에게 편지를 냈다. 샌프란 시스코 간이 식당에게 얼굴을 찌푸리고 앉아 있던 윌은 이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윌은 속 으로 부글부글 끓고 이싸가 냅킨을 뚤뚤 말고 있었다. "잊어버린 것이 있군요." 그는 아담에 게 말했다. "기차에서 만나뵙죠." 그는 반 블록쯤 걸어 데시의 집에 도착했다. 나무가 높이 자란 정원을 가로 질러 데시 방 의 벨을 눌렀다. 그녀는 혼자 저녁을 먹고 있다가 냅킨을 손에 듣 채 문을 열었다. "아이, 윌 오빠군요." 그녀는 핑크빛 뺨을 내밀어 그가 키스를 하게 했다. "언제 왔어요?" "사업 관계로 다음 기차 시간까지만 여기 있겠어. 그리고 이야기를 할 게 있다." 그녀는 부엌 겸 식당으로 쓰는 방으로 안내햇다. 꽃무늬 벽지를 바른 아늑한 방이었다. 그 녀는 기계적으로 커피를 끓여서 설탕단자와 크림병과 함께 그의 앞에 갖다 놓았다. "어머니를 만나 뵈었어요?" 그녀가 물었다. "다음 기차 시간까지만 여기 있는 거라니까." 그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농장으로 되돌아 간다는 것이 사실이냐?"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난 네가 돌아가는 것을 바라지 않아." 그녀는 애매하게 미소를 지엇다. "왜, 안돼요? 그게 왜 잘못 이에요? 톰 혼자 외롭잖아 요." "여기선 사업도 잘 되지 안니?" "사업이랄게 뭐 있어요. 오빠도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난 네가 돌아가는 길 바라지 않는다." 그는 무뚝뚝하게 반복했다. 그녀의 미소에는 회심의 빛이 있었으나 자기 태도에 조롱하는 빛을 띠려고 최선을 다했 다. "큰 오빠는 주인행세를 하고 있네. 안되는 이유를 말해 봐요." "거기는 외로워." "둘이 있으면 외롭지 않을 거예요." 윌은 화가 나서 입술을 오므렸다. 그는 부자중에 불쑥 말했다. "톰은 제정신이 아니야. 그 애하고 같이 잇어서는 안돼." "그애는 잘 있지 않아요? 도움을 필요로 하나요?" 윌이 말했다.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만 - 아버지의 상을 이겨내지 못한 것 같아. 그애는 이상해." 그녀가 상냥하게 미소지었다. "그가 이상하다고 오빠는 늘 생각했어요. 그가 사업을 싫어 할 때도 이상하다고 오빠는 생각했어요." "그것과는 달라. 그애는 지금 사색에 잠겨 잇어. 말도 하지 않고 밤이면 언덕을 돌아다니 기도 하고, 그애를 만나러 갔었는데, 시를 쓰고 있더라. 여러 페이지를 써서 책상 위에 늘어 놓고 있더라." "오빠는 시를 써본 적이 없지요?" "없지." "나는 써 봤어요." 데시가 말했다. "여러 페이지를 써 봤지요." "어쨌든 네가 가는 것을 해주세요." 그녀는 부드럽게 말했다. "나는 무엇인가를 잃고 있어 요. 그것을 되찾고 싶어요." "바보 같은 소리를 하고 있구나." 그녀는 테이블을 돌아가 그의 목에 팔을 감았다. "오빠, 제발 저에게 맡겨 주세요." 그는 화가 난 채 집을 나와 가까스로 기차를 탔다. 2 톰은 킹시티 역으로 데시를 마중나갔다. 그녀는 객차를 세어가며 자기를 찾고 있는 톰을 차량 너머로 보았다. 그의 온몸이 번쩍이고 있었다. 면도를 철저하게 해서 까만 살결이 닦아 논 나무처럼 빛나고 있었다. 붉은 콧수염은 잘 다듬어져 있었다. 납작한 새 스텟슨 모자를 쓰고 파란 조개로 된 벨트 버클이 다린 황갈색 자켓을 입고 있었다. 구두는 대낮의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기차가 도착하기 직전에 손수건으로 구두를 닦았음이 틀림없었다. 빳 빳한 칼라가 튼튼한 목덜미를 받치고 있었다. 연푸른 색의 넥타이에 편자 모양의 핀을 꽂고 있었다. 그는 흥분을 감추기 위해 거친 갈색 손을 몸 앞에 마주잡고 있었다. 기차가 그의 곁 을 지날 때 덜커덕거리는 기차 바퀴 때문에 들리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차창밖으로 손을 내저으며 소리쳤다. "여기, 있어요. 톰, 여기." "그녀가 난간을 내려섰을 때 반대편으로 열심히 두리번거리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 녀는 미소를 지으면서 그의 뒤로 걸어갔다." "실례합니다." 그녀가 가만히 물었다. "거기 계시는게 톰 해밀튼씨에요?" 그는 홱 돌아섰다. 그는 기쁜 소리를 지르면서 그녀를 덥썩껴안고는 빙빙 돌며 춤을 추었 다. 그는 한 손으로 그녀를 안고 다른 손으로 엉덩이를 쳤다. 그는 껄껄한 콧수염으로 그녀 의 뺨을 비볐다. 그러고는 그녀의 어깨를 젖히고 쳐다보았다. 두 사람은 고개를 서로 젖히고 큰 소리로 웃었다. 역원이 창 밖으로 몸을 내밀고 까만 소매 씌우개를 낀 팔꿈치를 창틀에 올려 놓았다. 그 는 어깨 너머로 전산원에게 소리폈다. "저 해밀튼 남매 좀 보시게!" 톰과 데시는 손을 마주잡고 우아한 힐 앤드 토우 스텝을 밟으며 그가 두들 두들 두 하고 노래를 부르면 데시가 디들 디들 디하고 맞받았다. 톰은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댁이 데시 해밀튼이죠? 기억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은 했지만 많이 변했네. 변발은 어디 갔어요?" 그가 짐표를 받아 호주머니 속에 넣었다가 이리저리 다시 찾느라고 시간이 꽤 걸렸다. 드 디어 그는 짐을 찾아 사륜마차 뒤에 실었다. 두필의 적갈색 말이 단단한 땅에 앞발을 내디 디고 고개를 뒤로 젖히자 번쩍이던 수레채가 뛰어오르고 횡목이 삐걱 소리를 냈다. 마구는 반들반들하고 놋쇠 장신구는 화금처럼 번쩍였다. 말채찍 중간에 빨간색 나비 모양의 리본이 매어져 있었고, 갈기와 꼬리에도 빨간색 리본이 매어져 있었다. 톰이 말했다. "킹 시티로 모실까요? 아름다운 곳이죠." "아니야." 그녀가 말했다. "그건 나도 알아." 그는 왼쪽으로 돌아 남쪽으로 향하고는 고ㅃ 를 잡아채서 빨리 달리게 했다. 데시가 말했다. "윌 오빠는 어디 있지?" "몰라." 그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너에게 말하던?" "응. 누나가 여기 와서는 안 된다는 거야." "그런 얘기를 나에게도 했지." 데시가 말했다. "오빠는 조지를 시켜서 나에게 편지를 쓰레 했단다." "누나가 오고 싶으면 오는 것이지 왜 못 와?" 톰은 화가 났다. "형이 무슨 상관있어?" 그녀는 그의 팔을 잡았다. "네가 미쳤다는 거야. 시를 쓴다고." 톰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내가 없을 때 형이 집에 왔다간 것이 틀림없어. 도대체 형은 어 떻게 하겠다는 거야. 형이라도 내 시를 볼 권리는 없는 거야." "말을 부드럽게 해라." 데시가 말했다. "윌 오빤 네 형이야. 그걸 잊지마." "형은 내가 형의 편지를 보는 거 좋아하겠어?" 톰은 재차 물었다. "보지 못하게 하겠지." 데시는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금고 속에라도 넣어둘 것. 화를 내서 하루를 망치지 않도록 하자." "좋아요. 빌어먹을, 좋아! 하지만 형은 나를 화나게 만든단 말야. 내가 형과 같은 생활을 안 한다고 나보고 미쳤다고." 데시는 화제를 바꾸었다. 억지로 바꾸었다. 나중엔 "내가 아주 혼났지." 그녀가 말했다. "어머니가 오시겠다는 거야. 너, 어머니가 우시는 것, 본 일이 있니?" "아니, 기억이 안나는데. 어머니는 우는 사람이 아니잖아." "그런데 어머니가 우셨어. 대단한 것도 아니지만 어머니에게는 대단한 것처럼 생각된 거 야. 처음엔 목이 막히더니, 두 번 훌쩍 훌쩍하시고는 코를 닦고 안경을 닦았ㄷ어. 그러고는 입을 꽉 다물었어." 톰이 말했다. "아, 누나가 돌아와서 참 좋은데! 참 좋아! 병에서 회복된 것 같아." 말이 국도를 따라 달리고 있었다. 톰이 말했다. "트래스크 씨가 포드 차를 샀어.윌 형이 그에게 팔았다고 말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지." "포드 얘기는 몰랐는데. 그 사람이 내 집을 사겠다는 구나. 값을 넉넉히 주고." 그녀가 웃 었다. "집값을 높이 불렀지 뭐니. 애기를 하다가 깎아 주려고, 그런데 부르는 가격대로 주겠다고 나오지 않니. 내가 곤란했어." "그래서 어떻게 했수?" "값이 너무 비싸다고 말하면 깎아줄 생각이었다고 말할 수밖에. 그런데도 그 사람 어느 쪽도 상관 않는 것처럼 보이더라." 톰이 말했다. "그 얘기는 윌 형에게 제발 하지 말아요. 누나를 가둬버릴 걸." "하지만 그 집은 내가 부른 값만큼 안 나가는 걸!" "윌 형은 내가 말한 대로야. 아담은 그 집을 어떻게 한 대요?" "그리로 이사할 작정이래. 쌍둥이를 샐리너스에 있는 학교에 보내고 싶대." "농장은 어떻게 하고?" "몰라.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어." 톰이 말했다. "만일 아버지께서 이 황폐한 땅 대신 그런 농장을 갖고 계셨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 땅도 그다지 나쁜 땅이 아니야." "먹고 사는 것 빼놓고는 다 좋지." 데시가 진지하게 말했다. "우리보다 더 재미있게 살아 온 가족이지 땅이 아니지요." "톰, 제가 제니와 벨 윌리엄즈를 소파에 앉혀 태우고 피치트리댄스 파티에 갔던 때를 기 억하니?" "어머니가 가끔씩 이야기를 해줘서 잊지 않고 있지. 어때요. 제니와 벨을 초대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올 거야." 데시가 말했다. "그렇게 하자." 그들이 국도를 벗어났을 때 그녀가 말했다. "약간 달라졌는데." "전엔 더 메마른 땅이었단 말이죠." "그랬던 것 같아. 지금은 풀이 무성하구나." "풀이 좋아서 소를 스무마리 사려고 해요." "부자구나." "아니야. 기후가 좋으면 소값이 폭락할거야. 윌 형 같으면 어떻게 할지 모르겠어요. 형은 희귀파지요. 언젠가 이야기 하는데 항상 희귀한 것을 거래하라 하더군. 윌 형은 똑똑하지." 바퀴자국이 더 깊고, 둥근 돌이 더 불쑥 튀어나온 것을 제외하고는 길은 별로 변해 있지 않았다. 데시가 말했다. "저 소나무 숲에 걸려 있는 카드는 뭐냐?" 그 옆을 지날 때 그녀는 한 장을 뽑아 들었다. "귀향 환영"이라고 적혀 있었다. "톰, 네가 했지!" "안 했는데, 누가 와 있는 모양이군." 50야드마다 카드가 나무에 붙어 있거나 마드론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거나 칠엽나무 둥지 에 압핀으로 꽃혀 있었는데, 모두가 "귀향환영" 이라고 적혀 있었다. 데시는 카드를 볼 적마 다 환호성을 질렀다. 그들이 해밀튼 동장의 작은 계곡의 고개 위에 올랐을 때, 톰은 마차를 멈추고 그녀로 하여금 조망을 즐기도록 했다. 계곡을 가로질러 있는 언덕 위의 하얀 돌 위 에는 커다란 글씨로 "데시의 귀향을 환영" 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녀는 머리를 톰의 옷깃에 파묻고 웃다가 울음을 터뜨렸다. 톰은 엄숙하게 앞을 내다보고 있었다. "누가 저렇게 할 수 있었을까? 이젠 집을 비울 수 가 없군 그래." 새벽이면 데시는 가끔씩 찾아드는 고통스런 오한으로 잠을 깼다. 그것은 살살 찾아드는 통증의 위협이었다. 옆구리에서 복부로 움직이는 꼬집는 듯 날카로운 아픔이 다가오다가는 쥐어잡는 듯하고 그러다가는 꼭 잡아채는 듯하고 나중에는 마치 커다란 손이 꼬집어 뜯어내 는 듯 격렬한 통증이 왔다. 통증이 풀리면 타박상 같이 쓰라렸다. 오래 계속되지는 않았지만 진통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외부 세계는 말살되고 그녀는 오직 가지 몸 안에서의 투쟁에만 귀를 기울이고 있는 성 싶었다. 통증이 가지고 쓰라림만이 남아 있을 때, 그녀는 창문에 은빛 먼동이 터오는 것을 보았다. 기분 좋은 아침 바람이 커튼을 살랑거리면서 풀과 나무 뿌리와 축축한 대지의 향기를 몰고 오는 냄새 맡았다. 그러고 나면 갖가지의 소리들이 들려왔다 - 서로 다투는 듯한 참새들, 배고파 우는 송아지를 단조롭게 꾸짖는 어미소, 흥분한 듯 울어대는 여치, 보호 임무를 띠고 있는 숫메추라기의 날카로운 소리, 무성한 풀숲 어디에선가 응담하는 암메추라기의 속삭임 등이 들려왔다. 닭장에서는 알을 낳은 흥분이 뒤끓고 4파운드나 되는 커다란 암탉 로우드 아일란드 레드는 한번 날개를 치면 날아갈지도 모를 비쩍 마른 수탉이 자기를 땅바닥에 음 탕스럽게 짓눌렀다고 수선스럽게 항의하고 있었다. 비둘기들이 구구 하고 우는 소리가 들리자, 거미줄처럼 기억이 되살아 났다. 아버지가 테 이블 머리에 앉아 하시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내가 개비트에게 몇 마리의 흰 비둘기를 키 우겠노라고 말했더니 무어라고 했는지 아느냐?" 이러는 거야. "흰 비둘기는 키우지 마세요." "흰 비둘기는 왜 안돼?" 하고 내가 물으니까 그의 대답이 "그놈들이야 말로 제일 나쁜 불행 을 가져다 주죠. 흰비둘기를 키우면 슬픔과 죽음을 가져 줄 거예요. 회색 비둘기를 키우세 요." 하는 거야. "나는 흰비둘기가 좋아" "아니에요. 회색 비둘기를 키우세요" 하는 거야. "그러나 어떤 일이 있어도 나는 흰비둘기를 키우겠어." 그러자 라이저가 참을성있게 말했다. "당신은 왜 항상 시험을 해보려는 거예요. 새뮤얼? 회색 빋둘기는 맛도 좋고 크기도 크잖아요." "나는 그 보잘것없는 옛 이야기에 밀려나지 않을걸." 새뮤얼이 말했다. 그러자 라이저는 자신의 대단한 단순성을 들고 나왔다. "당신은 이미 자신의 논쟁을 좋아 하는 마음에 밀려나고 있는 거예요. 당신은 존쟁의 고집쟁이 에요!" "누군가가 이런 일들을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오." 그는 실쭉하여 말했다. "긇지 않으면 운명은 결코 놀림을 당하지 않을 것이며 인류는 계속 나무 꼭대기에 매달려 살게 될거요." 물론 그는 흰 비둘기를 사고 나서 자신의 주장을 증명할 수 있을 때까지 슬픔과 죽음을 잔인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그 비둘기들의 증손자 뻘되는 비둘기들이 아침이면 구구 소리를 내며 휘날리는 하얀 스카프 자락처럼 주위를 날고 있었던 것이다. 데시가 과거긔 기억을 되살리는 동안, 데시의 귀에는 말소리가 들리고 집 주위에 사람들 이 모여드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그녀는 슬픔과 죽음을 생각했다. 슬픔과 죽음, 그것은 쓰라림에 대항하여 뱃속에서 꼬집어 뜯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노라면 그것은 찾아오고 말 것이다. 그녀는 대장간에 있는 커다란 풀무 속으로 바람이 말려 들어가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모루 위에 헤머를 연습삼아 쳐보는 소리가 들렸다. 라이저가 오븐을 여는 소리, 그리고 밀가 루를 반죽한 덩어리가 반죽대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조오가 어디엔가 벗어둔 신발ㅇㄹ 찾아 돌아다니다가 침애 밑에서 그것을 찾아내는 모습이 보였다. 몰리가 곱고 높은 목소리로 아침 성경을 읽는 소리가 들리고, 우나가 목구멍에서 나오는 투명한 목소리로 그것을 바로잡아주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상상이지만 톰이 주머니칼로 몰리의 혀를 도려내고 자기의 만용을 깨닫고는 실의 에 빠지는 모습이. "아, 톰."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입술을 움직였다. 위인들도 그러했겠지만 톰의 소심함은 용기만큼이나 대단했다. 그의 난폭성은 유연성과 맞먹을 정도였다. 톰 자신이야말로 자신의 갖고 있는 여러 가지 힘의 얼룩진 전쟁터였다. 그 는 이제 마음이 혼란되어 있었다. 그러나 데시는 마치 조련사가 순혈종 말에 훈련을 시키든 톰을 제재하고 방향을 제시할 수 있었다. 데시가 맞은 고통 속에서 반은 잠 속에서 헤매고 있는 동안 아핌 햇살이 창문을 비추었다 그녀는 다시 독립 기념일에 몰리와 주 상원의원인 히리 포비스가 대 무도회를 주도하기로 했던 일이 생각났다. 그런데도 데시는 몰리의 드레스에 장식을 달아 놓지 못했었다. 그녀는 일어 나려고 애를 썼다. 많은 장식을 달아야 했는데도 그녀는 거기 누위 졸고 있었던 것이 다. 그녀가 소리쳤다. "곧 끝내겠어요. 몰리, 곧 돼요." 그녀가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걸치고 해밀튼 집안 식구들이 모여 잇는 집 안을 맨발로 걸 었다. 호올에 가보니 그들은 침실로 가고 아무도 엇ㅂ었다. 가지런하게 침대가 놓여 있는 침 실로 가보니 모두 부엌으로 가고 없었다. 또 부엌으로 가보니 모두 흩어지고 아무도 없었다. 슬픔과 죽음, 회상의 물결은 물러가고 그녀만이 말똥말똥 잠이 깨어 있었다. 집안은 말끔하 게 청소되어 있었다. 커튼을 발아서 깨끗하고 창문은 닦아서 투명했다. 그러나 모두가 남자 의 손길로 된 것이었다 - 다리미질을 한 커튼은 똑바로 걸려 있지 않았고, 창문에는 줄무늬 가 있고 테이브레는 책을 치우니 네모진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스토브에서는 불이 타고 있었으나 오렌지색 불이 뚜껑 주위로 새어나오고, 열어논 바람 구멍 밖으로 일어나는 불꽃의 부드러운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부엌 시계는 그 밑에 달려있 는 유리 안에서 추를 번쩍이고 있었고 마치 빈 나무 상자를 때리는 작은 나무망치처럼 똑딱 이고 있었다. 밖에서 갈대처럼 거칠은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높고 이상한 소리였다. 휘파람은 황량한 멜로디를 퍼뜨렸다. 현관에서 톰의 발소리가 들렷다. 그는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참나무 장작 을 한아름 안고 들어왔다. 그는 나무상자에 장작을 The았다. "일어났수? 잠을 깨주려고 휘파람을 불었지." 그의 얼굴은 기쁨이 차 있었다. "오늘 아침 은 솜털같이 날라갈 듯한 아침이야. 게으름을 피울 때가 아니에요." "아버지 말씀 같구나." 데시가 말했다. 그들은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기쁨은 격력하게 되엇다. "그럼." 그는 큰소리로 말했다. "여기에 그 때를 되살려 놓 을 거야. 나는 그동안 등뼈가 부러진 뱀처럼 비참하게 질질 생활을 끌어왔어. 윌 형이 내가 돌았다고 생각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어. 그러나 이제 누나도 돌아왔으니 내가 보여주지. 생 기에 다시 새기를 불어넣을 거야. 알겠어요? 이집은 생기를 되찾을 거에요." "내가 오길 잘했구나." 그러나 지금 톰은 얼마나 연약하고 부서지기 쉬우며, 그리고 자기 가 그를 어떻게 보호해 줄 것인가 하고 그녀는 쓸쓸하게 생각했다. "집을 이렇게 청결하게 하느라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한게 틀림없구나." "아니야." 톰이 말했다. "손가락이 좀 아팠을 뿐이야." "그 아픔을 나는 알아. 양동이와 걸레를 동원하고 무릎을 꿇고 했을 거야. 닭의 힘이나 바 람의 힘을 이용하는 무슨 방법을 고안해내지 않았다면 말이야." "고안이라 - 내가 시간이 없는 이유도 그 때문이야. 빳빳한 칼라속에서도 넥타이가 자유 롭게 움직이도록 하는 작은 구멍을 고안했지." "너는 빳빳한 칼라 옷을 입지 않잖니?" "어제는 입었잖수. 어제 고안한 거야. 그리고 수백 만 마리의 병아리를 사육할 계획이야 - 농장 일대에 작은 계사를 많이 짓고 그 지붕위에 둥근 우리를 만들어서 닭을 석회수 탱크에 담가 살충시킬거야. 그리고 달걀은 작은 운반 밸트에 실려 나오도록 하겠어 - 여기 돠요! 그림을 그려 보여 줄게." "나는 아침식사 그림이나 그리고 싶다." 데시가 말했다. "계란 프라이의 모양은 어떠냐? 베이컨의 색은 어떻게 하겠니?" "제가 해드리죠." 그는 스토브 뚜껑을 열고 손의 톨이 그슬릴 때까지 부젓가락으로 불을 휘저었다. 그는 나무를 넣고는 휘파람을 높게 불기 시작했다. 데시가 말했다. "너는 그리스 언덕에서 보리 피리를 불고 있는 목양신 같은데." "내가 무엇 같다고 생각한다구?" 그가 소리쳤다. 데시는 마음이 쓰라렸다. 그의 이 기분이 사실이라면 왜 나의 마음은 가볍게 될 수 없을 까? 왜 나는 이 우울한 잿빛 누더기 더미 속에서 헤어나지 못할까? 나도 헤어나와야지. 그 녀는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그가 할 수 있으니 - 나도 해야지." 그녀가 말했다. "톰?" "왜요?" "나는 자주빛 달걀이 먹고 싶어." 제 33 장 1 언덕의 푸르름은 6월까지 계속 되다가 풀잎이 노랗게 변했다. 야생 귀라는 씨알이 하도 많이 열려서 줄기가 부러질 지경이었다. 작은 샘에서는 여름 늦게까지 물이 졸졸 흘렀다. 산 기슭에서 자란 소들은 너무 살이 쪄서 비틀거리고 가죽은 건강색으로 번들거렸다. 샐리너스 사람들은 가문 해가 있었다는 것 조차 잊어버린 그런 풍년의 해였다. 농부들은 힘에 겨우리 만큼 땅을 더 구입하고는 장부에 이윤을 계산하고 있었다. 톰 해밀튼은 힘센 팔과 단단한 손으로 뿐만 아니라, 그러한 마음과 정신을 가지고 거인처 럼 일했다. 대장간에서는 다시 모루 소리가 들렸다. 그는 고옥에 하얀 페인트 칠을 하고 하 얀 벽토를 새로 발랐다. 그는 킹 시티에 가서 수세식 변소를 조사해 가지고 와서는 교묘하 게 양철을 꾸부리고 나무를 깎아서 신식 변소를 만들었다. 샘에서는 물이 하도 더디게 솟았 기 때문에 그는 집 옆에 삼나무 물탱크를 만들고, 미풍에도 돌아가는 풍차를 손수 만들어 물을 거기에 길어 올렸다. 그리고 고안한 두 가지 모델을 철과 나무로 만들어 그것을 가을 에는 특허국에 보낼 예정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유머러스하고 쾌활하게 일했다. 데시는 집안 일을 톰이 헤치우기 전에 먼저 하기 위해 일찍 일어나야만 했다. 그녀는 그의 커다란 붉은 행복을 지켜보았다. 새뮤얼의 행복처럼 그렇게 가벼운 행복이 아니었다. 그의 내심에서 솟아올라 떠 다니는 행 복이 아니었다. 그는 알고 있는 한 교묘한 방법으로 행복을 제조하여 그 모양을 다듬었다. 데시는 계곡의 온 마을의 누구보다도 많은 친구를 갖고 있었지만 믿을 만한 사람은 없었 다. 문제가 생겼을 때에도 누구에게 말하지 않았다. 고통은 마음 속의 비밀이었다. 그녀가 쥐어짜는 듯한 아픔 때문에 몸이 굳어지는 것을 보고 톰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아니, 무슨 일이에요?" 그녀는 얼굴 표정을 억제하고 말했다. "사소한 결연이야. 지금은 괜 찮아." 잠시후에 그들은 웃음을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안심시키기나 하듯이 많이 웃었다. 데시는 단지 잠자리에 들었을 때만 쓸쓸하고 견딜 수 없는 실의에 휩싸였다. 그리고 톰은 어린아이처럼 어리둥절하여 어두운 방에 누워있었다. 심장이 뛸때면 작은 소리가 들렸다. 그의 마음은 사색을 떠나 안전을 얻기 위해 작은 계획이나 디자인이니 기계니 하는 덧에 집착하게 되었다. 그들은 여름날 저녁이면 가끔씩 언덕에 올라 서산에 걸리는 저녁노을도 보고 낮의 더운 상승기류에 의해 미풍이 계곡 쪽으로 밀려 오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 그들은 보통 아무 말 이 없이 잠시 동안 서있으면서 마음 편안하게 신선한 공기를 들이 마셨다. 둘이 다 계면 쩍 어 자신들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서로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톰, 너는 왜 결혼 안하지?" 데시가 이렇게 말을 꺼냈을 때, 두 사람이 다 깜짝 놀랐다. 그는 재빨리 그녀를 쳐다보고는 눈길을 돌렸다. "누가 나한테 시집오겠어?" "농담이니, 진담이니?" "누가 나한테 시집 오겠느냐 말이야?" 그는 다시 말했다. "나같은 놈에게." "진심으로 하는 말처럼 들리는구나." 그녀는 불문율을 깨뜨렸다. "사랑을 해본 적이 있 니?" "없어." 그는 짧게 대답했다. "알고싶구나." 그녀는 마치 대답을 못 들은 것처럼 말했다. 톰은 함께 언덕을 걸어 내려오면서 다시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현관에서 북쑥 말했다. "누나는 여기가 외롭지? 있고 싶지 않은거지?" 그는 잠시 멈췄다가 다시 말했다. "대답해봐. 사실이지?" "나는 어느 곳보다도 여기에 있고 싶어." 그리고 다시 그녀가 물었다. "너 여자한테 가본 적 있니?" "응." "너에게 그게 이롭던?" "별로." "너는 무엇을 할 작정이지?" "모르겠어." 그들은 아무 말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톰은 거실 안에 있는 램프에 불을 당겼다. 그가 고 쳐 놓은 말털 소파는 벽을 등지고 굽은 등을 치켜 올리고 있었고, 문과 문 사이의 녹색 카 핏에는 발길에 엷게 닳은 통로가 있었다. 톰은 가운데 있는 둥근 ㅌ이블 옆에 있었다. 데시 는 소파에 앉았다. 그는 자기가 나중에 인정한 말 때문에 아직도 당황하고 있다는 것을 그 녀는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그가 참으로 순수하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그보다도 더 많이 알 고 있는 이 세상에 얼마나 부적합하고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아버지가 계셨으면  ㅎ겠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톰에게서 위대한 점을 느꼈었다. 아버지 같으면 그 위대함을 어둠 속에서 꺼내어 자유스럽게 날아가돌고 하는 방법을 알고 계실 성 싶었다. 그녀는 그의 마음 속에 어떤 불꽃을 일으킬 수 있는 지글 알아보기 위해 다른 꾀를 썼다. "우리들 자신에 대해 애기할 때, 우리가 보고 들은 전 세계란 이 계곡과 샌프란시스코에 몇 번 여행한 것뿐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적 있니? 그리고 샌루이스 오비스포보다 더 남족으로 가본 적이 있니? 나는 한 번도 없는데." "나도 없어." 톰이 말했다. "그거 바보스럽지 않니?" "많은 사람들도 그렇지." "그러나 그런 법률이 어디 있겠니? 우리는 파리와 로마와 예루살렘에도 갈 수 있어. 나는 정말 로마의 원형 경기장을 보고 싶어." 그는 어떤 종류의 농담을 기대하면서 그녀를 의심쩍게 쳐다보았다. "어떻게 가지?" 그가 물었다. "돈이 많이 들텐데." "나는 그렇게 많이 든다고 생각지 않아. 멋진 곳에서만 먹고 잘 필요는 없어. 제일 싼 배 를 타고 제일 싼 객실에 들면 돼. 아버지도 아일랜드에서 그렇게 오셨어. 그리고 우리는 아 일랜드에도 갈 수 있어." 아직도 그는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불타는 듯한 표정이 일기 시작 했다. 데시는 말을 이었다. "우리 1년 동안 열심히 일을 하면서 돈을 저축하자꾸나. 나는 킹 시 티에서 바느질 감을 맡아올 수도 있어. 윌 오빠가 도와줄거야. 내년 여름에는 가축을 몽땅 팔고 떠나자. 못하라는 법은 없잖니?" 톰은 일어서서 밖으로 나갔다. 그는 여름 하늘의 별을 바라다 보았다. 금성은 파랗게 빛나 고 화성은 빨갛게 빛났다. 그는 팔을 굽혔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했다. 그는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데시는 꼼짝 않고 앉아 있었다. "누나, 가고 싶어?" "응, 무엇보다도 가고 싶어." "그러면 우리는 가는 거야!" "너도 가고 싶으니?" "응, 무엇보다도." 그가 말했다. "이집트 - 누나가 이집트를 생각해 본 적이 있어?" "아테네." "콘스탄티노플." "베들레헴!" "그렇지. 베들레헴." 불쑥 그가 말했다. "이젠 그만 자. 우린 1년 동안 일을 해야돼. 1년 이야. 휴식을 취해야 돼. 나는 윌 형한테서 돈을 빌어 돼지새끼를 백여 마리 살까 하는데." "무엇을 먹이려고?" "도토리. 도토리 줍는 기계를 만들겠어." 그가 자기 방으로 돌아간 뒤, 몸을 뒤척이면서 나지막하게 혼자 중얼대는 소리가 들렸다. 데시는 창 밖으로 돌아간 뒤, 몸을 뒤척이면서 나지막하게 혼자 중얼대는 소리가 들렸다. 데 시는 창 밖으로 별빛이 비치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기뻐했다. 그러나 정말 자기가 가고 싶은 지, 그리고 톰도 정말가고 싶은 건지 의심쩍게 생각했다. 그녀가 의심쩍어 하고 있을 때 통 증이 옆구리에서 서서히 일어났다. 데시가 아침에 일어났을 때 톰은 이미 주먹으로 이마를 치기도 하고 으르렁대기도 하면서 제도대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데시가 그의 어깨 너머로 바라보았다. "도토리 줍는 기계냐?" "쓰기 쉬워야겠는 데. 그러나 막대기와 둘을 어떻게 주워서 밖으로 내게 한다지?" "네가 발명가인 것은 내가 알고 있어. 그러나 나는 이미 세상에서 제일 좋은 도토리 줍는 기계를 발명했어. 당장 쓸수 있어." "무슨 소리야?" "아이들이야." 그녀가 말했다. "항상 움직이는 손 말이야." "하려고 하지 않을 걸, 돈을 준다고 해도." "상을 준다면 할 거야. 모든 아이에게 상을 하나씩 주고 1등을 한 아이에게는 큰 선물을 주지 - 백 달러 상당의 상을. 그러면 계곡을 말끔히 쓸어낼 거야. 내가 한 번 해볼까?" 그는 머리를 긁었다. "왜 아니야?그러나 어떻게 도토리를 모으지?" "아이들이 가져올거야" 데시가 말했다. "내가 해볼테니까. 챙겨놓을 장소는 많지." "어린아이들을 착취하는 것이 되지 않을까?" "확실히 그렇겠지." 데시도 동감을 표시했다. "내가 양장점을 차리고 있을 때에도 바느질 을 배우고 싶어하는 처녀들을 착취했는데. 그리고 그들도 나를 착취하고. '몬터리 군 대 도 토리 줍기 경연대회' 라고 부를까 해. 누구나 참여하도록 하지는 않겠어. 상품으로는 자전거 를 줄까 해. 너 같으면 자전거를 타려는 기대에서 도토리를 줍지 않겠니?" "물론 나는 하지. 그러나 삯을 줄 수는 없나?" "돈 가지고는 안돼." 데시가 말했다. "그렇게 돼면 노동이 돼버려. 아이들은 할 수만 있으 면 노동은 하지 않으려고 해. 나는 그래." 톰은 제도에서 등을 펴며 웃었다. "나도 그래." 그가 말했다. "좋아요. 누나는 도토리 책임 을 지고 나는 돼지 책임을 지는 거야." 데시가 말했다. "우리가 돈을 벌면 우습지 않을까?" "누나는 샐리너스에서 돈을 벌었지 않아." "약간 - 많지는 않지만. 계산상으로는 부자였지. 계산서의 돈을 다 받았다면 돼지도 필요 없었겠지. 내일이라도 파리로 떠날 수 있었어." "나는 윌 형한테 가서 부탁해 볼 거야." 그는 제도대에서 의자를 끌어당겼다. "같이 가겠 어?" "아니. 나는 여기서 계획을 짤 거야, 내일 대 도토리줍기 대회를 시작할 거야." 2 오후 늦게 마차를 타고 종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톰은 기가 죽고 슬픔에 싸여 있었다. 늘 그러했듯이 윌은 그의 정열을 뭉개버렸던 것이다. 윌은 입술을 내밀고 눈썹을 문지르고 코 를 비비고 안경을 닦고 시가를 잘라 불을 붙였다. 돼지 계획은 허점투성이었다. 윌은 그 허 점 속에 손가락이라도 집어넣을 수 있었다. 도토리 줍기가 왜 안될지에 대해서 그는 명확한 설명은 안했지만 도토리 경연대회는 될 것 같지 않았다. 특히 이런 때에는 그일 전부가 불안했다. 윌이 할 수 있었던 최선의 일은 생각해 보겠노라고 동의한 것뿐이었다. 이야기 도중에 톰은 유럽 여행에 괸해서 윌에게 이야기를 할까 하고도 생각했었으나 어떤 직감에서 그만두었다. 좋은 증권에 투자라도 해놓고 은퇴를 하고 있지 않은 이상, 유럽 여행 을 하겠다는 생각은 돼지 계획도 그러했듯이 미친 생각처럼 윌에게 보였을 것이다. 톰은 그 에게 말하지 않았다. 톰은 결과적으로 돼지와 오토리에 반대하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윌 로 하여금 생각을 해보도록 하고 돌아왔다. 잘 얼버무리는 것이 사업가의 창조적 기쁜이라는 것을 불쌍한 톰은 알지도 못하고 배울 수도 없었다. 사실 윌은 그것을 생각해 보려고 했다. 그 계획은 부분적으로는 그의 마음을 끌었다. 톰은 우연히 아주 재미 있는 일을 생각해 냈다. 만일 돼지새끼를 외상으로 사서 거 의 돈이 안드는 사료를 먹여 살찌게 한 다음 팔아서 외상을 갚고도 이윤을 얻게 되면 좋겠 다고 생각했다. 윌은 동생의 이윤을 가로책 생각은 없었다. 단지 그는 이윤에 한몫 끼고 싶 었다. 그러나 윌은 공상가인 톰에게 이 그럴 듯한 계획을 맡길 수는 없었다. 예를 들면 톰은 돼지의 가격조차도 모르고 앞으로의 추세도 몰랐다. 만일 일이 잘되면 윌은 톰에게 실질적 인 선물, 포드 차 한 대라도 줄 수 있었다. 도토리 줍기의 1등상으로 포드 차는 어떨까? 그 러면 이 계곡의 모든 사람이 도토리 줍기에 참가할 것이다. 해밀튼 길을 마차로 달리면서 톰은 자기드ㄹ 계획이 좋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데시에게 어 떻게 꺼낼까 하고 걱정했다. 최선의 방법은 그 대신 다른 계획을 세우는 것일 거다. 1년 동 안에 유럽 여행을 떠날 수 있는 돈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까? 그는 갑자기 그들이 얼마의 돈을 필요로 하는지조차도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배삯도 모르고 있었다. 계산을 하는데 온 저녁을 보내야 할지도 몰랐다. 그는 마차를 몰면서 데시가 뛰어나와 마중이라도 해주기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기분 좋은 얼굴 표정을 짓고 농담이라도 던질 심사였다. 그러나 데시는 뛰어나오지 않았다. 낮잠 을 자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는 말에 물을 먹이고 마굿간에 메고 여물통에 건촉 를 던져 주었다. 톰이 들어갔을 때 데시는 거위 목 모양의 소파에 누워 있었다. "낮잠을 자는 거야?" 그가 물었다. 그리고 그는 그녀의 얼굴색을 보았다. "왜 그래?" 그녀는 고통을 참으면서 정신을 차렸다. "복통이야, 꽤 심한 복통이긴 하지만." 톰이 말했다. "깜짝 놀랐어요. 복통이면 내가 고쳐주지." 그는 부엌으로 가서 진줏빛 액체 가 든 유리컵을 들고 와서 건네 주었다. "무엇이니?" "전통적으로 효험이 있는 소금이야. 조금 아플지도 모르지만 효험이 있을 거야." 그녀는 그것을 순순히 마시고 나서 얼굴을 찡그렸다. "그 맛이 생각나는군. 풋사과 냄세가 나지만 테중에 쓰는 어머니의 약이야." "이제 가만히 누워 있어요. 서둘러서 저녁을 준비할게." 부엌에서 덜거덕 소리가 났다. 통증이 절정에 달하자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약물이 불타 는 듯 살을 에이면서 위 속으로 내려가는 것을 느꼈다. 얼마 후에 그녀는 몸을 질질 끌고 집에서 만든 수세식 변소로 가서 토해내려고 했다. 이마에서 땀이 비오듯 내려 앞이 보이지 않았다. 허리를 피려 하자 배의 근육이 굳어졌다.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얼마 후에 톰이 풀어서 볶은 계란을 갖고 왔다. 그녀는 고개를 서서히 저었다. "못 먹겠 어."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야 할까 봐요." "소금 효험이 곧 나타날 거요." 톰이 그녀를 안심시켰다. "그러면 괜찮을 거야." 그는 그녀 를 부축하여 침실로 갔다. "무엇을 먹어서 그런 것 같아요." 데시는 침실에 누워 고통을 의지로 버티고 있었다. 저녁 10시쯤 그녀의 의지는 싸움에서 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불렀다. "톰! 톰!" 그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손에는 세계 연감을 들 고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미안하다. 하지만 무지무지하게 아파. 못 참겠어." 그는 어스름 속에서 그녀의 침대가에 앉았다. "배앓이가 대단해?" "응 지독해." "지금 변소에 갈 수 있어?" "지금 안돼." "램프를 들고 옆에 앉아 있을게. 잠을 자봐요. 아침이면 나아질 테니, 소금 효험이 날 거 야." 그녀는 의지가 다시 회복되자 가만히 누워 있었다. 그동안 톰은 그녀의 마음을 가라앉히 기 위해 연감의 일부를 읽어 주었다. 그녀가 잠들었다고 생각될 때 그는 읽기를 그치고 램 프 옆에 있는 의자에서 졸았다. 어렴풋한 비명 소리에 그는 잠을 깼다. 그는 몸부림치는 침구 옆으로 갔다. 데시의 눈은 미친 말의 눈처럼 젖빛이 되고 미친 듯했다. 입가에서는 짙은 거품이 나오고 얼굴은 불타는 듯했다. 톰이 침구 밑에 손을 넣어보니 근육이 쇠처럼 굳어 있었다. 그러다가 몸부리미 멈추 더니 고개가 뒤로 떨어졌다. 반쯤 감은 눈에서 빛이 반짝였다. 톰은 말에 고삐만을 채우고 맨 등에 올라탔다. 그는 허리띠를 풀어 놀란 말에 채찍질을 하며 마차 바퀴 자국이 난 돌투성이 길을 내달렸다. 국도 가에 있는 2층 집 위층에서 자고 있던 던컨 가족들은 문 두드리는 소리는 듣지 못했 으나 앞문이 자물쇠와 돌찌귀째로 와장창 넘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레드 던컨이 엽총을 들 고 아래층에 내려왔을 때에는 톰은 이미 벽에 걸려 있는 전화통에 대고 킹시티의 중앙 우체 국을 부르고 있었다. "틸슨 의사! 틸슨을 불러줘요! 내가 알게 뭐야. 그를 불러줘요! 빌어먹 을, 빨리, 빨리." 레드 던컨은 잠결에도 총을 그에게 겨누고 있었다. 틸슨 의사가 말했다. "응! 알았어. 들려. 톰 해밀튼이지. 누나가 어떻게 됐다는 거야? 배가 빴빴하다고? 자네가 어떻게 했는데? 소금! 천하에 바보 같으니라구!" 의사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제했다. "톰, 정신을 차리게. 돌아가서 찬 수건으로 맛사지 를 하게. 될 수 있으면 찬 것이 좋아. 얼음은 없겠지. 수건을 계속 갈게. 곧 갈게. 들려? 톰, 들려?" 틸슨 의사는 전화를 끊고 옷을 입었다. 그는 화가 나고 지쳐 있으면서도 캐비닛을 열어 수술용칼과 집게와 스펀지와 튜브와 봉합선을 가방에 챙겼다. 그는 가솔린 램프를 흔들어 가득 차 있는 가를 확인하고 에테를 통과 마스크를 책상 위 가방 옆에 놓았다. 실내용 모자 와 나이트 가운을 입은 그의 아내가 들여다보고 있었다. 틸슨 의사가 말했다. "나는 차고까 지 걸어가겠소. 윌 해밀튼을 전화로 불러 그 댁 부친의 농장까지 나를 차로 태워다 달라고 전해요. 무어라고 하면, 여동생이 죽어간다고 해요." 3 데시의 장례를 치른 지 1주일 만에 톰은 열병하는 기병처럼 어깨를 펴고 턱을 당기고 고 고하게 말을 타고 농장으로 돌아왔다. 톰은 모든 일을 천천히, 그리고 완전하게 했다. 그의 말은 깨끗하게 빗질되어 있었고, 그의 머리 위에 네모 반듯한 스탯슨 모자가 얹혀 있었다. 새뮤얼 조차도 집으로 돌아올 때 톰만큼 의젓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매 한 마리가 발톱을 굽히고 병아리를 잡으려 내려 꽃히고 있었으나 그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는 헛간에서 내린 다음 말에 물을 먹이고 고삐를 잡은 채 문간에 잠깐 섰다가 말에 굴 레를 씌우고 여물통 옆에 있는 상자에 납작 보리를 넣었다. 그는 안장을 벗기고 마르도록 모포를 뒤집어 놓았다. 말이 보리를 다 먹자, 그는 암갈색 말을 밖으로 끌고 나와 울타리 없 는 들에서 풀을 뜯도록 풀어 놓았다. 집안에서는 가구와 의자와 스토브가 그에게서 움츠리고 멀리 하는 듯 보였다. 거실로 들 어가자 등없는 의자가 그를 피했다. 성냥이 눅눅하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는 사죄하는 기 분으로 부엌에 가서 더 가지고 왔다. 거실에 있는 램프는 아름답게 의롭게 보였다. 콤이 성 냥불을 켜 로체스타 심지에 불을 붙이자 재빨리 불이 옮겨 붙어, 노란 불꽃이 1인치나 피어 올랐다. 톰은 컴컴한 방에 앉아 주위를 둘러 보았다. 그의 눈길은 말털소파를 피했다. 부엌에서 생 쥐의 작은 소리가 들렸기 때문에 몸을 돌리자 벽에 모자를 쓴 자신의 모습이 비쳤다. 그는 모자를 벗어 옆에 있는 테이블 위에 놓았다. 그는 램프 밑에 앉아서 자기 변호의 생각을 이리저리 하고 있었다. 그러나 호명이 되면 재판관인 자신과 배심원인 자신의 죄목들과 함께 재판관석 앞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 았다. 귀가 찢어지게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그의 마음은 법정으로 들어가 고소인들과 대면 했다. 옷차림이 더럽고 천하다고 논고한 "허영". 톤을 밀어 넣어주며 갈보를 찾아가게 하는 "욕정". 갖고 있지도 않으면서 재능과 사상을 갖고 있는 척 꾸미게 하는 "부정직." 그리고 "나태" 와 "탐욕" 이 팔짱을 끼고 나타났다. 톰은 이것들에 의하여 위로를 받고 있는 듯 느 꼈다. 이들이 뒷좌석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 "회색"을 가려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회색 의 무서운 죄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사소한일을 주워 모으고 자신을 구제하기 위 해 작은 죄들을 덛목처럼 사용하고 있었다. 윌의 돈에 대한 "탐욕". 모친의 신에 대한 "반 역" 시간과 희망의 "절도". 사랑의 병든 "거부" 들도 있었다. 새뮤얼이 부드럽게 말했으나 그의 목소리는 방 안에 가득했다. "선량해라, 순수해라, 위대 하라, 톰 해밀튼이 되어라." 톰은 부친의 말을 무시하고 말했다. "나는 친구들에게 인사하기가 바쁩니다." 그는 "무례" 와 "추악"과 "불효" 와 "불결한 손톱"에 고개를 끄덕여 인사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다시 "허영" 에게 인사하기 시작했다. "회색의 인간"은 어깨를 세우고 나섰다. 작은 죄를 가지고 속이기에는 이미 때가 늦었다. 이 "회색"은 "살인"이었다. 톰은 유리컵의 냉기를 손으로 느꼈고 결정테가 딩굴며 녹고 있고 거품이 번쩍이며 일고 있는 진주빛 액체를 보았다. 그는 공허한 방에다 대고 소리쳤다. "효험이 있을 거요. 아침까 지만 기다리면 기분이 좋아질 거요." 그때 울려퍼졌던 소리가 바로 이 소리였었다. 벽과 의 자와 램프가 이 소리를 들었었다. 이것들이 그것을 증명할 수 있었다. 톰 해밀튼이 살 수 있 는 곳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그것은 노력의 부족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가능성을 점 쳐 봤다. 런던? 아니다! 이집트 - 이집트의 피라밋, 그리고 스핑크스? 아니다! 파리? 아니! 가만있자 - 이런 곳에서는 죄가 더 성행한다. 아니다! 너의 잠깐 비켜 서 있거라. 다시 생각 해 볼지도 모르니까. 베들레헴? 아니고. 아니다! 그곳에서는 낯선 사람은 외롭게 될 거다. 그러자 거기에 잇달아 생각이 떠올랐다 - 죽은 방법이나 시기를 생각해 내기란 어려운 것이다. 치켜올라간 눈썹 또는 신음 이것도 죽는 방법일 수 있다. 아니면 섬광이 터져 얼럭 덜럭 하게 되는 밤, 탄알이 화약에 말려 비밀을 찾아내고 피를 흘리게 하는 것도 그 하나다. 이제 톰 해밀튼이 죽은 것은 사실이다.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몇 가지의 온당한 일을 하 기만 하면 된다. 소파가 불평하듯 삐걱거렸다. 톰은 소파를 보았고, 또 소파가 알려준 램프를 보았다. 그 을음이 나고 있었다. "고맙다." 그는 소파에게 말했다. "내가 미처 못 봤구나." 그는 심지를 낮추어 그을음이 멎게 했다. 그의 마음은 졸고 있었다. "살인"이 그를 때려 깨웠다. 이제 "붉은 톰", "사기꾼 톰"은 너 무 지쳐서 자살을 할 수 없었다. 그러자면 약간의 손이 갈거다. 어쩌면 고통과 지옥이 따를 것이다. 어머니가 자살을 아주 싫어하고 있다는 생각이 났다. 그 이외에도 아주 싫어하는 것이 세 가지 있었는데, 그것은 버릇없는 행실과 비겁과 죄였다. 이런 것들은 간통이나 도둑만큼이나 나쁜 것이었다. 새뮤얼 같으면 그것을 어렵게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부친은 어디에나 계시기 때문에 피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 미안합니다. 어찔할 수가 없어요. 아버지는 저를 과대 평가 하셨어요. 아버지의 잘못이에요. 아버지가 저에게 베풀어 주신 사랑과 자랑을 정당화 할수만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버지는 탈출구를 생각해 낼 수도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러나 나는 할 수 없어요. 나는 살 수 없습니다. 나는 데시 누나를 죽였으니 잠들고 싶습니다." 이 세상에 없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그의 마음이 대답했다. "네처지를 이해하겠다. 출생에 서 다시 출생으로 되돌아가는 호에는 선택할 방법을 생각해 보자. 너는 왜 그리 참을성이 없느냐?" "참을 수가 없기 때문이에요. 더 이상 참음 수가 없어요." "너는 기다릴 수 있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내가 알기론 너는 내가 머리라고 부르는 순무 를 사용하도록 해라." 톰이 서랍을 열자 크레인의 고급 편지지철과 편지지 정도의 봉투와 씹어서 못쓰게 된 연 필 두 자루와 먼지 낀 뒷구석에 우표 몇 장이 되었다. 그는 편지지철을 꺼내고 주머니칼로 연필을 깎았다. 그는 편지를 썼다. "어머니, 별일 없으시리라고 믿습니다. 어머니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습니다. 올리 브 누나가 추수감사일에 오라고 했으니 그때 가겠어요. 아름다운 올리브 누나는 칠면조 요 리를 어머니만큼 잘 하지요. 하기야 어머니는 그렇게 생각지 않을 겁니다. 나는 아주 운이 좋았어요. 15달러를 주고 말 한 필을 샀어요 - 거세한 말이죠. 순종같이 보여요. 그놈이 사 람을 싫어한다고 해서 싸게 산 거죠. 먼저 주인은 말 잔등에 타고 있는 것보다는 떨어져 땅 에 나자빠져 있을 때가 더 많았죠. 그러나 꽤 예민한 놈이에요. 그놈은 나를 두 번씩이나 내 동댕이를 쳤지만 기어코 타겠어요. 내가 그놈의 기를 꺾을 수만 있다면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말을 갖는 것이죠. 한 겨울이 다 걸린다고 하더라도 틀림없이 그놈의 기를 꺾어 놓고 말겠어요. 내가 왜 말 이야기만 쓰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먼저번 주인이 재미있는 말을 했어요. 그놈 은 하두 심술 궂어서 등에 타고 있는 사람도 삼켜버린다는 거예요. 우리가 토끼 사냥을 갔 을 때 아버지께서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기억이 나세요? 싸움에 이겨 방패를 갖고 돌아오 든지 아니면 죽어서 방패에 엊혀 오라 하시던 말씀이에요. 추수감사절날에 뵙겠습니다. 아들 톰 올림." 그는 글이 잘 됐는지 의심쩍었지만 너무 피로하여 다시 쓸 수가 없었다. 그는 추신을 썼 다. "추신. 폴리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더군요. 그 녀석이 내 낯을 붉히게 합니다." 그는 또 다른 편지를 한 장 썼다. "윌 형에게. 형은 어떻게 생각할 지 모르지만 제발 나를 도와줘요. 또 어머니를 위해서 제발. 나는 말에 채여 죽었어요. 말에서 떨어져 머리를 채였 어요 제발! 동생 톰으로부터." 그는 우표를 붙인 다음 편지를 호주머니에 넣고 새뮤얼에게 물었다. "이 정도면 됐습니 까?" 침실에서 그는 새 탄알 상자를 뜯고 한 알을 기름이 잘 칠해진 스미드 앤드 웨슨 33구경 총의 탄창에 넣었다. 그리고 탄창을 격침 왼쪽에 끼었다. 울타리 근처에서 졸고 있던 말이 그의 휘파람 소리를 듣고 왔다. 말은 그가 안장을 얹는 동안 졸고 있었다. 그가 킹 시티에서 두 통의 편지를 부 치고 말머리를 남쪽으로 돌려 그리운 해밀튼 농장의 불모지를 향해 떠났을 때는 새벽 3시였 다. 그는 사내다운 신사였다. 제 4 부 제 34 장 1 "세상 이야기란 어떤 것이죠?" 하고 아이들은 물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른들도 "세상 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요? 결말은 어떻게 나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이야기란 어 떤 것이지요?" 이렇게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한 가지 이야기밖에 없다고 나느 생각한다. 유일한 그 이야기가 우리를 항상 무 섭게 만들고 충돌하기 때문에 우리는 연백속에서 사색과 회의를 계속하며 살고 있는 것이 다. 인간이란 생활과 사색, 기아와 야심, 허욕과 잔인, 그리고 친절과 관용 속에서도 선악의 그물에 잡혀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이야기이며 이것은 모든 지정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선과 악은 우리가 세상을 처음 출생하여 인식한 씨줄과 날줄이 며 또한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에도 인식하게 될 직물이다. 세상 물정이 어떻게 변한다, 하 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이 이외에 다른 이야기는 없다. 인간은 일생 동안의 잔재를 다 떨어버 리고 난 후에도 어렵고도 단순한 한 가지 의문만은 안게 될 것이다. "일생이 선했나, 악했 나, 나는 일생을 잘 살았나 - 아니면 나쁘게 살았나?" 그리이스의 역사학자 헤로도투스는 페르샤 전쟁을 서술하면서 그 당시에 가장 많고 뭇사 람들의 총애를 받고 있던 크리이서스가 아테네의 현인 솔론에게 유도질문을 한 이야기를 하 고 있다.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누구인가?" 하고 그가 질문햇다. 그는 확인을 받고 싶 었던 것이 틀림없다. 솔론은 옛날에는 행복했던 세사람의 이야기를 아뢰었다. 그러나 크로이 서스의 귀에는 이 이야기가 들어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너무나 자기 이야기를 듣고 싶었 기 때문이다. 솔론이 그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자 왕은 할 수 없이 직접적인 질문을 했다.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지 않는가?" 솔론은 서슴지 않고 대답했다. "내가 어떻게 말씀 드릴 수 있겠습니까? 아직도 생존해 계신데." 그의 행복이 부와 왕국과 함께 사라졌을 때, 이 대답은 크로이서스의 뇌리에서 침울하게 떠나지 않았을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그는 화형을 받을 때에도 이 현답을 생각했었을 것이 고, 어쩌면 그때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고 그런 대답을 듣지 않았었기를 바랬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사람이 죽을 때 - 질시의 대상이 도는 부와 권력과 의장을 그가 갖고 있었다 면 생존한 사람들이 그의 재산과 공과를 자세히 조사하고 난 후에라도 이와 똑같은 의문은 있게 마련이다. "그의 생애는 선했나, 악했나?" - 이 말은 크로이서스의 질문을 다르게 표현 한 것에 불과하다. 만일 질시가 사라졌다고 한다면 기준은 어떻게 된다. "그는 사람들의 경 애의 대상이었던가, 증오의 대상이었던가? 그의 죽음이 아깝게 생각되는가, 시원하다고 생각 되는가?" 나는 세 사람의 죽음을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중에 하나는, 사람들의 영혼과 육체를 짓밟고 세기의 보호가 됐던 사람이 잃어버린 사랑을 되찾으려고 여러 해를 노력한 끝에 세상에 많은 공헌을 했다. 입신중에 저지른 죄과를 보상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나는 그 가 죽었을 때 같은 배를 타고 있었다. 게시판에 부음이 붙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부 음을 듣고 기뻐했다. "고맙게도 개새끼가 죽었군." 하는 사람도 몇 명 있었다. 다음에는 악마처럼 영리한 사람이 있었다. 인간의 위신을 조금도 깨닫지 못하고 인간의 약점과 사악한 모든 면만을 알고 있던 그는 사람을 왜곡하고 매수하고 뇌물을 주고 위협하 고 유혹하는 그의 재주를 활용하여 커다란 권좌에 오르게 되었다. 그는 덕이 라는 이름으로 그의 동기를 감쌌다. 자애심이 없는 어떤 선물도 사람의 사랑은 매수할 수 없다는 것을 그 는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뇌물을 받은 사람은 뇌물을 준 사람을 증오하게 만들 뿐이다. 이 사람이 죽었을 때 온 국민이 그를 찬양해 마지 않았지만, 그 밑바닥에는 죽음을 기뻐하 는 마음이 깔려 있었다. 셋째번 사람은 실행 과정에서 많은 과오를 범했지만 사람들이 가난하고 두려움을 느낄 때, 그리고 추악한 세력이 사람들이 두려움을 악용하고 있을 때 그들을 용감하고 위엄 있고 선량하게 만드는데 그의 생애를 바쳤다. 이 사람은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증오를 받았다. 그 가 세상을 떠났을 때 사람들은 길에서도 눈물을 터뜨리고 마음속으로 울부짖었다. "우리들 은 이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가 없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인간이란 표면으로는 연약하지만 선량하게 되고 싶어하고, 사람을 받고 싶어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대부분의 인간의 악은 사랑에 이르는 지름길로서 시도된다. 재능이나 지위나 자질 이 어떠하든 사람이 사랑을 받지 못하고 죽는다면 그것은 실패요, 싸늘한 두려움이다. 여러 분이나 나나 사색과 행동. 두 가지 길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하여야만 하는 경우, 우리는 죽 음을 생각하고 우리가 죽음으로써 세상 사람들을 즐겁게 하지 않도록 살아야 할 것이다. 세 상에는 한 가지 이야기밖에 없다. 모든 소설과 시는 선악의 끊임없는 투쟁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다. 악은 계속 알을 까야만 하지만, 선은, 다시 말해 덕은 불멸한 것이다. 악은 항 상 새롭고 싱싱한 모습을 갖지만 덕은 이 세상의 무엇보다도 존엄한 것이다. 제 35 장 1 리이는 아담과 쌍둥이가 샐리너스로 이사가는 것을 도와주었다. 도와주었다기 보다는 도 맡아 했다. 짐을 꾸리고 기차에 탁송하고 포드 차 뒤에 짐을 싣고 샐리너스에 도착하여 풀 고 아담한 데시의 집에 가족들이 안주하는 것을 보살폈다. 리이는 그들을 편안하게 하는 일, 필요치 않은 많은 일, 그리고 그 이상의 일을 하면서 미루어오다가 어느날 저녁 쌍둥이가 잠을 자러 간 후 형식적으로 아담의 뒤치다꺼리를 해주고 있었다. 리이의 냉정하고 형식적 인 태도로 보아 아담은 그의 의도를 간파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담이 말했다. "좋아, 예상하고 있었어. 말해 봐." 아담의 말에 리이는 그에게 말하려고 기억해 두었던 말을 잊어 버렸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제 능력껏 모셔왔습니다. 이제 내 생각엔 -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연기해 왔습니다. 작별 인사도 준비해 놓았습니다. 듣고 싶으세요?" "하고 싶은가?' "아니요. 하지만 멋있는 작별 인사죠." "언제 떠나려나?" "가능하면 빨리 떠날까 합니다. 곧 떠나지 않으면 흐지부지될까봐 걱정되니까요. 다른 사 람이 올 때까지 제가 기다리기를 바라십니까?" "그럴 생각은 없네. 알다시피 나는 느려요. 시간이 꽤 걸릴지도 모르지. 영영 못 얻을 지 도 모르고." "그러면 내일 떠나겠습니다." "아이들이 실망할 걸. 그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겠어. 자네는 몰래 떠나게. 그러면 다음 에 내가 이야기해 주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지." "내가 보기엔 아이들은 항상 우리를 놀라게 하지요." 리이가 말했다. "그랬지." 다음날 아침식사 때 아담이 말했다. "얘들아, 리이 아저씨가 떠난단다." "그래요?" 카알이 말했다. "오늘 밤에 농구 시합이 있는데, 10센트래요. 가도 돼요?" "좋다. 그런데 너희들은 아빠가 한 말을 들었니?" "그러믄요." 아론이 말했다. "리이 아저씨가 떠난다고 말씀하셨죠." "리이는 다시 돌아오지 않아." 카알이 물었다. "어디로 가는데요?' "샌프란시스코로." "아!" 아론이 말했다. "메인 스트리트 길거리에 한 남자가 있는데 그는 작은 스토브에 소 시지를 구워 과자빵에다 넣어 팔아요. 5센트래요. 겨자는 달라는 대로 주고요." 리이는 부엌문에 서서 아담에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쌍둥이들이 책을 챙기자 리이가 말했다. "얘들아, 잘 있어." 그들은 "안녕히 가세요." 하고 소리치고는 집 밖으로 빠져나갔다. 아담은 커피잔을 들여다보면서 사과했다. "괘씸한 놈들이군! 10년이 넘도록 돌봐준 보답이 그거란 말이야." "그것이 더 좋습니다." 리이가 말했다. "슬픈 척한다면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이지요. 그들 에겐 별 의미가 없는거죠. 가끔씩 내 생각을 할지도 모르죠 - 속으로 말입니다. 애들이 슬 퍼하기를 바라지 않아요. 그들이 섭섭하게 생각한다고 좋아할 만큼 난 속이 좁지는 않죠." 그는 50센트를 테이블 위에 놓고 말했다. "오늘밤 농구 시함 구경을 갈 때, 이 돈을 내가 주더라고 전해 주세요. 그리고 소시지 빵도 사먹으라고 하세요. 제 작별 선물은 프토마인 중 독에 걸려 있는지도 모르죠." 아담은 리이가 식당으로 들고 들어온 망원경 같은 종다래끼를 쳐다보았다. "이것이 짐 전 부인가?" "책 말고는 전부입니다. 책은 지하실에 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안정된 다음에 사람을 보 내든지, 내가 오든지 해서 가져가겠습니다." "그럼, 자네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자네가 그리워질걸세. 정말 서점을 차릴 계획인가?" "그럴 생각입니다." "소식을 전하겠나?" "모르겠습니다. 생각해봐야겠군요. 분명히 끊어 버리는 것이 제일 빨리 낫는 길이라고도 하더군요. 그저 우표로나 맺어지는 친교사처럼 서글픈 것은 없지요. 직접 보고 듣고 접촉할 수 없다면 그 사람은 떠나 가게 내버려두는 것이 상책입니다." 아담은 테이블에서 일어섰다. "정거장까지 함께 가세." "아닙니다!" 리이는 날카롭게 말했다. "아닙니다. 사양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트래 스크씨, 안녕히 계십시오, 아담." 그는하도 빨리 집 밖으로 나갔기 때문에 아담의 작별인사 는 그가 계단 밑에 내려 갔을 때에야 들렸고 "잊지 말고 편지 하게." 하는 소리는 앞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꼐 들렸다. 2 그날 밤 농구 시합이 끝난 후 카알과 아론은 각각 소시지 빵을 다섯 개씩 먹었다. 그것으 로 족했다. 아담이 저녁식사 준비를 잊었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들은 처음으로 리이 이야기를 했다. "아저씨가 왜 갔는지 모르겠구나?" 카알이 뭉었다. "떠나겠다고 전에도 말한 적이 있어." "아저씬 우리들이 없는데 무슨 일을 할까?" "모르겠어. 틀림없이 돌아올 거야." 아론이 말했다. "무슨 말이야? 아버지가 그러시던데 아저씨는 서점을 차린데. 우스운 일이야. 중국인 책방 이라." "아저씬 돌아올 거야." 아론이 말했다. "아저씨는 우리들이 보고 싶을 거야. 두고 봐." "안 그럴걸. 10센트 걸겠어." "언제까지 안 그럴 거란 말야?" "영원히." "돌아온다니까, 나도 내기 하겠다." 아론이 말했다. 아론은 한 달 동안 내기한 돈을 받을 수 없었으나 그 다음 엿새 후에 내기 돈을 받고 말 았다. 리이는 10시 40분 기차를 타고 와서 자기의 열쇠쇠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식당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아담이 부엌에서 프라이팬에 덕지덕지 않은 까만 더깨를 깡통따개 끝으로 긁 어내고 있는 것을 리이는 보았다. 리이는 종다래끼를 내려 놓았다. "그것은 하룻밤만 물에 담가 놓으면 벗겨져요." "그래? 요리할 때마다 태워먹었어. 마당에 근데 소스팬이 있어. 냄새가 하도 지독해서 집 안에 둘 수가 있어야지. 불에 탄 근대 냄새란 지독해 - 리이!" 그는 이렇게 말하고는 소리 쳤다. "어떻게 된 것인가?" 리이는 그에게서 까만 프라이팬을 받아 싱크대에 놓고 물을 부었다. "새 가스 스토브만 있으면 2, 3분 안에 커피를 끓일 수 있을 텐데요. 불을 피우는 것이 좋게군요." "스토브는 타지 않겠지?" 리이는 뚜껑을 열었다. "재를 치웠던가요?" "재라니?" "다른 방에 가서 계십시오. 커피를 끓여 드릴테니까요." 아담은 식당에서 기다리기가 힘들었으나 리이의 말을 따랐다. 드디어 리이가 커피 두 잔 을 들고 와서 테이블 위에 놓았다. "남비에 끊였어요. 훨씬 빠르죠." 그는 종다래끼 위로 몸 을 굽히고 꼭 잡아맸던 끈을 풀었다. 그리고는 돌 주전자를 꺼냈다. "중국산 입상주에요. 오 가피주는 10년 이사은 갈지도 모르죠. 나 대신 누구를 고용하셨는지 여쭈어보는 것을 잊었 군요." "넌지시 말하는 구먼." 아담이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직언을 하여 결말을 보는 것이 최선의 방법임도 알고 있습니다." "자네는 판탄 놀음에 돈을 잃었구먼." "아닙니다. 그렇기라도 했으면 좋지요. 돈은 있습니다. 이 빌어먹을 놈의 코르크가 부러졌 네요 - 병 속으로 밀어 넣는 것이 좋겠군요." 그느 새까만 술을 자기 커피에 따랐다. "이렇 게 마시기는 처음입니다. 향기가 좋군요." "썩은 사과 냄새가 나지." 아담이 말했다. "그렇죠. 샘 해밀튼이 잘 썩은 사과 냄새 같다고 말씀하신 생각이 납니다." 아담이 말했다. "자네에게 일어난 일은 언제나 말하겠나?"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리이가 말했다. "외로웠어요. 그것이 전부입니다. 이 말로는 충분 치 않습니까?" "책방은 어떻게 됐니?" "책방은 차리고 싶지 않아요. 기차를 타기 전에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이렇게 시간이 걸린 것이죠." "그러면 마지막 꿈도 사라졌구먼." "잘 없어졌지요." 리이는 히스테리를 일으킬 성싶었다. "트래스키씨, 이 중국인도 술에 취하고 싶군요." 아담이 깜짝 놀랐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리이는 술병을 입에 대고 독한 술을 크게 한 모금 마셨다. 타는 듯한 목구멍에서 향내가 났다. "아담, 나는 집에 돌아와서 어떻게 비교할 수 없어. 믿을 수 없이, 압도적으로 기쁩니다. 내 생애에서 그토록 외로운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제 36 장 1 샐리너스에는 국민학교가 두 개 있었는데, 두 학교가 다 높다란 창이 달린 노란 건물로 되어 있었다. 창은 사악스럽고 문은 미소도 짓지 않는 듯했다. 학교 이름은 동부교와 서부교 였다. 동부교는 마을을 가로질러 멀리 떨어져 있어서 메인 스트리트 동쪽에 살고 하는 아니 들이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언급하지 않았다. 큰 2층 건물로 된 서부교의 앞면에는 마디투성이의 포플라나무가 서 있어서 운동장은 소 녀장, 소년장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학교 뒤에는 높다란 관자 울타리가 있어서 소녀장과 소 년장을 나누고 있었다. 운동장 뒤에는 웅덩이가 있었는데 그 안에는 커다란 튤나무와 카테 일풀까지 자라고 있었다. 서부교에는 3학년에서부터 8학년까지 있었다. 1학년과 2학년 학생 은 좀 떨어져 있는 유아학교로 옮겨 갔다. 서부교에는 학년마다 교실이 하나씩 있었는데, 3, 4, 5학년은 아래층에, 그리고 6, 7, 8학년 은 2층에 있었다. 교실마다 참나무로된 평평한 책상들과 교단과 교탁과 세트 토마스 벽시게 와 그림 한 장이 있었다. 라파엘 전파의 영향이 두드러졌다. 갑옷을 차려 입은 원탁기사 갤 라하드가 3학년 학생들의 진로를 가르치고 있었다. 그리이스 신화의 걸음빠른 미인 아탈란 타의 행보가 4학년 학생들을 재촉하고 있었고 바실의 화분 그림이 5학년 학생들을 어리둥절 하게 하고 있었다. 이렇게 나아가다가 캐터라인의 탄핵그림이 8학년 학생들에게 높은 시민 도덕심을 심어주며 상급학교로 보내주고 있었다. 카알과 아론은 나이 때문에 제 7 학년에 편입되었다. 그들은 그림의 모든 음영을 알고 있 었다 - 전신이 뱀에 휘감긴 라오콘의 그림이었다. 교실 하나밖에 없던 시골학교에 다녔던 두 소년은 크고 장엄한 서부교에 어리둥절했다. 호사스럽게도 학년마다 선생이 따로 있는 것도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건 낭비처럼 보였다. 모든 사람에게 그러하듯이 그들은 첫날엔 어리둥절해 하더니 둘쨋날에는 찬사를 보내고 세 쨋날에는 다른 학교에 다녔었다는 것조차 똑똑히 기억할 수 없었다. 선생님은 피부가 검고 예뻤다. 쌍둥이들은 재치있게 손을 올렸다 내렸다 하여 걱정을 할 필요가 없게 되엇다. 카알은 이 방법을 재빨리 생각해 내고는 아론에게 설명했다. "다른 아 이들을 봐. 답을 알면 손을 들고, 모르면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가듯이 몸을 숙이고 있지 않 아.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알겠지?" "모르겠는데, 어떻게?" "선생님은 항상 손을 들고 있는 아이들을 시키는 것은 아니야. 다른 아이들에게도 몰아붙 이는데 그들은 답을 모른단 말이야." "그런데?" 아론이 말했다. "첫째 주일에는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가 손을 들지 않는거야. 그러면 선생님은 우리를 부 를 것이고 우리는 척척 대답을 하는 거야. 그렇게 해서 선생님을 곯려주는 거야. 둘째 주일 에는 우리는 공부를 하지 않고 와서 손을 드는 거야. 그러면 선생님은 우리를 안 부를 걸. 셋째 주인에는 그저 앉아 있는 거야. 그러면 선생님은 우리가 아는지 모르는지 알 수 없을 거란 말이야. 