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여자의 일생. 단편선 저자(역자) : 기드 모파상 (이정림) 출 판 사 : 범무사 여자의 일생 잔느는 짐을 다 꾸리고 나서 창가로 다가갔다. 그러나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비는 밤새껏 유리창과 지붕을 소리가 나도록 후려치며 내렸다. 물기를 가득 머금은 야트막 한 하 늘은 마치 구멍이 뚫린 듯 대지 위로 온통 쏟아져내려 땅을 곤죽으로 만들고 설탕처럼 녹이 려 드는 것 같았다. 후덥지근한 열기를 가득 머금은 질풍이 지나갔다. 콸콸 소리를 내 며 넘 쳐 흐르는 도랑물소리가 인적이 드문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거리의 집들은 집 안으로 스며드는 습기를 해면처럼 빨아들여 지하실에서부터 고미다락에 이르기까지 벽에서는 물기 가 스며 나왔다. 어제 수녀원의 부속여학교에서 나온 잔느는 마침내 영원히 자유의 몸 이 되 어 그녀가 오래 전부터 꿈꾸어 왔던 인생의 모든 행복을 손에 쥘 준비가 되어 있는 것 이다. 그녀는 날씨가 개지 않으면 아버지가 출발을 망설일까 걱정이 되어서 아침부터 먼 하늘을 수없이 살피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녀는 달력을 여행가방 속에 넣는 것을 잊어버렸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녀 는 벽에서 달마다 넘기게 되어 있는 작은 달력을 떼어냈다. 거기에는 그림 한가운데에 1819 년이라는 금년의 연도가 금박으로 찍혀 있었다. 그녀는 처음 네 칸을 연필로 지웠다. 성자의 이름을 하나씩 지워가다가 5월 2일까지 왔는데 그날은 수녀원의 부속여학교를 나온 날이었 다. 누군가가 문 밖에서 "자네트!" 하고 불렀다. 잔느는 "들어오세요, 아빠" 하고 대 답했다. 그러자 그녀의 아버지가 모습을 나타냈다. 시몽 자크 르 페르튀 데 보 남작은 전세기 의 귀 족으로서 괴벽이 있으나 좋은 사람이었다. 장 자크 루소의 열렬한 신봉자인 그는 자연 과 들 판, 나무, 짐승들에 대해 연인과도 같은 애정을 지니고 있었다. 원래 귀족 출신이기 때문에 그는 본능적으로 1793년을 증오하였다. 그러나 기질적으 로 낙 천가요, 교육의 영향으로 자유주의자가 된 그는 악의는 없으나 과장된 증오심으로 전 제정치 에 대해 혐오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큰 힘이면서도 약점인 것은 선량하다는 것이었 다. 애 무하고 베풀고 포옹하는 데에는 팔이 몇 개 있어도 부족할 정도로 선량하였다. 어수 선하면 서도 저항력이 없는 창조자의 그것과도 같은 선량함, 마치 의지의 신경이 마비된 듯하 고 정 력에 결함이 있는 것 같은, 거의 악덕과도 비슷한 선량함이었다. 이론가인 그는 딸을 행복하고 착하게 행실이 곧고 상냥한 여자로 만들고 싶어서 딸 을 위 한 모든 교육 방침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열두 살까지는 집에 있 었으나 그 후로는 어머니가 울면서 말렸음에도 불구하고 성심 수도원의 기숙사에 들어가게 되 었다. 아버지는 딸을 그곳에 엄하게 가두어놓고 수도원 속에만 파묻혀 아무것도 모르게, 세 상 돌 아가는 일 같은 것은 알지 못하게 하였다. 그는 딸이 열일곱 살 때까지 순결하게 지 내도록 하다가 자기 자신이 알맞은 시적 세계에 접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즉 들판을 뛰놀게 하면서 기름진 대지의 한복판에서 그녀의 영혼을 열게 하여 순수한 사랑과 동물에 대 한 소 박한 애정, 생의 고요한 법칙을 보여줌으로써 그녀의 무지를 일깨워주고 싶었다. 이제 그녀는 기쁘고 생기에 넘쳐서 그리고 행복에 대한 갈망을 안고 수녀원의 학교 를 나 왔다. 나태했던 나날들, 긴 밤들 그리고 희망만이 떠돌던 고독속에서 그녀의 마음이 먼저 엿 본 온갖 기쁨과 온갖 즐거운 우연들을 맞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녀는 베 로네세 의 초상화와도 같았다. 살갗에 그 빛깔이 옮아 물들 것 같이 빛나는 금발, 태양이 살 짝 스칠 때에만 겨우 보이는, 창백한 우단같은 솜털이 가볍게 돋아 있는 장미빛 살결은 귀족 적이었 다. 그녀의 눈은 홀란드의 사기 인형의 눈같이 불투명한 파란색이었다. 그녀의 왼쪽 콧방울 에는 작은 애교점이 하나 있었고 오른쪽 턱 위에도 역시 점이 하나 있었다. 턱에는 거 의 피 부와 비슷하여 분간이 잘 안되는 몇 개의 털이 꼬부라져 있었다. 그녀는 키가 컸고 가슴은 성숙했으며, 허리는 나긋나긋했다. 그녀의 또렸한 목소리는 이따금 너무 날카롭게 들 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의 순진한 웃음소리는 주위 사람을 기쁘게 했다. 이따금 자연스러운 몸짓 으로 그녀는 머리칼을 매만지려는 것처럼 두 손을 관자놀이에 갖다 대곤 하였다. 그녀 는 아 버지에게 달려가서 그를 껴안고 키스했다. "우리 떠나는 거죠?" 하고 그녀가 말했다. 아버지 는 미소를 띄우고 상당히 긴, 벌써 백발이 다 된 머리를 흔들었다. 그리고 창문 쪽으 로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 "이런날씨에 어떻게 여행을 하겠다는 거냐?" 그러나 그녀는 어리광 을 부 리면서 상냥하게 애원했다. "아, 아빠, 떠나요, 제발. 오후에는 갤 거예요." "하지만 네 어머 니가 절대로 승낙하지 않을 게다." "그러시겠죠. 그러나 약속할께요. 그건 제가 책임 지겠어 요." "네가 어머니만 설득시킬 수 있으면 난 아무래도 좋다." 그래서 그녀는 남작부 인의 방 으로 달려갔다. 그녀는 출발하는 오늘은 애타게 기다려왔기 때문이다. 성심 수도원에 들어간 이후로 그녀는 루앙을 떠나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는 자기가 정한 나이가 되기 이전에 는 어 떠한 기분풀이도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단 두 번 2주일쯤 파리로 데려간 적이 있 었으나 그곳 역시 도회지였다. 그녀가 동경하는 것은 오직 전원뿐이었다. 그녀는 지금 이포르 근처의 절벽위에 세워져 있는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낡은 저택 인 뢰 푀플의 별장에서 여름을 보내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바닷가에서의 이 자 유로운 생활에 대해 끝없는 즐거움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다가 그 저택은 그녀가 물려받 은 것 으로 그녀가 결혼할 때까지 언제나 그곳에서 살 생각이었다. 그러므로 어젯저녁부터 그치지 않고 내리는 비는 그녀 생애의 최초의 커다란 슬픔이었다. 그러나 잠시후에 그녀는 어머니 의 방에서 뛰어나오면서 온 집안이 떠나갈 듯 소리쳤다. "아빠, 아빠! 엄마가 승낙했 어요. 마 차를 준비시키세요." 폭우는 조금도 멎지를 않았다. 사륜마차가 문앞에 모습을 나타냈을때에는 비가 더욱 세차 게 뿌리는 것 같았다. 남작부인이 한쪽은 남편의, 다른 한쪽은 젊은 남자처럼 힘세고 날씬한 키 큰 하녀의 부축을 받으면서 계단을 내려왔을 때 잔느는 마차에 오를 준비가 다 되 어 있 었다. 이 하녀는 코 지방의 노르망디 여자로서 기껏해야 열여덟 살이 될까 말까 한데 보기 에는 적어도 스무 살은 되어 보였다. 가족들은 그녀를 딸처럼 대우했는데, 그것은 그 녀가 잔 느의 젖자매였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름은 로잘리였다. 그녀의 중요한 임무는 안주인의 보행을 도와주는 것이었다. 남작부인은 몇 년전부터 심장 비대증으로 무척 뚱뚱해져서 늘상 그것을 비관하였다. 남작부인은 몹시 숨을 헐떡이면 서 낡 은 저택의 층계에 이르렀다. 그리고 빗물이 넘쳐 흐르는 마당을 바라보며 "정말 정신 이 나 갔군요." 하고 중얼거렸다. 언제나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의 남편이 대답했다. "그러 자고 한 것은 바로 당신이오, 아델라이드 부인" 그녀는 다델라이드라는 화려한 이름을 가지고 있었 기 때문에 남편은 다소 놀리는 듯한 존경심을 가지고 언제나 '부인'이라는 칭호를 붙이곤 했다. 그녀는 다시 걸음을 옮겨 간신히 마차에 올라탔다. 그러자 마차의 용수철이 모 두 오그 라졌다. 남작은 부인 곁에 앉고 잔느와 로잘리는 맞은편 좌석에 앉았다. 부엌 하녀인 루디빈느가 무릎을 덮을 망토를 몇 개 가지고 왔고, 바구니 두 개는 다 리 밑 에 넣었다. 그러고는 시몽 영감 곁의 마부석으로 기어 올라가 그녀를 완전히 덮어씌울 만큼 큼지막한 덮개로 온몸을 감쌌다. 문지기 부부가 와서 마차 문을 닫으면서 인사를 했 다. 그들은 짐수레로 딸려 보낼 짐에 대해 마지막 지시를 받았다. 그리고 마차는 떠났 다. 마부 시몽영감은 빗속에 머리를 숙이고 등을 구부린채, 깃이 세겹으로 된 외투 속에 몸을 숨겼다. 신음하는 듯한 광풍이 차창을 때리고 길은 침수 되었다. 두 마리의 말이 전속력으로 몰고 가는 사륜마차는 한결같은 기세로 부두로 내려가서 대형 선박들이 줄지어 서 있는 곳을 따라 내달렸다. 돛대와 활대와 밧줄이 헐벗은 나무처럼 빗발 치는 하늘에 쓸쓸하게 솟아 있었다. 이어서 마차는 몽 리부데의 긴 대로로 접어들었 다. 얼마 안 가서 평원을 가로질렀다. 이따금 비에 잠긴 버드나무가 버려진 시체처럼 가지를 늘어뜨 린 모습이 물안개 저편으로 나타나곤 하였다. 말굽쇠는 철벅철벅 물을 튀기고 네 개의 마차 바퀴는 진흙투성이가 되었다. 모두들 말이 없었다. 그들의 마음도 대지처럼 젖어 있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몸을 젖히어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남작은 침울하게 비에젖은 단조로운 들판을 바라보았다. 로잘리 는 무릎위에 봇짐을 얹어놓고 서민들의 그 특유한 동물적 몽상에 잠겨있었다. 그러나 잔느 는 이 후덥지근한 빗속에서 마치 갇혀 있던 식물이 방금 바람을 쐰 듯이 생기가 솟는 느낌 이었다. 그녀가 느끼는 기쁨의 농도가 마치 나뭇잎처럼 그녀의 마음을 슬픔으로부터 가려주 고 있었다. 그녀가 느끼는 기쁨의 농도가 마치 나뭇잎처럼 그녀의 마음을 슬픔으로부 터 가 려주고 있었다. 그녀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노래를 부르고 싶었고, 밖으로 손을 내밀 어 쓸쓸 한 풍경을 바라보며, 이 폭우 속에서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다는 것이 즐거웠다. 억수같이 퍼붓는 빗속에서 두 마리의 말의 번들거리는 엉덩이에서는 뜨거운 김이 솟아오 르고 있었다. 남작부인은 차츰 숙여서 목덜미의 커다란 세 개의 주름살로 힘없이 받쳐 져 있 었다. 그 마지막 주름살은 가슴의 바다 한가운데로 사라졌다. 숨을 쉴 적마다 들먹여 지는 머 리는 다시 밑으로 떨구어졌다. 뺨은 부풀어오르고, 또한 반쯤 벌어진 입술 사이로는 코고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남편은, 그녀에게 몸을 기울여 풍만한 배 위로 깍지를 낀 그녀의 두 손 에 작은 가죽 지갑을 살며시 놓았다. 이 감촉은 그녀를 깨워 놓았다. 그녀는 선잠을 깬 사람의 그 몽롱한 상태로 흐리 멍덩한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보았다. 지갑이 떨어지면서 열렸다. 금화와 지폐가 마차 안에 흩어졌 다. 그녀는 완전히 잠이 깼다. 그러자 딸의 즐거움이 왁자지껄한 웃음소리로 터져나왔 다. 남 작은 돈을 주워 부인의 무릎위에 놓으며 말했다. "여보, 이건 엘르토 농장에서 남은 전부요. 앞으로 우리가 자주 가서 지내게 될 뢰 푀플을 수리하려고 그걸 팔았던 거요." 부인은 6천 4백 프랑을 세어 보더니 조용히 주머니 속에 넣었다. 그 농장은 그들의 양친 이 물려준 서른한개의 농장 중에서 아홉번째로 판 농장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도 토지 에서 약 2만 리브르의 수입이 있었고 잘만 관리한다면 연간 3만 프랑은 쉽게 구입을 올릴 수도 있었다. 그들은 검소한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만일 집안에 언제나 벌리고 있는 바닥 없는 구멍, 즉 선량이라는 구멍만 없었다면 이 소득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그 선량함 은 마치 태양이 늪의 물을 말리듯이 그들 수중의 돈을 마르게 하였다. 돈이 흘러가고 도망가고 사라 지는 것이었다. 어떻게? 아무도 그것을 알지는 못하였다. 언제나 둘 중의 한 사람이 이렇게 말하곤 하였다.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군. 대단한 걸 산 것도 아닌데 오늘 백 프랑 이나 썼 단 말이야." 쉽게 주어버린다는 것은 어쨌든 그들의 삶에 있어서 커다란 행복중의 하나였다. 그래서 그들은 이 점에 대해서는 훌륭하고도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태도로 서로 이해하고 있었 다. 잔느가 물었다. "그래, 제 성관은 아름다운가요?" 남작이 기분좋게 대답했다. " 얘야, 보 면 알게 된단다." 세차게 내리던 소나기가 차츰 약해져 갔다. 그러더니 이제는 안개 비슷한 아주 가느다란 이슬비로 흩날렸다. 먹구름에 덮힌 하늘이 놓아지고 희부연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보이지 않는 구멍을 통해서 긴 햇살이 비스듬이 초원을 내리비쳤다. 구름이 갈라지고 푸른 하늘의 속이 드러났다. 그러더니 갈라진 부분이 막이 열리듯 이 점 점 커져갔다. 그리고 깨끗하고도 오묘한 쪽빛의 아름답고 순수한 하늘이 세상 위에 펼쳐졌 다. 서늘하면서도 부드러운 바람이 바치 대지의 행복한 탄식처럼 지나갔다. 들과 숲을 따라 달릴때면 깃을 말리는 새의 활기찬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저녁이 되었다. 마차 안의 사람들 은 잔느만 빼놓고는 모두 잠이 들었다. 두 번, 말의 숨을 돌리게 하고 물과 함께 귀 리를 좀 주기 위해 여인숙에서 멈추었다. 해는 이미지고 멀리서 종소리가 울렸다. 어떤 작은 마을에서 램프에 불을 켰다. 하 늘도 역 시 총총한 별들로 빛나고 있었다. 불켜진 집들이 한 점의 불처럼 어둠을 뚫고 여기 저기에 나타났다. 갑자기 언덕 뒤에서 전나무 가지들 사이로 붉고 커다란 달이 잠에 취한 듯 이 솟 아올랐다. 날씨가 따뜻해서 유리 창문은 내린 채로 그냥 두었다. 공상에 지친 잔느는 행복한 환상에도 싫증이 나서 이제는 쉬고 있었다. 똑같은 자세로 오래 있었기 때문에 온몸이 저려 와 가끔 눈을 떴다. 그럴 때마다 밖을 내다보면 불빛으로 가득한 어둠 속으로 농가의 나무 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거나 여기저기 들판에 누워 있는 소들이 머리를 쳐드는 것이 보 였다. 그녀는 이리저리 자세를 가다듬고 나서 그리다 만 꿈을 다시 잡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끊임 없이 굴러가는 마찻소리가 귀에 가득 차 생각을 방해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정신도 몸같이 기진맥진해 있음을 느끼고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러는 동안에 마차가 멈췄다. 하인과 하녀들 이 손에 램프를 들고 마차문 앞에 서 있었다. 드디어 도착한 것이다. 갑자기 잠에서 깬 잔느 는 재빨리 뛰어내렸다. 아버지와 로잘리는 한 농부가 비춰주는 등불을 받으면서, 완전 히 기 진맥진하여 힘들다고 투덜거리는, 또 쉴새없이 죽어가는 작은 소리로 "아이구, 제기랄 ! 얘들 아!" 하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는 남작부인을 거의 떠받들다시피 하고 있었다. 부인은 아무것 도 마시려고도 먹으려고도 하지 않고 자리에 눕더니 이내 잠이 들었다. 잔느와 남작은 마주 앉아서 밤참을 먹었다. 그들은 서로 쳐다보면서 미소를 짓고 식탁 너머로 손을 잡았 다. 그리 고 두사람은 모두 어린애 같은 기쁨에 사로 잡혀서 수리한 저택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것은 농장과 저택이 딸린 높고 넓은 노르망디식 저택 중의 하나였다. 지금은 회 색으로 변한 하얀돌로 지어졌으며 일가 친척들이 묵을 수 있을만큼 넓었다. 넓은 현관이 집을 둘로 나누어 한쪽에서 한쪽으로 통하게 했으며 양쪽 정면에는 커다란 문이 열려 있었다. 이중으로 계단이 마치 그 입구에 걸쳐지듯이 놓여 있는데, 가운데 는 허공 으로 두고 다리처럼 두 개의 계단이 이층에서 만나고 있었다. 아래층 오른쪽으로는 굉장히 큰 객실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새들이 날아 다니는 나뭇잎으로 무늬를 놓은 장식 융단 이 걸 려있었다. 촘촘하게 짜여진 융단으로 씌운 가구에는 모두 라 퐁텐느의 우화에 나오는 삽화 가 그려져 있었다. 잔느는 그녀가 아주 어렸을 적에 좋아했던 여우와 황새의 이야기가 그려 져 있는 의자 하나를 발견하고는 기쁨으로 마음이 설레였다. 객실 옆에는 고서가 가득한 서재와 사용하지 않는 방이 두 개 열려 있었다. 왼쪽 으로는 새 판자로 꾸며진 식당과 식탁보나 냅킨 등을 넣어두는방, 식품 저장실, 부엌 그리고 욕조가 붙어 있는 작은방 하나가 있었다. 복도가 이층을 완전히 반으로 가르고 있었다. 오른 쪽으로 쑥 들어가면 잔느의 방이 있었다. 그들은 그리로 들어갔다. 남작은 그 방을 새로 꾸 몄는데, 단지 벽지를 바르고 창고 속에 쓰지 않고 넣어둔 가구들을 갖다 놓았을 뿐이었다. 플 랑드르 산의 아주 낡은 장식 융단들이 이상한 역할로 이 장소를 채우고 있었다. 그러나 침대 를 발 견하고는 그녀는 기쁨의 탄성을 질렀다. 네 귀퉁이에는 떡갈나무로 조각한, 새까맣고 밀랍을 칠해 번쩍거리는 네 마리의 커다란 새가 침상을 받치고 있어 마치 침상을 지키는 파수 꾼처 럼 보였다. 침대 양쪽에는 꽃과 과일을 조각한 두 개의 커다란 꽃장식이 치장되어 있었다. 가늘게 골이 진 네 개의 기둥에는 코린트식의 주두가 붙어 있었고, 장미와 큐핏이 감 겨 있 는 코니스(벽과 기둥 꼭대기에 얹힌, 쇠시리 있는 수평 돌출부)를 받치고 있었다. 침대는 기념물처럼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오랜 세월로 거무스름해진 나무의 딱딱 한 위 엄에도 불구하고 아주 우아해 보였다. 장식용 침대보와 침대 닫집의 덮개가 마치 두 개의 하늘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것들은 짙은 남색의 옛날 비단으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거기에 는 금실로 수를 놓은 커다란 백합꽃들이 군데군데 별을 박아놓은 것처럼 장식되어 있 었다. 잔느는 그것들을 보고 감탄을 하면서 등불을 쳐들고 그 소재를 이해하려고 융단을 살펴보 았다. 녹색과 붉은 색을 그리고 노란 색으로 아주 이상하게 옷을 입은 젊은 영주와 젊 은 귀 부인이 하얀 열매가 달린 푸른 나무 아래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같은 빛깔의 통통 한 토 끼 한 마리가 회색이 도는 풀을 조금 뜯어먹고 있다. 그들의 바로 위쪽으로는, 흔히 그렇듯 이, 원경에는 뾰족한 지붕을 한 다섯 채의 자그마하고 둥근 집이 보인다. 그리고 그 위로 거 의 하늘에는 새빨간 풍차가 있다. 꽃을 그린 커다란 꽃무늬가 이 모든 것들을 감싸돌고 있다. 다른 두 개의 벽 장식도 처음 것과 아주 비슷했다. 다만 플랑드르식으로 옷을 입은 네명의 작은 꼬마들이 집에서 나와서 몹시 놀라고 화가 난 몸짓으로 하늘을 향해 팔을 쳐들고 있는 것이 다를 뿐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벽 장식에는 비극이 그려져 있었다. 여전히 풀을 뜯어먹고 있는 토끼 옆에 그 젊은이가 죽은 듯이 누워 있다. 젊은 귀부인은 그를 바라보면서 단검으로 자기의 가슴을 찌르고 있다. 나무의 열매들이 흑색으로 변해있다. 잔느는 그 내용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그만 두었다. 그러고는 한구석에서 아주 작은 동물 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만약에 토끼가 살아 있다면 풀의 어린 싹인 줄 알고 먹어 버릴 수도 있을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한 마리의 사자였다. 그제서야 그녀는 피람과 티스베의 불행을 그린 그림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그림의 단순성에 미소를 지으면서도 이 사랑의 모험 속에 둘러싸인 것이 행복스럽게 느껴졌 다. 이 것은 끊임없는 자기의 생각에다 소중히 여기는 희망을 이야기해 주고 밤마다 자기의 꿈속에 이 전설적인 고대의 사랑을 맴돌게 할 것이다. 그 밖의 가구는 모두 각기 다른 양식들을 갖추고 있었다. 이 가구들은 대대로 집안 에 내 려오는 것들로서 낡은 집안을 마치 모든 것이 뒤섞인 일종의 박물관처럼 만들고 있었 다. 아 름다운 루이 14세 시대의 옷장은 번쩍거리는 구리 장식으로 되어 있었고, 그 곁에는 아직도 꽃다발 무늬가 있는 비단으로 싼 루이 15세식의 안락의자가 두 개 놓여 있었다. 장미 목으로 만든 책장은 둥근 유리 뚜껑 속에 제정 시대의 좌종 시계가 놓여 있는 벽난로와 마주 보고 있었다. 이 시계는 황금색 꽃들이 피어 있는 정원 위로 네 개의 대리석 기둥에 매여 달린 청동의 벌집 모양으로 하고 있었다. 기다랗게 갈라진 틈새로 벌집에서 빠져나온 가느다란 추 가 에 나멜칠을 한 날개를 가진 작은 꿀벌을 이 화단 위로 영원히 날아다니게 하고 있었다. 숫자 판은 채색한 사기로 되어 있었고 벌집 허리에 둘러싸여 있었다. 시계가 열한 시를 치 기 시 작했다. 남작은 딸에게 키스를 하고 그녀의 방에서 물러갔다. 그래서 잔느는 섭섭한 마음으 로 자리에 누웠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자기의 방을 둘러보고 나서 촛불을 껐다. 그러 나 침대 는 머리쪽만 붙어 있었고 왼편으로는 창문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으로 달빛이 물결처 럼 흘 러들어와 바닥에 빛의 웅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달빛이 벽에 반사되었다. 그 창백한 빛살은 피람과 티스베의 움직이지 않는 사랑의 모습을 희미하게 어루만졌다. 발치에 있는 다 른 창 문으로 부드러운 달빛에 온통 잠겨 있는 커다란 나무가 보였다. 그녀는 옆으로 돌아누 워 눈 을 감았다. 그러나 잠시후에 다시 눈을 떴다. 머리속에는 마차 굴러가는 소리가 계속 들려와 서 그 요동으로 여전히 몸이 흔들리는 것같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꼼짝도 하지 않았 다. 이렇 게 쉬면 마침내 잠이 올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음의 초조함이 순식간에 온몸을 사로 잡는 것이었다. 두 다리에 경련이 일어나고 열이 점점 높아갔다. 그래서 그녀는 자리 에서 일 어났다. 맨팔과 맨발에 그녀는 유령같이 보이게 하는 긴 잠옷을 걸친채 바닥에 쏟아져 있는 빛의 늪을 건너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밤은 대낮처럼 보일 정도로 환했다. 처녀는 옛날 어린 시절에 좋아했던 이 고장을 전부 알아보았다. 먼저 그녀 앞에는 달빛에 버터처럼 보이는 노랗고 너른 잔디밭이 있었다. 두 그 루의 거대한 저택앞에 보초처럼 우뚝 서있다. 북쪽에 있는 것은 플라터너스고 남쪽에 있는 것은 보리수였다. 넓은 풀밭끝에는 작은 숲이 있었는데 그것은 이 영지의 경계를 이루 고 있 었다. 언제나 미친 듯이 휘몰아치는 해풍으로 뒤틀리고 깎이고 부식당하고 지붕처럼 경사가 지고 잘린 늙은 다섯 줄의 느릅나무가 태풍을 막아주고 있었다. 공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곳은 터무니 없이 큰 포플러나무가 심어진 두 줄의 긴 가로수 길로 해서 좌우로 경계를 이루고 있었다. 노르망디에서는 '푀플'이라고 불리는 이 포 플러 나 무는 주인들의 저택과 거기에 인접해 있는 두 개의 농지를 가르고 있었다. 한 곳에는 쿠이 야르 가족이 살고 다른 한 곳에는 마르탱의 가족이 살고 있었다. 이 푀플로 해서 저택 에 이 름이 붙게 되었다. 이 울타리 너머로는 가시양 골담초가 여기저기 돋아 있는 너르고 황폐한 평원이 펼쳐져 있었는데, 거기에는 바람이 밤낮으로 소리를 내며 빠르게 불어대고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언덕은 백미터쯤 되는 하얗게 깎아지는 듯한 낭떠러지로 꺾어져있었으 며, 그 발치는 파도속에 잠겨 있었다. 잔느는 멀리 별 아래에 잠들어 있는 듯한, 물결이 어른 거리고 길고 긴 수면을 바라보았다. 태양이 없는 이 고요속으로 대지의 모든 내음이 널리 퍼지고 있었다. 창문 아래의 주위로 덩굴을 뻗고 있는 재스민은 돋아나기 시작하는 잎들에서 풍겨나오는 아주 은은한 냄새 와 섞 여, 찌르는 듯한 입김을 쉬지 않고 뿜어대고 있었다. 느릿한 바람이 지나가면서 소금 기를 머 금은 바람과 끈적거리는 해초의 냄새를 실어다 주었다. 처녀는 처음에는 숨을 들이마시는 행복감에 몸을 내맡기고 있었다. 그러자 전원에서 의 휴 식이 시원한 목욕을 했을 때처럼 그녀의 기분을 가라 앉혀주는 것이었다. 저녁때가 되 면 잠 에서 깨어나 밤의 고요 속에 그들의 보잘것없는 존재를 감추고 있는 모든 짐승들은 말 없는 동요로 희미한 어둠을 채우고 있었다. 울지 않는 커다란 새들이 흑점처럼, 그림자처럼 공중 을 날아갔다. 그림자처럼 공중을 날아갔다. 보이지 않는 벌레들의 윙윙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스쳐갔다. 그리고 소리없는 걸음이 이슬이 가득 맺힌 풀밭이나 인적이 드문 길에 깔린 모래 를 가로질러갔다. 단지 몇 마리의 침울한 두꺼비들만이 달을 향해 짧고 단조로운 울 음소리 를 내고 있을 뿐이었다. 잔느는 자기의 마음이 넓어지는 것 같았다. 마치 이 환한 밤처럼 속삭임으로 가득하 고, 그 떨림이 그녀를 감싸고 있는 이 밤 벌레와도 같이 떠도는 수많은 욕망이 갑자기 뒤끓 는 것 같았다. 어떤 친화력이 그녀를 이 생동하는 시에 연결시켜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밤 의 부드 러운 흰 빛 속에서 그녀는 초인적인 전율이 흐르고,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희망으로 가슴이 설레고, 행복의 입김과도 같은 그 무엇을 느꼈다. 그녀는 사랑을 동경하기 시작했다. 사랑! 2년전부터 그것이 다가온다는 사실과 더불어 커져가는 불안이 그녀를 사로잡 고 있 었다. 이제 그녀는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다. 다만 그를 만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를! 어떤 사람일까? 그녀는 정확하게 그를 알지 못했으며 그에 대해 생각해본 일조차 없 다. 그 는 그였다. 그뿐이었다. 그녀는 다만 온 마음으로 그를 열렬히 사랑하고, 그도 온 힘 을 다해 그녀를 극진히 사랑해 주리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들은 오늘 같은 밤에는 별에서 떨어지 는 빛나는 재를 받으며 산책을 할 것이다. 그들은 손을잡고, 서로 몸을 꼭 붙이고, 서로의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으면서, 서로의 어깨에서 체온을 느끼면서, 여름밤의 달콤한 맑 음 속 에 그들의 사랑을 섞으면서, 오직 그들의 애정이라는 유일한 힘으로 그들의 보다 은밀 한 생 각에까지 쉽사리 뚫고 들어갈 수 있을 만큼 하나가 되어 걸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것 을 표 현할 수 없는 사랑의 평온 속에서 끝없이 계속될 것이다. 갑자기 그녀는 그를 거기에 서, 바 로 자기곁에 있는 것같이 느꼈다. 그러자 갑자기 막연한 육감의 전율이 그녀의 발끝 에서부 터 머리끝까지 흘렀다. 그녀는 마치 자기의 꿈을 포옹하려는 듯이 무의식적인 동작으 로 두 팔로 가슴을 껴안았다. 그리고 그 무엇인가 알지 못하는 것을 향해 내민 입술위로 거 의 그 녀를 실신시킬 정도의, 마치 몹의 입김이 그녀에게 사랑의 입맞춤을 한 것 같은 무엇 인가가 스쳐 지나갔다. 갑자기 저쪽 저택 뒷길에서 어둠 속을 걸어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깜 짝놀라 두 방망이질을 치는 마음으로 불가능한 일이라든지, 신의 섭리에 의한 우연이라든지, 신의 예감이라든지, 운명의 소설적인 결합 같은 것을 믿으려는 흥분으로 그녀는 생각했다. 만약 그라면? 그녀는 걸어오는 사람의 규칙적인 발소리를 불안스럽게 듣고 있었다. 그는 틀림없 이 철책앞에 걸음을 멈추고 하룻밤의 잠자리를 청할 것이다. 그 사람이 그냥 지나쳐버리자 그녀는 마치 기만을 당한 것처럼 서글퍼졌다. 그러나 그녀 는 자기의 기대로 흥분되어 있음을 깨닫고 정신나간 것같은 짓에 미소를 지었다. 그러 자 약 간 마음이 진정 되어서 그녀는 자기의 마음을 보다 합리적인 공상의 흐름에 띄우고, 미래를 꿰뚫어보려고 애쓰면서 자기의 존재를 구상해 보려고 했다. 그 사람과 함께 그녀는 여 기, 바 다가 내려다 보이는 이 조용한 저택에서 살게 되리라. 그녀는 아마 두 명의 아이를 가 질 것 이다. 그를 위해서는 아들을, 그녀를 위해서는 딸을, 그리고 그녀는 플라타너스와 보 리수 사 이의 풀밭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상상해 보았다. 그러면 아버지와 어머니는 더할 수 없이 기쁜 눈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아이들의 머리위로 사랑이 가득 담긴 서신을 교환할 것이 다. 그녀는 이렇게 오래오래 부질없는 공상에 잠겨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 하늘을 가 로질러 여행을 끝마친 달은 바다 속으로 사라지려 하고 있었다. 공기는 더욱 시원해졌다. 동 쪽 수평 선이 희끄무레해졌다. 오른쪽 농장에서 수탉 한 마리가 홰를 치자 다른 닭들이 왼쪽 농장에 서 화답을 했다. 닭들의 쉬 울음소리는 닭장의 칸막이 너머 아주 멀리에서 들려오는 것 같 았다. 어느새 희붐해진 드넓은 하늘에는 별들이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짤막한 새소리가 어디에선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조심스러운 지저귐이 나뭇잎 사 이에서 들려왔다. 그러다가 그 소리는 대담해져서 떨리는 듯한 즐거운 소리로 이 가지에서 저 가지 로,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번져갔다. 잔느는 갑자기 자기가 환한 밝음 속에 있다는 것을 느 꼈다. 그래서 두 손으로 가리고 있던 머리를 들자 새벽의 광휘에 눈이 부셔 눈을 감았 다. 붉게 물든 구름의 산이 키 큰 포플러의 산책길 뒤에 한쪽이 가려져서, 잠이 깬 대지 위에 선혈 같은 빛을 던지고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빛나는 구름을 헤치고 나무들과 평원과 대양과 온 수평선을 불로 구멍을 뚫으면서 타오르는 듯한 거대한 태양이 나타났다. 잔느는 행복으로 미칠 것 같았다. 만물의 눈부신 아름다움 앞에서 넘쳐 흐르는 즐거움과 무한한 감동이 그녀의 마음을 적시어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그것은 그녀의 태양이었다. 그녀의 여명이었다. 그녀의 생의 시작이 었다. 그 녀의 희망의 눈뜸이었다! 태양을 포옹하고 싶은 욕망으로 그녀는 빛나는 우주를 향해 두 팔 을 내밀었다. 그녀는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 하루의 탄생과 같이 숭고한 그 무엇인가 를 외치 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무력한 감격 속에 마비가 된 듯 그래도 있었다. 그러다가 두 손으 로 얼굴을 감쌌다. 그녀는 눈에 눈물이 가득 괴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그녀는 기분 좋게 울 었다. 그녀가 다시 머리를 쳐들었을 때에는 태어나기 시작한 하루의 화려한 배경은 이미 사라지 고 없었다. 그녀는 오한이 나는 것처럼 자신의 마음이 가라앉고 약간 피로함을 느꼈 다. 창문 도 닫지 않고 그녀는 침대에 가서 누워 다시 얼마 동안 공상에 잠기다가 여덟시에 아 버지가 부르는 소리도 듣지 못할 정도로 깊은 잠에 빠졌다. 그녀는 아버지가 방에 들어왔을 때에야 비로소 잠이 깨었다. 아버지는 성관이, '그녀의' 성관이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는 것을 그녀에게 보여주고 싶어 했다. 내지 쪽으로 나 있는 건물의 정면은 사과나무가 심어져 있는 너른 뜰로해서 길에서 떨어져 있었다. 시골길이라고 불리는 이 길은 농부들의 울타리 사이로 뻗어나가다가 2킬로 미터쯤 더 가서 르 아브르에서 페캉에 이르는 한길과 이어지고 있었다. 곧은 통로가 숲의 울타리에서부터 현관의 층계까지 나 있었다. 바닷가의 조약돌과 짚으로 지붕을 한 작 은 부 속 건물들은 두 농장의 도랑을 따라서 안뜰의 양쪽에 줄을 지어 서 있었다. 지붕은 새 로 이 어져 있었다. 모든 목조 부분은 다시 뜯어고쳤고 벽은 수리가 되었으며, 방들은 도배 를 다시 하고 내부는 전부 새로 칠해져 있었다. 그리고 퇴색한 이 낡은 저택에 달려 있는 은백 의 새 겉창과 회색을 띤 커다란 정면에 최근에 다시 바른 벽토는 마치 얼룩처럼 보였다. 또 다른 정면, 잔느의 창문 하나가 열려 있는 또 다른 정면은 작은 숲과 바람에 시달리는 느 릅나무 벽 너머로 멀리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잔느와 남작은 서로 팔을 끼고 한구석도 빼놓지 않고 전부 둘러보았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공원이라고 부르는 곳을 둘러싸고 있는 긴 포플 러 길을 천천히 거닐었다. 풀은 나무들 밑에서 돋아나 녹색 양탄자처럼 펼쳐져 있었 다. 맨 끝에 있는 작은 숲은 매혹적이었다. 그것은 나뭇잎의 칸막이로 갈라진 꼬불꼬불한 좁 은 길 을 뒤섞어 놓고 있었다. 갑자기 토끼 한 마리가 튀어나와 처녀에게 겁을 주더니 비탈 을 뛰 어넘어 절벽 쪽 갈대 속으로 달아나 버렸다. 점심을 먹고나서 아직도 기진 맥진해 있 는 아 델라이드 부인이 쉬어야겠다고 말을 하자 남작은 이포르까지 내려가지고 제안을 했다. 그들 은 떠났다. 우선 뢰 푀플이 있는 에투방의 촌락을 가로질렀다. 세 사람의 농부가 그들 을 전 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그들에게 인사를 하였다. 그들은 구불구불한 계곡을 따라서 바다 까지 내려가는 비탈진 숲속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이포르의 마을이 나타났다. 문지방 에 앉아 헌 옷가지를 깁고 있던 여자들이 그들이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가운데로 개울 이 흐르고 집집마다 문앞에 허섭스레기가 흩어져 쌓여 있는 비탈진 거리에서 붙어있는 누르 스름한 그물들을 누추한 집의 문 옆에다 말리고들 있었다. 그 집에서는 단칸방에서 우글거 리는 많은 식구들의 냄새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비둘기 몇 마리가 개울가에서 먹이를 찾으 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잔느는 극장의 무대 장치처럼 신기하고도 새로운 이 모든 것들 을 바 라보았다. 그러나 갑자기 어떤 집의 담을 돌아가자 바다 보였다. 불투명하고도 매끄러 운 푸 른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들은 해변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았다. 새 의 날개 처럼 하얀 돛을 단 범선들이 난바다를 지나가고 있었다. 오른편에도 왼편에도 거대한 절벽 이 우뚝 솟아 있었다. 곶처럼 튀어나온 것이 한 쪽 시야를 가리고 있었고, 다른 쪽으 로는 더 이상 알아볼 수 없는 하나의 선이 될 때까지 해안선이 무한히 펼쳐져 있었다. 항구와 집들 이 근처 절벽의 갈라진 틈 사이로 보였다. 그리고 바다에 거품으로 술 달린 가장자리 를 만 들고 있는 잔물결이 가벼운 소리를 내며 조약돌 위로 굴러왔다. 둥근 조약돌로 언덕을 이룬곳에 끌어올려져 있는 그 지방의 작은 배들은 콜타르를 칠한 둥그런 뱃전을 햇볕에 드러낸채 옆으로 쓰러져 있었다. 몇몇 어부들이 저녁 밀물을 대비하 여 배를 준비하고 있었다. 뱃사람 하나나 생선을 팔기 위해 다가왔다. 잔느는 손수 뢰 푀플 로 가져가고 싶어서 가자미 한 마리를 샀다. 그러자 그 남자는 뱃놀이를 하실 테면 도와드 리겠다고 제안을 하면서 자기 이름을 그들에게 기억시키려고 "라스티크, 조제팽 라스 티크입 니다."하고 거듭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남작은 그를 잊지 않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들 은 성관 으로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생선이 컸기 때문에 피곤해진 잔느는 아버지의 단장으로 생선 의 아가미르 꿰어 둘이서 각기 한 끝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들은 즐겁게 다시 해안을 올라 갔다. 이마에 바람을 받고 눈을 반짝이면서 두 명의 어린아이처럼 지껄여댔다. 그러는 동안 점점 팔에 힘이 빠져서 가자미의 그 기름진 꼬리가 풀밭에 질질 끌렸다. 잔느에게는 즐겁고도 자유로운 생활이 시작되었다. 책을 읽고, 공상에 잠기고, 혼자 서 가까 운 곳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정신은 공상속에 빼앗긴 채 길을 따라 느린 걸음으로 떠 돌아다 녔다. 또한 양쪽 산능성이가 황금빛의 법의처럼 갈대꽃의 털로 무성한 구불구불한 작 은 골 짜기를 깡총거리며 내려가기도 했다. 갈대꽃의 진하고도 기분 좋은 냄새는 더위 때문 에 더 욱 진해져서 마치 향기로운 포도주처럼 그녀를 취하게 했다. 그리고 해변으로 몰려드 는 먼 파도소리와 넘실거리는 파도는 그녀의 정신을 흔들어 놓곤 하였다. 이따금 그녀는 나 른해져 서 언덕의 무성한 풀밭에 드러눕기도 했다. 또한 이따금 갑자기 계곡의 굽이에서, 잔 디밭의 움푹 패인 곳에서, 수평선에 돛단배가 하나 떠있고 햇빛에 번쩍이는 세모꼴의 푸른 바다가 눈에 띌 때면 마치 그녀에게 감도는 행복이 신비롭게 다가오기라도 한 것처럼 걷잡을 수 없 는 기쁨이 그녀에게 밀려오는 것이었다. 고독에 대한 사랑이 이 서늘한 고장의 부드러움과 둥그런 수평선의 고요속에서 그 녀에게 밀려들었다. 그녀가 너무 오랫동안 꼭대기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작은 야생 토끼들이 그녀 의 발치에서 깡총거리며 지나가기도 했다. 그녀는 물속의 고기가 공중의 제비들처럼 지칠줄 모르고 움직일 수 있다는 오묘한 즐거움에 온몸을 떨며, 해안에서 불어오는 가벼운 바람을 맞으면서 종종 절벽 위로 달리곤 했다. 그녀는 땅에 씨앗을 던지듯이 곳곳에 추억을, 그 추억의 뿌리가 죽을 때까지 이 어지는 그러한 추억들을 뿌렸다. 그녀에게는 이 계곡의 모든 굽이굽이에다 자기의 마음을 조금씩 던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열심히 해수욕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튼튼하고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위험에 대한 의식이 없었기 때문에 한없이 헤엄쳐 나갔다. 그 녀는 자 기를 이리저리 흔들면서 떠받치고 있는 이 차고 맑은 푸른 물속에 있으면 기분이 좋 았다. 해안에서 멀리 나가면 그녀는 반듯이 누워 가슴 위로 팔짱을 끼고 제비가 빠르게 지나 가거 나 갈매기의 흰 그림자가 설핏 스치는 하늘의 그 오묘한 푸른 빛을 정신없이 바라보았 다. 조약돌에 부딪쳐 멀리 들려오는 물결의 속삭임과 아직도 물결치는 파도에 스치는 육지의 희미한 소음 이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도 어렴풋해서 거의 알아들 을 수는 없었다. 그러자 잔느는 몸을 젖혀 미칠 듯한 기쁨에 두 손으로 물장구를 치면 서 날 카로운 소리를 질렀다. 이따금 그녀가 위험을 무릅쓰고 너무 멀리 나가면 작은 배가 그녀를 찾으러 오곤 하였다. 그녀는 허기져서 얼굴은 창백했지만 경쾌하고도 재빠른 몸짓으 로, 미소 를 머금고 눈에는 행복을 가득 담은 채 성관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남작은 남작은 남작대 로 농업에 관한 커다란 계획을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시도를 해보고, 진행을 구체화 하고, 새로운 기계를 시험해 보고, 외국 품종을 이식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하 루의 한 나절을 그가 구상하고 있는 것들이 의심쩍어서 머리를 젓고 있는 농부들과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보냈다. 또한 그는 자주 이포르의 뱃사공들과 함께 바다로 나가기도 했다. 주 위의 동 굴이나 샘 그리고 뾰족한 꼭대기를 찾아가면, 그는 한낱 어부가 되어 고기를 잡고 싶 은 생 각이 들었다. 미풍이 부는 날에 바람을 가득 안은 돛이 파도의 등 위로 작은 배의 통통한 몸체를 미끄 러지게 하면, 각 뱃전에서는 바다 밑바닥에까지 고등어떼를 추적하는 큰 줄을 풀어 길 게 늘 어뜨린다. 그는 불안에 떠리는 손으로 가느다란 줄을 쥐고 있었다. 그것에 걸린 고기 가 몸부 림치자마자 그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전날에 던져놓은 그물을 건져올리기 위해 환한 달빛을 받으며 떠났다. 그는 돛대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듣기 좋아했고 휙휙 소리를 내는 시원한 밤바람을 들이마시는 것이 좋았 다. 그러고는 바위의 돌출부나 종루의 지붕, 페캉의 등대를 따라 부표를 찾기위해 한 참동안 지그재그로 항해를 한 후에 갑판 위에서 부채꼴 모양의 넓적한 가오리의 끈적거리는 등과 가자미의 기름진 배를 윤기나게 하는, 떠오르는 아침의 첫 햇살을 받으면서 꼼짝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을 즐겼다. 식사때마다 그는 열광적으로 자기의 산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면 어머니는 어머 니대로 자기가 포플러가 있는 큰 가로수 길을 몇 번이나 왔다갔가 했었는가를 그에게 들려 주는 것이었다. 그 길은 쿠이야르 농장의 맞은 편에 있는 오른쪽 길이었다. 다른길은 햇빛이 많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운동을 하라.'는 권고를 받았기 때문에 그녀는 열심히 걸었다. 밤의 서늘한 기운이 걷히자마자 그녀는 로잘리의 팔에 기대어 내려왔다. 온몸을 망토 하나 와 두 개의 숄로 감싸고, 머리는 까만 밀짚모자로 덮어 쓴 위에 또 빨간 편물 모자를 뒤집 어 썼다. 게다가 왼발을 끌어서 그쪽이 약간 무거워서 길을 따라 내려갈 때 하나, 돌아올 때 하나 씩 시들어 죽어 있는 먼지 나는 길에 두 개의 자국이 이미 그어져 있었다. 그녀는 성관의 모퉁이에서부터 작은 숲의 첫 번째 관목이 있는데 까지 일직선으로 끝없는 여행을 언 제까지 나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이 산책길의 코스가 끝나는 양쪽에 벤치를 놓아두도 록 했 다. 그리고, 5분마다 걸음을 멈추고는 자기를 부축하고 있는 참을성 많은 가련한 하 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앉아, 얘야, 좀 피곤하구나." 그리고, 쉴 때마다 벤치 위에다 어떤 때에는 머리위에 쓰고 있던 편물 망토를 벗어놓는 것이었다. 가로수 길의 양 끝에는 이렇게 해서 두 개의 커다란 옷보따리가 생기게 되는데, 점심을 먹으러 돌아올 때에는 로잘 리가 그것을 놀고 있는 다른 팔로 들고 오는 것이었다. 오후에는 더 기운 없는 걸음걸이로 남작 부인은 다시 시작하였다. 쉬는 시간도 더 길어지 고, 때로는 그녀를 위해 밖에 내놓은 긴 의자에서 한 시간 가량 졸고 있을 때도 있었 다. 그녀는 이것을 '나의운동'이라고 했지만 마치 이것은 '나의 심장비대증'이라고 말하 는 것 과도 같았다. 숨이 가빠 고생을 했기 때문에 십 년 전에 진찰을 받았을 때 의사는 심 장비대 증이라고 말했었다. 그때부터 이 말은-그 의미를 잘 이해하지는 못했으나-그녀의 머리 속에 박혀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남작이나 잔느와 로잘리에게 끈덕지게 자기의 심장을 만 져보도 록 했으나 아무도 그것을 감지하지는 못했다. 그만큼 그것은 그녀의 불룩한 가슴속에 묻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다른 병이 발견될까봐 두려워서 다른 의사에게 진찰받 는 것 을 완강히 거절하였다. 그러고는 툭하면 '나의' 심장비대증에 대한 이야기를 끄집어냈 다. 너 무 자주 그랬기 때문에 이 병은 그녀에게만 특별한 것처럼 여겨졌고, 그녀에게만 있는 유일 한 것으로써 다른 사람들은 아무 권리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남작과 잔느는 마치 '옷, 모자, 우산'을 말하는 것처럼, 남작은 '내 아내의 심장비 대증'이 라고 했고, 잔느는 '엄마의 심장 비대증'이라고 말하였다. 그녀는 젊었을때는 아주 예뻤고 갈대보다 더 날씬 했었다. 제정 시대의 제복을 입은 많은 군인들의 팔에 안겨 왈츠를 추고 나서는, 그녀는<코린느>를 읽고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지금도 여전히 이 책에 대해서 감명 을느끼고 있다. 허리가 굵어짐에 따라 그녀의 영혼은 더욱 시적인 충동에 사로잡혔다. 너무 뚱뚱 해져서 안락의자에 못박힌 듯이 앉아 있게 되었을 때에는 그녀의 생각은 달콤한 모험 사이를 떠돌 아다니며 자신을 여주인공으로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중에서도 마음에 드는 것 이 있 어서 핸들을 조정하면 끝없이 같은 곡을 반복하는 자동 주악기처럼 언제나 그것을 그녀의 꿈속에 다시 불러들이는 것이었다. 자유를 빼앗긴 이들과 제비들에 대한 이야기인 번 민하는 사랑의 노래는 언제나 그녀의 눈시울을 적시게 하였다. 그리고 또한 사랑의 아쉬움을 표현 하고 있게 때문에 그녀는 베랑제의 외설스러운 가요까지 좋아하였다. 그녀는 종종 자신의 꿈속에 아스라이 빠져 몇시간이고 꼼짝 않고 앉아 있기도 했다. 그리 고 레 푀플에 거주하는 것은 그녀의 마음속 소설에 무대를 제공해 주기 때문에 한없이 그녀 를 기쁘게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주위의 숲과 쓸쓸한 광야, 근처의 바다로써 그녀가 몇 달 전부터 읽고 있는 월터 스코트의 책을 연상하게 했기 때문이다. 비오는 날에는 방에 틀어박혀서 그녀가 '기념물'이라고 부르는 것을 들여다 보면 서 보 냈다. 그것은 모두 옛날 편지들이었다.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편지들, 약혼 시 절에 보 낸 남작의 편지들 그리고 또 다른 편지들도 있었다. 그녀는 이 편지들을 구리로 만든 스핑 크스가 귀퉁이에 달려 있는 마호가니 책상 속에 넣어두었다. 그래서 그녀는 특이한 목소 리로 "로잘리, 얘야, 기념물이 들어있는 서랍을 가져오렴"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하녀는 책상을 열고 서랍을 빼내 안주인 곁에 있는 의자위에 올려놓는다. 그러면 부인은 천천히 하나하나 그 편지들을 읽기 시작한다. 가끔 그 편지 위에 눈물을 떨구기도 하면서. 잔느는 가끔 로잘리를 대신해서 어머니를 부축하여 산책을 하기도 했는데, 그럴때면 어머 니는 잔느에게 어린시절의 추억을 이야기해 주곤 하였다. 처녀는 그 옛날 이야기 속에 서 그 들의 생각이 비슷하다는 것과 그들이 바라는 욕망이 같다는 것에 놀라고 있었다. 사람 은 누 구나 최초의 인간의 심장을 뛰게 하고 또한 최후의 남자와 최후의 여자의 심장을 고동 치게 할 그 숱한 감동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먼저 자가의 심장이 떨린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이 다. 그들의 느린 걸음걸이는 이야기의 느림과 보조를 맞추었다. 가끔 숨이차서 이야기 를 몇 초 동안 멈추기도 했다. 그럴 때문 잔느의 생각은 막 시작한 사랑의 모험을 뛰어넘어 환희 에 찬 미래를 향해 내달리고 희망 속으로 굴러가는 것이었다. 오후에 두 모녀가 안쪽의 벤치에 앉아 쉬고 있을 때, 그들은 갑자기 산책길 끝에서 그들 을 향해 오고 있는 뚱뚱한 신부를 발견하였다. 그는 멀리서 미소 띈 얼굴로 인사를 했 다. 세 걸음쯤 되는 거리에 와서 그는 다시 인사를 하며 소리쳤다. "아, 남작부인, 안녕하십 니까?" 그는 그 지방의 주임 사제였다. 어머니는 철학자들의 전성기에 태어나 혁명시대에 그다지 신앙심이 없는 아버지에 의해 키워졌기 때문에 여자가 갖는 일종의 종교적 본능에서 사제들을 좋아하기는 했으나 교회에 는 거의 나가지 않았다. 그녀는 그곳의 주임 사제인 피코 신부를 완전히 잊고 있었기 때문 에 그를 보자 얼굴이 빨개졌다. 그녀는 자신이 먼저 찾아뵙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했 다. 그 러나, 호인인 사제는 조금도 그것에 마음을 상한 것 같지 않았다. 그는 잔느를 쳐다보 고 훌 륭한 용모를 가졌다고 칭찬을 하고 나서, 의자에 앉아 무릎 위에다 삼각모를 벗어놓고 이마 의 땀을 닦았다. 지나치게 뚱뚱하고 얼굴이 몹시 빨간 사제는 비오듯 땀을 흘렸다. 그 는 얼 른 주머니에서 땀에 젖은 커다란 체크무늬 손수건을 꺼내 얼굴과 목을 닦았다. 그러나 축축 한 손수건을 신부복의 깊숙한 주머니 속에 넣자마자 다시 땀방울이 살갗에 솟아 배가 불룩 하게 나온 법의 위로 굴러 떨어지면서 길가에 날아 다니는 먼지를 동그랗고 조그만 얼 룩으 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었다. 그는 쾌활한 전형적인 시골 사제로 너그럽고 말이 많았으며 또한 친절한 사람이었 다. 그 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고, 이 지방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자기 교구에 속한 이 두 사람이 아직 미사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남작 부인 은 자 기의 확실치 않은 신앙심에 게으름을 일치시키고 있었고, 잔느는 경건한 의식을 실컷 맛본 수도원의 부속학교에서 해방된 것을 너무 행복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남작이 나타났다. 그의 범신론적인 종교는 여러 가지 교리에 대해서 그를 무관심하 게 만 들었다. 그러나 그는 벌써부터 알고 있었던 신부에 대해서는 친절하였고, 저녁식사를 하고 가라고 그를 붙들었다. 영혼을 다룬다는 것은 가장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운명의 요 행으로 자기들과 비슷한 사람에 대해서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평범한 사람에게는 무의 식적인 교활함을 지니게 하는데, 이 사제도 그러한 무의식적인 교활함의 덕택으로 다른 사람 의 환 심을 살 줄 알았던 것이다. 남작부인은 사제를 소중히 여겼는데 그것은 어쩌면 체질이 비슷 한 사람을 접근시키는 그런 친화력에 끌렸는지도 모른다. 뚱뚱한 사제의 다혈질의 얼굴과 가쁜 숨소리는 지나치게 비대하여 숨을 헐떡이는 그녀의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디저트가 나올 무렵에는 사제는 얼근히 취해 신부다운 훌륭한 말솜씨를 발휘하고 있었는 데, 그것은 즐거운 식사 끝에 나오는 허물없고 잰 체하지 않는 그러한 태도였다. 갑자기 흐뭇한 생각이 머리 속에 스치고 간 듯이 그가 소리쳤다. "이교구에 새 신도가 한 사람 생겼는데 소개해 드려야겠군요. 드 라마르 자작입니다!" 이 지방의 모든 가문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남작부인이 물었다. "그분은 외르의 드 라마 르 집안이신가요?" 사제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부인. 작년에 작고한 장 드 라마 르의 아들입니다." 무엇보다도 귀족을 좋아하는 아델라이드 부인은 숱한 질문을 던진 끝에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아냈다. 부친의 부채를 갚고, 젊은이는 가문의 저택을 팔아 에 투방의 마을에 소유하고 있는 세 농장 중의 하나에 잠시 머무르기 위해 작은 집을 세웠다. 그 의 재 산은 모두 연금 5,6천 리브르에 상당한다. 그러나 자작은 검소한데다가 현명한 성격 이어서 그 조촐한 별채에서 2,3년 동안 수수하게 살며, 장차 사교계에 나설만한 재산을 모아 서 빚을 지거나 농장을 저당 잡히는 일이 없이 유리한 결혼을 할 생각이라는 것이었다. 사제는 덧붙였다. "아주 호감이 가는 청년이지요. 아주 건실하고 조용하구요. 그렇 지만 이 고장에서는 별로 즐겁지가 않은가 봅니다." 남작이 말했다. "그분을 우리집으로 데려 오세요, 신부님. 그분에게는 때로 기분 전환 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고는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바꿨다. 거실로 들어가서 커피를 마신 후에, 사제는 정원을 한 바퀴 돌도록 허락해 달라고 청을 했다. 그는 식사후에 운동을 조금하는 버릇이 있었기 때문이다. 남작이 그와 동행을 했다. 그들은 저택의 하얀 정면을 따라서 느릿느릿 걸어갔다가는 다시 돌아왔다. 한 사람은 마르 고 또 한 사람은 작고 뚱뚱한데다가 버섯 모양의 모자를 쓴 그들의 그림자는, 달을 향해서 걸어갈 때와 달을 등지고 걸어가는데 따라서 어느 때에는 그들 앞에서, 어떤 때에는 그들 뒤에서 왔다갔다 하였다. 사제는 주머니에서 궐련 비슷한 것을 꺼내 우물우물 씹었다. 그는 담배의 효용을 시골사람의 솔직한 말투로 설명하였다. "소화가 좀 안 되어서 트림이 나오게 하려고 그래요." 그러고는 갑자기 밝은달이 떠가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이런 광경은 언제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군요." 그리고 그는 부인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러 안으로 들어갔다. 다음 일요일 남작부인과 잔느는 사제에 대한 공경심의 미묘한 감정에 이끌려 미사에 참석 했다. 두 사람은 미사가 끝난후, 목요일 점심에 사제를 초대하기 위해 그를 기다리고 있었 다. 사제는 어떤 키가 크고 품위 있는 청년과 다정하게 팔을 끼고 제의실에서 나왔다. 사제 는 두 여자를 알아보자 놀라고 기쁜 시늉을 하며 소리쳤다. "아, 마침 잘됐군요! 남작 부인과 잔느 양, 여러분의 이웃인 드 라마르 자작님을 소개하겠습니다." 자작은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 나서 이미 오래전부터 부인들과 알게 되기를 바라고 있었노라고 말했다. 그리고 잘 알 고 있던 사람처럼 힘 안들이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모든 남자들에게 불쾌감 을 주 나 여자들이 꿈꾸는 그런 훌륭한 용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의 곱슬거리는 검은 머리는 햇빛 에 그을은 매끈한 이마에 그늘을 던져주고 있었다. 그린 듯이 고른 두 개의 굵은 눈썹 은 흰 자위가 약간 푸른 빛을 띠고 있는 것 같은 그의 어두운 눈을 깊고 부드럽게 만들고 있 었다. 촘촘하고도 긴 속눈섭은 그의 시선에, 살롱에서는 거만하고도 아름다운 부인의 마음을 설레 게 하고 거리에서는 바구니를 끼고 헝겊 모자를 쓰고 가는 아가씨를 뒤돌아보게 하는 그런 정열적인 설득력을 주고 있었다. 번민하는 듯한 그 눈의 매력은 생각이 깊음을 믿게 해주고, 아무리 사소한 말에라도 중요 성을 부여하였다. 무성하면서도 윤기가 도는 고운 수염은 약간 강하게 보이는 턱을 가려주 고 있었다. 그들은 많은 인사말을 나눈 뒤에 헤어졌다. 드 라마르씨는 이틀 후에 첫 방문을 하였다. 그는 거실 창문 맞은편에 있는 커다란 플라타너스 아래에다 시골풍이 나는 벤치를 놓으려고 하는 바로 그날 아침에 찾아왔다. 남작은 짝을 맞추기 위해서 보리수 밑에 또 하 나의 벤치를 갖다 놓고 싶어했다. 그러나 조화를 반대하는 어머니는 그러고 싶어하지 않았 다. 의견을 묻자 자작은 남작부인의 의견에 동의를 하였다. 그러고 나서 그는 이 지방 에 대 하여 이야기를 했는데 아주 '그림처럼 아름답다'고 말하면서, 혼자 산책하는 동안에 많은 아 름다운 '지형들'을 발견했노라고도 했다. 간간이 그의 시선은 우연인 것처럼 잔느의 시선과 마주쳤다. 그녀는 얼른 딴 데로 돌리는 그 뜻밖의 시선에서 야릇한 감동을 느꼈다. 그 시선 에는 애무하는 듯한 찬미와 눈뜨기 시작한 교감이 나타나 있었다. 작년에 죽은 드 라마르씨의 아버지는 마침 퀴르토씨의 친구 한 사람을 알고 있었는 데, 어 머니는 퀴르토씨의 딸이었다. 이렇게 아는 사람이 발견되자 인척관계, 만난 날짜, 혈 족 관계 에 대해 끝없는 화제를 낳았다. 남작 부인은 기억력을 발휘해서 복잡한 족보의 미궁속 을 전 혀 혼돈하는 일이 없이 돌면서 다른 가문의 조상이나 후예들을 밝혀냈다. "자작은 소느와 드 바르플뢰르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셨나요? 장남인 공트랑씨는 쿠르실 가의 딸과 결혼을 했지요. 쿠르빌의 쿠르실 말입니다. 차남은 내사촌 중의 하나인 로 쉬 오베 르양과 결혼을 했는데, 그녀는 크리상즈가와 친척이 되지요. 그런데 크리상즈씨는 아 버님의 절친한 친구랍니다. 아마 댁의 선친과도 역시 아실 거예요." "네, 부인. 크리상즈씨는 망명하 지 않으셨던가요, 그리고 그 아들은 파산하고요?" "바로 그분이예요. 그분은 내 숙모에게 그의 남편인 에렉트릭 백작이 세상을 뜨자 혼담을 가져왔었지요. 그러자 그가 코담배를 즐겼기 때문에 응하지 않았어요. 그건 그렇고, 빌르와 즈 집안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세요? 그 집은 불운을 만나 오베르뉴에 정착하려고 1813 년경 에 투렌느를 떠났지요. 그 후 소식을 듣지 못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부인. 늙은 후작은 말에서 떨어져 죽고, 영국인과 결혼한 딸과 밧솔이라던가 하는 상인과 결혼한 딸이 또하나 있다는데요, 이 사람이 부자라서 여자를 유혹했다는 소문이더군요." 그러자 늙은 부 모들의 이야기에서 어렸을 적부터 알고 있고 기억하고있는 이름들이 생각났다. 이러한 동등한 가문 들끼리의 결혼이란 그들의 생각으로는 커다란 공적인 사건 같은 중요성을 지니고 있 었다. 그들은 한번도 본일이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이야기 를 하 였다. 그 사람들은 다른 지방에서 똑같은 식으로 이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그래 서 그들 은 멀리에서 친근하게 거의 친구처럼, 친척처럼 느끼고 있는 것이다. 같은 계급에 속 해 있고 같은 가치를 지닌 혈통에 있다는 그 한가지 사실만으로 말이다. 남작은 원래 비사교적인 성격에다 자기 사회의 신념이나 편견과 전혀 일치하지 않는 교육 을 받았기 때문에 주변의 가문들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 작에게 그 가문들에 대하여 물었다. 드 라마르씨가 대답했다. "아! 이 고장에는 귀족이 많지 않습니 다." 그것은 마치 언덕에는 토끼가 별로 없다고 단언하는 것과 같은 어조였다. 그러 고는 자 세한 이야기를 하였다. 아주 가까운 거리 안에는 귀족이 세집안밖에 없었다. 드 쿠트 리에 후 작, 그는 노르망디 귀족의 우두머리격이었다. 드 브리즈빌 자작 부처, 그들은 훌륭한 혈통의 사람들이지만 너무 고립되어 있었다. 끝으로 드 푸르빌르 백작, 그는 상심하고 있는 아내를 죽도록 못살게 군다는 소문이 나 있는 도깨비 같은 사람으로서 연못 위에 세운 브리에 트의 저택에서 사냥을 하며 지내고 있었다. 자기들끼리 친교를 맺고 있는 몇몇 벼락 부자들이 여기저기 땅들을 사들였다. 자작 은 그 들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것이 없었다. 그는 작별인사를 했다. 그의 마지막 시선은 잔느에게로 향했다. 그는 마음으로부터 의 그리 고 다정한 어떤 특별한 인사를 그녀에게 보내는 것 같았다. 남작 부인은 그를 호감이 가는 청년으로, 특히 아주 신사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아버 지가 대답했다. "그래, 확실히 예의바른 청년이야." 다음주일에는 그를 만찬에 초대 했다. 그 러고 나서 그는 규칙적으로 찾아왔다. 그는 대개 오후 네 시경에 와서는 '그녀의 가로 수 길' 에서 어머니를 만나 '그녀의 운동'을 도와주기 위해 팔을 내밀어 주는 것이었다. 잔 느가 외 출하지 않을때에는 그녀는 다른 쪽에서 남작부인을 부축했고, 그러면 이들 세 사람은 곧은 큰 길을 이 끝에서 저 끝으로 쉬지 않고 천천히 왔다갔다하는 것이었다. 그는 젊은 아가씨 에게는 거의 말을 걸지 않았다. 그러나 까만 빌로도 같은 그의 눈은 푸른 마노와 같은 잔느 의 눈과 자주 부딪쳤다. 여러번 그들은 남작과 함께 이포르로 내려갔다. 어느날 저녁 그들이 해변가에 있을 때 라스티크 영감이 다가와 파이프를 문 채-아마 파이프를 물지 않은 그를 본다는 것은 그의 코가 없어진 것을 보는것과 더 놀라운 일일 것이다-이렇게 말했다. "이런 바람이라면 남작나리, 내일은 에트르타까지 갔다가 문제없이 돌아올 수 있겠습니다." 잔느는 손뼉을 쳤다. "아! 아빠, 그러시는 거죠?" 남작은 드 라마르씨쪽을 돌아다 보았다. "어떻소, 자작? 우리 그리로 가서 점심을 먹읍시다." 그렇게 해서 떠나는 일이 당장 결정되 었다. 잔느는 새벽에 눈이 떠졌다. 그녀는 옷입는 것이 더딘 아버지를 기다렸다. 그 리고 그 들은 이슬을 밟으며 걷기 시작하였다. 먼저 들판을 가로 지르고 그 다음에는 새들의 노래로 온통 떨고 있는 숲을 지나갔다. 자작과 라스티크 영감은 닻줄을 감아올리는 기계위에 걸터 앉아 있었다. 두사람의 다른 뱃사람이 출발을 거들어 주었다. 남자들이 어깨를 뱃전에 대고 힘껏 밀어 붙였다. 간신히 조약돌이 있는 평평한 곳으로 나아갔다. 라스티크는 용골 밑으로 기 름칠한 나무 굴림대를 밀어넣고 자기 자리로 돌아와서는 다른 사람들의 힘을 조절하는 듯이 "여엉 차!" 하고 느리고 단조로운 목소리로 끝없이 장단을 맞추었다. 그런데 경사진 곳에 다 다르자 보트가 갑자기 움직이면서, 천이 찢어지는 듯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둥근 조약돌 위로 미끄 러져 내려갔다. 배는 잔물결이 넘실거리는 거품 위에서 갑자기 멈춰섰다. 그러자 뭍에 남아 있던 두 뱃사람이 배를 물결 위로 밀어냈다. 난바다에서 계속 불어오는 가벼운 미풍이 수면 을 스치면서 잔물결을 일게 했다. 돛이 올라가고 약간 부풀어지더니 배는 바다에 흔 들리는 듯 마는 듯 조용하게 나아갔다. 우선 해안에서 멀리 나갔다. 수평선 쪽으로 낮게 드리운 하늘은 대양과 섞여 있었 다. 육지 쪽으로 높게 깍아지는 절벽은 그 발치에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햇빛이 가득한 잔디밭 언덕은 군데군데 초승달처럼 패어 있었다. 거기에서 뒤쪽으로는 누르스름한 돛들이 페캉의 흰 방파제를 빠져 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에트르타의 작은 문이었다. 잔느는 한 손으로 뱃전을 잡고 흔들리는 물결에 약간 현기증이 나서 먼곳을 바라보 고 있 었다. 그녀는 천지 만물 가운데에서 정말로 아름다운 것은 오직 세 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빛과 공간과 물이었다. 아무도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키의 손잡이와 돛줄을 잡고 있는 라스티크 영감 은 의 자 밑에 숨겨둔 술병을 간간이 꺼내 병째로 한 모금씩 마시고 있었다. 그러고는 영원 히 꺼 지지 않을 듯한 그의 분신같은 파이프로 쉬지 않고 담배를 피워댔다. 그 파이프에서는 가는 실 같은 푸른 연기가 피어올랐다. 한편 그의 입술 한 귀퉁이에서도 그와 비슷한 연기 가 새 어나왔다. 그리고 아무도 흑단보다 더 검은 흙으로 만든 담뱃대의 골통에 불을 다시 붙인다 거나 담배를 채워넣는 뱃사공을 쳐다보지 않았다. 이따금 그는 한 손으로 파이프를 잡 고 그 것을 입술에서 떼고는, 연기가 나오고 있는 입으로 느르께한 침을 바다에 멀찍이 내뱉 었다. 뱃머리에 앉아 있는 남작은 돛을 살피면서 한 사람의 임무를 해내고 있었다. 잔느와 자작 은 나란히 앉아 있었는데 두 사람 모두 약간 어쩔 줄 몰라했다. 어떤 알 수 없는 힘이 그들 의 시선을 마주치게 했다. 그것은 마치 어떤 친화력이 그들에게 알려주듯이 그들은 똑같은 순간에 눈을 들었던 것이다. 그들 사이에는, 남자가 못생기지 않고 여자가 아름다운 경우에 그 두 젊은이 사이에서 아주 빨리 일어나는 그런 미묘하고도 막연한 애정이 이미 떠돌 고 있 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곁에 있는 것이 행복하게 여겨졌다. 아마도 그들은 서로를 생 각하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태양이 자기 밑에 펼쳐 있는 너른 바다를 더 높은 곳에서 내려 다보려는 듯이 솟아올랐다. 그러나 바다는 교태를 부리듯 엷은 안개로 몸을 감싸고 햇살을 가렸다. 그것은 투명하면서도 매우 낮게 드리운 황금빛 안개로서 아무것도 가리지는 못했으 나 원경을 훨씬 부드럽게 만들어 주었다. 태양은 그의 불꽃을 내쏘아 이 빛나는 구름 을 녹 이려고 하였다. 태양이 온 힘을 다해 내리비치자 엷은 안개는 증발하며 사라졌다. 그 리고 거 울처럼 매끄러운 바다는 햇빛속에서 눈부시게 빛나기 시작하였다. 잔느는 몹시 감동해서 중얼거렸다.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자작이 대답했다. "아, 네, 아 름답군요!" 이 아침의 청명한 광명이 두 사람의 마음속에 메아리 같은 것을 일깨워놓 은 것 이다. 갑자기 에트르타의 커다란 홍예문이 나타났는데, 그것은 바다로 걸어들어가는듯 한 절 벽의 두 다리와도 비슷하였고 배들이 드나들 수 있을 만큼 높은 아치 구실을 하기도 하였 다. 한편 희고 뾰족한 바위의 첨봉이 첫 아치 앞에 서 있었다. 배가 해안에 닿았다. 남작이 제일 먼저 내려가 밧줄을 끌어당겨 배를 바닷가에 붙들 어 놓 는 동안, 자작은 잔느의 발이 물에 젖지 않도록 그녀를 두 팔로 안아 땅에 내려놓았 다. 그러 고 나서 그 두사람은 모두 이 짧은 포옹에 흥분이 되어서 단단한 자갈밭을 나란히 올 라갔 다. 그들은 갑자기 라스티크 영감이 남작에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제 생각으로는 아름다 운 한쌍이 곧 생겨날 것 같구먼요." 해변가에 있는 작은 여인숙에서의 점심은 즐거웠 다. 대 양은 목소리와 생각을 마비시켜 그들을 침묵하게 했으나, 식탁은 그들을 떠들썩하게 만들었 다, 마치 방학을 맞이한 학생들처럼. 아주 하찮은 것들이 그들에게 한없이 즐거움을 주었다. 라스티크 영감은 식탁에 앉으면서 아직도 연기가 나는 파이프를 조심스럽게 베레모 속 에 감 추었다. 그래서 모두들 웃었다. 어쩌면 그의 붉은 코에 끌렸을지도 모를 파리 한 마리 가 몇 번이나 날아와서 그 위에 앉으려고 했다. 영감이 파리를 잡기에는 너무 느린 손짓으로 그것 을 쫓아버리면 파리는 벌써 많은 그 동료들이 더러운 얼룩을 만들어놓은 모슬린 커 튼으로 가서 앉곤 하였다. 파리는 뱃사공의 그 붉은 사자코를 열심히 노리는 것 같았다. 왜 냐하면 거기에 앉으려고 곧 다시 날아왔기 때문이다. 파리가 날아올 적마다 참을 수 없는 웃음이 터져나왔다. 이 간지럼이 귀찮아진 영감이 "그놈 지독히도 끈덕지군" 하고 중얼거리 면, 잔느 와 자작은 눈물이 날 정도로 재미있어서 몸을 비틀고 숨이 막혀서 소리가 나지 않도록 입에 다 냅킨을 갖다 대곤 하였다. 커피를 마시고 나자 잔느는 "우리 산책이나 해요" 하고 말했다. 자작은 자리에서 일어섰 으나 남작은 조약돌 위에다 햇볕을 쬐는 것이 더 좋다고 하였다. "자네들이나 갔다오 게, 한 시간 후에 여기에서 다시 만나기도 하고." 그들은 그 고장에 있는 초가집 몇 채를 똑바로 가로질러 갔다. 그리고 커다란 농장과 비슷한 작은 성관을 지나 그들 앞에 길쭉하게 드러나 있는 계곡으로 들어갔다. 바다의 움직임은 그들을 나른하게 만들었고 평소의 균형을 흔들리게 하였으며, 소 금기를 머금은 대기는 그들을 시장하게 만들었고 그리고 점심은 그들을 멍청하게 만들었으며, 즐거 움은 그들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지금 들판을 미친 듯이 달리고 싶은 욕망에 자기 들이 약간 머리가 돈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잔느는 새롭고도 빠른 감각에 완전 히 감동되어서 자기 귀에서 윙윙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있었다. 이글거리는 태양이 그들 위에서 내리쬐고 있었다. 길 양쪽에는 잘 익은 농작물들이 더위에 고개를 숙이고 축 늘어져 있었다. 여기저기 돋아나는 풀싹처럼 수많은 메뚜기들이 밀밭에서, 보리밭에서, 해안 의 갈대 속에서 목이 쉬도록 울고 있었는데, 그 소리는 가늘고 귀를 째는 듯하였다. 그 밖에는 어떤 다른 소리도 찌는 듯한 하늘 아래에서 들려오지 않았다. 눈부시게 반짝이는 푸른 하늘 은 마 치 벌겋게 단 숯불 가까이에 있는 금속처럼 노란 색을 띠고 있었다. 오른쪽으로 멀리 작은 숲이 보여 그들은 그리로 갔다. 두 비탈 사이로 양쪽이 험한 좁다란 산책길이, 햇빛이 뚫고 들어갈 수 없을 만큼 커다란 나무들 밑으로 나 있었다. 그곳으로 들어서자 곰팡내나는 일종 의 냉기가 그들을 사로잡았다. 그 습기는 살갗에 소름을 돋게하고 폐까지 스며들었다. 햇빛 과 공기의 소통이 부족하기 때문에 풀은 자취를 감추었지만 이끼가 땅을 덮고 있었다. 그들은 앞으로 나아갔다. "자, 저기에 좀 앉을 수 있을 것 같군요" 하고 그녀가 말했다. 두 그루의 고목이 죽어 있었다. 푸른 잎사귀들 사이로 벌어진 틈서리로 빛이 소나기처 럼 거 리로 쏟아져 들어와 땅을 덥혀 잔디와 민들레와 칡들의 싹을 트게 하고, 아지랑이처럼 가냘 픈 작고 흰 꽃들과 불화살과도 비슷한 디기탈리스의 꽃을 피게 했다. 나비들, 벌들, 통통한 말벌들, 파리의 해골과도 같은 엄청나게 큰 모기들, 날아 다니는 수많은 곤충들, 반 점이 있 는 장밋빛 무당벌레들, 초록빛이 반사되는 송장벌레들, 뿔이 달린 거무스름한 다른 벌 레들이 묵직한 잎사귀들의 선뜩한 그늘 속에 움푹 팬, 빛으로 가득하고 따뜻한 이 우물 속에 우글 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머리는 그늘 속에, 발은 햇빛에 드러낸 채 않았다. 그들은 한 줄기의 빛이 모습을 드러내게 한 우글거리는 작은 생명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잔느는 감동이 되어 서 이런 말을 되풀이 하였다. "얼마나 좋아요! 시골은 참 좋지요. 저는 가끔 꽃속에 숨고 싶 어서 벌이나 나비가 되었으면 할 때가 있어요." 그들은 서로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속내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의 그런 나직하고 도 친 밀한 목소리로 자신들의 습관이나 취미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이미 사교계에 싫증 이 났 으며 자기의 경박한 생활이 지긋지긋하다고 혼자 중얼거렸다. 그것은 언제나 똑같은 일이며 거기에는 진실한 것도 성실한 것도 전혀 만날 수 없노라고 했다. 사교계! 잔느는 그것 이 어 떤 것인지 정말 알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이 전원에 비길 만큼 가치가 있는 것 은 아 니라는 것을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가까워 질수록 그들은 더 욱더 ' 미슈'니 '마드무아젤'이니 하는 하는 격식을 차려서 서로를 불렀다. 또한 그들의 시 선에는 미소가 어리고 얽혀들었다. 그들에게는 어떤 새로운 호의가 그들 마음속에 스며들 어오는 것 같았다. 그것은 한 번도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던 수많은 것에 대한 관심과 보 다 아 낌없이 나누어 주고 싶은 애정같은 것이었다. 그들은 다시 돌아갔다. 그러나 남작은 걸어서 절벽 꼭대기에 걸려있는 동굴인 ' 상브르 오 드무아젤'까지 간 뒤였기 때문에 그들은 여인숙에서 남작이 오기를 기다렸다. 남작은 해안에서 긴 산책을 한뒤에 저녁 5시가 되어서야 나타났다. 그들은 모두 다시 배에 올랐다. 배는 바람을 뒤로 받으며 부드럽게 나아갔다.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고 앞으로 나 아가는 것같이 보이자도 않았다. 미풍이 느리고도 훈훈한 숨결로 불어와 돛을 팽팽하게 잡아 당겼다 가는 다시 놓아버려 축 늘어지게 해서 돛대에 달라붙게 했다. 불투명한 물결은 마치 죽은 듯이 보였다. 타는 듯한 더위로 지쳐버린 태양은 자기의 둥근 궤도를 따라서 아주 부 드럽게 바다에 가까워 지고 있었다. 바다의 무감각함이 다시 그들을 침묵하게 만들었다. 마침 내 잔 느가 입을 떼었다. "저는 여행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자작이 대답했다. "네, 하 지만 혼자 여행하는 것은 쓸쓸하지요. 자기의 느낌을 전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 사람은 있어야 합니다." 그녀는 곰곰이 생각하였다. "그건 그래요.....하지만 저는 혼자 산책하는 것을 좋아해요....혼자 공상에 잠겨 있을 때에는 참 기분이 좋거든요....." 자작은 그녀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둘이서 공상할 수도 있지요." 그녀는 눈을 내 리깔았 다. 이것은 하나의 암시일까?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그녀는 좀더 먼 곳을 보려는 듯 이 수평 선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느린 목소리로 말했다. "이탈리아에 가보고 싶어요....그 리고 그리 스에도요....아, 그래요, 그리스에....그리고 코르시카! 그곳은 퍽 야성적이고 아름다 울 거예요!" 자작은 목자들의 오두막과 호수들 때문에 스위스가 더 좋다고 했다. 잔느가 말했다. "전 그 렇지 않아요. 코르시카처럼 아주 새로운 지방이나 그리스같이 유서깊은 유적들이 많은 나라 가 좋아요. 우리가 어렸을적부터 그 역사를 알고 있는 국민들의 발자취를 발견해 내고 위대 한 업적을 이룩한 현장들을 본다는 것은 정말 기분 좋은 일일 거예요." 자작은 잔느처 럼 흥 분하지 않고 말했다. "저는 영국에 몹시 호감이 갑니다. 그곳은 매우 배울 것이 많은 나라거 든요." 이렇게 그들은 세계를 편력했다. 극지에서부터 적도에 이르기까지 각나라의 매력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상상속의 풍경에 황홀해하며, 중국인이나 라포니아 사람 같은 어 떤 민 족의 믿기지 않는 풍속에 경탄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는 온화 한 기후에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며, 풍요로운 전원과 녹색 삼림, 고요히 흐르 는 큰 강들과 아테네의 대세기 이래로 다른 어는 곳에서도 존재하지 않았던 미술에 대 한 숭 배가 있는 프랑스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입을 다물었다. 더욱 낮 게 걸려 있는 태양은 마치 피를 흘리고 있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넓고 빛나는 자국이, 눈부신 한 줄 기의 궤도가 대양의 경계에서부터 배의 항적에 이르기까지 수면 위를 달리고 있었다. 마지막 바람의 숨결이 가라앉았다. 잔물결도 일지 않았다. 그리고 움직이지 않는 돛 은 붉 게 물이 들었다. 무한한 평온이 우주를 마비시키고 이 우주 원소가 만나는 주위에 침묵을 형성하는 것 같았다. 한편 하늘 아래에서 빛나는 유동체인 자기의 복부를 활처럼 구부 린 바 다는 음흉한 약혼자처럼 자신을 향해 내려오는 불의 연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태양은 그들 의 포옹에 대한 욕망으로 붉게 물들 듯이 일몰을 서두르고 있었다. 태양이 바다와 합쳤다. 그리고 조금씩 바다는 태양을 삼켜버렸다. 그때 수평선으로부터 서늘한 기운이 밀려왔 다. 마 치 삼켜진 태양이 세상에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숨을 내쉬려는 듯이 한 줄기 오한이 흔 들리 는 바다의 가슴에 주름살을 지게 했다. 황혼은 짧았다. 별이 총총한 밤이 펼쳐졌다. 라스티 크 영감은 노를 잡았다. 그러자 바다가 인광을 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잔느와 자작 은 나란 히 앉아서 배가 뒤에 남기는 움직이는 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이제 거의 아무 런 생 각도 하지 않았다. 다만 감미로운 편안 속에서 저녁 공기를 마시면서 막연히 생각에 잠겨 있는 것이었다. 잔느가 한 손을 걸상에 갖다 대고 있었기 때문에 우연이기라도 한것처 럼 옆 사람의 손가락 하나가 그녀의 살갗에 닿았다. 그녀는 이 가벼운 접촉에 놀라고 행복하 고 당 황해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저녁때 자기 방으로 들어가자, 그녀는 자기가 이상스럽게 들떠 서 무엇을 보아도 울고 싶은 마음이 들 만큼 감동이 되어 있음을 느꼈다. 그녀는 좌종 시계 를 쳐다보았다. 그 조그만 꿀벌이 심장처럼, 친구의 심장처럼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했 다. 그 것은 자신의 모든 생의 증인이 되어줄 것이고, 생생하고도 규칙적인 그 똑딱거리는 소리로 자기의 기쁨과 슬픔을 동반해 주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그 날개에 입맞추기 위해 서 금도금을 한 날벌레를 멈추게 했다. 그녀는 무엇에든지 입맞춤을 하고 싶었던 것이 다. 그 녀는 그것을 찾아서 무척 좋아하던 친구를 다시 만난 것 같은 기쁨으로 인형을 바라보 았다. 그러고는 그것을 가슴에 껴안고 짙게 화장을 한 인형의 뺨과 곱슬곱슬한 삼실 머리에 뜨거 운 키스를 퍼부었다. 그러고는 인형을 여전히 두 팔에 껴안은채로 그녀는 생각에 잠겼 다. 그분은 정말로 수많은 비밀의 음성으로 약속하고, 더할 나위 없이 선량하신 하느님 이 자 기의 길에 이렇게 던져주신 바로 그 남편일까? 그분은 자기를 위해 창조된 존재며 자기의 생애를 바치려고 하는 바로 그 사람일까? 자기들은 서로 합친 애정으로 서로를 포옹하 고 떨 어질 수 없이 얽혀 들면서 사랑을 낳게 될 그런 숙명적으로 선택된 두 사람일까? 그녀는 아직도 자기 마음의 혼란스러운 충동과 미칠 듯한 황홀감, 자신이 열정이라 고 믿 고 있는 심오한 격동을 조금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자기가 그 사람을 사랑하 기 시작한 것같이 여겨졌다. 왜냐하면 그 사람을 생각하면 온통 기운이 빠지는 것 같 은 기 분을 가끔 느꼈기 때문이다. 그녀는 줄곧 그에 대한 생각을 했다. 그가 있으면 가슴이 뛰었 다. 그의 시선과 부딪치면 얼굴이 붉어졌다. 창백해지고,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 몸이 떨렸다. 그녀는 그날 밤에는 아주 조금밖에 자지 못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사랑하고 싶다 는 유 혹적인 욕망이 더욱더 그녀를 사로잡는 것이었다. 그녀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물어보거 나, 또 는 데이지 꽃이나 구름 또는 동전을 공중에 던져 물어보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저 녁, 아 버지가 그녀에게 말했다. "내일 아침에는 아름답게 꾸미도록해라." 그녀가 물었다. " 왜요, 아 빠?" 아버지가 대답했다. "그건 비밀이다." 다음날 환한 단장으로 아주 생기 있게 아 래층으 로 내려가자 거실의 테이블이 봉봉과자 상자로 덮이고 의자위에 커다란 꽃다발이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마차 한 대가 뜰 안으로 들어왔다. 마차 위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페캉의 과 자 제조 인, 르라. 결혼 피로연' 루디빈느가 부엌에서 부리는 하인의 도움을 받아 작은 포 장마차 뒤의 열리는 뚜껑문에서 맛있는 냄새가 풍기는 평평한 큰 광주리를 수없이 꺼내고 있 었다. 드 라마르 자작이 나타났다. 그의 긴 바지는 팽팽했고, 그의 발이 작다는 것을 보여주 는 귀 여운 칠피 장화 밑으로 고정시켜 놓았다. 허리에 꼭끼는 그의 긴 프록코트는 가슴에 초승 달 모양으로 도려낸 자리로 셔츠 앞의 장식 레이스를 드러내고 있었다. 몇번씩 감은 날씬한 넥타이는무게 있는 품위를 나타내는 그의 아름다운 갈색 머리를 높이 쳐들게 하고 있 었다. 그의 평소와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한 치장은 그 얼굴에 저명한 인사 같은 그 무 엇을 갑자기 부여하는 그러한 특별한 모습이었다. 잔느는 어리둥절해서 한 번도 본 적 이 없 는 사람을 보듯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를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더할 나위 없는 귀족, 대영주라고 생각했다. 자작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래, 대모님 준비는 되셨나요?" 잔느 는 더듬 거리며 말했다. "뭐라구요, 대체 무슨 일이지요?" "곧 알게 될 거다." 남작이 말했다. 수레를 단 마차가 다가왔다. 아델라이드 부인이 화려한 차림으로 로 잘리의 팔에 의지하여 자기 방에서 내려왔다. 로잘리는 르 라마르씨의 우아한 차림에 넋을 잃 은 듯 이 보였기 때문에 아버지가 이렇게 속삭였다. "어떻소, 자작. 우리 하녀가 당신이 마 음에 드 는가보오." 자작은 귀까지 빨개지면서 못 들은 척했다. 그러더니 커다란 꽃다발을 집 어들어 잔느에게 바쳤다. 잔느는 더욱더 놀라서 그것을 받았다. 네 사람은 모두 마차에 올랐 다. 부 엌 하녀 루디빈느가 남작 부인의 원기를 돋우어주기 위해 찬 수프를 가져다 주며 말 했다. "정말이지 마님, 마치 결혼식을 올리는 것 같군요." 이포르로 들어서자 마차에서 내 려 걸어 갔다. 마을을 지나감에 따라 구김살이 보이는 헌옷을 깨끗이 차려입은 뱃사람들이 집에서 나와 인사를 하고 남작의 손을 잡으며 행렬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자작은 잔느에게 한 팔 을 내주고 그녀와 함께 맨 앞에서 걸어갔다. 교회 앞에 이르러 그들은 걸음을 멈추었 다. 그 러자 커다란 은빛 십자가가 보였는데 성가대의 소년 하나가 그것을 똑바로 받쳐들고 있었으 며, 그뒤를 붉고 흰 옷을 입은 다른 아이가 성수채를 담그는 성수 단지를 들고 따랐 다. 이어 서 세 사람의 늙은 성가대원이 지나갔는데 그중의 한 사람은 다리를 절었고 또 한 사 람은 뱀 모양의 관악기를 든 악사, 그 다음에는 불룩나온 배 위로 접혀 있는 황금빛 영대를 받든 기도문을 외느라고 입술이 달싹이면서 코까지 내려오게 삼각모자를 눌러 쓴채, 백의를 입은 그의 막료들을 따라 바다를 향해 걸어갔다. 해변가에는 화환으로 장식한 새 배 주위 에 한 떼의 사람들이 모여 기다리고 있었다. 그 배의 돛대와 돛과 돛과 밧줄은 긴 리본으로 덮혀 있었으며, 그것은 미풍에 휘날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잔느'라는 배의 이름 이 황금 빛 글자로 쓰여 있는 것이 보였다. 남작의 돈으로 지은 이 배의 선장인 라스티크 영감이 행렬 앞으로 나아갔다. 남자들 은 모 두 똑같은 동작으로 일제히 모자를 벗었다. 어깨에서부터 굵은 주름이 지는 풍성한 검 은 수 도복을 입고 두건을 쓴 일렬의 신자들이 십자가의 모습이 보이자 원을 그리며 꿇어앉 았다. 사제는 성가대의 두 소년 사이에 끼여 배의 한쪽 끝으로 갔다. 한편 배의 다른 쪽 끝에서 는 때가 묻은 흰 옷을 입은 세 사람의 늙은 성가대원이 수염을 텁수룩한 턱으로 근엄 한 표 정을 지으며, 성가집에 눈길을 주고는 청명한 아침에 입을 크게 벌려 음정이 틀리는 노래를 부리고 있었다. 그들이 숨을 돌릴 때마다 악사는 혼자서 그 윙윙거리는 소리를 계속해댔다. 그리고 바람 이 가득 들어간 그의 불룩한 뺨 속에 악사의 작은 회색 눈이 묻혀지곤 했다. 이마의 피부까 지도 또 목의 피부까지도 살에서 벗겨지는 것 같았다. 그만큼 그는 입김을 내불면서 자신을 부풀리고 있었다. 꼼짝도 하지 않는 투명한 바다는 명상에 잠겨 자기의 작은 배의 명 명식에 참석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거의 파도는 일지 않았으며 손가락만한 높이의 작은 물결 이 자 갈에 가볍게 부딪치는 아주 작은 소리가 들려올 뿐이었다. 날개를 활짝 편 커다란 흰 갈매 기들이 푸른 하늘에 곡선을 그리면서 멀리 날아갔다가는 마치 그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려는 것처럼, 무릎을 꿇고 있는 군중들 위로 선회를 하면서 돌아왔다. 5분간 '아 멘'을 외 친뒤에 성가는 멈추었다. 끈끈한 목소리로 사제는 몇 마디 라틴어를 웅얼거렸으나 울 려퍼지 는 끝말밖에는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고 나서 사제는 성수를 뿌리면서 배를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갑판을 따라 손에 손을 잡고 꼼짝도 하지 않고 있는 대부와 대모앞에 기도 문을 중얼거리기 시작하였다. 젊은이는 미남다운 의젓안 얼굴을 하고 있었으나 아가씨는 갑작스러운 감동으로 숨 이 막 히고 기절할 같아서 이가 맞부딪칠 정도로 떨기 시작했다. 얼마전부터 그녀의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던 꿈이 갑자기 일종의 환각 속에서 현실의 모습을 하고 나타난 것이었다. 사람들 은 혼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사제는 여기에서 축복을 하고 있다. 그리고 흰 옷을 입은 남자들은 기도를 읊조리고 있는데, 혼례를 올리고 있는 것은 바로 자신이 아닐까. 그녀의 손가락에 신경질적인 동요가 일었을까? 그녀의 마음의 집념이 혈맥을 따라 곁에 있는 사람의 마음에까지 전해졌을까? 그는 그것을 알았을까? 짐작했을까? 그녀는 그 도 사 랑의 도취 같은 것에 사로잡혀 있을까? 아니면 그는 단지 경험으로 어떤 여자도 자기 에게는 저항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그녀는 갑자기 그가 자기 손을 처음에는 부드 럽게, 다음에는 좀더 세게, 더욱 세게, 으스러져라 하고 죄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고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눈치채지 않게 그는 말했다. 그렇다, 확실히, 아 주 똑똑 하게 그는 말했다. "아아, 잔느, 당신이 괜찮으시다면 이것은 우리들의 약혼식이 되 는 겁니 다." 그녀는 어쩌면 "네"라고 말하는 듯이 아주 천천히 머리를 숙였다. 그러자 아직 도 성수 를 뿌리고 있던 사제가 그들의 손가락에도 몇방울 뿌려주었다. 의식이 끝났다. 여자들이 일어섰다. 돌아 갈때에는 흩어져서 갔다. 복사의 손에 들 려 있는 십자가는 그 존엄성을 잃어버렸다. 십자가는 좌우로 흔들리면서 또는 앞으로 숙여져 코 있 는 데까지 떨어질 듯하면서 빨리 달려갔다. 사제는 이제 기도는 하지 않고 그 뒤를 달리듯 이 쫓아갔다. 성가대원들과 악사는 서둘러 옷을 갈아입으려고 골목길로 사라졌다. 뱃 사람들 도 떼를 지어 서둘러 갔다. 요리냄새와 같은, 그들 머리 속에 들어 있는 똑같은 생각 이 걸음 을 재촉하고, 입에 침이 괴게 하고, 뱃속까지 내려가 창자가 노래를 부르도록 만들었 다. 맛있는 식탁에 뜰에 있는 사과나무 밑에 차려져 있었다. 예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거기 에 자리를 잡았다. 뱃사람과 농부들이었다. 남작 부인은 중앙에 앉았는데, 좌우에는 이포르 의 사제와 뢰 포플의 사제가 자리했다. 그 맞은편에 앉은 남작 곁에는 촌장과 그의 부인이 앉았다. 그 부인은 벌써 노경에 접어든, 몸매가 마른 시골 여자였는데, 여기저기에 짤막한 인사를 보내고 있었다. 그녀는 갸름한 얼굴에 꼭끼는 커다란 노르망디식 도가머리를 한 암 탉의 머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치 코로 접시를 쪼듯 재빠른 동작으로 얼른얼른 음식을 먹어댔다. 잔느는 대부 곁에서, 행복한 속에서 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보지 않 았고 아 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그저 기쁨으로 머리가 멍해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잠자코 있었 다. 그 녀가 그에게 물었다. "그래, 당신의 이름은 어떻게되시지요?" 그가 말했다. "줄리앙 입니다. 모르셨던가요?" 그러나 그녀는 대답은 하지 않고 이렇게 생각했다. '이 이름은 얼마 나 자 주 부르게 될 것인가!' 식사가 끝나자, 앞뜰은 뱃사람들에게 양보하고 성관의 뒤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남 작 부인 은 남작에게 기대어 두 사제의 전송을 받으면서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잔느와 줄리앙 은 작 은 숲이 있는 데까지 가서 우거진 작은 길로 들어섰다. 그러자 갑자기 그가 그녀의 손 을 잡 았다. "말씀해 주십시오. 제 아내가 되어 주시겠습니까?" 그녀는 다시 고개를 숙였 다. 그가 "대답해 주세요, 제발!"하고 더듬거리며 말했을 때 그녀는 아주 부드럽게 그를 향해 눈을 들 었다. 그는 그녀의 시선속에서 그 대답을 읽었다. 남작이 어느 날 아침, 잔느가 일어나기도 전에 그녀의 방으로 들어와 침대 발치에 앉으면 서 말했다. "드 라마르 자작이 우리에게 너와 결혼하게 해달라고 청하는구나." 그녀 는 이불 속에 얼굴을 감추고 싶었다. 아버지가 다시 말했다. "대답은 나중으로 미루어 두었다" . 그녀 는 감동으로 숨이막혀 새근거렸다. 잠시후 남작이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네게 그 것을 이 야기 하지 않고는 우린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네 어머니와 나는 이결혼에 반 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네게 강요할 생각은 없어. 너는 그 사람보다 훨씬 부자다. 그러나 인 생의 행 복에 있어서는 돈에 집착할 필요는 없지. 그는 부모도 없다. 그래서 네가 그 사람과 결혼하 게 되면 그 사람은 우리 집안으로 들어와 아들이 되는 것이고, 반대로 다른 사람과 결혼하 면 네가, 우리 딸이 남의 집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 청년은 우리 마음에 든다. 네 마 음도 들 는지.....넌 어떠냐?" 그녀는 머리끝까지 붉어지면서 더듬거리며 말했다. "저도 좋아 요, 아빠." 그러자 아버지는 딸의 눈 속을 들여다보면서 여전히 웃으며 중얼거렸다. "나도 그러 리라는 것을 조금은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아가씨." 그녀는 저녁때까지 얼떨떨하게 지냈다.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기계적으로 이 물 건을 집는다는 것이 다른 물건을 집어들고, 걷지도 않았는데 다리가 아프고 피곤하고 기운 이 없었다. 여섯 시경 그녀가 플라터너스 아래에서 어머니와 함께 앉아 있을 때 자작 이 나 타났다. 잔느의 가슴은 미칠 듯이 뛰기 시작했다. 젊은이는 별다른 감동도 나타내지 않고 다 가왔다. 아주 가까이 왔을 때 그는 남작 부인의 손을 잡고 입을 맞춘 뒤, 이번에는 젊은 처 녀의 떨리는 손을 들어올려 자기의 입술에 갖다 대고 정답고도 감사에 찬 입맞춤을 했다. 이렇게 해서 빛나는 약혼시절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거실의 구석이라든지 황량한 광야 앞에 있는 작은 숲속의 비탈진 곳에 앉아 단둘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때로는 그들은 어 머니의 가로수 길을 산책하기도 했다. 그는 장래에 관한 이야기를 했고 그녀는 남작부인의 그 먼지 나는 발자취를 내려다보며 그 길을 거닐었다. 일단 일이 결정되자 사람들은 결말을 서두르 고 싶어했다. 그래서 결혼식은 6주일 후인 8월 15일에 거행하기로 했고 신혼부부는 그 즉시 신혼여행을 떠나기로 합의를 보았다. 가보고 싶은 나라가 어디냐고 질문을 받은 잔느 는 이 탈리아 도시보다 더욱 단둘이서 있게 될 것 같은 코르시카로 결정을 지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결합을 위해 정해진 순간을 그다지 몹시 애태우지 않고 기다렸다. 그러 나 손가락을 꼭 쥔다든지, 또는 커다란 포옹에서 오는 어렴풋한 욕망에 막연히 괴로 워하며 그들은 이러한 무의미한 애무의 미묘한 매력을 맛보면서 달콤한 애정 속에 사로잡혀 떠돌고 있었다. 결혼식에는 남작부인의 동생인 리종 이모 이외에는 아무도 초대하지 않기로 결정했 다. 그 이모는 베르사이유의 어느 수도원에서 재원자로서 지내고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 자 남 작 부인은 동생을 자기 집에 데리고 있고 싶어 했으나, 노처녀인 자기는 모든 사람을 거북 하게 만들고, 쓸모없고 귀찮은 존재라고 생각에 사로잡혀서, 생활이 쓸쓸하고 고독한 사람들 에게 방을 빌려주는 그러한 종교적인 기숙사 중의 하나에 은둔하고 말았다. 그녀는 이따금 찾아와서 한두 달 가족들과 함께 지냈다. 말수가 적고 체구가 작은 이모는 언제나 남 의 눈 에 띄지 않으려고 해서 겨우 식사때만 나타났다가 항상 자신을 가두고 있는 그녀의 방 으로 곧 올라가곤 하였다. 그녀는 이제 겨우 마흔두 살밖에 안 되었는데도 노티가 나는 선량한 모습에 부드러 우면서 도 슬퍼 보이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별 이유 없이, 가족 속에 끼여든 적이 없었다. 아주 어렸을적에는 그녀는 귀엽지도, 소란을 피우지도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거의 그녀를 안아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구석진 곳에서 얌전하고 조용하게 있었다. 그 후부터 그녀 는 언제나 무시당한 채 지냈다. 처녀 때에도 아무도 그녀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어떤 그림자처럼 혹은 낯익은 물건, 즉 매일 보아서 낯이 익기는 하나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 살아 있는 기구와도 같았다. 그녀의 언니는 아버지의 집에서 갖데 된 습 관으로 그녀를 모자라는 존재, 아주 무의미한 존재로 여겼다. 사람들은 일종의 경멸적인 호의 를 감 추려고도 하지 않고 그녀를 허물없이 대했다. 그녀는 리즈라고 불렸는데 이 말쑥하고 도 젊 은 이름을 거북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그녀가 결혼하지않고 어쩌면 절대로 결혼하지 않으리 라는 것을 알았을 때, 사람들은 리즈라는 이름을 리종이라고 불렀다. 잔느가 태어난 후로는 '리종이모'가 되었다. 그녀는 겸손한 친척으로 깔끔하고 지독히 수줍음을 탔는데, 심지어 그녀를 사랑하는 언니나 행부에게까지도 그러했다. 하지만 그것은 무관심한 애정, 무 의식적 인연민, 타고난 호의와도 같은 어떤 막연한 애정이었다. 가끔 남작부인이 아득한 젊은 시절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날짜를 꼬집어서 말하고자 할 때 에는, "그것은 리종이 순간적인 감정으로 일을 저질렀던 때였어요."하고 말하는 것 이었다. 그 이상의 것은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순간적인 감정으로 저지른 짓'은 안개에 싸인 채 로 남아 있었다. 어느날 저녁, 리즈는 그때 스무 살이었는데 왜 그랬는지 그 이유는 모르겠 으나 물속에 몸을 던졌다. 그녀의 생활에서나 태도에서 이 미치광이같은 짓을 예측할 수 있 을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반쯤 죽은 그녀를 건져냈다. 부모님들은 분개한 나머 지 팔을 치켜들고 이 행동의 알 수 없는 원인을 찾아내는 대신에, '순간적인 감정으로 저지른 짓'에 대해 이야기를 워하는 것으로써 만족해하였다. 그들은 마치 조금전에 수레바퀴 자국에 빠져 다리가 부러졌기 때문에 도살하지 않을 수 없었던 '꼬꼬'라는 말의 사건에 대해 이 야기하 는 것과도 같았다. 그 이후로 리즈는 곧 리종이 되었으며 아주 심한 정신박약자로 여 겨졌다. 그녀의 가까운 친척들에게 불러일으키는 그 부드러운 멸시는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모 든 사 람들의 마음속에도 천천히 스며들었다. 어린 진느조차도 어린애의 타고난 눈치로그 녀에게 조금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으며, 잘 때 키스하러 가지도 않았고 이모의 방에 절대로 들어 가는 일도 없었다. 하녀 로잘리는 그 방에서 필요한 시중을 들고 있었는데, 그녀만이 그 방이 어디에 있는 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리종이모가 점심을 들러 식당에 들어서면 이 '꼬마'는 습관 적으로 이모 곁으로 가서 그녀에게 이마를 내미는 것이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누군가 그 녀에게 이야기를 하고 싶으면 그녀는 부르러 하녀를 보냈다. 그런데 그녀가 거기에 없으면 결코 그녀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았고, 그녀에 대한 생각도 하지 않았으며 "아니, 오늘 아침에 리종을 보지 못했군"하고 걱정하거나 물어볼 생각조차 갖지 않는 것이었다. 그녀는 조금도 위치를 차지하지 못했다. 그녀는 그들의 가까운 친척들에게조차도 탐험되 지 않은 미지의 것으로 머물러 있어서 그녀가 죽는다해도 집안에 구멍도 빈틈도 나지 않을 그런 사람중의 하나였다. 생존 속에도, 습관 속에도, 자기 가까이에 살고 있는 이들 의 사랑 속에도 들어갈줄 모르는 그런 사람중의 하나였다. '리종 이모'라고 말을 할 때도, 이 두마 디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말하자면 어떠한 애정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것 은 마 치 '커피포트'나 '설탕단지'라고 말하는 것과도 같았다. 그녀는 항상 조용하면서도 재빠른 종종걸음으로 걸어다녔다. 그녀는 절대로 소리를 내는 적이 없었고 그 어느 것에도 부딪치 는 법이 없었다. 어떠한 소리도 내지 않는 특성을 물건에게까지 전하는 것처럼 보였 다. 그녀 의 손은 솜 같은 것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나 생각될 만큼 그녀는 만지는 모든 것을 가 볍게 그리고 섬세하게 다루었다. 그녀는 결혼이라는 관념에 깜짝 놀라서 7월 중순경에 도 착했다. 그녀는 많은 선물을 가지고 왔으나 그것들은 그녀가 가지고 온 것이라고 해서 거의 거들 떠보지도 않은 채로 있었다. 그녀가 온 다음날부터 사람들은 벌써 그녀가 거기에 있다는 것도 잊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속에는 이상한 감동이 술렁였으며 그녀의 눈길 은 조 금도 약혼자들에게서 떠날 줄을 몰랐다. 그녀는 이상한 정력으로, 열광적인 활동력으 로, 아 무도 자기를 보러 오지 않는 그녀의 방에서 일개 침모처럼 일을 하면서 혼수에 몰두하 고 있 었다. 그녀는 자신이 가장자리를 감친 손수건이라든지, 글자를 수놓은 냅킨같은 것을 남작 부인에게 내보일 적마다 이렇게 묻곤 하였다. "이렇게 하면 되나요, 아델라이드?" 그 러면 어 머니는 무관심하게 그것들을 살펴보면서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너무 그렇게 애쓰지 말아요, 리종." 어느 날 저녁, 그 달 말경에, 무더운 하루가 지나고 맑고 미지근한 밤에 달 이 떠올랐다. 그것은 영혼 속에 숨겨져 있는 모든 시심을 불러일으키려는 듯이 마음 을 흔 들고 감동시키고 흥분시키는 그런 밤이었다. 들판에서 불어오는 부드러운 바람이 조용 한 거 실 안으로 들어왔다. 남작부인과 남편은 램프의 갓이 테이블 위에 그리는 둥근 빛 속에서 무료하게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다. 리종 이모는 그들 사이에 앉아 뜨개질을 하고 있었 고 두 젊은이는 열어놓은 창턱에 팔을 괴고 달빛이 가득한 정원을 내다보고 있었다. 보리수 와 플 라타너스는 그 그림자를 넓은 잔디밭 위로 던지고 있었는데 그 잔디밭은 창백하게 빛 나면서 새까만 작은 숲이 있는 곳까지 뻗어 있었다. 이 밤의 부드러운 매력과 나무와 덤불의 이 어 렴풋한 빛에 어쩔 수 없이 이끌린 잔느는 양친에게로 몸을 돌렸다. "아버지, 우리 저 기, 성 관 앞 풀밭을 한바퀴 돌고 오겠어요." 남작은 놀이에서 눈길을 떼지 않고 "갔다 오 려무나, 얘들아" 하고 말하고는 다시 게임을 계속하였다. 그들은 밖으로 나와 하얗게 빛나는 넓은 잔디밭으로 해서 안쪽의 작은 숲이 있는 곳 까지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도 그들은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남작 부인 은 피곤 해서 자기 방으로 올라가고 싶어했다. "저 연인들을 불러야 해요"하고 그녀가 말했 다. 남작 은 홀낏 빛으로 가득한 너른 정원을 둘러보았다. 거기에는 두 개의 그림자가 조용히 거닐고 있었다. "내버려두구려" 하고 그가 말했다. "밖이 저렇게도 좋지 않소! 리종이 저 얘 들을 기 다릴께요." 아버지는 남작부인을 부축해 일으켰다. 그 자신도 낮의 무더위에 지쳐 있었다. "나도 자러 가야겠소" 하고 그가 말했다. 그는 부인과 함께 나갔다. 그러자 이번에 는 리종 이모가 일어나 안락의자의 팔걸이에 하기 시작한 일감, 즉 털실과 긴 뜨개바늘을 놓고 창문 으로 가서 팔꿈치를 괴고 이 매혹적인 밤을 내다보았다. 두 약혼자는 잔디밭을 가로질러 작은 숲에서 층계까지, 층계에서 숲까지 끊임없이 오고갔 다. 그들은 손을 꼭 쥐고 이제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마치 자신으로부 터 벗어 나 대지에서 내뿜는 눈에 보이는 시에 완전히 섞여 들어간 것 같았다. 잔느는 얼핏 창틀에 서 램프의 불빛에 비치는 노처녀의 그림자를 알아보았다. "어머나, 리종 이모가 우리 를 보고 있어요" 하고 그녀가 말했다. 자작이 머리를 들고 생각없이 말하는 그런 무관심한 목 소리로 말했다. "그렇군요. 리종이모가 우리를 보고 있군요." 그들은 다시 몽상에 잠겨 천천 히 걸으 면서 서로 사랑을 계속 나누었다. 그러나 이슬이 풀밭위에 내려 그들은 한기로 몸을 떨었다. "이젠 돌아가요"하고 그녀가 말했다. 그래서 그들은 돌아왔다. 그들이 거실로 들어섰 을 때에 는 리종 이모는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은 매우 피곤한 듯이 약간 떨리고 있었다. 잔느가 다가갔다. "이모, 이젠 가서 주무세요." 노처녀는 시선 을 돌렸 다. 그 눈은 마치 울기라도 한 것처럼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연인들은 그것을 전혀 눈치채 지 못했다. 그러나 젊은이는 처녀의 날씬한 구두가 이슬에 온통 젖에 있는 것을 보았 다. 그 는 염려가 되어서 부드럽게 물었다. "소중한 당신의 작은 발이 시리지 않으세요?" 그러자 갑자기 이모의 손가락이 일감이 떨어질 만큼 그렇게 심하게 떨렸다. 털실 뭉치가 멀리 마룻 바닥 위로 굴러갔다. 갑자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그녀는 경련을 일으킬 듯한 오열로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두 약혼자는 깜짝 놀라 꼼짝도 하지 못하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잔느가 갑자기 무릎 을 꿇 고, 그녀의 팔을 벌리면서 당황한 나머지 이렇게 거듭 물었다. "아니, 왜 그러세요. 아니, 왜 그러세요. 리종이모?" 그러자 그 가엾은 여자는 눈물에 젖은 목소리로 슬픔으로 몸을 떨면 서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저 사람이 네게 물었을 때..... 시리지 않느냐고.....네 소중한 작은 발이.....아무도 내게 그런 말을 해준 적없단다.....나에게.....한 번도.....한 번도. ...." 잔느는 놀랍고 측은한 생각도 들었으나 리종에게 정다운 말을 건네는 연인을 생각하 자 웃 음이 나오려고 했다. 자작도 자기의 웃음을 감추려고 몸을 돌렸다. 그러나 이모는 갑 자기 자 리에서 일어나 털실을 바닥에, 편물은 의자 위에 그냥 둔채로 등불도 없이 어두운 층계로 달아나 자기 방을 대강 어림치고 찾아갔다. 자기들만 남은 두 젊은이는 즐겁고 감동이 되어 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잔느가 중얼거렸다. "가엾은 이모.....!" 줄리앙이 대답했 다. "오늘밤 좀 이상해지신 모양이에요." 그들은 헤어질 마음이 나지 않아서 서로 손을 잡고 있었 다. 그 러고는 부드럽게, 아주 부드럽게 리종 이모가 막 자리를 뜬 그 빈 의자 앞에서 그들 의 첫 키스를 나누었다. 다음날, 그들은 노처녀의 눈물 같은 것은 이제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결혼을 2주일 앞둔 잔느는 마치 부드러운 감정에 지친 것처럼 아주 평온하고 조용하게 지냈 다. 그녀는 결정적인 날의 오전에도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그녀는 마치 자신의 살과 피와 뼈가 살갗 속에서 녹아 섞여버린 듯이 온몸에 커다란 공허감을 느꼈을 뿐이었다. 그리 고 물 건을 만지자 자기의 손가락이 심하게 떨리고 있음을 알았다. 그녀는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교회의 합창 속에서 겨우 자신을 되찾았다. 결혼한 것이다! 이렇게 그녀는 결혼하였다 ! 새벽 부터 이루어진 일들이나 움직임, 사건의 연속이 그녀에게는 하나의 꿈, 정말 하나의 꿈처럼 여겨졌다.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이 달라져 보이는 것 같은 순간이었다. 몸짓들마 저도 어 떤 새로운 의미를 지니고 있었고 시간까지도 평시의 운행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이 침착하지 못하고 특히 놀라워하고 있음을 느꼈다. 전날만 해도 자신 의 존 재 속에 변화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자기 생에 있어서 한결같이 지녀온 희망 이 보다 더 가까이 거의 손으로 만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녀는 처녀로서 잠자리에 들었 었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아내가 된 것이다. 이렇게 그녀는 자신의 모든 기쁨과 꿈꾸어왔던 행복과 더불어 미래를 숨기고 있는 것 같 은 이 울타리를 넘었던 것이다. 그녀는 자기 앞에 하나의 문이 열려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기다리고 있었던 것' 속으로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 의식이 끝났다. 모두 텅 빈 제의실로 건너갔다. 아무도 초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고 나서 그들은 다시 나왔 다. 그 들이 교회 문에 나타나자 굉장한 폭음이 신부를 펄쩍 뛰게 했고 남작 부인이 큰소리를 지르 게 만들었다. 그것은 농부들이 쏜 축포였다. 뢰 푀플로 갈때까지 그 폭음은 그치지 않 았다. 간단한 식사가 가족들과 성주들의 사제, 이포르의 사제, 촌장 그리고 인근의 대농 가운데 에서 뽑힌 증인들을 위해서 마련되었다. 그리고 점심식사를 기다리기 위해서 사람들은 정원 을 한바퀴 돌았다. 남작, 남작부인, 리종이모, 촌장과 피코 신부는 어머니의 산책길 을 걷기 시작했다. 한편 건너편의 가로수 길은 다른 신부가 큰 걸음걸이로 걸으면서 기도서를 읽고 있었다. 성관의 다른쪽에서는 사과나무 아래에서 능금주를 마시고 있는 농부들의 즐겁고 떠 들썩한 소리가 들려왔다. 나들이옷을 입은 온 고을 사람들이 뜰을 가득 메웠다. 소년 소녀들 이 술래 잡기를 하고 있었다. 잔느와 줄리앙은 작은 숲을 가로질러 언덕 위로 올라갔다. 그리 고 두 사람 모두 아무 말 없이 바다를 바라보았다. 8월 중순인데도 날씨는 약간 서늘했다. 북풍이 불어왔다. 그리고 커다란 태양은 새파란 하늘에서 사정없이 내리비치고 있었다. 두 젊 은이는 그늘을 찾기 위해서 오른쪽으로 돌아 들판을 가로질렀다. 이포르로 내려가는 구불구 불하고 숲이 많은 골짜기로 가기 위해서였다. 그들이 덤불 숲에 이르자, 이제는 바람 한 점 스치지 않았다. 그들은 그의 허리로 천천히 미끄러져 감겨오는 팔의 감촉을 느꼈다. 그녀는 심장이 빠르게 뛰고 숨이 끊어질 듯이 헐떡여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낮 게 쳐 져 있는 나뭇가지가 그들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그들은 그 밑을 지나기 위해 허리를 굽혔다. 그녀는 나뭇잎 하나를 땄다. 두 마리의 무당벌레가 연약한 빨간 조가비처럼 그 위에 몸을 바싹 붙이고 있었다. 그러자 순진한 그녀는 약간 안심이 되어 이렇게 말했다. "어머, 부부로 군요." 줄리앙은 그녀의 귀에 가볍게 입을 대었다. "오늘밤 당신은 내 아내가 되는 겁 니다." 들에서 머무르는 동안 많은 것을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아직도 사랑의 시만 꿈꾸고 있었기 때문에 그 말에 깜짝 놀랐다. 그의 아내라니? 이미 그렇게 된 것이 아닐까? 그러곤 그는 그녀의 관자놀이와 밑머리가 곱슬거리는 목덜미에 재빠르게 짧은 키스를 해대기 시작 하였다. 그럴 때마다 전혀 익숙하지 않은 이런 남자의 키스에 놀라서 그녀는 이 애무 를 피 하려고 본능적으로 머리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그러면서도 이 애무는 그녀를 황홀하 게 하 였다. 그런데 그들은 어느새 숲 기슭에 와 있었다. 그녀는 이렇게 멀리 온 것에 당황 해서 걸 음을 멈추었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돌아가요"하고 그녀가 말했다. 그는 그녀의 허리에 감았던 팔을 뺐다. 두 사람이 몸을 돌리자 그들은 마주 보게 되었다. 아주 가까워서 그들은 그들의 얼굴에서 서로의 숨결을 느꼈다. 그들은 서로 바라보았 다. 그 들은 두 영혼이 서로 섞여들 것 같은 그런 움직이지 않는, 날카로우면서도 꿰뚫는 듯 한 시 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들은 서로의 눈 속에서, 서로의 눈 뒤에서, 속이 들여다보이 지 않는 존재의 이 미지 속에서 서로를 찾고 있었다. 그들은 말없이 집요한 질문 속에서 서로 의 심 중을 살피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어떻게 될 것인가? 그들이 함께 시작하는 이 생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들은 서로 결혼이라는 이 취소할 수 없는 긴 대담에서 기쁨, 행복 또는 환멸 을 간직하게 될 것인가? 그러자 두 사람은 서로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여겨 졌다. 갑자기 줄리앙은 아내의 어깨위에 두손을 얹고 그녀가 한 번도 받아 본적이 없는 격 렬한 키스를 그녀의 입술 가득히 퍼부었다. 그 키스는 밑으로 내려가서 그녀의 혈맥과 골수 속으 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알 수 없는 어떤 충격을 받은 그녀는 두 팔로 줄리앙을 정신없 이 떼 밀어 하마터면 넘어질 뻔하였다. "가요, 돌아가요"하고 그녀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는 대 답하지 않았으나 자기 손에다 그녀의 손을 쥐고 있었다. 그들은 집에 올때까지 한마디 도 나 누지 않았다. 남은 오후 시간은 길게 여겨졌다. 해질 무렵에 사람들은 식탁에 앉았다. 저녁은 노르망디식과는 반대로 간단하고 아주 짧았다. 거북스러움 같은 것이 회식 자들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두 사람의 사제와 촌장 그리고 초대받은 네 명의 소작인들만이 혼 인 잔 치에 어울리는 그런 떠들썩한 즐거움을 약간 나타내 보였을 뿐이었다. 웃음소리가 활기를 잃은 듯싶었으나 촌장이 말 한마디가 그 웃음을 되살려 놓았다. 대략 아홉 시쯤 되었다. 곧 커피를 마실 것이다. 밖에서는, 앞뜰의 사과나무 아래에서는 전원 무 도회가 시작되었다. 열려진 창문을 통해서 축제의 광경이 전부 보였다.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은 타다 남은 양초들이 나뭇잎에 녹청색 그림자를 던지고 있었다. 촌사람들이 무 대같이 생긴 부엌의 큰 식탁 위에 높이 자리한 두 개의 바이올린과 한 개의 클라리넷의 가냘 픈 반 주에 맞추에 원시적인 무도곡을 큰소리로 부르면서 둥글게 원을 그리며 뛰고 있었다. 농부 들의 소란스러운 노래가 가끔 악기소리를 완전히 뒤덮에 버리곤 하였다. 미친 듯이 날뛰는 소리에 찢긴 가냘픈 음악은 어떤 흩어지는 음표의 작은 파편처럼 하늘에서 갈가리 찢 겨 나 가는 것 같았다. 타오르는 횃불에 둘러싸은 두 개의 커다란 통은 군중들에게 마실 것 을 쏟 아내고 있었다. 하녀 두 사람이 나무통 안에서 컵과 사발을 쉴 새 없이 헹구어내는 일 을 맡 고 있었는데, 그들은 아직 물기가 흐르는 그것들을 빨간 포도주 줄기가 말간 능금주의 노르 스름한 줄기가 흘러내리는 꼭지 밑에다 들이대는 것이었다. 그러면 춤을 추다 목이 마 른 사 람들과 조용한 노인들, 땀을 흘리는 소녀들이 몰려와 자기 차례가 오면 팔을 내밀어 그중의 한 그릇을 잡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음료를 머리를 젖히고 목구멍 속으로 콸콸 들이붓 는 것 이었다. 식탁위에는 빵과 버터와 치즈와 소시지가 있었다. 제각기 이따금 와서 한 입씩 먹었 다. 조 명으로 장식된 나무 아래에서 벌어지는 이 건전하고도 격렬한 축제는 홀이 있는 침울 한 회 식자들에게도 함께 춤을 추고 싶고, 버터를 바른 빵 한조각과 날양파를 먹으면서 그 큰 술 통의 불룩한 곳에서 술을 받아 마시고 싶은 욕망을 일게 했다. 나이프로 박자를 맞추 고 있 던 촌장이 소리쳤다. "저런! 잘들 노는군. 가나슈의 결혼 피로연 같군그래." 참는 듯 한 웃음 이 가늘게 새어나왔다. 그러나 피코 신부는 세속적인 권위와는 천부적인 적이라서 이렇게 즉각 응수했다. "'카나'라고 말씀하려고 하셨겠지요." 상대방은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녜요 사제님, 내가 맞습니다. 내가 가나슈라고 했으면 가나슈예요." 모두들 일어 나서 거 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몇사람은 즐거운 연회를 위해서 서민들과 섞이려는 듯 나가기 도 했 다. 이어서 초대받은 사람들은 자기를 떴다. 남작과 남작 부인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아델라이드 부인은 평소보 다 더 숨가빠 하면서 남편이 요구하는 것을 거절하는 듯이 보였다. 마침내 그녀가 거 의 높 은 소리로 말했다. "안 돼요, 여보, 난 할 수 없어요. 그걸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 겠군요." 그러자 아버지는 갑자기 부인 곁을 떠나 잔느에게로 다가왔다. "얘야, 나와 함께 산 책하지 않겠니?" 아주 감동이 된 그녀가 대답했다. "좋으실대로 하세요. 아빠." 그들은 밖으 로 나갔 다. 그들이 문앞에 이르자 바다 쪽에서 건조한 미풍이 불어와 그들을 감쌌다. 그러한 여름의 서늘한 바람은 벌써 가을을 느끼게 하였다. 하늘에서는 구름이 빨리 지나가며 별들을 가렸 다가 이내 다시 드러내었다. 남작은 딸의 손을 부드럽게 쥐면서 딸의 팔을 자기 몸에 가까 이 댔다. 그들은 얼마 동안 걸었다. 그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당황해하는 것 같았 다. 마침 내 그가 결심을 하였다. "귀여운 내딸아. 난 네 어머니가 해야 할 어려운 역할을 하 려고 한 단다. 네 어머니가 그걸 거절했기 때문에 내가 대신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단다. 나는 네가 실 제적인 일 중에서 무엇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자식들에게는, 특히 딸들에게는 조 심스럽 게 숨기고 있는 비밀들이 있단다. 딸들은 마음이 순결한 채로 있어야만 한다. 우리가 딸의 행복을 보살피게될 남자의 팔에 그 애들을 내맡기는 그 시간까지 완전 무결하게 순결 해야만 한다. 인생의 감미로운 비밀위에 걸쳐 있는 그 베일을 걷어올리는 것은 바로 그가 해 야 할 일이란다. 그러나 딸들은 지금까지 어떤 의혹도 스쳐가지 않았기 때문에 꿈의 뒤에 숨 어 있 는 약간 동물적인 현실 앞에서 저항을 하게 된단다. 영혼뿐만 아니라 육체까지도 상처 를 입 은 딸들은 법칙이, 인간의 법칙과 자연의 법칙이 절대적인 권리로서 그에게 허용하는 것을 남편에게 거부하고도 하지. 얘야, 나는 그 이상은 더 말할 수가 없구나. 그러나 절대 로 이것 을 잊어서는 안된다. 너는 완전히 네 남편에게 속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정확하게 그녀는 무엇을 알았을까? 그녀는 무엇을 짐작했을까? 그녀는 어떤 예감처 럼 견 딜 수 없이 고통스러운 우울에 짓눌려 떨기 시작했다. 그들은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뜻밖의 일이 거실 문에서 그들을 멈추게 했다. 아델라이드 부인이 줄리앙의 가슴에 얼굴을 묻 고 흐 느껴 울고 있었다. 그녀의 눈물은, 대장간의 풀무처럼 밀어내고 있는 요란스러운 눈물 은 코 와 입과 눈에서 동시에 나오는 것 같았다. 젊은이는 당황하고 어색하게, 자기의 애지 중지하 게 귀여워하고 열렬히 사랑하는 딸을 그에게 부탁하기 위해서 자기 팔에 쓰러져 있는 뚱뚱 한 부인을 받치고 있었다. 남작이 달려갔다. "아아! 이러지 말아요. 마음을 약하게 먹지 말아요, 제발." 그러 고는 아 내를 잡아 안락의자에 앉혔다. 그러는 동안에 그녀는 얼굴을 닦고 있었다. 남작은 잔 느에게 로 몸을 돌렸다. "자, 얘야, 빨리 네 어머니에게 키스하고 가서 자거라." 자기 역시 눈물이 나올 것 같은 그녀는 양친에게 재빨리 키스를 하고 도망치듯 나갔다. 리종 이모는 벌 써 자 기 방으로 물러가 있었다. 남작과 부인만이 줄리앙과 함께 남아 있었다. 그들 세 사람 은 모 두 아주 거북스러워서 아무 말도 나누지 않았다. 야회복을 입은 두 남자는 초점 잃은 시선 으로 서 있었고 아델라이드 부인은 의자에 쓰러져 아직도 목구멍 속으로 오열을 삼키 고 있 었다. 그들의 난처함이 견딜 수가 없게 되자, 남작은 두 젊은이가 며칠후에 떠나게 될 여행 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잔느는 자기 방에서 샘물처럼 눈물을 흘리고 있는 로잘리의 손을 빌려 옷을 벗고 있 었다. 그녀의 손이 헛손질을 하는 바람에 그녀는 이제 끈도 핀도 찾지 못했다. 그녀는 확실 히 자 기의 주인보다 더 흥분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잔느는 하녀의 눈물같은 것은 거 의 생 각지도 않았다. 그녀는 자기가 다른 세계로 들어가 있는 것 같이 여겨졌다. 그녀가 알 고 있 는 모든 것, 그녀가 극진히 사랑하는 모든 것에서 떨어져 나와 어느 다른 땅으로 떠나 는 것 같이 여겨졌다. 자기의 생활이나 생각 속에서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된 것 같았다. 이 런 이 상한 생각까지 드는 것이었다. '나는 남편을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그러자 갑자기 잘 모르 는 낯선 사람처럼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3개월 전만 해도 그녀는 그가 존재하고 있다 는 것 도 전혀 알지 못했었는데 지금은 그의 아내인 것이다. 이것은 어떻게 된 일일까? 왜 발밑에 뚫려 있는 구멍 속으로 빠지듯 이렇게 빨리 결혼 속으로 빠져버린 것일까? 밤 단장을 마치자 그녀는 침대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약간 선뜩한 시트가 살갗 에 소 름을 돋게 하고, 두 시간 전부터 그녀의 영혼을 짓누르고 있던 차디찬 느낌, 고독, 슬픔의 감정을 더해 주었다. 로잘리는 여전히 흐느껴 울면서 도망치듯이 그 방을 나갔다. 잔 느는 기 다렸다. 그녀는 불안하고 떨리는 가슴으로 무언지 자기로서는 짐작할 수 없는 것, 아 버지가 애매한 말로 알려준 것, 사랑의 가장 큰 비밀인 그 신비로운 계시를 기다렸다.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누가 방문을 가볍게 세 번 두드렸다. 그녀는 몹시 떨려서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다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열쇠 따는 소리가 났다. 그녀는 마치 도둑이 자기 방에 들어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불을 뒤집어썼다. 장화소 리가 부드럽게 마루를 울렸다. 그리고 갑자기 누군가 자기 침대에 손을 댔다.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펄쩍 뛰면서 작은 소리를 질렀다. 얼굴을 내미니 자기 앞에 줄리앙 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 당신이 나 를 겁주 다니요!" 하고 그녀가 말했다. 그가 대답했다. "그럼 당신은 나를 기다리지 않았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정장을 하고 있었으며 미남다운 의젓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토록 단정한 이 남자 앞에서 이렇게 자리에 누워 있다는 것이 몹시 부끄럽 게 여 겨졌다. 그들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온 생애의 본질적인 행복이 달려 있는 이 신중하고도 결정적인 시각에 그들은 감히 서로 바라보지도 못했다. 그 는 이 싸움에 어떤 위험 같은 것이 내포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과 꿈속에서 자란 처녀의 영혼 이 지니는 한없는 섬세함과 미묘한 수치심을 다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치밀한 자제 와 꾀 바른 애정이 어쩌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막연히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부드럽 게 그녀의 손을 잡고 키스했다. 그리고 마치 제단앞에 무릎을 꿇듯이 침대옆에 무릎을 꿇고 숨소리처럼 가느다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나를 사랑해 주시겠소?" 그녀는 갑자기 안심이 되어서, 레이스로 뒤덮힌 머리를 베개에서 쳐들며 미소를 지었다. "전 당신을 이미 사 랑하고 있는걸요." 그는 아내의 가느다랗고 작은 손가락을 자기의 입에 갖다 대었다. 그리고 손가락이 입을 가리는 바람에 달라진 음성으로 말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를 보 여주겠 소?" 그녀는 다시 당황해 하며, 자기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아버지가 한 말을 생각하고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당신 거예요." 그는 그녀의 손목에 축축한 키스를 퍼부어 댔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일으켜 다시 숨으려고 하는 그녀의 얼굴로 다가갔다. 갑자 기 침대 위에서 한 팔을 뻗쳐 그는 시트 너머로 아내를 껴안고, 다른 팔은 베개 밑으로 집어넣 어 머 리를 쳐들어올렸다. 그리고 가만히 아주 가만히 물었다. "그렇다면 당신 곁에 나를 위해 아 주 작은 자리를 만들어 주시겠소?" 그녀는 두려웠다. 본능적인 두려움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더듬거렸다. "아! 아직은 안 돼요. 부탁이에요." 그는 실망한 것 같았고 조금 기분이 상한 것 도 같았다. 그는 여전히 애원하는 그러나 조금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쨌든 우리가 결국 그렇게 될 터인데 왜 미루는 거요?" 그녀는 그 말을 원망스럽게 생각했다. 그러 나 공 손하게 참으려 그녀는 다시 한 번 되풀이했다. "저는 당신거예요." 그러자 그는 황급 히 화장 실 안으로 사라졌다. 그녀는 옷 벗는 소리, 주머니 속에서 나는 동전소리, 한 짝씩 벗 어던지 는 장화소리 같은 그가 움직이는 소리를 똑똑히 들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팬츠와 양말 만 신 고 그는 재빨리 방을 가로질러 벽난로 위에다 시계를 놓으러 갔다. 그러고 나서는 뛰 다시피 옆에 붙은 작은 방으로 돌아가 다시 얼마동안 움직거렸다. 잔느는 눈을 감고 얼른 돌 아 누 웠다. 그러자 그가 돌아온 것을 알았다. 그녀는 자기 다리 곁에 차고 털투성이의 다른 하나 가 재빨리 미끄러져 들어왔을 때 바닥에라도 뛰어 내려설 듯이 펄쩍 뛰었다. 두 손으 로 얼 굴을 가리고 제정신이 아닌 그녀는 두려움과 당황함으로 소리를 지를 것만 같아 침대 깊숙 이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그는 얼른 그녀를 껴안고, 그녀가 등을 돌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녀의 목과 나 이트캠 의 물결치는 레이스와 수놓은 속옷의 깃에 탐욕스럽게 키스를 했다. 그녀는 자기의 팔꿈치 로 가리고 있는 젓가슴을 더듬는 힘찬 손길을 느끼면서 무서운 불안에 몸이 뻣뻣해져 꼼짝 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이 난폭한 접촉에 깜짝 놀라서 숨을 헐떡거렸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도망치고 싶었다. 집 밖으로 달려나가서 어디든지 이 남자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가 서 들 어앉고 싶었다. 그는 이제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자기 등에서 그의 체온을 느꼈 다. 그러 자 그녀의 공포가 다시 가라앉았다. 그러고는 갑자기, 키스하면서 돌아누우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내 그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내 귀여운 아내 가 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오?" 그녀는 손가락 사이로 중얼거렸다. "그렇게 되지 않았나요?" 그 는 기 분 나쁜 투로 대답했다. "천만에, 여보, 자, 나를 놀리지 말아요." 그녀는 그의 불만스러워하는 어조에 매우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그에게 용서를 빌기 위해서 갑자기 그를 향해 돌아누웠다. 그는 그녀를 갈망하는 듯이 화가 나서 양팔로 그녀의 허리를 얼싸안았다. 그러고는 재빠른 키스를, 물어뜯는 키스를, 미칠 듯한 키 스를 그녀의 온 얼굴과 가슴에 구석구석 퍼부었고 애무로 그녀를 얼빠지게 만들었다. 그녀 는 두 팔을 벌린 채 그의 그런 행동에 맥없이 있으면서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 그가 무엇을 하는지, 생각이 혼란스러워서 아무것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날카로운 고통이 갑자기 그녀를 쥐어뜯었다. 그녀는 그가 난폭하게 자신을 소유하고 있는 동안 그의 팔 안에서 몸을 비틀면서 신음을 하기 시작했다. 그 다음에는 무슨 일이 있어났을까? 그녀는 거의 기억나지 않았다. 정신을 잃었기 때문이 다. 다만 그가 그녀의 입술에 감사해하는 짧은 키스를 우박같이 퍼부었던 것 같은 생각이 들 뿐이다. 그러고 나서는 그가 그녀에게 말을 했을 것이고 그녀는 그에게 대답했을 것이다. 그 후에 그는 다른 시도를 해보려고 했으나 그녀는 공포 때문에 그것을 물리 치곤 하 였다. 그녀가 몸부림을 치는 바람에 이미 자기 다리에서 느꼈던 그 무성한 털이 이번에는 가 슴에 닿아 얼른 물러섰다. 마침내 이루지 못한 간청에 지쳐서 그는 엎드린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자 그녀는 생각에 잠겼다. 영혼 밑바닥까지 절망한 그녀는 그렇게도 다르게 꿈꾸 어오던 도취, 파괴되어 버린 소중한 기대, 무너져버린 행복의 환멸 속에서 혼자 중얼거렸다. "이것 이 바로 그가 그의 아내가 되는 것이라고 하던 그것이로구나. 이것이! 이것이!" 그녀는 벽에 걸려 있는 장식 융단들과 그의 방을 둘러싸고 있는 오래된 사랑의 전설 을 번 갈아 바라보면서 그렇게 오랬동안 슬픔에 잠겨 있었다. 그러나 줄리앙이 이제는 말도 건네 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아서 그녀가 천천히 그에게로 시선을 돌려보니 그는 자고 있는 것이 었다.! 