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3 전2권 중 제1권 지은이: 쌩떽쥐뻬리 옮긴이: 구본수 펴낸곳: 도서출판 움직이는 책 엮은이: 이상각 [ (저자 및 역자 약력) * 지은이 쌩 떽쥐베리 1900 년 6월 리용 출생. 프랑스의 비행사. 소설가. 인류문학상 가장 보기 드문 행동력의 작가이며 주로 비행가로서의 체험을 소재로 한 소설을 썼다. 작품으로는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대상" 수상작인 "인간의 대지", '페미나 문학상'을 수상한 "야간비행", "남방 우편기", "전시 조종사" 등이 있다. * 엮은이 이상각 충남 태안의 바다가 보이는 농촌 출신. 시인, 출판 기획자. 도서출판 들녘 편집부, 월간 통일지 기자, 계몽사, 종로학원 고등부 편집위원을 거쳐 현재 출판기획 해오름 대표. 문예지 "창작춘추" 동인. "군기를 다시 잡아라", "밝은 내일을 위하여", "플라톤 뒤집기", "어린이 논리교실", "스크랩 상식 100가지" 등을 기획. 시집으로는 "내일의 찬가"가 있다. [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읽는 분들에게 쌩 떽쥐뻬리는 파일럿으로써 무한한 하늘을 자신의 행동의 무대로 삼은 작가이다. 그는 창공을 가로지르는 환상가이자 모험가로, 또 스페인 내전과 제 2차 세계대전의 포연 속에서 몸을 아끼지 않은 행동인으로, 한편 독특한 자신만의 세계를 형상화시킨 작가로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쌩 떽쥐뻬리의 작품은 대부분이 그의 삶 속에서 우러나온 것들로써 어린이 같은 맑은 눈으로 세계와 인간을 바라보며 드넓은 우주의 진실을 설파하려는 뜻이 가득 담겨 있다. 때문에 우리는 그의 작품 속에서 용감하고 진지한 삶에의 도전, 인간의 책임감과 성실, 인류에 대한 개인의 공헌, 인간 상호간의 연대 의식 등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들은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3)"에서 자신의 의식과 목표를 찾아 헤매면서도 고독과 사랑에 목말랐던 위대한 작가이자 한 인간의 모습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3)"은 쌩 떽쥐뻬리의 절친한 친구이자 일면 사랑의 대상이었던 르네 드 쏘씬느라는 여성에게 보낸 편지글과, 쌩 떽쥐뻬리가 포연이 자욱한 전장에서나 낭만을 즐기던 카페에서나 항상 잊지 않고 휴대했던 얇은 가죽수첩 안에 깨알같이 씌어졌던 그의 기록 "사색노트"에서 핵심적인 부분을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추렸으며, 한편 어른들을 위한 쌩 떽쥐뻬리 최고의 동화 "어린왕자"를 함께 엮은 것이다. "젊은이의 편지"에서 쌩 떽쥐뻬리는 남프랑스와 서북부 아메리카, 남미 등지를 비행하면서 느낀 흥분과 감동의 세계를 여자친구에게 편지의 형식으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글들은 분명 쌩 떽쥐뻬리 자신에게 보내는 메시지로 보인다. 글 도처에서 편지로 보낼 수 없는 내용을 스스로에게 썼노라고 고백하기도 했지만, 그는 한 여성을 마치 고해성사를 받는 신부처럼 마음속에 그려 놓고 자신의 온갖 이야기를 쏟아 부었던 것이다. "사색노트"는 쌩 떽쥐뻬리 자신의 도덕, 종교, 언어, 지성, 정신 분석 등 인생 문제 전반에 대한 사상을 1936 년에서 1944 년까지 8 년간에 걸쳐 기록한 것이다. 그는 언제나 가죽수첩을 들고 다니면서 스스로의 생각을 수시로 정리하고 첨삭하였다. 그것이 그의 사후 1967 년에 이르러서야 출판되었다. 본래 원본은 문장이 난해하고 자신을 위해 썼기 때문에 정리되지 않은 부분이 많았다. 때문에 본 책에서는 그 에센스만을 뽑아 내어 그의 다양한 사색의 방향을 음미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한편 "어린왕자"는 독자들이 알고 있다시피 어른들을 위한 동화이다. 쌩 떽쥐뻬리는 "어린왕자"를 통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눈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것'이라고 어른들에게 가르친다. 어린이들만이 자기가 사랑하고 나아가야 할 길을 알고 있다. 때문에 그는 이 작품 속에서 다음과 같은 끊임없는 의문을 표시하며 어른들의 마음에 물음표를 던진다. '어른들은 참 이상하다. 항상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으려 하기 때문이다.' 나를 찾아 떠난다는 것은 바로 어린 왕자의 마음, 더럽혀 지지 않아 상자 속의 작은 양을 바라볼 줄 아는 마음을 찾아가는 것이다. 어른들은 끝내 이 양을 찾아내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어린 왕자의 눈으로 이 양을 바라본다. 때문에 이제 우리는 별을 볼 수 있고 여우를 길들일 수 있으며 꽃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3)"에 가득한 쌩 떽쥐뻬리의 세계는 문학의 열정, 삶의 구도자적인 그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 자신의 끊임없는 여행길에서도 동심과 사랑과 모험심을 잃지 않았던 쌩 떽쥐뻬리. 그의 길고 긴 방황은 아마도 그토록 순수하고 맑은 세계, 그의 내면에 담겨 있는 어린 왕자를 찾아다닌 길이 아니었나 싶다. 96 년 가을 이상각 씀 [ 젊은 날의 편지 [ 어린 왕자의 추억 르네 드 쏘씬느 젊음과 우정의 십년간. 그의 나이 스무 살에서 서른 살 동안. 이 기간은 넘치는 감정과 익살과 논쟁의 시기였다. 쌩 떽쥐뻬리 앙뜨완느, 훗날 유명 작가로 이름을 드높인 그는 이 때부터 자기 행동의 일관성, 그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영광, 다시 말해서 또 하나의 비장한 면을 알게 된 것이다. 쌩 떽쥐뻬리의 글을 읽으면 수많은 추억의 영상들이 한결같이 생생한 느낌으로 엄습하여 억누를 수 없는 감동으로 되살아난다. 문득 그의 한 가지 특이한 몸짓이 떠오른다. 왼쪽 손 엄지와 셋째 손가락 사이에 담배 한 개비를 끼고는 동시에 성냥갑을 집는다. 오른손으로 켠 성냥 불빛이 반짝이며 아래로부터 그의 얼굴을 밝히더니 곧 가물거리다가 꺼지고 만다. 그럴 때면 건장한 그의 체구와 바또의 그림 '어리석은 사람들'의 주인공 같은 그의 얼굴이 갑자기 나타났다가 어둠속에 잠겨들곤 했다. 그와 대화를 하다 보면 그는 아주 천천히 어떤 이야기를 시작하여 무척 단호하게 자기 입장을 옹호하였으며 동시에 은은한 목소리로 극히 간략하게 결론을 내리곤 했다. 쌩 떽쥐뻬리는 언제나 어린아이들에 의해 흔히 쌓아지기도 하고 또 정복되기도 하는 침묵의 성채 뒤에 서 있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들은 줄곧 어린아이처럼 지내고 있었다. 그는 보쎄초등학교를 거쳐 쌩 루이 중고등학교를 나왔는데, 나의 오빠와는 중학교 동창이었다. 학교 친구들은 이렇게 말했다. '참 괴짜야! 그 아이는 육분의(항해에 쓰이는 측량기기)를 사기 위해 크림을 탄 커피만 먹고 산대. 수업 시간에도 단편소설을 쓰고 있거든. 아마 나중에 유명한 사람이 될 거야.' 이 년 후 쌩 떽쥐뻬리는 해군사관학교 시험에 떨어졌다. 우리들은 한데 어울려 앞으로의 진로에 대하여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다. 파리의 어느 여름. 더위가 공부를 하는 학생들을 괴롭혔던 그 시절. 되돌아보면 그 더운 여름날은 우리들에게 카페의 테라스에서 오랫동안 환담을 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해 주었다. 쌩 제르망 데 프레에 있던 맥주홀의 낭만과 추억은 쌩 떽쥐뻬리에게도 아마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될 것이었다. 생 기욤가에 있는 회관에서 연주회가 열릴 때, 쌩 떽쥐뻬리는 음악에 푹 젖어들어 있곤 했다. 그는 가끔 내 바이올린을 움켜쥐고 즉흥적으로 연주를 하다가 갑자기 영화 구경 가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지금도 나는 그의 어떤 소넷트가 생각난다. 시인다운 눈길로 어떤 도시의 날카로운 단면도를 응시하면서 이렇게 읊조렸었다. '외로운 새 한 마리가 그 곳에 쉴 수 있으련만' 그럴 때면 쌩 떽쥐뻬리는 박자에 극히 민감해지곤 했다. 어느 정도냐 하면 다음과 같이 말할 정도였다. '리듬이 하나 엇나가기보다는 오히려 프랑스어가 하나 틀리는 것이 더 나을 거야!' 우리들의 대화는 다시 이어졌다. 그는 절친한 친구 에우세비오 앞에서 악마의 편을 들곤 했다. 그들은 가장 가까운 관계였지만 그들 사이에는 짓궂은 야유가 항상 있었다. 이런 면 때문에 나는 언젠가 오해의 위험을 무릅쓰고 쌩 떽쥐뻬리에게 우정어린 조언을 한 적이 있다. 나는 문학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기를 잘 했다. 그 후 나는 그의 편지에게 나를 믿는다는 고백을 받았던 것이다. 군 복무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의 오빠는 해군으로, 에우세비오는 알프스 엽보병으로, 그리고 쌩 떽쥐뻬리는 공군으로 입대했다. 입대 후 쌩 떽쥐뻬리의 어린아이 같은 순진무구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쌩 떽쥐뻬리는 부르제 공항에서 곡예사 같이 저공비행을 하는 등 온갖 묘기를 부렸다. 이미 약혼을 한 몸인데도 이러한 어린아이같이 위험한 행동 때문에 당시 약혼녀는 그에게 비행기 조종을 그만두라고 간청하곤 했다. 모험적인 그의 행동 때문에 친구들은 그를 사형수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마침내 쌩 떽쥐뻬리는 변두리 지역에서 또 저공비행을 하다가 휘발유가 떨어져 추락하고 말았다. 두개골이 부서지는 중상을 입었지만 천운으로 회복이 되었다. 이후 그는 약혼녀가 원하던 대로 사표를 제출했지만 그녀의 가족들과는 멀어지게 되었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그는 일을 해야 했다. 가난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프랑스 남부 지방의 명문가 출신이지만 집안의 도움을 받기에는 너무 멀었다. 드디어 그는 봐롱 뛰일러리 회사 사무실의 회계원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쌩 떽쥐뻬리의 일이 아니었다. '그 일은 마치 바닥에 끌리는 옷자락처럼 나에게 맞지 않아!' 마침내 우울증이 생겨났다. 그것은 그가 계산하는 숫자와 함께 점점 커져가기만 했다. 결국 그는 쏘레 화물자동차 회사로 직장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이제 쌩 떽쥐뻬리는 5톤짜리 화물차를 팔러 다니는 외무사원이 된 것이다. 이로 인하여 어쨌든 그는 여행을 하게 되었고 프랑스 방방곡곡을 샅샅이 알게 되었다. 외무사원이 된 쌩 떽쥐뻬리는 프랑스 중부 산악 지대인 모르방에서 그는 친구 에우세비오와 함께 여행을 계속하다가 혼자서 크뢰즈 지방을 답사했다. 그 동안 우리들은 쌩 떽쥐뻬리를 그리워 하기만 했다. 그의 다정한 편지가 끊겨 궁금해 하던 차에 그가 돌아왔다. 그래서 우리들은 다시 쌩. 제르망. 데프레 유흥지와 리프 맥주홀과 아. 라. 담 블랑셔 제과점을 부산하게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언젠가 아. 라. 담 블랑셔에서 나와 언니 로오즈, 쌩 떽쥐뻬리가 만났다. 우리들은 문학에 대하여 상의할 예정이었는데 화제가 빗나가서 샹젤리제 극장에서 피도예프 극단이 공연하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다 제각기 진실이 있는 법'의 작가 필랑델로에게로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이 토론이 얼마나 격렬했는지 제과점의 웨이트레스들이 소금 석고상처럼 굳어져 버릴 정도였다. '당신은 나에게 있어서 인생의 항구요. 리넷뜨' '아니, 한 마리의 돼지라구요! 쌩 떽쥐뻬리?' '이거 정말 너무한데!' 이렇게 시작된 봄의 따스한 여흥은 흥분과 감동, 호기심으로 우리들을 들뜨게 했다. 그런데 이러한 분위기를 깨뜨리면서 갑자기 필랑델로란 화제가 등장했던 것이다. 한순간 쌩 떽쥐뻬리의 이마에 구름이 덮이고, 그의 눈이 안개로 흐려지는 것을 나는 보았다. 신기할 정도로 맑고 큰 그의 까만 눈이 마치 물고기눈처럼 옆으로 돌려지더니, '아!' 하는 한숨이 터져나왔다. 언니는 필랑델로의 이야기를 계속했고 덩달아 나도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우리는 '아름다운 모험'과 '아르센느 뤼벵'을 보았다. 그러자 조용한 분위기에 사냥 이야기도 아니고 탐정 이야기도 아닌 철학적인 이야기가 폭탄 터지듯 시작 되었다. 전에 없던 열띤 철학적인 대화였다. 쌩 떽쥐뻬리는 '흠!' 하며 눈에 뜨이게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건 아주 간단해요' 쌩 떽쥐뻬리의 노기를 의식하지 못한 언니가 계속 말을 이었다. '그런 흥미거리를 찾으려면 입센까지 올라가야겠는데요' 그러자 쌩 떽쥐뻬리는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흥!' 하고 비웃는 투로 소리쳤다. '어떻게 감히 비교하려 듭니까? '당신네'의 필랑델로는 문지기들이나 하는 추상론입니다.' 그가 갑자기 일어섰기 때문에 작은 스푼 하나가 떨어졌다. '쨍' 하는 소리가 주위의 소금 석고상들을 깨웠다. 어째서 그가 그처럼 갑자기 화를 냈을까? 나는 감동적인 입센의 '물오리'의 추억을 기억한다. 그렇다면 다른 극적인 힘이 무슨 모욕이 된단 말인가? 사실 형이상학에 관해서 필랑델로와 그의 독자들인 우리들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야기를 한 것이었다. '문지기'란 단어가 석연치 않게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정말 받아들이기 힘든 말이었다. 그 역시 자신의 그러한 말 때문에 괴로워 할 것이리라. 그래서 나는 철학적이며 문학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서 미래의 쌩 떽쥐뻬리가 보일 태도를 상상하면서 밤잠을 설쳐야만 했다. 쌩 떽쥐뻬리는 일년에 한 대의 트럭밖에 팔지 못했다. 쏘레 회사의 간부들은 쌩 떽쥐뻬리를 멋있다고 생각했으나 별로 실질적인 인물은 못된다고 판단했다. 이런 시기에 그의 별이 문학의 하늘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쌩 떽쥐뻬리의 사촌누이가 많은 문인들에게 귀부인으로서의, 또한 친구로서 대접을 베풀면서 기회가 열렸던 것이다. 쌩 떽쥐뻬리가 앙드레 지드와 라몽 페르낭데, 또 편집인인 가스 똥 갈리마르를 만난 것은 바로 그녀의 집에서였다. 또 그들을 통하여 폴 발레리와 레몽, 폴 파르스와 모든 "신프랑스 잡지"의 기고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이 잡지의 기고자 중의 한 사람인 쟝 프레보는 새로운 저서에 집념하고 있다. 그와 함께 대화를 나누면서 쌩 떽쥐뻬리는 젊은 파일럿의 머리를 떠나지 않던 하늘에 대한 향수에 젖었다. 그 향수를 표현하기 위해 어떤 단어들을 사용해야 할지! 정말 굉장한 향수야! '이 모든 것을 쌩 떽쥐뻬리 자네는 써야 하네!' '그렇게 생각하나?' 얼마 후 '나비르 자르쟝' 잡지사의 편집국장인 쟝 프레보는 젊은 작가 쌩 떽쥐뻬리 드 앙뜨완느를 그 잡지사의 창설자이며 사장인 아드리엔느 모니에에게 소개해 주었다. 그리하여 쌩 떽쥐뻬리가 쓴 "비행사"는 르뷔 지 뿐만 아니라 새로이 발간된 '아미 데 리브르'에도 실리게 되었다. 이렇게 발탁되어 호평을 받는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쌩 떽쥐뻬리는 가끔 이렇게 외치곤 했다. '역시 나는 행복해지고 싶었던 거야!' 그러나 그는 아직 외무사원이었다. 이 직업은 우리 모두를 자기 못지 않게 괴롭혔다. 나는 쌩 떽쥐뻬리를 펜으로 영광과 부를 안고 파리와 온 세계를 정복하는 발자끄 소설의 주인공처럼 생각했었고, 사실상 그는 자기의 발 아래 이 모든 것을 가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이러한 첫 성공 후에도 작가로서의 길을 걷지 않는데 적잖이 놀랐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글을 쓰기 전에 우선 살아야 한다.' 또 그는 '글을 쓴다는 건 중요한 일이야!'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쌩 떽쥐뻬리는 다시금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옛 스승 가운데 한 사람이 라떼조에르 항공사의 경영자를 알고 있었다. 그 회사에서는 새로운 우편 항공기 운항을 계획하고 있어서 파일럿이 필요했다. 쌩 떽쥐뻬리는 지난 날의 군 입대가 그의 미래를 예고하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는 결심했다. 사무실과 장사와 트럭도 이제 그만이었다. '내가 운에 맡겨야 할 자본이란 하나밖에 없다. 내 몸밖에.' 그러면서 그는 떠났다. 친구들은 그에게 편지를 썼다. 고독을 메우기 위해 그가 지원했던 비행, 우리들은 마치 돌팔이 의사처럼 그의 피곤을 회복시킬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편지는 오고갔지만 우정 속에서 보다 빨리 전달되는 사랑만큼은 충분히 교감할 수 없었다. 그 사회에서 불화와 침묵이 생기자 쌩 떽쥐뻬리에겐 우울증이 생겨났다. 괴테가 말했던가. 우울증이란 '천재가 가지는 신체적인 특징이다'라고. 인생의 충격적인 일들 앞에서 이는 불행한 일이지만, 시인의 이러한 민감한 감수성은 그로 하여금 천상의 소리를 받아들이게 해 준다. 고독은 침울하지만 그의 말을 빌리면 거의 신기한 고독이기도 하다. 이는 '삶의 의의'에 대한 불안한 탐구이기도 하며, 충돌이 없지 않은 '자연'과의 사귐이기도 하다. 때로는 시간의 작용이기도 하고 때로는 생활 환경과 투쟁이기도 하지만, 자연 환경이 짓는 미소 앞에서는 느닷없이 긴장이 풀리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인생의 유머와 사랑은 그러한 고독에서 솟아 나오는 것이다. 항상 강력히 작용하는 '천직'의 부름과 그로의 전진에 따라, 위험 신호도 더욱 커지게 마련이다. 그러한 사실들을 우리에게 분명히 말해 주는 글로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으므로 쌩 떽쥐뻬리 스스로 어떤 형이상학적인 두려움도 가지고 있지 않은 '죽음'과의 첫 대결을 엿본 것이다. '죽음은 마치 태어나는 것과 같아.' 그런데 갑자기 그 죽음이 나타난 것이다. '그 죽음은 형용하기 어려운 새로운 일종의 예지다. 마치 무서운 절벽을 뛰어넘기 위한 것처럼. 그는 어린 시절로 뒷걸음 쳐서 그곳에서 자기의 초점을 찾는다. 그것은 마치 내가 어렸을 때 가졌던 출발에 대한 동경을 상기시켜 준다.' 다른 아늑한 장애물은 그에게 죽음과 비슷하다. 난해하고 가까이할 수 없는 듯이 보이는 그것. 바로 마음의 세계이다. '그것은 나에게 어떤 얼굴을 상기시키는데^5,5,5^ 나는 방심하는 바로 그 순간으로 느껴졌다.' 이때가 바로 하늘과 땅 사이에 기록된 파열과 추락을 면치 못하는 순간이다. 이는 불안이 엄습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쌩 떽쥐뻬리의 시적이며 인간적인 공명을 스트라디바리우스와 비교 할 수 있다면 그 이유는 바로 그의 고상한 마음씨 때문이리라. 마치 귀중한 악기에서와 같이, 진동하는 그 악기의 정확한 자리를 치기만 하면 모든 음을 다 낼 수 있다. 그 악기의 현과 음관과 악궁에 미치는 상상할 수 없는 압력. 즉 시련을 그의 마음이 극복하여 그 시련을 일종의 찬가로서 완성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저음의 현은 항상 반향을 일으킬 수 없다. 쌩 떽쥐뻬리가 이미 도달한 위대한 예술가의 연주에서는 그의 다른 옛 애인과 시골에 대한 부드러운 변주곡들은 명쾌하고 짓궂게 들린다. '토니오는 시골뜨기다.'라고 레옹 폴 파르끄가 말했다. 우정은 산산조각 나 버릴 수 있지만 감상적인 우정의 발자취는 남는 것이다. 지금 쌩 떽쥐뻬리는 다카르까지 정기 우편기 운항을 맡고 있다. 엔진과 기계 상태도 무시하고, 아랍인들의 적대 행위도 무시하며 그는 비행하고 있다. 아프리카 원주민 중 어떤 종속들은 비행기를 향해 총을 쏘아댄다. 그들은 조난 당한 비행사들을 잡아 약탈하기도 하고 고문을 하기도 한다. '나는 정말 자유가 필요하다.' 그는 잠 못 이루고 있다. 그들은 위험 지역의 상공을 비행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그들의 밀접한 연대의식은 계속될 것이며 더욱 강화 될 것이다. 이러한 우정의 한 복판에서 쌩 떽쥐뻬리의 껍질은 녹아 용해되어 버릴 것이며, 장차 쌩 떽쥐뻬리의 위대한 특색이 새겨질 것이다. 쥐비 갑의 지휘관으로 임명되자 판자로 된 초소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초소는 에스파니아의 요새 정면에 세워졌다.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착륙지.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여 있는 곳이다. 무어족과 협정을 맺지 않으면 싸워야 했다. 에스파니아 인들을 설득시켜 일시적으로 동맹을 맺기도 했다. '희망에 넘치는 새해 아침!' 1927 년 1월 1일 황홀한 밤에 그는 이렇게 외쳤다. '바람에 나는 희롱 당하고 있어!' 그러나 말을 타고 무장한 쌩 떽쥐뻬리가 다시 일어나서 무어족들을 평정하러 가기 위해서는 시종과 어린 왕자는 잠을 자야 하는 것이다. 어디에서나 그는 책임자였다. 비행기를 탈 때에도 낙타를 탈 때에도 길을 걸어갈 때에도 그는 무수한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 그는 외교상의 투쟁이나 혹은 피비린내나는 전투를 치러서 조난 당한 파일럿들을 구하기도 했으며, 또한 희생자들의 죽음을 슬퍼하기도 했다. 그는 에스파니아인들을 설득시켜 긴급히 후원을 받아 적들을 진압도 하고 정복하기도 했다. 그는 다른 전사들 보다 더욱 더 혁혁한 무훈을 세웠으며 신화의 주인공처럼 빛나는 공적을 쌓았다. 이러한 십자군 같은 그의 전투에서 이마가 숙여질 따름이다. 쌩 떽쥐뻬리는 휴가를 얻어 프랑스에 다시 돌아왔다. 그는 자기 자신이 솔선수범하여 자기의 항공대와 다른 항공대의 인화를 실현하지 않았던가? 파리에 돌아올 때 그는 남방항공로에서 첫 순교를 한 희생자에 대한 경의를 표시한 "남방우편기" 작품의 원고를 품에 끼고 돌아온 것이다. 아직 넘어야 할 단계가 하나 남아 있다. 파리에 돌아오자 쌩 떽쥐뻬리는 알젠틴 항공 우편기의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1929 년 가을부터 그는 부에노스아이레스 항공 노선을 개척해야 했다. 불타는 대륙까지도 항공 노선은 미리 준비되고 개척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앞으로 그가 해야 할 과업이었다. 쌩 떽쥐뻬리에게는 이와 같은 대서양 횡단이 그의 명성에 합당한 능선이었으며 그가 아직 갖지 못한 황금의 화살인 것이다. 그 때문에 그는 성공을 거두었다. 그의 동료와 친구들의 모임에서부터 시작된 쌩 떽쥐뻬리의 공적에 대한 이야기가 그를 모르는 사람들과 외국인들에게까지 전해졌다. 전쟁과 극도의 예찬을 받은 기간을 합한 십오년 동안에 걸친 조종사로써의 그의 서사시는 차라리 전설일 것이다. 그와 동시에 그의 작품들은 상으로 장식되었다. "야간비행", "인간의 대지", "전시 비행사", "어떤 인질에게 보내는 편지", "어린 왕자", "성채" 등 그의 빛나는 작품들은 문학적일 뿐만 아니라, 대중적이고 세계적인 영광을 누렸던 것이다. 우리의 방심한 "어린 왕자"는 이러한 영광 속에서 가장 심한 단장의 비애를 느낄 것이다. [ 글의 진실 1923 년 가을 리넷뜨, 나는 정말 바보인가 봅니다. 당신의 콩트는 항상 옆에 끼고 다니지만, 당신이 준 풍경 사진은 그만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때문에 일요일날 전화를 했더니 집에 없더군요. 리넷뜨, 당신에게 나의 깊은 우정에 대해, 그리고 내가 얼마나 진심으로 당신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어제 나는 에우세비오의 개선기념식장에 갔었습니다. 그는 식장에 가득한 청중들 앞에서 첨탑보다 더 뾰족한 산악 지대를 어떻게 정복했는지에 관하여 연설을 하고 있었어요. 그는 자신의 영웅적인 행동에 대하여 실감나게 묘사를 했는데. 청중들은 어찌나 감동했는지 부르르 몸을 떨기까지 하더군요. 이야기는 꽤 좋았지만, 그의 표현은 리넷뜨^5,5,5^. 그는 장엄한 산의 정상을, 하늘을, 여명을, 그리고 석양을 캔디와 쨈과 같이 달콤하게 비유를 했어요. 아침에 떠오르는 첫 햇살을 받은 산봉우리를 장미빛으로, 지평선을 젖빛으로, 그리고 바위들이 황금빛으로 표현했지요. 정말 그가 말한 경치에 군침을 흘릴 지경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화려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문득 당신의 글이 오히려 담백하고 간결하게 쓰여져 더 좋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리넷뜨, 열심히 글을 쓰세요. 당신은 대상물에서 그 물체에 독특한 생명감을 주는 본질적인 요소를 아주 잘 포착하고 있답니다. 에우세비오에게는 대상물들이 추상적으로 남아 있을 뿐입니다. 그것은 바로 '정상과 석양과 여명' 뿐입니다. 그것은 보수적이어서 가게에서 파는 액세서리와 다름이 없습니다. 그가 자신의 이야기들을 화려하게 치장하면 할수록 더욱 더 평범해질 뿐이지요. 어떻게 쓰느냐를 배워야 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를 배워야 하는 것이지요. 쓴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니까요. 에우세비오는 어떤 대상을 선택하여 그것을 미화하려고 온갖 노력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형용사는 그림에 덧칠을 하는 것과 같아요. 중요한 본질을 끌어 내지 못하고 자기 멋대로 장식만 붙이는 셈이지요. 산봉우리에 관해 말할 때 그는 신과 보랏빛 색깔과 독수리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듣는 이들은 경건해지고 감동에 사로잡히곤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속임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가 받은 그 인상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생각해야만 합니다. 대상이란 마음속에서 우러난 반작용으로 생겨나는 것이므로 결코 장난이 아니란 말입니다. 내가 에우세비오의 예를 든 것은 그의 결점이 당신의 장점을 대조적으로 잘 부각시켜 줄뿐만 아니라 당신이 이끌어 내야 할 부분을 잘 나타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항상 당신이 받는 인상으로부터 시작을 하십시오. 그러면 진부한 표현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당신의 이야기 속에는 어떤 밀접한 연관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갖다 꾸며댄 부분들로 이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랍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독백은 지리멸렬하지만, 그 독백이 필연적이고 논리적인 인상을 얼마나 주고 있으며 자기 주장을 얼마나 옹호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십시오. 그의 독백이 갖는 연관성이란 내재적인 것입니다. 다른 작가들의 글을 보십시오. 간혹 그 안에 살아 있는 인물들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외적으로는 논리적으로 보일지라도 그들의 말이나 행동에 있어서는 터무니없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것은 에우세비오의 묘사처럼 인위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대부분의 작가들은 어떤 대상에 지나치게 장단점들을 결부시켜 이야기를 꾸며냄으로써 살아 있는 인물 창조에 실패하곤 합니다. 어떠한 감정이 마치 즐거움과 같은 단순한 것일지라도, 만일 당신이 당신 이야기의 주인공에 대하여 '그는 즐거운 인물이다'라고 말로도 만족하지 못할 경우, 그러한 감정은 너무나 복잡해서 묘사할 말을 만들어낼 수가 없는 것이지요. 더구나 그런 작품들은 개인적인 것밖에는 거의 표현하고 있지 않아요. 어떤 기쁨이란 다른 어떤 기쁨과 같을 수가 없습니다. 표현해야 할 것은 바로 이러한 차이 즉 그 기쁨이 가지는 특유의 모습을 포착해야 한다는 말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유식한 체 그 기쁨 자체를 설명해서는 안 됩니다. 결과적으로 그 기쁨을 묘사하되 개인의 반응에 따라 묘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그는 즐거운 인물이다'라고 말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지요. 그러한 기쁨은 마치 당신이 느꼈지만 어떠한 단어도 정확하게 적합하지 않는 기쁨처럼, 그 자체가 독자적인 개성을 갖고 생긴다는 말입니다. 만일 당신이 기쁨이란 단어가 소설 주인공의 기쁨을 표현하기에 족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그 단어가 인위적인 것이며 또한 당신은 말해야 할 뜻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랍니다. 내가 좀 우스꽝스러워진 것 같군요. 이런 말은 그만 두겠습니다.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작은 술집에는 피아노가 감상적인 곡조를 연주하고 있습니다. 회계원이 좌우로 몸을 꼬고 있군요. 지배인은 하품조차 하기 싫은 모양인가 봅니다. 보이는 기침을 하면서 나의 주의를 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마지막 손님이기 때문이겠지요. 우울한 장면이^36^예요. 지친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서야겠습니다. 리넷뜨, 저번에 바하의 곡을 들려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아직 못했군요. 나는 감사할 줄을 모르는 사람인가 봐요. 하지만 당신은 나를 정말 기쁘게 해주었답니다. 리넷뜨, 드디어 보이가 내 앞에서 나무처럼 꼿꼿이 서서 그의 냅킨을 빗자루처럼 흔들고 있소. 그럼 안녕. [ 여행 동삐에르, 쉬르, 베스브르 리넷뜨, 나는 지금 고색 창연한 여인숙에 머물고 있습니다. 눈이 얼마나 두껍게 쌓였는지^5,5,5^ 어디로 가야 할 지 몰라 잠시 머뭇거리고 있는 중입니다. 내가 여행하는 고장들은 참 재미있는 곳들입니다. 이 마을 역시 마찬가지랍니다. 친구가 자기 차를 몰고 몽뤼에서 나를 만나러 와서 함께 산책을 했지요. 우리는 저녁 9시쯤 동회 앞에서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있다기에 그 쪽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대번에 동삐에르. 쉬르. 베스브르의 정다운 분위기 속에 젖어들게 되었답니다. 약사와 식료품상 주인 사이에 끼어서 우리는 5분 만에 테너 가수의 이름을 알게 되었고 또한 보좌관의 딸의 익살과 이 지방의 사투리를 배웠어요. 그런데 여기서 우리들이 감동한 것은 놀이가 아니었습니다. 다름아닌 이 마을 사람들의 애국심이었지요. 그들의 애국심은 실로 대단했습니다. 언제 내가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애국가를 불렀던가 되돌아 볼 정도였으니까요.