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회귀선 헨리 밀러 지음 파격적이고, 적나라하고, 격렬한 성 묘사 때문에 오랜동안 외설작품 이라는 오명으로 판매금지 를 면치 못했던 이 작품은 쇠약하여 활력을 잃은 현대인에게 마지막 전율 을 안겨주며, 눈부신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헨리 밀러의 자전 적인 작품「북회귀선」은 그가 방랑의 파리시대를 보낼 때 의 체험을 자유분방하게 엮어낸 금세기의 기념비적 명작이다. 헨리 밀러 헨리 밀러는 1891년 뉴욕주의 요크빌에서 독일계 부모로부터 태어났으며 브루클린으로 옮겨가서 자랐다. 뉴욕 시립 대에 입학한지 2개월만에 퇴학하고 규칙이나 제도에 반발하여 방랑생활을 계속하며 독서와 소설 쓰기에 몰두했다. 다양한 직업을 거치면서 화려한 여성편력 끝에 결혼과 이혼을 되풀이했다. 1922년 처녁작인「잘려진 날개」를 완성하고 1929년「이 이교적인 세계」를 썼으며 1934년 「북회귀선」을 출판함으로써 전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주요작품으로는「검은 봄」「남회귀선」「성의세계」 「추억에의 추억」「섹서스」「사닥다리 아래의 미소」 「프렉서스」 등이 있으며 1980년에 사망했다. 책머리에 〈방랑의 파리 시대〉의 기념비적 명작 애나이스 닌 근원적인 현실에의 우리의 취향을 되살려줄 만한 ― 만일 그럴 수 있다면 ― 힘이 있는 소설이 여기 있다. 기조를 이루고 있는 것은 격렬함인데, 격렬함이 확실히 여기에는 듬뿍 담겨져 있다. 더욱이 여기에는 미친 듯이 떠들어대는 쾌활함이나 격정, 흥분 따위도 담겨져 있다. 때로는 거의 착란 상태에 빠진 듯한 경우도 있다. 금속을 핥고 난 다음에 남는 철저한 공허감과도 같은 적나라한 긴장감으로써 극단과 극단 사이를 쉴새없이 오가는 진폭이 있다. 이는 낙관주위나 비관주의마저 초월하고 있다. 작자는 마지막 전율을 우리에게 안겨준 것이다. 고뇌는 이미 비밀스런 안식을 잃어버린 것이다. 자기 성찰이 마비되고 정교한 정신적 식이에 의해 굳어버린 세계에 있어서의 육체의 근원의 이처럼 거친 폭로 는, 혈액의 흐름 속에 정기를 불어넣을 것이다. 이 격렬함이나 외설성은, 모든 생식 행위에 따르기 마련인 신비로움이나 고통의 표출과 같은 불순물을 수반하지 않는다. 생기를 회복시키는 경험의 가치, 곧 예지와 창조의 본원이 다시금 여기서 주장되고 있다. 여기에는 완결되지 않은 사상과 행도의 방대한 영역이 남겨져 있다. 지나치게 비판적인 사람들이 자칫하면 휩싸여 버리기 쉬울 듯한 뒤엉켜진 상황이 남겨져 있다. 이전에 괴테는『빌헬름 마이스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의 중심점을 구한다. 이는 곤란하기도 하고, 옳은 일고 아니다. 나는 우리의 주위에 놓여 있는 풍요하고 복잡한 하나의 인생은, 그것만으로― 특별히 뚜렷한 경향이 없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인생은 결국 현명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다. 이 작품에는 여러 가지 사건이 순수하게 동떨어지고 변화되면서 작품자체의 뼈대처럼 전개되고 있다. 중심점이 없기 때문에, 여기에는 의지의 문제가 없고, 따라서 영웅주의나 투쟁의 문제도 없으며, 흘러가는 대로의 복종이 있을 뿐이다. 이 거친 희화는, 종래의 소설의 정밀한 인문화보다 훨씬 더 발랄하며 생동감이 있을 것이다 ― 현대의 개인은 중심을 갖고 있지 않으며, 전체 의 환상을 조금도 만들어내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에. 이 사람들은 모두 우리를 익사시켜가고 있는 허위의 문화적 진공 속에 통합되어 있다. 여기서 생겨나는 것은, 이를 마주 바라보려면 절대 절명의, 용기를 필요로 하는 혼란스러운 환각이다. 원시인과 같은 정직성을 가지고 제시되어 있는 이 굴욕감이나 패배감은, 좌절이나 절망, 불모가 아니라, 갈망 ― 으로 끝난다. 시는 기교의 껍질을 쥐어뜯음으로써, 예술 이전의 수준 이라 일컬어질 듯한 곳까지 하강함으로써 발견된다. 붕괴의 여러 현상 속에 숨겨져 있는 형식의 튼튼한 골격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강렬한 감정으로 다시금 변형되기 위해 재현된다. 문화의 산부인과 의사에 의해 만들어진 상처 자국은 지워져 버린다. 상처 입은 곳을 망연히 바라봄으로써, 일그러진 상징주의적 기교에의 편승에 의해 인류가 피하려고 노력하여온 냉혹한 심리적 현실을 추적함으로써, 예술적 환상의 가능성을 재건하려는 예술가가 여기에 있다. 여기서는 상징이 벌거숭이 상태로 ― 이 너무나 세련된 문화인에 의해, 뿌리깊은 야만인과 같은 소박함을 가지고, 수치심도 없이― 제시된다. 이 야만스런 리리시즘(lyricism)을 고양시키고 있는 것은, 결코 그릇된 원시주의가 아니다. 이는 회고적 경향이 아니라, 미개의 영역에의 전진적 도약이다. 이 소설과 같은 적나라한 작품을 고찰하는 데 이를테면 로렌스나 브루통, 조이스, 세리느 등의 각기 상이한 타입의 작품을 대할 때와 같은 비평안을 갖고 대하는 일조차도 그릇된 것이다. 오히려 우리의 세계에서의 신성한 것이나 터부로 여겨지고 있는 것들을 모두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파타고니아 거인 (역주 : 체구가 거대한 아메리카 인디언)의 눈을 가지고 이를 내다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지상의 정신적 극지까지 작자를 여행하도록 만든 이 모험은, 스스로를 표현하기 위해 공상의 세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감옥을 편력하지 않으면 안되는 모든 예술가의 역사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에어 포켓이나 황량한 땅, 쓰러지는 기념비, 썩어 문드러진 시체, 술에 잔뜩 취해 야단법석을 떠는 일 따위가 모두 철퇴를 내리칠 때의 날카로운 소리와도 같은 말들로 묘사되어, 우리 시대의 웅장한 벽화를 이루고 있다. 만일 이 작품 속에, 생기를 잃은 사람들이 졸고 있는 듯한 상태에서 깨어나게 만들만큼의 무서운 힘이 제시되어 있다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축복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세계의 비극은, 바로 이 세계가 졸음에서 깨어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라곤 이미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데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이미 격렬한 몽상이 없다. 정신을 상쾌하게 만드는 것이 없다. 깨어나는 일이 없다. 자의식에 의해 생겨난 마취 속에서, 인생이나 예술은 우리들 사이에서 빠져나가, 지금 모습을 감추려 하고 잇다. 우리는 시간과 더불어 표류하며, 환영을 상대로 싸우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수혈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이 작품이 우리에게 안겨주는 것이야말로 피이며 살이다. 마시고, 먹고, 웃고, 욕구하고, 정열적으로 행동하고, 호기심을 느끼는 일들은, 우리의 가장 은밀한 창조의 뿌리를 배양하는 단순한 진실 이다. 상부 구조는 제거되어 있다. 이 작품이 우리에게 안겨주는 것은, 우리 시대의 불모의 토양 속에서 고사해버린 세계를 몰아내는 한바탕의 훈훈한 바람이다. 이 작품은 그 뿌리 밑으로 파고 들어가, 그 뿌리를 소생시키기 위해, 그 밑에서 샘물이 솟아오르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여러분을 위해 노래하려 한다. 조금은 가락이 빗나갈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노래할 작정이다. 여러분이 우는소리를 하고 있을 동안에, 나는 노래한다. 여러분의 더러운 시체 위에서 춤을 추겠다. 헨리 밀러 ♧ 나는 비라 보르게제에 살고 있다. 이곳에는 먼지도 없고, 의자들도 제자리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 여기서는 우리는 모두 고독하며, 생기를 잃고 있다. 어젯밤에 보리스는 몸에 이가 득실거리고 있는 것을 알아챘다. 나는 그의 겨드랑이 밑을 면도해 주어야 했지만, 그래도 가려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렇게 깨끗한 곳에 있는데, 왜 이 따위가 득실거릴까. 하지만 그건 어떻든 상관없다. 만일 이가 없다면, 보리스와 내가 이토록 친해질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보리스는 대충 그의 의견의 개요를 내게 이야기해주었다. 그는 일기 예보의 명인이다. 이 악천후가 아직 더 계속될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천재나 죽음이나 절망이 더 계속될 것이다. 어디에나 털끝만큼도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시간의 암종이 우리를 파먹어 들어가고 있다. 우리의 주인공들은 모두 자살해 버렸거나, 지금 자살해 가고 있다. 그러고 보면 주인공은 시간 이 아니라 바로 무시간 인 셈이다. 우리는 서로 밀치락거리며 죽음의 감옥을 향해 행진해 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도피할 곳은 하나도 없다. 날씨가 바뀌지는 않으리라. 파리로 와서, 이제 두 번째 맞는 겨울이다. 나는 아직도 미루어 헤아리지 못하고 있는 어떤 이유 때문에, 이곳으로 쫓겨온 것이다. 나는 돈이 없다. 재력도 없다. 희망도 없다.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인간이다. 1년 전, 아니 반 년 전에는 자신을 예술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은 그러한 일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 나는 존재할 뿐이다. 이전에 문학이었던 것들이 모두 내게서 떨어져나가 버렸다. 책을 엮을 일 따위는 이제 하나도 없다. 고마운 일이다. 그러면 이것은 무엇인가? 이건 소설이 아니다. 이는 매도되고, 비난받을 일이며, 인격을 훼손시키는 일이다. 이는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소설이 아니다. 그렇다, 이것은 길게 잡아 늘여진 모욕이고, 예술 에 정면으로 뱉아진 침의 덩어리이며, 신이나 인간, 운명, 시간, 사랑, 아름다움 따위를 모두 걷어차며 거절하는 일이다. 나는 여러분을 위해 노래하려고 애쓰고 있다. 약간은 가락이 빗나갈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노래할 작정이다. 여러분이 푸념을 늘어놓고 있는 사이에, 나는 노래한다. 여러분의 추접스러운 시체 위에서 춤을 추겠다. 노래하려면 우선 입을 열어야 한다. 한 쌍의 허파와 약간의 음악 지식이 있어야 한다. 반드시 아코디언이나 기타 따위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노래하고자 하는 욕구 이다. 그러면 그것은 노래가 된다. 나는 노래하고 있다. 나는 너를 향해 노래하고 있는 거야, 타니아, 너를 향해. 되도록 이면 좀더 능숙하게, 좀더 아름다운 가락으로 노래하고 싶지만, 너는 틀림없이 내 노래를 들으려 하질 않겠지. 너는 다른 녀석들이 노래하는 것을 들었어. 하지만 흥이 깨져 버렸지. 녀석들의 노래가 너무 훌륭했거나, 아니면 형편없었던 게지. 오늘은 10월 이십 며칠쯤 된다. 나는 이미 날짜도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작년 11월 14일의 나의 꿈은 어떠했는가 ― 라고 여러분은 말하는가? 시간의 거리는 있지만, 그것은 꿈과 꿈 사이의 거리인데, 꿈은 의식에 남아 있지 않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는, 사방에 시간의 오점을 남기며 소멸해가고 있다. 세계는 스스로를 파먹어 들어가며 멸망시키는 암인 것이다... 커다란 침묵이 모든 것들 위에, 모든 장소에 드리워질 때, 음악은 마침내 개가를 올리리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시간의 자궁 속으로 모든 것들이 물러갈 때, 다시금 혼돈이 나타나리라. 혼돈이야말로, 그 위에 진실 이 씌어질 악보이다. 타니아여, 너는 나의 혼돈인 것이다. 내가 노래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시간의 껍질을 벗기는 것은 내가 아니다. 그것은 죽어가고 있는 세계인 것이다. 나는 너의 자궁 속으로, 글로 표현해야 할 진실을 차 넣으면서, 이렇게 아직 살아 있다. 졸음. 연애의 생리학, 흥분하고 있지 않을 때에도 6피트의 페니스를 갖고 있는 고래. 박쥐 ― 유동 페니스. 페니스에 뼈가 있는 동물. 뼈가 있으니까 뻣뻣한 것이다. 다행히도 하고 그루몽은 말한다. 이 뼈가 인간에게는 상실되어 있다. 다행히도? 그렇다, 다행한 일이다. 페니스를 뻣뻣하게 세우고 걸어다니고 있는 인간을 생각해 보라. 캥거루는 두 갈래로 된 페니스를 갖고 있다 ― 하나는 위크데이 용이고, 하나는 휴일용이다. 졸립다. 어느 여자가 편지를 통해, 내 책의 표제가 결정되었는가고 물었다. 표제라고? 결정되었지 ―『아름다운 동성연애자인 여자들』이라는 것이다. 너희의 기행 투성이의 생활! 이는 보로프스키의 말이다. 내가 보로프스키와 점심 식사를 한 것은, 수요일의 일이다. 젖이 나오지 않게 된 암소 같은 그의 아내가 마련해 주는 것이다. 그녀는 지금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 ― 그녀가 애용하는 말은 filthy (추접스럽다) 라는 말이다. 이 이야기만 들어봐도 여러분은 보로프스키 부부와 같은 얼간이가, 얼마나 골치 아픈 존재인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다려 보자... 보로프스키는 골덴 복지로 지어진 상하 의를 입고, 아코디언을 켠다. 이러한 배합에는 아무도 저항할 수 없다. 그가 그다지 지독하지 않은 예술가라고 생각할 때에는 특히 그렇다. 폴란드 사람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물론 그렇진 않다. 녀석은 유태인인 것이다 ― 보로프스키라는 사나이는. 그의 아버지는 우표 수집가였다. 실제로 몽파르나스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 유태계거나 그보다 훨씬 나쁜 반 유태계이다. 칼라 폴라가 있다. 크론슈타트와 보리스가 있다. 타니아와 실베스터가 있다. 그리고 몬돌프와 리시르가 있다. 필모어를 제외하면, 모두 유태인이다. 헨리 조단 오스왈드로 역시 유태인임을 알게 되었다. 루이스 니콜즈도 유태인이다. 반 놀든과 셸리마저 유태계이다. 프랜시스 블레이크는 유태계거나, 아니면 유태 여자이다. 타이터스도 유태인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유태인들에게 짓눌려 압살 당할 것 같다. 나는 이 책을 칼을 위해 엮고 있는데, 칼의 아버지도 유태인이다. 이 책을 이해하는 데는 이러한 점들이 중요한 것이다. 이들 중 가장 아름다운 유태인이 타니아이며, 그녀를 위해서라면 나도 유태인이 되고 싶을 정도이다. 왜 내가 유태인이 아니라는 건가? 나는 이미 유태인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게다가 유태인처럼 추악하다. 그뿐만 아니라, 나는 유태인 이상으로 유태인을 미워하고 있는데… 해질녘. 남빛의 하늘, 거울 같은 강물, 젖은 것처럼 빛나는 나무들. 선로는 저쪽의 조올레의 수로 속으로 빠져들어 가고 있다. 옆구리에 니스칠을 하나 캐터필러가, 롤러 코스터처럼 도약하고 있다. 이곳은 파리가 아니다. 이곳은 코니 아일랜드가 아니다. 유럽과 중앙 아메리카의 모든 도시들의 몽롱한 혼성물이다. 여기서 내려다보이는 철도 선로의 부지나 거미출처럼 검은 선로들은, 철도 기사에 의해서가 아니라, 지각 변동에 의해 설계된 것 같다. 카메라가 검은 색의 농담을 통해 촬영한 극지의 으스스한 느낌을 주는 균열과도 같다. 음식은 내가 최고로 향락하는 것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비라 보르게제에는, 이전에 음식이 있었던 자취조차 거의 없는 것이다. 때로는 실로 참담한 것이다. 나는 노상 아침 식사용 빵을 주문해 두도록 부탁하지만, 그는 언제나 잊어버린다. 그는 아침 식사를 하러 밖으로 나가는 모양이다. 그리고 돌아올 때에는 언제나 이 사이를 쑤시며, 긴 턱수염에는 계란 찌꺼기가 묻어 있다. 그는 레스토랑에서 내 생각은 하지도 않고 식사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게 그걸 자랑해 보이며, 대식은 해롭다는 따위의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반 놀든을 좋아하고 있지만, 그가 자신에 대해 갖고 있는 의견에는 찬성하고 있지 않다. 이를테면 그가 철학자라든가 사상가라고 말하는 데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단순한 호색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녀석은 결코 작가가 될 수 없으리라. 또 실베스터만 해도, 아무리 그의 이름을 5만 촉광 짜리 붉은 전 등을 환히 켜서 광고를 한다 하더라도, 결코 작가가 될 수는 없으리라. 내 주위의 작가들 중에 현재 조금이라도 존경받을 만한 작가는 칼과 보리스뿐이다. 이 두사람은 미치광이이고 귀머거리이다. 고뇌하는 자들이다. 그런데 모르돌프를 보면, 그 역시 독특한 방식으로 고뇌하고는 있지만, 미치광이는 아니다. 모르돌프는 언어에 도취해 있는 것이다. 그 사나이에게는 동맥이나 혈관도 없다. 심장도 없고 신장도 없다. 녀석은 수많은 서랍이 딸려 있는 손가방이다. 그 서랍 속에는 흰 잉크나 갈색의 잉크, 붉은 잉크, 푸른 잉크, 바밀리언, 사프란색, 보라색, 갈색을 띤 주황색, 살구색, 벽옥색, 오닉스색, 엔지색, 청어색, 코로나색, 녹청색, 골곤조라(역주 : 이탈리아제 고급 치즈)색 등의 여러 가지 색채로 그려진 레텔이 가득 담겨져 있다. 나는 글을 쓰면서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옆방으로 타자기를 옮겼다. 타니아는 이레는를 닮았다. 그녀는 긴 장문의 편지를 받고 싶어한다. 하지만 또 한 명의 다른 타니아가 있다. 어디에나 꽃가루를 흩뿌리는 커다란 종자와도 같은 타니아가 ― 아니면 약간 톨스토이 식으로 말하면, 태아를 끄집어내는 마굿간의 장면. 타니아는 또 열병에 걸려 있다 ― 비뇨기, 카페 드라 리벨테, 프라스 드 보스제, 풀바르 몽파르나스의 화려한 넥타이, 어두운 목욕실, 포르투갈인 지구, 터키 담배, 아다지오 소나타 파세티크, 청각 확대기, 이야깃거리가 되는 강령회, 구워진 황토 같은 유방, 무거운 양말 대님, 아니 지금 몇 시인가, 밤알로 가득 채워진 금제 꿩, 타페터 직물 모양의 손가락, 송진 색으로 변해 가는 습기 어린 황혼의 희미한 빛, 아크로메가리(역주 ; 머리나 가슴, 손발 등이 부풀어오르는 만성병), 암과 섬망증, 따스한 베일, 포커의 계산, 핏빛 융단과 부드러운 넓적다리. 타니아는 누구에게나 들리도록 말한다. 나는 그 사람을 좋아해 ! 그리고 위스키를 마시고 얼굴이 새빨개져 있는 보리스의 곁으로 가서 말한다. 여기 앉아요 ! 오, 보리스… 나 못 견디겠어. 난 터져버릴 것 같아. 밤에 보리스의 긴 턱수염이 베개에 가로놓여 있는 것을 보면, 나는 히스테리칼해진다. 오, 타니아, 너의 그 따스한 그것은, 그 커다란 양말 대님은, 그 부드럽고 포동포동한 넓적다리는 지금 어디에 있나? 길이가 6인치인 나의 음경에는 뼈가 있다. 나는 너의 배를 아프게 죄어대고, 자궁을 뒤집어 놓은 채, 너의 실베스터에게 보내주겠다. 너의 실베스터야 ! 그렇고 말고. 녀석은 불을 일으킬 줄 알고 있지만, 나는 여자의 육체가 불타오르게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다. 나는 네 몸 안에 뜨거운 쇠못을 박아주겠다. 타니아여, 나는 너의 난소가 뜨겁게 타오르도록 만들어 주겠다. 너의 실베스터는 지금도 약간 질투를 하나? 뭔가 알아챈 게 아닐까? 녀석은 나의 거대한 음경의 뒷맛을 느끼고 있는 거야. 내가 입구를 조금 넓히고, 주름이 완전히 펴지게 해놓았으니까. 내가 한 뒤에는, 종마든 황소든 숫염소든 숫오리든 센트 버나드든, 손쉽게 너는 받아들일 수 있어. 두꺼비든 박쥐든 도마뱀이든 얼마든지 집어넣을 수 있어. 원한다면 알베지오로 대변을 드리울 수도 있고, 배꼽 위에 다현금의 현을 걸쳐놓을 수도 있어. 싫다고 할 때까지 마구 휘저으며 찔러줄까, 타니아. 푸른 하늘이 솜 같은 구름을 깨끗이 지워버리고, 가냘픈 나무들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검은 나뭇가지가 몽유병자 같은 몸짓을 하고 있다. 음울하고 요괴 같은 나무들. 줄기는 담뱃재처럼 색깔이 바래져 있다. 너무나 유럽적인 고요함. 가게들은 문이 닫혀져 있다. 여기저기 붉은 등불이 보이는 것은, 밀회를 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거리의 표면은 무뚝뚝하고 사람에게 거의 호감을 주지 않는 표정을 하고 있고, 가로수들이 얼룩 모양의 그림자를 던지고 있을 뿐, 아무런 변화도 없다. 오란제리가를 지나가면서, 나는 또 하나의 파리를 생각해낸다. 몸의 파리, 고갱의 파리, 조지 무어의 파리를, 나는 이 스타일로부터 저 스타일로, 곡예사처럼 비약하며 온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그 무서운 스페인인(역주 ; 피카소)을 생각한다. 슈팽글러와 그의 무서운 선언에 대해 생각하고, 과연 스타일은, 위대한 스타일은 소멸되어야 하는 것일까 하고 생각한다. 나는 이러한 생각들에 잠겨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말이다. 내가 그러한 관념을 가지고 놀도록 스스로의 마음에 허용한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세느 강을 건너간 다음의 ― 빛의 카니발을 통과한 다음의 ― 일이다. 왜냐하면, 이 순간 ― 나는 잊혀진 세계를 비춰주는 이 세느 강 물결의 기적에 압도당한 다정다감한 사나이라는 것밖에는 ―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기슭의 모든 가로수들이 이 흐려진 거울 같은 수면에 무겁게 기울어져 있다. 바람이 일어 나무들이 바스락거리며 속삭일 때, 가로수들은 몇 방울의 눈물을 흘리며, 굽이쳐 흐르는 강물 기슭에서 몸을 떨곤 하리라. 나는 그래서 숨이 막힐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내 기분의 일부분이나마 전달할 수 있는 상대는 한 사람도 없는 것이다. 이레느의 경우 곤란한 점은, 그녀가 그것 대신 손가방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녀는 그 손가방 속에 굵은 문자 를 집어넣기를 원한다. 많은 문자를 엉뚱한 물건들과 함께 집어넣는 것이다. 그런데 로너, 그녀는 그것을 갖고 있다. 그녀가 우리에게 하복부의 음모를 보내주었기 때문에 알고 있다. 로너 ― 옥외에서의 쾌락에 열중하는 제멋대로 자란 당나귀. 어느 언덕 위에서나 그녀는 음탕한 짓을 한다 ― 때로는 전화 박스 속이나 공중변소 안에서도. 그녀는 카롤왕을 위해 침대를 사들이고, 왕의 머리글자가 씌어져 있는 면도용 컵을 사들였다고 한다. 그녀는 토텐험가의 길거리에 드러누워, 드레스를 걷어올리고는 손가락을 사용한다. 양초 ― 로마 양초나 방문의 손잡이를 사용한다. 육지 위에는 그녀를 만족시킬 만큼 큰 게 없는 것이다… 그러한 사나이는 한 명도 없다. 어느 것이나 그녀의 속에 들어와 몸을 사리는 정도가 고작이다. 그녀는 뻗어나는 것을, 스스로 폭발하는 로켓을, 납과 크레오소트로 만든 뜨겁게 끓어오르는 기름을 원한다. 그녀는 만일 여러분이 승낙한다면, 여러분의 그것을 잘라먹고는, 영구히 자기 속에 넣어둘 것이다. 백만 명중에 하나밖에 없는 여음(역주 ; 여자의 음부). 로너 ! 어떠한 리트머스 시험지도 색깔을 분간할 수 없는 실험실용 여음. 또 이 로너라는 여자는 거짓말쟁이이기도 하다. 카롤왕을 위해 침대를 사들였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위스키 병으로 그에게 샤포(chapeau) 를 씌워버린 것이다. 그녀의 혓바닥은 외설적인 말과 거짓 약속으로 가득 차 있다. 가엾은 카롤 ― 녀석은 그녀의 뱃속에서 몸을 사리고 죽어버리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녀가 휴하고 한숨을 쉰다. 그러면 그는 뻗어버린다 ― 죽은 대합처럼. 엉뚱한 것들을 잔뜩 집어넣은 아주 굵은 문자. 끈이 딸려 있지 않은 손가방. 열쇠가 없는 열쇠 구멍 ― 그녀는 독일인의 입과 프랑스인의 귀와 러시아인의 엉덩이를 갖고 있다. 국제적 여음. 깃발이 흔들려지면 목구멍 속까지 새빨개진다. 풀바르의 주르 나루터로 들어가, 드라 비레트교로 나오는 격이다. 너는 너의 췌장을 분뇨차 ― 물론 2개의 수레바퀴가 달린 빨간 분뇨차이다 ― 속에 떨구어 버린다. 울크강과 마르나 강이 합류되는 지점에서 강물이 댐에 의해 막혀져, 다리 아래는 거울과도 같다. 로너는 지금 거기에 누워 있다. 운하는 유리와 유리 조각들로 가득 차 있다. 미모사는 울고, 유리창 위에는 젖은 안개와도 같은 방귀 가 있다. 백만 명중에 하나뿐인 여음. 로너 ! 온몸, 여음과 유리의 엉덩이. 그 엉덩이 속에는 너는 중세기의 역사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모르돌프가 처음으로 보여주는 것은, 한 사나이의 희화이다. 갑상선비대형의 눈. 찬파크(역주 ; 인도에서 신성시되고 있는 나무로서, 향그러운 금빛의 꽃이 핀다) 꽃과 같은 입술. 그린 피스로 만들어진 수프와 같은 목소리. 그리고 언제나 조끼 속에 작은 배를 하나 넣어두고 걸어가는 것이다. 어떻게 그를 바라보든, 언제나 똑같은 파노라마이다 ― 코담배(역주 ; 콧구멍에 발라서 냄새를 맡는 가루 담배)갑, 상아로 만들어진 손잡이, 체스의 말, 부채, 살쩍 장식의 의장. 너무 오랫동안 끓어올랐기 때문에, 그가 지금은 형체를 잃고 있다. 비타민을 잃은 효모. 고무나무가 없는 꽃병. 9세기에는 여자가 두 번 생을 향유했다. 그리고 르네상스 시대에도 그랬다. 그는 노란 배나 흰 배 밑에서의 위대한 번식을 통해 이 세상에 나왔다. 출애굽기보다 훨씬 이전에, 타타르인이 그의 핏속에 정액을 주입시킨 것이다. 그의 딜레마는 난쟁이의 그것이다. 갑상선 비대형의 눈으로, 그는 어울리지 않게 커다란 스크린에 비춰진 지신의 모습을 바라본다. 작은 머리의 모습과, 동시 녹음이 된 그의 목소리가 그를 혼란에 빠뜨린다. 다른 사람에게는 작은 소리로 들리는데, 그에게는 고함치는 소리로 들리는 것이다. 그의 사고가 작용한다. 그의 사고는 배우가 빨리 변장하며 많은 역을 맡는 원형 극장이다. 자유자재의 백면사. 모르돌프는 그러한 역들을 훌륭히 해낸다 ― 어릿광대나 사기꾼, 곡예사, 목사, 돈환, 투기꾼 따위를. 원형극장이 너무 작다. 그는 거기에 다이너마이트를 장치한다. 관객이 마취 당한다. 그는 관객에게 상처를 입힌다. 나는 모르돌프의 본성에 접근하려다 실패하고 있는 듯하다. 이는 신의 본성에 접근하려는 것과도 같다. 왜냐 하면 모르돌프는 신이기 때문이다 ― 그는 신 이외의 것이었던 적이 없다. 내가 무의미하게 말을 늘어놓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이전에 갖고 있던 그에 대한 의견을, 지금은 포기하고 있다. 그밖에도 의견을 갖고 있었는데, 그것을 지금 수정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그를 핀으로 고정시켰는데, 이때 알게 된 것은, 내 손에 잡힌 게 똥파리가 아니라 잠자리였다는 것뿐이다. 그는 그 비천함으로 나를 불쾌하게 만들었는가 하면, 다음에는 그 섬세함으로 나를 열중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는 숨이 막혀지리만큼 말이 많지만, 다음에는 또 요르단 강처럼 조용해진다. 그가 작은 손가락을 펴며 눈에 땀을 흘리며 어슬렁어슬렁 다가와서 내게 인사를 하는 것을 나는 바라본다. 나는 이 사나이가… 아니, 이런 걸 적고 있어도 아무 소용도 없다. 마치 물이 뿜어져 나오고 있는 데서 춤추고 있는 하나의 알 같다. 그는 지팡이를 하나밖에 갖고 있지 않다 ― 싸구려 지팡이이다. 포켓 속에는 세상살이의 괴로움에 대한 처방이 씌어진 종이조각이 들어 있다. 지금은 그 병이 나아, 곧잘 그의 발을 닦아주던 독일인 아가씨는 실연하였다. 이는 구자리티어(역주 ; 인도의 그샤트 지방의 언어)을 어디에자 갖고 다니는 쓸모 없는 인물과도 같다. 누구에게나 불가피한 ― 이는 분명히 불가결 을 의미하고 있다. 보로프스키 같으면, 이러한 것은 모두 불가해한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보로프스키는 일주일 동안 매일처럼 지팡이를 새것으로 바꾸고, 이스터 용으로도 한 개를 준비하고 잇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공통점을 많이 갖고 있으므로, 깨진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 나는 자신의 원고를 펼쳐본다. 어느 페이지에나 퇴고가 되어 있다. 어느 페이지나 모두 문학 이다. 약간 섬뜩한 느낌이 든다. 지겨우리만큼 모르돌프와 유사한 것이다. 다만 나는 유태인이 아니며, 비 유태인에게는 또 다른 고뇌가 있다. 그들은 신경쇠약에 걸리지 않은 채 고뇌한다. 그리고 실베스터가 말하고 잇는 것처럼, 신경쇠약에 걸린 적이 없는 사나이는 고뇌라는 것의 의미를 모르는 것이다. 나는 자신이 어떻게 자신의 고뇌를 향락했는가를, 분명히 생각해낼 수 있다. 그것은 강아지와 함께 자는 것과 흡사하다. 강아지는 이따금 발톱으로 할퀴다 ― 그러면 정말로 섬뜩해지는 것이다. 여느 때는 전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 언제나 상대방을 몰아내거나, 상대방의 목을 자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야수와 함께 우리 안으로 들어가 갈기갈기 찢겨지고 싶은 욕망에 저항할 수 없는 인간이 있는 법이다. 그들은 권총이나 채찍조차 손에 들지 않고 들어간다. 공포감은 그때 대담성으로 변한다 … 유태인에게 있어 세계는 야수들로 가득 차 있는 우리와도 같다. 출입문이 자물쇠로 잠겨져 있고, 그는 채찍이나 권총도 지니지 않은 채 그 안에 있는 것이다. 그는 매우 용감하므로, 구석 쪽의 똥 냄새도 맡지 않는다. 구경꾼들이 갈채를 보내지만, 그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연극이 이 우리 속에서 진행된다고 그는 생각하고 있다. 이 우리 속이 세상 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고립무원인 채로 거기에 서 있으며, 출입문이 잠겨져 있다 ― 그는 사자들이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을 알아챈다. 스피노자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자는 한 마리도 없다. 스피노자? 그렇다, 사자들은 그의 살덩이를 공격할 수도 없는 것이다. 우리에게 살을 다오. 하고 사자는 으르렁거린다. 그는 화석이 된 것처럼 거기에 우뚝 서 있다. 그의 사상이 얼어붙고, 그의 세계관은 어디론가 손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옮아가 버린다. 사자 앞발의 일격에 의해, 그의 우주론은 분쇄된다. 사자들도 실망한다. 사자들은 피를, 뼈를, 지방을 힘줄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깨물어도, 언어를 치클(역주 ; 추잉껌의 원료가 되는 고무) 이며, 치클은 소화할 수 없다. 치클은 설탕이나 소화제, 소독제 따위를 뿌리는 재료에 지나지 않는다. 치클은 치클을 채집하는 사람들에 의해 채집될 때는 만사가 OK이다. 치클을 채집하는 이들은, 물 속으로 가라앉은 대륙의 산을 넘어왔다. 이와 더불어 대수적 언어가 옮아왔다. 아리조나의 사막에서, 그들은 가지처럼 윤기가 흐르는 북방의 몽고인을 만났다. 지구의 회전 의가 경사진 지 얼마 안되어 ― 마침 멕시코만의 해류가 일본 해류와 분리되었을 무렵이다 ― 그들은 대지의 중심에 응회암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이 지구의 수반자체를 그들의 언어로 장식하였다. 그들은 서로의 내장을 먹고, 그들의 뼈와 두 개골위로, 그들의 레이스인 응회 위로 삼림이 뒤덮여졌다. 그들의 언어가 상실되었다. 지금도 그 유적이나 숫자로 뒤덮여진 해골의 화석이 사방에서 발견되고 있다. 이러한 이야기가 대체 너하고 무슨 관계가 있겠나, 모르돌프? 네가 입에 올리는 것은 무정부라는 말이다. 그 말을 해다오, 모르돌프. 나는 그것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너와 내가 악수할 때에, 너와 나의 땀을 따라 흐르는 강물을 아무도 모른다. 네가 말을 준비하려 하고 있을 동안에, 너의 입술이 약간 벌어지며, 입안의 침이 고이고 있다. 나는 아시아를 절반쯤 뛰어넘어 버렸다. 싸구려일망정 만일 네 지팡이를 잡아채어, 네 옆구리에 작은 구멍을 뚫는다면, 나는 대영 박물관을 가득 채울 만큼의 자료를 모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5분 동안 서 있기만 해도, 수십 세기를 삼켜버리는 것이다. 너는 체이다. 나의 아나키는 그 체를 통과하며 언어로 변한다. 그 언어 뒤에는 혼돈이 있다. 그 언어들은 끈이고 목책이지만, 이 그물을 만들만한 목책이 현재도 없고 앞으로도 결코 없으리라. 내가 비워둔 동안에, 방안의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다. 커튼은 리졸액에 잠겨진 치롤제 테이블 크로스처럼 보인다. 방이 섬광을 발하고 있다. 나는 멍하니 침대에 걸터앉아, 태어나기 전의 인간에 대해 생각한다. 갑자기 조종이 울리기 시작한다. 이 세상의 소리 같지 않은 언짢은 느낌의 음조이다. 마치 중앙 아시아의 넓은 초원에 끌려간 것 같다. 어떤 종은 길게 울려 퍼지는가 하면, 또 다른 종은 술에 잔뜩 취하여 흐느껴 우는 것처럼 울려댄다. 겨우 조용해졌다 ― 밤의 침묵을 약간 할퀼 뿐인 마지막 음색 ― 불꽃의 심지가 제거된 것처럼 연약하면서도 높은 소리가 울린다. 나는 자신이 글로 쓰는 것을 한 행도 변경시키지 않는다는 무언의 계약을 자기 자신과 맺었다. 나는 나의 사상이나 행동을 완성시키는 일에는 흥미를 느끼고 있지 않다. 트르게네프의 완성과 도스토예프스키의 완성을 비교해본다 (『영원한 남편』이상으로 완성된 작품이 있는가?). 그러고 보면, 똑같은 하나의 매개를 통하여, 두 종류의 완성이 이루어진 셈이다. 하지만 반 고흐의 편지에는, 이 양자를 초월한 완성이 있다. 그것은 예술을 이겨낸 개성의 개가이다. 지금 내 생각을 맹렬히 집중시키고 있는 딱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세상의 서적들에는 생략되어 있는, 모든 것을 기록하는 일이다. 내가 이해하고 있는 한, 우리의 삶에 방향과 동기를 부여하고 잇는 공기 속의 그러한 원소들을 아무도 이용하고 있지 않다. 살인자만이, 그것들을 인생에 부여하고 있는 것을 상당히 만족스레 인생으로부터 끌어내고 잇는 듯하다. 시대는 폭력을 요구한다. 하지만 우리가 획득해가고 있는 것은 불충분한 폭발뿐이다. 혁명은 계획 단계에서 제거되거나, 아니면 너무 일찍 성공한다. 격정은 순식간에 고갈되어 버린다. 사람들은 다시금 평소와 마찬가지로 사상의 세계로 도피한다. 24시간 이상 계속되는 일이 제언 된 적은 한 번도 없다. 우리는 한 세대 동안에 백만 세대의 생애를 살펴보고 잇는 것이다. 곤충학이나 깊은 바다 생물의 연구, 세포의 활동에 대한 연구 등에서는, 우리는 그 이상의 일을 …. 전화가, 영구히 완성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은 이 나의 사색을 중단 시킨다. 누군가가 아파트의 방을 얻으로 온 것이다... 나의 비라 보르게제에서의 생활은, 이제 끝장이 난 모양이다. 좋다, 나는 이 원고를 손에 들고 어디로든 옮아가자. 어디에 가든 사건이 생긴다. 사건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내가 가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반드시 드라마가 벌어지는 모양이다. 사람들은 이와도 같다 ― 그들은 내 피부 속으로 파고 들어가서, 몸을 숨겨버린다. 피가 날 때까지 긁어대지만, 가려움이 사라질 듯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어디엘 가든, 사람들은 생활의 양식을 만들고 있다. 누구나 모두 각자의 비극을 갖고 있다. 지금, 그것은 핏속에 있다 ― 불행, 권태, 비애, 자살. 주위의 공기가 재앙과 좌절과 도로에 진하게 물들어 있다. 긁고, 긁어대고 ― 피부가 없어질 때까지 쥐어뜯는다. 하지만 그것이 내게 안겨주는 효과는 놀랍다. 낙담하거나 우울해지는 대신에, 나는 그것을 즐긴다. 나는 더, 더 많은 재앙을, 더 큰 재난을, 더욱 장렬한 실패를 달라고 큰 소리로 요구하고 있다. 나는 온 세계가 미쳐버렸으면 하고 원한다. 모든 사람들이 몸을 쥐어뜯으며 죽어 버렸으면 하고 원한다. 나는 이 단편적인 노트조차 적고 있을 틈이 없을 만큼, 어수선하고 격렬하게 살아가기를 강요당하고 있다. 전화를 한 후에 한 명의 신사와 그의 아내가 찾아왔다. 나는 거래가 끝날 때까지 2층에 올라가 누워 있었다. 누워서 이번에는 어디로 옮아갈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남색한 녀석의 침대로 되돌아가, 밤새도록 빵조각을 발로 걷어차며 몸을 뒤척이는 일 따위는 딱 질색이다. 그 장난치기 좋아하는 사생아 녀석! 남색한보다 더 나쁜 게 있다면, 그것은 수전노이다. 겁이 많고, 언제나 부들부들 떨고 있는 지저분한 남색한. 언젠가는 ―아마도 3월 18일에는, 아니 5월 25일에는 확실히 ― 무일푼이 되리라고 노상 겁먹은 듯한 표정으로 살아가고 있는 녀석이다. 밀크나 설탕도 사용하지 않는 커피. 버터가 딸리지 않는 빵, 육수가 없는 고기, 아니면 아예 고기가 없다. 없는 것뿐이다. 불결하고 인색한 수전노 녀석! 한 번은 화장대 서랍을 열어보고, 양말 속에 돈을 감춰둔 것을 발견한 적이 있다. 2천 프랑이 넘는 현금과, 아직 현금으로 바꾸지 않는 수표. 그것조차도, 만일 내 베레모 속에 커피 찌꺼기를 집어넣거나, 바닥에 쓰레기를 마구 버리지 않는다면 ― 콜드 크림 병이나 기름투성이의 타월, 언제나 막혀져 있는 싱크대 따위는 말할 것도 없다 ― 나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으리라. 정말 이 지겨운 사생아 녀석은 ― 향수라도 뿌리고 있을 때 말고는 ― 언짢은 냄새가 난다. 녀석의 귀도 더럽고, 눈도 더럽다. 엉덩이도 더럽다. 녀석은 관절염을 앓고 있고, 천식을 앓았고, 이가 득실거리며, 좀스럽고, 이상 성격 자이다. 녀석이 내게 아침 식사라도 제대로 대접해 준다면, 나 역시 어떤 일이든 잊어줄 수 있었을 게다. 하지만 더러운 양말 속에 2천 프랑이나 감춰 두고, 깨끗한 셔츠도 입지 않고, 약간의 버터조차도 방에 바르지 않으려 하다니, 그러한 녀석은 단순한 남색한도 아니고, 단순한 수전노도 아니다 ― 바로 저능아이다! 하지마 이러한 남색한의 짓은, 지금은 어떻든 상관없다. 나는 아래층에서 무슨 일이 시작되고 있는가 하고 귀를 기울인다. 아파트를 보러 온 이는 레인 씨 부부이다. 부부는 아파트의 방을 얻을 것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고맙게도, 단지 그러한 이야기만을 하고 있을 뿐이다. 레인 부인은 칠칠치 못하게 소리내어 웃고 있다 ― 귀찮은 일이 벌어지는 건 이제부터이다. 지금 레인 씨가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의 목소리는 목이 쉰 듯하고 쥐어뜯는 듯한 ― 징징 울리는 듯한 ― 그리고 살과 뼈와 연골 사이에 쐐기를 박는 듯한 둔탁한 소리이다. 보리스가 나를 소개하기 위해 아래층으로 부른다. 그는 전당포 지배인처럼 두 손을 비비고 있다. 그들은 레인 씨가 지은 비절 육종에 걸려 있는 말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레인 씨가 화가인 줄 알고 있었는데요? 맞아요. 하고 보리스가 한쪽 눈을 깜박거리면서 말한다. 그러나 겨울동안에는 소설을 써요. 좋은 것을... 굉장히 좋은 소설을 말예요. 나는 레인 씨가 무슨 말을 하게 하려고 기를 쓴다. 무슨 말을 하게 하자, 무엇이든 좋다. 경우에 따라서는 비절 육종에 걸림 말의 이야기라도 상관없다. 그러나 레인 씨는 통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 그가 문필에 친숙해지는 권태로운 몇 개월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하면, 이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단 하나의 말을 종이에 적을 때까지, 이 사람은 수개월이나 걸린다고 한다(겨울은 3개월에 지나지 않는데도 말이다!). 겨울철의 그 수개월 동안에, 이 사나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런 사나이를 작가라고 생각하다니, 하느님 맙소사. 그런데 레인 부인이 말하는 바에 의하면, 그가 글을 쓰려고 자리에 앉자마자, 영감이 샘솟듯이 솟아오른다고 한다. 이야기가 표류한다. 레인 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므로, 그의 정신의 움직임에 따라가기는 어렵다. 그는 내키는 대로 생각한다 ― 레인 부인은 그것을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다. 레인 부인은 레인 씨의 일을 가장 호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그는 내키는 대로 생각한다 ― 보르프스키의 말은 아니지만, 이건 정말 멋있다. 아주 멋있다. 하지만 실은 그렇게 생각하는 본인이 비절 육종에 걸린 말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므로, 매우 애처롭다. 보리스가 술을 사오라며 내게 돈을 건네준다. 술을 사러 가면서, 나는 이미 취해 있다. 집에 돌아가면 내가 무슨 일을 하기 시작할 건지를 알고 있다. 거리를 거닐면서, 이미 그게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레인 부인의 칠칠치 못한 웃음소리처럼 위대한 연설이, 나의 내부에서 울려나오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아까부터 그녀는 이미 약간 흥분하고 있었던 것 같다. 취하면 그녀는 아주 능숙한 연설 청취자 구실을 하는 것이다. 술집을 나오면서, 나는 방뇨하는 소리를 듣는다. 모든 게 칠칠치 못하고, 내뿜는 것 같다. 레인 부인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면 좋으련만... 보리스는 또 손을 비비고 있다. 레인 씨는 여전히 말을 더듬거리면서 침을 튀기고 있다. 나는 양다리 사이에 술병을 끼고 병따개를 움직이고 있다. 레인 부인은 기다리기가 지겨운 듯이 입을 약간 벌리고 있다. 포도주가 나의 양다리 사이에서 뿜어져 나오고, 햇빛이 창문으로 뿜어져 나오듯이 비쳐들고, 내 혈관 속에서는 수많은 광기 어린 거품이 일시에 제멋대로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다. 머리에 떠오르는 것을 모조리 그들에게 지껄여댄다. 나의 내부에 가득 채워져 있다가, 레인 부인의 칠칠치 못한 웃음에 의해 느슨하게 풀어진 것을 모두 지껄여댄다. 다리 가랑이 사이의 술병과 창문으로 비쳐드는 햇빛을 보고 있으면, 처음으로 파리에 도착했을 무렵의 그 비참한 날들의 멋있는 기분을 다시금 경험하게 된다. 연회장에 나타난 유령처럼 거리를 방황하고, 가난에 시달리며 망연자실해 있던 그 무렵의 일을. 모든 일이 한꺼번에 되살아난다 ― 부서진 변소, 내 신발을 닦아준 프린스, 그 영화관 주인의 외투 위에서 내가 잠을 잤던 스프랜디드 영화관, 창문의 무늬, 숨막힐 듯한 감각, 살이 찐 바퀴벌레, 이따금 술을 마시고 소란을 피운 일, 햇빛 속에서 죽어가고 있는 로즈 캐너크와 너플.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거리를 뛰어다니다, 이따금 알지도 못하는 인간을 방문하였다 ― 그 중의 한 사람이 마담 데롬이다. 대체 어떻게 내가 마담 데롬의 집에 가게 되었는지, 지금은 이미 짐작도 가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도착했다. 아무튼 집안에 들어가, 흰 에이프런을 걸친 하녀의 앞을 지나서, 골덴 바지에 단추는 하나도 달리지 않은 헌칭 자켓 차림으로, 그 저택의 안쪽으로 들어간 것이다. 지금도 나는 마담 데롬이 남자 같은 옷차림을 하고 앉아 있던 그 방의 금빛으로 번쩍번쩍 빛나는 정경을 한 번 더 맛볼 수 있다. 어항 속의 금붕어를, 고대의 세계 지도를, 아름다운 장정의 서적들을 ― 그녀의 묵직한 손이 내 어깨에 걸쳐지고, 그러한 그녀의 짓눌리는 듯한 동성해적 태도에 나는 약간 겁을 먹었지만 ― 그 손의 감촉을 한 번 더 맛볼 수 있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 더욱 즐거웠던 것은, 번화가인 생라자르 정류장으로 흘러드는 그 진한 스튜(stew)이다. 입구에 서 있는 창녀들과, 어느 테이블 위에나 있는 탄산수, 그리고 하수도에 잔뜩 흘러내리고 있는 농밀한 정액. 다섯 시부터 일곱시 사이에 사람들의 잡담 속에서 시달리면서 하나의 다리 , 하나의 아름다운 가슴 을 뒤쫓으며 그 흐름과 함께 움직이고, 그리고 온갖 상념이 머리 속에서 소용돌이치게 하면서 그 흐름과 함께 움직여 가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다. 그러한 날들의 일종의 기묘한 만족감. 사람과 만날 약속도 없고, 만찬에 초대받은 일도 없으며, 예정도 없고 돈도 없다. 단 한 명의 친구조차 없었던 황금 시대. 아침마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까지 어슬렁어슬렁 걸어가, 아침마다 사무원으로부터 정해진 대답을 듣는다. 벼룩처럼 이따금 여기저기 뛰어다니거나, 때로는 살금살금, 때로는 뻔뻔스럽게 담배꽁초를 주워 모은다. 벤치에 걸터앉아 울화가 치미는 걸 억누르며, 치를리 공원 안을 헤매다간 벙어리 같은 조상을 바라보며 발기시킨다. 그리고 밤에는 세느 강기슭을 헤매고, 그 아름다움에 열중하여 방황하고, 또 방황한다. 강물에 나뭇가지를 드리우는 나무들, 물위의 흔들리는 그림자, 피와도 같은 다리의 등불 아래를 흘러가는 급류, 입구에서 졸고, 신문지 위에서 졸고, 빗속에서 조는 여자들. 사방에 곰팡내 나는 사원의 현관과, 거지와, 이와, 학질을 앓고 있는 추악한 노파가 있다. 골목에 술통처럼 쌓아올려진 손수레, 시장의 과일 냄새, 야채와 푸른 아크 등에 둘러싸인 낡은 교회당, 쓰레기가 가득 차 미끈거리는 하수도, 밤새도록 야단법석을 떤 끝에 악취와 기생충 속을 비틀거리면서 걸어가는 새틴으로 만들어진 무도화를 신은 여자들. 생슐피스 광장, 한밤중이 되면 쥐죽은듯이 고요한 이곳에, 부서진 양산을 손에 들고 이상야릇한 베일을 걸친 여자들이 밤마다 반드시 찾아왔다. 그리고 그 부서진 양산의 뼈대가 꺾여 드리워진 것을 받쳐둔 채 벤치에서 잠들곤 하였다. 옷은 색이 바래져 푸르스름하고, 손의 뼈가 앙상하며, 몸에서는 쉰 듯한 악취가 발산되고 있었다. 아침이 되면, 나 자신이 거기에 걸터앉아, 여기저기서 빵조각을 쪼아먹고 있는 거지같은 비둘기들을 저주하면서, 햇빛을 받으며 조용히 졸곤 하였다. 생슐피스! 높다란 종루, 문에 붙여진 현란한 포스터, 제단에서 불타고 있는 양초, 제단에서 들려오는 벌이 윙윙대는 소리와도 같은 기도 소리, 솟아오르는 우물물의 날아 흩어지는 물방울, 비둘기 울음소리, 마술을 부리듯이 사라져버리는 빵조각, 그리고 나의 허기진 뱃속에서는 둔한 소리만이 울려오고 있었다. 아나톨 프랑스가 그토록 사랑한 이 광장. 여기서 나는 매일처럼 제르메느를 생각하고, 그녀가 살고 있는 바스티유 부근의 그 지저분하고 더러운 거리를 생각하면서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러면 제단 뒤에서 벌이 윙윙거리는 듯한 목소리가 들리고, 버스가 지나가고, 햇빛이 아스팔트에 직사하고, 그 아스팔트가 내 몸에 작용하여, 제르메느가 아스팔트 속으로, 그리고 파리는 이 커다란 종루 속으로 완전히 흡수되어 버리는 것이었다. 겨우 1년 전에, 보로프스키의 집에서 돌아오는 길에, 모나와 내가 밤마다 함께 걷던 곳은 보나파르트가 였다. 그 무렵에는 생슐피스나 파리 등이, 나에게는 별로 의미가 없었다. 이야기하는 데도 싫증을 느끼고 있었고, 사람의 얼굴을 대하기가 지긋지긋했다. 사원이나 광장, 동물원 등에도 식상하고 있었다. 붉은 침실에서 책을 집어들어 보아도, 의자에 앉아 있는 느낌이 언짢았다. 아침부터 밤까지 자신의 엉덩이 위에 앉아 있는 데 싫증이 나고, 붉은 벽지에 싫증이 나고, 재미도 없는 것을 재갈재갈 지껄여대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에도 싫증이 났다. 붉은 침실과, 언제나 열어젖혀져 있는 트렁크. 그녀의 옷가지들이 사방에 난잡하게 흐트러져 있었다. 나의 실내화와 지팡이, 만져본 적이 없는 노트, 차갑게 죽어 있는 원고 따위가 놓여 있는 붉은 침실. 파리! 라리란 카페 섹렉트와 돔과 벼룩의 거리와 아메리킨 익스프레스를 의미했다. 파리! 그것은 보로프스키의 선사시대의 물고기, 그리고 선사시대적인 시시한 익살을 의미했다. 그 28년대의 파리에서의 단 하룻밤, 미국으로 출발하기 전날 밤만이 내 기억속에 또렷이 남아 있다. 색다른 밤이어서, 내가 그 술집에 있는 여자들을 닥치는 대로 상대하여 춤을 추었기 때문에, 보로프스키는 기분이 언짢아져, 내게 약간 불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내일 아침에 우리는 출발하는 것이다! 붙잡히는 어느 암탉에게나 내가 일일이 들려준 것은, 이 말이었다 ― 내일 아침에 우리는 떠납니다. 마노 색깔의 눈을 갖고 있는 금발의 여자에게 내가 들려준 것도 이 말이었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말하고 있는 동안에, 그녀는 내 손을 잡아 다리 가랑이 사이에 끼우고 죄어댔다. 변소에서 나는 지독하게 발기하여, 변기앞에 섰다. 날개가 달린 납 막대기처럼, 그것은 가볍기도 하고, 동시에 무거운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모양으로 내가 거기에 서 있자. 암탉 두 마리가 달려왔다 ― 미국 여자들이다. 나는 그것을 쥔채 정중하게 인사하였다. 여자들은 내게 윙크를 하고 지나갔다. 바지 단추를 끼우며 대기실로 나오자, 한 명의 여자가 변소에서 나올 동료를 기다리고 있는 게 보였다. 음악이 아직 계속되고 있으므로 모나가 부르러 올지도 모르고, 보로프스키가 그 금빛의 손잡이가 딸린 지팡이를 짚고 찾아올지도 모른다고 생각되었지만, 그러나 나는 이미 그녀의 팔에 안겨져 있었다. 그녀가 나를 붙잡아 버렸으므로, 누가 오든 무슨 일이 일어나든 이제 어쩔 수 없었다. 우리는 비틀거리며 변소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를 세워놓고 벽에 바짝 밀어붙였지만, 그러나 잘 안되었다. 이번에는 변기의 시트에 웅크리고 앉아 해보았지만, 역시 잘 안된다. 어떤 식으로 해보아도 안되는 것이다. 그동안 그녀는 계속 내것을 붙잡고, 마치 수난 구조자처럼 그것에 매달려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너무 흥분하고, 너무 초조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음악은 아직 계속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왈츠 스텝을 밟으려, 변소에서 대기실로 나왔다. 그리고 그 방에서 춤추고 있는 동안에, 나는 그녀의 아름다운 가운에 세게 사정을 해버려, 그녀를 몹시 화나게 만들었다. 휘청거리며 테이블로 돌아오자, 보로프스키의 붉은 얼굴과 모나의 화가 난 눈이 기다리고 있었다. 보로프스키가 내일은 모두 브뤼셀로 가자 고 하자, 모두들 찬성하였다. 호텔로 돌아오자, 나는 침대나 세면기, 양복, 가운, 실내화, 마져본 적이 없는 노트, 차가와져 죽어 있는 원고 따위 위에... 사방에 잔뜩 토하였다. 수개월 후 같은 호텔의 같은 방. 우리는 자전거들이 많이 놓여 있는 안마당을 바라보고 있었다. 맞은편 지붕 밑의 작은 다락방에서는, 아니꼬운 멋쟁이 젊은이가 온종일 축음기를 틀어놓고, 이에 맞추어 큰 목소리로 멋진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지금 우리 라고 말했지만, 이 표현은 약간 과장된 것 같다. 실은 모나가 꽤 오래 전부터 다른 데로 나가 있으며, 마침 그날 생라자르 역에서 그녀와 만나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해질녘까지 역의 울타리에 얼굴을 들이대고 서 있었지만, 모나의 모습은 보이지않았다. 그래서 몇 번이고 전보를 다시 읽어보았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 나는 카르티에로 돌아가, 언제나처럼 배불리 식사를 하였다. 그리고 잠시 후에 돔 앞을 어슬렁거리며 지나가자, 뜻밖에도 창백하게 지쳐버린 듯한 얼굴과, 불타오르는 듯한 눈과, 내가 언제나 사랑해 마지않았던 작은 별 로드제 슈트가 눈에 들어왔다 ― 그 속에는 언제나 따스한 유방과, 대리석과도 같은 다리와, 차갑게 긴장된 근육이 있기 때문에 내가 사랑해 마지않았던 슈트이다. 그녀는 얼굴들의 바다 속에서 떠올라와, 나를 포옹하였다. 정열적으로 포옹하며 ― 수많은 눈이나 코, 손가락, 다리, 술병, 창문, 지갑, 커피잔 등이 우리를 노려보고 있는 가운데, 우리는 서로의 팔속에서 황홀해져 있었다. 내가 그녀의 옆에 걸터앉자, 그녀는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 연방 넘쳐나오는 말의 홍수이다. 히스테리와 도착증과 문둥병의 광포스런 소모성의 징후, 나는 한 마디도 듣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아름답고, 내가 그녀를 사랑하고, 그리고 지금 나는 행복해서 죽어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유제느를 찾으면서 샤또가를 거닐고 있었다. 기차가 나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대체 그녀는 어디로 가버렸을까 하고 생각하며, 언제나 고통스러움을 느꼈던 철교 위를 걷는다. 다리를 건너가는 우리에게는, 모든 것이 온화하고 매혹감으로 충만해 있었다. 연기가 우리의 다리 사이에서 피어오르고, 선로가 삐걱거리며, 신호기는 우리의 피 속에 있다. 나는 그녀의 몸이 기대어 오는 것을 느꼈다 ― 지금은 모든 게 내것임을 느꼈다 ― 그래서 나는 따스한 빌로드의 슈트 위를 문지르다 그만두었다.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이 희미해져 갔다. 그리고 따스한 빌로드 속의 따스한 육체가 나를 원하며 몸부림치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있었던 방으로 되돌아왔다. 유제느 덕분에, 나는 큰 마음먹고 50프랑을 쓴 것이다. 나는 안마당을 바라보았지만, 축음기 소리는 이미 멎어 있었다. 트렁크는 열어젖혀진 채로 있고, 그녀의 옷가지 등이 이전과 마찬가지로 사방에 흐트러져 있었다. 그녀는 옷을 입은 채로 침대에 드러누웠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나는 그녀가 미치광이가 되어버리지 않을까 하고 걱정이 되었다... 침대 안에서, 모포 속에서 다시금 그녀의 몸을 만질 수 있다는 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하지만 이게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이번은 오래 갈까? 이미 나는 오래 갈 것 같지 않다는 예감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들떠서, 마치 내일이라는 날이 없는 것처럼 내게 이야기를 걸어왔다. 조용히 해요, 모나! 잠자코 내 얼굴을 바라보라구...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드디오 그녀는 깊이 잠들었다. 나는 그녀의 아래로부터 팔을 빼내고, 눈을 감았다. 그녀의 몸은 여기, 내 옆에 있다... 내일 아침까지는 확실히 여기에 있으리라... 눈도 뜰 수 없을 만큼 눈보라가 몰아치는 가운데 항구로부터 여행을 떠난 때는, 2월이었다. 마지막으로 그녀를 본 것은, 창문 안에서 손을 흔들며 내게 작별의 신호를 보내고 있는 모습이었다. 모자를 눈 위까지 깊숙히 눌러쓰고, 턱을 옷깃으로 덮고, 맞은편 거리 쪽에 서 있는 사나이. 나를 지켜보고 있는 태아. 창가에서 작별의 인사로 손을 흔들고 있는 모나. 하얗게 가라앉은 얼굴, 난잡하게 드리워진 머리카락. 그리고 지금은 차분하게 안정된 침실에서, 그녀는 허파를 통해 규칙적으로 호흡을 하고, 다리 가랑이 사이에 아직 정액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따스한 고양이 같은 냄새이다. 나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입에 물고, 눈을 감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상대방의 입에 따스한 숨결을 몰아주었다. 바싹 다가붙었다. 미국은 여기서 3천 마일이나 떨어져 있다. 나는 두 번 다시 미국 따위에는 가보고 싶지 않다. 이처럼 내게 호흡을 통하게 하고, 머리카락을 내 입에 물게 해주는 그녀와 함께 침대에 누워 있다는 것이 ― 내게는 기적처럼 생각되었다. 이제 아침까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리... 나는 깊은 잠에서 깨어나 그녀를 바라보았다. 창백한 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그녀의 아름답게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지켜보았다. 무엇이 목에 달라붙는 듯한 느낌이 들어, 한 번 더 접근하여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렇다. 그녀의 머리칼이 살아 있는 것이다! 나는 시트를 젖혔다 ― 그리고 머리카락을 더 많이 끌어내었다. 머리카락이 베개 위로 펼쳐졌다. 날이 밝은 지 얼마 안된 시각이었다. 우리는 급히 짐을 꾸려 가지고, 몰래 호텔을 빠져나왔다. 카페는 아직 문이 닫혀 있었다. 우리는 걸어가면서 몸을 부벼대었다. 희부옇게 날이 밝아왔다. 서몬 핑크 색의 하늘의 무늬, 껍질을 빠져나오는 달팽이. 파리! 파리! 여기서는 모든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무너져가고 있는 낡은 벽과, 변기 속을 흐르는 유쾌한 물소리. 바아에서 콧수염을 핥고 있는 사나이들. 소리를 내며 끌어올려지는 셔터, 하수도를 흐르는 물소리.〈아메르 피콘〉이라 씌어진 커다란 주홍 글씨. 지그재그. 어느 길로 갈까? 그리고 왜, 어디로, 무엇 하러? 모나는 시장한 데다 엷은 옷을 입고 있다. 야회복용의 숄과 향수병, 야만인 같은 귀걸이, 팔지, 탈모제 따위 외에도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메인가의 당구장의 파라에 걸터앉아, 뜨거운 커피를 주문하였다. 변소는 아직 청소가 되어 있지 않았다. 다른 호텔에 갈 수 있는 시간까지, 잠시 여기에 앉아 있어야 하리라. 그 동안 우리는 서로 상대방의 머리 속에서 빈대를 집어내었다. 속이 탄다. 모나는 짜증을 내고 있었다. 목욕을 해야 한다.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해야 한다, 해야 한다, 해야 한다 투성이 뿐이다... 돈은 얼마나 남아 있어요? 돈? 그렇다, 그건 완전히 잊고 있었다. 합중국 호텔. 엘리베이터. 우리는 대낮부터 침대로 들어갔다. 일어났을 때,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우선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미국에 전보를 칠 만큼의 돈을 손에 넣은 일이었다. 축축하고 기다란 여송연을 입에 물고 있는 그 태아에게 치는 전보이다. 그 동안 불바르 라스파이유에서 지내고 있는 스페인 여자이다 ― 그녀는 언제나 친절하게 따뜻한 식사를 대접해 준다. 아침까지는 무슨 일이 일어나리라. 적어도 우리는 함께 침대에 들어갔다. 이제 빈대는 없었다. 비 내리는 계절이 시작되고 있었다. 시트에는 얼룩 하나 없었다... ♧ 비라 보르게제에서 지금 나의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고 있다. 아직 열 시인데도, 우리는 아침 식사를 미치고 산책하러 나와 있다. 지금 우리는 엘자라는 여자와 함께 지내고 있는 것이다. 4, 5일 동안은 조용히 지내자 고 보리스가 주의를 한다. 그 하루가 멋지게 시작된다. 맑게 개인 하늘, 상쾌한 바람, 새로이 페인트로 칠해진 집들. 우체국으로 가는 길에, 보리스와 나는 소설 이야기를 한다.『마지막 책』― 이러한 제복의 책을 익명으로 엮어내기로 되어 있는 것이다. 새로운 날들이 시작되고 있다. 이를 느낀 것은, 오늘 아침에 13세기의 알콜이 제외된『가정 식사』같은 디프레느의 반짝반짝 빛나는 캔버스 앞에 서 있던 때이다. 살집이 좋고 긴장되어 있으며, 윤이 흐르는 장미색 육체의 파동을 드러낸 멋진 나체이다. 제2차적 성징 전부와 약간의 제1차적 성징. 새벽녘의 축축함이 깃든 노래하는 육체이다. 정물조차도 여기서는 정지하고 있지 않으며, 죽어 있지 않다. 식탁은 올려진 음식 때문에 짜부라져 있으며, 너무 무거워 액자 밖으로 삐어져 나와 있다. 13세기의 식사 ― 작자가 잘 기억하고 있는 정글의 기분이 교묘히 표출되어 잇다. 영양이나 얼룩말의 가족들이 종려나무 잎을 물어뜯고 잇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는 엘자가 있다. 그녀는 오늘 아침에, 우리가 침대에 있을 동안, 우리를 위해 연주해 주었다. 4, 5일 동안은 조용히 하자구?... 좋다! 엘자가 하녀이고, 내가 손님이며, 보리스는 주인이다. 새로운 드라마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혼자 웃고 잇다. 녀석은 이제부터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는 것이다. 그 살쾡이 같은 보리스 녀석은. 그 사나이도 일이 일어날 걸 냄새 맡을 수 있는 코를 갖고 있다. 조용히 하자구? 보리스는 겁을 먹고 있는 것이다. 언제 그의 아내가 무대에 등장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몸무게는 180파운드가 훨씬 넘으리라. 그런데 보리스는 한 손으로 잡을 수 있을 만큼 홀쭉하다. 사태가 어떠한지, 이로써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밤에 돌아오는 길에, 이를 내게 설명하려고 한다. 그 이야기가 너무 비극적이고 또 우스꽝스럽기 때문에, 나는 이따금 걸음을 멈추고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미소짓지 않을 수 없다. 왜 자네는 그렇게 웃나? 하고 그는 점잖게 말하지만, 이내 또 프록코트를 몇 개 껴입어도 온전한 사나이로 보일 것 같지 않다고 갑자기 알아챈 절망적인 얼간이 녀석처럼, 그 흐느껴 우는 듯한 히스테릭한 어조로 이야기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는 차라리 이름을 바꾸고 달아나고 싶다고 말한다. 나를 혼자 있게 해주기만 하면, 그 암소에게 무엇이든 해주겠는데. 하고 그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아파트를 대여하게 되어, 계약서의 서명도 끝난 것이다. 그 밖의 사소한 일들에는, 그의 프록코트가 이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녀의 그 중량이 문제이다 ― 요컨대 이 역시 그가 얼마나 그녀를 존경하고 있는가를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한 까닭에, 우리는 당분간 엘자와 뜻을 맞춰가지 않으면 안된다. 엘자는 단지 우리에게 아침 식사를 만들어 주고 ― 그리고 찾아온 손님에게 아파트를 보여주는 일을 할뿐이다. 하지만 이미 엘자는, 몰래 나를 소모시켜 가고 있다. 그 독일인의 피 그 우울한 노래. 오늘 아침에 그가 이를 닦고 있을 때, 엘자는 나에게 베를린 이야기를 하며, 뒤에서 보면 아주 매력적인 여자가, 뒤돌아보니 매독에 걸려 있더라는 따위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려주고 있었던 것이다. 엘자가 왠지 모르게 욕심이 나는 것처럼 나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아침 식사 때부터 미루어온 게 뭔가 있는 모양이다. 오후에 우리는 서재에서 마주 앉아 글을 쓰고 있었다. 그녀는 이탈리아에 있는 연인에게 보낼 편지를 쓰기 시작하고 있었다. 내 타자기는 고장이 나서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보리스는 아파트를 대여하면 이내 이사를 갈 수 있도록, 싸구려 하숙집을 구하러 나가고 없었다. 그러므로 엘자와 시시덕거리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그녀도 그것을 바라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약간 그녀가 가엾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아직 연인에게 편지를 한 줄밖에 쓰고 있지 않은 것이다 ― 몸을 구부리며 그녀를 내려다보았을 때, 나는 곁눈질하며 그것을 흘긋 바라본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우울하고 감상적인, 그 저주받은 독일의 음악이, 내 가슴속으로 파고들고 있는 것이다. 이때의 그녀의 콩알만한 작은 눈은, 몹시 뜨거우면서도 슬픈 듯했다. 이윽고 나는 뭔가 나를 위해 연주해주지 않겠는가고 부탁하였다. 엘자는 깨진 남비 같은, 혹은 해골이 부딪치는 듯한 소리를 내지만, 아무튼 음악가인 것이다. 그녀는 연주를 하면서 울기 시작하였다. 나는 그녀를 나무라지 않았다. 어디엘 가나 마찬가지예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어디엘 가나 남자가 생기고, 얼마 후에 버려지고, 그리고 아이를 떼고, 이윽고 새 일자리를 마련하고, 그리고 또 다른 사내가 생기지만, 모두 나를 이용하기 위해서 상대해줄 뿐이에요. 나를 위해 슈만을 연주해준 다음에, 그녀는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이다 ― 슈만, 그 센티멘탈하고 푸념만 늘어놓는 독일인 사생아 녀석! 어쨌든 나는 그녀가 몹시 불쌍하게 여겨졌지만, 그러나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그녀처럼 음악을 할 수 있는 암탉은, 거대한 도구를 가진 지나가는 사나이에게 손쉽게 몸을 맡기는 무분별한 짓을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슈만 녀석이 다시금 내 피 속으로 파고든다. 엘자는 아직 코를 실룩거리고 있었지만, 내 마음은 이미 훨씬 먼 곳에 있었다. 나는 타니아를 생각해내었다. 한창 하고 있을 때 아다지오로 손톱으로 할퀴는 타니아를. 나는 지나가고 묻혀져버린 여러 가지 일들을 회상하고 있었다. 독일 군이 용약 벨기에에 침공했을 때의 ― 그러나 아직 우리가 중립국에의 침략에 관심을 가질 만큼 무일푼이 되어 있지는 않았던 무렵의 ― 그린랜드에서의 그 여름날 오후의 일이 생각난다. 그 무렵의 우리는 아직 순수했다. 그래서 시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거나, 해질녘에 지나간 영혼을 불러내기 위해 테이블을 두드리곤 하며 식탁을 에워싸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은 오후나 밤에도, 온종일의 분위기가 완전히 독일 음악으로 채워지고, 주위에 있는 사람도 모두 독일인들이어서, 독일에 있는 것보다 더 독일적이었다. 우리에게는 슈만과 휴고 울프 (역주 ; 19세기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그리고 소금에 절인 양배추와 킴멜주와 삶은 감자 따위가 할당되었다. 황혼이 다가올 무렵에 우리는 커튼이 드리워진 방 안의 커다란 테이블을 에워싸고 앉아 있고, 갈색 머리의 약간 바보스러운 여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불러낸다며 쾅쾅 테이블을 두드리고 있었다. 우리는 테이블 아래로 손을 뻗쳐 서로 손을 잡고 있었는데, 옆자리의 귀부인은 내 바지의 단추를 끼우는 곳에 두 손가락을 집어넣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누군가가 지루한 노해를 부르고 있는 사이에, 피아노 아래쪽의 바닥 위에 엎드렸다. 숨이 막힐 듯이 답답하고, 그녀는 숨쉬기가 괴로운 듯했다. 페달이 딱딱하게 자동적으로 상하로 움직였지만, 그 움직임은 마치 27년이나 걸려서 그동안의 분량을 완전히 구축한 분뇨의 탑과도 같은 것으로, 미치광이짓처럼 어리석고 쓸모없는 것이었다. 여자를 자신의 위쪽으로 끌어올렸다. 그러자 내 귀의 공명판이 울리기 시작하였다. 방안이 어둡고, 융단은 엎질러진 킴멜주 때문에 끈적끈적했다. 갑자기, 마치 날이 밝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 마치 물이 얼음 위를 상쾌하게 흐르고, 피어오르는 안개 때문에 얼음이 창백해지며, 빙하가 에어랄드 색을 띤 푸른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영양과 금빛의 농어와 해우가 배회하며, 호박어가 북극권의 기슭으로 뛰어오르듯이... 엘자는 지금 내 무릎 위에 앉아 있다. 그녀의 눈은 배꼽처럼 작다. 나는 그녀의 커다란 입을 바라보고, 촉촉하게 빛나고 있는 그 입술을 내 입술로 덮어 버린다. 그녀는 낮은 소리로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 정말 그것은 아름답도다... 아, 엘자, 너는 아직 그것이 나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 너의 그『제킹겐의 나팔수』가. 독일 합창단, 슈바벤 음악당, 체육협회... 좌로! 우로! ... 좌로! 우로! ... 그리고 엉덩이에 채찍을 가한다... 아, 독일인 ― 녀석들은 합승 자동차처럼 우리를 채어간다. 그리고 소화불량이 되게 만든다. 하룻밤 사이에 사페 수용소와 구제 병원, 동물원, 성좌의 십이궁, 철학의 지옥, 인식론의 동굴, 프로이트나 슈테겔의 깊은 의미 등을 한꺼번에 살펴보며 돌아다닐 수 있는 게 아니다... 회전목마를 타고 있으면, 어디에도 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독일인과 함께 가며, 하룻밤 사이에 베가 (역주 ; 1503 에서 1536. 스페인의 시인) 로부터 로페 드 베가 (역주 ; 1562 에서 1635. 스페인의 극시가) 까지 비약하여 달려갔다가, 팔시파르 (역주 ; 바그너의 가극) 처럼 바보가 되어 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 아까도 말한 것처럼, 그날은 황홀하게 시작되었다. 몇주일 동안이나 알아채지 못하고 있던 파리를, 다시금 육체적으로 느끼게 된 것은, 겨우 오늘 아침의 일이다. 아마도 이는 그 소설이 나의 내부에서 성장하기 시작한 때문이리라. 어디엘 가든지, 나는 그것을 갖고 다닌다. 커다란 배를 껴안고, 나는 거리를 걸어간다. 그러므로 길을 횡단할 때에는, 순경이 시중을 들어준다. 부인들은 일어나 내게 좌석을 양보해 준다. 아무도 나를 난폭하게 밀치거나 하지는 않는다. 나는 임신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세계의 중압에 항거하여 커다란 배를 내밀면서 서투르게 아장아장 걸어간다. 나의 소설에 대한 마지막 출판 허가가 내려진 것은, 오늘 아침에 우체국으로 가는 도중의 일이었다. 우리 ― 보리스와 나 ― 는 문학상의 새로운 우주관을 전개한 것이 . 그러므로 이 작품 ―『마지막 책』― 은 새로운 성서가 될 것이었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을 갖고 있는 사람은, 모두 이 책 속에서 그 말을 하리라 ― 익명으로. 우리는 시대를 증언하리라. 그 후로는 한 권의 책도 찾아볼 수 없게 되리라 ― 적어도 한 세대 동안은. 지금까지 우리는 본능 이외에는 아무런 안내자도 없이, 어둠을 헤치며 전진하여 왔다. 이제 우리는 힘찬 생명의 흐름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갖기에 이른 것이다. 이는 이것을 집어던지면 온 세계가 날아가버릴 만큼 강력한 폭탄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 책 속에, 내일의 작가들에게 그들의 이야기 줄거리를 ― 그들의 드라마를, 그들의 시를, 그들의 신화를, 그들의 과학을 ― 안겨주기에 충분한 내용을 담을 것이다. 세계는 앞으로 1천년 동안, 이것을 먹고 살아갈 수 있으리라. 이 책은, 도깨비의 얼굴 로써 ― 곧 거짓위협으로써 ― 사람을 기만한다는 의미에서 거대한 것이다. 이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거의 짓눌려 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백 년 동안 내지는 더 오랜 동안, 세계는 ― 우리의 세계는 ― 죽어가고 있다. 그리고 지난 백 여년 동안에, 천지의 엉덩이의 구멍에 폭탄을 장치하여, 이를 산산조각이 나게 만들 만큼 미쳐버린 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세계는 썩어가고 있다. 산만하게 죽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 세계에는, 결정적인 최후의 일격이 필요한 것이다. 산산조각이 나도록 날려버릴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 중의 어느 누구도 완전한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래도 우리는 우리의 내부에, 여러 대륙과 여러 대륙 사이의 바다와, 하늘을 나는 새를 갖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적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 이미 죽어 있지만, 아직 매장되어 있지는 않은 이 세계의 진화를. 우리는 시간의 표면을 헤엄치고 있다. 다른 자들은 모두 물에 빠져버렸거나, 빠져가고 있거나, 앞으로 빠질 것이다. 이 책은 방대한 것이 되리라. 거기에는 몇 개의 대양과도 같은 공간이 있을 것이다. 그 속에서 돌아 다니고, 헤엄치고, 노래하며, 춤을 추고, 기어오르고, 목욕하고, 재주 넘기를 하며, 울부짖고, 능욕하며, 살인을 하는 그러한 공간이. 하나의 대사원, 진정한 대사원 ― 이를 건설하는 데 스스로의 정체를 상실한 모든 사람들이 협력할 것이다. 거기서는 죽은 자를 위한 미사가 이루어지리라. 기도가, 참회가, 찬미가, 희한과 요설이, 일종의 살인적인 무관심이 거기에는 있을 것이다. 장미꽃이 내다보이는 창문과, 괴물 모양의 가고일과, 시승과 관의를 입고 있는 자가 거기에는 있을 것이다. 복도에서 말을 달리게 할 수도 있고, 벽에 머리를 부딪칠 수도 있다 ― 그래도 벽은 움푹 파이지 않을 것이다. 좋아하는 국어로 기도를 올려도 좋고, 밖에서 몸을 웅크리고 잠이 들어도 상관없다. 이 사원은 적어도 1천년 동안은 유지되어갈 것이다. 그리고 재건할 수 없으리라. 왜냐하면 건축가는 죽어버리고, 건축 양식은 사라져버릴 테니까. 우리는 그림엽서를 만들게 하고, 관광단을 조직할 것이다. 사원 주위에 도시를 만들고, 자유로운 자치제를 만들어낼 것이다. 천재는 필요치 않다 ― 천재는 이미 죽어버렸다. 우리에게는 강인한 일꾼이 필요한 것이다. 유령 따위와는 인연을 끊고 자진하여 살의 의상을 입으려는 인간이 필요한 것이다. 기분 좋은 템포로 그날을 지나간다. 나는 타니아의 방의 발코니 위에 서있다. 아래층의 응접실에서는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다. 극작가는 병을 앓고 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그의 머리가 이전보다 더 울퉁불퉁하고, 머리칼은 지푸라기 따위처럼 엉성하다. 그의 사상도 지푸라기 따위처럼 엉성하다. 녀석의 아내도 아직 얼마간 촉촉한 기운은 있지만 역시 지푸라기이다. 나는 발코니 위에서 보리스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나의 마지막 문제 ― 아침 식사 ― 는, 어디론가 가버렸다. 나는 무엇이든 간단히 끝낸다. 만일 뭔가 새로운 문제가 생기면, 더럽혀진 세탁물과 함께 배낭에 담아 가지고 돌아다닌다. 나는 가진 돈을 다 써버렸다. 돈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 나는 글을 쓰는 기계이다. 이미 마지막 나사가 감겨졌다. 문장이 흘러나올 뿐이다. 나와 기계 사이에는 털끝만큼의 거리도 없다. 나는 기계이다... 어떠한 새 드라마가 펼쳐지려 하고 있는지, 그와는 아직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지만, 내게는 짐작이 간다. 그들은 나를 몰아내려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저녁을 얻어먹으려고, 녀석들이 예상한 시간보다 조금 빨리 이곳에 와 있는 것이다. 어디에 앉아 무엇을 하겠다는 것을, 나는 이미 그들에게 알려두었다. 나는 정중하게 방해가 되지 않는 가고 말해 보지만, 나의 진짜 기분은 ― 그들도 잘 알고 있지만 ― 너희는 나의 일을 방해할 작정이냐 는 느낌이다. 아니, 행복한 바퀴벌레 같은 부부여, 너희는 나를 방해하고 있지는 않아. 나를 부양해 주고 있는 거야. 너희는 거기에 바싹 붙어 앉아 있지만, 나는 너희 사이에 깊은 심연이 가로놓여 있는 것을 알고 있다. 너희 사이의 가까운 거리란, 유성 사이의 가까운 거리와 마찬가지이다. 내가 너희 사이에 있는 공간인 것이다. 만일 내가 손을 떼면, 너희의 부유하는 공간은 없어져 버리리라. 타니아는 심술궂은 기분이 되어 있다 ― 나는 그것을 알 수 있다. 그녀는 내가 그녀 이외의 무엇에 의해 충족되었음을 원망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흥분하는 정도를 통해, 그녀의 가치가 제로가 되었음을 알고 있는 것이다. 오늘밤에 내가 그녀를 수태시키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녀를 파괴하는 무엇인가가 나의 내부에 싹트고 있는 것도 알고 있다. 그녀는 늦게 깨닫는 편이지만, 지금 그것을 깨달아가고 있는 것이다... 실베스터는 만족스런 표정이다. 그는 오늘밤, 저녁 식사 때에 그녀를 껴안을 것이다. 지금도 그는 내 원고를 읽으면서, 나의 에고(자아)에 불을 붙여, 나의 자아와 그녀의 자아를 충돌시키려고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밤의 모임은 색다른 모임이 될 것이다. 지금은 무대장치를 하고 있는 참이다. 글라스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린다. 포도주는 이미 운반되어 있다. 열심히 술을 마시면, 병환중인 실베스터도 병을 잊을 것이다. 우리가 크론슈타트의 방에서 이 계획을 세운 것은 어젯밤의 일이다. 그때 결정한 것은, 여자들은 반드시 괴로워해야 하고, 무대 뒤에는 보다 많은 두려움이나 광포, 불행, 고뇌, 비탄, 비참 따위가 스며들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우리 같은 인간을 파리에 잠입시킨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파리는 바로 인공적인 무대이다. 구경꾼들에게 투쟁의 모든 장면을 잠시 엿볼 수 있도록 만들고 있는 회전무대이다. 파리 스스로는 결코 어떠한 드라마도 시작하지 않지만, 그러나 드라마가 도처에서 펼쳐진다. 파리는 단지 자궁으로부터 살아 있는 태아를 끌어내고, 그것을 인공 보육기 속으로 옮기는 산부인과 기계에 지나지 않는다. 파리는 인공 출산의 요람이다. 이 요람 속에서 흔들리면서, 사람들의 꿈은 어느 틈엔지 자신의 토지로 돌아가는 것이다. 베를린으로, 뉴욕으로, 시카고로, 빈으로, 민스크로 사람들의 꿈은 돌아간다. 빈은 결코 파리에서의 빈다움 이상으로 빈답지는 않다. 모든 것이 숭배의 경지까지 고양된다. 그 갓난 아기들이 요람을 떠나면, 또 새로운 갓난아이가 그리로 돌아간다. 졸라나 발자크, 단테, 스트린드베리 등의 이전에 어떤 일을 이룩한 인물이 살고 있던 이곳의 벽에서, 우리는 그 주인공의 자취를 읽을 수 있다. 모두들 여기서 한때는 살고 있었지만, 아무도 여기서는 죽지 않았다... 아래층에서 부부가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들의 말은 상징적이다. 발버둥치며 다툰다 는 말이 이야기 속에 섞여 있다. 병든 극작가인 실베스터가 말하고 있다. 나는 지금『선언』을 읽고 있어요. 그러자 타니아가 말한다 ― 누구의 선언? 그렇다. 타니아여, 나는 들었다. 나는 지금 여기서 네 이야기를 적고 있지만, 너는 그것을 분명히 알아채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하는 말을 적을 테니까, 더 이야기해 다오. 내가 식사를 하기 시작하면, 더 이상 노트에 적고 있을 수도 없을 테니까... 갑자기 타니아가 말한다. 이 집에는 훌륭한 홀이 없군요. 아니, 이건 대체 무슨 소리인가, 만일 이 말에 의미가 있다면. 부부는 지금 그림을 장식하고 있다. 이 역시 나에게 보란 듯이 빗대어 하는 짓이다. 보라구 ― 그들은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것이다. 자신들은 이 집에서 결혼 생활을 하며 즐겁게 지내고 있다. 가정을 매력적인 곳으로 만들고 있다고 말이다. 우리도 그림에 관해서는 너희의 의견에 찬성하겠다. 이윽고 타니아가 또 말한다. 정말, 눈은 꽤 많이 속아요! 아, 타니아, 너는 멋진 소리를 하는군! 더 계속하렴, 이 소극을 더 계속해 다오. 나는 네가 약속해준 저녁 식사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여기에 있지만, 이 희극은 정말 기막히게 재미있다. 이어 이번에는 실베스터가 리드를 한다. 그는 보로프스키의 수채화 중의 하나를 설명하려고 애를 쓴다. 이리로 와봐요. 알겠어요, 한 명은 기타를 치고 있어. 또 한 명은 무릎 위의 젊은 여자를 껴안고 있어. 그렇다, 실베스터. 옳은 말이야. 기타를 안고 있는 보로프스키야! 무릎 위로 끌어안겨진 여자들이야! 다만 그가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있는 게 무엇이고, 또 기타를 치고 있는 이가 정말로 남자인지는 아무도 분명히 알 수 없을 뿐이다... 이제 곧 모르돌프가 납죽 엎드려 달려올 것이고, 보리스도 그 쓸쓸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달려올 것이다. 저녁 식사 때는 금빛의 꿩과 앤즈와 짧고 굵은 여송연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크론슈타트는 최근의 뉴스를 들으면, 5분간쯤은 약간 진지해지고 또 얼마간 기운이 나서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그 뒤에는 또 그의 이데올로기의 부식토 속에 얌전히 틀어박히며, 또 하나의 시가 생겨날 것이다. 혓바닥이 없는 커다란 쇠북 같은 시가. 한 시간쯤 시간을 허비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또 한 명의 손님이 아파트를 보러 왔기 때문이다. 위층에서는 그 영국인 녀석이 바흐 연습을 하고 있다. 이제 이렇게 되면, 누가 아파트를 보러 왔을 때에는 위층으로 달려 올라가, 피아노를 잠시 중지해 달라고 피아니스트에게 부탁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엘자가 식당에 전화를 걸고 있다. 연관공이 변기 위에 새 좌대를 설치하고 있다. 도어의 벨이 울릴 때마다 보리스는 침착성을 잃어버린다. 흥분하여 컵을 떨군다. 그는 납죽 엎드린다. 프록토크를 질질 끌며 바닥 위를 거닐고 있다. 약간 그랑 기뇨르를 닮았다 ― 푸줏간 주인의 딸에게 레슨을 가르쳐주려고 오는 굶주린 시인이다. 전화 벨이 울릴 때마다 시인은 군침을 흘린다. 말라르메는 살로인 스테이크 처럼 들리고, 빅토르 위고는 송아지 간장 처럼 들린다. 엘자가 보리스를 위해 맛있는 점심 식사를 주문하고 있는 참이다 ― 국물이 많은 고급의 작은 포크촙을 보내줘요. 하고 그녀는 말한다. 대리석 위에 분홍빛의 햄이 산더미처럼 차갑게 가로놓여 있는 게 보인다. 흰 지방에 둘러싸인 멋진 햄이다. 겨우 4,5분전에 아침 식사를 하였는데도, 무척 시장하다 ― 내가 먹지 않고 지내야 하는 런치인 것이다. 내가 점심 식사를 하는 날을 수요일뿐이다. 그것도 보로프스키 덕분이다. 엘자는 아직 전화를 걸고 있다 ― 베이컨을 주문하는 것을 잊은 것이다. 네, 상품의 작은 베이컨 조각 말예요. 네. 별로 기름기가 없는 부분을요. ... 원, 또 주문을 하나! 췌장을 가져와요, 굴과 대합도 가져와요! 그러고 있는 동안에 튀겨진 간장의 소시지도 가져와요! 나는 한꺼번에 로페 드 베가의 극시 1500편을 모두 읽어버린 적이 있다. 아파트를 보러 온 여자는 미인이다. 물론 미국인이다. 나는 그녀에게 등을 돌리고 창가에 서서, 참새가 새로운 똥을 쪼아대고 있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비가 조금 내리고 있다. 빗방울은 굵다. 새는 날개가 젖으면 날 수 없는 게 아닐까 하고 나는 이전에는 생각하고 있었다. 이러한 돈 많은 숙녀들이 파리에 와서, 모두들 일하기 위한 고급의 방을 찾아내는 데는 놀라움을 느낀다. 약간의 재능과 두둑한 지갑. 비가 내린다 해도, 이는 그녀들에게 있어서는 새로 맞춰 입은 레인코트를 자랑해 보일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식사 따위는 문제가 아니다. 때로는 거리를 헤매기에 바빠 점심을 먹을 틈조차 없는 수가 있다. 그러한 때에는 카페 드라페나 리츠파에서, 약간의 샌드위치나 웨이퍼만으로 때운다. 좋은 가문의 아가씨만 들어오세요. ― 이는 뷔비드 샤반느의 낡은 아뜨리에에 씌어져 있는 문구이다. 지난번에 우연히 그곳을 통과하였다. 회화 도구 상자를 어깨에 둘러맨 유복해 보이는 미국 여자들. 약간의 재능과 두둑한 지갑. 새들은 포도 위를 정신없이 날아다니고 있다. 멈춰 서서 면밀히 살펴보려고 하면, 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즉 어디에나 먹을 것이 떨어져 있는 것이다 ― 하수도 속에도. 아름다운 여자는 화장실에 관해 묻고 있다. 화장실? 내가 안내해 줄까, 빌로드를 걸친 영양들! 화장실 말인가? 이리로 와요, 마담. 제발 폐병들을 위해 잡아둔 번호가 매겨진 곳을 간과하지 말도록. 보리스는 손을 비비고 있다 ― 녀석은 지금 이 거래의 마지막 마무리를 짓고 있는 것이다. 안마당에서 개가 짖고 있다. 늑대처럼 짖고 있다. 위층에서는 마키바네스 부인이 가구를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다. 아무것도 할 일이 없어 아침부터 밤까지 지루해하고 잇는 것이다. 만일 빵 조각 만한 쓰레기라도 발견한다면, 그녀는 온 집안을 청소할 것이다. 식탁 위에는 청포도 한 송이와 포도주 한 병이 놓여 있다 ― 특급 포도주, 10도. 네. 하고 보리스가 말한다. 세면대를 만들어 드릴 수도 있어요. 잠깐 이리로 와보세요. 네. 이게 화장실입니다. 2층에도 물론 한 개가 있어요. 네, 1개월에 1천 프랑입니다. 유토리로는 별로 좋아하시지 않습니까. 아뇨, 이게 그겁니다. 새로운 세척기가 필요하겠죠. 우선 급히 필요한 건 그것뿐일 거예요... 그녀는 이제 곧 돌아갈 것이다. 이번에는 보리스 녀석이 나를 소개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빌어먹을 녀석! 돈이 있는 여자이면, 꼭 나를 소개하는 것을 잊어버린단 말야. 이제 4, 5분 지나면, 우리는 다시 자리에 앉아 타자를 칠 수가 있다. 왠지 오늘은 더 이상 타자를 치고 싶지 않다. 기운이 없어져가고 있다. 그녀는 한 시간쯤 후에 또 찾아와, 내 엉덩이 밑에 잇는 의자를 빼앗아갈지도 모른다. 30분 뒤에는 어디에 앉아 있을 수 있느냐 하는 판에, 어떻게 글을 쓸 수 있겠는가. 만일 이 돈 많은 계집이 이 집에 세 들어 살기로 결정되면, 나는 잠잘 곳조차 없어지는 것이다. 이처럼 막다른 판에 몰리면, 어느 쪽이 더 나쁜지 ― 즉 잠잘 곳이 없는 것과 일할 장소가 없는 것 중의 어느 쪽이 더 곤란한지 ― 용이하게 판단하기가 어렵다. 잠은 대개 어느 곳에서나 잘 수 있지만, 일을 하려면 장소가 있어야 한다. 설령 그 일이 필생의 걸작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도 말이다. 다소 엉성한 소설을 쓸 경우에도, 걸터앉기 휘한 의자 한 개와 얼마간이나마 혼자 있을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 저러한 돈 많은 여자는, 이러한 것을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그 계집들이 보드라운 엉덩이를 내려놓으려고 하면, 반드시 거기에는 의자 한 개가 있는 것이다... 간밤에 우리는 실베스터와 그의『신』이 나란히 난로 옆에 앉아 있는 채로 내버려두고 돌아왔다. 실베스터는 파자마를 입고 있고, 모르돌프는 입에 여송연을 물고 있었다. 실베스터는 오렌지 껍질을 벗기고 있었다. 그는 그 껍질을 소파의 커버 위에 내려놓았다. 모르돌프는 그에게 바짝 다가앉았다. 한 번 더 그 멋진『천국의 문』이라는 패러디(parody) 를 읽어달라고 그는 부탁하였다. 우리 ― 보리스와 나 ― 는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이 병실의 분위기를 견디며 있을 수 없을 만큼 쾌활해져 있었던 것이다. 타니아도 우리와 함께 나가려 하고 있었다. 그녀가 쾌활한 것은, 여기서 달아날 생각으로 있었기 때문이다. 보리스가 쾌활한 것은 모르돌프 속에 있는『신』이 죽었기 때문이다. 내가 쾌활한 것은, 그것이 이제부터 우리가 펼치려 하고 잇는 연기이기 때문이다. 모르돌프의 목소리는 중의 목소리 같다. 실베스터, 당신이 잠들 때까지 여기 있어도 괜찮아? 그는 오늘까지 엿새 동안 계속 실베스터 곁에 붙어 있으면서 약을 사러 가거나, 타니아의 심부름을 하거나, 위로하거나, 비위를 맞추거나, 보리스나 그의 동료인 불량배 같은 악의 의 침입자를 현관에서 몰아내곤 했던 것이다. 그는 밤에 자고 있는 동안에 자신의 우상이 북구자가 되어버린 것을 알아챈 야만인 같다. 지금 그 우상의 발 밑에 무릎을 꿇고 앉아, 팡 나무 열매와 기름을 바치며, 종잡을 수 없는 기도를 올리고 있는 것이다. 그의 목소리는 기름처럼 매끄럽게 흘러나온다. 그의 수족은 이미 마비도어 있다. 그는 타니아에게는 마치 그녀가 맹세를 깨뜨린 무녀라도 되는 것처럼 말을 한다. 당신은 좀 더 품위를 유지해야 해요., 실베스터는 당신의 신이에요. 그리고 실베스터가 2층에서 괴로워하고 있는 사이에 (그는 약간 가슴을 앓고 있는 것이다) 중과 무녀는 배가 터지게 음식을 먹어버리는 것이다. 당신은 스스로 자신을 더럽히고 잇다. 고 그는 말한다. 고기 국물이 입술에서 흘러내기로 있다. 그는 음식을 먹는 일과 고뇌하는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위험한 자들을 몰아내며 짬이 나면, 그는 통통하고 작은 손을 뻗쳐 타니아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나는 당신에게 반하고 있어. 당신은 나의 파니 같아. 다른 의미에서도, 그날은 모르돌프에게 있어 유쾌한 날이다. 미국에서 보낸 편지가 도착한 것이다. 모오는 어느 학과나 성적이 모두 A라고 한다. 말리는 자전거 연습을 하고 있다. 빅트롤러의 수리가 끝났다. 그의 얼굴 표정을 보면, 편지에 성적표나 자전거 이야기 외에도 뭔가 씌어져 있었음을 이내 알 수 있다. 확실히 그렇다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오늘 오후에 그가 3254프랑짜리 보석을 파니에게 사주었기 때움이다. 게다가 그는 스무 장이나 되는 편지를 그녀에게 보낸 것이다. 사환은 그에게 연방 편지지를 가져가고, 만년필에 잉크를 넣어주고, 커피와 여송연을 서비스하고, 땀을 흘리면 부채질을 해주고, 테이블 위의 빵부스러기를 닦아내고, 여송연의 불이 꺼지면 붙여주고, 우표를 사러 가고, 댄스를 하고, 한쪽 발끝으로 선 채로 빙글빙글 돌고, 살림을 하는 등... 녹초가 되어 등뼈가 휘어질 만큼 일을 한 것이다. 그리고 팁을 듬뿍 받았다. 코로나 코로나보다 크고 두꺼운 팁을 모르돌프는 아마도 그걸 일기에 적었을 것이다. 그것도 파니를 위해서이다. 팔찌와 귀걸이 ― 모두 그가 사용한 금액만큼의 의미는 있었다. 파니를 위해 사용하는 편이, 제르메느나 오데트와 같은 싸구려 매춘부에게 낭비하기보다는 훨씬 낫다. 그가 타니아에게 그렇게 말했으니까, 이건 사실이다. 그는 자신의 트렁크를 그녀에게 보였다. 선물이 가득 담겨져 있었다 ― 파니를 위해, 모오와 마리를 위해 마련한 것이다. 나의 파니만큼 지적인 여자는 이 세상에 없을 거야. 나는 그녀의 결점을 열심히 찾아보았지만 ― 하나도 없어요. 그녀는 완전해. 파니가 할 수 있는 일을 당신들에게 이야기해 볼까. 그녀는 야바위꾼처럼 브리지를 해요. 그녀는 시오니즘에 관심을 갖고 있어. 시험삼아 낡은 모자 하나를 그녀에게 건네주고, 그걸 어떻게 꾸미는지 지켜봐요. 여기를 약간 구부리고, 여기에 리본을 하나 다는 거야. 그러면 보라구, 아주 멋진 모자가 되었잖아! 완전한 행복이란 무엇인지 당신들은 알고 있나? 모오와 마리가 잠이 든 후에, 파니의 옆에 앉아 라디오를 듣는 일이야. 그녀는 정말 편안한 모습으로 거기에 있어. 나는 그냥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 나의 모든 고투와 상심의 대가를 얻고 있는 거야. 그녀는 라디오를 듣고 있어도 정말 머리가 좋아. 당신들의 악취가 풍기는 몽파르나스의 분위기를 생각하고, 그리고 베이 리지에서 파니와 함께 식사를 한 후의 저녁때의 분위기를 생각해 보면, 도저히 비교가 안된다구. 식사라든가, 어린애라든가, 전 등의 부드러운 불빛 따위의 간단한 이야기지만, 파니가 거기에 있고, 약간 피로해 있지만 쾌활하고 만족스레 식사를 하고... 우리는 몇 시간이고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그냥 앉아 있어. 이것이 행복이라는 거야! 오늘, 그녀는 내게 편지를 보내왔어 ― 지루한 주식 보고서 같은 편지하고는 다르다구. 그녀는 정성스레, 우리의 어린 마리도 알 수 있는 쉬운 말로 편지를 써요. 그녀는 어떤 일에나 세밀하게 신경을 쓰거든, 파니라는 여자는 말야. 아이들의 교육은 계속해야만 하지만, 비용을 마련할 일이 걱정이라고 씌어 있어. 어린 마리를 학교에 보내는 데는 1천 달러가 들어요. 모오는 물론 장학금을 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린 마리, 그 어린 천재인 마리의 교육비는 어떻게 마련하죠? 나는 파니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걱정하지 말라고 일러두었어. 마리를 학교에 보내라고 말해 주었지. 1천 달러쯤 더 들어도 문제없어. 나는 금년에 이전보다 돈을 더 많이 벌어들일 작정이야. 어린 마리를 위해 벌어들이는 거야 ― 그 아이는 천재니까, 마리라는 아이는 말야. 나는 파니가 트렁크를 열 때는, 옆에서 그녀를 지켜보고 싶다. 봐요, 파니, 이것은 내가 부다페스트에서 나이 많은 유태인으로부터 산 거야... 이건 불가리아 사람들이 입고 있는 거지 ― 순모라구... 이것은 어느 공작의 것이었는데 ― 아니, 그걸 감으면 안돼, 햇빛에 쬐어야지... 난 말야, 오페라를 보러 갈 때, 이것을 당신에게 입히고 싶어, 파니... 아까 보여준 그 장식물을 달고 그걸 입어 봐요... 그리고 이것은 말야 파니, 타니아가 나에게 준거야... 그녀는 당신과 약간 닮은 타입이라서... 그리고 파니는 그 석판화의 풍경처럼 소파에 걸터앉아, 한쪽 팔로는 모오를, 다른 팔로는 마리를, 어린 천재인 마리를 끌어당기고 있다. 그녀의 굵은 다리는 너무 짧아서 바닥에 거의 닿지가 않는다. 그녀의 눈은 과망 간산염처럼 탁한 빛을 띠고 있다. 잘 익은 붉은 양배추 같은 유방. 그녀가 앞으로 몸을 구부리면, 그 유방이 스르륵 물결친다. 하지만 그녀의 유감스러운 점은, 싱싱함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그녀는 효력이 없어진 예비 전지처럼 거기에 앉아 있다. 그녀의 얼굴을 핀트가 빗나가 있다 ― 이를 정상으로 돌리는 데는 약간의 정기 ― 액즙 ― 를 급격히 주입시킬 필요가 있다. 모르돌프는 살이 찐 두꺼비처럼 그녀의 앞을 뛰어다니고 있다. 근육이 떨리고 있다. 그는 앞으로 푹 꼬꾸라진다. 그는 가까스로 엎드린 자세로 돌아온다. 그녀는 뭉툭한 발끝으로 그를 가볍게 쿡쿡 찌른다. 그의 눈이 조금 더 휘둥그래진다. 한 번 더 발로 차줘, 파니, 기분 좋은데! 이번에는 약간 강하게 찌른다. 그래서 그의 엉덩이에 약간 우묵하게 들어간 자국이 생긴다. 그는 융단 위에 엎드려 있다. 턱 언저리의 살이 양탄자에 닿아 움직이고 있다. 그는 약간 기운을 내어, 우당탕거리며 가구들 사이를 뛰어다닌다. 파니, 당신은 멋있어! 그는 지금 그녀의 어깨 위에 앉아 있다. 그는 그녀의 귀 언저리를 깨문다. 귓볼 쪽의 살을 아프지 않을 만큼. 하지만 여전히 그녀는 죽은 것 같다 ― 언제까지나 예비 전지이며, 물기가 없는 것이다. 그는 그녀의 무릎 위로 흘러내려, 치통이라도 앓는 사람처럼 몸을 떨며 드러눕는다. 몸이 화끈거려 괴로운 모양이다. 그의 배가 인조 가죽으로 만들어진 구두처럼 번들번들 빛난다. 한 쌍의 멋진 조끼 단추가 눈 속에 있다. 내 눈의 단추를 풀어줘요, 파니, 당신을 더 잘 볼 수 있게! 파니는 그를 침대로 운반하여, 눈 위에 뜨거운 납을 몇방울 떨군다. 그녀는 그의 배꼽 주위에 뭔가 동그란 것을 내려놓고, 똥구멍에 검온기를 집어넣는다. 그녀가 그를 거기에 놓아두자, 그는 또 몸을 떤다. 갑자기 그는 작아지고, 움츠러들며,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된다. 그녀는 그 주위에서 그를 찾아내려고 애를 쓴다. 그녀의 창자 속까지 살펴본다. 무엇인가가 그녀를 간질이고 있다 ― 어디서 간질이는지는 분명히 알 수 없다. 침대에는 두꺼비와 조끼 단추밖에는 없다. 파니, 당신은 어디 있어? 무엇인가가 그녀를 간질이고 있다 ― 어디서 간질이는지는 알 수 없다. 단추가 침대 밑으로 굴러 떨어진다. 두꺼비가 벽을 기어오르고 있다. 간질인다. 간질인다. 파니, 내 눈의 납을 벗겨줘! 나는 당신을 보고 싶어! 하지만 파니는 웃고 잇다. 몸을 비꼬면서 웃고 있다. 무엇인가가 그녀의 몸 속에 있는 것이다. 간질인다. 간질인다. 그게 발견되지 않으면, 웃다가 죽어버릴 것 같다. 파니, 트렁크 속에 예쁜 옷들이 가득 들어 있어. 파니, 들려요? 파니는 웃고 있다. 살이 찐 지렁이처럼 웃고 있다. 웃어대는 바람에 배가 부풀어오르고 있다. 다리가 창백해진다. 오, 어쩌면 좋아, 모리스, 뭔가 나를 간질이고 있는 게 있어요... 나 못 견디겠어요! ♧ 일요일! 보리스가 점심 식사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단지 그러한 이유만으로 정오가 되기 조금 전에 비라 보르게제를 나왔다. 델리카시를 잃지 않기 위해 나온 것이다. 내가 허기진 상태로 화실에 앉아 있는 것을 바라보기가, 보리스에게는 괴롭고 견딜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왜 그가 나에게 함께 식사를 하자고 권하지 않는지 나는 알 수 없다. 그만한 여유가 없다고 그는 말하지만, 그것은 변명이 되지 않는다. 아무튼 나는 그 점에 대해서는 신경이 예민하다. 만일 나를 눈앞에 두고 혼자 식사하는 일이 그를 괴롭힌다면, 그의 식사를 내게 나누어주는 일은 그를 더욱 괴롭힐 것이다. 그의 비밀스런 일에 관여하는 것은, 내가 할 일이 아니다. 크론슈타트의 집에 들렀더니, 여기서도 식사를 하고 있다. 병아리와 현미. 이미 먹고 온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실은 아기가 손에 들고 있는 닭고기를 잡아채고 싶을 정도였다. 이는 거짓으로 사양을 하는 게 아니다 ― 일종의 심술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이들 부부는 두 번이나 함께 먹자고 권해주었다. 천만에! 천만에! 나는 식사 후에 나오는 커피 한 잔도 마시려 하지 않았다. 나는 신경이 예민한 것이다. 나는! 나올 때, 나는 아기의 접시에 남아 있는 닭뼈에 미련의 일별을 보내었다 ― 뼈에는 아직 살이 남아 있었다. 목표도 없이 헤맨다. 아름다운 날이다 ― 적어도 지금까지는. 리드 비시는 떠들썩하고 번화하다. 인간들이 들끓고 있다. 술집들은 문이 환하게 열어젖혀져 있고, 보도에는 자전거들이 줄을 지어 늘어서 있다. 고기나 야채 시장은 성대히 영업을 하고 있다. 모두들 신문지로 싼 물품들을 껴안고 있다. 상쾌한 카톨릭의 일요일이다 ― 적어도 아침의 이 시간만은. 대낮이다. 나는 허기진 배를 껴안고, 음식 냄새가 피어오르는 구불구불한 이 소롯길의 모퉁이에 서 있다. 정면에 오테르 드 루이지아느가 있다. 이전에는 뤼 드비시의 악동들과 친숙했던 음산하고 낡은 호텔이다. 호텔과 음식물 ― 그리고 나는 허기진 배를 껴안고 문둥이처럼 돌아다니고 있다. 언제나 일요일 아침에는, 이 거리에는 열렬함이 있다. 아마도 이스트 사이드나 차임 광장 주변을 제외하고는,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풍경이리라. 리드 리쇼데는 사람들로 들끓고 있다. 길거리는 구불구불 구부러져 있고, 구부러질 때마다 새로운 활기로 충만한 군중이 잇다. 야채를 껴안은 사람들의 긴 행렬이, 활발한 불꽃이 일 듯한 식욕을 흩뿌리면서 구부러진 길로 이동하여 간다. 식품, 식품 ― 식품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현기증이 날 것 같다. 필스턴베르 광장을 지나간다. 대낮에 바라보면 양상이 전혀 다르다. 지난번 밤에 지나갔을 때에는, 오가는 사람도 없고, 으스스한 느낌을 주며, 유령이 나올 것 같았다. 광장 한복판에, 아직 꽃이 피지 않은 검은 나무 네 그루가 있다. 바닥에 깔려 있는 돌멩이들에 의해 풍겨지는 지적인 나무이다. T.S.엘리엇의 시와 비슷하다. 만일 마리 로랑상이 그녀와 동성애를 하는 여자들을 옥외로 끌어낼 수가 있다면, 여기야말로 그녀들이 친밀하게 어울리는 장소일 것이다. 여기는 실로 레스비언적이다. 보리스의 심장처럼 불모의 혼혈 상태이고, 메말라 있다. 상제르망 교회 옆에 있는 작은 정원에, 끌어내려진 가고일 몇 개가 놓여 있다. 무서운 기세로 앞으로 삐어져 나와 있는 괴물들. 벤치에도 괴물들이 있다 ― 노인, 백치, 불구자, 간질병자 따위. 모두들 거기에 얌전히 웅크리고 앉아, 식사시간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저쪽의 자크 화랑에는 어느 저능한 녀석이 우주 그림을 그린 게 나와 있다 ― 평면 위에 그려진 화가의 우주! 별난 잡동사니뿐인 우주이다. 그런데 그 밑의 왼쪽 구석에는 닻이 하나 그려져 있다 ― 그리고 식사시간임을 알리는 종소리. 찬양하라, 오, 찬양하라, 우주여! 아직 헤매고 있다. 오후도 거의 지났다. 허기진 배가 꼬르륵거리고 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노틀담이 무덤처럼 수면 위에 솟아올라 있다. 레이스 무늬가 그려진 건물의 앞쪽에서, 괴물 모양의 가고일들이 잔뜩 목을 내밀고 있다. 마치 편집광의 마음속의 고정관념처럼 그것들은 매달려 있다. 노란 구레나룻을 기르고 있는 노인이 내게 다가온다. 야볼스키의 쓸모 없는 물건을 손에 약간 들고 있다. 고개를 젖히고 내게로 걸어올 때, 비가 그의 얼굴에 튀어 올라, 금빛의 얼굴이 진흙 모양으로 변했다. 라울 뒤피의 수채화를 쇼윈도우에 장식한 책방. 장미 밭에 서 있는 하녀들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장미꽃에 가려져 다리는 보이지 않는다. 조안 미로의 철학에 대한 논문. 철학 이야, 주의해! 그 창가에 ―『잘려져버린 사나이』가 있다! 제1장 가족의 눈에 비쳐진 어느 사나이. 제2장 정부의 눈에 비쳐진 어느 사나이. 제3장 ― 제3장은 없다. 내일은 또 와서 제3장과 제4장을 보아야 한다. 이 쇼윈도우의 장식장이가 매일 새로운 페이지를 젖히는 것이다. 『잘려져버린 사나이』... 이러한 표제를 생각해내지 못한 데 대해, 내가 얼마나 화를 내고 있는지, 당신은 짐작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정부의 눈에 비쳐진 어느 사나이... 의 눈에 비쳐진 어느 사나이... ― ? 이 저자는 어디에 있나? 대체 무엇 하는 사람인가? 나는 녀석에서 달려들어 꼭 껴안고 싶다. 이러한 표제를 ―「머리가 돌아버린 수탉」이라든가, 그밖에 내가 발명한 어리석은 표제 따위가 아니라 ― 이러한 표제를 생각해낼 두뇌가 내게 있었으면. 할 수 없다. 집오리라도 껴안고 있어라! 역시 나는 그를 축복한다. 그의 멋진 표제를 만드는 일이 성공하기를 빈다. 당신에게 도움이 된 잘려진 것 이 여기 있다 ― 당신이 다음 작품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언제든 전화를 걸어요. 나는 비라 보르게제에 있으니까. 우리는 모두 죽었거나, 죽어가고 있거나, 앞으로 죽을 것이다. 좋은 표제를 원한다. 고기를 원한다. 여러 개의 잘려진 고기를 ― 물기가 많은 연한 고기, 고급 허리 부위 고기의 스테이크, 소나 돼지의 간장, 마운틴 오이스터, 췌장. 나는 언제든 42번 가와 브로드웨이 모퉁이로 나가, 이 표제를 생각해 내며, 머리에 떠오르는 모든 것을 적어둘 작정이다 ― 캐비어, 빗방울, 윤활유, 이탈리아 실국수, 간장 소시지 ― 엷게 자른 것. 그리고 나는 모두 적어둔 다음에, 급히 집으로 돌아가 왜 갓난아기를 토막내어 버렸는가 ― 그 이유를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에게 감사하다는 표시이다. 