그녀는 그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자기를 아무 여자처럼 취급한 그의 난폭한 짓보다 도 이 잠에 더 모욕을 느껴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런 밤에 잠을 잘 수 있을 까? 그들 사이에 일어났던 일이 그래 그에게는 조금도 놀랄 일이 아니란 말인가? 아 아! 그 녀는 차라리 격렬한 충격을 받는 것이, 폭행을 당하는 것이, 의식을 잃을때까지 그 지 긋지긋 한 애무로 상처를 입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그녀는 팔꿈치를 받치고 그에게로 몸을 기울여서 이따금 코고는 소리를 내며 그이 입술 사이로 새어나오는 가벼운 숨소리를 들으면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날이 밝았다. 처음에는 부옇게, 다음에는 환하게, 다음에는 장밋빛으로, 그 다음에 는 빛이 났다. 줄리앙은 눈을 뜨고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아내를 바라보면서 미 소를 짓 고 물었다. "잘 잤어, 여보?" 그녀는 이제 그가 자기에게 공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 렸다. 그래서 그녀는 깜짝 놀라 대답했다. "그럼요, 당신은요?" 그가 말했다. "아아! 난 아주 잘잤어." 그러고는 그녀에게로 몸을 돌려 키스했다. 그러고 나서는 조용히 이야기를 시작했 다. 그는 경제 관념과 더불어 생활의 계획을 그녀에게 펼쳐 보였다. 여러 번 되풀이하 는 이 말이 잔느를 놀라게 했다. 그녀는 그 말들의 의미를 알지도 못하면서 귀를 귀울였고, 간신히 자기의 마음을 재빨리 스치고 지나가는 수많은 것을 생각하면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 다. 시계가 여덟 번 울렸다. "자, 일어납시다."하고 그가 말했다. "늦게까지 침대에 있 으면 우 습게 보일 테니까." 그러고는 그가 먼저 침대에서 내려갔다. 그는 자기의 몸치장을 끝내고 나서 아내의 몸치장을 아주 세세한 것까지도 도와주면서 로잘리를 부르는 것을 허락하 지 않 았다.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그가 그녀를 세웠다. "알고 있겠지만, 우리 사이는 이제 친근하 게 말을 놓을수가 있지만 부모님 앞에서는 아직은 기다리는 것이 좋겠소. 신혼 여행에 서 돌 아온 후에는 아주 자연스러울 거요." 그녀는 점심때에야 비로소 모습을 나타냈다. 그리고 그 하루는 아무런 새로운 일이 일어 나지 않은 것처럼 보통때와 같이 그렇게 지나갔다. 다만 집안에 남자가 한 사람 더 있었을 뿐이다. 나흘 후에 그들을 마르세이유에 데려다 줄 대형 사륜마차가 도착했다. 첫날밤의 번민을 겪고 난후, 잔느는 이미 줄리앙과의 접촉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녀의 혐오감이 그들의 관계 를 더욱 친밀하게 할 정도로 줄어들지는 않았지만 그의 키스와 부드러운 애무에 익숙 해졌던 것이다. 그녀는 그를 미남이라고 생각했고 또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녀는 다시 행 복해지 고 즐거워 짐을 느꼈다. 이별은 짧고 슬프지도 않았다. 남작 부인만이 흥분해 있는 것 같았 다. 마차가 떠나려 할 때 그녀는 딸의 손에 납덩이처럼 무거운 커다란 돈지갑을 쥐어 주었다. "이것으로 신부에게 필요한 자질구레한 지출을 하려무나"하고 그녀가 말했다. 잔느는 그것을 주머니 속에 넣었다. 그리고 말들이 달리기 시작하였다. 저녁 무렵에 줄리 앙이 그녀에게 말했다. "당신 어머니가 그 지갑에 얼마를 넣어주셨소?" 그녀는 더 이 상 지 갑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있지를 않아서 그것을 무릎위에 쏟아 놓았다. 많은 금화가 흩어졌 다. 2천프랑이었다. 그녀는 손뼉을 쳤다. "돈을 많이 쓸 수 있게 되었군요." 그리고 그녀는 돈을 다시 집어 넣었다. 지독한 더위 속을 일주일 동안 달린후 그들은 마르세이유에 도착했다. 다음날은 아 작시오 를 경유해서 나폴리로 가는 작은 여객선인 르와 루이호가 그들을 코르시카로 데려다 주었 다. 코르시카! 밀림지대! 비적들! 산들! 나폴레옹의 고향! 잔느에게는 자기가 아주 기 분 좋게 꿈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현실에서 빠져 나오는 것같이 여겨졌다. 갑판위에 나란히 서 서 그 들은 프로방스의 절벽들이 달리듯이 뒤로 스쳐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태양으로부 터 쏟 아져 내리는 강렬한 빛에 굳어진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 짙은 쪽빛 바다는 지나칠 정도 로 푸 른 무한한 하늘 아래 펼쳐져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라스티크 영감의 배로 뱃놀이 를 갔었 던 것 생각나세요?" 대답대신에 그는 재빨리 그녀의 귀에 키스를 했다. 기선의 바퀴가 바다의 깊은 잠을 흔들어 놓으면서 물을 때리고 있었다. 그리고 뒤로 거품 이 이는 긴 흔적이, 출렁이는 물결이, 샴페인처럼 거품을 일게하는 창백하고 크고 길 게 퍼진 자국이 배의 똑바른 항적을 까마득히 보여주고 있었다. 갑자기 앞쪽에서, 불과 몇 발 자국밖 에 안 되는 곳에서 거대한 물고기 돌고래가 물 밖으로 솟구쳐 올랐다가 다시 곤두박질 쳐 잠 기더니 사라져버렸다. 무서움에 사로잡혀 잔느는 비명을 지르고 줄리앙의 가슴에 뛰 어들었 다. 그러자 그녀는 자기가 무서워한 것에 웃음이 나왔다. 그러면서도 그 물고기가 다 시 나타 나지 않을까 걱정을 하며 바라보았다. 잠시 후에 그 물고기는 거대한 기계 장난감처럼 다시 솟아올랐다. 그러다가 다시 떨어지더니 또다시 나왔다. 이번에는 두 마리가 되었다가 세 마 리로, 다시 여섯 마리의 돌고래가 육중한 배 주위에서 뛰어오르면서 철 지느러미가 달 린 나 무 물고기인 괴물 같은 그들의 형제를 호위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왼쪽으로 지나갔다 가 배 의 오른쪽으로 돌아왔고, 어떤 때에는 함께, 어떤 때에는 차례로 마치 장난을 치듯이 즐겁게 뒤꽁무니를 쫓기도 했다. 또 곡선을 그리면서 공중으로 껑충 뛰어올랐다가는 다시 일렬로 물속에 잠기는 것이었다. 잔느는 거대하면서도 유연한 이 헤엄치는 자들이 나타날 때마다 넋을 빼앗기고, 마음을 설레고, 손뼉을 쳤다. 그녀의 가슴도 그들처럼 어린애같이 미칠 듯한 기쁨으로 뛰었 다. 갑자 기 물고기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한 번더, 아주 멀리, 난바다에서 그들의 모습이 보였 다. 그 러고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잔느는 잠시 물고기들이 사라진것에 섭섭함을 느꼈다. 저녁이 왔다. 고요하고 빛나며 행복한 평화가 가득한 저녁이었다. 공중에도 물 위에 도 한 가닥 미동도 없었다. 바다와 하늘의 이 무한한 휴식은 이제는 더 이상 전율조차 일 어나지 않는 무감각해진 영혼까지 퍼져왔다. 커다란 태양이 저기 보이지 않는 아프리카를 향해 가라앉고 있었다. 아프리카, 벌써 불같 은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는 것 같은 그 타는 듯한 대지. 그러나 서늘한 애무 같은 것 이-그 렇기는 하지만 미풍이라고는 할 수 없는-해가 졌을 때 얼굴을 가볍게 스쳐갔다. 그들은 여객선의 온갖 지독한 냄새가 나는 선실로 다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 서 그 들 두 사람은 망토로 몸을 감고 허리를 맞대고 갑판 위에 길게 누웠다. 줄리앙은 곧 잠이 들었으나 잔느는 미지의 여행에 대한 흥분으로 눈을 뜨고 그대로 있었다. 타륜의 단 조로운 소리가 그녀를 흔들어 놓았다. 그녀는 자기 위에 마치 남극의 맑은 하늘에 젖은 듯이 반짝 거리는, 아주 환하고 날카롭게 빛나는 별무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아침녘에 는 그녀 도 깜빡 잠이 들었다가 소음과 사람들의 말소리에 잠이 깨었다. 수부들이 노래를 부 르면서 배를 단장하고 있었다. 그녀는 잠에 떨어져 꼼짝도 하지 않는 남편을 흔들었다. 그들 은 자리 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자기의 손가락 끝까지 밴 짭짜름한 안개의 맛을 마음껏 들이마셨다. 사방이 바다 였다. 그러나 배 앞쪽의 여명 속에서는 아직은 어렴풋한 어떤 회색 나는 것이, 이상하 고 뾰 족하며 들쭉날쭉한 어떤 주름 덩어리 같은 것이 물결 위에 놓여 있는 듯 싶었다. 그것은 점점더 뚜렷하게 나타났다. 밝아진 하늘에 그 형상은 더욱 뚜렷해졌다. 뿔이 돋은 것 같은 이상한 산의 커다란 산맥이 솟아 올랐다. 엷은 베일같은 것으로 몸을 감싼 코르시 카였다. 불쑥 튀어나온 모든 산봉우리들이 검은 그림자로서 윤곽이 드러나면서 뒤쪽에서 태양이 솟아 올랐다. 그러자 모든 봉우리들은 환해지고, 섬의 나머지 부분은 안개에 싸여 흐 릿한 채 로 있었다. 소금기를 머금은 억센 바람에 구릿빛이 되고, 마르고, 작달막해지고, 굳 어지고, 오므라든 늙고 작은 선장이 갑판위에 나타나 30년간의 호령에 목이 쉬고, 질풍 속에서 소리 를 질러왔기 때문에 지쳐버린 목소리로 잔느에게 말했다. "저것의 냄새를 아십니까?" 아닌 게 아니라 그녀는 어떤 강령하고도 이상한 식물의 냄새, 야생의 향기를 느끼고 있었 다. 선장 이 다시 말했다. "이렇게 향기를 풍기고 있는 것은 바로 코르시카랍니다. 부인. 저 건 예쁜 여자에게서 나는 냄새지요. 20년동안을 떠나 있다가도 5마일 밖의 바다까지 오면 저 냄새를 알아맞힌답니다. 그렇고 말고요. 그분도 저기 세인트헬레나에서 고국의 냄새에 대해 항상 이 야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분은 내 일가지요." 선장은 모자를 벗더니 코르시카를 향해 절을 하고, 저 멀리 대양을 건너 그의 일가인, 포로가 된 위대한 황제에게 절을 했다. 잔느는 너무도 감동이 되어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러더니 이 뱃사람은 수평선 을 향 해 팔을 내밀었다. "상기네르입니다!"하고 그가 말했다. 줄리앙은 아내 곁에 서서 그 녀의 허 리를 안고 있었는데, 두 사람 모두 가리켰던 지점을 찾으려고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마침내 피라미드의 모양을 한 몇 개의 바위를 알아보았다. 배는 곧 망막하고도 잔잔 한 만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우회를 하였다. 만은 많은 높은 봉우리들엑 둘러싸여 있었고 그 산의 낮은 경사는 이끼에 덮여있는 것 같았다. 선장은 그 초록빛을 가리켰다. "관목 지대 지요." 앞으로 나아감에 따라 산들의 원형이 이따금 바닥이 보일 만큼 투명한 하늘빛 호수 속 으로 천천히 나아가는 배 뒤로 오므라드는 것 같았다. 그러자 갑자기 새하얀 마을이 만 깊숙이, 파도치는 해안가, 산들의 발치에 나타났다. 자그마한 몇 척의 이탈리아 배들이 항구에 닻을 내리고 있었다. 너댓척의 작은 배들 은 르 와 루이호의 주위로 왔다갔다하면서 승객을 찾고 있었다. 짐을 챙기고 있던 줄리앙이 낮은 소리로 아내에게 물었다. "보이한테 20수만 주면 충분하지 않을까?" 일주일 전부터 그 는 줄 곧 같은 질문을 했는데 그럴때마다 그녀는 괴로웠다. 그녀는 다소 참을성 없이 이렇게 대답 했다. "충분하게 주는 것인지 어떤지 확신이 없을때에는 넉넉하게 주세요." 쉴새없이 그는 호텔의 주인이나 보이들, 마차꾼들이나 아무 장사꾼들하고 말다툼을 벌였 다. 그리고 궤변을 늘어놓은 덕택으로 얼마쯤 깎고 나서는 그는 두 손을 비비면서 잔 느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난 빼앗기는 것이 싫거든." 계산서가 오는 것을 볼 적마다 그녀는 틀림없 이 남편이 조목조목 따지고 들 잔소리를 미리부터 알고 있는 터라 몸이 떨렸다. 그렇 게 값 을 깎는 것이 창피스럽고, 손바닥에 충분하지 못한 팁을 받아쥐고 남편을 곁눈으로 쳐다보 는 하인들의 경멸하는 듯한 시선을 머리끝까지 묽어지는 것이었다. 그는 또 그들을 육지에 내려놓은 뱃사공과 언쟁을 벌였다. 그녀가 본 맨 첫 번째 나무는 종려나무였다! 그들 은 광 장의 한 모퉁이에 있는 텅 비어 있는 커다란 호텔로 내려가 점심을 주문했다. 디저트 를 끝 내고 잔느가 마을을 돌아보려고 일어섰을 때, 줄리앙이 두팔로 그녀를 붙들고 그녀의 귀에 다정하게 속삭였다. "좀 자지 않겠소, 여보?" 그녀는 깜짝 놀라 그대로 있었다. "자 다니요? 하지만 난 피곤하지 않은걸요." 그가 그녀를 껴안았다. "난, 당신을 원해요. 이해하 겠소? 거 의 이틀이나.....!" 그녀는 수치스러움에 얼굴을 붉히고 더듬거렸다. "아아! 지금 말이에요! 하지만 남 들이 뭐 라고 하겠어요? 대낮에 어떻게 방을 빌리자고 할 수 있겠어요? 아아! 줄리앙, 제발." 그러나 그는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난 호텔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고 어떻게 생각하든 조금도 상관하지 않아요. 당신은 내가 거북하게 생각하는지 어떤지 알게 될 것이오." 그리고 그는 초인종을 눌렀다. 그녀는 눈을 내리뜨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영 혼이나 육체는 남편의 이 끊임없는 욕정 앞에서 언제나 반항하면서도 혐오감과 체념으로 그 러나 모욕감을 느끼면서 복종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거기에서 어떤 짐승 같은 것, 품 위를 떨어뜨리는 것, 결국 불결같은 것을 보게 되는 것이었다. 그녀의 관능은 아직도 잠자고 있었다. 그러나 남편은 이제 그녀도 자신의 격정을 나 고 있 는 것처럼 그녀를 다루고 있었다. 보이가 오자 줄리앙은 그에게 방으로 안내해 달라고 청했 다. 눈 속에까지 털이 무성한 진짜 코르시카인인 그 남자는 알아듣지를 못하고 방은 밤에만 준비된다고 주장하였다. 초조해진 줄리앙이 설명을 했다 "아냐, 당장. 우리는 여행에 지쳐서 쉬고 싶은 거요." 그러자 보이는 수염 속으로 한 가닥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잔느는 달아나 고 싶었다. 한 시간 후에 그들이 다시 내려왔을 때 그녀는 만나는 사람들 앞에 감히 지나갈 수 가 없 었다. 그들이 틀림없이 등뒤에서 웃고 쑥덕거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녀 는, 이러 한 예만한 수치심이나 본능의 섬세함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고 그것을 이해하지도 못하는 줄리앙을 마음속으로 원망하였다. 그녀는 자기와 남편의 사이에 어떤 베일이나 장애물 같은 것을 느꼈다. 두 사람은 절대로 영혼까지는, 생각의 밑바닥까지는 뚫고 들어갈 수 없 다는 것 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생각은 나란히 걸어가기도 하고 가끔 서로 얽히기도 하지만 결 코 섞 이지는 못한다는 것, 그리고 인간 각자의 정신적 존재는 삶에 있어서는 영원히 혼자인 채로 있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들은 푸른 만 깊숙이에 숨겨져 있는 이 작은 마을, 산들이 장막처럼 둘러쳐져 있어서 거기까지는 바람이 좀처럼 불어오지 않는 큰 가마솥처럼 뜨거운 이 마을에서 사흘동안 머물 렀다. 그러고 나서 여행을 위한 여정이 정해졌다. 그들은 어떤 힘든 길에서도 물러서 지 않도 록 말을 빌리기도 했다. 그래서 그들은 성미가 팔팔해 보이는 눈을 가진, 마르고 지칠 줄 모 르는 두 마리의 작은 코르시카 산 종마를 빌려 어느날 아침 해가 떠오르는 무렵에 길 을 떠 났다. 노새를 탄 안내인이 그들을 수행하면서 식료품을 날랐다. 이 미개한 고장에는 여인숙 이 어디 있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만을 따라 길을 가다가 큰 산쪽으로 가는 그다지 깊숙하지 않은 계곡 속으 로 들 어갔다. 가끔 물이 거의 말라 있는 계곡을 가로지르기도 했으나 개울 같아 보이는 것 이 돌 밑에 움직이고 있었고, 마치 숨어 있는 짐승처럼 조심스럽게 졸졸 소리를 내고 있었 다. 황폐 한 지방은 아주 벌거벗은 것처럼 보였다. 비탈진 산허리는 키 큰풀로 덮혀 있었는데, 이 타 는 듯한 계절에 그것은 노란 색을 띠고 있었다. 이따금 산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는 데 그들은 걸어서 가기도 하고 작은 말을 타고 가기도 하며, 개처럼 큰 노새에 걸터앉 아 가 기도 했다. 모두들 등에 장전을 한 총을 메고 있었는데, 녹이 슨 구식 무기였지만 그 들 손에 있으면 위험한 것이기도 했다. 섬을 덮고 있는 향기를 뿜어내는 식물들의 그 강렬한 냄새가 공기를 답답하게 하는 것 같 았다. 그리고 길은 산의 길게 주름진 한가운데로 완만하게 올라가고 있었다. 장밋빛이 나 푸 른 화강암의 산정은 광막한 풍경에 선경 같은 느낌을 주고 있었다. 더 낮은 경사에 있 는 거 대한 밤나무 숲은 녹색 수풀처럼 보였다. 이 지방에서는 그만큼 토지의 기복이 엄청나 게 심 했다. 이따금 안내인은 가파른 고지를 손으로 가리키면서 이름을 대었다. 잔느와 줄 리앙이 쳐다보았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마침내 산정에서 굴러 떨어진 돌더미 같은 회색 나는 그 무엇을 발견하였다. 마을이었다. 작은 화강암의 촌락이 거기에 걸려 있었다. 진짜 새집처럼 단단히 달라붙어 있고 거대한 산 위에 있었기 때문에 거의 보이지 않 았다. 보통 걸음으로 가는 이 긴 여행이 잔느를 짜증나게 하였다. "좀 달려요." 하고 그녀 가 말했 다. 그러고는 자기 말에 박차를 가했다. 그녀는 남편이 자기 곁에서 달리는 소리가 나 지 않 아 뒤를 돌아보고는 미칠 듯이 웃어대기 시작했다. 남편이 파랗게 질려서 말의 갈기에 매달 려 이상스럽게 뛰어오르면서 달려오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의 아름다움조차, 그 의 '잘 생긴 기사'의 얼굴이 그의 서투른 솜씨와 두려움을 더욱 우스꽝스럽게 보이게 했던 것 이다. 그들은 기분 좋은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길은 이제 망토처럼 언덕을 온통 뒤덮고 있는 두 개의 끝없는 덤불숲 사이로 뻗쳐 있었다. 이것이 관목지대, 들어갈 수 없는 관목 지대였 다. 푸른 떡갈나무, 노간주나무, 소귀나무, 유향나무, 갈매나무, 히드, 월계수, 도금 양, 회양목 등으로 이루어지고, 그 사이로 얽히어 꼬인 참으아리, 괴물 같은 고사리, 인동덩굴, 시스트, 로즈마리, 라벤더, 찔레 등이 머리카락처럼 얽혀 연결되어 있었다. 산등성이에 풀 수 없는 머리칼을 내려 뜨리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배가 고팠다. 안내인이 따라와서 매력적인 샘 곁 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그런 샘은 가파른 지방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서, 바위 속으로 나 있는 작은 구멍에서 흘러나오는 얼음같은 찬 가느다랗고 둥근 물줄기가 지나가는 사람의 입에까지 그 가느다란 물줄기를 끌어오기 위해 가져다 놓은 밤나무 잎사귀 끝에서 흘 러내리 고 있었다. 잔느는 너무 행복스러웠으나 희열에 넘친 소리를 지르지 않으려고 간신히 참았 다. 그들은 다시 길을 떠나 사고뉴만을 우회하면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저녁무렵에는 카르제 즈를 지나갔다. 그곳은 옛날에 고국에서 추방당한 망명객의 무리들이 세운 그리스의 마을이 었다. 키가 큰 아름다운 처녀들이, 우아한 허리에 긴 팔을, 날씬하면서도 유난히도 맵시 있 는 몸매의 처녀들이 우물곁에 떼를 지어 있었다. 줄리앙이 그들에게 "안녕하세요"하고 소리 치자 처녀들은 버림받은 고국의 듣기 좋은 언어로써 노래하는 듯한 음성으로 대답했 다. 피아나에 도착하자, 옛날에 외진 지방에서 그랬던 것처럼 하룻밤 잠자리를 청해야만 했다. 잔느는 줄리앙이 두드린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면서 기쁨으로 몸을 떨었다. 아! 이것 이야말 로 진짜 여행이다! 탐험되지 않은 길에 뜻밖의 일들이 모두 갖춰져 있는. 그들은 마침 젊은 부부를 만났다. 교주가 신으로부터 보내진 손님을 맞이들이듯 그들은 맞아들여졌다. 그들은 옥수수 짚을 넣은 매트 위에서 잠을 잣다. 케케묵은 낡은 집이 었다. 대들보를 파먹는 긴 좀조개 벌레가 돌아다녀 좀이 쏜 집의 온 뼈대에서는 삐걱삐걱 소리 가 나고, 살아서 한숨을 짓는 것 같았다. 그들은 해가 떠오를 때 출발하여 이윽고 숲 앞에 서, 자줏빛 화강암의 진짜 숲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뾰족한 산봉우리, 원주, 작은 종루들, 그리고 세월과 부식시키는 바람과 바다의 안개로 해서 만들어진 갖가지 이상한 모양의 화강 암 숲이었다. 3백 미터나 되는 가느다란 것, 둥근 것, 꼬불꼬불한 것, 갈고리 모양으 로 굽은 것, 기형의 것, 기상 천외의 것, 환상적인 것, 이러한 기암 괴석들이 나무들, 식물들, 짐승들, 기념물들, 사람들, 법의를 입은 수도승들, 뿔이 돋친 악마들, 엄청나게 큰 새들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온통 괴물 같은 무리, 어떤 엉뚱한 신의 의지로 화석이 된 악몽의 동물원 같았다. 잔느는 심장이 졸아드는 것 같아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줄리앙의 손 을 잡 았다. 이 온갖 것의 아름다움 앞에서 그녀는 사랑하고 싶은 욕구에 사로 잡혔던 것이 다. 그 리고 갑자기 이 혼란에서 벗어나자, 그들은 붉은 화강암이 피를 흘리는 듯한 벽으로 온통 에워싼 새로운 만을 발견했다. 푸른 바다 속에는 그 진홍빛 바위들이 비치고 있었다. 잔느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아아! 줄리앙!" 다른 말은 나오지 않았다. 너무나 감탄 하고 감 동이 되어서 목이 메고 눈에는 두 줄기 눈물이 흘러 내렸다. 남편은 그녀를 쳐다보며 깜짝 놀라 이렇게 물었다. "무슨 일이오, 여보?" 그녀는 뺨을 닦으면서 미소를 지어 보였 다. 그러 고는 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것도 아녜요.....신경성이에요......모르겠어 요......감동이 되었나봐요. 너무 행복해서 사소한 일에도 마음이 흔들려요." 그는 아내의 이러한 신 경성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떤 감격이 재앙처럼 감동을 시키고 붙잡을 수 없는 어떤 감정이 얼빠지 게 만들며, 기쁨과 절망에 괴로워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에 미칠 듯이 감격해하는 사 람들의 동요를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한 눈물이 그에게는 우습게 보였다. 그래서 험한 길에 온 정신이 팔려 "당신 말에나 신경을 쓰는 게 좋겠소" 하고 말했다. 거의 통행이 불가능한 길로 해서 그들은 이 만 속으로 내려갔다. 그러고는 오른쪽으 로 돌 아 오타의 컴컴한 계곡을 기어올라가려고 했다. 그러나 오솔길은 몹시 험난해 보였다. 줄리 앙이 제안했다. "걸어서 올라가는 것이 어떨까?" 그녀로서는 잘된 일이었다. 조금 전 의 감동 을 맛본후라 그녀는 그와 단둘이서만 걸어간다는 것이 몹시 기뻤다. 안내인은 노새와 말을 데리고 앞서 떠나고 그들은 종종걸음으로 걸었다. 꼭대기에서부터 낮은 곳까지 균열 이 간 산이 좌우로 열려 있었다. 오솔길은 그 틈 사이로 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두 개의 경탄할 만한 벽 사이로 해서 밑바닥을 따라갔다. 그리고 거친 급류가 이 틈바구니로 흐르고 있었다. 공기는 차고 화강암은 검은색으로 보였으며, 그리고 그 높은 꼭대기로 보이는 푸른 하늘은 마음을 뒤흔들어 놓으며 현기증을 일게 했다. 갑자기 어떤 소리가 잔느를 움찔하게 만들었 다. 눈을 들어 보니, 거대한 새 한 마리가 구멍 속에서 날아 올랐다. 독수리였다. 그 펼쳐진 날개는 우물 같은 두 벽을 찾고 있는 듯이 보였다. 독수리는 하늘까지 올라 사라져 버 렸다. 더 깊이 들어갈수록 산의 균열이 이중으로 되어 있었다. 오솔길은 가파른 갈짓자 모양으 로 두 협곡 사이로 기어올라갔다. 경쾌하고 들뜬 잔느는 앞장서서 걸으면서 발치에 있 는 조 약돌을 굴려 내리기도 하고 대담하게 낭떠러지 위에서 몸을 굽혀 내려다보기도 했다. 줄리 앙은 약간 헐떡이면서 현기증이 날까 두려워 땅만 보면서 그녀를 따라갔다. 갑자기 태양이 그들에게 쏟아내렸다. 그래서 그들은 지옥에서 빠져 나왔다고 생각했 다. 그 들은 목이 말랐다. 축축한 흔적을 따라 돌이 무질서하게 놓여 있는 곳을 지나, 염소지 기들이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움푹팬 막대기 안으로 아주 가느다랗게 물길이 트인 샘이 있는 데까지 왔다. 양탄자 같은 이끼가 주위의 땅을 덮고 있었다. 잔느는 그 물을 마시기 위해 무 릎을 꿇었다. 줄리앙도 그렇게 했다. 그녀가 물의 시원함을 천천히 맛보고 있으려니까 줄리앙이 그녀의 허리를 잡고 나무 수로 끝을 빼앗으려고 했다. 그녀는 빼앗기지 않으려고 맛섰다. 그래서 그들의 입술이 서로 싸움 을 벌였고 서로 부딪치고 서로 밀어냈다. 싸움의 요행에 따라서 그들은 서로 가느다란 수도 관의 끝을 잡고 그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입을 물었다. 그래서 차가운 물줄기는 쉴 새없이 잡혔다가는 놓치고 끊겼다가는 다시 이어졌으며, 그 물줄기는 얼굴과 목과 옷과 손에 물을 튀겼다. 진주 같은 물방울들이 그들의 머리에서 반짝였다. 그리고 입맞춤이 물이 흐르 는 속 에서 흘렀다. 갑자기 잔느는 사랑의 영감을 느꼈다. 그녀는 맑은 물을 입에 가득 물고 두 뺨 을 가죽부대처럼 부풀려 입술로 그의 목을 축여주고 싶다는 것을 줄리앙에게 느끼도 록 했 다. 그는 웃으면서 머리를 젖히고 두 팔을 벌리고 목을 내밀었다. 그는 단숨에 이 살 아 있는 육체의 샘물에서 물을 마셨다. 그 샘물은 그의 창자속으로 불타는 욕정을 들이부었다. 잔느는 여태까지 보이지 않던 애정으로 그에게 기댔다. 그녀의 심장이 고동쳤다. 가슴이 부풀어올랐다. 그녀의 눈은 눈물에 젖어 부드러워진 것같이 보였다. 그녀는 아주 낮은 소리 로 속삭였다. "줄리앙.....사랑해요! 그러고는 이번에는 자기가 남편을 끌어당기면서 몸을 뒤 로 젖히고, 부끄러움으로 빨개진 얼굴을 두 손으로 가렸다." 줄리앙은 그녀에게 덮쳐 들어 격 정적으로 그녀를 껴안았다. 그녀는 흥분된 기대속에서 헐떡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갑 자기 그 녀가 비명을 질렀다. 벼락에 맞은 듯이 그녀는 자기가 불러들인 관능에 얻어맞았던 것이다. 그들은 오래 걸려서 언덕길의 꼭대기에 닿았다. 그만큼 그녀의 가슴이뛰고 기진맥진했 던 것 이다. 그들은 겨우 저녁때가 되어서야 에비자에, 안내인의 친척인 파올리 팔라브르티 의 집에 도착했다. 그는 키가 크고 허리가 구부정했으며, 폐결핵 환자처럼 음울한 표정을하고 있는 남자였다. 그는 그들을 방으로 안내했다. 장식이 없는 돌로 지은 음침한 방이었지만 우아한 것이 무시되고 있는 이 지방으로서는 아름다운 방이었다. 그 사람은 자기 말로, 프랑 스말과 이탈리아말이 뒤섞인 코르시카 사투리로 그들을 맞아들이는 즐거움을 나타냈다. 그때 맑은 음성이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갈색 머리에 새카맣고 커다란 눈, 햇볕에 그을은 피 부, 날씬 한 허리, 계속 웃고 있어서 이가 줄곧 밖으로 드러나 보이는 자그마한 여자가 뛰어들 어 잔 느를 껴안고 줄리앙의 손을 흔들어대며 연거푸 말했다. "안녕하세요. 부인. 안녕하세 요. 선생 님. 안녕하세요?" 그 여자는 한쪽 팔로 두 사람의 모자와 숄을 받아들고 모든 것을 정돈했 다. 다른 팔은 붕대를 감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는 남편에게 "저녁식사때까지 이분 들을 안 내해 드리세요." 하고 말하고는 일행을 밖으로 나가게 했다. 팔라브르티씨는 곧 그 말에 따라 두 젊은이 사이에 끼여들어 마을을 보여주었다. 그 는 발 걸음도 말소리도 질질 끌었다. 자주 기침을 하면서 그럴때마다 이런 말을 되풀이했다. "계곡 의 찬 공기가 가슴에 불어와서요." 그는 엄청나게 큰 밤나무 아래로 난 외진 오솔길로 그들 을 안내했다.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단조로운 말투로 말했다. "바로 여기가 내 사 촌인 장 리날디가 마티으 로리에서 살해당한 곳입니다. 자, 나는 여기 장의 아주 가까이에 있 었는데, 그때 마티으가 우리에게서 열 발자국 되는 곳에 나타났습니다. '장, 알베르타체스에 는 가지 말아라'하고 그가 소리쳤어요. '가지말아라, 장. 그러지 않으며 난 너를 죽여버릴 테다. 그 것 을 네게 경고해 둔다.'나는 장의 팔을 잡았습니다. '가지말게.장. 그는 그렇게 할 거야.'둘 이 모두 따라다니던 폴리나 시나쿠피라는 계집애 때문이었지요. 그러나 장은 소리를 질 러대기 시작했다. '난 갈 테다, 마티으, 넌 나를 막지 못해.' 그러자 마티으가 총을 내리더 니, 내가 총을 겨눌 새도 없이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장은 줄넘기를 하는 어린애처럼 두 발로 껑충 뛰어올랐습니다. 네, 선생님. 그러고는 제 몸 위로 떨어졌습니다. 그 바람에 내 총을 놓쳐 저 기 있는 커다란 밤나무가 있는데 까지 굴러가고 말았어요. 장은 입을 크게 벌리고 있 었지만 한마디도 하지 못했어요. 죽어버렸던 거예요." 두 젊은이는 놀라서 침착한 이 범죄의 증인을 바라보았다. 잔느가 물었다. "그럼 살 인자는 요?" 파올리 팔라브리티는 한참 동안 기침을 하고나서 말을 계속했다. "그는 산으로 갔습니 다. 그 다음해에 내 형이 그 자를 죽였습니다. 아시겠지요, 내 형인 필립 팔라 브르 티는 산 적입니다." 잔느는 몸을 떨었다. "당신의 형이라고요? 산적이라고요?" 온화한 코르시 카인의 눈에 어떤 긍지에 찬 빛이 번득였다. "네, 부인. 그는 유명한 사람이었지요. 여섯 명 의 헌병 을 쓰러뜨리기도 했어요. 니콜라 모랄리와 함께 죽었답니다. 그때 그들은 니올로에서 포위를 당하고 엿새동안 싸운 뒤 굶어 죽을 지경에 이르렀었지요." 그러고 나서 그는 고통을 참는 듯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이 지방에서는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요." 그 말투는 '골짜 기의 바 람은 차갑지요' 하고 말할때와 똑같은 것이었다. 그들은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돌아왔 다. 그 자그마한 코르시카 여자는 그들을 마치 20년 전부터 알아왔던 사람처럼 대했다. 그러 나 한 가닥 불안이 잔느를 괴롭혔다. 그녀가 샘터의 이끼 위에서 느꼈던 그 이상하고도 격렬 한 관 능의 동요를 줄리앙의 품안에서 다시 느낄 수 있게 될 것인가? 방에 둘만이 있게 되자 그녀 는 그의 키스를 받으면서 또 여전히 무감각한채 있게 되지 않을까 하고 전전긍긍하였 다. 그 러나 그녀는 곧 안심했다. 그것은 그녀의 사랑의 첫날밤이 되었던 것이다. 이튿날 출발할 시각에 그녀는 자기로서는 새로운 행복이 시작된 것처럼 여겨지는 이 보잘 것없은 집을 떠날 마음이 나지 않았다. 그녀는 자그마한 이 집주인의 아내를 방으로 들어오 게 해서, 그녀에게 선물을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밝히면서, 돌아가면 파리 에서 그 녀에게 기념품을 보내겠노라고 화까지 내면서 역설했다. 기념품, 거기에 그녀는 거의 미신적 인 관념을 부여하고 있었다. 젊은 코르시카 여자는 받기 싫다고 오랫동안 맞섰다. 마 지못해 그녀가 승낙했다. "그러시다면 작은 권총을 하나 보내주세요. 아주 작은걸로요." 하 고 말했 다. 잔느는 눈을 크게 떴다. 그 여자는 아주 낮은 소리로 귀 가까이에 대고, 마치 달 콤하고 은밀한 비밀을 고백하듯이 이렇게 더붙였다. "시동생을 죽이려고 그래요." 그러고는 웃으면 서 전혀 쓰지 못하는 팔에 감겼던 붕대를 재빨리 풀고, 단도에 여기저기 찔렸으나 거 의 상 처가 아물어가는 포동포동하게 살찐 하얀 살을 보여주었다. "만일 내가 그 자만큼 힘 이 세 지 않았더라면 그는 나를 죽였을 거예요."하고 그녀가 말했다. "남편은 질투하지 않아 요. 그 사람은 나를 알고 있거든요. 그리고 아시다시피 그는 병자예요. 그래서 피가 끓어오르 지 않 지요. 게다가 나는 정직한 여자랍니다. 부인. 그러나 시동생은 남들이 말하는 소리 를 모두 믿습니다. 그는 내 남편을 위해 질투를 하는 거예요. 틀림없이 그는 다시 시작할 겁니 다. 그 래서 작은 권총을 하나 가지고 있으면 난 평온해질 거예요. 내게 복수를 할 것이 틀 림없거 든요." 잔느는 무기를 보내주겠노라고 약속을 하고, 자기의 새 친구를 다정하게 포옹 하고 나 서 다시 길을 떠났다. 나머지 여행은 꿈과 같았고, 끝없는 포옹, 애무의 도취였다. 그녀에게 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풍경도 사람도 그녀가 멈추었던 장소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오직 줄리앙만 쳐다보았다. 그러자 사랑의 어리석음에 어린애같이 즐거운 친밀한 관계 가 시 작되었다. 바보 같고 달콤한 시시한 말들을 주고받고 두 사람의 입술이 서로 좋아하는 그들 의 육체의 그 모든 굽이, 주위, 주름에 귀여운 이름으로 세례를 주는 일 같은 것이었 다. 잔느는 오른쪽으로 누워 잠을 자기 때문에 잠에서 깨어보면 종종 왼쪽 유방이 밖으 로 삐 져나올 때가 있었다. 줄리앙은 그것을 눈여겨 보았기 때문에 그쪽을 '외박하는 신사' 라고 부 르고, 다른쪽은 '기둥서방'이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분홍빛 젖꼭지가 키스에 더 민 감해 보 였 기 때문이었다. 두 유방 사이의 고랑은 '어머니의 산책길'이 되었다. 그가 쉴 새없이 그곳 을 더듬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욱 은밀한 다른길은 오타의 계곡을 연상해서 '다마 스커스 의 길'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바스티아에 도착하자 안내인에게 돈을 지불해야만 했다. 줄리앙이 주머니속을 여 기저기 뒤졌다. 필요한 돈을 찾지 못하자 잔느에게 말했다. "당신은 어머니에게서 받은 2천 프랑은 쓰지 않을 테니까 내가 가지고 있게 그걸 주구려. 내 허리띠 속에 넣으면 더욱 안전할 테고 또 나는 잔돈으로 바꾸는 수고도 덜 테니까." 그래서 그녀는 그에게 지갑을 건네주었 다. 그 들은 리부르느에 도착하여 플로렌스와 제노바 그리고 코르니슈 전체를 구경하였다. 북서풍 이 부는 어느 날 아침, 그들은 마르세이유로 돌아왔다. 뢰푀플을 떠난 지 두달이 흘렀 다. 10 월 15일이었다. 잔느는 저 멀리 노르망디로부터 불어오는 것 같은 찬바람에 붙잡혀 기분이 우울했다. 줄리앙은 얼마 전부터 피곤해하고 무관심해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는 알 수 없 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녀는 햇빛이 좋은 이 지방을 떠날 결심이 서지 않아 돌아 가는 여행을 나흘이나 늦추었다. 그녀는 행복의 일주를 막 끝마친 느낌이 들었다. 그 들은 마 침내 그곳을 출발했다. 그들은 레푀플에 결정적인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물건 을 파리에서 사들이기로 했다. 잔느는 어머니가 주신 선물 덕분에 가지가지 놀란 만큼 훌륭 한 것들을 가지고 갈 생각을 하니 즐거웠다. 그러나 그녀가 첫 번째로 생각한 물건은 에비 자의 그 젊은 코르시카 여자에게 약속한 권총이었다. 도착한 이튿날, 그녀는 줄리앙에 게 말 했다. "여보, 물건들을 좀 사야겠는데 엄마의 돈을돌려 주시겠어요?" 그는 못마땅한 얼굴로 그녀 쪽을 돌아보았다. "얼마나 필요하오?" 그녀는 놀라 더듬거렸다. "저......얼마 든지 좋아 요." 그가 다시 말했다. "백 프랑 주겠소. 특히 낭비하지 말아요." 그녀는 놀라고 당황해서 무어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마침내 그녀가 망설이면서 말했다. "하지만.....제가. ....그 돈을 당신에게 맡긴 것은......." 그는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 "그래요. 그렇고 말고요. 당신 주머니 에 있으나 내 주머니에 있으나 똑같은 지갑을 우리가 가지게 된 이상 상관없지 않소. 그걸 주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오. 그렇지 않소, 내가 백 프랑을 당신에게 주었으니 말이오. " 그녀 는 한마디 말도 보태지 못하고 금화 다섯 닢을 받았다. 그러나 감히 더 달라고 부탁할 용기 도 없었다. 그래서 권총 이외에는 아무것도 사지 못했다. 일주일 후에 그들은 뢰푀플 로 돌아 가려고 출발했다. 벽돌 기둥이 세워져 있는 울타리 앞에서 가족과 하인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역마차 가 멈 추었다. 포옹은 오래 계속되었다. 어머니는 눈물을 흘렸다. 잔느도 마음이 뭉클해서 눈물을 닦았다. 아버지는 안절부절못하여 왔다갔다했다. 그러고 나서 짐을 내리는 동안에 거실의 벽난로 앞에서는 여행에 대한 이야기로 꽃 을 피 웠다. 숱한 이야기가 잔느의 입술에서 흘러나왔다. 반시간 동안, 이 허겁지겁 말한 이야기 속에서 잊어버린 몇 가지 사소한 것들만 제외하고는 아마 모든 이야기를 다했을 것이 다. 그 리고 젊은 부인은 짐을 풀러 갔다. 로잘리 역시 아주 흥분해서 잔느를 도왔다. 그 일 이 끝나 고 속옷과 옷들과 화장 도구들이 제자리에 놓여지자 하녀는 여주인의 곁에서 물러갔 다. 잔 는 약간 피곤하여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지금부터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고, 정신을 위한 일과 손을 위한 일을 찾아보았다. 그녀는 거실에서 졸고 있는 어머니 곁으로 다시 내려가고 싶지는 않았다. 산책을 할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들판은 창문 으로 내 다보기만 해도 마음속으로 어떤 묵직한 우울을 느낄 만큼 쓸쓸해 보였다. 그러자 그녀는 이제는 아무 할 일이 없다는 것, 영원히 할 일이 없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수녀원에서의 그녀의 청춘은 온통 미래에 열중해 있었고 공상하기에 바빴다. 그때는 희망에 대한 끊임없는 흥분으로 가득해서 시간이 가는 것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자신의 그 런 꿈 들이 꽃피었던 그 엄격한 벽으로부터 나오자마자 사랑의 기대는 실현되었다. 불과 몇주일 동안에 바라던 남자를 만나고, 사랑하고, 결혼한 그 남자는 갑작스럽게 결정을 내려 결혼할 때에 그렇듯이, 그녀에게 아무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그녀를 자기 품속으로 앗아가 버렸 던 것이다. 그러나 신혼 초기의 달콤한 현실이, 끝없이 희망과 미지의 것에 대한 매 혹적인 불안에 빗장을 지르려고 하는 일상적인 현실로 되려고 하고 있었다. 그렇다, 기다린다 는 것 은 끝이 난 것이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아무 할 일이 없다.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영원히. 그녀는 막연히 이러한 모든 것, 어떤 환멸과 꿈이 허물어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차가운 유리창에 이마를 갖다 댔다. 그러고는 한참동안 어두운 구름이 흘러가는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이것은 5월의 그것과 똑같은 들판, 똑같은 풀, 똑같은 나물들일까? 햇빛을 받아 반짝이던 나뭇잎들의 즐거움과, 민 들레가 타오르고, 개양귀비가 핏빛으로 물들고, 데이지가 빛나고, 보이지 않는 실 끝에서처 럼 노란 환상의 나비들이 팔락거리던 잔디밭의 그 녹색 시는 대체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고 생 명과 향기와 번식력을 주는 원자로 가득했던 공기의 그 도취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계속해 내리는 가을 소낙비에 잠겨 있는 한길은 두터운 낙엽 더미에 덮인 채, 거의 벌거 벗어 파리하게 떨고 있는 포플러 나무 밑으로 길게 뻗쳐 있었다. 가느다란 나뭇가지들 은 바 람에 떨며 공중으로 날아갈 것 같은 몇 개의 잎을 아직도 흔들어대고 있었다. 그리고 끊임 없이, 하루 종일, 마치 눈물을 흘리게 하는 그치지 않고 내리는 구슬픈 비처럼, 이제 는 온통 노랗게 물든 커다란 금화와도 같은 그 마지막 잎새들이 바람에 흩날려 뱅글뱅글 돌다 가 떨 어졌다. 그녀는 작은 숲이 있는 곳까지 갔다. 그곳은 죽어가는 사람의 방처럼 애처 로웠다. 구불구불한 아름다운 길을 가르고 눈에 띄지 않게 숨겨주었던 그 녹색 벽은 허물어져 있었 다. 고운 나무 레이스처럼 뒤엉켜 있는 소관목들은 서로 야윈 가지들을 부딪치고 있었 다. 바 람에 밀리고 굴러가고 군데군데 쌓여 있는 마른 낙엽들의 속삭임은 단말마의 괴로운 한숨처 럼 여겨졌다. 아주 작은 새들은 숨을 곳을 찾으면서 추위를 타는 듯한 가냘픈 소리를 지르 며 여기저기로 날아올랐다. 그러나 해풍을 막는 전위로서 심어진 느릅나무의 두툼한 장막으 로 보호받은 보리수와 플라타너스는 아직도 여름 의상으로 덮여 있어서 하나는 붉은 벨벳, 다른 하나는 오렌지빛의 비단을 입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들은 수액의 성질에 따라서 첫추 위에 이렇게 물들어 있는 것이었다. 잔느는 쿠이야르네 농장을 따라서 어머니의 가로수 길을 느린 걸음으로 왔다갔다 하 였다. 막 시작된 단조로운 생활에서 오는 권태의 예감 같은 그 무엇이 그녀를 무겁게 내리눌 렀다. 그녀는 줄리앙이 처음으로 사랑을 고백했던 그 비탈 위에 앉았다. 그녀는 무엇을 생 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부질없는 공상에 잠겨 그대로 그렇게 있었다. 마음속까지 나른해졌 고 오 늘의 슬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누워 잠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갑자기 그녀는 돌풍에 실려 하늘을 가로지르는 한 마리의 갈매기를 보았다. 그러자 먼 코르시카 오타의 어두운 계곡에 서 보았던 그 독수리가 생각났다. 그녀는 행복한 그리고 이제는 끝나 버린 어떤 것의 추억 이 주는 생생한 동요를 마음속에서 느꼈다. 그리고 갑자기 그녀는 그 야생의 향기, 오 렌지와 시트론을 익게 하는 태양, 장밋빛 산정을 이고 있는 산들, 하늘빛 만들 그리고 급류가 흐르 는 협곡에 있는 그 빛나는 섬을 다시 보았다. 그러자 나뭇잎들이 서글프게 떨어지고 잿빛 구름이 바람에 밀려가는,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이런 축축하고 거친 풍경이 그녀를 짙 은 슬 픔으로 감쌌기 때문에 울지 않으려고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다. 나날의 우울에 익숙해 있어 서 이제는 그것을 느끼지도 못하고 감각조차 무디어진 어머니가 벽난로 앞에서 졸고 있었 다. 아버지와 줄리앙은 그들의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산책을 나간 뒤였다. 너 른 거실 에 우울한 그림자를 뿌리면서 밤이 왔다. 거실은 벽난로에서 반사되는 빛으로만 밝혀 져 있 었다. 창 밖으로는, 연말의 이 보기 싫은 자연과 그 스스로 진흙으로 문질러 바른 것 같은 회색 하늘을 저물어가는 햇빛으로 분간할 수 있었다. 이윽고 남작이 나타났고 줄리앙도 따라 들어왔다. 남작은 어두운 방에 들어서자마다 초인 종을 울리고 소리를 질렀다. "빨리, 빨리. 불을켜라! 여긴 음산하군." 그러고는 벽난 로 앞에 앉았다. 젖은 두 발이 불꽃 곁에서 김을 내고, 열기로 해서 마른 구두 바닥의 진흙이 떨어지 는 동안에 그는 기분좋게 두 손을 비볐다. "몸이 얼 것 같은데. 북쪽 하늘이 개고 있 어. 그 렇다면 오늘밤은 만월이다. 오늘밤은 매우 춥겠는걸" 하고 그가 말했다. 그러고는 딸 쪽을 돌아보며 "그래, 얘야. 네 고장, 네 집, 이 늙은이들 곁으로 돌아와 기쁘니?" 이 간단 한 질문 이 잔느를 흔들어 놓았다. 그녀는 눈물이 가득 괸 눈으로 아버지의 품속으로 뛰어들어 마치 용서를 빌기라도 하는 것처럼 신경질적으로 키스했다. 즐거워지려고 마음속으로 노력 했음에 도 불구하고 그녀는 부모님 곁으로 돌아오면서 기대했던 기쁨을 생각해 보았다. 그러 나 자 기의 애정을 마비시키는 이 냉담함에 그녀는 놀라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사랑하고는 있으 나 늘 만나는 습관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멀리서 몹시 생각하고 있었으면서도, 그들을 만나 공동 생활의 관계가 다시 맺어질 때까지 애정의 정지 같은 것을 느끼는 것과도 같았 다. 저 녁식사는 오래 걸렸다. 그러나 거의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줄리앙은 아내를 잊어버 린 것 같았다. 식사를 끝내고 거실에서 그녀는 완전히 잠들어버린 어머니 맞은편에서 불길에 나 른해져 있었다. 그리고 논쟁을 벌이고 있는 두 남자의 목소리에 잠깐 깨어났다. 정신을 차리 려고 애 쓰면서 그녀는 자기도 역시 아무것도 중단시키지 못하는 습관의 이 활기 없는 나태에 사로 잡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벽난로의 불길은 낮에는 느른하고 불그스름했었는 데, 지 금은 강렬하고 환하며 탁탁 튀었다. 그 불길은 안락의자의 퇴색한 장식 융단 위에, 여우와 황새 위에, 우울한 왜가리 위에, 매미와 개미 위에 갑작스럽게 커다란 불빛을 던졌다. 남작이 다가와 미소를 지으면서 강렬한 깜부기불에 손가락을 쫙 펴고 내밀었다. "아 ! 오늘 밤엔 잘 타는군. 춥구나. 얘야. 얼겠어"하며 그는 잔느의 어깨 위에 손을 얹고 불을 가리켜 보였다. "봐라, 얘야, 이것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거란다. 난로, 주위에 식구들이 모 인 난로 라는 것이 말이야.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지. 그러나 자러 가야지. 몹시 피곤하겠 지, 너희 들?" 자기방으로 올라오자 젊은 부인은 자기가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한 이 똑같은 장소로 돌아왔는데 어떻게 이렇게도 다를 수 있을까 하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어째서 그녀는 자신 이 상처를 입은 것처럼 여겨지는가? 어째서 이 집, 이 사랑하는 고장, 지금까지 자기 의 마음 을 떨리게 했던 이 모든 것이 오늘은 이렇게도 가슴을 에는 것일까? 그러자 그녀는 눈 길이 갑자기 추시계 위에 머물렀다. 그 조그만 벌은 여전히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리고 오른쪽 에서 왼쪽으로 똑같은 동작으로 빠르고 쉴 새 없이 도금한 꽃 위를 날고 있었다. 그러 자 갑 자기 잔느는 애정의 충동에 사로잡혀, 자기에게 시간을 노래해 주고 가슴처럼 고동치 는 이 살아 있는 듯한 작은 기계 앞에서 눈물이 나올 정도로 감동하였다. 확실히 그녀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키스를 하면서도 이같이 감동하지는 않는다. 인간의 마음이란 어떤 추리로써도 꿰뚫어 알 수 없는 신비로움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결혼 한 후 처음으로 그녀는 자기 침대에 혼자 있었다. 줄리앙은 피곤하다는 구실로 다른 방에 들 어 있 었다. 게다가 각자 자기 방을 갖는다는 것에 그는 동의를 했었다. 그녀는 혼자 자는 버릇을 버린데다가 자기 몸에 닿는 다른 사람의 감촉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이상스럽고, 또한 지붕 에 사정없이 불어대는 심술궂은 북풍에 마음이 산란해서 오랫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 다. 그녀는 아침에 침대를 붉게 물들이는 커다란 햇살에 잠이 깨었다. 서리가 잔뜩 낀 유리창 은 지평선이 온통 불타는 듯이 붉었다. 커다란 실내복으로 몸을 감싸고 그녀는 창가로 달려 가 문을 열었다. 얼음같이 차고 건강에 좋은 그리고 찌르는 듯한 바람이 방안으로 들이쳐, 눈물이 나올 정도로 매서운 추위가 그녀의 살갗을 때렸다. 붉게 물든 하늘 한복판으로 는 주 정쟁이의 얼굴처럼 부어 붉게 빛나는 커다란 태양이 나무들 뒤에서 모습을 드러내었 다. 지 금은 단단하고 메마른 흰 서리로 뒤덮여 있는 대지는 농장 사람들의 발밑에서 소리를 내고 있었다. 하룻밤 사이에 아직도 잎이 무성했던 포플러 나무의 가지들은 모두 벌거숭이 가 되 어 버렸고, 황야의 뒤로는 흰 물결이 온통 점점이 흩어져 있는 바다의 그 커다란 녹색 선이 나타났다. 플라타너스와 보리수는 돌풍에 재빠르게 옷을 벗었다. 얼음같은 찬바람이 지나갈 적마다 갑작스런 서리에 떨어진 나뭇잎들의 회오리가 새가 날아오르듯이 발람 속에 흩어졌다. 잔는 는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서 소작인들을 만나러 갔 다. 마르 탱가는 쌍수를 들어 환영했고 여주인은 잔느의 두뺨에 키스했다. 그리고 과일씨로 담 근 술 을 작은 잔에 부어 그녀에게 억지로 마시게 했다. 그녀는 다른 농장으로 갔다. 쿠이야 르가도 쌍수를 들어 환영했고 여주인은 잔느의 두 귀에 가볍게 키스를 했다. 그리고 까막까치 밥술 을 작은 잔으로 한잔 마셔야 했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점심을 들기 위해 돌아갔다. 그날 하 루는 전날과 같이 습한 대신에 차가운 날씨로 흘러갔다. 그 주일의 다른 날들도 이 이틀과 비슷했다. 그리고 그 달의 모든 주일도 첫주와 같았다. 그러나 차츰 먼 지방에 대한 미련은 가라앉아 갔다. 습관은 그녀의 생활에, 어떤 종류의 물이 물체 위에 남기는 석회의 앙 금과도 비슷한 체념의 층을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일상생활의 대수롭지 않은 많은 것 에 대 한 일종의 흥미, 단순하고 평범하고 규칙적인 일에 대한 걱정이 그녀의 마음속에 다시 생겨 났다. 그녀의 가슴속에는 일종의 명상적인 우울과 살아가는 것에 대한 막연한 환멸이 자라 고 있었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녀는 무엇을 바라는 것일까? 그녀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어떠한 세속적인 욕구도 그녀를 사로잡지 못했다. 즉 쾌락에 대한 어떤 갈망 도, 가능할 수도 있는 즐거움에 대한 어떤 충동조차도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던 것이 다. 그 이상 무엇이 있을까? 세월에 의해 퇴색해 버린 거실의 낡은 안락의자처럼 모든 것이 그녀의 눈에는 천천히 생기를 잃어가고 눈에 띄지 않게 되었으며, 창백하고 침울한 색조를 띠게 되었다. 줄리앙과의 관계는 완전히 변해 버리고 말았다. 그는 자기의 역할을 끝마친 배우가 본래 의 얼굴로 되돌아가듯이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이후로는 아주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이제 아내에 대해 관심이 없었고, 이야기조차 건네지 않았다. 모든 사랑의 흔적은 갑 자기 사 라져버렸다. 그가 아내의 방으로 들어오는 밤은 드물어졌다. 그는 재산과 집에 대해 관리를 했으며, 모든 임대차 계약을 검사하고, 소작인들을 들볶고, 지출을 줄였다. 그리고 그 자신도 귀족 농부 같은 옷을 입었기 때문에 약혼시절의 겉치레나 우아함은 잃어버리고 말았 다. 그 는 청년시절의 자기 옷장에서 찾아낸, 구리 단추가 달린 낡은 벨벳 사냥복을 얼룩이 졌음에 도 불구하고 늘 입고 다녔다. 그리고 누구의 마음에 들려고 애쓸 필요가 없어진 남 자들의 등한시하는 태도를 보임으로써 면도를 하는 것도 그만두었기 때문에 다듬지 않은 긴 턱수염 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그를 추하게 만들었다. 손도 이제는 가꾸지 않았다. 그리고 식사후 에는 언제나 작은 잔으로 코냑을 너댓 잔 마셨다. 잔느가 몇 번 상냥하게 말리려고 애썼지만 그는 "가만 놔두지 않겠어?"하고 너무도 퉁명 스럽게 대답을 했기 때문에 그녀는 더 이상 감히 그에게 충고를 할 수가 없었다. 그녀 는 이 러한 태도의 변화에 대해서 자신도 놀랄 만큼 운명이라고 체념하고 받아들였다. 그는 이제 그녀에게는 타인, 영혼도 마음도 닫혀진채로 있는 타인이 되어버렸다. 그녀는 그것에 대해 종종 생각해 보았다. 그렇게 만나 사랑하고 애정의 충동속에서 결혼한 그들이 마치 나란히 누워 잠을 자본 적이 없는 것같이 갑자기 서로 거의 알지 못하는 사람처럼 된 것은 어 찌 된 일인가 하고. 그리고 어째서 그의 버림이 더 한층 괴롭지 않은 것일까? 이런 것이 인생인 가? 두 사람은 잘못 생각했던 것일까? 이제 미래 속에는 그녀를 위한 것이 아무것도 없단 말인가? 만일 줄리앙이 여전히 아름답고, 정성들여 가꾸고, 우아하고, 매력적이라면 그녀는 지금보다 더 많이 괴로워했을까? 새해가 되면 신혼 부부만 남고, 양친은 루앙의 집에서 몇 달 지내기 위해 돌아가기 로 결 정이 되었다. 일생을 보내게 될 이 장소에 정착하고, 익숙해지고, 마음에 들도록 하 기 위해 서 젊은이들은 이 겨울에는 레푀플을 한시도 떠나지 않기로 했다. 게다가 그들은 몇몇 이웃 의 친구들 가지게 되었다. 줄리앙은 그들에게 아내를 소개했다. 그들은 브리즈빌, 쿠 틀리에 그리고 푸르빌르의 집안이었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그때까지 마차의 가문을 바꿀 페인트공을 부르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 방문할 수가 없었다. 남작은 사위에게 사실 낡은 가족 마차를 물려주었었는데, 줄리앙 은 드 라마르가의 방패꼴의 작은 가문이 르 페르튀 데 보의 그것과 같이 있지 않으면 결코 이웃 성관에 모습을 나타내는 것에 동의하려 들지 않았다. 그런데 이 지방에는 문장 장식을 하는 전문가가 단 한 사람밖에 없었다. 그는 볼 베크의 칠장이로 바타이유라는 이름을 가졌는데, 마차의 문에 값진 장식을 박기 위해서 노르 망디의 모든 작은 성에서는 차례로 그를 불러갔다. 마침내 11월의 어느날 아침, 간식이 끝날 무렵에 어떤 사람이 울타리 문을 열고 곧은 길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등에 상자 하나 를 지 고 있었다. 바타이유였다. 그를 거실로 들어오게 해서 그가 신사이기라도 한 것처럼 식사를 대접했다. 왜냐하 면 그 의 전문, 모든 지방 귀족들과의 끊임없는 관계, 가문과 공인된 용어, 상징도에 대한 그의 지 식 등이 신사들이 악수를 청해 오는 일종의 인간 가문 노릇을 하게 했기 때문이다. 곧 연필 과 종이를 가져오게 해서 그가 식사를 하는 동안 남작과 줄리앙은 4등분한 방패꼴의 작은 가문의 초벌그럼을 그렸다. 이런 일에 관해서는 매우 흥미로워하는 남작부인이 자기 의견을 제시했다. 잔느 자신도 어떤 신비로운 관심이 갑자기 마음속에서 눈을 뜬 것처럼 의논 에 참 여 하였다. 바타이유도 간식을 들면서 자기 의견을 제시하기도 하고 가끔 연필을 들고 설계 도를 그리고도 했으며, 여러 가지 예를 들고, 그 지방의 모든 영주들의 마차에 대해 설명을 하기도 했다. 그의 정신과 음성은 일종의 귀족적 분위기를 지니고 있는 것 같기도 하였다. 그는 회색 머리를 짧게 깎고 물감으로 더러워진 손에서는 휘발유 냄새가 나는 그런 자 그마 한 남자였다. 소문에 의하면 전에 품행이 좋지 못한 사건이 있었다고 하는데 자위 있 는 모 든 가문들의 일반적인 존중이 오래전부터 그 오점을 씻어주었던 것이다. 그가 커피를 다 마시자 그를 차고로 안내하여 마차에 씌워놓은 방수천을 벗겼다. 바타이 유는 마차를 살펴본 다음에 자기가 데생을 하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치수에 대해 서 신 중하게 의견을 표시했다. 그러고 나서 새로운 의견을 교환한 후 일에 착수했다. 날씨가 추운데도 불구하고 남작 부인은 그가 일하는 것을 보기 위해서 의자를 가 져오게 했다. 그리고 발이 시리다고 발 난로를 가져다 달라고 했다. 그녀는 조용히 칠장이와 이야기 를 시작했다. 자기가 모르는 결혼이나 작고한 사람들 그리고 새로 태어난 이들에 대해 물어 보면서, 그러한 정보로써 그녀가 기억 속에 간직하고 있는 계통수를 보충하는 것이었 다. 줄리앙은 장모의 곁에서 의자에 말타듯이 걸터앉아 있었다. 그는 담배를 피우고 땅에다 침을 뱉었으며,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눈으로는 자기의 귀족 신분이 그림으로 되 어가는 것을 좇고 있었다. 잠시 후에는 어깨에다 삽을 둘러메고 채소밭으로 가던 시몽 영감 까지도 일하는 것을 구경하려고 발검음을 멈추었다. 바타이유가 왔다는 것이 두농장에 퍼졌기 때문 에 금방 두 소작인의 아내가 나타났다. 두 여자는 남작 부인의 양쪽에 서서 황홀한 듯 넋을 잃고 되풀이 말했다. "저렇게 정성들여 손질하려면 꽤 솜씨가 있어야 할 거야." 양 쪽 문의 방패꼴의 작은 문장은 다음날 열한 시경에야 끝마칠 수 있었다. 사람들이 금방 모여 들었다. 그리고 일이 잘되었는지 어떤지를 보기 위해서 마차를 밖으로 끌어냈다. 나무랄 데 없었다. 등에 상자를 짊어지고 다시 떠나는 바타이유에게 치하를 했다. 그리고 남작과 그의 부인, 잔느와 줄리앙은, 이 칠장이는 훌륭한 재주를 가진 사람이고, 만 약 사정 이 허락 했다면 틀림없이 마술가가 되었으리라는 점에 의견이 일치되었다. 그런데 줄 리앙은 경제적인 면을 고려해서 여러 가지 개혁을 실시했는데, 그것은 새로운 수정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자작 자신이 마치를 부리는 책임을 맡았기 때문에 늙은 마부는 정원사가 되었다. 그리고 마차를 끄는 큰 말들은 사료값을 절약하기 위해서 팔아버렸다. 그리고 주인들이 내릴 때 말을 붙들고 있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에 마리우스라고 부르는 어린 목동을 작인 하인으로 썼다. 마침내 말은 손에 넣기 위해서 자작은 쿠이야르와 마르탱 의 임대차 계약속에 두 소작인은 매월 하루, 그가 지정하는 날에 각자 말 한 필씩을 제공해 야 한다는 것을 강제하는 특별조항을 삽입시켰고 그 대신에 그들은 닭에 대해 정기 적으로 지불해야 할 채무를 면제받게 되었다. 그래서 쿠이야르네는 털이 노란 커다란 노마를 끌고 왔고 마르탱네는 털이 긴 작은 백마를 끌고 와서 두 말은 나란히 마차에 매어졌다. 시 몽 영 감은 낡은 제복 속에 파묻힌 마리우스가 성관의 층계 앞으로 이 마차를 끌고 왔다. 깨끗이 몸단장을 하고 몸을 젖히고 있는 줄리앙은 예전의 우아한 모습을 약간 되찾 았다. 그러나 그의 긴 턱수염은 그런 모습에도 불구하고 그를 평범한 모습으로 보이게 했다. 그는 한쌍의 말과 마차 그리고 작은 하인을 살펴보고 만족하게 생각했다. 그에게는 다시 칠 한 문 장만이 중요성을 가지고 있었다. 남편의 팔에 의지하여 방에서 내려온 남작부인이 간신히 올라타 등을 쿠션에 기대고 앉았다. 이번에는 잔느가 물었다. 그녀는 우선 말의 짝짓 기를 보 고 웃으면서 "흰 말은 노란말의 손자군요." 하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마리우스를 보 니 얼굴 은 모포가 달린 모자 속에 덮혀 가려 있고, 모자가 흘러내리는 것을 오로지 코가 받 쳐주고 있었다. 두 손은 소매 속으로 사려져버렸고 두 다리는 제복의 늘어진 옷자락 속에 불 룩하니 들어 있으며, 커다란 구두를 신은 그의 발은 이상스럽게 밑으로 삐쭉이 나와 있었다. 그리고 무엇을 보기위해서 머리를 뒤로 젖히고, 걸음을 내딛기 위해서 장님처럼 허둥대고, 헐렁한 옷 속에 가려져 완전히 보이지 않는 그를 보았을 때 잔느는 걷잡을 수 없는 웃음이, 끝없는 폭소가 터져나왔다. 남작이 몸을 돌려 얼떨떨해하는 그 작은 남자를 바라보더니 곧 웃음이 전염되어 폭소를 터뜨렸다. 그리고 아내를 불렀으나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보, 보구려, 마, 마, 마리 우스를! 얼마나 우습소! 어쩌면 저리도 우스울까!" 그러자 남작부인이 문에 기대에 그를 바 라보고 마차의 요동으로 쳐들리는 것처럼 마치 전체가 용수철 위에서 춤을 출 만큼 즐 거움 의 발작으로 몸을 흔들었다. 그러나 줄리앙은 창백해진 얼굴로 물었다. "무엇이 그렇 게 우습 지요? 모두 제정신이 아니군요." 잔느는 배가 아프고 경련이 일어나고, 도저히 진정할 수가 없어서 층계위에 주저 앉았다. 남작도 따라서 그렇게 했다. 그리고 마차 안에서는 경련을 일으킬 것 같은 재채기소 리, 계속 해서 킥킥거리는 소리가 남작부인이 숨이 막힐 것 같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마리우스의 긴 웃옷이 팔딱거리기 시작했다. 아마 그도 왜 웃는지 알았던 모 양이다. 그 자신도 모자속에서 있는 힘을 다해 웃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흥분한 줄리앙이 달려들 었다. 따귀를 한 대 갈기자 소년의 머리에서 커다란 모자가 벗겨지더니 잔디밭 위로 날아갔 다. 그러고는 장인 쪽으로 몸을 돌리고 화가 나서 떨리는 목소리로 더듬거렸다. "제 생각으 로는 장인 어른께서 웃으실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재산을 낭비하지 않고 가진 것을 다 먹 어치우지만 않았다면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만약에 파산하신다면 그건 누 구에게 잘못이 있는 겁니까?" 모든 즐거움은 얼어붙었고 갑자기 멎어버렸다. 아무도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제는 울음이 나올 것 같은 잔느가 소리없이 어머니 곁으로 올라갔다. 남작 은 뜻밖 의 기습에 놀라서 말없이 두 여자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 줄리앙은 뺨이 붓고 울 먹거리 는 아이를 자기 곁에 끌어올린 뒤에 마부석에 자리를 잡았다. 가는 길은 슬프고 길게 여겨졌다. 마차 속에서도 입을 열지 않았다. 세 사람은 모두 침울 하고 거북해서 마음에 걱정되는 것을 조금도 털어 놓으려 들지 않았다. 그들은 다른것 에 대 해서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만큼 이 괴로운 생각이 그들의 머 리에서 줄곧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 가슴 아픈 화제를 건드리기 보다는 슬프게 침묵하고 있는 것이 더 나았던 것이다. 두말의 보조가 맞지 않는 속보로 마차는 농가들의 마당을 따라서 달렸다. 깜짝 놀란 새카 만 암탉들이 후닥닥 울타리 안으로 숨어들어가 모습을 감추었다. 가끔 이리같이 생긴 개가 짖으면서 따라온 적도 있었으나 곧 털을 곤두세우고 제 집으로 돌아가다가는 다시 마차를 돌아보며 짖ㅇ 댔다. 흙이 덕지덕지 묻은 나막신을 신은 소년이 긴 다리를 맥없이 끌면서 두 손을 주머니 속에 찔러넣고, 바람이 들어가 등이 불룩해진 푸른 웃옷을 입고 오다 가 일 행이 지나가도록 옆으로 비켜서면서 어색하게 모자를 벗는데 머리에 달라붙은 뻣뻣한 그의 머리털이 내보였다. 멀리 각 농가 사이에는 여기저기에 다른 농가와 더불어 들판이 다 시 시 작되었다. 마침내 길에 죽 심어져 있는 전나무의 큰 길로 들어섰다. 움푹 팬 진흙 투성이의 수레바 퀴 자국에 마차가 기우뚱했기 때문에 어머니가 비명을 질렀다. 길 끝에 하얀 울타리가 닫혀 져 있었다. 마리우스가 달려가 그것을 열고 둥그런 길로 해서 넓은 잔디밭을 돌아서, 덧문이 닫혀 있는 높고 널찍하고 음산한 건물 앞에 닿았다. 중간에 있는 문이 갑자기 열렸다. 그리 고 검은 줄이 있는 빨간 조끼를 입고 그 위에 앞치마를 두른 중풍이 걸린 늙은 하인이 모로 걷는 잔걸음으로 현관의 계단을 내려왔다. 그는 방문객의 이름을 묻고는 널찍한 객실 로 안 내하고 언제나 닫아두었던 덧문을 힘들여 열었다. 가구들은 덮개로 씌워져 있었고 추 시계와 큰 촛대는 흰 천으로 덮여 있었다. 곰팡내 나고 차고 습하고 옛날 냄새가 나는 공기는 폐와 가슴과 살갗에 슬픔을 베어들게 하는 것 같았다. 모두들 앉아서 기다렸다. 위층 복도 에서 들 리는 발소리가 평소에 없었던 민첩함을 알려주고 있었다. 뜻밖에 놀란 별장 주인들이 재빨 리 옷을 갈아입고 있는 것이었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초인종이 여러 번 울렸다. 다 른 발소 리가 계단을 내려오더니 다시 올라갔다. 남작 부인은 파고드는 추위에 사로잡혀서 연거푸 재채기를 하였다. 줄리앙은 방안을 이리 저리 서성거렸다. 잔느는 침울하게 어머니 곁에 앉아 있었다. 남작은 벽난로의 대리석 에 등 을 기대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드디어 높다란 문 하나가 열리면서 드 브리즈빌 자 작 부 부가 나타났다. 두 사람은 다 작고 말랐으며 깡충깡충 뛰어서 나이를 짐작할 수 없 었는데, 격식을 차리면서도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꽃무늬가 있는 비단옷을 입고 리본이 달린 작은 보닛을 쓴 부인이 째지는 듯한 목소리로 빠르게 말을 했다. 꼭끼는 화려한 프록코트를 입은 남편은 무릎을 굽혀 인사를 했다. 그의 코, 눈, 잇 몸이 드 러나 보이는 이, 밀랍을 칠한 것 같은 머리카락 그리고 그의 좋은 옷은 정성을 다한 물건처 럼 빛나고 있었다. 환영의 첫인사와 이웃으로서의 예절을 보이고 나서는 누구도 더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주인과 손님은 이유도 없이 서로 찬사를 주고 받았다. 그리고 양쪽은 모두 이 훌륭한 교제가 계속 되어지기를 바랐다. 일년 내내 시골에서 살면 서로 만나는 것 은 의 지가 되는 것이다. 객실의 얼음같이 찬 공기가 뼛속까지 파고들어와 목소리를 쉬게 했 다. 남 작부인은 재채기가 다 끝나기도 전에 이번에는 기침을 했다. 그래서 남작은 출발하자 는 신 호를 보냈다. 브리즈빌 부부는 "왜 그러세요? 이렇게 빨리? 좀더 있다 가세요." 하 고 말렸 다. 그러나 잔느는 방문이 너무 짧다고 생각하는 줄리앙의 신호를 무시하고 자리에서 일어 났다. 마차를 앞으로 빼기위해 종을 울려서 하인을 부르려고 했다. 초인종이 울리지 않았다. 집주인이 달려나갔다. 그러고는 돌아와서 마구간에 말을 매어 놓았다고 알렸다. 기다 려야만 했다. 저마다 할 말과 어떤 문구를 찾아보았다. 비가 많은 겨울에 대한 이야기를 했 다. 잔느 는 자기도 모르게 불안에 떨면서, 주인들께서는 두 분이서만 일년 내내 무엇을 하시 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브리즈빌 부부는 이 질문을 이상하게 여겼다. 왜냐하면 그들은 쉴 새 없이 일을 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전국에 산재해 있는 그들의 귀족 친척들에게 편지를 쓴 다는지, 극히 사소한 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든지, 남을 대하듯 서로 마주 앉아서 예의를 갖추 고 아 주 하찮은 일들을 위엄을 갖추어 이야기하면서 지내고 있었다. 모든 것을 천으로 싸놓은, 비어 있는 널따란 객실의 검고 높은 천장 아래에서 이처 럼 작 고, 이처럼 단정하고, 이처럼 예절바른 남자와 여자가 잔느에게는 귀족의 통조림처럼 여겨졌 다. 마침내 균형이 맞지 않는 두 마리의 조랑말이 끄는 마차가 창문 앞으로 지나갔다. 그러 나 마리우스는 보이지 않았다. 저녁때까지는 자유로우리라고 생각하고 들판을 한바퀴 돌아 보려고 나간 모양이었다. 몹시 화가 난 줄리앙은 그를 걸려서 돌려보내 달라고 부탁했 다. 양 쪽이 많은 인사를 나눈 후에 뢰 푀플로 가는 길로 접어 들었다. 그들이 마차 안으로 들어가 자마자 잔느와 아버지는 줄리앙의 난폭한 짓으로 해서 남아 있는 무거운 마음은 잠시 접어 둔 채 브리즈빌 부부의 몸짓과 말투를 흉내내면서 웃기 시작했다. 남작은 남편의 흉내 를 냈 고 잔느는 부인의 흉내를 냈으나 그들에 대한 존경심에서 약간 감정이 상한 남작 부인 은 그 들에게 말했다. "그렇게 빈정거리는 것은 잘못된 일이에요. 그분들은 훌륭한 분들이에 요. 훌 륭한 가문의 사람들이에요." 어머니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입을 다물 었으나, 이따금 어떻게 해서든지 아버지와 잔느는 서로 쳐다보면서 다시 시작하는 것 이었다. 남작은 예의를 갖추어 인사를 하고 엄숙한 어조로 말했다. "뢰푀플의 성관은 매우 추 울 테 죠, 부인? 온종일 바다에서 불어오는 강풍으로 해서 말입니다." 잔느는 새침한 태도 를 하고 멱을 감고 있는 오리처럼 머리를 살래살래 내두르면서 애교를 부렸다. "아아! 이곳에 서는 일 년 내내 일이 많답니다. 편지를 써야 할 친척들이 많거든요. 그리고 드 브리즈빌씨는 모든 것을 제게 맡기지요. 그는 펠르 신부와 함께 학문적인 연구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그 들은 함 께 노르망디 종교사를 편찬하고 있답니다." 이번에는 남작 부인이 웃었다. 기분이 좋 지 않으 면서도 너그러워져서, "그렇게 우리와 같은 계급의 사람들을 조롱하는 건 좋지 않아 요."하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런데 갑자기 마차가 멈추었다. 그러고는 줄리앙이 뒤에 있는 누 군가를 소리쳐 불렀다. 그래서 잔느와 남작이 마차 문으로 몸을 내밀어 보니, 자기들을 향해 서 굴러 오는 듯한 어떤 이상한 물체가 눈에 띄었다. 헐렁한 제복의 아랫자락 속에서 다리는 부자연 스럽고, 쉴 새 없이 흘러내리는 모자로 해서 눈이 안 보이는, 풍차의 날개처럼 소맷 자락을 흔들면서 넓은 물구덩이를 정신없이 건너려고 흙탕물 속을 첨벙대며 길가에 있는 돌이 란 돌 에는 모두 채여 비틀거리고, 안절부절 못하여 뛰어오르면서 진흙투성이가 된 마리우스 가 전 속력으로 마차를 따라 달려오고 있었다. 그가 마차를 따라 미치자마자 줄리앙은 몸을 기울여 그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자기 곁으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고삐를 늦추면서 모자를 주먹으로 치기 시작했다. 모자는 북과 같 은 소 리를 내면서 소년의 어깨까지 푹석 가라앉았다. 소년은 그 속에서 울부짖으면서 도망 쳐 마 부석에서 뛰어내리려고 애썼으나, 그의 주인은 이제 한 손으로는 아이를 잡고 다른 손으로 는 여전히 때리고 있었다. 잔느는 어쩔 줄을 몰라서 더듬거렸다. "아버지.....아아! 아버지!" 그리고 남작 부 인은 분개 하여 남편의 팔을 꽉 잡았다. "저걸 못하게 하세요, 자크." 그러자 갑자기 남작은 앞 의 유리 를 내리고 사위의 소매를 움켜잡으면서 그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애를 때리를 것을 당장 그만두지 못하겠나!" 깜짝 놀란 줄리앙이 돌아보았다. "이 녀석이 제복을 어떻게 만들어놓았는지 보지 못하셨습니까?" 깜짝 놀란 줄리앙이 돌아보았다. "이 녀석이 제복을 어떻게 만들어 놓았는지 보지 못하셨습니까?" 그러자 남작은 두 사람 사이로 머리를 내밀고 말았다. "그것이 무슨 대수인가! 그런 것에 난폭하게 굴지말게." 줄리앙이 다시 화를 냈다. "제발 가만 놔두세요. 상관없는 일이지 않습니까!"그리고 그는 다시 손을 쳐들었다. 그러나 장인이 갑자기 그손을 잡아서 마부석의 나무에 부딪칠만큼 힘껏 꺽어내렸다. 그리고 난폭하 게 소리쳤다. "그만두지 않으면 내가 내려가서 그만두도록 하겠어. 내가!" 자작은 갑자기 침착해지면서 대답도 하지 않고 어깨를 으쓱 올리고는 말에게 채찍을 가했다. 말은 무서운 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두 여인은 창백해져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남작 부인의 심장이 무겁게 뛰는 소리가 똑똑히 들렸다. 저녁식사때 줄리앙은 마치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평소보다 더 유쾌했다. 잔느와 아버지와 아델라이드 부인은 그들의 평온한 온 정으로 빨리 그것을 잊어버리고, 줄리앙이 싹싹해진 것을 보고 감동이 되어서 회복기 환자가 갖는 편안한 기분으로 즐거워졌다. 그리고 잔느가 브리즈빌 부부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꺼내자 남편 자신도 농담을 했으나 얼른 이렇게 덧붙였다. "어쨌든 그들은 훌륭한 데가 있어. " 모두들 마리우스의 사건이 되살아나는 것이 두려워서 다른 방문은 일절하지 않았다. 다만 새해에 이웃들에게 카드를 보내고, 내년 이른봄의 따뜻한 날씨를 기다려 그들을 방문 하기로 결정했다. 크리스마스가 왔다. 사제와 촌장과 그의 부인을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새 해에도 다시 그들을 초대했다. 그것이 매일매일의 단조로운 이어짐을 무너뜨리는 유일한 오 락이었 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1월 9일에 레 푀플을 떠나기로 되어 있었다. 잔느는 부모님들 을 붙들 고 싶었으나 줄리앙은 그것에 그다지 응하려 들지 않았다. 남작은 점점 심해지는 사위 의 냉 담 앞에서 루앙으로부터 역마차를 보내도록 했다. 출발하는 전날, 짐들을 다 꾸리자 춥지만 맑은 날씨였기 때문에 잔느와 아버지는 이포르 까지 내려가기로 했다. 코르시카에서 돌아온 이후로 그들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것 이다. 그들은 잔느가 결혼하는 날, 영원히 그의 아내가 될 사람과 모든 것이 하나가 되어 거닐 었던 그 숲을 가로질러 갔다. 그녀가 최초의 애무를 받고, 최초의 전율을 느끼고, 나 중에 오 타의 원시적인 작은 골짜기에서 물에 키스를 섞어서 마시던 샘물 곁에서 마침내 알게 된 그 관능적인 사랑을 예감했던 숲이었다. 이제는 나뭇잎도 없고 기어오르는 풀덩굴도 없다. 다만 나뭇가지에 부딪는 소리, 겨울에 헐벗은 덤불 숲에서 나는 메마른 이 소음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들은 작은 마을로 들어 갔다. 인적이 없는 조용한 거리는 바다 냄새와 해초 냄새 그리고 생선 냄새를 간직하 고 있 었다. 황갈색의 커다란 그물이 문앞에 걸려 있거나 자갈 위에 펼쳐진 여전히 물기를 말리고 있었다. 영원히 철썩이는 물거품과 함께 차디찬 회색의 바다는 물이 빠져나가기 시작 하면서 페캉을 향한 절벽의 발치에 푸르스름한 바위를 드러내었다. 그리고 해변을 따라서 옆으로 쓰러져 있는 좌초한 커다란 배들은 죽어있는 넓적한 생선처럼 보였다. 저녁이 되었다. 어부 들은 큼지막한 어부용 장화를 무겁게 끌며, 목에는 털목도리를 두르고, 한 손에 브랜 디 한 병을, 다른 손에는 배의 램프를 들고 떼를 지어 방파제 쪽으로 오고 있었다. 한참동안 그들 은 기울어져 있는 소형 보트 주위를 맴돌았다. 그들은 노르망디의 특유한 느린 동작으 로 그 들의 그물, 부표, 큰 빵, 버터 항아리, 컵과 36도짜리 술병을 뱃전에 놓았다. 그러고 나서 그 들은 일으켜세운 작은 배를 바다쪽으로 밀었다. 배는 자갈밭 위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 며 미 끄러져 내려가, 물거품을 가르며 나아갔으며, 파도에 올라 잠깐 동안 흔들거리더니 갈 색 돛 대 끝에 작은 등불을 단 채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자 키가 큰 어부의 아내들이 억세고 앙상한 몸을 얇은 옷 속으로 드러내면서 마지막 어부가 떠날 때까지 머물러 있다가 졸 고 있 는 마을로 돌아갔다. 그들의 떠들썩한 목소리가 어두운 거리의 무거운 잠을 흔들어 놓 았다. 남작과 잔느는 꼼짝도 않고 이 남자들이 어둠 속으로 멀어져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 었다. 그들은 이렇게 굶지 않으려고 죽음을 무릅쓰고 밤마다 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고기 를 먹어본 적이 없을 만큼 그렇게 가난했다. 남작은 바다 앞에서 흥분하여 중얼거렸다. "바다는 무섭고도아름답다. 어둠이 내리 는 바 다, 숱한 사람들이 위험에 빠지는 바다, 이 바다는 얼마나 눈부시게 아름다우랴! 안 그러냐, 자네트?" 그녀는 쌀쌀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지중해보다는 못해요." 그러 자 아버 지가 화를 냈다. "지중해라구! 기름, 설탕물, 잿물이 들어 있는 함지박의 푸른 물에 지나지 않아. 거품이 이는 이 바다가 얼마나 무시무시한가 이것을 보아라. 그리고 방금떠나 간, 이제 는 이미 보이지 않는 그 사람들을 모두 생각해 보렴." 잔느는 한숨을 쉬며 아버지의 의견에 동의했다. "네, 그럴 거예요."그러나 그녀의 입술에 서 나온 '지중해'라는 그 말이 다시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그녀의 꿈이 묻혀 있는 저 머나먼 나라로 그녀의 상념을 옮겨 놓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아버지와 딸은 숲으로 해서 돌아가는 대신에 길로 나와서 느린 걸음으로 해안을 올라갔다. 그들은 가까워 오는 이별의 슬픔에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따금 농장의 도랑을 따라서 가노라면 짓이긴 사과 냄새, 이 계절에온 노르망디 들판에 떠도는 것 같은 신선한 능금주의 향기가 그들의 코를 찌르고, 또는 들판에 떠도는 것 같은 신선한 능 금주의 향기가 그들의 코를 찌르고, 또는 외양간의 질척질척한 냄새, 소들의 거름에서 발산하 는 구 수하고도 뜨뜻한 냄새가 그들의 코를 찔렀다. 불이 켜진 어느 작은 창문이 뜰 안쪽에 사람 이 사는 집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러자 잔느는 자기의 영혼이 넓어져 눈 에 보 이지 않는 것들까지도 알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들판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그 작은 불빛들은 갑자기 그녀에게 모든 존재, 즉 자기들이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모든 것을 떼어 놓고 갈라지게 하며, 멀리 끌고 가는 존재들에 대한 강렬한 고독감을 안겨주었다. 그래서 그녀는 체념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인생이란 언제나 즐겁지만은 않군 요." 잠 작이 한숨을 쉬었다. "어쩌겠니? 얘야, 우리는 아무것도 손쓸 도리가 없는걸." 다음 날 아버 지와 어머니는 떠났고 잔느와 줄리앙만이 남게 되었다. 젊은 부부의 생활속에 카드 놀이가 끼여들었다. 매일 점심식사가 끝나면 줄리앙은 담배를 태우고 예닐곱 잔의 코냑을 조금씩조금씩 목구멍 속으로 흘려넣으면서 아내와 함께 여 러 가 지 코냑을 조금씩조금씩 목구멍 속으로 흘려넣으면서 아내와 함께 여러 가지 베지그 게임을 벌였다. 그러고 나면 그녀는 자기 방으로 올라가 창가에 앉아서 바람에 흔들리는 유 리창에 비가 뿌리는 동안 꾸준히 스커트의 장식을 수놓았다. 이따금 피로해지면 그녀는 눈을 들어 멀리 흰 물결이 이는 침울한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잠시 동안 멍청한 시선을 보낸후, 그녀는 다시 일감을 잡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 밖에 다른 할 일이 없었다. 줄리앙이 자기의 권위와 경제적인 욕구를 충분히 만족시키기 위해서 집안에 대한 모든 관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무섭게 절 약하는 태도를 보였고 팁도 절대로 주지 않았으며 필수적인 식량도 줄였다. 잔느가 레 푀플 로 온 이후로 그녀는 매일 아침 빵 가게에다 노르망디식의 작은 빵과자를 만들게 했는데 줄 리앙은 이 지출을 금하고 그녀에게 석쇠에다 굽는 보통 빵을 먹게 했다. 그녀는 변명이나 말 다툼이 나 싸움을 피하기 위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남편의 인색한 근성이 새로 나타날 적마 다 바늘로 찌르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돈을 대단치 않은 것으로 생각하는 가정에서 자란 그녀에게는 그런 것이 저속하고 역겹게만 여겨졌다. "그러나 돈이란 쓰기 위해서 만 들어진 거란다."하고 어머니가 하시던 말씀을 얼마나 자주 들어왔던가. 줄리앙은 이제 이렇 게 되뇌 인다. "당신은 돈을 아껴 쓰는 버릇을 가질 수 없소?" 그리고 그가 품삯으나 계산서에 서 몇 푼을 깎을 적마다 그는 주머니 속에 잔돈을 슬그머니 집어넣으면서 웃음을 띄우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티끌모아 태산이지." 그러나 어떤 날에는, 잔느는 공상에 잠기기 도 했다. 그녀는 일하던 것을 슬그머니 멈추고 두 손을 맥없이 늘어뜨리며 흐릿한 눈길로 즐거 운 모 험의 일부분인 자기의 처녀 시절의 소설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갑자 기 시 몽 영감에게 명령을 내리는 줄리앙의 목소리가 몽상의 요람에서 그녀를 끌어내리는 것이었 다. 그러면 '그 모든 것이 이젠 끝나 버렸어.' 하고 생각하면서 자기의 끈질긴 일감 을 다 시 잡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 방울의 눈물이 바느질하고 있는 손가락위에 떨어졌다. 로잘리 역시 전에는 그렇게도 명랑하고 언제나 노래를 흥얼거렸으나 지금은 변해 버 렸다. 그녀의 포동포동하고 붉은 뺨은 혈색을 잃었고 이제는 거의 움푹 패이기까지 했으며, 때로 는 흙을 바른 듯이 보이기도 했다. 잔느는 자주 "너 어디 아프니?" 하고 그녀에게 물었다. 그러나 하녀는 언제나 이렇게 대답했다. "아뇨, 마님." 핏기가 조금 광대뼈로 올라왔 으나 이 내 황급히 달아나 버렸다. 예전처럼 뛰어가는 대신에 그녀는 괴로운 듯이 발을 끌었고 모양도 내지 않는 것같 이 보 였으며, 방물장수가 비단 리본이나 코르셋 또는 여러 가지 향수들을 그녀에게 보여 주어도 그녀는 이제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큰집이 공동을 울리는 것 같고 아주 침울했으며, 집 벽은 내린 빗줄기가 길게 퍼진 회색 자국으로 얼룩져 있었다. 1월말경에는 눈이 내렸다. 침울한 바다 위에 북쪽에서 오는 커다란 구름이 멀리 보였다. 그리고 하얀 눈송이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하룻밤 사이에 온 벌판이 덮였고 아침에는 나무 들이 얼음의 거품을 걸친 것 같았다. 줄리앙은 목이 긴 장화를 신고 덥수룩한 모습으로 작은 숲속으로, 광야로 향해 있는 도랑 뒤에 몸을 숨기고 철새들을 노리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따금 총소리가 들판의 얼어붙 은 침 묵을 깨뜨렸다. 그러면 질겁을 한 한떼의 검은 까마귀들이 큰 나무를 빙빙 돌면서 날 아갔다. 잔느는 권태에 짓눌려 이따금 현관 앞 층계로 내려갔다. 창백하고 침울한 이 널따란 표면 의 움직아지 않는 고요 위로 아주 멀리서 생의 소음들이 반향되어 왔다. 그리고 그녀 는 윙 윙 울리는 것 같은 먼 곳의 물결소리와 그리고 여전히 떨어지고 있는 차디찬 물보라의 희미 하고도 끊임없는 낙하소리 이외에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그리고 눈의 층은 두껍고 가벼 운 이 거품의 무한한 낙하 밑에서 쉴 새없이 높아지고 있었다. 이런 창백한 어느날 아침, 잔느가 꼼짝하지 않고 자기 방의 난로에 발을 쬐고 있는 동안 날로 더 변해 가는 로잘리는 천천히 침대를 정돈하고 있었다. 갑자기 그녀는 자기 뒤에서 괴로운 한숨소리를 들었다. 고개도 돌리지 않고 그녀가 물었다. "아니, 무슨 일이 있는 거 니?" 하녀는 여전히 "아무것도 아니예요. 마님" 하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녀의 목소 리는 떨 리고 꺼져 들어가는 것 같았다. 잔느는 벌써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녀는 하녀가 움직이는 기척이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로잘리!" 하고 불렀 다. 아무 런 움직임도 나지 않았다. 그러자 그녀가 소리없이 나간 것이라고 생각하고 더 크게 "로잘 리!"하고 소리쳐 불렀다. 그러고는 초인종을 누르기 위해 팔을 뻗치려고 할 때, 그녀 의 바로 곁에서 새어 나오는 깊은 신음소리에 그녀는 깜짝 놀라 떨면서 몸을 일으켰다. 하녀는 창백 해지고 눈에는 핏발이 선 채 두 다리를 쭉 뻗고는 등을 침대 나무에 기대고 바닥에 주저앉 아 있었다. 잔느가 달려갔다. "무슨일이야, 왜 그러는 거야?" 하녀는 한마디도 못하 고 움직 이지도 않았다. 그녀는 실성한 듯한 시선으로 여주인을 뚫어지게 바라보고는 무서운 고통을 찢기듯 헐떡거렸다. 그러고는 갑자기 온몸에 힘을 주고는 악문 이 사이로 비통의 소리 를 죽 이면서 뒤로 미끄러졌다. 그러자 벌리고 있는 넓적다리에 착 달라붙은 옷 밑으로 무 엇인가 가 움직였다. 그리고 거기에는 곧 물이 찰랑거리는 소리 같기도 하고, 목이 눌려서 질 식하는 듯한 숨소리 같기도 한 이상한 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러고는 갑자기 긴 고양이 울 음소리, 힘없는 그러나 이미 괴로워하는 탄식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세상에 나오는 어 린애의 고통스러운 최초의 울음소리였다. 잔느는 갑자기 깨달았다. 그리고 머리가 혼란스러 워져서 층계로 달려가 "즐리앙, 줄리앙!" 하고 소리쳤다. 아래층에서 그가 대답했다. "왜, 그 래?" 그 녀는 간신히 말했다. "저.......로잘리가....."줄리앙이 계단을 두 개씩 뛰어올라와 쏜살같이 방 으로 들어와서는 대뜸 처녀의 옷을 들추고 벌거벗은 두 다리 사이에서 꼬물거리고 있 는 주 름살 투성이의 우는 소리를 내며 부르르 떨고 있는, 온통 끈적거리고 눈뜨고 볼 수 없 는 작 은 살덩어리를 찾아냈다. 그는 다시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고약한 얼굴로, 어쩔 줄 몰라하는 아내를 밖으로 밀어 내면서 "당신하고는 상관없는 일이야. 저리가. 루디빈느와 시몽영감을 보내줘."하고 말했다. 잔느는 와들와들 떨면서 부엌으로 내려갔으나 다시 올라갈 용기가 나지 않아, 양친이 떠난 후로는 불을 피우지 않는 거실로 들어가 불안스러운 마음으로 소식을 기다렸다. 얼마 후 그 녀는 하인이 뛰어나가는 것을 보았다. 5분쯤 지나 그는 그 고장의 산파인 당튀 과부와 함께 돌아왔다. 그러자 마치 부상당한 사람을 들어내기라도 하는 듯이 계단에서 시끌법적한 움직 임이 있었다. 그리고 줄리앙이 와서 잔느에게 방으로 올라가도 된다고 말했다. 그녀는 어떤 불길한 사건을 방금 목격하기라도 한 것처럼 몸을 떨었다. 그녀는 다시 불 앞에서 앉 아 물 었다. "그 애는 어때요?" 줄리앙은 무엇인가에 정신이 팔려서 신경질적으로 방안을 왔다갔 다하고 있었다. 왠지 화가 치밀에 오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 다. 그러 다가 잠시 후 걸음을 멈추었다. "당신은 저 하녀 아이를 어떻게 할 생각이오?" 그녀는 말뜻 을 이해할 수 없어서 남편을 쳐다보았다. "어떻게 하다니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 예요? 모르겠어요. 전" 갑자기 그가 화가 난 듯이 소리쳤다. "그러나 집에다 사생아를 둘 수는 없 소." 그러자 잔느는 몹시 난처하였다. 한참 동안 입을 다물고 있다가 "하지만, 여보. 그 애를 남의 집에 보내어 기를 수도 있잖아요?" 그는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 "비용은 누가 대지? 물론 당신이겠지?" 그녀는 해결책을 찾아보면서 다시 한참동안 곰곰 생각하다가 마침 내 이 렇게 말했다. "그러나 그건 아버지가 책임져야죠. 그 아이의 아버지가. 그리고 그가 로잘리 와 결혼한다면 이려울 것이 뭐가 있겠어요?" 줄리앙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격렬하 게 화를 내며 대꾸했다. "아버지라구!.....아버지라구!.....당신이 그를 아오?...... ..그 아버지라는 그 사람을?........모를 테지, 안 그래? 그럼 어떻게 하지?" 잔느는 흥분해서 화를 냈다. "그러 나 그 사람은 절대로 저 하녀를 저대로 그냥 놔두지는 않을 거예요. 그렇다면 비겁한 사람 일 거예요! 우리가 그의 이름을 물어보고, 그를 찾아가서 그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해 요." 줄 리앙은 침착해져서 다시 걷기 시작했다. "여보, 저 애는 말하려고 하지 않을거요, 그 사내의 이름을. 나보다도 당신에게는 더 고백하려 들지 않을 거요.... 그리고 만일 그가 저 계집애를 받아주지 않는다면, 그 작자가?......그렇다면 우린 사생아가 딸린 미혼모를 한 지붕 밑에 둬 둘 수는 없소. 알겠소?" 잔느는 끈덕지게 되풀이했다. "그렇다면 비열한 인간이지요, 그 남 자는 그러나 우린 그를 알아내야만 해요. 그렇게 되면 그는 우리와 해결하는 거죠." 줄리앙 은 얼굴이 새빨개지면서 다시 화를 냈다. "그러나...... 그러는 동안까지는 어떻게 하겠소?"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그에게 물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그러자 마자 그는 자기 의견을 말했다. "아아! 나라면 그건 간단해. 돈 몇 푼 주어서 그 아 이하고 아무 데나 가서 살라고 쫓아내 버리겠어." 그러나 젊은 아내는 화가 치밀어서 반항을 했다. "그렇게는 절대로 안돼요. 그 아이는 내 젖동생이에요. 우리는 같이 자랐어요. 그 애 는 잘못 을 저질렀어요, 딱하게도. 그러나 난 그 일로 해서 그 애를 밖으로 내쫓을 수는 없어 요. 만 일 그래야 한다면, 내가 기르겠어요. 그 어린아이를." 그러자 줄리앙이 웃음을 터뜨렸 다. "그 렇게 되면 우리는 그럴 듯한 평판을 얻게 되겠지. 바로 우리가 말이야. 우리의 명예와 연고 관계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여기저기서 우리가 악덕을 두둔하고 있다고 말하겠지. 행실이 나쁜 계집애를 보호하고 있다고 말이오. 그러면 명망 높은 사람들은 이제 우리집에 발걸음 도 하지 않으려 할 거야. 정말이지 당신은 뭘 생각하고 있는 거요? 당신은 미쳤어!" 그녀는 여전히 침착했다. "나는 절대로 로잘리를 밖으로 내몰지는 않겠어요. 당신이 그 애를 두고 싶지 않다 해도 어머니가 디시 데려올 거예요. 우리는 그 애의 아버지 이름을 끝내 알아내 야만 해요." 그러자 그는 몹시 화를 내며 나가면서 문을 손바닥으로 때리며 이렇게 고함을 질렀다. "여자들은 생각하는 것이 어리석단 말이야!" 잔느는 오후에 산모의 방으로 올라갔다. 하녀는 당튀 과부의 간호를 받으며 침대에 서 눈 을 뜬 채로 가만히 있었다. 그러는 동안 산파는 갓난아기를 팔에 안고 흔들고 있었다. 여주 인을 알아보자 로잘리는 얼굴을 홑이불로 가리고 절망에 몸부림치면서 흐느끼기 시작 했다. 잔느가 그녀를 포옹하려고 했으나 로잘리는 홑이불을 뒤집어쓰면서 저항했다. 그러자 산파 가 끼여들어서 그녀의 가린 얼굴을 벗겼다. 그녀는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여전히 울 고는 있 었으나 조용한 울음이었다. 벽난로에서는 시원찮은 불길이 타고 있었다. 추웠다. 어린애가 울었다. 잔느는 로 잘 리가 다른 발작을 일으킬까 두려워서 어린애에 대해서는 감히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그래서 하녀의 손을 잡고 기계적인 목소리로 되풀이했다. "괜찮아. 괜찮아." 가엾은 계집애 는 산파 쪽을 흘끗 보고는 어린애의 울음소리에 몸을 떨었다. 그녀의 목을 메게 하는 한 가닥 목구 멍속에서 났다. 잔느는 다시 한번 그녀를 포옹하고 나서 아주 낮은 소리로 귀에다 대 고 속 삭였다. "우리가 잘 돌봐줄게.자 얘야." 그러자 다시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기 때문 에 잔느 는 빨리 도망쳐 나왔다. 날마다 잔느는 그곳에 갔고, 날마다 로잘리는 여주인을 보면 서 흐느 껴 울었다. 어린애는 아웃집에 맡겨 기르기로 했다. 그러는 동안에 줄리앙은 아내에게 거의 말을 걸지 않았다. 하녀를 내보내는 것을 거절한 이후로 그는 그녀에 대해 크게 화를 내고 있는 것 같았다. 어느날 그는 이 문제를 다시 꺼냈으나 잔느는 로잘리를 레 푀플에 둘 수 없다면 그 애를 당장 보내라고 하는 남작 부인의 편지를 주머니에 꺼냈다. 줄리앙은 화를 내며 소리 질렀다. "당신 어머니도 당신처럼 미쳤군." 그러나 그는 더 이상 고집하 지 않았 다. 2주일후, 산모는 벌써 일어나 다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잔느는 어느 날 아침, 그녀를 앉혀놓고 그녀의 두 손을 잡고, 뚤어지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자, 얘야, 모 든 걸 내 게 얘기하렴." 로잘리는 몸을 떨기 시작하면서 더듬거렸다. "뭘 말예요. 마님?" "누구 자식이 니, 그 애는?" 그러자 하녀는 무시무시한 절망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얼굴을 가리려고 두 손 을 빼내기 위해서 미친 듯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잔느는 그러는 그녀를 무시하고 껴안으 면서 위로했다. "불행한 일이야. 어떻게 하겠니, 얘야? 네가 약해서 그랬는걸. 그러 나 그건 다른 사람들에게도 일어나는 일이야. 만일 그 애 아버지가 너와 결혼만 한다면 아무 도 그 일에 대해 더는 생각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너와 함께 그 사람을 우리가 쓸수가 있 어." 로 잘리는 학대받는 사람처럼 신음소리를 내었으며 이따금 몸을 빼어 도망치려고 몸부림 을 쳤 다. 잔느는 말을 이었다. "난 네가 부끄러워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 그러나 넌 내 가 화내 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해. 난 네게 부드럽게 말하고 있지 않니. 그남자의 이름을 물어보는 것은 진정으로 너를 위해서야. 그 남자가 너를 버리려 한다는 것을 네 슬 픔에서 느끼고 있기 때문이야. 그래서 그러지 못하게 하고 싶은 거야. 줄리앙이 그를 찾게 되 면, 우 린 그에게 너와 결혼하도록 강요할 참이야. 그리고 우린 너희 두 사람을 붙들어두고 그 사 람이 너를 행복하게 해주도록 할 거야." 이번에는 로잘 리가 느닷없이 용을 써 여주인 의 손 에서 자기 손을 뽑아 내더니 미친 여자처럼 달려나갔다. 그날 저녁, 저녁을 먹으면서 잔느는 줄리앙에게 말했다. "로잘리에게 자기를 유혹한 사람의 이름을 내게 털어놓으라고 했 었는데, 실패했어요. 그러니 이번에는 당신이 해보세요, 그 불쌍한 것을 그 남자와 억지로라도 결혼 시켜야 하니까." 그러나 줄리앙은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화를 냈다. "아아! 그 얘 기는 이 젠 듣고 싶지도 않소. 당신이 그 계집애를 잡아두겠다고 했으니 두면 되지 않소. 그러 니 그 문제로 날 더 이상 귀찮게 굴지 말아요." 그는 로잘리가 출산한 이후로 더욱더 신경질 을 내 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는 언제나 화가 나 있는 것처럼 아내에게 소리를 지르지 않고 는 이 야기 할수 없는 습관이 붙어버렸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잔느는 모든 언쟁을 피하기 위해 목소리를 낮추고, 유순하고 타협적인 자세가 되었다. 그리고 이따금 밤이면 침대 속에 서 그 녀는 눈물을 흘리곤 하였다. 끊임없이 신경질을 내면서도 남편은 신혼 여행에서 돌아온 이후로 잊고 있었던 사랑 의 습 관을 되찾았다. 부부의 문지방을 넘어서지 않고 연달아 사흘 밤을 보내는 일이 드물어 졌다. 로잘리는 얼마 안 가서 완전히 회복되었고, 겁을 먹은 듯이 알 수 없는 어떤 두려움 에 슛 기는 듯하기는 했으나 전보다 덜 침울해 보였다. 잔느는 두 번이나 다시 물어보려고 했으나 그녀는 달아나 버렸다. 줄리앙도 또한 갑자기 더욱 상냥해진 듯이 보였다. 그래서 젊 은 아내 는 막연한 희망에 매달려 쾌활함을 되찾았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그것을 말하지는 않 았으나 이따금 이상한 거북스러움을 느끼고 괴로워할때가 있었더ㅏ. 해방은 오지 않았다. 거 의 5주 일전부터 낮에는 푸른 수정처럼 하늘이 맑았고, 밤에는 빙화처럼 생각되는 별들이 총총한 하늘-그토록 넓은 공간이 모진 추위에 휩싸여 있었다-이 편편하고 단단하며 눈으로 반 짝이 는 식탁보 위에 펼쳐져 있었다. 서리로 분칠한 커다란 생울타리 뒤로 네모진 뜰에 외따로 서 있는 농가는 하얀 내의 를 입 고 잠들어 있는 것 같았다. 사람도 짐승도 이제는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다만 초가집 의 굴 뚝만이, 차가운 공기 속으로 똑바로 올라가는 가느다란 실 같은 연기로 숨겨져 있는 삶을 드러내고 있었다. 벌판, 울타리, 울타리의 느릅나무, 이 모든 것이 추위로 해서 죽은 듯이 보였다. 이 따금 나 뭇가지가 그 껍질 속에서 부러지는 것처럼 나무들이 내는 탁탁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 고 때 로는 견딜 수 없는 추위가 수액을 얼어붙게 하고 섬유질을 끊어놓아서 큰 가지가 꺾어 져 떨 어지기도 했다. 잔느는 자기의 마음에 스며드는 온갖 막연한 괴로움을 지독하게 추운 날씨 탓으로 돌리고 봄의 훈훈한 숨결이 돌아오기를 불안스럽게 기다렸다. 어떤 때에는 음식물만 봐도 구역질이 나서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때로는 맥박 이 터 무니없이 뛰고, 때로는 조금밖에 먹지 않은 식사가 체해서 구토를 일으키는 때도 있었 다. 그 리고 쉴 새 없이 긴장해 있고 떨고 있는 신경이 그녀를 꾸준하고도 견디기 어려운 동 요속에 서 지내게 했다. 어느날 저녁, 온도계가 다시 내려갔다. 줄리앙은 식탁에서 일어나 서 몸을 덜덜 떨면서(거실이 알맞게 데워진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만큼 그는 장작을 아꼈던 것이 다.) 두 손을 비비며 속삭였다. "오늘밤엔 둘이서 자는 것이 좋지 않겠소, 여보?" 그 는 전의 그 착한 어린애 같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래서 잔느는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하지 만 그 녀는 그날 밤은 마침 기분이 좋지 않았다. 너무도 마음이 괴롭고 이상하게도 신경질적 이 되 어서 그녀는 서너 마디로 자기의 병을 그에게 말했다. "부탁이에요, 여보. 정말이지 좋지가 않군요. 내일은 틀림없이 좋아질 거예요." 그는 고집을 부지 않았다. "당신 좋을대 로 해요. 여보. 병이 났으면 몸조리를 잘해야지." 그러고는 다른 것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 녀는 일 찍 자리에 누웠다. 줄리아은 놀랍게도 그의 독방을 불을 지피게 했다. "잘타고 있습 니다." 하고 하인이 그에게 알리자, 그는 아내의 이마에 키스를 하고 나갔다. 온 집안이 추위 에 시 달리는 것 같았다. 냉기가 스며든 벽에서는 마치 떠는 것 같은 가냘픈 소리가 났다. 침대 속 에는 잔느는 오돌오돌 떨었다. 두 번이나 그녀는 난로에 장작을 집어넣기 위해 일어났 다. 그 리고 옷과 스커트와 헌 옷가지들을 찾아서 잠자리 위에 쌓아놓았다. 아무것도 그녀를 따뜻 하게 해주지 못했다. 발은 곱아서 감각이 없어지고 장딴지와 넓적다리까지도 떨려서 그것이 그녀의 신경을 지나치게 날카롭게 하고 흥분시켜서 쉴 새 없이 몸을 뒤척이게 했다. 얼마있자니 이가 딱딱 부딪치고 손이 떨렸다. 가슴은 죄어오고, 느린 심장은 크게 쿵쿵 뛰 고 이따금 멈추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목구멍은 이제는 공기가 들어갈 수 엇을 것처럼 헐떡 거렸다. 견딜 수 없는 한기가 뼛속까지 스며드는 동시에 무서운 불안이 그녀의 영혼을 사 로잡았 다. 한 번도 그녀는 이런 것을 느껴보지 못했다. 그녀는 이렇게 생으로부터 버림받고 숨이 너어갈 것 같은 기분을 느끼기는 처음이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난 죽을 것이다.... ..나는 죽 는다....." 갑작스러운 공포가 엄습해서 그녀는 침대 밖으로 뛰어나와 로잘리를 부르 기 위해 초인종을 울리고 기다렸다. 다시 초인종을 누르고 꽁꽁 언 몸으로 떨면서도 또 기다렸 다. 하 녀는 오지 않았다. 그녀는 아미 어떤 것으로도 깨울 수 없는, 세상 모르는 초저녁 잠 에 빠져 든 모양이었다. 그래서 잔느는 정신없이 맨발로 계단으로 달려갔다. 그녀는 소리없이 더듬거리며 계단을 올라가 문을 찾아 열고 "로잘리!" 하고 불렀 다. 무턱 대고 앞으로 나아가다가 침대에 부딪히기도 했다. 두손으로 침대위를 더듬다가 침대가 비어 있음을 알았다. 침대는 비어있을 뿐만 아니라 아무도 거기에서 자기 않은 것처럼 냉기 가 돌 았다. 뜻밖의 일이라 놀라서 그녀는 혼자 중얼거렸다. "아니! 이런 날씨에 밖으로 나 가다니!" 그러자 갑자기 그녀의 심장이 혼란스러워지고, 펄떡펄떡 뛰고, 질식 할 것 같았기 때 문에 그 녀는 줄리앙을 깨우기 위해 다리를 구부정하게하고 계단을 내려갔다. 그녀는 자기가 곧 죽 게 되리라는 확신과, 의식을 잃기 전에 줄리앙을 만나려는 욕망에 쫓겨서 남편의 방으 로 맹 렬하게 뛰어들었다. 사위에 가는 불빛에 그녀는 남편의 머리 곁에 베개를 베고 있는 로잘리 의 머리를 알아보았다. 그녀가 지른 고함소리에 그들은 둘 다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이 모습에 당황해서 잠시 꼼짝도 못하고 서 있었다. 그러다가 그녀는 도망쳐 자기방으로 들어갔다. 당황한 줄 리앙이 "잔느!"하고 불렀기 때문에 그를 보고, 그의 목소리를 듣고, 변명하고 거짓말하는 소 리를 듣 고, 시선을 마주 할 것을 생각하니 무서운 공포가 그녀를 사로잡았다. 그래서 그녀는 다시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그녀는 지금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고, 돌에 채여 사지가 부러질 위험을 무릅쓰고 어 둠 속 을 달리고 있다. 그녀는 도망치고 싶고, 아무것도 더 이상 알고 싶지 않고, 아무도 보고 싶 지 않다는 절대적인 욕구에 밀려 달리고 있는 것이다. 아래로 내려오자 그녀는 여전히 내의에다 맨발인 채로 계단에 앉았다. 그녀는 넋을 놓고 거기에 그대로 있었다. 줄리앙이 침대에서 뛰쳐나와 서둘러 옷을 입었다. 잔느는 그 에게서 달아나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벌써 그는 계단을 내려왔다. 그리고 "들어봐, 잔느!" 하고 소 리쳤다. 아니다, 그녀는 듣고 싶지도 않았고 손가락 끝도 닿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 녀는 자 객에게 쫓기기라도 하는 듯이 식당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녀는 출구나 숨을곳, 어두운 구석, 그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그녀는 식탁 밑에 웅크렸다. 그러나 벌써 그가 문 을 열었 고, 손에 등불을 들고 여전히 "잔느!"하고 계속해서 불러댔다. 그녀는 토끼처럼 다시 그곳을 빠져나가 부엌으로 뛰어들어가서 궁지에 몰린 짐승처럼 그 안을 두 번 맴돌았다. 그가 다시 그녀를 따라왔기 때문에 그녀는 거칠게 정원으로 난 문을 열고 들판으로 내달렸다. 벌거벗은 다리가 이따금 무릎까지 파묻히는 차디찬 눈의 촉감이 그녀에게 갑자기 필사적 인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녀는 거의 옷을 입고 있지 않았는데도 춥지 않았다. 그녀 는 이 제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그만큼 정신의 경련이 육체를 마비시킨 것이었다. 그녀는 땅과 같이 하얀 모습으로 달렸다. 그녀는 큰 가로수 길을 따라 작은 숲을 가로질렀으며 도랑을 건너뛰어 광야 한복 판으로 달려갔다. 달도 없었다. 별들은 어두운 하늘에서 불똥을 뿌린 듯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러나 벌판은 희미한 흰 빛으로, 움직이지 않는 부동 상태로, 끝없는 침묵으로 환하였다. 잔느는 숨을 쉬지도 않고, 의시하지도 못하고, 아무것도 생각하지도 않고 쏜살같이 달렸 다. 그러자 갑자기 그녀는 절벽 끝에 와 있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우뚝 멈춰섰다. 그리고 주저 앉았다. 모든 생각과 의지가 지쳐 버렸다. 그녀 앞에 있는 어두운 구멍 속에는 보이지 않는 말없는 바다가, 조수가 빠진 해변에서 해초의 소금기 나는 냄새를 내뿜고 있었 다. 그녀 는 거기에서 몸도 마음도 움직이지 않아 오랫동안 그대로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녀는 떨기 시작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돛처럼 미친 듯이 떨기 시작했다. 팔과 손과 발이 어 쩔 수 없는 힘에 의해 흔들려서 팔딱거리고, 숨가쁘게 소스라쳐 놀라 떨렸다. 갑자기 폐부를 찌르 는 듯한 맑은 의식이 살아났다. 이어서 오래 전의 환영이 눈앞으로 지나갔다. 라스티크 영감의 배 안에서 그와 함께 했던 그 뱃놀이, 그들의 대화, 싹트던 사랑, 작의 배의 명명식, 그러고 나서 그녀의 환상 은 더욱 아득하게, 레 푀플에 도착하던 날, 저 몽상에 몸을 맡겼던 그 밤으로까지 거슬러 올 라갔다. 그런데 지금은! 지금은! 아아! 그녀의 인생은 부서지고, 모든 기쁨은 끝이 나고, 모든 기대는 불가능해지고 말았다. 그리고 고통과 배반과 절망으로 가득한 무서운 미래가 그녀에게 나타 났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 그러면 당장에 끝내버리고 말리라. 그런데 어느 목소리가 멀리에서 소리쳤다. "여기다. 여기 발자국이 있어. 빨리, 빨 리, 이쪽 으로!" 그것은 그녀를 찾고 있는 줄리앙이었다. 아아! 그녀는 그를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거기, 자기 앞에 있는 심연 속에서 그녀는 지금 작은 소리를, 바위 위로 미끄러지는 어렴풋 한 물결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벌써 뛰어들려고 몸을 완전히 일으켰다. 절망한 사람들의 인사를 생에 던 지려고, 그녀는 죽어가는 사람들의 마지막 말, 전쟁터에서 배에 총을 맞은 젊은 병사들이 내뱉 는 최 후의 말인 "어머니!" 라는 말은 신음하듯 내뱉었다. 갑자기 어머니에 대한 생각이 그녀의 마음에 스며들었다. 그녀는 흐느끼는 어머니의 모습 을 보았다. 그녀는 물에 빠진 시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다. 그녀 는 잠시 양친의 절망에 대해 고통스러움을 느꼈다. 그러자 그녀는 다시 눈 속에 무기 력하게 쓰려졌다. 그녀는 줄리앙과 시몽 영감이 램프를 든 마리우스를 앞세우고 왔을때에는 더 이 상 달아나지 못했다. 그들은 그녀의 팔을 잡고 뒤로 끌어당겼다. 그만큼 그녀는 절벽 끝에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그녀를 마음대로 다루었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사람들이 자기를 옮겨다가 침대에 눕히고 뜨거운 수건으로 문지르는 것을 느꼈다. 그런 다음에는 모든 기억이 잊혀지고 모든 의식은 사라져버렸다. 그러고 나서 는 악 몽이-그것은 악몽이었을까?-그녀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그녀는 자기 방에 누워 있었 다. 날 이 밝았으나 일어날 수가 없었다. 왜 그럴까! 그녀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그러 자 마룻 바닥에서 가냘픈 소리가 들렸다. 긁는 소리 같기도하고 가볍게 스치는 소리 같기도 했 다. 갑 자기 새앙쥐 한 마리가, 자그마한 회색 새앙쥐가 재빨리 시트위로 지나갔다. 그러자 곧 다른 것이 그 뒤를 따라갔고, 이번에는 세번째 놈이 날쌘 종종걸음으로 잔느의 가슴 쪽으로 달려 왔다. 잔느는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그 짐승을 잡으려고 손을 뻗쳤으나 닿지 못했 다. 그러자 다른 새앙쥐들이, 열 마리, 스무 마리, 수백 마리, 수천마리 쥐들이 사방 에서 나 타났다. 그것들은 기둥을 타고 기어오르고, 장식융단위로 달음박질을 하고, 잠자리 를 온통 뒤덮어버렸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서는 이불 속으로 뚫고 들어왔다. 잔느는 그것들이 자기 살갗에 스치고, 다리를 간지럽히고, 몸을 따라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그것들은 침대 발치에서 기어올라와 자기 목구멍 속으로 뚫고 들어오려는 것을 보았 다. 그 녀는 몸부림을 쳤다. 한 마리를 잡으려고 손을 내밀었으나 언제나 쥐고 보면 허공이었 다. 그 녀는 몹시 화가났다. 도망치려고 소리를 질러보았다. 누군가가 그녀를 꼼짝 못 하게 하고 기 운 센 팔이 그녀를 꽉 껴안고 있어서 힘을 쓸 수 가 없는 것같이 여겨졌다. 그러나 아무도 보이지는 않았다. 그녀는 시간 관념이 전혀 없었다. 그것은 긴, 아주 긴 시간이었음 이 분명 했다. 그러다가 그녀는 지치고 상처입은 듯하게, 그러면서도 기분 좋게 잠에서 깼다. 그녀 는 기 운이 없음을 느꼈다. 눈을 떴다. 그리고 어머니가 전혀 모르는 어떤 뚱뚱한 남자와 함 께 자 기 방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자기는 몇 살일까? 그녀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자기가 아주 작은 소녀처럼 여겨졌 다. 더구나 기억 같은 것은 나지 않았다. 그 뚱뚱한 남자가 말했다. "자 의식이 회복 되었군 요." 그러자 어머니가 울기 시작했다. 뚱뚱한 남자가 다시 말을 이었다. "자 진정하십 시오.남 작부인. 이젠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그러나 따님에겐 아무 말도 하지 마십시오. 아무 말도. 자게 내버려두십시오." 잔느에게는 생각하려고 하기만 하면 무거운 잠에 다시 잡혀서 아주 오랫동안 졸고 지낸 것같이 여겨졌다. 그녀는 무슨 일이건 기억해 내려고 애쓰지 않았다. 마치 막연하게 자기 머 리속에 나타난 현실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런데 한 번은 그녀가 잠에 서 깨 어나자, 그녀는 자기 곁에 혼자 앉아있는 줄리앙을 보았다. 그러자 갑자기 지나간 생 활을 가 리고 있던 장막이 걷히듯이 모든 것이 그녀에게 떠올랐다. 그녀는 마음에 무서운 고통을 느끼고 또다시 도망치고 싶어졌다. 그녀는 시트를 걷 어젖히 고 바닥으로 뛰어내렸으나 다리가 지탱을 못 해 쓰러지고 말았다. 줄리앙이 그녀에게 로 달 려왔다. 그녀는 남편이 자기를 건드리지 못하도록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녀는 몸을 비틀고 뒹굴었다. 문이 열렸다. 리종이모가 당튀 과부와 함께 달려왔고, 뒤이어서 남작이, 끝 으로 어 머니가 정신없이 숨을 헐떡이며 달려왔다. 그들은 잔느를 다시 눕혔다. 그녀는 곧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편안히 생각하기 위해 서 일 부러 눈을 감았다. 어머니와 이모가 열심히 간호를 하면서 이렇게 물었다. "우리말이 들리 니, 얘, 잔느야?" 그녀는 못 들은 체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하루가 끝났다는 것을 너 무도 잘 알고 있었다. 밤이 왔다. 간호사가 그녀 곁에 앉아서 이따금 약을 마시게 했 다. 그 녀는 아무 말 하지 않고 마셨다. 그러나 이제는 자지 않았다. 그녀는 마치 기억속에 구멍이 나 있고, 하얗게 비어 있는 커다란 장소가 몇 개씩 있어서 거기에는 사건들이 전혀 자국을 남기지 않은 것처럼 자기를 비껴간 것들을 찾으면서 애써 추론을 하고 있었다. 오랜 노력을 기울인 끝에 조금씩 모든 사실을 생각해 냈다. 그녀는 끈덕지게 생각했다. 어머니와 리종 이 모 그리고 남작이 와 있는 것을 보면, 그녀는 매우 중태였던 모양이다. 그런데 줄리앙 은? 그 는 뭐라고 말했을까? 그리고 어떻게 해야될까? 한 가지 생각이 번개처럼 떠올랐다.- 아버지 와 어머니와 함께 예전처럼 루앙으로 돌아가는 거다. 과부가 되면 그뿐이다. 그러자 그녀는 주위에서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잘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체하고, 이성이 회복되는 것을 기 뻐하면서 참을성 있고 꾀바르게 기다렸다. 그날 밤, 마침내 그녀는 남작 부인과 단둘 이서만 있게 되자 아주 낮은 소리로 "어머니!" 하고 불렀다.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에 놀랐 다. 변한 것 같았다. 남작 부인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얘야, 귀여운 잔느! 내 딸아, 날 알아 보겠니?" "네, 어머니. 하지만 우셔서는 안 돼요. 오래 이야기해요. 제가 왜 눈속으로 달아났다 고 줄리 앙이 말하던가요?" "얘야, 넌 아주 위험하고 심한 열병에 걸렸었단다." "그게 아니예 요, 엄 마. 난 그 후에 열이 났던 거예요. 하지만 그 열이 난 원인이 어디에 있고, 왜 내가 달아났 었는지 그이가 말했나요?" "아니, 얘야." "그것은 내가 그의 침대 속에서 로잘리를 발 견했기 때문이에요." 남작부인은 잔느가 아직도 헛소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딸을 어루 만졌다. "자거라, 얘야. 진정하고 자도록 해라." 그러나 잔느는 고집을 피우며 말을 이었다. "이제는 정신이 말짱해요, 엄마. 요 며칠 동안은 그랬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헛소리를 하는게 아니예 요. 어느 날 밤 몸이 불편한 것 같아서 줄리앙을 찾아갔어요. 그런데 로잘 리가 그와 함께 자고 있는 거예요. 난 슬픔으로 정신을 잃고 절벽에 몸을 던지기 위해 눈 속으로 달 려갔던 기예요." 그러나 남작 부인은 이 말만 되풀이 했다. "그래, 얘야, 넌 아주 중병이었단 다." "그 게 아니라니까요, 엄마. 난 줄리앙의 침대 속에서 로잘리를 본 거예요. 난 그이와 함께 더 이상 남아 있고 싶지 않아요. 날 루앙으로 데려가 주세요, 예전처럼 말이예요." 무슨 일이든 잔느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말라는 의사의 충고를 받은 남작 부인은 "그러자꾸나, 얘 야" 하 고 대답했다. 그러나 환자는 초조해했다. "내 말을 믿지 못하신다는 걸 잘 알아요. 아 버지를 불러다 주세요. 아버지는 내 말을 이해하시게 될 거예요." 그래서 어머니는 간신히 일어나 두 지팡이를 짚고, 발을 끌며 나갔다가 얼마후에 남작의 부축을 받으면서 돌아왔다. 그들이 침대앞에 앉자마다 잔느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녀는 힘은 없으나 분명한 목소리로 모든 것을 차근차근히 말했다. 줄리앙의 괴상한 성격, 그의 냉혹함, 그의 인색함 그리고 마침내 그의 부정. 그녀가 말을 끝내자 남작은 딸이 헛소리를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그러 나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해결하고,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를 몰랐다. 그는 예전에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딸을 잠재웠을 때처럼 정답게 그녀의 손을 잡았 다. "들 어보거라, 얘야, 신중하게 행동해야만 한다. 아무것도 서두르지 말자. 우리가 결정할 때까지는 네 남편을 참아내도록 해라........그걸 내게 약속해 주겠지?" 그녀가 중얼 거렸다. "그러겠어 요. 하지만 몸이 회복되면 여기에 남아 있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아주 낮은 소리로 그녀는 덧붙였다. "로잘리는 지금 어디에 있죠?" 남작이 대답했다. "그 애는 이제 만나지 마 라." 그 러나 그녀는 고집을 부렸다. "어디에 있나요? 알고 싶어요." 그래서 남작은 로잘 리 가 아직 집을 나간 것은 아니라고 실토하였다. 그러나 곧 떠나게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환자의 방에서 나오면서 남작은 분노로 후끈 달고, 아버지로서의 마음에 상처를 입 어 줄 리앙을 만나러 갔다. 그리고 불쑥 이렇게 말했다. "여보게, 내 딸에 대한 자네의 행 동에 해 명을 요구하러 왔네. 자네는 하녀와 그 애를 배신했어. 그건 이중으로 비열한 짓이야. " 그러나 줄리앙은 죄가 없는 척하고 열심히 부정하고 맹세했으며, 증인으로 신을 들 먹이기 까지 했다. 게다가 어떤 증거가 있는가, 잔느는 실성하지 않았는가? 그녀는 뇌염에 걸리지 않았었던가? 발병 초기에 정신착란의 발작으로 어느날 밤, 달아났던 것이 아닌가? 그녀가 거의 벗은 상태로 집안을 뛰어다니고 남편의 침대에서 하녀를 보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바로 그 발작 중에 있는 것이다. 줄리앙은 길길이 날뛰며 고소를 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는 맹렬하게 화를 냈다. 그래 서 남 작은 당황해서 변명을 하고 사과를 했다. 그리고 신의 손을 내밀었으나 줄리앙은 악수 를 거 절했다. 잔느가 남편의 답변을 들었을 때, 그녀는 조금도 화를 내지 않고 대답했다. "그이 는 거짓 말을 하고 있어요, 아빠, 하지만 그것을 입증시키고 말거예요." 그리고 이틀 동안 그 녀는 거 의 말을 하지 않고 명상에 잠겨 곰곰 생각했다. 그러고 나서 사흘째 되는 아침, 그녀 는 로잘 리를 보고 싶다고 했다. 남작은 하녀를 올라오게 하는 것을 거절하고, 이미 떠났노라 고 분명 히 말했다. 잔느는 조금도 굴하지 않고 되풀이 말했다. "그렇다면 그 애의 집으로 찾 으러 가 면 되겠군요." 의사가 들어왔을 때 그녀는 이미 화가 나 있었다. 의사의 의견을 알아보기 위해 모 든 것 을 그에게 말했다. 그러자 극도로 신경이 날카로워진 잔느가 울음을 터뜨리면서 거의 울부 짖었다. "로잘리를 보고 싶어요. 그애를 만나고 싶어요!" 그러자 의사는 그녀의 손 을 잡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 "진정하세요, 부인. 모든 감정은 중대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 습니다. 부인은 임신중이시니까요." 그녀는 한 대 얻어맞은 듯이 멍해졌다. 그리고 갑자기 그 녀의 몸 속에서 무엇인가가 움직이는 것같이 여겨졌다. 그녀는 남이 말하는 소리를 듣지도 않 고 생 각에 잠겨 잠자코 있었다. 그녀는 한 아이가 자기 뱃속에서 살고 있다는 새롭고도 이상한 생각에 놀라서 그날 밤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애가 줄리앙의 자식이라 는 것 이 슬프고 불쾌했다. 아버지를 닮지 않을까 하는 것이 두렵고 불안했다. 날이 밝자 그녀는 남작을 불러오게 했다. "아버지, 저 결심했어요. 모든 걸 알고 싶어요. 특히 지금은요. 아시겠죠? 그러고 싶어요. 제가 처해 있는 상태에서 저를 거역해서는 안 된 다는 것을 아버지는 아실 거예요. 잘 들어보세요. 아버지는 가서 사제님을 불러오세 요. 로잘 리가 거짓말을 못 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분이 필요해요. 그리고 사제님이 오시면 곧 그 애 를 올라오게 하세요.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여기에 남아 계셔야 해요. 특히 줄리앙 이 눈치 채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한 시간 후에 사제가 들어왔다. 여전히 뚱뚱하고 어머니보 다 더 헐떡였다. 그는 어머니 곁의 안락의자에 앉았다. 배가 벌린 다리 사이로 축 늘어졌 다. 그는 늘 하는 버릇대로 체크 무늬의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으면서 농담을 하기 시작했다. " 그런데, 남작부인, 우리는 마르지 않을 것 같군요. 제 생각으로는 우리는 썩 어울리는 한쌍이 에요." 그리고 환자의 침대 쪽으로 몸을 돌렸다. "아, 그래! 그래! 소문으로는 부인, 머잖아 새로운 명명식이 있을 것 같다구요. 하! 하! 하! 이번에는 배의 명명식이 아니겠지요." 그리 고 그는 엄숙한 어조로 덧붙였다. "조국의 수호자일 겁니다." 그러고 나서 잠시 생각한 후에 " 그렇지 않으면 현모양처겠지요." 하고 말했다. 그러고는 남작 부인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말했다. "바로 당신같은 부인." 그러자 안의 문이 열렸다. 로잘리는 미친 듯이 날뛰고, 눈물 을 흘리 면서 들어가지 않으려고 문틀에 매달렸으나 남작이 떼밀었다. 견디다 못한 남작이 그녀를 방안으로 단번에 밀어붙였다. 그러자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끼면서 서 있었 다. 잔느는 그녀를 보자 벌떡 몸을 일으켰다가 시트보다 더 창백해져서 주저앉았다. 미친 듯 이 뛰는 심장은 그 고동으로 살갗에 달라붙은 얇은 내의를 들썩이게 했다. 그녀는 말 을 할 수가 없었다. 숨이 막혀 간신히 내쉬었다. 마침내 그녀는 감정이 복받쳐 끊어지는 목 소리로 말했다. "난.....난...너한테........물어볼........필요도 없다. 내 앞에서........ 네가.......그렇게.......부끄러 워하는 걸........보는 것만으로 충분해." 숨이막혀 잠시 쉬었다가 그녀는 다시 말 을 이었다. "그러나 난 모든걸 알고싶다. 모든 걸.....죄다. 난 고해를 하는 것처럼 하기 위해서 사제님을 오시게 했다. 알겠니?" 로잘리는 꼼짝도 하지 않고 부르르 떠는 두 손 사이로 거의 고함을 질렀다. 남작은 화가 치밀어올라 그녀의 두 팔을 잡고 난폭하게 얼굴에서 떼어놓고는 침대 곁으로 집어던져 무릎 을 꿇게 했다. "자, 말해.......대답해봐." 로잘리는 막달라 마리아를 그릴 때 취하게 하는 자세 로 모자를 비스듬히 쓰고 앞치마는 마룻바닥에 떨어뜨린 채, 자유로워진 두 손으로 다 시 얼 굴을 가렸다. 그러자 사제는 그녀에게 말했다. "자, 얘야, 네게 말하는 것을 잘 듣고 대답해 라. 우리는 네에게 고통을 주고 싶지 않다. 그러나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는 알고 싶 다." 잔느는 침대 가장자리에서 몸을 숙이고 로잘리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말했다. "내 가 너희 들을 기습했을 때, 너는 줄리앙의 침대 속에 있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어." 로 잘리는 손가락 사이로 신음하듯이 말했다. "네 그래요, 마님." 그러자 갑자기 남작부인이 질 식한 듯 한 큰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그의 발작적인 오열은 로잘리의 그것과 잘 어울렸다. 잔 느는 하 녀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물었다. "언제부터 그런 일이 계속되었지?" 로잘 리가 우물 거리면 서 말했다. "그분이 오시고 나서부터지요." 잔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분이 오시 고부터 라니.......그러면 언제부터.......봄부터란 말이냐?" "네, 마님." "그이가 이 집으로 들어와서부터 란 말이니?" "네, 마님." 잔느는 많은 질문으로 가슴이 억눌린 듯이 조급한 목소리 로 물었 다. "그래, 어떻게 그런 일이 생기게 되었니? 그가 어떻게 네게 요구하던? 어떻게 너 를 구슬 리던? 네게 무슨 말을 했지? 언제 어떻게 너는 굴복했지? 어떻게 넌 그에게 너를 줄 수 있 었니?" 로잘리는 이번에는 얼굴에서 손을 떼고, 말하고 싶은 흥분과 대답하고 싶은 욕구에 사로 잡혔다.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여기에서 식사를 드시던 맨 첫날, 제 방으로 저를 찾아 오셨어요. 고미다락에 숨어 계셨던 거예요. 저는 감히 말썽이 일어날까봐 소리칠 수가 없었 어요. 그분은 저와 함께 주무셨습니다. 그때는 제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몰랐습니 다. 그 분이 하시고 싶은 대로 하셨으니까요. 저는 그분이 잘 생긴 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잔느가 소리질렀다. "그럼........네.......네 아이도.......그이 얘 냐?" 로잘 리가 흐느꼈다. "네, 마님." 그러고 나서 두 사람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 로잘리와 남작 부인의 울음소리 이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지친 잔느는 이번에는 자 기 눈 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소리없이 눈물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하녀의 아이 가 자기 아이와 똑같은 아버지를 갖다니! 분노가 스러졌다. 그녀는 지금 침울하고 굼뜨고 깊고 끝없는 절망으로 가득 차 있는 것같이 여겨졌다. 그녀는 마침내 달라진, 눈물에 젖은, 울고 있는 여자의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우리가 돌아와서.......거기에서.......여 행에서.......언제 다시 시작했지?" 하녀는 갑자기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면서 더듬거렸다. "오.....오시 던 첫날밤 부터." 말 한마디가 잔느의 가슴에 쥐어짜는 듯한 고통을 주었다. 그래서 첫날밤, 레 푀플로 돌아온 날 밤 그는 이 계집애 때문에 자기 곁을 떠났던 것이다. 그녀를 혼자 자게 한 것은 바로 이 이유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이제 충분히 알았다. 더 이상 아무것도 알 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소리질렀다. "저리 가, 나갓!" 로잘 리가 꼼짝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진맥 진한 잔느는 아버지를 불렀다. "저 애를 데려가세요. 끌어내세요." 그러나 그때까지 아무 말 하지 않고 있던 사제는 설교를 한마디 할 때가 왔다고 판단했다. "네가 한 짓은 정말 나쁜 짓이다. 얘야, 나쁜 짓이야. 하느님도 얼른 용서하지 않으실 거다. 이제부터 품행을 단정하게 하지 않으면 너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지옥이라는 것을 명심해라. 이제는 어린애도 있으니 얌전해져야만 한다. 남작 부인께서 널 위해 무엇인가를 틀림없이 해주실 거다. 우리는 너에 게 남편을 구해 줄 것이고........" 사제는 더 길게 이야기했을지도 모르나, 남작은 다시 로잘 리의 어깨를 잡고 일으켜 세우더니 문이 있는 데까지 끌고 가서 그녀를 마치 짐짝처럼 복도 에 내동댕이쳤다. 딸보다도 더 창백해진 얼굴로 남작이 돌아오자, 사제는 다시 말을 계속했다. "어떻 게 하시 렵니까? 이 지방의 여자애들은 모두 저 모양입니다. 형편없지요. 그러나 어찌할 도리 가 없어 요. 인간 본성의 약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관대해지지 않으면 안됩니다. 임신을 하 지 않고 결혼을 하는 여자애들은 결코 한 사람도 없어요, 부인." 그는 웃으면서 말을 덧붙였 다. "지 방풍습이라고나 할까요." 그러고는 다시 화가 치미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들까지 그런 짓 을 하려 들어요. 작년에, 교리 문답에 나오는 두 어린애, 사내애와 계집애를 묘지에 서 내가 발견하지 않았겠습니까! 부모에게 기별을 했지요. 그런데 그 부모들이 내게 뭐라고 대답한 줄 아십니까! '어쩌겠습니까, 사제님. 그런 추잡한 짓을 그 애들에게 가르쳐 준 것은 우리가 아닌걸요.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이러는 거예요. 댁의 하녀도 다른 사람들처럼 한 거예요, 선생님." 그러나 남작은 신경질적으로 몸을 떨면서 사제의 말을 가로막았다. "하녀요 ? 그건 상관없어요! 그러나 나를 분개시키는 자는 줄리앙이란 말입니다. 그가 저지른 짓은 수치스 러운 일이오. 나는 딸을 데리고 가겠소." 남작은 여전히 흥분하고 격분해서 왔다갔다 하였다. "내 딸을 이렇게 배신한 것은 파렴치한 일이오, 파렴치한! 그 사내는 악당이요, 불한 당이요, 비열한 인간이오. 나는 그에게 이 말을 하겠소. 나는 그의 따귀를 때릴것이오, 단장 으로 때 려 죽이고 말겠소!" 그러나 사제는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남작 부인 곁에서 천천히 담배 한모 금을 빨아들이면서 마음을 진정시키는 자기의 임무를 수행하려고 애쓰면서 말을 이었 다. " 자 남작님. 우리끼리 이야기지만, 그 사람은 다른 모든 사람과 똑같은 짓을 한 겁니 다. 충실 한 다른 남편들을 많이 알고 계십니까?" 그리고 사제는 착한 장난꾸러기같이 덧붙였 다. "자, 내기를 걸어도 좋습니다만 당신 자신도 난봉을 피우셨겠지요. 자, 가슴에 손을 대고, 사실이 죠?" 남작은 사제 앞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사제는 말을 계속했다. "아아! 그렇군요. 당신도 다른 사람들처럼 행동하셨군요. 당신이 가령 그애 같은 어린 하녀에게 절대로 손을 대 지 않 았다고 해도 그것을 누가 알아주겠습니까. 사람들은 모든 그런 짓을 하고 있는 겁니 다. 그렇 다고 당신 부인께서 덜 행복하고 덜 사랑받은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안 그래요?" 남작은 아연 실색해서 더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정말 그렇다, 그도 그런 짓을 한 것은 사실 이었다. 게다가 자주, 그럴 수 있을 때마다 모두. 그리고 부부가 사는 한 지붕 밑이라도 개의 치 않았 다. 