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현대 단편선 지은이:루쉰 외 옮긴이:류성준 펴낸이:전채호 펴낸곳:혜원출판사 차례 머리말 광인일기 고독한 사람 이혼 춘타오 어려움에 처한 판 선생 타락 전당포 앞에서 간판에 얽힌 이야기 초인 한 통의 부치지 않은 편지 장부 죄와 벌 달밤 인생철학의 한 수업 어느 가을날 저녁에 살인자 화웨이 선생 광란의 파도 잠시 동안의 이별 어느 마음의 기록 담임선생 어머니와 아들 머리말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가 바다에 임하여서 거부할 수 없는 광경이듯이, 우리의 역사와 문화에서 끊을 수도 없고, 외면할 수도 없는 중국의 시공적 상을 지금 우리는 매우 가까이에서 보고 있다. 눈에 보이는 물상까지도 우리에게 피할 수 없는 관계를 맺도록 하고 있으니, '문학' 하나만을 가지고도 우리는 문화적으로 같은 계통 안에서 연관시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청말을 기점으로 문학에서 옛것과 지금의 것이 나뉘었는데, 묘사된 문장형식에 따라서 지금의 것을 구어체에 의한 작품으로 한정시켜 놓았다. 그래서 지금의 것은 '현대문학'이 된 것이다. 이 책에 실린 중국 현대 단편소설들은 형식과 내용에 있어 바람직한 작품만을 골라 놓았다. 그러므로 어느 작가의 경우에는 두세 편이 되는 경우도 있고, 유명작가로서 선정대상일 수 있는데도 고르지 못한 경우도 적지 않으며, 무명작가인데도 선정이 되기도 했다. 대상지역은 대륙과 대만이고, 시기는 20년대 전후에서 70년대 후반까지 폭을 넓혀 놓았다. 따라서 다양한 시기의 작품을 고루 접할 수 있으며, 작품의 성향도 시기와 사조에 따라 다른 맛을 느낄 수 있으리라 본다. 이처럼 현대 단편소설의 모습만을 제시한 '선집'이지만 각 작품마다 그 시대와 성격의 독특한 배경을 띠고 묘사된 것이기에, 이들 작품들을 보다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문학이 가지고 있는 성격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중국인의 의식정화인 문학에 있어서, 그들은 시대적이든 문체적이든 분류하고 정리하는 의식과 훈련이 서양에 비해 중요시되지 않았다. 따라서 비평분석력이 발달하지 못하고 선인들이 남긴 것을 되씹으며 음미하는 것에 만족하여, 작품 자체의 경향도 창조적인 것보다는 전고적인 점에 우위를 두게 되었다. 이렇게 문학 자체의 개성으로 중국문학을 분류해 보면, 첫째는 문학의 품격으로 보아 호방과 완약의 두 과로 나뉜다. 이것은 지역성과 환경이 문학에 미치는 연관을 중요시하는 분류로서, 호방파는 북방의 영웅문학을, 완약파는 남방의 아녀문학을 의미한다. 이런 성격은 시, 사, 소설, 희곡 속에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다. 둘째는 작가의 의식으로 보아 귀족문학과 평민문학으로 나뉜다. 이것은 신분의 고하에 의한 분류가 아니라, 작품상에 나타난 작가의 성향이 귀족적이냐 평민적이냐에 의한 것이다. 셋째는 구사하는 문자에 의한 분류로서, 백화문학과 고전문학으로 나뉜다. 백화문학은 평민화, 통속화를 지향하는 것이고, 고전문학은 상대적으로 우아하고 소상한 의식을 보이는 것으로서, 백화와 고문을 각각 사용하는 점이 이 분류의 외적 특징이다. 넷째는 표현방법에 의한 구분으로서, 낭만주의와 사실주의로 나뉜다. 낭만주의는 이상주의, 사실주의는 자연주의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이제 중국문학의 성격을 내용면에서 살펴보면, 첫째는 우주의 만물이 갖는 생기의 작용을 인간의 문제와 결부하여 중용의 원리에 귀착시키고 있다. 둘째는 문학의 도덕적 규범을 유가적 윤리관 위에 구현하고 있다. 셋째는 자연의 경물에 대한 묘사에 있어서, 순수한 사경의 작품은 극히 적고, 대부분이 경물에 감정을 불어넣어 감정과 경물의 융화를 이루고 있다. 문학에서 순수한 서사시는 없고 단지 서사적 성격을 지닌 시가 있을 뿐이라고 한 사실과 깊은 관계가 있다. 넷째는 항상 자연을 정이 있는 실체로 보고 사물을 의인화하여 사물 속에 인간의 감정을 이입한다. 다섯째는 온유돈후한 화평을 특징으로 한다. 중국문학에는 전쟁과 투쟁을 강조하는 작품은 없고, 인간과 인간의 사랑과 인간과 사물의 사랑을 중요하게 여긴다. 여섯째는 민족정신이 잘 드러나 있다. 악비의 "만강홍"은 국가에 대한 충성을, 문천상(1236__1282)의 "정기가"는 인간의 기품을, 제갈량(181__234)의 "출사표"는 충성심을, 이밀(223__289)의 "진정표"는 효심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수호전"의 무송, 임충, 노지심 등은 의협을, "삼국연의"의 관우는 무성으로 민족의 살아 있는 인물로 남아 있어서 문학과 삶의 동화를 이룬다. 다시 말해서 중국문학은 형식상으로는 간결하고 시구의 대우와 성운의 조화를 그 특성으로 하며, 내용상으로는 온유돈후한 마음으로 자연과 인간의 융화를 강구하고 나아가 민족정신을 고취시켜 민족 속에 살아 있는 문학으로서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여기에 나열된 단편소설들은 문학이 절실히 요구하고, 문인이 희생적으로 따르며, 대중이 열렬히 갈망하는 풍토에서 창작된, 가장 대표적인 작가들의 대표작만을 엄선하여 번역해 놓은 것이다. 위로는 루쉰(1881__1936)으로부터 아래로는 리우신우(1942__)의 작품까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그 시대와 그 사조마다 가장 특출한 작품을 선별하여 실었으며, 대만의 차오차오와 같이 비록 대외적으로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인간의 본성과 인륜의 관계를 진지하게 묘사하여 독자에게 짙은 감동을 주는 작가의 작품도 수록하였다. 이 중에서 루쉰은 중국을 대표하는 지성인이요, 대중의 진부한 의식 타파를 작품 속에 승화시킨 대문호이며, 바진(1904__)은 현재도 생존하여 중국 문단을 지도하고 매년 노벨 문학상 최종 후보자로 거론되는 등 시에 있어서 아이칭(1910__ )과 함께 중국 현대문학의 산 증인이라고 할 수 있는 작가이다. 샤오ㅉ(1907__1988)은 프로문학을 개척한 작가로서, 독자의 흥미를 가장 잘 자아내는 작가이기에 사딩의 두 작품과 함께 특별히 두 편을 골라 보았다. 또한 서민생활을 냉철하게 묘사한 사실주의 작가인 예성타오와 종교적 성향이 짙은 표현을 통해 인내와 자비로 운명을 승화시킨 쉬띠산(1893__1941), 그리고 그 유명한 마오뚠(1896__1981)은 중국사회의 각계각층을 사실주의적 기법으로 묘사하였으며, 라오서(1899__1966)는 유미적인 표현으로 사회현실을 조명하였다. 위따푸(1896__1945)는 스스로 중국의 메마른 사회를 일깨우려고 "타락"을 썼으며, 삥신(1900__)은 인간의 애증을 섬세하게 묘사하였고, 짱꽝츠(1901__1931)는 정치적인 면을 작품 구성에 반영하면서 서술하고 있다. 한편, 선충원(1902__1988)은 향토문학 작가로 명성을 얻었고, 아이우는 유랑 생활로 인한 예리한 관찰력을 보여 주고 있으며, 짱텐이(1906__1985)는 항전 시기 문화계의 모순점을 풍자적으로 묘사하였다. 최근에 이르러 리우신우와 함께 와명(1934__)은 문화대혁명의 상처를 문학화하여 사회개혁을 주도하고 있다. 한, 중 수교 이후에 중국의 문물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우리 문화와 뿌리를 같이하는 그들의 문화에 대한 이해도 넓어지고 있다. 예전보다 중국어도 많이 보급되고 있으며, 갖가지 문화 행사도 다양하게 열리고 있다. 또 앞으로는 보다 깊이 그들의 의식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의 현실을 바로 세워 나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때에 맞추어서 혜원출판사에서 '동양고전 시리즈'와는 별개의 기획으로 이 책을 펴냄에는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본다. 독자 여러분의 편에 서서 이 일을 하게 된 것을 혜원출판사에 감사드리며, 아울러 이 책을 펴내는 데 수고한 이정교 동학 등 여러분에게 깊이 감사하는 바이다. 이 책을 통해서 중국 현대문학에 대한 이해와 그들의 의식구조를 살피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옮긴이 씀 루쉰 작가 세계 1881년 9월 25일(음력 8월 3일) 절강성 소홍부 성내 동창방구에서 선비 집안 대가족의 맏아들로 태어남. 성씨는 쪼우, 이름은 수련, 자는 위차인, 어릴 때 이름은 짱소우이다. 뒷날 자를 위산으로 고침. 1885년 1월, 둘째 동생 쪼쭤런이 태어남. 1887년 가숙에 들어가 작은할아버지 옥전에게 감략을 배움. 1892년 2월, 삼미서옥에 들어가 소우칭우 선생에게서 배움. 이 무렵 "맹자"를 읽음. 1893년 2월, 중조모 사망. 3월, 조부 찌에푸가 북경에서 돌아왔으나 가을에 투옥됐고, 부친 삐이는 중병에 걸려 집안이 갑자기 몰락하기 시작. 루쉰은 전당포와 약방 출입이 잦아짐. 1896년 부친 36세로 사망. 이 무렵부터 1902년 경까지 일기를 씀. 1898년 5월, 남경으로 건너가 기관과 장학생으로 강남수사학당에 들어감. 12 월, 집안 사람들의 권유로 단 한 번 향리에서 현시에 응시함. 같은 달 넷째 동생이 급성 폐렴으로 사망. "알검생잡기", "시화잡지" 등을 씀. 1899년 이때부터 옌푸가 번역한 "진화론"과 량치차오 주간의 잡지와 소설 등을 즐겨 읽음. 다시의 계몽적 신학의 영향을 받음. 1900년 "별제제", "연봉인" 등의 구체시를 씀. 1901년 구체시 "제서신문"을 씀. 1902년 3월, 강남 독련공소에서 파견되어 일본으로 유학. 4월, 도쿄 우시고메의 고오분 학원 속성과에 입학. 여가를 틈타 철학 및 문학 서적을 읽으며 '인간성 및 국민성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함. 1903년 여름 휴가로 일시 귀국. 가을에 베른의 첫 번역 과학 환상소설 "달세계 여행"을 번역하여 12월에 간행. 동향 유학생 잡지 "절강조" 창간호에 "스파르타의 혼", "라듐 론"을 발표. 변발을 자름. 1904년 4월, 고오분 학원 속성과 졸업. 6월, 조부 사망. 9월, 센다이 의학전문 학교에 입학. 1906년 환등 사건으로 자퇴계를 재출하고 7월에 귀국하여 어머니의 명으로 쭈 안과 결혼. 며칠 뒤, 동생 작인과 함께 다시 일본으로 건너감. 의학공부를 그만두고 문학 연구에 전념함. 1907년 동생 작인, 친구 쉬소우상 등과 문예지 "신생" 발행을 꾀했으나 무산 됨. "문화편지론", "마라시역설" 등을 써 유학생지 "하남"에 기고함. 가을에 쉬소우상 등과 간다 거리의 콩테 부인 밑에서 러시아어를 배움. 이 무렵 주로 독일어로 바이런 및 러시아, 헝가리, 폴란드 등의 애국시에 몰두하고, 특히 입센의 작품을 애독함. 1908년 쉬소우상, 쪼우런, 쭈시쭈, 첸쉔퉁 등과 민보사에 다니며 짱삥린에게서 "설문"을 배움. 독일어협회에 적을 두고 쉬소우상 등과 독일어를 배움. 쪼우런과 공동으로 "역외 소설집"에 실린 여러 작품을 번역함. 1909년 3월에 "역외 소설집" 제1권, 7월에 제 2권 간행. 6월에 귀국. 절강의 양급(고급과 초급) 사범학교의 생리학 및 화학 선생이 됨. 1910년 조모 짱씨가 68세로 사망. 여름, 신임 교감에게 불만을 품고 사직한 뒤 귀향. 9월, 소흥 중학당의 생리학 겸 교감이 되고, 식물학 등도 연구 함. 1911년 여름, 소흥 중학당을 사직. "월탁일보" 발기인의 한 삶으로서 동지에 하이네의 역시 등을 발표함. 12월, 처녀작 "회구"를 씀. 1912년 1월, 남경에 수립된 임시정부의 교육총장이 된 차이웬페이의 초청으로 교육부 부원이 됨. 여가에 "사승 후한서"를 편찬, 이외에도 "당송 전기"를 초록하기 시작함. "고소설구침"을 완성함. 1913년 2월, 교육부 독음통일회 회원으로 추대됨. 10월, 틈틈이 "혜강집"을 교정. 1914년 불경 연구 시작. 1915년 이 즈음부터 문학에 대해 특히 엄했던 옌스카이의 감시를 피할 목적으로 불경, 금석탁본 등의 수집, 연구에 침잠함. 1918년 4월, 첸쉔퉁의 권유로 첫 백화소설 "광인일기"를 써 5월에 루쉰이란 필명으로 "신청년" 4권 5호에 게재함. 1919년 1월, 애정에 관한 의견을 "수상록 40"이란 제목으로 "신청년"에 발표. 4월, "공을기"를 "신청년"에 발표. 이어 "약"을 "신청년" 5월호에 발표. 8월, 고우재 매입. 11월, "우리들은 오늘날 어떻게 아버지가 되는가"를 "신청년"에 발표. 12월에 귀향함. 1920년 연말 무렵부터 북경대학 및 북경 고등사범대학 강사를 겸임. 중국 소설사를 강의함. "명천"을 북경대학 학생들이 "신청년"을 본따서 발행한 잡지인 "신조" 제2권 제1호에 발표. 1921년 1월, "고향"을 씀. 10월, "근대 체코문학 개관", "소러시아 문학 약설" 및 핀란드와 불가리아의 작품을 번역함. 12월, "아Q정전"을 파인이란 이름으로 "신보부간"에 연재하기 시작함. 1922년 5월, "노동자 세빌리오프", "현대 소설 역총" 간행. 7월, "어느 청년의 꿈", "에로센코동화집" 간행. 9월, "소설월보" 제13권 제9호에 "단오절" 발표. 10월, "집오리의 희극", "사희" 등을 씀. 11월, "보천"을 씀. 1923년 7월, 동생 쪼런과 불화가 일어남. 8월, 북경의 "신조사"에서 첫 단편소설집 "눌함"이 출판됨. 가을부터 북경대학, 사범대학, 북경여자고등사 범학교, 세계어전문학교의 강사를 겸임. 1924년 3월에 "축복", "행복한 가정" 등을 발표. 5월, "술집에서" 발표. 6월, "중국소설사략" 하권 간행. 오랜 기간 동안 교정을 보아 오던 "혜강집"을 완성함. 1925년 2월, "청년 필독서"를 "경보부간"에 실어 논쟁의 발단을 일으킴. 3월, "민국일보"에 "장명등" 발표. 4월, "무원" 발간 및 "국민신문부간" 편집함. 5월, "한가한 이야기가 아니다"란 글를 써서 현대평론파와 논전을 개시함. 10월, "고독한 삶", "상서" 등을 씀. 11월, "어사"에 "이혼"을 발표. 같은 달 잡감 제1집 "열풍"이 간행됨. 1926년 "조화석습"의 각 편을 "구사중제"란 제목으로 "무원"에 게재함. 2월, "형제"를 "분원" 제3기에 발표함. 3.18 사건이 일어나 쉬소우상 등과 외국인 병원을 전전하며 피신하였다가 6월에 돌아온 뒤 중국대학 강사직을 사임함. 6월, "화개집"을 간행함. 7월, "작은 요하네" 번역. 8월, "소설 구문초"를 간행함. 두 번째 단편 소설집인 "방황"을 북신서국에 서 출판함. 8월 말, 북경을 빠져나와 하문으로 건너감. 이곳에서 린위 탕의 도움으로 9월부터 하문대학 문과 국학계 교수가 됨(중국문학사와 중국소설사를 강의). 1927년 1월에 광주로 건너가 2월엔 중산대학 문학게겸 교무주임이 되어 쉬소우 상을 초치함. 1월에 "화개집 속편"을 모아 5월에 간행함. 2월, 홍콩으로 건너가 기독 청년회(YMCA)에서 "소리 없는 중국" 및 "고가 읽기는 끝나다"(쉬꽝핑 통역) 등에 대해 강연함. 3월, 잡문집 "분"을 간행함. 4월에 "야초" 편성, 7월에 간행함. 5월, "조화석" 편찬에 착수. 10월, 상해 경운리에서 쉬꽝핑과 동거 시작, 이후 죽을 때까지 상해에 정주함. 상해의 각 대학 초청에 응해 강연을 함. 12월, "당송 전기집" 상권 간행함. "어사"가 발금됐으나 이듬해부터 상해에서 복간됨. 1928년 2월, "당송 전기집" 하권 간행함. 6월, 위따푸, 린위탕 및 미명사 동인들과 "분류" 창간하여 1929년까지 편집을 맡음. 9월, "조화석습" 간행. 11월, "이이집" 간행. 12월, 주간지 "조화"편집함. 1929년 4월에 "현대 신홍문학의 제문제", "근대 세계단편소설집 1" 등을 번역 간행함. 9월에 아들 하이잉이 태어남. "근대 세계단편소설집 2"를 선정 편집, 그 서문을 씀. 1930년 1월, 펑쉐펑, 위따푸와의 공편으로 원간지 "맹아" 창간(5호로 발금). 조화사가 경영 부진으로 문을 닫음. 2월, "문예의 대중화"를 씀. 6월, "문예정책" 간행. 7월, 프레하노프의 "예술론"을 출간함. 1931년 4월, 펑쉐펑과 함께 "전초"를 발간함. 1932년 1월, 상해 사변의 발발로 가족과 함께 내산서점으로 피난함. 2월, 1927__1929년까지의 단편을 모은 "삼한집" 및 1930__1931년까지의 잡문을 모은 "이심집"을 편하여 각각 서문을 씀. 전자는 9월, 후자는 10월에 간행함. 1933년 1월, "수금" 간행. 1월부터 익명으로 "신보"의 자유담 난에 계속 단평을 발표함. 2월, "망각을 위한 기념"을 씀. 같은 달에 쑹칭링 댁에서 채원배, 린위탕 등과 함께 중국을 방문한 버나드 쇼를 만남. 3월, "상해에 온 버나드 쇼"를 편집, 간행함. 같은 달에 "하루의 일", "루쉰 자선집" 간행. 4월, "양지서"를 간행함. 6월, 독일 영사관에 가서 파시스트의 폭행에 대한 항의문을 제출함. 7월, 월간지 "문학"을 발간하고 동인이 됨. 1934년 1월, "북평 전보"를 간행함. 2월, 잡문집 "남강 북조집"을 편성, 3월에 간행함. 9월, 고리키의 "러시아의 동화" 번역에 착수하여 이듬해 8월에 간행함. 10월, 청년미술가의 창작 목판화집 "목각기정"을 간행함. 잡감집 "준풍월담" 출간. 1935년 1월, "중국 신문학 대계 소설 2집"의 편집에 착수하여 6월과 7월에 간행함. 잡문 및 시를 모은 "집외집"과 중국어문 개혁에 관한 논문집 "문외문담"을 출간함. 1936년 1월, 어깨와 가슴에 통증이 매우 심함. 같은 달에 "화변문학"을 편성, 6월에 간행함. "고사신편" 간행. 2월 2일 돌연 천식을 일으킴. 4월, "러시아판 판화집"을 편하여 7월에 간행함. "심야에 쓰다" 및 "행상술림"의 서문을 씀. 5월, 병이 재발하여 위병진단을 받음. 8월, 늑막의 물을 빼고 토혈함. 일본 전지 요양을 꾀했으나 중지함. 9월, "죽음" 및 "여조" 등을 씀. "해상술림" 간행. 10월 19일 폐결핵으로 새벽에 지병이 재발, 이튿날 오전 5시 25분에 사망함. 1937년 유저인 "야기", "루쉰 서간", "차개정잡문", "동이집", "동말편" 등이 출간됨. 1938년 "루쉰 전집" 20권 출간. 1941년 "루쉰 30년집" 출간. 1956__1958년 중국에서 상세한 주석을 덧붙인 "루쉰전집" 10권이 출간됨. 광인일기 루쉰 지금 그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모씨 형제는 지난 날 내 중학교 시절의 좋은 친구들이었다. 여러 해 동안 만나지 못하고 보니, 자연히 소식도 뜸하게 되었다. 얼마 전에 우연히 그 중 한 친구가 중병을 앓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듣고 고향 가는 길에 빙 둘러서 찾아갔다가 그들 중 형을 만나게 되었는데, 병을 앓던 친구는 형이 아니고 동생이라고 했다. 고생하여 먼 길을 찾아갔지만 그는 벌써 완쾌되어 어느 곳의 후임으로 부임해 가고 없었다. 그 형은 크게 웃으면서 일기장 두 권을 꺼내 보였다. 그 당시에 동생이 앓았던 병의 증상을 알 수 있을 거라며, 옛 친구이니 보여 줘도 괜찮을 거라고 했다. 가지고 돌아와 죽 훑어보니, 그 증상은 피해망상증 같은 것이었다. 내용은 어지러이 두서가 없었고, 허황된 말도 많았다. 날짜는 적혀 있지 않았지만 먹빛이나 글자체가 같지 않은 것으로 보아 한꺼번에 씌어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어느 정도 문맥이 갖추어져 있는 것을 뽑아 의사들의 연구 거리로 제시하고자 한다. 일기 중에 틀린 말이 있어도 하나도 고치지 않고 그냥 두었다. 단지, 사람 이름만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촌사람들이어서 별 상관없지만 편의상 모두 바꿨다. 또 책명은 본인이 완쾌된 후에 붙인 것이기에 다시 고치지 않았다. (민국 7년 4월 2일 씀) 1 오늘 저녁은 유난히 달빛이 밝다. 내가 이 달을 보지 못한 지도 벌써 삼십여 년이구나. 오늘 달을 보니 정신이 더없이 상쾌하다. 지난 삼십여 년은 온통 정신나간 채로 지냈음을 이제야 알겠다. 그러나 더욱 조심해야 한다. 아니, 저 짜오네 개가 왜 나의 두 눈을 쳐다보는 건가? 내가 무서워하는 것이 당연하다. 2 오늘은 전혀 달빛이 안 보여서 아무 멋대가리가 없다. 아침에 조심스레 집을 나서니, 짜오꾸이 영감의 눈빛이 좀 이상하다. 나를 무서워하는 것도 같고, 나를 해치려는 것 같기도 했다. 또 칠팔 명의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수군거리면서 내가 눈치챌까 봐 꺼려하는 듯했다. 길가의 사람들도 모두 그렇게 보였다. 그 중에 아주 흉하게 생긴 놈이 입을 벌리고 나를 향해 웃고 있었다. 나는 머리에서 발뒤꿈치까지 몸이 오싹해졌다. 그놈들이 준비를 다 갖춘 것을 알았다. 나는 조금도 무섭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게 길을 걸어갔다. 앞쪽에 모여 있던 아이들이 그곳에서 나를 보고 수군거리고 있었다. 눈빛도 짜오꾸이 영감 같았고, 얼굴빛도 모두 쇠빛처럼 푸르스름했다. 내가 저 아이들하고 무슨 원수진 일이 있어서 그러는 건가 생각하니 도무지 참을 수가 없어서 "이놈들 뭘 하는 거야!" 하고 호통을 쳐주었다. 그랬더니 그들은 달아나 버렸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짜오꾸이 영감과 무슨 원수진 일이 있다고 길가는 사람마저도 저러는 걸까. 있다면, 20년 전쯤에 꾸찌우 선생의 다 낡아빠진 오래된 장부를 짓밟아서 그를 불쾌하게 한 일이 있었을 뿐인데 말이다. 짜오꾸이 영감은 꾸찌우 선생을 모르지만 그 소문을 듣고서 대신 화가 났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길가는 사람들과 짜고서 나를 원수처럼 대하는 것이리라. 그런데 아이들은 왜 그러는 걸까? 그때라면 그애들이 태어나기도 전인데 어째서 오늘 눈을 이상하게 치뜨고 나를 보는 건가? 나를 무서워하는 건가? 아니면 나를 해치려는 건가? 이거야말로 정말 무서운 일이며, 기이하고도 서글픈 일이다. 아! 이제 알겠다. 아이들 에미나 애비들이 가르쳐 준 것이구나! 3 밤마다 잠이 오지 않는다. 무슨 일이든 곰곰이 따져 보고 확실히 해두어야겠다. 그놈들--그 중에는 현지사에게 걸려서 목에 칼 쓴 놈도 있고, 양반에게 뺨을 맞은 놈도 있고, 벼슬아치에게 마누라를 빼앗긴 놈도 있고, 부모가 빚쟁이에게 맞아 죽은 놈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그때 안색이 어제처럼 그렇게 무섭거나 흉측스러워 보이지는 않았었다. 아주 이상한 것은 어제 길에서 만난 그 여자다. 자기 아이를 때리면서 입으로는 "이놈의 새끼야! 네놈을 물어뜯어야 속이 풀리겠어!"라고 말하면서도 그녀의 눈은 도리어 나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깜짝 놀라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러자 그 푸르스름한 얼굴에 이빨을 드러낸 한 떼거리가 '와아' 웃어대는 것이었다. 천라오우가 얼른 앞으로 나와서 억지로 나를 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끌려서 집에 돌아오니 집안 식구들이 모두 나를 모르는 체했다. 그들의 눈빛도 남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서재에 들어가자마자, 밖에서 문을 걸어 버렸다. 마치 닭이나 오리를 가두는 것 같았다. 이러한 일로 해서 나는 더구나 그들의 저의를 알아챌 수가 없었다. 며칠 전에 랑쯔 마을의 소작인이 와서 흉년이라고 투덜대며 나의 형님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그들 마을에 아주 악한 놈이 사람들에게 맞아 죽었는데, 몇 사람이 그 간을 파내어 기름에 볶아 먹었더니 쓸개가 커졌다는 것이다. 내가 옆에서 말참견을 했더니 소작인과 형님이 나를 몇 번이고 쳐다보는 게 아닌가? 오늘에서야 그 눈빛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밖에서 봤던 그놈들과 똑같았던 것이다. 생각할수록 나는 머리끝에서부터 발뒤꿈치까지 소름이 끼쳤다. 그들은 사람을 먹을 수가 있다. 그렇다면 나를 못 먹을 것도 없는 일 아닌가. 길에서 봤던 그 여자가 "네놈을 물어뜯겠다."라고 한 말이나, 푸르스름한 얼굴에 이를 드러낸 채 웃던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그저께 소작인이 한 말, 이 모두가 분명히 암호였다. 알았다. 그들이 하는 말은 모두 독이다. 웃음 속에는 칼이 있다. 그들의 이빨은 모두 하얗게 배열되어 있어서 바로 사람을 먹는 도구인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악인이라고 생각진 않지만, 꾸씨네 장부를 짓밟고 난 후부터는 꼭 그렇다고 장담하기도 어렵게 되었다. 그들은 뭔가 생각하고 있는 듯한데, 나는 전혀 알아낼 수가 없다 게다가 그들은 사이가 나빠지면 금세 안면을 바꾸어서 상대를 악인이라고 떠들어댄다. 나는 형님이 논문 쓰는 법을 가르쳐 줄 때의 일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형님은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몇 마디 헐뜯으면 동그라미를 몇 개씩 쳐주었고, 나쁜 사람에 대해 몇 마디 좋은 평을 하면, 기발한 생각이 남과 다르다고 말하곤 하였다. 내가 그들의 심사를 어떻게 알아낼 수 있겠는가. 더구나 잡아먹으려고 할 때에는. 무슨 일이든 곰곰이 따져 봐야 알 수 있다. 예로부터 종종 사람을 먹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도 설마 그럴까 했었다. 나는 역사를 들추어 조사해 보았다. 이 역사에는 연대가 없으며 페이지마다 구불구불 '인의도덕' 같은 글자들이 적혀 있었다. 나는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밤새도록 자세하게 조사해 보았다. 그랬더니 글자 틈새에서 다른 글자가 나타났다. 책 가득히 사람을 먹는다는 의미의 '홀인'이란 두 글자가 적혀 있었다. 책에는 이런 글자가 많이 씌어져 있다. 소작인도 이런 말을 많이 했다. 그러면서도 모두 히죽히죽 웃으며 이상한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나도 사람이다. 그들은 나를 먹고 싶어하는 것이다. 4 아침에 나는 잠시 조용히 앉아 있었다. 천라오우가 밥을 들여보냈다. 채소 한 접시와 찐 생선 한 접시. 생선의 눈알은 희고 굳어 있었으며 입은 벌려져 있어 사람을 잡아먹고 싶어하는 저 패거리와 다를 바 없었다. 몇 번 젓가락을 대어 보았으나 미끈한 게 물고긴지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뱃속 창자까지 뒤틀려 먹은 것을 모조리 토했다. "라오우, 형님께 말해 줘. 너무 답답해서 뜰에서 좀 걷고 싶다고." 라오우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가버렸다. 조금 있자니, 와서 문을 열어 주었다. 나는 꼼짝 않고 있었다. 그들이 나를 어떻게 하려느냐 생각해 보았다. 그들이 나를 놔두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과연 그러하였다. 형님이 늙은이 하나를 데리고 천천히 들어왔다. 그의 눈빛은 온통 흉측했다. 그는 내가 눈치챌까 봐 머리를 아래로 수그리고 안경 너머로 나를 훔쳐보았다. "오늘 허 선생님을 모셔왔으니 진찰을 좀 받아 보자." 형님이 이렇게 권하기에, "그러지요!"라고 했다. 사실은 이 늙은이가 사람 죽이는 백정인지 내 어찌 알겠는가! 아닌게 아니라, 맥을 짚어 본답시고 살이 쪘나 말랐나를 재보겠지. 그 공로로 고기 한 점을 얻어먹을 거다. 나는 무섭지 않다. 사람을 못 먹어도 쓸개덩이는 그들보다 크다. 두 주먹을 들어 내밀고 그가 어떻게 하는지를 바라보았다. 늙은이는 앉아서 눈을 감고 한동안 만지작거리다가 잠시 멍하니 있었다. 그러다가 귀신 같은 눈을 부릅뜨고 말하였다. "허튼 생각 말아요. 조용히 며칠간 요양하면 좋아질거요." 허튼 생각 말고 조용히 요양하라! 요양해서 살찌면 그들은 자연히 많이 먹을 수 있을 거다. 나에게 무슨 좋은 수가 있겠는가? 어찌 '좋아질' 수 있겠는가? 그들 패거리들은 사람 먹을 생각만 하며 수군거리면서도 체면 때문에 감히 당장에 손을 못 대고 있으니 정말 우습다. 나는 참을 수 없어 소리내어 크게 웃었더니 기분이 너무나 상쾌해졌다. 이 웃음 속에는 그 어떤 용기와 올바른 정신이 담겨 있음을 깨달았다. 늙은이와 형님은 모두 겁에 질려 나의 용기와 올바른 정신에 압도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에게 용기가 있을수록 그들은 나를 더 먹고 싶어한다. 이 용기를 닮으려는 것이다. 늙은이는 방을 나와 얼마 안 가서 낮은 소리로 형님에게 말했다. "얼른 먹어 버려요!" 형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도 본래 그런 사람이려니. 이 대발견은 의외인 것 같지만 사실은 형님의 의중에 있던 것이었다. 떼거리로 나를 먹으려는 사람은 바로 나의 형님인 것이다. 사람을 먹으려는 게 나의 형님이야! 나는 사람을 먹는 사람의 형제야! 나 자신이 잡아 먹힌다 하여도 여전히 나는 사람을 먹는 사람의 형제인 것이야! 5 요 며칠간 한 걸음 물러서서 생각해 보았다. 만약 그 늙은이가 사람 백정이 아니고 정말 의사라 해도 여전히 사람 먹는 사람일 거다. 그들의 스승인 리스쩐이 만든 "본토00"라는 책에는 분명히 사람고기를 끓여 먹을 수 있다고 씌어 있는데, 그래도 그 늙은이가 자신은 사람을 안 먹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형님도 역시 털끌만큼도 억울할 게 없다. 나에게 글을 가르쳐 줄 때에 자기 입으로 '자식을 바꾸어 먹는'("좌전"에 나오는 말)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했었다. 또 전에 우연히 어떤 나쁜 사람을 두고 얘기하면서 그런 놈은 죽여야 할 뿐 아니라 '그 고기를 먹고 그 가죽을 깔고 자야 한다.'("좌전"에 나오는 말)고 말한 적도 있다. 그때에 나는 어려서 그 말을 듣고 한나절이나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저께 랑쯔 마을의 소작인이 와서 간을 먹었다는 얘기를 했을 때도 형님은 조금도 괴이쩍게 여기지 않고 줄곧 고개를 끄덕였던 것이다. 이걸 보아서도 옛날처럼 사람의 심사는 잔인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식을 바꾸어 먹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바꿀 수 있을 것이며, 누구든 다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옛날에 형님이 그 그럴듯한 이치를 들어 설명할 때는 멍청하게 흘려 버렸으나, 이제 와서 알고 보니 형님이 그 얘기를 할 때 입가에 사람의 기름이 묻어 있었을 뿐 아니라 그 마음속에는 사람을 먹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6 칠흑같이 어둡다. 낮인지 밤인지 모르겠다. 짜오네 개가 짖어대기 시작한다. 사자 같은 흉측한 마음, 토끼 같은 비겁함, 여우 같은 교활함... 7 나는 그들의 수법을 알아냈다. 곧장 죽이는 것은 해서도 안 되고 할 수도 없다. 앙갚음이 두려운 것일 게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 연락하여 그물을 쳐놓고서 나를 자살하도록 몰아대는 것이다. 며칠 전에 길가에서 보았던 남녀의 모습이나 형님의 태도를 보더라도 십중팔구 틀림이 없다. 허리띠를 풀어서 대들보에 걸고 내 스스로 목매달아 죽었으면 제일 좋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살인죄도 붙지 않고, 또 그들이 바라던 것을 얻게 될 것이다. 모두들 너무나 기뻐서 흑흑 소리를 지르며 웃겠지. 그렇지 않으면 놀라서 걱정하다가 죽을 줄로 아는데, 그렇다면 몸이 좀 말라서 덜 좋겠지만 그런대로 만족해할 것이다. 그들은 죽은 고기만을 먹을 수 있을 뿐이다!...어떤 책에선가 '하이에나'란 동물은 눈빛과 모습이 매우 흉측스럽다고 씌어진 것을 본 기억이 난다. 그들은 언제나 죽은 고기만을 먹으며, 엄청나게 큰 뼈다귀도 잘게 씹어서 뱃속에 삼켜 버린다고 한다. 생각만 해도 무섭다. 하이에나는 늑대와 한 족속이고, 늑대는 개의 조상이다. 그저께 짜오네 집의 개가 나를 흘낏흘낏 쳐다보았는데 그놈도 한패로, 벌써 연락이 닿은 모양이다. 늙은이는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지만 내가 어찌 속아넘어가겠는가? 가장 가련한 것은 나의 형님이다. 그도 사람인데, 어쩌자고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건가. 뿐만 아니라 한패가 되어 나를 먹으려 하다니! 습관이 되어서 잘못인 줄도 모르는 건가? 아니면 양심을 잃어버려서 알고서도 죄를 짓는 건가? 나는 사람 먹는 사람을 저주하는데, 형님부터 먼저 마음을 돌리도록 해야 할 것이다. 8 사실 이런 이치는 지금쯤 그들도 벌써 깨달았어야 하련만... 갑자기 누군가가 찾아왔다. 나이는 스무 살 안팎으로 생김새는 뚜렷치 않았다. 그는 만면에 웃을 띠고서 나에게 아는 척하였지만, 그의 웃음은 진정한 웃음 같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사람 잡아먹는 일이 옳은 거요?" 그는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 "흉년도 아닌데 어째서 사람을 먹어요?" 나는 얼른 깨달았다. 그도 한패이며, 사람 잡아먹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용기를 백배 내어서 계속 물었다. "옳은 일이오?" "그런 걸 물어서 뭘 하시렵니까? 참 농담도 잘하시는군요... 오늘은 날씨가 참 좋네요." 좋은 날씨였다. 달빛도 매우 밝았다. 그러나 나는 너에게 묻고 있는 거다. "옳은 일이오?" 그는 그렇다고 하지는 않았다. 어물어물 "아니오."라고 대답하였다. "옳지 않다구요? 그런데 어째서 그들은 잡아먹으려는 거요?" "그런 터무니없는 일이..." "터무니없는 일이라구? 랑쯔 마을에서는 지금도 잡아먹는단 말이오. 그리고 책에도 온통 씌어 있소. 새빨갛게!" 그는 얼굴빛이 쇠빛처럼 퍼렇게 변하더니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아마 있을지도 모르지요. 옛날부터 그랬으니까요..." "옛날부터 그랬다면 그게 옳은 일이오?" "나는 당신과 이런 문제를 놓고 따지고 싶지 않습니다. 어쨌든 당신은 그런 말을 하면 안 됩니다. 당신 말은 틀리단 말입니다!" 벌떡 일어서서 눈을 크게 뜨고 보니, 그 사람은 어느덧 보이지 않았다. 온몸에 땀이 흠뻑 젖었다. 그는 나보다 나이가 훨씬 어렸지만 역시 한패거리가 틀림없다. 그 애비 에미가 가르쳐 준 것이리라. 아마도 벌써 그 자식에게까지 가르쳐 줬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이들까지도 밉살스럽게 나를 바라보는 건가 보다. 9 자기 자신은 사람을 먹고 싶은데, 남에게는 먹히려 하지 않으니까 의심에 찬 눈빛으로 서로서로 흘겨보는 것이려니... 이러한 생각을 버리고 편안히 일하고, 거리를 오가고, 밥을 먹고, 잠 잘 수 있다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이것은 단지 하나의 문지방이요, 관문일 따름이다. 그러나 그들은 부자, 형제, 부부, 친구, 사제지간, 원수, 그리고 서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까지 모두 한패거리가 되어서 서로 격려하고 견제하면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한 발짝을 넘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10 이른 아침에 나는 형님을 찾아갔다. 형님은 방문 밖에 서서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나는 그의 등뒤로 다가가서 방문을 가로막고 아주 조용하고 부드럽게 말하였다. "형님, 드릴 말씀이 있어요." "말해 보라구." 형님은 재빨리 고개를 돌리고는 머리를 끄덕였다. "내가 몇 말씀만 드리려 하는데, 말이 잘 안 나오네요. 형님, 아마도 옛날의 야만인들은 모두 사람을 먹었을 테지요. 어떤 사람은 나중에 마음이 바뀌어서 사람을 먹으려 하지 않고 오직 착하게 되려 했기 때문에 사람답게 변하였고 또 참된 사람이 되었을 겁니다. 한데, 어떤 사람은 여전히 사람을 먹었겠지요. ... 벌레도 마찬가지예요. 어떤 것은 물고기나 새, 원숭이로 변하였다가 곧장 사람으로 진화했을 겁니다. 어떤 것은 착해지려고 하지 않았기에 지금까지도 벌레로 남아 있는 거지요. 사람을 먹는 사람은 사람을 먹지 않는 사람에 비해 몹시 부끄러울 겁니다. 벌레가 원숭이와 비교해서 부끄러운 것보다 그 정도가 더 심할 겁니다. 이야가 자신의 아들을 삶아서 걸주(고대의 폭군)에게 먹인 이야기는 옛날옛적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반고(중국에서 천지개벽 때에 처음으로 세상에 나왔고 하는 전설상의 천자의 이름)가 천지를 연 이래로 줄곧 먹어 오다가 이야의 아들에 이르고, 이야의 아들로부터 줄곧 먹어 오다가 쉬시린에 이르고, 쉬시린으로부터 줄곧 먹어 오다가 랑쯔 마을에서 붙잡힌 사나이에게까지 이르게 된 겁니다. 지난해 성안에서 죄수가 처형되었을 때는 폐를 앓는 사람이 그 피를 만두에 적셔 먹었습니다. 그들은 나를 먹으려 합니다. 형님 혼자서야 어쩔 수도 없겠지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한패에 끼여들 건 없지 않습니까? 사람을 먹는 자들이 무슨 짓을 못하겠습니까? 나를 먹을 수 있듯이 형님도 먹을 수 있어요. 같은 패끼리도 먹어 버릴 수 있어요. 하지만 한 발짝만 방향을 바꿔서 지금 당장 마음을 고치기만 한다면 모두가 태평스럽게 됩니다. 옛날부터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들이 오늘부터라도 좋아지려면 안 된다고 해야 합니다. 형님, 형님은 말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전에 소작인이 소작료를 감해 달라고 했을 때 형님은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처음에 형님은 냉소를 띨 뿐이었으나 점점 눈빛이 흉측해지더니 그들의 내막을 파헤쳐 버리자 얼굴빛이 파랗게 질려 버렸다. 대문 밖에는 많은 사람들이 서 있었다. 짜오꾸이 영감과 그의 개도 그들 속에 있었다. 그 무리들이 슬금슬금 문안으로 들어왔다. 어떤 사람은 얼굴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복면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떤 사람은 퍼런 얼굴에 흰 이빨을 드러내고 히죽히죽 웃고 있다. 본 기억이 있는 놈들이다. 모두들 사람을 먹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이라고 해서 모두 생각이 같지 않음을 나는 안다. 옛날부터 그랬으니까 먹는 것이 당연하다는 패와,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먹고 싶어하는 패의 두 종류다. 남들에게 폭로되는 것을 무서워하기 때문에 내가 하는 말을 듣고 화가 잔뜩 났지만, 히죽히죽 비웃고 있는 것이다. 그때, 형님이 갑자기 무서운 얼굴로 소리쳤다. "모두들 나가! 미치광이가 무슨 구경거린가!" 그때 나는 또 그들의 기묘한 계책을 깨달았다. 그들은 마음을 고쳐먹기는 커녕 이미 그물을 쳐둔 것이다. 내가 미치광이임을 간판으로 내세우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나중에 나를 먹어 치우더라도 걱정 없을 뿐 아니라, 어쩌면 동정을 받을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소작인의 이야기 중에 여러 사람이 한 명의 악인을 먹었다는 것도 바로 이렇게 한 것이다. 이것이 그들의 상투 수단이다! 천라오우도 화가 잔뜩 나서 달려왔다. 하지만 내 입을 어떻게 틀어막을 수 있겠는가. 나는 이 패거리들에게 끝까지 말했다. "당신들은 마음을 바꿔야 해. 속속들이 회개하는 거야. 앞으로 사람을 먹는 인간은 이 세상에서 살 수 없다는 걸 알아야 해. 끝내 회개하지 않으면 자신도 먹혀 버릴 거야. 아무리 많이 낳는다 하더라도 모두 참다운 사람에게 제거될 거야. 사냥꾼이 이리를 몽땅 잡아 버리는 것과 같이! 벌레와도 같이!" 그 많은 살들은 모두 천라오우에게 밀려 나갔다. 형님도 어디론가 가 버렸다. 천라오우가 나를 달래서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방안은 온통 캄캄했다. 대들보와 서까래가 머리 위에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잠시 흔들거리다 와르르 무너져 내 몸 위에 쌓였다 무척 무겁다. 움직일 수가 없다. 나를 죽이려는 게다. 나는 놈의 무게가 가짜임을 깨닫고 곧 몸을 빼낼 수 있었다. 온몸에 땀이 솟아났다. 그러나 나는 끝까지 말했다. "당신들, 빨리 회개해! 속속들이 회개하는 거야. 깨달아야 해. 앞으로는 사람을 먹는 인간은 용납되지 않는다는 걸..." 11 해가 보이지 않는다. 문도 열리지 않는다. 매일 두 끼니의 밥. 나는 젓가락을 들다가 형님 생각이 났다. 누이동생이 죽은 원인도 그에게 있음을 깨달았다. 그때 누이동생은 다섯 살이었다. 귀엽고 예쁜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떠오른다. 어머니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형님은 어머니에게 울지 말라고 했었지. 틀림없이 자기가 먹었으니까 어머니가 우시는 게 꺼림칙했을 것이다. 만일에 아직도 마음이 꺼림칙하다면... 누이동생은 형님에게 먹혔다. 어머니는 알고 계셨을까? 나도 모르겠다. 어머니도 아마 알고 계셨으리라. 그러나 우실 때는 아무 말씀도 없었다. 아마도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셨을 게다. 내 나이 네댓 살 때라고 기억을 하는데, 방 밖에서 바람을 쐐고 있을 때 형님이 이런 말을 했었다. 부모가 병환이 났을 때 자식은 제살을 한 점 떼서, 잘 삶은 것을 부모가 드시게 하는 것이 도리라고. 그때 어머니도 그것을 몹쓸 일이라고는 말씀하시지 않았다. 한 점을 먹는다면 큰 덩어리도 먹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날 우시던 모습은 지금 생각해 봐도 가슴 아프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12 생각할 수가 없다. 4천 년 동안 끊임없이 사람을 먹어온 곳, 그 속에서 나도 오래동안 살아왔다는 사실을 오늘에야 분명히 깨달았다. 형님이 집을 관리하고 있을 때 누이동생은 죽었다. 그가 슬그머니 음식 속에 섞어서 나에게도 슬쩍 먹이지 않았다는 법도 없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이동생의 살을 먹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다. 이젠 내 차례가 되었지만... 4천 년의 사람 먹는 역사를 가진 우리, 처음에는 몰랐으나 이젠 안다. 참다운 사람을 만나 보기가 쉽지 않다. 13 사람을 먹어 보지 않은 아이들이 아직도 남아 있을지 모른다. 아이들을 구해야지... (1918년 4월) 고독한 사람 루쉰 1 내가 웨이리엔쑤와 알게 된 것은 생각해 보면 꽤 이상한 인연이었다. 우리는 장례식에서 만나서 장례식에서 헤어진 것이다. 그 무렵 나는 S시에 있었는데, 곧잘 그의 이름이 하재에 오르는 것을 들었었다. 그 소문을 어떤 것이든 모두 그가 세상 조류에 맞지 않는 특이한 인간이라는 것이었다. 전공은 동물학이지만, 중학교에서 역사 선생을 하고 있다고 했다. 대인관계는 원만하지 않은데도 곧잘 남을 위해 희생적으로 봉사하기를 좋아한다든가, 가정은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항상 말하면서도 월급을 받으면 하루도 미루지 않고 곧장 그의 할머니에게 보낸다는 등, 대개 이런 얘기들이었으나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자질구레한 이야기들이 있었다. 상황이야 어떠하든지 그는 S시 사람들의 얘깃거리로 늘 등장하는 인물 중의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해 가을, 나는 한석산에 있는 어느 친척집에 휴양차 머물렀던 적이 있었다. 그 친척의 성은 웨이인데, 리엔쑤와는 종씨였다. 그런데 그들은 리엔쑤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하고는, 마치 그를 외국인처럼 취급하면서 말했다. "우리들과는 아주 딴판이라서요." 그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중국에 학교가 서기 시작한 지 이미 20년이 거의 다 되어 가는데도 이 한석산에는 아직 소학교 하나 없었는데, 이 산골에서 유일하게 리엔쑤만이 해외에서 유학하고 돌아왔으니, 동네 사람들의 눈엔 그가 확실히 별난 사람처럼 보일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그가 굉장히 돈을 많이 벌었다느니 어쨌다는니 하면서 질투를 했던 것이다. 가을이 다 갈 무렵, 산촌에는 이질이라는 전염병이 돌기 시작했다. 나도 위험할 것 같아서 시내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때 리엔쑤의 할머니도 이 병에 걸렸다는 말을 들었다. 노인이기 때문에 병이 아주 중한 상태라고 했다. 의사조차 없었다. 리엔쑤의 가족이라고는 할머니 한 분 뿐이라 하녀를 두고 간소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리엔쑤는 어렸을 때 부모를 여의고 이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했던 것이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리엔쑤의 할머니가 전에는 고생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편안하게 여생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단지 리엔쑤에게 처자가 없어서 집안이 매우 쓸쓸했다. 이런 점도 그가 사람들로부터 이질적인 존재라고 여겨지는 원인의 하나였는지도 모른다. 한석산은 시내에서 육로로 100리, 수로로는 70리나 떨어져 있어서 급히 사람을 보내 리엔쑤를 부르러 간다고 해도 왕복에 적어도 나흘은 걸린다. 벽지인 산촌에서는 그런 작은 일도 사람들에게 커다란 관심거리가 된다. 이튿날이 되자 병자의 상태가 매우 나빠져서 서둘러 사람을 보냈다는 소문이 널리 퍼졌다. 그날 밤 2시쯤이 되자 병자는 숨이 가빠지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어째서 리엔쑤를 한 번만이라도 보게 해주지 않는 거냐?" 집안의 어른들이나 가까운 일가, 할머니의 친정 사람들, 그리고 동네의 한가한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리엔쑤가 도착하면 곧 입관할 수 있도록 준비하려는 것이었다. 관이나 수의는 이미 준비되어 있으니 새로 장만할 필요는 없었다. 그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이 승중손(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조부모의 상사를 당할 때 아버지를 대신하여 상제 노릇을 하는 장손)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가 틀림없이 모든 장례 의식을 신식으로 하자고 할 것이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논한 결과, 대체로 크게 세 가지 조건을 정하고 실행하도록 강요하기로 했다. 첫째는 흰 상복을 입을 것, 둘째는 무릎을 꿇고 고인에게 절할 것, 셋째는 승려나 도사를 불러다가 염불을 외게 할 것 등이었다. 말하자면 모든 것을 재래 관습대로 하자는 것이었다. 이 의결이 정해지자 그들은 리엔쑤가 도착하는 날,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그의 집으로 가서 항의할 태세를 갖추고 서로 힘을 합하여 단호하게 담판을 짓자고 미리 계획을 짜놓았다. 동네 사람들은 군침을 삼키며 별 다른 일이 일어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리엔쑤가 '서양교육'을 받은 이른바 '신식파'이고 지금까지 그렇게 행동해 왔으므로 쌍방간에 싸움이 일어날 것을 알고 있었다. 어쩌면 굉장한 구경거리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고 그들은 생각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리엔쑤는 오후에 도착했다고 한다. 그는 집에 들어가자마자 할머니의 영전에 약간 머리를 숙였다. 친척들은 곧 예정했던 대로 그를 대청으로 끌고 갔다. 우선 장황하게 사전 설명을 하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것도 여럿이서 교대로 계속 설명을 해서 그에게 반대할 여유를 주지 않도록 했다. 그러고 나자 모든 것을 다 말해 버렸기 때문에 더 할말이 없었다. 침묵이 흐를 뿐이었다. 모두들 그의 입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랬더니 리엔쑤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간단히 말했다. "모두 좋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뜻밖의 일이었다. 사람들은 한시름 놓기는 했지만, 도리어 개운치 않은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너무 뜻밖의 일이라 마음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소식을 전해 들은 동네 사람들도 크게 실망했다. 그래서 서로들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이상한 일인걸. '모두 좋습니다.'라고 했다니 우리 한번 가 봅시다." 모두 좋다고 했다면 재래 관습을 따르겠다는 뜻이니 볼 필요도 없지만, 그래도 그들은 보고 싶어했다. 초저녁이 되자 사람들은 호기심에 이끌려서 대청 앞으로 몰려들었다. 나도 구경꾼 중의 한 사람이었다. 미리 양초를 한 통 보내고 그의 집에 들어가 보니 리엔쑤는 벌써 고인에게 수의 입히고 있었다. 그는 왜소하고 마른 체구였고, 길쭉한 얼굴의 절반 정도는 이마에 흩어진 머리카락이며 짙은 눈썹, 또 시커먼 수염 등이 차지하고 있어서, 단지 두 눈만이 검은 바탕 속에서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다. 그가 수의를 입히는 것을 보니까 그 입히는 식이 제법 질서 정연했고, 마치 장례를 여러 번 치른 경험자 같아서 옆에서 보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감탄할 정도였다. 한석산에서는 옛날부터 이런 경우에 무슨 트집을 잡아서라도 집안 어른들이 귀찮게 잔소리를 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렇게 하였지만 그는 오히려 침묵을 지킬 뿐 누가 뭐라고 잔소리를 해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내 앞에 서 있던 머리가 절반쯤 센 노파가 정말 놀랐다는 듯이 칭찬의 말을 늘어놓았을 정도였다. 다음은 배례를 하는 순서였다. 그리고 곡을 하였다. 여자들은 주문을 외웠다. 그러고 나선 입관이었다. 또 배례를 하고 곡을 한 다음, 끝으로 관에 못을 박았다. 한순간 조용해졌다. 그러나 다음 순간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의심스럽고 불만스러운 듯한 공기가 흘렀다. 나에게도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리엔쑤가 처음부터 끝까지 한 방울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는 돗자리 위에 우두커니 낮은 채 두 눈만을 번들번들 빛내고 있을 뿐이었다. 입관 절차는 이 불평이 섞인 이상한 분위기 속에서 끝났다. 사람들은 불평을 품은 채 일어나려는 참이었다. 그러나 리엔쑤는 돗자리 위에 앉은 채 무슨 골똘한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러다 갑작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뒤이어 곡성이 터져 나왔다. 그 소리는 곧 느껴 우는 소리로 변했다. 상처를 입은 늑대가 한밤중에 광야에서 울부짖는 것처럼 비참한 고통 속에 분함과 슬픔이 뒤섞인 소리였다. 이런 일은 옛날부터 내려오는 관습엔 없었기 때문에 미리 대책을 강구하지 않았었다. 사람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서 그저 멍청히 있었다. 그러는 중에 다가가서 위로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 사람이 차차로 많아져서 그는 드디어 사람들로 에워싸였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앉아서 목놓아 울었다. 마치 철탑처럼 꿈쩍도 하지 않은 채. 사람들은 이젠 흥미를 잃어 뿔뿔이 흩어졌다. 그는 울고 또 울고 반시간을 울고 나서야 문득 울음을 그쳤다. 그리고 조객들에게 인사도 없이 안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뒤따라가서 그의 거동을 살펴보고 온 사람의 말에 따르면 그는 할머니의 방에 들어가 침대에 눕더니 곧 깊이 잠들어 버리더라는 것이었다. 이틀이 지나고 내가 시내를 향해 출발하기 전날, 나는 동네 사람들이 도깨비라도 만난 것처럼 흥분해서 떠들고 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리엔쑤가 모든 가재 도구 중에서 절반을 할머니를 위해 태우고, 남은 부분은 할머니가 계실 때 시중을 들고, 돌아가셨을 때 할머니를 위해서 일한 하녀에게 나누어 주기로 했다는 이야기였다. 또 집조차 계약도 하지 않고 무기한으로 그 하녀에게 살라고 하였으므로 친척들이 마땅찮게 여겨 항의했지만 그 뜻을 꺾을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호기심에서였겠지만, 나는 돌아오는 길에 그의 집에 들러서 그를 위로해 주었다. 그는 상복 차림으로 나왔지만, 표정은 여전히 차가웠다. 나는 애써 그를 위로하는 말을 했지만, 그는 그저 끄덕거릴 뿐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한 마디 할 뿐이었다. "당신의 배려에 감사합니다." 2 우리들이 세 번째로 얼굴을 대하게 된 것은 그해 초겨울 S시의 어느 책방에서 였다. 우린 거의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친해진 것은 그해가 끝날 무렵 내가 직장을 잃은 후의 일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곧잘 리엔쑤를 방문하곤 하였던 것이다. 그 이유의 하나는 무료했기 때문이었고, 또 하나의 이유는 그가 그처럼 차가운 성격이면서도 실의에 빠진 사람에겐 아주 친절하게 대해 준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세상일이란 오름과 내리막이 일정하지 않아서 실의에 찬 사람이라 하더라도 언제까지고 실의에 차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그에게는 오랜 벗이 없다는 것이다. 이 풍문은 단순한 풍문이 아니었다. 내 뜻을 알렸더니 곧 들어오라는 반응이 있었다. 두 칸을 터놓은 객실에는 아무런 장식도 없고, 의자와 탁자를 제외하고는 몇 개의 책장이 있을 뿐이었다. 사람들의 평판으로는 그가 대단한 '신식파'라고 하지만, 그 책장에는 그다지 새로운 서적이 없었다. 그는 내가 직업을 잃었다는 것을 벌써 알고 있었다. 판에 박은 듯한 인사는 곧 끝났다. 주객이 함께 묵묵히 마주보고 있자니 점차로 거북하고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잠깐 사이에 담배를 한 대 피워 손가락이 탈 정도가 되어서야 바닥에 던졌다. "안 피우겠소?" 손을 뻗쳐 두 개비 째를 집으려 하면서 그가 불쑥 물었다. 그래서 나도 한 개비 집어 불을 붙였다. 교원생활에 대한 이야기라든가 서적에 관한 이야기 등을 했지만, 아직도 거북하고 답답했다. 내가 막 돌아가려고 했을 때, 밖에서 떠들썩한 소리와 함께 발소리가 들리더니 어린아이 네 명이 들어왔다. 큰 놈은 여덟이나 아홉 살쯤, 그리고 작은 놈은 네댓 살쯤 되어 보였는데, 이이들의 얼굴과 손, 옷에는 꼬질꼬질 땟국이 흘렀고, 하나같이 다 못생겼다. 그런데도 리엔쑤의 눈에는 금세 기쁜 빛이 떠올랐다. 그는 황급히 일어나더니 객실 옆방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가면서 이렇게 외쳤다. "따량, 얼량, 모두 이리 온! 너희들 어제 하모니카를 갖고 싶다고 했지? 내가 사왔어." 어린아이들은 모두 그이 뒤를 따라갔다. 이윽고 모두들 하모니카를 불면서 나왔다. 그런데 객실로 나오자마자 웬일인지 갑작 싸움이 벌어져서 한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한 사람에 하나씩이야. 다 똑같은 것이니 싸우면 안 된다!" 그는 어린아이들이 뒤에서 이렇게 타이르고 있었다. "누구네 아이들입니까?" 내가 물어 보았다. "집주인네 아이들입니다. 어머니가 없어요. 할머니만 한 분 계시죠..." "집주인은 홀아빕니까?" "그래요. 부인이 죽은 지 삼사 년 되었다던가 ...그렇지 않으면 나 같은 독신자에게 방을 빌려 주지도 않았겠지요." 그렇게 말하고 나서 그는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나는 어째서 그가 아직도 독신으로 있는가를 물어 보고 싶었지만, 아직 그와 그렇게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묻지 않았다. 만날수록 리엔쑤는 꽤 이야기가 통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토론을 무척 좋아했는데, 그 토론은 때때로 기발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의 손님 가운데는 영 상대하지 못할 사람도 있었다. 아마도 위따푸의 "타락"을 읽은 때문이겠는데, 노상 자기 자신을 가르켜 '불행한 청년'이라든가, '인간쓰레기'라고 하면서 게처럼 웅크리고 거만하게 의자에 버티고 앉아서 '후유'하고 한숨을 쉬며 이맛살을 찌푸리고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주인집 아이들은 만나기만 하면 툭탁거리고 싸우거나 접시나 대접을 뒤엎으면서까지 과자를 내놓으라고 조르는 형편이라 귀찮아서 머리를 내저을 정도이다. 그런데도 리엔쑤는 그애들을 보면 오히려 평소에 그렇게 차갑던 표정도 짓지 않고 마치 자기 생명보다 더 소중하다는 듯이 행동했다. 언젠가 한번은 싼량이 성홍열(몹시 열이 많이 나서 전신이 빨갛게 되는 전염병)에 걸렸는데, 어찌나 속을 태웠는지 검은 얼굴이 더욱 시꺼멓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병이 뜻밖에도 가벼웠기 때문에 후에 아이들의 할머니로부터 놀림을 많이 받았다는 것이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어린아이는 좋아. 순진하기 이를 데 없거든..." 그는 내가 귀찮아하는 것을 눈치챘는지 하루는 기회를 보아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렇지만도 않을 걸세." 나는 되는 대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야. 어른들의 나쁜 버릇이 어린아이들에게는 없단 말이야. 후천적인 결점, 자네가 평소에 공격하는 그런 결점은 환경의 탓일세. 선천적으로는 결코 나쁘지 않아. 천진함... 나는 중국에 희망이 있다면 이점뿐이라고 생각하네." "아닐 거야. 어린아이들에게 악의 뿌리가 없다면 자라서 어떻게 악의 열매를 맺을 수 있겠나. 예컨대 한 알의 씨앗이라도 그 내부에는 가지나 잎, 꽃, 열매가 되는 배자가 본래부터 포함되어 있으니까 성장해서 그런 것들이 생겨나는 거야. 만일 아무것도 없었다고 한다면..." 나는 당시에 무료해서 괴로웠던 차라, 고관들이 하야 후에 정진하든가 참선하듯이 불경을 읽고 있었다. 물론 불교의 도리를 깨달은 것은 아니었지만, 겁도 없이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여댔다. 그러자 리엔쑤는 매우 화가 나서 흘끗 나를 쳐다볼 뿐 입을 열지 않았다. 할말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말하고 싶지 않아서인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냉정함이 그에게 나타났음을 알았을 뿐이었다. 그는 침묵을 지키며 연거푸 담배를 두 개비나 피웠다. 세 개비 째를 피우려 손을 뻗칠 때, 나는 더 이상 견디기 어려워 도망쳐 나오고 말았다. 이런 거북한 기분은 석 달 동안이나 계속된 후에 겨우 풀렸다. 그 풀린 이유는 대개 절반은 아마도 잊어버렸기 때문이겠고, 나머지 절반은 그 자신이 이 순진한 아이들로 인해 박해를 받게 되자, 내가 어린아이를 모독하는 견해도 정상 참작의 여지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리라. 물론 이것은 나의 추측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 집에서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슬픈 듯한 표정으로 그는 반쯤 머리를 들고 이렇게 말했다. "생각해 보면 정말 이상하단 말이야. 자네 집에 오는 도중에, 거리에서 꼬마들이 놀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갈대를 들고 나를 향해서 '넘어 뜨려라!'라고 하는 거야. 이제 겨우 아장아장 걷는 아이였는데 말이야..."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겠지." 말해 버리고 나서 나는 이내 자신의 말을 후회했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마음에 두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계속 술을 마시고 그 사이사이에 연달아 담배를 피워댔다. "...그렇게 말하니, 자네에게 묻고 싶은 것이 하나 있네." 나는 다른 말을 꺼내서 그 말을 얼버무렸다. "자네는 절대로 사람을 방문하는 성질이 아닌데 어떻게 해서 오늘은 마음이 내켰지? 우리들이 서로 안 지도 1년이 넘었지만, 자네가 우리 집에 온 것은 오늘이 처음이지 않은가?" "내가 바로 그것을 이야기하려던 참일세. 앞으로 당분간 우리 집에 찾아오지 말아 주게. 집에는 지금 정말 귀찮은 어른 하나와 아이 하나가 와 있단 말일세. 모두 사람 같지도 않아!" "어른 하나에 아이 하나라? 누구를 말하는 거지?" 나는 이상하게 생각하며 물었다. "내 사촌과 그의 자식이야. 핫하하! 자식놈이 꼭 제 아비를 닮았더군." "시내에 와서 자네를 만나고, 겸해서 구경이라도 하려고 온 건가?" "아냐. 내게 의논할 것이 있다는 거야. 그 아이를 내 양자로 삼으라고 하더군." "뭐? 자네의 양자로 말인가?" 나는 나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자넨 아직 결혼 전이 아닌가?" "물론 내가 결혼 전이라는 걸 알고 있지. 하기는 그런 것쯤은 아무래도 좋아. 그들의 진짜 속셈은 저 한석산에 있는 집을 자기들 소유로 하려는 거야. 나는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 자네도 알고 있다시피 난 돈이 생기면 써 버리고 마니까. 그 헌 집밖에 없단 말야. 그놈들 부자의 일생 사업이 그 집을 차지한 후에 지금 그 집에 살고 있는 늙은 하녀를 내쫓는 일이란 말일세." 그의 냉혹한 어조는 나를 섬뜩하게 했지만, 나는 그를 위로하며 말했다. "자네 친척인데 그렇게까지야 하겠나? 다만 생각이 좀 고루할 뿐일거야. 예를 들면 그해 자네가 엉엉 울었을 때, 정색을 하며 자네를 둘러싸고 열심히 위로한 것처럼..."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나에게 증서에 도장을 찍게 해서 우리 집을 앗아 가려고 내가 울었을 때도 그렇게들 열심히 위로하려 들었던 거야..." 그때의 광경을 찾아내기라도 하려는 듯이 그는 두 눈을 하늘로 향하고 한참 동안 그대로 있었다. "결국 문제의 열쇠는 자네에게 어린아이가 없다는 데 있는 거로구먼. 도대체 자네는 왜 지금까지 결혼을 하지 않았나?" 나는 갑자기 다른 화제를, 그것도 오래 전부터 붇고 싶었던 화제를 꺼냈다. 이때야말로 다시 없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이상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한참 후에 그는 그 시선을 자신의 무릎 위로 옮겼다. 그리고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대답은 없었다. 3 그러나 이렇게 한가하고 평안한 환경이었지만 리엔쑤에게는 안주할 만한 땅이 못 되었다. 차츰 그를 비방하는 익명의 기사가 신문에 나기 시작했다. 학계에서도 그에 관한 유언비어가 계속해서 퍼졌다. 더군다나 그것은 옛날처럼 단순한 화제로서가 아니라 대체로 그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들이었다. 나는 근래 그가 즐겨 글을 발표하는 것이 원인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S시의 사람들은 남의 입에 오를 쓸데없는 의견을 토론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만일 그런 사람이 있으면 꼭 암암리에 징벌을 가한다. 그것은 옛날부터 그랬기 때문에 리엔쑤로서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런데 봄이 되자 돌연 그가 교장 자리에서 파면을 당했다는 소문이 들려 왔다. 이러한 소문은 정말 뜻밖이었다. 사실 이런 일은 이전부터 흔히 일어났지만, 그저 나는 내가 아는 사람이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에 뜻밖이란 생각을 하였을 따름이었다. S시의 사람들이 이번에 한해서만 특별히 가혹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 무렵 나는 나 자신의 생활에 쫓기고 있었고, 게다가 그해 가을부터 산양에 가서 교편을 잡는 문제를 절충하고 있었던 참이었으므로 결국 그를 방문할 틈이 없었다. 그러던 중에 약간 틈이 생겼을 때는 이미 그가 파면 당하고 3개월이 경과한 뒤였다. 그래도 리엔쑤를 찾아보고 싶은 생각이 일어나지 않았다. 어느 날 나는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헌 책방에 들렀다.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그곳에 진열해 놓은 급고각(명나라 말기 모진의 장서실 이름) 초인본의 "사기색은:당의 사마정이 사마천의 "사기"에 주해를 붙인 책으로 모두 30권"은 틀림없이 리엔쑤의 책었던 것이다. 그는 책을 매우 좋아하긴 했지만 장서가는 아니었다. 이런 책은 그에게 있어서 귀중한 양서의 부류에 속한다. 웬만큼 곤란하지 않다면 그렇게 쉽사리 내놓을 책이 아니다. 겨우 3개월의 실업으로 그처럼 곤궁해지는 것일까. 물론 돈이 들어오면 곧 써 버리는 성격이었으므로 지금까지 모아둔 돈이 전혀 없었다 치더라도. 나는 리엔쑤를 찾아가 보기로 생각하고 가는 길에 술 한 병과 땅콩 두 봉, 생선구이 두 마리를 샀다. 그런데 그의 방문은 닫혀 있었고, 두서너 번 불러 보았는데도 대답이 없었다. 나는 그가 자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해서 한층 더 소리를 높여 부르며 손으로 문을 두드리기까지 했다. "외출했을 거요." 그 눈이 세모꼴이고 뚱뚱한 따량의 할머니가 저쪽 창문에서 희끗희끗하게 센 머리카락이 섞인 머리를 내밀고 큰 소리로 귀찮은 듯이 말했다. "어디 갔습니까?" 나는 물었다. "어디 갔느냐고? 알 게 뭐요. 어디 갈 데가 있을라구. 기다리고 있으면 곧 올 거예요." 그래서 나는 문을 열고 그의 객실로 들어갔다. 정말 '하루를 안 보면 여러 해가 지난 것 같도다.'였다. 보이는 것은 모두 녹슬어 버려서 폐허가 되어 있었다. 가구들은 남아 있는 것이 몇 개 없었을 뿐 아니라, S시에서는 살 사람이 없는 양장본이 몇 권 남아 있을 뿐 서적까지도 거의 없었다. 그러나 방 한가운데 있는 원탁만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전에는 언제나 비분강개하는 청년들이 둘러앉았고, 시절을 못 만난 천재들과 꾀죄죄하고 더러운 애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모든 것들이 정적에 싸여 있고 그 위에는 먼지만 가득 쌓여 있었다. 나는 그 탁자 위에 술병과 종이 꾸러미를 놓고 의자를 끌어당겨 탁자 모서리에 기대어 앉은 채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곧'이라는 말은 틀림이 없었다. 문이 열리더니 한 사나이가 초라한 꼴로 그림자처럼 들어왔다. 틀림없는 리엔쑤였다. 저녁이라 그런지 얼굴이 전보다 더욱 검어졌다. 다만 표정만은 옛날 그대로였다. "아! 자네로구먼. 오래 기다렸나?" 그는 약간 기뻐하는 듯했다. "오래 기다리지는 않았네. 어딜 갔었나?" "어딜 가긴... 마음내키는 대로 좀 걸었지." 그도 의자를 끌어서 탁자 옆에 앉았다. 우리들은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실업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그는 실업에 대해선 별로 말하려 하지 않았다.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고, 지금까지 여러 번 당한 일이기 때문에 이상할 것도 없고 이야깃거리가 될 것도 아니란 것이 그의 의견이었다. 그는 전처럼 계속 술을 마셨고 변함없이 사회와 역사에 대해서 자신의 견해를 토로했다. 나는 무심히 텅 빈 책장을 바라보다가 급고각 초인본의 "사기색은"이 생각나서, 하염없는 쓸쓸함과 슬픔에 잠겼다. "자네 객실도 인제 이렇게 쓸쓸해져서... 요샌 손님도 별로 없나?" "없어. 요새 내 심경이 좀 좋지 않아서 와 봐야 별 재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야. 심경이 좋지 않을 때는 사실 상대방을 불쾌하게 만들거든. 겨울철에 공원을 찾는 사람은 없지 않나..." 그는 연거푸 두 잔을 비웠다. 그리고 묵묵히 생각에 잠겨 있다가 별안간 얼굴을 들더니 나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자네 일자리 구하는 것도 그리 신통하지가 않지?" 이미 취기가 상당히 돈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은근히 화가 치밀었다. 되물어서 창피를 주려 했을 때, 그는 뭔가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느닷없이 땅콩을 한 줌 움켜쥐고 밖으로 나갔다. 문 밖에서는 아이들이 떠들며 웃는 소리가 들려 왔다. 그가 나가자마자 아이들의 소리는 그쳤다. 뿐만 아니라 달아나는 모양이었다. 그들을 따라가면서 뭐라고 말하고 있는 성싶었는데, 대답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는 그림자처럼 조용히 돌아와서 쥐고 있던 땅콩을 원래 있던 종이 위에 다시 놓았다. "이제는 내가 주는 것조차 안 받아." 나직한 소리로 자조하듯 그가 말했다. "리엔쑤." 가엾은 생각이 들어 나는 억지로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 "내가 보기에 자넨 자진해서 괴로움을 원하고 있는 것 같군. 자넨 세상을 너무 나쁘게 보는 것 같아." 그는 싸늘하게 웃을 뿐이었다. "이봐, 할 얘기가 또 있네. 자네는 때로 자네를 찾아오는 우리들을 마치 우리가 한가해서 찾아와 자네를 심심풀이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군." "천만에. 그렇지만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어. 무슨 화제가 될 만한 것을 들으러 온다든가..." "그게 바로 자네의 잘못일세. 사람이란 절대로 그런 것이 아니야. 자네는 자기가 뽑아 낸 실로 고치를 만들고 자신을 그 속에 가두어 놓고 있는 거라구. 세상을 좀더 희망찬 곳으로 보아야 하네." 나는 한숨을 지으면서 말했다. "그건 그럴지도 몰라. 그러나 자네가 말하는 것은 어디서 온 것인가? 물론 세상에는 자네가 말하는 것 같은 인간도 있기는 하지. 예를 들면 우리 할머니가 그런 사람이네. 나는 그 할머니의 피를 받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할머니의 운명은 이어받고 있는지도 모르겠네. 그러나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아. 나는 벌써 그때 울어서 모든 것을 묻어 버리고 말았으니까..." 곧 나는 그의 할머니를 입관시킬 때의 광경을 지금 눈앞에 보는 듯이 생생하게 머리에 떠올렸다. "그때 자네는 왜 그렇게 크게 울었나? 난 이해가 잘 안 되는데." 당돌하게 나는 그렇게 물었다. "할머니의 입관 때 말이지? 그렇겠지. 자넨 모를 거야." 그는 등잔을 커면서 조용한 어조로 말했다. "자네가 나와 사귀게 된 건 아마도 그때 내가 울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자네는 모르겠지만, 그 할머니는 내 아버지의 계모였네. 아버지의 생모는 아버지가 세 살 때 돌아가셨지." 그는 생각에 잠기면서 묵묵히 술잔을 비우고 생선구이 한 마리를 먹어 치웠다. "처음에는 나도 그 사실을 몰랐었네. 다만 내가 어렸을 때부터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지. 그 무렵엔 아버지도 살아 계셨고 집안 형편도 좋았었네. 정월이면 언제나 조상들의 화상을 걸어 놓고서 성대한 제를 올렸지. 정장을 한 그 많은 화상을 바라다보는 것은 그 무렵의 나에게 있어서는 매우 보기 어려운 즐거움이었다네. 그런데 그럴 때면 언제나 나를 안고 있는 하녀가 한 장의 화상을 가리키면서 말했지. '이분이 도련님의 진짜 할머님이니 배례를 해요. 아무쪼록 도와 주셔서 빨리 용처럼, 호랑이처럼 크게 되도록.' 그것이 아무래도 납득이 안 갔단 말야. 나에게는 어엿한 할머니가 살아 계신데 어째서 '진짜 할머님'이 또 있는 것일까. 그러나 나는 그 '진짜 할머님'이 좋았어. 집에 있는 할머니처럼 나이를 먹지 않았기 때문이지. 젊고 아름다웠고 금실로 자수한 빨간 옷을 입고, 구슬로 장식된 관을 쓰고 있어 어머니의 화상과 그다지 다를 게 없었거든. 내가 바라보고 있으려니까 그 화상의 눈도 조용히 나를 바라다보면서 입가가 점점 벌어지며 웃는 것 같더란 말야. 나는 할머니가 틀림없이 나를 지극히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거야. 그러나 나는 집안에서 온종일 창가에 앉아서는 천천히, 정말 천천히 바느질을 하고 계시는 할머니도 좋아했네. 내가 아무리 즐겁게 떠들고 놀며, '할머니, 할머니!'하고 불러 보아도 웃는 얼굴 한 번 보이신 적이 없었지. 언제나 차가운 느낌이 들어 다른 집의 할머니와는 아무래도 달랐단 말야. 그래도 나는 이 할머니를 좋아했네. 그러나 후에는 점차로 멀어지기 시작했지. 그 이유는 내가 나이를 먹은 후, 나의 아버지를 낳은 어머니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네. 다만 기계처럼 일 년 내내 바느질만 하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싫증났기 때문이었지. 그런데도 할머니는 여전히 바느질만 하면서 내 뒤를 보아 주고 보살펴 주셨어. 한 번도 웃는 낯을 보여 준 적은 없지만 야단을 치는 일도 없었지. 그러는 중에 내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우리 집 살림은 거의 바느질로 지탱하다시피 하였으니 할머니는 더욱 바느질에 매달리지 않을 수가 없었지. 그러는 동안에 내가 학교에 가게 됐고..." 등잔불이 꺼졌다. 석유가 없는 모양이었다. 그는 일어나 책장 아래에서 조그마한 깡통을 끄집어 내다가 석유를 붓기 시작했다. "이 한 달 사이에 석유 값을 두 번씩이나 올렸으니..." 심지를 돋우고 나서 그는 천천히 느린 어조로 말했다. "생활은 날마다 곤란해지기 시작했네. 그래도 할머니는 여전히 마찬가지였어. 내가 졸업하고 일을 하게 되고, 생활이 전보다 어느 정도 나아졌을 때도, 아니 아마도 당신이 병들어서 정말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어 자리에 눕게 될 때까지 말일세. 할머니의 만년은 내가 생각하기로는 그리 고생하셨다고는 할 수 없네. 오래 사셨고, 내가 꼭 눈물을 흘려야 할 이유는 없었지. 게다가 울어준 사람도 많이 있었으니까 말야. 예전에 그처럼 할머니를 못살게 굴었던 사람들까지도 울었으니... 적어도 얼굴 표정만이라도 슬퍼했단 말일세. 하하하... 그런데 난 그때 어째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할머니의 일생이 눈앞에 축소되어 떠올랐네. 자기 손으로 고독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다시 입 속에 넣어 씹고 있던 일생이 말일세. 그런데 말이야, 그런 사람이 매우 많이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네. 그 많은 인간이 나를 울부짖게 했단 말일세. 또 그때 내가 너무 감상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도 큰 원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자네가 지금 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은 바로 내가 옛날 할머니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생각과 똑같은 것일세. 그러나 그때의 내 생각이란 실은 올바른 것이 아니었지. 내 자신을 생각해 보면 내가 철이 나면서부터는 점차 할머니로부터 멀어져 간 것이 확실하니까..." 그는 입을 다물고는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우고 고개를 숙인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등잔불이 가늘게 흔들렸다. "아마 자네라도 별수 없을 걸세. 나도 어떡하든 빨리 일자리를 찾아야겠는데..." "다른 데 부탁해 볼 만한 곳은 없나?" 나는 정말 그 무렵엔 어떻게 해볼 수가 없었다. 나 자신의 문제마저도. "그야 없는 것은 아니야. 다만 그들의 경우도 나와 별차이가 없다는 것뿐이지..." 내가 리엔쑤와 헤어져서 문을 나왔을 때는 둥근 달이 벌써 중천에 떠 있었다. 아주 고요한 밤이었다. 4 산양의 교육사업 실태는 대단히 열악하였다. 나는 학교에 부임해서 두 달이 되었는데도 월급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담뱃값조차도 절약해야 하는 형편이었다. 그런데 월급 십오륙 원의 싸구려 교원이면서도 어느 누구 하나 천명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오랜 세월을 두고 단련된, 철근이 든 육체를 의지하여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사무실에서 쉬지 않고 일하는 사이에 얼굴은 누렇게 뜨고 야위어 갔다. 그런데도 조금이라도 지위가 높은 사람이 오면 엎드려 기는 꼴이란 정말 '의식이 족하면서도 예절을 아는' 국민들이라고 할 수 없었다.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어찌 된 까닭인지 나는 곧잘 리엔쑤가 헤어질 때 내게 했던 부탁을 회상하곤 했던 것이다. 그 무렵에는 그의 궁핍도 막다른 상태에 이르러 허덕거리는 모습이 노골적으로 나타나서 겉으로도 당황해 하는 것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내가 그곳을 떠나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그가 밤늦게 찾아왔는데 잠시 머뭇머뭇하다가 겨우 더듬거리면서 말했다.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쪽에서 무슨 방법이 없을까? 필경이든 뭐든 한 달에 이삼십 원이면 되겠는데, 난..." 나는 이상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가 이처럼 비굴해지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으므로 곧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나는... 조금만 더 살아 있고 싶어..." "그곳에 가서 힘닿는 대로 한번 찾아보겠네." 이것이 내가 그날 서슴없이 대답한 말이었다. 그러나 그러고 난 후에도 그 말이 언제나 내 귓가에 맴돌고 동시에 눈에는 리엔쑤의 모습이 떠오르며 더듬는 듯한 어조로 조금만 더 살아 있고 싶다고 하던 목소리까지 들려 오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모든 수단을 강구해서 여기저기 부탁을 해보았다. 그러나 아무 소용도 없었다. 일은 없는데 사람은 많았다. 결국 남이 나에게 변명을 하고 내가 그 변명을 그에게 편지로 중계하여 줄 뿐이었다. 1학기 말이 되니까 사태는 더욱 악화되었다. 이 지방의 일부 인사들이 발행하고 있는 "학리주보"가 나를 공격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물론 이름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아주 교묘한 방법으로 사람들이 읽어 보면 당장 나인 줄 알도록 했고 내가 마치 학교의 소동을 선동하고 는 것처럼 써서 발표하는 것이었다. 리엔쑤를 추천한 것까지도 당을 끌어들이는 음모라고 단정하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어 수업을 하러 나갈 때를 제외하고는 문을 잠그고 집 안에 숨어 있었다. 때론 담배 연기가 창문 틈으로 새어 나가는 것조차 학교 소동을 선동한다는 혐의의 불씨가 되지 않을까 하고 두려워했다. 리엔쑤의 일 같은 것은 도저히 입에 담을 수조차 없었다. 그런 일을 겪고 있는 중에 한겨울이 되었다. 온종일 줄곧 눈이 내렸는데, 밤이 되어도 그치지 않았다. 집 밖은 모든 것이 아주 고요했고, 그 정적 소리까지 들릴 것만 같은 그런 정적이었다. 나는 희미한 등불 아래 눈을 지그시 감고 고목처럼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눈이 분분히 내려 마치 쌓일 수 있는 데까지 쌓여서 그 위에 계속적으로 쌓이는 것이 보이는 듯했다. 지금쯤은 고향에서도 새해를 맞을 준비를 하느라 분주할 것이다. 나는 어렸을 적에 뒤뜰의 편평한 장소에서 어린 동무들과 눈사람을 만들던 꿈을 꾸고 있었다. 눈사람의 눈엔 두 개의 작은 숯덩이를 박았다. 새까만 눈이다. 그것이 번쩍하고 빛나는가 싶더니 별안간 리엔쑤의 눈으로 변했다. "조금만 더 살아 있고 싶다." 옛날 그대로의 목소리다. "어째서?"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묻고 나서 곧 나 자신이 우스워지며 정신이 들었다. 그러고는 다시 단정하게 앉아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창문을 열어 보니 눈은 추측하였던 대로 더욱더 내려 쌓이고 있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그것은 늘 듣던 하숙집 심부름꾼의 발소리였다. 그는 내 방의 문을 열고 여섯 치도 넘을 커다란 봉투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갈겨쓴 서체이긴 했지만 슬쩍 보기만 해도 '웨이함'이란 글자를 알아볼 수 있었다. 리엔쑤가 보낸 것이었다. 그것은 내가 S시를 떠나고 나서 그가 내게 처음으로 보낸 편지였다. 나는 그가 게으른 성격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 소식이 없어도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때로는 소식이 없음을 원망스럽게 생각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막상 편지를 받아 들자 이번엔 또 까닭 없이 이상한 느낌이 들어, 서둘러 겉봉을 뜯었다. 안에는 휘갈긴 글씨로 다음과 같은 글이 씌어 있었다. 선페이... 자네에게 뭐라고 경칭을 붙여야 할까. 빈칸은 그대로 두니 자네가 좋을 대로 경칭을 써넣어 주게나. 나는 아무래도 좋으니까. 헤어진 뒤에 편지를 세 통 받았네. 답장은 쓰지 않았지. 이유는 간단하네. 우표를 살 돈이 없었어. 자네는 내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알고 싶겠지. 모든 것을 털어놓고 알려 주기로 하지. 나는 실패한 거야. 전에 내가 실패했다고 여긴 것은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니 그게 아니었어. 지금이야말로 정말 실패란 말일세. 전에는 남들도 내가 좀더 살기를 희망했었고, 나 자신도 살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더 살아갈 수 없게 되었네.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어졌지. 그러나 살아가야 하는... 내가 좀더 살기를 바랐던 사람 자신도 살 수가 없었네. 그 사람은 적에 의해서 계획적으로 살해 당했다네. 누가 그를 죽었느냐고? 그것은 아무도 모르네. 인생의 변화는 실로 빠르더군. 지난 반년 동안 난 거의 거지꼴이 되다시피 했었네. 아니, 거지였다고 하는 편이 나을는지도 모르지. 그러나 나는 해야 할 일이 있었네. 그래서 나는 즐겨 구걸 행위를 했지. 이 때문에 추워서 몸이 얼어붙기도 했고 고독했고 힘들었지만 결코 절망과는 타협하지 않았네. 나에게 좀더 살기를 바랐던 사람의 힘은 이처럼 켰던 것일세. 그러나 이제 그것마저 없어져 버리고 말았어. 동시에 나는 자신이 살아갈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네. 다른 사람은 어떨까? 그들 역시 자격이 없네. 동시에 내가 사는 것을 희망하지 않는 자를 위해서라도 나는 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일세. 다행히도 나에게 건실하게 살아갈 것을 희망해 준 사람은 벌써 없어져 버렸기 때문에 누구의 마음도 아프게 하지 않아도 되네. 남이 상심하는 것을 나는 원치 않거든. 그러나 이제 그런 사람은 이미 없어졌다네. 통쾌하기 짝이 없지. 편안해졌단 말일세. 나는 전에 내가 증오하고 반대하였던 일체의 행위를 실행하려 하네. 전에 존경하고 주장했던 일체의 것을 배척하는 것이지. 나는 이번에야말로 실패했어... 그리고 승리했단 말일세. 자네는 내가 미쳤다고 생각하나? 아니면 내가 영웅이나 위인이 되었다고 생각하나? 그렇지 않아, 그 사정이라는 것은 지극히 간단하네. 나는 요즘 뚜 선생의 고문이 되었는데, 봉급은 매달 80원을 받는다네. 선페이... 자네는 나를 어떻게 보는가? 마음대로 생각하게. 나는 아무래도 좋으니까. 자네는 아직도 내 옛날의 객실을 기억하고 있겠지. 우리들이 시내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리고 헤어질 때의 그 객실 말일세. 나는 지금도 그 객실을 쓰고 있네. 거기에는 새로운 손님이 있고, 새로운 선물, 새로운 찬양, 새로운 아부, 새로운 출세. 새로운 비굴함이 있고, 새로운 마작과 파티, 새로운 멸시와 적의, 새로운 불면증과 각혈이 있다네... 자네의 지난번 편지에 따르면 자네의 교원 생활도 신통치 않은가 보군. 자네도 고문을 해볼 생각은 없는가? 내게 알려 주면 내가 힘써 보겠네. 사실 문지기라도 상관할 게 있는가. 같은 거야. 새로운 손님과 새로운 선물과 새로운 찬양이... 내가 사는 이곳에는 많은 눈이 내렸네. 자네가 있는 곳은 어떤가? 지금은 벌써 한밤중일세. 두어 번 가량 피를 토했더니 정신이 아주 맑아졌어. 자네가 가을 이후 줄곧 내게 세 통의 편지를 보내 준 것이 생각나는군. 정말 미안하네. 그래서 이렇게 자네에게 편지를 쓸 생각이 든 거야. 설마 자네가 그렇다고 해서 놀라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하네. 이후로는 두 번 다시 편지를 쓰지 않을 걸세. 내 이 습관은 자네가 알고 있던 그대로일세. 언제 오겠나? 빠르면 만날 수 있겠지... 그러나 내 생각으로 우리들은 아마도 결국 같은 길이 아니었던 것 같아. 그렇다면 아무쪼록 내게 관한 것은 잊어버리게. 나는 진심으로 이전에 자네가 나를 위해서 생활문제를 생각해 준 데 대해서 감사하고 있네. 그러나 지금으로선 내게 관한 것은 모두 잊어 주게. 나는 이제는 다 잘되었다는 말일세. 12월 14일 리엔쑤 이 편지는 나를 어처구니없이 놀라게 하지는 않았지만, 다시 한 번 자세히 되풀이해서 읽어 보니 아무래도 약간의 불쾌감이 남았다. 그러나 또 동시에 어느 정도의 유쾌함과 안심이 섞이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더욱이 그에게 생활의 걱정이 없어졌다는 것은 어쨌든 나의 어깨를 가볍게 해주었다고도 할 수 있었다. 비록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번도 도움이 되어 주지는 못했지만... 문득 나는 그에게 편지를 쓸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별로 할말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쓰지 않기로 했다. 확실히 나는 점차 그를 잊어 가고 있었다. 내 기억 속에 그의 얼굴이 떠오르는 일도 없어져 버렸다. 그런데 편지를 받고 열흘도 못 되어서 S시의 학리학보사로부터 그 곳에서 발간하고 있는 "학리칠일보"를 꼬박꼬박 우송해 왔다. 나는 이런 종류의 것은 보지 않기로 마음먹고 있었지만, 이왕 보낸 것이니 가끔 아무렇게나 뒤적여 보는 일도 있었다. 그것이 나에게 리엔쑤를 회상케 하는 계기가 되었다. 왜냐하면 그 속에는 그에 관한 시문이 곧잘 게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설야에 리엔쑤 선생을 배알하다"라든가, "리엔쑤 고문의 아름답고 높은 글 모음집"이라는 것 등이다. 어떤 때는 '학리한담'란에 그가 전에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던 일들이 재미있고도 이상스럽게 서술되어, 그것이 '일화'로서 은연중에 '비범한 사람은 반드시 비범한 일을 행한다.'는 의미를 풍기고 있었다. 이런 일로 그를 생각하곤 했지만, 어쨌든 그의 모습은 차차로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그러나 또 그와의 관계가 날마다 깊어져 가는 것 같은 느낌도 들어서 때로는 까닭없이 불안과 지극히 가벼운 초조를 불현듯 느낄 때도 있었다. 다행히 가을이 되니 이 "학리칠일보"는 보내 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산양의 "학리주보"에 "유언 즉 사실론"이라는 장편의 논문이 매호마다 게재되게 되었다. 내용은 모군에 관한 소문이 이미 공정한 신사들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것은 특정한 몇 사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었는데, 나도 그 속에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매우 조심하면서 전처럼 담배 연기조차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조심한다는 것은 일종의 성가신 고역으로서 그것 때문에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리엔쑤에 관한 것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결국 나는 그에 대한 것은 사실상 모두 잊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데 나도 결국은 여름방학까지도 견뎌 내지 못하고 5월 말에 산양을 떠나게 되었다. 5 상양에서 역성으로 갔다가 거기서 다시 태곡으로 갔다. 이렇게 해서 반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결국 일을 찾지 못한 채 나는 S시에 돌아갈 것을 결심했다. S시에 도착한 것을 이른 봄날의 오후였다. 지금 당장이라도 비가 내릴 듯한 날씨에 모든 것은 회색으로 덮여 있었다. 전에 살았던 집에 빈방이 있어 그곳에서 지내기로 했다. 나는 오면서 여러 번 리엔쑤의 생각을 했다. 저녁을 먹고 곧 그를 방문하기로 했다. 나는 원시의 명산물인 진빵을 두 꾸러미 들고 질척한 길을 여러 군데 지나서, 길바닥에 길게 누워서 늘어지게 자고 있는 개를 여러 번 피해 가며 겨우겨우 리엔쑤가 거처하는 집 앞에 도착했다. 집안은 매우 환하게 보였다. 고문쯤 되면 집 안까지도 이렇게 환해지는 것인가 싶어 나는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고개를 들어보니 문 옆에 하얀 종이가 비스듬히 붙여져 있는 것이 뚜렷하게 보였다. 그래서 나는 따량의 할머니가 죽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곧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희미한 불빛에 비쳐 뜰에 놓여 있는 관이 하나 보였고, 그 옆에 군복을 입은 병사 같은 사람이 한 사람 서 있었다. 또 한 사람이 그와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따량의 할머니였다. 그 외에도 짧은 저고리를 입은 인부 차림의 사람들이 여러 명 한가하게 서 있었다. 순간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따량의 할머니도 이쪽을 보더니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아이구! 언제 오셨어요? 이삼 일만 일찍 왔어도..." 대뜸 그녀가 큰 소리로 말했다. "누가 ... 누가 세상을 떠났습니까?" 나는 이미 짐작이 갔지만 그렇게 물었다. "웨이 선생이에요. 그저께 돌아가셨어요."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객실은 어두컴컴했다. 등불이 하나밖에 없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큰 방에는 흰 장례용 포장이 쳐 있었고, 밖에는 두서너 명의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따량과 얼량이었다. "저쪽에 뉘어 놓았어요." 따량의 할머니가 다가와서 손으로 가르키며 말했다. "웨이 선생이 출세하신 뒤론 내가 큰방까지 빌려 드렸어요. 그래서 지금도 그 방에 뉘어 놓았지요." 휘장 앞에 다른 것은 없고 긴 탁자와 정방형 탁자가 놓여 있었고, 정방형 탁자 위에는 밥과 나물을 담은 그릇이 여남은 개 놓여 있을 뿐이었다. 내가 문지방을 넘어서 들어가려고 하니까 갑자기 흰 상복을 입은 두 사람의 사나이가 나타나서 나를 막으며 퀭한 눈을 부릅뜨고 내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나는 급히 리엔쑤와의 관계를 설명했다. 따량의 할머니도 오더니 옆에서 거들어 주었다. 그러자 겨우 그들의 손과 눈빛이 부드러워지며 내게 앞으로 나아가 배례하도록 묵인해 주었다. 내가 배례를 하려고 하자, 별안간 '아이구, 아이구'하는 우는 사람이 있었다. 자세히 보니 열두 서넛 되는 아이 하나가 돗자리 위에 엎드려 있었다. 이 아이도 흰상복을 입고 짧게 깎은 머리에 굵은 삼줄을 두르고 있었다. 나는 그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하여 한 사람은 리엔쑤의 외갓집 사촌으로 그와는 가장 가까운 사이이고, 또 한 사람은 먼 친척으로 조카뻘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고인을 보고 싶다고 하니까, 그들은 절대로 그럴 수 없다며 한사코 거절하였다. 그러나 결국에는 내 말에 납득이 갔는지 휘장을 열어 주었다. 이때 나는 죽은 리엔쑤와 만난 것이다.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그는 주름이 잡힌 짧은 저고리와 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그 가슴 언저리엔 아직 핏자국이 있었다. 얼굴은 차마 볼 수 없을 정도로 수척해 있었다. 다만 표정만은 변하지 않고 옛모습 그대로였다. 가볍게 입술을 다물고 눈을 감은 모습이 마치 잠들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의 코끝에 손을 대어 그가 아직 호흡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확인해 보고 싶었다. 모든 것에 죽음처럼 고요한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죽은 자도 산 자도. 나는 뒤로 물러났다. 그의 외갓집 사촌은 자진해서 나에게 무어라고 말을 걸어 왔다. '동생'은 아직도 혈기왕성한 나이로 전도가 양양함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세상을 떠나서 집안의 슬픔은 말할 것도 없고, 친지 여러분들께도 염려를 끼치게 되었다는 말을 늘어놓았다. 리엔쑤를 대신해 사과의 뜻을 표한다고 했다. 이런 인사를 할 수 있는 것은 산촌에 사는 사람에게는 드문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말을 하고 나서 입을 다물었다. 죽음과 같은 정적이었다. 살아 있는 자도 죽은 자도. 나는 피로했고 몹시 무료하였다. 새삼 아무런 슬픔도 솟아나지 않았다. 나는 뜰로 나와서 따량의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내게 입관 시간이 되어서 수의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과 관에 못을 칠 때는 쥐띠, 말띠, 토끼띠, 닭띠인 사람은 반드시 자리를 피해야 한다는 것 등을 가르쳐 주었다. 그녀는 샘물이 솟아오르듯이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그의 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그녀는 그가 살아 있을 때의 상황에 대해서 말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웨이 선생은 운이 트이고 난 다음부터는 사람이 전과 아주 달라지셔서, 얼굴을 똑바로 쳐들고 가슴을 젖히고 다니셨습니다. 사람들 앞에 나가도 전처럼 기를 못 펴고 있지 않았어요. 아시다시피 전엔 벙어리처럼 말이 없었잖아요. 저를 보고도 전엔 마님이라고 부르더니 이제는 '할멈'이라고 부르더군요. 정말 참 재미있었어요. 어떤 사람이 센쥐츄(저졍성 센쥐에서 나는 약초의 일종)를 보냈는데 그분은 드시지 않고 뜰에 버려두셨어요. 바로 이곳입니다. 그러고는 '할멈이 먹어.'라고 하더군요. 출세하시고 나니까 손님이 끊일 사이가 없어서 큰 방을 그분에게 내어 주고 우리는 이 곁방으로 옮겨 왔지요. 그분은 다른 사람과 달라서 출세하신 뒤에도 우리에게 곧잘 이야기를 했었어요. 한달만 빨리 오셨더라면 그분의 그런 떠들썩한 모습을 보셨을 텐데... 하여간 사흘이 멀다 하고 주연을 베풀고, 떠들어대고, 웃고, 노래부르고, 시를 짓고, 마작을 하고... 굉장했어요. 그 양반 전에는 어린아이들이 부모를 무서워하는 것처럼 아이들을 두려워했지요. 흠칫흠칫 놀라면서 작은 소리로 겨우 말하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그 무렵에는 곧잘 말도 했고 장난도 쳤어요. 저희 아이들과는 아주 친해져서, 짬만 있으면 아이들과 같이 방에서 놀았지요. 그분은 여러 가지 놀이를 하면서 아이들과 같이 방에서 놀았지요. 그분은 여러 가지 놀이를 하면서 아이들을 웃겼답니다. 혹 그분에게 무언가를 사달라고 조르면, 곧잘 아이들에게 개 짖는 소리를 흉내내게도 하고 머리를 숙여 절을 하게도 했지요. 큰 소리로 웃고 떠들면서 그야말로 정말 떠들썩했었어요. 두어 달 전에 얼량이 구두를 사달라고 졸랐는데, 머리를 숙여 세 번이나 절을 시키고 난 후에 사주셨어요. 보세요, 지금까지 신고 있는데 아직 낡지 않았답니다." 흰 상복을 입은 사람이 한 사람 나오자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나는 리엔쑤의 병에 대해서 물어 보았지만 그녀는 거기에 대해서는 자세히 모르고 있었다. 그는 오래 전부터 앓고 있었는데, 아무도 그것을 몰랐다는 것이다. 그가 언제나 활발하게 행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 달쯤 전에야 비로소 그가 몇 번 각혈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의사에게는 보이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런 일이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곧 자리에 눕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죽기 며칠 전에는 목이 막혀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했다. 스싼 대인이 한석한에서 먼 길을 일부러 와서 저금해둔 것이 있는지 없는지를 물었지만, 한 마디도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스싼 대인은 그가 벙어리 흉내를 낸다고 의심했었다. 그러나 폐병으로 죽은 사람은 말을 할 수 없다고 하는데 누가 그것을 알 수 있을까... "그런데 웨이 선생은 정말 이상한 버릇이 있는 분이었어요." 그녀는 갑자기 소리를 낮추고 속삭이듯이 말했다. "저금 같은 것은 한 푼도 하지 않고 돈을 물쓰듯이 마구 써 버렸단 말예요. 스싼 대인은 마치 우리들이 단물을 빨아먹은 것처럼 말하는데, 무슨 단물이 있었겠어요? 바보처럼 마구 써 버리고 만 걸요. 물건 사는 것만 해도 그래요. 오늘 샀다가는 다음날 곧 팔아 버렸단 말예요. 아니면 부숴 버리고 말든가. 정말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돌아가시고 나니까. 텅 비어서 아무것도 없어요. 그렇지 않았으면 오늘만 해도 이렇게 쓸쓸한 장례식은 안 해도 됐을 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충고도 해봤지요. 이젠 나이도 많으니 가정을 가져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예요. 지금 같으면 색시를 얻는 건 문제도 아니니, 만일 적당한 가문의 규수가 없거든 우선 첩이라도 하나 두는 것이 어떠냐고 그랬지요. 세상 풍속을 따라야 하지 않겠느냐고요. 그랬더니 그분은 별안간 웃음을 터뜨리면서 '할멈, 지나치게 남의 시중만 들다간 머리가 벗겨진단 말야.'라고 하시더군요. 아무튼 그 무렵엔 좋은 말을 해줘도 정신이 나간 것같이 그걸 곧이 듣지 않았어요. 만일 내 말을 듣기만 했었다면 지금 이렇게 혼자서 쓸쓸하게 저승길의 음침한 골짜기로 가지 않았을 것이고 적어도 몇 사람, 가족의 우는 소리라도 들었을 텐데..." 점포에서 일하는 고용인이 옷보따리를 등에 지고 왔다. 세 사람의 유족은 하의를 집어 들고 휘장 뒤로 들어갔다. 조금 있다가 휘장이 걷혔다. 하의는 벌써 갈아 입혔고, 계속해서 상의를 입히고 있었다. 그것은 나에겐 뜻밖이었다. 굵고 빨간 줄이 쳐져 있는 국방색의 군인 바지였던 것이다. 그것을 입히고 나자 다음은 군복 상의였는데, 무슨 계급인지 어디서 받은 것인지는 모르지만, 거기에는 번쩍거리며 금색 견장이 붙어 있었다. 리엔쑤는 입관되자 보기 흉하게 눕혀졌고 발치에는 노란 가죽신이 놓여졌다. 허리춤엔 종이로 만든 지휘도가, 고목같이 뼈만 앙상하게 남은 거무튀튀한 얼굴 옆에는 금색으로 테두리를 두른 군모가 놓여졌다. 세 사람의 유족이 관을 붙들고 한바탕 소리 높여 울었다. 그러고 나서 울음을 그치고 눈물을 닦았다. 머리에 삼줄을 두른 어린아이가 나갔다. 싼량도 나갔다. 아마도 둘은 모두 쥐띠, 말띠, 토끼띠, 닭띠 중의 어느 하나에 속하는 모양이었다. 인부가 관의 뚜껑을 메어 올렸다. 나는 가까이 가서 마지막으로 영원히 이별하는 리엔쑤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잘 맞지도 않는 의관 속에서 입을 다물고 눈을 감고, 입가에는 얼음처럼 차가운 미소를 머금은 채 이 우스꽝스런 시체를 냉소하고 있는 듯이 조용히 누워 있었다. 관에 못을 치는 소리와 함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는 그 울음소리를 끝까지 다 듣지 못하고 뜰로 나왔다. 발 가는 대로 걷노라니 어느덧 문 밖에 나와 있었다. 축축하게 젖은 길이 너무도 환해서 머리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니 짙은 구름은 이미 여기저기 흩어져 버리고 둥그런 만월이 차가운 빛을 발하며 중천에 걸려 있었다. 나는 걸음을 재촉하면서 묵직한 압박감 속에서 빠져 나오고 싶었다. 그러나 발버둥질쳐도 빠져 나올 수가 없었다. 귓속에서 무언가 몸부림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언제까지라도 계속되려는 듯 그치지 않았다. 드디어 그것이 몸부림치며 나왔다. 칠흑 같은 어두운 밤에 마치 상처 입은 늑대가 울부짖는 것처럼 비통과 분노와 비애가 섞인 아픈 고통 속에서 흘러나오는 가냘픈 신음 소리였다. 내 마음은 가벼워졌다. 나는 축축한 돌길로 달빛을 안고 평안하게 걸어갔다. (1925년 10월 17일) 이혼 루쉰 "야, 무수! 새해 복 많이 받으시오." "여어, 빠싼! 복 많이 받으시오." "네에네, 복많이 받으세요. 아이꾸도 함께로군..." "아아, 무꾸꿍!" 짱무싼과 그의 딸 아이꾸가 목련교두에서 연락선에 오르자 배 안에서 한꺼번에 인사말이 쏟아져 나왔다. 그 중에 몇 사람은 손을 잡고 공손히 인사하기도 하였다. 곧 뱃전의 의자에 네 사람 정도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비워졌다. 짱무싼은 인사를 나누면서 자리에 앉아 긴 담뱃대를 뱃전에 기대어 놓았다. 아이꾸는 그 왼쪽에 앉아서 갈고리같이 전족한 두 발을 빠싼의 정면에 여덟 팔 자 모양으로 쭉 뻗었다. "무꿍꿍은 성내에 가시는 길인가요?" 게딱지 같은 얼굴을 한 사나이가 물었다. "아아니." 무꿍꿍은 약간 기운이 없는 듯했지만, 원래 보랏빛 얼굴에 주름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옆에서 보아서는 변화를 잘 모른다. "잠깐 방장까지." 배안에 말소리가 딱 그치고, 시선이 두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그럼, 역시 아이꾸의 일로?" 잠시 후에 빠싼이 물었다. "응, 그 일 때문에... 나도 이젠 진절머리가 나. 만 삼 년 동안이나 싸웠는데도 결말이 나지 않으니." "이번에도 역시 웨이 나리 댁으로 가나요?" "응, 그래. 