곧 선생님은 우리를 내버려둘거야. 선생님은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을 호명하여 시간 낭비를 하지 않을 거야." 카알의 방법은 효과가 있었다. 얼마 안 가서 쌍둥이들은 간섭을 받지 않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머리가 좋다는 평판을 얻게 되었다. 사실은 카알의 방법이란 시간의 낭비였다. 두 형 제는 아주 쉽게 학교 생활을 해나갔기 때문이다. 카알은 구슬치기를 잘 해서 학교 운동장에서 백묵이니, 구슬이니, 유리알이니, 취김돌을 전부 거둬들이게 되었다. 카알은 구슬치기 유행이 지나면 그것을 팽이와 바꾸었다. 그는 모 양이 없고 두툼한 납작팽이로부터 축이 바늘처럼 가늘고 얄상하고 위험한 팽이에 이르기까 지 갖가지 형태와 색깔의 쉰 다섯 개의 팽이를 갖고 그것들을 법화처럼 사용하던 때도 있었 다. 쌍둥이를 본 사람은 누구나 서로 다른 점을 보고는 어리둥절해보는 듯했다. 카알은 자라 면서 피부색이 검어지고 머리칼도 까많게 되었다. 그는 재빠르고 틀림없었지만 비밀스러운 면이 있었다. 어른들은 그가 조숙하게 보인다는 인상을 받고 다소 놀라워했다. 카알을 좋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그를 두려워했고 두렵기 때문에 재세우기도 했다. 친구다운 친구라고는 하나도 없었으나, 추종하는 친구들도 없지 않아서 운동장에서는 자연스럽게 대 장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그가 교묘한 재간을 나타내지 않고 있었다면 마음의 상처도 드러나지 않았었을 것이다. 그는 무신경하고 둔한 사람으로 생각되었다 - 잔인한 사람으로 생각되었다. 아론은 모든 사람에게서 사랑을 받았다. 그는 수줍고 섬세한 소년처럼 보였다. 발그레한 살결, 금발, 미간이 넓은 파란 눈 등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운동장에서는 그의 귀여운 점이 다소 어려움을 야기하기는 했지만, 시험해 보는 아이들에 의해 아론은 고집이 세고 끈 덕지고 전혀 두려움을 모르는 투쟁자라는 것, 특히 울음을 터뜨렸을 때 그러했다는 것이 발 견되고 나서부터는 이 모든 것이 해소되었다. 이런 말이 들자 새로 들어온 학생을 곯려 먹 는 아이들도 그를 내버려두게 되었다. 아론은 자기의 기질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다만 그의 외모가 그 기질과는 동떨어진 것이었기 때문에 나타나지 않을 뿐이었다. 일단 방향이 정해 지면 그는 절대로 변경하는 일이 없었다. 그는 단면적이었고 융통성이 별로 없었다. 그는 단 면적이었고 융통성이 별로 없었다. 그의 마음이 교묘한 것에 대하여 무감각했던 만큼이나 그의 육체는 고통에 무감각했다. 카알은 아론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균형을 깨뜨림으로서 그를 다룰 수가 있었다. 그러 나 이것은 어느 정도 까지만 작용을 했을 뿐이다. 카알은 언제 옆으로 비켜서야 하고 언제 도망쳐야 하는 것을 잘알고 있었다.이 변하면 아론은 혼란을 느꼈지만 다른 것에는 전혀 혼 란되는 일이 없었다. 그는 자기 길을 설정해 놓고 묵묵히 그 길을 따를 뿐 한눈을 팔지도 않고 다른 것엔 관심도 두지 않았다. 그의 감정은 폭이 좁고 묵직했다. 천사같은 얼굴에 의 하여 그의 정체는 감추어져 있었다. 그는 새끼 사슴의 가죽에 난 얼룩점에 대하여 관심이나 책임을 지지 않듯이 자신의 용모에 대하여 관심도 책임도지지 않았다. 2 아론은 처음 등교하는 휴게 시간을 목망르게 기다렸다. 그는 에이브라에게 말을 건네기 위하여 소녀 정으로 갔다. 소녀들이 떼를 지어 소리를 질렀으나 그를 몰아낼 수는 없었다. 나이든 선생님이 와서 그를 소년정으로 밀어내야만 했다. 아론은 점심때에도 그녀를 만날 수 없었다. 그 애의 아버지가 멋있는 사륜 마차를 타고 와서 점심을 먹이기 위해 집으로 데려갔기 때문이다. 아론은 수업이 끝난 후 교문 밖에서 그애를 기다렸다. 그애는 다른 소녀들에 둘러싸여 나왔다. 그애의 얼굴은 침착했고 그를 애기했다는 표정은 전혀 없었다. 그애는 학교에서도 제일 예쁜 소녀였다. 아론이 그것을 알아 차렸었는지 모르 겠다. 소녀들은 구름처럼 그녀에게 매달렸다. 소녀들이 어깨 너머로 그애에게 가시돋친 모욕적 언사를 내뱉았지만 그는 끈덕지게 당황하지 않고 서너 발짝 뒤에서 그들을 따라갔다. 점점 소녀들은 자기 집으로 흩어지고 에이브라가 하얀 대문이 달린 자기 집에 도착하여 안으로 들어갔을 때에는 세 소녀만이 남았다. 세 소녀들은 잠시 동안 그를 쳐다보다가 낄낄 거리며 제각기 흩어졌다. 아론은 보도 끝에 앉았다. 잠시 후에 빗장이 올려지더니 문이 열렸다. 그애는 보도를 가로 질러 그에게 왔다. "무슨 일이니?" 아론의 커다란 눈이 그애를 쳐다보았다. "너, 다른 사람하고 약혼하지 않았니?" "바보 같은 소리." 그녀가 말했다. 그는 애써 일어났다. "우리는 오래 있어야 결혼할 수 있을 거야." "누가 결혼하고 싶대?" 아론은 대답하지 않았다. 듣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나란히 걸었다. 에이브라는 앞을 바라보고 또박또박 걸어갔다. 그녀의 표정에는 현명함과 사랑스러움이 있었다. 그녀는 깊은 생각에 잠긴 듯했다. 아론은 나란히 걸으면서 그녀의 얼굴을 계속 쳐다 보았다. 그의 관심은 단단한 밧줄로 그녀의 얼굴에 매어져 있는 듯했다. 그들은 유아 학교를 아무말 없이 걸어 지나쳤다. 거기에서 포장된 길이 끊겼다. 에이브라 는 오른쪽으로 돌아 여름 건초밭 그루터기 사이로 앞서 걸어갔다. 까만 아도브 조각이 발 밑에서 부숴졌다. 건초밭 끝에 작은 수원 오두막이 있었고 한 그루의 버드나무가 펌프에서 넘쳐나오는 물을 받아 그 옆에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기다란 버드나무 가지가 스커드 자락처럼 땅에까지 늘 어져 있었다. 에이브라는 땅에 앉았다. 앉았다기보다는 떨어져 내리는 듯했다. 스커트가 파도처럼 넓게 퍼졌다. 그녀는 기도나 올리는 것처럼 무릎위에 두 손을 모았다. 아론은 그녀 곁에 앉았다. "우리는 오래 있어야 결혼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는 다시 말했 다. "그렇게 오래는 아닐 거야." 에이브라가 말했다. "지금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아론이 물었다. "네 아버지가 허락해 줄까?" 그녀에겐 새로운 생각이었다. 그녀는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아버지한테는 말 안 할 지도 몰라." "너의 어머니는?" "부모네들을 괴롭히지 말자. 우리의 결혼이 우습다거나 아니면 좋지 않다고 생각하실 거 야. 이걸 비밀로 할 수 있니?" "물론이지. 나는 누구보다도 비밀을 지킬 수 있어. 몇 개의 비밀을 갖고 있기도 하고." 에이브라가 말했다. "그 비밀 속에 이것도 끼워 두려므나." 아론은 나뭇가지 하나를 집어 들고 시꺼먼 땅 위에 금을 그었다. "에이브라, 어린애를 어떻게 낳는지 아니?" "알지." 그녀가 말했다. "누가 말해 줬니?" "리이 아저씨가 말해 줬어. 전부 설명해 준 걸. 우리들은 오랫동안 아기를 가질 수 없을거 야." 에이브라의 입끝이 겸손하게 치켜올라갔다. "그렇게 오래지는 않을 거야." "우리도 언젠가는 집을 갖게 되겠지." 아론이 생각에 잠겨 말했다. "집에 들어가서 문을 닫으면 멋있을 거야. 그러나 한참 있어야 될 거야." 에이브라는 손을 내밀어 아론의 팔을 잡았다. "시간에 대해서 걱정하지 마. 여기도 일종의 집이야. 기다리는 동안 여기를 집으로 삼으면 돼. 너는 남편이 되고 나를 아내라고 부르면 돼." 그는 입 속으로 중얼대다가 크게 불러 보았다. "여보!" "연습하는 것 같은데." 에이브라가 말했다. 아론이 갑작스럽게 말했다. "연습하는 동안 다른 것도 해볼 수 있을지 몰라." "무엇인데?" "너는 싫어할지도 몰라." "무언데?" "네가 내 엄마 노릇을 하는 거야." "그건 쉽지." "싫으냐?" "아니, 좋아. 지금 시작하고 싶니?" "그래, 어떻게 하지?" "아, 내가 가르쳐 주지." 에이브라가 달래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가야. 이리 온 엄마 무릎 을 베거라. 엄마가 안아줄게." 그녀가 아론의 머리를 끌어 눕히자, 아론은 느닷없이 울기 시 작했다. 끊일 줄 몰랐다. 그는 조용히 울었다. 에이브라는 아론의 뺨을 쓰다듬고 흐르는 눈 물을 스커트 자락으로 닦아 주었다. 해는 샐리너스 강 너머로 기울고 새는 황금빛 들녘에서 아름답게 지저귀기 시작했다. 버 드나무 자기 밑의 장면은 이 세상 어느것 보다도 아름다웠다. 아론은 천천히 울음을 멈췄다. 기분이 흡족했다. "착한 아기야." 에이브라가 말했다. "엄마가 머리를 빗겨줄게." 아론은 일어나 앉아 거의 화난 듯이 말했다. "나는 화가 나지 않고는 거의 운 일이 없는 데, 내가 왜 울었는지 모르겠어." 에이브라가 물었다. "넌 어머니를 기억하니?" "못해, 아주 어렸을 때 돌아가신 걸." "사진이라도 봤을 것 아니야?" "못 봤어. 사진이 없어. 리이 아저씨에게 물어봤는데 없다는 거야. 아니야, 카알이 불어본 것 같아." "언제 돌아가셨는데?" "카알과 나를 낳고 바로." "이름이 무엇인데?" "아저씨가 그러는데 캐시래. 왜 그렇게 묻니?" 에이브라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얼굴색은?" "뭐라고?" "머리색이 엷으나 까맣냐 말이야?" "몰라." "아버지가 말 안해 주셨니?" "물어본 적이 없는데." 에이브라는 말이 없었다. 잠시 후에 아론이 물었다. "왜 그래? 왜 말을 안하니?" 에이브라는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론은 불안한 듯 물었다. "화 났어?" 그는 시험적으로 말해 보았다. "여보?" "아니야, 화 안 났어. 생각중이야." "무엇을?" "그 무엇을 대해서." 에이브라는 얼굴을 궅히며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억제했다. "어머니가 없으면 어떨까?" "모르겠어. 그저 그런 거지 뭐." "너는 다른 점을 모르고 있는 모양이구나?" "알고 있어. 네가 터놓고 말해 봐. 너는 블리틴 잡지의 수수께끼 같아." 에이브라는 침착하게 마음을 집중시키고 말했다. "너는 어머니를 갖고 싶니?" "미친 소릴 하는구나. 그야 물론이지. 누구나 다 그렇지 않아. 내 감정을 상하게 하려는 것은 아니지? 카알은 가끔씩 마음을 상하게 해놓고는 씩 웃어버리지." 에이브라는 지는 해에서 눈길을 돌렸다. 햇빛이 누에 자주빛 반점을 남겨 놓아 잘 보이지 않았다. "너는 조금 전에 비밀을 지킬 수 있다고 말했지?" "그렇지." "너는 목에 칼이 들어가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갖고 있니?" "물론 갖고 있지." 에이브라가 부드럽게 말했다. "그걸 나한테 말해봐, 아론?" 그녀는 이름을 애무하듯 불렀 다.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네가 제일 깊숙이 감추고 있는 비밀을 말해 보란 말이야." 아론은 깜짝 놀라 그녀에게서 물러섰다. "안 하겠어. 나한테 그걸 요구할 권리가 있니? 누 구한테도 말하지 않을 거야." "이리 와, 내 애기야 - 엄마한테 말해 봐라." 그녀는 달래듯 말했다. 아론은 다시 눈물이 솟구쳤다. 그러나 이번에는 분노의 눈물이었다. "나, 너하고 결혼을 할지도 의심스럽게 되었어. 지금 집으로 갈래." 에이브라는 그의 손목을 잡고 매달렸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아양을 떠는 빛이 없었다. "너 를 시험해 보고 싶었던 거야. 너는 비밀을 잘 지키는구나." "왜 그랬어? 나 화났단 말이야. 기분 나빠." "너한테 비밀을 말하려고 해." "하!" 그는 조롱하듯 말했다. "이제 누가 비밀을 지키지 못하는 거야?" "결정을 지으려고 애썼다. 너에게 좋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이 애길 너에게 말하려는 거야. 너를 기쁘게 할지도 몰라." "이야기 하지 말라고 누가 말했어?" "아무도 안했어. 나 혼자 생각했던 거지." "그러면 사정이 다르지. 비밀이 뭐야?" 빨간 해가 블랑코 가에 잇는 톨로트 집 지붕에 걸려 잇었다. 톨로트 집 굴뚝이 해를 등지 고 까만 엄지 손가락 솟아 있었다. 에이브라가 부드럽게 말했다. "우리가 너의 집에 갔던 때를 기억하지?" "물론이지!" "사륜 마차 속에서 나는 잠이 들었다가 깨어났어. 그런데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걸 모르고 말을 하던데, 네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는 거야. 도망갔대. 좋지 않은 일이 네 어머니 에게 일어나서 도망갔대." 아론이 탁한 목소리로 말했다. "죽었어." "네 어머니가 돌아가시지 않았으면 좋지 않겠니?" "아버지가 그러시는데 어머니는 돌아가셨대. 아버지는 거짓말쟁이 가 아니야." "어머니가 죽었다고 생각하시는지도 모르지." "아버지는 알고 계실 걸." 그의 말소리에는 자신감이 없었다. 에이브라가 말했다. "우리가 그분을 찾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니? 기억력을 상실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그런 이야기를 책에서 읽었어. 우리가 그분을 찾아내면 기억이 되살아날 지도 모르지." 영광된 로맨스가 그녀를 커다란 물결에 태우고 떠내려가게 했다. 아론이 말했다. "아버지한테 물어봐야지." "아론, 내가 얘기한 것은 비밀이야." 그녀는 엄격하게 말했다. "누가 그래?" "내가 말하는 거야. 자, 나를 따라 해. 누설하면 독약을 먹고 목을 자른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따라서 했다. "누설하면 독약을 먹고 목을 자른다." 그녀가 말했다. "손바닥에 침을 뱉어 - 이렇게 - 됐어. 이번엔 손을 내놔 - 알겠니? 침을 뭉개. 머리에다 비벼." 두 아이들은 공식대로 했다. 그러고 나서 에이브라가 엄숙하게 말했 다. "이 비밀을 누설할 테면 해봐. 난 이렇게 선서를 하고도 비밀을 누설한 아이가 헛간에 불이 나서 타죽은 것을 알고 있으니." 해는 톨로트 집 너머로 넘어갔고 금빛도 사라졌다. 저녁 별이 토르산 위에서 가물거렸다. 에이브가가 말했다. "산 채로 가죽을 벗기겠다. 가자, 빨리! 아버지가 나를 찾을 거야. 매 맞겠다." 아론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매를 맞다니! 때리기야 하겠어?" "정말이야." 아론이 열을 올리며 말했다. "때릴 테면 때려 보라지. 때리면 내가 죽이겠단다고 말해." 미간이 넓은 파란 눈이 좁혀지면서 빛났다. "내 아내를 때릴 사람은 아무도 없어." 에이브라는 버드나무 및 어스름 속에서 그의 목에 팔을 감고 열린 입에 키스를 했다. "사 랑해요, 여보."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는 스커트를 무릎까지 치켜올리고 쏜살같이 집으로 달 렸다. 레이스를 단 하얀 속바지가 보였다. 3 아론은 버드나무로 되돌아가 줄기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았다. 마음은 회색빛이고 기분은 아픔 투성이었다. 그는 통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감정을 사고와 그림 속으로 정리하려고 애 를 썼으나 쉽지 않았다. 천천히 사고하는 그의 마음은 그 많은 생각과 감정을 한꺼번에 수 용할 수는 없었다. 사고의 문을 꽉 닫고 육체적 고통만을 받아들였다. 잠시 후에 문이 조금 열리더니 한번에 하나씩 들어오게 하여 결국은 다 수용되었다. 닫힌 미음 밖에서는 커다란 것이 들어오겠다고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아론은 그것을 마지막까지 밀어냈다. 먼저 에이브라를 들어오게 하고는 그녀의 옷, 얼굴, 뺨에 닿던 손의 감촉, 밀크같기도 하 고 자른 유리같기도 한 그녀의 향기를 생각해 보았다. 그녀를 다시 보고 느끼고 듣고 향내 를 맡았다. 그녀가 손이며, 손톱이며, 모든 것이 얼마나 청결한가를, 그리고 교정에서 낄낄대 던 다른 소녀들과는 천야지차가 있게 얼마나 솔직한가를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순서대로 그는 그녀가 머리를 껴안던 일, 어린애같이 울던 일을 생각했다. 무엇인 가를 그리워하다가 그것을 손에 넣은 감격에서 터져나오는 울음이었다. 그것을 얻게 되어서 울음을 떠뜨렸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음으로 그녀가 자기를 시험해 보던 일을 생각했다. 만일 자기가 비밀을 털어 놓았다면 그녀가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비밀을 이야기하려고 했었다면 무슨 비밀을 털어 놓았을까? 지금 현재 그의 마음속으로 들어오겠다고 문을 두드리는 비밀 이외에는 다 른 비밀을 생각해낼 수 없었다. 그녀는 아주 예리한 질문을 했었다. "어머니가 없으면 어떤 기분일까?" 하던 이야기가 그 의 마음속으로 슬쩍 들어왓다. 어떤 기분이었을까? 다른 것과는 별개의 기분이었다. 다른 아 이들의 어머니들이 크리스마스나 졸업식에 참석했을 때 교실에서 흐느껴 울며 느끼는 무언 의 그리움이 바로 어머니가 없을 때 느끼는 기분이었을까? 샐리너스 주위에는 습지와 튤립이 무성한 연못이 많았다. 어떤 연못에서나 수천 마리의 개구리가 서식했다. 저녁이 되면 온통 개구리 소리가 뒤덮여 일종의 포효 속의 고요를 이루 었다. 그것이 일종의 배일이며 배경이었다. 그 소리가 갑자기 사라지면, 마치 우레 가 지난 후 처럼 충격적인 일도 생각되었다. 만일 한밤중에 개구리 소리가 멈춘다면 샐리너스의 사 람들은 누구나 큰 소음이라도 일어난 생각에서 잠을 깼을 것이다. 수백 만의 개구리 노래 소리에는 리듬과 억양이 있는 듯했다. 눈의 작용으로 별이 반짝이는 것처럼 귀의 작용 때문 에 그렇게 들렸는지도 모른다. 이제 버드나무 밑은 아주 어두웠다. 아론이 그 커다란 문제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지 어물대고 있는 사이에 그 문제는 마음속으로 슬쩍 들어왔다. 그의 어머니는 살아 있었다. 어머니가 꼼짝 않고 싸늘하고 썩지 않고 지하에 누워 있는 그림을 마음속에 그린 적이 종종 있었다. 그러나 이 어머니는 그렇지 않았다. 어디에선가 어 머니는 돌아다니고 말을 하고 손도 움직이고 눈도 열려 있었다. 밀려오는 기쁨 가운데도 한 가닥 슬픔이 그에게 몰려왔다. 무서운 상실감이었다. 아론은 어리둥절했다. 그는 뽀얀 슬픔 을 들여다보았다. 어머니가 살아 있다면 아버지는 거짓말쟁이 였다. 한 사람이 살아있으면 다른 사람은 죽어 있었다. 아론은 나무 밑에서 크게 소리쳤다.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동부 어디엔가 묻혀 계시다!" 어둠 속에서 리이의 얼굴이 나타나더니 부드럽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논리정연했 다. 진실에 대하여 존경에 가까운 애착을 느끼고 있던 그는 자연히 그 반대, 다시 말하면 거 짓에 대해선 역시 혐오를 받을 만한 것이었다. 리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친절한 의미에서 거짓말을 사용할 때가 종종있다. 그러나 친절 하게 작용하는 일이 없아. 진실의 고통은 곧 사라질 수 있지만 서서히 좀먹어가는 거짓의 고뇌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달리는 아픔이라고 할 수 있다." 리이는 참을성 있게 서서히 작용하여 아담을 진실의 중심, 기초, 핵심으로 만드는데 성공한 것이다. 아론은 어둠 속에서 고개를 저었다. 믿지 못하겠기에 세개 도리질을 했다. "아버지가 거짓 말쟁이 라면 아저씨도 거짓말쟁이다." 그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가 물어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카알도 거짓말쟁이 였다. 그러나 리이의 생각에 따르면 카알은 재치 있는 거짓말쟁 이 였다. 무엇인가 죽어야 한다고 아론은 느꼈다 - 어머니가 아니면 그의 세계가 죽어야만 했다. 해결책이 갑자기 떠올랐다. 에이브라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들은 이야기를 했을 뿐이고 그녀의 부모들도 들은 이야기를 했을 뿐이었다. 그는 일어서서 어머니를 죽음 속으로 밀어 놓고 마음의 문을 닫았다. 그는 저녁식사에 늦었다. "에이브라와 같이 있었다. "그가 설명했다. 저녁식사 후 아담이 새로 사온 안락의자에 앉아 "샐리너스 인텍스"를 읽고 있을 때 누가 어깨를 건드리는 것을 느끼고 쳐다보았다. "아론, 무슨 일이니?" 그가 물었다. "안녕히 주무세요." 아론이 인사했다. 제 37 장 1 샐리너스의 2월은 축축하고 춥고 비참한 일들이 많았다. 비가 제일 많이 오고 강물이 부 는 것도 모두 이 달의 일이었다. 1915년 2월은 비가 많이 온 해였다. 트래스크 가족은 샐리너스에 안주했다. 리이는 일단 책방을 차리겠다던 꿈을 포기하자 레 이노드 베이커리 옆 집에 자신을 위한 새 거처를 마련했다. 농장에서는 그의 재산을 한 번 도 풀은 적이 없었다. 다른 곳으로 늘 옮길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처음으로 안락하고 영속적인 자신의 거처를 마련했던 것이다. 그는 길가에 있는 큰 침실을 쓰게 되었다. 리이는 저축한 돈을 꺼냈다. 전에는 필요하지 않은 데에는 일전 한푼 쓰지 않았었다. 돈을 모아 책방을 차릴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 다. 그러나 이제 작고 딱딱한 침대와 책상을 샀다. 책선반을 만들어 책을 꽂고 부드러운 융 단을 사들이고 벽에는 관화를 걸었다. 가장 좋은 독서램프를 사고 깊숙하고 안락한 모리스 의자를 사서 그 밑에 놓았다. 마지막으로 그는 타자기를 사서 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스파르타식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그는 트래스크 가정을 새로 꾸몄다. 아담은 이에 반대하 지 않았다. 가스 스토브가 들어오고 전기가 가설되고 전화를 놓았다. 그는 아담의 돈을 아낌 없이 썼다 - 새 가구, 새 카핏, 가스 히터, 커다란 아이스박스를 샀다. 얼마 안돼서 그의 집 은 샐리너스에서 제일 가구를 잘 갖춘 집이 되었다. 리이는 이러한 자신을 아담에게 변호했 다. "당신은 돈이 많으시지요. 그것을 쓰지 않는다면 수치스러운 일일 겁니다." "내가 뭐라고 하나?" 아담은 항의하듯 말했다. "나도 무언가 사고 싶네. 무엇을 하면 좋을 까?" "로건 음악사에 가서 새 축음기를 들어보면 어때요?" "그래야 되겠군." 아담은 고딕풀의 커다란 빅토 죽음기를 사고 어떤 새 판이 들어 왔나를 보러 정기적으로 나갔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담은 내적 껍질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그는 월 간 "아틀랜틱" 과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구독했다. 메이슨 복지회에도 가입하여 얼크스 자 선회도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는 아이스박스에 매혹되었다. 냉동서적을 구입하여 연구하기 시작했다. 사실, 아담은 일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그는 오랜 잠에서 깨어나 일을 필요로 했다. "나는 사업에 투신할 생각이야." 그는 리이에게 말했다. "사업을 벌일 필요는 없지 않아요. 살 만한 돈이 충분한데요." "하지만 무엇인가 하고 싶은 걸." "그렇다면 이야기는 다르죠. 무슨 일을 하고 싶으세요? 당신이 사업에 재능이 있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왜 없어?" "생각이 그렇다는 거죠." "리이, 신문기사를 보여주고 싶네. 시베리아에서 커다란 코끼리가 발견되었다는 거야. 수 천년 동안 얼음 속에 있었기 때문에 그 고기를 아직도 먹을 수 있다는 거야." 리이가 그에게 웃음을 지었다. "별난 생각을 하고 계시군요. 아이스박스 속의 작은 그릇에 무엇을 넣으시겠다는 거예요?" "여러 가지 물건을 넣지." "그것이 사업인가요? 그릇 몇 개에서는 고약한 냄새가 나겠군요." "아이디어가 그렇다는 거야. 나는 그 아이디어 생각뿐이야. 물건을 차게만 보관할 수 있다 면 얼마나 보관할 수 있다는 생각이야." "아이스박스에 코끼리 고기는 넣지 않도록 합시다." 리이가 말했다. 만일 아담이 샘 해밀튼 처럼 수천 가지의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다면 모두가 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그는 오직 한 가지 아이디어만을 갖고 있었다. 얼어붙은 코끼리의 생각이 그의 머 리속에 떠나지 않았다. 작은 그릇에 담은 과일이나 푸딩이나 요리된 고기와 생고기 등이 아 이스박스 안에 계속 있었다. 그는 박테리아에 관한 책을 구할 수 있는 곳은 모두 가고, 알기 쉽게 과학적으로 쓴 잡지를 주문하기도 했다. 한가지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사람이 보통 그 렇듯이 그도 그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샐리너스에 자그마한 제빙 공장이 있었다.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아이스박스가 있는 집과 아이스크림 집에 얼음을 공급하기에는 충분했다. 말이 끄는 얼음 마차가 매일 정기적으로 다녔다. 아담은 이 제빙 공장을 방문하기 시작했고 얼마 안 있어서 냉동실로 작은 그릇을 직접 들 고 왔다. 그는 샘 해밀튼이 있어서 이 냉동에 관한 이야기를 함꼐 나눌 수 있었으면 하고 절실히 바랬다. 샘이면 이 분야를 아주 재빠르게 해결했으리라고 그는 생각했다. 아담은 어떤 비오는 오후 샘 해밀튼을 생각하며 제빙 공장에서 돌아오다가 윌 해민튼이 애보트 술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를 따라 들어가 바아에 기대고 앉았다. "한 번 놀러와서 저녁식사라도 같이 하지 그래?" "그렇게 하지요. 해결할 거래건이 있어요. 끝나면 가죠. 중요한 일이라도 있나요?" "별로 중요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생각하는 것이 있어서 충고를 받고 싶어." 그 군의 거의 모든 사업이 조만간 윌 해밀턴의 관심사가 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는 아 담이 부자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면 사양했었을지도 모른다. 아이디어는 별개지만 일단 재정 적 뒷받침이 되면 사정은 달랐다. "농장을 상당한 값으로 내놓겠다는 것은 아니겠지요?" "글세 아이들이, 특히 카알이 말일세. 거기를 좋아해서 내놓고 싶지는 않아요." "그것이라면 팔아드릴 수도 있지요." "아니야, 세를 주었어. 세금은 그것으로 물을 수 있어. 그대로 갖고 있겠어." "지금 저녁식사를 하러 갈 수는 없으니 다음에 들르지요." 윌이 말했다. 윌 해밀튼은 대단히 실제적인 사업가였다. 그가 얼마나 많은 사업에 종사하고 있는지 정 확하게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나 그가 재간 있고 비교적 돈도 많이 벌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었다. 사업상의 거래가 실제적으로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늘 바삐 뛰어 다니는 것은 그의 정책의 일부였다. 그는 에보트의 집에서 혼자 식사를 한 수 한참 있다가 샌트럴 애비튜 모퉁이를 돌아 아담 트래스크의 집 초인종을 눌렀다.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고 없었다. 리이는 바느질 바구니를 옆에 놓고 앉아 쌍둥이들이 학 교갈 때 신는 길고 까만 스타킹을 꿰매고 있었다. 아담은 "사이언티픽 아메리탄" 잡지를 읽 고 있었다. 그는 윌을 맞아들이고 의자를 권했다. 윌은 의자에 앉더니 두툼하고 까만 시가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는 아담이 입을 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분 전환하기에 좋은 날씨야. 어머니는 어떠신가?" "좋으십니다. 매일 젊어지시는 것 같아요. 아드님도 많이 겄지요?" "컸지. 카알은 연극에 나갈 거라네. 훌륭한 배우야. 아론은 모범생이고, 카알은 농사일을 하고 싶어하지." "농사일도 잘만 하면 나쁠 것이 없지요. 국가도 앞을 내다보는 농부를 환영할 거예요." 윌 은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는 아담의 재산이 과대 평가되고 있지 않은가 생각했다. 아담이 돈 을 벌 계획을 하고 잇는 것은 아닌가? 그는 트래스크 농장에 얼마나한 돈을 빌려줄 수 있고 또 그가 얼마나 벌어 쓸 수 있는지를 재빨리 계산해 보았다. 숫자도 이자도 똑같지 않았다. 그때까지 아담은 그의 제의를 내놓지 않았다. 윌은 조바심이 났다. "나도 오래 있을 수는 없 어요. 오늘 밤 늦게 누구를 만나기로 약속이 돼 있어요." "커피 한 잔 더 하겠나?" "아닙니다. 잠이 안 오는 걸요. 저를 만나고 싶으셨던 일은?" "나는 자네 부친을 생각하고 해밀튼 집안 사람을 만나고 싶었던 거네." 윌은 의자에 다소 편안하게 앉았다. "얘기를 좋아하셨던 분이죠." "어쨌든 그분은 사람을 실제보다도 더 좋게 만들어 놓으셨지." 아담이 말했다. 리이가 양말을 꿰매다 얼굴을 쳐들고 보았다.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말을 하게 만드는 사람이 제일 말을 잘하는 사람인지도 모르죠." 윌이 말했다. "자네가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니 이상하게 들리는군. 전에는 틀림없 이 중국식 영어를 했었는데." "전엔 그랬죠." 리이가 말했다. 그것은 허영이었어요." 그는 아담에게 미소짓고 윌에게 말 했다. "시베리아 코끼리가 얼음 속에서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수만 년이나 되었 는데도 고기가 싱싱했대요." "코끼리가?" "네 오래 전에 살고 있던 코끼리래요." "고기는 아직도 싱싱했고?" 리이가 말했다. "돼지고기처럼 맛이 있대요." 그는 무릎이 떨어진 스타킹에 나무 받침대를 밀어넣었다. "그거 아주 재미있는데." 윌이 말했다. 아담이 웃으면서 말했다. "이러다간 리이한테 한 대 얻어맞겠는데. 너무 빙빙 돌았으니까 말이야. 내가 가만히 앉아 있기가 지루해서 일의 발단이 생긴 것이야. 시간을 보낼 일을 갖 고 싶단 말이야." "농장 일을 하시지 그러세요?" "아니야, 거기에 흥미가 없어요. 난 일자리를 구하고 있는 사람과는 달라요. 일 자체를 찾 고 있는 거야. 일자리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야." 윌은 경계심을 풀었다. "그러면 내가 할 일은 무엇이죠?" "내가 아이디어를 하나 말해 줄 테니 자네의 의견을 말해 주었으면 좋겠어. 자네는 사업 가니까." "물론이죠." 윌이 말했다. "할 수 있는 일이면야." "나는 냉동에 대해서 조사를 해왔네.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는데 그것을 지워버릴 수 가 없어. 잠을 자도 그 생각이 나는 거야. 이렇게 나를 괴롭힌것은 여지껏 아무것도 없었네. 이것은 대단한 아이디어야. 하기야 허점도 많겠지만." 윌은 포겠던 다리를 내려 놓고는 바짓가랑이를 올라가지 않는데까지 잡아올렸다. "말씀을 하세요 - 빨리빨리요. 담배 같아요?" 아담은 듣지 못했고 들었다 하더라도 뜻을 알지 못했다. "나라가 온통 변해가고 있지 않 나." 아담이 말했다. "이제 사람들은 옛날 방식으로 살아가려 하지 않네. 겨울에 제일 큰 오 렌지 시장이 어디 있는지 아나?" "모르겠는데요. 어딥니까?" "뉴욕시에 있지. 책에서 읽었네. 그런데 추운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겨울에도 상하기 쉬운 것 예를 들면 완두콩이나 상치니 꽃양배추 같은 것을 먹고 싶어하지 않을까? 이러한 것들을 여러 달동안 맛볼 수 없는 곳이 많지. 그런데 여기 샐리너스 계곡에서는 사시사철 그 재배가 가능하단 말이야." "여기와 거기는 다르니까요." 윌이 말했다. "아이디어가 무엇이에요?" "리이가 커다란 아이스박스를 사왔지. 그런데 내가 흥미를 갖게 됐어. 거기에 여러 가지 야채를 집어넣었지. 여러 가지 방법을 써봤어. 얼음을 잘게 잘라 그 속에 상치를 넣고 비닐 에 싸서 3주일을 뒀다가 꺼내도 신선하고 좋단 말야." "계속하세요." 윌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자네가 알다시피 철도회사에서는 과일 운반차를 만들었지 않나. 직접 가서 봤는데 멋지 드먼. 한겨울에도 상치를 동부 해안으로 수송할 수 있다고 생각지 않니?" 윌이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시겠다는 겁니까?" "여기 샐리너스의 제빙 공장을 사서 물건을 운반해 보겠다는 거야." "거금이 들 겁니다." "돈이 많이 있어요." 아담이 말했다. 윌 해밀튼은 화가 나서 입을 오므렸다. "내가 여길 왜 왔는지 모르겠군요. 내가 더 잘알지 요." "무슨 뜻인가?" "이것 보세요. 어떤 사람이 나에게 어떤 아이디어에 관하여 조언을 받으로 오는 경우, 실 제로는 조언을 받고 싶어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어요. 내가 동의하기를 바랄 뿐이죠. 그와 우정을 유지하려면 그의 아이디어가 훌륭하니 밀고 나가라고 말할 거예요. 그 러나 나는 당신을 좋아하고 또 우리 가족과 친분이 있으니 솔직히 말씀 드리겠습니다. 리이는 바느질을 멈추고 바느질 바구니를 옮겨 놓고 안경을 바꿔 썼다. 아담은 나무라듯 말했다. "무엇 때문에 자네는 화가 났나?" "나는 빌어먹을 놈의 발명가 집안 출신이죠." 윌이 말했다. "우리들은 아침식사 대신 아이 디어를 먹고 살았죠. 우리들은 너무도 많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반찬거리 살 돈 마련까지 잊고 있었죠. 돈이 좀 모이면 아버지나 톰은 특허를 내는 데 썼지요. 아이디어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어머니를 제외하는 경우 유일하게 나뿐이었지요. 톰은 사람 들을 돕기 위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죠. 그 중 몇몇 아이디어는 사회주의와도 흡사한 것이 었죠. 돈벌이를 할 생각은 없다고 말씀하신다면 이 커피잔을 내동댕이쳐 버리고 말겠어요." "이윤은 별로 관심이 없다니까." "그만두세요. 솔직히 말씀드리겠어요. 4만 내지 5만 달러를 잃어도 괜찮다면 해보세요. 그 러나 말씀드리건데 그 빌어먹을 놈의 아이디어는 땅 속에 묻어버리세요." "무엇이 잘못됐단 말인가?" "모든 것이 잘못됐어요. 동부 사람들은 겨울의 야채에 익숙해 있지 않아요. 그러나 사지 않을 거예요. 당신의 화물차는 철도 대피선에 쳐박혀 있게 될 것이고 그러면 적재화물을 잃 게 될 거예요. 시장은 제한돼 있어요. 빌어먹을! 아무것도 모르는 분이 아이디어 하나를 갖 고 사업에 뛰어들겠다니 미치겠군요." 아담이 한숨을 쉬었다. "자네 말을 들으니 샘 해밀튼이 죄인이 었던 것처럼 들리는군." "그분은 나의 부친이었고 나는 그분을 사랑했지요. 그러나 그분이 아이디어를 집어치웠으 면 하고 나는 바랬어요." 윌은 아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의 눈에 놀라는 표정이 생긱는 것을 보고 윌은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나는 우리 집 가 족들을 깎아내릴 생각은 없습니다. 좋은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내가 말씀드린 충 고는 바꿀 수가 없어요. 냉동은 집어치우세요." 아담은 천천히 고개를 리이에게 돌렸다. "저녁에 먹던 레몬 파이가 좀 남았던가?" "없어요." 리이가 말했다. "부엌에서 새앙쥐 소리가 들렸죠? 아이들 베개에 달걀 흰자위가 묻었는지 모르겠네요. 위스키는 좀 있지요." "그걸 좀 할까?" "나는 흥분해 있습니다." 윌은 자조하려고 했다. "한잔 하면 좋을지도 모르죠." 그의 얼굴 은 상기되어 있었고 목소리는 긴장되어 있었다. "나는 너무 뚱뚱해져 가는군요." 그러나 나는 두 잔을 마시자 긴장이 풀렸다. 그는 편안하게 앉아 아담에게 조언했다. "어 떤 것들은 그 가치 결코 변하지 않지요. 투자를 하려면 세상을 둘러봐야 해요. 유럽에서의 전쟁은 오래 갈 것 같아요. 전쟁이 있으면 굶주리는 사람이 생기게 마련이죠. 지금 그렇다는 것이 아니예요. 그렇게 될 거란 말이예요. 나는 윌슨 대통령을 믿지 않아요 - 이름만 내세 우고 큰소리만 하죠. 기아가 생기는 경우 사하지 않는 곡물에 투자를 하면 거부가 될 거예 요. 얼음을 필요로 하지 않아요. 쌀과 옥수수와 보리와 콩을 심으세요. 그걸 저축해 놓으면 사람들은 그것을 먹고 살 수 있어요. 그 넓은 땅에 콩을 심어 비축을 해놓으면 자식들은 앞 날을 걱정할 것이 없을 거예요. 콩이 지금은 3센트밖에 안 하지만 우리가 전쟁에 끼어드는 경우 틀림없이 10센트까지는 오를 거예요. 재미를 보고 싶으시면 콩을 심으세요." 그는 기분 좋게 집을 나왔다. 그에게 밀어닥쳤던 부끄러움은 사라지고, 그는 좋은 조언을 했다고 생각했다. 윌이 가고 난 후 리이는 레몬파이를 3분의 1쯤 가지고 왔다. "그는 너무 뚱뚱해져 가서 요." 아담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다는 말을 했을 뿐이야." "제빙공장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살까 해." "콩도 심을 수 있지요." 리이가 말했다. 2 그해 늦게 아담은 대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그 지방에서뿐만아니라 전국적으로 커다란 센 세이션이었다. 그가 준비를 완료하자 사업가들은 그를 안목이 있고, 예견이 있고, 전진적 정 신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여섯 차량에 실은 얼음 상치의 출발은 마을 전체의 행 사 같았다. 모든 차량에는 "샐리너스 계곡의 상치" 라는 커다란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그러 나 이 사업에 투자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담은 자기가 상상하지 못했던 경력을 쏟았다. 상치를 모으고 다듬고 상자에 넣고 얼음 에 채우고 차에 싣는다는 것은 큰 일이었다. 모든 것이 즉석에서 이루어져야만 했다. 많은 일손을 고용해야 했고 작업방법을 가르쳐야 했다. 모든 사람들이 충고는 해쓰나 도와주지는 않았다. 아담이 거액을 썼다고 추정되었으나 얼마의 돈을 썼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 다. 아담도 몰랐다. 오직 리이 만이 알았다. 아이디어는 좋았다. 상치는 꽤 비싼가격으로 뉴욕에 있는 위탁 판매인에게 위탁되기로 되 어 있었다. 드디어 기차는 떠나고 모든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기다리고 있었다. 만일 성공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투자를 하려 했을 것이다. 윌 해밀튼 마저도 충고에서 잘못된 것이 없었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무엇이나 할 수 있고 용서할 줄 모르는 적이 일련의 사건을 계획했다 하더라도 더 효과적 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기차가 세크라멘토우에 왔을 때 눈사태가 일어나서 이틀 동안이아 시에라 산이 막혀서 여섯 차량은 얼음을 녹이면서 대피선에 서 있어야 했다. 3일 째 되는 날 화차가 산맥을 통과는 했지만 중서부에는 때아닌 더운 날씨가 지속되었다. 시카고에서는 주문의 혼란이 일어났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저 일어나는 일 중의 하나였다. 아담의 여섯 차량은 5일 이상이나 역 구내에 서 있었다. 이정도면 충분했다. 자세하게 설명을 붙일 필요가 없었다. 뉴욕에 도착한 것은 치우는 데도 막대한 돈이 드는 여섯 차량의 쓰레기 뿐 이었다. 아담은 위탁 판매소로부터 전보를 받아 읽고 의자에 기대 앉아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이 상한 미소가 께속 떠오르고 있었다. 리이는 아담 자신이 마음을 가다듬도록 내버려 두었다. 아이들은 샐리너스에서느 반을 들 었다. 아담은 바보였다. 모든 것을 아는 체 하는 공상가들은 항상 문제 속에 빠져 들어갔다. 사업가들은 그 일에 손을 대지 않은 자신들의 예견에 기뻐했다. 사업가가 되기 위해서는 경험이 필요했다. 유산을 물려받은 사람들은 항상 문제에 빠졌다. 증거를 보고 싶으면 아담 이 농장을 어떻게 운영해 왔는가를 보면 된다. 바보와 돈은 곧 헤어졌다. 이일이 그에게 교 훈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제빙 공장의 생산을 곱으로 했었다. 윌 해밀튼은 자기가 그 계획에 반대를 했을 뿐만 아니라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도 자세 하게 말해 주었다는 것을 회상했다. 그가 기쁨을 느꼈던 것은 아니지만 건전한 사업가의 충 고를 듣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윌은 무책임한 아이디어에 대해선 많은 경험을 갖고 있었다. 간접적으로 샘 해밀튼도 바보였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아이 디어에 미쳐 있으니까. 충분한 시간이 지났다고 느꼈을 때 리이는 넌지시 말하지 않고, 아담의 주의를 끌고 지속 시키기 위해 그의 옆에 똑바로 앉았다. "기분이 어떠세요?" "좋아." "이제는 자신의 구멍 속으로 기어들어가시지 않겠죠?"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나?" "전의 안색을 회복하셨으니까, 그리고 그 몽유병자의 빛이 눈에 어려 있어요. 이렇게 말씀 드리면 기분이 나쁘실까요?" "아니야, 이제 내가 무일푼이 되었나?" "그렇지 않습니다. 9천달러와 농장이 남았죠." "쓰레기 처분에 2천 달러의 청구서가 왔었지." "지불되었어요." "새 제빙공장에 빚도 좀 지고 있고." "지불 되었어요." "9천달러가 남았다고?" "농장하고요. 제빙 공장은 처분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아담의 얼굴이 굳어지고 몽롱했던 미소가 사라졌다. "일이 잘될 거라고 나는 아직도 믿고 있네. 이번 일은 사고 투성이였으니까. 제빙 공장은 그대로 둘 생각이야. 차게 하면 물건을 오래 보존하게 하니까 말일세. 게다가 제빙 공장은 약간의 돈도 벌지. 무엇인가 생각해 낼 수 있을 거야." "돈 드는 일은 생각해 내지 마세요." 리이가 말했다. "내 가스 스토브까지 버리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3 쌍둥이들은 아담의 실패로 깊은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이제 열다섯 살이 되었고 자기네 들은 부자집 아이들이라는 생각을 오랫동안 해왔기 때문에 그 충격을 잊기가 힘들었다. 축 제와 같은 분위기만 없었더라도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화차에 달렸던 플랫카드를 생각하면 소름이 끼쳤다. 사업가들이 아담을 놀려 대고 있었지만 그보다도 고등학교 학생들 은 더욱 잔인했다. 하룻밤 사이에 쌍둥이들을 "아론과 카알 상치" 아니면 간단하게 "상치 대가리"라고 불렀다. 아론은 이 문제를 에이브라와 상의했다. "커다란 변화가 올 것 같아." 아론이 그녀에게 말 했다.나 허세나 비밀을 가지고 그의 수줍음을 감추려 할 수도 있다. 소년이 한번 거절을 당 하면 실제로 거절을 받지 않아도 거절될 것으로 생각할지도 모르고 더욱 나쁜 것은 그러리라고 예상함으로써 사람들에게서 거절을 유인하게 될 수도 있다. 카알의 경우, 이 과정이 하도 길고 느려서 이상한 감정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는 세상 에 대해 자기를 보호하는데 충분히 튼튼한 자만심이라는 벽을 자기 둘레에 쌓아 놓았다. 이 벽에 약한 부분이 있었다면 그것은 아론과 리이에, 그리고 특히 아담에 가장 가까이에 있는 것이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전혀 무관심했었기 때문에 카알이 안전감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전혀 주목되지 않는다는 것은 반대로 주목을 받는 것보다도 더 나았었다. 아주 어렸을 때 카알은 하나의 비밀을 발견했었다. 만일 아버지가 앉아 있는 곳으로 가만 히 가서 아버지 무릎에 가볍게 기대면, 아담의 손은 자동적으로 카알의 어깨를 쓰다듬곤 했 다. 아담은 자기가 하는 것을 모르고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이 애무는 소년에게 대단한 감정 적 용솟음을 일으켰기 때문에 이 특별한 기쁨을 간직하고 있다가 필요한 때에만 사용했던 것이다. 이것은 의존할 수 있는 일종의 마술이었다. 이것은 확고한 동경을 나타내는 의식적 상징이었다. 장소가 변한다고 해서 사정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카알은 킹 시티에서와 마찬가지로 샐리너스에서도 친구가 없었다. 관계를 밎고 있는 사람도 있고 권위와 다소 칭찬을 받고는 있었지만 친구다운 친구는 없었다. 그는 혼자 지내고 혼자 다녔다. 에이브라는 이제 아름다운 소녀로 성장했다. 그녀는 나이가 들면서 젖가슴은 부풀어 올랐 고 얼굴은 차분하고 온후한 미모가 되었다. 예쁠 때는 지났다. 강인하고 착실하고 여성다웁 게 되었다. 그녀는 그의 걱정스러운 얼굴을 보며 물었다. "무슨 변화가 일어난다고 그래?" "한 가지, 우리가 가난하다는 거야." "어쨌든 공부를 해야 될 거 아냐?" "나는 대학에 진학하려고 해." "지금도 할 수 있지. 나도 도와줄 거고, 너의 아버지는 재산을 탕진했다던?" "모르겠어. 사람들이 그러더군." "사람들이라니?" 에이브라가 물었다. "모든 사람이, 그리고 네 부모들은 네가 나와 결혼하는 것을 반대하실지도 모르지 않니?" "그러면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을 거야." "너는 조금도 상관없단 말이지?" "그럼." 그녀가 말했다. "나는 조금도 개의치 않아. 키스해 주겠어?" "여기서? 길에서?" "왜 못해?" "다들 보는데."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어." 에이브라가 말했다. 아론이 말했다. "아니야, 나는 일을 그렇게 세상에 알리고 싶지 않아." 그녀는 몸을 돌려 그의 앞에 섰다. "이것 보세요. 지금 키스를 해요." "왜?" 그녀가 천천히 말했다. "그래야 내가 상치 대가리의 아내라는 것을 사람들이 알 게 아 냐?" 그는 당혹하여 재빨리 입을 맞추고 강제로 그의 옆에 세웠다. "어쩌면 내 자신이 약속을 취소해야 할지도 몰라." "무슨 소리야?" "이제 나는 너에게 적합하지 않단 말이야. 나는 전혀 별다른 가난한 아이에 불과해. 너의 아버지가 달라진 것을 내가 못본 줄 아니?" "너 정말 돌았구나." 에이브라는 약간 얼굴을 찡그렸다. 그녀도 아버지가 달라진 것을 보 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벨의 과자집에 들어가 테이블에 앉았다. 그 해에는 샐러리 음료가 대 유행이었다. 그 전 해에는 루트비어 아이스크림 소다수가 유행이었다. 에이브라는 빨대로 거품을 부드럽게 저으면서 그 상치 사업 실패 후에 아버지가 어떻게 달라졌나를 생각했다. 아버지가 그녀에게 이렇게 말한 일이 있다. "기분을 바꾸기 위해 다른 사람과 사귀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아론하고 약혼을 했어요." "약혼이라니!" 그는 그녀에게 호통을 쳤다. "언제부터 어린애들이 약혼을 해? 주위를 좀 둘러보는 것이 좋겠다. 바다에는 다른 고기도 많다." 최근에는 가족들이 적합성에 관한 언급도 있었고, 사람이란 스캔들을 영원히 감출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암시도 있었다는 기억이 났다. 이런 일은 아담이 전 재산을 잃고 난 후에 일어났었다. 그녀는 테이블 위로 몸을 굽혔다. "우리가 정말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간단해서 너는 웃 음이 나올거야." "무엇인데?" "우리가 너의 아버지의 농장을 경영하는 거야. 아버지가 그러는데 아름다운 농토라고 하 시더라." "안돼." 아론이 재빨리 말했다. "왜 안돼?" "나는 농부가 되고 싶지도 않고, 또 너를 농부의 아내로 만들고 싶지도 않아." "네 직업이 무엇이면 어때? 아론의 아내가 되는 건데." "대학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 아론이 말했다. "내가 도와줄게." 에이브라가 다시 말했다. "돈은 어디서 마련하고?" "훔치는 거야." 그녀가 말했다. "나는 이 마을을 떠나고 싶어. 모든 사람이 나를 비웃고 있어. 그것을 참을 수가 없어." "사람들은 그걸 잊어버릴거야." "아니야. 잊지 않을 거야. 고등학교를 마치기 위해 2년을 여기 있고 싶지 않아." "아론, 너는 나에게서 떠나고 싶니?" "아니야, 빌어먹을. 아버지는 알지도 못하는 일을 해서 망쳐버릴게 뭐야." 에이브라가 그를 꾸짖었다. "아버지를 나무라지 마. 만일 일이 잘됐다면 모든 사람들이 그 분에게 와서 고개를 숙였을 거야." "일이 안됐지 않아. 아버지 때문에 나는 곤란하게 됐단 말이야. 고개를 들수 없어. 나는 아버지를 증오해." 에이브라는 엄격하게 말했다. "아론! 그렇게 말하지 마!" "어머니에 대해서도 그렇지. 아버지가 거짓말을 안했다는 것을 네가 어떻게 알아?" 에이브라의 얼굴은 분노로 달아올랐다. "너는 매를 맞아야 해. 사람들 앞만 아니라면 나라 도 때렸어." 그녀는 분노와 갈등으로 뒤틀린 그의 말끔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갑자기 전력을 바꾸었다. "어머니에 대해서 왜 못 물어보니? 지금 당장 가서 아버지에게 물어봐라." "안돼. 나는 너하고 약속했으니까." "내가 이야기한 것을 말하지 않기로 약속한 것 뿐이야." "물어보면 어디서 들었느냐 캐실 거야." "좋아." 그녀가 소리쳤다. "너는 정말 버릇없는 아이야! 약속을 취소하자. 당상 가서 물어 봐." "물어봐야 할지. 그만둬야 할지 모르겠어." "너를 죽이고 싶을 때가 가끔 있어." 그녀가 말했다. "그러나 아론 - 나는 너를 그만큼 사 랑하기 때문이야. 그만큼 사랑해." 소다수대 앞 의자에서 껄껄대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의 목소리가 높아졌기 때문에 사람들 이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아론의 얼굴은 빨개지고 분노의 눈물이 솟았다. 그는 가게를 뛰 쳐나와 거리를 달려 올라갔다. 에이브라는 침착하게 백을 집어 들고 일어나 스커트를 매만지고 손으로 먼지를 털었다. 침착하게 밸 주인에게 가서 샐러리 토닐 값을 치렀다. 그녀는 문으로 나오는 도중에 낄낄대 던 사람들 옆에 가서 쌀쌀하게 말했다. "남의 일에 참견하지 말아요." 그녀가 걸어나올 때 그들이 흉내내는 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아론, 나는 그만큼 너를 사랑하는 거야." 그녀는 거리에 나와서 아론을 뒤쫓으려 했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전화를 걸었다. 아론은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고 리이가 대답했다. 그러나 아론은 침실에 들어가 울분 에 싸여 있었다 - 리이는 그가 방으로 살그머니 들어가 문 잠그는 것을 보았다. 에이브라는 그를 찾을 수 있을 까 하는 희망에서 샐리너스 거리를 올라갔다 내려갔다 했 다. 그에 대해 화가 나 있었으나 한편 어쩔 수 없이 외로웠다. 아론이 그녀에게서 도망친 적 은 한번도 없었다. 에이브라는 혼자 있는 힘을 잃고 있었다. 카알은 외로움을 익혀야만 했다. 얼마 동안 그는 에이브라와 아론 사이에 끼어들려고 노 력했다. 그러나 그들은 카알을 원치 않았다. 카알은 시기심이나서 그녀를 자기에게 끌어들이 려고 했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그는 학교 공부가 쉽다고는 생각했지만 대단히 흥미롭지는 못했다. 이해를 하게 되면 대 단한 성취감을 느꼈다. 그는 이해의 질과는 어울리지 않게 공부에 대한 존중심을 갖게 되었 다. 카알은 여기저기 쏘나녔다. 그는 학교 운동장이나 과외 활동에 대해서 대단한 관심을 갖 지 않았다. 점점 불안하게 되면서 밤에 밖으로 나갔다. 그는 키가 크고 손발이 길쭉하게 자 랐다. 그리고 그에게는 항상 어두움이 있었다. 제 38 장 1 첫 기억을 더듬어 볼 때 카알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온정과 애정을 갈망하고 있었다. 만일 그가 외아들이 었던지 아론이 다른 형태의 형이었다면 카알도 정상적이고 쉽게 대인 괸계를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사람들은 단정한 용모와 순진 때문에 아론 에게 매혹되었다. 카알은 자연히 그가 알고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을 얻기 위해 경쟁을 벌였다. 다시 말하면 아론은 흉내내려고 애를 썼던 것이다. 솔직담백한 금 발의 아론이 하면 매혹적인 것이 되는 것도 얼굴이 검고 눈이 가느다란 카알이 하면 의심쩍 고 불유쾌하게 보였다. 그리고 그는 모방을 하기 때문에 그의 행위는 설득력이 없었다. 아론 이 인정을 받을 때에도 카알이 아주 똑같은 행동을 하고 , 똑같은 말을 하면 거절되곤 했다. 강아지도 콧등을 몇 번 얻어 맛으면 수줍어 하게 되듯이, 소년도 거절을 몇 번 당하면 완 전히 수줍어진다. 그러나 강아지 같으면 굽실굽실 물러서거나 드러누워 딩굴기라도 하겠지 만 어린 소년은 무관심이나 허세나 비밀을 가지고 그의 수줍음을 감추려 할 수도 있다. 소 년이 한번 거절을 당하면 실제로 거절을 받지 않아도 거절될 것으로 생각할지도 모르고 더욱 나쁜 것은 그러리라고 예상함으로써 사람들에게서 거절을 유인하게 될 수도 있다. 카알의 경우, 이 과정이 하도 길고 느려서 이상한 감정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는 세상 에 대해 자기를 보호하는데 충분히 튼튼한 자만심이라는 벽을 자기 둘레에 쌓아 놓았다. 이 벽에 약한 부분이 있었다면 그것은 아론과 리이에, 그리고 특히 아담에 가장 가까이에 있는 것이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전혀 무관심했었기 때문에 카알이 안전감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전혀 주목되지 않는다는 것은 반대로 주목을 받는 것보다도 더 나았었다. 아주 어렸을 때 카알은 하나의 비밀을 발견했었다. 만일 아버지가 앉아 있는 곳으로 가만 히 가서 아버지 무릎에 가볍게 기대면, 아담의 손은 자동적으로 카알의 어깨를 쓰다듬곤 했 다. 아담은 자기가 하는 것을 모르고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이 애무는 소년에게 대단한 감정 적 용솟음을 일으켰기 때문에 이 특별한 기쁨을 간직하고 있다가 필요한 때에만 사용했던 것이다. 이것은 의존할 수 있는 일종의 마술이었다. 이것은 확고한 동경을 나타내는 의식적 상징이었다. 장소가 변한다고 해서 사정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카알은 킹 시티에서와 마찬가지로 샐리너스에서도 친구가 없었다. 관계를 밎고 있는 사람도 있고 권위와 다소 칭찬을 받고는 있었지만 친구다운 친구는 없었다. 그는 혼자 지내고 혼자 다녔다. 2 카알이 밤에 집을 나가 늦게 돌아온다는 것을 리이는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아는 체하지 않았다. 야간 순찰 순경은 그가 혼자 걷는 것을 가끔씩 보았다. 경찰서 장 하이저만은 학생 지도과에 이를 통보하곤 했지만 지도과는 카알이 결석을 한 사실이 없 을 뿐만 아니라 대단히 훌륭한 학생이라는 대답을 했다. 물론 경찰서장은 아담을 알고 있었 다. 그리고 카알은 창문을 깨뜨린 일도 없고 소동을 피운 일도 없기 때문에 서자은 순경들 에게 그를 눈여겨 보기는 하되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한 내버려두라고 지시했다. 어느날 밤 톰 윌슨은 카알을 뒤쫓아가서 물었다. "너는 밤중에 왜 그렇게 쏘다니니?" "나 는 아무도 괴롭히지 않아요." 카알은 방어하듯 말했다. "나도 알고 있어. 그러나 집에서 잠 을 자야지." "졸립지가 않은걸요." 일생 동안 졸립지 않았던 때가 생각나지 않는 올드 톰은 이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소년은 차이나타운에서 판탄놀음 구경은 했으나 끼어들지는 않 았다. 그것은 신비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 아주 간단한 일도 신비하게 보였던 톰 윌슨은 그를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카알은 배회하면서 농장에서 들은 리이와 아담의 대화를 가끔 회상했다. 그는 사실을 태 내고 싶었다. 거리에서 하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당구장에서 조롱도 듣고 하여 그의 생각 은 서서히 축적되어 갔다. 아론이 여러 가지 단편적인 이야기를 들었다면 그는 주목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카알은 단편적 이야기를 수집했다. 그는 어머니가 죽지 않았다는 것 을 알고 있었다. 먼저 들은 대화나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보아 어머니를 찾아도 아론은 기뻐 하지 않을 것을 그는 또한 알고 있었다. 어느날 밤 카알은 래비트 홀먼을 우연히 만났다. 그는 샌 아도에서 반 년 만에 술을 먹으 러 올라온 것이었다. 시골사람이 낯선 지방에서 아는 사람에게 늘 그러하듯, 래비트는 카알 에 정이 넘쳐흐르게 인사를 했다. 래비트는 애보트 집 뒷골목에서 한 파운드 들이 술을 마 시고 카알에게 자기가 들은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았다. 그는 자기 땅을 꽤 비싼 값에 팔고 는 이를 자축하기 위해 샐리너스에 왔던 것이다. 자축이란 술타령을 뜻했다. 그는 뒷골목으 로 내려가 진정한 남자가 할 수 있는 것을 창녀에게 보여줄 생각이었다. 카알은 그 옆에 가만히 앉아 이야기만 듣고 있었다. 래비트의 술병이 거의 비게 되자 카 알은 살짝 빠져나가 루이스슈나이더 가게로 가서 술병을 사들고 왔다. 래비트는 빈 병을 내 려 놓고 다시 술병을 찾아 손을 뻗었을 때는 술이 가득한 병이 손에 잡혔다. "이상한데." 그가 말했다. "술이 한 병뿐인데. 어쨌든 재수 좋은 착오구먼." 둘째 병이 반 쯤 비게 되자 래비트는 카알이 누구라는 것 뿐만 아니라 그의 나이조차도 잊고 있었다. 그 느 같이 있는 사람이 그의 가장 친한 옛친구인 것으로 잘못 기억하게 되었다. "이것 봐, 조오지." 그가 말했다. "흥을 돋구는 술을 여기서 좀더 마시고 우리 뒷골목으로 가세. 돈이 없다고 말할 필요는 없어. 창녀집의 부담은 내가 질게. 40에이커의 땅을 팔았다 고 내가 말했던가? 좋지도 않은 땅 말일세." 그리고 그는 말을 이었다. "헤리, 우리가 할 일을 말해주지. 다른 두 창녀집엘 가지말고 케이트의 집으로 가세. 비싸기는 하지. 10달러니까. 그러나 굉장하지! 거기선 서어커스를 해. 헤리, 서어커스를 본 일이 있나? 아주 어려운 서어커스야. 케이트야 말로 제대로 할 줄 아는 여자지. 조오지. 케이트가 누군지 기억하지? 아담 트레스크의 마누라 있지 않나? 그 빌어먹 을 놈의 쌍둥이 어미 말야. 놀랐어! 그 여자가 아담을 쏘고 도망친 때를 나는 결코 잊을 수 가 없어. 어깨를 쏘고 도망쳤지. 마누라로서는 형편없지만 창녀로서는 대단하지. 재미있는 일이지만 창녀는 좋은 아내가 된다고 하지 않는가? 실험을 해볼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 렇겠지. 헤리, 좀 도와주지 않겠나?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 "서어커스 이야기." 카알이 조그맣게 말했다. "아, 그랬지 케이트의 서어커스를 보면 눈알 이 나올거야. 무엇을 하는지 아는가?" 카알은 래비트가 눈치채지 못하게 약간 뒤에서 쫓아 갔다. 래비트는 거기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했다. 그 이야기가 그를 불쾌하게 만들지는 않았 다. 그런 짓이 카알에게는 바보처럼 보였다. 문제는 관람을 하는 남자들이었다. 가로등에 비 치는 래비트의 얼굴을 보고, 카알은 서어커스를 보는 사람들이 어떻게 보일까 하는 것을 알 게 되었다. 그들은 숲이 우거진 앞마당을 지나 페인트 칠이 안된 현관으로 들어갔다. 문지기는 그를 자세히 살피지 않았다. 신비스럽게 램프 신지를 낮게 켜논 어슴푸레한 방과 초조하게 기다 리는 남자들 때문에 그의 존재는 눈에 띄지 않았다. 3 카알은 눈에 띄고 들리는 모든 것을 마음 속에 모아, 불명료한 도구처럼 언젠가 유용하게 될지도 모를 물건들의 창고로 만들려고 전에는 항상 원했다. 그러나 케이트의 집을 방문하 고 나서부터는 그는 도움이 절대로 필요한 것을 느꼈다. 어느날 밤 리이가 타자기를 두드리고 있을 때 가볍게 노크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카알이 들어왔다. 카알은 침대 끝에 와서 앉았다. 리이는 가느다란 몸을 모리스 의자에 파묻듯 기대 고 앉았다. 의자가 아주 안락한 기분을 주었기 때문에 그는 기뻤다. 리이는 마치 중국 옷을 입은 듯이 두 손을 배위에 포개고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카알은 바로 리이의 머리 위 허공 에 있는 한 접을 응시하고 있었다. 카알은 부드럽지만 빠르게 말했다. "나는 어머니가 어디 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요. 어머니를 봤어요." 리이는 마음 속으로 갈 길을 비는 발작적 인 기도를 드렸다. "무엇을 알고 싶으냐?" 그는 부드럽게 물었다. "아직 생각을 하지 못했어 요. 생각을 하려고 애쓰는 중이에요. 사실을 말해 주겠어요?" "물론이지." 갖가지의 의문이 카알의 머리 속에서 세차게 소용돌이치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애를 써서 하나만 꺼냈다. "아버지는 알고 계세요?" "알고 계시지." "아버지는 왜 어머니가 죽었다고 하셨죠?" "너를 고통에서 구하기 위해." 카알은 생각했다. "아버지가 어떻게 하셨길래 어머 니가 나가셨나요?" "아버지는 몸과 마음을 다하여 어머니를 사랑하셨지. 생각할 수 있는 모 든 것을 어머니에게 주셨지." "어머니가 아버지한테 총을 쐈나요?" "그랬지." "왜요?" "어머 니를 나가지 못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어머니의 마음을 상하게 한 일이 있었나 요?" "내가 아는 한 그렇지 않다. 어머니의 마음을 상하게 할 분이 아니셨다." "아저씨, 어머 니는 왜 그런 짓을 했을까?" "나는 모르겠어." "모르는 거예요, 말하지 않는 거예요?" "몰 라." 카알이 너무나 오랫동안 잠자코 있어서 손목을 잡고 있던 리이의 손가락이 조금 꿈틀거리 기 시작했다. 카알이 다시 말을 할 때에야 마음이 놓였다. 카알의 어조는 달라져 있었다. 호 소하는 듯했다. "아저씨, 당신은 어머니를 알죠? 어땠어요?" 리이는 한숨을 쉬고 손을 풀었 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을 말할 수 있을 뿐이야. 내가 틀릴 수도 있어." "어떻게 생각했 어요?" "카알, 정말 여러 시간 동안 생각을 해봤지만 나는 아직도 모르겠어. 그 여자는 일조 의 신비야. 다른 사람과 같지 않은 것처럼 보여. 그 여자에겐 결핍되어 있는 것이 있어. 친 밀감이라고 할까, 양심이라고 할까, 마음 속으로 사람을 느낄 수 있어야 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법인데 나는 그여자를 느낄 수 없어. 내가 그 여자에 대하여 생각을 시작하는 순간 에 나의 감정은 어둠속으로 빠져들어. 그 여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또는 무엇을 추구하 는지 나는 모르겠어. 그 여자는 증오로 가득차 있어. 그러나 이유와 그 배경을 나는 모르겠 어. 그것은 일종의 신비야. 그 여자의 증오심은 평범한 것이 아니야. 분노도 아니야. 냉혹한 것이었어. 이렇게 너한테 말을 해도 좋을지 모르겠다만." "나는 알 필요가 있어요." "왜? 알기 전이 기분이 더 좋았지 않을까?" "그랬죠. 그러나 여 기서 멈출 수는 없어요." "그야 그렇지." 리이가 말했다. "첫 순진성이 사라졌을 때 위선자나 바보가 아닌 이상 물러나 주저 앉을 수는 없다." 카알이 말했다. "그러면 아버지에 대해서 말해 주세요." "그건 내가 할 수 있지." 그는 말을 멈췄다가 이었다. "우리 이야기를 누가 들 을지도 모르니 조그맣게 말해." "아버지에 대해 말해줘요." 카알이 말했다. "내 생각에 네 아버지는 부인이 갖고 있지 않은 것을 확대하여 갖고 있어. 그가 갖고 있 는 친절이나 양심은 너무나 크기 때문에 거의 결점이 되고 있어. 아버지는 그것에 걸려 넘 어지기도 하고 방해를 받고있어." "어머니가 도망갔을 때 아버지는 어땠어요?" "죽은 사람과 같았지. 주위를 서성거리고 다니기는 했지만 죽어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어. 아주 최근에 와 서야 반쯤은 생기를 되찾았지." 리이는 카알의 얼굴에 이상하고 새로운 표정이 이는 것을 보았다. 두 눈은 휘둥그래졌고 보통 때면 꼭 다물고 있던 입은 긴장이 풀렸다. 리이는 처음 으로 그의 얼굴에서 색깔은 다르지만 아론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카알의 어깨는 너무 오 래 긴장하고 있었던 것처럼 흔들렸다. "왜 그래, 카알?" 리이가 물었다. "나는 아버지를 사랑해요." "나도 그를 사랑해." 리이가 말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여기에 이렇게 오래 머물러 있지는 못했을 거야. 그는 세속 적인 의미로 영리하지는 못하지만 선령한 사람이야.