예쁘기만 하면 아내의 하녀들 앞에서도 결코 주저한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는 비열한 인간일까? 자기 자신은 죄가 된다고 결코 생각한 적조차 없으면서 왜 줄리앙의 품행 에 대해서는 그렇게 가혹하게 판단하는가? 아직도 흐느끼느라 헐떡이는 남작부인이 남편의 젊었을때의 엉뚱한 행위를 생각하고 입술 에 미소의 그림자를 띄웠다. 왜냐하면 그녀는 사랑의 모험을 생활의 일부분으로 생 각하는 그런 종류의 감상적이고, 빨리 감동되고, 관대한 여자였기 때문이다. 잔느는 의기소침하게 허공을 바라보면서 반듯이 누워 팔을 늘어뜨리고 고통스럽게 생각에 잠겼다. 로잘리의 한마디가 되살아나서 그녀의 영혼에 상처를 입히고 송곳처럼 그녀의 가슴 을 꿰뚫었다. '저는, 그분이 잘생긴 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요.' 그녀역시 그를 잘생겼다고 생각했었다. 오직 그것 때문에 그녀는 몸을 맡기도, 평생 을 묶 었고, 다른 모든 희망과 막연하게 예상했던 모든 계획과 모든 미지의 사람을 단념했던 것이 다. 그녀는 이 결혼 속에, 기어오를 가장자리도 없는 이 구멍 속에, 이 비참, 이 슬 픔, 이 절 망 속에 빠져버린 것이다. 로잘리처럼 자기도 그를 잘난 남자로 생각했기 때문에! 문이 우악스럽게 열리며 줄리앙이 사나운 표정으로 나타났다. 그는 계단에서 비명을 지르 는 로잘리를 보고, 무엇인가를 꾸미고 있다는 것과 하녀가 틀림없이 말했을 거라는 것 을 알 아차리고 확실한 것을 알기 위해 왔던 것이다. 사제를 보자 그는 그 자리에 못박히듯 서버 렸다. 그는 떨리면서도 침착한 음성으로 물었다. "뭐예요? 무슨일이 있었나요?" 조금 전에 그 렇게도 과격했던 남작은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사제의 논증과 사위가 자신의 예를 방패로 제시할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어머니는 더욱 심하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 다. 그 러나 잔느는 두 손으로 버티고 일어나 앉아서 숨을 헐떡이며, 자기에게 이처럼 잔인하 게 고 통을 남겨준 사람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더듬거리면서 말했다. "우리는 이제 아무것 도 모르 는 것이 없어요. 당신의 비열한 짓을 모두 알고 있어요. 그때부터......당신이 이 집 에 들어왔 던 날부터.......그 하녀의 아이가 바로.......내 아이와 마찬가지로 당신의 아이라 는 것도요....... 그 애들은 형제예요......."그리고 그 생각에 미치자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 그녀는 이불속에 몸을 파묻고 격정적으로 울었다. 그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입을 멍하니 벌리고 있었다. 이 번에도 사제가 또 사이에 끼여들었다. "자, 자, 그렇게 너무 슬퍼하지 말아요, 젊은 부인. 이 성을 차 리세요." 그는 일어나 침대 곁으로 다가가서는 그의 미지근한 손을 이 절망하고 있는 여자 의 이마에 얹었다. 이 단순한 접촉이 이상하게도 그녀를 누그러뜨렸다. 죄를 사해 주 는 행동 에, 용기를 돋우어주는 애무에 익숙해져 있는 이 시골 사람의 힘센 손이 닿자 신비 하게도 마음이 가라앉는 것처럼 이내 나른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 선량한 사람은 여전히 선 채로 말을 이었다. "부인, 항상 용서해야만 합니다. 당 신에게 는 지금 커다란 불행이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긍휼히 여기사 커다란 행복으 로 보 상해 주셨습니다. 당신은 곧 어머니가 되실 테니까요. 그 아이는 당신의 위안이 될 것입니 다. 그 애의 이름으로 애원합니다만 줄리앙씨의 과실을 용서해 주시도록 간청드립니 다. 두분 사이의 새로운 끈이 될 것이고, 장차 남편의 성실에 증거가 되기도 할것입니다. 당신 의 몸속 에 아기를 갖게한 그 사람과 진정으로 헤어질 수 있겠습니까?" 그녀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슬픔에 짓눌리고 가슴이 아프고 이제는 기진맥 진해서 화를 내고 원한을 품을 힘조차 없었다. 그녀의 신경은 느슨해지고 슬며시 끊어져버린 것 같 았다. 그녀는 간신히 살아 있는 듯싶었다. 원한을 지니고 있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지고, 마음에 오래 참는 노력을 도저 히 해 낼 수는 없는 남작 부인은 중얼거렸다. "얘, 잔느야." 그러자 사제가 젊은이의 손을 잡고 침 대 곁으로 끌어당겨 그것을 그의 아내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는 결정적인 방법으로 그들을 맺어주려는 듯이 그 위를 손바닥으로 살짝 때렸다. 그리고 설교하는 직업적인 어조를 버리 고 만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 됐어요. 날 믿어요. 그러는 것이 더 나을겁니다." 잠시 가 까이 있던 두 손이 곧 떨어졌다. 줄리앙은 감히 잔느를 포옹할 용기가 나지 않아 장모 의 이 마에 키스를 하고 발뒤꿈치를 빙그르르 돌려 남작의 팔을 잡았다. 남작은 일이 이렇게 타결 된 것이 내심으로는 다행이어서 그가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그들은 담배를 피우기 위해 함께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기진맥진한 환자는 잠이 들고, 한편 사제와 어머니는 낮 은 소리 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제는 자기 생각을 설명하고 펼치면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남작 부인은 언제나 그렇듯 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했다. 그는 마침내 결말을 지으려고 이렇게 말했다. "그 럼, 좋습 니다. 그 애에게 바르빌르 농장을 주십시오. 그럼 내가 책임지고 그 애의 남편을, 얌 전하고 충실한 청년을 찾아보겠습니다. 아! 2만 프랑의 재산만 있다면 얼마든지 희망자가 나 설겁니 다. 오히려 선택하기가 곤란할 지경이겠지요." 남작부인은 이제는 행복한 미소를 짓 고 있었 다. 뺨 위에는 여전히 두줄기 눈물이 남아 있었으나 길고 축축하게 퍼진 자국은 이미 말라 있었다. 그녀는 강조했다. "좋아요. 바르빌르는 최소한으로 잡더라도 2만 프랑은 나 갑니다. 하지만 재산은 어린애의 명의로 해놓겠어요. 그 애의 양친은 살아 있는 동안 그 수 익권을 가지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사제는 일어나서 어머니와 악수했다. "그대로 앉아 계 십시오, 남작부인. 그대로 앉아 계세요 한걸음이 얼마나 힘드는지 압니다." 그가 나가다가 환 자를 보 러 오는 리종 이모를 만났다. 그녀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에게는 아무 말 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언제나 그렇듯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로잘리는 집을 떠났고, 잔느는 고통스러운 임신 기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녀는 너무 도 큰 슬픔에 짓눌려 자기가 어머니가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에 아무런 기쁨도 느끼지 못했 다. 끝없는 불행에 대한 걱정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한 그녀는 아무런 호기심도 없이 아이 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주 슬며시 봄이왔다. 벌거벗은 나무들은 아직도 차가운 미풍에 떨고 있었으나, 지난 가을에 떨어진 낙엽이 썩고 있는 도랑의 축축한 풀 속에서는 노란 앵초가 싹트기 시작하였다. 온 들판과 농가의 마당들 그리고 눈 녹은 밭에서는 발효하는 냄새 같은 습기 찬 냄새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작은 뾰족한 한 모더기의 파란 싹들이 누런 땅에 서 솟 아나 햇살에 반짝였다. 요새처럼 몸집이 큰 여자가 로잘리를 대신하여 가로수 길을 따 라 거 니는 단조로운 산책에 남작부인을 부축하였다. 점점 더 무거워가는 발자국이 쉴새없이 축축 하고 진흙 투성이인 그길에 남아 있었다. 아버지는 이제 몸이 무거워지고 늘 괴로워하 는 잔 느에게 팔을 내밀어 주었다. 앞으로 다가올 경사에 바쁘고 불안스러워하는 리종이모는 다른 쪽에서 잔느의 손을 잡았다. 그녀는 자기로서는 결코 알 수 없는 그 신비에 완전히 들 떠 있 었다. 그들은 모두 그렇게 몇 시간 동안을 거의 말없이 거닐었다. 한편 줄리앙은 갑자기 승마라 는 새로운 취미에 빠져 말을 타고 그 지역을 돌아다녔다. 그들의 침울한 생활을 깨뜨 릴 만 한 것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남작과 그 부인, 그리고 자작이 푸르빌르가를 방 문했었 다. 줄리앙은 어떻다고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미 그 집안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있 는 듯 싶었다. 의례적인 또 다른 방문이 언제나 잠들어 있는 듯한 저택속에 숨겨져 있 는 브 리즈빌가와의 사이에 교환되었다. 어느날 오후 네 시경에 말을 탄 두 사람의 남자와 여자가 성관의 앞마당으로 빠른 속도로 들어왔다. 줄리앙은 매우 흥분해서 잔느의 방으로 뛰어들었다. "빨리, 빨리, 내려가. 푸르빌 르네 사람들이 왔어. 당신의 상태를 알고 그저 단순히 이웃으로서 온 거야. 난 나갔지 만 곧 돌아온다고 말해. 그동안 잠깐 옷을 갈아입을 테니까." 잔느는 놀라서 내려갔다. 창백하고 예쁘게 슬픈 얼굴에 충혈된 눈과 한번도 햇살의 애무 를 받아본 적이 없는 것 같은 윤기없는 금발의 젊은 부인이 조용히 자기 남편을 소개 했다. 이 사람은 붉은 수염이 무성한 도깨비 같은 거인이었다. 그러고 나서 그 부인은 이렇 게 덧 붙였다. "우린 여러 번 드 라마르씨를 만날 기회가 있었지요. 그분을 통해서 부인께 서 몸이 편찮으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전혀 격식을 차리지 않고 이웃으로서 당신 을 뵈 러 오는 것을 더 이상 지체하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게다가 보시다시피 우린 말을 타 고 왔 습니다. 더욱이 저번날에는 자당님과 남작께서 방문해 주셔서 기뻤습니다." 그녀는 친숙하고 품위있게, 한없이 힘 안 들이고 이야기를 했다. 잔느는 매혹당해서 금방 그녀가 매우 좋아졌다. '친구가 되겠구나.'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반대로 드 푸르빌르 백작은 마치 거실에 들어온 곰 같았다. 그는 자리에 앉아 옆에 있는 의자에 모자를 보고 한참 동안 자기 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머뭇거리다가, 무릎 위에 올려 놓았다가 안락의자에 팔걸이 위에도 놓았다가 마침내 기도하는 것처럼 깍지를 끼었다. 갑자기 줄리앙이 들어왔다. 잔느는 어리둥절하여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는 수염 을 깎았 다. 그는 약혼시절처럼 아름답고 우아하고 매혹적이었다. 그는 자기의 출현으로 잠에 서 깨어 난 것 같은 백작의 털이 무성한 손과 악수를 했고, 백작 부인의 손에는 입을 맞추었 다. 백작 부인의 상아 같은 볼이 약간 불그레해지고 눈꺼풀이 떨렸다. 그가 이야기를 했다. 그는 예전처럼 상냥했다. 사랑의 거울 같은 그의 커다란 눈은 정다운 빛을 띠고 있었다. 갑자기 빗질과 향유로 부드러워지고 빛나게 웨이브가 지는 머리결 을 되 찾았다. 푸르빌르 백작 부처가 떠나는 순간에 백작부인이 줄리앙 쪽을 돌아보며 말했 다. "자 작님, 목요일에 승마로 산책을 하시지 않겠어요?" 그러자 줄리앙이 머리를 숙이면서 " 네 좋 습니다, 부인" 하고 중얼거리는 동안 백작 부인은 잔느의 손을 잡고 다정한 미소를 지으면 서 부드러우면서도 파고드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아! 몸이 회복되시면 우리 셋 이서 이 지역 일대를 달립시다. 즐거울 거예요. 어떠세요?" 거침없는 태도로 그녀는 승마복의 옷자락 끝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새처럼 가볍게 안장에 올랐다. 한편 그의 남편은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난 다음, 노르망디산의 커다란 말에 마치 켄타우로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반은 사람이고 반은 말인 괴물)처럼 꼿꼿이 몸을 세우고 걸터 앉았다. 그들이 울타리를 돌아 사라지자 줄리앙은 매우 기분이 좋아서 외쳤다. "얼마나 호감 이 가 는 사람들인가! 이렇게 알아두면 유익할 거야." 잔느역시 이유없이 흡족해서 대답했 다. "그 작은 백작 부인은 매혹적이에요. 그분을 좋아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하지만 남편 은 교양 이 없어 보이더군요. 당신은 그분들을 어디에서 알았지요?" 그는 즐거운 듯이 손을 비볐다. "브리즈빌가에서 우연히 만났지. 남편은 좀 야성적인 것 같아. 사냥에 미친 사람이 지. 하지 만 그 사람은 진짜귀족이야." 그날 저녁식사는 마치 숨어있던 행복이 집안으로 들어온 것처 럼 즐겁기조차 하였다. 그리고 7월말까지 새로운 일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 느 화요 일 저녁, 식구들이 플라타너스나무 아래에서 두 개의 작은 술잔과 브랜디 한 병이 놓여져 있는 나무 탁자 주위에 앉아 있을 때, 잔느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면서 아주 창백해 지더니 두 손을 허리에 갖다 대었다. 빠르고 격심한 고통이 갑자기 그녀의 전신을 훑어내리더 니 이 내 스러졌다. 하지만 십 분쯤 후에 또 다른 고통이 보다 오래 그녀의 몸에 파고들었으나 그렇게 심하지 는 않았다. 그녀는 아버지와 남편에게 거의 안기다시피 하여 간신히 안으로 들어갔다. 플라 터너스에서부터 자기 방까지 그 짧은 길이 그녀에게는 한없이 긴 것처럼 여겨졌다. 그녀는 무의식중에 앓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배에 견딜 수 없는무게를 느끼고 그것에 짓눌려 서 걸 음을 멈추어 앉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산월은 아니었다. 해산은 9월로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만일의 경우가 염려되어서 마차 에 말을 달고 시몽 영감이 의사를 부르러 전속력으로 출발했다. 의사는 자정쯤에 도 착했다. 첫눈에 그는 조산의 증후를 알아보았다. 침대에 누우니 고통은 좀 가라앉았으나 무서 운 불 안이 잔느를 괴롭혔다. 전신의 기력이 상실되는 것 같은 절망감, 예감 같은 그 무엇, 죽음의 신비로운 감촉이 그녀를 속박했던 것이다. 죽음의 입김이 심장을 얼어붙게 할 정도로 그렇 게 가까이 스치고 갈 때가 있는 법이다. 방안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어머니는 안락의자에 주저앉아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남작은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물건을 가져오기도 하고, 의사와 상의를 하는 등 정신이 없었다. 줄리앙은 이리저리 거닐면서 겉모습은 분주해 보였으나 마음 은 침 착했다. 그리고 당튀 과부는 이런 상황에 어울리는 얼굴을 하고 침대 발치에 서 있었 다. 그 것은 어떠한 것에도 놀라지 않는 경험 많은 여자의 얼굴이었다. 간호인에다 산파고 그리고 죽은 사람을 위해 밤을 새우는 여자로서, 태어나는 아이를 받고, 그들의 첫울음소리를 거두 어 들이고, 그들의 새 살을 처음으로 물로 씻기고, 첫 타월로 감아주고, 그러고 나서 는 똑같 은 평온으로 세상을 떠나는 사람의 마지막 말, 마지막 신음, 마지막 떨림을 듣고, 또 한 그들 의 마지막 화장을 해주고, 그들의 낡은 육체를 식초로 닦고, 수의로 싸는 이 여자는 출생과 죽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고에 요지 부동의 무관심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었다. 부엌 하녀 루디빈느와 리종 이모는 현관문 뒤에 조용히 숨어 있었다. 환자는 이따금 가냘 픈 한숨을 내쉬었다. 두 시간 동안이나 결말은 오래 기다려야 할 것같이 생각되었다. 그러나 새벽 무렵에 진통이 갑자기 맹렬하게 다시 시작되어 이윽고 지독하게 심해졌다. 잔느는 악문 이빨 사이로 저도 모르게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고 줄곧 조금도 괴로 워하지 도 않았고 거의 신음소리조차 내지 않았던 로잘리를 생각했다. 그 아이는, 그 사생아 는 고통 도 없이 태어났던 것이다. 비참하고 혼란된 마음속에서 그녀는 자기 두 사람을 끊임없 이 비 교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옳다고 믿었던 신을 저주하였다. 그리고 운명의 가증스러운 편애와 정의와 선에 대해 설교하는 사람들의 죄 많은 허위에 대해 분개하였다. 이따금 진통은 모든 상념을 그녀의 마음속에서 소멸시킬 정도로 그렇게 심해지기도 했다. 그녀는 이제 힘 도, 생 명도, 의식도 없고 오직 고통만이 있었다. 고통이 가라앉은 순간에는 줄리앙에게서 시선을 돌릴 수가 없었다. 또 다른 고통이, 마음의 고통이, 하녀가 다리 사이에 그의 아이 를, 지금 이렇게 무자비하게 자기 배를 쥐어뜯고 있는 작은 생명의 형제를 끼고 이똑같은 침대 의 발 치에 쓰러져 있던 그날을 생각나게 해주어서 그녀를 괴롭히는 것이었다. 그녀는 티없 이 맑 은 기억으로, 그 누워 있는 계집아이 앞에서 하던 남편의 행동, 시선, 말들을 다시 생 각했다. 지금 그녀는 그의 마음속을 읽고 있다. 그의 생각이 그의 동작에 쓰여 있기 때문이다. 그녀 는 또 다른 여자에 대해서 똑같은 혐오와 똑같은 무관심을 나타냈던, 아버지가 된다는 것을 성가시게 여기고 있는 이 이기적인 남자의 그 똑같은 냉담함을 읽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무서운 경련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이젠 죽는구나. 죽어!' 하고 생각될 만큼 그 렇 게 격렬한 경련이었다. 그러자 극단적인 반항과 저주하고 싶은 욕구가 가슴에 가득 끓어올 랐다. 자기를 망가뜨린 이 남자와 자기를 죽이려 하는 이 알지 못하는 어린애에 대해 격분 을 느끼는 증오심이었다. 그녀는 자기로부터 이 짐을 내던져버리기 위해 있는 힘을 다 해 몸 을 뻗었다. 갑자기 자기의 배가 온통 비어버리는 것 같더니 진통이 가라 앉았다. 간호인과 의사는 그녀위로 몸을 구부리고 그녀를 다루었다. 그들은 무엇인가를 들 어올렸 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이미 들어보았던 그 자지러지는 소리가 그녀를 움찔하게 만 들었다. 그러고 나서 그 고통스러운 작은소리, 갓난애의 고양이 울음같은 힘없는 소리가 그녀 의 영 혼 속으로, 마음속으로, 지쳐빠진 그 가련한 육체 속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무의식적 인 동작 으로 두 팔을 내밀려고 했다. 그것은 그녀의 마음속을 가로지르는 환희였다. 갓 피어난 새로운 행복을 향한 도약 이었다. 그녀는 잠시 해방된 듯했고 마음이 가라앉는 듯했으며 행복함을 느꼈다. 그녀가 한 번 도 느 껴보지 못했던 행복이었다. 그녀의 마음과 몸은 다시 생기가 돌았다. 그녀는 자신이 어머니 가 된 것을 느꼈던 것이다! 그녀는 자기 아이를 보고 싶었다! 너무 일찍 나왔기 때문에 머리칼도 없었고 손톱도 없었 다. 그러나 이 발육이 부진한 아이가 움직이는 것을 보았을 때, 입을 벌리고 가냘픈 울음소 리를 내는 것을 보았을 때, 주름살이 잡힌 얼굴을 찡그리는 살아있는 이 조산아를 만 져보았 을 때, 그녀는 억제할 수 없는 환희에 잠겼다. 그녀는 모든 절망으로부터 구조되고 보 호되었 으며, 이제는 다른 것에 대해서는 모를 만큼 그것에게서 사랑을 얻으리라는 것을 알았 다. 그때부터 그녀는 오직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자신의 아이에 대한 것이었다. 그 녀는 갑 자기 열광적인 어머니가 되었다. 사랑에 환멸을 느끼고 희망에 배신을 당해 있었던 만 큼 더 욱더 열광적이 되었던 것이다. 그녀는 언제나 침대 곁에 요람을 놓게 했고 일어날 수 가 있 게 되었을 때에는 하루 종일 창가에 앉아 가벼운 요람을 흔들며 지냈다. 그녀는 유모를 질투하였다. 목이 마른 어린 것이 파란 핏줄이 내비치는 풍만한 젓 가슴으 로 팔을 뻗쳐 거무스름하고 주름진 젖꼭지를 게걸스러운 입술로 물 때, 그녀는 창백 해지고 몸을 떨면서 이 튼튼하고 조용한 시골 여자를, 그녀에게서 자기 아들을 빼앗고, 게걸 스럽게 빨아 마시고 있는 그 가슴을 때리고 손톱으로 쥐어뜯고 싶은 욕망으로 노려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아기를 아름답게 꾸미고 곱게 치장을 해주기 위해서 여러 가지로 솜씨를 발휘하여 자신이 손수 수를 놓고 싶었다. 아기는 레이스의 안개속에 싸이고 화려한 모자를 썼다. 그녀는 오직 이런 것에 대해서 밖에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배내옷이라든지 턱받 이 혹 은 훌륭하게 공들여 다듬은 어떤 리본 같은 것을 칭찬하기 위해서 이야기를 가로막기 도 했 다. 주위에서 하는 말은 전혀 귀담아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헝겊조각을 오랫동안 돌 려보고 더 잘 보기 위해서 손을 쳐들고 또 돌려보고 하는 것에 넋을 잃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갑자 기 그녀는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이것이 저 애에게 어울릴까요?" 남작과 어머니는 이 열 광적인 애정에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줄리앙은 빽빽 울어대고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이 폭 군의 출현으로 자기의 지배력이 축소되고 그의 습관이 엉망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집안에 서 자기 자리를 빼앗으려고 하는 이 조그마한 인간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질투를 느끼 며 "저 녀석 때문에 정말 견딜수가 없군!"하고 참을성 없이 화를 내면서 쉴 새 없이 이 말을 되풀 이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마침내 자고 있는 어린 것을 쳐다보고 있느라고 요람 곁에 앉아 매일 밤을 지샐 만큼 사랑에 집착되어 있었다. 이 정열적이고 병적인 응시 속에서 비쳐버리고, 전혀 휴식도 취하지 않고, 쉬약해지고, 마르고, 기침까지 하게 되었기 때문에 의사는 그녀를 아이 에게서 떼어놓도록 명령했다. 그녀는 화를 내고 울면서 애원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녀의 간청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 다. 아이는 매일 저녁 유모의 곁에 뉘어졌다. 매일 밤 어머니는 일어나서 맨발로 가서 열쇠 구멍에 귀를 갖다 대고 아이가 조용하게 자고 있는가, 깨지는 않았는가, 필요한 것은 없는가 를 엿듣는 것이었다. 한 번은 그러고 있는 것을 푸르빌르가에서 만찬을 하고 늦게 돌아온 줄리앙에게 들킨 적이 있었다. 그 후부터는 그녀를 침대에 누워 있도록 하기 위해서 억지로 그녀의 방에 열쇠를 채워두었다. 세례식은 8월 말경에 있었다. 남작이 대부가 되고 리종이모가 대모가 되었다. 아이 는 피에 르 시몽 폴이란 이름을 받았는데 보통은 폴이라고 불렀다. 9월 초순에 리종이모가 소리없 이 떠나갔다. 그러나 그녀가 없다는 사실은 그녀가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눈에 띄지 않았다. 어느 날 밤, 저녁식사를 마치자 사제가 나타났다. 그는 마치 마음속에 어떤 비밀이 라도 간 직하고 있는 듯이 거북스러워 보였다. 몇 마디 쓸데없는 말을 한 다음, 그는 남작부인 과 남 작에게 특별한 말씀을 드릴 시간을 잠시 내달라고 청했다. 그들 세 사람은 모두 느린 걸음으로 큰 가로수길의 끝까지 활발하게 이야기를 나 누면서 나아갔다. 그러는 동안 줄리앙은 잔느와 단둘이 남아서 그 비밀에 대해 이상하게 여기 고, 불 안해하고 화를 냈다. 그는 작별인사를 하러 온 사제를 배웅하고 싶어해서 그들은 삼 종기도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는 교회를 향해 함께 사라졌다. 날씨는 선선하고 거의 추울 정도였다. 다른 사람들은 얼마 안 있다가 거실로 들어왔 다. 모 두들 조금 졸고 있을 때 줄리앙이 갑자기 빨개진 얼굴에 분개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문에서 부터 잔느가 거기에 있다는 것도 생각지 않고 그는 장인 장모를 향해 소리 질렀다. "정말 도셨군요, 빌어먹을! 그 계집애에게 2만 프랑이나 내던지려고 하다니!" 아무도 대답 하지 못 할 만큼 놀라움은 컸다. 그는 분노로 고함을 지르면서 말했다. "그렇게 어리석은 줄 은 몰랐 습니다. 우리에게는 한 푼도 남겨주지 않겠다는 거로군요!" 그러자 침착을 되찾은 남작이 그의 말을 중단시키려고 했다. "조용하게! 자네는 아 내 앞에 서 말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그러나 그는 미칠 듯이 화가 나서 발을 굴렀다. " 아무러 면 어떻습니까. 게다가 이 사람도 사정을 잘 알고 있겠지요. 이 사람에게 침해가 되는 약탈 행위니까요." 잔느는 깜짝 놀라서 영문을 몰라 쳐다보았다. 그녀는 더듬거리며 말했 다. "대 체 무슨 일이 있는 거예요?" 그러자 줄리앙은 그녀에게로 몸을 돌리고 기대하고 있던 이득 을 다 같이 횡령당한 회원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녀를 증인으로 끌어들였다. 그는 퉁 명스럽 게, 로잘리를 결혼시키려는 음모와 적어도 2만 프랑은 나가는 바르빌르의 땅을 내주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그녀에게 들려주었다. 그는 거듭 말했다. "어쨌든 당신 부모님은 제정 신들이 아니야. 여보, 미쳐도 단단히 미쳤어! 2만 프랑이라니! 2만 프랑! 어쨌든 머리가 돌 았어! 사 생아에게 2만 프랑이라니!" 잔느는 아무런 감동도 분노도 느끼지 않으면서 듣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침착함 에 놀 라고 있었다. 이제는 자기 아이 일이 아닌 모든 것에는 무관심해진 것이었다. 남작은 기가 막혀서 아무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분노를 터뜨리고 발을 구르면 서 소 리 질렀다. "자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듣자하니 차마 들을 수가 없 군. 그 미혼모에게 지참금을 주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은 누구 탓인가? 그 애는 누구 애인가? 이제 는 버리겠다는 건가!" 줄리앙은 남작의 과격한 태도에 놀라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았 다. 그는 조금조금 침착해진 어조로 다시 말했다. "하지만 천 5백프랑이면 충분하지 않겠습니 까. 그런 계집애들은 모든 결혼하기 전에 아이들이 있어요. 그러니 누구 아이든 상관이 없는 겁니다. 2만 프랑의 값어치가 나가는 농장을 주면 우리에게는 주는 손해 외에는 사람들에게 무 슨 일 이 있었구나 하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된다는 말입니다. 적어도 우리의 이름이나 처지 는 생 각해 주셨어야 했습니다." 줄리앙은 자신의 권리와 억설의 논리에 대해 탁월한 사람처럼 준엄한 목소리로 말 했다. 남작은 이 예기치 않은 논증에 당황해서 입을 크게 벌리고 그 앞에 서 있었다. 그러자 줄리 앙은 자신의 성공을 느끼고 결론을 내렸다. "다행이도 아직 아무것도 이행된 것이 없 습니다. 그 여자애와 결혼하겠다는 청년을 알고 있습니다. 용감한 사람이지요. 그와 함께 상 의하면 모든 것이 잘 해결될 겁니다. 제가 맡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곧바로 밖으로 나갔 다. 아마 논쟁이 더 계속되는 것이 두려웠고, 모든 사람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이 다행스러워 서 그 것을 그녀는 동의로 간주했던 것이다. 그가 사라지자 남작은 기가 막힐 정도로 놀라 몸을 떨면서 소리질렀다. "아! 이건 너무 심 하군, 너무심해!" 그러나 잔느는 아버지의 당황해하는 얼굴을 쳐다보면서 갑자기 웃 어대기 시작했다. 그것은 어떤 우스꽝스러운 것을 보았을 때 그러하던 예전의 그 맑은 웃음 소리였 다. 그녀는 이 말을 되풀이했다. "아버지, 아버지, 그이가 '2만프랑'이라고 말할때의 목소리 를 들으셨지요?" 즐거움도 눈물만큼 빠른 어머니는 사위의 몹시 화가난 얼굴과 분해서 소 리 지 르던 외침, 자기가 유혹한 여자애에게 자기 것도 아닌 돈을 주겠다는 것을 맹령하게 비난하 던 것을 생각하고, 또한 잔느의 기분이 좋은 것이 다행스러워서 눈에 눈물을 가득 담 은 채 온몸이 흔들리 정도로 숨찬 웃음을 웃어댔다. 그러자 이번에는 남작이 전염되어 웃음 을 터 뜨렸다. 세사람은 모두 행복했던 지난날처럼 배가 아플 정도로 즐거워했다. 그들이 약 간 진 정이 되었을 때, 잔느는 이상스러떫다. "이상한 일이에요.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지금은 그이가 남처럼 보여요. 내가 그의 아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아요. 보세요, 내가 그이 의....그 이의.....야비한 짓을 재미있어하지 않아요?" 이유도 알 수 없이 그들은 여전히 웃으 면서 감 동이 되어 서로 포옹하였다. 그러나 이틀 후 점심을 마치고 줄리앙이 말을 타고 나갔 을 때, 스물 두 살에서 스물다섯 살 가량의 키가 큰 젊은이가 소맷부리에 단추를 단 불룩한 소매에 빳빳하게 주름이 선 파란 새 작업복을 입고, 마치 아침부터 거기에 숨어 있었던 것처 럼 엉 큼하게 울타리를 넘어 쿠이야르네의 도랑을 따라 미끄러지듯 들어와 성관을 돌아서 수상한 걸음으로, 여전히 플라타너스 아래에 앉아 있는 남작과 두 부인 곁으로 다가왔다. 그는 그들을 보자 모자를 벗고 거북스러운 표정으로 인사를 하면서 다가왔다. 말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아주 가까이 오자 그는 재빨리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남작 님, 마님 그리고 아씨." 그러나 아무도 그에게 말을 건네지 않자, 그는 "제가 바로 데지레 르 콕입니 다." 하고 자신을 알렸다. 그이름을 듣고도 전혀 짐작되는 것이 없어서 남작이 물었 다. "무 슨 일이오?" 그러자 젊은이는 자기의 사정을 설명해야 할 필요성 앞에서 완전히 당황 했다. 손에 들고 있는 모자와 성관의 지붕 꼭대기를 연달아 내려다보았다 올려다보았다 하면 서 더 듬거리며 말했다. "사제님이 이 일에 관해서 두어 마디 언급을 하셨는데요......." 그 러다가 너 무 거침없이 말하다가 자기의 이해 관계가 위태로워질까 두려워서 입을 다물었다. 남작은 이해가 가지 않아서 다시 말했다. "어떤 일 말인가? 모르겠는걸. 난" 그러자 상대방 이 목소 리를 낮추면서 결심한 듯 말했다. "댁의 하녀.......로잘리......에 관한 일입니다." 잔느는 알아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아기를 팔에 안고 물러갔다. 남작이 "가까이 오게" 하고 말하고 나서 방금 자기 딸이 떠난 의자를 가리켰다. 농부는 "아주 친절하시군요" 하고 중얼거리면서 얼른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자기로서는 더는 아무 할 말이 없는 것처 럼 기 다렸다. 아주 긴 침묵이 흐른 뒤 그는 마침내 결심했다. 그래서 눈을 들어 푸른 하늘 을 쳐다 보았다. "계절로서는 좋은 날씨입니다. 벌써 씨를 다 뿌렸기 때문에 토지에는 별볼일 이 없습 니다만." 그리고 그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남작은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무뚝뚝 한 어조 로 질문을 던졌다. "그래, 자네가 로잘리와 결혼하겠다는 것인가?" 그 사내는 노르망 디 특유 의 신중한 버릇으로 곧 당황해하고 불안스러워했다. 그는 의심하는 태도로 더욱 강한 음성 으로 즉각 응수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요. 경우에 따 라서 말 입니다." 그러나 남작은 이 회피적인 언사에 화가 났다. "제기랄! 솔직하게 대답해보 게. 그것 때문에 온거지, 그래, 안 그래? 그 애를 맞이하겠다는 거야, 안 하겠다는 거야?" 사내는 난처해서 발만 내려다보았다. "사제님이 말씀하신 대로라면 그 여자를 맞아 들이겠 습니다. 그러나 줄리앙씨의 말씀대로라면 그러지 않겠습니다." "줄리앙씨가 자네에게 뭐라고 했는가?" "줄리앙씨는 천 5백 프랑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사제님 은 2만 프랑이라고 하셨지요. 2만프랑이면 좋습니다만, 천 5백 프랑이라면 그러고 싶지 않습 니다." 그러자 안락의자에 깊숙히 파묻혀 있던 남작 부인이 시골뜨기의 걱정하는 태도를 보고 몸을 작게 흔들면서 웃어대기 시작했다. 농부는 왜 이렇게 즐거워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못마땅 한 시선으로 부인을 힐끗 쳐다보았다. 이런 흥정이 거북하게 느껴진 남작이 딸 잘라서 말했다. "사제님에게 나는 자네가 살아있 는 동안은 자네 것이지만 나중에는 아이에게 돌아가는 것으로 바르빌르의 농장을 주 겠다고 했었네. 그것은 2만 프랑의 가치가 있는 것일세. 난 일구이언은 하지 않네. 그럼 됐 나? 할 텐가, 안 할텐가?" 사내는 비굴하고 만족한 표정으로 미소를 짓고는 갑자기 수다스러워졌다. "아! 그 렇다면 싫다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장애가 되는 것은 그것뿐이었습지요. 사제님이 말씀하셨을 때에 는 당장에 좋다고 했습니다. 아무렴요. 그러고 남작님이 약속을 이행해 주셔서 기쁩니 다. 또 남작님께서 그렇게 해주실 것이라고 생각했었지요. 사람끼리 약속을 하면 나중에 언제 나 다 시 만나 그것을 알아보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나 줄리앙씨는 저를 찾아와서 천 5백 프랑밖 에는 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온 것이지요. 이런 말씀드리기는 무엇합니다만 저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 지만 알 아보고 싶었던 겁니다. 돈 셈이 깨끗하면 친구 사이도 깨끗하다고 합니다만,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요, 남작님......." 말을 중단해야만 했다. 남작이 질문을 했기 때문이다. " 언제 결혼을 하겠는가?" 그러자 사내는 갑자기 소심해지면서 몹시 당황해 하였다. 결국 주저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선 간단한 서류를 만드시는 게 어떠실까요?" 이번에는 남작이 고집을 부렸다. "어쨌든 그때까지라도 간단한 종이조각이라도 만들어 주십시오. 그것이 어쨌든 해로운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남작은 결말을 맺으려고 일어섰다. "대답하게. 할 텐가, 안 할 텐 가, 당장. 자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그렇다고 말하게. 다른 지망자가 또 있으니까." 그러자 경쟁 자에 대 한 두려움이 이 교활한 노르망디 사람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는 결단을 내리고 암소 를 매 입한 뒤에 하는 것처럼 손을 내밀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기로 하겠습니다. 남작 님. 끝났 습니다. 절대로 취소하지 않겠습니다." 남작은 승낙했다. 그런 다음 "루디빈느!" 하고 소리쳤 다. 부엌 하녀가 창문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포도주 한 병을 가져오게." 일이 결말이 난 것 을 축하하기 위해 축배를 들었다. 그리고 젊은이는 올 때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갔 다. 줄리앙에게는 이 방문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계약서는 비밀리에 준비되었 다. 그 러고 나서 일단 결혼 공시가 알려지자, 결혼식은 어느 월요일 아침에 거행되었다. 이웃 여자가 신랑 신부의 뒤에서 어린애를 안고 교회로 갔다. 마치 확실한 행운의 약속이 라도 되는 것처럼. 아무도 그 지방에서는 놀라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들 데지레 르콕 을 부러 워하였다. 사람들은 심술궂은 미소를 지으면서 그가 행운을 타고 말했지만, 그 말에는 조금 도 분개하는 빛이 없었다. 줄리앙은 무섭게 한바탕 싸움을 벌였다. 그 일로 해서 장인 장모가 레 푀플에 체 류하는 기간을 단축시켰다. 잔느는 그다지 깊은 슬픔을 느끼지 않고 부모님이 다시 떠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녀에게는 폴만이 마르지 않는 영원한 행복의 샘이 되었던 것이다. 잔느가 해산하고 나서 몸이 완전히 회복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푸르빌르가로 답방을 하기 로 하고, 또 쿠틀리에 후작댁도 방문하기로 결정했다. 줄리앙은 경매에서 새 마차를 한 대 샀다. 포장이 없는 경쾌한 사륜마차로 말이 한 필 밖에는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 달에 두 번은 외출할 수 있었다. 12월의 어느 청명한 날, 그 마차에 말을 매고 노르망디의 평야를 가로질러두 시간이나 길을 달린 후에 산허리에는 나무가 많고 바닥은 농토로된 작은 골짜기 를 내려가기 시작했다. 씨를 뿌린 대지들은 얼마 안가서 초원으로 바뀌었고, 초원은 이 계절 에 키 크고 마른 갈대로 가득한 늪으로 되었다. 갈대의 긴 잎은 노란 리본처럼 바람에 살랑 거리고 있었다. 갑자기 계곡을 급히 돌아가자, 라 브리에트 성관이 모습을 나타냈다. 한쪽은 나무가 많은 비탈길에 등을 기대고 있고, 다른 쪽은 커다란 못 속에 그의 성벽을 온통 담그고 있었 다. 그 못은 계곡의 다른 비탈을 기어오르는, 정면의 키 큰 전나무 숲에서 끝나고 있었다. 안뜰로 들어가려면 아주 오래 된 도개교를 건너서 루이 13세 식의 널따란 정면 현관 을 지 나지 않으면 안 된다. 뜰 앞에는 슬레이트 지붕의 작은 탑이 있고, 벽돌로 문틀이 한 동시대 의 우아한 저택이 있다. 줄리앙은 그 건물의 밑바닥까지 알고 있는 단골 손님이기라도 한 듯이 잔느에게 구 석구석 을 설명해 주었다. 그는 이렇게 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며 그 저택의 아름다움에 황 홀해서 넋을 잃었다. "저 정면 현관을 보구려! 저렇게 저택이 웅장할 수 있을까! 다른 모든 정면은 못으로 나 있고, 그 물이 있는 데까지 내려가는 훌륭한 층계가 있어. 계단 밑에는 배 네척이 매여 있는데, 두 척은 백작의 것이고 두 척은 백작 부인의 것이지. 저기 오른쪽에 포 플러 울 타리가 보이지? 거기가 이 못의 끝이고 거기에서 페캉까지 흘러가는 강이 시작되는 거야. 이 근방에는 물새가 많지. 백작은 거기에서 사냥하는 것을 몹시 좋아해. 이런 것이 진 짜 귀 족의 저택이지." 입구의 문은 열려 있었다. 창백한 백작 부인이 나타나 미소를 머금고 방문객 앞으로 다가 왔다. 그녀는 옛날성주 부인처럼 질질 끌리는 옷을 입고 있었다. 그녀는 이 백작의 저택을 위해 태어난 아름다운 호수의 귀부인과도 같았다. 객실에는 여덟 개의 문이 있었는데, 그 중 의 네 개는 못과 바로 맞은편 비탈로 올라간 어두운 소나무 숲을 향해 열려 있었다. 검은 빛깔을 띤 녹색은 못을 깊게, 무겁게 그리고 음산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바람이 불 때 면 나무들의 가냘픈 소리가 마치 늪의 소리와도 같이 들렸다. 백작 부인은 마치 어린 시절의 친구라도 되듯 잔느의 두 손을 잡아 앉히고 자신은 그 옆에 있는 나지막한 의자에 앉 았다. 한편 5개월 전부터 잊고 있었던 모든 우아함이 되살아난 줄리앙은 부드럽고 정다운 태 도로 이야기하고 미소를 지었다. 백작부인과 줄리앙은 그들의 승마 산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 다. 그녀는 줄리앙이 말에 오르는 태도에 대해 조금 우스워 하면서 그를 '비틀거리는 기사' 라고 부르자, 그도 역시 웃으면서 그녀에게 '용맹스러운 여왕'이라는 별명을 붙였 다. 창문 아 래에서 총소리가 한 방 나자 잔느는 조그맣게 비명을 질렀다. 그것은 백작이 조그만 오리를 쏘아 죽이는 소리였다. 그의 부인이 곧 그를 불렀다. 노젓는 소리, 돌에 배가 부딪치 는 소리 가 들리고 장화를 신은 거대한 백작이 나타났다. 물에 젖은 두 마리의 개를 데리고 왔는데, 개도 주인처럼 불그스름하였다. 개들은 문앞 양탄자 위에 누웠다. 백작은 자기 집이어서인지 전보다 훨씬 편한 것 같았고, 손님들을 보자 몹시 반가 워하였 다. 그는 난로에 장작을 지피게 하고, 마디라산 포도주와 비스켓을 가져오게 했다. 그리고 갑자기 그가 큰소리를 냈다. "물론 저희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시는 거죠. 그렇게 알 겠습니 다." 잔느는 어린애에 대한 생각이 잠시도 떠나지 않아서 사양했다. 백작은 그래도 간청을 했다. 잔느가 끝끝내 응하려고 들지 않자 줄리앙은 갑자기 초조한 몸짓을 보였다. 그 러자 잔 느는 남편의 고약하고 싸우기 좋아하는 기분을 건드릴까 두려워서 내일까지는 폴을 보 지 못 한다는 생각을 하면 괴로웠지만 승낙을 하고 말았다. 오후는 즐거웠다. 먼저 샘터를 보러갔다. 샘은 끊는 물처럼 언제나 움직이는 맑은 못 속의 이끼 낀 바위 밑에서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런 다음에는 배를 타고 마른 갈대 숲에서 잘린 유일한 길을 가로질러 한 바퀴 돌았다. 백작은 코를 바람부는 방향으로 쳐들고 냄새를 맡고 있는 두 마리의 개 사이에 앉아 노를 저었다. 그가 노를 저을 때마다 큰 배가 쳐들려 졌다가 는 앞으로 나아갔다. 잔느는 이따금 찬물 속에 손을 담그고 손가락에서부터 가슴까지 전해 오는 얼음같이 찬 냉기를 즐기고 있었다. 배의 뒷부분에는 줄리앙과 숄을 두른 백작 부인이 더할 나위없이 행복한 사람이 짓는 그런 끊임없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른 갈대 속으로 불어오는 북풍, 얼음같이 긴 전율과 함께 저녁이 왔다. 태양은 전나무 뒤로 가라앉았다. 그리고 새빨갛고 이상한 잔 구름으로 가득한 붉은 하늘은 바라보기 만 해 도 차가운 느낌을 주었다. 거대한 불길이 타고 있는 널따란 객실로 돌아왔다. 열기와 즐거운 느낌이 문에서부터 사람들을 기쁘게 했다. 그러자 백작은 기분이 좋아져서, 역사와 같 은 두 팔로 아내를 잡고, 어린애처럼 자기 입이 있는 데까지 쳐들어올리고는 그녀의 뺨에 만족을 느끼는 선량한 남자의 요란한 키스를 두 번 퍼부었다. 잔느는 미소를 머금고, 그의 수염만 보아도 식인귀라고 할 그 사람 좋은 거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생각했다. '매 일같이 사람들은 모든 사람들을 오해하고 있어.' 그리고 거의 무의식적으로 줄리앙에게로 시선을 옮 기자, 그녀는 문턱에서 무서울 정도로 창백해져서 백작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서 있는 그를 보았다. 불안해진 그녀가 남편 곁으로 다가가 낮은 소리로 물었다. "어디 아프세요? 무슨 일 이에요?" 그는 화가난 어조로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냐. 내버려둬. 추워서 그래." 모 두들 식 당으로 들어가자, 백작은 개들을 데리고 들어가도 좋으냐고 허락을 구했다. 개들은 얼 른 들 어와서 주인의 좌우에 앉았다. 주인은 개들에게 쉴새 없이 먹을 것을 주고 비단같이 부드러 운 긴 귀를 쓰다듬어 주었다. 개들은 머리를 내밀고 꼬리를 흔들었으며 만족한 듯이 가볍게 몸을 떨었다. 저녁식사가 끝난 뒤, 잔느와 줄리앙이 떠날 준비를 하자, 드 푸르빌르씨는 횃불을 켜서 고 기잡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그들을 다시 붙들었다. 백작은 두 사람을 백작부인과 함께 못으 로 내려가는 계단에 세워놓고, 자기는 투망과 활활 타는 횃불을 든 하인과 함께 배에 올랐 다. 밤은 청명했고, 황금을 뿌려놓은 것 같은 하늘 아래는 냉기가 살을 찌르는 듯했 다. 횃불은 이상하게 움직이는 불의 긴 자국을 수면위에 어른거리게 하고 갈대위로 춤추 는 듯 한 어렴풋한 빛을 던졌으며, 전나무 울타리를 환하게 비추었다. 갑자기 배가 돌자 거 대하고 괴상한 그림자가, 어떤 사람의 그림자가 그 환한 숲의 기슭에 우뚝 솟아올랐다. 머리 는 나무 들을 넘어서 하늘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고, 발은 못 속에 잠겨 있었다. 터무니없이 큰 그 존 재는 마치 별을 따려는 것처럼 두 팔을 쳐들었다. 갑자기 그것은, 그 거대한 팔은 위 로 뻗쳐 있다가 다시 떨어졌다. 그러고는 곧 찰싹이는 작은 물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배가 다시 조용하게 방향을 돌리자, 그 불가사의한 환영은 환히 밝아진 숲을 따라 달려가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그것은 보이지 않는 수평선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러고 는 갑 자기 이번에는 좀 작은 그러나 더 분명하게 이상한 몸짓을 하면서 성관의 현관위에 다 시 나 타났다. 그리고 백작의 굵은 목소리가 외쳤다. '질베르트, 여덟 마리 잡았어!' 노가 물결을 때 렸다. 거대한 그림자는 이제는 성벽 위에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으나 키도 몸집도 줄어들었고, 머리는 밑으로 내려가고 몸은 여위어가는 것 같았다. 드 푸르빌르씨가 여전히 횃불을 들고 있는 하인을 데리고 돌층계로 다시 올라왔을 때, 그 그림자는 백작의 몸 집만큼 축소되었고 또한 그의 모든 행동을 따라하고 있었다. 백작의 그물 속에서는 펄떡펄떡 뛰는 여덟마리의 커다란 물고기가 들어있었다. 잔느와 줄리앙이 그들이 빌려준 망토와 담요로 몸을 완전히 감싸고 길을 떠날 때, 잔느는 거의 무심하게 말했다. "그 거인은 정말 선량한 분이에요!" 그러자 마차를 몰고 있던 줄리앙 이 대뜸 대답했다. "그렇기는 해. 하지만 남 앞에서 언제나 지나친 행동을 한단 말이 야." 일주일후에는 이 지방의 제일가는 귀족 집안이라고 알려져 있는 쿠틀리에가를 방문 했다. 레미닐의 영지는 카니의 큰 부락과 인접해 있었다. 루이 14세 때 지어진 이 새 성관은 벽으 로 둘러싸인 제복을 입은 하인들이 장엄한 방안으로 방문객들을 안내했다. 방의 한가 운데에 는 일종의 원주가 세브르산의 거대한 술잔을 받치고 있고, 받침돌 속에는 군주로부터 의 이 선물을 레오폴 에르베 조세프 게르메 드 바르느빌르 드 롤르보스크 드 쿠틀리에 후 작에게 준다는 국왕의 친서가 수정판 속에 들어 있었다. 잔느와 줄리앙이 이 국왕의 선물을 보고 있을 때 후작 부처가 들어왔다. 부인은 얼굴에 분을 바르고, 억지로 친절한 체하면서 겸손해 보이고 싶은 욕심으로 일부러 꾸민 듯한 부자 연스러운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주인은 흰 머리를 똑바로 빗어올린 뚱뚱한 남자였는 데, 그 의 몸짓이나 음성, 태도 모두에게 자기의 지위를 나타내는 거만한 태도가 드러나 보였 다. 이 사람들은 정신이나 감정, 말들에 있어 언제나 죽마를 타고 있는 것같이 예절만 찾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자기들만 이야기하고 무관심한 모 습으로 미소지었으며 부근의 소귀족들을 언제나 공손하게 접대한다는, 자기들 가문에 부여된 임무 를 수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잔느와 줄리앙은 어찌할 바를 몰라서 환심을 사려고 노력 도 해보았고, 더 머물러 있기도 거북하고 그렇다고 물러가는 것도 부적당했다. 그런데 후작 부인 자신이, 마치 해고를 하는 예의바른 여왕처럼 적당한 곳에서 이야기를 중단함 으로써 방문은 자연스럽고도 간단하게 끝이 났다. 돌아오면서 줄리앙이 말했다. "당신만 괜찮다면 방문은 이 정도에서 끝내기로 합시 다. 나 는 푸르빌르가로써 충분해." 잔느도 그의 의견과 같았다. 한 해의 밑바닥에 있는 어 두운 구 멍 같은 이 침침한 달, 12월이 천천히 지나갔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칩거의 생활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러나 잔느는 언제나 폴에게 정신이 팔려서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줄 리앙은 불안스럽고 못마땅한 시선으로 폴을 곁눈질하였다. 가끔 어머니가 아기를 품에 안고 여자들 이 자식에 대해 갖는 그런 미칠듯한 애정으로 애무를 할 때면, 그녀는 아기를 아버 지에게 내밀면서 이렇게 그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아기에게 입 좀 맞추어주세요. 당신은 아 이를 좋 아하지 않는 것 같군요." 그러면 줄리앙은 꼼지락거리고 흔드는 그작은 손에 닿지 않도록 하려고 자기의 온몸을 둥그렇게 구부리면서 어린애의 매끈한 이마에 싫은 표정으로 입 술 끝 을 가볍게 대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는 급히 나가버렸다. 어떤 혐오감이 그를 내모 는 것 같았다. 촌장과 의사와 사제는 이따금 와서 저녁식사를 했다. 때로는 푸르빌르 부처와 도 했 는데, 그들과는 점점 더 친밀한 교제가 이루어졌다. 백작은 폴을 몹시 좋아하는 것 같았다. 방문하는 동안 줄곧 그를 무릎위에 올려놓기 도 하 고, 또는 오후 내내 안고 있을 때도 있었다. 그는 거인 같은 큰 손으로 섬세하게 아 이를 다 루었으며 그의 긴 수염 끝으로 아이의 코끝을 간지럽히고, 어머니처럼 아이에게 귀여 워 못 견디겠다는 듯이 키스를 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기의 결혼 생활에 아이가 없다는 것 을 늘 괴로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3월은 청명하고 건조했으며 거의 온화한 날씨였다. 질베르트 백작 부인은 넷이서 함 께 승 마 산책을 하는 것에 관해 다시 이야기를 꺼냈다. 긴 저녁, 긴 밤, 늘 비슷하고 단조 로운 긴 하루하루에 싫증이 난 잔느는 이계획에 몹시 기뻐하면서 승낙하였다. 일주일 동안 그녀는 승마복을 만드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러고 나서 그들 네 사람은 승마 산책을 시작하였다. 그들은 언제나 두 사람씩 짝 을 지 어 갔다. 백작부인과 줄리앙이 앞서서 가고 백작과 잔느는 백 보쯤 떨어진 뒤에서 달렸다. 뒤의 사람들은 마치 두 사람의 친구처럼 조용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올바른 정신 과 순박한 마음의 접촉으로 친구가 되었기 때문에 앞서 가는 사람들은 자주 낮은 소리 로 이 야기를 했고 이따금 격렬한 웃음을 터뜨렸으며, 갑자기 입으로 말하지 못하는 것을 눈으로 말하는 것처럼 서로를 쳐다보곤 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더 멀리, 아주 멀리 가고 싶은 욕망, 달아나고 싶은 욕망에 떼밀려 갑자기 전속력으로 달리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에 질베르트는 신경질적이 되는 것 같았다. 그녀의 발랄한 목소리는 미풍 에 실 려 이따금 뒤쳐진 두 사람에게까지 들려왔다. 그러자 백작은 미소를 지으면서 잔느에 게 말 했다. "내 아내는 매일 기분이 좋지 않답니다." 어느 날 저녁 돌아오면서 백작 부인 은 자기 의 암말을 부추기며 박차를 가하였고, 그러다가 갑자기 고삐를 잡아당기곤 하였다. 그러자 줄리앙이 몇번이나 그녀에게 이렇게 거푸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심하십시오. 조 심하시 래두요. 그러다가는 어디로 가시게 될지 모릅니다." 그녀가 즉각 대꾸를 했다. "할 수 없지 요. 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예요." 그 또렷한 말은 마치 공중에 걸려 있는 것처럼 들판에 울릴 정도로 그렇게 분명하고 딱딱한 어조였다. 말은 뒷발로 서서 땅을 걷어차고, 거품을 내뿜었다. 갑자기 불안해진 백작이 크게 소리를 질렀다. "조심해요, 질베르트!" 그러자 도전이나 하는 것처럼 그 어느 것으로도 제지 시킬 수 없는 여자의 신경질적인 발작으로 말의 두 귀 사이를 난폭하게 채찍으로 후려갈겼다. 미친 듯이 날뛰며 일어선 말은 앞다리로 허공을 차고는 다시 발을 내리치면서 무서운 기세 로 있 는 힘을 다해 들판을 달려갔다. 말은 우선 초원을 뛰어넘고 그 다음에는 경작지를 가 로질러 달려갔으며, 비옥하고 습한 땅을 먼지를 일으키며 말과 여자를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그렇 게 빨리 달려갔다. 줄리앙은 아연 실색해서 그 자리에 선 채로 "부인, 부인!"하고 절망적으로 불렀다. 그러나 백작은 뭐라고 투덜거리더니 묵직한 말의 목덜미에 허리를 구부리고 자기의 온몸으로 말을 밀어 앞으로 내몰았다. 그러한 자세로 말을 달리게 하면서 목소리와 몸짓과 박차로 말 을 흥 분시키고 잡아 끌고 미칠지경으로 만들어, 그 거대한 기수는 자기의 넓적다리에 그 묵직한 말을끼고 날아오를 듯이 말을 들어올렸다. 그들은 앞으로 곧장 달려들면서 어마어마한 속력 으로 달려갔다. 잔느는 저 멀리 아내와 남편의 두 그림자가, 마치 두 마리의 새가 서 로 쫓고 서로 놓치고 하면서 지평선으로 사라지는 것처럼 달아나고, 멀어지고, 작아지고, 눈 에 띄지 않게 사리지는 것을 보았다. 그러자 줄리앙이 여전히 보통 걸음으로 다가와서 화가난 표정 으로 중얼거렸다. "오늘은 저 여자 머리가 돈 것 같군." 두 사람은 모두, 이제는 들 판의 기 복 속으로 깊이 들어간 친구들 뒤를 따라 달렸다. 15분쯤 지나서 그들의 백작부처가 돌아오 는 것을 보았다 얼마 안 있어 그들은 서로 합류했다. 백작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땀을 흘렸으며, 웃으면서 만족해하고 의기양양해서 자기 의 당해 낼 수 없는 완력으로 떨고 있는 아내의 말을 잡고 있었다. 부인은 고통스럽고 경련 이 이는 얼굴로 창백해 있었다. 그녀는 정신을 잃기라도 할 것처럼 남편의 어깨에 한 손을 짚고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잔느는 그날 백작이 미칠 듯이 아내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고 나서 백작부 인은 그 후 한 달동안 그런적이 없을 만큼 명랑해 보였다. 그녀는 전에 보다 더 자주 레푀 플로 와서 쉴 새 없이 웃었고, 끓어오르는 애정으로 잔느를 포옹하곤 하였다. 마치 신 비로운 황홀감이 그녀의 생활에 내려온 것 같았다. 그녀의 남편도 역시 아주 행복해서 잠시도 아내 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고, 열정이 더 두터워져 줄곧 그녀의 손이나 옷을 만지려고 하 였다. 어느날 저녁 백작이 잔느에게 말했다. "우린 지금 행복에 잠겨 있답니다. 지금까지 질베르 트가 이렇게 상냥해 본적은 없었습니다. 이제는 기분이 나쁘다든지 화를 내지도 않아 요. 나 는 그녀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지금까지 나는 그것에 확신이 없었거 든요." 줄리앙도 역시 변한 것 같았다. 전보다 더 명랑했고 짜증도 부리지 않았다. 마치 두 집안의 우정이 각 가정에 평화와 기쁨을 가져다 준 것 같았다. 봄은 이상하게 빨리오고 따뜻 했다. 온화한 아침부터 조용하고 포근한 저녁까지, 태양은 대지의 온 표면에 싹을 트게 했 다. 그것은 모든 싹들이 동시에 돋아나는 갑작스럽고 힘찬 탄생이었고, 세상이 다시 젊 어지는 것을 믿게 하는 특권이 있는 해에 이따금 자연이 보여주는 재생을 위한 열정이었고, 억제할 수 없는 수액의 압력인 것이다. 잔느는 이 생명의 발효에 막연히 마음이 설레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풀속에 있는 작은 꽃앞에서도 갑자기 권태를 느낀다거나, 감미로운 우수에 빠진다거나, 부드러운 공상에 잠겨 시간을 보내곤 하였다. 그러고는 자기의 사랑의 초기의 감동어린 추억에 사로잡히는 것을 느꼈다. 그렇가도 줄리앙에 대한 사랑이 다시 그녀의 가슴속에 살아나는 것은 아니었 다. 그 것은 끝났다. 영원히 끝나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온몸이 미풍의 애무를 받고 봄의 향 기가 스며들어, 어떤 보이지 않는 부드러운 유혹에 부추김을 받은 것처럼 혼란에 빠지 는 것 이었다. 그녀는 혼자서 따뜻한 햇볕 아래 몸을 맡기고, 아무런 생각도 일깨우지않는 막연하 고 차 분한 느낌과 기쁨에 마음껏 잠겨 있기를 좋아했다. 어느날 아침, 그녀가 이렇게 나른 한 상태 에 빠져 있을 때, 하나의 환영이 그녀를 스쳐갔다. 그것은 에트르타 부근의 작은 숲속 에 있 던, 검푸른 나뭇잎들의 한가운데로 햇볕이 들던 그 동굴의 재빠른 환영이었다. 거기서 처음 으로 그녀는 그때 자기를 사랑하고 있던 그 젊은 남자 곁에서 자기 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 던 것이다. 거기에서 처음으로 그는 자기 마음속에 있는 수줍은 욕망을 더듬거리며 말했었 다. 그리고 또한 그녀가 갑자기 자기의 희망으로 빛나는 미래에 닿은 것같이 생각되었 던 것 도 바로 거기에서였다. 그녀는 그 숲을 다시 보고 싶었다. 그 장소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자기 인생의 운 행에 있 어서 그 무엇을 변하게 할지도 모른다는 일종의 감상적이고 미신적인 순례를 하고 싶 었다. 줄리앙은 새벽부터 떠나고 없었는데, 그녀는 그가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그녀는 마 르탱의 그 작은 흰 말에 안장을 얹게 했는데, 요즘은 가끔이 말을 타곤 했다. 그녀는 출발했 다. 어 느 곳에도 무엇하나 움직이지 않고, 풀 한 포기, 잎사귀 하나 움직이지 않는 그런 조 용한 날 이었다. 마치 바람이 죽어버린 듯이, 모든 것은 이 세상 끝까지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았다. 벌레들조차도 사라져버린 것 같았다. 타는듯한 지고의 정밀이 태양으로부터 황금빛 수증기가 되어 눈에 뜨지 않게 내려오 고 있 었다. 잔느는 행복하여 몸을 흔들면서 조롱말의 보통 걸음으로 나아갔다. 가끔 그녀는 눈을 들어 아주 자잘한 흰 구름을 올려다보았다. 푸른 하늘 한가운데에 홀로 높이 잊혀진 듯이 떠있는 수증기의 뭉치, 한줌의 솜뭉치 같은 구름이었다. 그녀는 에트르타의 문이라고 부르는 절벽의 그 커다란 아치 사이의 바다로 빠지는 계곡으 로 내려갔다. 그리고 아주 가만히 숲에 닿았다. 아직 가녀린 푸른 잎사귀들 사이로 빛살이 비오듯 내리비치고 있었다. 그녀는 그 장소를 찾지 못하고 좁은 길을 헤매었다. 갑자 기 기다 란 길을 가로지르자, 그녀는 그 길의 맨 끄트머리에서 안장이 얹힌 두 마리의 말이 나무에 매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그 말들을 곧 알아보았다. 그것은 질베르트와 줄리 앙의 말 이었다. 고독이 그녀를 짓누르기 시작한 터이라, 그녀는 이 예기치 않은 만남이 기뻤 다. 그 녀는 빨리 말을 몰았다. 이런 긴 머무름에 익숙해진 듯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있는 두 마리의 말들이 있는 곳에 이르자, 그녀는 불러 보았다.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부인의 장갑 한 짝과 두 개의 채찍이 짓이겨진 잔대 위에 떨어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들이 여기에 앉아 있다가 말을 남 겨두고 멀리 간 것 같았다. 그녀는 두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설레는 마음으 로 15 분, 20분을 기다렸다. 그녀가 말에서 내려 나무 줄기에 기대에 앉아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에 두 마리의 작은 새가 그녀를 보지 못하고 그녀의 아주 가까이에 있는 풀 속으로 내려 왔다. 그 중의 한 마리가 움직이며 날개를 쳐들고 흔들면서 다른 새의 주위를 깡총거리며 뛰 었다. 그리고 머리를 까닥거리고 짹짹거리더니, 갑자기 그들은 교미를 하였다. 잔느는 이런 것을 모르고 있었던 사람처럼 깜짝 놀랐다. 그러고 나서는 생각했다. '그 래, 봄이지.' 그러자 어떤 다른 생각이, 어떤 의혹이 그녀에게 떠올랐다. 그녀는 다시 그 장갑 과 채찍과 버려져 있는 두 마리의 말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갑자기 도망치고 싶은 억제 할 수 없는 충동으로 안장에 뛰어올랐다. 레 푀플로 돌아오면서 그녀는 지금 질주하고 있다. 그녀의 머리는 활동을 하고, 추리를 하고, 사실들을 연결시키고, 상황들을 접근시키 켰다. 왜 좀더 일찍 짐작하지 못했을까? 왜 아무것도 알지 못했는가? 줄리앙이 집을 비우는 것 과 예 전의 멋을 다시 부리기 시작한 것과 그리고 그의 기분이 좋아졌다는 것을 왜 알아채지 못했 단 말인가? 그녀는 또한 질베르트의 신경질적인 짜증이라든지, 그녀의 지나친 애무 그리고 얼마 전부터 백작이 흐뭇해하던, 그녀가 갖고 있는 일종의 그 자기 만족에 대해 생각 해 보 았다. 잔느는 다시 말을 보통 걸음으로 가게 했다. 신중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었는데, 말 의 빠른 속도가 그녀의 생각을 어지럽게 했기 때문이다. 처음의 감정이 지나가자, 그녀의 마음 은 다 시 거의 평온해지고, 질투심과 증오심은 없어졌으나 경멸감이 치밀어올랐다. 그녀는 거의 줄 리앙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하는 짓은 아무것도 그녀를 놀라게 하지 못했 다. 그 러나 백작부인의, 자기 친구의 이중의 배신은 그녀를 격분시켰다. 사람들은 모두 그렇 게 신 용할 수가 없고 거짓말쟁이며 허위적이었다. 눈물이 그녀의 눈에 괴었다. 사람은 가끔 죽음 과 슬픔으로 환각에도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것도 모른 체하기로, 예사로 운 정 에는 자기 영혼을 닫아버리리로, 오직 폴과 양친만을 사랑하기로, 그리고 다른 사람들 에 대 해서는 평온한 얼굴로 참고 견디리라 결심하였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그녀는 그녀의 아들에 게 달려들어가 자기 방으로 데리고 와서는 한 시간 동안이나 줄곧 정신없이 아이에게 키스 를 퍼부었다. 줄리앙은 저녁식사를 하러 돌아왔는데, 즐겁게 미소를 지으면서도 의도 적으로 싹싹하게 굴었다. 그가 "그래, 아버님과 어머님은 올해에는 안 오시는 거요?" 하고 물 었다. 그녀는 이 친절이 너무도 고마워서 숲에서 본 것을 거의 용서해 주었다. 그리고 갑자기 폴 다음으로 가장 사랑하는 두 분을 빨리 보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혀, 그녀 는 밤 을 세워가며 도착을 서두르게 하는 편지를 썼다. 양친은 5월 20일 예정으로 오겠다는 답장 을 보냈다. 지금은 5월 7일이었다. 그녀는 날로 더해가는 초조감으로 양친을 기다렸 다. 자식 으로서의 정이외에 자기의 마음을 정직한 마음에 문질러 깨끗이 닦고 싶은 새로운 욕구를 느꼈다. 생활이나 모든 행동, 모든 생각, 모든 욕망이 언제나 옳았고 모든 치욕스러 운 행위 에 손상되지 않은 순수한 사람들과 마음을 열과 이야기 하고 싶었다. 지금 그녀가 느끼고 있는 것은 그런 모든 쇠약한 양심 한가운데에 있는 자기의 올바 른 양 심의 고독 같은 것이었다. 그녀가 갑자기 감정을 속일줄 알게 되었다 해도, 또 손을 내밀고 입술에 미소를 머금고 백작 부인을 맞아들인다 하더라도, 인간에 대한 공허와 경멸의 느낌 은 점점 더 커져서 그녀를 에워싸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매일매일 그 지방의 시시한 소문 들은 그녀의 영혼에, 인간에 대한 더욱 큰 혐오와 더욱 강한 경멸을 불어넣어 주었다. 쿠이야르의 딸이 아이를 가져서 결혼식을 올리려고 하고 있다. 마르탱의 하녀는 고 아인데 임신을 했다. 열다섯 살인 이웃의 여자애도 임신을 했다. 열다섯 살인 이웃의 여자애 도 임신 을 했다. 절름발이에다 불결하고 볼품없는 여자, 그녀의 더러움이 너무도 지독해서 '똥'이 라 고 불리는 과부도 임신을 했다. 끊임없이 임신을 한 소식을 알게 되거나, 아니면 어떤 처녀 라든지 결혼을 하여 가정의 어머니가 된 농부의 아내라든지 혹은 존경을 받는 부유한 농부 가 엉뚱한 행위를 저질렀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이 뜨거운 봄은 식물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도 혈기를 움직이게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잔느의 꺼져버린 관능은 이제는 동요되지 않았고, 상처입은 마음, 감상적인 영혼만이 결실을 맺게 하는 훈훈한 가운데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녀는 공상에 잠겨 욕망을 느끼지 않 고 흥 분했으며, 꿈에 대해서는 열정적이면서도 육체적인 욕구에 있어서는 죽어버렸기 때문 에 이 런 추악한 수욕에는 증오에 넘치는 혐오감으로 가득차 놀라워하고 있었다. 인간들의 이런 결합은 자연을 거스르는 것처럼 이제는 그녀를 분개시켰다. 만약 그녀가 질베르트에게 원한을 품고 있다면, 자기 남편을 빼앗았다고 해서가 아니라 그녀 역시 이 일 반적인 악덕의 수렁 속에 빠져있다는 사실 그 자체에 있는 것이다. 그녀는 지속한 본능의 지배를 받는 촌스러운 족속은 결코 아니다. 그런데 어째서 그녀는 그런 짐승 같은 사 람들과 똑같은 식으로 빠져들어갈 수 있단 말인가? 양친이 도착하기로 되어 있는 바로 그날, 줄리앙은 마치 아주 자연스럽고도 우스운 것이 라도 되는 것처럼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그것이 그녀에게 혐오감을 되 살아나 게 하였다. 어제 빵 굽는 날도 아닌데 화덕 속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서, 빵집 주인이 도둑 고양이를 붙들 생각으로 본즉 '빵을 화덕 속에 넣고 있는 것이 아닌' 자기 아내를 발견했 다 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빵집 주인이 뚜껑을 닫아버렸기 때문에 그들은 그 안에서 질식할 뻔했지. 그런데 빵 장수의 아이가 이웃 사람들에게 알렸다는 거야. 그 아 이는 자기 어머니가 대장장이와 함께 들어간 것을 보았기 때문에 그런 거야." 줄리앙은 웃으면서 되풀이했다. "그 익살꾼들이 우리에게 사랑의 빵을 먹이려고 한 거야. 이거야말로 라 퐁텐느의 살아 있는 우화지." 잔느는 빵에 손을 댈 엄두가 나지 않았 다. 역마 차가 층계 앞에 멈추고 남작의 행복스러워 보이는 얼굴이 창문에 나타나자, 젊은 여자 의 영 혼과 가슴속에는 그녀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깊은 감동과 소란스러운 애정의 충동이 일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을 때에는 깜짝 놀라 거의 기절할 정도였다. 남 작 부인 은 겨울의 이 여섯 달 동안에 십년이나 늙어버린 것이었다. 축 늘어진 그 굉장한 볼은 피부 가 부풀어오른 것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눈은 흐릿해진 것 같았다. 두 팔 밑으로 받쳐주 지 않으면 이제는 움직이지도 못했다. 괴롭게 쉬는 숨은 휘파람 소리를 냈다. 그리고 너무도 힘들어 보여서 곁에 있는 사람도 고통스럽고 거북한 느낌을 갖게 했다. 남작은 매일 보아왔 기 때문에 이런 쇠퇴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부인이 늘 숨이 차다는 것, 점점 몸이 무거워 진다는 것을 한탄할 때면, 그는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안 그래, 여보, 당신이 언제 나 그렇 다는 것을 알고 있소." 잔느는 양친을 방에 모셔다 드리고 나서, 자기 방으로 돌아 와 놀란 나머지 정신을 잃고 울었다. 그러고 나서는 아버지를 만나러 가서 가슴에 뛰어들며 여전히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말했다. "아아! 어쩌면 어머니가 저렇게 변하셨지요! 어머니가 왜 이 리 되셨는지 말해주세요. 왜 그렇죠? 아버지는 매우 놀라서 대답했다. "그렇게 생각하 니? 왜 그렇게 생각했지? 안 그래. 네 어머니 곁을 한시도 떠난적이 없다. 단언하지만, 어머 니는 나 쁘다고 생각지 않는다. 예전 그대로야." 그날 밤 줄리앙은 아내에게 말했다. "당신 어머니는 건강이 점점 나빠지시는군. 병 이 나신 것 같아." 그 말에 잔느가 울음을 터뜨리자 그는 신경질을 냈다. "자, 이런 회복할 가망이 없다고 말하지는 않았어. 당신은 언제나 터무니없이 과장하려 든단 말이야. 어머니가 변하셨 다는 것뿐이야. 그건 나이 탓이야." 일주일쯤 지나자, 잔느는 어머니의 새로운 모습에 익숙해져서 더 이상 거기에 대 해서는 생각지 않게 되었다. 어쩌면 일종의 이기적인 본능으로, 영혼의 평온을 바라는 자연적 인 욕 구로 해서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두려움이나 근심을 언제나 물리치고 억누르는 것 과 마 찬가지로 자기의 두려움을 억제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남작부인은 걸을 수가 없어서 매일 30분밖에는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단 한번 ' 자기의' 산책코스를 마치고 나면 더는 움직일 수가 없어서 '자기의' 벤치에 앉게 해달라고 청했다. 그리고 산책을 끝까지 마치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 쉬자꾸 나. 오늘은 내비대증이 다리를 못 쓰게 만드는 구나." 그녀는 이제 거의 소리 내어 웃지도 않았다. 작년 같으면 온통 몸을 흔들면서 웃어 댈 일 에도 그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그러나 시력은 아직도 뛰어났기 때문에 <코린느>나 라마 르틴느의 <명상시집>같은 것을 다시 읽으면서 소일을 했다. 그러고 나서는 '추억의' 서랍을 가져오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무릎 위에다 자기 마음에 다정한 낡은 편지들 을 쏟 아놓고, 서랍은 자기 곁에 있는 의자 위에 놓아두고 하나하나 천천히 다시 읽은 후에 자기 의 '유물들'을 하나씩 그 속에 다시 넣는 것이었다. 그리고 혼자, 마침 혼자 있을 때 에는, 사 랑하는 고인의 머리털에 남몰래 입을 맞추듯이 그 중의 어떤 편지에 입을 맞추는 것이 었다. 이따금 잔느가 불쑥 들어올 때면 울고 있는, 슬픈 눈물을 흘리고 있는 어머니를 보 곤 하 였다. 그녀가 "왜 그러세요, 어머니?" 하고 소리치면, 남작 부인은 긴 한숨을 내쉰 후에 이 렇게 대답하였다. "내 유물들 때문에 그런단다. 그렇게도 좋았던, 그러나 끝나버린 것들에 감동이 되어서 말이야! 게다가 이제 거의 생각나지도 않는 사람들이 문득 생각나기도 하고, 그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같이 생각되어서 어마어마한 일이 생긴단 다. 이 다음에 너도 그것을 알게 될 거야." 남작이 뜻밖에 이런 우울한 순간에 나타나서 중얼거렸다. "잔느, 얘야, 부탁이나 네 편지 들을 태워버려라, 편지란 편지는 모두. 네 어머니 것이든 내 것이든 모두 말이야. 늙 어서 자 기의 젊은 시절에 코를 처박고 있는 것처럼 끔찍한 것은 없단다." 그러나 잔느 역시 자기의 편지들을 간수해 두었고, 자기의 '유물상자'도 준비해 두었다. 그녀는 어머니와는 모든 면 에 있어서 다르면서도 명상적이고 감상적인 성격이라는 일종의 유전적 본능에는 따르 고 있 었다. 남작은 며칠 후에 어떤 일로 집을 비우지 않으면 안 되어서 떠나갔다. 계절은 화창했다. 기분 좋은 밤, 별들이 총총한 밤이 조용한 저녁에 뒤이어 오고, 청명한 저녁은 빛나는 낮 뒤에 오고, 빛나는 낮은 싱싱한 여명에 뒤이어 왔다. 어머니는 곧 건강이 좋아졌다. 줄리앙의 연애와 질베르트의 배신을 잊어버린 잔느는 거의 완전한 행복함을 느끼 고 있었다. 온 들판은 꽃이 피고 향기로웠다. 언제나 평화로운 광막한 바다는 태양 아 래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반짝이고 있었다. 잔느는 어느 날 오후, 폴을 팔에 안고 들로 나갔다. 그녀는 자기 아들과 길가에 잔뜩 꽃이 핀 풀을 번갈아 바라보면서 무한한 행복에 감동이 되었다. 그리고 이따금 아이에게 키스를 하고 열정적으로 껴안았다. 들의 향긋한 냄새가 코를 스치고 지나가면 그녀는 끝없는 편안 속에 어리둥절하고 무기력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아들의 장래를 꿈꾸었다. 이 아이는 무엇이 될까? 때로는 명성이 높고 권세가 있는 위대한 사람이 되었으면 하고 바랐다. 또 때 로는 평범하게 자기 곁에 있으면서 헌신적이고 상냥하고, 언제나 어머니를 위해 두 팔을 벌리고 있는 것이 낫겠다고도 생각했다. 그녀가 어머니로서의 이기적인 마음으로 아이를 사랑할 때면 세계적인 어떤 인물이 되었으면 하고 열망했다. 그녀는 어떤 누군가가 그녀를 불렀다. 그녀가 머리를 쳐들었다. 마리우스가 달려오고 있었 다. 어떤 손님이 기다리고 있나보다 생각하고, 방해를 받는 것이 못마땅해 몸을 일 으켰다. 그러나 소년은 전속력으로 달려와 가까이 와서 소리를 질렀다. "마님, 남작 부인이 위독하 세요." 잔느는 등에 식은 땀이 죽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정신없이 큰 걸 음으로 떠났다. 플라타너스 밑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것이 멀리에서도 보였다. 그녀가 뛰어들었 다. 모 여 있던 사람들이 길을 비켜주자 두 개의 베개로 머리를 받치고 땅에 누워 있는 어 머니가 보였다. 얼굴은 온통 새카맣고 눈은 감겨 있었으며, 20년 전부터 헐떡이고 있었던 가슴은 이제 움직이지 않았다. 유모가 잔느의 팔에서 아이를 데려갔다. 잔느가 무섭게 다그쳤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와 넘어지셨죠? 의사를 불러와야겠 어요." 그리고 몸을 돌리자, 어떻게 알았는지 예고를 받고 온 사제가 눈에 띄었다. 그는 법의 의 소 맷자락을 걷어올리고 서둘러 보살피고 있었다. 그러나 식초도, 오 드 콜로뉴도, 마사 지도 효 과가 없었다. "옷을 벗기고 눕혀 드려야겠는데" 하고 사제가 말했다. 소작인 조세프 쿠이야 르도 시몽 영감과 루디빈느와 함께 거기에 있었다. 피코 신부의 도움으로 그들은 남 작부인 을 데려가려고 했다. 그러나 들어올리면 머리가 뒤로 처지고, 그들이 잡고 있던 옷이 찢어졌 다. 그만큼 이 뚱뚱한 몸은 무거웠고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그러자 잔느는 무서움에 울부짖 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거대하고 맥없는 몸을 땅에 다시 내려놓았다. 거실의 안락의자 를 하 나가져와야만 했다. 거기에 앉히고 겨우 들어올릴수가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층계 를 애써 올라가, 다음에는 계단을 그러고는 침실에 이르러 부인을 침대 위에 눕혔다. 부엌 하 녀가 부 인의 옷을 다 벗기기도 전에 때마침 당튀 과부가 나타났다. 하인들의 말에 의하면 그녀는 사제와 마찬가지로 '죽음의 냄새를 맡고' 오기라도 한 것처럼 느닷없이 들이닥친 것이 다. 조세프 쿠이야르는 의사에게 알리기 우해 전속력으로 출발했다. 그리고 사제가 막 성유를 가지러 가려고 하자, 간호인인 과부가 그의 귀에대고 속삭였다. "그대로 앉아 계십시 오, 사 제님. 이런 일에 대해서는 훤히 알고 있지요. 돌아가셨습니다." 잔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무 엇을 해보아야 할지, 어떤 약을 써야 할지 몰라 미친 사람처럼 애원했다. 신부는 어쨌 든 사 죄 선언을 했다. 두 시간 동안 사람들은 생명이 없는 이 보랏빛 육체 곁에서 기다리고 있었 다. 이제는 무릎을 꿇고, 잔느는 괴로움과 고통으로 가슴을 쥐어뜯으면서 흐느껴 울고 있었 다. 문이 열리고 의사가 나타났을 때, 그녀는 구원과 위안과 희망이 들어오는 것을 보 는 듯 했다. 그래서 그녀는 의사에게로 달려들어 이 사건에 대해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것 을 더 듬거리며 말했다. "어머니는 여느 날처럼 산책을 했습니다.......건강하셨어요...... 대단히 좋을 정도로......점심에는 수프와 계란 두 개를 잡수셨어요.......갑자기 쓰러지신 거예 요........보시다 시피 이렇게 새까매지셨어요........그러고는 더는 움직이지를 못하세요.....깨어나 시게 하려고 온갖 짓을.......죄다..........해보았습니다만......."그녀는, 간호인이 의사에게 끝 났다고, 완전히 끝 났다는 뜻을 알리기 위해 조심스러운 몸짓을 하는 것을 보자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이해하 려 들지 않고 그녀는 불안스럽게 거듭 물었다. "위독하신가요? 위독하다고 생각하세요 ?" 마 침내 의사가 말했다. "두려운 일입니다만........아무래도........가망이 없으신 것 같군요. 용기를 가지세요, 큰 용기를." 잔느는 두 팔을 벌리고 어머니에게 몸을 던졌다. 줄리앙이 돌 아왔다. 그는 고통스러운 비명도 절망도 드러내지 않고, 분명 난처한 듯이, 어리둥절한 표정으 로 서 있었다. 너무도 갑작스럽게 당한 일이라 이런 경우에 어울리는 얼굴과 태도를 단번에 지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가 중얼거렸다. "이렇게 될 줄 알았지. 마지막일 것이라고 분 명 느꼈 었지." 그러고 나서는 손수건을 꺼내 눈을 닦고, 무릎을 꿇고 성호를 그었으며, 무슨 말인지 를 중얼거렸다. 그리고 일어서면서 아내도 또한 일으키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두 팔로 시 신을 움켜잡고, 거의 그위에 눕다시피 하며 키스를 했다. 그녀를 데려가야만 했다. 그녀는 미친 것 같았다. 한 시간 후에 그녀가 다시 오는 것을 내버려두었다. 어떠한 희망도 존재하지 않았 다. 방은 이제 임시 시체 안치소로 개조되어 있었다. 줄리앙과 사제는 창가에서 낮은 소리로 이야기 를 했다. 당튀 과부는 안락의자에 앉아 편안한 태도로 밤샘에 익숙한 여자처럼 죽음이 들어 온 다음부터는 어떤 집도 자기 집처럼 느껴 벌써 졸고 있는 것 같았다. 밤이왔다. 사제는 잔느에게 다가가 그녀의 두 손을 잡고, 위로할 길없는 그 마음에 성직자 로서의 위안의 말을 번지르르하게 퍼부으면서 그녀의 기운을 북돋워주려 했다. 그는 고인에 대해 이야기 했고 성직자의 말투로 찬양을 했으며, 시체란 그로서는 자비로운 것이라 며 사 제의 그 거짓 슬픔으로 애도하고 유해 곁에서 기도를 올리며 밤을 보내겠노라 제의했 다. 그러나 잔느는 발작적인 눈물을 흘리면서 거절했다. 그녀는 혼자서, 이 고별의 밤을 혼자 서 보내고 싶었다. 줄리앙이 다가왔다. "그건 안 돼요. 우리 둘이 남아 있습시다." 그 녀는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어서 '싫다'고 고갯짓을 해보였다. 그녀는 겨우 이렇게 말할 수 있었 다. "이분은 나의 어머니예요, 내 어머니예요. 나 혼자서 밤샘을 하고 싶어요." 의사가 중 얼거렸 다. "하시고 싶다는 대로 내버려둡시다, 간호인이 옆방에 남아 있을 테니까." 사제와 줄리앙은 자기들의 침대를 생각하면서 동의를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피코 신부가 무릎을 꿇어 기도를 하고 일어서서는 "주님께서 그대와 함께"라고 말할 때의 그 어조 로 "이 분은 성녀와 같으십니다." 하고 말하면서 방을 나갔다. 그러자 자작이 여느 때와 같 은 목소 리로 물었다. "무엇좀 들겠소?" 잔느는 자기에게 말을 건네는 줄도 모르고 아무 대답 을 하 지 않았다. 그가 다시 말했다. "몸을 지탱하자면 좀 먹는 것이 좋을텐데." 그녀는 정 신나간 표정으로 대꾸했다. "얼른 아버지를 찾아오도록 하세요." 그는 루앙으로 말탄 사람을 보내기 위해서 방을 나갔다. 그녀는 절망적인 회한이 물결처럼 솟아오르는 데에 몸을 내맡기 기 위 해 마치 이 마지막 대면을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꼼짝하지 않는 어떤 고통속에 깊이 잠겨 있었다. 밤의 그림자가 방안으로 밀려들어와 고인을 어둠으로 덮었다. 당튀 과부가 간호인의 조용 한 동작으로 눈에 띄지 않는 물건들을 찾아 정리하면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서성이기 시작했 다. 그러고 나서는 초 두 자루에 불을 붙여, 침대 밑의 하얀보가 씌워진 머리맡 탁자 위에 가만히 올려놓았다. 잔느는 아무것도 보지 않고, 아무것도 느끼지 않고,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같았 다. 그녀는 혼자 있게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줄리앙이 돌아왔다. 그는 저녁을 먹었 다. 그 래서 다시 물었다. "아무것도 들고 싶지 않소?" 아내는 '싫다'고 고갯짓을 했다. 그 는 슬프 다 기 보다는 체념한 듯한 표정으로 말없이 앉아 있었다. 그들 세 사람은 모두 떨어져서 움직 이지 않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이따금 잠이 든 간호인이 조금 코를 골다가는 갑자기 깨곤 하였다. 마침내 줄리앙이 일어나 잔느에게 다가왔다. "지금부터는 혼자 남아 있고 싶 소?" 그 녀는 무의식적인 충동으로 그의 손을 잡았다. "아! 그래요, 나를 그냥 내버려두세요. " 그는 그녀의 이마에 키스하고 속삭였다. "이따금 보러 오겠소." 그리고 그는 당튀 과부와 함께 나 갔다. 그 여자는 옆방으로 자기의 안락의자를 밀고 갔다. 잔느는 문을 닫은 다음 두 개의 창을 활짝 열어 젖혔다. 그녀는 얼굴 가득히 풀 말리는 계절의 저녁에 불어오는 훈훈한 애무를 받았다. 어제 베어놓은 잔디밭의 건초가 달빛 아래 뉘어져 있었다. 이 기분 좋은 느낌이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마치 어떤 아이러 니처럼 가슴을 에는 것이었다. 그녀는 침대 곁으로 돌아와 움직이지 않는 차디찬 손 하나를 잡고 어머니를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이제 졸도를 했던 그 순간처럼 부어 있지는 않았다. 지금은 한번도 그래 보 지 못 했을 만큼 평온하게 잠들어 있는 성싶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의 창백한 불꽃이 끊임없 이 얼굴의 그림자를 옮겨놓아, 마치 그녀가 움직이는 것처럼 살아있는 듯이 보이게 했 다. 잔느는 열심히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먼 소녀 시절의 밑바닥으로부터 수많은 추억 이 밀려왔다. 그녀는 수녀원 부속여학교의 면회실로 어머니가 찾아왔던 일과, 그녀에 게 과자 가 가득 든 종이 봉지를 내밀던 모습, 수많은 사소한 일들, 사소한 사건들, 사소한 애 무, 말, 억양, 친근한 몸짓, 웃을 때의 눈가의 주름, 자리에 앉자마자 내쉬는 그 숨가빠하시는 큰 숨 소리들을 떠올렸다. 그녀는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리를 되풀이하면서 거기서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 말의 의미하는 모든 공포가 그녀에게 명백해졌다. 이기 에 누워 있는 사람-엄마-어머니 아델라이드 부인은 죽은 것일까? 그녀는 이제 움직이 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고, 웃지도 못하고, 아버지와 마주 앉아 저녁식사도 하지 못할 것이 다. 그 녀는 이제 "잘 잤니, 자네트?" 하고 말하지도 못하리라. 그녀는 죽은 것이다! 관 속 에 넣고 못질을 하여, 땅속에 묻으면 끝나리라. 더는 못 보게 될 것이다. 그럴 수가 있을까? 어떻게? 그녀에게는 이제 어머니가 없단 말인가? 눈을 떴을 때부터 보아온, 팔을 벌리면서부터 사랑 한 이토록 정답고 사랑스러운 얼굴, 이 크나큰 애정의 배출구, 이 유일한 존재, 그 밖의 모 든 사람들보다 마음으로 중요하게 여겼던 어머니는 사라져버렸다. 움직이지도 않고 생각도 하지 못하는 이 얼굴, 추억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무것도 남지 않을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는 것도 몇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그녀는 절망의 무서운 발작에 무릎을 꿇고, 백포를 움켜쥐고 있는 두 손을 부르르 떨면서 입을 침대에 꼭 붙이고, 가슴을 찢는 듯한 목소리를 시트와 이불 속에 죽이고 울부 짖었다. "아아! 엄마, 불쌍한 엄마, 엄마!" 그러고 나서 그녀는 눈 속을 뚫고 도망치던 그날 밤처럼 미칠 것 같았기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나 이 침상의 공기가 아닌, 이 죽은 사람의 공기 가 아 닌 새로운 공기를 마시고 원기를 회복하려고 창가로 달려갔다. 잘 깎은 잔디밭, 나무들, 광야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바다가 조용한 평화 속에 쉬 고 있었 으며, 부드럽고 매혹적인 달빛 아래 잠들어 있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이 부드러움이 약간 잔느의 가슴에 파고들어, 그녀는 천천히 울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다시 침대곁으로 와 앉으며, 병든 어머니를 밤새워 간호하는 것처럼 어머니의 손을 자기 손에 다시 쥐었다. 큰 벌레 한 마리가 촛불에 이끌려 들어왔다. 그것은 공처럼 벽에 부딪치며 방의 이 끝에서 저끝으로 날아다녔다. 잔느는 붕붕 소리를 내며 날아 다니는 데에 정신이 나가서 눈을 들어보았으나 하얀 천장에 왔다갔다는 그림자밖에는 볼 수 가 없었다. 그리고 더 이상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러자 추시계가 가볍게 똑딱거리는 소리와 다른 작은소리, 아니 차라리 거의 알아들을 수 없는 어떤 희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침대 발치에 있는 의자 위에 던져진 옷속에서 잊혀진 채 여전히 가고 있는 어머니의 회중시 계였 다. 그러자 갑자기 이 고인과 조금도 멈추지 않은 이 기계와의 어떤 막연한 대조가 잔느의 가슴에 날카로운 고통을 되살아나게 하였다. 그녀는 시계를 보았다. 겨우 열 시 반 이었다. 그녀는 이 온 밤을 여기에서 지내야 한다는 무서운 두려움에 휩싸였다. 다른 추억들이 그녀에게 떠올랐다. 자기 자신의 인생에 대한 추억이었다-로잘리, 질베르 트-자기 가슴에 있는 쓰디쓴 환멸들이었다. 모든 것은 그렇게 비참하고, 슬프고, 불 행하고 죽음일 뿐이엇다. 모든 것이 속이고, 거짓말하고, 모든 것이 괴롭히고 울린다. 어디서 휴식과 즐거움을 조금이라도 찾을 수 있을까? 아마도 어떤 다른 실재 속에서겠지. 영혼이 이 세상 의 고난에서 해방되었을 때겠지. 영혼! 그녀는 이 헤아릴 수 없는 신비에 관하여 공 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갑자기 시적인 확신 속에 빠지는가 하면, 그와 같이 막연한 다른 가설이 당장에 뒤집어지는 것이었다. 대체 지금 어머니의 영혼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움직이 지 않 는 얼음같이 찬 이 육체의 영혼은? 어쩌면 아주 먼 곳에 있을 것이다. 하늘 어딘가에? 그렇 다면 어디일까? 새장에서 도망간 보이지 않는 새처럼 증발되어 버린 것일까? 신에게 불려갔을까? 아니면 새로운 창조물로 아무렇게나 흩어져서 발아하려는 싹들 속에 섞인 것일까? 어쩌면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이 아닐까? 이 방안에, 어머니가 떠나 간 이 생명없는 육체의 주위에 있는 것이 아닐까? 갑자기 잔느는 영혼이 접촉하는 것처럼 그 녀를 스쳐가는 바람을 느낀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무서웠다. 견딜 수 없이 무서웠 다. 너 무도 무서워서 그녀는 감히 움직일 수도, 숨을 쉴 수도 뒤를 돌아보기 위해 몸을 돌릴 수도 없었다. 그녀의 심장은 갑작스러운 공포속에서처럼 마구 뛰었다. 그러자 갑자기 보이 지 않는 벌레가 다시 날기 시작했고 빙빙 돌면서 벽에 부딪치기 시작했다. 그녀는 머리끝에 서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끼쳤으나, 날벌레의 붕붕거리는 소리라는 것을 알고 곧 안심이 되어 서, 일 어나 뒤를 돌아다보았다. 그녀의 눈길이 스핑크스의 머리가 달린 책상, 유물이 들어있 는 가 구 위세 멎었다. 그러자 어떤 정답고 이상스러운 생각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그것은 이 마지막 밤샘 을 하 면서 마치 어떤 경건한 책이라도 읽는 것처럼 고인에게 소중한 이 낡은 편지들을 읽는 다는 것이었다. 미묘하고도 성스러운 의무, 저승에 간 어머니를 즐겁게 해드리는, 진정으 로 자식 으로서의 그 무엇을 다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자기가 알지 못하는 조부모의 오래 된 편지였다. 그녀는 그들의 딸인 이 육 체위로 그들에게 두 팔을 내밀고 싶었다. 이 장례의 밤에 그들도 역시 괴로울 것 같은 그분 들에게 로 가서, 예전에 돌아가신 분들과 지금 막 자기 차례가 되어 사라져버린 어머니와 아직은 세상에 남아 있는 자기 자신 사이에 일종의 신비스러운 애정의 고리를 만들고 싶었다. 그녀는 일어나서 책상 서랍의 앞문을 열고 밑의 서랍에서 가지런히 끈으로 묶어 나란히 정돈해 놓은 작은 노란 종이 꾸러미를 끄집어냈다. 그녀는 일종의 지나친 감상주의로 그것 들을 모두 침대 위의 남작 부인의 팔 사이에 놓고 읽기 시작했다. 그것은 집안의 오 래 된 서랍 속에서 발견되는 그런 낡은 편지들, 다른 세기의 냄새가 나는 그런 편지들이었 다. 처음 편지는 '내 사랑하는 딸아'라고 시작하고 있었다. 다른 편지는 '내 귀여운 딸아'라 고 되어 있 었고 그 다음에는 '내 사랑하는 꼬마야' -'내 귀여운 아이'-'열렬히 사랑하는 내 딸', 그 다 음 은 '내 사랑하는 아이'-'내 사랑하는 아델라이드'-'내 사랑하는딸', 이렇게 소녀에 게, 처녀 에 게, 나중에는 젊은 아내에게 보내는 것에 따라서 다르게 시작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은 관계없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시시하고 허물없는 사소한 것들, 집안의 크고 단순한 사 건들이 열정적이고 순진한 애정으로 가득쓰여 있었다. "아버지는 유행성 감기에 걸리셨단다. 오르탕 스 하녀는 손가락을 데었어. 크로크라 고양이가 죽었다. 울타리 오른쪽에 있는 전나무 를 베 어 버렸지. 어머니가 성당에서 돌아오시다가 미사 경본을 잃어 버렸는데, 어머니는 그것을 그것을 누가 훔쳐갔으라라고 생각하고 있단다." 거기에는 잔느가 알지 못하는 사람에 대해 서도 쓰여 있었으나, 예전에 그녀가 어렸을 때 그 이름을 희미하게 들어본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녀는 계시와도 같은 이런 사소한 이들에 감동이 되었다. 갑자기 지나 간 비밀 의 세월, 어머니의 마음속에 있던 세월로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누워 있는 시신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녀는 고인을 위해서 읽는 것처럼, 고인의 기분 을 달 래주고 그를 위로해 주려는 것처럼 큰소리로 읽기 시작했다. 그러자 움직이지 않는 시신도 행복한 듯이 보였다. 그녀는 침대 발치에 읽은 편지들을 하나하나 집어던졌다. 그리고 관 속 에 꽃을 넣듯이 이 편지들을 넣어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다른 꾸러미를 풀었다. 그것은 새로운 필적이었다. 그것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나는 이제 그대의 애무 없이 는 지낼 수가 없습니다. 미칠 듯이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 이상은 없고 이름도 없었다. 납 득이 안 가서 편지를 뒤집어 보았다. 수인인은 분명 '르 페르 튀 데 보 남작부인'이라고 기재 되어 있 었다. 그래서 그녀는 다음 것을 펴보았다. "오늘밤, 그분이 나가시자마자 오세요. 한 시간은 함께 있을 수 있을 겁니다. 나는 당신을 열렬히 사랑하고 있습니다." 다른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헛되이 당신을 갈망하면서 흥분의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내 두 팔로 당신의 육체를 안고, 내 입술 밑에 당신의 입이, 내 눈 밑에 당신의 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 각 당신은 그 사람 곁에 잠들어 있고, 그가 마음대로 당신을 소유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창문 밖으로 몸을 던져버리고 싶은 분노를 느꼈습니다........." 잔느는 어리둥절하 여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게 어찌 된 일일까? 이 사랑의 말들은 누구에게, 누구를 위한, 누구 의 것이 란 말인가? 그녀는 계속 읽어보았으나 여전히 미칠듯한 사랑의 고백, 신중한 충고가 곁들인 밀회의 약속들이었다. 그런 다음 언제나 끝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었다. "반드시 이 편지를 태워버리십시오." 끝으로 그녀가 펴본 것은 져녁식사 초대에 단순히 승낙한다는 평범 한 짧 은 편지였는데, 똑같은 필적으로 '폴 덴느마르'라고 서명되어 있었다. 그 사람은 남 작이 아 직 도 그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면 '불쌍한 폴'이라고 부리고, 그의 부인은 남작부인의 가장 친 한 친구였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러자 잔느에게는 갑자기 어떤 의혹이 스쳐갔고 그것은 곧 확신으로 변했다. 어 머니는 그 사람을 연인으로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갑자기 머리가 돌아버릴 것 같은 그녀는 마치 자기 몸 위로 기어오르는 어떤 독벌레를 던져버리듯이 그 수치스러운 편지를 발작적으 로 집 어던졌다. 그리고 창가로 달려가 자기도 모르게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며 무섭게 울부짖 기 시작했다. 그런 다음 그녀의 온몸이 부서지는 듯 벽의 발치에 주저앉아, 자기의 신 음소리 가 들리지 않도록 얼굴을 파묻고, 한없는 절망에 잠겨 흐느껴 울었다. 그녀는 어쩌면 온 밤을 그렇게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옆방에서 나는 발 소리에 그녀는 벌떡 일어났다. 어쩌면 아버지일지도 모른다. 편지는 모두 침대와 마룻바닥 위 에 흩 어져 있다! 하나만 펴보아도 충분하다! 아버지가 이것을 아시게 된다면? 그분이! 그녀는 달려들어 노랗게 바랜 그 낡은 편지들을 한 웅큼 움켜잡았다. 조부모의 것들 과 연 인의 것, 아직 펴보지 않은 것, 그리고 책상 서랍 속에 아직도 묶인 채로 있는 것들 을 벽난 로 속에 무더리로 던져버렸다. 그러고는 머리맡 탁자 위에서 타고 있던 촛불을 집어들 어 그 편지더미에 불을 붙였다. 커다란 불길이 치솟아올라 방과 침상과 유해를 춤추는 듯한 강렬 한 빛으로 비추고, 굳어진 얼굴의 떨리는 옆모습과 시트 밑에 있는 거대함 몸의 윤곽 을 침 대 안에 백포위에 꺼멓게 그리고 있었다. 벽난로 바닥에 한줌의 잿더미밖에 남지 않자, 그녀는 고인의 곁에는 감히 머물러 있 을 수 없다는 듯이 열려져 있는 창가로 가서 몸을 돌리고 앉아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 울기 시작 했다. 몹시 괴롭고 비탄에 잠겨 한탄하는 어조로 이렇게 신음했다. "아, 불쌍한 엄마, 아! 불 쌍한 엄마!" 그러자 무서운 생각이 떠올랐다. 만일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이 아니고, 혹시 그 저 혼수 상태의 수면에 빠져 있는 것이라면, 그리고 갑자기 일어나서 말을 하게 된 다면?- 무서운 비밀을 알았다는 것은 자식으로서의 사랑을 감소시키게 되지 않을까? 전과 같 은 효 성스러운 입술로 키스할 수 있을까? 전과 같은 성스러운 애정으로 극진히 사랑할 수 있을 까? 아니다. 그건 불가능하다! 이 생각이 그녀의 가슴을 찢어놓았다. 밤이 물러갔다. 별들이 빛을 잃었다. 날이 새기 전의 서늘한 시각이었다. 기울어진 달이 온통 수명을 진줏빛 으로 물 들인 바다속으로 가라앉으려 하고 있었다. 그러자 레 푀플에 도착했을 때 창가에서 보낸 그 밤의 추억이 잔느를 사로잡았다. 얼마나 아득한 일인가, 얼마나 모든 것이 변해 버렸는가, 미래는 얼마나 달라질 것인가! 지금 하늘은 장밋빛으로 변했다. 즐겁고 사랑스럽고 매혹적인 장밋빛이었다. 그녀는 지금 어떤 희유한 현상을 대하듯이 이 빛나는 낮의 탄생을 놀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와 같은 여명이 떠오르는 이 지구상에 기쁨도 행복도 없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 해 보았다. 문여는 소리에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줄리앙이었다. 그가 물었다. " 어떻소? 너무 피고하지 않소?" 그녀는 "아뇨" 하고 말을 더듬거리면서, 이제는 혼자 있게 되지 않은 것을 다행하게 여겼다. "이젠 가서 쉬어요" 하고 그가 말했다. 그녀는 천천히 어머니 에게 키 스했다. 느리고 고통스럽고 가슴 아픈 키스였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자기 방으로 돌 아왔다. 그날 하루는 죽음에 따르는 슬픈 일들 속에서 흘러갔다. 남작은 저녁때에 도착했다. 그는 많이 울었다. 장례식은 그 다음날 행하여졌다. 마지막으로 얼음같이 찬 이마에 입술을 갖다 대고, 마지막 화장을 하고, 시신을 관 속에 넣고 못질을 하는 것을 본 후에 잔느는 자리를 떴다. 조문객들이 도착했다. 질베르트가 제일 먼저 와서 흐느끼며 친구의 가슴에 몸을 던졌다. 창문으로 마차들 이 철 책을 돌아 속보로 오는 것이 보였다. 사람들의 말소리가 현관에서 울려왔다. 상복을 입은 부 인들이 점점 방으로 들어왔다. 잔느가 전혀 모르는 부인들이었다. 쿠틀리에 후작부인 과 브리 즈빌 자작 부인이 잔느에게 키스했다. 그녀는 갑자기 리종이모가 자기 뒤에 슬그머니 들어 와 있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녀는 이모를 정답게 포옹했다. 그것은 거의 노처녀를 실신케 할 정도였다. 줄리앙이 상복을 입고 우아한 모습으로 바쁜 듯이 들어왔다.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몰려드 는 것이 흡족스러운 것 같았다. 그는 아내에게 상의할 것이 있다면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 그는 은근한 어조로 이렇게 덧붙였다. "귀족은 모두 다 왔군. 아주 잘된 일이야." 그 리고 그 는 부인들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면서 다시 나갔다. 장례식이 거행되는 동안 리종 이모와 질베르트 백작 부인만이 잔느 곁에 남아 있었 다. 백 작 부인은 "불쌍하고 사랑스런 분, 불쌍하고 사랑스러운 분!" 이라는 말을 되풀이하 면서 쉴 새 없이 잔느에게 키스를 했다. 드 푸르빌르 백작이 아내를 찾으러 왔을 때, 그 자신도 마치 자기 친어머니를 여읜 듯이 울고 있었다. 10 슬픈 나날들이 이어졌다. 정다운 사람이 영원히 사라져버림으로 해서 비어버린 것 같 은 집 안에는 침울한 나날이 계속되었고, 고인이 늘 만지던 모든 물건들을 대할 적마다 고 통으로 얼룩지는 날들이 이어졌다. 시시각각으로 어떤 추억이 생각나서 가슴에 상처를 입히기 도 한 다. 그의 안락의자, 현관에 그대로 있는 그의 작은 양산, 하녀가 치우지 않은 그의 컵이 있 다! 모든 방에서 생각나는 것들이 눈에 띈다. 그의 가위, 장갑 한 짝, 둔한 손가락으 로 해서 책장이 닳아진 책, 그리고 수없이 많은 사소한 사실들을 되살아나게 하기 때문에 고 통스런 의미를 지니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그의 음성이 따라 다닌다. 그의 음성이 들리는 것처럼 생각된다. 어디로든지 도망치 고 싶다. 이 집의 강박 관념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여기에 남아 있으면 서 또한 고통을 함께 느끼고 있기 때문에 머물러 있지 않으면 않된다. 게다가 잔느는 자기가 발견했던 그것에 대한 기억에 짓눌려 있었다. 그 생각은 그녀 를 억 압했고 그녀의 으깨어진 가슴은 치유되지 않았다. 지금의 그녀의 고독은 그 무서운 비밀로 해서 더해 갔다. 그녀의 마지막 신뢰는 그녀의 마지막 신앙과 함께 무녀져버렸던 것이 다. 아버지는 얼마 있다가 떠났다. 몸을 움직여보고, 공기를 바꾸어보고, 점점 더 빠져들 어가는 어두운 슬픔에서 빠져나올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따금 주인의 한 사람이 사라지는 것을 그렇게 보아온 그 큰 집은 다시 평온하고 규칙적 인 생활을 되찾았다. 그런데다가 폴이 병이 들었다. 이성을 잃어버린 잔느는 자지도 않고 거의 먹지도 않 고 열 이틀을 곁에서 보냈다. 아이는 나았다. 그러나 그녀는 그 아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공포에 사로잡 혀 있 었다. 그렇다면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녀는 어찌 되는가? 그러자 아주 슬며시 아이가 하나 더 있어야겠다는 막연한 욕구가 마음속으로 스며들었다. 곧 그녀는 그것을 꿈 꾸었고, 자기 곁에 두 어린 것, 하나는 사내아이 또 하나는 계집아이를 보고 싶다는 오래 전 부터의 욕망에 완전히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강박관념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로잘리의 사건 이후로 그녀는 줄리앙과 별거 생활을 해왔다. 그래서 그들이 처해 있는 상태에선 접근이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지기조차 하였다. 게다가 줄리앙은 연애에 빠져 있다. 그것을 그녀는 알고 있다. 그의 애무를 다시 받아들일 생각만 해도 혐오감으로 몸서리 가 쳐졌다. 그러나 그녀는 참아낼 것이다. 그만큼 다시 어머니가 되어보겠다는 욕심이 그녀를 애타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그들의 키스를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자기의 의도를 알아차리게 되면 오히려 모욕감으로 죽어버릴 것이다. 남편은 자기에 대해서 는 이제 생각하지도 않는 것 같았다. 그녀는 어쩌면 표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밤마다 그녀는 계집아이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 하였다. 그녀는 그 아이가 플라타너스 아래에서 폴과 함께 놀고 있는 것을 본다. 이따 금 그 녀는 일어나서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침실로 남편을 찾아가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가 있었 다. 두 번이나 그의 방문까지 몰래 갔다가 수치심으로 가슴이 떨려 얼른 돌아오기도 했다. 남작은 떠났고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잔느는 이제 의논할 사람도, 마음속의 비밀을 털어놓 을 사람도 없다. 그래서 그녀는 피코 신부를 찾아가서 고해를 지킨다는 조건으로 그녀가 가지고 있는 어려 운 계획을 말하기로 결심했다. 그녀가 찾아갔을 때, 신부는 과실수가 심어져 있는 작은 정원에서 성무일과서를 읽고 있었 다. 몇 분 동안 이 얘기 저 얘기를 하다가 그녀는 얼굴을 붉히면서, "고해하고 싶습니 다, 신 부님"하고 더듬거리며 말했다. 신부는 어리둥절해서 그녀를 잘 쳐다보려고 안경을 들어올렸다가 이내 웃어대기 시 작하였 다. "그렇지만 양심에 큰 죄를 갖고 있을 것 같지는 않군요." 그녀는 매우 당황하며 다시 말 을 이었다. "그렇지는 않아요. 그러나 조언을 청할 것이 있어서요. 조언을 .....너 무.....너무..... 힘이 들어서 이렇게 감히 말씀드릴 수가 없군요." 그는 즉시 호인의 모습을 버리고 사제의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고해실에서 듣기 로 하 겠습니다. 가시지요." 그러나 그녀는 갑자기 텅 빈 교회의 그 명상 속에서 이런 좀 부끄러운 이야기를 하는 것이 꺼려져서, 멈추어서서 망설이며 신부를 붙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아니예요.....신부님.....저는.....신부님만 괜찮으시다면, 여기에 서 제가 오게 된 것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만, 자, 저기에 있는 작은 정자 아래에 가서 앉으시지 요." 그들은 그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녀는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 지,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고심을 했다. 그들은 앉았다. 그러자 그녀는 마치 고해나 하는 듯이 말을 시작했다. "신부님....." 그러고 나서는 망설이다 가 다시 반복했다. "신부님....." 그러고는 마음이 몹시 흔들려 임을 다물어버렸다. 신부는 배 위에 두 손을 깍지끼고 기다렸다. 그녀가 난처해하는 것을 보고 그는 용기 를 돋 우어주었다. "좋아요, 말하기 힘드신가보군요. 자, 용기를 내세요." 그녀는 위험에 뛰어드는 겁쟁이처럼 결단을 내렸다. "신부님, 저는 아이를 하나 더 갖고 싶 습니다." 신부는 무슨 말인지를 몰라서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어 떻게 말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해하며 말을 이었다. "저는 이제 세상에서 저 혼자입니다. 아버지와 남편은 서로 거의 뜻이 맞지 않고 어 머니는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그런데....." 그녀는 떨면서 아주 낮은 소리로 말했다. " 저번에는 아 들을 잃을 뻔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저는 어떻게 되겠어요?"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어리둥절한 신부가 그녀를 쳐다보았다. "자, 요점을 말해 보세요." 그녀가 되풀이 말했다. "저는 아이 하나를 더 갖고 싶습니다." 그러자 신부는 미소를 지었다. 자기 앞에서 거의 체면을 차리지 않고 말하는 농부들 의 투 박한 농담에 익숙해 있는 그가 장난꾸러기같이 머리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그건 오로지 부인에게 달린 것 같군요." 그녀는 순진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창피한 생각이 들어 더듬거리며 입 속에 서 중얼거렸다. "하지만.....하지만.....신부님도 아시다시피 그 일이 있은 다음부터. ....우리는 완 전히 별거 생활을 하고 있거든요." 시골의 품위가 없는 도덕 관념과 뒤죽박죽인 것에 익숙해 있는 신부도 이 새로운 사실에 놀랐다. 그러고는 갑자기 이 젊은 부인의 진짜 욕망을 알아맞힐 수 있을 것 같은 생각 이 들 었다. 그는 그녀의 고뇌에 대하여 동정과 호의가 가득한 눈길로 그녀를 곁눈질해 보 았다. "네 , 잘 았겠습니다. 부인의.....부인을 짓누르고 있는 그 독신 생활을 이해하겠습 니다. 부인 으 젊으시고 퍽 건강하십니다. 어쨋든 그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지 요." 시골 사제의 노골적인 성격으로 그는 다시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가만히 잔느의 손을 살짝 쳤다. "그것은 허용되어 있습니다. 명령으로써 허락되기조차 한 것 입니다 - 육교는 오직 결혼으로써만 바랄지어다- 부인은 결혼 하셨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무 를 박 기 위한 것은 절대 아니니까요." 이번에는 그녀가 그의 암시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자 곧 그것을 알아차리자 얼굴을 붉히 면서 놀라움에 눈물이 글썽해지기까지 했다. "아이! 사제님, 무슨 말씀이세요?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거예요? 맹세합니다만..... 맹세하지 만..... " 오열로 그녀는 숨이 찼다. 사제는 놀라 그녀를 달랬다. "자, 괴롭게 해드릴 생각은 없었습니다. 좀 농담을 한 겁니다. 정직한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그것은 금지된 것이 아니지요. 그러나 나를 믿으세요. 나 를 믿 으실 수 있겠지요. 줄리앙씨를 만나보지요." 그녀는 이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이 개입이 그녀에게는 어설프고 위험스럽 게 여 겨져서 거절하고 싶었으나 감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사제님" 하 고 중얼 거리고 나서 그 자리를 물러갔다. 일주일이 지났다. 그 동안 그녀는 극도의 불안 속에서 지냈다. 어느 날 저녁식사 때, 줄리앙은 빈정거릴 때 그렇듯, 입가에 미소를 띄운 주름을 지 으면서 이상한 태도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런 그의 모습에는 느끼지 못할 정도의 어떤 비꼬 는 듯 한 친절조차 들어 있었다. 그런다음 그들이 어머니의 큰 산책로를 거닐고 있을 때, 그 는 그 녀의 귀에 대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 "우린 화해를 한 것 같군." 그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풀이 돋아나서 이제는 거의 보이지 않는, 땅에 똑 바로 나 있는 어떤 선 같은 것을 내려다보았다. 그것은 추억이 잊혀지듯이 지워져가는 남작 부인의 발자국이었다. 잔느는 슬픔에 잠겨 가슴이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사람들로부 터 아주 멀리, 인생에서 길을 잃을까 염려했었지." 해가 지고, 공기는 온화했다. 울고 싶은 욕구가 잔느의 가슴을 짓눌렀다. 가까운 친 구에게 진심을 털어놓고 싶은 욕구, 자기 마음의 고통을 하소연하면서 그것을 껴안고 싶은 욕구로 가슴이 답답했다. 오열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그녀는 두 팔을 벌리고 줄리앙의 가슴 에 쓰 러졌다. 그녀는 울었다. 그는 놀라 머리칼 사이로 그녀를 바라보았으나, 자기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어서 볼 수가 없었다. 그는 잔느가 아직도 자기를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녀의 목덜 미에 거만한 키스를 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한마디 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그녀의 방으로 따라 들어가 함께 그 밤을 보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의 예전의 관계가 다시 시작되었다. 그는 그것을 하나의 의무처럼 이행했 으나, 그것이 마음 내키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그것을 역겹고 고통스러운 필 요로써 감내했으며, 다시 임신했다고 느껴지면 그때부터 영원히 그 관계를 그만둘 결심이었 다. 그러나 얼마안가서 그녀는 남편의 애무가 전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보다 세련되 었는지는 몰라도 완전하지는 못했다. 그는 그녀를 조심성 있는 연인처럼 다루었을 뿐 편안 한 남편으로서가 아니었다. 그녀는 놀라서 지켜보았다. 그러다가 이윽고 그의 포옹은 그녀가 수태 될 수 있는 상태가 되기 전에 멈춘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어느 날 밤, 그녀는 입술을 포갠 채로 속삭였다. "왜 당신은 예전처럼 나에 게 완전 히 주지 않으세요?" 그는 히죽히죽 웃기 시작하였다. "아무렴, 당신을 임신시키지 않기 위해서지." 그녀는 움찔하였다. "왜 아이를 더 이상 원하지 않으시는 거죠?" 그는 놀라 꼼짝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뭐라구? 뭐라고 했지? 당시 미쳤어? 애 하나를 더? 아아! 절대로 그럴 수는 없어! 뻑뻑 울어대고, 모든 사람들을 쩔쩔매게 하고, 돈 이 드는 것은 이미 하나로 충분해. 또 다른 아이라구, 제기랄!" 그녀는 두 팔로 그를 끌어안고, 그에게 키스를 퍼붓고, 사랑으로 감싸며 아주낮은 소리로 말했다. "아아! 제발 부탁이에요, 나를 다시 한번 어머니로 만들어주세요." 그러나 그는 그녀가 자기의 기분을 상하게 하기라도 한 것처럼 화를 냈다. "정말 당 신 머 리가 돌았군. 그런 바보 같은 소리는 하지 말아요, 제발."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자기가 꿈꾸고 있는 행복을 얻기 위해서 속임수를 써 서라도 그것을 강요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래서 그녀는 그의 키스를 오래 끌려고 하고, 열렬한 격정의 연극도 흉내내 보고, 흥분한 체하면서 부르르 떠는 두팔로 그를 자기에게 얽어매기도 해보았다. 그녀는 갖는 술책 을 다 사용하였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자기를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었고, 한 번도 자기 자신을 망각하지 않았다. 그러자 자기의 세한 욕망에 점점 더 시달림을 받았고, 참을 수 없게 되자, 무슨 짓 이라도 할 생각으로 모든 것을 감행해 볼 생각으로 그녀는 다시 피코 신부를 찾아갔다. 신부는 점심식사를 끝내고 있었다. 식사를 하고 나면 언제나 심장의 고동이 심해서, 그는 몹시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녀가 들어오는 것을 보자마자, 그는 자기의 교섭의 결과를 알고 싶은 욕망에서 "어떠세요?" 하고 소리쳤다. 이제는 결심이 서서 정숙한 수줍음도 없이 그녀는 즉각 대답했다. "남편은 더 이상 어린애 를 원하지 않아요." 사제는 이해했다. 그런 일들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정확하고 상세하 게, 단 식을 하고 있는 사람의 엄청난 식욕으로 일일이 캐묻기 시작했다. 그런 다음 그는 잠시 생각하고 나서, 풍년이 들었을 때의 수확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처 럼 조용한 목소리로 모든 사항에 결말을 지으면서 꾀 바른 행동 계획을 그녀에게 지시 했다. "한 가지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에게 부인이 임신했다고 믿게 하는 겁니다. 그러면 그는 더 이상 조심하지 않게 될 것이고, 그러면 그는 더 이상 조심하지 않게 될 것이고, 그렇 게 되면 부인은 정말로 임신하게 될 것입니다." 그녀는 머리끝까지 붉어졌으나 모든 것에 결심이 되어 있어서 계속 버티어 나갔다. "그런 데 .....그이가 제 말을 믿지 않는다면요?" 사제는 사람들을 조종하고 꼼짝못하게 하는 수단들을 잘 알고 있었다. "부인이 임신 했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세요. 사방에다 그것을 말하세요. 그러면 마침내 그 자신도 그걸 믿게 되고야 맙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이 계략에 대해 스스로 용서하기라도 하려는 것처 럼 이렇게 덧붙였다. "그것은 부인의 권리입니다. 교회는 남녀의 관계를 다만 생식의 목적 안에서만 허용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그 꾀바른 충고를 따랐다. 그래서 보름 후에 그녀는 줄리앙에게 자신이 임신 한 것 같다고 알렸다. 그는 펄쩍 뛰었다. "그럴 리가 없어! 그건 사실이 아니야." 그녀는 곧 그런 짐작이 가는 이유를 알려주었다. 그러자 그는 안심하는 것이었다. " 말도 안 되지! 좀 기다려보구려. 알게 되겠지." 그러고는 매일 아침 그는 "어때?" 하고 물었다. 그러면 언제나 그녀는 이렇게 대답하 는 것 이었다. "아니예요, 아직은. 임신한 것이 아니면 제가 잘못 생각한 것일 거예요." 이번에는 그가 불안해졌다. 놀랄 만큼 화를 내기도 하고 실망에 잠기기도 했다. 그는 이 말 만 되풀이했다. "전혀 알 수 없군. 도무지 모르겠어. 일이 어떻게 그리 되었는지! 만 일 그렇 다면 내 목을 베어도 좋아." 한 달 후에 그녀는 이 소식을 사방에 알렸다. 질베르트 부인에게만은 일종의 복잡하 고 미 묘한 수치심에서 알리지 않았다. 처음의 불안이 있고 난 후부터, 줄리앙은 더 이상 그녀에게 접근하지 않았다. 그는 노발대 발하면서도 운명이라고 체념을 하고 받아 들였다. 그러고는 이렇게 자기의 감정을 표 시했다. "바라지도 않은 녀석이 하나 생겼군." 그러고는 다시 아내의 방으로 들어오기 시작했 다. 사제가 예측한 일이 완전히 이루어졌다. 그녀는 임신을 한 것이다. 그러자 넘쳐흐르는 기쁨에 잠겨 그녀가 경배하는 막연한 신에게 감사하고 싶은 충 동에서 영원한 순결에 몸을 바치기도 하고, 그녀는 매일 저녁 자기 방문을 닫는 것이었다. 그녀는 다시 행복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자기의 고통이 이렇 게 빨리 가라않은 데에 놀랐다. 그녀는 자신을 위로할 수 없을 듯이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데 겨우 두 달만에 그 생생한 상처가 아문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그녀의 생에 던져 진 슬 픔의 베일 같은 측은한 우수 뿐이었다. 어떠한 사건도 더 이상 일어날 것 같지 않 았다. 그녀의 아이들은 자라고 그녀를 사랑할 것이다. 그녀는 남편과는 상관없이 조용히 만 족하며 늙어갈 것이다. 9월 말경에 피코 신부는 아직 일주일 정도의 얼룩밖에는 묻지 않은 새 법의를 입고 의례적 인 방문을 했다. 그러고는 자기의 후임자인 톨비악 신부를 소개했다. 그는 마르고 매 우 키가 작은, 아주 젊은 사제로서 과장된 말씨에 검은 무리가 진 움푹 팬 눈은 영혼을 보여주 고 있 었다. 노사제는 고데르빌의 승원장으로 임명되었다. 잔느는 이 출발점에서 진정으로 슬픔을 느꼈다. 이 착한 사람의 얼굴은 젊은 부인 자신의 모든 추억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는 자기를 결혼시켜 주었고 폴에게 세례를 주었으며, 남작 부인의 장례식을 치러주었다. 에투방을 떠올릴 적마다 그녀는 농장 마당을 따라 지 나가는 피코 신부의 뚱뚱한 배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녀는 그가 명랑했고 순수했기 때문에 그를 좋아했었다. 그는 승진을 했으면서도 즐거운 것 같지 않았다. 그가 말했다. "혼이 났지요. 혼이 났구말 구요, 자작 부인. 여기에 있은 지도 18년이 됩니다. 아아! 서민층은 적게 가져오고 또 대단 한 가치도 없었어요. 남자들은 있어야 할 신앙심이 없었고, 여자들은, 아시다시피 여 자들은 그다지 품행이 좋지 않습니다. 계집애들은 뚱뚱한 배를 가진 성모님에게 참배를 한 후에야 비로소 결혼식을 올리기 위해 교회를 나옵니다. 그리고 오렌지꽃도 이 지방에서는 별 로 값 이 나가지 않습니다. 딱한 일이지요. 그러나 이 지방을 좋아했습니다. 신임 사제는 참을 수 없다는 몸짓을 하고 얼굴이 붉어졌다. 그가 불쑥 이렇게 말했 다. "제 가 온 이상, 그 모든 것은 변하고야 말 것입니다." 이미 낡아 헤지기는 했으나 깨끗 한 법의 를 입은, 아주 허약하고 마른 그는 성 잘내는 어린애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피코 신부는 즐거울 때 그러듯이 그를 흘겨보고 말을 이었다. "이보시오, 신부. 그 런 것들 을 못 하게 하려면, 당신의 교구 신자들을 사슬 얽어매야 할 거요. 그래 봤자 아무 소용이 없을 걸요." 그 작은 사제는 통명스러운 어조로 대답했다. "두고 보시면 알 겁니다." 노사제는 한줌의 코 담배를 들이마시면서 미소를 지었다. "나이가 당신을 누그러뜨려 줄 거요, 신부. 그리고 경험도 마찬가지고. 당신은 당신의 마지막 신자를 교회에서 내몰게 될 거요. 그제 전부요. 이 고장에 있는 사람들은 신자지만 동물적인 속성이 있어요. 그러니 주의하시오. 정 말이지, 나는 약간 뚱뚱해 보이는 처녀가 일요 설교를 들으러 오는 것을 보면, 이렇게 생각 하지요. '교구민을 한 사람 더 인도해 왔구나' 하고 말이오. 그리고 나는 그 여자를 결혼시켜 주려고 애쓰지요. 당신은 그들이 과오를 저지르지 못하도록 하진 못할 거요, 아시겠소? 그러 나 당신 은 그 청년을 찾아내서, 그 미혼모를 버리지 못하게 할 수는 있소. 그들을 혼인시키시 오, 신 부. 그들을 결혼시키시오. 그 밖의 일에는 상관하지 말고요." 신임 사제는 불쾌하게 대답했다. "우린 서로 다른 방법을 생각하고 있군요, 그러니 더 계속 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그러자 피코 신부는 자기의 말을, 사제관의 창문으로 보이는 바다, 멀리 배들이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기도서를 낭송하러 갔던 깔때기 모양의 작은 골짜기 들을 보지 못하게 된 것을 아쉬워했다. 그리고 두 사제는 작별인사를 했다. 노사제가 잔느에게 키스를 해서 그녀는 하마터면 눈물 을 흘릴 쯥 했다. 일주일 후에 톨비악 신부가 다시 왔다. 그는 하나의 왕국을 손아귀에 쥐고 있는 군주 나 할 수 있을 법한, 자기가 실행하고자 하는 개혁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그러고 나서 자작 부인 에게 일요일의 제식에 절대로 결석하지 말 것과 모든 제일에는 성체 배령을 하도록 요 청 했다. "부인과 저는 이 지방의 지도층입니다." 하고 그가 말했다. "우리는 이 지방을 다스려 야 하고 언제나 따라야 하는 본보기로서 우리의 태도를 보여야 합니다. 우리가 강력 해지고 존경받기 위해서는 단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교회와 성관이 서로 손을 잡으면, 초 가집은 우리를 두려워하고 복종하게 될 것입니다." 잔느의 종교는 온통 감정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녀는 역자가 언제나 그렇듯이 몽상적 인 신앙을 지니고 있었다. 만일 그녀가 자기의 의무를 조금이라도 수행했다면 그것은 무엇 보다도 수녀원의 여학교에서 지켰던 습관에 의한 것이고, 남작의 비난하기를 좋아하는 철학 온 오래전부터 그녀의 신념을 뒤집어놓았던 터였다. 피코 신부는 그녀가 자기에게 줄 수 있는 작은 것에 만족 했지, 절대로 그녀를 나무 란 적 이 없었다. 그런데 그의 후임자는 지난 일요일의 미사에 그녀가 참여하지 않은 것을 보고 참을성 없이 준엄하게 달려온 것이었다. 그녀는 조금도 사제관과 관계를 끊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 몇 주 일은 환심을 사려는 마음에서 열심을 보이려고 생각하고 나가기로 약속했다. 그러다가 차츰 그녀는 교회에 나가는 습관이 들었고 그 청렴하고 강압적인, 허약한 신부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신비주의자인 그는 그의 열광과 열정으로 해서 그녀의 마음에 들었다. 그는 모든 여자들이 영환 속에 지니고 있는 종교적인 시정의 현을 그녀의 마음속에 떨 리게 해 주었다. 그의 다루기 어려운 엄격성, 속세와 관능에 대한 경멸, 인간의 편견에 대 한 혐오, 신에 대한 사랑, 젊고 야성적인 무경험, 엄격한 말투, 굽힐 줄 모르는 의지, 이런 것 들이 잔 느에게 순교자가 될 수 있다는 그런 인상을 주었다. 이미 미망에서 깨어난 이 고통받 는 여 자는 하늘의 대리자인 이 젊은이의 엄격한 광신에 사로잡혀 갔다. 그는 독실한 종교의 기쁨이 어떻게 그녀의 모든 고통을 가라앉히는가를 보여주면서 그녀를 위안자인 그리스도에게 인도하였다. 그녀는 열다섯 살 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이 사제 앞에 서 작고 나약한 자신을 느끼면서 겸손하게 고해실에 무릎을 끓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얼마 안 있어 온 마을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사게 되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사정없이 엄격한 그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혹심한 불관용의 태 도를 보였다. 특히 한 가지 일이 그를 화나게 했고 분개시켰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그는 설교에 서 성직자의 관계에 따라 노골적인 말로, 이 시골뜨기 회중을 향해 성욕에 대해서 우 레 같 은 말을 퍼부으면서 흥분하여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이었다. 그는 분노로 몸을 떨었고, 자기의 격분 속에서 불러일으키는 여러 가지 모습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 발을 굴렀 다. 키 큰 녀석들과 계집애들은 성당에서 서로 음험한 시선을 슬그머니 주고 받았다. 그리고 언제나 이런 것에 농담하기를 좋아하는 늙은 농부들은 미사를 끝내고 농가로 돌아오면 서 푸 른 작업복을 입은 아들과 검은 망토를 입은 아내 곁에서 그 작은 사제의 불관용을 비 난하였 다. 그래서 온 고을이 술렁거렸다. 사람들은 고해실에서의 그의 엄격성, 그가 가한 엄격한 보속에 대해 낮은 소리로 서 로 이 야기하였다. 그리고 순결을 훼손당한 계집애들에게는 끝내 무죄 선언을 거절했기 때문 에 거 기에는 조소가 섞였다. 제일의 대미사에서 젊은이들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성체 배령 을 하 러가는 대신에 걸상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웃었다. 마침내 신부는 감시인 이 밀렵자를 추격하듯이, 그들이 만나지 못하도록 연인들을 살폈다. 그는 도랑가에 서, 헛간 뒤에서, 달 밝은 밤에, 낮은 언덕의 비탈에 있는 갈대 수풀 속에서 그들을 내쫓았다. 한 번은 자기 앞에서도 떨어지지 않는 두사람을 발결한 적이 있었다. 그들은 서로 허리를 껴안고 자갈이 많은 협곡 속에서 키스를 하면서 걷고 있었다. 신부가 소리쳤다. "그만두지 못해, 이 버릇없는 것들아!" 그러자 젊은이는 돌아다보면서 그에게 대답했다. "당신 걱정이나 하슈, 사제님. 이 건 당신 하고는 상관없는 일이지 않소." 그러자 신부는 자갈을 집어 마치 개에게 던지듯이 그들에게 집어던졌다. 두사람은 낄낄거 리면서 도망갔다. 다음 일요일에 신부는 성당 한복판에서 그들의 이름을 폭로하였다. 이 지방의 모든 젊은이들은 미사에 나가는 것을 그만두었다. 사제는 목요일마다 성관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그리고 평일에도 종종 그의 속죄자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려고 들렀다. 잔느도 사제처럼 흥분해서 비물질적인 것에 관해서 토론을 벌였 고, 종교 논쟁에 있어서는 아주 오래 되고 복잡한 무기를 죄다 사용하였다. 그들 두사람은 그리스도와 사도 바울 그리고 성보님과 초기 교회의 교부에 관해서 마 치 그 들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이야기 하며 남작 부인의 그 큰 가로수 길을 따라 거닐었다. 그들 은 이따금 그들을 신비주의적으로 주제를 벗어나게 하는 심오한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서 걸 음을 멈추곤 하였는데, 잔느는 물화살처럼 하늘로 올라가는 시적인 추론에 몰두했고, 사제는 보다 명확해서 원의 구적법을 수학적으로 증명해 보이려는 편집광적인 소송 대리인처 럼 추 론을 하였다. 줄리앙은 매우 공손하게 신임 사제를 예우하였고, 줄곧 이렇게 되뇌었다. "그 사제는 내 마 음에 들어. 