잘려지고 토막이 나버렸으니까, 신사들이여! 어떻게 한 사나이가 온종일 허기진 배를 껴안고 헤매며 돌아다닐 수 있고, 더욱이 이따금 발기까지 하고 있을 수 있느냐 하는 사정은, 영혼의 해부학자 들에 의해 손쉽게 설명되는 비밀이다. 일요일 오후에 가게들의 셔터가 내려지고, 프롤레타리아트가 벙어리처럼 무감각한 모습으로 거리를 점령하고 있을 때, 세로로 절개된 커다란 하감성 음경을 연상시키는 길거리가 있다. 그리고 바로 이 넓다란 도로들 ― 이를테면 리생 도니라든지 포블 디 텀플 따위 ― 이야말로, 마치 옛날의 유니언 스퀘어 지역이나 파우어리의 위쪽 지역에서, 사람들이 쇼윈도우에 매독들의 성병 때문에 망가뜨려진 육체의 여러 기관을 납세공 품으로 만든 구경거리를 전시해둔 십선 박물관에 마음이 끌렸던 것처럼, 견딜 수 없으리만큼 큰 매력을 갖고 우리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것이다. 이 도시는 온몸이 병마에 의해 침식된 거대한 유기체처럼, 이 아름다운 길거리들을 드러내놓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이곳은 고름이 완전히 씻겨져 내려갔다는 의미에서, 불쾌감을 약간 덜 안겨줄 뿐이다. 듀콤바 광장 부근의 시테 노르티에서, 나는 이 오물을 듬뿍 들이마시려고 수분 동안 걸음을 멈춘다. 이는 장방형의 빈터이며, 파리의 낡은 동맥의 측면을 에워싸고 있는 낮은 골목길의 뒤쪽을 들여다보면 흔히 눈에 띄는 그러한 곳이다. 빈터의 한가운데에 썩어 문드러진 건물들이 있다. 이 건물들은 완전히 썩어서 무너져내린 채 마치 창가와 창자가 서로 껴안고 있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지면이 울퉁불퉁하고, 돌계단은 진 흙투성이가 되어 번들거리고 있다. 불쏘시개나 마른 쓰레기 따위가 뒤엉켜진 일종의 인간의 쓰레기 처리장이다. 해는 서둘러 서쪽으로 기울려고 하고 있다. 주변의 색깔이 죽어간다. 보라색으로부터 마른 핏빛으로, 진주 색으로부터 진한 갈색으로, 차가운 시체 같은 회색으로부터 비둘기 똥 같은 색으로 변해간다. 일그러진 자세의 괴물들이 사방의 창가에 서서, 올빼미처럼 눈을 깜박이고 있다. 창백한 얼굴을 하고 손이나 발이 뼈와 가죽뿐인 아이들이 날카로운 소리를 지른다. 겸자 자국이 남아 있는 연약한 아이들. 고약한 냄새가 벽에서 스며 나온다. 곰팡이가 난 요 ― 짚을 널어서 만든 요 ― 의 냄새. 유럽의 ―중세의 그로테스크라고 괴물 같은 ― B 모르(역주 ; 단음계를 의미함) 교향악. 도로 맞으편에서는 시느 콤바가, 이 부근의 품위가 있는 관객들에게『메트로폴리스』를 제공하고 있다. 여기를 떠나면서, 나의 마음은 2, 3일 전에 읽은 어느 책 속으로 돌아간다. 〈이 도시는 도살장이었다. 도살자에 의해 마구 살육되고 약탈자에 의해 옷이 벗겨진 시체들이 거리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주변의 들판에서 늑대들이 그 시체를 먹으려고 잠입하여 왔다. 흑사병이나 그밖의 악성 전염병이 늑대들의 동료가 되려고 침투하여 왔다. 그 속을 영국 군이 행진하여 왔다. 그 동안에 모든 묘지에서는 묘비 주위에서 해골 춤이 추어지고 있었다...〉 우왕 샬르 시대의 파리이다! 아름다운 책이다! 기분을 상쾌하게 하고, 식욕이 일게 하는 책이다. 나는 지금도 아직 이에 매혹되어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의 보호자나 선구자들에 관해서는 별로 알지 못하고 있지만, 아름다운 빵 가게 아줌마 라 불린 마담 팜페르너나 금은 세공사인 주안 크라포트 등은 지금도 이따금 내 마음에 떠오른다. 로당 ― 그 방황하는 유태인 인 사악한 천재도 잊을 수 없다. 그는 흑백 혼혈아인 스실리 때문에 잔뜩 흥분하여, 좌절될 때까지 극악무도한 짓을 계속하였다. 탐페르 광장에 앉아, 장 카포쉬에 의해 이끌린 폐마 상인들의 행위에 관한 생각에 잠겨 있던 나는, 우왕 샬르의 참혹한 운명에 대해 오랫동안 애처로운 마음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오테르 생포르의 복도를 헤매고 있던 어리석은 사람, 불결하기 이를 데 없는 누더기를 걸치고, 궤양이나 기생충 따위에 의해 몸을 침식당하여, 몸에 걸린 개처럼 사람들이 집어 던지는 뼈를 갉아먹고 있던 샬르. 뤼데 리옹에서, 나는 이전에 그가 관리하고 있던 낡은 동물원 자리의 돌을 찾아보았다. 불쌍한 바보, 그의 유일한 기분전환은 신분이 비천한 자들을 동료로 삼아 트럼프 놀이를 하는 것이었다. 그밖에는 오데트 드 샹디베일이 있을 뿐이었다. 처음으로 내가 제르메느를 만난 때는, 오늘과 같은 일요일이었다. 나는 아내가 미국에서 전보환으로 열심히 보내주는 백 프랑 정도의 돈이 생겨 주머니 사정이 든든했으므로, 폴바르 보마르셰를 어슬렁거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거리에는 이미 봄 기운이 돌고, 맨홀에서 뿜어져나온 듯한 독기를 띤 죄악 적인 봄의 징후조차 코로 느껴졌다. 밤마다 이 부근의 문둥병을 앓는 듯한 거리들의 모습에 마음이 끌려, 나는 이곳에 나타나곤 했다. 이 거리들이 그 사악한 호화로움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것은, 해질녘의 희미한 햇빛이 사라지고, 매춘부들이 언제나처럼 여기저기 제자리에 나타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특히 내가 기억하는 곳은 뤼 파스트르 바그너이다. 졸고 있는 도마뱀처럼 가로수길 그늘에 숨어 있는 위 아므로의 모퉁이이다. 여기에, 말하자면 병의 모가지에 해당하는 곳에, 언제나 일단의 독수리 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독수리들은 소리를 지르고 더러운 날개를 펄럭이면서, 날카로운 손톱을 뻗쳐 남자를 처마 밑으로 끌어들였다. 용무가 끝난 다음에 남자에게 팬티의 단추를 잠글 틈도 주지 않을 만큼 쾌활하고 욕심이 많은 악마들이다. 한길에서 떨어진 작은 방 ― 대개 창문이 없는 방 ― 으로 남자를 데리고 간 다음, 스커트를 걷어올리고 침대 가에 걸터앉아 재빨리 검사를 시키고, 페니스에 침을 발라 적당히 처리해주는 것이다. 한 명이 세척을 하고 있는 동안에 이미 다른 한 명은 방문께에서 그녀의 전리품을 손에 쥐고, 세척이 끝나기를 태평스런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제르메느의 경우는 이들과는 다르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로 다르다고 여겨지는 점은 없다. 매일 오후에 ― 또는 저녁때에 ― 카페 드레팡에서 만나는 다른 매춘부들과 특별히 구별되는 점은 없다. 위에서도 말한 것처럼, 그날은 봄기운이 도는 날이고, 아내가 없는 돈을 전신환으로 보내준 수십 프랑이 내 주머니에 들어 있었다, 바스티유에 도착할 때까지는, 이 독수리들 중의 한 명이 끌어가려 하리라는 막연한 예감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불바르를 슬슬 거닐면서, 나는 그녀가 매춘부 특유의 성급해 보이는 별난 걸음걸이로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알아챘다. 닳아빠진 구두 뒤축이나 싸구려 보석, 루즈 따위만이 두드러져 보이는 그녀들 특유의 창백한 표정. 흥정을 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는 레팡이라는 작은 담배가게의 안쪽 방으로 들어가 급히 흥정을 하였다. 수분 후에 우리는 리아므로의 5프랑 짜리 방에 들어가 있었다. 커튼이 드리워져 있고, 이불은 개어놓은 채로 있었다. 제르메느는 결코 일을 서둘지 않았다. 그녀는 세척기 위에 웅크리고 앉아 비누를 사용하면서, 유쾌한 듯이 내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였다. 그녀는 내가 입고 있는 니커보커(역주; 무릎 아래서 졸라매게 되어 있는 느슨한 짧은 바지) 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아주 멋있군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이전에는 멋있었지만, 지금은 엉덩이 쪽이 닳아버린 상태이다. 다행히 웃옷이 엉덩이 쪽을 가리고 있었다. 이윽고 그녀는 일어서서 타올로 닦으면서 또 즐거운 듯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타올을 바닥에 떨구고는 조심스레 내게로 다가와, 귀여운 듯이 그녀의 그것으로 문지르기 시작하였다. 두 손으로 어루만지거나 애무하거나 가볍게 두드리곤 했다. 그때의 그녀의 이야기나 내 코끝에 그 장미 꽃봉오리를 들이대는 동작 따위가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녀는 그것이 막대한 돈을 치르고 손에 넣은 각별히 진귀한 물건 ― 그 가치가 시간과 더불어 증대되어 지금은 그녀에게 있어 세계에서 가장 귀중한 존재가 되어버린 물건 ― 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그녀의 말은 일종의 특별한 방향이 그것에 스며들게 하였다. 그것은 이미 단순한 그녀 혼자만의 기관이 아니라, 보물이고, 마술적인 힘을 지난 보배이며, 신이 내려준 선물이었다 ― 그녀가 그것을 매일 얼마간의 돈을 받고 사용한다고 해서, 그 값어치가 감소되는 것은 아니다. 그녀가 양다리를 벌리고 침대에 몸을 던졌을 때, 그녀는 그것을 두 손으로 가리고, 잠시 어루만지면서 그 쉰 듯한 목소리로 이건 우수해요, 아름다운 보물이에요, 귀여운 보물이에요 하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것은 좋았다 , 그녀의 그 보물은! 그 일요일날 오후의 독기를 품은 봄의 숨결과 함께, 모든 것이 다시금 잘 풀려나가기 시작하였다. 호텔을 나오면서 나는 낮의 강렬한 햇빛 속에서, 한 번 더 그녀를 바라보고, 그녀가 어떤 매춘부인가를 분명히 알게 되었다 ― 금니, 모자에 꽂힌 제라늄, 닳아빠진 구두 뒤축 따위... 그녀가 내게 저녁 식사를 사고 담배를 사주고 택시를 태워달라고 졸랐지만, 나는 털끝만큼도 언짢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 실제로 내가 자진하여 그렇게 하도록 만든 것이다. 너무 그녀가 좋아져, 저녁 식사를 한 후에 다시 호텔로 돌아가서 한 번 더 했을 정도이다. 이번에는 사랑하기 때문 이다. 그리고 한 번 더 그녀는 그 커다란 숲에 꽃을 피우려고 마법을 사용하였다. 그것은 나에게 있어서도 하나의 독립된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 제르메느가 있고, 그리고 그녀의 그 장미의 숲이 있다. 나는 그 양자를 따로따로 좋아하게 되고, 그리고 양자를 함께 좋아하게 되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그녀는 다른 것이다. 제르메느라는 여자는. 후에 그녀가 나의 진짜 처지를 알게 되었을 때, 그녀는 나를 정말 잘 대우해 주었다 ― 나를 위해 돈을 쓰며 술을 사주고, 물건을 사면 계산을 해주고, 내 물품을 전당잡히고, 친구들을 내게 소개해 주었다. 내게 돈을 빌려주지 않은 점을 사과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서는 나는 그녀의 정부가 누구인가를 알게 된 이후로는 충분히 잘 이해하였다. 밤마다 나는 불바르 보마르셰를 거닐다가 그녀들의 집회소로 되어 있는 그 작은 담배가게로 가서, 그녀가 훌쩍 들어와 귀중한 시간의 수분간을 나를 위해 할애해 주기를 기다렸다. 얼마 후에 내가 크로드에 관한 글을 쓰게 되었을 때, 내가 염두에 두고 있던 사람은 크로드가 아니라 제르메느였다... 그녀와 침대를 같이한 많은 사나이들. 하지만 지금은 나뿐이다. 그리고 거룻배는 나아간다. 돛대나 선체도... 저주스러운 삶의 커다란 흐름이, 나를 통해, 그녀를 통해, 나보다 앞서거나 내 뒤에 오는 모든 사나이들을 통해 흘러간다. 꽃과 새와 햇빛이 그 속으로 흘러들며, 그 향기가 나를 숨막히게 하며, 나를 사멸시킨다. 이는 제르메느의 이야기이다! 크로드를 나는 열심히 숭배하고 있었지만 ― 한때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정도이지만 ― 제르메느와 같지는 않았다. 크로드에게는 영혼과 양심이 있었다. 세련된 면도 있었다. 그게 좋지 않은 것이다 ― 매춘부로서는. 크로드는 언제나 슬픈 느낌을 준다. 그녀는 물론 스스로 그러려는 건 아니지만, 운명이 그녀를 멸망시키려고 작정하고 있는 흐름 속에 또 한 명의 손님을 추가시킨 데 지나지 않는다는 듯한 인상을 상대방에게 안겨준다. 스스로 그러려는 건 아니라고 말한 까닭은, 크로드는 절대로 그러한 상상을 고의로 남자의 마음에, 불러일으키는 그러한 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러한 짓을 하기에는 너무 신경이 날카롭고 민감한 것이다. 요컨대 크로드는 보통의 평범한 예의범절과 지성을 갖추고 잇는 선량한 프랑스의 한 아가씨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기회에 인생이 이 아가씨를 교묘히 속여버린 것이다. 그녀에게는 나날의 경험이 안겨주는 쇼크를 견뎌낼 수 있을 만큼 야무지지 않은 데가 있다. 루이 필립(역주; 1874 부터 1909년. 프랑스의 소설가) 의 다음과 같은 무서운 말은, 그녀를 위해 언급한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어느 날 밤, 모든 일의 종말이 다가온다. 너무나 많은 아가리들에 우리가 물려버려, 이미 우리에게는 견뎌낼 힘이 없어진다. 그리고 우리의 살은 그 모든 입들에 의해 깨물려져 버린 것처럼, 우리의 주위에 드리워진다 ― 그러한 밤이...〉이와는 반대로, 제르메느는 요람 속에서부터의 창녀이다. 그녀는 위가 아프다는 구두가 닳아버렸다는 등의 사소하고 표면적인 일 때문에 괴로워하는 외에는, 완전히 자신의 역할에 만족하고, 실제로 그것을 향락하고 있다. 그녀의 영혼 속으로 파고드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다. 어떤 일에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권태! 그녀가 느끼는 가장 언짢은 느낌은, 기껏해야 권태로움 정도이다. 확실히 우리가 말하는 흡족했던 나날은 있었으리라. 하지만 그 이상의 일은 없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녀는 대개 그것을 즐기고 있었다 ― 혹은 즐기고 있다는 착각을 안겨주었다. 물론 누구와 함께 잤느냐 ― 또는 누구와 만족했느냐 ― 에 따라 차이가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남자 이다. 남자! 그녀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그것이었다. 그녀를 간질이고, 그녀를 황홀하게 번민하도록 만들 수 있는 존재, 그녀의 장미의 숲을 양손으로 잡고, 기쁜 듯이 자랑스레 뽐내며, 결합된 느낌, 생명의 느낌을 맛보면서도 비비도록 할 수 있는 것을 다리 가랑이 사이에 갖고 있는 남자. 자신의 양손으로 잡을 수 있는 아래쪽 부분 ― 그것만이 그녀에게 있었서는 인생을 경험하는 유일한 장소이다. 제르메느는 머리 꼭대기에서 발끝까지 창녀였다. 선량한 마음속의 그 깊은 곳까지 창녀였다. 그녀의 창녀로서의 마음은 실은 선량하지 않고, 방종하고 무관심하며 약간만 감동을 받는 여린 마음이고, 내부에 고정된 지주라곤 하나도 없는 마음이며, 그 바탕으로부터 순간족으로만 떨어져 나올 수 있는 허약한 창녀의 마음이었다. 그녀가 스스로 만들어낸 세계가 아무리 비천하고 속박을 많이 받는 것일지라도, 그녀는 그 세계 속에서 나무랄 데 없이 행동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그것 자체가 강장제와 같은 것이었다. 나와 친숙해진 후에, 그녀의 동료들은 내가 제르메느에게 반하고 있다며 내게 시비를 걸었다. (이는 그녀들에게 있어서는 거의 생각할 수도 없는 관계인 것이다). 그때 나는 말해 주었다. 그래요! 분명히 나는 그녀에게 반하고 있어! 그뿐만이 아냐, 나는 그녀에게 충실해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지. 물론 이것은 거짓말이다. 왜냐하면 나는 거미에게 반할 수 없는 것처럼, 제르메느에게 반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또 만일 내가 충실했다면, 그것은 제르메느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녀가 다리 가랑이 사이에 갖고 있는 그 더부룩한 숲에 대해서인 것이다. 나는 다른 여자를 보면, 언제나 곧 제르메느를, 그녀가 내 기억 속에 남겨놓은, 결코 지울 수 없는 그 불타는 듯한 숲을 생각하였다. 그 작은 담배가게의 테라스에 앉아, 그녀가 장사 하느라 열중하고 있는 것을 관찰하고, 그녀가 내게 보여준 것과 같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 보이거나 똑같은 거짓말을 하면서 다른 사내들과 흥정을 하고 있는 모양을 관찰하는 일이 내게는 즐거웠다. 그녀는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 이것이 내 감상이며, 나는 그녀의 거래를 시인하면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후 나는 크로드와 접촉하면서, 밤마다 그녀가 정해진 골덴 쇼파에 그 둥글고 작은 엉덩이를 대고 편안히 앉아 있는 것을 보면, 그녀에 대한 일종의 뭐라고 형언하기 어려운 저항감을 느꼈다. 창녀에게는 귀부인처럼 저런 곳에 앉아 누군가가 다가오기를 겁장이처럼 기다리면서 얌전히 콜라 따위를 마시고 있을 권리는 없을 것이다. 나는 그러한 느낌이 들었다. 제르메느는 바지런하다. 남자가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 ― 스스로 밖에 나가 남자를 붙잡는 것이다. 나는 해져 구멍이 난 그녀의 스타킹이나 닳아빠진 구두를 잘 기억하고 있다. 그녀가 빠에서 거칠고 용감하고 도전적인 태도로 강한 술을 들이켜고는, 또 나간 것도 잘 기억하고 있다. 정말 바지런한 여자다! 술 냄새가 풍기는 그녀의 숨결은, 별로 유쾌한 느낌을 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커피나 코냑, 아페리티프, 페르노 및 그밖에 그녀가 짬이 나는 대로 마시는 여러 가지 술들이 뒤섞인 듯한 냄새 ― 이는 모두 그녀의 몸을 따스하게 하는 동시에 기력과 용기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었지만, 그 화기가 그녀의 육체를 통하여, 그녀의 다리 가랑이 사이의, 모든 여자들이 불태워야 할 곳에서 불타오르고, 그리고 남자에게 양다리 밑의 대지를 다시금 느끼게 만드는 그 접지 회로를 완성시킨 것이다. 그녀가 양다리를 벌리고 드러누워 신음 소리를 낼 때, 설령 그녀가 어느 남자하고나 반드시 그런 식으로 신음 소리를 낸다 할지라도, 이는 전적으로 호감이 가는 일이었다. 이는 적절한 감정의 표출이었다. 그녀는 얼빠진 듯한 표정으로 천장을 응시하거나 벽에 붙어 있는 빈대를 세어 보지는 않았다. 언제나 장사 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잃지 않고, 남자가 여자 위에 올라탔을 때에 듣고 싶어하는 그러한 이야기를 하였다. 그런데 크로드의 경우는, 남자와 함께 이불 속에 들어갔을 때에도, 언제나 일종의 델리커시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 텔리커시 때문에 나는 화가 나는 것이다. 텔리커시가 있는 창녀 따위를 누가 원하겠는가. 크로드는 세척기 위에 올라탈 때, 저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어 달라고 남자에게 부탁하곤 한다. 틀린 짓이다! 남자가 욕정에 불타고 있을 때에는, 무엇이든 보고 싶은 것이다. 여자들이 소변을 보는 것조차 보고 싶은 것이다. 여자에게도 상당한 생각 이 있음을 알게 되는 게 참으로 좋은 일이긴 하지만, 차가운 시체나 다름없는 창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문학 이야기는, 침대에서의 서비스로서는 최악의 것이리라. 제르메니의 생각이 옳다. 그녀는 무지하고 육욕적이다. 그녀는 자신의 장사 를 위해 마음이나 영혼을 집중시키고 있다. 그녀는 몸 전체가 그대로 창녀이다! ― 그리고 이것이 그녀의 장점인 것이다! ♧ 추위에 얼어버린 토끼처럼 부활절이 다가왔다 ― 하지만 침대 속은 참으로 따스하다. 오늘도 날씨가 좋아, 해질녘의 샹제리제 일대는, 검은 눈동자의 열락과 화원과 미녀들로 들끓어, 숨막힐 듯한 터키의 후궁과도 같다. 나무들의 잎이 무성하고, 신록은 너무 푸르르고 풍성하기 때문에, 마치 아직 이슬에 젖은 채로 빛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질 정도이다. 루브르 미술관으로부터 에토와르까지의 신록은, 피아노를 위한 소곡과도 같다. 5일 동안, 나는 타자기에 손도 대지 않고,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 또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를 찾아가는 일 이외에는, 머리 속에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에는 오늘 아침 아홉 시에 문을 열고 있을 때에 한 번 가고, 한 시에 또 갔다. 아무 소식도 없었다. 네시 반이 되어, 마지막 1분 동안에 쳐들어가려고 마음먹고 호텔을 뛰쳐나왔다. 모퉁이를 돌자마자 월터 패크가 스치듯이 지나갔다. 그는 나를 알아채지 못하고, 나도 별로 할 말도 없어 그를 붙잡으려고 하지 않았다. 나중에 추이르리에서 쉬고 있을 때에 그의 모습이 마음에 되살아났다. 그는 몸을 약간 웅크린 듯한 자세로 풀이 죽어 있고, 얼굴에 조용하고 조심스러운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부드럽게 에나멜을 칠한 듯한 하늘을 쳐다보면서 ― 하늘 색깔이 아주 연하며, 오늘은 무거운 비구름도 일지 않고, 오래 된 질그릇 조각처럼 미소짓고 있었다 ― 나는 생각했다. 네 권의 두꺼운 책 ―『미술의 역사』― 을 번역한 그 사나이는 그 내리뜬 상태가 되어버린 눈으로 이 축복할 만한 우주를 파악할 때, 무엇을 마음에 떠올리는 것일까? 샹제리제를 걸어가자, 상념이 땀에 솟아나듯이 내 머리에 흘러나왔다. 나는 걸어가면서 필기를 시킬 비서를 고용할 수 있을 만큼의 부자가 되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생각하였다. 나의 가장 빼어난 사상은, 언제나 타자기와 떨어져 있을 때에 마음에 솟구쳐 오르니까. 샹제리제를 걸어가면서 자신의 아주 멋있는 건강함 을 생각하였다. 내가 건강함 이라고 말할 때, 실은 옵티마즘을 의미한다. 고치기 어려우리만큼 낙천적인 것이다! 나는 아직 19세기에 한쪽 발을 내딛고 있는 것이다. 나는 대다수의 미국인처럼 약간 뒤떨어져 있는 것이다. 칼은 이 낙천주의를 혐오하다. 내가 식사 이야기를 하기만 하면 하고 그는 말한다. 반드시 너는 기쁜 듯이 생글생글 웃는다! 확실히 그렇다. 식사하는 것만을 생각한다 ― 다음 식사 를 ― 그 생각을 하기만 하면 나는 다시 젊어지는 것이다. 식사! 이는 어떤 일이 진행되는 것을 의미한다 ― 몇 시간 동안 충실히 일하는 것을. 경우에 따라서는 하나의 창조를 의미한다. 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내게는 건강함 이 있다. 멋있고 억세며 동물적인 건강이. 나와 미래 사이에 가로놓인 유일한 것은 식사이다. 다음 식사 이다. 칼이라는 사나이는 요즘 정신 상태가 좋지 않은 듯하다. 마음의 평정을 잃고 있다. 신경이 공전하고 있다. 그가 병들어 있다는 게 거짓말은 아니라고 생각되지만, 딱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실은 웃긴다는 기분이다. 그러므로 물론 그는 분개하고 있다. 모든 게 그에게 상처를 입힌다 ― 나의 웃음이나 나의 굶주림, 나의 집요함, 나의 태평스러움 따위의 모든 것이. 그는 어느 날은 이가 득실거리는 이 유럽에서는 더 이상 견뎌낼 재간이 없다며 바위에라도 부딪쳐 머리를 깨고 싶다고 하는가 하면, 또 다음날에는 아리조나에 가자고 말한다. 거기선 손님을 제대로 대우하니까. 가보라구! 하고 나는 말한다. 무엇이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좋아. 하지만 자네의 우울한 한숨으로 나의 건강한 눈이 흐려지게 만들지는 말아다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다! 유럽에서는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에 익숙해져 버리는 것이다. 의젓하게 앉아서 온종일 푸념을 늘어놓고 있다. 오욕에 물드는 것이다. 썩어버리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칼은 속물이다. 자기 혼자만의 조발성 치매증의 왕국에서 살고 있는 귀족주의적이고 쩨쩨한 녀석이다. 나는 파리가 싫다! 고 그는 우는소리를 한다. 아침부터 밤까지 트럼프 놀이만 하고 있는 얼간이 녀석들... 그자들을 보라구! 그리고 이 글을 쓴다는 작업! 언어와 언어를 늘어놓은들 무슨 소용이 있나. 글을 쓰지 않고 작가가 될 수는 없는 것일까. 내가 한 권의 소설을 썼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무엇이 증명되나! 아무튼 우리는 소설을 써 가지고 어쩌겠다는 거야? 소설을 지금까지 남아돌 만큼 너무 많이 나와 있는데... 어리석은 짓이다. 하지만 나도 그러한 경지를 대충 거쳐온 것이다 ― 이미 수년 전의 일이다. 나의 우울한 청춘을 졸업한 것이다. 이제 나는 자신의 배후에 있는 것이나, 자신의 앞쪽에 있는 것들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나는 건강하다. 치유하기 어려우리만큼 건강하다. 슬픔도 없고, 희한도 없다.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다. 현재만으로, 내게는 충분하다. 그날, 그날. 오늘! 아름다운 오늘! 칼은 일주일에 한 번 외출을 한다. 그리고 그날의 그는, 그러한 것을 상상할 수 있다면, 일주일의 다른 어느 날보다도 더욱 비참한 것이다. 음식을 경멸한다고 말하고는 있지만, 외출하는 날에 그가 향락하는 유일한 방법은, 성대한 음식을 주문하는 일인 듯하다. 아마도 그는 나 때문에 그러리라 ― 나는 알지 못하고, 그러한 이야기를 들어보지도 못했다. 만일 그가 스스로 그의 악덕의 리스트에 순교라는 한 항목을 추가하고 싶다면, 추가하도록 해주자 ― 나는 OK다. 어쨌든 지난주의 화요일에 성대한 식사를 하느라 돈을 낭비한 다음, 그는 나를 돔으로 끌고 갔다. 그곳은 내가 외출하는 날에 가장 가고 싶어하지 않는 장소의 하나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인간이 유순해질 뿐만 아니라 ― 게을러지기도 하는 것이다. 돔의 술집에 말로가 서 있었다 ― 곤드레만드레로 취해 있다. 지난 5일 사이에, 그는 그가 말하는 이른바 전환점에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쉴새 없이 술을 마시고, 밤이나 낮이나 계속 술집에서 술집으로 떠돌이 여행을 하다가, 마지막으로 아메리칸 호스피탈에서 쓰러져 버린다는 의미이다. 말로의 여위어 뼈가 앙상한 얼굴은, 한 쌍의 죽은 대합이 담겨져 있는 두 개의 깊은 눈구멍을 터놓은 두 개골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그의 등에는 톱밥이 잔뜩 묻어 있다 ― 방금 변소에서 잠깐 졸고 온 것이다. 웃옷의 포켓에는 잡지의 다음 호 교정쇄가 들어 있다. 아무래도 그는 그 교정쇄를 갖고 인쇄소로 가다가, 누군가가 부추기는 바람에 술을 마시런 온 모양이다. 그 이야기를 그는 한 달 전의 이야기처럼 이야기한다. 교정쇄를 꺼내어, 스탠드 위에 펼친다. 커피의 얼룩이나 마른침이 잔뜩 묻어 있다. 그는 그리스어로 쓴 자작시를 낭독하려고 하지만, 교정쇄를 판독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는 프랑스어로 일장 연설을 하려고 마음먹는다. 그러나 지배인이 연설을 못하게 한다. 말로는 재미가 없어진다. 프랑스어로 사환도 일아들을 수 있도록 지껄이는 것이, 그의 야심의 하나인 것이다. 고대 프랑스어에 관해서는, 그는 대가이다. 쉬르리얼리스트의 작품에 관해서는, 그는 멋진 명역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나가라구, 이 머저리 녀석아! 라는 따위의 간단한 말은 ― 그의 능력으로는 이해할 길이 없는 것이다. 말로의 프랑스 말은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다. 창녀조차도 알아들을 수 없다. 형세가 험악할 때에는, 그의 영어조차도 이해하기가 용이하지는 않다. 마치 고칠 길이 없는 말더듬이처럼 거품을 물거나 침을 뱉곤 한다... 그의 말에는 단락도 없고 연속 도 없다. 네가 지불하라구! ― 가까스로 그가 또렷이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말뿐이다. 설령 곤드레만드레 취해 있을 때에도, 어떤 우수한 자가 보호 본능이, 반드시 말로에게 연극을 해야 할 시기를 가르쳐준다. 술을 마시고 돈을 치르기가 조금이라도 어려워지면, 그는 반드시 아슬아슬한 재주를 벌이는 것이다. 흔히 하는 것은, 장님이 되어가고 있는 체하는 것이다. 칼은 이제는 그의 속임수를 모두 알고 있다. 그러므로 말로가 갑자기 관자놀이를 양손으로 두드리며 연극을 하기 시작하면, 칼은 그의 엉덩이를 한 번 걷어차고는 말하는 것이다. 이봐, 집어치워! 내게 그따위 짓은 하지 말라구! 나로서는 그것이 교활한 복수의 일부인가의 여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어쨌든 말로는 칼에게 현금으로 빚을 갚고 있는 것이다. 아주 비밀이라는 듯한 표정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술집에서 술집으로 떠돌아 다니는 동안에 주워 모은 가십을, 그는 쉰 듯한 까마귀 울음소리 같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칼이 깜짝 놀라 고개를 든다. 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있다. 말로는 줄거리를 더러 바꿔가며,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한다. 그때마다 칼의 얼굴에서 조금씩 핏기가 사라져간다. 그러나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 드디어 그는 울분을 터뜨린다. 있을 수 있어! 하고 말로가 말한다. 자네는 쫓겨난다구... 내가 그런 이야기를 분명히 들었어. 칼은 절망적인 표정의 눈을 내게로 돌린다. 저 녀석이 나를 다른 데로 몰아내려 하고 있나? 그는 작은 목소리로 내게 속삭인다. 그리고 목소리를 높여 말한다. 그럼 나는 어떡하지. 다른 일자리는 구해질 턱이 없잖아. 지금의 일자리를 얻는 데 나는 1년이나 걸렸다구. 이 말이 말로가 들으려고 기다리고 있던 모양이다. 드디어 그는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인간을 발견한 것이다. 정말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야! 하고 그는 말한다. 뼈가 앙상한 머리가 전기불에 번쩍인다. 돔을 나오다가 딸꾹질을 하면서 말로는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가게 되었다고 설명하였다. 지금은 칼이 불안해하는 것을 마음으로부터 동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칼과 내가, 그가 여기에 없는 동안 잡지 일을 이어받아 맡아보면 어떻겠는가고 말하였다. 자네는 믿을 수 있어. 칼... 하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 갑자기 그는 발작을 일으켰다. 이번은 진짜다. 그는 휘청거리며 도랑 속으로 넘어져버릴 것 같았다. 우리는 불바르 에드가키네에서 그를 술집으로 끌고 가, 바닥에 앉혔다. 이번은 정말로 발작을 일으킨 것이다 ― 눈이 아찔해질 만큼의 두통 때문에 비명을 지르고 신음하며, 철퇴로 얻어맞은 짐승처럼 전후좌우로 몸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우리는 페르네 브랑카를 두어 잔 그의 입에 부어주고, 벤치 위에 눕힌 다음, 머플러로 눈을 덮어주었다. 그는 신음하면서 거기에 누워 있었다. 잠시 후에 코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녀석의 제안을 어떡할까. 하고 칼이 말한다. 받아들이는 게 좋을까. 녀석은 돌아오면 1천 프랑을 내게 주겠다는 거야. 주지 않으리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어떡할까? 그는 벤치에 단정치 못하게 눕혀져 있는 말로를 바라보고, 그의 눈에 덮인 머플러를 젖혀보고, 다시 덮어주었다. 갑자기 짓궂은 쓴 웃음이 그의 얼굴에 떠올랐다. 이봐, 죠 하고 그는 손짓하며 나를 옆으로 부르면서 말한다. 녀석의 이야기를 받아들이세. 녀석의 엉성한 잡지를 떠맡아 녀석에게 어울리도록 만들어주세. 그건 무슨 뜻이지? 다른 기고가들을 모두 몰아내고, 우리의 글만을 싣는 거야 ― 그게 좋아. 음, 하지만 어떤 글을 쓰지? 무엇이든 좋아... 이 녀석은 이에 대해 어쩔 도리가 없는 거야. 녀석에게 어울리도록 충분히 곯려주는 거야. 1호만 내고, 잡지는 그대로 폐간시키는 거야. 죠, 한바탕 승부를 겨뤄보지 않겠어. 싱글싱글 웃으면서 우리는 말로를 일으켜 세워, 칼의 방으로 옮겨주었다. 불을 켜보니, 여자 한 명이 침대 속에서 칼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여자를 잊고 있었군. 하고 칼은 말하였다. 우리는 여자를 돌려보내고, 말로를 침대에 눕혀주었다. 1분쯤 지나자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반 놀든이다. 꽤나 상냥한 태도로, 의치를 잃어버렸어 ― 네글 무도장에서 잃어버린 모양이야 하고 그는 말한다. 어쨌든 우리는 넷이서 침대로 들어갔다. 말로는 소금에 절이고 연기에 그슬려서 말린 물고기처럼 지독한 냄새를 풍겼다. 아침에 말로와 반 놀든은 의치를 찾으러 나갔다. 말로는 훌쩍거리며 울고 있었다. 그는 없어진 게 자신의 이빨인 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 극작가의 집에서 먹는 나의 마지막 저녁 식사이다. 이들 부부는 최근 새로운 피아노 ― 음악회용인 그랜드 피아노 ― 를 빌렸다. 나는 꽃집가게에서 고무나무를 껴안고 나오는 실베스터와 마주쳤다. 그는 여송연을 사러 갈 테니, 그동안에 고무나무를 내가 갖다줬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나는 스스로 힘겹게 계획한 이러한 종류의 그저 얻어먹을 식사 대접을, 잇따라 포기해야 하는 모양이다. 남편이나 아내가, 내게 잇따라 반감을 갖는 것이다. 식물을 안고 걸어가면서, 나는 이러한 생각이 처음으로 머리에 떠오른 4,5개월 전의 어느날 밤의 일을 생각하였다. 그때 나는 쿠포르 부근의 벤치에 걸터앉아, 돔의 사환에게 전당잡혀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는 결혼 반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가 6프랑을 제시하여, 나는 화를 내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시장기가 중요해졌다. 모나와 헤어진 이후로, 나는 이 반지를 새끼손가락에 끼우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내 몸의 일부분처럼 여겨졌으므로, 팔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화이트 골드에 꽃무늬를 곁들인 흔해빠진 것이다. 이전에는 1달러 50센트 내지는 그 이상이나 훗가한 것이다. 3년 동안 우린 결혼 반지 없이 지내고 있었는데, 어느날 선창가로 모나를 마중 나가는 길에, 문득 메이든 레인의 보석상 쇼윈도우 앞을 지나치자, 창가에 온통 결혼 반지만 진열되어 있었다. 선창가로 나갔지만 모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배에서 마지막 손님이 내려올 때까지 기다려 보았지만, 모나는 없었다. 마지막으로 선객 명부를 보여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녀의 이름은 실려 있지 않았다. 나는 결혼 반지를 새끼손가락에 끼웠다. 그 이후로 죽 끼우고 있었던 것이다. 한 번은 대중 목욕탕에 두고 온 적이 있지만, 그때는 되찾았다. 오렌지꽃무늬 하나가 벗겨져 나가 버렸다. 아무튼 내가 고개를 숙이고 벤치에 앉아 반지를 만지작거리고 있으려니까, 갑자기 누군가가 내 등을 두드린다. 간단히 말하면, 이리하여 나는 1회의 식사와 몇 프랑인가를 손에 넣은 것이다. 그래서 번개처럼 내 머리에 번뜩인 것은, 사람이 만일 그것을 요구할 용기만 갖고 있다면, 아무도 그에게 1회의 식사를 제공하기를 거절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나는 곧 카페로 가서, 10여 통의 편지를 썼다. 일주일에 한 번씩 당신과 함께 식사를 하고 싶습니다. 어떤 요일이 제일 편리한지 알려주세요. 마치 마술을 부리듯이 잘 되어갔다. 나는 식사를 대접받았을 뿐만 아니라... 술의 향응까지 제공받았다. 밤마다 나는 술에 잔뜩 취해 집으로 돌아갔다. 이 일주일에 한 번씩 선심을 쓰는 이들도, 내게 충분한 대우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날에는 내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그들은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이따금 사려 깊은 이들은 여송연이나 교통비를 주었다. 그들은 모두 분명히 일주일에 한 번만 나를 만나면 된다는 것을 알고, 안심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내가 이제 앞으로는 괜찮다 고 말했을 때, 더욱 안심을 했다. 왜냐고는 결코 물어보지 않았다. 그들은 내게 축하한다고 말하고 ― 그뿐이었다. 그 이유는 내가 보다 나은 패트런(patron)을 발견한 때문인 경우가 많았다. 나는 거북한 자들을 제외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를 결코 알아채지 못하였다. 마지막으로 나는 착실. 견고한 프로그램 ― 정해진 스케줄 ― 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화요일에는 이러한 종류의 식사를 할 수 있고, 금요일에는 저러한 종류의... 라는 식이다. 크론 슈타트는 샴페인과 손으로 만든 애플파이를 내게 마련해 주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또 칼을 나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 번번이 다른 요리집으로 안내하고는 진귀한 포도주를 주문하고, 식사가 끝나면 극장이나 메드라노의 서커스장 등에 데려가곤 하였다. 나의 시주들은, 서로 다른 시지에 대한 호기심을 느껴 물어보곤 했다. 당신은 누구를 가장 좋아하며, 어느 식당의 요리가 가장 맛있냐는 따위의 질문을 하였다. 나는 크론 슈타트의 집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그가 식사할 때마다 식단의 비용을 벽에다 초크로 계산하기 때문이다. 이를 보고 나는 그에게 얼마만큼의 빚을 지고 있는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양심이 편해지기 위해서는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에게 빚을 갚을 생각이 없고, 그 역시 되돌려 받을 수 있으리라는 환상은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흥미를 끈 것은, 실로 그 우수리이다. 그는 언제나 마지막 1상팀(cen­time)(역주 ; 프랑스·스위스의 화폐 단위. 프랑의 100분의 1)까지 계산하는 것이다. 만일 내가 정확히 빚을 갚으려고 한다면, 1수(역주 ; sou. 프랑스의 화폐 단위. 1수는 5상팀)의 동화를 여러 개로 나누어야 하리라. 그의 아내는 훌륭한 요리의 명인으로, 크론 슈타트가 계산하는 상팀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녀는 복사기를 내게서 받아냄으로써, 나로 하여금 지불하게 만드는 것이다. 정말이다! 만일 내가 그녀에게 건네줄 새로운 복사지를 준비하지 않고 모습을 나타내면, 그녀는 몹시 실망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튿날 룩상부르로 그녀를 데리고 가서, 두세 시간쯤 함께 놀아주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녀는 헝가리어와 프랑스어밖에 할 줄 모르므로, 이러한 노동은 나를 녹초가 되게 만들었다. 요컨대 그들 ― 나의 시주들 ― 은 기묘한 자들뿐이었다. 타니아의 집은 발코니에서, 나는 음식이 차려져 있는 것을 내려다보았다. 모르돌프가 그의 우상의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는 난로에 발을 쬐고 있는 것이다. 그의 물기가 어리어 흐릿해진 눈에는, 감사해하는 추악하고 괴이한 표정이 깃들어 있었다. 타니아는 아다지오로, 그 느린 어조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다지오는 매우 명석하게 이야기하였다. 이미 사랑의 말들이 속삭여지고 있지는 않았다! 나는 또 우물가로 가서, 거북이가 녹색의 액체를 배설하고 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실베스터가 애정으로 충만한 표정으로 브로드웨이로부터 돌아온 지 얼마 안된 때였다. 밤새도록 나는 산책로 옆의 벤치에 앉아 있었는데, 그 동안에 이 둥근 우물가에서는 물보라 ― 따스한 거북이의 소변 ― 가 치고, 노기를 띤 남근신처럼 딱딱해진 말들은 결코 대지에 발을 대지 않은 채 광분하고 있었다. 밤새도록 나는 그녀가 머리를 빗고 있는 어두운 방의 라일락꽃 냄새를 맡았다. 그녀가 실베스터를 만나러 갔을 때에 내가 사준 라일락꽃이다. 그가 애정으로 충만한 표정으로 돌아왔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리고 라일락은 그녀의 머리칼이나 그녀의 입, 그녀의 겨드랑이 밑에서 흐느껴 울뿐이었다. 방안은 애정과 거북이의 소변과 따스한 라일락으로 충만해 있고, 말들이 광분하고 있었다. 이튿날 아침에는 유리창에 이빨과 이똥이 비쳐지고 있었다. 산책로로 나가는 작은 문은 닫혀져 있었다. 사람들은 일을 하러 나가고, 셔터가 올려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다. 연못 맞은편의 책방에는 차드호(역주 ; 중앙 아프리카의 호수. 왕가라 호라고도 함) 의 이야기를 적은 책과 호화로운 감포지색의 도마뱀(박제)이 있었다. 내가 그녀에게 보낸 편지 ― 술에 잔뜩 취해 몽당연필로 쓴 것도 있고, 미치광이처럼 숯으로 갈겨 쓴 것. 벤치에서 벤치로 옮아 다니며 짧게 갈겨 쓴 것도 있다 ― 그리고 울화통, 식탁의 냅킨, 과일, 과자 ― 이것들은 모두 그들의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언젠가는 나에게 아첨의 말을 하리라. 그는 여송연의 재를 털면서 말하리라. 정말 당신은 글을 잘 쓰는군. 가만, 당신은 쉬르리얼리스트 아니오? 메마르고 강박한 목소리, 이똥이 잔뜩 끼어 있는 이빨, 태양 신경총의 독주곡, 광기의 G. 고무나무가 있는 위층의 발코니 ― 그리고 아래에서는 아직도 아다지오가 계속되고 있다. 피아노의 건반은 흑과 백으로 되어 있다. 지금은 흑, 다음은 백, 그리고 백과 흑. 너는 나를 위해 무슨 곡을 칠 수 있을까 하고 ― 그것을 알고 싶어하고 있는 거군. 좋아, 너의 그 커다란 손가락으로 무슨 곡이든 쳐다오. 그것이 네가 알고 있는 유일한 것이니까. 아다지오를 치는 게 좋아. 쳐요. 친 다음에는 너의 그 커다란 손가락을 잘라 버리라구. 아아, 저 아다지오! 나는 왜 그녀가 언제나 저것을 치고 싶어하는지 알 수가 없다. 낡은 피아노로는 그녀는 만족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랜드 피아노를 빌리지 않으면 안되었다 ― 아다지오를 위해서이다! 건반을 누르는 그녀의 커다란 손가락과, 내 옆에 있는 어리석은 고무나무를 보면, 나는 겨울철에 옷을 벗어버리고 벌거숭이인 채로 나뭇가지에 올라앉아, 청어가 얼어붙어 있는 바다 속으로 나무 열매를 집어던진 북극의 그 광인 같은 느낌이 든다. 이 동작에는 뭔가 짜증이 나게 만드는 게 있다. 뭔가 우울해져 버릴 수 없는 것, 용암에 씌어진 문자와도 같은 것, 납과 밀크를 혼합한 색깔과도 같은 것이 있다. 그러자 실베스터가 경매인처럼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한다. 오늘 당신이 연습하고 있던 또 하나의 곡을 쳐봐요. 스모킹 쟈켓을 입고, 고급 여송연을 피우며, 아내에게 피아노를 치게 하다니, 정말 좋은 신분이다. 정말 태평스럽다. 정말 평온한 풍경이다. 막간에는 누구나 담배를 피우러 나가서,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신다. 그녀의 손가락은 부드럽다. 유달리 부드럽다. 그녀는 빠띠끄도 제작한다. 그런데 불가리아의 여송연을 한 가치 피워 보겠나? 이봐, 새가슴 부인, 내가 아주 좋아하는 악장은 무엇이었지? 스켈초예요! 아아, 그래, 스켈초야! 멋있어, 스켈초는! 발데마르 폰 슈이센아인츠그 백작이 말한다. 차갑고 눈꼽이 낀 눈. 호흡할 때 풍기는 기묘한 악취. 화려하고 짧은 양말. 그리고 푸르대콩 수프는 어때. 마음에 들면 만들어 줘요. 집에서는 금요일 밤에는 언제나 푸르대콩 수프를 먹거든. 붉은 포도주를 조금 맛보겠나? 붉은 포도주는 몸에 좋은 거라구. 메마른 목소리. 여송연을 안 피우겠나? 그래, 나는 자신의 일이 마음에 들긴 해도, 훌륭한 것이라고는 조금도 생각하고 있지 않아. 이번의 각본에는, 우주의 다원론적인 견해를 도입할 작정이야. 칼슘 등불이 켜진 회전하는 북이야. 오닐은 이미 죽어 버렸어. 이봐, 자네, 좀더 활발히 페달에서 발을 들어올려야 하리라고 생각하는데. 음, 그건 아주 좋아, 썩 좋아, 자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그래, 인물은 모두 바지 속에 마이크로폰을 집어넣고 걸어다닌다구. 아시아를 배경으로 삼아요. 분위기 등의 조건을 다루기가 좋으니까. 작은 만두를 하나 먹어 봐요. 자네를 위해 특별히 사둔 거라구... 식사하는 도안, 이러한 이야기들이 계속된다. 마치 할례를 받은 그의 물건 을 꺼내어, 우리에게 소변을 뿜어대고 있는 듯한, 꼭 그러한 느낌이다. 타니아는 흥분하여 폭발할 것처럼 되어 있다. 애정으로 충만한 표정으로 돌아온 이후로, 이 독백은 죽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옷을 벗고 있는 동안에도,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하고 그녀는 내게 말한다 ― 마치 방광에 펑크가 난 것처럼 따스한 소변이 끊임없이 흘러내린다. 이 파열된 방광 과 함께 타니아가 침대에 들어가리라는 것을 생각하니, 나는 화가난다. 브로드웨이 취향의 싸구려 각본을 손에 들고 있는 초라한 늙은이 녀석이, 내가 사랑하는 여자에게 오줌을 뿜어대고 있다고 생각하니, 화가 나는 것이다. 붉은 포도주니, 회전하는 북이니, 푸르대콩 수프니 하고 지껄여대면서... 정말 뻔뻔스러운 녀석이야! 내가 녀석을 위해 피워놓은 난로 옆에 드러누워 오줌을 누는 짓 이외에는 아무 일도 안하다니! 이 얼간이 녀석아, 너는 무릎을 꿇고 내게 고맙다고 말해야 한다. 지금 너는 집안에 한 여자를 갖고 있단 말이다. 그것을 너는 알지 못하는가? 그녀가 파열되어 가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는가. 너는 그 잘룩한 아데노이드(역주 ; 편도선이 비대하는 병)로써 나를 향해 말하고 있다. 그런데 말야, 내 생각을 말하면... 두 가지 견해가 있어요... 너의 두 가지 견해 따위는 거지발싸개 같은 거야! 너의 다원적 우주나 아시아적 음향 따위도 거지발싸개 같은 거야! 붉은 포도주나 만두도 나는 소용없다... 그녀를 보내라... 그녀는 내것이다! 너는 연못가에 앉아, 내게 라일락꽃 향기라도 보내다오! 눈에 낀 눈꼽을 닦고... 그리고 그 비열한 아다지오 따위는 플란넬 팬츠 속에 담아 버려라... 또 하나의 작은 악장도... 그밖에 네가 너의 허약한 방광을 가지고 하는 동작 따위도 모두... 너는 아주 안심이 되는 것처럼, 의미가 있는 것처럼 내게 웃어 보인다. 나는 너를 교묘하게 구슬리고 있는 거야. 그걸 알지 못하는가. 내가 너의 실없는 소리를 경청하고 있는 사이에, 그녀는 손을 내게 맡기고 있단 말이다. ― 하지만 네게는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 너는 내가 괴로워하는 것을 좋아하고 있다고 여기고 있다 ― 그게 나의 역할이라고 너는 말한다. OK. 그녀에게 물어보라구! 내가 얼마나 괴로워하고 있는지, 그녀가 이야기해 줄 것이다. 당신은 암과 섬망증을 앓고 있어요. 하고 전화로, 그녀는 며칠 전에도 내게 말했었다. 지금 그녀도 그 병에 걸려 있다. 암과 섬망증. 그리고 머지않아 너는 부스럼 딱지를 쥐어뜯게 되리라. 알겠나, 그녀의 혈관이 파열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네가 지껄이는 말은 톱밥 투성이다. 아무리 소변을 많이 흘려도, 너는 그 구멍을 막을 수가 없다. 레인 씨는 뭐라고 말했지? 말(언어)는 고독합니다 나는 어제 저녁에, 테이블 크로스 위에 네가 읽어보도록 짧은 메모를 적어 두었는데 ― 너는 그것을 팔꿈치로 가려 버렸다. 그는 마치 그녀가 불결한 악취를 풍기는 성자의 유해라도 되는 것처럼, 그녀의 주위에 울타리를 친다. 만일 그에게 그녀를 채어 가라! 고 말할 수 있을 만큼의 용기가 있다면, 아마도 기적이 일어나리라. 그녀를 채어가라! 고 한 마디 하기만 하면, 만사가 잘 되어가리라고 나는 단언한다. 더욱이 아마도 나는 그녀를 빼앗지 않을 것이다 ― 녀석에게는 과연 이러한 생각이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 것일까? 혹은 그녀를 잠시 빼앗아 두었다가 돌려줄 것이다. 진보된 그녀를 하지만 그녀의 주위에 울타리를 쳐버리면, 그럴 수는 없다. 인간의 주위에 울타리를 마련할 수는 없다. 그러한 짓은 이미 쓸모가 없다... 비참한 늙은이 녀석인 너는, 내가 그녀에게 해롭다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그녀를 타락시키고, 그녀의 신성함을 더럽힌다고 생각하고 있다. 더럽혀진 여자가 얼마나 감미로운가를 ― 정액의 변화가 얼마나 여자를 환하게 꽃피우는가를 ― 너는 알지 못하는 것이다! 가슴에 충만한 애정만으로 충분하다고 너는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아마도 올바른 여자에게는 그럴 테지만, 너는 심장 같은 것을 이미 갖고 있지 않을 게다... 너는 커다랗고 속이 텅 빈 방광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너는 이빨을 드러내고, 신음 소리를 되풀이하고 있다. 파수 보는 개처럼 그녀를 뒤쫓아 다니며, 어디서나 오줌을 눈다. 그녀는 너를 파수 보는 개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다... 시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원래는 시인이었어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래, 지금의 너는 무엇인가? 바지 속의 마이크로폰을 끄집어 내라구. 뒷발질하는 짓을 그만두라구. 어디에나 오줌을 뿜어대지 말라구. 용기를 내라고 내가 말하는 것은, 그녀가 이미 너를 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미 더럽혀져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울타리를 제거해도 마찬가지이다. 이 커피는 탄산 비슷한 맛이 나지 않아? 하고 내게 친절한 듯이 물어보아도 소용없다. 나는 하나도 무섭지 않다. 커피 속에 쥐약이든 유리가루든 무엇이든 집어넣어 보라구. 오줌을 뜨겁게 끓이고, 그 속에 육두구라도 약간 떨구어 보라구... 지난 수주일 동안의 나의 생활은 공산적인 생활이었다. 나는 스스로를 타인과 공유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주로 몇 명의 미치광이 같은 러시아인과, 한 명의 술에 잔뜩 취한 네덜란드인, 그리고 올가라는 이름의 몸집이 큰 불가리아 여자와... 러시안인들 중의 주요한 인간은 유제느와 아나톨이다. 올가가 몇 개의 관상 기관을 불태워, 과잉된 몸무게를 얼마간 감소시키고 병원에서 나온 것은, 4, 5일 전의 일이다. 하지만 그녀는 심한 고통을 겪어온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녀의 몸은 낙타의 등 모양을 하고 있는 기관차 정도의 무게는 나갈 것 같다. 땀을 뻘뻘 흘리고, 입냄새를 풍기며, 가구 속에 채우는 톱밥 모양의 서커스용 가발을 아직도 쓰고 있다. 턱에 두 개의 커다란 혹이 달려 있고, 거기에 짧은 털이 잔뜩 자라고 있다. 게다가 콧수염까지 기르고 있다. 퇴원한 이튿날부터 올가는 다시 구두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아침 여섯시에 그녀는 자신의 벤치에 걸터앉는다. 그리고 하루에 두 켤레의 구두를 만들어낸다. 유제느는 올가가 거추장스럽다고 불평을 하지만, 실은 올가가 유제느 부부를 하루 두 켤레의 구두로 부양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올가가 일을 하지 않으면, 먹을 것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모두들 올가가 제시간에 잠을 자도록 해주거나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충분한 음식을 마련해 주는 등 무척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다. 식사는 언제나 수프로 시작된다. 양파 수프든, 토마토 수프든, 야채 수프든, 어떤 수프든 간에, 수프의 맛은 언제나 똑같다. 대체로 누더기를 삶은 듯한 맛이 난다 ― 약간 시고, 곰팡내가 나고, 쇠붙이 냄새가 난다. 나는 유제느가 식사를 한 후에, 변기 속에 그것을 감추는 것을 알고 있다. 다음 식사 때까지 그것은 썩으면서 거기에 놓여 있다. 버터도 변기 속에 감춰진다. 사흘 후에 그것은 죽은 사람의 커다란 발가락 냄새와도 같은 맛이 된다. 썩은 버터가 구워지는 냄새는 별로 식욕을 돋구지 않는다. 특히 요리를 하는 장소에 최소한의 환기 장치도 없을 경우는 더욱 그렇다. 방문을 열기가 무섭게 나는 환자가 된다. 하지만 유제느는 내 발걸음 소리를 들으면 대개 곧 덧문을 열어젖힌다. 혹은 햇빛을 받지 않도록 어망처럼 말아놓은 침대의 시트를 펼치곤 한다. 가엾은 유제느! 그는 약간의 가구나 더렵혀진 시트, 더러운 물이 담겨져 있는 세면기 등을 둘러보며 말한다. 나는 노예야! 매일 그는 이 말을 되풀이 한다. 열 번도 더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벽에 걸린 기타를 집어 들고 노래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썩은 버터 냄새와 관련해서는...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 썩은 버터 생각을 하면, 나는 자신이 고색창연하고 작은 안마당 ― 심한 악취가 풍기는 쓸쓸한 안마당 ― 에 서 있는 광경이 머리에 떠오른다. 덧문의 틈새로 기묘한 모습의 인간들이 나를 내다보고 있다... 숄을 걸친 노파나 난쟁이, 쥐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뚜쟁이, 허리가 구부러진 유태인, 여공, 턱수염을 기르고 있는 백치 따위. 이들은 물을 길으로, 혹은 물통을 씻기 위해 안마당으로 비틀거리며 나온다. 어느날 유제느가 통 속의 더러운 물을 버려달라고 내게 부탁하였다. 나는 그것을 갖고 마당의 한쪽 구석으로 갔다. 지면에 구멍이 있고, 더러운 종이가 구멍 주위에 떨어져 있었다. 작은 구멍에는 미끈미끔한 모양의 배설물 ― 영어로 말하면 shit(똥) ― 이 들어 있었다. 물통을 기울이자, 부글거리는 듯한 불렬한 소리가 나면서 진흙이 튀었다. 돌아와 보니, 수프가 나와 있었다. 식사를 하는 동안, 나는 자신의 치솔을 머리에 떠올리고 있었다 ― 그것은 너무 낡아서 솔이 잇새에 끼이는 것이다. 식사를 할 때에는, 나는 언제나 창문 가까운 곳에 앉았다. 방 안쪽에 앉기가 두려운 것이다 ― 거기는 침대와 너무 가깝고, 침대에는 벌레가 우글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쥐색의 시트 위로 눈을 돌리면 핏자국이 보이지만, 나는 그쪽을 보지 않고, 사람들이 더러운 물통을 씻고 있는 안마당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식사는 음악이 연주되지 않고는 결코 끝나지 않는다. 치즈가 나올 무렵에는, 이미 유제느가 벌떡 일어나 침대 뒤에 걸려 있는 기타를 집어 든다. 언제나 똑같은 노래이다. 15종인가 16종의 연주 종목을 갖고 있다고 그는 말하지만, 나는 세 가지 이상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의 십팔번은 『아름다운 사랑의 시』이다. 이 노래에는 번민 이나 슬픔 이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오후에 우리는 서늘하고 어두운 영화관으로 나간다. 유제느는 바닥에 놓여 있는 커다란 피아노 앞에 앉고, 나는 제일 앞쪽의 벤치에 걸터앉는다. 영화관 안은 텅 비어 있다. 그러나 유제느는 온 유럽의 임금님들을 청중으로 삼고 있는 것처럼 노래한다. 정원 쪽의 문이 열려 있으므로, 젖은 나뭇잎 냄새가 풍겨오고, 빗소리가 유제느의 앵거바스나 토리스테스와 뒤섞여 버린다. 한밤중에, 관객들이 영화관 안을 땀과 불결한 숨결로 가득 채운다음, 나는 다시 이곳에 와서 벤치 위에서 잠이 든다. 담배 연기 속에서 일렁이고 있는 출구의 등불이, 아스페스트로 만들어진 커튼 밑의 구석 쪽으로 희미한 불빛을 흘려보내고 있다. 나는 밤마다 의안을 통해 내 눈을 감는다... 유리로 된 외눈이 모습으로 안마당에 서 있다. 세계가 절반밖에 감지되지 않는다. 젖은 돌에는 이끼가 끼고, 돌의 틈새에 검은 두꺼비가 있다. 커다란 문이 움막의 입구를 막고 있다. 미끄러질 듯한 계단에는, 박쥐의 똥이 쌓여 있다. 문이 뒤틀려져 경첩이 떨어져 나갈 것처럼 보이는데, 판자에는 조금도 벗겨지지 않은 에나멜 문자가 씌어져 있다 ―〈반드시 문을 닫을 것〉왜 문을 닫는가? 나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 한 번 더 간판을 바라보지만, 그것은 제거되어 있다. 그 자리에 색유리 한 장이 끼워져 있다. 나는 의안을 벗어 들고, 침을 약간 뱉은 다름에 손수건으로 닦는다. 한 명의 여자가, 굉장히 큰 조각품이 놓여 있는 데스크 위의 대좌에 앉아 있다. 목 언저리에 한 마리의 뱀이 걸쳐져 있다. 방 안에 서적과 색유리로 만들어진 어항 속에서 헤엄치고 있는 진기한 물고기들이 나란히 놓여 있다. 벽에는 지도나 해도가 걸려 있다. 악성 유행병이 돌기 이전의 파리의 지도, 고대 세계 지도, 크노서스와 카르타고, 바닷물에 잠기기 이전과 이후의 카르타고의 지도 따위. 방의 한쪽 구석에 쇠로 만들어진 침대가 보이고, 그 위에 시체가 하나 가로놓여 있다. 여자는 울적한 듯이 일어서자, 침대 위의 시체를 움직인다. 그리고 방심한 듯이 그것을 창밖으로 내던진다. 이윽고 거대한 조각품이 놓여 있는 데스크 쪽으로 돌아오자, 어항 속의 금붕어 한 마리를 잡아 삼켜버린다. 방이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하면서, 대륙이 하나씩 바닷속으로 굴러떨어져 간다. 남아 있는 것은 여자뿐이지만, 그녀의 몸은 하나의 지리 이다. 나는 창밖으로 상반신을 내민다 ― 에펠탑은 거품이 이는 샴페인과도 같다. 이는 전체수가 수로 이루어져 있으며, 검은 레이스의 시의를 걸치고 있다. 도랑을 흘러가는 하수가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다. 보이는 것이라곤 사방이 지붕뿐이며, 화가 나게 만드는 기하학적 교지에 의해 배치되어 있다. 나는 탄약 껍질처럼 세상으로부터 튕겨져 나와 있다. 짙은 안개가 끼고, 대지는 얼어붙은 기름기 때문에 더럽혀져 있다. 나는 이 시가가, 따스한 육체에서 갓 끄집어낸 심장처럼 고동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나의 호텔의 창문은 썩어 문드러져 있으며, 불타고 있는 약품에서 풍기는 냄새와 같은 진하고, 콱 코를 찌르는 악취를 발산하고 있다. 세느 강을 들여다보면, 진흙과 황폐한 모양이 보인다. 가로등이 물 속에서 허위적거리고, 남자나 여자도 숨이 막혀 죽은 것처럼 답답해하고, 교량은 집들에 의해 가려져 있다. 집들은 사랑의 도살장이다. 한 사나이가 아코디언을 끈으로 배에 묶어두고, 벽에 기대어 있다. 그의 손은 손목 언저리에서 잘려나가고 없지만, 아코디언은 꿈틀거리듯이 연방 움직이고 있다. 우주가 움츠러든다. 그것은 겨우 1블록 정도의 길이가 되고, 별도 없고 나무도 없고 하천도 없다. 여기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죽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꿈 속에서 걸터앉기 위한 의자가 된다. 거리 한복판에 수레바퀴가 하나 있다. 그 수레바퀴의 바퀴통에 목매달아 죽는 기구가 설치되어 있다. 이미 죽은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그 기구에 기어오르려 하고 있다. 그러나 수레바퀴의 회전이 너무 빨라서... 나는 자신의 온전한 정신을 되찾기 위해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어젯밤에 나는 그것을 발견하였다 ― 파피니이다. 나에게 있어 그는 아웃사이더인가, 변변치 않은 기독교 신자인가, 아니면 근시안적인 현학가인가는 문제가 안된다. 하나의 실패 로서 내다보아도, 그는 멋있다... 그가 읽은 책들 ― 더욱이 열 여덟 살 때에 ― 은 호머나 단테, 괴테뿐만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나 플라톤, 에피쿠테토스뿐만 아니다. 라블레나 세르반테스, 스위프트뿐만이 아니다. 월트 휘트만, 에드가 앨런포우, 보들레르, 비용, 카르도치, 만조니, 로페 드 베가뿐만이 아니다. 니체, 효펜하워, 칸트, 헤겔, 다윈, 스펜서, 헉슬리뿐만이 아니다 ― 그뿐만 아니라, 그 사이에 쓸데없는 잡서들까지 읽고 있는 것이다. 이는 18페이지에 씌어져 있다. 그리고 232페이지에 이르러 마침내 그는 쓰러져 참회를 한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 고 그는 자각하낟. 나는 표제를 알고 있다. 나는 서지를 편찬하였다. 나는 비평적인 에세이를 썼다... 나는 적대시당하고 모욕을 당하였다... 나는 5분간이라도, 5일간이라도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다음에 나는 기진맥진하여 녹초가 되어버렸다. 이에 이어 ―〈누구나 나를 만나고 싶어한다. 누구나 나와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강요한다. 사람들은 나를 괴롭히고, 또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고 물으며 타인을 괴롭힌다. 그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그는 완전히 건강을 회복했는가? 그는 지금도 시골로 산책을 나가는가? 그가 일을 하고 있는가? 그가 책을 펴내는 작업을 끝냈는가? 그는 곧 다음 저술을 펴내는 일에 착수하는가?〉 〈어느 인색하고 원숭이 같은 독일인이 내가 그의 저작을 번역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짐승 같은 눈을 하고 있는 러시아 아가씨가, 그녀를 위해 내 생활에 관한 글을 쓰라고 한다. 미국의 한 부인은, 나에 관한 최근의 뉴스를 듣고 싶어한다. 미국의 한 신사는 나를 만찬장에 데려가려고 승용차를 보내온다 ― 긴히 들려줄 비밀 이야기가 있다면서. 10년 전인 학교 다닐 때의 친구였던 사나이가, 내가 쓰고 있는 원고를 모두 읽어달라고 한다. 친구인 화가는 약속한 시각에 내가 그를 위해 포즈를 취해 주리라고 기대하고 있다. 어느 신문 기자는, 나의 현재의 주소를 알고 싶어한다. 내가 알고 있는 어느 신비주의자는, 내 영혼의 상황에 대해 질문을 한다. 내가 알고 있는 훨씬 더 실제적인 사나이는, 내 지갑의 상황에 대해 질문을 한다. 클럽의 회장은, 내가 소년들을 위해 연설할 의향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걱정을 한다! 심령학적 경향이 있는 어느 숙녀는, 내가 되도록 빈번히 그녀의 집에 차를 마시러 가기를 희망한다.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내 의견을 들어보고 싶어하고, 또 ― 내가 그 새로운 영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위대한 신이여! 나는 어떤 존재가 되었는가? 너희는 무슨 권리가 있다고 내 생활을 소란하게 만들고, 내 시간을 훔치며, 내 영혼을 탐색하고, 내 사상을 흡수하며, 나를 너희의 친구나 비밀스런 고백의 상대, 정보국 따위로 만드는가? 나를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나는 매일밤 나희의 얼빠진 듯한 얼굴 앞에서 지적인 코메디 극을 연출하도록 요구받는 고용된 연예사인가? 나는 게으름뱅이인 너희들 앞에서 기어다니거나 너희의 발밑에 내가 하는 일이나 알고 있는 일을 모두 진열해 보이기 위해 고용되어 임금을 받고 있는 노예인가? 나는 창녀의 집을 찾아오는 첫 번째 손님인 말쑥한 옷차림의 돋보이는 신사의 요구를 받고, 스커트를 걷어올리거나 속치마를 벗곤 하는 창녀인가?〉 〈나는 영웅적인 생애를 보내며, 내가 내다보고 있는 세계를, 보다 인내하기 쉬운 것으로 만들려고 생각하고 있는 인간이다. 만일 일시적인 나약함이나 이완 또는 필요성 때문에, 내가 축적된 증기 ― 언어화 되어 약간 냉각된 뜨거운 울분 의 일부 ― 를 뿜어낸다면, 또 정열적인 꿈이 심상에 의해 포위되고 결박된다면... 그때는 그것을 취하거나 버리도록 하라... 하지만 나를 방해하지 말아주기 바란다!〉 〈나는 자유인이다 ― 그러므로 나는 자유를 원한다. 나는 고독을 원한다. 혼자서 조용히 나의 치욕이나 절망에 대해 사색하기를 원한다. 나는 동반자 없이 대화하는 일 없이 햇볕을 받으며 거리의 보도를 걸어가기를 원한다. 스스로와 마주 대하면, 내 마음의 음악만을 길동무 삼아. 너희는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가? 내가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나는 그것을 인쇄해 둔다. 내가 뭔가 건네주고 싶은 게 있으면, 나는 그것을 부여한다. 너희의 욕심이 나는 듯한 호기심은, 내 가슴을 메슥거리게 만들 뿐이다! 너희의 아첨하는 말은, 내게 굴욕감을 느끼게 한다. 너희의 차가 내게는 독약이 되는 것이다! 나는 누구에게도 갚아야 할 정신적 물질적인 빚이 없다. 나는 신에 대해서만 책임을 진다 ― 만일 신이 존재한다면!〉 파피니가 고독해지고 싶은 욕구에 대해 말할 때, 사소한 일이지만 무엇인가를 간과하고 있는 것처럼 내게는 생각된다. 인간은 가난하고 실의에 빠져 있으면, 고독해지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예술가는 언제나 고독하다 ― 만일 그가 진짜 예술가라면 아니, 예술가가 원하는 것이야말로 고독인 것이다. 예술가 ― 나는 나 자신을 이렇게 부른다. 그러니까 그렇게 되면 좋은 것이다. 오늘 오후에는 정말 상쾌한 선잠을 잤다. 마치 척추 사이에 빌로드라도 가득 집어넣은 듯한 기분이다. 사흘 정도는 유지가 될 듯한 상념을 낳았다. 에너지를 잔뜩 축적하고 있지만, 이를 아무 데도 사용하지 않는다. 잠시 산책을 하기로 한다. 거리에서 생각이 바뀐다. 영화를 보러 가기로 한다. 영화를 보러 갈 수는 없다 ― 2, 3수(역주 ; 프랑스의 화폐 단위) 모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산책을 한다. 영화고나 앞을 지날 때마다 그림 광고판을 보고, 그리고 요금표를 들여다본다. 이 아편굴 같은 영화관의 요금들은 정말 싸다. 하지만 내게는 2, 3수가 모자라는 것이다. 이토록 시간이 늦지 않으면, 집으로 되돌아가 빈병이라도 주고 돈을 마련할 텐데. 아메리가까지 올 무렵에는, 영화에 관한 생각은 완전히 잊고 있었다. 아메리가는 내가 좋아하는 거리의 하나이다. 이는 다행히도 시 당국이 포장하기를 잊고 있는 가로의 하나이다. 커다란 돌맹이가 길바닥에 잔뜩 깔려져 있다. 아메리가에는 작은 교회당도 있다. 이는 특별히 공화국의 대통령과 그의 가족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보인다. 때로는 검소하고 작은 교회당을 구경하는 것도 기분좋은 일이다. 파리에는 거창하게 꾸며놓은 대사원이 너무 많다. 알렉산더 3세교. 다리 부근의 넓다란 노천 상태의 빈 터. 음산한 벌거숭이의 길거리가, 그 철구조물에 의해 수학적으로 고정되어 있다. 폐병들이 음울함이 돔(dome)으로부터 솟아올라, 광장 옆의 가로로 넘쳐나오고 있다. 시의 시체를 안치해둔 곳. 사람들은 지금 그를, 그 위대한 전사를, 유럽 최후의 큰 인물을, 그들이 놓아두고 싶었던 곳에 안치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침대 속에서 깊이 잠들어 있다. 그의 공포 가 무덤 속에서는 몸을 뒤척이지 않는다. 문은 견고히 닫혀져 있다. 덮개가 단단히 덮여져 있다. 잠자라, 나폴레옹이여! 그들이 원한 것은 그대의 사상이 아니었다 ― 그대의 유해에 지나지 않았다! 강물은 여전히 흙탕물인 채 물이 불어나며 빛의 얼룩을 띠고 있다. 이 어둡고 빠르게 흘러가는 강물을 볼 때, 나의 내부에서 솟아오르는 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떤 커다란 흥분 이 나를 끌어올림으로써, 결코 이 땅을 떠나지 않으리라는 마음 속의 깊은 희망을 긍정하게 만든다. 나는 며칠 전의 아침에,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로 가는 도중에 이 길을 자나간 것을 생각해낸다. 그때 나는 편지나 수표, 전보 따위가 하나도 도착해 있지 않으리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갤러리 라파이에트 쪽에서 온 짐수레가 다리를 건너간다. 바가 멎자, 비누 모양의 구름을 부수고 나온 태양이, 빗물에 젖어 빛나는 지붕의 기와에 차가운 빛을 발산하고 있다. 나는 지금, 그 짐수레를 끄는 사나이가 강물의 상류 쪽인 파시 방면을 바라보고 있던 것을 생각해낸다. 실로 건강하고 단순하고 긍정적인 시선이며, 마치 아아, 봄이 오는구나! 하고 혼잣말을 하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신이야말로 알고 있다 ― 파리에 봄이 올 때, 이 세상의 가장 비천한 생물조차도 천국에 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 것임에 틀림없다는 것을.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었다 ― 이 정경에 눈길을 보낸 그의 친근감이 거기에는 있었다. 그것은 그의 파리였다. 이렇게 파리를 느끼기 위해서는, 부자일 필요는 없다. 시민일 필요조차도 없다. 파리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 이전에 이 지상을 걸어다닌 이들 중 가장 뽐내며 걸어다니고 또 가장 더러웠던 많은 거지들... 내게는 그렇게 생각된다. 하지만 그들은 마치 고향에라도 있는 듯한 착각을 안겨준다. 파리 사람들이 그밖의 모든 대도시의 시민들과 구별되는 것을 바로 이러한 점이다. 뉴욕의 경우를 생각하면, 매우 다른 점을 느끼게 된다. 뉴욕은 부자들에게도 자신이 쓸모없이 자라는 느낌을 갖게 만든다. 뉴욕은 차갑고, 휘황하며, 짓궂다. 건물이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는 진행되고 있는 활동에 대한 일종의 원자적인 착란이 있다. 정신없ㄱ이 발걸음을 재촉하면 재촉할수록 더욱더 기운이 상실된다. 끊임없이 들끓고 있지만, 이는 시험관 속에서의 사건과 마찬가지이다. 아무도 이것이 어떠한 일인가를 알지 못한다. 아무도 이 에너지를 지휘하지 않는다. 방대하고, 괴이하면서도 위대하다. 손을 쓸 도리가 없다. 거대한 창조적 박력 ― 하지만 철저한 불균형. 내가 태어나 자란 이 도시 ― 휘트먼이 노래한 이 맨하탄 거리를 생각할 때, 뜨겁고 맹목적인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뉴욕! 그 흰 감옥! 구더기가 들끓는 보도, 빵가게 앞에 줄지어 늘어선 사람들, 궁전과 같은 아편굴, 거기에 있는 유태인, 문둥이, 암살단,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권태로움, 단조로운 얼굴, 거리, 다리, 집들, 마천루, 식사, 포스터, 작업, 범죄, 그리고 연애 ― 도시 전체가 허무의 공동 위에 세워져 있는 것이다. 무의미하다. 절대적으로 무의미하다. 그리고 42번가! 세계의 정점 ― 이렇게 그들은 부른다. 그러면 저점은 어디에 있는가? 당신은 손을 내밀고 거리를 걸어다닐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당신의 모자에 쇠찌꺼기를 집어던지리라. 부자든 가난뱅이든 간에 사람들은 목뼈가 부러질만큼 고개를 젖히고 아름다운 백악의 감옥을 올려다보면서 걸어가고 있다. 그들은 눈먼 거위처럼 거리를 걸어간다. 서치라이트가 그들의 공허한 얼굴에 황홀한 얼룩을 그려준다. ♧ 〈인생이란 사람이 종일 생각하고 있는 바로 그것이다〉라고 에머슨은 말하였다. 만일 그렇다면, 나의 인생은 커다란 창자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종일 먹을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밤에도 음식에 관한 꿈을 꾼다. 하지만 나는 미국에 돌려보내 달라고 부탁하지는 않는다. 다시금 부부가 맞벌이를 하며 허위적거리는 생활을 보내고 싶지 않다. 아니, 나는 유럽의 빈민이 되는 쪽을 택한다. 신은 알고 있다 ― 나는 충분히 가난하다. 단지 한 사나이라는 것밖에는 내게 남아 있지 않다. 지난주에 나는 생계 문제는 대충 해결되었다고 생각했다. 자활해 갈 듯하다고 생각하였다. 우연히 한 명의 러시아인과 마주쳤다 ― 이름은 세르즈라고 한다. 그는 슈레느에 거주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망명한 이민이나 영락한 예술가들의 식민지가 있다. 혁명 전의 세르즈는 근위 대위였다. 키가 6피트 3인치나 되며, 물고기처럼 보드카를 마신다. 그의 아버지는 제독 비슷한 신분으로, 전함 포촘킨을 타고 있었다고 한다. 나는 약간 기묘한 상황 속에서 세르즈와 만났다. 음식 냄새를 맡으면서, 어느날 정오 무렵에 나는 폴리 베르제르 근방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 그 뒤쪽의 막다른 곳에 철문이 있는 좁은 골목길에 서 있었던 것이다. 나는 춤추는 아가씨하고라도 아무렇지 않게 스쳐 지나갔으면 하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그 부근에서 우물거리고 있었다. 그러자 덮개 없는 트럭 한 대가 보도 옆에 멈춰 섰다. 양손을 포켓에 집어넣고 서 있는 나를 보자, 운전사는 ― 이 사람이 곧 세르즈인데 ― 내게 철제 통을 끌어내리는 일을 거들어줄 수 없겠는가고 말했다. 내가 미국인이고 빈털터리임을 알게 되자, 그는 더할 나위 없이 기뻐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는 이전부터 영어 교사를 찾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극장 안으로 살충제 통을 굴려보내는 일을 거들어주고, 춤추는 아가씨들이 그 주위를 뛰어 다니는 것을 실컷 구경하였다. 이 사건은 나에게 있어 기묘한 형태로 발전하여갔다 ― 빈 집, 날개 속에서 춤추고 잇는 톱밥 인형, 살균제 통, 전함 포촘킨 ― 특히 세르즈의 좋은 인품. 그는 몸집이 크고 얌전한 사나이로서,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온전한 남자지만, 여자의 마음을 갖고 있었다. 부근의 카페 ― 카페 아티스트 ― 에서, 그는 재빨리 내게 숙식을 제공하겠다고 말하였다. 복도 바닥에 짚을 넣어서 만든 요를 깔아주겠다는 것이다. 레슨(영어 교습)의 사례로서는, 매일 식사를 제공하겠다고 한다. 러시아 식의 양이 많은 식사를... 그리고 만일 어떤 이유로 식사가 나오지 않을 경우에는 5프랑을 내겠다고 한다. 내게는 이게 멋있는 일로 생각되었다 ― 멋있다. 단 한 가지 문제는 어떻게 슈레느로부터 아메리칸 익스프레스까지 매일 다녀오느냐는 점이다. 세르즈는 당장 시작하자고 재촉한다 ― 저녁때에 슈레느까지 타고 올 전차 값을 주겠다고 말하였다. 나는 저녁 식사를 하기 조금 전에, 세르즈에게 영어를 가르쳐주기 위해 휴대용 룩작을 둘러메고 도착하였다. 몇 명의 손님이 이미 와 있었다 ― 이들은 언제나 모여서 식사를 하는 모양이며, 누구나 끼여들곤 하는 모양이다. 식탁을 둘러싸고 앉은 사람은 8명이고, 세 마리의 개도 끼어 있다. 개들이 먼저 먹었다. 개들은 오트밀을 먹고 있다. 그리고 인간이 먹기 시작하였다. 우리도 오트밀을 먹었다 ― 오르되브르(역주 ; 수프 전에 나오는 가벼운 요리)인 셈이다. 셰 누 하고 세르즈가 눈을 반짝이면서 말한다. 이것은 개가 먹는 거요, 이 오트밀은 말요. 이제부터는 신사들 차례요. 자, 들어요. 오트밀 다음에는 버섯 수프와 야채가 나오고, 그 다음에는 베이컨 오믈렛, 과일, 붉은 포도주, 보드카, 커피, 담배. 러시아 요리는 나쁘지 않다. 모두들 잔뜩 음식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했다. 식사가 끝날 무렵이 되자, 세르즈의 아내 ― 그녀는 방종한 아르메니아 여자인데 ― 가 소파에 걸터앉아 툭툭 말을 해대었다. 굵은 손가락으로 캔 속을 더듬어, 작은 알맹이를 끄집어내어 물기가 있는지 씹어보고는, 바닥 위의 개에게 던져주는 것이다. 식사가 끝나자, 손님들은 서로 앞다투어 나가버렸다. 마치 악성 전염병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처럼, 성급하게 뛰쳐나가는 것이다. 세르즈와 나는 개들과 함께 거기에 남았다 ― 아내는 소파 위에서 잠들어 버렸다. 세르즈는 이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개에게 음식 찌꺼기를 모아주고 있었다. 개들은 아주 좋아해요. 하고 그는 말하였다. 개에게는 이게 대단한 진수성찬이요. 그 강아지에겐 벌레가 있어요... 아주 어려요. 그는 몸을 웅크리고, 개의 앞발 사이에 있는 흰 벌레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 벌레를 영어로 설명하려 했지만, 설명하기엔 어휘가 모자랐다. 드디어 그는 사전을 뒤적였다. 오오. 하고 그는 흥분하여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tap­worms(촌충)이오! 나의 반응은 분명히 별로 민감하지 않았다. 세르즈는 당황하였다. 그는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무릎을 꿇고, 한 마리를 집어내어 테이블 위의 과일 옆에 내려놓았다. 음, 별로 크지 않은걸. 그가 불평스러운 듯이 말한다. 다음에는 벌레에 관해 가르쳐 줘요. 당신은 좋은 선생님이오. 당신한테서 배우면 능숙해질 거요. 복도 바닥의 짚을 넣어 만든 요 위에서 잠을 자려니까, 살균제 냄새 때문에 가슴이 메슥거린다. 지독하게 매운 냄새가, 모든 털구멍으로 침입하는 것 같다. 음식들이 차례로 머리에 떠오르기 시작한다 ― 퀘커 오트, 베이컨, 구운 사과. 작은 촌충이 과일 옆에 놓여 있는 게 보이고, 개의 질병을 설명하기 위해 세르즈가 테이블 크로스에 그려 보인 여러 가지 벌레들이 보인다. 폴리 베르제르의 텅 빈 관람석이 보이고, 그 틈새에 빈대나 이, 벼룩 등이 있는 것이 보인다. 사람들이 미치광이처럼 몸을 긁고, 피가 날 때까지 긁어대는 게 보인다. 벌레들이 불개미 떼처럼 사방을 기어다니며, 모든 것을 들쑤시어 먹어 가는 게 보인다. 코러스 걸이 엷은 의상을 벗어 버리고, 벌거숭이인 채로 통로를 지나가는 게 보인다. 관람석에 있던 관객들도 옷을 벗어버리고, 원숭이처럼 제각기 몸을 긁어대고 있는 게 보인다.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려 한다. 결국 이것이 내가 발견한 주거이며, 식사가 매일 나를 기다려주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세르즈는 좋은 인물이다. 그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나는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시체 안치소에서 잠을 자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짚을 넣어서 만든 요에는 시체 방부제가 뿌려져 있다. 이것은 벼룩과 이와 빈대와 촌충의 시체 안치소이다. 이래 가지고는 나는 견딜 수가 없다. 견디고 싶지 않다! 결국 나는 인간인 것이다. 이가 아니다. 이튿날 아침에 나는 트럭에 짐을 싣기 위해 세르즈를 기다렸다. 파리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하였다. 여기를 떠나는 것을 그에게 알리고 싶지는 않았다. 약간의 내 소지품이 들어 있는 휴대용 룩작은 두고 가기로 하였다. 페레르 광장에 도착하자, 뛰어내렸다. 여기서 내리겠다는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무슨 일에나 특별한 이유는 없다. 나는 자유로운 것이다 ― 그리고 그것이 중요한 것이다... 참새처럼 가볍게 나는 거리를 돌아다닌다. 마치 감옥에서 해방된 것 같다. 나는 세계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본다. 모든 일에 나는 커다란 흥미를 느낀다 ― 아무리 하찮은 일일지라도. 리도 포브르 포아소니엘에 있는 어느 육체 문화 시설의 창문 앞에서 나는 멈춰 선다. 남성의 앞과 뒤 그〈표본〉을 찍은 사진이 걸려 있다. 모든 프랑스인 이다. 안경을 끼거나 턱수염만을 기른 나체 사진도 있다. 왜 이들이 아령이나 평행봉 따위에 열중하는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프랑스인 은 드 샬르 남작처럼 좀더 배가 나와야 할 것이다. 턱수염을 기르거나 안경을 끼는 것은 상관없지만, 벌거숭인 채로 사진을 찍힐 것까지는 없을 것이다. 프랑스인 이라면, 번쩍이는 가죽 장화를 신고, 양복 상의의 윗주머니 밖으로 흰 손수건이 4분의 3인치쯤 드러나 보이게 하고 있어야 한다. 되도록 양복 옷깃의 단추 구멍에 붉은 리본이라도 꽂아야 한다. 잠을 잘 때는 파자마를 입어야 한다. 해질녘에 클리시 광장으로 다가가, 밤마다 고먼궁 반대쪽에 서 있는 의족을 하고 있는 창녀의 앞을 지나갔다. 어느 날 가까이서 보니, 그녀는 열 여덟 살이 넘은 것 같지도 않았다. 아마도 단골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가 보다. 자정 무렵이 자나면 그녀는 검은 옷을 입고, 그 자리에 뿌리가 내린 것처럼 서 있는 것이다. 그녀의 뒤쪽에는 지옥처럼 등불이 타오르고 있는 작은 골목이 있다. 지금, 가벼운 기분으로 지나치며 바라보니, 그녀는 말뚝에 매어져 있는 거위 를 연상시켰다. 간장병을 앓는 거위 ― 그래서 세상에는 파테 드 포그라(역주 ; 기름기가 많은 간장을 기계로 저민 고기 요리)라는 게 존재하는 것이다. 그 의족과 함께 침대에 들어가면, 필시 기묘한 느낌이 들것임에 틀림없다. 여러 가지 일을 상상할 것이다 ― 불쏘시개라든가 그 밖의 여러 가지를. 하지만 어쨌든 오이를 거꾸로 먹어도 제멋이다! 리드 덤에서 내려오면서 나는 페코바와 마주쳤다. 이 사람도 종이 위의 일을 하는 불쌍한 사나이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밤에 서너 시간밖에 잠을 잘 수 없다고 불평을 한다 ― 치과 으ㅟ사의 오피스에서 일하고 있으므로, 아침 여덟 시에 일어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은 돈 때문이 아니라고 그는 설명한다 ― 의치를 해 넣고 싶은 때문이다. 졸려 꾸벅거리면서 교정쇄를 읽어나가기란 괴로운 일 이라고 그는 말한다. 마누라는 내가 편한 일을 하고 있는 줄 알고 있어요. 당신이 일자리를 잃으면 우리는 어떡하느냐는 거예요. 하지만 페코바는 일에는 통 관심이 없다. 그 일은 돈을 사용하는 것조차 그에게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담배꽁초를 모아두었다가, 파이프에 꽂아 피우곤 한다. 웃옷은 여기저기 해진 데를 핀으로 고정시키고 있다. 그는 입냄새를 풍기며, 손에서는 땀이 난다. 그리고 밤에는 세 시간밖에는 잠을 자지 못한다. 인간 대접을 못 받고 있다. 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 나를 고용하고 있는 사람은, 내가 세미콜론 하나만 빠뜨려도 정신 못 차리게 무조건 야단을 칩니다. 마누라 얘기를 하고, 그는 이렇게 덧붙여 말한다. 내 마누라는 규방 적으로 감사해하는 마음을 전혀 갖고 있지 않아요, 털어놓고 이야기하자면 말예요! 헤어질 때에 나는 그에게 졸라 겨우 1프랑 50상팀을 얻어내었다. 50상팀을 더 뜯으려 했지만, 그건 무리였다. 아무튼 이제 커피 한 잔과 초승달모양의 빵 값은 마련되었다. 생 라자르역 부근에 싸구려 빠 가 있다. 운수가 좋은 날은 언제나 그런 것처럼, 나는 세탁소에서 음악회 입장권을 발견하였다. 깃털처럼 마음이 들뜨고 신바람이 나서, 나는 사르 가보로 나갔다. 안내인은 내가 모르는 체하고 약간의 팁도 주지 않으므로, 몹시 낙담하고 있었다. 내 옆을 지나칠 때마다, 그는 내가 갑자기 팁 생각을 머리에 떠올리기를 기대하는지, 의미가 있는 것처럼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훌륭한 옷차림을 한 사람들과 자리를 같이하는 게 오랜만이어서, 나는 약간 당황하고 있는 편이다. 나의 코는 또 개미산 알데히드 냄새를 맡았다. 아마도 세르즈가 여기에도 배달해주고 있는가 보다. 하지만 고맙게도, 몸을 긁고 있는 사람은 눈에 띄지 않는다. 은은히 풍기는 향수 냄새... 정말 은은히 풍겨온다. 음악이 시작되기 전부터 사람들의 얼굴에는 지루한 듯한 표정이 엿보인다. 스스로 부과한 고문의 예의바른 형식 ― 음악회. 순간적으로 지휘자가 작은 막대를 흔들 때, 긴장된 정신 집중의 경련이 일어나지만, 이내 전체적으로 기분이 느슨해지며, 오케스트라로부터 발산되는 착실하고 방해받는 일없는 가랑비 에 의해 온화하고 식물적인 안식의 분위기가 찾아온다. 내 마음은 이상하게 민감하다. 마치 두 개골 속에 수많은 거울이 설치되어 있는 것 같다. 신경이 너무 긴장되어 짜릿짜릿하다. 음악은 백만 개의 분수 위에서 춤추고 있는 유리알과도 같다. 나는 이토록 허기진 상태로 음악회에 와본 적이 없다. 어떤 소리든 나는 빠뜨리지 않고 다 듣고 있다 ― 작은 바늘 한 개가 떨어지는 소리마저도. 마치 나는 몸에 실 한 오라기도 걸치지 않은 채로 있고, 털구멍 하나하나가 창문이 되어, 그 창문들이 모두 열어 젖혀져서 햇빛이 뱃속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 빛이 내 갈비뼈의 둥근 천장 아래서 굴절되고, 갈비뼈는 음향이 메아리치고 있는 공허한 본당 위에 걸려 있음을 나는 잘 알 수 있다. 이러한 상태가 얼마나 계속될지, 나는 짐작이 가지 않는다. 나는 시간· 공간의 감각을 모두 상실해 버린다. 영원처럼 여겨지는 게 끝난 후에, 자신의 내부에 커다란 호수가 잠겨 있음을 느낄 만큼 냉엄한 정적에 의해 보완된 반의식 상태가 잠시 계속된다. 그것은 제리처럼 서늘하고 찬연한 빛깔로 채색된 호수이며, 지금 이 호수 위에 거대한 나선형을 그리며 수많은 새들의 무리가 ― 날씬하고 기다란 다리와 화려한 깃털을 지닌 멋진 철새 떼가 ― 나타난다. 새의 무리가 잇따라 거울처럼 차갑고 조용한 호면으로부터 날아올라 내 쇄골 아래를 지나서 공간의 흰 바다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이윽고 천천히, 흰 차양이 달린 모자를 쓴 늙은 여인이 내 몸의 주위를 걸어가듯이 천천히, 털구멍인 창문이 닫히며, 나의 내장은 각기 공간 속의 제자리로 돌아간다. 갑자기 등불이 환하게 타오르면서, 하얀 박스 속의 터키인 장교 같아 보였던 사나이가, 실은 머리에 꽃병을 이고 있는 여자였음을 알아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기침을 하고 싶었던 이들이 일제히 마음껏 기침을 한다. 발을 질질 끌거나 좌석을 이동하는 소리가 나고, 목적도 없이 몸을 움직이거나, 프로그램을 펼치며 읽어보는 체하는가 하면 바닥에 떨구고는 발로 끌어당기는 등 사람들은 끊임없이 소란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간다. 그리고 아무리 쓸모 없는 움직임에 대해서도, 자신들은 대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가고 자문하고 싶어지는 것을 방해해 주기만 하면, 그 움직임에 감사하는 것이다 ― 그들은 지금 자신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를 알게 되면, 머리가 돌아버릴 것임에 틀림없다. 강렬한 불빛 속에서, 그들은 공허하게 서로의 얼굴을 바라본다. 서로 바라보는 그 응시 속에서 무언가 기묘한 긴장감이 어려 있다. 그리고 지휘자가 또 막대를 흔들면, 사람들은 다시금 경직된 상태로 되돌아간다 ― 무의식적으로 몸을 긁거나, 아니면 갑자기 어느 쇼윈도우에 진열되어 있던 스카프나 모자 따위를 생각해낸다. 그들은 그 윈도우를 구석구석까지 깜짝 놀랄 만큼 명료히 생각해내지만, 그것이 어디에 있었는가는 또렷이 기억해낼 수 없다. 이러한 점이 그들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고, 침착성을 잃게 만들며, 졸음이 달아나 버리게 만든다. 그래서 지금 그들은 새삼스레 주의력을 집중시켜 음악에 귀를 기울인다. 왜냐하면 그들의 졸음이 달아나 버려, 아무리 훌륭한 음악일지라도, 그 쇼윈도우와 거기에 진열되어 있던 스카프나 모자 따위를 의식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강렬한 주의력의 집중은 다른 데로 전달된다. 오케스트라마저 감전된 것처럼 묘하게 민감해진다. 두 번째 곡이 팽이 처럼 폭발한다 ― 너무 템포가 빠르므로, 갑자기 음악이 끝나고 전등이 켜졌을 때, 청중 가운데는 당근 처럼 좌석에 꽂혀진 채로 있는 사람도 있다. 턱이 경련을 일으키듯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만일 별안간 그들의 귀에 대고 브람스, 베토벤, 멘델레이에프, 헬체고비나 하고 외치면, 아마도 그들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대답할 것이다 ― 4, 867, 289. 드비시의 곡까지 진행되고 있을 무렵에는, 분위기가 아주 혼탁해지고 있다. 나는 자신이, 만일 내가 여자였다면 성교 중에 어떤 기분이들까, 쾌감은 여자 쪽이 더 예민할까... 라는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음을 알아챈다. 살에 무엇이 꽂혀지는 것을 상상해 본다. 그러나 희미한 고통의 감각밖에는 연상되지 않는다. 나는 주의력을 집중시키려 하지만, 음악은 매끄럽게 미끄러져 가기 때문에 잡히질 않는다. 나는 꽃병 한 개가 천천히 회전하면서, 그 무늬가 공간으로 흩어져 가는 것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마지막에는 회전하고 있는 빛만 남게 되고, 왜 빛이 회전하는가 하고 나는 자문한다. 옆자리의 사나이는 깊이 잠들어 있다. 아랫배가 나온 모양이나 뾰족한 콧수염으로 보아, 이 사나이는 브로커인 모양이다. 이러한 모양의 사나이를 나는 좋아한다. 왜 이 사나이는 이렇게 잠을 잘 잘까? 음악을 듣고 싶으면, 이 사나이는 언제든 입장권 요금쯤은 마련할 수 있는 모양이다. 내가 보기에는, 좋은 옷차림을 한 사람일수록 잠을 잘 자고 있는 듯하다. 부자는 태평스런 양심을 갖고 있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을 겨우 2, 3초만 꾸벅꾸벅 좋아도 몹시 후회한다. 작곡자에게 죄를 지은 듯한 망상에 사로잡힌다. 스페인의 곡이 연주되기 시작하면서, 장내에는 긴장감이 감돈다. 모두들 의자에 반듯한 자세로 앉아 있다 ― 드럼 소리가 그들의 잠을 깨운 것이다. 드럼이 울리기 시작했을 때, 내게는 그 소리가 영구히 울려 퍼질 것처럼 생각되었다. 사람들이 관람석에서 굴러 떨어지며 모자를 집어던지곤 하는 광경을 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었다. 그 곡에는 뭔가 히로익한 데가 있으며, 그는 즉, 라벨을 그러려고 마음만 먹으면, 우리를 광기 쪽으로 몰아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라벨이 아니다. 갑자기 뚝 그쳐버렸다. 마치 어릿광대가 한창 익살을 부리다가, 앞자락이 열려진 슈트를 입고 있는 것을 생각해낸 것처럼 말이다. 그는 스스로를 억제한 것이다. 나의 빈약한 의견을 말하면, 이는 커다란 실패이다. 예술은 갈 데까지 감으로써 성립된다. 만일 드럼으로부터 시작한다면, 마지막에는 다이너마이트나 고성능폭탄으로 끝나야 한다. 라벨은 형식을 위해, 사람들이 잠들기 전에 소화시켜야 할 야채를 위해, 무엇인가를 희생시킨 것이다. 나의 생각은 확산되어간다. 드럼 소리가 그치자, 음악이 내게서 멀어져간다. 장내의 사람들은 모두 질서 정연히 앉아 있다. 출구의 등불 밑에서, 한 명의 베르테르가 절망에 잠겨 있다. 팔꿈치로 턱을 괴고, 몸을 움츠린 채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입구 부근에는 커다란 케이프를 몸에 걸친 스페인인 한 명이, 테두리가 넓은 모자를 손에 들고 서 있다. 마치 로댕의『발자크』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목 윗부분은 버팔로 빌딩을 연상시킨다. 내 맞은편의 저쪽 관람석 맨 앞줄에 가랑이를 크게 벌리고 앉아 있는 여자가, 목이 빠진 것처럼 고개를 잔뜩 뒤로 젖히고 있다. 빨간 모자를 쓴 여자는 난간에 기대어 졸고 있다 ― 만일 기관지에서 피가 솟아 나오기라도 하면 멋있을 텐데! 만일 아래쪽에 있는 빳빳하게 풀을 먹인 셔츠 위에 별안간 피를 잔뜩 쏟아낸다면. 저 저열한 얼간이들이 셔츠의 가슴께에 피를 묻히고 집에 돌아가는 광경을 상상해 보라. 졸음이 키노트(key note)가 되었다. 이미 아무도 듣고 있지 않다. 생각하거나 들을 수가 없다. 아무리 음악 자체가 꿈에 자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꿈꾸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흰 장갑을 낀 여자는, 무릎 위의 백조 한 마리를 껴안고 있다 ― 전설에 따르면, 레다가 잉태했을 때, 그녀는 쌍둥이를 낳았다. 누구나 모두 무엇인가를 낳고 있다 ― 음악을 반주하는 이들의 좌석에 앉아 있는 동성애자인 여자는 얘기가 다르지만 말이다. 그녀는 고개를 젖히고, 목을 크게 벌리고 있다. 그녀는 민감 자체이다. 라듐의 심포니로부터 작렬하는 불꽃의 샤워 때문에 신경이 예민해져 있다. 주피터가 그녀의 귀를 관통하고 있다. 캘리포니아로부터의 단신, 커다란 지느러미를 가진 고래, 잔지바르, 스페인의 궁전.〈과다르키빌 강을 따라 가면, 천 백 개의 회교 사원이 몽롱하게 떠오른다〉빙산 속 깊은 곳... 라일락꽃 향기가 풍기는 나날. 백마를 매어두는 2개의 말뚝이 있는 머니스트리트, 가고일... 야볼스키의 넌센스를 지니고 있는 사나이... 강물의 등불... 그... 미국에서 나는 인도인 친구들을 많이 갖고 있었다. 어떤 이는 착한 사람이었고, 어떤 이는 나쁜 사람이었다. 어떤 이는 그 어느 쪽도 아니었다. 우연히 나는 다행히도 그들을 원조할 수 있는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 나는 그들을 위해 일자리를 마련해 주거나, 숨겨주거나, 필요에 따라 식생활 걱정까지 해주었다. 그들은 마음으로부터 고마워했다. 너무 고마워한 때문에, 실은 내 생활은 그들의 그처럼 성의를 다하는 바람에 비참해졌다. 두 명의 인도인은, 성인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내가 알고 있다면, 바로 성인이었다. 어느 날 아침, 목이 한일자로 과감히 베어진 상태로 발견된 구프테라는 이름의 사나이는 특히 그랬다. 어느 날 아침, 그는 그리니지빌리지에 있는 작은 하숙집의 침대 속에서 알몸인 채로, 플루트를 옆에 놓아둔 채, 지금 말한 것처럼 한일자로 베어진 목에서 피를 내뿜으며 죽어버린 모습으로 발견된 것이다. 피살되었는지 자살했는지 끝까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떻든 상관없다... 나는 나를 마지막으로 나난타티의 집으로 데리고 가게 되었던 일련의 사정을 회상하고 있는 것이다. 며칠 전에 리셀스의 초라한 호텔의 방에 누워 있을 때까지, 나난타티의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게 정말 이상하게 생각된다. 나는 그 방의 철제 침대 위에 누워, 자신이 완전한 제로가 되어버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정말 기막히게 무능하고, 기막히게 무력하다 ― 그 순간, 그 말이 튀어나온 것이다. 노넨티티(NONENTITY !) ― 이야말로 우리가 뉴욕에서 그를 가리켜 부르고 있던 이름인 것이다 ― 노넨티티, 있지만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존재. 미스터『무용지물 (노넨티티)』 나는 지금, 그가 뉴욕에 있을 때에 자만하고 있던 호화로운 호텔의 이어진 방바닥 위에 누워 있다. 나난타티는 좋은 사마라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그가 두 장의 거친 모포 ― 이것은 말의 털로 만들어진 모포인데 ― 를 내게 주었기 때문에, 나는 먼지투성이의 바닥 위에서 그 모포를 뒤집어쓰고 있는 것이다. 온종일 쓸모 없는 일들을 기다리고 있다 ― 만일 내가 집안에 틀어박혀 있을 만큼 어리석은 인간이었다면 말이다. 오전 중에는 그가 점심 식사용 야채를 내게 준비시키려고 나를 거칠게 깨운다. 양파, 마늘, 누에콩 따위. 그의 친구인 케피가, 그가 만드는 식사 따위는 먹지 말라고 내게 주의해 준다 ― 그가 내놓는 식사는 맛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맛이 없든 맛있든, 그게 어떻다는 말인가 ? 식사 ! 문제는 그게 식사라는 점이다. 약간의 식사를 제공받기 위해, 나는 기꺼이 부러진 빗자루로 그의 융단을 쓸고, 그의 의류를 세탁하며, 그가 식사를 끝내면 바닥에 떨어진 빵조각 따위를 이내 쓸어낸다. 그는 내가 온 이후로, 완전히 깨끗해졌다. 어디든 한 군데도 남기지 않고 먼지를 털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의자도 일정한 형태로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지 않으면 안된다. 괘종시계는 땡땡 울려야 하며, 변소에는 제대로 물이 나와야 한다... 만일 그러한 종류의 인간이 있다면, 녀석은 바로 편집광 같은 인도인이다 ! 그리고 강낭콩처럼 인색하다. 그리고 녀석의 무서운 손아귀에서 벗어나면 껄껄대고 녀석을 한바탕 웃어줄 수 있겠지만, 지금은 매어 있는 몸이다. 신분(카스트)이 없는 인간, 곧 불가촉 천민인 것이다... 만일 내가 밤중에 무심코 돌아와, 말의 털로 만들어진 모포를 뒤집어쓰고 누워 있으면, 녀석은 나를 바라보며 말하는 것이다. 아니, 자네는 아직 죽지 않고 있었나. 죽을 줄 알았는데. 그리고 현재의 내가 무일푼임을 알고 있는 주제에, 매일처럼 이웃의 값이 싼 방이 발견되었다는 따위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방을 얻을 처지가 못돼요. 당신도 알고 있을 텐데. 하고 나는 말한다. 그러면 중국인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그는 시치미를 떼고 대답하는 것이다. 오, 그렇지, 자네에게 돈이 없다는 걸 나는 잊고 있었네. 아무래도 나는 건망증이 심하거든, 앙드레... 그러나 전보 환히 오면... 모나가 돈을 보내주면, 그러면 나와 함께 방을 얻으러 갈 수 있잖아, 그렇지? 그리고 이내 그는 얼마든지 여기에 머물러 있으라고 권하는 것이다 ― 6개월이든... 7개월이든, 앙드레... 자네는 내게 무척 잘해 주니까. 나난타티는 미국에서 내가 아무 일도 해주지 않은 인도인 주의 한 명이다. 그는 내게 파리의 라파이에트 거리의 호화로운 방을 빌어쓰고 있고, 봄베이에는 별저를, 다지린에는 산장을 갖고 있는 부유한 진주상인이라고 자기 소개를 하였다. 나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조금 모자라는 녀석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러나 모자라는 인간이라는 것은 때로는 재산을 만드는 천재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가 뉴욕에서 호텔 숙박료로 2개의 커다란 진주를 지배인에게 주고 떠났다는 이야기를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이전에 흑단 지팡이를 짚으며 뉴욕의 호텔 로비를 활보하고, 벨 보이들을 혹사하며, 방문객의 점심 식사를 주문하고, 포터를 자기 방에 불러 극장 표를 사오게 하며, 택시를 종일 대절하곤 했는데 ― 주머니에 돈이라곤 한푼도 지니고 있지 않으면서 이러한 일을 해낸 것을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유쾌해 견딜 수 없는 것이다. 단지 목에 걸쳐진 큼직한 진주 목걸이를 갖고 있었을 뿐이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를 한 알씩 현금으로 바꿔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언제나 내 등을 두드리면, 인도 청년들에게 친절히 대해준다고 고마워할 때의 얼간이 같은 모습이 생각난다 ― 모두 영리한 사람들 뿐이야, 앙드레... 정말 현명해 ! 그리고 어느 착한 신이 나의 친절에 보답해줄 것임에 틀림없다고 덧붙이는 것이다. 그 현명한 인도 청년들에게, 5달러 지폐 한 장을 나난타티로부터 빌리면 어떻겠는가고 내가 시사했을 때, 그들이 언제나 낄낄거리며 웃고 있던 이유도, 이로써 설명이 되는 셈이다. 어느 착한 신이, 지금 이렇게 선의에의 보상을 내게 안겨주고 있다니, 실로 유쾌하다. 나는 지금 이 뚱뚱한 친구의 노예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아침부터 밤까지 그에게 혹사당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이 집에서는 자네를 필요로 하고 있어 ― 마주 보고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는 변소에 들어갈 때, 큰 소리로 외친다. ― 앙드레, 주전자에 물을 가득 담아 가지고 오라구. 몸을 닦아야 하니까. 이 나난타티라는 녀석은 토일렛 페이퍼를 사용할 줄 모르는 것이다. 종이를 사용하는 일이, 필시 녀석의 종교에 위배되는 모양이다. 그렇다, 녀석은 주전자의 물과 수건을 가져오라고 명하는 것이다. 이 뚱뚱보 친구, 꽤 고급이다. 이따금 장미 이파리를 띄운 차를 내가 마시고 있을 때면 옆으로 다가와, 정면에서 요란하게 방귀를 뀌는 수가 있다. 결코 실례했다 고 말하지는 않는다. 녀석의 구자라티어 사전에는 이 말이 없는 모양이다. 내가 처음으로 나난타티의 아파트에 찾아온 날, 그는 마침 목욕 재계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즉 더러운 대야 위에 우뚝 서서, 목뒤로 구부러진 팔을 돌리고 있는 중이었다. 대야 옆에는 물을 가는 데 사용하는 커다란 놋쇠 그릇이 놓여 있었다. 그는 이 의식을 올리고 있는 동안 잠자코 있어달라고 내게 요구하였다. 나는 명령한 대로 잠자코 거기에 걸터앉아, 그가 노래하거나 기도를 하고, 이따금 대야 속에 침을 뱉곤 하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뉴욕에서 그가 자랑하고 있던 멋진 방 ― 두 개가 하나로 이어진 방 ― 이, 바로 이것이었군 ! 라파이에트가 ! 뉴욕에 있을 때는, 굉장히 멋있는 거리인 줄 알고 있었다. 나는 백만장자나 진주 상인밖에는 그 거리에 살고 있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라파이에트가라고 하면, 대서양 너머에서는 굉장히 훌륭한 거리인 것처럼 들리는 것이다. 이쪽에 와 있으면, 5번 가도 이 거리와 다름이 없음을 알게 된다. 이 부근의 멋진 거리에 지독한 물웅덩이가 있음을, 아무도 상상할 수도 없을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나는 마침내 라파이에트 거리의 호화로운 아파트에 들어와 앉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팔이 구부러진 편집광 은, 지금 목욕의 의식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내가 앉아 있는 의자는 부서진 채로 있고, 침대도 엉망이며, 벽지는 낡아빠져 너덜거리고, 침대 밑에는 열어 젖혀진 여행 가방 속에 더러운 세탁물이 잔뜩 담겨져 있다. 내가 걸터앉아 있는 장소에서, 아래쪽의 비참한 안마당이 내려다보이는데, 거기서는 라파이에트가의 귀족들이 느긋하게 자리를 잡고 앉아 찰흙으로 만들어진 파이프로 담배를 피우고 있다. 