그분께서도 우리들 일을 한두 번 말씀해 주신 게 아냐. 내가 승낙을 안 할 뿐이지. 아아, 그건 그렇고, 이번 정월엔 친척들의 모임이 있어서 성내의 치따런도 오신다고 하더군..." "치따런이?" 빠싼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양반도 관여를 하시나요? 저, 그게... 사실 이쪽도 저쪽의 세간을 모두 때려부수었으니, 에... 말하자면 한바탕 화풀이는 했다고 할 수 있지요. 게다가 아이꾸가 그쪽으로 돌아가면 그리 좋을 성싶지도 않고..." 그렇게 말하고는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전 그곳에 다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빠싼!" 아이꾸는 화가 나서 머리를 들고 말했다. "전 기분이 나빠서 그래요. 생각해 보세요. 그 짐승 같은 자식이 젊은 과부와 그런 관계를 가지고 나서, 저를 내쫓으려고 했으니 말예요.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어요? 짐승 같은 애비도 자식놈의 편을 들어서 저보고 나가라는 거예요. 지독하잖아요? 치따런이 어쨌다는 거예요? 설혹 지사님 하고 의형제라 하더라도, 인정을 저버릴 수는 없잖아요? 웨이 나리처럼 두 마디 째에 벌써 헤어지는 것이 좋겠다는 식으로 사리에 맞지 않는 말은 하지 않겠지요. 전 이 몇 년 동안의 고생을 얘기하고, 어느 쪽이 잘못했는가를 치따런에게 물을 작정이에요." 빠싼은 설복되어서 더 이상 입을 열 수 없었다. 철썩철썩 뱃머리에 부딪치는 물소리만 들릴 뿐, 배 안은 너무도 조용했다. 짱무싼은 손을 뻗어 담뱃대에 담배를 담았다. 건너편에 빠싼과 같이 앉아 있던 한 뚱뚱한 사나이가 주머니에서 부시를 꺼내더니 부싯깃에 불을 붙여 대통으로 옮겨 주었다. "고맙소." 무산이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처음 만나뵙니다마는, 무수란 존함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 뚱뚱한 사나이가 정중하게 말했다. "이 바닷가의 삼륙은 십팔 개의 마을에서는 누구인들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스씨네 아들이 과부와 어울렸다는 이야기도 벌써부터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작년에 무수가 여섯 아들을 데리고 몰려가서 세간을 부숴 버렸을 때도 그것이 당연한 일이었다고 소문이 났었답니다. 당신께선 어떤 대관집에라도 거침없이 들어가실 수 있는 분이신데, 그런 놈들 쯤은 아무것도 아니지요." "어머나! 어쩌면 이렇게 사리가 밝을실까." 아이꾸는 기쁜 듯이 말했다. "실례지만, 누구신지요?" "왕더꾸이라고 합니다." 그 뚱뚱한 사나이는 재빨리 대답했다. "나를 버리려고 하지만, 그렇게 쉽게는 안 될 거예요. 치따런이든 빠따런이든 무섭지 않아요. 아무튼 그 자식 집안이 엉망진창이 되도록 해줄 테니까. 웨이 나리는 네 번씩이나 절 달래려고 했어요. 아버지만 하더라도 위자료를 보더니, 눈이 뒤집혀서 머리가 멍해지셨단 말씀이야..." "무슨 바보 같은..." 무싼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소문에는 작년 연말에 스씨네 측에서 웨이 나리에게 술대접을 했다던데...그렇지요, 빠꿍꿍?" 하고 게딱지 같은 얼굴을 한 사람이 말했다. "아무것도 아냐." 하고 왕더꾸이가 말했다. "술대접으로 사람을 현혹시킬 수는 없어. 술대접으로 사람을 살 수 있다면, 외국 음식을 보내면 어떻게 되겠어? 학문을 해서 도리를 안다는 분들은 공평한 판단을 내리시는 법이야. 가령 예를 들어서, 누군가가 많은 사람들에게 학대를 받았다고 할 때, 거기에 나타나서 공평하게 판단을 내려 주시는 분이 바로 그분이란 말이야. 한잔 먹였다든가, 먹이지 않았다든가 하는 것은 관계없는 일이야. 작년 말에 우리 마을의 룽나리가 북경에서 돌아오셨는데, 아무래도 중앙 무대에서 좌지우지한 양반은 우리들 같은 촌놈들과는 다르더군, 아무튼 그분이 말씀하시기를 그곳에서 최고의 인물이라면 꽝타이타이라는데, 이것이 또..." "왕가회두의 손님들은 내리시오!" 사공이 큰 소리로 외쳤다. 배는 벌써 멈추려 하고 있었다. "내리지, 내리겠네." 뚱뚱한 사나이는 곧 담뱃대를 움켜쥐고 뱃머리 쪽으로 뛰어내리며, 배가 가는 방향으로 둔덕의 땅을 밟았다. "자, 안녕!" 하고 그는 배 안의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다. 배는 다시 조용히 전진을 계속했다. 물소리가 또 철썩철썩 들려 왔다. 빠싼은 끄덕끄덕 졸기 시작했고, 언제부턴지 맞은편의 전족한 발을 향해서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뱃머리의 선실에 있는 두 노파는 작은 소리로 염불을 외고 있었다. 그들은 염주 알을 만지작거리면서 아이꾸를 바라보고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꾸는 눈을 뜨고 배 천장을 바라다보고 있었다. 이제부터 어떻게 그들의 집을 엉망진창으로 만들 것인가, 어떻게 '짐승 같은 애비'나 '짐승 같은 자식'을 몰아세울 것인가를 궁리하고 있는 모양이다. 웨이 나리는 그녀에게는 안중에도 없었다. 두 번 만나 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땅딸보에 네모 머리가 아니었던가. 그런 사람은 우리 동네에도 지천으로 많다. 하긴 그들의 얼굴이 좀더 검긴 하지만. 짱무싼은 담배가 다 타서 불이 대통 밑바닥으로 내려가 꾸르륵꾸르륵 소리를 내고 있는데도 담뱃대를 물고 있었다. 그는 왕가회두만 지나면, 다음은 방장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마을의 동구에 있는 괴성각도 이미 보이기 시작했다. 방장엔 여러 번 간 적이 있었다. 물론 웨이 나리의 댁에도. 그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딸이 울면서 돌아왔던 일, 사돈집과 사위가 벌인 가증스러운 여러 가지 일들, 그 뒤 그들로부터 얼마나 피해를 당했는지, 거기까지 생각하니, 지나간 일들이 하나하나 머리에 떠올랐다. 그리고 그 사돈집 일가를 괴롭혀 준 일을 생각하자 언제나처럼 빙그레 웃음이 나오려 했다. 그러나 이번만은 달랐다. 왠지 별안간 뚱뚱하게 살진 치따런이 앞을 가로막고 그의 뇌리에 그려져 있는 광경을 교란하고 있는 듯했다. 배는 계속해서 조용한 가운데 전진하고 있었다. 염불을 외는 소리만이 한층 더 켜졌을 뿐, 그 외에는 모든 것이 무수와 아이꾸와 같이 깊은 상념에 잠겨 있는 듯했다. "무수, 내리세요. 방장에 다 왔습니다." 무수의 일행은 사공의 소리에 제정신이 들었다. 괴성각은 바로 눈앞에 있었다. 그는 둔덕으로 뛰어내렸다. 이이꾸가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은 괴성각 밑을 지나서 웨이 나리의 집 쪽으로 향했다. 남쪽으로 서른 채의 집을 지나서 모퉁이를 한 번 도니 바로 거기였다. 문 쪽에 네 척의 검고 작은 배가 한 줄로 늘어서 있는 것이 먼저 눈에 띄었다. 검은 칠을 한 바깥문에 들어서자 하인이 그들을 문간방으로 안내했다. 문 안쪽에는 두 개의 탁자를 중심으로 사공과 단골 인부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아이꾸는 그쪽으로 보기가 창피해서 힐끗 시선을 던졌을 뿐이었지만, '짐승 같은 애비'도 '짐승 같은 자식'도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인이 넨까오탕(떡국과 같은 음식)을 가져왔을 때, 아이꾸는 자기도 모르게 불안한 기분이 점점 더해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그녀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 '정말 지사 나리하고 의형제인지는 몰라도 인정이 없지는 않겠지.'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학문을 하고 도리를 아는 사람이니 공평한 판단을 내리겠지. 자세하게 치따런에게 말해야겠다. 열 다섯 살의 어린 나이로 시집을 와서, 아내가 되고부터...' 넨까오탕을 다 먹었다.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과연 얼마 안가서 하인이 나타났다. 그녀는 아버지와 함께 하인의 뒤를 따라서, 대청을 거쳐 또 한 번 꺾은 후에 드디어 객실의 문지방을 넘어섰다. 객실에는 많은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그러나 둘러볼 겨를이 없었다. 많은 손님들이 있었지만, 번쩍번쩍 빛나는 빨갛고 검은 두꺼운 비단의 마고자만 눈에 들어오는 정도였다. 그 중에서도 제일 처음 눈에 뛴 사나이, 그가 치따런이 틀림이 없으리라 생각되었다. 역시 두루뭉실하게 생겼지만, 웨이 나리보다는 훨씬 당당한 풍채였다. 커다랗고 둥근 얼굴에 가느다란 눈과 새까맣고 가는 수염을 가진 그는 머리 꼭대기가 벗겨진 대머리였으나, 그 머리와 얼굴은 혈색이 좋아서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다. 그것이 아이꾸에게는 몹시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그러나 곧 자신을 납득시켰다. 그건 틀림없이 돼지 기름을 바른 것이라고. "이건 피싸이란 물건이라네. 옛사람들이 염을 할 때 항문에 꽂았던 거야." 치따런은 부싯돌 비슷한 것을 손에 들고서 설명하고 있는 참이었다. 그는 그것을 자신의 코끝에다 두어 번 비비고는 계속해서 말했다. "아깝게도 새로 나온 거야. 못 살 것도 없지. 이건 적어도 한나라 때 것일 거야. 자아, 이 반점이 수은침(금과 옥의 부식을 막기 위해 수장품에 입혔던 수은의 흔적)이야. 썩지 않게 하느라고..." 수은침의 주위에 몇 사람이 머리를 들이밀었다. 한 사람은 물론 웨이 나리였고, 그 밖에 젊은이들도 몇 사람 있었다. 단지 위세에 눌려 배고픈 빈대처럼 납작해져 있었기 때문에 그때까지 아이꾸의 눈에 띄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녀는 이야기의 뒷부분은 알아들을 수도 없었고, 별 관심도 없었던지라 그 사이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그녀의 뒤, 입구 쪽 벽에 '짐승 같은 애비'와 '짐승 같은 아들'이 바짝 붙어 서 있는 게 보였다. 흘끗 보았지만 반년 전에 우연히 만났을 때보다는 둘 다 확실히 늙어 보였다. 조금 있다가 사람들은 수은침의 주위에서 물러났다. 웨이 나리는 피싸이를 받아 쥐고 앉아서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짱무싼 쪽으로 얼굴을 돌려서 말을 걸었다. "자네들 둘뿐인가?" "네에." "자네 아들들은 하나도 안 왔나?" "짬이 없어서요." "실은 말이야, 정월부터 자네들에게 오라고 해서 좀 안됐지만 그 얘기 때문에 말이야... 어떤가? 자네들도 이쯤에서 결말을 짓는 거이. 벌써 두 해나 지나지 않았나? 원한은 풀어야지 맺을 것이 아니야. 아이꾸는 남편과 맞지도 않고 시아버지 시어머니의 마음에도 안 든다니까 전에도 말했듯이 아무래도 헤어지는 게 좋을 거야. 나는 아무래도 둘을 잘 아니까 결단을 내리기가 좀 힘들지만, 치따런은 자네들도 알다시피 공평한 판단을 내리시는 분이지 않은가? 그 치따런이 현재 나와 의견이 같아. 다만 치따런은 이렇게 말씀하시더군. 에에, 양쪽 모두 재난이라고 생각하고 스씨네에서 10원을 더 내서 90원으로 하라고 말이야." "..." "90원이야 90원! 자네들이 설령 고소를 해서 황제님에게까지 소송이 올라간다 해도 이렇게 근사하게는 처리가 안 될 거야. 치따런이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한 거란 말이다." 치따런이 실눈을 뜨고 짱무싼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꾸는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걸 느끼고 불안해졌다. 평소에 바닷가 주민들로부터는 인정을 받고도 남는 자신의 아버지가 여기에서는 왜 말 한 마디도 제대로 못하는지 이상할 따름이었다. 그런 겸손은 필요치 않은 게 아닌가? 그녀는 치따런에 대한 설명을 듣고 말뜻은 잘 몰랐지만, 어쨌든 이 사람은 전에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무서운 사람은 아니고, 사실은 너그럽고 좋은 분이 아닐까 하는 기분이 이유 없이 들었다. "치따런께서는 도리를 분별할 줄 아시는 분이기에..." 그녀는 말이 술술 나왔다. "저희들 촌사람들과는 달라서 모든 것을 잘 알고 계십니다. 저는 원한이 있어도 호소할 데가 없으니, 아무쪼록 치따런께 충분한 말씀을 사뢰고 싶은 것입니다. 저는 시집온 뒤로 자나깨나 머리를 계속 숙이고 있었고, 예의를 벗어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랬음에도 저들은 저의 모든 것을 눈엣가시처럼 여겨 왔습니다. 언젠가 족제비가 제일 큰 수탉을 물어 죽었을 때만 해도 제가 문단속을 잊어버렸다고들 했는데,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그 저주 받을 삽살개가 술찌꺼기가 든 먹이를 훔쳐먹으러 와서 닭장 문을 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저 '짐승 같은 자식'은 흑백을 가려 보지도 않고 느닷없이 제 뺨을 때렸습니다." 치따런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흘끗 그녀를 보았다.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 까닭을요. 그거야 치따런께서도 거울 보듯 다 알고 계실 겁니다. 학문을 하시고 도리를 아시는 분이라면 하나에서 열까지 무엇이든 알고 계시니까요. 그 화냥년한테 속아서 저를 내쫓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육례를 갖추어 정식으로 시집왔습니다. 꽃가마를 타고요. 그게 어디 쉬운 일입니까? 저 사람들 눈앞에서 꼭 앙갚음을 하고야 말겠습니다. 관가에 진정서라도 올리겠습니다. 현청에서 안된다면 부청도 있지요." "그런 것은 치따런께서 이미 알고 계신다." 웨이 나리가 얼굴을 들고 말했다. "아이꾸,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득 될 것이 없어. 자네는 언제나 그렇단 말이야. 아버지를 보고 좀 말해 봐. 모든 것을 잘 알고 있다구. 너와 네 형제만 모르고 있는 거야. 관가에 진정서를 내고 부청으로 가 봐라. 관가에선 치따런에게 상담하게끔 되어 있어. 그것이 바로 재판이지. 그러면 자네는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면 목숨을 걸고 해보겠습니다. 누구든 모두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목숨을 걸 것까지는 없다." 이때 치따런이 비로소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직 젊은 몸이다. 사람은 언제든지 웃으면서 살아야지. 웃는 집에 만복이 온다는 말도 있지 않더냐? 그렇지? 나는 한 번에 껑충 10원을 올려 줬다. 이것만 해도 일찍이 없었던 파격이다.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시아버지가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지 뭐. 부청은 물론이고, 상해, 북경, 그리고 외국이라 할지라도 다 그렇다. 정 의심이 나거든 저기 북경의 서양학당에서 공부를 하고 엊그제 온 사람이 있으니 물어 봐라." 그러고는 턱이 뾰족한 청년에게 얼굴을 돌리며 물었다. "어떤가?" "말씀하시는 바가 지당합니다." 턱이 뾰족한 청년은 서둘러 몸가짐을 바르게 잡으면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아이꾸는 자신이 완전히 고립되어 있다는 걸 느꼈다. 아버지는 아무 말을 하지 않고, 형제들은 와 주지도 않았다. 웨이 나리는 원래가 상대편이다. 치따런도 믿을 것이 못 된다. 턱이 뾰족한 청년까지 굶은 빈대처럼 납작 붙어서 장단을 치고 있으니. 그러나 그녀는 머릿속이 멍한 가운데에서도 또다시 최후의 분투를 시도해 보리라 결심한 듯싶었다. "어찌해서 치따런께서도..." 그녀의 눈에는 회의와 실망의 빛이 용솟음쳤다. "네, 그렇지요... 알고 있어요. 우리들 가난한 사람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아버지만 해도 세상의 의리도 인정도 모르고 계시니, 이런 아버지 역시 원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 '짐승 같은 애비'와 '짐승 같은 자식'이 파놓은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없군요. 저것들은 마치 무슨 장례식을 알리러 갈 때처럼 남모르게 뒷문으로 기어들어서 입으로는 말만 번지르르하니..." "치따런, 보십시오!" 아무 말 없이 그녀의 뒤에 서 있던 '짐승 같은 자식'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치따런의 앞에서까지 이 모양입니다. 이러니 집에 있을 때는 닭이나 돼지까지도 기를 못 펴고 지내는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아버지를 가리켜 '짐승 같은 애비', 저를 가리켜서는 '짐승 같은 자식'이라든가 '후레자식'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여자가 화냥년 같으니까 너를 사생아라고 부르는 게 아냐?" 아이꾸는 얼굴을 휙 돌려서 큰 소리로 치따런을 향하여 외쳐댔다. "여러분들이 있는 앞에서 좀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저 작자가 어째서 그럴듯한 말을 해대는지 모르겠네요. 입만 열면 '천박한 종자'니, '네 에미'니 하던 사람이! 저 작자는 그 화냥년과 붙으면서 저의 조상까지 들먹이며 악담을 했습니다. 치따런, 아무쪼록 제 말씀을 들어 주세요. 제가 이런..." 그녀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별안간 치따런이 눈을 치뜨고 둥근 얼굴을 뒤로 젖혔던 것이다. 그와 동시에 그의 가늘고 긴 수염으로 둘러싸인 입에서 엄청나게 크고 길게 끄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리 오너라앗!" 그녀는 순간 심장이 정지한 것이 아닌가 했다. 뒤이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대세는 벌써 기울었고 사태는 이미 바뀐 것 같았다. 발을 헛디뎌 물 속으로 빠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사실은 스스로 잘못한 것을 알고 있었다. 곧 남색 솜옷에 검은 조끼를 입은 사나이가 들어왔다. 그는 치따런 앞에 손을 늘어뜨리고 허리를 곧게 펴고는 나무토막처럼 우뚝 섰다. 객실은 쥐죽은듯이 조용했다. 치따런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무슨 말을 했는지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았다. 다만 그 사나이만은 들었던 모양이었다. 그는 그 명령의 위력이 그의 뼛속까지 꿰뚫은 것처럼 '머리카락이 오싹하고 일어날 것' 같은 동작으로 부르르 몸을 떨더니만 곧 대답했다. "네엣!" 그는 두서너 걸음 뒤로 물러나서 몸을 돌려 달려나갔다. 아이꾸는 드디어 생각도 못할 일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예상할 수도 없고 막을 수도 없는 것이다. 그녀는 지금에야 비로소 치따런의 위력을 알았다. 지금까지 그녀는 모든 것을 오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처럼 방자하고 어처구니없는 짓을 했던 것이다. 몹시 후회가 되었던지 그녀는 저도 모르게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저는 처음부터 치따런의 말씀대로 하려고..." 객실이 쥐죽은듯이 조용했기 때문에 그녀의 혼자말은 실처럼 가냘픈 것이긴 해도 웨이 나리에게는 천둥소리처럼 들렸다. 그는 서둘러 말했다. "그렇지, 그렇고말고! 치따런은 공평한 분이고, 아이꾸는 이해성이 빠르니..." 그는 칭찬을 하면서 짱무싼을 향해 말을 이었다. "라오무, 이렇게 되면 자네도 무슨 할말이 없겠지? 본인은 벌써 승낙했으니까 말야. 그런데 자네 그 결혼증명서인 홍뤼테는 틀림없이 가지고 왔겠지? 내가 그렇게 일러두었으니. 그러면, 쌍방에서 서로 내놓고..." 아이꾸는 아버지가 주머니에 손을 넣어 서류를 꺼내는 것을 보았다. 나무토막 같은 사나이가 들어와서 조그마한 거북 모양의 새까맣고 납작한 것을 치따런에게 건넸다. 아이꾸는 무슨 변고가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당황해서 짱무싼을 쳐다보았다. 그는 벌써 테이블 위에 푸른 꾸러미를 펼쳐 놓고 돈을 꺼내고 있었다. 치따런은 거북의 머리 부분을 빼고 그 몸통 안에서 무언가를 손바닥에 다 조금 쏟았다. 나무토막 같은 사나이가 그 납작한 것을 받아 가지고 사라졌다. 치따런은 곧 한 쪽 손의 손가락을 손바닥에 대고 그것(냄새를 맡는 담배)을 자기 콧속에 넣었다. 콧구멍과 코밑이 금방 노랗게 되었다. 그는 콧등에 주름을 잡고 재채기를 할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짱무싼은 돈을 세고 있었다. 웨이 나리는 아직 세지 않은 돈무더기에서 얼마 가량 덜어서 '짐승 같은 애비'에게 주었다. 그리고 두 장의 홍뤼테를 교환해서 쌍방에게 밀어 주면서 말했다. "자아 넣어 두게나. 라오무, 잘 세란 말야. 이건 장난이 아니니까. 돈에 대한 것은..." "엣취이!" 재채기하고 소리가 났다. 치따런이 재채기를 한 것이라 생각하고 아이꾸는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닌게아니라, 치따런은 입을 벌리고 여전히 콧등에 주름을 잡고 있었다. 한쪽 손의 두 손가락으로 어떤 물건을 쥐고 있었는데, 그것은 옛사람들이 염하고 입관할 때 항문을 막는 용도로 사용한다던 아까의 그 피싸이였다. 그는 그것을 코 언저리에 대고 문지르고 있었다. 한참 만에야 짱무싼은 돈을 다 세었다. 양쪽 모두 홍뤼테를 넣었다. 모든 사람이 다 허리뼈가 퍼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지금까지 긴장했던 표정이 누그러졌다. 객실 전체에 갑자기 온화한 공기가 감돌았다. "이제야 겨우 끝났군." 웨이 나리는 그들 양쪽이 모두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자아, 그러면 이젠 더 볼일이 없지? 축하하네. 축하해! 이제야 문제가 풀렸군. 자네들, 벌써 가려는가? 잠깐 머물게나. 우리 집에서 새해 복주나 한 잔 하고 가게. 좀처럼 얻기 힘든 기회인데 말일세." "저희들은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놓아 두었다가 내년에 마시도록 하지요." 아이꾸가 말했다. "웨이 나리, 감사합니다. 저희들은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아직 볼일이 좀 있어서요..." 짱무싼과 '짐승 같은 애비', '짐승 같은 자식'이 저마다 한 마디씩하고 물러났다. "음, 어째 그러나? 좀 마시고 가도 될 터인데..." 웨이 나리는 맨 나중에 나가는 아이꾸를 쳐다보면서 말을 걸었다. "아닙니다. 이만 실례합니다. 고맙습니다. 웨이 나리." (1925년 11월 6일) 루쉰의 작품 세계 루쉰의 문학은 너무나 위대하기에 여기에 상세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누구보다도 애국심이 강했고, 우국정신이 깊었기에 의술로 국민의 건강을 염려하였고, 문학으로 국민의 왜곡된 정신을 바로 잡으려 하였으며, 조국의 장래를 위해 밤을 지새 가며 청년들을 계도하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루쉰은 10여 년 동안 조국의 문학연구에 몰두하여 "중국소설사략"을 위시하여 방대한 분량의 연구업적을 쌓아 놓았다. 북경에 있는 그의 고거에 가 보면 그의 침실에 초사의 '이소' 문구가 책상 뒤편에 대련으로 씌어져 걸려 있다. "나는 태양신으로 하여금 발걸음을 멈추게 하여 엄자산을 바라보며 가까이 가지 않게 하네. 길이 아득히 멀지라도 나는 오르내리며 찾아가리라." 이것은 자신의 목표를 위하여 어떠한 난관이 있어도 꺾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강인한 의지를 대변해 주는 것이다. 1918년 5월 루쉰은 "신청년"에 첫 단편소설 "광인일기"를 발표하여 5 4운동의 개혁정신을 크게 자극하는 기폭제 역할을 하였다. 이 소설에서 루쉰은 한 사람의 미치광이에 대한 묘사를 통하여 봉건사회의 가족제도와 예의 도덕의 해악을 폭로하였다. 미치광이의 입을 통해 수천 년 동안 이어져온 봉건제도를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책마다 씌어 있는 '인의도덕'의 뒷면에는 사람을 잡아 먹는 이면성이 숨어 있음을 풍유하였다. 봉건적 위계질서가 존재하는 사회에서 이 '인의도덕'이란 허울은 바로 식인도의 화폭을 내면에 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봉건주의에 반대하여 철저하고 비타협적인 전투를 이 소설에서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 소설은 낭만적인 맛도 짙다. 루쉰은 고골리에게서 영향을 받았다고 하지만, 그 독창적인 창작 방법은 고골리의 단계를 월등히 초월해 있다고 할 수 있다. "고독한 사람"의 등장인물 웨이리엔쑤에 대해서 루쉰은 비판적이 태도를 취하고 있다. 리엔쑤는 현실에 대하여 불만을 가지고 있었지만 현실을 개조하려는 용기와 결심이 부족하였으므로, 낡은 사회를 증오하고 복수하려다가 역설적으로 혼탁한 조류에 휩쓸린다. 리엔쑤에게도 한때 두선생의 고문이 되는 출세의 기회가 있었지만 부정적인 의식 때문에 실패의 결과를 보게 된다. 리엔쑤의 실패는 낡은 사회에 대한 개인적 반항은 낡은 사회와 함께 몰락하게 됨을 암시해 준다. "이혼"에 나오는 아이꾸는 웨이 나리를 무시한다. 그러나 치따런에겐 기가 죽어 있다. 치따런은 웨이 나리보다 훨씬 흉악하고 몰골 사나운 사람이기에, 아이꾸는 몸을 벌벌 떨면서 심장이 멈추는 듯한 두려움을 가지고 대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꾸는 농촌여성으로서 강대한 봉건세력에 대항할 힘이 없었다. 중국 국민의 일반적인 모델이라고 할 수 있으며 나름대로 현실 타파의 용기와 의지가 있는 아이꾸는 진정 용기와 의지가 필요한 학식 있고 사리에 밝은 인간들이 먼 산의 불 보듯 외면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그러나 아이꾸는 의지가 억압을 당하는 것은 일시적일 뿐이었다. 지속적이고 원천적인 개혁의 의지가 작가의 본래 의도였기 때문이다. 쉬띠산 작가 세계 1893년 음력 2월 14일 대만의 대남에서 출생. 호는 띠산, 필명은 뤄화성. 1895년 일본에 항거하여 전가족이 복건 용계로 옮김. 1898년 쉬짠윈 선생에게 수학 시작. 1903년 쉬짠윈 선생 사망. 니위성 선생에게 수학 시작. 1905년 광동소오강습소에서 수업. 1906년 수환학당 입학. 1910년 수환학당 졸업. 1911년 장주의 복건성립제2사범학교 교원을 지냄. 음악에 조예를 쌓아서 "여지보"를 지음. 1913년 미얀마로 가서 중화학교 교원을 지냄. 1916년 귀국하여 복건장주화영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음. 1917년 북경으로 가서 연경대학 문학원에 입학. 1918년 대만 여인 린예산과 결혼. 1919년 5 4운동에 적극 참여. 1920년 연경대학을 졸업하고 문학사 학위를 취득. 이어서 연경대학의 신학원에 들어가서 종교를 연구. 10월에 부인이 상해에서 객사. 쩡쩐ㄸ, 찌우치우빠이, 찌우스잉 등과 "신사회순간"을 공동편집. 교육부의 독음통일주비회에 참여. 1921년 마오뚠, 쩡쩐ㄸ, 왕ㅌ짜오, 예샤오ㅉ 등 12인이 '문학연구회'를 창립. 필명을 뤄화성이라 하고 "소설월보"에 "명명조"를 위시하여 "상인의 부인", "황혼후세" 등 단편소설을 발표. 1922년 연경대학 신학원을 졸업하고 신학사 학위 취득. 연경대학 조리와 평민대학 교원에 임명됨. "소설월보"에 "애써 그물치는 거미"를 발표. 1923년 미국 컬럼비아 대학(뉴욕) 철학과에서 종교비교학 연구. "소설월보"에 "바다 같은 세상", "바다 모퉁이의 외로운 별" 발표. 1924년 컬럼비아 대학에서 문학석사 학위 치득. 9월에 영국 옥스퍼드 대학으로 가서 종교사, 인도철학 등 연구. "소설월보"에 시 "나를 보라", "애정의 편지" 등과 소설 "장씨의 철학"을 소개. 1926년 옥스퍼드 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하고 아편전쟁 자료를 정리하여 상무인서관에서 "당충집"을 출판. 10월에 인도대학에 가서 범문을 연구. 1927년 귀국하여 연경대학 조교가 되면서 "불장자목인득"을 연경인득사에서 출판. 1928년 연경대학 문학원 종교학 부교수에 임명됨. "소설월보"에 "비총리의 응접실에서"를 발표. 1929년 쪼쑤오쏭과 결혼. 1930년 연경대학의 교수로 승진. 1931년 "도교사" 상권을 탈고(3년 후 상무인서관에서 출판). 아들 쪼우링성 출생. 1933년 연가를 이용하여 중산대학에 가서 강의 딸 옌찌 출생. 1934년 "문학"에 "사람이 사람을 비난"을 발표. 1935년 연경대학에서 해임되고 홍콩대학에 초빙됨. "300년 간의 중국여성복장"을 "대공보"에 연재. 1936년 홍콩대학 문학원 주임 교수로 임명됨. 1937년 홍콩중영문화협회 주석을 지냄. 1938년 중화전국문예협회 홍콩분회 상무이사로 임명됨. 1939년 미신을 타파하기 위해서 "부기미신의 연구"저술. 1940년 장편 논문 "국수와 국학"을 "대공보"에 발표함(1946년에 상무인서관에서 단행본으로 출간). "철어저사"를 "화교주보"에 전재. 1941년 "도교원류고"를 완성. 과로로 심장병이 발병하여 8월 4일 사망. 춘타오 쉬띠산 이해의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거리에는 가로등이 커졌는데도 불구하고 골목 어귀에서 산매탕(말린 매실을 설탕물에 넣은 여름 음료수)을 파는 사람은 리화고(산동 지방에서 유행하던 노래 형식의 일종)를 부르는 사람처럼 놋그릇을 놀리고 있었다. 파지를 담은 바구니를 등에 진 한 여인이 그의 앞을 지나갔다. 낡은 밀짚모자를 푹 눌러써서 그 여인의 얼굴을 똑똑히 볼 수는 없었지만, 그 여인이 산매탕을 파는 사람과 인사를 나눌 때 그녀가 하얀 치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등에 무거운 짐을 져서 허리도 바로 펴지 못한 채 낙타처럼 힘있게 한걸음 한걸음 그녀의 집을 향하여 걸어갔다. 문에 들어서면 작은 뜰이 있는데 그 여인이 사는 곳은 허름한 두 칸짜리 곁방이었다. 뜰에는 깨진 기와 조각들이 여기저기 널려져 있었다. 문앞에는 심어 놓은 오이와 옥수수가 몇 줄 있었고, 창문 밑에는 만향옥 몇 그루가 있었다. 몇 대의 썩은 연목으로 넝쿨을 받쳤는데 아마 여기가 이 집에서는 제일 앉기 좋은 곳인 것 같았다. 그녀가 집에 도착하자 집안에서 한 사나이가 나와 그녀의 무거운 짐을 내려 주었다. "여보, 오늘은 늦게 돌아왔구만." 그녀는 사나이의 말이 이상스럽다는 듯이 그를 쳐다보았다. "뭐라고요? 당신, 아내 생각에 미친 것 아니에요? 여보라고 부르지 말라고 제가 말했잖아요." 그녀는 집안으로 들어가면서 밀짚모자를 벗어 문 뒤에 걸어 놓고 물독의 물을 떠서 숨도 쉬지 않고 꿀꺽꿀꺽 마시고는 입을 쩍 벌리면서 넝쿨 쪽으로 가서 바구니를 한쪽에 밀어 놓고 앉았다. 그 남자는 류샹까오라 부른다. 그 여인의 나이도 그와 비슷한데, 삼사십 정도이며 본가도 성이 류가이다. 샹까오 외에는 그녀의 이름이 춘타오라는 것을 아무도 모른다. 그녀는 하루 종일 거리의 쓰레기 더미에서 생계를 찾았고, 때론 길을 가면서 "파지로 성냥을 바꾸세요."라고 외쳤기 때문에 이웃사람들은 그녀를 파지 줍는 류아주머니라고 불렀다. 그녀는 하루 종일 뜨거운 햇빛 아래서, 혹은 찬바람을 맞으며 먼지 속에서 일을 하지만, 천성적으로 깨끗한 것을 즐기기 때문에 겨울철이나 여름철이나 매일 집에 돌아오면 몸을 깨끗이 하고 세수를 했다. 목욕물은 샹까오가 항상 준비해 주었다. 샹까오는 시골 고급소학교 졸업생인데, 4년 전에 전쟁으로 온 집안이 흩어졌다. 그는 길에서 피난하던 류춘타오를 만나 몇백 리를 함께 걷고 서로 헤어졌다. 춘타오는 피난민들을 따라 북경에 왔다. 그녀는 총포 골목에 있는 한 서양 부인이 세상사에 전혀 물들지 않은 시골 여자를 보모로 쓰겠다고 하여 그곳에서 일하게 되었다. 서양 부인은 어여쁘게 생긴 그녀를 보고 아주 마음에 들어 했다. 주인은 늘 쇠고기를 먹으며 찐방에도 쇠기름을 발라 먹고 차를 마실 때에도 우유를 넣어 먹고서 누린내를 풍겼는데, 춘타오는 이 냄새를 매우 싫어했다. 하루는 주인이 그녀에게 아이를 데리고 삼패자 공원에 가서 놀라고 했다. 주인집에서 나는 냄새가 범이나 승냥이의 우리에서 나는 냄새와 같다고 생각한 그녀는 그 냄새를 맡는 것이 더욱 싫었다. 그래서 두 달도 못 되어 그 일을 그만두고 나와 버렸다. 시골 여자인 그녀는 일반 가정집에 가서도 습관이 되지 않아 구박을 받다가 견디지 못하고 나왔다. 그러다가 파지를 주어다 성냥을 바꾸는 직업을 선택하여 하루하루의 생활을 겨우 이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 샹까오와 춘타오가 재회한 내력은 아주 간단하다. 탁주에 가서 친척을 찾지 못한 샹까오에게는 벗이 두어 사람 있긴 했지만, 피난을 왔다고 하니 머무는 것을 꺼려 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북경으로 유랑하여 왔다. 남의 소개를 거쳐 그는 골목 어귀에서 산매탕을 파는 오씨를 알게 되었다. 오씨는 그에게 지금 살고 있는 낡은 뜰을 빌려 주며 세를 내놓았다고 말했다. 샹까오는 다른 곳을 찾아야 했다. 샹까오는 할 일이 없어서 오씨를 도와 장부를 정리하고 물건도 팔았다. 샹까오는 여기서 무료로 일을 하면서 밥을 얻어먹었다. 춘타오의 파지를 줍는 생활은 날로 발전하였는데, 원래 있던 집에서는 그곳에 파지를 쌓아 놓지 못하게 하였다. 그래서 춘타오는 덕승문벽 부근에 가서 있을 집을 찾았다. 인기척을 내니 안면이 있는 샹까오가 나왔다. 춘타오는 수월하게 그 집에 세들게 되었고, 샹까오도 함께 있으면서 자신의 일손을 돕게 했다. 그것이 3년 전의 일이다. 샹까오는 글을 조금 알기 때문에 춘타오가 줍거나 바꾸어 온 종이에서 그림이나 장군, 모총장이 쓴 족자며 편지 같은 값진 것들을 골라 내었다. 둘이 힘을 합하니 일이 더 잘되어 갔다. 샹까오가 때때로 춘타오에게 몇 글자씩 가르쳤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것도 별로 없었고 글자를 풀이하는 것은 더욱 어려웠기 때문에 아무런 효과도 보지 못했다. 그들은 이 몇 해 동안 동거를 했기 때문에 생활상태가 원앙새와 같다고 하긴 어려워도 한 쌍의 참새 같다고는 말할 수 있었다. 여담은 접어 두고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춘타오가 집안에 들어오자 샹까오는 물 한 통을 들고 그녀의 뒤를 따라 들어왔다. 샹까오는 유쾌하게 말했다. "여보, 빨리 씻으시오. 난 배가 고프다오. 오늘 저녁엔 우리 좀더 맛있는 것을 먹읍시다. 파를 넣은 밀전병구이가 어떻소? 좋다면 내가 가서 파와 장을 사오겠소." "자꾸 '여보'라고 부르지 마세요. 아시겠어요?" 춘타오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 "내일 천교에 가서 좋은 모자를 하나 사 주겠소. 당신이 모자를 바꾸겠다고 하지 않았소. 대답해 보시오." 샹까오가 다시 말했다. "듣기 싫어요." 춘타오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안 그는 말꼬리를 돌렸다. "도대체 뭘 먹겠소? 말해 보시오. 당신이 먹고 싶은 걸 해줄 테니 말해 보시오." 샹까오는 파 몇 개와 장 한 사발을 사다가 부엌의 상 위에 놓았다. 춘타오는 목욕을 하고 나왔는데, 손에 붉은 혼서를 한 장 들고 있었다. "이것은 또 어느 양반의 혼서인가 보군요. 이번에는 작은 시장 이씨에게 주지 말고 북경식당에 가지고 가면 돈을 더 받을 수 있을 거예요." "이건 우리 것이요. 이것이 없다면, 당신이 나의 아내가 될 수 있겠소? 글을 일이 년이나 가르쳐 주었는데 아직도 자신의 이름조차 모른단 말이오?" "누가 글을 그렇게 많이 아나요? 그리고 자꾸 아내라고 하지 마세요. 듣기 싫으니까. 도대체 이건 누가 쓴 거예요?" "내가 썼소. 아침에 순경이 와서 호구조사를 하면서 요즈음 계엄이 심하니 어느 집에 식구가 몇인지 제대로 보고하라고 했소. 오씨는 우리를 부부간이라고 쓰면 시끄럽지 않을 것이라고 했소. 순경도 동거인이라고 써야지, 일남일녀라고 쓰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다고 했소. 그래서 나는 전에 팔지 않고 두었던 빈 혼서지를 꺼내 적었소. 신미년에 결혼했다고 말이오." "뭐라고요? 신미년? 신미년에 나는 당신을 알지도 못했는데. 장난하지 마세요.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부부라고는 할 수 없어요." 춘타오는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상냥하게 말하고는 남색 바지로 갈아 입었다. 위에는 흰옷을 입었다. 연지를 바르지 않았지만 천연미가 그대로 나타났다. 만약 시집을 가려 한다면 중매쟁이의 뜻대로 스물 서너 살 되는 과부로 치고 적어도 180원은 받을 수 있었다. 그녀는 웃으면서 혼서를 구기고는 말했다. "장난하지 마세요. 혼서가 다 뭐예요? 밀전병구이나 드세요." 그녀는 난로 덮개를 열고 종이 조각을 불에 넣고는 상머리에 가서 밀가루를 반죽하였다. "태울려면 태우라지. 어쨌든 순경이 우리를 부부라고 적었으니 관청에서 나와 조사하면, 내가 혼서는 피난할 때 잃어버렸다고 말하면 그만 아닐까? 오늘부터 나는 당신을 여보라고 부르겠소. 오씨가 승인하고 순경도 승인했으니 당신이 싫어해도 나는 여보라고 부르겠소. 여보! 여보! 내일 내가 모자를 사 주겠소. 반지는 사 주지 못하겠지만." 샹까오가 말했다. "또다시 그렇게 부르면 화를 낼 거예요." "보아하니 당신은 아직도 리마오를 생각하고 있군." 샹까오의 기색이 방금처럼 그렇게 기쁜 것 같지 않았다. 혼자 이렇게 말하면서 춘타오가 반드시 듣기를 바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이미 들어 버렸다. "내가 리마오를 생각한다고요? 하룻밤 부부 인연을 맺고 헤어져 사오년 간 소식이 없는데 무슨 소리예요?" 춘타오는 샹까오에게 자기가 시집가던 날의 정경을 말한 적이 있다. 꽃가마가 문에 들어서고 손님들이 채 앉기도 전에 앞마을에 사는 두 청년이 오더니 대부대가 와서 사방에서 사람을 붙잡아다가 방공호를 판다고 말하는 바람에 모두 놀라 달아났다. 신랑 신부도 즉시 짐을 챙겨서 사람들을 따라 서쪽으로 달아났다. 하루 낮 하루 밤을 같이 갔다. 둘째날 밤이었다. 앞에서 누군가가 외쳤다. "토비(마을의 조직적인 게릴라의 일종)들이 왔다. 빨리 숨으시오!" 그 바람에 사람들은 숨기에 바빠서 서로 돌볼 새가 없었던 것이다. 날이 밝았을 때 보니 그의 남편 리마오 등 십여 명이 보이지 않았다. "리마오는 토비를 따라갔거나 죽은 것 같아요. 이젠 더 이상 말하지 마세요." 춘타오는 다 구운 떡을 상 위에 가져다 놓았고 샹까오는 솥에서 오잇국을 떴다. 둘다 말없이 식사를 했다. 다 먹고 나서는 이전처럼 오이넝쿨 아래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었다. 점점이 흩어져 있는 별들은 오이 잎사이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서늘한 바람에 날려 오는 반딧불의 모습은 마치 별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만향옥은 차차 향기를 뿜어 주위의 악취를 없애 주었다. "만향옥이 정말 향기롭군!" 샹까오는 한 송이를 꺾어서 춘타오의 머리에 꽂아 주었다. "만향옥을 꺾지 마세요. 기생도 아닌데 밤에 꽃을 달겠어요?" 춘타오는 꽃을 빼서 냄새를 맡아 보고는 썩은 연목 위에 놓았다. "어째서 오늘은 늦게 돌아왔소?" 샹까오가 물었다. "오늘은 운이 참 좋았어요. 오후에 내가 돌아오려고 뒷문을 지나다가 거리 청소부가 파지를 한 차 밀고 가는 걸 봤어요. 어디서 밀고 오느냐고 물었더니 신무문에서 내던진 파지라고 하더군요. 그 속에 붉은 것, 노란 것이 가득한 것을 보고 팔지 않겠느냐고 물었더니 그 사람은 마음에 있으면 좀 가져가라고 하더군요. 보세요!" 그녀는 창문 밑에 있는 큰 광주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1원을 주고 한 광주리를 샀지요! 밑지지 않을지는 모르겠지만 내일 더 주워 오겠어요." "관청에서 나온 것은 틀림없소. 학당에서나 외국인 상점에서 가져온건 무겁고 냄새가 나빠서 값이 안 좋을까 걱정이오." "요즘은 물건을 포장해도 서양 신문으로 하기를 좋아하지요. 어디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서양 신문을 보는지. 주우면 무겁기만 하고 얼마 받지도 못하는걸." "장차 서양 일을 하기 위해 누구나 다 서양 신문을 보는 거요." "그들은 서양 일을 하고 우리는 서양 신문을 줍는군요." "앞으로는 아마 무엇이나 다 '양'자를 붙이게 될 거요. 차를 몰아도 양차요, 나귀를 몰아도 양나귀이고, 양낙타도 있게 될 거요." 샹까오는 춘타오를 웃겼다. "남의 말하지 마세요. 만약 당신에게 돈을 준다면 당신도 양서를 읽을 것이고 서양 각시를 얻을 거예요." "하느님은 알고 계실 거요. 나는 돈을 벌지도 못하지만 번다 해도 서양 아내는 얻지 않을 거요. 나에게 돈이 있다면 고향에 돌아가 땅 몇 마지기를 사서 우리 둘이 농사를 짓겠소." 피난하면서 남편을 잃은 춘타오는 고향이란 말을 들어도 솔깃해지지 않았다. "돌아갈 생각을 하나요? 아마 땅을 사기도 전에 돈이고 사람이고 다 없어질 텐테. 먹을 것도 없는 곳엔 난 안갈래요." 춘타오가 말했다. "난 우리 금현의 시골에 가겠단 말이오." "이 세월에 어느 시골이 다르겠어요? 전쟁을 하지 않으면 도적이 들고, 도적이 들지 않으면 일본놈들이 쳐들어 오는데, 누가 가겠어요? 그러지 말고 여기에서 파지나 주웁시다. 지금 집에는 일손을 도울 만한 사람이 부족한데, 만약 사람이 더 있어 집에서 물건을 정리할 수 있다면 당신은 낮에 나가 아주 싸게 파는 물건이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가지 않도록 할 수 있을 거예요." "나는 아직도 한 3년 더 배워야겠어. 장사꾼이 잘못하여 물건을 너무 싸게 팔면, 남을 원망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눈치 빠르지 못한 걸 원망해야지. 이 몇 달 동안 나도 많이 배웠소. 우표도 어떤 것이 값지고 어떤 것이 싸다는 것도 거의 알아낼 수 있소. 유명한 사람의 편지며 수기 중에서 어떤 것이 값이 더 많이 나가는지도 좀 알 만하고. 며칠 전에 파지 더미에서 강유위의 글씨를 발견했는데, 오늘 얼마 받았는지 아시오?" 그는 웃으며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을 내밀면서 말했다. "80문!" "그것 보세요. 매일 파지 더미에서 80문씩 주워 낸다면 괜찮은데 고향에 돌아가 농사일을 하겠다고요? 그것이 호박 쓰고 돼지굴로 들어가는 게 아니고 뭐겠어요?" 춘타오의 흥겨운 소리는 늦은 봄에 우는 꾀꼬리 소리 같았다. 그녀는 계속 말했다. "오늘 이 더미엔 꼭 좋은 게 있을 거예요. 내일도 많을거라면서 아침 일찍 뒷문에 와서 기다리라고 하더군요. 요즈음 관청에서 서류들을 궤에 담아 남방으로 운반하는데 창고에 많은 파지들은 안 쓴다오. 동화문에도 마대 채로 계속 내버리는 것이 많은데, 내일 당신도 가서 알아보세요." 말을 많이 하다 보니 이경이 지났다. 춘타오는 허리를 펴면서 말했다. "오늘은 무척 피곤하군요. 전 자야겠어요." 샹까오는 그녀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갔다. 창문 아래에 놓인 작은 온돌에서 두셋은 잘 수 있었다. 희미한 등불 아래에서 보니 벽 한쪽에 팔선이 새잡이를 하는 그림이 붙어 있고 한쪽에는 담배 회사의 '그래도 그가 좋다'라는 광고 그림이 붙어 있었다. 만약 춘타오가 서부상이거나 다른 상해 기성복장점은 아니더라도, 헌 모자를 벗고 천교에 가서 허름한 치파오를 한 벌 골라 입고서 잔디밭에 앉으면 '그래도 그가 좋다'는 광고 그림 속의 신식 여성과 비슷할 것 같았다. 그래서 샹까오는 그 광고 그림을 춘타오의 초상화라고 늘 말했다. 춘타오는 구들에 올라가 옷을 벗고 이불을 당겨 한쪽에 누웠다. 샹까오는 이전처럼 춘타오의 어깨와 다리를 주물러 주었다. 매일 춘타오는 피곤 끝에 이렇게 미소를 지었다. 작은 석유 등불 아래서 그녀는 차츰 숨을 돌렸다. 그녀는 어슴푸레 잠들면서 나직이 말했다. "샹까오 오빠도 밤일을 하지 말고 주무세요. 내일 또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춘타오가 코를 골기 시작하자 샹까오는 불을 껐다. 날이 어렴풋이 밝아 오자 이 남녀는 또 먹이를 찾으러 떠나는 까마귀처럼 둥지에서 나와 자신들의 일을 찾아 떠났다. 점심포를 쏘자 십찰해의 북소리는 하늘을 진동했다. 춘타오는 뒷문에서 나와 파지 바구니를 지고 서석압교 쪽으로 갔다. 시장 어귀까지 왔을 때 길가에서 갑자기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춘타오! 춘타오!" 춘타오의 아명을 샹까오도 1년 동안 거의 부르지 않았다. 고향을 떠난 후 그녀를 이렇게 부른 사람은 없었다. "춘타오! 그래, 날 모르겠소?" 그녀가 뒤를 돌아보니 길가에 앉아 있는 거지가 보였다. 그의 가련한 소리는 텁수룩한 수염 아래 있는 입에서 나왔다. 그는 두 다리가 끊어져 일어나지를 못했다. 몸에는 낡은 군복을 걸쳤는데 쇠단추는 녹이 다 슬었고 어깨가 다 드러나 있었으며, 머리에는 군모 같지 않은 괴상한 모자를 썼는데 기장이 없었다. 춘타오는 잠자코 쳐다보았다. "춘타오! 나 리마오요! 춘타오가 두어 걸음 다가서니 그 사람의 먼지 묻은 얼굴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 텁수룩한 수염에 숨어 들었다. 황당해진 그녀는 한나절이나 그냥 서 있다가 겨우 말을 건넸다. "리마오 오빠, 여기서 동냥질을 하나요? 다리는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죠?" "어찌 이루 다 말하겠소. 춘타오는 언제부터 여기에 와 있었소? 팔고 있는 건 뭐요?" "팔기는요? 난 파지를 주워요. 우리 집에 가서 이야기합시다." 춘타오는 인력거를 불러 삯을 낸 후에 리마오를 부축해서 태우고 바구니를 인력거에 올려 놓고는 뒤에서 밀었다. 덕승문담벽 부근에 이르자 인력거꾼은 리마오를 부축해서 내렸다. 골목 어귀에 들어서니 오씨가 놋그릇을 두드리며 물었다. "류아주머니, 일찍 들어오시는 걸 보니 장사가 잘된 것 같군요!" "고향에서 아는 분이 왔어요." 그녀는 짧게 대답하였다. 리마오는 작은 곰처럼 두 손을 땅에 짚고 다리를 끌며 기었다. 춘타오는 호주머니에서 열쇠를 끄집어 내어 문을 열고 리마오를 이끌면서 집으로 들어갔다. 춘타오는 샹까오의 옷을 입고 샹까오가 매일 하는 것처럼 우물가에 나가 물 두 통을 길어다가 작은 욕조에 쏟아 붓고 리마오가 목욕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고는 또 대야에 물을 붓고 세수를 하게 하고 나서 그를 부축해서 구들에 앉히고, 그녀는 부엌에서 몸을 씻었다. "춘타오, 집안을 깨끗이 거두었구만. 혼자 있소?" "친구가 한 명 있어요." 춘타오는 서슴없이 얘기했다. "장사를 하고 있소?" "파지 줍는 일을 한다고 말하지 않았나요?" "그런 것은 묻지 마시고, 당신 얘기나 좀 해보세요." 춘타오는 목욕물을 내버리고 머리를 빗으면서 방안에 들어와 리마오와 마주앉았다. 리마오는 자신의 과거를 말하기 시작했다. "춘타오, 아이구 말도 마시오. 그 동안의 일을 일일이 다 말할 수 없으니, 대충 이야기 하지. 그날 밤 토비에게 붙잡혀 간 다음 당신을 찾지 못하게 되니 어찌나 괘씸한지 그놈들의 총을 빼앗아 두 놈을 쏴 죽이고 필사적으로 도망쳤소. 심양에 오니 곧바로 변방군에서 군대 모집을 하기에 참가를 했지. 3년 동안 군대에 있으면서 집 소식을 계속해서 알아보았지만 오는 사람마다 우리 마을은 벽돌 천지로 변했다고 하더군. 우리 땅문서는 누가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소. 도망쳐 나올 때 그걸 안가지고 왔거든. 휴가를 받아 고향에 가보려 해도 부대에서 휴가를 받으면 몇 원 되지도 않는 봉급마저 잃어버리게 되니까 가 보지도 못했소. 그래서 군대에서 매달 주는 봉급이나 받으며 행여나 승급되기를 바랐지. 운이 좋은 탓인지, 작년 초에 연대의 병사들 가운데서 과녁을 연속 아홉번 명중하는 자는 매달 봉급을 곱절로 주고 또 차사로 승급시키라는 연대장의 명령이 있었소. 한 개의 연대에서 네 발을 명중시키는 놈은 하나도 없었소. 하지만 나는 아홉 번 명중하고 나머지 한 발도 마저 쏘았지. 나는 본때를 보이느라고 낯을 돌리고 허리를 굽혀 머리를 땅으로 향하게 하고는 바짓가랑이 사이로 쏘았는데 바로 명중했지. 연대장이 나를 부르더군. 칭찬을 들을 줄 알았는데 웬걸 그 개 같은 놈이 눈깔을 부라리며 나를 토비라고 하면서 총살하라고 하지 않겠소! 내가 토비가 아니고서는 사격술이 어떻게 그렇게 좋을 수 있겠는냐는 것이었지. 나의 소대장, 대대장들이 빌며 내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보증을 서서 다행히 총살을 면했소. 하지만 나를 정병에서 지워 버리고 부병도 시키지 않았소. 그놈의 말인즉 군관질을 하자면 인심을 잃을 때가 있게 마련인데 만약 전선에서 싸움을 감독할 때 부대 안에 나처럼 사격술이 좋은 사람이 있어서 뒤에서 한 방 쏘면, 글쎄 전사한 것으로 치기는 하겠지만 원수들의 손에 죽는 것만 못하다는 것이었소. 다들 말이 없다가 나더러 군대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라고 권하더군." 내가 제명된 후에 일본놈들이 심양을 점령했는데, 그 개 같은 연대장은 자기 산하의 부대를 데리고 먼저 투항했다더구만. 난 이 말을 듣고 어찌나 화가 치미는지 그놈을 찾아가려고까지 했소. 나는 의용군에 참가하여 해성 부근에서 몇 달 싸우다가 관내로 퇴각했소. 지난달에 평곡동 북쪽에서 싸웠는데, 그때 나는 보초를 서다가 적을 만나 두 다리를 다치게 되었소. 그 당시에는 걸을 수 있어 큰 돌 밑에 숨었다가 몇 놈을 쏴 죽였지. 몸을 지탱할 수 없게 되자 총을 버리고 밭머리 오솔길까지 기어 나와 하루 이틀 기다렸지만 적십자회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소. 상처는 점점 심해져서 걷지도 못하는데다 먹을 것도 없어서 그저 죽기만을 기다렸소. 때마침 지나가는 마차가 있어 마부가 나를 한 군의 장막으로 실어 갔지. 그들은 나를 보지도 않고 자동차에 실어 후방 병원에 보냈소. 다친 지 사흘 만이었지. 의사는 상처 난 부위를 헤쳐 보더니 썩었으니 베어 버려야 한다고 했소. 그리하여 병원에서 한 달쯤 치료를 받고 낫기는 나았는데, 두 다리를 잃게 되었지. 나는 이곳에 친척 하나 없고, 고향에도 돌아갈 처지가 못 되고, 돌아간다 해도 다리가 없으니 어떻게 농사를 짓겠소? 병원에서 나를 받아 두고 일거리를 달라고 하니, 의사는 병원에서는 치료만 할 뿐 그런 건 모른다고 했소. 게다가 이곳엔 불구자 요양원마저 없어서 할 수 없이 밥 동냥을 사흘째 하고 있소. 요즈음 나는 이렇게는 못살겠으니 목을 매달아서라도 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소." 그의 말을 귀담아듣고 있던 춘타오의 눈시울이 어느새 젖어 들었다. 춘타오는 침묵 속에 잠겼다. 리마오는 손으로 이마의 땀을 닦고 잠깐 쉬었다. "춘타오는 그 동안 어떻게 지냈소? 이 자그마한 곳이 우리 고향처럼 넓지는 못해도 그리 고생스러운 것 같지는 않구만." "고생스러운 것 같지 않다구요? 고생스러워도 살아가야지요. 염라대왕 앞이라고 웃지 못하나요? 이 몇 해 동안 나는 성이 류가인 사람과 함께 파지를 주워 성냥을 바꾸어 오는 생활을 하고 있답니다. 우리 둘은 네 것 내 것 가리지 않으면서 겨우 살아가지요." "그 류가라는 사람과 이 방에 같이 있단 말이오?" "그래요. 우린 이 구들에서 자요." 춘타오는 미리 생각해 두었다는 듯이 조금도 서슴없이 말했다. "그럼 그에게 시집갔단 말이오?" "아니, 그저 같이 있을 뿐이지요." "그렇다면 춘타오는 아직 나의 아내인가?" "아니, 난 누구의 아내도 아니에요." 리마오의 부권의식은 충격을 받았다. 그는 더 이상 할말을 생각하지 못했다. 두 눈은 바닥을 응시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무엇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었고 자기의 아내를 바라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에 그는 나직이 말했다. "그렇다면 남들이 나를 왕바(자기 아내를 남에게 뺏긴 남자)라고 비웃을 거요." "왕바?" 그의 말을 듣고 춘타오는 낯을 붉혔지만 태도는 여전히 온화했다. 그녀는 말을 이었다. "돈 있고 권세 있는 자들이나 그런 걸 두려워하죠. 당신 같은 사람을 누가 알아요? 살아서도 죽어서도 이름을 남기지 못하는데 '왕바'고 아니고가 무슨 상관이 있나요? 지금의 나는 나일 뿐이고, 내가 하는 일은 당신을 부끄럽게 하지 않아요." "우리는 그래도 부부간이오. 속담에 일야부처 백일은인이라..." "백일은인이고 뭐고 난 몰라요." 춘타오는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백일은인이라 치더라고 열 몇 개도 넘는 백 일이 지났지요. 사오 년 동안 피차 행방을 모르고 있었는데, 당신도 여기서 나를 만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거예요. 나는 여기서 홀로 살아야 했고 남의 도움도 받아야 했어요. 류가와 나는 여기서 몇 해 동안 함께 살았으니 은애는 당신과의 은애보다 더 깊지요. 내 오늘 당신을 모셔 온 것은 나의 아버지와 당신 아버지 사이의 친분을 생각해서였어요. 당신이 나를 아내라 한다고 해도 난 동의할 수 없어요. 재판을 한다 해도 당신이 이길 것 같지는 않군요." 리마오는 허리춤에서 무엇을 꺼내려다가 멈추고 춘타오를 쳐다보며 손으로 돗자리를 내려 짚었다. 리마오는 말이 없었고 춘타오는 울었다. 이렇게 시간은 조용히 삼사분 흘렀다. "그렇게 하지. 춘타오 당신의 생각대로 하시오. 내가 이 모양이 되었으니 당신이 나를 따르겠다 해도 나는 당신을 먹여 살릴 수 없소." 리마오는 이와 같이 분명하게 말했다. "당신이 불구자가 되었다 하여 싫은 것도 아니지만, 그를 보내는 것도 아쉽지요. 우리 모두 여기에서 지내면서 누가 누구를 먹여 살린다고 하지 않는 것이 어때요?" 춘타오도 자기 마음속의 말을 했다. 리마오의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이야기를 하느라고 무얼 드시겠는가도 묻지 않았군요. 배가 고프시지요?" "있는 대로 먹지. 어제 저녁부터 물만 마시고 굶었소." "내가 사오지요." 춘타오가 문을 나서는데 샹까오가 흥겨이 뜰에 들어오고 있었다. 두 사람은 오이 넝쿨 아래서 마주쳤다. "무엇이 그리 기쁘죠? 오늘은 왜 이리 일찍 돌아왔어요?" "오늘은 장사가 매우 잘되었소! 어제 당신이 지고 온 바구니를 아침에 헤쳐 보니 명조 고려왕상과 관계가 있는 서류가 한 꾸러미 있었는데, 한 부에 못 받아도 50원은 받을 수 있을 것 같더구만! 지금 열 부가 있어. 그 속에 또 단명전도장이 찍힌 종이 두 장이 있었는데, 전문가가 송가의 것이라고 하면서 한 장에 60원을 주겠다고 하더군. 나는 감히 팔지 못했소, 싸게 팔아 넘길까 두려워서 먼저 당신에게 보이려고 가져왔소. 여기 있소. 보시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낡은 남색 보따리를 풀어 그 서류와 낡은 종이를 내려놓았다. "이것이 단명전도장이오." 그는 종이에 찍힌 도장을 가리켰다. "이 도장만 없다면 이게 뭐 값이 나가겠소? 어째서 관청에서 일을 보는 나리들은 나처럼 볼 줄 모를까?" 춘타오도 보았지만 그 종이의 어디에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 알지 못했다. "볼 줄 아오? 아무나 볼 줄 안다면 우리가 그렇게 싸게 사 올 수 있겠소?" 샹까오는 종이를 되받아 보자기에 쌌다. 썅까오는 춘타오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여보, 아내..." 춘타오는 흘겨보며 말했다. "아내라고 부르지 말래도..." 샹까오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말했다. "당신도 일찍 들어온 걸 보니 장사가 잘된 것 같구만." "아침에 또 어제 것과 같은 걸 한 바구니 샀어요." "아직 많다고 하지 않았소?" "그 사람들이 시장에 가지고 가서 시골 사람들에게 땅콩 봉지로 쓰게 팔았대요!" "괜찮소. 어쨌든 우리는 오늘 처음으로 30원의 장사를 했소. 여보, 우리 모처럼 오후에 둘이 다 집에 있는데 십찰해에 가서 천천히 거니는 게 어때?" 샹까오는 집안에 들어와 보따리를 상 위에 놓았다. 춘타오가 따라 들어오면서 말했다. "손님이 왔는데..." 그러고는 문휘장을 열고 샹까오에게 들어가라고 했다. 샹까오가 들어가니 춘타오도 들어갔다. "이분이 나의 본남편이에요." 춘타오는 샹까오에게 이 말을 하고, 또 샹까오를 리마오에게 소개했다. "이분이 지금 나와 함께 지내는 벗이에요." 두 사나이의 눈이 마주쳤다. 만약 그들의 눈동자의 거리가 같다면 그들의 시선은 평행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피차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창턱에 앉은 두 마리의 파리조차도 쥐죽은듯이 조용했다. 이렇게 시간은 또 일이 분 조용히 흘렀다. "성씨는?" 샹가오는 뻔히 알면서도 물었다. 그리고 서로 말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난 먹을 걸 좀 사오겠어요." 춘타오가 샹까오를 보고 말했다. "당신도 아직 안 드셨겠지요? 구운 떡이면 되겠어요!" "난 먹었소. 당신은 집에 있으시오. 내가 사오지!" 춘타오는 샹까오를 구들에 밀어 앉히며 말했다. "손님과 같이 이야기하세요." 그러고는 샹까오에게 웃는 얼굴을 보이며 나갔다. 방안에는 두 사내만 남았다. 이러한 경우에 만약 처음 만나는 사람들로서 친절하지 않았다면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의 싸움이 벌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친절하게 대했다. 그것은 리마오가 다리가 없어서 싸우지 못하기 때문은 아니었다. 샹까오는 사오 년 동안 붓대만 쥔 사람이므로 마음만 먹으면 리마오가 얼마든지 그를 힘으로 깔아 죽일 수도 있었다. 만약 리마오에게 총이 있다면 더욱 간단할 것이다. 손가락만 조금 움직이면 샹까오는 죽을 테니까. 샹까오는 리마오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리마오의 아버지가 춘타오 아버지의 집에서 일을 하면서 나귀도 몰곤 했다는 것, 리마오는 총을 잘 쏘았는데 춘타오 아버지는 리마오가 군대에 갈까 봐 자기 딸을 그에게 허락했다는 것, 그리고 딸을 그에게 허락하게 된 것은 리마오더러 마을 사람들을 보호하게 하기 위해서였다는 것 등을 알게 되었다. 샹까오는 이런 말을 춘타오게서 들은 적이 없었다. 그는 또 방금 춘타오가 한 말을 다시 한 번 떠올리며 이야기 중심을 차츰 그들 둘에게 직접 관계되는 문제로 이끌어 갔다. "당신네 부부가 모이게 되었으니 내가 당연히 물러서야겠지요." 샹까오가 원하지도 않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니오. 나는 그녀와 헤어진 지도 오래되었고 그녀를 먹여 살릴 수도 없소. 당신네들이 이미 몇 해 동안 같이 살았는데 내가 왜 갈라놓겠소? 나는 불구자 요양원에 가면 되오. 가까운 곳에 불구자 요양원이 있는데, 아는 사람만 있다면 들어갈 수 있다오." 이 말은 샹까오를 의아스럽게 했다. 샹까오는 리마오가 군대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이런 의협심이 남아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속으로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겉으로는 양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은 예의상의 교활성이라는 것을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다 알 것이다. "이런 도리가 어디 있소? 나는 남의 아내를 차지했다는 죄명를 쓰고 싶지 않소. 당신도 자기 아내가 다른 사람과 살기를 원치 않을 것이오." 샹까오가 말했다. "내가 이혼서를 한 장 춘타오에게 써주거나 매매계약서를 당신에게 써주면 되오." 리마오는 웃으며 진심으로 말했다 "이혼서? 춘타오게 무슨 잘못이 있다구 이혼은 안 돼요. 나는 그녀를 망신시킬 수 없소. 또 나에게 무슨 돈이 있어 사겠소? 나의 돈은 모두 그녀의 것이오." "난 돈을 원하지 않소." "그럼 뭘 원하시오?" "난 아무것도 필요치 않소." "그럼 어째서 매매계약서를 쓰겠다는 것이오?" "말로 해선 증거가 없고 후에 후회하면 좋지 않기 때문이오. 우린 먼저 소인질을 하고 후에 군자질을 합시다." 그때 춘타오가 구운 떡을 사가지고 들어왔다. 두 사람이 의좋게 말하는 것을 본 그녀는 매우 기뻐하며 말했다. "요즈음 나는 한 사람 더 있어 일손을 도왔으면 했는데 마침 리마오 오빠가 왔어요. 그는 걸을 수 없으니 집에서 종이를 줍는 거예요. 샹까오 오빠는 밖에 나가 물건을 팔고 나는 계속 그 일을 하고 우리 셋이 회사를 꾸려 나갑시다." 리마오는 배가 고픈 나머지 구운 떡을 권할 새도 없이 입에 집어 넣느라고 말할 사이도 없었다. "두 남자와 한 여자가 회사를 꾸려? 본전은 다 당신의 것이고?" 샹까오가 물었다. "싫단 말이에요?" "아니, 아니오." 샹까오는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하지 못했다. "내가 뭘 하겠소? 하루 종일 집에 앉아 뭘 할 수 있겠소?" 리마오는 여전히 찬성할 수가 없었다. 그는 샹까오의 마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다들 조급해 마세요. 저에게 방법이 있어요." 샹까오는 이 말을 듣고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고는 침을 뱉었다. 미라오는 계속 떡을 먹으면서 춘타오를 바라보았다. 춘타오는 마음속으로 리마오에게 집에서 오래 된 우표와 담뱃갑의 그림을 줍게 하기로 결정했다. 그 일은 손과 눈만 있으면 할 수 있었다. 춘타오가 생각하기에 만약 백 몇십 장의 담뱃갑 그림을 파지 더미에서 건져 낸다면 리마오의 매달 식비는 나오는 것이었다. 좋은 우표와 보기 드문 우표를 매일 두서너 장씩 주워도 괜찮다. 이 도시에서는 매일 양담배가 일만 갑쯤 팔리는데 그 백분의 일 정도 주워 오는 것은 춘타오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샹까오에게는 명인들의 서신을 골라내거나 값을 많이 받을 수 있는 것을 감정하도록 했는데 그는 전문가라고 말할 수는 없어도 지도를 받을 필요는 없었다. 제일 힘드는 일은 춘타오의 몫이었는데, 춘타오는 지금까지 비가 많이 오는 때를 제외하고는 광풍이 부는 날이나 무더운 날에도 밖에 나가 파지를 주웠다. 더욱이 날씨가 좋지 못할 때에는 남들이 잘 나가지 않으므로 더욱 억척스럽게 나가 일을 했다. 2시쯤 춘타오는 되자 부엌에 나가 낡은 밀짚모자를 쓰고는 집안에 머리를 들이밀고 샹까오에게 말했다 "나는 관청에서 물건이 나왔는지 가 봐야겠어요. 집에서 저 사람이나 돌보세요. 저녁에 돌아와 의논하지요." 샹까오는 그녀를 만류할 수 없어 그냥 내버려두었다. 여러 날을 침묵 속에서 지냈다. 그런데 두 남자와 한 여자가 한 구들에서 그냥 잔다는 것도 말이 아니었다. 다부제는 널리 유행하지 못했다. 그 중의 한 가지 이유는 일반 사람들이 아직 원시적 부권과부권 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것이 풍속습관과 도덕관념을 이루었다. 사실대로 말해서 사회에서 남에게 의뢰하거나 남을 약탈하는 사람들만이 이른바 풍속습관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능력에 의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눈에는 그것이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춘타오와 같은 사람은 부인도 아니요, 아가씨도 아니다. 그녀는 외교대청에 가서 무도회에 참가할 리도 없고 장엄한 의식에서 주연을 할 기회도 없는 것이다. 그녀의 행실을 비평하거나 알아보는 사람도 없고, 설사 있다 해도 절절한 감도 없다. 그녀를 감독하는 사람은 순경뿐인데 순경은 대처하기 어렵지 않다. 두 남성은 어떤가? 샤까오는 공부를 좀 했기 때문에 성인들의 도리를 대략 알지만 명분의 관념을 제하고는 춘타오와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그의 생활은 춘타오와 동거하면서부터 완전히 춘타오에게 의거했다. 춘타오의 말은 그의 귀에 들어가는 이로운 비타민이었으므로 들어야 했다. 춘타오가 그에게 질투를 하지 말라고 하자 그는 질투의 종자마저 없애 버렸다. 리마오는 어떤가? 춘타오와 샹까오가 자기를 받아들여 있게 하면 있고, 만일 자기를 친척으로 대해 주면 만족하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군대질을 하는 사람은 처자 한둘을 잃어버리게 마련이다. 그의 곤란도 명분상의 것일 뿐이었다. 샹까오에게 질투는 없다 해도 이 밖의 여러 가지 불안이 이 두 사나이 사이에서 오가고 있었다. 무더운 날씨는 계속되었지만, 탕신이나 북대하에 가서 피서할 형편이 못 되는 춘타오와 샹까오는 매일 밖에 나가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 했다. 집에 있으면서 이 일에 손이 갓 익은 리마오는 어느 것은 만류당이나 천녕사에 보내어 종이를 만들어야 하고, 어떤 것은 남겼다가 샹까오에게 감정시켜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춘타오가 집에 들어오면 이전처럼 샹까오가 그녀의 시중을 했다. 그때는 퍽 늦은 때였다. 부엌에서 모깃불을 피우는 냄새가 나기에 춘타오는 오이 넝쿨 아래에 안자 있는 샹까오를 보고 물었다. "우리가 언제 모깃불을 피웠던가요? 조심하지 않으면 집을 태워요." 샹까오는 대답이 없었다. 리마오가 곧 말했다. "그건 모기를 쫓자는 게 아니라 나쁜 냄새를 없애자는 거요. 내가 류형에게 피우라 한 거요. 나는 밖에서 자겠소. 방안이 너무 더워 세 사람이 자려니 편안치 않소." "이 상 위에 놓인 혼서는 누구의 것인가요?" 춘타오는 그것을 들고 보았다. "오늘 우리는 서로 의논하여 춘타오 당신을 류형에게 돌리기로 했소. 그것은 내가 류형에게 써준 계약서요." 리마오가 방안에서 말했다. "옳지, 당신들이 나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의논했다 이거죠! 그렇지만 나는 당신들의 뜻대로 움직일 수 없어요." 춘타오는 혼서를 가지고 집안에 들어가 리마오에게 물었다. "이것은 당신의 생각인가요?" "우리 둘의 생각이요. 그렇지 않고서는 나도 괴롭고, 저 류형도 괴롭소." "아무리 말해도 그 말뿐이군요. 당신네들은 남편이니 아내니 하는 생각밖에는 없군요." 춘타오는 붉은 혼서를 박박 찢어 버렸다. "당신은 날 얼마에 팔았나요?" "몇십 원이라 쓰고 예단으로 했소. 아내를 거저 주어선 안 되니깐." "아내를 팔면 마음이 편안한가요?" 춘타오는 샹까오를 보고 말했다. "당신은 지금 돈이 있으니 아내를 살 수 있어요. 만약 당신이 돈을 조금 더 번다면..." "그렇게 말하지 마오." 샹까오는 춘타오의 말을 가로챘다. "춘타오는 아직 모르오. 요새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나를 비웃소." "뭐라고 비웃던가요?" "내가..." 샹까오는 또 말을 못했다. 사실 샹까오에게는 별다른 생각이 없어 춘타오가 하자는 대로 거의 다했다. 샹까오는 자신도 어떤 힘이 이렇게 해주는지 모르고 있다. 춘타오가 없을 때 샹까오는 이런 일은 어떻게 하고 저런 일은 어떻게 해야겠는가를 생각했다가도 춘타오를 보기만 하면 서태후를 만난 것처럼 모두 그녀의 듯에 따랐다. "그렇지, 글을 좀 읽는 사람이 다르긴 다르구요. 남들이 욕하고 비웃는 것이 무서워서요?" 자고로 진정으로 민중을 통치하는 것은 성인의 교훈이 아니라 사람을 때리는 채찍과 사람을 욕하는 혀인 것 같다. 풍속습관이란 때리고 욕하는 데서 유지된다. 그러나 춘타오는 마음속에 남이 때리면 나도 때리고, 다른 사람들이 욕을 하면 나도 욕한다는 태도를 가지고 있는 듯했다. 그녀는 약자가 아니며, 남을 때리거나 욕하지도 않고, 남에게 욕을 듣거나 맞지도 않는다. 샹까오를 타이르는 그녀의 말을 들으면 알 수 있다. "만약 다른 사람이 당신을 비웃으면 당신은 왜 그를 때리지 못해요? 뭐가 두려워요? 우리의 일에 그 누구도 상관할 수 없어요." 샹까오는 말이 없었다. "이후엔 이 일을 다시는 거론하지 마세요. 우리 세 사람이 이렇게 살아가면 안 되나요?" 방안은 쥐죽은듯 고요했다. 저녁을 먹고 샹까오와 춘타오는 오이 넝쿨 밑에 앉아 있었지만 전처럼 재미있게 말하지 않았고 장사에 관한 말조차도 하지 않았다. 리마오는 춘타오를 방안에 불러다가 샹까오와 같이 살라고 권고했다. 그는 어째서 남자들의 마음을 모르느냐고 말했다. 누구나 남의 아내를 빼앗았다는 말을 듣기 싫어한다고 했다. 리마오는 허리춤에서 이미 암갈색으로 변해 버린 혼서를 꺼내어서 춘타오에게 주며 말했다. "이것은 우리 혼서요. 그날 밤 도망쳐 나올 때 내가 신주를 모셔 두는 선반에서 꺼내어 품에 품고 있었소. 지금 당신이 이걸 가져가면 우리는 부부관계를 끊게 되는 거요." 혼서를 받은 춘타오는 말없이 구들 위의 헌 돗자리만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춘타오는 불구가 된 리마오의 곁에 다가앉으며 말했다. "리마오 오빠, 난 이것을 원하지 않아요. 당신이 거두어 주세요. 나는 여전히 당신의 아내예요. 일야부처 백일은인이라. 나는 비도덕적인 일을 못하겠어요. 당신이 걷지 못하고 큰일을 못한다 해서 싫다면 내가 사람인가요?" 춘타오는 혼서를 구들 위에 놓았다. 춘타오의 말을 들은 리마오는 아주 감동되었다. 그는 춘타오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그를 아주 좋아하고 있소. 그냥 샹까오와 같이 지내는 게 좋겠소. 돈이 있거들랑 나를 고향에 보내거나 불구자 요양원에 보내면 되오." 춘타오가 나직히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몇 해 동안 나는 저 사람과 부부처럼 살아왔는데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고 일마다 마음대로 되었기에 보내기는 아쉬워요. 저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불러다가 의논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녀가 창문에 대고 외쳤다. "샹까오 오빠! 오라버니!" 대답이 없었다. 나가 보니 샹까오가 없었다. 샹까오가 저녁에 나가긴 처음이었다. 춘타오는 멍하니 서 있다가 집안에 대고 말했다. "내가 찾아보겠어요." 춘타오의 생각에 샹까오는 먼 곳으로 간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골목 어귀에 나가 오씨에게 물으니 큰길 쪽으로 나갔다고 말했다. 그녀는 시장 부근에 가 보았지만 찾지 못했다. 사람이란 잃어버리기 쉽다. 눈에 뛰지 않으면 아득하여 찾을 길이 없는 법이다. 1시가 거의 되어 그녀는 낙심하고 집에 돌아왔다. 집안의 석유등불은 꺼져 있었다. "자나요? 샹까오 오빠 돌아왔나요?" 그녀가 집에 들어가 성냥을 꺼내어 불을 켜니 허리띠로 창문살에 목을 맨 리마오가 보였다. 춘타오는 공포에 휩싸였지만 뛰어 올라가 그를 풀어 놓을 담량이 있었다. 다행히 시간이 오래 지나지 않아 다른 사람들을 놀라게 할 필요는 없었다. 그녀는 그를 부드럽게 만져 주었다. 그는 차츰 소생하였다. 자살하여 남의 일을 성사시키는 것은 협상의 정신이다. 만약 리마오의 다리가 예전처럼 성하다면 리마오도 이런 수단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리마오는 어쨌든 자신은 희망이 별로 없으니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춘타오가 잘 지내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춘타오는 리마오에 대한 사랑은 없었지만 도리를 가지고 있었다. 춘타오는 날이 밝을 때까지 많은 말을 하면서 위로를 해주었다. 리마오가 잠이 들었다. 춘타오가 마당에 내려서니 종이 재와 타다 남은 종이가 보였다. 춘타오는 그것이 리마오가 자기에게 주었던 혼서란 것을 알고 넋을 잃고 보고만 있었다. 그날 춘타오는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저녁에는 구들에 앉아 리마오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왜 우세요?" 눈물을 줄줄 흘리는 리마오를 보고 춘타오가 물었다. "미안하게 됐소. 내가 뭘하러 왔는지..." "아무도 당신이 왔다고 원망하지 않아요." "이제 샹까오는 가 버렸어. 또 나는 다리가 없으니..." "그런 생각 마세요. 그는 돌아올 거예요." "나도 그가 돌아오리라 믿소." 또 하루가 지났다. 춘타오는 오이 두 개를 뜯어다가 반찬을 만들고 떡을 구워 리마오와 같이 먹었다. 춘타오는 예전처럼 헌 모자를 쓰고 바구니를 짊어졌다. "오늘은 당신 기분도 그다지 좋지 못한데 나가지 마시오." 리마오가 창문을 사이에 두고 말했다. "집에 앉아 있자니 갑갑증이 나서..." 춘타오는 천천히 발걸음을 문 밖으로 옮겼다. 일하는 것은 그녀의 천성이어서 속은 답답했지만 일을 해야 했다. 중국 여성은 생활이나 할 줄 알지 애정은 다듬을 줄 모르며, 생활의 발전에 대해서는 주의를 기울이지만 애정의 발전에 대해서는 그저 몽매하게 마음속에서 끓이고만 있는 것 같다. 물론 사랑이란 감각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만 생활이란 실질적인 것이다. 온종일 비단장막 속에서나 고요한 수풀 속에 앉아 사랑을 속삭이는 것은 황후의 배에서나 대통령의 배에서 날라온 지식이다. 시대의 조류를 따르는 여성도 아니며 달마의 제자도 아닌 춘타오는 이런 것을 모르고 다만 갑갑증만 날 뿐이었다. 한 골목을 지나 또 한 골목, 한없는 먼지와 끝없는 길이 침울 속에 잠긴 이 여인을 향해 몰려왔다. "파지로 성냥을 바꾸세요."라고 외치면서도 때로는 길가에 쌓아 놓은 낡은 신문도 줍지 않았다. 또 어떤 때는 성냥 두 갑을 줘야 하는데 다섯 갑을 주기도 했다. 흐리멍덩하게 하루를 보낸 그녀는 천천히 집으로 돌아왔다. '호주 류샹까오, 처 류씨'라고 새로 붙인 호구대조증을 쳐다보는 그녀의 가슴은 찢어지는 듯했다. 그녀가 뜰에 들어서자 샹까오가 집안에서 나왔다. 그녀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돌아왔군요..." 그녀는 겨우 한 마디를 할 뿐 나머지 말은 눈물로 이어나갔다. "나는 당신을 떠나지 못하겠소. 나의 일은 모두 당신이 다 이루어 왔소. 당신이 나의 도움을 바라는 걸 알기 때문에 무정할 수 없었소." 사실 그는 이틀 동안 정처 없이 덜었다. 걸을 때 그는 자기의 발에 무거운 쇠사슬이 채워져 있고 쇠사슬의 끝이 춘타오의 손에 채워진 것만 같았다. 게다가 가는 곳마다 '그래도 그가 좋다'라는 광고가 보여서 마음은 더욱 혼란스러웠고 배고픈 줄도 몰랐다. "내가 이미 류형에게 다 말했소. 그가 호주이고 나는 동거라고." 리마오가 말했다. 샹까오는 이전과 같이 그녀의 짐을 내리고 얼굴의 땀을 닦아 주면서 말했다. "만약 고향에 돌아간다면 저 사람이 호주를 하고 나는 동거하지. 당신은 우리의 아내요." 그녀는 별 말 없이 집안에 들어가 모자와 옷을 벗고 매일 하는 샤워를 했다. 오이 넝쿨 밑에서 또 이야기 소리가 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관청에서 나온 파지들을 팔아 버린 다음 샹까오가 시장에서 난전을 벌이는 일과 좀더 큰 집으로 옮길 것을 의논하였다. 집안의 희끄무레한 불은 밖에서 날아 들어온 왕귀뚜라미에 의해 꺼져 버렸다. 밤이 깊으니 리마오는 잠들었다. "우리도 자지요." 춘타오의 말이다. "당신이 먼저 누워요. 좀 있다가 내가 다리를 주물러 주지." "괜찮아요. 오늘은 얼마 걷지 않아서. 며칠 동안 난전을 벌이지 않았는데 내일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장사를 하러 가야지요." "내가 모자를 안 주었구만... 내 오늘 와서 보니 당신이 돌아오지 않았기에 천교에 가서 새 모자를 사왔소. 보구려!" 그는 어둠 속에서 모자를 찾아 그녀에게 주었다. "지금은 보이지도 않는데 내일 써 보지요." 고요 속에 잠긴 뜰에는 만향옥의 향기가 바람을 타고 풍겨올 뿐이었다. 집안에서 "여보!", "듣기 싫어요. 난 당신의 아내가 아니예요." 라고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1934년) 쉬띠산의 작품 세계 쉬띠산은 5.4운동 중에 애국의 열정으로 개혁운동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동서양을 다니며 종교학을 깊이 연구하였기에 그의 작품에는 유심론적인 철리가 담겨 있으며, 또한 환상적인 낭만주의가 깃들여 있다. 따라서 독자는 한번 읽기 시작하면 마력에 끌리듯 빨려 들어가는 매력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명명조"는 불교를 독실하게 믿는 인도차이나 반도에 사는 어느 젊은 남녀의 슬픈 사랑을 묘사하였고, "상인의 아내"와 "애써 그물치는 거미"는 강인한 여주인공의 안분지족하는 인생관을 보여 주지만 결국은 운명의 장난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딸의 마음"에 나오는 린즈는 구태의 인습을 과감히 벗어나서 자신의 소신대로 밀고 나간다. 그런 의식은 아버지의 영향으로 나타난다. 린즈는 부친의 잘린 손가락을 들고 좌절과 위험을 이기고 살아가는 의지를 보여 준다. 이러한 문제는 동서양 문학을 비교한 작가의 다음 글에서 나타난다. "중국문학 작품을 읽으면 동양화를 보는 느낌이다. 산수화를 예로 들면 동양에서는 산수화가 종적으로 화면을 구성한다. ... 서양화는 수평적이며 횡적이다. ...문학에서도 같은 모습을 보여 준다. 서양인은 나와 내 아내, 남편 위주의 횡적이며 부부 중심인데, 중국인은 나와 내 부모, 자녀의 종적이며 부모와 자녀 중심이다. ...부모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이 중국문학의 핵심이다." 다시 말하면 "딸의 마음"은 위와 같은 중국문학 특유의 종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따라서 린즈는 신해혁명 때 광주에서 살해된 부친을 그리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혈연의 정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여러 작품 가운데에서도 대표작은 1934년에 쓴 "춘타오"이다. 이 작품은 문체의 기교가 월등하며, 소재가 전기적이고 숙명론적인 것에서 벗어나 매우 사실적이다. 북경에서 파지를 주워 생활하는 춘타오는 억척스럽고 의리가 있다. 그녀는 세속에 매이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원래 그녀는 중류층 집안에서 태어나서 리마오와 결혼을 했는데, 첫날밤에 토비의 공격으로 두 사람은 헤어진다. 그후 그녀는 객지를 전전하면서 어느 서양 부인의 집에서 일을 하다가 그만두고 파지를 주워서 생활을 연명한다. 파지를 보관할 수 있는 방을 구하러 다니다가 샹까오라는 남자를 만나게 되어 그와 같이 생활하면서 사업도 발전한다. 한편 리마오는 춘타오와 헤어진 후 군에 들어가 두 다리를 잃는다. 동냥을 하던 리마오는 우연히 춘타오를 만나고 이로 인해 세 사람은 깊은 고민과 갈들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샹까오는 집을 나가고 리마오는 목매달아 죽으려 하지만, 결국 춘타오의 설득으로 세 사람은 함께 살기로 한다. 셋은 그 누구도 헤어져 살 수 없다는 것이다. 춘타오는 샹까오에게 "다시는 그런 말 말아요. 우리 셋이 힘을 합하여 삽시다."라고 하며, 리마오에게는 "나는 당신의 아내입니다. 하루를 살아도 부부입니다. 당신을 버린다면 난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한다. 이 작품은 전통의식의 탈피와 인본주의에 입각한 사실성을 제시해 주고 있는 것이다. 예성타오 작가세계 1894년 강소 소주에서 출생. 원명은 예샤오ㅉ. 1907년 초교 중학 입학. 졸업 후 초등학교 교원. 1914년 학교에서 밀려난 후, 한거하며 문언소설 "토요일"을 발표. 1915년 가을, 상해 상무인서관 부설 상공학교에서 국문을 가르침. 1917년 오현 제5고등소학 교원. 1918년 첫 백화소설 "봄 연화 이야기"를 발표. 1919년 북경대학에서 조직한 신조사에 가입하여 "신조"에 소설과 논문을 발표. 1921년 쩡쩐ㄸ, 마오둔과 문학연구회를 발기. 항주제1사범 교원. 1923년 이해부터 1930까지 상해 상무인서관에서 편집담당. 단편소설집"화재"를 출간. 1925년 단편소설집 "선하"를 상무에서 출간. 1926년 단편소설집 "성에서"를 상해 문학주보사에서 출간. 1927년 "소설월보"를 주편. 1929년 단편소설집 "미경집"을 상무인서관에서 출간. 1930년 개명서점의 편집책임. 무한대학 중문과 교수. 1931년 동화집 "당대 영웅의 석상"을 개명서점에서 출간. 산문집 "각보집"을 신중국서점에서 출간. 1935년 산문집 "삼종의 배"를 생활출판사에서 출간. 1936년 "성타오 단편소설집"을 상무인서관에서 출간. "예새오ㅉ 선집"을 만상에서 출간. 1937년 "예샤오ㅉ 대표작품선"을 전구서점에서 출간. 1938년 산문집 "전시의 소년에게"를 대로서점에서 출간. 1944년 단편소설집 "잔물결"을 예광출판사에서 출간. 1945년 산문집 "서천집"을 문광에서 출간. 1946년 단편소설집 "예샤오ㅉ 대표작"을 전구서점에서 출간. 1948년 단편소설집 "가방"을 중화서국에서 출간. 1949년 전국위원회위원. 그후에 교육부 부부장, 인민교육출판사 사장 전국인민 대표자대회 상무위원, 전국정협 부주석 역임. 1959년 단편소설집 "항쟁"을 인문출판사에서 출간. 1980년 "예성타오 어문교육논집"을 교육과학출판사에서 출간. 1983년 "예성타오 서발집"을 삼련서점에서 출간. 1987년 "예성타오 대표작"을 황하문예에서 출간. 1988년 2월 16일 사망. 어려움에 처한 판 선생 예성타오 1 역 안에는 사람들이 붐비고 있는데, 사람마다 제각기 자신의 근심거리가 달라 모두 서로 다른 표정을 짓고 있다. 등에다 번호를 붙은 인력거꾼은 호주머니에 두 손을 쑤셔 넣고 잠든 듯 조용히 서 있다. 많은 수입을 올릴 시간이 되려면 아직 많이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너무 일찍 기력을 소모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공기가 아주 탁하여 사람들은 숨쉬는 것조차 힘들어 하고 있는데 비마저 곧 쏟아질 것 같다. 전등을 오랫동안 켜놓았는데도 평소보다 더 어두컴컴해서 서로 다른 얼굴 모양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마치 운무 속이나 꿈속에 잠겨 있는 것 같다. 게시판에는 서쪽에서 오는 급행열차가 적어도 4시까지 연착된다는 통지가 적혀 있다. 이 게시는 벌써 몇 시간 전부터 모두에게 익숙해진 것으로서, 마치 풍화된 희곡 프로그램처럼 더 이상 그것에 눈길을 돌리는 사람이 없다. 한 주일의 그 어느 날 어느 시각의 열차를 막론하고 거의가 이런 게시가 붙어 있기에 사람들은 기차가 연착되는 것쯤은 으레 있는 당연한 일로 여긴다. 많은 손님들의 마음을 졸이게 했던 기차가 역에는 당연한 일로 여긴다. 많은 손님들의 마음을 졸이게 했던 기차가 역에는 당연한 일로 여기다. 많은 손님들의 마음을 졸이게 했던 기차가 역에 들어섰다. 침울하던 대합실은 한순간에 사람들로 붐비게 되었다. 내리는 사람들의 흐뭇한 마음과 타는 사람들의 즐거운 마음, 인력거꾼의 작은 돈벌이 같은 것에 대해서는 여기서 말하지 않기로 한다. 양리에서 오는 판 선생에 대한 얘기만을 하기로 하자. 그는 열차가 플랫폼에 들어서기도 전에 식솔들을 이끌고 기차에서 내릴 때의 행동절차를 주도면밀하게 짜놓았다. 그는 오른손에는 검은 가죽가방을 들고 왼손에는 일곱 살 짜리 작은아들을 이끌기로 하고, 작은아들은 또 아홉 살 짜리 큰아들을 이끌고, 큰아들은 그의 어머니를 이끌기로 약속하였다. 판 선생에 의하면 사람들이 많아서다 돌볼 수가 없기 때문에 손에 손을 잡고 가면 머리와 꼬리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 어떤 곳을 가든지 다 뚫고 지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서로 손을 꼭 잡고 가야지 손을 놓아서는 절대 안 된다고 타일렀다. 그들이 이 당부를 잊어버릴까 봐 또다시 몇 번이고 왼손을 흔들어 신호를 보낸다. 그 뜻은 전보를 치듯이 이 경고를 전달하라는 것이다. 머리와 꼬리가 한마음으로 움직인다는 것은 참 좋은 생각이지만, 전혀 폐단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기차가 멈춰 서려고 하는 순간 내리려는 모든 승객과 그들이 들고 간 짐 따위들이 다 문 쪽으로 몰려가는데 뱀처럼 이어진 판 선생네 일행은 꼬리가 너무 길어 빠져나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가방을 선봉대처럼 앞세우고 가슴과 배를 있는 힘껏 앞으로 내밀었는데 그럭저럭 문에서 두 번째 창문까지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작은아들은 네 번째 창문에서 사람들과 의자 사이에 끼여서 꼼짝달싹도 못하고 있었다. 한 팔은 앞으로, 한 팔은 뒤쪽으로 벌려졌는데 앞뒤에서 당기는 힘이 얼마나 세었던지 아이의 팔이 떨어져 나갈 지경이었다. 아이가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아야! 내 팔 떨어진다! 아야!" 몇몇 손님들은 울면서 고함을 지르는 소리를 듣고서야 비로소 어린아이가 끼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들 네 사람이 손에 손을 잡고 있었다. 한 승객이 소리를 질렀다. "손을 놓으시오! 그렇지 않으면 아이의 양손이 떨어져 나가겠소!" "거 어디 될 말이오? 아이를 안지도 않다니! 다른 한 승객이 업신여기는 듯한 어조로 중얼거리면서도 자기는 앞으로 헤치고 나갈 기회를 노리고 있다. "아니오!" 이렇게 말한 판 선생은 마음속으로 그들이 말한 것이 옳지 않다고 여겼다. 가족들의 손을 잡아 이끄는 방법의 좋은 점을 어찌 모든 사람들이 알겠냐고 여기면서 그들과 입씨름을 해봐야 입술과 혓바닥만 아플 것이니 뒷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작은아들이 계속해서 팔이 아프다고 외쳐 댔다. 판 선생은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고 뒤로 물러날 수도 없어서 그만 자기가 먼저 한 약속을 저버리고 손을 놓아 버렸다. 그는 당황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너희들은 나만 보아라! 꼭 나만 쳐다보아라!" 기차 바퀴가 움찔하더니 이내 멈춰 섰다. 수많은 사람들이 쏜살같이 기차에서 뛰어내렸다. 이때 판선생은 앞이 넓다고 여겼지만 뒤에서 미는 힘이 너무 갑작스럽게 세어지는 바람에 남들에게 떠밀려 하는 수 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뒤를 돌아보고 자신의 가족들을 부른다는 것이 뜻대로 되지 않아서 그는 앞사람의 뒤통수에 대고 고함을 질렀다. "너희들은 내 뒤를 따르거라! 알겠니?" 그는 이렇게 밀려서 기차에서 내렸다. 뒤를 돌아보니 아이들과 아내는 보이지 않았다. 아마 그들은 아직도 기차 안에서 복잡한 사람들 틈에 끼여 있을 것이므로 기차의 문을 지키는 것만이 가장 적당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였다. 그가 내린 후에 백여 명이 더 내렸을 무렵에야 승강대 위에 작은 아들의 상반신이 사람들 틈에 나타났다. 전등불을 통해서야 비로소 울상이 된 아이의 얼굴을 겨우 볼 수 있었다. 그는 아이를 데리러 앞으로 걸어가려고 할 때마다 내리는 손님들에게 밀려서 제자리로 오곤 했다. 그러다가 가까스로 아이를 왼손으로 안고 내려왔다. 잠시 후에 아내도 아홉 살 짜리 큰아들과 함께 차에서 내렸다. 그녀는 계속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연거푸 "아이고! 아이고!"라고 신음 소리를 냈다. 그러고는 처연한 눈길로 마치 어루만지며 위로해 줄 것을 바라는 아이들처럼 남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판 선생은 차분한 마음으로 기차에서 내린 자기의 대오를 향하여 다시 명령을 내렸다. "우리는 여전히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손을 잡고 떨어지지 말아야 한다. 저기를 봐라. 플랫폼에 사람이 이렇게 많으니 개찰구는 더 엄청날 것이다. 서로 손을 꼭 잡지 않으면 우리는 흩어져서 서로 찾지 못할 것이다. 작은아들은 그 말에 겁을 집어먹고 아버지의 무릎을 붙잡고 애원하였다. "아버지, 날 안고 가." "쓸모 없는 물건 같으니라구!" 판 선생은 부아가 치밀었으나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몸을 구부려 작은 아들을 덥석 끌어안았다. 그런 후에 큰애더러 자기의 와이셔츠 뒷자락을 쥐게 하고 다른 손으로는 어머니의 손을 꽉 잡도록 타일렀다. 왜냐하면 자기의 두 손은 벌써 임자가 있어서 아내를 잡아끌 손이 더는 없었기 때문이다. 판 선생의 아내는 여태까지 이런 괴로움을 겪은 적이 없었던 터라, 기차에서 겨우 내리고도 또 무서운 고비가 아직도 앞에 남아 있으니 저절로 넋두리가 터져 나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예 집에서 죽을지언정 이렇게 피난하러 떠돌지는 않았을걸!" "후회는 무슨 후회란 말이오?" 판 선생은 속에서 부아가 치밀었으나, 한편으로는 측은한 마음도 없지 않았다. "여기까지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다고 그래. 그래도 생명만은 안전하지 않소? 어서 갑시다. 길을 잘 보고 걸어요." 이리하여 그들 네 사람은 갈팡질팡 사람들 속으로 사라졌다. 개찰구의 비좁은 문을 나선 판 선생은 마치 꿈속에서 허덕이는 것 같았다. 그는 급류 속에서 흐르는 물처럼 옆을 돌아볼 새도 없이 많은 사람들의 기세에 떠밀려 걸었다. 잠시 후 역의 기찻길을 지나선 그들은 시멘트로 포장한 인도에 들어섰다. 황급히 뒤를 돌아보니 불빛에 비쳐서 새하얗게 된 수많은 얼굴들과 보따리 등이 다 자기를 향해 꾸러미 채로 밀려오고 있었다. 그제서야 비로소 그는 와이셔츠 뒷자락을 지고 있던 작은 손이 언제 없어졌는지도 몰랐음을 깨달았다. 그는 너무 어처구니없이 무의식중에 몸을 마구 뒤틀었다.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지만 그들의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었다. 패가망신한다는 불길한 예감이 그의 심장을 짓누르는 바람에 그의 눈에서는 닭똥 같은 눈물이 몇 방울 굴러 떨어졌다. 그의 눈에 비친 전등 빛이나 사람들이 전부 다 몽롱해 보였다. 다행히도 안고 있는 아이의 눈이 밝아서 어머니의 이마에 드리운 성긴 머리카락을 이내 알아보고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쳤다. "저기에 엄마가 있어!" 이 말에 기뻤으나 조금은 믿기 어려워 아이의 옷에다 눈을 비벼 닦은 후 한참이나 살펴보고서야 자기의 아내가 멍청한 쥐처럼 사람들 속에서 목적없이 떠돌며 아이를 앞세우고 헤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기찻길을 채 넘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그들을 인도로 데리고 갔다. 그는 안고 있던 아이를 내려놓고 안도의 숨을 내쉬고는 이마의 땀을 훔치면서 중얼거렸다. "이젠 됐구나!" 실로 제대로 된 셈이다. 이제 저 철난간을 벗어나면 자신들이 생명은 보호를 받게 될 것이니 그때는 전쟁 때문에 속태우거나 약탈당할 위험도 전혀 없는 것이다. 게다가 헤어질 뻔했던 아내와 아이까지도 제때에 찾았으니 이만하면 네 생명과 가죽가방 하나가 모든 위험 속에서 안전해진 것이 아닌가? 그러니 실로 "이제 됐구나!"라고 말할 만하지 않은가! "인력거!" 판 선생은 아주 그럴듯한 목소리로 불렀다. 이 소리에 인력거꾼들이 일시에 몰려와 목적지를 물었다. 그는 고개를 한동안 쳐들고 위엄스러운 자세로 손가락 두 개를 펴며 말했다. "두 대면 돼. 두 대..." 그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10문에 사마루까지 가려면 가고 그렇지 않으면 그만둬!" 이 몇 마디 말을 통해 그가 상해 토박이임을 충분히 알 수 있다. 한 대에 12문을 내기로 하고 흥정을 끝냈다. 판 선생의 부인은 큰아들과 같은 인력거에 타고 판 선생은 작은 아들과 검정 가죽가방을 가지고 다른 인력거에 올랐다. 인력거꾼이 속도를 내어 막 달리려는 순간 총을 맨 인도 순사가 길을 막아서자 인력거가 움츠리듯 섰다. 작은 아들은 이 순사의 생김새와 차림새가 무서워서 아버지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아이의 이런 눈치를 알아차린 판 선생이 아이에게 말했다. "겁낼 것 없어. 그 사람은 인도 순사야. 우리 고장엔 저런 순사가 없어서 우리가 이쪽으로 피난온 거야. 그 사람이 총을 둘러메고 우릴 보호해 줄 거야. 수염이 정말 굉장하지! 마치 라한의 수염과 다를 바 없거든..." 아이는 겁을 잔뜩 집어먹고 순사의 수염이 라한의 수염과 같다고 해도 보려 하지 않다가 인력거의 방울 소리가 딸랑딸랑 울렸을 때에야 살금살금 곁눈으로 거리를 훔쳐보았다. 불빛이 휘황찬란한 가게들이 퍼뜩퍼뜩 스쳐 지나갔다. 길 건너편에 있는 집들에는 휘황찬란한 등불이 켜져 있었다. 그제야 아이는 비로소 아버지의 가슴에서 얼굴을 떼었다. 사마루에 이르러 줄곧 여덟 아홉 개나 되는 여관을 찾아 다니며 물어 봤지만 모두 '만원'이라고 쓴 팻말이 걸려 있었다. 사정해 봐도 안 될 것은 뻔하였다. 손님 접대실까지 침실로 임시 개조한 형편인데 사정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맨 마지막 여관도 '만원'이라고 팻말을 내걸고 있었다. 이때 한 심부름꾼이 느릿느릿 말을 건넸다. "유숙하실 겁니까?" "그렇소! 아직 빈방이 있소?" 일말의 희망이 보이자 판 선생의 전신에 안도의 기운이 쪽 퍼졌다. "방 하나가 금방 났어요. 손님이 방금 셋방을 얻어 옮겨 갔거든요. 선생께서 조금만 더 늦게 왔더라면 이 방도 없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 방을 쓰겠어요." 그는 작은 아들을 내려놓고 돌아서서 아내와 큰아들을 부축하면서 말했다. "우리의 운수도 이만하면 괜찮은 셈이오!" 그러고는 인력거꾼에게 선심을 베풀어 원래의 차비에 1문을 더 주었다. 그는 재수가 좋을 때 남들에게 선심을 쓰면 계속해서 운이 좋아진다는 것을 믿고 있었다. 하지만 인력거꾼은 만족하기는커녕 여관을 찾느라 이곳저곳을 오랫동안 돌아다녔다고 하면서 5문을 더 줘야 한다고 했다. 결국 4문을 더 주고 보내었다. 판 선생네 일가 네 식구가 여관의 심부름꾼을 따라 들어간 방은 아래층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침대 하나와 전등 하나, 밥상 하나와 두 개의 걸상을 제외하고는 연기와 다름없는 공기가 방안에 가득할 뿐이었다. 방에 들어서자 기름 냄새와 오줌 냄새가 섞인 듯한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냄새가 꽤나 고약한걸!" 판 선생은 불쾌한 듯 중얼거렸다. 옆방에서는 음식물 튀기는 소리가 줄곧 들리는 것으로 보아 거기가 취사칸인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냄새는 좀 지독하지만 탄알밥이 되거나 길바닥에서 자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여유 있게 의자에 걸터앉았다. "저녁식사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심부름꾼이 가방을 내려놓고는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난 고기국밥을 먹을래!" 작은놈이 손가락을 깨물며 말했다. 그러자 판 선생의 부인이 눈을 부릅뜨고 엄하게 꾸짖었다. "고기국밥이 다 뭐냐! 피난 온 신세에 굶지나 않으면 다행인데 어디 고기국밥 타령을 하며 떼질이냐?" 큰놈도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고 두리번거리더니 아버지를 힐끔 쳐다보며 속삭였다. "아버지, 상해에 왔으니 서양 음식 좀 먹어 봐요!" 판 선생의 부인은 하도 기막혀서 성을 내며 욕을 퍼부었다. "양심이라곤 전혀 없는 놈들 같으니라구. 너희들은 아무것도 먹어서는 안 될 분수도 모르는 것들이다. 산 채로 굶겨서..." 난처한 판 선생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넌지시 참견을 했다. "아이들이 무얼 안다고 그렇게 노발대발하오?" 그러고는 심부름꾼에게 주문을 했다. "자, 우린 이미 차에서 요기를 하고 왔으니 닭알 볶음밥 두 그릇만 갖다 주시오." 심부름꾼이 시큰둥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문을 나서려 할 때, 판 선생이 그를 다시 불러 세웠다. "어... 그리고 소홍황주하고 10문 어치의 물고기 안주도 함께 갖다 주시오." 심부름꾼의 발소리가 멀어지자 판 선생은 모든 걱정이 사라진 사람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아내에게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지금이야말로 기뻐해야 할 때요. 그러니 술 한잔 마셔야지. 여보, 생각해 보오. 전쟁으로 수라장이 된 어수선한 곳에서 이처럼 안전한 곳으로 왔으니 이것이 첫번째 기쁨이요, 아까 둘째 녀석이 눈치가 빨라(이때 그는 작은 아들을 끌어당겨서 손으로 아이의 어깨를 다독거리며 말한다.)다시 모였으니 이것이 바로 두 번째 기쁨이 아니겠소? 아, 참 즐겁구나! 한잔 가득 흘러 넘치도록 부어 마셔 보자." 그는 손으로 빈 술잔을 들어 마시는 시늉을 하면서 낄낄거리며 웃었댔다. 판 선생의 부인은 부인대로 잠자코 앉아서 집 생각을 골똘히 하고 있었다. 입을 만한 옷가지들은 다 트렁크에 넣어 우편을 통해 이미 교회로 보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남겨둔 물건들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왕어멈도 믿음직한 사람인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우리가 왕어멈에게 집을 떠맡기고 피난온 줄 알면 어떻게 나올까? 왕어멈이 밤에 문이나 창문을 걸지 않고 자지나 않을까? 또 뜰에 있는 씨암닭 세마리와 미처 짓지 못한 둘째 아이의 바지, 그리고 주방에 있는 구운 통오리가 생각났다. 잠깐 사이에 여러 가지 일들이 새삼스레 떠오르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러기에 그녀는 근심 어린 투로 한탄을 했다.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어요?" 두 아이는 상해가 평소에 부모님이 말한 것처럼 놀기 좋고 재미있는 곳이 아님을 알고 실망하고 있었다. 이따금 빗방울이 한 두 방울 집안에 떨어졌다. 판 선생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 쪽으로 가서 중얼거렸다. "과연 비가 내리는군. 지금 내려서 다행이야." 그러고는 창문을 닫아 버렸다. 이때 그는 갑자기 창문에 가리워져 있던 '손님이 마땅히 알아야 할 일'이라는 벽광고를 보고는 한 가지 매우 중요한 일이 생각났다. 그는 눈을 크게 뜨고 그 광고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숙박료는 에누리없이 2만원이라!" 그는 놀란 나머지 부르짖었다. 그리고 뒤를 돌아 놀란 눈으로 아내를 바라보면서 기가 막힌 듯 혀를 내둘렀다. 2 다음날 아침 행랑에서는 여관집 심부름꾼들이 허리를 쭈그리고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너무나 비좁은 곳이라 천장에는 한 갈래 아침 햇빛만이 스며들어 있을 뿐이었다. 몇몇 침실에는 아직도 희끄무레한 전등불이 켜져 있었다. 판 선생네 내외는 벌써 잠에서 깨어나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두 아이들도 깨어나 오늘의 상해는 어제보다 더 좋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속삭였다. 한잠 더 자라는 부모들의 호령에 못 이겨 침대에 누운 채로 저희들끼리 몰래 깔깔거리며 장난질에 한창이었다. "여보, 당신은 어쨌든 집으로 돌아가지 말아야 해요. 이 신문만 보아도 그런 소식을 믿어야 하는지, 믿지 말아야 하는지 알 수 있잖아요? 천신만고 끝에 이곳까지 피난 왔는데 당장 돌아가야 한다니요?" 판 선생의 아내가 초조한 듯이 말했다. "사실은 내가 다 알고 있다니까. 교육국장의 성미는 조금도 소홀히 할 문제가 아니라서. '아직 이곳은 전쟁의 불길이 타오르지 않았으니까, 학교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수업을 하여야 하오!' 이 말은 틀림없는 그의 주장이라니까. 그 통신원에 대해선 나도 어느 정도 아는데 비록 교육국장의 직원에 불과하지만 어찌 믿지 않을 수 있겠소? 그러니 난 어쨌든 가봐야 하겠소." "지금 돌아가면 위험할 거예요." 판 선생의 부인은 매우 가슴 아픈 듯이 말했다. "이삼 일 후면 그들이 우리 고장에 쳐들어올 텐데 당신이 가서 개학한다 한들 어느 학생이 공부하러 온다구 그래요? 또 설사 그들이 쳐들어오지 않더라도 교육국장이 당신더러 왜 개학하지 않았느냐고 나무란다면 당신도 대답할 말이 있지 않아요? 당신은 그저 그에게 이렇게만 반문하세요. '생명이 중한가요 학교가 중한가요?'라고 말이에요. 그도 목숨 가진 사람인 이상 결코 당신을 억울하게는 하지 않을 거예요." "당신이 뭘 안다고 그래?' 판 선생은 어느 정도 아내를 얕보는 듯한 말투로 꾸짖었다. "그런 말은 집에 숨어서 침대에 마음 편히 누워 있는 당신과 같은 아낙네들이나 외칠 소리요. 어떻게 우리 같은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할 수 있겠소? 당신은 나를 말리지 마시오. 나는 나대로 나를 보호할 대책이 있으니까." 그는 스스로 자신의 지혜에 만족해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은 집에 두고 온 물건을 걱정하고 있지 않소? 내가 돌아가면 그것들을 어련히 잘 돌보겠소. 그러니 당신은 걱정일랑 말고 여기서 기다려요. 시국이 조용해지면 내가 당장 당신과 아이들을 데리러 올 테니 그리 아시오." 판 선생의 부인은 남편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돌아가서 두고 온 물건들을 살핀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가 돌아간다는 것은 마치 구슬을 바다에 던지는 것과 다름없는데 누가 그것을 꼭 건질 수 있다고 보장하겠는가? 불현듯 생이별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가슴에 울컥 치밀자 그녀는 감히 남편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눈가에서 곧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그녀는 아직까지 어떤 풍파도 생기지 않았는데 이런 때에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상서롭지 못한 행실이라고 생각하고 흐르는 눈물을 가까스로 참으며 남편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가서 형편이나 보세요. 교육국장이 개학해야 한다는 말이 없으면 오늘 오후차를 타고 오시든지 그렇지 않으면 내일 아침차를 타고 오세요." 그녀는 끝내 참지 못하고 눈물 한 방울을 손등에 떨구었는데, 곧 팔소매로 닦으면서 말했다. "난 절대 마음을 놓지 못하겠어요!" 사실상 판 선생도 산란한 마음과 번민에 심히 부대끼고 있다. 국장이 전과 다름없이 개학하라고 한다면 자기로서는 그것을 조금이라도 지체시킨다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한 일이다. 그러하기에 돌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여기에 남아 있는 가족들을 어찌 내버려두겠는가! 아내의 이 같은 연민의 정을 홱 뿌리치고 떠난다는 것은 너무도 인정 없는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아내와 두 아이는 모두 연약한데다가 의지할 만한 곳도 전혀 없이 외지에서 기숙하는 형편이니 어찌 돌발적인 일이 생기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생각하니 가슴속에서 증오의 불길이 저도 모르게 활활 타올랐다. 그는 군사를 이동시켜 전쟁을 준비하는 망나니들을 증오했으며, 이전대로 개학하라는 교육국장을 증오했다. 그리고 자기에게는 아직도 이런 때에 자신의 든든한 한 팔이 되어 일을 도울 만한 큰 자식이 없는 것을 한탄했다. 그러나 그는 여자들과는 달리 이해득실을 타산하여 그래도 돌아가는 것이 하늘이 내린 법도라고 생각하고는 불평불만을 잠시 한쪽에 밀어 놓고 얼굴에는 조그마한 내색도 보이지 않으면서 아내의 의견에 머리를 끄떡이며 대답했다. "만약 국장이 그럴 의향이 없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본 후 사실이 확실히 그렇다면 당신 말대로 오후차로 돌아오겠소." 고향 마을에 갔다 온다는 말을 대충 엿들은 둘째 녀석이 따라가겠다고 떼를 썼다. 그러자 큰놈이 낯을 찡그리고 눈을 끔벅거리며 동생을 곯려 주었다. "내가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돌아가고 너 혼자만 여기에 있거라!" 둘째 녀석은 이 말을 듣더니 째지는 듯한 목소리로 고함지르며 우는 시늉을 했다. 작은 손으로 눈가를 닦고 있어도 눈물 없는 마른 울음만 울었다. "너희들은 여기에 어머니와 함께 있거라." 판 선생은 목청을 돋우어 말했다. "이제 일어나 아침 먹을 채비나 하시오." 말을 마친 그는 아내에게 몇 마디 당부를 남기고는 인력거를 타고 역전으로 나갔다. 길에서 사람들로부터 철길이 이미 끊어져서 기차가 다니지 않는다는 말을 어렴풋이 들은 판 선생은 생각에 잠겼다. "만약 기차가 다니지 않는다면 좋은 생각일랑 하지 말아야지. 당장 나를 면직시키는 것도 그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거이니까." 