타협하지 않거든." 그리고 그는 마음이 내키면 고해도 하고 성체 배령도 하면서 놀랄 만큼 모범을 보였다. 그는 요즘은 거의 매일 푸르빌르가로 갔는데, 이제는 줄리앙 없이는 지낼 수 없는 백작과 함께 사냥을 하거나, 비가 오나 폭풍우가 치나 상관없이 백작 부인과 함께 말을 타기 도 했 다. 백작은 이렇게 말하곤 하였다. "저 사람들은 말에 미쳤군. 그러나 내 아내에게는 좋은 일이야." 남작은 11월 중순경에 돌아왔다. 그는 변해 있었다. 늙고, 지치고,그의 정신에 스며 든 어두 운 슬픔 속에 잠겨 있었다. 그리고 딸에게 자기를 묶고 있는 사랑은, 마치 이 몇 달 동안의 침울한 고독이 정과 신뢰와 애정의 욕구를 한층 더하게 한 듯이 중대한 것 처럼 보였 다. 잔느는 아버지에게 자기의 새로운 생각이나 톨비악 신부와의 친교 그리고 자기의 종 교적인 열정 등을 털어놓지 않았다. 그러나 사제를 처음 본 순간, 남작은 그에 대해 격렬한 적개심 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날 밤, 잔느가 남작에게 물었다. "그분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가 대답했다. " 그 사람 은 종교 재판소의 판사야! 매우 위험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러고 나서 그의 친구인 농부들로부터 젊은 사제의 엄격성과 난폭한 행위 그리고 자 연의 법칙과 선천적인 본능에 대하여 그가 행한 일종의 박해 같은 것을 들어 알았을 때, 마음속 에서 증오가 폭발했다. 그는, 남작은, 자연을 숭배하는 낡은 철학파에 속한 사람으로서, 교미를 하고 두 마 리의 동 물을 보면 곧 감동이 되고 일종의 범신론적인 신 앞에서는 무릎을 꿇지만, 부르주아적 인 의 도, 예수회의 분노, 폭군의 복수심을 가진 카톨릭적인 신의 개념 앞에서는 머리털을 곤두세 웠다. 신은 그에게 있어서 막연하게 예감되는, 숙명적인, 무한한 전능한 창조요, 생 명이요, 빛이요, 대지요, 사상이요, 식물, 바위, 인간, 공기, 짐승, 별, 신인 동시에 벌레인 그런 창조 보다 작아 보였다. 그것은 의지보다도 강하고, 추리보다도 넓으며, 모든 의미에서 그 리고 무 한한 공간을 통해서 모든 형태로 목적 없이, 이유 없이, 끝없이 생산해 낸 것이며, 우연의 필요와 세상에 열을 가하는 태양의 접근에 따른 창조이기 때문이다. 창조는 모든 근원을 내포하고 있고, 꽃과 열매가 나무 위에 달리듯이 사상과 생명이 그 속 에서 전개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에게 있어서 생식이란 일반적인 위대한 법칙이요, '우주적인 존재'의 난 삽하고 도 부단한 의지를 수행하는 신성하고 존경할 만하며 신적인 행위인 것이다. 그래서 그 는 이 농가에서 저 농가로 다니며, 생명의 박해자인 이 불관용의 사제에 대하여 맹렬한 반대 운동 을 펴기 시작하였다. 잔느는 슬픔에 잠겨 주예수께 기도하고 아버지에게 애원하였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이렇 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런 인간들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우리들의 권리 요, 의 무란다. 그것들은 인간도 아니야." 그는 긴 백발을 흔들면서 되뇌었다. "그것들은 인간도 아니야. 아무것도 모른단다, 아무것 도, 아무것도. 그들은 치명적인 몽상 속에서 행동하고 있는 거야. 자연법칙에 어긋 나는 자 들! 하고 소리쳤다. 사제는 적을 충분히 의식하고 있었으나, 성관과 젊은 부인의 지배자 그대로 있고 싶었기 때문에 최후의 승리를 확신하며 기회를 기다렸다. 그런데다가 확고한 한 가지 생각이 그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는 우연히 줄 리앙과 질베르트의 불륜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들의 관계를 중단시키고 싶었다. 그는 어느날 잔느를 만나러 갔다. 그리고 비유적인 긴 이야기를 한후에 그녀 자신의 집안 에 있는 악과 싸우고 멸망시키기 위해, 위험에 처해 있는 두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자기에 게 협력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녀는 그 말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하였다. 그는 대답했다. " 때가 되 지 않았군요. 나중에 다시 뵙겠습니다. "그러고는 불쑥 나가버렸다. 겨울은 끝나가고 있었다. 시골에서 '썩은 겨울'이라고 하는 축축하고 후덥지근한 겨 울이었 다. 신부는 며칠 후에 다시왔다. 그러고는 나무랄 데 없는 사람들 사이의 그런 가당치 않은 관계에 대해서 모호한 말로 이야기했다. 그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서라도 그것을 막아야 하는 것은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그 는 고 결한 것을 참작하여 잔느의 손을 잡고, 그녀에게 눈을 뜨고 이해하여 자기를 도와달라 고 간 청했다. 이번에는 그녀가 납득을 했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은 조용한 그의 집에 괴로운 일이 일어 날 수도 있다는 그 모든 것을 생각하니 공포에 사로잡혀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신부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지 못하는 체했다. 그러자 신부는 더 이상 망설일 수가 없어서 분명하게 이야기했다. "제가 수행하려고 하는 것은 괴로운 의무입니다, 자작부인. 그러나 어찌 할 수가 없 습니다. 제가 수행하고 있는 임무는 부인이 막을 수 있는 것을 모르고 있도록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내게 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부인의 남편과 드 푸르빌르 부인과는 죄가 되는 애정을 지속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녀는 체념하듯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사제가 다시 말을 이었다. "이제는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그러자 그녀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제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신부님?" 그가 우악스럽게 대답했다. "이 사악한 열정을 방해하십시오." 그녀는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몹시 괴로워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이미 그 는 하녀 와 더불어 저를 배신한 적이 있습니다. 아무튼 제 말은 듣지 않아요. 이제 저를 사랑 하지도 않아요. 그의 마음에 들지 않는 욕망을 나타내기라도 하면 그 즉시로 저를 학대하는 거예요. 그러니 제가 무엇을 할 수 있겠어요?" 사제는 직접적인 대답은 하지 않고 이렇게 외쳤다. "그러면 부인은 굴복하시는 거 로군요! 체념하시는 거로군요! 인정하시는 거로군요! 간통자가 댁의 지붕 밑에 있습니다. 그 런데 부 인은 그를 묵인하고 있습니다! 죄가 부인의 눈 아래에서 저질러지고 있는데 부인은 시선을 돌리시는 겁니까? 부인은 아내 입니까? 기독교 신자입니까? 어머니입니까?" 그녀는 흐느끼며 말했다. "제가 어떻게 하기를 바라시나요?" 그가 즉각 응수 했다."그런 비열한 짓을 허용하기보다 차라리 무슨 짓이라도 하십시 오, 무 슨 짓이라도. 그와 헤어지십시오. 이 더러운 집에서 뛰쳐나가십시오."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제겐 돈이 없어요, 신부님. 게다가 이제는 용기도 없구요. 그리고 증거도 없는데 어떻게 나갑니까? 제겐 그런 권리조차 없는걸요." 사제는 몸을 떨면서 일어섰다. "부인의 충고는 바로 비겁함이로군요. 부인. 나는 부 인을 그 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부인은 신의 은총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녀는 무릎을 꿇고 소리쳤다. "아아! 제발, 저를 버리지 말아주세요. 제게 조언을 해주세 요!" 그는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드 푸르빌르씨의 눈을 뜨게 하십시오. 이 관계 를 끊게 하느 것은 그분의 일입니다." 그 생각을 하니 갑작스러운 공포가 그녀를 사로잡았다. "그러면 그분은 그들을 죽일 거예 요, 신부님! 그리고 저는 밀고를 하게 되는 거예요! 아아! 그럴수는 없어요, 절대로!" 그러자 그는 분노가 치밀어 마치 그녀를 저주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한손을 치켜들 었다. "당신의 치욕과 당신의 죄악 속에 그대로 머물러 계십시오. 당신은 그들보다 더 가증 스러우 니까. 당신은 관대한 아내시군요! 여기에서 더 이상 내가 할 일은 없습니다." 그러고 그는 가버렸다. 너무도 화가 나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 정도였다. 그녀는 굴복할 각오를 하고 약속을 맹세하면서 정신없이 그를 따라갔다. 그러나 그는 여전 히 분노로 몸을 떨었으며, 거의 그 사람만큼이나 길다랗고 큰 파란 우산을 화가 나 흔들면 서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그는 울타리 곁에 서서 가지치는 일을 감독하고 있는 줄리앙을 보았다. 그래서 그는 쿠이 야르의 농장을 가로지르려고 왼쯕으로 돌아갔다. 그는 이렇게 되풀이했다. "귀찮게 굴지 마 세요, 부인. 난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바로 그가 가는 길에, 마당 한가운데에, 그 집 아이들과 이웃집 아이들의 한 떼가 개 집 주 위에 모여서 말없이 주의를 집중하고 무엇인가를 신기한 듯이 주시하고 있었다. 그 애들의 한가운데에서 남작이 뒷짐을 지고 역시 호기심 있게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학교 선생 같았 다. 그러나 멀리 사제가 오는 것을 보자, 그를 만나 인사하고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 을 피하 려고 가버렸다. 잔느는 애원하듯 말했다. "며칠만 참아주세요, 신부님. 그리고 성관으로 다시 와주 세요. 제 가 할 수 있는 것과 준비해야 할 것을 말씀드리겠어요. 그리고 우리 다시 생각해 보기 로 해 요." 그들은 그때 아이들이 몰려 있는 곁에까지 왔다. 그래서 사제는 무엇이 그 애들을 그렇게 흥미롭게 하는 지를 보기 위해 다가갔다. 그것은 새끼를 낳고 있는 암캐였다. 개집 앞에는 다섯 마리의 새끼가 어미 주위에서 꼬물거리고 있었고, 어미는 옆으로 누워 그것들을 사랑 스럽게 핥고 있었다. 사제가 몸을 구부리는 순간, 개는 경련을 일으키며 몸을 죽 펴더 니 여 섯 번째의 강아지가 나왔다. 그러자 개구쟁이 아이들은 모두 기쁨에 어쩔 줄을 몰라 손뼉을 치면서 소리를 질러댔다. "또 하나 나왔다, 또 하나 나왔어!" 그들에게는 그것은 하 나의 놀 이였다. 불순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놀이였다. 그들은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듯이 이 출생을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톨비악 신부는 처음에는 아연실색해 있다가, 이내 걷잡을 수 없는 분노에 사로잡혀 그의 커다란 우산을 치켜들고 있는 힘을 다해 아이들의 머리를 후려치기 시작했다. 질겁을 한 개 구쟁이들이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을 갔다. 그러자 그는 갑자기 기를 쓰고 일어 나려고 하는 개마저 그냥 두지 않았다. 머리가 혼란해진 그는 온 힘을 다해 개를 때리기 시 작했다. 사슬에 묶인 개는 도망칠 수가 없어서, 매질에 몸부림을 치면서 무섭게 비명을 질렀 다. 그의 우산이 부러졌다. 그러자 맨손으로 개 위에 올라타 미친 듯이 짓밟고 찧고 짓눌렀다. 눌러대 는 바람에 마지막 새끼가 나왔다. 그는 벌써 젖꼭지를 찾고, 끙끙거리고, 눈이 떨어 지지 않 은 그리고 둔한 새끼들 한가운데에서 아직도 몸을 움직이고 있는 그 피투성이의 몸 뚱이를 미치광이 같은 발뒤꿈치로 아주 밟아 죽였다. 잔느는 달아나 버렸다. 그런데 사제는 갑자기 목덜미가 잡히는 것을 느꼈다. 따귀 한 대에 그의 삼각 모자가 날아가 버렸다. 흥분한 남작이 그를 울타리가 있는 데 까지 끌고 가 서 길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르 페르튀씨가 돌아다보니 자기 딸이 무릎을 꿇고, 강아지들 한가운데서 흐느껴 울면 서 스 커트에 그것들을 주워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딸에게로 성큼성큼 돌아와 연방 손짓을 하면서 소리를 질러댔다. "저것 봐, 저게 법의를 입은 인간이다! 이젠 너도 보았겠지?" 소작인들이 달려왔다. 사람들은 모두 창자가 빠진 그 개를 바라보았다. 쿠이야르 할 멈이 말 했다. "어쩌면 저렇게 야만적일 수 있을까!" 그러나 잔느는 일곱 마리의 새끼를 주워 모으고, 그것들을 키우겠다고 주장했다. 그것들에게 우유를 주려고 했으나 세 마리는 다음날 죽어버렸다. 그러자 시몽 영감은 젖을 먹여줄 암캐를 찾으려고 온 마을을 뛰어다녔다. 그런 개를 찾지는 못했으나 그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단언하면서 암코양이 한 마리를 데리고 왔다. 그런데 다른 세 마리가 또 죽 었다. 그래서 종족이 다른 이 유모에게 최후의 한 마리를 맡겼다. 고양이는 당장에 강 아지를 양자로 삼고 옆으로 누워서 자기의 젖꼭지를 내밀었다. 양모의 젖이 다 말라버리지 않도록 하려고 보름 후에는 젖을 떼고, 잔느 자신이 우유 로 키 울 것을 책임졌다. 그녀는 강아지를 '토토'라고 이름 지었다. 그러나 남작은 독단 으로 그 이 름을 바꾸고 '마사크르' 라고 명명했다. 사제는 다시 오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 일요일에 그는 성관에 대해 저주와 욕설과 협박의 말을 설교단 위에서 던졌고, 상처에는 뻘겋게 단 쇠를 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남작 을 파문하겠다고 했으나 그는 그것을 조소하였다. 그리고 아직은 소심해서 줄리앙의 최근의 정사를 흐리멍덩한 암시로 알렸다. 자작은 격분했으나 무서운 추문에 대한 두려움이 그의 분노를 진정시켰다. 그러자 일요 설교 때마다 사제는 계속해서 복수를 선언했고, 신의 심판의 시간이 가까이 왔다, 그의 적은 모두 벼락을 맞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줄리앙은 대주교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강력한 편지를 썼다. 톨비악 신부는 총애를 잃게 될 위협을 받게 되었다. 그는 입을 다물었다. 이제는 흥분한 표정으로 걸음을 재촉하면서 고독한 긴 산책을 하고 있는 그를 만나 곤 했 다. 질베르트와 줄리앙은 승마 산책을 하면서 그를 발견했다. 어느 때에는 벌판의 끝 이나 절 벽 가장자리에서 검은 점처럼 멀리 보일 때도 있고, 또 어느 때에는 그들이 들어가려 고 하 는 어떤 좁은 골짜기에서 기도서를 읽고 있을 때도 있었다. 그러면 그들은 그의 곁을 지나 가지 않으려고 말고삐를 돌리는 것이었다. 그들의 사랑에 더욱 활기를 띠게 하고 달리다가 으슥한 곳이 있으면 여기저기서 매일 서로 를 껴안게 하는 봄이 왔다. 아직은 나뭇잎들이 성기고 풀밭이 축축했기 때문에, 한여름처럼 덤불숲 속으로 깊이 들어 갈 수가 없어서 그들은 자신들의 포옹을 가리기 위해 지난 가을부터 보코트 언덕 꼳대 기에 버려진 채로 있는 목동의 이동식 오두막집을 이용하였다. 그 오두막집은 낭떠러지에서 5백 미터 되는 곳에, 골짜기의 급경사가 시작되는 바로 그 지 점에 홀로 높다랗게 서 있었는데, 그 집 밑에는 바퀴가 달려 있었다. 그들이 그 안에 있으면 발각될 염려가 없었다. 왜냐하면 거기에서는 벌판을 내려다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집채에 묶여 있는 말들은 그들의 키스가 지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들이 그 은신처를 나오는 순간, 언덕의 갈대 속에 거의 숨 다시피 않아 있는 톨비악 신부를 보았다. "말들을 협곡 속에 매어놓아야겠군요. 멀리서도 우 리가 여 기에 있는 것을 알 수 있겠어요." 하고 줄리앙이 말했다. 그래서 그들은 덤불이 가득 한 골짜 기의 숨겨진 부분에 말을 매어두는 습관이 붙어버렸다. 그러고 나서 어느 날 저녁, 두 사람이 백작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게 되어 있는 라 브리에 트로 들어갈 때, 그들은 성관에서 나오는 에투방의 사제와 마주쳤다. 그들을 지나가게 하려 고 그는 옆으로 비켜섰다. 그리고 인사를 했으나 그들은 시선을 피했다. 어떤 불안이 그들을 사로잡았으나 곧 사라졌다. 그런데 잔느가 어느 오후, 바람이 몹시 부는 날 (그것은 5월 초순이었다) 난롯가에서 책을 읽고 있자니, 드 푸르빌르 백작이 걸어오는 것이 갑자기 눈에 띄었다. 그 걸음이 너무 도 빨 라서 그녀는 어떤 불행한 일이 생긴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녀는 그를 맞아들이려고 급히 내려갔다. 그와 마주하게 되자, 그녀는 그 사람이 미 친 것 으로 생각했다. 그는 집에서만 쓰던 커다란 털모자를 쓰고 사냥복을 입고 있었다. 그 리고 보 통때는 불그레했던 안색이 너무도 창백해서,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그 붉은 수염은 마 치 불 꽃처럼 보였다. 그의 눈은 핏발이 서 있었고 얼이 빠진 듯이 두리번거렸다. 그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아내가 여기에 있지요,네?" 잔느는 머리가 혼란스러워져 서 대답 했다. "아아뇨, 오늘은 전혀 뵙지 못했는걸요." 그러자 그는 마치 다리가 부러진 듯이 주저앉더니, 모자를 벗고 손수건으로 몇 번이 나 기 계적인 동작으로 이마를 닦았다. 그러고 나서 벌떡 일어나더니 젊은 부인에게로 다가 와 두 손을 내밀며, 어떤 무서운 고통을 그녀에게 털어놓으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러다가 멈칫 하고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정신나간 듯 말했다. "그런데 댁의 남편이..... 당신 역 시....." 그리고 그는 바다 쪽으로 달아났다. 잔느는 그를 멈추게 하려고 달리면서 그를 부르고 애원했으며, 공포로 가슴이 떨려 이렇게 생각했다. '그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그는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일까? 아아! 그들을 발견하 지 못하면 좋으련만!' 그러나 그녀는 그를 미처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는 듣지도 않았다. 그는 그녀 앞에 서 자기 목적에 확신을 갖고 주저하는 빛도 없이 가고 있었다. 그는 도랑을 건너고, 거인 같은 걸음 걸이로 갈대숲을 건너뛰어 절벽에 닿았다. 잔느는 나무들이 서 있는 비탈 위에 서서 오랫동안 그를 눈으로 좇고 있었다. 그러다 가 그 가 보이지 않게 되자, 불안으로 괴로워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백작은 오른쪽으로 접어들어 뛰기 시작하였다. 파도가 높은 바다에는 물결이 있었고, 새카 만 큰 구름들은 미친 듯이 빨리 스쳐 지나가고 다른 구름들이 몰려왔다. 그리고 그 구름은 각기 맹렬한 소나기를 해안에 퍼부었다. 바람이 우는 소리를 내었고, 풀들을 쓰러뜨리 고 자 라고 있는 작물을 눕혔으며, 거품 덩어리 같은 커다란 흰 새들을 멀리 지상으로 이끌 어 갔 다. 사나운 돌풍은 계속해서 일어나 백작의 얼굴을 후려치고 빗방울은 뺨과 수염을 적셨 으며, 귀와 방망이질하는 가슴을 소리로 가득 채웠다. 백작의 눈앞에는 보코트의 골짜기가 그 깊은 목구멍을 벌리고 있었다. 거기까지는 비 어 있 는 양 우리 곁에 목동의 오두막집이 한 채 있을 뿐 아무것도 없었다. 두 마리의 말이 이동 식 집의 몸채에 매여 있었다. 이런 폭풍우에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 말들을 알아보자마자 백작은 땅에 엎드려 손과 무릎으로 기어갔는데, 진흙투성이의 큰 몸 집과 짐승의 털모자를 쓴 그의 모습은 무슨 괴물처럼 보였다. 그는 외딴 오두막집이 있는 데까지 기어가서 널빤지의 틈새로 발견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 밑에 숨었다. 말들은 그를 보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천천히 손에 쥐고 있던 칼로 고삐를 끊었 다. 그 러자 갑작스런 광풍이 불어왔기 때문에, 바퀴가 달린 목조 오두막집을 흔들고 경사진 지붕 을 후려치는 우박에 놀라서 말들이 달아나 버렸다. 그는 이제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꽤 긴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가 갑자기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진흙투성이가 된 그가 몸을 일으켰다. 그는 미친 듯한 몸짓으로 밖에서 문을 잠그게 되어 있는 빗장을 지르고, 집의 몸체를 잡고서 마 치 그 오두막집을 박살낼 듯이 흔들어대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큰 키를 구부리고 필사적 인 노력을 다해 오두막집을 둘러메고, 소처럼 헐떡이면서 끌어당겼다. 그는 그 이동식 집과 그 속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진 쪽으로 끌고 갔다. 안에 있는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주먹으로 칸막이를 두드리면서 소리쳤 다. 내리막길 위에 오자, 백작은 그 가벼운 집을 놓아버렸고, 그것은 기울어진 비탈 에서 굴 러 떨어지기 시작했다. 오두막집은 미친 듯이 굴러 떨어지면서, 여전히 쏜살같이 내려가며, 짐승처럼 뛰어 내리고 비틀거리면서, 벼랑을 몸채로 치면서 떨어졌다. 도랑 속에 몸을 웅크리고 있던 한 늙은 거지가 자기 머리 위로 오두막집이 단숨에 굴 러 떨 어지는 것을 보았고, 그 큰 나무 상자 속에서 새어나오는 무서운 비명소리를 들었다. 갑자기 오두막집은 충격으로 바퀴 하나를 잃어버리고 모로 쓰러져버렸으나 이번에는 공이 굴러가는 것처럼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마지막 협곡 가장자리에 와서 곡선을 그리 면서 뛰어오르더니 밑바닥에 떨어져 달걀처럼 터져버렸다. 집이 돌바닥에서 부서지는 것을 보자 그 늙은 거지는 그것을 보러 가시덤불을 헤치고 잔걸 음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시골뜨기의 조심성으로 , 배가 터져버린 그 상자에 감히 가 까이 가 지는 못하고, 그 사건을 알리러 근처 농가가 있는 데까지 달려갔다. 사람들이 달려왔다. 파편을 들어올렸다. 두 구의 시체가 눈에 띄었다. 그들은 타박 상을 입 고 짓이겨져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남자는 이마가 뚫어지고 온 얼굴이 으깨어져 있었다. 여자의 턱뼈는 충격으로 빠져나와 늘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부러진 팔다리는 마 치 살 속에 뼈가 없는 것처럼 흐물거렸다. 그러나 그들이 누구인지는 알아볼 수 있었다. 사람들은 이 불행의 원인에 대해서 한 참 추 론하기 시작하였다. "이 사람들은 이 오두막집 안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어떤 여자가 말했다. 그러 자 그 늙은 거지는, 그들은 십중팔구 광풍을 피하기 위해서 그 안으로 피신을 했는데 미친 듯한 바람이 그 오두막집을 넘어뜨리면서 굴러 떨어지게 했을 것이라고 이야기 했다. 그리 고 그 자신도 거기에 숨으려고 갔었으나 말들이 집채에 매여 있는 것을 보고는 이미 누가 들 어 있 다는 것을 알았노라고 설명했다. 그는 흡족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내가 죽었을 거야." 어떤 목소 리가 말 했다. "그런 편이 낫지 않았을까?" 그러자 그 영감은 무서운 분노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어째서 그 편이 낫다는 거지? 나는 가난하고 이 사람들은 부자라서인가! 지금 이 사 람들을 살펴봐....." 그리고 몸을 떨면서, 누더기를 걸치고 물에 흠뻑 젖고, 엉크러진 수염 에다 구멍 난 모자 밑으로 긴 머리털을 내려뜨린 더러운 그가 구부러진 지팡이 끝으로 두 시체를 가리 켜 보였다. 그리고 이렇게 똑똑히 말했다. "우린 모두 똑같은 거야, 죽음 앞에서는." 그러는 동안에 다른 농부들이 왔다. 그들은 불안하고, 교활하고, 겁에 질리고, 이 기적이고 또 비열한 눈초리로 곁눈질하면서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찌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협의 를 했다. 그리고 보상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서 시체를 성관으로 옮기기로 결 정했다. 그래서 두 대의 마차에 말을 달았다. 그런데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어떤 사람들은 단 지 마 차 바닥에 짚을 깔자고 했고, 또 다른 사람들은 예의상 요를 넣어야 한다는 의견이었 다. 방금 전에 이야기한 그 여자가 소리쳤다. "그렇지만 피투성이가 될 거예요. 그 요가 말이예 요. 표백액으로 빨아야 할 거예요." 그러자 낙천적인 얼굴의 뚱뚱한 농부가 대꾸했다. "그렇다면 그 값을 지불하겠지요. 요 값 이 나갈수록 그건 더 비싸질 거야." 이 논쟁은 결정이 났다. 그래서 용수철도 없는 차바퀴 위에 높이 올라앉은 두 대의 마차는 하나는 오른쪽으 로, 다 른 하나는 왼쪽으로 속보로 출발했다. 큰 수레바퀴 자국으로 울퉁불퉁한 곳에서는 아 까까지 도 서로 껴앉고 있었으나 이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이들의 유해를 흔들어댔다. 백작은 오두막집이 급한 경사 위에서 굴러 떨어지는 것을 보자, 비와 광풍 속을 뚫고 전속 력으로 도망쳤다. 그렇게 그는 몇 시간 동안 길을 가로지르고, 비탈을 뛰어넘고, 울 타리를 무너뜨리면서 달렸다. 그리고 그는 어떻게 왔는지도 알 수 없이 해질 무렵에 집으로 돌아 왔다. 당황한 하인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가 두 마리의 말이 주인도 없이 방금 돌 아왔는 데, 줄리앙의 말은 다른 말을 따라온 것이라고 그에게 알렸다. 그러자 드 푸르빌르씨는 비틀거리면서 떠듬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지겨운 날씨에 그 사람들에게 무슨 사고가 일어났을지도 몰라. 모두들 찾아보도록 해." 그 자신도 다시 나왔다. 그러나 눈에 띄지 않는 곳까지 오자 그는 가시덤불 밑에 몸을 숨기고, 아직도 야성적인 정열로 사랑하고 있는 여자가 죽어서 돌아올 혹은 죽어가는 상태로, 아니 어쩌면 불구가 되어서, 영원히 보기 흉한 모습을 하고 돌아올지도 모를 그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 얼마 있다 한 대의 마차가 그 앞으로 지나갔는데, 어떤 이상한 것을 싣고 있었다. 마 차는 성 관 앞에 멎더니 안으로 들어갔다. '저것이다, 그래, 그녀다.' 그러나 어떤 무서운 두려움이 었고 진실에 대한 갑작스러운 공포였다. 그는 토끼처럼 몸을 웅크리고 작은 소리에도 몸을 떨면서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그는 한 시간을 기다렸다. 어쩌면 두 시간일지도 모른 다. 마 차는 오지 않았다. 그는 아내가 죽어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를 보 아야 한 다는 생각이, 그녀의 눈과 마주쳐야 한다는 생각이 그를 공포로 휩쌌기 때문에, 그가 갑자 기 숨어 있는 곳에서 발각이 되어 그 임종의 고통에 입회하기 위해서 들어가지 않으 면 안 된다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그는 다시 숲 한복판까지 도망갔다. 그러자 갑자기 그 는 그 녀가 어쩌면 도움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틀림없이 어는 누구도 그녀를 간호할 수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정신없이 달려 되돌아왔다. 돌아오다가 정원사를 만나 그에게 소리쳤다. "어떻게 됐지?" 사내는 감히 대답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자 드 푸르 빌르씨 는 거의 울부짖으면서 물었다. "죽었는가?" 하인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네, 백작 님." 그는 엄청난 안도를 느꼈다. 급작스러운 평온이 그의 피와 떨리는 근육 속으로 들어왔다. 그는 씩 씩한 걸음으로 큰 층계의 계단을 올라갔다. 또 하나의 마차는 레 푀플에 닿았다. 잔느는 멀리에서 그것을 알아보고, 요를보고, 그 위에 시체가 누워 있으리라는 것을 예측하고 모든 것을 알아버렸다. 그녀의 감정은 너무도 격렬해서 의식을 잃고 쓰려졌다. 그녀가 의식 을 회 복했을 때, 아버지가 그녀의 머리를 잡고 식초로 판자놀이를 적셔주고 있었다. 그가 망설이 면서 물었다. "넌......알고있니?" 그녀가 중얼거렸다. "네, 아버지." 그녀는 몸을 일으키려고 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그만큼 그녀는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그날 밤 그녀는 사산 (死産) 을 했다. 계집애였다. 그녀는 줄리앙의 장례식을 전혀 보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것도 몰랐 다. 그녀는 다만 하루인가 이틀 후에 리종 이모가 와 있는 것을 알았다. 그녀의 머 리에서 떠나지 않는 열에 들뜬 악몽속에서 그녀는 이 노처녀가 언제 레 푀플을 떠났는가, 어 느 때 였던가, 어떤 상황에 속에서였는가를 집요하게 기억해 내려고 애썼다. 그러나 생각이 나지 않았다. 제정신이 들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이모를 본 것만은 확실했다. 11 잔느는 석 달동안이나 자기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너무도 허약해지고 너무도 창백 해져서 회복할 가망이 없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그러나 차츰 그녀는 생기가 되살아났다. 아 버지의 리종 이모는 두 사람 모두 레 푀플에 자리를 잡고 그녀 곁을 떠나지 않았다. 잔느 는 이 충격에서 신경질 질환을 얻게 되었다. 아주 작은 소리에도 정신을 잃었고, 대수롭지 않은 원인으로 해서도 오래 기절하는 것이었다. 한 번도 그녀는 줄리앙의 죽음에 관해 자 세하게 물은 적이 없었다. 무엇이 그녀에게 중요하단 말인가? 그녀는 그것에 대해 충분히 알 고 있 지 않았던가? 사람들은 모두 돌발 사고라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 았다. 그녀는 자기를 몹시 괴롭히는 그 비밀을 가슴속에 지니고 있었다. 즉 간통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것, 그 큰 불행이 있던날, 무섭고 돌연한 백작모습. 지금 그녀의 마음은 감동적 이고 달콤하고 애수적인 추억, 예전에 남편이 주었던 짧은 사랑의 기쁨이 잠겨있다. 그녀 는 뜻밖의 기억이 되살아 날 적마다 몸을 떨었다. 그녀는 약혼 시절 남편과 코르시카 의 작 열하는 태양 아래서 피어났던, 오직 한 때의 정열로 사랑했던 그의 모습을 다시 보 는 것 이었다. 모든 결점은 누그러지고 모든 고통은 사라졌다. 그리고 부정(不淨) 그 자체 도 닫힌 무덤으로부터 점점 더해 가는 소원(疏遠)함 속에서 이제는 희미해져 갔다. 그래서 잔 느는 자 기를 품에 안아주던 그 남자에 대해 죽은 뒤에 어떤 막연한 감사의 마음에 잠겨서, 행복했 던 순간만을 생각하기 위해 지난 고통을 용서해 주었다. 그러고 나서도 시간은 여전 히 흘 러갔고, 한 달 한달 두 달 지나감에 따라 먼지가 쌓이는 것처럼 모든 기억과 고통 은 망 각으로 덮여갔다. 그래서 그녀는 아들에게 몸과 마음을 바쳤다. 아이는 그의 주위에 모인 세 사람의 우상이요, 유일한 관심사가 되었다. 그래서 그는 폭군으로서 군림하였다. 그 아 이가 가지고 있는 이 세 사람의 노예 사이에서는 어떤 질투심 같은 것조차 분명히 나 타났 다. 무릎 위에서 말타기를 한 후에 남작에게 주는 큼지막한 키스를 잔느는 신경질적으 로 바 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리종 이모는 항상 모든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했던 것처럼 그 아이에 게도 무시를 당했고, 아직은 거의 말도 하지 못하는 그 주인에게 이따금 하녀 취급을 당했 으며 자기가 애원하여 겨우 얻은 하찮은 애무와 그 애가 자기 어머니와 할아버지에게 하는 포옹과 비교하면서 자기 방으로 가 울기도 하였다. 별다른 사건 없이 어린애에 대한 끊임 없는 관심 속에서 2년이란 평온한 세월이 흘렀다. 세 번째의 겨울이 시작될 무렵, 봄 까지 루 앙에 가서 살기로 결정하고 온 가족이 그곳으로 옮겼다. 그러나 버려져 있던 축축한 옛집 에 도착하자마자, 폴은 늑막염이 되지 않을까 염려될 정도로 심한 기관지염에 걸렸 다. 폴은 늑막염이 되지 않을까 염려될 정도로 심한 기관지염에 걸렸다. 그래서 제정신이 아 닌 세 사람의 친척은 푀플의 공기가 없이는 지낼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선언했다. 그래서 병이 다 낫자마자 그 아이를 데리고 다시 돌아왔다. 그러고는 그 아이를 데리고 다시 돌 아왔다. 그러고는 단조롭고 즐거운 생활이 시작된다. 언제나 이 꼬마의 주위에서 함께, 어 떤 때에 는 정원에서, 어떤 때에는 그 애가 더듬거리며 하는 말과 우스운 표현, 그리고 몸짓 하나 하나에 대해 경탄을 마지않는 것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귀엽다고 아이를 폴레(병아 리라는 말)라고 발음하여 이것이 또한 끝없는 웃음을 자아내게 하였다. 그래서 풀레라는 별명 이 그 에게 남게 되었다. 더 이상 다른 이름으로 그를 부르지 않았다. 그 아이는 빨리 자랐 기 때 문에 남작이 '세 명의 어머니'라고 부른 세 식구의 흥미진진한 일 중 하나는 그의 키를 재는 것이었다. 객실의 문 옆에 있는 벽판 위에다 매월 그의 성장 과정을 보여주는 일련의 작은 줄을 칼로 그어놓는 것이었다. '풀레의 눈금'이라고 이름을 붙인 이 눈금은 모 든 사람 들의 생활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였다. 그리고 새로운 녀석이 이 집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오로지 아들에게만 열중에 있던 잔느가 소홀이 했던 '마사크르' 라는 그 개였다. 루디빈느가 키우고 외양간 앞에 있는 낡은 통속에서 살던 그 개는 언제나 사슬에 묶여 혼자 지냈다. 어느날 아침 폴이 그 개를 발견하고는 그를 안아보겠노라고 악을 쓰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몹시 걱정스러워하면서 아이를 개에게 데리고 갔다. 개는 어 린애를 반겼다. 그들을 떼어놓으려고 하자 어린애는 악을 썼다. 그렇게 해서 마사크르는 사 슬에서 풀려나 집안에서 살게 되었다. 개는 폴의 뗄래야 뗄 수 없는, 언제나 함께 있는 친구 가 되 었다. 그들은 함께 뒹굴고 양탄자 위에서 나란히 잠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가 이윽고 마사크 르는 이제는 그에게서 떠나려고 하지 않는 그의 친구의 침대속에서 자게 되었다. 잔느 는 이 따금 벼룩 때문에 속이 상했다. 그리고 리종 이모는 꼬마의 애정에서 아주 큰 한부분 을 차 지하고 있는 개를 원망하였을 것이다. 브리즈빌가와 쿠틀리에가와는 이따금 서로 방문 을 하 였다. 촌장과 의사만이 규칙적으로 찾아와서 이 낡은 성관의 고독을 깨뜨려주었다. 잔느는 암캐가 살해되고 또 백작부인과 줄리앙이 끔찍하게 죽었을 때, 사제가 그녀에게 불 어넣어 준 의혹을 품게 되고 나서부터는, 그러한 대리자를 가질 수 있는 신에 대해 화를 내 고 교 회에도 나가지 않았다. 톨비악 신부는 이따금 성관을 직접적인 암시로 저주를 했는 데, 그 성관은 '악의 정령', '영원한 반란의 정령', '오류와 허위의 정령', '부정(不淨)의 정령', ' 타락과 불순의 정령' 같은 유령이 나오는 성관이라고 했다. 그는 남작을 이렇게 지 칭했던 것이다. 게다가 그의 교회는 쓸쓸했다. 농부들이 쟁기를 밀고 가는 밭을 따라 신부 가 걸어 갈 때에도, 농부들은 일을 멈추고 그에게 발을 걸거나 인사를 하기 위해 일손을 놓는 법이 없었다. 그리고 또 그는 귀신들린 여자에게서 마귀를 쫓아냈기 때문에 마법사로 통하 고 있 었다. 소문에 의하면 그는 저주를 피하는 신비한 말들을 알고 있다고 하는데, 그의 말에 의하면 저주란 일종의 악마의 장난이라는 것이다. 그가 암소에게 손을 대면 파란 젖이 나오 거나 꼬리를 둥그렇게 말기도 하고, 알 수 없는 몇 마디 말을 지껄이면 잃어버린 물건 을 되 찾게 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편협하고 광신적인 정신은 지상에 있어서의 악마의 출현 에 관 한 이야기가 내포되어 있는 종교 서적 연구에 열정적으로 전념하였다. 악마의 능력의 가지 가지표시, 숨어있는 각양각색의 영향,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지모(智謀), 그리고 그 의 술책 의 일반적인 기교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 있는 종교서적이었다. 그는 이러한 신비 하고도 불길한 능력과 싸우라고 특별히 부름받은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성직자의 개론 속에서 보여주고 있는 마귀를 쫓는 주문의 모든 축문을 배웠던 것이다. 그는 쉴 새없이 어둠 속에 ' 약빠른 정령'이 떠돌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라틴어의 구절 을 언제나 되뇌이곤 했다. 'Sicut leo rugiens circuit quaerens quem devoret (먹이 를 찾아 서 포효하는 사자처럼).' 그러자 어떤 두려움이 널리 퍼졌다. 그것은 감춰져 있는 그의 힘 에 대한 공포였다. 시골의 무지한 사제들인 그의 동료들 조차 신의 신조요, 이 악의 위력 이 발현되는 경우에 상세한 제식의 명령에 혼란스러워져 마침내 마술과 종교를 혼동 하게 되어 톨비악 신부를 약간 마법사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은 비난할 여지없는 그의 생활의 엄격성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그에게서 예측되는 막연한 능력에 대해서도 경의를 표 하고 있었다. 잔느를 우연히 만났을 때도 그는 인사하지 않았다. 이러한 상태는 리종 이 모를 불 안하게 하고 슬픔에 잠기게 했다. 노처녀의 겁많은 영혼으로써는 교회에 나가지 않는 것을 조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물론 그녀는 독실한 신자였고, 고해도 하고 성체배령도 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것을 알지 못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혼자, 폴과 더불 어 혼자 있을 때에는 매우 나지막한 소리로 하느님에 대한 이야기를 폴에게 해주었다. 아이는 그녀 가 창세기의 기적적인 이야기를 들려줄 때에는 가까스로 듣고 있지만, 그러나 하느님 을 사 랑해야 한다. 많이 많이 사랑해야 한다고 말할 때에는 가끔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 다. "하 느님은 어디든지 계셔. 그러나 교회 안에는 안계셔" 아이는 이모 할머니의 이해할 수 없 는 사실을 자기 할아버지에게 말했던 것이다. 어린아이는 열 살이 되었다. 그의 어 머니는 마흔살쯤 되어보였다. 아이는 튼튼하고, 장난꾸러기고, 나무에 기어오를 만큼 담대 했으나 별로 재주는 없었다. 학과공부는 지루했기 때문에 곧 중단해 버렸다. 남작이 책 앞에 좀더 오래 붙들어 놓으려고 할 때마다 잔느가 얼른 와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놀게 놓 아주세 요. 지치게 해서는 안돼요. 아직 어리잖아요." 그녀에게 있어서는 그 아이는 언제 나 여섯 달 아니면 한 살이었던 것이다. 그 아이가 어린애처럼 걷고, 뛰고, 말하고 하는 것 도 거의 알아 차리지를 못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어린애가 넘어지지 않을까, 추위를 느끼지 않을 까, 돌아다니다가 더위를 먹지 않을까, 배탈이 날 정도로 너무 많이 먹지 않을까, 발 육하는 데 있어서 너무 적게 먹는 건 아닐까 하는 한결같은 걱정속에서 지냈다. 아이가 열두 살이 되었을 때 곤란한 큰문제가 생겼다. 그것은 첫 성체배령의 문제였다. 리즈가 어느 날 잔느 에게로 와서 어린아이에게 종교교육을 시키지 않고, 또 첫 의무를 수행시키지 않고 이렇게 오랫동안 그냥 놓아둘 수는 없다는 것을 그녀에게 주의시켰다. 이모는 모든 방법으로 이론 을 내세웠고 수많은 이유를 방패로 제시했으며, 무엇보다도 그들이 만나는 사람들의 의견 이 그렇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혼란에 빠져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아직 더 기다려 보자고 만 말했다. 그러나 한 달 후에 그녀가 브리즈빌 백작 부인을 방문했을 때, 그 부인 이 뜻밖 에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아마 올해가 댁의 폴이 첫 성체 배령을 하는 해지요?" 잔느는 별안간에 당한 일이라. "네, 부인" 하고 대답했다. 이 간단한 말이 그녀의 마음을 정 하게 했 다. 그래서 아버지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리즈에게 아이를 교리문답에 데리고 가달라 고 부탁했다. 한 달 동안은 모든 것이 잘되어갔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풀레가 목 이 쉬어 서 돌아왔다. 그리고 그 이튿날은 기침을 하였다. 마음이 괴로워진 어머니가 어찌 된 일이 냐고 물어보았더니, 그래가 얌전하게 굴지를 않아서 사제가 현관으로부터 바람이 불 어오는 교회 문에다 학과가 끝날 때까지 세워놓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아이를 집에다 붙잡아두고, 자신이 직접 종교입문서를 가르쳤다. 그러나 톨비악 신부는 리종의 애 원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성체 배령자 가운데 그 아이가 끼는 것 을 허 락할 수 없다고 거절했다. 다음해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격분한 남작이 신사가 되기 위해서는 그런 어리석은 짓, 그런 유치한 화체(花體)의 상징을 믿을 필요가 없 다고 단 언하였다. 그리고 그는 그 아이가 기독교 신자로 교육은 받을 것이나, 종교상의 의무 를 지 키는 카톨릭 교도로서가 아니라는 것과 성년이 되면 그의 마음에 드는 교도가 되는 것은 자유라고 결정을 내렸다. 잔느는 얼마 후에 브리즈빌가를 방문했으나 답례를 받지 못 했다. 그녀는 이웃 사람들의 세심한 예절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놀랐으나, 쿠틀리에 후작 부인은 이 답례를 기피한 이유를 거만한 태도로 알려주었다. 남편의 지위와 진짜로 훌륭한 작 위(爵 位)와 막대한 재산으로 해서 자기를 노르망디 귀족의 왕후처럼 여기는 후작 부인은 진짜 왕후처럼 지배하였고 거리낌없이 말을 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상냥하게 혹은 건방진 태도 르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무슨 일에나 툭하면 훈계를 했고 바로잡아 주기도 했으며 칭찬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잔느가 그녀의 집을 방문하자, 이 부인은 몇 마디 쌀쌀한 말을 하고 나 서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회란 두 계급으로 구분됩니다. 신을 믿는 사람들과 믿지 않 는 사람들. 믿는 사람들은 아주 비천한 사람들일지라도 우리의 친구요, 우리와 대 등한 사 람들이지요.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에요." 잔느 는 공 격하는 것을 느끼고 즉각 반박을 했다. "하지만 교회에 자주 나가지 않으면 신을 믿 을 수 없는 것인가요?" 후작 부인이 대답했다. "그래요, 부인. 신자들은, 사람들을 그의 집으로 찾아가듯이 신에게 기도하러 교회에 가는 겁니다." 마음이 상한 잔느가 말을 이었 다. "신 은 어디에나 계시는 것이에요, 부인. 마음 깊이 그의 어지심을 믿고 있는 저로 말한다 면, 어 떤 사제가 저와 신 사이에 있을때에는 그분이 존재하신다는 것이 느껴지지 않습니 다." 후 작부인이 일어섰다. "사제는 교회에 깃발을 들고 있어요, 부인. 그 깃발을 따르지 않는 자 는 누구나 그의 반대자고 우리의 반대자인 겁니다." 이번에는 잔느가 몸을 떨면서 일어섰 다. "당신은 어느 한 파(派)의 신을 믿고 계시는 군요, 부인. 저는 정직한 사람들 의 신을 믿고 있습니다." 그녀는 인사를 하고 나왔다. 농부들 역시 자기들끼리 풀레를 첫 성 체 배 령을 시키지 않은 것에 대해 그녀를 비난하였다. 그들은 미사에도 참례하지 않았고 성 체 곁 에도 가지 않았으나 교회의 형식적인 규율에 따라 부활절에만 그것을 받았다. 그러나 자식 들에 대해서는 그것은 별 문제였다. 모든 사람들은 어린아이를 이 공동의 계율 밖에 서 키 운다는 대담함 앞에서는 망설이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종교란 결국 종교이기 때문이 다. 그 녀는 이 비난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이 모든 타협, 이런 양심의 협 상, 모 든 사람에 대한 보편적이 두려움, 모든 사람의 마음 밑바닥에 도사리고 있는 크나큰 비겁함, 그리고 그것이 모습을 나타낼 때에는 그처럼 많은 존경할 만한 가면을 쓰는 것에 화 가 치 밀어 올랐다. 남작이 폴의 학습지도를 맡고 라틴어도 착수했다. 어머니는 다만 한가 지 충고 밖에는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 애를 지치게 하지 마세요." 그리고 공부하는 방 가까 이에서 불안해하며 서성거렸다. 그녀가 끊임없이 "발이 시리지 않니, 풀레야?" 그렇 지 않으 면 선생을 붙잡고 "그렇게 많이 말을 시키지 마세요. 목이 피로하겠어요" 하고 말하면 서 수 업을 방해했기 때문에 어머니의 출입을 금지시켰다. 꼬마는 자유로워지자마자 어머니 와 이 모 할머니와 함께 뜰을 가꾸러 내려갔다. 그들은 요즘 땅을 경작하는 일에 큰 애정을 가지 고 있었다. 세 사람은 모두 봄에 어린 묘목을 심고 씨를 뿌렸는데, 싹이 트고 꽃이 피는 것 에 감격을 했으며, 가지를 쳐주고 꽃을 잘라서 꽃다발을 만들기도 하였다. 어린아이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샐러드용 야채의 생산이었다. 그는 네 개의 커다란 네모진 채소밭을 관리했 는데, 거기에다 매우 정성을 다하여 상치, 로멘느, 풀상치, 풀상치 무리, 르와이얄 같 은 알려 져있는 모든 종류의 식용 채소들을 재배하였다. 두 어머니를 날품팔이하는 여자처럼 일을 시키고 도움을 받아 그는 호미로 매고, 물을 뿌리고, 잡초를 뽑고, 모종을 내었다. 한 손가락 으로 땅에다 수직으로 찔러 판 구멍 속에 어린 묘목의 뿌리를 들이미느라 정신이 팔려 서 옷 과 손이 흙투성이가 되고, 몇시간이고 화단에 무릎을 꿇고 있는 그들을 볼 수 있었다. 풀레 는 자라서 열 다섯 살이 되었다. 객실의 눈금은 1미터 58센티를 나타냈다. 그러나 그 는 이 두여자와 이제는 시대에 뒤떨어진 친절한 노인사이에 억눌려 아무것도 모르고 멍청하 며 정 신적으로는 그대로 어린애였다. 마침내 어느 날 밤, 남작은 중학교에 대해 이야기 했는데, 잔느는 금방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리종 이모는 놀라서 어두운 구석에 가만히 있었 다. 어머 니가 대답했다. "그렇게 많이 알 필요가 있나요. 우리는 그 애를 전원의 남자로, 시 골의 귀 족으로 만들거예요. 그는 많은 귀족들이 그러는 것처럼 자기의 땅을 경작하게 될 거예 요. 그 애는 자기보다 먼저 우리가 살았고 또 죽게 될 이 집에서 행복하게 살고 죽을 거예 요.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어요?" 그러나 남작은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 아이가 스 물다섯 살이 되었을 때,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어머니의 과실로, 어머니의 이기적인 과실 로 아무것도 모른다. 나는 일을 할 수도, 대단한 인물도 될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 고 있 다. 그러나 나는 어둡고, 보잘 것 없고, 죽도록 슬픈 생활을 하기 위해 태어난 것은 아니다. 어머니의 선견지명이 없는 애정이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이다.' 하고 네게 말한다면, 넌 무어 라고 대답하겠니?" 그녀는 여전히 울면서 아들에게 애원했다. "말해봐, 풀레야. 널 너무도 사랑한 나를 절대로 비난하지는 않겠지, 그렇지?" 그래서 커다란 어린애는 놀라 약 속했다. "안 그럴 거예요, 엄마" "그걸 내게 맹세하겠니?" "네, 엄마" "넌 여기에 그대로 있 고 싶지, 안그러냐?" "그래요, 엄마" 그러자 남작은 확고하게 음성을 높여 말했다. "잔느, 넌 이 애의 인생ㅇ르 네 마음대로 처리할 권리가 없다. 네가 여기서 하려고 하는 것은 비겁한 일이야 아니 거의 죄가 되는 일이야. 넌 네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 자식을 희생시키려 하고 있 어."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숨가쁘게 흐느껴 울면서, 눈물속에서 이렇게 더듬거 리며 a 말했다. "전 너무도 불행했었어요......너무도 불행했었는걸요......이제 저는 어 떻게 되겠어 요......혼자서......지금......" 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나 딸의 곁으로 가서 앉으 며, 두 팔로 그녀 를 안았다. "그럼 나는, 잔느?" 그녀는 갑자기 아버지의 목을 끌어안고 격렬하게 키 스를 했 다. 그리고 나서 아직도 숨이 막혀 헉헉거리면서도 분명하게 말했다. "네, 아버지가 옳으세 요......어쩌면.......아버지가 제가 어리석었어요. 하지만 너무도 괴로웠어요. 이 아이가 중학교 에 가도 좋아요." 자기를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이번에는 풀레가 훌쩍 훌쩍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세 사람의 어머니는 그에게 키스를 하고, 얼러주고, 용 기를 북 돋워 주었다. 그리고 그들이 자러 올라가자, 모두는 가슴이 죄어들어 침대 속에서 저 마다 눈 물을 흘렸다. 자제하고 있었던 남작까지도. 신학기가 시작되는 때에, 이 젊은이를 르 아브르 에 있는 중학교에 넣기로 결정이 났다. 그래서 온 여름동안, 그는 전보다 더 귀여움을 받았 다. 그의 어머니는 종종 헤어지는 생각을 하고 괴로워하였다. 그녀는 십 년의 여행을 꾀하기 라도 하는 것처럼 그의 채비를 준비하였다. 그러고 나서 10월의 어느 아침, 한숨도 자 지 못 한 하룻밤을 보낸 후, 두 여자와 남작은 그 애와 함께 마차에 올라 두 마리 말이 달리 는 속 보로 출발했다. 먼젓번 여행에서, 기숙사에서의 공동 침실의 자리와 교실에서의 자리 는 벌써 정해 놓았었다. 잔느는 리종 이모의 도움을 받아 작은 옷장에다 옷가지를 정돈하느라 고 온 종일을 보냈다. 가구는 가지고 온 것의 4분의 1도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것을 하나 더 얻으려고 교장을 만나러 갔다. 출납계원이 불려왔다. 그는 그렇게 많은 속옷과 옷 들은 소 용이 없고 방해만 된다는 것을 주의 시켰으며, 그리고 규칙에 의해서 다른 옷장을 내주는 것은 거절하였다. 난처해진 어머니는 인근의 작은 여인숙에 방 하나를 빌리기로 하고, 어린 애가 부르자마자 그가 필요한 것을 모두 풀레에게 여인숙 주인이 직접가져다 주도록 부탁하 였다. 그러고 나서는 배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보기 위해 선창을 한바퀴 돌았다. 쓸쓸한 밤이 차츰 불이 켜져가는 도시 위로 내리고 있었다. 저녁을 먹기 위해 어떤 식당으로 들어 갔다. 어느 누구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이 서로 축축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는 동안, 접시에 담긴 음식들은 그들 앞에 줄줄이 들어왔다가 거의 손도 대지 않은 채로 다시 나갔다. 그런 다음에는 천천히 학교를 향해 걷기 시작하였다. 키가 들쭉날쭉한 아이들 이 가 족이나 하인들에 이끌려서 사방에서 모여들었다. 많은 아이들이 울고 있었다. 희미하 게 불이 밝혀진 커다란 교정에서 우는 소리가 들렸다. 잔느와 풀레는 오랫동안 서로 껴안고 있었다. 그러나 눈시울이 뜨거워진 남작은 딸을 끌어당기면서 작별을 단축시켰다. 마차는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세 사람은 안에 올라타고 밤에 레 푀플을 향해 출발했다. 이따금 크 게 흐 느끼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지나갔다. 이튿날 잔느는 저녁때까지 울었다. 그 다음날은 사륜 마차에 말을 매고 르 아브르를 향해 떠났다. 풀레는 이미 헤어지는 것을 운명이라 체 념하고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생전 처음으로 그는 친구들을 갖게 되었다. 놀고 싶은 욕심이 면회실 의 의자 위에 앉아있는 그를 들먹거리게 했다. 잔느는 이렇게 이틀마다 다시 왔고, 일 요일에 는 외출을 시키려고 왔다. 수업을 받는 동안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쉬는 시간과 쉬는 시 간사이에 그녀는 학교를 떠날 기력도 용기도 없었기 때문에 면회실에 그대로 앉아 있 었다. 교장은 그녀를 자기 방으로 올라가자고 청하고 자주 오지 말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이 충고 를 듣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만일 그녀가 계속해서 뛰어 노는 시간에 당신 아들이 놀지 못 하게 방해를 하고 끊임없이 그 애의 마음을 어지럽혀 공부하는 것을 방해한다면, 어 쩔 수 없이 그 애를 돌려보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경고하였다. 남작도 통지를 받았다. 그래 서 그녀 는 죄수처럼 레 푀플에서 엄중한 감시를 받게 되었다. 그녀는 자식보다도 더 불안스럽게 매번의 휴일을 기다렸다. 끊임없는 불안이 그녀의 영혼을 뒤흔들었다. 그녀는 마사크르만을 데리고 혼자 부질없는 공상에 잠겨 며칠이나 산책을 하면 서 그 근처를 배회하기 시작하였다. 이따금 그녀는 절벽의 꼭대기에서 바다를 내려다 보면서 오후 내내 앉아 있기도 하였다. 가끔 그녀는 숲을 가로질러 이포르까지 내려가서 추억 이 가 득담긴 예전의 산책을 다시 해보기도 하였다. 너무 멀다, 너무 아득하다, 그녀가 소 녀로서 꿈에 취해서 바로 이 지역을 돌아다니던 그 시절이. 아들을 다시 만날 적마다 그녀 에게는 그들이 십 년이나 떨어져 있었던 것처럼 여겨졌다. 그는 다달이 어른이 되어가고, 그 녀는 다 달이 할머니가 되어갔다. 그녀의 아버지는 오빠처럼 보였고, 리종 이모는 스물다석살 적부터 시들어진 채로 조금도 늙지를 않아 언니처럼 보였다. 풀레는 그다지 공부를 잘하지 못한다. 제 4학급에서는 낙제를 했다. 3학급에서는 그럭저럭 지나갔으나, 2학급에서는 다시 시 작해야 만 했다. 그래서 그는 스무 살이 되어서야 수사학급에 들어갔다. 그는 키가 큰 금발의 청년 이 되었고, 벌써 무성하게 난 구레나룻에다 코밑에도 털이 막 돋아나기 시작하였다. 이제는 그가 일요일마다 레 푀플로 왔다. 그는 오래 전부터 마술(馬術)에 대한 강의를 받았기 때문 에, 간단하게 말 한 필을 빌려 두 시간 만에 쾌속으로 달려오는 것이었다. 그날은 아 침부터 잔느는 이모와 남작과 함께 그를 마중하러 나갔다. 남작은 점점 허리가 구부러져서 작 은 노 인처럼, 마치 코방아를 찧지 않으려는 것처럼 뒷짐을 지고 걸어갔다. 그들은 아주 천 천히 길 을 따라갔다. 이따금 도랑가에 앉아서 아직도 말 탄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나 하고 멀 리 바 라보는 것이었다. 하얀 선 위에 검은 점처럼 그가 보이자마자 그들 세 사람은 손수건 을 흔 들었다. 그러자 그는 말을 빨리 몰아 맹렬한 기세로 달려왔다. 그러면 잔느와 리종은 겁이나 서 가슴이 두근거렸고, 흥분한 할아버지는 신체가 부자유한 사람의 찬탄으로 '브라 보'를 외 치는 것이었다. 폴은 자기 어머니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지만, 그녀는 언제나 그를 어 린애처 럼 취급하고 아직도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발이 시리지 않니, 풀레야?" 그리고 그 가 점심 을 먹고나서 궐련을 피우면서 층계 앞에서 산책을 할 때면, 그녀는 창문을 열고 그에 게 소 리치는 것이었다. "맨머리로 나가지 마라, 제발. 코감기에 걸릴라." 그리고 그녀는 밤 에 그가 말을 타고 다시 떠날 때에는 안절부절하지 못하고 몸을 떨었다. "무엇보다도 너무 빨 리 달 리지 마라, 풀레야. 조심해 네게 무슨 일이 생기면 절망할 네 가엾은 어미를 생각해 다오." 그러나, 어느 토요일 아침, 그녀는 폴의 편지를 받았다. 그것은 친구들이 주최한 오락 파티에 초대받았기 때문에 다음날 그가 올 수 없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었다. 그녀는 어떤 불행의 위협에 처해있는 것처럼 그 일요일은 온종일 극도의 불안으로 괴로워했다. 그래서 목 요일이 되자, 그녀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르 아브르로 떠났다. 그녀가 꼬집어 알 수는 없었지 만 그는 변한 것 같았다. 활기가 넘치는 것 같았고, 보다 사내다운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였 다. 그리고 갑자기, 아주 당연한 것처럼 그녀에게 말했다. "저, 엄마, 엄마가 오늘 오셨으니 까 오는 일요일에는 레 푀플에 가지 않겠어요. 축제가 또 시작되거든요." 그녀는 마 치 그가 신세계로 떠난다고 알리기라도 한 것처럼 깜짝 놀라 숨이 막혀 그대로 있었다. 그러다 가 마 침내 말을 할 수 있게 되자, 이렇게 물었다. "아아! 풀레야, 어떻게 된거니? 말해봐, 무슨일 이야?" 그는 웃으면서 어머니에게 키스했다. "아무것도 아네요, 엄마. 친구들하고 즐 기려고 하는 거예요. 그럴 나이잖아요." 그녀는 한마디도 대답할 말을 찾이 못했다. 혼자 마 차 속에 있게 되자, 이상한 생각이 그녀를 괴롭혔다. 그녀는 더 이상 그를 자기의 풀레, 예 전의 그 귀여운 풀레라고 인정할 수가 없었다. 처음으로 그녀는 그가 어른이 되었다는 것을 느꼈고, 그는 이제 그녀의 것이 아니며, 노인들은 상관하지 않고 제멋대로 살아가리라는 것을 깨달 았다. 하룻동안에 그는 모습이 달라진 것 같았다. 아니, 저 얘가 내 아들인가? 전에 자기와 샐러드용 채소를 모종했던 자기의 귀여운 자식이란 말인가. 의지가 나타나는 저 수염 난 건 장한 청년이! 석 달 동안 폴은 다만 이따금씩 가족을 보러 왔을 뿐이다. 그러고서도 될 수 있는 한 빨리 떠나려는 분명한 욕심이 늘 머리에 떠나지 않았고, 저녁때마다 한 시간 이라도 빨리 떠나려고 애썼다. 잔느는 낙담을 했고, 남작은 쉴 새 없이 이런 말을 반복하면서 그녀 를 위로했다. "그에게 맡겨 두려무나. 스무 살이야, 그 청년은." 그러나 어느 아침, 아주 초 라한 행색의 어떤 노인이 독일식 프랑스어로 '자작부인'에게 뵙기를 청했다. 그리고 의례적 인 인사를 길게 늘어놓은 다음에 그는 주머니에서 더러운 지갑을 꺼내 이렇게 말하는 것이 었다. "부인께 보여드릴 서류를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기름때가 묻은 서류 조각을 펴서 내 밀었다. 그녀는 읽고 또 읽고, 유태인을 쳐다보고 다시 또 읽고 나서 물었다. "이것 이 무엇 을 의미하는 거죠?" 그 남자는 지나치게 공손하게 설명을 하였다. "말씀드리지요. 댁 의 아드 님께서 돈이 좀 필요하시다는 얼마간을 그분께 빌려드렸지요." 그녀는 몸을 떨었다. " 그런데 어째서 내게 요구하지 않았을까요?" 유태인은 그것은 다음날 오전중에 갚아야 할 노 름빚이 었는데, 폴은 아직 성년이 아니라서 아무도 그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으려 했을 것이 고, 그래 서 자기가 그 젊은이에게 베풀어준 '약간의 친절한 봉사'가 없었던들 그의 '명예는 위태로 웠 을 것'이라고 길게 설명을 늘어놓았다. 잔느는 남작을 부르려고 했으나 너무 큰 충격 이 그 녀 륽 무기력하게 만들어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마침내 그녀는 고리대금업자에게 이렇게 말했 다. "죄송하지만 초인종을 눌러주시지 않겠어요?" 그는 어떤 술책을 부리지 않을까 두려워 서 망설였다. 그가 더듬거리면서 말했다. "만일 폐가 되신다면 다시 들릅지요." 그녀 는 머리 를 흔들어 아니라고 했다. 그녀가 초인종을 눌렀다. 그들은 말없이 마주 대하고 기 다렸다. 남작이 들어오면서 얼른 상황을 알아차렸다. 어음은 천5백 프랑이었다. 그는 천 프랑 을 지불 하고 그 남자에게 넌지시 말했다. "두 번 다시 오지 마시오." 그 사람은 고맙다는 인 사를 하 고 가버렸다. 할아버지와 어머니는 곧장 르 아브르로 출발했다. 그러나 학교에 도착해 보니, 폴이 한 달 전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교장은 잔느의 서명이 있는 네 통 의 편지를 받았었다. 그것은 그의 몸이 불편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것과 다음에는 소식을 보내기 위한 것이었다. 편지마다 의사의 진단서가 첨부되어 있으나, 그것은 물론 전부 가짜 였다. 그들은 깜짝 놀라 서로 쳐다보면서 그대로 거기에 서 있었다. 교장은 딱하게 여겨서, 그들은 경찰서장에게 안내했다. 두 사람은 호텔에서 묵었다. 그 이튿날 젊은이는 그 도시의 어떤 창녀 집에서 발견되었다. 할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를 레 푀플로 데리고 왔는데, 오는 도 중에 그들은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잔느는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고 있었다. 폴을 무관심한 표정으로 들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주일 동안에 발견한 것은, 지난 3개월 동안에 그는 만 5천 프랑의 빚을 졌다는 것이었다. 채권자들은 머지않아 그가 성년이 된다는 것을 알고 처음에는 코쭝배기도 나타내지 않았다. 잔느는 어떠한 변명도 들어보려 하지않았 다. 다 정하게 대해 주어 그를 다시 찾고 싶었던 것이다. 그에게 맛있는 요리를 먹게 했고 그 를 귀 여워 해주었으며 애지중지하였다. 때는 봄이었다. 잔느는 두려웠지만 그래도 마음대로 뱃놀 이를 하게 하려고 이포르에서 배 한 척을 세내었다. 그가 아브르로 가지 않을까 두 려워서 말을 주지 않았다. 폴을 빈둥빈둥 할 일은 없이 지냈고 신경질을 부리기도 했으며, 가끔은 난폭하기까지 했다. 남작은 그의 모자라는 공부가 염려되었다. 잔느는 헤어진다는 생 각에 미 칠 것 같아서, 그 동안에 그 애를 어떻게 했으면 좋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어느 날 밤,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가 두 명의 선원과 함께 배를 타고 나갔다는 것을 알았다. 제정신 이 아닌 어머니는 밤중에 맨머리로 이포르까지 내려갔다. 몇 사람이 해변에서 소형 보트가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작은 불빛이 난바다에 나타났다. 그것은 흔들거리면서 가까이 다가왔다. 폴은 뱃전에 있지 않았다. 그는 르 아브르에 자기를 데리고 가달라고 했다 는 것이 다. 경찰이 아무리 그를 수색해도 소용이 없어서 찾아내지를 못하였다. 처음에 그를 숨겨주 었던 매춘부 역시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가구는 팔아버렸고 집세도 치러졌다. 레 푀플 에 있는 폴의 방에서 그를 미치게 사랑하는 듯한 성스러운 여자의 편지가 두 통이나 발견되 었다. 필요한 현금은 구했으니, 영국으로 여행을 가자는 이야기가 쓰여있었다. 성관의 세 사 람은 정신적인 고통의 음침한 지옥 속에서 말없이 침울하게 생활하고 있었다. 잿빛 이었던 잔느의 머리는 이미 백발이 되었다. 그녀는 어째서 운명이 자기에게 이다지도 가혹 한지를 순진하게 생각해 보았다. 그녀는 톨비악 신부의 편지를 한 통 받았다. 부인, 신의 손이 당신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 분에게 당신의 아이를 바치지 않았습 니다. 그래서 그분은 이번에는 당신에게서 그를 빼앗아 창녀에게 던져주었습니다. 이 하느님 의 교시(敎示)에 눈을 뜨지 않으시렵니까? 주님의 은총은 무한한 것입니다. 만일 당신 이 돌 아와 그 분앞에 무릎을 꿇는다면, 그 분은 어쩌면 당신을 용서할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분의 천한 종입니다. 당신이 오셔서 두드리신다면, 저는 그분이 계시는 집의 문을 열어드리 겠습니 다. 그녀는 이 편지를 무릎 위에 놓고 한참 동안 그대로 있었다. 이 사제가 말한 것은 어쩌면 진실일지도 모른다. 그러자 모든 종교적인 의혹이 그녀의 양심을 찢기 시작했다. 신이 인간 처럼 앙심을 품고 질투를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만일 그분이 시기하는 것을 보이 지 않 는다면, 아무도 그분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고 아무도 그분을 더 이상 경배하지 않을 것이 다. 우리에게 더 잘 자기의 명성을 떨치게 하기 위해서, 어쩌면 그분은 인간에게 인간 자신 의 감정을 가지고 나타나는지도 모른다. 그러자 망설이는 자, 혼란스러운 자를 교회롤 밀고 가는 용기 없는 의혹이 그녀 마음속으로 스며들어와, 그녀는 어느 날 저녁, 땅거미가 내릴 무렵에 남몰래 사제관까지 달려가서 깡마른 사제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사죄(赦罪)를 간청 했다. 사제는 그녀에게 반만의 용서를 약속하였다. 신은 남작과 같은 사람을 가려주고 있는 집 위에 그의 모든 은총을 쏟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부인께서는 머지않아 신의 관용의 결과를 느끼시게 될 것입니다." 하고 그는 단언하였다. 그녀는 실제로 이틀 후에 아 들의 편 지를 받았다. 그녀는 미칠 것 같은 고통 속에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신부가 약속한 위무(慰 撫)의 시초로 생각하였다. 사랑하는 어머니, 염려하지 마세요. 저는 런던에 몸 성히 있습니다. 그러나 돈이 많 이 필요 합니다. 우리는 이제 동전 한 푼 없어서 매일 굶고 있습니다. 저와 동행한 여자, 제 가 열렬 히 사랑하고 잇는 여자는 저와 헤어지지 않으려고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써버렸습니 다. 5 천프랑이에요. 저는 우선 이 금액을 그녀에게 갚기로 명예를 걸고 약속했다는 것을 이해해 주세요. 그러니 머지않아 성년이 되니까 아버지의 유산 가운데서 만 5천프랑을 제게 미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러면 곤경에서 벗어날 수가 있겠어요. 안녕히 계세요. 사랑 하는 어 머니. 마음으로부터 키스를 보냅니다. 할아버지와 리종 이모 할머니께도, 곧 다시 뵙 게 되기 를 바랍니다. 어머니의 아들, 자작 폴 드 라 마르 그 애가 자기에게 편지를 썼다! 그러면 그는 자기를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돈을 요청했다는 것은 조금도 생각지 않았다. 그가 이제 더 이상 가진 것이 없단. 보내주어 야 할 것이다. 돈은 상관없다! 그 애가 자기에게 편지를 쓴 것이다. 그녀는 울면서 이 편지 를 가지 고 남작에게 달려갔다. 리종 이모도 불러왔다. 그리고 그에 관하여 쓰여진 이 종이를 한 자 한 자 다시 읽었다. 그리고 말 하나하나를 가지고 토론을 벌였다. 완전한 절망에서 일종의 희망을 도취로 뛰어오른 잔느는 폴을 옹호했다. "그 애는 돌아올 꺼예요. 편지를 쓴 이상 곧 돌아올 꺼예요." 남작은 보다 침착하게 말했다. "어쨌든 그 애는 그 상스러운 여자 때문에 우리 곁은 떠났어. 그러니 그 애는 우리보다 그 여자를 더 사랑하고 있어. 그래서 주 저하지 않았던 거야." 급작스럽고 무서운 고통이 잔느의 가슴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곧 아들 을 자기 에게서 훔쳐간 그 정부(情婦)에 대해 마음속에서 증오가 타올랐다. 달랠 길 없는 원 시적인 증오요, 질투하는 어머니의 증오였다. 그때까지 그녀의 모든 생각은 폴에 대해서만 있었다. 어느 몹쓸 계집애가 아들의 과오의 원인이라고는 거의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갑자 기 남 작의 이런 생각이 그 경쟁자를 상기시켰고, 그의 치명적인 힘을 그녀에게 드러내 보 여주었 다. 그래서 그녀는 그 여자와 자기 사이에 격렬한 싸움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녀는 다른 사람과 그 애를 공유하기보다는 차라리 아들을 잃는 편이 낫겠다는 것도 또한 느꼈다. 그들은 만 5천프랑을 보냈다. 다섯 달 동안이나 더 이상 소식을 받지 못했 다. 그러 다가 대리인이 줄리앙의 상속재산 명세를 정리하기 위해 나타났다. 잔느와 남작은, 어 머니에 게 돌아갈 용익권(用益權)조차 포기하고 이의 없이 보고하였다. 그리고 파리로 돌아오 자, 폴 은 12만 프랑을 받았다. 그는 그때 여섯 달 동안에 네 통의 편지를 썼다. 간결한 문제 로 그 의 소식을 알리는 것이었고, 냉정한 애정의 항의로 끝을 맺고 있었다. "저는 일을 하 고 있습 니다. 증권거래소에서 일자리를 얻었습니다. 불원 레 푀플로 가서 사랑하는 가족들에 게 키스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고 그는 단언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자기의 정부에 대 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그 여자에 대해 네 페이지에 걸쳐서 말하는 것보다 더한 의미를 나타내고 있었다. 잔느는 이 차디찬 편지 속에서, 집요하게 그 여자가 숨어 있 는 것 을 느꼈다. 식구들의 영원한 적인 그 계집애가. 고독한 세 사람은 폴을 구원해 내기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토론하였다. 그러나 그들은아무것도 생각해 내지 못했다. 파리 로 여행을 간다? 그래 보았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남작이 말했다. "그 얘의 열정 이 다 소모될 때까지 내버려두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그 애는 혼자 우리에게 돌아올 거야. " 그들 의 생활은 슬프고 가슴 아픈 것이었다. 잔느와 리종은 남작에게는 비밀로 하고 함께 교회에 나갔다. 아주 오랜 시간이 소식도 없이 흘러갔다. 그러다가 어느 날 아침, 절망적인 한 통의 편지가 그들을 무서움에 떨게 했다. 사랑하는 어머니, 저는 파멸했습니다. 만일 어머니가 저를 구제하러 오시지 않는다 면, 권총 으로 머리를 쏘아 자살하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저로서는 성공의 기회처럼 보였던 투기에 실패하였습니다. 그래서 8만 5천 프랑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제가 만일 지불하지 못하면, 그건 불명예일 뿐 아니라 파멸입니다. 앞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어버리고 맙니 다. 저는 파멸했습니다. 거듭 말씀 드립니다만, 그 치욕을 당하느니 보다는 차라리 권총자살을 하겠습 니다. 한 여자의 격려가 없었다면 저는 벌써 그렇게 했을지도 모릅니다. 한 번도 말씀 드리지 않았습니다만, 그 여자는 저의 구세주입니다. 마음 깊숙히 키스를 보냅니다. 사랑하 는 어머 니 이것이 어쩌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릅니다. 안녕히 계세요. 폴 이 편지에 첨부된 서류 뭉치가 파산에 대하여 자상한 설명을 해주고 있었다. 남작은 즉시 생각해보고 결정을 내리겠다는 답을 보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조회를 해보려고 르 아브르 로 출발하였다. 그리고 그는 폴에게 보낼 돈을 마련하기 위해 토지를 저당잡혔다. 젊 은이는 감격적인 감사와 열렬한 애정의 편지를 세 통이나 보냈으며, 곧 사랑하는 가족들을 포옹하 기 위해 가겠노라고 알려왔다. 그는 오지 않았다. 한 해가 지나갔다. 잔느와 남작은 그를 만 나 마지막 노력을 해보려고 파리를 떠나려고 하는데, 그가 다시 런던에 있다는 것을 짧은 편지로 해서 알게 되었다. '폴 드 라마르 상사'라는 회사명으로 기선회사를 꾸민다는 것이었 다. 그는 이렇게 편지를 썼다. 그것은 저로서는 확고한 행운입니다. 어쩌면 부자가 될지도 모릅니다. 위험한 것은 아 무것도 없습니다. 여기에서 모든 성공을 보시게 될 겁니다. 다시 뵈올 때에는, 저는 사회적 으로 상 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 겁니다. 오늘의 곤경에서 벗어나려면 사업밖에는 없습니 다. 석 달 후에 기선 회사는 파산하였고, 대표는 거래 문서에 부정이 있다고 해서 기소 되었다. 잔느는 몇 시간 동안이나 신경의 발작을 일으켰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몸져누웠다. 남작은 또다시 르 아브로로 출발했다. 문의하고, 변호사, 대리인, 소송대리인, 집달리들을 만나보고, '르 라마르'회사의 결손은 23만 5천 프랑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그는 다시 자기 재산 을 저당 잡혔다. 레 푀플의 성관과 두 개의 농장은 막대한 금액으로 해서 무거운 부담을 짊 어지게 되었다. 어느 날 저녁, 남작은 대리인의 사무실에서 마지막 수속에 결말을 짓고 있다 가 졸도 하여 마룻바닥에 쓰려졌다. 잔느는 말을 탄 사람에게서 기별을 받았다. 그녀가 도착했 을 때, 남작은 이미 숨져있었다. 그녀는 그를 레 푀폴로 모셔왔으나, 너무도 어리벙벙해서 그녀의 고통은 절망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마비상태였다. 톨비악 신부는 두 여자가 미칠 듯이 애원하 는데도 불구하고 유해가 교회에 들어오는 것을 거절하였다. 남작은 아무런 의식(儀式) 도 없 이 해질 무렵에 매장되었다. 폴은 자기의 파산을 청산하는 대리인 중의 한 사람에게 이 일 을 들어 알았다. 그는 여전히 영국에 숨어있었다. 그는 이 불행을 너무 늦게 알았기 때문에 올 수 없었다는 것을 변명하기 위한 편지를 썼다. 어쨌든, 지금 어머니께서 저를 곤경에서 구해 주셨으니, 사랑하는 어머니, 프랑스로 돌아가 서 곧 뵙겠습니다. 잔느는 신경쇠약 속에서 지냈기 때문에, 이제는 아무것도 이해하지를 못하는 것 같았 다. 그 겨울이 끝날 무렵, 리종 이모는 그때 육십팔 세가 되었었는데, 기관지염이 악화되어 폐렴이 되었고, "가엾은 잔느, 하느님께 너를 긍휼히 여기십사고 부탁드릴게" 하고 중얼거리 면서 조 용히 숨을 거두었다. 잔느는 묘지까지 이모를 따라가서 관 위에 흙이 덮이는 것을 보았다. 그녀가 마음속으로, 자기도 역시 죽고 싶고 더 이상 고생도 하지 않고 더 이상 생각도 하지 않았으면 하고 주저 않았을 때, 어떤 건장한 시골 여자가 그녀를 두 팔로 안고 어린애 를 다 루듯이 데리고 갔다. 성관으로 돌아오자, 노처녀의 머리맡에서 다섯 밤을 보낸 잔느는 다정 하면서도 권위 있게 자리를 다루는 이 알지 못하는 시골 여자에 의해 버티지도 못하고 침대 에 눕혀졌다. 그러고는 피곤과 고통에 짓눌려 기진 맥진해서 잠에 떨어졌다. 그녀는 한밤중 에 잠이 깨었다. 야등(夜燈)이 벽난로 위에 켜져 있었다. 한 여자가 안락의자에서 자 고 있었 다. 이 여자는 누구일까? 모르는 여자였다. 그래서 그녀는 침댓가에서 몸을 구부리 고, 부엌 용 컵 속의 기름 위에 떠 있는 흔들리는 불빛에 그녀의 얼굴 모습을 알아보려고 애를 썼다. 그런데, 이 얼굴을 본 것 같기도 했다. 언제였던가? 어디서였던가? 그 여자는 머리를 어깨 위로 숙이고, 모자는 바닥에 떨어뜨린 채 평온하게 자고 있었다. 사십 혹은 사십오 세 정도로 보였다. 그녀는 건장했고 혈색이 좋았으며, 딱 벌어진데다가 힘이 세었다. 그녀의 넓 적한 두 손은 의자의 양쪽에 늘어뜨려져 있었다. 머리털은 반백이었다. 잔느는 큰 불행에 뒤 따라온, 열에 들뜬 수면에서 깨어나 그 혼란스러운 정신으로 그 여자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확실 히 이 얼굴은 본 일이 있다! 예전일까? 최근일까? 그녀는 전혀 알 수 없었으나, 그 강박관 념이 그녀의 마음을 동요시켰고 그녀를 안타깝게 만들었다. 그녀는 자는 여자를 더 가까이 에서 보려고 조용히 일어나 발끝으로 다가갔다. 그 여자는 묘지에서 자기를 일으켰고 그리 고 자리에 눕혔던 그 여자였다. 그녀는 어렴풋이 그것이 떠올랐다. 그러나 다른 곳에 서, 자 기 방에 있는 것일까? 왜? 그 여자가 눈을 뜨고 잔느를 알아보더니 갑자기 몸을 일으 켰다. 두 여자는 가슴이 서로 닿을 정도로 가까이 마주 대하고 있었다. 그 알지 못하는 여자 가 투 덜거렸다. "어쩌면! 서 계시다니! 이런 시간에, 병나시겠어요. 다시 누우세요!" 잔느 가 물었 다. "누구시지요?" 그러자 그 여자는 두 팔을 벌려 잔느를 잡더니 그녀를 안아올려 남 자 같 은 힘으로 침대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요 위에다 그녀를 다시 살포시 내려놓고 몸을 숙이 고 거의 잔느 위에 눕다시피 하면서, 뺨에, 머리칼에, 눈에 미칠 듯이 키스하면서 울 기 시작 했다. 그녀는 눈물로 잔느의 얼굴을 적시면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가엾은 마님, 잔느 아가씨, 가엾은 마님, 그래 저를 전혀 모르시겠어요?" 그러자 잔느가 소리쳤다. "로잘리로구 나, 얘 야." 그러고는 두 팔로 그녀의 목을 끌어 안고 키스를 하면서 포옹을 하였다. 두 여 자는 꽉 껴안고, 서로의 눈물에 뒤범벅이 되어 팔을 풀지 못하고 흐느껴 울기만 했다. 로잘리 가 먼저 진정을 했다. "자, 조심하세요. 감기가 드시면 안 돼요." 하고 옛 주인의 머리 밑에 베개를 다시 놓아주었다. 옛 주인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옛 추억에 부들부들 떨면서 여전히 씨근거 렸다. 그녀는 마침내 이렇게 묻고 말았다. "어떻게 네가 다시 왔지, 얘야?" 로잘리가 대답했 다. "아무렴, 이제는 이렇게 혼자 계시는 마님을 버려 둘 수 있겠어요?" 잔느가 말 을 이었 다. "그럼, 널 보게 촛불을 켜다오." 그래서 불을 머리맡 탁자에 가져다 놓자, 두 사 람은 한 참 동안 한마디 말도 없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잔느가 늙은 하녀에게 손을 내밀며 중얼거렸다. "난 너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어. 얘야. 너도 많이 변했구나. 그렇지만 아 직 나만 큼은 아니야." 그러자 로잘리는, 자기가 떠날 때에는 젊고 아름답고 생기가 있던 이 부인이 야위고, 시들고, 백발이 된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정말이지 변하셨군 요, 잔느 마님. 지나치게 많이. 하지만 우리가 서로 보지 못한 것도 24년이나 되었다는 것을 또 한 생 각해보세요." 그녀들은 입을 다물고 다시 곰곰이 생각하였다. 마침내 잔느가 중얼 거렸다. "어쨌든 너는 행복했었니?" 로잘리는 너무도 고통스러운 어떤 기억을 되살리게 될까봐 두려 워하면서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저.......네.......네.......마님. 그다지 불평할것 도 없었어요. 마님 보다는 행복했었지요.....확실히. 언제나 제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이 한 가지 있었다 면, 그것 은 여기에 남아 있지 못하게 된 것이랍니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무심히 그 일을 건드 린 것에 놀라 갑자기 입을 닫아 버렸다. 그러나 잔느는 다정하게 말을 이었다. "어 쩌겠니, 얘야. 언제나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 너 역시 과부니?" 그러자 어떤 괴 로움이 그녀의 목소리를 떨리게 한다. 그녀가 말을 계속했다. "다른......다른 얘들도 있니?" "없어요, 마님." "그럼 그 애는, 네...... 네 아들은 어떻게 되었니? 넌 그 애에게 만족하고 있 니?" "네, 마님. 건강하게 일하고 잇는 좋은 아이지요. 6개월 전에 결혼 했어요. 제 농장 을 돌보 고 있지요. 그러니까 이렇게 마님께 돌아온 거예요." 잔느는 감동으로 떨며 중얼거렸다. "그럼 너는 이제 내 곁을 떠나지 않으려는 거니, 얘야?" 그러자 로잘리가 퉁명스러운 말투로 대답했다. "물론이지요, 마님 . 이러려고 준 비를 다 해 놓았는 걸요." 그리고 두 여자는 잠시 말이 없었다. 잔느는 자기도 모르게 서로의 존재를 비교해 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운명 의 부 당한 잔인성에 체념하고 있어서 마음속에 아무런 쓰라림도 느끼지 못했다. 그녀가 말 했다. "네 남편은 너한테 이런 사람이었니?" "아아! 그이는 성실한 사람이었지요, 마님. 게으름뱅이가 아니었어요. 재산도 모을 줄 알았 지요. 폐병으로 죽었어요." 그러자 잔느는 이것 저것 알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침상 위에 일어나 앉았다. " 자, 죄다 이야기해 봐, 얘야, 네 생활을 모두. 그러는 것이 오늘은 나를 돕는 것이 될 테니까. " 로잘리는 의자를 가까이 당겨 앉아서 자기 자신에 관한 것, 집안에 관한 것, 자기 세상에 관한 것을 말하기 시작하였다. 시골 사람들에게 정다운 세세한 내용에까지 들어가서 자기 마당을 그려 보이기도 하고, 지나간 좋은 순간들을 생각나게 하는 옛날 일에 대해 가 끔 웃 기도 하였으며, 명령을 해본 습관이 밴 농가의 여주인답게 차츰 목소리를 높이면서 말했다. 그녀는 마침내 이렇게 말했다. "아아! 현재는 땅부자가 됐지요. 아무걱정이 없습니 다." 그 러고는 다시 당황해하면서 보다 낮은 소리로 말을 이었다. "어쨋든 제가 이렇게 된 것은 마님 덕이지요. 그러니까 제가 급료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도 또한 알아주셨으면 합니 다. 아 아! 그럴 리가 있느냐구요? 아아! 천만의 말씀이지요! 그리고 만일 마님께서 원하지 않으신 다면 저는 가겠습니다." 잔느가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원하지 않으면서 내 시중을 들 작정은 아니겠 지?" "아아! 그렇고말고요, 마님. 돈이라니요! 마님이 제게 돈을 주시다니요! 말씀드리 자면, 저 도 만님만큼은 가지고 있습니다. 저당에다 차용 그리고 갚지 못해 기한마다 불어나는 이자 들 때문에 마님께 남아 있는 것이 얼마나 되는지 아세요? 알고 계세요? 모르실 거예 요. 그 렇죠? 미리 말씀 드립니다만, 마님은 이제 연 수입이 1만 리브르밖에는 안돼요. 1만 리브르 도 못 될 거라는 것을 아셔야 해요. 그러니 제가 그 모든 것을 해결해 드릴게요, 아주 속 히." 로잘리는 화가 나서 다시 높은 소리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는데, 이자를 등한시해 서 파 산이 될 것 같은 절박함에 분개를 하였다. 그리고 여주인의 얼굴에 감동 어린 미소가 희미 하게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자, 그녀는 대들 듯이 소리쳤다. "그렇게 웃지 마세요, 마님. 돈이 없으면 평민에 지나지 않아요." 잔느는 그녀의 손을 다시 잡아 자기 손안에 쥐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언제 나 머 리 속에서 떠나지 않는 생각에 쫓겨 천천히 말했다. "아아! 나는 운이 좋지 않았어. 내게는 모든 것이 나쁘게만 돌아왔어. 불행은 내 생을 악착스럽게 따라다닌 거야." 그러나 로잘리는 머리를 흔들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돼요, 마님. 불행한 결 혼을 하 신 거지요. 그뿐이에요. 약혼자를 그저 잘 모른다고 해서, 누구나 불행한 결혼을 하는 건 아니니까요." 두여자는 늙은 친구들이 그렇듯 자기들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그녀들이 아직 도 이 야기를 하고 있는 동안 태양이 떠올랐다. 로잘리는 일주일 만에 성관에 있는 사람과 일에 대해 전적으로 지배를 하게 되었다. 잔느 는 맡겨버리고 수동적으로 따라갔다. 쇠약해지고 예전의 어머니처럼 다리를 끌면서 그녀는 하녀의 팔에 의지하여 밖으로 나갔다. 하녀는 잔느를 느릿느릿 산책을 시켰고 설교를 늘어 놓기도 했으며, 퉁명스럽고도 정다운 말로 용기를 돋우어주기도 하며, 병든 어린애처 럼 그녀 를 다루었다. 그들은 언제나 옛날 이야기를 하였다. 잔느는 눈물로 목이 메고ㅡ 로잘리는 무감동한 농부 들의 침착한 어조로 이야기를 했다. 늙은 하녀는 몇번이나 밀려 있는 이자 문제를 재 론했고, 모든 일에 어두운 잔느가 자기 자식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감추고 있는 서류를 자기에 게 넘 겨달라고 강력히 요구했다. 그러자 일주일 동안, 로잘리는 자기가 알고 있는 어느 공증인에게 사건을 설명듣기 위해 페캉으로 매일 나들이를 하였다. 그러고 나서 어느 날, 여주인을 침대에 눕히고 난 후 그녀는 침대 머리에 앉아 불쑥 이렇 게 말했다. "이제 누우셨으니, 우리 이야기 좀 하시지요." 그리고 그녀는 상황을 설명하였다. 모든 것이 해결되면, 연 수입이 약 7,8천 프랑 남는다는 것이었다. 그 이상은 아무 것도 없 었다. 잔느가 대답했다. "어쩌란 말이니? 난 명이 짧다는 것을 잘 알아. 그러니 죽을 때까 지 그것 으로 충분할 거야." 그러나 로잘리는 화를 냈다. "마님은 그래도 되겠지요. 하지만 폴 도련님에게는 아 무것도 남겨놓으시지 않을거예요?" 잔느는 몸을 떨었다. "제발, 그애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말아다오. 생각만 해도 너 무 괴로 워." "저는 반대로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마님은 아시다시피 용기가 없으시 니까요, 잔느 마님. 그분은 어리석은 짓을 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러시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고 나서는 결혼도 하실 겁니다. 아이들도 생기시겠지요. 그 아이들을 키우자면 돈 이 필 요할 겁니다. 제 말을 잘 들어주세요. 마님은 레 푀플을 파셔야 합니다!" 잔느는 펄쩍 뛰어 침대에 일어나 앉았다. "레 푀플을 팔다니! 네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 니? 아아! 절대로, 그럴 수는 없다." 그러나 로잘리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것을 파시라고 말씀드리고 있는 겁니다. 저 는. 마님,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그녀는 자기으 계산과 계획, 추론(推論)에 대해 설명하였다. 일단 레 푀플과 곁에 있는 두 농장은 자기가 찾아 놓은 입찰자에게 팔아버리고, 생 레오나 르에 위치한 네 개의 농장을 보존하고 있으면 그것은 모든 저당에서 빠져 있으니 연간 8천 3백 프랑의 수입은 된다는 것이었다. 연간 천 3백 프랑은 부동산의 수리나 유지비로 따로 떼어놓는다. 그러면 7천 프랑이 남는데, 거기에서 5천 프랑은 연간 소비로 잡고 2천 프랑은 비상금을 만들기 위해서 저축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덧붙였다. "나머지는 다 먹혔습니다. 이젠 끝장이에요. 그리고 제가 열쇠를 관리하 겠습니다. 그런 줄 아세요. 그리고 폴 도련님에게는 이젠 더 이상 아무것도 드리지 않 겠습니 다. 한푼도. 그러지 않으면 그분은 마님에게서 마지막 한푼까지 빼앗아갈 겁니다." 잔자코 울고 있던 잔느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 애가 먹을 것이 없다면?" "시장하시면 집에 오셔서 잡수시면 되지요. 언제나 그분을 위한 침대와 스튜는 있을 테니 까요. 만일 처음에 한푼도 드리지 않았다면, 그분이 그런 갖가지 어리석은 짓을 했으 리라고 생각하세요?" "그렇지만 그 애는 빚이 있었어. 체면을 손상하게 되었을지도 몰라." "마님이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게 된다면 그분이 그런 짓을 하지 않게 되지 않을까요 ? 마 님은 지금까지 지불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지불하셔서는 안 됩니다. 저는 그것을 말씀드 리는 겁니다. 이젠 주무세요, 마님." 그리고 그녀는 물러갔다. 잔느는 레 푀플을 팔고 자기으 온 생애가 얽혀 있는 이 집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 는 생각에 기가 막혀 한숨도 자지 못했다. 이튿날 로잘리가 자기 방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자, 그녀가 말했다. "얘야, 여기에서 떠나야 한다는 결심이 도무지 서지를 않는구나." 그러자 하녀는 화를 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해야 할 일이라면 해야만 합니다, 마 님. 조금 후에 공증인이 이 성관을 탐내는 사람과 함께 올 겁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4년 후 마님 은 한 푼도 없게 될 거예요." 잔느는 여전히 아연해서 이런 말을 되풀이했다. "난 그럴 수 없어. 절대로 그럴 수 없어." 한 시간 후에 우체부가 또 1만 프랑을 요구하는 폴의 편지를 가져다 주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서 그녀는 로잘리에게 상의를 했지만, 그녀는 두 손을 들었 다. "제가 뭐라고 했어요, 마님? 아아! 제가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두 분은 모두 빈 털터리가 되었을 겁니다!" 그래서 잔느는 하녀의 뜻에 복종하여 아들에게 답장을 냈다. 사랑하는 아들아, 나는 이제 너를 위해서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게 되었다. 너는 나 를 파 산시켰다. 그래서 레 푀플마저 팔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하지만 네가 그렇게도 고생시 킨 이 늙은 어미의 가호를 원한다면, 넌 언제나 보호처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은 잊 지 말 아라. 잔느 공증인이 옛날 제당업자였던 조프랑씨와 도착했을 때, 그녀는 몸소 그들을 맞아들였 고 세 세하게 모든 것을 둘러보라고 했다. 한 달 후에 그녀는 매도 계약서에 서명을 했고, 동시에 고데르빌 근처 몽티빌리에 공 도(公 道)에 면한 바트빌 촌락의 보잘것없는 작은 집 한 채를 샀다. 그러고 나서 그날은 저녁때까지 혼자 어머니의 가로수 길을 산책하였다. 가슴은 찢어 질 듯 했고 마음은 슬픔에 젖어 수평선에, 나무들에, 플라타너스 아래에 있는 벌레 먹은 걸상에, 눈 속에 마음속에 들어 있는 것처럼 너무도 낯익은 그 모든 것들에, 작은 숲에, 줄리 앙이 죽 던 그 끔찍한 날에 드 푸르빌르 백작이 바다를 향해 달려가는 것을 보았고 그녀가 그 렇게도 자주 앉아 있었던, 광야를 내려다보는 비탈에, 자주 거기에 기대었던, 꼭대기가 잘 려진 늙 은 느릅나무에, 정다운 이 정원의 모든 것들에게 흐느끼면서 절망적인 작별의 인사를 보냈 다. 로잘리가 와서 팔로 그녀를 붙잡아 억지로 들어가게 하였다. 스물다섯 살 가량의 어떤 키 큰 농부가 문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오래 전부터 그녀 를 알고 있기라도 한 듯이 다정스럽게 인사를 하였다. "안녕하세요, 잔느 마님, 별고 없으시 죠? 어머니가 이사하는 데 오라고 하셔서요. 무엇을 가져가시는지 알고 싶군요. 밭일 에 지장 이 없도록 틈틈이 하려고 하거든요." 그는 하녀의 아들, 줄리앙의 아들, 폴의 형제였다. 그녀의 심장이 멎어버리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그 청년에게 키스를 해주고 싶었 다. 남편을 닮았는가, 자기으 아들을 닮았는가 뜯어보면서 그녀는 그 청년을 바라보았다. 그는 혈색이 좋고 기운찼으며, 자기 어머니의 금발 머리와 파란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 면서도 그는 줄리앙과 비슷했다. 무엇이 그럴까? 무엇 때문에 그럴까? 그것은 잘 모르겠지만, 전체 적인 얼굴 모습에서 그는 줄리앙의 그 무엇을 지니고 있었다. 젊은이가 말을 이었다. "그것을 곧 지시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집이 너무 작아서 무엇을 가지고 가야 할지 아직도 결정을 내리지 못 했다. 그래서 그녀는 주말에 다시 오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이사 갈 일이 걱정이 되었는데, 그것은 그녀의 침울하고 기대할 것이 없는 생활에 어떤 서글픈 기분 전환이 되어주었다. 그녀는 이 방 저방으로 가서 갖가지 사건들을 생각나게 하는 가구들을 찾아보았다. 우리들 의 생활의 한 부분이라기보다는 거의 우리 존재와 같이 되어버린 그 정다운 가구들, 어렸을 적부터 알았고 또 거기에는 기쁨과 슬픔의 추억이 깃들여 있고, 우리들의 역사의 날짜 가 결 부되어 있었다. 그것들은 우리가 즐겁거나 우울했을 때 말없이 반려가 되었었고 우리 곁에 서 낡고 해졌으며, 천은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 있었고 안ㅇ느 찢어졌으며, 연접(連 接) 장치 는 흔들거렸고 색은 바래 있었다. 그녀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골랐다. 중요한 결정을 하기 전에 그러는 것처럼 마음이 흔들려 서 종종 망설였고 결정한 것을 수없이 재검토했으며, 두 개의 안락의자의 가치를 비교 해 보 거나 혹은 어떤 낡은 책상과 구식 작업대를 견주어보기도 했다. 그녀는 그 서랍들을 열고 갖가지 사건들을 생각나게 하는 것을 찾아 보았다. 그러고 나서 그녀가 '그래, 이것을 가지고 가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면 그 물건을 식당으로 내려 보냈다. 그녀는 자기 방의 모든 집기, 침대, 장식 융단, 좌종(坐鐘) 같은 것을 모두 가져가 고 싶었 다. 거실의 의자 몇 개도 골랐다. 그것은 어렸을 적부터 그녀가 그 의장(意匠)을 좋아했 던 것들 이었다. 즉 여우와 황새, 여우와 까마귀, 매미와 개미, 그리고 우울한 왜가리 등의 그 림이 있 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는 아주 떠나야 할 이집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다가 그녀는 어느 날 고미 다락 으로 올라갔다. 그녀는 깜짝 놀라 그대로 서 있었다. 물건들이 아주 제멋대로 뒤죽박죽이 되어 있었 던 것 이다. 어떤 것들은 부서지고, 어떤 것들은 그저 더럽혀졌을 뿐이고, 어떤 것들은 까 닭도 없 이 거기에 올려다놓은 것도 있었다. 왜냐하면 그것들을 이제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든 지, 다 른 것으로 바꾸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옛날에 알았던 수많은 자질구레한 실내 장 식품들 을 알아보았다. 갑자기 없어져버려 그것들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자기가 쓰던 사 소한 것 들, 15년이나 자기 곁에 가지고 다녔던 대수롭지 않은 그 작은 낡은 물건들, 매일 보 면서도 눈에 띄지 않던 것들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갑자기 여기 이 다락방 속에서 발견되었는 데, 그 곁에는 그녀가 여기에 도착했던 초기에 그 장소도 확실히 기억나는 보다 오래 된 물건 이 있 었다. 그것들은 갑자기 잊어버리고 있었던 증인, 다시 만난 친구와 같은 중요성을 지 니고 있 었다. 그것들은 서로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오랫동안 교제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어느 날 밤,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해서 끝없이 수다를 떨고 짐작이 가지 않던 그들의 모든 마음에 대해 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것 같은 강한 인상을 주었다. 그녀는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하나하나 둘러보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저런, 이건 결혼하기 며칠 전 어느 날 밤에 내가 금 가게 한 중국 찻잔이로구나--- 아아! 이건 어머니의 작은 램프고, 아버지가 나무 울타리를 여시다가 비를 맞아 불은 부러뜨 린 단 장이로구나." 또 거기에는 그녀가 알지 못하는 많은 것들도 있었다. 그녀의 조부모의 것인지, 아니 면 증 조부모의 것인지 전혀 생각나지 않는 것들이었다. 그것들은 이제는 자기들의 시대가 아닌 시대 속으로 추방되어진 것같이 보이는 그런 먼지투성이의 물건들이었다. 그리고 그 것들은 버림받은 것을 슬퍼하는 것 같았고, 아무도 그 내력과 운명을 알지 못했고, 아무도 그 것들을 선택하고, 사고, 가지고 있고, 사랑하던 사람들을 보지 못했으며, 그것들을 정답게 만 지던 손 과 기쁘게 바라보던 눈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잔느는 쌓인 먼지 속에 손가락 자국을 내면서 그것들을 만져보고 돌려보았다. 그녀는 거기 고물들 한가운데에, 지붕에 박아넣은 몇 개의 작은 유리창으로 해서 들어오는 흐릿한 광선 밑에 그대로 서 있었다. 그녀는 생각나는 것이 없나 하며, 다리가 셋 달린 의자를 세심하게 조사해 보기도 하 고, 구 리로 만든 난상기(煖床器), 낯이 익은 것 같은 밑빠진 발난로, 사용할 수 없는 한 무 더기의 살림살이 도구들을 살펴보았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가져가고 싶은 물건을 한 무더기 만들어놓고, 아래로 내려가서 로잘리 를 보내 그것을 찾아오도록 했다. 하녀는 화를 내면서 '이런 쓸데없는 것들'을 내려 오는 것 을 거절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아무런 의사도 갖지 못하는 잔느였지만, 이번만은 막무 가내여 서 복종해야만 했다. 어느 날 아침 그 젊은 농부, 줄리앙의 앋르인 드니 르콕이 첫 번째 짐을 나르기 위해 짐수 레를 가지고 왔다. 로잘리는 짐 부리는 일에 주의를 시켰고, 놓아야 할 자리에 가구들 을 내 려놓기 위해서 따라갔다. 혼자 남게 되자, 잔느는 절망의 무서운 발작에 사로잡혀 성관의 방들을 누비고 다니 기 시 작하였다. 자기와 함께 가지고 갈 수 없는 모든 것, 거실의 장식 융단의 큰 백조며 오래 된 촛대, 그녀가 만나는 모든 것에 끓어오르는 애정의 충동으로 키스를 했다. 눈물을 흘 리면서 그녀는 미친 듯이 이 방 저 방으로 갔다. 그러고 나서는 바다와 '작별을 하려고' 밖 으로 나 갔다. 9월 말경이어서 잿빛의 낮은 하늘을 세상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누르스름한 슬픈 물결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머리속에는 괴로운 생각들이 맴돌아 그녀는 절벽위에 오랫동 안 서 있었다. 그러다가 날이 어두워졌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은 가장 큰 슬픔속에 있었 던 만큼 괴로웠다. 로잘리는 돌아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새집이 마음에 들어서, 다만 길가에 있지 않을 뿐인 이 커다란 상자 같은 건물보다는 훨씬 좋다고 말했다. 잔느는 밤새도록 울었다. 성관이 팔렸다는 것을 알고 나서부터는 소작인들은 그녀에게 필요 이상의 경의를 표하지 않았고, 자기들끼리는 아무 이유도 모르면서 그녀를 '실성한 여자'라고 불렀다. 그 것은 아 마 그들의 동물적인 본능으로, 그녀의 심해가는 병적인 감상, 증대되는 망상, 불행으로 충격을 받은 가련한 영혼의 모든 혼란 같은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떠나기 전날, 그녀는 우연히 마구간으로 들어갔다. 어떤 으르렁거리는 소리에 그녀는 움찔 했다. 그것은 마사크르였는데, 그녀는 그 개를 몇 달 동안이나 거의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개들이 거의 도달하지 못하는 나이에 이르러 눈이 멀고 중풍에 걸려 있는 그 개는 아 직도 짚 자리 위에서 살고 있었다. 그를 잊어버리지 않은 루디빈느가 돌보아주었던 것이다. 그녀 는 개를 품에 안고 키스를 했으며,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통처럼 뚱뚱한 그 개는 크게 벌어진 뻣뻣한 다리로 간신히 기었고, 아이들에게 장난감으로 주는 나무 개처럼 짖었 다. 마침내 마지막 날이 밝았다. 자기 방은 가구를 치웠기 때문에 잔느는 줄리앙의 옛날 방에 서 잤다. 그녀는 마치 많이 달리기라도 한 것처럼 기진맥진하고 헐떡거리면서 침대어세 빠져나 왔다. 트렁크와 나머지 가구를 실을 마차에는 마당에서 벌써 짐이 실려 있었다. 바퀴가 둘 달린 다른 작은 마차에는 말이 매어져 있었는데, 그것은 여주인과 하녀를 태우고 가게 되어 있었 다. 시몽 영감과 루디빈느만은 새 주인이 도착할 때까지 남아 있기로 했다. 그러고 나서 그들 은 친척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잔느는 그들에게 적은 연금을 설정해 주었다. 게다가 그들은 저금한 것도 있었다. 그들은 이제 쓸모 없고 수다스러운 아주 늙은 하인들이었다. 마 리우스 는 아내를 얻었고, 오래전에 이 집을 떠났다. 여덟 시경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바다의 가벼운 미풍에 불려오는 차디찬 보슬 비였다. 짐수레를 포장으로 씌워야만 했다. 벌써 나뭇잎들이 나무에서 날아올랐다. 부엌 식탁 위에서 밀크커피 잔들이 김을 내고 있었다. 잔느는 자기 잔앞에 앉아서 한 모금 씩 마셨다. 그리고 일어서서 "가자!"하고 말했다. 그녀는 모자를 쓰고 숄을 둘렀으며, 로잘리가 고무 장화를 신겨주고 있는 동안에 슬픔이 복받쳐 말했다. "생각나니, 얘야. 우리가 여기로 오려고 루앙을 떠나던 때 얼마나 비 가 왔었 니......." 그녀는 경련이 일어서 두 손을 가슴에 대고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 한 시간 이상이나 그녀는 죽은 듯이 그렇게 있었다. 그러다가 눈을 다시 뜨고 경련을 일으 키더니 뒤이어 눈물이 쏟아졌다. 조금 진정이 되자, 그녀는 자신이 일어날 수 없을 만큼 허약해졌음을 느꼈다. 그러나 로잘 리는 출발을 지체하면 다른 발작이 일어날까 두려워서 자기 아들을 찾으러 갔다. 그들 은 잔 느를 붙잡아 일으켜 데리고 가서는 마차 안의 방수한 가죽 장식이 있는 나무 의자 위 에 내 려놓았다. 늙은 하녀는 잔느 곁에 올라타 잔느의 다리를 싸주고 어깨는 커다란 망토로 덮어 주었다. 그러고 나서 머리 위로 우산을 펴들고는 이렇게 소리쳤다. "드니야, 빨리가 자." 그 젊은이는 자기 어머니 곁으로 기어올라와, 자리가 없었기 때문에 엉덩이만 붙이고 앉았 다. 그는 말을 빨리 달리게 했는데, 말의 급격하고 불규칙한 속도에 두 여자는 펄쩍 뛰어오 르곤 하였다. 마을 모퉁이를 돌아가자, 누군가가 도로를 왔다갔다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 출발 의 길목 을 지키고 있는 듯싶은 톨비악 신부였다. 그는 마차를 지나가게 하기 위해서 멈추어섰다. 그는 길바닥의 물이 튈까 싶어서 한 손으 로 자기의 옷자락을 걷어올렸다. 검은 양말을 신은 마른 다리에는 진흙투성이의 큼 지막한 구두가 신겨져 있었다. 잔느는 그의 눈길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눈을 내리깔았다. 그러나 로잘리는 모든 것 을 다 알고 있어서 미친 듯이 화를 냈다. 그녀는 "못된 인간, 못된 인간!"하고 중얼거리다 가 아들 의 손을 잡고 말했다. "채찍을 한 번 후려쳐라." 그러나 젊은이는 사제 곁으로 지나가려는 순간, 전속력으로 달리던 자기의 헌 마차가 갑자 기 바퀴 자국 속으로 빠져버렸기 때문에 흙탕물이 튀면서 성직자의 발끝에서부터 머 리끝까 지 뒤집어씌워 버렸다. 그래서 기분이 좋아진 로잘리는 뒤를 돌아보면서 그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는 동 안 사 제는 그의 커다란 손수건으로 흙탕물을 닦고 있었다. 그들이 5분쯤 갔을 때, 잔느가 갑자기 소리쳤다. "마사크르를 잊었구나!" 멈추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고 드니가 내려서 개를 찾으러 달려간 동안 로잘리는 고삐 를 잡고 있었다. 젊은이가 마침내 품안에 보기 흉하게 털이 빠진 큰 개를 안고 다시 나타났고, 그 개 를 두 여자의 치맛자락 사이에 놓았다. 두 시간 후에 마차는 어떤 작은 벽돌집 앞에 멈추었는데, 그 집은 큰길가에 방추형으 로 전 지(剪枝)를 한 배나무들이 있는 과수원 한가운데에 세워져 있었다. 인동덩굴과 참으아리로 뒤덮인 격자(格子)로 된 네 개의 정자가 이 뜰의 네 귀퉁이를 꾸미 고 있었다. 뜰에는 네모진 작은 채소밭이 있고 그 사이로 가장자리에 과실수를 심은 좁은 길이 나 있었다. 아주 높은 생울타리가 사방으로 이 땅을 둘러싸고 있고, 이웃 농장과의 사이에 밭이 하나 있었다. 길에서 백 보쯤 되는 앞에 대장간이 있었다. 가장 가까운 인가만 해도 1킬로 미터의 거리에 있었다. 주위의 전망은 코 지방의 평야에까지 펼쳐져 있었고, 사과나무가 있는 바당을 커다란 나무 들이 두 줄로 에워싼 농가들이 점점이 흩어져 있었다. 잔느는 도착하자마자 쉬고 싶었지만, 로잘리는 그녀가 다시 부질없는 공상에 잠길까 두려 워 허락하지 않았다. 고데르빌의 목수가 이사를 거들어주기 위해 거기에 와 있었다. 마지막 마차가 오기를 기다 리는 동안 이미 실어다 놓은 가구들을 곧 배치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중요한 일로서 오래 생각하고 많은 추론을 필요로 하였다. 그러고 나서 한 시간쯤 후에, 짐수레가 울타리에 모습을 나타냈다. 비가 내리는 속에 서 짐 을 풀어야만 했다. 어두워지자 집은 완전히 뒤죽박죽이 되었고 아무렇게나 쌓아놓은 물건들로 가득했다. 기진 맥진한 잔느는 침대에 눕자 곧 잠이 들었다. 그 후 며칠은 그녀가 감상에 빠질 시간이 없을 만큼 할 일에 짓눌려 지냈다. 그녀는 새집을 아름답게 꾸미는 일에 어떤 즐거움조차 느꼈고, 아들이 돌아오리라는 생각이 줄곧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예전에 자기 방에 있 던 장 식 융단은 식당에 걸었고, 식당은 동시에 거실로도 사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녀는 이층의 두 방 중의 하나를 특별한 정성으로 꾸몄는데, 마음속으로 거기에 '풀레의 방'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또 하나의 방은 자기 것으로 잡아두었고, 로잘리는 그 위 고미다락 옆에서 기거하기 로 했 다. 정성을 들여 정돈을 한 작은 집은 아름다워졌다. 잔느로서는 알 수 없는 그 무엇이 부족하 기는 했지만, 처음에는 이 집이 마음에 들었다. 어느 날 아침, 폐캉의 공증인 서기가 3천 6백 프랑을 가져왔다. 그것은 레 푀플에 남 겨놓은 가구들의 값으로 어떤 가구상이 평가한 것이었다. 그녀는 이 돈을 받으면서 기쁨으로 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 남자가 떠나자마자, 그녀는 부랴부랴 모자를 썼다. 이 생각 지 않은 돈을 폴에게 보내주기 위해 보다 빨리 고데르빌로 가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큰길을 급히 가고 있을 때, 시장에서 돌아오는 로잘리를 만났다. 하녀 는 금 방 진상을 알아내지는 못했으나 왠지 수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그것을 알아차렸 을 때 --- 잔느는 이제 아무것도 감출 수가 없었기 때문에 --- 그녀는 땅바닥에 바구니를 내 려놓 고 마음껏 화를 냈다. 로잘리는 허리에다 주먹을 갖다 대고 소리 질렀다. 그러고 나서는 오른쪽 팔로는 주인을 잡고, 왼쪽 팔에는 바구니를 들고 여전히 화가 나서, 집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하녀는 돈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잔느는 6백 프랑은 가지고 있고 나머지를 내주었으나 그녀의 속임수는 하녀가 의심하는 바람에 들켜버려서, 그녀는 전 부 다 넘겨주어야만 했다. 그러면서도 로잘리는 그 잔금을 젊은이에게 보내는 것에 동의하였다. 며칠 수에 그는 사례 편지를 보내왔다. 제게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저희는 심각한 곤궁에 처해 있었거 든요. 그러나 잔느는 바트빌에 그다지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녀는 이제 전처럼 숨을 쉴 수 없는 것 같았고, 또 전보다 더 고독한 것 같았으며, 더 버림받고 더 고립된 것 같은 생각 이 줄곧 떠나질 않았다. 그녀는 한바퀴 돌기 위해서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베르뇌이유의 작은 마을 까지 갔다가 트루아 마르로 해서 돌아왔는데, 일단 집에 돌아오고 나서도 가야만 했 을 곳, 산책을 하고 싶었던 바로 그곳에 가는 것을 잊기라도 한 것처럼 다시 나가고 싶은 마 음에 사로잡혀 또 일어서는 것이었다. 그리고 매일, 그녀는 이 이상한 욕구의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이 일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 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무심코 뱉은 한마디가 그녀의 불안의 비밀을 드러내 주었 다. 그 녀는 저녁을 먹으려고 앉으면서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아아! 바다가 보고 싶다!" 그녀에게 그렇게도 부족했던 것, 그것은 바다였다. 25년 전부터 그녀의 위대한 이 웃, 소금 기 있는 바람과 분노, 포효하는 목소리, 강력한 숨결을 가진 바다, 매일 아침 레 푀 플의 창 에서 바라보던 바다, 그녀가 밤낮으로 들이마시던 바다, 그녀 가까이에서 느꼈던 바 다, 자기 도 모르는 사이에 한 사람을 사랑하듯 사랑하기 시작했던 바다. 마사크르 역시 극도의 불안 속에서 지내고 있었다. 도착한 날 저녁부터 부엌 찬장 밑에자 리잡고 움직이질 않았다. 하루 종일 거의 꼼짝도 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고, 이따금 희 미하게 신음소리를 낼 때만 돌아눕는 것이었다. 그러나 밤이 되면 곧 자리에서 일어나 벽에 부딪히면서 정원의 문쪽으로 기어가는 것 이었 다. 그리고 그에게 필요한 몇 분을 밖에서 보낸 다음, 다시 들어와 아직도 따스한 화 덕 앞에 엉덩방아를 찧듯 앉아서, 두 주인이 자러 가기가 무섭게 짖어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개는 처량하고도 애처로운 소리로 온 밤을 그렇게 짖어대었다. 이따금 한 시간쯤 쉬 었다가 는 더욱 애절한 소리를 내었다. 그래서 집 앞에 있는 통속에 매어놓았다. 그랬더니 창 문 밑 에서 짖어대었다. 그러다가 힘이 빠져 거의 죽게 되었기 때문에 다시 부엌에 들여놓았 다. 자기 집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이 새집에 자기가 있는 곳을 알려고 애쓰 면서, 쉴 새 없이 끙끙거리고 긁어대는 이 늙은 개의 소리를 들어면서 잔느는 잠을 이룰 수 가 없 었다. 무엇으로도 그 개를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모두 살아서 움직이고 있을 때에는 그의 흐릿한 눈과 신체가 불편하다는 의식이 움직이는 것을 막기라도 하는 것처럼 낮에는 졸고 있다가, 해가 떨어지면 곧 모든 사람을 장님으로 만드는 어둠 속에서는 더 이상 감히 살아서 움직이지 못한다는 듯이 쉴 새 없이 어슬렁거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아침에 보니 개는 죽어 있었다. 그것은 큰 위안이었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잔느는 이겨낼 수 없는 절망에 사로잡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 다. 그것은 마음에 고통을 주는 듯한 그런 날카로운 고통이 아니고, 침울하고 비통한 슬픔이 었다. 어떠한 기분 전환도 그녀를 되살아나게 하지는 못했다. 아무도 그녀를 상관하지 않았 다. 문 앞에 있는 큰길은 거의 인적 없이 좌우로 뻗어 있었다. 이따금 이륜마차가 빠른 속도 로 지 나가곤 했는데, 달리는 바람에 작업복이 파란 풍선처럼 부풀어오른, 붉은 얼굴을 한 남자가 몰고 있었다. 가끔은 짐수레가 느릿느릿 지나가기도 했고, 멀리서 두 농부가 오는 것 도 보였 다. 한 사람은 남자고 또 한 사람은 여자였는데, 지평선에서는 아주 작게 보이다가 점 점 커 지다가 집 앞을 지나가면 다시 작아져서, 저 멀리 까마득히 뻗어 있는 흰 선의 맨 끝 에 가 서는 두 마리의 벌레만한 크기가 되어서, 땅의 가벼운 기복에 따라 오르락내리락 하였 다. 풀이 다시 돋아나기 시작하면, 매일 아침 짧은 치마를 입은 소녀가 길가의 도랑을 따 라 풀 을 뜯어먹는 두 마리의 마른 소를 데리고 울타리 앞을 지나갔다. 그 소녀는 저녁때 돌아왔 는데, 졸리운 듯한 똑같은 걸음걸이로 소 뒤에서 10 분마다 한걸음씩 떼어놓는 것이었 다. 잔느는 밤마다 자기가 아직도 레 푀플에 살고 있는 꿈을 꾸었다. 그녀는 전처럼 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때로는 리종 이모도 함께 거기에 있었다. 그녀는 잊혀지고 끝나버린 일들을 다시 했고, 가로수 길을 거니는 아델라이드 부인을 부축하 고 있 는 상상도 하였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날 적마다 눈물지었다. 그녀는 언제나 폴을 생각하고, 이렇게 스스로 물어보았다. '그 애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가끔 내 생각을 할까?' 그녀는 농장과 농장 사이에 나 있 는 음 푹 팬 길을 천천히 산책하면서 자신을 괴롭히는 이런 모든 생각들을 떠올려보는 것이 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질투심으로 괴로워하였다. 이 증오만이 그녀를 붙들고, 행동하는 것을, 아들을 찾으러 가는 것을, 그 애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방해하였다. 문간에 서서 ' 여기 무 엇 하러 오셨나요, 부인?' 하고 묻는 그 정부가 보이는 것 같았다. 어머니로서의 긍 지가 그 런 해후의 가능성에 반항을 했다. 그리고 과실도 없고 오점도 없는, 여전히 순수한 여 자로서 의 품위있는 오만심이 마음조차 비열해진 관능적인 사랑의 불결한 처신으로 해서 노예 가 되 어버린 남자의 이런 모든 비열한 행동에 대해서 점점 더 그녀를 분노케 하였다. 관능 의 모 든 외설스러운 비밀, 품위를 떨어뜨리는 애무, 파기할 수 없는 결합에서 예측되는 모든 신 비를 생각할 때, 인성(人性)이 그녀에게는 불결한 것으로 보였다. 봄과 여름이 또 지나갔다. 그러나 지루한 비와 잿빛 하늘, 어두운 구름과 함께 가을이 다시 왔을 때, 그녀는 이렇게 산다는 것에 권태를 느껴 풀레를 다시 찾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다 기울여보아야겠다 는 결 심이 설 정도였다. 젊은이의 정열도 지금쯤은 식어졌을 것이다. 그녀는 그에게 눈물겨운 편지를 썼다. 내 사랑하는 아이야, 제발 내 곁으로 돌아와 다오. 나는 늙고 병들고, 하녀 하나 와 함께 일년 내내 혼자 지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다오. 나는 지금 길가의 작은 집에서 살 고 있 단다. 참 슬픈 일이지. 그러나 네가 여기에 있다면, 내게는 모든 것이 달라지련만. 나는 세 상에서 오직 너밖에 없다. 그런데 7년이나 보지를 못했구나! 너는 내가 얼마나 불행 했으며, 또 얼마나 네게 마음을 의지 했었는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너는 나의 생(生) 이었고 꿈이었으며, 유일한 희망이요, 유일한 사랑이었다. 그런데도 너는 나를 돌보지 않았고, 나를 버리고 말았구나. 아아! 돌아와 다오, 내 귀여운 풀레야. 돌아와 내게 키스해 다오. 절망적인 손을 네게 내 밀고 있는 너의 늙은 어미 곁으로 돌아와다오. 잔 느 그는 며칠 후에 답장을 보냈다. 사랑하는 어머니, 어머니를 뵈러 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동전 한 닢도 없습니다. 돈을 얼마간 보내주신다면 돌아가겠습니다. 그렇잖아도 어머니께 서 제게 바라시는 것을 들어드릴 수 있는 어떤 계획을 말씀드리기 위해서 찾아뵈러 갈 작정 이었습 니다. 제가 처해 있는 역경 속에서 저의 반려인 이 여자의 욕심 없는 애정은 저에 대해 한이 없습니다. 그녀의 사랑과 그렇게도 충실한 헌신을 공개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그 냥 이 대로 오랫동안 버려둘 수는 없습니다. 그 여자는 어머님이 인정하실 만하게 아주 예 의바릅 니다. 그리고 그녀는 매우 교양이 있고, 독서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어머님은 그녀 가 항상 저에 대해서 그 무엇이라는 것을 생각조차 하실 수 없을 것입니다. 만일 제가 그녀 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지 않는다면, 저는 짐승 같은 사람일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녀와 결혼하는 것을 어머님께 하락받기 위해 가겠습니다. 제가 집을 몰래 빠져나간 것을 용서하 신다면, 우리는 어머님의 새집에서 모두 함께 살게 될 것입니다. 만약 어머님이 그녀를 아시기만 하면 당장에 승낙해 주실 것입니다. 저는 그녀가 나무랄 데 없고 매우 품위가 있다는 것을 단언합니다. 어머님은 그녀를 사랑하시게 될 것이 확실 합니다. 저로서는 그녀 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저는 어머니의 답장을 학수 고대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진 심으로 어머님께 키스를 보냅니다. 어머님의 아들, 자작 폴 드 라마르 잔느는 낙심했다. 그녀는 편지를 무릎에 놓은 채 꼼짝하지 않았다. 자기 아들을 끊 임없이 붙들고 있는 그 여자, 한 번도 그 애를 가게 내버려두지 않는 그 여자, 자기의 때가 오기를, 절망에 빠진 노모가 자기 아이를 껴안고 싶은 욕망을 더 이상 견디어낼 수 없게 되고 마음 이 약해져 모든 것을 허락할 때를 기다리고 있는 그 여자의 술책을 눈치챘던 것이다. 그리고 그 상스러운 여자에 대한 폴의 그런 집요한 편애가 보여주는 엄청난 고통이 잔느의 가슴을 쥐어뜯었다. 그녀는 이 말만 되풀이했다. "그 애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 애는 나를 사랑하지 않다." 로잘리가 들어왔다. 잔느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이제는 그 여자와 결혼하고 싶다는 구나." 하녀는 펄쩍 뛰었다. "오오! 마님. 허락하셔서는 안 됩니다. 폴 도련님은 그 매춘부 를 주워 들이지는 않을 거예요." 그러자 잔느는 주눅이 들어 있다가 화를 내며 대답했다. "그건 절대로 안 돼. 그 애 가 오지 않겠다면 내가 만나러 가겠어, 내가. 그리고 우리 둘 중의 누가 그 애를 차지하나 보 게 되겠 지." 그녀는 당장에 폴에게 편지를 써서 자기가 가겠다는 것과 그 매춘부가 살고 있는 집 이 아 닌 다른 곳에서 만나자는 것을 알렸다. 그리고 답장을 기다리면서 그녀는 떠날 채비를 하였다. 로잘리는 주인의 속옷과 옷 가지들 을 낡은 가방 속에 넣기 시작하였다. 로잘리는 어떤 옷, 낡은 나들이옷을 접다가 소 리쳤다. "입을 만한 것이 하나도 없군요. 이렇게 하고 가셔서는 안 되겠어요. 사람들에게 창 피를 당 할 거예요. 그리고 파리의 귀부인들이 마님을 하녀로 볼 거예요." 잔느는 로잘리가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두 여자는 함께 고데르빌에 가서 녹색 체 크 무 늬의 옷감을 골라 읍(邑)에 있는 양재사에게 맡겼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매년 두 주 일씩 수 도(首都)로 여행을 하는 공증인 루셀씨에게서 참고될 만한 것을 얻기 위해 그의 사 무실로 들어갔다. 잔느는 28년이나 파리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마차를 피하는 법이라든지, 도둑을 맞지 않는 방법에 대해서 갖가지 조언을 해 주었다. 그리고 돈은 옷의 안에다 꿰매고 꼭 필요한 것만 주머니 속에 넣으라는 충고도 해주 었다. 그는 값이 보통인 식당에 대해서 길게 이야기를 했는데, 그중에서 여자들이 잘 다니는 두세 개의 식당을 지정해 주었다. 그리고 그 자신이 묵곤 하는 철도 역 옆에 있는 오델 드 노르 망디를 가르쳐주었다. 그곳은 자기 소개로 왔다고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6년 전부터 어디서나 화제가 되는 그 철도는 파리와 르 아브르 사이를 운행하고 있 었다. 그러나 잔느는 슬픔이 떠날 날이 없어서 모든 지방에 혁명을 일으킨 그 증기차(蒸氣 車)를 아직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폴에게서 답장이 없었다. 그녀는 일주일을 기다렸고 다시 2주일을 기다렸다. 그리고 매일 아침 길가로 나가 우체부 앞으로 다가가 떨면서 묻는 것이었다. "제게 온 것은 아무것도 없나요, 말랑댕 영감 님?" 그 러면 그 사람은 계절의 일기 불순으로 쉰 목소리로 언제나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 다. "이 번에는 아무것도 없는데요, 마님." 폴이 답장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은 확실히 그 여자다! 그래서 잔느는 당장 떠나기로 결심했다. 로잘리를 데리고 가고 싶었지만, 하녀는 여 행 비용 이 많이 들까봐 다라가는 것을 거절하였다. 게다가 로잘리는 주인이 3백 프랑 이상을 가져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돈이 더 필요 하시게 되면, 제게 편지를 내세요. 그러면 공증인에게 가서 부쳐드리도록 할게요. 만 약 마님 께 돈을 더 드린다면, 폴 도련님이 그걸 가져가실 테니까요." 12월의 어느 날 아침, 두 여자는 그들을 역에까지 데려다 주기 위해 찾아온 드니 르콕의 마차에 올랐다. 로잘리가 거기까지 주인을 전송하였다. 그들은 우선 기차삯을 알아보고 나서 모든 것이 해결되고 가방도 부치자 철로 앞에서 기다 렸다. 이것이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알려고 애쓰고 그 신기함에 너무 너무 정신이 팔려 서 여 행의 슬픈 이유는 이제 잊어버릴 정도였다. 마침내 멀리서 기적소리가 나고 그들은 고개를 돌렸다. 그들은 점점 크게 다가오는 시커먼 기계를 알아보았다. 그것은 무서운 소리를 내며 왔고, 굴러가는 작은 집 들을 연결하 는 긴 사슬을 끌면서 그들 앞으로 지나갔다. 역무원이 문을 열었고, 잔느는 눈물을 지으면서 로잘 리를 포옹하고 나서 그 열차칸으로 올라갔다. 로잘리는 마음이 벅차 소리쳤다. "안녕히 다녀오세요, 마님. 좋은 여행이 되시고요. 곧 또 뵙지요!" "잘 있어, 얘야. " 기적이 한 번 울리자 다시 출발했다. 염주처럼 생긴 모든 차바퀴가 처음에는 조용히. 다음에 는 보다 빨리, 그 다음에는 무서운 속도로 굴러가기 시작하였다. 잔느가 있는 찻잔에는 두 명의 남자가 양쪽 구석에 등을 기대고 자고 있었다. 그녀는 들판과 나무, 농장, 마을들이 지나가 는 것을 바라보았고, 이 속력에 놀라서 새로운 삶 속으로 접어드는 것 같은, 이제는 자기 것 이 아닌, 자기의 평온한 소녀 시절이나 단조로운 생활이 아닌 새로운 세상으로 실려가 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기차가 파리로 들어갔을 때는 저녁때였다. 어떤 심부름꾼이 잔느 의 가 방을 빼앗아들었다. 당황해진 그녀는 그 남자를 놓칠까봐 두려워서 그의 뒤를 거의 뛰다시 피 따라갔는데, 혼잡한 군중 속을 지나는 데 서툴러서 남에게 떠밀면서 그를 쫓아갔 다. 호텔 사무실에 이르자, 그녀는 다급히 말했다. "루셀씨의 소개로 왔는데요." 여주인은 거 대한 몸 집의 신중한 여자였는데, 사무실에 앉아서 이렇게 물었다. "그게 누구지요, 루셀씨가 ?" 잔느 는 당황하여 말을 이었다. "고데르빌의 공증인인데, 해마다 여기에서 묵으신다는데요. " 뚱뚱 한 여자가 말했다. "그럴 수도 있겠지요. 저는 그분을 모릅니다. 방을 원하시지요?" "네, 부 인." 그러자 보이가 그녀의 짐을 들고 앞장 서서 계단을 올라갔다. 그녀는 가슴이 죄 어드는 것 같았다. 그녀는 작은 탁자 앞에 앉아 병아리 날갯죽지로 만든 수프를 올려다 달라 고 부 탁했다. 그녀는 새벽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던 것이다. 그녀는 촛불 밑에서 처량하게 식사 를 하면서,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바로 이 도시를 지나갔다는 것, 줄리앙의 성 격이 이 파리에 체류할 때 처음으로 드러났다는 것을 회상하면서, 가지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그러나 그녀는 그때 젊었었고 자신이 있었으며 꿋꿋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이 늙고, 어쩔 줄 몰 라하고, 겁조차 나고, 무기력해지고, 아무것도 아닌 것에도 당황이 되는 것 같은 느 낌이 들 었다. 식사를 끝내자 그녀는 창가로 가서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를 내려다보기 시작 하였다. 밖에 나가보고 싶었으나 감히 그러지는 못했다. 그녀는 꼭 길을 잃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 다. 그녀는 자리에 누워 불을 껐다. 그러나 잡음과 미지의 도시에 대한 느낌, 여행에 대한 불안이 그녀를 잠들지 못하게 하였 다. 시간이 흘러갔다. 밖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는 점점 가라앉았으나 대도시의 이 어중 간한 휴식에 신경이 쓰여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녀는 사람, 짐승, 식물 같은 모든 것 을 마비시키는 전원의 그 고용함과 깊은 수면에 길들어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지금 자기 주위에서 알 수 없는 어떤 불안을 느끼는 것이었다. 거의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들 이 마 치 호텔 벽 속으로 미끄러지듯 스며드는 것처럼 그녀에게 들려왔다. 이따금 마룻바닥 이 삐 걱거리는 소리를 내고, 문이 닫히고, 초인종이 울렸다. 새벽 두시경에 그녀가 잠이 들기 시작했을 때, 갑자기 어떤 여자가 옆방에서 비명을 질렀 다. 잔느는 벌떡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그러고 나서는 남자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 다. 날이 밝아옴에 따라 폴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희미하게 동이트자 그녀는 옷 을 주워 입었다. 폴은 시테의 소바즈가에 살고 있었다. 그녀는 로잘리의 절약하라는 충고에 따 르려고 걸어서 가려고 했다. 화창한 날씨였다. 차가운 바람이 살갗을 찔럿다. 