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서 제일 선량 한 분인지도 몰라." 카알은 갑자기 일어서서 인사를 했다. "안녕히." "잠깐만 기다려. 누구한 테 이야기 했니?" "아니, 아무에게도." "아론에게도 하지 않았겠지 물론 하지 않았겠지." "그 도 알고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러면 네가 대기하고 있다가 도와 주어야 할 거야. 아직 나가지 말아. 네가 이 방을 나가면 우린 다시 이야기를 나눌 수 없을지도 모르는 거야. 네가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다고 해서 나를 미워할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말해봐, 어머니를 미워하나?" "미워해요." 카알이 말했다. "어떨까 하고 생각했지." 리이가 말했다. "네 아버지는 어머니를 미워했다고 생각지 않아. 단지 슬퍼했지." 카알은 천천히, 그리고 가만히 문을 향해 발을 옮겼다. 그는 호주머니에 주먹을 깊이 찔렀 다. "사람을 이해하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 같은데, 나는 어머니를 미워해요. 어머니 가 도망을 갔기 때문이야. 나는 알 수 있어요. 나는 마음 속으로 어머니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고 있으니까 말이야." 그는 고개를 숙이고 목소리는 비통에 젖어 있었다. 리이가 벌떡 일어났다. "그런 꼴은 집어치워!" 그가 날카롭게 말했다. "내 얘기가 들리니? 그런 꼴을 짓지 말란 말야. 물론 너는 그런 꼴을 지을 수도 있지. 모든 사람이 그런 양상을 갖고 있으니까. 그러나 다른 모습도 가질 수 있는거야. 쳐다 봐! 나를 쳐다보란 말이야." 카 알은 얼굴을 쳐들고 지친 듯이 말했다. "무슨 말이에요!" "너는 다른 일면도 갖고 있단 말이 야. 내말을 들어! 네가 그런 면을 갖고 있지 않다면 이상히 여기지도 않을 거야. 그 나약한 모습을 짓지 말아. 부모 때문이라고 변명하기란 쉬운 일이야. 그런 꼴을 다시는 내 눈에 띄 게 하지 말아! 기억에 남도록 나를 자세히 쳐다봐. 네가 무슨 짓을 하든 그것은 네가 하는 짓이지. 네 어머니가 하는 것이 아니야." "리이 아저씨, 그렇게 생각해요?" "나는 확신해. 너 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좋아. 그렇지 않으면 대갈통을 깨버릴 테니까." 카알이 나간 후에 리이는 의자에 다시 와서 앉았다. 그는 슬프게 생각했다. '나의 동양적 침착성에 무슨 이변이 일어난 거지?' 4 카알에게 있어서 어머니의 발견은 새로운 사실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확인이었다. 오랫동안 그는 자세히는 몰랐지만 무엇인가 석연치 않은 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반응은 복합적이었다. 그는 모든 것을 알게 되어 즐거움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다. 그리고 사람들의 행위나 표정을 평가할 수 있었고 어렴풋한 언급을 풀이할 수 있었고 과거를 캐내어 재조직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한 것들을 알게 됨으로써 감수해야 하는 고통을 보상할 수는 없 었다. 그의 몸은 어른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사춘기의 변덕스러운 바람에 흔들렸다. 경건하고 순 수하고 헌신적이다가도 더러운 일에 빠졌다. 그러다가는 수치감을 느끼고 다시 경건하게 되 었다. 어머니의 발견은 그의 모든 감정을 날카롭게 만들었다. 이러한 혈통을 갖고 있기에 자기 는 유별나다고 생각했다. 리이의 말을 전적으로 믿을 수도 없었으며 다른 아이들과 이와 똑 같은 일을 경험하고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케이트 집에서의 서어커스는 그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어떤 때에는 그 기억이 그의 몸과 마음에 사춘기의 불을 질러 놓았고 그런 다음에는 반발과 혐오로 욕지기가 나게 했다. 그는 아버지를 더욱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고, 어쩌면 사실보다도 더한 슬픔과 갈등을 아버지에게서 보았는지도 모른다. 카알의 마음속에는 아버지에 대한 정열적인 사랑과 그를 보호하고 지금까지 겪은 고통에 보상이라도 해주고 싶은 소망이 싹텄다. 민감하게 된 카알 의 마음속에는 그 고통이란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아담이 목욕을 하고 있는 동안 잘 못 욕실로 들어갔다 보기 흉한 탄혼을 보고는 자기도 모르게 물었다. "아버지 무슨 흉터예 요?" 아담의 손이 흉터를 감추기라도 하려는 듯이 위로 올라갔다. "오래된 흉터야. 인디안 토벌 때의 흉터야. 다음에 이야기해줄게." 아담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을 때 카알은 아버지의 마음이 거짓말을 찾아 과거로 뛰어들어 가는 것을 보았다. 카알은 거짓말을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거짓말을 해야 되는 필요성을 싫 어했다. 카알은 여러 가지의 덕을 보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그러나 거짓말을 하도록 몯는 것은 부끄러운 일처럼 보였다. 그는 소리치고 싶었다. '아버지가 어떻게 돼서 거짓말을 하게 되었는지 알고 있어요. 그건 좋아요.' 그러나 물론 입밖에 내지는 않았다. "그 이야기 듣 고 싶어요."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론 역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있었다. 그러나 그의 충동은 카알보다 완만했다. 그의 육체는 그렇게 날카롭게 소리치지는 않았다. 그의 정열은 종교적 방향으로 흘렀다. 그 는 목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감리교회의 모든 예배에 참석하고 제일이면 꽃장식 일 을 도왔고 많은 시간을 젊은 고수머리 목사 롤프와 보냈다. 아론의 제자 훈련은 경험이 전 혀 없는 젊은 사람에게서 받았다. 그 때문에 그는 무경험자만이 가질 수 있는 개관의 능력 을 갖게 되었다. 아론은 감리교회에서 안수례를 받고 성가대의 대원이 되었다. 에이브라는 그의 뒤를 따랐다. 그녀의 여성다운 마음은 이러한 일들이 필요하긴 하지만 중요한 것이 못 된다고 생각했다. 신앙심을 갖게 된 아론이 카알에게 영향을 미친 것은 당연했다. 처음에는 카알을 위해 조 용히 기도를 드리다가 나중에는 직접 접근했다. 그는 카알의 불경을 비난하고 개심을 요구 했다. 아론이 좀더 영리했었다면 카알도 함께 따라가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론은 다른 사람들을 역하게 만들 정도의 정력적 순결벽에 도달해 있었다. 몇 번 설교를 듣고 카알은 형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자만심에 차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그에게 그렇다고 이야기했다. 아론이 카알을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지도록 내버려두게 되자, 그것은 두사람에 게 다 마음이 편하게 해주었다. 아론의 종교는 어쩔 수 없이 성의 문제에 부딪쳤다. 그는 에이브라에게 금욕의 필요성에 대해 말하고 독신 생활을 하기로 결심했다. 에이브라는 지혜롭게 이러한 단계는 지나가 버 리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되기를 기대하면서 그의 말에 동의했다. 독신 생활이 란 그녀가 알고 있는 유일한 상태였다. 그녀는 아론과 결혼하여 얼마든지 자식을 낳고 싶었지만 당분간 이런 말을 꺼내지 않았 다. 전에는 시기심을 느껴본적이 한번도 없었으나 이제 그녀는 롤프 목사에 대하여 본능적 이고 어쩌면 정당화된 증오심을 느끼기 시작했다. 카알은 아론 자신이 한 번도 저지르지 않은 죄를 이겨내고 기뻐하는 것을 눈여겨 보고 있 었다. 그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고 아론이 이것을 어떻게 처리하나 보고 싶은 심술 궂은 생각이 들었으나 곧 취소하고 말았다. 아론은 그것을 전혀 처리하지 못하리라고 생각 했기 때문이다. 제 39 장 1 심상치 않게 샐리너스 사람들은 온화한 정화운동을 치렀다. 정화운동이란 건 이것이 그것 같고, 그것이 이것 같아 비슷비슷했다. 설교단에서 시작될 때도 있었고 야심적인 새 여성회 의 회장으로부터 시작될 때도 있었다. 한결같이 뿌리를 뽑아야 할 죄목으로도 도박이 등장 했다. 도박을 공격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점이 있었는데, 매춘 행위는 그렇지 못하지만 도박 은 공개 토론을 벌일 수 있었다. 이것은 명확한 약이며 대개의 노름은 중국인들이 벌이고 있었다. 그러니 친척들을 건드릴 위험은 거의 없었다. 교회와 클럽은 마을의 두 신문에 불을 붙였다. 사설들은 정화를 요구했다. 경찰도 동의했 으나 손이 부족하다고 호소하고는 예산 증액을 시도했다. 가끔씩 성공하기도 했다. 사설에 오를 단계면 사람들은 일이 끝난 것으로 생각했다. 다음 일은 발레처럼 조심성있 게 무대에 올리면 됐다. 경찰도 준비되어 있고 노름 집도 준비되어 있었다. 신문들은 축하 사설을 미리 준비해 놓았다. 그러고 나면 용의주도한 검색이 벌어졌다. 파자로에서 수입된 20명 내외의 중국인, 몇 명의 주정뱅이, 그리고 낯선 사람들이기 때문에 예고를 받지 못한 행상인 7,8명이 경찰의 그물에 걸려 조서를 받고, 투옥되고, 아침이면 벌금형을 받고 석방되 었다. 마을은 부패가 일소되었다고 안심하고, 도박장은 하루 저녁 수입에다 벌금마저 보태어 손해를 보았다. 한가지 일을 알면서도 믿지 않는 것이 인간 승리의 하나이다. 1916년 가을 어느날 밤, 카알은 소티 림의 집에서 판탄 놀음을 구경하다가 일제 검거에 붙잡혔다. 어두워서 그를 알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경찰서장이 아침에 유치장에서 그 를 발견하고 당황하여 아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식사중에 이 전화를 받았다. 아담은 시 청까지 두 블록을 걸어가서 카알을 인계받고 길을 가로질러 우체국까지 갔다가 집으로 돌아 왔다. 리이는 아담을 위해 계란을 삶고 카알을 위해선 두 개의 계란을 프라이했다. 아론이 학교에 가는 길에 식당에 들렀다. "기다릴까?" 그가 카알에게 물었다. "아니야." 카 알은 눈을 아래로 내리뜨고 계란을 먹었다. 아담은 시청에서 서장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한 후 "가지!" 하고 말을 한 후에도 아무 말 을 하지 않고 있었다. 카알은 아버지의 얼굴을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먹고 싶지 않은 아침식사를 삼켰다. 그는 아담의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당황과 분노와 사색과 슬픔이 뒤얽힌 것같이 보였다. 아담은 커피 잔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침묵은 점점 커져서 그것을 밀쳐내기가 거북스럽게 억압적인 것이 되었다. 리이가 들여다보며 물었다. "커피요?" 아담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리이는 물러서서 부엌문을 닫았다. 시계만이 똑딱거리는 침묵 속에서 카알은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전에 알지 못했던 힘이 아버지에게서 흘러나오고 있는 것을 그는 느꼈다. 발이 저려왔으나 움직여서 피가 통 하게 하기 조차 두려웠다. 그는 포크를 접시에 부딪치게 하여 소리가 나게 했으나 그 소리 도 삼켜져 버렸다. 시계는 천천히 아홉 시를 쳤으나 그 소리도 삼키듯 사라졌다. 두려움이 냉기로 변하자 반항심이 일어났다. 덫에 걸린 여우는 자기를 덫으로 몰고온 앞 발에 대하여 화를 낼 수도 있는 것이다. 갑자기 카알이 일어났다. 자기가 일어나는 것도 그 는 모르고 있었다. 그는 소리를 쳤으나 말을 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아버지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하세요! 밀고 나가세요!" 그의 외침은 적막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아담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카알은 전에 아버지의 눈 속을 들여다보지 못했던 것도 사 실이다. 많은 사람ㄷ르이 자기 아버지의 눈을 들여다보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아담의 홍채 는 연푸른 색이었고 동공을 향해 까만 줄이 방사선으로 몰이고 있었다. 마치 두 사람의 카 알이 자기를 바라보고 있듯이 두 개의 공동 깊숙이 자신의 얼굴이 반사되고 있는 것을 카알 은 보았다. 아담이 천천히 말했다. "내가 너를 실망시켰지?" 그것은 야단치는 것보다 더 무서웠다. "무슨 말씀이시죠?" 카알은 더듬거렸다. "너는 도박 장에서 붙잡혔어. 네가 어떻게 거길 갔는지. 무엇을 했는지. 왜 갔는지는 나는 모른다." 카알 이 힘없이 앉아서 접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 노름하니?" "아뇨, 보고만 있었어요." "전에 도 가 봤니?" "네 여러번요." "왜 가지?" "나도 모르겠어요. 들고양이처럼 밤이면 불안해요." 케이트에 대한 생각과 힘없는 자기의 농담이 그에게 두려운 생각을 일으켰다. "잠이 안 올 때면 그저 싸돌아다닙니다. 잊어버리기 위해서요." 아담은 자기가 한 말을 곰곰히 생각하고 한 마디 한 마디 또박 또박 말했다. "네 형도 돌 아다닌니?" "아니예요. 그런 건 생각도 안할 겁니다. 불안하지 않으니까요." "난 모르겠다. 너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겠어." 아담이 말했다. 카알은 아버지 목에 팔을 감고 싶었다. 카 알은 아버지를 안고 싶었고, 또 아버지가 껴안아 주었으면 했다. 동정과 사랑을 표현하고 싶 은 거친 욕망을 느꼈다. 카알은 나무로 만든 냅킨 고리를 집고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물어 보시면 대답하겠어요." 그가 낮게 말했다. "나는 질문하지 않았다. 묻지를 않았어! 나는 네 할아버지만큼이나 나쁜 아버지야." 카알은 아버지의 이런 어주를 들은 적이 없었다. 온정에 목메인 소리였다. 그는 어둠 속에서 자기가 할 말을 뒤지고 있었다. "내 아버지는 하 나의 틀을 만들어 억지로 그 속에 나를 넣었었지." 아담이 말했다. "나는 잘못 만들어졌지만 다시 만들어질 수는 없었다. 누구도 재조직될 수는 없는 거야. 나는 잘못된 주조물로 남게 되었지." 카알이 말했다. "슬퍼하지 마세요. 아버진 너무나 많은 슬픔을 겪으셨으니까요." "그랬나? 그런지도 모르지. 그러나 그릇된 슬픔이었는지도 모르지. 나는 내 아들들을 모른다. 알게 될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아시고 싶은 건 다 말씀해드리죠. 저에게 물어 보세요." "어디서부 터 시작할까? 처음에서부터 시작할까?" "내가 유치장에 갇혀 있었다고 해서 아버지는 슬프 세요. 화가나세요?" 놀라웁게도 아담이 웃었다. "너는 단지 거기 있었을 뿐이지 잘못을 저지른 것은 아니지 않니?" "거기에 있었던 것도 잘못이었는지도 모르죠." 카알은 스스로를 책망하고 싶었다. "언젠가 나는 어떤 장소에 있었다는 이유 때문에, 1년 가까이 감옥생활을 한 적이 있지." 카알은 이 이단적인 생각을 흡수하려고 했다. "나는 믿지 않아요." 그가 말했다. "나도 가끔 씩 믿지 않는다. 그러나 나도 도망칠 때 가게를 털고 옷을 훔쳤다." "나는 믿지 않아요." 카 알은 약하게 말했으나 온정과 친밀감을 느끼며 아주 묘하게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온 정이 흩어질 까봐 그는 가만히 숨을 쉬었다. 아담이 말했다. "너 새뮤얼 해밀톤을 기억하지. 틀림없이 기억할거야. 네가 어렸을 때 그 분이 말하길, 나더러 나쁜 아버지라고 했단다. 그것은 나에게 인식시키려고 나를 때려 눕힌 적도 있지." "그 노인네가요?" "그는 힘이 센 노인이었지. 그의 의도를 이제 알겠어. 나는 네 할아버지와 같은 사람이야. 그분은 나를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았지. 나도 내 아들을 사람으 로 보지 않았어. 그것이 새뮤얼이 나에게 일깨워주고 싶어한 것이었어." 그는 카알의 눈 속 을 들여다보고 미소지었다. 카알은 아버지에 대한 애정으로 짜릿함을 느꼈다. 카알이 말했다. "우리는 아버지를 나쁜 사람으로 생각지 않아요." "불쌍한 것들 같으니라 고. 너희들이 어떻게 아니? 다른 아버지를 가져본 적이 없는데?" "전 유치장에 갔던 것이 기뻐요." "나도 그렇다. 나도 그래." 그는 웃었다. "우리 둘 다 유치장에 가 본 경험이었다. 그래서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거야." 그는 점점 쾌활해졌다. "네가 어떤 아이인지 자 신이 말할 수도 있지 않겠니?" "그렇죠." "말해 보겠니?" "그러죠." "말해봐라. 인간이 되는 데에는 책임이 따르는 거야. 공간적 위치를 차지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너는 어떤 아이지?" "농담이 아니시죠?" 카알이 부끄러운 듯이 물었다. "농담이 아니지. 절대로 농담이 아니야. 너에 대한 이야기를 해봐. 하고 싶으면 말이다." 카알이 입을 열었다. "글세, 저는 요..." 그는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하려 하니 쉽지 않군요." "그렇겠지... 불가능한지도 모르지. 네 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봐라." "그에 대해서 무엇 을 알고 싶으세요?" "그에 대해서 네가 생각하는 것을, 네가 말할 수 있는 것을 말이야." 카알이 말했다. "형은 좋은 사람이에요. 나쁜 일을 하지 않죠. 나쁜 것은 생각지도 않구 요." "이제 너에 관한 이야기를 해 봐라." "네?" "너는 나쁜 직을 하고, 나쁜 생각을 하고 있 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셈이니까." 카알의 뺨이 상기되었다. "글쎄요, 그렇죠." "아주 나쁜 짓을?" "네, 내가 이야기하기를 바라세요?" "아니다. 너는 이야기를 했다. 네 눈과 목소리로 보아 너는 자기 자신과 싸움을 벌이고 있는 거야. 그러나 창피하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창피 스러워하니?" "형은 창피스러운 일을 하지 않아요." 아담은 몸을 앞으로 굽혔다. "확실하 냐?" "아주 확실해요." "카알, 말해봐라. 너는 그를 보호하니?" "무슨 말씀이시죠?" "만일 네 가 나쁘거나 잔인하거나 추잡한 이야기를 듣는 경우, 그 이야기를 그에게 해 주니?" "그렇 다고 생각해요." "네가 견딜 수 있는 일을 형은 이겨내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는 선량해요. 참으로 선량해요. 누굴 해치는 일이 없어요. 남을 헐 뜯는 일도 없어요. 치사하지도 않고 불평도 하지 않고, 또 용감하기도 하지요. 싸움을 좋아 는 하지 않지만 싸울 용의는 갖고 있지요." "형을 좋아하니?" "네, 하지만 난 형에게 나쁜 짓을 합니다. 속이기도 하고 바보로 만들기도 하죠. 아무 이유도 없이 그를 가끔씩 마음 상 하게 만들지요." "그러고 나면 비참한 생각이 드니?" "그래요." "아론도 비참한 적이 있니?" "모르겠어요. 내가 교회에 나가지 않았을 땐 기분 나빴어요. 언젠가 에이브라가 화를 내며 밉다고 말했을 때 아주 기분 나빠 하더군요. 열이 나고 아팠으니까. 기억 안 나세요? 리이 아저씨가 의사를 부르러 보냈었죠." 아담은 어리둥절하며 말했다. "나는 같이 살면서 그런 것들을 전혀 모르고 있었구나! 왜 에이브라가 화를 냈지?" 카알이 말했다. "말씀을 드려야 될지도 모르겠네요." "그렇다면 듣고 싶지 않다." "나쁜 것 은 아니예요. 아시다시피 아론은 목사가 되려고 하지요. 롤프 씨는 고교회를 좋아하죠. 아론 도 좋아하여 결혼도 하지 않고 은거 생활을 할 생각을 했죠." "수도사처럼?" "그렇죠." "에 이브라가 그것을 좋아하지 않았던가?" "좋아하다니요? 무지무지하게 화를 냈지요. 가끔씩 화를 내죠. 아론의 만년필을 빼서 길바닥에 내던지고 밟아버렸어요. 아론 때문에 반 평생을 허송했다고." 아담은 깔깔 웃었다. "에이브라가 몇 살이지?" "열 다섯 살 가까이 됐죠. 그러나 몇가지 면에서는 조숙하죠." "그렇지. 아론은 어떻게 했니?" "가만히 있었지만 기분이 아주 나빴어 요." 아담이 말했다. "그러면 네가 그애를 잡아챌 수도 있었지 않니?" "에이브라는 아론의 애인인걸요." 아담으 ㄴ카알의 눈 속을 깊이 들여다보았다. 그러닥 리이를 불렀다. 대답이 없었다. 다시 불렀다. "나가는 소리를 못 들었는데. 산뜻한 커피를 마셨으면 좋겠구나." "내 가 만들죠." 카알이 뛰어 일어났다. 아담이 말했다. "학교에 가야지." "가고 싶지 않아요." "가야한다. 아론은 갔다." "나는 행 복해요. 아버지하고 있고 싶어요." 아담은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커피를 좀 만들어라." 그는 부드럽게 말했다. 계면쩍은 목소리였다. 카알이 부엌에 있는 동안 아담은 자기 마음 속을 들여다보고 놀랐다. 신경이며 근육이 흥 분된 갈증으로 고동치고 있었다. 손가락은 무엇인가를 잡으려고 했고, 다리는 달리고 싶어했 다. 눈은 탐욕스럽게 방 안을 둘러보았다. 의자와 그림과 카아핏의 장미도 새롭고 신선한 물 건으로. 머리속에는 미래의 강렬한 욕구가 생겨났다. 매분 매초가 틀림없이 기쁨을 가져올 것 같은 만족스럽고 따뜻한 예감이 들었다. 그에게 황금빛과 고요를 안ㄱ 밀어닥칠 아름다 운 날, 그런 날을 기약하는 새벽의 감정을 그느 느꼈다. 그는 손가락을 머리에 얹고 두 발을 쭉 폈다. 부엌에서 카알은 커피 포트의 물을 서둘러 끓였다. 그러나 그는 기다리는 것도 즐거웠다. 일단 알고 있는 기적은 이제 기적이 아니다. 카알은 아버지와의 금빛같은 관계에서 느꼈던 경외를 잊고 있었으나 기쁨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고독의 독기와 외롭지 않은 사람에 대한 뼈저린 선망은 이제 사라지고 그는 깨끗학 달콤하게 되었다. 그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 을 시험해 보기 위해 지난날의 증오심을 끌어내 보았으나 이미 없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아 버지를 도와드리고 커다란 선물을 주고 아버지를 위해 커다란 일을 하고 싶었다. 커피 물이 끓어 넘쳐서 스토브를 닦는데 몇 분이 걸렸다. 그는 혼자 중얼거렸다. '어제만 해도 이런일은 안 했을 텐데.' 카알이 김이 나는 주전자를 들고 들어왔을 때 아담은 그를 보고 웃었다. 아담은 냄새를 맡으며 말했다. "나는 콘크리트 무덤 속에서라도 일깨울 수 있을 것 같은 냄새로구나." "끓 어 넘쳤어요." "끓어 넘어야 맛이 좋은 거다. 리이가 어딜 갔는지 모르겠구나." "방에 있을지 도 모르죠. 가볼까요?" "아니다. 있으면 대답했을 텐데." "아버지, 학교를 졸업하면 농장을 경영하게 해주실래요?" "계획을 일찍 짜고 있구나. 아론은 어떤가?" "대학에 진학하고 싶어 해요. 내가 말했다고 그러지 마세요. 형이 말하게 하세요. 아버지도 놀라게." "그것이 좋겠 다. 너는 대학에 진학하고 싶지 않니?" "농장에서 돈을 벌겠어요. 아론의 대학 학비를 충분 히 조달할 만큼." 아담이 커피를 홀짝 마셨다. "너그러운 생각이다. 이런 이야기를 너에게 해야 옳을지 모르 겠지만, 아론이 어떤 아인가 하고 내가 물었을 때 네가 그를 변호하길래 그를 싫어하거나 증오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었지." "형을 증오한 적도 있지요." 카알은 열을 내며 말 했다. "그의 기분을 상하게도 했고. 말씀드릴까요? 이제는 그를 미워하지 않아요. 다시는 미 워하지 않을 겁니다. 누구도 미워하지 않을 겁니다. 어머니마저도...." 그느 불쑥 튀어나온 말 에 깜짝 놀라 말을 멈췄다. 마음은 얼어 붙어 긴장하고 무력하게 되었다. 아담은 앞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손바닥으로 앞이마를 문지르더니, 드디어 조용히 말했다. "어머니에 대하여 알고 있니?" 그건 질문이 아니었다. "네, 알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네." 아담은 의자에 몸을 기댔다. "아론도 아니?" "모릅니다. 형은 몰라요." "왜 그렇게 말 하지?" "형에겐 감히 말을 못했어요." "왜 못해?" 카알은 띄엄띄엄 말했다. "그가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지 않았어요. 이겨낼 만큼 나쁜 점이 그에게는 없어요." 그는 이렇게 말을 잇고 싶었으나 그만 두었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아담의 얼굴은 지친 듯 보였다. 그는 머리를 가로 저었다. "카알, 내 말을 듣거라. 아론이 모르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잘 생각해 보렴." 카알이 말했다. "그는 그런 장소엔 가까이 가지 않죠. 나와는 달라요." "누가 그에게 이야기해줬다고 생각해 봐라." "믿지 않을 걸요. 그 사람이 누구든지 한 대 갈기고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할 거예요." "넌 거기 가봤니!" "네, 알아야 했으니까요." 카알은 흥분하여 말을 이었다. "만일 대학으로 떠나버리고 이 말에 다 시 살지 않게 되면 형은 모를지도 모르죠." 아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지. 그러 나 2년이나 더 남았는데." "혹시 내가 재촉하여 1년 만에 졸업을 시킬 수도 있죠. 형은 머리 가 좋으니까요." "네가 더 좋지 않니?" "종류가 다르죠." 아담은 점점 커져서 방 한쪽을 꽉 메운 듯 보였다. 얼굴은 준엄하게 되고 파란 눈은 날카 롭게 꿰뚫는 듯했다. "카알!" 그는 목쉰 소리로 불렀다. "네?" "나는 너를, 믿는다." 아담이 말했다. 2 카알은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게 되자 넘치는 행복감을 갖게 되었다. 그는 걸음걸이도 가 벼워졌다. 찡그릴 때보다 웃는 때가 더 잦았다. 남모르는 어두움도 그에게서 거의 사라졌다. 그가 변한 것을 눈치챈 리이가 그에게 물었다. "여자 친구라도 생겼나?" "여자 친구라니요? 누가 그런 것 갖고 싶대요?" 리이는 아담에게 물어보았다. "카알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 "제 에미에 대해 알고 있 더군." "그래요?" 리이는 더 이상 이 문제에 끼어들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다고 내가 말한 것을 기억하세요?" "난 말하지 않았어. 제가 알았지." "대단하군요! 그 것을 알았다고 해서 공부를 하면서 콧노래를 부르거나 걸으면서 모자를 날리지는 않을 겁니 다. 아론은 어때요?" "그것이 걱정이야. 그애는 몰랐으면 좋겠어." "너무 늦었는지도 모르겠 어요." "아론과 이야기를 해볼까도 해, 넌지시." 리이는 생각에 잠겼다. "당신한테도 무슨 일 이 일어났군요." "그래? 그랬는지도 모르지." 콧노래를 부른다든지 모자를 날린다든지 공부를 빨리빨리 해치운다든지 하는 것은 카알에 게는 아주 드문 일이었다. 그는 새로운 기쁨 속에서 아버지의 행복의 보호자임을 자체했다. 어머니에 대해서 증오감을 느끼지 않고 있다고 말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어머니가 아버지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수치스럽게 만든 장본인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어머 니는 전에 할 수 있었던 일을 다시 저지를 수 있다고 카알은 추리했다. 그는 여자에 대하여 알 수 있는 것은 모두 알아내자고 생각했다. 적을 알면 위험도 적어지고 놀라움도 줄일 수 있는 것이다. 밤이면 그는 철로 넘어 그 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어떤 때는 저녁 나절, 길 건너 잡초 속 에 숨어 그 집을 살피기도 했다. 여자들이 수수하게 옷을 입고 나오는 것을 보았다. 여자들 은 항상 짝을 지어 나왔다. 카알은 그들의 뒤를 밟아 캐스트로빌 가 모퉁이까지 쫓아갔다. 그곳에서 그들은 왼쪽으로 돌아 메인스트리트로 향했다. 만일 그들이 어디서 나왔는지를 모 른다면 그 여자들의 신분을 알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그는 알았다. 그러나 여자들이 나오 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대낮에 어머니를 보고 싶었던 것이다. 케이트가 매주 월요일 한 시 반에 나타나는 것을 그는 알았다. 카알은 매주 월요일 오후에 결석하는 것을 보충하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함으로써 학교 일을 정리해 놓았다. 아론이 이에 대하여 묻자 놀라운 일을 하고 있는데 누구에게도 말해서 는 안되는 의무를 지니고 있다고 카알은 대답했다. 어쨌든 아론은 별 흥미가 없었다. 아론은 자기 일에 몰두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곧 잊었다. 카알은 케이트를 몇 번 뒤밟아 보고는 가는 길이 일정한 것을 알았다. 그 여자는 항상 똑 같은 장소로 갔다. 먼저 몬테레이 국립은행으로 가서 금고를 막고 있는 번쩍거리는 창상 뒤 로 들어가 15분 내지 20분쯤 있다가 나왔다. 그리고는 메인스트리트를 따라 천천히 걸으면 서 쇼윈도우를 구경했다. 포터나 어빈 가게로 들어가 옷도 구경하고 고무줄이나 안전핀이나 배일이나 장갑을 사기도 했다. 2시 15분쯤이면 미니 프랭킨 미장원에 들러 한 시간쯤 있다 가 머리를 핀으로 단단히 치켜올리고 비단 스카프를 머리에 둘러 턱 밑에 매고 나왔다. 그녀는 3시30분에 농업협동조합 위에 있는 사무실 계단을 올라가 로슨 의사의 진찰실로 들어갔고, 병원에서 나와서는 벨스 과자점에 잠깐 들러 두 파운드의 갈색 초콜릿 상자를 샀 다. 그녀는 길을 바꾸지 않았다. 벨스 과자점에서 곧바로 캐스트로빌 스트리트로 돌아와 집 으로 향했다. 그녀의 옷차림에는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었다. 샐리너스에 사는 부유한 부인이 월요일 오후 쇼핑을 나온 그런 옷차림이었다. 다만 샐리너스에서는 흔한 일이 아니었지만 그녀는 항상 장갑을 끼고 다녔다. 장갑 때문에 그녀의 손이 통통하게 보였다. 그녀는 마치 유리상자에 둘러싸인 것처럼 걸 었다. 이따금씪 어떤 남자가 몸을 돌려 그녀를 뒤돌아 보다가 자기 일을 보러 총총히 지나 갔다. 그러나 대부분 그녀는 보이지 않는 여자처럼 미끄러지듯 지나갔다. 여러 주일 동안 카알은 케이트 뒤를 밟았다. 그녀의 눈에 띄지 않게 조심했다. 케이트는 항상 앞만 보고 걸었기 때문에 그는 눈에 띄지 않았다고 확신했다. 케이트가 자기 마당으로 들어가면 카알은 우연히 지나게 된 것처럼 지나가 다른 길을 통 해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그 여자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고 싶었다는 것 이외에 뒤를 밟을 이유를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가 뒤를 밟은 지 8주 되는 날, 그녀는 행각을 마치고 늘 그랬듯이 풀이 무성한 마당으 로 들어갔다. 케이트는 되는 대로 크게 자란 쥐똥나무 뒤에 서 있었다. 그녀는 냉정하게 말했다. "무슨 일이지요?" 카알은 그 자리에 얼어 붙었다. 그는 거의 숨도 못쉬고 시간 속에 정지해 있는 듯했다. 그는 어렸을 때 배운 것을 실행해 보기 시작했다. 주제를 벗어난 사소한 것들을 분 류해 보는 것이었다. 남풍이 어떻게 쥐똥나무의 작은 잎들을 흔들고 있나를 보았다. 진흙투 성이의 길이 많은 발길에 밟혀 까만 죽처럼 되어 있고 케이트는 진흙 옆으로 비켜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남태평양 역 구내에서는 조차하는 기차가 메마른 소리를 내며 수증기를 내뿜 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뺨에 차가운 공기를 느꼈다. 그는 계속 케이트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도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과 머리의 모양과 색깔, 심지어는 움츠린 듯한 어깨 의 모양에서도 아론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카알은 생각했다. 그러나 자신과 비슷한 그녀의 입과 작은 이빨과 넓은 광대뼈를 알아차릴 만큼 그는 자신의 얼굴을 잘 알고 있지 않았다. 남풍이 두 번 몰아치는 사이에 이들은 처음과 똑같이 서 있었다. 케이트가 말했다. "나를 미행한 것이 이번만은 아니지 않아. 무슨 일이지요?" 그는 고개를 떨구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누가 시켰어요?" 그녀가 다그쳤다. "아무도 안 시켰습니다. 부인."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구먼, 그렇죠?" 카알은 자기의 마음 말을 듣고 깜짝 놀랐 다. 말이 미쳐 막을 수도 없이 불쑥 튀어 나왔던 것이다. "당신은 내 어머니입니다. 어머니 가 어떤 사람인가 보고 싶었어요." 그것은 정확한 사실이었다. 그것은 뱀의 습격처럼 튀어나 왔던 것이다. "무엇이라구? 너는 누구지?" "나는 카알 크레스크입니다." 시이소가 움직일 때처럼 미묘 한 균형의 변화를 느꼈다. 그는 지금 시이소 위쪽에 타고 있는 듯했다. 그녀의 표정은 변하 지 않았지만 그녀가 방어 입장에 있다는 것을 카알은 알았다. 그녀는 그의 용모를 하나하나 뜯어 보았다. 어렴풋한 찰스의 모습이 그녀의 마음 속에 떠 올랐다. 갑자기 그녀가 말했다. "따라와!" 그녀는 돌아서서 진흙을 피해 옆길을 따라 걸어갔 다. 카알은 잠시 주저하다가 그녀의 뒤를 따라 갔다. 침침하고 커다란 방은 생각났으나 나머 지 것들은 그에게 생소했다. 케이트는 그의 앞에서 호올을 지나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 는 부엌 입구를 지나면서 차 두 잔을 시켰다. 방에 들어오자 그녀는 그를 이미 잊고 있는 듯 보였다. 그녀는 장갑 낀 손가락으로 내키 지 않는 듯 소맷자락을 당겨 토트를 벗었다. 그녀는 침대가 있는 방 끝 벽의 새 문쪽으로 갔다. 그 문을 열고 새로 이어 지은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의자를 갖고 이리 들어와!" 그는 그 녀를 따라 상자 같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 창문도 없고 어떤 장식품도 없었다. 벽은 암회색 으로 칠해져 있었다. 바닥에 탄탄한 회색 카페트가 깔려 있었다. 방 안의 유일한 가구란 회 색비단 쿠션이 있는 커다란 의자 하나와 경사진 독서 테이블과 깊게 갓을 씌운 램프뿐이었 다. 케이트는 의수인 것처럼 장갑을 낀 손의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 사이에 전등줄을 끼 고 잡아 당겼다. "문을 닫아!" 케이트가 말했다. 불빛이 테이블 위에 동그랗게 비쳤고 회색의 방안에 희미 하게 반사되었다. 회색 벽이 빛을 삼키고 부어놓는 듯했다. 케이트는 두꺼운 쿠션에 조심스 럽게 앉은 다음 천천히 장갑을 벗었다. 양쪽 손의 손가락에 붕대가 감겨져 있었다. 케이트는 화를 냈다. "자세히 들여다보지마. 관절염이야. 아, 보고 싶다고 그랬지?" 그녀는 기름이 묻은 듯한 붕대를 오른손 집게손가락에서 풀고 꾸부러진 손가락을 불빛 쪽으로 내밀 었다. "이걸 봐. 관절염이야." 그녀는 허술하게 붕대를 다시 감으면서 아픔을 참지 못학 소 리를 냈다. "아이고, 장갑에 다쳤구먼! 앉아." 카알은 의자 끝에 쭈그리고 앉았다. "너도 이 병에 걸릴지도 몰라. 나의 큰 숙모도 이 병 에 걸렸었고, 어머니도 이 병에 막 걸리기 시작...." 그녀는 말을 멈췄다. 방안은 아주 적막했 다. 낮은 노크 소리가 들렸다. "조오야? 쟁반은 거기에 놔. 조오, 거기 있어?" 문틈으로 중얼 대는 소리가 들렸다. 케이트는 건조하게 말했다. "현관이 어지러져 있어. 깨끗이 치워요. 앤 은 자기 방 소제를 하지 않았더군. 한번 더 경고를 해. 마지막 경고라고 말해. 에바는 간밤 에 잘했어. 그애는 내가 보살필 거야. 그리고 조오, 요리사에게 말해. 이번 주에도 홍당무 요 리를 다시 하면 보따리를 싸라고 해. 내 소리 들려?" 중얼대는 소리가 문틈으로 다시 들렸 다. "그것뿐이야! 더러운 돼지새끼들 같으니라구!" 그녀가 중얼 거렸다. "감시를 안하면 썩어 문드러질 거야. 나가서 차 쟁반 좀 가져와요." 카알이 문을 열었을 때에는 침실에 아무도 없 었다. 그는 쟁반을 들고 들어와 경사진 독서 테이블 위에 조심스럽게 놓았다. 커다란 은쟁반 이었다. 그 위에 백납 찻주전자오 종이같이 얇은 하얀 찻잔 두 개와 설탕과 크림고 열어놓 은 초콜릿 상자가 하나 있었다. "차를 따라라. 나는 손이 아프니까." 그녀는 초콜릿 하나를 입에 넣었다. "네가 이 방을 둘러보는 것을 봤다." 그녀는 캔디를 삼키고 말했다. "불빛이 눈을 아프게 하는구나. 나는 여기서 휴식을 취하지." 그녀는 카알이 자기의 눈을 힐끔 쳐다보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단 호하게 말했다. "불빛이 눈을 아프게 한다니까." 그녀는 거칠게 말했다. "왜 그래? 차가 싫 으냐?" "안 들겠어요. 차를 좋아하지 않아요." 그녀는 붕대를 감은 손가락으로 얇은 컵을 들었다. "그러면 뭘 먹을래?" "아무것도." "나 를 보고만 싶었던가?" "네." "만족해?" "네." "내가 어떻게 보이지?" 그녀는 비틀린 웃음을 지었다. 날카롭고 하얀 작은 이가 드러났다. "좋습니다." "사실을 말하는 것은 아니겠지. 네 형은 어디 있니?" "학교에, 아니면 집이 요." "당신을 더 닮았어요." "오, 그래? 나를 닮았다고?" "목사가 되고 싶어 하죠." 카알이 말했다. "그래야 할 거야. 나를 닮은 애가 교회로 들어가고 싶어한다. 교회에선 파괴적인 일 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법이야. 여기에 올때에는 경계를 해야 하지만 교회에선 사람이 개 방적이지." "그는 진심이에요." 그녀는 그에게 몸을 굽혔다. 얼굴이 호기심으로 생동했다. "내잔을 좀 채워라. 네 형은 둔하냐?" "그는 훌륭해요." "둔하냐고 물었어." "아니오." 그녀는 뒤로 기대 앉으면서 컵을 들었다. "아버지는 어떠시냐?" "아버지에 대해선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요." "오, 그러면 그만둬라! 아버지를 좋아하니?" "사랑하고 있어요." 카알이 대답했다. 케이트는 그를 자세히 살폈다. 이상한 경련이 일어났다. 뒤틀리는 통증이 그녀의 가슴에 일어났던 것이다. 그러자 그녀는 그것을 속에 감추고 자제력이 되돌아왔다. "캔디좀 먹을 래?" "네. 그런데 왜 그런 짓을 했지요?" "내가 무슨 짓을?" "왜 아버지를 쏘고, 우리들에게 서 도망쳤느냐구요?" "아버지가 이야기하던?" "아니예요. 아버지는 우리에게 말하지 않았어 요." 그녀는 한 손을 다른 손에 대었다가 마치 데기라도 한 듯이 두손을 떼어 놓았다. 그녀 가 물었다. "아버지가 젊은 여자들을 집으로 데리고 오던?" "아니요." 카알이 다시 물었다. "왜 아버지를 쏘고 도망쳤지요?" 그녀의 뺨은 굳어지고 입 은 일자가 되었다. 마치 그물 같은 근육이 자유자재로 감정을 억제하는 듯했다. 그녀는 고개 를 들었다. 눈은 냉혹하고 천박하게 되었다. "나이보다 어른스럽게 말하는구나. 하지만 어른처럼 능숙하게 말하지는 못하는군. 가서 장 난이나 하는 것이 낫겠다. 코를 닦고." "가끔씩 나는 형을 못살게 굴 때가 있지요. 그를 얼 떨떨하게 만들기도 하고 울게도 만든 때가 있지요. 내가 하는 방법은 그는 몰라요. 그보다는 내 머리가 좋지요. 내가 왜 그러는지 나도 몰라요. 그러고 나면 기분이 좋지 않지요." 케이트는 그것이 자기 말이었기나 했던 것처럼 말을 되받았다. "그들은 자기네들의 머리 가 좋다고 생각했지. 나를 보고 나를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가 그들을 바보로 만들었던 거야. 나는 사람들을 하나같이 바보로 만들었어. 내가 어떻게 해야 된다고 그들이 말할 수 있었을 때에는... 오! 내가 그들을 제일 바보 취급했을 때야. 찰스, 나는 그때 그들을 정말 바보 취급했어." "내 이름은 케이트예요. 케이레브는 약속된 땅으로 갔어요. 리이 아저씨가 말해 주더군요. 성경에 그렇게 쓰여 있어요." "그 중국인 말이지." 그녀는 열심히 말을 이었 다. "아담은 내가 자기 손아귀에 들었다고 생각했지. 내가 엉망이 되게 부상을 당했을 때 그 는 나를 받아들이고 간호하고 밥을 먹여줬지. 그렇게 해서 나를 붙잡아매려고 했던 거야. 대 부분의 사람들은 그런식으로 하면 매이게 마련이야. 감사해 하며 빛을 진 것처럼 생각하게 되지. 그것이 가장 무서운 수갑이야. 그러나 나를 붙잡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나는 힘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뛰쳐나온 거야. 나에게 올가미를 씌울 수 있는 사람 은 아무도 없어. 그가 하고 있던 일을 나는 알고 있었어.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야." 고요한 회색 방에는 흥분하여 식식거리는 그녀의 숨소리만 들렸다. 카알이 물었다. "왜 아 버지를 쏘았어요?" "나를 제지하려 했기 때문이지. 그를 죽일 수도 있었지만 죽이지는 않았 어. 나를 방해하지만 않게 해놓고 싶었을 뿐이야." "그대로 있었을 걸 그랬다는 생각을 해 본적은 있나요?" "천만에! 어렸을 때에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고 할 수 있었어. 내가 하느 방법을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어. 사람들은 자기네들이 옳다고 항상 확신하고 있었 지. 그래서 전혀 몰랐던 거야... 아는 사람이 전혀 없었어." 어떤 종류의 인실이 그녀에게 떠 올랐다. "맞아, 너는 나와 같은 사람이야. 똑같을지도 몰라. 틀림없지?" 카알은 일어서서 뒷짐을 졌다. "어렸을 때 말입니다." 그는 말을 멈추고 생각을 가다듬었 다. "무엇인가 부족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나요? 가령 당신이 모르는 것을 다른 사 람들은 알고 있다든가... 다른 사람들이 비밀을 말해 주지 않는 것 같은? 그렇게 느낀 적이 없나요?" 그가 말하고 있는 동안 그녀의 얼굴에는 그에 대하여 문을 닫는 듯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리고 말을 마쳤을 때에는 문이 닫히고 두사람 사이의 통로는 막혀 버렸다. 그녀가 말했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지? 어린애들 한테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카알은 뒷주먹을 풀고 호주머니에 손을 찔렀다. "코흘리개한테 말을 하고 있으니 미친 게 틀림없구먼." 카알 의 얼굴은 흥분으로 벌겋게 되었고 둥그래져 노려보았다. 케이트가 물었다. "무슨 일이야?" 그느 꼼짝 않고 서 있었다. 이마에는 땀 방울이 빛나고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다. 케이트는 항상 그랬듯이 날카롭되 무분별한 카알과 같은 잔인성을 불쑥 내밀었다. 그녀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너에게 재미있는 것 몇 가지를 물려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를테면..." 그녀는 꾸부러진 손을 치켜올렸다. "하지만 간질.... 말하자면 지랄병 같은 것이 라면 내게서 물려받은 것이 아니야." 그녀는 카알이 이말에 충격을 받고 격정에 쌓이게 되 리라고 미리 생각하면서 그를 쳐다보았다. 카알은 행복한 듯이 말했다. "가렵니다. 지금, 됐습니다. 리이 아저씨가 말한 것이 사실이 군요." "리이가 무엇이라고 했는데?" 카알이 대답했다. "내 마음 속에 당신이 있을까봐 걱정 했어요." "내가 있지." 케이트가 말했다. "아니예요, 없어요. 나는 나예요. 내가 당신이 될 이 유가 없어요."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녀가 다그쳤다. "그저 알아요. 나는 전적으로 나 예요. 내가 비겁하다면 그것은 나 자신의 비겁이에요." "그 중국인이 정말 잘 속여 놓았군. 그러면 나를 왜 그렇게 노려보지?" 카알이 말했다. "불빛이 당신의 눈을 헤치는 것이 아니예요. 겁을 먹고 있는 거에요." "나 가!" 그녀가 소리쳤다. "빨리 나가!" "갑니다." 그는 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나는 당신을 증 오하지 않아요. 그러나 겁을 먹고 있는 것을 보니 기쁩니다." 그녀는 '조오!'하고 소리치려 했으나 목소리는 탁해져서 목쉰 소리가 되었다. 카알은 문을 비틀어 열고 나와서 꽝 닫았다. 조오는 응접실에서 한 여자와 이야기하고 있 었다. 가볍고 재빠른 발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그들이 고개를 쳐들고 바라보았을 때에는 질 주하는 모습이 문에 다다랐을 때였다. 그는 문을 열고 살짝 빠져나갔기 때문에 묵직한 앞문 소리가 크게 났다. 현관에는 단지 한 발자국 소리만 들리더니 어느새 땅을 뛰어내리는 소리 가 들렸다. "저 애는 도대체 뭐야?" 그 여자가 물었다. "누가 알아." 조오가 대답했다. "가끔씩 나는 어떤 일을 보는 것 같아." "나도 그래요." 그 여자가 말했다. "클라라가 조바심하고 있다고 내가 말했나?" "마담이 바로 그림자라도 보고 초조해 하는지도 몰라." 조오가 말했다. "사람 이란 적게 알면 적게 알수록 잘 살 수 있는 것 같아." "당신 말이 맞아요." 그 여자가 동의 했다. 제 40 장 1 케이트는 의자에 등을 대고 푹신한 쿠션에 앉았다. 두려움이 물결처럼 온몸을 돌면서 솜 털을 곧두세우고 얼음 같은 고통을 일으켰다. 그녀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이제 안정을 해라. 마음을 가라앉혀라. 네가 얻어맞지 않도록 해라. 잠시동안 생각을 거두어라. 빌어먹을 코흘리개 같으니라구!' 그녀는 무서운 증오감을 느끼게 만들었던 유일한 사람을 생각했다. 턱수염이 하얗고 양 뺨이 불그레하고 그녀의 피부를 들어올려 그 밑까지 들여다보는 미소짓는 눈의, 바로 새뮤 얼 해밀튼이었다. 그녀는 붕대를 감은 집게 손가락으로 목에 건 가느다란 쇠줄을 찾아내어 그 쇠줄 끝에 달 린 물건을 조끼에서 꺼냈다. 쇠줄에는 두 개의 금고 열쇠와 불꽃 모양의 핀이 달린 금시계 하나와 동그란 링이 달린 작으 쇠 튜브가 달려 있었다. 그녀는 아주 조심스럽게 튜브 끝을 돌려 무릎을 벌리고는 아교로 된 캡슐을 흔들어 꺼냈다. 그녀는 캡ㅅ을 불빛에 비추어 보았 다. 결정체가 보였다. 충족한 한계량이 모르핀 여섯알이었다. 그녀는 캡슐 튜브 속에 가만 히 다시 넣고는 뚜껑을 덮고 쇠줄을 드레스 안에 집어 넣었다. 카알의 마지막 말이 그녀의 마음 속에서 맴돌았다. '두려워하는 것을 보니 기쁩니다.' 그 녀는 그말을 지워버릴 생각으로 혼자 크게 떠들었다. 올림은 멈췄으나 강력한 모습이 마음 속에 떠올랐다. 그녀는 그 모습을 다시 조사하고 싶은 생각에서 마음 속에 떠오르는 모습 을 그대로 두었다. 2 방을 이어 짓기 전이었다. 케이트는 찰스가 남긴 돈을 모았다.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었고 그 많은 현금은 모테레이 국립은행의 금고 속에 예치되어 있었다. 첫 통증이 일어나 손이 뒤틀리기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이제 갖고 도망갈 돈도 충분했다. 문제는 집 밖으로 가지고 나갈 수 있는 만큼의 돈을 가지고 나가면 됐다. 그러나 몸이 완전 히 회복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더 좋았다. 그녀는 다시 회복되지 않았다. 게다가 뉴욕은 춥고 거리가 멀었다. 에델이라고 쓴 편지 한 장이 날아왔다. 도대체 에델이 누구였던가? 누구이든간에 돈을 요구하기에 혈안이 되어 있 는 것이 틀림 없었다. 에델이라면 수백 명이나 있었다. 에델이라면 어딜가나 있었다. 이 에 델은 줄친 편지지에 읽을 수 없을 정도로 휘갈겨 쓴 편지였다. 얼마 안있다가 에델이 케이 트를 만나러 왔다. 그녀를 거의 알아 볼 수 없었다. 케이트는 주의 깊게 또 의심쩍어 하면서도 자신있게 책상에 앉아 있었다. "오래간만이네." 그녀가 말했다. 나이가 들어가지고 옛조교를 만난 듯 그녀가 대답했다. "내가 어렵게 됐어." 온통 살이 부어 무겁게 되어 있었다. 옷은 너무 빨아서 초라하게 보였다. "지금 어디 있어?" 케이트는 이 늙은이가 언제 용건을 꺼낼지 걱정이 되었다. "남태평양 호텔에 방을 하나 얻 어 있어." "그러면 지금은 일을 하고 있지 않구먼?" "새 출발을 할 수 없었어. 나를 내쫓지 말아야 했었어." 그녀는 무명 장갑 끝으로 주먹 같은 눈물을 닦았다. "일이 엉망이야." 그녀 가 말했다. "일이 처음 꼬인 것은 우리가 그 새 판사를 만났을 때야. 90일 형이었어. 전과가 없었는데도 말야... 적어도 여기서는 없었어. 형을 치르고 나오자 이번엔 매독에 걸렸어. 난 걸렸는지도 몰랐어. 그걸 단골 손님한테 옮긴 거지 뭐야... 철도 보선구에서 일하던 좋은 분 이었는데, 그분이 화를 내면서 구타를 했어. 코에 상처를 입히고 이빨 네 개를 부러뜨렸어. 그러자 그 새 판사는 180일의 형을 또 내렸어. 180일 동안 아무 접촉도 없이 지내면, 사람들 은 살아 있는지 조차도 잊게 되는 거야. 그래서 나는 재출발을 할 수 없었어." 케이트는 냉정하고 얕은 동정을 느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에델이 본격적인 용무를 꺼내 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알았다. 그 본격적인 이야기 직전에 그녀는 선수를 쳤다. 서랍에서 돈을 꺼내 에델 앞에 내놓았다. "나는 친구가 몰락되게 내버려둔 적은 한 번도 없어. 왜 새 마을로 옮겨 보지 그래? 새 출발을 하는 거야. 사정이 달라질지도 모르니까." 에델은 손가락으로 돈을 집지 않으려고 했다. 포커를 할 때처럼 지폐를 펼쳐 보았다. 달러 지폐 넉 장이었다. 에델은 감정에 북받쳐 입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에델이 말했다. "40달러 는 더 봐주리라고 기대했었는데." "무슨 말이지?" "내 편지 받았어?" "무슨 편지?" "오! 분 실된 모양이구나! 편지를 소흘히 다루기는 하지. 아무튼 나는 네가 나를 돌봐 주리라고 생 각했어. 한 번도 기분 좋은 적이 없었어. 몸이 뚱뚱해져서 창자를 짓누르고 있었어."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녀가 하도 빨리 말을 해서, 케이트는 그것이 미리 연습을 한 말 이라는 것을 알았다. "글세, 너도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얼마만한 투시력을 갖고 있는지 알거야." 에델이 말을 시작했다. "항상 예언하는 것은 들어맞는단 말야. 꿈에 항상 나타난다니까. 점 장이 노릇을 하는 것이 좋다고 사람들이 그러지. 타고난 점장이라는 거야. 기억해?" "모르겠 는데." 케이트는 말했다. "기억안나." "기억안나? 알아차리지 못했던 모양이구나. 다른 사람들은 모두 눈치챘어. 다른 아이들에 겐 많은 것을 말해 줬는데 그것이 모두 실현된거야."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나는 이런 꿈을 꾼 적이 있어. 날짜도 기억하고 있지. 페이가 죽던 바로 그날이었으니까." 그녀는 케이 트의 냉정한 얼굴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녀는 짓궂게 말을 계속했다. "그날 밤엔 비가 왔지. 끔속에서도 비가 왔어. 어쨌든 축축했었으니까. 네가 부엌문을 빠져 나가는 것을 꿈속에서 봤어. 칠흙같이 어둡지는 않았어. 달빛이 새어들고 있었으니까. 꿈은 너에 관한 꿈이었어. 네 가 뒤뜰로 새어들고 있었으니까. 네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보이지 않았어. 그러고 나서 네 가 기어 들어왔어." "다음 번에 보니 글쎄 페이가 죽었지 뭐야." 그녀는 말을 멈추고 케이트의 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케이트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에델은 기다려 보았으나 케이트가 말하려 않으려 한다 느 것을 확인했다. "조금 전에 말한 것처럼 나는 내 꿈을 항상 믿었어. 재미있는 일이야. 그 런데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고, 단지 약병들과 고무로 된 안약 떨이가 산산이 부서져 있을 뿐이었어." 케이트가 천천히 말했다. "그래서 그걸 의사에게 가져갔단 말이지? 병안에 무엇이 있었다 고 의사가 말했어?" "그렇게 안했어." "했으면 좋았을 것을." 케이트가 말했다. "나는 누구도 곤란을 당하는 것을 보고싶지 않아. 나 자신이 곤란을 무지무지하게 겪고 있으니까. 나는 그 깨진 유리병을 봉투에 넣어 간직해 두었어." 케이트가 부드럽게 말했다. "그래서 의논을 하 러 온거야?" "맞아요." "내 생각을 이야기하지. 너는 너무 지친 늙은 매춘부야. 그리고 너무 여러번 머리를 얻어 맞았어." "내가 멍충이라고 말하려는 거지?" "아니야. 네가 그렇지는 않겠지. 그러나 너는 지치고 병들어 있어. 나는 친구를 내버려두지는 않을 거라고 말했어. 너는 여기에 다시 올수도 있 어. 손님을 받을 수는 없겠지만 이것저것 도와주고 청소도 하고 요리인을 도울 수도 있어. 그러면 침식이 해결될거야. 그것은 어떻겠니? 돈도 좀 받고." 에델은 불안하게 몸을 움직였다. "싫어. 여기서 자는 것은 싫어요. 나는 그 봉투를 들고 돌아다니지 않아. 친구에게 맡겨 놓았어." "어떻게 할 생각이었어?" 케이트가 물었다. "글세, 너 같으면 한 달에 백 달러 씩은 나에게 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어. 그러면 어떻게 살아가 면서 병도 고칠 수 있을지 모르지." "남태평양 호텔에 산다고 했지?" "응, 내 방은 안내원 테스크에서 호올로 통하는 바로 옆에 있어. 야근원이 내 친구야. 근무중에 자는 일은 절대로 없어. 좋은 친구야." 케이트가 말했다. "에델, 걱정할 필요는 없어. 그 좋은 친구가 돈을 얼마나 낼 수 있는가 만을 걱정하면 돼. 잠깐 기다려." 그녀는 서랍에서 10달러 짜리 여섯 장을 더 꺼내 내밀었 다. "이것을 매달 초에 주는 거니, 아니면 받으러 이리 와야 하니?" "보내줄게. 그리고 에 델." 그녀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나는 그 병을 분석해 볼 것 같은 생각이 드는구나." 에델은 돈을 손에 꼭 쥐었다. 승리감이 넘쳐 흘러 기분이 좋았다. 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기분이었다. "그럴 생각은 없어. 꼭 해야 될 필요가 없다면 말이야." 그녀가 간 후에 케이트는 뒤뜰로 나가 보았다. 여러 해가 지난 후이지만 울퉁불퉁한 것으 로 보아 철저하게 파헤쳐졌던 것이 틀림없었다. 다음날 아침 판사는 사소한 폭행과 밤 절도에 관한 평상시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그는 넷째번 사건에는 귀를 기울이고 있지 않았다. 고발자의간단한 증언을 듣고 나서 판사가 물 었다. "당신은 얼마나 잃었소?" 까만 머리칼의 남자가 말했다. "백 달러 가까이 됩니다." 판 사는 체포한 순경에게 몸을 돌려 물었다. "그 여자는 얼마를 갖고 있었나?" "96달러요. 저 여자는 오늘 아침 여섯 시에 야간 근무자에게서 위스키와 담배, 잡지를 샀어요." 에델이 소리쳤다. "내 평생 처음보는 남자예요." 판사는 보고서를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두번의 매춘, 그러고 절도. 골치를 썩히는구먼. 정오까지 군 밖으로 나가요." 그는 순경에게 고개를 돌렸다. "보안관보고 이 여자를 군 경계선 밖으로 쫓아내라고 해." 그리고 에델에게 다시 말했다. "다시 돌아오면 군 당국에 최고형을 요청할 테니까. 그러면 형무소가 있는 샌 퀸틴으로 가야돼. 알겠어?" 에델이 말했다. "판사님, 조용히 말씀드릴 것이 있어요." "왜?" "말씀드릴 것이 있어요. 이 건 가짜예요." "세상만사가 다 가짜야." 판사가 말했다. "다음." 강 위에 걸려 있는 판자 다리 위 군 경계선까지 보안관 보가 그녀를 데리고 가는 동안, 고발자는 케이트의 집으로 향해 케스트로빌 거리를 서서히 걸어 내려오다가 마음을 바꾸어 머리를 깎으러 캐노스 이발관으로 들어갔다. 에델의 방문도 케이트를 그렇게 혼란시키지는 않았다. 원한을 품고 있는 창녀에게 어느 정도의 관심을 쏟아야 된는가는 그녀는 알고 있었으며 깨어진 병을 분석한다 하더라도 독성 이 검출될 리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녀는 페이를 거의 잊고 있었다. 억지로 회상해 보면 그 일은 단지 불쾌한 기억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그 일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서서히 인식하게 되었다. 식료품 청 구서 세목을 검토하고 있던 어느날 밤, 어떤 생각이 그녀의 마음 속에 뛰어들어 유성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것을 알았다. 그 생각은 순간적으로 왔다가 사라졌기 때문에 그녀는 하던 일을 멈추고 그것을 찾으려고 애를 써야만 했다. 그 생각에 찰스의 까만 얼굴이 끼어 든 것은 어쩐 일인가? 그리고 샘 해밀톤의 어리둥절하면서도 두려운 전율을 느껴야 했을 까? 그녀는 생각을 거두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찰스의 얼굴이 그녀의 어깨 너머로 바 라보고 있었다. 손가락이 아프기 시작했다. 불안하고 지루한 밤이었다. 목요일 밤이었다. 서 어커스를 벌일 만큼 손님도 많지 않았다. 여자들이 자기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도 케이트는 알고 있었다. 그들은 그녀를 지독하게 무서워했다. 그녀는 그들을 그렇게 다루었다. 그들이 그녀를 미워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녀를 믿고 있었다. 그것이 문제였다. 그녀가 세워 놓은 규칙을 정확하게 지키면 케이트는 그들을 돌보아 주고 보호했다. 사랑이라든가 존경하 고는 거리가 멀었다. 그녀는 상을 주는 일은 없지만 규칙 위반에게는 두 번 벌을 주고 세 번 위반하면 내쫓았다. 그들은 아무 이유없이는 처벌 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안전하게 생 각했다. 케이트가 돌아다닐 때면 여자들은 애써 모르는 척했다. 케이트는 이것도 알고 있었고 또 기대했다. 그러나 이날 밤만은 혼자 있는 것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찰스가 옆에서 뒤에서 함 께 걷는 성싶었다. 그녀는 식당을 통해 부엌으로 들어가 아이스박스를 열고 들여다보았다. 쓰레기통을 열어 보고 낭비라도 하지 않는가 조사했다. 매일 밤 이렇게 했으나 오늘 밤에는 잔소리가 많았다. 그녀가 응접실을 떠나자 여자들은 서로 쳐다보면서 당혹하여 어깨를 치켜올렸다. 까만 머 리의 조오에 이야기를 하던 엘로이스가 말했다. "무슨 일이야?" "나는 모르는 일이야. 왜?" "모르겠어. 마담이 신경질을 내고 있는 것 같은데." "글세, 싸움이라도 했나보지." "뭐였었는 데?" "잠깐 기다려!" 조오가 말했다.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는 일이야." "알겠어. 내 일이나 하란 말이지." "빌어먹게도 눈치 빠르네." 조오가 말했다. "내버려두자." "나도 알고 싶지 않 아." 엘로이스가 말했다. "그렇지." 케이트는 한바퀴 돌고 왔다. "나는 자겠어." 그녀가 조오에게 말했다. "꼭 필요하지 않으 면 부르지 말게." "지시할 일이라도?" "응, 차 좀 끓여. 엘로이스, 옷은 다렸나?" "네, 마담." "썩 잘 다리진 못했군." "네." 케이트는 불안했다. "그녀는 모든 서류를 서류 분류함에 말끔 히 집어 넣었다. 조오가 찻 쟁반을 들고 들어왔을 때 그녀는 그것을 침대 곁에 놓으라고 지 시했다. 베개 속에 파묻혀 누워서 차를 홀짝이며 그녀는 자기 생각을 더듬었다. 찰스는 어땠던가? 그러자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찰스는 현명했다. 좀 이상하기는 했지만 해밀튼도 현명했다. 이것은 두려움에 몰린 생각이 었다. 현명한 사람들도 있었다. 샘과 찰스는 둘다 죽었지만 또다른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천천히 생각을 해나갔다. '병을 캐낸 사람이 나였다고 생각해 보자.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짓을 했을까? 두려운 생각이 가슴에 솟았다. 왜 병을 깨뜨려서 묻었을까? 독기가 없었으니까 그랬다. 그러면 왜 파묻었는가? 무엇 때문에 그 여자가 그렇게 했는가? 중앙로 도랑에 내던지든지, 아니면 쓰 레기통에 던져 버려야 했다. 와일드 의사는 죽었다. 그러나 어떤 기록을 남겨 놓았을까? 알 수가 없었다. 유리를 발견하고 내용을 알아냈다고 상상해 보자.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지 않 았을까. 옻나무 기름을 어떤 사람에게 주었다고 가정해 보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소량씩 오랫동안 먹였다고 생각해 보자.' 그녀는 알았으리라. 누구도 알았으리라. '돈많 은 마담이 젊은 여자에게 모든 것을 넘겨주는 유언을 남겨 놓고는 죽었다는 것을 상상해 보자.' 케이트는 어떤 생각이 먼저 ㄷ르지를 잘 알고 있었다. 어떤 미친 생각 때문에 에델 에게 돈을 주고 유리를 내놓도록 꾀를 부렸어야 했다. 유리는 지금 어디 있을까? 봉투에 넣었다고 했는데 어디 있을까? 어떻게 에델을 찾을 수 있을까? 에델은 결국 자기가 추방당하게 된 이유와 방법을 알게 될 것이다. 에델의 머리는 좋지 않지만 머리 좋은 사람에게 말을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수다스럽게도 페이가 어떻게 아 프게 되었고 안색이 어땠고 또 유서에 대하여 모조리 말할지도 모른다. 케이트는 숨이 가빠지고 찌르는 듯한 두려움이 전신에 퍼지기 시작했다. 뉴욕 같은 다른 곳으로 가야만 했다. 잡울 파는 데 고통을 겪을 필요도 없었다. 돈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돈도 많았다. 그녀를 찾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만일 그녀가 도망을 가고 또 현명한 사람이 에델의 이 야기를 들으며 오히려 의심을 사게 되지 않을까? 케이트는 침대에서 일어나 진정제를 먹었다. 그때부터 두려운 생각이 움츠리고 그녀 곁을 항상 따라다녔다. 손의 통증이 점점 더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오히려 즐거워 했다.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악마의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마을에 자주 나간 적이 없었지만 이제 는 전혀 나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자신이 누군가를 알고 몰래 뒷모습을 살펴보는 남자들이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중 누구든 찰스 얼굴이나 새뮤얼의 눈을 갖고 있다고 상상해 보라. 그녀는 일주일에 한 번씩 억질 외출했다. 그러다가 그녀는 방을 이어 짓고 회색칠을 했다. 불빛이 눈을 아프게 하기 때문이라고 말 했다. 사실 빛이 자기의 눈을 아프게 했다고 그녀는 서서히 믿기 시작했다. 마을에 한번 갔 다오면 눈이 아팠다. 그녀는 이 작은 방에서 점점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상반되는 두 가지 생각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데 케이트에게는 그것이 가능했 다. 광선이 눈을 아프게 하고 또한 회색 방이 몸을 숨길 수 있는 동굴, 지하의 어두운 구멍, 사람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장소라고 그녀는 믿고 있었다. 그러나 생각이라기보다는 어떤 직 감에서 그 계획을 포기했다. 그렇게 해도 자신을 보호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 이 나갈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이 들어올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집 밖에서 웅크리고 앉아 있다가 밤이 되면 벽 가까이로 기어와서는 가만히 일 어나 창틈으로 들여다 볼 수도 있었다. 케이트가 월요일 오후에 집을 나가는 데에는 더한 의지력이 필요했다. 카알이 그녀의 두를 쫓기 시작했을 때에는 두려운 생각이 점점 더 들었다. 그리고 그녀가 쥐똥나무 뒤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을 때에는 공포에 가까운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부드러운 베개 속에 머리를 깊숙이 묻고 있는 지금, 그녀의 눈은 진정제의 효력이 가중되는 것을 느꼈다. 제 41 장 1 미국은 놀라기도 했지만 한편 끌리기도 하여 슬그머니 전쟁에 끼어들고 있었다. 거의 60 년이 지나도록 사람들은 전쟁의 흥분을 느끼지 못했다. 스페인 전쟁은 전쟁이라기보다는 원 정에 가까웠다. 