기차가 다니지 않는다는 이 소식은 사실상 그를 크게 실망케 했다. 만약 운수가 좋을 것 같으면 이런 재수 없는 일에 봉착하지도 않았을 텐데. 그러나 행인들의 말이 꼭 믿음직한 것이 아닐 수도 있지 않는가? 이 문제를 풀려면 오직 인력거꾼에게 희망을 걸어야 한다. 그것은 그가 빨리 달려 역전에 당도해야 알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운수는 그래도 좋은 편이었다. 역 앞에 당도하여 보니 기차가 다니지 않는다는 통고가 없었다. 기차가 들어올 때까지는 아직도 시간이 얼마쯤 남아 있었다. 매표구는 그리 복잡하지 않았고 이따금 한 두 사람이 표를 사고 있었다. 역 안은 그래도 사람이 적지 않았는데, 일부는 손님을 마중하러 나온 사람들이었고, 또 일부는 구경꾼들이었는데 그 중에는 사진기를 지닌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기차가 당도한 다음 사람들이 붐비며 밀어닥치는 장면을 렌즈에 담아 "풍운변환사"의 한 페이지를 엮으려는 목적에서 여기에 온 것이었다. 화물취급소 안에는 각양각색의 상자와 이부자리 따위들이 양철 천장까지 닿을 정도로 쌓여져 있었다. 그의 마음은 평안한 것 같기도 하고 석연치 않은 것 같기도 하였다. 그는 머뭇거리다가 삼등차표를 산 후 기차에 올랐다. 맑은 햇빛은 기차 안에 가득 찼으나 그다지 무덥지 않았다. 자리도 널찍하여 누워서라도 갈 수 있었다. 그는 생각에 잠겼다. '만약 마음에 꺼림칙한 걱정만 없다면 실로 경험하기 어려운 유쾌한 여행이 되었을 텐데.' 이 가차는 달리면서 군용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등 줄곧 이곳 저곳에서 시간을 지체하다 보니 양리에 도착한 때는 벌써 오후 5시였다. 판 선생은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급히 집으로 돌아가 문이 꽁꽁 잠겨 있는 것을 보고서야 한시름 놓았다. 그가 어저께 왕어멈에게 재삼 당부한 것이 바로 이 일이었기 때문이다. 대문을 여남은 번이나 두드리고 나서야 왕어멈이 비로소 문을 열었다. 그녀는 판 선생이 돌아온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게 어찌된 일이에요? 선생님께서 돌아오셨구만! 피난 가지 않아도 되나요?" 판 선생은 두루뭉실하게 얼버무려 대답해 주고는 집안으로 들어갔다. 방문의 자물쇠를 열어 제치고 방안의 이 구석 저 구석을 샅샅이 살펴보았는데 아무런 변화나 움직임이 없이 어제와 똑같았다. 걱정스러웠던 그의 마음은 한 절반쯤 안심이 되긴 했지만 나머지 절반은 여전히 안심이 되질 않아 그는 방문을 잠그고 나서면서 왕어멈에게 다시 당부하는 것이었다. "어멈, 어멈은 대문을 꼭 잠그고 계세요." 어멈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대문을 잠그고 들어가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는 주인들이 결코 멀리 피난을 간 것이 아니라 이곳에 있으면서도 그가 따라갈 것 같아 상해로 피난 간다고 속인 것이 틀림없다고 여겼다. '그렇지 않으면 왜 선생이 또 돌아왔는가? 마님은 두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오지 않았으니 지금 어디에 숨어 있을까? 그런데 그들은 왜 나를 데려가지 않았을까? 그건 틀림없이 사람이 많으면 좋지 않으니깐 그런 것일 거야. 그들은 저 양코배개들의 붉은 집안에 있을 거야. 싸움이 일어나도 그 집만은 다치지 않는다고 병정들도 말하지 않았나? 사실 나더러 함께 가지고 해도 난 그리 달갑지 않거든. 설령 싸움이 여기서 멀어진다고 한들 내가 입을 평상복은 이미 마련한 지도 오래 되었으니까 여기에 그냥 남아 있은들 무엇이 겁나겠는가?' 여기까지 생각한 그녀는 생질딸이 그녀에게 선물한 수놓은 헝겁신이 머리에 떠오르자 그걸 신고 황천에 간다면 염라대왕도 자기를 다르게 대해줄거라고 믿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매우 야릇한 행복감을 느끼면서 주인들이 어디에 숨어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선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판 선생은 집은 나서자 곧 교육국 통신원을 찾아가 국장이 여전히 개학할 의향인가를 물었더니 그가 대답했다. "그래요. 그분께서는 또 지금 교원들은 저마다 피난 가는 데만 골몰하다 보니 직무에 태만한데 이는 바로 그들이 교육사업에 종사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표명하는 것이니 이 기회에 그들을 도태해 버리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하더구만요." 판 선생은 이 말을 듣고 몸서리를 쳤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래도 이처럼 상해에서 부랴부랴 돌아온 것이 선견지명 있는 행동이라고 스스로 느꼈다. 그는 헐레벌떡거리며 학교로 달려가 학생들 집에 보낼 통고문을 작성하였다. 통고문 가운데는 이런 구절이 씌어 있었다. '지금 병란으로 비록 염려는 되지만 자식들에 대한 교육은 옷이나 양식과 마찬가지로 하루 한 시각이라도 늦출 수 없다. 방학도 이미 끝났으므로 학교는 예전대로 개학한다. 그 전에 있었던 구라파 대전 때에 남들은 전쟁의 혼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방어벽을 세워 놓고 그 아래에서 공부를 하였는데, 이와 같은 비상한 정신을 그들만 독차지하게 해서는 안 된다. 바라건대 가장들은 이 참된 뜻을 터득하고 전쟁이 없을 때와 마찬가지로 자식들을 학교에 보내야 한다. 이는 가정과 학교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지방과 국가의 영예이기도 하다.' 그는 초고를 다 쓴 다음 세 번이나 훑어보았으나 별로 고칠 만한 곳이 없다고 여겼다. 만약 국장이 이 통고문을 보신다면 적어도 "그 사람은 언제나 제일 내 마음에 든다니까."라는 말 한 마디쯤은 꼭 하리라 믿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등사용지를 올려 놓고 직접 100여 장 정도 찍은 후 학교의 공무원을 시켜 학생들 집에 보냈다. 이렇게 해서 공무는 대충 마무리한 셈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문제를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개학한 이상 상해에는 다시 갈 수 없다. 그렇다면 아내와 아이들은 여관에서 힘든 나날을 보낼 것이다. 하지만 다른 방법은 없고, 오직 그들이 주의하면서 견디어 내는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아까 쓰던 필묵이 마르기 전에 부인에게 편지를 써서 부쳤다. 이튿날 그는 찻집에서 확실히 철로가 막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의 마음은 침울했다. 마치 그의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이 홀연히 바람을 타고 아득한 곳으로 사라지는 듯하였다. 우울한 기분으로 학교까지 걸어와 보니 학교 공무원이 어제 맡았던 임무수행 상황을 보고했다. "어저께 통고문을 가지고 돌아다녔는데, 20여 호도 넘는 집들이 문을 잠궈서 문틈으로 겨우 통고문을 넣었습니다. 30여 호는 심부름꾼들만 남아 있고 주인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죄다 상해로 피난 갔는데,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고 하더군요. 나머지 사람들은 그저 알았다고 하였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목숨이 위태로운 긴박한 상황이니 공부하는 문제는 뒤로 미루어 생각해 보자고 했습니다." "어, 됐소." 판 선생은 그의 보고 내용에 마음을 쓰지 않았다. 그는 담배 한 대를 피우고 나서 자기가 가야 할 길을 결정한 후, 곧바로 적십자 사무소를 갔다. 그는 회비를 내고 회원 자격을 신청하였다. 또 학교는 널찍하여 부녀자 수용소로 쓸 수 있다며 만일의 경우 부녀자들을 수용하겠다고 말했다. 그의 이런 자선적인 행동은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게다가 판 선생은 워낙 위신 있는 인물로 누구에게나 잘 알려져 있던 터였다. 사무소에서는 그에게 적십자 깃발을 주어 교문에 걸도록 하였고, 또 그에게 적십자 휘장을 주어 적십자회원임을 나타내게 하였다. 판 선생은 깃발과 휘장을 받고는 마치 구명부를 얻은 것처럼 맘속에서 신비스러운 쾌감과 위안을 찾았다. "이젠 전부 안전하게 됐다! 그러나..." 여기까지 생각한 그는 웃는 얼굴로 사무원에게 말했다. "저에게 깃발 하나와 휘장 몇 개를 더 주십시오." 그 이유인즉 깃발은 교문 양쪽에 걸 것이고, 휘장은 너무 작아서 혹시 잃어버릴 것을 고려하여 몇 개 더 갖춰 두자는 것이었다. 사무원은 이에 회원 휘장은 맛좋은 음식도 아니고 장난감도 아니니 한 사람이 여러 개를 가진다 해도 회원은 결국 한 사람이므로 적게 갖는 것이 오히려 좋다고 익살조로 말했다. 그러나 결국 판 선생의 요구대로 몇 개 더 주고 말았다. 두 개의 적십자 깃발은 첫가을의 산들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은 교문의 양쪽이 아니라 판 선생네 대문에서 펄럭이고 있었다. 적십자회원 휘장 하나는 판 선생의 가슴에서 장엄한 빛을 뿌리고 있었고, 나머지는 포장지로 겹겹이 싸여진 채 판 선생의 조끼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아내와 두 아이들에게 각기 하나씩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비록 먼 상해에 떨어져 있지만, 이 휘장만 있으면 그들에게 아무리 큰 위험이 닥쳐온다고 해도 구출될 수 있고, 또 일종의 새로운 용기를 북돋워 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3 벽장이라는 곳에서 양쪽 군대가 마주쳤다. 양리 마을은 집집마다 문을 걸어 잠그고 있었고 가게는 말할 것도 없었다. 거리에는 이따금 병사들이 무리를 지어 오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전선으로 떠날 태세를 하고 있었는데, 마치 그들의 몸과 마음에 그 어떤 절대적 권위가 부여된 듯 안하무인격이었다. 그들은 얼굴에 살기가 잔뜩 올라서 마음에 내캐기만 하면 모든 것을 발로 짓이겨 박살낼 듯한 기세였다. 시국이 어지러우니 강제 징병하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강제 징병되어 가는 사람이 행여나 틈을 타서 달아날까 염려되어 잡아온 병사들을 긴 밧줄로 하나하나 묶어서 끌고 가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부득이한 경우에만 좁은 골목으로 다니곤 했다. 심지어 판 선생처럼 적십자 휘장을 단 사람들도 밖으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여 감히 활개치며 돌아다니지 못했다. 그 때문에 양리의 거리는 물 뿌린 듯 조용하고 한 결 더 널찍해 보였다. 상해의 신문들이 오지 않은 지도 벌써 여러 날 되었다. 본 지방의 군사기관에서는 자주 전선의 소식을 알렸는데 어느 공고에나 '적군은 대패하고 아군은 몇 리 진군' 따위의 소식뿐이었다. 거리에나 골목 입구에 새로운 전투 소식 뒤에 숨겨진 사실을 얘기하면서,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실망한 듯 미간을 찌푸리고 각기 헤어졌다. 이 며칠째 판 선생은 너무나 무료하였다. 가장 난감한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처자와 멀리 떨어져 소식조차 전할 길 없는 막막한 처지와 나아가 어쩌면 영원히 소식을 전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심상치 않은 조짐이 다소 엿보이는 점이었다. 그 다음은 역시 자신의 안전 문제였다. '벽장은 100여 리 밖의 거리에 있다. 이 적십자 휘장이 비록 쓸모가 있기는 하지만 그 누구도 아직 그렇게 써보지 않았으니 만약 이 휘장이 쓸모 없다고 한다면 누구와 시비할 것인가? 탄알, 폭탄, 약탈, 방화 같은 것은 실제 일어나는 일이지 결코 장난이 아닌 이상 어쨌든 여러 곳에 알아보고 여러 방면으로 살아갈 방도를 찾지 않으면 안 되겠군.' 이렇게 생각하고 그는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전선의 소식을 염탐하였는데, 이런 소식들이 항간에 떠도는 소문과 다르기만 하면 그 소식이 더 믿음성 있는 것 같아서 거기에 근거하여 자신의 이해득실을 가늠하여 보았다. 어떤 사람이 당황하여 급히 길을 가는 것을 보기만 해도 그는 깜짝 놀란 나머지 그가 틀림없이 무시무시한 소식을 알고 있는 것으로 여겼다. 무슨 소식이냐고 당장 묻고 싶었지만 초면이기에 물어 볼 수도 없었다. 적십자 모임에서는 전선에 사람을 파견하여 부상병들의 구호사업을 하였는데, 군용차를 타고 돌아오는 사람들이 늘 있었다. 전선의 소식을 알려면 이들의 말이 그래도 가장 믿을 만하였다. 판 선생은 비록 회원이긴 하지만 사무소에 자주 들러 소식을 알아보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이렇게 하는 것은 여러 사람들 앞에 자기가 겁쟁이라고 알리는 것이 되기 때문이며 또 이런 행동은 매우 어색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적십자 모임은 진실한 소식을 얻어들을 수 있는 기관인 이상 이 좋은 기관을 이용하지 않고 다른 것을 의거한다는 것은 타당하지 못한 생각이라 여겼다. 그는 매일 해질녘이면 사무원 오씨를 찾아가서 전선의 소식을 듣곤 했다. 오씨가 그에게 별일 없다거나 혹은 아군이 전선에서 적을 견지하고 있는 중이라고 알려 주면 그제야 마음놓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이날 저녁에도 판 선생은 오씨네 집으로 갔다. 오래 기다린 후에야 그 사람이 돌아왔다. "아무런 일없지요?" 판 선생이 다급히 물었다. "포고에 따르면 어저께 아군은 적들을 향하여 총공격을 시작했다더군요. 다 망쳤습니다." 오씨는 수심에 잠겨 말하다가 뒷말을 얼버무리고 얼마 안 되는 짧은 콧수염만 계속 꼬았다. "뭐라구요?" 판 선생은 깜짝 놀라며 온몸이 굳어지는 듯한 부자유스런 표정을 지었다. 오씨는 남들이 엿들을세라 귓속말로 중얼거렸다. "믿을 만한 소식통에 따르면 오늘 아침 정안(벽장에서 8리 떨어진 작은 도시)이 적들에게 넘어갔답니다." "아, 큰일났네!" 판 선생은 미친 듯이 부르짖었다. 그러고는 한참 동안 머뭇거리다가 돌아서서 "난 갑니다!"라고 소리지르며 걸음을 재촉했다. 거리의 전등은 유난히 흐릿했고 등뒤에서는 마치 낯선 사람이 뒤쫓아오는 듯했다. 그는 허겁지겁 집으로 달려와 왕어멈에게 당부했다. "문을 닫아 걸고 편안히 쉬어요. 난 오늘 저녁에 일이 있어서 들어오지 못할 것 같소." 그는 옷장에서 강연사 직물로 지은 낡은 솜옷을 발견하고는 먼젓번에 우편으로 부쳐 보내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아이들의 몇 가지 옷도 살펴보니 아직 입을 만하였다. 또 아내의 다 낡은 비단치마도 버리기엔 너무 아까웠다. 그는 이런 것들을 와락 끌어안고 문을 나섰다. "인력거! 인력거! 북성가 붉은 집까지 10문 주겠소!" "지금 10문 받고 거기까지 갈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러시오?" 인력거꾼이 빈정댔다. "당신도 보다시피 요즈음 거리에 인력거가 몇 대나 있는 것 같소? 죽기살기로 목숨 걸고 끼니나 잇자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다들 숨어 버렸소. 30문에 가겠다면 가고, 그렇찮으면 그만두시오." "좋소! 30문 드리지." 판 선생은 달려가 인력거에 편히 앉은 다음에 조건을 달았다. "그대신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하오. 좀 빨리 달려 주시오!" "판 선생, 어디로 가시오?" 학교에서 일하는 황씨라는 일꾼이 도중에서 그를 보고 멈춰서서 말을 건넸다. "허! 나 저리로...' 판 선생은 그에게 묻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당황하여 나오는 대로 대꾸하다가 제삼자에게 솔직히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대답을 얼버무려 버렸다. 인력거가 나는 듯이 질주했기 때문에 그 사람이 다시 달려와 물어 볼 가능성도 없었다. 붉은 벽돌집은 몹시 붐비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열흘 전에 이쪽으로 왔다. 아이들의 울음 소리에 어른들의 말소리가 섞여 있고 이곳저곳에는 전등이 밝게 켜져 있어 흥청거리는 잔칫집 같았다. 주인이 판 선생에게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이곳에는 빈방이 없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이미 이곳으로 물건을 부치고 찾아왔으니 거절하기도 난처한 입장입니다. 조금 전에 몇 분이 찾아왔는데 거절하려니 안쓰러워서 밥 짓는 겉채를 내주며 쉬게 했습니다. 그들과 상의하면 선생 한 분쯤은 끼여서 잘 수 있을 것입니다. 판 선생은 마치 자신의 집에 온 것처럼 평안하였다. "상의하면 되겠지요. 하물며 이런 시국에 말입니다. 나도 거기에서 잠 잘 생각은 아닙니다. 그저 되는 대로 앉아 있으면 되지요." 그가 짐꾸러미를 들고 그 곁채에 들어서려는 순간, 그는 너무도 놀란 나머지 전에 앓았던 눈의 각막염 증세처럼 앞이 잘 안 보이고 착시현상이 생겼다. 그는 눈을 몇 번이나 끔뻑거리고 다시 보았지만 좀전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창가에 기대어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는 짙은 팔자수염을 기른 사람은 바로 교육국장이 아닌가? 잠깐 망설이던 끝에 이미 방안에 들여놓은 발을 돌이키려 하니 그것도 난감한 일이었다. 국장도 그를 알아보고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판 선생도 오셨구만. 어서 이리 와 앉으시오." 주인은 그제야 그들이 이미 아는 사이임을 알아차리고 돌아갔다. "국장님께서 먼저 들어와 계셨군요. 한 사람이 더 끼여도 괜찮겠습니까?" "우린 이렇게 세 사람뿐이니 물론 당신 한 명쯤은 같이 지낼 수 있소. 우리는 바닥에 깔 자리를 가지고 왔는데 윤번으로 휴식할 수도 있소." 오늘 저녁 따라 국장이 특별히 자기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 여느 때와는 달랐다. 판 선생은 성큼 방안으로 들어서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저녁에 국장님을 모시고 하룻밤 지내겠습니다." 이 곁채는 그다지 넓지는 않았다. 바닥에는 안경을 낀 중년 사나이가 자리를 깔고 앉아 있었다. 그는 좀 피곤한 것 같았지만 결코 잠잘 생각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물건들은 한쪽 벽에 기대어 놓았고 창문가에는 3개의 걸상이 나란히 놓여져 있었는데 첫번째 걸상에는 국장이 앉아 있었다. 두 번째 걸상에는 머리를 쭉 빗어 넘긴 약 이십 세 가량 되어 보이는 국장의 사촌동생이 앉았고, 나머지 하나는 비어 있었다. 저쪽 구석에는 버들상자가 있었는데 거기에 놓여진 세 개의 옷꾸러미는 아마 이 세 선생의 것이리라. 이런 것만으로도 이 방은 가득 차서 빈자리라곤 하나도 없다. 전등은 워낙 낮게 달려 있고 먼지가 자욱해서 방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거무칙칙해 보였다. 판 선생도 옷꾸러미를 세 선생의 옷꾸러미와 함께 구석에 있는 버들상자 위에 놓은 다음 빈 걸상에 앉았다. 국장은 자기의 동반자들을 그에게 소개하면서 그에게 물었다. "당신도 정안 소식을 들었소?" "들었습니다. 정안이 함락되었으니 벽장을 지킬 수 있다고 누가 보장하겠습니까?" "아마 우리 군대들이 남쪽 노선을 허술하게 수비한 것 같소. 정안을 잃은 것이 바로 이 점을 똑똑히 보여 주고 있잖아요. 그쪽 군사들이 벽장을 습격하고 공격하기에는 정안이 전략요충지인데... 아마 지금쯤 그들의 손에 들어갔는지도 모를 일이오. 만약 그렇다면 아군이 상당히 어려울 것이오." "그렇게 되면 이곳은 수습하기 어려울 정도로 난장판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쪽 두 총사령이 용병에 능하니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든지 적들의 진격을 막을 것이오. 그리고 파죽지세로 적들의 소굴로 쳐들어가 놈들을 여지없이 쳐죽일 것이오." "말씀대로 그렇게만 된다면 전쟁도 끝날 것이니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같이 학교를 경영하는 사람들은 다시 학교 문을 열고 들어가 예전처럼 수업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국장은 학교를 꾸린다는 말을 듣자 차츰 자신의 존엄을 느끼며 팔자수염을 비비꼬면서 한탄을 금치 못했다. "다른 건 그만두더라도 이번 전쟁으로 수많은 학생들이 당한 손해는 이루 다 말할 수 없소." 이렇게 말하는 그는 이같이 좁은 방안에서 느끼는 불편함을 깡그리 잊고 마치 교육국장의 으리으리한 사무실에라도 앉아 있는 것같이 느껴졌다. 자리를 깔고 앉아 있는 중년의 사나이는 고개를 들고 원한에 찬 욕심을 퍼부었다. "저쪽의 총사령은 정말 밉살스럽기 짝이 없단 말이야! 이쪽에서 쳐들어가면 어떻게 견뎌 내려고 그러는지. 끝내는 패전하고 말 텐데. 그가 만약 체면을 지키면서 양보했다면 전쟁은 벌써 종말 지었을걸." "그는 멍텅구리라니깐." 국장의 사촌동생이 뇌까렸다. "끝장을 보지 않고는 물러설 사람이 아니야. 그러고 보면 우리가 중간에서 이처럼 어둡고 비좁은 방에 쭈그리고 앉아 헛고생만 하는 거라구." 그는 이렇게 익살조로 말했다. 하지만 판 선생은 머나먼 상해에 있는 처자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는 그들이 무사한지, 무슨 일이 생기지나 않았는지, 그리고 이 시각에 그들이 잠이나 제대로 자고 있는지를 알 길이 없었다. 이러한 그의 염려와 상상은 손으로 잡아 보려 해도 잡을 수 없는 것이며 모호하기 그지없는 것에 불과했다. 그러하기에 그는 지금 자기가 받고 있는 시달림이야말로 힘겨운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묵묵히 앉아 있었다.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그는 다시 그 무시무시한 소식과 예상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해 생각하면서 부지중에 이런 말을 끄집어내었다. "짐작하기 어렵소." 국장은 경험이 풍부한 듯이 말했다. "용병은 전적으로 기회를 타서 하는 일이고, 기회는 시시각각 변하는 것이니... 혹시 우리의 예상과 달리 이 시각에 벌써... 그러므로 우리들은..." 그는 중년 사나이를 보고 히죽 웃어 보였다. 중년 사나이와 국장의 사촌동생, 그리고 판 선생은 모두 국장의 웃음이 의미하는 뜻을 다 알고 있었다. 모두들 여기 앉아 있으면 아무런 사고도 생기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각자 안심하며 웃고 있었다. 이 작은 뜰은 풀이 무성하게 자라 모기와 기타 곤충들이 안식하는 훌륭한 낙원이었다. 곁채에 전등이 켜지면 벌레들이 일제히 날아들어 당황한 네 선생들에게 성가시게 달려들었다. 머리와 얼굴에 마구 붙고 이따금 따끔따끔하게 물기도 해서 사람들은 앉은 채로 몸을 비틀었다. 그러다가도 밖에서 총소리나 사람들의 아우성 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귀를 기울이곤 했다. 잠을 잔다는 것은 도저히 희망이 없는 일로서 실로 국장이 말한 것처럼 돌아가면서 누워서 잠깐씩 휴식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튿날 아침 판 선생의 눈엔 핏발이 섰다. 싸늘한 바람이 불어 와서 몸이 오싹해졌다. 그는 바깥 소식을 알아보기 위해 조용히 대문 밖으로 나왔다. 거리는 평상시의 아침과 마찬가지였다. 개들은 꼬리를 빳빳이 세우고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펴보았다. 이따금 잠에서 채 깨어나지 못한 사람 한둘이 부석부석한 눈을 해가지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그는 다시 다른 골목으로 들어가 살펴보았지만 별로 특별한 소식을 듣지 못했다. 그는 간밤에 호들갑을 떨던 상황을 생각하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다시 돌이켜 생각하니 별로 웃을 일도 아니었다. 조심하는 것은 어쨌든 모험하는 것보다 나으니까. 20여 일이 지난 다음 전쟁은 끝났다. "이젠 됐구나! 싸움만 없다면 무엇이나 다 평안하다니깐!" 사람들은 머리를 끄덕이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러나 판 선생만은 그다지 흡족해 하지 않았다. 철로가 아직 통하지 않아 상해로 피난 간 처자를 데려올 수도 없었고, 편지는 두 번이나 왔지만 어찌도 간단하게 썼던지 더욱더 그들이 그리웠다. 그는 자신이 선견지명이 없었음을 자책하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억울하게도 피난에 그렇게 많은 돈을 쓰지 않아도 될 것이며 또 몇십 일 동안이나 고독하게 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는 교육부에서 개학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을 짐작하고 그 일을 알아보려고 길을 나섰다. 접대실에 들러 보니 교육부의 몇몇 직원들이 종이를 마르고 먹을 갈고 있었는데, 마치 경사스런 일을 치르는 것 같았다. 이때 한 직원이 소리친다. "마침 잘 오셨소! 당신은 대문이나 액자 같은 데 글을 잘 쓰는 명필이니 이 일을 좀 맡아 주셔야 되겠소." "이처럼 굉장한 글은 판 선생이 쓰지 않으면 안 됩니다." 몇몇 사람이 부추겼다. "무엇을 쓰라는 거요? 난 전혀 막막한데..." "우린 여기에다 두 총사령의 개선을 환영하는 사업을 준비하고 있소. 두 총사령의 꽃차가 지나가는 역전광장 양쪽에 네 개의 팻말을 세우려 하는데, 지금 그 팻말에 붙일 글을 쓰려던 중이었소." "나 같은 사람이 어디 그런 글을 쓸 자격이나 있소?" "사양하지 마시고..." "만장일치로 추천합니다." 몇 사람이 함께 부추겼다. 드디어 붓이 판 선생의 손에 쥐어졌다. 판 선생은 이 순간에 이 일은 그 어떤 의미가 있음을 느끼고 붓을 먹물에 적셨다. 잠시 명상에 잠겨 있다가 붓을 들어 밀랍을 먹인 종이에다가 한 줄로 "공훈은 악목보다 더 높다."라고 크게 쓰고, 두 번째 장에는 "위엄이 동남을 누른다."라고 썼다. 세 번째로 "품덕이 숭고하고 은혜가 넓도다."라고 썼는데, 그가 넓다는 글자를 썼을 때 영화 필름을 보는 듯 강제 징병, 대포의 울부짖음, 불에 타는 가옥, 부녀를 간음하는 장면, 변질된 남녀의 시체들이 눈앞에 스쳐 지나갔다. 구경하던 사람이 찬탄을 금치 못했다. "이 구절은 더욱 간절해 보입니다. 글씨도 쓰면 쓸수록 더 잘 쓰시네요." "그가 대구를 어떻게 쓰는가 봅시다." 다른 한 사람이 옆에서 말을 거들었다. (1934년 11월) 예성타오의 작품 세계 예성타오란 이름은 독자들에게 따뜻하면서도 친근한 느낌을 갖게 한다. 특히 젊은 청년독자들에게 말이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은 청년들을 소재로 하고, 그들과 가장 친근한 대화를 나누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글을 읽으면 마치 어른이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가까운 친구와 공부 얘기를 하는 것같이 평이하면서도 진실한 느낌이 보는 이의 마음에 스며들기 때문이다. 그는 소설가이면서도 잘 알려진 산문작가이기도 하다. 그의 산문은 소설처럼 엄숙하면서도 진실하다. 그리고 글자 하나하나에 대해 신중하며 내용에 있어서도 깊은 멋을 보여 준다. 그래서 쭈즈칭의 글과 함께 늘상 국어교재의 모범문장으로 수록되는 것이다. 그는 중국 신문학사상 제일 먼저 동화를 쓴 작가인데, 그의 동화에는 우화적인 요소가 있다. "어려움에 처한 판 선생"은 1934년 11월에 쓴 것이다. 예성타오는 그의 소설에서 냉정과 객관, 그리고 사실을 3박자로 하여 강조하고 있는데, 이 작품은 그 3요소를 잘 구사하고 있다. "어려움에 처한 판 선생"에는 한 농촌의 교사가 군벌의 혼전 가운데에서 구차하게 삶을 도모하려는 심정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러한 마음은 인지상정이기도 하다. 작가는 교사의 비겁하고 사사로운 마음을 적절히 구사하는 등 등장인물의 영혼 깊숙한 곳까지 파헤치고 있다. 그리고 반식민과 반봉건 제도하의 소시민의 회색 생활과 그들의 저속하고 구차한 열등의식들이 판 선생이란 형상을 통해서 예리하게 묘사되었는데, 독자들은 그것이 자신의 대변인 양 심취해 버린다. 왜냐하면 그런 심성은 곧 우리들 모두의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사람들의 비굴성이 싫다는 것이다. 그의 품성이 그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작가는 노후에 "친구들에 답하며"에서 "사람은 생활 깊숙이 파고들어 선악과 시비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준수하며 실천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헛된 삶을 사는 것과 같다."라고 피력하였다. 사실상 짜오찡선은 그의 "문단에서 지난 일을 되새기며"라는 글에서 예성타오의 인품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는데, 이를 통해 그의 작품성향을 인식할 수 있다. "군계일학과도 같이 초연한 상징으로 서리나 눈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추운 겨울일수록 더욱더 청춘의 무르녹음을 보여 준다." 위따푸 작가 세계 1896년 12월 7일(병신 십일월 초삼) 절강성 부양현의 한 몰락한 지주 집안에서 태어남. 이름은 원, 자는 따푸, 어릴 때 이름 은 인성. 사숙의 교사이자 의사였던 부친 위스셴과 모친 루 씨 사이에서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남. 1898년 부친 사망. 모친의 노동에 의해 가정이 꾸려지기 시작. 1902년 나씨사숙에 들어가 글을 읽음. 1903년 괴성각사숙으로 옮김. 1904년 공립 춘강서원에 들어가 공부함. 1908년 강서원이 부양현립고등소학당으로 바뀌어 1학년으로 편입. 고전문학과 영어 등을 배우기 시작함. 1911년 부양현립고등소학당 졸업. 구체시 창작을 시작. 가흥부 중학에 들어갔다가 가을에 항주부중학으로 전입. 쉬즈머와 동학. 1912년 미국 장로회가 설비한 지강대학 예과에 들어감. 교장 반대 시위에 참가하였다가 쫓겨남. 1913년 봄에 미국 침례회가 항주에 설립한 혜란중학에서 영어를 공부함. 3개월 뒤 교육방식에 실망, 고향으로 돌아와 독학을 시작. 9월에는 큰 형 위화가 일본의 사법제도를 시찰하기 위하여 출국하는 길에 따라가 동경 신전정칙보습학교에 들어감. 1914년 7월, 동경 제1고등학교 예과 시험에 관비유학생 자격으로 합격. 처음에는 문과에서 공부했으나 나중에 형의 뜻에 따라 의과로 바꿈. 꿔머뤄와 동학. 서양문학을 접촉하기 시작. 1915년 7월, 동경 제1고등학교 예과 수료. 9월, 나고야 제8고등학교 의과로 배치. 1916년 제8고등학교에서 전공을 정치학으로 바꿈. 1919년 7월, 제8고등학교 졸업. 동경제국대학 경제학부에 응시.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에 러시아, 독일, 영국, 일본, 프랑스 등의 소설과 유명한 문학작품, 철학서를 탐독하고 구시와 소설을 습작. 1920년 여름방학 동안에 귀국하여 쑨췐과 결혼. 1921년 6월 하순에 꿔머뤄, 청팡우 등과 창조사 발기. 정식으로 창작활동을 시작함. 7월, 소설 "은회색의 죽음"을 상해 "시사 신보", "학등"에 T.D.Y.라는 필명으로 발표. 9월, 귀국하여 "창조계간" 발간을 준비. 친구의 소개로 안휘공립법정전문 학교 영문과 주임을 맡음. 10월 15일, 처녀소설집 "타락"을 상해 태동서국에서 출판. 1922년 2월, 소설 "아득한 밤" 창작. 3월, 동경제국대학 졸업 시험에 응시하러 일본으로 건너감. 경제학 학사학위 수여. 4월, 소설 "항수병자" 창작. 5월, "창조계간" 제1기 출판. 7월, 일본에서 귀국하여 유학생활을 마침. 소설 "풍령"(나중에 "공허"라 개칭) 창작. 8월, 소설 "피눈물" 창작. 9월, 안휘 법전으로 돌아가 가르침. 10월, 단막극 "고독한 비애"(나중에 "고독"으로 개칭" 창작. 11월, 역사소설 "채석기" 창작 시도. 1923년 2월, 안휘법전 사임. 북경에서 루쉰을 알게 됨. 4월, 상해로 돌아와 창조사의 간행물 출판과 편집에 힘씀. 5월, "창조주보" 창간. 논문 "문학상의 계급투쟁" 기술. 7월, "창조일"("중화신보" 부간) 창간. 소설 "조라행" 창작. 10월, 북경대학 통계학 강사로 부임. 소설산문 합집 "조라집"을 태동 서국에서 출판. 1925년 2월, 무창사범대학 문과 교수로 부임. 짱즈핑과 함께 일함. 11월, 국가주의파와 수구파의 갈등에 분노하여 상해로 돌아옴. 연말에 폐병에 걸려서 항주에서 요양. 1926년 1월, 상해 광화서국에서 "소설론" 출판. 소설 "이산 전에"를 "동방잡지"에 발표. 2월, 다시 상해로 돌아와 창조사 활동에 참여. 3월, "창조월간" 제1, 2기를 편집. 소설 "안개 그림자" 창작. 남부의 혁명정세에 고무되어 꾸머뤄, 왕뚜칭 등과 함께 광주로 가 광동대학의 문과 교수직을 맡음. 5월, 소설 "추운 밤", "가로등" 창작. 6월, "문예론집"을 상해 광화서국에서 출판. 7월, "희극론"을 상해 상무인 서관에서 출판. 11월, 중산대학(광동대학) 교수직 사임. 12월, 상해로 돌아와 창조사의 출판 활동을 계속하여 "창조월간", 반월간 "홍수", 주간 "신소식" 등을 주편. 1927년 1월, "홍수" 제3권 제25기에 르꾸이라는 필명으로 "광주사정"을 발표하여 광주에서 겪은 바, 혁명의 좋지 못한 경향들을 공개적으로 거론. 소설 "과거" 창작. 2월부터 상해 법 과대학에서 독일문학사 등의 과정을 한 학기 강의. 6월, 쑨 췐과 별거. 항주에서 왕잉샤와 결혼을 약속하고 동거에 들어감. "한회집"이 "따푸 전집" 제1권으로 상해 창조사에서 출판. 8월 15일, 상해 "신보"와 "민국일보"에 창조사 탈퇴 성명을 발표. 9월, 혁명정론 간행물 "민중"지 주편. "일기 구종"을 상해 북신서국에서 출판. 10월, "따푸 전집" 제2권 "계륵집"이 상해 창조사에서 출판. 11월, 소설 "길 잃은 양"을 "북신양월간"에 연재하기 시작함. "따푸 전집" 제3권 "과거집"을 상해 개명서점에서 출판. 1928년 1월, 중편소설 "길 잃은 양"을 상해 북신서국에서 출판. 3월, "따푸전집" 제4권 "기령집"을 상해 개명서점에서 출판. 왕잉샤와 정식 결혼. 봄에 첸싱춘의 소개로 태양사에 비밀리에 가입. 4월, "따푸 전집" 제5권 "폐체집"을 상해 북신 서국에서 출판. 6월, 루쉰과 공동으로 월간 "분류" 창간. 9월, 루쉰의 지지하에 "대중문예" 창간. 소설 우란분회"(나중에 "도주"라 개칭) 창작. 10월, 중국혁명호제회 참가. 아잉과 함께 "백화" 창간. 1929년 6월, 소설산문 합집 "재한풍리"를 하문세계문예서사에서 출판. 9월 말, 안휘대학 문과 교수로 부임. 1주일 뒤 안휘성 교육청장인 청치팡의 공격으로 적화분자의 명단에 올랐으나 친구의 도움으로 상해로 도피, 창작활동을 지속. 1930년 2월, 중국자유운동대동맹 성립, 루쉰 등과 함께 선언문 발표. 3월, 중국좌익작가연맹 성립, 루쉰의 거명으로 발기인이 됨. 7월, 소설 "지폐의 도약" 창작. 8월, 소설 "딸기소주" 창작. 12월, "따푸 전집" 제6권 "미궐집"을 상해 북신 서국에서 출판. 1931년 3__5월, 중편소설 "신기루"를 월간 "청년계"에 연재. 12월, 쪼ㅉ런, 후위즈 등과 함께 상해문화계반제항일대연맹 발기, 조직. 산문 "참여독백" 창작. 1932년 2월, 루쉰, 마오뚠 등과 연명으로 "상해문화계고세계서"를 발표하여 일본 제국주의가 일으킨 '1.28사건'에 대해 강력히 항의. 꽈꿍쩐, 천왕따오 등과 중국저작가항일회 조직. 오송 중국공학에서 가르침. 9월, 소설 "동재관" 창작. 10월, 폐병 재발로 항주에서 잠깐 요양. 소설 "지계화", "벽랑호의 가을 밤" 창작. 11월, "신보"의 자유담 난에 글을 쓰기 시작하여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반대하는 글을 다수 발표. 1933년 1월, 소설 "표아화상"을 "신중화" 반월간 창간호에 발표. 2월, 소설산문 합집 "참여집"을 출판. 3월, 쑹칭링, 차이웬 페이, 양상풔, 린위탕, 루쉰 등이 주축이 된 중국민권보장 동맹에 참가, 상해분회 집행위원으로 피선. "따푸 자선집"을 상해 천마서점에서 출판. 4월 25일, 항주로 이사. 혁명에 대항 염증과 진보적 문화활동 사이에서 갈등함. 5월, 소설 "지모" 창작. 7월, 쩡쩐ㄸ, 푸뚱화 주편의 월간지 "문학" 창간, 루쉰, 마오뚠과 함께 편집위원이 됨. 8월, 극동 반전회의에 참가하여 외국표를 환영하는 선언을 루쉰 등과 연명으로 발표. "따푸 전집" 제7권 "단잔집"을 상해 북신서국에서 출판. 12월, 유기 "절동경물기"를 항강철로국에서 출판. 항주로 이사한 뒤 청도, 절강, 안휘 등지를 유람. 1935년 2월, 소설 "유명론자" 창작. 7월, "따푸 일기집"을 상해 북신서국에서 출판. 10월, "따푸 단편소설집"을 상해 북신서국에서 출판. 11월, "문학"지에 마지막 소설 "출분"을 발표. 1936년 3월, "따푸 유기"를 상해 문학창조사에서 출판. 4월, "따푸 산문집"를 상해 북신서국에서 출판. 5월, 산문집 "한서" 상해 양우도서관에서 출판. 6월, 상해에서 조직된 중국문예가 협회에 가입. 10월 19일, 루쉰 사망. 이튿날 복건에서 상해로 급히 달려와 장례에 참석하여 친히 영구를 메었으며, 산문 "루쉰 선생을 회상하며"를 발표하여 비통한 애도감을 분출. 11월, 일본의 여러 문학단체 초청으로 일본으로 건너가서 강연하고 일본에 있던 꿔머뤄를 방문. 12월 하순, 대만을 거쳐 민남으로 귀국. 1937년 5월, 꾸머뤄에게 편지를 써 귀국을 종용. 7월, 로구교사변이 발생하여 꿔머뤄가 항전에 참가하려고 일본에서 귀국하자, 위따푸는 복건에서 상해로 환영하러 옴. 1938년 1월, 국민정부군사위원회 정치부 제3청이 무한에 조직되어 꿔머뤄가 청장을 맡고 위따푸는 꿔머뤄의 요청으로 설계위원직을 맡음. 3월, 무한에서 조직된 중화전국문예계항적협회에 참가하여 상무이사, 연구부 주임을 맡음. "항전문예" 편집위원으로 피선. 쪼우언라이와 알게 됨. 4월, 태아장, 강소, 하남 등지의 전선에서 항일전사 위문. 6월, 절강과 안휘 시찰. 8월, 일본의 공격으로 무한에서 호남으로 후퇴. 왕잉샤와의 갈등이 공개화됨. 12월, 해외에서 항일선전활동을 하기로 결심, 연말에 왕잉샤와 함께 싱가폴로 감. 1939년 1월, "성주일보" 부간인 "신성", "번성" 주편. "성빈일보"의 "문예" 편집. 이때부터 해외의 동포들에게 호소하는 강력한 항일투쟁의 정론과, 단평, 잡감, 구체시사 등을 창작. 3월, 홍콩의 "대풍"에 "훼가서기"를 기고하여 집안의 분열 과정을 공개함으로써 왕잉샤와의 관계는 완전히 파국으로 치달음. 중경에서 거행된 문협대회에서 이사로 당선. 11월, 큰형 위화가 일본의 위장특무기관의 위협에 항거하다 상해에서 암살됨. 위따푸는 이 소식을 듣고 만사를 부침. 1940년 3월, 왕잉샤와 정식 이혼. 6월, 일본 문예비평가 신쮜꺼에게 보내는 공개편지 "적아지간" 발표. 1941년 3월, "성화문예공작자치교포서"를 발표하여 항일을 위해 단결할 것을 주장. "화교주보" 주편. 11월, 태평양전쟁 발발. 싱가폴 화교문화계 전시공작단 주석과 문화계 전시간부훈련반 주임을 맡음. 1942년 1월, 싱가폴 화교항적동원위원회가 조직, 집행위원으로 피선 됨. 싱가폴 문화계항적연합회 주석. 2월 4일. 일본군의 싱가폴 진주가 임박하여 후위즈, 왕런수 등과 함께 싱가폴에서 철수. 4월, 일본군 점령하의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에서 전전하다 이름을 짜오리엔으로 바꾸고 '조예기주창'을 열어 비밀리에 항일활동을 함. 6__7월, 우연한 기회에 일본군이 그가 일본어에 정통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강제로 일본 헌병부의 통역을 맡김. 8__9월, 이 기간에 그는 은밀하게 화교들의 권익을 보호해 줌. 1943년 2__3월, 일본 헌병부의 억압에서 벗어나 다시 주조장을 운영. 9월, 인도네시아 화교인 허리유와 결혼. 1944년 봄에 간첩의 밀고로 일본 헌병부에서 짜오리엔이 바로 위따푸라는 사실이 발각되어 비밀리에 감시를 받음.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 인도네시아 헌병은 자신들의 죄행을 은페하기 위해 8월 29일 위따푸를 비밀리에 체포하여 9월 17일 비밀리에 살해. 중국정부는 1952년에 그를 혁명열사로 추인. 타락 위따푸 1 최근 들어 그는 가련할 정도로 싸늘한 고독감을 느꼈다. 그의 조숙한 성품이 그를 세상 사람들과 전혀 어울리지 못할 지경으로까지 몰아넣어, 세상 사람들과 그 사이에 가로놓인 담장이 갈수록 높아져만 갔다. 날씨가 날로 서늘해졌다 그의 학교가 개학한 지도 어느덧 보름이 지났다. 그날이 바로 9월 22일이었다. 만 리까지 구름 한 점 없이 온통 푸르른 맑은 하늘에 영원토록 항상 새로운 밝은 태양이 변함없이 그 궤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남쪽에서 불어온 미풍이 술을 깨게 하는 미주처럼 일종의 향기를 머금고 언뜻언뜻 위로 스쳐 왔다. 아직 익지 않은 녹색의 벼 팬 논 가운데 흰 실의 선처럼 꾸불꾸불하게 난 시골 길 위를 그 혼자서 여섯 치 길이의 워즈워스 시집 한 권을 손에 들고 천천히 걸어갔다. 이 널따란 들녘에는 사방에 사람의 그림자라곤 없었으며, 다만 어디에서 들려 오는지 개 짖는 소리가 아련히 그의 고막에 와 닿았다. 책에서 눈을 떼 개 짖는 소리가 들리는 곳을 꿈꾸듯이 바라보니, 한 무더기 잡목 숲 사이로 몇몇 민가가 보였는데, 고기 비늘 같은 기와 위로 한 겹의 엷은 신기루가 가벼운 비단처럼 나부끼고 있었다. "오, 너 해맑은 비단이여! 너 아름다운 비단이여!(Oh, you serene gossamer! You beautiful gossamer!)" 이렇게 한 번 외치자 무엇 때문인지 그 자신도 모르지만 그의 눈에서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멍하니 한참을 바라보다가 그는 갑자기 등뒤에서 언뜻 보랏빛 숨결이 들려 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사그락 소리를 내는 길가의 한 포기 작은 풀이 그의 몽환경을 깨버렸다. 그가 머리를 돌려 보니 그 작은 풀은 아직도 끊임없이 한들거리고 있었으며, 오랑캐꽃 숨결을 띤 온화한 바람이 그의 창백한 얼굴 위로 다사롭게 불어왔다. 이렇게 맑고 온화한 초가을의 세계에서, 이렇게 청정하고 투명한 대기 속에서 그는 온몸이 도취된 듯이 나른해짐을 느꼈다. 그는 마침 인자한 어머니의 품에서 자는 것 같았다. 그는 마치 꿈속에서 도화원에 이른 것 같았다. 그는 마치 남유럽의 해안에서 애인의 무릎에 누워 달콤한 낮잠을 즐기는 것만 같았다. 그가 사방을 둘러보니 주위의 초목들이 모두 그에게 미소 짓고 있는 듯했다. 또한 창공을 바라보니 영원불변한 대자연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듯했다.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채 한참 동안 하늘을 바라보니, 하늘에 한 무리의 천사들이 등에 날개를 꽂고 어깨에 화살을 맨 채 춤추며 뛰노는 듯했다. 그는 너무나도 즐거워 자기도 모르는 새에 입을 열어 혼자 중얼거렸다. "여기가 바로 너의 피난처이다. 세상의 범인들이 모두 너를 시기하고, 너를 경멸하며, 너를 우롱하지만, 이 대자연, 이 만고토록 항상 새로운 창공의 밝은 태양, 이 늦여름의 미풍, 이 초가을의 맑은 기운만은 너의 친구요, 너의 인자한 어머니요, 너의 애인이다. 그러니 너는 더이상 세상으로 가서 저 경박한 남녀들과 함께 거처할 필요가 없다. 너는 이 대자연의 품안에서, 순박한 시골에서 일생을 마치거라." 이렇게 한바탕 말하고 나자 그는 스스로 가련해짐을 느꼈다. 마치 천만 가지 슬픔과 원망이 가슴에 가로놓여 한 마디 말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는 두 눈 가득 눈물을 머금고서 그의 눈을 다시 손에 든 책 위로 옮겨 바라보았다. Behold her, single in the field. You solitary highland lass! Reaping and singing by herself, Stop here, or gently pass! Alone she cuts, and binds the grain. And sings a melancholy strain. oh, listen! for the vale profound, Is overflowing with the sound. 이 제1절을 읽고 나서 그는 다시 홀연 한 장을 넘겨 아무 생각 없이 제3절로 시선을 옮겼다. Will no one tell me what she sings? Perhaps the plaintive numbers flow. For old, unhappy far__off things. And battle long ago. Or is it some more humble lay, Familiar matter of today? Some natural sorrow, loss, or pain? That has been and may be again! 이것 또한 그의 요즈음의 일종의 습관으로, 그는 책을 볼 때마다 결코 차례가 없었다. 수백 페이지의 큰 책은 말할 것도 없고, 에머슨(Emerson)의 "자연론"이나 소로(Thoreau)의 "소요유" 같은 류의 수십 페이지밖에 안 되는 작은 책도 완전히 처음부터 끝까지 한 편을 다 읽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책 한 권을 펴서 처음 네댓 줄이나 한 두 페이지를 읽고 나면 다시 아쉬운 마음이 들어 속에서 이렇게 얘기하는 듯했다. '이처럼 훌륭한 책은 단숨에 읽어 버려서는 안 되고 모름지기 자세히 되씹어 보아야 한다. 한 번에 다 읽어 버리고 나면 나의 열망도 곧 사그라져 버리고 만다. 그렇게 되면 나에겐 희망도 없어지고 몽상도 없어지게 될 것이니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는 머릿속으로는 비록 이렇게 생각을 했지만 사실 그의 마음속에선 벌써부터 약간의 싫증을 느꼈는데, 그럴 때면 그는 그 책을 한편으로 제쳐놓고 다시는 읽지 않았다. 그러다가 며칠이 지나거나 혹은 몇 시간이 지나면 그는 다시 가슴속에 가득 찬 정열로 처음 책을 읽을 때처럼 다른 책을 읽어보지만, 며칠 혹은 몇 시간 전에만 해도 그를 그렇게 감동시켰던 그 책을 도리 없이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큰 소리로 워즈워스이 시 두 절을 읽고 나자 그는 갑자기 중국어로 이 시를 번역해 보고 싶어졌다. "적막한 고원의 벼 베는 사람". 그는 곰곰이 생각해 보니 "The solitary highland reaper" 라는 제목을 이와 같이 번역할 수밖에 없었다. 보라, 저 여인을. 홀로 밭에 있네. 보라, 저 고원의 여인을. 홀로 쓸쓸하구나! 벼를 베면서 쉼 없이 노래하면서, 멈췄다가 지나가는 아름다운 자태, 고운 살결! 그녀 홀로 베며 묶네. 그녀의 노래엔 서글픈 정이 담겨 있구나. 들어 보라! 이 깊고 깊은 골짜기에, 충만한 그녀의 맑은 노랫소리를. 누가 말해 주려나, 그녀가 무슨 노래를 부르는지! 천만 가지 애처로운 사랑 노래일까? 오래 된 슬픈 노래일까? 옛 왕조의 천병만마 전쟁 이야기일까? 아니면 항간의 유행곡, 누구나 다 아는 요즘 노래일까? 늘 지닌 슬픔, 꼭 오는 이별, 절로 생긴 고통의 노래일까? 과거의 회상이자 장차 누군가가 다시 겪게 될. 그는 단숨에 번역해 놓고 보니 문득 허전함을 느껴 스스로를 조롱하면서 말했다. "이게 뭐란 말인가? 교회당의 찬송가처럼 무미하지 않은가? 영국 시는 영국 시이고 중국 시는 중국 시일 따름이니 어찌 번역할 필요가 있겠는가!" 이렇게 말하고 나서 그는 자기도 모르는 새에 가만히 웃었다. 사방을 둘러보니 태양이 이미 기울어 가고 있었다. 대평원의 저 건너편, 서쪽 지평선 위에 높은 산 하나가 온 하늘의 석양을 흠뻑 받은 채 떠 있는데, 산의 주위에는 한 층의 몽롱한 산 안개가 어리어 있어 일종의 자줏빛도 아니고 붉은빛도 아닌 그런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그가 정신없이 바라보고 있을 때 '에헴'하는 기침 소리와 함께 그의 등뒤에서 갑자기 한 농부가 나타났다. 그는 고개를 돌리자마자 웃고 있던 얼굴 표정을 우울한 표정으로 바꾸었는데, 마치 그의 웃는 모습을 남에게 보이는 게 두려운 듯한 눈치였다. 2 그의 우울증은 더욱 심해져만 갔다. 그는 학교의 교과서가 초를 씹는 맛처럼 조금도 재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날씨가 청명할 때면 그는 매번 애독하는 책 한 권을 들고서 인적이 드문 산굽이나 호수로 달려가 고독의 깊은 맛을 즐기곤 하였다. 자연의 온갖 소리가 적막한 순간에 하늘과 땅이 서로 비치는 곳에서 그는 풀, 나무, 벌레, 물고기를 바라보고, 그리고 흰 구름과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자신이 고고하고 오만한 현인이나 초연히 홀로 선 은자처럼 느껴졌다. 어떤 때 산속에서 한 농부를 만나면 그는 스스로를 자라투스트라(Zaratustra)라 여기고서 자라투스트라가 한 말을 마음속으로 그 농부에게 들려주기도 했다. 그의 메갈로마니아(megalomania, 과대망상)도 그의 하이포콘트리아(hypochondria, 우울증)와 정비례해서 하루하루 더 심해져 갔다. 그는 사오일을 계속해서 학교 강의를 빼먹기도 했다. 어쩌다 학교에 나가면 모두들 자기를 응시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이리저리 학우들을 피하려 하였지만 어느 곳으로 가든지 학우들의 눈빛이 늘 악의를 품은 채 그의 등뒤를 쏘아보는 것 같았다. 수업할 때에도 그는 반 학생들의 사이에 앉아 있었지만 언제나 심한 고독을 느꼈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 느끼는 고독은 쓸쓸한 곳에서 홀로 느끼는 고독보다 더욱 참기가 어려웠다. 학우들을 둘러보면 모두들 신이 나서 열심히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강의실을 벗어나 날아가는 구름이나 지나가는 번개처럼 끝없이 끝없이 공상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가까스로 수업을 마치는 종소리가 울렸다. 선생님이 나가신 후 학우들은 서로 우스갯소리와 잡담을 하면서 모두들 봄날의 제비처럼 즐거워하였지만, 그 혼자만은 근심스러운 듯이 눈썹을 찌푸리며 마치 혀끝에 천근이나 되는 큰 돌추가 달려 있는 것처럼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도 학우들이 그에게 다가와서 말을 걸어 주기를 바랐으나 그의 학우들은 모두 자기네끼리만 시시덕거렸다. 어쩌다 그의 근심 어린 얼굴과 마주치면 모두들 고개를 돌리고 피했다. 그래서 그는 그의 학우들을 더욱더 원망하였다. '그들은 모두 일본 사람이다. 그들은 모두 나의 원수이다. 내 언젠가는 복수할 테다. 그들에게 꼭 복수하고 말 테다.' 비분이 북받칠 때마다 그는 늘 이렇게 생각하였지만, 안정이 되고 나면 그는 다시 자신을 조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모두 일본 사람이므로 그들이 나를 동정하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내가 그들의 동정을 얻기 위해서 그들을 원망한다면 어찌 내 스스로의 착오가 아니겠는가?' 일 만들기 좋아하는 학우들 중에서 누군가가 어쩌다 그에게 웃으며 말을 걸어오면, 그는 마음속으로는 비록 매우 감격하여 그 사람과 함께 가슴속의 말을 몇 마디 나누고 싶었지만 입에서는 도무지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뜻을 이해하던 몇몇 사람들도 그에게서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일본인 학우들이 웃으며 기뻐할 때면 언제나 그들이 자기들 비웃는다고 생각하여 순식간에 얼굴이 붉어지곤 하였다. 그들이 잡담할 때에 누군가가 우연히 그를 쳐다보기만 해도 그는 갑자기 얼굴을 붉히며 그들 사이의 거리는 계속 멀어져만 갔다. 그의 학우들은 모두 그가 고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 여겨서 누구도 감히 그의 곁에 가까이 가려 하지 않았다. 어느 날 방과 후에 그가 책가방을 옆에 끼고 그의 하숙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는데, 일본 학생 세 명도 그와 같은 길을 걸어갔다. 그가 거처하는 하숙집에 거의 도착했을 때, 맞은편에서 갑자기 붉은 치마를 입은 여학생 두 명이 걸어오는 것이었다. 이런 시외의 변두리 지역에서는 여학생을 본 적이 없었으므로 그는 그 두 여학생을 보자마자 곧 호흡이 가빠졌다. 그 두 명의 여학생들이 스쳐 지나갈 때 세 명의 일본인 학생들이 그녀들에게 물었다. "너희들 어디 가니?" 그 두 여학생들은 애교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몰라!" "몰라!" 그 일본 학생 세 명은 모두 큰 소리로 웃으면서 마치 매우 만족한 듯 했지만, 그 혼자만은 자기가 직접 그녀들에게 말이라도 건넨 것처럼 몹시 부끄러워하면서 총총히 하숙집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책가방을 다다미 위에다 힘껏 던지고는 다다미 위에 벌렁 드러 누웠다. 그의 가슴은 아직도 마구 뛰고 있었다. 한 손으로는 베개를 삼고 한 손으로는 가슴을 만지면서 그는 스스로를 조소하고 꾸짖어 말하였다. "이 비겁자야! 너는 이미 부끄러워했으면서 왜 후회하려 하지? 후회하려면, 왜 그때 너는 그만한 담력도 없었느냐구. 그녀들에게 말 한 마디도 건네지 못했잖아? Oh, coward, coward!(오, 겁쟁이, 겁쟁이!)"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나서 그는 문득 방금 본 그 두 여학생들의 눈짓을 떠올렸다. 그 두 쌍의 발랄한 눈! 그 두 쌍의 눈 속엔 확실히 놀라면서도 기뻐하는 뜻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자세히 생각해 보고 나서 그는 또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멍청이! 멍청이! 그녀들에게 비록 뜻이 있었다 하더라도 너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지? 그녀들이 보낸 추파는 단지 일본인에게 보낸 것이었잖아. 아! 아! 그녀들은 이미 알고 있었어. 내가 중국인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어.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들이 왜 나에겐 눈길 한 번 주지 않았겠어? 복수, 복수. 나는 언젠가 그녀들에게 복수하고 말 테다." 여기까지 말하고 나자 화끈 달아오른 그의 뺨 위로 문득 차가운 눈물이 몇 방울 굴러 떨어졌다. 그는 무척 상심했다. 그날 밤 그가 기록한 일기는 다음과 같다. 나는 무엇 때문에 일본에 와서, 무엇 때문에 학문을 하나. 이미 일본에 왔으니 자연히 그들 일본인의 경멸을 받지 않을 수 없는 법. 중국이여! 중국이여! 너는 어째서 부강해지지 않느냐? 나는 더 이상 참아낼 수가 없구나. 고향에 어찌 아름다운 산하가 없으리오? 나는 무엇 때문에 이 동해의 섬나라에 왔는가! 일본에 왔으면 그만이지 나는 무엇 때문에 또 이 죽을 것 같은 학교에 진학했나? 그들, 다섯 달 동안 남아서 공부하고 돌아간 사람들은 어찌 여기에서 영화와 안락을 누리지 않았는가? 이 오륙 년의 세월을 나는 어떻게 견디어낼 수 있을까? 천신만고 끝에 십수 년 동안 학식을 쌓아 귀국한다 해도 내가 그들 시끌벅적하던 유학생들에 비하여 반드시 더 낫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인생 백년 중에 젊은 날은 다만 칠판 년의 세월 뿐. 이 가장 순수하고 가장 아름다운 칠판 년을 나는 이 무정한 섬나라 안에서 헛되이 보내야만 한다. 가련하게도 나는 올해 이미 스물 한 살이 되었다. 고목 같은 스무 한 해! 식어 버린 잿더미와도 같은 스무 한 해! 나는 진정 광물질로 변하는 편이 차라리 낫겠다. 나에게는 아마도 꽃 피는 날이 없을 게다. 지식도 필요 없고 명예도 필요 없다. 나는 다만 나를 위로해 주고 나를 이해해 주는 '마음' 하나만이 필요하다. 백열하는 심장! 그 심장에서 생겨나는 동정! 동정에서 나오는 사랑!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바로 사랑이다! 만약 한 미인이 있어 나의 고통을 이해해 주기만 한다면, 그녀가 나더러 죽으라 한다 해도 나는 기끼이 따를 것이다. 만약 한 부인이 있어 그녀가 아름답든지 추하든지 상관없이 진심으로 진정으로 나를 사랑해 주기만 한다면, 나 또한 그녀를 위해 죽고 싶다.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바로 이성간의 사랑이다! 하늘이시여! 하늘이시여! 나는 지식도 필요치 않고, 명예도 필요치 않으며, 그 무용한 금전도 필요치 않습니다. 당신이 만약에 에덴 동산의 '이브' 하나를 나에게 내려 주시어 그녀의 육체와 영혼을 온전히 저에게 귀속시켜 주신다면 저는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3 그의 고향은 부춘강 옆의 작은 도시로서 항주에서 물길로 팔구십 리밖에 안 떨어져 있었다. 이 한 줄기 강물은 안휘에서 발원하여 절강 전지역을 관통하여 흐르는데, 강 모양이 굽이져 있고 풍경이 항상 새로워서 당나라의 한 시인이 이 강을 "한 냇물이 그림 같도다."하고 찬탄했었다. 그는 열네 살 때 선생님에게 그 글을 써달라고 청해서 그의 서재에 붙여 놓았는데, 그의 서재의 작은 창이 강쪽을 향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재는 비록 그다지 크지 않았으나 비오거나, 구름 끼거나, 흐리거나, 맑거나, 봄 가을, 아침 저녁의 풍경은 등왕각에 못지 않았다. 이 자그마한 서재에서 십여 번의 봄 가을을 보내고 나서 그는 그의 형을 따라 일본에 공부하러 온 것이었다. 그는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는데, 그때 그의 집은 몹시 곤궁했었다. 용케도 그의 큰형이 일본 W대학을 졸업하고 북경으로 돌아와 진사에 합격하여 법무부의 관리로 배속되었으나, 2년이 채 못 되어 무창의 혁명이 일어나고 말았다. 그때에 그는 이미 현립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이리저리 중학교를 옮겨 다니고 있었다. 그의 집안 사람들은 모두 그의 끈기 없음을 이상히 여기고 그의 생각이 너무 제멋대로임을 나무랐다. 그러나 그 자신의 말에 의하면, 자기는 다른 학생들과는 다르기 때문에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그들과 함께 공부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K현의 중학교에 들어간 후, 반년도 못 되어서 다시 갑자기 H현의 중학교로 전학하였는데, H현의 중학교에 다닌 지 석 달만에 혁명이 일어났다. H현의 중학교가 휴교된 후 그는 예전대로 그의 자그마한 서재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 다음해 봄 그가 열입곱 살 되던 때, 그는 대학 진학을 위한 예비학교에 진학하였다. 이 학교는 항주성 밖에 있었는데, 본래 미국 장호회의 기부금으로 세워진 것이었다. 그래서 학교 안에 일종의 전제적인 폐풍이 스며들어 있어서 학생들의 자유가 거의 바늘구멍처럼 작게 위축되어 있었다. 수요일 저녁마다 무슨 기도회가 있었으며, 일요일에는 밖에 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기숙사 안에서 다른 책을 보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찬송가를 부르거나 기도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신, 구약서를 보는 것만 허락되었다. 매일 아침 9시부터 9시 20분까지는 반드시 예배보러 가야 하였으며, 예배보러 가지 않으면 감점을 당하였다. 그는 비록 그 학교 근방의 산수풍경을 매우 사랑하였지만, 마음속에는 반항의 뜻을 품고 있었다. 그는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미신적인 속박에 대해서는 도저히 달게 복종할 수가 없었다. 입학한 지 반년이 채 못 되었을 때, 그 학교의 요리사가 교장의 기세를 믿고 학생을 구타한 사건이 일어났다. 학생들 중에 몇몇 복종하지 않는 이들이 곧장 교장에게 호소하였으나 교장은 도리어 학생들이 잘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상황을 주시하고 사실 너무나도 터무니 없었으므로 곧장 자퇴를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그 작은 서재에 머물렀다. 그때가 6월 초순이었다. 집에서 석 달 남짓 지낸 후 가을 바람이 부춘강 위로 불어와 양쪽 언덕의 푸른 나무가 낙엽을 떨굴 때, 그는 돛단배를 타고 부춘강을 내려가 항주로 갔다. 때마침 그때 석패루의 W중학교에서 편입생을 모집하고 있었는데, 교장인 M씨는 그의 경력을 듣더니 곧 그를 최고급반에 편입시켜 주었다. 이 W중학교도 원래 교회학교였으며, 교장 M씨도 멍청한 미국 선교사였다. 그가 보기에 이 학교의 수준은 H중학교보다도 못하였다. 그래서 한 저속한 교무주임__원래 이 선생은 H중학교의 졸업생이었다__과 한바탕 싸운 뒤 그 다음해 봄에 그는 곧 그곳을 나와 버렸다. W중학교를 나와서 그는 항주의 다른 학교들을 둘러보았으나 모두 그의 마음에 들지 않아서 더 이상 다른 학교에 입학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바로 이때 그의 큰형도 북경에서 남들에게 배척 당했다. 원래 그의 큰형은 사람됨이 매우 정직하여 법무부에서 일을 처리할 때 공평무사하였으며, 또한 부내의 일반 동료들보다도 학식이 더 많았으므로 부내의 상하 사람들이 모두 그를 기피하고 꺼려하였다. 하루는 모 차장의 아는 사람이 와서 그에게 자리 하나를 부탁했는데, 그는 완강히 거부하였다. 이로 인하여 그는 차장과 한바탕 언쟁을 하였으며, 며칠이 지난 후 그는 곧 법무부의 관직을 사퇴하고 사법부로 옮겨가서 사법관이 되었다. 그의 둘째 형은 그때 소흥 군대에서 장교로 있었는데, 이 둘째 형은 군인 기질이 다분하여 돈을 물쓰듯하였으며, 의협심이 많은 친구들과 사귀기를 좋아하였다. 그들 세 형제들은 그때에 모두 뜻대로 일을 할 수가 없었으므로 그 작은 도시의 사람들은 모두 그들의 운세가 다했다고들 말했다. 그는 집으로 돌아온 후 온종일 그의 작은 서재에 칩거하였다. 그의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그의 큰형이 소장했던 서적이 그의 좋은 스승과 유익한 벗이 되어 주었다. 그의 일기장에는 날마다 시가 기록되기 시작했다. 어떤 때는 화려한 문장으로 소설을 쓰기도 했는데, 소설 속에서 그는 자신을 아주 다정한 용사로 만들었고, 이웃집 과부의 두 딸을 귀족의 후예로 만들었으며, 그의 고향의 풍경을 전편에 흐르는 전원의 아름다운 경치로 삼았다. 흥이 날 때는 자기 자신의 소설을 단순한 외국어로 번역해 보기로 했다. 그의 환상은 더욱더 크게 펼쳐져 갔다. 그의 우울증의 싹은 아마도 이때에 배양되었던 것 같다. 집에서 반년을 지낸 뒤 7월 중순에 그는 큰형이 보낸 편지를 받았다. 법원 안에서 요즈음 나를 일본에 파견하여 사법 사무를 시찰케 하자는 의견이 있어서 나는 이미 원장에게 일본행을 승낙했다. 아마도 며칠 안으로 명령이 있을 것 같다. 일본으로 건너가기에 앞서 잠시 고향에 돌아가 머무르려고 한다. 막내도 집에 있는 것만이 상책이 아닐 테니 이번에 나와 함께 일본에 갔으면 한다. 그는 이 한 통의 편지를 받고서 마음속으로 날마다 그의 큰형이 내려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는데, 9월 하순에야 그의 큰형과 형수가 집에 도착했다. 한 달을 지낸 후에 그는 그의 큰형, 큰형수와 함께 일본으로 갔다. 일본에 도착한 후에도 그는 낭만적인 시절의 꿈들에서 아직 깨어나지 못했다. 어물어물 반년을 보내고 나서 그는 동경 제일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이때가 바로 그가 열 아홉 살 되던 해의 가을이었다. 제일고등학교가 개학할 무렵에 그의 큰형은 귀국하라는 원장의 명령을 받았다. 그의 큰형은 곧 그를 한 일본인의 집에 기숙시켜 놓고는 며칠 후에 큰형수와 갓난아이인 그의 여자 조카를 데리고 귀국해 버렸다. 동경의 제일고등학교에는 예과가 있었는데, 그것은 중국 학생을 위하여 특별히 설치된 것이었다. 이 예과에서 1년 동안 공부한 후에야 비로소 각지 고등학교의 정과에 입학하여 일본 학생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었다. 그가 예과에 들어갈 때에는 본래 문과를 지망했었는데, 나중에 예과를 졸업할 무렵에 그의 큰형이 그에게 의과로 바꾸라고 하자 그는 당시 아무런 주관도 없었던 터라 큰형의 말을 듣고 의과로 바꾸어 버렸다. 예과를 졸업한 후, 그는 N시의 고등학교가 가장 신식이며 또한 N시가 일본에서 미인이 많은 곳이라고 해서 곧 N시의 고등학교로 가겠다고 했다. 4 그의 나이 스무 살 되던 해 8월 29일 저녁에 그는 혼자 동경의 중앙역에서 야간 열차를 타고 N시로 갔다. 그날은 아마도 음력 초사흘인 것 같았다. 남색에 자줏빛이 도는 융단 같은 하늘 가득히 별들이 반짝거렸다. 반쯤 이지러진 초생달이 서쪽 하늘 모퉁이에 걸려 있었는데, 마치 아직 취대(눈썹을 그리는 데 쓰는 푸른빛의 먹)를 칠하지 않은 선녀의 아미 같았다. 그는 혼자 삼등칸의 차창에 기대어 묵묵히 창밖 인가의 등불을 세었다. 기차가 까만 밤 속에서 한바퀴 한바퀴 나아가자 그 대도시의 반짝이는 등불도 한점 한점 몽롱해져 갔다. 그의 가슴에 갑자기 천만 가지 슬픈 감정이 일어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Sentimental, too Sentimental!(감상적인, 너무나 감상적인!)" 이렇게 소리치며 눈물을 한 번 훔치고 나서 그는 도리어 자신을 비웃었다. '너는 동경에 두고 온 애인도 없으며, 동경에 사는 형제나 친한 벗도 없는데, 도대체 누구를 위하여 눈물을 흘리는 거지? 혹 너의 과거 생활에 대한 슬픈 감정인가? 아니면 그 동안의 네 생활에 대해 남아 있는 정인가? 하지만 너는 평소에 동경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았더냐?' '아, 1년여 동안 사람이 살았으니 어찌 정이 없을손가?' '꾀꼬리와 서로 오래 지내니 서로 알아봐, 떠나려 하니 자주 우짖네.(황앵주구호상식, 욕별빈제사오성)' 어지럽게 이것저것 한참을 생각하고 나서 그는 신대륙에 처음으로 발을 내딛었던 청교도들의 신세를 문득 떠올렸다. '그 십자가를 짊어진 유랑민들이 그의 고향 해안을 떠나왔을 때도 아마 나처럼 비장한 마음으로 눈물을 흘렸겠지.' 기차가 요코하마를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그의 감정이 점점 평온해졌다. 멍하니 잠시 앉아 있다가 그는 곧 엽서 한 장을 꺼내어 하이네(Heine)의 시집 위에다 놓고 연필로 동경의 친구에게 보내는 시 한 수를 썼다. 아미 같은 달, 버들가지 끝에 솟아오를 때, 또 하늘가를 향해 옛집을 떠나네. 사방 기정(술집, 요릿집)에서는 술 내기를 다투고, 온 거리의 등불은 멀리 수레를 따르네. 어지러이 떠남에 나이 어려 눈물 많지 않고, 보따리엔 집이 가난해 옛 책뿐이네. 훗날 밤 갈대 뿌리에 가을 물 찰 때, 그대에게 의지해 남포에서 상어를 찾으려네. 몽롱한 전등불 아래서 한참 동안 조용히 않아 있다가 그는 다시 하이네의 시집을 펼쳐 보았다. Lebet wohl, ihr glatten saele. Glatte herren, glatte frauen! Auf die berge will ich steigen. Lachend auf euch niederschauen! 부박한 속세, 무정한 남녀. 보라, 저 은은한 청산을! 내 바람 타고 날아가, 잠시 머물러, 잠시 머물러, 그 정상의 고봉에서, 너희들이 결국 어디로 돌아가는지 웃으며 보리라! 단조로운 바퀴 소리가 덜컹덜컹 끊임없이 그의 고막에 날아 들어왔다. 30분도 못 되어서 그는 결국 졸음을 재촉하는 기차바퀴 소리에 이끌려 몽환적인 선경으로 들어갔다. 아침 6시가 되자 하늘이 점점 밝아오기 시작했다. 차창 안에서 밖을 바라보니 한 선을 이룬 푸른 하늘이 아직 밤빛에 싸여 있었다. 머리를 내밀고 바라보니 한 겹의 얇은 운무가 한 폭의 천연적인 그림을 덮고 있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오늘은 아주 맑은 가을 날씨군. 나의 복도 그다지 적다고 볼 수는 없겠어.' 한 시간쯤 지나자 기차가 N시의 정거장에 도착했다. 기차에서 내려 정거장에서 우연히 한 일본 학생을 만났다. 그는 그 학생의 교모 위에 두 줄의 흰 선이 있는 것을 보고서 그도 역시 고등학교 학생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앞으로 걸어가서 그 학생의 향해 모자를 벗고 물었다. "X고등학교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 학생이 대답했다. "저를 따라 오십시오." 그는 그 학생을 따라 기차역을 빠져 나와 역 앞에서 전차를 탔다. 이른 아침이었으므로 N시의 상점들은 모두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그는 그 일본 학생과 함께 전차를 타고서 몇 군데 한적한 거리를 지나 학무공원 앞에서 내렸다. 그는 일본 학생에게 물었다. "아직 멀었습니까?" "아직 2리쯤 남았습니다." 공원을 통과하여 논밭 가운데 있는 가느다란 길 위를 걸을 때 그는 태양이 이미 떠오른 것을 보았다. 벼 위에 맺힌 이슬방울이 아직 투명한 구슬처럼 거기에 매달려 있었다. 앞에는 숲이 하나 있었는데 우거진 나무 그늘 속으로 드문드문 몇 채의 농가가 보였다. 두서너 개의 굴뚝에서 나온 연기가 농가 위로 솟아 나와 맑은 새벽 공기 속에서 은은하게 떠 있었다. 한 오라기, 두 오라기 푸른 연기가 향료의 연기처럼 떠다니는 것을 보고 그는 농가에서 이미 아침밥을 짓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학교 부근의 하숙집에 가서 물어 보았더니 그가 일주일 전에 부쳤던 몇 가지 짐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 원래 그 집은 중국 유학생이 머물렀던 곳이어서 주인이 잘 대해 주었다. 그 하숙집에 머물게 된 뒤부터 그는 마치 앞날에 수많은 환희가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의 앞날에 대한 희망은 첫날밤에 눈앞의 현실에 의하여 조롱 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원래 그의 고향도 작은 도시였다. 동경에 도착한 후 인산인해 속에서 그는 비록 항상 고독을 느끼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곳에서의 생활은 그의 어릴 적 습관과 그다지 크게 다른 점은 없었다. 그러나 이 N시에 와서 보니 그의 하숙집은 고립된 집이었다. 사방에 이웃이라고는 없었고 왼쪽 문 밖은 한 가닥 머리채 같은 큰길이었으며 앞뒤는 모두 논밭, 그리고 서쪽에는 네모난 저수지 하나가 있었다. 게다가 학교가 아직 개학하지 않아서 다른 학생들도 오지 않았다. 이 넓디넓은 하숙집에 손님이라고는 그 혼자뿐이었다. 낮에는 그래도 견딜 만하였으나 일단 밤이 되어 창을 열면 사방이 모두 컴컴한 검은 그림자뿐이었다. 또한 N시의 부근은 대평원이었으므로 눈을 들어 하늘까지 바라봐도 사방에 가리는 곳이라고는 없었으며, 저 멀리 한 점 불빛이 무심히 깜박거려 귀신이 나올 것 같이 스산했다. 천장에서는 여러 마리의 쥐들이 찍찍거리며 먹이를 다투었다. 창 밖에 있는 몇 그루의 오동나무가 미풍에 잎사귀를 흔들며 끊임없이 스억스억 소리를 냈는데, 그의 방은 이층에 있었으므로 오동잎 흔들리는 소리가 그의 귓가에 더욱 가까이 들렸다. 그는 무서워서 거의 울음이 나올 지경이 되었다. 도시에 대한 그의 향수병(Nostalgia)이 일찍이 이날 밤보다 더 심한 적은 없었다. 학교가 개학하자 그의 친구들도 점점 많아졌다. 감수성이 매우 강렬한 그의 성품도 천지 수목과 융화되어 갔다. 반년도 못 되어서 그는 결국 대자연의 총아로 변하여 잠시도 그 천연의 풍취를 떠날 수가 없었다. 그의 학교는 N시의 교외에 있었는데, N시의 부근은 대평원이어서 사방의 지평선은 그 경계가 광대하였다. 그때는 일본의 공업이 아직 충분히 발달되지 않았으며 인구도 지금처럼 증가되지 않았으므로 그의 학교 부근은 대부분 숲이나 공터, 낮은 구릉들이었다. 학생을 상대로 장사하는 몇몇 문방구나 음식점 외에는 부근에 주민도 없었다. 거친 들녘에는 학생을 상대로 생겨난 하숙집 몇 채가 새벽 하늘의 별처럼 보리밭과 오이밭 가운데에 흩어져 있었다. 저녁을 먹은 후 검은 모직 망토를 걸치고 애독하는 책을 든 채 뉘엿뉘엿 넘어가는 석양의 낙조를 받으며 한가로이 산책하는 것이 그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그의 전원적인 취미는 대개 이 전원적인 산책(Idylic Wanderings)속에서 길러진 것이었다. 생활환경이 그다지 맹렬하지도 않고 자유로이 소요할 수 있는, 이처럼 한가롭게 아담한 곳에서 지낸다는 것은 정말 꿈만 같았다. 그가 N시로 온 후 순식간에 어언 반년이 넘게 지나갔다. 훈풍이 밤낮으로 불어오자 풀빛이 점점 푸르러 갔다. 하숙집 근방 보리밭의 보리 이삭도 한치 한치 커갔다. 풀, 나무, 벌레, 물고기들이 모두 천지 자연의 이치에 따라 성장함에 그의 조상 때부터 전해 내려오는 고민도 날마다 늘어만 갔다. 그가 매일 아침 이불 속에서 저지르는 죄악도 한차례 한차례 늘어가기 시작했다. 그는 본래 고상함과 청결함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나, 일단 사념이 일어났다 하면 그의 지력도 소용이 없었고 그의 양심도 마비되어 버렸다. 그가 어렸을 때부터 마음속에 지켜 왔던 "신체와 터럭과 살갗은 감히 훼상해서는 안 된다(신체발부 불감훼상)."는 성훈도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그는 죄를 저지른 후 매번 깊이 후회하면서 결코 다시는 저지르지 않겠다고 이를 갈며 말하지만, 그 다음날 그때가 되면 여러 가지 환상이 다시 눈앞에 강하게 다가왔다. 그가 평소에 보아 왔던 '이브'의 후예가 모두 완전한 나체로 그를 유혹하였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중년을 넘은 부인의 육체가 처녀보다도 더욱 그의 욕정을 유발케 하는 쪽이었다. 그는 한바탕 고민을 하고 심하게 투쟁을 하지만, 결국은 그녀들의 포로가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해서 한 번이 두 번이 되었으며 두 번이 된 후엔 곧 습관이 되어 버렸다. 그는 죄를 지은 후엔 매번 도서관에 가서 의학서적을 펼쳐 보았는데 의학서적에는 모두 천편일률적으로 몸에 가장 해로운 것이며 이것도 일종의 범죄라고 씌어 있었다. 그 후로 그의 공포심은 날마다 증가되어 갔다. 어느 날 그는 어디에서 들었는지도 모르지만, 러시아 근대문학의 창시자인 고골리도 이런 병에 걸려서 죽을 때까지 고치지 못했다는 사실이 어느 책에 씌어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고골리를 생각하자 마음이 다소 느긋해졌는데, "죽은 영혼"의 저자도 그와 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자신에 대한 위안에 불과했을 뿐이며, 그의 가슴에는 항상 일종의 남 다른 근심이 존재했다. 그는 정결한 것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므로 매일 한 번씩 꼭 목욕을 했으며, 또한 몸을 매우 아끼는 편이었으므로 매일 몇 개의 생계란과 우유를 먹었다. 그러나 그는 목욕하거나 우유와 달걀을 먹을 때마다 매우 부끄러움을 느꼈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모두 그의 범죄에 대한 증거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몸이 날로 쇠약해져 가고 기억력도 날로 감퇴되어 감을 느꼈다. 그는 다시 남의 얼굴 대하기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겨났으며, 특히 부녀자를 볼 때면 더욱 견디기 어려웠다. 그는 학교의 교과서는 점점 멀리 했으나, 프랑스의 자연파 소설이나 중국의 유명한 몇몇 회음소설 등은 읽고 또 읽어서 거의 다 외우고 있었다. 어떤 때 문득 좋은 시라도 한 수 지으면 그는 아주 기쁨에 넘쳐 그의 머리가 아직은 망가지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때마다 그는 자신에게 맹세하여 말하곤 했다. "나의 머리는 아직도 쓸 수가 있어. 아직도 이런 시를 지을 수 있다구. 이제부터는 결코 죄를 짓지 않겠어. 과거의 일은 어찌할 수 없지만 이후에는 더 이상 죄를 짓지 말아야지. 만약에 이제부터라도 스스로를 쇄신하면 나의 머리도 괜찮아질 거야." 그러나 일단 긴박한 때가 닥치면 그의 맹세는 곧 잊혀지고 말았다. 매주 목요일이나 금요일, 혹은 매월 26일이나 27일경이면 그는 마음껏 환락을 탐하였다. 그는 마음속으로 다음 주 월요일이나 혹은 다음 달 초하루부터는 결코 죄를 짓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떤 때는 토요일이나 월말의 저녁이 되었을 때, 머리를 깎고 목욕을 하는 등 허물을 고치고 스스로 새로워지는 표시로 삼기도 했으나, 며칠이 지나고 나면 그는 다시 계란과 우유를 먹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죄책감과 공포심으로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다. 그의 우울증도 이때부터 심해져 갔다. 이러한 상태로 한두 달 계속되는 중에 그의 학교가 여름방학을 했다. 여름 방학 두 달 동안 그의 고민은 평상시보다 더욱 심했다. 학교가 개학한 후, 그의 양 볼의 광대뼈는 더욱 튀어나왔으며 그의 청회색의 눈두덩도 더욱 쾡해졌다. 그의 영활했던 한 쌍의 눈동자는 죽은 고기의 눈알처럼 변해 버렸다. 5 가을이 또 왔다. 드넓은 창공이 하루하루 높아져 갔으며, 하숙집 부근의 논밭은 황금빛으로 일렁였다. 아침 저녁으로 불어오는 싸늘한 바람이 사람의 심골을 날카롭게 찌르는 것을 보니 가을, 겨울의 좋은 날이 오는 것도 멀지 않은 것 같았다. 일주일 전 어느 날 오후에 그는 워즈워스의 시집 한 권을 들고 밭두둑길을 반나절 동안 한가로이 산책하였는데, 이날 이후부터 그의 순환성 우울증은 그의 몸에서 떠난 적이 없었다. 우연히 길에서 만났던 그 두 여학생이 항상 그의 머릿속에 남아 있어서 그는 마음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그날의 일을 떠올리면 그는 아직도 혼자 얼굴을 붉혔다. 그는 요즈음 어느 곳을 가든지 늘 편안함을 느끼기 어려웠다. 학교에 갈 때도 그의 일본인 학우들이 모두 자기를 배척하는 것같이 느껴졌다. 몇몇 중국인 학우를 찾아가 보지 않은 지도 오래 되었는데, 왜냐하면 찾아가 보고 돌아오면 그의 마음이 도리어 공허해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의 몇몇 중국인 학우들은 그의 마음을 이해해 주지 못했다. 그는 어느 정도의 이해와 위안을 얻고 싶어 그들을 찾아가지만, 그곳에 도착해서 몇 마디 말을 나누고 나면 찾아간 게 잘못이었다고 스스로 다시 후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때 친구와 의기투합하여 얘기할 때면 그는 곧 일시적인 열기에 휩싸여 그의 안팎 생활을 모두 친구에게 말해 주지만, 돌아올 때 그는 실언했음을 느끼고 스스로 후회하여 심리적인 자책이 친구를 찾아가지 않을 때보다 도리어 훨씬 더 심했다. 그의 몇몇 중국인 학우들은 이로 인하여 모두들 그가 신경쇠약증에 걸렸다고 하였다. 그는 이 말을 듣고 난 후, 그 몇몇 중국인 학우들에 대해서도 일본 학생들에 대한 것처럼 일종의 복수심이 일어났다. 그래서 그는 중국인 학우들과도 날로 멀어져 갔다. 그 뒤로는 길에서나 혹은 학교 안에서 만나더라도 그 중국인 학우들에게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중국 유학생 회의가 열릴 때에도 물론 참석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그는 그의 몇몇 동포들과도 완전히 두 집안의 원수처럼 되어 버렸다. 그 중국인 학우들 속에도 매우 기이한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그는 자신의 결혼에 어떤 도덕적인 죄책감이 있었는지 남의 추한 일을 들추어내서 자기의 좋지 못한 점을 감추기를 좋아했다. 그가 신경쇠약증에 걸렸다고 말한 것도 그 학우가 말한 것이었다. 그는 그들과 교재를 끊은 후 고독에 사무쳐 거의 죽을 지경에까지 갔으나, 다행히 그가 살고 있던 하숙집 주인에게 딸이 하나 있어서 그의 마음을 끌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정말 자살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 하숙집 주인의 딸은 올해 열 일곱 살로 갸름한 얼굴에 눈이 컸다. 웃을 때는 얼굴에 양쪽 보조개가 들어갔으며 입 속에 있는 금니 하나가 드러났다. 그녀는 자신의 웃는 얼굴이 매우 아름답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평상시에 늘 웃고 다녔다. 그는 마음속으로 그녀를 매우 사랑하였지만, 그녀가 밥상을 가져오거나 이불을 깔아 줄 때, 짐짓 일종의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모습을 지어 보였다. 그는 마음속으로는 그녀에게 몇 마디 말이라도 건네고 싶었으나 그녀를 보기만 하면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그녀가 그의 방에 들어올 때면 그는 호흡이 가빠져서 숨도 내쉬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는 그녀의 면전에서는 사실상 괴로움을 참아낼 수 없었으므로, 그녀가 방으로 들어올 때면 방밖으로 뛰어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를 사모하는 그의 심정은 하루하루 깊어만 갔다. 어느 토요일 밤, 하숙집의 학생들은 모두 N시로 놀러 나갔으나 그는 경제사정이 곤란했으므로 저녁을 먹고 난 후 서쪽 연못가를 한 바퀴 돌고 나서 곧장 하숙집으로 돌아와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한참을 앉아 있자니, 그는 그 텅 빈 이층에 자기 혼자만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조용히 앉아 있다가 더 이상 고민을 참을 수 없자 다시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어졌다. 그러나 밖으로 나가려면 현관문 옆에 있는 주인집 방문 앞을 지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는 조금 전에 들어올 때 주인과 그 딸이 밥을 먹고 있던 것을 기억했다. 그는 그녀의 앞으로 지나갈 때의 고통을 생각하자 곧 밖으로 나가겠다는 생각이 달아나 버렸다. 조지 기싱(G.Gissing)의 소설 한 권을 꺼내어 서너 페이지를 읽었을 때, 적막한 공기를 통해 갑자기 '쏴아'하고 물 끼얹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가만히 그 소리를 듣고 있자니 호흡이 순식간에 가빠지고 얼굴색도 붉어지기 시작했다.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그는 살며시 방문을 열고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발소리를 죽이며 계단을 내려갔다. 그는 슬그머니 변소문을 열고 들어가 변소 유리창 가에 꼼짝 않고 서서 훔쳐보았다. 원래 그 하숙집의 욕실은 변소와 벽을 사이에 두고 있었으므로 변소 유리창으로 들여다보면 욕실 안의 동정을 훤히 엿볼 수 있었다. 그는 처음에는 그저 한 번 들여다보고 돌아오려고 했으나 일단 보고 나자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 눈 같은 두 젖 봉오리! 그 토실토실한 흰 두 다리! 그 온몸의 곡선! 숨도 쉬지 않고 한참을 자세히 보고 있자니 그의 얼굴 근육이 모두 경련을 일으켰다. 보면 볼수록 더욱 심하게 떨렸다. 그러다가 그의 떨리는 앞 이마가 마침내 유리창에 쾅 부딪혔다. 김에 싸여 있던 알몸의 '이브'가 곧 아리따운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세요?" 그는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황급히 변소를 빠져나와 허겁지겁 이층으로 올라갔다. 방으로 뛰어들어오자 그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고 입도 바싹 말랐다. 그는 자신의 뺨을 때리면서 이불을 꺼내 잠자리에 들었다. 그는 이불 속에서 뒤척거리다가 도무지 잠이 오질 않아 곧 귀를 세우고서 아래층의 동정을 살폈다. 그가 듣자니, 물 뿌리는 소리가 그치고 욕실의 문이 열린 후 그녀의 발소리가 마치 이층으로 올라오는 것 같아서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그의 마음속에서 분명하게 그에게 말하였다. '그녀는 이미 문 밖에 서 있어.' 그는 전신의 피가 모두 위로 솟구치는 것 같았다. 마음속으로 매우 두렵고 부끄러웠으나 한편으로는 매우 기쁘기도 했다. 그러나 만약 어떤 사람이 그에게 물어 보았더라면 그는 어쨌든 그때에 그가 기뻤다는 것을 기꺼이 인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숨을 죽이고 한참 동안 귀를 곤두세워 들어 보았지만 문 밖에서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일부러 헛기침도 해보았지만 문 밖에서는 역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때 아래층에서 아버지와 얘기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필사적으로 그녀의 말소리를 들으려 했으나 아무리 노력해도 똑똑히 들리지 않았다. 한참 있다가 그녀의 아버지가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그는 이불을 온통 뒤집어쓰고서 이를 꽉 문 채 생각했다. '그녀가 아버지에게 일러바치는 거야! 그녀가 아버지에게 일러바치는 거라구!' 그날 밤 그는 한숨도 자지 못했다. 그 다음날 아침에 날이 밝자마자 그는 가슴을 조이며 간이 콩알만해져서 아래층으로 내려와 세수하고 나서 주인과 딸이 일어나기 전에 도망치듯이 하숙집을 빠져나와 밖으로 뛰어나갔다. 길 위에 있는 먼지는 아침 이슬에 젖어 아직 마르지 않았고 태양은 이미 떠올라 있었다. 그는 무턱대고 동쪽으로 걸어갔다. 한 농부가 지나가며 그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그는 깜짝 놀라 그 바싹 마른 얼굴이 붉어지며 가슴도 마구 뛰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설마 이 농부도 알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는 정신없이 얼마 동안 달리다가 고개를 돌려 그의 학교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학교는 이미 저 멀리에 있었다. 다시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태양도 높이 떠 있었다. 그는 더듬어 시계를 찾아보았으나 전병 만한 크기의 은시계는 몸에 없었다. 태양의 각도로 재보니 대강 9시쯤 된 것 같았다. 그는 몹시 배가 고팠지만 하숙집으로 다시 돌아가 주인과 그 딸을 마주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먹을 것을 좀 사서 허기를 채우려고 주머니를 뒤져 보았으나 주머니 속에는 겨우 동전 몇 개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는 어느 시골 가게에 들어가서 그 동전들을 털어 주고 약간의 먹을 것을 사서 사람이 보이지 않는 곳을 찾아가 먹으려 했다. 두 길이 교차되는 네거리에 이르러 남쪽을 바라보았더니 그가 걸어왔던 길과 가로로 교차되는, 북에서 남으로 향한 길이 보였는데 행인이 거의 없었다. 그 길은 남쪽으로 경사져 있었는데 길 양옆으로 높은 절벽이 있었으므로 그는 그 길이 작은 산을 끊어서 만들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방금 걸어왔던 그 큰길은 바로 이 산의 능선이었다. 네거리를 중심으로 하여 산능선 위의 큰길과 서로 교차하는 가로 길은 양쪽이 경사져 있었다. 네거리 입구에서 잠시 머뭇거린 뒤 그는 곧 남쪽으로 경사진 길을 따라 걸어갔다. 높은 절벽 사잇길을 지나자 그가 가는 길은 곧장 대평원을 끼고 들어가 저 건너편의 시내로 직통해 있었다. 평원의 저 건너편 푸른 하늘 아래에는 유난히 수풀이 우거진 곳이 보였다. 그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저것이 아마도 A신궁인가 보다.' 양쪽의 높은 절벽 사이를 지나 왼쪽의 경사진 곳을 바라보니 높은 절벽에 인접해 있는 산 위에 낮은 담장 하나가 보였다. 그 담장은 몇 채의 집을 둘러싸고 있었으며, 그 집 문 위에는 '향설해'라고 씌어진 편액이 걸려 있었다. 큰길에서 벗어나 얼마쯤 걸어 올라가자 문이 나왔다. 살며시 손을 내밀어 문을 밀자 그 두 쪽의 사립문이 저절로 열렸다. 그는 마음대로 걸어 들어갔다. 문 앞에 한 가닥 굽은 오솔길이 있었는데, 그 길을 따라 문 입구에서 비탈진 곳을 올라가면 곧장 산 위로 갈 수 있었다. 오솔길의 양옆으로 수많은 매화나무가 심어져 있었으므로 그는 이곳이 바로 매화나무 숲인 것을 알았다. 그 오솔길을 따라 북쪽으로 가서 비탈진 곳으로부터 산마루에 이르렀을 때, 한 조각 그림 같은 평지가 그의 눈앞에 전개되었다. 이 동산은 산기슭에서부터 시작되어 남쪽을 향한 한쪽 산비탈에 걸쳐 있었는데, 정상의 평지와 함께 매우 그윽하고 아담하게 펼쳐져 있었다. 산마루 평지의 서쪽으로 천 길이나 되는 절벽이 건너편 절벽과 서로 대치하고 있었으며, 두 절벽 사이에는 바로 그가 방금 걸어왔던 북에서 남으로 뻗은 한 가닥 통로가 있었다. 그 절벽을 등지고 한 채의 이층집과 몇 채의 단층집이 세워져 있었다. 그런데 이 집들의 문이 모두 닫혀져 있었으므로 그는 그곳이 매화꽃이 필 때만 술과 음식을 파는 데라는 것을 알았다. 이층집 앞에는 잔디밭이 있었고, 잔디밭 안에는 몇 개의 흰돌이 꽃밭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으며, 그 울타리 안에는 오래 된 매화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그 잔디밭의 남쪽 끝머리, 곧 산마루의 평지가 막 남쪽으로 경사지기 시작하는 곳에 매화나무 숲의 역사를 기록해 놓은 비석 하나가 서 있었다. 그는 이 비석 앞의 잔디밭에 앉아서 아까 사온 간식을 꺼내어 먹었다. 다 먹은 후 그는 우두커니 잔디밭에 한동안 앉아 있었다. 사방에 사람 소리는 없고 저 멀리 있는 나뭇가지 위에서 때때로 새 우는 소리가 한두번 날아왔다. 그는 고개를 들어 티없이 깨끗한 푸른 하늘과 해맑은 태양을 바라보면서 사방의 나뭇가지와 집, 작은 풀과 새들이 모두 한결같이 화평한 태양빛 아래서 대자연의 화육을 받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가 어젯밤에 저질렀던 죄의 기억은 먼 바다의 돛단배 그림자처럼 자기도 모르는 새에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이 매화나무 숲의 평지와 비탈진 곳에는 이리저리 많은 오솔길이 교차하고 있었다. 그는 일어나서 한참을 걷다가 비탈진 곳의 매화나무 사이에 또 한 채의 단층집이 서 있음을 알았다. 이 단층집에서 동쪽으로 몇 발짝 걸어가자 솔잎에 파묻힌 옛 우물이 하나 있었다. 그는 우물의 펌프를 눌러 보았으나 삐걱삐걱 소리만 날 뿐 물은 나오지 않았다. '이 동산은 아마도 매화꽃이 필 때만 문을 열고 평상시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것 같군.' 이렇게 생각하고 그는 혼자 중얼거렸다. "기왕 비어 있다면 내가 동산 주인에게 빌려 달라고 물어 봐도 괜찮겠지." 생각을 정하고 나자 그는 동산 주인을 찾아갈 셈으로 산에서 뛰어 내려왔다. 그가 거의 입구에 다다랐을 때, 마침 동산으로 들어오고 있던 쉰 살쯤 되어 보이는 농부를 우연히 만났다. 그는 농부에게 양해를 구한 뒤에 물었다. "이 동산이 누구의 것인지 당신은 알고 계십니까?" "이 동산은 내가 관리하오만." "당신은 어디에 사십니까?" "나는 길 저쪽에 살고 있소." 이렇게 말하면서 그 농부는 통로 서쪽에 있는 작은 집을 가리켰다. 그가 서쪽을 보자 과연 서쪽 절벽 끝에 자그마한 집 한 채가 있었다. 그는 머리를 끄덕이며 또 물었다. "동산에 있는 그 이층집을 저에게 세내 주실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있소만 당신 혼자뿐이오?" "저 혼자뿐입니다." "그렇다면 이사올 필요가 없을 것 같소." "그건 무슨 이유에선가요?" "당신네 학교 학생이 이미 몇 차례 이사왔었지만 모두들 쓸쓸함을 견디지 못하여 열흘도 채 못 살고 이사가곤 했었소." "저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저에게 세내 주시기만 한다면 저는 쓸쓸함 따위는 걱정 없습니다." "그렇다면 세를 못 내줄 이유가 어디 있겠소. 언제쯤 이사오겠소?" "당장 오늘 오후에 오겠습니다." "좋소, 좋아요." "그럼 저 대신 청소 좀 해주십시오. 이사한 뒤에 바쁘지 않게 말입니다." "좋소, 좋소. 그럼 또 봅시다." "안녕히 계십시오." 6 산 위의 매화 동산으로 이사온 후 그의 우울증은 그 형태가 변하기 시작했다. 그는 북경에 있는 그의 큰형과 사소한 일로 틈이 벌어졌다. 그래서 그는 장문의 편지 한 통을 보내 큰형과 의를 끊었다. 그 편지를 보내고 난 후 그는 이층집 앞 잔디밭에 멍하니 앉아 오랜 시간 동안 생각에 잠겼다. 그는 자기가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이번 결렬은 그에게서 비롯된 것이었다. 집안 식구끼리의 싸움은 다른 성씨끼리 싸우는 것보다 훨씬 심한 법이어서 이 일이 있은 후로 그는 그의 큰형을 뱀만큼이나 미워하였다. 그는 남들에게 모욕을 당할 때마다 그의 큰형을 끌어다 비유하곤 하였다. "친형제간에도 그러한데 하물며 다른 사람이야!" 그는 이러한 결론에 도달할 때마다 큰형이 그에게 가혹하게 대했던 일을 하나하나 회상하였다. 여러 가지 과거의 일들을 열거한 후, 그는 큰형은 나쁜 사람이고 자기는 좋은 사람이라고 판결을 내렸다. 그는 또 자기의 좋은 점을 열거해 보기도 하고 그가 받았던 고통을 과장해서 자세히 세어 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고통받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나자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그가 울고 있을 때 공중에서 마치 어떤 부드러운 음성이 그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아, 울고 있는 이가 너냐? 넌 참 억울하게 되었구나. 너처럼 이렇게 착한 사람이 세상 사람들의 학대를 받다니 넌 정말 억울하겠구나. 그만두어라, 그만둬. 이것도 천명이니 이제 다시는 울지 말아라. 네 몸을 해칠까 걱정이 되는구나.' 그는 마음속으로 이러한 음성을 듣고 나자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그는 슬픔과 고통 가운데서도 끝없는 감미로움이 있음을 느꼈다. 그는 큰형에게 복수할 셈으로 의과에서 문과로 전과하였다. 그의 생각으로는, 외과에 들어간 것은 큰형이 바꾸라고 했기 때문이었으므로 다시 문과로 돌아간다는 것은 바로 그의 큰형에 대한 일종의 선전포고였다. 게다가 그가 의과에서 문과로 전과하면 고등학교 졸업이 1년 늦어지게 되는 것이었다. 그는 1년을 늦게 졸업하면 1년 일찍 죽는 것이므로 만약에 이로 인하여 1년이 늦어지게 되면 죽을 때까지 그의 큰형에 대하여 일종의 적개심을 품을 수 있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그는 일이 년 후에 그들 두 형제의 감정이 예전처럼 좋아지는 것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이번의 전과는 바로 그가 영원히 큰형을 적대시하도록 도와 주는 하나의 수단이었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기 시작했다. 그가 산 위로 이사온 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요 며칠 동안 날씨가 음울하여 회색빛의 두터운 구름이 날마다 하늘에 걸려 있었다. 썰렁한 북풍이 불어오자 매화나무 숲의 나뭇잎이 마냥 뚝뚝 떨어져 내렸다. 처음 이사올 때 그는 헌 책을 팔아 여러 가지 취사도구를 사서 한 달 남짓 스스로 밥을 해먹었으나 날씨가 추워지자 그도 게을러졌다. 그는 매일 식사를 전적으로 산기슭 아래에 사는 동산 관리인에게 맡겼다. 그래서 그는 요즈음 남을 원망하거나 자기를 욕하는 것 외에는 절을 떠난 한가로운 승려처럼 별다른 일이 없었다. 어느 날 아침 그는 일찍 일어나 동쪽으로 난 창을 열었더니 앞에 바라보이는 지평선 위에 몇 줄기 붉은 구름이 떠다니고 있었으며, 동쪽 하늘 절반이 안홍의 회색으로 비치고 있었다. 어제 하루 종일 가랑비가 내렸으므로 그는 그 떠오르는 청신한 해를 보자 평상시보다 기쁨이 훨씬 더하였다. 그는 산비탈을 걸어 내려가 옛우물에서 물을 길어 세수하고 나자 온몸의 기력이 순식간에 모두 회복되는 것 같았다. 그는 곧장 이층으로 뛰어 올라가서 황중측(송나라의 무인 황정견을 말함)의 시집 한 권을 가지고 나와 큰 소리로 읊으면서 매화나무 숲의 오솔길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얼마 후에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가 살고 있는 산마루에서 남쪽을 바라보자 대평원이 나타났다. 들판 안의 논밭은 아직 수확을 하지 않았으므로 황금빛 들녘이 감청색의 하늘을 배경 삼아 온 하늘 가득 아침 햇살을 반사하고 있었는데, 그 풍경이 바로 밀레의 아름다운 전원풍경화와 흡사했다. 그는 자기가 마치 몇 천년 전의 원시 기독교도라도 된 것처럼 생각하며 이 자연의 묵시 앞에서 자신의 도량이 좁음을 비웃었다. '용서하리라! 용서하리라! 너희들 세상 사람들이 나에게 지은 죄를 내 모두 용서해 주리라. 오라, 너희들 오라. 모두들 와서 나하고 평화를 얘기하자.' 손에 시집 한 권을 들고 눈에는 두 줄기 눈물을 흘리면서 그 평원의 가을빛을 대한 채 멍하니 서서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는 갑자기 그의 옆에서 두 사람이 낮은 목소리로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 "당신, 오늘밤에 꼭 오는 거야!" 이것은 분명히 남자의 목소리였다. "나도 정말 오고 싶지만 두려워서..." 그는 이 애교가 뚝뚝 흐르는 여자의 목소리를 듣고 나자 마치 전기에 감전된 듯이 혈액 순환이 모두 멈춰 버리는 것 같았다. 그의 곁에는 크게 자란 갈대숲이 우거져 있었는데, 그는 갈대 숲의 오른쪽에 서 있었고 그 남녀는 갈대숲의 왼쪽에 있었으므로 그들 두 사람은 갈대숲이 건너편에 누군가가 서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 남자가 다시 말했다. "오늘밤에 꼭 오도록 해. 우리는 지금까지 이불 속에서 같이 자본 적이 없잖아." "..." 그는 문득 쪽쪽거리며 입술을 빠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 그는 먹을 것을 훔치는 들개처럼 가슴을 졸이면서 몸을 낮추었다. '죽어라! 죽어! 어쩌다가 이런 지경에까지 빠져들었니!' 비록 그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통렬히 자신을 욕하였지만, 그의 곤두선 두 귀는 오히려 한 마디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온 정신을 다 쏟아 듣고 있었다. 땅 위의 낙엽이 바스락 바스락 소리를 낸다. 허리띠를 푸는 소리. 남자는 씩씩거리며 숨을 토해 낸다. 혀끝을 빠는 소리. 여자는 약하게 강하게, 끊어질 듯 이어질 듯 말하였다. "당신!...당신!...당신 빨리... 그만...그만...남에게...남에게 들켜서는 안 돼요." 그의 얼굴빛이 회색으로 변하였다. 그의 눈은 불꽃처럼 벌게 졌으며, 그의 턱은 딱딱 소리를 내며 떨기 시작했다. 그는 더 이상 서 있을 수가 없어서 뛰쳐나가려고 했으나 그의 두 다리가 도무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두 사람이 떠나는 소리를 듣고 난 후에야 비로소 물에 빠진 고양이처럼 이층 방으로 돌아가 이불을 펴고 잠들어 버렸다. 7 그는 밥도 먹지 않고 줄곧 이불 속에서 오후 4시까지 있다가 겨우 일어났다. 석양이 온 주위를 가득 비추고 있었으며 들녘 저 건너편의 숲속엔 푸른 연기가 아스라이 덮여 있었다. 그는 비틀거리며 산에서 걸어 내려와 그 북에서 남으로 향한 큰길로 나와서 들녘을 가로질러 밑도끝도 없이 그저 남쪽을 향하여 걸어갔다. 들녘을 다 지나오자 그는 어느새 신궁앞의 전차 정류장에 와 있었다. 그때 마침 남쪽에서 전차 한 대가 도착했다. 그는 자기도 모르는 새에 올라탔으나, 도대체 이 전차가 어디로 가는 것인지도 몰랐다. 십오륙 분쯤 가자 전차가 멈춰 섰는데, 운전수가 갈아타라고 해서 그는 다른 전차로 갈아탔다. 이삼십 분쯤 가자 전차가 다시 섰다. 종점이라고 말하는 소리를 듣고서 내렸더니 바로 축향이었다. 앞에 보이는 망망한 대해가 오후의 태양 빛 아래에 길게 누워서 미소 짓고 있었으며, 바다 너머 남쪽에는 푸른 산 하나가 투명한 공기 속에서 은은히 떠 있었다. 서쪽에는 길다란 방파제가 해안의 중심부에까지 곧장 뻗어 있었으며, 방파제 밖에는 등대 하나가 거인처럼 서 있었다. 몇 척의 빈 배와 몇 척의 삼판선이 매여져 있는 곳에서 가볍게 떠 있었다. 해안에서 가까운 바다에는 수많은 부표가 석양을 흠뻑 받은 채 붉게 떠 있었다.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이 몇 마디 단조로운 말소리를 실어 왔으나, 무슨 말인지 똑똑하게 들리지도 않았으며 어디에서 들려 오는지도 몰랐다. 그는 해안가를 한참 동안 왔다갔다하다가 문득 한바탕 경쇠 치는 소리를 들었다. 뛰어가서 보았더니 다름 아닌 도선을 부르려고 친 것이었다. 한동안 서 있자 작은 발동선 한 척이 건너편 해안에서 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사오십쯤 되어 보이는 노동자를 따라 그도 작은 발동선에 올라 타 앉았다. 동쪽 해안으로 건너간 뒤 앞으로 몇 걸음을 올라가니 해안가에 큰 별장 한 채가 있었는데, 대문이 활짝 열려져 있었고 정원 안에는 인공산과 화초가 썩 보기 좋게 꾸며져 있었다. 그는 다짜고짜로 성큼 들어갔다. 몇 걸음도 채 못 가서 그는 집안에서 여인의 애교스런 목소리가 그를 부르는 것을 들었다. "어서 오세요." 그는 무심결에 깜짝 놀라 우두커니 서 있다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곳은 아마도 술과 음식을 파는 집인가 보다. 내가 듣기로는 이런 곳에는 대개 기생이 있다던데.' 이렇게 생각하자 그의 정신은 마치 한 통의 냉수를 몸에 끼얹은 것처럼 덜덜 떨렸다. 그의 얼굴빛도 금방 변하였다. 들어가려고 해도 들어갈 수가 없었으며 나가려고 해도 역시 나갈 수가 없었다. 가련하게도 그의 토끼 같은 담력과 원숭이 같은 음란한 마음이 마침내 그를 커다란 곤경에 빠뜨리고 말았다. "들어오세요! 자, 들어오시라니까요!" 안에서 다시 애교가 뚝뚝 흐르는 소리로 웃음까지 띠고서 불러 댔다. "얄미운 것들 같으니. 너희들이 감히 나의 담력이 작다고 비웃는 거냐?" 이렇게 화를 내자 그의 얼굴빛이 더욱 불꽃처럼 달아올랐다. 어금니를 꽉 깨물고 발을 땅에 가볍게 내디디면서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앞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은 마치 그 젊은 기녀들에게 선전포고라도 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의 붉으락푸르락하는 얼굴빛과 가볍게 진동하는 얼굴 근육은 도무지 감출 수가 없었다. 그 기녀들 앞에 다다랐을 때 그는 어린애처럼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어 버렸다. "올라오세요!" 그는 뻔뻔스럽게 열 일곱 살쯤 되어 보이는 한 기녀를 따라 이층으로 올라갔는데, 그때 그의 정신은 다소 진정되어 있었다. 몇 발짝 걸어가서 컴컴하고 좁은 복도를 지나갈 때, 사람을 어지럽게 하는 화장품 냄새가 일본 여인 특유의 체취와 머리카락의 향유 냄새와 한데 섞이어 그의 콧구멍을 확 파고들었다. 그는 순간 머리가 핑 돌고 눈에서는 별이 보여 뒤로 자빠질 듯이 한 걸음 물러났다. 다시 눈을 똑바로 뜨고 보니 그의 앞쪽 컴컴한 가운데서 화장을 한 동그란 얼굴의 주인공이 미소를 머금고서 그에게 물었다. "당신도 바다 쪽 방으로 가실 거예요? 아니면 어떤?" 그는 여자의 입에서 토해 내는 숨결이 후끈하게 그의 얼굴로 뿜어 오는 것을 느꼈을 때, 자기도 모르게 그 숨결을 깊이 들이마셨다. 그의 의식이 이러한 행동을 자각했을 때, 그의 얼굴빛이 다시 금세 붉어졌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어물어물 그녀에게 대답하였다. "바다 쪽 방으로 가지." 바다 쪽의 자그마한 방으로 들어가자 그 기녀는 그에게 무슨 음식을 시킬 것인지를 물었다. "마음대로 몇 가지 가져와요." "술은 시킬까요, 말까요?" "시켜야지." 그 기녀가 나간 후 그는 일어나서 종이 창문을 열어 밖에서 신선한 공기가 쏴 들어오게 하였다. 방안의 공기가 너무 탁해서 방금 그가 좁다란 복도에서 맡았던 그 여자들의 향내가 아직도 거기에 남아 있었으므로 그는 정말 그 냄새에 짓눌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대해가 고요히 그의 앞에 떠 있었다. 