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순수한 애국심의 감정을 찾기 위해서는 이곳으로 와야 될 것 같았습니다. 그러한 감정들이 낡아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여기에서는 상당히 호감이 가는 어휘들과 함께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요. 말하자면 '게르만 족속들'이라든가, '야만적인 전사', '배신한 황제' 등의 말이었지요. 리넷뜨, 금관악기를 모두 갖춘 군악대가 등장했습니다. 여드름이 송송 난 중학생들이 그 군악대 속에서 악기를 불고 있었어요. 우리는 고음으로 올라갈수록 그들이 어떻게 숨을 불어 내쉴까 걱정스러웠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정전이 되었습니다. 촛불이 켜지고, 킥킥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무대 위의 배우와 구경 온 친척들 사이에 이야기가 오고가고 '아! 너 마르셀이로구나!' '네^5,5,5^ 아이구, 내 수염이 떨어졌네!' 그 배우는 친척이 보는 앞에서 다시 수염을 달았지요. 그리고 우리들은 식료품 장수와 이야기를 하고^5,5,5^. 그러다가 우리는 사람들이 자정쯤 자리를 떠났어요. 우리는 역을 경유하지 않고 차편으로 '황금사자 호텔'에 도착하여 호텔 지배인의 미소를 받으면서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기차로 로안느까지 친구와 함께 갔습니다. 이 친구는 몹시 근시여서 밤에 길 위에 생기는 그림자들을 모두 짐승으로 착각하는 것이 아니겠소. 그래서 나는 잠들어 있는 그 지방 사람들 사이를 지나 기차 구석칸으로 그를 데리고 갔지요. 빽빽이 몰려 있는 납작한 집들과 함께 로안느가 보였습니다. 정말로 음산한 풍경이었습니다. 지평선상에 커다란 공장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길게 늘어선 공장의 창문들에서 불빛이 새어 나왔어요. 두 번째 공장이^5,5,5^ 또 세 번째 공장이^5,5,5^.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새벽 두 시경이라 우리는 이러한 공장과 신호등 앞에 번쩍이는 물웅덩이밖에는 볼 수가 없었습니다. 잠시 후 가스등으로 밝혀진 성곽이 지나가고 그칠 줄 모르게 줄지어 늘어선 네모난 집들. 또 '자전거'라고 써 붙인 곰팡이 낀 가게가 가끔 눈에 들어왔습니다. 지나가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드디어 역 앞에서 나를 다시 동삐에르. 쉬르. 베스브르로 데려다 줄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지친 몸을 잠재워 줄 호텔을 찾아냈습니다. '로안느' 이 이름은 실로 상냥하게 어우러지는 화음을 지니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눈은 더 이상 내리지 않았습니다. 맑은 날씨였지요. 리넷뜨, 이것이 당신 덕분일까요? 토요일, 몽뤼쏭의 댄스파티에 갔었습니다. 꽤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이었는데^5,5,5^ 불행히도 거기에는 술집 주인도 칵테일도 재즈도 없었지요. 우리들에게는 다만 어머니들의 삼엄한 경계 속에서 왈츠를 추어야 하는 조그만 무도회에 불과했습니다. 사람들이 주고받는 말이라곤 '당신 부인은? 그리고 당신의 딸들은 어떻게 지내지요?' 따위 뿐이었습니다. 부인들은 홀 주위에서 사각형을 이루면서 무대를 빙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바로 구식의 경계 방법이었지요. 그렇듯 부인들이 조용히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색색의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은 천사 같은 젊은 처녀들이 홀 가운데에서 손에 손을 맞잡고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고 싶었습니다. 그네들은 거울에 자신들의 모습을 비추어 보고 있는 듯 즐거운 표정이었습니다. 행복한 표정들이었지요. 나는 또 혼자서 아르장 똥. 쉬르. 크뢰즈에 갔었습니다. 아담한 마을이었지요. 장난감처럼 4시간마다 작은 레일 위를 달리는 증기 전차가 그 도시를 지날 때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나는 한바탕 들여마셨지요. 낡은 돌다리 난간에 앉아 모자를 벗으니 자유란 이런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모자 역시^5,5,5^ 그 모자는 시냇물을 따라 흘러 지금은 아메리카로 향해 항해를 하고 있습니다. 한순간 내 모자는 천천히 순회하면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기분이 나빴다기보다는 오히려 우울했습니다. 리넷뜨, 나는 지금 당신을 떠나 물랭으로 가고 있습니다. 거기서 이 편지를 부치겠습니다. 답장을 해 주겠지요? 사랑하는 리넷뜨, 나의 깊은 우정을 믿어 주시길. [ 그리움 게레(크뢰즈) 192 년 어느 날 리넷뜨, 간단히 씁니다. 당신은 답장을 주지 않을 것 같군요. 별로 해야 할 중요한 이야기는 없습니다. 십분 후면 나는 2백 킬로의 긴 여행을 떠날 것입니다. 지금 내 생활은 가능한 내가 빨리 돌아버리는 커브와 모두 비슷비슷한 호텔, 또 빗자루 같은 가로수들이 줄지어 늘어선 이 도시의 작은 광장같이 지겹기만 합니다. 당신은 이러한 광경을 생각이라도 할 수 있을런지^5,5,5^ 그 권태란 아마 나의 지배자인 당신 때문^5,5,5^ 나는 당신에게 나 자신이 반해버린 이 콩트를 읽어 주고 싶어요! 내가 더 이상 쓰지 않더라도 당신은 스스로 쓴 이 콩트를 사랑해야 합니다. 나는 좀 울적합니다. 파리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군요. 나는 지금 침묵으로 내 심정을 달래고 있습니다. 당신은 이 기약 없는 나의 유람 생활을 동정하고 있습니까? [ 입센과 필랑델로 파리 1925 년 봄 리넷뜨, 당신에게 마담 드의 소설을 돌려드립니다. 편지에 그 소설에 대해 느낀 바도 함께 적었습니다. 내가 이 소설의 단점들을 적은 것은 장점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마 그러한 단점들이 없었더라면 나는 이 소설에 그처럼 몰두 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여기에 쓴 비난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것입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문학에 대해 나와 같은 견해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해도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나는 지금 몹시 난처하답니다. 왜냐하면 필랑델로에 대해 너무 과격하게 비난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지요. 기분도 좋지 않습니다. 나는 '문지기들의 추상론'이란 단어를 잘 소화시키지 못하였습니다. 게다가 그 말은 점잖은 말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내가 필랑델로에게 그 말을 자주 적용시켰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그 말이 내 입에서 튀어나와 버렸던 거요. 나의 실수였습니다. 하지만 당신께 나의 생각을 설명해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중대한 문제입니다. 또 우리는 그 문제를 피할 권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사상을 테니스 공이나 사람들이 주고받는 동전 따위로 생각하지 않는답니다. 나는 비세속적이라 사상을 가지고 희롱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화가 우연히 내가 집착하고 있던 화제로 옮겨지게 되면 그만 참지를 못하고 어처구니 없는 짓을 하게 되지요. 그래서 에우세비오는 나와는 조리있게 토론을 할 수가 없다고 하는군요. 하지만 내가 '문지기들의 추상론'이란 말에 몹시 후회는 하지만 화를 낸 것은 전혀 후회스럽지 않아요. 왜냐하면 리넷뜨, 문학적인 문제를 고려하기 전에 우리는 입센과 비교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당신은 보다 고차적인 문제에 집념하고 있는 어떤 인물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사회적으로나 도덕적으로도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영향력도 갖고 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알고 싶지 않은 것을 사람들에게 이해시키려고 작품을 썼지요. 그는 가장 내면적인 문제에 대해서 공격을 했었고, 특히 여성들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도 아주 교묘한 방법으로 공격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입센은 그가 성공을 했든 안 했든 우리에게 새로운 복권놀이를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어떤 자양분을 공급해 주었습니다. 그의 작품은 인간적인 면에서 전개되고 있습니다. 적어도 당신의 내적인 생활을 가장 주요한 부분으로 간주하고 있다면, 당신은 진실성 때문이든 단점 때문이든 그 작품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흥미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명, 유명한 극작가일지도 모르는 필랑델로는 상류사회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그리고 그들이 정치나 일반적인 사상이나 간부들을 농락하는 것처럼 그들에게 추상론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을 허용하기 위하여, 창조되고 지상에 생겨난 사람입니다. 그러한 일들이 브릿지 게임보다 더 얼빠진 것은 분명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를 입센과 동등시할 권리가 당신들에게는 없는 것입니다. 입센은 당신들의 기분을 맞추려고 하지 않았고 당신들은 책동한 것도 아닙니다. 그는 스스로가 옳다고 생각한 것을 당신들에게 이해시키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경우에 작가는 작품이 어떻든 간에 그의 작품을 능가 할 것입니다. 제 말이 개인적인 비평을 하는 것도 문학적인 견해를 주장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이해해 주길 바랍니다. 내가 이 문제에 대해서 과격하게 평한 것이 잘난 체하는 것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거기에는 일종의 도덕적인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필랑델로의 가치에 대하여 말하자면, 당신들이 그에게 만족의 뜻을 표시하는 그 점을 바로 내가 경멸하는 바입니다. 나의 논거를 들어보시겠습니까? 첫째, 형이상학적인 문제를 극화한 그의 대담성: 그러나 그가 맨 처음으로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레노르망과 같은 몇몇 바보들이 그보다 먼저 그러한 짓을 했었지요. 둘째, 그의 독창성: 이것은 흔한 일입니다. 강의 내용을 잘 소화시키지 못하고 모든 것을 혼란하게 하는 17세의 철학도 소년은 몹시 중대한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그 소년은 외계를 느끼게 되겠지요. 셋째, 이러한 주제에 대한 관심: 필랑델로의 희곡에는 주제에 대한 관심이 전혀 들어 있지 않습니다. 그의 소재는 철학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 이야기로 귀착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무 뜻도 없는 것들이지요. 리넷뜨, 당신도 아시겠지만 사람들의 사고를 올바르게 키울 수 있는 것은 단지 끊임없는 훈련에 의해서만 가능한 일이며, 또한 그것은 역시 인간이 가지는 가장 고귀한 일입니다. 설혹 그 사람들이 그들의 기억이나 지식이나 말재주는 넓히려고 하지만, 거의 그들의 지능을 개발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다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올바르게 추리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옳게 생각하려고 노력하지는 않아요. 그들은 잘못 알고 있는 셈이지요. 이것이 그래도 인간적인 이해를 위하여 노력한 입센을 좋아해야 한다는 이유이며, 또한 필랑델로를 거부하고 모든 꾸며낸 혼미를 거부해야 하는 이유지요. 물론 어려운 일입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명확히 이해되는 것보다 더욱 사람의 마음을 끄는 법이니까요. 하나의 어떤 현상에 대한 두 개의 해석 중에서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애매한 쪽으로 더 기울어지는 법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하나의 해석이 진리라면 그것은 단순하고 생기 없는 것이어서 사람들에게는 강한 인상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역설이란 참된 해석보다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끌게 되고, 사람들은 역설을 더 좋아합니다. 지금 내가 여기서 말하는 것은 매우 일반적인 것들입니다. 여러 개의 판단 착오는 바로 이러한 필요성 때문에 생기는 겁니다. 그 사실들을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사상 때문에 감동되기 위해서, 그 관념들을 포착하려는 필요성이 생기는 겁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가 있지요. 즉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고, 그것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매혹시키는 것은 종종 잘못되는 경우가 많다는 말입니다. 이해하기 위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일종의 무사무욕의 정신이며, 자아 망각입니다. 상류 인사들은 과학과 예술과 철학을 마치 그들이 기중기를 이용하듯 이용하고 있습니다. 필랑델로는 일종의 기중기나 마찬가지지요. 나의 사랑하는 리넷뜨, 이런 편지를 용서하십시오. 그리고 나를 원망하지 말아 주시길. 또 '문지기들의 추상론'이란 표현에 대해 용서해 주십시오. 나는 그러한 문제들이 세속적인 희롱이라고는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 문제들은 무척 중요하니까요. 상류 인사들은 '우리들은 사상을 자세히 검토해 보았다'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들이 역겹습니다. 식량이 부족하여, 아기들을 양육할 양식이 모자라, 다음달 봉급을 가불하는 사람들을 나는 좋아합니다. 그들이 더 가깝게 직결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인생을 보다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어제 나는 버스 승강구 곁자리에서 다섯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고, 그들 또한 나에게도 많은 것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상류 인사들은 나에게 그 무엇도 가르쳐 준 일이 없었습니다. 어제 저녁 어떤 불쌍한 창녀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여자는 내게 이렇게 고백했답니다. '나는 드레콜 양장점에서 마네킹 걸 노릇을 하고 있어요. 매달 6백 프랑을 벌죠. 남편은 나와 아들을 버리고 갔어요. 나는 어린애를 유모에게 맡기고 일을 해야만 했어요. 그 비용이 매달 3백 프랑이 들어요. 그러면 나에게 3백 프랑이 남게 되지요. 그런데 제가 어떤 다른 일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파리에 있는 어떤 여자도 한 달에 천 프랑을 벌지는 못해요. 그래서 나는 창녀가 되었지요. 나는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침 다섯시에 자리에 누우면 마네킹 걸이라는 직책 때문에 세 시간 밖에는 잘 수가 없어요. 그러니 일을 잘 해낼 수가 없습니다. 수줍은 성격인 나를 친구들은 비웃어요. 나는 지금 기관지염에 걸려 있어요. 왼쪽 가슴에 뭐가 생긴 모양이에요. 이런 생활을 오래 하지 못할 것 같아요. 이제 나는 손님을 끌 수가 없고, 또 현실에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요. 한데 이 사실을 알면 누가 나를 고용하겠어요. 그래서 나는 남의 집 하녀로 들어가려고 해요. 그러면 나와 내 아들은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다른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어요? 그만 해도 괜찮겠지요? 실상 그만 해도 괜찮겠지요. 내가 뭐라고 대답해 주기 바랍니까? 이 이야기는 쇼 극장이나 매춘부들에게서 힌트를 얻어 글을 쓰거나 극을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시시한 이야기겠지요. 감동과 꾸며낸 동정일 뿐입니다. 80 년대에 유행하던 멜로 드라마처럼 그러한 비탄은 사람들의 가정을 자극시키거든요. 레온 월쓰가 인용한 어떤 대화가 생각납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아들을 사랑한다고 말씀하시고서 어째서 그들의 최고의 위안인 하느님을 빼앗으려고 하십니까?' '그들이 다른 위안을 찾고, 당신의 얼굴을 갈기기 위해서지요' 참 좋은 말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리넷뜨, 나를 원망해서는 안됩니다. 에우세비오가 말한 것처럼 나는 전혀 관대하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만 그것은 허영심이나 자만심 때문이 아니라 바로 관용이 나에게 혐오감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사물이나 관념들은 그것 자체로써 좋아해야지 희롱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나는 동정심도 없는 무뚝뚝한 인간입니다. 이 사실이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군요. 또 다른 많은 이유, 그러한 것들이 나를 우울하게 만듭니다. 리넷뜨, 나 자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우정을 믿어 주시길. [ 고독 (1) 국립 육해군 클럽 1926 년 10월 리넷뜨, 편지를 받고 당신께 소설을 부쳤습니다. 나는 그 소설에 대해서 감히 어떠한 비평도 하지 않을 작정입니다. 왜냐하면 시간을 끌었어도 나를 별로 골탕을 먹이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필랑델로에 대한 이야기를 지워버리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 '작은 책'을 보내는 것이 꺼림칙하여 나는 그 책을 태워버렸던 겁니다. 당신에게 편지는 쓰지 않았습니다.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당신의 답장에 너무 기대를 걸었기 때문이고, 또 그런 희망이 꺾여버리면 쓸데없는 것이 되어버리는 까닭입니다. 용서해 주세요. 하지만 내가 당신을 잊어버린 탓이라고 생각지는 마십시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당신도 아시다시피 나는 남에게 그리 호감을 주는 타입이 아닙니다. 기껏해야 곰처럼 어떤 항공노선일지라도 비행하는 데 적합한 사람일 뿐입니다. 나는 내일 파리를 떠납니다. 라떼꼬에르 회사가 알제리와 에스파니아와 남미에 연결되는 세 개의 노선을 신설했는데 그 중 하나를 내가 맡을 것 같군요. 아가이 해수욕장에서 호출을 기다릴 작정입니다. 너무 많을 것을 기대하게 하였지만, 아무 것도 충족하지 못한 파리에 이젠 싫증이 났습니다. 이건 물론 다 나의 잘못입니다. 당신에게 다정한 편지를 쓰려고 했는데^5,5,5^ 이렇게 되어버렸군요. 그래도 당신은 짤막하나마 회답해 주겠지요? 당신께 잘 표현하지 못하는 나의 우정을 믿어 주시길. [ 허상과의 대화 뚤루즈. 1926 년 10월 리넷뜨, 나는 뚤루즈에 와 있소. 파리에서 보낸 며칠간의 쓸쓸한 추억이 생각나는군요. 친지들과의 만남, 몇 차례의 외출과 시험을 치른 기억들, 호텔방을 바꾸느라고 책과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찬 무거운 트렁크를 나르기도 했지요. 나는 평생 이러한 이사에서 해방되어 본 적이 없는 듯합니다. 제판압착기, 담배제조기 따위는 결코 내가 사용하지 않는 것이지만 언젠가는 필요한 때가 생기겠지요. 기차 타기 전 아무런 할 일이 없는 무료의 시간 15분.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물러나와 쉬고 있는 오후의 마지막 시간. 에우세비오는 퐁뗀블로 궁전을 쏘다니고, M은 영화관에 가고, 당신은 음악회에 가고 없었어요. 나는 말라께 둑에 있는 고장난 전화기 옆에 홀로 서 있었습니다. 모자와 외투를 가지고 있었는데 몹시 불편하더군요. 마침내 나는 당신 곁에 앉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허용하지 않았지요. 내가 남들을 비웃자 당신은 내게서 당신을 빼앗아 가 버리는 그러한 사람들에게 친절히 대하지 않는다고 꾸짖었어요. 그 때 내가 품은 앙심을 분명히 말할 수가 없군요. 리넷뜨, 당신은 스스로에 대해서도 항상 관대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겁니다. 창작에 대한 정열을 물론이구요. 그러나 사람들은 말할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정열을 가게 되는 겁니다. 사람들을 어떤 집단으로 여기더라도 마찬가지겠지요. 오늘 저녁 나는 평온한 고독감으로 명상을 하고 있습니다. 감기에 걸린 탓으로 옴 몸에서 기분좋은 열이 나고 있어요. 머리가 약간 아픕니다. 문득 스스로가 측은한 생각이 드는군요. 그래서 당신 곁에 있으려 했습니다. 당신은 역시 허락하지 않을 뿐더러 역정까지 낼 겁니다. 그렇지만 나는 당신이 화내는 걸 전혀 신경 쓰고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 당신을 내 마음에 맞도록 꾸며서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상상 속의 당신은 얼마나 다정한지요. 사실 이것은 내가 당신과 편안하게 나누는 유일한 대화 일 것입니다. 바로 그 대화가 내 마음속에서 꾸며낸 이야기지요. 당신은 참을성이 대단해요. 게다가 현명하기까지 하지요. 당신은 나의 모든 것을 이해합니다. 그러고 보니 말이 많아졌어요. 참 놀라운 일입니다. 마음속에서 꾸며낸 여자 친구에게 내가 무슨 복수를 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당신을 마음속으로 그려냈다는 것은 분명히 내가 당신에게 집착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가끔 당신은 내가 꾸며낸 당신의 모습과 일치합니다. 어쨌든 당신은 내가 품은 당신의 이미지를 키워주고 있는 거지요. 그리고 음악으로 메꾸어지는 당신의 오후는 내가 오늘 저녁 만들어 낸 이 공상의 친구에게 많은 생명감을 불어 넣어주고 있습니다. 리넷뜨, 지금 당신은 오펜바하를 약간 혼동하고 있습니다. 또한 당신은 하늘 빛깔의 옷을 입고 있습니다. 불평하지 말아 주세요. 그것은 나쁜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과 관계없는 일입니다. 사실 나는 당신에게 모든 것을 쓰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나는 당신을 성가시게 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또 울적한 기분에 빠져 버릴 겁니다. 감기가 오늘 저녁 중요한 일들을 망쳐 버리고 있군요. 하지만 나는 계속 우울하게 지낼 수는 없습니다. 당신이 멋있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 나에게는 차라리 더 쉬울 것입니다. 나는 악의를 가지고 이렇게 말을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괴로워하는 것은 아닙니다. 당신이 괴로워 하는 것을 결코 좋아하지 않으니까 말입니다. 아아, 당신은 내게 아무 것도 주려고 하지 않지요. 세상에는 누군가가 자신에 대해 너무 집착하면 거북살스러워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그러한 면이 일종의 지나친 신뢰가 되어버리거나, 혹은 그들의 자유에 굴레를 씌우는 셈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당신도 약간 그렇지요. 하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오늘 저녁 당신 앞에 앉아 당신을 포로로 만들어 버려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을 것입니다. '무슨 운명이람!' 나는 곧 세네갈의 포로가 되어버릴 거요' 이 말을 아시나요? 당신이 가끔 나를 괴롭힐 수 있다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그리고 내가 그런 경우를 거의 조심하지 않는 것도 유감스럽구요. 왜냐구요? 당신의 오늘 저녁 모습은 매우 경박스럽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모습은 한 마리 비둘기의 무게지요'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아주 근사하고 아름다운 시구이지요. 이 시구가 얼마나 근사한가를 당신이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마치 지속될 수 없는 그 무엇 같은 그 새 한 마리. 사람들은 '흥'하고 코웃음을 칠 겁니다.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불행히도 가끔 그것이 포석일 때가 있거든요. 편지함을 보고 나는 '흥' 하고 코웃음을 잘 칩니다. 하지만 포석은 그래도 역시 무게가 나가지요. 자, 당신에게는 이 편지가 낭패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편지는 당신한테 한 것이 아닙니다. 나는 나 자신과 대화할 당연한 권리가 있는 거니까요. 내가 나의 여행 가방을 풀긴 했지만, 사실은 당신을 속이고 있는 거니까요. 지금 내가 출발 날짜와 지금의 날씨와 저녁 식사의 메뉴를 말하기를 당신이 기대한다 하더라도 나는 당신에게 이야기하지 않을 겁니다. 나는 쌩 모리스에 상당히 큰 금고를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그 금고 안에 7살 때부터 5막으로 된 비극의 초안과 갖고 싶은 모든 것도 거기 안에 넣어 두었지요. 가끔 나는 그것들을 마룻바닥 안에 뒤죽박죽 늘어놓곤 배를 깔고 엎드려서 살펴봅니다. 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이 금고밖에 없습니다. 나머지 것들, 날씨나 저녁메뉴니, 앞으로 내가 어떻게 될 것인가 등, 이런 것들은 될대로 되라지. 나는 당신의 이미지에 대해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요. [ 고독 (2) 뚤루즈 1926 년 10월 22일 나의 사랑하는 리넷뜨. 당신을 잊었다는 비난을 듣지 않기 위해서 편지를 씁니다. 이처럼 대담한 말투로 말입니다, 나의 손가락이 얼어버렸고, 커피를 몇 잔 마셨어도 몸이 아직 녹지 않는군요. 정찰 비행을 기다리는 동안 카사블랑카에서 잠시 머물다가 신형 항공기를 인수받았습니다. 정말 기분이 좋았어요. 이 나라에서의 생활은 몹시 고독합니다. 리넷뜨, 우정을 발휘하여 나에게 편지해 주세요. 편지를 받는 것이 쌩 귀욤에서 저녁을 보내는 것만큼은 못하겠지만 그래도 나는 몹시 기쁠 것입니다. 일기는 한심하기 짝이 없군요. 오늘 오후 한 시간 동안 폭풍우 속에 지상 1백 미터 상공에서 새로운 비행기의 성능 시험을 했었습니다. 당신은 비행에 별로 호감을 갖지 않고 있을 겁니다. 비행기를 타는 것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목욕하는 것과 마찬가진데 말입니다. 당신은 좋은 친구지만 나는 이런 것을 잘 말할 수가 없군요. 단지 당신을 생각할 뿐입니다. 고독 (3) 뚤루즈 1926 년 10월 리넷뜨, 당신은 결코 좋은 친구가 아니군요. 왜 편지를 않겠다는 거지요? 왜 내가 전화했을 '당신이^36^예요? 아! 네, 안녕하세요. 빨리 전화 좀 끊어주세요'라고 나에게 소리쳤나요? 나는 외로운 사람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내가 아무래도 괜찮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몇 달 후에 내가 어떻게 될 줄 당신은 알고나 있습니까? 당신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나는 당신을 원망하고 있습니다. 카사블랑카에서 돌아오는 길입니다. 아마 나는 확실하게 그 곳으로 가게 될 듯합니다. 혹 세네갈에 갈지도 모르겠구요. 당신에게 나의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군요. 당신은 딴 일들로 바쁘니까 말입니다. 아마 에우세비오처럼 법학을 공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군요. 법학이란 편지를 못쓰게 하는 공부지요. 그래도 내가 죽기 전에 답장을 해 주세요. 내가 죽고 나면, 나는 당신의 편지에 대해 전혀 아랑곳 하지 않고 당신을 조용히 내버려 둘 것이기 때문입니다. [ 고독 (4) 뚤루즈 1926 년 10 년 24일 무척 우울한 일요일입니다. 비가 끈질기게 오고 있군요. 일요일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어요. 왜냐하면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 브레께를 목장으로 데려가야 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10분이 지나자 그 놈이 다시 외양간으로 돌아가겠다고 보채지 않겠어요. 그러고 보니 내가 마치 델리여 신부처럼 말하고 있군요. '아! 전원의 생활이여!' 10분 동안 비행을 하고 그 다음 시간은 잠자며 보냈습니다. 성냥과 담배, 우표 따위를 사면서 하루를 보냈어요. 옆집 가게 여사무원이 무척 아름다워요. 방에는 내가 40 년 동안 쓸 우표와 성냥통이 벌써 30통 이상이나 됩니다. 그녀를 일 주일 동안 사랑한 서글픈 결과이지요. 그녀는 참 아름다운 수납계원입니다. 계산대가 마치 왕좌처럼 멋있지요. 그녀는 매우 멀리 있는 듯 아주 아스라하게 보였어요. '40 쌍띰' 그 소리는 아주 황홀하게 들리지요. 사람들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사랑의 말을 찾고 있어요. 친구들이 얼마나 그리운지! 몇 안 되는 친구들이지만 그렇기에 나는 더욱 애착을 느끼고 있습니다. 