그가 축사를 외고 있는 동안, 나는 다진린에 있다는 산장은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하고 생각하였다. 축사와 기도는 한없이 계속된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그는 일정한 규칙에 따라 몸을 씻을 의무가 있다고 한다 ― 그의 종교가 그것을 요구한다고 한다. 하지만 일요일에는 주석으로 만들어진 통에 들어가 목욕을 한다 ― 위대한 존재 인 하느님이 눈을 깜박이며 이를 받아들인다고 그는 말한다. 옷을 입고 나면, 이번에는 찬장이 있는 데로 가서, 밑에서 세 번째 장에 안치된 작은 우상 앞에서 무릎을 끓고 기도를 올린다. 이처럼 매일 기도를 올리고 있으면, 재앙이 멀어지고 안온하게 지낼 수 있다고 한다. 위에서 말한 그 착한 신은, 절대로 유순한 봉사자를 잊어버리는 일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그 구부러진 팔을 내게 보여주며, 이는 분명히 자신이 노래와 춤을 곁들이는 제사를 소홀히 한 날에 교통사고를 입어 다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 팔은 부서진 콤파스처럼 보인다. 그것은 이미 팔이 아니라, 막대가 부착된 뼈에 지나지 않는다. 팔을 치료한 이후로, 그는 겨드랑이 밑에 한 쌍의 부풀어오른 선을 발달시키고 있다 ― 개의 고환처럼 둥글고 작은 선이다. 자신의 불행을 개탄하고 있는 동안에, 문득 그는 의사로부터 좀더 영양이 풍부한 식사를 하도록 권유박고 있었음을 생각해낸다. 그는 별안간 나에게 그 자리에서, 물고기와 육류를 많이 사용하는 식단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굴은 어때, 앙드레 ― 이 가엾은 형제를 위해 하지만 이건 모두 나에게 거드름을 피우기 위한 것이다. 그는 굴을 ― 육류나 물고기도 ― 살 생각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적어도 내가 여기있을 동안은, 당분간 우리는 콩과 쌀 및 그가 다락방에 저장해 두고 있는 마른 식품 따위만을 먹게 될 것이다. 그가 지난 주에 사들인 버터도, 결코 낭비하지는 않는다. 그가 그 버터를 굽기 시작하면, 그 냄새는 정말 견디기 어렵다. 처음에는 나는 그가 버터를 굽기 시작하면, 달아나고 싶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대로 견뎌내고 있다. 아마도 그는 내가 먹은 것을 토해내도, 싱글대며 기뻐하기만 할 것이다. 그것은 바짝 말라버린 빵이나 곰팡이가 난 치즈, 그리고 쉰 밀크와 부패한 버터를 사용하여 그가 스스로 만드는 작은 유부 과자 따위와 함께 찬장 속에 보관되는 것이다. 지난 5년 동안, 그는 손가락 하나를 움직일 만큼의 일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돈이라곤 한 푼도 벌어들이지 못한 모양이다. 장사가 완전히 실패하고 만 것이다. 그는 나에게 인도양의 진주 이야기를 한다 ― 평생 먹고 살아갈 수 있을 만큼, 둥글고 큰 진주가 있다고 한다. 아라비안인 들이 우리의 장사를 망쳐놓는다고 그는 말한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면서도, 그는 매일 주요한 신들에게 기도를 올리며, 그 덕분에 재앙을 막고 무사히 나날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이 신에게 그는 굉장히 환심을 사고 있는 모양이며, 이 신에게 아첨하며 몇 수의 돈을 끌어내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는 순수히 상업적인 관계인 것이다. 그 찬장 앞에서 횡설수설을 늘어놓는 대가로, 겨드랑이 밑의 부풀어오른 고환은 물론이며 매일 먹는 콩이나 마늘 따위의 배급을 받고 있는 것이다. 결국은 만사가 잘 되어가리라고 그는 믿고 있다. 진주가 언젠가는 또 팔려나가게 될 것이다. 지금부터 5년 후가 될지, 혹은 20년 후가 될지 알 수 없지만 ―주신인 부마름의 마음이 움직였을 때에. 그리고 장사가 잘 되면, 이봐, 앙드레, 편지를 써준 사례로 자네에게 1할을 주겠네. 하지만 우선 첫째로, 인도에서 돈을 빌릴 수 있느냐의 여부를 확인하는 편지를 써주어야겠어. 회답이 오려면 6개월은 걸릴 거야, 아니면 7개월... 인도의 선박은 더디게 도착하니까. 이 친구는 시간 관념이 전혀 없다. 잠을 잘 자느냐고 물으면,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 아, 잘 자고 말고, 나는, 앙드레... 때로는 사흘 동안에 92시간이나 잠을 잔다구. 그는 대개 아침에는 기운이 없어 아무 일도 해내지 못한다. 그 팔 ! 가엾게도 부서진 콤파스처럼 보이는 팔 ! 나는 그가 목 뒤쪽으로 그 팔을 돌려대고 있는 것을 보면, 과연 본디의 위치로 가져올 수 있을까 하고 걱정이 되는 수가 있다. 만일 그 작은 배가 없었다면, 그는 내게 메드라노 서커스의 곡예사를 연상시켰을 것이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한쪽 다리를 부러뜨리는 일뿐이다. 내가 바닥을 쓸고 있는 것을 보면 ― 먼지가 잔뜩 일고 있는 것을 보면 ― 그는 난쟁이처럼 중얼거리기 시작한다. 됐어 ! 아주 좋아 ! 앙드레 ! 그럼 이번에는 내가 이삭을 조금 주워볼까. 이는 내가 쓸었지만, 쓰레기가 약간 남아 있다는 의미이다. 비꼬는 말이 되지만, 나를 정중하게 대우하는 그의 방법인 것이다. 오후에는 언제나 진주 장사를 하는 두세 명의 친구들이 훌쩍 그를 찾아온다. 이들은 모두 유순한 암토끼 같은 눈을 하고, 아주 조용히 끈질긴 어조로 이야기한다. 테이블을 에워싸고 소리가 나게 향기로운 차를 마신다. 그러면 나난타티는 깜찍상자(역주 ; 뚜껑을 열면 무엇이 튀어나와 깜짝 놀라게 하는 장난감 상자)의 인형처럼 깡충깡충 뛰거나, 바닥의 빵부스러기를 가리키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미안하지만 앙드레, 저걸 주워주지 않겠나. 하고 말하곤 한다. 손님이 오면 그는, 그 찬장이 있는 데로 달려가, 구운 지 일주일쯤 지났을, 곰팡내가 나고 나무쪽 같은 맛이 나는 말라빠진 빵조각을 꺼낸다. 작은 빵조각 하나라도 버려지는 일이 없다. 만일 빵이 너무 시어지면, 그는 그것을 아래층의 ― 그의 말에 따르면 매우 친절히 해주는 ― 여자 수위에게로 가져간다. 그의 이야기에 의하면, 이 여자 수위는 곰팡이가 난 빵을 주면 굉장히 기뻐한다고 한다 ― 그것을 빵 푸딩을 만든다고 한다. 어느 날 친구인 아나톨이 나를 만나러 왔다. 나난타티는 기뻐하였다. 차를 마시고 가라고 아나톨에게 자꾸 권하였다. 그 유부 과자나 곰팡내 나는 빵을 먹고 가라고 억지로 강요하는 것이다. 매일 들러요. 하고 나는 말한다. 그리고 내게 러시아어를 가르쳐줘요. 아름다운 말이야, 러시아어는... 나는 러시아말을 사용하고 싶어요. 저건 뭐라고 했더라, 앙드레 ― 볼슈토인가? 좀 적어주지 않겠어, 앙드레... 그래서 나는 그것을 타이프로 쳐야한다. 동시에 이렇게 하면 그가 나의 기량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다친 팔을 치료한 후에 타자기를 샀다. 의사가 좋은 운동이 된다고 권한 것이다. 그런데 그는 얼마 후에 타자기에 싫증이 나고 말았다. 그것이 영문 타자기였기 때문이다. 아나톨이 만돌린을 켠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는 말하였다. 잘 됐군 ! 이봐요, 꼭 매일 찾아와서, 내게 음악을 가르쳐줘요. 장사가 잘 되어 가면, 이내 만돌린을 사겠어요. 내 팔을 위해서도 좋다구요. 이튿날, 그는 여자 수위로부터 축음기를 빌렸다. 앙드레, 내게 댄스를 가르쳐주지 않겠나. 배가 나오고 있다구. 나는 언제든 그가 포터하우스 스테이크를 사주리라고 기대하고 있으므로, 그때는 그에게 이렇게 말해주려고 생각하고 있다 ― 미스터 무용지물(노넨티티) 이여, 나를 위해 이것을 씹어주지 않겠소, 나도 이가 튼튼하지 않으니까 ! 방금 말한 것처럼, 내가 온 이후로 그는 꽤 잔소리가 많아졌다. 어제 자네는 세 가지 잘못을 저질렀어, 앙드레. 하고 그는 말한다. 첫째로, 자네는 변소 문을 닫는 일을 잊어버렸어. 그래서 밤새도록 문이 덜컹대고 있었어. 둘째로 자네는 부엌 창문이 열어 젖혀진 채로 내버려두고 있었어. 그래서 아침에 보니, 창문에 금이 갔더군. 그리고 자네는 우유 병을 밖에 내놓는 걸 잊어버렸어 ! 제발 잠들기 전에 반드시 우유 병을 밖에 내놓으라구. 그리고 아침에는 반드시 빵을 방에 들여놓고... 매일 그의 친구인 케피가, 인도에서 누가 찾아오지 않았는지 알아보려고 찾아온다. 그는 나난타티가 방을 나가는 것을 확인하고는, 찬장 쪽으로 달려가, 유리병에 감춰둔 빵을 먹어치운다. 맛없는 빵이라고 하면서도, 마치 쥐처럼 먹어치우는 것이다. 케피는 기생충이다. 가장 가난한 자기 나라 사람의 피부에라도 피를 빨아먹으려고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인간 진드기 와 같은 녀석이다. 케피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 나라 사람은 모두 나보프인 것이다. 필터가 달리지 않는 마닐라 담배 한 가치나 술 한 잔을 마시기 위한 푼돈을 마련하기 위해, 그는 어떤 인도인의 엉덩이에서나 피를 빨아댈 것이다. 다만 인도인의 엉덩이이다. 혼동해서는 안된다. 영국인의 엉덩이가 아니다. 그는 온 파리의 창녀 집의 번지수와 그 값을 잘 알고 있다. 10프랑 짜리인 싸구려 창녀 집에서도, 그는 약간의 수수료를 받는다. 또 그는 당신이 어디든 가고자 하는 곳에 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지름길을 알고 있다. 그는 우선 택시로 가고 싶은 가고 당신에게 물을 것이다. 당신이 아니라고 대답하면, 그는 버스를 타도록 권할 것이다. 그래도 요금이 비싸다고 하면 전차나 지하철을 이용하도록 권할 것이다. 아니면 걸어가기로 하고 1프랑이나 2프랑을 절약하는 편이 낫지 않으냐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도중에 담배가게가 하나 있으니까, 제발 나에게 여송연을 한 가치 사달라고 말할 것이다. 케피는 재미있는 데도 있다. 매일 반드시 한 차례는 여자를 껴안는 일 이외에는 절대로 아무런 야심도 갖고 있지 않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한 푼이라도 돈이 손에 들어오면 ― 그리고 그것은 으레 적은 돈이기 마련이지만 ― 댄스홀에서 사용해 버린다. 봄베이에 아내 하나와 어린애가 8명이 있지만, 그러한 점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유혹에 응해올 만큼 어리석고 사람이 좋은 웨이트리스에게 결혼을 신청한다. 그는 뤼콘도르세에 있는 월세 60프랑 짜리 방을 빌어쓰고 있다. 그 방의 벽지는 모두 그가 스스로 바른 것이다. 또 이를 무척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이게 만년필에 제일 어울린다며 보라색 잉크를 사용한다. 스스로 구두를 닦고, 스스로 바지를 다리미질을 하며, 스스로 세탁을 한다. 작은 시가 한 가치 ― 때로는 상대방에 따라 필터가 달리지 않은 담배 한 가치 ― 를 얻어 피우려고, 온 파리를 모시고 따라다닌다. 만일 당신이 셔츠 한 개나 컬러 단추 한 개라도 눈여겨보고 있으면 그의 눈이 반짝인다. 여기서 사면 안됩니다 하고 그는 말할 것이다. 이 가게는 비싸요. 내가 더 값이 싼 가게를 가르쳐 드리죠. 그리고 이에 대해 당신이 생각할 틈도 주지 않고, 그는 똑같은 넥타이나 셔츠, 컬러 단추 등을 팔고 있는 다른 가게의 쇼윈도우 앞으로 당신을 끌고 갈 것이다 ― 어쩌면 그게 똑같은 가게일지도 모른다 ! 하지만 당신은 어디가 다른지 알 수 없다. 당신이 무엇을 사고 싶다고 말하면, 케피의 영혼은 활기를 띠어간다. 그는 당신에게 잔뜩 질문을 퍼부으며, 여기저기로 끌고 다닌다. 그래서 당신은 아무래도 목이 말라, 무엇을 마시고 싶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대뜸 당신은 다시금 어느 담배가게 ― 어쩌면 똑같은 담배가게일지도 모른다 ― 앞에 서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깜짝 놀랄 것이다. 그리고 케피는 또 그 매끄러운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다. 미안하지만 내게 담배 한 가치만 사주시지 않겠어요. 당신이 무슨 일을 하든, 뭐라고 말하든 간에 ― 설령 그쪽 길모퉁이를 돌아가자고 하더라도 ― 케피는 당신에게 검약하도록 만들 것이다. 케피는 당신에게 제일 가까운 길이나 제일 값이 싼 가게, 제일 양이 많은 요리 등을 가르쳐 주겠지만, 이는 당신이 무엇을 하든 반드시 어느 담배가게 앞을 지나가기 때문이고, 또 혁명이 일어나든 스트라이크가 일어나든 계엄령이 선포되든 간에, 케피는 음악이 시작될 무렵에는 무랑루즈나 오람피아나 안주루즈에 가 있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 그는 이것을 읽으라며 한 권의 책을 갖다 주었다. 이는 어느 성인과 어느 인도 신문의 발행인 사이에 일어난 유명한 소송 사건에 관해 쓰여진 책이다. 그 신문은 성인이 보기 흉한 생활을 하고 있다며 공공연히 공격을 한 모양이다. 그 이상으로, 성인이 나쁜 병에 걸려 있다고까지 공격을 퍼부은 모양이다. 케피는 그 병이 프랑스 매독일 것임에 틀림없다고 말했지만, 나난타티는 일본의 임질이라고 단언하였다. 나난타티에게 이야기가 옮아가면 무슨 일이든 약간 거창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아무튼 나난타티는 명랑하게 말하는 것이다. 앙드레, 미안하지만, 그 책에 뭐라고 쓰여져 있는지 가르쳐 주지 않겠나. 나는 책을 읽을 수 없어 ― 손이 아파 오기 때문에. 그리고 나를 격려하려고 이렇게 말한다 ― 이건 성교에 관해 아주 잘 씌어져 있는 책이야, 앙드레. 케피가 자네를 위해 가져온 거야. 그 친구는 아가씨들과 어울리는 일밖에는 생각하지 않는 녀석이거든. 아무튼 굉장히 많은 아가씨와 자고 있다구, 그 녀석은 ― 마치 크리슈나불처럼 말야. 우리는 그러한 것을 믿고 있지 않지만 말야, 앙드레... 그리고 얼마 후에, 그는 나를 위층의 다락방으로 안내하였다. 거기에는 인도에서 보내온 삼베나 남경 불꽃종이로 포장한 주석 등의 잡동사니들이 놓여 있었다. 나는 이곳으로 아가씨를 끌어들인다구 하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약간 슬픈 듯이 덧붙였다. 나는 그 방면으로 서툴다구, 앙드레. 지금은 아가씨를 억지로 정복하지는 않게 되었어. 껴안아주고, 이야기를 할 뿐이야. 지금은 이야기만 하고 있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어. 더 이상 이야기를 들을 필요는 없다. 다친 팔 이야기를 할 것임에 틀림없다. 어깨 쪽의 이음매가 벗겨져 팔이 침대 가에 늘어뜨려진 채 잠들어 있는 그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 같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는 이어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나는 여자하고 자는 게 서툴다구, 앙드레. 원래 서툴러. 나의 형은 능숙했어 ! 하루 세 번은 했어, 매일 말야 ! 그리고 케피도. 그 녀석도 능숙해 ― 마치 크리슈나불 같아. 여자와 자는 일이, 그의 머리에서는 지금 떠나지 않고 있다. 그는 언제나 그가 열려진 찬장 앞에서 무릎을 끓고 기도를 올리는 아래층의 작은 방으로 되돌아와, 그에게 아직 돈이 있고 아내와 아이들이 이곳에 있던 무렵의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휴일에는 아내를 만국 회관으로 데리고 가서, 방을 빌려 숙박하곤 했다. 어느 방이나 각기 다른 양식으로 되어 있었다. 아내는 그 점이 썩 마음에 들었다. 여자하고 자기에는 아주 멋진 집이야, 앙드레. 그곳의 방들을 나는 다 알고 있지만 말야... 나와 그가 거실로 삼고 잇는 작은 방의 벽에는. 사진이 가득 붙여져 있다. 그의 일족의 가계가 모조리 표시되어 있다. 마치 인도 제국의 단면도 같다. 이 거대한 나무 모양의 계보에 속하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 고엽 뿐인 모양이다. 여자들은 허약하고, 겁을 먹은 듯한 눈을 하고 있다. 남자들은 긴장되고 지적인 얼굴 모습을 하고 있으며, 교양이 있는 침팬지와도 같다. 전부 90명쯤 되는데, 이들의 사진이 모두 거기에 있다. 흰 소나 쇠똥, 그 여윈 다리, 구식 안경 따위도 거기에 있다. 배경에는 메마른 땅이나 부서져가고 있는 박공양식의 건물, 팔이 구부러진 우상, 인간 모양을 하고 있는 지네 따위가 이따금 언뜻 드러나 보인다. 이 화랑에는 매우 공상적이고 고르지 못한 데가 있어, 이를 보는 사람을 아무래도 히말라야로부터 세일론의 가장자리까지 이어져 있는 수많은 사원들 ― 짓눌려질 것처럼 아름다운, 동시에 괴물처럼 기이하고 혼란스러운 건축의 거대한 형상들 ― 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의장의 변화무쌍한 복잡성으로부터 발효되어 끓어오르는 생식력이, 인도 자체의 토양마저 황폐화시켜 버린 것처럼 생각되게 만드는, 그러한 종류의 기이함이며 괴물을 연상시키는 두려움이다. 사원 앞에 무리 지어 있는 벌집을 쑤신 것처럼 웅성거리고 있는 군중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누구나 30세기 이상이나 계속된 성적 포옹 속에 그들의 신비로운 흐름을 수용해버린 이 피부가 검은 미모의 민족의 생활력에 압도당해 버리리라. 이 사진 속에서 찌를 듯한 시선으로 응시하고 있는 나약한 남녀는, 이 나라에서 서로 피를 섞은 여러 민족의 영웅적인 신화가, 영구히 국민의 영혼과 결부되어 있도록 만들려고, 인도의 구석구석에 세워진 석탑이나 벽화에 그들의 모습을 새겨넣은 그 번식력이 왕성한 대중의 여위어서 피골이 상접한 유령처럼 보인다. 그 돌들에 새겨진 광막한 몽상의 단편이나, 인간의 정액이 응고되어 만들어진 듯한 보석들로 장식된 이 거대하고 둔중한 건축물을 한 번 보기만 해도, 나는 각기 조상이 다른 5억의 민중에게, 그들의 동경의 가장 파악하기 어려운 표현을 이처럼 형상화하도록 만든 그 자유분방한 공상의 현기증을 느낄 정도의 웅대함에 압도당하는 것이다. 지금 나난타티가 산후에 죽은 누이동생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을 듣고 있으면, 나는 뭐라고 설명키 어려운 기묘한 느낌에 휩싸이게 된다. 그녀의 모습이 벽에 걸려 있다. 가냘프게 보이는 열 두세 살 짜리 소녀가, 겁먹은 듯한 표정으로 늙은 남편의 팔에 매달려 있는 것이다. 열 살 때에 그녀는, 그때까지 이미 5명의 아내의 장례식을 치른 이 늙은 호색한의 아내로 맞아들여졌다. 그리고 7명의 아이를 낳았다. 이들 중 그녀가 사망한 이후까지 살아 남은 자식은 한 명뿐이다. 그녀는 일족의 진주를 지키기 위해, 이 늙은 고릴라에게 주어진 것이다. 저 세상으로 갈 때 ― 라고 나난타티는 말하는 것이다 ― 그녀는 의사에게 속삭였다. 나는 남편하고 하기가 싫어졌어요... 이제 하고 싶지 않아요, 선생님. 이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면서, 그는 힘을 잃은 팔로 엄숙하게 머리를 긁는 것이었다. 성교는 좋지 않다구, 앙드레 하고 그는 말한다. 하지만 나는 자네가 언제나 행복해질 수 있는 말을 가르쳐 주겠네. 이를 매일 되풀이해 외는 거야. 몇 번이라도... 백만 번이라도 외는 거야. 이는 모든 말들 중 가장 으뜸 가는 말이야, 앙드레... 자아 말해 봐요... 우우마할름우마아 ! 우우마라브... 틀려, 앙드레... 이렇게 해요... 우우마할름우마아 ! 우우마마븜바... 틀려, 앙드레... 이렇게 해요... ...하지만 이 어두컴컴한 방 안, 엉성한 인쇄, 해져 너덜너덜해진 표지, 고르지 못한 페이지, 움직임이 둔해진 손가락, 폭스 트로트를 추고 있는 벼룩, 늦잠꾸러기인 이, 이 사나이의 혓바닥 위의 거품, 눈에 고인 눈물,결후(역주 ; 목의 중간에 있는 갑상 연골의 돌기), 컵의 음료, 손바닥의 가려움증, 바람의 울음소리, 호흡에 섞여 있는 슬픔, 신경쇠약의 안개, 양심의 경련, 높아지는 노여움, 똥구멍으로부터의 분출, 식도의 불, 꼬리 의 간지러움, 녀석의 다락방의 쥐, 그 소음과 귀지 ― 아무튼 행진곡 하나를 몰래 외는 데 한 달이나 걸린 것을 보면, 그는 일주일에 1개 단어 이상은 반드시 외려고 굳게 결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일 운명이 간섭해 주지 않는다면, 나는 언제까지나 나난타티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리라고 생각된다. 어느 날 밤에 ― 행운은 대개 그런 식으로 찾아오는 법인데 ― 케피가 나에게 그이 손님 한 명을 창녀 집까지 안내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젊은 그 사나이는 인도에서 온 지 얼마 안되고, 사용할 돈도 별로 많이 갖고 있지 않았다. 간디를 따르는 사람으로, 소금 문제로 바다를 향해 역사적인 행진을 벌인 소수의 동료들 중의 한 명이다. 절제· 금욕을 서약한 사람치고는 매우 명랑한 간디의 사도하고 해야 할 것이다. 분명히 그는 오랫동안 여자는 거들떠보지도 않은 듯하다. 나로서는 라페리에르가까지 그를 안내해 주는 수밖에 없었다. 혀를 축 늘어뜨리고 있는 개와도 같은 사나이이다. 게다가 정말 거만하고 세상 물정에 어두운 아이이다 ! 그는 골덴 양복에 베레모를 쓰고 등나무 지팡이를 짚고 윈저 넥타이를 맨 옷차림으로 나타난 것이다. 만년필 2개와 코다크 1대, 그리고 멋진 속옷 몇 개를 이미 사 갖고 있었다. 그가 사용한 돈은 봄베이의 상인들로부터 받아온 돈이다. 상인들은 간디의 복음을 선전하기 위해 그를 영국에 파견한 것이다. 미스 해밀턴의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냉정함을 잃기 시작하였다. 별안간 벌거숭이인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음을 알아챘을 때, 그는 깜짝 놀라 나를 바라보았다. 한 명을 골라요. 하고 나는 말했다. 당신 마음에 드는 여자를 고르면 돼요. 그는 너무 당황하여. 여자들을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하고 있다. 당신이 대신 골라주지 않겠어요? 얼굴이 새빨개져가지고 그는 내게 속삭였다. 나는 냉정히 여자들을 둘러보고, 통통하게 살이 찐 젊은 창녀를 골라내었다. 우리는 대기실에 앉아서 술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마담이 당신은 여자를 데리고 놀지 않을 거냐고 내게 묻는다. 그래요, 당신도 한 명 골라요. 하고 젊은 인도인이 말했다. 나는 저 여자와 단 둘이 있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또 여자들이 불려왔다. 나는 내 상대를 골랐다. 우울해 보이는 눈을 하고 여위어 빠지고 키가 큰 여자이다. 그 대기실에 네 명만이 남게 되었다. 잠시 후에, 나의 젊은 간디는 상반신을 기울이며 내 귀에 대고 뭐라고 속삭였다. 좋아요, 그쪽 여자가 좋으면 그렇게 해요. 하고 나는 말하고, 약간 망설이면서, 그리고 꽤 부끄러워하면서도 두 여자에게, 교대로 번갈아 들어가 달라고 부탁하였다. 나는 이내 실책을 저질렀다고 여겨졌지만, 그때는 이미 나의 나이 어린 친구가 신이 나고 육욕 적으로 되어 있어, 빨리 위층으로 올라가 일을 치르지 않고는 배길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방문을 통해 오갈 수 있는 인접한 두 방을 잡았다. 나의 젊은 친구는, 내가 보기에는 그 통렬한 굶주림을 충족시킨 후에, 한 번 더 여자를 갈아들이고 싶어진 모양이다. 아무튼 여자들이 준비를 하기 위해 방을 나가기가 무섭게 그가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화장실은 어딥니까? 하고 그가 묻는다. 별로 대수로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여, 나는 세척기 속에서 일을 보라고 권하였다. 여자들이 타올을 손에 들고 되돌아왔다. 옆방에서 그가 낄낄거리며 웃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바지를 입고 있는데, 갑자기 옆방이 소란스러워졌다. 여자가 그에게 이 돼지 같은 녀석아, 더러운 돼지새끼야 하고 욕을 퍼붓고 있는 것이다. 그가 무슨 짓을 했길래 이러한 소동이 벌어졌는지, 나로선 상상을 할 수가 없었다. 바지에 한쪽 다리를 집어넣은 채 나는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그는 영어로 여자에게 설명하려고 하고 있었다.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드디어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들렸다. 방문이 홱 열리며, 마담이 내 방으로 뛰어들어왔다. 얼굴이 붉은 순무처럼 새빨개져 가지고, 팔을 마구 휘둘렀다. 당신은 참 지독한 짓을 하는군요. 하고 마담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저런 자를 우리 집에 데리고 오다니. 저 녀석은 야만인이에요... 돼지새끼예요... 저 사나이는 ! 젊은 친구는 그녀 뒤쪽의 방문께에 우뚝 서 있었다. 풀이 죽은 표정이다. 무슨 짓을 한 거요? 하고 물어보았다. 저 사나이가 무슨 짓을 했느냐구요? 하고 마담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보여 주죠... 이리로 와 보세요 ! 이렇게 말하고는 내 팔을 잡고 옆방으로 끌고 갔다. 저것 봐요 ! 저거요 ! 하고는 그녀는 세척기를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다. 갑시다. 나갑시다 하고 인도 청년은 말한다. 잠깐 기다려줘요. 그렇게 아무렇게나 나가버릴 수는 없어요. 마담은 세척에 옆에 서서, 기세가 등등하여 씩씩거리며 침을 뱉아대었다. 여자들도 손에 타올을 든 채 거기에 우뚝 서 있다. 우리 다섯 사람은 거기에 우뚝 서서 세척기를 바라보았다. 물 속에 칙칙하고 누런 덩어리 두 개가 떠 있는 것이다. 마담이 몸을 웅크려, 그 위에 타올을 걸쳤다. 지독해요 ! 지독해 ! 하고는 그녀는 푸념을 늘어놓았다. 이런 일은 나는 처음이에요. 돼지예요, 정말 ! 더러운 돼지새끼예요 ! 인도 청년은 원망스러운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한 마디만 주의해 주셨으면 좋았는데 ! 하고 그는 말한다. 아래로 흘러나가지 않을 줄 몰랐어요. 변소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더니, 저걸 사용하라고 당신이 말하는 바람에. 그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마침내 마담이 나를 한쪽으로 데리고 갔다. 겨우 기분이 약간 가라앉은 모양이다. 결국은 과실이다. 아마도 이 손님들은 아래층으로 내려가, 기꺼이 다시 술을 주문해줄 것이다 ― 여자들에게도 대접해줄 것이다. 이 일은 여자들은 깜짝 놀라게 만든 사건이다. 아무리 그녀들이라 할지라도, 이러한 일에는 익숙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들은 훌륭한 신사이고 매우 다정하므로, 서비스하러 나온 사람을 잊지는 않으시라고는 생각해요 ― 서비스하러 나온 사람치고는 별로 예쁘지 않군 ― 이 얼간이 같은 창녀는. 이 지저분하고 더럽고 어리석은 계집은. 마담은 어깨를 흔들며 윙크하였다. 유감스러운 사건이에요. 하지만 악의가 있는 사건은 아니잖아요. 잠깐 여기서 기다리고 계시면, 곧 하녀에게 마실 것을 날라다 드리도록 하겠어요. 샴페인은 어때요? 좋으시죠. 나는 나가고 싶어요. 하고 인도 청년은 겁먹은 듯한 표정으로 말한다. 그 일에 그렇게 신경을 쓰지 말아 주세요. 하고 마담이 말한다. 이미 끝난 일 아녜요. 실수는 흔히 있는 일인 걸요. 다음에는 화장실이 어디냐고 물어주세요. 그녀는 화장실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 각 층에 하나씩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목욕실까지 있다. 우리 집에는 영국 손님들이 많이 오십니다. 하고 그녀는 말한다. 모두 신사 분들이에요. 이분은 인도 분이시죠. 차밍한 사람들이에요. 인도 분들은. 아주 총명하고 선량한 분들뿐이에요. 거리로 나오자, 그 차밍한 청년 신사는 금방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지금은 골덴 양복이나 등나무 지팡이, 만년필 따위를 샀던 것까지 후회하고 있었다. 그는 그가 실천한 여덟 가지 맹세나 맛있는 음식을 먹지 않은 일 등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댄디로 행진하여갈 때는, 아이스크림 한 개를 먹는 것조차 금지되어 있었다고 한다. 물레를 돌리는 이야기며, 간디주의를 따르는 작은 단체가, 얼마나 스승의 헌신적인 노력을 본받고 있는가 하는 점등을 이야기하였다. 그가 스승과 나란히 길을 걸어가며, 스승과 말을 주고받았을 때의 상황을 자랑스레 이야기하는 것이다. 덕분에 나는 12사도 중의 한 명 앞에 나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리고 며칠 동안 우리는 자주 어울렸다. 신문 기자와의 인터뷰 계획을 짜거나, 파리에 거주하고 있는 인도인 상대의 강연 준비를 하곤 하였다. 이 등뼈 가 없는 악마들이 얼마나 실제적인 일에 있어서는 야무진 데라곤 하나도 없다 ― 이 역시 놀라울 뿐이다. 질투, 음모, 쩨쩨하고 더러우며 비뚤어진 근성. 힌두 사람이 열 명이 모이면, 인도의 온 종파나 분파, 민족, 언어, 종교, 정치 등의 대립 이 한 자리에 집합한 셈이 되는 것이다. 간디 앞에서는 잠시나마 그들도 기적적인 단결을 맛보고 있지만, 간디가 떠나가며 순식간에 단합된 모습이 무너지며, 인도인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그 알력과 혼돈 속으로 완전히 빠져들고 마는 것이다. 그 인도의 청년 신사는 물론 낙천가이다. 그는 미국에 가본 적이 있으며, 미국인의 신통찮은 이상주의에 물들어 있었다. 어디에나 널려 있는 목욕통, 10센트 짜리 스토아의 잡동사니들, 잡담, 능률, 기계, 높은 임금, 무료 도서관 ― 따위에 물들어 버렸던 것이다. 그의 이상은, 인도를 미국화 시키는 것이다. 그는 간디의 후퇴적 마니아(mania)에 전혀 만족하고 있지 않았다. 마치 YMCA의 회원처럼〈전진하라〉고 그는 외치는 것이다. 그의 미국 강의 를 듣고 있으면, 숙명적인 흐름의 방향을 돌려놓는 기적을 간디에게 기대하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알 수 있다. 인도의 적은 영국이 아니라 미국이다. 그리고 인도의 적은, 이 시대 정신이다. 이미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다. 온 세계에 해독을 끼쳐가고 있는 이 바이러스의 활동을 어느 누구도 저지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이야말로 바로 이 숙명의 화신이다. 미국은 온 세계를 나락의 구렁텅이로 빠뜨려갈 것이다. 그는 미국인을 매우 기만당하기 쉬운 국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미국에서 그를 구제한 맹식적인 인간들에 관해 그는 이야기하였다 ― 퀘커교도, 유니테리언 교도, 접신론자, 새로운 사상가, 세븐스 데이 애드밴티스 등에 관해. 이 영리한 청년은, 어디로 배를 저어가야 할 것인가를 알고 있었다. 어디쯤에서 눈에 눈물을 글썽이어야 할 것인가 ― 그 시기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어떻게 모금에 응할 것인가, 목사의 부인에게는 어떻게 호소할 것인가, 어머니와 딸을 동시에 설득시키려면 어떻게 하면 좋은가 ― 따위를 모두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의 얼굴을 보면, 사람들은 그를 성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확실히 그는 성인이다 ― 모던한 타입의 성인. 애정이나 동포, 목욕통, 위생, 능률 등에 관해 똑같은 입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미국 물이 든 성인이다. 그의 파리에서의 마지막 밤은 그 섹스 의 일로 보내게 되었다. 그 날은 종일, 예정된 플랜으로 꽉 세워져 있었다 ― 회의, 전신, 인터뷰, 신문의 사진 촬영, 인도에 충실한 사람들과의 석별의 연회, 그들에의 충고 따위. 만찬 때에 그는 그의 고민을 해결하려고 결심한 모양이다. 식사와 함께 샴페인을 주문하고, 웨이터를 향해 손가락을 튕겨 보였다. 대체로 이 사나이는 촌스러운 농부처럼 행동을 한다. 그는 또 실제로 그렇지만 말이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고급 지역에서만 즐겼으므로, 더 싸구려인 데로 안내하라고 내게 말하였다. 아주 싸구려인 데로 가서 한꺼번에 두세 명의 여자를 상대하고 싶다는 것이다. 나는 그를 안내하여 불바르 드 라 샤펠로 가면서, 지갑을 조심하라고 그에게 주의를 주었다. 오베르빌리에의 모퉁이를 돌아 싸구려인 창녀 집으로 들어갔다. 이내 우리는 몇 명의 여자들을 껴안았다. 잠시 동안 그는 한 명의 벌거벗은 여자를 껴안고 춤을 추었다. 몸집이 큰 금발의 여자이다. 그녀의 엉덩이가 온 방 안에 걸려 있는 거울에 비치는 것을, 나는 열 몇 번인가를 바라보았다 ― 그의 뼈가 앙상하고 검은 손가락이 끈질기게 여자에게 달라붙었다. 테이블에는 맥주 컵들이 잔뜩 놓여 있었다. 자동 피아노 소리가 숨을 헐떡이면서 울려대고 있다. 할 일 없는 여자들은 가죽이 씌워진 소파에 얌전히 걸터앉아, 태평스레 몸을 긁고 있다. 마치 침팬지 가족들 같다. 주위에는 일종의 억눌려진 폭력의 기미가 충만해 있었다. 억압된 포학의 공기가. 마치 뭔가 아주 미세한 부분이 ― 미리 준비되어 있지도 않고 완전히 예기되어 있지도 않은 매우 작은 어느 부분이 ― 보완되기를 기다리느라 폭발이 지연되고 있는 듯했다. 어떤 행상에 사람들을 참가시켜 놓고서도 전혀 모르는 체하는 듯한 거의 방심적인 상태 속에서, 결여되어 있던 약간의 미세한 부분이 유리창에 낀 서리처럼 몽롱한 채로 강렬히 응고되어, 괴이한 수정 모양의 형태를 드러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매우 기괴하고 자유 분방하며 환상적인 디자인처럼 보이면서도 아주 엄격한 법칙을 따르고 있는 이 서리 의 무늬처럼, 나의 내부에서 형상화되기 시작한 이 감각 역시 저항할 수 없는 법칙에 복종하고 있는 듯했다. 나의 온 존재가, 이전에 경험한 적도 없는 주위의 명령에 따르고 있는 것이다. 내가 자기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수축·응고되고, 말초신경의 조절밖에 알지 못할 정도의 진부하기 짝이 없는 통상의 육체의 한계로부터 점차 위축되어 가는 듯했다. 나의 환부의 핵이 견고해지면 견고해질수록, 나를 죄어대고 있던 현실― 그리고 지금 가까이 접촉할 수 있는 존재로 나타난 현실 ― 은, 더욱 감미롭고 더욱 제멋대로 움직여 가는 것이었다. 내가 더욱 금속적으로 되어감에 따라, 내 눈앞의 광경도 팽창되어 가는 것이다. 단 하나의 이질적인 분자 ― 그것도 현미경적인 미세한 분자 ― 의 도입이, 모든 것을 분쇄해버릴 것처럼 되어버린 지금, 긴장의 상태가 참으로 훌륭히 고양되고 있었던 것이다. 몇 분의 1초 동안의, 간질병 환자만이 알 수 있다는 그 완전한 투명 상태를 나는 경험하였다. 그 순간, 나는 완전히 시공의 환각을 상실하였다. 세계는 축이 없는 자오선을 따라, 일제히 그 드라마를 펼쳐나갔다. 잠깐 손을 대기만 해도 발사되는 이 촉발 방아쇠 같은 영원 속에, 모든 것이 정당화되는 절대적 정당성이 주어지는 것을 나는 느꼈다. 나는 이 혼란스러운 분쇄와 파괴의 배후에 남겨진 자기의 내부에서 쟁투가 벌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시끄러운 비명 소리가 되어 내일 모습을 나타내기 위해 여기서 들끓고 있는 죄악 을 느꼈다. 절굿공이와 절구로서, 스스로를 파멸시키고 있는 비참함 을 느꼈다. 불결한 손수건 속에 물방울처럼 떨구어 가는 길고도 권태로운 비참함이다. 시간의 자오선 위에는, 부정이라곤 하나도 없다. 거기에는 진실과 드라마의 환영을 만들어내는 운동의 시가 있을 뿐이다. 어떤 순간에 어디서든 절대자와 대결하는 수가 있다면, 석사와 예수와 같은 사람들을 신성한 것처럼 보이게 하고 있는 그 위대한 동정심을 냉각되어 버리리라. 두려운 점은, 인간이 분뇨 더미 속에서 장미를 창조하여온 일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이유로 장미를 원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다. 어떤 이유, 그리고 그 밖의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인간은 기적을 추구한다. 그것을 손에 넣기 위해, 그는 피 속으로 들어간다. 그는 온갖 관념을 가지고 스스로를 기만한다. 자신의 인생에서 단 1초 동안이라도 현실의 꺼림칙함에 눈을 감을 수 있다면, 그는 덧없는 그림자에라도 기꺼이 매달릴 것이다. 그는 무슨 일이든 참고 견딘다 ― 치욕, 빈곤, 전쟁, 죄악, 권태 ― 날이 밝으면 어떤 일이, 기적이, 인생을 견뎌낼 수 있게 만드는 기적이 일어나리라고 믿으면서 ―. 더욱이 그 동안, 언제나 내부에서는 미터가 계속 돌아가고 있으며, 그 내부에 손을 뻗칠 수도 진행을 저지시킬 수도 없는 것이다. 노상 누군가가 생명의 양식 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고 있다. 움막에 숨어 있는 불결하고 살이 찐 바퀴벌레 녀석이 그걸 잔뜩 먹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등불에 환히 비춰지고 있는 거리 저쪽에서는 망령 같은 군중이 허기져 있고, 그리고 그들의 피는 물처럼 연하다. 더욱이 끝없는 고통이나 비참으로부터 기적은 하나도 나타나지 않는다. 미미한 구원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다만 관념이 ― 살육에 의해 살이 찌는 창백하고 여위어 빠진 관념이 ― 있을 뿐이다. 간즙처럼 생겨나는 관념, 사체를 절개했을 때에 나오는 돼지의 내장 같은 관념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사람들이 영겁에 걸쳐 갈망하는 이러한 기적이란, 이 충실한 간디의 제자가 세척기 속에 떨군 그 두 개의 커다란 똥덩이 이상의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 되었을 때, 대체 기적이란 무엇인가 하고 생각한다. 만일 우리의 최후의 날에 향연 준비가 갖추어져 징소리가 울려 펴지고, 이때 뜻밖에도 아무런 경고도 없이 식탁에 올려진 것이 하나의 은쟁반이고, 그 위에 두 개의 커다란 똥덩이가 ―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님을 장님도 알 수 있는 똥덩이가 ― 실려 있었다면?... 나는 믿는다, 이야말로 인간이 추구하여온 가장 두드러진 기적일 것이라고. 이야말로 기적적인 일이 아닐까. 왜냐하면 이는 몽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이야말로 가장 자유분방한 꿈 이상의 기적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 가능성 정도는 상상할 수 있었던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거기까지 상상한 사람은 하나도 없고, 또 앞으로도 있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어쨌든 어떤 일도 기대해서는 안된다는 인식은 내게는 좋은 효과가 있었다. 몇주일이든, 몇 달 동안이든, 아니 실제로 오늘날까지 일생 동안,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기를, 내 일생을 일변시켜줄 만한 외재적 사건이 일어나기를 기대하여 왔다. 그런데 지금 갑자기 모든 일의 절대적인 절망에 눈뜸으로써 나는 겨우 구제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깨를 억누르던 거대한 하중이 제거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새벽녘에 나는 방값 정도인 몇 프랑을 졸라서 얻어내고는, 인도 청년과 헤어졌다. 몽파르나스를 향해 걸어가면서, 나는 물결이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기자, 그것이 어떤 모양을 하고 나타나든 간에, 절대로 운명에 저항하지 않으리라고 마음먹었다. 오늘날까지 내 신변에 일어난 일들 중 나를 파괴할 만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나의 환영밖에는 아무것도 파괴되지 않았다. 나는 상처를 입지 않고 있었다. 내일이라도 혁명이나 악성 전염병이나 지진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내일이라도, 동정이나 구원, 성실 따위를 추구할 수 있는 인간이, 단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미 커다란 재앙이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듯이 보인다. 지금 이 순간만큼, 내가 진정으로 고독한 경우는 있을 수 없으리라. 이제 무엇에도 매달리지 않으리라고 나는 결심하였다. 어떤 일도 기대하지 않으리라. 앞으로 나는 동물로서, 맹수로서, 부랑자로서, 약탈자로서 살아가자. 설령 선전 포고를 할지라도, 그것은 내가 나가야 할 운명이다. 나는 총검을 들고 푹 찔러주겠다. 칼자루까지 들어가도록 푹 찔러주겠다. 강간하라는 게 그날의 명령이라면, 얼마든지 강간해 주겠다. 맹렬히 해주겠다. 지금 이 순간, 이 조용하고 새로운 날의 새벽에, 지상은 죄악과 고뇌 때문에 눈이 아찔해지지 않는가? 인간의 본성의 단 한 가지도 변화시킬 수 없는가? 역사의 끊임없는 진행에 의해 본질적으로 토대부터 개조되지 않았는가? 이른바 인간의 본성의 보다 나은 부분에 의해, 인간은 배반당하여온 것이다. 그뿐이다. 정신적 존재의 극한적인 한계까지 오면, 인간은 다시금 야만인처럼 벌거벗겨진 자기를 발견한다. 인간이 신을 발견할 때, 말하자면 그는 깨끗이 쥐어 뜯겨진 것이다. 해골뿐인 존재가 된 것이다. 한 번 더 살을 얻기 위해, 그는 인생 속으로 파고 들어가지 않으면 안된다. 언어는 살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이리하여 영혼은 갈망한다. 어떤 쓰레기든 내 눈에 보이면, 나는 뛰어가서 그것을 걸신들린 것처럼 먹는다. 살아가는 게 으뜸가는 길이라면, 설령 식인종이 될지라도 나는 살아간다. 지금까지 나는 자신의 귀중한 가죽 을 보존해두려고 애써 왔다. 뼈를 덮고 있는 약간의 살을 보존해 두려고 노력하여 왔다. 그러나 이제 지쳐버렸다. 나는 인내의 극한에 도달해버린 것이다. 벽에 부딪쳐버린 것이다. 이제 한 발짝도 물러설 수 없다. 역사가 진행하는 한, 나는 죽어 있다. 만일 저쪽에 무엇이 있다면, 나는 단호히 물리쳐야 한다. 나는 신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모자라는 것이다. 나는 단지 정신적으로 죽어 있을 뿐이다. 육체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도덕적으로는 자유롭다. 내가 지금 작별하고 온 세계는, 우리에 갇힌 야수 ― 구경거리로서의 야수 ― 의 세계이다. 이제 새로운 세계가 열리고 있다. 날카로운 발톱을 지닌 여윈 정신 이 배회하고 있는 정글의 세계이다. 만일 내가 하이에나라면, 여위어 피골이 상접하고 굶주린 하이에나이다. 나를 살찌우기 위해 나는 전진한다. ♧ 한시 반에 나는 약속한 대로 반 놀든을 방문하였다. 만일 내가 대답을 하지 않으면, 아직 누구하고 ― 아마 내 조지아 여자의 엉덩이라도 껴안고 ― 자고 있는 줄 알아달라... 고 그는 내게 주의한 적이 있다. 아무튼 그는 따스한 침대 속에서 자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피로하여 녹초가 되어 있는 모양이다. 그는 자신을 매도하고 직업이나 인생을 저주하면서 잠에서 깨어난다. 진정으로 싫증을 느끼고 낙담하여, 하룻밤이 지나가고 날이 밝아도 아직 자신이 죽어 있지 않았다고 생각하여... 이를 분하게 여기면서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나는 창가에 걸터앉아, 되도록 그가 힘을 내도록 해주지만, 이는 꽤 까다로운 일이다. 이러쿵저러쿵 그를 어르고 달래며 일으켜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언제나 아침이 되면 ― 그에게 있어 아침이라는 건 어디에 있든 간에 오후 한시부터 다섯시 사이이다 ― 그는 몽상에 빠진다 몽상하는 것은 대개 과거의 일들이다. 그의 여자의 엉덩이 에 관한 것이다. 여자들의 살갗의 감촉은 어떠했는가, 아슬아슬한 순간에 여자들이 그에게 뭐라고 말했는가, 여자들을 어디에 눕혔는가... 따위를 그는 열심히 생각해내려 한다. 그리고 침대에 누운 채 쓴웃음을 짓고 지긋지긋해하면서, 그 기묘하고 권태로운 표정으로, 그의 혐오감이 언어로는 나타낼 수 없을 만큼 지독했다는 인상을 전달하려고 하는 것처럼 손가락 끝을 움직인다. 침대 위쪽에 세척용 백이 드리워져 있다. 이는 그가 비상시에 대비하여 마련해 두고 있는 것이다 ― 즉 그가 탐정견처럼 귀찮게 뒤따라 다니는 처녀 를 위해서이다. 그는 이 신화적인 여자들을 데리고 잔 뒤에도, 그녀들을 처녀라고 부르고 있다. 이름으로는 결코 부르지 않는다. 내 처녀 라고 하는 것이다. 내 조지아 여자 라고 하는 것처럼. 그는 화장실에 가면서 말한다. 내 조지아 여자가 찾아오거든 기다리라고 해. 내가 기다리라고 말했다고 말야. 괜찮으면 그녀를 자네 걸로 만들어도 좋아. 나는 그녀에게 싫증이 났어. 그는 하늘을 흘긋 곁눈질하여 바라보고는, 깊은 한숨을 쉰다. 비가 내리면 이렇게 말한다. 제기랄, 지긋지긋한 날씨야. 병이 걸려버리겠어. 또 환하게 햇볕이 쏟아지고 있으면, 이렇게 말한다. 제기랄, 저 거지 같은 해 때문에 장님이 되어버리겠어 ! 면도를 하기 시작하면, 깨끗한 타월이 하나도 없음을 갑자기 알아챈다. 제기랄, 이 호텔의 얼간이 녀석은 지독하게 인색하군. 그러니까 매일 깨끗한 타월 한 장도 내놓을 줄 모른다구 ! 그는 무슨 일을 하든, 어디엘 가든 간에 일이 잘 풀려 나가지 않는다. 지긋지긋한 나라거나 지긋지긋한 일들이고, 또 지긋지긋한 여자에게 깜쪽같이 속아넘어가곤 하는 것이다. 내 이빨이 모두 썩어가고 있어. 그는 양치를 하면서 말한다. 이 호텔에서 식사라고 내놓은 그 지독한 빵 덕분이야. 그는 입을 크게 벌리고, 아랫입술을 아래로 잡아당긴다. 봐요, 이렇다구. 어제는 이빨 여섯 개를 뺐어. 곧 또 의치를 해 넣어야 한다구. 살아가기 위해 일하고 있으면, 이 모양이야. 내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고 있을 때는 이빨이나 눈도 반짝반짝 빛나고 깨끗했지. 지금의 나를 보라구 ! 이래도 아직 여자가 생기는 게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야. 이봐, 내 소망은 멋있는 여자를 발견하는 거야 ― 그 빈틈없는 난쟁이 고환 녀석인 칼처럼 말야. 녀석이 여자로부터 받은 편지를 자네에게 보여주던가. 무슨 이름의 여자인지 알고 있나. 그 난쟁이 녀석이 내게는 여자 이름을 끝내 알려주지 않아... 내가 정을 통하여 빼앗지 않을까 하고 걱정하고 있는 거야. 그는 또 양치질을 하고, 이를 뺀 자국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고 있다. 자네는 운이 좋아. 하고 그는 부러운 듯이 말한다. 적어도 자네에게는 친구가 있으니까. 나는 하나도 없어. 있다면 그 아니꼬운 고환 녀석뿐이지만, 그치는 그 멋있는 여자 때문에 내가 열중하도록 만들고 있다구. 반 놀든은 갑자기 생각난 듯이 말한다. 이봐, 자네는 노마라는 여자를 아나? 온종일 돔 부근을 헤매고 있는 여자야. 그녀는 별나더군. 어제 그녀를 이리로 데리고 와서 엉덩이를 간질여 주었지. 그런데 아무래도 시켜주지 않아. 침대에 끌어들여... 팬티를 벗기는 데까지는 갔지만 말야... 그러자 나는 갑자기 싫어지더군. 그처럼 발버둥을 쳐 시간이 걸리는 아이는 이제 성가시다구. 그럴 만큼의 가치는 없어. 여자들이 하든 않든 간에 ― 그 아이들이 발버둥치며 시간을 낭비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야. 그 따위 쩨쩨한 창녀를 상대로 손발을 버둥거리고 있을 바엔, 가게 앞의 테라스에는 금방 뜨거워지는 여자가 얼마든지 있잖아. 정말이야. 모두들 껴 안기려고 이리로 찾아온다구. 그러면서도 이를 큰 죄라도 짓는 일처럼 여기고 있어... 가엾은 바보들이야 ! 서부 지역에서 나오는 학교의 여교사들 가운데는, 정말로 처녀가 있어요... 정말이야 ! 온종일이라도 변소에 웅크리고 앉아 그것만을 생각하고 있는 치들이지. 그런 여자들을 설득하여 납득시키는 데는 그다지 시간이 걸리지 않아. 하고 싶어 못 견디는 여자들인 걸. 지난번에 나는 유부녀를 데리고 잤는데, 그녀는 반 년 동안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내게 털어놓고 이야기하더군. 그런 걸 생각할 수 있나. 거 참, 지독한 정도가 아냐... 찢겨져 버리는 줄 알았어. 처음부터 끝까지 미치광이처럼 계속 신음하는 거야. 그런데 그 계집이 무엇을 원하고 있었는 줄 알아. 이리로 이사를 오고 싶다는 거야. 그리고 생각해 봐요. 나를 사랑하고 있어요? 하고 묻는 거야. 이쪽은 그 치의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데도 말야. 대개 나는 여자들의 이름 따위는 모르고 있어... 알고 싶지도 않고. 남편을 가진 여자들 말야 ! 내가 이리로 데리고 오는 유부녀들을 보면, 자네는 틀림없이 환멸을 느낄 거야. 이치들은 처녀보다 더 지독해. 유부녀라는 게 말야. 이쪽에서 시작하기를 기다리고 있지 않고 ― 그쪽에서 조르는 거야. 그리고 끝난 다음에는 사랑이니 연애니 하고 지껄이는 거야.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정말 여자가 싫어졌어 ! 그는 다시 창밖을 바라본다. 비가 줄줄 내리고 있다. 지난 5일 동안 이 모양으로 비가 계속 내리고 있는 것이다. 돔에 가겠나, 죠? 나는 그를 죠라고 부른다. 그가 나를 죠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칼이 함께 있으면, 그 역시 죠이다. 누구나 죠라고 불린다. 그 편이 간단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렇게 부르면 상대방을 그다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므로 기분이 좋다. 아무튼 죠는 돔에게 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 거기에는 빚을 너무 많이 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쿠포울로 가자고 한다. 가기 전에 한 블록쯤 슬슬 거닐며 산책을 하고 싶다고 한다. 하지만 비가 내리고 있어, 죠. 알고 있어, 하지만 어떤가. 나는 건강을 위해 산책을 할 필요가 있어. 내 뱃속의 더러운 것을 씻어낼 필요가 있다구. 그가 이렇게 말하니까, 나는 온 세계가 그의 뱃속에 담겨져, 그 속에서 부패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그는 옷을 입으면서 다시금 반쯤 졸고 있는 상태로 되돌아간다. 한쪽 팔을 웃옷 소매에 집어넣고 서서, 얼빠진 사람처럼 모자를 머리에 얹고는, 목소리를 내어 몽상하기 시작한다 ― 리비에라에 관한 것, 태양에 관한 것, 평생 동안 게으름을 피며 살아가는 것 따위에 대하여. 내 인생의 소망은 오직. 하고 그는 말한다. 많은 책을 읽는 것, 많은 꿈을 꾸는 것, 많은 여자를 갖는 것이지. 명상을 하듯이 이렇게 말하면서, 더할 나위 없이 부드럽고 굉장히 음험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본다. 이런 미소를 좋아하나? 하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 맥이 빠진 것처럼 덧붙인다. 제기랄, 이런 미소를 지을 수 있는 멋있는 암탉을 발견할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 멋있는 암탉만이 지금의 나를 구할 수 있어. 하고 그는 지쳐버린 듯한 표정으로 말한다. 온종일 새로운 여자의 엉덩이만 쫓아다니고 있기가 진절머리 난다구. 기계적으로 되어 버렸거든. 곤란하게도, 자네도 알고 있는 것처럼, 나는 연애라는 걸 할 수 없단 말야. 너무 에고이스트이기 때문이지. 여자는 단지 내게 꿈을 꿀 힘을 빌려줄 뿐이야. 그 뿐이야. 그건 술이나 아편 따위와 마찬가지고 하나의 악덕이야. 나는 매일, 새로운 여자를 손에 넣지 않고는 못 견뎌. 손에 들어오지 않으면, 나는 병적으로 돼요. 너무 강한 거야. 이따금 나는 자신이 섬뜩한 느낌이 드는 수가 있어. 물건 을 너무 빨리 끄집어내고 ― 그러면서도 그게 실제로는 거의 무의미하기 때문에... 나는 거의 기계적으로 하고 있을 뿐이야. 때로는 여자의 입장을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을 경우도 있어. 그러나 여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걸 문득 알아채고는, 퍼뜩 정신이 들어, 다시 제대로 하기 시작하지. 아무튼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아채기 전에, 이미 나는 여자를 방안에 끌어들이고 있는 거야. 여자에게 뭐라고 말했는지 기억이 나지도 않아. 어느 틈엔지 여자를 방에 끌어들여, 그녀의 엉덩이를 두드리고 있는 거야. 그리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채기 전에, 이미 끝나고 있는 거야. 마치 꿈꾸는 것 같아... 무슨 말인지 알겠나. 그는 프랑스 여자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프랑스 여자는 취향이 맞지 않는 것이다. 그녀들은 돈을 원하거나, 결혼을 하고 싶어하지. 프랑스 여자들은 본질적으로 모두 매춘부야. 나는 오히려 처녀를 상대하는 편이 낫더군. 하고 그는 말한다. 처녀는 어느 정도 환상을 안겨주니까. 적어도 투지를 일깨워 주지. 테라스를 흘긋 둘러보면, 그가 껴안고 잔 적이 있는 창녀가, 언제나 그곳에 한 명은 없을 때가 없다. 술집 스탠드 앞에 서서, 그는 나에게 한 사람 한 사람 가리켜 보이며 그녀들을 분석하기 시작한다. 그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설명한다. 저 이이들은 모두 냉감증에 걸려 있어요. 하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 이내 발정하고 있는 감미로운 물기가 많은 처녀들을 생각하며 두손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한다. 그는 황홀경에 잠겨 있다가,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 흥분하여 내 팔을 잡으면서, 마침 자리에 앉으려 하고 있는 몸집이 커다란 한 여자를 가리킨다. 내 덴마크 여자가 있군. 하고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저 엉덩이를 보라구. 정말 덴마크 타입이잖아. 저 여자는 무척 좋아해 ! 금방 나에게 조르거든. 이리로 와봐요... 자, 저 여자의 옆모습을 보라구. 저 엉덩이를 봐, 어때. 굉장히 크지. 저 여자가 내 위에 올라타면, 내 양팔로 껴안아도 손이 닿지 않을 정도야. 저 엉덩이는 온 세계를 제압할 거야. 마치 자신이 그 속에 기어다니고 있는 작은 벌레 같은 느낌이 들게 만든다구. 왜 내가 저 여자에게 빠져버리는지 자신도 알 수가 없어 ― 아마 저 엉덩이 때문일 거야. 아무래도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도 말야. 그러나 그 주름이 멋있어 ! 저런 엉덩이는 잊혀지지 않아. 이건 사실이야... 엄연한 사실이야 ! 다른 여자들 것은 싫증이 나거나, 순간적인 환각을 안겨주는 정도가 고작이지만 말야. 하지만 저 여자는 ― 아무튼 저 엉덩이를 갖고 있으니까 ! ― 그리고 그밖에도 여러 가지가 있어. 아무도 저 여자를 말살시킬 수는 없네... 마치 위에 기념비를 태우고 침대에 들어가는 격이니까. 덴마크의 여자의 전기가 그에게 전달된 모양이다. 지금 그 활발하지 못하고 둔해 보이는 표정이, 그로부터 이미 사라져 버렸다. 눈빛이 긴장되어 있다. 물론 한 가지 일이, 다른 어떤 일을 연상시킨 것이다. 그는 지겨운 호텔을 나오고 싶어하고 있었다. 소란스러워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뭔가 생각을 집중시키기 위해, 그도 글을 쓰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지긋지긋한 근무 때문에 글을 못쓰고 있다. 그래서 못쓴다구, 그 거지 같은 근무 때문에 ! 나는 몽파르나스에 관한 글을 쓰려는 게 아냐... 내 인생, 내 사상을 글로 나타내고 싶은 거야. 내 뱃속의 더러운 것을, 우물을 치듯이 쳐내고 싶은 거야... 이봐, 저쪽에 있는 저 여자를 보라구. 오래 전에 내가 저 여자하고 한 적이 있어. 저 여자는 언제나 시장 부근에 유유히 버티고 앉아 있어. 이상한 암탉이야. 침대 가장자리에 드러누워 옷을 걷어올리는 거야. 그런 식을 해본 적있나. 나쁘지 않아. 통 나를 재촉하려고 하지도 않아. 내가 꾸물거리고 있으면 벌떡 드러누워 제 모자를 가지고 놀고 있을 뿐이야. 그리고 내가 해버리면, 마치 지루한 것처럼 이렇게 말하거든 ― 이제 끝났어요? 하고 난 후에도 천연덕스럽다구. 물론 했다고 해서 무슨 변화가 일어나는 건 아니지만 말야. 그런 건 나도 잘 알고 있지만... 그게 매력적이야. 알겠나. 저 여자가 몸을 닦을 때에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구. 호텔을 나와서 또 노래를 부르고 있어. 잘 가라는 인사도 하지 않아 ! 모자를 흔들며 콧노래 같은 걸 부르면서 떠나가요. 그런 창녀가 있나? 하지만 껴안고 잘 때의 기분은 좋아. 내 처녀보다도 좋았던 것 같아. 해도 달라붙지 않는 여자를 죄어 붙일 때는, 거기서 뭔가 타락의 향기가 풍기는 것 같아. 겨우 피가 끓어오르는군... 그리고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 만일 저 여자에게 감정이라는 게 있다면, 그게 어떤 것일지, 상상할 수 있겠나? 이봐 하고 그는 말한다. 내일 오후에 클럽으로 함께 나가주지 않겠나... 댄스가 있어. 내일은 안돼, 죠. 칼을 도와주기로 약속이 되어 있어. 이봐, 그따위 녀석의 일은 잊어버리라구 ! 자네가 아무래도 해줘야 할 일이 있어. 즉 이러한 케이스인데... ― 그는 다시금 양손을 만지작거린다. 실은 점찍어둔 여자가 있어... 내가 밤에 비번일 때에는, 그 여자와 함께 지내기로 약속한 거야. 그러나 나는 그녀에게는 아직 그다지 적극적이 아니거든. 그녀에게 어머니가 있지... 화가 나부랭인가 본데, 이 여자가 나와 만날 때마다 언짢은 기색을 보여. 실은 어머니의 질투가 아닌가 여겨지는데 말야. 그러니까 만일 내가 어머니와 먼저 자주면,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을 것 같아. 무슨 말인지 알겠지... 아무튼 그녀의 어머니와 잔다고 해서 자네가 우려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딸을 먼저 만나지 않았다면, 어머니에게 마음이 끌렸을지도 몰라. 딸은 아주 귀엽고 앳되고 신선해. 무슨 말인지 알겠지? 딸은 깨끗한 냄새를 풍기고... 잠깐 기다려, 죠. 자네는 어디 다른 여자를 발견하는 편이 나았을 것 같은데. 이봐,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는 말라구. 자네 기분을 알 수 있어. 자네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나의 작은 호의라구. 저 늙은 암탉을 어떻게 몰아내야 할지, 나로선 알 수가 없어. 처음에는 잔뜩 술에 취해 주정을 부려줄까 했지만 ― 그러면 딸이 싫어할 거란 말야. 그 치들은 감상적이니까. 미네소탄가 어딘가 에서 왔다구. 어쨌든 내일 나한테 들러 깨워주지 않겠나. 그러지 않으면 나는 늦잠을 자니까. 그리고 방을 구하는 일을 거들어 주었으면 좋겠어. 자네가 알다시피, 나는 그 방면의 일에는 쓸모가 없으니까. 이 근방의 조용한 방을 구했주었으면 좋겠어. 이 부근이 아니면 곤란해... 여기선 내가 신용이 있으니까, 나를 위해 내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약속해 주게. 이따금 식사 정도는 사겠어. 아무튼 들러주어. 그처럼 얼간이 같은 여자들을 상대로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나는 머리가 이상해진다구. 나는 자네하고 하버록 엘리스에 관한 토론이라도 벌이고 싶어. 제기랄, 나는 그 책을 이미 3주일 전에 빌려왔지만, 아직 읽지 못하고 있네. 자네는 요즘 약간 풀이 죽어 있는 것 같아. 믿어지지 않겠지만, 나는 아직 한 번도 루브르 미술관에 가본 적이 없어 ― 코미디 프랑세즈좌에도 말야. 거기엔 가볼 만한 가치가 있나? 그래도 얼마간은 쓸모 없는 생각을 멀리 하게는 해주겠지. 자네는 온종일 어떻게 지내고 있나? 지루하지 않은가. 여자하고 자는 건 어떻게 하고 있어. 이봐, 이리로 오라구 ! 아직 달아나면 안돼... 난 허전하고 쓸쓸해. 뭐 좋은 일없을까 ― 만일 이런 상태가 1년이나 더 계속된다면, 나는 머리가 돌아버릴 거야. 난 이 지겹고 지긋지긋한 나라에서 달아나야 해. 여기엔 내가 도움이 되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어. 지금은 미국도 이가 득실거리고 있는 상태지만, 그래도 옛날이나 마찬가지야... 여기에 있으면 이상해진다구... 여기에 온종일 자리잡고 있는 변변치 않은 자들은, 모두 자신들이 하는 일을 자랑만 하고 있지만, 모두 코를 쳐들 수 없을 만큼 지독하게 풍기는 악취만도 못한 녀석들 뿐이야. 모두 낙오자라구 ― 그러니까 멀리 파리까지 건너온 거야. 이봐, 죠, 자네는 고향이 그리워 못 견디는 일은 없나. 자네는 별난 사람이야... 여기에 있는 걸 더 좋아하는 것 같아. 여기에 뭐가 있단 말이야... 얘기를 들어보고 싶군. 아아 어떻게든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걸 그만둘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나의 내부는 완전히 뒤틀려져 있어... 내부에 혹이라도 생긴 것 같아... 아, 내가 자네를 싫증이 나게 만들고 있다는 건 알고 있네. 하지만 누구에게 이야기하지 않고는 못 견디겠어. 위층의 저런 녀석들에게는 말할 수 없어... 저 쓸모 없는 치들이 어떤 녀석들인지는 자네도 알고 있겠지... 저 녀석들은 모두 제 이름을 밝힌 기사를 쓰는 일에만 열중하고 있어. 그리고 그 애숭이인 칼 얘기인데, 그 녀석은 지독하게 이기적인 놈이야. 나는 에고이스트이긴 해도, 이기적이 아니라구. 이는 구별해야 하네. 나는 신경병 환자인지도 몰라.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일을 중지할 수 없는 거야. 그렇다고 해서, 자신을 그렇게 대단한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냐... 단지 다른 일을 생각할 수 없을 뿐야. 그뿐이라구. 다소나마 구원이 되어줄 듯한 여자와 연애를 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러나 내게 흥미를 갖는 여자는 발견되지 않고... 나는 지리멸렬한 상태가 되어버렸어. 이는 자네도 알 수 있겠지. 모르는가. 어떻게 하면 좋으리라고 자네는 생각하나. 자네가 내 입장이 된다면, 어떻게 하겠나. 아, 이제 더 이상 자네를 붙잡고 있지는 않겠어. 하지만 내일은 깨워 달라구 ― 한시 반에 말야 ― 알겠지. 내 구두를 닦아준다면, 특별히 한턱 내겠어. 그리고 자네가 아주 깨끗한 고급 와이셔츠를 갖고 있으면, 그것을 갖다주지 않겠나. 엉망이야, 나는 그 직장에서 뼈빠지게 일하고 있지만, 산뜻한 와이셔츠 하나 살 수 없으니... 우리를 마치 니그로를 다루듯이 혹사하고 있어. 좋아, 제기랄 ! 나는 산책을 하러 가겠어... 뱃속의 오물을 씻어내는 거야. 잊지 말라구, 내가 부탁한 걸 !” 6개월 동안 ― 혹은 그보다 더 오랫동안 ― 돈 많은 여자인 이레느와의 서신 왕래가 계속되어 왔다. 나는 이 사건을 마지막 단계까지 몰고 가려고, 매일 칼에게 보고하여 왔다. 그 까닭은, 이레느가 관련되어 있는 한, 사태가 느리게 한없이 진행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며칠 동안에는 굉장히 많은 분량의 서신이 교환되었다. 우리가 보낸 마지막 그것은... 즉 마지막 편지는 분향을 풍기는 잡문집이었다... 낡은 소설의 가장 열악한 부분, 신문의 일요 부록의 단편, 로너나 타니아에게 보낸 낡은 편지의 재탕, 라블레나 페트로니우스의 글을 발췌하여 서투르게 번역한 문장 따위. 요컨대 우리는 스스로를 소모하여 고갈시켜 버린 것이다. 마침내 이레느는 그녀의 껍질 로부터 빠져나올 결심을 하였다. 드디어 그녀의 호텔에서의 밀회를 약속하는 편지가 도착한 것이다. 칼은 팬티 속에 오줌을 싸버렸다. 알지 못하는 여성에게 편지를 쓰는 일과, 그 여성을 찾아가 껴안고 자는 일은 별개의 것이다. 다급해지면 그는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하는 것이다. 내가 대역을 맡아야 하는 게 아닐까 하고 걱정이 되었을 것이다. 그녀의 호텔 앞에서 택시를 내리자, 그는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래서 우선 그를 한 블록쯤 걸어가게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는 이미 페르노를 두 잔이나 들이키고 있었지만,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호텔의 외관 자체가 그이 마음을 짓누르기에 충분했다. 호화로움을 과시하려는 듯이 꽤나 으리으리하게 꾸며진 호텔로서, 흔히 볼 수 있는 그 널찍하고 사람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 로비가 있고, 영국 부인들이 한 시간 가량이나 꼼짝도 하지 않고 거기에 앉아, 그가 달아나는지의 여부를 확인하려고 지켜보고 있었다. 포터가 그의 내방을 알리기 위해 전화를 걸고 있을 동안, 나는 옆에 서 있었다. 이레느는 있었다. 그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내게 절망적인 마지막 일별을 던졌다. 개 목에 밧줄이 감겨질 때에 볼 수 있는, 그 답답한 호소의 일별과도 같은 것이다. 회전 도어를 통과하면서, 나는 반 놀든의 일을 생각하였다... 나는 하숙집으로 돌아와, 전화가 걸려오기를 기다렸다. 그는 한 시간밖에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근무처에 나가기 전에, 결과를 내게 알려주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나는 실제 상황을 상상해 보려고 했지만,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녀의 편지는, 우리 것보다 훌륭하고 진지했다. 이는 분명하다. 지금쯤은 이미 그들도 서로의 속셈을 알았을 것이다. 그는 또 팬티 속에 오줌을 싸고 있는 것일까. 전화가 걸려왔다. 그의 쉰 듯한 목소리가, 겁을 먹은 듯하면서도 동시에 쾌활하게 들떠 떠들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칼 대신 사무실로 나가 달라고, 내게 부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녀석에게 뭐라고 말해주지 않겠어. 내가 죽어가고 있다고 하든지... 이봐, 칼,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데... 여보세요, 당신은 헨리 밀러씨예요? 여자 목소리이다. 이레느다. 그녀는 내게 여보세요 하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전화로는 아름답게 들렸다... 정말 예쁘다. 순간적으로 나는 완전히 혼란에 빠졌다. 뭐라고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렇게 나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봐요, 이레느, 당신은 아름다워요... 정말 멋있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어리석게 들릴지라도, 단 한 가지의 진실을 그녀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지금, 모든 게 일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럴 듯한 기지가 생각나기 전에, 또 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묘하게 쉰 듯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그녀는 자네를 좋아한다구, 죠. 내가 자네 이야기를 다 들려주었어... 사무실에서 나는 반 놀들이 교정보는 일을 거들어주지 않으면 안되었다. 휴식 시간에, 그는 나를 곁으로 불러 피로하고 언짢은 듯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그 꼬마 녀석이 죽어가고 있다고? 그래, 하지만 사실은 어떻게 된 거야? 그 돈 많은 여자를 만나러 갔을 거야. 하고 나는 침착하게 대답하였다. 뭐라구? 그럼 녀석이 여자를 찾아간 거야? 그가 멍한 표정으로 말한다. 이봐, 그 여자는 어디에 살고 있나. 이름이 뭐지?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체했다. 아 하고 그는 말한다. 자네는 좋은 사람 아닌가. 왜 나를 그 음모 에 끼워주지 않나? 그를 달래기 위해, 마침내 나는 자세히 알게 되면 모두 얘기해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나 자신 칼과 만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수 없을 정도였다. 이튿날 정오 무렵에, 나는 그의 방문을 노크하였다. 그는 이미 일어나 면도를 하려고 수염에 잔뜩 비누칠을 하고 있었다. 그의 표정으로는 아무것도 파악할 수 없었다. 그가 있는 그대로를 내게 이야기할 작정이냐의 여부조차도 파악할 수 없었다. 열어 젖혀진 창문으로 햇빛이 비쳐들고, 참새가 지저귀고 있었다. 그런데 어찌 된 셈인지, 왠지 알 수 없지만, 방안이 이전보다 더 을씨년스러워 보였다. 바닥에는 비누 거품이 흐트러져 있고, 타월 걸이에는 한 번도 세탁한 적이 없는 불결한 타월 두 개가 걸려 있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칼에게는 조금도 달라진 데가 없었다. 그 점이 무엇보다도 나를 당혹시켰다. 오늘 아침에는 세상이 좋게든 나쁘게든 일변되어 있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근본적으로 변화되어 있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런데 칼은, 거기에 서서 얼굴에 비누칠을 하고 있고, 변화한 점이라곤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앉으라구... 그 침대에 앉으라구. 하고 그는 말한다. 모두 얘기해 주겠는데... 기다려줘... 잠깐 기다려 줘요. 그는 다시금 얼굴에 비누칠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면도를 시작하였다. 그는 물 때문에 불평을 하였다... 아직 더운물이 안 나오는 것이다. 이봐, 칼, 마음 졸이게 하지 말아요. 나중에 애먹여도 되잖아. 자, 가르쳐줘, 한 가지만... 좋았나, 나빴나? 그는 브러시를 손에 든 채, 돌아다보며 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기다려... 이제부터 모두 이야기해줄 테니까. 그럼, 실패한 거여? 아니 하고 그는 말하기 시작했다. 실패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성공한 것도 아니었어... 그런데 자네는 사무실에 나가 내가 부탁한 대로 해줬나. 사무실 쪽에는 뭐라고 말했어? 그로부터 이야기를 끌어내려 해도 소용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제대로 준비가 되면 이야기를 하겠지. 그 이전에는 안될 것 같다. 나는 침대에 드러누워, 대합처럼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는 수염을 깎아나갔다. 갑자기, 아무런 전제도 없이 그는 말하기 시작하였다 ― 처음으로 맥락도 없이... 이윽고 점차 분명하고 강한 어조로, 결연하게. 얘기를 꺼내기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는 모두 털어놓고 이야기하려고 마음먹은 모양이다. 마치 양심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끄집어내는 듯했다. 그의 표정이 나에게, 그가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의 그 시선을 연상시켰다. 잠시 망설이는 것처럼, 그때와 같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마치 모든 일이 그 마지막 순간에 포함되어 있음을 암시하는 것처럼, 또 만일 그가 사태를 일변시킬 힘을 갖고 있었다면, 엘리베이터 밖으로는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을 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하게 만들려는 것처럼. 그가 찾아갔을 때, 그녀는 실내복 차림으로 있었다. 화장대에는 샴페인 병이 담겨진 그릇이 놓여 있었다. 실내는 꽤 어둡고, 그녀의 목소리는 아름다웠다. 그는 나에게 그 방의 상태를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다. 샴페인 이야기, 웨이터가 그 병을 열었을 때의 일, 병을 열었을 때 큰 소리가 났다는 것, 그녀가 그를 맞기 위해 다가왔을 때, 실내복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는 이야기 따위 ― 그는 내가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고 있는 이외의 일들을 모두 이야기해 들려주었다. 그가 그녀를 찾아간 것은 여덟시 무렵의 일이었다. 여덟시 반이 되자, 그는 근무처 일에 신경이 쓰여, 초조해져 왔다. 내가 자네에게 전화를 건 것은 아홉 시경이었지, 안 그런가 ? 하고 그는 말한다. 음, 그 무렵이었어. 나는 초조해하고 있었어. 무슨 말인지 알겠지... 알 수 있어. 그리고 어떻게 됐나... 그의 말을 진실로 받아들여야 할지, 나로선 판단하기 어려웠다. 아무튼 우리가 어설프게 만들어낸 편지를 보내고 있었으니까. 그가 하는 말을 제대로 듣고 있었는지도 알 수 없다. 왜냐하면 그가 하는 말이, 마치 공상적인 이야기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친구가 어떤 인물인가를 알고 있는 만큼, 진실같이 들리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그 전화 목소리를 생각해냈다. 두려움과 들뜬 듯한 기분이 기묘하게 뒤섞인 그 목소리를. 그러나 지금 그는 왜 더욱 쾌활하지 않은가? 그는 연방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잔뜩 피를 빨아먹은 주홍색의 귀여운 빈대 같은 미소이다. 아홉 시였지. 하고 그는 한 번 더 말했다. 내가 자네에게 전화 걸었을 때 말야, 그렇지? 나는 지루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아홉 시였다. 지금 그는, 그때 시계를 꺼내어 본 것을 생각해내어, 아홉 시였음을 분명히 알게 된 것이다. 어쨌든 그가 다시 시계를 들여다보았을 때에는, 열시 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열시 에 그녀는 양손으로 급소를 누르고 소파에 누워 있었다. 이런 식으로 그는 이야기를 진행하여간 것이다 ― 조금씩 천천히. 열 한시에 얘기가 결정되었다. 즉 그들은 보르네오르 사랑의 도피를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남편 따위는 어찌됐든 상관없다 ! 어차피 그녀는 남편을 조금도 사랑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만일 남편이 늙은이이고 정열이 없다면 사정이 없었다면, 그녀는 처음부터 편지를 보내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말하는 거야. 하지만 내가 싫어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어요 ? 이 말을 듣고, 나는 무의식중에 웃음을 터뜨렸다. 바보 같은 소리여서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 자네는 뭐라고 말했나 ? 뭐라구 말했을 것 같아? 내가 말해줬지, 당신이 싫증을 느끼는 남자가 있을 수 있을까요, 하고 말야. 그리고 어떤 일이 진행되었는지를, 그는 설명하였다. 그는 몸을 웅크려 그녀의 유방에 키스를 하였다. 열렬히 키스한 다음, 그녀의 코르셋 속으로 유방을 돌려주었다. 그 다음에는 또 샴페인을 마셨다. 한밤중에 웨이터가 맥주와 샌드위치 ― 캐비어를 곁들인 샌드위치 ―를 갖고 왔다. 그 동안 즉 그는 금방이라도 오줌을 쌀 것 같아 혼났다고 한다. 한 번은 아주 못 견딜 것 같았지만, 차차 견딜 만해져 갔다. 그의 방광은 즉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처럼 되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 이 난쟁이이며 빈틈이 없는 고환 녀석은 ― 상황이 품위 있는 행동을 필요로 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한시 반에 그녀는, 마차를 불러 숲을 드라이브하자고 말하였다. 그는 한 가지 생각에만 얽매여 있었다... 어떻게 오줌을 눌 것인가.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 당신을 그리워하고 있어요. 하고 그는 말하였다. 당신이 가자는 곳이면 어디든 가겠어요 ― 이스탄불이든, 싱가포르든, 호놀루루든. 그러나 지금은 돌아가야겠어요... 시간도 늦어졌고. 그는 이러한 이야기를 그의 불결하고 작은 방에서 들려주는 것이었다. 햇빛이 환하게 비쳐들고, 새들이 미치광이처럼 지저귀고 있었다. 그녀가 아름다운지 어떤지, 나는 아직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 자신도 알지 못했다 ― 이 얼간이 녀석도 이레느가 아름답지는 않았던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실내가 어둡고, 또 샴페인이 나와, 그의 신경이 무디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렇더라도 미인인지 아닌지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할 텐데 ― 이 이야기가 처음부터 엉터리로 꾸며낸 게 아니라면 말야. 잠깐 기다려요. 하고 그는 말한다. 기다려... 생각해 보게. 아니, 미인은 아니었어. 지금 분명해졌어. 이마에 흰머리가 하나 드리워져 있었어... 생각이 나는군. 그러나 그런 건 대수로운 일도 아닐 거야 ― 거의 잊어버렸을 정도니까. 그래, 그녀의 팔이 되게 가늘었어 ― 가늘어서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았어. 그는 왔다 갔다 하며 거닐기 시작하였다. 갑자기 딱 멈춰 섰다. 그 여자가 10년만 더 젊었어도 좋았는데 ! 하고 그는 큰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대로 신경이 쓰이지 않았을 거야... 그 부러질 것 같은 팔도 말야.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나이가 너무 많아. 안 그런가, 여자도 그 나이가 되면, 한 해 한 해가 중대하니까. 그녀가 내년에는 한 살만 더 나이를 먹는 게 아닐 거라구 ― 10년쯤은 더 늙어 보일 거야. 그리고 1년이 더 지나면, 20년은 더 늙어 보이지. 그런데 나는 되레 더 젊어지는 것처럼 보일 테니까 ― 적어도 앞으로 5년 정도는... 그래, 결말은 어떻게 된 거야 ? 하고 나는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 뿐이야... 결말 같은 건 없었네. 나는 화요일 다섯 시쯤에 그녀와 만나기로 약속을 했지. 그런데 좀 문제라구. 무슨 말인지 알겠지. 그 여자의 얼굴에는 주름이 있거든. 그런데 밝은 낮에 보면, 그게 더 지독하게 드러나 보일 거란 말야. 그 여자는 화요일에는 내가 해주기를 바라고 있어. 낮 동안의 정사를... 자네는 그런 여자를 상대하지는 않을 거야, 특히 그런 호텔 속에서는 말야. 차라리 나는 비번인 날 밤에 하고 싶어... 그런데 화요일 밤은 비번이 아니라구. 그뿐만이 아냐. 그 사이에 편지를 보내겠다고 약속을 했어. 지금 새삼스레 뭐라고 편지를 쓰지? 제기랄 ! 그녀가 그런 대로 10년만 더 젊었어도 괜찮은데. 내가 그녀와 함께 떠나야 한다고 자네는 생각하나?... 보르네오든 어디든 그녀가 가보고 싶어하는 데로 말야. 그런 돈 많은 여자를 상대하면, 나도 애를 먹지 않을까. 나는 총을 쏠 줄 모른다구. 나는 총 따위의 종류는 모두 두려워. 게다가 그녀는 밤이고 낮이고 졸라댈 테고... 온종일 사냥과 그것만하고 있어야 한다면... 나는 못 견딜 거야 ! 자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나쁜 일은 아닐지도 몰라. 넥타이라도 사줄 테고... 자네도 우리와 함께 가주겠지? 내가 자네 이야기를 다 해줬어... 내가 가난뱅이라고 말했나. 여러 가지를 필요로 하고 있다고 이야기했어? 다 얘기했네. 제기랄, 그녀가 그런 대로 대여섯 살만 젊었어도 만사가 나무랄 데 없는 케이스인데 말야. 그녀는 이윽고 마흔 살이라고 하더군. 이는 곧 쉰 살이나 예순 살이라는 얘기야. 마치 제 어머니하고 하는 거나 마찬가지야... 그런 짓은 할 수 없어... 그녀하고는 불가능해. 그렇더라도, 그녀에게도 약간이나마 매력이 있었을 것임에 틀림없어... 자네는 그녀의 유방에 키스했다고 말했잖아. 그녀의 유방에 키스하는 거야 대수로운 일도 아니잖아. 게다가 방안이 어두웠으니까, 아까도 말한 것처럼. 그가 바지를 입으려 하자, 단추가 하나 떨어져 나갔다. 이것 보라구. 망가져 버렸어. 지긋지긋한 옷이야. 이걸 나는 이미 7년 동안이나 입어 왔다구... 게다가 이 양복 값을 나는 한 푼도 지불하지 않고 있어요. 이전에는 고급 양복이었는데, 지금은 악취를 풍기고 있어. 그 여자는 내게 옷도 사주겠지. 내가 제일 좋아할 만한 것은, 무엇이든 사주겠지. 그러나 그런 건 싫다구. 여자에게 지불하게 하기는 싫어.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그렇게 한 적이 없어. 그것은 자네가 생각할 법한 일이야. 차라리 혼자 지내는 편이 낫다구. 제기랄, 여기는 좋은 방이야. 안 그런가. 어디가 마음에 안 들어. 그녀의 방보다 훨씬 좋아 보이네. 안 그래? 그녀가 들어 있는 고급 호텔 따위를 나는 좋아하지 않아. 그런 호텔은 성미에 안 맞아. 그녀에게 그렇게 말해 줬다구. 그랬더니, 나는 어디서 지내든 상관없다는 거야... 당신이 그러기를 바란다면, 이 호텔을 나가, 당신과 함께 지내겠다는 거야. 그녀가 커다란 트렁크나 모자 상자, 언제나 지니고 다니는 쓸모 없는 물건 따위를 모두 챙겨 가지고 이리로 이사 오는 광경을 상상할 수 있겠나? 그녀는 터무니없이 많은 물건들을 갖고 있어... 너무 많아, 옷이나 술병이나 모든 게 말야. 마치 병원 같아, 그녀의 방은. 손가락에 작은 상처라도 입으면, 그야말로 야단법석을 떤다구. 그리고 이제 마사지를 해야 한다, 머리 드라이를 해야 한다, 이걸 먹으면 안된다, 저걸 먹으면 안된다... 이봐, 죠, 그녀가 조금만 더 젊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케이스인데 말야. 젊은 여자 같으면 무엇이든 너그럽게 보아줄 수 있어. 젊은 여자는 두뇌가 좋을 필요가 없으니까. 머리가 좋지 않은 편이 낫다구. 그런데 아주 나이가 많은 여자일 경우는, 설령 그 여자가 매우 훌륭하고 온 세계에서 제일 매력이 있는 부인이라 할지라도, 하나도 다를 게 없어. 젊은 여자와 어울리는 건 하나의 투자지만, 할머니와 어울리는 건 지독한 낭비라구. 할머니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여러 가지를 사주는 일 정도겠지. 하지만 아무리 그런 일을 한 대도, 그 팔이 살이 쪄 통통해질 리도 없고, 다리 가랑이에 물기가 많아질 리도 없어. 하지만 그녀는 나쁘지 않아. 이레느는 말야. 사실 자네 같으면 그녀가 마음에 들 거라고 생각해. 자네의 경우는, 또 얘기가 다르다구. 자네 같으면 그녀를 껴안고, 자줄 필요도 없고 말야. 자네 같으면 어떻게든 견디며 좋아하게 될 수 있어. 그 드레스나 술병이나 그 밖의 여러 가지 쓸모 없는 것들을 좋아하게 되지는 않겠지만, 그러나 너그러이 봐줄 수는 있을 거야. 그녀는 상대가 자네라면 싫증을 느끼게 만들지는 않을 거야, 이건 단언할 수 있어. 흥미를 느끼게 될지도 몰라. 그러나 아무튼 시들어 버렸기 때문에... 유방은 그런 대로 괜찮지만 ― 그 팔이 말이 아냐 ! 나는 곧 자네를 데리고 가겠다고 그녀에게 약속했네. 자네 이야기를 꽤 많이 들려주었어... 무슨 이야기를 해야 좋을지 몰랐기 때문이야. 자네 같으면 그 여자를 좋아하게 될지도 몰라. 특히 드레스를 입고 있을 때의 그녀를 말야. 나는 알 수 없지만... 가만, 그녀가 부자라고 했지. 나는 좋아하게 될 거야 !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상관없어. 마귀할멈이 아닌 한은 말야... 마귀할멈일 턱이 있나 !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녀는 차밍하다구. 그건 확실해. 이야기도 잘하고, 얼굴도 깨끗하고 말야... 다만 그 팔이... 좋아, 사실 그뿐이라면, 내가 상대가 되어주겠네 ― 자네가 상대가 되고 싶지 않다면 말야. 그녀에게 그렇게 말을 전해 줘. 하지만 잘 해달라구. 그러한 여자가 상대이면, 일을 천천히 진행시켜야 하니까. 나를 데리고 가서, 자연스레 일을 진행시키는 거야. 우선 나를 막 깎아 내리는 거야. 질투하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라구... 제기랄, 경우에 따라서는 우리 둘이서 함께 그녀를 껴안고 자줘도 되지 않나... 그리고 모두 함께 사방을 돌아다니며 식사를 하거나... 드라이브를 하거나, 사냥을 하고 가는 거야... 멋진 옷을 입고... 만일 그녀가 보르네오에 가고 싶다면, 함께 따라가자구. 나도 총 다룰 줄은 모르지만, 그런 건 어떻든 상관없어. 그녀 역시 그런 일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구. 그녀는 단지 함께 자주기를 바랄 뿐이야. 다른 건 없어. 자네는 아까부터 계속 그녀의 팔 얘기만 하고 있지만, 온종일 팔만 쳐다보고 있을 필요도 없잖은가. 안 그래? 이래도 주거라 할 수 있나. 언제까지나 까다로운 소리만 늘어놓으면서, 평생 동안 자네는 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을 텐가. 자네는 자신의 방세도 못 내고 있잖아... 정해진 일자리조차 없잖은가. 이런 삶이 어디에 있어. 나는 그녀가 일흔 살이라도 상관없어 ― 그래도 이런 모양의 생활보다는 낫다구... 아, 죠, 내 대신 그녀를 껴안고 자줘... 그러면 만사가 다 잘 되어갈 거야. 나도 이따금 자주겠네... 내가 비번인 날 밤에라도 말야. 난 이미 나흘 동안이나 대변이 안 나온다구. 무엇인가가 내게 달라붙은 채 떨어지지 않는 거야. 포도송이처럼... 꽉 막혀버려서 그래. 틀림없어. 머리칼마저 자꾸 빠지고... 또 치과에도 가봐야 한다구. 마치 나 자신이 허물어져가는 듯한 느낌이야. 내가 자네를 정말 재미있는 사나이라고 그녀에게 이야기해 두었네... 자네는 내 대신 여러 가지 일을 해주겠지. 뭐라구? 자네는 너무 허약하지는 않겠지. 보르네오에 가면, 나는 더 이상 치질에 걸리지도 않을 거야. 어쩌면 다른 병에 걸릴지도 몰라... 더 지독한 병에... 열병이나 콜레라 따위 말야. 제기랄, 포도송이가 꽉 들어찬 똥구멍이 막히고, 바지 단추가 떨어져 나가고, 신문사 일로 평생을 소모시켜가고 있기보다는, 그렇게 좋은 병에 걸려 죽는다면, 죽는 편이 낫다구. 단 일주일만이라도, 부자가 되어봤으면 좋겠군. 그리고 그럴듯한 병 ― 목숨을 잃을 병 ― 에 걸려 병원에 입원하는 거야. 병실을 꽃으로 장식하고, 간호원들이 침대 주위를 오가고... 문병 전보가 연방 날아들고. 부자이면 잘 돌보아 준다구. 간호원들이 몸을 솜으로 닦아주고, 머리도 빗어주지. 제기랄, 정말 그렇다구. 어쩌면 나는 다행스런 죽음도 맞지 못할지도 몰라. 평생 동안 불구인 채로 지내게 될지도 몰라... 사지를 움직일 수 없게 되어 휠체어를 타야 할지도 몰라. 하지만 나를 돌보아줄 거야... 돈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말야. 폐인이 되면 ― 진짜 폐인 말야 ― 세상 사람들이 굶어 죽게 만들지는 않는다구. 잠을 자도록 깨끗한 침대가 제공되고... 타월도 매일 교환해 주지. 이런 식으로, 아무도 비참한 처지에 빠지도록 만들지는 않는다구. 직업을 갖고 있는 겨우는, 특히 그렇지. 세상 사람들은 누가 직업을 갖고 있으면 당연히 행복하리라고 생각하거든. 자네는 어느 쪽을 택하겠나 ― 평생 동안 불구자로 지낼 건가, 아니면 직업을 가질 건가... 아니면 돈 많은 여자와 결혼할 건가? 자네 같으면, 오히려 돈 많은 여자와 결혼하기를 원할 거야 ― 나는 알 수 있어. 자네는 노상 음식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있으니까. 하지만 가령 자네가 그녀와 결혼하여, 발기하지 않게 되면 ― 이는 흔히 있는 일이지 ― 그때는 어떡하겠나? 자네는 그녀가 인정을 베푸는 덕에 살아가게 돼. 마치 애완용 동물처럼 그녀가 먹여주고 재워주어야 한다구. 자네는 이에 만족하겠나. 어때? 아니면 그런 것은 생각해 보지도 않았나? 나는 여러 경우를 생각해 본다구. 자신이 고를 만한 양복도 행각하고, 가보고 싶은 곳도 생각해 보지만, 그 밖의 일도 생각해 본다구. 그건 중대한 일이야. 발기 불능이 되었다면, 멋있는 넥타이나 좋은 양복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자네는 그녀를 배반할 수도 없어요 ― 그녀가 노상 자네를 뒤쫓아 다니고 있으니까. 아니, 제일 좋은 건 그녀와 결혼하자마자 이내 병에 거리는 일일 거야. 그러나 매독에 걸리면 안돼. 콜레라나 말라리아 같은 거... 그리고 우연히 기적적으로 목숨만은 건지고, 생애의 나머지를 불구자로 지내게 된다면... 그러면 그녀를 쑤셔줄 걱정을 하지 않아도 괴고, 방세를 못 내어 애먹는 일도 없을 거야. 아마도 그녀는 자네에게 여러 종류의 손잡이나 부속물들이 딸려 있고 고무 타이어가 달린 멋진 휠체어를 사주겠지. 자네는 양손만은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몰라 ― 즉 글을 쓸 수 있을 정도로 말야. 혹은 글을 쓰기 위해 비서를 고용해도 되겠지. 그래 ― 그게 작가에게 있어서는 제일 좋은 해결책이야. 양손이나 양다리가 인간에게 무슨 소용이 있나? 글을 쓰는 데 손·발은 필요치 않아요. 필요한 것은 생활의 보장... 안정... 비호라구. 휠체어를 타고 슬슬 지나가는 그 귀환전사들 ― 그들이 작가가 아닌 게 유감 천만이야. 싸움터에 나가, 다리만 불구가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면 ―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면, 내일이라도 전쟁을 시작하자고 나는 말하고 싶어. 나는 훈장을 받는 걸 매도하려는 게 아냐 ― 훈장을 달고 싶은 녀석은 달면 돼. 내가 원하는 것은, 훌륭한 휠체어와 하루 세끼 식사 ―그 뿐이야. 그러면 나는 녀석들에게 뭔가 읽을 만한 것을 안겨줄 거야, 그 얼간이 같은 녀석들에게 말야 ! 이튿날 한시 반에, 나는 반 놀들을 방문하였다. 그 날은 그가 비번인 날 ― 이라기보다는 밤 ― 이다. 그는 나에게, 오늘 이사를 하니까 거들어 달라고, 칼을 통해 부탁하여왔던 것이다. 나는 이상하리만큼 우울한 상태에 빠져 있는 그를 발견하였다. 밤새도록 한잠도 못 잤다고 그는 말하였다. 뭔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게 있다. 그를 파먹어 들어가는 무엇이 있는 것이다. 얼마 후에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는 이를 털어놓고 말하려고, 내가 도착하기를 초조히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녀석은 하고 그는 말하기 시작하였다 ― 칼 이야기이다. 그 녀석은 예술가라구. 세세한 데까지 묘사하더군. 아주 상세히 이야기해 주었어. 그래서 나는 그래 터무니없는 엉터리 이야기임을 알게 되었지... 그러나 그걸 내 뇌리에서 깨끗이 몰아낼 수가 없어. 내 머리가 어떻게 작용하는 가는, 자네도 알고 있잖아? 그는 이야기를 중단하고, 칼이 내게 모두 이야기했는가고 물었다. 칼이 나와 그에게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 듯하다고 생각하고, 이를 조금도 의심하고 있지 않았다. 고의로 그를 괴롭히기 위해 꾸며낸 이야기라는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도 아닌 것 같다. 그에게 달라붙어 있는 것은, 칼이 그의 뇌리에 남겨두고 간 이미지 라는 것이다. 설령 이야기가 모두 거짓말이더라도 이미지는 현실적이다. 게다가 현실고 부자인 여자가 등장하고 있고, 실제로 칼이 그 여자를 방문하고 잇는 것이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실제로 어떤 일이 있었는가는, 부차적인 문제이다. 당연히 칼은 그 여자와 육체적으로 관계했으리라고는 그는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를 자포자기적인 상태로 몰아놓고 있는 것은, 칼이 묘사하여 들려준 이야기가 정말로 있을 법한 일이라는 생각이다., 정말 그 녀석다워 하고 그는 말하는 것이다. 녀석은 여섯 번인가 일곱 번 그 여자와 어울렸었다는 거야. 과연 이는 대단한 일이야. 그런 일에는 나는 그다지 신경이 쓰이지 않지만, 그러나 그녀가 자동차를 불러 숲으로 그를 데리고 가고, 둘이서 남편의 모피 외투를 모포 대신 사용했다는 이야기는, 너무 지나치다는 느낌이 들어. 운전사가 정중하게 기다리고 있었다는 이야기는, 자네도 들었겠지... 이봐, 녀석은 엔진 소리가 그 동안 계속 어떻게 울려대고 있었다는 것까지 자에게 이야기했나? 제기랄, 정말 교묘히 날조한 거야. 이런 식으로 매우 세밀한 데까지 생각하다니, 정말 그 녀석다워... 그런 식으로 미세한 면까지 설명하는 건 그것이 심리적으로 진실한 것처럼 보이도록 만드는 한 가지 방법이라구...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그 후에도 그것을 뇌리에서 몰아낼 수가 없어. 녀석은 그것을 아주 거침없이 자연스레 이야기하는 거야... 녀석이 미리 생각해서 꾸며낸 것일까, 아니면 이야기가 그런 식으로 무의식중에 머리에서 솟아난 것일까. 녀석이 그처럼 약삭빠르고 빈틈없는 거짓말쟁이이므로, 녀석의 허점을 잡기가 어려워... 녀석이 자네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야. 그 녀석이 밤새도록 만들어내는 불꽃 같은 거지. 어떻게 그런 편지를 쓸 수 있는지, 나는 납득이 가지 않아... 그 배후의 심지를 파악할 수가 없다구... 일종의 자위 행위가 아닐까...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하지만 내가 의견을 말할 기회를 잡기 전에, 혹은 그가 보고 있는 앞에서 웃음을 터뜨리기 전에, 반 놀든은 독백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알겠나, 녀석은 자네에게 죄 이야기했으리라고 생각하지만... 달빛이 비치는 발코니에 서서 그녀와 키스했을 때의 상황을 이야기하던가. 이런 이야기를 두 번이나 되풀이해 이야기하면 진부하게 들리지만, 그 녀석은 교묘하게 묘사하는 거야... 그 꼬마 녀석이 발코니에 서서 여자를 가슴에 껴안고 있는 모양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아. 그리고 녀석은 여자에게 또 다른 편지를 쓰고 있어. 옥상 주변에서 작렬하는 불꽃 이야기 따위를... 모두 프랑스 작가들의 글을 도용한 엉터리라구. 그 녀석은 독창적인 이야기는 한 번도 입에 올린 적이 없어. 나는 그걸 발견했어. 자네도 실마리가 될 만한 것을 찾아낼 필요가 있다구... 어려운 일이지만. 아무튼 녀석이 되게 비밀주의를 지키고 있으니까. 만일 자네가 녀석과 함께 거기에 갔다는 걸 알지 못했다면, 나는 그 여자의 존재를 믿지 않았을 거야. 그러한 사나이는 스스로 자신에게 편지를 쓰는 일쯤은 태연히 내내니까. 게다가 녀석은 운이 좋은 사나이라구... 그렇게 난쟁인 데다 허약하고 아주 로맨틱한 풍모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이따금 여자들이 맥없이 항복해 버리는 거야... 자기도 모르게 그의 말에 넘어가거든... 녀석이 가엾어 보이는 모양이지. 그리고 여자들 가운데는 화분에 심어진 꽃을 선물로 받기를 좋아하는 치가 있어요... 그걸 받으면 자신이 대단한 사람인 듯한 기분이 드는 모양이지... 그런데 그 여자는 인텔리 부인이라고 녀석은 말하던데. 자네는 알고 있겠지... 그녀의 편지를 보았으니까. 이러한 종류의 여자가, 그에게서 무엇을 발견했을 것 같아? 그녀가 녀석의 편지를 보고 맥없이 넘어간 건 짐작이 간다구... 하지만 그녀가 녀석을 만났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을지 상상할 수 있겠나? 그러나 이런 건 모두 조금 빗나간 얘기고... 내가 말하려는 것은, 녀석이 이야기한 그 방법이야. 그 치가 말을 잘 꾸며대는 건 자네도 알고 있지... 어쨌든 발코니에서의 장면이 지나간 다음에 ― 녀석은 이를 마치 오르되브르(역주 ; 수프 전에 나오는 가벼운 요리) 처럼 설명하더군 ― 그 다음에 두 사람은 실내로 들어갔다는 거야. 그리고 녀석은 그녀의 파자마의 단추를 풀었어. 뭘 웃고 있나? 이건 녀석이 내게 아무렇게나 지껄인 건가? 아냐 ! 바로 자네가 이야기하고 있는 대로야, 그가 들려준 건. 그리고...? 그리고 ― 여기서 반 놀든은 무의식중에 혼자 싱글싱글 웃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녀가 양다리를 들고 의자에 걸터앉은 모양을 녀석은 이야기했어... 몸에 실 한 오라기 걸치지 않고... 그는 바닥 위에 앉아 그녀를 올려다보고 있었어. 무척 그녀가 아름다워 보였대... 마티스의 그림 같았다고... 자네에게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나?... 가마... 녀석이 한 말을 생각해냈어. 여기서 녀석은 오달리스크(역주 ; 마티스가 즐겨 그린 제정시대의 터키 후궁의 여궁)에 관해 재치 있는 문구를 사용했어... 아무튼 오달리스크라는 게 무엇이었던가? 녀석은 이를 프랑스어로 말했어. 그래서 그 외설스러운 점을 생각해낼 수 없는 거야... 하지만 멋있게 들렸어. 녀석이 사용할만한 말로 들리더군. 그러니까 아마도 그녀는 그것이 녀석의 독창적인 말이라고 생각했을 것임에 틀림없어... 그녀는 녀석을 시인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런 건 어떻든 상관없어... 이에 대해서는, 나는 녀석의 상상력을 얼마간 너그러이 봐주겠어. 그 다음에 일어난 일이, 나를 미치광이처럼 만들어 버린다구. 밤새도록 나는 녀석이 내 머리 속에 남겨두고 간 이미지를 만지작거리며 괴로워하고 있었네. 머리에서 몰아낼 수가 없는 거야. 내게는 무서울이만큼 현실적으로 들린다구. 그러니까 만일 실제로 없었던 일이라면, 녀석을 목졸라 죽이겠어. 그러한 것을 발명할 권리를 인간은 갖고 있지 않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그 인간은 병들어 있는 거야...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다음 순간 얘기야. 녀석은 무릎을 끓고, 가느다란 두 손가락으로 작은 꽃을 벌렸다...고 녀석은 말하는 거야. 자네도 기억하고 있겠지만, 그녀는 의자에 걸터앉아, 의자의 팔걸이에 다리를 걸치고 있었다더군. 그러자 문득 녀석의 머리에 인스피레이션이 번뜩였다는 거야. 더욱이 이는 이미 녀석이 두 번이나 한 수에 간단한 마티스론을 벌인 후의 일이야. 소리가 났다는 거야. 점액 적인 작은 소리가... 제기랄, 밤새도록 그 소리가 내 귀에 들리고 있었다구 ! 이어 녀석이 말하는 거야... 마치 그것만으로는 아직 내게 충분치 않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 그리고 녀석은 그녀 속에 얼굴을 파묻었어. 녀석이 그러자, 아아, 제기랄, 그녀가 글세 다리를 그대로 죄어 대더라는 거야. 그래서 나는 두손들고 말았어 ! 상상해 보라구 ! 그처럼 아름답고 품위 있는 여자가, 녀석의 목 에 양다리를 죄어 붙인 거야 1 이 정경에는 뭔가 독기가 서린 듯한 데가 있다고 여겨지지 않아. 아주 그럴 듯하게 들릴 만큼 공상적이야. 녀석이 샴페인 이야기나, 숲으로 드라이브한 이야기나, 고작 발코니에서의 장면 등을 이야기했을 뿐이라면, 나는 그러한 것을 머리에서 몰아낼 수 있었을 거야. 하지만 이건 너무 믿어지지 않는 일이기 때문에, 도리어 거짓말처럼 들리지가 않는 거야. 나는 녀석이 어떤 책에서 그러한 것을 읽었으리라고는 믿어지지 않아. 다소나마 거기에 진실성이 없다면, 그러한 것을 어떻게 녀석이 생각해낼 수 있었을지도 짐작이 가지 않아. 그런 꼬마 녀석에게도 여러 가지 사정이 있겠지. 어쩌면 녀석은 그녀와 전혀 어울리지 않고, 그녀는 녀석이 시시덕거리는 대로 내버려두었을지도 모르지... 상대가 그처럼 돈 많은 여자라면,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는지, 우리로선 통 상상할 수가 없어... 겨우 그가 침대에서 내려와 수염을 깎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이미 오후도 상당히 늦은 시각이 되어 있었다. 나는 겨우 그의 생각을 다른 일로, 주로 이사하는 일 쪽으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이사 준비가 되었는지 살펴보기 위해 하녀가 들어왔다 ―정오까지는 방을 내주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는 마침 바지에 다리를 집어넣으려 하고 있는 참이었다. 그가 변명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리지도 않는 것을 보고, 나는 약간 어이가 없었다. 바지 단추를 잠그면서, 거기에 넉살좋게 우뚝 서서 하녀에게 용무를 말하고 있는 그를 바라보고 있는 동안에, 나는 낄낄거리며 웃기 시작하였다. 이런 하녀 따위에 신경 쓰지 말라구. 하고 그는 아주 경멸하는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건 몸이 거대한 암퇘지에 지나지 않아. 괜찮으면 엉덩이라도 꼬집어 줘. 아무 말도 않을 거야. 그리고 그녀에게 영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이봐, 암캐야, 이리로 와서 이걸 만져봐 ! 그래서 나는 드디어 참을 수 없어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히스테릭한 웃음의 발작이다. 그것이, 무슨 말인지 뜻도 알 수 없으면서도, 그녀에게도 옮아갔다. 하녀는 벽에 죽 걸려 있는 그림이나 사진들 ― 대부분이 그 자신의 것인데 ― 을 벗기기 시작하였다. 이봐 하고 그는 엄지손가락을 휘두르며 말했다. 이리로 오라구 ! 내 추억의 실마리가 될 만한 게 여기 있군. ― 벽에서 한 자의 사진을 떼내면서 그는 말을 계속하였다 ― 내가 나가면, 이걸로 네 궁둥이를 닦아도 상관없어. 그리고 그는 나를 돌아다보며 말했다. 이 여자는 벙어리 같은 여자야. 내가 프랑스어로 뭐라고 말해도, 통 알아들은 체하지도 않을 거야. 하녀는 멍하니 입을 벌리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틀림없이 그를 미치광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이봐, 너 말야 ! 이렇게... 이렇게 말하며 그는 자신을, 그 자신의 사진을 손에 들고, 그것으로 제 궁둥이를 닦는 시늉을 해 보였다. 이렇게 말야 ! 알겠니. 자네는 그녀를 위해 그림을 그려줄 필요가 있어. 하고 말하고, 나는 절대로 싫다고 말하기라도 할 것처럼 아랫입술을 내밀어 보였다. 그녀가 그의 물건들을 커다란 가방 속에 집어넣고 있는 것을, 그는 어쩔 수 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자, 이것도 넣어 줘 하고 말하며, 그는 칫솔과 세척용 백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그의 소지품의 절반쯤이 바닥 위에 널려 있었다. 가방이 꽉 차서, 그림이나 서적이나 반쯤 비어 있는 병 따위를 집어넣을 여지가 없었다. 잠깐 앉으라구 하고 그는 말했다. 시간은 충분해. 이것을 운반할 궁리를 해야겠어. 자네가 와주지 않았으면, 나는 여기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을 걸세. 알다시피 나는 전혀 의지할 데 없는 사내니까. 전구를 잊지 말고 챙기도록 주의해 줘... 모두 내 거니까. 저 휴지통도 내 거야. 돼지 같은 생활을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 이곳의 협잡꾼 같은 녀석들은 말야. 