밖에는 마치 미풍이 부는 듯 조각 조각의 파도가 태양빛의 반사를 받아 금붕어 비늘처럼 잔잔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창 앞에 한참 동안 서 있다가 낮은 목소리로 시 한 구절을 읊었다. "해변의 누각에 석양이 붉게 타오르네." 그가 서쪽을 바라보자 태양이 서남쪽의 지평선 위로 겨우 한 길 정도의 높이에 떠 있었다. 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보았으나 그의 생각은 방금 전의 그 기녀에게서 떠나지 못하였다. 그녀의 입에서, 머리에서, 몸에서 풍기는 향기가 그의 마음으로 하여금 다른 것을 도무지 생각도 못 하게 해버렸다. 그는 자기가 시를 읊고자 하는 마음은 거짓이며 여인의 육체를 생각하는 마음이 진짜라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 잠시 후에 그 기녀가 술과 안주를 들고 들어와 그의 앞에 꿇어앉아 공손하게 그에게 술을 따랐다. 그는 자세히 그녀를 보면서 그의 마음속 고민을 모두 그녀에게 털어놓으려고 생각했지만, 그의 눈은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으며 그의 혀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는 마치 벙어리처럼 그녀의 무릎 위에 놓여진 섬섬옥수와 옷 틈으로 언뜻 보이는 분홍색 앞 속치마 자락만 훔쳐보고 있었다. 원래 일본의 여인네들은 모두 고쟁이를 입지 않고 맨몸에 그냥 짧은 앞 속치마 한 장만을 두른다. 겉에는 긴 소매의 옷을 걸치는데, 옷에는 단추가 없으며 허리에는 한 자 정도 넓이의 허리띠를 둘러 뒤에다 네모 난 매듭을 짓는다. 그래서 그녀들이 한발짝 한발짝 걸을 때마다 앞 옷이 걷어 올라가서 붉은 색의 앞 속치마와 포동포동한 흰 다리를 훔쳐볼 수 있다. 이것이 일본 여자 특유의 아름다운 곳이다. 그가 길가에서 여자를 만났을 때 주의해서 보는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그가 이를 갈면서 자신에게 "이 짐승아! 개 같은 놈아! 비겁한 놈아!"라고 꾸짖는 것도 바로 이때였다. 그는 그 기녀의 앞 속치마 자락을 보자 가슴이 마구 뛰었다. 그녀와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마도 그 기녀가 참을 수 없었던지 슬며시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댁이 어디예요?" 이 한마디를 듣자마자 그의 깡마르고 창백한 얼굴이 또다시 붉어졌다. 그는 어물어물 겨우 대답은 했으나 더듬거려서 도무지 분명한 말대답은 하지 못하였다. 가련하게도 그는 또 단두대에 올라선 것이었다. 원래 일본인은 우리들이 개, 돼지를 멸시하듯이 중국인을 멸시하였다. 일본인들은 중국인을 '지나인'이라고 불렀는데, 이 '지나인'이라는 석 자는 우리들이 남을 욕할 때 쓰는 '천한 도적놈'이라는 말보다도 더 듣기 싫었다. 그는 이제 이 꽃 같은 소녀 앞에서 자신은 지나인이라고 자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이여! 중국이여! 너는 어찌하여 강대해지지 않느냐?' 그는 온몸을 떨며 눈물을 흘렸다. 그 기녀는 그가 더 떠는 것을 보자 그 혼자 남아서 술을 마시게 함으로써 그의 신경을 안정시켜 보려고 그에게 말하였다. "술이 금방 떨어지겠어요. 제가 가서 한 병 더 가지고 오겠어요." 잠시 후에 그는 그 기녀의 발소리가 다시 이층으로 올라오고 있는 것을 들었다. 그는 그녀가 자기에게 오는 줄로 알고 곧 옷을 단정히 하고 자세를 가다듬었다. 그러나 그는 그녀에게 속고 말았다. 그녀는 두세 명의 다른 손님을 데리고 바로 벽 너머 옆방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 두세 명의 손님들이 모두 그녀를 놀려댔고 그 기녀도 아양을 떨면서 말하였다. "떠들지들 마세요. 옆방에 손님이 계시단 말이에요." 그는 이 말을 듣자마자 곧장 화가 치밀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그들에게 욕하며 말하였다. '개자식! 속물들! 네놈들이 나를 등신 취급하는 거냐? 복수다! 복수! 내 기어코 너희들에게 복수하리라. 세상 어디에 진실한 마음을 지닌 여자가 있더냐? 그녀도 나를 배신했다. 내가 감히 나를 버려 두는 거냐? 그만두어라. 그만둬. 다시는 여자를 사랑하지 않으리라. 다시는 여자를 사랑하지 않으리라. 나는 나의 조국을 사랑한다. 나는 나의 조국을 애인으로 삼으련다.' 그는 즉시 돌아가서 발분하여 열심히 공부하려고 했으나 그의 마음은 도리어 옆방의 그 속물들을 부러워하였다. 그의 마음속 한 곳에서는 아직도 그 기녀가 자기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는 화를 가라앉히고 묵묵히 술 몇 잔을 비우고 나니 몸이 후끈해짐을 느꼈다. 창문을 열고 보니 태양이 막 산을 넘어가고 있었다. 연거푸 몇 잔을 들이키고 나자 그 앞의 바다 풍경이 몽롱해지는 것을 느꼈다. 서쪽 방파제 밖 등대의 검은 그림자가 길다랗게 드리워져 있었다. 한 겹 망망한 엷은 안개가 바다와 하늘을 하나로 뒤섞어 버렸다. 이 혼돈스러운 얇은 비단 그림자 속에서 서쪽으로 절 듯 말 듯한 태양이 마치 이별을 아쉬워하는 것 같았다. 그는 한참 동안 쳐다보다가 무슨 까닭인지는 모르나 웃음이 나오려 했다. 껄껄껄 한바탕 웃고 나서 그는 손으로 자기의 달아오른 두 뺨을 문지르며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취한다. 취해!" 그 기녀가 들어오더니 그가 발개진 얼굴로 창가에 서서 멍청히 웃고 있는 것을 보고서 그에게 물었다. "창을 이렇게 활짝 열어 놓다니 당신은 춥지도 않아요?" "춥지 않소. 춥지 않아. 이렇게 아름다운 낙조를 누군들 보지 않겠소?" "당신은 시인이시군요! 술 가져왔어요." "시인! 나는 본래 시인이오. 가서 종이와 붓을 가져오시오. 내 당장 시를 한 수 써서 당신에게 보여 주겠소." 그 기녀가 나간 후 그는 스스로 이상하다고 느꼈다. 그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어떻게 이렇게까지 대담해질 수 있을까?' 새로 가져온 더운 술을 몇 잔 통쾌하게 마시자 그는 더욱 쾌활해짐을 느꼈다. 그래서 참지 못하고 껄껄껄 한바탕 다시 웃어댔다. 옆방에 있는 그 속물들이 큰 소리로 일본 노래를 부르자, 그도 목청을 돋우어 시를 읊었다. 취박란간주의한, 강호 우동잔. 극린앵무중천골, 미배장사태전관. 이여천금도보역, 범인오희출관난. 망망연수회두망, 지위신천저암강. 취하여 난간 두드리니 술 취한 뜻 차갑고, 강호에 쓸쓸히 떠도나니 또한 겨울이 저무네. 몹시도 가련구나 앵무중주의 뼈, 아직도 장사태전 벼슬에 제수되지 못하였네. 밥 한 그릇에 천금으로 보답하기는 쉬워도, 오희가 부르며 관문 나서기는 어렵네. 망망히 안개 낀 물 고개 돌려 보라보며, 다시 신주 위해 눈물 지으며 나몰래 노래하네. 큰 소리로 몇 번 읊고 나서 그는 곧 취하여 자리에 쓰러졌다. 8 술이 깨자 그는 붉은 비단 이불 속에서 자고 났음을 알았다. 이불에서는 이상한 향기가 났다. 이 방은 그리 크지는 않았으나 낮의 그 방이 아니었다. 방에는 십 촉 짜리 전등이 걸려 있었으며 베갯머리에는 차 한 병과 잔 두 개가 놓여 있었다. 그는 두세 잔의 차를 따라 마신 후 곧 비틀거리면서 방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가 문을 열자 마침 낮의 그 기녀가 뛰어왔다. 그녀가 그에게 물었다. "깨어나셨어요?" 그는 머리를 끄덕이며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서 대답하였다. "깨어났소. 한데, 변소는 어디에 있소?" "제가 모시고 가지요." 그는 그녀를 따라갔다. 그가 낮에 지나왔던 그 좁은 복도에는 전등이 매우 밝게 켜져 있었다. 여기저기서 수많은 노랫소리와 삼현 소리와 큰 웃음소리가 그의 귓전에 들려 왔다. 그는 낮의 일을 모두 생각해 보았다. 술 취한 후 그가 그 기녀에게 한 말이 생각났을 때, 그는 얼굴이 또다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변소에서 방으로 돌아온 후, 그는 그 기녀에게 물었다. "이 이불은 당신 거요?" "그래요." "지금 몇 시쯤 되었소?" "아마 8시 40분쯤 되었을 겁니다." "가서 계산서 가져오시오." "그러지요." 그는 계산을 끝내고 지폐 한 장을 꺼내어 그 기녀에게 주었는데, 그의 손이 약간 떨렸다. "저는 괜찮아요." 그는 그녀가 적어서 사양하는 줄로 알았다. 그의 얼굴빛이 다시 붉어졌다. 그가 주머니 속을 다시 뒤적거려 보았더니 지폐 한 장만이 남아 있었다. 그는 얼른 그것을 꺼내어 그녀에게 주면서 말했다. "적다고 사양 말고 받아 두시오." 그의 손은 더욱 심하게 떨렸으며 목소리까지 떨리기 시작하였다. 그 기녀가 그를 한 번 쳐다보더니 곧 낮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감사합니다." 그는 곧장 이층에서 뛰어 내려와 구두를 신자마자 밖으로 나왔다. 밖은 매우 추웠다. 아마도 이날이 음력으로 초 팔구 일쯤 되는 것 같았다. 차가운 반달이 왼쪽 하늘가에 높이 걸려 있었다. 푸르스름하고 둥그런 하늘에는 몇몇 별들이 드물게 흩어져 있었다. 그가 해변을 한 차례 거닐면서 바라보니 저 멀리 해안의 불빛이 도깨비불처럼 그를 유인하고 있었다. 잔잔한 물결 속에 비치는 은색 달빛은 마치 산도깨비의 눈짓이 깜박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나 그는 갑자기 바다 속으로 뛰어들어가 죽고 싶었다. 그는 몸을 더듬어 보았으나 전차 탈 돈도 없었다. 낮의 일을 생각해 보니 자신을 심하게 꾸짖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어쩌다가 그런 곳에 갔었지? 나는 이미 가장 열등한 인간으로 변해 버렸구나. 후회해도 소용없어. 후회해도 소용없다구. 나는 여기서 죽는 거야. 내가 구하는 사랑은 아마 얻지 못할 거야. 사랑이 없는 생애는 어찌 식어 버린 재와 같지 않으리오? 아! 이 메마른 생애. 이 메마른 생애. 세상 사람들은 모두 나를 원수처럼 보고, 나를 바보 취급했지. 내 친형제마저도, 나의 수족마저도 모두 나를 이 세상 밖으로 몰아냈어. 나는 장차 어떻게 살아갈까? 나는 왜 이렇게 고통 많은 세상에서 살아야 하나?' 이렇게 생각하자 그의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그의 창백한 얼굴빛은 마치 죽은 사람의 얼굴빛과 같았다. 그는 눈물을 닦지 않은 채로 있었기에 달빛이 그의 얼굴에 비치자 두 줄기 눈물이 마치 나뭇잎에 맺힌 아침 이슬처럼 반짝거렸다. 고개를 돌려 자신의 그 여위고 긴 그림자를 보자 마음이 아파옴을 느꼈다. '가련하구나, 너 그림자야. 나를 따른 지 스무한 해. 이제 이 큰 바다가 바로 너의 몸을 묻을 곳이다. 나의 몸은 비록 남들에게 모욕을 당해도 너만큼은 이렇게까지 쇠약한 지경으로 몰아넣어서는 안 되는데. 그림자여! 그림자여! 나를 용서해다오!' 그가 서쪽을 바라보니 등대의 불빛이 순간순간 붉어졌다 파래졌다 하면서 그 직분을 다하고 있었다. 그 푸른빛이 바다 위를 비출 때는 바다 위에 한 가닥 길이 나타나곤 했다. 다시 서쪽 하늘을 바라보니 짙푸른 하늘 아래에 한 떨기 밝은 별이 움직이고 있었다. '저 쉼 없이 움직이는 한 떨기 밝은 별 아래가 바로 나의 고국이요, 또한 내가 태어난 곳이다. 나는 저 한 떨기 별 아래에서 일찍이 열 여덟 번의 가을과 겨울을 보냈다. 나의 고향아! 나는 이제 다시는 너를 볼 수 없겠구나.' 그는 걸어가면서 줄곧 이렇게 처량하고 슬픈 말만 떠올렸다. 한참을 걷다가 다시 서쪽의 그 밝은 별을 쳐다보자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는 사방의 경치가 모두 훤해진 것을 느꼈다. 눈물을 닦고 멈춰 서서 긴 탄식을 하면서 그는 이렇게 뇌까렸다. "조국이여! 조국이여! 나의 죽음은 바로 네가 나를 해친 것!" "너는 빨리 부강해지거라!" "너에게는 아직도 고통받고 있는 수많은 젊은이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1921년) 위따푸의 작품 세계 위따푸의 "타락"은 중국 현대문학사상 최초의 소설집인 "타락"에 들어 있는 위따푸 문학의 대표작이다. 세기의 전환과 함께 정치 사회적 격변 속에서 문학분야에서도 역시 후스를 필두로 백화문학 혁명이 고조에 이르던 즈음, 그 구체적 성과로 "광인일기" 등을 위시한 루쉰 문학과 함께 꽃피우기 시작했던 위따푸 문학은 중국 현대문학의 개창기라 할 5.4시기의 다양한 흐름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루쉰 문학이 '식인'이라는 상징을 매개로 한 대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면, 위따푸 문학은 가장 혈기왕성했던 청춘시절 꼭 8년 동안을 일본에서 유학하면서 겪었던 자신의 이야기에서 출발한 실존적 메시지를 쏟아내고 있다. 위따푸 문학의 가장 큰 특징 역시 거기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그의 소설을 자전소설이니 자아소설이니, 또는 신변소설이니 하고 부르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유학생활 동안 그는 당시 일본에서 유행하던 문학현상들에 경도 되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사소설'의 물결이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등을 선두로 해서 나타난 사소설은 작가의 직접 체험을 토대로 작품을 창작하며, 심지어 작품을 쓰기 위해 고의로 특정한 생활을 선택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소설'은 위따푸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그의 소설이 '다른 사람의 있을 법한 이야기'가 아닌 '자기가 겪은 자신의 이야기'를 써내도록 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그의 문학적 특징은 그 서사구조와 문학기법면에서도 몇 가지 특징을 수반하는데, 우선 그의 소설에서는 일반적으로 일컬어지는 짜임새 있는 갈등구조를 찾아볼 수 없다. 연속성을 지닌 등장인물들 사이의 긴장과 갈등이 아니라 삽화적 장면의 구성을 통해 자아의 내면적 갈등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긴밀한 연관관계가 없는 회상장면이 불쑥 끼여들기도 하고, 문체 역시 평이하고 담담하게 일관되어 있다. 작가가 결국 독자에게 말하려는 것은 자아의 의식과 자아의 내면세계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특징들은 그의 대표작인 "타락"에도 역시 짙게 스며들어 있다. 한 유학생 '그'의 시선을 통해 작가는 자아와 세계의 대결 __ 이 작품에서 세계는 크게 일본이라는 정치적 이국적 공간과 거기에서 만나는 일본인 학우들, 그리고 큰형으로 대표되는 가족관계 등이라 할 수 있다 __ 을 보여 준다. 우울증에 시달리는 자아는 누군가의 사랑을 갈구하지만, 사상에의 욕망은 늘 거부될 뿐이다. 이렇게 자아는 세계와의 대결 속에서 늘 세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도피처로서 두 가지의 길, 즉 자연과 그리고 다른 하나인 문학을 택하려 한다. 자연풍경이 배경묘사로 유난히 많이 등장하고, '그'의 감정이입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 많은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이다. 자연은 버림받은 그를 수용하고 포근하게 감싸주는 존재로 기능했다. 그것은 바꾸어 말하면 혼자만의 세계에서 느낄 수 있었던 자연에 대한 심미감수의 고도화된 표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의 길이었던 문학, 특히 '시'에의 열정은 그를 지탱해 주는 힘이었다. 어려서부터 문학적 상상력은 '그'와 단절되었던 세계와는 또 다른 세계를 이어 주는 끈이었다. 이것과도 화해하지 못하고 자아는 결국 돈으로 자신에 대한 인정과 사랑을 사지만, 그것은 이미 자신의 파멸을 예고하고 있었다. "타락"은 단순한 성적 묘사를 위한 작품이 아니다. 그리고 기존의 평가들처럼 퇘폐적이거나 민족의 울분을 토로한 작품도 아니다. 그것은 타인에게 사랑 받고 싶었던 한 쓸쓸했던 젊은 영혼의 삶과 죽음을 그려낸 작품인 것이다. 마오뚠 작가 세계 1896년 7월 4일 절강성 동향현오진의 봉건 가정에서 출생. 1910년 절강성립제3중학에 진학. 1912년 항주 사립정안중학에 전입학. 1913년 북경대학 예과에 합격. 1918년 "대괴국" 등 동화 17종을 편집하여 출간. 1921년 1월, 문학연구회의 발기에 참여. 1923년 "소설월보"의 주편을 사직하고 상무인서관에서 근무. 1926년 8월, 루쉰과 처음 만남. 1927년 중편소설 "환멸"을 "소설월보"에 연재. 1928년 8월, "환멸"을 출간(상무인서관). "소설연구 ABC"를 출간(세계서국). 11월, "유럽전쟁과 문학"을 출간(개명서점). 1929년 1월, "중국신화연구 ABC" 상 하권을 출간(세계서국). 6월, "신화잡론"을 출간(세계서국). 7월, 단편소설집 "들장미"를 출간. 1930년 4월, 중국좌익작가연맹에 가입. 5월, 3부작 "식"을 출간(개명서점). 8월, "서양문학통론"을 출간(세계서국). 1931년 5월, 단편소설집 "숙망"을 출간(상해 대강서포). 1933년 1월, 장편소설 "한밤"을 출간(개명서점). 5월, 단편소설집 "봄누에"를 출간. 7월, "마오뚠 산문집"을 출간. 1934년 9월, "마오뚠 단편소설집" 제1집을 출간(개명서점). 1936년 5월, 단편소설집 "물거품"을 출간(생활서점). 6월, "세계문학명저강화"를 출간(개명서점). 1937년 5월, 단편소설집 "연운집"을 출간. 1938년 7월, 산문집 "포화의 세례"를 출간(계림문학생활출판사). 1939년 8월, "마오뚠 단편소설집" 제2집을 출간(개명서점). 1941년 11월, 장편소설 "부식"을 출간(상해 화하서점). 1942년 12월, "문예논문집"을 출간(중경 군익출판사). 1943년 2월, 산문집 "백양나무 예찬"을 출간(계림유초사). 1945년 3월, 단편소설집 "위굴"을 출간(중경 건국서점). 4월, 장편 소설 "첫 계단의 고사"를 출판(중경아주도서사). 1946년 1월, "문련"을 창간하여 주편이 됨. 1947년 3월, 산문집 "생활의 한 페이지"를 출간(신군서점). 1948년 1월, "마오뚠 문집"을 출간(춘명서점). 1949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된 후 문화부부장이 됨. 1952년 4월, "마오뚠 선집"을 출간(개명서점). 1954년 제1차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로 당선. "부식" 중판. 1955년 "마오뚠 단편소설선"을 출간(인민문학출판사). 1962년 11월, "역사와 역사극에 관하여"를 출간(작가출판사). 1963년 11월, "독서잡기"를 출간(작가출판사). 1965년 1월, 문화부 부장 사직. 1978년 11월, "마오뚠 평론문집" 상 하권을 출간(인민문학출판사). 1979년 문련의 명예주석으로 피선. "마오뚠 시사" 출간. 1980년 4월, "식" 중판(인민문학출판사). 5월, "마오뚠론창작"을 출간(상해 문예출판사). 1981년 3월 27일 북경에서 사망. 8월, "내가 걸어간 길" 상권을 출간(삼연서점 홍콩분점). 전당포 앞에서 마오뚠 1 동방에 막 동이 트자 부우부우 하는 작은 기선의 기적 소리가 마을 밖의 작은 강에서 들려 왔다. 작은 기선이 이 강에서 운행된 지도 벌써 사오 년이 지났다. 수로가 너무 좁은 탓에 작은 기선이 지나갈 때마다 두 가닥의 큰 물결을 말아 올려 강가에 있는 밭둑을 와르르 내리쳐서 마을 사람들을 괴롭혔다. 재작년에 홍수가 났을 때처럼 이 작은 기선은 아주 난폭하게 속력을 내며 지나갔다. 마치 강 안에서 교룡이 일어나듯이 우르릉 쾅쾅 소리를 내면서 서너너덧 척 높이의 물기둥이 밭둑을 치고 지나가자 곧바로 논으로 강물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래서 마을 농민들은 그 기적 소리를 듣기만 하면 곧 원망을 했다. 홍수가 났을 때 그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 작은 기선이 이 수로를 지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려 했다. 그들은 십수 리 길 밖에 있는 선박회사로 찾아가서 항의소동을 부리기도 했다. 또 어떤 사람의 말을 듣고 읍사무소에 가서 청원서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직접적으로 행동을 했다. 그 작은 기선이 지나가는 때를 기다렸다가 마을에 살고 있는 오륙십 명의 인원을 총동원하여 돌과 흙덩이로 빗방울이 내리치는 것과 같이 공격을 가했다. 작은 기선은 발광하는 듯한 소리를 내면서 죽음에서 도망치듯 가 버렸다. 이틀째 되는 날 과연 귀신이 우는 듯한 기적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작은 기선은 이 수로를 우회해서 지나갔다. 그러나 사흘째 되는 날, 읍사무소에서 사람을 마을에 파견하여 폭동을 지시하여 시행케 한 사람을 엄중히 처벌하겠다고 말했다. 나흘째 되는 날, 작은 기선은 의연히 제멋대로 이리 치고 저리 치면서 지나갔다. 배 위에는 방위대가 총을 들고서 사격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당연히 총알이 돌멩이보다 훨씬 무섭다는 것을 알았으며, 읍사무소에서 사람을 잡아간다고 하니까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참고 아무 말 없이, 날마다 충격을 받아 무너진 밭둑을 수리하여 높이 쌓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작은 기선은 운행시간을 바꾸어 바로 동이 틀 무렵에 이 수로를 지나갔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단잠에서 깨어났다. 그 기선은 이전처럼 그렇게 커다란 것이 아닌 작고 정교한 것으로 무슨 디젤기선이라고 불리어졌다. 금년에는 너무 오랫동안 가물어 수심이 얕았기 때문에 작고 정교한 디젤기선만이 간신히 지나다닐 수 있었다. 그리고 선박회사가 불경기였기 때문에 작은 배라 할지라도 선실(갑판, 객실) 안은 텅텅 비어 있었다. 디젤기선이 지나가는 때는 언제나 날이 곧 밝으려고 하는 무렵으로, 그 부우부우 하는 소리는 공교롭게도 새벽을 알리는 닭을 대신하게 되었다. 봄이 시작된 이래로 잡곡을 주식으로 하던 마을 사람들은 닭을 모두 팔아 버렸다. 그래서 원망스럽게만 들리던 기적 소리가 지금은 마을 사람들에게 조금은 쓸모가 있게 되었다. 날씨(기상)는 약간 안개가 끼고 바람은 없었다. 몸을 오싹하게 하는 그 기적 소리는 이 마을에 들어와서 미끄러져 넘어지는 것과 같이 내내 이곳에서 떼굴떼굴 굴러다녔다. 또 무거운 수레바퀴처럼 덜컥덜컥 소리를 내면서 깊이 잠들어 있는 사람들의 영혼 위를 지나갔다. 마을 동쪽 끝의 작은 집 안에서 불빛이 반짝이고 있다. 길이가 반 치인 놋쇠로 만든 둥근 그릇 위에 아주 굵은 흰 양초가 조용히 촛물을 떨어뜨리고 있다. 이 작은 집에 살고 있는 왕아따는 첫 기적 소리가 울렸을 때, 마치 다른 사람에게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지금 아주 황급히 촛불 아래서 작은 보따리 하나를 싸고 있다. 그들이 몹시 급한 일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 귀한 양초에 기꺼이 불을 붙였겠는가? 이것은 3개월 전에 왕아따가 읍에 있는 장례를 치르는 집에서, 밥만 먹고 돈은 받지 않고 일을 해준다는 조건으로 3일 동안 임시로 일을 해주고 가져온 보물이다. 그는 이 짧은 기간 동안 비록 품삯은 없었지만 음식은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자주 그 이야기를 하면서 그의 행운을 칭찬하고 부러워하였다. 하물며 이렇게 큼직한 양초까지 얻어 왔으니 말해 무엇하겠는가? 하지만 그것은 3개월 전의 일일 뿐이다. 왕아따는 장례를 치르는 집에서 일을 하는 3일 동안은 비록 배불리 실컷 먹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배가 고파 몸이 쭈그러 들었다. 어제는 마지막 남은 밀기울과 콩을 다 먹어 버렸다. 그래서 그는 몇 가지 오래 된 옷을 싸가지고 읍에 들고 가서 전당포에 잡힐 작정이었다. "이 옷도 가지고 가세요!" 왕아따의 아내는 거칠게 짠 낡은 면옷을 치켜들고 슬프고 처량하게 말했다. "그것도 가지고 가라고? 당신은 뭘 입고?" 왕아따는 그 거칠게 짠 낡은 면옷을 들고 되물으면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음!" 왕아따의 아내는 신음 소리를 한 번 내고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면서 남편에게 손을 흔들었다. 왕아따가 머뭇머뭇하며 보따리를 풀어서 개어 놓은 오래 된 옷들을 하나씩 하나씩 보는데 손가락이 떨려서 쥘 수가 없었다. 이 옷들에는 모두 하나씩 가슴 아픈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남색 천으로 만든 겹옷 위의 핏자국은 그가 지난해에 마을 사람들과 읍에 항의하러 갔을 때 다른 사람들에게 얻어맞아서 코피가 터졌을 때묻은 것이고, 무늬 있는 천으로 만든 여자 바지는 아내가 3년 전에 어느 집의 유모로 있을 때 여주인한테서 얻어온 것이다. 아내는 유모가 되어서 돈 몇 푼을 벌어 생활비에 보태고, 빛을 갚기 위하여 마음을 독하게 먹고 자신의 아이를 물에 빠뜨려서 죽였던 것이다. 그녀는 지금까지도 이 무늬 있는 바지를 보면 눈물을 흘리려 한다. 그리고 또 있다. 남색의 명주실과 무명실로 짠 면바지 저고리는 죽은 열세 살 난 큰딸 조제의 시체 위에서 벗겨온 것이다. 조제는 재작년에 수해 났을 때 굶어 죽었다. 이 자그만한 보따리는 바로 왕아따 부부 두 사람의 비통한 삶의 역사이다! 그러나 그들의 비통한 삶의 유일한 기념품이자 그들이 지금 가지고 있는 전재산은 전당포 주인의 눈으로 봐서는 1원의 가치도 안 되는 것들이다! 왕아따는 코로 흑흑 소리를 내며 눈물을 참고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아내가 그에게 준 낡은 면옷을 집었다. 면옷에는 아직도 여전히 아내의 체온과 특유의 땀 냄새가 남아 있었다. 왕아따는 갑자기 가슴을 칼로 도려내는 듯한 고통을 느끼고는 그 면옷을 안고 통곡하였다. 아내는 울지 않고 눈을 크게 뜬 채 두려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 역시 자신이 독한 마음을 먹고 나무로 만든 변기에 빠뜨려서 죽인 둘째 딸 아이를 생각하니 마음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갑자기 그녀는 펄쩍 뛰어 침상으로 가서 낡아빠진 무명 조각 더미에서 6개월도 안 된 아기를 안아다가 가슴에 바짝 붙였는데, 마치 다른 사람이 빼앗아 갈까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응애! 응애!" 아이의 울음 소리가 마치 목이 쉰 작은 고양이 소리 같았다. 그녀는 옷을 헤치고 말라서 쭈그러진 젖가슴을 아이의 입에 물리고 몸을 흔들었다. 그러자 아이는 곧 울음을 멈췄다. "빨리 가세요! 늦게 가면 들어가지도 못하잖아요. 오늘은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왕아따의 아내가 남편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흰 양초의 불꽃은 한 번 크게 일어났다가 곧 숨이 넘어가듯 작아졌다. 문틈으로 밝은 빛이 들어왔다. 왕아따는 고개를 들고 한숨을 쉬면서 아내의 그 면옷을 보따리에 넣은 후 자신의 다해진 겹옷을 벗어서 아내가 있는 침상 쪽으로 던지고 몸을 돌려 문을 열었다. "밖은 집안보다 추워요! 홑옷 하나만으로는 추울 거예요. 당신이 입고 가세요!" 왕아따의 아내가 아이를 안고 침상에서 내려오며 말했다. 왕아따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한 줄기 바람이 방안으로 돌진하듯 들어와서 촛불이 꺼졌다. 왕아따와 그의 아내는 추워서 덜덜 떨었다. 아내의 품안에 있던 아이가 울기 시작하였다. 그 말라빠진 젖가슴은 아이를 만족시킬 수가 없었다. 왕아따는 고개를 돌려 아이를 한 번 보고 곧 이를 악물고는 그 보따리를 옆에 끼고서 급히 걷기 시작하였다. 아내는 방 밖으로 나와서 그의 남편을 부르다가 곧 멈췄는데, 슬픔에 찬 두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유방을 바꾸어서 아이에게 물리고 방으로 돌아와서 낡은 대나무 걸상에 앉았다.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이 세차게 불어왔다. 그녀는 너무 추워서 입술이 마비되는 것 같았다. 문을 닫고 남편이 가지고 간 한 보따리의 옷을 몇 문에 저당 잡혀 쌀을 사가지고 올 거라고 생각하면서 쓰디쓴 웃음을 지었다. 이때에야 비로소 그녀는 젖이 나오지 않는 자신의 젖꼭지를 아이가 배가 고픈 탓에 힘껏 빨아서 아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힘껏 그 아이를 안았다. 따뜻했다. 그녀는 망연히 아이의 마른 얼굴을 바라보았는데, 자그마한 관자놀이 위의 부드러운 피부에 주름이 생겨 마치 할머니 같았다. 2 왕아따는 빠른 속도로 반시간쯤 달렸다. 날은 이미 밝아 어둡지 않았다. 뛰었기 때문에 그는 오히려 추위를 느끼지 못했으며, 관자놀이 위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그러나 뱃속에서는 꾸르륵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간신히 참아낼 수 있었지만 갈수록 소리가 잦아지고 왕아따의 두 다리도 점점 무거워졌다. 그는 침을 삼키면서 천천히 걸었다. 그는 아주 천천히 걸었는데, 정말이지 시골 사람 같지 않았다. 서너 무리의 이웃 마을 농민들이 그를 앞질러 갔다. 그들 또한 읍으로 가는 사람들이었다. 그 유명한 마가묘에 이르렀을 때, 왕아따는 묘 앞의 허물어진 돌다리 위에 않아 잠시 쉬었다. 녹나무의 단풍잎이 그의 발 옆에 떨어졌다. 그는 한 장을 주워서 입 속에 넣고 씹었다. 머리 위에서 참새가 지저귀고 있었다. 그는 나뭇잎의 간수를 삼키고 얼굴을 들어 그 참새를 바라보았다. 저쪽 아주 멀리 다리가 하나 있고 그 다리 뒤로 검게 무리를 이룬 집들이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읍내 거리의 끝이었다. '푸우! 푸우! 푸우!' 하고 읍내 거리의 끝에 있는 기계방앗간의 스팀 파이프가 교만하게 소리를 내고 있었다. '꾸르륵! 꾸르륵! 꾸르륵!' 왕아따의 배가 또 한차례 사납게 소리를 냈다. 그 소리 속에서 그의 6개월도 안 된 아이가 칭얼거리면서 울고 있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는 아주 다급하게 벌떡 일어나서 보따리를 단단히 옆에 끼고 읍을 향하여 뛰어갔다. "늦게 가면 저당을 잡히지 못해요. 오늘은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아내의 목소리가 또 왕아따의 귓전에서 들렸다. 그는 바지의 허리띠를 꽉 졸라매고 필사적으로 뛰었다. 그는 앞에 가고 있던 많은 농민들을 앞질러 미친 듯이 전당포 대문 앞까지 가서야 비로소 발걸음을 멈추었다. 전당포의 꺼머번지르한 좌우 여닫이 대문은 아직 열리지 않았지만, 문밖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이미 많았다. 몇 개의 상점이 반쪽 문만 열었을 뿐이며, 가죽신을 질질 끌고 나온 점원이 문 입구로 머리를 내밀고 엿보면서 기침을 하고는 거리 한가운데에 있는 석판 위에 가래침을 뱉었다. 거지 같은 견습생들이 물주전자를 들고 느릿느릿 지나갔다. 새벽시장에 가는 경단 가게 점원은 김이 무럭무럭나는 시루를 머리에 이고 연이어 "떡이오, 떡!"이라고 외치며 눈을 깜박이면서 달려갔다. 전당포 문 밖을 지키고 있던 가난한 사람들의 대오가 시시각각 불어나 그 도로를 꽉 메우는 바람에 빈틈이 없었다. 그들은 모두 꺼머번지르한 대문을 바라보면서 문 앞으로 밀고 들어가려고 했다. 왕아따 역시 옷보따리를 끼고 사람들 사이를 밀고 들어갔다. 그의 왼쪽에는 붉은 빛의 눈을 가진 할머니가 거친 무명 한 두루마리를 안고 있었는데, 입술을 오물오물 움직이는 것이 마치 염불을 외는 것 같았다. 이 할머니 역시 앞쪽으로 밀고 들어가려고 했다. 갑자기 한 생선 장수가 생선을 지고 멀리서 큰 소리로 외치면서 오고 있었는데, 이 전당포 문 앞에 밀집해 있는 대오를 뚫고 지나가려고 했다. 이 생선 장수는 앞뒤로 짐을 지고 있었는데, 앞에 있는 나무통에는 물과 살아 있는 고기가 가득 차 있었고, 뒤쪽에 있는 광주리에는 흙이 묻은 조개가 담겨 있었다. 그는 그 나무통으로 길을 터서 이리저리 흔들면서 들어왔다. 사람들 사이에서 소동이 일어났다. 그 붉은 빛의 눈을 가진 할머니는 오로지 전당포문 앞까지 밀고 들어가겠다는 일념으로, 엇비스듬히 쳐들어오고 있는 생선 장수의 짐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크게 부딪혀 넘어지고 말았다. 나무통의 물이 쏟아졌고 민물고기는 석판 위에서 팔딱팔딱 뛰었다. "할머니가 부딪혀서 넘어졌어요! 모두들 밀고 들어오지 마세요!" 왕아따는 큰 소리로 외치면서 등과 궁둥이로 밀고 들어오는 사람들을 저지하였다. "아이구! 물고기를 밟지 마세요! 여보시오, 나라에서 만든 길은 누구나 다 지나갈 수 있어요!" 생선 장수는 재빨리 짐을 내려놓고, 큰 소리로 외치면서 허리를 굽혀 사람들 발 사이에 있는 물고기를 주워담았다. 할머니는 벌써 일어나 손을 털면서 그 생선 장수에게 눈이 멀었느냐며 욕을 해댔다. 순간적으로 그녀는 자신의 무명천을 생각해 내고 황급히 땅에서 주워들었는데, 그 흰 천은 이미 회색이 되어 버렸다. 할머니의 욕설은 곧 통곡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태연하게 밀고 들어왔다. 할머니는 울 겨를도 없이 사람들 사이에 끼여서 다시 앞쪽으로 밀려왔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흙이 묻어 더러워진 천을 다급하게 그녀의 옷에 닦았다. 왕아따는 수월하게 꺼머번지르한 문 앞까지 밀고 들어갔다. 그의 몸에서는 땀 냄새가 나고 배에서는 꾸르륵 소리가 났다. 등을 그 문에 기댄 채 땅바닥에 앉아 있던, 얼굴이 창백한 젊은 여인이 놀라고 두려운 눈으로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여인의 옆에는 시골 사람도 있고 읍에서 사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모두들 몸을 그 문에 붙이고 있었다. "아! 시죽창(빈민들에게 죽을 나누어 주는 곳)의 문 앞도 이렇게 붐빈 적이 없었는데!" 어떤 사람이 왕아따의 귓전에 대고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흉년이니... 아! 언제나 문을 열려나?" 왕아따 또한 허리띠를 느슨하게 하고 탄식을 했는데, 마치 그 옆사람에게 회답을 하는 것 같았다.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다소 초조하긴 했지만 스스로를 위로했다. 뒤로 밀려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그가 문 앞까지 밀고 들어갈 때까지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의 작은 보따리는 아마도 순조롭게 돈으로 바꿀 수 있을 것 같았다. "9시에 문을 연다고 했는데! 아직 9시가 안 됐습니까?" 땅바닥에 앉아 있던 젊은 여인이 왕아따를 쳐다보며 말하였다. "확실히 9시가 지났어요. 저는 십수 리 길을 달려왔는데, 문을 아직까지 열지 않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왕아따는 대답을 하고 손등으로 관자놀이 위의 땀을 닦았다. "십수 리 길이라고요? 저는 날이 밝기도 전에 여기에 와서 지키고 있었는걸요! 몇 사람은 나보다 몇 걸음 늦었지요. 우리는 반나절이나 기다렸어요! 배도 고프고 추운데 굳게 닫힌 문은 아직도 열리지 않고... 잠깐 사이에 사람들만 이렇게 많아졌어요!" 젊은 여인은 화를 내며 말하면서 팔꿈치로 문을 몇 번 쳤다. "아직도 문을 열지 않으면 어떡해요! 문을 열어요!" 옆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고함치면서 주먹으로 꺼머번지르한 그 대문을 펑펑 소리가 날 정도로 두드렸다. 왕아따의 주먹은 문에 닿지 않았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소리를 질렀다. 그가 소리를 한 번 지르자 배에서 꾸르륵 소리가 났다. 등뒤에 있는 사람들도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문을 열라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 아니라 밀고 들어가자고 소리를 질렀다. 왕아따 또한 밀고 들어가고 싶었으나 앞쪽에 젊은 여인이 문에 기대고 있었기 때문에 등과 궁둥이로 뒤에서 밀고 들어오는 것을 버티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이 길가의 점포도 모두 장사를 시작했다. 상점의 덧문 판자를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면전에 있는 꺼머번지르한 대문은 의연히 굳게 닫혀 있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여러 층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상기된 얼굴도 있고 창백하고 숨을 헐떡거리는 얼굴도 있었다. 모두 와글와글 소리치며 욕을 하면서 전당포가 아직 문을 열지 않는다고 원망하였다. "아이구, 배야!" 그때 그 젊은 여인이 갑자기 이를 악물고 신음하면서 두 손으로 배를 움켜잡았다.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문을 열라고 시끄럽게 소리칠 뿐, 누구도 그 여인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왕아따는 그녀와 얼굴을 서로 마주 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여인이 아파서 발악하고 있는 것을 분명히 볼 수 있었다. 그는 예전에 이렇게 배를 움켜잡고 신음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는데, 똑똑히 기억할 수는 없었다. 여인은 잠깐 동안 신음을 하다가 곧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는데, 관자놀이 위로 푸른 핏줄이 불쑥 솟아 나오고 콩알만한 땀방울이 맺혀 있었으며, 입술 위에는 두개의 깊은 잇자국이 남아 있고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왕아따를 한 번 쳐다본 후에 좌우를 둘러보았다. 마치 누군가에게 무슨 말을 하려는 것 같았다. 이때 사람들이 갑자기 "열린다!"고 소리를 지르자, 왕아따 면전에 있는 꺼머번지르한 두 개의 미닫이문 사이에 약간의 틈이 생겼다. 사람들은 또 소리를 질러댔다. 왕아따 또한 더 이상 가만히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정신없이 돌진하자 몸은 이미 문 안에 들어와 있었는데, 귀를 찢는 듯한 비명 소리가 들리고 이어서 어떤 남자가 미친 듯이 고함쳤다. "안 돼! 한 여인이 넘어졌어! 배가 부른 여인이야!" 왕아따는 마치 얼음물에 빠진 것처럼 온몸을 벌벌 떨었다. 그는 멈추고 싶었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조수처럼 밀려와서 그를 그 높은 계산대 앞까지 밀어 올리고, 곧바로 계산대 옆으로 밀어붙여서 그는 전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계산대 옆의 무수한 손에는 각양각색의 오래된 옷과 작은 보따리들이 들려져 있었다. 왕아따는 본능적으로 보따리를 들고 있던 그의 손을 필사적으로 내밀어 그 손들 사이에 끼워 넣었다. 그는 잠시 동안 귀를 찢는 비명 소리와 아파서 발악하는 여인의 얼굴을 잊어버렸다. 그 또한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흉내내면서 목청을 돋우어 "전당포 주인 선생!" 하고 큰 소리로 불러댔다. 그는 전당포 주인이 걸어 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 전당포 주인은 다른 사람의 손에 있는 물건을 받았다. 그는 전당포 주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몇 가지 남색 무명천으로 된 옷을 들고서 계산대 밖의 사람들에게로 가서 큰 소리로 고함치면서 말하는 것을 보았다. "이렇게 너덜너덜 낡아빠진 물건은 저당 잡힐 수 없어!" 그는 또 전당포 주인이 두 개의 비단옷을 집어 들고 고함쳐 말하는 것을 보았다. "1원!" "2원은 되지 않겠습니까? 새 것인데요!" 왕아따 옆에 있던 어떤 사람이 발꿈치를 들고 계산대를 향해 말했다. 그러나 그 전당포 주인은 대답도 하지 않고 그 비단옷들을 바로 내려놓고 다른 한 사람의 손에 있는 물건을 받아 들었다. 그것은 흰 눈과 같이 광택이 나는 실이었다. 전당포 주인은 그것을 내려놓으면서 또 소리를 쳤다. "1원!" 실 주인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그 전당포 주인은 벌써 실을 던져 놓았다. 왕아따는 이 기회를 틈타 자신의 보따리를 내밀었는데, 가슴이 뛰어서 진정할 수가 없었다. "이거 뭐야? 너 장난치러 왔어? 이것도 물건이라고 저당 잡히러 왔어?" 전당포 주인은 보따리를 풀고 즉시 손가락으로 코를 잡으며 보자기와 옷을 모두 계산대에서 밀어내면서 큰 소리로 욕을 했다. 왕아따는 마치 몽둥이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 좋을지를 몰랐다. 그는 기계적으로 허리를 굽히고 사람들의 발 사이에서 그의 귀중한 옷들을 잡아 올렸다. 동시에 그의 귀에서는 엉엉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아내와 아이가 우는 소리를 들었으며, 자신의 배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땅바닥에서 그의 옷을 끌어올린 후 지점을 바꾸어 제2차 시도를 할 작정이었다. 얼굴이 온화해 보이는 전당포 주인을 골라 행운을 얻으려고 했을 때, 그는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어떻게 하지? 담배 한 대 피우는 시간도 안 지났는데, 120원이나 저당 잡혀졌어요? 오늘 저당 잡히는 것은 끝났어요? 곧 정리하고 저당 잡힌 것을 계산해 주나요?" 왕아따는 한숨을 내쉬면서 오늘도 헛걸음했음을 알았다. 그는 실신한 것처럼 인파에 에워싸여 곧바로 그 꺼머번지르한 대문까지 갔다. 그는 문득 문턱 위에 질펀하게 묻어 있는 검붉은 핏자국을 보았다. 그는 또 그 여인의 귀를 찢는 듯한 비명 소리를 들었다. 별안간 그는 그 여인이 배를 움켜잡고 신음하는 모습이 그의 아내가 작년에 물레방아 옆에서 아이를 낳을 때의 모습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왕아따는 먹을 젖이 없어 우는 자신의 아이를 떠올리고 아내의 앙상한 뼈와 두 개의 말라 쭈그러든 젖가슴을 생각하니 마음이 돌과 같이 무거워졌다. 마오뚠의 작품 세계 5.4운동 시기에 마오뚠은 문학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문학이론과 외국의 문학작품을 소개하는 데에 주력하고 있었다. 그는 1921년에 성립된 '문학연구회'의 발기인의 한 사람으로서 "소설월보"를 주관하면서 문학 속에 사회와 인생을 반영하고자 하였다. 그의 초기 작품인"식"에서는 1927년 전후의 사회생활을 반영하면서 현실사회의 전도에 대해서 비관과 실망의 정서를 표출하였다. 1930년대에 좌련에 참여하면서 작가는 창작의 황금시기를 맞게 된다. 즉 "한밤(자야)","임씨네 가게(임가포자)", 그리고 "봄누에(춘잠)" 등은 모두 1930년대 중국의 전래적인 농촌생활을 묘사하고 있다. 항전 시기에는 작가가 무한, 광주, 홍콩 등에서 유랑생활을 하며 장편 "첫 단계의 이야기", "부식" 등의 작품을 발표함으로써, 중국인민의 한일정신을 표현하고 침략자인 일본 제국주의의 죄악상을 폭로하였다. 그 이후의 작풍은 중국 공산당에의 충성과 합당성을 강조하여 문학적 가치는 적다고 볼 수 있다. 마오뚠은 그의 소설에서 전체적으로 시대의 역사 면모를 반영시키는 소재를 택하고 있으며, 그 소재 하나하나를 운용하여 여러 방면의 사회생활을 표현한다. 작가는 더구나 각양각색의 인간상을 제시해 주는 점에 대해서도(즉, 일종의 전기소설) 심혈을 기울여서 "센싱하이를 그리며(억세성해)"는 숭고한 이상을 품은 음악가 센싱하이(세성해)의 기백을 구가하였고, "샤오홍의 소설__후란허전"은 "후란허전"에 대한 평론이면서 여류작가 샤오홍의 후반 생활과 그 심경을 묘사하였다. 그리고 작가는 하층민의 생활에 대해서도 주시하였는데, "아시의 이야기(아서적고사)"는 농촌아이의 기아상을 묘사하고 있다. 마오뚠의 작품에 있어서 체재의 다양성과 등장인물 성격의 구성상의 특성 등은 그의 창작 예술성을 돋보이게 한다. 이러한 성취는 우연히 얻어진 것이 아니라 풍부한 생활 경험이 바탕이 되어서 가능한 것이었다. 단편 "전당포 앞에서"는 중국인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제시하면서, 어떻게 극복해 나가야 하는가에 대해 심각하게 강구해 보고자 하는 개혁적인 의지를 보여 주고 있다. 라오서 작품세계 1899년 2월 3일 북경에서 출생. 원명은 쉬칭춘, 자는 쉬워. 1913년 북경사범대학 입학. 1918년 북경제17소학교 교장에 임명. 1924년 영국 런던 대학 동방학원 교수. 1926년 첫 장편소설 "장씨의 철학"을 "소설월보"에 연재. 1928년 "장씨의 철학"을 출간(상무인서관). 장편 "조자왈"을 출간(상무인서관). 1930년 제노대학과 산동대학의 교수. 1931년 장편 "마씨 부자"를 출간(상무인서관). 1934년 장편 "소파의 생일"을 출간(생활서점). 단편소설집 "간집"을 출간(양우도서인쇄공사). 1936년 단편집 "합조집"을 출간(개명서점). 1939년 장편 "낙타상자"를 출간(인간서옥). 단편집 "화차집"을 출간(상해잡지공사). 1944년 장편 "화장"을 출간(신광출판공사). 단편집 "빈혈집"을 출간(문률출판사). 1946년 장편 "투생"을 출간(신광). 1947년 단편집 "미신집"을 출간(신광). 1948년 단편집 "월아집"을 출간(신광). 1951년 곡예집 "신년을 맞아"를 출간(신광). 1958년 산문집 "복성집"을 출간(북경출판사). 1963년 "소화잡집"을 출간(백화문예출판사). 1966년 8월 24일 홍위병에게 모욕을 당하고 자살. 간판에 얽힌 이야기 라오서 치얜 상점 자배인이 간 후 싼허시앙의 훌륭한 점원 신더쯔는 여러 날 동안 정식으로 밥을 먹지 못할 정도로 현재 대단한 책임을 지고 있었다. 치얜 상점 지배인은 직물을 파는 업계의 공인된 명수였는데, 바로 싼허시앙이 전통 있는 상호인 것과 같았다. 신더쯔는 치얜 상점 지배인의 밑에서 가르침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사적인 감정으로 이렇게 괴로운 적이 없었으며, 특별히 무슨 야심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왜 이렇게 두려워하는지 분명히 말할 수는 없었지만, 무언가 영원히 회복하기 어려운 것이 치얜 상점 지배인과 함께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저우 상점 지배인이 취임하자, 신더쯔는 그의 공포가 공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괴로움'은 거의 욕설로 바꾸어 갔다. 저우 상점 지배인은 '암상인'이었다. 여러 해 동안 신용을 지켜온 상호 싼허시앙은 온 거리의 손님을 끌어들였었다. 신더쯔는 삶다 터진 만두처럼 입을 삐죽거렸다. 노련한 사람, 신용 있는 상호, 오래 된 규칙, 이 모든 것은 치얜 상점 지배인과 함께 사라져서 영원히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지도 모른다. 치얜 상점 지배인은 아주 정직하고도 규칙적으로 장사를 했었다. 하지만 자본주들은 다른 것에는 상관하지 않고 다만 연말에 이익을 나누어 가질 것만을 요구했다. 여러 해가 지났어도 싼허시앙은 언제나 그렇게 틀이 잡혀 있고 당당했었다. 금색 바탕의 편액에 검은 글자, 녹색으로 장식하고 꾸몄으며, 검은 색의 진열대와 남색 커튼, 손잡이가 없는 커다란 의자가 남색의 모직 커버로 덮여 있고, 차테이블 위에는 언제나 생화가 놓여져 있었다. 여러 해가 지났으나 싼허시앙은 정월대보름에 네 개의 등롱을 달고 거기에 크고 붉은 술을 늘어뜨리는 것 외에는 다른 상점처럼 마구 시끄럽게 떠들지 않았다. 그리고 값을 깎아 주거나 거스름돈을 떼버린 적도 없었으며, 광고문을 붙이거나 바겐세일을 한 적도 없었다. 싼허시앙이 파는 것은 상점이름이었다. 여러 해가 지났어도 상점 안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큰소리로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약간의 소리가 있다면 상점 지배인의 '꾸르륵 꾸르륵'하는 물담배 피우는 소리와 기침하는 소리가 있을 뿐이었다. 이와 같이 전에는 고귀하게 여길 만한 아주 많은 기풍과 오래 된 규칙이 있었는데, 신더쯔가 보기에 저우 상점 지배인이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끝이 나버렸다. 저우 상점 지배인의 눈은 규칙적이지 못했는데, 그는 눈꺼풀을 아래로 내리지 않고 이곳 저곳을 비로 쓸 듯이 돌아보는 것이 마치 도적을 찾는 것 같았다. 예전의 지배인이었던 치얜 지배인은 항상 손잡이가 없는 커다란 의자에 눈을 감고 앉아 있었지만, 어느 점원이 말을 잘못했는지 알고 있었다. 과연 저우 상점 지배인은 온 지 이틀도 안 되어서 싼허시앙을 붕붕희(중국의 전통 가극의 하나)의 가설무대로 바꾸어 버렸다. 문 앞에다 빨간 실을 있는 대로 매달고 붉고 푸른색으로 꾸민 간판을 걸었는데, '대바겐세일'이라는 글자는 사방 다섯 자나 되었다. 두 개의 가스등은 사람들의 얼굴을 녹색으로 비추었는데, 마치 한 무리의 아편쟁이 같았다. 이것으로도 부족해서 문 입구에서 서양 북과 서양 나팔을 새벽부터 삼경까지 불어댔다. 네 명의 점원들은 모두 빨간 모자를 쓰고 문 입구에서, 그리고 길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전단을 나눠 주었다. 그리고 두 명의 점원을 지정하여 손님에게 담배와 차를 나르는 일을 전담하게 하였다. 설사 반 자의 흰 베를 산다 할지라도 진열대 뒤로 불러서 담배를 주었다. 군인, 청소부, 여급사를 막론하고 모두 담배를 피워 실내가 마치 불당 같았다. 이것으로도 부족해서 한 자를 사면 한 자를 덤으로 주고 또 서양 인형을 증정하였다. 점원들은 또 손님들과 자연스럽게 담소를 나누고 손님이 사기를 원하는 물건이 만약에 상점에 없더라도 없다고 말하지 않고 다른 물건을 들고 와서 억지로 보게 해야 했다. 10원 어치의 물건을 구입하면 또 점원을 파견해서, 한 번 나가면 세 군데나 고장이 나는 두 대의 자동차를 세내어 배달하게 하였다. 신더쯔는 한바탕 소리 내어 크게 울 수 있는 곳을 찾아갔다. 이 상점에서 15년을 지냈어도 싼허시앙이 이런 지경으로까지 몰락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어떻게 사람들을 보겠는가? 온 거리에서 싼허시앙을 존경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던가? 점원들이 저녁에 나와 싼허시앙의 커다란 등롱을 들고 있으면 순경들조차도 특별 대우를 해주었었다. 군대의 반란이 일어났던 그해에 싼허시앙 역시 하나도 남김 없이 모두 강탈당했었지만 주위의 상점들처럼 그렇게 문간판과 '정찰제로 팝니다'의 간판까지 떼가지는 않았었다.--싼허시앙의 금색 바탕의 편액에는 일종의 존엄이 있었다. 그는 성에서 20여 년을 살았는데, 그 중 15년을 싼허시앙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싼허시앙은 그에게 있어서 제2의 가정인 셈이었다. 그는 싼허시앙 때문에, 그리고 또 싼허시앙을 위하여 교만해졌다. 그가 상점을 위하여 외상값을 받으러 가면 모두들 들어와 차를 마실 것을 권했다. 싼허시앙은 비록 매매하는 곳이었지만, 고객과는 거의 친구처럼 지냈다. 치얜 상점 지배인은 항상 고객들에게 길사나 흉사에 경조금이나 물건을 보냈다. 싼허시앙은 '군자의 기풍'이 있는 장사를 했다. 출입구에 있는 의자에는 항상 부근에서 가장 명예가 있는 분이 앉았는데, 우연히 길가에서 소란스러움을 만났을 때 고객들의 안식구들이 여기에 와서 상점 지배인에게 의자를 빌려갔다. 이 영광된 역사는 신더쯔의 마음속에서 자라온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신더쯔 또한 시대가 변했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싼허시앙 왼편에 있는 상점은 물론이고 다른 많은 상점들도 이미 오랜 규칙을 버렸다. 근본적으로 규칙이라는 것이 존재한 적이 없었던 새로 개장한 상점은 더욱이 말할 것도 없었다. 그 역시 이러한 사실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오랜 규칙을 고수하고 있다는 이것 때문에 그는 더욱 싼허시앙을 사랑하고 그것을 위해서 교만했다. 그것은 흡사 인조견사로 만든 품목 중에서 유일하게 순수한 생사로 두텁게 짠 무늬 있는 큰 폭의 비단 같았다. '만약 싼허시앙마저 타락한다면 세상은 곧 멸망해 버릴 거야! 제기랄, 현재의 싼허시앙의 상황은 다른 상점들과 마찬가지지만, 만약 더 파괴되지만 않는다면!' 그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바로 맞은편에 있는 정시앙춘이었다. 이에 금을 씌운 상점 지배인이 신을 땅에 질질 끌고 다니고, 담배를 빽빽 피워댔다. 상점 지배인의 마누라가 아이를 업고 다니는 모습은 마치 주머니 속에 가지고 다니는 물건 같았다. 몇몇 남녀 아이들은 하루 종일 상점을 들락날락하며 남방말로 뭐라고 했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상점 지배인과 마누라는 또한 상점 안에서 부부싸움을 하기도 했으며, 아이를 때리거나 아이에게 젖을 먹이기도 하였다. 그들이 장사를 하는지 무슨 장난을 치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었지만, 상점 지배인 마누라의 명치가 항상 진열대 앞에 진열되어 있는 것만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 점원들은 어디에서 구했는지 전부 다 해진 신발을 신고 있었다. 그러나 옷은 대부분 비단옷을 입고 있었다. 어떤 놈은 머리에 고약을 붙였으며, 어떤 놈은 머리를 빗었는데 마치 국자로 옻칠을 한 것 같았고, 또 어떤 놈은 금테안경을 끼고 다녔다. 그 미운 정도를 덧붙여 말하면 그들은 일년 내내 대바겐세일을 하고, 가스등을 달았으며, 유성기를 틀어 놓았다. 2원 어치의 물건을 구입하면 상점 지배인은 친히 손님에게 엿으로 만든 과자를 먹게 했는데, 먹지 않으면 입에다 넣어 주었다. 어떤 물건이라도 일정한 가격이 없었으며, 옛날에 사용했던 은화도 일정한 시세가 없었다. 신더쯔는 언제나 '정시앙춘'이라는 글자를 못마땅하게 보았으며, 거기에는 어떠한 물건도 구입하지 않았다. 그는 세상에 이러한 매매가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것도 싼허시앙 바로 맞은편에서라니! 더욱 이상한 것은 정시앙춘은 돈을 벌고 싼허시앙은 갈수록 몰락해 간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것이 무슨 이치인지 알 수가 없었다. 설마 장사라는 것은 반드시 규칙에 따르지 않아야 되는 것은 아니겠지? 과연 이와 같다면 견습공이 무슨 필요가 있겠어? 개인이 장사를 할 수 있을까? 그렇게는 할 수 없지, 할 수 없고 말고. 싼허시앙 역시 결국에는 그렇게 할 수 없지! 마침내 저우 상점 지배인 같은 사람이 자연스럽게 와서 싼허시앙과 정시앙춘의 가스등이 거리를 파란색 불빛으로 명확히 갈라놓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들은 한 쌍이다! 싼허시앙과 정시앙춘이 쌍벽을 이루다니! 이것이 설마 꿈은 아니겠지? 꿈이 아니라면 신더쯔 또한 저우 상점 지배인의 방법을 따라가야 한다. 그는 손님과 농담을 해야 하고, 손님에게 담배를 피우도록 권해야 하며 손님에게 거짓말을 해서 진열대 뒤로 데리고 가야 하며, 또 가짜 물품을 가져와서 진짜 물품이라고 해야 하고, 손님과 가격을 다투고 나서야 비로소 덤으로 두 치를 더 놓아 주어야 하며, 손가락을 한 번 비틀어 옷감의 일부가 딸려 오게 하는 손재간으로 옷감을 재야 한다. 그는 이러한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다수의 점원들은 이렇게 하기를 원했다. 어떤 여자 손님이 들어오면 그들은 그녀의 주위를 둘러싸고 싶어했으며, 상점의 모든 물건을 옮겨와서 그녀에게 보여 주고 싶어했다. 그녀가 설사 두 치의 걸레나 만드는 조잡한 천을 사더라도 다 사고 나면 그들은 그녀가 집에 돌아가는 것을 전송하고 싶어했다. 저우 상점 지배인은 이러한 것을 좋아했다. 그는 점원들이 공중회전과 무술을 하는 것을 보고 싶어했으며, 더욱이 공중에서 잘 날 수 있기를 바랐다. 저우 상점 지배인과 정시앙춘의 지배인은 좋은 친구가 되었다. 어떤 때는 또 티얜청의 사람들까지 모아 놓고 마작을 하기도 했다. 티얜청 또한 이 거리의 비단상점으로, 개장한 지 사오년이 지났다. 그러나 치얜 상점 지배인은 단 한 번도 그들을 불러들인 적이 없었다. 예전에 티얜청은 의도적으로 싼허시앙과 경쟁을 했는데, 반드시 싼허시앙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겠다고 허풍을 떨고 다녔다. 치얜 상점 지배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때때로 "우리 상점이 장사를 하는 것은 간판이다."라고 한 마디씩 했다. 티얜청은 거의 1년 365일 동안 기념 대바겐세일을 했다. 지금 싼허시앙에는 티얜청의 사람들 또한 마작을 하러 왔다. 선더쯔는 그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그는 조금만 여유가 있으면 상점 안에 멍청하게 앉아 있거나 선반을 마주하고 있었다. 이전에는 선반 위에 있는 포목을 모두 흰 베로 싸놓았었는데, 지금은 모두 포목으로 요란스럽게 장식해서,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그렇게 빛깔이 선명하고 아름다웠다. '싼허시앙은 이미 몰락했어.' 그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한 번의 명절을 지낸 후, 그는 저우 상점 지배인에게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명절 후의 결산보고를 보니, 비록 벌지도 못했지만 손해를 보지도 않은 것이었다. 저우 상점 지배인은 웃으면서 모두에게 설명을 했다. "이것은 제 아이디어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분은 기억해야 합니다! 저는 아직도 많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장식용 정문을 만들고, 가스등을 세내는 것은... 그러한 것은 돈이 아닙니까? 그렇지요!" 그는 힘주어 말할 때마다 항상 이렇게 "그렇지요!"라고 했다. "오늘 이후로는 장식용 정문을 만들 필요가 없으며, 우리는 새로운 것을 사용할 것입니다. 또 돈을 절약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이익이 남습니다. 그렇지요!" 신더쯔는 치얜 상점 지배인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세상은 확실히 변했다. 저우 상점 지배인과 티얜청, 정시앙춘의 사람들은 뜻이 통했으며, 그들은 모두 돈을 벌었다. 명절을 보낸 후, 일본 상품을 검사한다고 큰 소리로 시끄럽게 떠들며 다녔다. 저우 상점 지배인은 미친 듯이 일본 상품을 진열하였다. 그는 일본 상품을 모두 눈에 잘 띄는 곳에 진열하고 다음과 같이 명령하였다. "살 사람이 들어오면, 먼저 일본 상품을 가져오너라. 다른 곳에서는 감히 팔지 않을 것이니, 우리는 한바탕 큰 장사를 하는 것이다. 시골 사람에게는 분명하게 이것은 일본 상품이라고 말해라. 왜냐하면 그들은 제품을 볼 줄 알기 때문이다. 도시 사람에게는 독일 제품이라고 말해라." 검사하는 학생이 왔다. 저우 상점 지배인은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그들에게 잘 보이려고 아양을 떨면서 담배와 차를 권했다. "싼허시앙, 이 글자를 보십시오, 여기는 일본 상품을 파는 곳이 아닙니다. 그렇지요! 여러분, 보십시오! 문 입구에는 독일 상품과 중국산 면직물이 있습니다. 상점 안에 있는 것은 모두 국산 비단입니다. 저희 상점은 남방에 있는 연합 상점에서 물건을 직접 가져옵니다." 학생들은 무늬가 있는 천을 의심하였다. 저우 상점 지배인은 웃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장푸야, 뒤편에 남아 있는 일본 제품을 가져오너라." 천을 가지고 왔다. 그는 검사대의 대장을 잡고 말했다. "선생, 양심에 부끄럽지 않습니다. 남아 있는 이 일본 제품은 선생이 입고 있는 이 장삼과 같은 재료이지요, 그렇지요!" 그는 고개를 돌렸다. "푸야, 이 옷감들을 길가에 갖다 버리도록 해라!" 대장은 자신의 장삼을 보고 머리를 들지 못한 채 나가 버렸다. 수시로 독일 상품, 국산품, 영국 상품으로 변신할 수 있는 이 일본 상품은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제품을 알아보는 사람들은 저우 상점 지배인의 면전에서 옷감을 땅바닥에 집어 던졌다. 그러면 저우 상점 지배인은 웃으면서 점원에게 명령을 했다. "진짜 서양 제품을 갖다 드려라! 설마 선생이 그 방면에 밝은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겠지?" 그런 연후에 살 사람에게 말했다. "누구든지 무슨 상품을 구입해도 이것을 공짜로 드리겠습니다. 당신은 여전히 원치 않으시지요, 그렇지요!" 이렇게 해서 그는 또 장사를 했다. 손님들은 떠날 즈음이 되면 저우 상점 지배인과 헤어지는 것을 몹시 섭섭해하는 것 같았다. 신더쯔는 장사를 해서 돈을 벌려면 사람을 홀리는 수단과 만담술을 터득해야 한다는 것을 간파했다. 저우 상점 지배인이 바로 그러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선더쯔는 더 이상 여기에서 일하고 싶지 않았으며, 저우 상점 지배인에게 감탄하면 할수록 마음은 더욱 괴로워졌다. 그는 음식을 먹어도 마음이 쓰여서 목구멍으로 잘 넘어가지 않았다. 편안하게 잠을 자려면 그는 싼허시앙을 떠나야만 했다. 그러나 그가 다른 좋은 자리를 찾아 떠나기도 전에 저우 상점 지배인은 티얜청 상점을 인수해서 가 버렸다. 티얜청은 이러한 사람이 필요했으며, 저우 상점 지배인 역시 가기를 원했다. 왜냐하면 싼허시앙의 오래된 규칙은 너무나 역사가 길고, 흡사 뿌리가 자라고 있는 것 같아서 그가 충분히 자신의 재주를 발휘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신더쯔는 저우 상점 지배인이 떠나자 하나의 마음의 병을 보낸 것 같았다. 자본주에게 신더쯔는 15년 동안 장기 근무한 점원의 자격으로, 비록 어떠한 효력을 발생시킨 것은 아니었지만 몇 마디 말을 할 수 있었다. 그는 어느 자본주가 보다 더 보수적인지를 알았으며, 어떻게 그를 감동시켜야 하는지도 알았다. 그는 치얜 상점 지배인을 위한 운동을 전개하면서 치얜 상점 지배인의 옛 친구들에게 도움을 부탁했다. 그는 치얜 상점 지배인이 행한 일체의 모든 것들이 다 좋았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치얜과 저우 두 사람은 각각의 장점을 가지고 있으므로 응당 절충시켜야 하며, 옛날의 법칙을 그대로 고수해서도 안 되고 변화가 너무 도에 지나쳐도 안 된다고 말했다. 전통 있는 간판은 보존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며, 새로운 방법 또한 배워서 이용해야 한다. 간판과 이익 양쪽 모두를 돌아보는 것, 그는 이것이 바로 자본주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는 마음속으로는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치얜 상점지배인이 돌아오면 일체의 모든 것을 돌려 놓아야 한다. 싼허시앙은 반드시 '옛날의' 싼허시앙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가스등, 서양 북과 서양 나팔, 광고, 전단, 담배 등을 없애고 부득이한 경우에는 또 점원을 줄일 수 있으니, 대략 큰 지출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다. 하물며 소리 없이 싸게 팔고, 더 많이 주면서도 제품이 확실함에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설마 사람들이 모두 바보는 아니겠지? 치얜 상점 지배인은 과연 돌아왔다. 거리에는 정시앙춘의 가스등만 남아 있었으며, 싼허시앙은 비록 치얜 상점 지배인을 환영하는 것 때문에 네 개의 등롱을 매달고 크고 붉은 술을 늘어뜨렸지만 옛날의 조용한 모습을 회복했다. 싼허시앙이 등롱을 단 그날, 티얜청은 문 입구에 두 마리의 낙타를 놓아 두었다. 낙타의 몸 위에는 각색의 비단을 가득 걸쳐 놓았으며 낙타의 육봉 위에는 꺼졌다 커졌다 하는 오색 전등을 달아 놓았다. 그리고 낙타의 좌우에는 복권부를 개설했다. 한 사람이 10문씩 내서 열 사람이 모여지면 복권을 추첨했는데, 10문으로 한 필의 현대식 옷감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티얜청의 문 앞은 절에 재를 올리는 날처럼 사람이 많아서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복잡했다. 정말로 싱글벙글 웃으면서 한 필의 현대식 주름 옷감을 끼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싼허시앙의 출입구에 있는 의자는 여전히 남색의 모직 커버로 덮여 있었으며, 치얜 상점 지배인 역시 눈꺼풀을 아래로 내린 채 거기에 앉아 있었다. 점원들은 조용히 상점 안에 앉아 있었는데, 어떤 사람은 가볍게 주판 알을 튀기고, 어떤 사람은 천천히 하품을 했다. 신더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마음은 초조했다. 반나절이 지났는데도 물건을 사러 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간혹 어떤 사람이 밖에서 흘깃거리며 들어올 것같이 하다가 금색 바탕의 편액을 보고는 티앤청 쪽으로 가 버렸다. 어떤 이는 들어와서 물건을 보고도 값을 깎아 주지 않는다며 그냥 가 버렸다. 단지 몇몇의 옛 고객만이 자주 와서 물건을 샀다. 그러나 어떤 때는 치얜 상점 지배인과 담화를 나누며 세상이 이와 같이 궁핍한 것을 개탄하고 차를 마시고 갈 뿐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신더쯔는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듣는 것을 좋아했다. 이것은 그로 하여금 옛날의 광경을 생각나게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역시 옛날의 광경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거리에서는 오직 티얜청만이 복적대며 장사를 하고 있었다. 명절을 지낸 후, 싼허시앙은 점원을 줄이지 않을 수 없었다. 신더쯔는 눈물을 머금고 치얜 상점 지배인에게 말했다. "저 혼자서 다섯 사람의 몫을 할겁니다. 우리는 두려울 게 없습니다!" 치얜 상점 지배인 역시 말했다. "우리는 두려울 게 없어!" 신더쯔는 다음날 다섯 사람의 몫을 하기 위하여 달게 잠을 잤다. 그러나 1년 후, 싼허시앙은 티얜청에게 넘어가고 말았다. (1934년) 라오서의 작품 세계 중국 현대문학에서는 라오서를 소위 조련시기(1928__1937)의 대표적인 작가로 지칭하고 있다. 1929년 국민당 정부에 의해 창조사가 해체되고 좌익에 대한 탄압이 전개되면서 순수문학을 지향하던 루쉰, 마오뚠, 위따푸 등과 라오서는 쓰고 생각하는 자유를 수호하는 대열에 서게 되었다. 그의 문학사상은 어느 이데올로기에 근거하여 제시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원초적이며 인도주의적인 의식을 바탕으로 표출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대륙의 공산화 이전의 그 어느 작가보다도 사상의 순진성을 지키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라오서는 가정적인 출신부터가 지극히 평범하다는 데에서 신선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만주족인 부모를 두고 북경에서 태어난 그는 홀어머니의 품에서 자랐는데, 입고 있던 옷을 팔아서 끼니를 이어야 할 만큼 가난한 달동네의 삶을 보며 성장했다. 머리가 명석하고 문학에 대한 재능을 어려서부터 남달리 발휘하면서 1919년 5.4문학운동을 맞게된다. 이 운동은 그에게 무한한 창작에의 열정을 불러일으켰고 민중, 민족의 자각과 사회 현실의 모순을 직시하면서 문제시하기 시작한다. 약관에 북경시의 장학관으로 있던 라오서는 1922년에 어려운 살림에도 연경대학에 진학하면서 그의 문학에의 기초적인 역량을 다질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한다. 그것이 1924년 영국으로 건너가서 서양의 문학세계를 가까이하는 기회로 이어진다. 라오서는 런던대학 동방학원에서 중국어를 가르치면서 영국문학에 심취하였고, 그 중에도 특히 디킨스의 해학적이며 풍자적이 작법에 깊이 감화되어 갔다. 이 영향으로 1926년 6월부터 "소설월보"에 그이 처녀작 "장씨의 철학"을 연재하게 된다. 이 소설은 풍자적인 맛을 주는 성공적인 그의 첫산물이라는 데서 그의 작가적 지위를 확고히 하는 디딤돌이 된다. 그 이후부터 본명인 쉬청춘과 아호인 수위 대신에 '라오서'라는 필명으로 문단에서 현대문학의 한 금자탑을 쌓아 나가기 시작한다. 이어서 "조자왈"(1927), "마씨 부자"(1929) 등을 발표하고, 1930년에 제노대학의 교수가 되면서 본국에서의 창작활동을 왕성하게 전개한다. 그후 1936년에는 그의 대표작인 "낙타상자"를 "우주풍"에 연재하게 된다. 1941년에 출간된 "낙타상자"가 1945년에 미국에서 "Rickshaw boy)라는 제목으로 번역출판되면서 베스트셀러가 되어 라오서는 세계적인 작가로 각광을 받게 된다. 1945년에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되면서 중국대륙이 마오쩌둥을 중심으로 한 공산국가의 체제를 갖추어 감에 따라 라오서는 조국의 공산화를 실망과 우울한 심정으로 지켜보면서 미국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나 1950년에 전국문련의 신년다화회에 초청되어 귀국하면서 라오서의 노년의 생애는 중국의 체제와 밀접한 유대관계를 맺게 된다. 귀국 이후의 작가활동이 이미 발표된 작품들을 정리나 한 정도인 것을 보면 라오서의 심리적 갈등을 짐작할 수 있다. 그의 나이 53세가 되는 1951년에는 중국의 작가로서 '인민예술가'의 칭호를 받고 이듬해 5월에는 마오쩌둥의 문예강화 10주년 기념을 위한 "마오 주석은 나에게 새로운 문예생명을 주었다"("인민일보" 1952년 5월 21일)라는 글을 발표하면서 공산주의 문학이론으로 자신의 문학을 비판하고 주요작품은 개작하거나 삭제하여, 어떤 면에선 서구의 사조를 익힌 라오서의 본의 아닌 삶과 현실에 대한 아부와 밀착을 위한 언행이 아니었던가 하고 일말의 연민을 느끼게 한다. "낙타상자"도 1955년에 다시 개작하여 발표하였을 정도였는데, 그의 개작과 관련된 심경을 개정판 후기를 통해서 유추해 보면 1950년대 이후 1966년 문학혁명에 희생될 때까지의 작가적 의식을 알 수 있다. 그 후기의 일단을 보면, "이 소설은 나의 19년 전의 옛날 작품으로서, 여기에서 나는 인민을 동정하고 좋은 성품을 받들어 주지 못하면서 그들에게 이렇다 할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지도 못하였다. 그들은 고생하면서 부당하게 죽어갔다. 그것은 당시 내가 사회의 그늘만을 보고 혁명의 광명과 진리를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현실의 이데올로기에 짓눌린 한 작가의 비애를 읽는 것 같은 감상을 금할 수 없는 것이다. 어떻든, 라오서는 이 공산사회에서 "용의 수염"(1951)이라는 화극을 써서 상연케하면서부터 '당을 따르는 벌레'가 되었고, 마오쩌둥 밑에서 정문원문교위원회 위원, 중국문련 부주석, 중국작가협회 부주석, 서기처 서기, 북경문련 주석을 지내다가, 1966년에 사상적 갈등의 말로를 보듯이 홍위병에 의해 모욕을 당하고 투신자살을 함으로써 비극적인 삶의 끝을 맺는다. 라오서의 참된 문학세계는 어디까지나 인민의 편에서 가장 현실적이고 보편적인 소재를 가장 인간적으로 소화하여 삶의 참의미가 무엇인가를 음미하도록 한 데에서 찾아야 한다. 이러한 각도에서 볼 때 "간판에 얽힌 이야기"는 신더쯔라는 작중인물을 통하여 전통적인 생활의식과 서민의 애환을 조화하여 중국인이 지향해야 할 목표를 풍자적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삥신 작가 세계 1900년 10월 5일 복건성 복주부에서 출생. 원명은 시에완잉. 1912년 복주여자사범 예과에 합격. 1914년 북경패만여자중학에 합격. 1918년 패만여자중학 졸업. 협화여자대학 이예과에 진학. 1919년 5 4운동에 참가. 학생회의 문서로 피선. 북경 "신보"에 첫 소설 "두 가정"을 연재. 삥신을 필명으로 함. 1921년 쉬따산, 찌우스이와 같이 문학연구회에 가입. 1923년 1월, 시집 "번성"을 출판(상무인서관). 5월, 산문집 "초인"을 출판(상무인서관). 9월, 미국 위스콘신 여자대학에 유학. 1926년 6월, 미국 웨슬리 대학에서 석사학위 취득. 9월, 연경대학에서 강의. 1929년 6월, 우원짜오와 결혼. 1930년 북평여자문리학원 교수. 1932년 "삥신 전집" 출판(북신서국). 단편소설집 "시어머니" 출판. 1933년 청화대학 교수. 단편소설집 "거국"을 출판(북신서국). 1935년 5월, 단편소설집 "겨울의 아가씨"를 출판(북신서점). 1943년 "삥신 저작집"을 출판(개명서점). 1949년 일본 동경대학에서 중문학 강의. 1951년 귀국. 1954년 9월, "삥신 소설산문선집"을 출판(인민문학출판사). 1956년 2월, 중국아주위원회 회원. 5월, 중편소설 "도기의 여름일기"를 출판(소년아동출판사). 1958년 4월, 산문집 "귀래이후"를 출판(작가출판사). 1960년 1월, 산문집 "우리가 봄을 깨웠다"를 출판(백회문예출판사). 7월, 중국작가협회 이사로 피선 1962년 11월, 산문집"앵화찬"을 출판(백회문예출판사). 1964년 3월, 산문집 "이삭줍기"를 출판(작가출판사). 12월, 제3차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로 당선. 1979년 10월, 중국문련 부주석으로 피선. 1980년 9월, "만청집"을 출판(백회문예출판사). 1983년 5월, 산문집 "나의 고향"을 출판(북건인민출판사). 1985년 9월, 남편 우원짜오 사망. 초인 삥신 허삔은 냉정한 청년으로, 그가 다른 사람과 교재라는 것을 지금까지 본 사람이 없었다. 그는 고층빌딩에 사는데, 많은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지만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았다. 또한 그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식당에서 밥을 먹지도 않았다. 우연히 밖에서 마주치면 목례조차도 하지 않았다. 우체부아저씨가 올 때면 많은 청년들은 기뻐 날뛰며 그들에게 온 편지를 받으러 갔지만 허삔은 한 통의 편지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날마다 사무실에서 사무를 보면서 동료들과 나누는 공적인 말 몇 마디와 집주인 정할머니가 그에게 밥을 가져다 줄 때 건네는 의례적인 말 이외에는 절대로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교제를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조금이라도 생기가 있는 물건이면 다 좋아하지 않았다. 방안에는 한 송이의 꽃도, 한 포기의 풀도 없으며, 싸늘하기가 마치 산의 동굴과 같았다. 책꽂이 위에는 책이 가득 쌓여 있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혼자 뚜벅뚜벅 걸으며 사무실에서 집으로 돌아와 문을 잠그고는 모자를 벗고 책상 옆에 가서 앉았다. 그리고 책을 한 권 들고 무의식적으로 보다가 피곤하면 일어서서 방안을 몇 바퀴 빙빙 돌았다. 그는 커튼을 제치고 멍하니 창 밖을 쳐다보다가 잠시 후에 또 문을 걸었다. 정할머니는 어떻든 그가 특별히 대우하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밥을 가지고 와서 어떤 때는 한쪽에 서 있다가 이런저런 말로 그와 수다를 떨었고, 그에게 왜 이렇게 혼자 사느냐고 묻기도 했다. 그녀가 여남은 마디로 물으면 허삔은 겨우 몇 마디로 대답했다. "세계는 공허하고 인생은 무의식적으로 삽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우주, 사람과 만물이 모임은 다 일장 연극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무대에 오른 부모와 자식은 아주 친밀합니다. 하지만 무대에서 내려오면 가면을 벗어 던지고 각자 흩어져 살아가죠. 한차례 우는 것도, 한차례 웃는 것도 연극과 같은 것입니다. 서로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보다 서로가 상대를 버리고 따로 사는 것이 낫죠. 니체는 사랑과 연민은 모두 악이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정할머니는 비록 잘 알아듣지는 못한 것 같지만 그래도 반쯤은 알아들은 모양이다. 그녀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살아갈 의미가 없지 않을까요? 죽거나 멸망하는 것이 더 낫지 무엇 때문에 입고 먹고 그렇게 살아가지요?" 허삔은 미소를 지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렇게 한다면 자기와 세계를 다 중히 여기는 것이 아닐까요? 떠가는 구름과 흐르는 물같이 흘러가는 것이 그가 가고자 하는 대로 가다가 죽는 것보다 낫습니다." 정할머니는 몇 마디 말을 더 하고 싶었으나 허삔이 냉정한 표정으로 머리를 숙이고 밥만 먹는 모습을 보고는 감히 말을 하지 못하였다. 이날 밤에 그는 잠에서 깨어났다. 맞은 편 건물 아래층에서 고통스럽게 신음하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는 그 신음소리는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낮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의 마음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는 신음 소리 때문에 한잠도 자지 못했다. 창문의 얇은 커튼 사이로 물빛처럼 밝은 달빛이 새어 들어왔다. 그는 어렸을 때 일이 생각났다. 자상한 어머니, 하늘에는 별들이 떠 있고 정원에는 꽃이 만발하고... 그의 머리는 이러한 생각들로 꽉 들어 차 터질 듯이 아팠다. 이 생각을 물리치려 하였으나 그럴수록 더 몰려들기만 할 뿐이었다. 날이 밝을 무렵에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그는 사흘 밤 동안 신음 소리를 들었고, 달빛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지난 사흘 밤 동안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였다. 그는 잠을 이루지 못해 눈언저리가 시꺼멓게 변했고, 얼굴색도 창백해졌다. 그는 매일 가계처럼 주어진 일을 하였다. 그러나 그의 머리는 텅텅 비어 있었다. 일주일째 되는 날 아침, 그는 문득 정할머니에게 맞은 편 건물 아래층에서 병을 앓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 정할머니는 한편으로 놀라면서 대답했다. "식당에서 심부름을 하는 루아라는 아이인데, 어느 날 거리에서 넘어져 다리를 다쳤다더군요. 고약을 사다 붙였는데도 낫지 않아서 밤마다 신음을 한답니다. 그 아이가 너무 불쌍해요. 올해 열두 살인데, 평소에 부지런하고 성실해서 사랑을 독차지했답니다." 허삔은 옷을 주섬주섬 입고 모자를 쓰고는 마치 아무 말도 듣지 않은 것처럼 문 밖으로 나갔다. 정할머니도 말문을 열지 않고 밥그릇을 가지고 나가려고 하였다. 그때 허삔이 천천히 호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어 정할머니에게 주며 말했다. "루아에게 주십시오. 치료비에 보태 쓰라고 하세요." 그는 말을 마치고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곧장 나갔다. 정할머니는 큰 액수의 돈을 보고 놀라며 생각했다. '허 선생이 자비를 베풀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야!' 그녀는 밥그릇을 갖다 놓고서 문에 서서 넋을 잃고 있을 뿐이었다. 신음 소리는 점점 작아져 갔고 달빛도 점점 이지러졌다. 허삔은 아직도 몽롱하게 기억 속을 더듬었다. 자상한 어머니, 하늘에 무수히 떠 있는 별, 정원에 피어 있는 꽃... 그의 머리는 터질 것 같았다. 애써 이런 생각을 잊으려 하였지만 그럴수록 더 밀려들 뿐이었다. 며칠이 지난 뒤 신음 소리가 멎었다. 고요한 밤의 정적 속에서 허삔은 이전처럼 단잠을 빠져 들었다. 며칠 전 밤의 생각들은 밝은 달빛이 빙산의 꼭대기를 비치는 것처럼 잠시 스쳐 지나갔다. 정할머니는 루아를 데리고 그의 방 앞에 와서 문을 몇 차례 두드리며 그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려 하였다. 그는 마치 잊어버렸다는 듯이 냉정하게 머리를 돌려 한 번 쳐다보고는 또 고개를 흔들며 여전히 책을 읽었다. 루아는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은 얼굴로 문 밖에 서서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저녁 무렵에 허삔은 정할머니에게 그가 다른 사무실로 전근을 가게 되었다고 말했다. 모레 아침이면 곧 떠난다고 하면서 방세와 밥값을 계산했다. 정할머니는 이렇게 청렴한 손님은 드물다고 여겼다. 그러나 끝내 그를 붙잡아 둘 수가 없어서 곧 그에게 축하를 해주었다.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머리를 끄덕이고는 뒤돌아 서서 그의 서적을 정리하였다. 그는 너무 피곤하여 금방 잠에 빠져들었다. 문득 누군가 방문을 비트는 듯한 소리가 몇 번 들렸다. 어떤 사람이 손으로 미는 것처럼 계속해서 들려 왔다. 그는 꼼짝도 하지 않고 조용히 누워 있기만 하였는데, 잠시 후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음날 그는 또 문을 걸어 잠그고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정할머니가 그를 도우려 하였으나 그는 내키지 않아서 일이 있을 때 다시 부르겠다고만 하였다. 정할머니가 아래층으로 내려간 후, 그는 문득 한 가지 일이 생각났다. 노끈을 사는 것을 잊어버린 것이었다. 살며시 문을 열고 보니 문 밖에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루아가 맞은편 문 뒤에 숨어 있었던 것이었다. 그는 머뭇거리며 사방을 살펴보았지만 하인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루아를 불렀다. "얘야, 노끈을 좀 사다 줄 수 있겠니?" 루아는 주춤거리며 달려나와서 아주 기쁜 듯이 돈을 받아 들고 쏜살같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잠시 후에 루아는 상기된 얼굴로 숨을 헐떡이며 뛰어 올라왔다. 한 손에는 노끈을 쥐고 있었고, 등뒤에 있는 다른 한 손에서는 두어 개의 황금빛을 발하는 별이 약간 비쳐 보였다. 루아는 노끈을 그에게 주고 우러러보며 무슨 말을 하듯이 그 손을 살며시 내보였다. 그러나 허삔은 상대도 하지 않고 노끈을 가지고 갔다. 그는 급하게 짐을 다 꾸리고 나서 팔짱을 끼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방안은 텅텅 비어 있었다. 밤에 그는 너무 더워서 자다가 일어나서 창문과 문을 활짝 열고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다시 잠을 청하였다. 그래도 찌는 듯이 더웠다. 머리는 너무 혼란스러웠다. 솔바람이 불어와서 그의 앞이마의 짧은 머리카락이 흩날렸고 그의 머리에 맺혔던 땀방울도 차츰 말라서 그를 꿈속으로 빠져 들어가게 했다. 사면이 흰 벽이고 희미한 빛이 방구석에 몇 개의 검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시간이 조금씩 조금씩 지나갔다. 자상한 어머니, 온 하늘에 가득한 별들, 정원에 핀 꽃... 더 이상 생각이 나지 않았다. 번민... 검은 그림자가 지붕을 덮어씌워 물이 흐르듯 넘어가서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고 시간만 차츰차츰 흘러갔다. 바람이 거세게 불고 그 근처에는 빛이 환하게 떠올랐다. 뭇 별들이 마구 흩어져 어지럽게 날리며 들어왔다. 별빛 사이로 흰옷을 입은 여인이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오른손은 치마를 잡고 있었고, 왼손은 앞이마를 가리고 있었다. 다가오니 맑은 향기가 전해져 왔다. 점점 몸을 구부리고 바라보았고, 조심스럽게 움직이지 않고 사랑스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일시에 신경이 마비가 되었다. 일어나시오! 안 됩니다. 여기는 바구니 안이야! 어머니! 저는 당신의 품안에서 일어나려 합니다. 당신은 내가 당신의 품안에서 일어나기를 바라겠지요. 어머니! 우리 영원히 헤어져서는 안 됩니다. 그 여인은 점점 더 뒤로 물러났다. 눈빛은 여전히 사랑으로 가득하였다. 흐리멍덩해졌다. 별빛이 비오듯 쏟아지며 방구석의 검은 그림자를 휭하니 몰고 가 버렸다. "어머니, 가지 마세요. 가지 마세요!" 십수 년을 숨겨온 사랑의 감정이 허삔의 얼굴 표정에 나타났다. 십수년 동안 한 방울의 눈물도 보이지 않았는데, 진주 같은 눈물 방울이 여기저기 뚝뚝 떨어졌다. 맑은 향기도 아직 있고 흰옷을 입은 사람도 아직 있다. 살며시 눈을 떠보니 사면이 흰 벽이고 하늘에는 희미한 빛만이 있었다. 방구석에는 몇 더미의 검은 그림자가 맑은 향기를 싣고 왔다. 어린아이가 있는 것 같아 살금살금 걸어나가 문에 이르니 어린아이가 얼굴을 뒤로 둘려 바라보았다. 그는 바로 루아였다. 허삔은 앉았다가 일어나서 다 묶어 놓은 책 더미 쪽으로 가서 한 다발의 황금색 꽃을 보았다. 꽃다발 아래에는 큰 종이가 감겨져 있었다. 그 종이에는 큰 글자가 종행으로 씌어 있었는데 희미한 빛에 비쳐 보니 다음과 같이 적혀 있는 것이 보였다. 저는 어떻게 선생님의 은혜에 보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방문 앞에서 몇 차례 책상 위에 꽃이 없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기에는 꽃을 파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선생님께서 보지 못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이 꽃의 이름은 저도 무엇이지 모릅니다. 제가 스스로 심어서 키운 것인데 향기가 진해서 저는 이 꽃을 아주 좋아합니다. 선생님도 이 꽃을 좋아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전부터 선생님께 드리려 했으나 도무지 기회가 없었습니다. 어제 선생님께서 떠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급히 보냅니다. 저는 이 꽃이 선생님께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게는 어머니가 있는데 어머니께서 저를 사랑해 주십니다. 선생님은 어머니가 있으세요? 그분도 반드시 선생님을 사랑하실 겁니다. 저의 어머니와 선생님의 어머니는 좋은 친구가 될 것입니다. 선생님도 어머니 친구 아들의 선물이니 이 꽃을 꼭 받아 주십시오. 머리를 조아리며 루아 허삔은 다 읽고 나서 꽃다발을 들고 침대 앞으로 갔다. 그러고는 긴장된 힘이 다 풀리면서 엉엉 소리를 내고 울었다. 맑은 공기는 아직도 방안에 가득하고 어머니는 가 버렸다. 창 밖과 창안을 교차하여 비쳐 주는 달빛, 별빛, 눈물빛만이 있었다. 아침에 정할머니가 왔을 때, 허삔은 옷을 다 입고 모자를 눌러 쓴 채 뒤돌아 서서 창문 앞에 서 있었다. 정할머니가 웃으면서 밥을 먹겠느냐고 물으니 그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싸늘한 태도였다. 상자도 다 운반하였다. 허삔은 온 얼굴에는 눈물을 흘린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는 묵묵히 정할머니에게 감사하는 말을 남기고 꽃을 들고서 차를 타고 떠났다. 루아가 정할머니의 옆에 서서 두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니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자동차의 먼지가 멀어지는 것을 보고 정할머니는 루아에게 말했다. "가서 그 방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나서 열쇠가 문 위에 있으니 방문을 꼭 잠그고 오노라." 방안은 빈 동굴 같았다. 침대 위에는 한 장의 긴 편지가 놓여 있었다. 어린 친구 루아! 나는 먼저 너에게 깊이 사죄한다. 나의 은혜는 바로 나의 죄악이다. 너는 나에게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하는데 나는 아직도 내가 어떻게 너에게 보답을 해야 할 지 모르겠구나! 깊은 밤에 들리는 너의 신음 소리는 나에게 많은 지난 일을 생각나게 했다. 첫번째는 나의 어머니인데, 식어 버린 줄 알았던 어머니의 사랑이 물 흐르듯이 쏟아졌다. 나는 이 몇십 년을 살면서 세계는 공허하고, 인생은 무의식적인 것이며, 사랑과 연민은 다 악덕이라고 잘못 생각하였다. 내가 너에게 준 약값은 사랑과 연민을 털끝만큼도 포함하고 있지 않다. 그것은 너의 신음 소리를 그치게 하고, 나의 어머니를 생각나지 않게 하고, 우주와 인생을 거부하고 사랑과 연민을 거부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느님! 이것이 무슨 생각입니까? 나는 네가 그 천진한 마음으로 나에게 보낸 그 한 장의 편지에 깊이 감사한다. 어린 친구! 옳아. 세상에 있는 어머니와 어머니는 다 좋은 친구다. 세상에 있는 아이와 아이도 역시 좋은 친구이니 모두 서로 만나서, 서로 헤어지지 않을 것이다. 네가 나에게 꽃을 보내기 전에 나의 어머니는 이미 가셨다. 그분은 너의 사랑을 나에게 전해 주고 가셨다. 나는 반드시 너의 꽃과 너의 사랑을 잊지 않겠다. 너 역시 너의 꽃과 너의 사랑을 네 어머니에게 받았다는 것을 잊지 않겠지! 나는 죄의 숲을 지나 와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 더구나 너에게 보낼 것도 없다. 그러나 지금 나에게는 그래도 죄를 뉘우치고 흘리는 눈물이 있고, 반쯤 검은 달빛, 찬란한 별빛이 있다. 우주에는 순결하고 티없는 것만이 있다. 나는 한 가닥 부드러운 실을 가지고 구슬 같은 눈물 방울을 흘렸고 하현달의 양끝을 메고서 온 하늘의 별을 따와서 반달의 둥글고 오목한 곳에 담는다. 한 다발의 황금색 꽃... 그 향기는 죄를 뉘우치는 사람이 호소하는 말이니 네가 받아들이기를 부탁한다. 단지 이 한 다발의 꽃만 너에게 나누어 보낸다. 날이 밝았다. 나는 떠나야 한다. 다른 말은 접어 두고, 나는 다만 너에게 감사한다. 어린 친구, 안녕! 안녕! 세상에 있는 모든 아이는 다 좋은 친구이고, 우리는 영원히 만날 것이다! 허삔이 대충 쓰다. 추신: 내가 쓴 편지의 내용은 네가 반드시 다 알고 다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다 이해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네가 이해하고 있는 것이 나보다 더 많기 때문이다. "그분이 내가 보낸 꽃을 내게 조금 남겼군." 루아는 멍청히 하늘을 바라보았다. 삥신의 작품 세계 삥신의 문학사상은 전적으로 기독교 교리와 타고르의 철학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현실을 바탕으로 해서 애와 증의 양면성을 순리적으로 조화시킴으로써 문제의식을 부각시키려 하였다. 그러기에 현실생활을 배경으로 하고 사회 모순의 반영을 주지로 하는 성격을 띠고 있다. 삥신의 소설 작품은 주로 초기에 발표된 것이다. 즉 "삥신 소설집"(1935년)에는 28편이 실려 있는데 그 중에 "기인독초췌", "초인", "오" 등 대부분이 1919년에서 1923년에 씌어진 것이다. 삥신의 작품은 과학적이라기보다는 생물학적이며 신비주의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초인"(1921)에서는 다소의 유심론적인 맛을 보여 주는데, "세상의 어머니와 어머니는 모두 좋은 친구", "아이와 아이는 모두 좋은 친구", "모두 서로 만나서, 서로 헤어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대목은 이른바 '사랑의 철학'이라고 풀이할 수도 있다. 인생문제에 중점을 두었기에 퇴폐적인 청년들을 각성시키고 분발시키는 교훈성을 지닌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짱꽝츠 작가 세계 1901년 안휘 곽구에서 출생. 다른 이름은 짱꽝츠, 호는 시아성. 1920년 상해 사회주의청년단에 가입. 1921년 리우샤오치 등과 소련 유학. 1924년 귀국하여 상해대학 사회학과 교수. 1928년 대양사를 창립. 1930년 좌련 성립 때에 상무위원회 후보위원. 1931년 병으로 사망. 1921년에서 1927년까지 그의 시집 "새로운 꿈", "중국을 애도", 중편소설 "소년표박자", "짧은 바지 무리", 단편소설집 "압록강가에" 등 초기 무산계급문학의 특색을 지닌 책을 내고, 1927년부터 1929년까지는 중편소설 "야제", "국화향기", "최후이 미소", "리사의 애원" 등과 장시 "읍소"를 발표하였다. 1930년에는 장편소설 "포효의 땅"을 발표하였다. 한 통의 부치지 않은 편지 짱꽝츠 이것은 4개월 전의 일이다. 하루는 내가 압북으로부터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우연히 1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C군을 만났다. C군은 나의 좋은 친구로, 1년 전에 나와 함께 살았는데 마음이 서로 잘 맞았다. 그의 청년다운 호상한 기개, 성실한 태도, 그리고 용감한 사상과 고상한 언담은 일찍이 나로 하여금 그에 대해 무한한 경애의 감정을 일으키게 했다. 당시 우리들은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기차를 타고 포대만에 가서 거대한 바다를 바라보며 슬픈 노래를 부르기도 했고, 달빛을 따라 프랑스 화원으로 걸어가서 연꽃이 있는 호수에서 조용히 속삭이기도 했다. 또 때로는 작은 술집에 가서 술을 마시기도 했는데, 흥분하여 큰 소리로 자신의 처지와 가정, 국가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만취하곤 했다. 그는 비록 혁명공작을 아주 잘할 수 있는 사람이고 쓸데없는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는 확실히 대단한 낭만주의자였다. 나는 항상 그가 사랑스럽고 재미있다고 느꼈다. 그가 일 때문에 상해를 떠난 이후로 나는 항상 무언가 잃어버린 것과 같은 허전함을 느꼈으며 그것 때문에 불쾌하기도 했다. 비록 이별해 있었던 1년 동안 나는 그로부터 많은 편지를 받았지만, 내용이 너무 간략해서 그에 대한 나의 궁금증을 해소시킬 수가 없었다. 마지막 몇 개월 동안은 그의 간략한 편지마저 받을 수 없었기에, 그에 대한 나의 걱정은 날로 커져만 갔다. 나는 항상 생각했다. 혹시 일이 너무 힘들어서 병이 난 것이 아닐까? 혹시 군인이나 경찰에게 체포되어 감옥에 갇혀 있는 건 아닐까? 혹시 무슨 뜻밖의 불행을 만난 것은 아닐까? 그는 지금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왜 간략한 편지조차 나에게 보내지 않을까? 나를 잊어버린 것인가? 뜻밖에 지금 버스 안에서 그를 만나게 되니 정말로 나의 기쁨과 즐거움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비록 헤어진 지 이미 1년이 지났지만 그의 기개, 표정, 얼굴색은 여전히 나와 함께 살 때와 같았다. 그가 나를 보았을 때, 그 역시 매우 기뻐하며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나와 악수를 했다. 이 악수... 아! 나는 너무 기뻐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시끄러운 버스 안에서 무슨 말을 한다는 것은 당연히 불편했다. 나는 그에게 어느 지방에서 일을 했으며, 지금은 어느 지방에서 오는 길인지, 그리고 상해에서 머무를 예정인지를 물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그에게 왜 편지를 쓰지 않았는지, 나를 잊어버린 것은 아니었는지를 따져 물었다. 그는 결코 나에게 편지를 쓰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일이 너무 바빠서 실제로 붓을 들 여유가 없었다고 말하면서 나에게 이해해 달라고 했다. 그는 저녁에 곧 배를 타고 광동으로 노동자대표대회를 개최하러 가야 하기 때문에 상해에서 오랫동안 머무를 수 없다고 말했다. 나는 매우 실망하였다. 이때까지 만나지 못하다가 이렇게 우연히 만났으니, 오랫동안 서로의 이야기를 하며 지내려고 했는데, 오늘 저녁에 또 광동으로 떠난다니... 아! 정말 불행하구나! 정말... 그는 내가 실망하는 것을 보고 아주 온유하게 나를 위로하며 말했다. "너무 실망하지 말게! 앞으로 만날 기회는 많아! 두 달 후에 내가 다시 상해로 공작하러 올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나는 우리가 다시 함께 살 수 있기를 바라네." "나는 자네가 좋은 소설과 시를 많이 지어서 나에게 읽도록 해줬으면 좋겠네." 버스에서 내리자, 시간은 이미 오후 5시였다. 나는 그에게 우리가 1년 전에 자주 갔던 작은 술집으로 가서 술을 마시면서 송별연도 할겸 이별 후의 심정을 이야기하자고 했더니 그는 흔쾌히 허락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또 옛땅에서 다시 놀게 되었다. 1년 전에 이 작은 술집은 매우 운수가 사나워서 장사도 잘 안 되고 탁자나 의사 역시 불결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주 깨끗해졌다. C군은 사면을 둘러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술을 마시던 술집은 이렇게 아름답게 변했는데! 나는 여전히 이전처럼 능력이 없다네. 생각하니 실로 감개가 무량하군!" 나는 웃으면서 그에게 무엇이 아름답고, 아름답지 않은가를 물었다. 우리는 여전히 옛날풍의 의관에서 벗어나질 못했을 뿐이다. 내년, 후년, 다시 여러 해가 지나도, 우리는 여전히 지금과 같을 것이다. C군은 C군의 떨어진 서양 옷을 입을 것이고, 나는 나의 질이 나쁜 베 두루마기를 입을 것이다. 우리는 이별한 후의 일의 상황, 현대정치의 상황, 남정북벌의 사정 등을 이야기하고, 또 장종창이 개고기를 먹으며, 손전방이 예교를 받든다는 것, 상해 여자를 몇 종류로 나누는 등등의 이야기를 하였다. "자네, 연애문제는 해결했나?" "친구! 연애란 1원짜리 은화를 중히 여기는 거라네. 나는 절대로 그런 꿈도 꾸지 않아!"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매우 슬픈 기색을 드러내었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라고? 어떤 아름다운 여자가 나 같은 떠돌이 가난한 남자를 사랑하겠나? 자네는 지금 대학교수이니 많은 아름다운 여학생들이 자네를 사랑하겠지... 그만두세. 나는 이제 더 이상 이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네!" 그는 약간 화가 난 것 같았다. "시간이 많이 지났군. 자네가 거처하는 곳에 들른 후에 여관으로 가서 짐을 챙겨 가지고 배를 타러 가야겠네." 나는 그의 이러한 모습을 보고 그에게 술을 더 마시자고 권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와 함께 나의 거처로 왔다. 그는 앉아서 쳐다보기만 할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약간의 취기를 느끼는 것 같았다. 15분 가량 지난 후에 그는 배를 놓칠까 두렵다고 하면서 나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나는 어지럽고 두 발을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에 간신히 그를 대문 앞까지 전송했다. 그는 곧 가 버렸다.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보니 내 책상 위에 가죽으로 만들어진 노란색 가방이 놓여 있었다. 나는 분명히 C군이 잊어버리고 갔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미 배를 타고 떠났을 테니, 보낸다 해도 받지 못할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안에 무슨 중요한 것이나 들어 있는지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가방을 열어 보았더니, 중요한 것은 없고 다만 내가 쓴 "선몽집"과 우표를 붙이지 않은 한 통의 장밋빛 편지가 들어 있었다. 이 장밋빛 편지는 대충 보니까 부치지 않은 편지 같았다. 자세히 살펴보니까 과연 그러했다. 편지봉투에는 '상해 하비로 306호 ㅇㅇㅇ여사 받음'이라고 씌어져 있었다. 나는 다른 사람의 편지를 훔쳐보는 것은 죄를 짓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안에 무엇이 씌어 있는지 뜯어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의 보고자 하는 마음은 확실히 간절했다. 만약 이 편지가 다른 사람이 쓴 것이었다면 아마도 뜯어 보고 싶다는 흥미를 유발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꿈에서라도 절대로 연애를 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는데, 왜 이런 편지를 가지고 있는 걸까? 설마 그에게 이미 애인이 생긴 것은 아닐까? 애인이 있으면서도 나를 속인 것은 아니겠지? '여사 받음'이라... 이것은 연애편지임에 틀림없어. 그렇지 않다면 왜 이렇게 고운 장밋빛 편지봉투를 사용했겠어? 그가 평소에 나에게 보내는 편지에 적힌 글씨는 편지봉투와 편지지를 막론하고 모두 아주 거친데, 왜 이 편지봉투에 적힌 글씨는 이렇게 가지런하고 신중한 것일까? 그저 한 여동지에게 보내는 편지일까? 아니! 아니야! 여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을 거야... 하지만 다른 사람의 편지인데 내가 어떻게 뜯어 보겠어? 나는 여러 차례 뜯어 보고 싶었지만 손을 댈 수가 없었다. 나는 만약 이것이 매우 중요한 것이라면 C군이 광동에 간 후 편지를 써서 부쳐 달라고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의 편지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이미 약 4개월이 지났는데도 나는 아직 C군의 편지를 받지 못했으며 그의 소식조차 알 수가 없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는 지금도 여전히 광동에 있을까? 그렇지 않으면 광동을 떠난 지 이미 오래 되었을까? 혹은 전선으로 가서 전쟁에 참여했을까? 아니면 무슨 예측할 수 없는 일이 생긴 걸까? 나는 내 멋대로 추측해 보았지만 항상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못했다. 하느님! 저는 맹세할 수 있습니다. 저는 C군이 건강하기를 영원히 희망합니다! 저는 세상에서 C군과 같이 그렇게 사랑스러운 사람을 찾아내기란 매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나는 또 C군이 그리워졌다. 그의 노란색 가죽 가방은 나의 낡은 책꽂이 위에 놓여 있었다. 그 위에는 이미 먼지가 쌓였지만, 안에 들어 있는 한 통의 부치지 않은 장밋빛의 편지는 항상 은은한 마력으로 나의 주의를 끌었다. 내가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는 이 편지를 침범하겠다는 행동을 일으키지 않았다. 하지만, 오 나의 하나님! 저는 정말 참을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편지를 뜯어 보는 것은 범법행위일까? 내가 왜, 무슨 권리로 다른 사람의 편지를 뜯어 보려고 하지? 이제 이러한 문제는 나에게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나의 친애하는 C군! 나를 용서해 주게. 이 장밋빛 편지를 뜯어 보아야겠네. 나를 용서해 주게! 미안하네! 나는 이제 편지를 뜯어 보아야겠어. 사랑하는 아가씨! 나를 사랑하는 아가씨! 내가 이렇게 당신을 부르는 것에 대하여 당신은 이상하다고 생각하오? 아니, 절대로 아니오! 나의 마음은 당신이 나를 깊이 사랑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소. 나를 너무너무 사랑한다고 말이오. 당신이 나를 아주 사랑하고 있다고 내가 느꼈을 때, 나의 사랑하는 아가씨, 내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당신은 모를 거요. 나는 아직까지 당신과 같이 이렇게 나로 하여금 애정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그 어떤 여자도 만난 적이 없었소. 나는 그대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소. 당신에게 진실로 말하는데, 나의 아가씨! 