오랜 후에 내가 흰 수염을 기르고 돌아가면 당신들은 나를 알아보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이 나를 화나게 만들어요. 왜냐하면 내가 어디로 떠나야 하는가를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알리칸테라든지, 모로코라든지, 다카르라든지 어디든지 하느님이 원하시는 대로 가야 하지요. 방금 쓴 문장이 너무나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당신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당신은 없었습니다. 리넷뜨, 어디에 가서 책상 정리를 하고 있는 겁니까? 항상 내가 당신을 필요로 하면 말입니다. 리넷뜨, 비행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당신 알고 있습니까? 하지만 그리 쉬운 것도 아닙니다. 내가 비행을 좋아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여기에서의 비행은 부르제 공항에서 하던 것과 같은 스포츠가 아니고,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며, 일종의 전쟁입니다. 비오는 날 새벽에 우편기의 출항은 참 재미있는 일입니다. 야간 비행팀이 비몽사몽간에 있다가 에스파니아 쪽에서 일어난 폭풍우 때문에 깨어나고, 피레네 산맥 위에서는 짙은 안개가 끼게 되지요. 이륙 후 비행기가 다른 문제를 해결하는 동안 사람들은 다른 일로 흩어지게 되지요. 리넷뜨, 나는 자주 비행하고 싶습니다. 그럼요. 당신께 전화를 하고 싶었어요. 사실 나는 말을 할 줄 몰라요. 그렇지만 태연자약하기 위해 '여보세요. 여보세요'라고 말할 겁니다. 말을 못한다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일입니다. 나는 축음기판을 모은다거나 멋진 넥타이를 맨 놈팡이가 되고 싶었습니다. 좀더 젊었을 때 그렇게 되어야 했을 텐데, 지금은 너무 늦었습니다. 내가 그것을 후회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대머리가 된 지금 내가 더 이상 그렇게 노력을 할 필요가 없겠지요. 와이셔츠 가게와 구둣방 진열장 앞에 서면 서글픈 생각이 앞섭니다. 만일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이러한 경험들이 나를 도와줄텐데^5,5,5^ 이렇게 생각해도 별 위안이 되지는 않는군요.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고, 나를 무척 호남으로 봐주고, 또한 내 손톱 따위를 보면서 감탄한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기름투성이인 나의 손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로지 나 자신뿐입니다. 나의 어처구니 없는 독백이 당신을 지겹게 만들진 않았나요? 나는 행복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합니다. 논리적으로는 전혀 설명될 수 없는 기분입니다. 친구들과 멀리 떨어져서 몹시 고독 속에 빠졌기 때문에 내가 마치 증조부같이 늙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이런 나에게 편지를 써 주셔야 해요. 나의 다정한 리넷뜨. [ 태양과 들판과의 대화 알라칸데 1926 년 11월 나는 어제 당신에게 세 통의 편지를 썼지만 모두 찢어 버렸습니다. 불필요하게 많이 썼던 것이지요. 그래서 나는 오늘 저녁 아주 초연하게 편지를 썼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당신에게 너무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누구를 도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당신에게 유리한 주위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당신은 '이처럼' 쓸 수 없겠지요. 당신은 그 사실을 나에게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잘 이해하지 못했지요. 그런데 내가 애 당신에게 편지를 쓰는지 그 이유를 잘 모르겠군요. 사실 내게 일어나는 여러 가지 자질구레한 일들을 상의할 우정이 몹시 필요하답니다. 나의 걱정을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하구요. 그 파트너로 내가 왜 당신을 선택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몹시 이상한 사람입니다. 내가 편지지 위에 쓴 문장이 나에게 되돌아오는 것 같아요. 편지를 읽느라고 고개를 숙인 당신의 얼굴을 나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나의 태양과 나의 조그마한 과자와 나의 꿈에 대하여 관대한 당신이 상상이 되질 않아요. 단지 나는 기분을 전환시키기 위하여 별 생각 없이 편지를 썼어요. 결국 내 자신에게 쓴 것이지요. 자정이 지났지만 나는 무척 만족하고 있습니다. 이번 출발은 소년시절에 길 떠나기 전에 잠기던 공상을 회상시켜 주는군요. 시골 마을, 램프 아래서 어른들은 브릿지 놀이를 하고 있었고 아이들은 책을 읽었습니다. 우리는 '말레이지아 민족은 까만 눈을 가졌다' '하이티 섬 사람은 파란 눈을 가졌다'라고 쓴 글을 읽었지요. 그날 저녁 나는 정말로 까만 눈과 정말로 파란 눈을 결코 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비슷했으니까. 그래서 나는 그들을 정복하러 출발하는 것입니다. 여행하는 다른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어제 나는 지상에서 무척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내가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하늘 가장자리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어떤 관대함까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내가 충격을 느꼈을 때 3천 미터를 내려왔어요. 순간적인 기계의 파열로 여겼습니다. 나의 비행기는 고장이 잘 났었으니까요. 나는 조종간을 깊숙이 눌렀지요. 그리곤 비행기가 선회하며 하강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계기의 지침반 위에 만년필로 보이게끔 '기계 고장, 찾아볼 것, 추락을 모면할 수 없음'이라고 썼습니다. 사람들이 내가 경솔하게 내가 자살했으리라 추정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 생각이 나를 괴롭혔지요. 추락하여 산산조각이 날 들판을 나는 충격적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것은 나에게 약간 새로운 경험이었지요. 나는 온통 겁에 질려 백짓장처럼 하얗게 되어버렸습니다. 영문 모를 이상한 공포였으나 터무니 없는 공포는 분명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순간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지혜가 번쩍 떠올랐어요. 기계의 고장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때문에 나는 지상까지 버틸 수 있었습니다. 비행기에서 뛰어내린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지요. 그리고는 주위를 외면해 버렸습니다. 이런 나를 사람들은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최소한의 본질적인 문제도 말입니다. 남모르는 어떤 세계, 나는 그 순간 사람들이 묘사할 수 없는 기이한 세계를 경험한 것입니다. 그 때 내가 느꼈던 그 들판과 조용한 태양을 어떻게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단순하게 '내가 들판과 태양을 이해했다'고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었습니다. 나는 잠깐동안 찬란히 빛나는 그날의 정적을 느꼈어요. 그 날은 바로 내가 잘 살다가 박차고 나가게 된 어떤 집처럼 견고하게 세워진 어떤 날이었지요. 아침해가 중천에 높이 떠오르고, 조용히 거미줄을 짜고 있던 대지가 굽어 보이는 어떤 날이었어요. 행길에서 이 세계의 일부를 소제하고 있는 청소부들을 만났습니다. 나는 그들의 행위에 만족하였습니다. 또 마을의 순경들은 사방 백 미터 지역의 치안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어떤 집을 정돈하는 것도 충분한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나는 살아서 돌아왔고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나는 인생을 대단히 좋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마음을 당신은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거^36^예요. 그래서 나는 누구에게라도 억지로 이해시키고 싶습니다. 무엇 때문에 당신은 아랑곳하지 않지요? 누가 당신을 방심하게 하지요? 그 광경은 내게 어떤 얼굴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너무나 근본적이며 너무나 불안한 그 무엇을 느꼈기 때문에 나는 내 사상이 그 얼굴 속에 맴도는 것을 보았어요. 나는 그 얼굴에서 뾰루퉁한 표정을 알아차렸고, 내 사상이 그 얼굴에서 각성시키는 모든 것을 알아차렸지요. 갑자기 그 얼굴이 사막 속으로 도망치는 것을 느꼈어요. 내 사상은 기쁨의 흔적도 고통의 흔적도 이해하기 위한 노력도 파악하지 못했소. 나는 기분이 전환되는 정확한 순간을 느꼈어요. 그 기분 전환은 너무 빨리 이루어졌기 때문에 어떤 뜻을 가지고 있지요. 그래서 나는 '그의 이마로 구름을 쫓는다'라는 희한한 표현을 생각했어요. 밀밭은 광선을 바꾸더군요. 나는 니체를 팔로 껴안았어요. 나는 이런 인간형을 무한히 좋아하지요. 그의 고독을 좋아하지요. 나는 쥐비 갑 모래 위에 몸을 죽 펴고 누워 니체를 읽을 것입니다. '짧고 더우며 우울하고 또 지극히 행복한 금년 여름, 나의 여름을 다 태워버린 내 심장'을 내가 몹시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정열을 당신과 함께 나누고 싶지만, 당신은 그렇지 않겠지요? [ 원망 뚤루즈 1926 년 11월 24일 방금 비행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당신에게선 아무 소식도 없군요. 편지하지 마세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에게 그 무엇도 기대하지 않기 위해 나는 이쪽 주소는 보내주지 않겠습니다. 내가 너무 우스꽝스러운 사람이지요. 이처럼 우정을 구걸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편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럴 필요가 없을 겁니다. 그건 이해가 됩니다. 나는 당신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만 섭섭하게 생각진 않습니다. 그 편이 더 좋기 때문이지요. 이젠 당신이 편지를 한다 해도 나는 편지하지 않을 겁니다. 당신의 편지를 비웃을 거^36^예요. 당신은 약속된 날 저녁 그렇게 할 수조차 없겠지요. 이 편지를 왜 쓰는지 나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전날 세 통의 편지를 찢었는데 네 번째 편지도 찢을 수 있겠지요. 쳇! 이젠 작별입니다. 당신은 나의 아픔에 대하여 의무가 있다고 생각지 마세요. 지금의 나는 어떻든 상관이 없으니까요. 리넷뜨, 나의 운명을 생각해 보십시오. 나는 언젠가 그 운명을 당신에게 너무 졸라댔어요. 당신에게 너무 희망을 걸었구요. 그것이 유감스러운 일이었다는 것을 나는 이제서야 깨달았습니다. 그러다가 우정을 잃었지요. 나는 당신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내가 뒤로 물러 설 수 없었고 대수롭지 않은 일에 만족할 수 없었던 것은 분명 나의 잘못이니까요. [ 황홀한 고독 뚤루즈 1926 년 12월 리넷뜨, 용서하십시오. 내가 편지를 보내는 동안 당신 역시 편지를 보냈군요. 그 한 통의 편지가 나에게 큰 기쁨을 주었습니다. 리넷뜨, 나는 굉장한 여행을 했어요. 뚤루즈에서 새벽 네 시에 일어났는데도 탕헤르에서 낮잠을 잤지요. 나는 에스파니아와 모로코에 익숙할 시간이 없습니다. 아랍인과 그들의 낙타를 보면 내가 어떤 서커스장에 구경온 것같은 생각이 들어요. 세관과 국경이 없는 여행을 상상해 보세요. 대지 위를 일렬로 지나간 3천 킬로미터의 여행을, 그 요지부동의 여행을 떠올려 보세요. 이름 모를 땅, 한결같은 대지 위를 여행하는 것은 이상한 생활이지요. 관측기를 통하여 모로코 땅 어느 한 구석을 발견할 때, 샌드위치의 기억이 회상되는군요. 그래서 알리칸테에서 걸어서 10분 동안만 돌아다녔지요. 귀로에서는 거기서 잠을 잤어요. 지금은 에스파니아 내가 잘 알고 있는 곳이지요. 길가의 저 여인은 우리 여관 주인 삐삐따입니다. 동료들은 그녀를 '아름다운 자동차'라고 말하지요. 하지만 에스파니아를 아름답게 생각진 않는답니다. 낯선 나라에 가서 새로운 사물을 본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입니다. 바뀐 역에는 이름도 없고, 세관원도 짐꾼도 없고, 그 나라를 명예롭게 하는 역마차의 마부도 없어요. 어리둥절한 정신 상태로 사람들은 단번에 소도시의 자질구레한 생활에 젖어들곤 합니다. 교외를 통하여 간신히 그 도시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리넷뜨, 에스파니아는 어떤 카페의 보이에 불과하고, 그다지 예쁘지 않은 여관 주인 삐삐따에 불과하답니다. 이 나라는 서글픔 그 자체라는 생각입니다. 에스파니아는 또 비행기가 고장나기에 알맞도록 지면이 기복이 심한 나라입니다. 아주 낮은 지역을 지나 울퉁불퉁한 지대를 통해 깎아지른 절벽을 올라가기까지 해야 합니다. 어느 정도냐 하면 한 동료가 이렇게 큰 소리지르기까지 했으니까요. '여기서 죽으려면 문제 없군. 정말 사람들이 투신자살하기 알맞은 곳인데' 절벽 중의 어떤 것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고, 아래쪽으로 마지막 구멍이 보이는 곳으로 적시에 50미터 정도로 고도를 낮추어 통과해야 합니다. 에스파니아 만큼 산이 많은 지역에서는 산의 정상이 구름을 꿰뚫게 되지요. 그러므로 그 정상을 내려오면서 비행기가 고장나거나 아니면 꼭대기가 보이지 않아서 자칫하면 산에 충돌하게 됩니다. 누군가 내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다처럼 깔린 구름 위를 나침반을 보면서 비행하는 것은 무척 재미있을 거^36^예요. 발 아래 한결같이 전개되는 광경을 생각해 보세요' 아주 조용하고 평온한, 저 하얗게 전개되는 평야를 바라보고 있으면 '발 아래 한결같이 전개되는 광경'이라는 말은 체험하기 힘들고(거의 황홀한) 고독감만을 느끼게 되지요. 당신은 부르제 공항에서의 비행을 알지 못할 겁니다. 그리고 브르제에서의 정신 상태도 이해하지 못할 거^36^예요. 이곳에서의 비행은 하면 할수록 힘들기는 하지만 더 좋지요. 오! 리넷뜨, 뚤루즈로 말하자면, 내가 돌아다닌 시골길을 묘사해 볼까요. 나는 오른편의 가로등을 지나서 카페에 들러 앉습니다. 나는 항상 같은 가판대에서 신문을 사며, 신문가게 주인에게 매번 같은 말을 하지요. 리넷뜨, 나는 항상 같은 친구를 만납니다. 이 상황에서 도피하여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싶을 정도로 말입니다. 이젠 카페를 옮기든지 다른 가로등을 지나 다른 가판대를 찾든가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신문가게 주인에게 말할 새로운 말을 생각해 내야겠지요. 리넷뜨, 나는 스스로에 대하여 싫증이 납니다. 나는 내 생활에서 아무런 것도 할 수 없어요. 아아, 나는 자유로워야 합니다. 언제나 한결같은 동료들이 나를 난처하게 만드는군요. 나는 두세 명의 친구밖에 없습니다. 그들과 더불어 말없이 지내고 있어요. 이것이 당신이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가끔 내게 편지를 써야만 하는 이유랍니다. 리넷뜨, 당신은 나의 오랜 친구이기 때문입니다. [ 유쾌한 비행 빨마리움, 뻬르삐냥 1926 년 12월 리넷뜨, 당신은 얼마나 불친절한지! 나는 매번 드는 실망스러운 마음이 불쾌하기 때문에 이제는 결코 편지를 쓰지 않겠습니다. 이 말이 당신에게는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겠지요. 나는 완전히 혼자이므로 하찮은 일로도 기뻐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의례적으로 3개월에 한 번씩 보내는 편지는 나를 권태롭게 만듭니다. 당신은 '어머나! 아직도 답장할 편지가 있었네!' 하겠지요. 이젠 그럴 필요 없습니다. 당신은 아마 다른 일 때문에 답신을 쓰는 것조차 귀찮겠지요. 뻬르삐냥에서 비행기가 고장이 났습니다. 그래서 이튿날에야 뚤루즈로 돌아갔지요. 뻬르삐냥의 저녁은 음산해 보였어요. 나는 조그마한 오르막길을 산책했습니다. 그 길에는 잡화상인들로 가득했습니다. 이들보다 더 침울한 광경은 정말 더 없을 겁니다. 그들은 3쑤우짜리 실과 2쑤우짜리 바늘을 팔고 있었는데 정말 아무 희망도 없는 사람들처럼 보였습니다. 거기에 사는 사람들은 창문 커튼에 이마를 기대고 세월을 보내지요. 레이스가 달린 커튼에 말입니다. 그들의 방에는 감옥보다 더 진저리쳐지는 벽난로가 달려 있어요. 그들의 모든 생활은 습관적으로 행해집니다. 바로 감옥이지요. 나는 그러한 습관을 무척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안에서 안식을 취합니다. 나는 그것이 너무나 부러워졌습니다. 내일은 뚤루즈에서 잠을 자고 모레는 알리칸테^5,5,5^ 내가 갈 곳을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사냥에서 돌아와 '제기랄!' 하면서 난로 앞에서 손을 비비는 바보처럼 정직한 자가 가장 행복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15분 동안 파이프 담배를 다져 연기를 내뿜는 사람 말입니다. 매춘부들이나 등쳐먹고 사는 편이 훨씬 더 나을지도 모르지요. 피레네 산맥 정산에 쌓인 눈이 장미빛이 되었습니다. 멀리 나르본느의 늪도 역시 장미빛이는군요. 당신은 상상할 수 있습니까? 엔진의 속도를 늦추면서 나는 푸른빛으로 빛나는 뻬르삐냥 쪽으로 내려갔습니다. 그 광경은 참 아름다웠지요. 기계 고장도, 짙은 안개도, 산 밑이 온통 캄캄한 저 밑에 자욱히 깔려 있는 구름도 두렵지 않을 때의 하강이란 얼마나 유쾌한 것이지^5,5,5^. 순간 엔진에 고장날 수도 있지요. 그러면 비행기는 확실히 수직으로 추락하게 됩니다. 그럴 때면 나는 좌석 등받이에 몸을 바짝 기대고 바람을 이용하여 비행기를 조종합니다. 조종간을 올리면 비행기는 상승합니다. 조종간을 억제하면 비행기는 서서히 하강하지요. 그 뒤에 집들과 가로수들이 뒤로 넘어지며 달아나면 착륙하게 되는 겁니다. 착륙이란 참으로 유쾌한 일입니다. [ 권태 뚤루즈 1926 년 11월 끝없는 여행에 지쳐 녹초가 되었습니다. 나의 여행은 변동이 많군요. 라바트 근처에서 비행기가 고장이 났습니다. 대수롭지 않은 사고였지만 착륙할 만한 곳이 없어 당황했습니다. 이번 비행기는 그전 비행기와 전혀 달랐어요. 그 일이 있고 나서는 조종하지 않았지요. 기체의 타박상까지도 그대로 두었습니다. 에스파니아에서 폭풍우를 만났습니다. 폭풍우 속에서 '아홉 시간' 동안 춤추듯 흔들렸지요. 알리칸테에서 뚤루즈까지의 길고 긴 아홉 시간. 내가 얼마나 녹초가 되었는지는 당신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나는 곧 세네갈로 출발할 거^36^예요. 거기서 이삼일 내지 열흘 정도 머물게 될 겁니다. 그 때까지 약간의 공백기간이 있군요. 차라리 빨리 출발했으면 좋겠습니다. [ 행복 알리칸테 1927 년 1월 1일 새벽 두 시. 긴 여행을 마치고 뚤루즈에 도착했습니다. 얼마나 화창한 날씨인지^5,5,5^. 알리칸테는 유럽에서 가장 더운 지역입니다. 여기서만 대추야자 열매가 열리지요. 이곳 '천일 야화'의 밤에 취하여 바닷가의 희미한 별빛이 비치는 종려나무 숲을 거닐었습니다. 바다는 너무나 고요했습니다.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면서 내가 아주 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풀밭을 뒹굴고 싶었고, 새로운 모든 것들을 입을 벌린 채 바라보고 싶었습니다. 그것들을 만져보고 싶었습니다. 아득했던 나의 꿈을 태양이 키워서 꽃을 피우게 만들었습니다. 나에게는 행복해야 할 수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마차의 마부. 구두를 정성들여 닦아 윤을 내곤 미소짓는 구두닦이 소년들, 얼마나 희망에 넘치는 새해 첫날인가요. 오늘은 내가 얼마나 풍요로운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방금 거지에게 담배 세 개비를 주었습니다. 그 거지가 너무나 행복한 표정을 지었기 때문에 그 마음을 계속 갖도록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스스로가 호의와 관용으로 충만해 있다고 느낍니다. 리넷뜨, 당신 때문에 무척 겸손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순하게 길들이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요. 전에는 당신이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었습니다. 물론 내 잘못이었지요. 리넷뜨, 나의 말을 아무런 저의가 없답니다. 그 말들은 당신에게보다 나에게 더 중요했어요. 내가 단순한 나태를 낙으로 대하는 것은 옳지 않는 일이지요. 하지만 그것은 흐뭇한 광경이기도 합니다. 당신은 아마 이해 할 수 없을 거^36^예요. 요즘 나는 자동 피아노 소리를 즐겨 듣고 있습니다. 참 좋더군요. 모든 에스파니아 여성들이 오페라의 주인공들이었어요. 그 피아노는 나를 닮았습니다. 피아노 옆에서 한 에스파니아 여자가 울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싶었어요. 뚱뚱한 창녀 몇이 큰 소리로 그녀를 위로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도 소란을 떨다니! 하지만 그녀는 자신보다 창녀들이 더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더군요. 단지 그녀는 자기의 고통에 집착하고 있었으니까요. 리넷뜨, 돌아가면 아마 당신의 편지가 와 있겠지요. 나는 다시 에스파니아 인들의 사는 모습을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낼 겁니다. 이처럼 따뜻한 날씨에는 사람들은 남모르는 어떤 비밀을 간직하게 됩니다.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서로 미소짓고 있기 때문이지요. 미소는 에스파니아 말 세 마디를 대신할 수 있더군요. [ 만족 알리칸테 1927 년 1월 2일 리넷뜨, 다른 우편 항공기가 고장났기 때문에 나는 카사블랑카로 여정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나는 무척 만족하고 있습니다. 최근 나는 에스파니아 인들의 삶에 약간 동화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카페 발코니에서 사람들이 권하는 여러 생소한 일들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조그마한 영계 요리를 열 점 정도 집어먹어 보았고 큼직하게 자른 과자도 먹었습니다. 그 과자는 생김새는 참 보기 좋은데 과자 속은 별 게 없었어요. 떠돌이 사진사에게 점잖은 포우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었어요. 나는 잘 생기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 동료가 '사진은 실제보다 훨씬 잘 나오는 법'이라며 친절하게 권하더군요. 그래서 종려나무에 기대어 포우즈를 취했어요. 그리곤 해변에 가서 산책을 했습니다. 나는 지금 영화관에 가는 길입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잠을 잔 다음 아침 일찍 카사블랑카로 떠날 예정입니다. [ 사랑과 죽음 카사블랑카 1927 년 1월 3일 새벽 한시. 잠이 오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아주 현명하게 잠을 잤습니다. 당신을 향한 편지가 나 자신을 기쁘게 해주는 것 같아요. 시 시각 당신은 잠을 자고 있겠지요. 그래서 내 머리를 스쳐가는 모든 것들을 당신에게 이야기할 수 없군요. 폭풍우가 내립니다. 창문이 야릇하게 불규칙적인 박자로 덜커덕거리고 있습니다. 이 소리는 무선전신의 소리거나 아니면 악령의 소리일지도 모르지요. 이따금 지나가는 택시들이 잠들어 있는 도시에서 침울한 소리를 내고 있군요. 나는 행길에서 나는 발자국 소리 역시 좋아하지 않아요. 들려오는 모든 소리는 나를 불안하게 만듭니다. 내가 편안한 기분으로 안식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간밤에는 여느 때 같지 않았습니다. 침대에서 눈을 뜨고 있을 때 불안감에 사로잡혔던 적은 예전에도 물론 있었습니다만. 안개 주의보를 나는 싫어합니다. 그 다음 날 낯선 사람끼리 부딪쳐 얼굴을 깨뜨리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다른 사람들은 안개가 끼어도 대수로운 손해는 보지 않지만 나는 모든 것을 잃으니까요. 내가 알리칸테에서 우정과 추억과 태양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오늘 산 아랍 양탄자의 주인이 된 내 심정이 내 가슴을 무겁게 만드는군요. 나는 아무 것도 가지지 않아 무척 홀가분했었는데^5,5,5^. 리넷뜨, 동료 한 사람이 손에 화상을 입었어요. 나는 그처럼 되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내 손을 사랑합니다. 내 손을 바라보았어요. 이 손으로 나는 편지를 쓸 수 있고 구두끈을 맬 수 있으며, 즉석에서 비행기를 조종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비행을 좋아하지 않지요? 그래서 나를 측은하게 만들구요. 이것은 20 년간의 훈련이 필요한 일이지요. 가끔 이 손으로 얼굴을 꽉 조일 때도 있습니다. 오늘 저녁 나는 토끼처럼 불안하군요. 이번에 터진 다카르 사건은 정말 불쾌하답니다. 누구나 그 사건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죠. '이 도시는 흥분의 도가니랍니다. 다음 번에 오는 비행사가 고장을 내면 무어 인들에 의해 학살당할 것입니다' 무어 인들에게 학살당한다고? 이 말이 밤새 귓가에 들려오는 것같아 짜증이 났습니다. 밤새도록 나는 불안한 상태였습니다. 나는 사랑하는 모든 것에 애착을 느끼고 있습니다. 누가 자고 있는가, 침대에 누워 밤을 지새울 때면 환자를 지키는 간호원보다 나는 더 불안합니다. 여러 날 밤을 새울 때 나는 나의 보물들을 잘 지키지 못합니다. 나는 약간 쑥맥입니다. 낮에는 모든 것이 단순했어요. 출발하고 싶고 모험에 뛰어들고 싶습니다. 그런데 밤보다는 낮에 출발하고 싶어해요. 밤에는 몸이 불편하여 스스로 불평을 늘어놓곤 하니까요. 슬픈 이야기를 당신에게 하지 않을 수 없군요. 좋은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3개월 전에 탕헤르에서 사망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탕헤르에서 그 친구의 행로를 찾아나섰습니다. 마침내 나는 그 친구의 발자국을 찾아냈어요. 내가 어디서 그를 찾았는지 당신은 알겠어요? 카페였어요. 그는 매혹적인 친구였으니까 카페 아가씨들도 당연히 그를 사랑하게 되었던 거지요. 한데 아가씨들은 그를 잘 보살펴 주지 않았습니다. 그 아가씨들은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고 있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곳으로 친구는 그런 아가씨들을 만나러 갔던 것입니다. 이것은 가장 충실한 사랑입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을 바친 사람에게는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아가씨들은 가끔씩 화대를 받지 않았어요. 아가씨들은 그의 가장 귀중한 것을 그로부터 감쪽같이 훔쳐간 셈이지요. 인생이란 정말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내가 당신을 떠나야만 합니까? 한 켤레의 구두가 나를 역겹게 하는군요. 불을 끄겠습니다. [ 비가 온다 카사블랑카 1927 년 1월 14일 리넷뜨, 나는 이상하게 편지를 읽습니다. 편지에서 당신의 골난 모습과 특유의 억양과 미소를 찾고 있는 거지요. 그리고 편지글 속에 '날씨가 좋다'라는 말이 없으면 저으기 실망하곤 한답니다. 그 말은 많은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가 온다'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말은 '얼마나 유쾌한가! 비가 오는군 비가 오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아요'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요. 또는 '하느님, 당신은 나를 귀찮게 만드는군요'라는 의미이거나 아니면 '나는 당신에게 편지를 쓰고 있어요. 그런데 그 이유는 모르겠어요. 할 말이 별로 없는데 말이에요. 비가 오는군요'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거지요. [ 그리움 부에노스아이레스 1930 년 1월 23일 리넷뜨, 매달 아름답고 놀라운 일이 생기며, 세계는 찬란합니다. 그렇지만 내가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을 원하는 거^36^예요. 지금 나는 대단히 아름다운 가죽 손가방을 샀습니다. 그래서인지 부드러운 모자와 세 개의 바늘이 달린 이프로노미터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졌습니다. 최근 몇 달 동안의 생활은 불규칙적이었고 우울한 느낌이었습니다. 계절도 나처럼 자주 바뀌는군요. 그러나 나는 희미한 그림자 같은 인상을 남들에게 주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원치 않던 임무 때문에 나 자신이 몹시 둔한 것처럼 느끼게 되는군요. 그 이유는 내가 '항공우편회사'의 지사이며 국내 노선을 위하여 설립된 '아르헨티나 항공우편회사'의 경영 책임자로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나에게 남은 젊음과 진실로 원하는 자유 등의 모든 것을 앗아가는 3천 8백 킬로미터의 항공망이 내게 주어져 있는 까닭입니다. 나는 매월 2만 5천 프랑을 벌고 있습니다. 나는 이 돈을 어떻게 쓸지 모릅니다. 결국 낭비하려 애쓰게 되겠지요. 나는 수많은 물건들이 가득 찬 방안에서 질식할 것 같습니다. 별로 사용하지도 않은 그 물건들은 싫증난 지 오래이지만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그 더미는 점점 쌓여만 가고 있어요. 결국 이 제물들은 알지 못하는 신에게 바쳐지고 말 것입니다. 나는 15층 건물의 중앙에 있는 조그만 아파트에서 살고 있습니다. 위로 7층, 아래로 7층이 있지요. 주위에는 콘크리트 건물로 둘러싸인 거대한 도시가 보입니다. '거대한 피라미드' 속에서 나는 경쾌한 기분까지 들게 되지요. 유쾌한 기분입니다. 