하녀는 끈을 가지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이제 보라구... 이치들은 겨우 3수밖에 안되는 값이지만, 끈 값을 내게서 받아내려 할 테니. 이곳 녀석들은 바지 단추 하나 달아주는 데도 반드시 요금을 받거든. 남의 것을 슬쩍 훔치는 이처럼 더러운 놈들이라구 ! 그는 난로 선반 속에서 카르바도스 병을 꺼내고는, 다른 병들도 꺼내라고 내게 신호를 하였다. 이런 걸 이사 갈 곳으로 가져가기도 그렇고... 지금 병을 모두 따버리자구. 하지만 하녀에게는 한 잔도 권하지 말아요. 그 사생아에게는 말야. 토일렛 페이퍼 한 조각도 남겨두고 가지 않겠어. 나가지 전에, 여기를 엉망으로 만들어 줘야지. 이봐... 자네도 괜찮으면 이 바닥에 오줌을 누라구. 사무실의 책상 서랍에 있는 돈을 날치기 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자기에게, 그리고 모든 것들에 대해 혐오감을 느끼고, 그 감정의 배출구를 어디로 가져가면 좋을지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병을 손에 들고 침대 옆으로 다가가서, 이불을 젖히고 요 위에 카르바도스를 흩뿌렸다. 그래도 성에 차지 않아, 요를 구두 뒤축으로 짓밟았다. 불행히도 그의 구두 뒤축에는 진흙이 묻어 있지 않았다. 드디어 시트를 잡아 벗기고, 그것으로 구두를 닦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해두면, 녀석들도 좀 수고를 해야겠지. 하고 그는 원한이 뼈에 사무친 듯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술을 쭉 들이켜 입에 가득 물고는, 고개를 젖혔다가 거울을 향해 탁 뱉아버렸다. 이 개새끼들아 ! 내가 나가면 나중에 소제를 하라구. 그는 혼자 뭐라고 중얼거리면서 방안을 거닐고 있었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자신의 해진 양말 짝이 눈에 띄자, 이를 집어들어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그림도 그를 화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것을 집어들었다... 그의 친구이며 동성애자인 여자가 그린 그 자신의 초상화이다. 그것을 발로 짓밟았다. 이 암캐 ! 뻔뻔스럽게도 이 여자가 내게 무엇을 부탁했는지 알고 있나? 그녀는 내게, 내가 데리고 노는 일을 끝내버린 여자를 돌려달라고 부탁 했다구. 그녀를 칭찬하는 글을 신문에 실어주었지만, 1수도 보내지 않더군. 미네소타에서 온 여자를 주선해 주겠다고 내가 약속하지 않았으면, 이 그림도 주지 않았을 걸세. 그녀는 그 여자에게 미쳐 있었어... 마치 암내 낸 개처럼 언제나 우리를 귀찮게 따라다니고 있었다구... 이 암캐를 도저히 따돌릴 수가 없었어 ! 덕분에 나는 인생의 정말 지겨워졌어. 금방이라도 그녀가 들이닥치지 않을까 하고 겁이 나서, 여자를 이리로 끌어들이기가 두려워질 정도였어. 마치 도둑처럼 몰래 이 방으로 들어와, 대뜸 방문을 잠그곤 했지... 그녀와 그 조지아 여자 ― 이치들이나를 미치광이같이 만들어 버려요. 한 명은 언제나 암내를 내고 있고, 또 한 명은 언제나 굶주려 걸걸하고 있다구. 나는 굶주려 있는 여자하고 하기가 제일 싫어. 마치 먹이를 그 치의 뱃속에 집어넣고 또 끌어내는 것과 마찬가지잖아... 제기랄, 그래서 생각이 났는데.. 내 그 푸른 연고를 어디에 두었더라. 그건 중요한 거야. 그런 걸 사용한 적이 있나? 가루약보다 더 지독해. 그것도 어디서 손에 넣었는지 기억하고 있지 않아. 지난주에는 마구 여자들을 끌어들였기 때문에, 일일이 기억하고 있지 않아. 재미있었지. 모두들 꽤나 신선한 냄새가 풍겨서 말야. 그게 어떤 것인지, 자네는 알고 있겠지... 하녀가 그의 짐들을 길가에 내놓았다. 주인이 언짢은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짐들을 모조리 택시에 싣고 나니, 한 사람밖에 탈 여지가 없었다.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재빨리 반 놀들은 신문지를 한 장 꺼내어 주전자나 냄비 따위를 싸기 시작하였다. 새오 옮겨가는 방에서는 취사가 일체 금지되어 있는 것이다. 목적지에 도착할 무렵에는, 짐들이 모두 흐트러져 있었다. 차가 도착한 때에 마담이 입구에서 고개를 내밀지 않았으면, 우리도 그다지 곤란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머니 ! 하고 그녀는 외쳤다. 도대체 이건 뭐예요. 어쩔 작정이에요. 반 놀든은 을르는 바람에 그만 놀라서 그건 내 거예요... 내 겁니다. 마담. 하고 말하는 이외에는 달리 무슨 생각이 떠오르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이윽고 그는 나를 돌아다보며 몹시 밉살스럽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이 암탉 좀 봐 ! 이 여자의 얼굴을 보라구. 일부러 나를 위해 무섭게 보이려고 하고 있다구. 호텔은 지저분하고 더러운 골목의 안쪽에 자리잡고 있고, 현대풍의 감옥을 연상시키는 장방형 꼴을 이루고 있었다. 사무실은 널찍하고 타일이 박혀진 벽을 통해 밝은 빛이 반사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음울해 보였다. 창문에는 새장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리고 작은 에나멜 팻말들이 사방에 걸려 있고, 그 속의 진부한 문구들이, 이런 일을 하면 안됩니다. 그 점을 잊지 말아 주세요. 하고 손님들에게 호소하고 있었다. 사무실은 얼룩 하나 눈에 띄지 않을 만큼 깨끗하지만, 초라하고, 곰팡내가 풍기고, 을씨년스러웠다. 천이 씌워진 의자가, 철사로 결합되어 있었다. 그게 불쾌하게도 전기 의자를 연상시켰다. 그가 사용할 방은 5층에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면서 반 놀든은, 이전에 여기서 모파상이 거주하고 있던 적이 있다고 내게 가르쳐 주었다. 그러면서도, 복도에는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주의를 주었다. 5층에는 유리창이 몇 갠가 빠져버리고 없었다. 우리는 잠깐 멈춰 서서, 안마당 쪽의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저녁 식사 때가 가까워지고 있어, 사람들이 정직하게 먹고 살아가기 위한 벌이를 하는 데서 오는 그 피로하고 무기력한 표정으로, 휘청거리면서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는 참이었다. 창문들은 거의 모두 열어 젖혀져 있었다. 누추한 방들은, 많은 입들이 하품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방에 살고 있는 이들도, 하품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몸을 긁어 대고 있었다. 그들은 지루한 듯이, 얼핏 보기에 별다른 목적도 없이 돌아다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바로 미치광이들이라 할 수 있으리라. 복도를 돌아가서 547호실로 향하고 있으니까, 앞쪽의 방문이 별안간 열리면서 머리를 흩트리고, 마니아적인 눈매를 하고 있는 무서운 노파가 얼굴을 내밀었다. 섬뜩하여, 우리는 멈춰 섰다. 거의 1분 가까이 우리는 움직일 힘을 잃고, 혹은 눈치 빠른 동작을 할 만한 힘마저 잃고,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노파의 뒤쪽으로 부엌의 테이블이 보이고, 그 위에 갓난아기가 알몸인 채로 누워 있었다. 겨우 털이 모두 뽑혀진 영계 만해 보이는 어린애이다. 노파는, 옆의 오수 통을 겨우 집어들고 앞으로 걸어오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그녀가 지나가도록 한쪽으로 물러섰다. 이윽고 방문이 닫히자, 갓난아기의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 방이 56호실인데, 56호와 57호 사이에 변소가 있고, 노파는 거기에 오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면서, 반 놀든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웅변으로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가 57호의 방문을 열자, 순간적이지만 나는 발광한 듯한 감각을 맛보았다. 얇고 성기게 짠 녹색의 천으로 덮여진 채 45도 각도로 기울어진 거대한 거울이, 서적이 가득 채워진 유모차 위쪽 ― 입구의 맞은편 ― 에 걸려 있는 것이다. 반 놀든은 히쭉 웃어 보이지도 않고, 태연히 유모차로 다가가, 한 권의 책을 집어들어 펼쳐보고 있었다. 마치 공공도서관에 들어가, 제일 가까이에 있는 서가로 아무런 생각도 없이 다가가서 책을 펼쳐볼 때처럼. 그리고 그와 동시에 한쪽 구석에 내팽개쳐져 있는 한 쌍의 핸들이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그것도 내게는 그다지 우습게 느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핸들은 마치 몇 해 동안이나 거기서 선잠을 자고 있었던 것처럼, 아주 편안한 상태로 만족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갑자기, 마치 우리가 이 방안에 지금의 자세로 무한히 오랫동안 계속 서 있었던 거서처럼 내게는 생각되었다. 그 자세로, 두 번 다시 거기서 벗어날 수 없는 꿈속으로 ―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이면, 눈을 한 번 깜박이기만 해도 깨져 산산조각이 날 듯한 꿈속으로 ― 빠져들고 있었던 것처럼. 하지만 그보다 더욱 기묘한 것은, 최근의 어느 날 밤에 실제로 꾼 꿈의 기억이 별안간 떠오른 점이었다. 그 꿈 속에서 나는, 지금 핸들 옆에 서 있는 모습과 똑같은 자세로 방의 한쪽 구석에 서 있는 반 놀든을 보았던 것이다. 다만 꿈속에서는, 핸들 대신, 양다리를 모으고 몸을 웅크리고 있는 한 명의 여자가 있었다. 그는 그 여자를 내려다보며, 뭔가 강렬한 욕망을 품을 경우에 나타나는 그 민첩하고 탐욕스런 표정을 지으며 서있었다. 이 장면이 연출되고 있는 길거리는 몽롱하고 ― 단지 두 개의 벽으로 만들어진 모퉁이만이 선명히 드러나 보였다. 그리고 거기에 엎드려 있는 여자의 모습도. 그가 그 특유의 동물처럼 재빠른 동작으로, 주위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든 그런 일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나는 하고 싶은 일만을 하겠다고 결심하고 여자에게 도전하여 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의 눈의 표정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나를 죽이겠으면, 나중에 죽여다오. 지금은 이걸 집어넣게 해다오, 부탁이야. 그는 상대방에게 몸을 웅크렸다. 두 사람의 머리가 벽에 부딪쳤다. 그는 굉장히 발기하여, 간단히는 되지 않았다. 갑자기 그는, 어떻게 끌어 올려야 할까를 잘 알고 있는 그 싫증이 난 듯한 모습으로 일어나, 의복을 단정하게 바로잡았다. 떠나려 했을 때, 문득 자신의 페니스가 길에 떨어져 있는 걸 알아챘다. 그것을 잘려진 비의 자루 만한 크기였다. 그는 태연히 그것을 집어들어, 살짝 겨드랑이에 끼었다. 그가 떠나갈 때, 나는 두 개의 커다란 공 ― 튤립의 둥근 뿌리 만한 공 ― 이 그 빗자루에 드리워져 있는 걸 알아챘다. 그리고 그가 혼자 뭐라고 중얼거리고 잇는 소리가 들렸다. 불꽃...불꽃 웨이터가 숨을 헐떡이고 담을 흘리며 달려왔다. 반 놀든은 의아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마담이 달려왔다. 그의 손에서 서적을 잡아채고, 유모차 안에 그것을 집어넣고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유모차를 밀려 복도로 나갔다. 여기는 마치 미치광이들의 병원 같군. 반 놀든은 곤란한 듯이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것은 아주 나약하고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미소였다. 그래서 우리는 엉망으로 일그러진 거울이 걸려 있는 기다란 복도 끝에라도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반 놀든은 그 곤혹스러움을 낡아서 거무스름해진 랜턴(lantern)처럼 휘두르면서, 이 목도를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지저분하고 더러운 방들 속으로, 그는 들어갔다 나왔다 하고 있었다. 의자에 걸터앉으면 의자가 부서져 버리고, 가방을 열면 안에 칫솔 한 개 밖에는 들어 있지 않았다. 어느 방에나 거울이 있고, 그는 그 앞에 주의 깊게 멈춰서서, 화가 나서 이를 옥물었다. 계속 옥물고 있기 때문에, 또 작은 소리로 신음하며 불평을 하고 중얼거리며 욕을 퍼붓기 때문에 턱이 빠져 축 늘어져 버렸다. 수염을 만지자, 턱이 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 지독한 자기 혐오감 대문에 자신의 턱을 짓밟고, 커다란 신뒤축으로 산산조각이 나도록 짓이겼다. 그 동안에 짐이 운반되었다. 그리고 모든 게 아까보다 더욱 미치광이 짓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 체조 도구를 침대에 매달고 다리 체조를 하기 시작하면, 더욱 그랬다. 나는 여기가 좋아. 하고 웨이터에게 미소 지으면서 그는 말했다. 그는 웃옷과 조끼를 벗어버렸다. 웨이터는 당황하는 듯한 태도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한 손에는 가방을, 다른 손에는 세척용 백을 들고 있었다. 나는 녹색의 천이 걸쳐진 거울을 바라보며, 옆방에 서 있었다. 실용적인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옆방 자체가 쓸모 없는 것이며, 헛간에 커다란 현관이 마련되어 있는 격이였다. 코미디 프랑세즈좌나 파레 로얄 테어토르에 들어갔을 때의 느낌과 다를 바가 없다. 그것은 골동품이나 덫의, 양팔이 달린 반신상과 왁스칠을 한 바닥의 , 화려한 촛대와 갑주를 걸친 무상의, 눈이 없는 조상의, 그리고 유리상자 속의 연문의 세계였다. 무엇인가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나 그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가방에 집어넣을 여지가 없기 때문에, 병에 절반쯤 남아 있는 술을 마셔버리는 것과 비슷했다. 아까도 말한 것처럼, 계단을 올라가면서 그는, 이전에 모파상이 여기서 살고 있던 적이 있다고 말하였다. 이 우연의 일치가, 그러게 어떤 감명을 안겨준 듯하다. 모파상이 여성을 얻게 된 그 으스스한 느낌을 주는 몇 편의 작품을 낳은 곳도 바로 이 방이었다고, 그는 믿고 싶은 모양이다. 녀석들은 돼지처럼 살고 있었다. 그 쓸모 없는 얼간이 녀석들은 말야. 하고 그는 말했다. 우리는 끈이나 철사 등으로 고정시킨 한 쌍의 낡은 안락 의자에 걸터앉아 있었다 ― 앞에는 둥근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침대는 우리의 오른쪽에 있었다 ― 거기에 자발을 올려놓을 수 있을 만큼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 장롱이 뒤쪽의 한쪽 구석에 놓여 있었다. 이 역시 손을 뻗치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반 놀든은 더러운 세탁물을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 우리는 그 더러운 양말이나 셔츠들에 둘러싸여, 아주 만족스레 담배를 피웠다. 주위의 지저분하고 더러운 모양이, 그에게 마력을 안겨 준 모양이다. 그는 여기서 만족하고 있었다. 내가 전등을 켜려고 일어서자, 식사를 하러 가기 전에, 트럼프 놀이를 하자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창가에 걸터앉았다. 바닥에는 불결한 세탁물이 흐트러져 있고, 다리 체조 도구가 샹들리에 아래로 드리워져 있었다. 우리는 둘이서 하는 피나클 놀이를 두세 번하였다. 반 놀들은 파이프를 치우고, 이따금 창밖으로 침을 탁 뱉었다. 갈색을 띤 건강한 타액이다. 그 타액이 아래의 포도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그는 아주 만족하고 있는 듯했다. 미국에 있을 대에는 하고 그는 말했다. 이런 데서 살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거야. 내가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던 때에도, 여기 보다는 나은 데서 잤다구. 그러나 이 고장에서는 나은 게 당연한 일인 모양이야 ― 자네가 애독하고 있는 작품과도 같아. 만일 저쪽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나는 이러한 생활을 깨끗이 잊어버릴 거야. 악몽을 잊어버리는 것처럼 말야. 나는 아마도 미국을 떠났던 때와 똑같은 옛 생활을 또 시작할거야... 돌아가게 되면 말야. 이따금 나는 옛날 꿈을 꾸는 수가 있네. 그게 어찌나 선명한지, 지금 자신이 어디에 있는가를 확인하려고, 무의식중에 몸을 흔들어보고 한다구. 옆에 여자가 있을 때는 특히 그래. 여자에게는 무엇보다도 내 마음을 유리시키는 힘이 있으니까. 내가 여자에게 바라는 건 그것뿐 이야 ― 나 자신을 잊는 일이야. 때로는 공상 속에 깊이 빠져들어 버려, 여자의 이름이나 어디서 데리고 왔는지도 생각해낼 수 없을 때가 있어. 이상한 일이야.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옆에- 발랄하고 따스한 육체가 있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야. 기분이 산뜻해져. 뭔가 정신적으로 되는 것 같아... 여자가 사랑이니 뭐니 하고 그 쓸모 없는 말을 늘어놓기 시작할 때까지는 말야. 여자들은 모두들 그처럼 노상 사랑에 대해 얘기하기를 좋아할까? 자네는 알 수 있나? 여자라는 건 껴안긴 채 상대가 기분 좋게 해주기만 하는 걸로는 모자라는 모양이야... 사람의 영혼까지 원한다구... 그런데 반 놀든의 독백 속에 빈번히 등장하는 이 영혼이라는 말이, 처음에는 나에게 기묘한 효과를 안겨주었다. 그의 입에서 영혼이라는 말이 튀어나오면, 나는 언제니 히스테릭해졌던 것이다. 어쩐지 그것이 위조 지폐 처럼 생각되었다. 그 말이 대개 그의 입가에 흘러내리는 갈색의 타액과 함께 튀어나오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생각되었다. 내가 언제나 그가 보고 있는 앞에서 마구 웃어대므로, 이 말이 튀어나오면 그는 내가 킬킬대며 웃기 시작할 때까지 입을 다물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시치미를 떼고 또 독백을 계속하며, 그 말을 더욱 빈번히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더욱 귀여운 듯이 힘을 주어 말하는 것이다. 여자들이 붙잡으려 하고 있던 것은, 날 라는 영혼이라는 점을, 그는 내게 분명히 가르쳐주었다. 그것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 설명하였다. 하지만 되풀이할 때마다, 마치 그 강박관념에 대한 편집광처럼, 다시 영혼으로 되돌아가는 것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반 놀든은 미치광이이다. 나는 그렇게 확신하고 있다. 그의 유일한 두려움은, 완전히 고독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 두려움이 너무 뿌리깊고 집요하기 때문에, 그는 여자 위에 올라타고 있을 때에도, 삽입하고 있을 때에도, 스스로 만들어낸 이 감옥으로부터 도피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모든 일을 시도해 봐. 하고 그는 설명한다. 때로는 수를 세어보지. 혹은 철학사의 문제를 생각하기 시작하곤 한다구. 하지만 잘 안돼. 마치 나 라는 인간이 두 명이 있어 가지고, 그 중의 한 명이 계속 나를 감시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나는 자신에게 잔뜩 화가 나서, 자신을 죽여버리고 싶어진다구... 어떤 의미에서는 오르가슴(orgasmus)에 도달할 때마다 이를 되풀이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순간적으로 나는 자기를 망각해. 그때는 또 한 명의 나도 없어... 아무것도 없어... 여자조차 존재하지 않아요. 성체 배수를 할 때 같아. 성실하다는 의미야. 그후 잠시 동안 아름다운 정신적 광휘에 싸여 있지... 어쩌면 그 상태가 무한히 계속될지도 몰라 ― 이는 그러나 아무도 알 수 없지만 말야. 만일 옆에 여자가 있고 ― 물을 기울일 백이 있고 ― 물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만 없다면 말야... 이런 쓸모없는 일들이 모두 더 이상 배겨낼 수 없을 만큼 자기를 의식시키며, 절망적일 정도로 고독하게 만든다구. 그러한 순간의 해방감을 맛보고 있는 도안, 그 사랑이니 연애니 하는 잠꼬대 같은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다니... 이것이 이따금 나를 미치광이처럼 만들어 버린다구... 대뜸 여자를 걷어차 버리고 싶어지거든... 실제로 때로는 걷어찬다구. 하지만 그 정도를 여자가 물러나지 않아. 실은 여자가 그걸 기뻐한다구. 여자를 돌보지 않으려고 하면 할수록 여자는 뒤따라 다니거든. 뭔가 여자에게는 고집스러운 데가 있어... 여자들은 모두 마음속으로는 매저키스트라구. 그러나, 그러면 자네가 여자에게 구하는 것은 뭔가? 하고 나는 묻는다. 그는 양손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한다. 아랫입술이 축 늘어진다. 완전히 좌절한 듯한 표정이다. 이따금 더듬거리면서 단편적인 말을 할 수 있는 경우가 있어도, 그때는 그 말의 배후에 어쩔 수 없는 무능함이 잠겨 있다는 자각이 수반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자기 자신을 모두 여자에게 넘겨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 하고 그는 말한다. 나 자신으로부터 나 라는 것을 여자가 끌어내어 주기를 바라고 있지.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여자가 나보다 뛰어나야 한다구. 사상을 갖고 있지 않으면 안돼. 단지 여자라는 것만으로는 안돼. 내게는 그러한 여자가 필요해. 그런 여자 없이는 생활할 수 없다구. 어떤가, 그러한 여자를 발견해주지 않겠나. 발견할 수 있다면, 내 일자리를 자네에게 물려주겠네. 그렇게 되면, 내 신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나는 상관없어. 일자리나 친구, 서적 따위도 필요 없어. 이 지상에서 나 자신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것을, 여자가 내게 믿도록 해주기만 하면, 그것으로 충분해. 제기랄, 나는 나 자신이 미워 ! 하지만 그 이상으로, 그 보잘것없는 여자들이 밉다구 ― 어느 여자나 아무 쓸모도 없으니까. 내가 스스로를 사랑하고 있다고 자네는 생각하고 있어. 하고 그는 이야기를 계속한다. 그렇다면 자네는 나라는 인간을 거의 알지 못하고 있는 거야. 나는 자신을 대단한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내게 무엇인가가 없으면, 이따위 문제를 생각하지도 않을 걸세. 하지만 나를 엉망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을 분명히 표현할 수 없는 점이야. 사람들은 나를, 여다 엉덩이만 뒤쫓아 다니고 있는 호색한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이야말로 녀석들이 얼마나 천박한가를 말해주는 증거라구 ― 그 하이 브라우 녀석들 말야. 그 치들은 온종일 카페의 테라스에 앉아서 심리적 반추를 하기를 원하고 있어... 이건 나쁘지 않은데 ― 이 심리적 반추라는 말은 메모해 두라구. 다음주에 칼럼을 쓸 때에 사용할 테니... 그런데 자네는 스태클(역주 ; 빈의 정신 분석학자로서, 프로이트의 제자. 1868에서 1940)을 읽어본 적이 있나? 약간이나마 읽어볼 가치가 있나? 내게는 단순한 증상의 기록 정도로밖에는 생각되지 않더군... 나도 분석의를 찾아가야 할만큼 신경이 곤두섰으면 좋겠는데... 물론 훌륭한 분석의여야 하지만 말야. 자네의 친구인 그 보리스처럼 긴 턱수염을 기르고 프록코트를 걸친, 인색한 변호사 같은 녀석을 만나는 건 딱 질색이야. 자네는 그런 녀석들을 만나도 잘 견뎌내더군. 지긋지긋하지 않은가. 자네는 누구하고나 이야기를 하더군. 자네는 까다로운 이야기를 하지 않으니까... 자네 태도가 옳을지도 몰라. 나도 무턱대고 남의 흠을 들추어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러나 돔 주위를 헤매는 그 불결하고 인색한 유태인들 말야, 녀석들을 보면 나는 신물이 난다구. 녀석들이 하는 말은, 교과서와 다를 게 없어. 매일 자네를 상대로 이야기할 수 있다면, 아마도 나는 이 가슴속의 많은 생각을 끌어낼 수 있을 거야. 자네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데 능숙하니까. 자네가 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지 않고, 참아주고 있는 걸 잘 알고 있네. 게다가 자네는 발전시킬 만한 이론을 하나도 갖고 있지 않으니까. 아마 나중에, 자네가 갖고 있는 그 노트에, 이를 적어두리라고 생각되지만 말야. 알겠나. 나에 대해 자네가 뭐라고 말하든 신경을 쓰지 않지만, 호색한이라고 말하지는 말아 달라구 ― 너무 단순해. 머지 않아 나는, 자기 자신이나 자신의 생각에 관한 책을 쓸 거야. 단순한 내성적·분석적인 작품이 아니라... 자기를 수술대 위에 올려놓고, 나의 모든 내장을 드러내 보이며 폭로할 작정이야... 온갖 불결한 것을. 지금까지 그런 일을 한 사람은 하나도 없을 거야 ― 대체 자네는 무엇이 우스운가. 유치하게 들리나? ” 내가 웃고 있는 까닭은, 그가 언제나 집필한 작정으로 있는 이 책 이야기가 화제에 오르면, 사태가 반드시 묘하게 어색한 양상을 띠어가기 때문이다. 그는 단지 내 책 이라고 밖에는 말하지 않지만, 그 순간 세계는 반 놀든 상점이라는 개인적 차원으로 수축되는 것이다. 그 작품은 절대로 독창적이고, 절대로 완벽한 것이어야 했다. 그밖에도 여러 가지 사정이 있지만, 이 때문에 그는 작품을 만드는 일에 착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한 가지 관념을 생각해내면, 그에 대해 철저히 의문을 갖기 시작하는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나 햄슨이나 그 밖의 누군가가 이미 사용했었음을 그는 생각해낸다. 나는 그들의 작품보다 더 나은 걸작을 쓰고자 하는 게 아니라, 그들과 다른 것을 쓰려는 거야. 하고 그는 설명한다. 그래서 작품을 쓰기 시작하지 않고, 작품들을 모조리 독파하여, 자신이 그들의 사유 재산을 짓밟는 일이 없도록 하려는 것이다... 이를 확실히 해두려는 것이다. 더욱이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그는 경멸 적으로 된다. 어느 작가에게도 만족할 수 없다. 그가 자기에게 부과하고 있는 고도의 완벽성에까지 도달해 있는 작가는 한 사람도 없다. 그래서 자신은 아직 작품을 한 토막도 쓰고 있지 않은 점은 완전히 잊고, 그 작가들을 높은 데서 내려다보는 듯한 어조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마치 그가 지은 저서가 수십 권쯤 존재하고, 또 이를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새삼스레 작품성을 말할 필요도 없다는 듯한... 그러한 어조이다. 이와 관련하여 그는 분명히 거짓말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개인적인 철학이나 비평, 불만 따위를 모조리 털어놓기 위해 그가 억지로 붙들고 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그의 종잡을 수 없는 말의 이면에는 구체적인 작품이 존재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해 버린다. 자작시를 읽어준다는 구실로, 혹은 더 그럴 듯한 구실로는 지혜를 얻고 싶다는 따위의 달콤한 말을 하면서 그가 방안으로 끌어들이는 젊고 어리석은 처녀들의 경우는, 특히 그렇다. 죄악감이나 자의식 따위는 전혀 느끼는 일없이, 그는 몇 행쯤을 갈겨쓴 지저분한 종이 한 장을 그녀들에게 건네준다 ― 신작의 구성이라고 설명한다 ― 그리고 심각한 듯한 표정으로 그녀들에게 솔직한 의견을 들려주었으면 좋겠다고 요구하는 것이다. 대개 여자들은 비평이라는 방법으로 이야기할 것까지도 없이, 그 시의 완전한 무의미성에 아연해진다. 그러면 반 놀든은 즉각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도도히 그의 예술관을 전개하는 것이다. 예술관이라고는 해도, 이는 생각나는 대로 그 자리에 어울리도록 꾸며낸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가 이 역할의 엑스퍼트가 되어버린 지금은, 에즈라 파운드의 시로부터 침대까지의 추이는, 어느 음계로부터 다른 음계로 바뀌는 전조와 마찬가지로, 아주 간단하고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다. 실제로 그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불협화음 적으로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일이 이따금 일어나는 것이다. 그가 봉 이라고 말하는 그 얼간이 같은 여자들에게 실패를 저지를 경우이다. 물론 그는 성격적으로 그렇긴 하지만, 이러한 종류의 치명적인 판단의 실패를 이야기하기를 꺼린다. 하지만 자진하여 이러한 종류의 실패를 고백하기 시작하면, 무엇하나 감추려 하지 않는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서투른 솜씨를 길게 논하는 데 짓궂은 쾌감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그럭저럭 10년 동안이나 그가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애써온 한 여자가 있다 ― 처음에는 미국에서, 마지막에는 이 파리에서... 그가 성실하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단 한 명의 이성이다. 그들은 서로 좋아할 뿐만 아니라, 서로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처음에는 만일 그가 이 여자를 정말로 붙잡을 수 있다면, 그의 문제도 해결되지 않을까 하고 나는 생각했었다. 잘 결합될 수 있는 모든 요소가 거기에는 있었던 것이다 ― 다만 근본적인 요소를 제외하고는. 베시는 그녀대로, 그와 같은 정도로 변해 있었다. 남자에게 몸을 허락하는 일 따위는, 식후의 디저트 정도로밖에는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대게 그녀는 자신이 상대를 골라, 자진하여 프로포즈하였다. 못생기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미인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늘씬한 몸매였다. 그녀의 가장 돋보이는 점은 그것이었다 ― 그리고 그녀는 그것을 좋아한다고 모두들 말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무척 사이가 좋으며, 때로는 그녀의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동시에 거친 면을 보임으로써 그녀를 흥분시키려는 헛된 희망 때문에)반 놀든은 그 밀회를 하고 있을 동안, 그녀를 벽장 속에 숨겨두곤 했다. 그것이 끝나면, 베시는 숨어 있던 곳에서 나와,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태도로, 즉 테크닉 이외의 일에는 전혀 흥미가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를 상대로 담론하는 것이다. 테크닉이라는 것은, 그녀가 애용하는 말의 하나이다. 적어도 그러한 담론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내가 흥미롭게 경청할 특권을 누릴 수 있었던 말의 하나이다. 내 테크닉의 어디가 서툴단 말이야? 하고 그는 말한다. 그러면 베시는 언제나 이렇게 대답한다. 당신은 너무 서툴러요. 나를 기쁘게 해주려면, 좀더 델리키트해져야 해요." 방금 말한 것처럼, 두 사람 사이에 아주 완전히 이해가 이루어져 있었으므로, 내가 한시 반에 반 놀든을 방문할 때는 베시가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 모습을 흔히 발견하곤 하였다. 이불이 젖혀져 있고, 반 놀든이 문질러 달라며 그녀를 끌어들이고 있다... 잠깐만 가볍게 어루만져줘. 하고 그는 언제나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일어날 용기가 생긴다구. 혹은 또 페니스를 입김으로 불어달라고 재촉하는 수도 있다. 그렇게 해주지 않으면, 그는 자신의 페니스를 쥐고, 식사시간을 알리는 벨처럼 흔들어댄다. 그리고 두 사람은 배꼽이 빠져라 하고 웃어대는 것이다. 나는 이제 이치하고는 절대로 안해. 하고 그는 말한다. 이 여자는 나를 조금도 존경하고 있지 않아. 내가 이치를 믿고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은 결과가 이거라구. 그리고 느닷없이 그는 덧붙여 말한다. 어제 나제한테 보여준 그 금발의 여자 말야, 그녀를 자네는 어떻게 생각해? 물론 베시를 향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베시는 그를 비웃음, 당신은 무취미한 사람이군요. 하고 단정해 버린다. 원 그런 말은 내게는 효과가 없어. 하고 그는 언제나 말한다. 그리고 시시덕거리며 말한다 ― 아마도 이는 수천 번째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는 두 사람 사이의 상투적인 농담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 이봐, 베시, 빨리 한꼬 어때. 잠깐 숏타임이야... 싫은가? 이 농담이 언제 나처럼 지나가면, 그는 똑같은 어조로 덧붙여 말한다. 그럼, 이 남자하고는 어때. 왜 자네는 이 남자에게는 시켜주지 않는 거야. 베시의 특이한 점은, 그녀가 자기 자신을 단순한 성교의 상대로 간주할 수 없는, 혹은 간주하려 하지 않는 점이다. 그녀는 마치 멋있는 신어라도 되는 것처럼, 정열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모든 일에 ― 성교처럼 보잘것없는 일에까지 ― 정열적인 것이다. 거기에 정신을 집중시키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이다. 나도 때로는 정열적으로 된다구. 하고 반 놀든은 말한다. 흠, 당신이. 하고 베시가 말한다. 당신은 닳아빠진 호색가에 지나지 않아요. 정열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있다구요. 당신은 발기하면 정열적으로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다구요. 하긴 그게 정열이 아닐지도 몰라... 그러나 정열적으로 되면 발기하지 않을 수 없어. 이건 진리야. 안 그래? 베시의 이러한 일들, 그리고 그가 밤이나 낮이나 제 방으로 끌어들이는 그 밖의 여자들 일이, 레스토랑을 향해 걸어가는 나의 머리를 점령한다. 나는 그이 독백에 대해, 아주 교묘하게 스스로를 조절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 자신의 환상을 중단하는 일없이, 요구하면 그의 목소리가 사라지자마자 어떤 의견이든 자동적으로 말할 수가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중창이다. 더욱이 자신이 노래할 차례를 알려주는 신호에만 대비하여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이는 이중창 같은 것이다. 그가 비번인 날 밤이어서 그와 함께 있어주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에, 나는 이미 그의 질문에 대답하느라 머리가 멍해져 있었다. 저녁 무렵이 끝나기 전에 기운이 완전히 소모되어 버리는 것을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운이 좋으면, 즉 뭐라고 구실을 달아 그로부터 몇 프랑 뜯어낼 수만 있으면, 그가 변소에 가자마자 도망가 버리겠는데. 하지만 그는 내가 도망가는 버릇을 알고 있으므로, 창피를 당하는 대신, 지갑을 단단히 지킴으로써 그러한 가능성을 경계하는 것이다. 만일 내가 담배를 사올 테니 돈을 달라고 부탁하면, 그는 함께 사러 가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1초 동안이라도 혼자가 되지 않으려고 주의하는 것이다. 그가 여자를 잘 채어오는 데 성공했을 때에도, 그러한 때에도 그는 혼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될 수 있는 일이라면, 여자와의 행위 중에도 나를 방안에 앉혀두고 싶을 것이다. 면도를 하고 있을 때에도 옆에 있어 달라고 내게 부탁하고 싶을 것이다. 반 놀든은 비번인 날 밤에는 대개 돈을 마련하여 주머니에 적어도 50프랑은 갖고 있었다. 그리고 상황이 허용하는 한, 가망이 있어 보이는 사람을 만나면, 반드시 말을 걸어보는 것이다. 아아 하고 그는 말한다. 20프랑만 있으면 쥐요... 필요해요. 그러면서 그는 당황해하는 체하는 수법을 쓴다. 그리고 만일 거절하면, 그는 훨씬 더 뻔뻔스러워진다. 그래요, 하지만 하다못해 술 한 잔쯤은 사줄 수 있겠죠. 술을 얻어먹게 되면, 그는 다시 정중하게 말한다 ― 그럼 5프랑만 줘요... 2프랑도 좋아... 이렇게 언제나 몇 프랑씩 저축하여 가는 것이다. 쿠포르에서 우리는 신문사의 잔뜩 술에 취한 친구와 마주쳤다. 위층에서 일하는 이들 중의 한 명이다. 방금 회사에서 사고가 있었다고 그는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교정과 사나이가 엘리베이터 아래로 떨어졌는데, 중상을 입어 살아날 가망이 없다는 것이다. 처음에 반 놀든은 깜짝 놀란다.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그 사람이 영국인인 페코바임을 알고는, 안심한 듯한 표정이 된다. 가엾은 녀석이군. 하고 그는 말한다. 그 사나이는 살아 있기보다는 죽는 편이 더 행복해. 그치도 지난번에 의치를 해 넣었는데... 의치 얘기가 나오자, 위층의 사나이는 마음이 뒤흔들려 눈물을 글썽였다. 그는 울먹이면서 그 사건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였다. 그는 그 일 때문에 마음이 혼란스러워져 있는 것이다. 페코바는 엘리베이터 구멍의 바닥에 부딪쳤을 때, 사람들이 구조하러 달려가기 전에, 의식을 되찾은 모양이다. 양다리와 갈비뼈가 부러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까스로 엉금엉금 기면서 의치를 찾느라 손으로 사방을 더듬고 있었다. 구급차 속에서도, 헛소리를 하며, 잃어버린 의치를 찾아야 한다고 외치고 있었다. 이는 가엾은 이야기지만, 동시에 우스꽝스럽기도 했다. 위층의 사나이는, 이 이야기를 하면서 웃어야 좋을지 울어야 좋을지 알 수 없는 모양이었다. 이는 실로 미묘한 순간이었다. 왜냐하면 이러한 술주정뱅이를 상대하고 있다가, 자칫 서투르게 대응하기라도 하면, 머리를 병 따위로 얻어맞을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사나이는 페코바와 특별히 친했던 것은 아니다 ― 실은 교정부에는 별로 발을 들여놓은 적이 없었다. 아래층 사람들과의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벽과도 같은 게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는 페코바가 죽은 데 감동하여 동료 정신을 나타내고 싶어진 것이다. 되도록 이면 자신이 착실한 인간이라는 것을 보이기 위해 울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페코바를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가 대단한 가치도 없는 인간이었다는 것도 알고 있는 죠와 나는, 두세 방울의 눈물을 흘리고 있을 뿐이지만 아무튼 이 술주정뱅이가 감상적으로 나오고 있는 데에는 약간 난처해졌다. 상대방에게 그렇게 말해주고 싶지만, 상대가 이런 사나이이므로 무심코 정직하게 말할 수는 없었다. 화환을 사들고 장례식에 가서, 기특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어야 하리라. 또 그가 쓴 명문의 사망 기사에 대해서는 칭찬해 주어야 하리라. 그는 몇 개월이나 그 명문의 사망 기사를 들고 돌아다니며, 이 사태에 직면하여 그가 취한 조치를 자화자찬하리라. 우리 ― 죠와 나 ― 는 오랫동안 우뚝 서서, 묵살하는 듯한 경멸감을 갖고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달아날 수 있는 기회가 생각자마자, 우리는 재빨리 그 자리를 떠났다. 그곳의 스탠드에서 술잔 위로 고개를 숙이고 엉엉 울고 있는 그를 남겨두고... 그에게 보이지 않을 지점까지 달려와 우리는 요란하게 웃어대었다. 의치 ! 그 가엾은 녀석에 대해 우리가 뭐라고 이야기하든, 또 그에 대해 아무리 좋게 이야기하든 간에, 반드시 이야기는 의치 쪽으로 되돌아왔다. 세상에는 죽음마저 우스꽝스레 느끼도록 만들만큼 우스꽝스런 인물로 생각되는 인간이 있는 법이다. 죽는 모양이 무서우면 무서울수록, 그들은 우스꽝스럽게 보인다 죽는 순간에 약간이나마 엄숙한 느낌을 첨가해 주려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그들의 죽음에서 다소나마 비극적인 면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거짓말쟁이가 되거나 위선자가 되어야 한다. 지금은 체면을 차릴 필요가 없으므로, 우리는 그 사건을 실컷 비웃어줄 수 있었다. 밤새도록 우리는 웃고 있었다. 그리고 위층 녀석들에 대한 경멸과 혐오의 말을 퍼붓고 있었다. 페코바는 좋은 인간이며, 그의 죽음은 가슴 아픈 비극이라고 억지로 생각하려 하고 있는 그 얼간이 녀석들. 온갖 우스운 기억이 머리에 떠올랐다 ― 그는 곧잘 세미콜론을 빠뜨리고, 그 때문에 녀석들은 그에게 마구 욕을 퍼부었다. 녀석들은 그 사소한 세미콜론이나, 언제나 바보짓만 하는 사소한 일들을 웃음거리로 삼아, 그의 인생을 비참하게 만든 것이다. 한 번은 그가 술냄새를 약간 풍기며 출근했다는 이유로, 파면시키려 한 적도 있다. 회사 사람들은 그가 언제나 비참한 모습을 하고 있고, 습진이나 비듬 투성이라는 이유로 그를 경멸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그는 하나의 머저리 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죽고 나자, 그치들은 모두 달려와서 커다란 화환을 사다 놓고, 사망 광고란에 굵은 활자로 씌어진 그의 이름을 실어주곤 하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그들을 명예롭게 만들 만한 게 거기에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치들은 그를 큰 인물로 치켜올렸을 것이다. 페코바에게는 불행한 일이지만, 그에 관해 꾸며낼 만한 재료가 하나도 없었다. 그는 제로 였다. 그가 죽었다는 사실조차도, 그의 이름에 무엇 하나 덧붙일 수 없는 것이다. 그래도 좋은 면이 한 가지는 있네. 하고 죠는 말했다. 녀석의 일자리를 자네가 맡을 수 있잖아. 그리고 자네에게 운이 있으면, 엘리베이터 구멍에 추락하여 자네도 목뼈를 부러뜨리게 될지도 몰라. 그러면 우리는 자네에게 멋있는 화환을 사줄 거야. 약속하네. 새벽녘까지 우리는 돔의 테라스에 앉아 있었다. 우리는 이미 불쌍한 페코바의 일은 잊어버리고 있었다. 네그로 무도장에서 약간 흥분하여, 죠의 사고는 어느 틈엔지 그 영원한 관심사인 여자 쪽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비번인 날 밤도 그럭저럭 끝나가고 있는 이 시각이 되면, 그의 불안감은 열 병적인 상태로 높아져가는 것이다. 그는 초저녁에 스쳐 지나가던 여자들을 생각한다. 또 그가 싫증을 느끼지만 않으면, 부탁을 하면 고정된 정부가 되어주었을지도 모를 몇 명의 여자들을 생각한다. 그는 으레 그 조지아 여자들을 생각해낸다 ― 그녀는 요즘 그를 뒤쫓아 다니며, 자신을 돌보아 달라고 ― 일자리가 발견될 때까지라도 좋다고 ― 부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따금 밥을 먹여주는 건 상관없지만 말야. 하고 그는 말한다. 그러나 그녀만을 특정한 상대로 삼아 떠맡을 수는 없어... 그녀 때문에, 가른 여자들과의 즐거움이 망가져 버리니까. 그가 무엇보다도 질리고 있는 것은, 그녀가 조금도 살집이 좋지 않은 점이다. 마치 해골을 껴안고 자고 있는 것 같아. 하고 그는 말한다. 지난번 밤에 그녀를 데리고 잤다구 ― 너무 가엾어서 말야 ― 그런데 그 미치광이 같은 게 무슨 짓을 하고 있었는지 알겠나? 거기를 깨끗이 면도를 하고 있더라구... 음모가 하나도 없어 ! 거기를 면도해버린 여자하고 자본적이 있나 ? 기분 나쁘다구. 그리고 우스꽝스러워. 마치 미치광이 같아. 전혀 그것같이 보이질 않아. 죽은 대합 같더라구. 그는 호기심이 생겨, 침대에서 내려와 회정전등을 찾았을 때의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드러내 놓고, 회중전등으로 그걸 비춰 보았다구. 그때의 내 모양을 자네에게도 보여주고 싶었어... 바로 희극이야. 나느 그녀가 있다는 걸 완전히 잊어버릴 만큼 그것에 열중해 버렸어. 지금까지 그토록 진지하게 여자의 그 부분을 들여다본 적이 없어. 더욱이 보면 볼수록 그것에 대한 흥미가 사라져버리더군. 결국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게 되었을 뿐이야. 특히 면도를 하고 있을 경우에는 말야. 그것을 신비로워 보이게 하고 있는 건 음모라구. 조상을 보아도 냉정하게 있을 수 있는 건 그 때문이야. 나는 한 번도 정말로 음부가 있는 조상을 본 적이 있어 ― 로댕의 작품이야. 자네도 언제든 한 번 그것을 보라구... 그 조상인 여자는 양다리를 크게 벌리고 있어... 머리는 없었던 것 같아. 그러면 음부에 불과하지 않으냐고 자네는 말할지도 몰라. 하지만, 제기랄, 그걸 보니 섬뜩한 느낌이 들더군. 사실 ― 여자라는 건 모두 어슷비슷하다구. 옷을 입고 있을 때의 여자를 보면, 여러 가지를 상상하지. 개성 같은 게 있다고 누구나 생각하지만, 물론 그런 건 있지도 않아. 양다리 사이에 째진 데가 있을 뿐이라구. 거기에 남자들은 모두 미친다구 ― 그런데 아무도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보지도 않아. 그게 거기에 있다는 걸 알고, 생각하는 것이라곤 단지 그 속에 총대 를 찔러 넣으려는 것뿐이야. 마치 페니스가 대신 생각해 주고 있는 격이지. 그런 건 환상이야 ! 무에 대해 열을 올리고 있는 거라구... 풀로 뒤덮인, 혹은 풀이 없는 째진 곳 에 미치고 있는 거야. 내가 그것을 들여다보기를 그토록 좋아했던 것도, 그것이 절대로 무의미하기 때문이야. 10분간, 혹은 더 오랫동안 차분히 그것을 살펴보아야 했으리라고 생각해. 그러한 태도, 냉정한 태도로 그것을 보고 있으면, 묘한 생각이 떠오른다구. 성을 신비롭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게 무라는 걸 발견하는 셈이야 ― 공백(blank)에 지나지 않아. 그 속에서 하모니카나 캘린더를 발견하면 재미있을 거야. 그런데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어... 전혀 아무것도 없어. 정말 기분 나쁜 거라구. 나는 머리가 돌아버릴 것 같았어... 알겠나, 그 다음에 내가 어떻게 했는지 알겠어? 재빨리 한꼬 끝내고는, 홱 등을 돌렸어. 정말이야. 나는 책을 집어들고 읽었지. 서적에서는, 쓸모 없는 서적이라도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어... 하지만 음부는, 이건 시간의 낭비에 지나지 않아... 그가 이 이야기의 결론을 내려가고 있을 때, 우연히 한 매춘부가 우리를 주목하였다. 그러자 그는 불쑥 내게 말하였다. 저 여자와 자주면 어때, 별로 비싸지 않아... 우리 같으면 두 사람을 함께 떠맡을 거야. 그리고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비틀거리면서 일어나 여자 쪽으로 다가갔다. 곧 되돌아왔다. 결정됐어. 하고 그는 말한다. 그 맥주병을 따요. 저 여자는 배가 고프다구. 이런 시각에는 어쩔 수 없지... 우리 두 사람이 15프랑만 내면 된다는 거야. 내 방으로 가세... 그래야 싸게 먹힌다구. 호텔로 가는 도중에, 여자가 몸을 떨고 있어, 우리는 걸음을 멈추고 그녀에게 커피를 사주지 않으면 안되었다. 어느 편이냐 하면, 유순한 성격의 여자이며, 겉모양도 그다지 나쁜 편이 아니다. 분명히 반 놀든을 알고 있고, 그로부터 15프랑 이외에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 알고 있었다. 자네는 한푼도 갖고 있지 않지? 하고 그는 숨을 죽이고, 내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주머니에 1상팀도 갖고 있지 않으므로, 이상한 질문을 다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드디어 그는 웃기 시작하였다. 농담이 아냐, 우리는 파산 상태야. 방에 들어가서 묘한 인정미를 발휘할 건 없어. 이치는 자네에게 따로 얼마 더 달라고 조를 작정이니까 ― 나는 이 여자를 알고 있어 ! 내가 부탁하면, 이 여자는 10프랑이면 상대해 준다구. 이치들이 기어오르게 만들면, 이로울 게 없어... 짓궂군요, 저분은. 그가 영어로 말하는 낱말들을 단편적으로 추측하여, 울적한 듯한 어조로 그녀는 프랑스어로 내게 말하였다. 아냐, 짓궂지 않아. 아주 상냥해. 그녀는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나는 잘 알고 있어요, 어떤 사람인지. 이렇게 말하고 그녀는, 병원에서의 일이나 밀린 방세 이야기, 시골에 잇는 갓난아기 이야기 등의 애처로운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이를 과장하지는 않았다. 우리가 귀를 막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가슴속에는 비참함이 돌멩이처럼 자리잡고 있어,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가 조금도 없었던 모양이다. 우리의 동정심에 매달리려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 가슴속의 무거운 돌을 다른 장소로 옮기려 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왠지 이 여자가 좋아졌다. 제발 이 여자가 병을 갖고 있지 않기를... 하고 빌었다. 방에 들어가자, 그녀는 기계적으로 준비를 하기 시작하였다. 빵은 한 조각도 없나요? 하고 세척기 위해 쭈그리고 앉아서 물었다. 반 놀든 은, 이에 웃음으로 대답하였다. 이봐, 한 잔 마셔요. 하고, 그녀를 향해 술병을 흔들어 보였다. 그녀는 마실 것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있었다. 벌써부터 위가 아프다고 투덜대기 시작하였다. 이게 이 여자가 언제나 쓰는 수법이야. 하고 반 놀든은 말하였다. 괜히 걸려들어 동정하지 말라구. 여전하군, 이 계집은. 무슨 다른 얘기라도 하면 좋겠는데... 굶주려 걸걸하고 있는 여자를 껴안고 있을 때, 대체 어떻게 하면 정욕을 조금이라도 타오르게 할 수 있을까. 정말 그렇다. 우리는 모두 전혀 욕망을 느낄 수 없었다. 또 여자 쪽 역시 이 여자가 정욕의 불꽃을 드러내 보이기를 기대하는 것은,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낳기를 기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15프랑이 관련되어 있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안된다. 전쟁과 마찬가지이다. 전쟁 상태로 빠져든 순간부터, 누구나 평화 이외의 일은 생각하지 않으면, 그것을 극복하는 일만 생각하는 법이다. 그러면서도 무기를 버리고, 이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두손들었다 고 말할 만큼의 용기는 아무도 갖고 있지 않다. 그렇다, 15프랑은 어디엔가 존재하고 있지만, 아무도 이미 소란을 떨지도 않고, 어떻게든 마지막으로 그것을 손에 넣으려 하는 자도 없는 것이다. 15프랑이 사물의 주요한 목적처럼 되어버려, 제 마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혹은 주요한 목적을 향해 나아가기보다는, 오히려 그 장소의 기세에 눌려 살육에 살육을 거듭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겁쟁이가 되면 될수록 용감한 행동을 하는 법이다. 이리하여 마침내 내구력이 소진되는 날이 오면, 갑자기 포문이 일제히 침묵하고, 들것을 든 자들이 수족을 잃은 사람이나 피를 흘리고 있는 용사들을 운반하고, 그들의 가슴에 훈장을 장식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사람은 여생을 15프랑 을 생각하며 지내는 것이다. 눈이나 가슴이나 다리는 없지만, 나머지 생애 동안, 모두들 잊어버리고 있는 15프랑에 관해 몽상하는 위안이 남아 있는 셈이다. 바로 전쟁 상태와 똑같다 ― 나는 머리 속의 그러한 생각을 몰아낼 수가 없었다. 내 내부의 정욕을 불타오르게 하려고 작용하는 그녀의 수법이, 내게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 만일 내가 이런 식으로 올가미에 걸려 전선으로 끌려나갈 만큼 바보 천치였다면, 얼마나 비참한 군대가 되어 있었을까. 나는 수라장에서 달아나려고, 모든 것을, 명예도 포함하여 모든 것을 깡그리 내던져버릴 것이다. 이는 스스로도 알고 있다. 나는 조금도 욕망을 느끼지 않았다. 달리 어쩔 도리도 없었다. 하지만 여자는 15프랑 을 외곬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만일 내게 싸움을 걸려는 욕구가 없다면, 여자는 어떻게든 내게 싸움을 하도록 만들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남자에게 조금도 파이트(fight)가 없다면, 남자의 몸에 파이트를 주입할 수도 없을 것이다. 남자들 가운데는 아무리 죽인다고 위협을 해도, 도저히 용사로 만들어질 수 없는 녀석이 있는 법이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지도 모른다. 현재의 순간 속에서 살아가지 않고, 조금 앞쪽 혹은 조금 뒤쪽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간이 있는 법이다. 나는 계속 평화의 조건 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처럼 까다로운 일이 불러일으켜진 것도, 그 15프랑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잊을 수 없었다. 15프랑 ! 나에게 있어 15프랑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특히 그것이 자신의 15프랑이 아닐 경우에. 반 놀든이 오히려 더 정상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듯했다. 지금은 15프랑 따위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는 모양이다. 그를 부추기고 있는 것은, 이 장소의 상황 자체이다. 즉 기운이 왕성함을 보여주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이다 ― 그의 남성 이 잠자코 틀어박혀 있지 않는 것이다. 이밖에도 참가하고 있는 게 있다 ―그것은 단지 남자라는 것뿐만 아니라, 의지이다. 다시금 참호 속의 남자와 유사해지는 듯하다. 즉 그 남자는, 왜 자신이 계속 살아 남아 있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이미 알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달아나도, 나중에 붙잡힐 뿐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는 계속 살아간다. 그리고 설령 바퀴벌레 정도의 영혼밖에는 인정하고 있지 않더라도, 총이나 단검이나 날카로운 손톱·발톱이라도 안겨주면, 그는 언제까지나 살육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발걸음을 멈추고, 왜 이런 짓을 하는지 자문하기는커녕, 백만 명의 인간을 살육할 것이다. 반 놀든이 여자 위에 올라타고 있는 것을 보고 있으면, 톱니바퀴의 톱니가 빗나가 있는 기계라도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하는 대로 내버려두면, 그들은 이런 식으로 영구히 계속해갈 수 있을 것이다. 돌렸다, 미끄러졌다가 하면서... 아무리 시간이 경과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 손이 모터의 전류를 끊을 때까지는. 그 모양은 두 마리의 염소가 아무런 정욕의 불꽃도 일으키지 않으면서 교미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15프랑 이외에는 아무런 이유도 없고, 그냥 기를 쓰고 있어 호기심을 만족시킨다는 비인간적인 감정 이외에는, 내 감정의 마지막 한 조각마저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여자는 침대 가장자리에 누워 있었다. 반 놀든을 사치러스신(역주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반인간 반말 혹은 반인간 반양의 숲의 신으로, 굉장히 색을 좋아한다고 한다)처럼 양다리를 바닥에 대고, 그녀 위에 올라타고 있었다. 나는 그의 뒤쪽 의자에 걸터앉아, 냉정하고, 광학적이며, 덤덤한 기분으로 두 사람의 동작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게 영구히 계속된다 해도, 내게는 별 의미가 없었다. 신문을 토해내는 ― 무의미한 표제를 실은 수백만, 수백억, 수조 부의 신문을 토해내는 ― 그 미치광이 같은 기계의 하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기계 쪽의 미치광이처럼 보이지만, 아직 신문을 만들어내는 인간이나 사건 따위보다는 그래도 제 정신을 갖고 있어, 보고 있어도 재미있었다. 반 놀든과 여자에 대한 나의 흥미는 허무 한 것이었다. 만일 내가, 이렇게 의자에 앉아, 지금 온 세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행위들 하나하나를 바라볼 수 있다면, 나의 흥미는 허무 이하일 것이다. 나로서는 이러한 현상과, 비바람인 화산의 폭발 따위를 구별할 수가 없을 것이다. 정욕의 불꽃이 일지 않고 있는 만큼, 이 행위에서는 아무런 인간적 의의도 찾아볼 수 없었다. 기계를 바라보고 있는 편이 더 나았다. 이 두 사람은 톱니바퀴의 톱니가 어긋난 기계와도 같았다. 누군가의 힘으로 이를 바로잡아줄 필요가 있었다. 기계 기사가 필요한 것이다. 나는 반 놀든의 뒤쪽에서 양무릎을 끓고, 그 기계를 더 세밀히 살펴보았다. 여자는 머리를 한쪽으로 돌리고, 내게 절망적인 시선을 보내었다. 안돼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글렀어요. 이 말을 듣고 반 놀든은 더 힘을 주었다. 꼭 늙어빠진 숫염소 같다. 단념하기보다는 제 것을 부러뜨리는 편이 낫다고 생각할 만큼 그는 완고한 녀석이다. 내가 그의 엉덩이를 간질여주자, 그는 화를 내기 시작했다. 죠, 제발 단념해 ! 가엾게도, 자네는 이 여자를 죽여버릴 거야. 내버려 둬. 하고 그는 신음하듯 말했다. 조금만 더 하면 어떻게든 될 것 같아. 그가 이렇게 말하며 결심을 하는 모양을 보고, 순간적으로 갑자기 내 머리 속의 그 꿈이 기억이 되살아났다. 다만 그가 떠나면서 태연히 살짝 겨드랑이에 끼고 있던 그 빗자루 만은, 지금은 영구히 사라져버리고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꿈의 계속 처럼 보였다 ― 똑같은 반 놀든 이지만, 주요한 목적은 상실되어 있었다. 그는 싸움터에서 돌아온 용사와도 같았다. 꿈의 현실 밖에서 살아가고 있는 불쌍한 불구자이다. 걸터앉으면, 반드시 의자가 부서져 버린다. 어느 방문으로 들어가든, 언제나 방안은 텅 비어 있다. 먹거나 삼키는 건 모두 역겨운 뒷맛이 날 뿐이다. 모든 게 이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고 있다. 요소는 변화하지 않고 있다. 꿈이 현실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 시간의 사이사이에 그는 졸음에 빠지고, 눈을 떴을 때에는 육체를 도난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신문을 나날이 수백만, 수억 부나 토해내는 기계와도 같다. 첫 페이지에 대참사, 폭동, 살인, 폭발, 충돌 등의 기사를 싣고 있지만, 그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느껴지지 않는다. 만일 누군가가 스위치를 뽑지 않으면, 죽음이란 어떤 것인가를 그는 끝내 알지 못할 것이다. 자신의 고유한 육체를 도난 당해 버리면, 죽을 수도 없는 것이다. 여자를 곯려주며, 언제까지나 숫염소처럼 해낼 수는 있다. 참호에 들어갔다가, 폭격이라도 당해 산산조각이 나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가 개입하지 않으면, 무슨 짓을 하든, 그 정열의 불꽃을 창조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만일 톱니바퀴의 어긋난 톱니를 바로잡으려 한다면, 누군가가 기계 속에 손을 집어넣어, 일단 그것을 뜯어내야 한다. 보수도 바라지 않고, 15프랑에의 관심도 없이, 누군가가 그 일을 해내야 하는 것이다. 훈장이 등을 꼽추처럼 굽게 만들만큼 얄팍한 가슴을 가진 누군가가, 그리고 누군가가 허기진 여자에게 음식을 먹여주어야 한다. 다시금 그것을 토해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품지 않고... 그렇지 않으면, 이 구경거리는 영구히 계속될 것이다. 이 악전고투로부터 벗어날 길이 없는 것이다... 꼭 일주일 동안, 상사인 얼간이 녀석의 비위를 맞춘 끝에 ― 파리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 ― 나는 가까스로 페코바가 일하던 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는 가엾게도 엘리베이터 밑바닥에 추락하여, 몇 시간 후에 완전히 죽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내가 예상한 대로, 녀석들은 그에게 엄숙한 미사와 커다란 화환을 바치고, 성대한 장례식을 치러 주었다. 정말 완벽하다. 장례식이 끝나자, 그 위층 녀석들은 술집에 가 파티를 열였다. 페코바가 약간이나마 파티에서의 제 몫을 차지하지 못한 게 유감스럽다 ― 위층 녀석들과 합석하여, 그의 이름이 빈번히 이들의 입에 오르는 것을 들었다면, 그도 아마 고맙게 생각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굳이 푸념을 할 정도의 일도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마치 여생을 자위행위를 하면 보내도 상관없는 정신병원에 있어도 되는 것과 같았다. 세상을 바로 코밑에 갖다 대고 나에게 요구하는 것은, 여러 가지 재앙에 구두점을 찍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위층에 있는 날쌘 녀석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없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어떤 환희도, 어떤 비참도 깨닫지 않도록 할 수는 없었다. 그들의 인생의 엄연한 사실 ― 현실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늪과도 같은 현실이다. 그들은 법석을 떠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개구리 같은 것이었다. 법석을 떨면 떨수록 인생은 현실적으로 되었다. 변호사, 승려, 의사, 정치가, 신문인 ― 이러한 녀석들은 세계의 고동에 손을 대고 있는 돌팔이 의사다. 끊임없는 재앙의 분위기. 그것은 경이적이었다. 흡사 청우계가 전혀 변화하지 않는 것 같고, 항상 반기를 게양하고 있는 것과 같기도 했다. 오늘날 천국의 관념이 어떻게 인간의 의식을 사로잡고 있는가, 모든 지주가 천국의 토대에서 무너져 버렸을 때조차도, 어떻게 그 관념이 기초를 공고히 하는 것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이 난잡하게 버려져 있는 이 늪 한구석에 또 하나의 세계가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것이, 즉 사람들이 꿈꾸고 있는 이 천국의 어떤 곳인지는 상상하기 어려우나, 물론 개구리의 천국임에 틀림없다. 독기, 거품, 수련, 더워진 물.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하루 종일 수련의 잎에 앉아 울고 있는 개구리. 아마도 그런 것이라고 나는 상상한다. ― 내가 교정하고 있는 그러한 참사들은, 이상하게도 나에게 치료의 효과를 주었다. 완전한 면역 상태, 마법에 걸린 존재, 무서운 독을 가진 바틸루스 한가운데에 있는 생명의 절대 보장을 상상해 보라. 그 어떤 것도 내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다. 지진도, 폭발도, 폭동도, 기근도, 충돌도, 전쟁도, 혁명도. 나는 모든 질병, 재앙, 비애, 비참에 대한 예방 접종을 받고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안전하고도 견고한 인생의 극점이다. 좁다란 한구석에 앉아 있는 내 손을 통해, 매일같이 발생하는 세계의 모든 독이 통과해 갔다. 손가락에조차 독이 묻지 않았다. 나는 완전히 면역되어 있는 것이다. 실험실에 있는 사람들보다도 안전했다. 여기에는 전혀 악취가 없고, 오직 가열된 납 냄새가 있을 뿐이다. 세계가 파열해도 전혀 개의치 않고 ― 여전히 나는 여기서 콤마나 세미콜론을 찍고 있을 것이다. 더구나 잔업수당까지 받을 때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큰 사건이 생기면 아무래도 최종적인 특별 판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세계가 폭발하고 최종 판이 인쇄에 돌려지면, 교정원은 조용히 콤마, 세미콜론, 하이픈, 별표, 작은 괄호, 큰 괄호, 마침표, 감탄부호들을 전부 모아 편집장 위쪽에 있는 작은 상자에 넣는다. 이처럼 모든 것이 규정되어 있는 것이다... 내가 왜 이렇게 만족하고 있는지 아는 사람이 동료들 중에는 아무도 없는 듯하다. 그들은 시종 불평만 늘어놓고 있었다. 그들은 야심을 가졌고, 프라이드와 울분을 보이고 싶은 것이다. 훌륭한 교정원은 야심도 없거니와 프라이드나 울분도 없다. 훌륭한 교정원은 어느 정도 전능한 신과도 비슷하다. 그는 이 세상에 있지만 세속적이지는 않다. 그는 일요일만을 위해 존재해 있다. 일요일은 그가 비번인 날이다. 일요일이 되면 제단에서 내려와 충실한 녀석들에게 궁둥이를 보인다. 그는 1주일에 한 번, 세계 사람들의 개인적인 슬픔과 비참에 귀를 기울인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게 1주일의 나머지 기간을 버틸 수 있다. 1주일의 나머지 동안 그는 얼어붙은 겨울의 늪과 같은 상태이다. 절대자, 전혀 하자가 없는 절대자이다. 다만 광대무변한 허공에는 그를 구별하기 위해 예방주사의 흔적만이 남는 것이다. 교정원의 가장 큰 재난은 직업을 잃을지도 모르는 위협이다. 휴식 시간에 모일 때 우리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질문은 이것이다. 만일에 직업을 잃게 되면 자네는 어떻게 할 것인가? 말똥을 모으는 것이 일인 마구간 사람들에게 있어서 최대의 공포는 말이 없는 세계의 가능성이다. 일생을 말똥 청소를 하면서 보낸다는 것은 지겨운 일이라고 그에게 말하기라도 한다면, 그 이상 어리석은 일도 없다. 생활이 거기에 매달려 있고 그의 행보도 그 속에 있다고 하면, 인간은 똥이라도 사랑할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가령 내가 아직도 프라이드와 명예심과 야심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남자라면, 굴욕의 밑바닥처럼 생각되는 이 생활도 환자가 기꺼이 죽음을 맞이하듯 나는 환영한다. 그것은 죽음과 마찬가지인 부정적 현실이다 ― 고통도 죽음의 공포도 없는 천국의 일종이다. 이 하계에서 중대하고도 유일한 것은 철자법과 구두점뿐이다. 철자만 틀리지 않는다면 어떤 종류의 참사이건 문제되지 않는다. 이브닝 가운의 최신 유행형, 새로운 군함, 질병, 고성능 폭탄, 천문학상의 발견, 은행의 소란, 열차 사고, 주식 시세, 1백배의 할증금, 사형 집행, 강도, 암살 그 밖의 어떤 것도 모두 마찬가지다. 교정원의 눈을 벗어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의 방탄 조끼를 관통하는 것은 더욱 없다. 마담 스키아 (예전의 미스 에스테브)가 인도인인 아가미르에게, 그의 시술에 대해 아주 만족하다는 편지를 보냈다.〈나는 6월 6일에 결혼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는 매우 행복합니다. 당신의 힘으로 영원히 행복하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전신환으로 사례금을... 보내드립니다.〉인도인인 아가미르는 당신의 운세를 점치고, 또 당신의 생각을 신비적인 방법으로 꼭 맞춥니다. 어떤 고민이나 걱정도 제거해 줍니다. 운운. 파리 맥마흔 거리 20번지로 찾아오거나 편지를 주십시오. 그는 당신의 생각을 경이적인 방법으로 모두 알아맞힌다 ! 그것은 예외 없이 가장 사소한 생각에서부터 가장 파렴치한 생각가지 모두를 포함하는 것이라고 나는 해석한다. 그는 상당히 한가한 사람인 모양이다, 이 아가미르라는 사나이는. 그렇지 않으면 전신환으로 존을 보내는 사람한테만 생각을 집중시킬 수 을 것인가? 같은 신문에서 나는〈우주는 급속히 팽창하고 있으며, 마침내 폭발할 것이다〉라는 제목을 보았다. 그 밑에 쪼개지는 듯한 두통의 사진이 있다. 도한 테크라라는 사람이 진주에 관한 담화를 한 기사가 있었다. 굴은 양쪽 모두 진주를 산출한다고 그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설득하고 있었다. 양쪽, 즉 천연 인 동양 진주와 양식 진주이다. 같은 날 토리에르사원에서는 독일인이 그리스도의 상의를 전시하고 있었다. 그것은 42년만에 비로소 방부제 속에서 꺼내진 것이라고 한다. 바지와 조끼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었다. 역시 같은 날, 잘츠부르크에서는 ― 사실인지는 모르나 ― 인간의 위에서 새앙쥐 두 마리가 태어났다. 책상다리를 한 어느 유명한 여배우의 사진이 나와 있었다. 하이드 파크에서 휴식하고 있는 사진이었다. 또 그 밑에는 어느 저명한 화가의 말이 나와 있었다. 〈쿨리지 부인은 몹시 매력과 개성이 있는 분이므로, 비록 남편이 대통령이 아니었더라도 미국의 유명인사 12명중에 포함되었을 것입니다.〉 또 빈에 사는 한마르씨의 회견기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말을 읽었다. 마지막으로... 한마르씨는 말한다. 말씀드리겠는데, 완벽한 바느질과 몸에 잘 맞는다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훌륭한 옷이라는 증거는 입어 보아야 압니다. 상의는 몸의 굴곡에 맞추어져 있어야 하며, 걸을 때나 앉을 때도 그 선이 무너지면 안됩니다. 그리고 탄광 ― 영국의 탄광 ― 에 폭발 사고가 생기면 반드시 국왕과 왕비가 위문의 전보를 친다는 점에 주의하기 바란다. 또 그 두 분은 언제나 큰 레이스에 임석하시는 것이다. 전날의 원고에 따르면 분명히 더비의 날이었던 것 같은데, 호우가 쏟아져 두 폐하가 크게 놀라셨다 는 것이다. 그러나 더욱 가련한 것은 다음과 같은 기사였다. 이탈리아에서는 교회에 대한 박해가 없다고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교회의 극히 미묘한 부분에 대해 박해가 행해지고 있다. 그것은 교황에 대해서가 아니라, 교황의 마음과 눈에 돌려지고 있다 는 것이다. 나는 전세계를 두루 다녀보고, 결국 이곳이 가장 편하고 유쾌한 장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믿을 수 없을 정도이다. 미국에 있을 때 담력과 배짱을 기르기 위해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일을 해 주었으나, 나와 같은 기질의 남자에게 있어서 이상적인 지위가 철자법의 잘못을 찾아내는 일이란 것을 어떻게 예언할 수 있었을까? 바다 건너에 있는 사람들은 언젠가 합중국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잠재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다 대통령의 그릇인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다르다. 여기서는 모든 인간이 잠재적으로는 제로이다. 만일에 무언가가 된다면 그것은 우연에 속한다. 기적이다. 태어난 고향마을을 떠날 찬스는 천에 하나밖에 없다. 포탄으로 다리가 날아가거나 눈알이 튀어나올 기회는 천에 하나밖에 없다. 기적이라도 일어나 장군이나 제독이 되지 않는 한에는. 그러나 만인에게 모두 찬스가 없기 때문에, 거의 희망이 없기 때문에 이곳 파리에서는 인생의 즐거운 것이다. 하루같이 어제도 없거니와 내일도 또한 없다. 청우계는 결코 변화하지 않는다. 깃발은 항상 반기이다. 그대는 팔에 검은 상장을 달고 있다. 단추구멍에 작은 리본을 꽂고 있다. 그리고 만일에 여유가 있다면 가벼운 목발, 가능하다면 알루미늄 제를 한벌 사는 것이 좋다. 그것이라면 아프리티프를 즐기는 데에도, 동물원의 동물을 구경하는 데에도, 끊임없이 썩은 고기를 찾아 폴바르 거리를 왕래하고 있는 독수리들을 희롱하는 데에도 방해가 되지 않는다. 때는 지나간다. 만일에 그대가 외국인이고 또 그대의 신문이 착실하다면, 그대는 병에 감염될 두려움이 없이 병독의 감염에 몸을 내맡길 수 있다. 가능하면 교정원의 직업을 갖는 것이 좋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은 규정되어 있는 것이다. 그 뜻은, 만일에 그대가 종종 새벽 3시에 집으로 돌아갈 때 자전거를 탄 순경의 제지를 받는다면, 그 녀석을 향해 손가락을 한 번 쳐들어 보이면 된다는 것이다. 아침에 시장이 열려 있으면, 한 개에 50상팀의 돈으로 벨기에의 계란을 살 수 있다. 교정원은 대개 정오까지, 또는 그보다 좀더 늦게까지 일어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영화관 근처에 있는 호텔을 택하면 편리하다. 왜냐하면 늦잠을 자는 버릇이 있더라도 마티네의 시간이 되면 개장 벨이 깨워 줄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관 근처에서 호텔을 구할 수 없으면 묘지 근처라도 좋다. 마찬가지 효과가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절망해서는 안된다. 결코 절망하면 안된다. 내가 매일 밤 칼과 반 놀든에게 귀찮을 정도로 설교하는 내용이 바로 이것이다. 희망이 없는 세상, 그러나 절망이 아니다. 그것은 말하자면 내가 새로운 종교로 개종한 것과 같은 것이고, 밤마다 위안의 성모에 대해 정기적인 9일간의 근행을 하는 것과도 같다. 가령 내가 신문의 편집국장, 또는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고 해도 어떤 이득이 있는지 알 수 없다. 나는 막다른 골목에 들어와 있고, 더구나 그것은 조용하고 편하다. 한 장의 원고를 손에 들고 주위의 음악에 귀를 기울인다. 졸린 듯한 나직한 목소리, 식자기의 금속성 음향. 그것은 마치 수많은 은제 수갑이 착취자의 손을 빠져나가는 것과 같다. 때때로 쥐가 발밑을 자나가기도 하고 진딧물이 가느다란 다리로 민첩하게 벽에서 기어 내려오기도 한다. 하루의 일이 조용하고도 정중하게 코끝으로 미끄러져 간다. 종종 일말의 허영의 존재를 나타내는 옆줄이 그어진다. 그 행렬은 묘지의 문으로 들어서는 상여처럼 조용히 통과한다. 복사 책상 밑에 있는 종이는 아주 두꺼워, 푹신푹신한 융단과 같은 촉감을 준다. 반 놀든의 책상 밑은 갈색 땀으로 더러워져 있다. 11시가 되면 강낭콩 장사가 찾아온다. 약간 머리가 돈 미국인으로서, 그 역시 자기 인생이 운명에 만족하고 있다. 때로는 모나로부터 다음 배로 도착한다는 전보가 오기도 한다. 그런 상태가 이미 9개월이나 계속되고 있으나, 도착하는 배의 승객 명부에서 그녀의 이름을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또 보이가 은쟁반에 편지를 얹어서 갖다 주는 일도 없다. 나는 이미 아무 기대도 갖고 있지 않다. 만일에 그녀가 도착한다면 아래층에 와서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화장실 바로 옆이다. 아마도 그녀는 비위생적이라고 말할 것이다. 유럽에 대해 미국 여성이 제일 먼저 지적하는 것은 그런 일이다 ― 비위생적이라는 것. 그녀들은 근대적 수도 시설이 없는 천국이란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다. 빈대라도 발견하게 되면 얼른 상업회의소에 편지를 보내려 한다. 내가 여기에 만족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그녀한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그녀는 내가 타락했다고 말할 것이다. 그녀가 어떻게 나올 것인지는 처음부터 알고 있다. 정원이 딸린 아틀리에를 찾으려 할 것이다. ― 물론 욕실도 있어야 한다. 그녀는 로맨틱하게 가난하기를 원한다. 나로서는 그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녀에 대해서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도 해가 뜨면, 낯익은 길을 걸으면서 미칠 듯이 그녀를 생각하는 나날이 있다. 잔인한 만족감이기는 하나, 때로는 다른 생활 방식에 관해 생각하면서, 젊고 발랄한 여자가 곁에 있으면 생활이 어떻게 달라질지 상상해 보곤 한다. 난처하게도 나는 그녀가 어떤 여자였던지, 안았을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도 분명히 기억할 수 없는 것이다. 과거의 모든 것이 바다 속에라도 가라앉은 것 같다. 여러 가지 기억은 있으나, 이미지가 선명하지 않다. 왠지 모르게 생기가 없고 산만하여, 마치 늪지에 빠져 세월을 보낸 미라처럼 되어 있는 것이다. 뉴욕 시대의 생활을 화상 하려고 하면, 조각난 단편들이 악몽처럼 약간 되살아난다. 나의 본질적 존재가 어딘가 에서, 즉 스스로도 명확히 알 수 없는 곳에서 끝난 것처럼도 생각되는 것이다. 나는 이미 미국인도 아니거니와 뉴욕 시민도 아니다. 유럽인 이거나 파리의 시민은 더더구나 아니다. 국가에 대한 충성심도 없고 책임도 없다. 증오도, 우려도, 편견도, 정열도 없다. 찬성하지도 않거니와 반대도 하지 않는다. 나는 중립이다. 우리 셋이 밤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올 때 혐오의 첫 발작이 끝나면, 인생에 대해 조금도 활발할 역할을 갖지 못한 인간만이 열중할 수 있는 열광을 가지고, 여러 가지 세상사에 관해 대화를 나누는 일이 종종 있었다. 침대에 누워 가끔 이상하게 생각하곤 하는 것은, 이와 같은 열광도 단순한 심심풀이 ― 회사로부터 몽파르나스까지 걷는 45분 동안의 심심풀이 ― 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여러 가지 개선을 위한 매우 훌륭하고도 실행서이 있는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으나, 그것을 행할 수단이 없었다. 더욱 기묘한 것은, 관념과 생활 사이에 관련이 없기 때문에 그것이 우리에게 아무런 분개도 불쾌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지나치게 순종적으로 되어 버렸기 때문에, 가령 내일은 거꾸로 서서 걸으라는 명령을 받아도 전혀 항의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할 것이다. 물론 신문이 평소처럼 발행된다는 조건하에서. 미국인에게 고유한 두 개골의 특징은 ―지난번에 어느 책에서 읽은 것인데 ― 후두부에 원스뼈(역주 ; 두 개 봉하선에 있는 작은 뼈), 즉 오스 이에카나가 있는 것이라고 한다. 이 뼈의 존재는 ― 라고 그 권위자는 계속해서 쓰고 있다. 보통은 태아일 때만 볼 수 있는, 후두부를 횡단하는 봉합이 언제까지나 완고하게 남아 있는 데에 유래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발육 부진의 증거이고, 열등 인종이란 증거인 것이다. 미국인 두 개골의 평균 용적은 하고 그는 말을 잇는다. 백인의 그것을 밑돌고, 흑인의 그것을 웃돈다. 남녀 모두 오늘날의 파리인은 1,448입방 센티미터의 두 개골 용적을 가졌고, 흑인은 1,344입방 센티미터, 아메리칸 인디언은 1,376입방 센티미터이다. 나는 미국인이지 아메리카 인디언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사실에서 그 어떤 것도 추론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물을 이런 식으로, 즉 뼈라거나 오스 이나카에 등으로 설명하는 것은 영리한 방법이다. 단지 인디언 두 개골의 예에서 1,920입방 센티미터라는, 다른 어떤 인종도 이를 능가하지 못할 비정상적인 두 개골 용적이 나왔다고 해도 그의 학설은 전혀 방해를 받지 않는다. 내가 만족스럽게 여기는 것은, 파리 사람은 남녀 모두 노멀한 두 개 용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는 점이다. 그들의 경우, 후두부를 횡단하는 봉합은 그다지 완고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들은 아프리티프를 어떻게 즐길 것인가를 알고 있고, 가령 집에 페인트가 칠해져 있지 않아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두 개 지수에 관한 한 그들의 두 개골에는 아무 이상도 없다. 그들의 생활을 이토록 완벽하게 만든 기술에 대해서는 다른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한길 건너에 있는 무슈 폴의 술집에는 신문사 친구들을 위해 구석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외상으로 식사할 수 있다. 대패 밥이 마루에 깔리고, 계절에 관계없이 파리가 윙윙거리는 유쾌한 방이다. 신문사 친구들을 위한 방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이목을 피하기 위해 잡아 놓는 것은 아니다. 그와 반대로, 무슈 폴 술집의 단골들 중에서도 가장 실질적인 요소가 되어 있는 매춘부나 뚜쟁이들과 어울릴 특권을 누릴 수 있다. 이것이 위층에 사는 녀석들에게는 아주 안성맞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언제나 여자들의 꽁무니를 따라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특정한 프랑스 여자를 정부로 가진 녀석도 때로는 스위치를 바꾸어 보는 것이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한 번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마치 유행병이 회사를 휩쓴 것 같기도 하고, 또는 그들이 모두 같은 여자와 잤다는 사실로 설명이 될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들이 비록 경기가 안 좋다고는 하나, 비교적 화려한 생활을 하고 있는 뚜쟁이 옆에 앉아야 할 때, 얼마나 비참해 보이는지를 관찰하기란 흥미로운 일이다.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자전거로 아바스 통신을 배달하는 키가 큰 금발의 사나이다. 그는 언제나 땀을 뻘뻘 흘리고 있으며 언제나 얼굴이 먼지로 얼룩져 있다. 그리고 언제나 조금 늦게 나타난다. 거드름을 떨면서 훌쩍 들어와서는 두 손가락으로 일동에게 인사하고 나서, 세면소와 취사장 중간에 있는 설거지대로 곧장 걸어간다. 그는 얼굴을 씻고 재빨리 먹을 것을 둘러본다. 두꺼운 판 위에 맛있어 보이는 스테이크가 있으면 그것을 집어들고 냄새를 맡는다. 또는 큰 포트에 있는 수프를 국자로 퍼내어 맛을 본다. 언제나 코를 땅에 대고 다니는 우수한 사냥개 같다. 예비 동작을 끝내고 소변을 보고 와서는 태연히 매춘부한테로 다가가, 엉덩이를 철썩 때리고 난 뒤 크게 소리를 내며 키스를 한다. 이 매춘부가 지저분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을 나는 한 번도 본 일이 없다 ― 비록 밤의 장사를 끝낸 오전 3시에라도. 막 터키탕에서 나온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같이 건강한 동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유쾌해진다. 그들의 휴식, 애정, 식욕을 대한다는 것은 유쾌한 일이다. 지금 내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저녁 식사에 대해서이다. 그녀가 장사하러 나가기 전에 먹는 가벼운 식사에 대해서이다. 잠시 후 그녀는 거구의 금발 동물과 어쩔 수 없이 헤어져, 어느 한길에서 그녀의 소화제를 찾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장사기 성가시고 피곤하더라도 그녀는 결코 그런 내색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 거구의 사나이가 굶주린 이리처럼 다가오면, 그녀는 팔을 벌려 끌어안고 미친 듯이 키스를 해 준다 ― 그의 눈, 코, 뺨, 머리, 목덜미에... 공공연하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엉덩이에라도 키스했을 것이다. 그녀는 이 사나이를 좋아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녀는 결코 돈의 노예가 아니다. 식사하는 동안 줄곧 경련을 하듯 웃고 있다. 그녀는 이 세상에 고민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때때로 사랑의 표시로 그의 뺨을 찰싹 때린다. 교정원들을 깜짝 놀라게 할 따귀가 아닐 수 없다. 두 사람은 자신들에 대한 것, 입 안 가득히 쑤셔 넣고 있는 음식 외에는 아무것도 안중에 없는 것 같다. 그 정도로 완전한 만족, 조화, 상호 이해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는 반 놀든을 미치게 만든다. 특히 여자가 사나이의 바지 속으로 손을 들이밀어 애무할 때는. 그리고 여기에 반응하여 그가 여자의 젖꼭지를 만지작거릴 때에는. 이밖에도 언제나 같은 시각에 나타나는 커플이 있다. 그들의 태도로 보아서는 부부와 같다. 여러 사람 앞에서 말다툼을 하고 비밀스러운 수치를 드러낸다. 자기들에게 대해서나 남에게 대해서도 불쾌한 일을 한 뒤 협박, 저주, 비난, 책임 전가를 한다. 그리고는 이것을 보상하기 위해 마치 연인 사이라도 되는 듯이 달콤한 말을 속삭인다. 사나이는 그녀를 루시앤느라고 부르고 있는데, 그녀는 잔인하고 음흉한 얼굴을 한 플라티나 브론드이다. 아랫입술이 두툼했다. 그리고 신경질을 내기 시작하면 그 두툼한 입술을 세게 깨문다. 또 빛바랜 푸른 도자기를 연상시키는 싸늘한 유리 같은 눈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눈으로 사나이를 노려보면 그는 땀을 흘린다. 그녀가 말다툼을 시작할 때 보이는 것은 콘돌과 같은 표정이지만, 그래도 사람은 호인인 듯싶었다. 그녀의 지갑에는 언제나 돈이 가득 들어 있다. 그것을 조심스럽게 꺼내어 지불한다. 하지만 이것은 그의 나쁜 습관을 조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는 성격이 약한 것이다. 물론 루시엔느의 장광설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말이지만. 그는 여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하룻밤에 50프랑을 쓴다. 웨이트레스가 그의 주문을 받으러 와도 전혀 식욕이 없다. 어머, 배가 고프지 않군요 ! 루시엔느가 트집을 잡는다. 흥, 포브르 몽마르트에서 나를 기다린다는 핑계로 자못 즐겼겠군요. 내가 당신을 위해 노예처럼 일하고 있는 동안에 말이에요. 어디 갔었는지 정지하게 말해 보세요. 이런 식으로 그녀가 열을 올리고 노기를 띠면, 그는 힐끔힐끔 여자를 쳐다보다가, 마치 침묵이야말로 최선의 방법이라는 듯이 깊이 고개를 떨구고 냅킨을 만지작거린다. 그러나 여자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더구나 남자가 죄를 느끼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는 만큼 ― 물론 내심으로는 언짢은 기분이 들지 않는 그 제스처에도 마구 화가 치솟는 것이다. 말해 봐요, 어서. 하고 그녀는 금속성 소리를 지른다. 이렇게 되면 그는 잔뜩 겁을 먹고 작은 소리로, 너무 배가 고파서 샌드위치와 맥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도저히 거기 가지 않을 수 없었다고 띄엄띄엄 변명을 한다. 그래서 식욕이 없는 거야 ― 라고 그는 슬픈 목소리로 말하지만, 지금은 음식 따위가 조금도 그의 마음을 달래 주지 못하는 것이 확실하다. 하지만 그는 또다시 납득시키기 위해 입을 연다 ― 나는 그 동안 열심히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어. 그는 재빨리 이렇게 말한다. 거짓말 ! 그녀가 소리지른다. 거짓말 ! 아아, 그러나 다행히 나 역시 거짓말쟁이예요... 재치 있는 거짓말쟁이예요. 당신의 시시하고 인색한 거짓말에는 신물이 나요. 어째서 당신은 좀더 큰 거짓말을 하지 못하세요 ? 그는 또다시 고개를 떨구고, 방심한 듯 빵 부스러기를 모아 입으로 가져간다. 그러면 여자가 그의 손을 철썩 때린다. 그따위 짓은 그만두세요. 당신한테는 정말 정나미가 떨어져요. 당신이란 사람은 바보예요. 거짓말 ! 잠깐 기다리세요 ! 좀 더 할 말이 있으니까. 나도 거짓말쟁이예요. 하지만 바보는 아니에요. 그러나 잠시 지나면 그들은 꼭 붙어 앉아 서로 손을 잡는다. 그리고 여자가 달콤한 목소리로 조용히 속삭인다. 아아, 토끼처럼 귀여운 사람, 이제 당신과는 헤어질 수 없어요. 어서 키스해 주세요 ! 오늘밤은 어떻게 하겠어요 ? 사실대로 말해 주세요, 나의 귀여운 사람... 미안해요. 공연히 신경질을 부려서 말이에요. 그는 머뭇머뭇 그녀에게 키스한다. 핑크 빛의 긴 귀를 가진 토끼와 똑같이, 양배추를 씹듯 그녀의 입술을 가볍게 빤다. 동시에 그는 둥근 눈을 빛내면서 의자 옆에 열려진 채로 있는 그녀의 지갑을 애무하듯이 바라본다. 지금은 교묘한 말로 그녀를 속여먹을 찬스를 노리고 있는데 지나지 않는다. 여자로부터 도망쳐서 류드 포브르 몽마르트의 어느 조용한 카페에 가고 싶어 온몸이 근질거리는 것이다. 나는 토끼처럼 둥글고 겁먹은 눈을 가진 이 죄없는 작은 악마를 알고 있다. 또 포브르 몽마르트르가 얼마나 심한 거리인지도 알고 있다. 놋쇠 표찰에 고무 제품, 가로등이 밤거리에 명멸하고 섹스가 하수돗물처럼 이 거리에 흐르고 있다. 라파이에트 거리에서 한길까지 걸으면 태형을 받는 것과도 같다. 여자들이 따라붙어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여자들이 개미처럼 내부로 파고든다. 속이거나 어르거나 추켜세우거나 조르거나 울며 달려들거나 한다. 이것을 독일어, 영어, 스페인어로 지껄이는 것이다. 찢어진 가슴팍과 닳아서 떨어져 나간 신발을 보이거나 한다. 이 촉수를 뿌리쳐 버린 뒤에도 오랫동안 세숫물 냄새가 코에 남아 있다 ― 그것은 단세라는 향수 냄새인데, 그 효과가 보증되는 것은 20센티 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한길과 라파이에트 거리 사이의 그 짧은 거리에서 우리는 한 생애를 배설해 버리며 지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술집이나 활기 넘치고 맥박치며 주사위가 놓여 있다. 노름판 주인이 독수리처럼 높은 의자에 앉아 있다. 그들이 만지는 돈에는 인간의 냄새가 베어 있다. 프랑스 은행에는 여기서 유통되고 있는 살인상금에 해당되는 것이 없다. 인간의 땀으로 번쩍번쩍 빛나고 전광석화처럼 이 손에서 저 손으로 건너가다가 나중에 심한 악취를 남기는 돈이다. 밤중에 신음하지도 않고 땀도 흘리지 않으며, 또는 입에 저주의 말이나 기도의 말을 담지 않고 포브르 몽마르트르 거리를 빠져나갈 수 있는 사나이가 있다면, 그러한 사람은 고환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이다. 만일에 가지고 있다면 떼어 버려야 할 것이다. 이 마음 약한 토끼가 루시앤느를 기다리며 매일 밤 50프랑을 쓴다면 ? 배가 고파서 샌드위치와 한 잔의 맥주를 산다면, 또는 접근해 오는 다른 어떤 매춘부와 이야기라도 나눈다고 가정한다면? 그렇다면 분명히 그는 밤마다 거듭되는 그 행위에 녹초가 되어 버릴 것이다. 틀림없이 그것은 사나이를 무겁게 짓누르고 고통을 주며, 마침내 죽음으로 몰아넣지 않을 것인가. 뚜쟁이 따위는 인간도 아니라고 생각하지 말기 바란다. 뚜쟁이 역시 남모를 슬픔과 고통을 갖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란다. 아마도 그는 매일 밤 두 마리의 흰 개와 같이 길가에 서서, 개들이 오줌 누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을 가장 좋아할 것이다. 아마도 그가 루시앤느 위에 구부리고, 다른 남자의 숨결 냄새를 맡는 일을 별로 즐거운 일이 못되지 않을까? 그 보랏빛 멍이 든 입술을 맛보기보다는, 호주머니에 단 3프랑밖에 없다고 해도 길 모퉁이에서 오줌을 누는 두 마리 흰 개와 함께 있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 그녀가 그를 죄어댈 때, 그만이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아는 그 정욕의 소포를 조일 때, 틀림없이 그는 사자와 같은 기세로 그것을 주입하고 그녀의 두 다리 사이로 진군하는 연대를 분쇄하고자 투쟁할 것이다. 그녀의 몸을 껴안고 새로운 형태를 취할 때, 아마도 이것은 그에게 있어서는 정욕이라거나 호기심 같은 것이 아니라 어둠 속의 고투, 성문으로 쇄도하는 군대에 대해 고군분투하는 싸움일 것이다. 이 군대는 그녀를 위에서 누르고 짓밟으며, 더구나 루돌프 발렌티노 같은 사람조차도 고칠 수 없을 정도의 탐욕스러운 뒷맛을 그녀에게 남길 것이다. 루시엔느와 같은 여자를 향해 퍼붓는 저주의 말을 들을 때, 그녀는 싸늘하고 돈만 생각한다거나, 너무 기계적이라거나 경멸 당하는 말을 들을 때,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린다. 이봐, 거기 버티고 있거라. 너무 서두르지 말라 ! 너는 행렬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모든 부대가 그녀를 포위 공격해 오지 않았는가. 그녀는 도둑맞고 약탈당하지 않았는가. 나는 혼잣말을 한다. 이봐, 내 말을 잘 들어 보라. 그녀의 정부가 포브르 몽마르트르에서 낭비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고 해서 여자에게 줄 50프랑을 아까워하지 말라. 그것은 여자의 돈이고 그 정부의 젓이다. 그것이 살인상금이다. 그것을 보충할 돈이 프랑스 은행에 없다고 해도, 그것은 앞으로도 결코 유통이 끊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나는 자신의 작은 방구석에서 아바스 통신을 교묘히 왜곡시키거나, 시카고와 런던 및 몬트리올에서 들어오는 통신을 해석하거나 하면서 가끔 생각에 잠기곤 하는 것이다. 고무와 실크 시장, 위니펙의 곡물 시세 사이에 포브르 몽마르트르의 비등이 종종 스며 나온다. 속박이 느슨해져서 해면 상으로 되고 중추부가 팽창하여 휘발성인 것이 흥분할 때, 곡물 시장이 개장되어 살 사람들이 떠들어대기 시작할 때, 온갖 무서운 참사, 광고, 스포츠 기사, 유행난, 배의 입항, 여행담, 가십의 제목에 구두점이 찍히고 대조되고 정정될 때, 제1면이 망치로 자리잡히는 소리가 들릴 때, 개구리가 술에 취한 폭죽처럼 이리 튀고 저리 튀는 것이 보일 때, 나는 루시엔느가 날개를 펴고 한길을 하느적거리며 걷는 모습을 생각하는 것이다. 완만한 교통의 물결에 발이 묶인 듯한 은빛 독수리, 하얀 장밋빛 복부에 강인한 혹이 있는 안데스 산맥의 정상에서 온 괴조. 가끔 가다 나는 혼자 집에 돌아온다. 그리고 어두운 거리를 빠져나와 그녀의 뒤를 밟는다. 루브르의 안뜰을 가로지르고 데자르 다리를 건너 아케이드를 빠져나온다. 졸음, 약품 상용자의 창백, 룩셈부르크의 불고기, 서로 뒤얽힌 나뭇가지, 코 고는 소리와 신음 소리, 녹색 슬레이트 지붕, 시끄러운 악기 소리, 별의 첨단, 금박, 흑옥, 그녀가 날개 끝으로 스치고 지나가는 푸르고 휜 무늬의 차양. 전기를 띤 여명의 창백한 빛 너머로 빈대 껍질이 파랗게 짓눌려 보인다. 몽파르나스 기슭에 수련이 꺾여서 시들어 있다. 썰물이 되어, 몇몇 매독에 걸린 인어가 쓰레기에 섞여 육지 위에 올라와 있다. 돔은 태풍에 휘말린 사격장같이 보인다. 모든 것이 서서히 하수도를 향해 되돌아간다. 한 시간쯤 구토 물을 정리하고 있는 동안은 죽음과 같은 경적이 감돈다. 별안간 나무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다. 한길의 끝에서 끝에까지 온통 미친 노랫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것은 거리의 마지막을 알리는 신호다. 모든 희망이 일소되어 버린 것이다. 마지막 오줌을 배설할 순간이 온 것이다. 여명이 문둥병 환자처럼 스며들려 하고 있는 것이다. 야근을 할 때 조심해야 할 것 중의 하나는 자신의 스케줄을 망치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새들이 지저귀기 전에 잠자리에 들지 못하면 수면이 전혀 무의미하다. 오늘 아침에는 별로 할 일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식물원으로 갔다. 차플테벡(역주 ; 멕시코에 있는 산)에서 온 화려한 펠리컨, 얼빠진 눈으로 사람을 바라보는 얼룩무늬 날개를 가진 공작.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몽파르나스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내 주의를 끈 것은 건너편에 앉아 있는 작은 키의 프랑스 여자였다. 마치 당장에라도 주둥이로 자기 깃털을 다듬기라도 하려는 듯이 몸을 꼿꼿이 세우고 앉아 있다. 화려한 깃털이 더러워질까 두려워하듯 의자 가장자리에 엉덩이를 올려놓고 있다. 별안간 몸을 털고 일어나, 그 엉덩이에서 길고 윤기 있는 깃털의 얼룩무늬 날개를 편다면 자못 화려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를 하러 들어간 카페 드라베뉘에는 배가 불룩한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그 큰배를 가지고 나의 주의를 끌려고 했다. 아마도 나를 그녀의 방으로 데려가 한두 시간 함께 지내고 싶은 모양이었다. 임신한 여자한테서 유혹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어디 한 번 시험해 보자는 생각에서 그 유혹에 응했다. 아기가 태어나 영아원에라도 보낸 뒤에는 다시 장사로 돌아오겠다고 그녀는 말했다. 내가 차차 흥에서 깨는 것을 알고 그녀는 내 손을 잡아 자기 배로 가져갔다. 뱃속에서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이것이 나의 식욕을 앗아가고 말았다. 섹스 식품의 다양성이라는 점에서 나는 파리와 비견되는 곳을 아직 본적이 없다. 여자에게 앞니가 없거나 한 눈 또는 한쪽 다리를 잃거나 하면 곧 타락하게 된다. 미국의 경우, 만일에 여자가 손을 절단하게 되면 그녀는 굶어죽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곳의 사정이 다르다. 이가 빠졌다거나 코가 문드러져 떨어졌다거나, 또 자궁이 무너졌다거나 기타 여자의 약점을 드러내는 불운한 일이 파리에서는 남자의 감퇴된 식욕을 부추기는 향신료와 자극제가 되는 모양이다. 물론 나는 대도시에 있기 마련이 그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즉 기계를 위해 마지막 한 방울의 진까지 짜내고 있는 남자와 여자 ― 현대적 진보의 순교자 ― 의 세계를 말이다. 살을 붙이기가 매우 어렵다고 화가들이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이 해골과 컬러 버턴의 집합인 것이다. 오후 늦게, 나는 뤼드세즈에 있는 화랑에서 마티스의 남녀들에게 둘러 싸여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겨우 나도 이제는 인간다운 세계의 주변에 들어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란하게 불타는 벽이 있는 그 큰 홀 입구에서 나는 잠시 멈춰 서서, 일상 생활의 잿빛 세계가 무너져 내리고, 인생의 색채가 노래와 시가 되어 분출할 때 경험하는 충격으로부터 겨우 재기했다. 나는 자기 자신을 상실할 정도로 자연스럽고 완벽한 세계에 들어섰다. 그리고 어떤 장소, 어떤 위치, 어떤 자세에서도 초점이 맞는, 그야말로 생명의 중추 부에 잠겨 있는 감각을 맛보았다. 싹트는 수림 깊숙이 몰입하여 바르벡의 그 호화로운 세계의 식당에 앉아 자신을 잊으면서도, 나는 비로소 시각과 촉각을 가로막는 부적을 통해 스스로의 존재를 나타내는 정적의 깊은 의미를 파악했다. 마티스가 창조한 그 세계의 입구에 서서, 프루스트로 하여금 그와 마찬가지고 사람들만이 소리와 감각의 연금술을 알고, 인생의 부정적 현실을 예술의 본질적인 의미 깊은 윤곽에 옮길 수 있도록 인생 묘사를 데포르 마숑시킨 그 계시의 힘을 나는 다시금 경험했다. 광선을 자기 가슴속에 비추게 할 수 있는 인간만이, 마음에 있는 것을 번역할 수 있다. 이제 나는 선명하게 떠올린다. 육중한 샹들리에에서 비추는 광선의 번득임이 마구 흩어져 피를 분출하고, 창밖의 탁한 황금빛 위에 단조롭게 부딪치는 물 마루에 반점을 뿌려 놓는 광경을. 해변에서는 마스트와 굴뚝이 교차하고, 연기에 그을린 그림자처럼 아르베르틴의 모습이 밀물 사이를 스쳐 원형 질적 세계의 신비로운 중추와 프리즘 속에 녹아들어, 그녀의 그림자를 죽음의 꿈과 죽음의 앞잡이와 연결시킨다. 하루가 끝남에 따라 지상에서 피어오르는 안개처럼 고통이 고조되고 비애가 움츠러들어 끝없는 바다와 하늘의 전망을 절단한다. 두 자루의 양초와도 같은 두 손이 침대에 털썩 놓이고, 새파란 정맥을 따라 조개껍질의 속삭임이 그 탄생의 전설을 되풀이한다. 마티스의 어느 시에도 죽음의 종료를 거부한 인간의 고깃덩어리에 대한 역사의 한 분자가 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고깃덩어리 전체의 호흡은 기적을 나타낸다. 마치 내면적인 눈이 보다 큰 진실을 동경하여, 육체의 모든 구멍을 굶주린 입으로 개조하기라도 한 듯이. 인간이 어떤 환상을 품건 거기에는 항해의 냄새와 숨소리가 있다. 출렁거리는 파도, 부서지는 비말의 싸늘함을 느끼는 일이 없이는 인간이 가진 꿈의 한 구석도 응시할 수 없다. 그는 타륜 앞에 서서 푸른 눈동자로 때의 포트폴리오를 응시한다. 그는 얼마나 오랫동안 먼 구석구석에 비스듬한 응시를 보내지 않았던 것일까 ? 그는 코앞의 광대한 곶을 내려다보고 모든 것을 살펴 왔다 ― 태평양 밑에 함몰한 대산 맥을, 소라처럼 만곡하는 피아노를, 빛의 온갖 협화음을 발하는 화관을, 양피지에 기록된 미족 분열의 역사를, 출판물 밑에서 몸부림치는 카멜레온을, 티끌의 바다에서 숨이 끊어지는 후궁을, 고통이 깃든 채층에서 분출하는 음악을, 대지를 열매맺는 포자와 녹석을, 고통의 알을 토해내는 배꼽을... 그는 찬란한 현자이고 춤추는 관객이다. 화필 하나로, 도저히 제어할 수 없는 인생의 여러 가지 사실을 위해 인간의 몸이 묶여 있는 추악한 교수대를 제거한다. 