사람들은 바쁘 게 보도 위를 달려가고 있었다. 그녀는 가리키는 길을 따라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걸어갔다. 그 길의 끝에서 그녀는 오른쪽으로 돌기도 했고 또 왼쪽으로 돌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떤 광장 에 닿 으면 그녀는 다시 알아보아야 했다. 그 광장을 찾지 못해서 어떤빵 장수에게 알아보 았더니, 그는 다른 지시를 해주었다. 그녀는 다시 떠났고, 길을 잃었고, 방황했으며, 다른 사 람의 충 고대로 따랐다가 완전히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이제 미친 듯이 그저 무턱대 고 걸 어갔다. 마차꾼을 불러야겠다는 결심을 했을 때 세느강이 보였다. 그래서 그녀는 강변 을 따 라서 갔다. 약 한 시간 후에 그녀는 소바즈가로 들어섰는데, 그곳은 아주 어두운 일종 의 골 목길 같은 곳이었다. 그녀는 그 문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너무도 마음이 벅차 한발 자국도 더 이상 떼어놓을 수가 없었다. 그 애가 여기, 이 집에 있다, 폴레가. 그녀는 무릎과 손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마침내 집안으로 들어가 복도를 따 라 걷 다가 수위실이 보여 은화 한 닢을 내밀면서 물어보았다. "폴 드 라마르씨에게 어떤 노부인 이, 그의 어머니의 친구가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올라가셔서 말해 주실 수 있겠습 니까?" 수위가 대답했다. "그분은 여기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부인." 그녀는 커다란 전율을 느꼈다. 그녀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아아! 어디에........지금은 어디에서 살고 있는 지요?" "모 르겠는데요." 그녀는 쓰러질 것 같은 현기증을 느껴 잠시 동안 아무 말도 못하고 그대 로 서 있었다. 마침내 있는 힘을 다해서 이성을 차리고 중얼거렸다. "떠난지 얼마나 되었나 요?" 그 남자는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보름쯤 됩니다. 그들은 어느 날 밤에 그렇게 나가 서 돌아 오지 않는군요. 그들은 이 구역의 여기저기에 돔을 졌거든요. 그러니 주소를 남겨둘 리가 있 겠습니까?" 잔느는 눈앞에서 총을 한 방 쏜 것처럼 커다란 불꽃이 번쩍 튀는 것을 보 았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하나의 생각이 그녀를 버티게 해주었고, 겉으로는 침착하고 사 려깊게 서 있게 하였다. 그녀는 풀레에 대한 일을 알고 싶었고, 또다시 찾고 싶었던 것이다. "그럼 그는 아무 말도 안했나요, 가면서?" "네, 전혀 없었어요 돔을 갚지 않으려고 도망친 걸요." "하지만 누군가를 시켜서 편지를 찾아오라고 보냈을 텐데요.""별로 편지가 많 지 않았 습니다. 일년에 열 통도 안 되었으니까요. 그러나 그들이 없어지기 이틀 전에 한 통 올려다 드렸지요." 그것은 아마 자기 편지였을 것이다. 그녀가 황급히 말했다. "이보세요, 나는 그 애 어미랍니다. 그 애를 찾으러 왔지요. 십 프랑 드리겠습니다. 만일 당신이 그 애 에 대한 어떤 소식이나 정보를 얻게 되시면, 르 아브르가의 노르망디 호텔로 알려주세요. 사례 는 충 분히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녀는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불안해하지도 않으면서 걷기 시작했다. 그녀는 중요한 용무를 보러 가느라고 바쁜 것처럼 급히 걸어갔다. 짐을 든 사람들에게 부딪치면서 그녀는 벽을 따라 걸어갔다. 마차가 오는 것을 보지도 않고 길을 가로질러 마부들에게 욕을 먹기도 했다. 전혀 주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도의 디딤판에 걸려 비틀거리기도 하였다. 그녀는 정신없이 앞으로 달려갔다. 갑자기 그녀는 어떤 공원으로 들어와 있었다. 그녀는 피곤함을 느껴 벤치위에 앉았 다. 그 녀는 분명 거기에 아주 오랬동안, 자신도 느끼지 못하고 울면서 있었을 것이다. 왜냐 하면 지 나가던 사람들이 그녀를 쳐다보려고 걸음을 멈추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는 몹시 춥다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일어나 다시 떠났다. 다리가 간신히 그녀를 지탱해 줄 정도로 지치고 허약했다. 그녀는 식당에 들어가서 수프를 먹고 싶었지만, 자신도 뚜렷이 느끼고 있는 자기의 슬픔 에 대해서 일종의 수치심과 두려움과 수줍음에 사로잡혀 감히 그곳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 다. 그녀는 잠시 그 문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겁이 나 도망치면서 '다음 집에 들어가 지' 하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다른 식당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마침내 그녀는 빵 가게에서 크루아상 한 개를 사서, 걸어가면서 그것을 우적우적 깨물며 먹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몹시 목이 말랐지만, 어디에가서 물을 마셔야 할지 몰라 그 냥 지나 갔다. 궁륭 하나를 빠져나가자 회랑으로 둘러싸인 다른 공원이 나왔다. 그제서야 그녀 는 그 곳이 팔레 르와이얄이라는 것을 알았다. 햇볕을 받고 걸어서 몸이 좀 따뜻해졌기 때문에, 그녀는 또 한두 시간을 앉아 있었 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품위 있는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미소짓고, 인사를 하였 다. 여자 들은 아름답고 남자들은 부유해 보이는 이 행복한 사람들은 몸치장과 쾌락을 위해서만 사는 것 같았다. 잔느는 이런 훌륭한 군집 속에 있다는 것에 당황하여 일어나서 달아나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곳에서 풀을 만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떠올라서 쉴 새 없이 오고 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살피면서, 공원의 이 끝에서 저끝으로, 비굴하고도 재빠른 걸음으로 배회하 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은 몸을 돌려 그녀를 쳐다보았다. 또 어떤 사람들은 웃으면서 그녀를 손가락 질했다. 그것을 알아차리고 그녀는 도망쳐나왔다. 사람들이 아마 자기의 모습과 로잘리가 골 라주고 고데르빌의 양재사에게 지시를 해서 만든 자기의 녹색 체크 무늬의 옷을 조소하는 모 양이라 고 생각했다. 그녀는 이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볼 용기조차 나지 않았다. 그러나 간신히 용기를 내어 물어보고, 마침내 호텔을 찾게 되었다. 그날의 나머지는 침대 발 치에 있 는 의자에 앉아 꼼짝도 않고 지냈다. 그러고 나서 전날처럼 진한 수프와 약간의 고기 로 저 녁을 들었다. 그리고 자리에 누웠다. 그 하나하나의 행동을 습관에 의해 기계적으로 완수했 다. 다음날은 아들을 찾으려고 경찰서로 갔다. 아무것도 그녀에게 약속을 할 수는 없 었으나, 노력은 해보겠노라고 했다. 그래서 그녀는 여전히 그를 볼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거리를 헤매었다. 그녀는 이 움직이는 군중 속에서 황량한 전원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 보다 더한 고독을 느꼈고 더욱 고립되어 있는 것 같았으며 더욱 비참한 것같이 느껴졌다. 저녁때 호텔로 돌아오니, 폴씨로부터 왔다는 어떤 남자가 찾아와서 내일 다시 오 겠다는 말을 했다고 전해 주었다. 피가 가슴에서 용솟음쳐 그날 밤은 눈을 붙이지 못했다. 만 일 그 사람이 그 애였다면? 자기에게 이야기해 준것으로는 상세한 것을 알 수 없었지만, 그 사람 은 틀림없이 그 애였을 것이다. 아침 아홉 시경에 누가 문을 두드렸다. 그녀는 팔을 벌리고 뛰어들 준비를 하고 " 들어오 세요!" 하고 소리쳤다. 어떤 모르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 사람이 성가스럽게 해드린 것에 대 해 사과를 하고, 자기의 용건, 즉 폴의 부채를 청구하러 왔다는 것을 설명하는 동안, 그녀는 울고 싶었으나 그것을 보이고 싶지는 않아서 눈가로 눈물이 흘러내릴 때마다 손가락 끝으로 그것을 찍어내었다. 그는 소바즈가의 수위에게서 그녀가 왔다는 것을 알았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 젊 은이는 찾을 수가 없기 때문에 어머니에게 말하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가 내미는 서류를 아무 생각없이 받았다. 90프랑이라는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돈을 꺼내 지불했 다. 그 날 외출하지 않았다. 하녀의 편지를 기다리면서 그녀는 무엇을 해야할지, 비통한 시간 을, 길 고 긴 시간들을 어디에서 보내야 할지를 몰라 며칠을 방황하며 보냈다. 아무도 그녀에 게 부 드러운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이 없었고, 아무도 자기의 비참함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 다. 이제는 떠나고 싶고, 거기 고독한 길가에 있는 자기의 작은 집으로 돌아가도 싶은 욕망 으로 괴로워하면서 무턱대고 걸었다. 전에는 그곳에서 며칠을 살 수 없을 만큼 슬픔이 그녀를 짓눌렀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와 반대로 자기의 침울한 습관들이 깊이 뿌리박고 있는 그곳에서밖에는 살 수 없다는 것 을 절 실히 느꼈다. 마침내 어느 날 저녁, 한 통의 편지와 2백 프랑을 받았다. 로잘리는 이렇게 써 보냈 다. 잔느 마님, 어서 속히 돌아오세요. 더 이상은 아무것도 보내드릴 수가 없기때문이에 요. 폴 도련님에 대해서는, 소식이있으면 제가 그분을 찾아갈 테니까요. 안녕히 계세요. 마님의 하녀, 로잘 리 그래서 잔느는 눈이 내리고 몹시 추운 어느날 아침, 바트빌로 다시 떠났다. 그 후로는 그녀는 이제 외출도 하지 않았고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녀는 매일 아침 같은 시각에 일어나서 창문으로 날씨를 내다본 다음, 내려와 거실의 불 옆에 앉는 것이었 다. 그녀는 온종일 꼼짝도 하지 않고 불길만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비통한 생각에 빠져 자기의 불행세서 올이 풀리는 슬픔을 따라가며 거기에 그렇게 앉아 있는 것이었다. 어둠이 차 츰 그 작은 방에 밀려와도 난로에 장작을 지피는 것 이외에는 다른 동작을 하지 않았다. 그러면 로잘리가 램프를 가져오며 소리 질렀다. "자, 잔느마님, 움직이셔야 해요. 그렇지 않 으면 또 오늘 저녁에 시장기를 느끼시지 못하게 될 거예요." 그녀는 줄곧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고정관념에 자주 쫓기기도 하고, 무의미한 걱 정으로 몹시 괴로워하기도 했으며, 사소한 일들이 그녀의 병적인 머리속에는 아주 큰 중요성 을 지 니기도 하였다. 그녀는 특히 과거 속에, 자기 생의 초기나 그 코르시카섬에서의 신혼여행등이 머 리에서 떠나지 않아 아득한 과거 속에서 다시 살고 있었다. 오래 전에 잊고 있었던 그 섬의 풍경들 이 갑자기 그녀 앞에 있는 벽난로의 깜부기불 속에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세세한 모든 것들, 사소한 갖가지 일들, 거기에서 만난 모든 얼굴들이 떠올랐다. 안내인인 장 라 볼리의 얼굴이 그녀를 따라다니기도 했으며, 가끔은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그러고 나서는 폴이 어렸을 때의 즐거웠던 몇 해를 생각했다. 그때 그 아이는 자 기에게 샐러드용 채소를 모종하게 해서, 리종 이모와 나란히 비옥한 땅에 무릎을 꿇고 두 사람은 모두 그 아이의 마음에 들려고 정성을 다해 경쟁을 했었다. 누가 가장 능란한 솜씨로 묘목 의 뿌리를 내리게 하나, 누가 가장 잘 자라게 하는가를 겨루었었다. 그러나 아주 낮은 소리로, 마치 그에게 말하듯이 그녀의 입술이 들먹거렸다. "풀레 야, 내 귀여운 풀레야." 이 말에 그녀의 몽상은 멎어버렸다. 그녀는 이따금 몇 시간이고 손 가락을 펴서, 그 애의 이름을 구성하고 있는 글자들을 허공에 써보려고 애쓰기도 하였다. 불 앞에서 그 글자들이 보이는 듯이 상상을 하고 천천히 그것을 그렸다. 그러다가 틀렸다고 생 각하고, 피로에 떨리는 팔로 P자를 다시 시작하면 그 이름을 끝가지 그리려고 애썼다. 그녀는 다 그 리고 나면 다시 시작하는 것이었다. 마지막에 가서는 더 이상 할 수가 없어서 모든 것을 섞어버리고, 미칠 정도로 화가 나 다 른 글자를 만드는 것이었다. 고독한 사람들이 갖는 모든 편집광적인 증세가 그녀를 사로잡 았다. 사소한 물건이 자리가 바뀌어도 화를 냈다. 로잘리가 자주 그녀를 강제로 걷게 하려고 길로 데리고 나갔다. 그러나 잔느는 20분 쯤 되 면 "더는 못 가겠어." 하고 말하고는 도랑가에 주저앉는 것이었다. 마침내 모든 동작 이 그녀 에게는 지겨워져서 될 수 있는대로 늦게까지 침대에 누워 있었다. 어렸을 적부터 한 가지 유일한 습관이 끈질기게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그것은 밀크 커피를 마신 다음에는 자리에서 곧바로 일어나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이 밀크 커피에 지나칠 정도로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그것을 빼앗는다면 그녀는 다른 무 엇보다 도 아픔을 느꼈을 것이다. 매일 아침 약간 관능적인 초조감으로 로잘리가 오기를 기 다렸다. 가득한 찻잔이 머리맡 탁자에 놓여지자마자, 자리에 일어나 앉아 약간 게걸스러운 태도로 열심히 그것을 비우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에는 이불을 걷어차 내고 옷을 입기 시작하 는 것 이었다. 그러나 차츰 접시에다 찻잔을 내려놓은 다음에도 잠시 동안 부질없는 공상에 잠기 는 버릇이 생겼다. 그리고 다시 침대에 드러눕는 것이었다. 로잘리가 와서 화를 내 며, 거의 강제로 옷을 입힐 때까지 이 게으름을 그녀는 하루하루 더 오래 끄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이제 의지를 갖는 기색조차 없어서, 하녀가 그녀에게 어떤 조언을 청하거 나, 질문을 던지거나, 의견을 알아보려고 할 적마다 이렇게 대답하곤 하였다. "너 하 고 싶은 대로 하려무나, 얘야." 그녀는 동양인처럼 숙명론자가 되어서, 자기에게는 어떤 집요한 불운이 아주 바짝 붙어서 딸다닌다고 생각하였다. 자기의 꿈이 사라지고 자기의 희망이 무너지는 것을 보아온 습관이 이제는 감히 아무것도 꾀해 보지 못하게 했고, 아주 간단한 일을 이행하기 전에도, 자 기는늘 잘못된 길로 접어들고 있다. 그것이 나쁜 방향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으로 며칠동안을 망설이 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럴때마다 그녀는 이 말을 되풀이했다. "난 인생에 있어서 운이 없었단다." 그러 면 로잘 리는 소리를 질렀다. "그러면 만약 마님께서 빵을 얻기위해 일을 하셔야 했고, 매일 아침 여 섯시에 일어나 품팔이를 하러 가야만 했다면 무어라고 하셨겠습니까! 그렇게 해야만 하는 사람들도 많답니다. 그러다가 너무 늙으면, 그사람들은 비참하게 죽어가는 거예요." 잔느가 대답했다. "나는 혼자고, 아들까지 나를 버렸다는 것을 생각해봐. " 그러 자 로잘 리는 화를 냈다. "그게 무슨 문제예요! 그럼 군 복무를 하고 있는 자식들은요! 아메 리카로 이주해 가는 자식들은요!" 아메리카란, 로잘리에게는 돈을 벌러 가기는 하나 결코 다 시 돌아 오지 못하는 막연한 나라와 같았던 것이다. 그녀가 말을 계속했다. "언제나 헤어지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있는 거예요. 늙은이 와 젊은 이들은 오래도록 함께 살아남을 수는 없는 거니까요." 그리고 잔인한 말투로 결말을 지었다. "그럼 만일 아드님이 돌아가시든지하면 무어라고 말씀하시겠어요?" 그러자 잔느는 더 이상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초봄에 공기가 부드러워지자 그녀에게 약간의 원기가 소생 되었으 나, 그녀는 이 회복된 활동력을 점점 우울한 상념에 빠지는 데에만 사용하였다. 어느 날 아침 그녀가 어떤 물건을 찾으려고 고미다락에 올라갔을 때, 묵은 달력이 가득 든 상자 하나를 우연히 열어보았다. 시골 사람들의 습관에 따라 그것들을 간직해 두었 던 것 이다. 그녀는 자기 과거의 세월 그 자체를 다시 찾은 것 같아서 이 네모진 상자꾸러미 앞에 야릇하고도 혼란스런 감동에 사로잡혀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그녀는 그것들을 아래층의 거실로 가져왔다. 큰 것, 작은 것, 가지가지 크기의 것 들이 있 었다. 그녀는 그것을 식탁위에 연대순으로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갑자기 그녀는 맨 처음의 것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그녀가 레푀플로 가져왔던 바로 그것이었다. 수도원에서 나온 다음날, 루앙을 떠나던 그날 아침에 자기가 지웠던 날짜들이 있는 그 달 력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울었다. 자기 앞 식탁위에 펼쳐진 자신의 비참한 생애를 마주한 늙은 여자의 가엾은 누물, 천천히 흘러내리는 기운 없는 눈물이었다. 그리고 하나의 생각이 그녀를 사로잡았는데, 그것은 이윽고 끊임없이 악착스럽고 무서운 집념이 되었다. 자기가 하루하루 무엇을 했는가를 다시 찾아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벽에다, 장식 융단 위에다 이 퇴색한 달력들을 하나하나 다시 새로 구성했으 며, 어 떤 때에는 한 달 전부를 생각해 내기도 하였다. 그녀는 집요한 주의력과 기억하려는 노력, 집약한 의지의 덕택으로 레푀플에서의 처음 2 년을 거의 완전히 밝혀내는 데 성공했다. 그녀 생애의 머나먼 추억이 이상하게도 쉽게 일종 의 부조처럼 떠올랐다. 그러나 그 다음에 오는 세월들은 서로 뒤섞이고, 건너뛰어 안 개 속으 로 사라져버린 것 같았다. 그녀는 이따금 달력 쪽으로 머리를 숙이고 '옛날'에다 정 신을 긴 장시킨 채, 어떠한 추억을 그 달력에서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것조차 생각해 내지 못하 고 한 없이 그대로 머물러 있기도 했다. 그녀는 성로의 14처의 판화처럼 끝나버린 날들의 그림으로 둘러싸인 거실의 주위를 하나 하나 둘러보았다. 갑자기 그중의 하나 앞에 의자를 갖다 놓고는 회상에 잠겨 밤이 될 때까 지 꼼짝하지 않고 그것을 바라보고 있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모든 수액이 태양의 열을 받아 잠에서 깨어나고, 농작물이 밭에서 싹이 돋기 시작하고, 나무들이 푸르러지고, 뜰의 사과나무가 붉은 공처럼 활짝 피어나고, 벌판이 향기로워지면, 심한 동요가 그녀를 사로잡는 것이었다. 그녀는 이제 한 곳에 머물러 있지 못했다. 하루에 스무 번쯤 나갔다 들어왔다, 왔다 갔다하 고, 때로는 농장을 따라 멀리까지 나가 헤매기도 하면서 일종의 회한의 열병 속에서 흥분하 는 것이었다. 수풀속에 숨어 있는 한 송이 데이지 꽃, 나뭇잎들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오는 햇살, 푸른 하늘이 비치고 있는 바퀴 자국의 물 웅덩이, 그런 것들을 보며 전원에서 몽상에 잠길 때, 그 처녀 시절의 정서의 메아리처럼 아득한 감동이 마음속에 다시 불러일으켜지면서 그녀 를 감 동시키고, 눈시울을 뜨겁게 하고, 혼란에 빠뜨리는 것이었다. 그녀가 미래를 기다리고 있던 때, 이와 똑같은 동요에 몸을 떨면서 달콤함과 포근했 던 세 월을 어지럽히던 그 도취를 맛본 일이 있었다. 그녀는 미래가 닫혀진 지금 이 모든 것 을 다 시 찾은 것이다. 그녀는 마음속에서 그것을 다시 즐기면서도 동시에 고통을 느꼈다. 마치 깨 어난 세상의 영원한 기쁨이 그녀의 시든 살갗, 차가워진 피, 짓눌린 영혼 속에 스며들 어와도 그것은 미약하고 고통에 찬 매력밖에는 던져주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녀에게는 자기 주위의 여기저기서 그 무엇이 조금 달라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태양은 그녀가 젊었을 때보다 식은 듯했고, 하늘도 푸른 색이 옅어지고, 풀도 약간 덜 푸른 것 같았 다. 그리고 꽃들은 빛깔이 더 연해지고 향기는 덜해서 이제는 그만큼 완전히 취하게 하지 못했다. 그러나 며칠 지나면 또다시 생의 만족감이 그녀에게 파고들어, 그녀는 다시 몽상에 잠기고, 희망을 갖고 기다리게 되는 것이었다. 운명이 철저하게 가혹하다 하더라도 화창한 날씨에는 여전히 희망을 갖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일까? 그녀는 영혼의 부추김에 자극을 받은 것처럼 몇시간이고 앞으로 가고 또 갔다. 그 러다가 때로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길가에 앉아 슬픈 것들을 곰곰이 생각하곤 하였다. 왜 자기는 다른 사람처럼 사랑받지 못했을까? 왜 자기는 평온한 생활의 그 소박한 행복마저 알지 못했 을까? 그리고 가끔 그녀는 또 한순간 자기가 늙었다는 것, 자기 앞에는 슬프고 고독한 몇해 밖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 자기의 모든 인생 역정은 거의 끝에까지 왔다는 것을 잊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예전의 열여섯 살 때처럼 마음속에 달콤한 계획 을 세 우고, 매혹적인 미래의 조각들을 짜맞추어보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현실의 냉혹한 느 낌이 그 녀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면 그녀는 허리를 끊어놓을 듯한 무거운 것을 떨어진 것처럼 기진 맥진해서 다시 일어서는 것이었다. 그러고 "아아! 미친할멈! 미친할멈!"하고 중얼거 리면서 집으로 가는 길을 더욱 천천히 걸어가는 것이었다. 로잘리는 이제 그럴 적마다 이렇게 되풀이하곤 하였다. "좀 조용히 계세요, 마님. 왜 그렇 게 안절부절못하시는 거예요?" 그러면 잔느는 슬프게 대답했다. "얘야, 내가 죽기전의 '마사 크르'같이 되었구나." 하녀가 어느 날 아침 여느 때보다 일찍 방으로 들어와 머리맡 탁자에다 밀크커피 잔 을 내 려놓았다. "자, 빨리 마시세요. 드니가 문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요. 일이 있어 서 레 푀 플에 가는 거예요." 잔느는 너무도 흥분이 되어서 기절할 것만 같았다. 정다운 자기집을 다시 본다는 생각에 놀라고, 기력이 쇠진하여 감동으로 떨면서 옷을 입었다. 빛나는 하늘이 온누리에 펼쳐져 있었다. 조랑말도 즐거워서 이따금 질주하기도 했 다. 잔느 는 에투방 마을로 들어서자, 가슴이 설레어서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았다. 울타리의 벽돌 지 붕을 보았을 때, 그녀는 두세번 자기도 모르게, 마치 가슴을 놀라게 하는 것 앞에서 그러는 것처럼 "아아! 아아! 아아!" 하고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쿠이야르네 집에다 마차를 매어놓았다. 그리고 로잘리와 그의 아들이 일을 보러 간 동안, 소작인들이 잔느에게 주인이 없으니까 성관을 한바퀴 돌아보라고 하면서 열쇠를 내주 었다. 그녀는 혼자 떠났다. 바다 곁에 있는 그 낡은 저택 앞에 오자 걸음을 멈추고 그것을 바라 보았다. 겉으로는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었다. 이 너른 회색 건물은 그날 퇴색한 벽 위에 태 양의 미소를 받고 있었다. 덧문은 모두 닫혀져 있었다. 죽은 나뭇가지의 작은 토막이 그녀의 옷에 떨어져 눈을 들어보니 플라타너스나무에 서 떨 어진 것이었다. 그녀는 매끈매끈한 창백한 표피를 가진 커다란 나무에게 다가가서 짐 승에게 하듯 그것을 쓰다듬었다. 그녀의 발이 풀섶에 있던 썩은 나무 토막에 걸렸다. 그것은 그녀가 그렇게도 자주 자기 식구들과 함께 앉아 있었던 벤치, 줄리앙이 처음으로 방문하던 바 로 그 날 내놓았던 그 벤치의 마지막 파편이었다. 그런 다음 현관의 이중문이 있는 데로 가서 녹이 슨 묵직한 열쇠가 돌아가지를 않아 여느 라고 여간 애를 쓰지 않았다. 마침내 자물쇠가 거칠게 용수철 긁히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문짝은 약간 뻑뻑했으나 한 번 밀자 안으로 열렸다. 잔느는 곧, 거의 뛰다시피 자기 방이 있는 데까지 올라갔다. 밝은 벽지로 도배가 되어서 그 방은 알아보지 못했지만, 창문을 열고 그녀는 멀리 움직이지 않는 듯한 갈색 돛이 점점 이 흩어져 있는 바다와 광야, 느릅나무, 작은 숲, 그토록 사랑했던 그 수평선 앞에서 뼛속까 지 감동이 되어 그대로 서 있었다. 잔느는 그 비어 있는 커다란 집을 돌아다니기 시 작했다. 벽 위의 눈에 익은 얼룩들을 바라보았다. 회반죽으로 된 벽 속에 팬 한 작은 구멍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것은 남작이 자기의 젊은 시절을 추억하면서 이장소 앞을 지날 적마다 종종 벽을 상대로 지팡이로 검술을 하며 즐겼기 때문에 팬 것이었다. 어머니의 방에서 그녀는 침대 곁의 어두운 구석에서 문 뒤에 꽂혀 있는, 꼭대기가 금으로 된 가느다란 핀 하나를 찾아냈다. 그것은 전에 그녀가 거기에 꽂아놓고(지금 그것이 생각났 다.), 그 후 몇 해 동안 찾았던 그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것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 녀는 더 없는 유물처럼 그것을 빼내어 거기에 입을 맞추었다. 그녀는 여기저기 돌아다녔고 찾아내었으며,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방들의 벽지에서 는 거 의 눈에 띄지 않는 흔적들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상상의 작용이 헝겊과 대리석의 모양 에, 세 월로 인해서 더러워진 천장의 음영에 종종 그려내는 그 괴상한 형상을 다시 보는 것이 었다. 그녀는 마치 묘지를 가로지르듯이 이 거대하고 조용한 성관을 혼자서 발소리를 내지 않고 걸어갔다. 그녀의 모든 생의 그안에 묻혀 있는 것이었다. 그녀는 거실로 내려갔다. 덧문이 닫혀 있어서 어두웠다. 그녀는 잠시동안 아무것도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이 어둠에 익숙해지자, 그녀는 새들이 날아다니고 있는 높다란 장식 융단을 조금씩 알아보았다. 두 개의 안락의자는 방금 사람이 앉았다 간 듯이 벽난로 앞에 그대로 있었다. 그리고 바로 방의 그 냄새, 사람들이 자기의 냄새를 갖고 있듯이 그 방이 언 제나 지니고 있는 냄새,, 명확하지는 않지만 잘 식별할 수 있는 냄새, 오래 된 집의 어렴풋 한 감미로운 냄새가 잔느에게 스며들어, 추억을 에워싸고 그녀의 기억을 도취시켰다. 그녀는 이 과거의 숨결을 들이마시면서, 두 의자를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헐떡였다. 그러자 갑자기 그녀의 고정 관념이 낳은 느닷없이 환각속에서 그녀는 늘 보아온 것처럼 난로에 발을 쬐고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본 듯했다. 아니, 보았다. 그녀는 공포에 사로잡혀 뒷걸음질을 하다가 등에 문틀이 부딪치자 쓰러지지 않으려 고 거 기에다 몸을 버티었다. 그러나 눈은 여전히 안락의자 위에 고정되어 있었다. 환영은 사라졌 다. 잠시 멍하니 그대로 있었다. 그러다가 그녀는 천천히 정신을 차리고, 미치게 될 까봐 겁 이나서 도망치려고 했다. 그녀의 시선이 우연히 자기가 기대었던 벽판에 멎었다. 그녀 는 풀 레의 눈금을 알아보았다. 모든 희미한 표시들이 똑같지 않은 간격으로 페인트 위로 기어올라가고 있었다. 칼 로 그 은 숫자들은 아들의 나이와 달과 성장을 보여주고 있었다. 보다 큰 것은 남작의 필적 이었고, 그보다 작은 것은 자기의 것이고, 좀 떨리는 듯한 것은 리종이모의 것이었다. 그러자 그녀는 옛날의 그 어린아이가 거기, 자기 앞에, 금발머리를 하고 키를 재 달라고 벽에다 작은 이마 를 붙이고 서 있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남작이 소리쳤다. "잔느야, 6주일 동안에 1 센티가 컸구나." 그녀는 열광적인 애정으로 그 벽판에 입을 맞추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밖에서 누가 그녀 를 불렀다. 로잘리의 목소리였다. "잔느 마님, 잔느 마님, 점심을 들려고 마님을 기다 리고 잇 어요." 그녀는 정신없이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자기에게 건네는 말들을 이제 아무것 도 이해 하지 못했다. 주는 것을 먹고 무슨 이야기인지도 모르고 말하는 것을 들었으며, 자기 의 건강 에 대해서 묻는 듯한 소작인들과 이야기를 했고 포옹하는 대로 가만히 있었으며, 그녀 자신 도 자기에게 내미는 뺨들에 키스를 하고 마차에 다시 올랐다. 나무들 사이로 성관의 높은 지붕이 보이지 않게 되자, 그녀는 가심이 찢어지는 무서 운 아 픔을 느꼈다. 마음속으로 자기 집에 영원한 이별을 고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바트빌 로 돌아 왔다. 그녀가 새집으로 다시 들어가려는 순간 문 밑에서 하얀 그 무엇이 눈에 띄었다. 그것 은 자기가 없는 사이에 우체부가 밀어넣고 간 편지였다. 그녀는 곧 그것이 폴이게서 온 것 이라는 것을 알았고, 괴로움으로 떨면서 뜯어보았다. 그는 이렇게 썼다. 사랑하는 어머니, 제 자신이 당장 어머니를 뵈오러 가기전에 어머니께서 파리를 쓸 데없는 여행을 하시게 해드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좀더 일찍 편지를 내지 못했습니다. 저는 지금 엄청난 불행의 타격으로 큰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제 아내는 딸을 해산 후에 죽 어가고 있습니다. 사흘 되었습니다. 그리괴 저는 한 푼도 없습니다. 어린애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 라 수위 아내가 자기가 할 수 있는 대로 우유로 키우고 있습니다만, 그 아이를 잃게 될까봐 겁이 납니다. 어머님께서 맡아주실 수는 없을까요? 제가 전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 애를 남의 집에 보내어 기르자니 돈이 없습니다. 빨리 답장해주세요. 어머님을 사랑하고 있는 아 들, 폴 잔느는 간신히 로잘리를 부르고 의자에 주저앉았다. 하녀가 오자 두 사람은 함께 그 편지 를 다시 읽은 다음, 둘이 마주 보고 오랫동안 아무 말없이 그대로 있었다. 마침내 로 잘 리가 말했다. "제가 그 어린아이를 데리러 가겠어요, 마님. 그렇게 내버려둘 수는 없지요." 잔느가 대답했다. "갔다오려무나, 얘야." 두 사람은 또다시 잠자코 있었다. 그러다가 하녀가 말을 이 었다. "모자를 쓰세요, 마님. 그리고 고데르빌의 공증인 사무실로 가십시다. 만일 그여자가 죽게 된다면, 폴 도련님은 훗날 어린아이를 위해서라도 결혼하셔야 합니다." 잔느는 한마디 대꾸도 없이 모자를 썼다. 고백하기 어려운 어떤 심오한 기쁨이 그녀 의 가 슴에 스며들어왔다. 무슨 일이 있어도 숨기고 싶은 위험한 기쁨, 낯이 붉어지기는 하 지만 마 음의 불가사의한 비밀 속에서는 열렬히 좋아하는 그런 가증스러운 기쁨 중의 하나였 다. - 아들의 정부가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공증인은 하녀에게 상세한 지시를 해주었고, 그녀는 그것을 몇 번이고 반복하게 해 서 실 수를 저지르지 않을 확신이 서자 이렇게 말했다. "아무염려 마세요. 이제는 제가 책임 지겠습 니다." 그녀는 그날 밤 파리로 출발했다. 잔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게 하는 어떤 상념의 혼란 속에서 이틀을 지냈다. 사흘째 되는 아침, 그녀는 저녁 차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리는 로잘리의 짤막한 편지를 받았 다. 세시경에 그녀는 하녀를 마중하기 위해 뵈즈빌 역에까지 그녀를 데려다 줄 이웃집 마차에 말을 매게 하였다. 그녀는 플랫폼에 서서, 멀리 지평선 끝에서 가까워졌다가 멀어져 가는 레 일의 곧바른 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따금 그녀는 시계를 쳐다보았다 - 아직 10분 남았다 - 또 5분 - 또 2분 - 정각이다. 그러나 아득한 선로 위에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 다. 그 러다가 갑자기 흰 얼룩, 연기가 보였다. 그러더니 그 아래에 검은 점이 커지면서 전속 력으로 달려왔다. 마침내 요란한 기계가 속력을 늦추었고, 기적소리를 내면서, 열심히 승강 구를 살 피고 있는 잔느앞으로 지나갔다. 여러문들이 열리고 사람들이 내렸다. 작업복을 입은 농부 들, 광주리를 든 시골의 아낙들, 폭신한 모자를 쓴 소시만들. 마침내 그녀는 양팔에 무슨 헝 겊 보따리 같은 것을 안은 로잘리를 알아보았다. 그녀는 로잘 리가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지만 넘어질까 걱정이 되어 그럴 수가 없 었다. 그만큼 다리는 맥이 없었다. 하녀는 그녀를 보자, 보통때의 침착한 태도로 그녀에게로 와서 이렇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마님. 돌아왔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더군요." 잔느가 더듬거리 며 말했다. "그래서?" 로잘리가 대답했다. "그런데 그 여자는 간밤에 죽었어요. 그들은 결혼식을 올렸었지 요. 이 어린애예요." 그리고 그녀는 포대기 속에서 전혀 보이지 않는 어린아이를 내밀었다. 잔느는 기계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었고, 둘은 역을 빠져나가 마차에 올랐다. 로잘 리 가 다 시 말했다. "폴 도련님은 장례식이 끝나는 대로 오실 겁니다. 내일 이 시각에, 말씀 대로라 면." 잔느는 "폴........." 하고 중얼거렸으나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태양이 지평선으로 기울어지면서 여기저기 핀 유채꽃들의 황금빛으로, 또 개양귀 비들의 핏빛으로 얼룩진 푸르른 평야를 밝은 빛으로 적시고 있었다. 끝없는 평온이 수액이 움트는 조용한 대지위에 감돌고 있었다. 마차는 매우 빨리 달렸고, 농부는 말을 부추기느라고 혀 차 는 소리를 냈다. 잔느는 자기 앞의 허공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제비들이 불화살 처럼 구부리고 날면 서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갑자기 기분좋은 온기가, 생명의 열기가 그녀의 옷으로 스 며들어 다리에 미치고, 살속까지 파고들었다. 그것은 그녀의 무릎 위에서 자고 있는 작은 생 명의 체 온이었다. 그러자 무한한 감동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그녀는 갑자기 자기가 아직도 보지 못한 어린 애의 얼굴을 들추어보았다. 자기 아들의 딸, 여리디여린 그 피조물이 강한 빛을 받아 입을 옴죽거리면서 파란 눈을 뜨자, 잔느는 두 팔로 들어올려 마친 듯이 키스를 퍼붓기 시 작하였 다. 그러자 로잘리가 만족해하면서도 무뚝뚝하게 그러지 못하도록 말렸다. "자, 자, 잔느 마 님, 그만하세요. 아이를 울리시겠어요." 그러고 나서는 아마 자신의 생각에 대답하듯 이 이렇 게 덧붙였다. "인생이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행복한 것도 불행한 것도 아니지 요." 단편선 목걸이 그녀는 예쁘고 매력적이었지만, 운명의 실수로 봉급쟁이 가정에서 태어난 듯한 여 자였다. 그녀는 지참금도 없었고 유산 받은 것도 없어서, 돈 많고 기품 있는 남자에게 알려지 고 이 해되고 사랑받고 결혼하게 될 아무런 방법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래서 그녀는 하 는 수 없이 국민교육성의 한 하급 공무원과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몸치장을 할 수가 없어서 수수하였기에, 사회 밑바닥에 떨어진 것처럼 불행 하였다. 여자들이란 계급도 혈통도 없고, 다만 그들의 아름다움과 우아함 그리고 매력만이 그들의 출생과 가문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천부적인 섬세함, 우아한 본능, 유연한 마음씨가 그들의 유일한 계급이었고, 또한 서민층의 처녀들을 가장 고귀한 부인들과 동등하게 해주는 것이었 다. 그녀는, 자기는 온갖 우아한 것과 온갖 사치를 위해서 태어났다는 생각이 들어서 언제나 괴로웠다. 그녀는 자기의 초라한 집과 곤궁한 벽, 망가진 의자들과 보기 흉한 천들에 고통을 느꼈다. 자기 계급의 다른 여자는 느끼지도 못할 이런 모든 것들이 그녀를 몹시 괴 롭히고 화나게 하였다. 보잘것없는 자기의 살림살이들을 치우고 있는 브르타뉴 태생의 계집애 를 보 고 있으면, 마음속에서 슬픈 미련과 격렬한 몽상이 깨어나는 것이었다. 그녀는 동양적 인 벽 지를 바르고 높다란 청동 촛대로 불을 밝힌 조용한 대기실을 생각하였고, 또 난방의 후덥지 근한 열기로 졸음이 와서 널찍한 안락의자에서 잠이 든 짧은 바지를 입은 두 명의 키 큰 하 인들을 생각하였다. 그녀는 옛날 비단이 깔려 있는 커다란 응접실과 값을 매길 수 없 는 골 동품들이 놓여 있는 고급스런 가수들을 생각하였고, 또한 가장 친한 친구들이나 모든 여자 들이 새암하고 주의를 끌려고 욕심 내는 저명하고 인기 있는 남자들과 오후 다섯 시의 한담 을 즐기기 위해 만들어진 아담하고 향기로운 작은 살롱을 꿈꾸어보았다. 저녁을 들기 위해서 사흘씩이나 갈지 않은 식탁보가 덮여진 둥근 식탁에 앉았을 때, 마주 앉은 남편이 수프 그릇의 뚜껑을 열면서 매우 기쁜 표정으로 "아, 맛있는 수프로군.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거야." 하고 말할 때면, 그녀는 고급스러운 만찬과 번쩍거리는 은그릇, 요정의 숲 가운데에 있는 이상한 새들이나 옛날 인물들로 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장식 융단 을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희한한 접시에 차려진 산해진미의 요리와 송어의 장밋 빛 살 이나 들꿩의 날개를 먹으면서, 스핑크스와 같은 미소를 띄우고 속삭이며 귀기울여 듣 는 품 위 있는 행동들을 상상하였다. 그녀는 옷도 없었고 보석도 없었으며,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그런 것들만 좋아하였다. 자신은 그런 것들을 위하여 태어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토 록 그녀 는 사랑을 받고 싶었고, 부러움을 사고 싶었으며, 매혹적이고 어디서나 인기를 얻고 싶었다. 그녀에게는 부자 친구가 한 사람 있었다. 수녀원 부속 여학교의 동창생이었는데, 이제는 그녀를 보러 가고 싶지가 않았다. 돌아올 때면 너무도 마음이 아팠기 때문이다. 그래 서 그녀 는 며칠이고 종일 슬픔과 후회와 절망과 비난에 젖어 울곤 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남편이 우쭐거리는 표정으로 손에 커다란 봉투를 들고 돌아왔 다. "자, 여기엔 당신을 위한 무엇이 있지" 하고 그가 말했다. 그녀는 재빨리 종이를 찢 고, 다음 과 같은 말이 인쇄된 카드 한 장을 꺼냈다. 국민교육성 장관과 조르주 랑포노 여사가 1월 18일 월요일, 장관 관저에서 베푸는 야회에 르와젤 부처께서 참석해 주시면 영광이겠습니다. 남편이 기대하는 것처럼 몹시 기뻐하는 대신에, 그녀는 화를 내며 초대장을 탁자 위 에 집 어던지면서 중얼거렸다. "이것을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아니 여보, 난 단신이 만 족하리라 고 생각했는데, 당신은 좀체로 외출을 하지 않았으니, 이것은 기회요. 아주 좋은 기 회란 말 이요. 이것을 얻느라고 얼마나 고생을 했다구. 사람들이 모두 원했거든. 아주 인기 가 있었 지. 그러나 직원들에겐 많이 주어지지 않았어. 당신은 거기에서 관리들을 모두 볼 수 있게 될 거요." 그녀는 화가 난 눈으로 남편을 쳐다보다가 참을 수가 없어서 분명히 말했 다. "무 엇을 입고 거기에 가란 말이에요." 그는 그런 것은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래서 더듬 거리며 말했다. "극장에 갈 때 입는 옷이 있지 않소. 그 옷이 아주 좋아 보이던데, 내게 는." 그는 울고 있는 아내를 보자, 어리둥절하여 어쩔 줄을 모르면서 입을 다물었다. 두 개의 굵 은 눈 물 방울이 천천히 눈가에서 입 가장자리로 흘러내렸다. 그는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왜 그 래. 왜 그러는 거야." 그러나 그녀는 가까스로 마음의 고통을 억누르고 축축한 두 뺨을 닦 으면서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다만 옷이 없으니까 결국 그 모임 에는 갈 수가 없어요. 나보다 좋은 옷을 갖고 있는 부인을 가진 동료에게 초대장을 줘요." 그는 난처했다. 다시 말을 이었다. "이봐요, 마틸드. 괜찮은 옷이 얼마나 할까. 다른 기회에 도 또 입을 수 있는 아주 수수한 것으로 말이야." 그녀는 잠시 곰곰이 생각하면서 계산을 해보았다. 그리고 이 검소한 공무원이 질겁을 해 소리 지르지 않고 즉각 거절하지 않도록 요구할 수 있는 금액을 또 생각해 보았다. 마침내 그녀는 망설이면서 대답하였다. " 정확히 는 모르겠지만, 4백 프랑이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는 약간 창백해졌다. 왜냐 하면 바 로 그 금액을 저축해 두었기 때문이다. 그 돈으로 총을 사서, 오는 여름에 낭테르 평원에 서, 일요일마다 거기로 종달새를 잡으러 가는 친구 몇 사람과 함께 사냥을 즐기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말했다. "좋아, 4백 프랑을 주지. 하지만 예쁜 옷을 사도록 해 요." 연 회의 날이 가까워졌다. 그런데 르와젤 부인은 침울하고 불안해 보이며 걱정스러워하 는 것 같았다. 그러는 동안에 옷은 준비가 되었다. 남편이 어느 날 저녁 그녀에게 말했다. "왜 그 래, 사훌 전부터 당신 아주 이상하군." 그래서 그녀가 대답했다. "보석 하나, 돌 하나 없 고, 몸에 지닐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으니 걱정이군요. 난 매우 비참하게 보일 거예 요. 그 야회에 가지 않는 것이 좋겠어요." 그가 다시 말했다. "생화를 달구려. 이런 계절에 는 그것 이 아주 멋있을 거야. 십 프랑이면 두세 송이의 화려한 장미꽃을 살 수 있을 거야." 그녀는 조금도 설득당하지 않았다. "싫어요. 돈 많은 여자들 가운데에서 가난한 모습을 하 고 있는 것보다 더 모욕적인 일은 없을 거예요." 그러자 남편이 외쳤다. "당신은 참 바보구 려. 당신 친구인 포레스티에 부인을 찾아가서 보석들을 빌려달라고 해요. 그런 부탁을 해도 좋 을 만 큼 당신은 그 여자와 친하지 않소." 그녀는 기뻐 소리쳤다. "정말 그래요. 그 생각 은 전혀 하지 못했군요." 이튿날, 그녀는 친구 집에 가서 자기의 어려운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포레스티에 부인은 거울이 달린 장롱으로 가서 커다란 보석 상자를 가져와 열며, 르와젤 부인에게 말했 다. "골 라보려무나, 얘야." 그녀는 우선 팔찌들을 보았고, 그 다음에는 진주 목걸이들을, 그 리고 금 과 보석으로 된, 세공 솜씨가 훌륭한 베니스제의 십자가를 보았다. 그녀는 거울 앞에 서 장 신구들을 달아보면서 망설였다. 그것들을 풀어서 돌려줄 결심이 나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 히 이렇게 물었다. "다른 것은 없어." "있구말구, 찾아봐. 어떤 것이 네 마음에 들지 모르겠 구나." 갑자기 그녀는 까만 공단 상자 속에서 눈부시게 아름다운 다이아몬드 목걸이 를 발 견하였다. 그녀의 심장이 터무니없는 욕심으로 뛰기 시작하였다. 그것을 집어드는 손 이 떨 렸다. 그녀는 깃을 세운 옷 위로 목덜미에 그것을 걸고, 자기 모습에 황홀하게 넋을 잃고 있었다. 그러다가 주저하면서 몹시 불안한 듯이 물었다. "이걸 빌려줄 수 있겠어. 이 것이면 돼." "그래, 물론." 그녀는 친구의 목에 달려들어 열렬하게 키스를 하였다. 그러고 는 그 보 석을 가지고 도망하듯 나왔다. 연회의 날이 왔다. 르와젤 부인은 성공하였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아름다웠고 우아 하고 맵 시가 있었으며, 미소를 짓고 기쁨에 들떠 있었다. 모든 남자들이 그녀를 쳐다보았 고, 이름 을 물었으며, 소개를 받으려고 애썼다. 비서실의 수행원들은 모두 그녀와 왈츠를 추 고 싶어 하였다. 장관도 그녀를 눈여겨보았다. 그녀는 즐거움에 도취되어, 취한 듯이 황홀하게 춤을 추었다. 자기 아름다움의 승 리, 자기 성공의 영과, 이 모든 경의와 찬사, 잠에서 깨어난 그 모든 욕망, 여자들의 마음속 에 더할 나위 없이 감미로운 승리로 이루어진 그 어떤 행복의 구름 속에서, 그녀는 더 이상 아무것 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새벽 네 시경에 그곳에서 떠났다. 남편은 자정부터, 세 명의 다른 남자들과 함께 쓸쓸한 작은 응접실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이들의 부인들은 마음껏 즐겼다. 그는 외출에 대비하여 가져왔던 옷을 그녀의 어깨에 걸쳐주었다. 그것은 보통때의 수수한 옷으로 서, 그 초라함은 우아한 무도복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녀는 그것을 느끼고, 호화로운 모피 로 몸 을 감싼 다른 부인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도망치고 싶었다. 르와젤이 그녀를 붙들었 다. "기 다려요. 밖에 나가면 감기가 들어요. 마차를 불러올게." 그러나 그녀는 그의 말은 전 혀 듣지 도 않고 급히 계단을 내려갔다. 그들이 길로 나왔을 때에는 마차를 볼 수 없었다. 그 래서 그 들은 멀리 지나가는 마부들을 향해 소리를 지리면서 마차를 찾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절망 하고 추위에 떨면서 세느강 쪽으로 내려갔다. 마침내 부둣가에서, 밤에만 나돌아 다니 는 낡 은 마차 한 대를 발견하였다. 그것은 낮 동안은 자기의 비참한 모습이 부끄러운 듯이 밤이 되어야만 파리에 나타나는 것이었다. 마차는 마르티르가에 있는 그들의 문 앞까지 데려다 주었다. 그들은 쓸쓸하게 자기 집으로 올라갔다. 그녀에게 있어서는 모든 것이 끝났 다. 그리 고 남편은 열 시까지는 국민교육성에 가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허영 속에서 한 번 더 자신의 모습을 보기 위해, 거울 앞에서 어깨를 감싸고 있던 옷을 벗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녀는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목에는 목걸이가 없지 않은가. 벌써 반쯤 옷을 벗고 있던 남편이 물었다. "무슨 일이오." 미치다시피 된 그녀가 그 에게로 몸을 돌렸다. "저.저. 포레스티에 부인의 목걸이가 없어졌어요." 그가 정신없이 몸을 일으켰 다. "뭐라구. 어떻다구. 그럴 리가 없어." 그들의 옷의 주름 속과 외투의 주머니 속 할 것 없 이 모든 곳을 다 찾아보았다. 그러나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그가 물었다. "무도 회장을 나올 때에는 확실히 있었지." "네, 국민교육성의 현관에서 그것을 만져보았었거든요." "그런 데, 길에서 잃어버렸다면 떨어지는 소리를 우리가 들었을 텐데 마차 안에 있을 것이 틀림없 어." "네, 아마 그럴지도 몰라요. 번호를 알고 계세요." "몰라, 당신은 번호를 보지 않았소." "아뇨." 그들은 낙담하여 서로 바라보았다. 마침내 르와젤이 옷을 다시 입었다. "우 리가 걸 어왔던 길을 모두 다시 걸어가며 찾아보겠소."하고 그가 말했다. 그리고 그는 밖으로 나갔 다. 그녀는 야회복을 입은 채로, 잠자리에 누울 기력이 없어 불도 켜지 않고 아무 생 각 없이 의자 위에 쓰러져 있었다. 일곱 시경에 남편이 돌아왔다. 그는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 하였다. 그는 경찰국과 신문사에 가서 현상 광고를 냈고, 작은 마차 회사에도 들렀다. 결국 희망의 낌새가 보이는 곳은 모조리 찾아갔다. 그녀는 이 끔찍한 대실수 앞에서 심히 불안한 상태로 온종일을 기다렸다. 르와젤은 저녁때 움푹 들어간 눈에 창백한 얼굴로 돌아왔다. 그는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당신은 친구에게 목걸이의 고리가 부러져 그것을 수 선하고 있다고 편지를 써야겠어. 그러면 다시 찾아볼 시간을 벌게 될 테니까." 그녀는 그가 불러주 는 대로 편지를 썼다. 일주일이 지나자, 그들은 모든 희망을 잃어버렸다. 그러자 다섯 살이나 늙어버린 것 같은 르와젤이 분명히 말했다. "다른 보석으로 대신할 생각을 해야겠어." 그들은 다음날, 목걸이 가 들어 잇던 상자를 가지고, 그 안에 이름이 적혀 있는 보석상으로 갔다. 보석 상인 은 장부 를 뒤적였다. "저는 이 목걸이를 팔지 않았습니다, 부인. 보석 상자만 팔았나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 보석상에서 저 보석상으로 가서, 그들의 기억을 참고로 하여, 그와 비슷한 다른 목걸이를 찾느라고 두 사람은 모두 슬픔과 고민으로 병이 나버렸다. 팔레 르와이얄의 상점 에서 그들이 찾던 것과 너무도 같아 보이는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하나 찾아내었다. 그 값은 4만 프랑이었다. 그러나 3만 6천 프랑이면 팔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사흘 이 내에는 그것을 팔지 말라고 보석 상인에게 부탁을 했다. 그리고 만일 2월 말 이전에 잃어버린 목걸 이를 다시 찾는다면, 그것을 3만 4천 프랑에 도로 물려주겠다는 조건도 붙였다. 르와 젤은 아 버지에게서 물려받은 1만 8천 프랑을 가지고 있었다. 나머지는 빚을 얻었다. 그는 돈 을 빌렸 는데, 한 사람에게는 1천 프랑, 다른 사람에게는 5백 프랑, 여기에서는 5루이, 저기 에서는 3 루이를 부탁하였다. 그는 어음을 발행했고, 파선을 초래하는 저당을 잡혔으며, 고리대 금업자 와 모든 종류의 대금주들과 거래를 텄다. 그는 자기 인생의 종말을 온통 위험한 일에 끌어 들였고, 이행할 수 있을는지도 모르면서 감히 서명을 하였다. 그리고 장래에 대한 번 민과 자 신에게 닥칠 암담한 비참, 물질적인 모든 궁핍과 온갖 정신적 고통을 예상하니 무서 워졌다. 그러나 그는 새 목걸이를 사러 가서 보석상의 계산대 위에 3만 6천 프랑을 내놓았다. 르와 젤 부인이 포레스티에 부인에게 목걸이를 가져가자, 부인은 기분이 안 좋은 표정으로 말했 다. "좀더 일찍 돌려주었어야지. 그것이 필요할 수도 있잖아." 그녀는 보석 상자를 열 어보지 않았다. 그것은 자기 친구를 두렵게 만드는 일이었다. 만일 바꿔치기한 물건이라는 것 을 알 게 된다면, 그녀는 어떻게 생각할까. 무어라고 말할까. 자기를 도둑으로 여기지 않을 까. 르와젤 부인은 궁핍한 생활의 무서움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그녀는 갑자기 용감하 게 결 심을 하였다. 이 끔찍한 빚을 갚아야만 한다. 그녀가 갚을 것이다. 하녀를 내보냈다. 집을 옮 겼다. 지붕 밑의 고미다락에 세를 들었다. 그녀는 고된 가사일과 지겨운 부엌일을 알 게 되었 다. 그녀는 설거지를 하고, 기름때가 묻은 사기 그릇과 냄비 밑바닥을 닦느라고 분홍 빛 손톱 이 다 닳았다. 그녀는 더러운 속옷과 셔츠 그리고 걸레를 비누로 빨아서 줄에다 말렸 다. 그 녀는 매일 아침 쓰레기를 가지고 행길로 내려갔고, 물을 들고 올라갔는데, 숨을 돌리 느라고 층계마다 쉬어야만 하였다. 그녀는 서민층 여자처럼 옷을 입고 바구니를 팔에 걸고서, 채고 가게와 식료품 가게 그리고 푸줏간에 갔는데, 값을 깎느라고 욕을 얻어 먹으면서도 작 은 돈 을 조금씩 절약해 나갔다. 매달 어음을 지불해야 했고, 다른 것들은 갱신하고, 기한 을 연기 받아야 했다. 남편은 저녁마다 어떤 상인의 계산을 정서하는 일을 하였고, 밤이면 때 로 한 페이지에 5수를 받고 대서를 해주기도 하였다. 이러한 생활이 십 년 계속되었다. 십 년이 지 나자, 그들은 모든 빚을 다 갚았다. 고리의 이자와 이자의 이자까지 모두 갚은 것이 다. 르와 젤 부인은 이제는 늙어 보였다. 그녀는 가난한 살림 탓에 튼튼하고, 억세고, 거친 여 자가 되 었다. 빗질도 잘하지 않고, 치마는 삐뜨룸하게 입고, 손은 빨개지고, 큰소리로 말하 고, 마룻 바닥을 물을 흠뻑 써서 닦아내곤 하였다. 그러나 가끔 남편이 사무실에 가고 없을 때 면 그 녀는 창가에 앉아 예전의 그 야회를, 그녀가 그렇게도 아름답고 인기가 있었던 그 무 도회를 생각해 보는 것이었다. 만일 그 목걸이를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누가 알겠는가, 누가 알아. 인생이란 얼마나 이상하고 가변성이 있는가. 얼마나 사소한 일 로 자신 을 파멸시키기도 하고 구원받기도 하는가. 그런데 어느 일요일, 그녀가 한 주일 동안의 일의 피로를 풀려고 상젤리제를 산책 하려고 할 때 갑자기 어린아이 하나를 데리고 산보하는 한 여자를 보았다. 포레스티에 부인 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젊고, 여전히 아름다웠으며, 여전히 매력적이었다. 르와젤 부인은 깜 짝 놀랐 다. 그녀에게 말을 걸까. 그래, 물론이야. 이제는 빚을 다 갚았으니까 모든 것을 말 하리라. 이야기하지 못할 이유가 없잖은가. 그녀가 다가갔다."안녕, 잔느." 상대방은 그녀를 전혀 알 아보지 못하고, 이런 서민층 여자가 그렇게도 정답게 부르는 데 놀랐다. 그녀가 입속 으로 중 얼거렸다. "그런데. 부인. 난 모르겠는데. 잘못 보신 것 같군요." "아니야. 나 마틸 드 르와젤 이야." 그 친구가 소리를 질렀다. "어머나. 가엾은 마틸드, 어쩌면 이렇게 변했니." " 그래, 너 와 헤어진 이후로 참 힘든 나날이었지. 아주 비참했었어. 너 때문에 그런 거야." "나 때문이 라니. 어째서 그래." "너, 국민교육성의 연회에 가기 위해서 내게 빌려주었던 그 다이 아몬드 목걸이 생각날 거야." "그래, 그런데." "그런데, 그걸 내가 잃어버렸었어." "뭐라구, 넌 그걸 내게 도로 가져왔잖니." "아주 비슷한 것으로 다른 것을 가져다 준 거야. 그리고 우 리가 그 것을 갚는 데 십 년이 걸렸어. 아무것도 없는 우리로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너도 알 거야. 드디어 끝났어. 그래서 몹시 기쁘단다." 포레스티에 부인이 발걸음을 멈추었 다. "내 것을 대신하려고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샀단 말이니." "그래. 넌 그걸 몰랐구나, 그렇 지. 아주 비슷했으니까." 그러고는 우쭐거리는 순진한 즐거움으로 미소를 지었다. "아, 가엾은 마틸드. 내 것은 가짜였단다. 기껏해야 5백 프랑밖에 되지 않는 것인데." 비계 덩어리 며칠 동안 계속해서, 패주하는 군대의 작은 무리들이 도시를 가로질러 갔다. 그것은 부대 가 아니라 흩어진 오합지졸이었다. 병졸들은 길게 수염이 나고 더러웠으며, 누더기 같 은 군 복을 걸치고 있었다. 그들은 깃발도 없고 대오도 없이 기운 없는 걸음걸이로 나아가고 있었 다. 모두 쇠약해지고 기진맥진한 듯이 보였고, 어떤 생각이나 결심을 할 수도 없이 그 저 습 관적으로 걷고 있었으며, 걸음을 멈추면 금방이라도 피로로 쓰러질 것만 같았다. 특히 총의 무게로 허리가 구부러진 동원병들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며, 조용 하게 살고 있었던 연금 생활자들이었다. 그리고 쉽게 공포에 사로잡히고 순식간에 열 광하며, 공격할 준비가 되어 있고 도망갈 준비도 되어 있는 기민한 어린 유격대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에는 어떤 대전투에서 궤멸된 사단의 패잔병들인 듯한 몇 사람의, 붉은 바지를 입은 사람들도 끼여 있었다. 이런 다양한 보병들과 함께 정렬해서 가는 침울한 포병들 도 보 였다. 그리고 이따금, 가벼운 걸음걸이의 전열 보병대를 간신히 따라가고 있는, 발걸 음이 무 거운 용기병들의 번쩍거리는 철모도 보였다. 이번에는 "패배의 복수자" 무덤의 시민" 죽음 의 분배를 요구하는 자"등의 영웅적인 명칭이 붙은 의용군의 군단들이 산적 같은 표 정으로 지나갔다. 그들의 대장들은 임시변통으로 군인이 되어 재산이나 수염의 길이로써 장교 에 임 명된 왕년의 포목상 아니면 곡물상, 기름 장수 혹은 비누 장수들이었다. 그들은 무기 와 프란 넬과 계급장에 뒤덮여서 우렁찬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작전 계획을 논하며, 허세에 찬 어깨 위에 죽어가는 프랑스를 자신들만의 힘으로 받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만용 을 저지르고, 약탈과 방탕을 일삼는 그들의 악질적인 병졸들을 이따금 두려워하기도 했다. 프러시아인들이 루앙으로 들어올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국민병들은 두 달 전부터 부근 숲속에서 아주 신중하게 정찰을 하고, 가끔 자기네들의 파수병에게 총을 쏘기도 하 였으며, 덤불 밑에서 작은 토끼 한 마리가 움직이기만 해도 전투 태세를 갖추기도 했지만,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들의 무기나 군복, 최근에 사방 30리의 국도변을 무섭게 하 던 그 모든 살인 도구들고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다. 프랑스의 최후의 병사들은 생 스베르와 부르 아샤르를 거쳐 퐁 오드메르로 가기 위해 마침내 세느강을 막 건너갔다. 장군은 절망에 빠져, 이 잡다한 넝마 같은 사람들과는 아무것도 시도해 볼 수가 없었고, 승전밖에 몰랐던 국민의 대궤주 속에서 그 자신이 정신을 잃었으며, 그의 전설적인 용맹성에도 불구하고 무 참히도 패배하여 맨 뒤에서 두 사람의 전속 부관 사이에 끼여 걸어가고 있었다. 그러고는 깊 은 정 적이, 공포에 사로잡힌 소리 없는 기대가 도시 위에 감돌았다. 장사로 말미암아 무기 력해진 뚱뚱한 많은 중산층 사람들은 그들의 고기굽는 꼬챙이와 부엌용 큰 칼을 무기로 여 기자나 않을까 겁내면서 불안스럽게 정복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생활이 멎어버린 것 같았 다. 가게 들은 닫혀 있고, 거리는 조용했다. 이따금 이 침묵에 겁을 먹은 주민이 벽을 따라 급 히 달려 가곤 하였다. 기다림에 대한 극도의 불안으로 사람들은 오히려 적이 얼른 오기를 바랐 다. 프랑스군이 지나간 다음날 오후에, 어디에서 나왔는지 모르는 몇 명의 프러시아 창 기병들 이 신속하게 도시를 가로질러 갔다. 그리고 조금 호, 검은 옷을 입은 무리들이 생트 카트린 느 쪽에서 내려왔고, 또 한편으로는 두 개의 다른 침략자의 무리들이 다르느탈과 브 와기욤 가로 해서 나타났다. 세 본대의 전위대는 바로 그 시각에 시청 광장에서 합류하였다. 그리고 부근의 모든 도로로 해서, 독일군이 딱딱하고 리듬이 분명한 발걸음으로 포도를 울리 며 차 례차례 도착했다. 목구멍에서 나는 알 수 없는 소리로 외치는 구령들이 죽은 듯이 적막한 집들을 따라 올라왔다. 한편, 닫혀진 덧문 뒤에서는 눈들이, "전쟁의 권리"에 의해 이 도시 와 재산과 생명의 주인이 된 승리자들의 동정을 살피고 있었다. 주민들은 어두운 방 안에서 온갖 지혜와 힘도 소용이 없는 대홍수나 살인적인 대지진이 가져다 주는 듯한 공포에 사로 잡혀 있었다. 이와 같은 느낌은 기존 질서가 뒤집어지거나 더 이상 안전이 존재하지 않거나, 인간의 법칙과 자연의 법칙이 보호하고 있던 모든 것이 무의식적이고 무자비한 잔인성 에 좌 우될 적이면 으레 다시 나타나게 마련이다. 무너져 가는 집 밑에 온 주민을 깔아 으 스러뜨 리는 지진, 죽은 소들과 지붕에서 뽑혀져 나온 들보와 함께 물에 빠진 농부들을 휩쓸 어 가 는 범람하는 강, 혹은 저항하는 자들을 학살하고 다른 사람들을 포로로 끌고 가며, 군도의 이름으로 약탈을 하고 또한 대포소리를 들으면서 신에게 감사를 드리는 이 영광스러 운 군 대, 이런 것들은 재앙만큼 무서운 것으로써, 영원한 정의에 대한 모든 신념과 우리가 배운 하늘의 가호와 인간의 이성에 대한 모든 신뢰를 뒤틀어 놓은 것이다. 집집마다 소수의 분대들이 문을 두드리고 이어서 집 안으로 사라졌다. 그것은 침략 후의 점령이었다. 정복자에게 상냥한 태도를 보여야 할 패자의 의무가 시작되었다. 얼마 후 에, 최 초의 공포가 일단 사라지자, 고요함이 다시금 내려앉았다. 많은 가정에서는 프러시아 장교가 식탁에서 식사를 하였다. 때로는 교양 잇는 사람도 있어서, 예의상 프랑스를 동정하 고, 이런 전쟁에 참여하는 자기의 혐오감을 말하기도 하였다. 사람들은 그런 소견에 감사해하였 다. 게 다가 언젠가는 그의 보호가 필요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의 비위를 맞추어주면, 어쩌 면 식사 를 제공해야 할 사람을 몇 사람쯤은 덜 받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전적으로 복 종해야 할 사람의 감정을 무엇 때문에 해치겠는가. 그렇게 하는 것은 용감하기보다 무모한 일 이 될 그들의 도시가 이름을 드날리게되었던 그 영웅적인 방어를 하던 시절과 같은 무모함은 이제 루앙 시민의 결점이 아닌 것이다인 것이다. 마침내 사람들은 프랑스인의 고아함에서 최고의 구실을 끌어냈다. 대중 앞에서 이 이국 병사들과 친숙하게 보이지 않는다면야 집안에 서 공 손하게 대하는 것은 괜찮지 않느냐고 생각하게 되었다. 바깥에서는 서로 아는 체하지 않았 지만 집안에서는 기꺼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독일 군인들은 매일 저녁, 공동의 난로에 몸을 녹이면서 점점 더 오래 머물러 있게 되었다. 도시 자체도 점점 평상시의 모습을 되찾아갔다. 프랑스인들은 아직도 거의 외출하지 않았 지만, 거리에는 프러시아 병사들이 우글거렸다. 게다가, 포도 위로 그들의 커다란 살 인 도구 를 거만하게 끌고 다니는 푸른 제복의 경기병 장교들도, 지난해에 같은 카페에서 술을 마시 던 프랑스 엽기병 장교들보다 일반 시민들을 크게 멸시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태도에 는 그 무엇이 있었다. 미묘하고도 알 수 없는 그 무엇, 견디기 어려운 이상한 분위 기, 냄새 가 퍼지듯이 침략의 냄새가 감돌았다. 그 냄새는 집과 공공 장소를 가득 채웠고, 음식 의 맛 을 변하게 했으며, 야만스럽고도 위험한, 아주 먼 부족의 나라로 여행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정복자들은 돈을, 많은 돈을 징수하였다. 주민들은 언제나 지불하였다. 하긴 그들 은 부자 였다. 그러나 노르망디의 상인은 부유하게 되면 될 수록 모든 손실에, 심지어 남의 손으로 넘어가는 자기 재산의 아주 작은 부분에도 고통을 느낀다. 그런데 도시에서 이삼십 리쯤 강물을 따라 크르와세, 디에프달, 비에사르를 향해 내려가 면, 뱃사공과 어부들이 강바닥에서 종종 독일병의 시체를 건져내는 수가 있었다. 칼에 W질 리거나 발길에 채어 죽은, 돌에 머리가 으깨어지거나 높은 다리에서 떠밀려 물속에 빠 져 죽 은 시체로서 군복 속에서 부풀어 있었다. 강의 진흙은 이 음산하고 야만적이면서도 정당한 복수를, 얄려지지 않은 영웅주의를, 대낮의 전투보다 더 위험하고 영광의 소리도 울리 지 않 는 말없는 공격을 파묻어버렸던 것이다. 왜냐하면 이방인에 대한 증오심은 하나의 사상을 위해서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 몇 사람의 용감한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무기를 갖게 하 였기l 때문이다. 마침내, 침략자들은 엄격한 규율로 도시를 얽어매고 있기는 했지만, 그들이 개선의 행군을 하는 동안 내내 저질렀던 그 평판 자자한 잔악한 행위를 전혀 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 에 사 람들은 대담해졌고, 또한 이 고장 상인들의 마음속에는 다시 장사를 하고 싶은 욕구가 일어 났다. 어떤 사람들은 프랑스군이 점령하고 있는 르 아브르에 투자한 엄청난 이해 관계 를 가 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배를 탈 수 있는 디에프까지 육로로 간 다음 그 항구에 가보려 고 하였다. 사람들은 이미 사귀어놓은 독일 장교들의 영향력을 이용하여, 총사령관으 로부터 출발 허가증을 얻어냈다. 네 마리의 말이 끄는 커다란 합승 마차 한 대가 이 여행을 위해 예약되었고, 열 사람은 마차 회사에 이름을 등록하였다. 그리고 화요일 아침에, 모든 집회를 피하기 위해서 날이 새기 전에 출발하기로 결정했다. 얼마 전부터 이미 영하의 온도는 땅을 얼어붙게 만들었고, 월요일 세 시경에는 북녘에서 밀려온 커다란 먹구름이 눈을 몰고 와, 저 녁 내내 밤새껏 그치지 않고 내렸다. 새벽 네 시 반에, 여행자들은 마차를 타기로 되어 있는 오르망디 호텔의 안뜰에 모였다. 그들은 아직도 잠에 취해 있었고, 덮개를 뒤집어쓰고 추위에 떨고 있었다. 어둠 속이 라 서로 가 잘 보이지 않았다. 무거운 겨울옷을 겹겹이 껴입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모두 긴 법의를 걸친 아주 뚱뚱한 사제처럼 보였다. 그런데 두 사람이 서로 알아보았고, 또 다른 사람 은 그 들에게 말을 걸려고 다가갔다. 그들은 이야기를 나눈다. "아내를 데리고 갑니다"하고 한 사 람이 말했다. "나도 그렇습니다." "나도 그렇습니다." "나 역시 그래요." 첫 번째 사 람이 덧 붙였다. "우리 루앙으로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 만일 프러시아군이 르아브르에 가까이 오면, 우리는 영국으로 갈 겁니다." 비슷한 기질의 사람들이라서 모두 똑같은 계획을 가지고 있었 다. 그런데 마차에는 말이 매여 있지 않았다. 마구간의 하인이 들고 있는 작은 등불이 이따 금 어두운 문에서 나왔다가는 이내 다른 문안으로 사라졌다. 말들이 발로 땅을 찼지 만, 말똥 이 섞인 잠자리 짚으로 해서 거의 소리가 나지 않았다. 짐승들에게 말을 하고 욕설을 퍼 부 어대는 사람의 목소리가 건물 안쪽으로부터 들려왔다. 가볍게 나는 방울소리는 마구를 만지 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 소리는 짐승의 움직임에 따라 분명하고 계속적으 로 도 한 리듬 있는 떨림으로 되었다. 그 소리는 이따금 멈추었다가는 곧이어 편자를 박은 말굽으 로 땅을 차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갑작스러운 동요 속에서 다시 들여왔다. 갑자기 문 이 닫 혔다 모든 소리가 둑 그쳤다 사람들은 추위에 몸이 얼어붙는 듯하여 입을 다물고 있 었다. 그들은 꼼짝도 않고 모이 뻣뻣해 있었다. 시야를 가로막으며 끊임없이 내리는 하얀 눈송이들은 땅으로 내려오면서 쉴 새 없이 반짝 거리고 있었다. 그것은 형상들을 지웠고, 사물을 얼음의 이끼로 분칠하였다. 여울 속 에 파묻 힌 고요한 도시의 거대한 침묵 속에서는, 내리는 눈의 허공에 뜬, 형언할 수 없는 이 어렴풋 한 사락사락하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것은 소리라기보다는 차라리 느낌이었고, 공간 을 가득 채우고 세상을 덮는 듯한 가벼운 원자의 혼합 같은 것이었다. 등불을 들고 그 사람이 다시 나타났다. 선선히 나오려고 하지 않는 침울한 말의 고 삐 끝 을 끌어당겼다. 그는 끌채 곁에다 말의 자리를 잡아주고 수레 끄는 줄을 비끄러매었으 며, 마 구들을 든든히 안정시키기 위해서 한참 동안 주위를 맴돌았다. 다른 손에는 등불을 들 고 있 어서 한쪽 손밖에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말을 찾으러 가려다가, 그는 벌써 눈으로 하얗게 된 이모든 여행객들을 발견하고는 그들에게 말했다. "왜 마차에 오르시지 않나 요. 적 어도 눈만은 피할 수 있을 텐데요." 그들은 확실히 그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서둘러 마차에 올랐다. 아까 말한 세 남자는 아내를 안쪽에 자리잡게 하고 뒤따라 올랐다. 그리고 알아보기 힘들게 얼굴을 가리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 차례대로 나머 지 자리에 앉았다. 바닥은 짚으로 덮여 있어서, 거기에 발들을 파묻었다. 안쪽의 여 자들은 화학탄과 함께 구리로 된 작은 발난로를 가지고 와서 이 기구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얼마 동안 나지막한 소리로 이것에 대한 편리함을 열거하였고, 오래 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 던 것 들을 되풀이하였다. 마침내, 합승 마차는 끌기가 힘들기 때문에 네 마리가 아닌 여섯 마리의 말이 매 여졌다. 밖에서 묻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들 탔나요." 안에서 누군가가 대답했다. "그렇소." 그들은 출발했다. 마차는 천천히, 천천히 종종걸음으로 나아갔다. 바퀴가 눈 속에 파묻혔다. 온 차체 는 둔탁하게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짐승들은 미끄러지고 헐떡거렸으며, 김을 발산 하였다. 마부의 거대한 채찍이 쉴 새 없이 철썩 소리를 냈고, 사방으로 흩날렸으며, 가느다란 뱀처럼 얽혔다가 다시 풀렸다. 그리고 느닷없이 살이 통통하게 찐 한 엉덩이를 내리쳤다. 그 러면 그 엉덩이는 더 세차게 기를 쓰느라고 긴장하는 것이었다. 날이 서서히 밝아왔다. 루앙 토박이인 한 여행자가 "솜의 비"에 비유했던 그 가벼운 눈송 이는 이제 내리지 않았다. 층층한 미광이 칙칙하고 묵직한 커다란 구름을 뚫고 새어나 와 들 판의 흰 빛을 더욱 빛나게 하였다. 들판에는 흰 서리를 뒤지어 쓴 커다란 나무들의 행렬이 나타나기도 했고 또 때로는 눈으로 두건을 쓴 초가집이 나타나기도 했다. 마차 안에서 는, 이 새벽의 음산한 박명에 서로를 호기심 있게 바라보았다. 맨 안쪽에 있는 제일 좋은 자 리에는 그랑 퐁가의 포도주 도매상인 르와조 부부가 마주 앉아 졸고 있었다. 옛날엔 그 가게 의 점 원이었던 르와조는 사업에서 파산한 주인으로부터 그 영업권을 매수하여 헐값으로 팔 았다. 그를 아는 사람과 친구들 사이에서는 교활한 사기꾼, 술책에 능하고 쾌활한 전형적인 노르 망디 이이라는 인정을 받았다. 협잡꾼이라는 그의 평판이 어찌나 기정 사실로 되어 있었던 지, 어느 날 저녁 도지사 관저에서, 우화와 샹송의 작가로서 신랄하고도 섬세한 정신 을 가졌 으며 그 지방의 영광이기도 한 투르넬씨가 부인들이 약간 졸고 있는 것을 보고 "르와 조 볼" 이라는 게임을 하자고 제의했다. 그런데 그 말이 도지사의 살롱 너머로 해서 그 도시 의 살 롱들에 퍼지는 바람에, 그 지방의 모든 사람들을 한 달 동안이나 웃게 만들었던 일도 있었 다. 르와조는 그 밖에도 타고난 익살과 좋건 나쁘건 간에 농담을 잘하기로도 유명하였 다. 그 래서 누구든지 즉각 이런 말을 덧붙이지 않고는 그에 대해서 말할 수가 없었다. "우습 기 짝 없지, 그 르와조는." 그는 작은 키에다 배는 공처럼 나왔고, 얼굴은 반백이 된 양쪽 볼수염 사이로 불그스름하였다. 그의 부인은 키가 크고 건장했으며 과감한데다가 높은 목소리 와 빠 른 결단력을 가지고 있어서, 남편이 즐거운 활동으로 활기를 띠게 하는 그 상점의 질 서이자 계산이었다. 그들 곁에는 보다 위엄이 있고, 상류 계급에 속하는 카레 라마동씨가 있었다. 그는 유력한 인물로서, 제사 공장을 세 개나 가진 소유주로서 면업계에서는 높은 인망 이 있 었으며, 레지오 도뇌르 패용자인데다가 도의회 의원이기도 하였다. 그는 제정 시대에 늘 관 대한 야당의 당수로 남아 있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정정당당하게 싸웠기 때문에 자 기의 가 담을 보다 값지게 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남편보다 훨씬 젊은 카레 라마동 부인은 루앙 의 주둔군에 파견되어 온 명문 가정 출신의 장교들에게는 위안이 되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남편과 마주 보고 앉았다. 아주 작고, 아주 귀엽고, 아주 예쁜 이 부인은 모피 옷 속 에 몸을 움츠리고 마차의 초라한 내부를 한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곁의 위베르 드 브 레빌 백작 부부는 노르망디에서 가장 유서 깊고 귀족적인 이름을 지니고 있었다. 훌륭 한 풍 채의 노신사인 백작은 몸가짐에 기교를 부려서 앙리 4세와 천부적으로 닮았다는 것을 강조 하려고 애를 썼다. 이 가문의 영광스러운 전설에 의하면, 앙리 4세가 브레빌 집안의 어떤 부 인을 잉태시켰는데, 그 일로 해서 그녀의 남편은 백작이 되고 도지사가 되었다는 것이 다. 도의회에서 카레 라마동씨와 동료인 위베르 백작은 이 지방에서는 오를 레앙당을 대표하 고 있었다. 그가 낭트의 보잘것없는 선주의 딸과 결혼하게 된 이야기는 언제까지나 수수께 끼인 채로 있었다. 그러나 백작 부인은 인품이 훌륭했고 누구보다도 손님을 잘 접대 했으며, 루이 필립의 아들 중 한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았다는 소문조차 있었기 때문에, 모든 귀족 들은 그녀를 환대하였다. 그래서 그녀의 살롱은 그 지방에서 제일로 꼽혔고, 옛날의 품위 있 는 행동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유일한 곳으로서 거기에 출입하기가 어려웠다. 브 레빌의 재산은 모두 부동산으로, 연수입이 50만 리부르에 달한다는 소문이었다. 이 여섯 사람 은 마 차의 안쪽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이들은 연금을 받는 평온하고 유능한 사회의 편이었 고, 종 교와 주의를 가진 권위 있는 교양인들의 편이었다. 이상하게도 우연히 여자들은 모드 같은 걸상에 앉아 있었다. 백작 부인곁에는 주기도문과 아베마리아를 중얼거리면서 긴 묵 주신고 를 바치고 있는 두 명의 수녀가 앉아 있었다. 그 중의 한 사람은 얼굴 한가운데에 퍼붓는 산탄을 정면으로 맞기라도 한 것처럼 보이는, 천연두로 해서 깊이 팬 얼굴을 한 늙은 수녀 였다. 매우 허약해 보이는 또 한 수녀는 순교자와 종교상의 환상가를 만드는 그 극심 한 신 앙에 시달린 폐결핵 환자 같은 가슴 위에 예쁘면서도 병약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두 수녀 앞에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남자는 잘 알려 진 민주주의자 코르뉴데였는데, 저명 인사들에게는 공포를 주는 존재였다. 20년 전부 터 그는 모든 민주적인 카페의 맥주 컵 속에 그의 긴 적갈색의 수염을 적셔왔었다. 그는 옛날 에 과 자 제조인이었던 아버지로부터 받는 막대한 재산을 동지와 친구들과 함께 먹어 없앴 다. 그 러고는 그처럼 많은 혁명적인 소비로 인해, 마침내 당연히 받을 만한 자리를 얻기 위해서 공화제가 되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9월 4일에는, 아마 누군가의 짓궂은 장난이었겠지 만, 자 기가 도지사로 임명된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가 부임하려고 하자, 그 자리의 유일한 주인으로 머물러 있었던 관청의 청년들이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득이 물 러나올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는 호인인데다가 악의가 없고 또한 남의 일 보기 좋아하는 사람이 어서 방위 시설을 만드는데 있어서는 비길 데 없이 열성적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들판 에 구 덩이를 파게 했고 부근에 있는 숲에서 어린 나무들을 모두 베어 눕혀놓았으며, 모든 도로 위에는 함정을 설치해 놓고, 적이 가까이 오자 자기의 준비에 만족하여 재빨리 도시로 후퇴 하였다. 그는 지금, 새로운 방어 진자가 필요하게 될 르 아브르로 가는 것이 보다 유 익하리 라 생각하고 있었다. 여자는 바람둥이라고 불리는 그런 부류의 여자로서, "볼 드 쉬 프"라는 별명을 들을 만큼 너무 빨리 온 비만으로도 유명하였다. 몸집이 작고, 모든 것이 동그 동글하 며, 살이 찐 손가락은 갑갑할 정도로 통통해서 마치 짤막한 소시지를 염주처럼 꿰어놓 은 듯 했다. 윤기가 흐르는 팽팽한 피부와, 옷 속에서 불쑥 나온 거대한 유방을 지닌 이 여 자는 그 런 대로 마음을 끌고 인기가 있었다. 그만큼 그녀의 싱싱한 모습은 보기에 즐거웠다. 얼굴은 빨간 사과와도 같았고, 막 피어나려는 모란꽃의 봉오리와도 같았다. 위쪽으로는 두 개 의 멋 진 검은 눈이 열려 있었는데, 그것은 눈 속에 그늘을 드리우는 짙고 긴 속눈썹으로 덮 여 있 었다. 아래쪽에는 반짝이는 작은 이들이 드러나는 작고 매력적인 입이 키스를 기다리 듯 젖 어 있었다. 그 밖에도 그녀는 자잘한 장점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 여자가 누구라는 것을 알게 되자, 정숙한 여자들 사이에서는 속삭이는 소리가 퍼졌다. "매춘부"니 "공공의 수치"니 하는 말들을 큰소리로 쑥덕거려서 그녀가 머리를 쳐들었 다. 그 러고는 너무도 도전적이고 대담한 시선으로 주위에 있는 사람들 훑어보는 바람에 곧 깊은 침묵이 계속되었고, 르와조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눈을 내리깔았다. 르와조는 즐거 운 표정 으로 그녀의 동정을 살피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그 세 부인들 사이에서는 다 시 대 화가 시작되었다. 이 매춘부의 존재가 갑자기 그들을 친구로 만들고 거의 친밀감을 느끼게 까지 하였던 것이다. 그녀들은 이 파렴치한 창녀 앞에서 아내로서의 위엄을 결속시 키려는 것처럼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합법적인 사랑은 언제나 자유로 운 사 랑에 대해 거만하게 대했기 때문이다. 세 남자들도 역시 코르뉴데를 보고 보수당원의 본능으로 가까워져서, 가난한 사람들 을 무 시하는 듯한 어조로 돈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위베르 백작은 프러시아 사람들 이 자 신에게 끼친 손해, 도난당한 가축과 잃어버린 수확으로 해서 생긴 손실들, 그 큰 피해 가 겨 우 한 해 정도의 타격에 지나지 않는다고, 자기보다 열 배가 많은 재산을 가진 대영주 와 같 은 확신을 가지고 말하였다. 방적 공업에서 매우 시련을 겪은 카레 라마동씨는 모든 경우에 신중히 행동하여 목마를 때 먹는 배처럼 영국에 60만 프랑을 조심스럽게 송금해 놓았 다. 르 와조로 말하면, 자기 지하 창고에 남아 있었던 보통 포도주를 모두 프랑스군의 병참부 에 팔 도록 타결이 되어서, 국가는 그에게 어마어마한 돈을 지불해야 되는데 그것을 그는 르 아브 르에서 받을 작정이었다. 이들 세 사람은 모두 우정 어린 시선을 재빨리 주고받았다. 사회적 지위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돈으로 인해서 형제와 같은 감정을 느꼈고, 바지 주머니 에 손을 넣고 금화소리를 내는 자들, 가진 자들의 위대한 동지 의식을 느꼈다. 마차는 너무 느려서 아침 열 시가 되었어도 40리밖에 가지 못하였다. 남자들은 세 번이나 내려서 언덕길을 걸어올라가야 했다. 사람들은 불안해지기 시작하였다. 토트에서 점심 을 먹 기로 했었는데, 지금 같아서는 밤이 되기 전에 그곳에 도착할 가망이 없다고 생각되었 기 때 문이다. 저마다 길가에 음식점이라도 있나 살펴보았지만 그때 마침 마차가 눈 구덩이 에 빠 져 끌어내는 데 두 시간이나 결렸다. 시장기가 느껴졌고 마음이 산란해졌다. 어떤 싸 구려 식 당도 보이지 않았다. 프러시아군들이 가까이 오고 굶주린 프랑스군이 지나가기 때문에 모든 장사꾼들은 겁을 먹은 것이었다. 남자들은 길가에 있는 농장으로 먹을 것을 찾아 달 려갔지 만 빵조차도 구하지 못했다.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찾아내기만 하면 강제로 빼 앗아가 는 병사들에게 약탈당할까봐 두려워서, 농부들은 남은 저장물들을 숨겨놓았기 때문이 다. 오 후 한 시쯤 되자 르와조는 몹시 시장하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모두 오래 전부터 그와 똑같 은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먹고 싶다는 격렬한 욕망이 여전히 더해 가기만 해서 대 화마저 끊어져버렸다. 이따금 누가 하품을 하면, 다른 사람이 얼른 그 흉내를 내었다. 그리 고 저마 다 번갈아, 자기의 성격, 예절, 사회적인 지위에 따라서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입을 벌리거 나 아니면 하품이 나오려고 벌어진 입에 얼른 손을 얌전하게 갖다대거나 하였다. 불 드 쉬프는 몇 번이고 거푸 마치 치마 밑에서 무엇을 찾는 듯이 몸을 숙였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곁에 있는 사람들을 쳐다본 다음에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사람들의 얼굴 은 창백해졌고 경련이 일었다. 르와조는 햄 한 개에 천 프랑을 지불하겠다고 단언했 다. 그의 아내는 항의하려는 듯한 몸짓을 하였지만, 잠잠해졌다. 그녀는 돈을 낭비한다는 말을 들으면 언제나 속이 상해서, 그것에 관해서는 농담조차 이해하지를 못하였다. "사실은 나도 기분이 좋지 않군"하고 백작이 말했다. "어째서 먹을 것을 가져올 생각을 못 했을까" 저마다 똑같 은 책망을 자신에게 하였다. 그렇지만 코르뉴데는 럼주가 가득 든 수통을 가지고 있 었다. 그가 그것을 내밀었으나, 사람들은 냉정하게 거절하였다. 르와조만이 두어 모금 마시 고 수통 을 돌려주면서 고맙다고 말했다. " 역시 좋군요. 몸이 더워지고 시장기를 잊게 해준 다니까 요." 술기운이 돌자 기분이 좋아져서, 그는 샹송에 나오는 작은 배 위에서처럼 하자 고 제의 를 하였다. 즉 여행객 중에서 가장 기름진 사람을 잡아먹자는 것이었다. 볼 드 쉬프에 대한 이 간접적인 암시는 교양 있는 사람들의 비위를 상하게 하였다. 모두들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코르뉴데만이 미소를 지었다. 두 수녀는 묵주신공을 중얼거리던 것을 그만두 고, 커 다란 소매 속에다 수 손을 찌르고, 눈을 꼭 내리감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마 그들 에게 내 린 고통을 하늘에 바치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침내 세 시경에, 마을 하나 보이지 않는 끝없는 벌판 한가운데에 이르렀을 때, 불 드 쉬 프는 재빨리 몸을 굽히고 의자 밑에서 흰 수건으로 덮여 있는 커다란 바구니 하나를 꺼냈 다. 그녀는 우선 거기에서 작은 사기 접시 하나와 은으로 된 날씬한 잔 하나를 꺼냈 다. 그런 다음에는 통째로 온통 칼질을 해서 젤리에 절인 두 마리의 영계가 담겨져 있는 커다란 단지 를 꺼내었다. 바구니 속에는 아직도 종이로 싼 다른 맛있는 음식들이 보였다. 파이, 과일, 과 자 등, 사흘 동안 여행을 하는데 여인숙의 음식을 먹지 않으려고 준비한 음식들이었 다. 네 개의 술병 목이 음식 꾸러미 사이로 나와 있었다. 그녀는 영계의 날개 하나를 들고, 노르망 디에서 "레장스"라고 부르는 작은 빵 하나를 곁들여서 맛있게 먹기 시작하였다. 모든 시선 이 그녀에게 향했다. 그러고는 음식 냄새가 펴져, 사람들의 콧구멍은 벌름거렸고, 귀 밑의 턱이 아프게 수축되면서 입에는 군침을 돌게 하였다. 이 창녀에 대한 부인들의 경멸은 참을 수가 없게 되어서, 그녀를 죽이고 싶거나 아니면 그녀와 잔, 바구니, 음식물들을 마 차 밖의 눈속으로 내던져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르와조는 닭이 들어 있는 단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가 말했다. "때마 침, 부 인은 우리보다 준비성이 있으셨군요. 항상 모든 일에 생각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 있거든 요."그녀는 그를 향해 머리를 들었다. "좀 드시겠어요.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았 다면 힘 드실 거예요."그가 인사를 했다. "참으로 솔직하게, 사양할 수가 없군요. 그럴 수가 없어요. 전시에는 전시대로라고 하지 않습니까, 부인." 그러고는 주위를 한번 둘러보고 나서 이렇게 덧붙였다. "이런 대에 은혜를 베풀어주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매우 기쁜 일이지요. " 그는 바지를 더럽히지 않으려고 가지고 있던 신문을 펴놓고, 언제나 주머니 속에 가지고 다니는 칼 끝으로 젤리가 묻어 온통 번지르르한 닭다리를 들어올려, 허겁지겁 만족스럽게 씹 어대기 시작하자, 마차 안에서는 괴로운 듯 긴 한숨소리가 났다. 그러자 불 드 쉬프는 겸손 하고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수녀들에게 자기의 간단한 식사를 같이 들자고 권했다. 두 수녀는 모두 즉각 이 제의를 받아들여 고맙다는 말을 중얼거리고 나서는, 눈도 뜨는 일 없이 아주 빨리 먹어대기 시작하였다. 코르뉴데도 역시 옆자리에 앉은 여자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 다. 무릎 위에 신문지를 펼쳐놓고 수녀들과 함께 식탁 비슷한 것을 꾸몄다. 입들이 쉴 새 없이 열리 고 닫히면서, 집어넣고, 씹어대고, 사납게 삼켰다. 자기 좌석에서 줄기차게 먹어대던 르와조 가 낮은 소리로 아내에게 자기처럼 먹으라고 권유했다. 그녀는 한참 동안 그것을 물 리치다 가, 창자 속에 경련이 일어나자 무너지고 말았다. 그러자 남편은 말을 부드럽게 하면 서, 자 기 아내에게 작은 한 조각을 주어도 괜찮느냐고 그들의 "매력적인 동행인"에게 물었 다. "그 렇구말구요."하고 그녀가 말했다. 상냥한 미소를 지으면서 그녀는 단지를 내밀었다. 첫 번째 보르도산 포도주 병의 마개를 뽑았을 때 난처한 일이 일어났다. 잔이 하나밖에 없었던 것이 다. 잘 닦은 후에 그것을 돌렸다. 코르뉴데만이 아마 여자에 대한 친절에서였겠지만, 옆자리 에 있는 여자의 입술이 닿아 아직도 축축한 그 자리에 자기 입술을 갖다대었다. 그러 자 음 식을 먹고 있는 사람들에 둘러싸여서, 음식물 냄새로 숨이 막힐 것 같은 드 브레빌 백 작 부 처는 카레 라마동 내외와 함께 탄탈로스, 제우스의 아들로서 신들의 비밀을 누설한 죄 로 턱 까지 차는 지옥 물에 잠겨 있으면서도 목이 말라 물을 마시려고 하면 물이 빠져버려 영원한 기갈의 형벌에 시달렸다 함, 의 그 가증스러울 정도로 안타까운 고통에 시달리고 있 었다. 갑자기 공장 주인의 그 젊은 부인이 한숨을 내쉬는 바람에 모두들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밖에 있는 눈같이 창백하였다. 눈이 감겨지고, 고개가 숙여졌다. 의식을 잃은 것이었 다. 남편 은 깜짝 놀라 사람들에게 도와줄 것을 간청하였다.. 모두들 정신이 없었지만, 나이 든 수녀 가 환자의 머리를 받치고, 불 드 쉬프의 잔을 그녀의 입술 사이로 비스듬히 하여, 포 도주 몇 방울을 삼키게 했다. 예쁜 부인은 몸을 움직이며 눈을 떴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면서 다 죽 어가는 목소리로 이제는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시 되풀이되지 않도록 수녀 는 보 르도산 포도주가 가득 든 술 한잔을 억지로 마시게 했다. 그러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시장 해서 그래요, 다른 게 안녜요." 그러자 불 드 쉬프는 얼굴을 붉히고 난처해하면서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있는 나머지 네 사 람의 여행객들을 쳐다보면서 중얼거렸다. "어쩌나, 저 신사분들과 부인들께도 대접해 드렸으 면 좋겠지만." 그녀는 실례가 될까봐 두려워서 입을 다물었다. 르와조가 말을 받았다. "아무 렴요, 이런 경우에는 모두가 형제지요. 서로 돕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자, 부인들. 허물없이 받아들이세요. 제기랄. 이 밤을 지낼 집 한 채나 찾게 될는지도 알 수 없어요. 이렇 게 가다 가는 내일 정오 안으로 토트에 닿지 못할 겁니다." 사람들은 망설이기만 했지, 아무도 "그럽 시다."하고 감히 책임을 지려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자 백작이 문제를 딱 잘라 해결 하였다. 겁을 내는 뚱뚱한 창녀 쪽으로 몸을 돌리더니 점잔빼는 귀족의 태도로 말했다. "감사 히 받 겠소, 부인." 다만 첫걸음이 힘들었을 뿐이었다. 일단 결심을 하자, 모두들 체면을 차 리지 않 았다. 바구니가 비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아직도 기름진 간으로 만든 파이, 종달새 파이, 훈제한 소 혀 한 덩어리, 프라산 배, 퐁레베크산 치즈 한 덩어리, 비스켓, 식초에 담 근 작은 오이와 양파가 그득 든 잔 등이 바구니에 들어 있었다. 불 드 쉬프도 모든 여자들과 마찬가 지로 생야채를 좋아하였다. 그녀에게 말을 건네지 않으면서 이 여자의 음식을 먹을 수 는 없 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조심성 있게 이야기를 하였지만, 곧 그녀가 퍽 얌전한 여자라 는 것을 알게 되자 더욱 허물없이 대했다. 처세술이 뛰어난 드 브레빌 부인과 카레 라마동 부인은 품위 있고 상냥하게 대했다. 특히 백작 부인은 어떤 교제에서도 자기의 명예를 손상 시키지 않는 매우 고상한 부인들이 취하는 그런 상냥한 겸양을 보여주었고 호감이 가게 하였 다. 그 러나 여장부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건장한 르와조 부인은 여전히 무뚝뚝해서, 말 은 적 게 하면서도 먹기는 많이 먹었다. 자연히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프러시아군의 무시무시한 행동과 프랑스군의 용감 한 행위에 대해서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도망하는 이 사람들은 모두 다른 사람들의 용기에 경의를 표했다. 이윽고 개인적인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불 드 쉬프는 진짜 감동이 되 어, 이 따금 창녀들이 그들의 타고난 격정을 나타내기 위해 취하는 그런 열정적인 말로, 자기 가 어 떻게 루앙을 떠나오게 되었는가를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남아 있을 생각을 했었지 요"하고 그녀가 말했다. "집에는 먹을 것도 가득하고 해서, 정처없이 떠나느니보다는 병정 몇 사람을 먹이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그러나 그 프러시아 군들을 보니 그럴 수가 없더군 요. 분노의 피가 끓어올랐어요. 그래서 온종일 치욕스러워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 내가 남자라면, 그저. 나는 창가에서 뾰족한 철모를 쓰고 있는 그 뚱뚱한 돼지 같은 놈들을 보고 있었지요. 그런데 놈들의 등짝에다 집기를 던지지 못하도록 하녀가 제 두 손을 잡는 거에요. 그러고 나서 그들이 내 집에 묵으려고 왔어요. 그래서 나는 맨 먼저 들어오는 놈의 목덜미 를 잡으려고 달려들었습니다. 그놈들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목을 졸라 죽이는 것이 더 어려울 것은 없잖아요. 누군가가 내 머리채를 잡아채지 않았다면 그놈을 해치웠을 거예 요. 그 일이 있고 나서는 숨어야만 했어요. 마침내 기회를 만나게 되어서 이렇게 떠나 게 된 것이지요." 사람들은 그녀를 대단히 칭찬였다. 그녀는 그렇게 용감한 태도를 보이지 못한 동 행인들의 존경 속에서 위대해졌다. 코르뉴데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도와도 같이 찬동과 호의가 어린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느님을 찬양하는 독신자의 소리를 듣고 있는 사 제와도 같았다. 긴 수염을 한 민주주의자들은, 법의를 걸친 사람들이 종교를 독점하듯이, 애 국심을 독점 판매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 차례가 되자, 매일 벽에 나붙은 성명서에서 배운 과장된 말투로, 맵시를 부리는 어조로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그는 그 "바댕게의 방탕아, 나폴 레옹의 별명"를 거만하게 비난하는 웅변의 한 토막으로 말을 끝맺었다. 그러나 불 드 쉬프는 곧 화 를 냈다. 그녀는 보나파르트파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버찌보다 더 빨개져서, 분개하 여 말까 지 더듬었다. "당신들이 그분의 자리에 있으면 어떨지 보고 싶군요. 어림도 없다구요, 네. 그 분을 배반한 것은 바로 당신들이라구요. 당신들 같은 건달들이 통치한다면, 프랑스를 떠날 수밖에 없을 거에요." 코르뉴데는 태연히 무시하는 듯한 거만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 나 거친 말들이 나올 것 같았기 때문에 백작이 개입하여, 진지한 의견들은 모두 존중되어야 한다고 위엄 있게 단언함으로써 흥분한 창녀를 간신히 진정시켰다. 그러나 백작 부인과 공장 주인 의 부인은 마음속에 공화제에 대하여 상류사회의 인사들이 갖는 불합리한 증오심과, 당당하 고 전제적인 정부에 대하여 여자들이 모두 품고 있는 본능적인 애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 에, 자기들과 너무도 흡사한 감정을 지닌 이 자존심 강한 매춘부에게 본의 아니게 호감이 가는 것을 느꼈다. 바구니는 비어 있었다. 그것이 더 크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면서 열 사람이 거뜬히 비워버 린 것이었다. 대화는 얼마 동안 계속되었으나 다 먹고 난 뒤에는 그것도 식어버렸다. 밤이 오고, 어둠은 점점 짙어갔다. 소화가 되는 동안 추위가 더욱 심하게 느껴져서 불 드 쉬프는 그 지방에도 불구하고 떨고 있었다. 그래서 드 브레빌 부인은 아침부터 볓 번이나 숯을 갈아넣은 자기의 발난로를 그녀에게 권했다. 상대방은 즉시 받아들였다. 그녀는 발이 얼어붙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카레 라마동 부인과 르와조 부인은 수녀들에게 자기들 것을 내주었다. 마부는 벌써 램프를 켜놓았다. 램프들은 선명한 빛으로 땀에 젖은 말들의 엉덩이 위로 구름처럼 피어나는 수증기와 길 양편에 움직이는 불빛의 반사로 펼쳐지는 눈을 비추 고 있었다. 마차 안은 아무것도 분간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갑자기 어떤 움직임이 불 드 쉬프와 코르뉴데 사이에서 일어났다 어둠 속을 눈으로 더듬던 르와조는 커다란 수염 의 그 남자가 소리 없이 가한 어떤 타격에 얻어 맞기라도 한 것처럼 얼른 옆으로 비키는 것 을 본 듯했다. 작은 불빛들이 도로의 앞쪽에 나타났다. 토트였다. 열한 시간을 달렸는데, 말 에게 귀 리를 먹이고 숨을 돌리게 하기 위해서 네 번 쉰 두 시간을 합하면 열세 시간이 된다. 그들 은 마을로 들어가 콤메르스 호텔 앞에 멈추었다. 마차 문이 열렸다.. 귀에 익은 어떤 소리가 여행객들을 소스라치게 하였다. 땅에 칼집이 부딪치는 소리였다. 곧 어떤 독일인이 무 어라고 소리를 질렀다. 마차는 움직이지 않았지만 아무도 내리지 않았다. 마치 나가면 학살당 할 것 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러자 마부가 한 손에 램프를 들고 나타났다. 글 불빛은 갑자기 마차 안에까지 비추어 당황하고 있는 두 줄의 얼굴을 드러내었다. 그들의 입은 벌어지 고, 놀 라움과 갑작스러운 공포로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마부 곁에는 한 독일군 장교가 불빛을 받고 서 있었다. 지나치게 마르고 금발인, 키 가 큰 젊은이가 코르셋을 입은 소녀처럼 꼭 끼는 군복을 입고 밀랍을 입힌 납작한 모자를 비 스듬 히 쓰고 있는 것이, 영국의 호텔 보이처럼 보이게 했다. 곧고 긴 털로 이루어진, 어 울리지 않는 코밑 수염은 양쪽으로 한없이 가느다랗게 뻗어가다가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 로 아 주 가는 단 한 오라기의 노란 털로 끝나고 있었는데, 그것은 뺨을 잡아당기면서 입의 양 가 장자리를 짓누르는 것 같았고, 입술에는 늘어진 주름살 하나를 새기고 있었다. 그는 "신사 숙녀 여러분, 내리시죠."하고 딱딱한 어조로 말하면서, 알사스 지방의 프랑스어로 여 행자들 에게 내리기를 권유했다. 두 수녀들이 온갖 순종에 익숙한 성녀들의 온순함으로 제일 먼저 복종하였다. 백작 부부가 그 다음에 나타났고, 그 뒤를 공장 주인 부부가 따랐다. 그 러고는 르와조가 커다란 아내를 자기 앞으로 떠밀면서 나왔다. 르와조는 땅에 발을 대면서 예의에 서라기보다는 용의주도한 마음에서 "안녕하십니까."하고 장교에게 말했다. 상대방은 무례하 게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사람처럼 대꾸도 하지 않고 그를 쳐다보았다. 불 드 쉬푸와 코르 뉴데는 승강구 가까이에 있었지만, 적 앞에서 신중하고 거만한 모습으로 맨 나중에 내렸다. 뚱뚱한 창녀는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며 침착해지려고 애썼다. 민주주의자는 약간 떨리 는 한 손으로 자기의 긴 갈색 수염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이런 경우에는 누구나 약간 자기 나라 를 대표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들은 품위를 지키고 싶었던 것이다. 동행인들의 순종 에 마찬가지로 분개하여, 그녀는 곁에 있는 정숙한 여자들보다 더 오만하게 보이려고 애썼 고, 한편 코르뉴데는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느끼면서, 길을 파헤칠 때부터 시작된 저 항의 사 명을 모든 태도에서 계속 나타내고 있었다. 일행은 널따란 부엌으로 들어갔다. 독일인은 여행자 개개인의 이름과 특징 그리고 직업이 기재된, 총사령관이 서명한 출발 허가증을 제시하라고 했다. 그는 기재 사항과 개인을 대조 하면서 모든 사람들을 오랫동안 조사하였다. 그러고는 "좋소"하고 퉁명스럽게 말하고 는 사 라졌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여전히 배가 고파서 저녁을 주문 하였다. 그것을 준비하는 데는 30분이 걸린다. 두 하녀가 저녁을 차리는 것 같아서, 사람들은 방을 보러 갔다. 방들은 모두 복도 안쪽에 있었는데, 복도는 뜻을 알 만한 번호가 표시된 유리문 에서 끝나고 있었다. 마침내 식탁에 앉으려는데, 여인숙의 주인이 나타났다. 줄곧 씩 씩거리 고 쉰목소리를 냈으며, 목구멍 속에서는 가래 끓는 소리가 났다. 그의 아버지는 그에 게 폴랑 비라는 성을 물려주었다. 그가 물었다. "에리자베트 루세양이 누구시죠." 불 드 쉬프 가 흠칫 놀라 돌아보았다. "난데요." "아가씨, 프러시아 장교가 아가씨께 직접 할 이야기가 있답니 다." "나한테요." "메, 당신이 엘리자베트 루세양이라면 말이에요." 그녀는 당황하여 잠시 생 각해 보더니, 당당하게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난 가지 않겠어요." 그녀 주위에서 술 렁거렸 다. 저마다 이 명령의 이유를 찾으려고 하면서 의견을 나누었다. 백작이 다가왔다." 그건 옳 지 않아요, 부인. 당신의 거절은 당신에게뿐만 아니라 동행인 우리 모두에게조차 중대 한 지 장을 가져올 수도 있으니까요. 강한 자들에게 저항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확실히 이 거동은 다른 위험은 없어 보입니다. 아마 수속에 잊어버렸던 것이 있었겠지요." 사람들은 모 두 그와 합세를 해서 그녀에게 부탁을 하고 재촉하며 설교를 해서 마침내 그녀를 설득시키고야 말았 다. 모두들 순간적 감정으로 해서 생길지도 모르는 말썽을 몹시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마침 내 그녀가 말했다. "여러분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 거예요, 정말이에요."백작 부인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우리는 당신에게 감사하고 있어요." 그녀가 나갔다. 사람들은 함께 식 사를 들 기 위해 그녀를 기다렸다. 저마다 이 과격하고 성미 급한 창녀 대신에 불려가지 않은 것을 속상해하면서, 자기 차례가 와서 불려갈 경우에 대비하여 마음속으로 진부한 말들을 준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십 분쯤 지나자, 그녀가 몹시 화가 나서 숨이 막혀 얼굴이 뻘개 가지 고 씩씩거리면서 나타났다. 그녀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아, 불한당 같은 놈. 악 당." 모두 들 무슨 일인지 알고 싶어서 열심들이었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백작이 간청을 했기 때문에 그녀는 위엄을 부리며 대답했다. "아니에요, 그건 여러분 들과는 상관없는 일이에요. 이야기할 수 없어요." 그래서 그들은 양배추 냄새가 풍기는 깊숙한 수프 그릇의 주위로 모여 앉았다. 이런 불안 한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녁식사는 즐거웠다. 사과주는 맛이 있었다. 르와조 부부와 수녀들은 절약하느라고 그것을 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포도주를 주문했다. 코르뉴데는 맥주 를 청했다. 그는 병마개를 따서 술에 거품이 일게 하고, 잔을 기울여 그것을 들여다보 고, 빛 깔을 더 잘 감상하기 위해서 컵을 들어 불빛에 비추어 보는 독특한 태도를 지니고 있 었다. 술을 마실 때에는, 그가 좋아하는 술 빛깔을 지닌 커다란 수염이 부드럽게 떠는 것 같았다. 그의 눈은 조금도 맥주 잔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곁눈질을 하고 있었다. 그는 술을 마시기 위해서 태어난 유일한 임무를 다하고 있는 것같아 보였다. 그의 온 생활을 차지하고 있는 두 개의 커다란 정열, 즉 빛깔이 연한 맥주와 혁명 사이의 어떤 친화력과 같은 접근이 마음 속에 자리하고 있는 듯했다. 확실히 그는 혁명을 생각하지 않으면서 다른 것, 즉 맥주 를 음 미할 순 없을 것이다. 폴랑비 부부는 식탁 맨 끝에서 저녁을 들고 있었다. 고장난 기관차처럼 헐떡거리는 남자 는 식사를 하면서 말을 하기에는 가슴이 너무 당겼다. 그러나 여자는 도무지 입을 다물지 않았다. 그녀는 프러시아군이 도착해서의 모든 인상, 그들이 한 짓, 그들이 한 말들 을 이야 기하며, 그들을 몹시 증오하였다. 첫째로는 그들 때문에 돈이 들었고, 그 다음으로는 군대에 두 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상류 사회의 부인과 이야기하는 것이 즐거워서 특 히 백 작 부인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고는 목소리를 낮추어 미묘한 이야기를 하였다. 남편은 이따 금 "입 다물고 있는 것이 좋을걸, 폴랑비 부인"하고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그녀는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하였다. "그래요, 부인. 그 자들은 감자와 돼지고기밖에 먹으려 들지 않아요. 그리고 또 돼지고기와 감자를 먹지요. 그들이 깨끗하리라고 생각지 마세 요. 천 만에요. 이런 말씀드리기는 송구스럽지만, 그 자들은 아무 데서나 볼일을 본다니까요. 몇 시 간이고 며칠 동안이고 그들이 훈련받는 것을 본다면, 저쪽의 들판에 모두 있는데요.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이리 돌고 저리 돌고. 땅이나 경작하고 자기네 나라에 가서 도로공 사라도 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정말이지 부인, 그 군대라는 것은 아무에게도 이로울 것이 없 다니까 요. 가난한 사람들이 학살하는 일이나 배우는 그런 군대를 먹여 살려야만 한다니. 저 는 사 실 배우지 못한 할망구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제자리걸음을 하여 심신이 녹초가 되 는 그 자들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답니다. "유익한 일을 위해서 많은 발명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해로운 일을 위해서 저렇게 많은 고생을 하는 사람들도 있구나." 정말이지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그것이 프러시아인이건, 영국인이건, 폴란드인이건, 프랑스인이건 간 에 가증 스러운 짓이 아닐까요. 자기에게 잘못을 저지른 자에게 복수를 하면 유죄를 선고받 으니까 악이 되고, 사냥하듯이 총으로 우리 아이들을 몰살하면 제일 많이 죽인 자에게 훈장을 주니 까 선이 되나요. 정말이지 난 그걸 결코 이해할 수가 없다니까요." 코르뉴데가 목소 리를 높 였다. "전쟁이란 평화로운 이웃을 공격할 때에는 만행이지만, 조국을 수호할 때는 성 스러운 의무가 되는 것입니다." 노파는 고개를 떨구었다. "그래요, 자신을 방어할 때에는 별 문제지 요. 그러나 자기들의 즐거움을 위해서 그런 짓을 하는 왕등은 차라리 모두 죽이는 것 이 어 떨까요." 코르뉴데의 눈이 충혈되었다. "여성 동지 만세" 하고 그가 말했다. 카레 라 마동은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는 이름 높은 장군들을 열렬히 지지하지만, 이 촌부의 양식이 이런 것을 생각하게 하였다. 무위도식하는 따라서 파산을 초래하는 그 많은 일손들을, 비생 산적으로 양성하고 있는 그 많은 힘들을, 완성하는 데 몇백 년이 걸릴 대대적인 산업 활동 에 사용한다면 국가에 얼마나 큰 복리를 가져오게 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르와 조는 자기 자리를 떠나 여인숙 주인과 낮은 소리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뚱뚱한 주인은 웃다 가 기침을 하며 가래를 뱉었다. 그의 거창한 배는 곁에 있는 사람의 즐거운 농담으로 불룩 거렸다. 그는 프러시아군이 철수했을 때 몸에 쓸 것으로 보르도산 포도주 여섯 통을 그에게 서 샀다. 모두들 피곤했기 때문에 저녁을 마치자마자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르와조 는 여 러 가지를 관찰해 온 터라 아내를 잠자리에 들게 하고 나서는 열쇠 구멍에다 눈을 갖 다대었 다, 귀를 갖다대었다 하면서, 그가 "복도의 비밀"이라고 이름을 붙인 그것을 알아내 려고 애 썼다. 약 한 시간쯤 되자, 가볍게 스치는 소리가 들려서 그는 얼른 내다보았다. 흰 레 이스로 가장자리를 두른 파란 화장복을 입어 더욱 뚱뚱해 보이는 불 드 쉬프가 보였다. 그녀 는 손 으로 촛대를 들고 복도 맨 끝에 번호가 있는 쪽으로 가고 있었다. 그러자 곁에 있는 문이 반쯤 열리고, 그녀가 몇 분 있다가 다시 돌아올 때에는 멜빵을 한 코르뉴데가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들은 나지막한 소리로 말을 하다가는 걸음을 멈추었다. 불 드 쉬프는 자기 방의 입구를 힘껏 막고 있는 것 같았다. 르와조는 불행하게도 말은 듣지 못했으나, 마지막 에 그들 이 언성을 높였기 때문에 몇 마디 주워들을 수 있었다. 코르뉴데가 조급하게 고집을 부렸다. 그가 이렇게 말했다. "이봐, 당신 바보로군. 그것이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 오." 그녀 는 분개한 듯이 대답했다. "안 돼요. 그런 짓을 할 수 없는 때라는 것이 있어요. 게 다가 여 기에서는 수치스러운 일이 될 거예요." 그는 아마 조금도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 같았 다. 그 래서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그녀가 화를 내면서 다시 어조를 높였다. "왜라니요. 이 류를 모 르세요. 어쩌면 프러시아군이 이 집에, 옆방에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는 잠자코 있었다. 적이 가까이 있는 데에서는 절대로 애무를 받지 않겠다는 이 애국심 강한 창녀의 감상 이 꺼 져가는 그의 위엄성을 마음속에 일깨웠던지, 그는 단지 포옹만 하고서는 살금살금 자 기 방 으로 돌아갔다. 매우 흥분이 된 르와조는 열쇠 구멍에서 떨어져 자기 방에서 껑충껑충 뛰었다. 그 러고는 마드라스산 직물을 걸치고, 아내의 딱딱한 몸뚱이가 누워있는 시트를 들췄다. 그는 "여보, 나를 사랑하오."하고 속삭이면서 키스를 하여 그녀를 깨웠다. 온 집안이 조용해졌다. 그런데 곧 어디선가, 지하실인지 곳간인지 확실히 알 수 없 는 방향 에서 세차고 단조롭게, 규칙적으로 코고는 소리가 들려왔는데, 그것은 압력으로 보일 러가 진 동하는 듯한 둔하고 오래 끄는 소리였다. 폴랑비씨가 자고 있는 것이었다. 이튿날 여덟 시에 출발하기로 결정이 되었기 때문에 모두들 식당에 모였다. 그러나 마차 는 비막이 덮개에 온통 눈을 뒤집어쓴 채 말도 마부도 없이 마당 한가운데에 덩그렇게 놓여 있었다. 외양간으로, 사료 창고로, 마찻간으로 마부를 찾아보았으나 허사였다. 그래서 남자들 은 모두 그 마을을 돌아다녀 보기로 결정을 하고 밖으로 나갔다. 그들은 광장에 이르 렀는데, 그 광장 안쪽으로는 교회가 있었고 양편으로는 프러시아 병정들이 보이는 낮은 집들이 있었 다. 맨 처음에 눈에 뛴 병정은 감자 껍질을 벗기고 있었다. 좀더 멀찍이 있는 두 번째 병정 은 이발관을 닦고 있었다. 눈까지 수염이 덥수룩한 또 다른 병정은 우는 아기를 아마 무릎 위에다 놓고 흔들면서 달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남편들이 "전투인 부대"에 가 있는 뚱뚱 한 촌부들은 고분고분한 정복자들에게 손짓 발짓으로 해야 할 일을 지시하고 있었다. 즉 장 작을 팬다든지, 빵을 수프에 적신다든지, 커피를 빻는 일이었다. 그 중의 어떤 사람 은 손발 을 전혀 못 쓰는 주인 노파의 속옷까지 빨아주는 사람도 있었다. 백작은 놀라서 주교관에서 나오는 교회지기에게 물었다. 그 노인은 이렇게 대답 하였다. "아, 저 사람들은 고약한 사람들이 아니예요. 프러시아 사람들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어디인 지는 잘 모르겠지만 더 먼 곳에서 온 사람들이래요. 그들은 모두 고향에 처자식을 남 겨놓고 왔다는군요. 그러니 전쟁이 즐거울 리가 없지요. 틀림없이 그쪽에서도 남자들을 보내 놓고 나 서 울고 있을 거예요. 우리에게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그들에게도 전쟁은 커다란 근심 을 주 었을 거예요. 여기는 지금으로서는 아직 그렇게 불행하지는 않아요. 그들이 나쁘게 굴지도 않고 또 자기네 집에 있는 것처럼 일도 해주니까요. 불쌍한 사람들끼리는 서로 도와 야지요. 전쟁을 하는 것은 높은 사람들이니까요." 정복자와 피정복자 사이에 이루어진 화친 협상에 분개한 코르뉴데는 여인숙에 처박혀 있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고 돌아가 버렸다. 르와조가 우스갯소리를 한마디 했다. "그들 은 다시 식민을 하고 있군." 카레 라마동씨가 신중하게 말했다. "그들은 속죄를 하고 있는 거 지요." 그러나 마부는 찾아내지 못하였다. 마침내 사람들은 마을의 술집에서 장교의 당번병과 다정 하게 식탁에 앉아 있는 그를 찾아내었다. 백작이 따지듯이 물었다. "여덟 시에 말을 매라는 지시를 하지 않았는가." "그랬습지요. 그러나 그 후에 다른 지시를 받았거든요." "어 떤 지시 인가." "절대로 마차에 말을 매지 말라구요." "누가 그 지시를 내렸는가." "틀림없이, 프러시 아 사령관이지요." "어째서지." "전 아무것도 모릅니다. 가서 물어보세요. 제게 말을 매지 말 라고 해서 매지 않은 것뿐이에요." "그 사람 자신이 단신에게 그걸 말했는가." "아닙 니다요. 여인숙 주인이 그의 지시라고 제게 전해 주었지요." "그게 언젠가." "어젯저녁에, 제 가 자리 에 들려고 할 때였지요." 세 남자는 몹시 불안하여 돌아왔다. 장교를 만나려고 했는 데, 그 여인숙에 묵고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어서. 민간인의 일에 대 해서는 폴랑비씨만이 그에게 말을 할 수 있도록 허용되어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다렸다. 여자 들은 자기들 방으로 다시 올라가서는 시시한 일들로 시간을 보냈다. 코르뉴데는 커다란 불꽃이 타오르고 있는 부엌의 높다란 벽난로 아래에 자리를 잡고 있었 다. 그는 그곳으로 작은 탁자와 맥주병을 가져오게 하고 파이프를 꺼냈다. 민주주의자 들 사 이에서는 그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만큼이나 그 파이프에도 경의를 표했는데, 그것은 마치 파이프가 코르뉴데에게 소용이 됨으로써 조국에 봉사하기라도 하는 것과 같았다. 그것 은 근 사하게 손때가 묻은 훌륭한 해포석 파이프로서 주인의 치아처럼 새카맣지만 , 향기가 나고, 구부러지고, 빛이 나고, 그의 손에서 길이 들어서 그의 용모를 보충해 주고 있었다. 그는 꼼 짝도 않고 어떤 때에는 벽난로의 불꽃에, 또 어떤 때에는 맥주 컵 위의 거품에 눈을 고정시 키고 있었다. 술을 마실 때마다 그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기름 바른 긴 머리털로 그 의 길 고 마른 손가락들을 가져갔고, 그러는 동안 가장자리에 거품이 묻어 있는 콧수염을 빨아들 이는 것이었다. 르와조는 저린 다리를 푼다는 구실 아래, 그 마을의 주류 소매상인들에게 포도주를 팔 러 갔 다. 백작과 공장 주인은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프랑스의 미래를 예측 하고 있었다. 산 사람은 오를레앙당의 존재를 믿고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미지의 구원자, 모든 것이 절망에 처했을 때 나타나는 영웅을 믿고 있었다. 어쩌면 뒤 게클랭이나 잔 다르 크 같은사람이 아닐까. 아니면 다른 또 하나의 나폴레옹 1세 같은 사람일까. 아아. 황 태자가 그렇게 어리지만 않다면. 코르뉴데는 그런 말을 들으면서 운명의 말을 알고 있는 사 람같이 미소를 지었다. 그의 파이프는 부엌을 향기롭게 하였다. 열 시를 치자, 폴랑비씨가 나타났다. 곧 그에게 질문을 퍼부었다. 그러나 그는 두 번 세 번, 똑같은 말만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다. "장교가 내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폴랑비 씨, 내일 이 여행자들의 마차에 말을 매지 못하도록 하시오. 그들은 내 명령이 없이는 떠나지 못하오. 알았소."라고요. 그뿐이에요." 그래서 그들은 장교를 면회하려고 했다. 백작이 그에 게 자기 명함을 보냈는데, 그 명함에다 카레 라마동씨는 자기의 이름과 모든 직함을 추가하였 다. 프 러시아 장교는 그가 점심을 마치고 나서, 즉 한 시경에 이 두 사람의 면담을 허락한다 는 회 답을 보냈다. 부인들이 다시 나타나서, 불안스럽기는 했지만 조금씩 식사를 하였다. 불 드 쉬프는 병이 난 듯했고 몹시 당황해하는 것 같았다. 커피를 마시고 났을 때 당번병이 그 신사들을 부르러 왔다. 르와조는 이 두 사람과 합류 하였다. 그들의 거동에 한층 장중함을 나타내기 위해서 코르뉴데를 데리고 가려고 애 썼으나, 그는 독일인들과 어떠한 관계도 갖고 싶지 않다고 거만하게 말했다. 그러고는 맥주를 한 병 더 주문하고는 벽난로 곁의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세 사람은 2층으로 올라가 여인숙에서 가장 좋은 방으로 안내되었다. 안락의자에 누 워 벽 날로 위에다 발을 올려놓고, 긴 사기 파이프로 담배를 피우던 장교가 그들을 맞이하였 다. 그 는 화려한 실내복으로 몸을 감싸고 있었는데, 그것은 아마 저속한 취미를 가진 어떤 부르주 아의 빈 집에서 훔친 것이 틀림없었다. 그는 일어서지도 않았고, 그들에게 인사를 하 지도 않 았으며,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는 승리한 군인에게서 으레 볼 수 있는 비열한 짓의 역력한 일면을 보이고 있는 것이었다. 한참만에 그가 드디어 말했다. "무슨 일이오" 백작이 말했다. "우리는 출발하고 싶습니다." "안돼요." "거절하는 이유를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내 가 허락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오." "총사령관께서 디에프에 도착할 수 있는 출발 허가증을 우리에 게 교부해 주셨다는 것을 신중하게 유의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가혹 한 조 치를 받을 만한 일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그러고 싶지 않은 거 요. 그뿐 이오. 내려들 가시오." 세 사람은 모두 몸을 굽혀 인사하고 물러 나왔다. 비참한 오후였다. 독일인의 변덕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주 이상한 생각들 이 머 리를 어지럽혔다. 사람들이 모두 부엌에 모여 있음직하지 않은 일들을 상상하면서 끝없이 의견을 교환하였다. 어쩌면 인질로 잡아두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슨 목적으 로. 혹 은 포로로 데려가려는 것일까. 오히려 막대한 몸값을 요구하려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자, 공포가 그들을 미칠 지경으로 만들었다. 가장 돈이 많은 사람이 가장 무서워 하였다. 그들의 목숨을 다시 사기 위해서 이 무례한 군인의 두 손에 금화가 가득 든 자루를 쏟아부 어야 하는 자신의 강요당한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을 숨기고 가 장 가 난한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 둘러댈 그럴 듯한 거짓말을 찾아내려고 머리를 짜냈다. 르와 조는 시곗줄을 벗겨 주머니 속에 감추었다. 밤이 되자 두려움은 더해 갔다. 램프가 켜졌다. 저녁식사를 하기까지는 아직 두 시간이 남아 있어서, 르와조 부인은 트럼프의 31점 게임을 하자고 제의하였다. 기분 전환이 될 것 같아서 모두 찬성했다. 코르뉴데까지도 예의상 파이 프를 끄고 거기에 끼여들었다. 백작이 카드를 쳐서 돌렸다. 불 드 쉬프가 단번에 31점 을 만 들었다. 곧 게임에 대한 흥미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던 두려움을 가라앉혀 주었다. 그 러나 코 르뉴데는 르와조 부부가 속임수를 쓰기 위해 한패가 되어 있음을 알아차렸다. 식탁에 앉으려고 하는데 폴랑비씨가 다시 나타났다. 그가 쉰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 다. "프 러시아 장교가 엘리자베트 루세양이 아직도 생각을 바꾸지 않았느냐고 물어보라고 하는데 요." 불 드 쉬프는 핏기가 싹 가신 채 서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얼굴이 새빨개지 면서 너 무도 화가 나서 숨이 막혀 말을 하지 못했다. 마침내 그녀가 말문을 터뜨렸다. "그 비열한 인간에게, 그 더러운 인간에게, 그 프러시아 놈팡이에게 말하세요. 절대로 나는 받아 주지 않 을 거라구요. 잘 들으세요. 절대로, 절대로 나는 받아들이지 않겠다구요." 뚱뚱한 여 인숙 주 인이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불 드 쉬프는 긴밤에 그녀가 방문했을 때 무슨 일이 있었는 지 그 비밀을 알아내려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질문을 받고 독촉을 받았다. 처음에 는 말 을 듣지 않았으나 곧 분노가 그녀를 흥분시켜 놓았다. "그 작자가 무얼 원했느냐구요. 그 놈 이 무엇을 바라느냐구요. 나와 함께 자고 싶다는 거예요."하고 그녀가 소리 질렀다. 아무도 그 말이 거슬리지 않았다. 그만큼 분노가 컸던 것이다. 코르뉴데는 식탁 위에 난폭하 게 맥 주 컵을 내려놓다가 그것을 깨뜨렸다. 이 비열하고 난폭한 군인에 대한 비난의 아우성 이, 분 노의 숨결이, 그녀에게 강요된 희생의 일부분을 저마다 강요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저항을 위해 모두들 단합했다. 백작은 그 자들이 옛날의 야만인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행동 한다고 불쾌하게 말했다. 특히 부인들은 불 드 쉬프에게 격렬하고도 다정한 동정을 표시했 다. 식사 때 밖에 나타나지 않는 수녀들은 머리를 숙이고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의 분노가 가라앉자 저녁 식사를 하였다. 그러나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고 모두 생각 에 잠 겨 있었다. 부인들은 일찌감치 물러갔다. 남자들은 모두 담배를 태우면서 트럼프 판을 편성하고 거기 에 폴랑비씨를 초대했다. 그에게 장교의 반대를 꺾을 수 있는 방법을 교묘하게 물어 볼 생 각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카드만 생각할 뿐 아무 말도 듣지 않고, 아무 대답도 하 지 않았 다. 그는 "게임이나 합시다, 여러분. 게임이나."하는 말만 줄곧 되풀이하였다. 그는 놀음에 너무 긴장되어 있어서 침뱉는 것도 잊고 있었다. 그래서 가슴속에서는 가르릉거리는 오르간 소리가 났다. 씨익씨익하는 소리가 나는 그의 폐는 낮고 깊은 음표에서부터 울려고 애쓰는 어린 수탉의 날카롭고 목쉰 소리에까지 모든 음계를 다 내는 것이었다. 잠이 와서 쓰러질 것 같은 부인이 그를 부르러 왔을 때도 위층으로 올라가는 것을 거절할 정도였다. 그러자 그녀는 혼자 갔다. 왜냐하면 그녀는 언제나 태양과 더불어 일어나는 "아침형"인 반면 에 남 편은 친구들과 함께 언제나 밤을 지새울 용의가 있는 "저녁형"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내 에게 "에그밀크나 불 앞에 놓아두구려"하고 소리 지르고는 다시 게임을 시작하였다. 그에게 서 아무것도 끌어낼 수 없다는 것을 알자, 사람들은 잘 시간이라고 말하고 각자 자기 잠자 리로 돌아갔다. 이튿날 또 막연한 희망과 더욱 커지는 떠나고 싶은 욕망과 이 끔찍스러운 여인숙에서 보내 야 할 그날의 두려움을 안고 일찌감치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아. 말들은 여전히 마구 간에 있 었고, 마부는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하릴없이 마차 주위를 맴돌았다. 아침식사는 아주 침 울했다. 불 드 쉬프에 대해서는 어떤 냉담함 같은 것이 생겨나고 있었다. 하룻밤 자고 나면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지만, 그들의 판단이 약간 변경되었기 때문이다. 잠이 깨었을 때, 자기 일행들에게 어떤 놀랍도록 좋은 일을 마련해 주기 위해 그 프러시아인을 남몰래 찾 아가지 않은 이 창녀에 대해서 지금은 원망하고 있었다. 그보다 더 간단한 일이 어디 있겠는 가. 게 다가 그걸 누가 알겠는가. 그녀는 일행의 난처한 입장을 딱하게 여겨 왔노라는 것을 장교에 게 말함으로써 체면을 차릴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녀로서는 그런 일이 그다지 중요한 일도 아니지 않는가. 그러나 아직은 아무도 그런 생각을 말하지 않았다. 오후에는 지루해 못 견뎌 했기 때문에 백작이 마을 근처를 산책하자고 제의했다. 저마다 정성들여 몸을 감싸고, 불 곁 에 있는 것이 낫겠다고 하는 코르뉴데와 교회나 사제관에서 하루를 보내는 수녀들을 제외하 고, 몇 안 되는 일행은 떠났다. 날로 심해 가는 추위는 사정없이 코와 귀를 찔렀다. 발은 너 무도 아파서 한 걸음 한 걸음이 고통이었다. 끝없이 하얀 눈에 덮인 들판이 나타나자 너무 도 무시무시하고 음산하게 보여서, 사람들은 모두 얼어붙은 마음과 죄어드는 가슴으 로 곧 돌아섰다. 네 여자는 앞에서 걸어갔고, 세 남자는 좀 뒤에서 따라갔다. 상황을 이해하고 있는 르와조 가 갑자기, 저 "매춘부"가 언제까지 우리를 이런 장소에 남아 있게 할 셈인가 하고 물었다. 여전히 정중한 백작이, 한 여자에게 그렇게 괴로운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니, 그녀 자신이 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카레 라마동씨는, 만일 프랑스군이 문제가 되 고 있는 것처럼 디에프를 거쳐 공격적인 복귀를 하고 있다면, 조우전은 토트에서 벌어질 수밖 에 없 다는 것을 주지시켰다. 이 심사숙고한 말이 다른 두 사람을 걱정스럽게 만들었다. " 걸어서 달아나는 것이 어떨까요."하고 르와조가 말했다. 백작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 눈 속 에 여자 들을 데리고,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소. 그리고 우리는 곧 추격을 당해 십 분도 못 되 어 다시 잡힐 겁니다. 그리고 병정들의 처분대로 포로가 되어 다시 돌아올 겁니다." 그건 사 실이었 다. 모두들 입을 다물었다. 부인들이 몸치장에 관한 이야기를 했으나, 어쩐지 거북해 서 어우 러지지 않는 것 같았다. 갑자기 길 끄트머리에 장교가 나타났다. 지평선의 끝을 이루는 눈 위에 군복을 입 은, 키가 크고 잘룩한 허리의 옆모습이 나타났다. 그는 무릎을 벌리고, 정성스럽게 칠을 한 장 화를 더 럽히지 않으려고 애쓰는 군인들의 그 독특한 동작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는 부인들 의 곁 을 지나면서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러나 모자를 벗지 않았을 뿐더러 위엄을 지니고 있는 남자들을 멸시하듯 쳐다보았다. 르와조는 모자를 벗는 시늉을 해보이기는 했지만. 불 드 쉬 프는 귀까지 빨개졌다. 결혼한 세 여자는 그 군인이 그렇게도 무례하게 취급했던 이 창녀와 함께 있는 것을 그에게 보이게 된 데 커다란 모욕감을 느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에 대해 서, 그의 모습, 얼굴에 대해서 이야기하였다. 장교들을 많이 알고 있고, 전문적인 안목으로 그들을 판단하는 카레 라마동 부인은 그 장교를 그다지 나쁘게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가 프랑스인이 아니라는 것을 애석해하기까지 하였다. 그는 모든 여자들이 확실히 매우 좋아할 만한 강하고 멋진 경기병일 수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일단 돌아오니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대수롭지 않은 일에도 귀에 거슬리는 말들이 오고가기까지 하였다. 저녁 식사는 말없이 이내 끝났다. 저마다 잠자리에 들려고 올라갔고, 시간을 죽이기 위해 잠이 들 기를 바랐다. 이튿날은 피곤한 얼굴로, 짜증스러운 마음으로 내려왔다. 여자들은 불 드 쉬프 에게는 거의 말도 하지 않았다. 종이 울렸다. 영세를 위한 것이었다. 뚱뚱한 창녀에게는 이부토의 농부 네 집에서 기르고 있는 어린아이가 하나 있었다. 그녀는 그 애를 일 년에 한 번도 만나지 않았고, 생각 해 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 영세를 받으려고 하는 아이에 대한 생각이, 자기 아이에 대 한 갑 작스럽고도 격렬한 애정이 마음속에 솟구쳤다. 그녀는 꼭 이 의식에 참석하고 싶었다. 그녀 가 떠나자마자 사람들은 모두 서로 쳐다보고 의자를 가까이 끌어당겼다. 마침내 어떤 결정 을 내여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르와조가 기발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즉 불 드 쉬 프만을 남겨놓고 다른 사람은 떠나게 해달라고 장교에게 제안해 보자는 의견이었다. 폴랑비 씨가 다시 심부름을 맡았으나 그는 곧 내려왔다. 인간의 본성을 잘 알고 있는 그 독 일인이 그를 내쫓아버렸던 것이다. 그는 자기 욕망이 만족되지 않는 한 사람들을 모두 붙잡 아두겠 노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러자 르와조 부인의 그 상스러운 기질이 터져버렸다. "그 렇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늙어 죽을 수는 없어요. 그 매춘부에게는 모든 남자들과 그 짓을 하 는 게 직업이니까, 이 사람은 좋고 저 사람은 거절할 권리가 없다고 생각해요. 루앙에서는 만나는 사람은 모두, 마부까지도 받아들였다는 거예요. 정말 놀랄 일이지 뭐예요. 네, 부인 군청의 마부 말이에요. 그 자를 잘 알지요. 우리집에서 술을 샀거든요. 지금은 우리가 곤경 을 벗어 나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데 얌전을 빼고 있으니, 그 풋내기가 밀이에요. 