윌슨씨는 전쟁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공약을 내세워 11월에 대통령에 재선되 었으나 강경책을 쓰도록 압력을 받고 있었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전쟁을 뜻했다. 사업의 경기는 좋았고 물가는 오르기 시작했다. 영국 구매관들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곡물과 천과 쇠와 화학품을 사들였다. 전국이 흥분의 도가니에 싸여 있었다. 사람들은 전쟁을 계획하면서 도 전쟁을 정말로 믿지는 않았다. 샐리너스 계곡의 생활은 다름이 없었다. 2 카알은 아론과 함께 걸어서 학교로 갔다. "너 피곤해 보이는구나." 아론이 말했다. "그래?" "어젯밤에는 새벽 4시에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더라. 그렇게 늦게까지 뭘했니?" "생각하면서 돌아다녔어. 학교를 그만두고 농장으로 들어가고 싶어." "무엇 때문에." "아버지를 위해 돈을 벌 수 있을 거야." "나는 대학에 진학하려고 해. 지금이라도 갈 수 있으면 좋겠어. 모든 사 람들이 우리를 비웃고 있어. 마을을 떠나고 싶어." "미쳤구나." "나는 미치지 않았어. 내가 돈을 잃는 것은 아니야. 나는 그 미친 상치 생각도 하지 않았어. 그러나 내가 저지르기나 한 것처럼 사람들은 나를 비웃어. 내가 대학에 갈 돈이나 있는지 모르겠어." "아버지가 일부로 돈을 잃은 것은 아니야." "그러나 잃었지 않아." 카알이 말했다. "형은 금년하고 내년을 끝내야 대학에 갈 수 있어." "그걸 내가 모르는 줄 아니?" "형이 열심히만 공부하면 내년 여름 입학시험을 치르고 가을에는 진학을 할 수 있을지도 몰라." 아론은 몸 을 홱 돌렸다. "나는 할 수 없어." "내 생각엔 할 수 있을 것 같아. 교장 선생님한테 물어보 지 그래? 롤프 목사도 틀림없이 도와줄 거야." 아론이 말했다. "나는 이 마을에서 도망치고 싶어. 다시는 여기를 돌아오고 싶지 않아. 사 람들은 아직도 우리를 '상치 대가리'라고 부르고 있어. 사람들이 우리를 비웃고 있어." "에 이브라는 어때?" "에이브라는 가장 좋은 길을 택할 거야." 카알이 물었다. "그녀는 형이 떠 나는 것을 바랄까?" "에이브라는 내가 시키는 대로 할 거야." 카알은 잠시 동안 생각에 잠겼다. "내가 이야기하지. 나는 돈을 벌겠어. 형이 열심히 공부 해서 1년 앞당겨 시험에 통과하면 내가 도와 대학을 졸업하게 하겠어." "정말이야." "틀림없 어." "그러면 지금 당장 교장 선생님을 찾아가 보겠어." 그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카알이 불렀다. "아론, 잠깐 기다려! 내 이야기를 들어! 만일 교장 선생님이 허락해 주더 라도, 이 사실을 아버지한테 말하진 마." "왜?" "'형이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말씀드리면 얼마나 멋있을까' 하고 생각했어."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데." "그래?" "마찬가지야. 그런 생각은 우스운 것 같아." '나는 우리 엄마가 누구인지 알아. 형에게 보여줄 수 있어.' 카알은 이렇게 소리치고 싶 은 충동을 느꼈다. 그러면 이말은 아론의 폐부를 찌르리라. 카알은 수업종이 울리기 전에 에이브라를 복도에서 만났다. "아론은 어떻게 된거야?" 그 는 물었다. "난 몰라." "너는 알지 않아?" "그는 공상에 잠겨 있어. 목사 때문이야." "아론은 집에 갈 때 같이가니?" "같이가지. 나는 그를 꿰뚫어 알고 있어. 그는 공상에 잠겨 있는 거 야." "그는 아직도 상치 일로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어." "그렇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어." 에 이브라가 말했다. "그 일을 잊어버리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는 그 일을 즐기고 있는지도 몰 라." "무슨 뜻이야?" "아무것도 아니야." 에이브라가 말했다. 그날 저녁식사를 끝내고 나서 카알은 아버지에게 말했다. "금요일 오후 농장에 가보고 싶 은데 괜찮아요?" 아담은 의자에 앉은 채 고개를 돌렸다. "무엇하러?" "그저 보고 싶을 뿐이 에요. 둘러보고 싶어요." "아론도 가고 싶어하니?" "아니에요. 나 혼자 갈래요." "가지 못할 이유야 없지. 리이. 자네 생각에 카알이 가지 못할 이유라도 있다고 생각하나?" "없지요." 리이가 이렇게 말하고 카알을 살폈다. "농사 짓는 일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거야?" "그런지 도 모르죠. 아버지, 그 땅을 나에게 넘겨 주시면 제가 하겠어요." "임대 기간이 1년이나 더 남았는데." 아담이 말했다. "그 후엔 제가 농사를 지을 수 있어요?" "학교는 어떻게 하고?" "그때 쯤에는 졸업을 하 죠." "글세, 두고보자." 아담이 말했다. "진학하고 싶을지도 모르니." 카알이 현관문을 향해 일어섰을 때 리이가 뒤따라 왔다. "왜 농장에 가보려고 하는지 나에게 말해줄 수 있어?" "그저 둘러보고 싶을 뿐이에요." "좋아. 나는 제외된 것 같군." 리이는 돌아서서 집으로 들어 가려다가 카알을 불렀다. 카알이 발을 멈췄다. "걱정되는 일이라도 있어. 카알?" "아니." "필 요한지 모르지만 내게 5천 달러 있지." "왜 그것이 필요하겠어요?" "나도 모르겠는데." 리이 가 말했다. 3 윌 해밀튼은 차고 안에 등우리같이 유리로 만든 사무실을 좋아했다. 그는 자동차업 이외 에도 많은 사업을 했으나 다른 사무실을 차리지 않았다. 그는 유리 사무실 밖에서 진행되는 활동을 좋아했다. 그리고 그는 차고의 소음을 방지하기 위해 이중 유리를 꼈다. 그는 커다란 빨간색 가죽 회전의자에 앉아 대부분의 생활을 즐겼다. 그의 동생 조오가 동 부에서는 광고업으로 많은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를 사람들이 하면 자기는 작은 연못의 큰 개구리라고 윌은 항상 말했다. "나는 큰 도시로 진출하기가 두려워요. 나는 꼭 시골놈이니까요." 이렇게 말을 하고 나서 터지는 웃음소리를 그는 좋아했다. 이 웃음의 친구들이 자기의 커다란 재산을 인정하는 것 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토요일 아침, 카알이 윌을 만나러 왔다. 윌이 당황하는 표정을 보고 그는 자기 소개 를 했다. "카알 트래스크입니다." "아, 그렇구먼. 많이 컸네. 아버지도 오셨나?" "아닙니다. 혼자 왔습니다." "앉게. 담배는 피우지 않지?" "가끔씩 피우죠." 윌이 뮤라드 담배갑을 책상 위로 내밀었다. 카알은 담배갑을 열었다가 닫았다. "지금은 피우지 않겠어요." 윌은 얼굴색이 검은 소년을 쳐다보았다. 그가 좋았다. 이 소년은 영리하다고 그는 생각했 다. "곧 사업에 투신해야 되겠군." "네. 학교를 졸업하면 농장을 할 생각이에요." "농사 일을 해서는 돈을 못 벌지. 농군은 돈을 벌지 못해. 농군 한테서 물건을 사가지고 판매하는 사람 이 돈을 버는 거야. 농사 일을 해가지고는 결코 돈을 못 벌 걸." 윌은 카알이 자기를 느끼고 검사하고 관찰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그것이 그의 마음에 들었다. 카알은 무엇인가 결심을 하고 있었으나 먼저 인사말을 꺼냈다. "해밀튼 씨. 아직 어랜애가 없으시죠?" "섭섭하지만 없니. 아주 섭섭하게 생각하는 일이야. 그런데 왜 묻나?" 카알은 그 의 질문을 무시하고 물었다. "충고를 해주시겠어요?" 윌은 아주 기뻤다. "할 수 있으면야 기 쁘지. 알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카알은 더욱 윌의 마음에 드는 짓을 했다. 그는 솔직을 무기로 사용했던 것이다. "거부가 되고 싶어요. 방법을 말씀해 주세요." 윌은 웃고 싶은 충동을 억제했다. 그의 말은 천진해 보였지만 카알이 천진하다고 생각지 않았다. "누구나 그러고 싶지. 거부의 뜻이 뭔가?" "2천 내지 3천 달러쯤 벌고 싶어요." "아, 그래!" 윌은 삐걱 소리를 내며 의자를 앞으로 끌고 왔 다. 그리고 이번에는 웃었다. 그러나 조소는 아니었다. 카알은 윌을 따라 웃었다. 윌이 말했 다. "그만한 돈을 벌겠다는 이유가 뭔가?" 카알은 뮤라드 담배갑을 열어 타원형의 필터가 달린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이유를 말씀드리지요." 윌은 재미있다는 듯이 의자를 뒤로 젖혔다. "아버지는 돈을 많이 버렸죠." "알고 있네. 상 치의 대륙횡단 수송을 하지 말라고 내가 말씀드렸었지." "그러셨어요? 왜 그러셨어요?" "보 증인이 아무도 없었어. 사업인은 자신을 보호해야 해. 사고가 일어나면 끝장이야. 그런데 사 고가 났지. 말을 계속하게." "아버지가 읽은 돈만큼 벌어서 돌려드리려고 그래요." 윌은 입 을 딱 벌리고 말았다. "왜?" "하고 싶어요." 윌이 물었다. "아버지를 좋아하니?" "네." 윌의 살찐 얼굴이 뒤틀렸다. 하나의 추억의 찬바람처럼 그에게 밀어닥친 것이다. 과거를 천천히 뒤진 것이 아니었다. 수 년간의 과거가 일순간에 나타났다. 하나의 그림이, 감정이, 절망이 마치 고속 카메라가 세계를 정지시킨 것처럼 정지해 있었다. 새벽처럼 아름답게 제 비의 비상같은 멋진 모습을 하고 새뮤얼이 번쩍 나타났다. 찬란하고 사색적인 톰이 검은 불 꽃처럼 방 안을 채우는 아름다운 조오지, 사랑스런 막내둥이 조오가 있었다. 누구 하나 노 력을 기울이지 않고 가족에 어떤 선물을 안겨 주었다. 누구나 비밀스러운 고통의 상자를 갖고 있으면서도 이를 아무와도 나누지 않았다. 윌도 자신의 샘은 감추고 너털웃음을 웃고 심술궂은 성질을 개발하고 시기심이 나타나지 않도록 애썼다. 그는 자신을 느리고 얼띠고 보수적이고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커다란 꿈에 부풀어 본 적도 없고 절망에 싸여 자신이 파멸에 빠진 적도 없었다. 그는 항상 주변에 맴돌 면서 조심성과 사리와 응용력이라는 자신의 재능을 갖고 가족 주의에 매달리며 애를 써왔 다. 장부를 재고 변호사를 대고 장의사를 부르고 드디어는 돈을 지불한 사람도 그였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그는 돈을 벌고 유지하는 재능을 갖고 있었다. 자신이 오직 한가지 능력밖에 갖고 있지 않다고 해서 해밀튼 가족이 경시했다는 것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는 끈덕지게 가족들을 사랑했었다. 그들이 실수를 저 질렀을 때, 거기서 그들을 끌어내기 위해 항상 돈을 수중에 갖고 있었다. 가족들이 자기를 부끄럽게 여기고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들이 알아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열심히 노력 했다. 이 모든 것들이 휘몰아치는 얼음이 되어 그의 몸 속에 있었다. 카알을 응시하는 윌의 부푼 눈에는 이슬이 맺혀 있었다. 카알이 물었다. "해밀튼 씨, 무슨 일이세요? 기분이 좋지 않습니까?" 윌은 자기 가족들을 느끼고는 있었으나 이해까지는 하지 못했다. 가족들은 그의 마음 속에 이해할 것이 있다는 것을 알지도 못하고 그냥 그를 받아 들였던 것이다. 그러던 차에 이 소년이 나타났던 것이다. 윌은 이 소년을 이해하고 느끼고 직감하고 인식할 수 있었다. 이 소년이야말로 그가 낳았어야 할 아들, 아니면 가져야 할 동 생, 아니 아버지였다. 찬바람과 같은 추억이 카알에 대한 온정으로 변했다. 온정은 그의 배 를 움켜쥐고 폐부까지 밀려왔다. 윌은 그의 관심을 유리 사무실 안으로 억지로 옮겼다. 카알은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 다. 윌은 침묵이 얼마동안 흘렀는지 알지 못했다. "생각을 하고 있었어." 그는 띄엄띄엄 말 했다. 그의 목소리는 엄숙했다. "자네가 나한테 부탁을 했지. 나는 사업가야. 물건을 가져 줄 수는 없어. 파는 사람이야." "알고 있습니다." 카알은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으나 윌 해밀튼이 자기에게 호의를 갖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윌이 말했다. "알고 싶은 것이 있는데 사실을 말해 주겠어?" "글쎄요." 카알이 대답했다. "그런 것을 내가 좋아해. 질문의 내용을 알 때까지야 무어라고 잘라 말할 수 있겠나? 그런 것이 좋아. 현명한 일이지... 정직하고. 내말을 들어봐. 자네에겐 형이 있지? 아버지는 자네보다도 형을 더 좋아하시는가?" "모든 사람이 그렇죠." 카알이 차분하게 말했 다. "누구나 아론을 좋아하죠." "자네는?" "좋아하죠. 적어도... 그렇죠. 좋아해요." "적어도라 니?" "그가 멍청하다고 생각하는 때가 있지만 그를 좋아해요." "아버지에 대해서는?" "좋아 합니다." 카알이 대답했다. "아버지는 형을 더 좋아하고?" "모르겠어요." "아버지가 잃은 돈 만큼을 아버지에게 돌려주고 싶다고 했는데, 왜 그래?" 보통 때에는 카알이 눈을 가느다랗 고 조심성스러웠으나 이제는 아주 커서 주위를 둘러보고 윌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카알은 가능한 한 자신의 본심에 접근해 있었다. "아버지는 좋은 분이에요. 그러나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그것을 보 상해 드리려고 하는 거예요." "자네가 그렇게 하면 자네는 좋아지지 않겠나?" "아니예요. 그 래도 나쁘죠." 이토록 솔직담백하게 말하는 사람을 윌은 대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카알의 솔직성 때문 에 거의 당황하게 되었다. 그의 솔직성 때문에 그가 얼마나 안전한가를 윌은 알고 있었다. "한가지만 더. 대답하지 않아도 괜찮아. 나 같으면 대답하지 않을 거야. 이런 질문이야. 자네 가 그 돈을 얻어 아버지에게 전한다고 생각해 보자... 그러면 그것을 가지고 아버지의 사랑 을 매수하려 한다는 생각이 안드나?" "그렇죠. 그런 생각이 듭니다. 사실일 겁니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그것뿐이야." 윌은 앞으로 굽히고, 펄떡펄떡 뛰며 땀이 흐르는 이마에 손을 얹었다. 그때처럼 그렇게 혼란해 있었던 적이 없었다고 그는 생각했다. 카알의 마음속에는 조심스러운 승리감이 용솟음쳤다. 카알은 자기가 승리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나타내지 않 으려고 표정을 감췄다. 윌은 고개를 들고 안경을 벗어물기르 닦았다. "우리 드라이브나 하자." 관만큼 기다란 덮 개가 달려 있고 강력한 엔진 소리를 내는 커다란 윈튼 차를 그는 몰고 있었다. 그는 봄기운 이 도는 대가를 뚫고 킹 시티 남쪽 국도를 따라 차를 몰았다. 종다리가 앞을 날라 철조망에 앉아 노래를 불렀다. 피코 블랑코 산이 머링 눈을 이고 서쪽을 등진 채 우뚝 솟아 있다. 계 곡을 가로질러 서있는 바람맞이 유우칼나무가 새 은빛 잎사귀를 번쩍이고 있었다. 트래스크 농장 계곡으로 들어가는 옆길에 이르자 그는 길 옆에 차를 세웠다. 윈튼 차가 킹 시티를 떠나온 이래 그는 한마디도 말이 없었다. 커다란 모터가 깊은 속삭임을 내면서 공정하게 있었다. 윌은 앞쪽을 똑바로 내다보면서 말했다. "카알, 나하고 동업자가 되고 싶지 않나?" "되고 싶습니다." "나는 돈 없는 동업자를 잡기는 싫어. 내가 돈을 빌려줄 수는 있지만 항상 문제 가 따르지." "나는 돈을 구할 수 있어요." "얼마나?" "5천 달러요." "그래... 믿어지지 않는 데." 카알은 대답하지 않았다. "믿겠어. 빌리는 건가?" "네." "이자는?" "무이자죠" "그것 참 대단한 묘수구먼. 어디서." "말하지 않겠어요." 윌은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그는 아주 기뻤 다. "내가 바보인지도 모르지만 나는 자네를 믿겠어... 나는 바보가 아니지." 그는 모터를 빨 리 돌리다가 다시 늦추었다. "내 얘기를 들어봐. 자네, 신문 읽나?" "읽습니다." "우리는 언 제고 전쟁에 끼어들 거야." "그렇게 보이드먼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자네, 콩 시세를 아나? 샐리너스에서 콩 백 자루를 얼마에 팔 수 있다고 생각하나?" "확실치는 않지 만 파운드 당 3센트 내지 3센트 반을 받을 수 있지요." "확실치 않다는 말은 무슨 말이야? 어떻게 그걸 알았지?" "농장을 내가 경영하겠다고 아버지에게 말씀드리려고 생각하고 있어 요." "알겠어. 그러나 자네는 농사일은 못할 거야. 자넨 너무 머리가 좋으니까. 자네 부친의 소작인은 란타니라는 스위스 계 이탈리아인인데 훌륭한 농부야. 그는 약 5백 에이커를 경작 하고 있어. 만일 그에게 1 파운드 당 5센트를 보증해 주고 씨를 빌려주면 그는 콩을 심을거 야. 이 주위의 농부들도 누구나 심을 거야. 우리는 5천 에이커의 콩을 심는 계약을 할 수가 있어." 카알이 말했다. "시장 가격이 3센튼데 5센트짜리 콩을 어떻게 하겠다는 거예요? 아, 그렇 지! 그러나 어떻게 보장하죠?" 윌이 말했다. "우리는 동업자지?" "그렇습니다." "그래, 윌이 라고 해!" "네, 윌." "언제 5천 달러를 구할 수 있나?" "다음 수요일까지." "악수하세!" 건강 한 남자와 얼굴이 까맣고 마른 소년이 엄숙하게 악수했다. 윌은 카알의 손을 잡고 말했다. "우리는 이제 동업자다. 나는 영국 구매소와 접촉이 있고 병참본부에도 친구가 있어. 말린 콩이라면 파운드 당 10센트 이상에 팔 수 있어." "언제 팔 수 있나요?" "도장을 찍기 전에라도 팔 수 있어. 자, 지금 자네 옛 농장으로 가서 란타니에 게 말하겠나?" "그러죠." 윌이 윈튼 차에 이중 클러치를 넣자 커다란 녹색 차는 덜커덩 거리며 옆길로 빠져들었다. 42장 1 전쟁이란 항상 제 3자에게 벌어지는 것으로 생각되게 마련이었다. 샐리너스 에서는 미국 이 세계 최대의 최강국이라고 생각되었다. 미국 사람은 누구나 사격수로 태어나고 전쟁에 임하면 미국사람 하나는 외국 사람 열, 아니 스무 명에 맞먹는다고 생각했다. 멕시코의 반란 장군 빌라를 뒤쫓아 미국 퍼싱 장군의 멕시코 원정은 얼마동안 우리 신화 중의 하나를 뒤집어 놓았다. 멕시코인 들은 총도 제대로 쏘지 못하고 게으르며 멍청하다고 우리들은 믿고 있었다. 그러나 전선에서 지쳐 돌아온 우리 기병중대는 이 모든 것이 사실과 는 다르다고 말했다. 멕시코인 들은 빌어먹게도 총을 잘 쏘았다. 빌라의 기병들은 우리들보 다 말도 잘 타고 지구력도 대단했다. 한 달에 두 번 훈련해 가지고는 강인한 군대를 만들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멕시코인 들이 그들의 동맹자인 이질(痢疾)과 합세했을 때에는 정말 무서웠다. 우리 젊은이들의 몇몇은 다시 회복하지 못했다. 어쨌든 우리들은 독일인들을 멕시코 인들과 연관시키지 않았다. 우리들은 바로 옛 신화로 되돌아갔다. 한 사람의 미국인은 스무 명의 독일인과 피적 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사실이 라면 우리들은 카이제르 에게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 엄격한 태도를 최하기만 하면 됐다. 그 가 감히 우리들의 무역을 방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방해를 했다. 그가 감히 우리 배를 침몰시키지 못하리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침몰시켰다. 멍청한 사실이었 지만 사실이 그랬다. 따라서 그와 전면 전쟁을 벌이지 않을 수 가 없었다. 어쨌든 처음에는 전쟁이란 다른 사람들의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우리들, 나, 나의 가족, 친 구들은 관람석에 앉아있는 기분이었고 전쟁은 꽤 흥분을 자아냈다. 전쟁이란 항상 다른 사 람의 일이었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만이 죽어갔다. 그런데 이 어찌된 일인가! 이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슬프게도 무서운 전보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비보는 바로 우리 형제의 소식이었 다. 우리들은 분노와 소음의 현장에서 6천 마이 이상이나 떨어져 있었으나 우리들은 안심할 수 없었다. 그때만 해도 그렇게 실감이 가지 않았다. 리버티 벨스는 하얀 싱어 가죽모자와 제복은 입 고 행진을 벌일 수도 있었다. 우리 아저씨는 7월 4일 의 연설문을 복사하여 들고 다니며 증 권을 팔 수고 있었다. 고등학생들은 올리브색 제복과 전투모를 쓰고 물리 선생님으로부터 진술을 배울 수도 있었다. 그러나 슬픈 일이로다! 우리들의 여동생이 세 살 때부터 사랑해 왔던 실 건너의 잘생긴 마티 호프가 산산조각이 되어 죽었다. 휘청휘청하게 키가 크고 발을 질질 끌고 다니는 다부지지 못한 청년들이 옷가방을 들고 남태평양 역을 향해 중앙로를 보기 흉하게 행진하고 있었다. 그들은 양같이 유순해 보였다. 앞에서는 샐리너스 악대가 '성조기여영원히'를 연수하고 있었고 옆을 따라가는 가족들은 울 고 있었다. 음악은 장송곡같이 들렸다. 응소자 들은 어머니들을 처다보려 하지 않았다. 감히 처다보지 못했다. 전쟁이 우리들에게 일어나리라고는 누구도 생가지 못했었다. 샐리너스의 몇몇 사라들은 당구장과 술집에서 수군대기 시작했다. 군인에게서 들은 개인 정보였는데 우리들은 사실을 알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였다. 우리 군인들은 무기도 없이 전 선에 투입되고 전함들이 침몰되는데도 정부는 발표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독일군은 우 리들보다 훨씬 우세하여 우리는 승리할 가망이 없고, 카이제를는 머리가 좋은 친구이고 미 국본토를 침공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월슨 대통령은 이 사실을 우리에게 알릴 것인 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런 소문을 퍼트리는 썩은 놈들은 미국인 한 사람이 독일인 병정 20명에 맞먹는다고 떠들어 댔던 그자들이었다 ----바로 그자들이었다. 이국풍의 제복을 입은(그러면서도 멋있다.) 영국군인들이 작은 떼를 지어 전국을 돌아다니 면서 못박혀 있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고 돈을 두둑히 주고 사들였다. 영국 구매인 중의 대 부분은 불구자들이었지만 똑같이 제복을 입고 있었다. 다른 것보다도 그들은 콩을 사들였다. 콩은 수송하기도 쉽고 손질이 안되고 사람들이 그걸 먹고 살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콩값은 12센트 반을 웃돌았으나 그래도 사기 힘들었다. 6개월 전에 웃도는 가격이었던 2센트에 콩 계약을 맺은 농부들은 후회 막심이었다. 샐리너스 계곡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노래가 바뀌었다. 처음에는 헬고우랜드에서 적을 부 수고 카이제를 고수형에 처하고 거기에 진구하여 빌어먹을 놈의 외국인들이 해논 혼란을 정 리한다는 노래를 불렀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노래가 바뀌었다. '피로물든 전쟁의 저주지에 적십자 간호원이 서 있네. 그는 무인지대의 한떨기 장미." "여보세요. 천당에 전화를 해주세 요 아빠가 거기계세요' '황혼에 드리는 아기의 기도, 아기는2층으로 올라가 기도를 올리 네. 하느님이시어! 아빠 몸조심하라고 전해주세요.' 이런 노래는 불렀다. 우리들은 첫 질풍에 코를 얻어맞은, 강인하지만 경험이 없는 소년과 같았다. 상처는 아팠다. 우리는 상처가 낫기 를 바랐다. 43장 1 늦여름 어느 날,리이는 커다란 시장 바구니를 들고 들어왔다. 리이는 샐리너스에 살면서부 터 미국의 보수적인 옷차림을 했다. 외출을 할 때면 반드시 까맣고 넒은 고급나사 옷을 있 었다. 하얀 샤쓰를 입고 높은 빳빳한 칼라를 하고 한때 남부 상원의원들의 휘장과 같은 좁 은 검정색 줄 타이를 줄겨맸다. 깜나 그이 모자는 위가 둥글고 챙이 빳빳하며 변발이라도 말아서 넣을 여유라도 남겨 놓은 듯이 위는 봉긋했다. 그의 옷차림은 흠잡을데 없이 말끔했 다. 언젠가 아담은 리이의 훌륭한 옷차림에 대하여 언급한 적이 있었다. 리이는 히죽이 웃었 다."그럴 수밖에 없어요. 당신같이 엉터리로 옥을 입으려면 돈이 아주 많아야 되지요. 가난 한 사람은 어쩔수 없이 옷을 잘 입어야 해요." "가난하다니!" 아담이 폭발하듯 말했다. "우리가 파산하기 전에는 돈을 빌려주어야 할 자네 가 안닌가?" "그럴지도 모르죠" 그날오후 그는 무거운 바구니를 마루에 놓고 말했다. "겨울 참외 스프를 만들겠습니다. 중 국식 요리죠 중국촌에 사촌하나가 사는데 그가 요리법을 일러 주었어요 . 사촌은 팬탄(중국 카알드의 일종) 장사를 하지요." "난 친척이 전혀 없는 줄 알았군." 모든 중국 사람이 일가 죠. 리이라는 성을 가진 사람들이 제일 가깝긴 하지요 사촌은 수웨이 동이라고 하죠. 그는 최근에 건강 때문에 은퇴하여 요리를 배웠죠. 항아리에 참외를 세워놓고 꼭대기를 조심스럽 게 자른다음 병아리 한 마리와 버섯과 물밤과 부추와 생강을 넣지요 그런 그런후에 다시 참외 꼭대기를 덮고는 이틀동안 천천히 삶는 거예요. 틀림없이 맛이 있을 겁니다. 아담은 의 자에 기대어 머리 뒤에 깍지를 끼고는 천장을 향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좋지. 좋아" "귀담 아 듣지도 않는구먼요." "사람들은 자기 자식들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법일세." 리이가 미소를 지었다."아이들의 작은 일들을 모르시고 지난 것이 있으셨나요?" 아담이 낄낄댔다. "우연히 알게 됐어. 이번 여름엔 아론이 집안에 별로 있지 않았기에 놀러 나가는 줄만 알았지." "놀다니요! 아론은 몆 년째 논 일이 없어 요." "그애가 무엇을 하던 말이야." 마담이 말을 이었다. "오늘 킬커니씨를 만났어. 왜 알지 않니 ? 고등학교 선생님 말이야. 그분은 내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줄 알대. 그애가 무었을 하고 있는지 아나?" "모르는 데요" 리이가 대답했다. "아론은 내년에 할 공부를 다 했어. 대 학 입학시험을 치러 1년을 벌 참이야 킬커니 선생은 아론이 시험에 합격하리라고 학신하고 있어. 자넨 이걸 어떻게 생각하니?" "대단한데요. 왜 그렇게 할까요?" "1년을 벌기 위해서 지" "1년을 벌어서 무었을 하려고 그러죠?" "빌어벅을 .그는 야심이 강하지 않나? 그래도 모르겠나?" "모르겠는데요" 리이가 말했다. 아담이 말했다 "그애는 그것에 대하여 한 번도 말한적이 없어. 동생이 아는지 모르겠군" "아론은 우리를 놀래주고 싶은가 보죠. 우리가 먼 저 말을 꺼내서는 안되겠군." "자네 말이 옳으네. 나는 아주 자랑스럽네 아주 자랑스러워 이 때문에 기분이 썩 좋으네. 카알도 약심이 있으면 좋겠어." "갖고 있을지도 모르죠 . 카알도 어떤 비밀을 갖고 있을지도 몰라요." "그럴지도 모르지. 그리고 보니 요새는 그애도 별로 못 보겠군 그 애가 그렇게 많이 나가고 나가고 있어도 괜찮을까?" "카알은 자신을 찾아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이 개인적인 숨박꼭질은 흔하지 않은 일은 아입니다 개중에는 일생동안을 그저 되는 대로 -----어쩔 수 없이 되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죠." "생각해 보게." 아 담이 말했다. "완전히 1년 공부를 미리 하다니, 아론이 이야기를 꺼내면 우리는 선물을 해줘 야겠어." "금시계를 하죠." 리이가 말했다. "바로 그거야. 금시계를 사서 글자를 새겨 넣고 기다리겠어. 무엇이라고 적을까?" "금방에서 말해 줄 겁니다." 리아가 말했다. "이틀 후에 병 아리를 꺼내 뼈를 잘라내고 고기는 다시 넣는 겁니다." "무슨 닭을?" "겨울 참외 스프 말입 니다." "대학에 보낼 돈은 충분하던가?" "우리가 조심하고 아론이 돈 드는취향을 갖기 않는 다면." "낭비는 하지 않을 걸세" "나도 안 하겠다고 생각했었는데 하고 있을 걸요." 리아가 자기 옷 소매를 살피고는 감탄해 마지 않았다. 2 세인트 풀 감독교회의 사제구는 넓고 산만했다. 대가족이 EKffls 목사를 위해 지었기 때 문이다. 독신의 취향이 깔끔했던 롤프씨는 대부분의 문을 잠가 놓았다. 그러나 아론이 공부 할 장소를 필요로 했을 때, 그는 커다란 방 하나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공부도 도와 주었다. 롤프 씨는 아론을 좋아했다. 천사와 같은 미모, 부드러운 양뺨, 좁은 엉덩이, 쭉뻗은 곧은 다리, 모두가 마음에 들었다. 그는 방에 앉아 아론의 얼굴이 배우려는 일념으로 긴장하는 것 을 바라보고 아주 기뻐했다. 명쾌한 생각을 하기에 적당치 않은 집 분위기에서 아론이 공부 할 없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아론이야말로 자기의 소산이며 영적인 아들이며 교회에 드리는 자신의 어려운 독신생활을 통하여 아론을 보고 또 자기가 아론을 잔잔한 물가로 인 도해 주고 있다고 느꼈다. 그들은 개인적인 여러 가지 문제들을 간격 없이 오랫동안 토론했 다. 롤프 씨가 말했다. " 내가 비판을 받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어. 나는 우연히 엄격한 구 교를 믿게 되었어. 고해가 성체만큼 중죠한 성례가 못된다고 나에게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 어. 그러니 내감을 잘 들어봐. 나는 고해를 조심스럽게, 그리고 서서히 되살려 놓겠어." "나 도 교회를 갖게 된다면 나 역시 그렇게 하겠어요." "그렇게 하려면 큰 재주가 필요하지." 롤 프씨가 말했다. 아론이 말했다. "말을 해도 ,모르겠지만 우리 교회 에도 아우구스티누스 파 나프란시스코회 같은 것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은신할 장소 말이에요. 나 자신이 더럽게 느 껴질 때가 가끔 있어요. 혼탁에서 벗어나 청결하게 되거 싶어요." "네 기분을 알겠다." 룰프 씨는 진지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점에 있어서 나는 너와 의견을 같이 하지 않아. 우리 주 예수께서 성직자 현세에 대한 봉사에서 물러서기를 바라시지 않아. 우리가 복음을 설교하고, 병든 자와 가난한 자를 돕고, 심지어는 죄인을 진 구렁텅이에서 구 하기 이해 우리들 자신이 그 속까지 빠져 들어가기를 주께서 얼마나 주장하고 계신가를 생 각해 봐. 우리들은 하느님의 정확한 모범을 항상 우리 앞에 간직해야 돼." 그의 눈은 빛나고 목소리는 설교할 때처럼 울렸다. "이런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고 또 내가 이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말한다고 생각하기를 바라지만, 이야기 속에는 일 조의 영광이 있어 지난 5주 동안 한 여인이 저녁예배에 참석해 왔어 성가대에서는 그도 볼 수 있겠군. 그 여인은 맨 구석에 앉아 있으니까. 베일을 쓰고있는 그 여인은 내가 퇴장성가 를 끝내고 돌아오기 전에 자리를 꺼나가지 ." "그여자가 누군데요?" 아론이 물었다. "글쎄, 너도 이런 것들을 배워야 할 거야. 나는 아주 신중한 조사를 해봤어. 너는 상상도 못 할거야. 그 연인은 --- 청루집 주인이야." "여기 샐리너스에서?" "여기 샐리너스의." 롤프 씨는 몸을 앞으로 굽혔다. "나는 너의 반발을 이해할 수 있어. 너 는 그것을 극복해야 돼. 우리 주와 마리아를 잊지 말아. 허식없이 하는 이야기인데, 나는 그 여인을 일깨울거야." "그 여자가 여기 뭣하러 오죠?" 아론이 채근했다. "우리가 제공해야 하는 것, 구원을 받으러 오는지도 모르지. 큰 재간을 요구 할 거야. 어떻 게 되어 갈지 나는 예견할 수 있어. 내 말을 잘 들어봐. 이런 사람들은 소심하거든. 언제고 그 여인은 내 문을 두드리고 받아주기를 간청할 거야. 아론, 내가 현명하고 끈기 있기를 바 랄 뿐이야. 너는 내 말을 믿어야 해---그런 일이 일어나면, 잃었던 영혼이 빛을 찾으려 할 때 성자는 최고의, 미지의 경험을 하게 되는 거야."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그거야. 그것을 위해 우리가 있는 거야." 롤프 씨는 간신히 숨을 억제했다. "나는 샐패하지 않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하고 있어." 3 아담 트래스크는 이제 희미하게 된 인디언 토벌 경험을 통하여 전쟁을 생각했다. 대전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리이는 과거사로부터 미래의 야상을 알아보기 위해 유 럽사를 읽었다. 라이저 해밀튼은 입가에 뒤틀린 미소를 지으며 세상을 떠났다. 뺨의 붉은 빛 이 사라졌을 때 그녀의 광대뼈는 무섭게 튀어나와 있었다. 아담은 아론이 시험 결과의 소식 을 갖고 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그는 커다란 금새계를 손수건에 여러겹 싸서 맨꼭대 기 서랍에 넣어두었다. 그리고 시계에 태엽을 감아놓고 자기 시계에 맞추어 정확도를 체크 했다. 리이는 그의 지시를 받고 있었다. 발표일 저녁에는 칠면조 고기를 요리하고 빵을 굽게 되어 있었다. "파티를 열 생각이네. 샴페인은 어떨까?" 아담이 물었다. "아주 좋습니다" 리이가 말했다 "클라우세비츠에 대하여 읽어본 일이 있으십니까?" "그가 누군데?" " 대단한 읽은 거리는 아니예요." 리이가 대답했다. "샴페인은 한병이면 될까요?" "충분하지 건배를 하려는 것이니 까. 그것 가지고도 파티가 될꺼야" 아론이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아담에게 전혀 떠오 르지 않았다. 어느날 오후 아론은 집에 들어와서 리이에게 물었다. "아버지 어디계셔?" "면 도하고 계시지" "나는 저녁 식사를 집에서 안해요" 목욕실에 있던 아버지 뒤에 서서 아론은 거울에 비친 아버지의 비누투성이의 모습을 보고 말했다. "롤픗씨가 사제구로 나를 저녁식사에 초대했어요" 아담은 화장지를 접어 면도할 얼 굴을 닦으면서 말했다. "그것 잘 됐군" "목욕을 해도 돼요?" "곧 나갈게" 아론이 거실을 통 해 걸어나가며 저녁인사를 할 때 카알과 아담은 그의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내 화장수를 발 랐구먼, 아직도 냄새가 나는데" 카알이 말했다. "파티인 것이 틀림없구먼" 아담이 말했다. "축하를 받는다고 해서 그를 나무라고 싶지는 않아요. 그건 아주 어려운 일이었으니까요" "축하라니?" "시험 말이에요. 아론이 말씀 안드 렸어요? 아론은 시험에 합격했어요?" " 아 그렇지. 시험 말이지" 아담이 말했다. 나에게 이 야기 했어. 훌륭한 일이야. 나는 그애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금시계를 사줄까 한다" 카알이 날카롭게 말했다. "형이 말씀 안 드렸구먼요" "했어! 오늘 아침에 말했어" "형은 오늘 아침에 몰랐어요" 카알은 이렇게 말하고 일어서서 밖으로 나갔다. 그는 모여드는 어둠 속을 재빨리 걸어 중앙로로 나가 공원을 지나고 스톤월 스마트의 집을 지나 가로등이 비치 지 않는 곳 까지 갔다. 거기에서부터 길은 국도로 바뀌고 톨로트 농장을 피해 각을 이루고 있었다. 열시에 리아가 편지를 부치러나갔다. 카알이 현관 맨 밑 계단에 앉아 있는 것을 발 견했다. "무슨 일이야?" 그가 물었다. "산보를 갔어요" "아론은 어떻게 되고?" "몰라요" "카 알은 무슨 원한이라도 갖고 있는 것같이 보이는군. 우체국까지 함께 갈래" "싫어요" "왜 여 기 앉아 있는 거야?" "아론을 때려주려고" "그건 짓 하지 말아." "왜?" "네가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 말이요. 오히려 그가 너를 때릴걸." "그럴지도 모르지." 카알이 말했다. "개새끼 같으니라구!" "그런 말 하면 못써요." 카알이 웃었다. "같이 가겠어요." "너 <클라 우세비츠>에 대하여 읽어본 적이 있니?" "들어보지도 못했어요." 아론이 집에 돌아왔을 때, 현관 맨 밑 계단에 앉아 있던 사람은 리이였다. "내가 너를 얻어 맞지 않게 해주었어." 리이 가 말했다. "앉아." "난 잘래." "앉아요! 할 말이 있어. 왜 아버지한테 시험에 합격했다는 말 씀을 안 드렸어?" "아버지는 이해를 못하실 테니까." "엉덩이가 근질대는 모양이군." "난 그 런 상스러운 말 싫어요." "내가 왜 그런 말을 썼는지 알겠어? 내가 살스러워지는 것은 아니 야. 아론, 아버지는 그것을 낙으로 삼고 살아오신 거야!" "어떻게 아셨지?" "네가 직접 말씀 드렸어야 했어." "남의 참견하지 말아요." "아버지한테 가서 주무시면 깨워요. 주무시지는 않 을 거야. 가서 말씀드려요." "안하겠어요." 리이는 조용히 말했다. "아론, 키가 반밖에 안되는 작은 사람과 싸워 본 적 있어?" "무슨 말이에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중의 하나지. 그는 계속 싸움을 걸것이고. 그러면 너는 그를 곧 쥐어박게 될 거야. 그것이 더욱 어려운 일 이지. 그러면 정말 곤란하게 되지." "무슨 이야길 하고 있는 거요?" "내가 말한대로 하지 않 으면 나는 너에게 싸움을 걸겠어. 우스운 일이 아닐까?" 아론은 그냥 지나가려고 했다. 리이는 그를 가로 막고 섰다. 그는 작은 주먹을 불끈 쥐었 으나 아무 효과도 없었다. 자세가 아주 우스워서 그가 먼저 웃음을 터뜨렸다. "싸움을 어떻 게 하는 것인지 모르지만 한번 해보겠어" 리이가 말했다. 아론은 무력하게 뒤로 물러섰다. 드디어 그가 계단위에 주저 앉자 리이는 깊은 한숨을 내 쉬었다. "감사하게도 싸움이 끝났구먼. 무서울 것 같았는데. 이것 봐. 아론. 무슨 일인지 나 에게 말해 줄수 없어? 전에는 나에게 말을 잘하곤 했지 않아?" 갑자기 아론은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여길 떠나고 싶어요. 여긴 더러운 고장이야" "그렇 지 않아요. 어디나 다 마찬가지야" " 나는 이 고장 사람이 아니야. 여기에 안왔더라면 좋았 을 것을 그랬어. 내가 어떻게 된 것인지 나도 모르겠어. 여길 떠나고 싶어" 그의 목소리는 통곡조가 되었다. 리이는 아론의 벌어진 어깨 위에 손을 얹고 달랬다. "너는 커가고 있는 거 야 틀림없을 거야" 리이가 조용히 말했다. "세상이 우리를 아주 격심하게 시험을 할 때가 가끔 있어요. 그러면 우리는 시선을 안으 로 돌리게 되고 자신을 관찰하고는 무서운 느낌을 갖게 되는거야. 그러나 그것이 가장 나쁜 것은 아니야.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 그러면 더러운 것은 아주 더러워지고 순결한 것은 하얗게 빛나지. 아론 이것은 곧 끝나게 돼요. 잠 시동안만 기다려 봐요. 곧 끝날테니. 이렇게 이야기 한다고 해서 너에게 별 도움이 안되겠 지. 왜? 네가 믿지 않으니까. 그러나 이 말이 너를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이야. 모든 것이 지금 보이는 것 처럼 좋은것도, 나쁜 것도 아니라는 것을 믿으려고 노력해봐요. 그래 나는 너를 도와줄수 있어. 지금은 잠을 자고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시험에 관해 아 버지께 말씀 드려요. 놀라움에 말씀드려. 꿈을 품어볼 외로운 미래마저도 없기 때문에 아버 지는 누구보다도 의로운 분이야. 연극을 해보는 거야. 샘 해밀튼이 말씀하시기를 사실처럼 생각하면 사실이 될수도 있다는 거야. 연극을 해보는 거야. 해봐. 자 자러가요. 나는 과자를 들어야 해. 아침식사때 먹을 그리고 아론 아버지께서 네 베개 밑에 선물을 놓아두셨어." 제 44 장 1 에이브라가 아론의 가족에 대해서 정말 알게 된 것은 그가 대학으로 떠나고 난 후였다. 전에는 아론과 에이브라는 자신들의 울타리 앞에 들어앉아 있었다. 아론이 떠나고 나자 그 녀는 다른 트래스크 가족들에게 애착을 느끼게 되었다. 그녀는 자기 아버지보다도 아담을 더욱 신뢰하고 리이를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 카알에 대해서는 그녀는 어떻게 단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는 그녀를 어떤 때는 분노로, 어떤 때는 고통으로, 어떤 때는 호기심으로 마음의 혼란을 일으켰다. 그는 계속 그녀와 경쟁 을 벌이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가 자기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를 알 수 없어서 그녀는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녀는 트래스크 집을 방문했을 때 카알이 집에 없으면 안심이 되었 다. 그는 그녀를 몰래 훔쳐보면서 비판을 하고 평가를 하고 생각을 하다가는 눈길이 마주치 면 눈길을 돌리곤 했기 때문이다. 에이브라는 이제 날씬하고 강인하고 앞가슴이 풍만한 여인이 되었다. 모든 것을 갖추고 성례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수업을 마치고 버릇처럼 트래스크 집을 방문하여 리이와 함께 앉아 아론이 매일 보내는 편지를 읽었다. 아론은 스탠포드에서 외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편지에는 구구절절이 외롭고 연인에 대 한 애절한 동경으로 차 있었다. 함께 있을 때에는 당연한 것이었는지 모르지만, 이제 90마일 이나 떨어져 있는 대학에서 그는 다른 생활과는 단절되어 오직 그녀에게 정열적인 사랑의 편지를 보냈던 것이다. 공부하고, 먹고, 자고, 에이브라에게 편지쓰는 일이 그의 생활의 전부 였다. 오후면 그녀는 부엌에 앉아서 리이를 도와 콩을 줄에 끼기도 하고 까기도 했다. 가끔씩 과자를 만들기도 했다. 빈번히 집으로 가지 않고 주제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녀가 부모들에 게 말할 수 있는 것도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한다고 하더라도 내용일 없는 것이 대부분이 었고, 때에 따라서는 거짓이 되기도 했다. 이 점에 있어서 리이는 달랐다. 에이브라는 비록 무엇이 사실인지 확실치 않았을 때에도 사실만을 리이에게 말하고 싶어했다. 리이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앉아서 마치 독립된 생명을 갖고 있기나 한 듯한 연약한 손을 재빨리 움직이면서 일을 했다. 에이브라는 전적으로 자기 이야기만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 닫지 못했다. 그녀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리이의 마음은 마치 쏘 다니는 개 모양 간헐적으 로 밖으로 나갔다가는 다시 돌아옸다가 또 나가곤했다. 그리고 리이는 간간히 고개를 끄덕 이고 조용한 콧노래를 부르곤 했다. 그는 에이브라를 좋아했다. 그녀에게서 강인함과 착함뿐만 아니라 온후함마저 느꼈다. 그 녀의 모습에는 결국 추악함이 아니면 대단한 아름다움을 낳게 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음미하면서 리이는 자기 종족인 광동인들의 둥근 입술을 생각했다. 홀쭉하지만 달덩이 같은 얼굴들이었다. '미'라는 것은 다소 자신들과 비슷한 것이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 에 그런 얼굴을 제일 좋아했어야 했지만, 실제로는 그는 그렇지 않았다. 그가 중국적인 미를 생각했을 때, 만주인들의 냉혹하고 약탈적인 얼굴이 그의 마음에 떠올랐다. 당연 세습으로 권위에 차 있던 한민족의 오만한 얼굴이었다. 에이브라가 말했다. "새삼스러운 얘기는 아닐지 모르겠어요. 아론은 아버지에 대한 말을 별로 하지 않았어요. 왜 아시지 않아요. 그 상치일이 있고 나서부터예요. 아론은 그때 화가 나있었어요." "왜?" 리이가 물었다. "사람들이 비웃었죠." 리이의 온 정신이 갑자기 과거로 되돌아갔다. "아론을 비웃다니요? 왜 그릴 비웃어요? 아론은 그 일과 관계가 없었지 않아 요?" "어쨌든 그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내 생각을 알고 싶으세요?" "물론." 리이가 말했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하기야 생각을 마무리 지은 것은 아니지만요. 그는 늘 이렇게 생 각했어요... 불구자라고 할까... 부족하다고 할까. 그에게는 어머니가 없었으니까요." 리이는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가는 내리깔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카알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생각하나요?" "아니예요." "그렇다면 아론은 왜?" "글쎄요, 아직 생각을 못했어 요. 사람에 따라 기호가 다를지도 모르죠. 우리 아버지는 순무를 싫어하시죠. 대단해요. 언젠 가 어머니가 짓궂게도 순무를 갈아 캐서롤을 만들어 그 위에 후추가루를 치고 치즈를 얹어 갈색으로 만드셨어요. 아버지께서는 반쯤 드시다가 그것이 무어냐고 물으셨어요. 어머니가 순무라고 대답하자, 아버지는 마루에다 접시를 내던지고는 밖으로 나가버리셨어요. 아버지는 어머니를 후에도 용서하지 않으셨어요." 리이가 깔깔 웃었다. "어머니가 사실대로 말씀하셨으니 용서하실 수 있죠. 그러나 에이브 라, 아버지가 물어보셨는데도 다른 것이라고 대답하여 맛이 있는 나머지 한 접시를 더 잡수 셨다고 상상해 봐요. 물론 나중에 아셨겠죠. 그러면 어머니를 죽였을지도 모르죠." "나도 그 렇게 생각해요. 어쨌든 아론은 카알보다도 어머니를 더 필요로 했어요. 내 생각에 그는 항상 아버지를 비난했어요." "왜요?" "모르겠어요. 내 생각에 그렇다는 거죠." "말을 피하는군 그 렇죠?" "그래서는 안되나요?" "물론 그래야죠." "과자를 만들까요?" "오늘은 그만두죠. 아직 남아있으니까." "뭘 하죠?" "등심고기를 다져 주지. 식사를 같이 하겠어요?" "아니예요. 생일 파티에 가기로 되어 있어요. 그가 목사가 되리라고 생각하세요?" "내가 어떻게 알아요? 생 각만으로 끝날지도 모르죠."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에이브라는 이런 말을 하고는 깜짝 놀라 입을 다물었다. 리이는 일어서서 도마와 빨간 고기를 꺼내고 그 옆에 밀가루체를 갖다 놓았다. "칼등을 사용해요." "알고 있어요." 그가 자기 말을 못들었기를 그녀는 바랐다. 그러나 리이가 물었 다. "그가 목사가 되는 것을 왜 바라지 않아요?" "그런 말을 하지 않았어야 했을 것을." "하 고 싶은 말은 무엇이고 해야지요. 설명할 필요는 없어요." 그는 자기 의자로 돌아갔다. 에이 브라는 고기 위에 밀가루를 뿌리고 커다란 칼로 고기를 다졌다. 탁탁... "내가 이렇게 말해서 는 안돼죠."... 탁탁. 리이는 그녀가 제 속도를 취하도록 그녀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그는 외길을 걷고 있어 요." 그녀는 고기를 다지며 말했다. "교회라면 반드시 구교회죠. 목사가 어떻게 결혼을 하겠 느냐고 그는 말했어요." "최근의 편지에는 그런 낌새가 없던데요." 리이는 그녀의 반응을 살 폈다. "그래요. 그러나 전에는 그랬어요." 그녀는 고기 다지는 일을 멈췄다. 그녀의 얼굴은 젊었지만 당혹한 고통에 싸여 있었다. "리이, 나는 그에게 맞지 않는가 봐요." "무슨 말이 요?" "농담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예요. 그는 나에 대해서 생각을 하지 않아요. 그는 어떤 사람을 조작해 놓고 있어요. 그 사람에게 다 나의 가죽을 씌워 놓은 것과 같죠. 나는 그 조 작 인물과 같지 않아요." "그 여자란 어떤 사람인데요?" "순수하죠. 아주 순수하죠. 나쁜 것 은 하나도 없고 순수한 것만 갖춘 여자예요. 나는 그렇지 않아요." "그런 사람은 아무도 없 지요." 리이가 말했다. "그는 나를 몰라요. 나를 알고 싶어하지도 않아요. 내가 하얀 유령이 기를 바라고 있어요." 리이가 크래커를 문질렀다. "그를 좋아하지 않아요? 당신은 아주 젊지요. 그러나 젊다는 것이 중요하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물론 나는 그를 좋아해요. 그의 아내가 될 거예요. 하 지만 그도 나를 좋아했으면 해요. 그러나 나를 모르고 어떻게 나를 좋아할 수 있겠어요. 전 엔 그가 나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지그에 와서는 그랬다고 생각지 않아요." "지 금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지도 모르죠. 그러나 오래 가지는 않을 거요. 당신은 멋진 처녀 요. 아주 멋진. 그래서 당신은 그 아름다운 용모에 맞게끔 살아가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요?" "그가 만들어 놓은 여자에게는 없지만 나에게는 있는, 그 무엇을 그가 보게 될까봐 나는 항상 두려워요. 나는 화도 내게 될 것이고 나쁜 냄새를 풍길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러면 그는 그것을 알아차리겠지요." "알아차리지 못할지도 모르죠." 리이가 말했다. "그러나 백합 처녀, 여신의 생활을 하면서 동시에 다른 면의 생활을 하기란 힘들것이 틀림없어요. 인간이란 나 쁜 냄새를 풍길 때도 종종 있지요." 그녀는 테이블 쪽으로 갔다. "리이, 내가 바라는 것은..." "마루에 밀가루를 훌리지 말아요. 그래, 바라는 것이 무엇이오?" "내가 생각해낸 것인데요. 아론은 어머니가 없으니까 상상이 가능한 모든 선량한 것을 동원하여 어머니를 만들어 냈어 요." "그랬는지도 모르지. 그리고 그것을 당신에게 덮어 씌웠다고 생각하는거죠?" 그녀는 그 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녀의 손가락은 칼날 위아래로 재치있게 움직였다. "그리고 그것을 벗 어버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으면 하는거죠?" "그렇죠." "그렇게 되면 당신을 싫어하게 될 지도 모르죠?" "그래도 한번 해볼까 해요. 나는 나 자신이 되고 싶어요." 리이가 말했다. "나 처럼 남의 일에 끼어드는 사람도 없지요. 그러나 어떤 일에 최종적 해답을 주는 사람은 아 니예요. 고기를 다지겠어요? 아니면 내가 할까요?" 그녀는 일을 다시 시작했다. "아직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고서 이렇게 진지해지는 것이 우습게 생각되지요?" "그럴 수밖에 없지요." 리이가 말했다. "사랑니처럼 웃음을 나중에 오 죠. 그리고 재때에 오지 않는 때가 가끔 있지요." 그녀는 속도를 올려 고기를 다졌다. 신경 질적으로 마구 다졌다. 리이는 말린 리마 콩 다섯 개를 테이블에 올려 놓고 여러 가지 모양 으로 만들었다. 직선으로도 하고 각을 이루기도 하고 둥그렇게 만들기도 했다. 두드리는 소리가 멎었다. "트래스크 부인은 살아계신가요?" 리이의 집게손가락은 콩 위에 잠깐 동안 멈춰 있다가 서서히 떨어지면서 콩 하나를 밀어 O형으로 늘어져 있던 콩을 A형 으로 바꾸었다. 그는 그녀가 자기를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마음은 마치 쇠덫에 갓 잡힌 쥐 모양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그는 한숨을 짓고 생각하기를 거두었다. 그 는 서서히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모습은 생각한 대로였다. 리이는 단조롭게 말했다. "우리가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나에 대해서 이야기한 기억은 없 소." 그는 수줍은 듯이 미소를 지었다. "에이브라, 내 이야기 좀 합시다. 나는 하인이고 늙었 고, 중국인이죠. 이 세가지는 당신도 알고 있죠? 나는 지쳐있는 겁쟁이 에요." "그렇지 않아 요." 그녀가 말을 시작했다. "가만히, 나는 지독한 겁쟁이 요. 나는 다른 사람의 일에 끼어 들지 않을거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에이브라, 당신 아버지께서는 순무말고도 다른 것에 화를 내시나요?" 그녀의 얼굴은 고집스럽게 되었다. "내가 질문을 했어요." "질문을 못 들었 어요." 그는 부드럽게 말했다. 목소리는 단호했다. "에이브라, 당신은 질문을 하지 않았소." "내가 너무 어리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이군요." 리이가 끼어들었다. "나는 한때 경험이라든 가, 배움이라든가, 미라든가 하는 것들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던 35세 여자를 모신적이 있 어요. 그 여자가 여섯 살이었다면 부모들의 골치거리였을 것이오. 35세에 그여자는 돈과 주 위의 사람들을 주물렀어요. 아니오. 에이브라, 그것과 나이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내가 할 이야기가 있으면 무슨 이야기든 하겠소." 소녀는 그에게 웃음을 지었다. "나는 현명하죠. 현명해 볼까요?" "제발 그만둬요." "그렇다 면 내가 추축하는 것을 바라지 않으시는 구먼요?" "나는 아무 관계가 없으니까 당신이 무슨 일을 해도 나는 상관 없어요. 선량한 사람이 아무리 약하고 부정적이라 하더라도 나는 별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자기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죄를 짊어지는 것이니까요. 나에 게 나를 괴롭힐 정도의 죄는 있지요. 다른 것과 비교해 볼 때 죄도 썩 좋은 죄는 못되지요. 그러나 내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지요. 제발 나를 용서해 줘요." 에이브라가 말했다. "아버지는 사내아이를 원했죠. 아버지는 순무와 여자애를 싫어해요. 어떻게 해서 그 이상한 이름을 솔로문 왕인 애첩 이름이었으니까요. '내가 다른 사람을 불 렀 으나, 에이브라가 왔도다.'" 리이는 그녀에게 웃음을 지었다. "참 훌륭한 아가씨군요. 내일 저녁 때 온다면 순무를 사다 놓지요." 에이브라가 조그맣게 물었다. "그 부인은 살아 있지 요?" "네." 리이가 대답했다. 앞문이 꽝 닫히는 소리가 들리더니 카알이 부엌으로 들어왔다. "에이브라, 잘 있었소? 리 이, 아버지느 집에 계세요?" "아니, 아직 안 오셨어. 왜 그리 싱글벙글이야?" 카알이 수표 한 장을 내밀었다. "여기 있어요. 갚는 겁니다." 리이는 수표를 보았다. "이자는 받을 생각이 없었는데." "그것이 더 나을 겁니다. 그래야 또 빌릴 수 있을 거 아닙니까?" "어디서 났는지 말해주지 않겠니?" "아직 말할 수 없어요.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요." 그는 에이브라를 힐끗 쳐다보았다. "집에 가겠어요." 에이브라가 말했다. 카알이 말했다. "그때 에이브라도 있어 주 었으면 좋겠어. 그걸 추수감사절 날에 하기로 결정했어요. 에이브라도 여기 있을 것이고 아 론도 집에 올 테니까 말이에요." "무엇을 하는데?" 그녀가 물었다. "아버지에게 드릴 선물이 있어." "무엇인데?" 에이브라가 물었다. "말하지 않겠어. 그때 알 거야." "리이는 알고 있나요?" "알지만 말 안할걸." "카알이 그렇게 즐거워하는 것을 난 처 음 보았다. 난 즐거워하는 것을 전혀 본 일이 없거든." 그녀는 그에 대한 온정이 마음 속에 서 일고 있는 것을 알았다. 에이브라가 간 다음 카알이 자리에 앉았다. "추수감사절 날 식사를 끝내고 드려야 할지 그 전에 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후에 드려." 리이가 말했다. "정말 그만한 돈이 있나?" "1만 5천 달러를 갖고 있어요." "정직하게?" "그럼 내가 훔치기라도 했단 말예요?" "글세 말 야." "정직하게 번 거에요." 카알이 말했다. "아론을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샴페인을 구했었 는지 기억하죠? 샴페인을 사도 좋아요. 식당을 장식하는 것이 어떨지 모르겠군요. 에이브라 가 도와줄지도 모를지." "아버지께서 정말 돈을 바라실까?" "왜 안그러시겠어요?" "네 말이 맞았으면 해." 리이가 말했다. "학교 공부는 어떻게 했어?" "썩 좋지는 않지만 추수감사절 후에 만회할 거예요." 카알이 말했다. 2 다음날 수업이 끝난 후 에이브라는 서둘러서 카알의 뒤를 쫓았다. "에이브라, 잘 있었어 요? 과자 솜씨가 썩 좋았어." "지난번 것이 되었어요. 크림 같아야 했는데." "리이는 당신한 테 미쳐 있더구만, 그에게 뭘 해주었지요?" "나는 리이를 좋아해요. 카알, 물어볼 것이 있어 요." "그래요?" "아론은 어떻게 된거죠?" "무슨 말이오?" "그는 자신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지. 그와 싸우리가도 했어요?" "아니예요. 그가 교회로 돌 아가겠느니, 결혼을 하지 앟겠느니 했을 때 내가 싸우려고 했으나 그는 상대를 안했어요." "당신고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난 상상할 수 없는데." "카알, 그는 나에게 연애 편지를 쓰 고 있지만... 꼭 나한테만 쓰고 있는 것이 아니예요." "그러면 누구에게 또 쓰나요?" "자신에 게 쓴 편지 같아요." 카알이 말했다. "버드나무 일을 알고 있지요." 그녀는 놀라는 것 같지 않았다. "그래요?" "아론에게 화가 나 있나요?" "아녜요, 화가 난 것은 아녜요. 그를 알 수 없을 뿐이에요. 나는 그를 몰라요." "기다려 봐." 카알이 말했다. "그가 무엇인가 결말을 내 겠죠." "내가 괜찮을지 모르겠어. 내가 처음부터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내가 어떻 게 알아요?" "카알, 당신 밤 늦게 집을 나가서... 그러니까 나쁜 집에까지 가는 것이 사실이 에요." "사실이오. 아론이 그래요?" "아론이 아니예요. 왜 그런 데 가지요?" 그는 그녀와 나 란히 걸으면서도 대답하지 않았다. "말해봐요." 그녀가 말했다. "당신과 무슨 상관이오?" "당신이 나쁘기 때문에 그런 거죠?" "당신한테 어떻게 들려요?" "나도 선량하지는 않아요." 그녀가 말했다. "미쳤군요." 카알이 말했다. "아론이 들으면 한 대 때리겠어요." "그럴까요?" "틀림없지요." 카알이 말했다. "때 릴 수밖에 없어요." 제 45 장 1 조오 발레리는 눈여겨 보고 귀담아 들으면서 그의 말마따나 목을 빼지 않고 세상을 살아 갔다. 그는 차차 증오심을 품게 되었다. 이것은 그를 돌보지 않던 어머니, 상대적으로 매질 을 하고 야단을 치는 아버지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를 가르치던 선생님, 그리고 그를 뒤쫓았 던 순경, 그리고 설교를 했던 목사에게 점점 커가는 그의 증오심을 돌리는 것은 쉬운 일이 었다. 처음으로 치안 판사로부터 멸시를 받기 전부터, 조오는 그가 알고 있던 전 세계에 대 하여 대단한 증오심을 발전시켰던 것이다. 증오란 저 혼자 존재할 수는 없다. 증오는 방아쇠 역할을 하는 사랑을 동반해야만 했다. 다시 말하면 조롱거리로서 또 자극체로서 사랑을 발전시켰다. 조오는 자신을 위안하고 소중 히 여기고 자신에 아첨했다. 그는 적의에 찬 세상에서 자신을 구제하기 위해 벽을 쌓았다. 조오는 점차 부정을 막는 방파제가 되었다. 조오에게 문제가 생기면 그것은 세상이 그에게 대하여 좋지 않은 모의를 했기 때문이었고, 만일 조오가 세상을 공격하면 그것은 복수였으 며, 세상의 개새끼들이 그럴 만한 짓을 했기 때문이었다. 조오는 자신의 사랑에 대해서는 아 낌없는 보호를 폈고 다음과 같은 일련의 고립된 법칙을 세웠다. 1. 아무도 믿지 말 것. 나쁜 놈들이 너를 쫓고 있다. 2. 함구무언할 것, 잘난 체하지 말 것. 3. 경청할 것, 사람들이 실수하면 그것을 포착하고 기다릴 것. 4. 모든 사람들이 개자식이다. 네가 무슨 짓을 하든 그것은 그놈들 때문이다. 5. 우회전술을 쓸 것. 6. 여자를 절대 믿지 말 것. 7. 돈을 믿을 것, 누구나 돈을 탐낸다. 누구나 돈에는 몸을 판다. 다른 규칙도 있었으나 그것들은 장식품에 지나지 않았다. 그의 체재는 효과 있게 작용했 다. 그는 이것고 다른 것을 비교할 만한 기준을 몰랐다. 영리한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영리하다고 생각했다. 만일 그가 어떤 일을 잘해 냈으면 그것은 영리했기 때문이었고, 실패했으면 운이 나쁜 탓이었다. 조오는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최 소의 노력으로 세상을 살아갔다. 조오는 보수를 받으면 무슨 일이고 해치우고 일을 처리하 지 못할까봐 겁을 먹고 있다는 것을 케이트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그를 데리고 있었다. 그녀는 조오에 대하여 아무런 환상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녀의 사업을 위해서는 조 오가 필요했다. 그가 케이트와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조오는 의지해 살 수 있는 약점을 찾았다. 그녀가 여자이기 때문에 허영이니 호색이니 불안이니 양심이니 탐욕이니 히스테리 같은 것이 있으 리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한 것들이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찾아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그 는 대단한 충격을 느꼈다. 이 마담은 남자처럼 생각하고 행동했다. 아니, 남자보다는 더욱 거세고 재미있고 현명했다. 조오가 몇몇 잘못을 저질렀을 때에 그는 케이트에게서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 그는 점점 그녀에 대하여 두려움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몇가지 일을 해낼 수 없게 되자, 어떤 일도 해낼 수 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가 여자들을 노예로 삼았듯이 케이트는 그를 노예로 만들었다. 그녀가 자신보다도 더 머리가 좋다고 일단 인정하게 되자, 조오는 그녀가 누구보다도 머 리가 좋다고 믿게 되었다. 그는 그녀가 두가지 의 남다른 재능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재 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운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이상 좋을 수가 없었다. 그는 사소한 일이 라도 그녀를 위해서는 기꺼이 했다. 오히려 빠뜨릴까봐 걱정했다. 조오의 말을 빌면 케이트 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 그녀에 협조하여 일을 하면 케이트는 뒤를 돌봐 주었다. 이것은 생각을 넘어 관습이 되었다. 그가 에델을 군경 밖으로 몰아낼 때에도 하루 일거리 정도였다. 그것은 케이트의 일이었고, 그녀는 틀림이 없었다. 2 관절염이 악화되면서 케이트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관절염이 부어오르고 마디가 생 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관절통고 뒤틀린 손가락을 마음에서부터 지워버리기 위해, 하다 못해 불쾌한 일까지도 생각하려고 애를 쓸 때가 종종 있었다. 얼마 동안 관심을 두고 보지 않았던 방 안의 사소한 일도 기억해 내려고 애를 쓴 때도 있었다. 천장을 쳐다보면서 숫자 난을 만들어 더해 보는 일도 있었다. 기억을 동원하는 때도 있었다. 에드워드 씨의 얼굴과 옷고 그리고 멜빵 버클에 새겨진 말도 생각해 냈다. 그것을 눈여겨 본 일은 없었지만 '항 상 일로'라고 쓰여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밤이면 가끔씩 그녀는 페이를 생각했다. 그녀의 눈, 머리카락, 목소리, 떨리는 손, 왼쪽 엄 지손톱 옆의 작은 사마귀, 그리고 전에 벤자국 등을 생각했던가? 사랑했던가? 불쌍히 여겼 던가? 죽인 것을 미안하게 생각했던가? 케이트는 자벌레 모양 자신의 생각을 재어 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페이에 대해서는 아무 느낌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를 미워하지도, 좋아 하지도 않았다. 그녀가 죽어갈 때 소음과 냄새가 일으키는 분노를 억제하기 위해 케이트는 그녀를 빨리 죽여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케이트의 등 뒤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렸다. "근래의 어느때보다도 더 예뻐 보이는데." 맞 장구를 치는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저렇게 치장을 하면 나도 조금은 좋아 보이겠는데." 그 리고는 낄낄 대는 소리가 함께 들렸다. 첫 번째 목소리는 에델의 목소리였고 다음의 것은 트릭시의 목소리인 듯했다. 자신의 좀 우스운 반응이 생각났다. "창녀도 죽으면 다른 여자와 같구먼." 그렇다. 첫 번째 목소리는 에델이었다. 에델은 항상 밤의 사색속에 빠져들었다. 우둔하고 조잡하고 말참견 잘하는 계집... 야비한 늙은이 에델은 항상 섬찟한 공포를 들고 들어왔다. 케이트는 혼잣말로 중얼대는 때가 가끔 있었다. "가만 있자. 그 여자가 왜 더러운 늙은이지? 네가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이 아니냐? 왜 그 여자를 내쫓았는가? 머리를 써서 여기에 붙잡 아둘 것이지." 케이트는 에델이 어디 있는지 궁금했다. 첩자를 보내 에델을 찾으면 어떨까... 어디에 있는 가만을 알아보면? 그러면 에델이 그날 밤의 일을 이야기하고 유리를 보일 것이다. 그러면 냄새를 맡는 코가 둘로 불어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다를 것이 뭐야? 에 델은 술을 마실 때면 누구에게나 말을 할텐데. 그렇다 하더라도 에델을 늙은이의 잠꼬대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면 첩자를 아니... 첩자는... 안돼. 케이트는 에델에 대해서 여러 시간 동안 생각했다. 판사는 그것을 꾸며낸 연국이라고 생 각했을까... 너무 단순한가? 꼭 백달러였을 필요는 없었는데. 그것은 너무 뻔했다. 보안관은 어땠을까? 조오의 말로는 그녀를 산타 군 너머에 내려 놓았다고 했다. 그녀를 쫓아낸 보안 관 보에게는 무엇이라고 했을까? 에델은 게으른 늙은이였다. 윗슨빌에 주저 앉았을지도 모 른다. 철도 구역인 파자로가 있었다. 파자로 강이 있고 윗슨빌로 들어가는 다리가 있었다. 많은 철로 인부들이 들락날락했다. 멕시코인도 있고 인도 사람도 있었다. 멍청한 에델이 철 로 인부들에게 꽤 재주를 팔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30마일 떨어져 있는 윗슨빌을 떠나지 않았다면 우스운 일이 아닐까? 