만일에 오늘날 천재가 있다고 하면, 그야말로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인체를 어디에서 분해할 것인지를 알고 있고, 피의 리듬과 속삭임을 검출하기 위해 조화를 이룬 선을 희생하는 용기를 가지고 있으며, 자기 내부에서 분석한 광선을 사용하여 이것을 색채의 건반에 범람시킨다. 그는 인생의 세부, 혼돈, 조롱의 배후에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를 간파한다. 창조하는 것 말고는 강제가 없다. 세계가 붕괴되어 가는 이 때에조차도 그 핵심에 머무는 자가 한 사람 있는 것이다. 그는 분해의 과정이 빨라짐에 따라 점점 더 고착되고 덫을 던지며 원심 적으로 된다. 세계는 점점 더 곤충학자의 꿈과 비슷해진다. 지구는 그 궤도 밖에서 회전하고 축이 이동하며, 북방에서 거대한 푸른 칼날 빛을 띤 눈보라가 되어 휘몰아친다. 새로운 빙하 시대에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횡단하는 봉합 선은 닫혀지고 있다. 태아의 세계는 곡물 지대의 도처에서 시들은 유두 돌 기물로 화하여 빈사 상태에 처해 있다. 삼각주는 차차 말라가고 있으며, 하상은 유리처럼 매끄럽다. 새로운 새벽, 야금술의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이윽고 대지는 빛나는 황금색 무쇠 소나기로 금속음을 낼 것이다. 한란계가 내려감에 따라 세계의 모양은 희미해진다. 더구나 침투성이도 있고 군데군데 관절도 있다. 그러나 표면에서는 모든 혈관이 팽창하고 광파가 굴절하며 햇빛은 파열된 직장처럼 출혈한다. 이 망가진 차륜의 바퀴 통에 마티스가 있는 것이다. 더구나 그는 차륜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이 분해될 깨까지 회전을 계속할 것이다. 이미 그는 지구의 상당한 범위에 걸쳐 페르시아, 인도, 중국의 저쪽까지 회전하여 왔다. 크루지스탄 지방, 베르히스탄 지방, 틴박투(역주 ; 사하라 사막 남단의 도시), 소말리랜드, 안코르, 티에라 델 푸에고(역주 ; 남미의 남단에 있는 제도)등으로부터 자석처럼 현미경적 미립자를 자신에게 흡수시켜 왔다. 그는 오달리스크를 공작 석과 벽옥으로 수놓고, 그 육체를 무수한 눈, 고래의 정액에 절인 향기로운 눈으로 감쌌다. 미풍이 부는 것에는 어디에나 운모처럼 싸늘한 유방이 있고, 흰 비둘기가 날아 내려와 히말라야 산맥의 얼음같이 푸른 정맥 속에서 발정한다. 과학자들이 현실의 세계를 감싸온 벽지는 지금 갈갈이 찢어져 떨어지고 있다. 그들이 생명을 소재로 하여 만든 거대한 매음굴은 아무런 장식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것은 적당히 배수구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만이 본질인 것이다. 미국에서 무도회를 통해 우리를 사로잡은 미, 고양이 같은 미는 끝이 났다. 새로운 현실의 깊이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수도의 뚜껑을 열고, 예술의 배설물을 공급하는 탄저병에 걸린 배수관 ― 이것이 비뇨 생식기 계통을 구성하고 있다 ― 을 절개할 필요가 있다. 현대의 냄새는 과망간산염과 희산 알데히드이다. 하수구는 교살된 태아로 가득차 있다. 마티스의 세계는 고풍한 침실이 아름다운 것처럼 아름답다. 눈에 띄는 볼베어링도 없거니와 피스톤도 없으며 몽키렌지도 없다. 그것은 포도주와 간통의 목가적 시대의 숲으로 가는 것과 조금도 다름없는 고풍한 세계이다. 약동하는 생활력을 가진 이 싱싱한 여자들 사이에서 돌아 다니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는 위안이고, 그것은 나의 기분을 일신시켜 준다. 그녀들의 배경은 광선 그 자체처럼 안정되고 충실해 있다. 나는 마들렌 거리를 걷다가 매춘부 곁을 지나가게 되면 이것을 통감한다. 이럴 경우 그녀들을 흘끗 쳐다보기만 해도 나는 몸이 떨린다. 이것은 그녀들이 이국적이기 때문일까 ? 아니면 영양이 좋기 때문일까 ? 그렇지 않다. 그것은 마들렌 거리에서 미녀를 보게 되는 일이 드물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티스에게는, 그 화필의 탐구에는 극히 포착하기 어려운 동경을 결정화시키기 위해, 오직 그것만을 위해 여성의 존재를 요구하는 세계의 흐느끼는 듯한 섬광이 있다. 화장실 밖에서 ― 거기에는 담배 종이, 럼주, 곡예, 경마 등의 광고가 있고, 두꺼운 나뭇잎 틈으로 육중한 벽과 지붕이 바라보인다 ― 몸을 파는 여자를 만난다는 것은, 알지 못할 세계의 경계선이 끝나는 데서 시작되는 하나의 경험이다. 나는 가끔 저녁 때 묘지의 울타리를 돌며, 나무에 묶여 있고 머리털이 수액에 젖어 마구 뒤엉킨 망령과도 같은 마티스의 오달리스크를 만나는 일이 있다. 몇 피트 떨어진 곳에는 한없는 영겁의 때가 데려간 보들레르의 고개 숙인, 미이라처럼 헝겊으로 몸을 감은 영혼이 누워 있다. 이미 트림도 하지 못하는 전세계의 망령이다. 카페의 컴컴한 구석에는 두 손을 꼭 쥐고 허리에 뚜렷한 반점이 있는 남녀가 있다. 그 곁에는 갤슨이 상의에 동전을 가득 넣고 서서, 아내에게 꼬치꼬치 따지려고 휴식 시간이 오기를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있다. 세계가 붕괴하려 하고 있을 때에도 마티스의 것인 파리는 밝기만 하고, 허덕이는 듯한 오르가슴을 맛보며 와들와들 떨고 있다. 공기마저도 날카로운 정액의 냄새로 충만하고, 나무들은 머리칼처럼 뒤얽혀 있다. 그 흔들리는 차축에 의해 수레바퀴가 착실하게 언덕을 내려간다. 브레이크는 없다. 볼베어링도 없다. 타이어 또한 없다. 수레바퀴는 산산이 무너져 내린다. 그러나 회전에는 변화가 없다. ♧ 날씨가 좋은 탓인지, 어느 날 몇 달 동안이나 만나지 못했던 보리스한테서 편지가 왔다. 특이한 내용이다. 나는 그 편지의 의미를 완전히 아는 체할 생각은 없다.〈우리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은 ― 어쨌거나 나에게 관한 한 ― 자네가 나에게 상처를 입혔다. 나의 인생을 손상시켰다, 즉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단 한 가지 점에서 나에게 상처를 입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 죽음이다. 나는 감정의 유동에 따라 지금 또 하나의 세례를 거쳤다. 나는 재생했다. 살아 있다. 다른 사람의 경우처럼, 이미 추억에 의해서가 아니라 살아 있다.〉 편지는 이런 투로 시작되고 있다. 인사의 말도 없거니와 날짜도 주소도 없다. 노트에서 찢어낸 괘선지에 가늘고 정성들인 서체로 씌어 있다. 〈그것이 이유다. 자네가 나를 좋아하건 좋아하지 않건 ― 자네는 마음속으로 나를 몹시 싫어할 것이라고 오히려 나는 생각한다 ― 자네가 나한테 아주 접근해 있는 이유다. 자네 때문에 내가 어떻게 죽었는지 나는 알았다. 나는 지금 또다시 죽어가고 있는 나를 보고 있다. 거기에는 어떤 의미가 있다. 단지 죽었다는 것만이 아니다. 아마도 그것이, 왜 내가 자네를 그렇게 만나기를 무서워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될 것이다. 아마도 자네는 그저 나한테 장난을 한 것뿐일 것이다. 그래서 죽은 것이다. 요즘에는 일이 무척 쉽게 일어나니까.〉 나는 이 편지를 묘석 옆에 세우고 한 자 한 자 되풀이해서 읽었다. 이와 같은 생과 사, 신속하게 일어나고 있는 사물에 대한 장광설이 어쩐지 나에게는 정신나간 일처럼 생각되었다. 일어나고 있는 사건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는 지난 6개월 동안 작고 값싼 하숙에서 단 혼자 살고 있었다 ― 아마도 크론슈타트와 정신 감응적 통신이라고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전선의 후퇴, 철수한 선형전선 등에 대해서도 기록하고 있었다. 마치 그가 참호 속에 들어가 본부에 보고서를 쓴 것과도 같은 투였다. 아마도 그가 이 공문서를 집필하려고 앉았을 때는 프록코트 한 벌을 입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손님이 아파트를 빌리려 왔을 때 그가 하는 버릇처럼, 몇 차례 손을 비볐을 것이다. 〈내가 자네에게 자살하기를 바라는 이유는...〉하면서 그는 다시 계속한다. 나는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는 언제나 빌라 보르게제, 즉 크론슈타트의 집에서는 ― 말하자면 갑판 만한 넓이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 프록코트의 뒷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니는데, 이러한 모습으로 그는 죽느니 사느니 하는 헛소리를 마음내키는 대로 지껄였을 것이다. 나는 편지에 쓴 단 한 마디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겉보기만은 훌륭하고 또 나는 이방인이므로, 그 구경거리 두 개골과 같은 상태로 씌어져 있는 것에 흥미를 가졌다. 때때로 그는 우둔한 머리에 흘러드는 관념의 노도에 피곤을 느끼고 장의자에 길게 드러눕는 일이 있었다. 그의 두 다리는 플라톤이나 스피노자의 책이 꽂혀 있는 책장에 가 닿았다 ― 어째서 내가 그 책들을 이용하지 않는지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가 이에 대해 자못 재미있다는 듯이 이야기해 준 것은 사실이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 나로서는 전혀 알 수 없다. 때때로 나는 몰래 책에 시선을 보내어, 그가 말하고 있는 격렬한 관념과 대조하려고 했다 ― 하지만 그가 말하는 관념과 책과의 관련은 매우 희박했다. 그 사람, 즉 보리스라는 사나이는 그와 단둘이 있을 때는 아주 독자적인 언어를 사용했다. 그런데 크론슈타트가 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으면, 아무래도 보리스는 그 훌륭한 관념을 표절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말하는 것은 마치 고등 수학과 같은 것이다. 이 두 사람의 말에는 피와 살이 전혀 없었다. 그것은 어쩐지 기분 나쁘고 으시시하며 악령 적일 정도로 추상적인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가 죽게 되면 약간 구체성을 띠고 들렸다. 요컨대 고기를 써는 칼이나 고기를 자르는 도끼에는 자루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이야기를 크게 즐겼다. 이때 비로소 나는 태어 난 이후 처음으로 죽음이 매력적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 핏기 없는 고민을 내포한 이 추상적인 죽음이라는 것이. 이따금 그들은 아직도 살아 있다면서 나에게 인사를 했다. 그것도 내가 당황하지 않을 수 없는 방법으로 덕택에 나는 19세기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충분히 가질 수가 있었다. 어떤 종류의 격세 유전적 동물, 로맨틱한 단편, 영적인 피탄트로푸수(역주 ; 유인원과 인간 사이의 중간적 동물로 가상되는 것)의 발기물과 같은. 특히 보리스는 나를 겁주는 데에 비상한 스릴을 맛보는 모양이다. 그는 자기 뜻대로 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나를 살려 주고 싶어했다. 그가 나를 괴롭히는 방법은, 거리에 있는 무수한 사람들이 단지 죽은 소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해 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이 편지는... 자칫하면 편지에 대한 것을 잊을 뻔했다... 〈그날 밤 크론슈타트의 집에서 모르돌프가 신이 되었을 대 어째서 내가 자네의 자살을 바랐는가 하는 이유는, 그때 내가 바로 자네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분명히 그토록 접근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나는 겁을 먹었다. 무척 겁을 먹었던 것이다. 언젠가 자네가 나에게 돌아와 내 신세를 지면서 죽는 것이 아닌가 하고, 나는 단지 자네에 대한 나의 관념만을 가지고 세상에서 동떨이지게 될 것이다. 더구나 그것을 떠받쳐 주는 것은 없다. 그렇게 되면 나는 결코 자네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 여러분도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선명하게 눈에 보일 것이다. 나 자신은, 나에 대한 관념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지 못한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나는 단순한 순수관념, 음식이 없어도 생명을 유지하는 하나의 관념이라는 것이다. 보리스는 음식 문제에 관한 한 별로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날을 여러 가지 관념으로 키우고자 애썼다. 모든 것이 관념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파트를 빌릴 희망이 있을 때는, 토일렛과 새로운 수세식 변기의 설치를 그는 결코 잊지 않았다. 어쨌든 나는 그의 신세를 지면서 죽는 것을 원치는 않았다.〈자네는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나를 위해 살지 않으면 곤란하다.〉라고 그는 썼다.〈이것이 자네에 대한 나의 관념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알고 있을 테지만, 자네는 지극히 생명 적인 어떤 것을 나에게 결부시켰다. 그러므로 앞으로 나는 자네를 뿌리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나는 그것을 바라지도 않는다. 매일 매일을 더욱 씩씩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지금의 나는 죽어 있는 것이니까. 다른 사람에게 자네 이야기를 할 때 내가 약간 수치스럽게 여기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남의 일을 매우 친밀하게 이야기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가 나를 몹시 만나고 싶어하는 것은 아닐까, 또는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여러분은 생각할지도 모른다 ―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와 같이 사는 것과 죽는 데에 대한 이야기 이외에는 구체적인 것, 또 개인적인 것에 대해서 그는 한 줄도 쓰지 않았던 것이다. 참호로부터의 이 짧은 보고에는, 모든 사람에게 아직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독가스 이외의 냄새밖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때때로 나는 자문한다. 내가 머리에 이상이 있는 녀석들 ― 신경쇠약증, 신경과민증, 정신분열증에 걸린 녀석들, 특히 유대인들만 끌어들이는 것은 어째서일까 ? 건강한 이방인들에게는, 시큼한 흑빵을 보았을 때처럼 유대인의 마음을 흥분시키는 무언가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 가령 보리스와 크론슈타트의 이야기에 따르면, 스스로 신이 되었다고 하는 모르돌프가 있다. 그는 ― 독사 같은 그 녀석은 ― 나를 몹시 싫어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나와 멀리 떨어져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는 나를 모독하기 위해 규칙적으로 찾아왔다 ― 이것이 그에게는 강장제와도 같은 것이었다. 처음에는 나에게 관대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나는 크게 공명하는 것처럼 하지는 않았으나, 식사나 돈이 관련될 때는 조용히 침묵을 지키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 후 그가 심한 마조히스트라는 것을 알게 되자, 종종 그의 코앞에서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 그에게는 채찍과 같은 역할을 했다. 새로운 힘을 가해 비통, 고민을 분출시키는 것이다. 만일에 그가 타니아에 대한 변화가 자기 의무라는 것을 알고 있지 못했다면, 우리 사이에는 만사가 원만했을 것이다. 그러나 타니아는 유대인이다. 이것이 도덕적인 문제를 초래했다. 그는 내가 마드모아젤 클로드와 가까이하기를 원했다. 사실 나는 그녀에게 진정한 사랑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때때로 나에게 돈을 주어 그녀와 같이 잘 수 있게 해주었다. 내가 형편없는 바람둥이라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 지금 타니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그녀가 마침 러시아에서 돌아왔기 때문이다 ― 바로 며칠 전이다. 실베스터는 어떤 직업을 갖게 되어 뒤에 남아 있었다. 그는 문학을 완전히 단념하고 있었다. 지금은 새로운 유토피아에 헌신하고 있었다. 타니아는 나와 같이 저쪽에 ― 가능하다면 크림 반도에 가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으면 하고 바라고 있었다. 앞서 우리는 칼의 방에서 조촐한 술자리를 마련하고 그 가능성에 대해 상의했다. 나는 거기서 생활하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다 ― 가령 교정원과 같은 일자리가 있는지 없는지, 거기 가서 무슨 일을 해야 할 것인지, 그따위 일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그녀는 말했다 ― 내가 성실하고 열의를 가지고 있는 이상, 모두들 나를 위해 일자리를 마련해줄 것이라고 했다. 나는 관심을 기울이는 듯한 표정을 지으려 했으나, 슬픈 얼굴밖에 할 수 없었다. 러시아에서는 슬픈 낯을 보이는 것을 싫어한다. 명랑하고 열광적이며 쾌활하고 낙천적이기를 바란다. 이것은 나에게 있어서 미국과 아주 흡사한 것으로 느껴졌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그런 열광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물론 그녀에게는 말하지 않았으나, 제발 나를 그냥 내버려두었으면 싶었다. 나는 그 작은 방으로 돌아가, 전쟁이 발발할 때까지 거기 있기를 원했다. 그런데 러시아에 대한 달콤한 이야기는 어느 정도 내 마음을 들뜨게 만들었다. 타니아는 그 일에 완전히 흥분하여, 덕택에 우리는 술을 반 다스나 마시고 말았다. 칼은 진딧물처럼 뛰어다녔다. 그한테는 러시아의 사상에 열중하는 유대인이 있는 것이다. 우리를 그리 보내는 일밖에는 안중에 없었다 ― 지금 당장, 꼭 붙들어야 하는 거야 ! 하고 그는 말했다. 손해 볼 것은 하나도 없어 ! 하면서 그는 빠를수록 좋다는 듯이 자기가 중간 역할을 해 주겠다고 했다. 타니아는 이야기가 끝나기를 바라면서도 러시아에 대한 것이 머리 속에 뿌리를 내려, 기회를 보아 오줌을 누러 가는 것으로 나의 주의를 중단시켰다. 이 때문에 나는 약간 화가 나고, 초조한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우리는 먹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고, 벌이를 나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래서 묘지의 바로 눈앞에 있는 브르바르 에드가르 키네에 택시를 타고 달렸다. 오픈카를 타고 파리 시가를 달리기에는 알맞은 시각이었다. 그리고 우리 뱃속에서 출렁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때보다 더 신이 나게 느껴졌다. 칼은 우리 맞은편에 있는 보조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얼굴이 딸기처럼 빨갛게 되어 있었다. 가련하고 시시한 이 녀석은 유럽 저쪽에서 지내게 될 화려한 신생활을 생각하니 신이 나는 모양이었다. 동시에 그는 적지 않은 비애도 느끼고 있었다 ― 나로서는 그것을 알 수 있었다. 사실 그는 나보다 더 파리에서 떠나고 싶지가 않은 것이다. 그에게는 파리가 나보다 더 친절한 것이 되지 못했지만, 그 점에 있어서는 누구나 다 마찬가지일지도 모르나, 여기서 갖은 고생을 하며 겨우 그것을 견딜 수 있게 되면, 파리는 사람의 마음을 꼭 사로잡는 것이다. 놓치기보다는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고 여기는 사랑에 빠진 여자처럼, 파리는 제군의 고환을 꼭 붙잡는 것이라고 해도 좋다. 그의 눈에는 파리가 이렇게 비쳐지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세느 강을 건널 때 백지처럼 입을 크게 벌리고 싱글벙글 웃으면서 주위의 건물과 조각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꿈속에서 그러한 것들을 바라보는 것처럼. 나에게도 그것은 꿈만 같았다. 한 손을 타니아의 옷 속에 집어놓고 힘껏 그녀의 유방을 주무르면서, 다리 밑으로 흐르는 물과 배와 또 노트르담의 그림자를 그림엽서인 양 바라보았다. 그리고 술에 취하기라도 한 듯한 기분으로, 인간은 어떻게 하면 흥분하는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여기 대해서도 교활했다. 그러므로 나는 내 주위의 소용돌이를 러시아나 천국과도, 또는 지상의 그 어떤 것과도 결코 교환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분 좋은 오후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얼마 후 우리는 식사를 뱃속에 채워넣게 될 것이다. 특별한 요리로 주문할 수 있는 음식을 말이다. 고급 포도주가 러시아 따위에 대한 생각을 잊게 해 줄 것이다. 정력이 넘쳐흐르고 모든 것이 가득한 타니아와 같은 여자와 함께 있으면, 녀석은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어디 한 번 그래 보라지. 녀석은 택시 안이건 어디건 상관없이 자네의 팬츠를 끌어내릴 것이다. 교통이 복잡한 거리를 빠져나가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우리들의 얼굴은 온통 입술 자국이었다. 술이 우리들의 뱃속에서 하수도 같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특히 뤼라피튼 거리로 들어섰을 때는 굉장했다. 이 거리 뒷골목에는 작은 교회를 세울 만한 폭이 있고, 사클레쿠르 사원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국적인 거물이 한데 모인 듯하여 술 취한 기분을 도려내 준다. 더구나 사람의 신경을 자극하지 않는 액체의 꿈속에서, 절망적으로 헤엄치게 하는 깨끗한 프랑스적 관념을 과거 속에서 분명하게 각성시켜 준다. 다시 모습을 나타낸 타니아, 안정된 직업, 러시아에 대한 환상적인 이야기, 밤중의 귀가, 한여름의 더위 ― 이렇게 되면 인생은 어느 정도 흥분으로 고개를 드는 것 같다. 보리스가 보낸 편지가 아니꼽게 여겨진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거의 매일처럼 나는 다섯 시에 타니아를 만나, 그녀가 포르트라 부르는 술을 마셨다. 나는 그녀가 이끄는 대로, 지금까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곳으로 갔다. 상젤리제 뒷골목에 있는 유쾌한 술집. 거기서는 요란한 재즈 음악과 나직이 속삭이는 젊은 여자들의 목소리가 마호가니 건물 속에 배어 들어가는 것 같았다. 화장실에 가더라도 그 점액 적인 곡조가 뒤따라와서 냄새 통을 통해 화장실에 풍겨, 인생을 부드러운 무지갯빛 비누방울 같이 만들어 주었다. 실베스터가 없으므로 해방감을 느끼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분명히 타니아는 천사처럼 행동하려 하고 있었다. 당신은 내가 떠나기 얼마 전에 나를 벌레처럼 취급했죠 ? 어느 날 그녀가 나에게 말했다. 어째서 그랬죠 ? 내가 당신에게 몹쓸 짓을 한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안 그래요 ? 우리는 부드러운 빛과 공간에서 스며 나오는 그 크림과 같은 마호가니 음악 때문에 센티멘탈해져 있었다. 출근해야 할 시간이었으나, 우리는 아직 식사를 끝내지 않고 있었다. 시가의 꽁초가 우리 앞에서 굴러다니고 있었다 ― 6프랑, 54, 7프랑, 52 ― 하고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세면서, 동시에 혹시 나는 바텐더가 되기를 바라고 있었지 않나 생각했다. 그녀가 나한테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 러시아거나 미래라거나 연애라거나 하는 시시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는 흔히 그렇게 되는 것이다. 전혀 상관없는 일을 ― 구두를 닦는다거나 화장실 청소부가 된다거나 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가 나를 끌고 오는 이러한 술집이 몹시 아늑하다는 생각이 드는가 하면, 나도 얼마 뒤에는 돌처럼 굳어지고 늙어서 허리가 구부러지리라는 것이 염두에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아니, 나는 언제나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미래를 조심스럽게 내다본다고 해도 역시 이런 환경에 처할 것이고, 이와 똑같은 곡조가 내 머릿속에서 연주를 계속할 것이며, 술잔이 부딪칠 것이다. 그리고 아래층 화장실에서조차도, 인생에서 취기를 제거하는 1야드 간격을 두고, 한결같이 모양 좋은 궁둥이에 향수 냄새가 남을 것이다, 라고. 이상한 이야기일지 모르나, 그녀를 따라 이런 보잘 것 없는 술집으로 돌아다녀도 나는 전혀 타락하지 않았다. 그녀와 헤어지기가 정말 싫었던 것이다. 나는 언제나 그녀를 회사 근처에 있는 포치까지 데리고 가, 어둠 속에서 마지막 포옹을 하곤 했다. 그러면 그녀는 속삭였다. 나는 어떻게 해야 좋죠 ? 그녀는 낮이나 밤이나 함께 잘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나를 직장에서 그만두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두 사람이 같이 있는 한, 그녀로서는 러시아 같은 곳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와 헤어지는 순간 머리가 냉정해졌다. 그것은 또 다른 종류의 음악으로서 별로 신음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문을 열고 들어갈 때 귀에 들어오는 것과 같은 정도로 쾌적한 것이었다. 또 그것은 종류가 다른 향기이기도 했다. 1야드 간격이 아니라 어디에도 있는 것, 이를테면 기계에서 나는 것 같은 땀과 인도 박하에 절은 냄새였다. 내가 언제나 저지르듯, 뱃속 가득 채워 가지고 들어가 갑자기 낮은 곳으로 떨어뜨리는 대변과도 비슷했다. 대개 나는 화장실을 향해 최단 거리를 갔다 ― 그렇게 해야 오히려 기분이 말짱해지는 것이다. 거기 들어가면 약간 서늘했다. 아니면 흐르는 물 때문에 시원하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즉 화장실은 언제나 차디찬 세척기인 것이다. 사실이 그렇다. 안에 들어가기 전에 줄을 지어 서서 옷을 벗고 있는 프랑스 사람들 앞을 지나지 않으면 안되었다. 거기 있는 녀석들 중에는 긴 내복 차림을 하고 있는 자도 있고 수염을 기른 자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혈관 속에 있는 납 때문에 창백했으며, 또 말라빠진 쥐새끼들이었다. 화장실 안에서는 그들의 한가한 생각을 조사할 수 있었다. 벽에는 온통 스케치와 형용구가 새겨져 있었다. 그 대부분은 쉽게 풀이할 수 있는 외설적인 낙서로서, 유쾌하고 공감이 가는 것이 많았다. 어떤 부분에 새겨 넣기 위해서는 사다리를 필요로 했을 것이 확실하나, 심리적인 관점으로만 보아도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을 것이다. 때때로 나는 배설을 하면서 샹젤리제의 그 아름다운 공중 변소에 드나드는 멋진 여성들에게 화장실이 어떤 인상을 줄 것인지 생각하곤 한다. 그녀들은 옷을 높이 치켜올릴 것인가, 그녀들은 여기서 엉덩이를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 알고 있는 것일까, 하는 것 등도 생각한다. 틀림없이 그녀들의 세계는 망사와 우단이다 ― 아니면 그녀들이 옆으로 스쳐 지나갈 때 풍기는 냄새로 그렇게 믿게 되는 것이다. 그 중에는 별로 훌륭하지 못한 숙녀도 반드시 있을 것이다. 자기네 장사의 선전을 위해 왔다갔다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녀들을 혼자 있게 내버려둔다면, 각자 자기 방에서 큰 소리로 떠들도록 내버려둔다면, 그 입에서 기묘한 소리가 튀어나올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 세계에서는 ― 어느 세계도 마찬가지이지만 ― 벌어지고 있는 모든일 이 대부분은 더럽고 불결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쓰레기를 넣는 양철통처럼 더러운 것이다. 단지 그녀들은 다행스럽게도 양철통 위에 뚜껑을 닫을 수 있는 것뿐이다. 앞서도 말했듯이 타니아와의 오후는 나에게 전혀 악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때로는 너무 배불리 먹어서 손가락을 목구멍에 집어넣어야 할 때도 있었다 ― 왜냐하면 그럴 생각이 전혀 없을 때 교정을 보기란 매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니체의 철학을 요약하기보다도, 누락되어 있는 구두점을 찾아내는 편이 더 주의력을 집중시키는 것이다. 때때로 술에 취해도 머리가 맑은 경우가 있지만, 교정원에게는 맑은 머리가 필요치 않다. 날짜, 분수, 새미콜론 ― 이것이 중요한 것이다. 생각이 불타오르고 있을 때는 그러한 것을 더듬어 나가기가 제일 어렵다. 종종 나는 큰 실수를 하곤 한다. 그러므로 만일에 내가 상사의 엉덩이에 키스하는 기술을 갖지 못했다면 벌써 목이 달아났을 것이다. 그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어느 날 위층의 훌륭한 보스로부터 편지를 받은 일조차 있다. 녀석은 아주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아직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사나이다. 보통 이상인 내 지능에 대해 야유하는 문구를 두서너 마디 늘어놓고는, 너는 자신의 지위에 걸맞게 분수를 지키는 것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거기에 상응하는 보복이 있을 것이라고 넌지시 암시를 주는 것이었다. 정직하게 말해서 녀석은 나를 겁나게 만들었다. 그 이후 나는 대화할 때 단음절 이외의 말을 결코 사용하지 않았다. 실제로 나는 하룻밤 내내 나의 금제품을 열어 보인 일이 거의 없었다. 나는 최대한 저능인 임을 가장했다. 이것이 우리에 대해서 그들이 바라는 바였다. 때때로 나는 상사에게 아첨하기 위해 녀석한테 찾아가서, 이 말은 도대체 무슨 뜻입니까 하고 정중하게 묻기도 했다. 녀석은 그것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말하자면 그는 사전이나 시간표와 같은 녀석이었다. 녀석은 휴식 시간에 아무리 맥주를 마시더라도 ― 자기가 보스라 하여 멋대로 휴식 시간을 갖곤 한다 ― 날짜나 행선지에 차질을 빚는 일은 절대로 없다. 녀석은 마치 이 직업을 위해 세상에 태어난 것 같다. 단 한 가지 유감스러운 것은 내가 너무 박식하다는 사실이었다. 아무리 주의를 하고 있어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종종 내 실력이 튀어나오곤 한다. 어쩌다가 책을 옆구리에 끼고 출근했을 때, 그것이 수준 높은 책일 경우에는 녀석의 기분은 몹시 상한다. 그러나 나는 고의로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 스스로 내 목에 밧줄을 매기에는 이 직업이 너무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도 융통성이 없는 사람과 이야기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비록 단음절로만 이야기한다고 해도 끝까지 자신을 감출 수는 없다. 보스 녀석은 여러 가지 것을 무서울 만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렇더라도, 남들은 어떻게 설명할지 알 수 없으나, 그는 나를 몽상에서 끌어내어 나에게 날짜와 역사상의 사건을 가득 채워주기를 좋아했다. 생각건대 그것은 나에 대한 그의 복수였을 것이다. 그 결과 나는 경미한 신경쇠약에 걸렸다. 나는 바깥 기운만 쐬면 엉망이 되는 것이다. 화제가 무엇이건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새벽에 몽파르나스를 향해 귀로에 오르면, 옆으로 밀려나고 있는 나의 몽상을 얼른 꺼내기 위해, 나는 지체없이 소화기 호스를 들이대고 그것을 진압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나는 아무도 모르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 나는 가벼운 광기인 에코라리아(역주 ; 환각, 환청)에 걸려 있었던 것이다. 에코라리아 ― 분명히 그런 명칭이었다고 생각한다. 하룻밤 동안에 교정을 본 모든 단편이 나의 혀끝에서 춤을 추었다. 달마티아 ― 나는 아름다운 보석을 뿌려놓은 듯한 휴양지 광고의 교정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달마티아. 자네는 기차를 탄다. 아침이 되면 털구멍에서 땀이 분출하고 포도가 터질 듯이 열려 있다. 달마티아에 대해서라면, 나는 넓은 산책로에서 마자란 추기경의 저택에 이르기까지 낱낱이 이야기할 수 있었다. 마음만 내킨다면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데도 이것이 지도상의 어디에 있는지조차 나는 모른다. 또 알려고도 생각지 않았다. 그러나 마음은 납덩이처럼 무겁고, 옷에는 땀과 인도 박하 냄새가 배어 있었다. 그리하여 압착기의 금속성 음향, 도 맥주를 마시면서 나는 허황된 이야기가 끝나는 ― 나를 바싹 조이고 있는 ― 오전세시가 되면 지리, 의상, 연설, 건축 등 사소한 이야기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다. 달마티아는, 그와 같은 강렬한 상태가 사라지고, 아무런 이유도 없이 오직 신문의 1면이나 2층에서 주사위를 굴리는 녀석들과는 전적으로 다르다. 황홀할 정도로 조용하고 공허하기 때문에 울고 싶어할 정도인 루브르의 안뜰이, 불가사의하고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밤이 있는 시각에 속하는 세계인 것이다. 싸늘한 칼날이 도려내듯 내 신경을 자극하는 달마티아의 단편으로 인해, 나는 아주 기묘한 항해의 감각을 맛볼 수가 있었다. 그러나 더욱 기묘한 것은, 지구의 구석구석을 여행해 왔는데도 미국만은 도무지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매몰된 대륙보다도 더 깊이 매몰되어 있었다. 매몰된 대륙에서는 어떤 신비적인 매력을 느끼는 데도 불구하고, 미국에서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전혀 느껴지는 바가 없다. 때때로 모나의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일정한 시간과 공간의 기류 속에 있는 인물로서가 아니라, 마치 그녀가 과거를 말살한 거대한 구름 같은 것에 휩쓸려 버린 존재로서 말이다. 나는 극히 오랜 기간에 걸쳐 그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스스로 허용하지 않았다. 만일 그것을 허용했다면 나는 다리에서 뛰어내렸을 것이다. 기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녀가 없는 현재의 생활을 즐기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단 1분이라도 그녀의 일을 생각하면 온몸이 골수까지 쑤시는 것 같고, 또다시 고통스런 과거의 도랑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이다. 7년 동안 나는 단 한 가지 일만 생각하면서 움직여 왔다 ― 그녀에 대한 일을. 내가 그녀를 대하는 것처럼 신을 대하는 그리스도 교도가 있다면, 오늘날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가 되었을 것이다. 밤낮 없이 나는 그녀를 생각하고 있었다 ― 그녀를 비웃고 있을 때조차도. 가끔 가다 내가 모든 것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다는 생각이 들 때면, 아마도 거리 모퉁이에 있을 것이 분명한 듬성듬성한 나무와 벤치가, 하나의 작은 광장이, 인기척 없는 장소가 갑자기 희미하게 떠오르는 일이 있다. 거기서 우리는 선 채로 일을 치루었던 것이다. 거기서 우리는 서로가 미친 듯이 되어 고통스러운 질투의 장면을 연출했던 것이다. 언제나 사람이 없는 곳에서 그런 일을 했다. 예컨대 드레스트라버 광장 같은 곳이라거나, 모스크에서 떨어진 그 음산한 가로라거나, 또는 밤 열시 가 되면 쥐 죽은 듯이 고요해져 살인과 자살을 생각하게 되고, 어떤 인간 극의 흔적이라도 자아낼 듯한 아베뉴 드브르토이유의 열려진 납골당 근처라든가 하는 곳에서. 그녀는 가고 말았다. 아마도 영원히 가 버렸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 엄청난 공허가 크게 입을 벌리고, 내가 깊은 어둠의 공간으로 점점 떨어져 내린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것은 눈물보다도 처치하기가 어려웠다. 후회와 고통과 슬픔보다도 심각했다. 그것은 사탄이 뛰어든 심연이다. 기어올라갈 길이 없었다. 한 줄기 빛도 비치지 않고, 사람의 음성도 들리지 않고, 사람의 손도 닿지 않는 것이다. 밤거리를 걸으면서, 나는 그녀가 내 곁에 있을 날이 다시 올 것인지 몇천 번이나 생각했다. 나는 언제나 갈망의 시선을 건물이나 조각에 던지곤 했다. 너무나 열망하고 너무나 필사적으로 그것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지금은 내 생각이 그 건물이나 조각의 일부가 되고 말았을 정도다. 거기에는 내 고민이 베어 있을 것이 틀림없다. 나는 지금, 내 꿈과 갈망이 깊이 새겨져 있는 이 음침하고 초라한 거리를 둘이서 걸었을 때, 그녀가 아무것에도 마음이 끌리지 않고 아무것도 느끼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에게 있어서 이 거리는 다른 거리와 하등 다를 것이 없었던 것이다. 아니면 다른 거리보다 좀더 더러운 곳이라는 생각뿐이었을 것이다. 그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다. 어느 길모퉁이에서 내가 그녀의 헤어핀을 주워 준 일을 그녀는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쭈그리고 앉아 그녀의 구두끈을 매어 주면서 이곳이 전에도 왔던 일이 있는 장소라고 말한 것도, 또 이 장소만은 비록 사원이 파괴되고 라틴 문명 전체가 영원히 말살된 뒤에도 끝까지 남아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것도 그녀는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어느 날 야릇한 고민과 울적한 심정을 안고 뤼모론 거리를 걷고 있을 때 별안간 어떤 일이 처절할 정도로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것이 패전과 절망의 기분으로 몇 번이나 이 거리를 걸은 생각이었는지, 아니면 둘이 루시앵 헬 광장에 서 있을 때 그녀가 문득 뱉어낸 이야기의 기억이었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어째서 나에게는 그 파리를 보여 주지 않죠 ? 하고 그녀는 말했다. 당신이 편지에 쓴 그 파리를 말이에요. 지금 나로서 알 수 있는 것은 꼭 한 가지뿐이다. 즉 그 말을 생각했을 때, 내가 알게 된 그 파리를 그녀에게는 도저히 말해 줄 수 없다는 것을 갑자기 깨달았다는 사실이다. 명확하지 않은 몇 개의 구역이 있는 파리, 나의 고독과 그녀를 원하는 나의 갈망 때문에만 실재하는 파리를. 그토록 파리는 거대한 것이다 ! 다시 한 번 파리를 답사하려면 평생이 걸릴 것이다. 이러한 파리를 알 수 있는 열쇠를 가진 사람은 나뿐인데, 아무리 선의로 생각한다 해도 파리는 여행에 적합한 곳이 못된다. 파리와 같은 도시에서는 그 속에서 생활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날마다 무수한 고민을 경험하며 살지 않으면 안된다. 파리와 같은 도시는 암처럼 우리 내부에서 생장하고 서서히 자라, 마침내 우리를 먹어 버리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와 같은 회상으로 어지러워진 머리를 감싸고 뤼무타르를 걸으면서, 과거 속에서 ― 그녀에게 페이지를 넘겨 달라는 부탁을 받으면서도, 표지가 두껍기 때문에 그 때는 도저히 넘기지 못했던 그 안내서 속에서 기묘한 것을 생각해냈다. 이렇다 할 이유도 없이 ― 왜냐하면 그 때 나의 사고는, 현재 유유히 걷고 있는 이 신성한 경내를 가지고 있는 사라반의 이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 이렇다 할 이유도 없이 어느 날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것은 평소 그 앞을 지나고 있는 간판에 자극되어 충동적으로 하숙집인 팡시온 오르필라에 들어가, 스트린드베리가 있던 방을 보여달라고 했던 날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무엇 하나 무서운 일이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물론 그 무렵에 이미 나는 세속적인 소유물을 모두 잃어버렸었고, 주린 배를 움켜쥐고 경찰을 무서워하며 거리를 헤매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알고 있었으나, 그때까지만 해도 파리에는 한 사람의 친구도 없었다. 그러나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의기가 소침해져 있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어디를 헤매건, 나로서는 가장 발견하기 쉬운 것이 친구였기 때문이다. 실제에 있어서 극히 두려운 상황은 전혀 나에게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사람은 친구가 없어도 살아나갈 수 있다. 연애가 없더라도, 또 필요 불가결하다는 돈이 없어도 살아나갈 수 있는 것처럼. 사람은 파리에서 살아갈 수 있다 ― 이 사실을 나는 발견했던 것이다 ! ― 오직 비애와 고뇌만을 먹고살더라도 말이다. 괴로운 영양분이다 ― 아마도 어떤 사람에게는 최선의 것일 테지만. 어쨌거나 나는 아직 진퇴양난에 처해 있지는 않았다. 다만 비참에 안주하고 있었던 것뿐이다. 남의 생활을 들여다볼 만한, 또한 그것이 두 장의 책표지 사이에 끼여 있을 때는 감미로울 정도로 멀리, 그리고 작자가 분명치 않다고 여겨지는 로맨스의 잔해를 (그것이 아무리 병적이라 해도) 희롱할 만한 시간과 감상이 있었다. 그 하숙집을 나서면서, 나는 자신의 입가에 시니컬한 미소가 떠올랐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기라도 하는 듯이. 아직 팡시온 오르필라는 내가 있을 장소가 아니다. 물론 그 때 이후 파리의 모든 미치광이가 저녁에 발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지옥은 없다는 것을.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어째서 그녀가 그토록 열심히 스트린드베리를 읽었는지 그 이유를 약간은 알 것 같다. 그 감미로운 일 절을 읽고 나서 눈에 웃음의 눈물을 띠고 고개를 드는 그녀의 모습이 보인다. 그녀는 나에게 말한다. 당신은 그 사람과 똑같은 광인이에요... 당신은 벌받기를 바라고 있는 거예요 ! 그녀가 자신에게 알맞은 마조히스트를 발견할 때, 새디스트에게는 아주 큰 기쁨이 될 것이다. 분명히 그렇다 ! 말하자면 그녀가 자신의 몸을 물어뜯는 것은 자기 이빨을 날카롭게 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내가 그녀를 처음 알게 되었을 무렵, 그 여자는 스트린드베리에게 푹 빠져 있었다. 그가 탐닉한 강렬한 광상의 카니발, 남녀의 그 영원한 투쟁, 북국의 썩은 백치에게 사랑 받는 거미와도 같은 잔인성 ― 이것이 우리를 서로 끌어당기게 만들었다. 우리는 같이 죽음의 춤을 추면서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곧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갔다. 다시 표면에 떠올랐을 때에는 세상을 도무지 알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자신이 산산조각이 났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음악은 이미 끝나 있었다. 카니발을 끝났다. 그리고 나는 깨끗이 살점이 떨어져 나갔던 것이다... 그날 오후 나는 팡시온 오르필라를 나와 도서관으로 갔다. 거기서 갠지즈강의 목욕을 끝내고 12궁에 대해 심사숙고한 뒤 스트린드베리가 그토록 가차없이 묘사한 그 지옥의 의미를 음미하기 시작했다. 생각을 거듭함에 따라 차차 분명해졌다 ― 그 순례의 비밀, 시인이 이 지구의 표면을 따라 도망친 탈주, 또는 마치 그가 잃어버린 연극을 재연할 숙명을 짊어진 듯 씩씩하게 지구의 심장부에까지 강하한 것, 고래의 뱃속에서의 무서운 어둠의 체재, 자신을 해방시키고 과거로부터 완전히 탈출하기 위한 피나는 투쟁, 이국의 해안에 당도한 빛나면서도 피투성이인 해의 신에 대한 것들이. 어째서 그와 다른 사람들(단테, 라플레, 반 고흐)이 파리를 순례했는지 이제는 조금도 불가사의하지 않았다. 고뇌에 찬 사람들, 환상에 사로잡힌 사람들, 위대한 연애의 광인들을 어째서 파리가 끌어들였는지를 나는 잘 알 수 있다. 어째서 여기서는 수레바퀴의 바퀴 통에서도, 무한히 공상적이고 말도 안되는 이론에서도 전혀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없는지 나는 잘 알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는 인간이 다시 한 번 그의 청춘을 되새긴다. 수수께끼는 새로운 의미를 띠게 된다. 흰 머리카락 한 올에도 하나의 의미가 있다. 인간은 자기가 광인이라는 것을 알면서 길을 걷는다. 왜냐하면 이들 싸늘하고 무관심한 얼굴은 자기 들러리의 얼굴임이 너무나 명백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모든 경계선이 사라지고 세계가 미친 도살장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사실 세계란 그런 것이다. 천편일률적인 일은 무한한 피안으로 뻗어가고 승강구는 문이 닫힌다. 논리는 방종으로 흐르고 피비린내 나는 정육점의 칼이 번뜩인다. 공기는 싸늘하게 탁해져 있다. 언어는 묵시적으로 된다. 출구를 나타내는 것은 아무 데도 없다. 죽음 이외에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막다른 골목, 그 끄트머리는 교수대이다. 영원한 도시 파리 ! 로마보다도 영원하고 니네베(역주 ; 티그리스 강가에 있던 고대 앗사리아 왕국의 수도)보다도 화려하다. 그야말로 세계의 배꼽이다. 그곳을 향해 사람들은 눈먼 장님처럼 네 발로 기어서 돌아간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바다 한가운데서 떠도는 병마개처럼, 사람들은 이 도시에서 정착하지도 못하고 희망도 없이, 옆으로 지나가는 콜럼버스를 깨닫지도 못하고 바다의 거품과 해초 속에서 떠돈다. 이 문명의 요람은 썩어 버린 세계의 하수구다. 악취를 발하는 자궁이 살과 뼈와 피의 꾸러미를 감추는 납골당이다. 거리는 나의 피난처다. 여기서는 피난처를 찾지 않을 수 없을 때까지는 아무도 거리의 마력을 알지 못한다. 미풍이 불 때마다 이곳으로 흘러드는 하나의 지푸라기가 될 때까지는. 어느 겨울날 거리를 누비며 걸어간다. 팔려나온 개를 보고는 애처로운 눈물을 흘린다. 한길 건너에는 토끼의 무덤 호텔 을 자칭하는 초라한 집이 묘지처럼 유쾌하게 서 있다. 그것이 사람을 웃기게 한다. 죽도록 웃게 만든다. 토끼, 개, 이, 황제, 대신, 전당포 주인, 늙어 버린 말, 도살업자 등을 위해 호텔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까지는. 또 거의 한 집 건너마다 미래의 호텔 이 있다. 그것이 사람들을 더욱 신경질적으로 만든다. 수없이 많은 미래의 호텔 ! 과거분사인 호텔은 없다. 가정법의 호텔도 없고 접속법의 호텔도 없다. 모두가 고색창연하고 우중충하며 환락으로 흥분해 있다. 잇몸의 고름처럼 미래로 인해 부어 올라 있다. 나는 미래의 이 음탕한 습진에 취해 비올레 광장을 향해 비틀거리면서 걷는다. 색깔은 모두 연한 보라색이거나 쥐색이다. 의외로 입구가 낮기 때문에 난쟁이나 작은 도깨비밖에 들어갈 수 없다. 졸라의 무감각한 해골 위쪽에서 굴뚝이 순수한 코크스의 연기를 토해내고 있다. 한편 샌드위치의 마돈나, 길가에 웅크리고 있는 그 아름답고 살찐 개구리는 양배추와 같은 귀로 가스 탱크의 부글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다. 어째서 나는 별안간 텔모피레스 거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 그것은 그날 한 여자가 도살장의 묵시적 언어로 그녀의 애완견에게 말을 걸고 그 자그마한 암캐가 ― 그 늙은 할망구 같은 것이 ― 무슨 말인지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얼마나 나를 괴롭혔던 것일까 ! 르블랑시온에서 팔리고 있는, 그 슬피 우는 잡견의 모습을 보는 것보다도 더 나를 괴롭혔다. 왜냐하면, 나를 이토록 연민의 정에 빠뜨린 것은 개가 아니라 거대한 철책 ― 나와 나의 정당한 생활을 가로막고 있다고 여겨지는 그 빨갛게 녹슨 날카로운 철책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르페펠리쇼라 일컬어지는 보쥬라르 도살장(말의 도살장) 근처의 아늑한 오솔길에서 점점이 핏자국이 나 있는 것을 발견했다. 마치 발광한 스트린드베리가 팡시옹 오르필라의 보도에서 불길의 표시와 나쁜 징조를 발견한 것과 똑같이, 나는 과거로부터 분리되어 눈앞에서 흔들거리고, 무섭도록 처참한 징조로 나를 비웃는 과거의 단편이 너저분하게 깔린 피투성이와 먼지투성이의 길을 한없이 헤맸다. 나는 나 자신의 피가 덜어지는 것을 보았다. 원래 먼지 투성이인 길은 처음부터,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과거의 먼 시절부터 그 피로 더러워져 있었다. 사람들은 더럽고 작은 미이라처럼 이 세상에 내던져져 있다. 길은 피로 인해 축축하고 미끄럽다. 하지만 어째서 그래야만 되는가 ?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길을 가고 있다. 지상은 감미로운 것으로 썩어 있는데도, 과일을 딸 겨를이 없다. 행렬은 출구 표시가 있는 곳으로 꾸역꾸역 밀려나간다. 이윽고 큰 혼잡이 일어나, 모두들 땀을 뻘뻘 흘리며 도망하려 한다. 그러므로 약한 자와 도움을 받지 못한 자는 진흙 속에 밟혀 버린다. 더구나 그들의 절규는 들리지 않는다. 나의 인간 세계는 소멸했다. 나는 이 세계에서 완전히 고독하다. 친구를 갖는 대신 나는 거리를 가졌다. 거리는 나를 향해 인간의 비참, 갈망, 후회, 실패, 낭비된 노력 등이 섞인 그 슬프고도 아픈 언어로 말을 걸어 왔다. 나는 모나가 병에 걸려 굶어 죽어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그날 밤, 뤼브로커 연변의 육교 밑을 지나면서 갑자기 생각했다. 이 내려앉은 가로의 더러운 어둠 속에서, 아마도 미래의 어떤 징조 때문에 겁을 먹었을 모나가 나한테 매달려 떨리는 목소리로, 절대로 나를 버리지 말아 달라, 어떤 일이 있더라도 결코 나를 버려서는 안된다고 애원한 곳이 바로 여기였다는 것을. 그로부터 불과 며칠 후에 나는 생라자르 정거장의 플랫폼에 서서 떠나가는 열차, 그녀를 싣고 떠나는 열차를 전송했던 것이다. 그녀는 뉴욕에서 헤어졌을 때와 똑같이 차창에서 몸을 내밀고 있었다. 그 얼굴에는 그때와 다름없이 슬프고 얼어붙은 듯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그 마지막 표정은 많은 이야기를 하려고 원하면서도 멍청한 미소 때문에 일그러진 가면밖에 되지 않았다. 불과 며칠 전에 그녀는 필사적으로 나한테 매달렸던 것이다. 그때 무언가가 일어났었다. 지금까지도 확실하지 않은 그 어떤 일이. 이리하여 그녀는 자기 의사에 따라 기차에 올라, 또다시 그 슬프고도 불길한 미소, 나를 안타깝게 만드는 미소, 불결하고 부자연한 미소, 내가 진정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미소를 띠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 육교 그늘에 서서 그녀를 찾아 손을 내밀고 있는 것은 바로 나인 것이다. 나는 필사적으로 그녀를 붙들고 늘어진다. 그러면 내 입가에 그녀와 똑같은 불가사의한 미소, 슬픈 나머지 짓밟아버린 가면이 생긴다. 나는 지금 여기 서서 멍청히 웃고 있다. 나의 기도가 아무리 열렬하건, 나의 갈망이 얼마나 필사적이건, 우리 두 사람 사이에는 큰 바다가 있는 것이다. 앞으로도 그녀는 거기 머물면서 굶주릴 것이다. 나는 이곳에서 이 거리 저 거리를 헤맬 것이다. 뜨거운 눈물이 뺨을 따라 흘러내린다. 거리에는 이와 같은 잔인성이 뿌리깊이 배어 있다. 그것이 주위의 벽에서 이쪽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겁을 준다. 이럴 때는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공포에 별안간 감염된다. 갑자기 우리 영혼은 을씨년스러운 공포에 사로잡힌다. 가로등이 소름끼칠 정도로 구부러져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가로등이 우리를 유인하여 꼭 붙잡고 교살하는 것도 그것이 시키는 것이다. 집들이 비밀스런 범죄의 파수꾼처럼 보이고, 창문이 무수한 것을 비추어내는 눈구멍같이 보이는 것도 그 탓이다. 문득 머리 위에 사탄 통행 금지 라고 쓰인 것을 보고 내가 도망치는 것도 그와 비슷한 일임을 알게 된다. 이것은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얼굴에까지도 씌어 있다. 모스크 입구에〈매주 월요일, 목요일 ― 결핵, 매주 수요일, 금요일 ― 매독〉이라고 표시된 것을 바라볼 때, 나를 전율케 만드는 것도 그것이다. 어느 지하철역에도〈매독으로부터 몸을 지킵시다〉라며 흰 이를 드러내고 인사하는 해골이 있다. 벽이 있는 모든 곳에는 암의 접근을 유도하는 아름다운 게를 그린 포스터가 붙여져 있다. 어디에 가건, 무엇을 만지건 거기에는 암과 매독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하늘에도 씌어져 있다. 그것은 불길한 징조인양 펄럭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영혼 속에 파고들어, 이제 우리는 달처럼 죽어 있는 존재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 내가 앉아 있는 의자를 그들이 다시 빼앗은 것은 7월 4일의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한 마디의 경고도 없었다. 바다 건너에서 온 잘난 사람의 하나가 경비 절약을 결정했던 것이다. 교정원과 가엾은 타이피스트의 인원을 줄이면, 그의 왕복 여비와 그가 리츠에 갖고 있는 호화주택의 비용을 충당할 수 있는 것이다. 식자공들에게 지고 있던 약간의 빚을 갚고, 신용을 유지하기 위해 길 건너에 있는 술집에 마음만의 사례를 하고 나자, 나의 마지막 급료는 거의 바닥이 났다. 호텔 주인에게 방을 비우겠다고 하지 않을 수 없었으나 그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그는 고작 2백프랑의 돈으로 인해 언제나 마음을 태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업자가 되면 너는 어떻게 할 생각이냐? 이것은 언제나 내 귀에 울리고 있던 문구였다. 드디어 그때가 왔다. 제기랄 ! 다시 거리에 나서서 헤매고 다니거나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다. 이 무렵에는 나도 몽파르나스에서 제법 얼굴이 알려져 있었다. 당분간은 아직 신문사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통할 수 있다. 그렇게 하면 아침이나 저녁을 얻어먹기가 조금은 쉬울 것이다. 계절이 여름이라 관광객이 붐비고 있다. 나는 애써 그들에게 기대려고 했다. 너는 어떻게 할 것인가...? 어쨌거나 굶어 죽기는 싫다. 그것이 첫째 문제다. 다른 일은 다 그만두고 오로지 먹는 데만 정력을 집중하면 굶어 죽지는 않을 테지. 1주일이나 2주일 동안은 여전히 무쇼 폴의 가게에 가서 매일 밤 배불리 먹을 수 있다. 그는 내가 실업한 것을 알 리 없다. 먹는 일, 그것이 첫째다. 그 밖의 것은 신의 뜻에 맡겨 야지... 당연한 일이지만, 나는 조금이라도 돈이 될 만한 것에 대해서는 혈안이 되었다. 새로운 친구를 닥치는 대로 개척해 나갔다 ― 지금까지 내가 조심스럽게 피해 온 시시한 녀석들, 혐오해 마지않았던 술주정뱅이들, 잔푼돈을 가진 예술가들, 가겐하임 상을 받은 녀석들 ― 이러한 녀석들이다. 하루에 12시간만 카페의 테라스에 앉아 있으면 친구를 사귀기란 문제가 아니다. 몽파르나스의 모든 주당들과도 알 수 있게 된다. 녀석들은 내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더라도 이야기를 듣는 귀만 가지고 있으면 이처럼 달려드는 것이다. 내가 실업 했다는 것을 알자 칼과 반 놀든은 엉뚱한 소리를 했다. 만일에 자네 아내가 지금 찾아온다면 어떻게 하겠나? 어떻게 하기는 무엇을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입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 되는 것뿐이다. 비참을 나누어 가질 상대가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만일에 그녀가 예전의 미모만 잃지 않고 있다면, 나는 혼자 있는 것보다 2중의 멍에를 지고 있는 편이 오히려 나을 것이다. 세상은 결코 미인을 굶기지 않는다. 타니아가 나에게 도움을 줄 것이라고는 기대할 수 없다. 그녀는 실베스터에게 돈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녀의 방에서 동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처음에는 생각했으나, 그녀는 자기 몸이 위험해질까 두려워하고 있었고, 또 자기 보스에게 봉사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빈털털 리가 되었을 때 제일 먼저 찾아가게 되는 유대인이다. 나는 거의 동시에 세 사람의 유대인을 알게 되었다. 인정 있는 녀석들이다. 그 중의 하나는 은퇴한 모파 상인으로 애써 자기 이름을 신문에 내고 싶어했다. 그는 나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 뉴욕의 유태계 신문에 그의 이름으로 논설을 연재하는 것이 어떠냐고. 나는 유대인 명사를 발견하기 위해 돔과 쿠포르 부근을 헤매지 않으면 안되었다. 처음 발견한 사나이는 유명한 수학자였다. 그는 영어를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나는 그가 종이 냅킨에 써주는 도해를 기초로 충격의 이론에 대해 글을 쓰지 않으면 안되었다. 천체의 운행을 설명하고, 동시에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뒤엎지 않으면 안되었다. 모든 것은 25프랑의 돈을 위해서였다. 신문에 발표된 자신의 글을 보았을 때 그것을 읽을 마음은 없었으나, 그래도 역시 인상은 깊었다. 더구나 거기에는 모피 상인의 이름이 기입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시기에 나는 여러 가지 별명을 사용하여 글을 썼다. 브르바르 에드 가르기네에 큰 사창굴이 새로 문을 열었을 때, 나는 선전 팜플렛을 써주고 약간의 사례를 받았다. 즉 샴페인 한 병과 이집트풍 방에서 창녀의 무료 서비스를 받았던 것이다. 또 손님을 끌어들이면, 옛날 케피가 그랬듯이 코미션을 받기로 되어 있었다. 그날 밤 반 놀든을 데리고 갔다. 녀석은 2층에서 즐김으로써 나에게 약간의 돈벌이가 되게 해주려고 했다. 그런데 마담은 그가 신문기자라는 것을 알자 절대로 돈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번에도 샴페인 한 병과 창녀의 무료 서비스가 되고 말았다. 나는 그때 아무 벌이도 하지 못했다. 사실을 말하면 그에게 글을 대신 써주지 않으면 안되었다. 왜냐하면, 그를 이런 장소에 데려오지 않고는 주제를 납득시킬 방법을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을 계속함으로써 나는 적당한 서비스를 받고 있었다. 이보다 더 따분한 일은 귀가 먹고 말을 못하는 심리학자를 위해 논문을 대신 써 주는 일이었다. 불구 아동의 보호를 위한 논문이었다. 내 머리는 질병, 지주, 작업대, 신선한 공기 등의 학설로 가득 찼다. 그것을 써 주는 데는 약 6개월이 걸렸다. 그 결과 어이없게도 논문의 교정까지 보지 않으면 안되었다. 생각만 해도 불쾌한 일이다. 그 논문은 프랑스어로 썼다. 내가 평생 듣지도 보지도 못한 프랑스어였다. 하지만 나는 그 덕택에 매일 아침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오렌지 쥬스, 오트밀, 우유, 커피, 때로는 놀랍게도 헴에그라는 미국식 아침 식사도 할 수 있었다. 록어웨이 비치, 이스트 사이드 등 비참한 장소에 사는 불구 어린이 덕분이었는데, 이것이 파리 생활을 통해 내가 아름다운 아침을 먹을 수 있었던 유일한 시대였다. 어느 날 나는 사진작가 한 사람과 알게 되었다. 그는 뮌헨의 어느 변태 자로 부터 부탁을 받고 파리의 추잡한 것들을 사진에 담고 있었다. 그는 내가 자기를 위해 팬티를 벗거나 그 밖의 여러 가지 포즈를 취해 줄 수 있는지 알고 싶어했다. 나는 그 말라빠진 난쟁이들, 호텔의 보이나 메신저 보이와 같은 모습을 한 녀석들, 작은 책방에 진열된 외설적인 그림엽서를 들여다보는 사나이들, 뤼 드라 류느나 기타 파리의 불결한 지구에 살고 있는 그 괴물 같은 녀석들을 머리에 떠올렸다. 이들 선택받은 자들 속에 섞여 내 육체를 광고한다는 생각은 별로 유쾌한 것이 못되었다. 그러나 사진 작가는 어디까지나 그것이 개인적 수집용이라는 것을 보증했고, 더구나 뮌헨에 보내는 것이라고 하는 바람에 나는 그만 승낙하고 말았다. 인간은 자신이 태어난 고장에 있지 않으면 기분이 해이해지게 된다. 더구나 빵을 벌 수 있다는 훌륭한 동기가 있는 경우에는. 그리고 곰곰 생각해 보면, 나는 뉴욕에 있을 때조차도 별로 각별한 사람이 못되었었다. 거기서는 자포자기를 한 나머지, 내가 살던 곳과 가까운 한길에서 구걸을 해야만 했던 밤이 몇 번이나 있었다. 우리는 관광객들에게 잘 알려진 명소에는 가지 않고, 좀더 가라앉은 분위기가 풍기는 작은 매음굴 같은 데로 갔다. 거기에 가면 오후의 일을 시작하기 전에 트럼프를 했다. 그 사진작가는 아주 재미있는 상대였다. 파리를 구석구석까지 알고 있었고, 특히 뒷골목에 대해 상세했다. 그는 종종 나에게 괴테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호펜슈타펜의 시대를 논했으며, 흑사병이 창궐하던 시대의 유대인 학살에 대해 말했다. 흥미진진한 화제였다. 그리고 막연하기는 하나 그가 지금 하고 있는 일과 관련되어 있었다. 그는 또 시나리오도 구상하고 있었다. 깜짝 놀랄 구상이었으나, 아무도 그것을 실행에 옮길 만한 용기는 갖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진열장의 문처럼 둘로 갈라져 있는 말을 보면, 그는 언제나 여기에 자극되어 단테와 레오나르도 다빈치, 렘브란트를 논한다. 비레트의 도살장에서 자동차에 뛰어올라 나를 태우고는 대번에 토로카델로 미술관에 달려가서, 진작부터 그를 매료시키고 있던 해골과 미이라를 가리켜 보이는 것이다. 우리는 제5, 제13, 제19, 제20의 각 구역을 철저히 탐험했다. 우리가 즐기는 휴식 장소는 애수 어린 작은 광장, 국민 광장, 포플러 광장, 콘콜루스칼프 광장, 폴 베를렌 광장 등이었다. 그 대부분은 이미 나에게는 낯익은 곳이지만 그의 능숙한 화술 때문에 아주 새로운 곳으로 느껴지는 것이었다. 만일에 지금 뤼듀 샤토 데랑티에 등, 제13구역이 발산하는 병원 침대의 고약한 냄새를 맡으면서 빈들빈들 걷기라도 한다면, 내 코는 기쁨으로 벌름거릴 것이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탁한 오줌과 희산 알데히드의 냄새와 함께, 흑사병이 건설한 유럽의 납골당 앞을 지나는 우리의 공상 여행 냄새가 있기 때문이다. 그를 통해 나는 그뤼겔이라는 신령 사상을 가진 사나이를 알게 되었다. 그는 조각가이자 화가이기도 했다. 그는 여러 가지 이유에서 나를 좋아했다. 그의 비교적 관념에 내가 기꺼이 귀를 기울인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나는 이미 그 사나이로부터 벗어나기가 불가능해졌다. 세상에는 비교적 이라는 말이 신성한 아이코(역주 ; 그리스 신화에 등장한다. 신들의 혈관에 혈액처럼 흐르는 액체)와 같은 작용을 하는 경우가 있는 듯하다.『마의 산』(역주 ; 토마스 만의 소설)에 나오는 헤르 피파코른에 있어서의 새틀드(안정하다)와도 비슷하다. 그뤼겔은 미쳐버린 광인의 한 사람이고 매저키스트이며, 꼼꼼, 정직, 자각을 자신의 법칙으로 삼고 있는 항문형 인간이었다. 근무가 없는 날에는 남의 이를 부러뜨리고도 마음의 가책을 느끼지 않을 성인의 한 사람이다. 그는 내가 다음 단계, 그의 말을 빌린다면 보다 높은 단계 에 올라갈 시기가 성숙된 것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나는 다른 사람과 같은 정도로 먹고 마실 수 있다는 조건이라면, 언제든지 그가 지정하는 어떤 단계에라도 올라갈 생각이었다. 영혼의 수명 육체의 인과관계 , 우파니샤드, 프로티누스, 크리슈나무르티, 영혼의 희교적 숙명의 피복 열반의 자각 , 그밖에 페스트가 토해내는 독기와 같이 동양에서 분출된 헛소리로 그는 나를 괴롭혔다. 때로는 환각상태에 빠져서 자기 전생의 화신, 적어도 그러했으리라 상상되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또 꿈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는데, 내가 이해하는 한 그것은 전혀 무미건조하고 산문적이며, 한 프로이트 학자의 주의를 끌 만한 가치도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서는 이 꿈이 뜻깊은 비교적 경의를 간직하고 있는 것이고, 나도 그를 도와 그 꿈을 해석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즉 그는 닳아빠진 상의를 뒤집듯이 자신을 뒤집었던 것이다. 차차 그의 신뢰를 얻게 됨에 따라, 나는 그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그가 나를 쫓아와, 몇 프랑을 너한테 주겠다는 말까지 하게 되었다. 그는 보다 높은 단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를 옆에 붙잡아 두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나무 위에서 익어 가고 있는 배처럼 행동했다. 때로는 본래의 잠꾸러기 상태로 돌아가, 좀더 지상적인 영양분이 필요하다고 고백할 때도 있었다 ― 스핑크스 구경이라거나, 육체의 욕구가 과잉상태가 되었을 때 그가 가끔 참배하는 성 아폴리느 거리에 가고 싶거나 할 때는. 화가로서의 그는 제로였다. 조각가로서는 제로 이하였다. 살림을 잘 꾸려나간다는 것은 그를 위해 한 마디 해둘 만하다. 더구나 그는 절약가였다. 무엇 하나 낭비하는 일이 없었다. 가령 고기를 포장하는 종이 한 장도 잘 간수하는 것이다. 매주 금요일 밤에는 아틀리에를 친구 예술가들을 위해 개방했다. 그럴 때는 언제나 술이 있고 맛있는 샌드위치가 나왔다 어쩌다가 먹다 남는 것이라도 있으면, 나는 그 이튿날 이것을 먹으로 갔다. 뷰리에 무도장 뒤에 내가 늘 들르곤 하는 아틀리에가 또 하나 있었다 ― 마크 스위프트의 아틀리에가 그것이다. 그는 천재는 아니었으나 기묘한 인물이었다 ― 이 통렬한 아일랜드인은. 그는 유대인 여자를 모델로 쓰고 있었는데, 이 여자와는 몇 년 동안 동거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싫증이 나서 어떻게든 쫓아낼 구실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이 여자가 가지고 온 지참금을 모두 그가 썼기 때문에, 이것을 배상하지 않고는 여자를 몰아낼 방법이 없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녀를 학대하여, 이 학대를 참느니 차라리 굶어 죽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그녀가 갖게 하는 일이었다. 그녀 ― 마크 스위프트의 정부는 상당히 예쁜 여자였다. 굳이 약점을 말한다면 육체의 선이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것과, 이미 그를 뒷받침할 금전적 능력이 상실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녀 역시 화가였다. 그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녀가 남자보다 더 재능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그녀의 인생을 비참하게 만들어도 그녀는 성의를 다했다. 그가 뛰어난 화가가 아니라는 말은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다. 그가 이토록 썩어 버린 것도 진실로 그가 천재이기 때문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아무도 벽에 그녀의 그림이 걸려 있는 것은 보지 못했다 ― 그의 그림뿐이었다. 그녀의 작품은 부엌 한구석에 내버려져 있었다. 한 번은 마침 내가 그 자리에 있을 때, 누군가가 그녀의 작품을 보자고 했다. 결과는 비참했다. 이 인물을 보게. 스위프트는 발끝으로 그녀의 그림 하나를 가리켰다. 저 입구에 서 있는 남자는 금새라도 한 번 하려는 태세로 있어. 녀석은 머리가 돌았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도 찾지 못할 거야... 다음에는 저 누드를 보게... 그녀가 음부를 그리려고 한 것까지는 좋았어. 그녀가 무엇을 생각했었는지 나는 모르겠어. 하지만 그녀는 저 부분에 정확을 기하다가 화필이 미끄러져 버려서, 그 이후에는 손을 댈 수 없게 된 거야. 그는 누드가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주기 위해 최근에 완성한 대작을 보여 주었다 작품은 그녀를 그린 것이었다. 죄의식에 의해 영감을 받은 훌륭한 복수의 작품이었다. 광인의 작품 ― 짓궂고 사랑스러우며 적으로 가득찬 훌륭한 작품이다. 열쇠 구멍을 통해 몰래 그녀를 들여다보고 그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까 멍하니 코를 만지거나 엉덩이를 긁고 있을 때의 그녀를 포착한 듯한 느낌이 드는 작품이었다. 그녀는 통풍도 되지 않고 창이 하나도 없는 방 한구석에 있는 장의자 ― 말털을 넣을 ― 에 앉아 있었는데, 그 장의자는 송과선의 전엽으로 대치해도 상관없을 것이다. 배후에는 발코니로 통하는 번개 모양의 계단이 있었다. 담즙과 같은 녹색 융단이 깔려 있었다. 그러한 녹색은 방귀처럼 분출된 우주에서만이 방사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그녀의 히프였다. 좌우의 균형이 없고 더구나 부스럼딱지 투성이다. 그녀는 장의자에서 약간 궁둥이를 쳐들고 있는 것같이 보인다. 마치 방귀라도 한 방 크게 뀌려는 듯이. 얼굴은 이상화되어 있었다. 정답고 처녀다우며, 또 기침약같이 순수하다. 그러나 가슴은 하수도의 가스로 크게 부풀어 있다. 마치 월경의 바다에서 헤엄치고 있는 것 같다. 천사의 탁한 시럽과 같은 표정을 한 확대된 태아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불굴의 정신을 가진 노력가이고, 그림을 그리는 것 외에는 머리 속에 아무것도 없는 사나이였다. 그리고 들고양이처럼 교활하다. 내 머리에 필모어와의 우정을 개척하도록 주입시킨 것은 다름 아닌 그 사나이였다. 필모어는 그뤼겔과 스위프트를 중심으로 한 작은 그룹에 끼여든 외교관 청년이다. 그 친구더러 자네를 돕도록 하겠어. 하고 스위프트는 말했다. 그 녀석은 돈을 어디에 쓸지 모르고 있거든. 자기가 가진 것을 자신을 위해 쓰거나 자기 돈으로 철저히 즐기거나 하면 세상 녀석들은 이렇게들 말하는 것이다. 저 사나이는 돈을 쓸 줄 모른다 라고. 내 생각을 말한다면, 자신을 위해 쓰는 것보다 더 훌륭한 돈의 용도는 없을 것 같다. 따라서 그런 사람을 가리켜 인색하다거나 또는 씀씀이가 헤프다고는 할 수 없다. 그들은 돈을 유통시키고 있다 ― 이 점이 중요한 것이다. 필모어는 그의 프랑스 체재가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크게 즐기려 했던 것이다. 사람이 어떤 친구들 속데 섞여들어 크게 즐기려 할 경우, 그가 나처럼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과 접근하려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모두가 그를 따분한 사나이라고 한다.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 굶주림을 해결할 수 있다면 따분한 것보다 더한 일도 참을 수 있는 것이다. 요컨대 그는 노상 지껼여댄다. 그것도 대부분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이고, 또는 그가 노예처럼 숭배하고 있는 작가들 ― 예컨대 아나톨 프랑스라든가 조셉 콘라드 같은 사람 ― 에 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나의 밤을 독특한 방법으로 즐겁게 해주었다. 그는 댄스를 좋아했다. 술을 즐겼다. 여자를 좋아했다. 바이런을 좋아하고 빅토르 위고를 좋아한다는 것만은 장한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대학을 나온 지 아직 2, 3년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취미를 키우려면 앞으로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고 보아도 좋다. 그가 가지고 있는 것 가운데서 내가 특히 마음에 드는 것은 모험의 감각이다. 우리가 서로를 더 잘 알게 되었다기보다 더욱 친밀하게 된 것은, 내가 그뤼겔과 지낸 짧은 동안에 일어난 기묘한 사건 때문이다. 그것은 코린스가 도착한 직후에 일어났다. 이 사나이는 필모어가 미국에서 건너오는 도중에 알게 된 선원이다. 우리 세 사람은 저녁을 먹으러 가기 전에 규칙적으로 로돈도의 테라스에서 만나곤 했다. 코린스를 기분 좋게 만들고, 나중에 반드시 포도주와 맥주를 폭음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미리 마시는 것은 베르노였다. 코린스가 파리에 체재해 있는 동안 우리는 왕후와도 같은 생활을 했다. 닭고기와 포도주, 그리고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디저트를 먹었다. 이와 같은 식이요법이 1개월이나 계속되었더라면, 나는 바덴바덴이라거나 비시, 엑슬벤에 가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동안 그뤼겔은 나를 그의 아틀리에에 묵게 해 주었다. 그러나 나는 오전 3시 이전에 돌아 온 일은 한 번도 없었고, 오전 중에 나를 침상에서 내쫓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귀찮은 존재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뤼겔은 노골적으로 비난한 일은 결코 없었지만, 그 태도로 보아 내가 귀찮은 존재가 되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어느 날 나는 앓고 있었다. 무슨 병이었는지는 아직도 알 수 없으나, 어쨌든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기력이 완전히 빠지고, 이와 함께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이 빠져나가고 말았다. 그뤼겔은 나를 간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양분이 있는 음식을 만들어 줘야 했고, 여러 가지를 돌보아 주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시련기였다. 더구나 아틀리에에서 전시회를 열고, 그가 원조를 기대했던 어느 부호에게 개인적으로 그림을 보여 주려 할 때였으므로 더더구나 그랬다. 내가 앓아 누운 침대는 아틀리에에 있었다. 달리 내가 있을 방이 없기 때문이었다. 전시회가 열리기로 된 날 아침 그뤼겔은 몹시 불쾌한 얼굴을 하고 일어났다. 만일 내가 혼자 일어날 수 있었다면, 그는 내 턱에 주먹을 한 방 먹이고 방에서 쫓아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초췌해 있었고, 고양이처럼 약했다. 그는 손님이 오게 되면 나를 부엌에 집어넣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나를 설득했다. 나는 그가 모처럼 갖게 된 기회를 망쳐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눈앞에 죽음을 맞이하려 하고 있는 사나이가 있는데, 정신을 집중시켜 그림이나 조각을 감상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정직하게 말해서, 그뤼겔은 내가 죽어가고 있는 줄 알았던 것이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가 구급차를 불러 미국 병원에 옮겨 주겠다고 했을 때, 나는 도저히 그렇게 해 달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여기서, 즉 이 아틀리에에서 편히 죽고 싶었다. 좀더 좋은 죽음의 장소로 옮기기 위해 일어나라는 재촉을 받고 싶지는 않았다. 어차피 죽을 바에는 어디서 죽건 상관이 없었다. 내가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자 그뤼겔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 손님이 도착했을 때 아틀리에에 송장이 있으면 환자가 있는 것보다 더 곤란하다. 그렇게 되면 비록 가냘픈 기대이기는 하지만 그의 기대가 완전히 빗나가 버린다. 물론 그가 이런 말을 하지는 않았으나, 동요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나는 그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더욱 완고해졌다. 병원에서 차를 부르겠다는 것을 거절했다. 의사를 부르겠다는 것도 거절했다. 모든 것을 다 거절했던 것이다. 마침내 그는 몹시 화를 냈다. 그리하여 내가 완강히 반대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나에게 옷을 입히기 시작했다. 나는 너무 쇠약해 있었으므로 저항할 수 없었다. 힘없는 목소리로 욕을 퍼붓는 것이 고작이었다. 개 같은 자식 ! 날씨는 따뜻했으나 나는 개처럼 부들부들 떨었다 ― 그는 옷을 모두 입히자 외투를 걸쳐 주고 방밖의 전화 있는 데로 갔다. 나는 가지 않겠어 ! 절대로 못 가 ! 나는 계속 버텼지만 그는 탕 하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2, 3분 후에 다시 돌아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아틀리에 안을 서성거렸다. 마지막으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 후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필모어였다. 그는 코린스가 아래층에서 기다린다고 말했다. 필모어와 그뤼겔은 내 겨드랑이에 팔을 넣고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데려갔다. 그뤼겔의 기분은 상당히 가라앉아 있었다. 자네를 위해서 이러는 것일세. 하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나를 위해서이기도 하네. 지난 몇 년 동안 내가 얼마나 고통스런 투쟁을 해 왔는지는 자네도 잘 알 테지. 내 생각도 좀 해줘야 하지 않겠나 ? 그는 거의 울상이 되어 있었다. 비참하고 답답한 심정 속에서도, 나는 그 말을 듣자 하마터면 미소를 떠올린 뻔했다. 그는 나보다도 상당히 나이가 많았다. 아무리 3류 화가라고는 해도 그 역시 휴식을 취할 자격은 있는 것이다 ― 최소한 일생에 한 번쯤은. 나는 반대하는 것이 아니야. 내가 중얼거렸다. 자네 사정은 잘 알고 있네. 내가 어떤 경우에도 호의를 가지고 대했다는 것은 자네도 잘 알고 있지 않아 ? 그가 대꾸했다. 상태가 좋아지면 다시 돌아와도 돼... 있고 싶을 때까지 여기 있어도 좋아. 응, 알고 있네... 하지만, 또 다시 신세를 지고 싶지는 않아. 나는 겨우 밖으로 나갔다. 어찌 된 셈인지 코린스의 모습을 보자 다시 기력이 살아났다. 싱싱하고 건강하며 쾌활할 뿐만 아니라 관용적인 사람이 있다고 하면, 코린스야말로 그러한 인간이다. 그는 마치 내가 인형이기라도 한 듯 안아다 자동차 좌석에 뉘었다 ― 더구나 다정스럽게. 그뤼겔이 그런 태도로 나온 직후라, 나는 코린스의 친절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호텔에 도착하자 ― 코린스가 묵고 있는 호텔이다 ― 주인과 한바탕 승강이가 벌어졌다. 그 동안 나는 사무실 소파에 누워 있었다. 코린스가 주인을 향해 아무 걱정도 할 것 없다... 몸이 좀 쇠약해 있는 것뿐이다... 2, 3일 지나면 회복될 것이다... 라고 설명하는 소리가 들리고, 주인의 손에 빳빳한 지폐를 쥐어 주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는 곧 나한테로 왔다. 자, 정신을 차리게. 자네가 송장이 되려 한다는 것을 주인이 알면 곤란해. 그는 거칠게 나를 일으켜 세우고 한 팔로 부축하면서 엘리베이터 있는 데로 끌고 갔다. 주인에게 내가 송장이 되려 한다는 것을 보여 주면 안된다 ! 사실이 그렇다. 남에게 폐를 끼치면서 죽기란 싫다. 자기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몰래 죽어야 한다. 그의 말은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들은 나를 방으로 데려가 문을 꼭 닫고 옷을 벗긴 뒤 이불 속에 넣어 주었다. 지금은 죽을 때가 아니야. 죽어서는 안돼 ! 코린스가 따뜻이 격려해 주었다. 자네는 나를 난처하게 만들 생각인가...? 대관절 왜 이러는 거야 ? 정신을 차려야 하는 거야 ! 하루 이틀 지나면 고급 비프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어. 자네는 스스로 병을 과장하고 있는 거야. 매독 약을 줄 테니 좀 기다리게. 자네는 그 때문에 신경을 쓰고 있는 거야... 그리고 나서 코린스는 양자강을 여행할 때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해주었다. 나는 쇠약할 대로 쇠약해져 있었으나, 그가 말하는 진기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이야기는 완전히 나를 잊게 해주었다. 그는 ― 이 사나이는 묘하게도 뻔뻔스러운 면이 있었다. 아마도 나를 위해 일부러 과장해서 말하기도 했겠지만, 그때는 비판적으로 듣지 않았다. 나는 온몸을 귀로 삼아 그의 말을 들었다. 누렇게 흐려진 양자강의 하구가 보이고, 한구에서는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의 등불이 보였다. 수면이 누런 바다가 보이고, 용이 토해내는 유황불로 불타는 여울이 보였으며, 산협을 쏜살같이 달려 내려가는 배가 보였다. 얼마나 멋진 이야기인가 ! 배에서 버리는 쓰레기를 주우려고 무리 지어 있는 쿠리들. 죽음의 자리에서 일어나 항구의 등불에 마지막 눈동자를 보내는 톰 슬라타리. 어두운 방 한구석에 누워 혈관에 마약을 주사하는 아름다운 혼혈인. 푸른 옷에 노란 얼굴뿐인 단조로움. 기근에 허덕이고 질병에 유린당하면서 쥐와 개와 나무뿌리로 연명하는 사람들. 지상의 풀을 뜯어먹고 자기 자식을 잡아먹으면서 살아가는 수백만의 사람들. 이 사나이의 육체가 전에는 부패한 고깃덩어리였다는 것, 또 문둥병 환자처럼 남에게 혐오감을 주었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목소리는 아주 부드럽고 조용했다. 그것은 마치 그의 영혼이 지금까지 견디어 온 모든 고통으로 인해 맑아져서 그런 것 같았다. 손을 내밀어 술잔을 들 때, 그의 얼굴은 더욱 부드러워지고 그의 말은 진정으로 나를 애무하는 듯했다. 더구나 이 동안 중국은 운명이기라도 한 듯 우리의 머리를 덮어 누르고 있었다. 멸망해 가는 중국, 거대한 공룡과도 같이 무너져 내려 티끌이 되면서도, 마지막까지 그 고색 창연한 전설의 영광과 매혹과 신비와 잔인함을 잃지 않고 있는 중국. 나는 더 이상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을 수 없었다. 어느 틈에 내 생각은 처음으로 한 무더기의 폭죽을 샀던 독립에 때로 돌아가 있었다. 폭죽과 함께 나는 쉽게 파열해 버리는 활약을 샀었다. 불이 붙으면 빨갛게 빛나는 활약, 냄새가 며칠이나 손끝에 남아 이국적인 것을 몽상케 하는 화약이다. 7월 4일에는 검정과 금빛 무늬가 있는 빨간 종이가 한길에 뿌려지고, 도처에서 기묘하고 작은 불꽃이 터져 올라갔다. 하루 종일 폭죽과 화약 냄새가 나고, 빨간 포장지에 싼 금가루가 손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중국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도 않았으나, 나는 항상 그것이 손끝에 묻어 있고 코를 근질거리게 했다. 훨씬 나중에 가서 폭죽의 냄새가 어떠했는지 잊었을 무렵, 어느 날 갑자기 금가루로 코가 막힌 듯하여 눈을 뜨고, 파열한 뒤의 화약에서, 코를 찌르는 듯한 냄새에서, 빨갛고 화려한 포장지에서, 보지도 못한 국민과 국토에 대한 향수를 느꼈다. 본 일은 없다고 하지만 그것은 혈액 속에, 이상하게도 혈액 속에 시간과 공간의 감각 같은 것이 존재해 있었던 것이다. 파악할 길일 없는 영원한 가치,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점점 그 가치로 마음이 기울어져서, 그것을 사고로써 파악하려 했으나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중국에는 예지와 신비가 감추어져 있고, 따라서 그것을 두 손으로 잡거나 사고로써 파악하려 해도 전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흔들어 떨어뜨리거나, 손가락에 묻힌 채 서서히 핏속에 스며들도록 맡겨 둘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로부터 몇 주일이 잔, 나는 르아부르에 돌아가 있던 코린스로부터 꼭 와 달라는 초대를 받았다. 그리하여 어느 날 아침, 나는 필모어와 함께 주말을 그곳에서 보내기 위해 준비를 하고 기차에 올랐다. 파리에 도착한 이래 내가 그곳을 떠나 본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기차가 해안을 향해 달리는 동안 우리는 앙쥬 마시며 즐겼다. 코린스는 우리가 만날 술집의 번지를 가르쳐 주었었다. 그것은 지미의 주점 이라는 술집으로서 르아부르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는 곳이라고 했다. 우리는 정거장에서 뚜껑 없는 4륜 마차를 타고 지정된 장소를 향해 경쾌하게 달렸다. 아직 앙쥬가 병에 반쯤 남아 있었으나 마차 안에서 모두 마셔 버렸다. 르아부르의 거리는 밝고 명랑하며 공기에서는 강한 바다 냄새가 풍기고 있어서, 나에게 뉴욕에 대항 향수를 일으키게 할 정도였다. 도처에 돛과 선체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작으면서도 화사한 배의 깃발, 사방으로 트인 광장, 시골에서만 볼 수 있는 카페. 나는 곧 이 고장이 마음에 들었다. 르아부르는 두 팔을 벌리고 우리를 환영해 주었다. 술집 근처에 이르렀을 때 코린스가 숨을 헐떡거리며 걸어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분명히 정거장으로 향하고있는 듯했으나, 예에 따라 좀 늦어졌던 것이다. 필모어는 당장 페르노를 마시자고 했다. 우리는 등을 얼싸안고 크게 웃으면서 군침을 흘렸다. 이미 햇빛과 바닷바람에 취해 있었던 것이다. 코린스는 페르노를 마시자는 말에는 선뜻 대답하지 않았다. 임질 약을 복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는 실토했다. 그러나 임질 기운이 있을 뿐 대단한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약병을 꺼내 보여 주었다 ― 내 기억이 착오가 없다면 그것은 베네치안 이라는 약이다. 성원들이 사용하는 임질 약이다. 지미의 주점에 가기 전에 가벼운 식사라도 하자고 하여, 어느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기둥이 연기에 그을리고 음식을 올려놓을 때 식탁에서 삐걱 소리가 나는 큰 술집이었다. 우리는 코린스가 추천하는 포도주를 마셨다. 그런 뒤 테라스로 자리를 옮겨 커피와 리큐르 술을 마셨다. 코린스는 드 샤를르 남작 이야기를 했다. 그의 마음에 드는 사나이라고 한다. 약 1년 전부터 르아부르에 머물고 있는데, 밀주를 만들어 번 돈으로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도락은 아주 간단했다 줎 음식, 술, 여자, 책이다. 그리고 전용 목욕탕... 이것을 그는 고집하고 있는 듯했다. 지미의 주점에 도착한 뒤에도 우리는 계속 드 샤를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오후 늦은 시간이어서 가게가 차차 붐비기 시작했다. 지미는 마침 가게에 있었다. 홍당무처럼 빨간 얼굴을 하고 있었다. 곁에 그의 아내가 있었다. 눈이 빛나는 쾌활하고 아름다운 프랑스 여성이었다. 우리는 어느 식탁에서나 대다한 환영을 받았다. 여기서도 페르노를 마셨다. 축음기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고, 사람들은 영어, 프랑스어, 네덜란드어, 노르웨이어, 스페인어를 지껄이고 있었다. 지미와 그 아내는 모두 혈기가 왕성하고 쾌활했다. 그들은 서로 어깨를 끌어안고 마음으로부터의 키스를 하고 술잔을 높이 들면서 들뜬 마음으로 수다를떨었다. 마치 입고 있는 옷을 모두 벗어 던지고 싸움의 춤이라도 출 기분이 되어 있었다. 술집 여자들이 파리 떼처럼 몰려들었다 코린스의 친구라면 누구나, 그러니까 우리들도 부자라는 뜻이 된다. 다 떨어진 양복을 입고 온 것은 전혀 흠이 되지 않았다. 영국인의 복장은 모두 그런 것이다. 나는 호주머니에 단 1수도 갖고 있지 않았으나, 귀한 손님인 이상 그런 것은 물론 문제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내 양팔에 매달려 무언가 주문하기를 바라고 있는 두 창녀에게는 적지 않이 곤혹을 느꼈다. 제기랄, 우선 일을 저질러 놓고 보자. 나는 배짱이 생겼다. 이 술집에는 어떤 술이 있는지, 어떤 술을 주문하면 계산이 많이 나올지, 이미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비록 무일푼이지만 나는 신사가 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베트 ― 이것이 지미의 아내 이름이다 ― 는 우리에 대해 이상할 정도로 친절하고 호의적이었다. 우리를 위해 향연을 베풀 준비까지 하고 있었다. 그때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있었다. 그 동안 지나치게 마셔서는 안되었다 ― 그녀는 자기가 만든 식사를 맛보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축음기가 미친 듯이 울리기 시작하고, 필모어는 튀기 ― 백인과 흑인의 혼혈여자 ― 를 상대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여자는 몸에 꼭 달라붙는 우단 옷을 입고 있었는데, 이것이 그녀의 매력을 충분히 발휘시켜 주었다. 코린스가 내 곁으로 와서 옆에 있는 여자에 대해 두 서너 마디 귀띔을 해 주었다. 마담이 이 여자를 식사에 초대해도 좋다고 했네. 하고 그가 말했다. 자네가 이 여자를 확보해 두고 싶다면 말일세. 이 여자는 창녀 출신으로 교외에 아름다운 집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어는 선장의 정부로 있으나 선장은 현재 부재중이므로 염려할 것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자네가 이 여자한테 마음이 있다면 그녀의 집에서 묵을 수도 있네. 하고 그는 덧붙였다. 그것만으로 나는 충분하다. 나는 곧 마르셀 쪽으로 방향을 틀어 그녀의 엉덩이를 간질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술집 한구석에서 춤을 추는 체하며, 서로 몸을 맹렬하게 부딪쳤다. 지미는 왕방울 같은 눈으로 크게 윙크를 보내며 마음껏 즐겨도 좋다는 듯이 머리를 끄덕였다. 색정적인 여자였다 ― 이 마르셀이란 계집은. 동시에 유쾌한 여자이기도 했다. 이윽고 그녀가 다른 여자들을 쫓아버렸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이에 우리는 허리를 부둥켜안고 오랫동안 친밀한 이야기를 나누었으나, 운 사납게도 식사 준비가 되었다는 말에 정담이 끊어지고 말았다. 식탁에 앉은 사람은 20명쯤 되었는데, 마르셀과 나는 지미 부부의 맞은편 테이블 한구석에 자리잡았다. 식사는 샴페인 터뜨리는 소리와 함께 시작되고, 술이 거나해짐에 따라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에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식사하는 동안 나와 마르셀은 식탁 밑으로 손으로 농탕을 치고 있었다. 일어서서 무어라 한 마디 해야 하게 되었을 때, 나는 냅킨으로 앞을 가리고 있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것은 괴로운 일이었으나, 동시에 매우 기분 좋은 일이기도 했다. 마르셀이 노상 내 사타구니를 간질이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빨리 이야기를 끝내야만 했다. 만찬은 이럭저럭 한밤중까지 계속되었다. 나는 벼랑 위에 있는 아름다운 집에서 마르셀과 함께 있을 때가 오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코린스가 우리를 안내하고 다닐 계획을 세웠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거절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여자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게. 하고 그는 말했다. 이곳을 떠나기 전에 얼마든지 재미를 볼 수 있을 테니까. 우리가 돌아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려 달라고 하게. 마르셀을 약간 시무룩했다. 그러나 내가 앞으로 4, 5일은 더 여기 있게 될 것이라고 하자 갑자기 얼굴이 환해졌다. 밖에 나갔더니 필모어가 심각한 얼굴을 하고 우리들의 팔을 붙잡으면서 잠시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얼굴이 새파랗게 된 것으로 미루어 걱정거리가 있는 듯했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 코린스가 쾌활하게 물었다. 어서 말하게. 필모어는 곧 입을 열지 못했다. 헛기침을 몇 번하고 망설이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나는 조금 전에 화장실에 다녀왔어. 그때 나는 어떤 것을 깨달았어... 그렇다면 자네는 그것에 걸린 거야... 코린스가 단정하듯 말했다. 그리고 예의 베네치안 병을 꺼내들고 의사한테 가면 안돼. 하고 증오스럽게 덧붙였다. 녀석들은 죽을 때까지 네 피를 빨아들일 테니까. 욕심으로 똘똘 뭉친 똥 같은 녀석들이야. 그리고 술을 끊어도 안돼. 그런다고 낫는 것은 아니야. 그러지 말고 이것을 하루 이틀 먹도록 하게... 먹기 전에 잘 흔들어서 말이야. 걱정하는 것이 가장 해로워, 알겠나 ? 자, 어서 가세. 돌아와서 세척기와 과망간산염을 주겠네. 이리하여 우리는 어둠 속을 걷기 시작했네. 음악과 절규와 주정 소리가 뒤범벅이 된 물가를 향해서. 가는 도중에 코린스는 조용한 목소리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그가 사랑에 빠졌던 소녀에 대한 것, 소년의 부모가 그것을 알고 혼을 내주는 바람에 겨우 궁지에서 빠져나왔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화제를 바꾸어 드 샤를르 백작 이야기를 하고, 또 강을 거슬러 올라가 행방불명이 된 쿠르츠에 대한 말을 했다. 그의 18번과도 같은 이야기다. 나는 언제나 코린스가 이처럼 문학적 배경을 가지고 행동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그것은 절대 자가용 롤스로이스에서 내리려 하지 않는 백만장자와도 같았다. 그에게는 현실과 관념사이에 중간 영역이 없는 것이다. 그는 쿠에 볼테르의 사창굴에 들어가 장의자에 몸을 내던지고, 벨을 눌러 여자와 술을 주문하고 나서도 쿠르츠와 함께 강을 거슬러 올라가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러다가 여자들이 그의 옆에 있는 침대에 엉덩이를 붙이고 키스로 입을 막음으로써 겨우 긴 이야기를 끝냈다. 그리고는 마치 이제야 비로소 자기가 어디 왔는지 알았다는 듯이 주인 노파를 돌아보면서, 우리 두 사람을 소개했다. 즉 이곳을 보기 위해 일부러 파리에서 내려온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방에는 여섯 명 가량의 여자가 있었다. 모두가 나체였고, 또 모두가 아름다워 보였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여자들은 우리 세 사람이 노파와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 새처럼 재잘거리고 있었다. 이윽고 노파는 천천히 즐기라는 말을 하고 나가 버렸다. 나는 그 늙은 마담에게 마음이 끌렸다. 친절하고 대범한 면이 있어서 어머니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몸매가 아주 좋았다 ! 만일에 그녀가 조금만 더 젊었다면 나는 결혼을 신청했을 것이다. 이른바 악덕의 집 에 들어가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어쨌든 우리는 그곳에 한 시간쯤 있었다. 이 집의 특권을 누릴 수 있는 것은 나뿐이었고, 코린스와 필모어는 아래층에 남아 여자들을 상대로 시시닥거리고 있었다. 내가 내려가 보니 두 사람은 침대에 누워 있고, 여자들은 침대를 중심으로 둘러앉아 제법 천사 같은 목소리로「피카디의 장미」를 합창하고 있었다. 그 집을 나올 때 우리는 감상적일 정도로 우울해져 있었다 ― 특히 필모어가 그랬다. 코린스는 앞장서서 어느 음침한 집으로 안내해 주었다. 그곳에는 상륙허가를 받지 못한 술취한 수병들이 들끓고 있었다. 거기서 우리는 의자에 걸터앉아, 한창 동성연애가 진행중인 광경을 즐겼다. 그 집에서 나와 홍등가를 빠져나가지 않으면 안되었으나, 거기에는 더욱 많은 뚜쟁이 노파들이 있었다. 그녀들은 목에 숄을 감고 집 입구의 층계에 걸터앉아 부채를 흔들면서 손님을 끌고 있었다. 그녀들은 모두 손자를 달래는 듯한 선량한 얼굴을 가진, 정에 넘치는 노파들이었다. 한때의 수병들이 비틀거리면서 걸어와 화사한 집안으로 꾸역꾸역 들어갔다. 어디에나 섹스가 넘치고 있었다. 그것은 이 도시 밑에서 지주를 씻어낸 간조였다. 우리는 모든 것이 탁해진 항구 가장자리를 따라서 걸었다. 거기에 있는 모든 배 ― 트롤선, 요트, 스쿠너선, 거룻배가 맹렬한 폭풍으로 해안에 떠밀려 올라온 듯한 인상이었다. 48시간 동안에 너무나 많은 일이 있었기 때문에 마치 르아부르에 한 달 이상 머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필모어가 근무를 해야 하므로 월요일 아침 일찍 출발할 예정이었다. 우리는 임질에 걸렸건 무엇에 걸렸건, 일요일을 술과 연회로 보냈다. 그날 오후 코린스는 아이다호 주에 있는 자기 목장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미 8년 동안이나 고향을 떠나 있었기 때문에, 다시 동양으로 항해를 떠나기 전에 고향 산천을 한 번 둘러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때 우리는 창녀의 집에 있으면서 여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코린스는 그 여자에게 코카인을 주기로 약속했던 것이다. 그는 이제 르아부르에 싫증이 난다면서, 너무 많은 독수리에게 뜯겨 목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했다. 더더구나 지미의 아내가 그에게 반하여 질투를 하면서 그를 들볶는다는 것이다. 매일 밤 소란이 벌어졌다. 우리가 도착한 뒤에는 얌전해졌으나, 그것이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고 그는 단언했다. 특히 그녀가 술에 취하면, 가끔 술집에 오곤 하는 러시아 처녀에게 질투를 한다. 그리고 코린스는 첫날 우리에게 이야기한 그 소년에게 필사적이라 해도 좋을 만큼 반해 버렸던 것이다. 그 남자아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아. 하고 그는 말했다. 그 아이는 정말이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워 ! 더구나 아주 잔혹해 ! 이 말에는 우리도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웬지 모르게 어리석게 여겨졌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진지했다. 일요일 한밤중에 필모어와 나는 방으로 돌아갔다. 술집 2층의 한 방을 제공받았던 것이다. 그날 밤은 무척이나 더웠다. 열어 놓은 창문을 통해 아래층의 떠들썩한 소리와 축음기 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폭풍이 불기 시작했다 ― 정기적으로 내리는 소나기였다. 우뢰소리와 유리창을 때리는 스콜 소리에 섞여, 아래층에서도 또다른 폭풍이 일고 있는 것이 우리 귀에까지 들렸다. 그것은 절박하면서도 기분 나쁜 소리였다. 여자들이 마구 비명을 지르는가 하면 병이 깨지고 식탁이 뒤엎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인간의 몸뚱아리가 마루에 부딪칠 때의 그 귀에 익은, 구토를 유발하는 듯한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6시쯤 코린스가 머리를 문에 부딪쳤다. 얼굴은 온통 반창고 투성이이고 한 팔이 부러져 있었다. 그는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자네들에게 말한 그대로였어. 하고 그는 말했다. 드디어 그녀가 어젯밤에 폭발했어. 그 소동은 자네들도 알았겠지 ? 우리는 얼른 옷을 입고 지미에게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가게는 한 마디로 참담했다. 똑바로 서 있는 병은 하나도 없고, 망가지지 않은 의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거울과 장식장은 산산이 부서져 있었다. 지미는 자신이 마실 계란 술을 만들고 있었다. 정거장으로 가는 도중에 우리는 코린스로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가 2층으로 올라간 뒤 그 러시아 아가씨가 나타났다. 이베트는 다짜고짜 그녀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두 여자는 서로 머리끄덩이를 잡고 싸우기 시작했다. 