나는 그 장교 가 예 의를 잘 지켰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은 오래 전부터 여자를 가까이하지 못했을 거예 요. 그는 아마 여기 있는 우리 세 사람이 더 마음에 들었을는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안녜요, 그 는 모 든 사람에게 몸을 맡기는 여자로 만족하게 생각한 거예요. 그는 유부녀를 존중하는 사람입 니다. 생각해 보세요. 그는 지배자예요. "내가 원한다."고 말하면 그만인 거예요. 그 리고 자 기 병정들과 함께 강제로 우리를 겁탈할 수도 있는 거라구요." 두 여자가 흠칫 몸을 떨었 다. 예쁜 카레 마라동 부인의 눈에서 번쩍 빛이 났다. 이미 자기가 장교에 의해 강제 로 겁탈 을 당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얼굴이 약간 창백해졌다. 따로 의견을 교환하던 남자들 이 다 가왔다. 미친 듯이 성이 난 르와조는 "그 하찮은 여자"를 손발을 묶어 적에게 넘겨 주자고 했다. 그러나 삼대에 걸쳐서 대사직을 지낸 가문 출신인데다가, 외교관의 기질을 타 고난 백 작은 수완 좋은 사람이었다. "그 여자로 하여금 결심하도록 해야지요" 하고 그가 말했 다. 그래서 사람들은 음모를 꾸몄다. 여자들은 서로 다가서서 목소리를 낮추었다. 의론 이 전체 적으로 되어서, 저마다 자기 의견을 말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매우 예의바른 것 이었다. 특히 부인들은 가장 외설스러운 것을 말하는 데 있어서는 세련된 어법과 매혹적이고도 미묘 한 표현을 찾아내었다. 제삼자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말에 신중함을 기하고 있었 다. 그러나 사교계의 모든 부인들이 가리고 있는 정숙이라는 얇은 베일은 표면만을 덮 고 있 기 때문에, 그녀들은 이런 외설스러운 뜻밖의 일에 활짝 웃음을 짓고, 천성에도 맞아 사실은 너무도 즐거워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의 저녁밥을 준비하고 있는, 식도락을 즐기는 요 리사의 관능으로 그들은 사랑을 주물럭거리고 있었다. 즐거움은 고조되어 갔다. 그만큼 마지 막에 가 서는 이야기가 재미있게 여겨졌다. 백작이 좀 대담한 농담을 했지만 너무나도 이야기 를 잘 해서 여자들은 미소를 지었다. 르와조는 자기 차례가 되자, 더욱 믿기지 않는 음탕한 말을 했으나 아무도 기분을 상하지 않았다. 그의 아내가, "그 창녀에게는 그게 직업인데, 어떻게 이 사람은 좋고 저 사람은 거절할 수 있단 말이에요."하고 노골적으로 표현했던 그 생각이 모두 머리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름다운 카레 라마동 부인은 자기 같으면 다 른 사 람보다 그 장교를 선택하겠다는 생각까지 하는 것 같았다. 요새를 포위하듯이 모두들 오랫 동안 포위 태세를 준비했다. 각자가 맡아야 할 역할, 뒷받침해야 할 논법, 실행해야 할 술책 등을 결정지었다. 그 살아 있는 성채가 적을 자기 품안에 받아들이도록 강습하기 위해 서 공 격의 계획과 사용해야 할 계략을 결정하였다. 그러나 코르뉴데는 따로 떨어져서 이 일에는 완전히 관심이 없었다. 너무 골똘히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불 드 쉬프가 들어오는 소리도 듣지 못하였다. 그러나 백작이 낮은 소리로 "쉿"하자, 모두 눈을 들었다. 그녀가 거기에 와 있었다. 갑자기 입들을 다물 었다. 그 리고 처음에는 왠지 당황해서 그녀에게 말을 걸 수가 없었다. 사교계의 표리 있는 성격에 다른 사람들보다 능숙하게 길들여져 있는 백작 부인이 "세례식은 재미있었나요."하고 그녀 에게 물었다. 아직도 감동이 가시지 않은 뚱뚱한 창녀는 사람들의 얼굴이나 태도 그리 고 성 당의 모습까지도 전부 이야기하였다. 그녀는 이렇게 덧붙였다. "가끔 기도를 드린다 는 것은 좋은 일이지요." 그러나 점심때까지, 부인들은 자기들의 충고에 대하여 그녀의 신뢰 와 순종 을 증대시키기 위해서, 상냥하게 대하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식탁에 앉자마자 공략이 시작되 었다. 처음에는 자기 희생에 관한 막연한 대화가 있었다. 옛날의 실례들을 인용하였 다. 주디 트와 오로페르니, 다음에는 아무 이유 없이 루크레스와 섹스튀스 그리고 적장들을 모조리 자기 침실로 끌어들여 노에처럼 복종하도록 했던 클레오파트라를 인용하였다. 그러고 는 이 무식한 백만장자들의 상상에서 피어난 제멋대로의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로마의 여자 시민 들이 카푸에 가서 한니발과 그의 부관들 그리고 외국인 용병의 집단들을 품안에서 잠들게 했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정복자들을 저지시켜, 자신들이 몸으로 싸움터를 삼아 지배 하는 수 단으로, 무기로 삼은 여인들, 흉악하거나 가증스러운 인간들을 영웅적인 애무로 굴복 시키고, 복수와 헌신에 자기네의 순결을 희생시킨 여자들을 모두 인용하였다. 무서운 전염병을 보나파르트에게 옮기기 위해 일부러 그 병균을 접종하게 했으나 보나파 르트는 이 운명적인 밀회의 시간에 갑자기 무력해져서 기적적으로 생명을 구했다는, 그 명 문 출신의 영국 여자에 대한 이야기까지 애매한 표현으로 말했다. 이런 모든 것이 예 의 바 르고 절제 있는 태도로 이야기되었으나, 가끔 경쟁심을 자극하는 데 적합한 고의적인 찬탄 이 터져나오기도 하였다. 마침내 이 세상에서 여자가 해야 할 유일한 역할은 끝없는 자기 희생이고, 오합지졸의 일시적인 사랑에 계속 자기의 육체를 내맡기는 것이라는 생각 이 들 정도가 되었다. 두 수녀는 깊은 생각에 잠겨 조금도 듣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불 드 쉬프 는 아무 말이 없었다. 오후 내내 그녀가 생각하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부인"이라고 부르는 대신에 간단히 "아가씨"라고 말했다. 아무도 그 이유를 분명하 게 알지는 못했으나, 마치 그녀가 올라갔던 존경의 자리에서 한 단계 내려가도록 해 서, 그녀 에게 수치스러운 자기 위치를 느끼게 해주고 싶었던 것 같았다. 수프가 나왔을 때 폴랑비씨가 다시 나타나 전날에 했던 말을 되풀이하였다 "프러시 아 장 교가 엘리자버트 루세양에게 아직도 생각을 바꾸지 않았느냐고 물어보라고 하더군 요." 불 드 쉬프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래요, 바꾸지 않았어요." 그러나 저녁식사때에 는 공동 모의가 약해졌다. 르와조는 어색한 말을 서너 마디 했다. 저마다 새로운 예를 찾아내 려고 했 으나 헛수고였다. 그때 백작 부인이 미리 생각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종교에 경의를 표하고 싶은 막연한 욕구를 느끼고 나이 많은 수녀에게 성인들의 생애에서 위대한 업적에 관 한 것 을 물었다. 그런데 많은 성인들은 우리 눈에는 죄악으로 여겨지는 행동들을 범했었다. 그러 나 그것들이 신의 영광을 위해서나 이웃 사람의 이익을 위해서 실행되었을 때에는, 교회는 그 대죄들을 쉽사리 용서했던 것이다. 그것은 유력한 논법이었다. 백작 부인은 그것을 이용 하였다. 그러자 성직자의 옷을 입은 사람이면 누구나 갖고 있는 그 뛰어난 무언의 이 해에서 였는지, 분명치 않은 친절에서였는지 또는 단순히 행복한 무지의 소치거나 기꺼이 돕 는 어 리석음의 결과였는지, 그 늙은 수녀는 이 음모에 놀랄 만한 뒷받침을 가져다 주었다. 그녀를 소심한 사람으로 생각했는데, 그녀는 대담하고 수다스럽고 과격한 자신의 모습을 나 타냈다. 그녀의 주의는 철석 같았고 신앙은 결코 주저하는 법이 없었으며, 그녀의 양심에는 조금도 의구심이 없었다. 그녀는 아브라함의 희생을 아주 간단한 일로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자신은 높은 데서 내린 명령이라면 당장에 부모를 죽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의견 으로는 의도가 칭찬할 만한 것이라면 어떠한 일도 주님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없다는 것이 었다. 백작 부인은 생각지 않은 이 공범자의 신성한 권유를 이용하여, "목적은 수단을 정 당화한 다."는 설명으로 말하게끔 하였다. 부인이 물었다. "그렇다면 수녀님, 동기가 순수하다면 하느님은 모든 수단을 받아들 이시고 또한 행위를 용서하신다고 생각하시나요." "누가 그것을 의심할 수 있겠어요, 부인. 그 자체 로서는 비난받을 만한 행위라도 그것을 하게끔 한 생각에 따라서는 흔히 찬양할 만한 일이 되지요." 그녀들은 그렇게 교묘하고 신중하게 덮여 감추어졌다. 그러나 두건을 슨 성 녀의 한 마디 한마디는 창녀의 화가 치미는 저항에 구멍을 뚫어놓았다. 그러고 나서는 이야기 가 약 간 벗어나서, 묵주를 늘어뜨린 그 여인은 자기 교단의 수녀원에 관해서, 수녀원장에 관해서, 자기 자신에 관해서 그러고 곁에 있는 예쁜 수녀 생 니세포르에 관해서 이야기하였다. 천연 두에 걸린 수백 명의 병사들이 수용되어 있는 병원에서의 간호를 위해 그들은 르 아브 르로 불려가는 것이다. 그녀는 그 비참한 사람들의 모습을 묘사했고, 그들의 병에 대해 자 세히 말 하였다. 그리고 그 프러시아인의 갑작스러운 변덕으로 중도에서 붙들려 있는 동안에도 어쩌 면 자기네들이 구해 낼지도 모르는 수많은 프랑스 병사들이 죽어가고 있는지도 모르지 않는 가. 군인들을 간호하는 것이 그녀가 해야 할 일이었다. 그녀는 크리미아, 이탈리아, 오스트리 아에도 간 일이 있었다. 자기의 활동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그녀는 자신이, 북과 나팔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야영 부대를 좇아다니고, 전투의 소용돌이 속에서 부상당한 사람 들을 그러모으며, 군기를 어긴 키가 크고 난폭한 군인들을 한마디로 대장보다도 더 잘 순화 시키는 그런 수녀 중의 한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 보였다. 수없이 구멍이 패고 쭈글 쭈글한 얼굴을 한 진정한 수녀, 랑탕 플랑의 얼굴은 전쟁의 황폐한 모습과도 같았다 아무도 그녀 다음에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만큼 그 효과는 훌륭했다. 식사가 끝나자마자 사람 들은 서 둘러 침실로 올라갔고, 이튿날 아침 늦게까지 내려오지 않았다. 점심식사는 조용했 다. 사 람들은 그 전날 뿌린 씨앗에 싹이 트고 열매가 맺는 시간을 주고 있었다. 백작은 그 녀에게 허물없고 아버지 같은, 그러나 착살한 남자들이 창녀들에게 사용하는 약간 깔보는 듯 한 어 조로 이야기하면서 그녀를 "아가씨"라고 불렀고, 자기의 높은 사회적 지위와 이론의 여지 가 없는 명망으로 그녀를 다루었다. 그는 곧 문제의 요점으로 파고들었다. "프러시아 군이 실 패하게 되면 뒤따르게 될 모든 폭력 행위에 당신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위험에 처하 게 될 텐데, 그래 당신은, 당신 생활에서 그렇게도 흔히 했던 환심을 사려는 마음으로 승 낙하기 보다 오히려 우리를 여기에 잡아두게 하는 것이 좋단 말이오." 불 드 쉬프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백작은 그녀를 부드러움으로, 추론으로, 이타심으로 구슬렀다. 그는 필 요할 때 에는 모든 친절을 다하고, 아첨을 하여 마침내 상냥해지기도 하지만 "백작 각하"로 남아 있을 줄도 알았다. 그녀가 자기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봉사를 찬양하고, 자기들이 고 마워할 것에 대한 이야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쾌활하고 친근하게 말했다. "그리고 이봐요, 그자는 자기 나라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예쁜 여자를 경험했다고 자랑할지도 모르지 않소." 불 드 쉬프는 대답도 하지 않고 일행을 따라갔다. 돌아오자마자 그녀는 자기 방으로 올라가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불안은 극도에 달했다. 그녀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인가. 만일 그녀가 거역한다면 얼마나 난처해질 것인가. 저녁식사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사람들은 헛되이 그녀를 기다렸다. 그러자 폴 랑비씨 가 들어와서, 루세양은 몸이 불편하니 먼저 식사를 하라고 알렸다. 사람들은 모두 귀 를 곤두 세웠다. 백작이 여인숙 주인에게 다가가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 "됐소." "예" 예의상 백작은 일행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그저 가볍게 머리를 끄덕여 보였다. 곧 안도의 긴 한숨 이 모두의 가슴에서 새어나오고, 얼굴에는 기쁨의 빛이 나타났다. 르와조가 큰소리로 말했 다. "제기랄, 이 집에 샴페인이 있으면 내가 사지."주인이 손에 네 병을 들고 돌아오 는 것을 보고 르와조 부인은 고민이 되었다. 모두들 갑자기 수다스러워지고 떠들썩해졌다. 외 설스러 운 기쁨이 가슴에 가득 찼던 것이다. 백작은 카레 라마동 부인이 매력적이라는 것을 알아본 것 같았고, 공장 주인은 백작 부인에게 찬사를 보냈다. 이야기는 활발하고 명랑했으 며, 독설 로 가득했다. 갑자기 르와조가 근심스러운 얼굴이 되어 두 팔을 치켜올리면서 "조용 히"하고 고함을 질렀다. 모두들 깜짝 놀라, 거의 기가 죽어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르와조는 두 손으 로 "쉿"하는 시늉을 하면서 귀를 곤두세우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다시 귀를 기울 이더니 평상시의 목소리로 돌아와 이렇게 말했다. "안심들 하세요. 만사가 잘되어가고 있습 니다." 얼른 이해가 가지 않는 듯했으나, 곧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십오 분쯤 지나자 그는 똑같은 익살을 다시 시작했다. 저녁내 몇 번이나 그 짓을 되풀이했다. 그는 위층의 누군가에 게 말을 거는 듯한 시늉을 하면서, 외무사원의 기질에서 얻어낸 이중적인 의미의 충고를 하였 다. 이 따금 한숨을 내쉬고 슬픈 표정을 지으면서 "불쌍한 여자 같으니라구."하고 말하는가 하면, 화가 난 표정으로 "거지 같은 프러시아 놈아, 꺼져라."하고 입속으로 중얼거리기도 하였다. 이따금 더 이상 그 생각을 하지 않고 있을 때에,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몇 번이고 "이 제 그 만, 그만하라니까."하고 말했다. 그러고는 자기 자신에게 말하듯이 이렇게 덧붙였다. "그녀를 다시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 비열한 인간이 그녀를 죽이지 않아야 할 텐데." 이 런 농담 들은 역겨운 취미에 속했으나, 그것을 재미있어하였고 아무도 모욕감을 느끼지 않았 다. 왜 냐하면 분개하는 것도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환경에 좌우되는 것이며 또한 그들의 주 위에 서 서서히 조성된 분위기는 외설스러운 생각들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식후에는 여자 들까지도 재치 있고 조심성 있는 암시를 하였다. 바라보는 시선들이 빛이 났다. 많이 마셨던 것이다. 카드를 버리는 게임에서조차 그의 무게 있는 고귀한 태도를 잃지 않는 백작 은 극 지에서 겨울철이 끝나고 남쪽으로 향하는 길이 열리는 것을 보는 난파당한 사람의 기쁨에 관한 훌륭한 비유를 생각해 냈다. 르와조가 손에 샴페인 잔을 들고 일어났다. "우리의 해방을 위해 건배합시다." 모 두들 일 어서서 그에게 갈채를 보냈다. 두 수녀들까지도 부인들의 권유로, 한 번도 맛본 적이 없는 이 거품이 이는 술에 입술을 적셨다. 그녀들은 이것이 레몬 사이다와 비슷하면서도 보 다 고 급스럽다고 말했다. 르와조가 이 상황을 요약해서 말했다. "피아노가 없어서 카드리유 한 곡 을 칠 수 없는 것이 유감이군." 코르뉴데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고, 몸 하나 까닥 하지 않 았다. 그는 매우 심각한 생각에 잠겨 있는 듯이 보이기조차 하였다. 이따금 화가 난 손짓으 로 자기의 긴 수염을 더 길게 늘이려는 듯이 잡아당겼다. 마침내 자정이 가까워져서 사람들 이 헤어지려고 할 때, 비틀거리던 르와조가 갑자기 코르뉴데의 배를 치면서 알아듣기 힘들 만큼 빠르게 말했다. "오늘밤은 웃기시지 않는군요. 왜 아무 말도 없지요, 동지." 그 러자 코 르뉴데가 갑자기 고개를 쳐들더니, 무섭게 번쩍이는 시선으로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 을 훑 어보았다. "여러분 모두에게 말하겠는데, 당신네들은 비열한 짓을 저질렀단 말이오." 그는 일 어나 문이 있는 데로 가서, 다시 한 번 되풀이했다. "비열한 짓을."그러면서 그는 나 가버렸 다. 처음에는 그것에 충격을 받았다. 르와조는 잠시 말문이 막혀 멍청하게 있었지만, 다 시 침 착성을 되찾아 갑자기 자지러지게 웃으면서 이 말을 되풀이했다. "그건 너무 시다 네, 여보 게, 그건 너무 시어, 라 퐁텐느의 우화에 나오는 말로서, 여우가 따먹을 수 없는 포 도를 보 고 분한 마음에 덜 익어서 먹을 수 없다고 한 말을 인용한 것임." 사람들이 이해를 못 하자 그는 "복도의 비밀"을 이야기하였다. 그러자 엄청난 즐거움이 다시 계속되었다. 부인 들은 미 칠 듯이 재미있어하였다. 백작과 카레 라마동씨는 너무 웃어서 눈물이 났다. 그들은 믿을 수 가 없었다. "뭐라구, 확실하오. 그 사람이 그랬다는 것이." "내가 보았다니까요." "그 래, 그녀 가 거절했단 말이지요." '그 프러시아인의 옆방에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그럴 수 있을까 요." "맹세한다니까요." 백작은 숨이 찼다 공장 주인은 두 손을 배를 눌렀다. 르와조 는 말을 계속했다. "그래, 아셨겠지만, 오늘밤 그는 그녀의 일을 재미있게 생각하지 않았단 말이오. 전혀 아니었지요." 세 사람은 모두 배가 아프고 숨이 가빴으나, 기침을 하면서 다시 웃기 시 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헤어졌다. 그러나 쐐기풀 같은 성질을 가진 르와조 부인은 잠자리 에 누울 때 남편에게, "그 새침데기"인 자그마한 카레 라마동 부인이 저녁 내내 쓴 웃음을 지었다고 일러주었다. "여자들이란 군복을 입은 사람에게 홀딱 반하면, 프랑스인이건 프러시 아인이건 상관없단 말이에요. 한심한 일이라구요." 그리고 밤새도록 복도의 어둠 속에서는, 거의 감지될 수 없는 숨소리 비슷하기도 한 가벼 운 소리, 떨림, 맨발이 닿는 소리, 지각되지 않는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는 불빛이 오랫동안 문 밑으로 새어나온 것을 보면, 모두 아주 늦게서야 잠이 들었음이 분명했 다. 샴페 인은 그런 효과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수면을 방해한다고 한다. 이튿날 투명한 겨울의 태양이 백설을 눈부시게 만들었다. 마침내 말이 매어진 무성 한 깃 털 속에서 머리를 뒤로 젖혀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한가운데에 검은 점이 있는 장밋빛 눈을 반짝이며, 여섯 마리의 말 다리 사이로 무게 있게 돌아다니면서 김이 나는 말똥을 파헤쳐 먹이를 찾고 있었다. 마부는 양가죽으로 몸을 감사고 마부석 위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기쁨에 넘친 여행객들은 모두 나머지 여행을 위해 음식물을 분주히 싸고 있었다. 이 젠 불 드 쉬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나타났다. 그녀는 약간 당황해하고 부끄러워하 는 것 같았다. 그녀는 머뭇거리면서 일행이 있는 쪽으로 나아갔다. 일행은 모두 똑같은 동 작으로 마치 그녀를 알아보지 못한 것처럼 얼굴을 돌렸다. 백작은 품위있게 자기 아내의 팔을 잡고, 이 불결한 접근에서 그녀를 보호했다. 뚱뚱한 창녀는 어리둥절해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고 는 있는 용기를 모두 그러모아 공장 주인의 아내에게 다가가서 "안녕하세요, 부인." 하고 공 손하게 속삭였다. 상대방은 정절에 모욕을 받은 시선을 보내면서 다만 고갯짓으로 무례한 인사를 건성으로 했다. 사람들은 모두 분주한 것처럼 보였고, 마치 그녀가 치마 속에 전염병 이라도 가져온 것처럼 그녀를 멀리했다. 그러고는 서둘러 마차가 있는 쪽으로 달려갔 고, 그 녀만이 맨 나중에 그곳으로 가서, 처음 올 때 앉았던 그 자리에 말없이 다시 앉았다. 모두들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고, 알아보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르와조 부인은 멀 리서 몹 시 분개한 듯이 그녀를 바라보면서, 자기 남편에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저 여자 곁 에 있지 않은 것이 다행이로군요." 묵직한 마차가 움직이고, 여행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아 무도 이 야기를 하지 않았다. 불 드 쉬프는 감히 눈을 들지 못했다. 그와 동시에 그녀는 곁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 분노를 느꼈고, 그들이 위선적으로 자신을 그 프러시아인의 품 안으로 내던져서, 그의 애무로 자기의 몸을 더럽히고 굴복했다는 것에 모욕감을 느꼈다. 그러 나 백 작 부인이 카레 라마동 부인 쪽으로 몸을 돌려 마침내 이 견디기 힘들 침묵을 깨뜨 렸다. "데트랠 부인을 아시지요." "네, 제 친구인걸요." "참 매력적인 여성이에요." "매혹 적이지요. 정말로 훌륭한 성격에다가 아주 유식하고, 손가락 끝까지 예술적이지요. 황홀할 정도 로 노래 를 잘 부르고, 그림도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게 그려요." 공장 주인은 백작과 이야 기를 나 누었다. 유리창이 덜그럭거리는 사이사이에 이따금 "배당권 지불 기한 프리미엄 만 기"라는 말들이 들렸다. 잘 닦지도 않은 테이블 위에서 5년 동안이나 문질러 기름때가 묻은 여인숙 의 낡은 카드 한 벌을 훔쳐 온 르와조는 아내와 더불어 베지그 놀이를 시작하였다. 수녀 들은 허리춤에 늘이고 있던 긴 묵주를 꺼내 함께 성호를 그었다. 그러고는 갑자기 그들의 입술이 활발히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점점 더 빨라지면서, 마치 기도를 시합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명확하지 않은 중얼거림을 계속하였다. 그러고는 이따금 성패에 입을 맞추고, 성호 를 긋고 빠르고도 계속적인 중얼거림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었다. 코르뉴데는 꼼짝도 않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세 시간쯤 길을 달린 후에, 르와조는 카드를 주워모으면서 "시장한데"하고 말했다. 그러자 그의 아내가 근으로 묶은 꾸러미로 손을 가져 가, 거기에서 냉동한 송아지 고기 한 조각을 꺼냈다. 그녀는 그것일 얇고 단단한 조 각으로 적당하게 잘라 둘이서 먹기 시작하였다. "우리도 그렇게 할까요."하고 백작 부인이 말했다. 모두들 동의를 해서, 그녀는 두 부부를 위해 준비했던 음식물을 풀어놓았다. 그것은 토끼 고 기 파이가 안에 들어 있다는 것을 표시하기 위해서 사기로 만든 토끼를 뚜껑에 매달아 놓은 길쭉한 그릇 중의 한 속에 들어 있었다. 하얀 기름살이 불치 고기의 거무스름한 살 속 에 강 줄기처럼 스며 있는 맛좋은 돼지 고기도 얇게 썬 다른 고기와 섞여 있었다. 신문지에 싸서 가져온 네모난 그뤼예르산의 좋은 치즈는 그 미끈거리는 덩어리 위에 "잡보"라는 글자 가 찍 혀 있었다. 두 수녀는 마늘 냄새가 나는 둥근 소시지 조각을 펼쳐 놓았다. 코르뉴데는 헐렁한 외투의 매우 큰 주머니 속에 두 손을 한꺼번에 쑤셔녛더니 한 손으로는 삶은 계란 네 개를, 다른 손으로는 빵 한 조각을 꺼냈다. 그는 껍질을 벗겨 발밑의 짚 속에 던져버리고는 계란 을 그 대로 씹어대기 시작했다. 그의 텁수룩한 수염 위로 노란 빛이 나는 작은 조각들이 떨어져, 마치 그 속에 별이 박힌 것 같았다. 불 드 쉬프는 서둘러 일어나느라고 당황해서 아 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분노를 숨이 막히고 화가 치밀어서, 태연하게 음식을 먹 고 있는 이 사람들 모두를 쳐다보았다. 처음에는 끓어오르는 분노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래 서 입 술까지 올라온 욕설과 함께 그들이 한 짓을 소리치려고 입을 열었다. 그러나 분노로 목이 막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무도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고, 그녀에 대해 생각도 하지 않았 다. 그녀는, 처음에는 자기를 희생시키고 그러고 나서는 마치 불결하고 쓸모 없는 물 건처럼 내던진 이 정숙한 파렴치한들의 경멸 속에 자신이 잠겨 있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이들이 게걸스럽게 모조리 먹어치운, 맛있는 음식이 가득 들어 있던 자기의 커다란 바구니와, 젤리 를 바른 반지르르한 두 마리의 영계, 파이, 배, 네 병의 보르도 술이 생각났다. 그러 자 너무 팽팽해서 끊어져버린 끈처럼 갑자기 분노가 가라앉더니, 곧 울고 싶어졌다. 그녀는 안 간힘을 다해 온몸에 힘을 주어 어린애처럼 오열을 삼켰다. 그러나 눈물이 솟아올라 눈시울 가장자 리에서 반짝이더니, 두 개의 굵은 눈물이 양 볼 위로 천천히 흘러내렸다. 그것에 이어 더욱 빠르게, 마치 바위에서 스며 나오는 물방울처럼 눈물이 흘러내려 가슴의 포동포동한 곡선 위로 규칙적으로 떨어졌다. 그녀는 사람들이 자기를 바라보지 않기를 바라면서 눈을 똑바로 뜨고, 굳어버린 창백한 얼굴로 꼿꼿이 앉아 있었다. 그러나 백작 부인이 그것을 알아차리고 남편에게 몸짓으로 알렸다. 백작은 "어쩌란 말이 오. 내 잘못은 아니야" 라고 말하는 것처럼 어깨를 으쓱했다. 르와조 부인은 소리 없 이 승리 의 미소를 짓고 이렇게 중얼거렸다. "부끄러워서 우는 거예요" 두 수녀는 남은 소시지 를 종 이에 말아놓고 나서 다시 기도를 드리기 시작하였다. 그때 달걀을 먹어치운 코르뉴데 는 맞 은편 의자 밑으로 긴 다리를 뻗고 몸을 뒤로 젖혀 팔짱을 끼고는, 짓궂은 장난을 막 생각해 낸 사람처럼 미소를 지으며 휘파람으로 "라 마르세예즈 ,프랑스 국가, 를 불기 시작했 다. 얼 굴들이 모두 침울해졌다. 이 민중적인 노래가 확실히 곁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들지 않았 던 것이다. 그들은 신경질적이 되고 역정이 나서, 부정확한 파이프오르간 소리를 들은 개들 처럼 짖으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알아차리고도 그만두지 않았다. 이따 금 그 는 떨리는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조차 하였다. 조국에 대한 성스러운 사랑이여, 인도하라, 떠받치라, 복수라는 우리 팔을. 자유, 사랑하는 자유여, 그대들의 수호자와 함께 싸우라. 눈이 더욱 단단해져서, 더 빨리 달렸다. 디에프까지 침울한 여행의 긴 시간 동안, 울퉁불 퉁한 길 한복판에서도, 밤이 내리고 난 마차의 깊은 어둠 속에서도, 그는 잔인한 고 집으로 단조로운 복수의 휘파람을 계속 불어댔다. 그는 지치고 화가 난 사람들로 하여금 처 음부터 끝까지 그 노래를 열심히 듣도록 강요했으며, 박자마다 그들이 갖다 붙여야 하는 가사 하나 하나를 상기하도록 강요하였다. 불 드 쉬프는 여전히 울고 있었다. 그리고 이따금 참 을 수 없는 흐느낌이 음절과 음절 사이에서, 어둠 속에서 새어나왔다. 두 친구 파리는 포위되었고, 굶주리고 허덕이고 있었다. 지붕 위의 참새들도 아주 드물어졌 고, 하 수도에는 쥐들이 없어졌다. 사람들은 아무것이나 먹어댔다. 정월의 청명한 아침, 직 업은 시 계상이나 때로는 집에서 한가로이 지내기를 좋아하는 모리소는 제복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찌르고 허기진 배를 하고 큰 외곽 도로를 따라 우울하게 거닐고 있다가, 친구로 여기 는 한 동료 앞에서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물가에서 알게 된 소바주씨였다. 전쟁 전 모 리소는 일요일마다 새벽부터 한 손에는 대나무로 만든 낚싯대를 들고, 등에는 양철통을 메고 길을 떠나곤 했었다. 그는 아르장테이 유행 기차를 타고 콜롱브에서 내려, 걸어서 마랑트 섬으로 갔었다. 그의 꿈의 장소인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낚시질을 시작했고, 밤늦게까지 고기를 잡았다. 일요일마다 그는 거기에서 뚱뚱하고 쾌활한, 자그마한 남자 소바주씨를 만나 곤 했었 는데, 그는 노트르담 드 로레트가에서 잡화상을 하고 있는 또 하나의 광적인 낚시꾼 이었다. 그들은 종종 손에는 낚싯줄을 드리우고, 발을 흐르는 물 위로 흔들거리면서 나란히 앉 아 반 나절을 보내곤 했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서로 우의를 맺게 되었던 것이다. 어떤 날에는 서로 말을 하지 않았다. 가끔 이야기를 하기도 했지만, 그들은 비슷한 취미와 같은 느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놀랄 만큼 서로 뜻이 맞았다. 봄이면 아 침 열 시경쯤, 원기를 회복한 태양이 잔잔한 강에 물과 함께 흐르는 옅은 수증기를 띄우게 하고 열중해 있는 두 낚시꾼의 등에 새봄의 따뜻한 햇볕을 내리쬘 때면, 모리소는 곁에 있 는 사 람에게 가끔 "어때요, 얼마나 따스합니까."하고 말을 건넸다. 그러면 소바주씨는 "이 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거요."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서로를 이해하고 믿기에는 이것으로 충분했 었다. 가을에는 해질녘, 저무는 태양으로 핏빛처럼 물든 하늘이 진홍색 구름의 형태를 물 에 던 지고, 강물을 온통 붉게 물들이고, 수평선을 타오르게 하고, 두 친구를 불처럼 붉게 만들고, 겨울의 오한으로 살랑거리고 있는 단풍 든 나무들을 금빛으로 물들일 때면, 소바주씨 는 미 소를 짓고 모리소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곤 하였다.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입니까" 그러면 모리소도 감탄을 하여 낚시찌에서 눈을 때지 않고 대답하였다. "큰 거리보다 훨씬 낫지요, 안 그래요." 그들은 서로 알아보자마자 힘껏 악수를 하였다. 너무도 다른 상황에서 만나게 되어 매우 감격했던 것이다. 소바주씨는 한숨을 내쉬면서 중얼거렸다. "이게 무슨 일들이 오."모리소도 매우 침울하여 이렇게 한탄했다. "무슨 날씨가 이런지. 오늘은 금년 들 어 처음 으로 날씨가 좋군요." 아닌게아니라 하늘은 새파랗고 햇빛으로 가득했다. 그들은 생 각에 잠 겨 침울하게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모리소가 다시 말을 했다. "낚시질은요. 얼마나 좋은 추 억이오." 소바주씨가 물었다. "언제 거기에 다시 갈 수 있을까요." 그들은 어느 작은 카페로 들어가 함께 압생트 한 잔을 마셨다. 그러고 나서 보도 위를 다시 거닐기 시작하였다. 모리 소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한잔 더 할까요, 어때요." 소바주시가 동의를 했다. "좋으실 대로." 아무것도 먹지 않고 알코올로 배를 채운 사람들처럼 비틀거렸다. 날씨는 따 스했다. 살랑거리는 미풍이 그들의 얼굴을 간지럽혔다. 훈훈한 공기에 완전히 취해 버린 소바 주씨가 걸음을 멈추었다. "거기에 갈까요." "거기가 어디요." "낚시질하러 말이오." "그러나 어디로." "우리들의 섬으로, 프랑스의 전초가 콜롱브 근처에 있어요. 내가 뒤물랭 육군 대령 을 알고 있으니까 쉽게 통과시켜 줄 것이오." 모리소는 낚시줄을 하고 싶은 욕망으로 몸이 떨렸다. "결정됐소. 찬성이오." 그래서 그들은 낚시 도구들을 가지러 가기 위해 서로 헤어졌 다. 한 시간 후에 그들은 나란히 대로를 걷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대령이 차지하고 있는 별장에 이르렀다. 대령은 그들의 부탁에 미소를 짓고, 그들의 엉뚱한 생각에 동의를 하였다. 통행증을 마련한 그들은 다시 걷기 시작하였다. 얼마 안 가서 그들은 전초선을 넘고 비어 있는 콜롱브를 가로질러, 세느강 쪽으로 내려가 는 작은 포도밭가에 이르렀다. 대략 열한 시쯤이었다. 정면에 있는 아르장테이유 마을 은 죽 은 듯이 보였다. 오르즈몽과 사느와의 고지들이 온 지방을 굽어보고 있었다. 낭테르까 지 이 르는 큰 평야는 벌거벗은 벚나무와 잿빛 땅만 있고 텅 비어 있었다. 소바주씨는 손가 락으로 산꼭대기를 가리키면서 중얼거렸다. "프러시아인들이 저 위에 있겠지요." 이 황량한 지역 앞 에서 어떤 불안이 두 친구를 마비시켰다. "프러시안인들" 그들은 한 번도 그 사람들 을 본 적이 없지만, 몇 달 전부터 파리 주변에서 프랑스를 파괴하고, 약탈하고, 학살하고, 굶주리게 하는, 보이지 않는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그들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그 미지의 승리한 국민들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증오심에다 일종의 미신적인 공포를 추가하였다. 모리소 가 더 듬거리며 말했다. "어때요. 우리가 그 자들을 만난다면." 소바주씨는 어떤 일이 있더 라도 다 시 살아나는 파리 사람다운 빈정거림으로 대답했다. "그들에게 튀김이나 하나 줍시다. " 그러 나 온 지평선에 깔려 있는 침묵에 겁을 먹은 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들판으로 내려가 기를 주저하였다. 마침내 소바주씨가 결단을 내렸다. "자, 출발. 그러나 신중히." 그래서 그들은 몸을 굽히고 기어서, 몸을 가리기 위해 덤불을 이용하면서, 불안한 눈으로, 귀를 곤두세우고 포도 밭 안으 로 내려갔다. 강가로 가려면 벌거벗은 광야를 가로질러야 한다. 그들은 달리기 시작했 다. 높 다란 둑에 다다르자, 마른 갈대 속에 몸을 웅크렸다. 모리소는 땅에다 뺨을 갖다대고 근방에 서 발소리가 들리지 않나 들어보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들만이, 오직 그 들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안심을 하고 낚시질을 시작했다. 그들 앞에 있는 버려진 마랑트섬은 다른 쪽 제방 으로부터 그들을 가려 주었다. 작음 음식점은 닫혀 있었고, 몇 년 전부터 버려둔 것 같았다. 소바주씨가 첫 번째로 모샘치를 잡았고, 모리소가 두 번째 것을 잡았다. 그리고 낚싯 줄 끝에 서 팔딱이는 작은 고기가 매달린 낚싯대를 수없이 들어올리곤 하였다. 참으로 놀라운 낚시 질이었다. 그들은 물고기들을 발 밑에 담가놓은, 코가 아주 촘촘한 그물 주머니 속에 조심스 럽게 넣었다. 그러면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이 그들의 마음에 스며들었다. 그것은 오래 전부터 빼앗겼던 가장 사랑하는 즐거움을 다시 찾았을 때 느끼는 그런 기쁨이었다. 쾌적한 태양이 그들의 어깨 사이로 열기를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들은 이제 아무 소리도 듣지 않았 다.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 밖의 세상은 몰랐고, 단지 낚시질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땅 밑에서 들려오는 듯한 어떤 둔탁한 소리가 지면을 흔들었다. 대포소리가 다시 쾅쾅 울리 기 시작했다. 모리소가 머리를 돌려 제방 위로, 왼쪽에 있는 발레리앙 산의 커다란 윤곽을 언뜻 보니 그 전면에는 방금 총구에서 불을 뿜어낸 화약의 연기가 흰 깃털 장식처럼 걸려 있었다. 그리고 곧 두 번째 연기의 분출이 요새 꼭대기에서 솟아올랐다. 잠시 후에 또다시 포성이 울렸다. 그러고는 연달아 포성이 울리고, 간간이 산은 죽음의 숨결을 내뿜고 젖빛 연 무를 내쉬었는데, 그것은 고요한 하늘로 서서히 올라간 산 위에서 구름을 만들었다. 소바주씨는 어깨를 으쓱했다. "또 시작하는군"하고 그가 말했다. 낚지찌의 깃털이 연방 물 속에 잠기는 것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모리소는 갑자기 화가 났다. 그것은 그렇게 서 로 싸 우고 있는 그 미친 사람들에 대하여 평화스러운 사람이 갖는 분노였다. 그래서 그는 투덜거 렸다. "저렇게 서로 죽이다니, 어리석기 짝없어." 소바주씨가 말을 이었다. "짐승보다 도 나쁘 지." 방금 잉어 한 마리를 잡은 모리소는 이렇게 분명히 말했다. "정부가 있는 한 언 제나 이 럴 것이오." 소바주씨가 그 말을 중단시켰다. "공화국이라면 전쟁을 선포하지 않았 을 겁니 다." 모리소가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왕을 가지면 밖에서 전쟁을 하고, 공화국을 가지면 안에서 전쟁을 하지요." 그들은 시야가 좁은 온순한 사람들이 갖는 건전한 양식으로 큰 정 치적인 문제들을 풀어가면서, 사람들은 결코 자유로워질 수 없으리라는 점에 대해서는 의견 의 일치를 보면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였다. 그러는 중에도 발레리앙산에서 는 쉬 지 않고 쾅쾅 소리가 울려대었고, 프랑스의 집들을 포탄으로 파괴하고, 생활을 부수 며, 사람 들을 으스러뜨리면서, 많은 꿈에, 기다리던 많은 기쁨에, 기대하던 많은 행복에 끝장 을 내면 서, 다른 나라에 있는 부인들의 가슴에, 딸의 가슴에, 어머니의 가슴에 그치지 않는 고통을 파놓고 있었다. "이것이 인생이지요."하고 소바주씨가 분명하게 말했다. "차라리 죽 음이라고 말하세요."라고 모리소가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뒤에서 누군가가 걸 어오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아 질겁을 하여 몸을 떨었다. 눈을 돌려보니, 그들의 어깨 곁에 네 명의 남자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제복을 입은 하인처럼 옷을 걸치고 납작한 모자를 쓴, 키가 크 고 수염이 덥수룩한 무장한 네 명의 남자들이 총 끝으로 그들의 뺨을 겨냥하고 있었 다. 두 사람의 낚싯대가 손에서 미끄러져 강물에 떠내려가기 시작했다. 당장에 그들은 체포되 고 결박당했으며, 끌려가 배에 던져져 섬으로 이송되었다. 그들이 비어 있다고 생각한 그 집 뒤로, 스무 명 가량의 독일 병정이 보였다. 의자에 말타듯 걸터앉아 커다란 사기 파 이프로 담배를 피우던 거인 같은 털보가 그들에게 훌륭한 프랑스어로 물었다. "그래, 선생 들, 낚시 질은 잘하셨소." 그러자 한 병사가 주의해서 가져온, 물고기가 가득 든 어망을 장교 의 발치 에 내려놓았다. 프러시아인이 미소를 지었다. "오,오, 안 되지는 않았군. 그러나 문제 는 다른 것이오. 잘 들어요, 당황하지 마시고. 내가 보기엔, 당신 두 사람은 내 동정을 살피라 고 보낸 스파이들이오. 난 당신들을 잡았으니 총살형에 처할 것이오. 당신들은 계획을 보다 잘 감추 기 위해서 낚시질을 하는 체한 것이오. 당신들이 내 수중에 떨어졌으니, 당신들에게는 딱한 일이오. 이것이 전쟁이란 말이오. 그러나 당신들은 전초를 빠져나왔으니 다시 들어가 기 위한 암호를 확실히 알고 있을 거요. 그 암호를 내게 말하시오. 그러면 당신들을 용서해 주 겠고." 나란히 선 두 친구는 창백해졌다. 그들은 손을 신경질적으로 가볍게 떨면서 잠자코 있었다. 장교가 다시 말했다. "아무도 그것을 절대로 알지 못할 것이고, 당신들은 조용히 돌 아갈 수 있을 것이오. 비밀은 당신들과 함께 사라질 것이오." 그들은 입을 다물고 그대로 꼼 짝 않고 있었다. 프러시아인은 여전히 침착하게 강 쪽으로 손을 펴면서 말했다. "생각해 보시 오. 5분 후에는 당신들이 강바닥에 있게 된다는 것을. 5분 후. 당신들에게는 가족이 있겠지 요." 발 레리앙산은 여전히 쾅쾅 울리고 있었다. 두 낚시꾼은 그대로 말없이 서 있었다. 독 일인은 자기 나라 말로 명령을 내렸다. 그러고는 너무 포로들 가까이에 있지 않으려고 의자 의 위 치를 바꾸었다. 열두 명의 남자가 집총을 하고 이십 보 거리에 자리했다. 장교가 다시 말했 다. "1분의 여유를 주겠소. 그 이상은 절대로 안 되오." 그러고 나서 그는 갑자기 몸 을 일으 켜 두 프랑스인에게로 가까이 오더니, 모리소 겨드랑이를 잡고 좀 먼 곳으로 끌고 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빨리, 그 암호는. 당신 동료는 아무것도 모를 것이오. 내가 동정하 는 표정 을 지을 테니까." 모리소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프러시아인은 소바주씨 를 끌고 가 똑같은 질문을 했다. 소바주씨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들은 다시 나란히 서게 되었 다. 장교가 명령을 내리자, 병정들이 총을 들어올렸다. 그러나 모리소의 눈길이 몇 발짝 떨어진 풀밭에 그대로 있는, 모샘치가 가득한 어망 위로 우연히 떨어졌다. 한 줄기 햇살이, 아직도 움직이고 있는 그 많은 물고기들을 반짝이게 하였다. 그는 온몸에 맥이 빠졌다. 안간힘을 썼으나 눈에는 눈물이 가득 했다. 그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 안녕히 가세요, 소바주씨." 소바주씨가 대답했다. "안녕히 가세요. 모리소씨." 그들은 서로 손을 꽉 잡았지만, 전율을 이길 수가 없어서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흔들렸다. 장교가 소리쳤 다. "발 사." 열두 발의 총알이 일시에 나갔다. 소바주씨는 단번에 코를 박고 쓰러졌다. 그보 다 키가 큰 모리소는 비틀거리면서 빙그르르 돌더니, 얼굴을 하늘로 하고 친구 위에 모로 쓰 러졌다. 그러는 사이에 뿜어대는 핏줄기가 가슴의 터진 웃옷에서 스며 나왔다. 독일인이 다시 명령 을 내렸다. 그의 부하들이 흩어졌다가 밧줄과 돌들을 가지고 돌아와, 두 시체의 발에 붙들 어매었다. 그러고 나서 시체를 강둑으로 운반했다. 발레리앙산은 쾅쾅 울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고, 이제는 연기를 이고 있었다. 두 병정이 모리소의 머리와 발을 잡았다. 다른 두 병정이 똑같은 방법으로 소바주씨 를 잡 았다. 시체들은 잠깐 힘차게 좌우로 흔들리다가 멀리 던져졌다. 그것은 곡선을 그리면 서, 처 음에는 발에 매인 돌들 때문에 선 자세로 강물 속에 잠겼다. 물은 솟구쳐 튀어올랐다 가 거 품이 일면서 흔들렸으나 곧이어 잔잔해졌다. 그러는 동안 자디잔 물결이 강기슭까지 밀려왔 다. 피가 약간 물 위에 떠돌았다. 여전히 침착한 장교는 낮은 목소리로 "이제는 고기 들의 차 례로군."하고 말했다. 그러고는 집을 향해 되돌아갔다. 갑자기 풀 속에서 모샘치가 들어 있 는 어망이 눈에 띄었다. 그것을 주워 살펴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빌헴"하고 소리를 질렀다. 흰 앞치마를 두른 한 병사가 달려왔다. 그러자 그 프러시아인은 총살당한 두 사람이 잡은 고기를 그에게 던지면서 이렇게 명령했다. "아직 살아 있는 동안에 이 조그마한 고 기들을 당장 튀겨오게나. 맛있을 걸세." 그러고 나서 그는 파이프에 다시 불을 붙였다. 승마 가난한 사람들이 남편의 작은 봉급으로 간신히 살아가고 있었다. 결혼하고 나서 두 아이 가 태어났고, 처음의 궁색스러움은 가려져 있으면서도 수치스러운, 그런 보잘것없는 빈곤이 었지만, 그래도 그것은 지체를 보존하고자 하는 귀족 출신 가정의 곤궁이었다. 엑토르 드 그 리블랭은 시골 아버지의 저택에서 늙은 신부 가정교사가 키웠다. 부자는 아니었지만, 간신히 체면을 유지하면서 근근히 살아갔다. 그리고 스무 살 때에 직장을 얻게 되어, 그는 1천5백 프랑의 봉급을 받는 해군성의 사무원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는 치열한 삶의 싸움에 일찍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 어린 시절부터 특별한 소질, 특출한 재능, 싸움에서의 악착스 러운 힘 을 개발하지 못했던 사람들, 수중에 무기나 연장을 가지지 못한 그런 모든 사람들처 럼 그 암초에 부딪쳐버렸다. 처음 3년 동안의 사무직 생활은 끔찍했었다. 그는 자기 집안의 친구 몇 사람을 다시 만나 게 되었다. 그들은 시대에 뒤떨어지고 역시 불운한, 나이 많은 사람들로서 생 제르맹 변두리 의 음산한, 귀족들이 모여 사는 거리에서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 사람들과 사귀 게 되 었다. 현대적인 생활에는 생소하나, 겸손하면서도 자부심이 강한 이 가난한 귀족들은 잠든 듯이 조용한 집들의 위층에서 살고 있었다. 이런 집들의 위층에서부터 아래층까지 세들어 있는 사람들은 작위를 가지고 있었으나 2층의 사람이나 7층의 사람이나 똑같이 많지 않은 것 같았다. 여전한 편견, 신분에 대한 선입관, 지위를 잃지 않으려는 걱정이, 예전에 는 훌륭 했으나 무위도식으로 인해 파산한 이 친족들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엑토르 드 그리블 랭은 이런 사람들 속에서 자기처럼 귀족이지만 가난한 처녀를 만나게 되어, 그녀와 결혼하 였다. 그들은 4년 동안, 가난에 시달리는 이 부부는 일요일마다 상젤리제를 산보하거나 또 는 동 료에게서 얻은 우대권 덕분에 겨울에 한두 번 야간 극장에 가는 것밖에 다른 오락은 알지 못했다. 그러나 봄에, 상사로부터 추가 업무를 위탁받아 그는 3백 프랑의 특별 수당을 받았 다. 이 돈을 아내에게 건네며 그가 말했다. "여보, 앙리에트. 식구들이 무언가. 예를 들자면 아이들이 즐거워할 놀이 계획을 짜봅시다." 그래서 한참 의논을 한 후, 그는 시골에 가서 점 심을 먹기로 결정하였다. "그렇지" 하고 엑토르가 큰소리로 말했다. "이번만은 당신 이나 아 이들이나 하녀를 위해서 사륜마차를 빌리기로 합시다. 그리고 나는 조마장의 말 한 필 을 빌 려 탈 테니, 그것이 내 건강에는 좋겠소." 그리고 일주일 내내 그들은 계획한 소풍에 대해서 만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녁마다 사무실에 돌아오면, 엑토르는 큰아들을 붙잡아 자기 다리 위에 걸터앉히고 힘껏 그를 뛰어오르게 하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다음 일요일 에 소 풍 가서 아빠는 이렇게 달리게 할 거야." 그러면 어린아이는 하루 종일 의자에 걸터앉 아, 그 것을 온 방안으로 끌고 다니면서 이렇게 소리 지르는 것이었다. "아빠가 말탄 거야." 그러면 하녀까지도 주인이 말을 타고 마차를 따라오는 생각을 하면서 감탄의 눈으로 주인을 바라보 는 것이었다. 식사하는 동안 내내 그녀는 마술에 대한 이야기, 옛날에 아버지의 집에 서 있었 던 그의 자랑거리에 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아, 이분은 훌륭한 선생님에게서 배우신 분이다. 그리고 일단 말에 올라타면 두려울 것이 전혀 없는 분이시다. 전혀. 그는 손을 비비면서 아내에게 되풀이하곤 하였다. "좀 다루기 힘든 말을 준다면 좋 을 텐 데. 내가 얼마나 잘 타는지 당신이 볼 수 있게 당신이 원한다면 블로뉴 숲에서 돌아올 때에 는 상젤리제로 해서 옵시다. 우리 모습이 훌륭해 보일 테니까 관청의 누구를 만나더라 도 난 처할 것은 없지. 상사들의 존경심을 사는 데도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을 거야." 약속된 날에 마차와 말이 동시에 문앞에 도착했다. 그는 자기 말을 살펴보려고 얼른 내려갔 다. 그는 바지에 가죽끈도 꿰매 놓게 했고, 전날에 산 채찍도 휘둘러보았다. 그는 말의 네 다리 를 차 례차례 들어서 만져보고, 목과 갈비뼈와 과관절을 살펴보았으며, 손가락으로 허리를 눌러보 고, 입을 벌리고 이를 조사해 보더니, 말의 나이를 말했다. 그리고 온 가족이 내려오 자, 그는 보편적인 말에 대한 이론적이면서도 실질적인 일종의 짤막한 강의를 하였다. 그리고 이 말 에 대해서는 따로 훌륭하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사람들이 모두 마차에 자리를 잡자, 그는 안장의 가죽띠를 확인하고 나서 말의 등자 를 딛 고 올라앉았다. 그러자 말은 사람을 태운 채 펄쩍펄쩍 뛰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는 하 마터면 말에서 떨어질 뻔했다. 엑토르는 놀라 말을 진정시키려고 애썼다. "자, 조용히. 얘 야, 조용 히." 말이 다시 안정을 찾고 기수가 균형을 잡자, 그는 이렇게 물었다. "준비되었소. "사람들 이 일제히 대답했다. "네."그러자 그가 명령하였다. "출발." 그래서 기마 행렬은 멀어 졌다. 모 든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그는 과장되게 몸을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영국식 속보로 달렸 다. 안장에 닿자마자 그는 공중으로 올라가려는 듯이 다시 튀어올랐다. 종종 말의 갈 기에 덮 쳐들 것 같기도 했다. 얼굴은 경련이 일고 뺨은 창백해져서 똑바로 앞만 바라보았다. 무릎 위에 어린아이 하나를 안고 있는 그의 아내와, 다른 아이 하나를 올려놓고 있는 하녀 는 쉬 지 않고 이 말을 되풀이하였다. "아빠를 봐라, 아빠를 봐." 두 어린아이는 마차의 움 직임과 즐거움 그리고 맑은 공기에 취하여 날카로운 소리를 질러댔다. 그 아우성에 놀란 말이 마침 내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기수가 말을 멈추게 하려고 애쓰는 동안에 모자가 내려가 야만 했다. 엑토르가 마부의 손에서 모자를 받아들자, 그는 멀리서 아내에게 말했다. "아이 들이 그렇게 소리 지르기 못하도록 해요. 내가 실려 가겠어." 베지네 숲의 풀밭 위에 서 그들 은 상자 속에 담아간 음식들로 점심을 먹었다. 마부가 말 세 마리를 보살펴주는데도, 엑토르는 줄곧 자기 말에 부족한 것이 없는가 살피 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말의 목을 쓰다듬어주면서 빵과 과자와 설탕을 먹였 다. 그 가 말했다. "속보 훈련이 된 거친 말이야. 처음에는 나도 약간 흔들려서 떨어질 뻔했 지. 그 러나 곧 정신을 차린 것을 당신도 보았겠지. 이놈이 주인을 알아본 거야. 이젠 꼼짝하 지 못 할걸." 결정한 대로 그들은 상젤리제로 해서 돌아왔다. 넓은 길은 마차들로 북적거렸 다. 길 양쪽에는 산보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개선문에서부터 콩코르드 광장까지 마치 두 개의 긴 까만 리본을 펼쳐놓은 것 같았다. 소나기 같은 햇빛이 이 모든 사람들 위로 쏟아졌 고, 와 니스 칠을 한 마차와 마구의 쇠붙이, 승강구의 손잡이들을 번쩍거리게 했다. 이 많은 사람 들, 말과 말에 탄 일행들은 광적인 충동과 생의 도취로 마음이 동요되는 것 같았다. 오벨리 스크는 저 멀리 황금빛 수증기 속에 서 있었다. 엑토르의 말은 개선문을 지나치자 갑자기 다시 사나워졌다. 기수가 진정시키려고 온갖 시도를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은 마구 간을 향 해 대단한 속보로 길을 가로질러 달려갔다. 마차는 이제 멀리 뒤에 있었다. 공업 회관 앞에서 광장이 보이자 말은 오른쪽으로 돌아 전속력으로 달렸다. 앞치마를 두른 노파가 조용한 걸음걸이로 차도를 건너고 있었다. 그 여 인은 엑토르가 전속력으로 가고 있는 바로 그 길 위에 있었다. 말을 제어하는 것이 소용없 었기 때문에, 그는 있는 힘을 다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여봐요, 헤이, 여봐요, 비켜요." 그녀는 귀가 먹었는지 자기 길을 계속 평온하게 걷고 있었다. 그러다 마침내 그녀는 기관차 처럼 달리는 말의 가슴팍에 부딪쳐, 세 번이나 머리 위에서 곤두박질을 한 후, 공중에 치마 를 휘날리면서 열 발짝도 더 되는 머 곳에 나둥그러졌다. 사람들이 소리쳤다. "멈추시오." 엑토르는 제정신이 아니어서 말갈기에 달라붙어 울 부짖었 다. "사람 살려요." 무서운 충격으로 그는 말의 귀 위로 총알처럼 날아가, 그것을 보 고 뛰어 든 순경의 팔 안으로 떨어졌다. 순식간에 노기 띤 군중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삿대질 하면서 그의 주위로 모여들었다. 특히 커다란 둥근 훈장을 차고 하얀 수염이 무성한 노신사 한 분은 몹시 격분한 것 같았다. 그는 이렇게 되풀이하였다. "제기랄, 이렇게 서투르 면 집에 나 있을 것이지. 말을 몰 줄 모르면 길에 나와 사람은 죽이지 말아야 될 거 아냐." 그러자 네 사람이 노파를 들고 나타났다. 노파는 얼굴이 노래지고, 모자는 비뚤어지고, 먼지 를 뒤집 어써서 온통 뿌연 모습을 하고 죽은 듯이 보였다. "이 부인을 약국으로 데려가시오. 그리고 우리는 경찰서로 갑시다."하고 그 노신사가 명령했다. 엑토르는 두 순경 사이에 끼여 서 출발 하였다. 또 한 순경은 그의 말을 붙잡았다. 많은 사람들이 뒤를 따랐다. 그런데 갑자 기 사륜 마차가 나타났다. 그의 부인이 뛰어들었다. 하녀는 정신을 못 차리고, 아이들은 울부 짖었다. 그는 자기가 한 부인을 쓰러뜨렸는데 아무것도 아니니 돌아가게 될 거라고 설명하였 다. 그 래서 미칠 지경이 된 그의 가족은 물러섰다. 경찰서에서의 진술은 간결했다. 그는 해군성에 소속되어 있는 엑토르 드 그리블랭 이라고 자기 이름을 대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부상당한 여인의 소식을 기다렸다. 조회를 하러 갔던 순경이 돌아왔다. 노파는 의식을 되찾았지만, 그녀의 말에 의하면 속이 지독하게 아 프다는 것이었다. 그는 시몽 부인이라고 하는 예순다섯 살 먹은 가정부였다. 노파가 죽지 않 은 것을 알자 엑토르는 희망을 되찾고, 치료비를 마련해 주겠노라고 약속했다. 그러고 나서는 약국으 로 달려갔다. 많은 사람들이 문앞에 몰려 있었다. 그 할머니는 안락의자에 주저앉아 투덜거 리고 있었는데, 두 손은 움직이지 않았고 얼굴은 얼이 빠진 듯 멍청하였다. 의사 두 사람이 아직도 그녀를 진찰하고 있었다. 팔다리는 부러지지 않았지만 내부의 상해가 염려 되었다. 엑토르가 노파에게 말했다. "많이 아프세요." "오, 그래요." "어디가요." "뱃속에 불 덩이가 있 는 것 같아요." 의사 한 사람이 다가왔다. "선생이 사고를 낸 장본인이신가요." "네, 그렇습 니다." "이 부인을 요양소로 보내야 합니다. 내가 한 군데를 알고 있는데, 그 곳에서 는 하루 에 6프랑을 받아줄 겁니다. 알아봐 드릴까요." 엑토르는 기뻐 어쩔 줄 몰라하며 감사 해했고, 마음의 부담을 덜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눈물 속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아내를 달랬다. "아무것도 아니 야, 그 시몽 부인은 벌써 많이 좋아졌어. 사흘 후면 아파 보이지도 않을 거야. 그 노 파를 요 양소로 보냈어. 대수롭지 않다니까." 대수롭지 않다니. 이튿날 사무실에서 나오면서, 그는 시 몽 부인의 소식을 알려고 갔다. 노파는 흡족한 표정으로 고기 수프를 먹고 있는 중 이었다. "어떠세요" 하고 그가 말했다. 노파가 대답했다. "오, 딱한 양반, 변화가 없어요. 거 의 기진 맥진이에요. 나아진 것이 전혀 없어요." 의사는 합병증이 뜻하지 않게 생길 수도 있 으니 기 다려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흘을 기다렸다가 다시 갔다. 노파는 얼굴빛이 환하 고 눈 이 맑아졌으나 그를 보자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몸을 움직일 수가 없구려, 선 생. 움직 일 수가 없어요. 죽을 때까지 이럴 것 같아요." 엑토르의 뼛속으로 전율이 흘렀다. 그는 의 사에게 물어보았다. 의사는 두 팔을 쳐들었다. "어쩌란 말입니까, 선생. 나도 모르겠 어요. 쳐 들려고 하기만 하면 아우성을 치는 겁니다. 그러니 그 노인이 내게 하는 말을 믿는 수밖에 요. 내가 그 속을 들어가 보지 못하니까 말입니다. 이분이 걷는 것을 보지 못하는 한 거짓말 을 하고 있다고 추측할 권리가 내게는 없습니다." 노파는 꼼짝도 않고 교활한 눈을 하고 듣고 있었다. 일주일이 지났다. 그녀는 아침 부터 저 녁까지 먹어대서 살이 쪘다. 다른 환자들과 즐겁게 이야기도 했다. 그녀는 50년 동안 계단을 오르내리고, 매트를 뒤집어놓고, 이 층에서 저 층으로 석탄을 나르고, 비질을 하고 솔질을 한 보답의 휴식이기라도 한 것처럼 꼼짝 않고 지내는 것에 익숙해진 것 같았다. 엑 토르는 어쩔 줄을 몰라 매일같이 왔다. 날마다 그는 조용하고 침착한 모습으로 이렇게 말하는 그녀 를 만나곤 했다. "움직일 수가 없구려, 선생. 움직일 수가 없어요." 저녁마다 드 그리 블랭 부 인은 불안으로 가슴을 태우면서 이렇게 물었다. "시몽 부인은 어때요." 그러면 매번 그는 절 망적으로 낙담하여 대답했다. "차도가 없어요. 전혀 아무런." 하녀를 내보냈다. 그녀 의 급료 가 너무 부담이 되었기 때문이다. 또 더욱 절약을 했고, 특별 수당은 몽땅 그것으로 나가버 렸다. 그래서 엑토르는 네 사람의 고명한 의사를 불러 모아 노파의 주위로 모이게 했 다. 그 녀는 그들이 진찰하고, 촉진하는 동안 그들을 약빠른 눈으로 노려보았다. "걸아보도 록 해야 겠습니다." 하고 한 의사가 말했다. 그녀가 소리쳤다. "난 할 수 없어요, 선생님들. 난 할 수 없어요." 그러자 의사들은 노파를 움켜잡고 쳐들어올려서 몇 발자국 끌고 갔다. 그러 나 그녀 는 의사들의 손에서 빠져나가 너무도 무시무시할 만큼 아우성을 치면서 마룻바닥 위에 털썩 주저앉는 바람에, 의사들은 매우 조심스럽게 그녀를 제자리에 데려다 놓았다. 의사들 은 신중 한 의견을 표명했는데, 그러는 동안에 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 서 엑 토르가 이 소식을 아내에게 들려주자, 그녀는 의자에 쓰러지듯 주저앉으면서 이렇게 중얼거 렸다. "그분을 여기로 데려오는 것이 낫겠군요. 그것이 비용이 덜 들테니까요." 그 가 펼쩍 뛰었다. "여기로, 우리집으로. 당신이 그런 생각을 하다니." 그러나 이제 모든 것을 체념한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이렇게 대답했다. "어쩌겠어요, 여보. 내 잘못은 아닌 걸요." 미친 여자 여보게, 하고 마티유 당돌랭이 말했다. 오디새는 전쟁중에 있었던 참으로 끔찍한 한 일화 를 내게 상기시킨다네. 코르메이유 성밖에 있었던 내 소유지를 자네도 알 걸세. 프러 시아인 들이 도착했을 때 나는 그곳에서 살고 있었지. 그 당시에 이웃으로는 미친 듯한 여자 가 한 사람 있었는데, 불행의 충격으로 정신착란을 일으킨 여자였지. 예전에, 스물다섯 살 되던 해 에, 그녀는 단 한 달 새에 아버지와 남편과 갓난아기를 잃어버렸던 거야. 죽음이 한번 집안 으로 들어오면, 마치 죽음은 그 문을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언제라도 곧 다시 찾 아오게 마련이거든. 슬픔의 벼락을 맞은 그 가엾은 젊은 여인은 자리에 누워 여섯 주일 동 안이나 헛소리를 했다네. 그런 후에 일종의 평온한 피로가 이 격렬한 발작에 뒤이어 와서, 그 여인 은 움직이지도 않고 거의 먹지도 않으면서 눈만 굴리고 있었다네. 그녀를 일으키려고 할 적 마다 그녀는 마치 자기를 죽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소리를 지르곤 했어. 그래서 그녀를 언제 나 누워있게 내버려두었고, 단장을 시키기 위해서나 요를 뒤집으려고 할 때 외에는 그녀를 이불 밖으로 끌어낼 수가 없었지. 그녀 곁에는 늙은 하녀가 있었는데, 이따금 그녀에 게 물을 마시게 하거나 냉동한 고기를 약간 씹게 하기도 했지. 이 절망적인 영혼 속에 무슨 일 이 일 어나고 있었을까. 아무도 그것을 결코 알지 못했네, 그녀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 으니까. 그녀는 죽은 사람들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분명한 기억도 없이 슬프게 부질없는 공상 에 잠 겨 있었을까. 아니면 없어진 그녀의 사고력은 흐르지 않는 물처럼 움직이지 않고 있었 던 것 일까. 15년 동안이나 그녀는 그렇게 갇혀서 움직이지 않았다네. 전쟁이 일어났네. 그리고 12월 초순에 프러시아군이 코르메이유로 쳐들어왔네. 내게 는 그 것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네. 꽁꽁 얼어붙는 지독한 추위였지. 나 자신은 관절염 으로 꼼 짝하지 못하고 안락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그때 그들의 둔탁하고 율동적인 발소리가 들려왔 네. 창문으로 나는 그들이 지나가는 것이 보았지. 그들은 아주 비슷하게, 독특한 그 꼭두각 시 같은 동작으로 끝없이 열을 지어 행진을 하고 있었네. 그런 후에 지휘관들은 부 하들을 주민들에게 할당하였다네. 내게는 열일곱 명이었지. 이웃의 미친 여자에게는 열두 명 이 배치 되었는데, 그중에는 정말로 난폭하고 과격하고 거친 사령관 한 사람이 들어 있었다네. 처음 며칠 동안은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졌지. 부인이 환자라는 것을 옆에 있는 장 교에게 말해 두었기 때문에, 그는 그것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 아 한 번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 그 부인이 그를 역정나게 만든 거야. 그는 환자에 대해서 알아 보았지. 그의 안주인은 지독한 슬픔으로 15년 전부터 자리에 누워 있다는 대답이었네. 그러 나 그 장교는 아마 그 말을 전혀 믿지 않았던 모양이야. 그래서 그가 생각하기를, 그 가엾은 미친 여잔 자기 침대에서 떠나지 않는 것은 프러시아인을 보지 않으려고, 그들에게 말 을 하 지 않으려고, 그들에게 말을 하지 않으려고, 그들을 스치며 지나가지 않으려고 하는 오만 때 문일 거라고 상상한 거야. 그래서 그는 그녀가 자기를 맞아들이도록 강경히 요구했다네. 사람들이 그를 그녀의 방으 로 들어가게 했지. 그는 퉁명스러운 말투로 이렇게 부탁했네. "부인, 부탁입니다만, 일어나셔 서 당신을 뵈올 수 있도록 내려가 주셨으면 합니다." 그녀는 그를 향해 어슴푸레하고 공허 한 눈길을 돌리고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네. 그가 다시 말했네. "나는 무례한 것 은 참지 못합니다. 만일 당신이 자진해서 일어나지 않는다면 혼자서 당신을 걷게 할 방법을 찾아내 겠소." 그녀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있다는 듯이 여전히 옴쭉달싹하지 않았다네. 장 교는 이 고요한 침묵을 최대의 경멸의 표시로 생각하여 노발대발했지. 그래서 그는 이렇게 덧 붙였다 네. "만일 당신이 내일도 내려오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는 나가버렸어. 이튿날 늙은 하녀는 어쩔 줄 몰라 그녀에게 옷을 입히려고 했지. 그러나 그 미친 여자는 발보둥을 치면서 울부 짖기 시작했다네. 장교가 재빨리 올라왔고, 하녀는 그의 무릎에 매달리며 호소했다네. "그러 려고 하지 않아요, 선생님. 그러려고 하지 않아요. 용서해 주세요. 참으로 불행하신 분입니 다." 그 군인은 화가 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하들을 시켜 그 여인을 침대에서 차마 끌어낼 수는 없어서 난처해하고 있었지. 그러다가 갑자기 그가 웃음을 터뜨리더니 독일어로 명령을 내렸네. 그리고 곧 한 분견대가 부상자를 운반하듯이 매트를 떠받치고 나오는 것이 보였네. 조금 도 흐트러뜨리지 않은 그 잠자리 속에서 미친 여자는 여전히 말이 없었고, 누워 있게 만 해 준다면 일어나는 일들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이 조용히 없었네, 뒤에는 한 남자가 여자 의 옷 보따리를 들고 있었고, 장교가 두 손을 비비면서 말했네. "당신이 혼자서 옷을 입을 수 없는 지, 그리고 조금도 걷지 못하는지 우리는 똑똑하게 보게 될 거요." 그러고는 수행원 들이 이 모빌르 숲 쪽으로 멀어져 가는 것이 보였네. 두 시간 후에는 병사들만이 돌아왔더군. 그 후 로는 그 미친 여자를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네. 병사들은 그녀를 어떻게 했을까. 그녀 를 어디 에 갖다 놓았단 말인가. 전혀 알 수 없었다네. 그때는 눈이 밤낮으로 내려, 들과 숲 은 차가 운 이끼가 하얗게 덮인 속에 파묻혀버렸네. 늑대들은 우리 문앞에까지 와서 울부짖곤 했지. 그 없어진 여인에 대한 생각은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네. 그래서 정보를 얻으려고 몇 번 프러시아 당국에 교섭도 해보았지. 하마터면 내가 총살을 당할 뻔하기도 했어. 봄이 다시 돌아왔네. 점령군이 물러갔어. 내 이웃집은 여전히 닫혀진 채로 있었고, 오솔길 에는 풀이 무성하게 돋아났네. 늙은 하녀는 겨울 동안에 죽어버렸지. 이제는 아무도 그 사건 을 염두에 두지 않았는데, 나만이 줄곧 그것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네. 그 여인을 그들 이 어떻게 했을까. 그녀는 숲을 가로질러 도망쳤을까. 어떤 곳에서 그녀를 거두어들 여, 그녀 에 관해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 없어서 어느 병원에서 보호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무것 도 내 의혹을 풀어주지는 못했네. 그러나 시간이 조금씩 내 마음의 걱정을 가란앉혀 주었다 네. 그런데 다음해 가을에, 오디새가 떼를 지어 지나갔네. 그리고 내 관절염도 좀 나 아졌기 때문에 숲에까지 천천히 걸어갔었네. 나는 부리가 긴 새를 네다섯 마리 잡았는데, 그 중의 한 마리가 가지가 가득한 도랑으로 떨어졌던 거야. 나는 그 새를 줍기 위해서 그곳으로 내려가 지 않으면 아 되었지. 그런데 갑자기 그 미친 여자에 대한 생각이 주먹으로 얻어맞은 듯이 내 머리에 떠오르는 거야. 다른 많은 사람들도 그 흉악한 해에 어쩌면 이 숲속에서 죽었을 는지도 모르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자네에게 말하는데, 나는 그 불쌍한 미친 여자의 머리를 발견했다고 확신하네. 틀림없어. 그리고 갑자기 나는 깨달았네. 모든 것을 알아차렸네. 그들은 매트 위에 있었던 그 여인을 춥고 황량한 숲속에 그대로 내버렸던 거야. 그리고 자기의 고정관념에 충실한 그 여인 은 두 텁고 가벼운 솜털같이 부드러운 눈 밑에서 팔다리 한 번 움직이지 않고 죽어갔던 것 일세. 그런 다음에는 늑대들이 그녀를 뜯어먹은 것이지. 그리고 새들은 찢어진 침구의 양털 로 그 들의 보금자리를 만들었던 것이야. 나는 그 슬픈 해골을 간직하고 있다네. 그리고 우 리의 자 식들은 더 이상 절대로 전쟁을 보지 않도록 기원한다네. 미뉴에트 큰 불행도 그다지 나를 슬프게 하지는 않습니다. 장 브리델이 말했다. 그는 회의주 의자로 인정받고 있는 노총각이었다. 나는 아주 가까이에서 전쟁을 목격했었지요. 연민 없이 시체들 을 건너뛰기도 했습니다. 자연이나 인간들의 독한 잔인성은 우리들로 하여금 공포와 분개로 부르짖게 할 수는 있지만, 그러나 어떤 가슴을 에는 듯한 사소한 것을 보았을 때 등 줄기를 타고 내리는 그 전율이나 고통스러운 느낌은 조금도 주지 못합니다.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심한 고통은 물론, 어머니로서는 아이를 잃는 것이고, 한 성인으로서는 어머니를 여의 는 것입니다. 그것은 격렬하고 무서운 것이며, 또 혼란에 빠지는 일이며, 가슴이 찢 어지는 일입니다. 그러나 피가 흐르는 큰 상처가 치유되듯이 그런 큰 불행 역시 치유됩니다. 그런데 어떤 해후, 흘끗 보고 예측하는 어떤 일, 어떤 은밀한 슬픔, 어떤 운명의 배신, 이런 것들은 우리 마음속에 고통스러운 생각의 세계를 모두 휘저어놓고, 우리 앞에 갑자기 복잡하 면서도 고칠 수 없는 심적인 고통의 신비로운 문을 슬며시 열어줍니다. 그 고통들이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만큼 그것은 더욱 깊고, 그 고통들이 거의 파악할 수 없어 보이는 만큼 그것은 더욱 심하며, 그 고통들이 꾸며낸 것같이 보이는 만큼 그것은 더욱 끈질긴 것입니다. 그리 고 그것 은 우리의 마음속에 슬픔의 자국 같은 것, 쓰디쓴 맛, 환멸감 같은 것을 남겨놓는데, 그것을 몰아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언제나 내 눈앞에는 두세 가지의 것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확실히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마치 치유될 수 없는 가늘고 긴 바늘 자국처럼 내 마음속에 들어와 있습 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재빠른 인상에서 내게 남겨진 감동을 어쩌면 이해하지 못할지 도 모 릅니다. 나는 그중에서 하나만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것은 아주 오래 된 일이지만, 어제 일 처럼 생생합니다. 오직 내 상상만이 내 감동의 쓰라린 결과를 감당하고 있는지도 모 르겠습 니다. 내 나이 오십입니다. 그때는 젊었고, 법률을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염세적인 철 학이 배 어들어 약간 침울하고 약간 몽상적이었던 나는 떠들썩한 카페나 고함을 질러대는 친 구들, 어리석은 여자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일찍 일어났습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 는 즐거움의 하나는 아침 여덟 시경에 혼자서 뤽상부르의 묘판을 산책하는 것이었습 니다. 여러분은 그 묘판을 모르고 계시겠지요. 그것은 전세기의 잊혀진 정원 같고, 할머니의 인자 한 미소같이 호감이 가는 정원이었습니다. 울창한 생울타리는 좁고 고른 오솔길을 갈 라놓고, 그 오솔길은 질서 있게 전지한 우거진 가지들이 두 벽을 이루는 사이로 고요히 나 있 었습니 다. 정원사의 커다란 가위는 쉬지 않고 칸막이를 이룬 가지들을 나란히 다듬었고, 군 데군데 에는 꽃이 만발한 화단들과, 소풍 가는 학생들처럼 질서 있는 묘목 밭이 있었으며 또 한 화 려한 장미들이 한군데에 모여 있거나 혹은 많은 과실나무들과 마주치기도 했지요. 이 매혹 적인 작은 숲의 한 귀퉁이는 온통 꿀벌들의 세상이었습니다. 화단 위로 교묘하게 사이 를 둔, 짚으로 된 그들의 집들은 마치 바느질하는 골무의 입구처럼 태양을 향해 그 큰 문들이 열려 있었습니다. 길을 따라 내내 가노라면 윙윙거리는 금빛 파리들을 만나곤 하였는데, 그 것이야 말로 이 평화로운 장소의 진짜 주인이고 회랑 같은 이 조용한 오솔길의 진짜 산책자들 이었 습니다. 나는 거의 아침마다 그곳에 갔었습니다. 그리고 벤치에 앉아 책을 읽었습니 다. 때로 는 책을 무릎 위에 놓고 공상에 잠기기도 하고 내 주위에서 들리는 생존하고 있는 도 시, 파 리의 소음을 듣기도 하고, 또는 옛날식으로 된 이 소사나무 가로수 길의 무한한 휴식 을 즐 기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곧 울타리의 문이 열리자마자 그 장소를 찾아오는 사람은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이따금 나는 그 덤불 귀퉁이에서 이상한 작은 노인 한 사람과 마주치고 했거든요. 그는 은고리가 달린 구두를 신고 무릎께로부터 헐렁하게 퍼진 바지를 입었으며, 스 페인식 의 담배 빛깔이 나는 프록코트를 걸치고 넥타이 대신에 레이스를 매었으며, 넓은 차 양에다 큰 털을 꽂은, 아주 옛날을 생각나게 하는 거짓말 같은 회색 모자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는 말라도 너무 말랐고, 앙상한 얼굴을 찌푸리면서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그의 생기 있는 눈 은 번득이면서, 계속 움직이는 눈꺼풀 밑에서 심하게 움직였습니다. 그는 언제나 손에 는 둥 그스름한 금 손잡이가 달린 화려한 단장을 들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에게 있어서 어떤 훌륭 한 추억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 영감님은 처음에는 나를 놀라게 했으나, 나중에는 몹시도 내 흥미를 끌었지요. 그래서 나는 나뭇잎들의 벽 너머로 그의 동정을 살피기도 하고, 들키지 않으려고 작은 숲의 에움길에서 걸음을 멈추면서 멀찍이 그를 따라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그 영감님은 자기 혼자뿐이라고 생각하고 이상한 동작을 하기 시작 했습니다. 처음에는 살짝 몇 번 껑충거리더니, 그 다음에는 절을 했습니다. 그런 후 에는 가 느다란 다리로 민첩하게 깡충깡충 뛰어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깡충깡충 뛰면 서 능란하게 빙그르르 돌기 시작했고, 이상한 태도로 심하게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 습니다. 그는 마치 대중 앞에서처럼 미소를 짓고 거드름을 피웠으며, 두 팔을 구부려 둥글게 하면서 꼭두각시 같은 빈약한 몸을 비틀어 허공에다 감동적이면서도 우스꽝스러운 절을 가볍 게 보 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춤을 추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놀라움으로 아연해 있었 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과 나, 둘 중에서 누가 미쳤는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멈춰서더니 무대 위의 배우들처럼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러고는 우아한 미소를 지으 며 뒷 걸음질을 하면서 몸을 굽혔고, 전지가 잘된 두 줄의 질서 있는 나무들에게 떨리는 손으로 여배우가 하듯 키스를 던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무게 있게 산책을 계속하는 것 이었습 니다. 그날부터 나는 그를 언제나 지켜보았습니다. 아침마다 그는 그 거짓말 같은 체 조를 다 시 사작하곤 하였지요. 그에게 말을 걸어보고 싶은 욕구를 억제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감히 그에게 인사를 하고 말을 건넸습니다. "오늘은 날씨가 참 좋군요, 선생님" 그 는 몸을 굽혀 인사를 했습니다. "예, 예전의 날씨 같군요." 일주일만에 우리는 친구가 되었습 니다. 그 리고 그의 경력을 알게 되었지요. 그는 루이 15세 때 오페라 극장의 무용 선생이었 습니다. 그의 근사한 단장은 클레르몽 백작이 선물한 것이었어요. 그에게 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그는 쉬지 않고 수다를 떠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나는 카스트리와 결혼을 하였습니 다. 원 하신다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만, 그녀는 해질녘밖에는 여기에 오지 않습니다. 아시 다시피 이 정원은 우리들의 기쁨이고 생명입니다. 옛것 중에서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이라고 는 이 것이 전부지요. 이것이 없다면 우리는 더 이상 살아갈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이 정원 은 오래 되고 품위가 있지요, 안 그래요. 나는 여기에서 내 젊은 시절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공기 를 마시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답니다. 아내와 나는 여기에서 매일 오후를 보내지요. 그러나 나는 아침부터 옵니다. 일찍 일어나거든요." 나는 점심을 마치자마자 뤽상부르로 다 시 갔습 니다. 그러고 나서 곧 검은 옷을 입은, 키가 자그마한 노부인에게 예의를 차려 팔을 내주고 있는 내 친구를 알아보았고, 나는 노부인에게 소개되었습니다. 그분이 바로 카스트리 였는데, 그녀는 왕에게도, 왕자들에게서도 사랑을 받았으며, 세상에다 사랑의 향기를 남겨놓은 것 같 은 그 품위 있는 시대에 사랑받은 위대한 무용가였습니다. 우리는 돌의자에 앉았습니다. 때는 5월이었습니다. 꽃향기가 깨끗한 오솔길에 날아 다녔습 니다. 따뜻한 햇빛은 나뭇잎 사이로 미끄러지듯 스며들어, 우리들 위로 널따란 빛의 방울들 을 뿌리고 있었습니다. 카스트리의 검은 옷은 빛으로 온통 젖어 있는 듯이 보였습니 다. 정원 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멀리서 삯마차가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나는 늙은 무 용가에 게 말했습니다. "미뉴에트란 어떤 춤이었는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노인은 몸을 떨 었습니 다. "미뉴에트란 춤의 여왕이지요. 그리고 여왕들의 춤이고요. 아시겠어요. 왕들이 없 어진 이 후부터 미뉴에트도 없어졌지요." 그는 미사여구로 내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극도의 찬사를 길게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춤의 스텝, 모든 동작, 자세 등을 묘사해 달라고 했지요. 그는 이야기가 혼란해져 자기의 무능에 몹시 화가 났기 때문에 신경질적이 되고 비탄 에 잠 겨버렸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여전히 말없이 무게 있게 앉아 있는 그의 옛 동료를 돌 아보면 서 말했습니다. "엘리즈, 곤란하겠지만, 이분에게 그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지 않겠 소." 그녀 는 불안한 눈으로 사방을 둘러보고 나서는, 한마디 말도 없이 일어나 그의 앞으로 와 서 자 리를 잡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잊을 수 없는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어린애 같은 태도를 꾸 며가지 고 왔다갔다하면서 서로 미소를 지었으며, 몸을 좌우로 흔들어 움직이다가 몸을 굽혀 인사 하고, 깡충깡충 뛰었습니다. 그들은 마치 예전에는 아주 솜씨 좋은 직공이 그 시대의 방법에 다라 조립한 것이나, 지금은 조금 부서진 낡은 기계가 춤추게 하는 두 개의 늙은 인 형과도 같았습니다. 나는 이상한 감동으로 마음이 혼란해지고, 설명할 수 없는 우울함으로 감동이 되어 그들을 바라보았습니다. 나는 마치 애처로우면서도 우스꽝스러운 어떤 모습을, 한 세기 나 뒤진 구식 망령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웃고 싶기도 했고 울고 싶기도 했습니 다. 갑 자기 그는 멈추었습니다. 그들은 춤추기를 끝마쳤습니다. 잠시 그들은 마주 보면서 의외의 태도로 얼굴을 찌푸리고 그렇게 서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들은 흐느끼면서 서로 껴 안았습 니다. 사흘 후에 나는 시골로 떠났습니다. 그들은 다시 보지 못했습니다. 2년 후에 파리로 다시 돌아왔을 때에는, 그 묘판은 헐려 없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미로 같은 그 길들과 과거의 냄새 그리고 소사나무 가로수길의 그 우아한 에움길이 있던 예전의 그 사랑하던 정원 이 없 어진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들은 죽었을까요. 아니면, 희망도 없는 망명자들 처럼 현 대의 거리를 방황하고 있을까요. 우스꽝스러운 유령 같은 그들은 달빛에, 무덤의 가장 자리를 이루고 있는 오솔길을 따라 묘지의 노송나무 사이에서 환상적인 미뉴에트를 추고 있을 까요. 그들에 대한 추억은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고 끊임없이 따라다니며 나를 몹시 괴롭혔 으며, 마치 하나의 상처처럼 내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아마 이것을 우습게 생각하 시겠지요. 의자 고치는 여인 베르트랑 후작댁에서 수렵 해금을 위한 만찬이 끝날 무렵이었다. 열한 명의 사냥꾼 과 여 덟 명의 젊은 부인 그리고 그 지방의 의사가 과실과 꽃으로 뒤덮이고 조명으로 장식된 커다 란 식탁 주위에 앉아 있었다.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래서 대단한 토론 이 벌 어졌는데, 그것은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잇는 것은 단 한 번인가 아니면 여러 번인가를 알기 위한 영원한 논쟁이었다. 하나의 진지한 사랑밖에 결코 가지지 못했던 사람들의 예를 들었 다. 또한 여러 번 열렬하게 사랑했던 다른 사람들의 예도 들었다. 남자들은 대체로 열정은 마치 질병처럼 같은 사람에게 몇 번이고 침범할 수 있는 것이며, 만일 그 사람 앞에 어떤 장애물이 있으면 그를 죽일 수도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관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여자들의 의견은 관찰보다는 시적 감흥에 더욱 의지하게 마련이라 서, 사랑 은, 진정한 사랑은, 가장 위대한 사랑은 한 인간에게는 단 한 번밖에 없는 것이며, 그 사랑 은 벼락과도 같아서 그것에 맞은 마음은 너무도 지치고 황폐해지며 소진되어 버리기 때문에 어떤 다른 강력한 감정도 또 어떤 꿈조차도 다시 싹틀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많은 사랑을 한 후작은 이러한 신념에 맹렬히 항쟁을 하였다. "여러분에게 말씀드 립니다 만, 사람이란 온 힘을 다해서 그리고 온 영혼을 다해서 몇 번이고 사랑할 수 있는 것 입니다. 여러분들은 마치 두 번째의 열렬한 사랑이 불가능하다는 증거인 것처럼 사랑으로 인해 자살 한 사람들의 예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들에게 답하겠습니다. 만일 그들이 자살을 하는 그런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지 않았더라면, 그들에게서 사랑이 다시 싹틀 수 있는 모든 기회를 제거해 버리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치유되었을 거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들 은 다시 시작했을 것이고, 영원히, 죽을 때까지 다시 시작할 것입니다. 사랑을 하는 사람들 은 마치 술꾼과도 같습니다. 술을 마셔본 사람은 술을 또 마실 것이고, 사랑을 해본 사람은 또 사랑 할 것입니다. 그것은 기질과 관계가 있는 일이지요." 사람들은 시골로 은퇴를 한 파 리 출신 의 늙은 의사를 중재자로 삼았다. 그에게 의견을 들려달라고 청했다. 정확히 말해서 그는 자 기 의견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후작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것은 기질과 관계 있는 일입 니다. 나로 말하자면, 단 하루도 쉬지 않고 55년을 지속한 그리고 죽음으로 끝이 난 한 열정 을 알고 있습니다." 후작 부인이 손뼉을 쳤다.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그렇게 사랑을 받는다 는 것은 얼마나 꿈 같을까요. 그런 열렬하고도 감동적인 애정에 완전히 에워싸여 55년 을 산 다면 얼만 행복할까요. 그 남자는 얼마나 행복했을 것이며, 그와 같이 열렬히 사랑했 던 사람 의 인생은 얼마나 축복받은 것이었을까요." 의사는 미소를 지었다. "사실, 부인. 사랑을 받은 사람이 남자였다는 그 점에 관해 서는 옳 게 생각하셨습니다. 그 사람은,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이 마을의 약제사인 슈케씨입니 다. 여 자로 말하자면, 그 부인은 여러분들도 또한 잘 아시는, 해마다 저택으로 오는 의자 고치는 할머니입니다. 더 잘 이해하실 수 있도록 이야기해 드리죠." 부인들의 찬탄은 사그라 져버렸 다. 흥이 깨진 그들의 얼굴은 "쳇" 하고 경멸의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마치 사랑이란 훌륭한 사람들만의 관심에 어울리는, 세련되고 품위 있는 사람들에게만 엄습하는 것이라고 생각하 는 듯했다. 의사가 다시 말했다. 석 달 전에, 나는 그 할머니의 임종에 불려갔었습니 다. 그녀 는 그 전날, 그녀의 집 구실을 했던 마차로 도착해 있었습니다. 마차는 여러분들도 보 신 적 이 있는 그 노마가 끌었고, 또 그녀의 친구이자 보호자인 두 마리의 커다란 검정 개들 이 따 라다녔지요. 사제가 벌써 거기에 와 있었습니다. 그녀는 우리를 자기의 유언 집행인으 로 삼 았고, 유언의 의미를 우리에게 공개하기 위해서 자기의 온 생애를 이야기하였습니다. 나는 그보다 더 기구하고 그보다 더 비통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분의 아버지도 의자 고치는 사람이었고, 그분의 어머니도 의자 고치는 여자였습니 다. 그 녀는 한 번도 땅에 세워진 집에서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녀는 누더 기를 걸치고, 몸에는 이가 들끓고, 더러운 모습으로 방황했습니다. 그들은 도랑가를 따라가 다가 마을 입구에서 멈추곤 하였습니다. 그러고는 마차에서 말을 풀면, 말은 풀을 뜯 어먹고 개는 다리 위에다 주둥이를 올려놓고 잠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어 머니가 길가의 느릅나무 그늘에서 그 마을의 낡은 의자들을 모두 대강 수선하고 있는 동안, 어린 소녀는 풀밭에서 뒹굴었습니다. 이 이동하는 집 속에서는 별로 이야기를 하지 않았 습니다. "의자 고치세요." 하는 너무도 잘 알고 잇는 그 소리를 지르면서 누가 집들을 한바퀴 돌 것 인가를 결정하기 위해 필요한 몇 마디를 하고 나서, 그들은 서로 마주 보거나 나란히 앉아 짚을 엮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린아이가 너무 멀리 가거나 혹은 마을의 어떤 아이와 사귀려고 들면, 아버지는 노한 음성으로 그녀를 부르곤 했습니다. "이리로 돌아오지 못해, 못된 것아."이것이 그녀가 듣는 유일한 애정의 말이었습니다. 그녀가 좀더 자라자, 파손된 의자의 밑바닥을 거두어들이게 하려고 그녀를 내보냈 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여기저기에서 몇몇 아이들과 대강 알게 되었지요. 그런데 이번에는 그 새 친 구들의 부모가 자기 아이들을 난폭하게 불러들이는 것이었어요. "이리로 오지 못해, 이 장난 꾸러기야. 거지들하고 이야기를 하다니." 종종 어린 녀석들은 그에게 돌을 던지기도 했습니 다. 부인들이 그녀에게 몇 푼이라도 주면 그녀는 그것을 소중하게 간직했습니다. 어느 날, 그 녀는 그때 열한 살이었습니다. 그녀가 이 지방을 지나가다가 묘지 뒤에서 친구에게 동 전 두 푼을 빼앗기고 울고 잇는 어린 슈케를 만났습니다. 불우한 소녀가 보잘것없는 머리 속으로 언제나 만족하고 즐거우리라고 상상했던 그런 꼬마들의 하나가 그 어린 부르주아의 눈물은 그녀를 뒤흔들어놓았습니다. 그녀가 다가가 그의 슬픔의 이유를 알았을 때, 그녀는 저 축했던 전부인 7수를 그의 손에 쏟아주었습니다. 물론 그 아이는 눈물을 닦으면서 돈을 받았 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미칠 듯이 기뻐서 대담하게도 그에게 키스를 하였습니다. 그는 돈을 주 의 깊 게 바라보고 있느라고 그녀가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습니다. 자기를 밀어내지도 않고 때리지 도 않는 것을 알자, 그녀는 다시 키스했습니다. 두 팔에 가득히, 마음에 가득히 그를 껴안았 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달아났습니다. 이 불쌍한 머리 속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그녀가 그 소년에게 애착을 갖게 된 것 은, 떠돌이의 재산을 그에게 모두 주어버렸기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애정의 첫 키스 를 그 에게 했기 때문이었을까요. 신비로움이란 어린애에게나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몇 달 동안 그 녀는 묘지의 그 구석과 어린애의 꿈을 꾸었습니다. 그를 다시 만나리라는 희망 속에서 그녀 는 양친의 돈을 훔쳤습니다. 의자 고친 돈에서 혹은 그녀가 사러 가는 생활 필수품에 서, 여 기저기에서 한 푼씩 그러모았습니다. 그녀가 다시 돌아왔을 때 주머니 속에는 2프랑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아주 깨끗한 모습을 한 어린 약사를 그의 아버지의 가게 유리창 너머로, 붉은 표본병과 촌충의 표본 사이로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짙은 붉은 빛 물에 대 한 찬양과 반짝이는 수정 제품에 대한 극도의 예찬으로, 그녀는 매혹되고 감동되고 넋 을 잃 어 그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마음속에 지울 수 없는 추억을 간직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음해에 학교 뒤에 서 친 구들과 구슬치기를 하고 있는 그를 만났을 때, 그녀는 그에게 달려들어 그를 품에 안 고 격 렬하게 키스를 퍼부었습니다. 그는 무서워 울부짖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를 달 래기 위 해서 그녀는 돈을 주었습니다. 3프랑 20상팀, 정말로 큰돈이었습니다. 소년은 눈을 휘 둥그렇 게 뜨고 그것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는 그것을 받고 그녀가 원하는 만큼 애무하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러고도 4년 동안, 그녀는 자기가 모아둔 돈을 모두 그의 손에 쏟아주 었습니 다. 소년은 키스를 승낙하는 대신에 의식적으로 그것을 착복했던 것이지요. 어느 때에 는 30 수, 어느 대에는 2프랑, 또 어느 때에는 12수, 그녀는 돈이 적어 괴롭고 창피스러워 울었지 요. 그 해에는 돈벌이가 안되었거든요., 그리고 마지막번에는 둥글고 큰 동전인 5프랑 이었는 데, 소년은 그것을 보고 만족한 웃음을 지었습니다. 그녀는 이제 그에 대한 생각밖에 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소년도 그녀가 돌아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렸습니다. 그러다가 그녀 를 보 면 그녀 앞으로 달려갔고, 그것이 소녀의 마음을 뛰게 했습니다. 그 후에는 소년이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가 중학교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그녀 는 교 묘하게 물어서 그것을 알아냈지요. 그래서 그녀는 부모님의 여정을 바꾸게 하려고 끝없는 능란한 교섭을 벌였고, 마침내 방학때 이곳을 지나가게 했습니다. 그녀는 성공을 했지 만, 그 것은 일년 동안 꾀를 쓴 다음에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녀는 2년 동안이나 그를 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녀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그는 변해 버렸고, 잘랐으며, 아름 다워졌 고, 금단추가 달린 제복을 입어 위엄이 있어 보였습니다. 그는 그녀를 못 본 체하고 그녀 곁 을 거만하게 지나갔습니다. 그녀는 이틀 동안이나 울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녀는 다시 돌아왔 으나, 그에게 감히 인사도 하지 못하고 그의 앞을 지나갔으며, 그는 그녀 쪽으로 눈 길조차 돌리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그를 미칠 듯이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내게 이렇 게 말하더군요. "의사 선생님, 그분은 제가 이 세상에서 보았던 유일한 남자입니다. 저는 다 른 남자들이 존재하고 있는지 어떤지도 모릅니다." 그녀의 양친이 죽었습니다. 그녀는 그들의 직업을 계승했지만, 한 마리 대신에 두 마리의 개를 가졌습니다. 그 개들은 감히 맞서볼 수 없을 만큼 무서운 개들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 녀의 마음에 여전히 살아남아 있는 이 마을로 다시 돌아오자, 그녀는 애인의 팔을 끼 고 슈 케의 약국에서 나오는 젊은 여자를 보았습니다. 그 여자는 그의 부인이었습니다. 그는 결혼 을 했던 것이지요. 그날 밤, 그녀는 면사무소 광장에 있는 연못에 몸을 던졌습니다. 밤늦게 돌아가던 한 술꾼이 그녀를 건져내어 약국으로 데려갔습니다. 슈케네 아들이 실내복을 입고 그녀를 치료하기 위해 내려왔지만, 그는 그녀를 모르는 체하고, 옷을 벗기고 마찰을 하고 나 서 엄격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아니, 당신 미쳤구려. 그런 바보같은 짓 을 하면 안 돼요." 그녀는 쾌유시키는 데어는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그가 그녀에게 말을 했 던 것입 니다. 그녀는 오랫동안 행복했습니다. 그녀가 치료비를 지불하려고 고집을 부렸는데도 그는 아무것도 받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온 생애는 이렇게 흘러갔습니다. 그녀는 슈케를 생각하면서 의자를 고쳤습니 다. 해 마다 그녀는 유리창 너머로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녀는 그의 약국에서 자질구레한 약들을 사는 것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녀는 그를 가까이에서 보았고, 그에게 말을 했 으며, 또 돈을 주었던 것이지요. 처음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그녀는 올봄에 죽었습니 다. 내 게 이 슬픈 이야기를 모두 들려준 후에, 그녀는 자기가 그토록 참을성 있게 사랑했던 그 사 람에게 생전에 저축했던 돈을 모두 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오직 그를 위해서 일을 했고, 저축하기 위해서는 굶기조차 했으며, 그녀가 죽었을 때 적어도 한 번은 그가 반드시 자기를 생각해 줄 것이기 때문이라고 그녀는 말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내게 2천3백27프랑을 주었습니다. 나는 신부님에게 장례비로 27프랑을 양도했고, 그 나머지 는 그녀가 마지막 숨을 거둘 때에 가지고 왔습니다. 이튿날, 나는 슈케씨네 집으로 갔습니 다. 그들 내외는 마주 앉아 점심 식사를 마치고 있었는데, 그들은 뚱뚱하고 혈색이 좋았으 며, 약 냄새를 풍기면서 거드름을 피우고 만족한 듯이 보였습니다. 그들은 내게 앉으 라고 했 고, 버찌 술을 주어서 그것을 받았습니다. 그러고는 그들이 눈물을 흘리리라고 확신 하면서 흥분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슈케는 자기가 그 떠돌이 여자, 그 의자 고치는 여자, 그 떠돌이 품팔이꾼에게 사랑 을 받 았다는 것을 알자, 마치 자기의 명성, 점잖은 사람으로서의 존경, 개인적인 명예, 그에게는 생명보다도 더 값진 품위 있는 그 무엇을 그녀가 훔치기라도 한 것처럼 분개하여 펄펄 뛰었 습니다. 그의 부인도 마찬가지로 흥분하여 이 말만 되풀이하였습니다. "그 거지 같은 여자 가, 그 거지 같은 여자가, 그 비렁뱅이 여자가." 다른 말을 생각해 낼 수 어가 없었 던 것이 지요.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귀 위에서 뒤집혀진 차양 없는 회색 모자를 쓴 채, 식탁 뒤쪽에서 성큼성큼 거닐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더듬거리며 말했습니다. "의사 선생님 은 그걸 이해할 수 있습니까. 그건 한 남자로서는 소름끼치는 일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아, 그 여자 가 살아 있을 때 그것을 알았더라면, 경찰을 시켜 체포토록 해서 감옥에 처넣었을 텐 데 말 입니다. 그러면 그 여자는 거기서 나오지 못했을 겁니다, 틀림없이." 나는 내 경건한 발걸음 이 가져온 결과에 어리둥절해 있었습니다. 나는 무어라고 말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몰 랐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 임무를 완수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말했습니다. 그 여 자는 2 천 3백 프랑에 달하는 자기의 저금을 당신에게 주라고 내게 맡겼습니다. 그러나 방금 당신 에게 알려준 것이 당신을 매우 불쾌하게 만든 모양이니 이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 는 것 이 어쩌면 최선책이 될 것 같습니다." 그들, 그 남자와 여자는 급격한 감동으로 움직일 수가 없어서 나를 쳐다보고만 있 었습니 다. 나는 주머니에서 그 돈을 꺼냈습니다. 그것은 각 나라의 그리고 모든 특징이 있 는, 금화 와 동전이 섞인 눈물겨운 돈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물었습니다. "어떤 결정을 내리 시겠습 니까." 슈케 부인이 먼저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그 여자의 유언이라면, 거절하 기가 매 우 어려울 것 같군요." 남편이 약간 당황하여 이렇게 말을 이었습니다. "어쨌든 그것 으로 우 리 아이들한테 무언가를 사줄 수 있겠군요." 나는 냉담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좋 으실 대 로." 그가 다시 말했습니다. "어쨌든 주세요. 그 여자가 당신에게 맡긴 것이니까. 우 리가 좋 은 일에 쓸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지요." 나는 그 돈을 건네주고 인사를 하고 나 왔습니 다. 이튿날 슈케가 나를 찾아와서 불쑥 이렇게 말했습니다. "헌데, 여기에다 마차를 남겨놓 았을 텐데요, 그, 그 여자가. 그것을, 그 마차를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아무것 도요. 원 하신다면 가져가세요." "잘됐어요. 됐어요. 그것으로 내 채소밭에 오두막집을 만들 겁니다." 그는 갔습니다. 나는 그를 다시 불렀지요. "그 여자는 늙은 말과 두 마리의 개를 남겨 놓았는 데요. 그것들을 원하세요." 그는 놀라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아, 아녜요. 정말이지 그것을 무엇에 쓰겠어요. 당신 마음대로 처분하세요." 그리고 그는 웃었습니다. 그러고 나 서 그가 손을 내밀어 나는 악수를 했습니다. 어쩌겠습니까. 한 지방에서 의사와 약사가 원수가 되어 서는 안 될 테니까요. 그 개들은 내 집에 왔습니다. 넓은 마당을 갖고 있는 사제는 말 을 가 졌지요. 마차는 슈케의 오두막집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돈으로 철도 채권 을 다섯 주 샀다더군요. 이것이 내 생애에서 알게 된 유일하고 깊은 사랑입니다. 의사가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눈에 눈물이 가득한 후작 부인이 한숨을 쉬었다. " 분명코,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여자들밖에 없다니까요." 달 빛 미리냥 신부는 논쟁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마르고 광신적이었으며, 언 제나 흥 분을 잘하지만 곧은 영혼을 지닌 키가 큰 사제였다. 그의 믿음은 너무나 확고부동해서 절대 로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자기의 신을 알고 있고, 그의 섭리, 의지, 의도를 꿰뚫어볼 수 있 다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골에 있는 그의 작은 사제관의 산책길은 큰 걸음 으로 거닐 때면, 가끔 한 가지 의문이 마음속에 일어나곤 했다. "왜 신은 그것을 만 들었을 까." 그러고는 신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집요하게 탐구했으며, 또한 거의 언제나 찾아 내었다. "주님, 당신의 섭리는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하고 독실한 겸손의 정열 속에서 속삭 이는 그 가 아니었다. 그는 혼자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저는 신의 종입니다. 그러하오니 당 신께서 역사하시는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만일 제가 알 수 없는 것이라면 추측이라도 해야만 합니 다." 자연 속에 있는 모든 것이 그에게는 절대적이고도 감탄할 만한 논리를 가지고 창조된 것처럼 보였다. "어째서"와 "무엇 때문에"라는 것이 언제나 좌우로 흔들렸다. 새벽은 잠에서 깨어난 사람들을 즐겁게 하려고 만들어졌고, 낮은 수확물을 익게 하려고 만들어졌다. 비는 그것에 물을 뿌리려고 만들어졌고, 저녁은 잠을 준비하기 외해 만들어졌다. 그리고 어두운 밤은 잠들기 위해 만들어졌다. 사계절은 농업의 모든 요구에 완전히 대응하고 있다. 자연은 의도를 지니지 않은 것이 없고, 그와는 반대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시기와 기후와 물질 의 엄격한 필요에 순응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사제에게 의혹이 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여자를 싫어하였다. 무의식적으로 여자를 증오하였다. 그리고 본능적으 로 여 자를 경멸하였다. 그는 종종 그리스도의 다음과 같은 말씀을 되풀이하였다. "여인이 여, 그대 와 나 사이에 어떤 관련이 있는가." 그러고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신 자신도 이 작 품에 대 해서는 만족하게 생각하지 않으신 것 같다." 여자란 그에게는, 어떤 시인이 말한 바 와 같이 열두 번이나 더럽혀진 어린애였던 것이다. 여자는 최초의 남자를 유혹하고 또 저주의 일을 영원히 계속하는 유혹자며, 나약하고 위험하고 신비스럽게도 마음을 어지럽히는 존 재였다. 그들의 타락한 육체보다도 더욱 그가 증오하는 것은 그들의 상냥한 영혼이었다. 종종 그는 자기에게 달라붙는 그들의 애정을 느껴왔었다. 그리고 그가 공략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여자들의 마음속에서 언제나 떨리고 있는 그 사랑하고자 하는 요구에 대해 서 화 가 치미는 것이었다. 그의 의견으로는, 신은 오직 남자를 시험하기 위해서 그리고 남자에게 시련을 겪게 하기 위해서 여자를 만드셨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방위를 위한 대비를 가지고, 함정에 대 한 두 려움을 가지고 여자에게 가까이 가야 하는 것이다. 아닌게아니라 여자가 팔을 내밀고, 남자 를 향해 입술을 벌린 모습은 아주 함정과 비슷하다. 수녀들로 말하자면, 그들의 맹세 가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은 오직 관대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기는 해도 그는 그들을 엄하게 대했다. 왜냐하면 그들의 사슬로 얽매인 마음, 겸손한 마음의 밑바닥에는 아직도 그 에게로 오는 그 영원한 애정이 살아 있음을 언제나 느끼기 때문이다. 그건 사제와 마찬가지였 다. 수 도사의 시선보다 더 신앙심으로 젖어 있는 그들의 시선 속에서, 그들의 성이 합세되어 있는 법열 속에서,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의 정열 속에서 그는 그것을 느꼈고, 이것이 그를 화나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여자의 사랑이었고, 관능적인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증 오할 애정을 그들의 순종에서도, 그에게 말을 할 때의 부드러운 목소리에서도, 내리깐 그들 의 눈에서도, 그리고 그들의 가혹하게 나무랐을 때 인종하면서 흘리는 눈물 속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수녀원의 문을 나서면서 그는 법의를 흔들며, 마치 위험 앞에서 도 망치기 라도 하듯이 다리를 죽죽 펴면서 걸어가는 것이었다. 신부에게는 조카딸이 하나 있 었는데, 그녀는 자기 어머니와 함께 이웃의 작은 집에서 살고 있었다. 그는 그녀를 병자 간호 담당 수녀로 만들려고 애를 썼다. 그녀는 예쁘고 경솔했으며, 또 빈정거리는 버릇이 있었다. 신부가 설교를 할 때도 그녀는 킥킥거리며 웃어댔다. 그리고 그녀에 대해 화를 내면 그녀는 힘껏 자기 가슴에다 신부 를 끌 어안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는 무의식적으로 포옹에서 몸을 배려고 열심이었다. 그러 나 이 포옹은 그에게 어떤 달콤한 기쁨을 맛보게 했고, 모든 남자의 마음속에 잠들고 있는 부성으 로서의 감동을 깨워놓는 것이었다. 신부는 종종 들길을 그녀와 나란히 걸으면서 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나 그녀는 거의 듣지 않고 눈에 보이는 삶의 행복으로 하늘 과 풀 과 꽃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이따금 그녀는 날짐승을 잡기 위해 달려갔다가 그것을 잡아가 지고 오면서 이렇게 소리쳤다. "보세요, 삼촌. 얼마나 에뻐요. 입을 맞추고 싶네요." "파리에 게 입을 맞추고 싶은" 이 욕구, 라일락의 열매에 입을 맞추고 싶은 이 욕구가 사제를 불안 하게 하고, 화나게 하고, 자극하였다. 그는 여자들의 마음속에 언제나 싹트고 있는, 부리 뽑 을 수 없는 애정을 거기에서 또 발견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리냥 신부의 가사를 돌보고 있는 성당지기의 아내가 조카딸에게 사랑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조심스럽게 알려주었다. 신부는 그 말에 무서운 동요를 느꼈 다. 그 래서 면도를 하고 있는 중이었으므로 얼굴에 가득 비누칠을 한 채 숨이 막혀 있었다. 곰곰 히 생각해 보고 말을 할 수 있는 상태가 되자 몸을 돌려 이렇게 소리쳤다. "그렇지 않 을 거 요. 당신은 거짓말을 하고 있구려, 멜라니." 그러자 시골 여자는 자기 가슴에다 손을 얹었다. "제가 만일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 우리 주님께서 저를 심판하실 겁니다, 신부님. 아 가씨는 매일 밤 어머니가 자리에 눕자마자 그리로 가는걸요. 두 분은 강가를 따라 걷지요. 열 시에 서 자정 사이에 거기로 가면 보실 수 있을 텐데요." 신부는 면도를 중지하고, 깊은 명상 시 간에 늘 하는 것처럼 심하게 걷기 시작하였다. 수염을 다시 깎기 시작하자, 그는 코에 서부터 귀에까지 세 번이나 베었다. 그날 온종일 그는 말이 없었고, 분개와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물리칠 수 없는 사랑 앞에서 사제의 분노에는 한 어린아이에 의해 농락당하고, 빼앗기고, 배신당한 도의적 인 아버 지로서의, 후견인으로서의, 영혼을 책임진 사람으로서의 울분이 추가되어 있었다. 그 것은 딸 이 부모와 상의 없이 또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남편을 선택했을 때 느끼는 부모들 의 이 기적인 숨막힘 같은 것이었다. 저녁을 들고 나서 책을 좀 읽으려고 했으나 그럴 수가 없어 서 점점 화가 났다. 열 시가 되자, 그는 자기의 지팡이를 쥐었다. 그것은 환자를 보러 갈 때, 밤 외출에 언제나 사용하는 어마어마한 떡갈나무 지팡이였다. 그는 시골 사람의 억센 팔힘 으로 위협적으로 검을 휘두르듯이 그 거대한 몽둥이를 돌리면서 미소를 띄우고 그것을 바라 보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것을 쳐들고, 이를 갈면서 의자를 내리쳤다. 빠개진 의자 의 등이 마룻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는 문을 열고 나가려다가, 거의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만큼 눈부시게 아름다운 달빛에 놀라 문간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교회의 신부나 꿈꾸는 시인들이 가져야 할 그런 정신 중의 하나인 열광하는 정신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창백한 밤의 숭고하고도 평 화로운 아름다움에 감동되어 갑자기 멍해짐을 느꼈다. 작음 정원에 있는 모든 것은 부드러운 달빛 에 잠겨 있었다. 줄지어 늘어선 과일나무들은 푸른 잎을 거의 걸치지 않은 가느다란 나뭇가 지들의 그림자를 산책길에 드리우고 있었다. 한편 집의 벽 위로 기어오른 거대한 인 동덩굴 은 감미롭고 설탕 같은 입김을 내뿜고 있었으며, 훈훈하고 밝은 밤 속에 일종의 향 기로운 영혼을 떠다니게 하고 있었다. 신부는 길게 숨을 들이마시기 시작했다. 마치 술꾼이 술을 마 시는 것처럼 공기를 마셨다. 그는 거의 조카딸은 잊은 채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넋을 빼앗 겨, 감탄을 하며 나아갔다. 들판으로 나오자, 그는 걸음을 멈추고 애무하는 듯한 달빛에 잠긴, 청명한 밤의 부 드럽고 도 나른한 이 매혹적인 아름다움 속에 잠긴 온 벌판을 바라보았다. 두꺼비들도 쉬지 않고 그들의 짧고 금속성인 음표를 허공에 던지고 있었고, 멀리서 밤꾀꼬리는 생각하게 하 는 것 이 아니라 꿈꾸게 하는, 그들의 낱알을 까는 듯한 음악과, 이 달빛의 유혹으로 입을 맞추기 위해 하는 그 가볍게 떨리는 음악을 혼합하고 있었다. 신부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마음은 약해져 있었다. 갑자기 풀이 죽고 지쳐버린 것 같은 느낌 들었 다. 그 는 자리에 앉아 그대로 있으면서 명상에 잠겨 신의 작품 속에서 신을 찬미하고 싶어 졌다. 저기, 물결치는 작은 강을 따라 포플러가 길게 꾸불꾸불 늘어서 있었다. 가느다란 김 이, 하 얀 수증기가 달빛에 스며들고, 희게 비추고, 빛나게 하고, 높다란 둑의 주위와 위로 걸려 있 으면서, 가볍고 투명한 솜 같은 구불구불한 물의 흐름을 온통 덮어씌우고 있었다. 사 제는 커 져가는 억제할 수 없는 감동이 영혼 밑바닥까지 파고들어 다시 한 번 걸음을 멈추었 다. 그 런데 어떤 의혹이, 막연한 불안이 그를 사로잡았다. 마음속에 가끔 제기되는 의문 중 의 하나 가 일어남을 느꼈다. 왜 신은 이것을 만들었을까. 밤이 잠을 위해, 무의식 상태를 위 해, 휴식 을 위해, 모든 것으로부터의 망각을 위해 예비된 것이라고 한다면, 어째서 밤은 낮보 다도 더 매혹적이고 새벽이나 저녁보다도 더 감미롭게 만들어졌을까. 그리고 어째서 태양보다 도 더 시적이고 또한 그처럼 사려 깊어서, 너무도 미묘하고 신비스러운 것들을 커다란 빛으 로 비 추기 위해 예비해 둔 것 같은 이 느리고 매혹적인 천체는 어둠을 이다지도 투명하게 만들려 고 하는 것일까. 노래를 잘하는 새들 중에서도 가장 솜씨 좋은 저 새는 어째서 다른 새들처럼 쉬지 않고, 이 어스름은 세상에 빛을 발하는가. 어째서 마음은 이렇게 떨리고 영혼은 이렇게 감 동되며, 육신은 이렇게 무기력해지는 것일까. 사람들이 잠자리에 들었기 때문에 아무도 보지 않는데, 왜 유혹이 이렇게 펼쳐지는가. 하늘에서 땅으로 던지는 이 숭고한 광경, 풍부한 시는 무엇을 위해 예비해 두는 것일까. 신부는 조금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저쪽, 풀 밭 가장 자리에, 빛나는 안개에 잠긴, 꼭대기가 둥근 나무들 아래로 나란히 걷고 있는 두 그 림자가 나타났다. 남자는 키가 컸고 여자의 목덜미에 손을 얹었으며, 이따금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 추었다. 그런데 그들을 위해 훌륭한 배경을 만들 듯, 그들을 에워싸고 있는 움직이지 않는 이 풍경이 갑자기 활기를 띠는 것이었다. 그들 두 사람은 한 사람처럼 보였으며, 이 고요하 고 조용한 밤을 위해 예비된 바로 그 사람과 같았다. 그리고 그들은 살아 있는 대답처 럼, 주 민이 그의 의문에 던져주는 대답처럼 사제를 향해 오고 있었다. 그는 심장이 뛰고, 깜짝 놀라 그대로 서 있었다. 룻과 보아스의 사랑과 같은, 성서 에 관한 그 무엇을 보고 있는 듯이 생각되었다. 그것은 성서에서 말하는 그 위대한 무대 장치 중의 하나에서 하느님의 뜻이 실현되고 있는 것과도 같았다. 그의 머리 속에서는 아가의 구절이, 격정의 고함이, 육체의 호소가, 불타는 애정의 시편에 있는 따뜻한 시정이 웅얼거리기 시작 하였다. 그래서 그는 생각했다. "신은 인간들의 사랑을 이상적으로 가리기 위해 이런 밤을 만드셨는지도 모른다." 그는 여전히 걷고 있는, 이 포옹한 한 쌍 앞에서 뒷걸음질을 하였다. 그것은 그의 조카딸이었다. 그는 지금 자기가 신을 거역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자문 해 보 았다. 신이 이와 같이 눈부신 아름다움을 분명하게 그의 주위에 있게 하는 것은 사랑 을 허 락하는 게 아닐까. 그는 마치 자기가 들어갈 권리가 없는 어떤 신전에 깊숙이 들어가 기라도 한 것처럼 부끄러움조차 느끼면서 정신없이 달아나고 말았다. 보석 사무실의 차장댁 야회에서, 랑탱씨는 그 소녀를 만나자 그물에 걸리듯이 사랑에 포 위되었 다. 그녀는 수년 전에 사망한 지방 세리의 딸이었다. 그 후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파 리로 왔 는데, 그녀의 어머니는 딸을 시집 보내려는 희망으로 각기 구역에 있는 몇몇 중류 가정을 자주 방문하였다. 모녀는 가난했으나 성품이 훌륭한고 조용했으며 또한 온순하였다. 딸은 현 명한 젊은이라면 자기 인생을 맡길 꿈을 꾸게 하는 그런 전형적인 정숙한 여자처럼 보 였다. 그녀의 수수한 아름다움은 천사와 같은 정숙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고, 입술에서 떠나 지 않 는 은은한 미소는 마음을 반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극구 칭찬 하였고, 그녀를 알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끝없이 이 말을 되풀이하였다. "저 애를 데려가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야. 저보다 더 훌륭한 아가씨는 찾을 수 없을 거야." 랑탱씨는 그때 연 봉 3천 5백 프랑을 받는 내무성의 주사였는데, 그녀에게 청혼을 하여 결혼하였다. 그는 그녀와 더불어 거짓말같이 행복하였다. 그녀는 너무도 능란한 살림 솜씨로 가정을 관리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사치스럽게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남편을 위해 서 친 절과 상냥한 마음씨와 교태를 다 부렸다. 그리고 그녀의 육체적 매력은 너무도 커서, 그들이 만나 6년이 지났어도 그는 신혼 때보다도 더욱 그녀를 사랑하였다. 그는 아내에 대해 서 두 가지 취미만은 못마땅하게 여겼는데, 그것은 극장에 가는 취미와 가짜 보석에 대한 취미였 다. 그녀는 친구들이, 그녀는 몇몇 하급 공무원의 아내들을 알고 있었다, 끊임없이 인기 있 는 연극의, 심지어 초연마저도 특등석을 그녀에게 얻어주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녀는 하루 종일 일을 한 후 몹시 피곤해 있는 남편을 싫어하건 좋아하건 이 오락에 데리고 가는 것이 었다. 그래서 그는 그녀가 알고 있는 어떤 부인과 연극 구경을 가면, 다음에는 그 부 인이 그 녀를 데리고 갈 것이 아니냐고, 그렇게 해줄 것을 간곡히 부탁하였다. 그녀는 그런 행 동 방 식이 어울리지 않는 듯이 생각되어 오랫동안 승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마침내 남편 의 환심을 사려는 마음으로 그렇게 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그래서 그는 그녀에게 한없 이 감 사해하였다. 그런데 극장에 가는 이 취미가 이윽고 그녀의 마음속에 몸치장에 대한 욕구를 생 겨나게 하였다. 그녀의 몸치장은 아주 소박하였다. 언제나 멋진 것은 사실이나 수수했었다. 그녀의 부드러운 맵시, 검소하면서고 미소짓는 그녀의 매혹적인 우아함은 소박한 옷에서 새로 운 풍 미를 얻게 해주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다이아몬드처럼 보이는 두 개의 커다란 색수정 을 귀에 달고 , 모조 진주 목걸이, 모조 금팔찌, 보석과 비슷한 가지각색의 유리 세공 품으로 장식된 머리빗으로 치장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런 싸구려 장식을 좋아하는 데에 약간 기분 이 상한 남편이 자주 이런 말을 되풀이했다. "여보, 진짜 보석을 살 능력이 없으면 자기의 아름다움과 우아함으로 장식된 자신을 보여주는 것이오. 이것이야말로 가장 진귀한 보석이 지." 그러나 그녀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면서 이렇게 되뇌었다. "왜 그러세요, 난 이것이 좋은데요. 이건 내 나쁜 습성이에요. 당신이 옳다는 것은 잘 알아요. 하지만 고칠 수 가 없군 요. 난 보석을 매우 좋아하거든요." 그러고는 손가락으로 진주 목걸이를 굴리면서, 깎여진 수정의 결정면을 번쩍거리게 하며 이렇게 되풀이하였다.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잘 만들어 졌는지 보세요. 틀림없이 진짜라고 할 거예요." 그는 미소를 띄우고 말했다. "당신은 집시의 취미를 가졌구려." 이따금 저녁때, 그들이 노변에 마주 앉아 있을 때면, 그녀는 랑탱씨의 말에 의하면 "싸구 려"가 들어있는 가죽 상자를 차 마시는 탁자 위에 올려놓고, 그 모조 보석들을 매우 조심스 럽게 살피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마치 은밀하고도 심오한 기쁨을 맛보고 있는 것과 도 같았다. 그러고는 고집을 부려 남편의 목에다 목걸이를 걸어놓고 마음껏 웃어대면 서 이 렇게 소리쳤다. "당신, 너무도 우스워요." 그러다가 그녀는 남편의 품으로 뛰어들어 미친 듯 이 입을 맞추는 것이었다. 어느 겨울 밤, 그녀는 오페라좌에 갔었는데 추위로 와들와 들 떨면 서 돌아왔다. 이튿날은 기침을 했다. 일주일 후에 그녀는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랑탱은 무덤 속으로 그녀를 따라가려고 했다. 그의 절망은 너무도 격심해서 한 달 동안에 머리가 백발이 되었다.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 가슴은 찢어지고, 죽은 아내의 모든 매력, 목 소리, 미 소, 추억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 그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울었다. 시간도 그의 고통 을 가라 앉혀 주지 못했다. 종종 사무실에 있는 시간에 동료들이 와서 그날의 일을 약간 이야 기하면, 갑자기 그는 뺨이 부풀어오르고, 코에 주름살이 지고, 눈에 눈물이 가득해지면서, 무 섭게 얼 굴을 찌푸리고 흐느껴 울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는 아내의 침실을 손대지 않고 그대로 보존해 두었고, 날마다 그 안에 죽치고 들 어앉아 아내 생각을 하였다. 모든 가구들이, 그녀의 옷조차도 마지막 날에 있었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그러나 생활이 그에게는 힘이 들었다. 그의 봉급이 아내의 손에 있을 때에는 모든 살림을 꾸려가는 데 넉넉했었는데, 지금은 혼자 몸인데도 부족하게 되었다. 그는 아내 가 어 떻게 자기에게 고급 포도주를 마시게 하고 맛좋은 음식을 먹게 해주었는지 어리둥절하 여 생 각해 보았다. 이제는 더 이상 그런 것들은 자기의 보잘것없는 수입으로는 얻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빚을 졌고, 궁여지책에 이른 사람들처럼 돈을 꾸러 쫓아다녔다. 마침 내 어느 아침, 한 푼도 없게 되자 월말까지는 꼬박 일주일이나 남아 있어서, 그는 무엇을 팔 아볼까 생각하였다. 얼른 아내의 "싸구려"를 처분해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왜냐하면 전 에 그를 화나게 했던 그 "겉치레"에 대해서 일종의 원한 같은 것이 마음 밑바닥에 있었기 때문 이다. 매일 그것을 보는 것조차 자기가 사랑했던 사람의 추억을 약간 손상시키는 것이었다. 그는 아내가 남기고 간 가짜 귀금속더미를 오래 찾았다. 생애의 마지막날까지 그녀 는 집 요하게 그것을 사서, 거의 매일 저녁 새 물건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는 그녀가 좋 아하던 것 같은 커다란 목걸이를 고르기로 하였다. 그것은 사실 가짜치고도 아주 공들여 만든 것이 라서 6, 7프랑은 충분히 나갈 것 같았다. 그것을 주머니에 넣고 믿음직스러운 보석상 을 찾으 면서 대로를 따라 직장이 있는 쪽으로 갔다. 그는 마침내 가게가 눈에 띄어 안으로 들어갔 지만 이렇게 자기의 가난을 드러내 보이고, 값도 안 나가는 물건을 팔려고 애쓰는 데 에 약 간 수치심을 느꼈다. 그가 상인에게 말했다. "이것이 얼마나 나가는지 알고 싶습니다. " 그 남자는 물건을 받아들고, 살펴보고, 돌려보고, 손으로 무게를 재고, 확대경으로 들여다 보았다. 그러고는 점원을 불러 아주 낮은 소리로 주의를 주고, 다시 그 목걸이를 판매 대 위 에 올려놓고 결과를 더 잘 감정하기 위해서 멀찍이서 바라보았다. 랑탱씨는 이런 모든 으레 적인 일들이 거북해서 입을 열어 말했다. "아, 그것이 하나도 값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때 보석상이 이렇게 말했다. "이건 1만 2천 프랑에서 1만 5철 프 랑의 값 이 나가겠습니다. 하지만 정확하게 출처를 알려주셔야만 살 수 있겠는데요." 홀아비 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그대로 멍청하니 있었다.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마침내 더 듬거리 면서 말했다. "뭐라구요, 사실입니까." 상대방은 그가 놀라는 것에 대해 잘못 생각하 고 퉁명 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더 받으실 수 있으면 다른 데를 찾아보세요. 저로서는 기껏해 야 1만 5천 프랑밖에는 드릴 수가 없으니까요.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곳을 찾지 못하시면 다 시 오 시도록 하시지요." 랑탱씨는 완전히 얼이 빠져서 목걸이를 집어들고 나왔다. 혼자서 곰곰 생각해 볼 필요를 어렴풋이 느꼈던 것이다. 그러나 거리로 나오자, 웃음이 터져나올 것 같아서 이렇게 생각했 다. "바보, 오, 바보 같으니라구. 그래도 그런 말을 선뜻 믿다니 진짜 중에서 가짜를 식별할 술 모르는 보석상이 있다니." 그리고 그는 평화가 입구에 있는 다른 보석상으로 들 어갔다. 보석을 알아보자, 금은 세공사가 소리쳤다. "아, 저런, 이 목걸이를 잘 알고 있지요. 우리집 에서 판 것이거든요." 랑탱씨는 너무도 어리둥절하여 이렇게 물었다. "얼마나 나가 겠습니 까." "이것을 2만 5천 프랑에 팔았지요. 법률상의 규칙에는 따라야 하니까 어떻게 이 것을 소 지하게 되셨는지 말씀해 주신다면, 1만 8천 프랑에 다시 살 용의가 있습니다." 이번 에는 랑 탱씨가 놀라움으로 몸이 말을 듣지 않아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가 다시 말했다. "하지 만, 하지만, 그걸 주의 깊게 잘 감정해 보세요. 지금까지 난 그것을 가짜라고 생각했 었는데." 보석 상인이 다시 말했다. "성함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아무렴요. 랑탱이라고 합 니다. 내 무성에 근무하고 있어요. 마르티르가 16번지에 살고 있습니다." 보석 상인은 장부를 펼치고 찾아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과연 이 목걸이는 1876년 7월 20일, 마르티르가 16번 지, 랑탱 부인에게 보냈던 것이군요."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았다. 관리는 뜻밖의 일이라 얼떨 떨해하 였고, 보석상은 도적이 아닌가 의심했다. 상인이 말했다. "이 물건을 스물네 시간만 제게 맡 겨주시겠습니까. 영수증은 드릴 테니까요." 랑탱씨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물론이고 말고요." 그리고 그는 보관증을 접어 주머니 속에 넣으며 밖으로 나왔다. 그러고 나서 그는 길 을 가 로질러 거슬러올라가다가, 길을 잘못 잡은 것을 알자 튀일르리로 다시 내려와 세느강 을 지 났다. 또 길을 잘못 든 것을 알자 머리 속에 분명한 생각도 없이 상젤리제로 다시 나왔다. 그는 이치를 따져 생각해 보고, 이해해 보려고 애썼다. 그의 아내는 그런 값의 물건을 살 수 가 없었다. 절대로. 그렇다면 그것은 선물이다. 선물. 누구의 선물인가. 무엇 때문에. 그는 걸음을 멈추고 길 한가운데에 그대로 서 있었다. 무서운 의심이 그를 스쳐갔 다. 그녀 가. 그렇다면 다른 보석들도 모두 역시 선물이다. 그는 땅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자 기 앞에 있는 나무가 넘어지는 것 같았다. 그는 두 팔을 펴고 털썩 주저앉아 의식을 잃었다. 그는 행 인들이 데려다 준 어느 약국에서 의식을 다시 찾았다. 그는 집으로 데려다 달라고 하고는 집에 죽치고 들어앉았다. 그는 밤이 되도록 정신없이 눈물을 흘렸다. 소리를 내지 않 으려고 손수건을 물어뜯었다. 그러다가 피로와 슬픔에 눌려 잠에 곯아떨어졌다. 햇살 때문에 그는 잠에서 깨어났다. 그러고는 직장에 나가려고 천천히 일어났다. 그와 같 은 충격을 받은 후에 일을 한다는 것은 힘드는 일이었다. 그래서 상사에게 변명할 수 있는 거리를 곰곰 생각해 보았다. 그에게 편지를 썼다. 그러고 나서는 보석상에 다시 가보 아야 한 다고 생각했다. 수치심으로 얼굴이 붉어졌다. 그는 오랫동안 그대로 생각에 잠겨 있었 다. 그 렇기는 하지만 목걸이를 그 보석상에 그대로 둘 수는 없어서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갔 다. 날 씨는 화창했다. 도시 위에 펼쳐진 푸른 하늘이 미소를 짓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주머 니에 양손을 찌르고 앞서서 어슬렁거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랑탱은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 보며 생각했다. "재산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가. 돈만 있으면 슬픔까지도 털어 버릴 수 가 있다. 가고 싶은 데 가고, 여행도 하고, 기분 전환도 할 수 있다. 아, 내게도 돈 이 있다 면." 그는 배가 고프다는 것을 느꼈다. 그저께부터 먹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주머니 는 비어 있었다. 목걸이 생각이 났다. 1만 8천 프랑. 1만 8천 프랑. 그것은 거액이었 다. 그는 평화가로 들어서서 상점 앞 보도 위에서 이리저리 거닐기 시작했다. 1만 8천 프랑. 스무 번이나 더 들어갈까 말까 하였다. 그러나 언제나 수치심이 그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였 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는 배가 고팠다. 너무 배가 고팠다. 그런데 한 푼도 없었다. 그는 갑 자기 결심을 하고 생각할 시간을 두지 않으려고 달려서 길을 건너 보석상으로 뛰어들 었다. 그를 알아보자 상인은 상냥한 미소를 지으면서 서둘러 의자를 내놓았다. 점원들조차도 와서 눈과 입술에 즐거운 표정을 지으면서 랑탱을 곁눈질하였다. 보석 상인이 말했다. "조 회를 해 보았습니다. 선생께서 여전히 같은 의향이시라면 제가 제의했던 금액을 지불할 용의가 있습 니다." 관리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물론이지요." 보석상은 사람에게 18매의 커다란 지폐를 꺼내서 세어보고는 랑탱에게 내주었다. 랑탱은 짤막한 영수증에 서명을 하고는 떨리는 손으 로 그 돈을 주머니 속에 넣었다. 그러고 나서 밖으로 나가려다가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는 상인에게로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시선을 떨구면서 말했다. "저, 다른 보석들도 있 는데. 그 것도 역시 상속된 것인데. 그것들도 역시 사시겠습니까." 상인은 몸을 굽혔다. "물론 이고말 고요."점원 하나가 마음놓고 웃으려고 밖으로 나갔다. 다른 점원은 힘껏 코를 풀었다. 랑탱은 얼굴이 붉어졌으나 태연하게 그리고 무게 있게 말했다. "그것들을 가져오겠 소." 