하고 싶기만 하면 경계선을 살짝 넘어 친구들을 만나 볼 수도 있었다. 가끔씩 샐리너스로 올지도 몰랐다. 지금 샐리너스와 있을지도 몰랐다. 순경 들이 그녀의 뒤를 그렇게 뒤쫓을 것 같지도 않았다. 에델이 거기에 있나를 알아보기 위해 조오를 윗슨빌로 보내는 것이 좋은 생각일지도 몰랐다. 그녀가 산타 크루즈로 갔을지도 몰 랐다. 그가 가는데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지도 않았다. 그가 그녀를 찾기만 하면 어떻게든 지 데려올 수도 있었다. 에델은 바보였다. 그러나 그녀의 소재를 파악만 하면 케이트가 그녀 에게 가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몰랐다. 문을 잠그고 '면회 사절'이라고 써 붙여라. 그러고 윗 슨 빌로 가서 일을 보고 돌아올 수도 있었다. 택시로 가는 것이 아니라 버스로 가라. 야간 버스 에서는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다. 사람들은 신발을 벗어붙인 채 옷을 말아 머리맡에 놓고 잔다. 갑자기 그녀는 윗슨빌에 가기가 두려워진다. 가기만 하면 모든 의심이 끝날 것이다. 조오를 먼저 보내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 이상했다. 그렇게 하면 틀림없다. 조오는 어 떤 일은 제법 잘해냈다. 그 멍턴구리는 자기가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다루기 쉬운 것이 바로 그였다. 에델은 멍청했다. 그래서 그녀를 다루기가 힘들었다. 손과 마음이 점점 비틀어짐에 따라 케이트는 조오 발레리를 제 1 보조원으로서, 중개자로 서, 그리고 실천자로서 생각하고 더 의지하게 되었다. 그녀는 집의 여자들에 대해서 근본적 인 외경심을 갖고 있었다. 여자들이 조오보다 믿음성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표면 바로 밑 에 숨어있는 히스테리가 언제 폭발하여 자기 보호심을 짓밟고 자신들뿐만 아니라 주위까지 도 산산조각나게 만들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케이트는 이 상존하는 위험을 항상 다룰 수는 있었지만, 서서히 침전되는 칼슘과 서서히 고개를 드는 두려움 때문에 도움이 필요했고, 그 도움을 조오에게서 찾았다. 남자란 여자보다도 자기 파괴를 막을 강한 벽을 쌓고 있다는 것 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조오를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절도죄로 5년 형을 받고도 4년을 마치고 샌 퀸틴 도로공사반에서 도망쳐 나온 조세프 베누타의 조서를 서류함에 갖고 있었기 때문이 었다. 이 사실을 조오 발레리에게 말한 적은 없었지만, 그녀는 그가 손아귀에서 빠져나갈 때 이야기를 하면 스그러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조오는 매일 아침, 아침식사를 쟁반에 들고 왔다. 녹차와 크림과 토스트였다. 그는 쟁반을 그녀의 식탁위에 놓고 나서 보고를 하고 그날의 지시를 받았다. 그녀가 점점 자기에게 의존 하고 있다는 것을 그는 알았다. 조오는 전적으로 모든 것을 인계받을 가능성에 대하여 서서 히, 그리고 조용히 탐색했다. 그녀가 꽤 아파지는 경우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조 오는 그녀를 여간 두려워하지 않았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그가 물었다. "일어나 앉지 않을 테니 나한테 차만 줘. 들고 있어." "손이 아프세요?" "응, 터지고 나면 좋아질 거야." "밤잠을 못 주무신 것 같아요." "아냐, 잘 잤어. 새 약을 구했으니까." 조오는 컵을 그녀의 입술에 대어 주었다. 그녀는 차를 불어서 식히면서 조금씩 마셨다. "됐어." 그녀는 차를 반쯤 마시고 말했다. "간밤은 어땠어?" "간밤 에 말씀드리려고 했었습니다만, 킹 시티에서 시골뜨기가 왔었어요. 뭐 곡식을 팔았다나요. 집을 도리했었어요. 여자들에게 준 돈은 계산 안하더라도 7백 달러는 떨어뜨리고 갔어요." "이름이 뭐래?" "모르겠어요. 또 올 겁니다." "이름을 알아 놔야지. 내가 일렀지 않아?" "그 자는 빈틈 없었어요." "그렇다면 더욱 이름을 알아 놔야지. 애들이 까불지는 않았겠지?" "모 르겠어요." "알아봐." 조오는 그녀에게서 다정함을 느끼고 기분이 좋았다. "알아 보겠어요. 충분한 대우를 받았으니까요." 그녀는 무엇인가 찾아내려는 듯 위아래를 훑어 보았다. 무슨일인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그는 알았다. "여기가 마음에 드나?" 그녀는 부드럽게 물었다. "네, 아주 좋아요." "자네가 여기를 더욱 좋게도 만들 수 있고 더욱 나쁘게도 만들 수 있어." "여긴 참 좋습니다." 그는 불안한 듯 말했다. 그는 마음속으로 자신에게 잘못이라도 있지 않은가 생각해 보았다. "여긴 정말 좋습니다." 그녀는 화살 모양의 혀로 입술을 적셨다. "자네와 나는 여기서 함께 일을 할 수 있어." "원하신다면야." 그는 비위를 맞추듯 말했다. 그리고 즐거운 기대의 물결이 그 의 마음 속에 밀려왔다. 그는 참을 성 있게 기다렸다. 그녀는 한참 있다가 말을 했다. "조오, 나는 우리집에서 물건을 도둑맞는 것을 원치 않아요." "저는 아무것도 훔치지 않았 어요." "자네가 그랬다는 것이 아니야." "누가요?" "말해주지. 우리가 내쫓은 늙은 여우를 기 억하나?" "에델인가, 뭔가 하는 여자 말이죠?" "맞았어. 그년이 뭘 훔쳐갔단 말이야. 그땐 몰 랐어." "무엇인데요?" 그녀는 목소리가 냉랭해졌다. "자네가 알 바 아니야. 내 얘길 들어! 자 넨 머리가 좋지 않나? 그 여자를 어디 가면 찾을 수 있을까?" 조오의 머리는 생각이 아니라 경험고 본능에 비추어 재빨리 움직였다. "그 여자는 매를 많이 맞았어요. 멀리 가지 않았을 겁니다. 늙은 매춘부는 멀리 가지 않아요." "자넨 똑똑해. 윗슨빌에 있지 않을까?" "거기 아니면 산타 크루즈에 있을지 모르죠. 접어서 말하더라도 샌 조우스 밖으론 안 나갔을 겁니다." 그녀는 손가락을 어루만졌다. "5백 달러쯤 벌어보지 않겠어?" "저보고 그 여자를 찾으라 는 겁니까?" "찾기만 하면 돼. 그 여자 모르게 주소만 알아 와." "알았습니다. 많이 훔쳐간 것이 틀림없구먼요." "자네가 알 바 아니야." "알았습니다. 지금 당장 떠날까요?" "그래 빨리 떠나." "좀 어려울지도 모르겠어요. 오래 돼서." "자네한테 달려 있지." "오늘 오후에 윗슨빌 로 가겠어요." "그렇게 해." 그녀는 생각에 잠겼다. 그는 그녀가 무언가 할 말이 있는데 말을 해야할지 망설이고 있다 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결정을 내렸다. "조오, 그 여자가 무슨 짓을, 그러니까 법정에서 무 슨 특별한 짓을 했을까?" "없습니다. 항상 그러는 것처럼 조작된 것이라고 말했어요." 그 당 시에 귀담아 듣지 않았던 말이 생각났다. 에델의 목소리가 그의 기억속에 울렸다. "판사님, 단독으로 만나 뵙고 싶습니다. 말씀 드릴 것이 있어요." 얼굴표정에 나타나지 않도록 그 기 억을 깊숙이 묻어버리려고 애썼다. 케이트가 말했다. "그것이 무슨 말이었어?" 그의 대답은 너무 늦었다. 그는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고 애썼다. "무엇이 있었는데요." 그는 시간을 벌기 위해 말했다. "생각하는 중이에요." "잘 생각해봐!" 그녀의 목소리는 날카롭고 걱정에 싸여 있었다. "글쎄요. 그여자가 순경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는데... 어디 보자... 왜 남쪽으로 가지 못하게 하느냐고 했어요. 샌 루이스 오비스포에 친척들이 있다고 말했어요." 케이트는 재빨리 그에게 몸을 굽혔다. "그래서?" "순경들의 말이 거기는 너무 멀다고 하더군요." "자 넨 머리가 좋아. 먼저 어딜 가겠어." "윗슨빌로 가죠. 샌 루이스에 친구가 하나 있어요. 나 대신 찾아줄거예요. 그에게 전화를 걸겠어요." 그녀가 날카롭게 말했다. "이일을 소문내지 않았으면 좋겠어." "5백를 받고 이 일을 재빨리, 그리고 소문나지 않게 하란 말씀이시군요." 그녀의 눈이 가느스름해지고 조사하는 듯 변했지만 그는 기분이 좋았다. 그녀의 다음 말은 그의 간을 떨어뜨렸다. "조오, 화제를 바꾸는 것은 아니지만, 베누타라는 이름이 자네와 무슨 관계가 있나?" 그는 대답을 하려 했으나 목이 굳어졌다. "조금도 관계 없습니다."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돌아오 요. 헬렌보고 들어오라고 해. 자네 대신 일을 해야 할 테니까." 3 조오는 여행가방을 챙기고 역으로 나가 윗슨빌 행 차표를 샀다. 그는 북쪽 행 첫 정류장 인 캐스트로빌에서 내려 4시간이나 기다려서 샌프란시스코에서 몬터리로 가는 델 몬트 급행 열차를 탔다. 몬터리는 그 지선의 종착지였다. 몬터리에서 그는 센트럴 호텔 계단을 올라가 존 위키라고 숙박계에 썼다. 그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언스트 식당에서 스테이크를 먹고 나 서 위스키 한병을 사들고 방으로 들아왔다. 그는 옷을 벗고 침대에 누웠다. 침대 옆 테이블에 위스키와 유리잔을 놓았다. 머리 위의 등불이 얼굴을 비쳤으나 상관하지 않았다. 등불을 인식하지도 않았다. 그는 위스키 반 잔을 마시자 머리가 기분좋게 되는 것을 느꼈다. 그는 머리 뒤로 손깍지를 끼고 발목을 엇비뚜름 하게 하고는 생각과 인상과 직감과 충동을 끄집어내 맞추기 시작했다. 일자리는 좋았다. 그녀를 곯려먹었다고 생각했다. 그녀를 과소 평가했었다. 어떻게 돼서 그녀는 자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가? 레노나 시애틀로 갈까도 생각했다. 항구도시는 항상 좋았다. 가만 있자, 잠깐 기다려서 생각해 보자. 에델은 아무것도 훔치지 않았다. 그녀는 무엇인가 갖고 있다. 케이트는 그녀를 겁내고 있 다. 직사하게 얻어맞은 창녀를 찾는데 5백 달러면 큰 돈이다. 에델이 판사에게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이것이 가장 큰 의문이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케이트가 그것을 두려워했다는 것이다. 그것을 이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빌어먹을! 그녀가 탈옥 사건을 알고 있으니 이건 틀렸다. 조오는 형기를 다 마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생각하는 데에 손해날 것은 없었다. 글세 1만 달러를 걸고 4년의 도박을 해볼까. 손해 나는 도박일까? 결정지을 필요는 없다. 그녀는 그것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고발하지 않았다. 충견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에델이 승점 카드인지도 몰랐다. 잠깐 기다려서 생각해 보자. 그것이 행운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손을 거두고 방관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빌어먹게도 머리가 영리했다. 그는 그녀와 내기를 겨룰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그냥 밀고 나가면 어떨까? 조오는 일어나서 유리컵을 가득 채웠다. 그는 불을 끄고 차일대을 올렸다. 그는 위스키를 마시면서 건너편 방에서 말라빠진 작은 체구의 여자가 목욕옷을 걸친 체 스타킹을 빨고 있 는 것을 지켜보았다. 위스키 기운에 귀에서 소리가 났다. 이것이 성공의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조오는 정말 오랫동안 기다렸다. 날카롭게 작은 이 빨의 그 여자가 싫었다. 지금 당장 결정을 내릴 필요는 없다. 그는 창문을 가만히 열고 테이블에 있던 펜을 들어 창 너머로 던졌다. 그는 재미있다는 듯이 겁에 질린 그 여자의 모습을 봤다. 뼈만 남은 그녀가 차일대를 내렸다. 그는 1파운드짜리 위스키 병을 세 잔으로 나누어 다 마셨다. 거리로 나가 마을을 살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술에 취하면 외출을 하지 말라는 규칙을 정해 놓고 그것 을 지켰다. 그러면 결코 문제에 말려들지 않았다. 문제를 일으키면서 순경을 불러 들이게 되 고 순경은 검문을 하게 되고 그러면 틀림없이 형무소가 있는 샌퀸틴 행 차를 타게 되어 있 었다. 이번엔 모범수가 된다고 해도 도로 인부가 될 가능성은 없었다. 그는 외출할 생각을 접어 치웠다. 그는 혼자 있을 때를 위하여 마련해 놓은 다른 즐거움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일 종의 즐거움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는 지금 그 생각에 빠져 들었다. 그는 철침대에 누워 멍청하고 처참했던 유년기와 초조하고 행실 나빴던 소년기를 회상하고 있었다. 운이 전혀 없었다. 큰 인물은 행운을 잘 잡는다. 그도 몇몇 작은 일은 제대로 해냈지만 주머니 칼집을 제대로 처리 못했다. 순경들이 집으로 덮쳐 붙잡혔다. 그후부터 그는 감시 명단에 올라 감시 를 받게 되었다. 데일러시에서 어떤 친구가 트럭에서 딸기 상자를 훔치기만 해도 조오가 의 심을 받게 되었다. 그는 학교에서도 운이 없었다. 선생님도, 교장 선생님도 그를 옹호하지 않았다. 누구도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뛰쳐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의 불운했던 추억 속에서 따뜻한 슬픔이 자라났다. 계속 기억을 더듬어 나가자, 눈에는 눈물이 고이고 입술은 자기 자신이 외로운 소년에 대한 연민의 정으로 파르르 떨렸다. 결국 그는 여기에 이러하게 있지 않은가... 그를 보라... 다른 사람들은 가정을 갖고 차를 굴리는 데, 창녀집에서 일하는 이 비참한 모습, 다른 사람들은 안전하고 행복했다. 밤이면 조오를 가로막는 차일대가 내려졌다. 그는 흐느껴 울다가 잠이 들었다. 조오는 아침 열 시에 일어나서 언스트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그리고 오후 일찍 버스 를 타고 윗슨빌로 가서 전화 연락을 받고 나온 친구와 당구를 세 게임 했다. 마지막 게임에 서는 조오가 이겼다. 친구에게 10달러 지폐를 두 장 주었다. "이게 뭐야, 돈은 필요없어." 친구가 말했다. "받아." 조오가 말했다. "준 것이 아무것도 없 는데." "아니, 충분해. 그 여자가 여기 없다고 했지 않나? 자네 같은 어린 아이가 뭘 알아?" "그 여자를 왜 찾지?" "윌슨, 처음에도 말했지만 나도 몰라. 맡은 일을 할 뿐이야." "글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뿐이야. 무슨 모임이 있었던 것같아... 무엇이더라?... 치과의사들이 었는지, 올빼미 클럽이었는지. 그 여자가 거길 간다고 했는지 내가 그렇게 생각해 낸 것인지 모르겠단 말이야.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산타 크루즈를 뒤져봐. 누구 아는 사람이 있 어?" "안면이 있는 사람은 몇 있지." "밀러를 찾아 봐. 헬 밀러야. 헬 당구장을 경영하지. 골 방에서는 노름도 하지." "고맙네." "천만에... 이것봐 . 조오. 돈은 필요없다니까." "그건 내돈 이 아니야. 담배라도 사서 피워." 버스에서 내려 보니 헬 당구장은 두 집 건너에 있었다. 저녁식사때였지만 스터드 놀음은 계속되고 있었다. 한 시간쯤 기다리고 있자니 헬이 변소로 가기에 조오는 그를 쫓아가 말을 건냈다. 헬은 두꺼운 안경으로 더 크게 보이는 크고 까만 알파카로 된 소매끼우개를 고쳐 끼우고 나서 녹색 보호경을 직각으로 세웠다. "게임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 보세요. 아니면 들어와서 끼겠어요?" "몇 사람이 합니까?" "한 사람뿐이오." "나도 하죠." "한 시간에 5달러 입니다." 헬이 말했다. "이기면 1할이오?" "좋아요. 모래빛 머리칼의 윌리엄즈가 그 집 주인 이오." 새벽 한 시에 헬과 조오는 발로우 그릴로 갔다. "스테이크 2인분과 프랜치 스프를 들겠어 요?" 헬이 조오에게 물었다. "아니오, 프렌치 프라이는 필요 없어요. 그걸 먹으면 변비가 생 긴단 말이오." "나도 그래요." 헬이 말했다. "그렇지만 나는 먹겠어요. 충분한 운동을 하지 못하니까." 헬은 식사를 하기 전까지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입에 음식이 꽉 차지 않고 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당신 직업이 무엇입니까?" 그는 스테이크를 먹으면서 물었다. "그저 일을 하는 거죠. 이 일로 1백 달러를 벌지요. 그 중에서 25달러를 주겠소... 괜찮습니 까?" "증거가 필요한가요... 증빙 서류 같은 것?" "아니오.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좋아요." "글세, 언젠가 그녀가 와서는 나더러 도와달라고 하더군요. 그 여자는 쓸모가 없었어요. 일 주일에 20달러도 벌어주지 못했어요. 그 여자가 내 집에서 일하는 것을 빌 프리머스가 보고 그 여자에 대해서 나에게 물어보더군. 그때에야 나도 그 여자에 대하여 알게 되었죠. 빌은 좋은 친구죠. 여기엔 좋은 보안관이 있어요." 에델은 나쁜 여자가 아니었다. 게으르고 나태하지만 마음은 좋았다. 위엄과 거드름을 피우 고 싶어하는 여자였다. 머리가 명석하지도 못하고 얼굴이 예쁘지도 않았다. 이 두 가지 결점 때문에 운도 없었다. 파도에 밀려 모래에 반쯤 묻혀 있을 그녀를 건져낼 때에는 스커트가 엉덩이까지 접혀 있었는데 이를 그녀가 알았다면 괴로워했었을 것이다. 그녀는 더욱 위엄을 부리고 싶어했었을 것이다. 헬이 말했다. "아주 난폭한 뱃사람들이 있어요. 값싼 술에 취해가지고는 갖은 짓은 다 부 려요. 그런 뱃사람 중에 어떤 놈이 그 여자를 끌고 나가 뱃전 너머로 그 여자를 밀어냈는지 도 모르죠.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그 여자가 물에 빠졌겠어요." "선창에서 뛰어내렸는지도 모르죠." "그 여자가요?" 헬이 감자를 씹으며 말했다. "그럴 리가? 천부당하죠! 너무 게을러 서 자살도 못해요. 확인해 보겠어요?" "당신이 그 여자라면 맞겠죠." 조오는 이렇게 말하고 25달러를 테이블 너머로 밀어주었다. 헬은 지폐를 담배처럼 말아 조끼 주머니에 찔러 넣었 다. 그는 고기를 세모지게 잘라 입에 넣었다. "틀림없이 그 여자였어요." 그가 말했다. "파이 들겠어요?" 조오는 정오까지 잠을 자려고 했으나 일곱 시에 잠이 깨었다. 그는 오랫동안 침대에 누워 있었다. 자정이 넘어서야 샐리너스로 갈 계획이었다. 그는 생각할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는 일어서서 거울을 들여다보며 자기가 지을 계획인 표정을 살폈다. 그는 실망한 표정 을 짓고 싶었지만 지나치게 실망한 것 처럼 보이고 싶진 않았다. 케이트는 빌어먹게도 머리 가 좋았다. 그녀를 앞세우고 뒤를 따라라. 그녀는 아주 민첩했다. 조오는 그녀가 무서워서 죽을 지경이라는 것을 자인할 수밖에 없었다. 조심스러운 그의 마음이 말했다. '다소곳이 들어가서 그녀에게 사실을 말하고 5백 달러 를 받아라.' 그는 조심스러운 마음에게 야만스럽게 대답했다. '행운이다. 행운을 몇 번이나 잡았던가? 행운을 잡았을 때 행운을 인식하는 것도 행운의 일부다. 일생동안 더러운 뚜장ㅇ이 노릇을 해야 하는가? 면밀하게 처리하라. 그녀로 하여금 말을 하도록 해라. 그렇게 하면 손해날 것 이 없다. 일이 잘 안되면 그때 가서 막 알게된 것처럼 말할 수 있지 않은가.' '그녀는 여섯 시간 후면 너를 감방에 넣을 수 있다.' '면밀하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 무엇을 잃게 되었단 말인가? 무슨 행운을 내가 잡았단 말 인가?' 4 케이트는 기분이 훨씬 좋았다. 새 약이 효험이 있는 것같이 보였다. 손의 통증이 줄어들고 손가락이 곧아지고 마디의 부기가 줄어든 것같이 보였다. 오래간만에 잠도 잘 잤다. 기분이 좋았다. 얼굴이 다소 상기되었다. 아침엔 계란을 삶아 먹을 작정이었다. 일어나서 드레싱 가 운을 입고 손거울을 침대로 가져왔다. 베개를 높이 베고 드러누워 얼굴을 살폈다. 휴식이 기적을 낳았다. 통증이 일어나면 일반적으로 턱이 굳어지고, 눈이 불안 때문에 겉 으로만 밝아지고, 관자놀이 위의 근육과 뺨 근처의 근육과 코 주위의 연약한 근육마저 다소 부어오른다. 이것은 고통에 대한 저항고 질병의 표정이다. 휴식을 취한 그녀의 얼굴은 놀라울 정도로 달라졌다. 열 살이나 더 젊어 보였다. 그녀는 입을 열고 이를 들여다보았다. 치석을 닦아낼 때가 되었다. 그녀는 이를 아꼈다. 송곳니 몇 개가 있던 자리에 금니를 해박은 것이 유일한 치료 흔적이었다. 자신이 굉장히 젊어 보인다 고 케이트는 생각했다. 꼭 하루밤을 잘 잤는데도 그녀는 옛날로 되돌아가 있었다. 이것이 사 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일이었다. 그녀가 허약할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강철 덫처럼 섬세한 자신을 보고 그녀는 자 조했다. 그녀는 항상 몸조심을 했다. 술도 마시지 않고, 약도 안 먹고, 최근에는 커피도 마시 지 않았다. 그에 대한 보상이 있어서 천사 같은 얼굴이 되었다. 그녀는 목덜미의 잔주름이 보이지 않도록 거울을 약간 치켜들었다. 그녀의 생각은 자기와 꼭 닮은 또다른 천사의 얼굴로 줄달음질을 쳤다. 그의 이름이 무엇 이더라? 알레크였던가? 레이스가 달린 성가대 원복을 입고 예쁜 턱을 아래로 당기고 촛불 빛을 받아 머리카락이 반짝이던 그가 천천히 지나가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는 참나무 막 대를 들고 있었으며 놋쇠 십자가를 목에 걸고 있었다. 그의 채취에는 냉혹 미같은 것이 있 었다. 그러면 케이트에게 진정한 의미에서 손을 댄 것, 또는 사람이었던가... 정말 그녀의 손 을 만져 더럽혀 놓은? 확실히 없었다. 오직 생경한 외부만이 접촉을 부숴졌을 뿐이다. 내부 는 알레크 소년만큼이나 청결했다. 그애의 이름이 무엇이었더라? 그녀는 낄낄대고 웃었다. 두 아들의 어미인 그녀가. 그녀는 어린애같이 보였다. 만일 그 금발의 소년과 함께 있는 그녀를 누가 보았다면, 그는 어떤 의문을 가졌을까? 군중 속에서 그와 함께 서서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을 찾아내라고 한다면 어떨까 하고 그녀는 생각했 다. 만일 그가... 그렇지. 아론이었지... 모든 사실을 안다면 그는 어떻게 할까? 그의 동생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그 깜찍한 후레자식이... 좋지 못한 말이다. 그를 그렇게 불러서는 안 된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인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믿는 사람들도 개중에는 있다. 그런 사람 들도 형편없는 놈들이다. 신성한 부부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케이트는 깔깔대고 웃었다. 기 분이 좋았다. 재미있었다. 꾀가 많은 놈... 얼굴이 까만 놈이 그녀를 괴롭혔다. 그는 찰스를 닮았다. 그녀는 찰스를 좋아 했었다. 할 수만 있다면 찰스는 그녀를 죽였을지도 모른다. 신통한 약이다... 관절통을 멈추게 했을 뿐만 아니라 용기까지 되살려 주었다. 그녀는 전에 계획했던 대로, 곧 모든 것을 정리하고 뉴욕으로 갈 수도 있었다. 에델이 두려웠던 생각을 했다. 그녀가 대단히 아팠던 것은 틀림없었다. 불쌍하고 멍청한 늙은 계집! 그녀를 친절하게 살해하는 것은 어떨까? 조오가 그녀를 찾아오면 어떻게 할까... 뉴욕으로 데려가는 것은 어 떨까? 가까이 두어 두는 거다. 우스운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게 하면 아주 희극적인 살인이 될 거다. 어떤 경우에도 해결 되거나 의심을 자아내게 하지 않는 살인. 초콜릿... 초콜릿 상자, 폰단트 과자 상자, 베이겐, 바삭바삭하는 베이컨... 지방! 붉은 포도주, 그리고 버터 무엇이든지 버터와 크림에 묻혀서 준다. 야채와 과일은 안된다. 오락도 안된다. 나가지 말고 집에 있어요. 너를 믿으니까. 일을 보살펴 줘요. 너는 피곤하니까. 자러 가라. 이 유리잔에 술을 따라 줄게. 너에게 주려고 과자 를 사왔다. 상자째 들고 가서 드러누워 먹을래? 기분이 좋지 않으면 약을 먹지 그러니? 이 케슈는 아주 좋다. 그러면 이 늙은이는 6개월 후엔 부풀었다 터져버릴 것이다. 그렇지 않으 면 촌충은 어떨까? 촌충을 사용한 사람이 있었던가? 체밖에 없어서 물은 먹을 수 없었던 그 사람이 누구였더라... 탄탈로스(그리이스 신화 중의 인물. 영원한 기갈에 허덕였다고 함.) 였던가? 케이트의 입가에는 달콤한 미소가 떠올랐다. 유쾌한 기분이 온 몸에 번졌다. 떠나기 전에 아들들에게 파티라도 열어주는 것이 줗을지 몰랐다. 단출한 파티 후에 귀여운 자식들 보배 들에게 서커스라도 보여주자. 그렇지 생각하자 자신을 닮은 아론의 미모가 생각났다. 그리고 는 이상한 통증이... 다소 낙다시키는 고통이 가슴에서 일어났다. 그는 영리하지 못했다. 그 는 자신을 보호할 수도 없었다. 얼굴이 검은 동생은 위험한지도 몰랐다. 그의 재능을 느낀 바 있었다. 카알이 그녀를 압도했었다. 떠나기 전에 그녀는 그에게 교육을 시킬 생각이었다. 글쎄... 틀림없이 임질에라도 걸리게 해놓으면 그 젊은이에도 무릎을 꿇고 말거야. 갑자기, 아론으로 하여금 자기에 대하여 알게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뉴욕 에 있는 자기에게 올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자기가 이스트 사이드의 우아한 집에서 줄곧 살아 왔다고 그는 생각할 거다. 극장과 오페라 관으로 그를 데리고 산다. 사람들은 우 리를 보고는 그 행복함에 감탄을 할 것이고 남매간이 아니면 모자간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 이다. 틀림없이 누구나 알게 될 것이다. 에델의 장례식에도 함께 갈 수 있다. 에델은 커다란 관을 필요로 할 것이고 그것을 드는 데 여섯 명의 장사는 필요할 것이다. 케이트는 자기 생 각에 몰두하여 조오가 노크하는 소리도 미처 듣지 못했다. 그는 문을 삐끔히 열고 들여다 보았다. 유쾌하게 미소짓고 있는 얼굴이 보였다. "아침 식사입니다." 그는 상보가 덮인 쟁반 끝으로 밀어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무릎으로 문을 닫았다. "거기서 드시겠어요?" 그는 턱으로 회색 방쪽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아니, 여기서 먹겠어. 삶은 계란 하나하고 노란 토스트 한 조각이면 돼. 계란은 4분 반 동안만 끓여. 달라붙는 계란은 싫어, 알았지?" "아담, 기분이 썩 좋으시군요." "좋지. 새약이 효험이 있구먼. 자네는 개한테라도 끌려가는 것같군. 기분이 좋지 않은가?" "괜찮습니다." 그는 깊숙한 안락의자 앞의 테이블에 쟁반을 놓았다. "4분 반 동안이라고 하셨죠?" "맞았어. 싱싱한 사과라도 있으면 하나 가져오게." "이렇게 잡수시기는 처음입니다." 요리사가 계란 삶기를 부엌에서 기다리다 은근히 겁이 났다. 그녀가 알고 있는지도 몰랐다. 조심을 해야지. 그러나 도대체 모른다고 해서 그를 미워할 수는 없었다. 거기엔 죄가 없었다. 그는 방으로 돌아와서 말했다. "사과는 없답니다. 그러나 이건 좋은 배라고 하던데요." "그것이 더 좋아." 그는 그녀가 계란을 자르고 그 속에 숟가락을 집어 넣는 것을 보고 있었 다. "어때요?" "아주 좋아." "기분이 좋으신 것 같습니다." "기분이 좋지. 자넨 죽을 상이구 먼. 무슨 일이야?" 조오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마담, 나처럼 5백 달러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아무 도 없었어요." 그녀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필요로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무슨 말씀 입니까?" "아무것도 아니야. 무슨 이야길 하려는 거야? 그 여자를 찾을 수 없었다... 그건가? 그래, 제대로 찾아보았다면, 5백 달러를 주지. 자세하게 말해봐." 그녀는 소금 뿌리개를 들고 는 계란 껍질 속으로 약간의 소금을 뿌렸다. 조오는 애써 기쁜 표정을 지었다. "고맙습니다. 저는 곤란한 지경에 빠져 있어요. 돈이 필 요해요. 그런데, 저는 파자로와 윗슨빌에도 찾아 봤어요. 윗슨빌에서는 그 여자의 줄을 잡았 었죠. 그러나 산타 크루즈로 떠나고 없었어요. 거기에서도 그 여자의 냄새는 맡았었으나 떠 나 버리고 없었어요." 케이트는 계란 냄새를 맡고서는 소금을 더 쳤다. "그게 전부인가?" "아닙니다. 맹복적으로 센 루이스로 가봤어요. 그랬더니 역시 있다가 떠나버린 후였어요." "흔적도 없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나?" 조오는 손가락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의 전 흥망이, 어쩌면 전 생애가 다음 말에 걸려 있는지도 몰랐다. 다음 말을 하기가 싫었다. "말해." 그녀가 드디어 말했다. "자넨 무언가 생각하고 있어. 그게 뭐야?" "별 것 아니에 요. 그걸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생각할 것 없어. 말만해. 생각은 내가 할게." 그녀가 날카롭게 말했다. "사실이 아닌지도 모르겠어요." "제발!" 그녀는 화가 치밀어 말했다. "그 여자를 마지막으 로 본 사나이와 말을 해봤어요. 그 친구 이름도 나처럼 조오였어요." "자네가 그 친구 할머 니 이름이라도 땃단 말인가?" 그녀는 빈정거리며 말했다. "이 조오라는 사나이가 말하기를, 그 여자가 어느 날 술을 먹고는 자기는 샐리너스로 되돌아가서 모든 것을 털어놓겠다고 했 다는 거예요. 그리고는 자취를 감췄대요. 이 조오라는 사나이는 더 이상 아는 것이 없었어 요." 케이트는 깜짝 놀라 어쩔 줄을 몰랐다. 조오는 그녀가 질겁과 두려움과 거의 절망적인 공 포와 지침 속에 휩싸이는 것을 보았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조오는 이제 무엇인가 잡았던 것이다. 드디어 행운을 잡았던 것이다. 그녀는 무릎 위에 얹어 놓았던 비틀린 손가락에서 눈길을 들었다. "이제 그 늙은이는 잊 기로 하자. 5백 달러를 주지." 조오는 가만히 숨을 쉬었다. 소리가 나면 그녀가 자기 몰입에서 깨어나지나 않을까 두려 웠다. 그녀는 그를 신임하고 있었다. 그것보다도 그가 말하지 않은 것까지도 믿고 있었다. 그가 가능하면 빨리 방을 빠져나가고 싶었다. "고맙습니다." 그는 부드럽게 말하고는 조용히 문쪽으로 발을 옮겼다. 그의 손이 문잡이에 닿았을 때 그녀는 일부러 우연인 듯이 말했다. "조오, 말이 났으니 말 이지만..." "마담?" "그 여자에 대한 이야기가 들리면 나한테 알려주게." "그렇게 하죠. 제가 알아볼까요?" "아니야. 그럴 필요는 없어. 그리 중요하지는 않으니까." 방으로 돌아오자 문을 잠그고, 조오는 팔짱을 끼고 앉았다. 그는 혼자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즉시 앞으로의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그는 다음 주까지 그녀로 하여금 그 일에 대하 여 생각을 하도록 내버려 두기로 했다. 쉬게 했다가 에델 얘기를 다시 꺼내자. 그는 자기의 무기가 무엇인지도, 또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 무기가 날카롭다는 것, 그리고 그 무기를 사용하고 싶어 안달이 나고 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케이트가 회 색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가버렸다는 것과 그녀가 커다란 의자에 꼼짝 않고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는 사실을 조오가 알았었다면 그는 웃음보를 터뜨렸을 것이다. 제 46 장 1 자주는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씩 11월에도 샐리너스 계곡에 비가 왔다. 비가 오면, 그건 흔 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저어널'지나 '인덱스'지는 이 사실을 기사로 다루었다. 하루밤 사 이에 언덕들은 연푸른 색으로 변하고 대기는 향기롭게 되었다. 비가 와 봤자 얼마 동안 계 속 내리지 않는 한, 농사에는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일반적으로 건기가 다시 찾아와 잔 풀들은 시들고 서리가 내려 풀을 오그라 붙게 만들었다. 따라서 많은 종자만 낭비되었다. 전쟁이 벌이지고 있던 몇 해 동안에는 비가 많이 왔다. 프랑스에서 대포를 많이 쏘았기 때문에 이상한 날씨가 계속 되었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 점이 필설로 진지하게 논의되었다. 첫 겨울에는 프랑스로 많은 군대가 파견되지는 않았지만, 언제고 출동할 수 있도록 수백 만이 훈련을 받고 있었다. 전쟁이란 고통스럽기는 했지만 또한 흥분을 자아냈다. 독일군들은 저지되지 않았다. 사실, 그들은 주도권을 잡고 파리를 향해 질서정연하게 진군하고 있었다. 저지할 수 있을지도 모 르는 일이었지만, 단정하고 멋있게 유니폼을 입은 군인다운 그의 모습이 매일 신문에 나타 났다. 그의 턱은 돌처럼 단단했고 군복에는 주름 하나 없었다. 그는 완전한 군인의 귀감이었 다. 그가 정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들은 패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들은 패전해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누런 밀가루 네 배의 값을 주지 않고는 하얀 밀가루를 살 수 없었다. 그러나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하얀 밀가루는 빵과 비스킷을 만들어 먹고 누런 밀가루는 닭 모이로 주었다. 옛 '씨'기병대 본부에서는 향토 예비군이 훈련을 받고 있었다. 이제 쉰 살이 넘어 쓸모없 게 된 사람들이었지만 향토 예비군복에 외지용 군모를 쓰고 1주일에 두 번씩 훈련을 받았 다. 그들은 서로 명령을 내리기도 하고 누가 장교가 돼야 하는지 의견이 맞지 않아 끊임없 이 다투기도 했다. 윌리엄 버트는 본부 마루에서 팔짚고 엎드리기를 하다가 죽었다. 그의 심 장이 그것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영화관이나 교회에서 미국을 위해 1분 간의 연설을 하고 다녔기 때문에 1분 인간이라는 별명이 붙은 사람도 있었다. 여자들은 붕대를 감고 적십자 제복을 입고 자신들을 '사랑의 천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모든 여자들은 누군가를 위해 무엇인가 짜고 있었다. 군인 소매 속으로 스며드는 바람을 막 기 위한 소매덮개라는 것도 있었고 구멍이 하나 있어서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짜집기 헬멧이 라는 것도 있었다. 이것은 새 철모가 머리까지 얼어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었다. 일등품 가죽은 장교용 군화와 벨트를 만드는데 사용되었다. 멋있는 이 벨트는 장교만이 맬 수 있었다. 이것은 넓은 벨트와 가슴을 가로질러 왼쪽 견장 밑으로 넘어가는 끈으로 되 어 있었다. 이것은 영국 것을 본뜬 것이다. 영국 것마저도 그 본래의 목적을 상실하고 있었 다. 본래의 목적은 무거운 칼을 받쳐 주려는 것이었다. 열병할 때를 제외하고는 이젠 칼을 차지 않았다. 그러나 장교들이 죽었을 때 보면 누구나 가죽 벨트를 매고 있었다. 좋은 것은 25달러나 되었다. 우리들은 영국 사람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들이 훌륭한 군인이 아니었다면 우리들 은 많은 것을 모방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군인들도 소매 속에 손수건을 넣고 다니기 시 작했고, 개중에 멋부리는 중위들은 가느다란 막대기를 들고 다녔다. 그러나 우리들이 오랫동 안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하나 있었다. 손목시계는 바보스럽게 보였다. 이것만은 우리들이 본뜨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국내에도 적이 있었다. 따라서 우리들은 경계를 게일리하지 않았다. 샌 조오스에서는 스파 이 소동이 벌어졌다. 샐리너스도 성장기의 소읍이라고 해서 이제 뒤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근 20년 동안 샐리너스에서 수공 양복점을 경영하던 펜철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키가 작 고 뚱뚱한 그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말투를 썼다. 그는 알리설 가 에 있는 작은 양복점의 테이블에 다리를 걸고 하루종일 앉아 있었다. 저녁 때면 멀리 떨어 져 있는 샌트럴 애비뉴의 하얀 자기 집으로 걸어서 가곤했다. 전쟁이 발발하기까지는 그의 사투리에 관심을 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갑자기 우리들은 알게 되었다. 그것은 독 일 사투리였다. 그는 우리들과 개인적 친분이 두터웠던 독일인이었다. 그러나 그가 파산할 지경으로 전쟁 공채를 샀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자기를 은폐하기 위한 너무나 얕은 수작 으로만 보였다. 향토 예비군은 그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스파이의 샐리너스 방어 비밀 계획 탐지를 사람들은 바라지 않았다. 적이 만든 옷을 입고 싶어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펜철 씨는 할 일도 없이 하루종일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그는 옷 한 벌을 가지고 꿰맸다 뜯었다, 뜯었 다 꿰매며 앉아 있었다. 우리들은 펜철 씨에게 정말 잔인하게 굴었다. 그는 우리 동네의 독일인이었다. 그는 매일 우리집을 지나갔다. 그가 모든 사람들에게, 하다못해 개에게까지 말을 건네면 대답을 받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에게 말을 붙이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는 공허한 외 로움과 상처받은 자만심이 꽉 찬 그의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가 가까워지자 우리 남매는 나란히 길을 가로질러 천천히 걸어갔다. 펜철 씨는 고개를 들어 우리들이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우리들은 차도와 인도 사이의 도랑 앞에 섰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존, 안녕. 메리, 안녕." 우리는 꼼짝 않고 나란히 서서 합창 하듯 말했다. "카이젤 만세!" 지금도 그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 순진한 파란색의 두 눈이 질 겁하던 모습, 그는 무엇인가 말을 하려다가 울기 시작했다. 눈물을 감추려고하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서서 흐느껴 울었다. 아시겠죠? 메리와 나는 돌아서서 굳어진 채 길을 건너 우리 집 마당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우리들은 무서웠다 그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그렇다. 우리들은 그때 너무 어려서 펜철 씨를 멋있게 골탕먹일 수는 없었다. 그렇게하는 데에는 장정 30명이 필요했다. 어느 토요일 저녁, 이런 장정들이 어느 술집에 모였다가 4열 종대로 서서 여싸! 여싸! 여싸! 합창을 하며 샌트럴 애비뉴로 행진했다. 그들은 펜철 씨의 흰 철책 을 부수고 들어가 둘 리가 없었다. 그래서 샐리너스도 샌조오스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 었다. 물론 이 일이 도화선이 되어 윗슨빌도 분주하게 되었다. 그들은 독일인으로 착각하고 한 폴란드인의 몸에 타르 칠을 하고 갖가지 깃털장식을 했던 것이다. 그도 물론 사투리를 썼다. 우리 샐리너스 사람들은 전쟁중에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일들은 전부했다.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생각들을 했다. 좋은 소식을 들으면 환호성을 지르고 나쁜 소식을 들으면 공포에 떨었 다. 누구나 비밀을 갖고 있었는데 그는 그 본체를 비밀로 남겨 놓기 위해 왜곡되게 퍼뜨렸 다. 생활 양식도 변했다. 임금과 물건 값이 뛰었다. 기근이 올 것이라는 소문에 곡식을 닥치 는 대로 사서 쌓아 놓았다. 얌전했던 부인네들도 토마토 통조림 하나를 놓고 아귀다툼을 했 다. 모두가 나쁘고 비천하고 히스테릭했던 것만도 아니었다. 영웅주의도 있었다. 군 복무를 기 피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 자진 입대를 하고, 도덕적 도는 종교적 이유에서 전쟁을 반대하던 사람들이 수난의 골고다 행을 했다. 이 마지막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야만 속세의 살에 박힌 가시 같은 전쟁을 제거하게 되고 그러면 이 무시무시한 무의미가 다시는 없게 되리라는 생 각에서 있는 재산을 몽땅 공물로 바친 사람도 있었다. 전쟁에서의 죽음에는 위엄이라는 것이 전혀 없다. 대부분의 경우, 죽음은 인간의 육체와 피가 산산조각나는 것을 뜻하며 그 결과는 비참하다. 그러나 전사 소식과 함께 가족에게 밀 어닥치는 슬픔, 절망, 절망적인 비애 가운데에는 커다랗고 거의 감미로운 위엄이 있다. 할말 도 없고 할 일도 없지만 오직 유일한 바람... 그가 고통을 겪지 않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 다. 이 얼마나 외롭고 어찌할 수 없는 바람인가. 슬픔이 그 향기를 잃기 시작할 때, 그 슬픔 을 자랑 쪽으로 밀고 나가 손실 때문에 점점 중요하게 되어가는 것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사람들 중에는 전쟁이 끝난 후에도 이것을 잘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 다. 돈벌이를 일생의 기능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전쟁으로 돈을 버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처 럼, 그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돈을 벌었다고 해서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돈벌이의 일부를 전쟁 공채에 투자를 해야만 된다는 기대만은 있었다. 샐리너스에 사는 우 리들은 그 모든 것을, 슬픔마저도 발견해 냈다고 생각했다. 제 47 장 1 레이노드 베이커리 옆에 있는 트래스크 집에서는 리이와 아담이 서부 전선의 지도를 걸어 놓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색색의 핀으로 표시된 전선이 꾸불꾸불 남하하고 있었다. 이것이 그들에게 참전 기분을 안겨주고 있었다. 켈리 씨가 사망하자, 트래스크 씨는 그 대신 징병위 원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그 일에 안성 맞춤이었다. 그는 제빙공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필 요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군대생활을 잘 해낸 경험이 있고 또 명예제대를 했기 때문이다. 아담 트래스크는 비록 기동훈련과 학살이라는 소규모의 전쟁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전쟁을 목격한 경험을 갖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이 가능한 많은 사람을 죽여도 된다는 왜곡된 규율을 경험했던 것이다. 아담은 그 전쟁을 잘 기억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한 인간의 얼굴, 산더미처럼 쌓여 불타는 시체들, 빨리 걸을 때 들리는 덜커덕대는 칼집소리, 불규칙하고 귀 를 찢는 칼빈의 발포 소리, 밤하늘에 울려퍼지는 싸늘한 나팔 소리, 이러한 모습들은 동결되 어 있었다. 이런 모습에는 마치 잘 그려지지 않은 삽화처럼 율동도 감정도 없었다. 아담은 슬프지만 열심히 그리고 정직하게 일했다. 그는 자기가 입대시킨 젊은이들이 사형 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그는 자기가 약하다는 것을 알 고 있었기 때문에 점점 엄격하고 근실하게 되었다. 그리고 변명이나 어정쩡한 부적격을 받 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장부를 집으로 가져와서 일하기도 하고 부모들을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실제로 기대했던 것보다도 그는 더 많은 일을 했다. 그는 교수형을 증오하는 교수형 판결자처럼 느껴졌다. 헨리 스탠톤은 아담이 점점 여위어가고 과묵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헨리는 농담을 좋아 하는, 아니 농담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다. 그는 침울한 사람과 교제를 하면 자신도 병에 걸 리게 되는 사람이었다. "마음을 편히 먹어요." 그가 아담에게 말했다. "당신은 전쟁의 압력을 짊어지려고 하는구 먼. 이것 봐요... 그것은 당신의 책임이 아니예요. 당신은 규칙을 실천에 옮길 뿐이오. 그 규 칙에 따라 행동을 하고 마음을 편히 먹어요. 당신이 전쟁을 이끌고 있는 것은 아니오." 아담은 오후의 햇살이 눈에 비치지 않도록 차일대를 내리고, 책상 위를 수평으로 비추는 빛을 응시했다. "알고 있어요." 그는 지친 듯이 말했다. "하지만, 결정을 내려야만 할 때가 괴로운 것이오. 적부의 심사가 문제예요. 캔덜 판사의 아들을 입대시켰더니 그만 훈련 중에 죽고 말았어요." "그것은 당신이 알 바 아니오. 저녁에 술이라도 들지 그래요? 영화 구경을 가든지... 잠을 자든지." 헨리는 조끼 겨드랑이에 엄지 손가락을 꽂고는 의자 뒤에 기대었다. "말이 났으니 말입니다만 당신이 걱정을 해도 입대후보 장정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어요. 나 같으면 빼놓을 사람도 당신은 입대시키고 있소." "알고 있어요." 아담이 말했다. "전쟁이 얼 마나 계속될지 모르겠어요?" 헨리는 아담을 면밀하게 살피고 나서는 조끼 주머니에서 연필을 꺼내 그 고무 끝을 커다 랗고 햐얀 앞니에 비볐다. "당신 말의 뜻을 알겠소." 그는 조용히 말했다. 아담은 깜짝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 "내 말 뜻이 뭔데요?" 그가 다그쳐 물었다. "뻐기지 말아요. 내가 계집애 만 두었다고 해서 운이 좋았다고 전에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아담은 책상 위에 비친 차일대 그림자 하나를 집게 손가락으로 짚었다. "당신은 운이 좋 소." 그는 한숨처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 아들들이 징집되기까지는 한참 있어야 될 거요." "그렇겠죠." 아담의 손가락은 일직선의 햇빛 속으로 들어갔다가 서서히 도로 빠져나 왔다. 헨리가 말했다. "나 같으면..." "나 같으면 뭡니까?" "내 자식을 입대시켜야 되는 경우 기 분이 어떨까 생각했어요." "나는 사직하겠어요." 아담이 말했다. "그렇지 무슨 뜻인지 알겠어 요. 자기 자식은 입대시키지 싶지 않은 것이 인지 상정이겠지." "그것이 아니오." 아담이 말 했다. "입대시키기 위해서 그만두는 거요. 자기 자식을 면제시킬 수는 없는 거요." 헨리는 손가락을 엇갈어 두 손으로 큰 주먹 하나를 만들고는 자기 앞 테이블 위에 올려 놓았다. 그의 얼굴은 성급하게 되었다. "할 수 없지. 당신이 옳아요. 사람이 그럴 수야 없 지." 헨리는 농담을 좋아했기 때문에 엄숙하고 진지한 이야기가 나오면 이를 피했다. 그는 이러한 것을 슬품과 혼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론은 스탠포드에서 어떻게 지내요?" "잘 지내요. 어렵기는 하지만 잘 해낼 수 있으리라고 편지에 썼드먼. 추수감사절 날엔 집에 오겠 대요." "보고 싶구먼. 간밤엔 길에서 카알을 만났지요. 머리가 영리한 친구야." "카알은 1년 앞서 대학 시험을 치르지 않았어요." 아담이 말했다. "거기에는 적성이 아닌지도 모르지. 나 도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어요. 당신은?" "나도 안 갔어요. 입대를 했지요." 아담이 대답했다. "좋은 경험이지. 그 경험을 자진해서 하지는 않았을 거요." 아담은 서서히 일어서서 벽의 사 슴 뿔에서 모자를 접어 들었다. "헨리, 잘 주무시오." 2 아담은 집으로 걸어오면서 책임 문제에 대하여 곰곰히 생각했다. 그가 레이노드 베이커리 를 지날 때, 리이가 누렇게 구운 프렌치 빵을 들고 나왔다. "생강 빵을 먹고 싶어서 혼났어요." 리이가 말했다. "나는 스테이크를 곁들여 먹고 싶네." 아담이 말했다. "스테이크를 준비했습니다. 편지는 없던가요?" "깜박 잊고 우편함을 보지 않 았네." 그들은 함께 집으로 들어갔다. 리이는 부엌으로 갔다가, 곧 아담 뒤를 따라와 식탁에 앉았다. "리이." 아담이 말을 꺼냈다. "아들을 입대시켰다가 그애가 전사를 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나?" "말씀을 계속하세요. 전체 이야기를 먼저 듣고 싶으니까요." "아들이 입대해야 된다는 데에는 다소의 의문점이 있었지만, 입대를 시켰는데 죽었다고 가정해 보 게." "알겠어요. 생각하고 계시는 것이 책임입니까, 비난 입니까?" "나는 비난을 받고 싶지 않아." "가끔씩 책임이 더 나쁠 때가 있지요. 책임에는 기분 좋은 자기 의사가 따르지 않으 니까요." "샘 해밀튼과 자네와 내가 한 단어에 대해서는 오랜 논쟁을 벌였던 때를 나는 생 각해 보았네. 그 단어가 무엇이었지?" "알겠어요. 팀쉘이었죠." "팀쉘, 맞아." "인간이 제 구 실만 한다면 그 단어에는 인간의 위대성이 포함되어 있다고 제가 말씀드렸죠." "내 기억에 샘 해밀튼은 그 말에 대하여 만족했었지." "그 말이 그를 자유스럽게 만들어 드렸으니까요. 그 말이 다른 사람과는 구별되는 한 인간이 되는 권리를 그에게 부여해 주었죠." "외고운 말이야." "위대하고 귀중한 것은 모두가 외로운 것이에요." "그 말이 무엇이었지? 다시 한번 말해보게." "팀쉘, 그대 할 수도 있으리라." 3 아담은 아론이 대학에서 집으로 돌아오기로 되어 있는 추수감사절을 학수고대하고 있었 다. 아론이 집을 떠난 지가 얼마 안되었지만, 아담은 아들의 모습을 잊고는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제멋대로 생각하듯이 그의 모습을 그렸다. 아론이 가버리자 집이 조용한 것도 그가 없기 때문이고 고통스러운 사소한 일도 그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되었다. 아담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아들 자랑을 늘어 놓았다. 아론이 얼마나 영리했고, 어떻게 월반하게 되었나 에 대하여 관심도 없는 사람들에게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는 그의 노고를 치하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추수감사절 날에 멋있는 축하연을 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론은 스탠포드 대학이 있는 팔로알토의 한 가구 딸린 방에서 살면서 1마일이나 매일 걸 어서 통학했다. 그는 비참했다. 대학에 대한 그의 기대는 막연하나마 아름다운 것이었다. 정 말 막연했던 그의 꿈은 눈이 영롱한 청년들과 순결한 아가씨들이 대학 정복을 입고 저녁이 면 숲속에 있는 하얀 학문의 정당으로 모여드는 것이었다. 그들의 얼굴은 빛나고 경건했으 며 그들의 목소리는 합창으로 번져나가는 것이다. 때는 항상 저녁이었다. 그는 어떻게 이런 한 학문 생활의 이미지를 갖게 되었었는지 몰랐다. 르랜드 스탠포드 대학은 그런 이미지와 달랐다. 갈색 사암으로 된 블록들이 네모꼴로 목초지 한가운데 늘어서 있었다. 교회의 전면 은 이태리식 모자이크로 되어 있었고, 교실은 니스칠을 한 송판으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투 쟁과 분노의 위대한 세계가 갖가지 대학생 클럽의 기복 속에 재연되고 있었다. 그리고 빛나 는 천사들로 그려왔던 학생들은 더러운 코르덴 바지를 입고 있었으며, 개중에는 공부에 시 달리고 있는 청년들도 있었고, 부모들의 사소한 악덕을 배우고 있는 청년들도 있었다. 집이 있었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던 아론이지만 어쩔 수 없이 향수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는 주위의 생활을 배우려고 하지도 않았고 그 속으로 뛰어들려고도 하지 않았다. 꿈을 쫓고 있던 그는 대학생들의 자연스러운 소음과 소동과 거칠은 행동이 무섭기만 했다. 그는 대학 기숙사를 떠나 침울한 방을 얻어 그곳에서 이제 다시 존재하게 된 또 다른 꿈을 장식했다. 그는 새로운 회색 은신처에서 대학을 차단시켰다. 강의가 끝나면 곧장 집으로 돌아와 새로 발견한 추억 속에 파묻혔다. 레이노드 베이커리 옆 자기 집은 따스하고 귀중하게 되었으며 리이는 친구이자 조언자의 대표가 되었고, 아버지는 냉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신적 존재가 되었고, 카알은 명석하며 쾌활한 동생이 되었고, 그리고 에이브라는 순결한 꿈이 되어 그녀 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밤에 공부가 끝나면 그는 향수욕이라도 하듯이 그녀에게 밤의 편 지를 쓰기 시작했다. 에이브라가 점점 찬란하고 순결하고 아름답게 되어감에 따라, 아론은 자신의 부정한 생각에 더한 즐거움을 갖게 되었다. 그는 흥분하여 비천한 쾌락의 언어를 편 지에 퍼붓고는 마치 성애를 즐기고 난 사람처럼 순화되어 잠자리에 들었다. 그는 모든 사념 을 펀지에다 적고는 이를 부정했다. 결국 그리움이 뚝뚝 떨어지는 연애편지가 되었다. 에이 브라는 고조된 편지를 읽고 아주 불안해 했다. 그녀는 아론의 성 관념이 어떻게 해서 비정 상적인 길로 접어들게 되었는지를 이해를 못하고 있었다. 그는 한가지 과오를 범했다. 그 과오를 인정할 수는 있었으나 반복할 수는 없었다. 그는 혼자서 결심을 하고 있었다. 추수감사절 날에 집으로 가자. 그러면 자신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다시 대학으로 돌아올 것 같지 않았다. 언젠가 에이브라가 함께 농장으로 가서 살자고 제안했던 기억이 났다. 그것이 이젠 그의 꿈이 되었다. 커다란 참나무들, 신선한 공 기, 쑥냄새를 안고 언덕에서 불어오는 바람, 바람에 나부끼는 갈색 참나무 잎새, 이러한 것 들이 기억에 되살아났다. 에이브라가 나무 밑에 서서 일손을 끝내고 돌아오는 자기를 기다 리고 있는 모습이 꿈처럼 보였다. 때는 저녁이었다. 일을 끝내고 나서 작은 골짜기로 속세를 차단시키고 자연과 함께 순수하고 평화롭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추악함과 등지고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저녁이면. 제 48 장 1 11월도 거의 다 가서 니거가 죽었다. 그녀의 유언에 따라 간소하게 장례가 치러졌다. 그녀 의 시체는 뮬러 장의장에서 하룻동안 장식을 한 흑단관에 안치되어 있었다. 말라서 무섭게 된 얼굴은 관 네 귀퉁이에 세워진 네 개의 촛불에 비쳐 더욱 고통스러워 보였다. 키가 작은 그녀의 흑인 남편은 시체 오른쪽 어깨 곁에 고양이처럼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는 여러 시간 동안 죽은 아내처럼 꼼짝 않고 있는 성싶었다. 지시된 대로 조화도 없었고, 예식도 없었고, 설교도 없었고, 곡도 없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장의 소에 문까지 살그머니 와서 안을 들여다보고는 가버렸다. 그들은 변호사, 노동자, 사무원, 은 행가들이었다. 대부분이 중년을 넘은 사람들이었다. 그 집 여자들은 한 번에 한 사람씩 들어 와서는 예의를 차리고 행운을 비는 마음에서 시체를 쳐다보고는 갔다. 인간의 희생만큼이나 절망적이고 유해했던 어둠고 치명적인 성의 명물이 이제 샐리너스에서 사라졌던 것이다. 제 니의 집은 값싼 술과 웃음이 계속 흥청거릴 것이다. 케이트의 집에서도 신경을 찢어내며 사 나이들을 죄스러운 황홀경으로 몰아넣고 흐트러지고 약해진 자신에 놀라게 만들 것이다. 그 러나 부우두 마교의 베물 같은 접촉의 신비는 이제 영원히 사라졌다. 역시 유언에 따라 장례식에는 여구차와 흑인 한 사람이 뒷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자 동차 한 대만이 동원되었다. 찌푸린 날씨였다. 뮬러의 집례에 따라 기름을 칠한 원치로 관이 차에 올려지자 영구차는 떠났다. 남편 혼자서 새 삽으로 묘혈을 묻었다. 백 야드쯤 떨어져서 잡초를 베고 있던 관리인은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곡소리를 들었다. 조오 발레리는 올빼미 술집에서 비버스와 맥주를 마시고 있다가 그와 함께 니거를 보러 갔다. 비버스는 타버네티스를 사기 위해 얼굴이 하얀 헤레포드 종 소를 경매에 붙여야 했기 에 서둘러서 나티비다드로 떠났다. 조오는 빈소에서 나오다 알프를 만났다. 지난 세기에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 있는 알프는 머리가 좀 돌아 있었다. 알프는 닥치는 대로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목수에다 땜장이, 대장 장이, 전공, 미장이, 가위 갈이, 구두 수선공이었다. 알프는 늘 일을 했지만 가난을 면치 못 했다. 그는 누구에 관한 일이건 자초지종부터 모두 알고 있었다. 모든 가정에 드나들면서 모든 잡담에 접할 수 있었던 사람들 중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 이 있었는데, 그 하나는 침모요, 다른 하나는 기공이었다. 알프는 메인 스트리트 양쪽 편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 관하여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는 심술궂은 떠벌이에다가 지칠 줄 모르는 호기심에 차 있었고, 악의는 없지만 양심같은 것을 갖고 있었다. 그는 조오를 보고는 알아맞히려고 애를 썼다. "자네를 알고 있는데 말하지 말게, 알아 맞 힐게." 조오는 슬금슬금 피했다. 그는 자기를 알고 있는 사람을 경계하고 있었다. "잠깐만 기다려. 알았어. 케이트의 집에 있지?" 조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알프가 그 이전의 자기를 알고 있을까봐 겁이 났던 것이다. "맞았어요." 그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한번 보면 얼굴을 잊어버리지 않지. 그 괴상한 잇방을 지을 때 자네를 봤지. 그 여자는 도대체 왜 그런 방을 꾸미는 거요? 창문도 없이." "어둡게 하기 위해서죠. 마담은 눈이 아파요." 조오가 말 했다. 알프는 코를 훌쩍였다. 그는 누가 되었든 단순하거나 좋은 것도 거의 믿지 않았다. 누 가 알프에게 아침인사를 해도 그는 그것을 암호라고 생각했다. 누구나 비밀을 갖고 있기 마 련인데 그 비밀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사람은 자기뿐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뮬러 장의사에게 고개를 홱 돌렸다. "글세, 이것이 이정표야. 이제 옛사람들은 거의 다 갔어. 제니도 없어지고 나면 그것도 끝날 거요. 제니도 곧 갈 거요." 조오는 불안했다. 도망치고 싶었다. 조오가 도망치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프는 알고 있었 다. 알프는 그에게서 도망치려는 사람을 다루는 데 전문가였다. 그와 연결시켜서 생각할 때 그가 이야기 주머니를 들고 다니는 것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어떤 사람에 대하여 흥미있는 이야기를 듣게 되고도 정말 가버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누구나 마음 속으로는 한담가라고 할 수 있다. 알프는 그의 재능 때문에 미움을 사고 있었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조오가 실례한다는 말을하고 떠나버리려 하고 있다는 생각이 문 득 떠올랐다. 옛 소식을 말해 주면 조오가 새 소식을 건네줄지도 모른다고 그는 생각했다. "옛날엔 참 좋았지. 물론 자넨 어렸을 때지." 그가 말을 꺼냈다. "친구를 만나야 해요." 조오가 말했다. 알프는 듣지 못한 척했다. "페이를 생각해 봐요. 그 여자도 마찬가지요." 그는 이렇게 말하고 도중에서 생각난 듯이 말을 이었다. "알다시피 페 이가 케이트의 집을 경영했었지. 케이트가 그 집을 어떻게 인수하게 되었는지 아는 사람은 정말 아무도 없어. 신비스러운 일이었지. 의심하는 사람도 있어." 그는 조오가 만나려고 하 는 사람이 오랫동안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하고 만족해 했다. "무엇을 의섬쩍게 생각했다는 거요?"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이 허무맹랑할 수도 있는 것 을 알고 있지? 하지만 재미있어 보였어." "맥주 한 잔 하시겠어요?" 조오가 제안했다. "나쁠 것 없지." 알플가 말했다. "어떤 친구는 장례식 후에는 침실로 뛰어든다고 말하지. 하지만 이제 젊지 않으니까. 장례식은 나를 목마르게 해 줄 뿐이야. 니거는 대단한 사람이었지. 그 여자 이야기라면 내가 해줄 수 있어. 그 여자를 안 지가 35년... 아니야. 37년이나 되는군." "페이가 누구였어요?" 조오가 물었다. 그들은 그리핀 주점으로 들어갔다. 그리핀 씨는 술이라면 질색이었다. 그는 주정꾼을 정말 싫어했다. 그런 사람이 메인 스트리트에서 그리핀 주점을 경영하고 있었다. 그는 토요일 저 녁이면 충분히 마셨다고 생각되는 30명에게는 술을 팔지 않았다. 이 곳이야말로 방해를 받 지 않고 거래를 하고 조용하게 대화를 나눌수 있는 장소였다. 조오와 알프는 뒷좌석에 앉아 맥주 세 병씩 마셨다. 조오는 사실인 것, 사링이 아니 것, 근거가 있는 것, 없는 것, 심지어는 추악한 추측마저도 모두 듣게 되었다. 이야기를 듣다 보 니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었다. 그러나 몇 가지는 명백했다. 페이의 죽음에는 명확하지는 않 지만 무엇인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케이트는 아담 트레스크의 부인일지도 모른다. 그 생각은 재빨리 감추었다. 트래스크가 복수를 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페이의 문제는 너 무나 중대한 문제라서 손을 댈 수가 없었다. 조오는 그 문제에 대하여 생각을 해야만 했다... 혼자서. 두서너 시간이 지나자 알프는 불쾌해졌다. 조오가 맞장구를 치지 않았던 것이다. 단 한가 지의 정보나 추측도 조오는 넘겨 주지 않았다. 입을 다물고 있는 친구는 무엇인가 감추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알프는 생각했다. 이런 친구와 누가 거래를 하겠는가? 알프가 마지막으로 말을 꺼냈다. "나는 케이트를 좋아하고 있어. 일거리도 가끔씩 주고 돈 도 두둑하게 빨리 주니까 말이야. 그 여자에 대한 소문이 아무것도 아닐지도 몰라. 생각해보 면 차가운 여자지. 그 여자는 정말 눈이 나쁜가?" "나는 마담과 잘 지내죠." 조오가 말했다. 조오의 불성실한 대답에 알프는 화가 나서 바늘로 꼭찌르는 소리를 했다. "나는 우스운 생 각을 했어. 창이 없는 방을 짓고 있을 때야. 그 여자가 차가운 눈초리로 나를 쳐다볼 때 생 각난 거야. 만일 내가 들은 이 모든 일을 그 여자가 알면서도 술 한잔이나 심지어는 컴케이 크라도 건네주면. '감사합니다만 사양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거야." "나하고 마 담은 잘 지내고 있어요." 조오가 말했다. "친구를 만나러 가야겠어요." 조오는 자기 방으로 돌아와서 생각했다. 불안했다. 그는 뛰어 일어나 옷가방을 들추어 보 고 서랍을 열어 보았다. 누군가 자기 물건을 뒤져본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이 들어올 뿐이었 다. 흔적은 없었다. 이것이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는 들은 이야기를 정리해 보려고 애 를 썼다.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델마가 들어왔다. 눈은 부어 있었고 코는 빨갛게 되어 있었다. "케이트가 어떻게 된 거야?" "마담은 요새 아팠지." "그런 얘기가 아니야. 내가 부엌에서 밀 크 세이크를 과일 병에 넣고 흔들고 있을 때 그 여자가 들어와서 나를 때렸어." "그 속에 비번 술이라도 넣고 흔들고 있었나 보지?" "천만에. 바닐라 향료를 넣었을 뿐이야. 나한테 그런 욕을 할 수 없어." "과거지사가 아니야?" "나는 그만두지 않겠어." "넘어가게 되겠지." 텔마는 검고 예쁘고 생각에 잠긴 듯한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자가 의지하는 안전지를 되찾았다. 