불행히도 이곳에는 아르헨티나의 삶들만 가득합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계절이 있는지 없는지 의아하게 생각할 정도입니다. 봄이 어떻게 수천 입방 미터의 콘크리트를 뚫고 들어올 수 있을까요? 봄에 통에 든 제라늄이 창문에서 터지는 것을 상상해 보았습니까? 파리에서도 나는 봄을 그렇게도 좋아했지요. 생에 대한 환희가 쌩 제르망가 마로니에서와 마찬가지로 내 가슴에 복받쳐 왔습니다. 존재에 대한 설명할 수 없는 감흥은 어디에서나 느끼게 되는가 봅니다. 그런데 왜 내가 파리를 그리워하는지 모르겠군요. 파리에 있는 우리집에서의 나는 보잘것 없는 존재인데 말입니다. 그곳 사람들은 내가 끼여들 수 없는 일에 정신이 없겠지요. 그곳에는 분명 내가 차지할 뚜렷한 자리가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것이 무척 잘된 일 같기도 합니다. 나의 유일한 위안은 비행하는 일입니다. 나는 이미 새로운 노선에 대한 시찰도 했고 비행도 해보았어요. 그렇게 많이 비행한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그저께 최남단에서 돌아왔는데 그 여정은 무려 2천5백 킬로였습니다. 멋진 장거리 비행이지요? 내가 아무런 고통없이 당신께 말할 수 있는 것은 다카르 이후에 이번이 처음이군요. 당신을 얼마나 원망했는지 모릅니다. 당신이 원할 때 당신이 아무 것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참 이상한 일이지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죄는 아니랍니다. 단지 내가 실성했었고 우스운 사람이었지요. 그게 아니라면 젊은이의 환상 때문일 겁니다. 젊은이의 희망 때문이지요. 당신은 무척 분별있는 여성입니다. 최소한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것이 나에게 고통을 주었고 그후에 기쁨도 주었습니다. 내가 슬퍼한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내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된 거지요. 리넷뜨, 또 편지할게요. [ 삼손의 마음 아게(바르) 그리고, 자 분별있는 결심, 찢어버린 편지들, 2 년 동안 얼마나 많은 편지를 찢어버렸던가. 한밤중 난로 곁에 앉아서 모든 결심을 꺾었습니다. 심중에 스쳐간 숱한 경험과 많은 패배의 자취들. 진하게 설탕을 타서 홍차를 마셨습니다. 유칼리 나무가 타는 냄새, 송진 냄새가 풍기는 난로 곁에서 나는 조용히 웃었습니다. 이제 나는 부끄럽지 않습니다. 무엇을 당신께 이야기하지요? 나는 반성입니다. 오늘 저녁 당신 곁에서 한 시간 동안 아무 말 없이 있겠습니다. 잠자고 있는 자질구레한 나의 사상을 말하지 않고, 음미하려고만 애쓰면서 말입니다. 당신은 나 자신을 속이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결코 아무런 의미도 없는 편지를 당신에게 써야만 했습니다. 정원에서 몇 발자국 걸었지요. 사람들이 기지개를 켤 때, 삶이 왜 기쁜지를 사람들이 알지 못할 때, 나는 아직도 각성의 편지를 썼지요. 우체통에는 사흘 동안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오! 내가 얼마나 순박한지! 정말 나는 불행한 놈이랍니다. 그날 저녁 나는 라파엣뜨 카페에서 편지를 몇 통 썼습니다. 그 편지에 쓴 말들은 중요하진 않지만, 말의 억양 속으로 나의 비밀을 숨겼지요. 내가 '알리칸테'라고 말할 때는 그 알리칸테는 태양과 폭풍우가 있는 것이지요. 그 도시는 무척 미소를 잘 짓지만, 어떤 얼굴처럼 투명하지요! 그 해 겨울 내가 세상에(말라카에, 카르타제나에) 알린 모든 봄, 내가 고백한 모든 봄, 나는 실성했었습니다. 사람들을, 아니 모든 것도 이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누군가가 내게 편지하겠지요. '빨리 또 편지를 보내 주세요. 나는 당신의 편지를 그토록 좋아해요.' 나는 내 편지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또한 나는 모조품을 교묘하게 진짜 보석으로 준 호인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는 그 보석을 사용하고 가짜 보석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겠지요. '다른 보석도 나에게 또 보내주세요.' 그런데 '나에게 이런 보석을 보내지 않은 사람은 얼마나 치사한가!' 아, 불쌍한 사람. 물론 편지를 쓰는 것보다 차라리 음식을 먹는 편이 더 낫겠지요. 그러나 수년간 마음의 진정, 여러 곳으로 다닌 그토록 많은 비행, 혹은 카사블랑카 시민들, 아니면 마음의 노쇠 현상, 드디어 이 모든 것이^5,5,5^.. 이것들은 이제는 아마 중요하지 않은가 봅니다. 물론 다소의 거짓말도 했습니다. '파리의 인생'이라는 가요에도 별로 성실치 못한 속임수는 있고 기타를 치면서 다른 가요를 연습하는 데도 배신적인 요소가 있는 법입니다. 데릴라가 삼손의 머리카락을 자르기 위하여 노래 부른 가요도 물론이지요. 삼손이 속임수가 아닌가 어슴프레 의심했을 것이라고 당신은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삼손은 당시 데릴라의 태도를 자신의 머리털보다 더 좋아했답니다. 밤은 계속하여 조용히 흐르고 있고, 나는 조용히 잠이 듭니다. 그래서 나는 마음속의 비밀을 조심하고 있습니다. 사무치는 나의 원한을 잊고 있다는 사실. 이것은 중대한 일이지요. 아마 역시 나의 나약성 때문에 매우 기쁘게 생각하고 있는가 봅니다. 내가 함정에 빠졌는지 아닌지에 대하여서는 알고 싶지 않습니다. 삼손은 감히 움직일 수도 없었고 실을 끊을 수도 없었지요. 삼손은 단지 새잡는 사람의 함정에 걸린 시동이 된 것을 감탄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 사색 노트 [ 투쟁 투쟁이란 부조리한 것이다. 좌익이나 우익, 스탈린, 트로츠키의 추종자들, 아나키스트 등등, 그들은 과연 무엇을 주장하는가? 그들은 대체 무슨 목적으로 투쟁에 나서는 것일까? 민주주의, 이 제도 속에서 나는 보잘것 없는 한 개인의 권리를 찾고자 한다. 아니 참다운 서구 문명 속에서 나는 신의 권리를 찾고자 한다. 인간의 권리가 아니라 인간을 통한 신의 권리를 말이다. 나는 인간의 깊은 속에 존재하는 신, 그 모습을 숭배한다. 신이라는 개인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다. 나치들의 정의대로 인간이 사회적인 견지에서 어떤 결함이 있는 존재라면 나는 그를 없애버리고 말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애기를 훼손하는 비행사에게 내리는 벌과도 같다. 그러나 서구적인 정의를 따른다면 그의 정신적인 조국의 이름으로 비행기 내의 지위로부터, 만찬에서의 권위로부터 그를 추방시킬 것이다. 나는 인간을 어떠한 잣대로 측정하거나 평가할 줄 모른다. 다른 사람들의 과오란 그들이 인간을 나름의 잣대로 측정하고 평가할 수 있다고 믿는 오만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란 분명히 통계적인 확률, 엔트로피의 증대, 힘의 분산인 극한, 즉 무정부상태에 이르는 권력 분립의 방향으로 나아간다. 결국 민주주의란 명백하게 인간 해방으로 귀결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만 보일 뿐 개인 해방에 그치고 만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결국 그 속에 용해되어 형태를 감춰버리기 때문이다. [ 논쟁 논쟁이란 이미 멀어진 관계를 더욱 심화시킬 뿐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각자가 자신의 고상함을 믿는 까닭이다. 사람들은 매우 다양한 개념이 있다는 사실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지나치고 있다. 가끔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그들은 손에 쥐어진 카드가 아니라 온갖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그들의 말을 다루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될 것이다. 분노와 흥분, 앙심과 증오의 대화들. 증오란 겉으로는 항상 비틀어진 모습만을 비추게 마련이다. 그들이 내가 자신의 편이 아니라고 믿을 때 우정은 변하지 않더라도 나는 그들의 우정을 원치 않게 된다. 그것은 내가 가진 그들에 대한 증오와 그들의 부당함 탓이다. 항상 그렇듯 비열한 그들은 우정을 더럽히기 일쑤이다. 단지 나를 칠 단단한 몽둥이가 손에 쥐어져 있지 않을 뿐. [ 미신 놀라운 방송 프로그램이나 저속한 드라마가 끝나고 마침내 '라 마르세이유'가 흘러나오면 사람들은 열광하기 시작한다. 이 애국가에는 무엇보다도 모든 지도자들에 대한 평민들의 증오가 담겨 있다. 또 자신들이 쟁취한 소중한 자유에 대한 정열적인 사랑이 담겨 있다. 이 함께 하는 사랑, 이것이 이제 더 이상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제 라 마르세이유를 알아듣지 못한다. 마치 지겨운 문체의 소설을 대하거나 선거 유세장의 연설을 듣는 것처럼. 이제 이 나라는 마비되어 버렸다. 그는 유일한 상속만을 되풀이할 뿐이다. 어리석은 대통령, 그에 대한 신격화, 그러나 그 대통령에게 인정받는 자는 자랑스러움에 눈물을 글썽인다. 과거의 그 어느 때보다 관직이 인간을 무력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사람들은 투표의 결과 만큼이나 관직의 효용가치를 숭배하고 있는 까닭이다. [ 시민 내가 누군가에게 궁금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지키는 법률이 어느 정도 엄격한가가 아니라 그의 창작 능력이 어느 정도인가 하는 점이다. 오늘날 사회 구조는 부패할 대로 부패하였다. 이젠 사상이나 프로그램이 인간보다 더 중요한 취급을 받고 있다. 대체 이러한 기준이 어디서 비롯되었는가? 처음에는 증권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해 경제 신문을 읽다가, 늙어서는 백발이 되어 초콜릿을 사먹을 그런 사람들에 의해 채택된 사상, 프로그램들의 가치?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은 시민이다. 그렇다. 그런데 시민이란 무엇인가? 일방적인 보편성을 추구하는 것이 시민인가? [ 목표 위함이란 인간 자체에서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외부의 어떤 목표를 새울 때 그 목표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을 내부에 가두는 그 순간부터 초라해진다. 그러나 인간이 스스로를 돕는다면^5,5,5^. 사회주의는 대중에 대한 우선권을 맨 처음 주장했었다. 개인에게 외부적인 어떤 것에 대한 희생을 설교하던 파시즘보다 인간을 내세웠다. 상징의 담보물이란 상징 그 자체보다 더 소중한 것이다. 예를 들면 조국이란 종교적인 판화에 나오는 신보다는 덜 우스꽝스럽다. 이러한 파시즘의 매력을 부정한다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다. 역사적인 한 모습이니까. [ 양배추와 여자 보델이란 친구는 민주주의라는 구실로 인간들을 파멸시키려 하고 있다. 그는 종교나 문명, 정의나 전통 등 아주 천천히 인간을 교화하는 이 여러 가지가 인간의 상식이나 양식 속에는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사실 그는 상식과 올바른 판단을 가진 사람이다. 개념적인 인간의 노력들 중에 어떤 것도, 즉 모짜르트에 대한 사랑이나 다른 종류의 사랑 등이 이러한 상식이나 양식 속에 포함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사람들에게서 이 정식적인 상부 구조를 발견할 때마다 집요하게 추적한다. 결국 그는 자신이 간파해 내지 못하는 부분을 인간의 모습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튜우브나 일종의 기계와 같은 모습으로 귀착시키는 것이다. 내가 양배추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것은 문명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양배추가 아닌 여자, 예를 들어 만일 그녀가 은밀한 곳에서 만난 귀족 부인이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이 차이를 그는 깨닫지 못하고 있다. 머리가 굳어 버린 남자의 입장에서 그가 많은 여자들과 사귀어 보았더라도, 그는 분명 양배추와 여자의 차이를 모르는 것이다. 인간의 조건 인간이란 영양을 섭취하고 번식을 함으로써 영원히 지속한다는 것을 믿는 당신. 당신을 인간 정신의 본질을 느끼지도 못하면서 대체 무엇으로 나를 설득할 수 있을까? 나를 소름끼치게 만드는 것은 당신의 무지이지 당신의 계획이 아니다. 오히려 그 계획들은 내 마음에 든다. 당신은 당신을 사람으로 만든 그 물로써 스스로의 갈증을 풀고 있다. 그러나 그 샘물이 당신을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에 무지한 당신은 별것도 아닌 이익 때문에 그 샘물을 말려버리려 한다. 나는 별로 좋은 계획이 없다. 그러므로 전통적인 환경에 매달린다. 즉 보수적인 견해를 옹호하게 된다. 이해 관계가 인간을 지배한다고 믿는 당신은 그 보수적이라는 것이 편리한 방편이며 거짓이 될 수도 없다는 점을 모르고 있다. 기실 편리하기는 하지만 별 효능이 없는 것인데도 물론 나로서는 종족을 영원히 지속시키고 나의 인간상을 영구화시키는 것은 분명 바람직한 일이다. 만일 이 존속의 본능을 욕심이라고 한다면 이 또한 종족의 보존욕이 될 것이다. 당신은 내게 아름다운 가구와 좋은 자동차와 보다 좋은 깨끗한 공기를 주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을 차지하기 위해 나는 어떤 인간이어야 한다는 말인가? [ 신앙에 대하여 세뜨띠랑즈 신부는 신의 존재에 대한 근본 신앙에 따라 인간을 신자와 비신자로 나누었다. 이에 따라 신자들의 집단에 적대하는 비신자들의 무리들이 무장하여 대항하는 그림도 그려졌다. 야비하고 비종교적인 천한 욕설과 괴벽하고 어리석은 생물학적인 주장이 이 비신자들 무리의 영도자라고 규정한 라마르크와 푸엥카레의 품위를 떨어뜨렸다. 전쟁을 위해서는 편리하지만 이 세상의 질서를 만들어 내기에는 옳지 않은 그의 독자적인 진술은 이미 문제를 왜곡시키기에 충분하다. 사실은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이 두 그룹을 나누는 효과적인 경계선이 이 두 그룹 사이를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이 경계선 양쪽으로 각기 갈라져 모이게 될 뿐이다. 세뜨띠랑즈 신부님, 우리를 비난하면서 어떻게 우리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하십니까? 철모르는 어린아이 취급을 하면서 우리들을 어떻게 설득하려 하십니까? 스스로의 자만도 돌아보지 못하고 우리들의 고귀한 것을 자만이라고 질타하십니까? 어떻게 자만이나 음란이라는 무서운 단어를 우리에게 던지십니까? 중세이래 우리들은 달라졌습니다. 자신에게 유리한 이론을 위해 그에 대한 비판을 꺼리는 자는 이제 비겁자의 반열에 설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우리는 적어도 성실한 사람입니다. 설사 그 때문에 우리들의 평화가 희생될지라도. 우리는 항상 전설과 사실을, 가정과 기록 문헌을 구분하는 것을 철칙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우리와 함께 파스칼의 적대자들을 비난했습니다. 갑자기 당신은 우리들의 안이한 생활뿐만 아니라 그 인생의 의미까지도 구속을 주는 문제들을 제기했습니다. 당신 스스로 갈피를 잡지도 못하면서. 진실과 신화를 동시에 원하는 우리가 당신의 교회 문턱에서 머뭇거릴 때 당신은 우리에게 화를 냈습니다. 당신의 증거들이 대체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 있단 말입니까? 기독교에 기반을 둔 우리는 기독교를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필요에 의해 신을 다시 찾을 것입니다. 또 우리 자신이나 전 세계 사람들에 의해 외관상 자연 발생한 것 같은 윤리 도덕도 되찾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사물을 바로 볼 수 있는 재능이 있다면 당신의 사상을 통제하는 그 개념까지도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들을 우리는 바로 진실이라 부릅니다. 그렇습니다. 진리란 우리들 속에 있는 것이지 결코 우리들 밖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은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 신은 우리들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세뜨띠랑즈 신부님, 가라앉혀야 했던 것은 우리들의 악의 결실이 아니라 우리들의 고상함에게 기인된 것입니다. 우리가 도덕적 관념 때문에 부자유스러운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러한 구속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또한 우리는 강한 자를 길들이기 위해서 보다 엄격한 법률이 필요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사실들은 인간이 신을 만들었다는 것을 우리가 수긍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울 것입니다. 오로지 약속된 보상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잃어버린 우상에게 우리의 사랑을 주고 그 우상을 우리들의 소중한 희생으로 모시기 위해서입니다. 아직도 도피처를 구해야 할 시기에 너무 일찍 신을 박탈했기 때문에 우리는 앞으로의 삶을 위해 고독하고 보잘것 없는 약한 인간으로서 계속 투쟁해야 할 것입니다. 세뜨띠랑즈 신부님, 당신은 계시를 믿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들에게 그 계시를 전달해 준 유일한 증거물들을 외면하십니까? 왜 우리는 아무도 저자를 모르며, 그 저자들 중 누구도 그리스도 생존시에는 살아 있지 않았던 그 제자들의 문헌을 보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어야 합니까? 또한 당신의 교회가 별로 중요하지도 않는 야곱의 이야기를 중요시하면서 교리들의 유래에 대해서는 왜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습니까? 또 그 교리들을 선택할 때 그 중 어떤 것은 채택할 수 없었던 원인에 대해서는 무관심하십니까? 이러한 문제에 대한 진실 그 자체가 당신 교회의 거점인데도 말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사고를 존중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우리가 생각했던 그 부당한 전제가, 또한 당신이 적대자들로부터 이러한 부당한 전제를 끄집어내어 폭로되었을 때, 우리들만큼이나 당신을 분개시켰던 그 부당한 전제가 갑자기 당신 교회에서 겸손과 복종에 의해 만들어진 어떤 고귀한 것으로 바뀌어진 이유가 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교리란 절대적입니다. 왜냐하면 그 선택을 주관했던 종교 회의는 어떤 잘못도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결정에는 잘못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신이란 이 종교 회의의 교리 선별이 절대적인 경우에 한해서만이 증명이 되었습니다. 인간의 정신적 결함 때문에 성스러운 교단의 문헌을 더럽힐 이 모순들, 부활, 성모 마리아의 성 엘리자벳 방문 등에 대해 어떻게 처리하시렵니까? 사후의 그리스도와 예언자들이 소개한 그리스도를 짜맞추기 위해 창조한 잘못된 교리를 어떻게 증명하시렵니까? 그리고 교회의 계속적인 태도의 변화와 교회 안에 깊숙이 감춰진 비밀에 대해서 당신은 무엇이라고 변명할 것입니까? 대답이 없어도 나는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모순적인 단언을 할 것이며, 그 모순 안에서 공통적인 대책을 강구하려 할 것입니다. 이 대책을 당신은 또 교리라고 할 것이며 '이러한 주장들이 이 우주의 질서와 일치한다는 것이 놀랍지 않습니까?'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러한 조작들은 가능한 일입니다. 정신병자들도 자신들의 공상을 성공적으로 정리하기 마련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실도 오류도 아니므로 그 누구도 설득시킬 수 없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정신보다는 과학적인 상대론을 보다 확장시켜야 합니다. 인간의 사고방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과학적인 나의 이론이란 단지 생각을 언어로 표현해 낸 것에 불과합니다. 만일 자연이란 것이 우리가 읽어야 할 책처럼 우주 체계적으로 명백한 점들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라면 바빌론 시대의 연구가 왜 이러한 비밀들을 알아내지 못했을까요? 그렇다면 이 하늘 밑에서 이 세계를 만든 것은 신이란 말입니까? 실제로 어떤 증거를 그토록 침이 마르게 말했던 카톨릭 교도가, 그 증거들이 정확한 과학과 역사적인 비평으로 비추어 불충분하다고 밝혀졌을 때 놀라 물러서는 우리들을 보고 무엇을 불평하겠는가? 이 흔들리는 불안한 땅 위에 종교를 세웠던 것은 우리가 아니다. 종교의 이율 배반, 오늘의 역사적인 비평에 그 많은 가치를 나는 인정하고 있지만 나는 할 수 없이 그 비평을 시험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런 오랜 전통을 부인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기독교가 어떤 소유권을 주장하는 부수적인 세계가 되어버린 오늘, 나는 그 기독교를 복음서와 일치시켜야 한다. 이 세상에 대해 분석한 결과에 의해 나타난 초자연적인 경이에 대하여 실망했던 오늘, 나는 이러한 분석을 몰랐던 그 시대의 경이를 믿어야 한다. 과학이 무엇을 숨기고 있는 교회의 태도를 맹렬히 공격하는 오늘, 나는 그 때문에 내 믿음에 방해를 받지 않고 계속 그 비밀을 간직해야 한다. 원인이라는 단어의 의미에 의심을 품는 오늘, 나는 제1원인의 의미를 계속 주장해야 한다. 종국목적론이 우습게 되어버린 오늘, 나는 그래도 종국목적론자로 남아야 한다. 그렇다. 전해 내려온 개념들만이 중요한 것이다. 그것들이 없었더라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것들이 바로 내가 은총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이 개념들을 인간의 마음속에 심어 주어야 하는 것이다. 로마 시대에는 아무 것도 기독교에 저촉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날 그 기독교가 내가 주장할 권리를 갖고 있는 많은 나의 사고의 대상과 충돌하고 있다. 또한 나에게는 종교적인 이상을 고집할 권리가 있다. 나는 이 종교적인 이상이 현실과 일치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섭섭해 할 권리도 갖고 있다. 나는 더 이상의 논리적인 말을 할 수가 없다. [ 행복의 조건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들 그게 나와 무슨 관계가 있나! 그러나 신은 인간에게 신성을 준다. 신. 인간과 신의 게임의 법칙은 성가시게도 개인의 독단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즉 인간의 우둔함으로는 신을 알아낼 수가 없다는 말이다. 신은 인간의 우둔성 밖에 있다. 인간은 신을 포착할 수가 없다. 신이란 모든 것에 존재할 수도 있고 전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신이란 인간이 절대적이며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절대적이고도 상징적인 지주인 것이다. 인생의 의미에 관한 문제에 다가가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그렇지만 그에 대한 접근은 필요하다. 이 문제는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우리들은 거기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만일 인생이 그 인생으로 하여금 어떤 목적을 지향하게 하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지 않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소원이란 단지 잘 살기만을 바라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 안에 어떠한 것도 준비하지 않은 채 한해 한해 보내는 흉칙한 노름꾼이 될 수는 없다. 그는 자신에게 필요한 식량만을 가지고 주위와는 담을 쌓은 채 사는, 마치 곤충같은 까닭이다. 인간이라면 현실에서 벗어나 다른 공간에서 또 다른 무엇을 시도해 보아야 할 것이다. 나는 카드놀이와 자기 직업에 사용되는 방정식 이외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한 기술자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스스로가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스스로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참다운 인간적인 생활이 동반되는 진정한 행복이 결여되어 있었다. 인생의 목표가 없기 때문에 그의 행복이란 것은 오로지 부에 대한 감각일 뿐이었다. [ 당신의 내면 당신은 당신 안에서 무엇이 나올지를 전혀 모르고 있다. 당신은 자신이 계속하여 본질적으로 안정되어 끊임없이 영속할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당신이 느끼는 그 감정들만이 스스로에게 허용되었으며 자신의 인간성만이 최고라 믿고 있다. 당신은 당신 안에서 어떤 불새가 날개를 펼칠지 모르고 있다. 당신 내부의 세계는 당신도 모르게 닫혀져 있다. [ 육체와 정신 어떻게 인간이 장차 육체를 포기할 수 있으며 다시 그 육체로 되돌아 갈 수 있을 것인가?. 분명 이는 인간의 이원성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어찌 악마를 만들어 내지 않았겠는가? 사람들은 말한다. '돌려주세요. 우리에게 영생을 주세요' 하나의 놀이에 지나지 않는 그 춤이 독단적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놀란다. 우리에게 우리의 종교를 돌려주시오. 그것이 바로 내가 심어서 내 아들이 가꾸게 될 올리브 나무에 대한 숭배, 이것이 바로 우리의 종교가 될 것인가, 아니면 조국이나 가족들의 생일잔치나 축하연에 대한 예찬 바로 이것이 우리들의 종교가 되는 것인가. 우리들에게 우리 자신을 돌려 주시오. 그리고 우리가 이 덧없이 늙을 육신을 변치않는 귀중한 돌로 만들어 주시오. 내가 너에게서 좋아하는 어떠한 것도 육체적으로는 아무런 뜻을 가지고 있지 않다. 너의 입술, 그렇다. 그러나 그 입술로 사람의 외관을 만드는 미소를 짓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도 그 육체의 살덩이가 아니라 그 육체의 조화된 배열이다. 어떠한 것도 물리나 화학으로 정의될 수는 없어도 순수한 수학(리듬)이나 존재하지 않는 기하학(형태)으로는 가능하다. 모든 것은 정신적인 면에서 의미를 갖고 있다. 인간의 신성, 춤추는 여자들의 외면에 담겨 있는 그 모든 아름다움, 황금, 육체, 웃음, 젖가슴, 몸짓, 많은 꽃, 광선의 반사^5,5,5^. [ 종족의 의미 조상 숭배, 이는 정신적인 단결이며 종족의 근원이 된다. 이 모든 증인들이 신적인 존재들이다. 그들은 우리들의 본보기이기 때문에. 무기에 대한 애착을 느끼게 된다면 당신은 진정한 삶을 발견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무기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무기를 사용하는 동물이 된다. 신이 우리에게 준 신성한 말, 그러나 우리들은 그것을 잘못 사용하고 있다. 그 소녀가 빛으로 만들어졌다면 나는 그 소녀를 구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은연히 빛을 발하는 진흙덩이로 무엇을 어쩌란 말인가? 인간 때문에 마음이 상했다. 군중 때문에 마음이 상했다. 뭐라구요, 주님? 당신 때문에 내 마음이 상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들, 은하계에 살고 있는 자유로운 우리들, 이에 비하면 답답하리만치 법률을 지켜야 하는, 법률에 얽매어 있는 사람들의 생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 인간들, 그들은 현재 자신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그들이 될 수 있는 그 인생을 위해 희생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 인간을 만들기 위해 자기 영역을 구축하는 것이다. [ 믿음 당신은 전혀 믿지 않았다구요? 그렇다면 당신은 자신이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고 있는 겁니다. 왜냐하면 씨앗이 자연의 체계 속에 가담할 때만이 그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이니까요. 이것이 왜 비판 정신을 포기하는 것이 의미를 갖는가에 대한 이유입니다. 당신 속에서 어떤 인간이 태어날 것인지 알고 노력하십시오. 그것만이 중요합니다. [ 신부는 나쁘다? 앙드레 지드는 체험하지도 않고 판단한다. 하나의 개념적인 체계란 그 체계를 만들어 내는 인간에 의해서만 가치를 갖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 개념의 전체적인 체계를 알 리 없는 법니다. 그런데 지드는 행복의 명목으로 막역한 사교를 대표하여 판단하고 있다. 종교의 경우 아메리카에서는 어떠한 종교적인 운동을 심어줄 개념의 파종이 필요하다. 이해를 시킨다는 것과 개심을 시킨다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를 생각해 보라. 이러한 견지에서 볼 때 이 모든 씨앗들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못하는 러시아 인에 대해서 우리는 무슨 말을 해야 할 것인가? 지드는 말했다. '신부는 나쁘다' 이 뜻없는 주장. 그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 나았다. '중세기적인 인간 타입은 나쁘다' 아니면 이렇게 말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한 인간 타입은 현실과 모순된다' 하지만 나는 신부들이 다니는 시골길과 일주일간의 일과 때문에 그들을 좋아했다. [ 문명 문명의 근원. 이것은 지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명백하다. 문명은 자연과 인간에게 질서를 준다. 또한 마음의 풍요를 안겨준다. 그러나 러시아에서는 단지 보잘것 없는 모방에 불과하다. 러시아의 과학은 상상할 수 있다. 극장이나 음악, 서적들도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그곳에 어떤 고귀한 것이 있다고는 믿을 수 없다. 