이때 거구의 한 스웨덴인이 나타나 러시아 아가씨의 뺨에 따귀를 올려붙였다 ― 정신을 차리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것이 화약에 불을 지른 격이 되었다. 코린스는 그 거구의 사나이에게 따지고 들었다. 도대체 무슨 권리가 있기에 사사로운 싸움에 개입하는지 그 이유를 말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대답 대신 턱으로 주먹이 날아왔다. 멀리 나가떨어질 만큼 무서운 일격이었다. 꼴 좋군 ! 이베트는 금속성 소리를 지르고, 이 기회를 이용하여 러시아 아가씨를 향해 병을 쳐들었다. 그 순간 맹렬한 천둥 번개가 쳤다. 잠시 동안 큰 소동이 벌어졌다. 여자들은 모두 흥분하여, 이 기회에 평소 가지고 있던 자기들의 분통을 터뜨렸다. 고급 술집에서 벌어지는 싸움과는 전혀 달랐다. 칼로 등을 찌르거나 식탁 밑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병으로 내리치는 것쯤은 그래도 약과였다. 가련하게도 이 스웨덴인은 여러 사람을 적으로 돌리게 되었다. 술집에 있던 모든 사람이 그를 증오했다. 특히 그의 선원 동료가 그러했다. 그들은 이 사나이가 당하는 것을 보고 싶어했다. 이에 그들은 문을 닫아걸고 나서 식탁을 한쪽에 치워 카운터 앞에 약간의 공간을 만들어 놓았다. 여기서 그들은 스웨덴인을 집단적으로 구타했던 것이다. 소동이 끝났을 때 이 거구의 사나이는 병원으로 옮겨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코린스는 오히려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 한쪽 손목이 부러지고 손가락 관절 두 개가 빠졌으며, 코피가 나고 한쪽 눈두덩이에 멍이 든 것으로 끝났던 것이다. 그의 표현을 빌면 한두 군에 찰과상을 입었던 정도였다. 그러나 만일에 그가 스웨덴인과 같은 배의 선원이었다면 녀석을 죽여 버릴 작정이었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는 우리에게 이렇게 단언했다. 그런데 소동은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이런 일이 있은 뒤 이베트는 다른 주점에 가서 술을 퍼마시지 않을 수 없었다. 수모를 당한 이상 끝장을 낼 생각이었다. 이에 그녀는 택시를 타고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벼랑으로 가자고 운전사에게 말했다. 자살을 결심했던 것이다. 이것이 그녀가 하려던 행동이었다. 그러나 몹시 취해 있었기 때문에 차에서 굴러 떨어졌다. 그녀는 울면서 남이 말리기 전에 입고 있던 옷을 하나씩 벗기 시작했다. 운전사는 반나체가 된 그녀를 집으로 데려왔다. 지미는 그녀의 모습을 보자 화가 나서, 면도칼을 가는 가죽으로 여자가 오줌을 찔끔 쌀만큼 꽁꽁 묶어 버렸다. 그런데 이것이 여자의 마음에 들었다. 그녀는 이런 여자인 것이다. 좀더 세게 묶어 주세요. 여자는 두 손으로 그의 다리를 붙들고 무릎을 끓으면서 호소했다. 그러나 자미로서는 이 정도면 충분했다. 이 불결한 암퇘지 같으니라구 ! 하면서 발로 여자의 배를 눌렀다. 그 바람에 여자는 방귀를 뀌었다 ― 말하자면 그녀의 성적 넌센스라 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일찍 출발했다. 이 도시는 아침 햇살 속에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열차가 움직이기를 기다리면서 우리가 마지막으로 이야기 한 것은 아이다호에 대한 것이었다. 우리 세 사람은 모두 미국인이다. 출신지는 각각 달랐으나 어떤 공통적인 것을 가지고 있다 ― 많은 공통점을 가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헤어질 때 대부분의 미국인이 그렇듯이, 우리도 센티멘탈해져 있었다. 암소, 양, 남자가 남자인 그 광대한 토지, 그 밖의 하찮은 일에 대해서까지 우리는 미련을 두고 있었다. 만일에 이것이 기차가 아니라 배였다면, 우리는 곧 갑판으로 뛰어나가 그 모든 것에 대해 작별을 고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나중에 안 일이지만, 코린스는 끝내 미국을 다시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필모어는... 그렇다. 필모어 또한 자신의 벌을 받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때는 우리 중의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항상 미국은, 말하자면 마음이 약해졌을 때 들여다보는 그림엽서처럼 깊숙이 간직해 두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그것이 언제나 저쪽에서 나를 기다리고 잇다. 조금도 변하거나 손상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을 가슴에 품고 말이다. 암소와 양이 있는 크고 애국적이고 광대한 공간. 착한 마음을 가진 인간이 눈에 띄는 모든 것에 ―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나 짐승에게나 ― 거칠게 말을 건다. 그와 같은 미국은 실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떤 추상적인 관념에 이름 붙여진 명칭인 것이다... ♧ 파리는 매춘부와도 같다. 멀리서 보면 남자의 영혼을 녹여 버릴 것 같고, 그녀를 두 팔로 끌어안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다. 그러나 5분 후에는 공허감을 맛보고 자기혐오에 빠진다. 속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두둑이 호주머니에 돈을 넣고 파리로 돌아왔다 ― 2, 3백 프랑이나 되는 돈이다. 내가 열차에 오르려 했을 때 코린스가 호주머니에 찔러 넣어 주었던 것이다. 그 정도면 방값을 지불하고, 최소한 1주일 동안은 맛있는 식사를 하기에 충분하다. 지난 몇 년간 이런 거금을 손에 쥐었던 적이 없다. 나는 마치 새로운 생활이 눈앞에 열리기라도 한 듯이 신이 났다. 이 돈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뤼듀샤토에 있는 빵집 위의 싸구려 호텔을 알아보았다. 뤼드반브에 가까운 곳으로서, 앞서 유제느가 나에게 가르쳐 준 장소이다. 몇 야드 앞에는 몽파르나스 철도가 지나는 철교가 있다. 나에게는 낯익은 지역이다. 이곳이라면 한 달에 1백 프랑으로 방을 빌릴 수 있을 것이다. 아무 시설도 없는, 창문조차 없는 방을. 잠시 동안 자기만 할 것이므로 당연히 빌어야 했을 것이지만, 그 방으로 가기 위해서는 어느 장님의 방을 지나야 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매일 밤 그 사나이의 잠꼬대를 들으며 지나가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니 몹시 우울했다. 그래서 다른 곳을 찾아보기로 결심했다. 나는 묘지 바로 뒤에 있는 뤼셀스에 가 보았다. 거기서 안뜰을 둘러싸고 발코니가 있는, 마치 쥐덫과 같이 생긴 건물을 바라보았다. 발코니 밑으로 많은 새장이 매달려 있었다. 유쾌한 광경이어야 할 테지만, 내 눈에는 왠지 모르게 병원의 요양 실같이 보였다. 거기 살고 있는 사람들도 유머 감각 같은 것은 전혀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나는 밤이 될 때까지 좀더 여러 곳을 찾아다녀 보기로 했다. 어느 조용한 뒷골목에 있는, 가능하다면 약간은 아늑한 방을 구하고 싶었다.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으므로 나는 식사에 15프랑을 투자했다. 계획했던 예산의 거의 2배였다.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으나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가게에 들어가려던 생각도 포기하고 말았다. 그렇다, 좀더 걸어다니기가 적당한 시간이 되거든 얌전히 잠자리에 들어야지. 이처럼 돈을 절약하려고 하니 마음이 침울해졌다. 지금까지 이렇게까지 절약한 일은 한 번도 없었다. 내 성격에 맞지 않는 일이다. 드디어 비가 억수로 퍼붓기 시작했다. 나는 안도했다. 어디이건 들어가 쉴 수 있는 구실이 생긴 것이다. 잠자리에 들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었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브르바르 라스파이유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이 때 갑자기 한 여작 다가오면서 나를 불러 세웠다. 몇 시인지 가르쳐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시계를 갖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여자가 큰 소리로 말했다. 어머, 영어를 할 줄 아는군요. 정말 우연이에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는 점점 더 세차게 퍼붓고 있었다. 친절하신 선생님, 선생님은 틀림없이 나를 카페에 데려가 줄 거예요. 이렇게 비가 퍼붓는데도 나는 돈이 없어서 어디에 들어가 있을 수도 없어요. 친절하신 선생님. 댁은 매우 착한 분인 것 같군요. 얼굴에 그렇게 씌어 있어요... 댁이 영국 사람이란 것을 나는 금새 알았어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면서 나에게 미소를 던졌던 것이다. 기묘하고도 반쯤 미친 듯한 미소였다. 아마도 선생님이라면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거예요. 나는 이 세상에 오직 혼자뿐이에요... 그리고 돈이 한 푼도 없다는 것은 정말 무서운 일이에요... 그 친절하신 선생님 이라거나 착한 분 이라는 문구에 나는 그만 히스테리 발작을 일으킬 뻔했다.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으나,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웃었다. 그녀의 코끝에서 웃었다. 그러자 여자도 따라 웃었다. 기분 나쁘고 청이 높으며 박자에 맞지 않는 전혀 뜻밖의 웃음 소리였다. 나는 여자의 팔을 붙들고 제일 가까운 곳에 있는 카페로 갔다. 여자는 술집에 들어가서도 계속 웃고 있었다. 그리고는 나의 친절하고 착한 선생님 을 다시 반복했다. 틀림없이 선생님은 내가 거짓말을 하는 줄 아실 거예요. 하지마 나는 순수한 처녀예요... 양가의 규수예요. 하지만 ― 여기서 그녀는 다시 창백하고 통렬한 미소를 나에게 던졌다. 하지만 나는 정착할 수가 없을 정도로 불행해요. 그 말에 나도 다시 웃었다. 웃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 여자가 내뱉는 처량한 신세 타령, 기묘한 엑센트, 머리에 쓰고 있는 꼴사나운 모자, 광적인 미소... 이봐. 하면서 나는 물었다. 아가씨는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인가 ? 나는 영국 사람이에요. 그녀가 대답했다. 태어난 속은 폴란드지만 아버지는 아일랜드 사람이에요. 그래서 영국 사람이란 말인가 ? 그래요. 여자는 이렇게 대답하면서 수줍은 듯이 해죽 웃었다. 나를 데려갈 만한 아담하고 좋은 호텔을 알고 있어 ? 나는 이렇게 말하기는 했으나 여자와 같이 갈 생각은 전혀 없고, 단지 그녀가 본론에 들어가지 않아도 될 수 있게 하려고 했을 뿐이었다. 어머나 ! 그녀는 마치 내가 크게 착각을 하고 있다는 투로 말했다. 정말이지 나는 그럴 생각은 없어요. 나는 그런 종류의 여자가 아니에요. 나를 놀리고 있군요. 좋아요, 댁은 매우 친절한 사람이니까요... 무척 정이 많은 분 같으니까요. 상대가 프랑스 남자였다면, 나는 댁한테 한 것 같은 말을 걸 용기는 나지 않았을 거예요. 프랑스 남자들은 곧 언짢은 소리를 내뱉으니까 말이에요... 그녀는 이런 투로 잠시 이야기를 계속했다. 나는 이 여자와 헤어지고 싶었다. 그러나 여자는 혼자 있기를 싫어했다. 무서워하고 있었다 ― 이렇다 할 신분 증명서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인 듯했다. 나는 이 여자를 그녀의 호텔까지 데려다줄 만큼 친절하지 못한 것일까 ? 호텔 주인이 잔소리를 하지 않도록 이 여자에게 15프랑이나 20프랑쯤 빌려 줄 수 도 있지 않을까 ? 나는 그녀가 묵고 있다는 호텔까지 따라가서 그 손에 50프랑을 쥐어 주었다. 영리해서 그런지 아니면 무척 순진해서 그런지는 모르나 ― 어느 쪽인지 모를 경우가 흔히 있다 ― 어쨌든 그녀는 돈을 거슬러 주기 위해 잠시 술집에 다녀올 테니 그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했다. 나는 그런 수고는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자 여자는 충동적으로 내 손을 잡고 자기 입으로 가져갔다. 나는 깜짝 놀랐다. 무언가 내가 가지고 있는 어이없는 것을 여자에게 모두 주어 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것이, 그 미친 듯한 제스처가 나를 감동시켰다. 이와 같은 새로운 스릴을 맛보기 위해서라도 때로는 부자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이성을 잃지 않고 있었다. 50프랑 ! 비 내리는 날 하룻밤의 용돈으로는 이 정도로 충분하다. 내가 사라지려 하자, 그녀는 묘하게 생긴 작은 모자를 나를 향해 흔들어 보였다. 마치 우리가 옛날의 학교 친구라도 된다는 듯이. 나는 약간 경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친절하신 선생님, 다정한 분... 착한 얼굴을 가진 분... 댁은 무척 정이 많으시군요. 그녀의 말에 나는 성자라도 된 기분이었다. 마음이 몹시 들뜨면 쉽게 잠이 오지 않는 법이다. 뜻하지 않았던 선심의 폭발과 걸맞은 일이라도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이다. 나는 정글 앞을 지나면서 잠시 댄스홀을 들여다보았다. 등을 온통 드러낸 여자들, 진주 목걸이가 목을 조이고 있는 ― 또는 그렇게 보이는 ― 여자들이나를 향해 모양 좋은 궁둥이를 흔들어대고 있었다. 나는 얼른 바로 가서 샴페인 한 병을 주문했다. 음악이 그치자 금발 미인 하나가 ―노르웨이인처럼 보였다 ― 바로 내 옆에 있는 의자에 와서 앉았다. 내부는 밖에서 보기와는 달리 그다지 붐비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았다. 손님이라고는 겨우 5, 6명밖에 되지 않았다 ― 그 5, 6인이 한꺼번에 춤을 추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나는 용기가 없어지기 전에 샴페인을 다시 한 병 주문했다. 금발 미인과 춤을 추려고 일어섰을 때 플로어에는 우리밖에 없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주눅이 들었을 테지만, 샴페인과 찰싹 달라붙는 여자의 몸과 어두컴컴한 조명과 수백 프랑이 주머니에 있다는 확실한 안도감이 나의 용기를 붇돋아... 우리는 두 번이나 춤을 추었다. 일종의 시범적인 댄스였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녀는 울기 시작하고 있었다 ― 이것이 사건이 발단이었다. 여자는 내가 너무 술에 취한 줄 알고 따돌리려고 했다. 그러는 한편 멋지게 걸려들 녀석은 없나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이미 홀에는 아무도 없었다. 상대의 덫에 걸려들었을 때는 도망하는 게 상책이다 ― 그것도 얼른. 도망치지 않으면 크게 다친다. 그런데 아주 기묘한 이야기이지만, 나를 붙들어 놓고 있는 것은 오늘의 이 기분을 무위로 돌리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었다. 인간은 언제나 하찮은 일로 해서 점점 더 재앙에 빠져들기 마련이다. 여자가 울고 있던 이유는 금새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조금 전에 아기의 장례식을 끝마쳤던 것이다. 여자는 노르웨이인이 아니었다. 프랑스인으로 조산원 노릇을 하고 있었다. 뺨에 눈물이 흐르고 있기는 했지만 예쁘장한 조산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술이라도 한 잔 마시면 마음이 진정되지 않겠느냐고 내가 말했다. 그러자 여자는 얼른 위스키를 주문하고 눈 깜짝할 사이에 비우고 말았다. 다시 한 잔 하지 않겠나 ? 나는 친절하게 권했다. 여자는 마시고 싶다고 했다. 캬멜 담배도 한 곽 필요하다고 했다. 아니, 잠깐. 그보다는 팔멀 담배가 좋겠어요. 아무것이건 마음대로 주문해도 된다. 하지만 제발 울지는 말아라, 여자가 우는 것을 보면 소름이 끼치니까, 나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나는 다시 한 번 춤을 추자면서 그녀의 팔을 거칠게 붙들어 일으켰다. 춤을 추기 시작하자 여자는 딴 사람이 되었다. 나는 잘 모르는 일이지만, 아마도 슬픔이란 인간을 색정적으로 만드는 모양이다. 나는 여기서 나가자는 귀뜸을 했다. 어디로 ? 여자가 뜨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아무데라도 좋아요. 조용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상관없어요. 나는 화장실에 가서 지니고 있는 돈을 세어 보았다. 1백 프랑짜리 지폐는 바지의 속주머니에 감추고, 50프랑 지폐 한 장과 잔돈은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확실하게 결판을 낼 작정으로 다시 그녀한테로 돌아왔다. 이야기는 쉽게 이루어졌다. 왜냐하면 여자가 먼저 그 이야기를 꺼냈기 때문이다. 그녀는 돈에 쪼들리고 있었다. 아기를 잃었을 뿐 아니라 어머니를 부양해야 했다. 더구나 그 어머니는 중병에 걸려 병원비, 약값, 그밖에 여러 가지 일에 돈이 필요했다. 물론 나는 그녀의 말을 하나도 믿지 않았다. 나는 오늘밤에 묵을 호텔을 구해야 해. 그러니 함께 가서 같이 자지 않겠어 ? 하고 마음을 떠보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돈이 적게 들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여자는 그렇게 하려 하지 않았다. 어떤 일이 있어도 집에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 나는 아파트를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어머니 간호를 해야 해요, 이것이 그녀의 말이었다. 나는 차라리 그녀의 집에 가서 자면 더 절약이 될 것 같았다. 좋아, 그러면 당신 집에 가기로 하지, 라고 나는 말했다. 그러나 나중에 가서 이러쿵저러쿵 여러 말이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 미리 그녀에게 내 의사를 말해 두는 것이 좋을 듯했다. 호주머니에 얼마의 돈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했을 때, 나는 그녀가 당장에라도 기절을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어머나, 그런 ! 하고 그녀는 말했다. 몹시 기분이 상하는 모양이었다. 큰 소동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태연한 체하고 말했다. 좋아, 그렇다면 헤어질 수밖에 없군. 아마 내가 잘못 생각했던 모양이야. 사실 나도 그렇게 말하려던 참이었어요 ! 하고 그녀는 소리질렀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내 옷소매를 붙들었다. 내 말을 들어보세요... 화는 내지 말고 말이에요. 이 말을 듣고 나는 자신을 되찾았다. 즉 조금만 더 여분으로 지불하겠다는 약속을 하면 만사가 오케이인 것이다. 알았어. 나는 성가시다는 듯이 말했다. 당신 말대로 하겠어. 그러면 되지 ? 그럼, 아까는 거짓말을 했군요 ? 여자가 말했다. 음, 그랬어. 나는 히죽 웃었다. 어떻게 나오나 하고 거짓말을 해 본 것뿐 이야... 내가 미처 모자도 쓰기 전에 여자는 택시를 불렀다. 플르바르 드 크린 시라고 주소를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거, 호텔비보다 비싸지겠는걸, 하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어쨌든 좋다, 아직 시간은 있으니까... 이제 두고 보면 알게 될 것이다. 무엇이 계기가 되었는지는 아직도 알 수 없으나, 이윽고 그녀는 앙리 볼드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이후 지금까지 앙리 볼드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그녀의 말은 아름다웠다. 너무나 우아하고 총명했기 때문에 얼마를 더 얹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나에게는 여자가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 이미 시간이 없다고 여겨질 때는... 어쨌거나 그런 식으로 들린 것이다. 그 상태에서 나는, 이 문구는 1백 프랑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그녀 자신의 말인지 앙리 볼드의 말인지는 알 바 아니었다. 어는 것이든 좋다. 이것이야말로 몽파르나스 언덕 밑에 갈 때는 안성맞춤인 대사이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 나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따님과 내가 간호해 드리죠 ― 이미 시간이 없다고 여겨질 때는 말이죠. 그녀는 나에게 조산원 면허증을 보여 줄 작정으로 있었다. 나는 그 일을 상기했다. 여자는 문을 닫자 곧 이성을 잃고 허둥대기 시작했다. 두 손을 비벼대는가 하면 사라 베나르의 포즈를 취하고 옷마저 벗으려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어서 옷을 벗어라,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하면서 재촉하는 것이었다. 드디어 그녀가 벌거벗고 슈미즈를 손에 든 채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잠옷을 찾기 시작했을 때, 나는 겨우 그녀를 붙들고 꼭 끌어안았다. 얼마 후에 놓아주자 그녀는 고통스런 표정을 떠올렸다. 아, 큰일났어요 ! 아래층에 가서 어머니의 상태를 살펴봐야 해요. 그녀가 말했다. 원한다면 욕실을 사용해도 좋아요. 저쪽에 있어요. 나도 곧 돌아오겠어요. 문 입구에서 나는 다시 한 번 그녀를 껴안았다. 나는 내의를 입고 있었으나 무섭게 발기했다. 좌우간 이러한 고통과 흥분과 비탄과 연극은 오로지 나의 욕정을 부추길 뿐이었다. 아마도 그녀는 정부를 달래기 위해 아래층에 내려갔을 것이다. 당장에라도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흔히 조간 신문에서 읽곤 하는 극적인 사건이. 나는 얼른 방안을 둘러보았다. 방이 둘이고 욕실이 있었으며, 가구도 그리 나쁜 것은 아니었다. 어느 정도 정취가 감돌기까지 했다. 벽에는 그녀의 면허증이 걸려 있었다 ― 흔히 있는〈1급〉의 면허였다. 화장대 위에 아이 사진이 있었다. 아름다운 머리털을 가진 여자아이였다. 나는 목욕을 하려고 더운물을 틀었다. 이때 문득 마음에 지피는 것이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면 나는 욕조에서 발견될 것이다 ― 그 생각을 하자 언짢은 기분이 들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불안한 마음이 생겨 방안을 서성거렸다. 그녀가 돌아왔을 때는 아까보다 더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금새 돌아가실 것만 같아요... 당장에라도 ! 하고 슬픈 목소리로 되풀이했다. 순간 나는 이 집에서 나가려고 했다. 아래층에서는 그녀의 어머니가 죽어가고 있는데, 어떻게 여자의 배에 올라탈 수 있다는 말인가? 나는 반쯤은 동정심에서, 나머지 반은 여기 온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그녀를 두 팔로 끌어안았다. 그러자 여자는 말하기가 정말 난처하다는 듯이, 내가 약속했던 돈을 달라고 했다. 엄마 를 위해서라고 한다. 제기랄 ! 하지만 그때 나는 몇 프랑의 돈 때문에 그녀와 다투기가 싫었다. 옷을 벗어 놓은 의자가 있는 데로 가서, 그녀에게 등을 돌린 채 조심스럽게 바지 주머니에서 1백 프랑 짜리 지폐 한 장을 꺼냈다. 그리고 여전히 조심을 하면서, 이제부터 일이 벌어질 침대 옆에 바지를 놓았다. 이 정도의 돈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테지만, 그래도 한푼이 아쉬운 그녀로서는 마다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여자는 돈을 보자 무서운 기세로 잠옷을 벗어 던지고 침대 속으로 뛰어들어갔다. 내가 끌어안자 그녀는 얼른 손을 뻗쳐 전 등의 스위치를 껐다. 여자는 정열적으로 나에게 안기면서, 프랑스 여자가 잠자리에서 늘 그러듯이 신음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그녀의 행동이나를 무섭게 흥분시켰다. 전 등을 끄고 잠자리에 든 것이 나에게는 첫 경험이었다... 이 때문에 자못 정말같이 느껴졌다. 그러나 의혹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자세를 약간 틀고 손을 내밀어, 아직도 바지가 의자 위에 있는지 확인해 보았다. 나는 이렇게 둘이서 천천히 하룻밤을 보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침대는 아주 포근했다. 보통의 호텔의 것보다도 더 푹신했다 ― 그리고 시트도 깨끗했다. 이것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다만 그녀가 맹렬하게 날뛰지나 않는다면 ! 한데 그녀는 마치 한 달 동안이나 남자하고 자지 않은 여자처럼 행동했다. 나는 마음껏 놀고 싶었다. 1백 프랑의 밑천을 들인 만큼 충분히 즐기고 싶었다. 그런데 여자는 미친 듯이 온갖 잠자리의 말을 다 내뱉었다. 어둠 속에서 그것이 점점 더 흥분을 북돋았다. 나는 맹렬하게 싸울 작정이었다. 그러나 끊임없이 미쳐 날뛰는 상대이고 보니 그것이 불가능했다. 이윽고 여자는 알아들을 수 없는 헛소리를 하면서 몸을 뒤틀었다. 벌새가 우는소리가 들렸다. 이것으로 나의 1백 프랑은 자취를 감췄다. 완전히 잊고 있던 50프랑도 사라져 버렸다. 다시 전등이 켜졌다. 그리고 여자는 들어올 때와 똑같은 기세로 침대에서 내려와, 마치 암퇘지처럼 툴툴거리기도 하고 무어라 중얼거리기도 했다. 나는 그 동안 벌렁 드러누워 담배를 피우면서 원망스러운 듯 내 바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지는 쭈글쭈글해져 있었다. 여자는 잠옷을 걸치고 나에게 다가와, 여전히 그 안절부절못하는 태도로 편히 쉬고 있으라는 말을 했다. 나는 아래층에 내려가 어머니가 어떤지 보고 오겠어요. 곧 돌아오기는 하겠지만, 주무시고 계서도 좋아요. 15분쯤 지나자 나는 다시 불안해졌다. 방구석으로 가서 탁상에 있는 한 통의 편지를 읽었다. 특별히 내용의 것은 아니었다 ― 단순한 연애편지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욕실로 가서 선반에 있는 병을 모조리 조사해 보았다. 그녀는 여자가 아름다운 냄새를 풍기는데 필요한 것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다시 돌아와 나머지 50프랑 어치의 일을 해주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아직 갖고 있었다. 하지만 상당히 시간이 지났지만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드디어 나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역시 아래층에 빈사 상태의 인간이 있는 모양이다. 망연해진 나는 자기 보존의 심정으로 옷을 입기 시작했다. 허리띠를 매고 있을 때, 그녀가 1백 프랑 짜리 지폐를 지갑에 넣던 일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때 여자는 얼떨결에 옷장 위에 있는 선반에 지갑을 올려놓았던 것이다. 그녀의 동작도 생각났다. 발끝으로 서서 겨우 선반에 지갑을 올려놓았었다. 나는 얼른 손으로 선반을 더듬어 보았다. 지갑이 거기 있었다. 얼른 열어 보니 1백 프랑 짜리 지폐가 들어 있었다. 나는 지갑을 그 자리에 놓고 서둘러 윗도리를 입은 후, 신발을 신고 계단의 층계참으로 나와 귀를 기울였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는 신만이 알 것이다. 순간 나는 다시 방으로 돌아와 선반에서 그녀의 지갑을 꺼냈다. 그리고 1백 프랑 짜리 지폐와 동전까지 호주머니에 넣었다. 그런 뒤 발끝으로 계단을 내려와 밖으로 나가서는 되도록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나는 카페 부근에 들어가 식사를 했다. 창녀들이 요리 접시 앞에 고개를 숙이고 잠들어 있는 뚱뚱한 사나이를 둘러싸고 있었다. 사나이는 깊이 잠이 든 모양이었다. 사실 코까지 드르렁드르렁 골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입만은 기계적으로 놀리고 있었다. 가게에서 큰 소동이 벌어졌다. 여러분, 이제 시작합시다 ! 누군가가 신호를 했다. 그러자 일제히 나이프와 포크가 부딪쳐 왔다. 사나이는 잠시 눈을 뜨고 멍한 얼굴로 두리번거리다가 다시 고개를 떨구었다. 나는 그 1백 프랑 짜리 지폐를 조심스럽게 바지 안주머니에 넣고 잔돈으로 계산했다. 주위는 점점 더 소란해져, 나는 아까 그 여자의 면허증에〈1급〉이란 글자가 씌어 있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그것이 신경에 쓰였다. 그의 어머니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쯤 죽었으면 차라리 나을 것이다. 그녀가 한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어쩐지 남의 일 같이만 생각되었다. 너무나 이야기의 앞뒤가 맞아떨어져 믿을 수가 없었다. 좀더, 좀더 !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친절한 분 이라거나 댁은 착한 얼굴을 하고 있어요 라는 등 헛소리를 하는 바보가 있다니 ! 바로 옆에까지 갔던 그 호텔에 정말 그 여자가 방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의심스럽다. ♧ 여름도 거의 끝나갈 무렵, 필모어가 나를 오라고 했다. 그는 프라스뒤플레에서 조금 떨어진, 기병대 막사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아틀리에가 딸린 아파트를 빌려서 살고 있었다. 르아부르 여행을 다녀온 이후에도 우리는 종종 만나고 있었다. 만일에 필모어가 없었다면 지금쯤 나는 어떻게 되었을지 알 수 없다 ― 아마도 죽었을 것이다. 사실은 진작 자네를 찾아가려 했어. 하고 그가 말했다. 재키라는 시시한 여자만 없었더라면. 어떻게 하면 그녀와 손을 끊을 수 있을지 몰랐거든. 나는 나도 모르게 웃었다. 필모어는 언제나 이런 식이다. 집 없는 여자를 끌어들이는 재주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재키는 자발적으로 떨어져 나간 모양이었다. 장마철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인간을 음침하게 만드는 기름기와 안개와 비의 계절이다. 길고 우울한 계절이다. 겨울이면 저주하고 싶어지는 파리 ! 영혼 속에 파고드는 기후. 그것은 인간을 레플래도르 해안처럼 황량하게 만든다. 난방 장치라고는 아틀리에에 있는 단 하나뿐인 스토브라는 사실을 나는 불안한 기분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아틀리에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장관이었다. 아침이 되면 늘 필모어가 나를 흔들어 깨우고 머리맡에 10프랑 짜리 지폐 한 장을 놓아 주었다. 그가 나가 버리면 나는 곧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정오가 될 때까지 일어나지 않는 날도 많았다. 작품을 완성하는 것 말고는 이렇다 하게 할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더구나 이 일마저도 별로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왜냐하면 어차피 이 작품을 받아 줄 곳이 없으리라는 것을 진작부터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필모어는 이 작품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그가 저녁에 병을 옆구리에 끼고 돌아와 제일 먼저 하는 것은, 책상 앞으로 와서 내가 몇 장이나 글을 썼는지 살피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그의 이 같은 성의가 고마웠다. 그러나 나중에는 내가 한 장도 쓰지 못했을 때, 마치 수도꼭지에서 쏟아지는 물처럼 마구 써 나갔을 것을 기대하고 페이지를 넘겨 보는 그를 대하기가 불안했다. 한 장도 보여 줄 것이 없는 날에는, 그가 재워 주곤 하는 여자와 똑같은 심정이 들었다. 그가 노상 이야기하는 재키 생각이 난다 ― 그녀가 때때로 나의 객기를 풀어주었더라면 더할 나위가 없었을 텐데. 만일에 내가 여자였다면 기꺼이 그를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는 편이 그가 기대하고 있는 원고를 쓰기보다 훨씬 더 쉬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나를 편안하게 해주려고 애썼다. 언제나 먹을 것과 술을 풍부히 있었고, 때로는 같이 댄스홀에 춤을 추러 갔다. 그는 뤼드데삭에 있는 흑인 댄스홀에 단골로 다니고 있었다. 거기에는 단 한 명 흑백 혼혈의 미인이 있었는데, 그녀는 자주 우리와 같이 집으로 왔다. 그가 섭섭하게 여기는 것은 술을 좋아하는 프랑스 여자가 없다는 점이었다. 프랑스 여자들은 그를 만족시키기에는 모두 역부족이었다. 그는 여자를 아틀리에에 데리고 와서 일을 시작하기 전에 취하도록 마시기를 좋아했다. 또 여자에게 자기가 예술가임을 믿게 하기를 좋아했다. 그에게 아틀리에를 빌려준 남자는 화가이므로, 여자들에게 예술가의 인상을 주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벽장에서 꺼내온 그림들을 죽 늘어놓고, 미완성인 작품 하나를 눈에 띄도록 이즐에 세워 놓으면 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작품들은 모두 초현실파의 그림이었다. 따라서 그 작품들이 주는 인상은 별로 명확하지가 않았다. 그림에 관한 한 창녀도 문지기도 대신도 모두 취미상으로는 큰 차이가 없는 모양이다. 마크 스위프트가 내 초상을 제작하기 위해 규칙적으로 우리한테 오기 시작했을 때, 이것이 필모어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필모어는 스위프트를 매우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그는 보기 드문 천재라는 것이다. 그가 다르는 것은 모두가 난폭한 면이 있었다. 그러나 인물이건 정물이건 스위프트가 그린 것은, 그것이 무엇인지는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이다. 스위프트의 요구로 나는 턱수염을 기르기 시작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내 얼굴에는 턱수염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에펠 탑을 배경으로 창가에 앉아 있어야만 했다. 왜냐하면, 그는 이 그림의 배경에 반드시 에펠 탑을 놓으려 했기 때문이다. 그 무렵에는 그뤼겔도 종종 들르는 습관이 생겼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스위프트는 그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다. 균형이 잡혀 있지 않은 것을 보면 그는 몹시 화를 냈다. 그는 자연의 법칙과 묵시적인 의미를 믿고 있었던 것이다. 스위프트는 자연 같은 것에 대해서는 코방귀도 뀌지 않았다. 자기 머리 속에 있는 것을 그리고자 했다. 어쨌든 지금은 스위프트가 그린 내 초상화가 이즐에 올려져 있다. 크게 균형을 잃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인간의 얼굴이고 수염을 기른 사람이라는 것은 대신이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문지기 여자등은 이 그림에 비상한 흥미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녀는 실물과 너무 닮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에펠 탑을 넣은 착상도 마음에 드는 듯했다. 이처럼 나는 약 한 달쯤 거기서 편히 지낼 수 있었다. 근처의 분위기도 내 마음에 꼭 들었다. 특히 도처에 넘쳐흐르고 있는 꼴사나움, 슬픔이 피부로 느껴지는 밤이 마음에 들었다. 해질녘이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끌리는 조용한 이 장소는, 어둠이 깔리기 시작할 때가 가장 음울하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띤다. 군대 막사 한쪽에는 높은 담이 있는데, 언제나 그 그늘에서 남녀의 커플들이 맹렬하게 포옹을 한다 ― 더구나 비가 내리는 날에도 말이다. 어두컴컴한 가로등 밑, 막사의 담에 기대어 두 연인이 꼭 부둥켜안고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처절했다. 담 안에서 행해지고 있는 일도 내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나는 창가에 서서, 눈 아래서 벌어지고 있는 정경을 내다본다. 그것은 어느 유성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생각되었다. 나는 무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모든 것이 시간표에 따라 행해지고 있는 듯했으나, 아마도 그 시간표는 광인에 의해 만들어졌을 것이다. 인간이 진흙 속에서 뛰어다니고 있었다. 나팔이 울리고 말이 돌격했다. 이 모든 것은 사방이 둘려진 담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모의 전이었다. 많은 병정들은 사람을 죽이는 방법이라거나 구두를 닦는 일, 빗으로 말을 빗어 주는 방법에 대해 배우는 일에 조금도 흥미를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은 그야말로 웃기는 일이지만, 그래도 이것은 계획된 일의 일부인 것이다. 그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을 때는 더욱 익살스럽게 보였다. 몸을 벅벅 긁는다. 호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고 어정어정 걷는다. 하늘을 쳐다본다. 장교가 지나가면 얼른 발뒤축을 모으고 경례한다. 나는 그곳이 정신병원으로 보였다. 말들까지도 천치로 보였다. 때로는 대포를 끌어내어 대열을 이루고 가로를 행진한다. 그러면 구경꾼들은 멍하니 입을 벌리고 씩씩한 군대로만 보였다. 찬사를 보낸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것이 늘 퇴각하는 군대로만 보였다. 왠지 모르게 초라하고 더러우며 맥이 없어 보였다. 군복도 몸에 비해 헐렁하고, 개개인으로서는 눈에 띄는 민첩성도 행진할 때만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햇빛이 나면 모습이 돌변한다. 그들의 눈에는 희망의 빛이 감돌고 걸음걸이가 씩씩해지며 어느 정도 열의도 보인다. 여러 가지 것이 윤기 있는 색채를 띠고 프랑스인 특유의 수다가 터져나온다. 그들은 한쪽 구석에 있는 주보에서 술에 대해 명랑하게 잡담을 나눈다. 장교들은 좀더 인간답게, 프랑스인답게 보인다고 할 수 있다. 태양이 얼굴을 내밀면 온 파리가 모두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술집 앞 인도에는 차양을 친 테이블이 준비되고, 술잔에는 갖가지 빛깔의 술이 채워진다. 이리하여 사람들은 정말 인간답게 보이는 것이다. 사실 인간적이라 할 수 있다. 태양이 빛날 때는 가장 인간적으로 되는 것이다 ! 이러한 사람들을 병영에 집어넣고 억지로 훈련을 시키며, 졸병이다, 상사다, 대령이다, 또 무엇이다, 하고 계급을 붙인다는 것은 죄악이 아닐 수 없다. 앞서도 말했듯이 모든 일이 평온 무사하게 지나갔다. 때때로 칼이 우리는 위해 일거리를 가지고 찾아왔다. 그가 직접 하기에는 죽어도 싫은 여행기사를 쓰는 일이다. 한 편을 쓰는 데 50프랑밖에 되지 않으나, 나로서는 그 일이 쉬웠다. 낡은 기사를 적당히 베끼기만 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기사는 화장실에 쭈그리고 앉아 있을 때나 대합실에서 시간을 보낼 때밖에는 읽지 않는다. 요컨대 형용사를 멋지게 구사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밖에는 날짜와 통계의 문제뿐이다. 중요한 기사인 경우에는 부장이 자기 이름으로 발표한다. 이 사나이는 어느 외국어 하나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지만, 요령을 부리는 재주만은 가지고 있다. 만일에 어떤 구절이 멋지게 묘사되었다고 생각할 때는 그는 이런 말을 하곤 했다. 이 대목은 내가 쓰려고 하던 그대로 되어 있군. 아주 훌륭해. 자네가 쓰는 책에 이 대목을 인용해도 좋네. 그 멋진 구절이라는 것도 사실은 백과 사전이나 낡은 여행 안내서에서 베낀 것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 중의 몇 가지는 칼이 자기 책에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초현실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어느날 저녁의 일이었다. 내가 산책에서 돌아와 보니 한 여자가 침대에서 뛰어내렸다. 당신은 작가였군요. 느닷없이 이렇게 말하고는, 자기 인상을 확인하려는 듯이 내 턱수염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대단한 턱수염이로군요 ! 필모어는 담요를 손에 들고 그녀를 쫓아다니고 있었다. 이 여자는 프린세스야. 라고 하면서, 진귀한 캐비어라도 먹은 듯이 입을 다시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외출할 차림을 하고 있었다. 침구를 가지고 그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나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얼른 생각이 떠올랐다. 필모어 녀석은 세탁물 꾸러미를 보여주기 위해 이 여자를 침실로 끌어들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새로운 여자를 발견하기만 하면 녀석은 늘 이런 수법을 쓰는 것이다. 특히 프랑스 여자인 경우에는. 세탁물 꾸러미 위에는〈서품의 돈도 없고 한 장의 샤티(역주 ; 야회복 같은 것을 입을 때 진짜 와이셔츠 대용으로 앞만을 진짜처럼 보이게 하는 셔츠를 입을 경우가 있다. 이것이 샤티이다)도 없다〉라는 수가 놓여 있다. 그리고 어찌 된 셈인지 필모어는, 자기를 찾아오는 여자들에게 그 표어를 설명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일종의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여자는 프랑스인이 아니었다 ― 그녀는 러시아인이었다 ― 더더구나 프린세스인 것이다. 그는 새 장난감을 갖게 된 어린이처럼 흥분해 있었다. 그녀는 5개 국어를 할 수 있어 ! 틀림없이 그는 이 재능에 압도당한 모양이었다. 아니예요, 4개국어예요 ! 그녀는 얼른 정정했다. 그래 ? 4개국어라도 상관없어... 좌우간 대단한 여자야. 프린세스는 흥분하고 있었다 ― 끊임없이 허벅지를 벅벅 긁거나 코를 비비거나 했다. 어째서 이 양반은 이런 시간에 자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하고 그녀는 별안간 나에게 말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를 소유하려는 것일까요 ? 이 양반은 어른이지만 어린이예요. 부끄러워 못 견딜 일을 태연히 하는 거예요. 내가 이 양반을 어느 러시아 음식점에 데려갔더니, 미친 흑인처럼 춤을 추는 거예요. 그녀는 궁둥이를 흔들면서 흉내를 내어 보였다. 그리고 마구 떠들어대는 거예요. 큰 소리로 입에 담지 못할 말을. 그녀는 그림과 책을 어 보면서 방 안을 왔다갔다 했다. 계속 턱을 꼿꼿이 세우고 있었다. 그러면서 자꾸 몸을 긁었다. 또 때때로 군함처럼 홱 방향을 돌리고 기관총 같은 욕설을 퍼부었다. 필모어는 한 손에 술병을, 다른 손에 술잔을 들고 끊임없이 그녀의 꽁무니를 쫓아다녔다. 그러지 마세요. 어쩌자고 그렇게 졸졸 나만 따라 다니는 거예요 ? 하고 그녀는 소리질렀다. 이것밖에 마실 것이 없나요 ? 샴페인 한 병도 살 수 없어요 ? 나는 샹페인이 아니면 마시지 않아요. 나는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어요. 흥분해 있는 거예요 ! 필모어가 내 귓전에 몇 마디 속삭였다. 그녀는 여배우야... 영화 스타지. 어떤 남자에게 버림받아 저렇듯 안달을 하고 있는 거야... 나는 이제부터 그녀를 취하게 만들... 그럼, 나는 밖으로 나가겠어... 내가 말을 꺼내려 하자 프린세스는 소리를 질러 이야기를 중단시켰다. 당신들은 무얼 그렇게 소곤 거리는 거예요 ? 그녀는 발을 그르면서 외쳤다. 그게 실례라는 것을 모르세요 ? 그리고 당신만 해도 그래요. 나를 밖으로 데리고 나갈 줄 알았어요. 나는 오늘밤 취하지 않고는 못 배기겠어요. 아까도 그런 말을 했지 않아요 ? 알았어, 알았다니까. 필모어가 대답했다. 곧 나가도록 하겠어. 여기서 간단히 한 잔 하고. 당신은 돼지예요 ! 그녀가 큰 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역시 좋은 사람이에요. 다만 시끄러울 뿐이에요. 그녀는 나를 돌아보았다. 믿어도 될까요, 이 양반이 이상한 행동을 하지 않으리란 것을 ? 나는 오늘밤에 취하지 않으면 안돼요. 그렇지만 이 양반으로부터 수치스런 일을 당하고 싶지는 않아요. 나는 나중에 다시 이리로 돌아오게 될지도 몰라요.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당신은 이 양반보다 현명할 것 같으니까요. 둘이 나갈 때 프린세스는 나에게 정중하게 악수를 청하면서, 가까운 곳에서 식사를 하고 곧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했다 ― 취하기 전에 말이에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알겠소. 내가 말했다. 돌아올 때 또 한 사람의 프린세스를 데리고 왔으면 좋겠는데요 ― 아니면 백작부인이라도 말이죠. 우리는 언제나 토요일에 시트를 바꾸어 깔곤 하죠. 새벽 세시쯤에 필모어는 비틀거리면서 돌아왔다 ― 혼자서. 해양 항로의 배처럼 흔들리고 맹인처럼 등나무 지팡이로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서. 기우뚱거리면서 험한 항로를 지나온 것이다... 나는 곧장 잠자리에 들겠어. 그는 내 곁을 지나면서 말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내일 하도록 하고. 그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 썼다. 그의 으르렁대는 소리가 들렸다 ― 망할 것 ! 못된 계집 같으니라구 ! 그는 다시 나왔다. 모자를 쓰고 손에 금이 간 지팡이를 들고. 어쩐지 그럴 것 같은 예감이 들었어. 그녀는 미치광이야 ! 그는 잠시 부엌에 들어가 뒤적거리더니 앙쥬 술병을 들고 아틀리에로 돌아왔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와 술잔을 나누었다. 그가 단편적으로 늘어놓은 이야기를 종합한 결과, 사건은 샹젤리제 거리에서부터 시작된 모양이었다. 그는 집에 돌아오면서 한 잔 하기 위해 그곳에 들렀다. 그 시간이면 예에 따라 독수리들이 테라스에 모여든다. 이 독수리들은 창가에 자리잡고 접시를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있었다. 그녀가 혼자 술을 즐기고 있을 때 마침 필모어가 그 앞을 지나다가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취했어요. 하면서 그녀는 킬킬 웃었다. 여기 앉지 않겠어요 ? 그리고는 마치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기라도 하는 듯이, 연인인 영화감독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즉 그가 어떻게 그녀를 팽개쳤는지, 그래서 어떻게 세느 강에 그녀가 몸을 던졌는지를 이야기했다. 그곳이 어느 다리였는가는 생각이 나지 않고, 강에서 구출되었을 때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던 것만이 기억에 남이 있었다. 그리고 어느 다리에서 투신한건 그녀로서는 마찬가지였다 ― 한데 그는 어째서 이런 것을 물었던 것일까 ? 이에 대해 그녀는 다만 히스테릭하게 웃기만 했다. 별안간 그녀는 자리를 뜨고 싶었다 ― 춤을 추고 싶었던 것이다. 그가 망설이는 것을 보자 여자는 자기 핸드백에서 1백 프랑 짜리 지폐를 꺼냈다. 그러나 다음순간 그 정도의 돈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당신은 조금도 돈을 갖고 있지 않나요 ? 하고 그녀가 말했다. 없어. 호주머니에 갖고 있는 것은 없지만, 집에 가면 수표가 있지. 이리하여 그는 수표를 가지러 여자와 함께 쏜살같이 집으로 달려왔다. 물론 그는 이런 수법으로 그녀를 집에 끌어들여 예의〈서푼의 돈도 없고 한 장의 샤티도 없다〉는 설명을 하려는 순간이었다. 이것이 내가 돌아왔을 때까지의 자초지종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그들은 가벼운 식사라도 하려고 포와슨 도르에 들렀다. 그녀는 식사와 함께 두서너 잔의 보드카를 마셨다. 이 부근의 그녀의 바운다리로소, 사람들은 모두 그녀의 손에 키스하고 프랑세스, 프랑세스 하고 불렀다. 그녀는 비록 취하기는 했으나 경우 체면만은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궁둥이를 내저으면 안돼요. 두 사람이 춤을 추기 시작했을 때 그녀는 계속 이 말을 했다. 여자를 데리고 아틀리에로 돌아와, 여기서 하룻밤을 함께 보내려는 것이 필모어의 속셈이었다. 그러나 여자는 제법 영리하여 그의 수법에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았다. 이에 그는 여자의 변덕을 이기지 못하고 축제 는 다른 기회에 미루기로 했다. 한편 그는 또 하나의 프린세스를 발견하여 두 여자 모두를 데려올 생각까지 했었다. 이리하여 그는 필요할 경우에는 2, 3백 프랑이라도 쓸 작정이었다. 매일같이 프린세스를 만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번에는 그가 먼저 여자를 끌고 다른 집으로 갔다. 그녀의 말대로 이곳에서는 그녀의 얼굴이 더욱 알려져 있었다. 따라서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는데 별로 어려움이 없었다. 거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야회복을 입고 있었다. 웨이터의 안내에 따라 테이블로 가는 동안, 그녀는 앞서보다 더 뜨거운 키스를 손에 받았다. 그녀는 춤을 추다 말고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플로어에서 내려왔다. 왜그래 ? 그가 물었다. 이번에도 내가 또 무슨 실수를 했어 ? 그러면서 무의식적으로 손을 궁둥이로 가져갔다. 여전히 궁둥이를 너무 흔든 것이 아니었나 하고 확인하듯이. 아니예요. 그녀가 말했다. 당신은 아무 잘못도 없어요, 정말이에요. 당신은 좋은 사람이에요. 그녀는 다시 그의 손을 잡고 플로어로 나가 부지런히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러면, 왜 그랬어? 하고 그가 속삭였다. 아무것도 아니예요. 그녀는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어떤 사람을 보았어요. 그것뿐이에요. 그리고는 느닷없이 화를 냈다 ― 어쩌자고 나를 이토록 취하게 만들었죠 ? 취하면 내 마음이 변한다는 것을 모르세요 ? 수표는 가지고 있겠죠 ? 그녀가 말했다. 우리는 여기서 나가지 않으면 안돼요. 그녀는 웨이터를 불러 무어라 러시아어로 이야기했다. 수표는 틀림없는 것이겠죠 ? 웨이터가 사라지자 그녀가 물었다. 그리고 충동적으로 말했다. 휴대품 보관소에 가서 기다려 주세요. 나는 어떤 사람에게 전화를 해야 해요. 웨이터에게 거스름돈을 받은 필모어는 유유히 계단을 내려가 휴대품 보관소에 가서 그녀가 오기를 기다렸다. 콧노래도 부르고 휘파람을 불며 왔다갔다하기도 하면서, 앞으로 맛보게 될 진수성찬에 대한 기대로 부풀어 있었다.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났다. 그래도 조용히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20분이 지나도 여전히 프린세스가 모습을 보이지 않자, 이제야 그도 수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때 휴대품 보관소의 담당자가, 그녀는 벌써 나갔다는데요 라고 말했다. 그는 밖으로 뛰어나갔다. 양복차림의 흑인 한 사람이 거기 서서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 너는 모르느냐 ? 흑인이 빙그레 웃고 대답했다. 쿠폴이라는 말을 들었죠. 그것밖에는 모릅니다. 그는 쿠폴의 1층에서 칵테일을 앞에 놓고 있는 그녀를 발견했다. 꿈이라도 꾸는 듯이 멍한 표정을 띄우고 있었다. 그의 모습을 보자 여자가 미소지었다. 이건 큰 실례가 아니야 ? 그가 말했다. 거짓말을 하고 도망치다니. 내가 싫거든 진작 그렇다고 했으면 되지 않아 ? 이 말에 여자는 버럭 화를 내고 갖은 제스처를 쓰면서 악담을 퍼부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우는 목소리가 되었다. 나는 미쳤어요. 그녀가 빠른 말로 이야기했다. 당신도 미친 사람이에요. 당신은 나와 자려고 하고, 나는 당신과 자기가 싫고. 그리고는 자기 연인, 아까 댄스홀에서 보았다는 영화감독 이야기를 마구 지껄였다. 그녀가 댄스홀에서 도망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매일 밤술을 마시고 취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세느 강에 몸을 던진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그녀는 자기가 얼마나 미쳐 있는지를 이런 식으로 설명하다가 별안간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브리크콥의 술집으로 가요 ! 거기에는 여자가 알고 있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그 사나이는 언젠가 일자리를 약속한 일이 있었다. 여자는 그 사나이가 힘이 되어 줄 것이라 믿고 있었다. 거기는 비싸지 않아 ? 하고 필모어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엄청나게 비싼 곳이다. 그녀는 이 사실을 즉석에서 인정했다. 하지만 거기 데려다 준다면 당신 집에 같이 가겠어요. 약속하겠어요. 거기 가면 최소한 5, 6백 프랑은 쓰게 될 것이라고 그녀는 정직하게 말했다. 그렇지만 나도 그 정도의 가치는 있는 여자예요 ! 내가 어떤 여자인지 당신은 몰라요. 파리 전체를 뒤져도 나 같은 여자는 없어요... 그건 네 생각일 뿐이야 ! 그의 양키 기질이 폭발했다. 나한테는 그렇게 보이지 않아. 너는 서푼어치의 가치도 없어. 영락한 미치광이 암컷에 지나지 못해. 정직하게 말한다면 어느 가난한 프랑스 여자라면 무언가 보답을 해줄 테니까. 그가 프랑스 여자 이야기를 꺼내자 여자는 분개했다. 그따위 여자 이야기는 내 앞에서 꺼내지 마세요 ! 프랑스 여자는 질색이에요 ! 머리가 텅비고... 얼굴도 못 생긴데다... 모든 것을 돈으로만 해결하려 하거든요. 제발 그런 소리는 하지 마세요. 그녀는 다시 조용해졌다. 그리고 이번에는 방법을 달리했다. 응, 여보 콧소리로 말했다. 나체가 되었을 때의 내가 어떤지 모르겠죠 ? 아주 멋져요. 하면서 두 손으로 자기 유방을 눌렀다. 그러나 필모어에게는 별로 효과가 없었다. 너는 암캐야 ! 그는 싸늘하게 내뱉었다. 2, 3백 프랑 쓰는 것은 문제없지만, 너는 미치광이야. 세수조차 한 일이 없겠지 ? 네가 숨을 쉴 때마다 썩은 냄새가 나. 네가 귀족의 딸인지 뭔지는 알 수 없지만, 나한테는 아무 상관도 없어... 툭 튀어나온 네 궁둥이는 러시아인의 변형이야. 나는 그런 것을 원치 않아. 길거리에 나가 그 궁둥이를 흔들며 돈이나 벌도록 해. 프랑스 여자에 비하면 너 같은 것은 어림없어. 형편없지. 너 따위한테는 한푼도 쓰고 싶지 않아. 너는 미국에나 가야 해... 거기는 너 같은 거머리가 피를 빨아먹기에 알맞은 곳이지... 이런 악담에도 그녀는 화를 내지 않았다. 아무래도 당신은 내가 무서운 모양이로군요. 무섭다고 ? 네가 무섭다고 ? 당신은 마치 버릇없는 어린아이 같군요. 예의도 아무것도 모르니까요. 내가 어떤 여자인지 안다면 그런 말은 하지 못할 거예요... 어째서 착한 아이가 되려 하지 않죠 ? 오늘밤 나를 데려가기 싫다면 그래도 좋아요. 나는 내일 아침 5시에서 7시 사이에 롱포앙에 있겠어요. 나는 당신이 무척 마음에 들었어요. 무엇하러 일부러 롱포앙까지 간다는 말이야 ? 내일 밤만이 아니라 다른 날에도. 두 번 다시 얼굴도 보고 싶지 않아... 영원히. 너 한테는 이제 신물이 났어. 나는 이제부터 귀여운 프랑스 아가씨나 찾으러 가겠어. 너 같은 것은 지옥에나 가란 말이야 ! 여자는 그를 바라보면서 씁쓸히 웃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하지만 기다려 주세요 ! 나를 품고 잘 때까지 기다려 주세요! 내가 얼마나 멋진 육체를 가지고 있는지 당신은 아직 몰라요. 프랑스 여자는 섹스의 기교가 대단한 줄 당신은 생각하고 있겠죠 ?... 천만의 말씀이에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 곧 내가 당신을 열중하게 만들 테니까요. 나는 당신이 좋아요. 단지 야만스러운 것뿐이에요. 정말 어린아이 같아요. 말이 좀 많고요... 너는 미친 여자야. 필모어가 말했다. 비록 네가 이 지구상의 마지막 여자라 해도 나는 상대하지 않겠어. 집에 가서 세수나 해. 그는 계산도 하지 않고 그 집을 나왔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이 프린세스가 스스로 찾아 들어왔다. 여자는 진짜 공작부인이었다. 그 점에 대해 우리는 상당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임질에 걸려 있었다. 어쨌든 파리에서는 인생이 지루하지 않았다. 필모어는 기관지염에 걸리고, 여자는 앞서 말했듯이 임질에 걸려 있었으며, 나는 치질에 걸렸다. 한길 건너에 있는 러시아인 식료품 점에서 술병을 여섯이나 비웠지만 내 목구멍으로는 한 방울도 넘어가지 않았다. 고기도 안된다, 술도 안된다, 들새 고기도 안된다, 여자도 안된다. 다만 과일과 파라핀유와 아르니카 드롭과 아드레날린 연고뿐이었다. 술집의 의자에도 앉기가 거북했다. 지금도 나는 프린세스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파샤(장군)처럼 뻣뻣이 서 있기만 했다. 파샤 ! 이 말에서 그녀의 이름인 마챠가 생각났다. 나로서는 그 이름이 귀족다워 보이지 않았다.『산송장』(역주 ; 톨스토이의 소설)이 연상되었다. 처음에는 나는 세 식구가 살면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생각했으나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녀가 식구로 끼여들었을 때, 나로서는 이 생활도 끝난 것이 아닌가 했다. 다른 데서 잘 곳을 찾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필모어는, 그녀가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만 여기 있게 하겠다고 나에게 설명했다. 그녀 같은 여자에게 이런 표현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내가 보는 한 그녀는 지금까지 한 번도 자립했던 것 같지 않았다. 그녀는 러시아 혁명에 쫓겨 이곳에 온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혁명이 아니라 다른 일로 쫓겨왔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녀는 제법 유명한 배우인 듯한 인상을 풍기기는 했다. 우리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건 개의치 않았다. 시간만 낭비하게 되기 때문이다. 필모어는 그녀를 재미있게 여기고 있었다. 그는 아침에 출근하면서 그녀의 머리맡에 10프랑, 내 머리맡에도 10프랑씩 놓고 나가곤 했다. 밤이면 셋이서 아래층에 있는 러시아 음식점으로 내려갔다. 근처에는 러시아인이 많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마챠는 어느 틈에 외상을 틀 수 있는 상점을 발견했다. 물론 하루 10프랑의 돈이 마챠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연예계에서 직업을 구하기 위해 옷도 새로 맞출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아무 일도 하는 일없이 빈들거리고만 있기 때문에 몸에 비계가 끼기 시작하고 있었다. 오늘 아침에 나는 깜짝 놀랐다. 세수를 하고 나서 그만 실수로 그녀의 타월을 사용했던 것이다. 그녀한테 자기 타월을 제자리에 걸어 놓으라는 주의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한바탕 욕을 해주었다. 대답이 걸작이었다. 어머, 그런 일로 나한테 장님이라고 한다면, 나는 벌써 장님이 되어 있었을 거예요. 그밖에도 화장실 문제가 있었다. 이것만은 다같이 공동으로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아버지 같은 태도로 화장실의 변기 사용에 대해 주의를 주었다. 그러자 무얼 그따위 일을 가지고 그러세요 ? 하고 그녀는 대꾸하는 것이었다. 당신이 그렇게 두려워한다면 나는 카페에 가서 일을 보겠어요.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내가 달랬다. 다만 다른 사람들같이 주의하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쳇, 그렇다면 앉지는 않겠어요... 서서 일을 보겠어요. 이 여자는 무슨 일이든 정상이 아니었다. 우선 월경이라는 핑계로 해야 할 일을 하려 하지 않았다. 그것이 8일간이나 계속되었다. 우리는 그녀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어느 날 내가 주의를 정리하고 있으려니, 침대 밑에서 탈지면 뭉치가 나왔다. 그것은 피가 묻어 거뭇거뭇했다. 이 여자는 모든 것을 침대 밑에 쑤셔넣어두고 있는 것이다. 굴 껍질, 탈지면, 코르크 병마개, 빈 병, 가위, 사용한 후의 콘돔, 책, 베개... 그리고 잘 때 말고는 침대를 정리하지 않는다. 대개는 이불 위에서 뒹굴면서 러시아 신문을 읽었다. 이것 보세요. 하고 그녀는 나한테 말하는 것이다. 이 신문이 없다면 나는 절대로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정말이에요. 그것은 사실이었다. 러시아 신문밖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토일렛 페이퍼 한 조각도 없다 ― 러시아어 신문뿐이다. 그것을 가지고 밑을 닦는 것이다. 어쨌든 그녀는 특이한 체질을 가지고 있다. 월경이 끝난 뒤에도 적당히 휴식하고 있기 때문에 허리에 살이 붙어도 일을 하려 하지 않는다. 여자밖에 좋아하지 않는 체하고 있었다. 남자를 상대하려면 먼저 적당한 자극을 받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수간을 하는 매음굴에 데려다 달라고 우리에게 조르기까지 한다. 백조(역주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스파르타 왕인 틴잘레스의 아내. 백조로 변한 제우스에게 속는다)라면 더욱 좋겠다고 했다. 백조가 날개를 펴면 그녀는 이상하게 흥분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어느 날 밤 그녀를 테스트하기 위해 자기가 원하는 매음굴에 데려갔다. 그런데 마담에게 이야기도 꺼내기 전에 옆 테이블에 있던 영국인 주정뱅이가 우리에게 이야기를 걸어 왔다. 이 사나이는 이미 두 번이나 2층에 올라가 재미를 보았으면서도 다시 일을 치르겠다고 했다. 그리고 호주머니에 20프랑밖에 가지고 있지 않고 프랑스어는 한 마디도 하지 못하므로, 자기가 점찍고 있는 여자와 흥정하는 일을 도와 달라고 우리에게 부탁했다. 그가 원하는 여자는 흑인이었다. 마르티닉 섬에서 태어난 정력적인 창녀로 표범처럼 아름다운 여자였다. 마음씨도 착할 것 같았다. 필모어는 영국인이 가진 그 돈으로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영국인과의 일이 끝난 바로 뒤에 자기가 그녀와 자겠다는 약속까지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자초지종을 바라보고 있던 프린세스는 그만 참을 수가 없었다. 모욕을 당했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필모어가 말했다. 하지만 자극이 필요하다고 했지 않아 ? ― 내가 하는 일을 보고 있으면 되지 않겠어 ? 그런 것은 보고 싶지도 않다, 차라리 숫오리라도 보고 있는 편이 낫겠다고 그녀는 말했다. 농담은 그만둬. 그가 말했다. 나는 언제나 숫오리처럼 일을 치르곤 하지. 아니, 그보다 더 멋질지도 몰라. 그러나 여자는 끝까지 말을 듣지 않았다. 마침내 필모어는 그녀를 달래기 위해 다른 여자 하나를 더 불러 그녀와 농탕을 치게 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으로 겨우 소동이 가라않았다... 필모어가 흑인 여자와 돌아왔을 때, 그녀의 눈은 타버린 재와 같이 되어 있었다. 흑인 여자를 바라보는 필모어의 눈길로 보아, 나는 흑인 여자가 어떤 이상한 짓을 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덕택에 나까지 욕망을 느꼈다. 필모어는 이러한 내 기분을 눈치챘을 것이 분명하다. 밤새도록 가만히 앉아서 보기만 한다는 것은 고문과도 같다는 것을 알았던 모양이다. 그는 호주머니에서 1백프랑 짜리 지폐를 꺼내 내 앞으로 던지면서 말했다. 우리들 중에서 가장 그것을 필요로 하는 것은 자네일 것 같군. 자, 이것을 가져. 그리고 원하는 여자를 마음대로 고르게. 왜 그런지 나는 그의 이렇나 태도가 지금까지 베풀었던 어떤 호의보다도 친밀하게 느껴졌다. 나는 고맙게 그 돈을 받아 들고, 얼른 흑인 여자에게 나하고 다시 한 번 자 달라고 신호를 보냈다. 이것이 프린세스를 격분시켰다. 여기에는 흑인 여자 말고 당신을 만족시킬 여자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는지 분명히 말해보라는 것이었다. 나는 서슴치 않고 그렇다는 대답을 했다. 또 사실이 그런 것이다 ― 이 흑인 여자는 할렘의 여왕이다. 이 여자를 보기만 해도 흥분이 된다. 그녀의 눈동자는 정액 속에서 헤엄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이미 똑바로 걸을 수도 없는 것 같았다 ―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그녀를 따라 가파로운 계단을 올라가면서, 나는 여자의 다리 사이로 손을 들이밀고 싶은 유혹에 저항할 수 없었다. 이런 일을 하면서 계단을 올라가자, 그녀는 즐거운 것처럼 미소를 띠고 돌아보며 간지럽다는 듯이 엉덩이를 비틀어 보였다. 즐거운 하룻밤이었다. 모두가 즐거운 하룻밤이었다. 모두가 다 즐거워 보였다. 마챠까지도 기분이 좋은 듯했다. 이튿날 밤, 그녀가 샴페인과 캐비어로 식사를 끝내고 또다시 한참 동안 신세 타령을 하고 나자, 필모어가 곧 여자에게 도전했다. 그에게도 이제는 고생한 보람이 돌아오는 것처럼 보였다. 이번에는 여자도 저항하지 않았다. 벌렁 드러누워 그에게 한참 동안 시달림을 당한 뒤에 드디어 일이 벌어질 단계에 이르자, 그녀는 태연한 어투로 나는 임질에 걸렸어요, 하고 고백했다. 그는 통나무 막대처럼 여자에게서 굴러 떨어졌다. 그가 부엌으로 가서 특수한 경우에 사용하는 검은 색 비누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얼마 후 그는 타월로 손을 닦으면서 내 곁에 와서 말했다 ― 원, 이럴 수가 있을까 ? 프린세스라는 년은 임질에 걸려 있어 ! 그는 상당히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한편 프린세스는 사과를 깨물면서 러시아 신문을 갖다 달라고 했다. 그녀에게는 임질 따위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세상에는 이런 것보다 더 심한 것이 있어요. 그녀는 저쪽의 자기 침대에 누운 채 열려 있는 문틈으로 우리를 향해 말했다. 겨우 필모어도 그것이 농담이라는 것을 알고, 다시 앙쥬 술병을 따면서 나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정도의 일로는 단념하지 않겠다고 그는 말했다. 물론 조심은 해야 지만... 전에도 임질에 걸린 일이 있었지... 그것은 르아부르에서였어. 어째서 그렇게 됐는지는 지금 기억할 수 없지만. 술에 취하면 그는 종종 세척을 잊곤 하는 모양이다. 임질은 그다지 두려워할 것이 못되지만, 나중에 어떻게 악화될지는 알 수 없다. 섭호선 마사지만은 질색이라고 그는 말했다. 뒷맛이 개운치 않다는 것이었다. 그가 처음으로 임질에 걸린 것은 대학생 때였다고 한다. 여자한테 옮았는지 그가 옮겨 주었는지 그것을 알 수 없다. 대학에서는 엉터리 같은 말이 나돌기 때문에 남의 이야기는 믿을 것이 못된다. 너무나도 무지한 것이다... 교수들조차도 무지했다. 교수 한 사람은 스스로 고환을 떼어 버렸다는 소문까지 났을 정도다... 어쨌든 그는 이튿날 밤 콘돔을 사용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콘돔이 찢어지지 않는 한 큰 위험은 없다. 그는 길이가 다른 여러 가지 종류의 것을 사 놓고 있었다 ― 이것이라면 절대로 안전하다고 나는 장담했다. 그러나 막상 사용하려고 하자 실패였다. 그녀에게는 지나치게 컸던 것이다. 제기랄, 나는 전혀 비정상적인 것은 아닌데 말이야. 그가 투덜거렸다. 나는 아무래도 납득할 수가 없어. 좌우간 어떤 녀석이 일을 치렀기에 임질에 걸렸지 않았겠어 ? 그 후에도 여러 가지 방법을 강구해 보았으나 모두 실패했다. 결국 그는 단념하고 말았다. 그래서 지금은 남매처럼 자면서 근친상간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마챠는 예의 사색적인 태도로 말하는 것이었다. 러시아에서는 남자가 손가락 하나 건드리지 않고 여자와 자는 경우가 많아요. 몇 주일이 지나도 그 일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거예요. 하지만 끝내 마지막에 가서는 어쩔 수 없는 거예요 ! 일단 남자가 여자를 건드리게 되면... 그 뒤에는 고통의 연속이에요 ! 이리하여 모든 노력을 다 기울여 마챠의 물건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필모어는 그녀의 임질을 고쳐 주면 작은 것이 크게 벌려지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아주 기묘한 생각이었다. 이에 그는 세척 주머니, 과망간산명 한 자루, 회전세척기, 그 밖의 여러 가지 것을 사들였다. 이러한 것들은 알리글 광장 근처에 있는 수상쩍은 헝가리인 의사의 권고에 따라 구입한 것이다. 필모어의 상사가 16세 된 어린 여자를 한 번 건드린 일이 있는데, 아마도 그 여자가 상사를 헝가리인 의사에게 소개했던 모양이다. 그 후 상사는 연성하감에 걸렸다. 그래서 또다시 헝가리인 의사의 병원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파리에서는 이런 식으로 다정한 친구를 사귀게 되는 것이다 ― 말하자면 비뇨기과적인 우정이다. 어쨌든 우리들의 엄중한 감시 하에 마챠는 자기 치료를 시작했다. 하루는 난처한 일이 생겼다. 그녀가 좌약을 삽입했는데, 거기에 달려 있는 실이 발견되지 않았다. 큰일났어요 ! 그녀는 아우성을 쳤다. 그 실이 어디 갔는지 모르겠어요. 도와주세요 ! 실이 없어졌어요. 침대 밑을 찾아봤어 ? 필모어가 물었다. 겨우 여자가 조용해졌는가 싶었으나 그것도 순간의 일이었다. 큰일났어요 ! 다시 피가 나와요. 월경은 끝났는데 아직 피가 나와요. 당신이 사온 싸구려 샴페인 때문임에 틀림없어요. 심하게 나오고 있어요. 당신은 나를 출혈시켜서 죽일 작정인가요 ? 그녀는 잠옷을 걸치고 다리 사이에 타월을 끼우고는 평소와 다름없이 거드름을 피며 나왔다. 내 인생은 언제나 이렇다니까요. 그녀가 말했다. 나는 신경쇠약에 걸렸어요. 낮에는 마냥 뛰어다니고, 밤이 되면 여전히 술에 취하고 말이에요. 파리에 왔을 때만 해도 나는 순진한 처녀였어요. 비용과 보들레밖에는 읽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 무렵에는 은행에 스위스 프랑으로 30만이나 있었으니까 마음껏 인생을 즐기려 했어요. 왜냐하면 러시아에서는 잔소리만 듣고 살아 왔거든요. 그리고 당시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예뻤기 때문에 남자들이 모두 내 앞에서 무릎을 꿇었어요. 여기서 그녀는 벨트 언저리에 늘어져 있는 살을 치켜올렸다. 내가 파리에 왔을 때도 배가 이랬다고 생각하면 곤란해요... 이렇게 된 것은 내가 매일 마시고 있는 독 때문이에요... 그 무서운 아페리티프 덕택이에요. 프랑스 인들이 정신없이 마시는 그것 말이에요... 그 무렵에 나는 어느 영화감독과 알게 되었어요. 그는 나에게 자기 영화에 꼭 출연해 달라는 것이었어요. 아가씨처럼 멋진 여자는 전세계를 다 찾아다녀도 나타나지 않을 거라면서, 매일같이 자기와 함께 자자고 설득하는 거예요. 나는 큰 바보예요. 그래서 어느 날 밤, 마침내 그에게 허락하고 말았어요. 나는 위대한 배우가 되고 싶었고, 또 그가 못된 병을 가지고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어요. 결국 나는 임질에 걸렸어요... 그러므로 이번에는 내가 그에게 병을 옮겨 주고 싶어요. 내가 세느 강에 투신한 것도 그 사람 탓이에요... 왜 웃는 거예요 ? 내가 투신한 것이 거짓말인 줄 아세요 ? 그렇다면 신문을 보여 주겠어요... 모든 신문에 내 사진이 났었으니까. 언젠가 러시아 신문을 보여주겠어요... 나를 칭찬하는 글도 쓰여 있었어요... 그런데 나는 무엇보다도 새옷이 꼭 필요해요. 이런 누추한 옷으로는 남자를 사귈 수 없지 않겠어요 ? 그리고 나는 아직 양장점에 1만 2천 프랑이나 빚을 지고 있어요... 이어서 그녀는 자기가 받기로 되어 있는 상속 재산에 대해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젊은 프랑스인 변호사가 ― 그는 상당히 옹졸한 사나이 같았으나 ― 그녀의 재산을 찾아 주려고 애를 썼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끔 그녀에게 1백 프랑씩 주었다고 한다. 프랑스 인은 모두 그렇지만 그도 역시 인색한 인간이었어요. 그녀가 설명했다. 내가 미인이기 때문에 그는 나한테서 시선을 떼지 않았어요. 늘 매달리곤 하는 것이었죠. 나는 그가 졸라대는 것이 귀찮아서 어느 날 밤에 좋다고 했어요. 이것은 단지 그를 침묵시키려 했던 것과, 가끔 주곤 하는 1백 프랑이 아쉬웠기 때문이었죠. 그녀는 잠시 말을 끊고 히스테릭하게 웃었다. 그런데 그녀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것은 너무나 우스운 일이라서 무어라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군요. 그 사람은 혼이 난 거예요. 어느 날 나한테 전화를 걸어. 곧 만나야 하겠어... 아주 중대한 일이야 라고 하는 거예요. 그를 만났더니 의사의 진단서를 보여 주는 거예요... 임질에 걸렸다는 진단서죠. 나는 그의 눈앞에서 큰 소리로 웃었어요. 나는 그때 자신이 임질에 걸렸는지 아닌지 알 리가 없지 않겠어요 ? 당신이 조르기에 허락한 것뿐이에요 라고 대꾸했더니 아무 말도 못 하더군요. 인생이란 그런 거예요... 무엇이든 의심하려 하기 때문에 안 되는 거예요. 그러면 모든 일이 엉망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이 남자는 형편없는 바보였어요. 밉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는지 여전히 나한테 반해 있었어요. 그러면서 몸조심을 하라고 애원하는 거예요. 밤새도록 몽파르나스 거리를 헤매면서 술이나 마시고 사나이들과 어울리는 짓만은 하지 말라고 하면서. 나는 미칠 정도로 너한테 반했다는 말도 하고요. 나하고 결혼할 생각이었지만, 이 일이 가족한테 알려져 그는 결국 인도네시아에 가게 되고 말았던 거예요... 여기서 그녀는 화제를 바꾸어, 동성애인 여자와의 사건을 유유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주 재미있었어요. 어느 날 밤 그 여자가 나를 길에서 주웠어요. 나는 그 무렵〈페디시〉에서 매일같이 술에 취해 있었죠. 그 여자는 나를 이 집 저 집 끌고 다니면서 테이블 밑으로 나를 애무하는 것이었어요. 드디어 나도 참을 수 없게 되고 말았어요. 그러자 이 여자는 나를 자기 아파트로 데려가, 2백 프랑을 주면서 나를 빨아 주겠다는 거예요. 나는 그렇게 하라고 했죠. 그리고 여자는 나더러 동거를 하자고 했지만, 나는 매일 밤 그런 일을 당하기가 싫었어요... 그 짓은 더욱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거든요. 또 나도 사실은 예전처럼 동성애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역시 남자와 자는 것이 좋아요. 몹시 흥분하면 자신을 억제할 수 없게 되거든요. 하지만 그렇게 하면 출혈을 해요. 출혈은 내 건강에도 안 좋아요. 나는 빈혈 증세가 있으니까요. ♧ 추운 계절이 다가오자 프린세스는 자취를 감췄다. 작은 난로 하나만 가지고는 아틀리에에서 지낼 수 없게 되었다. 침실은 냉장고와 다름이 없었고, 부엌도 그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실제로 따뜻한 곳은 난로 주위의 극히 제한된 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자 마챠는 거세한 조각가를 손에 넣었다. 이 사나이에 대해서는 그녀가 나가기 전에 미리 말해 주었다. 2, 3일이 지난 뒤 그녀는 다시 우리한테로 오겠다고 했으나 필모어가 말을 듣지 않았다. 조각가가 밤새도록 키스만 하기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어서 돌아오겠다는 것이 그녀의 구실이었다. 더구나 그녀가 밑물을 할 온수도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체념한 모양이었다. 다시는 그 촛대 같은 남자와는 같이 자지 않겠어요. 하고 말했다. 그 촛대와 같이 있으면... 신경이 곤두서요. 당신이 요정이 되어주기만 하면 나는 기꺼이 당신한테 와 있겠지만 할 수 없죠... 마챠가 사라지자 우리들의 밤은 취향이 바뀌었다. 난로 옆에 진을 치고 앉아 뜨거운 계란술을 마시면서 미국에서 살던 시절의 이야기를 했다. 우리들의 어투는, 두 번 다시 고국의 땅을 밟을 수 없다는 것을 예측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필모어는 뉴욕의 지도를 벽에 붙여 놓고 있었다. 우리는 밤새도록 뉴욕과 파리의 죄악론을 피력했다. 그럴 때마다 우리의 논의 속에는 반드시 휘트맨이 등장했다. 미국이 그 짧은 역사를 통해 배출한 사람 중에서 유일하게 고립된 인물이 바로 휘트맨이다. 휘트맨 속에 모든 미국의 광경, 그 과거와 미래, 그 탄생과 종말이 모두 부각되고 있다. 그는 미국에 존재하는 가치 있는 것을 모두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휘트맨이야말로 육체와 영혼의 시인 이었다. 처음이자 마지막 시인이다. 현재로서는 거의 해독 불가능한 소박한 상형문자로 새겨진 기념비가 바로 휘트맨이다. 그 상형문자를 읽을 수 있는 열쇠는 하나도 없다. 그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조차 이상하게 생각될 정도이다. 유럽의 언어에는 그가 불멸의 것으로 만든 정신을 나타낼 만한 적당한 말이 없다. 유럽은 예술로 포화상태가 되어 있고, 그 땅은 말라빠진 뼈로 충만해 있으며, 박물관은 약탈한 재화로 가득차 터질 듯이 되어 있다. 그러나 아직도 유럽이 갖지 못하고 있는 것은 자유롭고도 건전한 정신 ― 이것을 인간 이라고 불러도 좋다 ― 바로 그것이다. 괴테는 그 일보 직전까지 도달했다. 괴테는 존경할 만한 시민이고 현학자이며 지루한 남자이자 보편적 정신이기도 했으나, 거기에는 독일의 상표, 즉 쌍두 독수리의 각인이 새겨져 있었다. 괴테의 맑고 부드러우며 유유자적하는 태도는 독일 부르주아 계급이 졸음을 유발시키는 백치 상태에 지나지 않는다. 괴테는 모든 것이 종말이고 휘트맨은 창시이다. 이런 논의를 한 뒤, 나는 가끔 옷을 입고 산책을 나간다. 스웨터를 입고 그위에 필모어의 외투를 걸친다. 불쾌하고 음산한 추위다. 여기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 미국은 극단적인 나라라고 불린다. 과연 온도계는 지금까지 들어본 일조차 없는 추위를 기록한다. 그러나 파리의 추위는 미국으로서는 알 수 없는 추위이기도 하다. 그것은 심리적인 것이다. 외면적인 추위인 동시에 내면적인 추위이기도 하다. 여기서는 절대로 얼어붙는 일이 없지만 녹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의 비밀을 높은 울타리와 빗장과 철문과 절규와 독설과 칠칠치 못한 문지기 등으로 방비하는데, 이와 똑같이 통렬한 풍토와 추위와 더위에 대해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을 터득했던 것이다. 그들은 자기를 열심히 방어해 왔다. 방어야말로 그들의 표어이다. 방어와 보장. 이것도 그들이 위안에 빠져 썩어가기 위해서인 것이다. 음산한 겨울밤에는, 파리의 위도를 알기 위해 지도를 펼칠 필요가 없다. 그것은 북방의 도시요, 두 개골과 뼈로 메워진 늪에 튀어나온 전위의 땅이다. 브르바르를 따라 전기에 의한 싸늘한 열의 모방들이 줄지어 있다. 자외선이 투바피안은 듀퐁 체인 스토어의 손님들을 마치 탄저병에 걸린 해부용 시체처럼 보이게 한다. 투바피안 ! 이것이야말로 밤새도록 자외선이 쏟아지는 곳에서 왔다갔다 하는 고독한 거지들에게 영양을 공급하는 표어다. 등불이 있는 곳에서 반드시 약간의 열이 있다. 사람들은 독한 술과 김이 나는 블랙커피를 앞에 놓은 살찌고 안전한 녀석을 지켜보면서 온기를 손에 넣는다. 보도의 등불이 있는 곳에서는 사람들이 서로 밀치고 당기면서, 그 더워진 속옷과 썩은 냄새가 나는 입에서 동물적인 온기를 발산한다. 아마도 8블록 내지 10블록 사이에는 화려한듯싶은 분위기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윽고 암흑 속에 빠져든다. 마치 수프 냄비 속에서 얼어붙은 기름덩이 같이 기분 나쁜 고약한 암흑이다. 몇 블록이나 이어져 있는, 톱날처럼 들쭉날쭉한 연립 주택. 어느 창문이나 모두 닫혀 있다. 모든 가게가 문을 닫고 열쇠를 잠가 놓고 있다. 한 줄기 따스한 빛도 없이 면면이 이어져 있는 돌로 된 감옥이다. 어느 집에도 안에는 개와 고양이와 카나리아가 있다. 진딧물과 빈대까지도 엄중하게 감금되어 있다. 투바피안. 단 1수의 돈이 없더라도, 몇 장의 낡은 신문지를 깔고 사원의 돌계단 위에서 잠들 수 있다. 어느 문도 모두 꼭 닫혀 있어서 바람 한 점 드나들지 않는다. 좀더 좋은 것은 지하철 입구에서 자는 일이다. 거기에 가면 친구도 생긴다. 비 내리는 날의 그들을 보라. 마치 정다운 사람처럼 꼭 부둥켜안고 자는 것이다 ― 남자도 여자도 이도 다같이 섞여서 잔다. 다리가 없어도 걷는 독벌레와 침을 막기 위해 신문지로 가리고 있다. 다리 밑이나 시장의 창고에 있는 그들을 보라. 보석과도 같이 청결하고 빛나는 야채류에 비해 그들은 얼마나 더러워 보이는지 모른다. 고깃덩이가 되어 갈고리에 걸려 있는, 도살된 소나 말이나 양조차도 거기에 비하면 우리의 관심을 더 끈다. 우리는 그것을 내일 먹게 될지도 모르고, 내장도 어떤 것에 소용될 것이다. 그런데 빗속에서 자고 있는 이 불결한 거지들은 무슨 소용이 있는가 ? 우리에게 무슨 이익이 되는가 ? 녀석들은 우리를 5분쯤 슬프게 만든다. 단지 그것뿐이다. 정말이지 어떻게 된 일일까 ? 예수가 태어난 지 2천년이 되는 오늘, 빗속을 걸으면서 생각나는 밤의 사상이 바로 이것이다. 적어도 지금은 새가 오히려 충분한 먹이를 얻고 있다. 개나 고양이도 그렇다. 나는 문지기 여자의 창 옆을 지나면서 그녀의 얼음처럼 찬 시선을 온몸에 느낄 때마다, 이 세상의 새들을 모두 비틀어 죽이고 싶다는 미칠 것 같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아무리 얼어붙은 마음이라도 그 속에 한두 방울의 자비는 있을 것이다 ― 하다 못해 새한테 먹이를 줄 정도의 자비는. 그러나 나는 관념과 삶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확실히 밝힐 수는 없다. 이 두 가지를 밝은 덮개로 감싸려고 하지만 영원히 위치가 맞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해도 잘 되지 않는다. 관념은 행동과 결부되어야만 한다. 만일에 관념 속에 성도 없고 생명력도 없다면 행동은 존재하지 않는다. 관념은 사고의 진공 속에서 독자적으로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관념은 삶과 결부되어 있다 ― 긴장의 관념, 신장의 관념, 조직내의 관념 등. 만약에 단순한 관념 때문이었다면, 코페르니쿠스는 오늘날에 존재하는 대우주를 때려부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또 콜롬버스는 조혜(역주 ; 서인도 제도 북동부의 바다를 말함. 해면에 해조류가 많이 떠 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생겼다)에서 침몰했을 것이다. 관념의 미학은 풀과 꽃의 화분을 날게 하고, 사람들은 그 화분을 창가에 놓는다. 그러나 만일에 햇빛과 비가 없다면, 그 화분을 창가에 놓은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필모어의 머리는 황금에 대한 관념으로 메워져 있었다. 이것을 그는 황금의 신화 라 부르고 있었다. 나는 신화 를 좋아한다. 그러므로 그 황금에 대한 관념이 마음에 들었다. 그렇다고 황금의 노예가 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어째서 우리는 화분을, 더구나 때로는 황금의 화분을 만드는지 그 이유를 나는 알 수 없었다. 그의 이야기에 따르면, 프랑스는 그들의 황금을 지하 깊숙이, 물이 스며들지 않는 방에 감추어 놓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지하실과 통로 사이를 왕래하는 작은 기관차가 있다고 한다. 나는 그 말이 몹시 마음에 들었다. 깊고 조금도 흔들림이 없는 정적, 그 정적 속에서 황금이 섭씨 17.4도의 온도로 조용히 쉬고 있다. 한 부대가 46일과 37시간을 근무해도 프랑스 은행의 지하실에 있는 황금 모두를 계산하기에는 아직 부족하다고 그는 말한다. 이밖에도 금니, 팔지, 결혼반지 등을 공급할 만한 금이 예비로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또 80일을 지탱할 수 있는 식량이 비축되어 있고, 쌓아 올린 금괴에는 호수가 있어 고성능 폭탄에도 견딜 수 있다고 한다. 황금은 점점 더 보이지 않는 것, 즉 신화화되는 경향이 있어서 소비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이것은 대단한 일이다. 우리가 관념이나 의복이나 도덕 등에 이어서 금본위 제도를 그만둘 때 이 세상이 어떻게 될 것일까 ? 나는 그것을 생각한다. 연애의 금본위 제도 !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나 자신과 협력하고 있는 나의 관념은 금본위 제도로부터 탈피하는 일이었다. 요컨대 나의 관념은 관념의 성층권에 있어서, 그러니까 망상의 경련에 있어서 정서의 부활을 표현하고, 인간의 행위를 묘사하는 일이었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존재, 즉 반은 산양이고 반은 타이탄인 인간을 묘사하는 일이었다. 요컨대 십자가에 못 박힌 추상적인 관념으로서가 아니라 중심점(역주 ; 아폴론 신전에 안치된 둥근 돌로서, 지구의 중심점임을 표시한 것이라고 상상되었던 것)의 기초 위에 세계를 수립하는 것이었다. 여러분은 여기저기에 장치된 조각, 이용되지 않는 오아시스, 세르반테스가 보지 못한 풍차, 언덕 위를 흐르는 하천, 옆으로 5, 6개의 유방이 늘어서 있는 여자의 반신상과 만날는지도 모른다. (스트린드베리는 고갱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직까지 식물학자가 알지 못하고 있는 수목을, 큐비에(역주 ; 19세기의 프랑스 동물학자)가 몽상조차 하지 못했던 동물을, 그리고 당신밖에는 창조할 수 없었던 인간을 나는 보았다. ) 렘브란트는 그의 액면가격이 올라갔을 때 금괴와 고기만두와 휴대용 침대를 가지고 지하에 들어갔다. 황금은 지하의 사고에 속하는 언어이다. 그것은 꿈과 신화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연금술사로 돌아가려 하고 있다. 팽창하는 신화를 낳았다. 그 거짓된 알렉산드리아의 예지로 복귀하려 하고 있다. 참된 예지는 학문의 수전노들에 의해 지하의 창고에 은닉되어 있는 것이다. 그들이 자석을 가지고 허공에서 맴돌 시대가 가까워지고 있다. 한 덩어리의 지금을 발견하기 위해, 우리는 모든 장비를 갖추고 1만 피트나 올라가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 가능하다면 한 대에서, 그리고 지구의 내장과 지옥과 정신 감응에 의한 통신을 확립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이미 크론다익(역주 ; 캐나다의 유콘 강에 있는 사금 산지)은 필요치 않다. 산출량을 자랑하는 황금의 광맥도 불필요하다. 노래와 춤을 조금만 배우면 된다. 황도대를 읽고 내장을 연구하는 것으로 족하다. 지구의 포켓 속에 은닉되어 있는 모든 황금을 다시 채굴하기만 하면 된다. 이들 모든 상징을 다시 한 번 인간의 내장에서 끄집어내지 않으면 안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도구가 완성되어 있어야 한다. 먼저 우수한 항공기를 발명할 필요가 있고, 어디서 소리가 들려 오는지 식별할 필요가 있다. 엉덩이에서 폭발음이 들린다는 그것만의 이유로 기뻐해서는 안된다. 신을 공경하는 마음 따위는 필요치 않다. 경건도 불필요하다. 동경도 쓸데없다. 후회도 소용없다. 히스테리도 쓸모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 필립 다츠가 말했듯이 낙담은 절대로 불가 ! 한 것이다. 이상은 플라스 드라 트리니티에서 바마우스 카시스라는 사람으로부터 주입 받은 사상이다. 어느 토요일 오후, 나는 아직 발화하지 않은 책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사물이 신성한 점액성 농즙 속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술은 내 입안에서 쓴 약초와 같은 맛을 남기고, 우리의 위대한 서구 문명의 찌꺼기는 성자의 발톱처럼 썩고 있었다. 여자들이 곁으로 지나갔다 ― 모두가 내 눈앞에서 궁둥이를 흔들며 지나갔다. 종이 울리고, 버스가 보도로 올라와 서로 부딪쳤다. 급사가 식탁을 더러운 걸레로 훔치고, 한편 손님은 히죽히죽 웃으면서 레지를 희롱하고 있었다. 내 얼굴의 몽롱한 표정. 거나하게 취하여 예민한 감각이 마비되었다. 옆을 스치고 지나가는 여자들의 궁둥이를 물어뜯을 것만 같은 표정이 되었다. 저쪽 종루에서는 한 사람의 꼽추가 황금망치로 종을 치고 있었다. 그러자 비둘기들이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나는 책을 펼쳤다 ― 니체가 이것이야말로 독일 최고의 책 이라고 평한 책이다 ― 거기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인간은 점점 더 영리해져 빈틈없이 될 것이다. 그러나 좋아지지는 않고 행복해지지도 않으며, 행동에 있어서도 씩씩해지지는 않는다 ― 적어도 몇 세대에 걸쳐서는. 마침내 신이 인간에게서 기쁨을 찾지 못하고, 새로운 천지 창조를 위해 만물을 해방시킬 때가 오리라고 나는 예견한다. 모든 것은 이 목적을 위해 계획되고 있으며, 또 이 혁신 시대의 발생을 위해 먼 미래의 시각이 이미 정해져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하지만 그 때가 이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경과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직도 몇 천년의 긴 세월에 걸쳐, 이 그리운 옛땅에서 즐거운 생활을 보내게 될 것이다.〉 이 얼마나 멋진가 ! 적어도 백년 전에, 이 세상이 날아가 버릴 것이라는 환상을 가진 사나이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 서구의 세계가 ! 순간적으로 비바람을 막아 주는데 불과한 그들의 감옥 한구석에서 남녀가 안절부절 못하고 서성거리는 것을 보고 있으면, 나는 이 허약한 육체 속에 의연히 잠재해 있는 드라마의 가능성에 소름이 끼치는 것이다. 잿빛 벽안에서는 인간의 불꽃이 타고 있으나, 그것은 결코 큰불이 되지 못한다. 이들 남녀, 또는 망령, 인형의 망령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실에 의해 엉켜져 있는가 하고 나는 자문한다. 그들은 얼른 보기에 자유롭게 행동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갈 곳은 아무 데도 없다. 단 하나의 왕국 안에서만 그들은 자유로운 것이고, 이 속에서만 그들은 뜻대로 움직이고 있다 ― 그러나 아직 비상할 방법을 모르고 있다. 현재로서는 날아오르는 꿈은 꾸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단 한 사람도 이 지상에서 날아오를 만큼 가볍고 쾌활하게 태어나지 못한 것이다. 한때는 강력한 날개를 가졌던 독수리도 힘없이 지상에서 추락하고 말았다. 그들은 그 날개짓과 신음 소리로 우리를 현혹 시켰다. 그대 미래의 독수리여, 이 지상에 머물러라 ! 천계는 이미 탐험되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지하에 누워 있는 것 또한 공허뿐이고, 사람의 뼈와 망령뿐이다. 이 지상에 머물면서 다시 몇 천년을 헤매거라 ! 그런데 지금은 오전 3시다. 우리 방에는 두 사람의 닳고닳은 여자가 마룻바닥에서 공중제비를 하고 있다. 필모어는 벌거벗은 몸으로 술잔을 들고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그의 배는 북처럼 팽팽하고 불룩했다. 오후 3시부터 마시기 시작한 페르노 술, 샴페인, 코냑, 앙쥬 등이 모두 그의 뱃속에서 하수도처럼 부글부글 소리내고 있었다. 여자들은 로르고의 연주라도 듣는 듯이 그의 배에 귀를 가져갔다. 옷걸이 못으로 녀석의 입을 벌리고 동전이라도 던져 넣어라. 하수도가 부글부글 소리를 내면, 내 귀에는 박쥐가 날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꿈이 인공의 기교 속에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이다. 여자들이 벌거벗었다. 우리는 여자들의 궁둥이가 무엇에 찔리지 않게 하기 위해 마룻바닥을 살피고 다녔다. 여자들은 아직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 한데 궁둥이가 문제다 ! 궁둥이는 닳고 긁혀 있었으며, 샌드페이퍼로 문질러 반질반질해져 있었다. 당구공이나 문둥병 환자의 머리처럼 딱딱하고 빤짝빤짝 빛나고 있는 것이다. 벽에는 모나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그녀는 녹색잉크로 쓰인 크라코우와 나란히 북동쪽을 향하고 있었다. 왼쪽에 빨간 연필로 동그라미를 친 드루드뉴 현의 지도가 있다. 느닷없이 내 눈앞에, 반들반들하게 닦인 당구공 속에 털이 잔뜩 난 시커먼 균열이 나타났다. 두 다리가 가위처럼 나를 끼우고 있다. 그 시커멓고 봉합되지 않은 균열을 보자, 내 머리 속의 깊은 도랑이 뻐끔 입을 벌렸다. 그리고 지금까지 애를 쓰며, 또는 망연히 수집하고 분류하고 기록하고 정리하여 봉해 두었던 모든 심상과 기억이, 보도의 틈새기에서 기어나온 개미떼처럼 난잡하게 튀어나왔다. 세계는 회전을 그치고 시간이 정지했다. 내 꿈을 결합해 놓은 띠가 마구 잘려 나가고, 내장이 조발성 치매증처럼 무섭게 튀어나왔다. 나를 절대지와 대결시키는 배설이다. 내 눈에는 또다시 아무렇게나 팔다리를 벌리고 뒹구는 피카소의 여자 모습이 보였다. 그녀들의 유방에는 무수한 거미가 붙어 있고, 그 전설은 미궁 깊숙히에 간직되어 있었다. 그리고 불결한 이불 위에 영원히 잠들어 있는 모리 블룸. 세면소 문 위에 빨간 분필이 서 있고, 마돈나는 비애의 소리를 발하고 있었다. 몹시 히스테릭한 웃음소리가 터졌다. 방에는 저작근경련이 넘쳐흘렀다. 그리고 새카맣던 육체가 인광으로 빛났다. 거칠고 요란하고 완전히 억제할 수 없는 웃음소리. 그 균열마저도 나를 향해 웃고 있었다. 짙은 털 그늘에서 웃고 있는 것이다. 반들반들하게 닦여 있는 당구공의 표면을 주름투성이로 만드는 웃음이다. 혈관 속에 덫을 가진 위대한 매춘부, 그리고 사나이의 어머니. 모든 매춘부의 어머니. 짝수의 무덤 속에서 우리를 뒹굴리는 거미. 한없이 탐욕스런 녀석. 내 껍질을 벗길 정도의 웃음을 가진 악마 ! 나는 그 함몰된 분화구를 들여다보았다. 세계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러자 종소리가 들려왔다. 팔라스 스타니 슬라스의 두 수녀. 그녀들의 옷 속에서 풍기는 썩은 버터 냄새. 비가 온다는 이유로 끝내 인쇄되지 못한 선언서. 정형외과의 목적을 더욱 추진시키기 위해 행해지는 전쟁. 무명 용사의 무덤을 장식하기 위헤 전세계를 누비는 프린스 오브 웰스. 종루에서 튀어나온 박쥐. 잃어버려진 목적. 모든 아우성. 저주받은 자의 참호에서 라디오를 통해 들려 오는 신음 소리. 그 시커멓고 봉합되지 않은 균열, 그 불결한 마의 소굴, 새카만 군중들이 아우성치는 도회의 요람, 관념의 음악이 싸늘한 비곗덩어리 속으로 빠지는 도회, 질식한 유토피아 ― 마술사가 바로 여기서 태어나는 것이다. 미와 추, 빛과 혼돈 사이에서 갈라진 존재, 옆과 아래를 바라볼 때는 악마 그 자체이고, 위를 쳐다볼 때는 거룩한 천사이며, 또 날개를 가진 달팽이인 마술사. 그 균열을 들여다보면 방정식의 기호가 눈에 띈다. 균형이 있는 세계. 제로로까지 감소되다가 전혀 남는 것이 없는 세계. 반 놀든이 그 위에서 회중 전등을 휘두른 그 제로가 아니다. 조숙한 나머지 어린 나이에 환멸을 깨닫게 된 사나이의 공허한 간격이 아니라, 아라비아 숫자의 제로이고, 수학적 세계가 무한하게 튀어나오는 기호다. 별을 헤아리는 받침점이다. 빛이 몽상하고, 기계는 공기나 가벼운 사지나 그것들을 생산하는 폭약보다도 가볍다. 그 균열 속에 나는 온몸을 눈 있는 데까지 삽입하고 싶다. 그리고 미친 듯한 야금학적 눈을 맹렬히 진동시키고 싶다. 눈이 진동하면 내 귀에는 또다시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이 들인다. 무섭도록 치밀한 관찰, 미친 듯한 내성, 비참한 가락을 지닌 그 언어가 잇달아 책의 페이지에서 굴러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때로는 경쾌하고 유머러스한 감동을 주고, 때로는 오르간의 곡조처럼 부풀어, 마침내 가슴이 찢어지고 눈이 멀며 나중에는 타는 듯한 광선밖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눈부신 광채, 그것은 별의 수태 정자를 싣고 사라진다. 예술이야기, 그것은 대량학살 속에 뿌리를 뻗고 있다. 후벼진 매춘부의 음부를 들여다보면, 나는 자신의 배 밑에 있는 전세계를 느낀다. 비틀거리며 붕괴되어 가고 있는 세계, 필요 없게 되고 문둥병 환자의 머리처럼 반들거리는 세계. 이 세계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것을 모조리 털어놓을 수 있는 사나이가 있다면, 그에게는 자기가 서 있을 1평방 피트의 땅도 남지 않을 것이다. 사나이가 출현하면 세계는 그에게 덤벼들어 등뼈를 부러뜨린다. 어느 시대에는 지나치게 많은 기둥이 가로막고 있는 것이며, 인간이 번영하기에는 곪아 버린 인간성이 너무 많은 것이다. 상부 구조는 허위이고, 토대는 부들부들 떠는 거대한 불안이다. 만일에 세기가 바뀔 때 굶주림으로 인해 필사적인 표정을 눈에 띈 사나이가 출현한다면 ― 새로운 인종을 창조하기 위해 세계를 전복시키는 사나이가 출현한다면, 그들이 세계에 베푸는 사랑은 분노로 변하고, 그는 채찍이 될 것이다. 만일에 우리가 폭발하는 페이지, 상처 그리고 상처를 태우는 페이지, 신음, 눈물, 저주를 자아내는 페이지를 만난다면, 그것은 등을 위로 향한 사나이, 나머지 방어 수단이 하나밖에 없는 사나이한테서 온 그의 언어로 알면 된다. 그의 언어는 언제나 거짓말을 하는 세계의 압도적 중량보다도 강력한 것이다. 개성의 기적을 억누르기 위해 비겁자들이 발명하는 고무 도구보다도 강력하다. 만일에 인간이 자기 속에 있는 모든 것을 번역하여, 진정으로 자기가 경험한 것, 거짓 없는 자신의 진실을 기록할 만한 용기가 있다면, 그때야말로 세계는 산산이 부서질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모든 것이 날아가 버려, 어떠한 신이나 우연이나 의지도, 파편도 원자도, 이 세계를 구성해 온 파괴될 수 없는 원소도 원래대로 긁어모을 수는 없게 될 것이다. 탐욕스러운 마지막 영혼, 환희의 의미를 아는 마지막 사나이가 출현한 이래 4백년 동안에 걸쳐, 예술에 있어서나 사상에 있어서, 행동에 있어서, 끊임없이 인간의 소멸이 거듭되어 왔다. 세계는 방귀로 인해 날아가 버리고, 지금은 맥없는 방귀조차 남아 있지 않다. 필사적인 굶주림의 시선을 가진 자가 있다면, 현재의 정부, 법률, 주의, 이상, 관념, 토템, 터부에 대해 약간이나마 존경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만일에 균열 이라거나 구멍 이라 일컬어지는 것의 수수께끼를 해독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는 자가 있다면, 만일에 외설 이란 딱지가 붙은 형상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신비감을 갖는 자가 있다면, 이 세계는 조각조각 분열되고 말 것이다. 그것은 외설적인 공포이고, 이 광란하는 문명을 분화구라도 보는 듯이 바라보는 무미건조하고 불결한 견해이다. 그것은 창조적 정신과, 민족의 어머니가 그 사타구니에 가지고 있는 허무와의, 크게 입을 벌린 심연이다. 필사적인 굶주림의 정신이 출현하여 모르모트에게 비명을 지르게 한다면, 이것은 그가 섹스의 전류를 통과시키는 철사를 놓을 장소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싸늘하고 딱딱한 껍질 밑에 추잡한 균열, 결코 입을 막을 수 없는 상처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전류가 통하는 철사를 두 다리 사이에 제대로 삽입한다. 그는 배 밑을 때리고 뱃속을 휘젓는다. 고무장갑을 낄 필요는 없다. 냉정하고 지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것이 모두 껍질에 있는 것이며, 창조에 열중하는 사나이는 항상 밑으로 숨어들어 열려진 상처에, 곪아 있는 외설적인 공포에로 잠입한다. 그는 발전기를 좀더 부드러운 부분에 연결한다. 혈액과 즙액이 스며 나오기만 하면 성공이다. 마르고 열려진 분화구는 외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외설적인 것은 타성이다. 피비린내 나는 저주보다도 신을 모독하는 것은 바로 마비이다. 입을 벌린 상처밖에 남아 있지 않다면, 그것은 개구리나 박쥐나 난쟁이밖에 낳지 못하지만, 그래도 기세 있게 분출될 것이다. 모든 것은 정점에 달하건 달하지 못하건 1초 동안에 집약된다. 대지는 건강하고 유쾌하며 건조한 고지가 아니다. 