나는 내가 만난 예쁜 여자들에 대하여 항상 영혼이 없고, 단지 먹고 마시고 입고, 무의식적으로 남자와 잠을 자고, 아이를 낳을 줄 알 뿐, 머릿속에는 온통 돈 냄새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했소. 그 여자를 절대적으로 가난한 청년을 경멸하지! 그 여자들이 남자를 사랑하는 기준은 대개 돈을 조건으로 삼을 뿐이라오. 나의 아가씨! 나는 가난한 청년이기 때문에 영원히 그 여자들의 눈길을 끌지 못할 거요. 즉 그 여자들은 나를 사랑하지 않을 거요. 이것은 당연히 의심할 여지가 없는 일이지. 그러나 나의 아가씨, 당신에게 진실로 말하는데, 나 역시 영원히 그 여자들을 사랑하지 않을 거요! 그런데 아주 이상하게도, 정말 이상하게도 당신은 매우 예쁜 아가씨이고 매우 아름다운 여자인데 어떻게 나로 하여금 당신을 사랑하게 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 내가 당신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느꼈을까? 그것도 아주 대단히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이오. 나의 아가씨! 당신은 이것이 매우 기이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소? 만약 나와 은행에서 일하는 당신 남편이 함께 서 있는 것을 비교한다면, 나는 얼마나 초라할까! 당신은 내가 입고 있던 낡은 양복을 보았지! 하지만 당신은 나를 만났을 때, 그 추파를 보내는 듯한 두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소. 그리고 나의 마음을 향하여 살며시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라고 속삭였지. 일주일 전에 우리 두 사람이 길가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 당신은 놀랍게도 부잣집 아가씨의 신분이 깎이는 것에 신경 쓰지 않고 낡은 양복을 입고 의관이 단정하지 못한, 가난한 청년인 나와 대화를 나눴지. 이것은 정말 나를 너무너무 감격시켰소. 만약 내가 당신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당신이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했다면 아마도 나의 마음을 떨리게 하는 그 어떠한 것도 없었을 것이오. 그러나 나의 사랑하는 아가씨! 나는 당신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느끼며, 당신의 나를 향한 곁눈질과 당신과 나의 대화, 이 모든 것은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증거라고 생각하오. 나를 사랑하는 아가씨! 당신은 확실히 아름다운 여자라오! 당신의 웃는 모습, 이야기할 때의 온유한 태도, 그리고 당신의 주홍빛 입술, 초승달과 같이 아름다운 눈썹, 장밋빛 얼굴, 부드러운 두 손을 생각하면, 나는 정말로 당신이 이미 시집을 간 여자라는 것을 믿을 수 없으며 당신이 아이를 낳은 부인이라는 사실은 더욱이 믿을 수가 없소. 나는 당신의 아름다움, 당신의 마음, 당신의 순결함은 확실히 세상에서 보기 드문 것이라고 생각하오. 당신은 마땅히 사랑스러운 남편을 만나야 했소. 그러나 나의 사랑하는 아가씨! 솔직히 말해서 나는 당신이 은행에서 일하고 있는 당신의 상스러운 남편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오. 나는 그가 당신을 사랑한다고 믿지 않소... 아! 나의 아가씨! 당신 앞에서 당신이 듣기 싫어하는 이러한 말들을 해서는 안 되는데... 나를 용서해 주오. 나를 사랑하는 아가씨! 나는 진정으로 깊이 당신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소! 나는 당신과 같이 그렇게 아름다운 여자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느꼈을 때, 나의 온몸의 피가 모두 끓어오르듯이 기뻤다오. 무엇인들 기쁘지 않았겠소? 나처럼 이렇게 가난한 청년, 나처럼 이렇게 가난한 혁명당인, 나의 아가씨! 나는 지금 당신 앞에서 뜻밖에 스스로 혁명당인임을 승인했소. 이것은 나의 실수일까? 당신은 혁명을 두려워하시오? 만약 당신이 진정으로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혁명당인이라고 해서 곧 태도를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오. 아니, 절대로 바꾸지 않을 것이오! 나는 당신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소... 거울에 나 자신을 비춰 보고 스스로 확실히 혁명당인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소.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 혹 내가 혁명당인이라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 아닐까? 혹 내가 위대한 정신, 반향적인 기백과 순결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은 아닐까? 나의 아가씨! 혁명당인의 정신과 기백, 마음은 영원히 사랑스러운 것이오. 만약 당신이 이러한 것 때문에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얼마나 행복하겠소! 내가 얼마나 기쁘겠소! 아가씨! 나는 절대로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오! 그리고 나는 절대적으로 나의 위대한 공작을 계속할 것이오! 당신은 나의 유일한 지기이며, 나는 마땅히 나의 지기를 위하여 나의 모든 것을 바칠 것이오. 나를 사랑하는 아가씨! 나는 당신을 만나기 전에는 정말 세상에 나에게 동정을 표하는 여자가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소! 더욱이 당신과 같이 이렇게 아름다운 여자가 나를 사랑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소. 말하자면 나는 행복을 낳는 것을 좋아한다오. 가난한 혁명당인을 이해해 주는 아름다운 여자를 만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오. 그러나 나는 지금 뜻밖에 당신을 만났소. 나의 친애하는 아가씨! 나는 정말로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소. 다만 "행복! 행복! 행복!"이라고 소리 높여 외칠 수 있을 뿐이라오. 나는 요 며칠 동안 당신만을 생각하고 있었소. 당신 생각을 하면 나의 온 마음이 편안해지기 때문이오. 그러나 나의 사랑하는 아가씨! 솔직히 말해서 나는 당신이 은행에서 일하는 당신 남편에게로 가는 것을 생각하고 싶지 않소. 나의 아가씨, 만약 당신이 진정으로 나를 사랑한다면 당신의 마음속에는 영원히 나라는 존재가 있을 것이오. 이것은 나에게 있어서 이미 커다란 행운인 셈이오. 나는 머지않아 다른 지방으로 갈 것이오. 하지만 한 두 달이 지나면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살게 될 것이오. 만약 여유가 있다면, 하루 빨리 나에게 편지를 보내 주시오. 나는 내가 쓴 이 편지가 당신 손에 들어가지 않을까 몹시 두렵소. 당신을 사랑하는 C올림 11월 8일 나는 이 편지를 보고 몹시 기뻤다. 떠돌이 C군에게 이와 같이 아름다운 애인이 있다니! 속세에서 우연히 이와 같은 여성 지기를 만났으니 C군은 정말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일생이다. 하지만 나는 동시에 또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겼다. C군은 이미 애인이 생겼는데, 왜 나와 연애 문제를 이야기할 때 그렇게 불만스러운 기색을 했을까? 그리고 왜 편지를 쓰고도 이렇게 오랫동안 부치지 않았을까? C군은 이 편지를 쓸 때 정말 대상이 있었을까? 아니면 단지 환상에 불과한 것일까? 생각할수록 정말로 기이했다. 이 편지를 읽어 보기 전에는 편지의 내용이 무엇인지가 궁금했었는데, 읽고 난 후에 또 이러한 의문이 생기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나는 이제 하루 빨리 C군을 만나 그에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 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1926년 8월 22일) @FF 짱꽝츠의 작품 세계 프로작가를 자처한 최초의 작가는 짱꽝츠이다. 오래 살 수 있었다면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작품을 더 많이 남겼을 것이다. 그의 본명은 짱꽝츠이지만 '적'자가 마음에 안 들어 '자'자로 개명하였다고 할 만큼 적극적이고 비판적이었다. 1922년경 그는 러시아에서 중국공산당에 가입하고 1924년 말 귀국하여 상해에서 "춘뢰"를 창간하여 혁명문학을 고취시켰다. 그는 1925년 "각성"에서 "현대중국과 혁명문학"이란 글을 발표하는 등 중국에서 최초로 프로문학을 제창하고 실천한 작가이다. 그리고 1929년에 그는 일본으로 가서 이듬해 좌련에 참여하고 "척황자"를 주관하기도 했다. 짱꽝츠의 시집 "신희"와 "중국을 애도" 등에 실린 시들은 유치한 듯하나 열정적인 시들이어서 청년들이 좋아하였다. 그는 1945년 이후 신시를 논할 때 꿔머뤄(1892__1978)와 함께 높이 평가되기도 한다. 그의 처녀작인 "소년 유랑자"는 1인칭 서간체로서 왕쭝이란 소작인 아들의 삶을 소재로 하고 있다. 지주계급의 핍박으로 부모를 잃은 아들이 고생하다가 혁명전선에서 희생된다는 줄거리를 담고 있다. 다소 도식적이지만 청년 독자들의 호응을 받았으니, 이는 작가의 독특한 열정과 생생한 표현법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의 작품 가운데 "압록강가에서"는 한국인 이행한이 애인 김운고를 사랑하는데, 그녀가 일본의 박해로 비참한 종말을 맞는 것을 소재로 하고 있다. 대개 짱꽝츠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억압당하고 극도의 내핍생활을 하는 혁명동지들인데, 작가는 그들을 통하여 사회에 대한 분노와 반항을 역설하였다. "한 통의 부치지 않은 편지"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하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선충원 작가 세계 1902년 호남 봉황에서 출생. 원명은 선치우환, 필명은 시우윈원, 짜선, 상ㄲ삐 등. 1917년 지방 토착부대에 참가하여 호남과 사천 일대를 전전하였음. 1922년 북경에서 창작활동을 시작. 1927년 1922년에서 1927년까지 단편집 "밀감", "진실" 등과 중편소설 "옛꿈" 등을 발표. 1928년 여름, 상해에서 "홍흑", "인간월보" 등을 편집. 1930년 청도대학에서 강의. 1933년 가을, 청도에서 북경으로 가서 "대공보" 문예 부간을 편집. 북경대학에서 강의. 이후 10여 년 동안 장편 아리사중국유람기", 중편 "한 연극인의 생활", "변성", 단편집 "아리소사", "달 아래의 작은 광경" 등 수십 종 발표. 1946년 북경대학 교수. "대공보", "이세보" 등 문예 부간을 편집. 1949년 이후 문학활동을 중지하고 역사박물관에서 문화사 연구. 1978년 중국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연구원. 주요 저작으로 "중국사 조도안", "당송동경", "중국복장사" 등이 있음. 1991년 사망. 장부 선충원 봄비가 내리기 시작한 지도 이레나 되어 강물이 꽤 불어났다. 강에 물이 불으니 보통 때 같으면 강 여울에 정박해 있을 증기선, 기생선들이 둑 가까이로 옮겨져 조각루 아래의 버팀목에 묶여 있었다. 이 누각 위의 사해춘다관에서 차를 마시는 사람은 강 쪽 창문으로 몸을 굽혀서, 강 맞은편 보탑 주변의 '안개비와 붉은 복사꽃'의 멋진 경치뿐만 아닐, 배에 탄 아낙네가 손님을 접대하느라 장작을 지피는 모습까지 볼 수 있었다. 그처럼 가까웠기에 위 아래에 머문 사람 모두에게 편리하였다. 어느 편에서 낯익은 사람을 부르면 그 상대편에서 큰 소리로 대답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심지어는 친근한 표정을 지으며 거친 말투로 서로를 꾸짖기까지 하고 있었다. 그런 후에 때가 되면 누각 위에 있던 사람들은 찻값을 한데 모아 지불한 뒤, 습하고 악취 풍기는 자갈길을 따라 그 배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배에 올라 약간의 돈을 내면 마음껏 담배 피우며 잠을 자고, 아낙네와도 거리낌없이 즐길 수가 있었다. 배 위에서 생활하는 아낙네들은 엉덩이가 크고 몸이 비대한 젊은 시골 여인들이었다. 이들은 부인으로서의 매력을 이용하여 정성스럽게 남자 시중을 들며 밤을 보내고 있었다. 배에 탄 사람들은 이런 일을 다른 지방과 마찬가지로 '장사한다'라고 했다. 아낙네들은 모두가 이처럼 장사하러 온 것이었다. 명분상으로나마 그렇게 말하는 것이 다른 일과 마찬가지로 도덕과 상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씨앗 뿌리고 땅을 파는 시골에서 왔다. 농촌을 버리고, 맷돌과 송아지를 버리고, 저 젊고도 건장한 장부를 버린 채 같은 마을의 잘 아는 사람을 따라 배 위로 와서 장사를 하고 있었다. 장사를 하는 사이에 서서히 도시 사람으로 변해 갔고, 농촌과 멀어져 갔으며, 도시에서나 필요한 악덕을 배워 나갔다. 이렇게 하여 아낙네는 타락해 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타락은 상당한 시간을 두고 서서히 이루어지고 있기에 어느 누구도 그 낌새를 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상황이야 어떠하든 여전히 시골의 순박한 기질을 잘 간직하고 있는 아낙네도 있었다. 그러므로 도회지 작은 강물 위의 기생배에 탄 이 젊은 아낙네의 내력이 없을 수 없었다. 사연은 매우 간단하였다. 아이를 키우고 기르는 데에 급급하지 않던 라오치라는 이 아낙네는 도회지로 와서 매달 이틀 밤만 뒤면 시골에서 성실하게 일하며 생활해 나가는 남편에게 충분히 송금할 수 있었고, 자신은 그런 방면에서 넉넉하게 지내며 명분도 잃지 않고 이익까지 남길 수 있었다. 그리하여 많은 젊은 장부들은 장가를 들면 자기 아내를 밖으로 내보내고 자신은 집에 머물면서 농사를 지으며 편안히 지내는 것이 극히 일상적인 일이 되어 버렸다. 이 라오치라는 아낙네의 남편은 이따금 배 위에서 장사를 하는 젊은 아내가 그리울 때면, 깨끗이 빨아 두었던 의복을 손수 갈아입고, 허리띠에는 일할 때면 늘상 입에 물던 담배 쌈지를 차고, 등에는 고구마, 찹쌀이 가득 담긴 대바구니를 짊어진 채 곧장 시내로 들어가곤 하였다. 시내에 도착하면 먼 친척을 찾아다니는 양 부둣가의 제1호선부터 물어물어 자기 아내가 머문 배를 찾으러 다녔다. 이렇게 하여 아내의 소재가 밝혀지면 배에 올라 조심스럽게 신발을 선실 밖의 갑판 위에 벗어 놓고, 가지고 온 물건을 아내에게 건네면서 놀란 눈으로 아내의 전신을 살피곤 하였다. 그런데 이번에 장부의 눈에 비친 아내의 모습은 전혀 딴판이었다. 크고도 기름이 번지르르한 쪽머리며, 작은 핀셋으로 치켜 올린 눈썹, 얼굴에 바른 하얀 분과 빨간 연지, 그리고 도시인처럼 으쓱해 하는 모습과 도시인의 옷차림 등은 시골에서 온 장부를 수족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놀라게 하였다. 라오치는 놀라서 입을 못 다무는 장부의 모습이 무얼 뜻하는지 알아차렸다. 라오치는 잠시 후에 입을 열어 지난번에 보낸 5원을 잘 받았는지, 그리고 집의 돼지가 새끼를 낳았는지 등 이것저것 집안 일을 물었다. 말투도 자연 달라져 있었다. 마치 도시 부인들과 같이 대담하고도 자유분방하게 변하여, 시골 부인들처럼 수줍어하고 위축된 기색이라곤 전혀 없었다. 라오치가 고향의 집안일을 묻자, 이 장부는 남편으로서의 자신의 신분이 이 배에서 버림받지 않고 있다는 사실과 이곳의 아내가 이직까지 고향을 완전히 잊고 있는 것은 아니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고 용기가 생겨서 천천히 담뱃대와 라이터를 꺼냈다. 두 번째로 놀란 사실은 입에 문 담뱃대를 아내가 갑자기 빼앗더니 곧장 자신의 거칠고 두툼한 손바닥 속에 한 개비의 '하떠먼' 담배를 쥐어 준 것이었다. 깜짝 놀란 것도 잠시 뿐, 이 장부는 한편으로는 담배를 피우고 또 한편으로는 이야기를 하였다. 저녁밥을 먹고 난 후에는 그는 신선한 향기가 나는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이때 선주인지 상인인지 모를 어떤 객이 나타났다. 그 사람은 소가죽으로 만든 긴 장화를 신고 있었고, 한쪽으로 볼록 튀어나와 빛을 내는 은제품을 나고 있었는데, 술을 잔뜩 마셔 비틀거리며 배에 오르고 있었다. 그는 배에 오르자마자 고함을 치고 키스를 하며 잠자고 싶다고 하였는데, 그 우렁차면서도 분명치 않은 목소리와 기세는 이 장부로 하여금 촌장과 고을 양반과 같은 큰 인물의 위풍을 생각나게 하였다. 그리하여 이 장부는 누구의 안내도 받지 않고 스스로 알아서 뒷편 선실로 잠입해 들어갔다. 그런 후 선실에 누워 나직하게 숨을 할딱거리다가 입에 궐련을 문 채 아무런 목적도 없이 강 가운데의 저녁 경치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밤은 강 위의 풍경을 바꾸어 놓았다. 강 언덕 위며 강 위는 어느새 등불 일색이었다. 이때 장부는 고향집의 닭과 새끼돼지가 마치 자신의 벗이요, 가까운 사람인 양 그리워졌다. 지금은 아내와 가까이 있긴 하지만 집과는 멀리 떨어져 있어 적막이 엄습해 올 때면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정말 돌아갈까? 아니야. 30리 거리마다 승냥이며 들고양이, 그리고 야간보초병 등 귀찮은 것들이 널려 있어서 쉽게 돌아갈 수도 없었다. 아내와 같은 배에 있는 따냥이 그를 만류하며 삼원궁에 가서 야간 연극을 보고 사해춘에 가서 시원한 차를 마시자고 하였다. 시내로 가면 커다란 가로등과 도시인들을 더더욱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여기에 그냥 머물기로 하고 뒤편 선실로 가서 강의 경치를 바라보고 즐기며 따냥이 한가하기만을 기다렸다. 조금 뒤에 그는 강 언덕에 오르려고 배 옆의 소양교에서 돛대를 잡고 뱃머리 쪽으로 갔다. 그리고 강 언덕에서 배 위로 돌아올 때는 선실 안 침상에 누워 담배를 피우고 있는 손님의 비위에 거스리지 않도록 조심하였다. 막 잠자리에 들려고 할 때, 시내에서 야경 소리가 들려 오고 서량산에서 경을 알리는 북 소리가 둥둥 울려 왔다. 장부는 살금살금 칸막이 사이로 선실 안을 살펴보았다. 그때 장부에게 기가 막힌 일이 벌어졌는데, 그것은 선실의 새 솜이불 속에 어떤 사람이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한밤에 한편으로는 잠자면서 또 한편으로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내가 틈을 내서 뒤편 선실로 와 사탕을 좀 들지 않겠냐고 물었다. 본래 입안에 사탕 물기를 좋아했었는데, 아내는 이런 사실을 뚜렷이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생각이 없다고 하였는데도 아내는 작은 사탕 하나를 나의 입 안에 넣어 주었다. 아내는 자기 자신을 원망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밖으로 나갔다. 장부는 입 안에 사탕을 물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앞 선실에서 손님을 맞이하던 아내의 행위를 이해하고 편안히 잠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같은 장부가 황장엔 많이 있었다. 지방은 실제로 너무나 가난하였다. 가을에 수확을 해도 쥐꼬리만하였고, 그것마저 태반은 윗사람들이 거두어 갔다. 그리하여 아무리 절약하고 열심히 일한다 하여도 1년 중에 석 달 동안은 고구마 잎사귀에 쌀겨로 반죽하여 배를 채워도 끼니를 이어가기 벅찬 실정이었다. 지방은 산중에 있고 큰 강의 부두에서 20리 정도 떨어져 있었지만, 관습적으로 아내는 고향을 떠나 돈벌이를 하고, 남편은 이렇게 해야 생활에 이익이 된다는 것을 알아 아내의 일을 이해하였다. 그리하여 아내는 명분상으로 여전히 남편에게 귀속된 채 '장사'를 하였고, 남편은 아이들을 맡아서 기르며 아내가 번 돈을 받았다. 강가엔 배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이곳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배가 몇 척이나 될까 하고 여러 번 왔다갔다하여 세어 보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곳에는 배의 숫자며 질서, 그리고 배와 배를 저어 가는 사람의 모습까지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가 바로 우구의 '쉬빠오'라는 노인이었다. 쉬빠오는 애꾸눈이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그가 젊었을 적에 수상강도와 격투를 벌이다 살인하게 되자 마침 옆에 있던 사람이 그의 눈을 쑤셔서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양쪽 눈이 모두 성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한 쪽 눈은 쓸 수 있었다. 이곳 강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 그가 도맡아 관리하였다. 그리하여 이들 소형선박에 미치는 그의 권력은 중국황제나 총통이 지상에서 휘두르는 권력과 같이 일사불란하고 집중되어 있었다. 강물이 불자 쉬빠오는 평상시보다 훨씬 바빠진 것 같았다. 그는 부모들이 강 언덕에 올라간 사이에 어린아이가 혼자서 울고 있지는 않은지, 배에 사람이 없어 멀쩡한 배가 떠내려갈 위험은 없는지 등을 분주하게 살폈고, 배 위에서 싸움이 벌어지면 분쟁을 해결하기도 했다. 오늘도 이 노인은 강가에서 수면에 이르기까지의 사정을 조사하러 각지로 갔다. 강언덕에선 요 며칠 사이에 작은 약탈 사건이 세 차례나 발생하였다. 공안 당국자의 말에 의하면 지상의 작은 실마리며 틈조차 샅샅이 뒤져 찾아냈다고 한다. 실상 지상의 작은 실마리며 작은 틈은 모두가 체면을 손상 당한 공무원들이 찾아낸 것이었다. 그리하여 이를 해명할 책임이 쉬빠오에게 주어지게 되었다. 쉬빠오는 한 통의 통지서를 받았다. 이 통지서는 거짓말로 둘러대기 좋아하는 공안국 사무처에서 보낸 것으로, 시빠오는 더러 한밤중에 수상의 무장경찰들과 함께 승선하여 '악인'을 수색하라는 내용이었다. 쉬빠오가 이 통지서를 받은 것은 오전이었다. 그리하여 그날 따라 온종일 해야 할 일이 많아졌다. 쉬빠오 우선 평일에 사람들이 좋은 술 좋은 고기를 마련하여 환대하면 가야 할 의무가 있었으므로, 둑을 따라 제1호선부터 배마다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쉬빠오는 각 배에 오르면 그 배 안에 단정치 못한 외래객이 머물러 있는지를 조사해야 했다. 쉬빠오야말로 수상의 패자였다. 수상에 속하는 일이라면 모르는 것이 없었다. 그는 수상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으로 법률가나 장관과 같은 위치에 있었고, 관례대로 관리에 의해 임용되어 이곳 수상의 모든 일을 처리해 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이란 한결같이 나이를 먹고 세상은 크게 바뀌게 마련이다. 이런 변화 속에서 그는 돈을 벌어 가정을 이루고, 술도 좀 마실 수 있게 되고, 자녀까지 낳아 기르는 등 안정된 생활을 하며 서서히 화평하고 정직한 사람으로 바뀌어 갔다. 직무상으로는 관청을 돕고 있었지만, 마음으로는 뱃사람들을 가까이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홍 속에서 그는 하나의 도덕적인 모범을 세웠다. 그는 관리 못지 않게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으며, 결코 사람을 두렵게 하거나 미워하는 일도 없었다. 그는 배 위에 머물고 있는 많은 기생들의 양부 노릇을 하였다. 이런 관계로 말미암아 그의 행위나 일 처리는 그들의 곁에서 떠날 수 없었다. 이때 그는 승가판에서 새로이 기름칠한 '호선'뱃머리로 뛰어 올랐다. 이 배는 비교적 고요히 연꽃이 떠 있는 조각루 아래에 있었는데, 쉬빠오는 이 배를 누구한테 맡겨 관리토록 갈까를 생각하고는 배에 오르자마자 사람을 불렀다.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연로한 쉬빠오는 낌새를 챘다. 혹시 대낮에 젊은 남자가 찾아와서 배에 올라 멍청한 짓을 벌이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하며, 뱃머리에 우두커니 서서 잠시 기다렸다. 한참 후에 다시 두 차례 불렀다. 따냥과 라오치, 그리고 우둬도 불렀다. 우둬는 스무 살 먹은 아가씨로, 야윌 대로 야윈 몸매였지만, 목소리만큼은 카랑카랑하였다. 평소에 지체 높은 사람이 강 언덕에 올라 배를 지키고 있으면 이것저것 사다가 밥을 지어 주곤 해서 고맙다는 표시로 등을 두드려 주면 곧잘 울었는데, 그러다가도 잠시 후면 다시 짧은 속요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오늘은 아무리 우둬를 불러 봐도 대답이 없었다. 선실 안에서 누군가 화를 내는 듯한 소리가 들려 오는 것으로 보아, 모두들 강 언덕으로 올라갔거나 잠을 자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쉬빠오는 몸을 굽혀 선실 창문을 엿보며 어두운 곳을 향해 물었다. "누가 안에 있소?" 그래도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쉬빠오는 화가 약간 치민 듯 큰 소리로 물었다. "안에 있는 사람은 대체 누구요?" 그러자 안에서 매우 생소한 남자의 목소리가 겁에 질린 듯이 새어 나왔다. "나요." 그리고 곧 이어 말하였다. "모두들 강 언덕으로 올라갔슈." "모두가 강 언덕으로 올라갔다고?" "올라갔슈. 그녀들은..." 그는 짤막하나마 이런 대답으로 찾아온 사람들에게 들키지나 않았을까 하고 몹시 두려워하였다. 이때 자기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느낀 이 장부는 어두운 선실 안에서 선창구멍 쪽으로 기어 나와 살금살금 배 시렁을 잡아당기며 찾아온 사람을 쥐죽은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우선 울룩불룩하고 감나무 기름을 바른 듯한 돼지가죽 신발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그 위로는 붉고 부드러운 고라니 가죽으로 만든 돈주머니가 있었고, 다시 위로는 털이 난 손이 눈에 띄었다. 그 손은 푸른 힘줄과 누런 털투성이였는데, 거기에는 무척 큰 황금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위로는 수없이 많은 귤 껍질을 모아 만든 듯한 정방형의 얼굴이 눈에 띄었다. 이 남자는 찾아온 사람이 지위깨나 있는 단골인 줄 알고 도시인의 말투를 흉내내며 말하였다. "영감님, 안으로 들어오세요. 그녀들은 곧 돌아올 겁니다." 쉬빠오는 말할 때의 목소리며 깨끗이 빤 옷맵시를 얼핏 보고, 이 사람이 시골에서 올라온 농부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본래 이 장부는 자기 아내가 없으면 이곳을 떠나려 하였는데, 어떤 젊은이가 갑자기 그를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꾀어내는 바람에 여기에 머물러 있게 된 것이다. "당신은 어느 지방에서 왔소?" 쉬빠오는 이렇게 묻고는 그가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아버지와 같이 온화한 모습으로 그 장부를 바라보았다. "난 당신을 잘 모르겠는데." 그 장부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그래도 손님을 전혀 알아볼 수 없다는 듯이 대답하였다. "저는 어제 왔습니다." "시골 보리는 이삭을 피웠소?" "보리요? 물레방아 앞에 있는 우리 집 보리 말인가요? 하하, 우리 집 그 돼지 말인가요? 하하, 우리 집 그..." 장부는 돌연히 손님의 질문에 대한 적당한 대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린 듯 말을 멈췄다. 이런 지체 높은 사람과 이야기를 할 때는 '우리'라느니, '우리 집 물레방아', '돼지'를 들먹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는 단어를 잘못 사용했기 때문에 대화를 계속할 수가 없었다. 말이 통하지 않자, 그는 미소를 짓고 있는 쉬빠오를 겁먹은 듯이 바라보았다. 그는 사람을 시켜 쉬빠오를 이해시키고 양해를 구하고 싶었다. 자신은 품행이 방정한 사람이며, 의도적으로 동문서답을 한 것은 아니라고. 쉬빠오는 그의 이런 뜻을 알아차렸다. 또한 이런 대화를 통하여 이 사람이 선상인의 친척이라는 것을 알고 그에게 물었다. "라오치는 어디로 갔소? 언제 돌아올 수 있을까?" 이때 장부의 대답 소리는 조심스러웠다. 그는 여전히 엉뚱한 대답을 하였다. "어제 왔슈." 그는 다시 쉬빠오에게 말했다. "어제 저녁에 왔습니다." 그러더니 급기야는 라오치가 자기더러 배를 지키라고 하고는 따냥, 우둬와 함께 강 언덕으로 향불을 피우러 갔다고 말했다. 배를 지킬 때는 반드시 그 신분을 밝혀야 했기 때문에 그 장부는 추가로 쉬빠오에게 자신은 라오치의 '남자'라고 알려 주었다. 라오치는 평상시에 쉬빠오를 부를 때마다 '양부'라고 하였기 때문에, 이 양부는 그 장부를 사위로 생각하여 거리낌없이 다시 몇 마디를 나눈 뒤에 곧장 선실 안으로 함께 들어갔다. 선실 안에는 조그마한 침상이 놓여 있었다. 그 위에는 빨간 꽃무늬가 박힌 비단이불이 가지런히 포개져 있었다. 찾아온 손님은 규정상 침상 가에 앉아 있어야 했다. 햇빛이 선창구멍으로 들어와, 밖에서 보기엔 선실 안이 매우 어두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안으로 들어와 보니 밝았다. 장부는 쉬빠오에게 주려고 담배와 라이터를 찾다가 그만 침착성을 잃어 옆에 있던 밤단지를 건드려 엎었다. 토실토실하고 검붉은 알밤이 어스름한 선실 안 곳곳으로 굴러갔다. 장부는 밤을 주워 단지에 넣느라 정신이 없어서 쉬빠오에게 먹어 보라고 권하지도 못했다. 쉬빠오는 이에 아랑곳도 하지 않고 선실 바닥에서 알밤을 주워 깨물어 먹으면서 밤맛이 참 좋다고 하였다. "이건 훌륭한데! 당신 기분 좋겠소." 쉬빠오는 주인을 보았기 때문인지 밤 껍질을 벗기지 않고 먹었다. "기분 좋지요! 이 밤은 저의 집 밤나무에서 난 겁니다. 작년에는 꽤 많이 생산되었지요. 밤송이 속에서 저절로 터져 나올 때면 기분이 아주 좋아요." 그는 웃으면서 밤단지를 자기 아이 끌어안듯이 가까이하며 즐거이 이런 말을 하였다. "이렇게 큰 밤은 수확하기 힘들 텐데." "제가 일일이 골라 온 것예요." "당신이 골랐다고?" "그럼요, 라오치가 이런 밤을 좋아해서 제가 남겨 두었다가 가지고 온거예요." "집에 원숭이 밤도 있소?" "원숭이 밤이라뇨?" 쉬빠오는 원숭이 밤에 얽힌 이야기를 이 시골 사람에게 들려주었다. "원숭이는 큰 산에 살면서 사람들에게 모욕을 당하면 큰 밤을 따서 사람들에게 던진다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밤을 얻고 싶으면 일부러 산에 가서 욕설을 퍼붓고는 밤을 줍지." 말이 통하지 않아 어찌할 바를 모르던 그 장부는 밤 때문에 그를 동정해 주는 사람을 얻게 된 셈이었다. 그가 알고 있는 시골 이야기는 아직도 많이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리아오'라는 곳의 소식이며, 밤나무로 만든 쟁기자루가 어떻게 결합되어 쓰이는지까지 이야기하였다. 이 사람은 자기 집안 이야기를 몹시 하고 싶어하였다. 어제 저녁에 손님들이 밤새도록 술 마시며 담배 피우고 있을 때, 장부는 작은 배 뒤편에 틀어박혀서 우둬와 이야기라도 나누고 싶었지만 우둬는 죽어 가는 돼지처럼 자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는 아내와 시골 사정을 이야기하려고 하였지만, 아내는 강 언덕에 올라 치리치아오를 지나며 향불을 피우고 싶다면서 그에게 혼자 배를 지키라고 하고는 나가 버린 것이다. 반나절을 기다려도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 잠시 후엔 몸을 조금 움직여 강 위의 경치를 바라보았는데 모든 것이 신기하고 이색적으로 보였지만 이 장부에겐 번민이 북받칠 뿐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하여도 선실에 드러누워 이 강을 가득 채운 큰 물이 고향으로 출렁출렁 흘러간다면 어량엔 틀림없이 많은 잉어와 물고기가 걸려들 것이고, 이렇게 하여 잡은 물고기를 버들가지에 꿰어 햇빛에 말리면 그 숫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엄청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마침 어떤 손님이 배 위로 올라왔다. 그리하여 머릿속에 있던 물고기들이 죄다 물 속으로 뛰어들어가는 것 같았다. 찾아온 손님의 태도로 보아서 이런 이야기를 거절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장부는 자기 아내와 이부자리에서 나눌 갖가지 이야깃거리를 준비하려던 참이었는데 때마침 좋은 기회가 왔다 싶어 그 손님, 즉 쉬빠오와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이다. 그는 쉬빠오에게 새끼돼지의 난폭한 성미며, 이 돼지 이름이 '꾸아이꾸아이'라는 등 많은 시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또 석공이 말끔히 다듬어 준 맷돌이며, 그의 우스갯소리까지 들려주었다. 그리고 오래 전에 잃어버렸던 작은 낫, 쉬빠오로서는 꿈속에서조차 생각하지 못한 작은 낫을 꺼내며 이야기하였다. "보세요, 괴상하지요? 제가 사방을 샅샅이 뒤져 찾아냈지요. 침상밑, 문지방 위, 창고 모퉁이까지 뒤졌는데 안 나오고 배기겠어요 꼿꼿이 누워 있더라고요. 고양이처럼 누워 있어서 보이지 않았던 거예요. 저는 이 일로 라오치를 혼냈답니다. 라오치는 울면서 찾아보았지만, 그래도 보이지 않았어요. 귀신이 곡할 노릇이지, 그토록 보이지 않던 것이 들보 위 밥소쿠리에 누워 있잖아요. 반년 동안 밥소쿠리에 누워 있었던 거예요. 밥을 처먹으면서! 온몸에 종기가 난 듯 녹슬도록. 이놈이야말로 참 못되고 교활하지요!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해도 이해 못하겠습니까? 어찌 밥소쿠리에 반년 동안 있을 수 있습니까? 그래도 모양새는 있어 창문 위에 걸어 두었지요. 원래 이 낫은 제가 쐐기를 깎으려고 나무껍질을 벗기다가 그만 손을 베어 홧김에 그렇게 버려 둔 거지요. ...물로 반나절을 가니 그래도 고기가 썰어질 정도로 쓸만 하대요. 당신도 방심하면 그냥 손을 벨 거예요. 저는 이런 이야기를 라오치에겐 아직 하지 않았습니다만, 그녀가 그 일 때문에 울면서 속상해 하던 일은 잊지 않고 있답니다. 찾아냈지요. 하하. 정말로 찾아냈어요." "찾아냈으니 좋겠구려." 쉬빠오는 내키는 대로 한 마디를 했다. "그래요. 그걸 찾았으니 기분이 좋지요. 저는 이걸 라오치가 시냇가에 버리지 않았나 하고 의심까지 했기 때문에 말하기가 꺼림칙해요. 저는 아내가 절 속이지 않았다는 걸 알아요. 저는 깨달았지요. 제가 아내에게 '낫을 찾아내지 못하면 가만두지 않겠어!'하고 꾸짖었을 때, 아내가 얼마나 억울했을지를. 그래도 손찌검은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제가 화를 내니 무서웠는지, 아내는 한밤중이 되도록 울었지요!" "그건 풀 베는 데 쓰지 않소?" "흐응, 천만에요. 용도야 많지요. 그런데 그렇게 정교한 낫을 두고 풀 베는 데 쓰지 않느냐뇨? 그 낫은 고구마 껍질을 깎거나, 퉁소를 깎는 등의 용도로 쓰이지요. 작지만 300문은 나갈 거예요. 우리는 이런 걸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녀야 할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쉬빠오가 말하였다. "그래요. 모두가 지니고 다녀야지요. 당신 말을 알아들었어소." 장부는 쉬빠오가 자기 말을 진짜로 이해한 줄 알고,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이것저것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이야기하였다. 심지어는 내년에 예쁜 아기를 갖고 싶다는, 아내와 이부자리를 같이 하며 나눠야 할 이야기까지 꺼냈다. 장부는 아무 거리낌없이 거칠고 상스런 말을 곁들이며 반나절 동안이나 이야기하였다. 그러다가 쉬빠오가 몸을 일으켜 나가려 하자, 그때서야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그의 성을 물었다. "영감님,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여기에 명함 한 장 놓고 가시면 라오치에게 잘 말해 둘게요." "됐어요, 됐어요. 배 위에서 생활하고 큰 신발을 신고 다니는, 몸집이 큰 사람이라고만 해둬요. 그리고 라오치한테 내가 저녁에 일이 있어서 올 테니, 손님 받지 말라고 전해 줘요." "영감님이 오실 테니 손님 받지 말라고요?" "맞아요. 오늘 저녁에 틀림없이 올 거요. 그리고 다음에 당신에게 술대접을 하겠소. 우리, 친구가 되어 보도록 합시다." "그럼요. 우린 친구가 될 거예요." 쉬빠오는 두툼한 손바닥으로 장부의 어깨를 두드린 뒤 뱃머리에서 강언덕으로 뛰어올라 다른 배 쪽으로 걸어갔다. 쉬빠오가 나간 뒤 장부는 한편으로는 아내가 돌아오길 기다렸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거한이 도대체 누굴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그래도 그는 이렇게 존귀한 인물과 이야기 나누기는 처음이어서 그런지, 좀체로 거한의 좋은 인상을 잊을 수 없었다. 오늘 그는 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친구가 되자고 했으며, 그의 술 초대 약속에 응했던 것이다. 장부는 그가 틀림없이 라오치의 단골손님이며, 라오치는 이 사람으로부터 많은 돈을 벌어들였을 거라고 생각했다. 장부는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사계 사람의 곡풍으로 산 노래 한 곡을 가볍게 불렀다. "물이 불어 잉어가 어량에 걸렸다네. 큰 놈은 큰 짚신처럼 크고, 작은 놈은 작은 짚신처럼 작다네."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돌아와야 할 라오치는 물론, 개미새끼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다시 그 거한의 풍채와 말투를 떠올렸다. 번쩍번쩍 빛나던 그의 신발을 기억해 내고는 매우 좋은 감나무 기름을 바르지 않고서는 그렇게 멋지게 보일 리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누르스름한 황금반지를 기억하고는, 그것이 얼마나 비싸며 그런 보물이 왜 소중한지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 거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던 모습, 감독자로서의 풍모, 성장으로서의 신분 등을 떠올리며, 이런 사람이 라오치의 재물신이라는 생각에 흥분되었다. 그는 다시 노래 한 곡을 뽑았다. 양춘 사람의 장중하지 않은 곡풍으로 불렀다. "산 웅덩이에선 한데 모여 숯을 태우고, 산 발치에선 지력 보존하려 숯을 긁어 모으네. 숯 긁어 뿌려 고구마는 통통히 여물고, 숯 굽는 사람 얼굴은 검뎅이 되었다네." 정오가 되자, 다른 배에서는 사람들이 밥을 짓느라 야단이었다. 땔나무는 젖어서 불이 붙지 않고 연기만 곳곳으로 내뿜어 눈물이 마구 쏟아졌다. 연기가 수면 위에 자욱히 깔리자 마치 얇은 비단이 펼쳐진 듯하였다. 강가의 요릿집에서는 주인이 삽으로 솥 언저리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왔고, 인근의 배에서는 솥 안에 배추를 집어 넣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라오치는 돌아오질 않았다. 장부는 배 위에서 젖은 땔나무 태우는 요령을 배운 일이 없었던지라, 아무리 지펴도 작은 솥에서는 부글부글 밥 끊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반나절 동안이나 시도해 보았지만 결국 허탕이어서 그대로 방치해 두는 수밖에 없었다. 장부는 밥을 먹어야 할 때 못 먹어서 몹시 배가 고팠다. 주린 채 그는 작은 걸상에 앉아 선실 판자를 툭툭 두드리며 아까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자기 분수에 맞지 않는 계획이 마음속에 싹트고 있었던 것이다. 지폐로 가득 채워져 묵직해진 돈주머니가 그의 눈앞에 보이는가 싶더니 이내 사라지자 원래 있던 마음의 평화마저 사라지는 것이었다. 술 지게미와 붉은 피를 반죽하여 만든 듯한, 귤 껍질처럼 붉고 네모난 얼굴이 매우 밉살스런 모습으로 그의 인상 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또한 기억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싶었다. 그리고 아까 한 말을 떠올리며, 그게 장부 앞에서 해야 할 소린가 싶었다. "오늘 저녁엔 손님 받지 말라고 해, 내가 올 테니." 이런 몹쓸 이야기를 고구마 처먹는 큰 입에서 거침없이 뱉어 내다니! 왜 이런 말을 했을까? 무슨 이유로 이런 말을 했을까? 이러저러한 생각으로 분노만 치밀어 올랐다. 더구나 밥까지 굶은 터라 분노는 더해 갔다. 그리하여 야만적인 생각이 단순한 이 장부의 마음속에 끊임없이 싹텄다. 그는 더 이상 노래를 부를 수 없었다. 목구멍이 시기와 질투로 꽉 막혀 어떤 노래도 나오질 않았다. 장부는 자신이 농부라는 사실을 상기하고, 다음날 집으로 돌아갈까 하고 생각하였다. 차분한 마음으로 다시 불을 지펴 보았다. 될 리가 없었다. 장부는 화가 나서 배 위에 있던 땔나무를 모조리 강물에 던져 버렸다. "벼락 맞을 놈의 땔나무! 어서 바다로 떠내려가거라!" 그러나 그 땔나무가 5__6미터 정도 떠내려가자, 다른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냉큼 주워 갔다. 그들은 모든 걸 준비해 놓고 젖은 땔나무가 강물 위로 떠내려 오길 기다리기라도 하였다는 듯이 땔나무를 주워서 즉시 낡은 동아줄에 불을 붙여 태우기 시작하였다. 온 배에 연기가 가득했지만, 불이 붙기 시작하자 딱딱 소리를 내며 잘 탔다. 그걸 보고 있던 장부는 또다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리하여 라오치를 기다릴 것도 없이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장부는 막다른 골목에서 우연히 아내와 우둬를 만났다. 두 사람은 손을 잡고 담소하며 걸어오고 있었다. 우둬는 참신하게 보이는 호궁 하나를 들고 있었다. 꿈속에서조차 보지 못한 그런 악기였다. "당신 어딜 가세요?" "나...돌아가려고." "당신더러 배를 지키라고 했는데 배는 안 지키고 돌아가려 한다고요? 누가 당신을 건드려서 이렇게 화난 거예요?" "난 돌아가야겠어. 돌려보내 줘!" "어서 배 위로 돌아가요!" 아내를 보자 장부의 태도는 말씨보다 더 딱딱해졌다. 그러나 아내가 자기를 위해 특별히 사가지고 온 호궁을 보고는 더 이상 고집을 부릴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자신의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며 조용히 한 마디 건넸다. "돌아갔으면 좋겠는데." 그러고는 그는 아내의 뒤를 따라 다시 배 위로 돌아갔다. 지배인 따냥도 어디선가 서둘러 돌아오고 있었다. 따냥은 돼지 허파를 들고 있었는데, 어디서 몰래 훔쳐 오다가 사람들한테 발각되어 관아로 끌려온 듯이 두 볼이 붉어진 채 헐떡헐떡 숨을 쉬고 있었다. 따냥이 배 위에 오르자, 라오치가 선실에서 고함을 쳤다. "따냥, 어서 와 보세요. 우리 서방님께서 가시려고 해요!" "누가 그런 말을 해? 연극도 안 보고 가?" "길거리에서 만났을 때 화난 표정이었어요. 일찍 돌아오지 않아서 섭섭했나 봐요." "그건 내 잘못이야. 보살님이 잘못이고. 푸주한의 잘못이지. 괜히 푸주한과 돈 몇 푼 때문에 반나절 동안 옥신각신했잖아. 푸주한은 허파 속에 그렇게 물을 많이 집어넣지 말았어야 했어." "그건 제 잘못이에요." 장부를 데리고 선실 안으로 들어가던 라오치는 이렇게 말하고는 곧 자리에 앉았다. 라오치는 자기 서방을 앞에 놓고 의도적으로 옷을 갈아입으며 매우 선정적인 붉은 비단 브래지어를 드러내 보였다. 그 브래지어 위에는 지난달에 자신이 손수 꾸민 '원앙이 연꽃을 희롱한다(원앙희하)'는 글귀가 수놓아져 있었다. 장부는 이를 엿볼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말 못할 무언가가 혈관 속을 파고들어 용솟음치고 있었다. 조금 후에 따냥과 우둬가 땔나무와 쌀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어머나! 땔나무를 누가 훔쳐 갔네요!" "쌀은 누가 일어 놓았지?" "땔나무는 젖어서 불을 붙여도 잘 타지 않았을 텐데. ...형부는 시골 사람이라서 송진밖에 못 태울 텐데요." "우리가 어제 땔나무를 한 묶음만 풀어 놓은 건 아니지?" "모두 풀어 놓았지요." "자 그만 하고 앞에 가서 한 묶음 가지고 와." "형부는 쌀을 일 줄밖에 몰라요!" 우둬는 이렇게 말하고는 웃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장부는 한 마디의 대꾸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선실 안에 앉아서 아까 사온 호궁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아내가 한 마디 건넸다. "줄은 미리 잘 골라 놓았으니 어디 한 번 연주해 보세요." 소리를 내기 전에 장부는 호궁을 무릎 위에 얹어 놓고 호궁의 몸통에서 나는 송진 향기를 맡아 보았다. 그런 다음 줄을 골라 생소한 음향이 손가락 사이에서 흘러 나오자 즐거운 듯이 미소를 지었다. 얼마 안 가 선실 안은 연기로 자욱했다. 라오치는 장부에게 밖으로 나오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장부는 호궁을 안고 밖으로 뛰쳐나와 뱃머리에서 줄을 타기 시작했다. 점심 먹을 시간이 되어 우둬는 말했다. "형부, 식사가 끝난 뒤에 "맹강녀가 장성에서 통곡을 하네"를 연주해 주세요. 제가 노래를 부를 테니까요." "연주할 줄 몰라!" "잘하신다고 그러던데요. 거짓말하지 마세요." "거짓말이 아니야. 박자가 빠른 "어머니는 딸을 보내고"밖에 몰라." 이때 따냥이 거들었다. "라오치가 그러더군. 악기를 잘 다룬다고. 그래서 사당에 갔다가 이 호궁을 보고 제부 생각이 나서 사가지고 온 거라오. 정말 운이 좋은 셈이지. 그것도 값싸게. 시골에서는 이걸 1원 주고도 못 살 걸. 그렇지 않나?" "그래요. 얼마나 가지요?" "60문. 호궁 장사가 그렇게 나간다고 했네." 그러자 우둬가 웃으며 응수하였다. "누가 그렇게 나간다고 했어요?" 따냥은 버럭 화를 내며 말하였다. "이 계집애야, 누가 그렇지 않다고 했어? 네가 뭘 알아? 주둥아리를!" 우둬는 혀를 내밀며 괜히 얘기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이 호궁은 잘 아는 장사꾼으로부터 한 푼도 안 주고 가져온 것이었다. 따냥이 거짓말하자 우둬가 따져 물으니까 따냥이 화를 내며 우둬를 꾸짖은 것이다. 이를 지켜보던 라오치가 웃었다. 장부는 이를 따냥이 사리에 밝지 못한 것을 비웃는 것으로 생각하고, 한쪽에서 헛웃음치고 있었다. 장부는 밥 한 그릇을 얼른 먹어 치우고 호궁을 연주하였다. 호궁 소리는 청아하고 낭랑했다. 그 소리를 듣고 우둬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하며 밥그릇과 젓가락을 놓은 채 노래를 부르려 했다. 그러나 따냥에게 젓가락으로 따끔하게 맞고는 서둘러 밥을 먹고 그릇을 거두어 설거지를 했다. 저녁이 되자 앞 선실이 대발로 가려졌다. 장부가 호궁을 연주하자 우둬가 노래를 불렀다. 라오치도 불렀다. 방안의 메이후등엔 붉은 종이를 잘라 만든 차광막을 덮어씌워 선실 안은 망년회나 하듯 붉디붉고 운치가 있었다. 장부의 마음은 즐거웠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는 잠시 뿐이었다. 어떤 병사 둘이 고주망태가 된 채 강변로를 지나다가 이 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이들은 비틀거리며 배 쪽으로 다가와 진흙이 잔뜩 묻은 손으로 배 가장자리를 잡고서 고함을 질러댔다. "누가 노래를 불러? 노래 신청 받아라! 잘 부르면 상금으로 500원 내지. 못 들었나? 이 어르신네가 500원을 낸다구!" 안에서는 호궁 소리가 딱 멈추고 침묵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 병사들은 발로 배를 연신 차며 둔탁하고 뭉툭한 소리를 어지러이 냈다. 그러다가 안 되겠다 싶었던지 돛을 밀려고 돛의 돌쩌귀 이음새 부분을 찾고 있었다.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지 못하자 다시 고함을 쳤다. "상금 필요 없냐, x같은 년들아! 귀머거리냐, 벙어리냐? 누가 감히 여기에서 노래를 불러? 내가 누굴 무서워할 줄 아냐? 황제도 안 무서워한다. 고참님, 제가 황제를 무서워하면 사람도 아니죠! 우리 군단장, 사단장은 모두가 뻔뻔스러운 멍텅구리들이야. 제 아무리 잘났다 해도 난 두렵지 않아!" 다른 병사도 거친 목소리로 퍼부어 댔다. "창녀들아, 어서 나와 이 어르신네를 배 위로 모셔라!"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배의 돛에 돌을 던지며 갖은 욕을 퍼부어 대자 선실에 있던 사람들은 두려워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따냥은 황급히 심지를 줄이고 밖으로 달려나가 돛을 밀었다. 장부는 떠들썩한 소리를 듣고 호궁을 낀 채 뒤쪽 선실로 잠입하였다. 그러는 동안 취객들은 어느새 앞 선실로 들어와 있었다. 두 사람은 상스런 욕설을 퍼부으며, 앞을 다투어 라오치, 따냥, 우둬에게 키스를 하려 하였다. 그러더니 목쉰 소리로 물었다. "누가 여기에서 노랠 부르고 연주했지? 호궁 탄 녀석을 끌어와서 다시 어르신네를 위해 노래 한 곡 뽑아 봐." 따냥은 감히 소리를 낼 수 없었다. 라오치도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러자 한 병사가 큰 소리로 욕을 퍼부었다. "이년들아, x 같은 새끼 불러와. 어르신네 앞에서 연주해 주면 상금으로 천 원을 낼 테니! 세상을 뒤흔들던 영웅 조조도 이렇게 대담하지는 못했을 거다! 내가 상금으로 천 원, 고구마 천 개를 내지. 빨리 나오라고 해. 나오지 않으면 이 배를 불질러 버릴 거야! 들었어, 못 들었어? 이년들아, 빨리! 어르신네들 화나게 하지 말고. 등롱에 불 밝히면 못 찾을 줄 알아?" 그러자 따냥이 말했다. "군인 양반, 우리들 몇 명끼리 놀아 보도록 해요. 다른 사람은 말고. ..." "아냐! 아냐! 아냐! 늙은 창녀, 너는 안 건드려. 늙어서 피부가 쭈글쭈글하잖아! 어서 호궁 타는 녀석 불러와! 잡종 같은 녀석을! 나 혼자 호궁을 타고 혼자 노래를 부를 거야!" 그러고는 몸을 일으키더니 뒷 선실로 가서 그를 찾아내려 하였다. 따냥은 덜컥 겁이 나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라오치는 얼른 기지를 내어 그 병사의 손을 잡고 앞 선실로 안내했다. 그러자 그 병사는 그 뜻을 알아챈 듯 자리에 앉았다. "좋아, 좋아. 어르신네께서 돈을 내지. 이 어른신네께선 오늘 밤 여기에서 잠자고 싶다! ...짐이 도화궁에서 취하도록 마셨는데, 거기 한쑤메이는 타고난 미모에..." 이 병사가 라오치의 왼편에 눕자, 다른 한 병사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오른편에 누웠다. 장부는 앞 선실이 잠시 조용해지자 벽 사이로 가만가만히 따냥을 불렀다. 일종의 모멸감에 젖어 있던 따냥은 맥없이 기어갔다. 장부는 무슨 영문인지를 잘 모르겠다는 듯이 따냥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오?" "군발이들이 취했어, 미친 고양이처럼. 조금 있다가 간데." "아무렴 가야지요. 참! 알린다는 걸 깜박 잊고 있었네요. 오늘 얼굴이 넓적하고 고관처럼 생긴 사람이 찾아왔었어요. 자기가 오늘밤에 올 테니 손님 받지 말라고 하던데요." "발에는 큰 가죽신을 신고 있고, 목소리는 정을 치듯 우렁차던가?" "맞아요, 맞아요. 손에는 큰 금반지를 끼고 있고요." "그 사람이 라오치의 양부지. 그분이 오늘 아침에 다녀갔다고?" "네. 오랫동안 저와 이야기하다 갔어요. 마른 밤을 들기도 하고요." "무슨 말을 했다고?" "오늘밤에 꼭 올 테니 손님 받지 말라고요. ...그리고 저에게 술자리에 초대하겠다고 했어요." 따냥은 그가 무슨 일로 온다고 했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쉬빠오 자신이 여기에서 밤을 보내려고 그러는 걸까, 늙은이끼리 마주하여 눈독들이려고 그러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모를 일이었다. 일개 창녀로서 추잡한 말에는 이미 습관이 되어 제아무리 상스러운 말이라도 얼굴 붉히는 일이 없었지만, 아까 "너같이 늙은 여자는 안 건드린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상당한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꼈던 모양이다. 그녀는 맥없이 앞 선실로 갔다. 그곳에서 또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지만 않다는 걸 확인하고는 합죽한 입을 벌려 'x같은 새끼들'이라는 외마디 욕설을 퍼붓더니 다시 뒤편 선실로 돌아갔다. "어떻게 됐나요?" "아무 일도 없네." "그렇다면 다들 돌아갔나요?" "아무 일 없이 잠들 자고 있어." "잠들었다고...요?" 따냥은 이때 장부의 얼굴을 똑똑히 보진 못했지만, 그 어투로 보아 그 사람일 거라고 판단하여 이야기를 꺼냈다. "제부, 시내 가기가 어려우면, 우리 강 언덕에 올라가서 놀아 보세. 오늘 밤 삼원궁에서 연극하는데 고급좌석으로 모시지. 제목은 "치우후산이 머리 땋은 여자를 희롱하다"일세." 장부는 머리를 흔들 뿐 말이 없었다. 병사들이 한 바탕 소란을 피우고 나간 뒤에, 우둬, 따냥, 라오치는 함께 앞 선실의 등불 밑에 앉아 담소하며 그들이 치중에 부린 행태를 이야기하였다. 장부는 뒤편 선실에 들어가서 나오질 않았다. 따냥이 문가에서 두 차례나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그녀로선 그가 무엇 때문에 토라졌는지 알 수가 없었다. 따냥은 고개를 돌려 병사들이 내놓은 지폐 네 장의 문양을 살펴보았다. 이것은 지폐의 진위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지폐는 가짜가 아니었다. 그녀는 등불 밑에서 라오치를 오라 하여 그 지폐의 기호며 문양을 보게 한 뒤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아 보더니 쇠기름 냄새가 나는 것으로 보아 틀림없이 청진 정육점에서 거슬러 온 돈일 거라고 하였다. 우둬가 다시 뒤편 선실로 갔다. "형부, 형부, 그 사람들 갔어요. 아까 그 노래 마저 해요. 그리고 다시..." 라오치는 무슨 심사에서인지, 우둬를 끌어내며 말문을 막았다. 모든 것이 고요했다. 장부는 뒤편 선실에서 방금 전까지만 해도 손가락으로 호궁줄를 퉁겨 조그마한 소리를 내고 있었는데, 우둬의 청을 듣고는 줄에서 그만 손을 떼었다. 배 위에 머문 네 사람은 강변로에서 시끄럽게 들려 오는 징 소리와 호루라기 소리를 듣고 있었다. 강변로의 배우들은 장사가 잘 되고 있는지 손님들이 찾아와 축하를 하며 큰 소리로 경사스런 구극의 노래를 합창해 주고 있었는데, 이러한 열기는 밤새도록 이어질 것 같았다. 잠시 후에 라오치는 혼자서 살금살금 뒤편 선실에 갔다가 곧장 되돌아 왔다. 분명히 화해를 해야 할 것 같았지만, 교섭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따냥이 물었다. "어찌 됐냐?" 라오치는 머리를 흔들며 외마디 탄식을 하였다. "고집불통이에요. 가라고 하세요." 미리부터 쉬빠오는 안 오기 쉬울 거라고 생각하고, 따냥, 라오치, 우둬 세 사람은 장부만을 뒤편 선실에 남겨둔 채 앞 선실에서 잠을 잤다. 선박 순찰관이 한밤중에 쉬빠오의 안내를 받으며 뒤따라오고 있었다. 수면은 쥐죽은듯이 고요했다. 강가엔 네 명의 순경이 완전무장을 한 채 뱃머리를 지키고 있었고, 쉬빠오는 순찰관과 함께 회중전등을 들고 앞 선실 쪽으로 오고 있었다. 이때 따냥이 심지를 돋워 불을 밝혔다. 많은 경험에 비추어 별일 아닐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라오치도 일어나 옷을 걸치고 침상에 앉아 '양부'를 부르고 '순찰관 나리'를 부른 뒤, 우둬더러 차를 대접토록 하였다. 우둬는 아직 단잠에 젖어 꿈속의 고향에서 3월의 딸기를 딸 생각만을 하고 있었다. "이 사람은 누구요?" 쉬빠오가 대신 대답했다. "라오치의 남편이오. 시골에서 아내를 보려고 왔지요." 라오치가 거들었다. "순찰관님, 이인 어제 왔어요." 순찰관은 쉬빠오의 말을 거짓말이 아닌가 하고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이 장부와 라오치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막무가내로 앞 선실로 가서 구석구석을 뒤지다가 잘 익은 알밤 단지 쪽을 응시하자, 이를 지켜보던 쉬빠오가 부리나케 큰 밤을 한 웅큼 집어 순찰관의 제복 큰호주머니에 넣어 주었다. 순찰관은 아무 말 없이 웃기만 할 뿐이었다. 잠시 후에 그들은 다른 배로 갔다. 그리하여 따냥이 선창을 닫으려 하는데, 한 순경이 돌아와 순찰관의 말을 전했다. "따냥, 따냥, 라오치에게 전해 줘요. 순찰관이 다시 찾아와서 그녀를 자세히 조사해 갈 거라고." 따냥이 말했다. "곧 올 거라고요?" "야간 순찰이 끝나는 대로 올 거요." "그게 정말이오?" "이 늙은 갈보야, 내가 언제 당신 같은 사람한테 거짓말한 적이 있어?" 따냥이 기뻐하는 모습은 장부에게 이상한 생각이 들게 했다. 왜냐하면 무슨 일로 순찰관이 다시 찾아와서 라오치를 조사해 가려는지 그로선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때 라오치가 잠에서 깨어난 모습을 보고 그는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그는 그녀와 화해를 하여 같은 이부자리에서 집안일도 이야기하고, 일이 있으면 상의도 하고 싶어서 침상 가로 가 꼿꼿하게 앉아 있었다. 따냥은 장부의 심사와 욕망을 알아차리고는 그가 사리에 밝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라오치에게만 순찰관이 곧 올 것이라는 말을 알려 주려 했던 것이다. 라오치는 말없이 입술을 깨물며 그렇게 멍한 채로 있었다. 장부는 자꾸만 몸을 일으키며 귀가할 차비를 하고 있었다. 묵묵히 한 마디 말도 없이 신발을 단정히 신고 담배 주머니를 챙기고 있었다. 모든 것을 꾸린 뒤에 침상 곁으로 다가가 앉았다. 할말이 있어도 입에서 나오질 않는 것 같았다. 라오치가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젯밤 양부한테 대접을 못 받았으니, 오늘 그분 댁에 가서 식사를 하시는 게 어때요?" "..." 그는 머리를 흔들 뿐 대답이 없었다. "특별히 당신을 위해 술자리를 마련했대요! 음식은 쟁반 네 개, 접시 네 개에다 화로가 붙은 솥으로 준비했대요. 이만하면 푸짐할 텐데 설마 뿌리치시지는 않겠지요?" "..." "연극도 안 보실래요?" "..." "만텐홍이라는 기름만두가 곧 나올 거예요. 당신이 좋아하시는 만두죠!" "..." 그가 기어이 가려고 하자 라오치는 매우 난처했다. 뱃머리로 나와 잠시 우두커니 서 있다가 몸을 돌려 짐보따리에서 어젯밤에 병사들이 주고 간 지폐를 꺼내 세어 본 뒤 그 중 네 장을 구겨서 장부의 왼손 안에 넣어 주었다. 그래도 말이 없자 라오치는 그 뜻을 알아챈 듯, 따냥에게서 지폐 세 장을 더 얻어서 이를 다시 세어 본 뒤 남자의 오른손 안에 쥐어 주었다. 장부는 고개를 저으며 지폐를 바닥에 뿌리고 나더니 어린아이가 기기묘묘하게 울음을 터뜨리듯 크고 거친 양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린 채 흐느끼기 시작했다. 우둬와 따냥은 사태가 심상치 않다고 느끼고 함께 뒤편 선실로 피신했다. 우둬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큰 사람이 울기도 하는가 하고 생각하니 정말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웃지 않았다. 그녀는 배 뒤쪽에 서서 선실 천장에 걸려 있는 호궁을 잠시 바라보고 노래를 부르고 싶어졌다. 그러나 왜 그런지 노래를 부르려 해도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쉬빠오가 멀리서 온 손님을 술자리에 초대하러 배 위로 올라왔을 때는 따냥과 우둬만이 배 위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때서야 라오치 부부가 이미 고향으로 돌아간 것을 알았다. (1930년 4월 13일) 선충원의 작품 세계 선충원은 루쉰, 라오서와 함께 해외에 널리 알려진 작가이다. 그는 1930년대에서 1960년대에 이르는 동안 무려 40권이나 되는 소설집을 출판하였다. 특히 1960년대 후반에는 홍콩의 한 영화사가 그의 작품 "변성"을 시나리오로 각색하여 "추이추이"란 영화를 제작한 일이 있는데, 이로 인해 그의 이름이 더욱 알려지게 되었다. 작가는 온화한 성품과 수려한 외모로 묘족의 피를 이어받았지만, 오히려 전형적인 한족의 기질을 보여 주었다. 작가의 천부적인 창작력은 자연적으로 발휘된 것이 아니고 부단한 노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시, 산문, 평론 소설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문장력에 있어서도 쉬즈머(1896__1931), 위핑뻐(1900__ ), 왕퉁짜오(1897__1957) 등과 함께 가장 뛰어난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유명한 비평가인 리우시웨이가 평한 선충원에 대한 견해는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는 일개 수도사가 아니다. 그러기에 정열적으로 아름다움을 숭배하였다. 문예창작 속에서 구체적인 생명을 표현하였는데, 이 생명은 미화된 그의 열정의 재현이다. 그는 진지하면서도 열정적인 사람이며, 창조하려는 인물들에 대해 지극한 애정을 갖고 잇다. 분석하지 않고 설교하지 않으므로 그의 작품은 서정적이고 시적인 느낌을 준다. 그는 시인이라기보다는 예술가이다. 그는 필요로 하는 분량을 어떻게 꾸려 낼 것인가를 안다. 또한 추악한 소재를 더없이 아름다운 옥 같은 작품으로 가다듬을 수 있다. 그의 미적 감각은 멋대로 쌓인 돌더미에서도 그 미를 찾아내곤 한다." 그렇지만 작가 자신은 매우 소박한 대변을 한다. 작가는 "선충원 소설선집" 제기에서, "문학 속의 일부분은 진흙 냄새가 가득 차 넘치고, 어느 한 부분은 또 잡되게 섞여 있는 맛을 준다. 또한 이야기가 사실적인 가운데에서 여전히 일종의 서정과 환상의 성분이 배어 있는 양상이지만, 기실은 내용이 잡다하고 순수하지 않은 점이 드러나 있다."라고 자신의 내적 갈등의 진면을 토로하고 있다. "장부"는 그의 작품의 주된 소재인 그의 고향과 그가 본 원수, 그리고 거기에 사는 사람을 인간의 원론적인 갈등과 조화시켜 표현해 놓은 표상 중의 한 예가 되는 것이다. 빠진 작가 세계 1904년 11월 25일 사천 성도에서 출생. 원명은 라야오탕, 자는 스깐. 1920년 성도 외국어전문학교에서 수학. 1922년 "시사신보"에 신시 "학대받는 자의 곡성"을 발표. 1923년 남경 동남대학부중에서 수학. 1927년 프랑스로 유학을 가서 이듬해에 첫 중편소설 "멸망"을 발표. 1931년 장편 "격류삼부곡"의 "가"를 "시보"에 연재. 1934년 "문학계간"을 편집하다가 일본으로 감. 1935년 귀국하여 상해 문화생활출판사의 총편집을 맡음. 1936년 루쉰 등과 '중국문예공작자선언'을 함. 1937년 단편집 "번개"를 출간(문화생활출판사). 1938년 장편 "봄"을 출간(개명서점). 1940년 장편 "가을"을 출간(개명서점). 1943년 단편집 "소인소사"를 출간(문화생활사) 1947년 장편 "찬밤"을 출간(신광) 1949년 제1차 전국문대회 상무위원. 1950년 상해시문련 부주석. 1953년 단편집 "영웅의 고사"를 출간(평평출판사). 1955년 "빠진 산문집"을 출간(인민문학출판사). 1959년 산문집 "우의집"을 출간(작가출판사). 1960년 중국작가협회 부주석. 1961년 단편집 "이대해"를 출간(작가출판사). 1978년 "빠진 근작"을 출간(사천인민출판사). 1979년 산문집 "수상록"을 출간(삼련서점). 1980년 "빠진 선집"을 출간(인민문학출판사). 1986년 산문집 "십년일몽"을 출간(인민일보출판사). 1987년 서신집 "설니집"을 출간(삼련서점). 1992년 중국작가협회 주석. 죄와 벌 빠진 1. 고대인의 관념 고대인은 두 눈을 감고 손에 저울을 들고 있는 여인을 '공평한 도리'의 상징으로 여겼다. 구약성서 "출애굽기" 제21장 24, 25절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데운 것은 데움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 2. 파리 "노동신문"의 만화(1925) 한 신식 어머니가 딸에게 말한다. "너 연극을 배우고 싶니? 배우고 싶으면 형사법정에 가 봐라." 3. 하나의 사실 1928년 2월9일, 파리 시내에서 요한 샤를이라는 보석 브로커가 갑자기 실종되었다가, 이틀 뒤 시외의 숲속에서 반쯤 불에 탄 시체로 경찰에 의해 발견되었다. 얼굴은 이미 검게 탄 상태였지만 손에 낀 반지로 그의 신원이 밝혀졌다. 그리하여 경찰은 흉악범의 체포에 나섰다. 경찰은 사망자가 피해를 입은 그날 아침 샬리 모로라고 하는 보석상의 가게에 간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모로를 경찰서로 불러 심문하였다. 모로는 겁이 많았다. 얼마 가지 않아, 그는 자신이 샤를을 불러내 살해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그는 얼떨결에 그를 죽인 거라고 말하였다. 이어 예비 심문에서 그의 처제인 레나르 덜리가 돌연히 자신이 형부의 정부라고 하면서, 샤를이 최근 들어 자주 자신을 희롱하자 형부가 자신을 보호하려다 샤를과 충돌이 생겨 결국 그를 죽이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이 사건은 6월 4일 세느성 중죄 형사법정에서 심리하기로 결정했는데,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은 이러하였다. 4. 재판 첫째 날 다음은 "매일신문" 기자의 보도다. 모로 사건의 심리가 오늘 열렸다. 최근 이삼 년에 걸쳐 형사법정에 오늘처럼 열기가 달아오른 적이 없었다. 방청석은 일찍부터 사람들로 꽉 메워졌는데, 대부분이 곱게 분장한 부인과 아가씨들이었다. 연극을 구경하러 오기라도 한 듯이 이들은 목을 빼고 재판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법정에는 두 여인만이 울고 있었다. 한 사람은 훤칠한 키에 짙은 남색 옷을 차려 입은 젊은 부인으로, 몸을 흔들며 이따금 부대낀 모습을 보이기도 했는데, 이가 바로 흉악범 모로의 아내였다.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체구가 작고 야윈 노부인으로, 겁 먹은 듯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이가 바로 사망자 샤를의 어머니였다. 모로가 법정으로 끌려 들어가자, 이들 두 여인은 고개를 들어 비애에 젖은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푹 숙이고 이들을 보지 않았다. 모로 부인은 떨리는 손으로 성호를 그었다. 샤를 부인은 안색이 변하고 입술과 얼굴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는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 모로는 피고석에 앉아서도 여전히 머리를 숙인 채 다른 사람을 보지 못했다. 다만 재판장의 질문에 답변하려고 일어설 때 창백한 얼굴이나마 드러낼 뿐이었다. 재판장은 모로의 과거 생활부터 물어갔다. 심지어는 그의 어린 시절까지 물었다. 모로는 어려서 좋은 교육을 받았고 청년이 되어서는 근면히 일해 온 사람이었다. 그리고 한 친구의 집에서 현재의 아내를 만나 열렬히 서로 사랑하다가 얼마 후에 결혼하게 되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모로 부인은 호화로운 가정에서 자라, 결혼한 뒤로 모로 일가의 씀씀이가 커졌다고 한다. 게다가 금년에는 경제공항으로 모로의 상점 상황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2월 9일 그날, 요한 샤를이 보석을 가지고 그의 가게로 갔다. 그때 그는 돈이 아주 필요하던 터여서, 법정 변호사의 말대로 샤를을 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법정 변호사 가르송:샤를이 피고의 가게에 갈 때는 으레 몸에 많은 보석을 지니곤 했습니다. 그날도 샤를은 35만 프랑 상당의 보석을 지니고 갔는데, 피고는 이걸 보고 엄청나다고 생각했지요! 모로:맹세컨대, 그를 살해할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제 과거는 매우 유복하고 성실하였습니다. 그러나 '과거'는 법정에서 묻지 않은 말이었다. 피고측 변호사 위포올:그러나 그날은 결코 피고가 그를 불러낸 것이 아닙니다. 법정 변호사:그러면 샤를이 제 발로 찾아와 피고한테 죽여 달라고 했단 말입니까? 범죄행위 이야기가 나오자 피고측 변호사 위포올이 일어나 모로에게 정중하게 말하였다. 피고측 변호사:피고, 이건 당신의 생사와 관련된 문제인 만큼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해야 됩니다. 그날 살인한 뒤에 모로는 결코 집으로 돌아가 점심을 먹지 않았다. 전례를 깨고 가게에 남아 점심을 먹었던 것이다. 재판장:피고는 사체를 싼 후에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사체 옆에서 햄과 감자를 먹었나요? 모로:그날 저는 점심을 먹은 적이 없습니다. 이건 제 처제가 꾸며낸 이야기입니다. 사실을 숨기려고 저도 처제를 따라 거짓말을 한 겁니다. 그렇다. 어떤 사람이 만약 12시에 편안히 점심을 먹었다면, 11시 반에 사람을 모살했을 리는 없다. 레나르 덜리는 이런 점을 노린 것이다. 모로 부인도 자기 동생을 따라 거짓말을 하였던 것이다. 재판장:모로 집안 사람들은 모두 거짓말하는 습관이 있는 것 같군요. 또 사체를 쌌던 홑이불 이야기가 나왔다. 재판장:홑이불에는 세 상자들이의 휘발유가 스며 있던데, 이걸로 봐서 불을 질러 소사시킨 것이 틀림없군요. 이야말로 좋은 화장로였겠지요. 홑이불은 피고가 미리 준비했나요? 모로:아니오. 홑이불은 그날 오후 5시에 사온 겁니다. 재판장:누가 사왔지요? 모로:제 처제가요. "아, 또 그 여자, 말괄량이로군!" 방청석에서는 날카롭게 웃어대는 여인들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검찰관은 화를 내며 자신의 두툼한 손을 휘저었다. 피고측 변호사:저는 진실을 밝혀내고자 하는데 당신은 못마땅한가 보군요. 검찰관:제가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은 피고와 증인들 모두가 예비 신문에서 거짓말을 했다는 겁니다. 피고측 변호사:그러나 이런 일은 변호사인 이 사람도 새로이 안 사실입니다. 모로:나는 진실을 자백하고 있는데... 모로는 창백한 얼굴로 몸을 떨며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모로:저희들은 다퉜습니다. 악당들처럼 서로 치고 패고 하였습니다. 샤를이 욕설을 사정없이 퍼부어 대서 홧김에 책상 위에 있던 쇠망치를 들어 그를 쳤습니다. 땅에 쓰러졌는데도 계속 욕설을 퍼부어 다시 그의 머리를 사정없이 몇 대 쳤습니다. 재판장:피고는 처제를 위하느라 그런 짓을 한 거요? 모로: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처제가 거짓말을 한 것은 그런 식으로 말해야 저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처제는 지금까지 제 정부 노릇을 한 적이 없습니다. 제가 거짓말을 한 것은 저도 제 목숨을 살리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러나 모로의 그런 말을 믿는 사람은 적은 것 같았다. 이 살인범은 누차 거짓말을 해왔는데 이제 와서 진실을 자백할 리 있겠는가? 누가 믿으려 하겠는가? 모로:저는 고의로 살인하지 않았습니다. 저도 생명을 아끼고 있습니다... 이 점 여러분들께서 헤아려 주셨으면 합니다. 그는 다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모로:저희 가게 점원들은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한 점원은 제게 "모로 선생님, 당신 미쳤소?"라고 했고, 다른 한 점원은 전화를 걸어 경찰에 고발하겠다고 하여 제가 간곡하게 부탁했습니다. "안돼. 그렇게 하면 안돼. 내 처자를, 내 가정을 불쌍히 여겨서라도..." 검찰관:이 또한 새로이 드러난 사실이로군! 재판장:그때 그들은 왜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지요? 모로:저를 불쌍히 여겨서입니다. 사망자가 지니고 있었던 보석 이야기가 나오자 모로는 한사코 부인했다. 자신이 보석을 가져간 것은 다른 사람이 사체에서 훔쳐 갈까 봐서였다고 하였다. 재판장:그런데 피고는 손에 꼈던 반지는 남겨 놓았지요. 모로:그건 틀림없이 제가 순간적으로 소홀히 했던 걸 겁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겁니다. 저는 이런 일에 경험이 없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쉬고 탁하였지만 말은 제대로 하였다. 사람 죽이고 흔적을 없애는 데 누가 많은 경험을 갖고 있겠는가? 재판장:보석은 당연히 많았겠지요. 피고의 어려운 경제사정으로 보아 그 보석은 틀림없이 피고에게 도움이 됐겠지요. 장사도 다시 할 수 있을 정도로 말입니다. 모로:아, 저는 절대 고의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일까지 생각해 본 적은 전혀 없습니다. 저는 보석을 그의 몸에서 빼왔지만, 그 보석을 팔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그 보석을 보고서야 살인한 일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처제에게 주고는 잘 보관해 두라고 일렀습니다. 저는 그것을 샤를의 가족에게 돌려 줘야겠다고 늘상 생각해 왔습니다. 제 손은 깨끗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남의 물건을 훔쳐 본 적이 없습니다. 재판장:그런데 그 손으로 사람을 죽였잖아요. 뒤에 검찰관이 일어나더니 모로의 흉악함과 잔인함을 공격하였다. 피고는 샤를을 죽이고 사체를 불태운 뒤 버젓이 장지에 가서 사망자의 가족을 조문했다는 것이다. 모로는 이 말을 듣고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다. 한참 주저주저하다가 말을 계속 이어갔다. 모로:아내는 제 사정을 모른 채, 샤를의 장례식에 참석하라고 제게 권유했습니다. 친구의 장례식이니 마땅히 참석해야 하다고 생각한 겁니다. 모로의 자백이 모두 끝나고, 이어 증인들의 소환 심문에 들어갔다. 첫번째 증인은 열다섯 살 난 금발 소년 피터 레미폴이었다. 대답은 짤막하게 '예'혹은 '아니오'라고 하였다. 당시 이 소년은 시끄러운 소리를 듣고 뛰어나가 주인의 사무실 문을 두드리고 들어갔는데, 그때 자기 주인은 어떤 사람과 다투고 있었고 그러다가 그 사람은 쓰러졌다고 말하였다. 재판장:그때 그 사람은 움직이고 있던가요? 피터:예. 재판장:증인은 그를 구제해 보려 했나요? 피터:아니오. 재판장:증인은 왜 예비 심문 때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나요? 누가 시켰나요? 피터:모로 선생님과 덜리 아가씨가요. 피터는 계속해서 그때 샤를은 땅바닥에 누워 있었고, 모로는 샤를의 몸을 누르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그는 수시로 법정 변호사의 심문에 대답하였다. 심문은 매우 상세하여 피터로선 당시의 끔찍한 범죄상황을 완전히 털어놓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소년은 자신의 대답이 얼마나 끔찍한가를 모르는 양 전혀 스스럼없이 자백하였다. 그리하여 꽤 많은 사람들이 "그만하면 됐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법정 변호사:증인은 샤를이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납니까? 피터:이런 말을 했습니다. "가련한지고, 몇십만 프랑 때문에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되요." 법정 변호사는 양손을 들며 얼굴에 기쁨 어린 승리의 미소를 띠었다. 법정 변호사 배심원 여러분, 사건의 진상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두 번째 증인은 18세 청년으로, 모로의 가게 점원인 마샬 낭거였다. 그의 증언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재판장:형사법정 재판장인 나는 증인에게 한 마디 해두겠는데, 증인이 진실만을 말한다면 더 이상 심문하지 않겠소. 그렇지 않을 경우엔... 마샬의 자백은 피터의 자백과 거의 같았다. 그는 시신을 묶은 삼 노끈은 자기가 사온 거라고 인정했다. 마샬:그때 덜리 아가씨는 이미 와 있었습니다. 모로선생님이 덜리 아가씨에게 "삼 노끈은 길이가 얼마면 될까?"라고 묻자 덜리 아가씨는 "모르긴 해도, 대략 7__8미터 정도면 될 거예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모로는 애원하는 듯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마치 "가여운지고, 더이상 말하지 마."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마샬은 삼 노끈을 사왔으면서도 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조차 하지 않았다. 그것은 모로가 자기에게 무릎을 꿇고 애원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세 번째 증인은 마흔 살이 넘은 멍싸이였다. 그도 모로의 가게 점원이었다. 그의 자백 속에는 새로운 사실이 없었다. 그는 샤를이 한 말을 들은 적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 주인이 땅바닥에서 죽어 가는 사람을 가리키며 "이놈은 강도야."라고 하였기 때문에 주인과 샤를의 싸움을 굳이 말리지 않았다고 하였다. 5. 재판 둘째 날 "매일신문" 기자는 취재한 내용을 계속 발표했다. 모로 사건의 둘째 날. 레나르 덜리는 법정에 나와 줄곧 울기만 하였다. 누가 이 여자의 성격을 읽어낼 수 있으랴? 자기 형부를 도와 시신을 처리할 때는 얼마나 대담했을까마는 이제 와서 이렇게 유약하고 가련해지다니! 그녀야말로 한편으로는 시신을 보고 결코 떨지 않는 교활한 정부, 또 한편으로는 형사법정의 위엄 속에서 주눅이 들어 울어 버리는 우약한 여자, 이런 두 가지 얼굴을 한 여인이 아닐까? 이처럼 연약하고 이처럼 고통스러워하는 여자의 모습은 오늘 저 법정변호사인 가르송에게조차 연민을 느끼게 하였다. 그녀는 무슨 동기로 그렇게 대담하고 교활하게 거짓말을 하며 자기의 정부를 구제하려 했을까? 근본이 잔인무도한 악녀가 이곳 법정에 와서 희극을 연출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다정다감한 한 여자가 형부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형부를 구제하려는 걸까? 그녀는 형부가 반신불수인 아버지를 돕고 자신을 돌보아 준 덕에 그녀는 가정의 즐거움을 누리게 되었던 것이다. 교도관이 그녀를 법정으로 데리고 갈 때, 법정에 있던 사람들은 그녀를 주의 깊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위의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이 여자의 눈물을 보고 마음이 동요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이 젊은 여자의 마음속엔 도대체 무엇이 들어 있나를 심문하고 싶어하였다. 이날 첫번째 증인으로 나선 사람은 망리 랑제루아라는 아가씨로, 그녀 역시 모로의 가게에서 일하고 있던 사람이었다. 어제 증언을 한 세 증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녀 또한 그 참극을 보았고 샤를이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었지만, 현장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망리:저희들은 샤를 선생이 물건을 훔치러 왔다가 벌어진 강도사건인 줄로만 알았습니다...그러나 저희들이 잘못 안 거지요. 이 증언은 모로에게 일대 타격이었다. 그는 몸을 몹시 떨었고, 얼굴에는 핏기 하나 없었다. 그는 곧 쓰러질 것 같은 몸으로 중얼거리며 말하였다. 모로:저는 그가 그렇게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없습니다. 저는 제 생명을 걸고 맹세하겠습니다. 저의 말은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저는 불행한 사람입니다. 제 생명을 바칠 수밖에 없습니다. 피고측 변호사:이봐요, 피고. 그런 식으로 약해져서는 안 돼요. 아무리 잔혹한 상황이라도 당신은 끝까지 싸워야 돼요. 용기를 내시오. 좀더 대담히, 사람답게 말이오! 이 모로에게 사람다운 구석이 아직도 남아 있었을까? 도리어 그는 옷을 걸친 일개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았다. 망리:저는 지금까지 저의 주인을 구제한답시고 거짓말을 해왔습니다. 그분은 정말 저한테 잘해 주셨습니다! 그분은 근면한 사람입니다. 말리 랑제루아는 평소 주인의 말에 순종했다고 한다. 그녀는 레나르 덜리가 보석 두 꾸러미를 자기에게 맡겼다는 걸 인정했다. 그리고 그녀가 자기에게 "소리 내지 마. 그리고 내가 필요로 할 때 내게 돌려줘."라는 말을 하였다고 증언하였다. 재판장:증인은 의심스럽다는 생각은 전혀 안 들었소? 망리:예. 레나르 덜리를 소환 심문하고 있을 때, 법정에서 일대 소동이 벌어졌다. 방청석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일어났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은 극장에서처럼 "앉으시오."라고 외쳐댔다. 저 신식으로 분장한 부인과 아가씨들의 눈에 비친 법정의 모습이란 한갖 극장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아마도 크게 실망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레나르 덜리는 아름다우나 유약한 여자로, 그녀의 몸에서는 영웅기질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으며, 차림새까지 매우 소박했기 때문이다. 처음에 그녀의 걸음걸이는 꿋꿋했고, 목소리도 분명했다. 그러나 몇 마디를 넘기지 못하고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변해갔다. 교도관이 그녀의 모자를 벗겼다. 그것은 사람들이 그녀의 눈물방울조차 그냥 지나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그녀에게 의자를 주어 앉게 했다. 기자인 내가 그녀의 말을 어떻게 기록하랴? 말이라야 울음 소리와 탄식 소리뿐인걸. 레나르:형부는 저한테 일체 말을 꺼내지 말라고 달랬습니다. 저는 제기 형부의 생명을 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형부는 그토록 가련했습니다!...그래서 제가 홑이불을 사다 주었던 겁니다. 제가 돌아왔을 때는... 그녀는 참극의 장면을 떠올리다가 저도 모르게 깜짝 놀라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녀는 손을 비틀며 거칠게 이야기하였다. 레나르:저는 거짓말을 했습니다. 저는 형부를 구할 수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형부는 반신불수이신 저의 아버지와 제게 아주 잘해 주셨습니다. 형부는 반신불수이신 저의 아버지와 제게 아주 잘해 주셨습니다. 만약 제가 거짓말을 했다면, 양해해 주십시오. 그분을 위한답시고 그렇게 한 일이니, 저를 이해해 주십시오. 증인에 대한 심문이 시작되었다. 일문일답을 할 때마다 현기증으로 쓰러지려 하자 교도관이 냄새 나는 소금이 다긴 병을 그녀의 코밑에 갖다 댔다. 그러고는 계속 심문을 했다. 재판장:증인은 어째서 자신이 형부의 정부라고 했지요? 레나르: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하도록 권해서입니다. 그래야 형부를 구할 수 있을 거라 믿었고요. 재판장:어떤 사람들이 그렇게 권했지요? 레나르:몇몇 친구들입니다. 재판장:성명은? 레나르: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재판장:증인의 언니인가요? 레나르:아니오! 언니는 아닙니다. 목소리가 더없이 처절하였다. 이때 "됐어!"라고 소리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재판장은 이걸로 불충분하다고 생각하였다. 재판장:증인은 오늘 재판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서 우시오. 여기서는 해야 할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소! 레나르 덜리는 모로를 도와 시신을 쌌다고 했다. 마샬은 그녀가 삼 노끈이 대략 7__8미터 정도 필요할 거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고 했다. 레나르:아, 아닙니다. 제가 아닙니다. 저는 결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아무리 다그쳐 따지려 해도 누구든 그녀의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모습은 너무나 가련해 보였다. 그리하여 가르송 선생조차도 이 어린아이처럼 흐느끼고 있는 레나르 덜리를 측은히 여겼다. 법정 변호사:그녀에게 휴식을 주어야겠습니다. 심문을 못 견디고 있습니다. 그러나 재판장은 불쌍하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듯 계속해서 호되게 그녀를 심문했다. 법정 변호사:최소한 다른 증인들에게 말한 것처럼 이 증인에게도 진실만을 말한다면 증인 자신에게 아무 피해가 없을 거라고 일러둬야 할 것 같습니다. 검찰관:아아, 제가 그 말을 잊고 있었군요. 재판장:나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습니다. 레나르 덜리는 자신이 보석 두 꾸러미를 망리 랑제루아에게 건네 준 것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이 사망자의 몸에서 가져온 것인 줄은 몰랐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자기 형부를 도와 시신을 아래층으로 끌어내린 사실을 인정했다. 레나르:제가 문을 두드려 열었습니다. 제가 시신을 끌어내리고요. 그런 다음 곧장 방안올 되돌아갔습니다. 재판장:모로가 그 보석 꾸러미를 손에 쥐고 있었지요? 레나르:예! (눈물을 흘리며) 아이쿠! 엄마! (탄식을 하였다.) 이번에 그녀는 마치 두루마리처럼 교도관의 품안으로 쓰러져 졸도하였다. 모로는 얼굴을 손 안에 파묻고 레나르 덜리를 감히 보지 못했다. 이어 몇 명의 증인에 대한 소환 조사가 이뤄졌다. (하략) 6. 재판 셋째 날 "매일신문" 기자가 또 제3차 보도를 발표했다. 모로 부인은 재판 셋째 날에 증언을 했다. 이 젊은 부인은 고통스러운 목소리로 자신의 남편에 대한 애정을 토로하였다. 그녀는 최근 몇십 일 동안의 고통스러웠던 생활을 떠올리며, 자신은 살인한 남편 곁에서 자면서도 그의 고통을 알지 못했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일이 있은 뒤로 악몽에 시달려 온갖 불안을 느껴 왔다고 하였다. 심지어는 교회에 가서 촛불을 밝히고 흉악범이 속히 잡혀서 자신들을 안심시켜 달라고 빌기까지 했다고 하였다. 레나르 덜리도 와 있었다. 어제 그녀는 자신이 시신을 싼 홑이불를 사왔다고 증언하였다. 그러나 그 상점 주인은 그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였다. 한바탕의 절망과 눈물이 그녀를 짓눌렀다. 레나르:저는 맹세합니다. 반신불수이신 제 아버님을 두고 맹세합니다만, 제 말은 진실입니다. 얼마 안 가면 그녀가 또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판가름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증인에 대한 심문이 시작되었다. 방청석의 방청객들은 대부분 여인들이었다. 극장에서와 마찬가지로 법정 밖엔 자동차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고, 법정 안엔 보석, 향수, 화장품들로 가득 차 있었다. 방청객들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웃고, 비난하고 한담하고 있었다. 오늘의 첫 증인은 멍싸이였다 첫날 그는 많은 증언을 하였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법정에서 다시 증언을 요청을 해온 것이다. 멍싸이:주인은 제 말이 지나치다 하실지 몰라도, 저는 그 사람이 모로 부인의 정부가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법정 변호사:이건 모로 부인의 훌륭한 명예를 증명해 주는 겁니다. 법정 변호사의 이 발언이 지나치게 자극적이었는지, 많은 부인들이 방청석에서 웃으며 소리쳤다. 피고측 변호사가 즉시 일어섰다. 피고측 변호사:가르송 선생, 당신은 여기 공소인입니다. 재판장님은 아무 말씀도 안 하고 계십니다. 검찰관님도 말이 없으십니다. 당신은 심문을 진행하는 공무원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함부로 말할 수 없습니다. 방청석에서는 여전히 웃고, 고함치고 있었다. 법정 변호사는 자신의 큰 옷소매를 책상 위에 내리치고 있었다. 법정 변호사:제가 한 마디만 할 테니 그만두시오. 저는 사망자를 변호하기 위해 온 사람입니다. 피고측 변호사:당신은 돈을 위해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두 변호사는 팽팽히 맞서 있었다. 재판장:위포올 선생, 당신은 평상시에 과묵했지요. 검찰관:위포올 선생, 이런 소란은 응당 당신이 책임지셔야 합니다. 이때 모로는 사람들에게 잊혀진 상태였다. 그는 비애에 젖은 듯 중얼거렸고 눈을 아래로 내리깔아 아무도 보질 못했다. 모로:저는 남들이 상상하는 것만큼 그렇게 비참하진 않습니다. 저는 불행한 사람입니다. 이어 몇 사람의 증인에 대한 심문이 계속되었는데, 어떤 사람은 모로의 경제형편이 절망 상태에 이르고 있었다고 증언했고, 또 어떤 사람은 사체를 쌌던 홑이불은 오래 전부터 모로가 사두었던 거라고 증언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또 다른 증언도 있었다. (중략) 덜리 부인이 증언석으로 나왔다. 레나르의 어머니이자 모로의 장모인 이 부인은 눈물을 글썽이며 증언하였다. 덜리 부인:제 사위는 수천만 사람들 가운데서도 찾아보기 힘든 좋은 사람입니다. 제 사위는 파리조차 해치길 싫어했지요. 이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덜리 부인:여러 배심원님들, 가련한 저의 두 딸을 불쌍히 여겨 주세요. 그리고 제 사위도요. 모로의 형제들도 와 있었다. 그의 아우는 고개를 쳐들며 증언석으로 걸어갔는데, 걸음걸이가 매우 당당하였다. 모로의 아우:우선 저의 어머니를 대신해서 샤를 선생과 부인에게 죄송한 말씀을 드리오니, 부디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피고측 변호사:증인은 증인의 형이 살인하였다고 믿소? 모로의 아우 아니오. 그럴 리가 없다고 믿습니다. 모로 부인이 출현하자 방청석에 앉아 있던 많은 사람들이 일어났다. 그러더니 곧 이어 "앉으시오."며 "체!"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이 훤칠한 키에 옥같이 아름다운 젊은 부인은 검은 옷을 입고 있었고, 어깨에는 가죽 목도리를 두르고 있었다. 그녀는 증언대에서 가슴속에 가득 찬 열정을 토해내고, 자신의 열정과 희망, 그리고 고뇌를 한데 섞어 배심원들에게 들려 주고 싶어하였다. 모로 부인:여러 선생님들... 선생님들께서는 아무리 상상하신다 하여도 그이가 좋은 사람이라는 걸 모르실 겁니다! 모로는 살인을 한 뒤 밤에 집으로 돌아왔다고 하였다. 모로 부인:그이의 몸에 피가 묻어 있었습니다. 제가 "샬리, 샬리, 어찌 된 일이에요?"라고 묻자 그인 다쳐서 그렇다고 하였습니다. 선생님들께선 그이가 저를 어떻게 대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고 계신데, 그이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그런 끔찍한 일을 인정하겠습니까? 그녀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의자 위로 고꾸라졌다. 모로 부인:생각만 해도 얼마나 끔찍합니까! 그날 밤 이후 그인 하룻밤도 편안히 잔 적이 없습니다.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고 열병을 앓는 듯이 전신을 떨었습니다. 제가 아무리 위로해도 그인 그 사건을 잊지 못했습니다. 저는 당시에 왜 그런지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이에게 물었지요. "왜 사람들이 우리 부부를 괴롭힐까요?" 그녀는 잠시 흐느끼더니 말을 계속 이어갔다. 모로 부인:저는 교회에 가 촛불을 밝히고 흉악범이 하루빨리 잡히게 해달라고 빌었습니다. 저는 참 불쌍합니다. 저는 아직도 흉악범이 잡히면 저희들의 행복도 돌아올 거라는 걸 믿습니다. 이때 피고석에 앉아 있던 모로는 고개를 숙인 채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모로 부인:저는 "파리 데일리"에서 흉악범이 곧 체포될 거라는 기사를 읽고, 기뻐하며 그이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샬리, 샬리, 행복한 날이 곧 올 것 같아요." 그녀는 울음을 그치고 큰 소리를 내어 기도하고 있는 것 같았다. 모로 부인:저는 그이를 사랑합니다. 어느 누구도 그이에 대한 애정을 제 마음속에서 빼앗아갈 수 없습니다. ...아! 절 용서하세요. 그이에게 그렇게 많은 고통을 주고 그이를 다그쳐 샤를 선생의 장례식에까지 보낸걸. 저는 몰랐습니다. 전혀 몰랐습니다. 그인 돈 때문에 살인을 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저에겐 보석이 있고, 돈도 있습니다. 그녀는 돌연 배심원석을 향해 결혼증서를 소리쳐 청구하기라도 하는 양 툭 던졌다. 그녀는 다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지려 하였다. 그러자 두 교도관이 나와서 그녀를 부축하였다. 그녀는 "샬리!"하며 소리치기 시작하였다. 모로는 일어나 슬픈 듯 외마디 소리를 지르더니 다시 앉았다.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받치고 있으면서도 자기 아내를 쳐다보지 못했다. 재판장이 손짓을 하자 두 교도관이 그녀를 부축하여 법정 밖으로 끌고 나갔다. 그 사이에 그녀는 계속 고개를 돌려 모로를 바라보며 외쳐댔다. "샬리! 샬리!" 이때까지 샤를의 노부모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들 두 노인은 재판장의 바로 밑에 앉아 있었는데, 이들도 눈물을 흘렸다. 다시 홑이불 문제가 제기되어 레나르 덜리가 또 소환되었다. 그녀는 머리를 숙인 채 서서히 걸어오고 있었는데, 매우 초췌해 보였다. 교도관:재판장님, 덜리 양은 방금 전에 복도에서 졸도를 했습니다. 재판장:또 쓰러질 것 같군요. 피고측 변호사:이번에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습니다. 상점 주인 뚜메이가 증언대에 올랐다. 그는 2월 9일 자기 가게에서 레나르 덜리가 말한 것과 같은 90프랑 상당의 홑이불을 판 적이 없다고 증언하였다. 온 법정 안 이 소란스러워졌고 피고측 변호사의 얼굴은 창백하게 변했다. 그는 이마를 찡그리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레나르 덜리는 교도관의 몸에 기댄 채 다시 쓰러지려 하였다. 피고측 변호사:레나르 양, 나는 당신을 믿어요. 만약 내가 당신의 자백을 의심했다면 어리석게 다른 사람을 불러 맞증언시키지는 않았을 거요. 그녀는 눈물을 흘리느라 한 마디의 말도 하지 못했다. 피고측 변호사:다시 생각해 봐요. 당신이 얼마 주고 그 홑이불을 샀는지 말이오. 레나르:기억이 잘 나지 않아요. 그때 저는 200프랑을 갖고 있었습니다. (탄식하며) 전 반신불수이신 아버지를 두고 맹세합니다만, 2월 9일 오후에 틀림없이 그 가게에서 홑이불을 샀습니다. 그녀는 손을 비틀고 있었다. 법정 변호사는 몸을 숙여 그녀를 바라보며 그녀가 진실을 말하도록 다그치고 싶어하였다. 법정 변호사:이 사안에 관련된 사람들 모두는 거짓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레나르 양은 아직도 거짓말을 하려 하고 있습니다. 레나르:맹세합니다. 제 말은 진실입니다. 뚜메이는 반쯤 탄 홑이불을 들고 자세히 살펴보더니, 이건 아마 120프랑 상당의 물건일 거라고 하면서 다시 가게로 돌아가 자세히 살펴보겠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레나르 덜리가 거짓 증언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그 다음날을 기다려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어쨌건, 내일이야말로 이 비극의 마지막 날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날이면 판결 선고가 있게 될 것이다. 7. 재판 넷째 날 "매일신문" 기자의 제4차 보도는 다음과 같았다. 모로는 오늘도 졸도했다. 그의 가게 점원 몇 명도 다시 법정으로 소환되어 그 당시의 상황을 진술했다. 그들은 맹세코 샤를이 "가련한지고, 몇십만 프랑 때문에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되오."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모로는 결코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점원들의 상세한 진술을 토대로 당신의 상황을 떠올려 보더니, 자기의 처제와 아내처럼 졸도를 했다. 이때 법정 안에서는 소동이 벌어졌다. 사람들은 전부 일어나 모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 한 사람도 흉악범의 고통을 그냥 지나쳐 버리려고 하지 않았다. 방청석에서 향수 냄새를 풍기던 귀부인들도 이 장면을 자세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들은 오락 삼아 법정에 왔지만 이들의 행동을 법관의 명령으로 간섭할 수는 없었다. 이들은 자신들을 보살펴 주는 신사들을 대동하고 방청석에 앉아서 모로가 졸도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들은 이처럼 박진감 있게 연출되는 비극을 지나치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에서 가장 골탕먹는 사람은 촬영기자였다. 어느 누구도 그들을 환영하지 않았다. 신문기자 역시 방청석 몇 자리를 차지하느라 몹시 애를 태웠다. 이건 법정이 기자들에게 가한 미묘한 보복이었다. 왜냐하면 기자들이 요 며칠 동안 법정에서 벌어진 일들을 에누리 없이 보도를 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법정은 향수 냄새가 코를 찌르는 귀부인과 돈 많은 신사들은 여전히 크게 환영하였던 것이다. 처음 심문에서는 피고측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상점 주인이 장부를 들고 와서 2월 9일 오후 3시에서 5시 사이에 자기 가게에서 120프랑 상당의 이런 홑이불이 팔린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이것이 사체를 싼 홑이불이라고 단정하였다. 피고측 변호사는 만족스러운 듯이 레나르 덜리를 안심시키며 위로하였다. 피고측 변호사:레나르 양, 과연 진실을 증언했군요. 고맙소. 레나르:제가 맹세했잖아요. 제 말이 진실이라고. 이건 진실이에요. 그녀의 얼굴엔 환희의 빛이 감돌았다. 그리고 이렇게 하여 자신의 형부를 구제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듯하였다. 그러나 이런 희망은 몇 분도 안 가서 완전히 사라졌다. 어디선가 먹구름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두운 그림자가 법정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 주인공은 사망자의 어머니인 샤를 부인이었다. 그녀는 두 변호사의 부축을 받으며 장례를 치르듯이 서서히 걸어오고 있었다. 샤를 부인은 배심원들 앞에 앉아 큰 소리로 모로가 조문할 때의 상황을 진술하였다. 샤를 부인:그 사람은 저와 악수를 하며,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그녀는 대단한 용기를 내어 냉혹하게 증언을 하였다. 그녀는 눈물이 이미 말라서인지 한 방울의 눈물조차 흘리지 않았다. 샤를 부인:여러 배심원님들, 저는 여러분들의 판결을 믿습니다. 저는 인정 사정 없는 공평한 도리로 흉악범을 징벌해 주실 것을 요구합니다. 이처럼 노부인이 맹렬하게 말하자, 이를 듣고 있던 피고측 변호사가 즉시 자신의 큰 소매자락을 떨구며 일어났다. 피고측 변호사:샤를 부인, 복수하듯이 말하지 마세요. 여기에도 큰 고통이 있습니다. 모로의 어머니와 덜리 양 어머니의 고통 말입니다. 이분들은 머리 숙여 당신에게 사죄를 하고 당신의 관용을 바라고 있습니다. ...여러 배심원님들, 여러분들은 남을 측은히 여기는 마음으로 이분들의 바람을 이해하셔야 할 겁니다. 이 두 분은 이미 고통을 받을 만큼 받았습니다. 모로는 양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한 마디도 하지 못하였다. 심문을 마쳐야 할 때가 온 것 같았다. 그러나 배심원들은 피고와 증인을 다시 심문하여 보다 자세한 사정을 알고자 하였다. 수석 배심원:피고는 샤를이 "가련한지고, 몇십만 프랑을 위해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되오."라는 말하는 걸 들었습니까? 두 교도관이 마치 포대를 들 듯이 모로를 껴안고 왔다. 모로:들은 적 없습니다. 마샬, 피터, 망리 등 세 명의 점원은 그런 말을 확실히 들었다고 증언하였다. 모로는 울었다. 그는 손수건을 꺼내 눈에 대고 눈물을 막았다. 재판장:증인들은 그가 틀림없이 들었을 거라고 생각합니까? 망리:저희들은 2미터밖에 안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모두 들었습니다. 피고측 변호사:피고는 그때 광기 어린 모습이 아니던가요? 법정 변호사:그와 동시에 흉기를 들고 있지 않던가요? 사람들은 웃었다. 방청석에서는 "좋아!"라고 외쳐댔다. 피고측 변호사:아마 흥분해 있을 때라서 그 말을 못 들었을 겁니다. 마샬:아마 그럴 겁니다. 방청석에서 또 웃고 외쳐댔다. "체!"하는 소리와 나직이 비난하는 소리가 온 법정에 자자했다. 배심원과 증인의 문답을 잘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소란스러웠다. 피고측 변호사:여러분, 조용히 하세요. 이건 한 사람의 생사와 관련된 문제입니다. 특별히 저 부인들과 아가씨들에게 요구합니다만, 떠들지들 마세요. 그들은 화려한 의복을 걸치고 보석으로 몸을 치장한 채 행복하게 살면 그만이었지, 여기에 올 권리는 없었다. 심문은 계속되었다. 수석 배심원:증인은 샤를을 아나요? 마샬:모릅니다. 그들은 샤를이 강도인 줄 알고 그 일에 일체 간섭하지 않은 것이다. 마샬은 삼 노끈과 짐 꾸리는 천을 사러 가면서도 이걸로 사체를 쌀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레나르 덜리가 대략 7__8미터 정도의 삼 노끈이 필요할 거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곧장 삼 노끈과 짐 싸는 천을 사가지고 돌아왔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때 짐꾸러미 같은 것이 방 한가운데에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하였다. 마샬:저는 그때 그 짐꾸러미를 보고, 그 안에 어떤 사람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법정 변호사:덜리 양은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졸도해 있던가요? 모로:수석 배심원님, 이건 사실이 아닙니다. 그들이 말하는 일체의 일은 제가 본 일도 없고, 들은 일도 없습니다. 그의 목소리며 안색은 한결같이 겁에 질려 있었다. 이런 나약한 사람이 살인범이라니, 누가 믿겠는가? 법정 변호사:그렇다면 심문을 다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로 당신은 목숨을 바칠 준비만 하고 있으면 됩니다. 피고측 변호사:왜 다시 심문을 시작하려고 합니까? 