문명이란 어떤 유일한 것을 오래도록 간직하는 곳에 머무는 것이 아닌가? 인간과 숲. 만일 인간 이외의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금방 지쳐버릴 것이다. 인간은 오래 전부터 야수와의 접촉을 잃어버렸다. 다시 말하면 실감나는 사냥의 즐거움을 잃은 것이다. 또한 부분적으로 자연의 힘과의 접촉도 잃어버렸다. 왜냐하면 그는 도시 문명 속에 갇혀 있으므로. 그는 지금 유성을 야채밭으로 가꾸고 있다. 이러한 점을 시발로 사회적인 문제들의 위치를 정하는 것을 잊어버렸다. 인류의 팽창과 여러 종족 중 특정 종족의 팽창에 대한 문제들. 나는 아직까지 그 팽창에 대하여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보면 세계의 대부분이 빛을 잃은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사냥이라는 것에 어떤 이해 관계를 갖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 사실은 음침한 제국 시대 사람들이 사냥하러 가던 땅이 더 이상 사냥터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국내 이주나 국외 이민에 대한 주장. 인간은 만일 그가 자리를 옮기면 모든 것을 잃게 되지만, 그러나 나는 새로운 문명에 통합된다. 그것은 종탑과 같은 숭배의 대상이 되는 위대한 역할 때문이다. 만일 이스라엘 민족에게 어떤 정당한 비난을 원한다면 그것은 그들의 이주가 그들에게는 결정적이며 구체적인 어떤 것을 부차적인 것으로 하락시켰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구체적인 것의 의미가 우리들의 생각과는 다르다. [ 좌와 우 어떤 사람은 대중을 좋아해서 좌익이었다. 다른 이는 그렇지 못해서 우익이었다. 성실하고 찬양받을 만한 노동자는 땅에 침을 뱉을 권리가 있으므로, 혹은 손수건을 요구할 권리가 있으므로 좌익이 되었다. 나는 대중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우익이다. 만일 내가 그들을 좋아함으로써 좌익이 된다면 나는 그들을 특권 계급보다 고결하게 만든 생활 조건(가난, 희생, 불공평)을 파괴하기 위해서 라면 투쟁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가 모르는 인간. 포만, 안락, 부르주아적인 인내 등을 지닌 인간에 대해서만 찬사를 보낸다. 행복이란 소비로부터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부르주아란 인간의 관계를 쓸데없는 물건의 관계로 바꿔버리는 어리석은 자들이다. 아나키스트여, 만일 당신들의 지하실과 곳간에 어떤 인간적인 플로르(특정지역에 사는 모든 식물)를 생기게 한다면 그리고 거기서 정과 지의 온정을 돋구어 준다면, 그 지하실과 곳간을 보존하고 지키시오. 마치 사람들이 빛나는 가구와 안이한 생활과 정의 대신에 수도사의 독방을 보존하듯이 말이오. 정신적인 문명의 측면과는 다른 이야기지만, 나는 어느 정도의 생화 수준은 지적인 삶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데카르트는 '나의 재산에 대해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될 행운을 가졌습니다'라고 말했다. 마르크스는 인간들에 대해 파스칼보다도 무지하다. 좌익의 그들은 우익의 그들보다 무지한 것이다. 파스칼은 개미의 행진에 대해 자세히 모른다. 그러나 개미는 인간과는 다른 것이다. 파스칼이란 우익의 인간과 데카르트란 좌익의 인간. 여행에서 돌아온 당신은 어느 때보다도 더 멀리 떨어져 있는 듯 합니다. 위대한 비전통주의자 데카르트씨. [ 사상 사상이란 그 사상 때문에 저지른 단순한 학살이라는 관점에서 토의될 수 있을 것인가? 여기 저기서 벌어지는 현상을 보면 내 생각이 옳은 것같다. 에스파아녀, 그 어린아이는 놀이를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 그 아이가 죽음을 각오하게 되었을까?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시킨다. 그렇다. 그러나 그건 오로지 수단이 목적에 저촉되지 않을 때의 이야기다. 인간이 존중되어지기 위해, 혹은 인간 안에 있는 아름다움을 존중하기 위해 좌익이 혁명을 일으킨다면 좋다. 그러나 그것에 비방이나 옳지 못한 타협이나 인간의 존엄성이나 혹은 아름다움을 망각한 협박 등의 방법을 사용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 평등의 조건 평등이란 자연의 계열 속에는 들어 있지 않다. 본래 가장 강한 동물인, 가장 지적인 동물이 군림하는 것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로 가장 강하고 지적인 인간이 다스린다. 기독교에서 유래된 평등, 신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사람의 평등, 그리고 그 후 철학자들에 의해 시작된 이 평등은 고대 문명 속에서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고대 문명 이후 문명의 출발점이 되었으며, 그것은 일종의 정신적 선물에 의해 인간 속에 심어진 것이다. 평등이란 적어도 다수가 개인보다 강하다는 사실에서 볼 때 그 평등의 개념은 참되고 현실적이다. 그러나 이 개념이 정신적으로 이익이 된다는 것은 이것이 맹목적인 힘을 신성시해서가 아니라 반대로 이 개념이 이 맹목적인 힘을 완화시킬 때만이 우리에게 이로운 것이 된다. 약한 자는 강한 자에게 대하여 보호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개념이 잘된 것도 잘못된 것도 아니라면 또한 노^36^예 제도의 정당화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평등이란 우리에게 무엇을 뜻하는가? 우선 이 평등이란 개념이 대중에 의한 개인의 힘을 완화시키기 위한 것이라면, 이 대중들이 해방되면서부터는 즉각 개인에 대한 그들의 힘도 반드시 완화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므로 군중들이 베르뜨르를 교수형에 처할 때는 평등이 없었다. 무정부주의자 올리베라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훌륭한 화가라고 해서 부둣가의 노동자들보다 더 잘 살아야 하는 이유는 없다. 그가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은 보다 좋은 눈을 유전받았기 때문이다. 그가 잘 살아야 할 공적을 세운 것은 아니다' 종교를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공덕이니 선행이니를 구분할 수 있는가? 화가란 그림을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잘 그린다. 이건 사실이다. 동물 세계에서는 제일 힘이 센 사자가 지배를 한다. 이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들의 사회에는 힘이나 기교라는 외적인 면도 아닌 또 다른 판단 기준이 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정신적인 세계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인 역시 우리 사회에서 어떤 중요한 위치에 있는 것이다. 시인은 대중에게 봉사해야 한다. 무엇 때문인가? 왜 대중이 시인을 위해 봉사하지 못하는가? 그것은 인간의 사회가 평화롭고 부드럽게 되기 위함이며, 또 다른 시인들이 태어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시인이 사회에 봉사하는 것은 그가 공적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올리베리의 말을 전적으로 무시한다. '보다 좋은 시력을 가진 자가 노동자보다 잘 사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 나는 정당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모르겠다. 오직 문제는 이것이다. '어떤 사회 구조가 창작과 정신과 정신적인 삶을 가장 잘 도울 수 있는가?' 반대로 노동자가 좋은 시력을 가진 자보다 더 잘 사는 것을 나는 정당하다고 하겠다. 정의나 약속을 이행함으로써 얻은 명예에 대해서도 같은 사실을 주목할 수 있다. 불명예란 항상 태도를 바꾸는 데서 온다. 그것은 또한 삶을 의미할 수도 잇다. 명예란 죽은 자들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다. 오늘날 순결한 자들은 모두 그들의 명예를 위해 살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그들은 서로 미워하고 있다. 명예란 설명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 사색 노트는 계속하여 2권으로 계속 이어집니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3 전2권 중 제2권 지은이: 쌩떽쥐뻬리 옮긴이: 구본수 펴낸곳: 도서출판 움직이는 책 엮은이: 이상각 [ 자기 만족 앙드레 부르통은 비밀과 명백한 수수께끼를 구별하지 못한다. 만일 내게 비밀이 있다면 아는 그것을 감출 것이다. 만일 내가 사람들을 놀라게 하거나 자랑하고 싶으며 또 내적인 정신 세계와 자존심이 없기 때문에 야기시킨 결과에 따라 스스로를 평가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면 나는 어떤 어렵지만 하찮은 수수께끼를 만들어 남들에게 내보일 것이다. 인간에게는 자기 만족 만큼 신비스러운 것은 없다. 자기 역할, 자기 지위, 설혹 외부의 형상들만이 어떤 인간에게 자양분을 제공했다 하더라도 인간의 주의를 어찌하여 그 인간의 내부의 심리 상태가 독점한단 말인가? 신기한 일이다. 그것은 우리들을 궁지에 몰아넣기도 한다. 죽기 위해 죽겠는가? 아니면 인간을 위해 죽겠는가? 당신의 삶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지 않다면 당신은 죽음을 원할 것이다. 그렇다. 그러나 브릿지 놀이가 삶의 의미일까? 당신에게는 애국심조차 없다. 왜냐하면 당신은 국가를 위태롭게 했으므로 당신은 자신의 놀이를 위해 국가에 가장 위협을 가하고 있는 자들까지 옹호하고 있다. [ 지역 감정 누군가가 어떤 정책에 관하여 당신과 다른 견해를 밝혔다고 해서 그를 모욕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실로 비천한 짓이다. 또한 내가 아무 것도 대답할 수 없을 때 당신이 내게 의견을 강요한다면 그것 역시 좋은 것이 아니다. 이 문제에 있어서는 논리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나는 선택할 뿐이다. '인간이 자기 사상을 초월해서 존경받는 문명' 이것이 나의 문명이다. 이러한 공리에서부터 출발했지만 결국 그 공리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나는 인간에게서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영역을 찾고자 한다. 왜냐하면 내가 산책을 하기 위해서는 넓은 영역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민에 대하여 분개한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내가 나의 조국을 옹호하는 것은 그 하나의 문명, 하나의 언어, 하나의 독특한 인간형, 그리고 어떠한 개념들을 대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언어의 낭랑한 발음이 이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박자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부르따뉴 사람도 플로방스 사람도 프랑스 인이다. 그런데 만일 조국이 분단된다면 나와 같이 공유하고 있는 것이라곤 불어밖에 없는 프랑스 인보다는 같은 종교, 같은 도덕, 같은 이상에 의해 형성된 외국인에게 보다 더 친밀감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리라. 그러므로 그들의 애국주의는 좋지 못한 당파심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진정한 동류 의식을 무시한 채 같은 색깔의 유니폼을 입은 패거리에게나 열정을 기울이는 꼴이 아닌가. [ 고정 관념 계급의 범주에 대한 설명은 모든 것을 왜곡시켜 버렸다. 계급, 실업가, 착취자 따위의 고정 관념은 실로 잘못된 것이다. 1840 년 지주들은 자신들을 위해 저택과 연장들을 만든 고용인들과 대립하고 있었다. 그러나 점점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지주들의 소유물은 고용인들의 소유물과 일치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지주들이 고용인들에게 팔기 위해 자동차를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기술자들과 지배인들을 어느 계급에 포함시킬까가 새로운 고민거리로 등장하게 되었다. 따라서 계급의 개념은 이제 더 이상 난처한 문제의 해법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좌익은 지금이 여전히 르노 자동차가 르노 가문을 위해 자동차를 만들던 때와 마찬가지라고 주장하고 있다. [ 분배 이젠 프롤레타리아도 부르주아의 역할을 한다. 사람들은 마치 피지배 계급의 가난이 지배 계급의 부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생각은 아메리카의 번영으로 잘못되었음이 증명되었다. 이젠 소득의 분배가 분제가 될 뿐 계급의 차이란 하찮은 것이다. [ 정의 어떤 가난한 사람이 큰 저택을 가르키면서 나에게 묻는다. "대체 내가 허름한 집에서 사는 것이 공정합니까?" 평준화된 평등 개념의 입장에서 본다면 '아니오'란 대답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개념으로 본다면 '그렇소'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옛날 도덕적으로 엘리트 계급에 속하던 사람들까지도 그들의 노^36^예 제도가 부당하게 보이지 않았는가를 증명하는 예이다. [ 부와 예술 부가 없어진다면 나는 불안해질 것이다. 그것은 금박이나 사치스런 시계 때문이 아니라 트랙터나 의자 등을 만드는 일에 둔감해진 가난한 사람들 때문이다. 그들은 보다 더 멍청해질 것이며 뚱뚱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 노동자는 그의 노력이 결실이 아니라 노동 그 자체의 과정에 의해 살아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배부른 예술가보다는 배고픈 예술가에게서 작품이 나오는 것이 다. 예술만이 아니더라도 고장난 시계쯤은 누가 고쳐 주어야 할 것이 아닌가? 한 인간의 생명만큼이나 가치가 있으며 백만 프랑이 넘는 귀한 도자기를 소유하기 위해서는 50 년 동안 도예가를 먹이고 재우고 입힐 귀족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도예가는 노력의 대상을 다른 물건으로 바꾸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그는 대량으로 물병을 만들어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국가는 단지 투표를 통해 결정된 평범한 물병을 구입하면 된다. 이제 예술은 사라져버렸다. [ 예술의 가치 시가 아름답다는 것은 그것이 마치 열성적인 손으로 수놓은 제복과 같이 또한 피땀나는 열정으로 빚은 도자기와 같이 수많은 인가의 삶의 대가를 치뤄냈기 때문이다. 어떤 대상 속에 인간의 품위를 집어넣기 위해 시인은 자신을 희생해야만이 아름다운 시가 탄생한다. 이런 신비스러운 예찬의 진실을 믿고 바라는 우리들은 그런 세계, 그런 사회를 바란다. 예술이란 바로 인간적인 가치이다. 그것이 개인이 아닌 집단에 의해 공유된다면 그 가치는 쓰레기통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먹을 빵이 없는데 사랑의 소네트를 쓰는 것이 비도덕적이라고 믿는 사람은 시골에 가서 농사를 지어야 할 것이다. [ 대지 대지는 사전에 많은 작업을 필요로 하지 않는 유일한 생산 수단이다. 게다가 대지는 본질적인 삶을 보장한다. 대지는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와 이어져 있으며 그 거대한 자연의 순환 체계 속에 인간을 끌어들인다. 인간은 대지로 인하여 정신적으로 발달한다. 나는 그 누구라도 아무런 준비를 시키지 않고 대지로 돌려보낼 수 있다. [ 언어 만일 지구상에 하나의 언어만이 있다면 인간들은 얼마나 나태해질 것인가? 사람들은 자신 안에 존재하는 무질서를 은연중에 인정하고 있다. 마치 데카르트 이전의 사람들이 자연의 혼돈을 보고 자연계의 모순을 인정했던 것처럼. 그들은 이제 부조리에서 법칙을 끌어내려 하며 그 고리들을 이어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찾아야 할 것은 부조리를 포함하고 있지 않은 단 하나의 언어인데도 말이다. 그들은 하나의 사건이 동시에 부조리하며 명백하며 논리적이며 모순투성이일 수 있다는 점을 모르고 있다. 사람들은 많은 분야에서 그들의 무능을 정당화하기 위한 재료와 신화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들은 유일한 도구인 언어로서 자신이나 자신의 인생의 문제를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면서도 그들 외부에 존재하는 세계를 파악하려 하고 세계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려 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 그 여자의 세계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기 위해 자신의 생각이나 혹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그 세계를 표현할 또 다른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요건이 바로 창조적 사고의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그들이 생활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이 여자, 간호원이 아니면 어머니일 이 여자를 보십시오. 그러나 그 여자가 하는 이야기는 듣지 마십시오. 그 여자가 세계를 파악하기 위한 도구로서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는 것, 내가 그 여자의 책상 위에서 본 것은 한물간 책 '리용 공화국' 한 권. 그 책은 이 여자에게 어떤 사상을 심어 놓았다. [ 단순화 인간은 능란하다. 아마 그럴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언어와 손을 잡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외적인 신앙을 믿고 있으므로 세계를 이끌어 나가는 것이 언어의 기교라고 여기고 있다. 히틀러는 '나는 모든 것을 단순화시켰다'라고 소리쳤다. 그건 사실이다. 아리안 족의 개념으로는 모든 것이 단순화된다. 그러나 이는 세계가 이에 따라 단순하게 정돈되어야 함을 의미하므로 그 부당성은 자명하다. [ 독일인의 끔 히틀러의 논리가 독일인의 꿈을 충족시켜 주었다면 독일인들의 꿈은 실로 보잘것 없는 것이다. [ 군형이 깨어지면 잘 조직되고 균형잡힌 사회는 눈에 띄지 않는다. 결코 동요하지 않는다. 새들이 이와 같이 안정된 상태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만일 인간이 그 새들을 쫓는 매를 잡아버린다면 새들은 농작물을 망쳐놓을 것이다. 균형이 깨진 것이다. 평화롭고 잔잔한 바다도 마찬가지다. 만일 내가 그 바다의 둑을 허물어 버린다면^5,5,5^,. 인간이 전쟁을 좋아하는 것을 상상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한 민족이 전쟁터로 나간다면 그들 역시 히틀러와 같은 미치광이 짓을 하게 될 것이다. [ 자연 법칙 나는 자연의 법칙이 간단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그 법칙을 자연의 한계에 대한 한정된 개요에 의하여 표현하기 때문이다. 온전히 정확한 것이 되기 위해 그 개념의 유한성을 증명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내가 아무렇게나 정의한 그 곡선을 규정하는 법칙처럼 자연을 지배하는 법칙이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하나의 곡선이 내게 자연의 모든 현상을 제시해 준다면 자연의 한계들을 합친 그러한 개요는 그 한계들 사이에 존재하는 연관성을 대략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 정신 분석 나는 무엇이 내 마음에 들고 안 들고를 직접적으로 알 수 없다. 내 마음에 들거나 안 들거나는 하나의 현상도 아니고 이미지도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구조인 까닭이다. 일종의 구조란 결코 구조에 지나지 않은 '명예'라는 낱말처럼 한정된 것이다. 내가 하나의 구조를 꼬집어 규정한다면 나는 아마 구조로서의 그것을 파괴하는 셈이 될 것이다. 하여튼 나는 그 구조에 의식의 작용을 덧붙인다. 그런데 나는 그 구조를 관찰할 줄도 명확히 규정지을 수도 없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른다. 구조를 파괴한다는 것은 유추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유추란 어떤 진리를 가둘 가능성이 있다. 개념적인 진리의 범위 안에서 누군가 노이로제를 치료하려 한다면 리비도(성욕)는 악마보다 더 큰 효과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정신의 치료에 있어서는 악마가 오히려 더 나을 것이다. 언어는 진리의 단면도이며 종합이다. 언어가 이 사이에 하나의 질서를 만든다. 리비도가 악마보다 절대적인 의미를 더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중요한 개념이 들어 있는 것이다. 언어란 모든 것을 전달할 수 없으며 또 모든 것을 포함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름을 갖지 않은 사물들이 수 없이 많은 까닭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정신 분석은 인식되지 않은 많은 대상물 중에서 어떤 대상 하나를 의식에 의하여 포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사물을 파괴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그 사물에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 교육 교육이란 피교육자에게 하나의 독자적인 인격을 길러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지식이라는 짐이 아니라 이해를 위한 도구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정신적인 문제의 일부인 이 근본을 망각하고 있다. 각자의 인격이란 바로 정신이다. 우리는 스스로 독자적인 품격을 만들지 않는다면 정신을 길러내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각자의 인격을 갖도록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단지 지식만을 가르친다. 자신의 번뇌조차 선용할 줄 모르는 사람은 끈적거리는 일종의 보리죽에 지나지 않는다. '의식을 가져라. 그러면 자신만의 품격을 가질 수 있다' [ 동반 프로이트는 자신의 딸을 사랑했으며 동시에 정신 분석학의 이론을 세웠다. 이러한 사실이 정신 분석을 하는 한 남자의 딸에 대한 사랑으로 귀착시켜 버릴 수 있을까? 그것은 다만 그가 자기 딸을 사랑한 사람이고 그가 정신분석을 체계화한 사람이라는 것을 설명한 것일 뿐이리라. 이것이 바로 잘못 사용된 인과 관계의 개념을 넌센스로 만들어 버리려는 좋은 예이다. 동반의 개념. 프로이트가 불가피하게 설명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인과 관계와 동반을 혼돈 속에 밀어 넣었다. 그는 내적 충동의 상징적인 면의 일부를 자기 자신의 상징적인 면의 다른 일부로 설명하려 할 것이다. [ 논리 논리란 인간이 만들어 낸 개념이다. 우리가 어떤 동기를 발견했을 때, 그것은 우리를 만족시키는 것이며 동시에 다른 면에 있어서는 이러한 논리적 형태가 다른 동기들과는 부합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들에게 믿게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 진리 진리란 잘 증명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역할에서 다소 효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어떠한 진리도 그 자체에 거짓이나 진실은 없다. 이 말에 어떤 사람들은 반박할 것이다. 태양이 저기 있는 나무를 비추는 것은 사실이라고. 사실상 진리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개념적인 진리와 관찰에 의해 포착된 진리. 나는 이 나무가 저기에 있는 것을 관찰한다. 그러나 어떤 점에서 경험 때문에 나는 거북하다. 내가 존재한다. 나와 관계없이 다른 것들도 존재한다. 그러나 내가 진술은 하지만 조작은 할 수 없는 요소들 사이에 어떤 관계를 표현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경우 이러한 관계를 표현하는 것은 관찰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순수한 창작에 의해 이루어진다. 내가 진술을 할 때는 곤란하지만 어떤 것이든 선택하는 것은 나의 자유이다. 왜냐하면 대상 그 자체로는 진실도 거짓도 아니니까. 단지 정신적인 관점이 문제가 될 뿐이다. 진술이란 일조의 행위인 것이다. 창조적인 진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진리는 처음에는 거부되다가 그 다음 하나의 뼈대가 되어 더 이상 눈에 띄지 않는 어떤 명백한 것이 되어버린다. [ 모순 인간이 모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 죽의 하나. 무엇이든 간단한 체계를 만들어 낸 다음 그 체계와 상반되는 진리를 오류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신과 악마를 분명하게 상상해 내는 것은 광신자들의 세계이다. 그러한 세계는 조종하기 쉬우므로 즉각적인 행동을 불러일으키기 쉽다. [ 질서 '이야기 속에는 질서가 있어야 한다'는 말은 부조리하다. 하나의 이야기란 그것이 일단 만들어지고 나면 그 안에서 질서가 이루어진다. 마치 나무나 어떤 위대한 생애와 같이. 그러나 그들은 질서를 만들어냈고 그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떤 비결을 찾아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자연의 법칙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질서는 자연에 대한 표현 그 자체인데도 말이다. [ 학문 학문은 결코 예측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학문은 되풀이 되는 것만을 예측하는 것이다. 하나의 이론이란 현상들 사이에 존재하는 연관들의 부류를 설명하기 위하여 세워지는 것이다. 방정식에서 새어나오는 이미지들이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방정식만이 중요한 것이다. 방정식은 소수에 이르기까지 가치가 있다. 바로 그렇다. [ 비행기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비행기를 생각해 왔다. 그것은 곧 그들이 '지향했다'는 사실이다. 분명 사람들은 그들이 지향해 왔던 것을 실현시켜 왔다. 이것은 예측이 아니라 창작이라는 말이다. 비행기는 그것이 상상되어졌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아니 오히려 요구되어졌기 때문에. 비행기는 예언적으로 예감되어진 씨앗에서 나온 나무가 아니라 사람들이 바랐던 나무인 것이다. [ 어린 왕자 [ 레옹 베르뜨에게 이 책을 어른에게 바치는 데 대하여 어린이들에게 용서를 빈다. 여기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이 어른이 세상에서 나와 가장 친한 친구라는 것이다. 또 다른 한 이유는 이 어른이 나의 모든 점을 이해할 수 있고 어린이들을 위해 씌어진 책들까지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 이유는 이 어른이 프랑스에 살고 있는데 그곳에서 그는 굶주리고 추위에 떨고 있다는 것이다. 이 어른을 잘 위로해 주어야 한다. 만일 이 모든 이유가 충분하지 않다면 나는 이 책을 이 어른이 옛날 어린이로 있던 시절에 기꺼이 바치고 싶다. 모든 어른들은 어린이였다. 그래서 나는 헌사를 이렇게 고쳐 쓴다. 어린이였을 때의 레옹 베르뜨에게 [ 첫 그림 나는 여섯 살 때 "체험한 이야기"라고 하는 처녀림에 대한 책 속에서 굉장한 그림을 본 적이 있다. 그것은 한 마리의 동물을 삼키고 있는 보어뱀을 그린 것이다. 여기 있는 그림은 그것을 본떠 그린 것이다. 그 책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보어뱀들은 먹이를 씹지 않고 통째로 삼킨다. 그리곤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어서 소화가 되는 여섯 달 동안 잠만 잔다' 나는 밀림의 여러 가지 모험에 관하여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리하여 색연필로 나의 첫 그림을 그려냈다. 제 1호 내 그림, 그것은 이러했다. 나는 이 걸작품을 어른들에게 보여주고 그림이 무서우냐고 물어보았다. 그런데 어른들은 '모자가 왜 무섭지?' 하는 것이었다. 내 그림은 모자를 그린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코끼리를 삼킨 보어뱀을 그린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그 보어뱀의 속을 그려보이니까 그제서야 어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른들은 언제나 설명을 필요로 한다. 내 그림 2호는 다음과 같다. 어른들은 내게 속이 보이거나 안 보이는 보어뱀의 그림 따위는 그만두고 차라리 지리, 역사. 산수, 문법 등에 흥미를 가지라고 권했다. 그래서 여섯 살 적에 나는 이 멋진 화가로서의 길을 포기했다. 내 1호 그림과 2호 그림의 실패로 맥이 빠졌던 것이다. 어른들은 혼자 힘으로는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어린이로서는 언제나, 정말 언제나 어른들에게 설명을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은 귀찮은 일이다. 나는 다른 직업을 택해야만 했기 때문에 비행기 조종술을 배웠다. 그래서 세계의 여기 저기를 날아다녔다. 지리 공부가 내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나는 단번에 중국과 아리조나를 구분할 줄 알았다. 밤에 길을 잃으면 그것은 매우 유익한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성실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랫동안 어른들의 집에 살며 그들을 아주 가까이서 살펴 보았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생각을 별로 고쳐놓지는 못하였다. 