그 러고는 마차를 타고 보석을 가지러 갔다. 한 시간 후에 보석상에 다시 들렸을 때도 그 는 점 심을 아직 먹지 못했다. 그들은 물건 하나하나를 살펴보고 값을 평가했다. 거의 모두 가 이 집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랑탱은 이제 감정에 이의를 제기하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했으며, 판매대장을 보여달라고 요구하기도 하고, 금액이 올라감에 따라 점점 더 큰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커다란 다이아몬드 귀걸이는 2만 프랑, 팔찌는 3만 5천 프랑, 브로치, 반 지, 메달 은 1만 6천 프랑, 에메랄드와 사파이어 장신구는 1만 4천 프랑, 금줄 목걸이에 매달린 외알 박이 보석은 4만 프랑. 모두 19만 6천 프랑에 달했다. 상인은 악의 없이 농담으로 이 렇게 말 했다. "온통 보석에만 투자한 사람이로군요." 랑탱이 무게 있게 말했다. "다른 사람 이 돈을 투자하는 것처럼 그것도 한 방법이지요." 그러고는 내일 구매자와 함께 재감정을 하기 로 결 정하고 밖으로 나왔다. 거리에 나서자, 그는 보물 따먹기 기둥에 기어오르듯이 방돔 원주를 바라보며 기어 오르고 싶어졌다. 그는 하늘에 높이 앉아 있는 황제의 동상 위에서 개구리뜀놀이를 하고 싶을 만큼 경박한 생각이 들었다. 그는 브와쟁에 가서 점심을 먹고 한 병에 20프랑이나 하는 포 도주를 마셨다. 그러고 나서는 마차를 타고 블로뉴 숲을 한바퀴 돌았다. 그는 마차에 함께 타 고 있 는 일행을 어떤 경멸의 시선으로 바라보았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소리치고 싶은 욕망에 가슴이 억눌렸다. "나도 부자다. 나는 20만 프랑을 가지고 있다." 직장에 대 한 기억 이 떠올랐다. 그는 마차를 그리로 몰게 해서 단호하게 상사의 방으로 들어가 말했다. "사표 를 제출하려고 왔습니다. 30만 프랑의 상속을 받았거든요."그는 옛날 동료들과 악수 를 하고 자기의 새로운 생활 계획을 그들에게 털어놓았다. 그러고 나서는 카페 앙글레에서 저녁을 먹었다. 곁에 품위 있어 보이는 신사가 있자, 그는 어떤 겉멋으로 40만 프랑을 방금 상속받 았다는 것을 털어놓고 싶은 근질거림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그의 생애에 처음으로 그 는 극 장에서 지루하지 않았고, 밤을 여자들과 함께 보냈다. 여섯 달 수에 그는 다시 결혼 하였다. 두 번째 부인은 매우 정숙한 여자였지만 성격이 까다로웠다. 그래서 그녀는 그를 많이 괴롭 혔다. 미스 하리에트 사륜마차에는 네 명의 여자와 세 명의 남자, 이렇게 우리 일곱 사람이 타고 있었다. 그중 의 한 남자는 마부 옆자리에 있었다. 우리는 말의 보통 걸음으로 길이 꾸불꾸불한 큰 언덕 을 올라가고 있었다. 탕카르빌르의 폐허를 방문하기 위해서 새벽부터 에트르타를 출발 한 우 리들은 신선한 아침 공기 속에서 몽롱한 채 아직도 졸고 있었다. 특히 이런 사냥꾼들 의 가 상에 별로 익숙하지 못한 여자들은 날이 새는 감동에 무관심하여 줄곧 눈꺼풀을 내 리뜨고 있거나, 고개를 기울이고 하품을 하거나 하였다. 가을이었다. 길 양쪽에는 벌거벗은 밭들이 펼쳐져 있었고, 서투르게 면도한 수염처럼 땅을 덮고 있는, 낫으로 벤 소맥과 귀리의 짧은 밑동으로 해서 노란 빛깔을 띠고 있었다. 안개 낀 대지는 연기를 내뿜는 것 같았다. 종달새 들은 공중에서 노래하고, 다른 새들은 덤불 속에서 지저귀었다. 마침내 지평선 가장자리에서 새빨간 태양이 우리 앞에 솟아올랐다. 태양이 올라옴에 따라 점점 더 밝아졌고, 들판은 잠에서 깨어나고, 미소짓고, 몸을 흔드는 것 같았고, 또 침대에서 빠져나온 소녀처럼 하얀 잠옷같은 안개를 벗어버리는 듯했다. 마부 옆자리에 앉아 있 던 에 트라이유 백작이 소리쳤다. "아아니, 산토끼로군." 왼쪽으로 팔을 뻗쳐 토끼풀 밭을 가리켰 다. 그 짐승은 달아나 밭에 거의 몸을 숨겨버려서 커다란 귀만이 보였다. 그러다가 토끼는 경작지를 가로질러 도망을 치다가는 멈추고, 다시 미친 듯이 달리다가 방향을 바꾸고 또 걸 음을 멈추고 하면서 불안하여 모든 위험을 살피고, 가야할 길에 대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엉덩이 부분을 껑충거려 다시 달리기 시작하더니, 넓고 네모진 무밭 속으 로 사라졌다. 남자들은 모두 잠이 깨어, 짐승이 달려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르 네 르마 누아르가 말했다. "오늘 아침은 우리가 품위가 없군요." 그러고는 졸음과 싸우고 있 는, 곁에 있는 자그마한 세렌느 남작 부인을 바라보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남편 생각을 하고 계시군요, 남작 부인, 안심하세요. 토요일에나 돌아오실 겁니다. 아직 나흘 남았어 요." 그녀 는 졸리운 듯한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참 어리석기도 하셔라." 그러고는 혼수 상태에 서 벗어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이보세요, 우리를 웃길 만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슈날씨, 당신에게 일어났던 사랑의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세요, 당신이 하고 싶은 것으로." 아 주 미남 인데다가 건장하고, 자기 체격에 매우 자부심이 강하면서 또한 사랑을 많이 받은 노화 가 레 옹 슈날은 길고 하얀 수염을 손에 쥐고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잠시 깊이 생각을 해 본 후 에 갑작 엄숙해졌다. "즐거운 이야기는 못 됩니다, 부인들. 내 생애에서 가장 애통한 사랑의 이야기를 들려드리지요. 나는 내 친구들은 이와 비슷한 사랑을 불러일으키지 말기를 바랍니 다." 나는 그때 스물다섯 살이었고, 노르망디 해안을 따라서 서투른 그림장이 흉내를 내 고 있 었습니다. "서투른 그림장이 흉내를 낸다."고 하는 것은, 자연에 대한 풍경화나 습작 을 한다 는 구실 아래, 이 여인숙에서 저 여인숙으로 등에 배낭을 메고 떠돌아 다니는 그런 유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무렇게나 유랑하는 생활보다 더 좋은 것을 나는 알고 있지 못합니 다. 어 떠한 구속도 없고 근심도 없으며, 걱정도 없고 내일에 대한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자유 롭지요. 환상 이외에는 어떤 안내자도 없이, 눈을 즐겁게 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조언자도 없 이, 마 음 내키는 대로 길을 가는 것입니다. 시냇물이 마음을 끌면, 여인숙 주인의 문앞에서 맛있는 감자 튀김 냄새가 나면 걸음을 멈춥니다. 때로는 참으아리 향기로 해서 선택이 정해 지기도 하고 혹은 여인숙 딸의 순진한 눈짓으로 해서도 그리 됩니다. 이런 시골풍의 애정을 조금도 업신여기지 마세요. 그 소녀들 역시 영혼이 있고 감각이 있으며 또한 통통한 뺨과 싱 그러운 입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격렬한 키스는 힘차 값진 것입니다. 당신이 나타날 때 뛰는 가슴, 당신이 떠날 때 눈물짓는 눈, 그것은 너무도 흔하지 않은 것이고, 너무도 다정 하고 값 진 것이므로 그런 것들을 경멸해서는 안 됩니다. 나는 앵초가 가득한 도랑 속에서, 암소들이 자고 있는 외양간 뒤에서, 그리고 한낮 의 열기 로 아직도 미지근한 곳간의 짚덤불 위에서 데이트를 가졌었습니다. 탄력이 있으면서도 거친 몸에 걸쳤던 잿빛 나는 투박스러운 삼베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순 진하고 솔직한 애무에 대한 미련을 가지고 있습니다. 매력적이고 품위 있는 여자들에게서 얻 는 민 감한 즐거움보다 그들의 솔직한 야만성에서 더욱 미묘한 것을 느끼게 되지요. 그러나 무턱 대고 걷는 그런 걸으면서 특히 좋은 것은 들판, 숲, 일출, 황혼, 달빛 같은 것들이지 요. 화가 들로서는 그것은 대지와 같이하는 신혼 여행입니다. 그 조용한 긴 데이트에서 대지 가까이 에 홀로 있는 것입니다. 데이지와 개양귀비가 가득한 한가운데, 풀밭에서 잡니다. 그 리고 눈 을 뜨면, 태양에서 떨어지는 빛 아래로 정오를 알리는 뾰족한 종탑이 있는 작은 마을 이 멀 리 보입니다. 떡갈나무 밑둥에서 나와서 여리고 키가 크고 생명으로 반짝이는 풀잎 한가운 데로 흐르는 샘물가에 앉습니다. 무릎을 꿇고 몸을 숙여 수염과 코를 적시는 차고 투명한 물을 마십니다. 마치 샘과 입술을 마주 대고 키스를 하는 것처럼 성적인 쾌락을 느 끼면서 그것을 미시지요. 이따금 그 가느다란 물의 흐름을 따라가다가 구덩이라도 만나면 발 가벗고 거기서 몸을 담급니다. 그리고 차고 감미로운 애무처럼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산 뜻하면 서도 경쾌하게 흐르는 물의 떨림을 살갗에 느끼지요. 언덕 위에 있으면 즐겁고, 연못가에 있으면 서글퍼집니다. 태양이 핏빛 구름의 대양 속에 잠길 때나 강에 붉은 그림자를 던질 때에는 흥분이 됩니다. 그리고 저녁때, 하늘 밑 바닥을 지나는 달 아래에서, 대낮의 강렬한 빛 아래에서는 생각나지 않았던 갖가지 이상한 생각들 을 하게 되지요. 그러면서 우리가 금년에 있는 바로 이 고장을 그렇게 방랑하다가, 나 는 어 느 날 저녁, 이포르와 에트르타 사이의 절벽 위에 있는 베누빌르라는 작은 마을에 도 착했습 니다. 나는 해안을 따라 페캉으로부터 왔습니다. 그 해안의 백악질의 바위들이 불쑥 나온 부 분이 바다 속으로 깎아질러 마치 성벽처럼 높고 똑바른 해안이지요. 나는 난바다의 짭짤한 바람속에서 낭떠러지의 가장자리에 돋아나는, 양탄자처럼 부드럽고 섬세한, 그 짧은 잔디밭 위를 아침서부터 걸어왔었습니다.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성큼성큼 걸으면서, 때로 는 푸른 하늘에 날개로 흰 곡선을 그리는 갈매기의 둥글고 느린 도주를 바라보기도 하고, 때로 는 녹 색 바다 위에 떠 있는 고기잡이 배의 갈색 돛을 바라보기도 하면서 태평하고 자유로 운, 행 복한 하루를 보내곤 하였습니다. 여행객들을 재워주는 한 작은 농가를 알려주더군요. 시골 여자가 경영하는 여인숙 같은 것이었는데, 두 줄의 너도밤나무에 둘러싸인 노르망디식 마당 한가운데에 있었습니다. 절벽 을 떠나, 나는 커다란 나무들에 둘러싸인 작은 마을에 이르렀고, 르카쉐르 할멈네 집 을 찾아 갔습니다. 그는 주름살이 많고 엄격해 보이는 늙은 시골 여자였는데, 언제나 경계심 같은 것 을 가지고 마지못해 손님들을 받는 듯했습니다. 때는 5월이었습니다. 꽃이 핀 사과나 무들은 향기로운 꽃들로 지붕을 이루어 마당을 덮고 있었고 사람 위로, 풀밭 위로 끝없이 덜 어지는 장밋빛 작은 꽃잎들이 뱅글뱅글 돌면서 쉴 새 없이 비처럼 뿌려지고 있었습니다. 내가 물었 지요. "저, 르카쉐르 부인, 방이 있나요." 자기 이름을 알고 있는 것에 놀라 그녀가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글쎄요, 모두 예약이 되어 있어요. 하여간 봅시다." 5분 후에 우리는 타협이 되었고, 나는 침대 하나, 의자 두 개, 테이블이 하나, 대야가 하나 있는 시골 방이 흙바닥에 배낭을 내려놓았지요. 그 방은 크고 연기로 가득한 부엌으로 통하고 있었는데, 거기에 서 유 숙하는 사람들은 농가의 하인들과 과부인 주인 여자와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었습니 다. 나는 손을 씻고 다시 나갔지요. 노파는 연기로 새카매진 냄비걸이가 걸려 있는 커다 란 벽 난로에서 저녁식사를 위해 영계를 졸이고 있었습니다. "지금 여행객들이 있습니까." 하고 그 녀에게 물었지요. 그녀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나이 드신 영국 부인이 한 부 계세요. 그분은 다른 방에 묵고 계세요." 나는 하루에 5수를 더 낸다는 조건으로 날 씨가 좋 을 때에는 마당에서 혼자 식사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내 식탁은 문앞 에 차려졌고, 나는 맑은 능금주를 마시면서, 나흘 전의 것이기는 하나 맛은 좋은 두꺼 운 흰 빵을 씹으며, 노르망디 암탉의 기름기 없는 다리를 이로 잘게 자르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길로 향한 숲의 울타리가 열리더니, 이상한 여자 한 사람이 집쪽으로 오고 있었습니 다. 그 여자는 무척 마르고 매우 키가 컸으며, 붉은 체크 무늬의 스코틀랜드 숄로 몸을 너무 단단 히 감사고 있었기 때문에 나들이용의 작은, 흰 양산을 든 기다란 손이 허리께어서 나타나 보이지 않았으면 팔이 없는 여자라고 생각되었을 겁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들썩 거리는, 둥글게 만 회색 머리단으로 둘린 미라 같은 그녀의 얼굴은, 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으 나 컬 페이퍼를 하고 있는 훈제 청어를 연상하게 하였습니다. 그 여자는 눈을 내리뜨고 재빨 리 내 앞을 지나 초가집 속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이 이상한 출현이 내 그분을 돋우어주더군요. 그 사람은 바로 주인 여자가 말하던, 내 옆 방에 있는 나이 든 영국 여자임에 틀림없었어요. 그날은 그 여자를 다시 보지 못했 습니다. 다음날,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여러분들이 알고 계시는, 에트르타까지 내려가는 그 매 혹적인 골짜기 속에 자리잡고 있었을 때, 나는 갑자기 눈을 들면서 비탈의 꼭대기에 서 있는 어떤 이상한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마치 작은 깃발로 장식한 깃대 같았습니다. 그 여자였 습니다. 나를 보자 그녀는 사라졌습니다. 나는 점심을 들기 위해 정오에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괴 팍한 늙은 여자와 사귀기 위해서 공동 식탁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내 인사에 대답도 하지 않았고, 내 자잘한 마음씀에조차도 무관심했습니다. 나는 끈덕지게 그녀 에게 물 을 따라주고, 열심히 요리 접시를 건네기도 했습니다.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가볍게 머리를 끄덕이고,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낮은 소리로 중얼거리는 한마디의 영어가 그녀 의 유일한 감사의 말이었지요. 그녀가 내 생각을 불안하게는 했지만, 나는 그녀에게 상관하 는 것을 그만두었습니다. 사흘 후에 나는 르카쉐르 부인만큼이나 그녀에 대해서 자세 히 알 게 되었습니다. 그 여자의 이름은 미스 하리에트였습니다. 여름을 지내기 위해 한촌을 찾아 다니다가 6주일 전에 비누빌르에서 발걸음이 멎었는데, 떠날 생각이 없는 것 같았습니 다. 그 녀는 식탁에서는 절대로 말을 하지 않았고, 신교 포교의 작은 책을 내내 읽으면서 발 리 식 사를 하였습니다. 그녀는 그 책들을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사제 자신도 어린아 이가 2수의 심부름값을 받는 조건으로 가져다 준 네 권의 책을 받았답니다. 그녀는 이따금 갑자기 이런 말을 불쑥 주인 여자에게 하곤 하였지요. "나는 그 무엇보다도 주님을 사랑해 요. 그분의 창조 속에서 그분을 찬미합니다. 그분의 모든 자연 속에서 그분을 경배 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내 마음속에 그분을 지니고 있어요." 그러고는 어리둥절해 있는 그 시 골 여 자에게 전세계의 사람들을 개종시키기 위해 준비해 둔 팜플렛을 하나 다시 주는 것이 었습니 다. 마을에서는 그녀를 조금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 교사가 "그 여자는 무신 론자입 니다."하고 말했기 때문에 일종의 비난이 그녀를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사제는 르카 쉐르 부 인의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 사람은 이단자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죄인의 죽음도 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 여자를 완전한 관념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 각합니 다." "무신론자, 이단자" 라는 이 말은, 그 말의 분명한 의미를 몰라서 마음속에 의 혹을 던 져주었습니다. 그런데다가 그 영국 여자는 부자고 집에서 쫓겨났기 때문에 세상의 모 든 나 라들을 여행하면서 일생을 보낸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왜 가족이 그녀를 쫓아냈 을까요. 물론 그녀의 배교 때문이었습니다. 사실상 그녀는 교리에 열광하는 그런 광신 자들의 한 사람이었고, 영국에서 많이 나타나는 것과 같은 완고한 청교도 중의 한 사람이었으 며 또 한 늘고 착했으나 견디기 힘든 노처녀 중의 한 사람이었는데, 그런 여자들은 유럽의 모든 여인숙 주인의 식탁을 자주 방문하고, 이탈리아를 망치고, 스위스를 독살하고, 지중 해의 매 력적인 도시들을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듭니다. 또한 그들의 이상한 괴벽, 화 석처럼 굳어진 처녀의 품행, 그들의 표현할 수 없는 몸단장 그리고 밤에 상자 속에 그들을 미끄러 뜨린다고 생각할 만한 어떤 고무 냄새 등을 어디에나 가지고 다니지요. 내가 여인숙에서 그런 여자 중의 한 사람을 알아보았을 때, 나는 밭에서 허수아비 를 본 새들처럼 달아났습니다. 그러나 이 여자는 조금도 내게 혐오감을 주지 않을 만큼 이 상하게 보였습니다. 시골 사람이 아니면 모든 사람들에게 본능적으로 적의를 품는 르카쉐르 부인은 이 노처녀의 넋잃은 태도에 대해서 일종의 증오 같은 것을 그의 편협한 머리 속에 느 끼고 있었습니다. 부인은 이 여자를 지칭하는 말을 찾아냈는데, 그것은 확실히 경멸적인 말 이었습 니다. 어떻게 해서 그녀의 입술에 오르게 되었는지, 또 어떤 확실치 않은 신비로운 정 신 작 용에서 그렇게 부르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 여자가 이렇게 말했던 겁니다. "저 여 자는 신들린 여자예요." 그런 엄숙하고 감상적인 사람에게 꼭 맞는 그 말은 참을 수 없이 희극적인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나 자신조차도 그 여자를 "신들린 여자"라고 불렀고, 그녀를 보면서 이 음절을 아주 높은 소리로 말할 때에는 이상한 쾌감을 느꼈습니다. 나는 르카쉐르 할멈에게 묻곤 했습니다. "그래, 우리의 신들린 여자는 오늘 무엇을 하시나 요." 그러면 시골 여자는 얼굴을 찡그린 채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다리가 부러진 두꺼비 한 마리를 주워서 자기 방으로 가지고 가서는, 대야 속에다 넣고 사람에게 하 는 것 처럼 붕대를 감아주는 것을 상상해 보시구려. 그것이야말로 신을 모독하는 일이지 뭡 니까." 또 한 번은 벼랑 밑을 산책하다가, 방금 낚아올린 커다란 물고기를 도로 바다에 놓 아주기 위해 그것을 샀던 일이 있었답니다. 그런데 그 뱃사람은 마치 그녀가 자기 주머니 속 의 돈 을 빼앗아간 것보다 더 화를 내면서 마구 욕설을 퍼부었다는 것입니다. 한 달이 지 났어요, 그는 그 이야기를 하면 미칠 듯이 화를 내거나 심한 모욕감으로 소리를 지르지 않고 는 못 배기는 것이었습니다. 오, 그래요. 미스 하리에트는 정말로 신들린 여자였습니다. 르카쉐르 할멈이 그런 별명을 붙인 것은 천재적인 착상을 한 것이지요. 젊었을 때 아프리카에서 군복 무를 했기 때문에 "사푀르"라고 불리는 외양간지기는 다른 의견을 마음에 품고 있었습 니다. 그는 장난꾸러기 같은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살 만큼 산 노인이지 요." 만 일 그 가엾은 노처녀가 알았더라면. 하녀인 셀레스트도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그녀의 시중 을 잘 들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외국인이고 다른 종족이고, 다른 언어에다 다른 종교 를 가지 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요컨대 그녀는 신들린 여자였던 것이지요. 그녀는 자연 속에서 신을 찾고 신을 찬미하면서 들판을 헤매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느 날 저녁, 나는 덤불 속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그녀를 발견했습니다. 나뭇잎들 사이로 뭔가 붉은 것이 보였기 때문에 나뭇가지들을 헤치니, 미스 하리에트가 그런 모습을 보인 것 에 당 황하여 몸을 일으키더군요. 마치 대낮에 뜻하지 않게 기습을 당한 부엉이처럼 질겁을 한눈 으로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거예요. 이따금 내가 바위 틈에서 작업을 하고 있을 때 면, 신 호등처럼 벼랑가에 서 있는 그녀를 보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햇빛으로 반짝이는 넓은 바다 와 불처럼 붉게 물든 커다란 하늘을 열심히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때에는 계곡 밑에서 유연한 걸음걸이로 빨리 걷고 있는 그녀를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나는 무언 가 알 지 못하는 것에 이끌려, 단지 내적인 심오한 기쁨에 만족하고 있는 그녀의 설명할 수 없는 수척한 얼굴, 계시를 받아 빛나는 그녀의 얼굴을 보기 위해 그녀에게로 걸어가는 것 이었습 니다. 또 종종 농가의 한구석에서, 사과나무 그늘이 진 풀밭에 앉아 무릎 위에는 작은 성 경책을 펼쳐놓고 시선을 멀리 띄우고 있는 그녀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나는 넓고 부드러운 경치가 너무 좋아서 이 고요한 지방에 묶여 이제는 떠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무 명의 농가에, 모든 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언젠가는 우리 자신의 육체로 비옥 하게 될 좋고 건강하고 아름답고 푸른 대지 곁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백합니다만, 어쩌면 약간의 호기심이 또한 나를 르카쉐르 할멈 집에 붙잡아 두었는지도 모릅니다. 나는 약간 이상 한 이 미스 하리에트와 사귀고 싶었고 또 방황하는 늙은 영국 여자의 고독한 영혼 속에 무엇 이 일 어나고 있는가 알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아주 이상하게 사귀게 되었습니다. 나는 막 습작 하나를 끝마쳤는데, 그것은 내게 썩 괜찮아 보였고 또 사실 그렇기도 했습니다. 15년 후에 1만 프랑에 팔렸으니까요. 그것은 게다가 2곱하기2는 4라는 것보다 더 간단한 것이었고, 관학풍의 방식 밖의 것이었지 요. 캔버 스의 우측 전면에는 하나의 바위가 그려져 있었는데, 그것은 무사마귀처럼 울퉁불퉁 한데다 가 노랗고 붉은 갈색 해초로 뒤덮인 거대한 바위로, 그 위로는 햇빛이 기름처럼 흐르 고 있 었습니다. 내 뒤에 숨어 있어 보이지 않는 태양은 그 햇빛을 바위 위로 내리쬐면서 그것을 불같이 누렇게 태우고 있었습니다. 정말 그랬어요. 전경은 빛으로 현기증이 일 정도였 고 불 꽃이 타는 듯했으며 눈부시게 아름다웠지요. 왼쪽에는 바다가 있었는데, 푸른 바다도 아니었고 거무스름한 바다도 아니었습니다. 그것 은 초록빛이 돌면서고 젖빛이 나고 또한 짙은 하늘 아래에서 단단해 보이기도 하는 경 옥 같 은 바다였습니다. 나는 여인숙으로 그것을 가져가면서 춤이라도 출 만큼 그렇게 내 작품에 흡족해 있었습니다. 당장 온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오솔길 가장자리 에 있던 암소에게 그것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소리지르던 것이 생각나는군요. "여보게, 이것 좀 보라 구. 이런 것은 흔히 보지 못했을걸." 집 앞에 다다르자마자, 목청껏 소리를 지르면 서 나는 르카쉐르 할멈을 불렀습니다. "이보시오. 이보시오. 주인 할멈, 이리 와서 날 좀 봐 요." 그 시골 할멈이 화서 멍청한 눈으로 내 작품을 바라보았으나 아무것도 알아보지를 못했 고, 그 것이 소를 그린 것인지 집을 그린 것인지조차 볼 줄 몰랐습니다. 미스 하리에트가 돌아와, 내가 여인숙 주인에게 그림을 보여주느라고 팔 끝에 캔버스를 들고 있는 바로 그 순간 에 내 뒤로 지나갔습니다. 그 신들린 여자는 그것을 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유의 해서 보 여주었기 때문에 그녀가 시선을 피할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그녀는 깜짝 놀라 갑자기 서더 군요. 그것은 아마 그녀가 마음대로 공상하기 위해서 기어 오르곤 했던 그 바위였던 모양이 에요. 그녀가 너무도 악센트가 있고 기분 좋은 영국인의 "오오."하는 말을 중얼거리는 바람에, 나는 미소를 지으면서 그녀에게로 몸을 돌려 말했어요. "제 최근의 습작입니다." 넋 을 잃은 것 같기도 하고,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또 감동을 한 것 같기도 한 그녀가 중얼거렸 습니다. "오, 선생님, 당신은 가슴을 설레게 하는 방법으로 자연을 이해하시는군요." 맹세코 나는 여 왕에게서 듣는 찬사보다도 더 감동이 되어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매혹당하고, 정복 당하고, 패배했습니다. 명예를 걸고 말씀드립니다만, 나는 그녀를 껴안고 싶을 정도였습니 다. 여는 때처럼 나는 식탁에서 그녀 곁에 앉았습니다. 처음으로 그녀가 이야기를 했고, 높은 목소리 로 자기 생각을 계속 들려주었습니다. "오, 나는 자연을 너무도 사랑한답니다." 나는 그녀에 게 빵과 물과 포도주를 건네주었습니다. 그녀가 이제는 미라 같은 미소를 살며시 지 으면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풍경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식사 후에, 우리는 함께 일어나서 안뜰을 가로질러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는 아 마 석 양이 바다 위에 불을 붙이는 그 기가 막힌 저녁놀에 이끌렸던지, 나는 절벽 쪽으로 나 있는 울타리 문을 열었습니다. 우리는 방금 서로를 이해하고 결합한 두 사람처럼 만족하여 나란 히 떠났습니다. 포근하고 부드러운 저녁이었고, 몸과 마음이 편안한 그런 저녁이었 습니다. 모든 것이 즐거움이었고, 모든 것이 매혹적이었습니다. 풀 냄새와 해초 냄새로 가득한 훈훈 하고 향기로운 공기는 그 야생의 향기로는 후각을, 바다의 짭짜름한 맛으로는 미각을, 파고 드는 감미로움으로는 정신을 애무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아래로 1백 미터 되 는 곳 에서는 잔물결이 이는, 넓은 바다 위의 낭떠러지 가장자리를 걷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입을 벌리고 가슴을 부풀려서 대서양을 지나 온 그리고 우리 피부에 가볍게 스치는, 파도와 의 긴 키스로 해서 소금기가 있는 이 시원하고 느린 바람을 들이마셨습니다. 체크 무늬 숄로 몸을 감싸고 영감을 받은 것 같은 표정으로 바람에 이를 드러내고, 영국 여자는 바다로 가라앉는 거대한 태양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우리 앞에는 저 멀리 수평선 에, 돛에 덮인 세 개의 돛대가 불타는 하늘에 그 윤곽을 그리고 있었고, 그보다 가까 이에는 한 척의 증기선이 연기를 뿜으면서 지나갔는데, 그 증기선 뒤로는 수평선을 가로지르 는 끝 없는 구름이 남겨졌습니다. 공 같은 붉은 태양은 여전히 천천히 내려앉고 있었습니다. 그리 고 이윽고 그것이 물에 닿자 뒤이어서 빛나는 태양 한가운데에, 마치 불의 창틀 속에 서 나 타나는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 배가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태양은 점점 깊이 가라앉아 대서 양에 먹혀 들어갔습니다. 그것이 잠기고, 작아지고, 사라지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것 으로 끝 났습니다. 다만 그 작은 배만이 아득한 하늘의 황금빛 배경에 윤곽을 나타내고 있었습 니다. 미스 하리에트는 타는 듯한 낮은 종말을 열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확실히 하늘, 바다, 온 수평선을 포옹하고 싶은 터무니없는 욕심을 가지고 있었을 겁니다. 그녀가 중얼거렸습니다. "오오,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나는 그녀의 눈에서 눈물을 보았습니다. 그녀가 다시 말했습니다. "한마리 작은 새가 되어 창공을 날아가고 싶습 니다." 그녀는 자줏빛 숄 속에서 또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내가 종종 보았던 것처럼 절 벽 위 에 못박힌 듯이 서 있었습니다. 나는 내 그림책에 그녀를 스케치하고 싶었습니다. 그 것은 마 치 넋을 잃은 상태의 풍자적 인물화 같았거든요. 나는 미소를 보이지 않으려고 몸을 돌렸습 니다. 그러고 나서는 친구에게 말하듯이, 색조, 색가, 힘찬 맛 등을 직업적인 용어로 평가하 면서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녀는 주의 깊게 내 말에 귀를 기울이면 서 이 해하려고 애썼고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의 의미를 알아맞히려고 애썼으며, 내 생각을 간파하 려고 애썼습니다. 이따금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오, 알겠어요. 그것은 매우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일이군요." 우리는 돌아왔습니다. 다음날은 그녀가 나를 알아보자 얼른 와서 손 을 내밀더군요. 그래서 우리는 곧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종교적 열광 속으로 껑충 뛰어들어가는, 일종의 스프링이 달린 영혼을 지닌 선량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50세가 되도록 처녀인 채로 있는 모든 여자들처럼 균형을 잃고 있었습니다. 시큼해진 순진 속에 젖어 있는 듯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마음속에 아주 젊고 불타는 그 무엇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너무 오래 된 술처럼 발효된 열렬 한 사 랑으로, 인간들에게는 조금도 주어본 적이 없는 관능적인 사랑으로 자연과 동물을 사 랑하였 습니다. 젖을 먹이는 암캐를 보았을 때, 다리 속에 망아지를 거느리고 작은 목장 안을 달리 는 암말을 보았을 때, 커다란 머리에 몸을 완전히 벌거숭이인 채 부리를 벌리고 삐약 거리는 울고 있는 새끼들로 가득한 새의 보금자리를 보았을 때 격심한 감동으로 그녀의 가슴 이 설 레었음에 틀림없습니다. 공동 식탁을 떠도는 쓸쓸하고 고독하고 불쌍한 자들이여, 우 스꽝스 러우면서도 애처롭고 불쌍한 자들이여, 그녀를 알고 나서부터 나는 그대들을 사랑하노 라. 얼마 안 있어 그녀가 내게 무언가 할 말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녀는 감히 말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수줍음을 조소하고 있었습니다. 아침마다 그림 도구 상자를 짊어지고 떠날 때면, 그녀는 마을 끝까지 나를 따라오곤 하였습니다. 말없이, 분명히 근심스러운 태도로 시작할 말을 찾으면서 말입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내 곁을 떠나 깡충깡 충 뛰는 걸음걸이로 빨리 가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어느 날 그녀는 용기를 냈 습니다. "선생님이 그림을 어떻게 그리시는지 보고 싶군요. 그럴 수 있을까요. 저는 매우 호 기심이 많거든요." 그러고는 마치 극히 대담한 말이라도 한 것처럼 얼굴을 붉히는 것이었습니 다. 나 는 프티 발의 밑바닥으로 그녀를 데리고 갔습니다. 거기에는 커다란 습작을 시작했기 때문 이었지요. 그녀는 내 뒤에 서서 주의를 집중하여 내 몸짓 하나하나를 지켜보았습니다. 그러 다가 갑자기, 아마 나를 방해할까봐 두려워서 그랬는지 "고맙습니다."하고는 가버렸습 니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그녀는 더욱 친숙해졌으며, 눈에 뛸 정도로 기뻐하면서 매일 나를 따라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접는 의자를 팔에 끼고 가져왔는데, 내가 그것을 들고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고는 그녀는 내 곁에 앉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말없 이 꼼 짝도 하지 않고 몇 시간이고 거기에 앉아, 내 붓끝이 움직이는 순간순간을 눈으로 좇 고 있 었습니다. 칼로 불쑥 칠한 어떤 커다란 물감의 반점으로 뜻하지 않았던 정확한 효과를 얻을 때면,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놀라움과 기쁨과 감탄으로 짤막하게 "오오"하는 소리를 내곤 하였지요. 그녀는 내 그림에 대해서 감동적인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신의 작품 의 한 작은 부분을 인간이 재현하는 데 거의 종교적인 경의를 품고 있었던 것이지요. 나의 습작들 이 그녀에게는 성화처럼 느껴졌던 것입니다. 이따금 그녀는 나를 개종시키려고 애쓰면 서 신 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오, 그녀의 선량한 하느님이란, 큰 재주도 없고 큰 능력 도 없는 일종의 마을의 철학자 같은 묘한 호인이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눈 앞에서 저질러지는 불의에 슬퍼하는 신을 상상하기 때문이지요. 마치 그가 그것을 막지 못했 던 것 처럼 말입니다. 게다가 그녀는 하느님과 훌륭한 관계를 맺고 나서는, 그의 비밀과 그 의 모순 에 대한 속내이야기를 들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녀는 마치 하사가 신병 에게 "연대장님의 명령이다."하고 알리는 것처럼 "하느님이 원하신다."라든지 "하느 님이 원 하시지 않으신다." 하고 말하곤 하였습니다. 그녀가 내게 일깨워주려고 애쓰는 신의 뜻을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해 그녀는 마음 속으로 불만스럽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매일같이 주머니 속에서, 땅에 내려놓았을 때 의 모자 속에서, 그림 물감 상자 속에서, 아침에 방문 앞에 놓아둔 약칠한 구두 속에서 그녀가 아침 에 천국에서 직접 받았을 작은 신앙 팜플렛을 찾아내곤 했습니다. 나는 마음으로부터 진실 하게 그녀를 옛친구로 대우하였습니다. 그러나 머지않아 그녀의 태도가 약간 달라진 것을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그것을 경계하지 않았어요. 내가 골짜기 속에서나 어떤 움푹 팬 길에 서 작업을 하고 있을 때면, 그녀가 갑자기 나타나 빠르고 박자를 맞추는 듯한 걸음 걸이로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는 마치 그녀는 뛰어오기라도 한 것처럼, 아니면 어떤 깊은 감동이 그녀를 뒤흔들어놓기라도 한 것처럼 숨을 헐떡이며 털썩 주저앉는 것이었습니 다. 그 녀는 너무도 얼굴이 빨갛게 닳아올라 있었는데, 그것은 어떤 다른 민족도 가지지 못하 는, 영 국적인 붉은 빛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이유도 없이 창백해지고, 흙빛이 되어, 거 의 기절 할 듯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조금씩 다시 본래의 얼굴 모습을 되찾고는 말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었어요. 그러다가 갑자기 그녀는 말하는 도중에 일어나 달아나 버리는데, 그것이 너무도 급 작스럽 고 이상스러워서 내가 그녀의 기분을 거슬리게 했나, 혹은 그녀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 나 하 고 생각해 볼 정도였습니다. 마침내 나는 그것이 그녀의 정상적인 태도며, 우리들이 사귀게 된 처음에는 아마 내게 경의를 표하기 위하여 약간 달라진 모양이라고 생각하고 말 았습니 다. 그녀가 바람을 맞으면서 해안을 몇 시간 거닐다가 농가로 돌아올 때면, 나선형으 로 꼬인 긴 머리카락은 풀어져서 용수철이 부러진 것처럼 매달려 있을 적이 많았습니다. 전에 는 그 런 것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고, 그녀의 자매 같은 미풍에 그렇게 머리칼이 흐트러 진 것 에 거의 개의치 않고 스스럼없이 식사를 하러 오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남포 등피라고 부르는 머리의 매무새를 고치기 위해 자기 방으로 올라가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언제나 그녀를 화나게 만드는 친숙하고 달콤한 말로 "오늘은 별처럼 아름답습니다, 미 스 하 리에트"하고 말하자, 그녀의 뺨에는 약간의 홍조가 올랐는데, 그것은 소녀의, 열다섯 살 난 소녀의 발그레한 빛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녀는 거칠어져서 내가 그림 그리는 것을 보러 오지도 않았습니 다. 그 래서 나는 생각했지요. "이것은 발작이다.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조금 도 사라 지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내가 그녀에게 말을 걸면, 그녀는 일부러 꾸민 냉담한 태도 로, 은 근히 화가 난 태도로 내게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퉁명스럽고 초조해 하였으 며, 신경질적이 되었습니다. 나는 식사때밖에는 그녀를 볼 수 없었고, 우리는 이제 거의 이 야기도 나누지 않았습니다. 나는 내가 무엇인가 그녀의 감정을 상하게 한 것이라고 정말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느날 저녁에 그녀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미스 하리에 트, 어 째서 예전처럼 나와 함께 있지 않는 겁니까. 내가 당신을 불쾌하게 해드린 일이라도 있습니 까. 당신 때문에 많이 괴롭군요." 그녀는 아주 우습게 하난 억양으로 대답했습니다. "나는 언제나 예전과 똑같이 당신과 함께 있어요. 정말 그렇지 않아요, 정말 안 그래요." 그 러고는 자기 방으로 달려가 그 안에 틀어박히는 거예요. 그녀는 이따금 나를 이상한 태도로 바라보곤 하였습니다. 그 이후부터 나는 종종, 사형수 가 최후의 날을 통고받았을 때 그렇게 쳐다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녀의 눈에 는 어 떤 신비하고도 격렬할 광기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도 다른 것이, 어떤 열과, 실 현되지 않는 그리고 실현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초조해하고 무력해하고 흥분하는 욕망이 깃들여 있었던 것입니다.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그녀의 마음이 억누르려고 하는 어떤 알 수 없 는 힘 과 대항하여 싸우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어쩌면 또 다른 것이. 내가 무엇을 알겠습니 까. 무 엇을 내가 알 수 있단 말입니까. 그것은 정말로 이상한 새 사실이었습니다. 얼마 전부터 나는 매일 아침 새벽부터 다음과 같은 주제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찔레와 나무들이 무성한 두 경사지에서 굽어 다보이 는, 험하게 깎아지른 깊숙한 협곡은 길게 뻗어나가다가 동이 틀 무렵에 우윳빛 안개 속에, 이따금 골짜기 위로 떠도는 솜 같은 것 속에 잠겨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짙 고 투 명한 안개 깊숙이에서 한 쌍의 인간, 한 젊은이와 처녀가 얼싸안고 입을 맞추면서 오 는 것 이 보입니다. 아니, 차라리 그럴 것이라고 추측해 봅니다. 여자는 남자 쪽으로 머리 를 쳐들 고, 남자는 여자 쪽으로 몸을 숙이고 입술과 입술을 마주 대고 있는 것입니다. 첫 햇 살이 나 뭇가지들 사이로 미끄러지듯 빠져나가 새벽의 안개를 꿰뚫고, 시골의 연인들 뒤에서 장밋빛 으로 반사되어 비치면서, 그들의 어렴풋한 그림자를 은빛의 밝음 속으로 지나가게 하 고 있 었습니다. 참으로 훌륭했습니다. 정말 근사했습니다. 나는 에트르타의 작은 기로 이 르는 내 리막길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아침은 다행하게도 나에게 필요한 안개가 드리워 져 있었습니다. 그 무엇이 유령처럼 내 앞에서 몸을 일으켰습니다. 미스 하리에트였 습니다. 나를 보자 그녀는 달아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소리쳐 불렀습니다. " 오세요, 이리 오세요. 당신에게 보여드릴 작은 그림이 있습니다." 그녀는 마지못한 듯 다가왔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내 스케치를 내밀었습니다. 그녀 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오랫동안 꼼짝 않고 바라보고 있다가 갑자기 울기 시작하는 것이었 습니다. 그녀는 눈물과 많은 씨름을 벌이다가, 더 이상 어쩔 수가 없어서, 지금껏 견디어내던 것을 포기한 사람처럼 신경질적인 경련을 일으키면서 울고 있었습니다. 알 수 없는 그 슬픔 에 내 자신이 감동이 되어 나는 발작적으로 일어났습니다. 그러고는 갑작스러운 감정의 동 작으로 그녀의 두 손을 잡았습니다. 그것은 생각하는 것보다 행동하는 것이 더 바른 프랑스인 의 순 수한 동작이었지요. 그녀는 잠깐 동안 내게 손이 잡힌 채로 있었습니다. 그녀의 모든 신경이 비틀리는 것처럼 손이 떨리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러다가 그녀는 갑자기 손을 빼냈 습니다. 아니, 차라리 뽑아냈다고 하는 편이 낫겠습니다. 나는 이미 그것을 느껴보았기 때문에 그 떨 림을 알아보았습니다. 내 생각은 전혀 틀리지 않았습니다. 아, 여자가 열다섯 살이든 쉰 살 이든, 서민층의 여자든 사교계의 여자든, 여자의 사랑의 떨림은 곧장 내 마음으로 오 기 때문 에 나는 그것을 이해하는 데 주저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녀의 가엾은 온 존재는 흔 들리고 떨리고 질려버렸습니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기적 앞에서 놀라고, 마치 죄 를 지은 것처럼 비탄에 잠겨 있는 나를 남겨두고, 한마디 말도 없이 가버렸습니다. 나는 점심을 먹으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웃고 싶은 만큼 울고 싶기도 해서, 벼랑 가를 산 책하러 갔습니다. 그 뜻밖의 일은 우습기도 하고 가련하게도 생각되었는데, 내게는 우습게 느껴졌으나 그녀는 미칠 정도로 불행하게 생각되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 인지를 자문해 보았습니다. 떠나는 수밖에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당장에 결심을 했습니 다. 나는 약간 침울하고, 약간 생각에 잠겨 저녁식사때까지 떠돌아다니다가 식사 시간에 들어 갔습니 다. 모두들 습관대로 식탁에 앉아 있었습니다. 미스 하리에트도 거기에 있었는데, 아 무하고 도 이야기를 하지 않고 눈도 들지 않은 채 엄숙하게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녀 는 보통때의 얼굴과 태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렸습니다. 그 러고는 주인 여자 쪽으로 몸을 돌렸습니다. "저, 르카쉐르 부인, 곧 여기를 떠날까 합니다." 그 마음 좋은 여자는 놀라고 또 섭섭해서 느릿느릿한 단조로운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선생님. 여기를 떠나신다구요. 선생님과 친해졌는데요." 나는 힐끗 미 스 하리 에트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녀의 얼굴은 조금도 떨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린 하녀 셀레스 트는 방금 내 쪽으로 눈을 들었습니다. 그녀는 얼굴빛이 붉고, 생기가 돌고, 말처럼 튼튼했 으며, 또한 드물게 깔끔한 열다섯 살의 뚱뚱한 처녀였습니다. 나는 몇 번 구석진 곳에 서 키 스를 하였지만, 그것은 여인숙을 찾아다니는 사람의 습관에서 그런 것이지 그 이상의 것은 아니였습니다. 저녁식사가 끝났습니다. 나는 사과나무 밑으로 담배를 피우러 가서는, 안뜰의 이 끝에서 저 끝으로 이리저리 거닐었습니다. 낮에 했던 그 모든 생각들, 아침의 이상한 발견, 나에게 집착하는 기괴하고도 열정적인 사랑, 그 뜻밖의 사실에 뒤이어 오는 추억들, 즐겁고도 마음 을 어지럽히는 추억들, 또한 내가 떠난다는 것을 알렸을 때 내게로 던져진 하녀의 시 선, 이 모든 것이 섞이고 결합되어 내 육체에는 활기 찬 기운을 돌게 하고, 입술에는 콕콕 찌르는 듯한 키스의 느낌을 주었으며, 혈맥 속에서는 알 수 없는 그 무엇이 어리석은 짓을 하라고 부추기는 것이었습니다. 나무 아래로 그늘을 스며들게 하면서 밤이 왔습니다. 나는 울 타리의 다른 쪽에 있는 닭장을 닫으러 가는 셀레스트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녀가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할 정도로 가벼운 발걸음으로 달려갔습니다. 암탉들이 들어가고 나오는 작은 뚜껑문 을 내 리고 그녀가 몸을 일으켰을 때, 나는 그녀를 품안에 가득히 안고 그녀의 크고 살찐 얼굴에 우박 같은 애무를 퍼부었습니다. 그녀는 몸부림을 쳤으나, 그래도 웃으면서 그것에 익 숙해졌 습니다. 왜 나는 그녀를 격렬하게 놓아버렸을까요. 왜 나는 어떤 충격으로 돌아보았을까요. 어떻게 나는 내 뒤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느꼈을까요. 그것은 여인숙으로 들어가고 있던 미 스 하 리에트였습니다. 그녀는 우리를 보고, 마치 유령을 본 것처럼 꼼짝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나는 수치스럽고 당황했으며, 그녀가 마치 어떤 범 죄 행 위를 저지르는 나를 발견한 것보다 더욱 절망적으로 느껴져서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나는 극도로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비참한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기 않아, 잠을 이루지 못 했습니 다. 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아마 잘못 생각한 것이겠지요. 또한 몇 번이고 누가 집안을 걸어 다니고 있는 것같이 생각되었고, 또 밖으로 나 있는 문을 여는 것 같이도 생각되었습니다. 아침 무렵에 피곤이 나를 짓눌러, 마침내 잠에 곯아떨어졌습니다. 느 지막이 잠에서 깼고,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서 모습을 나타내었습니다. 아직도 창피스러웠고 어떤 태 도를 지녀야 할지 몰랐습니다. 미스 하리에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모두 그녀를 기다렸습니다.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습 니다. 르카쉐르 할멈이 그녀의 방으로 들어가 보았으나, 그 영국 여자는 나가고 없었 습니다. 그녀는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기 위해서 종종 그랬듯이 새벽부터 나간 것이 틀림없 었습니 다. 사람들은 그것을 조금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말없이 식사를 하기 시작했습니 다. 날씨 는 더웠습니다. 매우 더웠습니다. 나뭇잎 하나 흔들리지 않는, 그런 몹시 뜨겁고 무 더운 날 이었습니다. 식탁을 밖으로, 사과나무 밑으로 끌어다 놓았습니다. 이따금 사푀르가 능 금주의 단지를 가득 채우려고 지하 저장실로 갔습니다. 그만큼 마셔댔던 것이지요. 셀레스트 는 부엌 에서 요리 접시를 가져왔습니다. 요리는 감자가 들어 있는 양고기 스튜와 기름에 튀긴 토끼 고기와 샐러드였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우리 앞에다 계절의 첫물인 버찌 접시를 놓았 습니다. 그것들을 씻어 차게 하려고, 나는 하녀에게 아주 찬 물을 한 양동이 길어다 달라고 부탁했 습니다. 그녀는 5분 후에 우물이 말랐더라고 하면서 돌아왔습니다. 두레박 줄을 전부 내려보 냈더니 들통은 바닥에 닿았지만 빈 것으로 다시 올라왔다는 것이었습니다. 르카쉐르 할멈은 자기가 확인하고 싶어서, 우물을 들여다보려고 갔습니다. 그녀는 돌아와 우물 속에 무 엇인가 가, 예사로운 것이 아닌 무엇인가가 보인다고 알렸습니다. 이웃 사람이 앙갚음으로 짚단을 던져넣은 것이 틀림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보다 잘 분간해 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면서, 나 또한 들여다보고 싶어졌습니 다. 그 래서 우물가에서 몸을 구부렸습니다. 나는 어렴풋이 하얀 물체를 알아보았습니다. 그 런데 무 엇일까. 줄 끝에 칸델라를 달아 내려보낼 생각을 했습니다. 노란 불빛이 돌 안쪽 벽에 서 춤 을 추면서 조금씩 깁이 들어갔습니다. 우물에서 네 사람이 몸을 굽히고 있었고, 사푀 르와 세 레스트도 우리와 함께 있었습니다. 칸델라는 희기고 하고 검기도 한, 이상하고 분간하 기 어 려운 어떤 알 수 없는 덩어리 위에서 멎었습니다. 사푀르가 소리쳤습니다. "말이에 요, 말굽 이 보여요. 지난밤에 목장에서 도망쳐 나와 여기에 빠졌을 거예요." 그런데 갑자기 나는 뼛 속까지 소름이 끼쳤습니다. 방금 사람의 발을, 이어서 쳐들려 있는 다리를 알아보았던 것입 니다. 몸 전체와 다른 다리는 물속에 감추어져 있었습니다. 나는 아주 낮게 중얼거렸 습니다. 그리고 칸델라 불빛이 그 구두 위에서 미친 듯이 춤을 출 정도로 그렇게 심하게 떨고 있었 습니다. "여자예요. 그는 그는. 저 안에 있는 사람은. 미스 하리에트예요." 사푀르만 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프리카에서 이런 것을 많이 보았거든요. 르카쉐르 할멈과 셀레스트는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였고, 그들은 뛰어 달 아났습 니다. 죽은 사람의 인양 작업을 해야 했습니다. 나는 하인의 허리를 단단히 묶고, 이 어서 도 르래의 방식으로 아주 천천히 그를 내려보냈으며, 그가 어둠 속으로 가라앉는 것을 바라보 았습니다. 그는 한 손에는 칸델라를 또다른 손에는 밧줄을 쥐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땅의 한 복판에서 나오는 듯한 그의 목소리가 "멈추세요."하고 소리쳤습니다. 나는 그가 물속 에서 무 엇인가를 건져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다른 쪽 다리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두 발 을 함께 동여매고는 다시 소리 질렀습니다. "잡아당기세요." 나는 그를 끌어올렸습니다. 그 러나 내 팔이 부러진 것 같았고, 근육에는 힘이 빠진 것같이 여겨졌습니다. 나는 끈을 놓쳐 그 를 떨 어뜨릴까봐 겁이 났습니다. 그의 머리가 우물 가장자리 돌에 나타나자, "그래, 어 때" 하고 물었습니다. 마치 그가 거기, 밑바닥에 있는 여자에 대한 소식을 전해 줄 것이라고 기 대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 두 사람은 모두 우물 가장자리 돌 위에 올라서서 마주 본 채 우물 입구에 몸을 수그 리고, 시체를 끌어올리기 시작했습니다. 르카쉐르 할멈과 셀레스트는 집 벽 뒤에 숨 어, 멀찍 이서 우리의 동정을 살피고 있었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의 검정 구두와 흰 양말이 우 물 속 에서 나오는 것을 보자, 그녀들은 사라져버렸습니다. 사푀르가 두 발목을 잡았습니 다. 그러 고는 가장 불손한 자세로 그 가엾고 순결한 처녀를 발목부터 끌어올렸습니다. 얼굴은 까매 지고 찢겨져 눈뜨고 볼 수 없을 만큼 무서웠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긴 회색 머리는 완전히 매듭이 풀어져 있었으며, 물에 흥건히 젖어 진흙투성이가 된 채 늘어져 있었습니다. 사푀르 가 경멸하는 투로 말했습니다. "제기랄, 지독히도 말랐군."우리는 시체를 그녀의 방 으로 옮 겼습니다. 두 여자가 다시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외양간지기와 함께 죽은 사 람을 위 한 화장을 했습니다. 나는 그녀의 일그러진 슬픈 얼굴을 씻겨주었습니다. 손가락이 스치는 바람에 한쪽 눈이 조금 벌어졌는데, 그 눈은 창백한 시선으로, 차디찬 시선으로, 시 체의 그 무시무시한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았고 그 눈은 생명 뒤에서 오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나는 그녀의 흩어진 머리카락을 할 수 있는 한 정성들여 손질하였고 또 서투른 솜씨 로 그 녀의 이마 위에다 새롭고도 이상한 머리 모양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물 에 젖 은 옷을 벗겼는데, 마치 내가 신을 모독하는 죄를 범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수치심을 느끼면 서 그녀의 어깨, 가슴 그리고 나뭇가지만큼이나 가느다란 긴 팔을 조금씩 드러내게 하였습 니다. 그 다음에는 개양귀비, 수레국화, 데이지 같은 꽃들과 싱싱하고 향기로운 풀을 찾으러 갔고, 그것을 그녀의 장례의 잠자리에 덮어주었습니다. 그녀 곁에는 나 혼자뿐이라서 내가 관례의 격식을 수행해야만 했습니다. 그녀의 주머니 속에서 마지막 순간에 쓴 편지가 한 장 발견되었는데, 그 유서는 그녀가 마지막 나날을 보냈던 이 마을에 매장해 달라고 부 탁하였 습니다. 어떤 무서운 생각이 내 가슴에 죄어들었습니다. 그녀가 이곳에 남아 있기를 원하는 것은 나 때문이 아닐까. 그날 저녁 무렵에는 이웃의 수다스러운 여자들이 고인을 보러 왔습 니다. 그러나 나는 사람들이 방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그녀 곁에 나 혼자 있 고 싶 어서였습니다. 나는 온 밤을 꼬박 새웠습니다. 나는 촛불 밑에서, 모든 이들에게 알 려지지 않은 이 불쌍한 여자, 이렇게 먼 곳에서, 이렇게 애처롭게 죽은 그녀를 바라보았습니 다. 그 녀는 어느 곳에 친구들을, 친척들을 남겨두었을까. 그녀의 어린 시절, 그녀의 일생은 어떠했 을까. 마치 집에서 쫓겨난 개처럼 길을 잃고 헤매면서 그렇게 혼자 어디에서 온 것일 까. 이 볼품없는 육체 속에는, 모든 감정과 사랑을 그녀에게서 멀리 쫓아내었던 우스꽝스러운 외양 인 이 육체 속에는 어떤 고통과 절망의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얼마나 불행한 사람들이 많습니까. 나는 가혹한 자연의 영원한 부당함이 이 인간 이라는 피조물을 짓누르고 있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가장 불우한 자들을 지탱케 해주는 것, 한 번은 사랑받는다는 희망도 어쩌면 가져본 적이 없이 그녀로서는 끝이 난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째서 그녀는 그렇게 숨어 있었고, 다른 사람들을 피했겠습니까. 왜 그녀 가 모든 사물들과, 인간이 아닌 모든 생물들을 그렇게 정열적인 애정으로 사랑했겠습니까. 그 리고 나 는 그녀가 신을 믿고 있었다는 것과 자기의 비참함의 보상을 다른 곳에서 바랐다는 것 을 이 해합니다. 그녀는 이제 부패되어 갈 것이고 또한 이번에는 식물이 될 것입니다. 그녀 는 햇빛 을 받아 꽃을 피울 것이고, 암소들에 의해 뜯어먹힐 것이며, 새들에 의해 씨앗으로 실려가 고, 그리고 짐승의 살이 되어 다시 인간의 몸으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영혼 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두운 우물 밑바닥에서 소멸되어 버렸습니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괴롭 지 않 습니다. 그녀는 자기의 생명을, 그녀가 돋아나게 할 다른 생명들로 바꾸었던 것입니 다. 시간이 이 불길한 무언의 대담 속에서 흘러갔습니다. 희미한 빛이 새벽임을 알려주 었습니 다. 그러더니 한 줄기 붉은 햇살이 침대에까지 미끄러지듯 스며들어와, 시트와 두 손 위에 빛의 줄무늬를 만들었습니다. 그녀가 그렇게도 좋아하던 시간이었습니다. 잠이 깬 새 들이 나 무에서 노래를 부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창문을 활짝 열고, 온 하늘이 우리를 볼 수 있도록 커튼을 열어졎혔습니다. 그러고는 차디찬 시체 위로 몸을 굽혀, 모습이 흉해진 얼굴을 두 손 으로 붙들고, 천천히, 무서움도 불쾌함도 없이,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그 입술에 키스를. 긴 키스를 했습니다. 레옹 슈날은 입을 다물었다. 여자들은 울고 있었다. 마부석에서는 에트라이유 백작 이 연방 코를 풀었다. 마부만이 졸고 있었다. 그리고 말들은 이제 채찍을 느끼지 않게 되어 서, 걸음 을 늦추고 무기력하게 마차를 끌고 있었다. 그래서 대형 사륜마차는 마치 슬픔을 실은 듯이 갑자기 무거워져, 이제는 간신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목가 기차는 방금 제노아를 출발하여 마르세이류로 향하고 있다. 바위투성이 해안의 긴 기복을 따라가기도 하고, 바다와 산 사이를 쇠뱀처럼 미끄러지듯 빠져나가기도 하면서, 잔물 결이 은 실로 가장자리를 두른, 노란 모래가 깔린 해변 위로 기어간다. 그리고 짐승이 자기 굴 로 들 어가듯이 갑자기 터널의 시커먼 입속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기차의 맨 마지막 칸에는 뚱뚱 한 한 여자와 젊은 남자가 말없이, 그리고 이따금 서로 쳐다보면서 마주 앉아 있었다. 여자 는 스물다섯 살쯤 되어 보였다. 승강구 가까이에 앉아, 그녀는 밖의 풍경을 내다보고 있었 다. 검은 눈과 커다란 가슴, 그리고 통통한 뺨을 가진 그녀는 피에콩테 지방의 건장한 시골 여자였다. 그녀는 나무 걸상 밑으로 몇 개의 꾸러미를 밀어넣고, 무릎 위에는 바구니 하나를 올려놓았다. 젊은이, 그 사람은 대략 스무 살쯤 되어 보였다. 그는 마르고 볕에 탔으 며, 뙤약 볕에서 밭일을 하는 사람들의 검은 얼굴빛을 하고 있었다. 곁에 있는 수건 속에는 그 의 전 재산이 들어 있다. 즉 구두 한 켤레, 셔츠 하나, 짧은 바지 하나와 저고리 하나. 걸 상 밑에 그도 또한 무엇을 숨겨 놓았다. 끈 하나에 함께 묶여져 있는 작은 삽과 곡괭이였다. 그는 프 랑스에서 일자리를 구하려는 것이다. 태양이 하늘로 올라와 해안에 비 오듯이 빛을 퍼붓고 있었다. 때는 5월말경이라, 기 분 좋 은 향기가 흩날려, 유리창이 내려져 있는 기차 속으로 깊숙이 들어왔다. 꽃이 핀 오렌 지나무 와 레몬 나무가 고요한 하늘에 너무도 기분 좋고, 너무도 진하고, 너무도 유혹적인 달콤한 향기를 내뿜으면서 장미의 입김과 뒤섞였다. 장미는 길가에, 화려한 정원에, 오막살 이 문앞 에 그리고 또한 들판에 잡초처럼 여기저기에서 자라고 있었다. 이 해안에서는 장미들 이 자 기 집에 있는 것이다. 장미는 강하면서도 산뜻한 향기로 이 지방을 가득 채우고 있고, 공기 를 맛있는 것으로, 포도주보다 더 풍미 있고 그리고 포도주처럼 취하게 하는 그 무엇 이 되 었다. 기차는 이 정원 속에, 이 부드러움 속에 지체하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천천히 가 고 있 었다. 기차는 끊임없이 작은 역들에서, 몇 채의 하얀 집 앞에서 멈추었다가는 오랫동 안 기적 을 울린 후에 다시 침착한 태도로 떠나곤 하였다. 기차에 오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 다. 온 세상 사람들이 졸고 있는 것 같았고, 이 따뜻한 봄의 아침에 위치를 바꾸어 볼 결심이 나지 않는 것 같았다. 뚱뚱한 여자는 이따금 눈을 감았다가는, 무릎 위에서 바구니가 미끄러져 떨어지려 고 할 때면 번쩍 눈을 다시 떴다. 그녀는 잽싼 몸짓으로 그것을 붙잡았고, 얼마간은 밖을 내 다보다 가는 다시 조는 것이었다. 땀방울이 이마에 맺혔다. 그러고는 마치 고통스럽게 가슴이 답답 하여 괴로운 것처럼 간신히 숨을 쉬었다. 젊은이는 고개를 숙이고, 시골 사람의 깊은 잠에 곯아떨어져 있었다. 어떤 작은 역을 벗어나자 갑자기 그 시골 여자는 자미 깬 것 같았 다. 그 녀는 바구니를 열고 거기에서 빵 한 조각과 삶은 계란 몇 알, 작은 포도주 병과 빨갛 고 예 쁜 자두를 꺼내 먹기 시작하였다. 이번에는 남자가 갑자기 잠에서 깨어나 그녀를 바 라보았 다. 그는 무릎에서 입으로 가져가는 한 입 한 입을 줄곧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팔짱 을 낀 채 눈을 똑바로 뜨고, 뺨을 오므리고, 입술을 꽉 다물고 있었다. 그녀는 게걸스럽게 먹는 뚱 뚱한 여자처럼 먹어대면서, 계란을 삼키기 위해 줄곧 포도주 한 모금을 마셔댔다. 그 러고는 잠깐 멈추고 숨을 돌렸다. 그녀는 빵, 계란, 자두, 포도주, 이 모든 것들을 먹어치웠다. 그녀가 식사를 끝내자 청년은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러자 약간 거북했던지, 그녀는 블라우스를 늦추었다. 남자가 갑 자기 다 시 쳐다보았다. 그녀는 그런 것엔 신경을 쓰지 않고 계속 옷의 단추를 끌렀다. 가슴을 짓누 르던 옷이 벌어져 젖가슴 사이로 점점 크게 벌어지는 틈으로 해서 흰 속옷과 살이 약 간 비 쳤다. 시골 여자는 더욱 편해지자 이탈리아 말로 말했다. "숨쉴 수 없을 정도로 덥군 요." 젊 은 남자는 똑같은 말로, 똑같은 발음으로 대답했다. "여행하기에는 좋은 때로군요." 그녀가 물었다. "피에몽태 사람인가요." "난 아스티 사람입니다." "난 카잘르 사람이에요." 그들은 이웃 사람들이었다.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서민층의 사람들이 쉬지 않고 되풀이하는 시시한 이야기들을 길게 늘어놓았 다. 그 들의 우둔하고 시야가 없는 정신에는 그것으로 충분하였다. 태어난 고장에 대해 이야 기하였 다. 그들은 서로 아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이름들을 정확히 댔고, 두 사람 모 두 만난 적이 있는 새로운 사람을 찾아낼 적마다 친구가 되는 것이었다. 빠르고 급한 낱말들이 그들 의 입에서 튀어나왔는데, 그 말들은 울려 퍼지는 어미를 가지고 있어서 이탈리아의 가요와 도 같았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자신들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녀는 기혼자였다. 그녀는 이미 세 아이가 있었는데 자기 여동생에게 맡겨놓았다. 왜냐하 면 마르세이유에 있는 한 프랑스 부인댁에 좋은 자리를, 유모자리를 구했기 때문이다. 젊은 이, 그 사람은 일을 찾고 있었다. 그도 역시, 마르세이유에서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고 사람들한테서 들어왔다. 그곳에서는 건축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입 을 다 물었다. 더위가 심해졌고, 차량의 지붕 위에 빗발치듯 내리쬐었다. 구름 같은 먼지 가 기차 뒤에서 바람에 흩날리어 안으로 들어왔다. 오렌지나무와 장미의 향기는 보다 강렬한 맛을 풍기고 있었는데, 점점 더 짙어지고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두 여행객은 다시 잠이 들었다. 그들은 거의 동시에 다시 눈을 떴다. 태양은 바다 쪽으로 기울어, 푸른 수면을 소나기 같은 빛으로 비추고 있었다. 보다 시원해진 공기는 더 가벼워진 것 같았다. 유모는 블라우스를 풀어 헤치고, 뺨은 느른해지고 눈은 흐릿한 채 헐떡거리고 있었 다. 그 녀가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제부터 젖을 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기절할 것 같이 현 기증이 나는군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몰랐던 것이다. 그 녀가 다 시 말했다. "나같이 젖이 많이 나오는 사람은 하루에 세 번 젖을 줘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거북하거든요. 가슴 위에 어떤 무거운 것이 있는 것 같아요. 그 무게 때문에 숨도 제 대로 쉴 수 없고, 사지가 끊어지는 것 같아요. 이렇게 젖이 많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예요." 그가 말 했다. "네, 불행한 일이로군요. 당신을 괴롭게 하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그녀는 많이 아파 보였고, 지치고 기절할 것같이 보였다. 그녀가 중 얼거렸 다. "가슴을 누르기만 하면 젖이 샘물처럼 나와요. 그건 참말로 신기하게 보이지요. 믿지 못 할 거예요. 카잘르에서는 이웃 사람들이 나를 보러 오곤 했지요." 그가 말했다. "아, 참말인 가요." "네, 정말이에요. 그걸 보여드릴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런 것은 아무 소용이 없어요 그런 식으로는 많이 나오게 할 수 없거든요." 그러고는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열차 는 어떤 작은 역에서 멈추었다. 울타리 곁에서 한 여자가 울고 있는 어린아이를 품에 안고 서 있었 다. 그 여자는 마르고 누더기를 걸치고 있었다. 유모는 그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녀 가 동정 어린 어조로 말했다. "내가 도와줄 수 있을 테고. 그래요, 난 부자가 아니예요, 일자 리를 얻 기 위해서 내 집, 내 사람들, 그리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막내아들을 버리고 떠나니까 요, 그 런 5프랑을 줄 수 있다면, 저 어린아이를 십 분 동안 안고 그에게 젖을 줄 수 있으련 만. 그 러면 저 아이도 조용해질 것이고 나도 그렇게 될 텐데. 다시 살아나는 것 같을 거예 요." 그녀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자기의 뜨거운 손으로 땀이 흐르는 이마를 몇 번이고 닦았다. 그러고는 그녀가 신음을 했다. "더는 견딜 수가 없군요. 죽을 것만 같아요." 그러고 는 무의 식적인 동작으로 완전히 옷을 열어젖혔다. 오른쪽 젖통이 드러났는데, 그것은 엄청나 게 크 고, 앞으로 내밀어져 있는데다가, 딸기 같은 갈색 젖꼭지가 달려 있었다. 그 딱한 여 자가 우 는 소리를 했다. "아, 어쩌나. 아, 어쩌나. 어떻게 하지." 기차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 했다. 그 리고 포근한 저녁에 스며드는 숨결을 내뿜는 꽃 한가운데로 나 있는 길을 계속 달려 갔다. 이따금 고기잡이 배 한척이, 다름 배가 머리를 아래로 하고 있는 것처럼 물에 비친 움직이 지 않는 하얀 돛을 달고 푸른 바다에 잠들어 있는 것 같았다. 젊은이는 당황하여 더듬거렸다. "그런데, 부인. 제가 당신을, 당신을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요, 그럴 수 있다면. 당신은 나를 도와줄 수 있을 거예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요. 더 이상." 그가 여자 앞에 무릎을 꿇었 다. 그러 자 그에게로 몸을 굽혀, 유모가 하는 몸짓으로 그의 입 쪽으로 자기의 짙은 젖꼭지를 가져 갔다. 그녀가 그 남자 쪽으로 젖꼭지를 내밀기 위해 두 손으로 그것을 쥐는 동시에 순 간 젖 방울이 유두에 내비쳤다. 젊은이는 자기 입술 사이에 있는 묵직한 유방을 과일처럼 붙잡고 재빨리 젖을 마셨다. 그리고 게걸스럽게 규칙적으로 젖을 빨아대기 시작하였다. 그는 여자의 허리를 두 팔로 안고, 자기에게 가깝게 하도록 끌어당겼다. 그러고는 어린애 처럼 목을 까닥거리면서 천천히 한 모금 한 모금 빨아 마셨다. 갑자기 그녀가 말했 다. "자, 이쪽은 됐어요. 이제는 다른 쪽을 빨아요." 그러자 그는 순순히 다른 쪽 유방을 쥐었 다. 여 자는 자기의 두 손을 젊은이의 등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이제는 힘차게, 행복스 럽게 숨 을 쉬면서, 기차가 움직이며 찻간 속으로 몰아오는 공기에 섞인 꽃의 향기를 음미하고 있었 다. 그녀가 말했다. "이곳은 좋은 향기가 나네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더욱 맛을 잘 음미 하기 위해서 두 눈을 감고, 이 육체의 샘물을 여전히 마시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젠 됐어 요. 기분이 좋아졌어요. 정신이 들어요." 젊은이는 손등으로 입을 닦으면서 일어났다. 여자는 살아 있는 두 개의 수통을 자기 옷 속으로 집어넣어 가슴을 부풀리게 하고서, 그에게 말했 다. "당신은 내게 크나큰 도움을 주셨어요. 정말 고마워요." 그러자 그가 고마워하는 어조로 대답했다.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바로 저예요, 부인.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 거든요." 노끈 고데르빌 주위의 모든 길에는, 농부와 그들의 아내들이 장이 서는 큰 마을을 향해 가고 있었다. 장날이었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그들의 길고 흰 다리를 움직일 적마다 온몸을 앞으 로 내밀면서 조용한 걸음으로 가고 있었다. 그들의 다리는 고된 일로, 왼쪽 어깨를 올리고 동시에 허리를 휘게 하면서 쟁기 위에서 힘을 쓰는 일로, 든든한 자세를 취하느라고 무릎을 벌리고 밀을 베어내는 일로, 느리고 힘든 온갖 농촌 일로 해서 보기 흉하게 변형되어 있었 다. 풀을 먹인 그들의 푸른 작업복은 와니스를 칠한 것처럼 번쩍거렸고, 깃과 소맷부 리에는 흰 실로 작은 도안을 장식했으며, 뼈마디가 드러난 그들의 몸통 둘레에서 부풀어오른 것이 마치 막 날아오르려고 하는 고무 풍선과 같았고, 거기에서 머리와 두 팔과 두 다리가 빠져 나와 있는 것 같았다. 어떤 사람들은 줄 끝에서 암소와 송아지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그리고 아내들은 짐 승 뒤 에서 아직도 잎사귀가 많이 달려 있는 나뭇가지로 허리를 후려치면서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 다. 여자들은 팔에 큼지막한 바구니를 끼고 있었는데, 이 바구니에서는 병아리의 머 리들이, 저 바구니에서는 오리의 머리들이 삐져나와 있었다. 그리고 그녀들은 남편들보다는 활발한 종종걸음으로 걷고 있었는데, 여위고 곧은 허리에는 평평한 가슴 위에다 핀으로 꽂은, 몸에 꼭 끼는 작은 숄을 두르고 있었고, 머리는 머리카락에 찰싹 달라붙은 하얀 천으로 덮 어 씌 워져 있었는데, 그 위에다 헝겊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는 한 마리의 조랑말 이 끄 는, 의자가 붙은 긴 마차가 급격하고 불규칙한 속보를 지나갔는데, 마차는 나란히 앉 은 두 사람의 남자와 마차 안쪽에 있는 한 여자를 이상스럽게 흔들어댔다. 여자는 심한 요동 을 좀 줄여보려고 가장자리를 붙들고 있었다. 고데르빌의 광장에는 한 무리의 군중이 있었는데, 그것은 사람과 짐승이 뒤섞인 혼 잡이었 다. 소들의 뿔과 부농들의 긴 깃털이 꽂힌 높은 모자 그리고 시골 여인네들의 부인모 가 군 중들의 표면에 나타나 보였다. 그리고 떠들썩하고 높고 날카롭게 외치는 목소리들은 계속적 으로 원시적인 아우성을 이루고 있었는데, 그것은 이따금 얼큰히 취한 시골 사람의 튼튼한 가슴에서 터져나오는 커다란 파열음과 집 벽에 매어놓은 암소의 긴 울음소리였다. 이 모든 것에서는 외양간 냄새, 우유 냄새, 퇴비 냄새, 건초 냄새 그리고 땀 냄새가 났으며,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서 나는 독특한, 시큼하고도 불쾌한, 인간적이면서도 동물적인 맛을 풍기 고 있었다. 브레오테의 오슈코르느 영감은 방금 고데르빌에 도착하였다. 그는 땅에서 작은 노끈 조각 을 보자, 광장 쪽으로 갔다. 진짜 노르망디 사람으로 검소한 오슈코르느 영감은 소용 이 될 만한 것은 무엇이든지 주워 모으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고통스럽게 몸 을 굽 혔다. 류머티스로 고생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땅에서 가느다란 끈 조각을 집어들었 다. 그 러고는 그것을 막 정성스럽게 감으려고 할 때, 문지방에서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 마구 제조 인인 망랑탱 영감을 알아보았다. 그들은 전에 말고삐에 대한 문제로 곤란한 일이 있었 다. 그 래서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었고, 두 사람은 모두 원한을 품고 있었다. 오슈코르느 영감은 진창 속에서 노끈 토막을 주우려고 하는 것을 자기의 원수에게 들킨 것이 수치스러웠 다. 그 는 얼른 그 찾아낸 물건을 작업복 밑에 숨겼다가 바지 주머니 속에 넣었다. 그러고는 찾아 내지 못한 그 무엇을 땅에서 아직도 찾는 듯한 시늉을 하다가, 머리를 앞으로 내밀고, 고통 으로 잔뜩 몸을 구부리고 시장쪽으로 갔다. 한없이 긴 흥정으로 흥분하고 떠들썩하고 굼뜬 군중 속으로 그는 곧 사라졌다. 농 부들은 암소들을 살펴보면서 곤혹스럽게 왔다갔다하였고, 여전히 속을까봐 두려워서 감히 결심을 하지 못하고 매도인의 눈치를 살피면서, 그 사람의 농간과 짐승의 결점을 끝없이 찾 아내려 고 하였다. 여자들은 발치에다 커다란 바구니를 내려놓고 거기에서 닭을 꺼냈는데, 닭들은 놀란 눈에다 빨간 볏을 하고 두 발이 묶여 땅에 누워 있었다. 여자들은 부르는 값을 듣고 자기들의 값을 고집하면서, 냉담한 표정에다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니면 갑자 기 손 님이 부른 싼값으로 팔 결심을 하고 천천히 멀어져가는 손님을 소리쳐 부르는 것이 었다. "좋아요, 앙팀므 아저씨, 드리겠어요." 점점 광장에는 사람들이 줄어갔다. 그리고 성 당의 종 이 정오를 알리면 여인숙은 먼 곳에서 온 사람들로 가득해졌다. 주르뎅 여인숙에는 커다란 방이 식사 손님들로 가득했고, 널따란 안뜰은 짐수레, 일두 이륜마차, 의자가 붙은 긴 마차, 이인승 이륜마차와 같은 온갖 종류의 탈것들로, 천태만상의 짐수레들로 가득 찼다. 그 것들은 진흙이 묻어 누르스름한 것도 있었고, 보기 흉하게 모양이 변한 것도 있고, 조각을 대 고 기 운 것도 있었으며, 두 팔을 쳐들 듯이 수레채를 하늘로 치켜들고 있는 것이 있는가 하 면 어 떤 것은 코를 땅에 박고 궁둥이를 공중으로 쳐들고 있었다. 식탁에 앉은 식사 손님 바로 곁에는 환한 불꽃으로 이글거리는 커다란 벽난로가 있 어, 오 른쪽에 열을 지어 앉은 사람들의 등에 강렬한 열기를 던졌다. 병아리와 비둘기 그리고 양의 넓적다리가 꽂혀 있는 세 개의 쇠꼬챙이가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구운 고기와 살짝 구워 지는 껍질에서 흐르는 고기즙의 맛있는 냄새가 벽난로에서 피어올라 즐거움을 부추기 고 입 에 군침이 돌게 했다. 쟁기의 귀족들은 모두 여기, 주르뎅 영감네 집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 다. 그는 여인숙 주인에다 마필 매매상이며 돈이 많은 약삭빠른 사람이었다. 요리 접 시가 지 나갔고, 노란 능금주 병들이 비워졌다. 저마다 자기와 관계 있는 일, 매입과 판매에 대한 이 야기를 하였다. 수확에 관한 소식도 얻어들었다. 날씨는 생초를 위해서는 좋았지만 밀 을 위 해서는 약간 습했다. 갑자기 북소리가 안뜰에서, 집 앞에서 둥둥 울려왔다. 몇몇 무 관심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곧 사람들이 일어섰다. 아직도 입속에는 음식물이 가득하고 손에는 냅킨 을 든 채 문으로, 창문으로 달려갔다. 북치는 소리가 끝나자, 시중 공고인은 급하고 불규칙 한 목소리로 뜻밖의 사고에 대해 또박또박 말했다. "고제르빌 주민들과 지금 장에 있는 모든 일반인들에게 알립니다. 오늘 아침 아홉 시와 열 시 사이에, 뵈즈빌르 거리에서 5백 프랑의 돈과 서류들이 들어 있는 까만 가죽 가방이 분실되었습니다. 즉시 면사무소나 만느빌르의 포르튀네 울브레크씨 댁으로 가져다 주시기 바랍니다. 20프랑의 사례금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그 남자는 가버렸다. 멀 리에서 한 번 더 둔탁하게 때리는 북소리와 공고인의 어렴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사람들 은 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울브레크 영감이 자기 서류 가방을 찾을 것인가, 아니면 못 찾을 것인가 하는 가능성을 열거하였다. 그리고 식사는 끝났다. 사람들이 커피를 다 마셨을 때, 지서 주임이 문 입구에 나타났다. 그가 물었다. "브레오테의 오슈코르 느 영감 이 여기에 있소" 다른 식탁의 끄트머리에 앉아 있던 오슈코르느 영감이 대답했다. "나 여기 있소." 그러자 주임이 다시 말했다. "오슈코르느 영감, 죄송하지만 면사무소에 함께 가주시 겠습니까. 면장님이 말씀드릴 것이 있답니다." 농부는 놀라고 불안해서, 작은 잔을 단숨에 꿀꺽 삼키고 일어섰다. 그러고는 아침보다 더 허리를 구부렸는데, 그것은 쉬고 나서의 첫걸 음은 언제나 특히 힘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되뇌면서 길을 걷기 시작 하였다. "나 여기 있소, 나 여기 있소." 그는 주임을 따라갔다. 면장은 안락의자에 앉아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이 지방의 공증인으로서 말 을 과 장되게 하면서 근엄한 체하는 뚱뚱한 남자였다. "오슈코르느 영감" 하고 그가 말했다. "오늘 아침 당신이 뵈즈빌르 거리에서 만느빌르의 움브레크 영감이 잃어버린 지갑을 줍는 것 을 보 았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시골 사람은 당황하여 면장을 바라보았는데, 그 이유는 모 르겠으 나 자기를 짓누르는 그 의혹에, 그는 벌써 겁에 질려 있었다. "내가, 내가, 그 지갑을 주웠다 구요." "네, 바로 당신이." "맹세합니다만, 난 그건 전혀 모릅니다." "누가 보았다는 데요." "누 가 보았다구요. 누가 나를 보았다는 겁니까." "마구상인 말랑탱씨가요." 그러자 노인 은 생각 이 났고, 이해가 외어서 분노로 얼굴이 빨개졌다. "아, 그 작자가 나를 보았군요, 그 촌놈이. 그 자는 내가 이 노끈을 줍는 것을 보았어요, 면장님." 그러면서 그는 자기 주머니 속을 뒤 져, 짧은 노끈 토막을 꺼냈다. 그러나 면장은 믿기지 않아서 머리를 흔들었다. "믿 을 수가 없군요, 오슈코르느 영감. 말랑탱씨는 신용할 만한 사람인데, 이 실오라기를 지갑으 로 착각 하다니요." 농부는 미칠 듯이 화가 나서 손을 쳐들었고, 자기의 명예를 증명하기 위 해서 옆 에다 침을 뱉었다. 그러고는 이 말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그건 하느님께 맹세하지만 사실이 오 정말 사실이오, 면장님. 내 영혼과 구원을 걸고 되풀이하는 바이오." 면장이 말을 이었다. "그 물건을 줍고 난 후에, 당신은 잔돈이 떨어지지 않았나 하고 진흙탕 속을 또 한참 동안 찾더라는데요." 영감은 화가 나고 두려워서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가 있담. 어떻게 그럴 수가. 한 정직한 사람을 망가뜨리기 위해서 그렇게 거짓말을 하다니. 그렇게 말할 수가 있을까." 그가 아무리 항의를 해보았자 소용이 없었다. 사람들은 그를 믿지 않았다. 말랑탱씨 와 대 질을 했지만, 그는 자기의 확인을 되풀이하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한 시간 동안 서로 욕설을 퍼부었다. 그의 요구대로 오슈코르느 영감의 몸을 검색하였다. 그에게서는 아무 것도 발견되 지 않았다. 마침내 면장은 몹시 난처해서 그를 되돌려보냈는데, 검사에게 통지하여 명령을 요구하겠다는 것을 그에게 예고하였다. 이 소문은 널리 퍼졌다. 노인이 면사무소에서 나오자 그를 둘러싸고, 진지한 호기심으로 혹은 야유하는 호기심으로 질문을 했다. 그러나 거 기에는 아무 분개심도 들어 있지 않았다. 노인은 노끈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사 람들은 그것을 믿지 않았다. 웃고만 있었다. 모두들 그를 가로막자, 노인도 아는 사람들을 불러 세 우고는 끝없이 자기의 이야기와 항의를 다시 시작하면서,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는 것 을 증 명하기 위해 호주머니를 뒤집어 보였다. 사람들이 그에게 말했다. "약아빠진 늙은이 같으니라구, 가시오." 그러자 노인은 화를 내 고 흥분하고 열을 내며, 믿지 않는 것을 딱하게 여겨 어찌할 바를 모르면서 자기 이 야기만 늘어놓았다. 밤이 되었다. 떠나야만 했다. 길을 함께 가게 된 세 명의 이웃 사람들에 게 그는 자기가 노끈 토막을 주웠던 장소를 가리켜 보였다. 그리고 길을 따라가면서 내내 자기 가 당 한 뜻밖의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였다. 저녁에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 말을 하려고 브레오 테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그러나 그는 의심쩍게 생각하는 사람들만 만났다. 그것 때문에 그는 밤새도록 속을 끓였다. 다음날 오후 한 시경에, 이모빌르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브르통 영감네 농장의 하인, 마리위스 포멜르가 만느빌르의 울브레크 영감에게 지갑과 그 속 에 든 물건들을 돌려주었다. 이 남자는 그 물건을 길에서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글을 읽을 줄 모르기 때문에, 집으로 가져가 자기 주인에게 주었다는 것이었다. 이 소문이 그 근방에 퍼졌다. 오슈코르느 영감이 그 소식을 알았다. 그는 곧장 돌아다니면서, 결말을 완전 히 갖춘 자기의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하였다. 그는 의기양양했다. "나를 슬프게 한 것은"하 고 그가 말했다. "그게 아니었소. 아시겠소, 거짓말이란 말이외다. 거짓말로 해서 비난을 받는 것처럼 사람을 해치는 것은 없단 말이오." 온종일 그는 자기의 뜻밖의 일에 대해서 이야기하였다. 길에서는 지나가는 사람들에 게, 술 집에서는 술을 마시는 사람들에게, 다음 일요일에는 교회의 출입구에서 그 이야기를 하였다. 그는 모르는 사람들의 걸음을 멈추게 하고 그들에게 그 이야기를 하였다. 이제는 조 용해졌 다. 그러나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무엇이 그를 거북하게 하였다. 그 의 말을 들으면서 사람들은 빈정거리는 표정을 지었다. 납득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에게는 자기 등뒤에서 말들을 하는 것같이 느껴졌다. 다음주 화요일에, 그는 단지 자기 입장을 이 야기하 고 싶은 욕구에 떼밀려 고데르빌의 장으로 갔다. 말랑탱이 자기 문에 서서, 지나가는 그를 보자 웃어대기 시작했다. 왜 그랬을까. 그는 크리크토의 소작인에게 말을 걸려고 다 가갔는 데, 그는 이야기를 마치기도 전에, 영감의 움푹 들어간 배를 손바닥으로 한 대 치면 서, 정면 으로 그에게 "아주 약삭빠른 사람이군, 꺼져요."하고 소리 질렀다. 그러고 나서는 가 버렸다. 오슈코르느 영감은 어리둥절하여 점점 불안해졌다. 왜 사람들은 자기를 "아주 약 삭빠른 사람"이라고 불렀을까. 주르뎅의 여인숙 식탁에 앉아, 그는 그 일을 다시 설명하기 시작했 다. 몽티빌리에의 마필 매매상이 그에게 소리를 질렀다. "자, 자, 실리에 밝은 노인 장, 나는 당신의 노끈 이야기를 알고 있소." 오슈코르느가 우물우물 말했다. "그것을 다시 찾 았기 때 문에, 그 지갑을 말이오." 그러나 상대방은 다시 말했다. "잠자코 있어요, 영감. 주운 사람이 있고, 가져온 사람이 있어요. 뭣이 어떻게 되는지 잘 보란 말이오." 농부는 기가 막 혔다. 마 침내 그는 이해하게 되었다. 돈지갑을 한패거리, 공범자를 시켜 도로 가져오게 했다고 사람 들이 그를 비난했던 것이다. 그는 항의를 하고 싶었다. 식탁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전 부 웃 어대기 시작하였다. 그는 점심식사를 끝까지 할 수가 없어서, 조소 속에서 자리를 떴 다. 분 노와 창피한 생각으로 답답해진 그는 부끄럽고 화가 나서 집으로 돌아왔다. 노르망디 사람 의 교활한 술책으로, 사람들이 그를 비난하는 짓을 할 수 있고, 또한 그것을 훌륭한 책략인 것처럼 능히 자랑할 수도 있는 성격을 지녔기 때문에 그만큼 더 낙담이 되었다. 그의 교활 함은 알려져 있는 일이라, 자기의 결백함을 증명해 보이는 것은 막연하나마 불가능한 것처 럼 여겨졌다. 그리고 부당한 혐의로 마음에 타격을 입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자 그는 그 뜻밖의 사건을 다시 이야기하기 시작했는데, 매일 자기 이야기를 길 게 늘 어놓으면서, 매번 새 이유와 보다 강력한 항의 그리고 그가 상상한 것보다, 그가 혼자 있는 시간에 준비했던 것보다 더 엄숙한 맹세를 덧붙이는 것이었다. 그의 정신은 오로지 노끈의 이야기에만 몰두해 있었다. 그의 변명이 보다 복잡해질수록, 그의 논증이 보다 치밀해 질수록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저것이 바로 거짓말쟁이의 해명이지."하고 그의 등 뒤에서 사람들이 쑤군거렸다. 그는 그것을 느꼈고, 걱정했으며, 소용 없는 노력으로 지쳐버 렸다. 그 는 눈에 띄게 쇠약해졌다. 지금은 익살꾼들이 재미 삼아 그에게 "노끈" 이야기를 하게 했다. 그것은 마치 전쟁터에서 싸움을 한 병사에게 그의 전투 이야기를 하게 하는 것과도 같 았다. 밑바닥까지 철저히 상처를 입은 그의 정신은 쇠약해져 갔다. 12월 말경에 그는 자리에 누웠 다. 그는 1월 초순에 죽었다. 임종의 고통 속에서 헛소리를 하면서도, 그는 다음과 같은 말 을 되풀이하면서 자기의 무죄를 증언하였다. "짧은 노끈이오. 짧은 노끈. 자, 여기 있어요, 면장님." 후회 망트에서 "사발 할아버지"라고 불리는 사발씨가 방금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가 내리 고 있 다. 쓸쓸한 가을날이었다. 나뭇잎들이 떨어지고 있다. 나뭇잎들은 마치 보다 두껍고 보다 느 린 또 하나의 비처럼 비 속에서 천천히 떨어지고 있다. 사발씨는 마음이 밝지를 못하 다. 그 는 벽난로에서 창문으로 그리고 창문에서 벽난로로 거닌다. 인생에는 침울한 날들이 있는 것이다. 지금 그를 위한 인생은 우울한 날들밖에는 없다. 그는 예순두살이기 때문이 다. 그는 주위에 아무도 없는 독신의, 늙은 총각이다. 이렇게 혼자서, 헌신적인 사랑도 없이 죽 어간다 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는 그처럼 적나라하고, 그처럼 공허한 자기 존재에 대 해 생 각해 본다. 그는 오래 전의 과거, 어린 시절의 과거 속에서 양친과 함께 지내던 집, 그 집을 떠올린다. 그러고는 중학교, 졸업, 파리에서 법학을 공부하던 시절을 회상한다. 그 다음에는 부친의 병환과 죽음. 그는 돌아와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그들 두 사람, 젊은이와 늙 은 여인 은 더 이상 아무것도 욕심내지 않고 평화스럽게 살았다. 어머니 역시 돌아가셨다. 얼 마나 슬 픈가, 인생이란. 그는 혼자 남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머지않아 그가 죽을 차례다. 그는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끝이리라. 지상에는 폴 사발씨가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되리라.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다른 사람들은 살아갈 것이고, 서로 사랑할 것이고, 웃을 것이다. 그렇다, 사람들은 즐길 것 이고, 그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죽음이라는 이 영원한 확실성 아래에서 웃 고, 즐 기고, 즐거워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만일 죽음이 그저 있을 법한 일이라 면, 아직은 희망을 가질 수도 있으련만, 그러나 아니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것이 다. 낮이 기울고 난 후 밤이 오듯이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만일 그의 인생이 가득 채워져 있었 더라면. 만일 그가 무언가 했었더라면, 즉 모험, 커다란 쾌락, 성공, 온갖 종류의 만족들을 맛보았더 라면, 그러나 아니다, 아무것도 없다. 그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 같은 시간에 일 어나고, 먹고 그리고 잠자리에 든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해본 적이 없다. 그렇게 그는 예순두 살의 나이에 이른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결혼조차 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그렇 다, 왜 결혼을 하지 않았는가. 그는 결혼을 할 수도 있었다, 어느 정도의 재산이 있었으니 까. 기회 가 없었던 것일까. 어쩌면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 기회를 만들어주지 않았 는가. 그가 무관심했기 때문이다. 그뿐이다. 무관심을 그의 큰 병이었고 결점이었으 며 악습 이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무관심으로 해서 그들의 인생을 망치고 있는가. 어떠한 성격 의 사람들에게는 일어나고, 움직이고, 거동하고, 말하고, 문제들을 연구하는 것은 매 우 어려 운 일이다. 그는 사랑을 받아본 적조차 없었다. 어떠한 여자도 완전한 사랑의 포기 속에서 그의 가슴 에 기대어 잠이 든 여자가 없었다. 그는 기다림의 감미로운 고뇌도, 꽉 잡은 손의 기 막힌 떨 림도, 결정적인 정열의 황홀도 알지 못했다. 입술이 처음으로 포개어질 때, 네 개의 팔이 껴 안아 유일한 존재, 하나씩 미치다시피 된 두 개의 존대를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하나 의 존 재로 만들었을 때, 얼마나 초인적인 행복이 사람의 마음에 스며들 것인가. 사발씨는 실내복 을 입고 불에다 발을 쬐며 앉아 있었다. 물론 그의 인생은 실패했다. 완전히 실패했 다. 그러 나 그는 사랑했었다. 만사가 그렇듯이, 그는 남몰래, 괴롭게 그리고 안일하게 사랑을 했었다. 그는 옛친구인 상드르 부인을 사랑했었는데, 그녀는 그의 오랜 동료인 상드르의 부인 이었다. 아, 그녀가 처녀일 때 알았더라면. 그러나 그는 그녀를 너무 늦게 만났다. 그녀는 이 미 결혼 한 여자였던 것이다. 확실히 그는 그녀에게 청혼했었을 텐데. 그러나 처음 만났을 때 부터 끊 임없이, 그는 그녀를 얼마나 사랑했었던가. 그는 그녀를 다시 만날 때마다 느꼈던 감 동, 그 녀와 헤어지면서 맛보았던 슬픔, 그녀에 대한 생각 때문에 잠 못 이루던 밤들을 떠 올렸다. 그러나 그런 아침에는, 언제나 밤보다는 약간 시들해진 연정으로 잠에서 깨어나곤 하였다. 왜 그랬을까. 예전에 그녀는 참으로 예쁘고 상냥했으며, 금발에다 곱슬머리였고 웃기 를 잘하 는 여자였다. 상드르는 그녀에게 필요한 남자는 아니었다. 그녀는 지금 쉰여덟 살이 다. 그녀 는 행복한 듯했다. 아, 예전에 그녀가 그를 사랑했더라면. 그녀가 그를 사랑했더라 면. 그가 그 여자를, 상드르 부인을 그토록 사랑했는데도, 왜 그녀는 그를, 사발을 사랑하지 않 았을까. 그저 그녀가 그 무엇을 알아차리기라도 했더라면. 그녀는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하 고, 아 무것도 보지 못하고,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일까. 그 당시에 그녀는 어떤 생각 을 했을 까. 만일 그가 말했더라면, 그녀는 어떤 대답을 했을까. 그리고 사발은 수많은 것들 을 생각 해 보았다. 자기 생애를 회상하였고, 수많은 세세한 일들을 되찾으려고 애썼다. 상드 르 부인 이 젊고 그토록 매력적이었을 때, 상드르네 집에서 카드놀이를 하던 긴 밤들이 모두 생각난 다. 그녀가 그에게 말한 것들, 예전에 그녀가 지녔던 어조, 많은 것을 의미하던, 소 리 없이 잔잔하게 짓던 미소들을 떠올렸다. 상드르가 군청 직원이었기 때문에, 일요일마다 세 느강을 따라 셋이 산책하던 일이며, 풀밭에서 점심을 들던 것을 회상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강가에 있는 작은 숲속에서 그녀와 함께 보낸 어느 오후의 추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들은 꾸러 미에다 먹을 것을 싸가지고 아침에 떠났다. 취하게 할 정도로 말고 생기가 도는 봄날 이었다. 모든 것에서는 향기로운 냄새가 풍겼고, 모든 것은 행복해 보였다. 새들은 보다 즐겁 게 지저 귀었고, 더욱 빠르게 날갯짓을 하였다. 태양으로 마비되어 버린 듯한 강물 바로 곁에 있는 버드나무 아래의 풀밭에서 음식을 먹었다. 공기는 포근했고 나무 진의 냄새로 가득했 다. 황 홀하게 그 공기를 들이마셨다. 그날은 얼마나 날씨가 좋았던가. 점심을 들고 나서, 상드르는 벌렁 누워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어나면서 "이렇게 잘 자본 적은 없다." 하고 그가 말했다. 상드르 부인은 사발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 그들 두 사람은 강을 따라 걸었다. 그녀가 그에게 기댔다. 그녀는 웃으면서, "나 취했어요, 아주 취했다구 요." 하고 말을 하기도 했다. 그는 그녀를 쳐다보면서 가슴까지 떨리고 창백해짐을 느꼈고, 또한 자기의 눈이 너무 대담하지 않을까, 자기 손이 떨림으로써 그의 비밀이 폭로되지 않을 까 두려워하였다. 그녀는 키가 큰 풀과 수련으로 화관을 만들어 쓰고는 이렇게 그에게 물었 었다. "이렇게 하면 나를 사랑하시겠어요." 그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니까. 무어라 고 대답 할 말을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그는 무릎이라도 꿇고 싶었다. 그녀는 웃어대 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불만스러운 웃음이었다. 그러고는 "바보, 적어도 무슨 말이라 도 해야 잖아요."하고 정면으로 그에게 퍼부어대었다. 그는 아직도 단 한마디 말도 생각해 내 지를 못 해서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이제 그 모든 것이 첫날과 마찬가지로 선명하게 그에게 떠올랐다. 왜 그녀는 그에 게 "바 보, 적어도 무슨 말이라도 해야잖아요."하고 말했을까. 그리고 그녀가 얼마나 부드럽 게 자기 에게 기대었던가를 상기하였다. 기울어진 나무 아래를 지나면서, 그는 자기의 뺨에 그녀의 귀가 닿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그녀가 이 접촉을 고의적인 것으로 생각할까봐 두려워 서 얼른 물러섰다. "돌아가야 할 시간이 아닌가요."하고 그가 말했을 때, 그녀는 이 상한 시 선으로 바라보았다. 확실히 그녀는 이상야릇한 태도로 그를 쳐다보았었다. 그 당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지금 그렇게 생각되어지는 것이었다. "좋도록 하세요. 피곤하시 다면 돌 아갑시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피곤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지 금쯤 어 쩌면 상드르가 깨어났을지도 몰라서요." 그러자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 남편이 깨었을까봐 걱정이시라면 별문제지요. 돌아갑시다." 돌아가면서 그녀는 말이 없었다. 그리고 그의 팔에 기대지도 않았다. 왜 그랬을까. 이 "왜"라는 것을, 그는 아직까지 자신에 게 던져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이해하지 못했던 그 무엇을 이제야 알게 된 것 같았다. 그렇다 면. 사 발씨는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지금보다 서른 살이 젊은 상드르 부인 이 "당 신을 사랑해요." 하고 그에게 말하는 소리를 듣기라도 한 것처럼 그는 깜짝 놀라 일 어섰다. 그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일까. 그의 영혼 속에 방금 들어온 이 의혹이 그를 몹시 괴 롭혔다. 그가 보지도 못하고, 알아차리지도 못하다니 그럴 수 있는 것일까. 그는 속으로 말했다. "난 알고 싶다. 이 의혹 속에 그대로 있을 수는 없다. 난 알고 싶다." 그래서 그는 빨리 옷을 입었다. 허둥지둥 옷을 챙겨 입었다. 그는 생각했다. "나는 예순두 살이고, 그녀는 쉰여덟 살이다. 그러니 그것을 그녀에게 물어볼 수가 있다." 그래서 그는 밖 으로 나갔다. 상드르의 집은 길 맞은편, 거의 그의 집과 정면에 위치해 있었다. 그는 그속에 이르렀다. 무 두드리는 쇳소리에 어린 하녀가 문을 열러 왔다. 그녀는 그렇게 일찍 온 그를 보자 놀랐다. "벌써 오시다니요, 사발씨. 무슨 사고라도 있나요." 사발이 대답했다. "아니다, 얘야. 네 주인 마님에게 내가 당장에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고 가서 말하렴." " 마님은 겨울용 배 잼을 저장품으로 만들고 계세요. 화덕에서요. 옷도 갈아입지 않으셨어요." "그래, 하지만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말씀드려라." 어린 하녀가 갔다. 사발은 거실을 큰 걸 음으로 안절부절못하고 거닐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거북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 그 는 요리 법이라도 물어보려는 것처럼 그녀에게 물어보려는 것이다. 그가 예순두 살이기 때문이 었다. 문이 열렸다. 그녀가 나타났다. 그녀는 이제 포동포동 볼에 소리를 내어 웃어대 는, 크고 살찐 뚱뚱한 여자였다. 그녀는 몸에서 멀찍이 손을 벌리고, 달콤한 과일즙이 끈적끈적 묻어 있는 맨팔 위로 소맷자락을 걷어붙이고 걸어왔다. 그녀가 불안스럽게 물었다. "어전 일이세 요. 편찮은 것 아니세요." 그가 대답했다. "아니오, 부인. 그러나 나로서는 대단히 중요하고 또 내마음을 몹시 괴롭히는 것에 대해 묻고 싶소. 솔직하게 대답해 주겠다고 약속해 주시겠 소." 그녀가 미소를 지었다. "난 언제나 솔직하답니다. 말씀하세요." "좋소. 난 당신 을 보았던 그날부터 당신을 사랑했었소. 그걸 알고 있었소." 그녀는 옛날의 그 억양과 같은 투 로 웃으 면서 대답하였다. "바보, 난 첫날부터 그걸 알고 있었는걸요." 사발은 떨기 시작했다. 더듬거 리며 말했다. "그걸 알고 있었다구요. 그럼." 그리고 그는 입을 다물었다. 그녀가 물었다. "그럼이라니요. 무엇인가요." 그가 대답했다. "그럼, 어떻게 생각했었소. 무어라고, 무어라고, 당신은 대답했을까요." 그녀는 더욱 높은 소리로 웃었다. 몇 방울의 시럽이 그녀의 손가락 끝에서 흘러 마 룻바닥 위로 떨어졌다. "내가요, 하지만 당신은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는걸요. 의사 표시 를 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잖아요." 그러자 그가 그녀를 향해 한걸음 나아갔다. "말해주세 요. 말해 주세요. 상드르가 점심을 먹고 나서 풀밭 위에서 잠이 들었던 그날. 우리가 함께 구 부러진 고까지 걸었던 그날이. 생각나시겠지요." 그는 기다렸다. 그녀는 웃음을 멈추고 그 의 눈을 바라보았다. "물론이고말고요. 생각납니다." 그는 떨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럼, 그날. 만 일 내가, 만일 내가 대담했더라면, 당신은 어떻게 했었을까요." 그녀는 아무 후회가 없는 행 복한 여자로서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솔직하게, 아이러니가 섞인 분명한 목소리로 대답하 였다. "굴복했겠지요." 그러고 나서는 발꿈치를 돌려 잼이 있는 곳으로 사라졌다. 사 발은 천 재지변을 당하고 난 것처럼 깜짝 놀라 다시 길로 나왔다. 그는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도 큰 걸음걸이로 자기 앞을 똑바로 걸어갔고,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생각지 않고 강쪽으 로 내려갔다. 마치 본능에 떠밀려가듯이 오랫동안 걸었다. 옷은 빗물에 흥건히 젖었 고, 넝마 조각처럼 물렁물렁해진 일그러진 모자에서는 처마에서처럼 빗물이 방울져 떨어졌다. 그는 앞으로 여전히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추억이 그의 마음을 몹시 괴롭히는, 먼 옛날 에 그들 이 점심을 먹었던 그 장소에 있었다. 그는 벌거벗은 나무 아래에 있었다. 그리고 눈물을 흘렸다. 쥘르 삼촌 흰 수염이 난 가엾은 노인이 우리에게 구걸을 하였다. 내 친구 조세프 다브랑쉬는 그에게 5프랑을 주었다. 내가 깜짝 놀라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 불쌍한 사람을 보니 생 각나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걸 자네에게 들려주지. 그 기억이 나를 따라다닌다네. 이런 것일 세." 르 아브르 출신의 내 집안은 부자가 아니었네. 그럭저럭 살아나갔을 뿐이야. 아버지는 사무실 에서 일을 했었는데, 늦게 돌아왔지. 그러나 대단하게 벌지는 못했어. 내게는 두 누 이가 있 었다네. 어머니는 우리가 살고 있는 궁색스러움에 고통을 느끼고 있었지. 그래서 종종 남편 에게 귀에 거슬리는 말과 은연중에 위태로운 비난을 퍼부어 댔어. 그럴 때면 그 가엾은 남자는 내 마음을 몹시 아프게 하는 몸짓을 하는 것이었어. 아버지는 나지도 않는 땀 을 닦 는 것처럼 손바닥을 펴 이마를 문지르는 거야. 그러고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지. 나 는 아 버지의 무능한 고통을 느끼곤 했다네. 모든 것에 절약을 했지. 저녁식사 초대도 받아 들은 적 이 없었어. 답례를 하지 않으려고 말일세. 생활 필수품들은 팔다 남을 물건들을 헐값 으로 샀 지. 내 누이들은 자신들의 옷을 직접 만들었고, 1미터당 15상팀 하는 장식줄의 값에 대해서 긴 실랑이를 벌이곤 했다네. 우리의 일상적인 식사는 고기를 넣은 수프와 온갖 소스로 조리 한 쇠고기 찜이었지. 그것은 건강에 좋고 원기를 돋구어주는 것 같기는 했지만, 나는 다른 것을 더 좋아했었다네. 단추를 잃어버리거나 바지가 찢어지면 가증스러운 일장의 활극 이 내 게 벌어지곤 했었지. 그러나 일요일마다 우리는 정장을 하고 선청을 한바퀴 돌러가곤 했어. 아버지는 프 록코트 를 입고, 커다란 모자를 쓰고, 장갑을 끼고서 축제날의 배처럼 작은 깃발로 장식한 어 머니에 게 팔을 내밀어주곤 했지. 제일 먼저 준비를 끝낸 누이들은 출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지.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언제나 아버지의 프록코트에서 깜빡 잊고 얼룩을 발견해 내는 거야. 그러면 벤젠에 적신 헝겊으로 그것을 빨리 지우지 않으면 아 되었지. 아버지는 머리에 커다 란 모자를 쓴 채 윗도리를 벗고, 손질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거야. 그러면 어머니는 근 시 안 경을 반듯하게 쓰고, 더럽히지 않으려고 장갑을 벗고는 서둘러 손질을 하는 것이었네. 격식 을 차리고 출발을 했지. 누이들은 서로 팔짱을 끼고 앞에서 걸어갔어. 누이들이 결혼 할 나이 여서, 도시 사람들에게 자랑삼아 보이는 것이라네. 나는 어머니의 왼편에, 아버지는 오른편 에 자리잡았지 일요일마다 그 산책에서 보여주던 가엾은 부모님의 과장된 표정, 준엄 한 얼 굴 모습, 엄격한 몸가짐 등이 생각나네. 그들의 태도에 달려 있기라도 한 것처럼 무게 있는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갔다네. 그리고 일요일마다 머나먼 미지의 나라에서 돌아오는 커다란 배들을 보면서, 아버지 는 늘 똑같은 말을 하시곤 했지. "어때, 저 안에 만약 쥘르가 있다면, 얼마나 뜻밖의 일이 겠는가." 아버지의 동생인 쥘르 삼촌은 한때는 공포의 근원이었다가 당시는 집안의 유일한 희 망이었 지 나는 소년 시절부터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왔었다네. 그래서 대뜸 그를 알아볼 수 있 을 것만 같았지. 그만큼 그에 대한 생각이 내게 친숙해졌거든. 나는 그가 미국으로 출 발하던 날까지의, 그의 생의 그 기간을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그의 생활의 세세 한 것 들을 모두 알고 있었다네. 그는 품행이 나빴던 것 같았어. 즉 얼마간의 돈을 낭비했 었는데, 그것은 가난한 가족들에게는 더할 수 없이 큰 죄악이었다네. 부자집에서는 삶을 즐기 는 사 람은 "바보 같은 짓"을 하지. 그런 사람을 웃으면서 방탕아라고 부르거든. 가난한 집 안에서 는 부모의 재산에 구멍을 내는 소년은 악동이 되고, 부랑배가 되고, 건달이 되는 것 이라네. 사실은 똑같지만, 이런 구별은 당연한 것이야. 왜냐하면 결과만이 행동의 중요성을 결 정하기 때문이지. 마침내 쥘르 삼촌은 자기 몫을 마지막 한 푼까지 낭비하고 나서, 아버지가 기대하 고 있던 유산을 현저하게 축내고 말았다네. 그래서 그 당시에 흔히 그렇게 하듯이, 르 아브 르에서 뉴욕으로 가는 상선에 태워 그를 미국으로 보냈던 것이라네. 거기에서, 쥘르 삼촌은 뭔지는 모르지만 장사로 일찍이 자리를 잡았지. 얼마 안 있 어서 삼 촌은 돈을 약간 벌었다는 것과 또 우리 아버지에게 끼쳤던 손해를 배상할 수 있게 될 것으 로 생각한다는 편지를 보내왔다네. 그 편지는 우리 가정에 깊은 감동을 불러일으켰지. 한 푼 의 가치도 없다고 말들 하던 쥘르 삼촌은 갑자기 정직한 사람, 마음이 너그러운 청년, 그리 고 모든 다브랑쉬 집안의 사람들처럼 공명정대한 진짜 다브랑쉬 사람이 된 것일세. 게다가 어떤 상선장은 삼촌이 큰 상점을 세내어 중요한 장사를 하고 있다고 알려주었다네. 2 년 후 에 온 두 번째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네. 친애하는 필립 형님, 제 건강은 좋으니 염려하지 마시라고 편지를 씁니다. 사업도 역시 잘 되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내일 남미로 긴 여행을 떠납니다. 어쩌면 몇 년 동안 형님께 소식 전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편지 드리지 못하더라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한재산 생기 면 르 아브르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 멀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함께 행 복하게 삽시다. 이 편지는 가족의 복음서가 되었다네. 툭하면 그 편지를 읽었고,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 기도 했지. 아닌게아니라 십 년 동안 쥘르 삼촌은 더 이상 소식을 보내오지 않았다네. 그러 나 아버지의 희망은 세월이 갈수록 커져갔지. 어머니 역시 종종 이렇게 말하곤 했어. "그 훌 륭한 쥘르 삼촌이 여기에 있게 되면 우리 처지도 바뀌게 될 거야. 곤궁에서 빠져나올 줄을 아는 사람이거든." 그래서 일요일마다, 검고 큰 기선이 뱀 같은 연기를 하늘로 내뿜 으면서 수평선에서 오는 것을 바라보면서, 아버지는 끝도 없는 말을 이렇게 되풀이하곤 했다 네. "어 때, 저 안에 만약 쥘르가 있다면, 얼마나 뜻밖의 일이겠는가." 그리고 우리는 손수건 을 흔들 어대며 소리치는 삼촌의 모습을 기대하기까지 하는 것이었지. "어이, 필립 형님." 그 의 귀향 을 확신하며 우리는 수만 가지 계획을 구상했다네. 삼촌의 돈으로 앵구빌 근처에다 작 은 별 장을 한 채 사려고까지 예정했었지. 그 점에 관해서는 아버지가 이미 흥정을 시작하지 않았 다고 단언할 수가 없네. 큰누나는 그때 스물여덟 살이었고, 또 한 누나는 스물여섯 살이었 지. 누이들은 결혼하지 않았는데, 그것이 모든 사람들로서는 큰 근심거리였다네. 마침내 한 구혼자가 둘째 누나에게 나타났어. 부자는 아니었지만 믿을만한 회사원 이었지. 어느 날 저녁 그에게 보여준 쥘르 삼촌의 편지가 젊은이의 망설임을 끝내게 하고 결심 을 하 게 했다고 나는 확신하고 있다네. 서둘어 승낙하고, 결혼식이 끝나면 전가족이 함께 제르세 이로 짧은 여행을 가기로 결정이 되었었지. 제르세이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이상적인 여행 지였어. 멀지도 않았고. 그 작은 섬은 영국에 속새 있어서, 여객선을 타고 바다를 건 너면 외 국 당을 밟게 되는 셈이지. 그래서 배를 타고 두 시간만 나가면, 프랑스 사람은 가기 나라에 서 이웃 나라 사람을 볼 수 있게 되고, 또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말하듯이, 영국 깃 발로 뒤덮인 그 섬의 역겨운 풍습을 연구할 수 있는 것이야. 이 제르세이로의 여행은 우리 의 관심사가 되었고, 유일한 기다림이 되었으며, 끊임없는 꿈이 되었다네. 마침내 출발했어. 그것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군. 기선은 그랑빌르를 향하여 열을 가하고 있었지. 아버지는 당황하여 우리 짐 세 개를 배에 싣는 것을 살펴보고 있었고, 불안해 진 어 머니는 결혼하지 않은 누이의 팔을 잡고 있었지. 그 누이는 다른 누이가 떠나고 나서 는 한 배의 새끼 중에서 혼자 남은 병아리처럼 고립되어 있는 것 같았다네. 그리고 우리 뒤에는, 신혼 부부가 항상 뒤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나는 종종 뒤돌아보아야만 했었지. 배가 기적을 울렸네. 우리는 배에 올라 있고, 부두를 떠난 선박은 푸른 대리석 테이블처럼 편편한 바다 위로 멀어졌네. 우리는 별로 여행을 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이, 행복하고 자랑스 러워서 멀어지는 해안을 바라보고 있었지. 아버지는 프록코트 밑으로 배를 내밀고 있 었는데, 그 웃옷은 그날 아침에도 얼룩을 모두 정성들여 지웠기 때문에 외출하는 날마다 벤젠 냄새 가 그의 주위에 풍기고 있었지. 나로 하여금 일요일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곤 하던 그 냄새 였어. 갑자기 아버지는 두 명의 우아한 부인에게 굴을 대접하고 있는 두 신사를 찾아내었 어. 누 더기를 걸친 늙은 선원이 단칼로 껍질을 까서 신사들에게 주면, 그들은 그것을 얼른 부인들 에게 내밀곤 하는 것이었어. 여자들은 고급 손수건 위에다 굴껍질을 놓고, 옷을 더럽 히지 않 으려고 입을 앞으로 내밀면서 품위 있는 태도로 먹고 있었어. 그리고 여자들은 얼른 그 물 을 쭉 들이마시고는 껍질을 바다에다 내던졌어. 아버지는 아마 움직이는 배 위에서 굴 을 먹 고 있는, 품위 있는 행동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야. 아버지는 그것을 고상하고 고 급스런, 좋은 취미라고 생각했지. 그래서 어머니와 누이들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물었다네. " 굴을 사 들릴까요." 어머니는 돈쓰는 것 때문에 망설였지만, 두 누이는 얼른 승낙했지. 어머 니는 화 가 난 어조로 말했어. "난 배가 아플까봐 겁이 나요. 애들에게만 주세요. 너무 많이 는 말고 요. 탈이 날지도 모르니까." 그러고 나서는 내 쪽을 돌아다보며 이렇게 덧붙이는 거였어. "조세프는 필요 없어요. 사내아이들은 너무 애지중지해서는 안 되니까요." 그래서 나는 이 차별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면서 어머니 곁에 남아 있었어. 그러고는 두 딸과 사위를 데리고 누더기를 걸친 늙은 선원 쪽으로 으스대면서 가고 있는 아버지를 눈으로 좇았지. 두 부인이 막 자리를 떠난 뒤라, 아버지는 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국물을 흘리지 않고 먹을 수 있 는가를 가르쳐주는 것이었어. 아버지는 시범을 보여주고 싶기조차 해서 굴을 빼앗았 지. 부 인들의 흉내를 내려고 하다가, 아버지는 곧 국물을 모두 프록코트 위에다 쏟아 버렸 어. 나는 어머니가 이렇게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네. "가만히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그런 데 갑자 기 아버지가 안절부절못하는 것 같았어. 아버지는 몇 발자국 물러서서, 굴껍질을 까 는 사람 주위에 모여 있는 가족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갑자기 우리가 있는 쪽으로 오는 것이 었어. 눈이 이상하고 아주 창백해진 것처럼 보였어. 아버지가 낮은 목소리로 어머니에게 말 했다네. "이상한 일이야. 굴껍질을 까는 저 사람이 마치 쥘르와 비슷하단 말이야." 어머니 는 어리 둥절하여 이렇게 물었네. "어떤 쥘르 말이에요." 아버지가 다시 말했어. "그야, 내 동생이지. 만약에 그 애가 미국에서 잘 살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면, 저 사람 이 그 애라고 믿었을 거야." 어머니가 놀라 더듬거리며 말했어. "당신 미쳤군요. 저 사람이 삼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이상 어째서 그런 바보 같은 말을 하는 거예요." 그러 나 아버지는 고집을 부렸지. "그럼 가서 그를 봐요, 클라리스. 당신 자신이, 자신의 눈으로 그것을 확인해 보면 좋겠소." 어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딸들이 있는 쪽으로 갔지. 나도 또한 그 남자를 쳐다보았 네. 그 는 늙고, 더러웠으며, 온통 주름살투성이였어. 그리고 자기가 하는 일에서 눈길을 돌 리지 않 는 거야. 어머니가 돌아왔어 나는 어머니가 떨고 있음을 알았지. 어머니는 아주 빠르 게 말했 다네. "삼촌인 것 같아요. 그러니 선장에게 가서 물어보세요. 그 말썽꾸러기가 이제 또 우리 에게 덜어지지 않도록 특히 조심하구요." 아버지가 멀어져갔어. 나는 아버지를 따라 갔다네. 이상하게 흥분이 되었어. 키가 크고 마르고 긴 구레나룻이 난 선장은 마치 인도의 우 편선이 라도 지휘하는 것처럼 거드름을 피우는 표정으로 선교 위를 거닐고 있었네. 아버지는 예의 를 갖춰 그에게로 다가가서, 인사치레로 그의 직업에 관해서 질문을 했지. 제르세이에 서 중 요한 것이 무엇인가요, 생산물은요, 인구는요, 풍습은, 습관은, 지질은 등등. 적어도 아메리카 합중국에 관계되는 문제라고 생각했을 것이네. 그런 다음에는 우리가 타고 있는 배인 "엑스 프레스 호"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지. 그러고 나서는 승무원에 관해 이야기하기에 이 르렀어. 아버지는 마침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네. "저기 굴 가는 노인이 있는데, 퍽 재미 있어 보 이는군요. 저 영감에 대해서 자세한 것을 알고 계시나요." 선장은 이 대화를 역정을 내는 것 으로 끝을 내면서, 이렇게 무뚝뚝하게 대꾸하였다네. "저 늙은 프랑스의 떠돌이는 내가 작년에 아메리카에서 만났는데 본국으로 데리고 왔지 요. 르 아브르에 친척이 있는가본데, 그들 곁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아요. 그들에 게 같아 야 할 빚이 있기 때문이라지요. 이름이 쥘르. 쥘르 다르망쉬라던가 다브랑쉬라던가, 하여튼 뭐 그런 이름이에요. 한때는 거기에서 부자였던 모양인데, 이제는 보시다시피 저 지경 이 되 었지요." 창백해진 아버지는 목이 메고 눈에는 핏기가 서서, 이렇게 음절을 끊어 분 명히 말 했다네. "아, 아, 잘 알았소. 아주 잘 놀라운 일도 아니군요. 대단히 고맙소이다, 선 장." 그러 고는 아버지는 가버렸고, 한편 선장은 대경실색하여 멀어져가는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었지. 아버지는 어머니 곁으로 돌아왔는데 너무도 얼굴이 질려 있어서 어머니가 이렇게 말했 다네. "앉으세요. 사람들이 눈치채겠어요." 아버지는 입속으로 중얼거리면서 걸상 위에 털 썩 주저 앉았네. "그 애야, 바로 그 애야." 그러고 나서는 아버지가 묻더군. "어쩐다지" 어머 니가 열 심히 대답했어. "아이들을 멀리해야 해요. 조세프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이상, 그 애가 애 들을 데리러 가야지요. 우리 사위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특히 주의해야 해요. " 아 버지는 겁이 나는 듯싶었어. 이렇게 중얼거리더군. "무슨 변이란 말인가." 갑자기 미친 듯 이 화를 내면서 어머니가 덧붙였네. "난 그 도둑놈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다시 우리의 짐이 될 것이라고 항상 생각하고 있었다구요. 다브랑쉬 같은 사람에게서 무엇을 기대 할 수 있겠어요." 아버지는 아내의 비난을 받을 때면 늘 그러듯이 손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네. 어머 니가 덧붙여 말했어. "굴값을 치르도록 지금 조세프에게 돈을 주세요. 그 비렁뱅이가 알아보 면 어쩌겠어요. 배에서 재미있는 꼴을 보여주게 뒬 거예요. 우리는 저쪽 끝으로 갑시 다. 그 래서 저 사람이 우리에게 다가오지 못하도록 해요." 어머니는 일어났고, 그들은 5프 랑짜리 동전 하나를 내게 건네주고 멀어져갔지. 누이들은 놀라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어. 나는 엄마가 배멀리로 약간 거북해한다고 말했 지. 그러고는 굴 까는 사람에게 물었어. "얼만가요, 아저씨." 나는 삼촌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네. 그가 대답했어. "2프랑 50이오." 나는 5프랑을 내밀었고, 그는 거스름돈을 주었 네. 나는 그의 손을 온통 주름이 진 한 선원의 불쌍한 손을 바라보았네. 그리고 그의 얼굴을, 늙고 비 참하고, 슬프고 짓눌린 그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이렇게 생각했지. "내 삼촌이다. 아 버지의 형제인 내 산촌이야." 나는 그에게 팁으로 5상팀을 주었네. 그는 나에게 감사해했어. "젊은 이에게 신의 축복이 있기를." 동냥하는 불쌍한 사람의 억양으로 말일세. 나는 그가 거 기에서 구걸을 했음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네. 누이들은 내 후한 인심에 어리둥절하여 나를 바라보고 있었어. 내가 2프랑을 아버 지에게 돌려주자, 아버지는 깜짝 놀라 물었다네. "3프랑어치나 됐니, 그럴 리가 없는데." 나 는 자신 있는 목소리로 똑똑히 말했지. "팁으로 50상팀을 주었어요." 어머니가 펄쩍 뛰며 뚫 어지게 나를 쳐다보았네. "너 미쳤구나, 그 사람에게, 그 비렁뱅이에게 50상팀을 주다니." 그 러고 나 서는 모두들 잠자코 있었다네. 우리 앞의 수평선에서 어떤 보랏빛 그림자가 바다로부 터 나 오는 듯했어. 그것이 제르세이였네. 부두에 가까워지자, 마음속에서 쥘르 삼촌을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다가가서 그에게 위안이 되는 정다운 말을 해주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일 어나더 군. 그러나 이제는 아무도 굴을 먹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사라져버리고 없었어. 아마 그 불 쌍한 사람이 거처하고 있는, 냄새가 고약한 화물창 밑바닥으로 내려간 것이 틀림없었 어. 우 리는 삼촌을 다시 만나지 않으려고 생말로행의 배로 돌아왔다네. 어머니는 안절부절 못하고 가슴을 태우고 있었지. 나는 아버지의 형제를 다시 보지 못했다네. 이런 이유로, 자 네는 내 가 이따금 부랑자들을 5프랑을 주는 것을 보게 될걸세. 야성의 어머니 나는 15년 전부터 비를로뉴에 돌아간 적이 없었다. 금년 가을에는 친구 세르발의 집으로 사냥하러 갔었는데, 그 친구는 프러시아군들이 파괴한 자기의 성관을 드디어 새로 지었던 것이다. 나는 이 고장을 아주 좋아했다. 세상에는 시각적으로 관능적인 매력을 지닌 기분 좋 은 구석들이 있다. 사람들은 그런 곳을 감각적인 애정으로 사랑한다. 대지에게 매혹 당하는 우리들은 자주 본 적이 있고 또한 행복한 사건처럼 우리를 감동시킨 적이 는 어떤 샘, 숲, 못, 언덕들에 대해서 정다운 추억들을 간직하고 있다. 이따금 생각은 청명한 날에 단 한 번 본 숲의 한구석이나 벼랑의 끝 혹은 꽃가루를 뿌리고 있는 과수원으로 돌아가곤 하는 데, 어 느 봄날 아침에 거리에서 만났던, 밝고 투명한 옷차림을 한 여인들의 모습이 우리의 마음과 육체에 달랠 길 없고 잊을 길 없는 욕망, 스쳐가는 행복감을 남겨주듯이, 그것들은 우 리 마 음속에 남아 있는 것이다. 나는 비를로뉴에서 작은 나무들이 산재하고 또한 혈맥처럼 대지에다 혈액을 전하면 서 땅 속으로 흐르는 개울이 가로지르고 있는 온 들판을 좋아하였다. 사람들은 그 속에서 가 재, 송 어, 뱀장어들을 낚아올리는 것이었다. 얼마나 기막힌 즐거움인가. 여기저기에서 수 영도 할 수 있고, 가느다랗게 물이 흐르는 기슭에 돋아난 키 큰 풀 속에서는 이따금 꺅도요가 눈에 띄기도 하였다. 나는 내 앞에서 숲을 뒤지며 사냥물을 찾는 두 마리의 개를 바라보면 서, 염 소처럼 경쾌하게 걸어갔다. 내 오른쪽 백 미터쯤 되는 곳에서는 새르발이 개자리발을 휘젓 고 있었다. 소드르 숲의 경계를 이루는 수풀을 돌아가자 쓰러져가는 초가집 한 채가 보였다. 갑자기 1869년에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집이 생각났는데, 그때는 깨끗하고 포도나무로 뒤덮 여있었으며, 문앞에는 암탉들이 있었다. 황폐하고 음침하게 골격이 서 있는 그대로 쓰 러져가 는 집보다 더 비참한 것이 있을까. 나는 또한 몹시 피곤하던 어느 날, 그 안에서 포도주 한 잔을 마시게 해주었던 착한 부인 과 또 세르발이 그때 그 집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던 것이 생 각났 다. 늙은 밀렵꾼인 그 아버지는 헌병들에 의해 사살당했었다. 내가 전에 본 적이 있는 그 아 들은 키가 크고 마른 청년이었는데, 그도 마찬가지로 무서운 사냥꾼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들을 소바주 ,야만인이라는 뜻, 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이름이었을까, 별 명이었을 까. 나는 세르발을 소리쳐 불렀다. 그는 다리가 가늘고 긴 사람이 그렇듯 성큼성큼 걸어왔 다. 그에게 물었다. "저 집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나" 그러자 그가 이런 뜻밖의 이야 기를 내 게 들려주었다. 전쟁일 일어났을 때, 당시 서른세 살이었던 아들 소바주는 집에 어머니만을 남겨둔 채 지 원하였다. 사람들은 노파에게 돈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를 그다지 불쌍하 게 여기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숲 기슭에 외따로 있는 이 집에 혼자 남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 집의 남자들과 똑같은 종족이라 무서워하지 않았 다. 그 녀는 키가 크고 마른, 사나운 할머니로서 별로 웃지도 않았고 또한 사람들은 그 할 머니와 농담도 거의 하지 않았다. 하기야 시골 여자들은 거의 웃지 않는다. 그것은 남자들이 할 일 인 것이다. 여자들은 침울하고 호전되지 않는 생활을 하기 때문에 한심하고 편협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 농부는 술집에서 떠들썩한 즐거움을 어느 정도 배우지만, 아내는 한결같 이 준 엄한 표정으로 진지하게 남아 있다. 그녀들의 얼굴 근육은 웃는 동작을 전혀 배우지 못했던 것이다. 소바주 어머니는 자기의 초가집에서 보통때의 생활을 계속했는데, 그 집은 얼 마 안 있어 눈으로 덮여버렸다. 그녀는 일주일에 한 번 방과 고기를 조금 사러 마을로 갔다 가 오 막살이로 돌아오곤 하였다. 늑대가 나타난다는 이야기 때문에, 그녀는 등에다 총을 메 고 외 출을 하였는데, 그 총은 아들의 것으로서 녹이 슬었고, 개머리판은 손의 마찰로 닳 아졌다. 키가 큰 소바주 노파가 허리를 약간 구부리고, 눈 때문에 큰 걸음을 느릿느릿 걸으면 서, 어 느 누구도 본 적이 없는 흰 머리카락을 집어넣은, 머리에 꽉 죄는 검은 모자 위로 총신이 튀어나와 있는 모습은 이상스럽게 보였다. 어느 날 프러시아군이 당도했다. 그들은 각자의 재산과 재력에 따라 주민들에게 배 치되었 다. 노파는 부자라고 알려져 있어서 네 명을 할당받았다. 그들 뚱뚱한 네 명의 젊은 이들은 황금색의 살갗에다 황금색의 수염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푸른 눈은 이미 견딘 피로에 도 불 구하고 여전히 기름이 돌았다. 정복한 나라의 출신들이지만 좋은 젊은이들이었다. 이 나이 많은 여자 집에 자기들만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들은 할머니에게 친절을 많이 베풀었 고, 또 한 할 수 있는 한 그녀의 고된 일과 비용을 절약하게 해주었다. 아침이면 네 사람 모 두 우 물가에서 웃저고리를 벗고 세수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눈이 내려 눈부신 날에는 북극 사람의 희고 분홍빛 나는 피부를 물에 흠씬 적시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소바주 어머 니는 왔다갔다하면서 수프를 준비하였다. 그런 다음에 그들은 부엌을 깨끗이 청소하 고, 유리 창을 닦고, 나무를 베고, 감자 껍질을 벗기고, 속옷을 빨면서, 마치 어머니 곁에 있 는 착한 네 아들처럼 집안의 모든 일을 하였다. 그러나 노파는 끊임없이 자기 아들을 생각했다. 매부리코에 갈색 눈을 한, 입술 위 로 검은 털이 수북한 짙은 코밑수염이 있는 키 키고 마른 아들을 생각했다. 그녀는 날마다 자 기 집 에 자리잡은 병사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프랑스 보병 23연대 가 어 디로 떠났는지 아시오. 내 아들이 거기에 있는데." 그들은 대답하곤 하였다. "아니 오, 몰라 요. 전혀 몰라요." 그들도 고향에 어머니가 있기 때문에 그녀의 고통과 안타까움을 이 해하면 서 많은 자디잔 일에 마음을 써주었다. 하기야 그녀도 그들을, 네 명의 적군을 매우 좋아하 였다. 농부들이란 애국적인 증오심 같은 것은 거의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것은 상류 계급의 소유물이었다. 가난하기 때문에 그리고 새로운 모든 의무가 그들을 짓 누르기 때문에 가장 많은 희생을 당하는 그들, 수가 많기 때문에 진짜 육탄을 이루어 무더기 로 죽 는 그들, 가장 힘이 약하고 저항력이 없기 때문에 마침내 끔찍한 전쟁의 비극을 가장 가혹 하게 겪어야 하는 그들, 그들 천민들은 호전적인 열정이라든지 흥분하기 쉬운 명예에 관한 일이라든지 도는 패전국과 마찬가지로 승전국도 여섯 달 동안에 지쳐버리게 하는, 이른바 그 정치적인 책략이라는 것을 거의 이해하지 못한다. 그 지역에서는 소바주 어머니 집에 있는 독일인들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그들 네 사람은 좋은 숙소를 구했지." 그런데 어느 날 아침, 노파가 집에 혼자 있을 때, 그녀는 멀리 벌판에서 자기집 쪽으로 오고 있는 한 남자를 발견하였다. 곧 그가 편지 배달하 는 일 을 맡은 우편 집배원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그녀에게 접은 종이 한 장을 건네주었 다. 그 녀는 바느질할 때 쓰는 안경을 안경집에서 꺼냈다. 그러고는 그것을 읽었다. 소바주 부인, 이 편지에는 부인에게는 슬픈 소식이 들어 있습니다. 