그녀가 물었다. "조오, 너는 충견이야, 아니면 그런 척하는 거야?" "뭐가 걱정이야?" "걱정 안해." 텔마가 말했다. "개새끼야." 2 조오는 천천히, 조심스럽게, 그리고 심사숙고한 다음에 행동으로 옮기기로 계획을 세웠다. '행운을 잡았다. 잘 이용해야 한다.' 그는 이렇게 다짐했다. 그는 케이트의 방으로 들어가 그녀의 머리 뒤에서 저녁 지시를 받았다. 그녀는 녹색의 보 완용 차양을 내리고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그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그녀는 간결한 지시를 끝내고는 말을 이었다. "조오, 자네는 일에 관심이 있는 건가? 나는 그동안 몸이 아 팠지만 이제 나았어. 거의 나았어." "잘못된 것이라도 있습니까?" "그런 징조가 보여. 텔마가 바닐라 향료를 먹는 것보다는 차라리 위스키를 먹었으면 좋겠어. 위스키 먹는 것도 바라지 않지만, 자네는 자주 빠져나가고." 그의 마음은 도망갈 구멍을 찾았다. "글쎄요, 저는 바빴어요." "바빴다구?" "마담을 위해 그 일을 하느라구요." "그 일이라니?" "에델 건 말이에요." "에델은 잊어버리라니까!" "알았 어요." 조오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자기도 모르게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그 여자를 본 친구 를 어제 만났어요." 만일 조오가 그 여자의 성질을 몰랐었다면 그는 아마 잠깐 동안의 간격을 두지 않았을 것 이다. 거북한 10초 간의 간격이면 족했다. 10초가 지나자 케이트가 나지막하게 물었다. "어 디에서?" "여기서요." 그녀는 회전의자를 서서히 돌려 그를 마주보았다. "자네에게 아무것도 알리지 않고 일을 시키지 말았어야 했는지도 모르겠구만. 잘못을 털어놓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자네에겐 말해 야겠내. 에델을 군 밖으로 내쫓은 것이 나라는 것을 재론할 필요는 없겠지. 그 여자가 나에 게 무슨 짓을 했다고 나는 생각했던 거야." 그녀의 목소리에는 침울한 빛이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았지만 내가 잘못이었어. 그 후에 계속 그 생각이 떠나질 않았어. 그 여자가 나한 테 한 짓은 아무것도 없어. 그 여자를 발견해서 그 보상을 하고 싶은 거야. 내가 그렇게 생 각하는 것을 자네는 이상히 여기겠지." "아닙니다. 마담." "그 여자를 찾아 줘. 내가 그 여자 에게 보상을 해주면 기분이 훨씬 좋겠어. 불쌍한 늙은이야." "찾아 보겠습니다." "그리고 조 오, 돈이 필요하면 말해. 그 여자를 찾으면 내 말을 전해줘. 여기 오기가 싫다면 전화 연결 이 되는 곳을 알려놔요. 돈이 필요한가?" "지금은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전보다도 더 자주 집을 비워햐 할까봐요." "그러도록 해. 자, 됐어." 그는 자신을 껴안고 싶었다. 복도에서 그는 자기 팔꿈치를 쥐어잡고 기쁜 마음이 온 몸에 퍼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자기가 계획한대로 일이 되어간다고 믿었다. 그는 초저녁 속삭 임이 낮게 들리는 어둑어둑한 거실을 지나갔다. 그는 밖으로 나가 바람에 몰리는 구름 사이 로 무수한 별들이 반짝이는 것을 올려다보았다. 조오는 잔소리가 심했던 부친을 생각했다. 부친이 한 이야기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스프 를 날라다 주는 사람을 조심하거라." 조오의 부친이 이렇게 말한 일이 있었다. "스프를 항상 날라다 주는 여자를 예로 들어보자... 그 여자는 무엇인가 바라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을 잊지 말아라." 조오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스프를 날라다주는 친절한 여자. 마담이 그 정도 보다는 더 머리가 좋은 줄 알았는데." 그 여자가 한 말을 놓치지나 않았나를 확인하기 위해 그녀의 말을 반복해 보았다. 아니야... 스프를 날라주는 사람. 그리고 그는 알프의 말을 생각 해 보았다. "만일 그 여자가 술이나 컵케이크를 주었다면" 3 케이트는 책상에 앉아 있었다. 마당에 있는 커다란 쥐똥나무가 바람에 우는 소리가 들렸 다. 바람에도 어두움에도 에델의 모습이 꽉 차 있었다. 뚱뚱하고 게으른 에델이 해마리처럼 가까이에서 나타났다. 멍청한 권태가 그녀를 덮쳤다. 그녀는 옆방인 회색 방 속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어둠 속에 앉아 고통이 손가락 속으로 기어들어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관자놀이에서는 맥박이 뛰었다. 그녀는 목에 걸 려 있는 캡슐을 찾아, 가슴 속에서 따뜻해진 쇠통을 뺨에 문지르자 다시 용기가 솟아났다. 그녀는 세수를 하고, 화장을 하고, 머리를 빗고 느슨한 품파두르 머리에 바람을 넣었다. 그 녀는 복도로 들어가 객실 문앞에 서서 늘 그러했듯이 귀를 기울였다. 문 오른쪽에서 두 여자가 한 여자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케이트가 안으로 들어서자 말이 즉시 멎었다. 케이트가 말했다. "헬렌, 바쁘지 않으면 바쁘지 않으면 나 좀 봐요." 그녀 는 케이트를 따라 복도를 지나서 방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옅은 금발에 맑은 상아와 같은 피부의 여자였다. "마담, 무슨 일이신가요?" 그녀는 두려워하며 물었다. "앉아. 별 것 아니 야. 니거 장례식에 갔었나?" "가면 안되었나요?" "상관 없어. 갔다 왔구나." "네." "그 이야기 좀 해봐." "무슨 이야기를요?" "생각나는 것을 말해." 헬렌은 불안한 듯이 말했다. "글쎄요. 무시무시하기도 했고... 아름답기도 했고." "무슨 말이야?" "모르겠어요. 조화도 없고 아무것 도 없었지요. 단지... 그러니까... 위엄 같은 것이 있었어요. 니거는 무지무지하게 커다란 손잡 이가 달린 까만 나무관 속에 누워 있었어요. 이해하시도록 말을 못하겠네요. 어떻게 이야길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다 표현했는지도 모르지. 그 여자는 무엇을 입고 있었어?" "옷요?" "응, 옷 말이야. 알몸으로 묻지는 않았겠지?" 애쓰는 흔적이 얼굴을 스쳤다. "모르겠네요. 기억이 안나요." 그녀는 결국 이렇게 말했다. "장지에도 갔었나?" "아니예요. 아무도 안 갔어여요... 그 사람 빼고는요." "그 사람이라니?" "남편요." 케이트는 재빨리 말했다. "오늘밤 단골 손님이 있나?" "없어요. 추수감사일 전날이 니까요. 천천히 올 거에요." "잊고 있었구먼. 나가 봐요." 케이트는 그녀가 밖으로 나가는 것 을 보고 나서 불안하게 책상으로 돌아왔다. 수도관 시설 명세서를 들여다보면서 그녀의 왼 쪽 손은 목을 더듬어 쇠줄을 잡았다. 그 줄은 위안과 안도를 주는 것이었다. 제 49 장 1 리이와 카알이 합세하여 아담으로 하여금 역까지 나가지 말도록 종용하고 있었다. 기차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로스엔젤리스까지 가는 '종달새'호 밤열차였다. 카알이 말했다. "에이브라 혼자 나가게 하지 그래요? 에이브라를 제일 먼저 보고 싶을 거 예요." "아론은 다른 사람이 있는지 모를 테니까. 우리가 나가든지 안 나가든지 상관이 없을 겁니다." 리이가 말했다. "나는 아론이 기차에서 내리는 것을 보고 싶은거야." 아담이 말했 다. "그 애는 많이 변했을 거야. 어떻게 변했나 보고 싶어." 리이가 말했다. "집을 떠난 지 2, 3개월밖에 안됐으니 많이 변하진 않았을 겁니다. 더 나아가 들어 보이지도 않을 것이구 요." "많이 변했을 걸. 경험을 쌓으면 변하게 마련이니까." "아버지가 가시면 우리 모두 가야 해요." 카알이 말했다. "너는 형을 보고 싶지도 않니?" 아담이 준엄하게 물었다. "보고 싶죠, 하지만 형이 나를 보고 싶어하지 않을 걸요... 적어도 제일 먼저는." "보고 싶을 거다." 아담 이 말했다. "너는 아론을 깎아내리지 말아라." 리이는 손을 번쩍 쳐들었다. "모두 가야 할까 봐요." "자넨 상상할 수 있나?" 아담이 말했 다. "그 애는 새로운 것을 많이 알 거야. 말씨도 달라졌는지 궁금하군. 동부에서는 아이들이 자기 학교 특유의 말을 하지. 누구나 하버드 대학생과 프린스턴 대학생을 구별할 수 있어. 적어도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더군." 리이가 말했다. "잘 들어봐야겠군요. 스탠포드 대학에선 어떤 사투리를 쓰는지 궁금하네요." 그는 카알을 쳐다보고 미소를 지었다. 아담은 그것이 우 습다고 생각지 않았다. "아론 방에 과일을 갖다 놓았나? 그애는 과일을 좋아해." 그들은 아담의 독촉을 받으면서 기차 도착 시간보다도 반 시간이나 앞서서 남태평양 역에 도착했다. 에이브라는 이미 와 있었다. "내일 저녁식사 때에는 못 가겠어요, 리이." 그녀가 말했다. "아버지가 저더러 집에 있으래요. 가능하면 빨리 가죠." "좀 흥분해 있구먼요?" 리이 가 말했다. "당신은 안 그래요?" "나도 그런 모양이야." 리이가 말했다. "선로 위쪽을 쳐다보 고 파란 불이 커지나 봐요." 기차시간은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자랑과 두려움이 되고 있다. 선로 저쪽 신호등이 빨강 에서 파란으로 바뀌고 헤드라이트 빛이 기다란 커브를 비켜서 역쪽으로 환하게 비칠 때, 사 람들은 시계를 보며 "정각이야." 이렇게 말했다. 그 말속에는 자랑과 안도가 함께 있었다. 우리들에게는 1분, 1초가 점점 중요하게 되었다. 인간의 활동이 점점 교차되고 통함됨에 따라 10분의 1초가 나오게 되고 나아가서는 백 분의 1초에도 새 명칭을 부여하여야 할 것이 틀림없다. 하기야 그럴 때가 오리라고는 믿지 않지 만, 언젠가 초라는 것이 무슨 빌어먹을 거래야 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짧은 시 간 단위에 몰두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은 아니다. 한 가지 일이 늦거나 빠르면 그 주위의 모 든 것이 어리석은 일은 아니다. 한가지 일이 늦거나 빠르면 그 주위의 모든 것이 파괴된다. 그리고 그 혼란은 마치 잔잔한 연못에 떨어진 돌 하나가 파문을 일으키듯이 원을 이루며 밖 으로 퍼져나간다. 종달새 호는 멈출 생각이 없는 듯이 달려 들어왔다. 기관차와 화물차가 지나고 난 후에야 공기 브레이크 소리를 내며 걸리면서 기차가 멈췄다. 기차는 샐리너스에 많은 사람을 실어다 놓았다. 추수감사일에 돌아오는 귀성객들은 손에 손에 선물 보따리를 들고 있었다. 가족들은 이내 아론의 소재를 알아냈다. 그가 보였다. 전 보다도 커보였다. 꼭대기가 펑펑하고 챙이 좁은 아주 멋있는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는 가족들이 나온 것을 보고 달려오면서 모자를 벗어 들었다. 윤기 나던 머리칼을 폼과두르식으로 짧게 잘라서 곤 두서 있었다. 그의 눈은 아주 빛나고 있었다. 가족들은 그를 보고 기뻐서 웃음을 띠고 있었 다. 아론은 옷가방을 내려놓고 에이브라를 꼭 안아 올렸다. 그녀를 내려 놓은 다음에야 아담 고 카알에게 두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리이 어깨에 팔을 두르고 으스러지게 안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들은 일제히 떠들어댔다. "잘 있었어?" "좋아 보이는데." "에이브 라, 아주 예쁜데." "안 그래. 그런데 왜 머리를 깎았지?" "모두들 그렇게 하니까." "그렇지만 머리가 보기 좋은데." 그들은 메인 스트리트를 향해 서둘러 갔다. 센트럴 가의 모퉁이를 돌 아 프랑스 빵이 진열장에 가득히 쌓여 있는 레이노드 베이커리를 지날 때, 레이노드 부인이 밀가루같이 파리한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그들은 집에 도착했다. 아담이 말했다. "커피 좀 가져오게, 리이." "떠나기 전에 준비해 놓았어요. 지금 끓고 있어 요." 그는 컵을 꺼내 놓앗다. 모두가 한자리에 앉았다. 아론과 에이브라는 긴 의자에, 아담은 불빛이 비치는 자기 의자에 앉아 있었고, 리이는 커피를 나르고 카알은 복도로 통하는 문 입구에 서 있었다. 침묵이 흘렀다. 새삼스레 인사를 꺼내기에는 너무 시간이 늦었고, 그렇다 고 다른 말을 꺼내기에는 아직 너무 일렀다. 아담이 말했다. "네 이야기를 전부 듣고 싶구나. 성적은 좋겠지?" "기말 시험이 다음 달에 나 있어요. 아버지." "아, 그러냐. 너는 틀림없이 성적이 좋을 거다." 그러나 무엇인가 참느 라고 애쓰는 빛이 아론의 얼굴을 스쳐갔다. "너, 피곤한 모양이구나." 아담이 말했다. "이야 기는 내일 하기로 하자." 리이가 말했다. "피곤한 것이 아니라 혼자 있고 싶은 것이겠죠." 아담은 리이를 쳐다보고 말했다. "그렇지... 자네 생각은 어때, 그만 자러 갈까?" 그들 대신 에이브라가 그 문제를 해결했다. "전, 여기 오래 있을 수가 없어요. 아론, 집에 까지 바래다 주겠어? 이야기는 내일 만나서 하지." 도중에 아론은 그녀의 팔을 꼭 잡았다. 그는 몸을 떨었다. "서리가 내리려는 가봐." "돌아와 보니 기쁘지?" "응, 기뻐. 할 이야기가 많아." "좋은 이야기?" "그럴지도 모르지. 좋게 생각했으면 좋겠어." "진지한 것 같은데." "진 지한 이야기야." "언제까지 돌아가야 해?" "일요일 밤까지." "그러면 시간이 많구먼. 나도 할 이야기가 많아. 내일이 있고, 금요일과 토요일이 있고, 일요일 종일이 있네. 오늘 밤엔 가지 않아도 괜찮지?" "왜, 못 와?" "다음에 말해줄게." "지금 알고 싶어." "아버지의 그 독특한 성질 때문야." "나에 대해 반대하시는?" "응, 내일 저녁식사를 함께 할 순 없을 거야. 하지만 집에서는 식사를 조금만 할 테니까 리이한테 말해서 내 몫 좀 남겨줘." 그는 계면쩍어했다. 잡고 있던 팔을 늦추고 말을 하지 않는 데서 그녀는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쳐든 얼굴에서 그것을 볼 수 있었다. "오늘밤에 그 이야기를 꺼내지 말았 어야 했나 보지?" "아니야, 해야지." 그가 천천히 말했다. "사실대로 말해줘. 지금도 나와 함 께 있고 싶어?" "그럼, 있고 싶지." "그러면 됐어. 그럼 나는 갈게. 내일 이야기해." 그는 가벼운 키스의 기분고 함께 그녀를 현관에 남겨놓고 떠났다. 그가 너무 쉽게 응낙했 기 때문에 그녀는 기분이 상했다. 자기가 청해 놓고 그것이 받아들여졌다고 해서 기분 상해 하는 자신에게 그녀는 쓴 웃음을 지었다. 키가 큰 그가 가로등 불빛 속으로 재빨리 발걸음 을 옮겨 놓는 것을 그녀는 지켜보았다. '내가 미친 것이 틀림없어. 여러 가지를 상상하고 있 었으니까.' 그녀는 이렇게 속으로 생각했다. 2 아론은 집안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서 자기 방으로 들어와 침대 끝에 앉아서 무릎 사 이로 컵 모양을 이룬 두 손을 내려다 보았다. 그는 자신에 대한 아버지의 기대, 그 기대라는 솜털 속에 새알처럼 자신이 휩싸여 있는 것같이 느꼈다. 좌절되고 무력하게 된 기분이었다. 그 기대의 위력을 오늘밤에야 깨달았다. 그 보드랍고 집요한 위력에서 벗어날 힘이 과연 자 기에게 있는지 생각했다. 그의 생각이 단단해질 것 같지 않았다. 집이 습기로 냉랭한 것처럼 보여 그는 몸서리를 쳤다. 그는 일어서서 가만히 문을 열었다. 카알의 방에 불이 켜져 있었 다. 노크를 하고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그냥 들어갔다. 카알은 새 책상 앞에 앉아 있어싸. 셀로판 종이와 빨간 리본 뭉치를 들고 무슨 일을 하고 있었다. 아론이 들어서자 그는 커다란 지우개로 책상 위의 물건을 서둘러 감췄다. 아론이 미 소지었다. "선물이냐?" "응." 카알은 이렇게 말한 뿐 그 이야기를 더 꺼내지 않았다. "얘기 좀 할 수 있니?" "물론이지! 들어와. 작게 이야기해. 그렇지 않으면 아버지가 들어오실 테니 까. 잠깐도 놓치시려고 하지 않으시니까." 아론이 침대에 앉았다. 그가 너무 오랫동안 말이 없었기 때문에 카알이 물었다. "무슨 일이야... 문제라도 있어?" "아니야, 문제가 아니야. 너 에게 말을 하고 싶엇을 뿐이야. 나는 대학에서 공부를 계속하고 싶지 않아." 카알은 머리를 홱 돌렸다. "싫다고? 왜?" "하고 싶지 않을 뿐이야." "아버지한테는 말하지 않았지? 실망하 실거야. 형이 공부하고 싶지 않다는 것으로 충분히 아버지 기대에 어긋날 거야. 무엇을 하려 고 그래?" "농장을 인수하고 싶었어." "에이브라는 어떻게 하고?" "오래 전 일이기는 하지 만, 그 여자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어." 카알이 말했다. "농사일을 해봐야 돈이 안나와." "많은 돈을 바라지는 않아. 살아갈 정도면 돼." "나는 그렇지 않아. 나는 돈을 많이 벌고 싶어. 그렇게 되어가고도 있고." "어떻게?" 카알은 자기가 형보다 더 나이가 많고 자신감이 있다고 느꼈다. 형을 보호하고 싶은 생각 이 들었다. "형이 학업을 계속한다면 나는 일을 시작해서 기금을 마련하겠어. 형이 학업을 마치면 우리는 동업자가 될 수 있어. 그렇게 되면 일은 잘될지도 몰라." "나는 학교로 돌아 가고 싶지 않아. 왜 내가 돌아가야 해?" "아버지가 바라시니까." "그렇다고 해도 나는 돌아 갈 수 없어." 카알은 형을 무섭게 쳐다보았다. 옅은 색깔의 머리칼이며 미간이 넓은 눈을 보자, 그는 갑 자기 왜 아버지가 아론을 좋아하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잠이나 자지." 그는 빠르게 말 했다. "이번 학기만이라도 끝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지금 괜히 일을 벌이지 마." 아론은 일 어서서 문쪽으로 향했다. "누구에게 줄 선물이냐?" "아버지에게. 내일 보게 될 거야... 식사 후에." "크리스마스도 아닌데?" "알고 있어. 크리스마스보다도 더 좋은 날이야." 아론이 들어간 후에 카알은 선물을 다시 꺼냈다. 그는 열 다섯 장의 지폐를 다시 세어보 았다. 하도 빳빳하여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몬터리 군립 은행은 그 돈을 준비하기 위해 샌 프란시스코까지 사람을 보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충분한 이유가 밝혀져야 했다. 먼저, 열 일곱 살 된 소년이 그만한 돈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 둘째로 그 돈을 갖고 다닌다는 것을 은행 당국에서는 커다란 충격이었으며 믿지 못할 일이었다. 비록 돈을 취급한다는 것이 감 격적인 일이더라도, 은행가들은 돈을 가볍게 취급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 돈이 카알 의 소유라는 것을 은행이 믿기까지는 그것이 정당하게 번 돈이며 카알이 그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윌 해밀튼의 확인이 필요했다. 카알은 지폐를 셀로판 종이로 싸고는 자신은 없지만 빨간 리본으로 나비형 매듭을 지었 다. 그 꾸러미는 손수건같이 보였다. 그는 돈뭉치를 서랍 속 샤쓰 밑에 감추고는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잠이 오지 않았다. 흥분해 있기도 했지만 부끄럽기도 했다. 날이 빨리 밝아 선물을 빨리 드릴 수 있었으면 했다. 그는 하려고 생각한 말을 되뇌어 보았다. "아버지에게 드리는 것이에요." "무엇이냐?" "선물이에요." 그러고 나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이 안 되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엎치락뒤치락하다가 동이 트자 그는 일어나서 옷을 입고 가만 히 집 밖으로 나갔다. 중앙로로 나가자 마틴 노인이 마구간 빗자루로 길을 쓰는 것이 보였다. 시의회는 청소차 구입을 논의하고 있었다. 마틴 노인은 그 차를 운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 렇게 될지 회의적이었다. 재미는 젊은이들이 다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시칼루피의 청소차 가 지나갔다. 마틴 노인은 그 뒤를 적의에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별난 일도 다 있다. 이탈 리아 이민들이 점점 부자가 되고 있었다. 닫힌 문 입구에서 냄새를 맡고 있는 두서너 마리의 개와 샌프란시스코 간이식당 주변에서 졸린 듯한 사람의 움직임을 제외하고는, 메인 스트리트는 아무 기척도 없었다. 페트의 새 택 시가 문앞에 주차해 있었다. 간밤에는 윌리암스 집 처녀들을 샌프란시스코 행 아침 열차에 맞추어 실어다 주느라고 페트는 정신없이 바빴다. 마틴 노인이 카알에게 소리쳤다. "젊은 친 구, 담배 갖고 있나?" 카알은 발걸음을 멈추고 뮤라드 담배갑을 꺼냈다. "아, 고급 담배구 먼." 마틴이 말했다. "난 성냥도 없어." 카알은 마틴의 반백 수염이 불에 그슬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담배에 불을 붙여 주었다. 마틴은 빗자루에 기대고는 외롭게 담배를 빨았다. "재 미는 젊은이들이 다 봐. 나한테 운전을 시키지 않을 거야." "무슨 말입니까?" 카알이 물었 다. "새 청소차 말일세. 못 들었나? 어디 갔었어?" 소식을 웬만큼 듣는 사람치고 청소차 이 야기를 모른다니 그에게는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그는 카알을 잊어먹고 있었다. 바시칼 루피가 그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줄지도 몰랐다. 그들은 돈을 벌고 있었다. 왜건이 셋씩이나 있는데도 새 트럭을 샀다. 카알은 알리설 스트리트로 걸어가 우체국에 들러 632번함 유리문을 들여다보았다. 비어 있었다. 어슬렁어슬렁 집으로 되돌아 왔다. 리이는 이미 일어나 커다란 칠면조의 속을 넣고 있었다. "밤 세웠어?" 리이가 물었다. "아니오. 산보를 나갔어요." "흥분해서?" "네." " 탓하 지 않겠어. 나라도 그랬을 걸. 선물을 준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야. 하기야 받는 것이 더 어 렵긴 하지만, 바보같이 보이기가 일쑤니까. 그렇지 않아? 커피 마시겠어?" "나쁘지 않아요." 리이는 손을 씻고 자기 것과 카알의 것 두 잔을 따랐다. "아론은 어떤 것 같아?" "별일 없 는 것 같던데요." "이야기를 해봤어?" "아니요."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 더 수월했다. 말을 했 다 하면 그가 한 말을 리이는 알고 싶어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날은 아론의 날이 아니었다. 카알의 날이었다. 그는 자기 힘으로 이 날을 애써 만들었고 또 그러기를 바랐다. 자기의 날 로 만들 결심이었다. 아론이 들어왔다. 그는 눈은 아직도 잠이 덜 깨어 몽롱했다. "선몇 시에 저녁 식사를 할 생각이에요, 리이?" "글세... 세 시 반이나 네 시면 어떨까?" "다섯 시쯤 해주겠어요?" "아버 지가 좋다고만 하면 그렇게 하지. 왜?" "에이브라가 그 안에는 올 수 없어요. 아버지에게 말 씀드릴 계획이 있는데 그때에 에이브라도 동석했으면 싶어서." "좋을 것 같군." 리이가 말했 다. 카알은 재빨리 일어서서 자기 방으로 갔다. 그는 스탠드 불이 켜진 책상에 앉아 불안과 분노에 휘말리고 있었다. 아론은 힘도 안들이고 자기 날을 뺏앗아가고 있다. 아론의 날이 될 거다. 그는 갑자기 심한 수치감을 느꼈다. 그는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 중얼 거렸다. '난 시 기하고 있을 뿐이다, 시가하고. 나는 시기하고 싶지 않다.' 마치 뱉으면 깨지기라도 하듯 이 그는 되풀이 말했다. '시기... 시기... 시기.' 그러다가 이제 자책을 하기 시작했다. '난 왜 아버지한테 돈을 주 려 고 하는가? 윌 해밀튼은 내가 아버지를 매수하려고 한닥 말했다. 불경한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니다. 나는 형에 대한 질투에 빠져 있다. 왜 사실을 사실대로 받아들이지 않는가?' 그는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왜 정직하지 못해? 아버지가 아론을 좋아하는 이유를 나 는 알고 있다. 형이 어머니를 닮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그 여자를 이겨내지 못했다. 아버지는 이 사실을 모르시겠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아버지가 그것을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래서 난 그 여자에 대해서도 시기를 하고 있는 거다. 왜 난 이돈을 갖고 도망가지 않는가? 그들 이 나를 그리워 하지도 않을 것이다. 얼마 지나면 내가 존재했었다는 것조차도 잊을 거다. 리이를 제외하고는. 리이가 나를 좋아하는지도 궁금하다.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는 두 주먹을 머리에 얹었다. '아론도 이렇게 자기 투쟁을 할까? 그럴 것 같지 않다. 그러나 어떻 게 알아? 물어볼 수도 있다. 그러나 대답하지 않을 거다.' 카알의 마음은 자신에 대한 분노, 자신에 대한 연민으로 기울었다. 새 목소리가 들려왔다. 차고 냉소적이었다. '네가 정직하다면 자기 학대를 즐기고 있다고 왜 말하지 못하는가? 그 것 이 사실일 거다. 왜 너 자신이 못되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지 못하는가?' 카알은 이 런 생각에 충격을 받았다. 자학을 즐기고 있다고? 물론이다. 자신을 학대함으로써 학대받는 것을 방지하고 있다. 그의 마음은 굳어졌다. 돈을 드려라. 가벼운 마음으로. 어디에고 의존하 지 말아라. 무엇이고 예견하지 말아라. 그리고 잊어버려라. 지금 잊어라. 이 날을 아론에게 주어라. 왜 못해? 그는 벌떡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 아론은 칠면조 가죽을 붙잡아 벌리고 있고, 리이는 거기에 속을 쑤셔 넣고 있었다. 냄비는 뜨거워지면서 소리를 내고 있었다. 리이가 말했다. "1파운드에 20분인데 18파운드야. 20 곱 하기 18이니까 360분... 평균 여섯 시간... 열 한 시에서 열 두 시. 열 두 시에서 한 시..." 그 는 손가락으로 세고 있었다. 카알이 말했다. "형, 일을 끝내고 산보 좀 가지." "어디로?" "마 을을 한바퀴 돌지. 물어볼 것이 있어." 카알은 앞장서서 길을 건너 개리지에르 상점으로 들어갔다. 그는 좋은 술과 포도주를 살 생각이었다. 카알이 말했다. "형, 나한테 돈이 좀 있어. 혀이 저녁식사를 위해 포도주를 사고 싶을 거라고 생각했어. 돈은 내가 낼게." "무슨 종류의 포도주를?" "정말 멋있는 축하연을 벌이자. 샴페인을 사고... 그만하면 형에게 선물이 될 수 있을 거야." 조오 개리지에르가 말 했다. "자네들은 너무 어려서 술을 못 팔겠는데." "디너를 위해서예요. 정말이에요." "미안하 지만 못 팔겠어." 카알이 말했다. "대안을 내죠. 돈은 우리가 지불할 테니 술은 우리 아버지 에게 보내주세요." "그렇게 할 수는 있지. '우이 드 빼르드리'가 좀 있어." 그는 마치 맛이라 도 보듯이 입을 오무렸다. "그건 뭔데요?" 카알이 물었다. "샴페인이야... 파트리지 새의 눈 만큼이나 색이 예쁘지... 핑크색이야. 핑크보다는 약간 짙고 진하지. 한 병에 4달러 50센트 야." "좀 비싸지 않아요?" 아론이 물었다. "비싸지!" 카알이 웃었다. "세 병만 보내주세요." 그리고 아론에게 말했다. "형의 선물이야." 3 카알에게는 그날이 한없이 길었다. 그는 집을 나가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열 한 시 에 아담은 문이 닫힌 징병 사무실로 나가서 새로 도착한 장정들의 기록을 검토했다. 아론은 아주 차분한 것처럼 보였다. 그는 거실에 앉아 오래 된 '리뷰'지의 시사만화를 보 고 있었다. 부엌에서는 칠면조 굽는 냄새가 새어나와 온 집안을 채우기 시작했다. 카알은 방으로 들어가서 선물을 꺼내 책상 위에 놓았다. 그러고는 선물 위에 붙일 카드를 쓰려고 했다. '이버지에게, 케이레브부토'... '케이브레 트래스크로부터 아담 스트래스크에게 ' 그는 두 장을 다 찢어 변소에 처넣었다. 그는 생각했다. 왜 오늘 드려야 되나? 내일이라도 아버지에게 가서 '아버지에게 드리는 선물이에요'라고 말하고 나올 수도 있지 않은가. 그게 더 쉬울지도 모른다. '아니야.' 그는 속으로 크게 말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좋겠다.' 그래야만 했다. 그러나 그의 가슴은 찍어 눌리고 손에는 무대 위에서 놀랄 때처럼 땀이 배었다. 그러고는 아버지에게 유치장에서 자기를 빼내오던 아침을 생각했다. 온기와 친밀감... 기억 에 남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믿음도 '나는 너를 믿는다.' 아버지는 이렇게까지 말씀하셨다. 그러자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다. 세 시쯤 아담이 돌아오는 소리가 들렸고, 얼마 있다가 거실에서 조용조용히 대화를 나누 는 소리가 들렸다. 카알도 아버지와 아론 사이의 대화를 끼어들었다. 아담이 말했다. "시대 가 변했어. 전문가가 되지 않으면 갈 곳이 없어. 네가 대학으로 진학하는 것을 기뻐한 이유 가 바로 그거야." 아론이 말했다. "나도 그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봤어요. 그러나 의심쩍은 것은..." "이제 그만 생각해. 먼저 택한 길이 옳아. 나를 봐라. 나는 정말 많은 것에 대해 얕 은 지식을 갖고 있지만 한가지도 깊이 아는 것이 없어서 그걸 가지고는 이 시대를 살아가지 못하는 거야." 카알이 가만히 자리에 앉았다. 아담은 그를 보지 못했다. 그는 자기 생각에 골똘해 있었다. "자식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야. 그리고 나는 너보다도 세상을 더 잘 아는지도 모르지." 리이가 들여다보았다. "부엌 저울이 고장난 것이 틀림없어요. 칠면조가 눈금보다도 일찍 익는군. 무게가 18파운드도 안 나가요." 아담이 말했다. "계속 더욱이만 해." 그리고는 말을 이었다. "작고한 샘 해밀튼은 이럴 때가 오리라고 예견했었어. 만능 철 학자는 있을 수 없다고. 지식이 양이 너무 많아서 한 사람이 다 알 수는 없는 거야. 사람은 한 부분만을 알게 될 거라고 말했어." "그렇죠." 리이가 문턱에서 말했다. "그는 그것을 슬퍼 했죠. 증오했어요." "지금도 그럴까?" 아담이 물었다. 리이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커다란 국자를 바른손에 들고 있었다. 국물이 카아핏에 떨어질까봐 왼손을 컵 모양으로 오무리고 국자 밑에 받치고 있었다. 방에 들어와서는 그는 그것을 깜박 잊고 국자를 흔들다가 칠면조 국물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물으셨는데 모르겠 군요. 그분이 증오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 대신 내가 증오하고 있는지 모르겠군요." "흥분하 지 말게." 아담이 말했다. "무슨 문제고 더 이상 토론을 벌일 수 없는 것 같네. 그러나 자네 는 그렇게 못하는 것을 개인적인 모욕으로 받아들이는구먼." "지식은 많아지고 사람은 작아 지는지도 모르죠. 원자에 무릎을 꿇으면 사람의 두뇌가 원자만큼 작아지는지도 모르죠. 전문 가란 자기 울타리 밖으로 내다보기 두려워하는 겁쟁이 인지도 모르죠. 전문가가 놓치고 있 는 것을 생각해 보세요... 자기 울타리 너머의 전 세계를 잃고 있지요." "우리는 생계 유지에 관해서만 이야길 하고 있는 걸세." "생계라면 돈이군요." 리이가 흥분하여 말했다. "돈이라면 벌기가 쉽지요. 몇몇 예외는 있지만 돈을 탐내지 않는 사람도 많지요. 그들은 사치와 사랑과 찬양을 원하죠." "그러면 자넨 대학에 가는 것을 반대하나?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그거 야." "미안합니다. 당신이 옳으십니다. 저는 너무 흥분해 있었는가 봅니다. 대학이 자기 생활 과의 연관성을 찾는 곳이라면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런 곳이야, 아론?" "모르겠어요." 아론 이 말했다. 부엌에서 칙칙 소리가 들렸다. "내장이 끓어 넘는구먼." 리이는 부엌으로 달려갔다. 아담 은 다정스럽게 그의 뒤를 바라보았다. "좋은 친구애." 아론이 말했다. "백 살쯤 살았으면 좋 겠어요." 아버지가 껄걸 웃었다. "넌 그가 지금 백 살이 아닌지를 어떻게 아니?" 카알이 물 었다. "아버지, 제빙공장은 어떻게 돼가요?" "잘 돼가. 이윤도 약간 내고 있지." "제가 이윤 을 올리는 두세 가지 이이디어를 갖고 있지요." "오늘은 그만두자." 아담이 재빨리 말했다. "그 얘긴 월요일에 하자. 오늘은 말고. 나는 이렇게 기분 좋은 적이 없었다. 내 기분은... 글 세, 무엇을 성취한기분이라고 할까. 숙면을 한 기분이랄까. 기분 좋게 목욕을 한 기분이라고 할까. 모두가 한자리에 편안하게 모였기 때문인지도 모르지." 그는 아론에게 미소를 지었다. "네가 떠나고 난 후에야 너에게 향하는 우리 마음을 알 수 있었던 거야." "나도 집이 그리 웠어요. 처음 며칠 동안은 죽을 뻔했어요." 아론이 털어놓았다. 에이브라가 달려들어왔다. 그녀의 뺨은 상기되어 있었고, 그녀는 행복해 보였다. "토로 산 에 눈이 내린 것을 보셨어요?" "응, 나도 보았어." 아담이 말했다. "풍년의 징조라고들 하던 데, 우리들도 그것을 활용할 수 있으면 좋겠군." "난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했어요. 여기 서 많이 먹으려고요." 에이브라가 말했다. 리이는 멍청한 노파처럼 요리가 신통치 않다고 사과했다. 가스오븐이 장작 스토브 모양 열이 안 나고, 칠면조도 옛날 칠면조 같지 않다고 투덜댔다. 그러자 그들이 리이보고 마치 칭찬을 받으려는 노파처럼 군다고 말하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푸딩이 들어오자 아담이 샴페인을 터뜨렸다. 사람들은 격식을 차리며 샴페인을 따랐다. 정 중한 분위기가 테이블에 감돌았다. 서로 축배를 했다. 건강을 축하하며 술을 마셨다. 아담은 건강을 빌며 에이브라에게 한마디 했다. 그녀의 눈은 빛났다. 아론은 상 밑에서 그녀의 손을 잡았다. 샴페인을 좀 마시자 카알의 불안도 다소 스려져서 이제는 선물에 대한 걱정도 없어졌다. 아담도 푸딩을 다 먹고는 말했다. "이렇게 좋은 추수감사절일을 지내 보기는 처음이다." 카알은 주머니에서 빨리 리본을 맨 작은 꾸러미를 꺼내 아버지 앞으로 내밀었다. "이게 뭐 냐?" 아담이 물었다. "선물이에요." 아담은 기뻐했다. "크리스마스도 아닌데 선물을 받는구 나. 무엇인지 궁금하구나!" "손수건이네!" 에이브라가 말했다. 아담은 서투른 리본 매듭을 풀 고 셀로판 종이를 폈다. 그는 돈을 보고 놀랐다. 에이브라가 물었다. "무엇이에요?" 그녀가 일어서서 들여다보았고. 아론도 몸을 앞으로 굽 혔다. 문턱에 있던 리이는 불안한 표정을 얼굴에 나타내지 않으려고 애쓰고 이썽ㅆ다. 그는 카알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의 눈에는 기쁨과 승리의 빛이 보였다. 아담은 천천히 손가락을 움직여 금화 증권을 부채꼴로 폈다. 그의 목소리는 먼 곳에서 들 려오는 듯했다. "이게 뭐냐?... 무엇." 그는 말을 중단했다. 카알은 침을 삼켰다. "그것은... 내 가 번 것이에요... 아버지한테 드리려고... 그 상치의 보상을 해드리려고요." 아담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네가 벌었니? 어떻게?" "해밀튼 씨와 합작하여 콩을 가지고 벌었어요." 그 는 서둘러서 말했다. "5센트에 미리 샀는데 가격이 뛰었어요. 1만 5천달러예요. 아버지에게 드리는 거에요." 아담은 지폐를 가지런히 하고는 셀로판 종이로 싸서 양끝을 접었다. 그는 실의에 싸여 리 이를 쳐다보았다. 카알은 불길한 느낌을 느꼈다. 분위기로 보아 파멸하는 기분, 무거운 욕지 기가 그를 엄습하는 것을 느꼈다. 아버지의 말소리가 들렸다. "너는 이것을 돌려줘야 한다." 카알은 멀리서 나오는 듯한 자신의 목소리를 들었다. "돌려줘요? 누구에게요?" "네가 받 은 사람에게." "영국 구매관에게요? 그들에게 돌려줄 수 없어요. 그들은 전국을 돌아다니면 서 12달러 50센트에 콩을 구매하고 있는 걸요." "네가 노략질한 농부들에게 돌려줘." "노략 질을 했다구요?" 카알이 소리쳤다. "시장가격보다 파운드당 2센트나 더 주었는데요. 훔친 것 이 아니에요." 카알은 자신이 공중에 붕 뜨는 기분이 들었다. 시간이 아주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한참 있다가 대답했다. 그 말 사이에는 커다란 공간이 있는 성싶었다. "나는 청 년들을 전장으로 보내고 있다. 내가 사인만 하면 그들은 떠나는거야. 개중에는 죽는 사람도 있고, 또 팔다리를 잃고 의지할 곳 없이 되는 사라들도 있다. 상처를 입지 않고 돌아오는 사 람은 하나도 없다. 얘야, 그런데 내가 그 참상의 덕으로 번 돈을 받을 수 있겠니?" "아버지 를 위해서 했어요." 카알이 말했다. "손해 보상을 해드리고 싶었던 거예요." "난 돈이 필요 없다. 상치만 해도 그렇다. 그 일은 돈을 벌기 위해서 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상치를 그곳 까지 운반할 수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한 일종의 게임이었다. 물론 내가 졌다. 나는 돈을 바 라지 않아." 카알은 앞은 똑바로 보고 있었다. 그는 리이와 아론과 에이브라의 시선이 자기 뺨에 머무 르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는 아버지의 입술을 응시했다. "나는 선물을 주려는 생각을 높이 평가한다. 그런 생각을 해줘서 고맙..." "그러면 제가 보관하지요." "아니다. 나는 앞으로도 그걸 받지 앟겠다. 만일... 네가 네 형이 갖고 있는 것이라고나 할까... 하는 일에 자신감, 그 리고 향상하는 데의 기쁨 같은 것을 나에게 보여주었다면 나는 정말 기뻤을 것이다. 비록 깨끗한 돈이라 하더라도 돈은 거기에 비해 아무것도 아니야." 그는 눈을 좀 크게 뜨고 말했 다. "내 말에 화가 났니? 화내지 말아라. 네가 내게 선물을 주고 싶으면 나에게 훌륭한 생활 을 보여주거라. 그것이 내가 귀중히 여기는 것이다." 카알은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이마에서는 땀줄기가 흐르고 혀에서는 짠 냄새가 났다. 그 는 갑자기 일어섰다. 의자가 넘어졌다. 그는 숨을 죽이며 방을 뛰쳐나갔다. 아다이 뒤에서 소리쳤다. "화내지 말거라." 모두 그를 혼자 있게 내버려두었다. 그는 자기 방에서 책상 위에 팔꿈치를 괴고 앉아 있 었다. 울고 싶었으나 울지 않았다. 눈물을 흘리고 싶었으나 눈물이 머릿속의 뜨거운 쇠망치 를 깨뜨리고 퍼져나올 수가 없었다. 잠시 후에 그의 숨결은 안정되었다. 그리고 그의 머리는 조용하지만 간교하게 작용하기 시작했다. 그는 증오감에 찬 두뇌작용을 억제하려 했으나 옆으로 슬쩍 빠져나가 일을 계속 했다. 그의 억제력은 더욱 미약해졌다. 증오심이 온몸에 스며들어 모든 신경을 마비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제력을 잃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나서 통제력고 공포심이 사라지고 그의 두뇌는 찌르는 듯한 승리감에 소리를 치고 있었다. 그는 종이 쪽에 연필로 들어왔을 때에는 수백 개의 나선형이 그려져 있었다. 나선형 은 점점 작아져 있었다. 그는 쳐다보지 않았다. 리이는 문을 가만히 닫았다. "커피 가져왔 어." "마시고 싶지 앟아요... 아니, 마실께요. 생각을 해줘서 고마워요, 리이 아저씨." "무엇 을? 무엇을 그만두라는 거요?" 리이가 불안한 듯이 말했다. "언젠가 네가 물었을 때, 나는 모든 것은 마음 속에 있는 것이라고 대답한 적이 있지. 너는 그걸 억제할 수 있다고 말했 어... 네가 하려고 한다면 말야." "무엇을 억제한다는 거예요? 무슨 얘기인지 난 모르겠어 요." 리이가 말했다. "내 이야기 들리지? 내가 하는 이야기가 안 들려?" "소리는 들리지만 무슨 뜻이에요?" "아버지는 그러실 수밖에 없었어, 카알. 그분의 천성이 그러시니까. 그분이 알고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어. 다른 도리가 없었는걸 그러나 너는 방법의 선택을 할 수 있 는 거야. 내 이야기 들려? 너는 선택권을 갖고 있는거야." 나선형은 점점 작아지면서 까만 점이 되어 빛났다. 카알이 조용히 말했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대하여 소동을 피우고 있는 것 아니에요? 아저씨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어 요. 어조로 보아 내가 살인이라도 한 것 같군요. 잘못 생각하신 거예요. 리이, 그만둬요." 방안이 조용했다. 잠시 후에 카알은 고개를 돌려 봤다. 방이 비어 있었다. 옷장 위에 놓여 있는 커피 잔에서 김이 오르고 있었다. 카알은 델 정도로 뜨거웠지만 커피를 마시고 거실로 들어갔다. 아버지는 사과하듯이 그를 쳐다보았다. 카알이 말했다. "아버지, 미안합니다. 아버지의 생 각을 미쳐 몰랐어요." 그는 벽로 위에 있는 돈을 집어 도로 안주머니에 넣었다. "이걸 어떻 게 처리해야 좋을지 생각해 보겠어요." 그리고 우연히 말이 튀어나왔다. "다들 어디 있어 요?" "에이브라가 가야 했기 때문에 아론은 같이 나갔고, 리이도 나간 모양이다." "나도 산 보 좀 다녀오겠어요." 4 그 11월의 밤도 저물어가고 있었다. 카알이 앞문을 열자 긴 건너의 프랑스 세탁소 흰 벽 을 배경으로 리이의 어깨와 머리 모습이 보였다. 리이는 계단에 앉아 있었다. 두꺼운 코트를 입고 있어서 투박해 보였다. 카알은 문을 가만히 닫고 거실로 돌아왔다. "샴페인을 마시니 목이 마르군요." 그가 말했 으나 아버지는 쳐다보지 않았다. 카알은 부엌문을 살짝 빠져나와 리이가 가꾸는 시들어가는 채소밭을 지났다. 그리고 높은 담장을 기어올랐다. 그는 시꺼먼 물구덩을 가로지른 24인치 널빤지를 발견하고는 랑스 베이 커리와 양철가게 사이로 나와 캐스트로빌 가로 향했다. 그는 성당이 있는 스토운 스트리트로 가서 왼쪽으로 돌아 카리아가 집과 윌슨 집과 자발 라 집을 지난 다음 중앙로에 있는 스타인백 집에서 다시 왼쪽으로 돌았다. 중앙로를 두 블 록쯤 나가다 왼쪽으로 돌아 웨스트 앤드 학교를 지나갔다. 운동장 앞에 있는 포플라 나무들 에는 거의 잎이 없었지만, 저녁 바람을 타고 노랗게 된 두서너 개의 잎이 빙빙 돌며 떨어지 고 있었다. 카알은 마음은 덤덤했다. 산에서 내려오는 서리로 공기가 찬 것도 알지 못했다. 세 블록쯤 앞에서 그의 형이 가로등 밑을 지나 이쪽으로 오는 것이 보였다. 걸음걸이와 몸 짓으로 보아 그의 형이라는 것을 알았다. 카알은 발걸음을 멈췄다. 아론이 가까이 다가왔을 때 말했다. "형을 찾아 나왔어." "형인 들 어쩔 수 없었겠지. 잊어버려요." 그는 돌아서서 형과 나란히 걸었다. 카알이 말했다. "같 이 갑시다. 보여줄 것이 있어." "무엇인데?" "놀라울 거야. 그러나 아주 재미있어. 형도 흥미 를 갖게 될 거야."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아." 그들은 중앙로를 지나 캐스트로빌 가로 갔 다. 5 샌 조우스 신병 징집사무소의 문은 악셀 중사가 보통 8시에 열었으나 그가 좀 늦으면 캠 프 하사가 열었다. 캠프는 불평을 늘어놓을 것 같지 않았다. 악셀은 별난 사람이었다. 미서 전쟁과 미독 전쟁 사이의 평화시대에 이 육군의 복무기간은 그를 냉혹하고 무질서한 민간생 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만들지 못했었다. 두 복무기간의 한 달 군대생활에서 그는 이 사실 을 깨달았다. 평화 시대의 두 차례에 걸친 군대생활은 그를 전쟁에 적합하지 못한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그리고 전쟁에 나가지 않는 방법을 그는 잘 알게 되었었다. 샌 조우스 신병 징집사무소의 생활은 그가 그런 처세 방법을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 해 주었다. 그는 샌 조우스에 사는 리시의 막내 딸과 희롱하며 지냈다. 켐프는 경험을 많이 쌓지는 못했지만 기본 법칙을 곧잘 배웠다. 고참 하사관들과는 잘 지 내되 가능한 한 장교들은 피했다. 그래서 데일 중사가 넌지시 꾸지람을 해도 별로 개의치 않았다. 8시 30분에 데인이 사무실에 도착했다. 켐프 하사는 책상에서 잠을 자고 있었고, 피곤해 보이는 한 젊은이가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데인은 젊은이를 힐끗 쳐다보고는 의자 뒤로 돌아가 켐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이것 봐, 종달새가 지저귀고 새 날은 밝았도다." 켐프는 배고 있던 팔에서 머리를 들고는 손등으로 코를 닦고 재채기를 했다. "자, 이제 일어나." 중사가 말했다. "손님이 왔어." 켐프 는 눈꼽이 붙은 눈을 껌벅였다. "전쟁이 기다려 줄 겁니다." 데인은 젊은이를 한번 더 자세 히 쳐다보았다. "미남인데. 그들이 저 사람을 잘 좀 살펴 주었으면 좋겠어. 너는 저 친구가 적에게 총을 겨누고 싶어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는 사랑의 도피를 하고 있 는 것 같은데." 중사가 별로 진지하지 않은 것을 알고 그는 안심했다. "여자 때문에 마음의 상처라도 받 은 줄 아십니까?" 그는 중사가 바라는 대로 맞장구를 쳤다. "외인부댄 줄 아세요?" "저 사 람은 자기 자신에게서 도망치고 있는지도 모르지." 켐프가 말했다. "영화를 본 일이 있어요. 거기에 한 중사가 나오는데 아주 개시끼가 나오죠." "그럴 리가 있나." 데인이 말했다. "젊은 이, 이리 오게. 열 여덟 살이라고?" "네, 그렇습니다." 데인은 그의 부하에게 몸을 돌렸다. "자네 생각엔 어때?" "체격만 크면 나이야 충분하죠." 중사가 말했다. "자네가 열 여덟 살이 라고 하자. 믿어도 되지?" "그러믄요." "이 용지에 기록하게. 언제 출생했는가를 생각해서 여 기에 써 넣어. 그리고 그걸 잊으면 안돼." 제 50 장 1 케이트가 가만히 앉아서 몇 시간씩 앞만 응시하고 있는 것을 조오는 좋아하지 않았다. 그 것은 그녀가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아무 표정도 나타나 있지 않으므 로 조오는 그녀의 생각을 가늠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불안했다. 그는 처음으로 붙잡은 행운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에게는 한 가지 계획밖에 없었다. 그녀 자신이 볼 때까지 그녀를 초조하게 내버려두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는 자기 멋대로 뛰어다닐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벽만 쳐다보고 있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그녀는 초조할 것인가, 그렇지 않은 것인가? 그는 그녀가 간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아침식사를 들겠냐고 물었을 때 그녀가 고개만을 천천히 흔들었기 때문에 자기 말을 들었는지조차도 그는 알 수 없었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 조심스럽게 충고했다. '아무 것도 하지 말아라! 주위에서 눈과 귀만 세우고 있으면 돼.' 집안의 여자들도 무엇인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두사람 의 말을 모아보면 제각기 달랐다. 빌어먹을 놈의 쥐대가리 같은 여자들. 케이트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녀의 마음은 마치 박쥐가 저녁 하늘을 날아 다니는 것처럼 여러 가지 인상 속을 헤매고 있었다. 금발을 한 미소년의 얼굴이 보였다. 눈은 충격 을 받아 미친 듯했다. 그녀에게라기보다는 자신에게 내뱉는 그의 추한 말이 들렸다. 말에 기 대어 웃고 있는 검은 머리의 동생 얼굴이 보였다. 케이트 역시 웃었다. 가장 민첨한 최선의 자기보호 수단이었다. 그녀의 아들이 무슨 집을 할까? 그가 조용히 나간 후에 무슨 짓을 했을까? 문을 천천히 닫으며 그녀를 꿰뚫어보던 카알의 눈초리를 그녀는 생각했다. 활기는 없었지 만 완숙한 잔인성이 보이는 눈초리였다. 그는 왜 형을 데리고 왔을까? 무엇을 원했던가? 무엇을 찾으려고 했던가? 그것을 알기만 하면 자신을 보호할 수 있었겠지만 그녀는 알 수 없었다. 통증이 다시 손에 기어들고 있었다. 또 새로운 곳에도 나타났다. 움직일 때 오른쪽 엉덩이 가 신경질나게 아팠다. 통증이 중심을 향해 모여들 것이고 조만간 통증들은 마치 한 덩어리 가 된 쥐새끼처럼 몸의 중심에서 만날 것만 같았다. 조오는 자기 자신에게 내린 충고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그대로 지킬 수가 없었다. 그는 찻 주전자를 문까지 들고 와서 조용히 노크한 다음 문을 열고 들어갔다. "마담 차를 가져왔습 니다." "테이블 위에 놔요." 그녀는 생각난 듯이 말을 이었다. "고맙네, 조오." "기분이 좋지 않으십니까?" "통증이 다시 왔어. 약이 나를 놀렸구먼." "제가 할 일이라도?" 그녀는 두 손 을 들었다. "이것을 잘라 줘... 손목 있는 데에서." 손을 들다 통증이 더하자 그녀는 얼굴을 찌푸렸다. "가망이 없는 것 같아." 그녀는 푸념하듯 말했다. 이렇게 허약한 그녀의 목소리를 조오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이때야말로 내가 끼 어 들 때다.' 그는 본능적으로 생각했다. 그가 말했다. "듣기 싫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 사 람에 대하여 말씀 드릴 것이 있습니다." 그는 그녀가 곧 대답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 녀가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사람이라니?" 그녀가 부드럽게 물었다. "그 여자 말 씀입니다." "아! 아델말이야." "네, 마담." "에델엔 지쳤어. 이번엔 무엇이야?" "일어난 일대 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그대롭니다. 켈로그 담배가게에 있을 때 한 친구가 나한테 나가 와서는 '조오이시죠?' 하고 묻길래 '누구시죠?' 하고 물었죠. '당신은 누굴 찾고 계시죠.' 그 가 말하길래 내가 '얘길 해보쇼.' 했죠. 처음 보는 친구였어요. 그 친구가 또 말하기를 '저기 있 는 친구가 그러는데 그 여자가 당신한테 할 이야기가 있답니다.' 하길래, 난 '하라지요.'하 고 대답했어요. 그는 나를 한참 쳐다보더니 말했어요. '판사가 한 이야기를 당신은 잊었는지도 모르겠소.' 내 생각에 그 여자가 돌아온 것은 그자가 뜻하는 것 같아요." 그는 케이트의 얼굴을 보았다. 잔잔하고 파리했다. 눈은 계속 앞을 응시하고 있었다. 케이 트가 물었다. "돈을 달라고 하던가?" "아니오. 그는 무슨 말인지 모를 말을 했어요. '페이하 고 당신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가?' 하는 거예요. '아무것도 없다'고 했죠. '그 여자에게 묻 는 것이 낫겠구먼.' 하길래 '그럴지도 모르죠.' 하고 대답하고 왔어요. '난 무슨 말인지 모르 겠 소.' 마담한테 물어보겠다고 생각했어요." 케이트가 물었다. "페이라는 이름을 모르는가?" "하나도 몰라요." 그녀의 목소리는 아주 부드러워졌다. "페이가 전에 이 집을 경영했다는 것 을 모른단 말이지?" 조오는 구역질이 나는 것을 느꼈다. 빌어먹을 놈의 바보 같으니라구! 입 을 닥칠 수 없단 말이지. 그의 마음은 갈피를 못잡았다. "글쎄요... 생각이 나는 것 같기도 해요... 들었어요... 페이스 같은 이름이었죠." 그 경악의 빛이 케이트에겐 좋은 약이 되었다. 당황하는 빛을 보자 금발의 머리도, 통증도 사라졌다. 그 표정이 그녀로 하여금 무엇인가 하도록 만들었다. 그녀는 기쁨 같은 기분을 가 지고 그 도전에 반응을 보였다. 그녀는 부드럽게 웃었다. 그녀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페이 스." "조오, 차 좀 따르게." 그의 손이 떨리는 것도, 찻주전자 꼭지가 찾잔에 부딪쳐 소리가 나는 것도 그녀는 알아차 리지 못하는 것같이 보였다. 그가 그녀 앞에 찻잔을 놓고 눈 앞에서 물러나왔을 때마저도 그녀는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 조오는 겁에 질려 떨고 있었다. 케이트는 호소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오, 자네는 나를 도와줄 수 있다고 생각하 나? 만일 내가 자네에게 1만 달러를 주면 모든 것을 마무리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 는 잠시 기다리고 있다가 몸을 돌려 그녀를 정면으로 쳐다보았다. 그의 눈은 눈물이 글썽였다. 그녀는 그가 입술을 핥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가 갑자기 몸을 돌렸을 때 마치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그는 뒤로 물러났다. 그녀의 눈빛은 그를 가지 못하게 잡아 놓았다. "조오, 내가 자네 잘못을 잡아냈는가?" "무엇을 잡으셨는지 모르겠습니 다." "나가서 생각해 봐... 그리고 다시 와서 나에게 말해. 자네는 일을 생각해 내는데 선수 이니까. 테레스를 불러 주겠나?" 그는 참패를 당한 이 방에서 빨리 나가고 싶었다. 그는 일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다. 행 운을 망쳐 버리지나 않았나 걱정했다. 그리고 마담은 "차를 갖다 줘서 고맙네. 착한 사람이 야." 이렇게 까지 말할 담력을 갖고 있었다. 그는 문을 꽝 닫고 싶었지만 감히 그러지 못했다. 케이트는 움직일 때 일어나는 엉덩이의 통증을 피하기 위해 꼿꼿이 일어섰다. 그녀는 책 상으로 가서 종이를 꺼냈다. 펜을 잡기도 어려웠다. 그녀는 온 팔을 움직이면서 썼다. '랄프 씨, 조오 발레리의 지문을 조사해도 괜찮다고 보 안관에게 전해 주세요. 조오, 아시죠? 여기서 일하는 사람. 케이트로부터.' 편지를 접고 있을 때, 테레스가 겁에 질려 들어왔다. "부르셨어요? 잘못한 것이라도 있나 요? 난 최선을 다 했어요. 요즈음 몸이 불편했어요." "이리와요." 테레스가 책상 옆에서 기 다리고 있는 동안 케이트는 천천히 봉투를 쓰고 우표를 붙였다. "간단한 심부름 좀 해줘. 벨 스 과자점에 가서 5파운드짜리 혼합 초콜릿 상자와 1파운드짜리 하나를 사와요. 큰 것은 너 희들이 먹어. 그리고 크라우 약방에 들러 중간 크기의 칫솔 두 개와 치약 하나만 사다 줘. 꼭지가 달린 치약 알지?" "네." 테레스는 크게 안심이 되었다. "너는 훌륭한 여자야. 너를 눈 여겨 봐 왔어. 나는 몸이 좋지 않아. 잘 해주면 내가 입원할 때 너에게 집을 맡길까 하고 깊 이 생각중이야." "입원하시려구요?" "아직 모르겠어. 하지만 나는 네 도움이 필요해. 캔디 살 돈 여기 있어. 중간 짜리 칫솔이야. 알지?" "알아요. 지금 갈까요?" "응, 몰래 나가. 내가 한 이야기를 다른 애들한테 말하지 마." "뒷문으로 나가겠어요." 그녀는 서둘러 나가려고 했다. 케이트가 말했다. "잊어버릴 뻔했네. 이 편지 좀 부쳐 줄래?" "그러믄요. 다른 것은 없어요?" "됐어." 테레스가 나가자 케이트는 구부러진 손가락이 떠받치도록 팔과 손을 책상 우에 올려 놓았 다. 문제는 여기 있었다. 그녀는 항상 있었는지도 모른다. 틀림없이 알고 있었으나 지금 생 각할 필요는 없었다. 그 문제로 되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조오는 제거될 것이지만 또 다른 사람이 있었다. 에델이었다. 조만간... 그러나 지금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그녀는 전체를 살 펴보았다. 가만히 들여다보고는 물러서는 것에 생각이 되돌아갔다. 그 단편이 그녀의 머리에 처음 떠오른 것은 노란 머리의 아들을 생각했을 때였다. 상심하고 당황하고 절망에 빠진 그 의 얼굴이 그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아들의 얼굴처럼 사랑스럽고 참신했던 소녀였던 때였다. 그녀는 항상 자기가 누구보다도 머리가 좋고 또 예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가끔씩 외로운 두려움이 그녀를 엄습하여 그녀 는 울창한 숲처럼 적에 둘러 싸여 있는 기분을 가졌다. 주위의 모든 생각고 말고 표정이 자 기를 해치려는 듯 보였다. 그런데도 도망칠 곳도, 숨을 곳도 없었다. 겁에 질려 울고만 싶었 다. 숨을 곳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어느날 책을 읽게 되었다. 그녀는 다섯 살 때에 이미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책을 기억해 냈다... 은박 표지의 갈색 책이었다. 표지는 찢어졌고 두툼했다. 그것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였다. 케이트는 천천히 팔을 움직여 무게를 팔에서 다소 풀었다. 그책의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길게 생머리를 늘어뜨린 앨리스였다. 그녀의 생활을 변화시켰던 것은 '나를 마셔요.' 라고 적 힌 병이었다. 앨리스가 그녀에게 가려쳐 주었던 것이다. 숲과 같은 적에 둘러싸였을 때, 그녀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주머니에 설탕 병을 넣고 있었다. 빨간 딱지에 '나를 마셔요.'라고 써서 병에 붙여 놓았었다. 그 병의 물을 조금 마시면 그녀는 점점 작아졌다. 적으로 하여금 그녀를 찾게 해보라! 케시는 나무 잎사 귀 밑에 숨기도 하고 개미 구멍에서 밖을 내다 보며 웃기도 했다. 적은 그녀를 찾을 수가 없었다. 문을 닫아도 들락날락할 수 있었다. 허리를 펴고 문 밑으로 걸어다닐 수도 있었다. 그리고 함께 놀 앨리스가 있었다. 그녀를 사랑하고 믿고 있는 앨리스. 앨리스는 그녀의 친 구였다. 그녀가 작아지기를 항상 기다리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참으로 좋았다. 너무 좋아서 비참하게 되는 것도 거의 가치가 있었다. 그러 나 그것이 좋기는 했지만, 항상 보류된 것이 또 하나 있었다. 그것은 그녀의 위협과 안전이 었다. 그 병을 다 마시기만 하면 그녀는 작아지다가 사라져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그녀가 존재하지 않게 될 때 다시는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었다. 이것은 그녀 가 존재하지 않게 될 때 다시는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었다. 이것은 그녀가 좋아한 안전 이었다. 그녀는 잠자리에서 가끔씩 '나를 마셔요.'라는 약을 많이 마셨다가 제일 작은 모기 만 큼 작아진 적이 있었다. 그러나 완전히 사라진 적은 없었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것은 모 든 사람들에게서 차단된 그녀의 보루였다. 케이트는 완전 차단된 소녀시절을 회상하면서 슬픈 듯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떻게 그 훌륭했던 기술을 잊어버렸는지 의아스럽게 생각했다. 그 기술은 그녀를 많은 재앙에서 구해 낼 수 있었을 것이다. 클로바 잎을 통해 비쳐오는 빛은 찬란했다. 캐시와 앨리는 무성한 풀 사이로 팔을 끼고 걸어다녔다. 그들은 가장 친한 친구들이었다. 캐시는 '나를 마셔요.' 약을 전부 마실 필요가 없었다. 친구 앨리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케이트는 굽어진 두 팔 사이의 연습장 위에 머리를 괴었다. 그녀는 춥고 외롭고 쓸쓸했다. 그녀가 무슨 일을 했든 그것은 쫓겨서 한 일이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과 달랐다... 다른 사람 이 가진 것 이상의 것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흐르는 눈물을 닦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명석하고 강인했다.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것을 갖고 있었다. 그녀가 생각에 잠겨 있는 도중에 검은 카알의 얼굴이 그녀 앞에 나타났다. 입가에는 잔인 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중압감에 눌려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들은 그녀가 갖고 있지 않은 것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일단 그것을 알게 되면 준비를 갖출 수 있었다. 오랫동안, 아니, 일생 동안 준비를 갖추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의 마음은 나무같이 움직였고 몸은 꼭두각시처럼 어색하게 움직였다. 그 러나 자기 일은 꾸준히 해나갔다. 정오였다... 식당에서 떠드는 여자들 소리로 알 수 있었다. 게으른 여자들이 막 일어났던 것이다. 케이트는 문잡이를 돌리는데 애를 먹었다. 손바닥으로 돌려서 간신히 열었다. 여자 들은 웃다 말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요리사가 부엌에서 들어왔다. 케이트는 병든 유령같이 보였다. 몸도 굽었지만 어딘가 무시무시했다. 그녀는 부엌 벽에 몸을 기대고 여자들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미소가 그들을 더욱 놀라게 했다. 그것이 비명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조오는 어디 있나?" 케이트가 물었다. "나갔어요." "내 말 좀 들어. 나 는 오랫동안 잠을 못 잤어. 약을 먹고 지금 자려니까 깨우지 말아요. 저넉도 먹지 않겠어. 하루종일 자겠어. 내일 아침까지 그가 방에 오지 못하도록 조오에게 일러줘요. 알겠어?" "네." "잘들 자. 아직 오후이긴 하지만 미리하는 인사이니까." "안녕히 주무세요. 마담." 그들 은 양순하게 합창으로 대답했다. 케이트는 돌아서서 간단한 과정을 계획해 보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책상 쪽으로 갔다. 이번에는 아픔을 참고 손에 힘을 주어 명확하게 썼다. '나의 온 재산을 나의 아들 아론 트 래 스크에게 유산함.' 날짜를 적고 사인을 했다. '캐더린 드래스크.' 손가락을 종이 위에 놓았 다 가 이내 일어서서 유서를 책상 위에 똑바로 놓았다. 방 가운데 있는 테이블에서 식어빠진 차를 찻잔에 따르고는 잇방으로 들고 와 독서 테이 블 위에 놓았다. 화장대로 가서 머리를 빗고 화장수를 얼굴에 바르고 그 위에 분을 가볍게 바르고 늘 사용하는 엷은 립스틱을 발랐다. 마지막으로 손톱을 깨끗이 손질했다. 회색의 방으로 통하는 문을 잠그자 외부의 빛은 차단되고 오직 책상 램프만이 원통형으로 그 빛을 책상 위에 비치고 있었다. 그녀는 베개를 가지런하게 해놓고는 두들겨 보고 앉았다. 그리고 마치 실험이나 해보듯이 아랫 베개에 머리를 기대었다. 마치 파티에라도 가듯이 마 음이 즐거웠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윗저고리에서 쇠줄을 찾아내 작은 튜브를 돌려 캡슐을 손에 털었다. 그녀는 그것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먹자.'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캡슐을 입 속에 넣었다. 찻잔을 들었다. '마시자.' 이렇게 말 하고는 쓰고 찬 차를 삼켰다. 그녀는 억지로 앨리스를 생각했다. 아주 작은 앨리스가 기다리 고 있었다. 그녀의 눈가에서는 다른 여러 사람들이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부모, 찰스, 아담, 새뮤얼 해밀튼, 아론, 그리고 자기에게 미소를 던지고 있는 카알도 보였다. 그는 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의 눈빛이 말을 하고 있었다. '당신에게는 무엇인가 갖지 못 한 것이 있어요. 다른 사람은 갖고 있지만 당신이 갖지 못한 것이 있어요.' 그녀는 앨리스에게 마음을 돌렸다. 맞은편 회색 벽에 못구멍이 있었다. 앨리스는 거기에 있을 거다. 앨리스는 캐시의 허리에 팔을 감고, 캐시는 앨리스의 허리에 팔을 감고 걸어나갈 것이다. 못대가리처럼 작지만 그들은 가장 친한 친구였다. 따스한 마비가 그녀의 사지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손에서 통증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눈 까풀이 무거웠다... 아주 무거웠다. 그녀는 하품을 했다. 그녀는 생각했다. 아니, 말했다. 아니, 생각했다. '앨리스는 알지 못한 다.' 나는 그냥 지나가고 있다. 눈이 감기고 현기증 나는 구역질이 그녀를 뒤흔들었다. 그녀는 눈을 뜨고 겁에 질려 주위 를 살폈다. 회색 방은 어두워지고 원통 빛은 물결처럼 흐르고 있었다. 다시 눈이 감기고 손 가락은 젖가슴을 움켜 쥐듯이 뒤틀렸다. 그녀의 가슴이 엄숙하게 뛰놀고 호흡이 느려지면서 그녀는 점점 작아지다가 사라졌다... 그녀는 이미 존재하지 않았다. 2 케이트에게서 쫓겨난 조오는 마음이 산란할 때면 늘 그러듯이 이발소로 갔다. 머리를 깎 고 계란 삼루로 머리를 감고 토닉을 발랐다. 얼굴 마사지도 하고 손톱도 다듬고 구두도 닦 았다. 보통 때 같으면 이렇게 치장을 하고 넥타이라도 매년 기분이 상쾌했으나, 50센트의 팁 을 주고 이발소를 나왔어도 계속 기분이 울적했다. 케이트는 쥐처럼 그를 덫으로 잡아 놓았던 것이다. 팬티까지 벗겨 놓은 격이었다. 그녀의 재빠른 사색이 그를 혼란시키고 무력하게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무슨 뜻이 있었는지 모르 지만, 모든 것을 맡기겠다는 그녀의 술책이 적지 아니 혼란스러웠다. 초저녁은 지루하게 시작되었다. 그러나 얼마 있다가, 스탠포드 대학 동창회 지부인 '시그 마 알파 엡실론'의 회원 열 여섯 명과 준회원 두 사람이 샌 주안에서의 회의를 마치고 즐거 워하며 들어왔다. 그들은 소란을 피웠다. 서커스 중에 담배를 피우던 플로렌스가 심한 기침을 했다. 