조금 현명해 보이는 어른을 만날 때면 나는 간직하고 있던 1호 그림으로 시험해 보았다. 정말 이 어른은 이해심이 있나를 알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대답은 '그것은 모자로구나'였다. 그럴 때면 나는 보어뱀이니 처녀림이니 별이니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다만 그분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브릿지 게임이나 골프, 정치나 넥타이 따위에 관해서만 말을 하였다. 그러면 그 어른은 아주 사리에 밝은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하며 아주 만족스런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 만남 6 년 전, 사하라 사막에서 비행기가 고장이 날 때까지 나는 진실한 이야기를 나눌 친구 하나 없이 혼자 살아왔다. 갑자기 무엇인가가 기관에서 부러져 버렸다. 정비사도 승객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이 어려운 문제를 나 혼자 해결해 내야 했다. 그것은 내게 있어서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였다. 겨우 일주일치의 물밖에는 없었으니까. 첫날 저녁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땅에서 수만 리 떨어진 사막 위에서 잠이 들었다. 넓은 대양 한가운데서 뗏목을 타고 있는 난파객보다도 나는 더 고독했다. 그러므로 동이 틀 무렵 이상한 작은 목소리를 듣고 잠이 깨었을 때의 놀라움이란^5,5,5^. 그 목소리는 이런 말을 했다. "저^5,5,5^ 양 한 마리만 그려 줘요!" "뭐라구?" "양 한 마리만 그려 달라니까요!" 나는 벼락을 맞은 듯이 벌떡 일어났다. 눈을 비비고 바라보니 아주 이상한 꼬마 녀석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이것은 나중에 내가 그 녀석을 그린 것 중에서 가장 근사한 그림이다. 물론 내 그림은 모델보다는 훨씬 아름답지 못하다. 하지만 이건 결코 내 잘못이 아니다. 나는 여섯 살 때 어른들 때문에 화가로서의 직업에 낙심했었다. 그래서 속이 보이는 보어뱀이나 속이 안 보이는 보어뱀을 빼고는 다른 그림을 한 번도 배우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나는 놀라 눈을 둥그렇게 뜨고 이 유령을 바라보았다. 내가 사람 사는 고장으로부터 수만 리나 떨어져 있다는 점을 잊지 마시길. 한데 이 꼬마는 길을 잃은 것같지도 않았고 몹시 피곤하다든가 시장하다든가 목이 마르다든가 두려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꼬마에게는 사람 사는 고장으로부터 수만 리 떨어진 사막 한가운데서 길을 잃은 기색이라곤 전혀 없었다. 내가 놀란 가슴을 접고 말을 걸었다. "그런데 너 여기서 뭐하고 있니?" 그랬더니 꼬마는 아주 중요한 일이기나 한 것처럼 부드럽게 되풀이하여 말을 했다. "저^5,5,5^ 양 한 마리만 그려줘요." 누구나 이상한 일을 당하면 거역하지 못하는 법이다. 사람 사는 곳으로부터 수만 리 떨어져 있고 죽음의 위험에 직면해 있는 이런 상황에서 꼬마의 요구는 터무니없는 일처럼 여겨졌지만 나는 주머니에서 종이와 만년필을 꺼내 들었다. 그러나 지리나 역사, 산수, 문법 등을 배운 일이 생각나 (약간 언짢은 기분으로) 그림 그릴 줄 모른다고 대꾸했다. 하지만 꼬마는 막무가내였다. "괜찮아요. 양 한 마리만 그려줘요." 나는 양을 그려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내가 그릴 수 있는 오직 두 가지의 그림 가운데 하나를 그려 보여주었다. 그것은 속이 보이지 않는 보어뱀이었다. 그리고 나는 깜짝 놀랐다. "아냐. 아냐. 보어뱀 속에 들어있는 코끼리 그림을 원한 게 아니란 말예요. 보어뱀은 너무 위험하고 코끼리는 거추장스러워요. 내 집은 아주 작거든. 나는 양이 필요하단 말야. 양을 그려줘요." 하는 수 없이 나는 양을 그렸다. 꼬마는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냐. 이 양은 벌써 병이 난 걸. 다른 걸로 그려줘요." 나는 다시 양을 그렸다. 그러자 비로소 이 친구는 관대한 표정으로 귀여운 미소를 지었다. "이건 어린 양이 아니고 숫양이잖아요. 뿔이 있잖아요." 그래서 나는 또 다시 그림을 그렸지만 또 다시 퇴짜를 맞았다. "이 양은 너무 늙었어요. 난 오래 살 수 있는 양을 갖고 싶어요." 나는 비행기를 서둘러 고쳐야 했기 때문에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무렇게나 그림을 그려 놓았다. 그리고는 한 마디를 불쑥 내뱉았다. "이건 상자야. 네가 갖고 싶어하는 양은 이 안에 있어." 그런데 나는 비로소 이 어린 재판관의 얼굴이 환하게 빛나는 걸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갖고 싶었던 것이 바로 이거^36^예요. 근데 이 양에게 풀을 많이 주어야 하나요?" "그건 왜?" "우리 집이 아주 작아서 그래요." "이거면 틀림없이 넉넉할 거야. 아주 작은 양을 네게 주었거든." 꼬마는 고개를 숙이고 그림을 들여다보았다. "그렇게 작지도 않은걸. 야! 잠을 자고 있어!" 이렇게 해서 나는 어린 왕자를 알게 되었다. [ 별의 비밀 그가 어디서 왔는지를 알기에는 오랜 시일이 걸렸다. 어린 왕자는 내게 많은 질문을 하면서도 나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는 것같지 않았다. 우연히 하는 말로 나는 조금씩 그에 대해서 알 수 있게 되었다. 내 비행기를 처음 보았을 때 (내 비행기는 그리지 않겠다. 그것은 나로서는 너무 복잡한 그림이니까) 그는 이렇게 물었다. "이 물건은 뭐죠?" "이건 물건이 아냐. 날아다니는 거야. 비행기라고 해. 내 비행기." 나는 내가 날아다닌다는 점을 그에게 알려 준다는 것이 매우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그가 소리쳤다. "뭐라구? 그럼 아저씨가 하늘에서 떨어졌단 말예요?" "응." 내가 겸손하게 대답했다. "야! 그거 재미있는데^5,5,5^." 어린 왕자는 아주 재미있다는 듯이 깔깔거리며 웃었는데 나는 몹시 화가 났다. 나는 그가 내 불행을 진지한 태도로 받아들여 주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린 왕자는 덧붙여 물었다. "아저씨도 하늘에서 왔다구요? 어떤 별에 있었는데요?" 순간 나는 그의 신비로움을 알아내는 데 어떤 섬광이 비침을 깨달았다. 그래서 얼른 물어보았다. "그럼 너는 다른 별에서 왔니?" 어린 왕자는 대꾸하지 않았다. 비행기를 들여다보면서 가만히 머리를 끄덕였을 뿐이었다. "아저씨가 이걸 타고서는 그렇게 멀리서 오지 못했겠어. 정말^5,5,5^." 그러고는 아주 오래도록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더니 주머니에서 양을 꺼내 그 보물을 열심히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다른 별들'에 대해서 약간 비치기만 이 상황이 나에게 얼마만큼의 호기심을 자아냈는지. 나는 좀더 알아내려고 애를 썼다. "넌 어디서 왔지? 네 집이 어디니? 내 양을 어디로 데려 가려고 하는 거지?" 어린 왕자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입을 열었다. "아저씨가 준 상자가 밤에는 양의 집이 될 테니까 참 잘됐어요." "물론이지. 그리고 네가 말만 잘 듣는다면 낮에 양을 묶어 둘 끈도 줄 수 있어. 또 말뚝도." 이 말은 어린 왕자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 "양을 묶어 둔다구? 참 이상한 생각이군요?" "양을 묶어두지 않으면 양은 어디론가 가게 될 거구, 길을 잃을지도 몰라." 그러자 어린 왕자는 아까처럼 다시 깔깔대고 웃었다. "아니, 어디로 간다는 거죠?" "어디든지^5,5,5^ 곧장 앞으로^5,5,5^." 이 말을 들은 어린 왕자는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괜찮아요. 내 별은 아주 작거든요." 그리곤 약간 서글픈 표정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앞으로 곧장 가더라도 그렇게 멀리는 못가요." [ 소혹성 B612 호 이렇게 해서 나는 아주 중요한 두 번째 사실을 알아냈다. 그의 별이 겨우 집 한 채보다 클까말까 할 정도라는 것을. 그건 별로 놀랄만한 일은 아니었다. 지구, 목성, 화성, 금성같이 사람들이 이름을 붙인 큰 별 말고도 수백 개의 다른 별들이 있는데, 어떤 것은 하도 작아서 망원경으로도 알아보기가 힘들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천문학자가 그런 별 중의 하나를 발견해 내면 그 별에 이름 대신 번호를 붙인다. 이를테면 소혹성 3251호라고 부르는 것이다. 나는 어린 왕자가 살던 별이 소혹성 B 612호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이 소혹성은 1909 년 터어키의 천문학자에 의해 단 한 번 망원경에 잡혔을 뿐이다. 이 천문학자는 그때 천문학 회의에서 자기의 발견에 대하여 발표를 했었다. 그러나 그의 복장 때문에 아무도 그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어른들은 항상 그 모양이다. 소혹성 B 612호의 명성을 위해서는 다행스럽게도 터어키의 한 독재자가 국민들에게 양복을 입지 않으면 사형에 처하겠다고 공표했다. 그래서 이 천문학자는 1920 년에 아주 멋진 양복을 입고 다시 발표를 하였다. 이번에는 사람들이 죄다 믿었다. 소혹성 B 612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하고 그 번호까지 말한 것은 어른들 때문이다.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하니까. 어른들에게 새 친구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면 그들은 가장 중요한 것에 관해서는 전혀 묻지 않는다. '친구의 목소리는 어떠니? 어떤 놀이를 좋아하니? 나비를 수집하니?' 등의 물음이 아니라 '나이가 몇이니? 형제가 몇이니? 몸무게가 얼마니? 그 아이 아버지는 돈을 잘 버는 사람이니?'라고 묻는다. 그래야만 어른들은 그 친구를 알게 된다고 믿는 것이다. 만약 '창가에 제라늄이 있고 지붕 위에는 비둘기가 나는 아름다운 붉은 벽돌집을 보았다.'고 말한다면 어른들은 이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도저히 상상하지 못한다. 이 집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다만 '십만 프랑짜리 집을 보았다'라고 해야 한다. 그래야만 '참 훌륭한 집이로구나'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어린 왕자가 존재했었다는 증거는 그가 아름다웠고, 그가 웃었고, 양을 가지고 싶어했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이 양을 가지고 싶어하면 그것은 그가 있는 증거가 된다'라고 어른들에게 말한다면 그들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우리를 어린애 취급 할 것이다. 하지만 '그가 떠나온 별이 소혹성 B 612호이다'라고 말한다면 어른들은 금방 이해를 하고 여러 가지 질문을 해서 우리를 괴롭히는 일도 없을 것이다. 어른들은 항상 그 모양이다. 그렇다고 어른들을 나쁘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어린이들은 어른들에 대해 아주 관대해야 한다. 물론 인생을 이해하는 우리들은 번호 같은 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나는 사실 이 이야기를 요정 이야기처럼 시작하고 싶었다. 이렇게 말이다. '옛날에 자기보다 좀 클까말까 한 별에서 살고 있던 어린 왕자가 있었습니다. 그 왕자는 친구가 필요했습니다^5,5,5^.' 인생을 이해하는 이들에겐 이것이 훨씬 더 진실된 느낌을 갖게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내 책을 아무렇게나 읽어버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추억을 이야기하자니 수많은 슬픔들이 북받쳐 오른다. 이미 6 년 전에 내 친구는 자기 양을 데리고 떠나버렸다. 여기에다 그를 그려보려 애쓰는 것은 어린 왕자를 잊지 않고 싶어서이다. 친구를 잊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누구나 친구를 갖는 것은 아니다. 나도 숫자에만 관심을 갖는 어른들처럼 될 수도 있다. 내가 그림물감 상자와 연필을 산 것도 다 이 때문이다. 여섯 살 때 보어뱀과 속이 보이는 보어뱀 그림 외에는 그려본 적이 없는 내가 이 나이에 그림을 다시 손댄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물론 가능한 한 가장 비슷한 초상화를 그려보려고 애를 쓰겠다. 하지만 꼭 그렇게 될지는 확신할 수 없다. 어떤 그림은 괜찮은데 어떤 그림은 비슷하지가 않다. 키가 조금 틀린다. 여기의 어린 왕자는 너무 크다. 저기는 너무 작다. 그의 옷에 대해서도 역시 망설여진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도 저렇게도 그려본다. 나는 가장 중요한 어떤 부분을 잘못 그리게 될지도 모른다. 그 점은 용서해 주시길. 내 친구는 아무런 설명도 해 주지 않았으니까. 그는 아마 나를 자기처럼 생각한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불행하게도 상자를 꿰뚫어 양을 볼 줄 모른다. 나도 조금은 어른이 되어 버린 모양이다. 아니면 늙어 버렸든지. [ 바오밥나무 매일 나는 별과 출발과 여행에 관해서 조금씩 알게 되었다. 이것은 무엇인가 생각하면서 우연히 그렇게 된 것처럼 아주 천천히 이루어졌다. 세 번째 날 내가 바오밥나무의 비극에 대하여 알게 된 것도 이런 식이었다. 이번에도 양의 덕택이었다. 갑자기 어린 왕자가 어떤 중대한 의문이라도 생긴 듯이 내게 이런 질문을 해 왔기 때문이었다. "양이 작은 나무를 먹는다는 게 사실이에요?" "응, 사실이야." "야, 참 좋다." 양들이 작은 나무를 먹는다는 게 왜 그렇게 좋은 것인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린 왕자가 말을 계속했다. "그러니까 바오밥나무도 먹죠?" 나는 바오밥나무는 작은 나무가 아니라 교회만큼이나 큰 나무이고 , 만일 그가 코끼리떼를 몰고 간다고 해도 바오밥나무 한 그루를 다 먹어 치우지 못할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코끼리떼'라는 생각이 어린 왕자를 웃음짓게 만들었다. "그 놈들을 모두 포개 놓아야겠는데." 영리하게 이런 말도 했다. "바오밥나무도 자라기 전에는 조그맣게 돋아나지." "맞았어. 그런데 왜 넌 양들이 작은 바오밥나무를 먹기를 바라는 거지?" 그는 말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아이 참' 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 문제를 혼자서 푸느라고 무진 애를 썼다. 어린 왕자의 별에도 어떤 별에서나 마찬가지로 좋은 풀과 나쁜 풀이 있었다. 따라서 좋은 풀의 씨앗과 나쁜 풀의 씨앗이 있었다. 하지만 씨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씨는 땅 속에서 몰래 자고 있다가 그 중의 하나가 잠에서 깨어날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 싹은 기지개를 켜고 우선 우무 해로움도 없는 예쁘고 조그만 싹을 햇빛을 향하여 조심조심 내민다. 무나 장미나무의 싹이라면 마음대로 자라게 내버려둘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것이 나쁜 풀이라면 그것을 알아내자마자 뽑아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어린 왕자의 별에도 이런 무서운 씨앗이 있었다. 그것은 바오밥나무의 씨였다. 그 별의 땅은 바오밥나무 씨앗 투성이 였다. 그런데 바오밥나무는 조금만 손을 늦게 대면 없애버릴 수가 없게 된다. 그것은 별 전체를 덮어버리고 뿌리로 구멍을 판다. 그런데 별이 너무 작고 바오밥나무의 수가 많다면 별은 터지고 말 것이다. 어린 왕자는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그건 규율의 문제예요. 아침 화장을 끝마치고 난 후에는 별의 화장을 세심하게 해야 하죠. 장미나무와 분간할 수 있게 되면 바오밥나무를 뽑아버리는 데 규칙적이어야 하구요. 아주 어릴 때는 장미나무와 많이 닮았거든. 아주 귀찮은 일이지만 그리 어렵진 않아요' 어린 왕자는 어느 날인가 이 땅에 사는 어린이들의 머릿속에 이 사실을 잘 간직해 주기 위해 예쁜 그림을 하나 그리라고 충고했다. '언젠가 어린이들이 여행을 하게 되면 소용이 될 거^36^예요. 종종 일은 뒤로 미루는 것이 좋을 때가 있어요. 하지만 바오밥나무의 경우에는 늘 말썽이거든요. 나는 게으름뱅이가 살고 있는 별을 알고 있는데 그는 세 그루의 어린 나무를 소홀히 했었어요' 나는 어린 왕자가 가르쳐주는 대로 이 별을 그렸다. 나는 도덕군자처럼 행동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바오밥나무의 위험이 그렇게 알려져 있지 않고, 또 소혹성에서 길을 잃는 사람이 겪어야 할 위험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에 단 한번 체면 차리는 것은 접어두고 말하겠다. "얘들아, 바오밥나무를 조심해라." 내가 이 그림을 이렇게 애써 그린 것은 나처럼 오래 전부터 위험을 알지 못하고 스쳐 지나가는 친구들을 위해서이다. 이건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당신은 아마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왜 이 책에는 바오밥나무만큼 큰 그림이 또 없을까?' 그 대담은 아주 간단하다. '해 보긴 했지만 성공하진 못했다' 사실 내가 바오밥나무를 그릴 때는 다급한 마음에 흥분했던 것이다. [ 해지는 광경 아! 어린 왕자여. 이렇게 해서 나는 조금씩 너의 쓸쓸한 생활을 알게 되었다. 너는 오랫동안 해질녘의 고요한 풍경을 즐기는 외에는 다른 오락이 없었지. 네가 나흘째 되던 아침에 이런 말을 했을 때 나는 또 하나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해지는 광경을 아주 좋아해요. 우리 그걸 보러 가요." "하지만 좀 기다려야 해." "뭘 기다려야 하는데요?" "해가 질 때까지 기다려야지." 그러자 너는 아주 놀란 표정을 짓더니 금방 스스로를 향하여 깔깔 웃었지. 그리곤 이렇게 말을 했어. "나는 아직도 우리 별인줄 알았어요." 그렇다. 미국이 정오이면 프랑스에는 해가 진다. 해지는 광경을 보려면 일분 동안에 프랑스에 갈 수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프랑스는 미국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네 작은 별에서라면 몇 발자국만 의자를 잡아당기면 되었겠지. 네가 해지는 광경을 보려고만 한다면 말이야. "어느 날, 난 마흔 세 번이나 해가 지는 걸 구경했어요." "아저씨^5,5,5^. 아주 쓸쓸할 때면 노을이 보고 싶어져요." "마흔 세 번이나 해 지는 광경을 보던 날, 그렇게도 외로웠니?" 이 물음에 어린 왕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 양과 꽃 닷새 째, 언제나 그렇듯이 양의 덕택으로 어린 왕자의 생활을 알게 되었다. 어린 왕자는 오랫동안 숙고한 결과인 양 밑도 끝도 없이 퉁명스럽게 이렇게 물어왔다. "양 말예요. 그 양이 작은 나무도 먹는다면 꽃도 먹겠네요?" "양은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먹지." "가시가 돋친 꽃도?" "물론, 가시가 돋친 꽃도 먹지." "그럼, 그 가시는 어디에 쓰이는 거죠?" 나는 알지 못했다. 당시 나는 너무 꽉 죄어진 기관의 나사를 뽑기 위해 끙끙대고 있던 참이었다. 비행기의 고장이 심한 것처럼 느껴졌고 마실 물도 거의 바닥났기 때문에 매우 근심스러웠었다. "가시는 어디에 쓰이는 거^36^예요?" 어린 왕자는 한 번 질문을 하면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나는 풀리지 않는 나사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그만 아무렇게나 대답해 버렸다. "가시는 아무 소용도 없어. 꽃이 단지 심술궂기 때문이야." "설마!" 그는 잠시 가만히 있더니 내게 원망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아저씨 말을 믿지 않아요. 꽃들은 약해. 순진하구. 꽃들은 있는 힘을 다해서 자기를 지키고 있는 거^36^예요. 가시가 있으니까 자기를 무서운 것으로 아는 거죠."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 때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나사가 말썽이면 망치로 두들겨 비틀어 버려야지.' 어린 왕자가 이런 내 생각을 다시 흐트려 놓았다. "아저씨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나요? 꽃들이^5,5,5^." "아냐, 아냐. 나는 아무것도 생각도 하지 않았어. 아무렇게나 대답한 거야. 난, 이 아저씨는 지금 아주 중요한 일을 하고 있거든." 그러자 어린 왕자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중요한 일이라구요?" 어린 왕자는 손에 망치를 들고 기름으로 새까매진 손가락으로 그에게는 흉해 보일 물체 위에 몸을 굽히고 있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저씨도 어른들처럼 말하고 있네." 그 말이 나를 몹시 부끄럽게 만들었다. "아저씨는 잘못 알고 있어요. 모든 걸 뒤죽박죽으로 만들고 있단 말예요." 어린 왕자는 정말 화가 나 있었다. 그의 샛노란 머리카락들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나는 얼굴이 시뻘건 신사가 살고 있는 별을 알고 있어요. 그는 한번도 꽃향기를 마셔본 적이 없고 별을 바라본 적도 없었지요. 누굴 사랑해 본 적도 없구요. 단지 덧셈만 하고 있을 뿐이야. 그러면서 그는 하루 종일 아저씨처럼 '나는 성실한 사람이야. 나는 성실한 사람이야'라고 중얼거리고 있죠. 그러면서 그 사람은 몹시 잘난 체한단 말예요. 하지만 그건 사람이 아냐. 버섯이지." "뭐라구?" "버섯이라니까요!" 어린 왕자는 노여움으로 얼굴이 창백해져 있었다. "수백만년 전부터 꽃들은 가시를 만들어 왔어요. 하지만 양들이 꽃을 먹는 것도 수백만년 전부터죠. 그럼 꽃이 아무 소용도 없어보이는 가시를 만들기 위해 왜 그토록 오랫동안 애를 써 왔는지 그 이유를 알아보려 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 아니란 말예요? 양과 꽃들의 전쟁이 중요하지 않단 말인가요? 이건 그 뚱뚱하고 얼굴이 빨간 신사의 덧셈보다 더 중요한 일이 정말 아니란 말예요? 내가 만일 내 별 외에 어디에도 없는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꽃을 알고 있다면, 그리고 어린 양일 자기가 무얼 하는지도 모르면서 어느 날 아침 그 꽃을 단 한 번에 없애버릴 수 있다면, 정말 그것이 중요하지 않단 말예요?" 어린 왕자는 화난 표정으로 말을 계속했다. "만일 무가 수백 수천만 개의 별들 중에 단 하나밖에 없는 꽃을 좋아한다면 그 사람을 별들만 쳐다봐도 충분히 행복한 거^36^예요. 그는 생각하겠죠. '내 꽃이 저기 어딘가에 있겠지^5,5,5^.' 하지만 만일 양이 그 꽃을 먹어버린다면, 그건 그 사람에게는 모든 별들이 갑자기 빛을 잃는 거나 마찬가지란 말예요. 그래도 그게 중요하지 않단 말인가요?"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갑자기 흐느껴 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날이 어두워졌다. 나는 쥐고 있던 연장을 놓아 버렸다. 이제 나는 망치와 나사와 갈증과 죽음 따위를 비웃고 있었다. 어떤 별, 떠돌이 별, 내 별 즉 지구 위에는 달래 주어야 할 어린 왕자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를 품에 안고 조용히 흔들어 주며 나직하게 말했다. "네가 사랑하는 꽃은 위험하지 않아^5,5,5^. 네 양에게 씌울 굴레를 하나 그려 줄게. 꽃에는 갑옷을 그려 주고^5,5,5^ 그리고 또^5,5,5^."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내가 무척 서투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해야 이 어린 왕자를 진정시키고, 어디를 가여 그의 마음을 편안케 해 줄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눈물의 나라란 그렇게도 신비스러운 것이다. [ 어린 왕자의 꽃 나는 어린 왕자의 꽃에 대해서 좀더 알게 되었다. 그의 별에는 예전부터 꽃잎이 한 겹만 있는 아주 소박한 꽃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자리도 많이 차지하지 않으면서 누구를 괴롭히는 일도 없었다. 이 꽃들은 어느날 아침 풀숲에서 나타났다가 저녁이면 지곤 했다. 어린 왕자의 꽃은 어디에서 왔는지 모를 씨앗에서 싹이 텄고, 어린 왕자는 다른 싹들과는 다른 이 싹을 아주 가까이에서 보살펴 주었다. 새로운 종류의 바오밥나무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어린 싹은 성장을 금방 멈추더니 꽃을 피울 채비를 시작했다. 곧 봉오리가 맺혀졌다. 어린 왕자는 그 안에서 어떤 굉장한 것이 나오리라고 생각했다. 꽃은 자신의 녹색 방에 숨어 아름다운 화장을 계속했다. 자신의 빛깔을 정성들여 고르고, 천천히 옷을 입었으며, 꽃잎을 하나하나 가다듬었다. 꽃은 개양귀비처럼 꾸깃꾸깃 나오기가 싫었다. 자신의 아름다움이 그야말로 한창일 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아. 그래! 아주 멋을 부리는 꽃이었다. 그 신비로운 과정은 며칠 동안 계속되었다. 어느 날 아침해가 떠오르는 그 무렵 꽃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그토록 오래 치장을 하고서야 눈을 뜬 꽃은 하품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아! 겨우 깨어났군요. 미안해요 온통 머리가 헝클어져 있군요." 어린 왕자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당신은 정말 아름답군요." "그렇죠? 나는 햇님과 함께 태어났으니까요." 어린 왕자는 이 꽃이 그다지 겸손하지는 않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꽤나 감동을 주는 꽃이었다. "아마 지금이 아침 식사 시간이지요? 제 생각 좀 해 주시겠어요?" 어린 왕자는 당황해서 찬물 한 통을 가져다가 꽃에게 주었다. 그 뒤로 꽃은 까다로운 허영심으로 어린 왕자를 괴롭혔다. 예를 들면 어느 날, 꽃은 자기가 갖고 있는 가시 네 개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발톱을 가진 호랑이들이 오겠다면 오라고 그래요." "내 별에는 호랑이가 없어요 그리고 호랑이들은 풀을 먹지 않아요." 그러자 꽃은 점잖게 대답했다. "나는 풀이 아니에요." "미안해요." "나는 호랑이가 조금도 무섭지 않아요. 하지만 바람은 아주 싫어요. 혹시 바람막이 없으세요?" 어린 왕자는 생각했다. '바람이 무섭다고? 풀치고는 운이 나쁜데. 이 꽃은 정말 까다롭네.' "저녁에는 고깔을 씌워 주세요 당신의 별은 아주 춥군요. 자리를 잘 못 잡은 것 같아요 내가 있다 온 곳은^5,5,5^." 그러다가 꽃은 말을 멈추었다. 꽃은 씨앗으로 날아왔기 때문에 다른 세상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몰랐던 것이었다. 어리석은 거짓말을 하다가 들킨 것이 부끄러워지자 꽃은 잘못을 어린 왕자에게 뒤집어씌우려고 두세 번 헛기침을 했다. "바람막이는요?" "그걸 찾으려 가려던 참인데 당신이 말을 해서^5,5,5^." 그런데도 꽃은 더 세게 기침을 하면서 일단 자신의 잘못을 어린 왕자에 씌우려고 했다. 이 때문에 착한 어린 왕자는 곧 그 꽃을 의심하게 되었다. 그는 대수롭지도 않은 말을 신중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에 몹시 불행해지게 되었다. "꽃은 하는 말을 듣지 말았어야 했어, 꽃이 하는 말은 절대로 듣지 말아야 해 꽃은 바라보고 향기만 맡으면 되는 거야. 내 꽃도 내 별을 향기롭게 하지만 난 그걸 즐길 줄을 몰랐어. 나의 신경을 거슬렀던 발톱 이야기도 측은하게 들어야만 했었는데^5,5,5^." 그는 또 이런 비밀을 털어놓았다. "그때 나는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했어. 나는 꽃이 하는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고 판단했어야 했어. 그 꽃은 나를 향기롭게 해 주었고 환하게 해 주었어. 거기에서 나는 도망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 뻔히 드러나보이는 꾀 뒤에 사랑이 있다는 걸 알아챘어야 했는데, 꽃들은 그렇게 표현하는 건데, 나는 너무 어려서 꽃을 사랑할 줄 몰랐거든^5,5,5^." [ 아픔 나는 어린 왕자가 철새들의 이동을 이용하여 별을 빠져나왔으리라고 믿는다. 떠나는 날 아침, 그는 자기 별을 잘 정리했다. 불 뿜는 화산들도 정성껏 청소했다. 그 별에는 활화산이 두 개 있었다. 그것은 아침 식사를 끓이는 데 아주 편리했다. 그는 사화산도 한 개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말처럼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래서 사화산도 청소했다. 청소만 잘 해주면 화산들은 폭발하지 않고 조용히, 그리고 규칙적으로 불을 내뿜기 때문이었다. 화산의 폭발은 굴뚝의 불과도 같다. 물론 땅 위에서 화산을 청소해 주기에는 우리의 체구가 너무 작다. 때문에 화산은 우리에게 많은 귀찮은 일들을 안겨주는 것이다. 어린 왕자는 좀 쓸쓸한 마음으로 바오밥나무의 나머지 싹들도 죄다 뽑아냈다. 다시는 되돌아 오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항상 하던 일들이 그날 아침에는 매우 정겹고 그리운 일이었음을 느꼈다. 마지막으로 꽃에 물을 주고 고깔을 씌워 보호해 주려고 할 때는 눈물이 막 터져나오려고 했다. 그는 꽃에게 말했다. "잘 있어요." 꽃은 대답하지 않았다. 꽃은 기침을 했다. 그것이 감기 탓이 아니었다. 마침내 꽃이 입을 열었다. "내가 어리석었어요. 용서해 주세요. 행복해야 되요." 어린 왕자는 꽃이 자신을 나무라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그래서 고깔을 손에 쥐고 어쩔 줄 몰라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는 이 편안함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요. 난 당신을 사랑해요. 내 탓이긴 하지만 당신은 아무 것도 몰랐어요. 그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에요. 하지만 당신도 나처럼 어리석었어요. 부디 행복해지세요. 그 고깔은 내버려둬요. 이젠 소용없어요." "하지만 바람이^5,5,5^." "감기가 그리 심한 건 아니에요. 차가운 밤 공기는 몸에 좋아요. 