설마 지금까지의 자백을 무시해 버리려고 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세느성의 배심원 여러분, 여러분들이 이 사람들을 몰아붙이기만 한다면, 이들은 여기에서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로는 피고석에서 울음을 멈췄다. 그는 한바탕 긴 탄식을 하고 나더니 뒤로 쓰러졌다. 많은 사람들이 일어나 목을 빼고 그를 보고 있었다. 흉악범의 고통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보고 있었다. 피고측 변호사:피고, 어서 일어나요. 당신은 남자요. 당신은 졸도할 권리가 없소. 그는 모로의 어깨를 잡고 땅에 질질 끌고 싶었다. 모로는 머리를 흔들며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다리에 힘이 없어 다시 쓰러지고 말았다. 짭짤한 소금 냄새가 강렬한 분 냄새가 섞이기 시작했다. 이때 모로는 점점 의식을 회복하고 있었다. 이어 다른 증인들에 대한 심문이 계속되었다. 심문이 모두 끝난 뒤 마지막으로 법정 변호사 가르송이 구형 진술을 해나갔다. 그의 구형 진술은 가공할 만했다. 그는 배심원들에게 가혹하고 무정한 판결을 요구한 뒤, 다시 모로를 가르키며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법정 변호사:여러분들은 오늘 피고가 여기에서 졸도하는 것을 보셨습니다. 이건 자신의 머리가 곧 목 위에 남게 되지 않을 거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죠! 8. "파리만보"의 기사 오늘 "파리만보"에는 어젯밤 한 신문기자가 모로 부인 자매와 인터뷰한 방문기가 실려 있었는데, 그 기사의 중간 몇 단을 보면 다음과 같다. 모로 부인은 처음에 인터뷰를 하지 않으려 하였다. 그만큼 신경이 위축되고 쇠약해 있었다. 기자는 부인에게 부부간의 가정생활을 물었다 부인의 대답은 매우 간단했다. 시종 머리를 흔들며 탄식하였다. "그인 참 좋은 사람이에요. 참 좋은 사람이에요!" 얼마 뒤에 부인의 얼굴이 점점 붉어졌다 기자는 어떤 열정이 부인의 마음속에 고동치고 있는 것을 보고 부인에게 힘을 북돋워 주었다. 그러자 부인은 울음과 웃음이 섞인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부인은 흉악범과의 애정 이야기도 꺼냈다. "선생님, 당신은 저희 부부가 얼마나 서로를 사랑해 왔는지 모를 겁니다. 이런 사랑은 영원히 소멸되지 않을 겁니다. 당신은, 제 동생이 남편의 정부라고 했을 때 제가 얼마나 절망했는지 모르실 겁니다. 그때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이가 날 속였나, 아니면 그의 열렬한 애정이 위선이었나 하고요. 그래서 그이를 버리려고 했지만, 그것은 커다란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이가 절 속인 게 아니었습니다. 제가 그이를 엉뚱하게 의심했던 거지요. 동생은 결코 그이의 정부가 아니었습니다. 제 남편을 구제하기 위해서 동생이 거짓 자백을 한 것이지요. 그러나 동생이 희생되는 것을 그대로 두고만 볼 수는 없습니다. ...저는 제 남편이 살인범이길 원할지언정, 그이가 저를 속이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또 저희들의 순결하고 애정 어린 관계가 남들에게 오해받고 비난받길 원치 않습니다. 저는 반드시 레나르에게 진실을 말하도록 할 겁니다. ...그래요, 동생이 오늘 이야기한 것은 모두 진실입니다. 레나르, 지금 이 선생님에게 말하렴. 네가 과연 네 형부의 정부인지 아닌지를..." 모로 부인은 여기까지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이야기하느라 힘이 많이 들었는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부인의 눈동자는 자기 동생의 아름다운 얼굴로 뜨겁게 향하고 있었다. 부인의 얼굴도 아름다웠다. 충격을 받아서인지 더욱 아름답게 보였다. 레나르 덜리는 자기 언니와 함께 앉아 있었는데, 스물이 채 안 된 나이에 아름다운 금빛 머리털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틀림없이 교활하고 능청스런 여자로 비쳤을 것이나, 사실은 무척 연약하고 겸허했다. 그 사건의 이야기를 꺼내자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기 시작했다. 그렇다, 기자는 반짝이는 눈물이 그녀의 저 긴 눈썹으로 덮인 큰 눈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녀는 때때로 머리를 파묻었다. 언니의 뜨거운 눈빛 아래에서 레나르는 더욱 겁에 질려 있었다. 그녀는 말을 꺼냈다. 떨리는 목소리로. "선생님, 제 언니가 옳아요. 저는 결코 형부의 정부가 아니에요. 그리고 샤를 선생도 저를 희롱한 적이 없어요. 저는 어떤 사람의 종부 노릇도 한 적이 없어요. 반신불수이신 아버지를 두고 맹세하지만, 저는 매우 결백해요. 제가 거짓말을 한 것은 그렇게 해야 형부의 목숨을 건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형부를 위해, 언니를 위해 제 자신의 행복을 희생하고 싶어서였어요. 제가 지금까지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두 분의 덕분이에요. ...그런데 전 아무런 보답도 할 수 없게 되었고...제 희생도 쓸모없게 되고 말았어요. 선생님, 선생님은 그 사람들이 형부를 죽일 거라고 생각하세요? ...형부는 참 좋은 사람인데..." 그녀는 갑자기 울음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마치 실망한 어린 소녀처럼 애달프게 울었다. 모로 부인은 동생 곁으로 걸어갔다. 그러고는 소파의 손 받침대에 앉아서 동생의 등 쪽으로 머리를 숙이더니 나직한 소리로 흐느끼기 시작했다. 기자는 이런 모습을 보고 더 이상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느꼈다. 기자가 작별인사를 하고 막 나오려 하자, 모로 부인이 고개를 쳐들어 눈물을 닦으며 기자를 만류하였다. 부인은 계속해서 이야기하였다. "선생님, 그 사람들이 그이를 죽일까요?...선생님은 저보다 더 잘 알고 계실 테니, 그 사람들이 그이를 죽일 리 없을 거라고만 말해 주세요. 샬리, 그인 참 좋은 사람이에요! ...전 몰랐어요. 전혀 몰랐어요. 그때 그이의 고통이 그렇게 큰 줄을요. 그런데 저는 그이를 전혀 위로해 주질 못했어요,. 선생님, 저는 그이를 다그쳐 샤를의 장례식에 참석하라고 했어요. 그런 사정을 전혀 모르고요. 그리고 교회에 가서 촛불을 밝히고 흉악범이 빨리 잡히게 해달라고 빌었지요. 선생님, 선생님이 보시기엔 제가 아주 어리석은 여자지요?...저는 그이가 매일 밤 악몽으로 시달리는 것을 보았어요. 꿈속에서 울다가 깨어나면 몸을 몹시 떨었지요. 제가 고통스럽게 "샬리, 무슨 일이에요?"하고 물으면, 그인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어요. 그건 우는 것보다 더 비참한 것이었을 텐데, 당시 저는 전혀 몰랐지요. 덩달아 쓴웃음만 짓고요. 저는 아직도 저희들의 행복했던 시절이 다시 오길 기도하고 있어요. 아..." 부인은 다시 고개를 숙여 흐느끼기 시작했다. 9. 레나르 덜리의 자백 같은 날 "파리만보"에는 레나르 덜리의 자백이 제재되어 있었는데, 이 기사는 레나르 덜리의 구두진술과 인터뷰한 신문기자의 필기로 이뤄진 것이었다. 중요한 사항 몇 단을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샤를 선생님은 열 시가 넘어서 왔습니다. 제가 문을 열어 드렸지요. 함께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눈 후에 그분은 형부의 사무실로 가셨습니다. 이어 제가 형부의 가게로 갔습니다. 그리고 형부의 사무실로 들어갔습니다. 이때 샤를 선생님은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형부는 그 옆에 무릎을 꿇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땅바닥에는 쇠망치 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 "샬리!"하고 소리치고는 그대로 기절했습니다. 다시 깨어나 보니 제가 바깥 응접실에 있더군요. 형부의 사무실에 다시 들어가려 하는데, 사람들이 저를 막았습니다. 그때 마침 형부가 밖으로 나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형부에게 소리쳐 물었습니다. "샤를 선생님은요?" "이미 돌아가셨어." 저는 이 말을 듣고 또다시 기절할 뻔했습니다. 이어 형부는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처제는 들은 건 없고 보기만 했지." 형부는 제게 소리 내지 말라고 하였고, 점원들에게도 소리 내지 말라고 애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뇌물을 준다거나 위협하는 말은 없었습니다. 형부가 사무실로 들어가자 저도 뒤따라 들어갔습니다. 샤를의 시체는 이미 거기에 없었습니다. 제가 형부에게 물었습니다. "사체는 어디에 있어요?" 형부는 "저기."라고 말하며, 벽장 쪽을 가리켰습니다. 바닥엔 온통 핏자국투성이었습니다. 형부가 저더러 바닥을 깨끗이 닦으라고 하여, 주방에서 물 한 동이를 들고 와서 큰 솜으로 문지르며 핏자국을 닦아 냈습니다. 이 일을 다 마치고 나니 오후 3시였습니다. 4시가 되자 형부는 밖에서 돌아와 저더러 홑이불을 사오라고 하며 200프랑을 주었습니다. 제가 홑이불을 사가지고 돌아오자 형부는 그걸 들고 사무실에 들어가더니 잠시 후에 다시 나와 저더러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샤를의 시체는 바닥에 놓여 있었고, 형부는 시체를 싸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용기가 없어 형부를 도와 주질 못했습니다. 저는 형부가 시체를 벽장 속에 도로 갖다 놓는 걸 보고 바로 나왔습니다. 얼마 후에 형부가 다시 나오더니 저와 마샬 낭거 두 사람을 부르고는 들어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더니 형부는 마샬에게 삼 노끈과 짐 싸는 천을 사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제가 몇 미터 필요할 거라고 이야기했는지 안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납니다. 6시가 되자 마샬이 삼 노끈과 짐 싸는 천을 사가지고 돌아왔는데, 그때 다른 사람은 다 나가고 없었습니다. 형부는 시체를 짐꾸러미처럼 쌌습니다. 제가 문을 열어 앞서 나갔고, 형부는 뒤에서 그 시신을 아래층으로 끌어내렸습니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도록 말입니다. 저는 수위실에 들어가 열쇠를 맡겼습니다. 거기에서 제가 문을 지키던 노파와 몇 마디 나누는 사이에 형부는 시신을 밖으로 끌어냈습니다. "오늘은 늦었구려."라며 노파가 제게 말을 걸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은 사정이 많아서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제가 밖으로 나설 때, 형부는 어느새 시신을 차 안에 실어 놓고 막 떠나려던 참이었습니다. 이 일에 관해서 형부는 일체 이야기하지 않았고, 저 또한 묻지도 않았습니다. 이튿날 10시에 형부의 가게로 갔더니, 형부는 짤막하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시신을 숲속에서 불태워 버렸어." 잠시 후에 형부는 제게 보석 두 꾸러미를 건네 주며 보관해 두라고 일렀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을 보관할 만한 적당한 곳이 없었습니다. 뒤에 형부는 저를 불러 그걸 다시 망리 랑제루아가 보관하도록 건네주라고 하여, 곧바로 망리에게 넘겨줬습니다. 결국 형부가 어떤 동기로 샤를을 죽였는지 저로선 지금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결백합니다. 그리고 이번 사건과 나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제가 형부를 도운 건 형부를 살릴까 해서였습니다. 저는 결코 형부의 정부가 아닙니다. 더욱이 샤를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10. "파리만보"의 기사의 제목 모로, 사형으로 판결 모로 부인, 법정에서 음독 자살 레나르 덜리 체포, 사체와 보석 은닉의 두 죄로 곧 기소 예정 11. "파리만보"의 기사 레나르 덜리가 체포된 일에 관해, 모로의 안건을 맡은 법정 변호사 가르송 선생은 기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의견을 발표했다. "사체 은닉죄는 경범죄 재판소로 회부되어 심리가 이뤄집니다. 형법 395조에 의하면, 무릇 사체를 은닉한 자는 6개월에서 2년에 이르는 징역과 50프랑에서 400프랑에 이르는 벌금형에 처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1915년 5월 2일에 통과된 법률에 의하면, 무릇 모살행위로 취득한 장물을 은닉한 자는 중죄 형사법정에 회부되어 심리가 이뤄진다고 되어 있습니다. 은닉자는 흉악범과 동일범이지만, 사형은 없습니다. 은닉의 죄질에 가장 무거운 자는 종신 징역형을 받게 됩니다." (1932년 9월) 달밤 빠진 아리의 배가 막 시내로 떠나려 하고 있었다. 둥근 달은 점점 산을 넘어와 강변을 비추었다. 이 작은 강은 산 아래의 어둠 속에 가로누워 있어서 달빛을 받자 가늘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달빛은 수면 위에서 움직이며 물줄기를 따라 강으로 흘러가려는 것 같았다. 어둠은 시시각각으로 엷어졌지만 아직 그물을 쳐놓은 듯 모든 사물을 뒤덮고 있었다. 산, 나무, 강, 밭, 가옥 등 모든 것이 어둠의 그물에 덮여 있었다. 달빛은 부드러워서 그물눈을 뚫을 수 없었다. 돌길은 길게 강으로 뻗어 있었고 옆에서 아리의 배가 정박하고 있었다. 이 배는 연꽃 더미 가운데 정박하고 있었는데, 밀집된 수련 떨기에 둘러싸여 있었다. 많은 자색의 꽃송이가 피어 있었으며, 연잎은 배에 바짝 달라붙어 있었다. 배에는 유등이 켜져 있었지만 불빛은 희미했다. 밖에서 보면 한 척의 졸고 있는 배가 어둠 속에 묻혀 있는 것 같았다. 인적이 없어 마치 무인도 같았다. 그러나 배에는 확실히 사람이 있었다. 선실 안에는 손님 둘이 길게 드러누워 있었고, 한 꼬마가 뱃머리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이 꼬마는 뱃사공 아리의 아들 아린이었다. 뱃사공 아리는 한가하게 배 뒤편에서 담배를 피웠다. 마치 말을 너무 많이 하여 더 이상 새롭게 할 말이 없는 듯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는데, 모두들 이런 분위기에 익숙한 듯했다. 배는 매일 저녁 무렵에 시내로 들어가서 다음날 오전에 돌아온다. 이 판에 박은 듯한 일정은 변경된 적이 거의 없었다. 손님들도 모두 단골손님이었다. 이 고객들은 일주일에 몇 번씩 늘 배를 타러 오는데, 일정한 시간에 와서는 말도 별로 하지 않았다. 그들이 배에서 잠을 한숨 자고 나면 배는 시내에 도착했다. 어떤 때는 손님이 시내에서 내리기도 하고, 어떤 때는 기선을 바꾸어 타고 성 정부가 있는 곳으로 가기도 한다. 선실에 있는 두 명의 손님 중 젊은 손님은 이 시골 국민학교 교사인데, 집이 시내에 있어서 매주 토요일 저녁에 시내로 들어간다. 또 다른 손님은 상점 점원으로, 상점일 때문에 늘 주인 심부름으로 시내로 간다. 달빛은 뱃머리에서 아린의 헝클어진 머리를 빗질해 주었는데, 아린은 못 느끼는 듯 단지 천천히 머리를 흔들 뿐, 피곤한 듯이 눈을 감았다. 그러다 갑자기 눈을 크게 뜨고서 강가의 길을 한 번 바라보고는 수면을 바라보았다. 쥐죽은듯이 조용했다. "이상하군. 껀성이 어째 아직도 오지 않지?" 국민학교 교사는 몸을 한 번 뒤척이고는 낮은 소리로 혼자 중얼거렸다. 그리고 뱃머리를 바라보고는 옆의 작은 겉창을 열어 제치고 머리를 밖으로 내밀었다. 주위는 조용했다. 불빛도 없었고 강변의 저 사당 역시 깊이 잠들었다. 달빛 아래 길게 뻗어 있는 길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뱃전은 그의 머리에서 아주 가까웠는데, 한 무더기의 수련이 그곳에 둥둥 떠 있었다. 꽤 많은 자주빛 꽃이 피어 있었다. 그는 머리를 선실 안으로 들여놓고는 겉창을 닫았다. 이때 상점 점원인 왕성이 큰 소리로 뱃사공에게 말하는 것이 들렸다. "이봐, 아리! 몇 시인데 아직 출발하지 않는 거요?" "껀성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소. 아직 이른데 뭐가 걱정이오?" 뱃사공 아리가 뒤에서 소리 높여 대답했다. "껀성은 매번 7시면 도착하는데, 오늘 저녁에는..." 왕성은 말을 받으며 시계를 더듬어 꺼냈다. 그러고는 겉창을 열어 그곳에 시계를 놓고 쳐다보며 계속 말했다. "7시 40분이군. 오늘 저녁에는 오지 않을 모양이오." "올 거요. 반드시 올 거요. 물건을 가지고 시내로 가야 하니까." 아리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쥔 선생, 조급해하지 마시오. 왕 선생, 당신은 단골 손님이니 이 배가 여태껏 한 번도 결항한 적이 없다는 걸 잘 알지 않소." 국민학교 교사인 쥔 선생이 말했다. "껀성은 여태껏 늦게 도착한 적이 없었소. 그는 매번 아주 일찍 도착하는데, 오늘은 사람을 기다리게 하는군요." "오늘 저녁에는 아마 그를 붙잡아 두는 일이 있나 봅니다." 왕성은 이렇게 말하며 다리를 꼬고 앉았다. "제가 압니다. 그는 별일 없어요. 아편도 안 피고 담배도 안 피니 그를 붙잡을 일이 없어요. 그는 곧 옵니다." 뱃사공 아리는 배 뒤쪽에서부터 천천히 동창 꼭대기를 거쳐 뱃머리로 와서는 아린을 불렀다. "아린!" 뱃머리에서 졸고 있던 아린이 발딱 일어섰다. 아리는 아린을 한 번 쳐다보고는 한 발을 돌길 위에 올려 놓았다. 그는 강가를 향해 몇 걸음 걷다가 돌아와 바지를 열고 소변을 보았다. 은과 같은 수면 위에 금빛이 빛나고 있었다 둥근 달이 마침 그의 맞은편 창공에 걸려 있었다. 그 은빛은 그의 머리 위에 직선으로 비쳤는데, 달빛은 찬물과 같이 그의 머리를 상쾌하게 해주었다. 강변의 사당 곁 용나무 아래에서 하나의 검은 그림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껀성이 왔나 보군." 아리는 스스로 위로하듯 중얼거린 후에 아린에게 말했다. "아린, 준비 다 됐냐? 껀성이 왔으니 배를 저어라." 아린은 삿대를 들고 배를 조금씩 조금씩 밀어 움직여서 강가에 가로 대었다. 아리는 아직도 돌길 위에 서 있었는데, 그림자가 가까이 다가왔다. 그는 그 사람의 손에 조그만 등바구니가 들려 있고 몸집이 작은 것을 알았다. 그 사람은 껀성이 아니고 아짱이었다. 그는 시골의 한 작은 잡화점의 주인이었다. "지금 출발합니까?" 아짱은 등바구니를 들고서 급하게 돌길을 걸어오며, 웃음 띤 얼굴로 아리에게 물었다. "마침 잘 왔군요. 우리는 껀성을 기다리고 있었소." 아리는 약간 조급한 듯이 대답했다. "벌써 8시요. 껀성은 분명 오지 않아요." 국민학교 교사가 선실에서 큰 소리로 말했다. "이상하군. 껀성이 아직 안 왔다구요? 내가 알기로 그는 여태껏 아주 일찍 배를 타러 왔었는데." 아짱은 배에 올라타서는 등바구니를 바깥에 두고 자신은 선실 바닥에 앉아 주머니에서 궐련갑을 더듬어 꺼냈다. 그러고는 궐련에 불을 붙이고는 달을 보며 한가롭게 피웠다. "이봐요, 아리! 껀성이 왔나요?" 머리를 자른 중년여인이 시앙윈사 바지저고리를 입고서 맨발로 강가로 와서는 큰 걸음걸이로 돌길을 걸으면서 아리를 불렀다. "오기는요? 지금 모두 껀성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가 어디에 있는지 당신도 모른단 말이요?" 아리는 원망하듯 말했다. "아직 오지 않았다구요?" 그 여인은 조급히 말했다. "귀신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어요." "지금 농담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죠?" 그 여인은 더욱 허둥지둥 물었다. "껀성 부인, 당신과 농담할 시간 없소. 그런데 껀성이 오늘 저녁에 배를 타긴 하는 거요?" 아리는 정색을 하며 말했다. "큰일났네." 껀성 부인은 날카롭게 소리치고는 몸을 돌려 뛰어갔다. "이봐요, 껀성 부인! 돌아와요!" 아리는 뒤에서 큰 소리로 부르면서도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를 몰랐다. 껀성 부인은 그 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강가로 뛰어가서, 갑자기 껀성의 이름을 불렀다. 목소리에는 울음이 섞여 있었다. 아리는 껀성 부인의 울음 소리를 듣고는 견디기 힘들었다. 그는 돌길 위에 멍하니 서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세 명의 손님은 모두 놀라 물었다. 아짱이 있는 곳에서는 그녀가 비교적 잘 보였다. 상점 점원은 선실로 머리를 내밀었고, 국민학교 교사는 겉창을 열어 제친 후에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바라보았다. "나도 모르겠소." 아리는 고개를 떨구고 원망하듯 대답했다. "껀성이 부인과 다투고 홧김에 뛰쳐나갔겠지. 맞아, 그럴 거야!" 아짱이 말했다. "그래도 남들은 남편 노릇 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말하겠지? 하하!" 그는 담배꽁초를 물에다 던지고 가래침을 뱉고는 웃기 시작했다. "껀성은 여태껏 그의 아내와 한번도 다투지 않았소. 틀림없이 다른 일이 있을 거요. 다른 일이 있을 거라구요." 아리는 진지하게 말했다 그는 의아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는데, 그 자신도 이 다른 일이 무슨 일이지 몰랐다. "껀성! 껀성!" 그 여자의 날카로운 목소리는 비참하게도 고요한 밤의 공기 속에서 먼곳까지 울려 퍼졌다. 이어 두 번째 소리가 또 울리기 시작했는데, 이 소리는 첫번째 소리보다 더욱 비참했고 이면에는 더 많은 실망이 요동치고 있었다. 그 소리는 벌써 첫번째 소리를 따라가 돌아오지 않았고, 오히려 더 멀리 달아났다. "이봐요, 아리! 어찌 된 거요?" 국민학교 교사가 이렇게 소리치고는 겉창을 닫았다. 그러나 아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출발합시다!" 상점 점원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재촉하기 시작했다. 아리는 주의 깊게 껀성 부인이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는 불안함이 매초마다 차츰차츰 증가해 두 손님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무표정하게 그곳에 서서 껀성 부인이 남편을 부르는 소리를 듣다가 갑자기 외쳤다. "안 돼. 그녀는 분명 미쳤어!" 그러고는 급히 강변으로 달려갔다. "아빠! 어디 가세요?" 그때 뱃전에서 졸고 있던 아린이 급히 그를 쫓아가며 물었다. 아리는 단지 달려갈 뿐 대답하지 않았다. 아린의 목소리는 곧 멀어졌고 공기 속에 약간의 흔적도 남겨 놓지 않았다. 공기는 여인의 울음 소리에 점거 당해 한가닥 한가닥 새롭게 낡은 목소리가 났다. 은백색의 달빛은 이 울음 소리가 모여 이루어진 것처럼 끊임없이 진동했다. 사람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는 이 슬픈 목소리는 활발한 생명이 파괴되고 찢어져서 한가닥 한가닥 이어지고 한알 한알 이루어진 것 같았다. 세 사람이 진흙길 위에서 달렸다. 한 사람은 껀성 부인, 한 사람은 뱃사공 아리, 한 사람은 아린이었다. 서로 뒤를 따르며 달렸는데, 아린은 중도에서 몸을 돌렸다. 배는 여전히 돌길 옆에 기대어 있었고, 세 명의 손님은 뱃머리에 앉아 궁금해하며 껀성의 일을 얘기하고 있었다. 모두가 추측뿐이었다. 모두들 자신의 상상을 이야기하느라 선상은 떠들썩해지기 시작했다. 여인은 울부짖는 소리가 작아지더니 이내 멈추었다. 아리는 나무 밑동에서 껀성 부인을 찾았는데, 그녀는 힘이 다 빠진 듯 그곳에 앉아 몸을 나무에 기대고 있었다. 껀성 부인의 머리는 휘날리고 얼굴에는 눈물 자국이 있었는데, 눈을 크게 뜬 채 강가의 검은 나무를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귀신 같았다. 껀성 부인은 낮게 울먹였다. "껀성 부인, 뭘 하고 있소? 당신 미쳤소? 무슨 일이 있으면 말을 해요." 아리는 있는 힘을 다해 그녀의 어깨를 흔들며 큰 소리로 말했다. 껀성 부인은 머리를 한 번 흔들고는 울음을 그쳤다. 검은 눈동자를 둥그렇게 뜨고 그를 바라보는 것이 마치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잠시 후에 그녀는 비로소 울음을 터뜨리고 껀성을 불렀다. "껀성이 어떻게 됐어요? 말해 봐요." 아리는 몰아붙이듯 물었다. "난 몰라요." 껀성 부인은 전혀 모르는 듯이 대답했다. "젠장, 모르면 어째서 우는 거요? 당신 정말 미쳤소?" 아리는 꾸짖듯이 말하며 가래침을 뱉었다. "그들이 분명 그를 잡아갔어요. 그들이 분명 그를 잡아갔다구요." 껀성 부인의 얼굴에 홀연 공포의 경련이 일었다. 그녀는 미친 듯이 울부짖었다. "잡아갔다고요? 누가 그를 잡아갔소? 껀성이 잡혀 갔다는 거요?" 아리는 놀라서 물었다. 그의 가슴은 아주 심하게 뛰었다. 껀성은 그의 친구였다. 아리의 생각에 껀성은 분수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인데 왜 그를 잡아갔겠는가? "분명 탕시판 짓이에요. 그가 틀림없어요." 껀성 부인은 울먹이며 말했다. "어제 껀성이 내게 말하더군요. 탕시판이 관청에서 자신이 적과 내통했다고 말했다구요. 난 아직도 못 믿겠어요. 오늘 오후에 껀성이 외출하자마자 탕시판 쪽 사람 몇 명이 그의 뒤를 따랐는데, 스파이가 있었나 봐요. 그 뒤로 그가 집에 돌아오지 않았으니 분명 그들이 그를 잡아갔을 거예요." 그녀는 말을 마치고 또 울었다. "죽자 사자 돈만 긁어 모으는 그 늙은 놈이 왜 껀성을 해치려 했죠? 아무래도 믿을 수 없군요. 껀성 부인, 당신이 직접 껀성이 잡혀 가는 걸 봤어요?" 아리는 거친 목소리로 그녀를 위로했다. 그의 목소리는 방금처럼 그렇게 엄숙하지 못했다. "못 믿겠다고요? 단지 당신만이 못 믿는군요. 탕시판은 향장을 하지 못해 노기 등등해서 사람을 시켜 이 선생을 암살하려 했는데, 죽이지 못하니까 오히려 자신이 향장을 제거했어요. 요 며칠 껀성은 이 선생의 형제인 찡선생과 함께 어떤 농회를 조직해서 그와 대결했답니다. 내가 처음부터 그 늙은 놈하고 맞서지 말라고 말렸지만 그는 내 말을 듣지 않고 온종일 지방세도가를 타도해야 한다고 외치고 다녔으니, 이제 끝장난 거죠. 잡혀 갔으니 설사 목을 베지 않는다 해도 살아 돌아올 리 없어요. 적과 내통했다고 말했다 하니 그 죄명이 얼마나 크겠어요?" 껀성 부인은 울먹이며 욕을 했다. "탕시판이 그렇게 악독하다니 못 믿겠군요." 아리는 중얼거리며 말했다. "그는 돈이 아주 많아요. 현장도 그의 친구죠. 현장은 그의 말이라면 모두 믿는답니다." 껀성 부인은 점점 기력을 회복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커지기 시작했고, 두 눈에서는 불꽃이 튀었으며, 분노가 비애를 압도했다. "이 선생같이 좋은 사람이 뒤에서 모래 해침을 당하다니..." "당신은 아리오의 일을 잊었나요? 껀성과 아리오의 일은 매한가지예요." 껀성 부인의 얼굴에 두려운 표정이 나타났다. 아리는 할말이 없었다. 그렇다. 그는 아리오의 일을 분명히 기억했다. 아리오는 자기 분수에 맞게 살아가는 농민으로, 농사일이 바쁠 때는 다른 사람의 일을 해주고 일이 없을 때는 짐꾼을 했다. 그는 언젠가 운반세를 안 내려고 몇 명의 짐꾼을 데리고 세금 거두는 탕시판네 집에 가서 소란을 피운 적이 있었다. 이틀이 지난 후, 현의 관청 공안국에서 사람을 파견해 아리오를 잡아가서는 그가 적과 내통했다는 혐의로 15년의 형벌 판결을 내렸었다. 아리오가 잡혀 갈 때 아리의 배를 타고 갔기에 그는 아주 분명히 보았던 것이다. 아리오는 안분지족하는 사람이었으며 여태껏 나쁜 일도 하지 않았는데, 관청에서는 오히려 그가 적과 내통했다고 말하다니, 세상에 이럴 수가 있는가! 아리는 이제 껀성 부인의 말을 믿게 되었다. 아리의 안색이 침통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무거운 돌이 그의 가슴을 억누르는 것 같았다 그는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좋은 방법이 생각나지 않자 골치가 아파지기 시작했고, 많은 일들이 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서 아주 혼란스러워졌다. "빨리 일어나요. 설사 껀성이 정말로 잡혀 갔다 하더라도 우리는 방법을 강구해서 그를 구해야 돼요. 당신이 여기서 운다고 해서 무슨 도움이 되겠어요." 그는 껀성 부인의 어깨를 잡으며 이렇게 말했다. 두 사람은 강가를 따라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그들은 반도 못 와서 마침 달려오는 아린을 만났다 아린은 아주 빠른 속도로 달려오며 큰 소리로 "아빠!"하고 불렀다. 얼굴색이 몹시 흉했다. "껀성..." 그는 한 손으로 아리의 어깨를 잡으면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껀성은 어디 있지?" 껀성 부인은 아린의 앞으로 달려와서 몸을 흔들며 다급하게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몹시 떨렸다. "아린, 얘기해 봐. 무슨 일이지?" 아리 역시 아주 격분했는데, 그는 공포의 조짐을 느꼈다. 아린의 온몸은 땀투성이였다. 아린은 그 조그만 얼굴 가득 두려운 빛을 띠고서 더듬거리며 말했다. "껀성... 저기에..." 아린은 그들 둘을 끌고서 달렸다. 강변의 돌출된 풀밭에 세 명의 손님이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풀밭은 길보다 훨씬 낮았다. 아린은 그곳으로 달려갔다 "아빠, 보세요..." 아린은 무서운 듯이 큰 소리로 외쳤다. 껀성 부인은 미친 듯 날카롭게 한 마디 외치고는 아린을 따라 달려갔다. 아리도 달려갔다. 강변은 온통 수련으로 뒤덮여 있었는데 자주색 연꽃이 무성히 피어 있었다. 국민학교 교사인 쥔 선생 풀밭에 꿇어앉아 손으로 수련을 헤치자, 그곳에서 퉁퉁 불은 시체가 나왔다. 시체는 조용히 수면에 누워 있었다. 시앙윈사 바지가 나무뿌리에 옭아져 있었고, 윗옷의 왼쪽 등 아래 부분에 구멍이 나 있었다. "껀성!" 껀성 부인은 절규했다. 그녀는 손을 뻗어 시체를 끌어안고는 상심해서 울기 시작했다. "끝났소." 쥔 선생은 고개를 떨구며 비통하고 낮은 목소리로 아리에게 말했다. "분명히 총에 맞았어요." 상점점원이 말을 받았다. "이 많은 피 좀 봐요." "시체를 들어올립시다." 아짱이 말했다. 아리는 숨을 크게 한 번 내쉬고는 아린의 떠는 어깨를 꽉 잡고 멍청하게 수면을 바라보았다. 껀성 부인의 울음 소리는 끝없이 공기 속에서 부딪혀 마치 여러 개의 마음이 그 속에서 한가닥 한가닥, 한알 한알 부서지는 것 같았다. 울음 소리는 온 달밤을 적셨다. 하늘도, 땅도, 물도...마치 모든 것이 우는 것 같았다. 나무, 풀, 꽃, 수련... 마을은 조용히 달빛 아래 누워 있었고, 작은 시내도 조용히 달빛 아래 누워 있었다. 이 슬픈 공기에 싸여 온 마을이 우는 것 같았다. 한 사람도 예외가 없었다. 모든 사람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이날 밤은 몹시 아름다운 달밤이었다. 비바람도 없었다. 단지 여태껏 결항해 본 적 없는 아리의 배만 한 번 결항했다. (1933년 9월) 빠진의 작품 세계 중국의 사조들은 우리의 관심거리가 되고 있는데, 문학은 그 중에 가장 큰 대상이 되고 있다. 1980년대에 여섯 차례나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던 빠진을 이 급격히 흘러가는 사조 속에서 뽑아낸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상해에서 구십이 넘도록 학처럼 맑게 살아가는 그의 문학은 곧 중국 현대문학의 산 역사인 것이다. 중국의 현대문학은 후스가 '문학개량추의'91017)에서 어문일치의 문학을 주창하면서,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서구의 문예사조가 흘러 들어오는 시점에 맞추어서 새로운 물결이 일기 시작하였다. 루쉰이 구어체 소설 "광인일기"(1918)를 발표하고, 후스가 최초의 신시집인 "상시집"(1920)을 내면서 신문학의 궤도가 이어져서 오늘을 창조하게 되었다. 그 전개된 과정을 몇 시기로 나눠 본다면 제1기(1917__1937)는 5.4문학운동과 국민당, 공산당의 공존, 그리고 민족정신의 변혁과 사회주의 대두가 두드러진다. 제2기(1937__1949)는 중, 일 전쟁으로 인한 민심의 이반과 혼란, 강렬한 항일정신이 나타나는 국방문학과 염세적 도피의식이 어우러진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제3기(1949__1966)는 마오쩌둥이 대륙을 공산화하면서 철저한 노동문학과 사회주의 노선의 문예활동으로 일관시켰고, 제4기(1966__1976)의 10년은 소위 문화 대혁명으로 인한 교육과 문화의 암흑기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제5기(1976__현재)에 와서는 모든 문인들이 감금과 숙청에서 풀리고, 자유로운 문학활동을 전개하며 앞의 시기에 억눌렸던 울분과 부조리를 극복하는 '신시기'를 맞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빠진의 역할은 말할 나위 없이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사천성의 지주 가정에서 태어난 빠진은 일찍이 부모를 여읜 후 전통적인 봉건의식과 신사조의 갈등을 이기지 못하여 무정부주의 운동에 가담하고, 이어서 프랑스 유학을 떠난다. 젊은 빠진은 그곳에서 국가와 민족을 객관적으로 관조할 수 있는 안목과 자신이 해야 할 과제를 파악하고 문예창작에 뛰어든다. 처녀작 "멸망"(1929) 이후 그는 폭발하는 애증과 번뇌를 소설 창작 속에 퍼붓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지금까지 70여 년에 걸쳐 끊임없이 글쓰기를 해오고 있다. 그 자신은 여기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한시도 펜을 놓지 않을 것이다. 펜은 내 마음에 불을 붙인다. 내가 재로 화할지라도 나의 사랑, 나의 감정은 인간 세상에 영원히 남아 있으리라. 나에게 남은 시간은 5__6년밖에 안 되고, 시간이란 한번 지나가면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구상하고 있는 작품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는 없다. 어떻게 해서든지 나는 그것을 쓰고야 말 것이다." 1936년에는 비열한 아나키스트로, 1958년에는 부르주아 평론가로 비난받았는가 하면, 문화대혁명 때에는 반혁명. 수정주의 분자로 비판당하여 감금의 고통을 겪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내심에는 반파시즈과 반봉건의 인도주의적 애국 사상이 넘치는 가운데, 그것을 작품 속에 농축시켜왔다고 할 수 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장편소설 "애정삼부곡", 봉건사회의 몰락과 신진세대의 승리를 예시한 "격류삼부곡", 병신생활을 통해 구태의연한 사회의 면모를 일기 형식으로 제시한 "제4병실", 백성의 고난을 파시즘 정권에 빗대어 고발한 "추운 밤" 등과 단편소설 "집주인 아줌마", "망명", "불행한 사람", "달밤", "좌와 벌", "귀신" 등이 있다. 이 외에 빠진은 유기문, 감상문, 잡문, 소품문 등 산문도 많이 써서 18권의 산문집이 나와 있기도 하다. 빠진은 2년 동안 프랑스에 유학하여 서구의 문물을 익힌, 당시로서는 신세대의 기수였다. 그의 눈에는 모든 것이 새롭기도 했지만, 자신의 조국과 비교함으로써 일어나는 고뇌를 떨칠 수가 없었다. 단편소설 "죄와 벌"은 그가 귀국한 지 3년이 지난 1932년에 씌어진 것이다. 등장인물이 모두 프랑스 사람들이고, 장소도 파리이며, 작품의 서두에서 성경의 "출애굽기"를 인용하면서 전개될 내용을 예시해 주고 있다. 그리고 이 작품은 법정에서 보석 브로커인 '요한 샤를'을 죽인 혐의로 체포된 '모로'를 심문하는 대화문과 그와 연관된 부연설명, 그리고 신문의 기사내용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단편소설로서는 구성이 특이하고 파격적이라 할 수 있다. 빠진은 단순한 구성 내용과 반복, 강조적인 줄거리를 통하여 자기성찰의 진면목은 감춰둔 채 명예와 체면을 의식하면서 혹시나 면죄부를 얻을까 하는 인간의 기회주의적 비열감을 고발하고, 나아가 인과응보적인 상벌의 엄정성을 강조하여 당사회의 전반적인 무질서에 대해 강한 경종을 울리고 있다. 인간에게는 진정한 '공평의 도리'가 정확하게 주어질 때, 사회의 기강이 잡히고 인륜의 덕성이 드러날 수 있다. 빠진은 파리에서의 사건으로 자신의 조국을 비춰 보고 싶었던 것이다. 아이우 작가 세계 1904년 6월 2일 사천성 신번현에서 출생. 본명은 탕따오껑. 개명하여 탕아이우. 필명은 아이우. 1917년 농촌 처녀와 결혼. 1919년 신번현립고등소학에 합격. 5.4신문화운동에 가담. 1921년 가을, 성립성도제1사범하교에 합격. 1922년 모친 사망. 1924년 탕윈이란 이름으로 "번성"지에 논문 "개인과 사회"를 발표. 1932년 중국좌익작가연맹에 가입. "인생철학의 한 수업"을 "문학월보"에 발표. 1933년 좌련에 연계되어 체포되었다가 9월에 출국. "나의 애인". "우리의 친구", "처" 등의 단편소설을 발표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음. 1934년 8월, 왕레이찌아와 결혼. "남국의 밤", "산협에서" 등의 단편 을 발표. 1935년 청도에 감. 첫번째 단편소설집 "남국의 밤"를 상해 양우도서공사에서 출판, 첫번째 산문집 "표박잡기"를 상해 생활서에서 출판. 단편소설집 "남행기"를 상해 문화생활출판사에서 출판. 1936년 4월, 단편소설집 "산중물가"를 상해 천마서점에서 출판. 첫 번째 중편소설 "어떤 학교기록"을 "문학"(6권 4기)에 발표. 6월, 중국문예가협회에 가입. 10월, 루쉰 선생 추도대회에 참가. 1937년 1월, 중편소설 "봄"을 상해 양우도서공사에서 출판. 6월, 중편소설집 "파초곡"을 상해 상무인서관에서 출판. 1939년 단편소설집 "도황"과 단편집 "맹아"를 계림문화생활출판사에서 출간. 1941년 "문학수책"을 계림문화공응사에서 출판. 1942년 단편소설집 "황혼"을 계림문헌출판사에서 출판. 단편소설집 "추수"를 중경 독서출판사에서 출판. 1943년 5월, 단편소설집 "겨울밤"을 계림삼호도서사에서 출판. 11월, 산문집 "미얀마의 경치"를 계림문학서사에서 출판. 1945년 8월, 단편소설집 "단련"출판. 9월, 중편소설집 "강상행"을 중경 신군출판사에서 출판. 11월, 단편소설집 "소녀의 고사"를 중경 건국서점에서 출판. 1946년 부친 사망. 중편소설 "향수", 장편소설 "고향" 출간. 1947년 단편소설집 "아이우 창작집"을 신신출판사에서 출간. 1948년 5월, 자전체소설 "나의 청년시대"를 출간. 7월, 단편소설집 "안개"를 출간. 10월, 중경대학 중문과 교수로 임명됨. 1950년 6월, 중경시인민정부위원 중경대학 중문과 주임. 중경시문련주위회 부주임. 1951년 3월, 서남군정위원회교위원회 위원. 4월, 중편소설 "향수" 중판. 1953년 11월, "아이우 단편소설집"을 출판. 1954년 사천에서 제1회 전국인민대표대회 개최. 1958년 "아이우 중편소설집"을 출판. 6월, 장편소설 "백번 달궈진 쇠", 단편소설집 "밤의 귀가"를 출판. 1959년 2월, "아이우 선집"을 출판. 6월, 산문집 "유럽여행기"를 출판. 10월, 문예논문집 "물보라집"을 출판. 1960년 폐결핵으로 북경에서 요양. 1963년 11월, 단편소설집 "남행기"를 작가출판사에서 출판. 1964년 9월, 단편소설집 "남행기 속판"을 작가출판사에서 출판. 1968년 4월, 30년대의 작가란 죄명으로 학습반에 붙잡혀 그후 4년 동안 성도의 소각사 임시감옥소에 갇힘. 1977년 북간된 "사헌문예"의 고문이 됨. 1월, "아이우 단편소설선" 중판. 1979년 7월, 장편소설 "풍요한 들판"을 출판. 1980년 11월, 중경지구 중국항전문예연구학회에 사딩과 함께 명예 회장으로 피선. 1981년 "아이우 근작"을 사천 인민출판사에서 출판. 6월, "아이우 소설선"을 호남 인민출판사에서 출판. 인생철학의 한 수업 아이우 1. 짚신을 팔다 어려움을 만나다 곤명이라는 도시는 황금빛 석양에 뒤덮이고 연이어진 산봉우리로 에워싸인 평원 가운데 자리하여 마치 쓸쓸한 미소를 띠고 있는 듯하였다. 나는 오른손에 조그만 보따리를 들고, 석양의 황금빛으로 빛나는 서쪽 거리를 망연히 배회하고 있었다. 이때는 바야흐로 1925년 가을로, 내게는 잔혹한 이역 땅에서의 가을이었다. 전날 저녁 산속의 인가에서 묵느라 돈을 다 써버려 지금 내 수중에는 한푼도 없지만, 여하튼 오늘 저녁 숙박할 곳을 찾아야 했다. 어디서라도 이 밤을 지새우기만 하면 되지 그 결과가 어떻게 될는지 현재로서는 잠시 동안만이라도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점포 앞에서 차를 파고 있는 매우 누추한 여관으로 나는 태연자약하게 걸어 들어갔다. 보따리를 계산대 위에 걸쳐 놓자 약사 빠른 눈빛을 번쩍이는 종업원이 시골 사람을 얕보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작고 어두컴컴한 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방안에는 단지 침상 하나만 놓여 있었고, 침상 위에는 어떤 사람이 지저분한 이불을 덮고 대낮부터 자고 있었는데 이불 바깥으로 매우 짧은 머리카락만이 보일 뿐이었다. 종업원이 큰 소리로 "여보세요!"라고 부르자, 누렇게 색이 바랜 더러운 이불이 몇 차례 꿈틀거리더니 뾰족한 턱을 가진 누런 얼굴이 이불 밖으로 나왔다. 그는 눈곱이 끼고 충혈된 눈을 뜨면서 짜증스러운 눈초리로 종업원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곧 내게로 눈빛을 옮겼다. "당신 둘이서 함께 자요!" 종업원은 관례적인 명령을 던지고는 돌아갔다. 잠자던 사람은 "으응."하는 소리를 내고 전과 다름없이 침상에 쓰러지더니 뾰족한 턱을 이불 안으로 감추었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침상 옆에 앉았다. 생면부지의 낯선 사람과 함께 자는 것은 내게는 결코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운남 동부의 산속을 유랑할 때, 며칠 저녁을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발냄새를 맡으며 잠잔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익숙해져서 놀라지는 않았다. 방안은 처음에 들어왔을 때보다 다소 밝아졌다. 연기에 그을려 누렇게 된 벽면은 이 방에서 묵고 간 나그네들이 목탄으로 비뚤비뚤하게 쓴 글귀로 가득 차 있었다. '집을 나간 사람은 아직도 가솔을 인솔하지 못하고...' 이러한 유형의 시구들이 매우 많았다. 그러나 나는 하루 종일 밥을 먹지 못하여, 배부르게 밥 먹은 사람들이 지어낸 이러한 시구들을 한가하고 안일한 심정으로 칭찬할 겨를이 없었다. 나는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먹을 것을 찾아야 했으나 어떻게 구해야 될지 막막하여 본능적으로 찾아 나가야만 했다. 나는 마치 전선에서 퇴각한 병사처럼 시큰거리며 통증이 느껴지는 다리를 이끌고 이리저리 거리를 어지럽게 돌아다녔다. 식당에서 요리하는 소리와 길거리로 번지는 짙은 냄새가 나의 혀끝을 자극하였고, 나는 어느새 위아래 입술을 기민하게 핥고 있었다. 비록 나는 쇠고기와 돼지고기가 걸려 있는 푸줏간을 보지 않겠다고 일찍부터 다짐해 왔지만 말이다. 이 당시 나의 욕망은 결코 크지 않아서 구운 빵 3개 혹은 한 더미의 마른 잠두콩을 먹을 수 있었으면 하는 정도였다. 나는 길가를 따라 점원들이 바쁘게 빵을 만들고 있는 상점과 할머니가 늙은 매처럼 졸린 듯한 눈빛으로 음식을 지키고 있는 노점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입에서는 끊임없이 군침이 돌아 이를 꿀꺽 삼켜야 했다. 거지가 세 입만에 구운 빵 하나를 먹어 치웠다는 이야기가 번개처럼 나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형편없이 남루한 거지가 몹시 배가 고파 구운 빵을 파는 노점으로 뛰어가 차갑고 딱딱한 빵 두세 개를 훔쳐 큰 입에 얼른 물고 도망치며 필사적으로 삼켰는데, 주인장이 밀방망이를 들고 씩씩거리며 잡으러 왔을 때에는 이미 세 입만에 빵 하나를 다 먹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내 마음속에 서로 다른 두 목소리를 불러일으켰다. 하나는 조롱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너는 구운 빵 한 개를 세 입만에 먹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니?' 또 다른 하나는 처량한 목소리였다. '아니, 내겐 그런 능력이 없어.' 그러자 조롱하는 듯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 왔다. '없다고? 그럼 굶어 마땅하지!' 어떤 남자가 밥만 먹고 식대를 지불하지 않자 그 식당 주인이 벌로서 그에게 나무걸상을 머리에 인 채 길거리로 나오게 하여 사람들에게 구경시켰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 일은 아마 성도에서 일어났을 것이다. 곤명의 주인들이 공짜로 먹으려는 손님에게 어떠한 수단을 사용할지는 모르겠지만 결코 쉽게 놓아 줄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이따금 뱃속에서 꾸룩꾸룩 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이 소리는 사실 나를 협박하는 소리와도 같았다. 머릿속에서는 다음과 같은 생각들이 어지러이 떠돌고 있었다. 매우 기세 당당한 표정을 지으며 팔자 걸음으로 식당 안으로 들어가서 가장 좋은 상석을 골라 앉는다. 약간 콧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옆에서 시중들며 대기하고 있는 점원을 불러 비육탕 큰 것 한 그릇, 마른 쇠고기 큰 것 한 대접, 고추장 한 접시를 주문한다. 편안하게 배불리 먹는다. 그러나 식사를 마친 후의 엄중한 처벌은 틀림없이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나는 팔 만한 물건이 있는지 찾아볼 수밖에 없었다. 물건 파는 일은 내게는 매우 생소했고, 보따리는 벌써 계산대에 맡겨져 있어 주인 앞에서 팔 만한 물건을 골라 가져오는 것은 적절치 못한 일이라고 여겨졌지만, 오늘 저녁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방법을 찾아내야만 했다. 하지만 팔 만한 물건은 몸에 걸치고 있는 옅은 남색의 무명 적삼이 고작이었다. 이 밖에 보따리 안에는 바지가 있었지만 모두 더러웠고, 개중에는 이미 한두 개의 단추가 떨어져 있는 것도 있었다. 할머니에게 신발 밑창을 때워 주고, 아기의 기저귀를 만드는 일쯤이야 할 수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이렇게 낡은 옷가지를 파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게다가 가지고 있던 두세 권의 책은 가장자리가 모두 말아 올려져 있었고 또한 매우 낡아 있었다. 그러므로 헌 책방의 주인이 책들을 보면 필요하지 않다고 손을 내젓게 될 것은 뻔한 일이었다. 결과적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은 모두 한 푼의 동전으로도 바꿀 수 없는 것들이었다. 쉬지 않고 걸으며 생각하느라 내 머리는 완전히 혼미해졌다. 진두하와도 같이 흐리던 하늘이 점점 짙은 남색으로 변하면서 도시의 큰 거리들이 모두 휘황찬란한 새옷으로 갈아입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여관으로 돌아왔다. 내가 돌아왔을 때, 그 집사람들은 밥을 먹고 있었다. 나는 급히 불빛을 등지고 서서 몇 모금의 군침을 삼켰다. 나는 몇 가지 핑계를 대고 보따리를 받아서 방안으로 가지고 들어와 펼쳐 보았다. 나와 함께 잘 누런 얼굴의 턱이 긴 사나이는 벌써 바깥으로 나간 것 같았다. 보따리 안에는 매우 가는 끈으로 엮어 만든 새 짚신이 한 켤레 있었다. 나는 성도에서 곤명까지 한 달여 간의 산행길을 맨발로 걸어왔다. 왜냐하면 헝겊신은 매우 쉽게 떨어지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타산이 맞지 않았고, 짚신은 소통에서 싼 맛에 한 켤레를 샀으나 발바닥에 상처를 주어 보따리 안에 넣어둔 채 이삼천 리 길을 그냥 맨발로 걸어온 것이다. 이 물건은 당시에는 가지고 다니든 버리든 별상관이 없는 것이었으나, 지금은 이렇듯 생각지도 않게 내게 있어 적지 않은 재산으로 변하게 된 것이다. 사거리 길 어귀로 가지고 나가 팔 것을 생각하니, 어느새 마음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짚신을 바짓가랑이에 집어 넣고 의기양양하게, 그러면서도 도둑처럼 조심스럽게 여관 바깥으로 나왔다. 가로등 불빛이 비추지 않는 곳에서 순경의 그림자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얼른 바짓가랑이에서 물건을 꺼냈다. 상인처럼 성실한 모습을 드러내 보이면서 물건을 불빛 찬란한 거리로 가지고 가서 고객을 찾았다. 곧 이어, 어떠한 어휘를 선택해야만 내가 사람들에게 필사적으로 팔려고 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면서 가격도 손해보지 않는 선에서 팔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것은 사실상 매우 일반적인 원칙이다. 물건이 상인의 점포 안에 있을 때에는 보배와 같이 비싸도 전혀 에누리가 없으나, 당신과 내 수중으로 들어와서 판매될 때에는 비록 당신이 결코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가격은 관례에 따라 절반가격으로 떨어진다. 이 짚신이 내 수중에서 나와 거리에서 판매될 때, 본전보다 밑지게 팔린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자연스럽게 형성된 이러한 원칙에 따를 수 없는 상황이어서 다소 약사 빠른 행위를 해야 했고, 심지어 거짓 행위도 서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생존해 나가기 위해서라면, 만약 굶어 죽게 될 상황에 처해 있다면 도둑질도 불가피한 것이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는 각 방면에서 본래의 천성을 드러내는 호인들을 근본적으로 수용할 수 없다. 진실된 호인들이 생활할 수 있다면, 그것은 반드시 별개의 신천지일 것이다. 만약 내가 여관에 들어서자마자 주인에게, 지금 나는 매우 배고프며 숙박비를 조금도 지불할 수 없는 형편이라고 솔직히 밝히면, 당장 쫓겨나 거리에서 자다가 순경의 방망이 세례를 받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생존의 원칙에 근거하여, 나는 조그만 노점 옆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인력거 인부를 불러서 그에게 짚신을 보여 주었다. "아저씨, 짚신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소통에서 가져온 것인데 아주 새것입니다. 보시고 한 켤레 사시죠!" 인력거 인부가 짚신을 받아 들고 조그만 노점 옆에 있는 콜다르 등불 아래서 이곳 저곳을 살폈다. 나는 뒷짐지고 매우 경험 있는 주인장같이 그새 모여든 사람들의 표정을 관찰했다. 어떤 사람이 관심이 있는 듯 말했다. "이거 너무 비싼대!" 그러자 턱수염이 난 사람이 옆에서 거들었다. "오래 신을 수도 없을 것 같은데!" 또 다른 이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마로 만든 짚신이 좋지!" 이렇게 평이 좋지 않자 나는 다소 조급해졌다. 그때 땅콩과 잠두콩을 팔고 있는 상인이 나에게 가격을 물었다. "한 켤레에 얼마죠?" 나는 정말로 몇백 켤레를 팔아 본 것처럼 되물었다. "몇 켤레 사시려고요? 많이 사신다면 좀 싸게 해 드리죠. 한 켤레만 사신다면 400문에 가져가세요!" 나는 원래 이 가격에 샀던 것이다. 본래 생각으로 가격을 좀 높이 부르려 했으나 안 되었다. 그것은 마음이 모질지 못한 탓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이렇게 좋은 고객을 놓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음, 좀더 보태면 헝겊신 한 켤레를 충분히 살 수 있는 가격인데요! 세상에 이렇게 비싼 물건이 어디 있어요?" 그 상인은 물건을 보지 않겠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그의 눈을 노점으로 돌려서 쌓여 있는 땅콩과 잠두콩 더미를 세는 듯하였다. 나는 짚신을 들고 그에게 보여 주며 말했다. "보세요, 이것은 소통에서 가져온 짚신이에요!" 사실 나는 소통 짚신이 곤명의 것과 특별히 어떻게 다른지도 전혀 알지 못하면서 전문가나 되는 양 가장하며 말했다. "당신이 이것을 어디서 가지고 왔든, 짚신은 여전히 짚신일 뿐이지 달걀이 닭이 되는 것처럼 변하는 건 아니잖습니까?" 상인은 입을 약간 비쭉거리며 비꼬는 투로 말했다. 나는 얼굴을 붉힌 채 격하게 화를 내며 짚신을 들고 걸어갔다. "200문에 내게 넘기는 게 어때요?" 그가 갑자기 나에게 새로운 가격을 제시했다. "300문! 그 이하는 안 돼요!" 나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고, 발걸음은 다소 늦춰졌다. "조금 보태고, 조금 깎아서 250문!" 인력거 인부가 흥정을 조종했다. "그래요. 저 사람이 부른 가격에 합시다!" 상인이 큰 소리로 나를 불러서 나는 발길을 멈췄다. "300문에서 조금도 깎을 수 없습니다." 나는 내가 제시한 가격을 고수했다. "됐어요. 필요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다른 곳으로 가서 고객들을 찾았다. 인력거 인부. 지게꾼. 상인. 점원... 나는 축성기처럼 같은 말을 계속 반복했다. "자, 짚신입니다! 질이 좋은 짚신입니다. 많이 사시면 싸게 드립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매우 형편없었다. 그들은 160문으로 에누리하거나 180문으로 값을 깎으려 하였다. 마치 내가 짚신을 팔아야만 밥을 사 먹을 수 있는 비참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간파한 것 같았다. 나는 좋은 방법이 없어서 땅콩과 잠두콩을 파는 상인을 다시 찾아가서 250문의 가격에 팔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무관심한 표정으로 코를 킁킁거리며 나를 대하였다. 아마도 내가 방금 전에 썼던 가면이 이미 궁핍한 표정으로 인하여 벗겨져 버린 것 같았다. 이 때문에 그는 더욱 거드름을 피웠다. 결국에 그는 '음' 하고 소리를 내고는 이렇게 말했다. "필요 없어요! 이 짚신은 튼튼하지 못한 것 같아요!" 이것은 실로 커다란 장벽에 꽝 하고 부딪친 것 같아, 나는 얼른 몸을 돌려 다른 곳으로 가려 했다. "좋아요! 200문, 200문에 사지요!" 그가 또다시 이렇게 나를 붙잡았다. 이 가격은 실제로 180문보다 20문 많은 것으로, 이 20문의 가치는 이 당시 내게 있어서 엄청나게 큰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곧장 그에게 팔았다. 진한 홍갈색의 동전(1개의 가치는 20문)이 그의 손으로부터 하나씩 하나씩 떨어져 모두 열 개가 나의 손바닥 위에 놓여졌다. 나는 매우 조심스럽게 동전을 하나씩 하나씩 계단 위에 던져 보며 위조 동전인지 아닌지를 확인했다. 이러한 행동은 물건을 판매하는 상인에게서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것이었지만, 나로선 이미 이러한 일들에 전혀 개의할 바가 아니었다. 이와 동시에 곁에 있던 인력거 인부가 내게 말했다. "와! 한 켤레에 200문이면 나도 사고 싶은데, 가서 몇 켤레 더 가져와요." "안 팔아요. 안 팔아!" 나는 다소 화가 났으나, 얼마 안 가서 곧 풀어졌다. 마치 주머니 안에 열 개의 은화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가슴이 뿌듯했기 때문이다. 나는 빵집에 들어가 열 개의 동전을 왼손에 쥐고, 오른손을 뻗어 비교적 큰 빵을 들고 가격을 물었다. 밀가루 포대를 앞치마로 두르고 있는 점원이 대답했다. "구운 빵 한 개에 동전 하나예요!" 나는 20문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동전을 사용하면, 당연히 빵 두 개를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하였다. 댕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동전 한 개를 내려놓고는 두 개의 노르스름하고 뜨거운 구운 빵을 들고 방향을 바꿔 걸어가려는데 점원이 나를 불러 세웠다. "여보세요, 동전 하나 더 내셔야죠!" "뭐라고요? 당신이 말한 동전은 10문짜리 동전을 말하는 게 아닌가요?" 나는 이상하다는 듯이 물어 보았다. "이 도시에는 10문짜리 동전은 없어요!" 점원의 목소리는 이미 낮아졌고, 내가 이방인임을 알아차린 듯한 태도였다. 동전 하나를 더 주고 난 후에 나는 현재 지니고 있는 재산에 대해서 방금 전처럼 그렇게 낙관할 수는 없었다. 나는 불빛이 희미한 계단 위에 앉아서 매우 급하게 구운 빵을 먹었다. 곤명의 서늘한 초가을 기운이 밤의 날개에 띄워져 내 눈썹꼬리를 스치고 있었다. 첫번째 빵은 내 자신도 어떻게 먹어 치웠는지 모를 정도로 순식간에 없어졌다. 두 번째 빵은 천천히 씹었다. 한 입 물고, 빵에서 나오는 뜨거운 향기를 맡았다. 씹을수록 단맛이 났다. 다 먹고 난 후에 더 먹고 싶은 충동이 생겼으나 참아야 한다고 다짐했다. 인색한 늙은이가 방랑하는 아들에게 경고하듯이 말했다. 그러나 결국 참지 못하고 나중에 다른 가게에 가서 한 개 더 사먹었다. 전 재산에서 십분의 삼을 소비했지만, 배가 여전히 부르지 않았다. 하지만 원기는 회복되었다. 원기를 되찾은 나는 밤도시의 심장부로 들어가 이방의 신선한 분위기를 음미하며 혀를 내밀어 입술 가에 묻어 있는 빵가루를 핥아 먹었다. 대동맥과 같은 진월선 철도는 끊임없이 프랑스 피와 영국 피를 주사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원래는 촌색시 같던 낙후된 도시를 용모가 매우 아름다운 최신식 아가씨로 꾸며 놓고 있었다. 그녀의 태중에는 현재 서로 다른 태아가 자라고 있었다. 서양 상품점에는 고기완자가 즐비했고, 인력거 위에 걸린 방울이 땡그랑 땡그랑 소리를 내며 매일 저녁 환락을 찾아 화강석으로 포장된 거리 위를 질주해 갔다. 그런 반면, 휘황찬란한 주점과 붐비는 식당에 배고픔의 눈빛을 던지는 사람들을 길거리와 골목어귀 어디서나 마주칠 수 있었다. 빵을 파는 검은 옷차림의 안남 사람은 양빠빠의 운남 말투를 지껄이며 쓸쓸히 인파 속으로 걸어갔다. 어디선가 번개처럼 나타났던 이 사람은 또다시 어디론지 사라졌다. 나는 내 전재산인 일곱 개의 동전을 손에 쥐고, 이만하면 불행할 것 없다는 듯이 여기저기 쏘다녔다. 밤이 깊어서야 여관으로 돌아왔다. 나와 함께 잘 사람은 조용히 침상 곁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는 내게 부드러운 눈빛을 던지며, 담배 한 개비를 정중히 건넸다. 담배를 건네던 그의 손목에 까맣고 붉은 반점이 빽빽이 나 있는 걸 보고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이고! 옴에 걸린 사람과 함께 자게 되었으니 이를 어쩌나!' 마음속에서 터져 나온 이 소리는, 다행히 입술에서 멈췄다. 나는 담배를 공손히 거절하며 되돌려 주었다. 그가 몸을 긁을 때면 내 온몸의 살갗도 갑자기 근질근질해졌다. 나는 하는 수없이 주인을 찾아가 방을 바꿔 줄 것을 요구했으나, 그는 나를 흘겨보며 한 마디로 거절하였다. 나와 같은 방을 쓰게 된 그 사람은 밤새도록 쉬지 않고 다리, 등, 배, 발바닥 등을 긁었다. 나는 증오와 두려움에 싸여 불편한 초가을의 밤을 지냈다. 2. 인력거 끄는 일마저 안 되다 인력거 가게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일부러 허리를 똑바로 폈다. 왜냐하면 인력거 주인이 보는 앞에서 병약하지 않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에게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려 내 두 다리를 보여 주기만 하면 그가 충분히 만족해할 거라고 나는 확신했다. 학교 다닐 때 나는 축구를 좋아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거의 2개월 동안 산길을 걸어다녔기에, 나의 두 다리는 매우 튼튼하던 터였다. 나는 중국의 전통적인 모자를 쓰고 있는 지배인에게 다가가 완곡한 어투로 찾아온 경위를 설명하였다. 그리고 나서 한 가지 질문을 다급하게 던졌다. "이런 몸으로 인력거를 끌어도 되겠습니까?" "안 될 것 있나요! 인력거를 끌기에 아주 적격일 것 같은데요!" 그는 코 막힌 소리로 대답하였다. 그리고 콜록콜록 기침하며 가래침을 뱉고 나서 이렇게 덧붙였다. "열다섯 살 먹은 아이들부터 쉰 살 넘은 노인들까지 모두 거리에서 인력거를 끌고 다니죠!" 처음에 나는 병약한 인상을 풍기는 얼굴 때문에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걱정하였다. 만약 그가 사시눈처럼 흘겨보며 안 된다고 한다면 때를 놓치지 않고 손으로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린 후, 내 두 다리를 그에게 보여 주며 끝까지 우격다짐을 하려 하였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이런 결과로 내 마음은 매우 기뻤다. "당신은 이곳의 지리를 잘 알고 있습니까? 이건 매우..." 그는 얼굴을 붉히며 기침을 몇 번 한 뒤에 말을 이었다. "매우 중요한 것이죠!" 이것은 내게 어려운 질문이었고 대답하기에도 신경이 쓰이는 문제였다. 나는 잠시 주저하다가 용기를 내서 대답했다. "저는... 거리를 ... 매우 잘 알고 있어요." "정말이에요?" 나의 대답이 거의 가까스로 나온 것처럼 보였기에, 자연히 의심이 갔던 모양이다. "지리도 잘 알지 못하면서 어떻게 감히 인력거를 끌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배고픔의 위험은 내게 계속해서 용감해지라고 다그쳤다. "아, 그렇죠! 됐어요!" 그는 장부와 같이 큰 책과 펜을 꺼내더니 그에게 알려 준 내 이름, 연령, 본적지를 전부 기록했다. 곧 이어 그는 매우 교활한 눈빛을 발하며 정중하게 말했다. "인력거 하루 임대료는 1원이에요!" 코를 풀고 나서, 그는 양손가락에 묻은 미끈미끈한 것을 느긋하게 자신이 앉아 있는 의자 밑에다 문지르고 말을 이었다. "많은 거리를 뛰면 그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어 올 수 있으니 별로 큰 문제는 아닐 겁니다. 아! 그리고 손님이 당신에게 삯을 지불할 때 그가 충분히 주든 그렇지 않든 손을 내밀면서 '선생님, 좀더 보태 주시죠!'라고 말해야 합니다. 내가 지금 당신에게 알려 준 것이 돈 버는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인력거 임대료를 좀 깎아 주시죠." 하루에 1원이라는 임대료는 확실히 나를 놀라게 했다. "이것은 일정한 규칙이기 때문에 당신이 끌 수 없다면 어쩔 수 없군요." "좋아요. 내가 끌죠! 내가 끌죠!" 막다른 골목으로 몰린 나는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서 현재의 부당함과 억울함을 당분간 상관치 않기로 했다. "아, 그리고 누가 당신을 보증하죠? 보증 서 줄 상점은 어디죠?" 그는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처럼 의기양양하게 질문하였다. "어, 내게는 보증 서 줄 만한 상점 명의의 보증인이 없는데요!" 나는 약간 놀랐다. "흥, 상점 보증인도 없이 인력거를 끌려 왔어요? 이봐요, 어떻게 알아보지도 않고 왔죠?" "사실은 상점 보증인을 찾을 수 없었고, 다른 방도도 없어서..." 나는 궁색하게 대답했다. "뭐라고요? 다시 한 번 말해 봐요. 상점 보증인을 찾을 수 없었다고?" 그는 갑자기 눈을 크게 뜨며 매우 이상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는데, 아마도 나를 강도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는 얼굴을 붉히면서 기침을 하더니 손을 내저으며 큰 소리로 말했다. "꺼져요! 꺼져!" 나는 천천히 그곳에서 물러 나왔다. 문 밖에는 초가을 아침 햇살이 나의 기죽은 얼굴을 감쌌다. 거리에선 왁자지껄한 소리가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 아래에 시끄럽게 퍼지고 있었으나, 나의 마음속에선 형언할 수 없는 미묘한 적막이 움츠리며 잠을 자고 있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보니 어제 쓰고 남은 동전 일곱 개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는 방금 전에 코 막힌 목소리가 내게 안겨다 준 비관을 다소 사라지게 하였다. 단지 석탄이 조금 더 보태진다면, 나라는 이 열차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온종일 뛰어다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여러 군데 일자리를 알아보러 다니다가 어쨌든 한 자리를 얻는다면, 나는 이와 같이 위축되지는 않을 것이다. 비록 목적지 없이 이 골목 저 골목을 헤매고 있으나, 나의 눈은 부지불식간에 일자리를 구하는 데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이 당시 나의 형편은 일자리를 선택할 처지가 아니었다. 단지 몸을 의탁할 수 있고, 나의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임금이 있든 없든 상관치 않고 해야만 했다. 본래 나는 성도에서 공부할 생각이었는데 사정이 생겨 계속해서 진학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매일 여가 시간을 이용하여 공부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으려고 계획을 세우고 중국 대도시를 유랑했으나, 계획은 완전히 물거품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우마처럼 일할 자리조차 찾지 못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나의 굳센 의지를 빼앗아 갈 수 없었다. 오히려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반드시 결연한 투쟁의지를 견지해야 한다는 생각이 내 기억의 신경마다 뚜렷이 새겨졌다. 성황묘가로 가서 나는 이전에 성도에서 행하던 습관대로 책방에 들어가 선반 위에 놓여 있는 새 책을 뒤적이며 반시간 정도를 소모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 당시의 내 모습은 스스로 느끼기에도 매우 창피했다. 그것은 서점 안으로 들어가 버렸기 때문이었다. 지금 내가 서점 안으로 들어간다면, 나의 손과 발은 수많은 사람들의 눈에 의해 감시당하고 멸시의 대상이 될 것이다. 길거리에서 느린 걸음으로 배회하다가, '통속신문열람사'라는 간판이 시장의 한 건물에 걸려 있는 것을 보고는 잠시 휴식도 취하고 동시에 나의 머리에 양식을 공급해 줘야겠다는 생각으로 더러운 옷에서 풍기는 나의 신분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길가에 임해 있는 조그만 건물을 열람실로 고친 실내에는 아무도 없었다. 열람실을 지키는 사람마저 바깥으로 나간 것 같았다. 단지 책상 위에는 잡지와 책, 그리고 신문들이 놓여 있을 뿐이었다. 창문에서 들어오는 햇빛이 열람실 내부를 밝은 미소로 가득 채웠다. 이렇게 안정되고 쾌적한 장소가 바로 나의 마음에 부합되며, 나의 방황하는 마음을 의탁할 수 있는 곳이었다. 내가 만약 이러한 열람실의 총무라면 얼마나 좋을까? 매일 일정한 업무라야 아마도 마루를 청소하고 책상과 의자를 닦고 잡지를 정리하며, 새 신문과 헌 신문을 잘 끼워 두는 것이겠지. 나는 이러한 일을 매우 조리 있고 질서 있게 처리하여 열람자들로부터는 칭찬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나머지 시간은 나도 열람자와 같이 자유스럽게 책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잡지의 표지와 제목을 보고, 그 내용이 어떤 것이든 상관치 않고 손가락으로 책장을 넘길 때, 내 마음은 잠시 동안 평화롭고 감미로운 꿈을 꿀 수 있을 것이다. 신문을 넘기다가 나는 화안 기계공장에서 견습공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곳의 위치는, 남문 밖 공장지대인데, 진월선 철도의 종점이기도 했다. 지금은 견습공으로 대우하다가 장래에는 기술자로 배양한다는 조항이 강하게 나를 유혹했다. 세부사항은 공장 사무처에서 문의하라고 적혀 있었는데, 신문광고에 게재된 사실들은 거의 모든 이점을 충분히 제시해 놓은 것 같았다. 이러한 한가닥의 생존 기회를 붙잡기 위해 거리명과 공장 이름을 기억해 두고 그곳으로 갔다. 상업지역에서 남문 밖의 공장지대까지는 불과 이삼 리 거리밖에 안 되었지만, 지리에 익숙하지 못한 탓에 나는 여러 사람에게 물어 가며 헛걸음을 많이 했다. 기계공장의 처마 밑에 이르렀을 때, 나의 그림자는 오그라들어 내 발 밑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공장에서는 방금 일을 끝마쳤는지 여전히 수위실 뒤에서 하얀 수증기가 검은 굴뚝 아래에 있는 연판 위에 흐릿하게 남 아 있었다. 기계공장 문 앞에는 '견습생 모집'이라는 광고가 붙어 있었는데, 일자리를 얻지 못한 사람은 들어와 일자리를 구해 보라는 내용이 눈에 띄었다. 윗면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씌어 있었다. '견습생으로 공장에 들어오면 숙식은 모두 공장에서 제공함.'이 구절은 나를 매우 만족시켰다. 그러나 견습기간이 3년 만기라는 조항은 나를 다소 난처하게 했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별 문제 아니다. 삼사 개월 혹을 일 년 반 정도 있다가 창문 틈으로 도망치면 되지. 또 다른 조항은 견습을 다 마친 후에는 반드시 공장을 위해 근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내용도 전혀 근심할 사항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견습기간이 끝나기 전에 나는 이미 먼 곳으로 도망가 있을 것이므로, 여러 가지 조건으로 나를 제한하고 착취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꿈에 불과하다. 한편으론 광고를 보고, 또 한편으론 곁눈으로 공장 안에 있는 두 사람--아마도 기사인 듯하였다--이 매우 즐겁게 밥과 술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목소리와 용모를 보아 그 두 사람은 안남 사람인 듯했다. 술 먹는 관례는 중국인에게 있어서 각 지방마다 매우 큰 차이가 있는데, 큰 술그릇을 수많은 요리 접시 중간에 두고 좌중에 있는 사람이 국숟가락을 사용해서 마시는 모습은 색다른 풍치를 풍겼다. 동시에 나의 식욕이 두말할 나위 없이 소동을 피웠다. 내가 견습공이 되면 틀림없이 배부르게 먹게 될 거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현재로선 군침만 삼킬 뿐이었다. 다시 계속해서 벽에 붙어 있는 내용을 주의 깊게 읽다가 또 다른 조항이 눈에 띄었는데, 반드시 확실한 상점 보증인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낮은 목소리로 연신 불평을 해댔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 큰 불평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 다음에 기재된 내용이 나를 완전히 기운 빠지게 했기 때문이다. 은화 32개라는 보증금이 필요하다니! 왜 광고에는 이러한 내용을 명시하지 않아 반나절이나 헛걸음하게 만들고, 소득 없이 땀만 흠뻑 쏟게 할까? 이 개 같은 공장주인 놈이 이 몸을 우롱하다니, 두 주먹으로 그놈을 개 패듯이 패고 싶었으나, 바로 눈앞에 있는 더러운 벽 외에는 칠 만한 것이 없었다. 한바탕 호되게 두들겨야만 공중주인에게 대한 나의 분을 해소할 수 있을 것 같았으나, 현재로선 화려한 침상 위에 누워 흐뭇하게 아편이나 피웠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나는 배라는 놈의 짜증을 안고, 또다시 특별한 목적지도 없이 희망이 없는 곳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사람이 피곤하면 배고픔을 더 많이 느끼는 것 같았다. 동전 두 개로 먹을 것을 사서 대충 먹고 나자, 이 두 차례 당한 조그마한 좌절이 별것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나의 근육은 아직 먼지가 날리는 가운데 들개들에게 찢기고 개미들의 먹이가 되지 않았기에, 어쨌든 나는 발버둥치며 삶과 투쟁해 나가야 했다. 그러나 동전이 일곱 개에서 단지 다섯 개밖에 안 남았으니 매우 걱정스런 일이었다. 아무리 낙관하려 해도 동전 다섯 개는 동전 다섯 개 그 자체일 뿐, 더 줄어들 수는 있어도 늘어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오후에 가을의 태양빛이 내리쬐는 거리에서 나는 그림자를 이끌며 쉬지 않고 걸었다. 무의식중에 위급한 상황에 처한 사람을 도와 준다는 곳에 다다랐는데, 이곳의 문 입구에는 직업 소개소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다. 나는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 당시 나의 마음에는 어떠한 환경에도 대처하겠다는 결의가 세워져 있었다. 중년 나이의 한 직원이 고양이 새끼처럼 졸고 있다가 나의 발소리에 놀라 눈을 비비며 마음에 내키지 않는다는 듯이 내가 하는 말을 들었다. 나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글씨도 쓸 줄 알고 장부도 기록할 줄 압니다.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심부름도 하고, 물도 길어 주고, 청소도 하고 뭐든지 다하겠습니다. 선생님, 솔직히 말하면 저는 어떤 일이라도 다 할 줄 압니다." 그는 하품을 한 번 크게 한 후, 주름진 눈으로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더니 두꺼운 책 한 권을 꺼내 두 손가락에 침을 묻혀 한 페이지 한 페이지씩 뒤적이다가 갑자기 어떤 영감이 떠올랐는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요리할 줄 알아요?" "할 수 있습니다. 예, 할 수 있어요." 나는 두말할 것 없이 쾌히 승락했다. 운남 동부의 산에 있는 여관은 다른 곳과는 달리 매우 특이하였다. 쌀은 팔지만 밥은 팔지 않았기 때문에 여정에 지쳐 있을지라도 손님 자신이 밥과 반찬을 해 먹어야 했다. 이리하여 요리사의 재능은 어느 정도의 모양새는 있었으나 숙련되지 못하였고, 솜씨 또한 완벽하지 못하였다. 이 당시 내가 대담하고 당돌하게 할 수 있다고 한 것은 전적으로 절박한 기아에 쫓기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별다른 말은 하지 않고 관례대로 나의 이름, 생년월일, 그리고 상점 보증인을 자연스럽게 물었다. 이 질문에 대해 나는 이미 말할 준비를 해놓고 매우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위치는 남문 밖 광마가이고, 상점 보증인의 상호명은 덕성륭입니다." "주인의 성은 무엇이죠?" 그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물었다. "성은 짱이고, 이름은 훙파입니다." 나는 얼른 대답했으나, 마음속에서는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그는 글씨를 다 쓰고 난 후에 글씨가 인쇄되어 있는 종이 한 장을 내게 건네주며 말했다. "보증인 도장을 여기에 찍어 오면 됩니다." 나는 그 종이를 받아 들고 언제부터 출근하면 되냐고 물어 보았다. "그런데 진짜 요리할 줄 알아요? 이봐요, 가서 망신당하지 말고 솔직히 말해요. 잘못하면 소개한 사람도 난처하게 되니까." 그는 두 손가락으로 듬성듬성 나 있는 머리를 가려운 듯이 긁으며 무슨 생각을 떠오르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떻게 요리도 할 줄 모르면서 요리한다고 감히 나서겠습니까?" 나의 태도는 매우 결연했으나 마음속에서 이는 두려움을 피할 수는 없었다. "이 일자리는 루어씨 집 사택에서 부탁한 것이에요!" 그는 나를 쏘아보며 말하였다. "임금은 매우 많은 편이지요. 대신 닭과 오리는 반드시 구울 줄 알아야 합니다. 또 그 집 주인과 부인이 제비집 요리와 상어지느러미 요리를 즐겨 드시니 이 요리도 할 줄 알아야 하구요. 내가 볼 때 당신네 요리사들은 매우 즐거워하며 이런 요리들을 만드는 것 같더군요. 솔직히 나는 당신이 젊은 청년이라서 굽고 지지고 볶는 경험이 많지 않아,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을 만들어 내지는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그는 또다시 머리를 긁고 나서 천천히 말했다. "또 몇 가지 어려운 점도 있고 해서, 많은 요리사들이 며칠 동안 일하다가 모두 다 그만뒀죠. 루어씨 댁의 주인, 부인, 큰도련님, 큰며느리 모두 저녁부터 심야까지 아편을 피운 후 두세 시 경에 당신을 깨워서 밤참을 만들어 오라고 할 거예요. 조금만 부지런하면 되죠. 그러면 적지 않은 임금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한밤중에 다시 일어나 주인의 시중을 드는 일은 못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나는 매우 기분 나쁜 듯이 유창하게 허풍을 떨며 흉중에 있는 화를 다 쏟아냈다. "예전에 저는 수많은 식당에서 근무하며 무수히 많은 닭과 오리를 구웠지요. 그리고 제비집 요리와 상어지느러미 요리는 사실 내가 가장 자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요리입니다. 하지만 한밤중에 일어나 주인의 시중을 들어 본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음, 그럼 안 되겠군요!" 처음에 그는 내게 냉혹하게 심문하듯 말했으나, 지금은 오히려 나의 완고한 태도에 궁색해졌다. "돈 있는 사람을 잘 모시면, 자연히 어떤 이득이 생기게 될 겁니다. 어쩐지 당신이 이렇게 훌륭한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 전적으로 당시의 성격 탓인 것 같군요! 젊은이, 내 충고를 들어요." "그렇다면 전혀 방법이 없군요! 저는 원래 돈 좀 있다고 하는 사람을 잘 접대하지 못하거든요. 선생님, 다른 일자리는 없나요?" "당신이 요리사로 가지 않는다면, 다른 일자리는 없습니다. 당신은 지금 시골에 있는 젊은이들이 모두 도시로 몰려와서 길거리 어느 곳을 가더라도 쓸 만한 사람들을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 같군요. 이곳에도 매일 여러 사람들이 찾아와서 오전에는 매우 바쁘죠. 수많은 사람들이 이름만 말해 놓고 일거리를 기다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는 깊이 탄식하며 말을 이었다. "도시 어느 곳을 가더라도 수많은 일자리가 일할 사람을 기다리고 있어야 되는데!" "폐를 끼쳐 죄송합니다." 나는 풀이 죽은 상태로 그곳을 나왔다. 문 밖에는 저물어 가는 가을 바람에 실려온 먼지가 사람들 눈에 덮쳐와 불쾌감을 야기시켰다. 하루 종일 분주히 뛰어다녔지만 남은 건 실망과 배고픔뿐이었다. 나는 매우 화가 나서 계속해서 욕설을 내뱉은 후, 손에 들고 있던 도장 찍힌 종이를 갈기갈기 찢어 한 조각 한 조각씩 거리의 가을 바람에 날려 보냈다. 가을 바람이 부는 거리를 천천히 걸으며 나는 뼈에 사무치도록 느끼고 있었다. 이러한 세계는 어떻게 해서든지 반드시 변혁시켜야 한다고. 3. 신발을 다시 도둑맞다. 고향으로부터 삼천 리나 떨어져 있는 이 낯선 도시에서, 나는 버려진 쓰레기와 같은 처지였다. 하루 종일 굶주림을 벗삼으며 이 골목 저 골목을 쓸쓸히 돌아다녔다 내 마음에서는 슬픔이 사라졌고, 내 눈에서는 눈물마저 말라 버렸다. 다만 내 골수, 내 혈관, 내 세포에서는 살아야 한다는 생각만이 불타고 있었다. 이따금 배가 고파서 머리가 어지럽고, 온몸이 떨리며, 식은땀이 흐르던 그 순간에는 눈앞이 캄캄했다. 마치 처마에 달려 있는 약한 거미줄이 불어오는 바람에 곧 끊어지려는 모습과 같이 몽롱한 가운데 내 자신의 생명을 보게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적어도 내일까지는 버텨서 선명한 태양을 보고, 아름다운 가을 하늘을 보아야지 하는 생각도 강렬하게 떠올랐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먹을 음식도 찾지 못했으니, 굶주림으로 하여금 나의 근육을 잠식하도록 하고 나의 혈액을 빨아먹도록 하는 수밖에 없었으나, 그래도 이것은 아직 어느 단계까지는 생명을 버텨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가장 절실하고도 즉시 해결해야만 될 문제는 오늘 저녁에 가을 바람과 이슬을 피할 만한 장소를 찾는 일이었다. 아침에 여관에서 나와 저녁에 들어가니 여관 주인이 불쾌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종업원들도 조롱하며 비웃는 듯 기분 나쁜 목소리로 수군대고 있었다. 비록 이러한 일쯤이야 별것 아니라고 여길 정도로 얼굴이 두꺼워져 있었지만, 그래도 마음속에는 말할 수 없는 갖가지 억울함과 불평 불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같은 방을 쓰는 친구가 옴 때문에 밤에 잠을 못 이루고 있을 때, 나의 머릿속에는 정처없이 떠도는 수많은 환상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천년 전에 여관 주인으로부터 핍박받은 친슈빠오가 누런 바탕에 흰 점이 있는 말을 거리로 몰고 나와 팔 때의 비극적인 상황조차도 몹시 부럽게 느껴졌다. 말 한 필이 있어 팔 것을 생각하며 얼마나 기분 좋아했을까! 가령 옆방에 있는 사람이 호궁을 켜며 속요를 즐겁게 부르면 저도 모르게 마음이 쏠리어 낮은 소리로 노래했을 것이다. "주인장, 떠들지도 말고 욕하지도 말아요. 내가(누런 바탕에 흰 점이 있는)말을 끌고 오려 하니..." 그러나 부르면 부를수록 그 자신은 더욱 공허해지고, 그 마음은 깊은 비통함에 잠길 것이다. 여관에 투숙한 지 닷새째 되던 날 저녁에 나는 종업원의 안내를 받아 더 어둡고 더러운 방으로 가 나와 함께 잘 또 다른 낯선 사람에게 소개되었다. 그때 나는 종업원에게 며칠 동안 나와 함께 밤을 보냈던 그 사람에 대하여 물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비록 그의 온몸에 돋은 두꺼비와 같은 옴은 싫어했지만, 매우 친절하고 예의바른 그의 모습은 잊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숙박비가 없어 쫓아 버렸어요!" 종업원은 거칠고 투박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그 말투에는 위협과 섬뜩한 비웃음이 내포되어 있었다. 나는 몸서리치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단지 이와 같이 생각했다. '그가 가련한가 아니면 내가 가련한가?' 나도 얼마 안 있으면 길거리로 쫓겨날 거라는 사실쯤은 내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몸을 돌려 조금만 창 밖에 펼쳐진, 광막하고 냉혹한 곤명의 밤을 지켜보았다. 이 새로운 동반자는 침상에서 머리를 벽 쪽에 댄 채 자고 있었다. 어슴푸레한 불빛 아래라서 이 사람이 어떤 류의 사람인지는 알아볼 수 없었으나,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고향을 떠나 떠돌아 다니는 사람들이 같은 방에서 잔다고 해서 굳이 안면을 익힐 필요는 없다. 또 상세하게 관찰하고 질문할 필요도 없다.' 나는 단지 묵묵히 창가에 기댄 채 밝게 빛나는 별들이 박힌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거리로 내쫓긴 옛 동반자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지금쯤 어느 곳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지는 모르지만, 눈물을 머금은 채 자기 몸에 돋은 옴을 고통스럽게 긁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의 처지가 어떠한지 알 수 없었으나, 그가 이 야심한 밤에 한편으로는 가려운 데를 긁으면서 도 한편으로는 분개하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시골에서 살 수 없어 도시로 올라왔더니 뜻밖에 도시에서도 살 수 없구나." 이 당시 나의 마음은 쫓겨난 그 사람 때문에 슬퍼졌다. 마치 황혼녘인데도 밥짓는 연기라곤 한 줄기도 없고, 불타고 파괴된 건물만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고향 땅에서 이따금 한 무리의 오리떼들만이 소를 내며 먼 곳으로 날아가는 모습을 본 것처럼 말이다... "형씨, 그만 불 끄고 잡시다!" 침상에서 자고 있던 사람이 묵묵히 서 있기만 하던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 소리는 내 마음속의 환상을 깨뜨렸지만, 그 말투가 매우 부드럽고 친절하여 나는 아무 거리낌 없이 그에게 대꾸했다. "형씨도 일자리를 얻으려고 도시에 왔습니까?" "아니오. 나는 내일 다른 현으로 갈 겁니다." 그는 마치 내 질문을 받고 짜증난다는 듯이 딱딱한 말로 얼버무렸다. 내가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웠을 때, 그는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올해에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그에겐 위로의 말이 소용없었으며, 나 또한 위로의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한 마디의 말도 없이 조용히 누워 있었다. 가을밤의 어둠이 우리를 깊이 덮고 있었다. 발 냄새가 이따금씩 나의 콧속으로 파고들었다. 평상시 같았으면 나는 구토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날 밤에는 결코 혐오스럽다거나 증오스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단지 깊은 동정심으로 이 발 냄새가 의미하는, 분주히 뛰어다니며 수고한 것과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경험, 그리고 슬픈 실망 등을 떠올려 보았다. 이튿날 아침 9시경에 일어나 보니, 어제 저녁에 나와 같은 방에서 잔 사람과 나의 낡은 신발 한 켤레가 보이지 않았다. 신을 신발이 없게 되어 기분이 매우 언짢았으나, 신발을 훔쳐간 사람에 대해서는 결코 어떠한 원망이나 저주의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곧 떨어질 신발마저도 훔쳐갈 수밖에 없었던 그 사람의 가련한 처지가 오히려 나의 동정심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맨발을 보게 되자 결국엔 화가 불같이 났다. 나는 잔뜩 화가 난 채 씩씩거리며 계산대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 완강한 태도와 성난 목소리로 주인과 말다툼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오 일 동안 그가 내게 언짢게 대했던 것들을 전부 그에게 되돌려 주기라도 하듯이 앙갚음했다 나는 여관방 안에서 물건을 잃어버렸으므로 주인인 그가 반드시 책임져야만 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계속 말다툼을 했다. 결국 주인이 굴복했다. 그는 한 켤레의 중고 신발을 물어냈는데, 이 신발은 검은 색의 비로드로 만들어져 있어서 그런지 잃어버린 내 신발보다 훨씬 보기 좋았다. 주인은 내게 신발을 건네 줄 때, 매우 화가 난 듯이 눈을 부릅뜨며 경고했다. "오늘 밤 안으로 숙박료를 지불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할 정도로 화가 나 있었다. "좋습니다." 비록 나는 당당하게 대답했지만, 마음속에서는 내가 너무 지나치지 않았나 하고 후회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조만간에 여관에서 쫓겨날 것을 생각하니, 주인이 난처한 입장에 있을 때 좀더 정중하고 부드러운 태도를 취하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었지만 이미 소용없는 일이었다. 배상 받은 그 중고 신발은 확실히 예상 밖의 수확이었지만, 내가 신발을 신으려 할 때 이 신발이 내 발보다 작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는 내가 승리를 거둔 것으로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패한 꼴이 된 것이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 이 작은 신발이나마 신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이 도시에는 신발을 끌고 다니는 유랑 청년이 한 명 더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길을 걷는 나의 모습은 우스꽝스럽기까지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것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곧 숙박비를 계산했다. 여관을 나서면서 나는 오늘밤은 어디에서 가을 바람과 비를 피해야 할까 하고 걱정을 했다. 도시에 나는 생각했다 바로 이 사회가 나에게 발붙일 곳을 허락하지 않는다 해도 나는 강철같이 완강하게 생존해 나갈 것이라고. (1932년 겨울) 아이우의 작품 세계 이아우는 그의 소설선집 "자위"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1925년 가을, 나는 운남 고명의 길에서 떠돌아다니면서 인생 철학의 첫 수업에 들어갔는데 이것은 나에게 가장 잊기 어려운 한 수업이었으며, 어떤 대학에서도 배울 수 없는 한 수업이었다. 그러나 내가 이 수업을 글로 옮긴 것은 1931년 상해에서였다. 1925년 당시의 나로서는 문학이란 생각조차 할 수 없었고, 단지 살아갈 수 없는 사회에서 억지로 살아가려니 일, 독서, 공부 등 사회 자체가 하나의 대학이었던 것이다. 1931년 이전에는 유랑시기에 틈을 내서 신시와 소설을 써서 곤명의 문예지에 발표하였다. 야광에서 살 때에는 화교신문의 부간에 투고하여 한 시기를 살아왔다. 5.4운동으로 백화문학을 깊이 좋아하여 글을 쓸 수 없는 조건에서도 차마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시기는 나의 유랑생활 중 가장 잊기 어려운 한밤이요, 가장 즐거운 한밤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작가가 긴 유랑생활에서 하층 사회의 사람들과 교감 있는 교류와 이해를 더할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유랑생활을 주제로 한 단편소설집이 "남행기"이다. 작가는 이 작품의 후기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남행기"의 소설은 조국의 남방과 아시아 남부 유랑 시기에 직접 보고 들은 사람과 겪었던 일들을 1인칭 소설로 묘사했다." 이것은 작가의 남행에 관한 소설의 가장 뛰어난 예술특색이다. 이들 소설은 친절과 진실, 그리고 남을 감동시키는 것 등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인생철학의 한 수업"에서 '나'는 곤명 거리를 유랑하며 의식도 여의치 않고, 사방이 벽으로 막혀 있으며, 냉혹과 모욕을 당하고 고통과 괴로움을 맛보고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이러한 세상은 어떻든 간에 뒤집어 엎어야 한다." 또 "내 마음에는 비애가 없으며, 눈에는 눈물이 없다. 골수마다, 혈관마다, 세포마다, 모두 하나의 원시적인 단순한 상념이 불타고 있다. 나는 살아갈 것이다. ...적어도 나는 내일까지 지켜서서 선명한 태양과 해맑은 가을 하늘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렇게 작가는 소설에서 강인하고 열정적인 삶의 애착을 호소하고 있다. 이것이 이 소설이 지닌 남다른 특성이다. 사딩 작가 세계 1904년 음력 11월 13일 사천성 안현의 지주 가정에서 출생. 원명은 양쭈시. 1908년 부친 사망. 1922년 성도에서 사천 제1사범학교에 진학. 이때부터 5.4 신사조를 접촉하기 시작. 이 시기에 꾸머뤄가 번역한 일본의 경제학자 가와카미 하지메의 "사회조직과 사회혁명", 쉰따잉 번역의 "공산주의 ABC" 등 사회과학서적을 탐독하고 루쉰의 글에 심취. 1926년 사범학교 졸업 후에 북경대학에서 루쉰의 강의를 청강. 1927년 여름, 중국공산당에 가입. 1929년 봄, 상해로 가서 소설창작의 기초를 다짐. 좌익문학운동에 참여하고 상해 예대에서 루신과 샤옌의 강의를 들음. 1931년 외국에서 돌와온 아이우와 함께 소설창작을 공동연구. 루쉰에게 지도를 부탁하여 회신을 받음(이 편지는 루쉰이 "이심집" 속의 "소설제재에 관한 통신"에 있음). 1932년 단편소설집 "법률 밖의 향선"을 출간. 좌익작가연맹에 가입. 1933년 좌련상위회의 비서. 1936년 중국공산당에 다시 가입. 1937년 8.13 사태 이후에 청도로 돌아가서 중학교 교사. 1938년 쪼우리퍼의 "진찰기변방인상기"를 읽고 애인과 함께 연안으로 감. 마오쩌둥의 배려로 루쉰예술학원 문학계 주임대리를 맡음. 1939년 겨울, 중경으로 가서 문예계의 조직연계공작을 하면서 르포 문학집 "적후쇄기"를 쓰고, 이어서 장편소설 "도금기"를 구상. 1940년 겨울, "도금기"를 쓰고 있던 중 완남 사변이 일어나자 고향으로 피신. 이때부터 1949년까지 창작의 황금기를 맞아서 수많은 작품을 발표함. 1941년 가을, "도금기"를 완성(1943년 출간). 1945년 4월, 장편소설 "곤수기"를 출간. 6월, 중편소설 "틈관"을 출간. 9월, 단편집 "사랑"을 출간. 1946년 단편집 "파종자"와 "수도"를 출간. 1947년 단편집 "호호"를 출간. 1948년 7월, 장편소설 "환향기"를 출간. 8월, 단편집 "카차흐의 경치"를 출간. 1949년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로 선임. 1951년 9월, 단편집 "의사"를 출간. 1952년 겨울, 동독 방문. 1953년 12월, "사딩 단편소설집"을 출간. 1955년 사천성문련 창립. 1956년 3월, "노가수"를 출간. 1959년 3월, 단편집 "과도"를 출간. 1961년 "휴일", "너는 나를 따라 잡네"를 출간. 1963년 5월, 단편집 "조부의 고사"를 출간. 1978년 2월, 문화대혁명 때 숙청 당했다가 사천성 문련회원으로 복권되고 이어서 중국사회과학원 문학연구소 소장과 전국인민정치판상회의 제5회 전국위원회 위원에 임명됨. 11월, 중편 소설 "청풍파"를 출간. 1980년 7월, 중단편소설집 "연애집"을 출간. 1992년 12월 14일 89세를 일기로 사망. 어느 가을날 저녁에 사딩 가랑비가 내리고 어둠까지 깔리면서 가을날의 매서운 추위가 몰려오자 이 대산 지구의 시가지에는 이미 가을날의 활기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특히 향공소일대는 더욱 그랬다. 뒤로는 대산을 등지고 앞에는 또 물살이 세찬 강줄기가 놓여 있는 외진 곳이라서 평일에는 향공소의 대문이 닫히고 나면 사람의 그림자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평소에는 운동장으로, 장날이면 소상인들이 난전을 쭉 차려 놓아 장터가 되는 그곳에서 한두 식경 전만 해도 정말 한바탕 야단이 났었다. 왜냐하면 상당히 특이한 조리돌림이 있었는데, 그들이 자신들을 대신해서 이 적막하고 즐거움 없는 생활에 향료를 뿌려 주길 바라면서 시 전체에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두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만일 날씨가 급작스럽게 변하지만 않았다면 그들은 아마 흩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이곳에는 갈대로 얼키설키 엮어 놓은 초라하기 짝이 없는 움막 몇 채와 장날에 곱창이나 선지를 삶는 데 쓰이는 임시 화덕, 그리고 들개 한두 마리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 나머지는 바람 소리, 물 소리, 그리고 수인의 한기였다. 그래도 사람을 꼭 찾아내고 말겠다면 그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조금 전에 사람들에게 조리돌림을 당한 그 떠돌이 창녀가 있으니 말이다. 그녀의 이름은 샤오꾸이훤이다. 그녀가 오늘 오후 마을에 막 도착했을 때는 운수가 좋았다. 하지만 지금 그녀에게 있어 고통스러운 것은 이미 조금 전에 당한 그 뜻밖의 상황만은 아니었다. 그저 편안히 누워서 노작지근해진 온몸의 뼈마디를 좀 쉬고 싶을 뿐이었다. 하지만 재수 없게도, 땅바닥은 벌써 비 때문에 진흙탕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벌써 몇 시간 동안이나 줄곧 똑바로 앉아 있었기에 옷보따리와 바지가 일찌감치 젖어 들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아침나절에 50리 길을 달려오느라 아무것도 먹은 것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녀가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점심 무렵이었다. 그녀는 마을 어귀 강가에서 머리를 매만지고, 싸구려 분을 발랐다. 그리고 꽃이 새겨진 주단 치파오 한 벌과 빨강 바탕에 흰 꽃이 수놓아진 베로 만든 신발로 단장을 하고는 일부러 남의 눈길을 끌면서 여관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그로부터 바로 얼마 후에 단단히 임자를 만나게 되었다. 이런 일은 두 해 동안 유랑 생활을 하면서 여태껏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경우였다. 매맞고 욕먹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나중에는 조리돌림까지 당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고집만 세우지 않았던들 발틀(두 개의 큰 나무토막을 엮어서 만든 것으로, 범인이 도망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형구의 일종)까지는 차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고, 이렇게 축축한 땅바닥에서 찬바람을 맞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녀와 같은 운명을 받아들인 다른 여인들이 이틀 전에 당했던 것처럼 그냥 이 땅에서 쫓겨나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등뒤에 기댈 만한 담벼락 하나만 있어도 좋으련만, 재수 없게도 사방은 모두 공기뿐이었다 그녀는 몇 번이나 그대로 누워 버리려고 마음먹었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에게 옷이라곤 지금 입고 있는 이 한 벌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이제 그녀는 몹시 상심해서 엉엉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내가 죄라도 지었나?" 그녀는 혼자말을 하듯 울다가 말하다가 했다. "물건을 훔치지도 않았고, 사람을 죽인 적도 없는데..." 게다가 자신의 가련한 신세를 이토록 뚜렷하게 느낀 것은 처음이라 더 서러워서 울었다. 한 끼의 밥을 해결하기 위해 사방으로 뛰어다니고 수많은 사람을 만나면서도 갖가지 모욕을 다 참아 왔는데! 지금은 죄인보다도 더 못한 꼴이었다. 그녀는 여태껏 죄인이라도 지금의 자신처럼 이 깊은 밤에 발틀을 차고 바깥에 나와 있는 경우를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울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입을 다물고 두려움에 떨며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캄캄한 어둠을 둘러보았다. "날 꼭 이렇게 밤중에 내놓을 필요는 없잖아! 여보세요!" 생각지도 못하게 큰 소리가 튀어나오자 불쑥 용기가 생겨났다. 그녀는 더 이상 울지 않았지만 목소리는 갈수록 커지고 그럴수록 분노도 더욱 커졌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렇게 밤을 지샐 수는 없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던 것이다. 그녀가 한창 소리를 지르고 있는데 향공소 문이 삐걱 하고 열리며 소사가 나왔다. "당신 지금 억울허다고 하소연하는 것이여?" 말투는 결코 거칠지 않았다. "당연히 억울하죠!" 샤오꾸이훤이 대답했다. 그녀의 목적은 곤경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당신도 좀 보세요. 춥고 배고프고 허리도 다 내려앉았다구요! 난 도둑질도 안 했고, 사람을 죽이지도 않았는데..." "안됐지만서도 발틀을 채운 건 나가 아녀!" 소사는 억울하다는 듯이 말하는 도중에 끼여들었다. "내가 지금 발틀 채운 게 누군가를 따지나요! 죄인이라도 바람 피할 장소와 풀 몇 포기는 있는 법인데..." 순간 그녀는 대들 기운조차 다 빠져 버려 오열을 터뜨렸다. 소사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꼭 나가 저 여잘 묶어 놓은 것 같네!" 잠시 후에 그는 자신을 변명하듯이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다시 한숨을 내쉬고 그 시커먼 대문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의 이름은 셰카이타이이고, 별명은 애늙은이였다. 그는 정이 많고 행동이 좀 굼뜨며, 체격은 작지만 튼실한 농민으로, 몇 년 동안 소사를 하면서도 끝까지 촌티를 벗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느릿느릿 몸을 돌려 대문을 밀려고 막 팔을 뻗었다가 다시 느릿느릿 물러났다. 그는 반장 처야오뚱이 외치는 소리를 듣고는 한숨을 쉬며 그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 "워메 귀찮아 죽겠는거!" 그는 화가 나서 투덜거렸다. "꼭 도둑고양이가 변해뿐진 것 같네이." 반장은 서른 살 정도 된 젊은인데, 키가 크고 손 전체에 옴이 나 있었다. 그는 소농의 외아들로 홍빠오탄즈나 카드놀이 말고는 무엇 하나 재미있는 게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열에 아홉은 잃었다. 그는 복역한 지 아직 1년이 채 안 됐는데, 징병을 피해서 도망온 것이다. 무료함 때문에 그의 머릿속에는 일찌감치 야오꾸이훤을 욕보이려는 나쁜 마음이 도사리고 있었다. 이런 생각으로 괴로워서 떠와즈네 술집에 가서 술을 마시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반장은 교활하게 웃으면서 소사와 얼굴을 맞대고 멈춰 섰다. "자넨 이제 자러 가지." 그는 목소리를 질질 끌며 말하고는 수줍은 듯 웃어 보였다. "자여? 이런 복이 어딨으까!" "이런, 사람도!" 반장은 계속해서 말했다. "오늘밤은 자네 대신 내가 경비를 보겠다고 아까 말했잖은가!" 소사 셰카이타이는 머릿속으로 열심히 주판알을 놓아 보았다. "오늘은 도박판에 밤샘하러 안 갔는감?" 그는 미심쩍은 듯이 물었다. "갔다 왔지! 술도 한잔 마시고 왔는데 뭐. 자네는 이제 가 봐!" 반장은 두 손으로 제복 주머니를 툭툭 치며 변명을 했다. 소사는 눈을 치켜 뜨고 그를 바라보며 머리를 갸우뚱거리더니 그냥 자러 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그는 바로 몸을 움직이지 않고, 밖에서 들려 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꼭 나가 저 여자를 묶어 놓은 것 같네이!" 샤오꾸이훤이 아직도 게양대 옆에서 엉엉 울고 있는 소리가 어둠을 뚫고 들려 왔기 때문에 그는 마음속으로 원망하듯 혼자말을 했다. 그는 반장에게 바깥에서 이슬 맞고 있는 떠돌이 창녀에 대해서 말하려 했다. 그러나 그는 하품을 한 번 하고 나서 결국 이렇게 말했을 뿐이었다. "오늘 저녁에는 우리 두 사람밖에 없는 것이여!" 소사는 몸을 돌려 들어가고 반장은 대문 옆에 남아 있었다. 자신의 계획을 실현시키기 위해 반장은 이미 적지 않게 고심을 했는데, 그 일의 관건은 셰카이타이를 떨쳐 버리는 데 있었다. 사무원은 향공소 안에 살지 못하게 되어 있고, 향장은 병원에 가려고 성에 들어간 상태였다. 방은 모두 합해야 소사가 사는 서너 개밖에 없었는데, 거의 다 살림집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속이는 건 쉬웠다. 하지만 돌아갈 집이 없는 셰카이타이 때문에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었다. 