피우려고 할 때마다 기침이 나 서 망쳐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망아지는 설사를 했다. 대학생들은 소리를 지르고 서로 어깨를 두드리며 흥겨워했다. 그리고 그들은 못에 박혀 있지 않은 것은 모두 훔쳐갔다. 그들이 떠나고 난 후에, 두 여자가 지리하고 단조로운 말다툼을 했다. 테레스에서는 매독 제 1차 증세가 나타났다. 참으로 지리한 밤이 었다. 복도 저쪽 닫힌 문 뒤에서는 위험한 존재가 조용히 명상에 잠겨 있었다. 조오는 자러 자 기 전에 그 문 앞에 서서 귀를 기울였으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2시 30분에 집 문을 닫고 3시에 잠자리에 들었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그는 일어서서 '바바라 위스의 승리' 를 일곱 장 읽었다. 날이 밝자 조용한 부엌으로 가서 커피를 끓였다. 그는 테이블에 팔꿈치를 얹고 두 손으로 잔을 잡았다. 무엇인가 잘못 되었는데 조오는 무 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에델이 죽었다는 것을 마담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조심하여야 한 다. 그는 마음 단단히 먹었다. 9시에 마담을 보러 들어가서 자세히 들어보자. 전엔 잘못 들 었을지도 모른다. 관람자가 되는 것이 상책이다. 욕심장이가 돼서는 안된다. '천 달러면 됩 니 다.' 하고 말하고는 그곳을 나오는 것이다. 만일 안된다고 말하더라도 그냥 나오는 것이 다. 여자들과 일을 하는 데 신물이 났다. 레노에서 놀음판을 차릴 수 있다. 정규 시간만 일하고 여자도 없다. 아파트를 얻어서 큰 의자와 소파를 차려 놓을 수도 있다. 이 더러운 마을에서 골치 썩힐 필요는 없다. 이 주 밖으로 나가면 더욱 좋다. 지금 당장 나갈 생각을 하고 있었 다. 이 테이블에서 일어나 계단을 올라가 2분 쯤 걸려 옷가방을 챙기고 나가는 거다. 기껏해 야 3, 4분이면 된다. 누구에게도 아무 말 하지 말자. 이런 생각이 그의 마음에 들었다. 처음 에 생각했던 것처럼 에델에 관한 행운이 훌륭한 것이 아닐지도 몰랐다. 그러나 천 달러라는 것은 거금이다. 기다리자. 기분이 나빴을 때 요리사가 들어왔다. 목덜미에 난 종기가 악화되고 있었다. 종기가 번지 지 않도록 계란 속껍질을 환부에 붙이고 있었다. 이런 기분이어서 부엌에 누가 들어오는 것 이 싫었다. 조오는 자기 방으로 돌아가 책을 좀더 읽고 옷가방을 썼다. 어쨌든 집을 나갈 생각이었다. 9시에 그는 케이트의 방문에 노크를 가만히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잔 흔적이 없었 다. 쟁반을 내려 놓고 잇방문으로 가서 여러 번 노크하고 불러보았다. 원통형의 불빛이 책상 위에 비치고 있었다. 케이트의 머리는 베개 깊숙이 파묻혀 있었다. "여기서 밤잠을 주무셨구먼요." 그는 돌아서 그녀 앞으로 갔다. 입술엔 핏기가 없고 반쯤 감 은 눈까풀 사이로 두 눈이 멍청했다. 그는 그녀가 죽은 것을 알았다. 그는 두리번거리다 다른 방으로 재빨리 나가 문이 닫혀 있는가를 확인했다. 그는 정말 빠 른 속도로 화장대와 서랍을 뒤지고 손가방을 열어보고 침대 곁에 있는 작은 상자를 열어보 았다. 그는 가만히 섰다... 그녀는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았다... 은제 머리빗 하나 없었다. 잇방으로 들어가 그녀 앞에 섰다. 반지 하나 핀 하나 없었다. 그러나 목에 걸린 작은 줄이 보였다. 그것을 집어 들고 고리를 풀었다. 작은 금시계 하나와 작은 튜브 하나, 그리고 번호 가 27과 29인 금고 열쇠가 두 개 있었다. '이놈의 매춘부가 저기다가 감춰두었구먼.' 그는 시계를 줄에서 잡아 채 호주머니 속에 넣 었다. 코를 한 대 쥐어박고 싶었다. 그리고 그녀의 책상을 생각했다. 두 줄로 된 친필이 보였다. 누군가가 그 대가를 치를지도 모른다. 유서를 호주머니에 넣었 다. 서류 분류함에서 서류 뭉치를 꺼냈다. 청구서와 영수증이었다. 다음 함에서 보험 서류가, 다음 함에서는 모든 여자들의 기록이 담긴 작은 노트가 나왔고, 그 책자도 호주머니에 넣었 다. 갈색 봉투를 묶어 놓은 고무밴드를 끄르고 한 봉투에서 사진을 꺼냈다. 사진 뒷면에는 케이트의 깔끔하고 날카로운 필적으로 이름과 주소와 직위가 적혀 있었다. 조오는 크게 웃었다. 이것이야말로 큰 행운이었다. 봉투를 하나하나 열어 보았다. 금광이 었다... 이것을 가지면 몇 년 동안은 우려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엉덩이가 큰 시의원 놈 좀 봐! 밴드를 제자리에 놓았다. 맨 윗서랍에는 10달러짜리 지폐 여덟 장고 열쇠 뭉치가 있었 다. 돈을 집어 넣었다. 편지지와 봉함과 잉크가 들어 있는 둘째 서랍을 막 열었을 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걸어나가 빠끔히 열었다. 요리사가 말했다. "어떤 사람이 만나자고 합니다." "누군데?" "내가 어떻게 알아요?" 조오 는 방을 되돌아보고는 밖으로 나와 문을 잠그고 열쇠를 호주머니에 넣었다. 그가 엿볼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오스카 노우블이 커다란 현관방에 서 있었다. 회색 모자를 쓰고 빨간 마커노 코트 깃을 목까지 올리고 있었다. 그의 눈은 연회색이었다... 그의 구렛나루와 같은 색깔이었다. 조오는 가볍게 복도를 따라왔다. 오스카가 물었다. "당신이 조오요?" "누구시죠?" "보안관이 만나보 자고 합니다." 조오는 등골이 싸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구속이요? 영장 있소?" "아니오, 단 지 조사를 하려는 거요. 갑시다." "물론, 가죠." 그들은 함께 나왔다. 조오는 몸을 떨었다. "코트를 입고 올 걸." "입고 오겠소?" "아닙니다." 그들은 캐스트로빌 가를 향해 걸어갔다. 오스카가 물었다. "사진이나 지문을 찍어 놓은 일이 있소?" 조오는 한참 동안 대답하지 않 았다. "있죠." "왜?" "술이 취해 경관을 때렸죠." "글세, 곧 밝혀지겠지." 오스카는 말을 하고 모퉁이를 돌아섰다. 조오는 그때 토기처럼 뛰었다. 길을 가로지르고 철로를 넘어 가게와 차 이나타운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렸다. 오스카는 장갑을 벗고 매커노 코우트 단추를 풀은 후 권총을 꺼냈다. 순발 사격을 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조오는 지그제그로 달렸다. 이제 50야드 나 달려나가 두 빌딩 사이의 공터 가까이에 이르렀다. 오스카는 전신주로 달려가 왼쪽 팔꿈 치를 기대고 왼손으로 바른손을 잡았다. 골목 입구로 총구를 돌렸다. 조오가 조준 안에 들어 오자 발사했다. 조오는 얼굴을 땅에 박고 넘어지며, 1피트 쯤 미끄러져 나갔다. 오스카는 어느 필리핀 당 구장으로 들어가 전화를 걸었다. 그가 나왔을 때에는 이미 사체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 다. 제 50 장 1 1903년 호레이스 퀸은 키프 씨를 이기고 보안관 직에 취임했다. 그는 수석 보안관으로 경 험을 많이 쌓았었다. 대부분의 선거인들은 퀸이 대개의 보안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 에 보안관 직을 맡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었다. 퀸 보안관은 1919년까지 그 임무를 수행했다. 그는 오랫동안 보안관 일을 했기 때문에 몬터리 군에서 자란 우리들은 '보안관'이라는 말 과 '퀸'이라는 이름을 자연히 함께 생각했다. 다른 사람이 보안관 직을 맡는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퀸은 그 직에서 늙어갔다. 그는 어렸을 때의 부상으로 다리를 절었다. 그가 용 감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그는 여러번 권총 격투에서 그 용감성을 보였기 때문이 었다. 그는 정말 보안관같이 보이기도 했다.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유일한 보안관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얼굴은 핑크색이었고 넓었다. 하얀 콧수염은 수송아지의 뿔 모양이었 다. 어깨가 넓고 나이에 비해 다소 뚱뚱하며 위엄이 있었다. 멋있는 스텟슨 모자를 쓰고 노 포크 자켓을 입고 다녔다. 후년에는 총을 어깨걸이 총집에 넣고 다녔다. 허리에 매던 옛날의 총집은 배를 너무 압박했기 때문이다. 1903년에도 자기 군을 잘 알고 있었으나 1917년에는 더욱 잘 알고 통치했다. 그는 샐리너스 계곡의 산첨 그 지방의 일부로서 명물이었다. 아담이 총격을 받은 이래 퀸 보안관은 케이트의 뒤를 계속 추적했다. 페익 죽었을 때에도 케이트가 그랬을지도 모른다고 직감적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의 유죄를 인정할 증거가 적다는 것을 그는 또한 알고 있었다. 현명한 보안관은 불가능한 일에 머리를 받지 않는 법 이다. 결국 그녀들은 둘 다 창녀들 뿐이었다. 그 다음 몇 해 동안 케이트는 그를 정당하게 대했다. 그는 점점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다. 어차피 그런 집이 있어야 할 바에는 책임 있는 사람이 운영하는 것이 나았다. 케이트는 수 배인을 점찍어 놓았다가 정보를 제공해준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녀는 사고를 내지 않고 그 집을 잘 운영했다. 퀸 보안관과 그녀는 잘 지냈다. 추수감사일 다음 토요일 정오경, 퀸 보안관은 조오 발레리 호주머니에서 나온 종이를 들 여다보고 있었다. 38구경 권총 알이 조오의 한쪽 심장을 뚫고 늑골을 부러뜨리고 주먹만한 구멍을 내놓았다. 봉투들은 시커멓게 된 피로 꼭 붙어 있었다. 보안관은 젖은 손수건으로 종 이를 적셔, 붙었던 종이를 떼어 놓았다. 접혀 있었기 때문에 바깥쪽에만 피가 묻어 있던 유 서를 읽어 보았다. 그는 유서를 옆으로 밀어 놓고 봉투에 든 사진을 조사했다. 깊은 한숨을 쉬었다. 봉투에는 하나하나 한 남자의 명예와 마음의 평화를 좌우할 자료가 들어 있었다. 잘만 사 용하면 이 사진으로 해서 여섯 명은 자살할 것 같았다. 이미 케이트는 포르말린 혈관주사를 맞고 뮬러 장의사 테이블 위에 안치되어 있었다. 그녀의 위액은 검시관 사무실의 항아리 속 에 있었다. 사진을 다 보고 나서 그는 전화를 걸었다. "네 사무실로 좀 와 주시오! 점심은 나중에 하고, 중대한 일이오. 기다리겠소." 몇 분 후에 익명의 사나이가 재판소 뒤에 있는 군립 형무소 앞 사무실의 책상 앞에 나타 났다. 퀸 보안관이 그 유서를 내밀었다. "변호사로서 이 유서가 유효하다고 생각하오?" 방문자는 두 줄의 유서를 유효를 읽고 깊은 숨을 들이켰다가 코로 내뿜었다. "내가 알 만 한 사람이오?" "그렇지." "만일 그 여자의 이름이 캐더린 트래스크고, 또 자신의 필적이고, 또 아론 트래스크가 그 여자의 아들이라면, 금덩어리나 다름없지." 퀸은 집게손가락으로 멋 진 콧수염 끝을 치켜올렸다. "당신, 그여자를 알고 있지?" "안다기보다는 누군지를 안다는 거지." 퀸은 팔꿈치를 책상 위에 얹고 몸을 앞으로 굽혔다. "할 말이 있어. 앉으시오." 방문 자가 의자를 끌어당겼다. 그는 코트 단추를 만지작거렸다. 보안관이 물었다. "케이트가 공갈 을 쳐서 금품을 뺐던가?" "천만에. 왜 그러겠어?" "친구로서 묻는 걸세. 그 여자가 죽은 것 을 알지, 말해 봐." "당신이 뭘 알아내려고 하는지 모르겠어. 나를 협박한 사람은 아무도 없 어." 퀸은 봉투에 사진 하나를 꺼내 카드놀이를 하듯 뒤집어 책상 너머로 밀었다. 방문자는 안경을 고쳐 쓰고는 코로 한숨을 내뿜었다. "이럴수가!" 그는 나지막하게 물었 다. "그 여자가 이 사진을 갖고 있다는 것을 몰랐던가?" "알고 있었지. 그 여자가 말을 했으 니까. 제발, 호레이스... 이걸 가지고 무엇을 할 작정이오?" 퀸은 그의 손에서 사진을 뺏았다. "호레이스, 이 사진을 어떻게 할 거요?" "태우겠소." 보안관은 엄지손가락으로 사진 끝을 펄 럭펄럭 넘겼다. "그런 사진이 한 벌은 되네. 이 사진들이 우리 군을 지리 멸렬하게 만든 수 도 있는 것일세." 퀸은 명단을 적었다. 그는 절름거리는 발을 디디고 사무실 북쪽 벽을 등지고 있는 철 스 토브로 갔다. 그리고는 '샐리너스 모닝 저어널'지를 꾸겨 불을 붙이고 떨어뜨리고 스토브를 닫았다. 불이 활활 타오르자 스토브 앞에 있는 작은 운모창 너머로 불꽃이 노랗게 너울거렸 다. 퀸 보안관은 더러운 것이 묻기나 한 듯이 두 손을 탁탁 털었다. "복사판도 저 안에 있 어. 그 여자의 책상을 뒤져 보았는데 다른 프린트는 없었소." 방문자는 말을 하려고 했으나 그의 목소리는 목쉰 소리가 되어 작게 나왔다. "고맙네, 호 레이스." 보안관은 책상 위에서 명단을 들었다. "나 대신 말 좀 해줘요. 여기 명단이 있는데, 내가 사진을 테워버렸다고 일일이 전화를 걸어 주게. 당신은 이 사람들을 전부 아니까. 그들 도 자네에게서 듣는 것이 나올걸세. 신성한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한 사람씩 따로따로 사 실대로 전해 주게. 이것 봐요!" 그는 스토브를 열고 까맣게 된 종이를 휘저어 가루로 만들었 다. "이걸 그들에게 이야기하게." 방문객이 그를 쳐다보았다. 이 친구가 자기를 미워하지 않도록 만들 힘이란 세상에 없다 는 것을 퀸은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의 여생 동안 그들 사이에는 하나의 장벽이 생길 것이고 그 장벽을 누구 하나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호레이스, 어떻게 고마운지 모르겠네." 보안관이 슬픔에 싸여 말했다. "괜찮아. 친구들도 나를 위해 이렇게 해주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야." "빌어먹을 놈의 계집년이." 방문객이 나직 하게 욕을 했다. 퀸은 이 욕의 일부는 자기에게 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보안 관 직도 오래 할 수 없으리라는 것도 그는 알았다.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이 사람들은 내 쫓을 수 있을 것이고 점심이나 가서 먹게. 나는 할 일이 있어요." 1시 15분에 퀸 보안관은 메인 스트리트를 돌아 중앙로로 들어섰다. 그는 레이노드 베이커 리에서 프렌치 빵을 샀다. 아직도 따뜻하고 발효 냄새가 구수하게 나는 빵이었다. 그는 난간 을 잡고 트레스크 집 계단을 올라갔다. 허리에 수건을 드룬 리이가 나왔다. "집에 안 계세 요." "아마 오시는 중일 거요. 징병소로 전화를 걸었으니까. 기다리겠네." 리이는 옆으로 비 켜 서서 그가 들어오도록 하고 거실로 안내했다. "뜨거운 커피 한 잔 드시겠습니까?" "그렇 게 하지." "새로 끓인 것입니다." 리이는 이렇게 말하고 부엌으로 갔다. 퀸은 아늑한 거실을 둘러보았다. 보안관 직을 더 이상 지키고 싶지 않다고 그는 생각했다. 한 의사가 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난 어린애 받기를 좋아해요. 일만 잘 끝내면 기쁨이 따르 니까요.' 보안관은 이 말을 가끔씩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의 입장에서는 일을 잘 끝내도 결 국에는 누구에겐가 슬픔을 남겨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그런 것이 필요했다는 사실도 그에게 있어서는 일의 중요성을 감퇴시키는 것이었다. 본의에서건 아니건 그는 곧 은퇴하게 될 것이다. 누구나 시간에 쫓기다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해보겠다는 은퇴 후의 계획을 갖ㄱ 마련이다. 여행을 한다든가 읽을 체했던 책들을 읽는다든가 하는 것이리라. 그런 황금 시간 이 오면 보안관은 사냥과 낚시질, 산타 루치아 지방을 여행하거나 어렴풋이 기억되는 냇가 에서 캠핑을 해보겠다는 꿈을 여러 해 동안 그려 왔었다. 그러나 그런 때가 거의 다가온 지 금, 그런 일들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땅에서 잠을 자면 다리가 아플 것 같 았다. 사슴고기가 대단히 무겁다는 것, 사냥지에서 다리가 대롱거리는 사슴을 운반하기 얼마 나 힘든가를 그는 생각했다. 솔직히 말해서 그는 사슴고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마담 레이노 드가 고기를 포도주에 절여 양념을 해주기도 하겠지만, 그 정도면 사다 떨어진 신발 가죽도 맛이 좋을 것 같았다. 리이는 커피 끓이는 주전자를 사다 쓰고 있었다. 물이 끓어 유리 돔에 와 부딪치는 소리 가 들렸다. 오래 훈련된 그의 생각은 새로 끓여 놓았다는 리이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데 에 미쳤다. 보안관의 생각은 명석했다... 오랫동안 일을 하여 날카롭게 되어 있었다. 그는 오래 된 얼 굴이나 장면이나 대화를 마음 속에 되새겨 조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마치 레코 드나 필름처럼 재연시킬 수도 있었다. 그는 사슴고기를 생각하면서도 방 안을 이모저모 뜯 어 보고 있었다. 그의 마음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여기엔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 있 어... 이상한 것이 있단 말이야.' 보안관은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방을 살폈다... 꽃 그림이 있는 서양목, 레이스가 달린 커튼, 실을 뽑아 얽어 만든 하얀 테이블보, 그리고 안락의자의 쿠션은 밝고 화려한 무늬로 덮여 있었다. 남자만이 사는 집이지만 여자의 방 같았다. 그는 자신의 거실을 생각해 보았다. 파이프 스탠드를 제외하고는 퀸 부인이 모든 물건을 선택하고 구입하고 닦았다. 파이프 스탠드에 생각이 미치자 그것도 아내가 사준 것이었다. 여자의 방도 하나 있었다. 그러나 이것도 아내가 사준 것이었다. 여자의 방도 하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위조된 방 같았다. 너무나 여성적이었다... 남자가 꾸민 여자의 방이랄까, 과 장되어 있고 지나치게 여성적이었다. 리이가 그랬을 것이다. 아담은 그것을 알아치리지 못하 였을 것이다. 그가 조화를 맞추려고 했을 리는 천부당한 일이었다. 리이는 가정적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했고, 아담은 그것을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호레이스 퀸은 오래 전에 아담을 심문하던 기억이 났다. 고통에 싸인 사람이었다고 생각 되었다. 아담의 겁에 질려 있던 눈빛을 지금도 볼 수 있었다. 그 당시에 그는 아담이야말로 너무나 정직하여 다른 생각은 감히 먹을 수도 없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했었다. 그 후에 그는 아담을 자주 만났다. 두 사람 다 공제조합 회원이기도 하여 회의에도 같이 참석했었다. 호레 이스는 아담의 뒤를 이어 지부장 직도 맡았었고, 두 사람은 명예회원 핀도 달고 다녔다. 그 러다가 아담은 고립되었다. 그러나 에산의 고뇌에 잡혀 있었을 때에는 장벽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아담은 아내의 마음을 통하여 살아 있는 세상과 접촉할 수 있었다. 호레이스는 지금의 그 여자를 생각했다. 회색이 되고 세척을 당하고 천장에 걸려 있는 고무 포르말린 튜브 주사 바늘을 목구멍에 꽂고 있는 그녀의 모습. 아담은 절대로 부정을 저지를 수 없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무엇인가를 갈망하지 않고는 부정해질 수 없는 것이다. 벽뒤에서는 무엇이 진행되는가. 어떤 압력이, 어 떤 기쁨이, 어떤 고통이 진행되고 있는가 하고 보안관은 의아스러워 했다. 그는 다리에 눌리는 몸무게를 덜기 위해 엉덩이를 옮겨 놓았다. 집안은 조용하고 커피 끓 는 소리만이 들렸다. 아담이 징집소에서 돌아오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나도 나이를 먹어 가고 있구먼. 그것이 좋단 말야.' 보안관은 이런 재미있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때 현관 앞에서 아담의 소리가 들렸다. 리이도 그의 소리를 듣고 복도로 달려나갔다. "보안관이 와 계십니다." 리이는 그에게 예고라도 해주려는 듯이 말했다. 아담은 미소를 지 으며 들어와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시오, 호레이스... 영장이라도 가져 왔소?" 정말 훌륭한 농담이었다. "잘 있었소? 당신 집 사람에게 커피 한 잔 얻어 먹을 참이었소." 리이가 부엌으 로 들어가자 잔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아담이 말했다. "좋지 않은 일이라도 있소, 호레이 스?" "내일이야 항상 좋지 않은 거죠. 커피가 올 때까지 기다리겠소." "리이는 상관할 것이 없어요. 어떻게든지 듣는 걸, 묻을 닫아도 들어요. 그에게 감추는 것은 하나도 없어요. 감출 수가 없으니까요." 리이가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그는 속으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가 커 피를 따르고 나가자 아담이 다시 물었다. "무슨 일이오, 호레이스?" "별일 아니오. 그 여자 는 아직도 당신과 결혼한 상태요?" 아담의 몸이 굳어졌다. "그렇긴 하지만 무슨 일이 있 소?" "어젯밤에 자살을 했어요." 아담의 얼굴은 뒤틀리고 눈이 부어오르더니 눈물이 반짝였 다. 입을 다물어 눈물을 안 보이려고 하다가 이내 포기하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울기 시작했다. "아, 불쌍한 사람." 퀸은 조용히 앉아서 그가 감정을 가라앉히기를 기다렸다. 얼마후에 아담은 자제를 하고 고개를 돌렸다. "미안합니다." 리이가 물수건을 들고 들어왔다. 아담은 눈물을 닦고 수건을 내주었다. "예기치 못했소." 아담의 얼굴에는 부끄러운 기색이 떠올랐다. "어떻게 하면 좋겠 소? 내가 그 여자의 시체를 인도하여 매장하겠소."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소." 호레이스가 말했다. "꼭 그렇게 하겠다고 당신이 고집을 부리지 않는다면 말이오. 그 일 때문에 내가 온 것은 아니오." 그는 접은 유서를 호주머니에서 꺼내 내밀었다. 아담은 몸을 움츠렸다. "이게... 이게 그 여자의 핍니까?" "아니요. 절대로 그 여자으 피가 아니예요. 읽어나 봐요." 아담은 두줄의 유서를 읽었다. 종이를 응시하다가 그 너머를 응시 하는 듯했다. "그애는 몰라요... 그 여자가 그애의 어머닌데." "아들에게 여태 말하지 않았 소?" "안 했지요." "저런!" 아담은 진지하게 말했다. "틀림없이 그애는 그 여자의 것을 아무것도 받으려 하지 않을 거요. 찢어버리고 잊읍시다. 아론은 알아도 받으력 하지 않을거요." "그건 안돼요." 퀸이 말 했다. "우리들은 몇 가지 불법직인 일을 저지르고 있어요. 그 여자는 금고 예치를 해두었어 요. 내가 어디서 유서와 열쇠를 발견했는지 당신에게 말할 필요는 없소. 나는 법운 명령을 기다릴 새도 없이 은행엘 가 봤어요. 무슨 관계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지." 더 많 은 사진이 거기에 있을지도 몰라서 가 보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보브 노인이 금고를 열게 하더군. 언제든지 거절할 수도 있었는데도 말이야. 그 속에는 금화 증권이 10만 달러 이상이나 있었소. 돈이 산더미 같았으니까... 다른 것은 하나도 없고 돈뿐이었소." "아무것도 없었소?" "다른 하나가 더 있었는데 그것은 결혼증서였소." 아담은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소원감이 다시 내리덮쳤다. 그와 세상 사이의 부드러운 방어 울타리 같은 것이었다. 그는 커피잔을 보고는 한 모금 마셨다. "당신 생각에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 소?" 그는 침착하고 조용하게 물었다. "나 같으면 어떻게 하겠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뿐이오." 퀸 보안관이 말했다. "내 충고 를 꼭 받아들일 필요는 없어요. 나 같으면 지금 당장 아들을 불러서 모두 털어 놓겠소. 하나 도 빼놓지 않고. 전엔 왜 이야기를 못했었는가 하는 이유도 설명하겠소." "아들이 몇 살이 오?" "열 일곱." "이제 어른이군. 그도 언젠가는 그것을 알아야 할 거요. 당장 모든 것을 알 려주는 것이 좋을 것 같소." "카알은 알고 있어요." 아담이 말했다. "그 여자가 아론에게 유 산을 남겨 놓은 이유를 나는 모르겠군요." "그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당신이 어떻게 생각해요?"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당신이 말하는 대로 할 작정이오. 함께 있어 주시 겠소?" "그렇게 하죠." "리이" 아담이 불렀다. "아론을 찾아 보내. 그애가 집에 있지?" 리이 가 문 입구로 왔다. 잠시동안 무거운 눈까풀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아직 안 돌아 왔습니 다. 학교로 돌아갔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랬다면 나한ㅌ 말을 했겠지. 호레이스, 우리들은 추수 감사 일에 샴페인을 많이 마셨어요. 카알은 어디 있나?" "방에 있습니다." 리이가 말했 다. "카알을 오라고 그래요. 카알은 알거야." 카알의 얼굴은 지쳐 있었고, 어깨는 피로로 축 늘어져 있었으나, 표정은 뒤틀리고 위축되 고 교활하고 천박했다. 아담이 물었다. "형이 어디 있는지 너 아니?" "모르겠는데요." 카알이 말했다. "형하고 같이 있었지 않니?" "아니오." "그애는 이틀이나 들어오지 않았는데, 어디 있는지 아니?" "내가 어떻게 알아요? 내가 형을 돌봐야 하나요?" 아담은 고개를 숙였다. 몸이 약간 떨렸다. 눈 속에서는 작지만 날카롭고 파란 선광이 빛났 다. 그는 명료하지 않게 말했다. "대학에 갔을지도 모르지." 그의 입술은 천금이나 되는 듯 이 보였다. 그리고 그는 잠결에 말하듯이 중얼거렸다. "형이 대학으로 돌아갔다고는 생각지 않니?" 퀸 보안관이 일어섰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다음에도 할 수 있으니 가만 가렵니다. 아담, 좀 쉬어요. 충격을 받았을 테니." 아담은 그를 올려다보았다. "충격 아, 그러지. 고마워요. 조 오지. 대단히 고마워요." "조오지라구요?" "대단히 고마워요." 아담이 말했다. 보안관이 떠나 고 난 후에 카알도 힘없이 벌리고 코를 골았다. 리이는 잠시 동안 그를 쳐다보다가 자기 방으로 갔다. 그는 쳐다보다가 자기 방으로 갔다. 그는 빵상자를 열고는 가죽 표지가 된 작은 책을 꺼냈다. 도금한 압착 장식은 거의 낡아 있 었다... 영역된 마르크스 아우델리우스의 '명상록'이었다. 리이는 행주로 철테 안경을 닦고는 책장을 넘겼다. 그는 의식적으로 마음의 안정을 주는 글귀를 찾으며 자조했다. 그는 입을 놀려가며 천천히 읽어 나갔다. '기억하는 것도 기억되는 것도 오직 하루밖에 지 속되지 않는다. 만물이 우연히 발생하는 것을 계속 관찰하라. 그리고 만물의 본성이 현존하 는 사물을 변화시키고 싶어하고 또 현존하는 사물과 같은 새 사물을 만들고 싶어한다는 생 각에 익숙하도록 하라. 현존하는 만물은 어떤 의미에서 미래에 존재할 씨앗이기 때문이다.' 리이는 다음 페이지를 훑어 보았다. '그대는 곧 죽게 되리라. 그러나 그대는 아직도 차분 하지도 못하고, 마음의 동요에서 벗어나지도 못하고, 외적 사물에 의하여 상처를 받고 있다 는 의혹에서 벗어나지도 못하고, 만물에 지혜롭지도 못하괴 지혜를 발휘하여 공정한 행동도 하지 못하고 있느니라.' 리이는 책에서 눈길을 들었다. 그리고 그는 마치 선현들에게 대답이나 하듯이 책에 대하 여 대답을 했다. "옳은 말씀이십니다. 그러나 그렇기는 어렵구먼요. 죄송합니다. 그러나 이렇 게도 말씀하셨던 일을 잊지 마십쇼. '언제나 지름길을 택하라. 지름길이야말로 자연스러운 길이다.' 이 말씀을 잊지 마십쇼." 그는 끝장까지 책장을 넘겼다. 끝면지에는 목수가 굵은 연 필로 '새뮤얼 해밀튼' 이라고 적혀 있었다. 리이는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그는 새뮤얼 해밀튼이 이 책을 되찾고 싶어했는지, 또 책 훔친 사람을 알고 있었는지 궁금했다. 책을 소유하는 길은 훔치는 수밖에 없는 듯이 리이에 게는 보였었다. 아직도 그는 그일에 대하여 기분좋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책을 빵 상자에 다시 넣으면서 부드러운 가죽 표지를 손가락으로 쓰다듬었다. 그는 혼자 중얼거렸다. '해밀 튼이 누가 훔쳐갔는지 알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누가 훔쳤겠는 가?' 그는 거실로 들어가서 잠들어 있는 아담 곁으로 의자를 끌어당겼다. 2 카알은 팔꿈치를 책상에 괴고 쑤시는 머리를 양손바닥으로 감싸고 앉아 있었다. 위 속은 소용돌이를 치고, 시금털털한 위스키 냄새는 땀구멍이며 옷이며 할 것 없이 온몸에 베어 있 었다. 심지어는 머리 속에서까지 지루하게 고동치고 있었다. 카알은 전에 술에 취한 적이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케이트의 집을 방문했어 도 고통은 해소되지 않았었고 복수를 했어도 승리감을 맛볼 수 없었다. 그의 기억은 머리를 어쩔어찔하게 하는 구름과도 같았고 육감의 파편이 남았다. 그는 사실과 공상을 구별할 수 없었다. 케이트의 집을 나오면서 그가 흐느껴 우는 형의 어깨에 손을 얹었을 때, 아론은 회 초리 같은 손으로 카알을 때려 눕혔던 것이다. 아론은 어둠 속에서 그를 내려다보고 서 있 다가 마치 상심한 어린아이처럼 비명을 지르면서 갑자기 달아났던 것이다. 카알은 지금도 달려가는 발자국 소리와 함께 들려오던 목쉰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카알은 케이트 집 앞마당에 있는 커다란 쥐똥나무 밑에 넘어진 채로 누워 있었다. 기관차들이 원형 차고 옆에 서 수증기를 쁨어내는 소리와 화차들이 굉음을 내며 연결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눈을 감고 있었다. 그때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옆에 와 서 있는 것 같아 눈을 떠 보았다. 누군가가 그의 몸을 굽어 보고 있었다. 그는 케이트라고 생각했다. 그 모습은 조 용히 가버렸다. 얼마 후에 카알은 일어서서 몸을 털고 중앙로를 향해 걸어갔다. 그는 자신의 감정이 하도 태평하여 놀랐다. 그는 작게 노래를 불렀다. '무인지에서 자라는 장미 한 송이, 보기에도 아 름다운 장미...' 금요일, 카알은 하루종일 생각에 잠겨 있었다. 저녁때 조오 리거너는 그 대신 한 쿼트의 술을 사다 주었다. 카알은 너무 어려서 술을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조오는 카알과 함께 가 고 싶었으나 카알에게서 받은 돈에 만족하고 그라파를 마시러 가버렸다. 카알은 애보트 집 뒷골목으로 갔다. 그가 그날 밤 케이트를 처음 보았던 전주 뒤에 그늘 진 곳을 발견했다. 그는 책상다리를 하고 땅에 앉아 욕지기가 나는 것을 참고 위스키를 억 지로 마셨다. 그는 두 번씩이나 토하면서도 계속 마셨다. 땅이 흔들리고 가로등이 찬란하게 빙빙돌았다. 그는 드디어 술병을 놓쳤다. 실신을 하고 말았다. 그러나 무의식중에서도 그는 계속 토했 다. 털이 짧고 꼬리가 감긴 동네 개 한 마리가 그 골목으로 들어와 이리저리 배회하다 카알 의 냄새를 맡고는 주의를 한 바퀴 돌았다. 조오 라거너도 그를 발견하고는 냄새를 맡아 보 았다. 조오는 카알의 다리에 비스듬히 누워 있는 술병을 발견하고는 그것을 집어들고 가로 등에 비추어 보았다. 3분의 1쯤 남아 있었다. 그는 병마개를 찾아 보았으나 발견하지 못하고 술이 새어나오지 않게 엄지손가락으로 병주둥이를 막고는 들고 가벼렸다. 찬 새벽녘의 서리에 정신이 든 카알은 토기를 억누르면서 뭉개진 빈대처럼 몸을 질질 끌 며 집으로 향했다. 집은 멀지 않았다. 골목 입구로 나와 거리를 가로질러 가면 됐다. 리이가 카알의 문소리를 들었다. 그가 비틀대며 복도를 지나 자기 방으로 들어가 침대 위 에 나자빠질 때, 불결한 냄새가 확 깨쳤다. 머리는 찢어지는 듯했고, 잠은 오지 않았다. 그에 게는 슬픔을 이겨낼 힘도 없었고, 수치감에서 벗어날 방도도 없었다. 잠시 후에 그는 최선을 다했다. 얼음같이 찬 냉수로 목욕을 하고 부석으로 온몸을 문질렀다. 마찰에서 오는 통증이 기분 좋았다. 그는 자신의 죄목을 아버지에게 말하고 용서를 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뿐만 아니라 항상 아론에 대하여 겸허한 마음을 가져야겠다고도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는 살 수가 없었 다. 그러나 보안관과 아버지 앞에 불러나왔을 때 그는 심술궂은 개 모양 거칠고 뾰루퉁해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증오가 다른 사람들에게 노출되었다. 사랑을 받지도 못하고 베풀지도 못하는 그는 사악한 들개처럼 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그는 다시 자기 방으로 되돌아왔다. 죄의식이 그를 엄습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것을 퇴치할 아무 방책도 없었다. 아론에 대한 당혹감이 솟구쳤다. 그가 다쳤을지도 모르고 어려움에 빠져 있을지도 몰랐다. 제 앞가림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사람이 바로 아론이었다. 아론을 다시 데려와야 하고 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게 해야 한다고 카알은 생각했다. 자신을 희생시키는 일이 있어도 이 일 을 해야만 했다. 죄의식에 사로잡힌 모든 사람이 그렇듯이 희생이라는 관념이 그를 사로잡 았다. 희생을 각오하고라도 아론을 데려와야했다. 카알은 옷장으로 가서 서랍 속의 손수건에서 납작한 종이 뭉치를 꺼냈다. 그는 방 안을 둘러보고는 자기 쟁반을 책상으로 가져갔다. 숨을 깊이 들이쉬고는 찬 공기가 향긋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빳빳한 지폐 한 장을 꺼내 모서리가 지도록 가운데를 접은 다음 책상 밑에 서 성냥불에 지폐를 태웠다. 두툼한 지폐는 꾸부러지더니 새까맣게 된 종이를 접시에 떨어 뜨렸다. 또다른 지폐를 또 태웠다. 여섯 장의 지폐를 태웠을 때 리이가 노크도 없이 들어왔다. "무엇이 타는 냄새가 나는군." 이렇게 말하며 들어오던 리이는 카알이 무엇을 하는가를 보았다. "저런!" 그가 말했다. 카알은 간섭을 받는 듯하여 긴장을 했으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리이는 팔짱을 끼 고 조용히 지켜보았다. 카알은 지폐를 하나하나 모두 불태웠다. 그리고는 까맣게 탄 종이를 가루로 부숴놓고는 리이가 말을 꺼내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리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움 직이지도 않았다. 드디어 카알이 말했다. "하고 싶은 말을 해봐요." "아니 안 하겠어." 리이가 대답했다. "내 게 할 말이 없으면 나는 잠시 섰다가 나가겠어. 여기에 앉지." 그는 팔짱을 끼고 앉아서 기 다렸다. 그는 혼자웃고 있었다. 미루어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카알은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앉아 있기라면 내가지지 않지요." "시합이라면 그럴지도 모르지." 리이가 말했다. "빨리 설교라도 늘어놓지 그래요." "설교는 하지않겠어." "그러면 도대체 왜 영기 않아 있는 거요?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지 않아요. 어젯밤에는 술을 먹 었어요." "네가 한 일은 짐작을 하고 술취한 일은 술 냄새로 알 수 있지." "냄새?" "아직도 냄새가 나는 걸." "처음이었어요, 좋지 않더군요." "나도 좋아하지 않아. 술을 받지 않아. 게 다가 술을 마시면 사색적이 되긴 하지만 해롱되게 되지." "무슨 말이요. 리이?" "실례를 들 수밖에 없군. 내가 젊었을 때 테니스를 했지. 좋아했지. 뿐만 아니라 하인이 하기에는 좋은 것이었지. 복식 시합을 할 때 주인의 잘못을 덮어두더라도 야단을 맞기는커녕 그 대가로 몇 달라씩 받을 수도 있는 거야. 지금 생각에, 그때 세라주를 먹고 이 세상에서 제일 빠르고 잘 빠져나가는 동물이 박쥐라고 생각했었어. 나는 샌린드로의 감리교 종각에서 한밤중에 체포 되었어. 마침 나는 라켓을 갖고 있었어. 체포하는 경관에게 나는 박쥐를 상대로 백핸드를 연 습중이라고 변명을 했던 거야." 카알이 이 소리를 듣고 하도 즐겁게 웃어대기에 리이는 이것이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었으 면 하고 생각했다. 카알이 말했다. "나는 전신주 뒤에 앉아서 돼지처럼 술을 마셨어요." "항 상 동물을..." "술이 취하지 않았더라면 자살이라도 하고 싶었지요." 카알이 말을 가로막고 자기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야 못했겠지. 그러면 너는 너무 비열하지." 리이가 말했다. "그 런데 아론은 어디 있어?" "도망쳤어요. 어디로 갔는지 몰라요." "그는 그렇게 비열하지는 않 아." 리이는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나도 알고 있어요. 내 생각도 그러니까. 그는 그런 짓을 하지 않을거예요. 그렇지만 리이?" 리이가 퉁명스릅게 말했다. "빌어먹을, 사람이 안심을 하고 싶을 때에는 언제나 친구로 하 여금 자기가 사실이기 바라는 것을 생각하도록 말을 하는 법이지. 웨이터에게 오늘 밤엔 무 엇이 맛있는가를 묻는 것과 같지. 도대체 내가 어떻게 알아?" 카알이 소리를 질렀다. "내가 왜 그랬을까... 내가 왜 그랬을까?" "복잡하게 만들지 말아요. 왜 그랬는지를 자신은 알고 있 지 않아. 너는 그에게 화풀이를 한 거야. 아버지가 너의 감정을 상하게 했으니까. 간단해. 너 는 비열했어." "내가 의아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그거예요... 왜 내가 비열한가. 나는 비열하 고 싶지 않아요. 나를 도와줘요, 리이!" "잠깐만, 아버지 소리가 났어." 그는 문 쪽으로 달려 갔다. "아버지가 우체국에 가신대. 오후엔 편지가 안 오는데. 누구도 그렇지. 그러나 샐리너 스 사람들은 누구나 오후엔 우체국엘 가지." "가는 길에 술을 마시는 사람도 개중엔 있지 요." "일종의 습관이자 휴식이지. 친구도 만나고. 카알, 아버지의 안색이 좋지 않으셔. 몽롱 한 표정이야. 아, 잊고 있었군. 모르고 있지. 네 어머니가 간밤에 자살을 했어." 카알이 말했다. "그랬어요?" 그는 으르렁대듯 말했다. "잘 됐어. 아니,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아.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 또 튀어나왔군. 또!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 리이는 머리를 한번 긁적이더니 이적이더니 계기가 되어 온 머리가 근질댔다. 머리를 온 통 긁으면서 시간을 끌었다. 깊은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다. "돈을 태우고 나니 기분이 좋 아?" "그래요." "너는 자기 채찍질에서 즐거움을 얻고 있는 거야, 아니면 절망을 즐기고 있 는 거야?" "리이!" "너는 자신의 생각으로 꽉 차 있어. 그리고 케이레브 트래스크의 비극적 광경에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 거야. 장엄하고 독특한 케이레브 트래스크야말로 그의 고통을 적기에는 또다른 희랍의 시인 호먹 필요하지. 너는 자신을 코흘리개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 어. 어떤 때는 비열하고... 어떤 때는 놀랍도록 관대한! 행동은 더럽지만 생각은 신비스럽게 도 순수한 사람말이야. 너는 다른 사람들보다도 에너지를 다소 많이 갖고 있는지도 모르지. 그러나 그걸 제외하고는 다른 코흘리개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어. 너는 어머니가 창녀였다 고 해서 위엄을 부리며 비극을 독차지하려고 하는가? 만일 형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너 는 살인자가 되는 영광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니?" 카알은 서서히 책상을 향해 몸을 돌렸다. 리이는 마치 의사가 파하 주사의 반응을 응시하 듯이 숨을 죽이면서 그를 지켜보았다. 갖가지 반응이 카알의 몸 전체에 빛나고 있었다. 모욕 에 대한 분노, 반항, 그리고 그 속에 흐르고 있는 마음의 상처... 그리고 안도의 감정이 시작 되었다. 리이는 한숨을 쉬었다. 그는 아주 열심히, 그리고 아주 부드럽게 설명을 했기 때문에 그의 작업은 일단 성공한 듯이 보였다. 그는 부드럽게 말했다. "우리들은 격렬한 민족이야. 내가 우리라는 말을 써서 나 자신까지 포함시켰는데 그것이 너에겐 이상하게 보이지 않니? 사실 이지 우리들은 불안하고 신경질적이고 범죄적이고 논쟁을 좋아할 뿐만 아니라 용감하고 독 립적이고 관대한 조상의 후예들인지도 몰라. 만일 우리들의 조상들이 그렇지 않았었다면, 그 들은 여기가 아닌 다른 고향에 머물렀다가 땅을 착취당하고 굶어 죽었을 거야." 카알은 리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얼굴엔 긴장감이 사라져 있었다. 그는 미소를 짓 고 있었다. 리이는 카알에게 한 일이 헛수고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카알은 이제 잘된 일이라고 생각하고는 고맙게 여겼다. 리이는 말을 이었다. "그 때문에, 내가 나 자신을 포함시킨 거야. 조상들이 어떤 땅을 버 리고 이곳에 왔든, 우리들은 그 유산을 이어받고 있는거야. 미국 사람들은 피부색이 다르고 혼혈적이기는 하지만 똑같은 기질을 갖고 있어. 우연히 선택된 단일 종족이야. 따라서 우리 들은 지나치게 용감한가 하면 지나치게 겁이 많지. 어린애들처럼 친절하기도 하고 잔인하기 도 하지. 낯선 사람들에게 대해서 지나치게 친절한가 하면 겁을 먹고 있는 거야. 뽐내는가 하면 감수성이 강해.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실제적이야. 세속적이고 물직적이지. 우리만큼 이 상을 위해 행동하는 다른 민족이 또 있을까? 우리들은 게걸스럽게 식사를 하지만 취향과 균 형감을 전혀 갖고 있지 못해. 우리들은 정력을 낭비하고 있는거야. 구토의 사람들은 우리가 중간 문화도 거치지 않고 야만주의에서 퇴폐문화로 넘어가고 있다고들 말하고 있다. 우리의 비평가들이 우리 문화의 열쇠와 우리 문화의 열쇠를 갖지 못하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어 쨌든 우리 모두는 그런 상황에 있는 거야. 너도 예외는 아니야." "이야기를 계속해요." 카알이 미소지으며 말했다. "더 이야기할 필요는 없어. 이제는 끝났 어. 아버지가 돌아오셨으면 좋겠군. 난 걱정이야." 리이는 초조하게 밖으로 나갔다. 리이는 현관문 바로 안 쪽 복도에서 아담이 벽에 기대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모자는 눈 까지 내려와 있었고 어깨는 축 늘어져 있었다. "아담, 무슨 일이에요?" "모르겠어. 피곤한 것 같아." 리이가 팔을 잡고 안방으로 안내했다. 아담은 의자에 무겁게 주저 앉았다. 리이가 그의 모자를 벗겼다. 아담은 바른손으로 왼쪽 손등을 문질렀다. 그의 눈동자가 이상했다. 아 주 맑았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입술은 말라 있었고 두껍게 보였다. 말소리는 잠꼬대처럼 멀 리서 천천히 들려오는 듯했다. 그는 손을 틀림없어. 기절한 일이 한 번도 없었는데. 피오가 씨가 부축해 주었다. "순간적이었어. 기절한 적이 없었는데." 리이가 물었다. "편지는 있었어요?" "응... 응... 있었어." 그는 왼쪽 손을 호주머니 속에 넣 었다가 다시 꺼냈다. "손이 마비된 것 같아." 그는 변명하듯 말하고 바른손을 돌려 호주머니 에 넣었다가 노란 관제엽서를 꺼냈다. "내가 읽은 것 같은데. 읽은 것이 틀림없이." 그는 엽서를 눈앞에 들었다가는 이내 무릎 위에 떨어뜨렸다. "리이, 이젠 안경을 써야겠어. 여태까지 안경이 필요 없었는데. 편지를 읽 을 수 없어. 글자가 빙빙 도는구먼." "제가 읽어드릴까요?" "이상한 일이야. 먼저 안경을 사 러 가야겠어. 그건 그렇고, 뭐라고 쓰여 있는가?" 리이가 읽었다. '아버지께. 저는 군대에 입대했습니다. 나는 열 여덟 살이라고 말했어요. 별일 없을 겁니다. 제 걱정은 마십시오. 아론올림.' "이상한 일이군." 아담이 말했다. "읽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니, 안 읽은 모양이지." 그는 손을 문질렀다. 제 52 장 1 1917년과 1918년의 겨울은 음산하고 겁에 질린 때였다. 독일은 승리를 거듭했다. 3개월 만 에 영국 군인들은 30만의 사상자를 냈고 많은 프랑스 부대는 반란을 일으켰다. 러시아는 전 쟁을 포기했다. 동부의 독일 사단들은 재정비를 한 후 서부전선에 투입되었다. 전쟁은 희망 이 없어 보였다. 우리의 12개 사단이 전장에 투입되기도 전에 5월이 다가왔고, 우리 부대들이 대거 바다를 건너기 전에 여름이 다가왔다. 연합군 장성들은 서로 싸움만 했다. 도해하는 전함들은 독일 잠수함의 밥이 되었다. 우리는 전쟁이란 속결할 수 있는 모험이 아니라 완만하고 복잡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 었다. 이 겨울에 우리들의 사기는 형편없이 되었다. 불꽃 같은 흥분은 사라졌고 그렇다면 끈 덕진 장기전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독일 장군 루텐도르프는 패배를 몰랐다. 그를 저지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지리멸렬한 영, 불 군인들을 계속 공략했다. 때가 너무 늦지 않았을까, 또는 우리 단독으로 무적 독일 군인들에 대항하여 싸워야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전쟁에서 관심을 돌려 환상에 젖는 사람들도 있었고, 악에 빠지는 사람들도 있었고, 환락에 빠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점장이들의 수요가 늘어났고 술집은 성황 을 이뤘다. 그러나 사람들은 도착적인 두려움과 실의에서 도피하기 위하여 내향적으로 개인 적 희비에로 관심을 돌렸다. 오늘날 이러한 사항을 까맣게 잊고 있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 가? 우리들은 제 1차 세계대전을 깃발과 악대와 행진과 귀한 군인으로 연결되고 자기들 때 문에 승진을 거두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빌어먹을 놈의 영국 군인들과 술집에서 논쟁을 벌이 는 전쟁, 그런 속승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 겨울철에 루덴도르프는 결코 패배시킬 수 없고 또 많은 사람들이 마음 속으로 대전한 것으로 생각했던 사실을 우리들은 얼마나 쉽게 잊고 있는가? 2 아담 트래스크는 슬프다기보다는 당혹하고 있었다. 그는 징병 사무소를 사직할 필요는 없 었다. 건강 때문에 결근 휴가를 얻었다. 그는 몇 시간씩 왼손들을 문지르면서 앉아 있었다. 거치른 솔로 문지르고는 뜨거운 물에 담그기도 했다. "혈액순환이 문제야." 그가 말했다. "혈액순환만 제대로 되면 괜찮을 거야. 그런데 눈이 문제란 말이야. 눈이 잘 안 보인 적이 없었는데, 눈 검사를 하고 안경을 써야겠어. 내가 안 경을 쓰다니! 익숙해지기가 힘들겠지. 오늘 가야 하겠는데 좀 어찔어찔하단 말이야." 그는 생각보다는 더 어찔어찔했다. 벽을 짚지 않고는 집을 돌아다닐 수도 없었다. 리이가 그를 부축하여 의자에서 일어날 때도 있었고, 아침이면 기상을 도와주어야 할 때도 있었고, 왼쪽 손에 마비가 왔기 때문에 구두끈을 매주어야 할 때도 종종 있었다. 거의 매일같이 그는 아론에 대한 말을 했다. "청년이 입대하고 싶어하는 이유를 나는 이 해할 수 있네. 아론이 입대하기 전에 나에게 이야기를 했었다 하더라도 입대를 하지 않도록 설득하려고 애를 썼겠지만 막지는 못했을 거야. 리이, 알겠지?" "알겠어요." "그런데 내가 알 수 없는 것은 왜 그가 몰래 입대했는가 하는 거야. 그애는 왜 편지도 쓰지 않을까? 나는 그 애를 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에이브라에겐 편지를 보냈는가? 에이브라에겐 편지 를 쓰겠지." "제가 물어보죠." "물어보게나. 지금 당장." "훈련이 심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요. 시간적 여유가 없는지도 모르죠." "엽서 한 장 띄우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은 아니지." "자네 옛날 옛날 생각을 하게 만드는구먼. 안 썼지. 하기야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 겠지. 나는 입대하기를 원치 않았었지. 아버지께서 억지로 보낸신 거야. 나는 반발하고 있었 으니까. 나에겐 충분한 이유가 있었어. 하지만 아론은 대학에서 공부를 잘하고 있었어. 대학 에서는 그에 관한 문의 편지를 보냈네. 자네도 읽었지 않나? 그애는 옷도 가져가지 않았고, 그 금시계도 가지고 가지 않았단 말이야." "군대에선 옷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고 금시계 도 필요치 않았겠죠. 모든 것이 카키색이니까요." "자네 말이 옳네. 그러나 나는 이해가 잘 안돼. 난 눈을 어떻게 고쳐야겠어. 자네에게 모 든 것을 읽어 달라고 할 순 없지 않은가." 사실 그의 눈이 골치거리였다. "편지만 보면 글씨 가 뒤범벅이 된단 말이야." 그는 하루에도 열 두 번씩 신문이나 책을 들었다가는 도로 놓곤 했다. 리이는 그가 불안해 하지 않도록 신문을 읽어 주었다. 그러나 도중에 아담이 잠들어버리 는 때가 종종 있었다. 그는 잠을 깨고는 이렇게 말하는 때가 많았다. "리이야? 카알이야? 눈 때문에 고생한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내일은 꼭 가서 눈 검사를 해야지." 2월 중순경 카알이 부엌으로 들어가 말했다. "리이, 아버지가 항상 똑같은 말을 하시는데 눈 검사를 해드립시다." 리이는 살구를 데치고 있었다. 그는 스토브가를 떠나 부엌문을 닫고 다시 돌아왔다. "갈 필요가 없어." "왜요?" "난 눈 때문이라고 생각지 않으니까. 사실을 알게 되면 그분이 괴로워할지도 모르지. 당분간 그대로 두자. 그분은 좋지 못한 충격을 받으셨어. 회복할 때까지 그대로 두는 것이 좋아. 그분이 원하는 것은 모두 내가 읽어드릴 테니까." "무얼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말하고 싶지 않아. 에드워드 의사께서 인사차 들를지도 모 르겠어." "마음대로 해요." 카알이 말했다. 리이가 말했다. "카알이 에이브라를 만났어?" "물론 보기야 하지요. 그 여자가 피하기는 하지만." "잡을 수는 없나?" "물론 없죠. 그 여자를 내동댕이치고 뺨을 때려 입을 열게 할 수야 있지만요. 그러나 하지 않겠어요." "허물없는 사이가 된다면야 그럴 수도 있지. 그러나 방파벽이 너무 약해 대기만 해도 사이가 깨져버리는 경우도 있지. 에이브라에게 따라가서 내가 보고 싶단다고 전해 주겠어?" "싫어요." "죄책감이 대단하군 그래?" 카알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 역시 대답하지 않았다. "마음에만 두고 있으면 좋아지기는커녕 기분이 점점 나빠질 걸. 털어놓는 것이 낫지. 미리 이야기해 두 는데. 털어놔요." 카알이 소리쳤다. "내가 한 짓을 아버지께 말씀드리라는 거예요? 그렇게 하라면 하지." "아니야, 카알. 지금 하지마. 아버지가 회복하시면 말씀드려야 할거야. 자신을 위해서 해야 할 거야. 그렇지 않으면 죽게 될 테니까." "나는 죽어서 마땅할지도 모르지." "그런 소리 하지마!" 리이는 냉정하게 말했다. "그런 짓은 가장 값싼 방종일 수도 있어. 그 런 소리 하지마!" "어떻게 그런 말을 하지 않을 수 있지요?" 카알이 물었다. 리이는 화제를 바꾸었다. "에이브라가 왜 한 번도 오지 않는지 모르겠군." "지금 올 이유 가 없지요." "그 여자답지 않구먼. 무언가 잘못 되었어. 그 여자를 봤니?" 카알이 얼굴을 찌 푸렸다. "봤다고 했지 않아요. 당신도 미쳐가고 있구먼 세 번이나 말을 붙이려고 했지만 피 하더라니까." "무엇인가 잘못 됐어. 좋은 여자인데... 틀림없는 여자야." "그 여자는 소녀예 요." 카알이 말했다. "여자라고 하니까 이상하게 들리네요." "아니야." 리이가 부드럽게 말했 다. "날 때부터 숙녀다운 여자가 몇몇 있는 법이야. 에이브라는 여성다운 사랑스러운 점을 지니고 있을뿐만 아니라 용기와 지혜를 겸비하고 있어. 그 여자는 사물을 알고 수용할 수 있지. 에이브라는 소심하거나 비열할 수도 없고, 허영을 부리는 것이 좋을 때를 제외하고는 허영을 부리지 않는 여자가 틀림없어." "그 여자를 치켜세우는군요." "그 여자는 우리를 버릴 사람이 아니야. 보고 싶구먼. 내가 만나잔다고 전해 줘." "나를 피한다고 했지 않아요." "그러면 쫓아가서 내가 보고 싶단다고 말해 줘. 보고 싶어." 카알이 물었다. "아버지 눈 이야기를 다시 할까요?" "싫다." "그러면 아론 이야기를 할까요?" "싫다." 3 카알은 에이브라를 혼자 만나려고 하루종일 애를 쓰다가 방과후에야 그녀가 앞서서 혼자 집으로 가는 것을 보았다. 그는 모퉁이를 돌아 에이브라가 가는 길과 평행선으로 달리는 길 을 내달린 후 시간과 거리를 계산하여 그녀와 마주치도록 돌아왔다. "잘 있었어?" 그가 말했다. "응, 내 뒤에서 오는 줄 알았었는데." "그랬을 거야. 길을 돌아 서 왔지. 이야길 하고 싶어서." 그녀는 그를 진지하게 바라보았다. "그렇게 하지 않고도 할 수 있었는데." "학교에서 이야기를 하려고 했지만 네가 피했지 않아." "너는 화가 나 있었지 않아. 화난 사람하고는 말하고 싶지 않았어." "화난지 어떻게 알았지?" "얼굴 표정이나 걷는 모양을 보고 알 수 있었지. 지금은 화가 안 났네." "안 났어." "내 책 좀 들어다 주겠어?" 그 녀는 미소를 지었다. 카알은 정을 느꼈다. "응, 그러지." 그는 그녀의 교과서를 팔에 끼고 그녀와 나란히 걸었 다. "리이 아저씨가 보고 싶대. 전해달라고 했어." 그녀는 기뻤다. "그래? 가겠다고 해줘. 아 버지는 어떠셔?" "좋지 않으셔. 눈 때문에 고생하시지." 그들은 잠자코 걸었다. 카알은 더 이상 침묵을 견딜 수가 없었다. "아론에 대해서 알고 있 어?" "응, 내 바인더를 열고 둘째 장을 봐." 그는 책을 옮겨 잡았다. 바인더에는 조그마한 엽서 한 장이 들어 있었다. '그리운 에이브라, 나는 마음이 개운치 않아. 나는 너에게 적합 한 사람이 아니야. 언짢게 생각지 말아. 나는 군대 입대해 있어. 아버지 곁에 가지 마. 잘 있어. 아론으로부터.' 카알은 책을 탁 덮었다. "개새끼." 그는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뭐라고?" "아무것도 아니 야." "네가 한 말을 들었어." "그가 왜 떠나버렸는지 알고 있어?" "몰라. 추측은 할 수 있 지... 둘에 둘 더하기처럼 쉽지. 그러나 추측하고 싶지는 않아. 네가 나한테 말해 주지 않는 다면 생각하고 싶지 않아." 갑자기 카알이 말했다. "에이브라, 나를 미워해?" "아니, 하지만 네가 나를 좀 미워하고 있지. 이유가 뭐야?" "네가 두려운데." "그럴 필요 없어." "나는 네가 알고 있는 것보다도 더 너의 마음을 상하게 했어. 그리고 너는 내 형의 애인이고." "어떻게 나를 괴롭혔어? 그리고 나는 네 형의 애인도 아니야." "좋아." 그는 비통하게 말했다. "내가 말해 주지... 네가 물었 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 우리 어머니는 창녀였어. 그 여자는 여기에서 창녀 집을 경영하고 있었어. 나는 오래전에 알고 있었지. 추수감사일 밤에 나는 아론을 그 집으로 데리고 가서 그 여자를 만나게 했지. 나는..." 에이브라가 흥분하여 끼어들었다. "그가 어떻게 했어?" "형은 화가 났어... 미쳤다는 에 나 을 거야. 그는 그 여자에게 막 소리를 쳤어. 밖에 나와 나를 때려눕히고는 도망쳤어. 우리 어머니는 자살하구. 아버지에게도 뭐 잘못된 것이 있어. 이제 나에게 대해서 알게 됐지. 이 제 나를 피할 이유가 생겼지." "그제야 그 사람을 알겠어." 그녀는 차분하게 말했다. "형 말 이야?" "응." "좋은 사람이었지. 내가 왜 옛날 이야기처럼 말하니? 좋은 사람이야. 그는 나처 럼 비열하지도, 지저분하지도 않아." 그들은 천천히 걸었다. 에이브라가 걸음을 멈췄다. 카알도 멈췄다. 그녀는 그를 마주보았 다. "카알, 나는 네 어머니에 대해서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어." "그랬어?" "내가 자는 줄로 알고 우리 아빠 엄마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지. 너한테 할 말이 있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말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애." "말하고 싶어?" "할 수밖에 없어. 이젠 나도 어린 소녀가 아니야. 내 뜻을 알겠어?" "응." 카알이 말했다. "정말야?" "응." "그러면 됐어. 하지만 지금 말하기는 힘든 일이야. 그때 말했더라면 좋았을 걸. 나는 이제 아론을 사랑하고 있지 않아." "왜?" "나 는 그 이유를 알아내려고 노력해 봤어. 우리가 어렸을 때에는 우리가 꾸며낸 이야기 속에서 살아왔어. 하지만 나는 이제 컸기 때문에 허구 가지고는 충분하지 않게 된 거야. 다른 것이 필요한 거야. 허구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야." "그런데..." "기다려... 이야기를 끝내야겠어. 아론은 어른스럽게 되지 않았어. 아마 앞으로도 성인이 되지 못할지도 몰라. 그 는 허구를 바랐고 그 허구가 자기 뜻대로 실현되기를 바라고 있었어. 그는 그것이 다른 방 법으로 나타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던 거야." "너는 어떤데?" "나는 그것이 어떻게 나타나 는가를 알고 싶지 않아. 다만 그것이 진행되는 동안 그 속에 존재하고 싶을 뿐이야. 카알... 우리는 남남이었어. 우리들은 그것에 익숙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진행되도록 했을 뿐이었 어. 그러나 이제는 그 허구를 믿지 않게 되었어." "아론은 어땠고?" "그는 세상을 뿌리째 찢 어발겨야 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 허구를 자기 뜻대로 실현시키려고 했어." 카알은 땅을 내려다보면서 서 있었다. 에이브라가 말했다. "너는 내 말을 믿지?" "나는 그 것을 분명히 하려고 하는 거야." "어렸을 때에는 누구나 자기가 모든 일의 중심이지. 모든 것은 자기를 위해 일어나고 있지. 다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은 자기의 이야기 상대에 불 과한 유령이야. 하지만 크면 사람은 자기 위치를 점유하고 자기의 크기와 모습을 취하게 되 는 법이야. 모든 것이 자기 속에서 빠져나가 다른 사람들에게 옮아가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서 자기 속으로 뛰어 들어오는 것이지. 이런 것은 좋지 않은 것이기도 하지만 또한 아주 좋 은 것이기도 하지. 아론에 대한 이야기를 해줘서 고마워." "왜?" "왜냐하면 이제야 내가 모 든 것을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말이야. 그는 자기 어머니의 정체를 알고 그것을 참을 수가 없었던 거야. 자기의 허구대로가 아니었기 때문이야. 그는 다 른 허구를 받아들이기 싫었던 거야. 그래서 세상을 갈기갈기 찢어놓은 것과 똑같은 방법이 었어." 카알이 말했다. "생각해 봐야겠는데." "내 책 이리줘." 그녀가 말했다. "내가 가겠다고 리이에게 전해줘. 이제 나는 자유스러운 기분이야. 나도 생각해 보고 싶어. 나는 네가 좋아, 카알." "나는 선량하지 않아." "선량하지 않기 때문이야." 카알이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그 여자가 내일 온대요." 그는 리이에게 말했다. "아, 너 는 흥분해 있구먼." 리이가 말했다. 4 집에 돌아온 에이브라는 발끝으로 걸었다. 마루소리가 나지 않도록 복도의 벽 가까이로 걸어들어갔다. 융단을 깐 계단 맨 밑을 지나다가 그녀는 마음을 바꾸어 부엌으로 들어갔다. "왔구나." 어머니가 말했다. "곧바로 집에 오지 않았구나?" "수업 마치고 좀 지체했어야 했 어요. 아버진 좀 나으세요?" "좀 나으셨다." "의사가 뭐라고 했어요?" "처음 말한 그대로야... 과로라는 거야. 쉬셔야 한 대." "피로한 것 같지는 않았는데요." 그녀의 어머니는 상자를 열고는 삶고 있던 감자 세 개를 꺼내 싱크대로 들고 갔다. "너의 아버지는 아주 용감한 분이야. 진작 알았어야 했는데. 아버지는 일상 업무에 전쟁일을 하고 계셨다. 의사 선생님 말씀이 사람이 급격하게 쇠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지 뭐냐." "들어가 서 아버지를 뵐까요?"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으신가 보다. 넛슨 판사가 전화를 걸었는데도 자고 있다고 말하라고 하시더라." "도와드릴 것 없어요?" "가서 옷이나 갈아 입어라. 예쁜 옷을 버릴라." 에이브라는 발돋움을 하고 아버지 방을 지나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밝은 벽질에 니스칠 을 하여 아주 산뜻했다. 옷서랍 위에는 틀에 넣은 부모의 사진이 있고 벽에는 역시 틀에 넣 은 벽화가 걸려 있었다. 그리고 옷장이 있었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고, 마루 역시 니스 칠이 되어 있었고, 신발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어머니는 딸을 위해 모든 것을 해주었다... 딸을 위해 계획도 세워 주고 옷도 사주었다. 에이브라는 오래 전부터 사물을 자기 방에 두지 않았다. 이렇게 한 지가 꽤 오래되었기 때문에 자기 방을 비밀스러운 장소로 생각하지 않았다. 사적인 것은 마음속에 간직해 두었 다. 그녀는 몇 통의 편지를 거실에 있는 두권의 '율리시즈 그랜트' 속에 차곡차곡 두었다. 그 책은 그녀가 알고 있는 한 출판된 이래 한 번도 자신 이외의 다른 사람이 펼쳐본 적이 없었 다. 에이브라는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그 이유를 캐보지 않았다. 그녀는 물어보지 않고도 몇 가지 일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입밖에 내지 않았다. 예를 들면 그녀는 부인이 아프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무엇으로부턴가 자기 은신을 하고 있었다. 마찬가지 로 아담 트래스크는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길을 걷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부친이 병을 앓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어머니가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에이브라는 옷을 벗고는 무명 피나포를 입었다. 집안 일을 돌볼 때 입는 옷이었다. 그녀는 머리를 빗고, 아버지 방을 살금살금 지나 계단 밑으로 내려갔다. 계단 맨 밑에서 바인더를 열어 아론에게서 온 엽서를 꺼냈다. 그리고 거실로 들어가 '회고록 제2권'을 흔들어 아론의 편지들을 꺼낸 후 꼭꼭 접어서 팬티 고무줄 밑에 끼어 넣었다. 편지 묶음 때문에 그녀는 다 소 뚱뚱해 보였다. 부엌으로 들어가 이를 은폐하기 위해 헐렁헐렁한 앞치마를 둘렀다. "홍당무 껍질을 좀 벗겨라." 그녀의 어머니가 말했다. "물이 뜨거우냐?" "막 끓기 시작했 어요." "그 컵에 고기국물 한 큐브만 넣거라. 의사 말씀이 그것이 아버지 건강에 좋다고 하 더라." 어머니가 김이 나는 컵을 들고 이층으로 올라갔을 때 에이브라는 소각로를 열고 편 지를 소각했다. 어머니가 들어오면서 말했다. "무슨 타는 냄새가난다." "쓰레기를 태웠어요. 가득 차 있어서요." "그런 일을 할 때에는 물어보고 하거라. 아침에 부엌에 덥히기 위해 모 아두고 있었다." "미안해요, 어머니. 미처 생각을 못했어요." "생각을 해야지. 요새는 네가 생 각 없이 일을 하는 것 같구나." "미안해요." "절약이 버는 거야." 식당의 전화 벨이 울렸다. 어머니가 전화를 받았다. "아니, 만날 수 없어요. 의사의 지시예 요. 누구도 만나면 안 돼요." 어머니가 부엌으로 다시 돌아왔다. "넛슨 판사가 다시 걸었어." 제 53 장 1 다음날 수업을 받는 동안, 에이브라는 리이를 만날 생각에 내내 기분이 좋았다. 노는 시간 에 복도에서 카알을 만났다. "내가 가겠단다고 리이에게 전했어?" "그는 과일파이를 만들고 있었어." 카알이 말했다. 카알은 목을 죄는 듯한 높은 칼라에 맞지 않는 약식 군복을 입고 각반을 두르고 있었다. "교련이 있는 모양이네. 내가 먼저 가게 되겠군. 무슨 파인데?" 에이 브라가 말했다. "모르겠어. 두서너 개만 남겨줘. 딸기 냄새 같은 것이 났어. 두 개만." "리이에게 주려고 산 선물을 보겠어? 이것 봐!" 그녀는 작은 마분지 상자를 열었다. "새로 나온 감자깎기야. 껍데기만 벗겨져. 아주 쉬워. 리이에게 주려고 샀어." "내 파이 남겨 둬. 내가 좀 늦더라도 먼저 가지 마!" "내 책을 집까지 갖다 줄래?" "그러지." 카알이 눈길을 돌리고 싶을 때까지 에이브라는 그의 눈 속을 들여다 보았다. 그러고는 자 기 교실로 갔다. 2 아담은 늦잠을 자곤 했다. 아니, 낮이고 밤이고 잠깐씩 자주 잠을 잤다. 리이는 여러 번 들여다보고서야 아담이 잠깬 것을 발견했다. "오늘 아침 기분이 상쾌한데." 