나는 꽃이잖아요." "하지만 짐승들이^5,5,5^." "나비를 보려면 두세 마리의 벌레쯤은 견뎌 내야만 해요. 나비는 아주 아름다우니까요. 그러잖으면 누가 나를 찾아오겠어요. 당신은 멀리 가 있을 거구. 큰 짐승들은 조금도 겁나지 않아요. 내겐 가시가 있으니까요." 그리고 나서 꽃은 순진하게 자신의 가시 네 개를 보여주었다. "그렇게 우물쭈물하지 말아요. 기분이 언짢아지잖아요. 가기로 결심했으면 가세요." 꽃은 자기가 우는 모습을 어린 왕자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자존심이 센 꽃이었다. [ 임금님의 별 어린 왕자는 소혹성 325호, 326호, 329호, 그리고 330호를 차례로 방문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곳에서 일거리도 찾고 공부도 할 마음이었다. 첫번째 별에는 임금님이 살고 있었다. 수달피로 만든 붉은 곤룡포를 입고 있는 임금님은 소박하지만 위엄이 넘치는 옥좌에 앉아 있었다. 어린 왕자를 본 임금님이 소리쳤다. "아! 나의 백성이 하나 왔도다." 어린 왕자는 '저 임금님은 나를 한번도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알아보는 거지?' 하고 생각했다. 임금님에게는 세상이 아주 간단하게 보인다는 사실을 어린 왕자는 알지 못했다. 그에게는 모든 사람이 다 자신의 백성인 것이다. "짐이 좀더 자세히 볼 수 있도록 가까이 오라." 임금님은 오랜만에 임금 노릇을 하게 되어 몹시 자랑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린 왕자는 앉을 자리를 찾아보았지만 별은 온통 호화찬란한 수달피 망토로 덮여 있었다. 그래서 그냥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니 금방 피곤해져서 하품이 나왔다. "어전에서 하품을 하는 것은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다. 짐은 하품하는 것을 금하노라." 어린 왕자는 당황해서 이렇게 말했다. "참을 수가 없었어요. 긴 여행에 잠도 제대로 못잤거든요^5,5,5^." "그렇다면 네가 하품하기를 명하노라. 몇 해 째 짐은 하품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노라. 짐으로서는 하품하는 것이 신기하구나. 자, 또 하품을 해라. 이것은 어명이니라." "그렇게 말씀하시니 겁이 나요. 더는 할 수가 없거든요." 그러자 임금님은 심기가 불편한 듯 말을 더듬었다. "흠, 흠 그럼 짐은^5,5,5^ 네게 명하노라. 하품을 하기도 하고^5,5,5^ 그리고 또^5,5,5^." 임금님은 자신의 권위를 알아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는 절대군주였지만 착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항상 이치에 맞는 명령만을 내렸다. 그는 늘 이런 말을 하곤 했다. '짐이 만일 어떤 장군에게 새로 변하라고 했는데 그가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장군의 잘못이 아니라 짐의 잘못이노라' 어린 왕자가 머뭇거리며 물었다. "앉아도 되나요?" 그러자 임금님은 자신의 수달피 망토 자락을 끌어올리며 위엄있게 말했다. "짐은 네게 앉기를 명하노라." 어린 왕자는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 별은 아주 작은데 임금님은 대체 무엇을 다스린다는 것일까? "임금님, 한 말씀 여쭈는 걸 용서해 주세요." "짐은 네게 질문하기를 명하노라." "임금님, 대체 임금님은 무엇을 다스리시나요?" 그 질문에 임금님은 아주 간단하게 대답했다. "모든 것을." "모든 것을요?" 임금님은 신중한 자세로 자기 별과 다른 별, 그리고 떠돌이별 들을 가리켰다. "저것 모두를요?" "저것 모두를^5,5,5^." 그는 절대군주였을 뿐만 아니라 우주를 다스리는 임금님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별들은 임금님께 복종하나요?" "물론, 모두가 복종한다. 짐은 불복종을 허용하지 않노라." 어린 왕자는 임금님의 권력에 감탄했다. 만일 내가 이런 권력을 가지고 있다면 의자를 끌어당기지 않고도 하루에 마흔 네 번 뿐 아니라 일흔 두 번, 백 번까지도, 아니 이백 번 까지도 해가 지는 광경을 구경할 수 있으련만^5,5,5^, 갑자기 어린 왕자는 자기가 버리고 온 별이 생각나 외로운 기분이 들었다. 그는 용기를 내어 임금님께 말했다. "임금님, 저는 해지는 광경을 보고 싶습니다. ^5,5,5^저를 기쁘게 해 주세요. 해에게 지기를 명령해 주세요." 그러자 임금님이 말했다. "얘야. 만일 짐이 어느 장군에게 나비처럼 이 꽃에서 저 꽃으로 날아다니라든지, 비극 한 편을 쓰라든지, 물새로 변하라고 명령했는데도 그 장군이 자기가 받은 명령을 이행하지 못하면 그것은 그와 짐 중 누구의 잘못인고?" "그것은 분명 임금님의 잘못이지요." "그렇다. 각자에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을 명령해야만 하느니라. 권위는 우선 이치에 맞아야 하는 것이니라. 짐의 명령은 이렇듯 이치에 맞는 것들이기 때문에 복종을 강요할 권리가 있는 것이니라." "그러면 해가 지게 해 달라는 것은요?" 한 번 던진 질문은 절대 잊지 않는 어린 왕자가 되새겨 물었다. "해가 지는 광경을 너는 보게 되리로다. 짐은 그것을 명령하겠노라. 그러나 짐이 통치하는 지식에 따라 그 조건이 성숙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느니라." "언제나 그렇게 되지요?" "흠, 흠^5,5,5^." 임금님은 우선 커다란 달력을 들춰보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흠, 흠^5,5,5^ 그것은 오늘 저녁 일곱 시 사십 분 경이 될 것이다. 너는 짐의 명령이 얼마나 잘 이행되었는지를 보게 될 것이로다." 어린 왕자는 하품이 나왔다. 당장 해지는 광경을 못보게 된 것이 섭섭했고 싫증이 나기 시작했다. "여기서는 제가 더 이상 할 일이 없군요. 저는 떠나겠어요" "떠나지 말아라." 한 사람의 백성을 가진 것이 자랑스러웠던 임금님이 말했다. "떠나지 말아라. 나는 어를 장관으로 삼겠노라." "무슨 장관인데요." "사법 장관이니라." "하지만 여기서는 재판을 받을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걸요." "알 수 없는 일이다. 짐은 아직도 짐의 왕국을 순시해 본 적이 없노라. 짐은 너무나 늙었고, 수레를 타고 다닐 자리도 없으며, 걸어다니면 피곤한 노릇이노라." "아, 그렇지만 저는 벌써 다 보았는걸요." 별 저편을 다시 한 번 둘러보기 위해 몸을 숙이면서 어린 왕자는 말했다. "저기에도 아무도 없어요." "그러면 너 자신을 재판하면 되지 않겠느냐? 그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노라. 자신을 재판하는 일은 남을 재판하는 일보다 훨씬 어려운 법이니까. 네가 너 자신은 잘 판단하게 된다면 곧 네가 진정한 현인이 되었다는 증거일 것이니라." "저는 어디서나 제 자신을 잘 판단할 수 있어요. 제가 여기서 살 수는 없어요." "흠, 흠^5,5,5^ 짐의 별 어딘가에 늙은 쥐 한 마리가 있다. 밤에는 그 소리가 들려 오노라. 너는 그 늙은 쥐를 재판할 수 있으리라. 너는 이따금 그 쥐에게 사형 선고를 내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의 생명은 너의 재판에 달려 있게 되는 것이니라. 그러나 그 때마다 특사를 내려 그 쥐를 살려 주도록 하라. 한 마리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저는 사형 선고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가야겠어요." "가지 말아라." 어린 왕자는 떠날 준비를 끝냈지만 늙은 임금님을 서운하게 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임금님의 명령이 이행되기를 원하신다면 제게 이치에 맞는 명령을 내려 주세요. 가령 일분 안에 떠나라는 명령 말이에요. 조건이 알맞다고 여겨지는데요." 임금님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어린 왕자는 망설여졌지만 이내 한숨을 쉬면 그 별을 떠났다. 그러자 임금님이 다급하게 소리질렀다. "짐은 너를 대사로 임명하노라." 그리곤 다시 위엄에 찬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여행을 하면서 어린 왕자는 어른들이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 허풍선이의 별 두 번째 별에는 허풍선이가 살고 있었다. 그는 어린 왕자를 보자마자 멀리서부터 소리쳤다. "아! 나의 찬미자가 한 사람 찾아오는군!" 허풍선이에게는 다른 사람들은 모두가 자신의 찬미자였다. 어린 왕자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이상한 모자를 쓰고 있네요?" "인사하기 위해서지. 사람들이 네게 갈채를 보낼 때 답례하기 위한 거야. 그런데 불행히도 이곳으로 지나가는 사람이 없구나." "아, 그래요^5,5,5^." 어린 왕자는 그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대충 맞장구쳐 주었다. 그러자 허풍선이가 말했다. "한번 손뼉을 쳐보거라." 어린 왕자는 그가 시키는 대로 손뼉을 쳤다. 그러자 허풍선이는 모자를 들어올리면서 점잖게 인사를 했다. '임금님을 만난 것보다는 재미있네' 어린 왕자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며 다시 손뼉을 쳤다. 허풍선이는 모자를 들어올리며 다시 인사를 했다. 오분쯤 그러고 나니 어린 왕자는 단조로운 그 놀이에 싫증이 났다. 그래서 물었다. "그런데 모자가 떨어지게 하려면 어떻게 하죠?" 하지만 허풍선이는 그 말을 듣지 않았다. 허풍선이들이란 칭찬 이외는 들으려 하지 않는 법이다. "넌 정말 날 찬미하니?" "찬미한다는 게 뭔데요?" "찬미한다는 건 내가 이 별에서 가장 잘 생기고, 가장 옷을 잘 입으며, 제일 부자고, 제일 똑똑한 사람이라는 걸 인정한다는 뜻이야." "하지만 이 별에는 아저씨 혼자뿐이잖아요." "나를 기쁘게 해 다오. 설사 그렇다 해도 나를 찬미해 달라구!" 어린 왕자가 어깨를 으쓱하며 이렇게 말했다. "아저씨를 찬미해요. 하지만 그것이 아저씨에게 무슨 소용이 있어요?" 어린 왕자는 그 별을 떠났다. 어린 왕자는 어른들이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 술꾼의 별 다음 별에는 술꾼이 살고 있었다. 이번 방문은 아주 짧았지만 어린 왕자를 아주 슬픔에 싸이게 했다. 빈 술병 무더기와 가득찬 술병 무더기를 앞에 두고 묵묵히 앉아있는 술꾼에게 어린 왕자가 물었다. "거기서 뭐하세요?" 우울한 표정으로 술꾼이 대답했다. "술을 마시지." "왜 술을 마시는 거죠?" "잊어버리기 위해서야." "뭘 잊어버리는 건데요?" 벌써 측은해진 어린 왕자가 이렇게 캐어 물었다. 그러자 술꾼은 고개를 떨구며 대답했다. "부끄럽다는 걸 잊어버리기 위해서야." 어린 왕자는 그를 돕고 싶은 마음에 재차 물었다. "무엇이 부끄러운데요?" "술을 마신다는 게 부끄러워." 속시원히 다 말해 버린 술꾼은 마침내 입을 다물었다. 난처해진 어린 왕자는 그 별을 떠났다. 여행을 하면서 어린 왕자는 어른들이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 상인의 별 네 번째 별에는 상인이 살고 있었다. 그는 어린 왕자가 왔는데도 고개를 들지 못할 만큼 몹시 바빴다. 그래서 어린 왕자가 먼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담뱃불이 꺼졌네요." "셋에다 둘을 더하면 다섯. 다섯에다 일곱을 더하면 열 둘, 열 두에다 셋은 열 다섯이라. 안녕! 열 다섯에다 일곱은 스물 둘. 스물 둘에다 여섯을 더하면 스물 여덟. 다시 불을 붙일 시간이 없단다. 스물 여섯에다 다섯이면 서른 하나. 휴우, 오억 백육십이만 이천칠백삼십일이 되는 구나." "뭐가 오억이에요?" "응? 너 아직도 거기 있구나. 오억 백^5,5,5^ 잊어버렸다^5,5,5^. 너무나 바빠서! 난 성실한 사람이야. 농담 같은 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단다. 둘에다 다섯이면 일곱이라^5,5,5^." 한번 던진 질문은 절대로 지나치는 적이 없는 어린 왕자가 다시 물었다. "뭐가 오억 일백만이란 거^36^예요?" 상인이 머리를 들었다. "난 54 년 전부터 이 별에 살아왔지만 일을 하면서 세 번 밖에는 방해를 받아 본 적이 없었어. 처음은 22 년 전이었는데 어디선가 풍뎅이 한 마리가 떨어졌지. 그 놈이 어찌나 큰 소리를 질러대는지 더하기를 네 번이나 틀렸어. 두 번째는 11 년 전이었는데 신경통이 발작했지. 나는 운동 부족이야. 하지만 산책할 시간도 없어. 나는 성실한 사람이거든. 세 번째는^5,5,5^ 바로 지금이야! 오억 일백만이라고 했겠다^5,5,5^." "대체 뭐가 몇 억이란 거^36^예요?" 상인은 그제서야 조용히 일할 가망이 없음을 깨달았다. "가끔씩 하늘에서 보이는 그 작은 것들이 몇 억이야." "파리떼들?" "아니. 그 작은 것들은 반짝인단다." "그럼 벌인가요?" "아니라니까. 그걸 보고 게으름뱅이들이 공상에 잠기는 금빛나는 조그만 것들이지. 하지만 난 성실한 사람이라서 공상할 시간이 없어." "아, 별 말이군요." "그래, 별이야." "근데 아저씬 오억 개의 별로 뭘 하죠?" "오억 백육십이만 이천칠백삼십 일이지. 난 성실하고 정확해." "그걸 가지고 뭘 하느냐구요?" "응. 아무것도 안 해. 그냥 갖고 있는 거야." "아저씨가 그 별들을 갖고 있단 말예요?" "그럼." "하지만 난 벌써 임금님은 한 분 뵈었는데, 그분은^5,5,5^." "임금님은 가지고 있는 게 아니야. 다스릴 뿐이지. 그건 아주 큰 차이지." "그럼 아저씨가 별을 가지는 게 무슨 소용이 있죠?" "부자가 되는 거지." "부자가 되는 건 무슨 소용이죠?" "누가 다른 별을 발견하면 그걸 사는 데 필요하지." 어린 왕자는 이 사람도 술꾼과 비슷한 말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질문을 계속했다. "별들은 어떻게 가질 수 있죠?" "별들은 누구의 것이냐?" 성미가 깐깐한 상인이 되물었다. "글세. 임자가 없죠, 뭐." "그래서 내 것이란 말이야. 제일 먼저 그걸 생각했거든." "그러면 그렇게 되는 거^36^예요?" "물론이지. 임자 없는 다이아몬드를 네가 발견했으면 그건 네꺼야. 임자 없는 섬을 발견했으면 그건 네꺼야. 처음으로 네가 어떤 아이디어를 생각해 낸다면 그걸 특허를 내는 거야. 그 아이디어는 네 거니까. 그래서 나는 별을 가지게 된 거야. 나보다 먼저 그것을 갖겠다고 생각한 사람이 없었으니까 말야." "그건 그렇다 치고 그걸 가지고 뭘 하죠?" "난 그것들을 관리한다. 별들을 세고 또 세는 거야. 그건 몹시 어려운 일이지만 난 성실하니까. " 어린 왕자는 상인의 대답에 만족하지 않았다. "내가 만일 비단 스카프가 있으면 그걸 목에 두르고 다닐 수 있어요. 만일 꽃을 가지고 있다면 그 꽃을 따서 가지고 다닐 수 있죠. 그런데 아저씨는 별을 딸 수가 없잖아요?" "그래. 하지만 난 별을 은행에 맡길 수는 있지." "무슨 말이죠?" "그건 작은 종이에다 내 별들의 수를 적은 후, 그걸 서랍에 넣고 열쇠로 잠그는 거야." "그것뿐이에요?" "그 정도면 충분하지." 어린 왕자는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것 참 시적인데. 하지만 성실한 것은 아니야.' 어린 왕자는 중요한 일에 대해서는 어른들과 아주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다. "나는 꽃이 하나 있는데 매일 물을 줘요. 화산도 셋 있는데 일요일마다 청소를 해 주고요. 사화산도 청소를 게을리하지 않죠.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내가 갖고 있다는 것이 화산이나 꽃에게는 좋은 일이죠. 하지만 아저씨는 별들에게 별로 이로운 일이 없겠어요." 상인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어린 왕자는 곧 그 별을 떠났다. '어른들은 정말 이상하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5,5,5^. [ 점등인의 별 다섯 번째 별을 아주 이상했다. 별 중에서 가장 작은 별이었다. 그곳에는 가로등 하나와 점등인 한 사람이 살 정도의 공간밖에는 없었다. 어린 왕자는 가까운 하늘가에 집도 없고 사람도 없는 이 별에 가로등과 점등인이 무슨 필요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저 사람은 어쩌면 머리가 둔한 사람일지도 몰라. 하지만 임금님이나 허풍선이, 상인이나 술꾼보다는 나을 거야. 적어도 그는 어떤 의미가 있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 가로등을 켜면 별이나 꽃을 하나 더 만들게 하는 것과 같고, 가로등을 끄면 별이나 꽃을 잠들게 하는 거지. 참 재미있는 일이야. 재미있으니까 유익할 거구' 별에 닿자마자 어린 왕자는 점등인에게 공손히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왜 방금 가로등을 끄셨나요?" 점등인이 대답했다. "명령이란다. 안녕." 점등인은 다시 가로등에 불을 켰다. "왜 또 가로등에 불을 켜나요?" "명령이니까." 어린 왕자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통 모르겠네요." "모르고 어쩌고 할 게 없단다. 명령은 명령이니까. 안녕." 그는 다시 가로등을 껐다. 그리고나서 그는 붉은 체스 무늬가 새겨진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난 성가신 직업을 가지고 있단다. 예전에는 괜찮았지. 아침에 불을 끄고, 저녁에 불을 켜고. 나머지 시간에는 쉴 수도 있고 또 나머지 밤시간에는 잘 수도 있었단다." "그런데 명령이 바뀌었단 말이군요?" "명령은 바뀌지 않았어. 그게 비극이라니까. 별을 해마다 점점 더 빨리 도는데 명령을 바뀌지 않았거든." "그래서요?" "그래서 지금은 1분에 한 번씩 도니까. 난 1초도 쉴 수 없게 되어버린 거야. 1분마다 한번씩 불을 켜고 꺼야 하니까." "그거 참 이상하네. 아저씨네 별에서는 하루가 1분이라니^5,5,5^." "이상할 거 없어. 우리가 이야기를 나눈 지 벌써 한 달이나 지났거든." "한달이라고요?" "그렇단다. 삼십 분이니 삼십일이지. 안녕." 그는 다시 가로등에 불을 켰다. 어린 왕자는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명령에 이토록 충실한 점등인이 좋아졌다. 어린 왕자는 예전에 자기 별에서 의자를 끌어당기면서 해를 지게 하던 생각이 났다. 그래서 이 친구를 도와주고 싶었다. "아저씨, 난 아저씨가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는 방법을 알아요." "나도 늘 그러고 싶단다." 점등인이 말했다. 그는 충실하면서도 동시에 게으름을 피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린 왕자가 말을 이었다. "아저씨의 별은 너무 작아서 크게 세 발자국만 떼면 한 바퀴를 돌 수 있어요. 언제나 해를 보려면 아주 천천히 걷기만 하면 돼요. 아저씨가 쉬고 싶을 때는 걸으면 된단 말이에요. 그러면 낮은 아저씨가 원하는 만큼 길어지잖아요." "그건 별로 도움이 못되는구나. 내가 사는 동안 즐기는 건 잠자는 거거든." "그거 참 안 됐군요." "안 되고 말고. 안녕." 점등인은 말을 하면서 또 가로등을 껐다. 어린 왕자는 더 멀리 여행을 하면서 생각했다. '점등인은 다른 사람들, 임금님, 허풍선이, 술꾼, 상인들에게 아마 업신여김을 당할 거야. 하지만 내 눈에는 어리석지 않은 단 한 사람이야. 아마 이 사람은 자신이 아닌 남의 일을 보살피고 있기 때문일 거야.' 어린 왕자는 저으기 섭섭한 마음에 한숨을 쉬었다. '내가 친구로 삼을 사람은 오직 점등인 뿐이야. 하지만 그의 별은 너무나 작아서 둘이 있을 만한 공간이 없잖아^5,5,5^.' 어린 왕자가 차마 내게 고백하지 못하는 것은 하루에 1천4백4십 번이나 해지는 광경을 볼 수 있는 이 축복받은 별을 못잊어 한다는 사실이었다. [ 지리학자의 별 여섯 번째 별은 점등인의 별에 비해 열 배나 더 큰 별이었다. 그 별에는 아주 커다란 책을 쓰고 있는 노신사가 살고 있었다. 그는 어린 왕자를 보자 소리쳤다. "여! 탐험가가 한 사람 오는구먼!" 어린 왕자는 의자에 앉아 가쁜 숨을 내쉬었다. 벌써 얼마나 많은 여행을 했던가. 노신사가 물었다. "어디서 오는 길이지?" 어린 왕자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되물었다. "이 두꺼운 책은 뭐죠? 여기서 일을 하시나요?" "나는 지리학자란다." "지리학자가 뭔데요?" "그건 어디에 바다가 있고, 강이 있고, 도시가 있고, 산이 있고, 사막이 있는가를 아는 학자를 말한단다." "그거 참 재미있겠네요. 이제서야 제대로 된 직업을 보네요." 어린 왕자는 지리학자의 별을 둘러보았다. 그는 아직까지 이렇게 위엄에 넘치는 별은 본적이 없었다. "할아버지의 별은 정말 아름답군요. 큰 바다도 있나요?" "그건 알 수가 없구나." 어린 왕자는 조금 실망스러워졌다. "그래요? 그럼 산은요?" "알 수 없지." "도시, 강, 사막은요?" "그것도 알 수 없구나." "할아버지는 지리학자잖아요?" "그렇지. 난 지리학자일뿐 탐험가는 아니란다. 내게는 탐험가가 하나도 없어. 도시나 강, 산, 바다, 대양, 사막들을 세러 다니는 것은 지리학자의 일이 아니란다. 지리학자는 너무나 중요해서 돌아다니면 안 되지. 이 연구실을 떠날 수가 없어. 하지만 여기서 탐험가들을 만나보지. 그들에게 질문하고 그들의 기억을 기록해 두기도 해. 또 그들 중에 누군가의 기억이 흥미롭다면 지리학자는 탐험가의 품행을 조사한단다." "그건 왜죠?" "탐험가가 거짓말을 하게 되면 지리책의 내용이 크게 변화하기 때문이야. 또 술을 너무 마시는 탐험가도 마찬가지지." "그건 또 왠가요?" "술주정뱅이들에게는 사물이 둘로 보이니까. 그렇게 되면 실은 하나밖에 없는 산을 지리학자가 두 개로 적어넣을 수 있거든." "저는 좋지 못한 탐험가가 될만한 사람을 만나보았어요." "그럴 수도 있지. 그래서 탐험가들의 품행이 좋으면 그 사람이 발견한 것을 다시 조사시킨단다." "직접 보러 가시나요?" "아니야. 그건 너무 복잡해. 다만 탐험가들에게 증거물을 내 보이라고 요구하지. 가령 그가 큰 산을 발견했다면 나는 그곳에 있는 커다란 돌멩이를 가져오라고 하지." 지리학자는 갑자기 흥분했다. "그런데 넌 멀리서 왔구나. 넌 탐험가지? 네가 살던 별을 내게 이야기해 다오." 장부를 펼치면서 지리학자는 연필을 깎았다. 그는 탐험가들의 이야기를 우선 연필로 적었다. 그 다음 증거물이 제시되면 잉크로 다시 기록하는 것이다. "제 별은 그리 흥미로운 별이 아니에요. 아주 작거든요. 화산이 세 개 있는데 둘은 활화산이고 하나는 사화산이에요.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죠." "물론 알 수 없는 노릇이지." "꽃도 하나 있어요." "우린 꽃은 기록하지 않는단다." "그건 왜죠? 그게 제일 예쁜데요." "꽃은 한시적이라서 그래." "그게 무슨 뜻인가요?" "지리책이란 모든 책 가운데 가장 귀중한 거란다. 그건 절대로 시대에 뒤떨어지는 일이 없어. 산이 위치를 변경하는 일은 아주 드문 일이고, 바다의 물이 말라버리는 일도 거의 없어. 우리는 영원한 것만을 기록하는 거야." 어린 왕자가 말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사화산은 다시 불을 뿜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한시적이란 말은 무슨 뜻이죠?" "화산이 꺼졌든 불을 뿜든 우리에겐 마찬가지란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산이야. 산은 변하지 않으니까." "그런데 한시적이란 말은 무슨 뜻이냐니까요?" 한번 던진 질문은 절대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는 어린 왕자가 재차 물어왔다. "그건 머지않아 소멸해 버릴 징조가 보인다는 것이야." "내 꽃이 머지않아 소멸해 버릴 징조가 있나요?" "물론이지." '내 꽃은 단명하다. 그리고 외부의 공격을 막는 데는 단지 네 개의 가시가 있을 뿐이야. 그런데 나는 그 꽃을 별에 혼자 버려 두고 왔어' 그것은 어린 왕자가 처음으로 갖는 후회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는 용기를 내어 다시 물었다. "할아버지, 제가 무엇을 보러 가면 좋을까요?" "지구라는 별이지. 그 별은 평판이 괜찮단다." 그래서 어린 왕자는 꽃을 생각하면서 길을 떠났다. [ 지구 그러니까 일곱 번째 별이 지구였다. 지구는 평범한 별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111명(물론 흑인 임금님도 포함해서)의 임금님과 7천명의 지리학자, 90만 명의 상인과 750만 명의 술꾼들, 3억 1천만 명의 허풍선이들, 다시 말하면 약 20억 정도의 어른들이 살고 있었다. 지구가 얼마나 큰가를 증명하기 위해서 나는 전기가 발명되기 전에는 여섯 개 대륙을 통틀어 46만 2천 5백 11명의 점등인이 있어야 했다는 점을 강조해야겠다. 좀 떨어져 보면 그건 장관이었다. 이 무리들의 움직임은 오페라의 발레단처럼 질서정연했다. 우선 뉴질랜드와 오스트레일리아의 점등인 차례가 되어 등불을 켜고 자러 들어가면 이번에는 중국과 시베리아의 점등인들이 춤을 추며 나온다. 이들 역시 무대 뒤로 사라지면 러시아와 인도의 점등인들 차례가 온다. 그 다음엔 아프리카와 유럽, 그 다음엔 남아메리카, 북아메리카. 그들은 한 번도 무대 입장 순서를 틀린 적이 없다. 그것은 굉장한 장면이었다. 단지 북극에 하나밖에 없는 가로등의 점등인과 남극의 하나밖에 없는 가로등을 켜는 그의 동업자만이 한가롭고 태평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들은 일년에 단 두 차례만 불을 켜기 때문이다. [ 뱀 재치를 부리려고 하면 언제나 거짓말이 조금 섞이게 된다. 내가 여러분들께 말한 점등인의 이야기는 아주 정직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 별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자칫 잘못된 생각을 심어 줄 수도 있다. 사람들은 지구 위에서 아주 적은 자리만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만일 땅 위에 사는 20억의 사람들이 어떤 집회에서 서로 좁혀 선다면 길이 20마일, 넓이 20마일 정도의 광장에 빼곡하게 들어설 수 있다. 태평양의 가장 작은 섬 안에 인류를 몰아넣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어른들은 이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들이 바오밥나무와 같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들더러 계산을 해 보라고 해야겠다. 어른들은 숫자를 굉장히 좋아하니까. 그렇게 하면 그들은 만족할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를 푸느라고 사간을 소비하지는 말라. 그건 소용없는 일이니까. 여러분은 내 말만 믿으면 된다. 이렇게 해서 어린 왕자는 지구에 다다랐다. 처음에 그는 사람이 보이지 않아 당황했다. 별을 잘못 찾아온 줄 알고 겁이 나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모래 위에서 달빛 같은 고리 하나가 움직였다. 어린 왕자는 어찌 되었든간에 인사부터 했다. "안녕!" "안녕!" 그것은 뱀이었다. 어린 왕자는 물었다. "내가 떨어진 이 곳이 무슨 별이니?" "지구의 아프리카라는 데야." "아 그래. 그런데 지구 위에는 사람이 안 사니?" "여기는 사막이야. 사막에는 사람이 살지 않아. 지구는 크단다." 뱀의 말을 들은 어린 왕자는 바위 위에 앉아서 하늘을 쳐다보았다. "별들은 누구든지 자기 별을 언제나 찾아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빛난다고 생각해. 내 별을 한번 봐. 바로 우리 위에 있어. 그런데 얼마나 멀까?" "아름다운 별이구나. 그런데 여긴 무엇하러 왔니?" "난 꽃하고 사이가 나빴어." "그래?" 그리고나서 그들은 입을 다물었다. 한참 뒤 어린 왕자가 입을 열었다. "사막에 사람들은 어디 있는 거야. 좀 외로운 걸." "사람들 집에 있어도 외로운 건 마찬가지야." 어린 왕자는 뱀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넌 이상한 짐승이구나. 손가락처럼 가는 게^5,5,5^." "하지만 나는 임금님의 손가락보다도 훨씬 힘이 세." 어린 왕자는 미소를 띠었다. "그렇게 힘이 세보이진 않는걸^5,5,5^ 또 다리도 없구^5,5,5^ 또 여행할 수도 없잖아." "난 너를 배보다도 더 빨리 데려갈 수 있어." 뱀은 금팔찌처럼 어린 왕자의 발목을 감았다. "내가 건드린 사람은 자기가 태어난 땅으로 되돌아가게 되는 거야. 하지만 너는 순진하고 또 별에서 왔으니까^5,5,5^." 어린 왕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너처럼 약한 아이가 화강암투성이의 지구에 있는 걸 보니 불쌍한 생각이 드는구나. 언제고 네 별이 그리워지면 내가 널 도와줄 수 있을 거야. 나는^5,5,5^." "그래. 잘 알았어. 그런데 왜 넌 수수께끼 같은 말만 하는 거지?" "나는 그 수수께끼를 다 풀거든." 그리고 그들은 입을 다물었다. [ 야생화 어린 왕자는 사막을 가로질러 갔으나 야생화 한 송이밖에는 만나지 못했다. 세 개의 꽃잎을 가진, 별로 대수롭지 않은 꽃을^5,5,5^ 어린 왕자가 인사를 했다. "안녕!" 야생화가 화답했다. "안녕!" 어린 왕자가 공손하게 물었다. "사람들은 어디 있니?" 그 야생화는 언젠가 대상(대상)들이 지나가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사람들? 내가 알기론 예닐곱 명이 있어. 몇 해 전에 그들을 보았지. 하지만 어딜 가야 만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 바람 따라 다니니까. 그들은 뿌리가 없어. 그래서 굉장히 불편하단다." 어린 왕자가 말했다. "잘 있어." 야생화가 말했다. "잘 가." [ 메아리 어린 왕자는 높은 산에 올라갔다. 그가 알고 있는 산이라고는 무릎밖에 안 오는 세 개의 화산이었다. 그래서 그는 꺼진 화산을 의자로 쓰고 있었다. '이만큼 높은 산에서라면 한 눈에 별 전체와 사람들을 볼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는 뾰족한 바위로 이루어진 산봉우리 외에는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 어찌 되었든 인사를 했다. "안녕!" "안녕^5,5,5^안녕^5,5,5^안녕^5,5,5^." "당신은 누구세요?" "당신은 누구세요^5,5,5^. 당신은 누구세요? 누구세요^5,5,5^." "우리 친구하자. 난 외로워." 메아리가 대답했다. "난 외로워^5,5,5^ 난 외로워^5,5,5^ 난 외로워^5,5,5^." 어린 왕자는 생각했다. '참 이상한 별이네. 이 별은 온통 메마르고 뾰족하고, 정말 터무니가 없어. 사람들이란 상상력이 없어. 남의 말만 자꾸 되풀이하고^5,5,5^ 내 별에 있는 꽃은 언제나 먼저 말을 걸곤 했는데^5,5,5^.' [ 슬픔 어린 왕자는 오랫동안 모래와 바위와 눈을 밟으며 걷다가 결국 길을 하나 찾아냈다. 길이란 원래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이어져 있기 마련이다. 장미꽃이 가득 피어있는 어느 정원이었다. 어린 왕자는 장미꽃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 꽃들도 답례를 했다. "안녕!" 어린 왕자는 꽃들을 바라보았다. 이 꽃들은 자기 꽃과 아주 닮았다. 그는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너희들은 누구니?" "우리들은 장미꽃이야." "아, 그래^5,5,5^." 어린 왕자는 갑자기 자신이 몹시 불행하게 여겨졌다. 내 꽃은 자신과 같은 종류는 세상에 자기 하나밖에 없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여기 정원 안에 같은 종류가 5천 송이도 넘게 있지 않은가! 