부인의 아들 빅 토르는 어제 포탄에 맞아 전사했습니다. 이를테면 포탄으로 해서 두 동강이 난 것입니다. 나 는 아주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중대에서 나란히 있었으니까요. 그는 만일 자기에게 불행한 일 이 생기 는 날에는 부인에게 알려달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전쟁이 끝날 때 부인에게 돌려드리 기 위 해서 그의 주머니 속에 있던 시계를 맡아가지고 있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보 병 제 23연대 이등병, 세제르 리보. 그 편지에는 3주일 전의 날짜가 쓰여 있었다. 그녀는 조금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꼼짝 하지 않고 있었는데, 너무도 놀라고 얼이 빠져서 미처 고통조차 느끼지 못했던 것이 다. 그녀 는 생각했다. "이제 빅토르가 죽고 없단 말이지." 그러자 조금씩 눈물이 솟아올랐고, 고통이 가슴속으로 밀려들어왔다. 무섭고 고통스러운 생각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그녀는 이 제 더 이상 자기 자식을, 어른이 다 된 자식을 결코 포옹할 수 없을 것이다. 헌병들은 아버 지를 죽 였고, 프러시아군인들은 그 아들을 죽인 것이다. 아들은 포탄에 두 동강으로 잘렸다. 그녀에 게는 그것이, 그 소름끼치는 것이 보이는 듯했다. 머리를 떨어뜨리고 눈을 뜬 채, 화를 낼 때 그러는 것처럼 무성한 콧수염 끝을 깨물고 있는 모습이. 죽은 다음에 시신은 어떻 게 했 을까. 이마 한가운데에 총알이 박힌 그의 남편을 돌려준 것처럼 그저 자식을 돌려주기 만 한 다면. 그때 그녀는 사람의 목소리를 들었다. 마을에서 돌아오는 프러시아군인들이었 다. 그녀 는 얼른 편지를 주머니 속에 감추었다. 그러고는 눈을 닦을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보 통때의 얼굴로 태연하게 그들을 맞았다. 그들 네 사람은 모두 기쁜 듯이 웃고 있었다. 왜냐하 면 훔 친 것에 틀림없는 예쁜 토끼 한 마리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노파에게 맛있는 것을 먹게 될 거라고 신호를 했다. 그녀는 곧 점심을 준비하기 위해서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토끼를 죽여야만 했을 때에는 그녀의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일이 처음은 아니지 않은가. 병사 한 사람 이 귀 뒤쪽을 한 대 갈겨 죽였다. 일단 짐승이 죽자, 그녀는 가죽을 벗겨 붉은 살을 끄집 어냈다. 그러나 그녀가 다루고 있는, 손에 범벅이 되어 있는 피를 보자, 그 미지근한 피가 식 어 엉기 는 것을 느끼자,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떨려왔다. 그리고 아직 맥이 뛰고 있는 이 동물처 럼 두 동강으로 잘려 온통 시뻘건 자기 아들을 여전히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프 러시아 인들과 함께 식탁에 앉았다. 그러나 그녀는 먹을 수가 없었다. 한 입도. 그들은 그녀 에 상관 없이 토끼고기를 게걸스럽게 먹어댔다. 그녀는 말없이, 한 가지 일을 궁리하면서 그들 을 곁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도 태연한 얼굴이라서 그들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 다. 갑자기 그녀가 물었다. "나는 당신들의 이름조차 몰라요. 우리가 함께 있는 지도 한 달이 되었는데 말이오." 그들은 간신히 그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자 기들의 이름을 말했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아서 그녀는 종이에다 그들의 집 주소를 쓰게 했 다. 그 러고는 큰 코에 안경을 걸치고 알 수 없는 글자를 들여다보았다. 그러고 나서는 종이 를 접 어 주머니 속에 넣었는데, 그 위에는 아들의 죽음을 그녀에게 알려준 편지가 있었다. 식사가 끝나자, 그녀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난 여러분들을 위해 일하러 가겠어요." 그러고 는 그들 이 자는 고미다락 안으로 건초를 올려가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이 일을 이상하게 여겼 다. 그 러나 그녀는 그들이 춥지 않게 하려고 그런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녀를 도와 주었다. 그들은 초가지붕에까지 짚단을 쌓아올렸다. 그렇게 해서 네 벽이 마초로 된, 따스하 고 향기로운, 커다란 방 하나를 만들었는데, 거기에서 그들은 잠이 썩 잘 올 것 같았 다. 저녁식사때에는, 그들 중에서 한 군인이 소바주 어머니가 아직도 전혀 먹지 않는 것 을 보 고 걱정을 하였다. 그녀는 위경련이 일어났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고 나서는 몸을 덥 게 하려 고 넉넉하게 불을 지폈다. 그리고 네 사람의 독일인은 저녁마다 이용했던 사다리를 타 고 그 들의 거처로 올라갔다. 뚜껑문이 닫히자마자, 노파는 사다리를 치웠다. 그러고는 소 리 없이 바깥 문을 열고 짚단을 가지고 돌아와서 그것을 부엌을 가득 채웠다. 그녀는 눈 위를 맨발 로 아주 가만히 걸었기 때문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따금 그녀는 잠들어 있 는 네 명의 병사들이 내는, 고르지 않게 울려 퍼지는 코고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준비가 충분히 되었다고 판단되자, 그녀는 짚 한 단을 아궁이 소게 집어 던졌다. 불이 붙자, 그것 을 다른 짚단 위에 헤쳐놓고 나서, 밖으로 나와 바라보았다. 순식간에 맹렬한 빛이 초가집의 온 내부 를 비추었다. 그러고 나서는 그것은 벌겋게 단 무서운 숯불이 되었고, 타고 있는 거대 한 화 덕이 되었다. 번쩍이는 불빛은 좁은 창문으로 터져나와, 눈 위에 한 줄기 선명한 빛살 을 던 졌다. 그러자 커다란 고함소리가 집 꼭대기에서 들려왔다. 이어서 울부짖는 소리와 괴 로움과 갑작스러운 공포로 비통하게 호소하는 아우성이 들렸다. 그러고 나서는 뚜껑문이 집 안쪽으 로 무너졌고, 불의 소용돌이가 다락방 속으로 치솟아 초가 지붕을 뚫고 거대한 횃불의 화염 처럼 하늘로 올라갔다. 그러고는 초가집이 온통 불꽃을 내며 타올랐다. 안에서는 탁탁거리며 불이 타는 소리, 벽이 삐걱거리는 소리, 대들보가 무너지는 소 리 이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갑자기 지붕이 무너졌고, 타오르는 집의 뼈대는 공중 으로, 연기 구름 한가운데로 커다란 불똥의 깃털 장식을 던지고 있었다. 불로 환해진 하얀 들판은 붉은 빛을 띤 은빛 상보처럼 빛나고 있었다. 멀리서 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소바주 노파는 한 사람이라도 빠져나올까봐 아들의 총을 들고, 허물어져가는 자기 집 앞에 그대로 서 있었다. 끝났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녀는 무기를 벌겋게 단 숯불에 던졌다. 포성 이 울려 퍼졌다. 사람들이 왔다. 농부들도, 프러시아군인들도. 사람들은 나무 등걸 위에, 조용 히 만족 스럽게 앉아 있는 부인을 발견하였다. 한 독일인 장교가 프랑스 젊은이처럼 불어로 그녀에게 물었다. "당신 집에 있는 군 인들은 어디 있소." 그녀는 꺼져가는 화재의 붉은 더미 쪽으로 마른 팔을 내밀었다. 그러고 는 높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 안에" 사람들이 그녀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 프러시아인이 물었다. "어떻게 해서 불이 났지요." 그녀가 말했다. "내가 불을 놓았소." 사람들은 그녀의 말 을 믿지 않았다. 재난을 당해 갑자기 돌아버린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모두 그녀 를 에 워싸고 말을 듣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건을 이야기하였다, 즉 편지가 도착하고 나서부터 집과 함께 태운 사람들의 마지막 비명에 이르기까지. 그녀는 자기 가 저 지른 것, 느낀 것에 대해 세세한 것도 잊지 않았다. 말이 끝나자, 그녀는 주머니에서 종이 두 장을 꺼냈다. 그러고는 마지막 불빛에 그 것을 구 별하려고 안경을 쓰고 나서, 종이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것은 빅토르의 죽음을 알리는 것이오." 다른 종이를 보이며 그녀는 고갯짓으로, 붉게 타고 있는 폐가를 가리키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이건 그들의 이름인데, 그들 집에다 편지로 알리려고 적어놓았지요." 그 녀는 자 기의 양 어깨를 잡고 있는 장교에게 흰 종이를 조용히 내밀었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 편지하세요. 그리고 바로 내가 그랬노라고 그들의 부모에게 이야 기하세 요. 소바주 부인인 빅토와르 시몽이라구요. 잊지 말아요." 장교는 독일어로 큰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사람들이 그녀를 붙잡아, 아직도 따스한 그녀의 집 벽을 향하여 내던졌다. 그 러고는 열두 명이 그녀 앞에, 20미터쯤 되는 공에 재빨리 정렬했다. 그녀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 다. 그녀는 알아차렸다. 그래서 기다렸다. 한마디 명령이 떨어지자, 곧 긴 총성이 따 랐다. 뒤 늦은 한 방의 총소리가 다른 총성이 끝나고 난 후 울렸다. 노파는 넘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다리를 걸어 넘어뜨린 것처럼 주저앉았다. 프러시아 장교가 다가갔다. 그녀는 거의 두 동강 이 나 있었다. 그리고 경련이 이는 그녀의 손에는 피에 흥건한 편지가 쥐어져 있었다. 내 친 구 세르발은 이렇게 덧붙였다. "그 보복 수단으로 독일인들은 마을에 있는 내 성관을 파괴 한 것이라네." 나는 그 안에서 타버린 네 명의 온순했던 젊은이들의 어머니에 대해 생각했 고, 또한 그 벽에 기대어 총살당한 또 다른 어머니의 무서운 영웅적 행위에 대해 생 각했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불로 해서 거무스름한 작은 돌 하나를 주워들었다 아버지 바티뇰르에 살고 있었을 때, 그는 국민교육성의 직원이었기 때문에 아침마다 사무실 로 가 기 위해 합승 마차를 탔다. 그리고 매일 아침 어느 젊은 처녀와 마주 앉아 파리 중심 지까지 가곤 했었는데, 그는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녀는 날마다 같은 시간에 자기 가게 로 가는 것이었다. 그녀는 흑점처럼 보일 만큼 검은 눈을 가진 갈색 머리의 아가씨였는데, 그 녀의 얼 굴 빛은 상아빛으로 빛났다. 그는 그녀가 언제나 똑같은 거리의 모퉁이에서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그 묵직한 마치를 따라잡기 위해 달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약간 다급한 표정으로, 민첩하고 맵시 있게 뛰어오곤 하였다. 그러고는 말들이 완전히 멈추 기 전에 발판 위로 뛰어오르곤 하였다. 그러고 나서는 약간 헐떡이면서 안으로 들어와 자리 에 앉고서는 자기 주위를 둘러보는 것이었다.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 프랑수아는 테시에서 그녀의 얼굴이 아주 자기 마음에 듦을 느꼈 다. 사람은 때때로 그가 누구라는 것을 알지도 못하면서, 당장 미칠 듯이 껴안고 싶은 여자 들을 만나게 된다. 이 젊은 처녀는 그의 내적인 욕망에, 그의 은밀한 기대에, 또한 사 람들이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마음 밑바닥에 지니고 있는 사랑의 이상 같은 것에 부 합하는 여자였다. 그는 본의는 아니지만 그녀를 끈덕지게 바라보았다. 이러한 주시에 거북해 진 그녀 가 얼굴을 붉혔다. 그는 그것을 알아차리고, 눈을 돌리려고 했다. 그러나 다른 곳을 바라보 려고 애쓰는데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그녀에게로 도로 눈이 가는 것이었다. 며칠 수에 는 말 을 주고받지는 않았지만 서로를 알게 되었다. 마차가 만원일 때에는 그는 그녀에게 자 기 자 리를 양보하고, 유감스럽지만 자기는 지붕 위 좌석으로 올라갔다. 이제는 그녀가 살포 시 미 소지으면서 그에게 인사를 하게 되었다. 너무 강렬하게 느껴지는 그의 시선에 눈을 내리뜨 고는 있지만, 그녀는 이렇게 주시당하는 것이 이제는 불쾌하지 않은 듯했다. 그들은 마침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일종의 빠른 친교가 그들 사이에 이루어졌 다. 하 루에 30분간의 친교였다. 물론 그것이 그에게는 자기 생활에서 가장 즐거운 30분이었 다. 그 는 나머지 모든 시간에 그녀를 생각했다. 사무실에서의 긴 집무 시간에도 줄곧 그녀가 떠오 르는 것이었다. 사랑하는 여자의 얼굴이 마음속에 남기는, 허공에 뜬 것 같으면서도 끈질긴 모습에 사로잡혀,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고 정신을 앗아가는 것이었다. 그 귀여운 사 람을 완 전히 소유한다는 것은 그로서는 미칠 듯한 행복이며, 사람으로서는 거의 실현할 수 없 을 것 같이 여겨졌다. 이제는 아침마다 그녀는 그와 악수를 했다. 그러면 그는 저녁때까지 그 촉감 을, 작은 손가락들이 살며시 누르던 기억을 자기의 살갗 속에 간직하는 것이었다. 그 는 자기 피부 위에 그 자국을 보관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그녀와 만나는 시간 이외의 나머 지 시 간엔 모두 합승 마차에서의 그 짧은 여행을 불안스럽게 기다렸다. 그래서 일요일엔 그 의 가 슴이 에는 듯했다. 그녀 역시 그를 사랑했었던 것이 틀림없었다. 어는 봄날의 토요 일, 다음 날에 메종 라피트로 함께 점심식사 하러 가자는 것을 허락한 것을 보면 말이다. 그녀가 먼저 와서 역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깜짝 놀랐다. 그녀가 말했다. "출 발하기 전에 드릴 말씀이 있어요. 20분이나 남았으니 충분해요." 그녀는 그의 팔에 기대어, 눈이 내 리뜨고 뺨이 창백해져 떨고 있었다. 그녀가 다시 말했다. "저를 오해하시면 안 돼 요. 저는 정직한 처녀예요. 제게 약속해 주신다면 당신과 함께 거기에 가겠어요. 아무것도, 아 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예의바른 일이 아닌 것은,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신다면." 그녀의 얼굴 이 갑자 기 개양귀비보다 더 붉어졌다.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그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 지 몰랐지 만, 행복하면서도 동시에 실망이 되었다. 마음속에서는 어쩌면 그러한 그녀를 더 좋아 했겠지 만, 그러나, 간밤에 그의 혈관 속에 불을 질렀던 공상들을 달래야 했다. 만일 그가 그녀의 품행이 경솔하다는 것을 알았다면, 확실히 그녀를 덜 사랑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그로서는 너무도 즐겁고 감미로웠을 것이다. 그리고 사랑에 관한, 남자들의 모든 이 기적인 계산이 그의 정신을 선동시켰다.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녀가 눈가에 눈물을 짓 고 감 격한 목소리로 다시 말하기 시작하였다. "당신이 나를 정말로 아껴주시겠다고 약속을 해주 시지 않는다면, 전 집으로 돌아가겠어요." 그는 그녀의 팔을 다정스럽게 힘주어 잡고 이렇게 대답했다. "약속하겠소.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하지요." 그녀는 마음이 놓이는 듯했고, 미소를 지으면서 물었다. "그게 정말이세요." 그는 그녀의 눈 속을 들여다보았다. "맹세하지 요." "차 표를 끊어요."하고 그녀가 말했다. 그들은 도중에는 거의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다. 기찻이 만원이었기 때문이다. 메종 라피트에 도착하자, 그들은 세느강 쪽으로 갔다. 포근한 공기가 몸과 마음을 부드럽 게 해주었다. 강 위로, 나뭇잎 위로 그리고 잔디밭 위로 쏟아지는 태양은 육체와 정신 속에 수 없는 즐거움을 반사하고 있었다. 그들은 손에 손을 잡고, 물속으로 무리를 지어 미 끄러져 가는 작은 물고기를 쳐다보면서 높다란 둑을 따라 걸어갔다. 그들은 행복에 젖어 걸 었는데, 마치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지극히 큰 행복으로 땅에서 몸이 떠 있는 성싶었다. 마침내 그녀 가 말했다. "아마 당신은 나를 미친 여자라고 생각하실 거예요." 그가 물었다. "그건 왜죠." 그녀가 다시 말했다. "당신과 함께 이렇게 단둘이서 온다는 것은 미치광이 같은 짓이 아니 겠어요." "천만에요. 그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아니예요. 그렇지 않아요. 그건 자연 스러운 일이 아니예요. 나로서는 과오를 범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사람들 은 이 렇게 해서 과오를 저지르게 되거든요. 그러나 당신이 아신다면 날마다, 한 달의 매일 매일을 또한 1년의 매달을 똑같은 일만 한다는 것은 너무도 한심한 일이지요. 나는 엄마하고 단둘 이 있어요. 그리고 엄마는 괴로움이 있으기 때문에 명랑하지 못하세요. 내가 힘껏은 해드려 요. 마음에 없어도 웃으려고 애쓰지요. 그러나 언제나 잘되는 것은 아녜요. 하여튼 여기에 온 것이 잘못이에요. 적어도 그것만은 내게 원하시지 않겠지요." 대답으로 그는 그녀 의 귀에 열렬히 키스를 했다. 그러자 그녀는 갑작스러운 몸짓으로 그에게서 벗어났다. 그러고 는 별안 간 화를 냈다. "오, 프랑수아씨. 내게 맹세를 하고 나서 이러시다니요." 그리고 그들 은 메종 라피트 쪽으로 되돌아왔다. 그들은 프티 아브르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 집은 단층이었는데, 물가에 있는 거대한 네 그 루의 포플러나무 밑에 가려져 있었다. 야외, 햇볕, 흰 포도주 약간 그리고 나란히 앉 아 있음 으로써 느껴지는 불안, 이런 것들이 그들의 얼굴을 붉게 만들었고, 숨쉬기도 힘들어 말없이 있게 하였다. 그러나 커피를 마시고 나서는 갑작스러운 즐거움이 그들을 사로잡았다. 그래서 세느강을 가로질러, 그들은 강을 따라 프레트 마을 쪽으로 다시 떠났다. 갑자기 그가 물었 다. "이름이 뭐예요." "루이즈." 그는 "루이즈"라는 말을 되풀이하고는, 더 아무 말 도 하지 않았다. 집들에 닿았다. 젊은 처녀는 데이지를 따서 시골식으로 커다란 꽃다발을 만 들었다. 그리고 그는 방금 풀밭에 놓여진 어린 말처럼 얼근해서 입 가득히 노래를 불렀다. 그들의 왼쪽에는, 포도나무가 심어진 작은 언덕이 강을 끼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프랑수아 가 발 걸음을 멈추고는 놀라움으로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오, 보세요."하고 그가 말했다. 포도밭 은 끝이 났고, 이제는 온 언덕이 라일락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것은 보랏빛 숲이었 다. 대지 위에 펼쳐진 일종의 커다란 융단은 거기에서 2, 3킬로미터나 되는 마을에까지 이어져 있었 다. 그녀 역시 감동에 사로잡혀 그대로 있었다. 그녀가 중얼거렸다. "오, 너무도 예뻐 요." 그 러고는 들판을 가로질러, 그들은 그 이상한 언덕 쪽으로 달려갔다. 이 언덕은 해마다 파리 한가운데에서, 여자 행상인들의 작은 수레 속에 실려 끌려 다니는 라일락꽃을 모두 제공해 주고 있었다. 좁은 오솔길이 소관목 밑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들은 그 길을 가다가 자그마한 숲속의 빈터를 만나 거기에 앉았다. 많은 꿀벌 떼들이 그들 위에서 윙윙거렸고, 부드럽고 끊 임없이 윙윙 울리는 소리를 공중에 던지고 있었다. 그리고 태양은, 바람 한 점 없는 날의 위 대한 태 양은 꽃이 핀 긴 언덕 위에 내리쬐고 있었고, 이 가장 아름다운 숲에서 강렬한 향기 를, 방향 의 엄청난 입김을, 꽃의 이 땀 냄새를 풍기게 하고 있었다. 멀리서 교회 종소리가 울렸다. 그러자 아주 부드럽게 그들은 서로 껴안았다. 풀밭에 누워, 키스 이외에는 아무것도 의식하 지 못하고 서로 포옹을 하였다. 그녀는 두 눈을 감고, 품에 가득 그를 안고서, 아무 생각 없 이, 이성을 잃고, 정열적인 기다림 속에서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마비가 되어 그를 미친 듯 이 힘주어 껴안고 있었다. 그녀는 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그에게 몸을 내맡기 고 있다는 것도 깨닫지 못하면서, 자기의 모든 것을 바쳤다. 그녀는 커다란 불행의 광란 속 에서 깨어났다. 그러고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사고, 고통으로 신음하면서 울기 시작 하였다. 그는 그녀를 달래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녀는 당장 떠나고 싶어했고, 돌아가고 싶어 했으며, 집으로 가고 싶어했다. 그녀는 성큼성큼 걸으면서 줄곧 이 말만 되풀이했다. "어쩌 나, 어쩌 면 좋지." 그가 그녀에게 말했다. "루이즈, 루이즈, 그대로 있어요, 제발." 지금 그 녀의 광대 뼈는 불거지고, 눈은 움푹 들어가 있었다. 그들이 파리 역에 닿자, 그녀는 그에게 작 별 인사 도 없이 헤어졌다. 다음날 합승 마차 속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그에게는 그녀가 변한 것처럼 보였고 야윈 듯했다. 그녀가 말했다. "이야기할 것이 있어요. 큰 거리에서 내려요." 보도 위에 그 들만 있 게 되자, "우린 작별을 해야 해요." 하고 그녀가 말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당신 을 다시 볼 수가 없어요." 그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왠가요." "내가 그럴 수가 없기 대문이 에요. 죄 를 졌거든요. 더 이상 그러지는 않을 거예요." 그러자 그는 욕정에 몹시 괴로워하면 서 그녀 에게 애원하고 간청했다. 사랑의 밤에 완전히 몸을 맡기고 그녀를 전부 같고 싶은 욕구에 미칠 것 같았다. 그녀가 고집 세게 대답했다. "아녜요, 그럴 수가 없어요. 아녜요, 그 럴 수는 없는 거예요." 그러나 그는 활기를 띠면서, 더욱 흥분하였다. 그는 그녀와 결혼할 것 을 약속 했다. 그녀는 또다시 말했다. "안 돼요." 그러고는 그에게서 떠나갔다. 일주일 동안, 그는 그 녀를 보지 못했다. 만날 수가 없었다. 그녀의 주소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그녀 를 영원 히 잃어버린 것으로 생각했다. 9일째 되는 날 저녁에, 누가 그의 집 초인종을 울렸다. 그가 문을 열러 나갔다. 그 녀였다. 그녀가 그의 품속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더는 거역하지 않았다. 석 달 동안 그녀는 그 의 정 부였다. 그가 그녀에 대해 싫증이 나기 시작했을 때, 그녀는 자기가 임신했다는 것을 그에게 알려주었다. 그러자 그의 머리 속에는 한 가지 생각밖에는 없었다. 어떤 대가를 치르 더라도 관계를 끊는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어떻게 말해야 할지를 몰랐고, 자 라나는 어린아이에 대한 두려움으로 해서 안절부절못해 미칠 것같이 되자, 그는 최후의 결심 을 했 다. 어느 날 밤, 그는 이사를 하여 자취를 감추었던 것이다. 충격이 너무도 심해서 그녀는 자기를 그렇게 버린 그 사람을 찾지 않았다. 그녀는 자기 어머니의 무릎에 달려들어 자기의 불행을 고백했다. 그리고 몇 달 후에, 그녀는 사내아이를 분만했다. 몇 년이 흘렀다. 프랑수아 테시에는 그의 생활에 아무런 변화도 일어남이 없이 나이 를 먹 어갔다. 그는 희망도 기대도 없이 단조롭고 활기 없는 관리 생활을 하고 있었다. 매일 똑같 은 시간에 일어나고, 똑같은 거리를 딸라가고, 똑같은 수위 앞에서 똑같은 문을 통해 지나가 고, 똑같은 사무실로 들어가, 똑같은 의자에 앉아, 똑같은 일을 수행하였다. 그는 세상에서 혼자였다. 낮에는 냉담한 동료들 사이에서 혼자였고, 밤에는 그의 총각 거처방에서 혼자였 다. 그는 노후를 위해서 한 달에 백 프랑을 저축하였다. 일요일마다 그는 우아한 사 람들과 일행들 그리고 아름다운 여자들이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기 위해 상젤리제를 산책하곤 하였 다. 그 이튿날은 고민을 안고 있는 그의 동료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어제 숲에서 돌아올 때에는 너무 훌륭했어." 그런데 어느 일요일, 우연히 다른 길을 따라가다가, 그는 몽 소 공원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청명한 여름 아침이었다. 어린애 보는 하녀들과 엄마들 이 가 로수 길가에 앉아, 자기 앞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프랑수 아 테시아의 몸이 떨려왔다. 한 부인이 두 아이의 손을 잡고 지나가고 있었다. 약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와 네 살쯤 난 계집아이였다. 그녀였다. 그는 그러고도 백 보쯤 걸어갔지만, 감동으로 숨이 막혀 의자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녀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자 그는 다시 일어나, 그녀를 한번 더 보려고 했다. 지금 은 그녀 가 앉아 있었다. 사내아이는 매우 얌전하게 있는데 반해, 그 곁에 있는 계집아이는 흙 장난을 하고 있었다. 그녀였다. 분명 그 여자였다. 그녀는 부인으로서의 단정한 모습과 수수 한 옷차 림, 자신 있고도 품위 있는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감히 다가가지는 못하고, 멀 찍이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사내아이가 고개를 쳐들었다. 프랑수아 테시에는 몸이 떨려옴을 느꼈다. 그 아이는 틀림없이 자기 아들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는 예전 에 찍은 사진 속의 자기와 똑같은 모습을 보는 듯했다. 그는 나무 뒤에 숨었다. 그녀를 따라가 기 위 해 그녀가 떠나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는 그날 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무엇 보다도 아이에 대한 생각이 그를 애타게 하였다. 자기의 아들, 오,, 확실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면. 그러나 그가 어찌하겠는가. 그는 그녀의 집을 보았다. 그래서 알아보았다. 그는 그녀가 이웃 남자와 결혼했다는 것을 알았다. 품행이 신중한 신사로서, 비통해하는 그녀에게 마음이 끌렸던 것이다. 그 과 오를 알 고 또 그것을 용서한 그 남자는 아이가 그의, 프랑수아 테시에의 아이라는 것조차 알 고 있 었다. 그는 일요일마다 몽소 공원에 다시 갔다. 일요일마다 그는 그녀를 보았다. 그 리고 그 럴 적마다 자기 아들을 품에 안고 싶고, 그에게 키스를 퍼붓고 싶고, 그 아이를 데려 가고 싶 고, 훔쳐가고 싶은 미칠 듯한, 억제할 수 없는 갈망에 사로잡히는 것이었다. 그는 애 정도 없 는 노총각의 비참한 고독 속에서 무섭게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후회, 갈망, 질투 그 리고 자 연이 인간의 모태에 옮겨 놓은 그 어린아이들을 사랑하고 싶은 욕구에서 생겨난 아버 지로서 의 애정 때문에 찢어질 듯한 무서운 고통에 괴로워하였다. 마침내 그는 가망이 없는 시도를 해보고자 했다. 그래서 어느 날 그녀가 공원으로 들어오자 그녀에게로 다가가, 길 한 가운데 에 우뚝 서서, 창백한 낯으로 입술을 떨며 그녀에게 말했다. "저를 알아보시지 못하 겠습니 까." 그녀는 눈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질겁을 하고 공포에 질려 고함을 지르고 는, 두 아이의 손을 잡아 자기 뒤로 끌어당기면서 달아나 버렸다. 그는 집에 돌아와 울었다. 몇 달이 또 흘렀다. 그는 그녀를 더 이상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부정에 가슴을 에고 짓찢겨 밤낮으로 괴로워하였다. 자기 아들을 껴안기 위해 서라면 죽을 수도 있었고 살인을 할 수도 있었으며,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모든 대담한 짓도 시도 하면서 온갖 일을 했을 것이다. 그는 그녀에게 편지를 썼다. 그녀는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수십 통의 편지를 보낸 후에, 그는 그녀를 조금도 누그러뜨릴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 서 그는 가망이 없는 결심을 했다. 그리고 그래야만 한다면 권총의 탕알을 가슴에 맞 을 각 오를 했다. 그는 몇 마디를 적은 짤막한 편지를 그녀의 남편에게 보냈다. 선생님. 제 이름은 당신으로서는 증오의 원인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슬픔으로 너무 괴롭고 너무 비참해서, 당신에게밖에는 희망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단지 십 분간의 대화를 요청하기 위해 가겠습니다. 그럼 이만 총총. 다음날 그는 답장을 받았다. 선생님. 화요일 다섯 시에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계단을 오르면서, 프랑수아 테시에는 한 단 한 단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만큼 심 장이 뛰 었던 것이다. 그의 가슴속에서는 말이 달릴 때처럼 숨가쁜 소리, 둔탁하고 격렬한 소 리가 들 렸다. 그리고 넘어지지 않으려고 난간을 붙들고, 간신히 숨을 쉬고 있을 뿐이었다. 4 층에서 그는 초인종을 울렸다. 하녀가 와서 문을 열었다. 그가 물었다. "플라멜씨 댁인가 요." "네, 여깁니다. 들어오세요." 그는 중산 계급의 응접실로 들어갔다. 자기 혼자였다. 그는 대이변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처럼 안절부절못하고 기다렸다. 문이 열렸다. 한 남자가 나타났 다. 검은 프록코트를 입은 그는 키가 크고 침착했으며 약간 뚱뚱했다. 그는 손으로 의자를 가 리켰다. 프랑수아 테시에가 앉았다. 그러고는 헐떡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선생님, 제 이름을 알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만약에 알고 계시다면." 플라멜씨가 그의 말을 가로막았 다. "그 러실 필요 없습니다, 선생님. 알고 있습니다. 내 아내가 당신에 관한 이야기를 한 적 이 있습 니다." 그는 엄격하고자 하는, 점잖은 남자의 품위 있는 어조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 고 성실 한 남자의 부르주아적인 위엄이 있었다. 프랑수아 테시에가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선생님, 좋습니다. 저는 괴로움과 후회와 수치심으로 죽을 지경입니다. 한 번만, 오직 한 번 만, 껴안 고 싶습니다. 그 아이를." 프라멜씨가 일어나, 벽난로로 다가가서 초인종을 울렸다. 하녀가 나타났다. 그가 그녀에게 말했다. "루이를 데려와요." 그녀가 나갔다. 그들은 더 이 상 할 말 이 없어서, 말없이 마주 앉아 기다렸다. 그런데 갑자기 열 살쯤 되는 사내아이가 응접실로 뛰어들었다. 그러고는 자기 아버 지라고 생각하고 있는 그 사람에게 달려갔다. 그러다가 낯선 사람을 보고는 당황하여 멈추 어섰다. 프라멜씨는 아이의 이마에 키스를 하고 나서 말했다. "이젠, 이 선생님께 키스해야지, 얘야." 아이는 이 알지 못하는 사람을 쳐다보면서 얌전하게 다가갔다. 프랑수아 테시에가 일 어섰다. 넘어질 뻔해서 모자를 떨어뜨렸다. 그는 자기 아들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플라멜씨 가 친절 하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는 창문으로 거리를 내다보았다. 아이는 깜짝 놀라 어리둥 절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는 모자를 주워 낯선 사람에게 돌려주었다. 그러자 프랑수아가 두 팔 로 어린아이를 껴안고 눈에, 뺨에, 입에, 머리카락에, 아이의 온 얼굴에 미친 듯이 키 스를 퍼 붓기 시작하였다. 이 우박 같은 키스에 당황한 어린아이는 그것을 피하려고 고개를 돌리고, 그 남자의 탐욕스러운 입술을 그 작은 손으로 밀쳐내려고 애썼다. 그러자 프랑수아 테시에 가 갑자기 아이를 땅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이렇게 소리쳤다. "잘 있어. 잘 있어." 그러고 나서 그는 도둑처럼 달아나 버렸다. 걸인 비참하고 불구이기는 했지만, 그에게는 보다 좋은 날들이 있었다. 열다섯 살 때, 그는 바 르빌르의 공도에서 마차에 치어 두 다리가 으깨어졌었다. 그때부터 그는 길을 따라 간신히 기어다니면서 또는 농가의 마당을 가로질러 목발에 의지하여 비틀거리면서 구걸을 하였는 데, 그 목발은 그의 양어깨를 귀 높이에까지 치켜 올라가게 하였다. 그래서 그의 머리 는 두 산 사이에 처박혀 있는 것 같았다. 추사이망첨례 ,천주교에서 모든 죽은 이를 위해 미사를 오리고 기도하는 날 11월2일, 전날, 비에트 교구의 사제가 어린이를 도랑에서 발견해 냈다. 그 이유로 해서, 그는 니콜라스 투생이라는 세례명을 받고 자선으로 키워졌다. 모든 교육에 는 관심이 없었고, 마을의 빵장수가 장난으로 준 브랜디 몇 잔을 마신 후로 불고가 되 어, 그 때부터 떠돌이가 된 그는 손을 내미는 일 말고는 다른 일은 아무것도 할 줄 몰랐다. 전에는 아바리 남작 부인이 그에게 잠자리를 내주었는데, 그것은 큰 저택에 이웃한 농장의 닭 장 곁 에, 짚이 가득 든 일종의 개집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큰 기근 때에도, 그 집 부엌 에서 방 한 조각과 능금주 한 장을 언제나 틀림없이 얻어낼 수 있었다. 이따금 그는 또 노마님 이 층 계 꼭대기에서나 방의 창문에서 던져주는 몇 푼의 돈을 받기도 하였다. 지금은 그분은 돌아 가시고 없다. 마을에서는 그에게 거의 동냥을 주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40년 동안, 그가 두 개의 목발에 의지하여, 누더기를 걸친 불구의 몸을 이 오막살이에서 저 오막 살이로 끌고 다니는 것을 보아 온터라, 그에게 지쳐버렸던 것이다. 그렇기는 했지만 그는 다 른 곳으로 가버릴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의 비참한 생명을 끌고 다녔던 서너 개의 촌락인 이 구석밖에는 지상에서 다른 곳을 알고 있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의 거지 생활에서 경계를 만들어놓았는데, 그는 넘어가서는 안 되는 것으로 익 숙해진 그 한계들을 결코 지나가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자기 시야를 언제나 제한하고 있는 나무들 뒤로 세상이 멀리 펼쳐져 있는지 어 떤지 를 알지 못하였다. 그는 그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농부들이 그들의 밭 가장자 리에서나 도랑을 따라가다 언제나 그를 만나는 일이 지긋지긋하게 여겨질 때면, 그에 게 이 렇게 소리 지르곤 하였다. "여기에서 늘 목발을 짚고 다닐 것이 아니라 왜 다른 마을 로 가 지 못하는 거지." 그러면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미지의 사람에 대한 막연한 두 려움과 새로운 얼굴들, 욕설, 자기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의심쩍은 시선 그리고 거리를 둘 씩 짝지 어 걸어가는 순경들과 같은 수많은 일들을 막연하게 무서워하는 거지의 두려움에 사 로잡혀 멀어져갔다. 순경들을 보면 그는 본능적으로 덤불 속이나 자갈더미 뒤에 가서 숨곤 하였다. 햇빛에 번쩍이는 그들을 멀리서 얼핏 보면, 그는 갑자기 이상하리만큼 민첩해진다. 숨 을 곳 을 찾아가는 도깨비 같은 민첩함이었다. 목발에서 굴러 떨어져 넝마처럼 넘어져서는, 공처럼 뒹굴면서 아주 작게, 보이지 않게 굴에 있는 산토끼처럼 납작 엎드리게 되면 땅과 누 르퉁퉁 한 누더기옷이 분간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한 번도 그들과 문제가 생긴 적은 없었다. 그는 전혀 알지도 못하는 부모로 부터 그런 두려움과 꾀를 물려받기라도 한 것처럼 핏속에 그것을 지니고 있었다. 그 에게는 은신처도, 지붕도, 오두막집도, 피난처도 없었다. 여름에는 아무 데서나 잤고, 겨울에 는 헛간 밑이나 외양간 속으로 놀랄 만큼 교묘하게 미끄러지듯 스며들었다. 그는 언제나 사 람들이 자기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전에 도망쳐 나왔다. 그는 건물들로 스며 들어가는 구멍들 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목발을 다루느라고 놀라운 기운이 팔에 붙어, 돌아다니다가 먹을 것 을 넉넉히 거두어들였을 때에는, 사료가 들어 있는 곳간 속에까지 오직 손목의 힘만으 로 기 어올라가서, 이따금 거기에서 꼼짝하지 않고 네댓새 동안을 지내기도 하였다. 그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숲속의 짐승처럼 살았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고, 아무도 사랑하지 않 았으며, 농부들의 마음속에 일종의 대단찮은 경멸감과 감수하는 적대감만 불러일으켰을 뿐이 다. 그 에게는 "클로쉬"라는 별명이 붙어 있었다. 왜냐하면 두 개의 지주 사이에 있는 종처럼 그가 두 개의 목발 사이에서 몸을 좌우로 흔들며 걸었기 때문이다. 이틀 전부터 그는 조금도 먹지 못했다. 이제는 아무도 그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았 다. 마 침내 사람들은 이제 그를 받아주지 않게 되었다. 농부의 아낙들은 그들의 문에서, 그 가 멀리 서 오고 있는 것을 보면 이렇게 그에게 소리 지르는 것이었다. "꺼져 버려, 천한 것 아. 빵 조각을 준 지가 사흘도 안 되었잖아." 그러면 그는 보호자들을 향하여 빙빙 돌다가 이웃집 으로 가는데, 거기에서도 똑같은 식으로 그를 맞이하는 것이었다. 여자들은 이 문에서 나 저 문에서나 이렇게 분명히 말했다. "하지만 이 게으름뱅이를 일년 내내 먹여 살릴 수는 없어." 그렇기는 하지만 이 게으름뱅이는 매일 먹어야 한다. 그는 동전 한 닢이나 오래 된 빵 껍질 하나도 얻지 못하고 생틸레르, 바르빌르, 비에트 등을 쏘다녔다. 그에게 희망으로 남 아 있는 곳은 투르놀르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러자면 공도로 20리를 가야 한다. 그는 주머니처 럼 비 어 있는 배를 하고, 더 이상 몸을 끌고 다니기에는 지쳐 있음을 느꼈다. 그렇지만 그 는 걷기 시작하였다. 12월이라서 찬바람이 들판을 달려와 벌거벗은 나뭇가지 속에서 휙휙 소리 를 냈 다. 구름은 낮고 어두운 하늘을 가로질러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서둘러 지나가고 있었 다. 불 구자는 목발을 간신히 차례차례 옮기면서, 뒤틀린 다리로 멈추어섰다가는 천천히 걸 어가곤 했는데, 그에게 남아 있는 다리 끝에는 기형의 발이 달려 있었고 거기에는 넝마 조각 이 감 겨 있었다. 이따금 그는 도랑 위에 앉아 몇 분 동안 쉬기도 했다. 허기증은 혼란스럽고도 우둔 한 그 의 영혼에 비통함을 던져주었다. 그에게는 "먹는다"는 한 가지 생각밖에는 없었다. 그러나 어떠한 방법으로 그래야 할지를 알지 못했다. 세 시간 동안, 그는 그 긴 길에서 고생 을 하였 다. 그러다가 마을의 나무들이 보이자, 동작을 서둘렀다. 첫 번째로 만난 농부에게 동 냥하자, 그 사람이 이렇게 대꾸했다. "너 또 왔구나, 이 늙은 단골 손님아. 너를 몰아내지 못 했단 말 인가." 그래서 "클로쉬"는 물러섰다. 이 문에서도 저 문에서도 그를 구박하여, 아무 것도 주 지 않고 돌려보냈다. 그렇지만 그는 계속 참을성 있고 끈덕지게 돌아다녔다. 그러나 한 푼도 얻지 못했다. 그러자 그는 지팡이도 들어올릴 수 없을 만큼 기진맥진하여 비에 질척 거리는 땅을 가로질러 걸어가면서 농가들을 찾아갔다. 여기저기에서 그는 내쫓겼다. 가슴은 찢어질 듯하고 마음은 격해 있으며, 감정은 우울하고 손은 동냥을 받기 위해서도, 구제를 받 기 위해 서도 벌어지지 않는, 그런 춥고 슬픈 날들 중의 하루였다. 그가 아는 집들은 모두 찾아가고 나서, 그는 쉬케 영감네 마당을 따라가다 도랑 한 구석에 가서 쓰러졌다. 그는 자기 발 밑에서 목발을 미끄러뜨리면서 어떻게 그 높은 목발 사 이에서 넘어지게 되었는가를 설명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것들에서 벗어나 주저앉아 있었다. 그는 허기 때문에 몹시 괴로워하면서 오랫동안 꼼짝 않고 그대로 있었다. 그러나 자기의 한없는 비참함을 잘 꿰뚫어 알기에는 너무 동물적이었다. 그는 무언지 모르는 것을 기다렸다. 우리 마음속에 줄곧 머물러 있는 그런 막연한 기다림이었다. 그는 마당 한구석에서, 찬바람 속에 서, 사람들이 늘 하늘이나 인간들에게서 기대하는, 신비스러운 도움을 기다렸다. 그 것이 어 떻게, 왜, 누구에 의해서 올 수 있을 것인지는 생각해 보지도 않고, 한 떼의 검은 암 탉들이 모든 생물들에게 자양분을 주는 땅에서 먹이를 찾으면서 지나갔다. 줄곧 닭들은 씨 앗이나 눈에 띄지 않는 벌레들을 부리로 찍어올렸다. 그러고 나서는 천천히 틀림없는 그들의 찾기 를 계속하는 것이었다. "클로쉬"는 아무런 생각 없이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머리 속에서라기보다는 뱃속 에서, 저 닭 중의 한 마리를 마른 나무 불에다 구워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기 보다는 느낌이 떠올랐다. 도둑질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은 그에게 스쳐가지 않았다. 그는 손 이 미치는 거리에서 돌 하나를 집었다. 손재주가 있었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닭에게 돌을 던져 단번에 죽였다. 닭은 날개를 푸드득거리면서 모로 쓰러졌다. 다른 것들은 가는 다리로 뒤뚱거리면서 도망갔다. 그래서 "클로쉬"는 다시 목발에 기어올라, 자기가 사냥한 것 을 주우 러 가기 위해 암탉들의 몸짓과 비슷한 동작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가 머리에 붉은 얼룩이 있는, 작고 검은 몸뚱이 곁에 다다랐을 때, 무서운 힘이 그의 등을 밀어붙이는 바람에 그는 지팡이를 놓치고 자기 앞으로 열 발자국 정도를 굴러가고 말았다. 그리고 대단히 화 가 난 쉬케 영감이 그 약탈자에게 달려들어 사정없이 때렸다. 마치 미친 사람처럼, 도둑질한 농부 를 때리듯이, 저항할 수도 없는 불구자의 온몸을 주먹으로 무릎으로 두들겨팼다. 이번에는 농장 사람들이 와서 주인과 함께 그 거지를 마구 때리기 시작하였다. 그 러다가 그들이 때리는 일에 지치자, 그를 안아 일으켜 데리고 가서는, 순경을 찾으러 간 동안 에 나 무 광 속에 가두어놓았다. 초주검이 된 "클로쉬"는 피를 흘리며 허기에 지쳐 땅바닥에 누워 있었다. 저녁이 되었고, 밤이 되었으며, 이어서 새벽이 왔다. 그는 여전히 음식을 먹 지 못했 다. 정오쯤 해서 순경들이 나타나 저항을 예상해서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왜냐하면 쉬케 영감이 걸인에게 습격을 받아 간신히 피했노라고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경사가 소 리쳤다. "자, 일어서." 그러자 "클로쉬"는 이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목발 위로 몸을 추켜 올리려고 해보았으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엄살이고, 속임수고, 나쁜 놈의 악의일 것 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무장한 두 삶이 그를 거칠게 다루어 움켜쥐고는, 억지로 그의 목 발에 세 워놓았다. 두려움이 그를 사로잡았다. 노란 멜빵에 대한 타고난 두려움, 사냥꾼 앞에서 갖는 불치의 두려움, 고양이 앞에서의 생쥐와 같은 그런 두려움이었다. 그래서 초인적인 노력으 로, 그는 서 있는 데 성공했다. "가자"하고 경사가 말했다. 그는 걸었다. 농장의 모든 사람들 이 떠나 는 그를 바라보았다. 여자들은 그에게 주먹질을 해보였다. 남자들은 냉소를 하면서 욕설을 퍼부었다. 마침내 그를 붙들어간다. 속시원하게 됐군. 그는 두 사람의 순경 사이에서 멀어져 갔다. 저녁때까지 또 기어가기 위해서는 필사적인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자기에 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면서 얼이 빠져 있는 그는, 무엇인가를 이해하기에는 너무 당황 해 있 었다. 마주치는 사람들은 그가 지나가는 것을 보려고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농부들 은 이 렇게 중얼거렸다. "도둑놈이겠지." 밤이 되어서야 그 구역의 군청 소재지에 이르렀다. 그는 거기까지 와본 적이 없었 다. 그는 정말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무슨 사건이 돌발할지 상상할 수가 없었다. 무섭고 뜻밖 인 모든 일들이, 새로운 얼굴과 집들이 그를 깜짝 놀라게 하였다. 그는 아무 할 말이 없어서 한마디 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더 이상 아무것도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 가 그 는 수년 전부터 사람들에게 말을 하지 않아서, 거의 언어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의 생각 역시 말로써 명백히 표현하기에는 너무 혼란스러웠다. 그는 읍내의 감옥에 갇히었다. 순경들 은 그가 먹어야 할 필요가 있으리라는 것을 생각지 못해서, 이튿날까지 그를 돌보지 않았다. 그러나 새벽에 심문하러 갔을 때, 사람들은 땅바닥에 죽어 있는 그를 발견하였다. 얼 마나 뜻 밖의 일인가. 후원자 그는 그렇게 고귀한 행운을 꿈꾸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지방 집달리의 아들인 장 마랭 은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법학을 공부하러 라탱구로 왔었다. 차례차례로 자주 드나들 던 여 러 술집에서, 그는 맥주를 마시면서 정치 이야기를 토해내는 말많은 여러 학생들의 친구가 되었다. 그는 그들에게 감탄하고 반해서, 이 카페에서 저 카페로 끈질기게 그들을 따 라다니 면서, 돈이 있을 때에는 그들의 술값까지 치렀다. 그러다가 그는 변호사가 되어, 여 러 사건 을 변호했으나 번번이 패소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그는 신문에서 옛날 친구 중 의 한 사람이 하원의원이 된 것을 알았다. 그는 다시 그의 충실한 개가 되었다. 잡일이나 교섭을 하는 친구, 그를 필요로 할 때 찾으러 보내는 친구, 그와 함께 있는 것이 조금도 거 북하게 생각되지 않는 그런 친구가 되었다. 그러나 의회의 요행으로 그 하원의원은 장관이 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여섯 달 후에는 장 마랭이 참의원 의원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차음에는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매우 거만했었다. 그는 사람들이 자기를 보지 않고는 자기 지위를 알아맞힐 수 없는 것처럼, 자기 모습을 나타내는 즐거움으로 거리 를 나 다녔다. 그는 그가 들어가는 가게의 상인에게, 신문 판매원에게, 삯마차의 마부에게 조차 별 로 대수롭지 않은 것에 대해서 말하는 법을 생각해 냈다. "참의원 의원인 내가." 그 러다가 그는 자연스럽게 자기의 위엄의 결과이기라도 한 것처럼, 직업적인 필요에 의해서, 권 세 있 고 관대한 사람의 의무로서 남을 후원하고 싶다는 교만한 욕구를 느끼게 되었다. 그는 기회 있을 적마다 모든 사람들에게 한없이 호의로 자기가 후원해 주겠노라고 제의를 하였 다. 큰 길에서 아는 얼굴을 만나기라도 하면, 그는 매우 기쁜 표정으로 다가가서, 두 손을 잡 고, 안 부를 묻고, 질문을 기다리지도 않고 이렇게 분명히 말하는 것이었다. "아시다시피, 난 참의 원이오. 그러니 무엇이든지 도와드리지요. 만일 어떤 일에 내가 소용이 된다면 어렵게 생각 지 마시고 날 이용하세요. 내 지위쯤 되면 영향력이 크거든요." 그러고는 펜과 잉크 그리고 편지지 한 장을 얻으려고, 만난 친구와 함께 카페로 들어간다. "한 장이면 돼, 보이, 소개장 을 쓰려는 것이니까." 그렇게 해서 그는 하루에 열 통, 스무 통, 쉰 통의 소개장을 쓰는 것 이었다. 그것을 그는 카페 아메리캥, 비뇽, 토르토, 메종 도래, 카페 리쉬, 엘데르 카페 앙글 레, 나폴리탱 등 어디에서나 썼다. 그는 치안 판사에서부터 장관에 이르기까지 공화국 의 모 든 관리들에게 열심히 소개장을 썼다. 그래서 그는 행복했다. 아주 행복했다. 어느 날 아침, 그가 참의원에 가려고 집을 나섰을 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는 삯마차 를 탈까 망설이다가 타지 않고, 걸어서 거리로 나섰다. 소나기가 사나워져서, 보도 가 물에 잠기고 차도도 침수되었다. 마랭씨는 부득이 어느 문 밑으로 몸을 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늙은 사제 한 사람이 이미 거기에 있었다. 백발의 노사제였다. 참의원이 되기 전에 는, 마랭 씨는 성직자들을 전혀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어느 추기경이 그에게 어떤 어려운 일에 관해 공손하게 의논을 해온 이후로 성직자들을 존경으로써 대하게 되었다. 비가 홍수 처럼 쏟아져서, 두 사람은 물이 튀는 것을 피하려고 수위실까지 피신을 하지 않을 수 없었 다. 자기를 돋보이게 하려고 언제나 말하고 싶어 안달을 하는 마랭씨가 이렇게 말했 다. "매 우 고약한 날씨로군요, 신부님." 노사제가 고개를 숙였다. "아, 네, 선생님. 단 며칠 을 지내려 고 파리에 왔는데, 정말로 속이 상하는군요." "아, 시골 사람이신가요." "네, 선생님. 그저 지 나다가 여길 들른 것이지요." "아닌게아니라, 수도에서 며칠을 보내려는데 비가 오니 참으로 속이 상하시겠군요. 우리 같은 관리들은 일년 내내 여기에 있으니까 그런 것에 대해서 는 그 다지 생각하지 않거든요." 신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소나기가 좀 누그러진 거리 를 바라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결심을 하고, 신부는 여자들이 개울을 건너기 위해 옷 을 들어 올리듯이 법의를 걷어올렸다. 마랭씨가 떠나려는 그를 보고 소리쳤다. "젖으실 거예요, 신부님. 잠시만 기다리세 요. 멎을 겁니다."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그 착한 사람은 발걸음을 멈추고 나서, 이렇게 대 답했다. "제가 매우 바빠서 그래요. 긴급한 약속이 있거든요." 마랭씨는 딱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그러나 분명 젖으실 텐데요. 어느 구역으로 가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신부는 주 저하는 듯하다가,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팔레 르와이얄 근처로 갑니다." "그렇다면, 괜찮 으시다면 신부님, 제 우산을 같이 쓰시지요. 난 참의원으로 갑니다. 참의원 의원이거든요." 노사제는 고개를 들어, 곁에 있는 사람을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대단히 고맙습니다, 선 생님. 기 꺼이 호의를 받겠습니다." 그래서 마랭씨는 그의 팔을 잡고, 그를 이끌었다. 그는 신 부를 인 도하고, 그에게 주의를 주고, 충고를 하였다. "이 도랑을 주의하세요, 신부님. 특히 마차 바 퀴에 조심을 하세요. 마차 바퀴는 이따금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진흙탕을 튀게 하 거든요. 지나가는 사람들의 우산을 조심하세요. 우산 살 끝보다 눈에 위험한 것은 없거든요. 특히 부 인들은 참을 수가 없지요. 여자들은 아무것에도 주의를 하지 않아서, 그들의 작은 양 산이나 우산의 뾰족한 끝이 언제나 온 얼굴에 꽂히지요. 그리고 그녀들은 절대로 어느 누구를 위해 서도 일부러 움직이지를 않습니다. 도시가 마치 그들의 것인 듯싶지요. 여자들은 보도 에서나 거리에서나 군림하는 겁니다. 나로서는, 그들의 교양이 퍽 부족한 탓이라고 생각합 니다." 그러고는 마랭씨는 웃기 시작했다. 신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약간 구부정해 가지고, 구두나 법의가 진흙투성이가 되지 않도록 발 디딜 자리를 조심스럽게 고르면서 걸어 갔다. 마랭씨가 다시 말했다. "파리에 오신 것은 약간 기분 전환을 하기 위해서인가 보지 요." 그 호인이 대답했다. "아녜요, 일이 있어서요." "아, 중요한 일인가요. 무엇에 관계되는 일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신부님을 도와드리려고 합니다." 신부 는 난처 한 것 같았다. 그가 중얼거렸다. "오, 개인적인 사소한 일입니다. 제, 제 주교와의 사 소한 갈 등이지요. 선생에게는 흥미가 없을 겁니다. 그건, 교회의 사건으로, 내적인 규율의 문제거든 요." 마랭씨가 급히 말했다. "그런 일들을 해결하는 것이 바로 참의원입니다. 그렇다 면 저를 이용하세요." "네, 선생님, 제가 가는 곳이 또한 참의원입니다. 선생님은 너무도 친 절하시군 요. 저는 르르페르씨와 사봉씨 그리고 또한 어쩌면 프티파씨를 만나야 합니다." 마랭 씨가 갑 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그 사람들은 제 친구예요, 신부님. 제 가장 좋은 친구들이고, 훌륭한 동료들이며, 호감이 가는 사람들이지요. 세 사람 모두에게 신부님을 소개해 드리지 요. 화끈 하게 말입니다. 저를 믿으십시오." 사제는 고마워했고, 구구하게 변명을 늘어놓았으며, 더듬거리면서 수없이 감사하다 고 말했 다. 마랭씨는 몹시 기뻤다. "아, 훌륭한 행운을 가지신 것을 자랑하셔도 됩니다, 신 부님. 보 시게 될 겁니다. 제 덕분에 신부님의 일이 매우 순조롭게 진행되어 가는 것을 보시게 될 겁 니다." 그들은 참의원에 도착했다. 마랭씨는 사제를 자기 집무실로 올라오게 하고, 의자를 내주며 불 앞에 앉게 했다. 그러고 나서 자신은 책상 앞에 자리를 잡고는, 편지를 쓰 기 시작 했다. 친애하는 동료, 다음의 분을 충심으로 당신에게 소개하는 바입니다. 가장 훌륭 하고 가 장 찬양할 만한 존경하는 성직자인, 신부. 그는 쓰는 것을 중단하고 물었다. "성함 이 어떻 게 되시지요." "생튀르 신부입니다." 마랭씨는 다시 쓰기 시작했다. 생튀르 신부님 은 어떤 사소한 일에 대해서 당신의 조정이 필요합니다. 내용은 그가 당신에게 이야기할 것 입니다. 이런 사정으로 감히 부탁드리면서 친애하는 동료. 그러고는 관습적인 인사말로 끝을 맺었 다. 그는 세 통의 편지를 써서 자기의 피보호자에게 넘겨주었고, 사제는 수없이 고맙 다고 하 면서 떠났다. 마랭씨는 할 일을 끝마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 조용히 그날 하루를 보냈다. 그러 고는 평 온하게 잠이 들고 기분 좋게 깨어나서 신문을 가져오게 했다. 그가 펴든 첫째 장은 급진적 인 페이지였다. 그는 그것을 읽었다. 우리의 성직자와 관리들. 우리가 성직자의 범죄를 기록하려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 다. 생 튀르라고 불리는 사제는 현정부에 대해서 음모를 꾸민 것으로 확인되었고, 우리가 보도할 수 없을 만큼 파렴치한 행동을 인정했으며, 그리고 또 전 예수회 교도가 단순한 사제 로 일 변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또한 차마 말하기 어렵다고 단언을 내린 여러 가지 이유 로 해 서 주교에게 질책을 당했으며, 그리고 그의 행동에 대해서 해명을 하도록 파리로 호출 을 당 한 사람인데, 마랭이라는 참의원을 열렬한 지지자로 구했으며, 그 의원은 법의를 입은 이 악 한에게 그의 동료인, 공화국의 모든 관리들에게 아주 간절한 소개장을 써주는 데 주 저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 참의원의 언어 도단적인 태도에 대해 장관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바 이며. 마랭씨는 벌떡 일어나 옷을 입고 동료인 프티파에게로 달려갔다. 동료가 그에게 말했다. "이거 봐, 그런 늙은 음모자를 내게 소개하다니 자네 미쳤군." 마랭씨는 어쩔 줄 몰 라 더듬 거리며 말했다. "천만에. 알겠어. 난 속았다구. 아주 선량한 사람처럼 보였어. 그가 나를 농 락한 거야. 비열하게 나를 속였단 말일세. 제발 그 작자에게 엄하게, 아주 엄하게 형 을 언도 하게나. 내가 편지를 쓰겠어. 그에게 유죄를 선고하게 하려면 누구에게 편지를 내야 하는지 말해 주게. 내가 검찰 총장과 파리의 대주교를. 그래, 대주교를 만나러 가겠어." 그러 고는 갑 자기 프티파씨의 책상 앞에 앉아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각하, 저는 생튀르라는 신부의 간계와 거짓말에 희생이 된 사람임을 각하께 알리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그 사람은 제 선의를 농락했습니다. 그 성직자의 확실한 말에 속아서 제가. 그러고 나서는 사인을 하고 편지를 봉인하고 나서, 자기 동료 쪽으로 몸을 돌려 이렇게 분명하게 말했다. "여보게, 자네, 이것이 자네에게 교훈이 될 걸세. 절대로 누구를 소개하지 말게나." 첫 눈 크루아제트의 긴 산책길은 푸른 물가에서 둥글게 휘어져 있었다. 거기에서 오른쪽 으로는 에스테렐이 바다 속으로 멀리 튀어나와 있었다. 그것은 수많은 뾰족하고 괴상한 봉우 리들인, 남부 지방의 아름다운 환경으로 수평선의 끝을 이루면서 시야를 가로막고 있었다. 왼 쪽으로 는 생트 마르그리트와 생 오노라 섬이 물속에 누워 등을 보이고 있었으며, 거기에는 전나무 가 뒤덮여 있었다. 그리고 넓은 만을 따라, 칸느 지방 주위에 위치한 커다란 산들을 따라 내 내, 수많은 하얀 별장들이 태양 아래에서 잠들어 있는 것 같았다. 멀리서 보이는 환한 집들 은 산의 꼭대기에서부터 아래에까지 흩어져 있어서, 검푸른 녹색을 눈 같은 점으로 얼룩지 게 하였다. 바다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는 집들의 철책이, 잔잔한 물결에 잠기곤 하는 넓은 산책길을 향해 열려 있었다. 날씨는 좋고 온화했다. 냉기의 떨림이 거의 없는, 겨울 의 포근 한 날이었다. 정원 담장 너머로는 황금빛 열매가 가득 달린 오렌지나무와 레몬나무들 이 보 인다. 부인들이 느린 걸음으로 큰길의 모래 위를 걸어가고, 그 뒤로는 굴렁쇠를 굴리 고 가거 나 아니면 어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아이들이 따르고 있다. 한 젊은 부인이 크루아제트로 문이 나 있는 그의 작고 아담한 집에서 방금 나왔다. 그녀 는 잠깐 걸음을 멈추고 산보객들을 바라보다가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지친 걸음걸이 로 바 다 앞에 있는 빈 벤치로 간다. 스무 걸음쯤 걷고 지친 그녀가 헐떡이면서 자리에 앉는 다. 창 백한 그녀의 얼굴은 죽은 사람의 그것과 같았다. 그녀가 기침을 한다. 그러고는 그녀 를 지치 게 하는 그 흔들림을 멈추게 하려는 것처럼 정맥이 내비치는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댄 다. 그 녀는 태양과 제비들이 가득한 하늘을 바라본다. 그리고 거기에 있는 에스테렐의 들쭉 날쭉한 봉우리들과 또 아주 가까이에 있는 그처럼 파랗고 잔잔하고 아름다운 바다를 바라본 다. 그 녀는 또 미소를 짓고 중얼거린다. "오오, 난 얼마나 행복한가." 하지만 그녀는 자기 가 죽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봄을 볼수 없으리라는 것과 1년 후에는 바로 이 산책길을 따라서 자기 앞을 지나는 바로 이 사람들이 좀더 키가 커진 그들의 아이들을 데리고, 언제나 희망 과 애정과 행복으로 가득한 마음으로, 이 온화한 고장의 포근한 공기를 또 마시러 오 는 것 을 볼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한편 오늘은 아직도 남아 있는 이 가엾은 육신 이 그 녀가 수의로 고른 비단옷 속에 누워 뼈만을 남겨놓은 채 썩어가게 되리라는 것도 알 고 있 다. 그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생의 모든 것들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계 속될 것 이다. 그것이 그녀로서는 끝일 것이다. 영원한 끝이 되리라. 그녀는 더는 존재하지 않을 것 이다. 그녀는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병든 폐로 정원의 향기로운 입김을 마음껏 들이 마신다. 그러고는 그녀는 생각에 잠긴다. 그녀는 회상한다. 노르망디의 한 신사와 결혼한 지도 4년이 되었다. 그는 넓은 어 깨에다 재빠른 기지와 명랑한 성격을 가진, 혈색 좋고 튼튼하며 수염을 기른 청년이었다. 그 들은 그 녀가 전혀 알지 못했던 재산 때문에 결합이 되었다. 그녀는 기꺼이 "아니오"라고 말 했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부모를 거역하지 않으려고 고갯짓으로 "네"하고 말았다. 그녀는 파리 태생으로 명랑했으며, 행복하게 살았다. 남편은 그녀를 노르망디의 자기의 큰 저 택으로 데리고 갔다. 이 저택은 아주 오래 된 커다란 나무들로 둘러싸인 매우 큰 석조 건물 이었다. 키가 큰 전나무 덤불이 정면의 시야를 가로막고 있었다. 오른쪽에 있는 숲의 통로로는 멀리 떨어진 농가까지 완전히 드러나 펼쳐진 벌판이 내다보였다. 지름길 하나의 철책 앞으 로 지 나가, 3킬로미터나 떨어진 큰길에 이르렀다. 오오, 그녀는 모든 것이 생각난다. 그녀 의 도착, 새집에서의 첫날, 그러고 나서의 고독한 삶. 그녀는 마차에서 내리면서, 낡은 건물을 쳐다보 며 웃으면서 말했다. "밝지가 않군요." 이번에는 남편이 웃어대며 이렇게 대답했다. " 알았어. 익숙해지게 돼. 알게 될 거야. 난 결코 지루한 사람은 아니거든." 그날, 그들은 포 옹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그녀는 그날이 그다지 길게 생각되지 않았다. 이튿날 그들은 다시 시 작했다. 그리고 정말로 그주일은 내내 애무만 하면서 지냈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내부를 꾸미는 일에 몰두했다. 그것은 한 달이나 계속되었다. 무의미 하지만 흥미있는 일들 속에서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그녀는 생활에서 사소한 것들의 가치와 중요성을 배웠다. 그녀는 계절에 따라 몇 푼이 더하고 덜하는 계란 값에 관심을 가질 수 있 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름이었다. 그녀는 수확하는 것을 보러 밭으로 갔다. 태양 의 즐거 움이 마음의 즐거움을 유지시켜 주었다. 가을이 왔다. 남편이 사냥을 하기 시작했 다. 그는 아침마다 메도르와 미르자라는 두 마리의 개를 데리고 나갔다. 그러면 그녀는 혼자 남 아 있 었는데, 앙리가 없다는 것이 그다지 슬프지는 않았다. 그녀는 그를 매우 사랑했다. 그러나 그는 그녀를 돌보지 않았다. 그가 돌아오면, 개들이 무엇보다도 그녀의 애정을 빼앗았 다. 그 녀는 저녁마다 개들을 어머니와 같은 사랑으로 보살폈고, 끝없이 애무를 해주었으며, 남편을 위해서는 사용해 볼 생각도 하지 않던, 귀엽과 매력적인 수많은 이름들을 그들에게 붙여주 었다. 그는 그녀에게 언제나 사냥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전에 자고새를 만났던 장소를 정해 두기도 하고, 조셉 르당튀의 토끼풀 속에서 산토끼를 만났던 장소를 정해 두기도 하고, 조셉 르당튀의 토끼풀 속에서 산토끼를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것을 이상해하기도 하였 다. 때 로는 르 아브르에 있는 르솨펠리에의 소행에 화를 내는 것 같기도 하였다. 그 사람은 자기, 앙리 파르빌이 올려놓은 불치 고리를 벗겨가려고 줄곧 자기 땅의 경계를 따라간다는 것이었 다. 그녀가 대답했다. 다른 일을 생각하면서. "그렇군요, 정말로 좋지 않군요." 겨울 이 왔다. 노르망디의 겨울은 춥고 비가 많았다. 끝없는 소나기가 하늘을 향해 칼날처럼 세워진, 각이 많은 커다란 지붕 위로 쏟아졌다. 길은 진흙의 강과 같았고, 들판은 진흙의 평야와도 같았 다. 내리는 빗소리 이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까마귀들이 빙빙 맴을 도는 비상 이외에는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까마귀들은 구름처럼 펼쳐지다가는 밭으로 내려 앉고, 그러다가는 다시 날아가 버리곤 하였다. 네 시쯤이면, 날아다니는 어두운 짐승 의 무리 들이 귀를 째는 듯한 소리를 지르면서 큰 저택의 왼쪽에 있는 커다란 너도밤나무에 와 서 앉 곤 하였다. 그들은 거의 한 시간 동안 이 꼭대기에서 저 꼭대기로 날아다녔고 서로 싸우는 것 같기도 했으며, 까악까악 울어대면서 잿빛을 띤 나뭇가지 속에서 시커멓게 날아다 녔다. 저녁마다 그녀는 쓸쓸한 대지 위에 내리는 밤의 서글픈 우수에 완전히 젖어, 가슴 죄면서 그것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는 램프를 가져오게 하려고 종을 울렸다. 그러고는 불 에 가까 이 다가간다. 그녀는 습기에 차 있는 커다란 방들이 더워지지를 않아 장작더미를 지피 곤 하 였다. 온종일 그녀는 객실에서, 식사때에도, 자기 방에서도, 어느 곳에서도 추웠다. 뼛속까지 추운 것 같았다. 남편은 저녁을 먹기 위해서만 겨우 들어왔다. 왜냐하면 그는 줄곧 사냥을 하거나 아니면 씨뿌리기, 경작과 같은 온갖 들일에 열심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흙투 성이가 되어 기분 좋게 들어와서는 두 손을 문지르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고약한 날씨 야." 아 니면, "불이 있어서 좋군." 혹은 이따금 이렇게 묻기도 했다. "오늘은 어땠소, 흡족했 소." 그 는 행복했고, 건강했으며, 이 단순하고 건전하고 조용한 생활 이외에 다른 것은 꿈도 꾸지 않을 만큼 욕심이 없었다. 12월경에는 눈이 내리자, 그녀는 세월과 더불어 인간도 그 렇게 되 듯이, 수세기에 걸쳐 차가워진 듯한 오래 된 큰 저택의 차디찬 공기에 너무도 고통을 느꼈 다. 그래서 어느 날 저녁에 남편에게 이렇게 부탁했다. "이봐요, 앙리, 여기에다 난로 를 놓아 야겠어요. 그러면 벽의 습기가 없어질 거예요. 분명히 말하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몸이 더 워지지를 않아요." 처음에 그는 저택에 난로를 설치한다는 엉뚱한 생각에 어리둥절하였다. 그에게는 개에게 은그릇에다 밥을 차려주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 같았다. 그러다가 그는 가슴이 터 지도록 웃음을 터뜨리며, 다음과 같은 말을 되풀이하였다. "여기에다 난로라니. 여기에다 난 로라니. 아,아,아, 얼마나 훌륭한 익살이오." 그녀는 계속 고집을 부렸다. "정말이지 몸이 얼어붙는 것 같다구요, 여보. 당신은 그걸 느끼지 못하겠지요. 언제나 움직이니까. 하지만 추위 가 몸에 스며들어요." 그는 여전히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러면 어때. 익숙해진다고. 게다가 그것이 건강에 좋단 말이오. 당신도 더욱 건강이 좋아질 것이오. 제기랄. 우린 깜부기불 속 에서 사 는 파리 사람들이 아니란 말이오. 게다가 곧 봄이 와요." 정월 초순경에 커다란 불행 이 그 녀에게 닥쳐왔다.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마차 사고로 죽은 것이다. 그녀는 장례 때문에 파리로 갔다. 그래서 약 여섯 달 동안 오직 슬픔만이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포근 한 날 들의 온화함이 마침내 그녀를 되살아나게 하였다. 그러나 가을이 될 때까지 슬픈 무기력 속에 살았다. 추위가 다시 왔을 때, 그녀는 처음으로 어두운 미래를 직시하였다. 그 녀는 어 떻게 해야 할 것인가. 아무것도, 장차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아무것도, 어떠한 기대가, 어떠한 희망이 그녀의 마음을 소생시킬 수 있는가. 아무것도, 진찰을 한 의사는 그녀가 절대로 아이를 가질 수 없을 것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다른 해보다 더 심하고 또 더 파고드는 듯하는 추위가 끊임없이 그녀를 괴롭혔다. 그녀는 떨리는 두 손을 이글거리는 불길에 내밀었다. 타오르는 불꽃이 그녀의 얼굴을 붉게 물들였 다. 그러나 차디찬 기운은 등 속으로 스며들어, 살과 옷 사이로 파고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떨려왔다. 수많은 공기의 유통이, 적처럼 악착스럽고 음험하 고 활 기 있는 통풍이 저택에 자리잡고 있는 듯했다. 그녀는 끊임없이 그것들과 만났다. 그 것들은 차고 해로운 증오를 때로는 얼굴에, 때로는 손에, 때로는 목에, 쉴 새 없이 불어댔다. 그녀는 다시 난로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나 남편은 마치 그녀가 무리한 요구 를 하 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 이야기를 들었다. 난로를 설치한다는 것은 파르빌에게는 화 금석을 발견하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졌다. 어느 날 일 때문에 루앙에 갔던 그가 아내 에게 구리로 만든 귀여운 발난로를 가져다 주었다. 그것을 그는 웃으면서 "휴대용 난 로"라 고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그는 그것만 있으면 앞으로 절대 춥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 하였다. 12월 말경에, 그녀는 이렇게 언제까지 살 수는 없으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 서 그녀 는 어느 날 저녁에 식사를 하면서 무뭇거리면서 이렇게 부탁했다. "여보, 봄이 오기 전에 파 리에서 1주일이나 2주일쯤 보내기 않겠어요." 남편은 어리둥절하였다. "파리에서, 파 리에서, 뭣 하러. 아, 절대로 안 돼, 정말이지. 여기가, 자기 집이 제일 좋은 거야. 당신은 이따금 참 이상한 생각을 하는구려." 그녀가 더듬거리면서 말했다. "기분 전환도 좀 될 텐데요. "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기분 전환을 위해서 당신에게 무엇이 필요하오. 연극, 야회, 시 내에서의 저녁식사. 그러나 그런 성격의 기분풀이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여기에 오면서 잘 알 았을 텐데." 그녀는 이야기하는 그 말투와 어조 속에서 비난을 느꼈다. 그녀는 입을 다물었 다. 그녀는 반항도 못 하고 의지력도 없는, 수줍고 온순한 여자였다. 정월에는 추위가 맹렬하게 다시 찾아왔다. 그러고 나서는 눈이 대지를 덮었다. 어느 날 저 녁, 나무들 주위에서 날개를 펴고 빙빙 맴을 도는 커다란 구름 같은 까마귀들을 바 라보고 있을 때, 그녀는 그러지 않으려고 했지만 눈물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남편이 들어왔 다. 그가 깜짝 놀라 물었다. "무슨 일이 있소." 그는 행복한 사람이었다. 다른 생활이나 다른 즐거움 을 한 번도 꿈꾸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는 완전히 행복한 사람이었다. 그는 이 침울한 고장에서 태어나, 여기서 자랐다. 그는 자기 집에 있는 것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편하 게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나기를 바란다든지, 변하기 쉬운 즐거움 을 갈 망한다든지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떤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사계절 동안 똑같 은 장 소에 머물러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다. 많 은 사 람들에게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새로운 고장에서 새로운 즐거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지 못하는 듯했다. 그녀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얼른 눈물을 닦았다. 그녀는 어쩔 줄을 몰라 마침내 말을 더듬었다. "난, 난, 조금 쓸쓸해요. 조금 따분한 거예 요." 그러 자 어떤 공포가 그렇게 말하는 그녀를 사로잡았다. 그래서 그녀는 이렇게 재빨리 덧 붙였다. "그리고 난, 조금 추워요." 그 말에 그는 화를 냈다. "아, 알겠소. 여전히 당신은 난로 생각을 하는구료. 그러 나 봐요, 제기랄. 당신은 여기 와서 감기 한 번 든 적이 없지 않소." 밤이 되었다. 그녀는 자 기 방으 로 올라갔다. 왜냐하면 그녀가 별개의 방을 쓰자고 강경히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리 에 누웠다. 침대에서조차 그녀는 추웠다. 그녀는 생각했다. "언제나, 항상, 죽을 때까 지 이럴 거야." 그러고는 남편을 생각했다. 그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당신 은 여기 와서 감기 한 번 든 적이 없지 않소." 그러니 그녀가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을 그가 알 게 하 려면, 그녀는 병이 나야 하고 기침을 해야 하는 것이다. 어떤 분노가 그녀를 사로잡았 다. 약 자의, 수줍은 사람의 흥분한 분노가. 그녀는 기침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는 아마 그녀를 동정하게 될 것이다. 그래. 그녀는 기침을 할 것이다. 그러면 기침하는 소리를 듣고, 그는 의 사를 부를 것이 틀림없다. 그렇게 되면 그는 알게 될 것이다. 그녀의 남편인 그는 이 해하게 되겠지. 그녀는 맨다리로, 맨발로 일어났다. 어린애 같은 생각이 그녀를 미소짓게 하였다. "난 난로를 갖고 싶어. 그것을 가질 테야. 그가 난로 하나를 놓아야겠다는 결심을 하 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기침을 해야지." 그러고는 거의 벌거벗은 채로 의자 위에 앉았다. 그 녀는 한 시간을, 두 시간을 기다렸다. 그녀는 추위에 몸을 떨었다. 그러나 감기는 들지 않았 다. 그래 서 그녀는 비상 수단을 쓰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소리 없이 방에서 나와, 계단을 내려 가, 정 원으로 나가는 문을 열었다. 눈으로 덮인 대지는 죽은 듯이 보였다. 그녀는 갑자기 맨발을 앞으로 내밀어 가볍고 차디 찬 이끼 속으로 집어넣었다. 상처처럼 고통스러운 냉기의 감각이 그녀의 심장에까지 올라왔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다른 다리를 펴서, 계단을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고 는 잔디밭을 가로질러 앞으로 나아가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전나무들이 있는 곳까지 가야 지." 그녀는 맨발을 눈속에 깊숙이 집어넣을 적마다 숨이 막혀 헐떡이면서, 종종 걸 음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자기 계획을 끝까지 완수했다는 것을 자신에게 확인시키려는 것처 럼 첫 번째 전나무에 손을 갖다대었다. 그러고 나서 되돌아왔다. 그녀는 너무도 감각이 마 비되고 기력이 빠진 듯이 느껴져서, 두세 번은 넘어지는 줄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그녀는 그 차디찬 거품 속에 앉았다. 그리고 그것을 뭉쳐 가슴에 문지르기조차 하였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들어와 자리에 누웠다. 한 시 간 후에는 목구멍 속에 개미가 있는 것 같았다. 또 다른 개미들이 그녀의 사지를 따라 뛰어 다녔다. 그러는 동안에 그녀는 잠이 들었다. 다음날 그녀는 기침이 나고 일어날 수가 없었 다. 폐렴이었다. 그녀는 헛소리를 하였다. 그리고 헛소리 속에서 난로를 부탁했다. 의 사는 난 로를 놓으라고 강력히 요구하였다. 앙리는 굴복하였다. 하지만 화가 나서 마지못해 한 굴복 이었다. 그녀는 쾌유될 수 없었다. 깊이 병든 폐는 그녀의 생명에 불안을 가져왔다. "부인 이 여기 에 있다가는, 겨울까지 사실 수 없을 겁니다." 하고 의사가 말했다. 그녀는 남부 지 방으로 보내졌다. 그녀는 칸느에 와서, 태양을 맛보고, 바다를 사랑했으며, 꽃이 핀 오렌지나 무의 향 기를 들이마셨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봄에 북부 지방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녀는 이제 치 유도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노르망디의 긴 겨울에 대한 두려움으로 살고 있다. 그래서 건강해지려고 하면 곧, 그녀는 지중해의 온화한 바닷가를 생각하면서 밤에 창문을 열 어놓는 것이었다. 지금 그녀는 죽어가고 있다. 그녀도 그것을 알고 있다. 그녀는 행복하다. 그녀는 펼 쳐보지 않던 신문을 펴든다. 그러고는 "파리에서의 첫눈" 이라는 제목을 읽는다. 그러면서 그녀는 몸을 떨고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저기, 석양에 장밋빛으로 물드는 에스테렐 산맥을 바라보 고 있다. 그녀는 너무도 푸른, 널따란 파란 하늘과 너무도 푸른, 널따란 파란 바다를 바라본 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러고 나서는 느릿느릿한 걸음걸이로 돌아오면서, 밖에 너 무 늦게까지 있었고 또 좀 추웠기 때문에 기침이 나올 때만 걸음을 멈추곤 하였다. 그녀는 남편의 편지 한 장을 발견하였다. 그녀는 여전히 미소를 지으면서 그것을 펼쳐 들고 읽는다. "사랑하는 당신에게 당신의 건강이 좋아지기를 바라고 있소. 또 우리의 아름다운 고장을 너무 그리워하지 말기를 바라오. 여기는 며칠 전부터 눈이 오려고 몹시 춥소. 난 그런 날씨 를 대단히 좋아하오. 그리고 난 당신의 고약한 난로를 절대로 피우지 않으려고 조심하 고 있 다는 것을 당신도 알겠지." 그녀는 자기 난로를 가졌었다는 생각에 너무도 행복해서 읽는 것을 그만두었다. 편지를 들고 있는 오른손이 무릎 위로 천천히 내려가고, 한편 그녀 의 가슴 을 찢는 듯한, 여간해서 멈추지 않는 기침을 가라앉히려는 것처럼 왼손을 입에 갖다대 었다. 고아 마드무아젤 수르스는 예전에 비참한 형편에 있는 이 소년을 양자로 삼았었다. 그때 그녀 는 서른 여섯 살이었고, 그녀의 추함이 ,그녀는 어렸을 때 하녀의 무릎에서 벽난로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바람에, 얼굴에 온통 심한 화상을 입어 보기에도 소름이 끼쳤다, 그녀로 하여금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게 했다. 돈이 있어서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임신을 하고 과부가 된 이웃집 여자가 일전 한푼 남기지 않고, 분만 중에 죽었다. 마드무아젤 수르스는 그 갓난애를 거두어들여 그 애를 남의 집에 보내어 길 렀으며, 기숙 학교에 보냈다. 그러고 나서 열네 살에 그를 다시 데려왔는데, 그것은 텅 빈 그 녀의 집 에서 자기를 사랑해 주고, 자기를 돌보아주고, 노년에 자기에게 다정하게 대해 줄 누 군가를 갖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렌느에서 40리쯤에 있는 작은 시골집에서 살았다. 그녀는 지 금 하 녀 없이 생활하고 있다. 그 고아가 도착하고 나서부터는 지출이 배 이상으로 늘어났기 때문 에, 그녀의 연수입 3천 프랑으로는 세 사람을 부양하기에 충분치 못했기 때문이다. 그녀 자신이 집안일을 하고 음식을 만들었으며, 심부름은 아직 정원을 가꾸는 일에 정신 이 없는 꼬마를 보냈다. 그는 온순하고 수줍고 조용하고 다정하였다. 그래서 그가 그 녀의 추 한 모습에 놀라거나 무서워하는 것 같지 않고 그녀를 포옹해 줄 때면, 그녀는 한없는 기쁨 과 새로운 즐거움을 맛보는 것이었다. 그는 그녀를 아줌마라고 불렀고, 어머니처럼 대 우하였 다. 저녁이면 그들 두 사람은 모두 불가에 앉았고, 그녀는 그에게 과자를 만들어주었 다. 그 녀는 포도주를 데웠고, 빵 한 조각을 토스트로 만들었다. 이것은 잠자리에 들러 가기 전에 먹는 즐거움, 가벼운 밤참이었다. 이따금 그녀는 그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정열적 인 말을 부드럽게 귀에다 속삭이면서 마구 애무하기도 하였다. 그녀는 그를 "나의 귀여운 꽃, 나의 귀여운 어린이, 나의 숭배하는 천사, 나의 훌륭한 보석"리아고 불렀다. 그는 노처녀 의 어깨 에다 머리를 감추고는 조용히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지금 그는 거의 열다섯이 되 어가지 만, 약간 병약한 외모와 함께 아직도 연약하고 작기만 했다. 이따금 마드무아젤 수르 스는 그 를 데리고 두 친척을 만나러 도시로 갔다. 그 친척은 그녀의 유일한 집안으로서, 변두 리에서 결혼하여 살고 있는 먼 사촌 자매들이었다. 두 여자는 상속 때문에 그 아이를 양자로 삼은 것을 늘 원망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쨌든 만일 상속 재산을 똑같이 나눈다 면, 아 마 3분의 1은 그들의 몫이라는 것에 희망을 걸고 그녀를 친절하게 맞아들였다. 그녀는 자기 아이에게 마음을 쏟고 있는 모든 시간이 행복했다. 아주 행복했다. 그 녀는 그 의 정신을 윤택하게 하기 위해서 책을 사주었다. 그래서 그는 열심히 책을 읽기 시작 하였다. 이제는 저녁마다 예전처럼 그녀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그녀의 무릎에 올라가지는 않 았다. 그러나 그는 벽난로 한구석에 있는 작은 의자에 차분히 앉아서, 책을 펴드는 것이었 다. 그의 머리 위, 시렁 가장자리에 놓인 등불이 그의 곱슬머리와 이마의 살갗 한 부분을 비추 고 있 다. 그는 이제 움직이지 않는다. 눈도 들지 않는다. 몸짓 하나 하지 않는다. 그의 책 의 모험 속에 완전히 들어가 정신없이 책을 읽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맞은편에 앉아 움직이지 않는 강렬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면서, 그의 집중에 놀라고 질투가 나서, 종종 눈물이 나 오려고 하였다. 그녀는 가끔 그가 머리를 쳐들고 자기를 포옹하러 와주기를 기대하면서 이렇 게 말 하곤 했다. "피곤하겠다. 얘야." 그러나 그는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듣지도 못 했고, 이 해하지도 못했다. 그는 책장 속에서 읽고 있는 것 이외의 다른 어느 것도 알지 못했 다. 2년 동안 그는 셀 수 없이 많은 책을 탐독했다. 그의 성격이 변했다. 그러고 나서 여러 번 그는 마드무아젤 수르스에게 돈을 요구하였다. 전에는 그녀가 그에게 돈을 주었는데 말이다. 언제나 그는 돈을 더 많이 필요로 했기 때문에 마침내 그녀는 거절하기에 이르렀다. 왜냐하 면 그녀에게는 규율이 있었고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돈이 필요할 때에는 합당 한 이유가 있어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애원을 한 덕분에, 그는 어느 날 저녁 또 상당한 금액을 그녀에게서 얻어냈다. 그러나 며칠 후에 그가 다시 돈을 달라고 애 원하자, 그녀는 끄떡도 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고, 사실상 더는 양보하지 않았다. 그는 체념하 는 듯이 보였다. 그는 전과 같이 다시 조용해지고, 꼼짝하지 않고 몇 시간 동안을 그대로 앉아 있기 를 좋아하였고, 눈을 내리뜨고 몽상에 잠겨 있었다. 그는 이제는 마드무아젤 수르스와 이야 기조차 나누지 않았다. 그녀가 그에게 말하는 것에 짤막하고도 분명한 말로 겨우 대답 만 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녀에 대해서 얌전했고, 정성을 다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녀 를 포옹 하는 법이 없었다. 저녁마다 그들이 벽난로 양편에서 꼼짝하지 않고 말없이 마주 앉아 있을 때면, 그녀 는 이 따금 그가 무서워졌다. 그녀는 숲의 어둠 같은 이 무서운 침묵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 를 깨 워 무엇이든지 아무 이야기나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그녀의 말을 귀담 아듣는 것 같지 않았다. 한마디 대꾸도 얻어내지 못하면서, 연거푸 대여섯 번을 그에게 말을 걸때 면, 가엾고 나약한 여자의 공포로 그녀는 몸을 떨었다. 그가 왜 이러는 것인가. 그 닫혀진 머리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그와 마주 앉아 그렇게 두세 시간을 보낼 때 면, 그 녀는 자기가 미칠 것 같아서 이 말없고 끝이 나지 않는, 진력나는 대담을 피하기 위해 서 그 리고 또한 그녀가 예측하지 못하는, 그러나 느낄 수 있는 어떤 막연한 위험을 모면하 기 위 해 들판으로 달아나 도망쳐 버렸으면 싶었다. 그녀는 혼자서 종종 울었다. 그가 왜 이러는 것일까. 그녀가 어떤 욕심을 표명하면, 그는 불평하지 않고 그것을 실행하였다. 그녀 가 도시 에서 어떤 것이 필요하다고 하면, 그는 곧장 그곳에 갔다. 그녀는 그에 대해서 불평하 는 것 이 아니다. 물론. 그러나. 한 해가 또 흘러갔다. 그녀에게는, 어떤 새로운 변화가 젊은이의 알 수 없는 정신 속에서 실현되고 있는 듯이 여겨졌다. 그녀는 그것을 알았다. 그것을 느꼈다. 그것을 예감했 다. 어떻 게. 어떻게든지 그녀는 자기가 전혀 잘못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러 나 그녀 는 이 이상한 청년의 알 수 없는 생각이 어떻게 변했노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그녀 에게는 그가 갑자기 어떤 결심을 하느라고 지금까지 망설였던 사람처럼 여겨졌다. 이 생각은 어느 날 저녁 그의 시선과 마주쳤을 때 그녀에게 떠올랐다. 그때 그는 줄곧 그녀를 주시하 기 시 작했다. 그녀는 자기에게 꽂히는 그 차디찬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 숨어버리고 싶었다. 며칠 저녁 내내 그는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다만 그녀가 간신히 이렇게 말할 때만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나를 쳐다보지 말려무나. 얘야." 그러면 그는 고개를 숙이는 것이었 다. 그러 나 그녀가 등을 돌리자마자, 자기에게로 향하는 그의 시선을 다시 느꼈다. 그녀가 어 디를 가 든, 그는 끈덕진 시선으로 그녀를 좇았다. 이따금 그녀가 자기의 작은 정원을 거닐고 있을 때면, 마치 매복하듯이 덤불 속에 몸을 숨기고 있는 거를 갑자기 발견해 내곤 하였다. 아니면, 그녀가 아랫부분을 수리하고 있는 집 앞에 자리잡고 있을 때나 또 그가 어떤 네모진 작은 채소밭을 삽으로 파고 있을 때면, 그는 일하면서 내내 음험하고 끈질긴 시선으로 그녀의 동정을 살피는 것이었다. 그녀가 그에게 이렇게 물어보았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왜 그러니, 얘야. 3년 전부터 너는 많이 달라졌 어. 너를 알 수가 없구나. 네가 왜 그런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말해 다오, 제발." 그 러면 그 는 언제나와 다름없이 침묵하고 피로한 어조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전 아무렇지 도 않 아요. 아줌마." 그래도 그녀는 고집을 부려 그에게 애원했다. "아이구, 얘야. 대답해 다오. 네 게 말할 때 대답을 해주려무나. 네가 나를 슬프게 한다는 것을 안다면, 너는 언제나 대답을 해줄 텐데. 그리고 그렇게 나를 쳐다보지도 않을 텐데. 걱정이 있지. 그걸 내게 말해 봐, 내 가 풀어줄 테니." 그러면 그는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지친 모습으로 가버렸다. "분명 히 말하 지만, 아무 일 없어요." 그의 얼굴 모습은 어른 같았지만 그다지 키는 크지 않아서, 여전히 어린애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의 용모는 억세었지만 미완성인 것 같았다. 그래서 불완전 해 보였고, 발육이 좋지 않은 것 같았으며, 그저 어떤 모습으로 되어가고 있는 듯이 보였고, 어떤 비밀을 지닌 듯이 불안해하는 것 같았다. 그는 닫혀 있는 사람이고 꿰뚫어볼 수 없는 사람이었으나, 마음속에서는 쉴 새 없이 활발하고 위험한 어떤 정신적인 작업이 이루 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마드무아젤 수르스는 이 모든 것을 잘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극도의 불안으 로 잠 을 이룰 수가 없었다. 무서운 공포와 지독한 악몽이 그녀를 괴롭혔다. 그녀는 갑작스 러운 공 포에 시달려, 문을 꼭 잠그고 방안에 처박혀 있었다. 무엇을 그녀는 두려워하는가. 그녀는 그것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 무서웠다. 밤도, 벽들도, 달빛이 창문의 흰 커튼을 통해 투사하는 여러 형태도 그리고 특히 그가 무서웠다. 어째서일까. 그녀가 두려워하 는 것 은 무엇인가. 그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이렇게 살수는 없었다. 그 녀는 어 떤 불행이, 무서운 불행이 그녀에게 닥쳐오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녀는 어느 날 아침 몰래 집을 떠나, 도시에 있는 친척에게로 갔다. 그녀는 그들에게 숨가쁜 목소리로 그 사정 을 이야 기하였다. 두 여자는 그녀가 미친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녀를 안심시키려고 애썼다. 그녀가 말했다. "그 애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를 어떻게 쳐다보고 있는지 안다면. 내게서 눈을 떼 지 않는 거야. 때때로 난 살려달라고 외치고 싶고, 이웃에 있는 사람들을 부르고 싶 어. 그만 큼 무서운 거야. 그러나 내가 그들에게 뭐라고 말하겠어. 그 애는 나를 쳐다보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내게 하지 않거든." 수 사촌 자매가 물었다. "이따금 언니에게 난폭하게 굴기도 하나요. 거칠게 대답하기도 하구요." 그녀가 다시 말했다. " 아니, 절대로 그러지는 않아. 그 애는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 일도 잘해. 지금은 얌전해졌고 말이야. 그런 것에서 내가 더 이상 두려워할 것이 없겠지. 확실한 것은, 정말 확실한 것은 그 애가 머리 속에 무 엇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야. 나는 더 이상 지금처럼 시골에서 그 애와 혼자 남아 있고 싶지 가 않아." 친척들은 당황해서,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기리라는 것과 이해하지 못하리 라는 것 을 그녀에게 주의시켜 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두려움과 계획을 비밀로 하라고 충고를 하였 지만, 도시로 살러 오겠다는 그녀를 만류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되면 상속이 모두 돌 아올 것 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그녀가 자기 집을 파는 것과 자기들 곁에 다른 집을 구하는 일을 도와주겠노라고 약속하기조차 했다. 마드무아젤 수르스는 자기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정신이 너무도 혼란스러워서, 아주 조 그만 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랐고, 아주 작은 동요에도 두 손이 떨렸다. 두 번 더 그 녀는 친 척들과 뜻이 맞아 돌아와서는, 이제는 외딴 집에서 더 이상 이렇게 남아 있을 수는 없다는 결심을 하였다. 그녀는 마침내 변두리에 그녀에게 적합한 작은 집 한 채를 찾아내어, 그것을 비밀리에 샀다. 어느 화요일 아침에 계약서를 서명을 했고, 그리고 마드무아젤 수르스 는 이 사 준비를 하느라고 그날 하루의 나머지를 보냈다. 그녀는 저녁 여덟 시에, 자기 집에 서 1킬 로미터 되는 지점으로 지나가는 합승 마차를 탔다. 그러고는 마부가 언제나 그녀를 내려주 는 장소에서 멈추게 했다. 마부는 말을 후려 때리면서 그녀에게 소리쳤다. "안녕히 가세요, 마드무아젤 수르스. 안녕히 주무세요." 그녀가 물러서면서 대답했다. "안녕히 가세 요, 조셉 영감님" 다음날 아침 일곱 시 삼십 분에, 마을로 편지를 가져오는 우편 집배원이 큰길에서 멀지 않은 지름길에서 아직도 마르지 않은 커다란 피 웅덩이를 알아보았다. 그는 생각했 다. "저 런, 어떤 주정쟁이가 코피를 흘린 모양이군." 그러나 그는 열 걸음쯤 더 떨어진 곳에 서 역시 피로 얼룩진 손수건을 발견하였다. 그는 그것을 집어들었다. 손수건은 고급이었다. 놀란 우 편 집배원이 이상한 물체가 보이는 듯한 도랑으로 다가갔다. 마드무아젤 수르스라 목 에 칼 을 맞고, 도랑 밑 풀 위에 쓰러져 있었다. 한 시간 후에, 순경들과 예심 판사 그리 고 많은 당국자들이 시체 주위에서 여러 가지 가정을 하고 있었다. 증인으로 소환된 두 친척이 와서 그 노처녀의 두려움과 마지막 계획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그 고아가 체포되었다. 자기 를 양 자로 삼을 그녀가 죽고 난 후부터, 그는 겉으로 엄청난 슬픔에 잠겨 아침부터 저녁까 지 울 었다. 그는 그날 저녁 카페에서 열한 시까지 보냈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열 사람이 그 를 보 았다고 했고, 그가 떠날 때까지 남아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합승 마차의 마부는 아훔 시 반 에서 열 시 사이에 암살 당한 여자를 길에 내려주었다고 분명히 말했다. 살인 범죄는 열 시 를 훨씬 지나서, 큰길에서 집으로 가는 도중에 일어난 것 같았다. 그 형사 피고인은 무죄로 석방되었다. 벌써 오래 전에 렌느의 공증인 사무실에 맡겨 두었던 유서는 그를 포괄 수유자로 만 들어 놓았다. 그래서 그는 유산 상속을 받았다.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의심해서 오랫 동안 따 돌렸다. 그의 집은, 죽은 여자의 집은 저주받은 집이라고 생각하였다. 사람들은 길에 서 그를 피해 갔다. 그러나 그는 너무도 착한 아이처럼 굴고, 너무도 명랑하고, 너무도 친숙 하게 굴 어서 사람들은 차차로 무서운 의혹을 잊어갔다. 그는 너그럽고 친절해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아주 겸손하게 이야기하였다. 공증인 라모씨는, 그의 미소짓는 다변 에 마음 이 끌려 그에게로 돌아온 첫 번째 사람이었다. 그는 어느 날 저녁, 세무서운 집에서 있은 저 녁식사에서 이렇게 분명하게 말했다. "그렇게 유창하게 말을 잘하는 사람 그리고 언제 나 기 분이 좋은 사람은 양심상 그런 범죄를 저지를 수 없습니다." 이 논증에 충격을 받은 동석자 들이 곰곰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아닌게아니라 그 남자의 긴 이야기들을 상 기하였 다. 그는 자기의 생각을 그들에게 전하기 위해 길모퉁이에서 거의 강제로 불러 세웠 고, 그의 정문 앞으로 지나칠 때면 자기 집으로 억지로 들어가게 했으며, 지방 경차서장보다도 더 쉽 게 재치 있는 말을 하고, 너무도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쾌활함을 지니고 있어서 그가 불러 일으키는 혐오감에도 불구하고 그와 함께 있으면 언제나 웃음을 자제할 수 없었던 것 이다. 모든 문이 그를 향해 열려졌다. 그는 지금 자기 읍의 읍장이다. 어느 여인의 고백 친구야, 당신은 나에게 내 생에서 가장 선명한 추억들을 이야기해 달라고 청한 적이 있었 지요. 나는 친척도 없고, 아이도 없는, 매우 늙은 여자예요. 그래서 나는 당신에게 자유롭게 고백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내 이름을 밝히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세요. 당신 도 알다 시피, 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나는 종종 내 자신을 사랑하기도 했지요. 나는 매 우 아름 다웠거든요. 그러나 오늘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공기 가 육체의 생명이듯이, 사랑은 내게 영혼의 생명이었습니다. 애정 없이, 언제나 내게 집착하 는 사고 없이 존재하기보다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 겁니다. 여자들은 흔히 오직 한 번만 마음의 전력을 다해서 사랑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지요. 그러나 내게는 열렬하게 사랑하 는 일 이 너무도 흔히 일어나기 때문에, 격정의 종말이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러나 그 열정은 나무가 없는 불처럼 언제나 자연스럽게 꺼져버리곤 했지요. 오늘 나는 당신에게, 내가 아주 결백했던, 그러나 다른 사건들의 원인이 되었던 뜻 밖의 일 중에서 맨 처음의 것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페크의 그 무서운 약제사가 저지른 소름 끼치 는 복수는 본의 아니게 내가 입회했던 무서운 참극을 생각나게 했습니다. 나는 그 1년 전에 부자인 에르베 드 케르. 라는 백작과 결혼했었는데, 그는 물론 내가 조금도 좋아하지 않는 브르타뉴의 오래 된 가문 사람이었습니다. 사랑은, 진정한 사랑은 적어도 자유와 장애 가 동 시에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법으로 승인 받고 사제에게 축복 받은 강요된 사 랑, 그것 이 사랑일까요. 합법적인 키스는 결코 도둑맞은 키스보다 값나가는 것이 아니랍니다. 내 남편은 키가 크고 품위 있고 게다가 정말로 관대한 사람이었지요. 그러나 그는 지성이 부족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정신이 판에 박은 생각들로 가득 차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것 은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이고, 그것은 또 그들의 조상이 지니고 있 던 것 이기도 했지요. 그는 결코 망설이는 법이 없었고, 매사에 어떠한 당황함도 없이 그리 고 다른 관점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즉각적이고도 편협한 의견을 개진하 곤 했 습니다. 사람들은 그 머리가 닫혀져 있어서, 문이나 창문이 열린 집안으로 지나가는 바람처 럼 정신을 갈고 맑게 하는 생각들이 조금도 돌아가지 않는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우리 가 살 고 있는 큰 저택은 적막한 고장의 한복판에 있었지요. 그것은 커다랗고 음산한 건물로 서 거 대한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었으며, 그 집의 이끼는 노인들의 하얀 수염을 생각나게 했습니 다. 정원은 실제의 숲으로서, "둘러친 넓은 도랑"이라고 부르는 깊은 구렁에 둘러싸 여 있었 어요. 그 맨 끝 광야 쪽에는 갈대와 수초가 가득한 두 개의 커다란 못이 있었습니다. 두 못 사이로 그것을 잇는 개울가에, 남편은 야생 오리를 쏘아 잡기 위해서 작은 오두막집을 짓게 했습니다. 우리는 보통 하인들 이외에 남편에게는 죽을 때까지 충성을 다할 짐승 같은 시종 한 사람 과, 내게는 밤낮없이 달라붙어 있는, 거의 친구 같은 몸종 한 사람을 가지고 있었습니 다. 나 는 5년 전에 그녀를 스페인에서 데려왔었지요. 그녀는 버려진 아이였어요. 사람들은 그녀를 거무스름한 얼굴빛, 검은 눈동자 그리고 숲처럼 언제나 이마 둘레를 온통 덮고 있는 머리카 락을 가진 집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그때 열 여섯 살이었지만 스무 살처럼 보 였습니 다. 가을이 시작되었어요. 사람들은 사냥을 많이 했습니다. 어떤 때에는 이웃 사람들 집에서 또 어떤 때에는 우리 집에서, 나는 C라는 남작인 젊은 남자를 주의해 보았습니다. 그 는 큰 저택을 방문하는 것이 이상하게 잦아졌습니다. 그러다가 그를 찾아오는 것을 그만두었 고, 나 도 더 이상 그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주의해 보니 남편의 태도 가 달 라진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는 말이 적어진 것 같았고 무엇엔가 열중해 있는 것 같았으 며 나를 포옹해 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좀 혼자 지내기 위해서 방을 나누어 쓰자 고 강요했기 때문에 그가 내 방에 거의 들어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밤마다 내 방 문에까지 왔다가 얼마 후에는 멀어지는 숨죽인 발소리를 듣곤 했어요. 내 창이 아래층 에 있 었기 때문에, 나는 어둠 속에서 큰 저택 주위로 돌아다니는 소리를 종종 듣는 것이라 고 생 각했었습니다. 내가 그 이야기를 남편에게 하자, 그는 나를 얼마 동안 뚫어지게 바라 보다가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아무 것도 아니오. 그는 시종이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우리가 저녁식사를 마쳤을 때, 음험한 즐거움으로 이상하게도 몹시 명랑해 보이는 에르베르가 내게 이렇게 말하는 청했습니다. "저녁마다 우리 암탉을 잡 아 먹 으로 오는 여우를 죽이기 위해 그 지키는 목에서 세 시간쯤 지내는 것이 어떻겠소."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망설였지요. 그러나 그가 이상하게 끈덕지게 나를 주시하는 바람 에, 나는 마침내 이렇게 대답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하고 말고요, 여보" 나는 남 자처럼 늑대나 멧돼지를 사냥한다는 것을 당신께 말해야만 하겠군요. 그러니 그 지키는 목에 가자 고 내게 제의한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그런데 남편이 갑자기 이상하게 신경질 을 부리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러고는 저녁 내내 열에 들든 듯이 일어났다 앉았다 하면서 불안해하는 거였습니다. 열 시쯤 그가 내게 불쑥 말하더군요. "준비되었소." 내가 일 어섰습 니다. 그리고 그가 내 총을 손수 가져다 주길래 이렇게 물었지요. "보통 총알을 장전 해야 되 나요, 아니면 노루잡이 탄알을 장전해야 되나요." 그는 놀라더니 곧이어 이렇게 대답 하더군 요."아, 노루잡이 것으로. 그거면 족할 것이오. 자신을 가져요." 그러고 나서 잠시 후에 그는 이상한 어조로 덧붙였습니다. "당신은 놀랄 만한 침 착성을 가졌다고 자부할 수 있겠지." 나는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내가요, 그런데 왜죠. 여우 를 죽이 러 가는데 침착성이라니요. 그런데 당신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거죠, 여보." 그러 고는 우 리는 소리 없이 집을 떠나 정원을 가로질러 갔습니다. 온 집안이 잠들어 있었어요. 보 름달은 슬레이트 지붕이 반짝이고 있는 어둡고 낡은 건물을 노란색으로 물들이고 있는 것 같았지 요. 건물 옆에 세워져 있는 두 개의 망루는 꼭대기에 두 개의 빛의 금속판을 받치고 있었고 그리고 어떠한 소리도 환하고 쓸쓸하고 온화하고 무거운, 죽음과도 같은 이 밤의 정적 을 깨 뜨리지 않았습니다. 공기의 떨림도 없었고 두꺼비의 울음소리도 없었으며 올빼미의 신음소 리도 없었지요. 다만 음산하고 무감각만이 모든 것을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정원의 나무들 밑에 있게 되자, 냉기와 낙엽 냄새가 나를 사로잡았습니다. 남편은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사냥의 흥분에 사로잡혀 귀를 기울이 고 있 었고 살피고 있었으며 어둠 속에서 냄새를 맡는 것 같기도 하더군요. 우리는 곧 연 못가에 이르렀습니다. 등심초의 가지들이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어떠한 입김도 그것 에 스쳐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감지될 수 있을까 말까 하는 움직임이 물 속에서 흘렀습니 다. 이따 금 한 점이 표면에서 움직였어요. 그리고 거기에서 빛나는 주름 같은 가벼운 동그라미 가 나 와 끝없이 퍼져 나갔습니다. 우리가 숨어 있을 오두막집에 이르자, 남편은 먼저 총을 갖게 하고, 그런 다음에는 천천히 자기 총에 장전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총의 덜그럭거리는 냉혹 한 소리가 내게 이상한 효과를 자아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내가 몸을 떠는 것을 느끼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혹시 이런 고생이 당신에게 만족스럽지 않은 건 아니오. 그렇다 면 돌아 가구려." 나는 깜짝 놀라 대답했습니다. "전혀 그렇지 않아요. 돌아가려면 오지도 않 았을 거 예요. 당신 이상하군요, 오늘밤엔." 그가 중얼거렸다. "당신 좋을 대로해요." 그리고 우리는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있었습니다. 약 반시간을 기다려도, 아무 것도 이 가을밤의 무 겁고 투 명한 고요함을 깨뜨리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아주 나지막하게 말했습니다. "그 것이 여 기로 지나간다고 확신하세요." 에르베는 내가 그를 물어뜯기라도 한 것처럼 몸을 흠 칫했습 니다. 그러고는 내 귀에다 입을 갖다대고 말했습니다. "틀림없어요. 들어봐요." 그러고는 침묵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남편이 내 팔을 잡았을 때, 나는 졸기 시작 하고 있 었나봅니다. 휘파람 소리와도 같은 달라진 목소리로 그가 말했어요. "저기, 나무 밑 을 보고 있소." 나는 아무리 보려고 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아무 것도 분간할 수가 없었거든 요. 에 르베는 나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천천히 어깨에 총을 대었습니다. 나 자신도 총 을 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 앞의 30보쯤 되는, 빛이 가득한 곳에 한 남자 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도망치듯이 몸을 숙이고 빠른 걸음으로 오고 있었습니다. 나는 너무 도 놀라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러나 내가 몸을 돌리기도 전에 불꽃이 내 눈앞으로 스 쳐갔고, 포성이 나를 얼빠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총에 맞은 늑대처럼 땅에 뒹구는 그 사람 을 보았습니다. 나는 공포에 사로잡혀 미친 듯이 날카로운 아우성을 질렀습니다. 그때 에르 베의 격노한 손이 내 목을 휘어잡았습니다. 나는 땅에 쓰러졌습니다. 그러자 그의 억 센 팔 속에 나는 들어올려졌습니다. 그는 나를 공중으로 치켜들고, 풀밭에 넘어져 있는 시체 를 향 해 달려갔습니다. 그러고는 내 머리가 부수어지기를 바라는 것처럼 나를 그 위에서 힘 껏 내 던지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살아날 가망이 없음을 느꼈습니다. 그는 나를 죽이려고 하는 것이었어요. 벌써 그는 내 이마 위에 자기 발뒤꿈치를 쳐들고 있었던 거예요. 그때 이번에는 그가 덫에 걸려 넘어 졌습니다.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하지도 못하는데 말입니다. 나는 벌떡 몸을 일으켰습니다. 그러고는 내 하녀 파키타가 그의 위에 무릎을 꿇고, 제정신을 잃고 부 르르 떨 면서 미친 듯이 날뛰는 한 마리 고양이처럼 매달려 그의 턱수염과 코밑수염 그리고 얼 굴이 살갗을 쥐어뜯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다른 생각에 사로잡힌 듯이, 그녀 는 몸을 일으켜 시체 위에 달려들었습니다. 그러고는 두 팔에 가득 그를 껴안고, 그의 눈에, 입술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또 죽은 자의 입술을 자기 입술을 열고 거기에서 숨결을 찾았으 며, 연인들의 깊은 애무를 찾으려고 했습니다. 남편은 일어나 바라보고 있더군요. 그 는 깨닫 고, 내 발치에 무너지듯 주저앉았습니다. "아아, 용서해요, 여보. 나는 당신을 의심 해서 이 하녀 아이의 애인을 죽였구려. 나를 속인 것은 내 시종 놈이오." 나는 이 죽은 자와 살아 있 는 자의 이상한 키스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흐느낌, 또 가망이 없는 사랑에 소스라쳐 놀라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나는 남편에게 충 실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여행중에 기찻간은 칸느에서부터 만원이었다. 사람들은 서로 알고 있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타라 스콩을 지날 대, 누군가가 말했다. "살인 사건이 난 곳이 바로 여기지요." 그래서 사 람들은 2년 전부터 이따금 나타나 여행자의 목숨을 빼앗는, 붙잡을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살인자 에 대하여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저마다 추측을 했고, 각자 자기 의견을 제시했다. 여 자들은 승강구의 문에서 갑자기 사람의 머리가 나타나는 것을 보는 것 같은 무서움으로 몸을 떨면 서 창 밖의 어두운 밤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마주 앉았던 이야기, 수상한 사람 앞에 서 몇 시간을 보냈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명예를 위해 일화 한 가지 씩은 알고 있었다. 누구나 의외의 상황 속에서, 재치와 감탄할 만한 대담성으로 어떤 악한을 위협하고, 기를 꺾어놓고, 포박을 했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남부 지방에서 매해 겨울 을 보내 는 어떤 의사는 자기 차례가 되자 놀라운 일을 이야기하고 싶어했다. 나는 이런 종류의 일로 내 용기를 시험해 볼 기회를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지금은 죽고 없는 내 고객 중의 한 사람이었던 어떤 부인을 알고 있습니다. 그 부인 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이상하고 또한 가장 신비스럽고 가장 감동적인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는 마 리 바라노브 백작 부인이라는 러시아 여자였어요. 매우 키가 크고, 우아한 아름다움을 지녔 지요. 러시아 여자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여러분들도 아실 겁니다. 어쨌든 그녀들 은 우리 에게는 아름다워 보입니다. 끝이 뾰죽한 코, 섬세한 입술, 청회색의 형용할 수 없는 빛깔을 띤, 가깝게 붙은 눈 그리고 좀 딱딱하고 차가운 우아함. 그녀들은 심술궂은 듯하면서 도 매혹 적인, 오만하면서도 다정한, 부드러우면서도 엄격한, 프랑스 남자에게는 완전히 매력 적인 그 무엇을 지니고 있지요. 사실은, 내가 그 여자들에게서 그토록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것은 다 만 인종과 유형이 다름에 있을 겁니다. 몇 해 전부터 그녀의 주치의는 그녀에게 폐병의 징후가 있음을 알고, 프랑스의 남부 지방 으로 가도록 결심시키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페테르부르크를 떠나는 것을 고집스 럽게 거절했습니다. 마침내 지난 가을, 그녀가 회복할 가망이 없다고 판단한 의사는 남편에 게 알렸고, 남편은 아내에게 곧 망통으로 떠나라고 명령을 내리게 되었답니다. 그녀는 기차 를 타로 혼자 자기 찻간에 있었고, 시중 드는 사람들은 다른 칸에 있었습니다. 그녀는 좀 쓸 쓸해서 문의 커튼에 기대어 지나가는 들판과 마을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기가 아주 고립되어 있는 생활 속에서 버림받은 것같이 느껴졌으며, 아이도 없고 거의 친척 도 없 이 남편 하나뿐인데, 남편은 사랑이 식어버려서 자기와 함께 오지도 않고 병든 하인을 양로 원에 보내듯이 자기를 이렇게 세상 끝에다 집어던지는 것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역에서 잠깐 머무를 때마다, 하인인 이반이 여주인에게 아쉬운 것이 없나를 알아보려고 왔 습니다. 그는 마님이 자기에게 내리는 명령이면 무엇이든지 수행할 준비가 되어 있는, 맹복적 일 정 도로 헌신적인 늙은 하인이었지요. 어두워졌고, 열차는 전속력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녀는 지나치게 신경이 날카로워져 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문득 마지막 순간에 남편이 프랑스의 금화로 그녀에게 건네준 돈을 세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녀는 작은 지갑을 열고, 무릎 위에다 반짝이 는 많은 금화를 쏟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 줄기 찬 기운이 얼굴을 때렸습니다. 깜짝 놀라 그녀는 고개를 들었습니다. 승강구의 문이 방금 열렸습니다. 마리 백작 부인은 정신없이 자기 옷 위 에 쏟아져 있는 돈에다 숄을 덮고 기다렸습니다. 몇 초가 흘렀습니다. 그런 다음에 한 남자 가 나타났는데, 그는 야회복 차림에 모자도 쓰지 않았고, 손에는 부상을 당한데다 숨 을 헐떡 이고 있었습니다. 그는 문을 다시 닫고 자리에 앉아 빛나는 눈으로 가까이 있는 여인 을 바 라보았습니다. 그러고는 피가 흐르는 손목을 손수건으로 싸맸습니다. 젊은 부인은 무서워서 기절할 것만 같았습니다. 이 남자는 물론 자기가 금화를 세고 있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훔치고 자기를 죽이러 왔을 것이 틀림없다고 생 각했습 니다. 그는 숨을 헐떡이고 얼굴에 경련을 일으키면서, 여전히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 보았는 데, 틀림없이 그녀에게 덤벼들 태세였습니다. 그가 느닷없이 말했습니다. "부인, 무 서워하지 마십시오." 그녀는 입을 열 수가 없어서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심장이 뛰는 소 리와 귀가 윙윙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었을 뿐이지요. 그가 다시 말했습니다. "저는 나쁜 사 람이 아닙니다. 부인" 그녀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갑 자기 몸 을 움직여 무릎을 오므렸기 때문에, 물이 빗물받이 홈통에서 흘러내리듯이 금화가 양탄자 위로 굴러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남자는 깜짝 놀라 금화가 냇물처럼 흘러내리는 것 을 쳐 다보았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몸을 구부려 그것을 줍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당황 해서 금 화를 모두 바닥에 내팽개치고 일어섰습니다. 그러고는 통로 뒤로 뛰어가려고 문 쪽으 로 달 려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녀가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인지를 알고, 뛰어들어 그녀를 두 팔로 잡아 강제로 앉게 한 다음, 두 손목으로 그녀를 꽉 붙들었습니다. "들어보세요, 부인.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그 증거로, 이 돈을 주워서 당신에 게 돌려 드리는 거예요. 그러나 부인이 국경을 통과하도록 나를 도와주시지 않으면, 나는 살아 날 가 망이 없는 사람이고, 죽게 될 사람입니다. 그 이상은 부인께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한 시 간 후에는 러시아의 마지막 역이 될 것이고 한 시간 이십 분 후에는 러시아 제국의 국경을 넘게 될 것입니다. 만일 부인께서 나를 도와주시지 않는다면, 나는 살아날 가망이 없 습니다. 그러나 부인, 나는 살인을 한 것도 아니고, 도둑질을 한 것도 아니며, 명예에 어긋나 는 짓은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그것을 부인께 맹세합니다. 그 이상은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 다." 그러고는 무릎을 꿇고, 의자 밑에까지 들어간 금화를 주웠고 멀리 굴러간 마지 막 것들 을 찾아냈습니다. 그러고 나서 조그마한 가죽 지갑이 가득해지자, 그는 그것을 한마디 말도 덧붙이지 않고 곁에 있는 여인에게 돌려주었습니다. 그러고는 돌아가 기찻간의 다른 구석에 앉았습니다. 두 사람 모두 더 이상 몸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아직도 무서움으로 기절할 것만 같아서 꼼짝하지 않고 말없이 있었지만, 그러나 조금씩 마음이 가라앉았습니다. 그 사람도 손짓 하나, 몸짓 하나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똑바로 앉아 자기 앞을 뚫어지게 바라보 고 있 었는데, 죽은 사람처럼 매우 창백했습니다. 이따금 그녀는 흘끗 남자 쪽을 보다가는 얼른 시 선을 돌렸습니다. 그는 약 서른 살 가량 되어 보이는 남자로서, 아주 미남인데다 귀족 의 외 모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기차기 어둠 속으로 달리면서, 찢어질 듯한 기적을 밤의 한 가운데 로 지르고 있었습니다. 이따금 운행을 늦추었다가 곧 전속력으로 다시 떠나곤 했습니 다. 그 런데 갑자기 속도가 누그러지더니, 기적을 몇 번 울리고 나서 멈추었습니다. 이반이 명령을 받들기 위해 문에 나타났습니다. 마리 백작 부인의 목소리가 떨렸 습니다. 마지막으로 그 낯선 동행인을 바라보고 나서, 그녀는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하인에게 말했습 니다. "이반, 백작에게로 돌아가야겠어요. 이젠 당신이 필요하지 않아요." 하인은 어 리둥절하 여 눈을 휘둥그렇게 떴지요. 그러고는 우물우물 말했습니다. "하지만, 마님." 그녀가 다시 말 했지요. "아니야, 당신은 오지 않아도 돼. 생각이 변했어. 당신은 러시아에 남아 있 는 것이 좋겠어. 자, 여기 돌아갈 돈이 있어요. 당신 모자와 외투는 날 주어요." 늙은 하인은 당황하 여 모자를 벗고 외투를 내밀었습니다. 그는 주인 마님의 갑작스러운 제멋대로의 생각 과 억 제할 수 없는 변덕에 익숙해 있어서, 언제나 말대꾸를 하지 않고 복종을 했거든요. 그 는 눈 에 눈물을 글썽이며 멀어져갔습니다. 기차는 다시 출발하여, 국경으로 달려가고 있었 습니다. 그러자 마리 백작 부인이 곁에 있는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당신을 위해서 한 일이 에요. 당신은 내 하인인 이반이에요. 내가 하는 이 일에 한 가지 조건이 있어요. 그 것은 당 신이 내게 절대로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내게 감사하기 위해서도, 그 무엇을 위해 서도 한마디 말을 해서는 안 돼요." 그 미지의 사람은 말을 할 수가 없어서 몸을 굽혔습니다. 이윽고 다시 기차가 멎고, 제복 을 입은 역무원들이 기차를 순시했습니다. 백작 부인은 그들에게 신분 증명서를 내 밀었고 자기 기찻간의 밑바닥에 앉아 있는 그 남자를 가리키면서 말했습니다. "내 하인인 이 반이에 요. 여기 여권이 있어요." 기차는 다시 출발했습니다. 밤새껏 두 사람은 말없이 마 주 보고 있었지요. 아침이 되어, 기차는 어느 독일 역에 멈추었기 때문에, 그 미지의 사람은 내렸습 니다. 그런 다음 승강구 문에 서서 그가 말했습니다. "용서하세요, 부인. 약속을 깨뜨 려서요. 그런데 제가 부인의 하인을 빼앗았으니, 제가 대신해야 옳을 겁니다. 필요한 것 없으 세요." 그녀가 쌀쌀하게 대답했습니다. "가서 제 침실 하녀를 불러다 주세요." 그는 그곳으 로 갔습 니다. 그리고 사라졌습니다. 그녀가 어떤 구내 식당으로 내려갔을 때, 그녀는 멀리서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그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들은 망통에 도착했습니다. 의사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어느날 내 진찰실에서 환자들을 받 고 있 는데, 키 큰 청년이 들어와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의사 선생님, 저는 마리 바 라노브 백작 부인의 근황을 선생님께 물어 보려고 왔습니다. 그분은 나를 전혀 모르 시겠지 만, 나는 그분 남편의 친구랍니다." 내가 대답했지요. "부인은 회복할 가망이 없습니 다. 그분 은 러시아로 돌아가지 못할 겁니다." 그러자 그 남자는 갑자기 흐느껴 울기 시작했 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일어나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면서 밖으로 나갔습니다. 바로 그날 저녁, 나는 백작 부인에게 어떤 모르는 사람이 내게 와서 부인의 건강에 대해 묻더라고 알려 주었 습니다. 부인은 감격한 듯했습니다. 그러고는 방금 여러분들에게 내가 해드린 그 이 야기를 모두 들려주는 것이었어요. 그러고는 이렇게 덧붙이더군요. "내가 전혀 알자 못하는 그 남자 는 지금도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닌답니다. 내가 밖에 나갈 때마다 그를 만나게 되는 거예 요. 그는 나를 이상한 태도로 바라보지만, 결코 말은 걸지 않아요." 그녀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자, 그는 틀림없이 내 창문 아래 에 있을 거예요." 그녀는 긴 의자에서 일어나 커튼을 열러 갔습니다. 그랬더니 과연 나를 찾 아왔던 그 남자가 산책 길 벤치에 앉아 저택 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는 우리 를 알 아보자, 자리에서 일어나 한 번도 고개를 돌리지 않고 멀어져갔습니다. 그때 나는 놀 랍고 고 통스러운 것, 전혀 서로 알지 못하는 그 두 사람의 말없는 사랑을 목격했습니다. 그는 부인 을 사랑하고 있었고, 구원받은 짐승의 헌신으로 죽도록 고마워하고 충성을 다하고 있 었습니 다. 그는 내가 부인의 병세를 예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날마다 찾아와서 "부인은 어떻습 니까." 하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더 허약해지고 더 창백해져 가는 그 녀가 지 나가는 것을 보면, 무섭게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고요. 부인이 내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 이상한 사람과는 단 한 번밖에 말해 본 적이 없습 니다. 그러면서도 20년 전부터 그를 알고 있었던 것만 같아요." 그들이 서로 마주칠 때면, 부인은 그에게 깊이 있고 매혹적인 미소로 인사를 보내곤 했습니다. 나는 그토록 버 림받고 또 회복될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녀가 행복한 여인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 존경심과 그런 끈기로, 그런 엄청난 시정으로, 무슨 짓이라도 하려는 그 헌신으로 그 렇게 사 랑받고 있는 그녀가 행복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미치도록 찬양받는 여인의 고집으 로 해 서, 그녀는 그를 받아들이고 그의 이름을 알고 그와 이야기하는 것을 필사적으로 거 부했습 니다. 부인은 말했습니다. "안 돼요, 그럴 순 없어요. 그건 그 이상한 우정을 망가뜨 리는 거 예요. 우리는 서로 타인으로 있어야만 해요." 그 사람으로 말하자면, 그도 물론 독 같이 돈 키호테 같은 사람이었지요. 왜냐하면 그는 그녀와 가까워지려는 일을 아무 것도 한 적 이 없 으니까요. 그는 자기가 기찻간에서 했던, 그녀에게 절대로 말을 걸지 않겠다는 그 부 조리한 약속을 끝까지 지니고 싶어했습니다. 허약해 있는 오랜 시간 동안 종종 그녀는 긴 의자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가서 커튼 을 살 짝 제치고, 그가 거기, 자기 창 밑에 있나 없나를 내다보곤 했습니다. 그러고는 여전 히 벤치 위에 앉아 꼼짝하지 않고 있는 그를 보면, 그녀는 입술에 미소를 머금고 돌아와 자리 에 눕 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어느 날 아침 열 시경에 죽었습니다. 내가 저택에서 나오 자, 그가 깜짝 놀란 얼굴로 내게 왔습니다. 그는 이미 그 소식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선생 님 앞에 서 부인을 잠시 뵙고 싶습니다." 나는 그의 팔을 잡고 집안으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고인의 침대 앞에 서자, 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 끝없는 키스를 했습니다. 그러고는 미친 사 람처럼 물러갔습니다. 의사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 "자, 물론 이것은 내가 알 고 있는 가장 기이한 철도 사건입니다. 또한 그 사람들은 이상할 정도로 머리가 돈 사람들이라 는 것 도 아울러 말씀드려야만 하겠군요." 한 여인이 나지막한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두 사람은 선생님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머리가 돈 사람들이 아녜요. 그들은." 그러나 그녀 는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너무 많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여인을 진 정시키 기 위해서 화제를 바꾸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녀가 무엇을 말하고 싶어했는지 알지 못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