아담이 말했다. "아침이라고 하시지만 열 한 시가 다 됐습 니다." "저런! 일어나야겠군." "무엇하러요?" 리이가 물었다. "무엇하러? 그렇지. 별일이 없 지. 하지만 기분이 좋은 걸. 징병 사무소까지 걷고 싶은데. 밖은 어때?" "차갑습니다." 그는 아담을 부축해 일으켰다. 아담은 단추를 낀다든가 구두끈을 맨다든가 앞길까지 물건 을 들고나간는 일이 힘들었다. 리이가 부축하고 있는 동안 아담이 말했다. "꿈을 꾸었어... 명료한 꿈이야. 아버지 꿈이었어." "들어 알기로는 위대한 노신사였다지요. 계씨의 변호사가 보낸 신문 절단지에서 읽은 적이 있어요. 위이이셨던 것이 틀림없지요." 아담이 리이를 차분 하게 쳐다보았다. "그분이 도둑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나?" "꿈을 꾸신 것이 틀림없구먼요. 그분은 알링튼에 안장되셨어요. 어떤 신문을 보니까 부통 령과 국방장관이 부친 장례식에 참석하셨다죠. 샐리너스 인덱스 지는 전시중에 그분에 대한 기사를 취급하고 싶을 겁니다. 이러한 자료들은 어떻게 하실 작정입니까?" "그분은 도둑이 셨어. 한때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네. 군인회에서 훔쳤지." "믿 어지지 않습니다." 리이가 말했다. 아담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근래에 와서 아담의 눈에는 번번히 눈물이 고이곤 했다. 리 이가 말했다. "여기 가만히 앉아 계세요. 아침식사를 가져 오겠어요. 오늘 오후에 누가 오는 지 아세요? 에이브라예요." 아담이 말했다. "에이브라가? 아, 에이브라, 좋은 처녀지." "난 그 처녀가 좋아요." 리이가 담담히 말했다. 그는 아담을 침실에 있는 카드 테이블에 앉혔다. "식사 준비를 하는 동안 카드때 떼어보기나 하시겠어요?" "아니야. 고맙네만 오늘 아침엔 안 하겠어. 잊어버리기 전에 꿈 생각이나 하겠어." 리이가 아침식사를 들고 들어왔을 때 아담은 의자에 앉은 채 졸고 있었다. 리이는 그를 깨우고, 그가 식사를 하는 동안 '샐리너스 저어널'을 읽어 주었다. 그리고 나서 화장실로 부 축하여 데리고 갔다. 부엌에서는 달콤한 파이의 냄새가 났다. 그리고 약간의 딸기가 오븐을 끓어넘쳐 타면서 코를 찌르는 시금털털한 냄새가 달콤하게 풍겼다. 리이의 마음 속에서는 잔잔한 기쁨이 일고 있었다. 변화의 기쁨이 있었다. 아담에게 종말 이 가까워 오고 있다고 리이는 생각했다. 죽음은 나에게도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느끼지 못 한다. 나는 불멸한 것처럼 느끼고 있다. 내가 젊었을 때에는 언젠가 멸명하리라고 생각했었 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죽음이라는 것이 물러나 있었다. 이것이 정상적인 사고인가 하고 생각했다. 부친이 도둑이라고 말한 아담의 진의가 무엇인가 하고 그는 생각했다. 꿈일지도 모른다. 리이의 마음은 종종 그러했듯이 이리저리 유희를 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가장 정직한 아 담이 도둑질한 돈으로 일생을 살았다는 가정도 가능했다. 리이는 혼자 웃었다. 이번에는 둘 쨋번 유서였다. 순결성이 다소 방종 쪽에 기울어 있는 아론은 갈보집에서 나오는 수입을 가 지고 일생을 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농담이었던가, 아니면 만일 사람이 한쪽으로 너무 기 울어지면 자동적으로 미끄러져 균형을 다시 찾게 되는 것이었다. 그는 샘 해밀튼을 생각했다. 그는 하고 많은 문을 두드렸었다. 많은 고안과 계획을 세웠지 만 누구 하나 그에게 돈을 주려 하지 않았다. 물론 그도 많이 갖고 있어서 부자였다. 그에게 더 이상 줄 수는 없었다. 부라는 것은 정신적인 빈자, 흥미와 기쁨의 빈자에게 찾아오는 성 싶다. 직언하자면 부자란 가난한 잡종이다. 그는 이것이 사실인지 궁금했다. 하여튼 사람들 은 가끔씩 그렇게 했다. 그는 카알이 자신을 벌하기 위해 돈을 태우던 일을 생각했다. 그러나 그 벌은 범죄만큼 심하게 그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았다. 리이는 중얼거렸다. "만일 해밀튼을 만날 수가 있 다면 그에게 할 이야기가 많을 텐데. 그분도 그렇겠지!" 리이는 아담에게 갔다. 그는 부친에 대한 신문 스크랩이 든 상자를 열려고 애를 쓰고 있 었다. 3 그날 오후의 바람은 찼다. 아담은 징병사무소에 가보겠다고 우겼다. 리이는 옷을 단단히 입혀 그를 떠나 보냈다. "현기증이 나면 아무데서고 바로 앉으세요." "그러지." 아담이 동의 했다. "하루종일 어지럽지 않았어. 안경점에 들러 빅토에게 내 눈 검사를 받아볼까 해." "내 일까지 기다리세요. 모시고 갈께요." "그러지." 그는 기분좋게 팔을 휘두르면서 나갔다. 에이브라는 눈을 반짝이며 들어왔다. 찬바람에 코가 빨갰다. 그녀가 이렇게 즐거운 표정으 로 들어오자 리이는 그녀를 보고 껄걸 웃었다. "파이는 어디 있어요? 카알이 못 보게 숨겨 두죠." 그녀는 부엌에 앉았다. "다시 와보니 참 기뻐요." 리이는 말을 꺼내자 목이 메었다.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을 조심스럽게 말하는 것이 좋을 성싶었다. 그는 머뭇거렸다. "나는 일생 동안 많은 사물을 탐내지 않았어요. 나는 어렸을 때 물욕을 갖지 말라고 배웠어요. 욕망은 실망만을 안겨 주었으니까요." 에이브라가 경쾌하게 말했다. "하지만 지금 무엇인가 바라고 있는데요. 그게 무엇이에요?" 그는 불쑥 말했다. "당신이 내 딸이었으면 좋겠소..." 그는 자신의 말에 놀랐다. 그는 스토 브로 가서 찾주전자의 밑에 가스를 끄더니 이내 다시 켰다. 그녀가 부드럽게 말했다. "당신이 내 아버지였으면 좋겠어요." 그는 그녀를 힐끗 쳐다보고 는 눈길을 돌렸다. "그래요?" "그래요." "왜?" "좋아하니까요." 리이는 재빨리 부엌을 나갔다. 그는 자기 방에 앉아 목메임이 멈출 때까지 두 손을 꼭 잡 고 있었다. 그는 일어서서 옷장 윗서랍에서 무늬가 새겨진 작은 흑단 상자를 꺼냈다. 상자에 는 용 한 마리가 승천하고 있다. 그는 상자를 부엌으로 들고 와서 에이브라 손 사이에 놓았 다. "당신에게 주는 거요." 그의 조어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녀는 상자를 열고 들여다보았다. 자그마한 짙은 녹색 비취 단추 하나가 있었다. 사람의 귀여운 오른손이 표면에 새겨 있었다. 손가락은 편안하게 굽어 있었다. 에이브라는 그것을 꺼내 들고 들여다 보았다. 그리고는 혀끝으로 침을 묻히고는 서서히 입술에 갖다 데더니 그 차가운 비취를 뺨에 꼭 눌렀다. 리이가 말했다. "내 어머니의 유일한 장식이었소." 에이브라는 벌떡 일어서서 그를 껴안고 볼에 키스했다. 그의 생애에서 처음 겪는 일이었다. 리이가 웃었다. "동양적인 점잔도 잊어 버린 것 같소. 귀염둥이. 차를 마십시다. 그렇게라도 해야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을 것 같 소." 스토브 가에서 그가 말했다. "그런 말을 해본 적은 처음이오... 세상 누구에게도 한 적 이 없소." 에이브라가 말했다. "오늘 아침엔 잠을 깨자 기분이 좋았어요." "나도 그랬어요. 왜 기분 이 좋았는지 알겠어요. 에이브라가 오니까 그랬구먼." "그 점에 있어서도 나도 기뻤어요. 하 지만..." "많이 변했군요. 이젠 예쁘장한 소녀가 아니예요. 무슨 일이오?" "아론의 편지를 전 부 태워버렸어요." "그가 나쁜 짓이라도 했나요?" "아니예요. 최근에 저는 아주 기분이 좋지 않았어요. 기분이 좋지 않았다는 것을 늘 그에게 설명하고 싶었어요." "완전해질 필요가 없 기 때문에 기분 좋을 수 있다는 건가요?" "그런지도 모르죠." "아이들의 어머니에 대하여 알 고 있나요?" "네, 알고 있어요. 여지껏 파이 하나 못 먹었네요. 입이 말랐어요." "차를 들어 요. 카알이 좋아요?" "네." 리이가 말했다. "그는 모든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꽉 차있어요. 내 생각에 단 한 사람이 거의 손가락만한 무게로..." 에이브라는 찻잔 위로 고개를 숙였다. "진달래가 피면 알리설에 가자고 했어요." 리이는 두 손을 테이블 위에 얹고 앞으로 기댔다. "갈지, 안 갈지 물어보고 싶지 않군요." "물을 필요도 없어요. 나는 갈 테니까요." 리이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그녀 맞은편에 앉았다. "자주 와요." "아빠 엄마가 내가 여기 오는 것을 싫어해요." "그분들 꼭 한 번 뵌 적이 있어요." 리이가 비꼬듯 말했다. "좋은 분들 같았어요. 에이브라, 아주 이상한 약이 때로는 효과가 있을 때가 있어요. 만일 아론이 수십만 달러의 유산을 상속받았다는 사실을 그분들이 알게 된다면 도 움이 될지도 모르죠." 에이브라가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입언저리가 치켜올라가는 것을 겨우 억제했다. "도 움이 되겠죠. 그러나 그런 소식을 어떻게 전해드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내가 만일 그 런 소식을 듣게 되면 본능적으로 누구에겐가 전화를 걸고 싶을 거예요. 나쁜 친척이 있을지 도 모르니까요." 리이가 말했다. 에이브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돈의 출처를 어머니에게 말씀드리겠어요?" "하지 않을 거 요." 리이가 말했다. 그녀는 벽에 걸려 있는 쾌종시계를 보았다. "다섯 시가 다 됐네요." 그녀가 말했다 "가야 겠어요. 아버지가 몸이 불편하시니까요. 카알이 교련을 마치고 곧 돌아올 거예요." "자주 와 요." 리이가 말했다. 4 카알은 집에 가려고 나오는 그녀를 현관에서 만났다. "잠깐만 기다려요." 카알은 집으로 들어가 책을 내려 놓았다. "에이브라의 책을 잘 간수해요." 리이가 부엌에서 소리쳤다. 밖에 는 차가운 겨울 바람이 불어오고 반짝이는 가로등들이 불안하게 움직이면서 2루로 스틸하려 는 주자처럼 그림자들을 앞뒤로 비추고 있었다. 일을 마치고 귀가하는 사람들은 오버 깃을 턱까지 치켜올리고 따뜻한 가정을 향해 발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멀리서 고요한 밤바람을 타고 스케이트 장에서 울려나오는 단조로운 음악 소리가 들렸다. 카알이 말했다. "잠깐만 책 좀 잡아줘. 에이브라, 칼라의 훅을 끌러야겠어. 목이 떨어져나가는 것 같아." 간신히 훅을 끄 르고 나서 그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살갗이 다 벗겨졌어." 그는 그녀에게서 책을 다시 받았다. 버지의 앞뜰에 있는 커다란 종려나무 가지들이 엇비끼며 메마른 소리를 내고 있고, 어느 집에선가 쫓겨난 고양이가 부엌문 앞에서 계속 울어대고 있었다. 에이브라가 말했다. "너는 훌륭한 군인이 될 것 같지 않아. 너무 개성이 강해서 말이야." "그럴 거야." 카알이 말했다. "나이들 크락 조젠센에게 교련을 받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처 럼 보요. 때가 되어 나도 흥미를 갖게 되면 훌륭한 군인이 될지도 모르지." "파이는 맛있었어." 에이브라가 말했다. "하나 남겨 놨어." "고마워. 아론은 틀림없이 훌륭 한 군인이 될거야." "그럴 거야. 제일 멋있는 군인이 될 거야. 진달래 구경은 언제 가지?" "봄이 돼야지." "일찍 가서 도시락을 먹자." "비가 올지도 모르지." "비가 오든, 안 오든 꼭 가기로 해." 그녀는 자기 책을 받아들고 집으로 들어갔다. "내일 만나요." 그는 집으로 향하지 않고 초조한 밤거리를 걸어 고등학교를 지나고 스케이트장을 지났 다... 링 위에 커다란 천막을 쳐 놓은 스케이트 장에서는 전축에서 흘러나오는 오케스트라 소리가 크게 울렸다. 스케잍팅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나이든 주인이 부스에 처량하게 앉아 입장권 뭉치의 한 끝을 집게 손가락에 탁탁 치고 있었다. 중앙로에도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보도에는 종이조각들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순찰 중인 톰 미크가 벨의 과자점에서 나오다가 카알과 마주쳤다. "군복의 훅을 채우는게 좋겠 군." 그는 부드럽게 말했다. "톰, 안녕하십니까? 빌어먹을 것이 너무 죄어서" "요새는 밤중에 마을 주위를 배회하는 것이 눈에 띄지 않던데?" "안 하지요." "개심한 것은 아니겠지." "그런지도 모르죠." 톰은 사 람을 놀리면서도 진지한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자기의 재능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었다. "애 인이라도 생긴 모양이군." 카알이 대답하지 않았다. "자네 형은 나이를 속이고 입대했다지? 형의 애인을 가로챘나?" "그래요... 그래요." 카알이 대답했다. 톰의 흥미가 커졌다. "잊어버릴 뻔했네. 자네가 콩을 가지고 1만 5천 달러를 벌었다고 윌 해밀튼이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었네. 사실인가?" "사실이죠." "자넨 아직 나이가 어리지 않 은가. 그래 그 돈을 가지고 뭘 할 작정인가?" 카알은 그를 보고 히죽 웃었다. "불살라 버렸 어요." "무슨 말이야?" "성냥을 그어댔다니까요." 톰은 그의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오, 그 래! 잘한 일이구먼. 난 여기 좀 들러야겠어. 잘 가요." 톰은 자기를 놀리는 사람을 싫어했다. '피도 안마른 개자식 같으니.' 그는 혼자 중얼거렸다. '너무 약아져 간단 말이야.' 카알은 가게의 진열장을 들여다보면서 중앙로를 따라 서서히 걸어갔다. 케이트가 어디 묻 혀 있는지 궁금했다. 알 수만 있다면 꽃다발이라도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런 충 동을 느끼고 혼자 웃었다. 그것이 좋은 생각이었나, 아니면 자신을 우롱하는 것이었나? 샐리 너스의 바람이라면 카네이션 다발은 고사하고 묘석도 날려버릴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는 카네이션에 해당하는 멕시코 말을 생각해 냈다. 어렸을 때 들은 것임이 틀림없었다. '사랑의 손톱'이라고 했다. 그리고 금잔화는 '죽음의 손톱'이라고 했다. 손톱과 같은... 글라 벨 스라는 말이었다. 어머니 무덤 위에 금잔화를 갖도 놓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몰랐다. '나도 아 론처럼 생각하기 시작하고 있구먼.' 그는 혼자 중얼거렸다. 제 54 장 1 겨울은 좀처럼 물러나지 않을 성싶었다. 추위가 가실 때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날은 춥고 습하고 바람이 불었다. 사람들은 입버릇처럼 말했다. "프랑스에서 대포를 쏘아대어 전세계의 날씨를 망쳤어." 샐리너스 계곡에는 곡식이 서서히 움트기 시작했다. 들꽃들은 너무 늦게 돋아났기 때문에 꽃이 피지도 못 할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주일학교가 알리설로 봄 소풍을 가는 5월제에는 개울가에 자라고 있는 진달래 꽃이 피더 라도 모든 사람들이 믿고 있었다. 진달래꽃은 5월제의 일부였다. 5월 초하룻날은 추웠다. 소 풍은 차가운 비로 중단되었다. 진달래꽃은 피지 않았다. 2주 후에도 여전히 피지 않았다. 카알이 진달래 소풍의 신호로 삼았을 때에는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그는 알지 못했다. 그 러나 일단 상징으로 정해 놓은 이상 이를 어길 수는 없었다. 타이어에 바람을 잔뜩 집어넣고 새 배터리를 두 개 단 포드차가 윈 덤 차고에 대기하고 있었다. 그날이 오자 샌드위치를 장만하느라고 신경을 곤두세웠던 리이도 이제 지쳐서 이틀 걸러 한 번씩 빵을 사오던 일도 중단하고 말았다. "왜 그냥 가보지 그래?" 리이가 말했다. "어떻게 가요. 진달래 이야기를 했는데." "가보지 도 않고 어떻게 알아?" "실라치 아이들이 거기 사는 데 학교에 와서 하는 소리가 1주일이나 열흘은 더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저런!" 리이가 말했다. "소풍 연습을 지나치게 하지 말 아야지." 아담의 건강은 서서히 회복되고 있었다. 손의 마비도 없어지고 있었다. 책도 좀 읽을 수 있었다... 매일 조금씩 더 읽을 수 있었다. "글자가 뛰는 것은 피곤한 때문이었다. 안경을 써 가지고 눈을 버리지 않은 것이 다행이야. 눈에 이상이 없다는 것을 알게됐어." 리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기뻐했다. 그는 샌프란시스코까지 가서 필요한 책을 구하기도 하 고 많은 단행 논문을 주문하기도 했다. 따라서 그는 뇌의 해부학적 구조와 뇌장애, 그리고 혈전증에 대한 지식을 모두 갖게 되었다. 그는 마치 히브리어 동사를 잡아 이모저모로 의문 을 제게하여 옳게 이해했던 때처럼 요지부동하는 집중력을 가지고 연구했다. 머피 의사는 리이를 잘 알게 되고부터 중국인 하인에 대한 의사로서의 불안감을 씻고 학자에 대한 순수 한 존경을 갖게 되었다. 머피 의사는 진료와 치료에 관한 리이의 새 문헌들을 빌리기까지도 했다. 그는 에드워드 의사에게 말했다. "저 중국 사람이 말이오. 나보다도 뇌일혈의 병리학 에 관해서 더 많이 알고 있어요. 틀림없이 당신 못지 않을 겁니다." 그는 이러한 이야기를 애정이 섞인 분노의 감정으로 말했다. 의사라는 직업은 범속한 지식에 의하여 무의식적으로 자극을 받게 마련이다. 리이가 아담의 회복에 관하여 말했다. "제가 보기엔 흡수작용은 계속..." "나는 환자를 치 료한 적이 있었네." 머피 의사는 낙관적인 이야기를 했다. "나는 항상 재발을 걱정하고 있어 요." 리이가 말했다. "신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네." 머피 의사가 말했다. "우리들은 자전거 튜브처럼 동맥을 미봉할 수는 없는 걸세.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자네는 어떻게 그의 혈압을 재는가?" "나는 그분의 혈압에 내기를 걸고, 그는 나의 혈압에 내기를 걸지요. 경마보다 낫 지요." "누가 이기는가?" "내가 이기게 되어 있지요. 하지만 저는 이기지 않아요. 그렇게 하 면 게임을 망쳐버리게 되죠... 계획은 물론이고요." "어떤 방법으로 그가 흥분하지 않도록 만 드는가?" "내가 발명해 낸 것인데 희화적 치료라고 제가 명령했죠." "시간을 많이 소비하겠 군?" "그렇죠." 리이가 말했다. 2 1918년 5월 28일 미군은 제 1차 세계대전에 있어서 최초의 중요한 임무를 수행했다. 벌라 드 장군이 지휘하는 제 1사단은 캔티그니 마을을 점령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고지에 있는 이 마을은 아브르 강 계곡을 굽어보고 있었다. 그리고 참호와 중기관총과 야포로 방어되고 있었다. 전선은 1마일이 좀 더 되었다. 1918년 5월 28일, 약 한 시간의 포병 지원사격을 받은 후 오전 6시 45분에 공격이 개시되 었다. 투입된 부대는 제 28보병연대 (엘리 대령), 제 18보병인대 1개 대대 (파커), 제 1공병 연대 1개 대대, 사단 포병 (서머럴), 그리고 프랑스의 탱크부대와 포병부대의 원호였다. 공격은 완전히 성공했다. 미군 부대는 새 전선에 참호를 파고 2차에 걸친 독일의 강력한 반격을 격퇴했다. 3 5월 말일에야 실라차 아이들이 주황색 진달래꽃이 핏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그들이 소식을 전해준 때는 금요일 9시 수업종이 울리고 있을 때였다. 카알은 영어 교실로 달려갔다. 막 노리스 선생님이 작은 교단에 자리를 잡았을 때 카알은 손수건을 흔들고는 코를 크게 풀었다. 그리고는 남자 변소로 들어가서 벽 너머 여자 변소에 서 수돗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들릴때까지 기다렸다. 그는 지하실 문을 통해 밖으로 나오 붉 은 벽달담에 붙어 걷다가 페퍼나무 주위를 살짝 돌아 학교 건물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걸어 갔다. 그때 에이브라가 뒤쫓아왔다. "언제 꽃이 폈대?" 그녀가 물었다. "오늘 아침에." "내일까지 기다릴까?" 그는 명쾌한 노 란색 해를 쳐다보았다. 금년 들어 처음으로 대지를 따뜻하게 하는 해였다. "기다리고 싶어?" "기다리고 싶지 않아." 그녀가 말했다. "나도 기다리고 싶지 않아." 그들 은 내달리기 시작했다... 레이노드 베이커리에서 빵을 사고는 리이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떠 들썩한 소리를 듣고 아담은 부엌을 들여다보았다. "왜들 야단들이야?" 아담이 물었다. "피크닉을 가려구요." 카알이 말했다. "수업이 있는 날 이 아니냐?" 에이브라가 말했다. "그렇기도 하지만 휴일이기도 해요." 아담이 그녀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장미꽃같이 얼굴이 불그레하구나." 에이브라가 소리쳤다. "같이 가시지 않 으시겠어요? 진달래 구경을 하러 알리설에 가는 거예요." "가고 싶구나." 아담이 말했다. "아, 안 되겠구나. 제빙소에 가기로 약속이 되어 있어. 새 배관을 하게 되어 있어. 참 아름다 운 날이다." "진달래를 꺾어다 드리지요." 에이브라가 말했다. "좋지. 재미있게 지내거라." 그가 나가자 카알이 말했다. "리이, 같이 가겠어요?" 리이가 노려보았다. "나는 네가 바보 라고 생각지 않았는데." "가요." 에이브라가 소리쳤다. "바보같이 굴지 말아요." 리이가 말했 다. 4 샐리너스 계곡의 동쪽 가빌런 산맥을 등지고 있는 알리설에는 작은 시냇물이 그 가운데를 즐겁게 흐르고 있었다. 시냇물은 조약돌 위를 재잘재잘 흐르고 양쪽에 선 나무 뿌리들을 하 얗게 씻어 내고 있었다. 진달래 향기와 엽록소 작용을 일으키는 태양의 느긋한 향기가 대기를 채우고 있었다. 둑 위에는 포드차가 과열로 아직도 소리를 내면서 서 있었다. 뒷 좌석은 진달래꽃으로 꽉 차 있었다. 카알고 에이브라는 도시락 종이에 둘러싸여 둑 위에 앉아 있었다. 그들은 물 속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 "집에 가기도 전에 진달래는 항상 시들게 마련이지." 카알이 말했다. "좋은 변명이 되겠 지." 그녀가 말했다. "네가 하지 않으면 내가 해야 할까봐." "무엇을?" 그녀는 손을 뻗어 그 의 손을 잡았다. "이거 말이야." "나는 겁이 났어." "왜?" "모르겠어." "여자들은 무슨 일에고 겁을 내지 않는 모양이지." "그렇지 않아." "겁이 난 적이 있었니?" "그럼. 내 팬티가 젖었다 고 네가 말했을 때 나는 네가 무서웠어." "비열한 일이었지.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그는 갑자기 말이 없었다. 그녀는 그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나는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 그 일을 생각하면 난 싫어." 카알은 굽이치는 물을 바라보다가 발끝으로 갈색 조약돌 하나를 뒤집었다. 에이브라가 말 했다. "너는 그런 점을 모두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나쁜 일을 모두 끌여들였다고 말이야." "글세..." "할 이야기가 있어. 우리 아버지는 문제를 일으키고 있어." "무슨 문제 를?" "엿들은 것은 아니지만 알고 있어. 아버지는 알고 있는 것이 아니야. 겁을 먹고 있는 거야. 무슨 일인가 저질렀어." 그가 고개를 돌렸다. "무엇인데?" "회사에서 돈을 먹은 거야. 동료들이 아버지를 감옥에 집어넣을지, 또는 변상을 시킬지 모르고 계신 거야." "어떻게 알 았어?" "아버지 침실에서 사람들이 큰소리로 떠드는 것을 들었어. 어머니가 그 소리가 들리 지 않게 축음기를 트셨어."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 "아니야." 그는 슬금슬금 그녀 곁으로 와서 그녀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수줍은 듯이 허리를 껴안았 다. "알겠지, 너만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곁눈질로 그의 응시했다. "나는 겁이 나." 그녀는 힘없이 말했다. 5 오후 3시에 리이는 자기 책상에 앉아 씨앗 목록을 뒤지고 있었다. 상향 완두 그림이 원색 으로 되어 있었다. '이것을 뒷담 쪽에 심으면 멋있을 거야. 진흙도 가려줄 거고. 햇볕이 잘 들지 모르겠네.' 그는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미소지었다. 집이 조용할 때면 크게 이야기하는 자신을 그는 자 주 깨달았다. '나이 탓이야.' 그는 마음 속으로 크게 말했다. '생각은 느려지고...' 그는 말을 멈추고 자 신 이 잠깐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상하다... 소리가난다. 찻주전자를 가스에 올려 놓았던 가. 아닌데... 틀림없어.' 그는 다시 귀를 기울였다. '고맙게도 나는 미신을 믿는 사람이 아니 야. 미신적인 사람이 되면 귀신이 걷는 소리도 들을 수 있었을 거야.' 현관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저것이다. 내가 들으려고 한 것이. 울리게 내버려두자. 감정 에 휩싸이고 싶지는 않으니까. 울리게 내버려두자.' 그러나 다시 울리지 않았다. 시꺼먼 피 로 감이 그를 엄습했다. 절망감이 그의 양어깨를 짓눌렀다. 그는 자조했다. '나가서 그것이 문 밑에 밀어넣은 광고지라는 것을 알아낼 수도 있고, 아니면 여기 앉아 서 이 어리석은 노망으로 하여금 죽음이 문턱에 와 있다는 것을 말하게 할 수도 있다. 광고지 면 좋겠다.' 리이는 거실에 앉아 무릎 위의 편지봉투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욕설을 퍼부었다. '좋 아, 해볼 테면 해봐. 빌어먹을.' 그는 편지봉투를 찢어 열었다. 그리고 곧 책상 위에 놓았다가 엎 어놓았다. 그는 무릎사이로 보이는 마루를 보았다. '아니야. 그것은 내가 할 일이 아니었어. 다른 사 람이 겪어야 할 유일한 경험을 제거할 권리를 갖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생과 사는 약 속된 것이니까. 우리들은 괴로워할 권리를 갖고 있는 거야.' 위가 뒤틀렸다. '나는 용기가 없 어. 나는 겁쟁이 노랑퉁이야. 나는 그것을 참을 수가 없어.' 그는 욕실로 들어가 취소제 세 스푼을 제어 유리컵에 넣고는 빨간 약물이 핑크색으로 될 때까지 물을 탔다. 그는 유리컵을 거실로 가지고 가 테이블 위에 놓았다. 그는 전보를 접어 호주머니에 넣었다. 그는 크게 말했다. '나는 겁쟁이를 싫어한다. 나는 겁쟁이를 얼마나 하 는 가!' 그의 손을 떨리고 있었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솟아났다. 4시에 아담이 문고리를 더듬는 소리가 들렸다. 리이는 입술에 침을 발랐다. 그는 일어서서 천천히 복도를 나갔다. 그는 핑크색 약물 유리컵을 들고 갔다. 그의 손은 안정되어 있었다. 제 55 장 1 트래스크 집 등불은 모두 켜져 있었다. 현관문은 삐끔이 열려 있었고 집안은 냉랭했다. 거 실에는 리이가 램프 옆에 있는 의자에 나뭇잎처럼 움츠리고 앉아 있었다. 아담의 방문도 열 려 있었고, 방에서는 모곳리가 새어나왔다. 카알은 들어서자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리이는 그를 쳐다보고는 전보가 놓여 있는 테 이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형이 죽었어." 그가 말했다. "아버지는 뇌일혈을 일으키고." 카 알이 복도로 걸어 들어왔다. 리이가 말했다. "가지마. 에드워드와 머피 의사가 계셔. 방해 하지 않는게 좋아." 카알이 그의 앞에 와서 섰다. "심하세요? 심하시냐구요." "모르겠어." 그는 옛일을 회상이나 하듯이 말했다. "아주 지쳐서 돌아오셨어. 그러나 전보를 읽어드릴 수밖에 없었어. 그의 권리니까. 한 5분 동안 커다란 소리로 혼자 그것을 되풀이 외우시더니 그것이 뇌 속으로 들어가 폭발 한 것 같아." "의식은 있어요?" 리이는 지친 듯이 말했다. "앉아서 기다려. 카알, 침착해야 돼. 나도 침착하려도 애쓰는 중 이야." 카알은 전보를 집어들고 처량하고 숙연한 사망통지를 읽었다. 에드워드 의사가 가방 을 들고 나왔다. 그는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밖으로 나가 얌전하게 문을 닫았다. 머피 의사는 가방을 책상 위에 놓고 앉았다. 그는 한숨을 쉬었다. "에드워드 의사가 나더 러 이야기를 하라고 했소이다." "어떠세요?" 카알이 다그쳐 물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모두 말하리다. 자네가 이 집을 대표할 수 있겠지. 카알은 뇌일혈이란 어떤 것인지 알고 있 나?" 그는 카알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이것은 뇌 속의 피가 새는 거야. 뇌의 어떤 부 위가 그 영향을 받고 있어. 이미 전에 미소하지만 피가 새어나왔어. 리이는 알고 있지." "알 고 있습니다." 머피 의사는 그를 힐끗 보고는 다시 눈길을 카알에게 돌렸다. "왼쪽에 마비가 왔어. 오른 쪽은 부분적으로, 그리고 왼쪽의 시력은 없울 거야. 단정 할 수는 없지만. 다시 말하면 자네 부친은 거의 가망이 없는 거야." "말은 하실 수 있어요?" "조금... 힘은 들지만, 피곤하게 해 드리지 말게." 카알은 적절한 말을 찾으려고 애를 썼다. "회복하실 수 있겠습니까?" "심한 경우라도 재흡수가 이루어진 경우의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나 자신은 본 일이 없네." "돌 아가실 거라는 말씀이군요?" "알 수 없지. 일주일을 사실 수도 있고 한달, 1년 하기야 2년이 라도 사실지 모르지. 오늘 밤에라도 돌아가실 수도 있고." "나를 알아 보실까요?" "직접 알 아 보도록 하게. 오늘 밤엔 간호원을 보내 주겠지만, 자네가 계속 간호를 해드려야 할 거 야."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안됐네. 카알. 그러니 참아야 돼! 사람들의 참을성을 보고 나 는 늘 감탄하고 있네. 사람들은 항상 참지. 에드워드가 내일 올걸세. 잘 있게." 그가 카알의 어깨를 만져주려고 손을 뻗었을 때 그는 이미 자리로 떠나 아버지 방을 향해 복도를 걷고 있었다. 아담의 머리는 베개를 받처져 있었다. 얼굴은 잔잔했고 피부는 창백했다. 꼭 다문 입가에 는 미소도 불만의 표시도 없었다. 눈은 뜨고 있었다. 깊고 맑았다. 마치 눈 속 깊이까지 보 이고 그 주위까지 깊이 들여다보이는 듯했다. 잔잔하고 인식할 수 있는 눈이었으나 흥미를 잃고 있었다. 카알이 방 안으로 들어갔을 때, 그는 그 눈길을 카알에게 돌렸다. 가슴을 보더 니 위로 올라오 얼굴에 멈췄다. 카알은 침대 옆에 있는 등이 가파른 의자에 앉았다. 그가 말 했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그의 눈은 개구리처럼 껌벅였다. "제 말이 들려요, 아버지? 내 말을 알아 들으시겠어요?" 두눈은 변하지도, 움직이지도 않았다. "제가 그랬어요." 카알이 울었다. "아론의 전사도, 아 버지의 병환도 다 제 탓입니다. 제가 아론을 케이트의 집으로 데리고 갔었어요. 그의 어머니 를 보여준 것이지요. 그 때문에 그는 도망을 친 거예요. 저는 나쁜 일을 하고 싶지는 않지 만... 그러나 하고 맙니다." 그는 아버지의 고통스러운 눈을 피해 침대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아버지의 두 눈 이 보였다. 아버지의 눈 모습이 일생동안 자신의 일부분으로 남게 되리라는 것을 그는 알았 다.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잠시후에 리이가 침실로 들어왔다. 뒤따라서 건장하고 평범하며 짙 은 눈썹을 가진 간호원이 들어왔다. 그녀는 옷가방을 열 듯 수선을 피웠다. "환자가 어디 있 어요? 저기 계시구먼! 좋아 보이시네요! 내가 할 일 뭐 있겠어요? 일어나셔서 제 뒤를 돌봐 주시는 게 낫겠네요. 안색이 좋으시네요. 나를 돌봐 주시겠어요, 잘 생기신분?" 그녀는 남자 같은 팔을 침대 밑으로 넣고는 바른 손으로 그를 쳐들고 왼손으로는 베개를 토닥여서 다시 눕혔다. "찬 물베개는 좋아하지 않으세요? 목욕실은 어디 있나? 무명천과 변기는 있어요? 내가 잘 침대 하나 갖다 주시겠어요?" "리스트를 만드세요." 리이가 말했다. "환자를 위해 도움이 필 요하면..." "도움이 왜 필요할까요? 우리들은 의좋게 지낼 텐데요... 여보세요, 그렇죠?" 리이와 카알은 부엌으로 물러났다. 리이가 말했다. "그 여자가 오기 전에는 너에게 저녁을 먹도록 하려고 했지... 좋든 나쁘든 어떤 목적을 위해 식사를 하는 사람처럼. 그 여자가 왔으 니, 너는 밥을 먹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해." 카알은 그에게 히죽이 웃었다. "먹일려고 했었 으면 기분이 나빴을 거에요. 그러나 그렇게 나오니 샌드위치나 하나 먹겠어요." "샌드위치는 없어." "하나만." "그건 무례한 짓이야. 모든 사람이 똑같은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일종의 모 욕이야." "그러면 샌드위치는 그만 두겠어요. 파이는 남았나요?" "많이 있어. 빵 상자에 다소 눅눅할지 모르지." "눅눅한 것이 좋아요." 카알은 접시째 들고 와서 그의 맞은편 테이블에 앉았다. 간호원이 부엍을 들여다보았다. "맛있어 보이네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하나를 집어 들 었다. 그리고 씹으면서 말했다. "크러프 약방에 전화를 걸어서 필요한 물건을 가져오라고 할 수 있죠? 전화는 어디있나요? 라닌은 어디다 두세요? 침대는 어디다 놔주시겠어요? 이 신 문은 다 읽으셨어요? 전확 어디 있다고 말했죠?" 그녀는 파이 하나를 더 들고 나갔다. 리이가 물었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어?" 카알은 마치 멈출 수 없는 듯이 고개를 앞뒤로 계속 흔들었다. "무서운 일이 일어날지도 몰라. 하지만 의사 선생님이 옳아. 너는 모든 것을 참을 수 있어. 그런 의미에선 우리는 대단한 동물이지." "나는 그렇지 않아요." 카알의 목소 리는 단조롭고 멍청했다. "나는 참을 수 없어요. 나는 참을 수 없을 거예요. 나는 해야 할거 예요... 해야..." 리이는 그의 손목을 우악스럽게 잡았다. "뭐라고! 쥐새끼 같으니라구. 더러운 개새끼. 호강 에 겨워서 그러지. 그런 생각은 아예 하지 말아! 어째서 네 슬픔이 내 슬픔보다 더하단 말 이냐?" "슬픔이 아니예요. 나는 내가 한 일을 말씀 드렸어요. 나는 형을 죽인 살인자예요. 아버지는 알고 계세요." "아버지가 말씀하셨나? 사실대로 말해 줘... 아버지가 하신 말씀을." "말씀하실 필요가 없었지요. 눈에 나타나 있었으니까요. 눈으로 말씀하셨어요. 내가 도망칠 구멍이 전혀 없었어요." 리이는 한숨을 내쉬고 그의 손을 풀었다. "카알." 그는 참을성 있게 말했다. "내 말 좀 들 어봐. 그분은 두뇌 중심부위가 아픈거야. 그의 눈에 나타난 것은 시력을 지배하는 두뇌의 그 부위의 압박인지도 몰라. 아버지가 책도 못 읽던 일을 기억하지? 그것은 눈 때문이 아니라 압박 때문이었어. 아버지가 너를 질책했는지 그건 너는 몰라. 알 수 없는 거야." "아버지는 나를 책망하셨어요. 나는 알고 있어요. 아버지는 나보고 살인자라고 하셨어요." "그렇다면 아버지는 너를 용서하실 거야. 약속할 수 있어." 간호원이 문 입구에 서 있었다. "뭐를 약속한다는 거예요. 차알리? 커피 한 잔 주겠다고 약속했지 않아요." "곧 해다 드리죠. 그분은 어떠십니까?" "어린애처럼 자고 있어요 읽을 거 리라도 있어요?"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마음을 사로잡아 발의 피트가 가시는 것이면 돼 요." "커피를 갖다 드리죠. 어떤 프랑스 여왕이 쓴 천한 이야기 책이 있기는 있는데, 좀 지 나쳐서..." "커피하고 함께 갖다 줘요." 그녀가 말했다. "왜 카알은 잠을 자지 않아요? 나하고 차알리가 집을 지킬텐데. 책, 잊지 말아요. 차알리." 리이는 가스에 커피 주전자를 올려 놓았 다. 그는 테이블로 돌아와서 말했다. "카알!" "왜요." "에이브라에게 가봐요." 2 카알이 깔끔한 현관에 서서 계속 초인종을 눌렀다. 거칠게 현관불이 켜지고 빗장이 열리 더니 베이컨 부인이 내다 보았다. "에이브라를 만나러 왔습니다." 카알이 말했다. 그녀의 입 은 기가 막혀서 딱 벌어졌다. "뭐라고?" "에이브라를 만나러 왔어요." "안돼. 에이브라는 잠 자리에 들었어. 가요." 카알은 소리쳤다. "에이브라를 만나러 왔다고 말씀드렸지 않아요?" "가리니까. 안 가면 경찰을 부르겠어." 베이컨 씨가 소리질렀다. "뭐요? 누구요?" "걱정하지 마세요... 잠이나 자요. 몸도 성치 않은데. 제가 처라하죠." 그녀는 카알에게 다시 몸을 돌렸다. "현관을 나가요. 초인종을 다시 울리면 경찰을 부르겠 어. 당장 가!" 문이 쾅 닫히고 빗장이 질러지고 현관 등불이 꺼졌다. 카알은 톰 미크가 어슬렁어슬렁 걸어오면서 '헤이, 카알. 거기거 뭘해?' 하고 말하는 장 면 을 상상하고는 어둠 속에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베이컨 부인이 집 안에서 소리쳤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데, 가란 말이야! 현관 밖으로 나가란 말이야!" 그는 서서히 보도 쪽으로 걸어와 집으로 향했다. 그가 한 블록도 못가서 에 이브라가 쫓아왔다. 그녀는 뛰어왔기 때문에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뒷문으로 나왔어." 그 녀가 말했다. "없어진 걸 아실 걸." "상관 안해." "상관하지 않는다고?" "안해." 카알이 말했 다. "에이브라, 나는 형을 죽였고 아버지는 나 때문에 불수가 되셨어." 그녀는 두 손으로 그 의 손을 잡고 매달리듯 했다. "내 소리 못 들었어?" 카알이 물었다. "들었어." "에이브라, 나 의 어머니는 창녀였어." "알고 있어. 말했지 않아, 나의 아버지는 도둑이고." "나에게는 어머 니의 피가 흐르고 있어. 알겠어, 에이브라?" "나에게는 아버지의 피가 흐르고." 그녀가 말했 다. 그들은 아무 말 없이 걸었다. 그동안 카알은 균형을 되찾으려고 애를 썼다. 바람이 찻다. 몸을 덥게 하기 위해 발걸음을 빨리 했다. 샐리너스 맨 변두리에 있는 가로등을 지났다. 칠 흑 같은 어둠이 앞을 가로막았다. 길은 포장되어 있지 않았고 시커먼 아도브 진흙이 찐득댔 다. 그들은 이미 포장 끝을 지나고 마지막 가로등도 지났다. 발 밑의 길은 봄 진흙으로 미끄 러웠다. 이슬에 젖은 풀잎이 다리를 적셨다. 에이브라가 물었다. "우리 어딜 가는 거지?" "나는 아버지의 눈길을 피해 도망치고 싶어. 아버지의 눈이 항상 내 앞에 보여. 눈을 감아도 보여. 앞으로도 계속 보일 거야. 아버지는 돌아가시겠지만 아버지의 눈은 내가 형을 죽였다 고 말하면서 나를 계속 노려볼 거야." "네가 그런 것이 아니야." "아니야, 내가 그랬어. 내가 그랬다고 아버지의 눈이 말하고 있어." "그렇게 말하지 마. 우리 어딜 가는 거지?" "조금만 더 가. 도랑이 있고, 펌프 오두막이 있고, 버드나무가 있어. 버드나무 기억하니?" "기억 나." 그가 말했다. "가지들이 텐트처럼 내려 덮이고 끝은 땅에 늘어져 있지." "알고 있어." "오후 가 되면... 햇빛 비치는 오후가 되면 너와 아론은 나뭇가지를 헤치고 안으로 들어가곤 했지.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었지." "너는 봤지?" "물론이지. 나는 뚫어지게 봤지. 버드나무 속으로 너와 함께 들어가고 싶어. 난 그걸 하고 싶은 거야." 그녀는 발걸음을 멈추고 그를 잡아 끌 었다. "안돼." 그녀가 말했다. "옳은 일이 아니야." 카알이 말했다. "그러면 난 무엇을 해야 하지? 난 무엇을 해야 돼? 내가 무엇을 해야 되 는지 말해 줘." "내 이야기 듣겠어?" "모르겠어." "돌아가는 거야." 그녀가 말했다. "돌아가? 어디로?" "네 아버지의 집으로." 에이브라가 말했다. 3 부엌의 등불이 그들을 내려비치고 있었다. 리이는 찬 공기를 따뜻하게 하기 위해 오븐에 불을 피워 놓았다. "에이브라가 날 데리고 왔어요." 카알이 말했다. "물론 에이브라가 그랬 겠지. 그러리라고 생각했어." 에이브라가 말했다. "그가 혼자 왔어야 했는데." "그랬으리라고 는 생각지 않아요." 리이가 말했다. 그는 부엌을 떠났다가 금방 돌아왔다. "아직도 잠을 자고 계세요." 리이는 돌 주전자와 반 투명한 작은 도자기 컵 세 개를 테이블에 갖다 놓았다. "본 기억이 있군요." 카알이 말했다. "기억하겠지." 리이는 까만 술을 따랐다. "홀짝 마시고는 혀끝으로 돌려 봐요." 에이브라는 팔꿈치를 식탁에 괴었다. "이 사람을 도와 주세요. 리이. 당신은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으 니 이 사람을 도와 주세요." "사물을 수용할 수 있는지 없는지 나도 모르겠소." 리이가 말했 다. "시험해 볼 기회가 한 번도 없었으니까. 나는 항상 확실하다고 할 수 없지만 불확실한 것을 처리할 능력이 적은 분들과 함께 있었죠. 우는 것도 혼자 울어야 했어요." "울다니? 당 신이?" 그가 말했다. "새뮤얼 해밀튼이 돌아가셨을 때 온 세상에 촛불처럼 꺼져버린 것 같았어요. 나는 그분의 사랑스러운 창조물을 보려고 촛불을 다시 켰죠. 그러나 마치 어떤 복수심이 작 용이나 하고 있듯이 그의 자녀들이 지리멸렬하는 것을 보았어요. 자, 오가피주를 혀 속으로 굴려 봐요." 그는 말을 이었다. "나는 혼자의 힘으로 나의 어리석은 생각을 이해해야만 했어요. 어리석 은 생각이란 이런 것이었죠! 악화가 양화를 몰아낸다는 것이에요. 한 때 하나님은 호가 나 고 진절머리가 나서, 그의 귀여운 흙 조각품을 파괴하거나, 아니면 승화시키기 위해 가혹한 시련에서 녹아날 불을 퍼부었다고 생각했어요. 나는 화혼과 불을 필요하게 만든 부정의 혼 을 다 갖고 태어났다고 생각했어요. 모든 것을 다 갖고 태어난 것이죠. 그렇게 느껴지지 않 았나?" "그렇게 생각해요." 카알이 말했다. "나는 모르겠는데요." 에이브라가 말했다. 리이가 고개를 저었다. "그것 가지고는 충분하지 않아요. 충분한 생각이 못 돼요. 아마도..." 그는 말 을 멈췄다. 카알은 위 속에서 술의 열기를 느꼈다. "아마도 뭐예요, 리이?" "아마도 너도 알게 되겠지 만 모든 세대의 모든 인간은 정련될 거요. 도공이 늙었다고 해서 완전한 컵 얇고 튼튼하고 투명한 컵을 만들겠다는 욕구를 잃겠어요?" 그는 컵을 들어 불빛에 비춰봤다. "모든 불순물 을 태워버리고 찬란한 액체를 담을 수 있는 것. 그것을 얻기 위해 더욱 불이 필요하죠. 그러 면 쇠찌끼가 산더미처럼 남든지, 아니면 이 세상에 누구도 포기하지 아니한 완벽이 남든지 할 거요." 그는 술잔을 비우고는 크게 말했다. "카알, 내 말을 들어요. 무엇이 우리를 창조했 든 우리가 노력을 멈추리라고 생각하나?" "나는 알 수 없어요." 카알이 말했다. "지금은 모 르겠어요." 거실에서 무거운 간호원의 발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문을 열고 들어와서 팔꿈치를 테이블 에 고이고 손바닥으로 양볼을 감싸고 있는 에이브라를 보았다. 간호원이 말했다. "주전자 있 어요? 환자란 목이 말라 하니까 물주전자를 손쉬운 데 놓아 두어야겠어요. 알다시피 환자들 은 입으로 숨을 쉬죠." "잠이 깨셨나요?" 리이가 물었다. "주전자 여기 있어요." "깨어서 쉬 고 계세요. 얼굴을 씻기고 머리를 빗겨 드렸어요. 착한 환자시데요. 그는 날 보고 미소를 지 으려고 했어요." 리이가 일어섰다. "카알, 같이가자. 에이브라도 같이 갔으면 좋겠어요. 가야 할 거요." 간호원은 싱크대에서 주전자에 물을 채우고는 그들을 앞서서 종종 걸음으로 들어갔다. 그 들이 침실로 들어 갔을 때 아담은 베개의 높이 떠받쳐 있었다. 하얀 손은 손바닥을 아래로 하고 양허리에 얹혀 있었다. 손가락 마디에서 팔목에 이르는 근육은 단단하게 당겨져 있었 다. 얼굴은 초처럼 희고 날카로운 모습은 더욱 날카롭게 보였다. 창백한 입술 사이로 천천히 숨을 쉬고 있었다. 파란 눈은 머리에 집중적으로 비치는 전등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리이와 카알과 에이브라는 침대 아래쪽에 섰다. 아담의 눈길은 이사람 얼굴에서 저사람 얼굴로 옮겨 갔다. 그의 입술은 인사를 하듯 조금 움직였다. 간호원이 말했다. "환자 안색이 좋지 않아요? 내 애인이에요. 소중한 분이죠." "쉿!" 리이가 말했다. "내 환자를 피곤하게 하 지 않기를 바라요." "방 밖으로 나가시오." 리이가 말했다. "의사 선생님께 보고하겠어요." 리이가 간호원에게 몸을 홱 돌렸다. "나가서 문을 닫아요. 나가서 보고서나 써요." "짱꼴라에게서 지시를 받은 적은 없어요." 카알이 말했다. "문 닫고 나가요." 그녀는 자신의 분노를 표시나 하듯 문을 꽝 닫고 나갔다. 아담은 문소리에 눈을 깜 박였다. 리이가 말했다. "아담!" 미간이 넓은 파란 두 눈이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다가 드디어 리이 의 빛나는 갈색 눈에 마주쳤다. 리이가 말했다. "아담, 목소리가 들리는지, 말의 뜻을 이해하 는지 모르겠어요. 당신의 손에 마비가 오고 또 독서를 할 수 없을 대 나는 내가 할 수 있었 던 모든 것을 알아봤어요. 그러나 당신을 제외하곤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몇 가지 있 었어요. 당신은 당신의 눈 속에서 민첩한 활동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혼란된 회색의 꿈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어린아이처럼 빛과 움직임만을 감지하는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뇌속에 손상이 왔습니다. 당신은 이 세상의 새로운 인간인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천절이 이제 천박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고, 무섭게 정직했던 당신이 성을 잘 내고 묵 과하는 사람이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당신 이외에 이런 것들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담! 제 말이 들립니까?" 파란 눈이 흔들리더니 감았다가 다시 떴다. 리이가 말했다. "고맙습니다. 아담. 어려운 일 이라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어려운 일을 해주십사 하고 요청하렵니다. 여기에 당신의 아들, 외아들 케이레브가 있습니다. 그를 보세요. 아담" 파리한 눈이 카알을 발견했다. 카알 은 입은 건조하게 움직였으나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리이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당신이 얼마나 오래 사실지 모르겠습니다. 오랫동안 사실 수도 있고, 한 시간을 사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아들은 살아 남을 것입니다. 결혼 을 할 것이고 그의 자녀들은 당신의 유일한 속자가 될 것입니다." 리이는 손가락으로 눈물 을 닦았다. "그는 홧김에 일을 저질렀습니다. 당신이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분노로 그의 형이자, 당신의 아들인 아론이 죽게 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카알이 말 했다. "리이... 그만둬요." "해야겠어." 리이가 말했다. "이로 인해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한이 있더라도 해야겠어. 마음을 먹었어." 그는 슬픔 듯이 미소를 짓고 다른 사람의 말을 인용했 다. "'잘못이 있다면 나의 죄입니다.'" 리이는 어깨를 폈다. 그는 날카롭게 말했다. "당신 의 아들은 죄의식에 사로잡혀 제정신이 아닙니다. 거의 견딜 수 없을 지경입니다. 그를 받아들 이지 않아 으스러뜨려서는 안됩니다. 아담." 리이의 숨소리가 목구멍에서 울렸다. "아담, 그에게 당신이 축복을 주세요. 죄의식에 사로 잡혀 혼자 지내도록 그를 내버려두지 마세요. 아담, 제 소리가 들립니까? 그에게 당신의 축 복을 내려 주세요!" 침대 전체가 뒤흔들리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정신 집중이 이루어졌다. 그는 애를 쓰면서 숨이 가빠졌다. 그리고 천천히 바른 손을 들어오렸다. 1인치 정도 올라갔 다가 다시 떨어졌다. 리이의 얼굴은 수척했다. 그는 침대 위쪽으로 가서 시트 자락으로 식은땀이 난 환자의 얼 굴을 닦았다. 그는 꼭 감은 눈을 내려다보면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 "고맙습니다, 아담. 고맙 습니다. 나의 친구요. 입술을 움직일 수 있어요? 입술 모양으로 아들의 이름을 불러 보세 요." 아담은 병약한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그는 입술을 벌렸으나 실패를 하고 다시 해보았다. 그리고 숨을 들이수었다가 내뿜었다. 입술을 스치며 한숨소리가 새어나왔다. 새어나온 그의 말은 공중에 매달려 있는 듯했다. "팀쉘 (뜻에 따라)!" 그의 눈이 감기고 그는 잠들었다. 인간 회복과 자유의지 이성호 (한양대 영문학과 교수) 존 스타인 백이야말로 많은 논의의 대상이 되었던 미국의 중요한 작가 중의 한  이다. 씨. 월커트를 위시한 몇몇 비평가들은 스타인백의 작품들을 자연주의 작품군에 포함시키려 하였는가 하면, 드블유. 프렌취 같은 많은 비평가들은 스타인백의 작품들을 대개 자각의 작 품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작품을 논의할 때 사용하는 용어가 다소 별다른 암시 적 의미를 가질 수는 있지만, 극단적인 요소가 짙은 드라이저의 '황혼'과 자각의 인식이 강 한 제임스의 '로데릭 허드슨'을 예로 들어 볼 때, 드라이저으 작중 인물들은 자신들이 무엇 을 하고 있는가, 또는 자신들의 행동 동기에 대한 자각적 인식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다시말하면 한쪽 사람들은 환경이라든지 전례라든지 충동이라든가 또는 우연에 따라 형성되 었고, 다른 사람들은 인과에 대한 인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스타인백은 황무지의 시대라고 할 수 있던 1920년대 후반에 일정의 자각의 작품을 쓰기 시작하여 1930년대의 대공항기에 자연주의적 경향이 짙은 인물들에 관심을 돌 린 후 다시 '분노의 포도'를 계기로 도덕적으로 또는 정신적으로 자신을 구제할 수 있는 능 력의 주인공들을 그림으로써, 그리고 파괴적인 힘에 직면하면서도 자신을 지켜볼 수 있는 인물들을 묘사함으로써 자각의 작품을 썼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러한 과정을 살피기 위해 이글은 스타인백의 작품발전의 과정을 일별하고, 자신이 일대의역작이라고 공언한 '에덴 의 동쪽'을 중심으로 그의 후기 작품을 분석하려 하는 것이다. 존 언스트 스타인백은 1902년 2월 27일 로스앤젤리스에서 샌프란시스코 방향으로 약 삼분 의 이의 거리에 위치한 태평양 연안의 샐리너스라는 농경지에서 태어났다. 모터리 구의 재 무 책임자였던 그의 부친 스타인백은 북 아일랜드의 얼스터에서 1850년대에 이주해 온 새뮤 얼과 엘리자베스 사이에 태어난 올리브해밀튼과 1890년에 결혼을 했다. 작가 스타인백의 외 가가 되는 해밀튼 가의 가계는 '에덴의 동쪽'에서 자세히 묘사되고 있다. 두 누이를 두고 세 번째 외아들로 태어난 작가 스타인백은 성경, 밀튼의 '실락원', 도스 토 예프스키, 플라우버트, 조지 엘리오트, 토마스 하디, 그리고 특히 말로리의 '아더 왕의 죽음 ' 을 탐독했다고 전해진다. 1920년과 1925년 사이에 그는 스탠포드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 으나 들쑥날쑥 학교를 다니느라고 졸업을 하지 못했다. 그는 소위 도시의 큰 경기를 타고 많은 사람들을 따라 뉴욕으로 갔다. 그곳에서 그는 아메리칸이라는 신문사의 기자 생활을 포함하는 갖가지 일을 했다. 스타인백 자신이 말했듯이 아마도 그는 기자로서의 생활에 실 패하고, 또 어떤 회사의 단편집 편집일에도 실패한 후, 다시 캘리포니아로 돌아왔다. 결국 그는 외딴 섬 타호의 관리인이 되면서 조용히 작품을 쓸 수 있게 되었다. 1929년에 유명한 카리비아의 해적을 서사식으로 쓴 '금잔'을 써서 처음으로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두 번째 소설 '하늘의 목장'은 향후 약 20년에 걸쳐 그의 작품들의 배경이 되고 있는 캘리포니아 를 소재로 농부의 생활을 그리고 있다. 이어서 1935년에는 과수원 노동자의 파업을 그린 '승 산 없는 싸움'을 발표했다. 스타인백의 인기는 1937년에 방황하는 이민 노동자들의 비극을 그린 '생쥐와 인간'이 나 오자 치솟기 시작했다. 인기의 여세를 몰아 다음 해에는 '적갈색 망아지'를, 그리고 단편 집 '긴 계곡'을 발표했다. 이 작품은 생활고 때문에 오클라호머에서 캘리포니아로 이주해 가는 농장 노동자의 비참한 생활상을 아름다운 인간애로 연결시키고, 앞서 말한 것처럼 파 괴적인 어떤 힘에 직면하면서도 자신을 지켜보는 중요 인물들을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이야 말로 몇 해 앞서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센세이셔널한 인기를 받은 것을 제외하 고는 양차 대전 사이에 발표된 최대의 작품이며, 종종 '엉클 톰스 캐빈'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 후 독일군에 저항하는 노르웨이의 소읍을 그린 '달은 지다.'를 1942년에, 유머러스하 게 건달 생활을 그린 '통조림 공장'을 1945년에, 성적 사회 풍자 소설 '변덕스러운 버스'를 1947년에, 멕시코의 우화를 시적 필치로 소박한 인간들을 통해 인상깊게 그린 '진주'를 1947 년에 각각 발표하여 꾸준히 인기를 모았다. 또 다른 그의 대작 '에덴의 동쪽'은 1950년 일레인 스코트와 세 번째 결혼 (첫번째 결혼 은 1930년에 캐롤 헤닝과였고, 긴도른 콩거와 1943년에 재혼 했었다.)을 한 후 영국 등을 여행하면서 구상하여 처음에는 '샐리너스 계곡'이라고 했다가 다시 제목을 바꾸어 1952년에 발표한 것이다. 이 작품은 앞서의 그 어떤 작품보다도 지적인 작품으로 알려졌으며, 주로 유 럽에서 큰 인기를 모았다. 그 이후에도 불란서의 정치적 소재를 다루었으나 분명히 미국의 사정을 풍자한 '피핀 4세 기 단기 치세'를 1957년에, 그리고 도덕적 규범의 붕괴에 따르는 사회문제를 다룬 '불만의 겨울'을 1961년에 발표했다. 이듬해인 1962년 10월에 이를 인정받아 노벨문학상을 받게 되 었 다. 그는 수상 연설에서 "인간의 완전 가능성을 전적으로믿지 않는 작가는 문학에 공헌할 수도 없고, 또 문학인이 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라고 말해 문학에 대한 자신으 ㅣ견해 를 밝혔고 또 그의 문학활동의 큰 줄거리를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1968년 12월 20 일 뉴욕에서 세상을 떠났다. 스타인백이 어린 시절을 보낸 샐리너스에는 그의 72회 생일을 맞아 그의 기념관이 세워졌다. 알래안과 결혼한 후 뉴욕 맨하탄에 잇는 이스트 사이드의 갈색 돌집에 머물면서 1947년 이래 구상하던 장편 소설 '에덴의 동쪽'을 1952년에 발표했다는 것은 앞에서도 말한 바 있다. 이렇게 오랫동안 구상을 한 본작품에 대해서 스타인백으 사상은 생전의 1951년 1월 29일과 11월 1일 사이에 출판사 편집자에게 보낸 편지가 그의 사후인 1969년에 '한 소설의 일지: '에덴의 동쪽'에 관한 서한'으로 출판됨으로써 보다 명확히 밝혀지게 되었다. 이 글 에서 편집자가 "두 책을 써서 이것을 하나로 묶은 것이 아닙니까?"라고 묻자, 스타인백은 " 나는 한 가족에 대해서 썼습니다. 다만 다른 가족들의 이야기를 이에 대한 대응 부분으로, 또는 페이스와 색상에서 대조를 이루도록 이용했을 뿐입니다."라고 대답하고 있다. 독자들이 그의 설명을 얼마나 받아들이는지는 모르지만, 이 작품에서 스타인백의 외가를 본판 해밀튼 가의 목가적 이야기와 의도된 사실이다. 그리고 이소설은 독자에 의해 경험되어질 수 있다 기보다는 오히려 만족스럽게 설명되어질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어찌 되었든 이 단계에 와서 그의 소설 작픔은 보다 생각을 깊게 하는 지적인 면을 강조학 되었고 등장인물도 인과 에 대하여 자각을 하는 단계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겠다. 이 작품이 지적 또는 철할적 정점에 이르면서 중국인 가사 관리인인 리이가 이렇게 묻는 다.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진리에 따라 세상에 이룩될 수는 없는가요? 고통과 광란의 원인이 밝혀지면 이런 것들이 뿌리채 뽑아질 수는 없는가요?" 자각의 작품이 묘사하고 있는 검토된 인생을 일이는 갈구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소설에서 스타인백은 이렇게 자각되 고 검토된 인생의 어려운 성취과정을 묘사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그는 세 상을 재구성하려는 계획을 극화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스타인백이 종종 인용하는 '실락원'에서 밀튼은 인간에 대한 신의 태도를 정당화하고 있다. 사실이지 '에덴의 동쪽'이후의 스타인백의 작품은 대게 이러한 주 제들을 우화화하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스타인백이 눈에 띄게 나름대로 인간에 대한 신 의 태도를 내세운 작품이 바로 미국적인 현대 아담을 다룬 '에덴의 동쪽'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의 이름은 누구나 알다시피 아담이다. 더구나 스타인백이 고양된 자각의 과정에 대 하여 의식적으로 작품을 썼다는 확신은 사후에 발간된 '한 소설의 일지: '에덴의 동쪽'에 관 한 서한'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 리포트는 자신이 대소설이라고 한 이 작품을 쓰고 있 는 동안에 작가가 느낀 감정, 그리고 목적들을 잘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쓰기 시작하기 두 달전인 1951년 4월 23일에 스타인백은 "나는 샐리너스 계곡에 대한 이야기를 소재로 인류 전체의 축도를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나는 그 어느 작가보다 도 내가 지금 의도하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들은 근본적으로 상징적 인 인물들이다." 라고 말함으로써 자각의 의도가 그의 마음 속에 깊이 작용하고 있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이 작품의 예술적 장단점에 대해선 오랫동안 논의가 되어 온 것도 사실이지만, 명확한 것 은 작가 스타인백이 인간의 자각의식 또는 자유의지에 대해서 참으로 진지하게 생각했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더구나 작가가 인간이 자기 행위에 대한 자가적 책임의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자연주의적 소설과 자각의 작품을 구별 짓는 예증으로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소설은 두 개의 이야기 사이를 물결이 굽이치듯이 전개된다. 하나는 스타인백의 외가 쪽인 해밀튼 가에 근거를 두고, 다른 하나는 아담 트래스크라는 가공의 가족에 근거를 두고 전개된다. 스타인백의 외조부를 모델로 한 새뮤얼 해밀튼은 숨은 수원을 찾고, 또 자신을 포 함한 아홉 자녀에게는 별 도움이 안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될 발명의 기재로서 인자한 노인으로 묘사된다. 한편 케넥티커트의 한 농부의 아들이었던 아담 트래스크는 집에 불을 질러 부모를 불타 죽게 한 악의 화신인 캐시 (후에 케이트로 불리움)의 유혹을 받아 그녀와 결혼을 한다. 캘리포니아에 도착하면서 캐시는 해밀튼의 도움을 받아 쌍둥이를 낳는다. (아론과 카알). 그녀는 집을 빠져나가기 위해 남편 아담을 상해하고 샐리너스 근교에서 한 청루의 주인이 된다. 이 과정에서 주인에게 독약을 먹이기도 한다. 버림을 받은 아담은 우을증에 빠지게 되 고 쌍둥이는 집안일을 보살피는 중국인 리이의 보살핌을 받는다. 아담과 두 쌍둥이를 제외하고는 모든 사람들이 캐시가 살아서 무슨짓을 하고 있는지 안 다. 그러나 누구도 이를 아담에게 알리지 못한다. 이때 해밀튼은 이 사실을 아담에게 알리는 책임을 떠맡는다. 후에 새뮤얼은 자기의 행동을 중국인 하인 리이에게 이렇게 설명한다. "나 는 모든 인간이 파멸되었다고는 생각치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파멸당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횃불이 어두움을 비추어 겁에 질린 사람들을 인도하기 바라는 사람들도 있다." 새뮤얼의 판단이 들어 맞아서 아담은 그녀를 방문한 후 그녀의 악의적 부정에서 헤어나 생 기를 되찾게 된다. 아이로니칼하게도 아담이 다시 회생하면서 해밀튼이 죽어 간다. 하지만 리이는 해밀튼의 선행이 트래스크 가의 오랜 고통을 통하는 동안 결국에는 승리할 것을 확 신한다. 한편 두 쌍둥이는 사람들이 죽었다고 말하는 어머니를 언젠가는 만나게 되리라고 어렴풋 하게나마 확신하게 된다. 어떤 기회에 어머니가 살아서 청루를 경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게 된 카알은 자신도 사악한 인간이 아닌가 하는 환상을 하시 시작한다. 그러나 그는 어머 니를 만나 대화를 나눈 후 자신의 천박성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천박성이 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카알은 아론에게 어머니가 살아서 타락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고 있다 가, 1차대전 중 콩장사를하여 번 돈을 아버지에게 선물로 전하려 하나 이를 아버지가 거절 하자, 그는 어머니에 대한 사실을 아론에게 알린다. 아론은 어머니의 사악한 행위를 목격하 고는 이를 참지 못해 군에 입대한다. 어머니 케이트는 과거의 악행이 자신의 목덜미를 잡으 려는 사실을 깨닫고 자살한다. 아론도 군에서 전사한다. 아담은 아들의 전사 소식을 듣고 치 명적인 뇌일혈을 일으킨다. 카알은 이 모든 것이 자기의 잘못 때문이라는 죄의식으로 괴로 워한다. 리이는 카알을 데리고 아담의 병실로 가서 말한다. "아담, 당신이 얼마나 오래 사실 수 있 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아들은 살아남을 것입니다. 결혼을 할 것이고 그의 자녀 들은 당신의 유일한 상속자가 될 것입니다. 그는 홧김에 일을 저질렀습니다. 거의 분노로 그 의 형이자 당신의 아들인 아론이 죽개 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잘못이 있다면 나의 잘못입 니다. 당신의 아들 카알은 죄의식에 사로잡혀 제정신이 아닙니다. 그를 받아들이지 않아 으 스러뜨려서는 안됩니다. 그에게 당신의 축복을 내려 주십시오. 그에게 희생의 기회를 주세 요." 이러한 간청을 듣고 아담은 안간힘을 쓰고 식은땀을 흘리며 "그의 뜻에 따라." 라고 말 한다. 그리고는 눈을 감고 영원한 잠에 빠진다. 이 장면 속에서 스타인백의 주된 관심사가 구양성서 창세기 4장에 나오는 히브리어에 있 는 것은 확실하다. 흠정역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이 카인에게 말하기를 "너희들이 죄를 다스 리게 하리라."라고 했고, 미국 표준 성경에는 "너희들이 죄를 다스리라."라고 되어 있다. 중 국인 하인 리이는 이 점을 명확하게 하기 위하여 네가 중국 학자로 하여금 2년간 히브리어 를 공부하여 이 해석을 명확하게 해달라고 한다. 그들의 해석은 "너희들은 죄를 다스릴 수 도 있으리라. 이는 너희들에 달려 있느니라."이었다. 이 말은 인간의 의지 또는 자아인식에 따라 죄를 다스릴 수도 있고 또는 다스리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팀쉘'이라는 단어에 대한 스타인백의 해석에 대해선 구구한 논의가 있을 수 있으나, 작가 에게 정확한 어원적 내지는 내의적 해석을 요구할 수는 없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작가 스 타인백이 자각의 의지 또는 자유의 의지를 인간에게 맡기고 있다는 문학성에 있다는 것이 다. 다시말해서 작가 스타인백이 성경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성 경을 이용하여 작가 자신의 내적 철학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에덴 의 동쪽'이라는 이 문학작품은 인간의 운명에 대한 신의 개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창조해낸 자신의 인간 운명에 대한 내적 인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상에서 이 작품과 관련을 지으면서 스타인백의 생애를 대강 살폈고 또 이 작품이 안고 있는 자유 의지 내지는 자아 인식의 의미를 살폈다. 사실이지 캐시가 새뮤얼 해밀튼의 팔을 물어뜯었을 때, 또는 그녀의 사악한 행위가 악마의 탈을 쓰고 나타날 때마다 아담을 유혹하 는 뱀에 비유되기도 하고, 트래스크가 샐리너스 계곡에 낙원을 건설하려다 모든 일이 파명 에 이를 때 성경의 '낙원에서의 추방'에 비유되기도 하고, 쌍둥이 형제가 시기하고 아론이 전사하게 되는 장면이 구약 성서의 이런 이야기들을 다시 늘어놓은 것은 아니다. 단지 인간 은 카인의 이야기처럼 인간애의 부족으로 죄를 짊어지게 되고, 원죄를 짊어진 인간은 선과 악 그리고 애와 증 사이에서 해매게 되지만, 이 쌍갈래 길을 선택하는 권리는 인간이기에 갖는 권리인 것이다.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자각의 능력을 갖고 있고, 또 자기 행위에 인 과를 예지하는 자유의 의지를 갖고 있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이 작품은 인간이 자기 의지 에 따라 인간성의 회복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