어린 왕자는 생각했다. '내 꽃이 이걸 보면 굉장히 화가 날거야. 비웃음을 모면하기 위해 기침을 많이 하든가 죽는 시늉까지도 할 거야. 그러면 나는 저를 돌보아주지 않을 수 없겠지. 그게 아니라면 내게도 창피를 주려고 정말 죽어버릴지도 몰라.' 어린 왕자는 생각을 계속했다. '나는 단 하나밖에 없는 꽃을 가진 부자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단지 흔해 빠진 장미꽃 한 송이인걸. 그것하고 무릎께밖에 안 오는 화산 세 개. 그중의 하나는 아마 영원히 꺼져 있을지도 모르고, 그것으로 내가 위대한 왕자라고는 할 수 없겠어^5,5,5^.' 어린 왕자는 풀밭에 엎드려 울었다. [ 여우 여우가 나타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안녕!" 여우가 먼저 인사를 했다. "안녕!" 어린 왕자가 공손하게 대답하며 돌아보았지만 주위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 목소리가 다시 말했다. "난 여기 있어. 사과나무 밑에^5,5,5^." "넌 누구니? 아주 예쁘구나." "난 여우야." "나하고 놀자. 난 아주 쓸쓸하거든." 어린 왕자가 제안을 했다. "난 너하고 놀 수 없어. 길이 들지 않았거든." "그래. 미안해." 어린 왕자는 이렇게 말하곤 잠시 후에 물었다. "길들인다란 말이 무슨 뜻이니?" "넌 여기 애가 아니구나. 뭘 찾고 있지?" "사람들을 찾고 있어. 그런데 '길들인다'란 말의 뜻이 뭐야?" "사람들은 총을 가지고 사냥을 해. 그건 나로선 아주 난처한 일이지. 사람들은 또 닭을 길러. 그게 사람들의 유일한 재미지. 너도 닭을 찾고 있니?" "아니. 난 친구를 찾고 있어. 그런데 '길들인다'란 말의 뜻이 뭐냐니까?" "아, 그건 너무나 잊혀진 말이구나. 그건 '관계를 맺는다'란 뜻이야." "관계를 맺는다구?" "그래, 나에게 있어서 넌 아직도 수많은 아이들 중의 하나에 불과해. 나는 네가 필요하지도 않고 너 또한 내가 필요치 않아. 나는 네게 있어서 그 많은 여우들과 똑같은 한 마리 여우에 지나지 않거든. 그렇지만 만일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가 필요하게 되는 거야. 나에게는 네가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 되고, 네게는 내가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것이 될 거야." "이제 알아듣겠어. 꽃이 하나 있는데^5,5,5^ 그 꽃이 나를 길들였었나봐." "그럴 수 있지. 지구 위에는 별의별 일이 다 있거든." "아니, 지구에 있는 게 아니야." 여우는 호기심이 이는 것 같았다. "다른 별에 있어?" "응." "그 별에도 사냥꾼이 있니?" "아니." "그거 괜찮은데! 닭은?" "없어." "완전한 건 아무 데도 없다니까." 여우는 한숨을 쉬면서 말을 이었다. "내 생활은 극히 단조로워. 나는 닭을 잡고 사람들은 나를 잡지. 닭은 모두 비슷하고 사람들도 모두 비슷해. 그래서 난 조금 싫증이 나 있어.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내 생활에 볕이 드는 것처럼 밝아질 거야. 난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발자국 소리를 듣게 될 거야. 그들의 발자국 소리는 나는 굴 속으로 들어가게 만들지만 네 발자국 소리는 나를 굴 밖으로 불러낼 거야. 저기 아래를 봐. 밀밭이 보이지? 나는 빵을 먹지 않아. 그래서 밀은 아무 소용이 없어. 밀밭은 내게 아무 느낌도 주지 않는단 말야. 정말 슬픈 일이지. 넌 금발머리를 가졌어. 그래서 네가 날 길들인다면 놀라운 일이 될 거야. 황금색의 밀은 네 생각을 하게 해 줄거구, 난 밀밭을 지나치는 바람소리를 좋아하게 될 거야." 여우는 말을 멈추고 어린 왕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너만 좋다면^5,5,5^ 날 길들여 줘!" "그럴게." 어린 왕자가 대답했다. "하지만 난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단다. 친구들을 찾아야 하고, 또 알아야 할 것들이 참 많아." "누구든지 자기가 길들인 것밖에는 알지 못한단다. 사람들은 이제 무얼 알 시간조차 없어졌어. 그들은 가게에서 다 만들어놓은 것을 사니까. 하지만 친구를 파는 상인은 없으니까 사람들은 친구가 없어. 네가 친구를 사귀고 싶다면 나를 길들여."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아주 참을성이 있어야 해. 처음에는 풀밭에, 그렇게, 내게서 좀 멀리 앉아 있어. 내가 널 몰래 곁눈질해서 볼 테니까. 너는 아무 말도 하지 마. 말이란 오해의 원인이거든. 그리고 매일 조금씩만 다가앉으면 돼^5,5,5^." 이튿날 어린 왕자는 그 자리에 다시 갔다. "같은 시간에 오면 더 좋았을 텐데^5,5,5^ 가령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갈수록 난 더 행복해지지. 네 시가 되면 나는 벌써 가슴이 두근거리고 너를 걱정하게 되는 거지. 하지만 네가 아무 때나 온다면 난 몇 시에 마음을 다잡을지 모르게 되거든^5,5,5^ 이런 의식이 필요하단다." "의식이 뭐지?" "그건 오랫동안 잊혀진 거야. 그건 어느 날이 다른 날과, 어느 시간이 다른 시간과 다르도록 만드는 거야. 나를 쫓는 사냥꾼들에게도 의식은 있어. 그들은 목요일에는 마을의 소녀들과 춤을 추지. 그래서 목요일이 기막히게 행복한 날이야. 그날이 오면 나는 포도밭까지 산책을 나간단다. 만일 사냥꾼들이 아무 때나 춤을 춘다면 모든 날들은 다 비슷해질 거야. 그리고 내게도 여가라는 것이 하나도 없을 거구." 이렇게 해서 어린 왕자는 여우를 길들였다. 그리고 떠날 시간이 가까웠을 때 여우가 말했다. "아! 난 울고 싶어."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건 네 탓이야. 난 네게 잘못하고 싶지 않았는데 네가 길들여 달라고 했잖아^5,5,5^." "그렇긴 해." "그런데도 울려고 하는 거야?" "그럼." "그러면 넌 아무 것도 좋은 게 없잖아." "있어. 밀 빛깔 때문에." 여우는 이렇게 덧붙였다. "장미꽃들을 보러 다시 가봐. 네 꽃은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될 테니까. 그러고 나서 네가 내게 작별 인사를 하러 오면 선물로 비밀을 하나 가르쳐 줄게." 어린 왕자는 여우의 말대로 장미꽃들을 다시 보러 갔다. 그는 꽃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내 장미와는 조금도 닮지 않았어. 너희들은 아직 아무 것도 아니야. 누구도 너희들을 길들이지 않았어. 너희들이 길들인 사람도 하니 없지? 너희들은 내가 길들이기 전의 여우와도 같아. 처음에 여우는 수많은 여우와 똑같은 그냥 여우에 지나지 않았어. 하지만 내가 그를 친구로 삼았으니까 지금은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여우가 된 거야." 이 말을 들은 장미꽃들은 어쩔 줄 몰라했다. 어린 왕자는 말을 계속했다. "너희들은 아름다워. 하지만 아무런 가치가 없어. 너희들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거든. 물론 세상 사람들은 내 꽃이 너희들과 닮았다고 여길 거야. 하지만 나는 그 꽃 하나가 너희들 모두보다 더 소중해. 그 꽃은 내가 물을 주었기 때문이야. 내가 고깔을 씌워 주었고 바람막이를 해 준 내 꽃이기 때문이지. 그 꽃의 벌레도 잡아주었어. 나비를 보게 하려고 두세 마리는 남겨두었지만. 불평하거나 뽐내는 소리, 때로는 침묵의 소리조차 들어준 것은 내 꽃이기 때문이야. 그건 바로 내 장미였기 때문이야." 어린 왕자는 여우에게로 돌아왔다. "잘 있어." 여우가 말했다. "잘 가. 내 비밀은 여기 있어. 아주 간단한 거야. 누군가를 잘 보려면 마음으로 보아야 해.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거든."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5,5,5^." 그 말을 잊지 않으려고 어린 왕자가 속으로 되뇌었다. "네 장미가 그렇게 소중한 건 네 장미를 위해 잃어버린 네 시간 때문이야." "내 장미를 위해 잃어버린 시간 때문에^5,5,5^." 어린 왕자는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다시 한번 되뇌었다. "사람들은 이런 진리를 잊고 있어. 하지만 너는 그걸 잊어서는 안 돼. 언제나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해. 넌 네 장미에 대해서 책임이 있어." "난 내 장미에 책임이 있다^5,5,5^." 잊지 않으려고 어린 왕자는 다시금 그 말을 되뇌었다. [ 철로원 "안녕!" 어린 왕자가 인사했다. "안녕!" 철로원이 화답했다. "여기서 뭘 하는 거죠?" "손님들은 천 명씩 고르고 있어. 그리고 손님들을 실어가는 기차를 왼쪽으로 때로는 오른쪽으로 보낸단다." 환하게 불을 밝힌 기차가 천둥같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전철기의 조종실을 뒤흔들고 있었다. "저 사람들은 굉장히 바쁘네요. 대체 뭘 찾고 있는 거죠?" "기관사 자신도 그건 모른단다." 또 다시 반대쪽에서 불이 환한 기차가 지나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아까 그 사람들이 다시 돌아온 건가요?" "그 사람들이 아니야. 두 기차가 서로 엇갈린 거야." "자기들이 사는 데서 만족하지 못했나 보죠?" "누구나 자기가 사는 데서 만족하는 사람을 없단다." 세 번째의 기차가 다시 우레 같은 소리를 냈다. "이 사람들은 아까 그 손님들을 쫓아가는 거^36^예요?" "그런 게 아냐. 그들은 차 안에서 졸고 있든지. 아니면 하품을 하고 있지. 어린이들만이 유리창에 코를 납작하게 눌러대고 있는 거야." 어린 왕자가 말했다. "어린이들만이 자기가 찾고 있는 걸 알고 있어요, 아이들은 헝겁인형 때문에 시간을 허비하지, 그 때문에 그 인형이 아주 소중하데 된 거죠. 만일 누군가가 그 인형을 빼앗아간다면 그 아이들은 울어버릴 거^36^예요." 철로원이 말했다. "어린이들은 참 운이 좋단다." [ 약장수 "안녕!" 어린 왕자가 인사했다. "안녕!" 약장수가 대답했다. 그는 목마름을 풀어주는 개량된 환약을 파는 약장수였다. 일주일에 한 알씩 그 약을 먹으면 목이 마르지 않았다. "아저씨는 그걸 왜 팔죠?" "그건 시간을 굉장히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지. 전문가들이 계산을 했는데 일주일에 53분이나 절약된다는구나." "그53분으로 뭘 하는데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거지." 어린 왕자는 생각했다. '나 같으면 53분의 시간 동안에 아주 천천히 우물가로 걸어갈 텐데^5,5,5^.' [ 사막의 신비 사막에서 고장을 일으킨 팔일 째 되는 날이다. 나는 저장한 물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마시면서 어린 왕자로부터 약장수의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어린 왕자에게 말했다. "아, 네 이야기는 참 재미있구나. 그런데 난 아직도 비행기를 고치지 못했고, 더 이상 마실 물도 없단다. 나도 너처럼 샘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갈 수만 있다면 좋겠다." "내 친구 여우는^5,5,5^." "얘, 여우가 문제가 아니란다." "왜요?" "갈증이 나서 곧 죽게 될 테니까^5,5,5^." 어린 왕자는 내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고 대답했다. "설사 죽는다 해도 친구를 가지고 있다는 건 좋은 거^36^예요. 나는 여우 친구를 가졌다는 게 아주 기뻐요." 나는 생각했다. '이 아이는 위험을 모르는구나. 배고픔도 갈증도 없고, 햇빛만 조금 있으면 되니까^5,5,5^.' 어린 왕자는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더니 내 생각에 대답을 했다. "나도 목이 말라^5,5,5^. 우리 우물 찾으러 가요." 나는 몹시 피곤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 드넓은 사막에서 무턱대고 물을 찾는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걷기 시작했다. 잠자코 몇 시간을 걷고 나니 땅거미가 내리고 별빛이 깜박이기 시작했다. 나는 목이 마른 데다가 미열이 나서 꿈을 꾸듯이 그 별들을 바라보았다. 어린 왕자가 내게 한 말들이 머릿속에서 새삼스럽게 춤을 추었다. "너도 그렇게 목이 마르니?" 내 말에 어린 왕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이렇게 혼자 뇌까릴 뿐이었다. "물론 마음에도 좋을 수가 있어^5,5,5^." 나는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입을 다물었다. 그것을 물어보지 말아야 한자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지쳤는지 모래 위에 앉았다. 나도 그의 곁에 앉았다. 어린 왕자가 입을 열었다. "별들이란 보이지 않는 꽃 때문에 아름다운 거야^5,5,5^." 나는 '그렇고 말고!' 맞장구를 치곤 달빛 아래 그득한 모래주름들을 말없이 응시했다. 어린 왕자가 또 다시 말했다. "사막은 아름다워^5,5,5^." 그건 사실이었다. 나는 언제나 이 사막을 사랑했다. 모래언덕 위에 앉아 있으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 무엇인가가 침묵 속에서 반짝인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우물이 숨어있기 때문이야." 어린 왕자의 말에 나는 불현듯 모래의 신비스러운 반짝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어린아이였을 때 아주 오래된 집에서 살았었다. 그 집에는 보물이 묻혀 있다는 전설이 내려왔다. 물론 아무도 보물을 발견한 적이 없었다. 아니 그 누구도 그것을 찾으려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때문에 그 집은 매력이 있었다. 그 집은 가슴 깊숙이에 어떤 신비를 담고 있는 것이다. "그래. 집이건 사막이건 그것들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들 때문이야." "아저씨가 내 여우와 같은 생각을 해서 기뻐요^5,5,5^." 그리고 어린 왕자는 잠이 들었다. 나는 그를 팔에 안고 발걸음을 옮겼다. 가슴이 뭉클했다. 깨어지기 쉬운 보물을 안고 가는 것같았다. 지구 위에는 그보다 더 연약한 것이 없을 것이었다. 나는 그의 창백한 이마와 감긴 눈, 바람에 흔들리는 머리다발을 달빛에 비춰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5,5,5^ 어린 왕자의 반쯤 벌어진 입술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이 아이가 그렇듯 나를 감동시키는 건 자기 꽃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잠자고 있을 때조차 램프의 불꽃처럼 그에게서 빛을 내고 있는 장미꽃 때문이야.' 이런 생각이 들자 그가 더욱 연약하게 느껴졌다. '램프를 잘 보호해 주어야 한다. 바람이 한번 불면 불꽃이 꺼질 수 있으니까^5,5,5^.' 이렇게 걷다가 동이 틀 무렵 나는 우물을 발견했다. [ 우물의 노래 '사람들은 급행열차를 타지만 자기가 무얼 찾아가는지 몰라. 그래서 사람들이 불안해 하고 빙빙 도는 거야.' 어린 왕자는 또 이렇게 덧붙였다. "다 소용없는 짓이야." 우리가 찾아낸 우물은 사하라 사막에 있는 보통의 우물과는 달랐다. 사하라 사막의 우물은 모래에 단순히 구멍이 뚫린 것이다. 그런데 이 우물은 마을에 있는 우물과 비슷했다. 이 근처에는 마을이 없는데^5,5,5^ 혹시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어린 왕자에게 말했다. "이상한데^5,5,5^ 모든 게 다 갖추어졌구나. 도르래며 두레박, 줄까지^5,5,5^." 어린 왕자는 웃으며 줄을 만져보고 도르래를 움직여 보았다. 도르래가 삐걱거렸다. 마치 바람이 오랫동안 잠들어 있다가 다시 일 때 낡은 풍차가 삐걱거리듯이. "아저씨, 들어봐요. 우리가 이 우물을 깨우니까 우물이 노래를 부르는 거야." 나는 그에게 힘든 일을 시키고 싶지 않았다. "내가 할게. 네게는 너무 무거워." 나는 천천히 두레박을 우물 둘레의 돌까지 끌어올렸다. 그리곤 떨어지지 않도록 잘 놓았다. 내 귀에는 도르래의 노래가 계속되었고 아직도 출렁거리는 물 속에서 해가 춤추는 것을 보았다. "난 이 물이 마시고 싶었어요. 물 좀 주세요." 나는 그가 찾고 있었던 것이 무엇인가를 그제서야 깨달았다. 그의 입술에 닿도록 두레박을 들어주었다. 어린 왕자는 눈을 감고 물을 마셨다. 갑자기 나는 축제처럼 즐거워졌다. 이 물은 보통 음식과는 전혀 다르다. 이것은 별빛 아래서의 행진, 도르래의 노래, 내 팔의 수고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것은 선물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 보았던 크리스마스의 불빛, 자정 미사의 음악, 상냥한 웃음들이 그 때 내가 받은 선물을 그렇게 빛나게 해 주었었다. "아저씨네 별 사람들은 한 정원에 5천 그루의 장미를 가꾸지만^5,5,5^ 거기서 자신들이 찾고자 하는 것을 발견해 내지는 못해요^5,5,5^." "찾아내지 못하지." "그들이 바라는 건 단 한 송이 장미꽃이나 물 한 모금에서도 찾을 수 있는 것들인데^5,5,5^." "물론이지." 그러자 어린 왕자는 이렇게 덧붙였다. "하지만 눈으론 보이지 않아요. 마음으로 찾아야만 돼." 나는 물을 마셨다. 한숨을 돌렸다. 동틀 무렵의 모래는 꿀 빛깔이다. 나는 이 꿀빛 때문에 행복했다. 무엇 때문에 마음을 괴롭힐 것인가? 어린 왕자가 다시 내 곁에 다가앉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아저씨, 약속을 지켜줘요." "^5,5,5^." "다 알면서^5,5,5^ 내 양의 굴레^5,5,5^ 난 꽃에 대해 책임이 있거든!" 나는 주머니에서 스케치한 그림들을 꺼냈다. 어린 왕자는 그림들은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아저씨의 바오밥나무는 양배추하고 비슷한데^5,5,5^." "그래?" '난 애써 그린 바오밥나무 그림에 대해 얼마나 자부심을 가졌었는데!' "아저씨 여우는^5,5,5^ 그 귀는^5,5,5^ 좀 뿔같아요^5,5,5^ 그리고 너무 길어요!" "너무하는구나, 얘야. 난 속이 모이는 보어뱀하고 속이 안 보이는 보어뱀 그림밖에는 잘 그릴 줄 몰라." "괜찮아요. 아이들은 잘 알 테니까." 나는 그래서 굴레를 연필로 그렸다. 그 그림을 주면서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그런데 어린 왕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너 무슨 딴 생각하고 있구나." 어린 왕자는 내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아저씨, 나 지구에 떨어진 지^5,5,5^ 내일이면 일 년째예요." 그리곤 잠시 후에 또 말했다. "난 여기서 아주 가까운 곳에 떨어졌었어^5,5,5^." 그리곤 얼굴이 붉혔다. 이유도 모른 채 난 다시 야릇한 슬픔에 잠겨야 했다. "그럼 일 주일 전 내가 얼 만났던 아침에 네가 사람이 살고 있는 고장으로부터 수만 리나 떨어진 곳에 혼자 거닐었던 건 우연이 아니구나. 네가 떨어진 곳으로 다시 가던 길이었니?" 어린 왕자는 다시 얼굴을 붉혔다. 나는 망설이며 다시 물었다. "혹시 생일 때문에 그러니^5,5,5^?" 어린 왕자가 또 다시 얼굴을 붉혔다. 내 물음에 대답하지는 않았지만 얼굴이 붉어진다는 건 '그렇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아! 겁이 나는구나." 그러자 어린 왕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저씨는 이제 일해야 해요. 기계 있는 데로 다시 가세요. 난 여기서 기다릴게요. 내일 저녁에 다시 오세요." 나는 걱정스러웠다. 여우 생각이 났다. 길을 들여놓으면 헤어질 때 좀 울게 되는 것이다. [ 이별 우물 곁에는 낡은 돌담이 무너져 있었다. 이튿날 저녁, 일을 마치고 돌아오니 멀리서부터 그 돌담 위에 다리를 늘어뜨리고 앉아 있는 어린 왕자가 보였다. 그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생각이 안 나니? 분명히 여긴 아냐." 누군가가 대답을 한 모양이다. 다시 이렇게 대꾸하는 걸 보면. "그래! 그래! 날짜는 맞는데 장소는 여기가 아니라니까." 나는 돌담을 향해 걸어갔다. 여전히 아무도 보이지 않고 아무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어린 왕자는 계속 말을 했다. "^5,5,5^물론이구 말구. 모래 위에 내 발자국이 어디서부터 시작하는지를 잘 봐. 거기서 날 기다리면 돼. 오늘 밤은 그 곳에 있을 거니까 말야." 나는 돌담에서 2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어린 왕자가 말했다. "넌 좋은 독을 가지고 있니? 날 오래 아프게 하지 않을 자신이 있겠어?" 순간 나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그게 무슨 말인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다시 어린 왕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젠 가 봐^5,5,5^ 난 내려가고 싶어!" 그 때 담장 아래를 내려다 본 나는 펄쩍 뛰었다. 그곳에는 30초 이내에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노란 뱀 한 마리가 어린 왕자를 향해 대가리를 곧추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권총을 꺼내려고 주머니를 더듬으며 달려갔다. 그러나 나의 발자국소리를 들은 뱀은 잦아드는 분수처럼 조용히 모래 속으로 기어가더니 서두르지도 않고 가벼운 쇳소리를 내며 돌 틈을 교묘하게 빠져나갔다. 내가 돌담에 다다랐을 때는 겨우 눈처럼 창백해진 어린 왕자를 품에 안을 시간의 여우밖에는 없었다. "어떻게 된 거니? 이젠 뱀하고 이야기를 다 하고^5,5,5^." 나는 그가 풀어 본 적이 없는 황금색 목도리를 푼 다음 목에 물을 적셔주고 또 물을 먹였다. 어린 왕자는 나는 무거운 시선으로 바라보더니 양팔로 나를 껴안았다. 그의 가슴은 카빈총에 맞아 죽어가는 새처럼 팔딱거렸다. "난 아저씨가 기계를 고치게 되어서 참 좋아요. 아저씨는 이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어요." "그걸 어떻게 알지?" 나는 간신히 비행기를 고쳤다는 걸 알리러 그에게 달려왔던 것이다. "나도 오늘 집으로 돌아가요." 그리곤 더욱 쓸쓸하게 "그건 더 멀고^5,5,5^ 더 어려워^5,5,5^." 나는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마음이 복받쳐 어린애처럼 어린 왕자를 꼭 껴안았다. 그는 깊은 심연 속으로 깊이깊이 빠져들어갈 것만 같았다. 어린 왕자는 진지한 눈빛으로 먼 곳을 바라보았다. "내겐 아저씨가 준 양이 있어요. 그리고 양을 넣어두는 상자와^5,5,5^ 굴레도 있어요." 그리고는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오랫동안 기다렸다. 그의 몸이 조금씩 따스해져왔다. "너무 무서웠지?" 어린 왕자가 상냥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늘 저녁이 훨씬 무서울 거^36^예요." 이젠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에 나는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이 웃음소리를 다신 들을 수 없다는 생각이 나를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이 사막의 샘물과도 같은 웃음소리를^5,5,5^ "네 웃음소리를 더 듣고 싶구나." "오늘 밤이면 일년이에요. 내 별은 작년에 내가 떨어졌던 자리 바로 위에 있게 되는 거죠." "얘, 뱀이니 약속이니 별이니 하는 이야기는 나쁜 꿈이지 않니?" 그는 내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요." "그렇고 말고^5,5,5^." "꽃에게도 마찬가지예요. 아저씨가 어떤 별에 있는 꽃을 좋아하게 되면, 밤에 하늘을 바라보는 건 즐거운 일이죠. 어느 별에나 다 꽃이 피어있으니까." "그렇고 말고^5,5,5^." "물도 마찬가지에요. 아저씨가 내게 마시라고 준 물은 도르래와 줄 때문에 음악 같았어요. 생각나요^5,5,5^. 물이 참 맛있었어요." "그렇고 말고." "아저씨, 밤이 되면 별을 봐요. 내 별은 너무 작아서 어디 있는지 아저씨에게 가르쳐 줄 수가 없어요. 하지만 그게 더 나아요. 내 별을 아저씨에게는 많은 별들 중 하나가 될 테니까요. 그래서 아저씨는 온갖 별들을 바라보는 게 즐거워질 거^36^예요. 별들은 모두 아저씨 친구가 되겠죠. 내가 아저씨에게 선물을 하나 줄게요." 어린 왕자는 또 상냥하게 웃었다. "오! 얘야, 얘야, 난 이 웃음소리가 참 좋아." "그게 바로 내 선물이에요^5,5,5^. 이건 물도 마찬가지에요." "무슨 뜻이니?" "사람마다 별들은 다 달라요. 여행을 하는 사람들에게 별은 안내인이 되죠. 하지만 어떤 이들에겐 별을 조그만 빛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학자에게 있어서 별은 풀기 힘든 문제지만 내가 전에 말한 상인에게는 황금같이 보일 거^36^예요. 하지만 별들은 말이 없어요. 그렇지만 아저씨는 이제 별을 다른 사람과는 달리 보게 될 거^36^예요." "그게 무슨 뜻이지?" "아저씨가 밤에 하늘을 바라보면, 내가 그 별들 중의 하나에서 살고 있고, 내가 그 별들 중의 한 별에서 웃고 있으니까 아저씨에게는 모든 별들이 다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될 거^36^예요. 아저씨는 웃을 줄 아는 별들을 갖게 될 거^36^예요." 어린 왕자는 또 웃었다. "아저씨가 위로를 받고 싶을 땐 나를 안 것이 참 기쁠 거^36^예요. 아저씨는 언제까지나 내 친구가 되죠. 나하구 웃고 싶어질 거구요. 가끔 창문을 열겠죠. 그리고 아저씨는 이렇게 말할 거^36^예요. '그래 별들을 보면 언제나 웃음이 나네' 다른 사람들은 아저씨를 미쳤다고 생각할 거^36^예요. 후훗, 그렇게 되면 난 정말 아저씨에게 못할 일을 한 게 되겠네^5,5,5^." 그러면서 그는 또 환하게 웃었다. "그건 별 대신에 웃을 줄 아는 방울을 아저씨에게 잔뜩 준 거나 마찬가지 일이 될 거^36^예요." 어린 왕자는 또 웃었다. 그러더니 엄숙한 얼굴로 선언을 했다. "오늘 밤엔^5,5,5^ 아저씨^5,5,5^ 오지 마세요^5,5,5^." "난 네 곁을 떠나지 않겠어." "나는 아픈 것처럼 보일 거^36^예요. 죽은 것처럼요. 그거. 그걸 보러 오지 말란 말이에요. 올 필요가 없어요." "난 네 곁을 떠나지 않을 거야."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건^5,5,5^ 뱀 때문이기도 해요. 아저씨를 물지도 모르거든요. 뱀이란 위헌한 거^36^예요. 괜히 물 수도 있어요." "난 네 곁을 떠나지 않을 거라니까." 갑자기 어떤 생각이 그를 안심시켰다. "두 번째 물 때는 독이 없긴 하지^5,5,5^." 그날 밤 난 그가 일어나는 걸 보지 못했다. 조용히 홀로 빠져나간 것이었다. 급히 쫓아간 내가 그를 다시 찾았을 때, 그는 단호한 몸짓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나를 본 어린 왕자는 괴로운 표정이었지만 이렇게 말하며 손을 잡았다. "아, 아저씨! 아저씨가 온 건 잘못이에요. 걱정을 하게 될 테니까요. 난 죽은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건 사실이 아녜요." 나는 잠자코 있었다. "아저씨는 알 거^36^예요. 거긴 너무 멀어. 이 몸뚱이를 가지고 갈 수는 없어요. 너무 무거워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건 내버린 낡은 껍데기 같을 거^36^예요. 낡은 껍질은 슬프지 않아요." 내가 계속 입을 다물고 있자 그는 힘이 좀 빠지는 듯했다. 그러다가 또 힘을 냈다. "아저씨 그건 아름다운 거^36^예요. 나도 별을 쳐다 볼 것이거든요. 모든 별들은 녹이 슨 도르래가 있는 우물이 되겠죠. 모든 별들은 내게 마실 물을 퍼 줄 거^36^예요." 여전히 나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건 아주 재미있겠죠? 아저씨는 5억 개의 방울을 갖게 되구 난 5억 개의 샘물을 갖는 거니까요." 이 말과 함께 그도 입을 다물었다. 눈물이 나왔던 것이다. "저기야. 나 혼자 한 발자국만 내디디게 해 줘요." 겁이 났는지 어린 왕자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곤 이렇게 말했다. "아저씨, 내 꽃 말이에요. 난 그 꽃에 대해 책임이 있어요. 그 꽃은 얼마나 연약한데! 아주 순진하구. 꽃은 아무 힘도 없는 가시 네 개로 자기 몸을 보호하고 있어요." 나는 더 이상 서 있을 수 없어서 주저앉고 말았다. 어린 왕자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자^5,5,5^. 이것 뿐이야^5,5,5^." 그는 잠시 또 망설이더니 다시 일어나 한 걸음을 내디뎠다. 나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의 발목께서 노란 빛이 반짝했다. 어린 왕자는 아무 소리도 지르지 않았다. 잠시 동안 그대로 서 있더니 나무가 넘어지듯 조용히 쓰러졌다. 모래 때문에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 어린 왕자의 추억 물론 이것은 지금으로부터 벌써 6 년 전의 일이다. 나는 한번도 이 이야기를 누구에게 해 본적이 없다. 당시 동료들은 살아 돌아온 나를 보고 아주 기뻐했다. 나는 슬펐지만 그들에게는 단지 '피곤하다'라고 말했을 뿐이다. 지금은 마음이 좀 진정되었다. 그것은^5,5,5^ 완전히 진정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나는 어린 왕자가 자기 별로 되돌아갔다는 것을 잘 안다. 동이 틀 무렵 그의 몸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린 왕자는 그다지 무거운 몸이 아니었다. 이제 나는 밤에 별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그것은 5억 개의 방울과도 같다. 그런데 이상한 생각이 났다. 내가 어린 왕자에게 그려준 양을 가죽끈으로 묶어주는 걸 잊어버렸던 것이다. 어린 왕자는 양에게 굴레를 씌울 수 없을 것이다. '그 별에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았을까? 혹시 양이 그 꽃을 먹어버리지는 않았을까 몰라' 때로는 이런 생각도 했다. '그럴 리 없어. 어린 왕자는 밤마다 꽃에게 유리고깔을 씌우고 양을 잘 지켜 보았을 거야' 그런 생각에 잠기면 나는 행복했다. 그리고 별들은 모두 조용히 웃는다. '한두 번 방심하면 그만이야. 저녁에 유리고깔을 씌우는 걸 잊던지. 아니면 양이 밤중에 소리없이 나가든지 하다면^5,5,5^.' 이런 생각을 하면 나의 방울들은 모두 눈물로 변해 버린다. 그것은 정말 커다란 수수께끼이다. 어린 왕자를 사랑하는 여러분들에게나 나에게나,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양이 어디선가 장미꽃을 먹었나 안 먹었나에 따라 세상이 온통 달라지는 것이다. 하늘을 바라보며 이렇게 생각하라. '양이 꽃을 먹었을까 안 먹었을까?'라고. 그러면 모든 일이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어떤 어른도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