그는 두세 차례나 대신 당직을 서 주겠다고 제의를 했었지만 성실한 소사는 반장이 도박 중독증을 견디지 못하고 도박판으로 달려갈까 봐 시종 마음을 놓지 못했다. 반장은 셰카이타이가 가지 않겠다고 할까봐 내심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도 셰카이타이가 순순히 들어가 준 것이다. 하지만 반장은 샤오꾸이훤을 찾아 곧바로 게양대로 가지는 않았다. 완벽을 기하기 위해 그는 일부러 문을 반쯤 열어 놓고 천천히 들어갔다. 향공소는 원래 대신전이었는데, 그 정중앙에 있던 동악대제는 이미 다른 데로 옮겨 갔다. 그리고 가운데 대들보 위에는 너무 오래 되어서 고장이 난 램프 하나가 걸려 있으며, 그 밑에는 긴 식탁과 의자 몇 개가 놓여 있었다. 그러나 양쪽 행랑에 쭉 늘어서 있는 노복류의 신상들은 아직 그대로 있었다. 그 중 뚱보 영감이라고 불리는 신상의 발 아래에는 깨진 그릇으로 만든 기름등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신좌 아래는 한 더미의 땔감이 활활 떠오르고 있었다. 반장은 불을 쬐며 신전 안의 동정을 살피고 있었다. 그는 셰카이타이가 하품을 하는 소리며, 털석거리며 짚신을 벗어 던지는 소리를 들었다. 이어서 나무 침대가 뿌지직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반장은 여전히 꼼짝 하지 않았다. 다시 따분한 기분이 그를 덮쳐 왔다. 그는 셰카이타이에게 옮았는지 하품을 참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피곤함까지 밀려왔다. 더군다나 불을 좀 쪼이고 났더니 옴이 더욱 극성맞게 그를 괴롭혔다. 만약 어느 누가 옴이 옮았다면 어떤 행복이라도 그 사람을 유혹하기는 힘들 것이다. 오히려 있는 힘껏 꼬집어 줄 때 크나큰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그냥 멍청하게 한 번 웃고 한숨을 내쉬고 난 후에, 마침내 결심하고 일어섰다. 그는 가만히 문을 열고 도둑처럼 어둠 속으로 미끄러져 갔다. 그 가련한 여인은 아직도 울고 있었으나 누가 그녀를 구출해 주리라는 환상은 더 이상 품지 않았다. 그녀는 소사의 출현과 그의 말을 통해 비로소 자신이 오늘 얼마나 재수 없는 일을 당했던가를 떠올릴 수 있었다. 자신을 혼내던 그 부인의 대단한 위풍은 그녀로선 여태껏 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모두들 그 부인의 말을 인정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부인이 공격을 퍼붓고 있을 때 거리에 있던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 부인을 돕고 있었다. 그녀가 알던 사람들 중 두엇도 질투하는 마누라의 학대를 받은 적이 있었다. 어떤 이는 겨우 한 벌뿐인 옷을 찢기우고, 또 어떤 이는 기와 조각에 맞아 얼굴에 상처를 입는 바람에 오랫동안 일을 할 수 없었다. 그게 더 심한 경우지만, 그녀는 차라리 그러길 바랐다. 왜냐하면 지금 그녀는 결코 한 벌의 옷이 아깝거나 얼굴이 아쉬운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만 먹을 것과 온기만 얻을 수 있다면, 그리고 정말 누울 수만 있으면 바랄 게 없었다. 다른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사방을 두리번거렸으나 눈앞에 펼쳐지는 건 암흑뿐이었다. 그녀는 다시 참지 못하고 목을 놓아 울었다. "이럴 수가 있나!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그녀는 분한 마음에 소리를 질렀다. "도둑질도, 살인도 안 했는데..." 그녀는 다급한 발소리에 갑자가 입을 다물었다. 반장이었다. 그는 그녀의 바로 코앞까지 걸어와서 멈추었다. 하지만 멍청하게 웃기만 할 뿐, 어떻게 말을 걸어야 좋을지 몰랐다. 그가 여자에게 접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는 결혼한 지도 벌써 몇 년이 지나 아들도 있고 딸도 있었다. 하지만 상품으로 취급되는 여자에게 접근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의 멍청한 웃음은 그를 가득 채우고 있는 그 원시적인 욕망 때문이었지만, 또한 체면을 잃을까 두렵기 때문이기도 했다. "누가 당신을 이렇게 내버려뒀소?" 그는 마침내 화제를 끄집어 내고는 한숨을 돌렸다. "이 나쁜 사람!" 그녀는 그에게 대들며 말했으나 호소할 상대가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러웠다. "만일 내가 잘못을 저질렀다면 난 가 버리면 그만이야! 죄수들에게도 이렇게까진 하지 않는다구..." 목이 메어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눈에선 눈물이 연이어 흘러내렸다. "부디 조금만 봐 주세요!" 그녀는 다시 애원하며 흐느꼈다. "잊지 않을게요..." "당신이 나를 기억할 것 같아?" 반장은 조롱하듯이 말했다. "순진한 사람 속이면 못써!" 그는 자신이 이렇게 말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일단 말을 뱉고 나니 망설임이나 부끄러움은 죄다 사라졌다. 오히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한 가지 태도가 굳어졌다. 이런 태도는 그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상품으로 간주되는 여인을 대할 때, 아주 어울리는 태도라고 여겨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도 멋지다고 생각하며 그녀와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녀는 즉시 자신의 직업에 어울리는 태도를 취하며 반응을 해왔다. 그녀는 이제 자신에게 절실한 음식과 온기와 잠자리를 얻을 수 있으리라는 한 가닥 희망을 보았다. 이 희망을 실현하기 위해 그녀는 뭐든지 시원시원하게 다 털어놓고 대답했다. 게다가 그보다도 더 노골적이었다. 이렇게 해서 반장은 급히 그녀의 다리에 묶인 발틀을 벗겨 냈다. 그는 그녀를 향공소로 데리고 들어가 불 옆에 앉히고 나서 뒤쪽에 있는 주방에 들어가 남은 밥이 있나 살펴보려고 했다. 그는 몸을 막 움직이려고 하다가 잠시 멈춰 그녀의 야윈 몸을 바라보았다. 잔뜩 움츠러든 가련한 모습의 샤오꾸이훤은 멍하니 한 번 웃었다. "너, 딴맘 먹으면 안 돼!" 그는 이렇게 말하고 나더니 흥이 깨진 듯 한숨을 쉬었다. "내가 당신을 속여서 뭘 하게!" 그녀는 지친 표정으로 대답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그녀는 더 이상 못견디겠다는 태도였다. 만일 그녀가 자유롭기만 하다면 바로 지금 어떤 어르신이 오더라도 아랑곳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녀는 그냥 이렇게 불 옆에 앉아 머리를 감싸고 조용히 쉬고만 싶었다. 그런데 문득 먹을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떠오르면서, 반장의 얼굴이 어두워지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그녀는 억지 웃음을 짓고 아양을 떨며 말을 이었다. "제가 말한 건 사실에요. 저, 괜찮으시면 뜨거운 차가 있는지 좀 봐주세요. 목이 타서 죽을 지경이에요!" "좋아." 반장은 마지못해 대꾸하고 그녀의 수작에는 답하지 않았다. 반장은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기운이 쑥 빠져 버렸다. 왜냐하면 헝클어진 그녀의 머리카락하며, 빗물과 눈물로 얼룩진 얼굴의 분자국, 깎은 듯 뾰족한 코, 쪼그라든 입술에 누르퉁퉁한 얼굴, 오그리고 있는 허약한 몸, 게다가 꾸며진 웃음, 그다지 참을성 없는 말투 등 모든 것이 그의 불만을 자아냈던 것이다. 그는 실망하여 차츰 흥미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가 돌아섰을 때 그곳에 서 있는 소사를 발견하고도 당황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이 덕분이었을 것이다. 셰카이타이가 서둘러 침실에서 나온 것은 아무래도 사고라도 날까 봐 걱정도 되었고, 게다가 가슴이 답답해서 도무지 안정할 수가 없어서였다. 그는 큰 소리로 반장을 불렀지만 대답이 들려 오지 않자 서둘러 뛰쳐나온 것이다. 뜻밖에 반장과 마주치자 소사는 안도의 숨을 쉬며 말했다. "휴! 자네가 도박판 가뿐는가 혀서 걱정하고 있었제!" "무슨 도박장에." 반장은 억지로 웃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배탈 나도 배 문지를 동전쪼가리 하나 없는데..." 소사는 급히 물으며 아래턱으로 그녀를 가리켰다. "그래!" 반장은 귀찮은 척하면서 계속 말했다. "쉬지도 않고 그렇게 계속 울고 있길래..." 소사는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떤 사람이나 좋은 일 쪼까 혀야지!" 그는 반장이 칭찬받을 만한 일을 했다고 믿고 계속 말을 이었다. "나도 아까부텀 이리 헐라고 혔지만서도 나가 무슨 자격이 있어야제! 다시 말혀서, 이번 일은 참말로 잘헌 일 아녀? ...아이고!..." 그는 웃지도 않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감개 무량한 듯이 불 옆으로 가서 앉았다. 반장은 샤오꾸이훤에게 밥그릇을 내밀며 얼굴을 찌푸리고 불 옆에 앉았다. 처음에 반장은 이 착실한 소사가 자신을 수상쩍게 여길까 봐 무척 걱정하다가, 그의 솔직하고 선량한 마음을 대하고는 부끄러워졌다. 하지만 지금은 그가 자신의 일을 방해했다고 생각하니 다시 화가 났다. 오직 샤오꾸이훤 혼자만이 기분이 상쾌하다고 할 수 있었다. 먹을 것이 그녀의 사기를 진작시켜 피로조차 싹 가시게 했다. "두 분을 만나서 정말 다행이에요!" 그녀는 진심으로 다행이라 여기면서 밥술을 뜨기 시작했다. "밥이 식어서 딱딱해져 뿌렀네!" 소사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하품을 한 번 했다. "그럼 자네가 가서 뜨거운 물 좀 가져오시지!" 반장은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했다. 소사는 그의 말이 귀에 거슬려 화가 났지만, 성냥이 있는지 찾아봐야겠다며 주방 쪽으로 갔다. 얼마 후에 그가 뜨거운 물이 담긴 커다란 사발과 질그릇 세 개를 가지고 오자, 샤오꾸이훤은 더욱 기뻐했다. 반장도 소사의 선량하고 소박한 마음씨에 기분이 좋아져서 웃었다. "과연 모두들 자넬 보고 마음씨가 좋다고 하더니, 오늘에서야 직접 보게 됐네 그려!" 반장이 웃으며 말했다. "무신, 마음씨가 좋기는!" 소사는 쑥스러워 하며 말했다. 그는 반장에게 따뜻한 물 한 그릇을 따라 주었다. 그러고 나서 다시 그 곶감 같은 얼굴을 들고 샤오꾸이훤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그려도 얼굴은 아직 안 곪았응께 다행이여!" 그는 웅얼대며 담뱃대를 만지작거렸다. "저, 한 가지 물어 볼게 있는데요." 소사가 그녀의 걱정거리를 들추자 밥을 마구 퍼넣던 샤오꾸이훤은 잠시 밥 먹는 것을 멈추고는 쉬지 않고 말했다. "도대체 아까 그 사람은 누군가요? 나도 여기저기 다니면서 나쁜 사라도 많이 보고 여자 깡패도 만나 봤지만 그렇게 흉악스런 여자는 처음이에요! 내가 자기 누구를 망쳤다고 하는데, 난 이곳에 처음 왔다구요!" 그러고는 몸을 앞으로 구부리고 분해서 못 견디겠다는 듯이 소사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커다란 눈이 금방이라도 젖어들 것 같았다. 그녀는 그 치욕스럽고 잔인한 일을 다시 기억해 냈다. 그때, 그녀는 아주 아름답게 차려 입고 까맣게 옻칠한 용문을 지나고 있었다. 여관을 찾아가려 했을 때 한바탕 욕설을 퍼붓는 소리가 들려 오는 바람에 호기심으로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구경을 하려고 몸을 돌렸는데, 그 즉시 대경 실색하고 말았다. 페인트칠을 한 것처럼 분을 처바른 한 뚱뚱한 부인이 그녀를 향해 뛰어오고 있는 게 아닌가. 그 부인은 앞머리를 파마하였고 손가락마다 금반지를 끼고 있었다. 그 부인은 뭐라고 말할 겨를도 없이 바로 샤오꾸이훤의 귀싸대기를 갈겼고, 그 다음엔 바로 수다스런 질책이 이어졌다. "아이고!" 그녀는 울먹이며 말했다. "자기만 사람 새낀가?" "그짝이 잘못 찍혔구만이라!" 소사는 커다란 콧구멍을 벌렁이며 담배연기를 뿜어냈다. "지난 반 개월 동안은 아무 일도 없었지라. 향장이 안 나다녀도 됐고잉. 그저께 한 무더기를 쫓아냈는디, 바로 그짝이 온 것이여. 먼지 벽이 태풍을 만난 거이제!" 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담뱃대를 바닥에 내려놓고 담배통을 꺼냈다. 반장이 갑자기 큰 소리로 웃었다. "그래, 누가 당신들더러 남의 집 남편을 걸고 넘어지라고 했나?" 반장은 히죽거리며 한 마디 끼여들었다. "자신을 탓할밖에!" 소사는 불만에 가득 차서 설명했다. "또 이것저것 가리지도 않고..." 샤오꾸이훤은 부끄러워서 얼굴을 붉히고는 몸을 살짝 당겨서 밥을 먹기 시작했다. 이러는 것도 이유가 없지 않았다. 왜냐하면 소사의 설명을 통해 그녀는 남의 집 남편을 걸고 넘어진다는 것이 무슨 뜻이며, 가리지 않는다는 것도 또 무슨 뜻인지 다 알아들었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느낀 것이다. 비록 그녀가 일의 진상을 아직 그다지 확실히 알고 있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 진상이란 이러했다. 주색에 빠져 향장의 몸이 날이 갈수록 엉망이 되고 늘상 병에 시달리게 되자, 그의 뚱뚱한 마누라는 떠돌이 창녀들에게 자신의 분풀이를 했던 것이다. 샤오꾸이훤은 밥을 먹다가 갑자기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남의 남편을 걸고 넘어졌다고요?" 그녀는 중얼거리며 광대뼈가 불거지고 마싹 마른 얼굴을 씰룩거렸다. "내가 먼저 왔나요? 그가 대머리예요? 곰보예요?" "그 사람이 농담한 것이제!" 소사는 그녀가 화를 내니 조금 우스워서 끼여들었다. "아, 농담이시군요!" 샤오꾸이훤은 그대로 따라 말했다. "사람을 놀리다니, 인간도 아니에요. 무슨 농담이건 다 괜찮은 줄 알아요? 자신을 다시 한 번 보세요." 그녀는 목이 메기 시작하더니, 말투도 어눌하게 변했다. "당신을 믿지 못하겠어요! 다 같은 사람인데, 어느 누가 이런 죄 많은 밥을 먹고 싶겠어요?" 그 사이에 반장이 먼저 헤헤거리며 웃었다. 그는 정말 부끄러웠다. "아이고! 말 한 마디 잘못했다가 큰코다치겠네." 그는 겸연쩍어서 씩 웃었다. "우리가 무슨 죄를 지어요? 태어나면서부터 쌍놈 팔잔데..." 젓가락을 쥔 채, 그녀는 콧방울 옆에 맺혀 있는 커다란 눈물 방울을 닦아 내고는 침묵에 잠겼다. 그녀는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러나 겨우 두 숟가락을 먹고 나서는 더 이상 먹고 싶은 마음이 나지 않아 그냥 밥을 말아 놓은 따뜻한 물만 홀짝였다. 소사는 그녀를 한 번 훔쳐보고, 다시 반장을 바라보고 나서 계속해서 담배를 피워댔다. 반장도 더 이상 입을 놀리지 않았지만 야윈 얼굴에 웃음기가 남아 있도록 무척 애를 썼다. 그건 다 비웃음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아무튼 그는 샤오꾸이훤이 자신의 존엄성을 훼손시켰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자신이 아니었다면, 샤오꾸이훤은 아직도 바깥에서 추위에 떨며 먹을 것과 온기를 얻지 못했을 텐데... 반장은 막판에 가서는 그녀의 가련한 신세나 자신의 욕망도 잊어버리고 아주 기분이 나빠졌다. "말해 두겠는데, 오경징소리만 울리면 다시 돌아가야 돼!" 그는 그녀에게 틈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위협은 아무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그는 좌절감을 느꼈다. "그때 가서 우릴 귀찮게 해선 안 돼." 반장은 속마음과는 다른 말을 계속해서 지껄여댔다. "발틀을 채우면 또 엉엉 울면서 우리를 골치 아프게 하지 마. 말썽을 피우면 그다지 좋을 게 없을 거야!" "걱정하지 마세요. 나도 옳고 그른 건 알아요!" 샤오꾸이훤은 풀이 죽은 채 입을 열었다. "당연히 그래야지! 네가 너무 불쌍해 보이지만 않았으면 내가 왜 요이불 깔린 보금자리를 마다하고 이렇게 나와 있겠어!" "그래, 그래. 자네는 두어 모금 피우고 들어가서 자랑께!" 소사는 융통성을 발휘해서 말했다. 반장은 소사가 건넨 담뱃대를 받아 쥐고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반장은 원해 자신은 담배나 편안하게 몇 모금 피우다가 자러 가고 그 성실한 소사에게 숙직을 맡기려고 했다. 또 오경을 알리는 징소리가 울리면 해야 할 잡무도 그에게 미루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음이 갑자기 담백해지면서 더 이상 아무런 욕망도, 자신을 성가시게 하는 못된 생각도 들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밤샘에 이골이 난 사람인데다, 옴도 다시 목숨을 걸고 간지럼을 태우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가 담배를 다 피우고 나서 담뱃대를 다시 샤오꾸이훤에게 넘겨줄 때쯤엔 오히려 정신이 말짱해지면서 잠자고 싶은 생각도 사라졌다. 닭발 같은 손을 긁으면서 샤오꾸이훤을 곁눈질하는 반장의 마음은 아주 편안하면서도 만족스러웠다. "스물 정도 됐지라?" 소사는 샤오꾸이훤은 잠시 훑어본 후에 불쑥 물었다. "무슨 말씀을요!" 샤오꾸이훤은 부인하며 쑥스러운 듯이 웃었다. 그러고는 입 안에 가득한 담배 연기를 토해 내고 나서 소사에게 또렷하게 말해 주었다. "올해 열여덟이에요." "엉?" 소사는 의심 반, 놀라움 반으로 콧소리를 냈다. "정말이에요! 한번 계산해 보세요. 전해에 용띠니까 올해로 딱 열여덟이ㅈ아요. 전요, 여태껏 나이를 속인 적은 없어요. 나이가 많으면 많은 거죠!" 마치 이것이 그녀로서는 아주 중요한 일인 양, 그녀는 이렇게 설명을 덧붙이고는 담뱃재를 탁탁 털어냈다. "몇 년이나 이 일을 했지?" 반장은 고개를 비스듬히 해서 그녀를 쳐다보고는 팔뚝에 떨어진 군침을 닦아냈다. "내년 봄이면 2년째예요." 그녀는 아주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러다 갑작 한숨을 내쉬더니 손을 소가죽 담배 쌈지로 가져갔다. "솔직히 말해서 어느 누가 이런 일을 하고 싶어하겠어요!" 그녀는 조용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런 말을 하면 웃겠지만, 우리 집도 예전엔 먹고 살 만했답니다. 땅도 몇 마지기 있었지만, 다 세금으로 날려 버렸죠. 그 후론 한 해에 살찐 돼지 한두 마리는 팔아야 했어요. 지금 이런 일을 하고 살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요?" 그녀는 두 손을 벌리고 도움을 청하듯이 반장과 소사를 쳐다보았다. 그러고 나서 몸을 구부리더니 더 이상 말이 없었다. "나쁜 자식! 이게 다 진캉ㅈ 그 자식 때문이야!"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담배를 담기 시작했다. "진캉ㅈ은 어떤 사람인데?" 반장이 궁금한 듯 물었다. "우리가 살던 곳의 연보 주임이에요." 그녀는 생각에 잠긴 채 대답을 하면서 대꼬챙이에 불을 붙였다. "거기는 향장이라고 부르지 않아?" "그 아들이 바로 향장이죠." 대꼬챙이는 벌써 타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곧바로 담배에 불을 붙이지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 "생각해 보니 그자도 향장을 지낸 적이 있어요! 보안 주임을 향장으로 바꾸던 바로 그때였죠. 아들이 훈련을 받고 돌아오자 그는 곧바로 향장 자리를 아들에게 물려 주었어요." "와, 우리랑 똑같네!" 반장은 크게 깨달은 바가 있다는 듯이 말하고는 소사를 슬쩍 쳐다보았다. "아! 나도 알았당께!" 소사도 이해했다는 듯이 말했다. "부모님은 안 계시고?" 반장은 가려운 곳을 긁던 손도 멈추고 계속해서 물었다. "아버지는 재작년에 돌아가셨어요." "이런 걸 두고, 천하의 까마구 새끼는 똑같이 시꺼멓다고 하는 것이여!" 소사는 다른 사람의 말은 듣지도 않고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그는 몸을 일으켜 장작을 찾으러 갔다. 그의 넓고도 누런 얼굴에는 계속 비웃음 같기도 하고 분노 같기도 한 표정이 서려 있었다. 장작을 들고 돌아오면서 그는 다시 중얼거렸다. "이런 걸 두고, 천하의 까마구 새끼는 똑같이 시꺼멓다고 하는 것이여!" 그는 앉아서 장작을 더 넣었다. 그러면서 그는 샤오꾸이훤이 자신의 오빠가 당한 일을 얘기하는 것을 계속 듣고 있었다. "어쪄! 그짝 동네에선 돈으로 사고 그라지 안 혀?" 그는 장작을 더 넣는 것도 잊어버리고 놀라서 물었다. "두 번이나 돈을 냈어요! 그래도 잡혀 가고 말았어요!" 샤오꾸이훤은 침통하게 말했다. 그녀는 기지개를 켜고 하품까지 했지만 결코 그들의 친절을 무시하진 않았다. "생각 좀 해보세요." 그녀는 거의 한 마디 하고는 한 번씩 멈췄다. "남은 사람이라곤 딸 하나...엄마는 움직이지도 못 하고...올케 언니도 금지옥엽처럼 자라서 바람만 살짝 불어도 병이 나니, 어디서 일손을 찾겠어요!...조금 전에 말했지만, 혼자서 몇 마지기 농사를 지어 보려고도 했는데 결국 일하는 사람보다 먹는 사람이 많았으니!...나중에는 엄마가 추이싼쾅더러 날 면양으로 데려다 주라고 했죠. 그 자식이 면양 공장에서 노동자를 모집한다고 했는데." 그녀는 이제 졸기 시작했다. 그러나 금방 다시 깨서는 자신이 입고 있는 얇은 옷에 신경을 썼다. "절인 채소처럼 구겨졌네!" 그녀는 낙담해서 말했다. "가방도 안 돌려주고." "그 여자도 가방은 돌려줄 거이다. 얼릉 한숨 잠이나 자여!" "어유! 오늘은 다행히 두 분을 만나서..." 그녀는 하품을 하면서 말했다. 그녀는 자신의 고마운 마음을 표시하려고 한 번 웃어 보이려고 했으나 여전히 성공하지 못했다. 그녀의 머리는 벌써 무릎 위로 떨어졌다. "제발 조금만 자게 해주세요." 그녀는 잠꼬대처럼 애원하고는 곧바로 코를 골았다. 그 시골 사람 두 명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서로 마주보고 한 번 씩 웃더니 다시 한숨을 토해냈다. "추울까 봐 걱정이여!" 소사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이렇게 불 더미가 큰데 무슨 걱정이야!" 반장은 좀 짜증을 내며 대꾸하였다. 이 짜증은 절대로 소사의 배려에 불만이 있어서가 아니라, 샤오꾸이훤이 한 말로 인해 자기 자신의 처지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도 여러 번이나 돈을 냈지만 지금은 이렇게 잡혀 와서 반장이나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부친은 건강하지 못했고 모친과 아내도 일을 얼마 못 하는데 당장 소춘(음력 10월)이니, 정말로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그는 마음속으로 하루나 이틀쯤 휴가를 내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소사를 향해 말했다. "이보게! 우리 화투나 한판 하는 게 어때?" 소사는 잠시 생각하더니 소리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그것도 좋제." 그는 시무룩하게 말하고는 또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하여 의자 하나와, 그 뚱보 영감 다리 밑에 있는 깨진 밥그릇 등잔을 옮겨 놓고 나서 반장은 가장자리에 기름때가 까맣게 찌든 화투짝을 가져다 놓았다. 그들은 화투를 치면서 차츰 모든 걸 잊어버렸다. 어둠, 한밤중, 그리고 그 검은색 파오홍마오, 측 늘어진 아랫입술 위에 고약 아편이 점점이 박힌 뚱보 할아버지... 패를 뒤섞을 때면 두 사람은 틈나는 대로 샤오꾸이훤을 한 번 쳐다보았고 장작불을 뒤적거리다가 다시 계속해서 패를 돌렸다. (1944년 11월) 살인자 사딩 비루먹은 개처럼, 다리 잘린 상이 군인은 왕의 사당 안에서 자신의 마지막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사당은 목가 계곡이 흘러 들어가는 고갯마루에 세워진 것으로, 주지 스님의 처소 두 체가 이 건물의 전부였는데, 흰 벽에 검은 기와를 이어 놓아 마치 보루처럼 보였다. 고개는 오륙 리를 이어져 있고, 사금이 산출되었을 적에는 인류의 번영도 한 차례 누린 적이 있었다. 이 사당도 바로 그 당시에 지어진 것이다. 이젠 사당 입구에서 바라다봐도 아래와 뾰족한 광주리나 호미로 땅을 파는 소리가 더 이상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남은 것이라곤 오로지 한 조각 죽음과도 같은 적막과 수없이 파헤쳐진 광갱뿐이었다. 전장에서 돌아오자마자 상이 군인은 곧바로 아버지에게서 쫓겨났다. 왜냐하면 이 노인은 둘째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진작부터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그가 동생을 죽인 살인자인 양 이제 자식의 말은 믿지 않겠노라며 아주 포악하게 욕을 퍼부어 댔을 뿐 아니라, 아직까지 끔찍하게 남아 있는 상처를 보고도 전혀 불쌍히 여기지 않았다. 그때 이 불쌍한 사람을 동정한 사람은 그의 어머니밖에 없었다. 그녀는 수시로 그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 주었고, 한편으로는 자신의 '영감탱이'를 설득하느라 애쓰고 있었다. 그런데 음식 내가는 걸 계속하면서도 그녀는 늘 못내 한숨을 내쉬었고, 그의 가슴을 찢어 놓는 말을 몇 마디씩 중얼거렸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상이 군인은 갑자기 음식을 씹다 말고 그대로 담벼락에 기댄 채 울면서 말했다. "말해 보세요! 내가 그를 죽였을 거라고!" 그러고 나서는 큰 소리로 울부짖더니 다시는 그 쓰디쓴 음식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 뒤부터 그의 구걸생활이 시작되었다. 상이 군인은 이미 그의 가족들에게서 잊혀져 버렸다. 그러나 몇 년 전만 해도 그는 집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이었다. 비록 지위는 동생보다 낮았지만 말이다. 이 동생은 스물 서넛 정도 된 젊은이로, 몇 년 동안 사관에서 공부를 했다. 그러다가 결혼을 하고 나서는 호미 자루 잡는 일이 더욱 드물어졌고,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의 장인에게서 의학을 배우는 데 보냈다. 이 장래의 의사에 대한 부친의 희망은 남달랐다. 그 이유는, 부친은 몇 차례 목재업이 잇달아 실패하고 나자 자신감이 다 사라져 버렸고, 게다가 농사를 지어서는 신세를 바꿀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매일 술을 마시고 나서 자신의 운수를 놓고 투덜거렸다. 이 목재상에게는 아들이 둘이나 더 있었지만 둘 다 몸집이 왜소했다. 이래 저래 농사에 관한 일은 완전히 상이 군인의 두 어깨 위에 놓여 있었다. 그는 일을 아주 잘했고, 게다가 일하는 것만이 그의 흥미를 끌 수 있는 것 같았다. 한가한 틈이 생기면 낮잠을 자려고 뛰어가는 것이 아니라, 늘 한 쪽 구석에 앉아서 한 마디 소리도 없이, 그렇다고 웃지도 않고 그냥 가만히 있었다. 이런 선량한 성품 때문에 이 골짜기에 살고 있는 남말하기 좋아하는 패들은 그를 '커다란 바보'라고 불렀다. 하지만 어쨌든 그는 성실했으므로 바로 대놓고 이렇게 부르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그것은 1925년 어느 봄날의 일이었다. 어느 날 밤, 상이 군인의 아내는 난산 끝에 죽고 말았다. 그들이 결혼한 지 몇 년 만에 가진 첫번째 아기였다. 그의 부친은 더 이상 절대로 그들에게 돈을 주지 않을 거라고 말하며 욕을 퍼부어댔다. 그러나 다음날이 되자 그의 부친은 그에게 돈을 주면서 아내의 장례를 치르라고 분부하였다. 그는 여태껏 자신의 총명함을 믿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동생인 젊은 의사를 불러 성으로 함께 갔다. 이 두 형제는 아주 빨리 몇 건의 중요한 사무를 야무지게 처리했다. 그들은 누추한 영방 한 칸을 빌리고 도사 두명을 불렀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이제 술과 기름 같은 것을 사는 자질구레한 일뿐이었다. 이 일은 상이 군인 혼자서도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그의 동생이 만나자고 한 지점인 도사의 집 앞에서 방향을 바꾸어 관아로 뛰어가 입구에 붙은 공고문을 바라보다가, 사람들의 등에 떼밀려 소란스러운 시장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런데 네거리의 고루 아래서 징발하는 군인 몇 사람이 그를 에워쌌다. "선생, 우리 집에 사람이 죽어 있어요!" 그는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움직이지 마!" "정말이에요. 죽은 사람이 아직 집에 놓여 있다니까요. 한번 물어 보세요." 그러나 그 잿빛 친구들은 전혀 그의 진실을 증명해 보려는 마음이 없어 보였다. 그들은 그를 다른 시골 사람과 하나로 묶어 부역장으로 끌고 갔다. 그곳은 붉은 기둥이 있는 사당으로, 그 뜰 안에는 벌써 이삼십 명의 농부들이 앉아 있었다. 그의 동생도 그곳에 있었다. 동생은 두 손으로 허벅지를 감싸고 앉아 있었는데, 그의 얼굴은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상이 군인은 그를 알아보자마자 겁을 집어먹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줄곧 그의 죽은 아내와 부친의 성미를 걱정하고 있던 터였기 때문이다. 그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침을 삼키며 물었다. "너도 잡혀 왔냐?" 그의 동생도 바로 그를 알아보았지만 아주 매섭게 그를 한 번 흘겨보고는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들은 두 달 동안 구류되었다가 주둔군을 따라 이동하였다. 그들은 함께 중대장 수하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그들의 가마 위에 올라 앉은 사람은 바싹 마른 시녀였기 때문에 일은 상당히 수월했다. 길에서 이 두형제는 서로를 잘 보살폈다. 그들은 구류 당시의 기분을 잊어버린 지 이미 오래였다. 오로지 어떻게 하면 고향으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목적지에 도착해서 그들은 다시 감금당했는데, 부대에서는 그들에게 임금을 지불하겠다고 하였다. 이것은 사천의 징발사에서는 하나의 기적이었다. 그리하여 그 시골 사람들은 반신반의하면서 곧바로 저마다 추측을 해대기 시작했다. 하루는 저녁 식사 시간에 모두들 평소처럼 그릇을 받쳐들고서 이 뜻밖의 이익에 대해 그것이 진실일지 아닐지 의심하기도 하고, 받아낼 임금이 너무 적다는 등 얘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상이 군인의 동생은 처음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나중에는 젓가락을 소리 나게 두드리면서 다른 사람의 말을 무질렀다. "봉급? 나는 하루라도 빨리 풀어 주기만 하면 좋겠어." 그러자 상이 군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그는 아주 우울하게 말했다. "다시 군인으로 잡아가려 하지나 않을까 걱정이야!" "어디서 들었는데? 헛소리 하지마!" 동생은 공연히 화를 냈다. "금방 그 취사원이 나에게 말하던데..."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동생은 바로 젓가락을 팽개치며 부르짖었다. "그럴 바엔 총살당하고 말겠어!" 그러고는 벽돌바닥 위에서 뒹굴기 시작했다. 그러자 상이 군인은 일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반쯤 벌린 모양이, 그는 마치 이제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듯했다. 사실 그가 한 말은 동생의 비위를 맞추느라 한 말이었다. 그는 다시 그 취사원에게 알아보았으나 확실한 대답은 얻어 내지 못했다. 이렇게 해서 그는 동생의 안색을 살피고 화를 받아 주면서, 한편으로는 그 소식이 유언비어에 불과하길 바랐다. 그러나 어느 날 식사 후, 많은 수의 잡역부들이 무장 병사에 의해 운동장으로 호송되었다. 군관이 그 놀라운 명령을 선포했을 때, 그의 동생은 사정사정하다가 결국 곧바로 처벌을 받게 되었다. 그는 십여 일을 멜대로 대체된 군장으로 얻어맞고 몇 사람과 함께 감금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상이 군인은 얼굴빛이 새파랗게 질린 채 다리를 벌벌 떨면서 자기 차례가 되자 입대 수속을 밟았다. 그는 지원서에 인장을 찍고 난 뒤에 절대로 탈영하지 않겠다고 맹세를 했다. 그들은 마지막에는 그의 팔뚝에 푸른 문신까지 새겨 넣었다. 그는 제복까지 한 벌 얻고 정식 군인이 된 것이다. 그는 그날부터 바로 군인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고통도 더불어 시작되었다. 점호 시간에는 두 번이나 숫자를 부르지 않다가 세 번째에 또 틀리게 부르는 바람에 뺨을 맞았다. 그들은 특별한 방법으로 그의 보법을 훈련시켰는데, 두 다리를 끈으로 묶고 한 노병이 앞에서 끄는 것이었다. 그는 언제나 벌로 구보를 해야 했다. 그는 여태껏 살면서 피곤이란 걸 몰랐지만 지금은 침상에 엎어지면 바로 잠이 들었다. 그의 동생은 두 달 동안 감금되었다. 그는 일요일이면 석방될 것이다. 이것은 상이 군인이 날마다 손가락을 꼽으며 계산해 낸 날짜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휴일을 희생해 가며 일찍부터 아주 불안하게 동생과의 재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해질 무렵, 그는 동생이 혼자 연대장실에서 나와 풀이 죽은 모습으로 고개를 푹 수그리고, 팔에는 제복 한 벌을 끼고 머리에는 잿빛 군모를 쓴 채 곧장 사당 모퉁이로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는 동생을 부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다만 뒤통수만 긁적거리며 한숨을 내쉬고 묵묵히 그를 따라 걸어갔다. 그들 둘은 함께 뜰의 계단에 나란히 앉았다. 거기서는 작은 정원을 바라볼 수 있었는데, 잡초와 이름 모를 나무들이 무성히 우거져 있고 푸르른 작은 못엔 무시로 개구리 소리가 들려 왔다. 상이 군인은 오랫동안 잠겨 있던 고요 속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짚신 가닥을 만지작거리며 동생을 몰래 훔쳐보았다. "너, 나왔구나?" 그는 겁에 질려 물었다. 동생은 대답도 없이 이마를 팔뚝에 올려 놓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잠시 틈을 두었다가 탄식을 하며 다시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무슨 수가 있겠니? 이리 가든 저리 가든 이놈의 더러운 팔자인걸..." "나는 나가고 말 거야!" 동생은 사납게 고개를 저었다. "제발 그런 생각일랑 하지 말아라!" 상이 군인은 아무도 없는 뜰을 둘러보았다. "가다니? 말은 쉽지. 지난 한 달 동안 십여 명이 튀었지만 완전히 도망간 사람은 겨우 두세 명뿐이야. 넌 그 사람들이 어떤 벌을 받았는지 아직 못 봤지? 소도둑놈한테 하는 것보다 더 끔찍하게 팼더라." 그는 동생의 얼굴 앞으로 바싹 다가가 애원하듯 말했다. "그런 생각을 해선 안 된다. 참아 보도록 해!" "참아 보라고? 형은 참을 수 있겠지만, 난 달라. 형은 아들도 없고, 딸도 없어. 게다가 형수까지 죽었지." "너,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다! 설마 나라고 집이 그립지 않겠니? 하루하루 보내는 게 너보다 더 힘들어. 넌 아직 내가 받는 수모를 본 적이 없어. 정말 거지가 되는 게 더 낫겠다!" "형은 나더러 죽으라고 권하는 거야?" "내가 너한테 죽으라고 권한다고?...그래 맞다! 좋아, 네 마음대로 해라. 난 상관하지 않을 테니까!" 동생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이젠 당연히 상관하지 않겠지!" 그는 한탄스럽게 말했다. "그럼 넌 내가 어떡했으면 좋겠니?" 가슴 속의 멍울로 그는 질식할 것만 같았다. "내가 너랑 함께 갈까?... 말해 봐! 이게 모두 나 때문이라는 건 알아!" 서로 아무 말 없이 한참을 있다가 상이 군인이 잠긴 목소리로 거듭 말했다. "좋아, 너랑 함께 가지!" 상이 군인은 죄인처럼 눈길을 떨군 채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이날부터 상이 군인은 1초도 안정할 수 없었다. 보름 동안 그의 동생은 기회를 틈타 두 차례에 걸쳐 그를 찾아와서는 밀담을 건네며 그에게 도망갈 방법을 상의해 왔다. 그는 자신의 결심이 흔들릴까 두려워서 감히 동생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동생이 가까이 다가오면 공포의 전율이 그의 온몸을 타고 내렸다. 그는 장교들이 벌써 자신의 비밀을 알고 수시로 그를 염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어느 날 오후, 운동장에서 그의 동생이 곧장 그를 향해 걸어갔다. "재신전에서 잠시만 기다려." "좋아." "마구간 쪽에서 꺾어져서..." "연대장이 지금 우릴 보고 있어!" 상이 군인의 눈빛은 떨리고 있었다. 그는 한참을 주저하고 나서야 동생과 약속한 장소로 갔다. 동생이 자신의 생각을 얘기하고 있을 때, 상이 군인은 그의 말을 들으면서도 자신의 심장이 뛰는 소리와 희미한 어둠 속의 모든 두려운 움직임에 귀기울이고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눈길을 땅에 떨구고 한 손으로 단추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그의 모습은 마치 장교 앞에서 훈시를 듣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그는 동생이 갈팡질팡하는 그의 마음을 것을 알아챌 때까지 줄곧 습관처럼 응응거리기만 하고 있었다. 그러자 동생이 노려보며 물었다. "흠! 어째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거야? 무서운 거지?" 상이 군인은 머리를 더 수그릴 뿐이었다. "무서워, 안 무서워? 말을 해, 말을! 누가 형을 잡아먹는대?" "난 무서워!" 상이 군인은 갑자기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린 잡히고 말 거야. 차라리 참자! 나 때문에 너까지 이렇게 됐다는 건 알아!" 동생은 드디어 화가 치밀어 올라 한 마디 내뱉고 말았다. "그러길래 모두들 형보고 발전이 없다고 그러지!" 그러고는 증오에 찬 눈길로 그를 한 번 쳐다보더니 뛰쳐나가 버렸다. 상이 군인은 혼자서 어둠 속에 남아 있었다. 그는 잠시 멍청히 서 있다가 한숨을 토해 내고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는 자신의 운명에 상심했으며, 더욱이 동생 걱정에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이미 도망갈 용기가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감히 전처럼 동생에게 접근하지도 못했다. 왜냐하면 그날 밤 이후로 동생은 그에게 더욱 쌀쌀하게 대했던 것이다. 게다가 그 스스로도 너무나 부끄러운 나머지 어쩌다가 그와 부딪치게 되면 자신도 모르는 새에 시선을 떨구고 말았다. 마음먹은 것은 기필코 하고야 마는 동생의 성격을 생각할 때마다 그는 언제나 몸이 떨려 왔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고 나자, 그의 동생은 매일마다 모래 둔덕에서 훈련을 하며 그저 장교들의 매질과 욕설을 겁내고 있을 뿐이었다. 어느 금요일이었다. 햇살이 너무나 좋았다. 아침을 먹고 난 후에 병사들은 모두 강으로 가서 빨래를 했다. 화창한 날씨는 너무 드물었고, 장교들도 진작부터 그들의 몸에서 악취가 난다고 욕을 퍼부어 댔기 때문이다. 상이 군인은 자신의 옷을 다 빨아서 모래 위에 펴 널어 돌덩이로 눌러 놓고는, 두 팔로 어깨를 감싸 쥔 채 모래톱의 수풀 속으로 숨었다. 그가 막 돌덩이 하나를 옮겨 와서 앉으려니까 동생도 알몸으로 따라왔다. 한 달 만에 처음으로 자진해서 그에게 접근한 것이다. 동생은 한숨을 토해 내며 그의 옆에 앉았다. 그들은 잠시 말이 없었다. 상이 군인은 갑자기 자신의 짚신 코를 바라보다가 겁에 질려 일부러 헛기침을 했다. "여기서는 안심해도 돼!" 동생의 말에 그는 고개를 비스듬히 들어 동생을 한 번 쳐다보고는 말했다. "듣자 하니 나중에 잡혀서 돌아온 탈영병은 필사적이었나 보더라." "여기서는 거지랑 똑같은 거 아냐? 굶어 죽지 않으면 대포에 맞아 죽겠지." 상이 군인은 놀라 자빠질 뻔했다. 입은 크게 벌어졌으나 말은 한 마디도 안 나왔다. 동생은 손에 자갈을 한 움큼 쥐고 일어나며 덧붙여 말했다. "난 가기로 결심했어." "네가 어떻게?" "어떻게냐구? 내가 뭣 땜에 여기서 벌을 받아야 돼? 죽어도 제문 한 줄 안 써줄 텐데." 상이 군인은 이제 필사적이었다. 그는 빌면서 말했다. "제발 내 말 좀 들어!" 그때, 군관 하나가 갑자기 숲에서 뛰쳐나오는 바람에 그들의 대화는 여기에서 끊겨 버렸다. 상이 군인은 마음이 너무나 심란했지만 계속 동생을 설득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매우 주의했지만 가는 곳마다 염탐의 눈빛과 부딪쳐야 했다. 그래서 계속 기회를 잡을 수가 없었다. 밤에는 잠도 이루지 못했다. 그 무서운 환상들이 그가 편안히 잠들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고향과 부친이 떠올랐다. 그의 아내는 침상 위에 반듯이 누워 있는데 그가 성에 있을 때의 모습 그대로였다. 동생이 진짜로 벌써 도망갔다가 잡혀온 것처럼, 거꾸로 매달려 있는 모습이 보였다. 평소 탈영병을 매달아 놓고 때리는 곳에서 장교들이 밝게 타오르는 향불을 들고 있었다. 그는 또한 사형장의 모래 위에 이미 죽어서 뻗어 있는 시체와 그 머리맡에 비쩍 마른 개 한 마리가 서 있는 것도 보았다. 그는 다 자신이 죽인 거라고 생각하며 울기 시작했다. 그날 아침, 점호하러 뛰어갔더니 병사들은 모두 어김없이 대오를 정비하고 있었다. 그는 메마른 눈으로 주위를 살피며 욕을 먹을까 봐 겁먹은 채 살금살금 대오 안으로 들어갔다. 공기는 썰렁했고 그는 아무 고함 소리도 듣지 못했다. 그는 대담해져서 앞을 바라보았다. 그때 군관들은 엄숙한 표정으로 소리를 낮춰 얘기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 중의 하나가 턱으로 그를 가리키자 연대장이 그를 불러 행렬 밖으로 나오게 했다. 연대장은 그의 동생이 어젯밤에 다른 두 사람과 함께 도망갔는데, 그는 형이니까 틀림없이 내막을 알고 있을 거라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는 너무 두려워서 한 마디도 못하다가 잠시 후에야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 "저, 저는 몰라요." "거짓말쟁이! 모른다고? 어제 빨래하고 나서 네놈들이 숲에서 얘기도 나눴어." "제 동생은 저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저, 저는 잘 몰라요." "밥 먹을 줄은 아나?" 그들은 그를 발로 몇 대 차고 나서 감금실에 가두었다. 그는 닷새 동안 갇혀 있다가 탈영병 두 사람이 잡혀 와서야 풀려났다. 그가 그 어두운 감금실에서 나와 몇 걸음 걷다 보니 철책 가에 있는 동생의 모습이 보였다. 동생은 목덜미에 피가 엉긴 모습으로 문에 기대고 서서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그는 한순간 얼이 빠져서 머리가 가죽공처럼 텅 빈 것 같았다. 그는 옷깃을 만지작거리며 어쩔 줄을 몰라 하다가, 범인을 호송하는 군일들의 고함 소리를 듣고서야 정신을 차리고 끙끙대며 침실로 돌아왔다. 그와 같은 방을 쓰는 동료 두셋은 벌써 점심을 먹고 난 뒤였는데, 그의 아연실색한 얼굴을 보고는 모두들 하던 얘기를 멈추고 눈으로 그를 맞았다. 그들은 그에게 동생은 만나 봤는지, 무슨 방법이 없는지 따위를 물어왔다. 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에 앉아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는 울먹이기 시작했다. "어린애도 아니면서! 방법을 생각해 봐야지!" 그의 동료가 옆에서 그를 위로했다. "그들은 틀림없이 동생을 죽이고 말 거야!" 상이 군인은 혼자말처럼 고통스럽게 말했다. "자네가 한번 청원해 보는 게 어때?" "우리 아버지는 날 죽여 버릴 거야!" 그들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고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상이 군인은 갑자기 몸을 추스리더니 눈을 비벼 눈물을 닦았다. "연대장을 찾아가야겠어! 차라리 내가 죽는 게 낫지!" 그는 울먹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갔다. 그리고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한 마디 보고도 없이 곧장 연대장실로 들어갔다. 그곳에서는 군관들이 탈영병을 효과적으로 처치할 방법을 연구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은 그를 발견하자마자 화를 냈다. 그가 벙어리처럼 그들 바로 앞에 서서 부들부들 떨며 한 손으로 자신의 바지를 잡아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붉은 띠를 차고 있던 주번 사관이 탁자를 치며 고함을 빽 질렀다. "뭐야? 여기가 부엌인 줄 아는 거야?" "저, 저, 제발 좋은 일 좀 해주시라구요." "니기미 좋은 일은, 썩 꺼져 버려!" 그들은 그를 쫓아내 버렸다. 그러나 바로 그날 오후에 그들은 다시 그를 불러들여서는 직접 그의 손으로 동생을 쏘아 죽이라고 명령했다. 그는 얼마 동안 욕과 매질을 당하고 나서 어쩔 수 없이 복종을 해야 했다. 그러나 조준까지 하고 났을 때, 총이 갑자기 어깨 위에서 흘러내렸다. 그와 동시에 그는 목을 놓아 울기 시작했다. "그는 내 동생이야!" 그는 몇 차례나 연거푸 조준에 실패했다. 그러자 마지막에는 두 군관이 뛰어오더니 그의 팔을 잡고는 방아쇠를 당겨 버렸다. (1935년 5월) 사딩의 작품 세계 사딩이 쓴 소설의 주요한 테마는 농촌의 표현인데, 주로 사천 지방의 농촌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등장인물도 사천지방의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1931년부터 1938년까지 사딩은 "선면", "토병", "고난", "파종자" 등 그의 주요 단편집들을 출간했다. 사딩의 소설에는 농민들의 각성이 표현되어 있으며, 농촌 관리들의 추악한 모습도 풍자되어 있다. "현장대리"가 그 예이다. 작가는 "사딩 단편소설집" 후기에서 "현장대리"에 대해 스스로 소감을 다음과 같이 피력하고 있다. ""현장대리"는 나의 한 시기에 쓴 풍자소설이며, 또 내 스스로 비교적 만족스런 한 편의 소설이다. 내가 비교적 만족스럽다고 말하는 이유는 반동정권의 관리의 가소로운 생활방식을 통해서 나는 구사회제도의 추악상과 부패를 다소 표현하였기 때문이다." 사천에서 패잔병이 상이 군이 되는 비참한 비운을 묘사하고 자신의 골육형제가 총을 맞아 죽는 참극을 그린 "살인자"는 또 하나의 고발로서, 국민당 정부 아래서의 비참한 생활상을 표현하고 있다. 또한 작가는 "어느 가을날 저녁에"는 암울한 이야기지만 절망에 빠지지 않고 신뢰를 갖게 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그 후기에서 밝히고 있다. 사딩 단편소설의 독창성을 단적으로 말하면, 첫째는 인물묘사에 있어서 번거로운 심리묘사를 배제하고 있다는 것이며, 둘째는 인물대비에 있어서 성격구분이 선명한 것이고, 셋째는 인물구성의 역사성과 당위성의 부각이라 할 수 있다. 짱텐이 작가 세계 1906년 강소성 남경의 한 가정에서 장남으로 출생. 원명은 짱웬띵. 1924년 항주에서 중학교를 다니고 북경대학 예과에서 수학. 1928년 "분류"에 처녀작 "삼일 반의 꿈"을 발표. 1931년 중국좌익작가연맹에 가입. 그후 계속하여 단편소설집 "허공에서 충실로", "꿀벌", "반공", "원형", "추격"과 장편소설 "귀토일기", "일년", "시내에서" 등을 출판. 1938년 "문예진지"에 단편소설 "화웨이 선생"을 발표. 1942년 이때부터 병환으로 작품활동을 중지. 1949년 중국작가협회 서기처 서기로 선임. 1985년 4월 28일 사망. 화웨이 선생 짱텐이 사돈에 팔촌까지 따지면 그는 나의 친척뻘이 된다. 나는 그를 '화웨이 선생'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그는 이런 호칭이 그다지 좋지 않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티얜이 형, 왜 자꾸 제게 '선생'이라고 그래요? '웨이 아우'라고 불러야지요. 그러지 않으면 '웨이'라고 이름을 부르든지." 그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즉시 모자를 썼다. "티얜이 형, 우리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지요. 저는 늘 형과 속시원하게 이야기했으면 합니다만, 언제나 시간이 없어서요. 오늘은 리우 주임이 현장의 과외활동 방안의 초안을 잡아서 굳이 저더러 의견을 내든지, 아니면 고쳐라도 달라고 그러더군요. 그리고 3시에 또 회의가 하나 있고요." 그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어쩔 수 없다는 듯 씁쓸한 미소를 한 번 지었다. 그는 결코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항전 시기에는 누구나 고생을 좀 해야 하는 법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시간은 아무래도 충분히 안배가 되어야 한다. "왕 위원은 또 전보를 세 차례나 보내 와 막무가내로 저더러 한코우에 한번 다녀오라고 그러더군요. 여기서는 전선문화계 항전총회가 결성되어 모든 항전활동을 지도해야 하는데 말이에요. 맙소사, 제가 어떻게 다녀올 수 있겠어요." 이리하여 그는 황급히 나와 악수를 나누고 전용 인력거에 탔다. 그는 언제나 서류가방을 끼고 있다. 또 언제나 볼품없는 검고 반들반들한 지팡이를 지니고 있다. 그의 왼손 무명지에는 결혼반지가 끼워져 있는데, 궐련을 들고 있을 때면 이 무명지가 조금 구부러지고 새끼손가락이 올라가 한 송이 난꽃 모양이 된다. 이 도시의 인력거는 어느 것이나 신나게 달리지 않는다. 한 발짝 한 발짝 아주 착실하게, 마치 밥을 먹은 후에 산보하듯 천천히 걷는다. 그러나 전용 인력거는 예외이다. 띵동띵동띵동 하면서 단번에 앞질러 나간다. 다른 인력거들은 즉시 왼편으로 붙어서야 하며, 손수레는 당장 비켜나야 한다. 짐꾼들은 재빨리 길가로 물러나며, 행인들은 양쪽의 점포 안으로 급히 피한다. 전용 인력거의 경적 소리는 끊임없이 울리고 인력거 바퀴살의 철사는 섬광처럼 번득인다. 채 분명히 보기도 전에 인력거는 벌써 번개처럼 빠르게 저 멀리 달려가 버린다. 그런데 이곳의 고위 구국활동가들이 낸 통계에 의하면 이 중 가장 빨리 달리는 것은 바로 화웨이 선생의 전용 인력거라고 한다. 그에게는 시간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는 늘 이렇게 말하곤 한다. "나는 밤에 잠자는 제도를 없애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다. 나는 또 하루가 24시간보다 많았으면 한다. 구국활동은 정말이지 할 일이 너무 많다." 이윽고 인력거에 탄 그는 시계를 꺼내 보았다. 그러더니 풍만한 그의 얼굴 근육이 곧 긴장되기 시작했다. 눈썹을 찌푸리고 입술을 힘주어 오므리고 하는 것이 마치 온몸의 정력을 얼굴로 모으려는 것 같다. 그는 즉시 떠났다. 바로 난민구제회에 참석하러 가야 하는 것이다. 으레 회의장에는 사람들이 모두 도착하여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문 입구에 세운 전용 인력거에서 내릴 때면 언제나 경적을 띵동 하고 한번 울린다. 그 소리를 들은 동지들은 "아, 화웨이 선생이 오셨군." 하며 서로 쳐다보았다. 몇 사람은 한시름 놓았다는 듯 숨을 내쉬고, 몇 사람은 목을 길게 빼고 회의장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어떤 사람은 심지어 마치 결투라도 준비하는 양 주먹을 꽉 쥐고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화웨이 선생의 태도는 아주 장엄했다. 조용한 걸음걸이로 들어갔는데, 앞서의 그 바쁜 모습은 자신의 장엄한 태도에 의해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그는 문 입구에 잠시 멈추어 서서 모두들 그를 분명하게 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동지들의 신임을 환기시키려는 것 같기도 하고, 동지들에게 일종의 담보--아무리 크고 곤란한 일일지라도 이젠 안심해도 된다는--를 제공하려는 것 같기도 했다. 그는 또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아무에게도 눈길을 주지 않은 채, 천장만 올려다보고 있다가 모든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다. 회의장은 안은 아주 조용했다. 회의가 곧 시작되려는 모양이다. 어떤 사람이 무슨 종잇장을 넘기는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화웨이 선생은 겸손하게 주석 자리에서 가장 먼, 썰렁한 구석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는 그다지 주석을 맡으려 하지 않았다. "나는 주석을 맡을 수 없어요." 그는 궐련을 한 개비 들고 손짓을 했다. "노동자 구국활동협회의 지도부 상임회의가 오늘 있고, 통속문예연구회의 모임도 오늘입니다. 잠시 후에는 부상병 활동단에도 가 봐야 하구요. 나에게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는 걸 아시잖아요. 여기서도 10분 동안만 토론할 수 있을 뿐입니다. 나는 주석을 맡을 수 없어요. 나는 리우 동지를 주석으로 추대하고자 합니다." 그는 말을 마치자 곧 입가에 한 줄기 미소를 띠고는 가볍게 손바닥을 몇 차례 두드렸다. 주석이 보고를 할 때, 화웨이 선생은 자리에서 끊임없이 성냥을 그어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러고는 시계를 눈앞에 놓고 마치 뭘 계산이라도 하듯 수시로 쳐다보았다. "제의합니다." 그가 큰 소리로 말했다. "우리의 시간은 대단히 소중합니다. 나는 주석이 가능한 한 좀 간단하게 보고하기를 바랍니다. 나는 주석이 2분 이내에 보고를 마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는 2분 동안 성냥을 그어댄 후 기세 좋게 일어나 한참 보고하느라 열을 올리고 있는 주석에게 손을 저었다. "됐어요, 됐어. 주석의 보고가 다 끝나지 않았지만 나는 이해했습니다. 나는 지금 또 다른 회의에 가야 하니까, 먼저 약간의 의견을 발표할까 합니다." 그러고는 잠시 멈추었다가 담배를 두어 모금 빨고 여러 사람을 한눈에 훑어보았다. "내 의견은 간단합니다. 단지 두 가지뿐이에요." 그는 입술을 한 번 축였다. "첫째, 활동가들은 누구나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일을 다그쳐야 합니다. 이 점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모두가 부지런한 청년들이고 열심히 활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감격해 마지않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언제나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내가 두 번째로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는 또 담배를 두어 모금 빨아 보지만 입에서 나오는 것은 더운 김밖에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성냥을 한 번 더 그었다. "둘째는 젊은 청년활동가들이 지도중심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지도중심의 아래에서만 모두가 단결하고 통일할 수 있습니다. 또 이 지도중심의 지도 아래에서만 구국활동도 자라기 때문입니다. 만약 지도중심이 없다면 오류를 범하기 쉬워서 종종 수습할 수 없는 지경이 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의 얼굴을 둘러보고는 그의 안면 근육이 한 번 움찔했다. 일종의 미소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들은 모두 청년동지들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아주 솔직하게, 거리낌없이 말했습니다. 모두가 구국활동을 하려는 사람들인데 무슨 거리낌이 있겠습니까." 말을 마친 뒤에 그는 모자를 쓰고 가방을 들었다. 그러고는 천장을 올려다보면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배를 내밀며 걸어나갔다. 문 입구에 이르자 그는 문득 무슨 일이 떠오른 듯 주석을 맡고 있는 동지를 끌어당겨 작은 소리로 물었다. "당신들 활동에 무슨 곤란한 점은 없소?" "제가 방금 드린 보고에서 그 점을 제기했습니다. 우리는..." 화웨이 선생은 집게손가락을 뻗어서 주석의 가슴을 찔렀다. "아, 아, 아, 알았소, 알았소. 나는 이 일을 더 이상 이야기할 시간이 없어요. 나중에 당신들이 생각한 활동계획을 가지고 우리 집으로 찾아와 나와 상의를 해봅시다." 주석 곁에 앉았던 머리가 긴 청년이 그들을 주의 깊게 보고 있다가 더이상 참지 못하고 말참견을 했다. "수요일에 우리는 화 선생님 댁에 세 번이나 갔었는데 화 선생님은 댁에 안 계시고..." 화웨이 선생은 그를 한 번 쳐다보고는 냉랭하게 대답했다. "아, 그때 다른 일이 있어서..." 그러고는 주석에게 낮은 소리로 말했다. "만약 내가 집에 없으면 미스 황과 상의해도 괜찮아요. 미스 황은 내 의견을 알고 있으니 당신들에게 알려 줄 수 있어요." 미스 황은 바로 그의 부인이다. 그는 제3자에게 그녀를 말할 때 항상 이렇게 불렀다. 그는 말을 마치고 곧 그곳을 떠나 통속문예연구회의 회의장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이미 회의가 시작되어 한 사람이 한참 의견을 발표하고 있었다. 그는 자리에 앉아 궐련에 불을 붙이고 재미 없다는 듯 손뼉을 세 번 쳤다. "주석!" 그가 외쳤다. "나는 오늘 또 다른 회의가 있어서 폐회 때까지 기다릴 수 없어요. 내게 약간의 의견이 있는데 먼저 발표했으면 합니다." 그리하여 그는 두 가지 의견을 발표했다. 첫째, 그는 모두에게--자리에 참석한 사람은 모두 그 지역의 문화인이다--문화인의 활동은 대단히 중요하며 더욱 적극적으로 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둘째, 문화인들은 지도중심을 분명히 인식해야 하고 그 지역 지도중심의 지도 아래에서 단결하고 통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5시 45분에 그는 노동자 구구활동협회 지도부 회의실에 도착했다. 그는 얼굴에 미소를 가득 띤 채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45분이나 늦었군요." 주석은 그에게 미소를 지었지만, 그는 여전히 잘못을 저질러 야단맞을까 두려워하는 것처럼 웃으며 혀를 빼물었다. 그는 주위의 형세를 살펴보고는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는 아주 비밀스럽고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작은 소리로 옆에 앉은 털보에게 물었다. "어제 저녁에 자네 많이 취했지?" "괜찮아. 머리가 좀 어지러울 뿐이라네. 자네는?" "나 말인가? 그 독한 술 담배를 하지 않았어야 하는 건데." 그가 엄숙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더욱이 럼주는 급히 마셔서는 안 되는 건데, 리우 주임이 억지로 잔을 비우라고 해서... 아이구, 집에 가자마자 곯아떨어졌네. 미스 황은 리우 주임과 결판을 내겠다고 하더군. 왜 그렇게 술에 취하게 만들었는지 그에게 따지겠다는 거야. 두고 보라구." 이렇게 말하고 그는 급히 가방을 열어 몇 글자 적혀 있는 종이 쪽지를 꺼낸 후 주석에게 주었다. "잠깐만 기다려 주시오." 주석은 한참 발언하고 있는 사람의 말허리를 끊었다. "화웨이 선생께서 가 봐야 할 또 다른 일이 있답니다. 지금 그에게 의견이 있다니 발표하도록 합시다." 화웨이 선생은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났다. "주석! 그리고 여러분!" 그는 허리를 조금 숙였다. "저는 먼저 여러분의 양해를 구하는 바입니다. 회의에 늦게 온데다가 먼저 일어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다음 그는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그는 이 지도부는 하나의 지도기관이며 언제나 지도중심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중은 복잡합니다. 더욱이 오늘날의 대중은 그 구성인자가 대단히 복잡합니다. 우리가 만약 지도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면 대단히 위험합니다. 사실 이 지역 각 방면의 활동도 하나의 지도중심이 없으면 안 됩니다. 우리의 책임은 정말 막중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고초도 두려워하지 않고 이 책임을 완수해 나가야 합니다." 그는 지도중심 역할의 중요성을 반복해서 설명한 후, 곧 모자를 쓰고 연회에 참석하기 위해 그곳을 떠났다. 그는 늘 이렇게 바쁘다. 리우 주임의 사무실에 일을 처리하러 가야 하고, 회의에 참석하러 각 단체에 가야 한다. 게다가 매일 다른 사람이 그를 식사에 초대하지 않으면, 그가 다른 사람을 식사에 초대했다. 화웨이 부인은 나를 만날 때마다 언제나 화웨이 선생을 대신하여 고충을 털어놓았다. "아아, 그이는 정말이지 고생스러워 죽을 지경이에요. 일이 너무 많아서 밥 먹을 시간조차 없답니다." "관여하는 일들을 좀 줄이고 어떤 한 가지 일만 전적으로 하면 안 되나요?" 내가 물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요? 그것이 그의 일인걸요." 한번은 화웨이 선생이 아예 놀라 자빠질 뻔한 일이 있었다. 부녀계의 어떤 사람들이 전시영아보육회를 조직하면서 그를 찾아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수소문을 해서 책임자를 찾아냈다. "당신들이 위원회를 이미 선출했다는 것을 알고 있소. 나는 몇 사람 더 보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는 상대방이 머뭇거리고 있는 것을 보자 아래턱을 힘주어 당겼다. "문제는 바로 그 점이오. 당신들 위원이 진정으로 이 활동을 지도할 수 있는가 하는 점 말이오. 당신은 나에게 그 모임 내부에 불량분자가 없다고 보증할 수 있소? 앞으로 활동에 오류를 범하지도, 일을 게을리 하지도 않는다고 보증할 수 있소? 당신이 보증할 수 있다면 나에게 문서를 작성해 주시오." 이어서 그는 또 이것은 결코 그 자신의 견해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집행하는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집게손가락으로 상대방의 가슴을 찔렀다. "만약 내가 방금 말한 것들을 당신들이 처리할 수 없다면 그것은 불법 단체가 되지 않겠소?" 이렇게 두어 차례 담판을 벌인 결과, 화웨이 선생은 전시영아보육회의 위원이 되었다. 그리하여 위원회가 열릴 때면 화웨이 선생은 가방을 끼고 가서 그렇게 5분 동안 앉았다가 한두 가지 의견을 발표하고 곧 전용 인력거에 오르곤 했다. 어느 날, 그가 나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그의 고향에서 소금에 절여서 말린 고기를 좀 가져왔다는 것이다. 내가 그의 집에 도착했을 때 그는 학생처럼 보이는 두 사람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자네들은 왜 오지 않았나? 왜 오지 않았냐구!" 그가 으르렁거렸다. "내가 자네들더러 몇 사람 데리고 오라고 했었지. 그런데 내가 단상에 올라 연설을 시작하면서 보니까 자네들조차 오지 않았더군. 나는 자네들이 뭘 하는지 정말 이해할 수 없어." "우리는 어제 새로 조직된 난민독서회에 갔었어요." 화웨이 선생은 펄쩍 뛰었다. "뭐, 뭐라고? 새로 조직된 난민독서회? 어떻게 내가 모르고 있었지? 왜 나에게 알리지 않았어?" "우리가 그날 모두 결의한 것입니다. 내가 화 선생님을 찾아왔었는데 화 선생님이 댁에 안 계시고 해서..." "좋아, 자네들이 비밀행동을..." 그는 눈을 부라렸다. "자네, 나에게 솔직하게 말하게. 그 독서회가 대체 어떤 배경을 지니고 있는지. 나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으라구." 상대방도 화가 난 모양이었다. "무슨 배경 말입니까? 모두가 중화민족인데... 어떤 비밀행동도 없어요. 화 선생님은 회의에 나오지도 않고, 회의에 참석하더라도 끝가지 앉아 있지도 않으시니... 아무래도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고 해서..." 화웨이 선생은 궐련을 내던지고 발작적으로 탁자 위를 뻥 하고 내리쳤다. "이런 얼빠진!" 그는 어금니를 깨물고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자네들, 조심해. 흥, 조심하라구." 그는 소파 위에 쓰러졌다. 입술은 고통스럽게 일그러져 있었다. "제기랄, 이런... 젊은 것들이란..." 5분쯤 후에 그가 고개를 들더니 두려운 듯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 두 사람의 손님은 이미 떠난 다음이었다. 그는 길게 탄식을 했다. "아이구, 보세요. 보세요, 티얜이 형. 좀 보세요. 요즘 젊은 사람들이 어떤지..." 그날 저녁에 그는 죽어라고 술을 퍼마셨다. 그는 씨부렁씨부렁하며 그 젊은이들을 욕하다가 찻잔을 하나 깨뜨렸다. 미스 황이 그를 부축해서 침대에 눕히자 그는 별안간 몸서리를 한 번 치더니 이렇게 말했다. "내일 10시에 회의가 있는데..." (1938년 4월) 짱텐이의 작품 세계 짱텐이의 소설은 대개 소시민의 음울한 인생과 지식계급의 허위와 가식의 심리상태를 주제로 삼고 있다. 작가는 각계각층의 인물을 풍자했는데, 이러한 인물들은 대개 거리를 배회하거나 연애로 소일하는 무료하고 공허한 생활을 하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기에 그의 소설에 묘사된 세상은 자학과 학대와 질시로 가득 차 있으며, 등장인물들은 큰 포부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형편에 따라 굽신거리며 자신과 남도 배반하는 일을 행하곤 한다. 따라서 그의 소설에는 인습과 우매, 몰염치, 그리고 천박함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 묘사의 기교 또한 뛰어나서 후펑은 그의 "짱텐이론"에서, "텐이는 과학적인 탐구보다는 직관에 의존하는 경향이 짙다. 그의 반짝이는 재기와 필치는 사소한 사건전개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의 독특한 체재에 대해 그 장단점을 평가할 수 없지만 누구보다도 독창적인 점은 확실하다. 마법사처럼 자신의 글을 다루는 능력이 없는 모방자는 가장 속된 길을 걷는다."라고 평가하였다. 짱텐이의 작품은 편협하고 빗나간 인간성이나 허위와 가식으로 가득 찬 중류사회에 대한 묘사가 출중하다. 그리고 심리묘사가 섬세하면서도 명랑하고 경쾌하며 해학적이다. "화웨이 선생"(1938)은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작품이다. 이 소설은 구국에 힘쓰기보다는 구국요인 행세를 하기에 급급한 항전관리를 묘사하였다. 그는 회의에 참석하여 천편일률적인 연설을 하면서 공명에만 마음을 두고 있다. 이것을 두고 작가 자신도 '우리 민족에 자라난 종기'라고 말했듯이 항전대열에 끼여 있는 화웨이 선생 같은 인간은 오히려 항전을 저해하는 좀벌레임을 강조하였다. 이 소설을 두고 일본군이 항일공작자의 전형적인 인물이라고 역선전을 펴서 적지 않은 논란이 일어났다. 이것은 작가 자신도 전혀 예기치 못했던 결과였다. 마오뚠은 항전시기의 사회현실을, "광명과 암흑기 교차했던 것이 항전의 현실이었다. 치열한 영웅투쟁이 있는 반면, 파렴치와 이기, 비열함이 들끓었다. 대중은 이런 것을 목도하며 이러한 비열한 작폐에 희생되었다."라고 평하였다. 이러한 작폐를 일삼는 사람이 곧 항전관리이며, 나라를 구하겠다는 사람은 곧 주전파이며, 개가죽 고약을 파는 자들이 바로 화웨이 선생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작가는 통렬하게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샤오ㅉ 작가 세계 1907년 요녕성 의현에서 출생. 원명은 리우홍린, 필명은 텐ㅉ. 1917년 부친을 따라 장춘학교에서 수학. 1931년 9.18사변 후에 항일의용군을 조직. 1933년 샤오홍과 하얼빈에서 단편소설집 "발섭"을 출판. 1934년 6월, 샤오홍과 "청도신보" 부간 편집을 맡음. 루쉰과 교통하며 "해연", "작가"의 편집을 맡음. 1935년 6월, 장편소설 "8월의 향촌"을 출간하자 루쉰이 서문으로 칭찬. 무한에서 "칠월"의 편집에 참여. 산서의 민족혁명대학 교수. 1938년 3월, 연안에서 서북전지복무단에 참여. 1940년 다시 연안으로 가서 문예좌담회에 참가. 1947년 하얼빈에서 "문화보"를 창간하고 총편집을 맡음. 1951년 북경에서 장편 "5월의 광산"을 씀. 1959년 북경 희곡연구소 연구원. 1978년 시사 800여 수를 정리하고 루쉰, 샤오홍과의 글을 주석하여 "샤오홍 서간집존주석록"을 발표. 1988년 6월 22일 사망. 광란의 파도 샤오ㅉ 탄알 자국이 점점 커지기 시작하여, 흙담이 노인의 이 빠진 잇몸처럼 힘없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사방은 짚더미로 어지럽고, 지붕에는 구멍이 수없이 나 있었다. 태양은 그 구멍을 통해 방바닥에 죽어 나자빠진 시체 위에 햇살을 내리 비쳤다. 어린아이의 두개골이 뜰에 나뒹굴었다. 겨우 살아 남은 개들은 꼬리를 가랑이 속에 바싹 말아 놓은 채 흙담 밑을 거닐다가, 애나 어른의 시신을 발견하면 정신없이 달려들어 물어뜯었다. 정오가 되어도 산양들의 울음 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수탉 한 마리조차 얼씬하지 않았다. 다만 참새떼들만이 외롭게 하늘을 날아다닐 뿐이었다. 마을 동편 산꼭대기 위의 아주 높은 장대에 매달려 휘날리던 붉은 깃발은 이제 보이지 않고 대신 일장기만 나부꼈다. 마을 뒤편 사원의 깃대 위에서도 일장기가 휘날리고 있었다. 그 아래 주둔한 일개 중대 병력의 반 정도 되는 일본군은 대위의 지휘 아래 움직이고 있었다. 뜰에서 수건을 목에 걸치고 일하던 사병들의 모습은 이제 보이지 않았다. 그저 한곳에 둘러앉아 잡담이나 욕설을 하거나, 입에 담기 어려운 음담 패설을 늘어 놓거나, 거친 시골 민요를 흥얼거리곤 했다. 스무 살밖에 안 된 마쓰하라는 군복을 쫙 빼 입고 군도를 찬 채 사원 앞 돌계단에 앉아 있었다. 그는 군화를 벗어 군화 밑창으로 돌계단을 탁탁 치면서 휘파람을 불었다. 그는 짙고 까만 눈썹을 가졌고, 턱수염은 방금 면도를 끝낸 탓인지 붉다 못해 푸르스름하였다. 마쓰하라는 철모를 벗어 안쪽의 땀을 닦아 낸 다음 반듯하게 고쳐 쓰고 유유히 걸어 나왔다. "어딜 가는 거야?" "나갔다 금방 들어올게." 마쓰하라는 위병에게 한쪽 눈을 감아 보였으나, 위병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또 계집질하러 가는 거야? 잠시 후에 중대장의 점호가 있을 텐데..." 마쓰하라는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벌써 담 모퉁이를 돌아가고 있었다. 손에는 대검이 들려 있었다. 그는 유유히 휘파람을 불었다. 휘파람 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구성지게 들렸다. 그는 휘파람 소리에 맞추어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이제껏 한 번도 중국 여자를 건드린 적이 없음을 생각해 보았다. 어떻게 해치운담? 동료들이 계집질하는 것을 수없이 보아 왔지만, 그는 그런 것이 부끄러웠다. 새로 입대한 신병인지라 고참들만큼 익숙하지 못했고, 전선으로 떠날 때 애인인 호오꼬가 거듭 당부하지 않았던가. "전쟁에 나서더라도 중국 여자는 건드리지 말아요! 그건 너무 비극이에요." 만주에 오기 전에 마쓰하라는 이미 만주에서 돌아온 병사들의 입을 통해 중국인을 살해하고 여자를 건드리는 방법에 대해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중국인들을 죽이는 이야기는 참으로 실감났다. "스스로 무릎을 꿇게 하고 옷을 벗겨 젖가슴을 대검으로 몇 번이고 지르는 거야. 대검이 푹푹 박히지. 중국 여자를 건드리는 건..." 그는 여자들에 관한 이야기라면 더욱 귀를 기울였는데, 때로는 일부러 심드렁한 표정으로 다른 고참병들에게 물어 보기도 했다. "어떻게 중국 여자들을 건드렸습니까?" "누워서 떡 먹기야! 대검을 눈앞에 대고 흔들면 뭐든지 하라는 대로 하다니까. 말 안 들으면 죽여 버리지." "지휘관이 그냥 내버려둡니까?" "아, 전쟁이 한창인 만주에서 지휘관이 그런 거 감시할 새가 어딨어. 자기들도 마찬가지인데." 마쓰하라는 학창 시절에 '청년단'에서 활동했으며, '충군애국'을 자신의 신조로 삼아 왔다. 그는 일찍이 '노끼 장군' 같은 사람이 되리라 꿈꾸었고, '정충탑' 위에 자신의 이름이 새겨지는 꿈을 꾸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호오꼬는 대놓고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그런 생각은 버려요! 왜냐구요? 그건 비열한 생각이니까요! 나는 비열한 생각을 가진 남자를 사랑할 수 없어요." "너, 너는 나라의 반역자야. 천황 앞에 죄인이고 사회주의자야!" 그는 쓸데없는 자존심을 내세우며 도리어 그녀를 욕했다. 그들은 그런 문제로 몇 번이나 헤어질 뻔한 고비를 넘겼다. "싸우는 것은 좋지만 제발 중국 여자만은 건드리지 마세요! 몹쓸 짓이에요! 도대체 어느 나라의 행위인가요? 저주받을 군벌, 수천 수만의 아까운 젊은이들을 만주에 보내 개죽음시키다니." 전선으로 돌아올 때 마쓰하라는 호오꼬의 슬픔에 잠긴 얼굴을 보았다. 동시에 비탄에 젖은 수천 수만의 얼굴들이 플랫폼의 난간 밖에서 한결같이 모자와 수건을 흔드는 모습도 보았다. 노인들은 야위어 뼈만 남은 앙상한 손을 흔들며 만주로 가는 아들을 전송했다. 천황께 충성하고, 대화 민족의 영광을 위해... 만주로 향하는 병사는 날로 증가했지만, 돌아가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었다. 유독 만주의 관리들만 배불러 갔다. '충혼탑'이 곳곳에 세워지고, 출전 후에는 언제나 위령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사실들은 마쓰하라의 생각을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충군애국'의 사상 깊숙한 곳에 '반역'이 자리잡고 있었다. 마쓰하라는 거리에 쓰러진 시체들을 늘상 볼 수 있었다. 여인들의 젖꼭지는 도려지고, 바지는 찢기고, 하체에서 흘러 나온 피는 햇빛에 타 검게 변색되었다. 쉬파리가 몰려들고...생전에 노동으로 거칠어진 여인의 손가락을 땅속 깊이 박혀 있었다. 순간 호오꼬의 말이 떠올랐다. "정말 비극이에요!" 그는 지금 중국 여자를 찾아 나서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갑자기 겁이 났다. 휘파람을 불다 말고 발걸음을 멈춰 쉬파리가 들끓고 있는 부패해 가는 시신을 멍청히 내려다보았다. 등골이 오싹하니 식은땀이 흐르며 속이 메스꺼웠다. '여자가 고분고분하게 말을 듣지 않으면 나도 여자를 저 꼴로 만들어 놔야 하나? 정말 비참한 일이야. 아, 저 여인의 마음은 어땠을까? 돌아가자! 귀국하거든 호오꼬에게 일본 제국의 군대가 만주에서 어떤 만행을 저질렀는지 말해 주어야지!' 그는 면도한 턱을 한 손으로 감싸 쥐며, 한 손으로는 대검을 꺼내 길가의 돌멩이를 탁탁 쳐 보았다. 돌멩이는 대검에 맞아 하얀 얼이 났다. 돌조각이 그의 눈 속으로 튀어 들어갔다. 통증에 대검을 놓아 버리고 수건으로 눈을 비볐다. 그의 눈에선 눈물이 흘러 나왔다. 서쪽에서 술에 취한 병사 서넛이 어깨동무를 하고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혁대는 옆으로 비스듬히 걸치고 대검을 손에 쥔 채, 음정도 맞지 않는 노래를 목청껏 불러대고 있었다. 어떤 병사는 소변을 본 뒤 단추를 잠그는 것도 잊어버려 밖으로 나온 물건이 축 늘어져서 걸을 때마다 흐느적거렸다. 마쓰하라는 그들과 맞닥뜨리기가 무서워 재빨리 다른 길로 피했다. 누군가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모른 체하고 얼른 담 뒤로 숨어 버렸다. 군화에 자갈 부딪히는 소리와 너털웃음, 그리고 음정이 전혀 맞지 않는 노랫소리가 시끄럽게 들려 왔다. 그는 대검을 다시 주워 들고서도 칼집에 꽂지 않았다. 아니 꽂고 싶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목에 대검을 갖다 대었다. 이렇게 자살해 버리면 얼마나 편할까. 만취한 병사들은 점점 멀어져 갔다. 그제야 그는 담 뒤에서 나왔다. 그는 왔던 길을 되돌아 가고 싶지 않았다. 넋이 나간 듯 멍해져서 그는 이곳 저곳을 방황했다. '어딜 가면 여자를 찾을 수 있을까?' 이제 그의 머릿속은 다시 여자 생각으로 어지러웠다. '여자가 내 말을 듣지 않으면?' 그는 대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고는 힘껏 휘둘러 보았다. 한자 남짓한 대검을 흠집 하나 없이 날이 서 있었다. '이렇게 한 번 휘두르면 곧 말을 잘 듣겠지? 그런 다음 옷을 벗으라고 명령해야지. 내 손으로 벗길까? 아니면 칼로 찢어 버릴까? 그 다음, 아, 그 다음엔...누구나 다 하는 짓인데...만주에 온 대일본 제국의 군인들이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판에, 그까짓 것쯤은 일도 아니지! 게다가 있던 애인도 잃어버리는 이 마당에 아무러면 어때! 다들 하는 짓인데... 대장도 마찬가지잖아.' 마쓰하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자신도 모르고 있었다. 변화된 것이 있다면 시체와 탄흔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갑자기 아이의 울음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마쓰하라는 깜짝 놀랐다. 대체 여기가 어딜까? 아직도 어린아이가 남아 있다니... 남자들은 물론 어린아이, 늙은 여자들까지도 모조리 죽여 버렸던 것이다. 살려 둔 사람이라곤 처녀나 부인들밖에 없었다. 여기가 어딜까? 아이가 울다니 그는 몸을 낮춰 수숫잎이 흔들리지 않도록 조심했다. 아이가 우는 곳엔 반드시 여자가 있으리라. 어떤 여잘까? 제발 늙은 여자나 못생긴 여자가 아니었으면... 자세를 낮추고 소리 나는 쪽을 살펴보았다. 깎아지른 듯한 바위 아래로 오랜 세월 동안 흘러온 물에 움푹 패인 곳이 있었다. 개울물이 말라 붙어 이젠 그곳으로 흐르지 않고 한쪽으로 비껴서 흘러가고 있었다. 바로 그 오목한 바위에 한 여인이 앉아 있었다. '아니, 저렇게 젊을 수가!' 그 동안 여자 구경을 하지 못한 마쓰하라의 심장은 격하게 뛰었고 호흡도 가빠졌다. 손에 쥔 대검을 힘껏 쥐어 보며 자신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그러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아가...착한 아가야...울지 마라. 일본군이 들으면...엄마는 죽는단다. 아가야...누가 널 돌봐 주겠니...조금만 기다리면 당씨 아저씨가 와서 일본놈들을 내쫓을 거란다...아가야..." 마쓰하라는 여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으나 그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짐작이 갔다. '지금 당장 달려간다면 저 여자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비명을 지를까? 도망갈까? 아니면 암탉처럼 얌전하게 말을 들을까...' 불현듯 호오꼬의 말이 떠올랐다. "정말 비극이에요!" 그는 반박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사회주의자, 천황의 반역자라는 말을 들어서는 안 돼. 저 여자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풍만한 저 젖가슴... 일본 여자와 다름없이 아름다운 머릿결... 일본 제국의 군인들이라면 누구나 다 하는 짓인데... 지휘관도 대장도, 아무리 하늘 같은 천황이라도 마누라가 보지 않으면... 아무도 보지 않으면 그럴 거야...' 마쓰하라는 자신의 음탕한 마음을 천황에게 책임 전가시켰다. 처음에는 본능적으로 전율했다. 그러나 수수밭에 엎드려 있는 자신과 자신의 감시하에 놓여 있는, 손만 뻗으면 얻을 수 있는 연약한 토끼에 생각이 미치자 자신이야말로 이 자리의 주재자이며 권위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황 따위가 대체 뭔가? 그는 머리를 꼿꼿하게 세웠다. 곧 자존심이 회복되는 것 같았다. 동시에 그들 부대 앞에 주둔하고 있는 만주국 군대를 생각해 보았다. 중국 병사들도 일본 천황을 위해서 늘 목숨을 버리지 않는가? 그러나 그의 일본국에는 천황을 위해 싸우고 싶어하지 않는 소년병도 많았다. 그들은 비록 사회주의자는 아니었지만, 고생하는 고용농과 소비에트 정부를 동정하며, 때로는 우리의 적인 인민혁명군을 동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단 명령이 떨어지면 소총을 들고 전선으로 나갔다. 그러나 전투가 끝난 후엔 죄책감에 빠져들었으며 심지어 자살하는 경우도 있었다. 마쓰하라는 지휘관들도 중국의 혁명군을 두려워하면서 겉으로는 전혀 내색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다. "우리 천황 폐하께 충성하자." 는 말은 마쓰하라가 소학교 다닐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말이다. "대일본 제국의 군인은 죽을 때까지 우리 천황 폐하께 충성을 다 바쳐야 한다!" 군에 입대하여 선서할 때도 대장은 이렇게 훈시했었다. "아가야...잘 자라. 당씨 아저씨가 와서 일본놈들을 몰아낼 거야..." 칠수댁의 눈은 초점을 잃고 있었다. 아이는 울다 지쳤는지 다시 잠이 들었다. 그녀는 몽롱한 가운데, 우람한 어깨를 흔들며 소총을 든 혹부리가 돌아오는 꿈을 꾸었다. 그의 뒤에는 혁명군, 여인, 아이들... 그리고 죽은 남편도 있었다. 그녀는 남편에게 달려갔다. "야, 이년아!" 칠수댁의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산과 들도, 붉은 깃발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우람한 어깨를 가진 혹부리가 아니라 눈웃음치며 다가오는 어린 일본군 병사였다. 그녀는 자신의 최후가 임박했음을 직감하고는 아이를 품속에 꼭 안았다. 심장의 박동조차 멎은 듯 고요했다. 그녀는 놀란 것도 잊은 듯 조용히 자신의 목숨을 거두어 갈 마귀를 쏘아보았다. 그녀의 눈은 금강석처럼 단호했다. 시냇물은 옆의 풀섶으로 졸졸졸 흐르고 아이의 숨소리가 쌔근쌔근 들려 왔다. "아! 아가야...저리 가자. 넌...살아야 할 텐데!" 그녀는 앳된 일본군 병사를 쳐다보았다. 손에 쥔 대검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시뻘겋게 충혈된 눈, 입술 밖으로 튀어나온 이빨, 탐욕으로 상기된 얼굴... 그는 철모를 벗어 던지고 걸리적거리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조그만 골짜기에 울려 퍼졌다. 칠수댁의 몸과 마음은 견딜 수 없는 아픔으로 전율했다. "개 같은 자식, 저리 비키지 못해!" 일어나려고 몸부림쳤지만 며칠 밤낮을 굶주림과 피로와 공포와 초조한 기다림으로 보낸 그녀의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온 천지가 그녀의 눈앞에서 빙빙 돌기 시작했다. 칠흑 같은 어둠과 질식할 것만 같은 중압감에 그녀는 정신을 잃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개울 아래 돌 위에 내팽개쳐져 으스러진 아이의 머리에서 흐르는 피가 개울로 뚝뚝 떨어져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었다. 그녀는 벌렁 드러누운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옷은 갈기갈기 찢기고 온몸이 쑤셔 왔다. 높은 하늘의 태양도, 그 아래에 떠도는 흰 구름도 칠수댁의 고통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듯이 무상하기만 했다. 그녀는 혹시 아주 몹쓸 악몽을 꾼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한 현실로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아이의 두개골이 개울가 바위에 으스러져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가슴은 복수심으로 불탔다. 하지만 어디 간단 말인가? 한 자루의 칼도 없는데. 우람한 어깨를 가진 젊은 혹부리도, 용맹한 혁명군도 지금 곁에 없었다. 그들은 모두 투쟁하기 위해 떠났다. 그녀는 투쟁하다 죽은 남편을 떠올렸다. 나약한 그녀는 그저 한없는 슬픔에 눈물만 흘렸다. 바람과 함께 가끔씩 설익은 오곡의 내음이 풍겨 왔다. 수수와 콩과... 매년 9월이 되면 논밭은 추수하는 농부들의 소박한 웃음꽃으로 가득했고, 수레에는 추수한 곡식이 높이 쌓였었다. 추수한 곡식을 싣는 동안 가축들은 땅에 흘린 이삭들을 부지런히 주워 먹었지만, 사람들은 화낼 줄을 몰랐다. 아이들은 지난 겨울에 입던 솜옷을 그대로 걸치고 맨발로 소리치며 뛰놀았다. 농부들은 붉은 수수 이삭을 주워 자기네 가축들에게 먹였다. 자기 논밭이 없는 노인네들은 등에 자루를 메고 다니며 가축들이 먹다 남긴 이삭들을 줍거나, 자르고 남은 수숫대 속에서 어쩌다 빠뜨린 이삭을 찾아내곤 했다. 그것은 지주들의 추수이자 가난한 사람들의 추수이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는 사정이 달랐다. 논밭의 곡식은 그대로 내버려져 있었다. 혁명에 가담한 젊은이들은 오랫동안 고대하고 있었던 것처럼 거기에 미쳐 버렸다. 노인들은 황제가 다시 서게 된다는 말을 들었다. 황제의 뒤에는 영원한 '태평성대'가 와야 했다. 그러나 황제는 일본인을 위한 황제이며, 결국 일본놈들의 세상이 될 것이라 했다. 이에 노인들은 점차 황제에 대한 희망을 잃어 갔다. 게다가 정초부터 마음이 평온하지 못했다. 조선인들이 폭동을 일으켰던 것이다. 노인들은 젊은이들을 막을 수도, 도울 수도 없었다. 마을에 남아 있던 노인들을 일본군의 포화에 시달리기 일쑤였다. 칠수댁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끝없는 슬픔에 빠져들어 갔다. 머리가 으스러진 채 바위 위에 내던져진 아이를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녀는 딱 벌어진 어깨를 가진 젊은 농부, 혹부리가 원망스러웠다. 왜 그이는 내가 이렇게 고생하는 것을 모를까? 싸우느라고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린 것일까? 사랑하는 사람도 잊어버리다니... 그를 찾아가야 한다. 그가 없는 삶은 희미하고 의미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 그녀는 아이에게 모든 희망을 걸었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만날 기약도 없는 혹부리에게 희망을 걸고 있다. 혁명군 무리 속에서 끊임없이 활약하고 있는 혹부리에게... '나도 가야지. 나도 가야지. 그들과 함께 죽더라도, 그이와 함께 싸우다가 죽어야지!' 복수심과 한으로 응어리진 어떤 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그녀를 흥분시켰다. 그러나 무심코 아이의 시체를 보는 순간, 그녀는 또다시 나약해져서 눈을 감았다. 분노와 원한이 슬픔에 묻혀 버렸다. 황혼이 질 무렵에야 그 비참한 그림자는 미친 듯이, 으스러진 어린아이의 시체를 안고 비틀거리며 들판으로 내달렸다. 마쓰하라는 휘파람 부는 것도 잊고 있었다. 힘이 빠져 축 늘어진 발걸음으로 온 길을 되돌아갔다. 젖꼭지가 도려진 여자의 시체 옆을 지났다. 그 위에 새까맣게 붙어 있는 파리는 아까보다도 더 많이 불어나 제멋대로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가 영내에 들어섰을 때는 이미 저녁 어스름이 깔린 뒤였다. 연병장에서는 아무런 잡음도 들리지 않고, 다만 대위의 훈시 소리만이 크게 울릴 뿐이었다. 병사들은 가슴을 앞으로 내민 채 꼿꼿한 부동 자세로 서 있었다. 일렬로 도열한 사병들의 발뒤꿈치가 질긴 고깃덩어리처럼 보였다. "보고합니다!" 마쓰하라의 음성은 절도가 있었다. 자신이 용맹한 용사임을 보여 주기라도 하듯 몸을 약간 앞으로 향한 자세에서 네 손가락을 쫙 펴 철모 모서리에 갖다 댔다. 대위는 마쓰하라의 보고에도 아랑곳없이 계속해서 훈시를 하고 있었다. 마구 내뱉는 욕설과 잔소리 같은 지루한 연설이 병사들을 괴롭혔다. 그는 천황 폐하께 충성하고 빨갱이 토벌에 힘쓰는 것이 대일본 제국 군인의 본분이라고 했다. 아울러 한시라도 적의 반격에 대한 대비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대오는 여전히 부동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중대장인 대위가 마쓰하라를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얼굴과 온몸을, 그리고 하찮은 단추 하나까지도... 그러고 나서 다시 그의 얼굴을 심문하듯 노려보았다. 마쓰하라는 눈을 내리깔았다. 상관의 답례를 받지 못한 마쓰하라는 여전히 거수 경례를 한 자세이다. "어디 갔다 왔나?" "..." 마쓰하라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런 행위가 군기를 그다지 어긴 것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대장도 중국 여자를 건드린 적이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 말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다른 병사나 대장들이 다 그러하듯이 나도 중국 여자를 건드렸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동료들의 뜨거운 시선이 그의 얼굴과 전신에 쏠렸다. "너, 이 새끼!" 대위가 다가왔다. 온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매서운 눈초리는 엄하다 못해 차가웠다. 마치 어두컴컴하고 무시무시한 동굴처럼. 얼굴을 들 수 없는 마쓰하라의 두 뺨이 화끈거렸다.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닥칠 것만 같았다. "이렇게 늦게 귀대하고서도 아무런 이유가 없단 말인가?" '철썩'하고 따귀가 올라갔다. 그 순간 마쓰하라의 철모가 머리 위로 솟구쳤다가 땅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마스하라는 비틀거리면서도 다시 부동 자세를 취하려 안간힘을 썼다. 두 번, 세 번... 마쓰하라는 여전히 거수 경례를 한 자세이다. 아직까지 상관의 답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대위는 거의 반사적으로 여러 번 따귀를 올려 붙였다. 어느덧 마쓰하라의 입가에 찝찔한 피가 고여 들며, 두 뺨이 빨갛게 부어 올랐다. 중대장은 획 돌아서서 가 버렸다. 도열했던 병사들도 따라서 해산했다. 그러나 누구 하나 마쓰하라에게 다가와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았다. 이것은 규율이었다. 철모를 땅에 떨어뜨린 채 홀로 서 있는 그의 입에선 연신 피가 흘렀고, 뺨은 심한 통증으로 얼얼했다. 그는 연병장 한가운데 서서 기압을 받아야 했다. 밤바람이 일 때마다 추녀에 매달린 풍경이 청아한 소리를 내며 흔들거렸다. 사립문은 벌써 떨어져 바닥에 나뒹굴었고, 진흙으로 빚은 조상들이 위엄을 잃고 배를 찢긴 채 사방에 널려 있었다. 사원의 한쪽은 포탄에 깨끗이 날아가 버렸다. 마쓰하라는 곰곰이 생각했다. 대장이 그렇게 까지 구타했어야 옳은가? 구타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는가? 그는 다른 동료가 따귀 맞는 것을 늘 보아 왔지만 그때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따귀 맞는 사람들을 속으로 조롱하지 않았던가. 이제까지 누구를 위로해 본 적이 없는 자신이 이제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 버린 것이다. '대장 제놈은 하지 않았나? 계집질하다가 좀 늦게 돌아왔기로서니 이렇게 무자비하게 구타할 수가...'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조국과 천황과 애인 호오꼬, 바위에 내동댕이쳐진 어린아이와 강간당한 여자, 그리고 젖꼭지가 도려진 여자 시체... 눈시울이 갑자기 뜨거워졌다. 야간에 초병들이 근무 교대를 위해 출발 준비를 하고 있다. 마쓰하라도 그 속에 끼였다. 모두들 비웃으며 한 마디씩 던졌다. "계집질한 기분이 어때?" "마쓰하라, 계집질하는 것과 따귀 맞는 기분이 영 딴판이지!" "경험 없는 절름발이 개라도 토끼 사냥은 해야지." 낮에 마을에서 술을 퍼먹고 물건이 밖으로 나온 것도 모르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고참병이 그를 조롱했다. 그들은 모두 중대장이나 된 것처럼 위세를 부렸다. 마쓰하라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는 묵묵히 배낭과 수통, 소총, 야전 장구 등을 점검했다. "출발!" 이윽고 조장의 명령이 떨어졌다. 갑자기 그가 달려와 마쓰하라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멍청한 자식, 빨리 안 가고 뭘 꾸물거리는 거야?" 그들은 몸을 최대한으로 낮추고 산기슭을 따라 산등성이로 기어올라 가서 전 근무조와 교대했다. 전 근무조는 새 근무조에게 주의사항과 경계구역과 표적물을 알려 주었다. 조장은 전 근무조와 다른 초소로 가서 교대할 조를 데리고 산을 내려갔다. 마쓰하라의 동료는 쌈지담배를 피워 물었다. 담배 연기는 바람에 이리저리 흩날리다가 담 위로 피워 오르며 급히 날아가 버렸다. "흡연은 좋지 않아! 적에게 발각된다구!" 마쓰하라가 주의를 주었지만 동료는 아랑곳도 하지 않았다. 그는 여유만만하게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마쓰하라에게 있어서 조금 전의 일은 한 들판, 구불구불한 개울은 잠들어 있었다. 자작나무 숲, 고요한 들판... 인가가 있는 곳에서 밥 짓는 연기가 보이지 않은 지도 오래였다. 풀벌레 소리마저 처량하게 들렸다. 풀숲에서, 돌 틈에서...울고 또 울었다. 이곳은 마쓰하라의 고국이 아니다. 그에게 있어서 대륙이 경치는 낯선 것이었다. 엷은 구름층 뒤로 반쯤 이지러진 달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마쓰하라, 너 도대체 어떤 여자를 건드렸냐?" 어느새 담배 한 대를 또 피워 문 동료가 유유히 연기를 내뿜으며 지나가는 소리로 물었다. "어떤 여자냐고? 묻지 마라!" 동료의 물음에 마쓰하라는 벌컥 화를 내며 소총의 개머리판을 바위에 힘껏 내리쳤다. 그의 눈빛은 격투라도 할 기세이다. 동료는 이러한 그의 위협에도 아랑곳없이 그저 눈을 들었다가는 다시 내리깔았다. 그러고는 편안한 듯 유유히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연기는 곧바로 공중으로 흩어졌고 뻑뻑 빨 때마다 불꽃은 섬광처럼 빛났다. "아무것도 아닌데 뭘 그래? 누구라도 마찬가지야. 상관들은 안 그런가?" "글쎄, 묻지 말라니깐." 동료는 씩 웃었다. 달빛 아래 드러난 그의 웃음은 해괴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마쓰하라는 자신도 모르게 대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마쓰하라는 줄곧 생각에 잠겨 건너편 산등성이와 개울을 주시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앞에 떠오르는 것은 불쾌하고 무시무시한 환상뿐이었다. 젖꼭지가 도려진 시체, 머리가 으스러진 채 바위 위에 내동댕이쳐진 아이, 여인의 몸부림, 중대장... 그는 자신의 뺨을 만져 보았다. 부어 오른 뺨이 아직도 얼얼했다. 마쓰하라의 동료는 잠이 들었다. 머리를 비스듬히 숙이고, 두 다리 사이에 소총을 끼운 채 모든 것이 귀찮다는 듯이. '직무에 충실하지도, 천황 폐하께 충성하지도 않는 사람!' 마쓰하라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누구나 마찬가지야. 상관들도 다 그러니까.' 마음속 깊이 숨죽이고 있던 불만이 고개를 들고 일어섰다. '오늘밤엔 아무 일 없을 거야. 설마 놈들이 올라고? 아무 움직임도 없잖아. 30분, 기껏해야 한 시간 정도만 더 기다리면 될 거야. 그러면 교대할 수 있겠지.' 건너편 산등성이도, 개울도...적의 습격...천황...상관...이 모든 것들이 더러운 벌레처럼 스물스물 기어나갔다. 피로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그에게 접근하였다. 그가 소총에 손을 뻗는 순간이었다. "꼼짝 마!" 적의 총구는 그와 동료의 가슴을 겨냥하고 있었다. 키가 훤칠하고 권총을 든 남자가 호령을 했다.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허튼 수작 했다가는 총탄 세례를 받으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동료는 고분고분하게 몸에 찬 탄띠를 풀어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의 태도는 담배를 피울 때처럼 자연스럽고 여유가 있었다. "너도!" 매부리코의 키 큰 남자가 권총을 들이대며 소리쳤다. "이 새끼야, 빨리! 뭘 꾸물대고 있어!" 누군가 욕을 퍼부었다. 그는 서둘러 탄띠를 풀어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키 큰 남자는 총을 들지 않은 뒷사람에게 탄띠와 소총을 건네 주었다. "동지는 여기에 남으시오. 누군든지 반항하면 쏴 버리시오." 키 큰 남자는 나머지 사람들을 데리고 떠났다. 잠시 후에 총성이 연거푸 울렸다. 교대하러 오던 초병과 총격전이 벌어진 것이 틀림없었다. "젠장, 비참하구나!" 총살이나 당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감시자를 힐끔 쳐다보았다. 어깨가 딱 벌어지고 야무지게 생긴 놈이었다. 혹부리는 총성을 들으며 칠수댁을 떠올렸다. 독수리 대장이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칠수댁은 어떻게 되었을까? 개죽음을 당했을 거야!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몰라...살아 있다면 혹시 일본군에게 무참하게 당했을지도...' 갑자기 분노가 솟구쳐 올랐다. 그는 당장 이 두 놈을 죽여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먼저 포로 한 놈에게 총부리를 겨누었다. "나니, 나니(무, 무엇하는 거요)?" 포로가 겁에 질려 소리쳤다.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싸며 처참한 모습으로 벌벌 떨었다. 혹부리는 방아쇠에서 손을 떼고, 총신을 제자리로 가져왔다 그리고 숨을 크게 내쉬었다. 담 밑에 웅크린 채 파르르 경련하는 두 가련한 인간을 쳐다보았다. 그는 쏠 수 없었다. 그것은 연민 때문이 아니라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이었다. 독수리 대장의 명령이 떠올랐다. "누구든지 반항하면 쏴 버리시오." 지금 그들은 이처럼 온순하지 않은가. 그들을 쏠 이유가 없었다. 인민 혁명군의 규율은 저항하지 않는 포로들에 대해서는 관대했다. 사령관도 늘 이렇게 말했다. "나쁜 놈들은 사병들의 피를 빨아먹는 군관놈들이오. 우린 그놈들을 용서해서는 안 되오. 일본군이나 그 앞잡이들이나 다 마찬가지요. 그들은 사병들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지. 하지만 사병들은 우리와 똑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우리의 형제나 마찬가지오. 우린 총만 뺏으면 되는 것이오. 물론 우릴 방해하는 놈들은 없애 버려야지. 어쨌든 사병들은 앞으로 우리와 협력하게 될 거요. 사병은 사병을 치지 않는다는 말도 있소. 앞으로 부득이한 경우에만 쏘시오. 동지들, 이 말을 명심하도록!" 총성이 요란했다. 머리 위로 포탄이 날아가는 소리가 들려 왔다. 독수리 대장은, 긴 칼을 휘두르며 불빛 속에서 제복도 제대로 걸치지 못한 채 허겁지겁 도망치는 중대장을 뒤쫓고 있었다. 쫓기고 쫓는 다급한 상황이 혹부리의 눈앞에 또렷이 전개되고 있었다. 그는 소총을 움켜쥐었다. 동이 틀 무렵에야 대원들은 피투성이가 된 채, 기진맥진한 몸을 이끌고 산등성이를 기어올라왔다. "그 두 놈을 묶어 눈을 가리고 입에 재갈을 물려! 자, 가자!" 혹부리는 독수리 대장이 들고 있는 군도를 보았다. 군도에는 피가 얼룩져 있었다. 50명의 대원 모두가 한 10년은 더 늙어 보였다. 전체 인원도 줄어들었다. 그러나 총도 없이 따라나섰던 십여 명의 어깨에는 어느 틈엔가 소총이 하나씩 들려 있고, 허리엔 탄띠도 두르고 있었다. 탄띠를 두른 모습이 어딘가 어설프게 보였다. 어떤 대원은 총을 두 자루씩이나 메고 있었다. 대원들은 하나 둘 산등성이를 내려가 개울을 건너서 골짜기 입구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왕씨 마을에서 피어 오르던 연기가 아직도 나무들 사이로 구불구불 번져 나오고 있었다. 이삼은 혹부리에게 전부터 이 골짜기를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일곱 사람은 이곳을 지나 왕씨 마을로 갔었지. 산등성이에 꽂힌 흉기를 처음 보는 순간 노래가 절로 나오더군." 혹부리는 칠수댁을, 이삼은 죽은 꺽다리와 추이 노인을 각각 생각하고 있었다. 대원들은 지친 몸을 끌다시피 하며 걸었다. 오늘 죽어간 사람들을 잊고 있듯이, 사흘 전에 죽은 사람들을 생각하기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독수리 대장도 평소처럼 민첩하지 못했다. 산을 오르면서 계속 어깨를 늘어뜨린 것이 매우 지친 모습이다. 자작나무 숲을 거의 지나왔을 때 이삼이 소리쳤다. "저것 봐! 사람 아니야?" "가 보자!" "칠수댁이야. 아일 안고 있잖아. 으윽!... 머리가 다 으스러졌군!" 제일 먼저 달려간 것은 혹부리였다. 그 순간 그는 제정신을 잃고 칠수댁 앞에 털썩 꿇어앉았다. 그녀는 자작나무에 등을 기댄 채 주저앉아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두 손은 죽은 듯이 아이의 시체를 꼭 감싸 안고 있었다. 그녀의 바지는 갈기갈기 찢기고, 한쪽 젖꼭지는 피범벅이 된 아이의 작은 입술에 물려 있었다. 대원들은 어찌할 줄 몰라 넋을 잃고 있었다. 독수리 대장조차 그 자리에 멀거니 서서 울부짖는 혹부리를 그저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누가 주워 온 일본놈 철모로 개울에 가서 물좀 떠 와." 나이 든 한 대원이 입을 열었다. 누군가가 물을 떠다가 그녀의 머리 위에 붓는 순간, 숨소리가 들렸다. 혹부리는 그녀를 어떻게 불러야 좋을 지 몰라 주위를 둘러싼 대원들을 안타깝게 쳐다보았다. 대원들도 안타까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어서 불러 봐! 뭘 망설이고 있어?" "어때, 우린 다 형제들이잖아. 뭐가 부끄러워서 그래?" 대원들이 딱하다는 듯 한 마디씩 했다. 모두들 고개를 내밀고 바라보았다. 그때 독수리 대장이 팔을 휘저으며 명령했다. "저리 가! 모두들 저쪽에 가서 집합해!" 대원들은 칠수댁이 어떤 모습으로 깨어날지 궁금했다. 그러나 독수리 대장의 명령은 지상 명령이었다. 집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지들, 우린 여기서 시간을 허비할 수 없소! 우리는 저 여자를 포기해야 하오. 적이 곧 우릴 추격해 올 거요." 독수리 대장의 눈길이 혹부리의 눈길과 마주쳤다. "그 여자를 두고 가시오!" 그 말은 가까운 곳에서 터진 수류탄의 파열음처럼 혹부리의 의식을 산산조각이 나게 했다. 그는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소리쳤다. "안 됩니다. 대장 동지! 이 여자를 버릴 순 없소." "이유가 뭔가?" 독수리 대장이 쏘아보듯 혹부리를 쳐다보았다. 대원들은 숨을 죽이고 대답을 기다렸다. "이유는 없소...아무 이유도 없소. 총을 드릴 테니 가져가시오. 난 이제 혁명을 그만두겠소...이 여자와 여기 남을 테요. 일본놈 대검에 난자 당해도 좋소...가시오. 안 된다면 날 죽이시오...이 여자와 함께..." 