그것은 바다의 노도처럼 부풀어오르고, 물결치는 우단같이 부드러운 반신상의, 추잡스럽게 팔다리를 벌린 여성이다. 그녀는 땀과 고통의 화관 밑에서 몸부림친다. 벌거벗고, 성교를 하고, 별들의 제비꽃빛 광선에 감싸인 구름 속에서 뒹군다. 풍만한 유방에서부터 희게 빛나는 허벅지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모든 것은 거친 정열 속에서 불탄다. 발작적인 격정으로 반신상을 조이는 거대한 아우성을 지르며 4계절과 세월 속을 헤맨다. 격정은 허공에 매달린 거미줄을 흔든다. 그녀는 활화산같이 타오르며 그 중심축의 궤도 위에서 조용해져 간다. 때때로 그녀는 암사슴을 닮는다. 덫에 걸려, 요란한 꽹과리 소리와 개 짖는 소리에 심장을 떨며 기다리는 암사슴이다. 사랑, 증오, 절망, 연민, 분노, 혐오 ― 유성의 간음 한가운데에 있는 이것들은 도대체 무엇인가 ? 밤이 타오르는 태양의 황홀감을 무수하게 제공할 때 전쟁, 질병, 잔혹, 공포란 도대체 무엇인가 ? 우리가 잠을 자며 씹는 이 실체 없는 것이 독이빨의 나선과 성운의 기억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 그녀, 즉 모나는 절정에 달한 쾌감의 발작 때 늘 나에게 말하는 것이다. 당신은 놀라운 사람이군요. 그리고 여기서 그녀는 내가 소멸하도록 맡겨두지만 ― 내 다리 밑에 무서운 공허의 낭떠러지를 남기지만, 내 영혼 깊숙이 숨어 있던 언어가 튀어나와 내 밑에 있는 망령들을 밝게 비추는 것이다. 나는 군중 속에서 미아가 된 인간이다. 비등하는 광선이 군중을 현혹시키고, 제로는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보고 조소할 만한 것으로까지 전락한다. 유황으로 점화되어 내 옆을 지나가는 남녀, 칼슘 제복을 입고 지옥의 문을 여는 문지기들, 목발을 의지하고 걷는 명성. 이들은 마천루 때문에 작아지고 기계 이빨을 가진 입으로 갈갈이 씹혀진다. 나는 높은 건물 사이를 빠져나가 서늘한 강가의 지점을 향해 걸어가는 동안, 해골의 늑골 사이에서 로켓과 같은 등불이 뿜어 올라가는 것을 본다. 만일에 내가 정말 그녀의 말처럼 위대하고 놀라운 인간이라면, 나의 이 노예와도 같은 백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 나는 육체와 정신을 가진 사나이다. 나는 강철 지하실로 보호받고 있지 않은 심장을 가지고 있다. 나는 환희의 순간을 몇 번 경험했다. 나는 작열하는 불꽃을 쏘아 올리며 노래했다. 적도에 대해 노래했다. 빨간 털이 있는 그녀의 다리를 노래하고, 시야에서 멀어지는 새를 노래했다. 그러나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태평양 저쪽으로 발사한 탄환은, 지구가 둥글고 비둘기가 거꾸로 날기 때문에 공간에 낙하해 버리고 말았다. 나는 테이블 건너에서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시선이 비애로 바뀐다는 것을 알았다. 비애는 그녀의 등뼈에 코를 밀어붙이고 깊숙이 퍼져나간다. 연민으로 산란해진 골수는 액체로 변화해 버린다. 그녀는 사해에 뜬 시체처럼 가볍다. 그녀의 손끝은 고민 때문에 출혈하고, 그 피는 침으로 변한다. 젖은 새벽과 함께 조종이 울리고, 종소리는 끊임없이 나의 신경섬유에 전해진다. 그 조의 혓바닥은 내 심장 속에서 춤을 추며 쇳덩어리처럼 악의를 가지고 울린다. 이 시간에 조종이 울리는 것도 기묘한 일이지만, 그보다 더 기묘한 것은 육체가 부어 올라 그녀가 밤으로 변하고, 그녀가 내뱉는 망상의 말이 이불을 물어 찢는 일이다. 나는 적도 밑에서 신음하고, 녹색 입을 가진 하이에나의 불쾌한 웃음소리를 들으며, 비단처럼 윤기 있는 고리를 가진 독수리와 노새와 반점이 있는 표범을 본다. 모두 에덴 동산에 남겨진 것들이다. 이윽고 그녀의 비애는 초대형 전함의 뱃머리같이 굵어지고, 그녀의 배수량은 내 귀에 홍수가 되어 흐른다. 역청과 사파이어는 유쾌한 신경의 들판을 거쳐 흐르고, 잔상이 겹치며, 뱃전은 물에 잠긴다. 포대가 사자의 발소리처럼 신속하게 회전하는 소리가 들리고, 그것이 구역질을 하면서 침을 흘린다. 창공이 기울어지고 별은 모두 흑색으로 변한다. 암흑의 바다는 피를 내뿜고, 음침한 별은 새로 부풀어오른 육체의 두꺼운 살점을 낳는다. 한편 머리 위에서는 새가 춤추고, 환각에 빠진 하늘에서는 유발과 유봉과, 눈이 가려진 정의의 눈과 함께 저울이 낙하한다. 여기서 말하는 모든 것은 죽은 안구의 평행선을 따라 상상의 발로써 길어간 것이다. 모든 것은 몽롱한 눈알을 가지고 본 것들이다. 무에서 무한대의 기호가 생기고, 한없이 올라가는 나선 밑에 입을 벌린 구멍이 서서히 가라앉는다. 육지와 물은 수를 결합시키고, 살로 쓴 시는 강철이나 화강암보다도 견고하다. 대지는 무한한 밤 속으로 미지의 창조를 목표 삼아 선회해 간다... 오는 나는 깊은 잠에서 깨어, 입술로는 기쁨의 저주를, 혀로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저주를 기도처럼 되풀이했다 ― 페 세 퀘 울드라 !... 페 세 퀘 울드라 !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하라. 하지만 그것은 환희를 낳는 것에 한한다. 이렇게 혼자서 중얼거리자, 수많은 군중이 내 머리에 뛰어들었다. 이미지다. 쾌활한 녀석, 무서운 녀석, 정신이 돈 녀석, 이리와 산양, 거미, 게, 날개를 벌린 매독, 언제나 자물쇠를 잠그고 또 언제나 묘지처럼 열리도록 되어 있는 자궁의 입구. 육욕, 죄, 신성. 내가 사랑하는 녀석들이 생명. 내가 사랑하는 녀석들의 실패. 녀석들이 남기고 간 말, 녀석들이 끝까지 이야기하지 않을 말. 녀석들의 뒤로 끌어가 버린 선, 악, 슬픔, 불일치, 원한. 녀석들이 벌이기 시작한 투쟁. 그러나 무엇보다도 환희다 ! 나는 옛 우상들에 관한 여러 자기 말이 내 눈에서 눈물을 떨구게 한다. 방해, 무질서, 폭력, 그 중에서도 특히 그들이 불러일으킨 증오. 그들의 기형, 그들이 스스로 택한 기괴한 스타일, 그들이 작품에 보이는 자만심, 지루함, 그들이 젖어 있는 혼돈과 혼란, 그들이 마구 주위에 쌓아올린 장애물 ― 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 나는 흥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모두 자기가 배설한 분뇨에 파묻혀 있다. 모두들 지나칠 정도로 치밀하게 만들어진 인간들이다. 사실이다. 자신도 모르게 지나칠 만큼 정교하게 만들어진 인간들을 나와 만나게 해 다오. 그러면 너를 위인과 만나게 해 주겠다. 고 말하고 싶을 정도다. 이른바 지나치게 정교하다 는 것은 내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이다. 그것은 고통스런 투쟁의 증거다. 육체의 모든 조직을 동원하여 매달려 있는 고통스런 투쟁이다. 서로 용납할 수 없는 정신의 징후와 그 상황 자체이다. 자신을 완전히 표현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도, 나는 그를 위대하게 여기지 않고 매력도 느끼지 않는다고 말할 것이다... 나는 스스로 만족하는 특질을 갖지 못한 것을 유감으로 생각한다. 예술가가 암암리에 자신을 규정하는 임무는 기존의 가치를 뒤엎는 일이다. 자기 주위의 혼돈을 그의 독자적인 질서로 만드는 일이다. 감정의 방출에 의해 죽은 것을 소생시킬 수 있도록 고민의 씨를 뿌리고 그것을 발효시키는 일이다. 그러한 임무를 깊이 생각해 보면, 나는 위대하면서도 불완전한 예술가 쪽으로 기꺼이 달려갈 수 있다. 그들의 혼란이 나에게 영양을 준다. 그들이 내뱉는 언어는 하늘로부터 받은 묘한 소리로 내게 들린다. 나는 중단이 계속되는 페이지 속에서 쓸데없는 것의 침입, 말하자면 비겁자, 거짓말쟁이, 도둑, 야만인, 비방자 등의 더러운 발자취의 말살을 보는 것이다. 서정적으로 부어오른 인후의 근육 속에서, 인간이 포기한 걸음을 다시 걷기 위해 지불되고 있을 것이 분명한 비틀거리는 노력을 보는 것이다. 일상의 번거로움과 방해의 이면에서 ― 쇠약하고 무기력해진 인간들의 값싸고 눈부신 악의의 이면에서 ― 평생토록 고생으로 끝나는 힘이, 상징이 존재해 있는 것을 본다. 질서를 창조하는 사람, 의지를 깊이 간직하고 있기에 고민과 불안의 씨를 뿌리는 사람 ― 이러한 사람은 몇 번이나 화형이나 교수형을 당할 것이 확실하다. 그처럼 숭고한 행위 뒤에는 모든 어리석음의 그늘이 잠재해 있다 ――그는 단순히 숭고한 것만이 아니라 엉망진창인 것이다. 앞서 나는 인간적인 것이야말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목표인줄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나를 소멸시킨다는 의미임을 알고 있다. 지금 나는 자랑스럽게, 나는 비인간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인간도 정부도 따르지 않고 있다는 말을 할 수 있다. 신조나 주의 같은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덜컥거리고 있는 인간성의 기구와는 일체 관계가 없다 ― 나는 대지에 따르고 있는 것이다 ! 베개를 베고 누워 있으면, 나는 관자놀이에 뿔이 돋는 것을 느낀다. 주위에서 칭찬을 받고 있는 우리 조상 모두가 침대를 에워싸고 춤추고 있는 것이 보인다. 나를 위로하고 계란을 던지며, 그 뱀의 혓바닥으로 나를 후려치고 조소하며, 그 교활한 머리로 나에게 추파를 보내고 있다. 나는 비인간적인 것이다 ! 나는 착란, 환상에 사로잡힌 의기양양한 미소를 띠고 그 말을 한다. 악어의 비가 내리더라도 나는 계속 그 말을 할 작정이다. 내 말의 배후에는 조소하고 추파를 보내며 교활한 머리를 가진 녀석들이 있다. 어떤 것은 먼 옛날에 이미 죽어서 히죽히죽 웃고 있다. 어떤 것은 마치 저작 경련증에 걸린 듯이 이빨을 드러내고 웃고 있다. 어떤 것은 씁쓸한 미소로 비웃고 있다. 영원히 계속된다는 것을 이미 경험하고, 그 결과를 체험한 조소이다. 무엇보다도 명료하게 보이는 것은 나에게 이를 드러내고 웃는 나 자신의 두 개골이다. 바람이 부는 대로 춤추고 있는 해골, 부패된 혀끝에서 언어를 발하고 있는 뱀, 배설물로 더러워지고 황홀감으로 부풀어오른 페이지가 보인다. 나는 자신의 점액, 자신의 광기, 자신의 황홀감을 육체의 지하실에 흘려 보내는 위대한 순환에 합류시킨다. 초대받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은 모든 취객의 구토 물은, 언제나 끊임없이, 민족의 역사를 내포하는 무진장한 혈관으로 흘러들 것이다. 지금 인류와 함께 하나의 종족이 존재한다. 비인간적인 인종, 예술가라는 인종이 그것이다. 그들은 미지의 충격으로 고무되어 생명이 없는 휴머니티의 형태를 취하고, 그것이 흡수하는 열과 효모에 의해 이 음습한 덩어리를 빵으로 바꾸며, 빵을 술로 바꾸고, 술을 노래로 바꾼다. 죽은 혼합물과 무기력한 광물의 찌꺼리로부터 그들은 악에 오염된 노래를 낳는다. 이 특이한 개성적인 인종은 우주를 파헤치고 모든 것을 뒤엎는다. 그 다리는 항상 피와 눈물 속에 빠져 있고, 그 손은 항상 공허하게 피안을 더듬으면서 손이 닿지 않는 신을 추구한다. 그들은 자신의 급소를 물어뜯는 괴물을 달래기 위해, 닥치는 대로 무엇이든 잘라 버린다. 그들이 이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고 파악하고자 머리털을 쥐어뜯을 때, 나는 그것을 이해한다. 그들이 발광한 야수처럼 울부짖고 질주하며 뿔로 찌를 때, 나는 그것이 옮고 그것밖에는 길이 없다는 것을 이해한다. 이 종족에 속하는 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으며 높은 곳에 서서, 자신의 내장을 끄집어내어 보이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은 전적으로 정당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렇게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 그리고 이 가공할 만한 광경에 무언가 부족한 것이 있다면 ― 전율, 공포, 광기, 황홀, 오염이 부족해 있다고 하면 ― 그것은 예술이 아니다. 그밖의 것은 모두 가짜이다. 그밖의 것은 모두가 인간적이다. 그밖의 것은 죄다 생물과 무생물에 속한다. 가령 스타브로긴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러면 나는 어떤 신성한 괴물이 높은 곳에 서서 자신의 내장을 꺼내 우리한테 던져 주는 광경을 떠올린다. 귀신이 붙은 광기 속에서 대지가 진동한다. 그것은 가공적인 개인에게 쏟아지는 재앙이 아니라, 인류의 대부분이 매몰되고 영원히 말살되는 천재지변이다. 스타브로긴은 도스토예프스키이고,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을 마비시키거나 정점으로 끌어올리는 모든 모순의 총화이다. 그에게는 지나치게 낮기 때문에 들어갈 수 없는 세계란 없고, 너무나 높기 때문에 올라가기가 무서운 장소도 없었다. 그는 심연에서 별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을 거쳐 왔다. 신비의 핵심에 몸을 담그고, 그 섬광에 의해 어둠의 깊이와 넓이를 확실하게 우리에게 비춰준 인물을 두 번 다시 대할 수 없게 된 것은 참으로 유감이다. 지금 나는 자신의 혈통을 알고 있다. 나는 자신의 성계도, 또는 가계도와 상의할 필요도 없다. 별에, 또는 내 핏속에 표시되어 있는 것에 대해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알고 있는 것은 내가 종족의 신화적 조상으로부터 발생했다는 것뿐이다. 신성한 술병을 자신의 입으로 가져가는 사나이, 시장에 끓어앉은 범죄자, 시체는 모두 악취를 발한다는 것을 알고 기뻐하는 티없는 인간, 번개를 손에 넣고 춤추는 광인, 몰래 세상을 들여다보려고 옷소매를 걷어올리는 탁발승, 세계를 발견하려고 온갖 도서관을 모두 뒤지는 편집광 ― 이와 같은 모든 것이 내 속에 녹아 있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이 나의 혼란, 의식의 혼탁을 만들어내고 있다. 만약에 내가 비인간적이었다면, 그것은 나의 세계가 그 인간적인 한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또 인간적인 것이 조리로 인해서 한계지워지고 도덕과 규범에 제한되었으며, 부패한 것과 사상에 의해 정의된, 가련하고 통탄스럽고 비참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포도즙을 목구멍으로 부어 넣는다. 그리고 이 속에서 예지를 발견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지혜는 포도로 인해 생긴 것이 아니다. 나의 광기가 포도주에 말미암은 것은 더더구나 아니다... 나는 기아와 추위 때문에 생명을 잃는, 그 높고 건조한 산맥을 우회하고 싶다. 인간도 동물도 식물도 존재하지 않는 시간과 공간의 절대, 그 초시간적 역사라는 것을 말이다. 거기서는 고독 때문에, 또는 각국어가 단순한 언어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이 발광하고, 모든 것이 시대와 맞지 않으며 조정되지 않는다. 나는 남자와 여자의 세계를 원한다. 이야기를 하지 않는 나무들(사실 이 세상에는 너무 말이 많다 !) 의 세계. 여러 곳으로 우리를 데리고 가는 강의 세계. 전설의 강이 아니라 다른 남자와 여자들, 그리고 건물과 종교와 식물과 동물들과 접촉시켜 주는 강 ― 배를 띄우고 인간이 빠져 죽는 강이다. 전설과 신화와 책과 과거의 티끌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과 역사에 빠지는 강, 그러한 강을 나는 원한다. 셰익스피어나 단테처럼 큰 바다가 되는 강, 과거의 공허 속에서도 마르지 않는 강을 나는 원한다. 그렇다, 대양을 원한다. 우리는 좀더 많은 대양을 가져야 할 것이 아닌가. 과거를 말살하는 새로운 대양을. 새로운 지형, 새로운 지세 분포, 기괴하고도 가공할 대륙을 창조하는 대양을. 파괴하는 동시에 보존하는 대양을. 항해하고 새로운 발견을 목표로 새 수평선을 향해 나갈 수 있는 대양을. 좀더 많은 대양을, 좀더 많은 동란을, 좀더 많은 전쟁을, 좀더 많은 희생을 가져야 할 것이 아닌가. 두 다리 사이에 발전기를 가진 남녀의 세계를, 순수한 분노의 세계를, 정열의 세계를, 행동의 세계를, 드라마의 세계를, 꿈의 세계를, 광기의 세계를, 쾌감의 절정을 자아내고 메마른 방귀 같은 것이 없는 세계를 가져야 할 것이 아닌가. 오늘 날이야말로 과거의 어느 때보다도 더 ― 비록 그와 같이 위대한 페이지가 단 한 페이지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 그러한 책이 요구된다고 나는 믿는다. 우리는 단편을, 파편을, 발톱을, 다소나마 원광을 함유하고 있는 것을, 다소나마 육체와 영혼을 부활시킬 수 있는 것을 찾아 나서지 않으면 안된다. 어쩌면 우리는 운명지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누구도 자신에 대해 희망을 가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록 그렇다고 하더라도 마지막 고민을, 피를 얼어붙데 하는 성난 외침을, 반항의 비명을, 투쟁의 절규를 터뜨려야 할 것이 아닌가 ! 한탄하지 말라 ! 비가, 만가를 추방하라 ! 전기, 역사, 도서관, 박물관을 추방하라 ! 시체는 죽은 자로 하여금 먹게 하라 ! 살아있는 자는 분화구 옆에서 춤을 추어야 할 것이 아닌가. 마지막 질식의 무도를 ! 그러나 춤은 춤인 것이다 ! 우리는 흘러가는 모든 것을 사랑한다. 고 우리 시대의 위대한 맹인인 밀튼이 말했다. 나는 오늘 아침 피어린 환희의 절규와 함께 눈을 뜨면서 그에 대한 것을 생각했다. 그의 강과 수목, 그가 모색한 밤의 세계 모두에 대해 생각하고 있엇다. 그렇다, 하고 나는 자신에게 말했다. 나 또한 흘러가는 것을 사랑한다. 하천, 하수도, 용암, 정액, 혈액, 담즙, 언어, 문장을. 양수가 복막을 찢고 흐를 때의 그것을 사랑한다. 고통스러울 정도로 담석이 쌓인 신장을 사랑한다. 문드러진 곳을 지나 흐르는 소변을 사랑한다. 무한히 번져 가는 임질을 사랑한다. 히스테릭한 말을 사랑한다. 설사처럼 전파하고, 병든 여러 영혼의 모습을 그려내는 문장을 사랑한다. 아마존 강이나 오리노코 강과 같이 큰 강을 사랑한다. 거기서는 모라바진과 같은 광인이 지붕 없는 배를 타고 꿈과 전설을 가르며 흘러 내려가, 마지막 하구에서 익사한다. 나는 흘러가는 모든 것을 사랑한다. 수태하지 못한 정자를 씻어내는 월경의 피조차도 사랑한다. 나는 흐르는 듯한 초서체의 글씨를 사랑한다. 비록 그것이 승문의 것이건 비교의 것이건, 비틀어져 있건 천변만화하는 것이건, 한쪽에 치우쳐 있건 말건, 나는 유전하는 모든 것을 사랑한다. 시간을 내포하고 성장하는 것, 결코 끝남이 없는 출발점으로 우리를 되돌리는 것을 사랑한다. 예언자의 부조리. 희열이라는 이름의 외설. 편집광의 예지. 도움도 되지 않을 기도를 반복하는 승려. 매춘부의 불결한 언어. 하수도에 흐르는 거품. 유방에서 흐르는 즙액. 자궁에서 흐르는 쓰디쓴 굴. 녹고 융해하고 분해하는 일체의 액체. 흐르는 동안에 정화되어 원래의 의미를 잃고, 죽음과 소멸을 향해 위대하게 순환하는 대변. 커다란 혈족 상간적 소망을 흘러가는 것이다. 시간과 함께 흐르고 피안의 위대한 상을 현세와 융합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언어 때문에 폐쇄되고 사상 때문에 마비된, 어리석고도 자살적인 소망이다. ♧ 크리스마스날 새벽 가까이 되어, 우리는 전기 회사에 다니는 흑인 여자 둘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난로 불은 꺼져 있었고, 모두들 심히 지쳐 있었기 때문에 옷을 입은 채 침대에 누웠다. 밤새도록 표범처럼 날뛰고 있던 나의 상대자는, 내가 기어오르려 했을 때는 이미 정신없이 곯아 떨어져 있었다. 나는 잠시 동안, 마치 물에 빠진 자나 질식한 자를 타고 앉아 인공호흡을 하듯이 그녀 위에 올라가 있었으나, 결국은 단념하고 나 역시 깊은 잠에 빠져들어 갔다. 나는 휴가 동안 내내 아침부터 밤까지 샴페인에 젖어 있었다 ― 아주 싸고 가장 맛이 있다는 샴페인이었다. 나는 해가 바뀌면 디죵에 가기로 되어 있었다. 그 고장이 영어 교환교수라는 하찮은 직업을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다. 자매 공화국 상호간의 이해 촉진이라는 프랑스·미국 친선협정의 일환으로 주어지는 자리였다. 필모어는 나보다도 더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기뻐하고 있었다 ― 필모어로서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내 입장에서 볼 때는, 단지 연옥의 고통이 다른 장소로 옮아간 데에 지나지 않았다. 내 앞에는 미래 따위는 있지 않았고, 그 직책에는 급료조차 없다. 프랑스·미국 친선의 복음을 전하는 특권을 누리는 것만도 행운인 셈이었다. 그러니까 이것은 부잣집 아들이나 하는 일이었다. 출발하는 전날 밤 우리는 유쾌하게 지냈다. 새벽 무렵이 되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이것이 파리의 마지막 추억이라 하여, 우리는 이 거리 저 거리를 걸었다. 성 도미니크 거리를 벗어나자 작은 광경이 나왔다. 거기에는 성 크러 드 사원이 있다. 사람들이 미사를 드리려 하고 있었다. 필모어는 아직도 머리가 흔미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자기도 미사에 가겠다고 했다. 희롱하러 가는 거야!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왠지 모르게 불안했다. 우선 나는 아직 한 번도 미사에 참석한 기억이 없었다. 둘째로 옷이 초라하고 마음도 내키지 않았다. 필모어 역시 옷차림이 말이 아니었다. 나보다 더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모자 차양은 구깃구깃하고, 외투에는 마지막으로 들렀던 술집의 톱밥이 아직 묻은 채로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서슴없이 성당으로 갔다. 기껏해야 쫓겨나기밖에 더할 것인가. 나는 눈앞에 벌어진 광경에 망연히 숨을 죽이고, 자신도 모르게 불안을 잊었다. 잠시 후 나도 겨우 어두운 광선에 눈이 익숙해졌다. 나는 필모어 뒤에서 그의 옷소매를 붙잡고 비틀거리면서 걸어나갔다. 음산한, 이 세상의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 소리가 내 귀를 덮었다. 얼빠진 듯한, 길게 꼬리를 끄는 소리가 싸늘한 돌 바닥에서 솟아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발을 끌면서 출입하는 조문객들로 가득한 거대하고도 음울한 묘지 같았다. 말하자면 저승의 대기실인 것이다. 화씨 55도, 또는 60도 정도의 기온이었다. 지하에서 들려오는 그 분명치 않은 만가 외에는 아무 음악도 없었다 ―몇천이나 되는 양배추가 어둠 속에서 애도의 흐느낌 소리를 내는 것과도 흡사했다. 흰 수의를 입은 사람들이, 도취 상태에서 두 손을 내밀면서 뜻모를 말을 내뱉으며 구걸하는 거지처럼, 절망하고 상심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있는 것이다. 이런 것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도살장과 시체 공개장과 해부실이 있다는 것도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인간이 본능적으로 그러한 장소를 피하고 있을 따름이다. 나는 길거리에서 손에 작은 기도서를 들고 열심히 기도문을 외면서 지나가는 신부와 종종 마주칠 때가 있다. 바보 같은 녀석. 나는 언제나 그를 비웃으며 혼자 중얼거렸다. 여러 가지 종류의 미치광이를 거리에서 만나곤 하지만, 신부만큼 조소를 자아내게 하는 것도 없다. 우리는 그런 것을 2천년 동안에 걸쳐 보아 왔기 때문에, 그 어리석음에 대해 완전히 무감각해진 것이다. 그러나 느닷없이 그 같은 신부의 영역 한가운데에 들어가, 신부가 마치 자명종과 같은 역할을 하는 작은 세계를 목격하게 되자, 전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순간적으로 이 모든 어리석은 행동과 입가의 경련이 의미를 갖기 시작하는 듯했다. 행사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어떤 무언극과도 같은 것이. 그것이 결코 나에게 철저한 지각 상실을 가져다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나에게 주문을 걸어 속박하고 말았다. 이와 같이 어두컴컴한 묘지가 있는 장소에는, 세계 어디를 막론하고 이런 믿기 어려운 광경이 있는 것이다 ― 이것과 같은 정도의 온도, 이와 비슷한 정도의 몽롱한 불빛, 이와 유사한 중얼거림과 길게 꼬리를 끄는 목소리가 있는 것이다. 어디를 가건 그리스도 교단에서는 약속된 일정한 시각에,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제단 앞에 기어간다. 거기는 한 손에 작은 책을, 다른 손에는 자그마한 종이나 분무기를 들고 ― 비록 이해할 수 있다고 해도 이미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 언어로 ― 무어라 중얼거린다. 그러면서 축복하는 것이다. 국가를 축복하고, 군주를 축복하고, 무기와 군함과 탄약과 수류탄을 축복하는 것이다. 하느님을 섬기는 천사와도 같은 복장을 한 소년들이 제단의 신부를 둘러싸고 알토와 소프라노를 노래한다. 철없는 양들이다. 대부분은 편평족이고, 장화에 대해 근시안적인 신부들처럼 모두 스커트를 입었으며, 또 중성이다. 그야말로 남녀 양성에 통하는 한창 때의 목소리다. 경마 기수의 혁대를 맨 J. 모레큐르의 음계에 맞춘 섹스다. 희미한 불빛 속에서, 나는 갖은 노력을 다해 이상과 같은 것을 파악했다. 황홀해지는 동시에 지각을 상실해 가고 있었다. 문명한 사회 도처에 ― 하고 나는 마음으로 생각했다. 세계 도처에 말이다. 그야말로 기적과 같은 것이다. 비가 내리건 날씨가 좋건, 우박이 떨어지건 눈이 오건, 우뢰, 번개, 전쟁, 기근, 질병 ― 그 어떤 경우에도 전혀 변함이 없는 것이다. 언제나 비슷한 정도의 온도, 비슷한 정도의 의미를 알 수 없는 중얼거림, 똑같이 레이스 장식이 달린 신발, 소프라노와 알토를 노래하는 어린 천사들. 그리고 출구 가까이에는 돈을 넣는 자동 기계가 있다 ― 천국의 역할을 대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신의 축복이 국왕, 국가, 군함, 고성능 폭탄, 전차, 비행기 등에게 비처럼 쏟아지는 것이리라. 그러기에 노동자가 그 두 팔에 힘을, 말과 소와 양을 도살할 수 있는 힘을, 쇠에 구멍을 뚫는 힘을, 남의 팬츠에 단추를 다는 힘을, 홍당무와 재봉틀과 자동차를 팔 수 있는 힘을, 곤충을 제거하는 힘을, 마구간을 청소하고 휴지통을 비우며 공중 변소를 청소하는 힘을, 신문기사에 제목을 다는 힘을, 지하철의 차표를 개찰하는 힘을 갖는 것이리라. 힘... 완력을 말이다. 약간의 완력을 지니기 위해 이토록 입술을 깨물고, 이토록 속이는 것이다 ! 철야를 한 뒤에는 반드시 맑아지는 머리로, 우리는 이곳저곳 전전하다가 뜻밖에도 그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외투 깃을 세우고 한 번도 성호를 긋지 않은 우리, 유들유들한 얼굴로 비평 비슷한 말 이외에는 한 마디도 중얼거리지 않는 우리의 모습은 상당히 남의 눈에 띄었을 것이다. 그러나 필모어가 제단 앞으로 걸어가 의식을 방해하지만 않았다면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는 출입구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성소를 구경할 수 있는 바로 가까이에도 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우리가 그곳을 지나 출구라 여겨지는 곳으로 갔을 때 ― 거기서는 한 줄기 빛이 새어들고 있었다 ― 느닷없이 한 신부가 어둠 속에서 나타나 우리를 가로막았다. 그는 어디로 가는가, 무엇을 하는가 하고 힐문했다. 우리는 아주 공손하게 출구를 찾고 있는 중이라고 대답했다. 영어로 에그지트 라 대답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갑자기 프랑스어로 출구라는 말이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신부는 아무말도 않고 우리의 팔을 꼭 붙들고는 문을 열고 ― 그것은 옆문이었다 ― 떼밀어 버렸다. 순간 우리는 눈이 멀 듯한 대낮의 밝음 속에 굴러 떨어졌다. 너무나 갑작스럽고 예기치 않은 일이었기 때문에, 보도에 자빠진 우리는 어안이 벙벙했다. 눈을 껌뻑거리면서 몇 걸음 걷다가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보니, 신부는 아직 돌층계 위에 서서 유령처럼 창백한 얼굴로 악마와 같이 음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마도 그는 마음속에서 지옥의 고통과도 같은 아픔을 맛보았을 것이다. 나중에 가서 그 일을 생각하니, 우리는 그를 원망할 마음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는, 긴 스커트를 입고 두 개골에 야릇한 모자를 쓴 신부의 모습이 하도 익살스러워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필모어도 크게 웃었다. 족히 1분 동안이나 그 자리에 서서, 이 가엾은 남색가를 비웃고 있었다. 신부는 우리를 보고 크게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러다 별안간 돌층계를 뛰어내려와 우리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성당 밖으로 나오자 녀석은 무서운 기세로 쫓아왔다. 그때 나는 이미 방어 본능이 발동하여 행동으로 옮기고 있었다. 필모어의 외투자락을 잡고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바보같이 실허, 싫어 ! 나는 뛰지는 않겠어 ! 하고 외쳤다. 꾸물거리고 있을 때가 아니야 ! 내가 소리질렀다 무사하려면 여기서 도망쳐야 해, 녀석은 마치 미치광이처럼 됐어 ! 이리하여 우리는 다리의 힘이 다할 때까지 결사적으로 도망쳤다. 디죵으로 가는 동안에도 나는 그 사건이 우스워 견딜 수 없었다. 그리고 어느 틈에 나는 잠시 플로리다에 있을 때 이와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던 일을 상기했다. 그것은 불황이 격심했던 때로서, 다른 몇천 명에 달하는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완전히 손을 들고 있었다. 나는 어느 친구와 함께 병의 모가지와 같은 토지에 갇히고 말았다. 우리는 잭슨빌에서 약 6주일 동안 수용되어 있었는데, 이 도시는 사실상 포위 공격을 당하는 꼴이었다. 이 세상의 모든 부랑자들, 지금까지 전혀 부랑자가 아니었던 자들까지도 잭슨빌에 흘러들어왔던 것이다. YMCA, 구세군, 소방서, 경찰서, 호텔, 하숙 등이 모두 콩나물 시루처럼 되었다. 문자 그대로 만원이어서, 도처에 만원 이라는 딱지가 나붙어 있었다. 잭슨빌의 주민들은 몹시 경직되었다. 내 눈에는 마치 그들이 갑옷으로 무장이라도 한 것처럼 비쳤다. 그러므로 또다시 먹을 것 걱정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먹을 것, 그리고 몸을 뉠 장소가 필요했다. 먹을 것은 남부에서 철도로 실려 왔다 ― 오렌지라거나 포도라거나 그 밖의 여러 가지 과일이. 우리는 늘 화물 창고 근처에서 서성거리며 썩은 과일을 찾았다 ― 그러나 이것마저도 거의 없었다. 어느 날 밤 나는 절망적인 기분으로 친구인 조를 선동하여, 예배를 보고 있는 유대 교회로 갔다. 그곳은 혁신파 신도들이 모이는 교회였다. 라비(역주 ; 유대교의 성직자)는 인상이 좋았다. 음악도 감동되는 점이 있었다. 유대인의 폐부를 찌르는 듯한 영탄조의 찬송가였다. 예배가 끝난 뒤 나는 랍비의 서재로 찾아가 면회를 청했다. 그는 매우 친절하게 나를 맞이해 주었다 ― 물론 그것은 내가 용무를 말하기 전의 일이지만. 그리고 곧 겁에 질렸다. 나는 단지 친구인 조와 나 자신을 위해 구원해 달라고 손을 내민 것뿐이었으나. 하지만 랍비의 눈에는, 내가 교회를 볼링 경기장으로 쓰게 빌려 달라고 하는 것처럼 비쳤던 것이다. 그는 이야기를 끝내기 위해 내가 유대인인지 아닌지를 단도직입적으로 물어 왔다. 유대인이 아니라고 대답하자 그는 몹시 화가 났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하필 유대인 성직자에게 도움을 청하러 왔느냐고 했다. 나는 솔직히 대답했다. 전서부터 나는 비유대인인 교도보다도 유대인을 더 신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랍비는 조금도 기뻐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그는 어림없는 소리 말라면서 대번에 거절했다. 나를 쫓아낼 생각에서 구세군 관계자를 소개하는 편지를 써주었다. 당신은 찾아갈 데가 여기입니다. 이 말을 내뱉고는 다른 신도를 상대하기 시작했다. 물론 구세군 역시 우리 같은 사람에게 줄 것은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만일에 우리가 25센트 짜리 동전 하나만이라도 가지고 있었다면, 마루에 깔 담요 한 장쯤은 빌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단 10센트도 가지고 있지 못했다. 우리는 공원으로 가서 벤치에 길게 드러누웠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기에 신문지를 덮었다. 아마 30분도 거기 누워 있지 않았을 것이다. 이때 순경이 와서 경고의 말도 하지 않고, 느닷없이 궁둥이를 걷어찼다. 나는 비틀거리는 다리로 일어섰다. 어떻게 보면 춤을 추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물론 춤을 추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나는 바보 같은 녀석에게 걷어차였기 때문에 그를 저주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몹시 비참한 기분이 들고 자포자기에 빠져, 폭탄으로 시청을 날려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뿐이다. 이튿날 아침 우리는 놈들의 괄시를 보복하기 위해 일찍부터 가톨릭 사제의 집 현관으로 쳐들어갔다. 이번에는 조더러 말을 하라고 했다. 그는 아일랜드 계통 사람으로 그곳 사투리를 약간 쓰고 있었다. 그리고 매우 아름다운 푸른 눈동자를 가지고 있어서, 그럴 마음만 생기면 상대를 구워삶을 수도 있는 것이다. 검정 옷을 입은 사람이 문을 열어 주었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오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으려니, 그는 다시 들어가 신부를 불렀다. 잠시 후 신부의 모습을 나타냈다. 호인인 듯싶은 신부였는데, 기관차처럼 담배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이른 아침에 나 같은 사람을 깨우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신부가 물었다. 먹을 것과 잠잘 곳을 주십시오, 하고 우리는 순진하게 대답했다. 신부는 우리를 보고 어디서 왔느냐고 했다. 뉴욕입니다. 뉴욕이라고 ? 그렇다면 되도록 빨리 돌아가도록 하시오, 젊은이들. 이 말을 마친 신부는, 뻔뻔스럽고 살이 찐 순무 같은 얼굴을 한 이 녀석은 우리의 코앞에서 탕 하고 문을 닫았다. 한 시간쯤 뒤, 술에 취한 두 척의 배처럼 비틀거리며 길을 걷다가 다시 그 신부를 만났다. 뻔뻔스럽고 순무같이 생긴 녀석이 시커먼 연기를 우리 얼굴에 내뿜으며 사라져갔다. 마치 이것이라도 먹어라 ! 라고 하는 듯이. 호화로운 리무진으로서 뒤에는 스페어 타이어가 두 개나 있었다. 그리고 신부는 큼직한 시거를 물고 핸들을 쥐고 있었다. 시거는 독하고 향기가 짙는 코로나였을 것이 분명하다. 누구한테도 건방지게 보일 자세로 앉아 있었다. 녀석이 스커트를 입었는지, 그것은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것은 녀석의 턱밑으로 늘어진 살덩어리뿐이었다 ― 그리고 50센트나 하는 향기롭고 굵은 시거와. 디죵으로 가는 도중, 나는 지난날의 그 회상에 젖어 있었다. 한 조각의 빵을 구걸했다고 해서 구더기만도 못한 대우를 받은 그 굴욕적인 순간에, 이런 말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이런 행동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실제로는 말하지도 행동하지도 못했던 것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완고할 정도로 고지식한 성질이기 때문에, 아직도 그 옛날의 굴욕과 마음의 상처에 가슴을 앓고 있었다. 공원에서 순경에게 걷어차인 것 ― 그 정도의 일은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가, 댄스의 레슨 같은 것이 아닌가 하고 남들은 말할지 모르나 ― 이 작은 아픔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나는 미국의 도처를 방랑하고, 캐나다와 멕시코에도 갔었다. 이르는 곳마다 모두 비슷한 경험을 했다. 빵이 필요하면 일렬로 마구에 매어져 죄수 행렬(역주 ; 일렬로 서서 한 손을 상대의 오른쪽 어깨에 올려놓고 하는 행진)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지구는 가는 곳마다 잿빛 사막이고, 이르는 곳마다 강철과 시멘트의 융단이 깔려 있다. 생산하라 ! 좀더 많은 너트, 좀더 많은 철조망, 좀더 많은 개의 비스킷, 좀더 많은 잔디깎기 기계, 좀더 많은 비누, 좀더 많은 칫솔, 좀더 많은 신문, 좀더 많은 교육, 좀더 많은 교회, 좀더 많은 도서관, 좀더 많은 박물관을. 전진하라 ! 시간이 절박하다. 태아는 자궁의 경관에서 삐어져 나오려 하고 있다. 더구나 그 통과를 쉽게 해줄 한 방울의 타액조차 없는 것이다. 마르고 목이 조인 분만이다. 비명도 울음소리도 없다. 세상에 행복이 있으라 ! 직장에서 발사되는 21발이 예포. 집안에서건 밖에서건 나는 원하는 대로 모자를 쓴다 고 월트는 말했다. 그러나 이것은 아직 자기 머리에 맞는 모자를 구하려면 전기의자를 향해 걸어가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면 놈들은 너한테 두 개골 모자를 줄 것이다. 꼭 맞느냐고 ?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지 않은가 ! 그리고 꼭 맞을 것이다. 너는 프랑스 같은 외국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생과 사의 두 반구를 자르는 자오선을 걸으면서, 앞에 무수한 통로가 입을 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전기의 육체 ! 민족적 영혼 ! 만조 ! 신의 성모 ! 이와 같은 시시한 것은 대관절 무슨 의미가 있는가 ? 대지는 타들어가고 균열을 낳고 있다. 남녀가 악취를 풍기를 시체 위에 난무하는 독수리처럼 번창하고, 다시 헤어져서 날아간다. 독수리는 무거운 돌처럼 구름에서 낙하한다. 독수리의 부리와 발톱, 바로 그것이 우리들인 것이다 ! 썩은 고기를 냄새 맡는 거대한 내장의 기관. 전진하라 ! 전진하라 ! 연민은 필요치 않다. 동정도 불필요하다. 사랑도 용서도 쓸데없다. 한푼도 구걸하지 말아라 ! 아무것도 주지 말아라 ! 군함, 독가스, 고성능 폭탄, 이런 것을 더욱 많이 만들어라 ! 좀더 임질 균을 만들어라 ! 좀더 연쇄상구균을 만들어라 ! 좀더 폭격기를 만들어라 ! 그러한 것을 많이 늘려야 한다 ― 마지막에는 그 저주스런 제품이 모두 날아가 버리는 것이다. 지구와 함께. 기차에서 내렸을 때, 나는 어이없는 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고등학교는 역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었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저녁 무렵, 나는 한길만을 길잡이로 삼아 목적지를 향해 걸었다. 눈이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나무들은 서리를 맞아 빛나고 있었다. 음침한 대합실처럼 보이는 큰 카페 두 군데를 지났다. 거기에는 손님이 별로 없었다. 조용하면서도 공허한 우울 ― 이것이 내가 받은 인상이었다. 화차의 큰 통과 작은 통과 기묘한 모양을 한 가마솥에서 겨자빛 분뇨가 쏟아져 나오는 절망적인 소변의 거리다. 고등학교를 흘끗 보기만 해도 나는 소름이 끼쳤다. 도무지 결심이 서지 않아, 입구에 서서 들어갈 것인가 아닌가 마음속으로 망설였다. 그러나 돌아갈 차표를 살 돈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망설임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순간적으로 필모어한테 전보를 칠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무어라 구실을 대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눈을 꼭 감고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마침 교장은 부재중이었다 ― 오늘은 나오지 않는 날인 모양이다. 키가 작은 꼽추가 나와 교감실까지 안내하겠다고 했다. 나는 그와 약간 사이를 두고 따라가면서, 절룩거리며 걷는 그 그로테스크한 모습에 마음을 빼앗겼다. 이 사나이는 작은 괴물이다 ― 유럽의 어느 사원을 찾아보아도 발견할 수 없는 괴물이다. 교감실은 넓고 살풍경했다. 내가 딱딱한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 동안, 꼽추는 교감을 찾으러 달려나갔다. 나는 문득 반가운 생각이 들었다. 그 방의 분위기가 미국에 있는 어느 자선시설의 방을 선명하게 떠올려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거기서 말재주가 좋은 녀석한테 엄중한 문초를 받기 위해 순번을 기다리곤 했던 것이다. 갑자기 문이 열리고, 교감이 거드름을 피면서 들어왔다. 나는 겨우 웃음을 참았다. 그는 보리스가 입는 것과 똑같은 프록코트를 입고, 이마에 머리가 흘려 내려와 있었다. 들고양이와 같은 눈이었다. 환영의 인사 같은 거추장스러운 일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는 다짜고짜 학생의 이름, 수업 시간, 클래스 등이 적힌 서류를 꺼냈다. 그는 나에게 할당된 석탄과 장작의 양을 말해 주고 나서, 수업 시간외에는 자유로 행동해도 좋다고 했다. 이 마지막 말이 내가 처음으로 듣는 그의 친절한 문구였다. 그 말이 다짐을 하는 듯한 어투였기 때문에 나는 곧 프랑스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았다 ― 그 육·해군, 교육 제도, 술집, 그 밖의 여러 가지 사업을 추켜세웠다. 이런 바보 같은 일이 끝난 뒤 교감은 작은 방울을 흔들었다. 그러자 아까 그 꼽추가 다시 나타나 나를 경리 사무실로 안내했다. 이곳은 분위기가 약간 달랐다. 각종 전표와 고무 도장이 지저분하게 널려 있어서 화물 역을 연상시켰다. 창백한 얼굴의 사무원들이 끝이 갈라진 펜으로 커다란 장부에 무언가 적어 넣고 있었다. 나에게 할당된 석탄과 장작을 받은 나는 꼽추와 함께 손수레를 밀어 기숙사로 향했다. 나는 사감들과 같은 동 2층의 한 방을 쓰게 되어 있었다. 사태는 점점 더 익살스러운 양상을 띠게 되었다. 다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상도 할 수 없었다. 가래침을 뱉을 통까지도 배급받을지 모른다. 전체가 마치 원정 준비라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단지 빠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배낭과 소총 ― 그리고 탄환뿐이었다. 할당받은 방은 제법 넓고, 작은 스토브가 놓여 있었다. 스토브에는 철제 침대 바로 위에서 구부러진 양철 굴뚝이 달려 있었다. 석탄과 장작을 담을 큰 상자가 문 옆에 놓여 있었다. 창문으로부터는 돌로 지은 작은 집들이 널려 있는 쓸쓸한 거리가 내다보였다. 그 거리에는 구멍가게와 빵집과 구둣방과 정육점이 있었다 ― 그곳 주인들은 한결같이 무식해 보이는 시골뜨기들이었다. 나는 벌거숭이가 된 산으로 시선을 돌렸다. 기차가 덜컥거리며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기관차의 기적이 음산하면서도 히스테릭한 비명을 질렀다. 꼽추가 스토브에 불을 피우고 나서 식사는 어떻게 할 생각이냐고 물었다. 아직 저녁을 먹기에는 좀 이른 시간이었다. 나는 외투를 입은 채 침대로 들어가 이불을 덮었다. 방 한구석에는 거의 망가지다시피 한 침실용 테이블이 있었는데, 그 안에 요강이 들어 있었다. 나는 탁상에 자명종을 놓고, 시각을 새겨 나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밀폐된 이 방에까지 한길의 창백한 불빛이 희미하게 스며들고 있었다. 나는 스토브의 굴뚝과 철사로 묶여져 있는 그 굴곡부를 멍하니 쳐다보면서, 덜컥거리며 한길을 달리는 트럭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석탄 상자가 거짓말같이 생각되었다.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석탄 상자가 있는 방을 사용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세상에 나온 이후 한 번도 난방이 된 방에서 지낸 일도 없거니와 아이들을 가르친 일도 없었다. 그리고 한 번도 무보수로 일한 적이 없었다. 나는 자유를 느끼는 동시에 속박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 선거 때, 형편없는 자들만이 입후보했는데도 불구하고 훌륭한 사람에게 표를 던지라는 호소를 듣는 기분과도 비슷했다. 고용 당한 사나이, 만물상, 사냥꾼, 부랑자, 노예선의 노예, 사이비 학자, 이, 구더기 등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유롭기는 하나 손발에 족쇄가 채워져 있는 것이다. 무료 식권을 가진 서민이지만, 이동할 체력도 없고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 것이다. 뱃전에 달라붙은 해파리와 같은 느낌이다. 무엇보다도 배가 고팠다. 시계바늘은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자명종이 울릴 때까지는 아직 충분한 시간이 있다. 실내의 그늘이 점점 짙어져 같다. 무서울 정도로 고여했다. 이 긴박한 정적이 내 신경을 날카롭게 만들었다. 작은 눈송이가 창에 쌓이기 시작했다. 멀리서 기관차가 목청을 돋구어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곧 죽음과도 같은 정적으로 돌아왔다. 스토브는 아까부터 타오르고 있으나 전혀 열기를 느낄 수 없었다. 꾸물거리고 있다가 식사를 놓치는 것이 아닌지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밤새도록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자야 한다. 나는 당황했다. 징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침대에서 뛰어내려 문을 닫고 아래층으로 갔다. 그러나 안뜰로 나갔을 때 나는 허둥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안뜰이 여럿 있고, 여기저기 층계로 이어져 있었다. 나는 건물 사이를 왔다갔다하면서 미친 사람처럼 식당을 찾았다. 어디로 가는 것인지는 모르나, 소년들이 긴 행렬을 이루고 행진하고 있는 옆을 지나갔다. 그들은 사슬에 묶인 죄수들처럼 걸어가고 있었는데, 행렬 선두에 노예의 왕초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정력적인 얼굴을 가진 사나이를 보았다. 중산 모자를 쓴 그는 나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나는 그 사람에게 식당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 공교롭게도 그는 교장선생이었다. 그는 나를 만나서 기쁜 모양이었다. 그는 여기가 마음에 드느냐, 자기가 도와줄 일은 없느냐는 것 등을 물었다. 아무런 불편도 없습니다, 하고 나는 대답했다. 그러나 약간 춥군요. 나는 생각하고 있던 것을 말했다. 그러자 교장선생은, 늘 이런 날씨가 계속되는 것은 아니라면서 나를 안심시켰다. 때때로 서리가 내리거나 눈이 날리고, 날씨가 꾸물거리기는 하지만... 라는 등 그는 장황하게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러면서 내 팔을 잡고 식당으로 안내했다. 그는 상당히 예의바르고 꼼꼼한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차차 이 사람과 마음이 통하여, 어쩌면 몹시 추운 날 같은 때 그가 나를 자기 방에 초대하여 계란술이라도 마시게 할지 모른다는 공상까지 했다. 식당 입구에 도착할 때까지 얼마 안 되는 사이에, 나는 온갖 우호적인 일을 공상했다. 공상이 1분간에 1마일의 속도로 달리고 있을 때, 식당 입구에 도착한 그는 갑자기 내 손을 잡아 악수하고 모자를 벗어 작별 인사를 했다. 나는 몹시 당황했다. 나도 모자를 약간 들었다 놓았다. 당연한 일이 아니냐고 나는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교사나 또는 경리와 스쳐 지나갈 때도 모자를 벗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때로는 하루에 같은 사람과 열 번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럴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비록 내 모자가 다 닳아빠진 고물이라 해도 인사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예의 아닌가. 어쨌거나 나는 식당을 발견했다. 이스트 사이드의 진료소처럼 벽이 타일로 되어 있었다. 전등에는 아무런 장식도 없고 식탁은 대리석이었다. 물론 대형 스토브와 거기에 연결된 굴뚝이 있었다. 저녁 식사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었다. 한 절름발이 사나이가 접시와 나이프, 포크, 포도주병 등을 들고 부지런히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한쪽 구석에서는 몇몇 젊은이가 유쾌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 자기 소개를 했다. 그들은 무척 정중하게 나를 맞아 주었다. 지나치게 공손할 정도였다. 나는 그 이유를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이윽고 식당이 사람들로 가득해졌다. 나는 일일이 그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이어서 그들은 나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고 술잔을 채우면서 노래하기 시작했다. 한 번은 갑자기 모가지 가 구멍 생각이 났네 교수대 위에 바람이 쌩쌩 일고 모가지 는 건들건들 깡충깡충 뛰듯이 몰아넣는다 제기랄, 만족이 되지도 않는걸 작은 것을 상대하면 제기랄, 껍질이 벗겨지고 큰 것을 상대하면 흰 이슬은 어디로 튕겨가는지 찌르고 돌리기도 귀찮네 제기랄, 만족이 되지도 않는걸 노래가 끝나는 동시에 꼽추가 저녁 식사를 알렸다. 이곳 사람들은 아주 재미있는 녀석들이었다. 크로아라는 녀석은 돼지 같은 대식가인데, 식탁에 앉을 때는 반드시 방귀를 뀌었다. 계속해서 13발이나 터뜨린다는 것이다. 그는 레코드 홀더였다. 또 공작님이라 불리는 녀석이 있었다. 스포츠맨으로서 저녁에 시내에 나갈 때는 의기양양하게 턱시도를 입었다. 그는 여자처럼 예쁜 용모를 가졌고, 술은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으며, 머리를 써야 하는 책은 절대로 읽지 않았다. 그의 곁에는 남부 프랑스에서 온 꼬마 폴이 앉곤 하는데, 이 사나이는 언제나 여자와의 행위밖에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매일같이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이제 나도 목요일부터는 여자 이야기를 하지 않겠어. 이 사나이와 공작님과는 서로 뜻이 맞는 사이였다. 그리고 팟세로라는 녀석이 있었다. 그는 정말 만만치 않은 녀석이었다. 의학 공부를 하고 있는데, 사방에 빚투성이였다. 노상 로사르와 비용과 라블레에 대해 논했다. 내 건너편에는 게으름쟁이 씨가 앉곤 하는데, 그는 사감들의 지도자이자 선동자이기도 했다. 1그램이라도 모자라지 않는지 조사하기 위해 고기를 늘 저울에 달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병동의 작은 방 하나를 점령하고 있었다. 그의 강적은 경리인데, 경리는 모두에게 미움을 사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 사이가 나쁘다는 것이 게으름쟁이씨의 명성에 조금도 금이 가지는 않았다. 게으름쟁이씨와 절친한 것이 르페니얼(고심 참담)씨였다. 그는 독수리 같은 얼굴을 가진 완고한 자로서, 극도로 절약하면서 돈놀이를 하고 있었다. 알베르히트 듈러의 조각과 비슷했다 ― 중세 독일 기사의 신전을 구성하고 있는 완강, 음울, 편협, 비굴, 불행, 불운, 내성과 같은 특징을 가진 악마의 모든 소질을 혼합한 사나이로서 분명한 유대인이었다. 어쨌든 그는 내가 부임한 지 얼마 후 교통 사고로 죽고 말았다. 그 덕택에 나는 23프랑이란 돈을 영원히 갚지 않아도 되었다. 내 옆에 앉곤 하던 르노를 제외한 다른 녀석들은 지금 모두 내 기억에서 사라지고 없다. 그들은 이 세상을 기계 기술자, 건축가, 치과 의사, 약제사, 교사 등이 꾸려 나갈 수 있다고 믿는 밥맛없는 인간의 범주에 속해 있었다. 그들은 나중에 가서 자기 신발이 흙을 털게 될 멍청이들과 다른 것이 전혀 없었다. 모든 의미에서 제로였다. 훌륭한, 또는 가련한 시민의 핵심을 이룰 무와 같은 녀석들이었다. 그들은 걸신들린 듯이 처먹고 다음 요리가 나오면 제일 먼저 차지하려고 날뛰는 그런 녀석들이었다. 밤에는 돼지처럼 자고, 불만의 소리 하나도 내지 않았다. 명랑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우울하지도 않았다. 단테가 지옥의 문에 인계한 무관심한 인간의 동료인 것이다. 부스럼 딱지와 같다. 나는 기숙사에서 근무가 없을 때는 저녁을 먹고 곧 시내로 나가는 습관이 붙었다. 시내 중심에는 카페가 있었다 ― 크고 쓸쓸한 건물로서, 반쯤 조는 듯한 디죵의 상인들이 여기 모여 트럼프를 치거나 음악을 들었다. 카페 내부는 훈훈했다. 이 도시에서 말할 것이 있다면 고작 이 정도였다. 좌석도 제법 푹신했다. 또 몇 명의 매춘부가 드나들면서 한 잔의 맥주, 한 잔의 커피를 위해 남자 옆에 바싹 붙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음악이라고는 하지만 말이 아니었다. 그것이 음악이라니 어이가 없을 정도다. 겨울의 디죵처럼 답답한 곳에서는 프랑스의 오케스트라 소리만큼 시끄럽고 신경에 거슬리는 것도 없다. 특히 그 가련한 여자의 오케스트라 소리는. 모든 것이 아무렇게나 마구 소리를 내고, 무미건조한 수학 같은 리듬이다. 그야말로 치솔의 위생적 밀도이다. 한 시간당, 몇십 프랑에 허덕이며 긁어대는 연주 ― 그리고 맨 나중에 악마가 마무리를 짓는 것이다. 우울 바로 그것이다 ! 마치 늙은 유클리트가 물구나무를 하고 청산가리를 들이킨 것과 같다. 관념의 영역이 남아 있을 여유가 없이 이성에 의해 철저히 탐험되었기 때문에, 음악이 될 여지가 전혀 남지 못하고, 만일에 남아 있다고 하면 단지 아코디언의 공허한 슬랫뿐이다. 거기서 바람이 들어와 에테르를 갈갈이 찢어 놓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전초 지잠 같은 것과 관련시켜 음악을 논한다는 것은, 무덤 속에 들어가 샴페인을 몽상하는 것과 같은 일일 것이다. 나로서는 음악 같은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여자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토록 모든 것이 음산하고 싸늘하며 삭막한 잿빛이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다가, 카페의 문에 『카르간튜어』에서 인용한 문구가 새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카페의 내부는 시체 공개장과 비슷했다. 그렇더라도 전진 인 것이다 ! 한가한 시간은 남아돌 정도였으나 돈이 한푼도 없었다. 하루 2,3시간의 회화 수업, 그것이 전부다. 그 가련한 녀석들에게 영어를 가르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들이 여간 불쌍하지 않았다. 오전에는『존 질핀스 라이트』를 열심히 하고, 오후에는 사어 연습을 했다. 나는 앞서 버질을 읽거나『헤르만과 드로티아』와 같이 뜻도 모를 시시한 것을 읽으면서 무익하게 보낸 유쾌한 시대의 일을 생각했다. 그 미치광이와 같은 짓 ! 학문, 텅 비어 있는 빵 바구니 ! 나는『파우스트』를 거꾸로 욀 수 있는 칼에 대해 생각했다. 칼은 작품을 쓸 때마다 그가 영원불멸의 존재라고 믿는 괴테를 들먹거리며, 싫증이 날 정도로 칭찬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돈 많은 여자에게 달라붙어서, 갈아입을 내의 하나 얻어낼 재간조차 없는 녀석인 것이다. 식량을 기다리는 행렬과 참호로 끝나는 지난날의 이와 같은 연애에는 무언가 외설적인 데가 있다. 환자가 헬더포나 초대형 전함이나 고성능 대포에 성수를 뿌리도록 내버려두는 이 같은 정신착란적 소란에는 어딘가 외설적인 데가 있다. 고전을 뱃속 가득 채워 놓고 있는 자는 누구나 할 것 없이 인류의 적이다. 나는 프랑스·미국의 친선이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여기 왔다 ― 닥치는 대로 약탈을 하고, 전대미문의 고통과 비참을 야기시키면서도 항구 평화의 수립을 꿈꾸고 있는 사자의 심부름꾼으로 온 것이다. 제기랄 ! 모두들 내가 무슨 말을 하리라고 기대할 것이다.『풀잎』에 대해서일까 ? 관세 장벽에 대해서일까 ? 「독립 선언서」에 대해서일까 ? 최근의 갱 사냥에 대해서일까 ? 무엇에 대해 이야기할 것인지 그것만이라도 알고 싶을 것이다. 좋다, 그렇다면 가르쳐 주겠다 ― 나는 지금까지 한 마디도 그런 것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나는 연애의 생리학이란 수업을 가지고 잔치를 벌였다. 코끼리는 어떻게 정욕을 충족시키는가 ― 이것이 나의 강의였다. 이 소문이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나갔다. 이틀째 강의 때부터 빈자리가 하나도 없게 되었다. 최초의 영어 수업이 끝났을 때, 그들은 강의실밖에 서서 나를 기다렸다. 우리는 대단히 친밀한 사이가 되었다. 그들은 전혀 상식에 벗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듯이 여러 가지 것을 질문했다. 나는 그들에게 계속 질문을 하도록 유도했다. 좀더 심한 질문을 하도록 부추겼다. 무엇이건 질문하라 ! ― 이것이 나의 표어였다. 나는 자유로운 정신을 가진 나라로부터 전권대사로 파견된 것이다. 나는 열과 성의와 창조를 위해 여기 온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하고 어느 유명한 천문학자는 말하고 있다. 물질계는 풍문으로 들은 이야기처럼 사라지고, 환상처럼 무로 소멸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학문이라는 이름의 텅 빈 빵 바구니 밑에 깔린 일반적 감정인 듯하다. 나는 그것을 믿지 않는다. 그런 얼빠진 녀석들이 우리 목구멍에 부어넣는 것은 믿지 않는다. 다음 수업 시간이 될 때까지 읽을 만한 책이 없을 때는 기숙사에 가서 사감들과 잡담을 했다. 그들은 유쾌할 정도로 현재의 일에 대해서는 무지했다 ― 특히 예술계에 대해서는. 학생들에 못지 않을 만큼 무지했다. 그러므로 나는 출구가 없는 작은 정신병원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때로는 소년들이 아치 밑에서 서성거리다가, 더러운 쓰레기통에 떨어진 빵덩어리를 주워 들고 행진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나는 계속 굶주리고 있었다. 왜냐하면, 잠자리가 겨우 따뜻해지기 시작하는 한밤중의 엉뚱한 시간에 아침을 먹으러 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멀건 커피가 든 큰 주발, 하얀 빵덩어리. 그러나 여기에 버터는 없었다. 점심은 강낭콩이나 완두콩. 여기에 식욕을 돋구는 듯이 보이게 하기 위해 작은 고깃덩어리가 던져져 있었다. 죄수나 바위를 뚫는 인부가 먹는 식사다. 더구나 포도주도 형편없는 것이었다. 물을 타서 불리고 있는 것이다. 칼로리는 있으나 요리는 없었다. 모든 것은 경리 담당자의 책임이다. 모두들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믿지 않았다. 그는 단지 우리를 연명시켜 주기 위해서만 급료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치질이나 화농균에 걸려 있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우리가 예민한 혀를 가지고 있는지, 이리의 위를 가지고 있는지도 묻지 않았다. 하지만 묻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는 몇십 그램으로 몇백 킬로와트의 에너지를 발생시키기 위해 고용되어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마력이란 말로 표현되었다. 모든 것이 세밀하게 장부에 기입되었다. 창백한 얼굴을 한 사무원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써넣기만 하는 것이다. 차변과 대변, 페이지 중앙에는 빨간 선이 그려져 있었다. 나는 거의 언제나 주린 배를 움켜쥐고 안뜰에서 서성거렸다. 약간 정신이 나간 것 같았다. 가련한 샤를 왕과 같다 ― 다만 나에게는 농탕을 칠 상대인 오티드 샴디베드가 없을 뿐이다. 나는 종종 학생들로부터 담배를 얻어 피우지 않으면 안되었다. 쉬는 시간이면 가끔 그들과 같이 약간의 마른 빵을 씹었다. 스토브를 계속 피워 놓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할당받은 장작은 이미 바닥이 나 있었다. 서기한테 약간의 장작을 얻기 위해서는 별의별 잔소리를 다 들어야 했다. 마지막에는 아라비안인처럼 거리에 나가 장작을 줍지 않으면 안되었다. 디죵 거리에서 주울 수 있는 장작은 아주 조금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약간 무리를 해서 원정한 덕택으로 묘한 구역에 들어서게 되었다. 분명치는 않으나 필리페르 파피용 ― 고인이 된 음악가인 듯하다 ― 이라는 사람의 이름을 딴 좁은 거리였던 것 같다. 거기에는 창녀촌이 있었다. 그 부근은 언제나 번화했다. 음식 냄새가 나고 빨래 냄새가 났다. 때때로 나는 가엾은 천치들이 그 안에서 우글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내가 백화점에서 부딪치는 이 도시 중심부의 사람들보다도 부유한 것 같았다. 나는 몸을 녹이기 위해 종종 그런 일을 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도 같은 이유에서 그랬을 것이다. 한 잔의 커피나마 마실 기회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모두가 춥고 고독하며, 약간 정신이 돈 것 같았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할 무렵이면 거리 전체가 모두 미친 듯이 보였다. 매주 목요일에는 한길을 아무리 왔다갔다해도 한가로운 녀석은 하나도 만날 수 없었다. 6,7만 ― 또는 그 이상일 것이다 ― 의 인간이 털내의를 입은 채,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아무 일도 않으면서 화물차 몇대분의 대변을 배설하고 있는 것이다. 여자 오케스트라가「메리 위두」를 하고 있었다. 큰 호텔의 은제 식기류. 돌과 나무가 조금씩 썩어가고 있는 공작의 저택. 서리를 맞고 비명을 지르는 나무들. 끊임없이 들리는 둔탁한 나막신 소리. 괴테의 죽음인지 탄생인지를 기념하는 대학제. 그 모두가 바보스런 짓이다. 모두들 등을 펴고 하품을 하고 있었다. 한길에서 안뜰로 들어서면, 나는 언제나 끝없는 무익감에 사로잡힌다. 안팎이 모두 춥고 공허했다. 앙금과도 같은 삭막. 책과 학문의 안개가 거리를 뒤덮고 있었다. 과거의 잔재를 태우면서, 안뜰을 둘러싸고 교실이 늘어서 있었다. 북국의 삼림 속에서 볼 수 있는 통나무로 된 집이다. 그 안에서 학자선생들이 악덕을 퍼뜨리고 있다. 칠판에는 쓸데없는 것들이 씌어져 있다. 미래의 공화국 시민들은 그런 것을 잊어버리고 평생을 지낼 것이다. 때때로 차고 옆의 큰 응접실에 부형들이 초대되어 왔다. 그 방에는 몰리에르, 라신, 코르네이유, 볼테르와 같은 지난날의 영웅들의 흉상이 장식되어 있었다(비용이나 라플레나 랭보의 흉상은 하나도 없다). 어쨌든 그들은 이 근엄한 밀실에서 회합을 하는 것이다. 학부형들과 젊은이의 정신을 단련시키기 위해 국가가 고용하고 있는 괴뢰들. 정신을 더욱 매력적인 것으로 하기 위해 항상 이와 같은 단련 법이 취해지고 있으며, 이와 같은 조원술이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때로는 소년들도 온다 ― 장차 시의 화원을 장식하기 위해 어린이 방에서 옮겨져 올 작은 해바라기들. 소년들 중에는 찢어진 슈미즈로 더러워진 고무나무도 있다. 그들 모두는 밤의 장막이 드리워지기가 바쁘게 기숙사의 귀중한 인생을 찾아 뛰쳐나간다. 기숙사 ! 홍등이 빛나는 곳, 화재경보처럼 종이 울리는 곳, 교육의 밀실에 도달하려고 모두가 기어오르기 때문에 발판이 닳아서 홈이 파진곳. 그리고 교사라는 것이 있다. 처음 며칠 동안은 나도 그들 몇몇 사람과 악수를 했고, 물론 아치 밑에서 만나게 되면 언제나 모자를 벗고 인사했다. 그러나 흉금을 털어놓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어느 한적한 곳으로 가서 술잔이라도 나누는 일은 전혀 없었다. 그런 것은 애당초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의 대부분은 마치 서둘러 대변이라도 보고 온 사람 같았다. 어쨌거나 나는 또 하나의 계급사회에 뛰어든 것이다. 그들은 나 같은 사람과는 이 한 마리도 나누어 가지려 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의 얼굴만 보아도 가슴이 답답해지기 때문에, 녀석들이 다가오는 것을 보면 속으로 저주를 퍼부었다. 멀리 기둥에 기대어 서서 입 가장자리에 담배를 물고 모자를 깊숙이 쓰고 있다가, 녀석들이 말을 걸 만한 거리에 접근하면 크게 침을 뱉고 모자를 벗는 것이다. 나는 일부러 입을 열어 날씨에 대한 인사를 나눌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다만 가만히 내뱉기만 하는 것이다. 똥이나 먹어라, 재크 녀석 ! 이런 욕설을 퍼붓는 것이다. 1주일이 자나자 나는 마치 평생 동안 여기 있었던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떨쳐버릴 수 없는 무섭고도 언짢은 악몽을 꾸고 있는 듯했다. 그 생각을 하면 언제나 혼수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곳에 오기 며칠 전부터 나는 이미 그러한 기분이 들어 있었다. 밤이 온다. 그러면 사람들은 몽롱한 불빛 밑에서 쥐새끼처럼 집으로 돌아간다. 나무들이 다이아몬드의 첨단처럼 날카로운 악의를 가지고 빛나고 있다. 나는 그와 같은 정경을 몇 백 번이나 생각했다. 역에서 고등학교에 올 때까지, 그것은 단치히의 회랑을 꿰뚫은 큰 보도처럼 가장자리가 들쭉날쭉하고 균열 져서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수의를 입고 뒤엉켜 죽은 자의 길. 정어리의 등뼈. 고등학교 그 자체가 눈 덮인 호수에서 솟아오른 것처럼 보였다. 물구나무를 선 산의 첨단이, 파라다이스를 위해 신인지 악마인지가 턱시도를 입고 가루를 빻고 있는 지구의 중심부를 향하고 있었다. 태양이 빛나고 있었는지 아니지는 기억에 없다. 기억하고 있는 것은 단지 창연한 언덕 사이로 철도 노선이 뚫린 부근, 그 너머의 얼어붙은 늪에서 불어오는 싸늘하고 끈적거리는 안개뿐이다. 역 가까이에 수로가 있었다. 아니면 시냇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노란 하늘 밑에 숨어 있었고, 점점 높아지고 있는 둑의 사면에는 땅에 달라붙은 듯한 작은 집이 있었다. 어딘가에 군대의 막사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왜냐하면, 남부 베트남 출신의 누런 피부를 가진 사나이를 종종 만났기 때문이다 ― 아편쟁이 얼굴을 한 작은 사나이가 대패 밥으로 싼 빛바랜 해골처럼 헐렁한 군복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이 고장 전체에 감돌고 있는 중세적 유풍은 도저히 파악할 수가 없고 또 제어할 수도 없었다. 나는 쉴새없이 뒤를 돌아보며, 포크에 찔린 게와 같은 모습을 하고 길을 걷고 있었다. 생 미셸 사원의 정면에 붙어 있는 기름진 작은 괴물들, 그 배판과 같은 인형들이 내 뒤를 딸라 구부러진 길을 걸어오는 것이다. 생 미셸의 전면 전체가 한밤이 되면 서화첩과 같은 경관을 나타내어, 문자가 인쇄되어 있는 페이지를 사람들에게 들이댔다. 불이 꺼지면 그 인물들은 빛이 바래어, 문자처럼 평평하고 생기를 잃은 것이 된다. 이 때 그것은(정면은) 장엄해졌다. 낡고 들쭉날쭉한 이 균열 속에서 얼빠진 밤바람이 노래하고, 싸늘하고 경직된 레이스 장식과 같은 돌 위에 안개와 서리가 허연 앱생과 같이 침을 흘렸다. 그 교회가 서 있는 곳은 모든 안과 거죽이 뒤바뀐 듯이 보였다. 교회 그 자체가 몇 세기에 걸친 비와 눈 때문에 토대가 어긋나 버린 모양이다. 그것은 에드가르 키네 광장에 있는데, 노새의 시체처럼 바람을 향해 움츠리고 있었다. 뤼드 라 모네에서는 바람이 백발을 흩날리듯 불어왔다. 그것은 합승 자동차와 20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의 자유스러운 통행을 방해하는, 말을 매는 흰 말뚝을 선회하여 불어오는 것이다. 나는 새벽에 이 출구를 빠져나오면서 때때로 비틀거렸다. 탐욕스러운 수도승처럼 두건이 달린 승복으로 몸을 감싼 루노 씨가, 16세기의 언어로 나에게 여러 가지 서곡을 연주해 주었다. 나는 루노 씨와 보조를 맞추어 ― 달은 찢어진 기구처럼 탁한 하늘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 곧 초절계에 빠져들었다. 루노 씨의 언변은 정밀했고, 살구처럼 건조했으면, 브란덴베르크 사람처럼 저음이었다. 지난해의 벼락처럼 이 사원의 구석구석까지 울리는 심각한 저음으로, 그는 항상 괴테나 피히테로부터 곧장 나를 향해 덤벼들었다. 유카탄의 토인이여, 잰지바르의 토인이여, 티에라 델 푸에고 사람이여, 흰 가루를 뒤집어 쓴 돼지 가죽으로부터 나를 구출해 다오 ! 북국이 내 주위에 겹겹이 쌓이고 있다. 얼음의 피요르드, 창백한 밀고자의 등뼈, 광란하는 등불, 에트너 화산에서 에게헤까지 눈사태처럼 번져 가는 외설적인 기독교도의 찬송가. 모든 것이 쇳조각처럼 얼어붙고, 사고는 빙설에 파묻혔으며, 지혜로운 굴뚝새의 우울한 재앙을 통해 이한테 물린 성도의 숨막히는 입가심 소리가 들린다. 나는 창백해져서 모직물로 몸을 감싸고 무력해져 있다. 그러나 이것은 아무런 관계도 없다. 뼛속까지 창백해져 있으나, 싸늘한 알칼리기가 있고 새프런 빛으로 물든 손가락이 있다. 창백하다. 분명히 그렇지만, 학문과 형제도 없는가 하면 카톨릭의 심정도 가지고 있지 않다. 나 이전에 엘베 강을 항해했던 사람들처럼 창백하고 무자비하다. 나는 술을, 하늘을, 불가사의하고도 훨씬 친근한 것을 바라본다. 발밑의 눈은 바람에 불려 질주하고, 날려가고, 찌르고,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높이 피어오르고, 낙하하고, 흩어지고, 비말이 되어 사방으로 날아간다. 햇빛은 없다. 밀물이 몰려드는 소리도 없다. 부서지는 파도 소리도 없다. 싸늘한 북풍은 가시 달린 뾰족한 화살이다. 그것은 얼음처럼 차고 악의를 가지고 있다. 탐욕스럽고 섬광을 발하고 있으며 마비시킨다. 거리는 꼬부라진 팔꿈치 위에서 외면을 한다. 뚜렷한 시선, 험상스런 일별로 무너진다. 격자무늬 세공을 따라 비틀거리고 교회의 안과 밖을 한 바퀴 회전시킨다. 조각을 무너뜨리고 기념비를 두들겨 부수며 나무를 뿌리째 뽑아 놓는다. 풀을 경직시키고 대지로부터 향기를 빼앗아 간다. 나뭇잎은 시멘트처럼 우울해지고, 아무리 이슬을 받아도 두 번 다시 빛나지 않는다. 어떠한 달빛도 생기를 잃은 그 상태를 은빛으로 되돌리지 못한다. 계절은 완전히 정지하여 정체되고, 나무들은 위축하여 시들어진다. 수레는 부드러운 비파처럼 둔탁한 소리를 내면서 운모의 바퀴 자국을 더듬어 나간다. 엷게 눈이 덮여 있는 언덕의 움푹한 곳에서 알맹이 없는 디죵이 잠잔다. 밤중에 잠을 깨고 걸어다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만일에 있다고 하면, 그것은 쪽빛 격자를 향해 남쪽으로 걸어가는 불안한 영혼뿐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눈을 뜨고 멍청해져 있다. 방황하고 있는 유령, 이 도살장의 기하학적 냉기 속에서 위협받은 한 사람의 백인인 나는 누구인가 ?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 나는 인간의 악의에 차고 냉혹한 벽 속으로 떨어져 간다. 싸늘한 호수 속으로 가라앉은 하얀 모습. 내 위에 솟아 있는 두 개골의 산. 나는 한 대로 낙하한다. 쪽빛으로 물든 백악의 발자취. 그 암흑의 통로에 있는 대지는 발소리를 알고 있다. 떨리는 날개, 허덕임, 전율. 내 귀에는 학문이 야유 당하는 소리가 들린다. 몇몇 그림자가 상승하고, 판자로 만든 노란 날개를 가진 박쥐의 끈끈한 분비물이 높이 날아올라 변화해 나간다. 열차가 충돌하고 쇠사슬이 울린다. 기관차가 연기를 토하고 콧소리를 내며 증기를 뿜어 올리는 소리가 들린다. 모든 것은 반복되는 냄새, 노란 찌꺼기, 신에 대한 기도이다. 그것이 웨디킨스가 있는 많은 안개를 통해 들려오는 것이다. 디죵의 훨씬 아래쪽, 북극권 훨씬 아래쪽의 중심부에 아잘리스 신(역주 ; 그리스 신화에서, 트로이를 공격중인 아킬레스에게 가담한 용사)이 서 있다. 그의 어깨는 연자매에 묶이고, 감람 열매는 으깨졌으며, 녹색 늪에서는 울어대는 개구리가 넘친다. 서리와 눈, 한 대, 무거운 학문, 연한 커피, 버터 없는 빵, 완두콩이 들어 있는 수프, 돼지고기 통조림 속에 든 강낭콩, 곰팡이가 슨 치즈, 값싼 포도주. 이것이 죄수들을 모두 변비에 걸리게 했다. 그리고 이들이 딱딱한 대변을 볼 땐 화장실 파이프가 얼어붙어 있다. 대변은 개미 둑처럼 층층이 쌓여 올라간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마루에 누지 않으면 안된다. 대변은 그대로 굳어지고 얼어붙어 녹을 때를 기다린다. 일요일마다 꼽추가 손수레를 밀고 와서 딱딱하게 언 대변을 빗자루와 부삽으로 깨뜨려 싣고, 마비된 한 다리를 절면서 손수레를 다시 끌고 간다. 복도에는 화장실 종이가 너저분하게 널리고, 이것이 파리를 잡는 끈끈이처럼 발에 달라붙는다. 기후가 누그러지면 악취가 코를 찌른다. 40마일이나 떨어진 윈체스터에서도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아침에 내가 그 대변 위쪽에 칫솔을 들고 서 있으면, 너무나 냄새가 지독하기 때문에 머리가 빙빙 돈다. 나는 빨간 프란넬 셔츠 차림으로 그 주위에서 원을 그리며 구멍에 토해낼 때를 기다린다. 이것은 마치 베르디의 가극 중에서 아리아 하나를 노래하는 것과도 같다 ― 도르래와 수동 펌프가 있는 합창이다. 나는 밤중에 참을 수가 없게 될 때는 차고 바로 옆에 있는 교감의 전용 변소로 달려간다. 나의 변기는 언제나 피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그의 화장실 역시 물은 흐르고 있지 않으나, 그래도 쭈그리고 앉을 만한 쾌적함은 있다. 나는 존경의 표시로, 그를 위해 작은 덩어리를 남겨 두고 온다. 언제나 저녁 식사가 끝날 무렵이 되면, 야경꾼이 기운을 북돋아 주기 위해서 찾아온다. 내가 이 학교에서 친밀감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그 사나이뿐이다. 그는 하찮은 사나이다. 초롱을 들고 열쇠 꾸러미를 가지고 있다. 자동 인형처럼 집요하게 밤을 새워 가면서 야경을 돈다. 퀴퀴한 냄새가 나는 치즈가 배급되면 그는 포도주 한 잔을 마시러 온다. 한 손을 내밀고 서 있는 것이다. 머리칼은 마스티프 개처럼 무섭고 또 철사와 같다. 뺨은 새빨갛고 턱수염에 눈이 달라붙어 희게 빛난다. 한 두 마디 입속으로 중얼거리며 꼽추가 술병을 들고 나타난다. 그러면 두 다리를 벌리고 고개를 쳐들어 천천히 들이마신다. 그것이 나에게는 목구멍으로 홍옥을 흘려 넣는 것처럼 보였다. 그 동작은 무언가 내 마음을 붙잡는 것이 있었다. 마치 이 세상의 사랑과 연민 따위를 한 모금에 삼켜 버리는 것 같았다. 그가 술을 마시고 나서 주위를 한 번 둘러보며 우리에게 미소를 던질 때, 나는 세계가 산산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그것은 심연 저쪽에서 던져 오는 미소였다. 악취를 발하는 모든 문명 세계가 구덩이 밑바닥에 진흙처럼 깔리고, 그 위에서 이 비틀거리는 미소가 신기루같이 흔들리는 것이다. 그것은 밤이 되어 내가 돌아왔을 때 맞이해 주는 것과 같은 미소이다. 그러한 어느 날 밤의 일이 생각난다. 그것은 입구에 서서, 이 노인의 순찰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영원히 기다려도 좋을 만큼 편한 기분으로 있었다. 30분쯤 기다렸을 때 겨우 그가 문을 열어 주었다. 나는 느긋하고 여유 있는 기분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모든 것을 이해했다. 학교 앞의 비틀린 그물 같은 가지가 있는 고목, 밤사이에 색깔이 달라져, 지금은 선명한 곡선을 그리고 있는 한 길 너머의 집들, 시베리아의 광야를 달리는 열차 소리, 유클리트가 그리는 철책, 하늘, 깊이 파인 짐수레의 바퀴 자국. 갑자기 어디서인지 모르게 두 연인이 나타났다. 그들은 두서너 걸음 걸을 때마다 멈춰 서서 포옹했다. 나는 눈으로 그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자 귀로 그 발소리를 쫓아갔다. 갑자기 멈춰서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서 천천히 걸어가는 발소리가 들려 왔다. 그들이 손 난간에 기대었을 때, 두 사람의 몸이 이완되고 무너져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포옹을 위해 근육을 경직시켰을 때, 삐걱거리는 두 사람의 구두 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시내를 향해 걸어갔다. 꼬불꼬불한 가로로 나가, 석탄처럼 검은 물이 흐르는 거울 같은 하수구를 향해 걸어갔다. 거기에는 무언가 이상한 것이 있었다. 디죵 전체를 찾아보아도 이 두 사람 같은 커플은 없을 것이다. 한편 노인은 순찰을 하고 있었다. 열쇠가 부딪치는 소리, 착실한 기계처럼 걷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마지막으로 차고 앞을 지나 앞쪽에 있는 거대한 아치의 문을 열려는 소리가 들렸다. 열쇠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그의 손은 떨리고 사고는 마비되어 있었다. 문이 활짝 열렸을 때 그의 머리 위, 즉 예배당 지붕 위에 찬란한 성좌가 보였다. 모든 문에 자물쇠를 잠기고, 모든 빚장이 내려졌다. 모든 책이 닫혀졌다. 밤의 장막이 깊이 드리워졌다. 칼끝처럼 예리하고 편집광처럼 주정하면서. 거기에 무한한 공허가 있었다. 예배당 위에 승정의 관처럼 성좌가 씌워져 있었다. 겨울의 몇 달 동안, 그것은 밤마다 예배당 지붕 위에 낮게 드리워져 있었다. 찬란하게. 비수의 칼끝, 눈부시게 밝은 공허. 노인은 내 뒤를 따라 차고 모퉁이까지 왔다. 문이 소리도 없이 닫혀졌다. 그에게 잘 자라는 인사를 했을 때의 그 필사적이고도 절망적인 미소를 나는 분명히 보았다. 매몰된 세계의 상변에서 번뜩이는 유성과도 같은 미소였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그가 식당에 서서 머리를 뒤로 젖히고 목구멍으로 홍옥을 흘려 넣는 것을 보았다. 지중해가 완전히 그의 옆으로 매몰되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 오렌지 숲, 삼나무 숲, 날개가 있는 조각, 목조 사원, 푸른 바다, 굳어진 가면, 신비적인 수, 신화의 새, 벽옥의 하늘, 독수리 새끼, 밝은 후미, 눈먼 거리의 음악가, 수염을 기른 영웅들. 그리고 모든 것이 사라졌다. 북국의 눈사태에 묻혔다. 매몰되어 영원히 죽어 버렸다. 기억. 황량스러운 희망. 순간 나는 차도에서 망설였다. 수의, 관에 덮는 천, 말 못하는 것이 그 공허에 달라붙어 있는 것이다. 이윽고 나는 자갈이 깔린 창가의 길을 걸어 아치와 기둥과 철계단을 빠져나갔다. 모든 것이 굳게 잠겨져 있었다. 겨울 내내 닫혀 있는 것이다. 기숙사로 통하는 아치가 보였다. 음울하고 서리가 낀 창문을 통해 희미한 빛이 계단으로 새어나오고 있었다. 도처에 페인트가 벗겨져 있었다. 돌은 울퉁불퉁했다. 손 난간은 이울어지고 돌 바닥은 흠뻑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들은 계단 위에 있는 희미하고 불그스레한 빛을 받아 허옇고 멀건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 나는 땀을 흘리고 공포를 느끼면서 작은 탑의 마지막 계단을 올라갔다. 암흑 속에서 손으로 더듬어 인기척 없는 복도를 찾았다. 어느 방도 모두 텅 비어 있고 자물쇠가 잠겨 있었으며 노후해 있었다. 내 손은 벽을 따라 열쇠구멍을 찾았다. 문의 손잡이를 잡았을 때 공포가 엄습해 왔다. 무언가가 내 뒤통수를 붙들고 뒤로 당기고 있는 듯했다. 나는 방안에 한 걸음 들여놓자 곧 문을 걸었다. 그것은 내가 밤마다 행하는 기적이었다. 목도 조여지지 않고 도끼로 찍히지도 않으면서 방에 들어가는 기적이다. 쥐들이 복도에서 달려가는 소리가 들리고 머리 위에서 들보가 삐꺽하는 소리가 들렸다. 등불은 불타는 유황같이 빛나고, 전혀 통풍이 되지 않는 방안은 속을 메스껍게 만드는 냄새로 가득했다. 한쪽 구석에는 내가 놓아 둔 채 그대로인 석탄 상자가 있었다. 내 귀에는 정적이 나이애가라 폭포 소리처럼 짙었다. 고독. 두렵고 공허한 동경과, 공포가 있는 고독. 방 안 전체가 사고의 대상이 된다. 자기 자신과 나의 사고와 공포 이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주 기묘한 것을 생각할 수도 있다. 춤을 출 수도 있다. 침을 뱉을 수도 있다. 얼굴을 찌프리고 저주하면 오열할 수도 있다 ― 그러나 아무도 이것을 모른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 이러한 절대적 고독을 생각하기만 해도 나를 미치게 하는 데 충분하다. 그것은 깨끗한 출산과 마찬가지다. 모든 것을 잘라내는 것이다. 유리되고 벌거벗었으며 고독하다. 행복한 동시에 고민이 있다. 때는 그대의 손바닥 안에 있다. 1초 1초가 산처럼 무겁게 그대를 짓누른다. 그대는 이 속에 빠진다. 사막, 바다, 호수, 대양. 때는 고기를 자르는 도끼처럼 새겨진다. 무. 세계. 나인 동시에 내가 아니다. 우마하라무라. 모든 것은 명칭이 있지 않으면 안된다. 무엇이든 배우고 시험하며 경험하지 않으면 안된다. 자기 집처럼 편안하게 지내세요, 당신. 정적이 분화구의 사면처럼 내려앉는다. 기관차는 저 멀리 황령한 언덕을 대야금 지대를 향해 전전하면서 그 상품을 끌고 간다. 강철과 무쇠의 침대 위를 회전해 나간다. 지면에 찌꺼기와 재와 보랏빛 광석을 뿌리면서. 화차 안에는 켈프 재, 철판, 침곡, 선재, 판금, 엷은 판자, 합판, 엷은 조각, 낡은 포가, 졸레스 광석 등이 실려 있다. U-80 밀리미터 내지 그 이상인 윤기, 앵글로 노르만 양식 건축의 멋진 전형. 통행인, 남색가, 용광로, 염기성 전로, 발전기, 변압기, 선철 주물, 구리 덩어리 등이 통과한다. 일반 대중, 보행자, 계간자, 금붕어, 유리실로 만든 종려나무, 울어대는 노새. 모든 것이 통로를 자유로 순환한다. 프라스 듀 프레질에는 라벤다 빛 눈이 있다. 순간적으로 알고 지낸 여자가 생각난다. 그것은 자신의 비참이 만들어낸 사슬과도 비슷하다. 모두 염주처럼 꿰어져 있다. 헤어져 사는 불안, 태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공포. 자궁 입구에는 항상 자물쇠가 잠겨 있다. 공포와 열망. 핏속 깊이 있는 낙원의 손잡이. 피안. 언제나 피안이다. 그것은 모두 배꼽에서 출발했을 것이 틀림없다. 그들은 탯줄을 자르고 그대의 궁둥이를 철썩 때린다. 그리고는 정신 차려 ! 하고 소리 지른다. 그대는 세계로 뛰쳐나온다. 표류해서 나온다. 키가 없는 배. 그대는 별을 쳐다보고, 이어서 자기 배꼽을 본다. 그대의 모든 곳에 눈이 생긴다 ― 겨드랑이 밑에, 입술 사이에, 털구멍에, 발바닥에. 먼 것이 가까워진다. 가까운 것이 멀어진다. 내부의 외부. 끊임없는 유동. 껍질을 벗어 던진다. 내부를 뒤집고 밖으로 나온다. 이리하여 그대는 해마다 표류하다가 마지막에는 가장 중심부에서 자기를 발견한다. 또 여기서 그대는 서서히 썩어가고 조금씩 붕괴하여 또 흩어진다. 나중에는 다만 그대의 이름만이 남을 뿐이다. ♧ 봄이 되어, 가까스로 나는 감옥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그것도 뜻하지 않은 행운 덕분이었다. 어는 날, 칼이 전보로, 위층 에 결원이 생겼다고 알려왔다. 그 일자리를 맡은 결심을 하면 돌아올 여비를 보내주겠다고 한다. 나는 회답의 전보를 쳤다. 그리고 돈이 도착하자마자 역으로 달아나듯이 달려갔다. 교장이나 어느 누구에게도 한 마디 인사도 하지 않고, 이른바 프랑스식 작별이라는 것이다. 이내 나는 다시금 2페이지에서 말한 호텔로 갔다. 거기에 칼이 묵고 있는 것이다. 그는 알몸으로 방의 입구로 나 다. 비번인 날 밤이어서, 언제나처럼 침대에 여자 한 명이 있었다. 저 여자에게 신경 쓰지 말게. 하고 그는 말햇다. 잠들어 있어. 자네, 여자가 필요하면 저 여자하고 자도 돼. 저 여자는 나쁘지 않아. 그는 이불을 젖히고, 그 여자의 몸매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나는 이내 여자와 자는 일 따위는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나는 너무 기분이 곤두서 있었다. 마치 탈옥한 사나이 같았다.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싶을 뿐이었다. 역에서 이리로 올 때까지, 긴 꿈이라도 꾸고 있는 듯했다. 몇해 동안이나 멀리 나가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다. 의자에 앉아 방안을 차분히 바라보고 있는 동안에, 겨우 또 파리로 돌아왔음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칼의 방이다. 틀림없다. 다람쥐 통과 변소가 하나로 되어 있는 듯한 방이다. 테이블 위는 그가 사용하고 있는 휴대용 타이프라이터를 올려놓을 여지도 없을 정도였다. 그는 여자와 함께 지내고 있든 그렇지 않든 간에, 언제나 이 모양인 것이다. 책의 윗머리에 금박이 입혀진『파우스트』위에는 언제나 사전이 펼쳐진 채로 놓여 있고, 담뱃갑이나 베레모, 붉은 포도주병, 편지, 원고, 낡은 신문, 수채화 그림도구, 찻잔, 더러운 양말, 이쑤시개, 크루센 염, 콘돔 따위가 언제나 사방에 흐트러져 있는 것이다. 세척기 속에는 귤껍질이나 햄 샌드위치 찌꺼기가 들어 있었다. 찬장에 먹을 게 있어. 하고 그는 말했다. 마음대로 찾아 먹어요 ! 나는 마침 주사를 놓으려 하고 있던 참이라서. 나는 그가 말한 샌드위치와 먹다 남은 치즈 조각을 발견하였다. 그가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스스로 아르지롤 주사를 놓고 있는 동안에, 약간의 포도주를 마시며 샌드위치와 치즈를 먹었다. 내게 보내준 자네 편지 속의 괴테론은 마음에 들었어. 하고 그는 불결한 팬티로 주사 바늘을 닦으면서 말하였다. 그 회담을 지금부터 말하겠어 ― 그걸 내 책에 써넣고 있는 중이야. 곤란하게도 자네는 독일인이 아니라서 말야. 독일인이 아니면 괴테를 이해할 수 없어. 제기랄, 그걸 지금 자네한테 설명하는 게 아닌데. 모두 책 속에 설명이 되어 있어... 그런데 나는 지금, 또 새 여자를 손에 넣었네 ― 이 여자가 아냐, 이 여자는 약간 머저리 같아. 적어도 며칠 전에 그 여자를 손에 넣을 때까지는 그랬어. 그녀가 되돌아올지 확실히는 알 수 없지만, 자네가 그쪽에 가 있을 동안, 그녀와 함께 지내고 있었다구. 지난번에 여자의 부모가 찾아와서 데려가 버렸어. 딸이 겨우 열 다섯 살밖에 안되었다고 지껄어대면서 말야. 속임수를 쓸 작정이냐는 거야. 부모들도 나를 보고 깜짝 놀란 모양이야... 나는 웃기 시작하였다. 그처럼 시끄러운 일에 스스로 끼여들다니, 정말 칼이 할 법한 일이다. 무얼 웃고 있나? 하고 그는 말했다. 자칫하면 그 일 때문에 나는 감옥에 들어갈지도 모른다구. 다행히 나는 그녀를 임신시키지는 않았어. 이상한 얘기지만 말야. 왜냐하면 그녀가 적당한 주의를 결코 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하지만, 무엇이나를 구해주었을 것 같은가? 적어도 나는 이렇게 생각해.『파우스트』덕분이야. 그렇다구 ! 그녀의 아버지가 우연히 책상 위에 파우스트가 놓여 있는 걸 보았어. 그리고 내게 독일어를 아는 가고 묻는 거야.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고 있다가, 문득 돌아다보니, 그녀의 아버지가 내 서적들을 모두 살펴보고 있더군. 다행히 나는 셰익스피어도 펼쳐진 채로 놓아두고 있었어. 이걸 보고 아버지가 꽤 감동을 한 모양이야. 당신은 확실히 매우 진지한 인물 이라고 그러지 않겠어. 그 딸은? ― 아무 말도 하지 않았나? 딸은 아주 겁을 먹고 있었어. 실은 말야, 그녀가 내게 왔을 때, 작은 시계를 갖고 있었다구. 매우 흥분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그 시계를 찾아낼 수가 없는 거야. 그러자 어머니는 시계가 발견되지 않으면 경찰을 부르겠다고 떠들더군. 하지만 아무튼 이 방이 엉망이 아닌가. 내가 구석구석을 모조리 뒤져보았지만 ― 그 거지 같은 시계가 안 나오는 거야. 어머니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며 잔뜩 화를 내더군. 그런 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나는 어머니가 좋아졌어. 딸보다 얼굴이 잘 생겼어. 아 ― 어머니에게 보내려고 쓰기 시작한 편지를 보여주지. 나는 그녀에게 반했어... 그녀의 어머니에게 말인가? 그래, 나쁜가? 어머니를 먼저 만났으면, 나는 딸은 상대도 하지 않았을 거야. 그 딸이 겨우 열 다섯 살이라는 걸 내가 어떻게 알겠나? 여자하고 자기 전에 네 나이는 몇이냐고 묻는 녀석도 없으니까 말야. 안 그래? 죠, 어쩐지 그 이야기는 이상한데. 나를 비웃고 있는 건 아니겠지. 내가 자네를 비웃는다고? 아 ― 이걸 보라구. 이렇게 말하고, 그는 그 딸이 그린 수채화를 내게 보여주었다 ― 약간 귀여운 그림이다 ― 나이프와 한 조각의 빵, 식탁, 찻잔 등의 그림 전체에 고심의 흔적이 보였다. 그녀는 내게 반해 있었어. 하고 그는 말한다. 마치 어린애 같았어. 이를 닦는 것에서부터 모자 쓰는 법까지 가르쳐 주어야 했다구. 여기 ― 이 사탕 과자를 보게 ! 매일 사탕 과자를 사주었지 ― 이걸 좋아해서 말야. 그래, 부모가 데리러 왔을 때, 그녀는 어떻게 대응했나? 한바탕 소란을 피웠나? 잠깐 울었지만, 그 뿐이야. 어쩔 도리가 없잖아. 아직 성년이 되어 있지 않으니까... 나는 앞으로 두 번 다시 그녀를 만나지 않고, 편지도 보내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않을 수 없었어. 그래서 지금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 거야 ― 그녀가 이대로 멀어져 갈 것인가, 아니면 되돌아올 것인가 하고... 그녀가 여기에 왔을 때는 처녀였다구. 그래서 문제는 앞으로 언제까지 그녀가 사내와 자지 않고 견뎌나갈 수 있겠느냐는 점이야. 여기 있을 때에도 그녀는 아직 만족하지 않았으니까. 나는 힘이 빠져 녹초가 되었었다구. 이때는 이미 침대 위의 여자는 잠이 깨어 눈을 비비고 있었다. 이 여자도 내게는 앳되고 사랑스럽게 보였다. 모습은 나쁘지 않지만, 자세히 보니, 아주 멍청해 보였다. 우리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를 재빨리 알고 싶어했다. 이 여자는 이 호텔에 있어. 하고 칼은 말했다. 3층이야. 이 여자 방에 가고 싶은가? 내가 이야기해 주겠어. 가고 싶은지 어떤지, 나는 스스로도 알 수 없었지만, 칼이 또 그녀와 시작하는 것을 보고 있다가,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우선 그녀가 너무 피로하지 않은 가고 물어보았다. 하긴 이건 쓸데없는 질문이다. 매춘부가 다리 가랑이도 벌릴 수 없을 만큼 피로해지는 일은 절대로 없다. 개중에는 행위 중에 잠들 수 있는 여자도 있는 것이다. 아무튼 우리는 그녀의 방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그러면 나로서도, 그날 밤의 방값을 호텔 주인에게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아침이 되어, 나는 아래쪽의 작은 공원이 바라다 보이는 방 하나를 빌렸다. 그 공원에는 샌드위치맨이 언제나 점심 도시락을 먹으러 찾아왔다. 정오가 되어, 나는 함께 아침 식사를 하려고 칼을 불렀다. 그와 반 놀든은 내가 없는 동안에 새 습관을 만들고 있었다 ― 즉 매일 아침 식사를 하러 쿠포르로 가는 것이다. 왜 쿠포르로 가나? 하고 나는 물었다. 왜 쿠포르로 가느냐고? 하고 칼이 말한다. 그건 말야, 쿠포르에선 언제나 죽이 나오거든. 죽을 먹으면 변통이 좋아지기 때문이지. ― 아, 그렇겠군. 하고 나는 말하였다. 이리하여 다시금 옛날과 똑같은 일이 시작되었다. 우리 세 사람은 함께 근무처에 왕복하였다. 사소한 말다툼이나 쓸모 없는 불화도 있었다. 반 놀든은 여전히 여자 때문에 복통을 일으키고, 복부에서 불결한 것을 씻어내고 있었다. 다만 지금은 새로운 기분 전환 법을 발견하고 있었다. 그 편이, 마스터베이션을 하기보다는 언짢은 기분이 적어진다는 것이다. 이를 그가 털어놓고 말했을 때, 나는 아연해졌다. 이러한 사나이에게 스스로 사정하는 쾌감이 있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가 그 방법을 설명했을 때, 나는 더욱 아연해졌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 새로운 묘기는 그가 발명 했다고 한다. 사과의 씨를 파낸 다음, 그 속에 콜드크림을 바른다구. 너무 빨리 녹지 않을 정도로 말야. 한 번 시험해 보라구 ! 처음에는 머리가 이상해지리만큼 멍해지지만... 아무튼 싸구려 방식이고, 또 그다지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런데 하고 그는 갑자기 화제를 돌리며 말했다. 자네 친구인 필모어 말야. 입원하고 있어. 그 녀석은 미쳐버린 모양이야. 아무튼 녀석의 여자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어. 녀석이 프랑스인 여자와 지내고 있었다구. 자네가 없을 동안에 말야. 노상 지독하게 싸우고 있었어. 그 여자라는 게 몸집이 크고 건강한 ― 야수 같은 여자야. 나는 그녀에게 장난스레 손을 댈 생각은 없지만, 자칫 잘못하면 그녀가 눈알이라도 도려내지 않을까 싶어 겁이 날 정도라구. 필모어는 언제나 얼굴이나 손에 할퀴어진 상처를 입은 채로 돌아다니고 있었어. 그녀도 때로는 걷어채이고 있었나봐 ― 혹은 노상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프랑스 여자라는 게 어떤 건지 자네도 알고 있겠지 ― 정욕에 미쳐버리면 이성이고 나발이고 없다니까. 분명히 내가 없는 동안에,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필모어는 이야기를 들으니 애처로워졌다. 내게는 꽤 친절히 해준 사나이이다. 반 놀든과 헤어지자, 나는 버스를 타고, 이내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에서는 그가 완전한 정신 이상 상태이냐의 여부를... 그 진단을 아직 내리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2층의 독방에 있으면서, 여느 환자들과 마찬가지고 마음대로 지내도록 허용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갔을 때, 그는 마침 목욕을 끝낸 참이었다. 내 모습을 보자, 그는 울기 시작하였다. 모든 게 때가 늦어버렸어. 하고 그는 이내 말했다. 내가 미쳐버렸다는 거야 ― 그리고 매독에 걸린 모양이야. 과대 망상광이라는 거야. 그는 침대에 쓰러지며 소리 없이 울었다. 잠시 울고 나서, 고개를 들고 싱긋 웃었다 ― 꼭 잠에서 깨어난 참새 같았다. 왜 나를 이렇게 사치스런 방에 들여놓을까? 하고 그는 말했다. 왜 나를 싸구려 병실에 들여보내지 않지? ― 혹은 정신병원에라도? 이런 방의 비용은 지불하기가 벅차다구. 내 돈은 이제 5백 달러밖에 남아 있지 않아. 그거야, 자네를 여기에 들여놓은 까닭은. 하고 그는 말했다. 그 돈이 없어지면 재빨리 옮기겠지. 너무 걱정하지 말라구. 내 말을 듣고, 그의 마음이 움직인 모양이다. 왜냐하면 내가 말을 끝내자, 곧 그는 줄이 딸린 시계와 지갑, 대학 동창회의 기념 핀 따위를 내게 건네주었기 때문이다. 이걸 잘 간직하고 있어 주기 바라네. 하고 그는 말하였다. 이곳의 개새끼들은 내 소지품을 모조리 빼앗아가려 하고 있다구. 이렇게 말하고 별안간 웃기 시작하였다. 그 기분 나쁜 ― 하나도 우스워 보이지 않는 ― 웃음, 제 정신을 갖고 있든 갖고 있지 않든 간에, 미치광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러한 웃음이다. 나는 알 수 있어. 자네도 나를 미치광이라고 생각하겠지. 하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한 짓에 대한 보상을 하고 싶은 거야. 나는 결혼을 하고 싶어. 알겠나, 나는 자신이 임질에 걸려 있었던 걸 알지 못했던 거야. 나는 그 여자에게 임질을 옮기고, 그리고 임신시켜 버렸어. 내가 의사에게 말했다구. 나는 어찌 됐든 상관없지만, 그러나 우선 어쨌든 결혼시켜 달라고 말야. 의사는 좀더 좋아질 때까지 기다리라고 고집을 부리는 거야 ― 하지만 나는 결코 좋아질 턱이 없음을 알고 있어. 이제 끝장이야. 나는 이렇게 그가 말하는 걸 듣고 있으면서, 마음속으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나로선 그의 신상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튼 그 여자를 만나 사정을 설명해 주겠다고 그에게 약속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는 나에게, 그녀 옆에 있으면서 위로해 주기를 원했다. 자네에게 맡겨도 된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나는 그의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무슨 말을 하든 알았다고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내게는 그가 완전히 미쳐버렸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 다만 신경이 곤두서 있는 듯했다. 전형적인 앵글로 색슨적 위기이며, 도의심의 분출이다. 나는 그 여자를 몹시 만나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모든 일의 진상을 파악하고 싶었다. 그 이튿날, 나는 그녀를 찾아갔다. 그녀는 라틴 구에 살고 있었다. 내가 누구인가를 알게 되자, 매우 정중해졌다. 지네트라고 스스로 이름을 밝힌 그녀는, 꽤 몸집이 크고 건장한 농부 타입의 여자로, 앞니 하나가 빠져 있었다. 활력이 넘치고, 그 눈동자에는 일조의 광기 어린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우선 그녀는 울었지만, 이윽고 내가 그녀의 조·조 ― 그녀는 그를 이렇게 불렀다 ― 의 옛친구임을 알고는,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백포도주 두 병을 손에 들고 되돌아왔다. 나는 그대로 거기에 머물러 그녀와 저녁 식사를 함께 하기로 하였다 ― 그녀가 그러라고 끝까지 우겨댔던 것이다. 술을 마시는 동안, 그녀는 들떠서 쾌활하게 떠들어대었다. 그런가 하면 울적해하곤 하였다. 나는 아무것도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 자동으로 감겨지는 기계처럼, 그녀가 혼자서 계속 이야기한 때문이다. 그녀가 특히 걱정하고 있는 것은, 그가 퇴원했을 때에, 이전의 일자리에 근무할 수 있겠느냐는 점이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부모는 유복하지만, 그녀가 부모로부터 절연을 당하고 있다고 한다. 부모가 그녀의 방종한 생활을 용서할 수 없었다. 특히 그를 용서하고 있지 않았다 ― 그가 무법자이고, 더욱이 미국인이라는 이유로. 확실히 그가 이전의 일자리에 근무할 수 있다고 보증해 달라고 그녀가 애원하므로, 나는 망설이지 않고 보증해 주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의 말 ― 즉 그가 결혼할 작정으로 있다는 것 ―을 믿어도 좋을지 가르쳐 달라고 애원한다. 글세 지금 뱃속의 아기가 있는 데다 임질에 걸려 있잖아요. 그러니 도저히 프랑스 남자를 상대로 놀며 지낼 수는 없어요. 그건 빤한 얘기 아녜요. 물론 나는 그녀를 안심시켰다. 그건 나도 알고 있었다 ― 다만 알 수 없는 것은, 대체 왜 필모어가 그녀에게 빠져들었는가 하는 점이었다. 하지만 하나씩 처리해 가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은 그녀를 위로하는 게 내 책무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생각나는 대로 그녀에게 적당히 거짓말을 해가면서, 모든 일이 잘 되어갈 것이다. 어린애의 이름은 내가 지어주겠다는 등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런데 별안간, 이 여자가 아이를 낳는다는 게 ― 특히 장님인 아이가 태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게 ― 약간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를 되도록 완곡하게 설명하였다. 그런 말을 해도, 어쩔 수 없어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나는 그 사람의 아이를 갖고 싶은 걸요. 설령 그 아이가 장님이라도? 하고 나는 물었다. 어머, 지독해. 그런 말 듣기 싫어요 ! 하고 그녀는 신음하듯이 말했다. 그런 말은 하지 말아요 ! 하지만 역시 나는 그 말을 하는 게 내 책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히스테릭해져서 해마처럼 울기 시작하고, 또 술을 들이켰다. 그리고 이내 소란스레 웃어대었다. 자신들이 침대에 들어가면 언제나 맹렬하게 맞붙었음을 생각하니 우습다고 말하며 자지러지게 웃어대었다. 그 사람은 말예요. 내가 그이와 침대에서 서로 맞붙어 씨름을 하는 걸 좋아했어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이는 짐승이에요. 내가 식사를 하고 있을 때, 그녀의 친구가 훌쩍 들어왔다 ― 복도의 맨 첫째 방에 살고 있는 몸집이 작고 젊은 여자이다. 지네트는 이내 내게 술을 사오게 하였다. 되돌아오니, 그녀들은 분명히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지네트의 친구인 이 이베트라는 여자는, 경찰을 도와주고 있다고 한다. 일종의 미끼 이리라고는 나는 추측했다. 적어도 그녀는 내가 그렇게 믿도록 만들려 하고 있었다. 그녀가 단순한 매춘부라는 것은 우선 확실하다. 하지만 그녀는 경찰이나 경찰이 하는 일에 대한 일종의 강박관념을 갖고 있었다. 식사를 하고 있는 동안, 두 사람은 내게 뮈제트 무도장에 함께 가자고 권유하였다. 들떠서 쾌활하게 떠들어대고 싶어하고 있었다 ― 조·조가 입원하고 있기 때문에, 지네트는 쓸쓸해 견딜 수 없는 것이다. 나는 근무를 하기 때문에 안되지만, 비번인 날 밤에라도 두 사람을 만나러 오겠다고 말했다. 덧붙여, 당신들을 위해 사용할 돈은 한푼도 갖고 있지 않다고 분명히 말해주었다. 이 말을 듣고, 지네트는 벼락을 맞은 것처럼 놀란 모양이지만, 그런 것은 어떻든 상관없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실제로 자신이 얾나 화려한 여자인가를 보여주고 싶어서, 나를 회사까지 택시로 바래다주겠다고 말하며 고집을 부렸다. 그것도 내가 조·조의 친구이므로, 그리고 자신의 친구이기도 하므로,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고 나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만일 당신의 조·조가 뭔가 그릇된 일을 하거든, 재빨리 내게로 달려오라구. 그러면 내가 어떤 친구가 될 수 있는지 알게 될 거야. 나는 그녀에 대해서는 달콤한 파이처럼 부드러웠다. 실제로 회사 앞에서 택시를 내리자, 나는 그녀들에게 설복당하여 페르노주를 마지막으로 함께 마실 수밖에 없었다. 이베트는 직장 일이 끝난 다음에 나를 불러내도 괜찮겠느냐고 말한다. 당신에게 은밀히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감정을 손상시키지 않도록, 가까스로 이를 거절하였다. 불행히도, 방심하여 그녀에게 내 주소를 그만 가르쳐주고 말았다. 불행히도 라고 말했지만, 실은 지금 그때의 일을 생각해 보면, 도리어 가르쳐 준 편이 나았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 다음날부터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 때문이다. 그 이튿날, 아직 내가 침대에서 일어나기 전에, 이 두 사람이 찾아왔다. 조·조는 병원에서 다른 데로 이동되었다 ―병원에서는 파리로부터 겨우 수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별장에 그를 감금시켜버린 것이다. 병원 사람은 별장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정신병원 을 완곡하게 표현한 말이다. 두 사람은 나에게, 재빨리 준비를 하여 함께 가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녀들은 몹시 당황해하고 있었다. 아마도 나는 혼자서 라면 갔을지도 모른다 ― 하지만 이 두사람과 함께 가고 싶지는 않았다. 어떻게든 가지 않아도 될 만한 구실을 생각해낼 여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 옷을 갈아입을 동안 아래층에서 기다리고 있어 달라고 두 사람에게 말하였다. 하지만 두 사람은 고집스레 방을 나가려 하지 않았다. 자리에 앉아, 마치 일상적인 일처럼 내가 세수를 하고, 옷을 입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때 칼이 들어왔다. 나는 그에게 영어로 짤막하게 사정을 설명하고, 이어 둘이서 처리해야 할 어떤 중대한 용건이 생겼다는 구실을 만들어내었다. 그러나 일이 잘 진행되도록 하려고, 우리는 술을 마시고, 추잡한 화첩을 여자들에게 보여주며 대접하였다. 이베트는 이미 별장에 가고 싶은 기분이 사라져버린 듯했다. 그녀와 칼은 꽤 친밀해져 있었다. 드디어 출발하게 되자, 칼도 함께 별장으로 향하게 되었다. 필모어가 많은 미치광이들과 함께 걸어다니고 있는 걸 보면 재미있으리라고 그는 생각한 것이다. 정신병원이 어떤 곳인지... 가보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는 술을 마셔 더할 나위 없이 유쾌해진 기분으로 출발하였다. 필모어가 별장에 있을 동안, 나는 한 번도 그를 면회하러 가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지네트가 규칙적으로 그를 문병하고, 소식을 자세히 나에게 전해주었기 때문이다. 병원에서는 2, 3개월쯤 지나면 그가 온전한 정신을 되찾으리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고, 그녀는 말하였다. 병원에서는 알콜 중독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 그뿐이라고 한다. 물론 임질에도 걸려 있다 ― 하지만 이는 치유하기 어려운 게 아니다. 병원 측에서 보기에는, 매독에 걸려 있지 않다고 한다. 이는 무척 고마운 얘기다. 그래서 우선 병원에서는 그에게 위 펌프를 사용하였다. 그의 기관을 철저히 세척하였다. 그는 얼마 동안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을 만큼 허약해졌다. 완전히 기력을 잃어버려, 치유 받고 싶지 않다 ― 죽고 싶다고 무의식중에 말하고 있었다. 이처럼 어리석은 소리를 끊임없이 집요하게 늘어놓고 있으므로, 마침내 병원에서도 경계하기 시작하였다. 그가 자살을 하려고 한다면, 그게 썩 좋은 방법이라고 권장할 수는 없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쨌든 병원에서는 그에게 정신 요법을 시행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사이에, 이를 뽑아버렸다. 두 개, 세 개씩... 그가 이제 한 개도 이가 남이 있지 않다고 생각할 때까지 뽑아갔다. 그 다음에는 상쾌한 기분이 될 텐데, 묘하게도 그에게는 상쾌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이전보다 더욱 음울해졌다. 그러다가 이윽고 머리칼이 빠지기 시작하였다. 마지막으로 더욱 악화되어, 정신 착란 기미를 보이게 되었다 ― 무슨 일에 대해서나 병원 사람들을 책망하고, 어떠한 권리로써 자신을 억류하는가, 감금당할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는가, 내가 무슨 짓을 했는가 하고 비난하였다. 무서운 울화의 발작을 일으킨 다음에, 으레 그는 별안간 정신적으로 되어, 나를 석방하지 않으면 여기를 폭파시켜 버리겠다고 병원을 위협하였다. 지네트에 관한 한, 더욱 곤란한 것은, 그녀와 결혼하려던 생각을 그가 전혀 문제삼지 않게 된 점이다. 나는 너하고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다. 네가 끝까지 아이를 낳으려는 미치광이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면, 자신이 그 아이를 길러가라구 ― 그는 이리저리 거닐면서 솔직히 이렇게 선언한 것이다. 의사들은 이를 좋은 징후라고 해석하였다. 제 정신을 되찾아가고 있다고 말하였다. 지네트는 물론 그의 정신 이상 상태가 더욱 악화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가 병원에서 나올 수 있기를 빌고 있었다. 퇴원하면 조용하고 태평스런 시골로 그를 데리고 갈 수 있고, 거기서 라면 온전한 정신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고 ― 건전한 정신 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으리라고 ―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동안에 그녀의 부모가 일부러 파리까지 상황을 살펴보러 와서, 별장에 있는 미래의 사위를 문병하고 싶다고 말하였다. 빈틈없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딸이 전혀 남편이 없이 지내기보다는, 미치광이인 남편이라도 있는 편이 나으리라는 계산을 한 모양이다. 아버지는 필모어를 위해 농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무엇이든 마련해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다. 필모어도 그다지 나쁜 사나이가 아니라고, 지네트로부터 필모어의 부모가 부자라는 말을 듣고, 아버지는 더욱 마음이 후해지고 이해심을 나타나게 되었다. 사태는 저절로 호전되어 갔다. 지네트는 잠시 부모 곁에서 지내기 위해 시골로 돌아갔다. 이베트는 규칙적으로 칼을 만나러 호텔로 찾아왔다. 그녀는 그를 신문사 주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씩 그들은 더욱 마음을 털어놓고 이야기하는 사이가 되어갔다. 어느 날, 기분 좋게 술에 취해 있을 때, 그녀는 우리에게 지네트는 단순한 매춘부에 지나지 않는다. 지네트는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탐욕스럽고 냉혹한 여자이다. 지네트는 한 번도 임신한 적이 없으며, 지금도 임신하고 있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우리들, 즉 칼과 나는, 다른 비난에 대해서는 그다지 의심을 하지 않았지만, 지금도 임신하고 있지 않다는 말에 대해서는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확실한 자신은 없었다. 그럼, 그 여자는 왜 그렇게 배가 부른가? 하고 칼이 물었다. 이베트는 웃었다. 자전거 펌프라도 사용하고 있는가 보죠. 하고 그녀는 말했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렇지 않아요. 하고 덧붙여 말했다. 배가 그렇게 나온 건 술 때문이에요. 지네트는 술고래예요. 시골에서 돌아오면 살펴봐요. 더욱 더 배가 나오고 있을 테니까. 그녀의 아버지는 대단한 술꾼이에요. 지테트도 대단한 술꾼이고. 임질에는 걸려 있을지도 몰라요. 네 ― 하지만 임신하고 있지는 않다구요. 그렇더라도, 왜 그와 결혼하고 싶어하고 있을까? 정말로 그를 사랑하고 있나? 사랑하고 있냐고요? 원, 지네트에게는 애정 같은 것은 털끝만큼도 없다구요. 누군가 돌보아줄 사내가 필요한 거예요. 프랑스인 중에 그녀와 결혼하고 싶어하는 남자는 하나도 없어요 ― 경찰의 요주의 레텔이 붙어 있는 여자인 걸요. 그래요, 그녀가 그와 결혼하고 싶어하고 있는 것은, 그가 꽤나 멍청한 사람이어서 자신의 신변의 일을 알아채지 못하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부모로부터는 이미 버림받고 있는 거예요 ― 부모의 수치인 걸요. 하지만 부자인 미국인과 결혼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만사가 일단 결말이 나겠죠... 당신은 그녀가 그를 조금은 사랑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있군요. 그렇죠? 그건 그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그 사람들이 호텔에서 함께 지내고 있을 무렵에, 그가 직장에 나가고 없을 때에는 온갖 사내들이 그녀의 방에 드나들고 있었다구요. 그가 용돈을 듬뿍 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었어요. 그는 노랭이였나봐요. 그녀가 입고 있던 모피 코트 말예요 ― 그건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그에게 말하고 있었잖아요. 안 그래요? 모르는 게 약이에요 ! 글세 나는 그녀가 남자를 데리고 호텔로 돌아오는 걸 보았어요. 그때 마침 그가 방에 있었죠. 그래서 그 남자를 아래층으로 데리고 갔어요. 그걸 나는 이 눈으로 똑똑히 보았어요. 그게 어떤 남자인 줄 알아요? 마치 버림받은 듯한 할아범이잖아요. 발기시킬 수도 없을 듯한 늙은이예요 ! 필모어가 퇴원하도록 허용 받아 파리로 돌아왔을 때, 나는 지네트에 관해 넌지시 그에게 경고를 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아직 의사의 감시 아래 있었으므로, 이베트의 온갖 비방을 전달하여 그의 기분을 혼란하게 만드는 건 좋지 않으리라고 생각하였다. 지금까지의 사태 진전에 따라, 그는 별장으로부터 곧바로 지네트의 부모에게로 가버렸다. 그리고 마지못해 설복당하여 약혼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혼인 예고가 지방 신문에 나가고, 일가의 지인들이 리셉션에 초대되었다. 필모어는 이러한 사정을 이용하여 온갖 엉터리 짓을 다 하였다.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 아직 정신이 약간 이상한 듯이 행동하였다. 이를테면 장인의 자동차를 몰고 혼자서 멋대로 부근을 돌아다니며 말썽을 부리곤 했다. 어디든 마음에 드는 동네라도 발견하면, 거기에 주저앉아 지네트가 찾으러 올 때까지 노닥거리고 있었다. 때로는 장인과 함께 떠나는 수도 있었다 ― 아마 낚시 여행일 테지만 ― 그리고 며칠이고 두 사람은 행방을 감추고 있었다. 그는 화가 날이만큼 변덕스러워지고, 무리한 생트집을 걸곤 했다. 아마도 차라리 가능한 한 많은 걸 손에 넣어야겠다고 계산한 모양이다. 지네트를 데리고 파리로 돌아왔을 때, 그는 새로 맞춘 양복을 입고, 주머니에 많은 돈을 갖고 있었다. 무척 유쾌한 듯하고 건강해 보였다. 무두질한 가죽으로 지은 멋진 웃옷을 입고 있었다. 내 눈에는, 싱싱한 과일처럼 건전해 보였다. 그런데 지네트가 곁을 떠나면, 이내 그는 본심을 털어놓았다. 나는 일자리를 잃고, 돈도 다 써버렸어. 1개월쯤 지나면 우리는 결혼을 하게 되어 있어. 그 동안 부모가 돈을 보내주고 있지만, 일단 내가 그 장인의 손에 합법적으로 꽉 쥐어지면 나는 그들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구. 장인은 나를 위해 문방구 가게를 차려주려 하고 있어. 지네트가 손님을 맞으면 돈을 받고, 나는 가게 안쪽에 앉아서 글을 쓰라는 거야. 내가 앞으로 문방구 가게 안쪽에 앉아서 평생을 보내다니... 상상할 수 있겠나? 지네트는 멋있는 제안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그녀는 돈을 만지기를 좋아하거든. 그런 계획에 따를 바에는, 차라리 별장으로 되돌아가는 편이 낫겠어. 물론 당장은 그가 무슨 일이든 좋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미국으로 돌아가도록 설복하려 했지만, 내 말에 통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무지한 농부들 때문에 프랑스에서 추방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당분간 모습을 감추고, 그녀와 마주치지 않을 어느 교외에라도 숨어 있으려는 생각을 그는 갖고 있었지만, 우리는 이내 그것이 불가능한 일 이라고 단정하였다. 프랑스에서는 미국처럼 잘 숨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잠시 벨기에에라도 가 있으면 어떤가? 하고 나도 제안하였다. 가더라도 어떻게 돈을 벌지? 하고 그는 이내 말하였다. 그런 거지같은 나라에서 일자리를 얻을 수 있으라구. 그런 왜 그녀와 결혼하고 이혼을 하지 않는 거야? 하고 나는 물었다. 하지만 그녀가 곧 아이를 낳으니까. 누가 그 아이를 돌보겠나. 그녀가 아이를 낳으리라는 걸 어떻게 자네는 알 수 있지? 나는 지금이야말로 진상을 밝힐 때라고 결심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어떻게 내가 알 수 있냐고? 하고 그는 말했다. 내가 무엇을 우회적으로 말하려 하는지, 잘 모르고 있는 듯했다 ― 나는 이베트가 이야기한 것을, 넌지시 암시해 주었다. 그는 무슨 말인지 통 알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내 말을 가로막았다. 그런 것을 아무리 얘기해도 소용없네. 나는 틀림없이 그녀가 임신하고 있음을 알고 있어. 태아가 뱃속에서 발길질하는 것을 손으로 만져본 적이 있다구. 이베트라는 계집은 더러운 년이야. 이봐, 나는 자네에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실은 내가 병원에 들어갈 때까지 이베트에게도 돈을 주고 있었다구. 그리고 내 처지가 엉망이 되어버려, 더 이상 계속하지 못한 거야. 그녀들 두 명에게 나로서는 충분히 해주었어... 그래서 이번에는 내 몸을 돌보려고 결심한 거야. 이 점이 이베트를 화나게 만든 거지. 그리고 지네트에게 내게 반드시 보복을 할 작정이라고 말한 거야... 아니, 그녀가 한 말이 차라리 진실이었으면 좋겠어. 그렇다면 내가 훨씬 용이하게 이 사태에서 벗어날 수 있을 테니까. 지금 나는 덫에 걸려 있는 거야. 그녀와 결혼하겠다고 약속한 이상, 나는 그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어. 그 다음에는 내 신상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짐작도 가지 않아. 지금은 그자들에게 불알이 쥐어져 있는 셈이야. 그는 이렇게 말을 끝냈다. 그는 나와 같은 호텔의 방에 들었기 때문에,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어쩔 수 없이 빈번히 그들과 대면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거의 매일처럼 그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였다. 물론 식사하기 전에 페르노주 한 잔을 들이키고, 식사하는 동안 그들은 계속 큰 소리로 말다툼을 벌였다. 시끄럽고 귀찮아 견딜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어떤 때는 한쪽 편을 들고, 또 때로는 다른 쪽 편을 들어주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어느 일요일 오후의 일인데, 함께 점심 식사를 한 다음, 우리는 불바르 에드가르 키네의 모퉁이에 있는 카페로 나갔다. 이때는 다른 때보다 꽤 부드럽게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우리는 작은 테이블 안쪽에, 옆으로 나란히 걸터앉았다. 뒤에 거울이 있었다. 지네트는 욕정적인 기분이 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갑자기 감상적인 기분에 빠져, 프랑스인이 곧잘 자연스레 하는 것처럼, 모두들보고 있는 앞에서, 그를 애무하며 키스를 하였다. 두 사람이 오랫동안 포옹을 하고 서로 몸을 떼어 논 순간, 필모어가 그녀의 부모에 대해 뭐라고 말하였다. 이를 그녀는 모욕당한 걸로 생각하였다. 대뜸 그녀의 볼이 노여움 때문에 붉어졌다. 우리는 그건 오해라며 그녀를 달래기 시작하였다. 그때 필모어가 살며시 영어로 내게 뭐라고 말하였다 ― 그녀의 비위를 좀 맞춰달라는 얘기이다. 이를 보고 그녀는 잔뜩 화를 내었다. 우리가 그녀를 웃음거리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뭔가 날카로운 말을 했는데, 이 말이 더욱 더 그녀를 격분시켰다. 이윽고 필모어가 그녀를 달래려고 했다. 당신은 너무 성질이 급해. 하고 그는 말하고, 그녀의 볼을 가볍게 치려고 했다. 그런데 그녀는 그가 자신의 얼굴을 갈기려고 손을 쳐든 줄 알고, 농부 특유의 그 커다란 손으로, 소리도 요란하게 그의 턱에 일격을 가한 것이다. 순간적으로 그는 눈이 아찔했다. 이렇게 일격이 가해지리라고는 예상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몹시 아팠다. 보고 있는 동안에, 그의 얼굴이 창백해져갔다. 다음 순간, 그는 의자에서 일어서자, 하마터면 그녀가 의자에서 굴러 떨어질 뻔했을 정도로 세게 뺨을 후려쳤다. 알겠어 ! 이상한 짓을 하면, 이거야 ! 하고 그는 말했다 ― 프랑스어로 더듬거리며. 일순, 쥐죽은듯이 조용해졌다. 이윽고 마치 폭풍우가 이는 것처럼 그녀는 자신의 앞에 놓인 술잔을 집어들자 힘껏 그에게 내던졌다. 잔은 뒤쪽 거울에 맞아 깨져버렸다. 재빨리 필모어가 그녀의 팔을 잡고 있었지만, 그녀는 다른 쪽 손으로 커피 잔을 움켜쥐자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마치 미치광이처럼 그녀는 마구 날뛰었다. 우리는 가까스로 그녀를 붙들고 있었다. 그 동안에, 물론 가게 주인이 달려와서 나가라고 명하였다. 불량배 녀석들 ! 이라고 그는 우리를 불렀다. 그래요, 불량배예요, 맞아요. 지네트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더러운 외국인들이에요 ! 악당 ! 갱 ! 임신하고 있는 여자를 때리다니 ! 우리를 형세는 매우 난감해져 갔다. 연약한 한 명의 프랑스 여성을 상대로, 건장한 사나이인 미국인 두 명이 소란을 피우고 있는 셈이다. 갱. 어떻게 하면 격투를 하지 않고 여기서 잘 달아날 수 있을까 하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이때 필모어는 이미 대합처럼 입을 다물고 있었다. 지네트는 우리를 그만 대소동을 벌인 장본인으로 몰아넣고 출구로 달아나고 있었다. 나가면서 뒤를 돌아보며 주먹을 쳐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반드시 보복을 할거야. 이 짐승 같은 놈아 ! 보고 있으라구 ! 외국인 따위한테 버젓한 프랑스 여자가 이런 꼴을 당하고만 있을 수 없어 ! 이런 짓을 용서할 수 없어 ! 이 말을 듣고, 가게 주인은 ― 이미 이때는 술값과 깨진 술잔 값을 치른 뒤였다 ― 지네트와 같은 프랑스 모성의 훌륭한 대표에 대해서 의협심을 보이는 게 의무라고 느낀 모양이다. 그래서 더 이상 떠들지도 않고, 내 발께에 침을 탁 뱉고는 우리를 출구로 밀어내었다. 젠장, 거지같은 것들, 더러운 불량배 녀석들 ! 하면서 뭔가 불쾌한 말을 늘어놓았다. 한길로 나와, 이제 아무도 뒤에서 돌을 던질 녀석도 없다고 생각하자, 내게는 이 소란의 재미있는 면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모든 일이 올바로 법정에서 속속들이 드러난다면, 이는 실로 묘안이 아닐까 하고 나는 은근히 생각했다. 모든 일들이... 이베트의 짤막한 이야기도 포함하여. 요컨대 프랑스인에게는 유머의 센스가 있으니까. 아마도 재판관은, 필모어 측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로부터 결혼의 책임을 면제해줄 것이다. 한편, 지네트는 한길의 맞은편에 우뚝 서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사람들이 멈춰 서서 그 말을 듣고 ― 거리에서 싸움이 벌어지면 으레 그러듯이 ― 어느 한쪽 편을 들려고 대기하고 있었다. 필모어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 그녀를 피해 가야 할지, 곁으로 다가가 달래야 할지... 그는 양손을 내밀고 길 한복판에 우뚝 서서, 기회가 나면 소리를 지르려 하고 있었다. 지네트는 아직 외치고 있다. 갱 ! 짐승이야 ! 두고 보라구 ! 더러운 인간아 ! 그밖에도 욕설을 잔뜩 늘어놓는다. 마침내 필모어가 그녀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상대방은 다시금 자신을 갈기기 위해 다가오는 줄 알았는지, 이내 달아나 버렸다. 필모어는 내가 서 있는 데로 되돌아와 말했다. 가세. 살며시 뒤쫓아가자구. 우리는 뒤쫓아갔다. 한가한 사람들이 잔뜩 우리를 뒤따라왔다. 이따금 그녀는 우리를 뒤돌아보며 주먹을 흔들어대었다. 우리는 상대방에게 달려들려는 게 아니라, 그녀가 어떻게 하는지 보려고 천천히 뒤따라가고 있을 뿐이었다. 마침내 그녀가 발걸음을 늦추었기 때문에, 우리는 한길의 반대쪽으로 건너갔다 그녀는 이미 얌전해져 있었다. 우리는 그녀 쪽으로 걷기 시작하여, 점차 거리를 좁혀갔다. 지금은 우리 뒤를 열 두세 명 정도밖에 따라오지 않고 있었다 ― 그 밖의 사람들은 흥미를 잃어버린 것이다. 모퉁이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 그녀는 갑자기 멈춰 서서 우리가 다가가기를 기다렸다. 내가 이야기를 하겠어. 하고 필모어는 말했다. 저 여자를 다루는 법을 알고 있으니까. 옆으로 다가가자, 눈물이 그녀의 볼을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어떻게 나올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그래서 필모어가 다가가 항복하는 듯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을 때, 나는 약간 놀란 것이다. 그런 짓을 해도 되나? 왜 그런 짓을 했어? 그러자 그녀는 그의 목에 양손을 걸치고, 나의 귀여운 사람, 나의 당신하고 부르며 어린애처럼 울기 시작하였다 이윽고 호소하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다보았다. 이 사람이나를 어떻게 때렸는지, 당신은 보았죠? 하고 그녀는 말하였다. 여자에게 그럴 수 있어요? 그럴 수 있죠, 하고 하마터면 내가 말할 뻔했을 때, 필모어는 그녀의 팔을 잡고, 앞서서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그 얘기는 이제 하지 말라구. 당신이 또 시작하면, 이 길바닥에 당신을 내동댕이쳐줄 테니. 이러면 또 소동이 시작되지 않을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녀의 눈동자가 반짝하고 불타올랐다. 하지만 분명히 약간 겁을 먹고도 있었다. 눈동자의 불꽃이 곧 사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페에서 자리를 잡고 앉았을 때, 그녀는 조용히 음울한 어조로, 그것을 그렇게 금방 잊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면 곤란해요. 이따 뼈저리게 느끼도록 해주겠어요 ― 오늘밤에라도, 하고 말하였다. 과연 그녀는 이 말을 분명히 지켰던 것이다. 이튿날, 그를 만나자, 얼굴이나 손이 할퀸 자국 투성이가 되어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그녀는 그가 잠들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말도 없이 옷장 쪽으로 가서, 그의 의류를 모두 바닥에 끌어낸 다음, 이를 하나하나 찢어 리본처럼 만들어버린 모양이다. 이러한 일은 지금까지 자주 있었던 일이고, 또 그녀가 나중에 그 옷들을 반드시 꿰매고 있었으므로, 그는 그다지 불평도 하지 않았다. 그러한 태도가 그녀를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 그의 얼굴을 할퀴어주고 싶어지고, 이를 그녀의 능력껏 실행한 것이다. 임신하고 있는 만큼, 그보다는 유리한 입장에 있는 셈이다. 가엾은 필모어 ! 하지만 웃고 넘길 일이 아니다. 완전히 그녀로부터 협박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달아나겠다고 위협하면, 그녀는 그를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것이다. 실제로 죽일 작정으로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다. 그녀는 말했다. 당신이 미국에 가면 내가 뒤쫓아갈 거예요 ! 내게서 달아날 순 없어요. 프랑스 여자는 어떤 경우에나 복수할 방법을 알고 있다구요. 그런가 하면 다음 순간에는 이성적 으로 되라느니 현명 해지라느니 하며 그를 달래기 시작하였다. 문방구 가게를 갖게 되면, 틀림없이 내가 모든 일을 다 할테니까요. 가게 안쪽에 앉아서 글을 쓰고 있으면 돼요 ― 혹은 뭐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면 돼요. 이러한 식으로 2,3주일 동안은 오락가락 하는 시소게임이 계속되었다. 나는 이러한 일이 역겹게 느껴지고, 이들 두 사람을 만나기가 싫어져서, 되도록 마주치지 않으려고 피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씨가 좋은 여름날의 일이었다. 마침 리용 은행 앞을 지나가고 있을 때, 바로 필모어가 유유히 돌계단을 내려오고 있지 않은가. 나는 오랫동안 그를 피하고 있었으므로, 어쩐지 꺼림칙한 느낌이 들어, 그에게 따스한 목소리로 인사를 하였다. 단순한 호기심 이상으로 궁금한 생각이 들어, 그 후 어떻게 되었는가고 그에게 물었다. 그는 어쩐지 애매한 태도로 대답했지만, 그 목소리에는 절망적인 기운이 어려 있었다. 나는 겨우 은행에 다녀오라는 허락을 받았어. 하고 그는 일종의 기묘하고 애처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30분 정도밖에는 여유가 없어. 그 이상은 안돼. 그녀가 나를 감금하고 있다구. 이렇게 말하고, 그는 마치 그 자리에서 황급히 나를 어디로 데리고 가려는 것처럼 내 팔을 꽉 잡았다. 우리는 리도 리보리 쪽으로 걸어갔다. 따스하고, 맑게 갠 밝은 날이었다 ― 파리의 1년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계절의 하루이다. 콧구멍에서 그 탁한 냄새를 알맞게 날려버려줄 정도의 부드러운 미풍이 살랑거리고 있었다. 필모어는 모자를 쓰고 있지 않았다. 외관상으로는 아주 건강해 보였다 ― 주머니 속의 동전 소리를 짤랑짤랑 울려대며, 약간 앞으로 몸을 기울인 자세로 걸어가는 그는 보통의 미국인 관광객 같았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네. 하고 그는 조용히 말했다. 꼭 좀 나를 도와줘. 나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구. 자신이 스스로를 알 수 없게 됐어. 잠깐 동안이라도 그녀로부터 달아날 수만 있다면, 분명히 알 수 있으리라고 생각돼. 그런데 그녀는 자신의 눈이 미치지 않는 곳에 나를 보내려 하지 않거든. 은행에 오는 것도 겨우 허락 받은 거야 ― 돈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야. 잠시 함께 걷자구. 그리고 급히 돌아가겠어 ― 그녀가 점심 식사를 준비하며 기다리고 있으니까. 나는 조용히 그에게 귀를 기울이면서, 확실히 이 사내는, 자신이 빠져들고 있는 구멍으로부터 끌어올려줄 인간이 꼭 필요하겠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그는 완전히 쇠약해져 있었다. 힘이 없어 보였다. 마치 어린애 같았다 ― 매일 얻어맞고, 자지러지고, 조그맣게 위축되어 있는 외에, 이제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 없게 되어 있는 어린애이다. 리도 리보리의 모퉁이를 돌아섰을 때, 그는 대뜸 프랑스에 대한 온갖 욕설을 퍼부어 댔다. 프랑스인이 지긋지긋해진 것이다. 나는 곧잘 그들을 열심히 칭찬하곤 했지. 하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그건 모두 문자상의 일이었어. 이제야 프랑스인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 정말 어떤 인간인가를 알게 되었다구. 그들은 잔혹하고 탐욕스러워. 처음에는 멋있어 보이지. 왜냐하면 자유로움을 맛보니까. 얼마 후에는 혐오감을 느끼게 돼.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모든 게 죽어 있는 거야. 아무런 감정도 없고, 동정심도 없고, 우정도 없어. 그들은 철저히 이기적이야. 이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인종이야 ! 그들은 돈 이외의 것은 안중에 없다구. 오직 돈, 돈이야. 아주 훌륭해 보이는 그 소시민 근성은 또 어떤가 ! 구역질 나고... 나를 미치게 만든다구 ! 나는 그녀가 내 셔츠를 깁고 있는 것을 보면, 냅다 때리고 싶어져. 언제나 깁고, 고치고... 검약, 검약 하는 거야. 검약하지 않으면 안돼요 ! 온종일 그녀는 그따위 소리만 하고 있는 거야. 어디엘 가나 그 말이야. 이성적으로 되어 줘요 ! 여보 ! 이성적으로 되어 줘요 ! 나는 이성적이거나 논리적으로 되고 싶지 않아. 그 따위는 제일 싫다구. 아무렇게나 지내고 싶은 거야. 자신을 엔조이하고 싶은 거야. 나는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 카페에 앉아서 온종일 쓸데없는 소리나 지껄이고 있는 건 딱 질색이야. 하긴 우리에게 여러 가지 결점은 있지 ― 하지만 우리에겐 열의가 있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기보다는 실패를 저지르는 편이 낫다구. 이런데서 아담하게 자리를 잡고 있기보다는, 미국에서 부랑자가 되어 있는 편이 낫다구. 그것도 내가 양키이기 때문이겠지. 나는 뉴잉글랜드에서 태어났으니까, 뭐니뭐니 해도 그곳 사람이겠지. 누구든 하룻밤 사이에 유럽인이 될 수는 없어. 혈액 속에 뭔가 다른 게 있는 거야. 풍토라든가 ― 그 밖의 여러 가지가. 우리는 다른 눈으로 보고 있는 거야. 우리가 아무리 프랑스인을 찬양해도 자신을 개조할 수는 없어. 우리는 미국인이고, 언제까지나 미국인일 수밖에 없는 거야. 하긴 나는 미국의 그 퓨리턴인 체하고 있는 녀석들을 증오하고 있어. 마음속으로부터 증오하고 있어. 하지만 나도 그러한 사람들 중의 한 명이라구. 나는 이곳의 인간이 아냐. 프랑스 하면 이제 구역질이 날 것 같아. 아치를 통과하는 동안, 그는 이런 어조로 말을 계속하고 있었다. 나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가 모든 걸 토해내도록 내버려두었다. 가슴속의 그 울화를 몽땅 토해내는 편이 그에게는 나은 것이다. 나는 사람이 꽤나 많이 변했다고 생각하였다. 이 동일한 사나이가, 1년 전 같으면 고릴라처럼 가슴을 툭 치며, 이렇게 말했으리라. 정말 멋있는 날씨이다 ! 정말 멋진 나리이다. 참으로 멋있는 국민들 아닌가 ! 그러한 때에 만일 미국인이 옆에 있다가 프랑스에 대한 욕을 한 마디라도 한다면, 필모어는 그자의 코뼈를 갈겨 부러뜨려 버렸을 것이다. 그는 프랑스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던지려 했을 것이다 ― 1년 전에는, 나는 한 나라에 이토록 열중하며 미치고, 이국 하늘 아래서 이토록 즐거워하는 인간을 이전에는 본 적이 없었다. 이는 자연스럽지 않았던 것이다. 그가 프랑스 라고 말할 경우, 이는 술과 여자와 지갑 속의 돈과 제멋 대로인 자유를 의미하고 있었다. 이는 응석꾸러기가 되어 놀며 지내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가 자기하고 싶은 일을 실컷 하다가, 천막 지붕이 날아가 허공을 훤히 내다볼 수 있게 되었을 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서커스도 아무것도 아니고 어디에나 있을 법한 단순한 공지였다. 더욱이 지저분하고 더러운 빈 터였다. 나는 곧잘 이런 생각을 했었다. 그가 현란한 프랑스에, 자유에, 혹은 그 밖의 얼토당토않은 것들에 열중하며 미쳐서 칭찬하고 있는 말을 들으면, 대체 이 말이 프랑스의 노동자에게는 어떻게 들릴까 하고 말이다. 그들이 필모어의 말을 이해할까 하고 궁금했던 것이다. 분명히 그들은 우리를 엉뚱한 미치광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확실히 우리는 그들이 보기에는 미치광이이다. 우리는 어린애에 지나지 않는다. 멍텅구리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의 이른바 인생 이라는 것은, 싸구려 잡화점과도 같은 가공의 이야기인 것이다. 가슴속 깊은 곳에 있는 그 열의 ― 그것은 무엇인가 ? 정상적인 유럽인이라면 누구나 구역질을 느낄 그 값싼 낙천주의는 무엇인가 ? 그것은 환상이다. 아니, 환상이라는 말은 걸맞지 않다. 너무 고급이다. 환상에는 어떤 의미가 있다. 틀린다, 환상이라고 해서는 안된다 ― 망상인 것이다. 진짜 망상이다. 그렇다. 우리는 눈이 가려진 사나운 말의 무리나 다름없다. 미쳐 날뛰고 있는 것이다. 패주하고 있는 것이다. 낭떠러지 위를. 방고 ! 난폭한 혼란을 부추기는 것이면, 무엇이든 상관없다. 자꾸 내달아라 ! 어디든 상관없다. 연방 입에 거품을 물며. 할렐루야를 외치며 ! 할렐루야 ! 어째선가 ? 신만이 알고 있다... 그것은 핏속에 잠겨 있는 것이다. 그것은 풍토이다. 그 밖의 여러 가지이다. 그것은 종말이기도 하다. 우리는 온 세계를 뒤엎고 커다란 소동을 불러일으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왠지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숙업인 것이다. 그 밖의 일들은 뻔한 이야기이다... 파레 로와이얄에서, 나는 한 잔 하러 갈까 하고 권했다. 그는 잠깐 망설였다. 그녀 때문에, 점심 식사 때문에, 그리고 나중에 벌어질 큰 싸움 때문에 걱정하고 있음을 나는 알고 있었다. 부탁이야, 하고 나는 말하였다. 잠시 그녀의 일을 잊어버려, 내가 술을 주문하지. 함께 마시자구. 걱정하지 말게. 내가 이처럼 엉망인 상태에서 어떻게든 자네를 구해주겠어. 나는 위스키 두 잔을 주문하였다. 위스키가 날라져 오는 것을 보고, 그는 다시금 어린애 같은 미소를 띄우며 나를 바라보았다. 쭉 들이켜. 하고 나는 말했다. 그리고 한 잔 더 마시자구. 마시는 편이 자네에게는 좋아. 의사가 뭐라고 말하든 상관없어 ― 이번에는 괜찮아. 자, 쭉 들이키라구. 그는 그것을 다 마셨다. 웨이터가 술을 더 가지러 간 사이에, 그는 마치 내가 이 세상에 최후까지 남은 유일한 인간이라도 되는 것처럼, 눈을 깜박이며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입 가장자리가 약간 느슨해져 있었다. 뭔가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그 말을 어떻게 꺼내야 좋을지 모르고 있는 것이다. 나는 태평스런 얼굴로, 그 호소를 무시하고 있는 것처럼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접시를 옆으로 밀어내고, 팔꿈치를 세우고 손으로 턱을 괴고는, 진지한 어조로 그에게 말하였다. 이봐, 필모어, 자네가 정말 원하고 있는 일이 뭔가 ? 내게 들려주지 않겠나 ! 이 말을 듣고, 그는 당황하는 듯한 목소리로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기 시작하였다. 나는 고국의 가족 곁으로 돌아가고 싶어. 영어를 말하는 것을 듣고 싶은 거야. 눈물이 연방 그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걸 닦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냥 모든 게 내뿜어져 나오도록 내버려두고 있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처럼 모든 걸 해방시키면 필시 좋은 기분이 들겠지. 하다못해 일생 동안에 한 번이라도 철저한 겁쟁이가 되는 것도 좋은 것이다. 이렇게 항복해 버리는 것도 좋은 것이다. 대단한 일이다 ! 멋있는 일이다. ! 이처럼 그가 정신적으로 항복한 것을 보는 것은 나에게 매우 효과가 있었다. 덕분에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해결해 보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우 용기가 나고 단호한 결의를 하게 되었다. 내 머리에 일제히, 여러 가지 방안이 떠올랐다. 이봐. 하고 나는, 그에게로 상반신을 기울이며 말하였다. 지금 자네가 말한 게 본심이라면, 왜 그것을 실행하지 않나... 왜 가지 않나? 만일 내가 자네 입장에 놓여 있다면, 어떻게 할 것 같은가. 나는 오늘에라도 갈 거야. 그래, 정말이야... 그녀에게 작별의 말도 하지 않고 이내 떠난다구. 실제로 자네가 갈 수 있는 길은 그 방법밖에 없네 ― 그녀는 절대로 자네에게 작별의 말을 하지 못하게 할 테니까, 그건 알고 있겠지. 웨이터가 위스키를 가져왔다. 나는 그가 뭔가를 외곬으로 깊이 생각하는 나머지 격렬해진 표정으로 손을 뻗쳐, 컵을 입으로 가져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 눈동자에 희망이 번뜩였다 ― 아주 먼 곳에서, 격렬히, 필사적으로. 아마도 그는 대서양을 헤엄쳐 건너고 잇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었으리라. 내게는 그것이 통나무를 굴리는 것처럼 아주 손쉽고 간단한 일로 생각되었다. 내 머리 속에서 대뜸 모든 일이 저절로 조립되어 갔다. 하나하나의 순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 가도 알게 되었다. 종소리처럼 명명백백했다. 은행의 그 돈은 누구 건가? 하고 나는 물었다. 그녀의 아버지 것인가, 아니면 자네 것인가? 내 돈이야 ! 하고 그는 외치듯이 말했다. 나의 어머니가 보내준 거야. 그녀의 거지같은 돈 따위는 한푼도 갖고 싶지 않아. 그거 잘됐군 ! 하고 나는 말했다. 그럼 재빨리 택시를 타고 은행으로 되돌아가세. 한푼도 남기지 말고, 모두 찾으라구. 그리고 영국 영사관으로 가서 비자를 받는 거야. 자네는 오늘 오후의 기차를 타고 런던으로 향하는 거야. 그리고 런던에서 미국으로 떠나는 첫배를 타면 돼.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그녀가 뒤쫓아올 걱정이 없도록 해주기 위해서야. 그녀는 자에가 런던을 경유하여 갔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거라구. 자네를 찾으려면, 당연히 제일 먼저 르아브르나 쉘브르로 갈 거야... 그리고 또 한 가지가 있어 ― 자네는 자네의 소지품을 가지러 되돌아가선 안돼. 모두 고스란히 여기에 남겨두고 가는 거야. 그녀가 갖고 있도록 하는 거야. 그녀와 같은 프랑스인이 보기에는, 가방이나 트렁크도 휴대하지 않고 자네가 달아났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할 수 없을 거야. 믿어지지 않을 거라구. 프랑스인이라는 치들은, 그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할 걸세... 그치와 자네와 마찬가지로 비참하게 억눌려져 있는 인간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지지만 말야. 자네 말아 맞아 ! 하고 그는 외쳤다. 그런 생각은 통 하지 못하고 있었어. 그리고 나중에 자네가 내 소지품을 보내줄 수 있을지도 모르고 ― 그녀가 자네에게 넘겨준다면 말야 !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일은 어찌됐든 상관없어. 하긴 나는 모자 하나도 갖고 있지 않지만 말야 ! 모자 따위가 무슨 필요가 있나 ? 런던에 가면 필요한 건 무엇이든 살 수 있잖은가. 지금 자네에게 필요한 것은 서두르는 일이야. 몇 시에 기차가 떠나는지 알아봐야 해. 그래. 하고 그는 지갑을 꺼내면서 말하였다. 나는 자네에게 모든 걸 맡기겠네. 자, 이걸 받아 가지고 무엇이든 필요한 일을 해줘. 나는 몹시 허약해져서... 현기증이 난다구. 나는 지갑을 받아들지, 그가 은행에서 방금 찾은 지폐를 모두 꺼내었다. 한 대의 택시가 길옆에 서 있었다. 우리는 올라탔다. 4시 무렵에 북쪽 정거장을 떠나는 기착 있었다. 나는 계산해 보았다 ― 은행, 영사관,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사, 정거장. 됐다 ! 시간에 대어갈 수 있겠다. 자, 기운을 내라구 ! 하고 나는 말했다. 허둥대면 안돼 ! 제기랄 ! 몇 시간 후에 자네는 영불해협을 건너고 있다구. 오늘밤에는 런던을 돌아다니며 실컷 영어를 들을 수 있어. 내일은 공해 위에 있어 ― 그때는 자네는 자유의 몸이지. 무슨 일이 일어나든 소란을 떨며 돌아다닐 필요가 없어져. 뉴욕에 도착할 무렵에는, 이러한 일도 하나의 악몽에 지나지 않게 될 거야. 이 말을 듣고 그는 몹시 흥분했다. 마치 택시 속에서 뛰어가려고 하는 것처럼 발을 연방 움직이고 있었다. 은행에서는 거의 서명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손이 떨리고 있었다. 이것만은 아무리 나라도 그를 위해 거들어줄 수 없었다 ― 그의 이름을 서명하는 일만은. 하지만 필요하다면 변소에 따라가 그의 궁둥이를 닦아줄 수도 있었으리라고 생각한다. 설령 옷을 접듯이 그의 몸을 접어 가방 속에 집어넣지 않으면 안되었다 하더라도, 그를 배에 태워줄 각오로 있었다. 영국 영사관에 도착하자, 마침 점심시간이어서 사무를 보지 않고 있었다. 두 시까지 기다려야 한다. 시간을 보내는 데는 식사라도 하는 일 외에는,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물론 필모어는 배가 고픈 것은 아니었다. 샌드위치라면 먹겠다고 그는 말하였다. 그런 건 안돼 ! 하고 나는 말했다. 인색하게 굴지 말고 고급 점심 식사를 사라구. 자네가 여기서 배불리 잔뜩 먹을 수 있는 마지막 식사 아닌가 ― 아마 앞으로 당분간은 먹을 수 없을 거야. 나는 그를 아담한 레스토랑으로 끌고 가서 고급 식사를 주문하였다. 값이나 취향과는 관계없이, 메뉴 표에 있는 최고급 포도주를 주문하였다. 내 포켓에는 그의 돈이 모두 들어 있었다 ― 대단한 금액 같았다. 확실히 나는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돈을 가져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천 프랑 짜리 지폐를 아낌없이 쓰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나는 우선 그것을 환한 데로 쳐들어 아름답게 비쳐 보이는 무늬를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지폐이다 ! 프랑스인이 대규모로 해내는 소수의 일들 중의 하나이다. 예술적이기도 하다. 마치 프랑스인은 기호에 대해서도 깊은 애정을 품고 있는 듯하다. 식사가 끝나자, 카페로 갔다. 나는 커피와 함께 샤르트루즈주도 주문하였다. 상관없지 않은가. 나는 다시금 지폐 한 장을 아낌없이 사용하였다 ― 이번에는 5백 프랑 짜리 지폐이다. 그것은 깨끗하고 빳빳한 신품이었다. 이러한 지폐를 다루는 게 유쾌했다. 웨이터가 거스름돈으로, 더럽고 낡은 지폐들을 건네주었다. 고무풀을 먹인 기다란 종이쪽지 뒷면에 덧붙여져 있었다. 5프랑과 10프랑 짜리 지폐가 많이 생겼다. 그리고 잔돈도 주머니에 집어넣어야 좋을지 알 수 없게 되었다. 화폐와 동전이 가득차 바지 주머니가 터질 것 같았다. 그 돈들이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데서 굴러 떨어질 것 같아 약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2인조 악당으로 보여지지 않을까 싶어 불안했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사에도 도착했을 때는, 이미 시간이 얼마 남아 있지 않았다. 영국 영사관에서는 지쳐서 못 견딜 정도로 우리를 기다리게 했다. 그런데 이 회사에서는 모든 걸 활주기로 처리하는 것이다. 그게 굉장히 빠르기 때문에, 무슨 일이나 두 번씩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겨우 모든 서류에 서명을 끝내고 정리를 하여, 그것이 작은 서류 집게로 고정되었을 때, 그가 틀린 곳에 사인한 것을 알게 되었다. 한 번 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가 사인하는 걸 들여다보며, 시계와 그가 펜을 움직이는 것을 번갈아 지켜보고 있었다. 돈을 건네주기가 괴로웠다. 고맙게도 전부는 아니었다 ― 그래도 상당히 빼앗겼다. 나는 대충 2천 5백 프랑 정도를 주머니 속에 갖고 있었다. 대충 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그때 1백프랑씩 세밀히 계산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백 프랑, 2백 프랑이라는 식이다 ― 그것도 내게는 대수로운 액수로 여겨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처음부터 멍한 상태로 일을 진행하고 있었다. 자신이 돈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알아채고 있는 것은, 지네트에게 얼마를 떼어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얼마를 남겨 줄지는 아직 정해져 있지 않았다 ― 역으로 나가는 도중에 계산해 보기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 흥분한 나머지, 우리는 환전하는 걸 잊고 있었다. 그러나 아미 택시에 올라타고 있었고, 꾸물거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어쨌든 얼마나 남아 있는지 알아보는 수밖에 없다. 우리는 황급히 주머니 속의 돈을 꺼내어 분류하기 시작했다. 바닥이나 시트에 굴러 떨어지는 등 정말 까다로운 일이었다. 프랑스와 미국, 영국 등의 세 종류의 돈이 있는 것이다. 게다가 동전가지 포함되어 있다 나는 동전을 창밖으로 집어던지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 그러면 일은 간단하다. 가까스로 다 분류하여, 그는 영국과 미국 돈을 갖고, 나는 프랑스 돈을 가졌다. 그리고 지네트에 관한 일을 급히 정해야 한다 ― 돈을 얼마를 주고, 뭐라고 얘기할 것인가를. 그는 내가 그녀에게 할 이야기를 꾸며내려 했다 ― 그녀를 상심하게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중단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에게 뭐라고 이야기할 것인가... 그런 것은 걱정하지 말게. 하고 나는 말하였다. 내게 맡겨두라구. 얼마를 줄 것인가, 그게 문제잖아. 하지만 왜 그녀에게 돈을 주려는 거야? 이 말은 그의 엉덩이 밑에 폭탄을 장치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와악 울기 시작하였다. 연방 눈물이 흘러내린다. 이전보다 더 심하다. 금방이라도 그가 용해되어 버리지 않을까 싶었다. 잘 생각하지도 않고 나는 말하였다. 좋아, 그럼 이 프랑스 돈을 모조리 그녀에게 넘겨주기로 하자구. 이만큼 있으면 당분간 쓸 수 있겠지. 얼마나 되나? 하고 그는 연약한 목소리로 물었다. 알 수 없어 ― 2천 프랑쯤 될 거야. 아무튼 그런 여자에게 주기에는 너무 많을 정도야. 아아, 그런 말을 하지 말라구 ! 하고 그는 애원하였다. 뭐니뭐니 해도 나는 그녀에게 가혹한 짓을 하려 하고 있으니까. 그녀의 부모는 이제 절대로 그녀를 떠맡지 않을 거야. 아니, 그걸 모두 건네주라구. 모두 다... 괜찮아. 그는 손수건을 꺼내어 눈물을 닦았다. 자꾸만 눈물이 나오는군. 하고 그는 말했다. 너무 괴로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갑자기 그가 온몸을 꿈틀거렸다 ― 나는 발작이라도 일으키는 줄 알았다. 이윽고 그는 말했다. 아아, 나는 역시 그녀 곁으로 되돌아가야 할 것 같아. 돌아가서 곤욕을 당해야 해. 만일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기라도 하면, 나는 죽을 때까지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거야. 이 말을 듣고, 나는 큰 쇼크를 받았다. 바보 ! 하고 나는 외쳤다. 그럴 수 있나 ! 지금 새삼스레 그럴 수가... 이미 늦었어. 자네는 기차를 타는 거야. 그녀의 일은 내가 떠맡겠어. 자네와 헤어지면 곧 만나러 가겠어. 이봐, 자네도 참 도리를 분별하지 못하는 벽창호로군. 자네가 그녀로부터 달아나려 했음을 알게 되면, 그녀는 자네를 죽일 거야. 그걸 모르나. 이제 되돌아갈 수는 없다구. 결정이 난 거야. 그런데 뭔가 엉뚱한 일이라도 일어날 것인가... 나는 스스로 반문하였다. 그녀가 자살을 할까? 괜찮지 않은가. 역에 도착했을 때에는, 아직 12분쯤 시간이 남아 있었다. 나는 아직 결연히 그와 작별의 말을 할 수 없었다. 그가 혼란한 상태이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에, 기차에서 뛰어내려 그녀에게로 달아나듯이 되돌아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무엇이 계기가 되어, 옆길로 빗나갈지 알 수 없었다. 아주 사소한 일 때문에... 그래서 나는 한길 맞은편에 있는 술집으로 끌고 가서 그에게 말하였다. 자아, 페르노를 한 잔 하세 ― 자네로선 마지막이 될 페르노야. 계산은 내가 하겠네 ― 자네 돈으로 말야. 이 말에 뭔가 마음에 걸리는 데가 있었는지, 그는 나를 불안스레 바라보았다. 페르노를 꿀꺽 마시고는, 상처 입은 개처럼 나를 돌아다보며 말하였다. 역시 그 돈을 모두 자네에게 맡길 수는 없어. 하지만... 하지만... 아아, 좋아, 자네가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되는 방식으로 처리해 줘. 나는 그녀를 자살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아. 그 뿐이야. 그녀가 자살하다니 ! 하고 나는 말했다. 그녀가 자살할 턱이 있나 ! 그런 것을 믿을 수 있다면, 자네는 자신의 일을 깊이 생각해야 하네. 그리고 이 돈 얘기인데, 이것을 그녀에게 주기가 나로선 정말 싫지만, 자네에게 약속하겠어. 곧바로 우체국으로 가서, 전보환으로 그녀에게 보내주겠네. 나로서는 이제 필요 이상으로 이런 것을 맡아 가지고 있기가 싫다구. 이렇게 말하면서 나는 회전 탁자에 여러 장의 그림 엽서가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중의 한 장을 집어들었다 ― 이는 에펠 탑이 들어있는 그림 엽서였다 ― 그리고 그에게 편지를 쓰게 하였다. 그녀에게 이제부터 배를 타고 간다고 엽서에 적으라구. 당신을 사랑하고 있소. 미국에 도착하는 대로 그리고 부르겠소. 라고 말해주라구... 우체국에 가면 그것을 속달로 부쳐 주지. 그리고 오늘밤에 만나주지. 두고 보라고, 만사가 다 잘 되어갈 테니. 그리고 우리는 길을 건너 역으로 갔다. 2분밖에 남지 않았다. 이제 안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입구에서 나는 그의 어깨를 한 번 세게 쳐주고, 열차 쪽을 가리켰다. 악수는 해주지 않았다 ― 눈물로 끈적거리는 그의 손을 잡으면 내 손이 더럽혀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빨리 가라구 ! 그녀가 곧 달려올지도 몰라. 하고 말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돌아서자, 나는 빠른 걸음으로 떠나버렸다. 그가 열차에 오르는 걸 확인하려고 뒤돌아보지도 않았다. 뒤돌아보기가 무서웠다. 실은 그를 몰아내듯이 떠나보내고 있을 동안, 그로부터 해방되면 무엇을 하겠다는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여러 가지 약속을 했지만, 이는 단지 그의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였다. 지네트를 만나볼까 해도, 나도 그와 마찬가지로 거의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는 약간 당황하였다. 모든 일이 너무 빨리 진행되었기 때문에, 사태의 성질을 충분히 파악할 수 없었다. 뭔가 멍하고 상쾌한 기분으로 나는 역으로부터 멀어져가고 있었다 ― 그 그림 엽서를 손에 들고. 나는 전신주에 기대어 그것을 다시 읽어보았다. 어쩐지 바보스럽게 여겨졌다. 나는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님을 확인하기 위해, 한 번 더 읽어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찢어 도랑 속에 버렸다. 금방이라도 지네트가 큰 자귀를 손에 들고 뒤쫓아오지 않을까 하고 예상을 하며, 불안한 느낌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뒤따라오는 이는 없었다. 천천히 라파이에트 광장 쪽으로 걸어갔다. 처음부터 그러한 느낌을 갖고 있었던 것처럼 쾌적한 날이었다. 가볍고 연한 흰 구름이 머리 위의 하늘을 바람이 부는 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차양이 펄럭이고 있었다. 파리가 이토록 아름답게 보인 것은 처음으로 느껴지는 일이었다. 나는 그 불쌍한 사내를 떠나보낸 일이 마음에 걸렸다. 라파이에트 광장에 이르러, 교회를 향해 의자에 걸터앉아서 그 시계탑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는 건축물로서는 별로 대단한 게 아니었지만, 푸른 기운을 띤 문자판의 색조가 언제나 나를 황홀하게 만들었다. 오늘은 다른 때보다 더 푸른 기운을 띠고 있었다. 그 문자판에서 눈을 돌릴 수가 없었다. 그가 그녀에게 편지를 내어 사정을 상세히 설명할 정도의 미치광이가 아닌 한, 지네트는 조금도 이러한 내용을 알 필요가 없다. 또 그가 2천 5백 프랑 정도를 남겨두고 간 것을 설령 알았다 하더라도, 그녀는 그 증거를 잡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녀석의 머리가 돌아버린 모양이라고 나는 언제든 말해 줄 수 있는 것이다. 모자 하나 지니지 않고 달아날 만큼 머리가 이상한 녀석이라면, 2천 5백 프랑이든 무엇이든 그 정도의 이야기는 태연히 꾸며낼 수 있는 미치광이 녀석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얼마나 남아 있을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내 주머니는, 그 무게 때문에 축 늘어져 있었다. 그것을 꺼내어 꼼꼼히 계산해 보았다. 정확히 2천 8백 75프랑과 35상팀이 남아 있다. 생각하고 있던 것보다도 많다. 75프랑과 35상팀은 제외해야 한다. 정확히 나눌 수 있는 액수로 만들고 싶었다 ― 2천 8백 프랑으로 말이다. 마침 그때 택시가 보도 옆에 멈춰 섰다. 한 여자가 새하얀 애완용 개를 껴안고 내려섰다. 개가 그녀의 비단옷에 오줌을 싸고 있었다. 개를 데리고 드라이브를 한다는 생각이, 내 신경을 건드렸다. 나 역시 그 개만큼의 값어치는 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생각하자, 나는 운전사에게 신호를 하며 보와로 가자고 말하였다. 장소를 분명히 말해달라고 그는 말했다. 어디든 좋아요. 하고 나는 말했다. 보와로 가서, 그 부근을 몇 바퀴 돕시다 ― 당신의 시간을 보내면 돼요. 나는 조금도 서두르지 않으니까. 나는 자리에 깊숙이 앉았다. 죽 늘어선 집들이 스쳐 지나가고, 깔죽깔죽한 지붕이나 굴뚝 꼭대기에 있는 통풍관, 여러 가지 색깔의 울타리 변소, 어지러운 네거리가 스쳐 지나갔다. 롱 포완을 통과할 때, 아래로 내려가 소변을 볼까 하고 생각하였다. 그 지하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나는 운전사에게 기다리고 있으라고 말하였다. 소변을 보는 동안 택시를 대기시켜 두기란, 생전 처음 경험한 일이었다. 그래서 얼마나 낭비가 되었느냐고? 대수롭지 않다. 주머니에 들어 있는 돈으로라면, 택시 두 대를 대기시켜 둘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자세히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대수로운 게 눈에 띄지도 않았다. 지금 내가 원하고 것은 신선하고 아직 아무도 손대지 않은 이른바 새것 이다 ― 알래스카나 처녀 군도에서 온 여자이다. 자연의 향내를 풍기고 있는 ― 깨끗하고 신선한 털이 난 ― 피부이다. 말할 것도 없이, 그런 여자가 어슬렁거리고 있을 턱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다지 실망하지 않았다. 무엇을 발견하든 발견하지 않든, 아무래도 좋았다. 너무 초조해할 필요가 없다. 무슨 일이든 때가 오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개선문을 통과하였다. 수명의 관광객이 무명 용사의 묘 부근을 슬슬 거닐고 있었다. 차가 보와로 들어서자, 돈 많은 여자들이 모두 고급 승용차를 몰고 있었다. 그녀들은 모두 차를 몰고 갈 목적지라도 있는 것처럼 차를 빠르게 몰아대고 있었다. 분명히 자신을 대단한 존재처럼 보이기 위해 그런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의 롤스로이스나 이스파노 슬라이저가, 얼마나 쾌적하게 달리는가를 세상 사람들에게 자랑해 보이고 있는 것이다. 나의 내부에서는, 여러 가지 생각이 어떤 롤스로이스보다도 더 매끄럽게 달리고 있었다. 그것은 빌로도로 꾸며진 내부 와 꼭 같았다. 빌로도 같은 피부, 빌로도 같은 등뼈. 그리고 빌로도 같은 윤활유. 어떤가 ! 멋있지 않은가. 30분 가량, 주머니 속의 돈을 술에 잔뜩 취한 수병처럼 마구 사용한다는 것은 ! 마치 온 세계가 내 것이 되어버린 듯한 기분이다. 더욱이 무엇보다도 좋은 것은, 그 돈을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 알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택시를 타고 돌아다니며, 미터가 마구 올라가게 하는 일쯤은 할 수 있다. 머리칼이 바람에 날리게 하는 일쯤은 할 수 있다. 차를 세우고, 한 잔 할 수도 있다. 엄청난 팁을 줄 수도 있다. 이런 일은 일상 다반사라는 듯이, 뽐내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혁명을 일으킬 수는 없다. 뱃속의 불결한 것을 씻어낼 수는 없는 것이다. 폴트 두토이유에 이르자, 나는 운전사에게 세느 강 쪽으로 가도록 하였다. 폰 드 세브르에서 택시에서 내려, 오토이유 비디크를 향해 강을 따라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이 부근은 강폭이 실개천같이 좁고, 나무들이 강기슭에도 자라고 있다. 물은 푸르며 거울과도 같다. 특히 맞은편 기슭 부근은. 이따금 거룻배가 분주히 지나갔다. 타이츠 차림의 목욕하는 사람이 풀밭에 서서 햇볕을 받고 있었다. 모든 것이 친밀해 보이고, 강한 햇살을 받으며 약동하고 있었다. 비어 가든을 지나가는데, 자전거를 타고 있던 사람들이 테이블을 에워싸고 있는 게 보였다. 나는 그들 가까이에 자리를 잡고, 큰 글라스짜리 맥주 한 잔을 주문하였다. 그들이 급히 이야기하고 있는 소리를 듣고 있으려니까, 잠시 나는 지네트 생각이 났다. 그녀가 그 야수 같은 모습으로 방안을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고,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오열하거나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는 모습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의 모자가 모자걸이에 걸려 있는 게 보이는 듯했다. 필모어의 옷이 내게 맞을까, 하고 생각하였다. 그는 특히 내 마음에 드는 라글란형 웃옷을 갖고 있었다. 그렇다, 지금쯤 그는 자신의 길을 가고 있을 것이다. 조금 후에는 배를 타고 있을 것이다. 영어 ! 그는 영어로 말하는 소리를 듣고 싶어하였다. 어쩌면 그런 생각을 ! 가고 싶으면, 나도 미국에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머리에 떠올랐다. 기회가 저절로 찾아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는 자신에게 물었다 ― 미국에 가고 싶은가? 대답은 없었다. 나의 생각은 방황하고 있었다 ― 바다 쪽을 향해. 바다 건너의... 마지막으로 되돌아보았을 때에 계속 내리는 눈 속으로 사라져버린 마천루가 있는 그쪽을 향해. 내 눈에는 그것이 다시금 떠나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망령처럼 몽롱하게 떠오르는 것이 보였다. 그 갈비뼈 사이에서 등불이 새어나오는 게 보였다. 할렘으로부터 배터리(battery)에 이르기까지의 온 시가가 전개되어 오는 게 보였다. 개미들로 뒤덮여져 있는 가로, 흐릿해 보이는 고가철도, 텅비어버린 극장. 희미하게나마, 아내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하고 생각하였다. 내 머리 속의 여러 가지 생각이 조용히 제거되어 버리자, 커다란 평화가 마음속을 차지하였다. 이곳에는 ― 조용히 바람이 언덕 주위를 불어가고 있는 이곳에는, 너무 깊숙이 과거 가 스며들어 있기 때문에, 아무리 먼 옛날을 그리워할지라도, 인간의 배경으로부터 분리시킬 수 없는 국토가 가로놓여 있는 것이다. 그렇다. 신경이 기묘하게 날카로운 사람만이 고개를 돌리려고 몽상할 수 있는 강렬한 금빛의 평화가 눈앞에 번뜩였다. 세느 강은 너무 조용히 흘러간다. 그래서 그것이 존재하는 것마저 알아채지 못할 정도이다. 그것은 언제나 거기에 있다. 조용히, 남의 눈에 띄지 않게 마치 대동맥이 인간의 육체 속을 달리고 있는 것처럼. 불가사의할 정도의 평화가 내게 찾아왔다. 그래서 마치 나는 높은 산꼭대기에라도 오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리하여 잠시 동안, 나는 주위를 바라보며, 풍경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인간은 기이한 동물이나 식물을 만들고 있다. 멀리서 바라보면, 인간은 보잘 것 없는 것처럼 보인다. 가까이 다가감에 따라, 추악하고 악의에 찬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충분한 공간에 둘러싸여 있을 필요가 있다 ― 시간보다도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해가 기울어져가고 있다. 나는 이 강물이 내 속으로 흘러드는 것을 느낀다 ― 그 오랜 옛날부터 있어온 흙, 그 변천하는 풍토... 언덕이 부드럽게 그 주위를 에워싸고 있다. 하지만 그 자연의 운행은 일정한 것이다. 헨리 밀러와 『북회귀선』 1. 헨리 밀러의 경력 헨리 밀러(Henry Miller)가 어떤 작가인지는, 그 자신의 다음과 같은 말이 가장 잘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내가 작품을 쓰는 것은 보다 나은 현실을 이룩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현실주의자도 아니고 자연주의자도 아니다. 나는 생명 편에서는 사람이며, 생명은 문학에 있어 꿈과 상징을 구사함으로써만 얻어진다. 나는 마음속으로는 형이상 적인 작가이다. (『자전적 노트』) 나에게 있어 작품이란 그것을 쓴 인간과 동일한 것이다. 따라서 내 작품은 나라는 인간과 마찬가지이다. 멍청하고, 일을 중도에서 팽개치고, 무모하고, 열광적이며, 야비하고 외설스러우며, 시끄럽고, 생각에 잠기기 쉽고, 거짓말쟁이이며, 담력이 작고 겁이 많은 데다 악마처럼 성실한 나라는 인간과 같은 것이다. 나는 자신을 하나의 작품이나 하나의 기록으로 보지 않는다. 나는 자신을 하나의 현대사, 아니, 모든 시대의 역사라고 생각하고 있다. (『검은 봄』) 나의 작품이 순수히 진실한 면을 전달하게 되었을 때, 인간인 나와 문학자인 나는 동일한 선율을 연주할 것이다... 이야말로 인간이 품을 수 있는 최고의 이상이다. (『성의 세계』) 이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요컨대 그에게 있어서는, 문학은 세계 전체와 관련되고, 인간의 생명 자체와 관련되는 것이다. 이처럼 코스믹한 작가가 출현했다는 것은, 뭐니뭐니 해도 미국 문명의 성숙을 말해주는 현상의 하나일 것임에 틀림없다. 물론 밀러의 정신이 형성되는 데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의 문물이 커다란 역할을 했으리라는 것은, 그의 경력을 보아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그러면 우선 그의 경력을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자. 헨리 밀러는 1891년 12월 26일에, 뉴욕주의 요크빌에서 태어났으며, 태어난 지 얼마 안되어 브루클린으로 옮겨갔다. 할아버지 대부터 양복점을 하고 있었으며, 부모가 모두 독일계여서, 그도 국민학교 들어갈 때까지 거의 독일어밖에는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유소년 시대를 보낸 브루클린구 윌리엄즈버그의 제14구라 불리는 뒷골목의 초라한 거리는, 여러 나라 사람들이 모여 있는 이민 지역이었다. 하루하루 끼니를 잇기가 어려운 가족이 많았지만, 모두들 자기네 모국어를 사용하고, 복장이나 생활 양식도 가지각색이었으며, 스페인어로 떠들어대고 있는 부부가 있는가 하면, 그 집의 창문 아래를 이탈리아어로 콧노래를 부르면서 술에 잔뜩 취한 노인이 지나가는 식이어서, 마치 인조의 견본시 같았다. 이러한 환경이, 감수성이 예민한 소년의 마음에 어떤 영향을 미치지 않을 리가 없다. 그의 천성처럼 여겨지는 코스모폴리타니즘과 방랑성은, 이 브루클린 제14구의 의해 육성되었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단편집인 『검은 봄』 속의, 「제14구」,「양복점」 등에, 이 무렵의 생활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굉장히 독서를 좋아하여, 영국의 아동문학자인 G. A. 헨티의 역사 로망스나 라이더 허가드, 마리 코렐리, 리튼경, 유제느슈, 쿠퍼, 셴키비치, 마크 트웨인 등의 작품을 애독하였다. 특히 허가드의『솔로몬왕의 보고』,『그녀』,『아이셔』 등을 읽고 커다란 감명을 받은 모양이며, 후에 허가드야말로 내 영혼을 사로잡는 작가의 한 사람이다.『북쪽의 사자』(헨티의 소설)의 경우도 그랬지만,『그녀』를 읽고 아이셔라는 신비로운 여성을 만났을 때의 압도적인 감동을, 지금도 나는 잊을 수 없다. 고 적고 있을 정도이다. 브루클린의 동부 지역 하이스쿨에 다니고 있던 무렵인 16세 때에 첫 사랑을 경험하였다. 상대는 같은 하이스쿨의 학생인 코라 시워드라는 이름의 한 두 살 연상인 소녀이다. 깊이 사모한 나머지 밤에 몰래 그녀의 집 주위를 헤매곤 했던 시기가 있었음은 알려져 있지만, 이 첫사랑이 어떻게 발전되었는지 ― 혹은 전혀 발전되지 않았는지 ― 는 알 수가 없다. 순수히 플라토닉한 연애였다. 고 그 자신은 말하고 있다. 18세 때에 뉴욕 시립대학에 입학했지만, 그 분위기가 커리큘럼의 지겨움을 견딜 수 없어 2개월만에 퇴학하였다. 규칙이나 제도에 반발하며, 자유를 추구하는 성향이, 이미 이 무렵부터 싹트고 있었던 것 같다. 그 후 뉴욕의 금융 가에 있는 애틀러스 포트랜드 시멘트 회사에 취직했지만, 이 회사에서 난생 처음으로 월급을 받은 직후부터, 그의 맹렬한 성적 편력이 시작된다. 길에 나와 유인하는 매춘부를 비롯하여 숍 걸이나 간호원, 댄서, 극장의 매표원, 안내양 등 어떤 종류의 여자든 여자이기만 하면 되었던 모양이다. 어머니만큼이나 나이가 많은 연상의 여자인 폴린 차토와 동서를 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코넬 대학에 보내려고 아버지가 마련해준 학자금을 모조리 이 동서생활의 자금으로 날려버렸다. 섹스의 노예가 되어, 전혀 구원이나 희망도 없는 지옥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었다. (『나의 독서』)고 당시를 되돌아보며 그는 적고 있다. 하지만 섹스가 전부인 듯한 생활이 그렇게 언제까지나 계속될 리가 없다. 얼마 후에 그는 이러한 생활에 싫증을 느껴, 뉴욕을 버리고 훌쩍 서부로 여행을 떠났다. 여기저기서 임시로 고용되어 일을 하면서 서부를 방랑하는 동안에, 샌디에이고에서 아나키스트인 에마 골드만을 만나고, 그녀를 통해 유럽 문화에 눈을 뜨게 되었다. 러시아 문학, 특히 도스토예프스키에게 유달리 열중하게 된 것도, 그녀로부터 시사를 받은 때문이다. 물에 빠져버리듯이 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세계로 빠져들어 갔다. (『나의 독서』) ― 이것이 그의 인생의 하나의 전기가 되었다. 이듬해에 뉴욕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가업을 거들었다. 프랜크 해리스를 알게 된 것은 이 무렵의 일이다. 두 사람은 때로는 술집에서, 때로는 공원의 벤치에서, 때로는 거리를 거닐면서, 문학 이야기보다는 여자이야기에 더욱 열중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탐욕스러울이만큼 지적 호기심이 강한 24세인 헨리 밀러의 마음에, 이『나의 생애와 연애』의 작가가,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았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26세 때에 비아트리스 실버스 위키즈라는 피아니스트와 결혼하였다.『섹서스』에 등장하는 모드 라는 여자의 모델이 이 비아트리스이다. 그가 이 첫아내를 정말로 사랑하고 있었는지 의심스럽다. 그녀의 육체만이 목적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여겨지는 면이 다분히 있는 것이다. 적어도 비아트리스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아무튼 2년 후에 딸이 태어나고, 바바라 실버스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 딸은 그로부터 30년 후인 1955년에, 바바라 샌포드라는 이름을 가지고 아버지인 헨리 밀러와 재회한다). 1917년에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가하자, 그는 워싱턴으로 가서 잠시 육군성에 근무하는 한편, 신문의 통신원으로서도 일하였다. 그후 잠깐 경제 조사국에 근무하고, 이어 찰스 윌리엄 백화점에서 카탈로그를 편집하는 일에 종사하였다. 여기서 해고된 이후로는 호텔의 접시 닦기, 버스 차장, 신문 팔이, 메센저 보이, 무던 파는 인부, 광고 삐라 붙이는 사람, 호텔의 보이, 체조 교사 등의 임시직을 전전하였다. 얼마간 생활이 안정된 것은, 1920년에 뉴욕 시에 있는 웨스턴 유니언 전신 회사에 취직한 이후부터이다. 메센저(배달인)로서 수개월 일한 다음에, 배달부의 고용주임이 되었다.『남회귀선』,『섹서스』 등에 다루어지고 있는 것은, 이 무렵의 생활이다. 1922년에 휴가를 이용하여 처녀작인『잘려진 날개』를 완성, 친구를 통해 어느 잡지사에 보냈지만, 깨끗이 반려되었다. 그때 편집자가 당신한테는 털끝만큼의 재능도 없다. 당신은 작가로서는 낙제이다. 라고 말했다는 것을, 나중에 그는 작품 속에 적고 있다(『섹서스』). 1923년에 브로드웨이의 댄스홀에서 준 이디스 스미스와 알게 되었다.『섹서스』에 등장하는 마라 혹은 모나 의 모텔이 된 여자이다. 그녀는 당시 택시 걸이라고 불린 직업적 댄서였다. 꽤 머리가 좋고 미모이기도 하지만, 대단한 거짓말쟁이이고, 낭비가이며, 익센트릭하고, 성적으로 칠칠치 못하며,『내 친구 헨리 밀러』의 저자인 페를러스의 말에 의하면, 어떤 종류의 프랑스 소설에 흔히 나오는 요부형 여자 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밀러는 이 여자의 결점을 잘 알면서도, 이듬해에 첫 아내인 비아트리스와 이혼하고 준과 결혼하였다. 그리고 창작에 열중하기 위해 웨스턴 유니언 전시회사를 그만두었다. 준도 처음에는 밀러를 의젓한 작가로 만들려고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인 모양이다. 하지만 가난 에 약한 여자였다. 돈이 궁색해지면 태연히 자신의 육체를 이용하였다. 자작 산문시집인『동요판』을 팔려고 돌아다니고, 그리니지 빌리지에서 스피크 이지(일종의 무허가 술집)를 열기도 하고, 퀸즈 카운티의 공원과에 근무하고, 때로는 거리에서 구걸까지 하면서 미치광이처럼 원고를 써나가는 밀러의 생활을 뒷받침하고 있었던 것은, 거의 준이 패트런으로부터 교묘히 가로채어오는 돈이었다. 1928년에 밀러가 준과 함께 1년 동안의 유럽 여행을 떠날 수 있었던 것도, 그녀가 교묘히 봉 들로부터 우려내어 온 돈 덕분이다. 준은 한없이 선량한 면과 브레이크가 듣지 않는 방자한 면을 아울러 지닌 여자였던 모양이다. 당연히 밀러는 괴로워하였다. 그 무렵의 두 사람 사이는 격렬한 충돌과 화해의 되풀이였다. 하지만 준과의 만남은, 밀러의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리라고 생각된다. 그 자신이 로렌스 다레르에게 보낸 편지 속에서 만일 준과의 사이에 일어난 비극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자신이 과연 작가가 될 수 있었을지 의심스럽다 고 말하고 있을 정도이다. 유럽 여행을 하고 돌아오자, 곧 소설『이 이교 적인 세계』를 완성하였다. 이어 1930년에 밀러는 혼자 유럽으로 건너가게 되지만, 1924년부터 1930년까지의 7년 동안은 그에게 있어 가난과 절망과 고뇌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그 무렵에 나는 늘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다. (『섹서스』)고 그 자신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그 무렵에 그가 살고 있던 지역은 바로 정신의 시베리아 였다. 눈사태로 길이 막히고 찬바람이 몰아치는 시베리아의 동토 지대이다. 아내 이외의 여자와도 여러 가지 교섭을 가졌던 모양이지만, 이것도 어떻게든 삶의 증거를 구하려는 절박한 기분 때문이었으리라. 당시 그는 친구들 사이에서 소탈하며 익살스럽고 재미있는 사나이 로 통하고 있었고, 실제로 사람을 잘 웃겼다고 하는데, 이것도 한 껍질을 벗기면 애처로운 어릿광대였던 게 아닐까. 자살이나 살인도 할 수 없을 때, 사람은 어릿광대가 된다. (『사닥다리 아래의 미소』)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절망과 고독의 구렁텅이에서 그가 파악한 것은 죽음이 아니었다. 하나의 자각 ― 글을 쓰는 게 살아가는 것이라는 자각이었다. 이 자각을 포착했기 때문에 그는 망설이는 일없이 아내인 준을 버리고 미국을 버리고 유럽으로 건너갈 결의를 한 것이다. 그때 그의 주머니에는 친구한테서 빌린 10달러 밖에 없었다고 한다. 잠시 런던에 머물렀다가 파리로 옮아갔다. 이리하여 1936년까지 계속되는 그의 파리 생활이 시작되는 것이다. 자유 는 있지만 돈은 없었다. 그러나 밀러는 기묘한 처세상의 재간을 지니고 있었다. 친구를 만드는 재능이다. 언제나 누군가가 먹을 것과 잠잘 곳을 제공해 주었다. 이내 그는 뉴욕 시티 뱅크의 파리 지점에 근무하는 리차드 오즈본이라는 미국 청년과 친구가 되고, 그의 소개로 애나이스 닌을 알게 되었다. 6개 국어를 자유로이 말하고, 초현실주의적인 전위작가로서 이미 문명이 나 있던 이 여류작가는, 노트에 갈겨 씌어진 밀러의 짧은 원고를 읽어보고 즉시 그의 작가적 소양을 간파하였다. 앨프레드 페를러스를 알게 된 것도 이 무렵의 밀이다.《시카고 트리븐》파리판 교정원으로 고용되거나, 겨울 동안 디종의 리세 카르노에서 영어 교사 노릇을 하거나, 굶주리게 되면 친구의 아파트를 찾아가곤 하면서 계속 써나간『북회귀선』이, 애나이스 닌의 서문을 곁들여 오베리스크 프레스 사에서 출판된 것은, 1934년 6월의 일이었다. 마침 밀러가 비라 슬라로 방을 얻어 이사를 한 날인데, 발행인인 자크 카헤인이 갓 만들어진 책을 갖고 비라 슬라를 찾아왔다. 이 출판인은 1939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언제나 밀러를 잘 이해하는 사람이었다. 출판한 지 얼마 안되어 브레이즈 샌드럴스가 밀러의 아파트를 방문하였다. 파란 많은 방랑생활과 기행의 인물로 알려져 있는 이 전위 작가에 대한 밀러의 경도는, 이미 프랑스로 건너가기 전부터 시작되고 있었지만, 샌드럴스 역시 밀러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고,《궤도》지에『북회귀선』에 대한 호의에 찬 장문의 비평을 실어주어 밀러를 감격시켰다. 후에 밀러는『나의 독서』속에서, 이 작가에 언급하여, ... 그는 생 지상주의자이다. 그의 Life는 언제나 대문자인 L로 되어있다. 그것이 샌드럴스이다... 그를 머리에 떠올리면, 내 가슴에 감사의 마음이 치밀어 오른다. 그만큼 나를 높이 평가해준 작가는 없었다. 라고 적고 있다. 이 작품을 제일 먼저 인정한 사람은 에드먼드 윌슨과 조지 오웰이지만, 그 후 엘리어트, 하버드 리드, 헉슬리, 도스 패소스, 에즈라 파운드 등도 각기 이해를 나타내는 서평을 발표함으로써 이 새로운 기재의 등장을 환영하였다. 하지만 비난의 소리도 물론 있었다. 아니, 비난하는 소리가 더 많았는지도 모른다. 내용이 외설적이다 라는 비난을 제외하면,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 라는 부정적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도대체 플롯이 없지 않느냐 는 것이다. 플롯이 없으니까 소설이 아니라고는 물론 말할 수 없다 하더라도, 밀러의 작품에 플롯이 결여되어 있는 것 분명하고, 소설의 모양을 이루고 있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 일어난 사건이나 에피소드가 얼핏 보기에 무질서하게 보일 만큼 자의적으로 서술되어 있을 뿐이고, 등장하는 인물만 해도 한두 번 잠깐 얼굴을 내밀고 모습을 감춰버리고 주인공의 주관에 영향을 미칠 뿐이며, 작품 전체의 구성에는 아무런 유기적 관련도 갖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이 있다. 그리고 사건이나 에피소드의 막간에는, 주인공의 독백 형식으로, 인생관이나 우주관이나 예술관이 마치 샘물이 분출하듯이 한없이 전개되는 것이다. 이른바 소설 이나 픽션 따위를 구성하려는 의도가, 밀러에게는 전혀 없다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 작품을 소설적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나 고려를, 그는 처음부터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소설 이라는 기성의 형태를 파괴하는 데서 그의 문학은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섹서스』속에, 한 친구가 자네는 소설만은 쓰지 않는 게 좋겠어. 자네에게는 플롯의 관념이 통 없으니까. 하고 말하자, 주인공이 소설에 플롯 따위가 필요한가? 하고 반문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를 밀러의 해답이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형식 따위에 구애되는 일없이, 진정한 문학의 본질적 엣센스만을 노골적으로 표출한다는 것이 밀러류의 방식인 것이다. 밀러의 작품은 소설이라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문학이라고 부를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라고『북회귀선』의 서평 속에서 샌드럴스는 말하고 있다. 이 해에 밀러는 대리인을 내세워 멕시코 시티에서 준과의 이혼 수속을 밟았다. 이어 1935년에『뉴욕 법원』1936년에『검은 봄』, 1938년에『맥스와 흰 식균세포』, 1939년에는『남회귀선』을 모두 오벨리스크 프레스 사에서 출판하였다. 『알렉산드리아 4부작』의 작가인 로렌스 다레르와 처음으로 만난 것은 1937년으로, 밀러가 46세 때이다. 당시 그리스의 코르크 섬에서 살고 있던 인도 태생의 이 영국 청년 시인은『북회귀선』을 읽고 감격하여, 젊은 부인 낸시와 함께 어느날 갑자기 비라 슬라를 찾아왔던 것이다. 그 후로 이 두 사람은 친교를 맺게 되는데, 두 사람의 우정은『밀러와 다레르의 왕복 서간집』에 잘 나타나 있다. 1939년 여름에 그리스로 여행을 떠났는데, 우선 코르크 섬에 있는 로렌스 다레르의 집을 방문하였다. 그리고 여기를 근거지로 삼아 아테네를 방문하고, 그리스의 여러 섬과 펠로폰네소스를 구경하고, 다레르의 소개로 그리스 소설가나 시인, 화가들과 만나곤 하면서 자유와 해방 의 나날을 즐기고 있었는데, 이 해 말경에 아테네의 미국 영사관으로부터 귀국 명령을 받고 뉴욕으로 돌아갔다. 버지니아주의 보링 그린에 있는 캐리스 크로스비의 집에 체재하며, 그리스 기행문인『마르시의 거상』과『성의 세계』,『크리스의 조용한 나날』 등을 집필하고, 이어 1940년 10월부터 이듬해의 10월에 걸쳐 미국 주유여행을 하였다.『냉방 장치의 악몽』이나『추억에의 추억』등은 이 여행의 산물이다. 1942년에 어느 독지가의 호의로, 로스엔젤레스의 비바리 그레인에 있는 집 한 채를 제공받아, 마가레트 닐만, 길버트 닐만과 함께 1944년까지 여기서 거주하고 있었다. 그 동안 많은 에세이나 평론을 쓰고, 3부작인『장미색의 십자가』제1부를 집필하는 한편, 빈번히 수채화 개인전을 여는 등, 이 무렵이 아마도 가장 정력적으로 제작에 몰두한 시기였는지도 모른다. 1944년 12월에, 콜로라도주의 덴버에서 J. M 러프스와 결혼하고, 카멜 시장이었던 키스 에반스로부터 제공받은, 캘리포니아주의 퍼틴턴 리지에 있는 통나무집으로 셋째 아내와 함께 이주하여, 여기서『섹서스』를 탈고하였다. 경제적으로는 여전히 궁색하여, 돈을 마련하기 위해 빈번히 버클리나 샌프란스스코에 다녀오지 않으면 안되었다. 1947년에 그 퍼틴턴에 있는 진 워턴의 별장을 양도받았지만, 그것도 지불은 언제 해도 좋다는 조건부였다. 이듬해에 친구인 페르난 레제를 위해『사닥다리 아래의 미소』를 집필, 뉴욕의 듀얼 슬론 앤드 피어스사에서 출판하였다. 이해에 아들인 토니가 태어났다. 그러나 러프스커와의 사이는 토니가 태어나면서부터 급격히 악화되어 1951년에 별거를 하고, 이듬해에 정식으로 이혼하였다. 이 해의 12월말에 이브 맥루어와 함께 유럽 여행을 떠나, 섣달 그믐날에 파리에 도착하였다. 파리 체재 중에『프렉서스』가 오란피아 프레스사에서 출판되었다. 이 출판사는, 밀러를 잘 이해해주는 사람이고 후원자이기도 했던 오베리스크 프레스사 사장인 카헤인의 아들인 모터스 지로디어스가 이 해에 창립한 것으로, 창사 후 10번째로 낸 책이 이『프렉서스』였다. 이 해에는 거의 1년 동안에 걸쳐, 몬테카를로, 주네브, 로잔, 브뤼셀, 바르셀로나, 그라나다, 콜드바, 마드리드, 세고비아 등지를 여행하고, 또 페를러스 부부가 있는 영국의 웨일즈도 다녀왔다. 2. 『북회귀선』에 대하여 『북회귀선』(Tropic of Cancer)이 처음으로 독자에게 안겨주는 것은 아마도 일종의 불가해하고 혼란스러우며 파악하기 어려운 총체라는 인상일 것이다. 여기서는 일상 다반적인 현실의 묘사가 갑자기 꿈이나 환상으로 전환되고, 성교의 서술이 대뜸 철학적인 명상으로 비약한다. 격정과 침잠, 절망과 평화, 감상과 냉혹, 감성과 지성이 어지럽게 교차한다. 나는 생각할 수 있는 한의 거의 모든 표현 수단을 탐구한다. (『검은 봄』)고 스스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영어의 기초적인 문법 외에는 모든 약속이나 습관적인 수사법을 무시하는 방약무인의 자유 분방한 태도로, 일상적인 구어나 문어, 비어, 은어, 학술 용어 및 그 자신의 새 조어까지 구사한다. 비약적인 쉬르리얼리즘과 평이하고 솔직한 리얼리즘이 기묘하게 접합되어 있으며, 다다이즘이나 아나키즘, 상징주의, 표현주의 등의 19세기말부터 금세기 초에 걸쳐 파리를 중심으로 소용돌이치고 있던 모든 사고 내지는 표현상의 형식이, 파악하기 어려운 혼돈 속에서 은린처럼 번뜩인다. 그리고 그것들은, 근원적인 에너지가 가져오는 은밀한 내적 응집력 같은 것이 억지고 결합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소설인가, 하고 말한 비평가가 있지만, 확실히 이『북회귀선』은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자서전인지, 판타지 이야기인지 약간 분간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현실의 체험이 중요시되고 있고, 아주 소설적인 서술이 나오는가 하면, 작가 자신의 생경한 감상이나 사상이 거리낌없이 여기저기서 얼굴을 내미는 식이며, 문학의 장르에 관한 고전적 약속 같은 것이 실로 무관심하게 깨뜨려지고 있다. 이 작품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것은, 나 로 되어 있는 주인공의 생활과 의견 이며, 이 인물이 가공의 인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작가 자신임을 짐작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북회귀선』을 자서전이라고 부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보통의 자서전의 경우에는, 작가의 꿈이나 환상이나 객체로부터 독립된 작가의 주관 따위의 서술을, 여기서처럼 자유로이 수용하지는 않을 것이고, 또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는, 한편으로는 현실의 누군가의 모습에 의거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작가 자신의 이미지 내지는 분신에 의거하고 있는 식으로, 현실로부터 픽션 속으로 한쪽 발을 내딛고 있는 듯한 인물이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 작가의 생활 과는 아무런 직접적 관련성도 없을 듯한 인물에 대한 작가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나타내지 않는 객관적인 서술도, 자서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이 담겨져 있는 듯하다. 물론 이는, 작가가 소설가인 이상, 혹은 적어도 소설을 쓰려 하고 있는 인간인 이상,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소설가의 생활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는 그 자신의 생활이고, 또 하나는 타인의 생활을 관찰하는 일이다 ― 그에게 있어서는 타인의 생활을 관찰하는 일 역시 생활하는 것이다. 한편, 소설에 관한 종래의 미학의 입장에서 보면, 이 작품을 소설이라 부르기가 어려울 듯한 느낌이 들지도 모른다. 스토리나 극적 긴장감 등의 모든 형식적 균제가, 여기에는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형식 이 없어 보이는 조이스의『율리시즈』만 해도, 실은 호머의『율리시즈』의 구성 의 모방 위에 성립되어 있음은, 스튜어트 길버트 등이 지적하고 있는 바이지만, 객관적으로는 반드시 명료하지 않더라도, 작자 자신의 노력을 주관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그러한 어떤 형식성에의 지향이『북회귀선』에는 거의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북회귀선』은 소설이라 불리어야 하고, 그렇게 불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자유분방한 작품 ― 영어로 씌어져 있고, 작자의 어느 시기의 생활 및 의견을 주로 서술하고 있다는 것밖에는, 형식상의 아무런 규범도 갖고 있지 않은 이 작품 ― 의 배후에는, 외적, 일상적, 자연적인 질서 대신, 어떤 내적인 질서를 수립하려는 태도, 말하자면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가려는 지향이 미리 작용하고 있는 동시에, 그것이 작품의 골격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너 자신으로 돌아가라 는 생각이, 일찍부터 밀러의 온 존재에 걸쳐 있는 근원적인 테마였다. 아니, 테라라기보다는 더욱 절실하고, 육체적인 것, 그 자신과 불가분의 것, 앞을 향해 걸어가는 그의 자세 자체였던 것이다. 그래서 자기 이외의 것으로부터 자기를 탈환하기 위해, 그는 어려서부터 가정에 반항하고, 환경에 반역하였다. 미국의 집단적, 기계적, 반 개성적인 문명을 저주하면 파리로 도피하였다. 그리고 글을 씀에 있어서도, 모든 형식 내지는 관습을, 그것이 자기를 제한하거나 속박하고, 자기를 자기에게로 환원시키는 데 장애가 되는 한, 파괴하기에 ― 또는 그것들에 반항하기에, 혹은 그것들로부터 도피하기에 ― 이른 것이다. 즉 밀러에게 있어서는, 글을 쓰는 일이 자기의 근원적인 욕구로부터 나온 행위인 한, 이는 그 자신에게로 돌아가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필연적으로 기존의 형식 내지는 관습의 타파를 수반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모든 형식을 타파하는 일 자체가, 그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그리고 유일한 형식이 된 것이다. 소설가에게 있어서는 타인의(그리고 그 자신의) 생활을 관찰하는 일도 생활의 일부분이라고 말했지만, 이러한 면이, 밀러의 생활의 주제가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면과 더불어,『북회귀선』의 작가(그리고 이 작품의 주인공)의 입장을 복잡하게 만들고, 이 작품에 특이하고 미묘한 함축성을 부여하고 있다.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간다 는 것은, 바꿔 말하면, 스스로의 행위를 의식에 의해 규정하지 않고, 반대로 의식을 행위가 이끄는 대로 맡겨두는 일이다. 왜냐하면 의식은 언제나 자기 이외의 무엇에 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행위를 의식에 의해 규정할 경우에는, 의식은 어떤 의미에서는 타자의 지시를 감수하게 되고, 당연히 행위도 타인에 위해 규정되게 된다. 스스로 발견한 게 아니라, 이전부터 존재하는 어떤 이념 역시 타자 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밀러가 얼핏 보기에 반주지주의적 태도를 취하는 것처럼 보이고, 개념 내지는 추상보다도 개개의 체험을 중시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무엇보다도 우선 생활을 하고 외친다. 그리고 예지와 창조의 근원인 체험 (애나이스 닌)을 얻으려고, 자아를 생활의 혼란스러운 흐름 속으로 해방시킨다. 즉 행위를 의식으로부터 ― 의식을 통해 다가오는 여러 가지의 이념이나 윤리, 관습 등의 질곡으로부터 ― 유리시켜, 마음껏 생명력의 디오니즘적 난무에 맡겨버리는 것이다. 행위가 의식으로부터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그 궤적은 순수 체험이 되어, 개념화·추상화의 대극 쪽으로 다가가지만, 그러나 한편으로, 인식의 대상이 되는 자아는, 반드시 순수히 개성적인 것 ― 개념 내지는 추상과 완전히 단절된 것 ― 은 아니다. 행위가 스스로의 난무에 지쳐버려, 자연히 그 회전 속도를 늦춰갈 때, 거기에 어느 틈엔지 의식이 스며든다. 체험이 이념에 의해. 자기 자신인 상태 가 자기 자신이고자 하는 상태 에 의해 대체된다. 사람은 순수히 자아 자체일 때에는, 일종의 망아의 상태에 놓여 있다. 자아라는 것을 인식했다고 느끼는 것은 ― 혹은 인식하려고 유의하는 것은 ― 이미 자신 속에 자아 이외의 것이 섞여 있는 상태일 때인 것이다. 글을 쓰는 것은, 인간의 죽음의 행위 라는 발자크의 말을 작품 속에 인용하고 있는 밀러가, 이러한 사정에 무관심할 리가 없다. 글을 쓴다는 행위는, 인간의 필연적 조건에서 오고 있는 진실한 생활이나 진실한 행위를 보완하는 것이며, 대용품인 것이다. 아마도 밀러는 살아가는 일에 글을 쓰는 일을 플러스해야만 비로소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된다고 느끼고 있는 것같다. 진실하게 살아가지 않는 시간을 글을 쓰는 시간으로 만듦으로써, 행위에 그 대극인 의식을 가지고 대응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자아를 ― 순수 행위를, 살아가는 일을 ― 회복하려고 하는 것이다. 적어도 자아가, 그 이외의 것으로부터 탈각하여, 자아 자신에게로 복귀하는 데 편리하도록 길을 닦아두려는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소설가에게 있어서는 관찰 역시 생활이라는 측면이 있다. 그리고 관찰의 대상이 그 자신일 때, 그의 생활을 보는 그와 보여지는 그가 교체되어 가는 데서 성립되게 된다. 그러한 그가 그 자신에게 돌아가려고 의도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북회귀선』이 슈르리얼리즘적인 자동 기술법과 유사한 부분을 포함하고 있고, 또 일종의 사소설 같은 분위기를 갖고 있는 것은, 모두 이러한 사정과 결부되어 있다. 자동 기술법은 위에서 말한 의식 ― 행위라는 대립 대신 의식 ― 무의식이라는 대립을 통해, 의식의 개입을 극력 피한 라이팅(writing) 으로써 실제 행동을 대신케 하려는 방식이다. 즉 자동 기술법을 포함한 기술 에 있어서는, 작가는 책상 앞에 앉은 채로, 자기의 존재 방식을 구석구석까지 편력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살아가는 일을 글을 쓰는 일로 대체하려는 방식이다. 따라서 거기서 생겨나는 작품은, 그 일상성 플러스 비일상성에 의해, 어떤 총체로서의 인상을 독자에게 안겨줄 수 있을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가려는 그와, 이를 관찰하는 그가 잇따라 교체되어 가면, 자칫하면 현실의 생활이, 그 생활을 묘사한 작품을 만들려고 하는 의욕 쪽으로 다가가는 결과를 초래하기 쉽다. 즉 예술을 모방하는 생활을 예술이 다시 모방하는 셈이다. 현실로부터 픽션에의 이행이 연속적이고, 그 중간에 확연한 경계가 없는 점은, 일본의 사소설 작가의 경우와 흡사하다. 다만 주의해야 할 점은, 사소설에서의 현실과 픽션의 무차별 내지는 혼동이, 미학의 결여에서 오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되는 면이 있는 데 반해, 밀러의 경우는 그 격렬한 자아 중심주의가 종래의 미학을 모조리 파괴하려 하고 있는 데서 오고 있는 점이다. 예술과 생활의 이러한 상관 관계는, 또 예술의 수도인 파리의 분위기의 저류이면, 이러한 분위기에 끌려 세계 각지에서 이곳에 모여드는 예술가 또는 예술 지망자들의 마음속의 도식이기도 한 모양이다. 파리의 개인적 비전을 훌륭히 표현한 작품 (브레이즈 샌드럴즈) 또는 전후에 프랑스로 건너간 세대를 위한 비명 (에드먼드 윌슨)이라는 등의 찬사를『북회귀선』이 받게 된 것은, 단지 파리 내지는 상실된 세대 의 사람들이 등장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러한 내면적 관계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조지 오웰은 헨리 밀러라는 작가는, 피투성이의 우열한 현대 세계로부터 고래의 뱃속 으로 도피한 것이다. 즉 그는 외부 세계에 전혀 무관심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보존하려 한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확실히 자기 보존을 위해 외부 세계로부터 도피하는 일은, 밀러의 전반생의 방랑의 주제였고, 그의 사상의 일면이 표출이기도 했다. 외부의 이데올로기나 필연성이나 규격성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 주위의 무목적 적인 자유의 영역을 보존함으로써 자기를 보존하려고 하는 밀러와 같은 인간에 있어, 현대 세계의 현대성을 일시적이나마 관심 밖의 사항으로 돌려두는 이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으리라는 것은, 손쉽게 내다볼 수 있는 점이다. 이데올로기의 이것이냐 저것이냐 나 정치상의 목적과 수단의 상극 문제 따위에 밀러는 직접 관여하려 하지 않았다. 부득이하게 대결을 강요당하면, 거의 신경질적인 전면적 부정으로써 이에 응답하였다. 정치나 집단, 기계등이 인간보다 우월한 존재가 되고, 비인간적인 이념 아래서 인간의 피가 흘려지는 현대 세계는, 그의 눈에 거대한 붕괴 로 비쳐졌다. 이는 인간을 그 자신으로부터 유리시킨 문명의 비참한 말로이다. 문명 세계 전체의 병폐가, 다가올 백 년 동안에 불식될 것을 나는 희망하고 또 믿고 있다. 고 그는 말한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반 문명적이며 아나키스틱한 태도를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태도를 적극적인 아나키즘으로 전화 시키지는 않았다. 밀러의 특이한 점은, 그가 현대의 문제를 현대적 척도에 의해 해결하려 하지 않고, 반대로 문제 자체를 초시대적인 척도 속으로 해소시키려 하는 데 있다. 그의 태도가 다른 면에서 적극성을 띠기 시작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현대 세계는 역사적·시간적인 서열 속에서 부여받은 의미를 박탈당하여, 우주의 공간적인 총체 속의 단순한 한 조각이 되어 버린다. 애나이스 닌이 잘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이는 결코 이른바 원시주의(primitivism)가 아니다. 우리의 세계에서 신성시되고 터부시되고 있는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보이는 파타고니아니의 눈을 가지고 만상을 보는 일이다. 이는 세계의 혼돈과 풍요를 남김없이 인정하는 랭보의 태도와 유사하다. 현실과 비현실이 합쳐진 총체로서의 우주를 그들은 투시한다. 랭보가 연금술 이라고 말할 때, 밀러는 세잔느류로 실현(realization) 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밀러에게 있어서는 세계는 질서가 잡혀져야 할 존재가 아니라, 실현된 질서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질서에 우리를 조화시키는 일이다. (『장미색의 십자가』) 여기서 예술이란 진실을 말하는 일이고, 창조가 아니라 재건이며 실현이다. 사람은 기성 개념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킴으로써 ―일상적 세계로부터의 전위에 의해 ― 진정한 현실(reality)에 도달할 수 있다. 는 쉬르리얼리즘적인 예술론이 생겨난다. 우리는 실은 발명을 하지 않는다. 차용하며 재건할 뿐이다. 덮개를 들어내고 발견하는 것이다. 신비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든 것이 주어져 있다. 우리는 단지 눈과 마음을 열고, 존재하는 것과 합쳐지기만 하면 된다. 고 밀러는 말하고 있다.(『사닥다리 아래의 미소』) 이리하여 최근의 밀러는 예술가의 위대한 기쁨은, 사물의 보다 높은 질서를 인식하는 일이며... 인간적 창조와 이른바 신의 창조가 유사한 점을 인정하는 일이다. (『장미색의 십자가』)라고 생각하는 고전적이며 종교적인 유연함에 도달한 것처럼 보인다. 보들레르나 랭보의 계열에 속한다고 스스로 생각한 밀러의 이러한 사상적 전개는,『장미색의 십자가』의 중심적인 주제를 이루고 있다. 쉬르리얼리즘과 리얼리즘을 구분해서 사용하고, 극도의 자기 집중으로부터 철저한 자기 포기 쪽으로 자유로이 왕복하며, 도처에 적나라한 성의 묘사가 점철되어 있는 이 대작은, 후세에 조이스나 프루스트의 뒤를 잇는 20세기 문학의 금자탑의 하나로 평가되지 않을까 기대된다. 끝으로 헨리 밀러에 있어서의 성의 사상에 약간 언급해 두고자 한다. 성 묘사의 대담성은 그의 작품의 두드러진 특징의 하나이며, 그의 이름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무엇보다도 이 때문이 아닐까 생각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작품에 성적인 사항이 다루어지고 있는 것은, 그의 사상 내지 주장에 있어, 그것이 본질적인 의의를 갖기 때문이고, 따라서 로렌스와 마찬가지로 그가 단순한 호색 작가가 아님은, 다소나마 진실에 대한 감수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내 알 수 있는 일이다.『북회귀선』을 호색문학으로 보는 사람은, 그 자신이 추잡한 마음의 소유자이다, 라고 말한 에드윈 콜의 말은 정곡을 찌르고 있다. 그렇지만 성문제를 다루는 밀러의 방식은, 당연한 일이지만, 로렌스의 그것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같은 밀러의 문학 속에서도, 경우에 따라 그 방식이나 각도가 반드시 동일하지 않다. 이를테면 성 묘사의 대담성인데, 이는 밀러에게 있어서는 기성 개념에 얽매이지 않고 사물 내지 체험의 진실을 탐색하기 위한 방식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대담성이 안겨주는 충격의 효과를 목표로 삼고 있는 경우도 있는 듯하다. 즉 모든 기성의 윤리나 관습, 감정, 질서 등을 동요시킴으로써, 독자의 눈을 일상적 세계로부터 별개의 가능적 세계로 돌려놓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또 특별히 비어를 사용하여 서술함으로써 성적인 것으로부터의 카타르시스를 노리고 있는 경우가 있고, 반대로 그러한 서술에 의해 지나치게 사변적인 것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도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물이 낮은 데로 흐르는 것처럼, 자기 포기 적이며 무의지적인 행위의 자연스런 귀착점으로서 성적인 사건이 제시되는 수도 있다. 이러한 면에서는 성에 대한 밀러의 태도가, 로렌스의 그것보다 더욱 자연스러우며, 아마도 이 점이 양자의 가장 큰 차이점이 아닌가 생각된다. 로렌스에게는 성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다루려는 자기의 입장을 저스티파이하려는 태도, 말하자면 퓨리터니즘의 미골 같은 게 있지만, 밀러의 경우는 모든 것이 자연 자체이며, 로렌스의 경우와 같은 인물의 영웅화가 밀러의 작품에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성뿐만 아니라 모든 생활 태도에 있어, 밀러가 제시하는 인물들은 ― 그 자신을 포함하여 ― 가장 낮은 곳으로, 시궁창 속으로라도 태연히 내려간다. 말하자면 그들은 영웅들이 그 긍지 때문에 감히 하지 못하는 행위도 피하지 않는 역설적인 영웅이며, 쾌락주의의 밑바닥을 분쇄한 에피큐리언인 것이다. 한편, 성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를 든다면, 밀러는 성욕을 식욕과 마찬가지로 아주 자연스럽고 건강한 욕망이라고 보고 있다. 여성은 남성에게 있어, 그 기능의 시금석이며,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다.『성의 세계』(The World of Sex)라는 에세이 속에서, 그는 성과 인간성의 관계를 종횡으로 해부하며, 사랑이란 완성의 드라마이며 일치의 드라마 라고 말하고, 인간의 완전한 자유를 회복하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생의 근원적인 활력의 분출을 모든 것에 선행시키는 이 작가에게 있어, 이는 매우 당연한 결론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옮긴이 소개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졸업. 역서 - 갈매지 조나단, 우연과 필연, 역사의 교훈, 하느님에게 보낸 나의 일기장, 예술과 소외, 이데올로기란 무엇인가, 자본주의의 문학적 모순 등 다수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