그는 나무에 기댄 채 깊은 잠에 빠진 칠수댁 앞으로 달려가 어깨를 부여잡고 흔들었다. "자, 이 여자와 함께 총살하시오. 나... 나는 반혁명 분자요. 동지들...미안하오. 맘대로 하시오. 대장 동지..." 그는 소총을 땅바닥에 내던지고는 탄알 주머니까지 그 옆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그대로 주저앉아 얼굴을 양 무릎 속에 파묻은 채 엉엉 울었다. 독수리 대장의 마음은 무겁고 우울했다. 슬픔의 침묵이 흘렀다. 햇살은 자작나무 숲을 스치고 저편 들판을 비추었다. 들판의 이삭들도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동지들, 여러분의 판단에 맡기겠소! 3분의 여유를 주겠소." 독수리 대장의 단호하게 말했다. 3분이 자났건만 대원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혹부리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고 있었다. "동지들!" 독수리 대장은 입을 다문 채 땅바닥에 주저앉은 혹부리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 옆에서 숨을 헐떡이고 있는 칠수댁에게는 절대로 얼굴을 돌리지 않았다. "동지, 이게 혁명 대원의 정신이오? 마누라를 얻기 위해서 다른 동지들은 죽어도 좋단 말이오? 왕씨 마을이 습격 당한 사실을 알게 되면 일본군이 당장 우리를 추격해 올 거요. 우리의 임무가 무엇이오? 지난번에 혼자 대오를 이탈했을 때도 이 여자 때문이었고... 지금도 그러려 하고 있소...동지들은 싸울 때마다 죽어 가고 있소. 오늘도 5명의 동지가 죽었소! 동지들이 무얼 위해서 죽은 거요? 우리가 무엇 때문에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소? ...당신은 혁명 대원이라는 사실을 잊었소?...오늘 당신은 우리들의 심판을 요구했소. 좋소! 사양하지 않겠소!" 독수릴 대장의 안색을 더욱 어두워졌다. 권총을 천천히 뽑아 드는 그의 광대뼈가 눈에 띄게 불거졌다. "우리 동지들을 기억하시오! 일본군과 그 앞잡이들에게 죽음을 당한 동지들을! 먼저 간 동지들의 복수를 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요...동지...마음을 굳게 먹으시오!" 그 말은 혹부리에게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었다. 그는 그저 흐느낄 뿐이었다. 골짜기 밖에서 웅웅거리는 비행기의 엔진 소리가 들려 왔다. 비행기는 머리 위를 지나 길을 따라서 날아가고 있었다. 놈들은 혁명군이 멀리 달아났으리라 믿고 숲 위를 한 번 선회한 뒤 아무 목표도 없이 폭탄 하나를 떨어뜨리고 날아가 버렸다. 대원들은 뿔뿔이 흩어져 숲속으로 숨었다. 포성이 뚜렷하게 들렸다. 마을을 향해 사격하는 듯했다. 마을 안에 적이 숨어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혹부리는 누가 말하기도 전에 칠수댁을 끌고 수풀로 기어가 엎드렸다. 이윽고 칠수댁이 눈을 떴다. 아, 그렇게도 그리던 혹부리가 옆에 있는 것이 아닌가! "어머나! 정말로 당...당신이에요?" 그녀의 입술은 피로 엉겨 붙어 있었다.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혹부리의 가슴으로 달려들었다. "..." "꿈인가요, 생신가요? 꿈이지요? 아! 내 아가는..." "..." 그녀는 눈만 크게 뜰 뿐 눈물조차 흘리지 못했다. 너무 놀란 것이 틀림없었다. 정신이 없는 중에도 그녀는 혹부리에게 총이 없음을 발견했다. "당신의 총은? 총은 어디 있어요? 왜 총이 없나요? 일본군에게 빼앗겼나요?" 혹부리는 그제서야 자신이 아까 총과 탄알 주머니를 땅바닥에 내려놓았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죽자! 우리 같이 죽자! 우린 끝장이야! 대장이 당신을 못 데리고 가게 해. 당신이 걷지 못한다고. 대장은 날 총살시킬 거야. 우릴 같이 죽여 달라고 했어. 그래서 총을 내던졌지. 날 죽이면...우린 함께 여기서 잠들게 되는 거야. 누, 누가 우릴 함께 묻어 줄까..." 혹부리는 어린애처럼 가슴 아프게 울었다. "왜 동지에게 죽여 달라고 하나요? 동지가 어떻게 당신을 죽일 수 있어요? 어서 가서 총을 들어요. 나도 당신들을 따라 나서겠어요. 내가 그토록 나약해 보여요? 그렇지 않아요..." 그녀는 자신이 나약하지 않음을 보여 주려는 듯이 필사적으로 일어서려고 몸부림을 쳤다. 그러나 너무나 심한 통증에 털썩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 눈을 부릅뜨고 손을 허공을 향한 채, 입으로 무엇인가 말하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물을 잃은 고기처럼... "다...당신, 어서 총을 잡으세요...나, 나는 안 되겠어요..." 총성이 온 숲을 뒤흔들었다. 대원들은 일제히 반격을 시작했다. 풀빛 철모의 일본군과 회색 철모의 만주국 군인들이 숲속으로 기어 들어와 물고기떼처럼 그들을 에워싸고 있었다. 적은 점점 포위망을 좁혀 들어왔다. 기관총이 계속 불을 내뿜었다. 탄알은 나무와 수풀을 스치면서 가지를 부러뜨리거나, 온갖 들풀들을 뒤흔들어 놓았다. "동지들! 우리의 깃발을 들고 전진!" 수풀 속에서 튀어나온 독수리 대장이 권총을 휘두르며 대원들을 지휘했다. 돌격 호루라기 소리에 이어 대원들의 전진이 시작되었다. 화약 연기가 자욱했다. 허공을 가르던 총성은 이제 거친 부르짖음과 비명에 파묻혀 버렸다. "전진하지 않으면 죽음뿐이다. 투쟁하지 않으면 파멸뿐이다." 홍기를 따라 대원들은 광란의 파도처럼 적을 향해 돌진했다. (1935년) 잠시 동안의 이별 샤오ㅉ 솔개가 하늘을 맴돌고 있으나 땅에는 병아리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다. 산등성이의 울창한 수풀 색깔은 어느새 울긋불긋하다. 어떤 것은 노랗게 변했고 산느릅나무와 산포도잎은 붉은 암녹색을 띠고 있다. 저 멀리 들판에는 아직도 가을걷이하는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다. 8월 말이니 예년 같으면 한창 추수할 때이다. 고개 숙인 곡식들마저 아무런 기쁨도 없는 듯 다 자라지 않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논밭에서 자라고 있다. 소작인들은 왕산뚱 대감 댁에서 발생한 기적 같은 이야기들을 주고받기에 바빴다. 특히 그날 밤 왕산뚱 대감 댁에서 풀려난 농민들이 더욱 그랬다. 청년 농민들의 마음속에는 알 수 없는 기운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더 이상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낫을 소총 삼아 어깨에 메고 걸어도 보며, 입으로는 그날 밤에 배운 말을 흉내내어 보았다. "총을 버려! 손들어!" 서로 짓궂게 장난을 쳤다. 때로는 뜻하지 않게 낫에 손을 베어 피를 흘리면서도 좋아라 소리치는 것이었다. "동지들! 부상을 당했구먼!" 자신도 한번 혁명군이 되어 보겠다는 일념뿐이었다. 그들은 혁명군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는 모르지만 무슨 일을 하든 농사꾼보다는 낫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노인네들은 탄식만 할 뿐, 이 길들여지지 않은 젊은 야생마들에게 농기구를 씌워 지주들의 논밭을 갈며 지주들을 풍요하게 해줄 힘이 없었다. 노인들은 하루도 편할 날이 없는 자신들의 처지가 슬펐다. 평생을 질질 끌려다니다시피 한 자신들은 물론, 반평생을 무의미하게 보낸 자식들 역시 집은 커녕 한 뼘의 땅뙈기도 마련하지 못했다. 진흙과 이엉을 짓이겨 지은 허름한 집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희망은 절벽이었다. 눈앞에 곡식을 두고도 추수하지 못하고, 논밭을 가는 소와 말도 한 마리 두 마리 없어지더니 이젠 한 마리도 남지 않았다. 병아리도 오가던 관병들이 닥치는 대로 잡아먹어 씨를 말렸다. 노인네들은 한자리에 모이기만 하면 산등성이 아래 왕산뚱 대감 댁에 묵고 있는 사람들이 도대체 무얼 하는 사람들이냐고 의견이 분분하였다. 관군 같지도, 마적 같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젊은이들은 날이면 날마다 그곳으로 몰려갔다가 밤이 으슥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뒤에는 큰 소리로 웃으며 알아듣지 못할 노래를 소리쳐 불렀다. "관에 알려야 하지 않을까?" 쑨싱 노인이 제의했다. "관에 알리면 뭘 하나? 관군이라고 마적보다 나을 게 없어. 지금 관군 속에는 일본군이 있다네. 관에 알리는 놈부터 잡아 족칠걸." 누군가 그것을 반대했다. "그러면 이일을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은가? 곡식을 눈앞에 두고도 거두어들일 수 없고, 청년들은 날로 난폭하게 변해 가는데... 마을 청년들은 놈들의 꾐에 빠져 반란을 일으킬 거야. 구국이니 일본을 몰아내느니 하고 떠들어대면서 말야! 이 못난 놈들이 집에만 돌아오면 주둥이를 놀리니 이게 반란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남의 땅이 분명한데 우리땅이라고 우기는 거야. 그러면 오죽 좋겠냐마는 관가에 붙들려 가면 총살감이야. 보통 사람도 그런 말 했다간 총살당하는 판인데 하물며... 내 생각에는 관에 알리는 게 좋겠어. 우린 선량한 백성으로 족해. 우리 백성은 그저 누가 황제가 되든 세금만 제때 제때 바치면 그만이고, 누구네 논밭을 부치든 지주에게 도조(남의 논밭을 빌려서 부치고 그 세로 해마다 무는 벼)만 바치면 그만 아닌가. 밥이 없으면 굶기밖에 더하겠어? 중국이니 일본이니 하지만 지금 선통 황제가 즉위하지 않으셨는가. 진짜 천자가 섰으니 천하가 태평해질 걸세." 쑨싱은 자기네 집 앞마당에서 계속해서 자신의 소견을 이야기했다. 나이 든 농부들이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대부분 장성한 자식들을 둔 사람들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쑨 노인이 자식을 가장 많이 두었다. 그는 관에 알릴 것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의 넷째 아들인 뚜사는 왕산뚱 대감 댁에서 집짐승을 치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왕산뚱 대감 댁에서 관에 알리러 보낸 뒤로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고, 또 관군도 몰려오지 않아 쑨 노인은 내심 초조해 하고 있었다. "뚜사는 왕산뚠 대감 심부름으로 관에 알리러 가지 않았나? 며칠이 지났는데 왜 여태 돌아오지 않지?" "여보게, 그런 소릴랑 입 밖에 내지도 말게." 쑨 노인은 두손을 비비며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허리를 구부리고 손을 바르르 떤다. "제발 그런 소릴랑 입 밖에 내지도 말게! 만약 그 사람들 귀에 들어 가면...우린 모두...총살이야! 그 사람들은 관에 알리러 간 사람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는 것이 틀림없어...뚜사가 내 아들이라는 것도 모를 걸세. 멋모르고 날뛰는 청년들이 발설할까 그게 걱정이네. 읍내에 있는 얼뚱, 따뚱 댁이 세도깨나 쓰지 않나. 일본인 통역관을 아니까 관군을 끌고 올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렇다고 관군이 꼭 이기리라는 보장도 없네. 관군이 마적을 치는 것을 여러 번 보았네만, 그때마다 마적에게 미리 귀뜀을 해서 마적이 다 철수한 다음에 올라오곤 했지 않나. 마적과 관군은 한통속이야. 관군이 치러 왔다가 그만두고 마적이 되기도 하고, 마적질 그만두고 관군이 되기도 하지 않는가. 그들은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맞부딪치는 일이 전혀 없네." 경험 많은 천씨가 하얀 수염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지금은 전과 달라!" 쑨 노인은 관에 알리자는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곱사등을 두번 으쓱거렸다. 기승을 부리는 모기를 쫓기 위하여 그는 창포 부채를 마구 흔들어 댔다. 그의 수염은 희끗희끗했다. "지금은 대동단결을 부르짖지 않는가! 전의 짱원수 시대 같지 않아! 선통을 황제로 다시 세운 건 일본놈들 짓이야. 일본놈들은 그를 황제로 내세워 온 나라의 인력과 말을 동원해서 우리 관동성을 그들 손아귀에 넣으려는 게 아니겠나. 마적이니, 관군이니, 혁명군이니, 의용군이니, 무슨 무슨 회니...다 일본놈들이 동삼성에서 설치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거야. 그러니 그들이 일본군과 싸울 수밖에! 놈들은 중국군을 앞세워 싸우는데 중국군은 적을 보고도 싸울 생각은 않고 허공에다 총을 쏘는 거야. 싸운다고 하면서도 앞의 적과 농을 주고 받는다네! 게다가 중국군은 툭하면 적에 붙어 버리니까 나중에는 일본놈들도 교활해져서 중국군을 앞세우지 않고, 자기들이 앞장서고 중국군더러는 뒤에서 퇴로나 차단하라고 한다네. 지금 관에 알려 봐야 몰려오는 것은 일본군 뿐이야." "이 사람들을 쫓아낸다 해도 다른 사람들이 또 몰려올 걸세! 나중에 우리가 관에 알린 사실을 알게 되면 그들이 우리들을 내버려둘 것 같나? 그들을 가까이하지 못하도록 단속할 방법이나 생각하는 것이 상책일세." 쑨 노인은 앞이 캄캄해짐을 느꼈다. 어쩔 수 없다는 듯 마당의 토담을 둘러보았다. 커다란 곰이 사방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담장 밖에서는 수숫잎이 흔들리고, 담 아래에서는 귀뚜라미가 절박하게 울고 있었다. 산등성이 아래 왕 대감 댁에서 우렁찬 노랫소리와 웃음 소리가 들려 왔다. 노인들은 모두 벙어리가 되었다. 마당에서 웅크리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추위를 타는 개가 몸을 사리며 꼬리로 코끝을 따뜻하게 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극성스런 모기들만이 이런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들 주위를 맴돌고 있다. 불꽃은 하늘로 타오르고 기울어진 달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간간이 바람은 불지만 사람들 성에는 차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것은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뿐이었다. 노랫소리가 들리자 타오르는 모닥불도 이내 사그러들고, 노랫소리가 흥을 돋우는가 싶더니 이내 그것마저 시들해졌다. 오로지 모두의 마음을 꿰뚫으며 눈과 목구멍에 가득 치밀어 오르는 것은 불의 흐름이요, 눈물이요, 흔들리는 외침이었다. 샤오밍과 안나는 나란히 탁자 위에 올라섰다. 몸을 흔들며 박자에 맞추어 손뼉을 쳤다. 대원들도 따라서 손뼉을 쳤다. 마당 한가운데 모닥불이 피어있고 그 주위에 사람들이 빙 둘러서 있다. 부상자들도 지팡이에 의지하여 의자에 앉았다. 머리와 팔과 다리에 감긴 붕대가 보였다. 잠시 후에 그들은 지팡이를 내던졌다. 떠들썩한 고함 소리에 고통이 씻은 듯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순서에 따라 먼저 샤오밍과 안나가 노래를 불렀다. 샤오밍이 저음으로, 안나가 고음으로 선창을 하자 대원들이 따라 불렀다. 독수리 대장의 노랫소리는 왠지 침울하고 초조한 듯이 들렸고, 사령관의 눈은 거의 감겨 있었다. "동지들, 다시 한 번!" 샤오밍이 소리를 지르자 뒤이어 용조강의 청년 농부들이 따라 소리쳤다. "동지들, 다시 한 번!" 그들은 자신들이 용조강의 농부들임을 까마득히 잊은 채 어느덧 혁명군 대원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이다. 노란 별이 달린 붉은 견장과 총만 없을 뿐이다. 그들은 모든 것이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모든 청년들의 마음은 발랄하고 신선하며 정열적인 사람들에게 이끌려 있었다. 청년들은 의논도 하고 토론도 하였다. 정말 한시도 잊을 수 없는, 잊혀지지 않는 토론이었다. 토론을 하며 그들은 생각했다. '좋아, 내일 그들을 따라가야지. 하늘 아래 이 세상이 얼마나 큰지, 그리고 앞에 무엇이 감추어져 있는지 한번 보자!' 노인들의 만류는 이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혁명대원들 속에서 그들은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왕산뚱 대감이 왜 총살당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가에 대해서도... "그놈은 여러분의 피를 빨아먹는 빈대 같은 놈이오!" 대장이나 단원들이나 하나같이 그들에게 그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 질문을 하기도 하였는데, 그들은 조금도 귀찮아하지 않았다. 쑨 노인의 두 아들은 부친을 생각해서인지 에워싼 사람들 뒤편에 서 있었다. 쑨 노인은 한평생을 '빈대'에게 시달린 어른이다. 그들도 '빈대'에게 물린 지가 어언 20년이다. 그런데도 부친은 그런 '빈대' 한 마리 죽이는 것을 가지고 그렇게 안쓰럽게 여길 뿐 아니라 뚜사를 시켜 완산뚱 대감 댁 변고를 관에 알려 일본군을 데려다 혁명군을 치려 하지 않는가. ...쑨 노인의 둘째 아들 쑨이는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심기가 불편하였다. 대포와 비행기를 가진 일본군이 밀려온다면 혁명군은 막대한 피해를 입을 텐데! 그는 옆에 있던 형의 소매를 슬쩍 잡아당겨 슬그머니 마당을 빠져 나왔다. 그들을 눈여겨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노랫소리는 여전히 흥이 끊일 줄 모르고, 모닥불은 탁탁 소리를 내며 신명나게 타올랐다. 샤오밍과 안나도 나란히 몸을 흔들며 손으로 박자를 맞추었다. 쑨이는 형 쑨따와 함께 바위에 앉았다. 쑨따가 아우에게 말했다. "왜 날 불러냈니? 한참 재미있게 노래하고 있는데!" "아니, 형님은 노래만 부르면 제일이에요? 막내 뚜사가 왕산뚱 대감 심부름으로 일본군을 데리러 갔잖아요." "나도 알아. 그런데 왜 여태껏 아무 소식이 없지? 도중에 일본군에게 살해된 게 아닐까?" 쑨따는 의혹과 불안을 감추지 못했다. "죽고 사는 건 둘ㅉ 문제고...정말 일본군이 몰려오면 어떻게 할 거예요?" 쑤이는 옷깃으로 얼굴을 훔쳤다. 사람들 틈에 끼여 앉아 삐질삐질 흘렸던 땀이 깨끗이 닦여졌다. 산들산들한 저녁 바람이 벌써 8월 말이 되었음을 실감나게 했다. "별 도리가 있으려구? 혁명군이 곳곳에서 승리를 거두지 않니? 일본군도 그 사람들이 보기엔 아무것도 아닐 거야." "그렇지 않아요, 형님..." 쑨이는 별빛 아래서 형의 무표정하고 가련하리만치 후덕하면서 어리숙한 얼굴을 보았다. "아이, 형님! 어째 그렇게 주관이 없으세요? 평소에도 늘 그러니까 형님하고 상의하지 못하고 넷째하고만 상의하게 되잖아요. 막상 형님하고 상의하려니 지금 또 그러시는군요!" 쑨이는 초조한 마음에 화를 내며 말했다. "그럼...네가 방법을 말해 봐! 나는 듣기만 할 테니까." 쑨따는 별다른 의견이 없음을 드러내며 아우를 보고 허탈하게 웃었다. "형님은 혁명군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쑨이는 고무공을 던지듯 쑨따에게 이렇게 묻고는 조용히 대답을 기다렸다. "좋겠지...난 잘 모르겠어!" "이 사람들이 좋으세요, 아니면 왕산뚱 대감 같은 사람이 좋으세요?" "너는 어떻게 생각하지? ...먼저 말해 봐." "제가 먼저 물어 봤잖아요!" 쑨이가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쑨따는 생각에 잠겼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쑨이는 순따의 대답을 기다렸다. 이윽고 쑨따가 머리를 갸우뚱하며 대답했다. "내 생각으로는...그래도 왕산뚱 대감 같은 분이 좋은 것 같아." "왜요?" "나도 모르겠어..." "형님은 이 사람들하고 어울리고 싶으세요, 아니면 왕산뚱 대감 댁 사람들하고 지내고 싶으세요?" "그야 물론 이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지! 서로 예절을 차릴 필요도 없구. 왕산뚱 대감 댁이야 재산 많고 세도 있는 사람들인 우리 같은 사람은 몇백 년이 가도 자리를 같이 하지 못할 거야." 쑨따는 가난한 자신은 물론 부친이 무척이나 원망스러웠다. 가난뱅이는 언제나 부자와 어울리지 못했다. "형님은 '부자는 가난한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빈대'라고 한 사령관 말씀도 못 들으셨어요? 가난한 사람만이 가난한 사람의 친구가 될 수 있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 줄 수 있어요. 부자들은 언제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눈독을 들이죠. 전에 왕산뚱 대감도 그러지 않았어요? 아쉬울 땐 억지웃음에 실눈을 뜨고는 꿈처럼 달콤한 말을 하지만, 도조를 거두어들일 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태도가 돌변하곤 했지요. 조금이라도 모자라서는 안 되었어요. 하지만 우리 같은 가난뱅이는 마음이 약해서 원수를 기억할 줄도 몰라요. 그렇게 번번이 당하면서도 일이 있으면 가서 성심껏 도와 주죠. 이번만 해도 그래요..." 쑨이는 여기까지 말하다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마당에서는 이제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누군가의 연설 소리와 사람들의 큰 웃음소리가 들리고 간간히 고함치는 소리도 들렸다. 연사는 음성을 낮췄다 높였다 하며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쑨따는 솔깃해져 마당에서 나는 말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상체를 꼿꼿이 세우고 앉으며 말했다. "들어 봐! 그 처녀가 연설하는 것 같지? 그 처녀는 조선 사람이라는데, 믿기지 않아. 조선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중국말을 잘 하지? 조선 사람들은 흰옷을 입고 갓을 쓰잖아? 그런데 저 처년 전혀 그렇지 않거든." 쑨따는 조선 처녀가 흰옷을 입거나 갓을 쓰지 않은 것이 무척 궁금했다. 아우가 '부자는 가난한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빈대'라고 한 말을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였지만, 그는 '빈대'를 어떻게 처치해야 하는가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는 다시 쑨이에게 물었다. "너는 저 처녀가 조선 여잔지 아닌지 알겠구나? 저 처녀와 여러 번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던데..." 쑨따는 잔잔한 희열을 느끼며 아우를 바라보았다. "조선 여자든 아니든, 흰옷을 입든 말든,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혁명만 알면 됐지! 그 여잔 열여덟 살 난 처녀인데 모르는 게 없어요. 대원들치고 그녀를 좋지 않게 말하는 사람이 없어요. 총상도 치료하고, 병구완도 하고, 사령관을 도와 명령도 내리죠. 어디를 가든 틈만 나면 대원들에게 혁명의 도리를 들려 준답니다. 까막눈에게는 글을 깨우쳐 주고, 노래도 가르쳐 주죠. 패망한 조선에 저런 여걸이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예요. 이곳도 일본놈들에게 점령당했잖아요? 우리도 조만간 조선처럼 될 거예요. 조선이 먼저 망했으니 우리 선배지요! 그 처녀는 지금 우리가 혁명하지 않으면 앞으로는 조선 사람보다 더 참혹하게 될 거라고 했어요. 일본놈들은 복종하지 않는 조선 사람들을 붙잡아 산 채로 묻었대요! 형님도 산 채로 묻히고 싶으세요? 네?" "혁명이란 게 도대체 뭐지?" 쑨따는 아우가 '혁명'이니 뭐니 떠벌이는 말을 여러 번 들었지만 한번도 그 뜻을 물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지금 그 아름다운 조선 처녀도 '혁명'이란 말을 한다는 말에 '혁명'이 틀림없이 무슨 오묘한 것일 거라고만 짐작했다. 쑨이는 교활하게 한쪽 눈을 감으며 어리숙한 형을 훔쳐보았다. 그는 정말 다른 사람을 분통터지게 하고, 어딘가 우스꽝그러운 데가 있었다. "혁명요? 혁명은 조상 때부터 우릴 못살게 군 '빈대'들을 죽이고, 지금 동삼성에 있는 일본군을 모조리 내쫓아 버리고서 우리의 땅을 스스로 일구는 거예요. 다시는 빈둥빈둥 놀고 먹기만 하는 '빈대'들에게 곡식이나 세금을 바칠 필요가 없는 거죠. 아시겠어요? 지금까지 부자들은 첩을 서넛, 많으면 열까지도 두었지만 형님은 서른이 훨씬 넘었는데도 마누라 하나 얻지 못했어요. 하지만 혁명 후엔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장가도 들 수 있어요. 그리고 자기 땅이 있으니 남의 땅을 부칠 필요도 없구요. 아시겠어요? 이것이 바로 혁명이라구요! 바로 그 조선 처녀가 한 말이죠. 다른 동지들도 모두 그렇게 말하던데요." "조선 처녀가 정말 그렇게 말했어? 그 처녀가 정말...마, 마누라 얻는 얘기도하더란 말이지? 수줍어하는 기색도 없이?" 쑨따는 엄청난 놀라움과 흥분으로 턱 밑이 화끈 달아옴을 느꼈다. 쑨이가 한 마디 더 덧붙였다. "믿지 못하겠거든 직접 물어 보세요! 그 조선 처녀는 누가 물어도 친절하게 대답해 줘요. 왕산뚱 대감 댁 처녀들하곤 딴판이라니까요! 대원들은 다 그녀를 존경하죠. 그녀를 나쁘게 말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어요...제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무슨 소리를 하는지 가서 들어 보세요. 돌아와서 다시 형님과 의논하지요. 가 보세요..." 쑨이가 형을 부추겼다. "아냐, 가지 않겠어..." "그러시다면 본론을 말하지요! ...도대체 형님은 혁명이 좋은 거예요, 싫은 거예요?" "나 말이야? 혁명이 정말로 조선 처녀가 말한 대로라면야 혁명이 좋지!" "그렇다면 혁명을 하시겠어요, 안 하시겠어요?" 쑨이는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한 마리의 토끼를 쫓는 사냥개처럼 틈을 주지 않고 형에게 다그쳐 물었다. "아버지가 반대하실 거야! 그 연세에 우리를 싸우라고 보내시겠니?" "우리를 보내지 않으시겠다면 앞으로도 계속 '빈대'들에게 피를 빨려도 괜찮다는 건가요?...난 가겠어요. 의논이구 뭐구 다 필요 없어요. 지금 가겠어요. 요즘 같은 세월에 언제까지 태평하게 기다리고만 있어야 하죠? 형님, 싸우러 가지 않으면 언제 일본놈들 손에 죽게 될지 몰라요. 설사 살아 있다 해도 평생 '빈대'들에게 피를 빨리게 될 거예요." "내가?...흥!" 쑨따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일어서며 말했다. "이젠 돌아가자. 안에서는 아직 끝나지 않았나 보다. 아직도 조선 처녀가 이야기하고 있니?" 그는 귀를 기울였다. 고요한 밤의 공기를 타고 말소리가 멀리서도 잘 들렸다. 모닥불은 아직 사그라지지 않았다. 지금 들리는 건 조선 처녀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굵직하고 침울한 음성이었다. "서두르실 것 없어요. 형님과 의논할 일이 있어요. 넷째가 관에 알리고 돌아오면 어떻게 하실 거죠? 제 생각으로는...오늘은 꼭 돌아올 것 같은데. 돌아오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죠?" "어떻게 할 거냐구?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문을 지키던 대원이 뚜벅뚜벅 문 앞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소총에 꽂혀 있는 대검이 문 안의 모닥불에 비쳐 번쩍번쩍 빛났다. "넷째가 돌아오면 데려다가...혁명군 사령관에게 보일 생각이에요?" "뭐라구? 네가 미쳤구나? 어떻게 친동기를 총살당하게 한단 말이냐?" 깜짝 놀란 쑨따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건너편에서 보초를 서고 있던 대원이 어깨에 소총을 멘 채 이쪽을 향해 몸을 꼿꼿이 세웠다. "사령관은 그 애를 총살하지 않을 거예요. 그 애가 자의로 알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테니까요." "그래도 넷째를 사령관에게 보일 수는 없어! 그들은 사람 하나 죽이는 것쯤은 문제도 아닐 텐데. 그날 왕산뚱 대감도 사령관의 명령에 의해 순식간에 처형당했잖니. 왕산뚱과 그의 마누라가 그렇게 애걸복걸했는데도 가엾게 여기기는커녕 그 자리에서 총살시켰어! 우리 넷째가 관에 알리러 갔으니..." 쑨이는 주먹으로 형의 입을 막았다. 건너편에 있던 한 대원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어깨에 메고 있던 총을 어느새 손에 쥐고 있었다. 그들은 입을 다물었다. 신이 난 청년 농부들은 무리를 이루어 줄지어 걸어갔다. 대원들도 흥분 뒤의 나른함에 젖어 제각기 숙소로 돌아가 취침 준비를 했다. 잠자리에서도 토론을 좋아하는 양싱이나 얼산 같은 젊은 대원들은 언제나 말꼬투리를 잡고 늘어졌다. 그때마다 뒤얽힌 실타래처럼 실마리를 찾지 못해 토막토막 끊어지기 일쑤였다. 그런 일은 밤마다 늘 있곤 했다. 홍옌은 창 밖 의자에 앉아 언제나처럼 곰방대를 입에 물었다. 그는 짱더산과 쓸쓸히 옛 동료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추이짱청 노인, 꺽다리 리우씨, 그리고 노상에서 죽은 두 동지... 조용히 그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이제 그들은 멀게만 느껴졌다. 홍옌은 곰방대에 담배 잎을 채우는 대신, 다 타고 남은 재를 의자 다리에 탁탁 쳐서 깨끗이 털어 냈다. "짱씨 우리가 올 때는 아홉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몇 명 남지 않았구먼. 불과 며칠 사이에...추이 노인과 꺽다리가 죽었어." "말하면 무엇 하나! 누가 우리더러 이 길을 가라던가? 요즘 같아서는 어디 있으나 마찬가지야!" 짱더산은 먼 곳을 응시하였다. 모양 없이 어지러진 8월 그믐달은 이미 먼 산꼭대기 너머로 내려가고 있었다. 담장 밖에서 어슴푸레한 나뭇가지들이 살랑살랑 흔들리며 서늘한 가을 기운을 드러내 보였다. 그는 이제까지 죽음을 경멸해 왔다. 그것은 여름날의 들오리나 겨울의 꿩, 노루처럼...실수 없는 총부리에 너무 많은 사람이 죽은 까닭인지도 모른다. 그는 인간의 죽음에 대해 담담했다. 한 인간의 죽음을 재수 없는 짐승이 운 좋은 사냥꾼의 총에 걸려든 것처럼 평범하게 생각했다. "양싱 그 녀석 요즈음 미쳤나 봐! 쓸데없는 소리나 지껄이고 다니고!" 홍옌이 탄식하며 말했다. "아, 샤오밍과 안나에 대한 소문 말이지? 그 친구가 멋대로 지껄이는 거야! 사령관이 아시면 시정할 걸세. 걱정할 것 없어! 젊은이들은 언제나 과장이 심하지...그런데 샤오밍은?" "저기 있네..." 짱더산은 홍옌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섬돌 위 사랑방 창문에 등불과 사람 그림자가 보였다. 그러나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회의중인가?" "아냐, 두 사람을 심문하고 있네!" 홍옌이 짱더산의 귀에 대고 말했다. "두 사람을 심문하다니, 누구? 비밀인가?" "문 지키던 우 동지한테서 들은 걸세. 부대에서 나밖에 아는 사람이 없지. 비밀이구말구." "누군지 아나?" 짱더산도 목소리를 낮추었다. 방안에 아직 잠들지 않은 사람들이 듣고 법석댈까 염려해서였다. 방안에는 드르렁드르렁 코 고는 소리, 잠꼬대, 이 가는 소리로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매일 밤마다 연설을 들으러 와서는 노래도 부르곤 하던 쑨가 형제 말일세." "그들이? 그들이 첩자란 말인가? 그들은 우리와 함께 혁명을 하고 싶어하던 사람들 아닌가? 아주 똑똑한 젊은 농부들 같던데?" 홍옌은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우리 가서 들어 볼까?" 짱더산이 제의했다. "들으러 가자고? 그런데 방해가 되진 않을까?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가서 들어 보자고..." 홍옌은 곰방대를 호주머니에 집어 넣고 짱더산의 뒤를 따랐다. 발을 내린 틈 사이로 안이 환히 들여다보였다. 방 천장과 사방 벽은 온통 하얗고 내부는 각양 각색으로 꾸며져 있었는데, 그들에게는 낯선 것이었다. 사령관은 탁자 옆에 앉아 있었다. 탁자 위에는 큰 석유등이 타오르고 있었다. 불꽃은 가볍게 떨리고 있었고, 탁자 너머로 두 농부가 긴 의자에 나란히 앉아 있다. 양 옆으로 안나와 각 부대장이 서 있었고, 샤오밍은 안나의 맞은편 구석에 앉아 있었다. "자네들, 혁명군에 가담한다는 게 정말인가?" 다짐하듯 묻는 사령관의 말에는 힘이 있었다. "정말입니다..." 상대방은 최면술에나 걸린 듯 대답했다. "좋아, 그래야지!" 사령관은 크지 않은 체구를 일으키며 기쁨의 눈웃음을 보냈다. 방안을 두 번 돌던 사령관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자리에 앉을 생각은 하지 않고, 한 손은 허리의 혁대를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탁자를 탁탁 차며 호루라기를 불듯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오므렸다. 그는 방안에 있는 사람들을 빙 둘러보았으나 쥐죽은듯 조용했다. 일부는 피곤한 빛이 역력했다. 창 밖의 홍옌과 짱더산은 발각된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안에서는 창 밖에 있는 그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들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사령관은 생각에 잠긴 듯 가물가물 흔들리는 등불을 보면서 자리에 앉아 눈썹을 치켜 올리며 물었다. "쑨 동지, 이번 임무는 여기 두 동지가 해야겠소. 내일 안으로 뚜사를 찾아내시오. 그에게는 아무런 처벌도 내리지 않을 것이오. 우리는 그가 왕산뚱의 지시를 받아 행동한 것을 잘 알고 있소. 그러나 관에 알림으로 해서 그의 신변이 매우 위험하오. 그들은 그를 우리의 첩자로 무고하여 함정을 만들지도 모르오. 그를 가만두지는 않을 것이오. 왕산뚱이 아무리 세도가 있다지만 거기선 통하지 않아요. 간단히 말해서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서는 그들은 우리와 싸우려 들지 않을 거이오. 우리와 싸우는 것은 그들에게 매우 불리하기 때문이오. 일본군도 마찬가지오. 그들도 산이나 숲에서는 전술이니, 비행기니 하는 것이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고 있소. 우리는 곳곳에 주둔해 있는 빈곤한 형제들의 동정을 받고 있소. 우리를 동정하지 않는 것은 왕산뚱 같은 놈들이오. 그들은 빈곤한 형제들의 적이오.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빈대'인 것이오. 우리는 도처에서 그런 놈들을 닥치는 대로 제거해야 하오! 앞으로 토지는 바로 우리 모두의 것이 되며, 형제들에게 공평하게 분배될 것이오. 당신들은 반드시 뚜사를 찾아 이 임무를 완수하시오!" 비밀스런 대화를 엿듣고 있던 홍옌과 짱더산은 두 농민이 방을 나올 때에야 황망히 그 자리를 피했다. 좁고 기다란 길 양쪽으로 온통 곡식이 출렁이고 있다. 쑨씨 형제는 자신들이 항상 다니던 그 길을 따라 걸어가며 유쾌하게 이야기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쑨따의 흥미를 끈 것은 안나였는지, 몇 마디 하다 보면 안나 얘기로 돌아오곤 했다. "아, 글쎄 다 큰 처녀가 밤낮 저렇게 남자들과 같이 어울리니... 말 좀 해봐. 그러고도 정조를 지킬 수 있을까? 젠장, 내가 보기엔 담에 기대어 있던 그 젊은 놈...같이 노래했던 그놈하고...모르긴 몰라도 뭐가 있었을 거야." 쑨이 앞에서 걸어가던 쑨따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겸연쩍게 웃으며 말했다. 쑨이는 형의 우스꽝스러운 말을 반박하지 않았다. 형은 여자 생각에 골똘하여 여자 이외에 다른 것은 생각할 줄 몰랐다. 그러면서도 형은 왜 자신이 못생긴 색시 하나 얻지 못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쑨이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조선 처녀가 마음에 들어요? 어때요, 내일 중매쟁이를 시켜 형수님으로 맞아들이는 게?" 쑨따는 아우가 자신을 놀리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화내지 않고 속으로 웃었다. 잠시 침묵을 지킴으로써 아우의 짓궂은 질문에 넌지시 불만을 표시했다. "형님이 혁명군에 가담하지 않는 건 상관하지 않겠어요. 형님이 하든 안 하든 내일 난 꼭 해내고 말 거예요. 혹시 누가 알아요, 그 조선 처녀가...내가 공작을 잘 하는 걸 보고 나를 좋아하게 될지..." "네가? 네까짓 게?" 쑨따는 이번에는 숭복할 수 없다는 듯 반박해 왔다. 그는 앞에서 몸을 흔들며 손 닿는 대로 수숫잎을 훑어 휙 던져 버렸다. "네까짓 게? 너보다 일 잘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어! 거 대장들 좀봐. 독수리 대장이란 사람, 생긴 것부터가 영웅 같지 않아! 샤오밍인가 하는 사람은 그 조선 처녀에게 딱 어울려. 그런데 네가? 네가 혁명군에 들어가 봤자 졸개밖에 더 하니? 그 처녀가 너 같은 졸개를 좋아할 것 같아?" "난 형님하고 이런 얘긴 더 하고 싶지 않아요. 도대체 할 거예요, 안 할 거예요?" "하다니 뭘?" "혁명 말이에요. 혁명군이 되어서 일본군을 치러 가야죠." "난 안 가..." "정말 안 가실 거예요?" "정말 안 간다니까..." 쑨따가 계속 말했다. "진짜 안 간다는 게 아니야! 나에게 색시 하나만 얻어 주면 가지. 죽더라도 원망하지 않을 거야!" 쑨이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해 보았다. 형은 지금 훼방을 놓으려 하는 것이 분명하다. 집으로 돌아가면 이 일을 아버지에게 일러바칠 것이다. 넷째가 돌아오면 도망시킬 것이 뻔하고, 그래서 사령관에게서 부여받은 임무를 달성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좋아요! 저도 그만두겠어요! 우린 전처럼 농사나 짓는 거예요. 해가 바뀌면 우리에게도 땅이 생길 거고, 그러면 그때 가서 색시 하나 얻어 살면 되겠지요! 아버지도 연세가 많으신데..." "아우야, 그 말 정말이지? 그래, 혁명은 무슨 혁명이냐? 우리가 어떻게 일본군을 물리쳐? 잠시 피했다가 일본군이 와서 놈들을 모두 쫓아 내거든 다시 나오면 되지 않겠니? 우린 그저 속 편하게 농부나 되는 게 제일이야!" "그래요! 하지만 집에 가거든 아버지에게라도 오늘 밤 일을 절대로 얘기해선 안 돼요!" "그래! 얘기하지 않으마..." "믿을 수 없어요. 맹세를 하세요!" "맹세를 하라구?...좋아! 내가 말을 하면 네 손에 죽겠다고 맹세하지!" "제 손에 죽겠다구요?" "그렇게 해둬. 동생이 친형을 살해하는 법은 없으니까." "그럼 그렇게 해두죠." 쑨이는 말없이 형의 뒷모습을 훑어보았다. 다부진 어깨, 힘찬 발걸음... 이따금 길 위의 흙덩이나 풀뿌리를 걷어찼다. 쑨이는 형과 함께 혁명대에 가담할 방법을 생각할 수가 없었다. 색시에 미친 가련한 형에게 혁명이란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가까워 오자 검둥이가 짖어 댔다. 주인의 발소리를 알아듣기라도 한 양 요란스럽게 짖어 댔다. 방안에서 불빛이 흘러 나왔다. 개가 두 형제의 주위를 맴돌며 달려들어 주인의 손을 핥았다. 쑨이는 언제나처럼 검둥이의 목덜미를 쓰다듬어 주었다. 내일이면 이 귀여운 검둥이를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튼튼하게 생긴 검둥이는 머리 위에만 하얀 털이 조금 나 있다. "왜 아직도 불이 켜져 있을까?" 넷째가 돌아온 것이 아닐까? 쑨이는 꼬리를 치며 반기는 검둥이를 밀쳐 냈다. 방안에서 넷째의 말소리가 들려 왔다. "너희들, 왜 이제야 돌아오냐?" 쑨 노인이 물었다. "넷째가 돌아왔습니까?" 방안에는 쑨 노인이 한쪽에 누워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관자놀이가 유난히 움푹 들어간 노인은 더욱 연로해 보였다. 기름등잔 불빛은 평소처럼 어둡고 가물가물한데 이따금씩 섬광처럼 번뜩였다. 셋째는 바쁘게 밥을 짓고 있다. 넷째의 얼굴은 몇 군데 상처와 함께 부어 있었다. 제일 먼저 그것을 발견한 것은 쑨이였다. 그는 넷째에게 다가앉으며 그의 얼굴을 매만졌다. "어떻게 된 거냐?" "일본군놈들한테 맞았어요." 넷째는 자신에 대해 아무런 안타까움도 없는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했다. "젠장, 일본놈들은 무자비해요! 하마터면 총살당할 뻔했다니까요! 놈들은 싸우고 싶지 않은 거예요." "무얼 물어 보더냐?" "이것저것 다 물어 보는 바람에 혼났어요. 일본군관들이 나더러 무릎을 꿇으라고 하길래 가만 있었더니 구둣발로 내 정강이를 걸어 차는 거예요. 이 다리 좀 보세요." 넷째는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렸다. 드러난 정강이는 시커먼 멍으로 얼룩져 있었다. "이게 다 발로 차인 거냐?" 쑨이가 상처를 어루만지며 분해서 소리쳤다. "아니에요, 개머리판으로 찍기도 했어요. 그것뿐인 줄 아세요?" 넷째는 이번 읍내에 다녀오면서 생긴 상처를 일일이 형에게 보여 주었다. 방 한쪽에 누워 있던 쑨 노인이 가까스로 일어나 손을 휘저었다. 그 서슬에 기름등잔 불빛이 흔들거렸다. 아들들은 그가 무슨 말을 하려나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그는 다시 누워 눈을 감고 답답한 듯 숨을 내쉬었다. 방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밖에서 밥을 짓던 셋째가 들어와 형제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놈들이 뭘 물었지? 그놈의 새끼들! 사람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다니!" 쑨따는 넷째가 맞았다는 소리에 평소와는 달리 걷잡을 수 없는 분노에 사로잡혔다. 쑨이는 넷째의 부어 오른 얼굴을 바라보며, 아무 말 없이 생각에 잠겼다. '왕산뚱 그놈은 죽어 가면서도 자신을 위해 남을 두들겨 맞게 하는구나.' "놈들이 곧 올 거예요! 이삼 일이면 도착할 거예요. 그들은 나를 데리고 같이 오려고 했지만 내가 혁명군의 첩자로, 그들을 속이지 않나 하는 눈치였어요. 놈들은 혁명군을 잡지 못하면 날 총살하겠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나더러 길잡이가 되라고 하더군요. 나중에 왕얼뚱 대감이 사람을 보내 날 빼내 주었어요." 넷째는 밥을 먹으면서도 피로한 줄 모르고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이야기하고 있었다. 고통이 쑨 노인을 엄습해 왔다. 그는 아무 말 않고 아들들의 의견을 듣고 있었다. 그는 설마 아들이 맞고 돌아올 죽은 생각도 못했었다. 처음에 그는 주인댁에 대한 충성이라고 생각했다. 태평한 시절이 되면 왕얼뚱 대감 댁도 그들의 충성을 잊지 않으리라. 쑨 노인은 아직도 태평세월을 꿈꾸고 있었으나 날이 갈수록 태평해지지 않았다. 지주들은 혁명군에게 살해되고, 포대는 불타고, 청년들은 모조리 혁명군에 가담했다. 이젠 아들도 믿을 수가 없게 되었다. 노인의 운명은 바야흐로 도량에 처박힌 신세가 되어 버렸다. 거기다가 일본군은 넷째를 저 지경으로 두들겨 팼으니! "아버지! 일어나세요. 대책을 세우셔야죠!" 쑨이가 노인의 어깨를 흔들었다. 노인은 기력을 잃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들끼리 상의하거라! 난 그저 듣고만 있겠다. 너희가 나를 버리지만 않는다면야...너희 어머니 무덤이 여기에 있다는 걸 잊지 마라. 이젠 다 끝났어!" 쑨 노인은 아무런 희망이 없다는 듯 하소연했다. 이윽고 그의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그는 시종 자리에 누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 이러시면 안 됩니다! 지금은 우리가 새롭게 변신해야 할 때예요. 이 기회를 그냥 지나쳐 버릴 수는 없어요. 넷째가 이 지경이 된게 다 누구 때문입니까? 우린 모두 이렇게 젊습니다. 그들은 혁명군을 치지 못하면 우리 머리라도 베어 갈 놈들입니다. 지난번에도 마적을 친답시고 그러지 않았습니까! 마적을 못 잡으니까 애매한 사람들만 잡아다가 공을 세운 척하는 거예요! 삼와 마을의 곰보 이씨와 그 형제들이 그렇게 해서 모두 몰살당했잖아요. 일본놈들은 더 흉악하다구요. 말도 알아듣지 못하고 통역관을 매수할 돈도 없으니, 일본놈들더러 내 머리 베어 가라고 모가지 디미는 수밖에 별 도리 있겠어요? ...아무튼 저희들은 병아리처럼 놈들 손에 죽기를 기다릴 수는 없어요." "모두 가겠단 말이냐? 하나도 남지 않고? 하나도...나, 남지...않고?" "가요! 우리 모두 가요. 하나도 남지 말고!" 쑨이의 주장에 쑨 노인이 일어나 앉으며 눈을 부릅떴다. "너희는 젊어서 데려간다지만 나처럼 늙은 노인네가 가서 뭘 한단 말이냐? 뛰기를 하겠냐, 총을 쏘겠냐? 가라! 다 가 버려! 나는 죽어도 이 집을 못 떠난다. 너희 젊은놈들이나 가서 혁명을 하든지 말든지 해라. 대신 얼른 돌아와서 내가 죽을 때...내 뼈를 네 어머니 산소 옆에 묻어 주면 족하겠다. 개가 물어뜯도록 내버려두지 말고..." 노인은 비통한 심정을 억누르지 못했다. 아들들은 무슨 괴물에게 붙잡혀 가는 듯 자신들을 바라보는 침통한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 더욱 서둘렀다. "둘째, 셋째 너희나 가거라! 난 가지 않겠다. 난 혁명군이 마음에 안 들어. 나는 아버지를 모시겠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다시 너희를 찾으마!" 쑨따가 우직하게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너도 가거라! 한 놈도 남지 마라. 일본놈들이 와서 잡아가기 전에! 넷째도 가라. 일본군이라도 나 같은 늙은이를 어떻게 하지는 못할 게다. 죽인다 해도 할 수 없지. 난 살 만큼 살았으니까!" 창 밖에 저 멀리서 닭 우는 소리가 들렸다. 검둥이도 덩달아 짖어 댔다. 창호지에 회백색 빛이 드리워지면서 기름등잔의 불이 점점 꺼져 가고 있었다. 젊은이들은 신발과 양말, 그리고 지난 겨울에 입던 낡은 속옷을 챙겼다. 쑨이는 그의 속옷을 쳐다보다가 너무 낡아서 그대로 내던졌다. "큰형, 집에서 아버지를 잘 돌봐 주세요!" 아들들은 나란히 무릎을 꿇고서 아버지에게 세 번 큰절을 올리고 큰형에게도 큰절을 올렸다. 쑨 노인은 무감각하게 손을 내밀었다. 마당의 검둥이는 평소에 주인이 나가거나 귀가할 때처럼, 주위를 맴돌며 설쳐댔다. 쑨이는 검둥이의 코를 손가락으로 튀겼다. 검둥이는 반 리나 따라왔다. 쑨이는 그제서야 흙덩이를 집어 던지며 검둥이를 쫓아 보냈다. 그러나 검둥이는 마지못한 듯 여전히 그곳에 꿈쩍 않고 서 혓바닥을 내밀고 쳐다보다가 쑨이 형제들의 뒷모습이 수숫대에 가려서 보이지 않게 되자 그제서야 자신의 오줌 냄새를 더듬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1935년) 샤오ㅉ의 작품 세계 샤오ㅉ은 주관이 분명하고 정의에 불타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는 일본의 침략과 소련의 만행, 중국의 공산화와 그 폐해에 결연히 항거한 불굴의 사나이였다. 작은 키에 성질이 거칠고 화를 잘 내는 돌출성 때문에 남과의 충돌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용기가 있었기에 학력도 없고 가난하며 키도 작은 그가 원고를 투고할 수 있었고, 샤오홍 같은 반려자를 만날 수 있었으며, 루쉰을 감히 찾아갈 수도 있었다. 그리하여 한 세대를 풍미하는 작가가 된 것이다. 1934년 말에 좌련에 가입할 뜻을 지녔던 샤오ㅉ은 루쉰의 애정에 찬 만류에 가입하지 않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반공대열에 서서 처절한 수난을 당하게 되었다. 의리가 있는 샤오ㅉ은 끝가지 루쉰의 은혜를 잊지 않았으며, 루쉰의 쪼우양과 관계가 악화되었을 때에도 항상 루쉰의 편에 서 있었다. 그는 사해에서 "제삼대"를 발표하였는데, 이 작품은 항일투쟁을 고무하는 강렬한 필체로 씌어졌다. 1942년 연안 문예강화 이후에 마오쩌둥은 "들백합화"의 작가인 왕스웨이를 공격하면서 비협조적인 작가들인 띵링, 샤오ㅉ, 아이칭 등을 탄압하기 시작하였다. 이때에 샤오ㅉ은 공산당의 허구성을 폭로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동지의 사랑과 인내를 논함"("해방일보" 부간)에서 "동지간의 우애는 날로 박해진다. ...이젠 혁명도 싫증난다."라고 하면서 반기를 들어서 정치와 문예의 개별화를 시종 주장하였다. 결국 그는 연안 문예강화를 수용하지 않았는데, 루쉰의 제자라는 사실 때문에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투지는 식지 않았고 더욱 거세어만 갔다. 단편소설인 "광란의 파도"와 "잠시 동안의 이별"은 모두 작가의 도전적이며 불굴의 의지가 짙게 서려 있어 일종의 고발 의식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는 1948년에 쓴 "신년헌사"에서 "민주다, 혁명이다, 공산이다 하는 것이 다 하늘을 저버리고 사람을 배반하며 인륜을 엎어 버리는 행위이다. ...청나라 같은 이민족이나 일본 같은 왜놈도 이러하지 않았다. 왜 공산당이 이렇게 비인간적인 행위를 하는가?"라고 신랄하게 비판을 가하였다. 샤오ㅉ은 30년 가까이 북경에 숨어 지내면서 문화혁명 때에는 8년이나 노동을 하기도 하다가 1978년에 복권되어 문단에 다시 나타났다. 여기에 실린 두 편의 작품에는 작가의 일관된 반체제 의식이 담겨져 있다. 샤오ㅉ은 평생 동안 갖은 고난과 시련을 바탕으로 자신의 의지를 표현했는데, 이렇듯 승리를 위한 고통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하는 면에서 그 어느 작가의 추종도 불허하고 있다. 왕멍 작가 세계 1934년 10월 15일 하남 남피에서 출생. 1948년 중국공산당에 가입. 1949년 북경단시위에서 근무. 1950년 북경 제3구의 청년단에서 근무. 1953년 장편소설 "청춘만세"를 구상. 1956년 단편 "조직부에 새로 온 청년"을 발표하여 예술성을 보임. 1958년 '우파'로 몰려 북경교구에서 노동. 1962년 북경사범학원에서 교수로 재직. 1963년 신강성 위그루 자치구의 문련에서 근무. 1965년 이리지구의 파언대 공사에 근무. 1973년 우루무치 자치구 문화국에서 근무. 신강농촌 생활을 반영한 장편소설 "이 변방의 풍경"을 씀. 1975년 자치구 문예창작연구실에서 근무. 1979년 북경작가협회에 소속. 1985년 중국작가협 제4차 대표대회에서 부주석. 4인방 후에 "가장 귀한 것", "어느 마음의 기록", "봄의 소리", "나비" 등의 주요작품을 발표하여 우수 중, 장편 소설상을 수상. 어느 마음의 기록 왕멍 내가 성위의 제1초대소(처음엔 꽝화호텔로 호칭)의 이발소에서 근무한 지도 어언 30년이나 된다. 해방되던 해 내 나이 열입곱 살 때, 군에 입대하기도 전에 이리로 옮겨온 것이다. 1949년 이래 30년이라는 세월이 그럭저럭 흘러 나는 전초대소의 유일한 '원로'가 된 것이다. 사방이 밝게 빛나는 큰 거울과 천장의 형광등, 백열등이 휘황하게 비치고, 머릿기름, 샴푸, 스킨로션, 크림 등의 향기가 가득한 속에, 찰각찰각하는 가위 소리, 깍둑깍둑하는 이발기 소리, 웅웅하는 드라이기 소리, 솨솨하는 물 소리 등이 마치 교향곡처럼 서로 어루려 있다. 벌써 이런 생활을 한 지도 30년이나 된 것이다. 삶이란 결국 이렇게 단조롭고 평범한 것이 행복한 건가 하여 만족스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것이 부끄럽게 느껴져서 가끔 당혹스러워지기도 한다. 작은 이발소이지만 나는 그곳에서 인생의 무상을 반영이나 하듯이 수많은 인물들을 만나 보기도 했다. 해방 후의 칠팔 년 남짓은 천당과도 같은 서광이 비치기도 하였다. 이발이나 면도하러 오는 사람들이 모두 동지이거나 전우였던 것이다. 그런 어느 날, 샤오왕이 휴가중인데다가 고객이 밀려서 사람들이 긴 의자에 줄지어 기다려야 할 지경이 되었다. 이때, 군복을 입은 키다리 하나가 지나가다가 샤오왕의 빈자리를 가리키며 나를 사부라고 부르는 게 아닌가. 그때에 나는 겨우 스무살배기여서 이 칭호에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내가 좀 해보면 어떨까요? 왕년에 나도 배운 적이 있다구요." 그 키 큰 군인은 이렇게 말하고는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향해 말을 이었다. "이 중에 누가 제일 담이 큰가요?" 그때, 회색 제복을 입은 한 뚱보가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내 머리를 가지고 기술을 좀 시험해 볼까..." 그 키 큰 군인은 정말 이발을 할 줄 알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는 새로 부임한 군구사령이었고, 자신의 머리로 기술을 시험해 보라고 솔선하여 나선 사람은 중앙XX부의 부부장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나는 은근히 지도급 동지를 많이 알게 되었다. 짱 서기는 나의 입당을 독려하기도 했고(나는 1954년에 당에 가입하여 복무조의 당소조장을 다년간 지냈다.) 리 정위는 내가 눈병에 걸린 걸 보고 거리에서 빠이찡위 안약을 두 통이나 사다 준 적도 있었다. 리우 청장은 이발 순서를 기다리면서 엉성한 소파를 단단히 손봐 주기도 하였다. 늘상 하급간부들과 시민들이 지도층 동지를 만나려고 이 초대소로 찾아오곤 하였고, 경우에 따라서는 직접 이발소에도 찾아왔다. 나는 아주 유능한 한 소선대 보도원이--긴 변발의 처녀인데, 화술이 기관총처럼 예리하고 파를 섞은 두부처럼 분명하였다--몇 명의 어깨에 깃표식을 한 홍두건을 데리고 면도를 하고 있던 성위 제1서기를 둘러싸고서 그에게 6.1어린이날의 중요 행사에 참가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조르던 일도 목격한 적이 있다. 결국 그 제1서기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그 몇 년 간에 상하, 좌우, 그리고 너와 나, 그가 서로 얼마나 평등하고 친밀히 지내왔던가? 공산당과 해방군은 바로 하늘에서 내려온 산신령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신사회를 좋아하였고 혁명에 매료되어서 각국 공산당 지도자들의 사진을 높이 받쳐들기도 하였고 마르크스나 마오쩌둥 그리고 성우와 우리 초대소의 당지부 서기까지도 진심으로 애호하였으며, "인민일보"와 성보, 지부총결, 애국공약 및 위생수칙상의 글과 표점 부호 하나하나까지도 정말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그후에 우리는 공장 준공이나 대교 개통식을 경축하고 사회주의 개조의 승리도 축하해 주었다. 도시와 우리 초대소도 공기를 불어넣은 듯 분위기가 고조되고 팽배되어 있었다. 때맞추어 오늘은 어느 고등관이 양가죽을 쓴 늑대라는 말이 들리기도 하고, 내일은 전국 경작지의 4분의 1이 개량된다든가, 또 오늘은 전국 농촌의 3분의 1의 소유권이 여전히 국민당의 황스런의 손에 있다느니, 내일은 밧줄로 중국을 공산주의에다 꽁꽁 묶어 놓게 된다느니 하는 등의 이야기가 뒤숭숭하게 들려 오곤 하였다. 항상 사람을 놀라게 하는 선고니 논단이니 장거니 하는 일들이 줄지어 이어졌다. 놀랍고도 의아스러워 눈이 어찔어찔 거리지만 분발과 격려도 있었고 놀라서 펄쩍 뛸 만한 사건이 늘어나기도 하였다. 이처럼 정신이 없을 만큼 변화무쌍하였던 것이다. 우리는 전진의 기상을 직감하고 승리를 예측하면서 호탕한 감정과 의기에 불타 있어서 그 대가가 어떨까 하고 헤아릴 겨를조차 없었던 것이다. 이즈음에, 늘 오던 노고객이 한 분 보이지 않으면서 사정이 있다는 등, 문제가 생겼다는 등 수군대는 말이 들려 왔다. 그 당시에는 이발하러 오는 사람 중에 얼굴결이 부드럽지 않다든가, 이러저리 두리번거린다든가, 양미간이 굳었다든가, 기침 소리가 거칠다든가 하는 이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날이 갈수록 바빠지는 모습이었다. 우리는 어느 노고객의 잠적이 무슨 사정이나 문제 때문인지도 모르고, 또 우리가 해준 머리 색깔이나 두발 모양을 가지고 무슨 낌새를 챌 수도 없었다. 그러나 우리도 학습회에서 타깃이 된 낯선 고객에게 주먹을 휘두르며 "xxx의 죄목을 들으니 우리 가슴이 터진다!"라고 내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하곤 했던 것이다. 역사상 전례가 없는 그 한 해가 실로 시끄러웠다. 내가 늘상 가꾸어 주던 그들의 머리는 모두 '개대가리'로 변하였고, 불에 태워지고 기름에 튀겨지며 부스러지기도 하였다. 호텔은 한 좌파에 점령되어 이발소는 초소로 바뀌었고, 그 위엔 고성나팔과 경기관총이 설치되었다. 다른 좌파가 들어오면서 나는 직접 이발소를 운영할 수 없게 되었다. 매달 임금을 받게 되니 형편은 자연히 어려워졌다. 1974년에 신생의 홍색정권이 성립되자 사령부의 근무단은 퇴주하고 말았다. 내가 이발소에 들어서자 거울과 등불의 파편이며 탄피와 긴 창, 그리고 방망이가 널려 있었다. 또 더운 수건을 담아 놓던 보온통엔 누가 오줌을 싸놓았는지 두 마리의 회충이 들어 있었다. 사실 화장실은 바로 벽을 사이에 두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이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사람에 따라 더러워질 수도 있고 깨끗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많은 돈을 들여 초대소를 수리하는 데 넉 달이나 걸렸다. 수리 후에 초대소를 공농비관으로 개명하고 앞엔 긴 철책을 새로 설치하였지만, 사실 농공인들은 근본적으로 들어올 수 없는 실정이었다. 공농빈관은 성 및 군의 비자본주이 노선을 따르는 당권파들의 특실이 되어서 그들의 수면이나 식사, 배설의 제조건을 개선함으로써 심신이 유쾌한 가운데에서 농공대중을 영도하고 자본주의와 수정주의의 잠식을 억제토록 하고 있었다. 식사는 여덟 명이 한 테이블을 차지하는 걸로 하고, 네 가지 요리와 국 한 종류인 4채 1탕이 3채 1탕으로 바뀌었다. 이발하러 오는 새로운 우두머리 중에는 안약 따위를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며, 웃는 모습도 별로 보이지 않았다. 사람, 풍기, 세도가 변했는가? 나는 갈수록 사는 것이 쓸쓸하고 재미가 없었다. 1975년 여름에 한 부부가 이사왔다. 남자는 쉰 살쯤 되어 보였는데 희끗한 머리, 큰 얼굴, 두툼한 입술에, 눈엔 정기가 들어 있었고 항상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 표정 속에서는 자부심과 비통함이 엿보였다. 여자는 작은 키에 쌍꺼풀이 진 큰 눈을 뜨고 먼지 한 톨 묻지 않은 깨끗한 복장을 하고 있었으며, 동작은 민첩하고 얼굴은 엄정해 보였다. 그들은 가방과 캔을 좀 가지고 초대소의 최고층인 6층의 일년 내내 햇빛이 들지 않는 저장실을 개조한 방에 들었다. 그들이 식당에서 식사하는 시간은 대부분의 손님들이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치울 즈음이었는데, 그들은 슬쩍 와서 남은 것을 있는 대로 먹곤 하였다. 누구와도 얘기를 나누지 않았으며 한 젊은 공인 차림의 심부름꾼이 매주 토요일에 들르는 것 외에는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다. 매일 아침 남자는 뒤뜰의 큰 합환수를 돌면서 운동하였으며, 저녁 식사 후엔 부부가 한 시간 이상 매일 산보하였다. 그 외엔 그들이 방을 나서는 것을 전혀 볼 수 없었다. 극히 적은 일이지만, 그 남자의 호탕하고 힘찬 웃음 소리가 간혹 들리곤 하였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에 손님이 없으면 흑색 카키제복의 여복무원이 입구에 늘 상냥하게 대기하고 있는데도 그들은 오르내릴 때에 몸소 걸어다녔으니, 이런 것도 나의 호감을 사기에 족하였다. 이날 아침, 나는 출근하는 길에 허리와 발 운동을 하려고 뒤뜰로 갔다. 여전히 이 장기투숙 손님이 일찌감치 거기서 몸을 풀고 있어야 할텐데 이날 따라 보이지 않았다. 합환수 아래에 서서 오른발 끝을 들어 반걸음을 내디디려는데 문득 낮은 신음 소리가 들렸다. 이 소리에 나는 온몸이 오싹해졌다. 나는 서둘러 더듬거리며 찾기 시작했다. 분수지를 둘러보고 측백나무 담을 헤쳐 가다가 아궁이 문 앞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한 사람이 엎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뛰어가 보니 바로 그 남자였다. 그의 얼굴엔 피가 흘러내렸고 그의 입은 검은 연탄가루와 붉은 피로 범벅이 되었으며 윗입술까지 벗겨져 있었다. 내가 가서 부축을 하려고 했으나 그의 온몸은 늘어져 있었다. 겨우 어깨를 일으켜 수송대로 옮기고서, 졸고 있던 당직 기사를 불렀다. "이 손님이 다쳤어. 병이 났나 봐! 빨리 병원으로 이송해야 해!" 당직 기사는 내 선배의 아들인 샤오뿌였다. 그는 와서 살펴보고는 고개를 저으며 소리를 질렀다. "이자는 반혁명자예요. 그를 돌봐서 어쩌겠다는 겁니까?" "반혁명자라고?" 나는 매우 놀랐지만 내 몸에 기댄 노인이 더욱 연약하고 안쓰럽게 여겨졌다 혁명의 존엄으로 더럽혀진 그해에 '반혁명'이란 석 자는 가증스럽고도 비루한 것이 되어 사라져 버렸었다. "아무 말 마라. 반혁명이 여기에 또 있다고?" "모르세요? 그가 바로 탕찌우웬이에요!" 탕찌우웬? 바로 당신이구만! 1967년에 이 성의 대로와 골목, 식당 기둥과 공중화장실에까지도 역청과 백호, 그리고 각색의 페인트로 씌어진 표어, 즉 "결단코 진압하자", "전제정치를 실행하자", "죄책을 면키 어렵다", "그를 죽이자", "개대가리를 부수자" 등의 혁명구호는 탕찌우웬이라는 이름과 연관되어 있어서, '당구원'이란 이름 석 자는 '당구원'이라고 씌어져서 팽개쳐져 있었다. 어떤 이는 이 이름에 붉은 붓으로 x표시하여 사형에 처할 것을 판시하기도 하였었다. 또 전의 꽝화빈관 쟁탈 싸움 중에 눈이 빨개 가지고 살인까지도 마다 않던 쌍방 모두가 사진과 복사자료를 삐라로 인쇄하여 탕찌우웬이 상대방의 막후조종자라고 폭로 비판하고는 결국 1970년에 탕찌우웬에게 15년형을 정식으로 선고하였던 것이다. 그의 죄명은 중앙문혁에 대한 공격이었다. 지금 그 사람이 내 가슴에 엎드려 신음하며 두 눈을 감고 피를 흘리고 있는 것이다. 이 피, 이 신음, 이 쇠약한 신체, 누런 안색과 굳게 닫힌 눈동자... 한편으로 그의 빛나면서 쓸쓸한, 그러면서 자부심으로 가득 찬 눈빛 거침없는 행동을 연상하고, 다른 한편으로 반혁명자, 15년의 형벌, 짓밟힌 이름을 연상하면서 왠지 모르게 내 마음은 격동하기 시작하였다. "이 몹쓸 놈아!" 나는 샤오뿌에게 욕을 퍼부었다. "죽어 가는 생명을 보고 어찌 구하지 않겠니? 그가 반혁명자라도 병원으로 보내야 한다. 알겠니? 네가 이송하지 않아서 생기는 모든 문제는 네가 책임져라!" 샤오뿌는 원래 간교한 녀석이어서 아버지에게까지 입질 손질을 하는데, 갑자기 나에게 한바탕 야단맞고는 눈을 멀끔히 뜨고 어쩔 줄 몰라 하며 중얼거렸다. "저, 어떻게..." "그러면 내가 차를 쓰는 걸로 해! 내가 비용을 대고 일체 책임을 지겠다. 이 바보 천치 같은 놈! 어서 차를 대지 못하겠니?" 오늘따라 왜 한 생면부지의 반혁명자에게 이렇게 동정이 가는지 모르겠다. 진실로 일을 발전시키는 데엔 그만큼 반대에 부딪치는 경우가 많다. 근년에 여러 강조할 점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 즉 한계의 분명이 한계의 무란 결과를 낳고, 투쟁은 우의. 의기. 간계의 고귀성을 깨닫게 하며, 정치의 결과는 정치에의 권태를 낳고, '사구(4가지 구습)'의 타파는 구풍속. 구습관의 대회전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샤오뿌는 다 낡은 지프에 발동을 걸어 탕찌우웬을 병원으로 이송하였다. 그의 병은 메니에르 증후군이라고 했다. 그는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져서 가벼운 뇌진탕을 일으킨 것인데, 며칠 입원하고서 회복되었다. 어느 날 저녁, 탕찌우웬 부부가 옷을 단정히 입고 이발소에 와서 정중히 식사 초대를 하며 나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테이블 하나에 차려 놓은 음식은 대부분이 인스턴트 식품이었다. 그 중에는 한 근에 7원이 넘는 큰 새우도 있었고, 북경 반점 요리사가 만든 것으로 20원이 넘는 여행 야식도 있었다. 이것들은 그리 신선하지는 않았지만, 매우 귀한 음식들이어서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들은 감사의 뜻을 표할 다른 뾰족한 방법이 없어서, 값비싼 인스턴트 식품으로 정중히 그 뜻을 대신하고자 했던 것이다. 술을 한 모금 마시고 난 후에 탕씨는 말문을 열기 시작했는데, 그의 목소리는 밝고 호탕하였다. "나는 금년에 쉰 넷으로, 1938년인 17세 때는 팔로군에 입대하고 1949년에는 포단의 단정이 되었습니다. 그후 지방으로 전속되어 N전구당 지위서기로 약18년간 지냈지요. 나는 하나의 못처럼 지위서기의 자리에 못박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1967년, 마침내 공산당 자체에 연과된지 어언 8년이나 되었습니다." "이분과 국민당의 행정요원이 한 감옥에 갇혀 있어서 제가 식사를 넣어 줄 때에, 그 요원의 가족도 식사를 넣다가 저와 마주쳤어요." 탕찌우웬의 부인이 괴롭게 입을 오므렸다. "예, 예..." 나는 머리를 끄덕였지만 등허리에 냉기를 느꼈다. "드세요, 드세요. 나는 전혀 못 먹겠어요. 지금은 안 되겠어요...나 탕찌우웬이 살아 있는 한 언젠가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게 될 겁니다." 탕찌우웬이 말했다. "그날 뤄 사부님이 아니었으면 당신은 목숨을 보전하지 못했어요! 기사가 차를 못 내주겠다고 했다면서요? 이런 천할 데가! 언젠가는..." "그만, 그만둬요." 탕지우웬은 부인의 말을 끊고 화제를 바꾸었다. "내가 정식 수감되기 전에 격리되어 반성할 때가 한 번 있었는데, 거의 죽을 뻔했습니다! 나는 주범이라고 해서 단독 격리되었는데, 그 격리실이라는 곳이 제법 쓸 만해서 겨울에도 춥지 않았어요. 그런데 한 젊은 간수동지가 반혁명자에게 편안히 자게 할 수 없다면서 총으로 격리실 문살을 부수어서 큰 구멍을 내고 말았습니다. 겨울 바람이 어찌나 차고 매서운지 나는 그만 폐렴에 걸렸어요. 열이 40도나 되는데, 병원에 가려 해도 보내 주질 않아서 한바탕 싸웠습니다. 그 ㅊ년은 한 반혁명자를 위해 귀한 페니실린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무슨 방법이든 강구해야 했지요." 그는 그 공포 어린 일을 말하면서도 표정과 어조가 오히려 매우 상냥한 데가 때로는 웃음 소리까지 섞어서 이야기하는 등 실로 강인한 사람이었다. 그 부인은 화가 나면 안색이 변했고, 한이 되면 이를 악물면서 말을 이었다. "뤼 사부께서 말씀 좀 해보세요. 어찌된 일입니까? 강산은 우리가 닦은 것이고, 가업도 우리가 이룬 것인데, 이제 머리를 돌리고 우릴 반역이라 하니 말예요! 누가 반역을 했습니까? 지주도, 악인도, 반혁명자도 아니고 순전히 계급 보복입니다!" 탕찌우웬은 연거푸 술 몇 잔을 들이켰다. 나는 과음하지 말라고 권했다. 그러자 그의 부인이 말을 받았다. "마시게 놔 두세요. 오랫동안 속시원히 말도 못해 봤어요. 마시고 떠들게 놔 두세요. 죽지나 않을 정도로..." 탕찌우웬은 얼굴이 빨개진 채 눈물을 머금으며 말을 이었다. "8년 간의 감옥생활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름대로 결산해 보는 좋은 기회가 되어서 몇 년 동안 당교에서 지내는 거소다 더 강해졌습니다. 옥에서 나는 혁명에 참가한 이래, 특히 지워서기로서 한일과 득과 실을 하루하루 하나하나 손꼽아 보았습니다. 내가 굴욕을 받으면 나는 남을 모욕하지 않았는지, 내가 남에게 박해를 당하면 내가 권세 있을 때 몽둥이 맞은 사람이나 없는지를 말입니다. 어째서 범인에게 이렇게 가혹합니까? 진정 반혁명자라면 총을 쏘아 죽이든지, 노역을 시키든지 할 것이지 법률 외적인 모욕과 고역으로 뭘하겠다는 겁니까? 누가 나에게 찬바람을 넣어 준 그 동지와 같이 법률도 외면하는 극좌적인 열광자를 길렀습니까? 바로 우리 자신이 아닙니까?" 그는 테이블을 치며 흥분한 탓에 목이 쉬어 있었다.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내가 다시 새 업무를 맡는다면, 첫째 대인의 처리에 신중할 것이며, 둘째 감옥의 상황을 개선하고 범인의 인격을 존중하며 그들이 누릴 생활환경을 보증할 것입니다. 셋째는 극좌의 인물을 중용하거나 뽑지 않을 것입니다.!" 8년 동안 감금생활을 한 그는 나 같은 일반 노동자에 대해서도 마음을 쓸 수 있게 되었으며, 말끝마다 적극적이고 진실하였다. 사회의 변화 무쌍하고 흉악 야만한 것에 마비되고 말라 버린 나의 심령이 돌연 한 줄기 봄비를 맞은 듯 녹아 내렸다. 응결된 굳은 덩이가 부드러워지고 갈라진 금이 붙기 시작한 듯하여 그의 이야기가 나와 어떤 직접적인 관계가 없었음에도 나는 울고 말았다. 까닭 없이 울고 있었다. 몇 년 동안 신문, 방송, 무대, 회장 등에서 목이 쉬도록 떠들고 거짓으로 작태하는 고성에 귀가 멍해 있었는데, 이때 한 지위서기를 지낸 사람의 마음에서 우러나 토로하는 소리를 듣고서, 사람의 말이 이렇게 진실하며 또 묻혀진 모든 진리가 아직 사람의 마음에 남아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울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부터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고독하고 적막한 가운데 그와의 우정은 등이고, 불이었다. 만약 밤중에 환난을 당해도 존경하고 신뢰할 만한 강한 친구를 생각하면 위로가 될 것이다. 또한 그가 지원과 보호를 자신에게 요청해 오면, 친구에 대한 따뜻한 온정으로 반가울 것이며 자신이 더욱 가치 있는 존재로 느껴질 것이다. 나는 어디서 이런 온정과 힘이 솟는지 모르겠지만, 온 힘을 다해 탕씨를 위로하고 좀더 잘 지내도록 해주고 싶었다. 식사일을 맡은 이 중에 잘 아는 사람이 있어서 시중에서도 보기 힘든 물건들, 즉 5월의 신선한 참외부터 금실의 펑티사며, 오량예, 산 잉어, 비누 등을 구할 수 있었는데, 나는 구하는 대로 먼저 탕씨에게 보냈다. 내 아들이 신화서점에서 근무하므로 "동주열국지"와 "전재풍운"도 가져다 주었다. 춘절(음력설)이 지나고서 그를 집으로 초대하여 함께 만두도 빚고 화파오도 넣고 탕웬도 끓이면서 찌우짜오로우와 쑹화딴을 먹었다. 내가 작은방을 꾸밀 때 그는 자기 아들을 보내 도와 주기도 하였다. 우리 두 집의 아이들도 친구가 되어, 같이 수영도 하고 기타도 쳤으며 몰래 금서를 바꾸어 읽기도 하였다. "뤼 형, 성위 짜오 서기의 온 가족이 당신에게 이발을 한다던데, 언제 오게 되면 나에게 알려 주면 어떻겠소? 그를 좀 만나 보렵니다." 어느 날 저녁, 그가 나에게 한 말이다. "그를 만난다고요?" 나는 놀랐다. 짜오 모씨는 갑자기 신흥귀족에 붙어 명성이 자자한 사람이었다. "만나서 뭘 하려고요? 어느 묘의 보살입니까?" 탕 부인이 입을 삐죽거렸다. 탕찌우웬은 고개를 돌리며 나에게 말했다. "내가 중앙문혁을 공격했다고 하는데, 사실 난 그런 배짱도 없어요. 완전히 남들이 억지로 날조한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나는 내가 도대체 뭘 공격했다는건지 모르겠어요. 한 당원으로서 오직 당을 위해 일한 것뿐인데..." "그래, 그래요. 당을 위해 일했으니 말이라도 듣기 좋아요." 그의 부인은 왠지 모르지만 대단히 성이 나서 입을 삐죽거렸다. "넉 량 무게의 오사모(옛날 말단 관리의 모자)라도 구해 쓰면 좋겠군요. 오늘 조직부에서 나를 찾아와 말하기를, 자수공장 당지부 부서기를 하래요. 아! 억울하게 8년을 죽었다 살아났더니...당신도 말단 관리예요!" 우리의 내왕이 매우 친밀해져서, 그는 부인의 쪼아대는 말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난감하게 여기지도 않고 도리어 나에게 해석해 주었다. "이런 마음은 어쩔 수 없어요. 당원이라면 언제나 당의 보살핌을 받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나도 아들이 있고 일찍 출가한 큰딸도 있어요. 지금 나 때문에 외손녀까지 홍위병에 들지 못했어요. 내가 짜오 서기를 찾아가지 않고 뻣뻣이 여기서 버티고 있으면, 되는 일이 있습니까?" 유사한 논쟁을 난 한 번만 들은 게 아니었다. 탕 부인이 입으로는 괜찮다고 했지만, 사실 자수공장 당지부 부서기라는 오사모는 너무 작다고 할 것이다. 전에 말한 바로 그녀의 직급과 문화대혁명 이전의 직무로 보면 적어도 경공업국의 부국장은 맡아야 했기 때문이다. 탕씨의 직무가 회복되지 않으면 그녀도 일할 도리가 없다고 했었다. 이러한 말이 우리 서민에겐 좀 생소하지만 전혀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그들이 말한 것은 모두 실화였기 때문이다. 만일 한 국장급의 간부가 작은 공장에서 말단 관직을 맡았다면 참으로 불유쾌하고 부자연스런 입장에 처할 것이니, 어디 이발사나 갓 배운 실습공이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이런 관직에의 중시가 처음엔 내게 반감을 일으켰지만, 곧 나도 이해하게 되었다. 탕지우웬은 혁명을 위해 많은 공헌을 했고, 또 세 가지 구상도 있었다. 즉 세 가지 정강이라 할 수 있겠는데, 이 세 가지만이라면 나도 그가 관직에 오르는 것을 옹호할 만했다. 사실 관리가 되지 않고서 어떻게 이 세 정강을 실천하겠는가? 지도적 지위가 아니라면 그들이 어떻게 힘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 탕찌우웬의 아들, 딸, 자손의 전도를 고려하니 동정이 갔던 것이다. 그들은 산신령이 아니므로 오곡 식량을 먹고 칠정육욕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혁명경력과 지도경험이 있으며 또 문화대혁명 중에 정리하고 사색해 본 노동자이므로 나의 국가와 당과 개인에 대한 전도와 희망을 그들에게 걸어 보기로 한 것이다. 여기서 나는 탕찌우웬이 자신의 능력을 펼 기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후에 그들이 어떻게 만났고 어떻게 말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얼마 안 되어서 탕찌우웬을 공소사의 제8부 주임으로 안배했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무엇에 의거해서 지위서기 동상이 되게 한단 말이오(당시에 고실화영화 "제8이 동상이다"가 있었다.)?" 탕 부인이 분하다는 듯이 말했다. 탕씨는 웃을 뿐 대답이 없었으나 '동상'이라도 좋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해 말부터 상황이 달라져 도처에서 숙청인 등용 반대가 일어나 4인방이 분쇄된다 해도 탕씨는 '동상'자리조차 맡을 수 없게 될 것 같았다. 1976년 1월, 우리는 탕씨 부부와 같이 총리를 애도하는 비애에 잠겨 함께 울고, 함께 주먹을 쳤다. 그들은 종일 인민광장에서 군중의 자발적인 추도활동에 참가했다. "이것은 추도이며, 시위입니다!" 탕씨는 흥분하여 나에게 말하였다. 그의 눈엔 지난날 포단 단장 시절의 노기 어린 불이 일고 있었다. 나는 그가 한바탕 전투 준비를 하려고 착각하는가 하고 생각하기도 하였다. 우리는 같이 국가 대사를 이야기하는 가운데, 근심 걱정이 불같이 솟아났다. 그러나 1976년 4월 7일 이후 그는 입을 꼭 다물었고, 심지어 내가 야단을 피우면 정색을 하며 경고해 주었다. "이런 큰일에는 엄숙한 태도를 지녀야 해요. 처음엔 나도 사상적으로 굴곡이 없었으나 중앙의 공문을 학습하면서 점점 "비등(등소평 비판)"과 "우격번안풍의 반격"의 의의를 인식하게 되었소. 잔소문은 듣지 말고 자유주의를 범하지도 말아요!" 그의 말이 나를 실망시키고 어리둥절하게 했지만 그의 입장을 고려해 보면 이런 말이 부득이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1976년 10월에 4인방이 무너졌다. 1977년 2월에 성위 제 1서기인 짜오xx가 4인방과의 연관으로 물러났고, 3울엔 새로운 성위 지도자가 천인대회를 개최하고 대대적으로 탕찌우웬을 위해 보도선전하기 시작했다. 즉 탕찌우웬 동지는 린피아오와 4인방의 만행에 대해 침봉을 잡고 투쟁하다가 잔혹한 박해를 받았다는 것이다. 성위 지도자도(자오xx를 가리킴) 탕찌우웬을 배척하고 박해했는데, 그의 모습은 한 그루 고결한 청송이 우뚝 대지에 서서 서리와 눈을 이기는 것 같다고 보도한 것이다. 평반대회 후 일주일만에, 탕찌우웬은 성 관할인 S시의 시위서기로 임명되었다. 나는 그가 바쁘기 때문에 찾아볼 수 없었지만, 그의 일에 너무 기뻐서 직무 회복을 축하하면서 홀로 축배를 들었다 그는 부임 전에 부인과 자녀를 데리고 나를 찾아와서 열번이고 스무 번이고 우리를 S시로 초청하겠다느니, 무슨 긴요한 일이 있으면 찾아오라느니 하며 당부하였다. 그는 좀더 말하고 싶어했지만 그의 부인이 재촉하였다. 5분 후에 모정위가 전송하기로 되어 있다면서 그를 잡아 끌었다. 차가 떠날 때까지도 그는 내 손을 놓지 못하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꼭 S시에 와야 하오!" 이 정분에 나는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탕씨가 문에 들어서자 아들은 화장실에 가는 척하고 노닐다가 잠잘 즈음에야 돌아왔다. 그 녀석을 나무랐더니 "체!"라고 하면서 한 마디 내뱉었다. "감히 높이 오를 생각 마세요." "그게 무슨 말이냐?" 나는 화가 났다. "우리는 동지요, 친구다. 그분이 조사 받은 반혁명자든 시위서기든지 간에 우리는 그런 관계다. 나는 그분이 복권되었다고 해서 아첨하려는 게 결코 아니다. 네 아비는 결코 그런 사람이 아니야. 그리고 그분이 서기가 되었다고 해서 그분을 일부러 피할 수는 더욱 없는 거야!" 아들은 담담히 싱긋 웃었다. 근년에 그 아이는 나의 훈계에 늘상 이같이 담담히 싱긋 웃는 습관이 생겼다. "너 왜 웃어?" 고함치면서 나는 스스로 모욕감을 느꼈다. 아들은 나를 보지도 않고 피곤한 어조로 대답했다. "아버지 말씀을 들으니, 아버진 정말 곧으세요. 천진하시단 말예요! 예컨대, 그분이 정말 투쟁했습니까? 그분이 고결한 청송입니까? 제8의 동상이란 말은 어찌된 일입니까?" 아들의 말은 내 말문을 잠시 막았으나, 난 화가 치밀기 시작했다. "너, 넌 어찌 최하의 계급의식도 없냐? 4인방이 노동자를 박해하고 너도 노간부에 눈살을 돋우니... 너 참으로 위험한 애구나!" 아들은 몸을 돌려 나가 버렸다. 나는 기분이 상한 채로 생각해 보았다. 우리 세대의 대단히 유효하고 감동적이며 위력 있는 논증적인 방법과 어조가 이 아이에겐 아무런 효용이 없었단 말인가. 1978년 신년에 탕씨에게서 편지와 함께 S시 특산인 계화과자 한 상자가 소포로 왔다. 편지엔 틈나는 대로 S시에 놀러 오기 바란다는 뜻을 재차 표하였다. 마음에 작정하진 않았지만, 그분들이 일이 바빠 시간이 소중한데다 그분들을 도와 드릴 만한 것도 없다고 생각하던 차에 아내는 멋모르고 춘절휴가를 이용해서 한번 다녀오자고 졸라댔다. 말인즉슨 그분들이 우릴 접대할 시간이 없다손 쳐도, 우리가 먼저 그분들에 냉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아버지, 정말 가시려고요?" 아들이 이의를 제기했다. "그분은 시위서기란 걸 잊지 마세요!" '시위서기'란 이 넉 자는 내 고개를 떨구게 했으나, 두 성실한 마음의 거리를 계급과 지위의 거리로 잴 수 있을까? 나는 달갑지 않았다. 나는 가기로 결심하고 아내에게 손수 만든 찌우짜오로우와 쑹화딴을 준비하도록 하였다. 이 두 가지는 탕씨가 가장 즐겨먹는 것이었다. 구랍 28일, 출발을 하루 앞둔 날 저녁에 초대소의 기사 ㅆ오뿌가 왔다. 과자 한 상자와 빠이아예 두 병을 들고 찾아와서는 의자에 앉아 이 얘기 저 얘기로 시간을 보냈다. "나중에 차 쓰실 일 있으면 찾으세요... 이 테이블에 덮개를 씌우면 더 예쁠 겁니다. 에, 저에게 하나 있는데 잘 맞겠네요...이 자전거는 땜질 좀 해야겠네요. 제가 해드릴게요."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그가 왜 그러는지를 생각해 보았지만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우린 평소에 전혀 아무런 왕래도 없었던 것이다. 그는 한참 우물쭈물거리다가 겨우 본심을 드러냈다. "아저씨, 저는 감복했습니다. 안광이 정말 원대하십니다! 탕씨가 아주 어려운 지경에 있을 때 그분을 잘 모셨으니, 쓸모 있는 친구가 되실 겁니다. 우린 모두 가난한 노동자이니 저를 잘 좀 돌봐 주시고 아껴 주십시오. 제 나이 올해 28세입니다. 그동안 몇 번이나 짝을 구하려 했으나 이루지 못하다가 다행히 얼마 전에 구했는데 매우 흡족합니다. 여자쪽은 S시 교구 모직공장에 근무하는데, 옷장이나 텔레비전 등은 원치 않고 다만 그녀를 교구에서 시구로 옮겨 주고 일도 직포보다는 정방을 원할 따름입니다. 이러저리 생각하다가, 아저씨께 부탁하려고요. 내일 S시에 가신다기에..." 그는 과자 상자와 술병을 내 손에 쥐어 주었다. "내,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당황하였다. "아저씨를 믿습니다. 아저씨는 탕씨를 잘 아시고, 탕씨는 지금 시위서기이니 어려운 일은 아니지요." 나는 얼굴에서 귀뿌리까지 빨갛게 달아올랐다. "너, 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그가 뭔가 말하려는데 아들이 들어왔다. 아들은 과자 상자와 술병을 발견하고는 그것들을 집어 문 밖으로 들고 나가면서 문을 열고 말했다. "다른 데 가 보세요. 우리 아버진 S시에 안 가십니다." 그러고는 샤오뿌를 밖으로 밀어냈다. "아이, 이럴 때 봐주셔야지. 내가 필요할 때도 있을 텐데..." 샤오뿌는 계속 변명하고 있었다. 아들은 문을 닫고 돌아서서 말없이 나를 나무라듯 바라봤다. 나는 긴 한숨을 쉬고서 말했다. "차표를 물려." 이해 6월에 성도읍에서 재무전선 학대축전 및 학대제회의가 열렸는데, 나는 복무대표로 뽑혀 회의에 참가하였다가 마침 S시 대표단과 가까이 투숙하게 되었다. 내가 조심스레 탕씨에 대한 그들의 반응을 타진해 보았더니,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탕 서기는(공문상 누차 당 내에서 동지의 호칭을 강조하였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여전히 관명을 부르고 있음) 일을 잘하십니다. 부임하자마자 시정정돈, 애국위생, 교통질서, 녹화 및 4인방파의 정돈체계 등 박력이 대단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은 나에게 탕씨가 업무에 철저하며, 작은 일에도 엄격하다는 점을 역설하였다. 더욱이 춘절기간에는 '사복시찰'을 하여 뒷거래하는 품행 나쁜 부식점 경리의 내막을 조사하고 수습하여 구사회의 청백리 같다는 말에는 나도 진심으로 기쁨을 금할 수 없었다. S시 시위업무의 좋고 나쁨이 나의 한 일부같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러면 탕 서기 부임 후에 그곳의 감옥 사정은 뭐 좀 개선됐습니까?" 나의 질문에 그들은 대답은커녕 눈을 치뜨고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비로소 알아차렸다. 이런 질문은 무슨 혐의와 관련된 것이라는 점을.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탕 서기에 관해 뭐 나쁜 반응이라도 없습니까?" 나는 또 물었다. "나쁜 반응이라뇨?" S시의 쌍학대표가 말을 이었다. "문제는 그분의 부인이지요. 그 부인은 참 대단하십니다. 누구도 훈도를 못하지요. 위아래 가릴 것 없이 성질을 내니까요. 미용실에 가면 미용사를 욕하고, 물품을 사면 판매원을 욕하시니, 그분이 상점에 들어왔다 하면 모두들 두려워하죠." "호랑이라고들 하지만, 사실은 성품이 곧으셔서 그 성품을 잘 맞추기만 하면 남에게도 잘하신답니다." 사람마다 관점이 같지 않았다. "탕 서기는 호화주택에 살고 있다더군요. 그의 아들은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또 50여 평방미터 짜리를 요구한대요. 듣자니까, 딸도 Y진에서 S시로 옮겨 왔는데 지금 탕 서기의 부인이 마침 그 딸과 사위를 위해서 집을 구하고 있대요..." 감시하는 사람도 없는데 작은 소리로 말하는 것은 습관된 조건반사인가. 이런 얘기를 듣고 난 후, 나는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녀가 어떻다고? 그들이 어떻다고? 그들은 많이 고생하였고 인민들은 그들을 동정했었다. 그녀는 자신의 권력으로 4인방이 준 손실을 뺏어 오려는 걸까? 그럴 수 없지! 아니야, 그녀는 권력이 없어. 그들은 이런 권력이 없다구! 인민이 그들을 냉철히 지켜보고 있는데...그들이 군중을 이탈한다면...하늘이여! 나는 즉시 S시로 가고 싶었다. 탕씨와 그 부인에게로 달려가서 내가 들은 반응을 일일이 알려 주고 싶었다. 그들이 관직에 있는 한 진실을 말해 주는 사람이 많을 것 같지는 않았다. 다급하여 견딜 수 없었다. 회의의 정식절차를 마친 후, 대회의 마지막 이틀간의 참관, 촬영, 영화감상, 회식에 불참하고 휴가를 얻어 S시로 떠났다. 4시간 동안 야간열차를 타고 S시에 도착하여 아침식사를 하는데, 옛날 학교선배 한 사람을 우연히 만났다. 오랜만에 만난 선배는 내가 탕씨를 만나러 왔다는 말을 듣고는 놀라며 물었다. "탕 서기를 찾아왔어? 상소하려구? 자네, 전부터 문제를 일으키는 자 아냐?" "아닙니다. 우린 그냥 알고 지내는 사이죠. 놀러 오라고 했어요." "놀러 오라고 했다구?" 선배는 큰 눈을 더욱 크게 뜨고 두리번거리다가 문득 크게 깨달은 듯이 말하였다. "정말 미처 몰랐네! 착실한 자네도 교제술을 배웠군. 그것도 큰 인물하고 말야! 능력 있군, 능력 있어!" 그는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이더니, 내 귀에 대고 말하였다. "내일 성위가 S시에서 업무회의를 소집한다고 해서 지금 온 시내의 최고 상품을 준비하고, 최고 요리사, 최고 연예인이 모두 회의를 위해 일하는 중이라구. 회의를 지원하기 위해 큰 시가의 냉식점이 모두 영업중지야. 이보게! 귀빈관에 들어가서 좋은 물건을 사게 되면 우릴 잊지 말라구. 자네, 가진 돈은 넉넉한가? 머물 곳이 마땅치 않으면 내 집에서 머물라구." 선배의 말은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어, 나는 휴식을 취할 틈도 없이 화급히 S시 시위로 달려갔다. 시위의 한 동지가 탕찌우웬이 초대소에 있다고 일러 주었다. 나는 지체 않고 속칭 '귀빈관'이라 하는 제1초대소로 달려갔다. 초대소에서 200미터 밖에 증원된 교통순경과 순찰하는 군인이 보였다. 초대소에서 50미터 밖에서는 조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어디 갑니까?" 순경과 군인이 물었다. 동지라고 부르진 않았다. 대문으로부터 10미터 밖에서는 신분증 검사가 시작되었는데, 다행히 나는 쌍학회의 출석증을 휴대하고 있어서 대문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문 입구에 이르자, 초소에 있는 이가 내게 전달실로 찾아가라고 하였다. 전달실 문은 꼭 닫혀 있었고 유리창도 전부 신문지로 밀폐되어 있어 움직이지도 않을 뿐더러 무엇이 있는지 볼 수도 없었다. 어떻게 전달자를 찾을까? 본래 전달실 한 옆의 두터운 벽에 작은 네모 구멍을 뚫어 놓고 들어오려는 사람이 이곳을 통과하려면 자기의 신분과 사유를 밝히고 검사를 받은 후에 허락을 기다리도록 되어 있었다. 네모 구멍은 상당히 높은 곳에 뚫려 있어 2미터 이상은 족히 되어 보였다. 창구멍이 작은데다 3분의 1은 닫혀 있었다. 나는 발꿈치를 들은 채 목을 빼고는 "동지!"하고 불렀다. 목을 빼느라 좀 아팠지만, 한 뚱뚱하게 배가 불룩 나온 사람의 두텁고 살찐 등허리가 겨우 보였다. 마침 전달실의 근무원은 등허리로 창구를 가리고 있었다. "동지! 동지! 동지!" 내가 목을 세우며 여러 번 부르니까 그제야 뚱뚱보 근무원이 머리를 숙여 흘끗 보고는 다시 머리를 돌려 버렸다. "동지!" 나는 크게 불렀다. "말할 줄 몰라요?" 실내에서 쏘아댄 이 한 마디 말은 탄환처럼 나의 귀, 얼굴, 마음에 박혔다. 뭐? 말할 줄 모르냐구? 내가 벙어리인가? 나는 중국인이 아닌가? 나의 얼굴은 귀뿌리까지 빨개졌다. "나는 라오탕을 찾습니다! 탕찌우웬을 찾아요!" 나의 함성이 초소를 놀라게 했는지 초소병이 경고를 했다. "소리지르지 말아요!" 이 이름과 나의 고함이 좀 효험이 있어서인지 전달자가 고개를 돌려 창구로 다가와서 머리에서 발, 또 발에서 머리까지 나를 훑어보는데, 그 눈빛에 나는 온몸이 떨렸다. 맙소사! 나는 원수의 피맺힌 증오에 찬 눈초리를 받을지언정, 이 동지의 눈매는 감당할 수 없었다. 그후, 그는 나의 경력을 확인한 후에 차갑게 말하였다. "회의중엔 면회 사절이요." "회의는 내일 있는 줄 아는데요. 시위로 갔더니 날 이리로 가라고 합디다." "면회 사절이요." 그의 대답 소리가 더 작게 들렸다. 동시에 두툼한 등허리가 보였다. 이때에 한 부인이 문을 두드리자, 그는 즉시 뛰어가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소리를 들은 순간부터 그의 온몸의 피부와 자세와 표정이 즉시 기적 같은 변화를 일으켜서, 마치 관음대사의 버들가지에 맺힌 정수가 나무통에 떨어지듯, 도 왕자의 애정이 두꺼비로 하여금 아름다운 여자로 변케 한 것처럼 그 뚱뚱보 근무원은 달콤하고, 애교 있고, 유식하고, 예의 있고, 부드럽고, 쾌활하고, 친절한 태도로 잠긴 자물쇠를 돌려 문을 열었다. "저녁에 우리 아이의 친구 몇 명이 영화를 보러 올 테니 들여보내도록 해요." 탕찌우웬 부인의 음성이었다. "거 말할 나위 있습니까! 제가 아니깐요, 오시기만 하면..." "그들이 잘 모를 텐데..." "괜찮습니다, 괜찮습니다. 이름만 일러 주신다면..." 이 뚱뚱보 근무원의 어조가 어떻게 이렇게 애교 있고 정답게 변할 수 있을까?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저, 나를 들여보내지 않네요!" 나는 소리를 질렀다. 탕 부인의 음성을 듣고서 나는 담이 켜졌다. "어머! 뤼 사부시군요. 웬 바람이 불어 오셨어요?" 탕 부인이 나를 알아보고 반가이 인사하며 동시에 손으로 가볍게 가리켰다. 전달자가 즉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출입증을 건네 주었다. 미소를 짓는 그의 모습은 방금 멸시의 눈으로 머리에서 발끝까지 훑어보던 때와는 너무도 판이하였다. 나는 서둘러 몸을 돌려 빠른 걸음으로 대문에 들어섰다. 나는 탕 부인에게 전달자의 태도가 불량하고 수문이 너무 삼엄한 것을 탓하며 말했다. "이 귀빈관은 너무 고급스럽군요." 그러자 부인은 크게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래요? 저 성도읍의 공농빈관이 더 좋을걸요? 여기도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답니다. 지금 내방객이 너무 많아서 삼엄하게 하지 않으면 일을 할 수가 없어요." 그녀는 친절하고도 편안하게 가까이 다가오며 말하였다. "우린 은혜를 갚지도 못하고 있어요. 춘절에 오셨으면 하고 생각했지요. 저는 그이에게 여러 차례 말했습니다. 뤼 사부는 정말 좋은 동지이니 돌봐 드려야 한다고요. 그이가 시위서기가 된 후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어나 문난간이 부서질 정도랍니다. 옛동료, 부하, 동창생,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척... 모두 오는 거예요. 참 이상해요. 그 동안 어디에들 있었는지. 내가 그이의 옥바라지를 할 때, 어느 한 사람 와서 위로해 준 줄 아십니까? 탕 부인은 또 화가 나서 안색이 변해 갔다. "지금은 좋지요." 내가 말했다. "그래요, 그래요." 그녀는 다시 안색이 밝아졌다. "S시에서 며칠 쉬세요. 급히 돌아가시지 말구요. 제가 모시고 구경시켜 드릴 테니까요. 사실 물건이나 약, 그리고 기타 무슨 일이든 제가 해드리겠어요. 더 큰 일이라면 그이를 만나시고요...정말 우릴 이해해 주시고 우리도 이해하고요..."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그녀는 불려 나가면서 "그이는 삼호원에 계시니까, 만나 보세요."라고 말하고 나에게 손을 펴서 가리켰다. "저녁엔 여기서 주무세요. 내부 영화도 있습니다." 그녀는 한참 가다가 고개를 돌리고서 외쳐 댔다. 나는 부인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소매부를 지나려니 상품선전물이 나의 주의를 끌었다. 털실(처리가격에 의거), 텔레비전(시험가격에 의거), 가죽구두(할인가격에 의거) 등... 모두 인기품이었다. 내가 미간을 찡그리니 마음도 어두워졌다. 소매부 옆에는 냉식부가 있었다. 전달실 창구에서 발꿈치를 들고 목을 빼서 고함을 지른 탓인지 온몸에 땀이 나서 아이스케이크 생각이 절로 났다. 냉식부에 들어가서야 아이스케이크까지도 특제품이란 것을 알았다. 시장에서는 과일 아이스케이크가 3문, 우유 아이스케이크가 5문인데, 여기서 파는 것은'우질 아이스케이크'라고 불리어 개당 6문이었고 질과 양도 시장에서 10문씩 하는 따쉐까오( )보다 훨씬 좋았다. 내가 성도읍의 큰 초대소에서 반평생을 일했어도 이런 '복지'는 보지 못했었다. 찬 것을 먹으니 입에서 배까지, 몸에서 마음까지 모두 서늘하게 느껴졌다. '탕씨를 만나 얘기해야 한다. 회의가 열리니 어떻게 하지? 밖으로 나가자니 경비가 엄한데. 그에게 물어 봐야지. 그 세 가지 정강이 어떻게 실행되고 있느냐고.' 나는 이렇게 생각하며 냉식부를 나와 삼호원으로 찾아갔다. 원 안에는 몇 대의 소형차가 주차되어 있었는데, 하나는 '홍지', 하나는 '도요다', 다른 하나는 '벤츠'차였다. 단번에 보통 지도자가 타는 것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탕씨는 용의주도하게 임시 교통순경을 배치하고, 이들 기사에게 고급승용차를 그늘지고 조용하면서 길 입구의 인근한 곳에 대놓도록 지휘하고 있었다. 그는 모직옷을 입었는데 단추가 풀어져서 희고 깨끗한 와이셔츠 칼라가 드러났다. 차를 배치한 후 기사와 일일이 악수하는데, 오만한 태도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초대소의 근무원에게 기사들을 모시고 휴식하도록 일러두기도 하였다. 기사들을 보내 놓은 후, 그가 머리를 돌리다가 눈빛이 나를 투사하였다. 내가 손을 들어 부르려는데, 한 안경 낀 간부가 달려와서 자료를 탕씨에게 건네 주었다. 탕씨는 한편으로는 자료를 보면서 한편으로는 안경을 끼고 머리가 회백색인 그 간부에게 지시하였다. "일호원 쪽의 욕조를 재검하시오. 이 초대소 사람은 정말로 게을러요. 내가 어제 가 보았더니, 만지는 데마다 손이 검습니다. 지저분해서 눈을 감아야 할 정도이고 물도 고르게 나오지 않아요. 어제 그들을 나무랐는데..." 갈수록 더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데도 탕지우웬은 성심으로 지시하고 있었다. "자네, 소강당에 한번 가 보게." "자네는 주방에 한번 가 보라구. 꼭 산시라오 천의 식초를 써야 해..." "자네는 소매부에 한번 가 보고..." "자넨 의무실에 가보고..." "맞아, 오늘 브리핑해야 하네. 뭐? 내용이 없다고? 아, 오늘 성위가 여기에서 삼간회를 소집한 행사를 S시의 많은 군중들은 시의 행정에 대한 큰 관심과 촉진의 뜻으로 생각한다고 써요. 이런 것까지도 가르쳐 줘야 하나!" "그에게 꼭 오라고 해요. 지금 S시의 업무는 이 회의의 지원이 중심이 되고 있어요." "이런 일들은 후에 다시 얘기하자구. 급하지 않으니까. 나도 4인방 덕에 8년 동안 갇혀 있었다구!" "이거 시간이 없군요. 교육국으로 가시도록 해요." 한 무리가 가면 다른 한 무리가 둘러사 모두들 지시, 보고를 원하였는데, 그들은 타 서기와의 면담을 즐거운 일로 여기고 있었다. 반시간이 지나고, 한 시간이 지나서야 그 주위의 사람이 점차 적어졌다. 그는 피로한 기색으로 몸을 돌려 가려고 하였다. "라오탕!" 나는 그를 불렀다. 그는 나를 보면서도 피로가 그의 몸과 눈을 압박하고 있었는지 망연히 바라보다가 눈을 번쩍 뜨고서 말했다. "아, 아, 쉬 형, 오셨소?" 그러고는 다가와서 힘없이 내 손을 잡았다. "내 성을 잊으셨나요?" 나는 나무라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맞아, 맞아! 아, 맞아 리 형! 아니, 뤼 형이야, 뤼 사부! 나 좀 봐, 정말 늙은 모양이군." 그는 자신을 원망하며 고개를 떨구었다. 이마의 깊은 주름과 늘어난 백발이 더욱 눈에 띄었다. "안녕하십니까? 머리 어지러운 증세는 좀..." "좋아요, 좋아. 바빠서, 너무 바빠서 정말 어쩔 수 없네요..." 원문으로 들어오던 네댓 명의 사람들 중에서 회색 제복을 입고 발엔 검은 새 구두를 신은 사람이 느긋한 남방어조로 말하였다. "라오탕, 우리 산보 좀 합시다..." 나는 이들이 성위의 지도동지들임을 간파하였다. 탕씨는 응낙하고 바쁘게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좀 계시오. 다시 얘기합시다." 나는 앞으로 한 걸음 걸어갔다. 탕씨를 놓칠까 심히 두려운 듯이. "라오탕, 나 한 마디만 얘기할 게 있습니다." 나의 음성은 떨렸다. 탕씨는 머리를 되돌려 친절하고 정성껏 나를 바라보았다. "여러분, 소매부..."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는 손짓으로 한 젊은 동지를 불렀다. "이분에게 물품구입증 두 개 발급해 드리고 거처를 안내해 드려..." 그가 가 버리자 나는 정신이 멍해졌다. 나도 가 버리려고 나를 잡은 그 젊은 동지의 손을 뿌리쳤다. 성도읍으로 돌아와서 가까운 친구들에게 탕씨를 보러 갔던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다들 나를 위로해 주었다. "자네 정말 그랬군! 그분도 나이가 있으시니까. 게다가 바쁘시니까 한가하실 때 다시 한 번 뵙는 게 좋겠네." 그러나 내 아들(죽어야 할 놈)의 반응은 석 자뿐이었다. "아무렴!" 1979년 춘절에 탕씨 부부는 사람을 통해 우리에게 편지와 비닐포장한 미젠꿔푸(꿀에 절여 말린 과일)를 보내 왔다. 물론 편지봉투에는 틀림없이 '뤼 사부 귀하'라고 씌여 있었고, 편지에는 재차 우리를 S시로 놀러 오라고 초청하였으며, 지난번 회의로 바빠서 즐거이 환담할 수조차 없었던 일을 깊이 사과하는 말도 씌여 있었다. 글씨를 보니 그의 친필인 것을 알겠고, 그의 진실하고 친절하며 공평한 접대에 깊이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의 불유쾌한 방문을 회상하면서 나 자신을 원망하였다. 어찌 그렇게 조급하며 문제를 파악하는 것이 단편적이고 표면적일 수 있을까? 바쁜 것이 그분들의 결점일까? 상관의 기사에게 관심을 두는 것도 나쁜 일이 아니다. 그의 부인이 화내는 것은 그 부인 본인의 사정이다. 내가 그를 온당치 않게 보았던 것은 아이스케이크의 가격 건인데-나 자신도 하나 먹었으면서. 최근 중앙에서 공고되기를, 각급에 기율 검사위원회를 설립토록 했으니 S시의 초대소에서 아마 다신 이런 6문짜리 아이스케이크를 팔지 않겠지? 나는 생각한다. 한 사회는 '관'이 없을 수 없는 것이며, '관'을 전부 타도하면 도처가 대변과 회충으로 찰 것이다. 그러면 누가 '관'을 맡을까? 나는 짜오 모씨를 반대하고 부패한 '사령'과 '근무원'을 반대하며, 나 자신은 감당할 수도, 결코'관'을 맡을 생각도 없다. 나는 탕지우웬을 옹호한다. 그분을 이해해야 한다. 세 가지 '정강'도 그분에게 실행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 나는 '사령'처럼 '관'을 박해할 수 없으며, 샤오뿌와 선배처럼 '관'을 이용할 수도 없으며, S시의 모대표가 말하는 것처럼 '관'에 무조건 순종할 수도 없으나, 아들처럼 관을 소원시 하고 심지어 '관'을 적시할 순 없다. 피가 흘러 강을 이루고, 백골이 산을 이루면서 큰 대가를 지불했는데도 국민당의 '관'이나 4인방의 '관'은 쉽게 타도하지 못하였다. 누구든 가까이 접근을 하여 그들에게 마음속의 말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 친애하는 당은 어떻게 될 것인가? 여러가지 생각하노라니, 나의 두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이틀 후에 나는 또 S시에 가서 탕씨와 그 부인을 만나게 될 것이다. 찌우짜오로우와 불에 잘 익힌 쑹화딴을 가지고... (1979년) 왕멍의 작품 세계 왕멍의 "어느 마음의 기록"은 1957년에 작가가 그전에 발표한 "겨울비"(1955)와 "조직부에 새로 온 젊은이"(1956)등 관료의 무사주의를 비판하는 내용에 대한 명목으로 이른바 우파 분자로 분류되어 숙청되었다가, 20년이나 지나서 복권되면서 발표한 소설이다. 작가는 20년 동안 신강성을 위시하여 여러 오지로 끌려 다니면서 많은 수난과 고초를 겪었다. 그 자신이 밝혔듯이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작가는 삥신과 빠진이다. 그들은 왕멍에게 문예창작에의 열정과 소중함을 일깨워 준 것이다. 왕멍은 나름대로 창작이 예술성을 창조하려고 노력하였다. 소설형식에 있어서 주제 위주나 사상을 도식화하는 방식을 배제하고 의식의 흐름과 생활을 한데 묶어 인간의 감각과 인상을 그리려 했던 것이다. 그것도 자유스러운 환경 속에서 시도하려 한 것이다. 왕멍은 1985년 1월 북경에서 폐막된 전국 작가 워크숍에서 "집필의 자유는 문학 창달의 필수조건이다. 인간은 자유로운 환경에서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지혜를 짜내어서 개성이 넘치는 영적 작품을 창조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왕멍의 작가의식 속에서 복권이 된 후에 발표한 이 작품이야말로 과거와 현재의 여러 실상들을 한 주제를 바탕으로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소설은 "상해문학" 9월호(1979)에 발표된 후에 소위 상혼문학의 계통으로 분류되었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문화대혁명의 참상과 그에 따른 사회 계급구조의 변화, 그리고 당시의 사회상과 4인방 축출 후의 현실을 한 이발사의 눈을 통해서 예리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리우신우 작품 세계 1942년 6월 4일 사천 성도에서 출생. 어려서 집안의 영향으로 중학시절부터 문학창작을 시작. 1959년 첫 소설 "엄마에게 보내는 선물"을 발표. 1961년 북경사범전문대학을 졸업하고 13년간 북경13중학에 교사로 재직. 1975년 중편소설 "너의 눈을 크게 뜨고"를 발표. 1977년 단편 "담임선생"을 발표. 1978년 단편소설집 "모교기념"을 출간. 1980년 "리우신우 단편소설선"을 출간. 1981년 중편소설 "입체교차로"를 발표. 1982년 중편소설 "뜻대로"를 발표. 1984년 장편소설 "종고루"를 출간. 1985년 "일정긴박"을 출간. 1986년 중편소설집 "목변석계지". 산문집 "수류집"을 출간. 1987년 잡론 "사파문담"을 발표. 담임선생 리우신우 1 당신이라면 한 불량소년과 알고 지내며, 또한 매일 함께 있길 원하겠는가? 생각건대, 분명히 원치 않을 것이며, 심지어 어째서 이런 황당한 문제를 꺼내느냐고 나를 나무랄 것이다. 그러나 광명중학 당지부 사무실에서 다소 마르고 다부진 체격의 지부서기 라오차오가 중학 3학년 3반의 담임선생인 짱ㅉ스 선생을 신임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이 문제를 꺼냈을 때, 짱 선생은 결코 괴이하다거나 황당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는 단지 매우 심각하게 1분 남짓 생각하고는 곧 단호히 대답했다. "좋습니다. 그를 좀 알아보겠습니다." 사실인즉슨 이렇다. 며칠 전 공안국이 유치장에서 불량소년 쑹빠오치를 석방시켰다. 그는 한 집단범죄 사건에 연루되어 구류 당했던 것이다. 취조를 받으며 무산계급 전제정치의 강대한 위력과 정책강화 앞에서 그는 온몸에 땀이 나고 입술이 떨려 자세하고 솔직하게 털어놓았고, 아울러 주범을 검거하는 데 관건이 되는 범행 일체를 폭로하였다. 공안국은 그의 구체적 상황-사건의 내용과 경우가 비교적 가볍고, 솔직히 자백했으며, 게다가 아직 16세 미만임-을 참작하여 그를 훈방했다. 그의 부모는 더 이상 이웃 사람들 앞에서 얼굴을 들기 어렵다고 느껴서 이사를 했는데, 그곳이 마침 광명중학 근처였던 것이다. 근년에 실행된 '근거리 입학 제도'에 따라, 그의 부모는 쑹빠오치를 광명중학에 전학하도록 신청했다. 그는 중학 3학년에 다녀야 하는데 중학 3학년 3반에 마침 빈자리가 있었고, 게다가 그 반 담임선생인 짱 선생은 10여 년의 학급담임 경험이 있으며 3학년의 담임선생 가운데 유일한 당원이었기에 당지부에서는 토의를 거쳐 쑹빠오치의 전학 요구를 받아들였던 것이다. 라오차오는 직접 짱 선생을 찾아와 단도직입적으로 상황을 설명하고 그에게 물었다. "어떻소? 쑹빠오치를 맡아 주겠소?" 당신이 아는 바와 마찬가지로 짱 선생의 신중한 눈빛이 막 라오차오의 그 기대와 격려로 가득 찬 눈빛과 마주하자 그는 곧 승락했다. 2 짱 선생은 어떤 사람인가? 그가 봄날의 모래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쑹빠오치의 상황을 알고자 공안국으로 가는 바로 그때를 틈타서 우리는 그를 한번 자세히 관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짱 선생은 실로 매우 평범하다. 그는 금년 36세로, 보통의 몸매에 약간 살이 쪘다. 그의 옷은 매우 낡았으나 깔끔했고, 하나하나의 단추는 모두 단정히 채워져 있었는데, 심지어 제복 외투의 풍기 단추조차도 어김없이 채워져 있다. 그의 얼굴은 달걀 모양이고, 이마에는 매우 깊은 주름이 세 가닥 있고, 눈은 그리 큰 편은 아니지만 빛을 번뜩이며 남을 쳐다보곤 해서 거짓말을 한 학생은 그의 이 눈빛을 가장 두려워했다. 학생들을 더욱 경회케 하는 것은 짱 선생의 입이다. 사람들은 입술이 얇은 사람이 말을 잘 한다고들 하지만 짱 선생의 입술은 오히려 두꺼웠으며, 늘 바람을 쐬는 탓에 겨울과 봄이 되면 입술이 터져서 흰 껍질을 드러내곤 했다. 하지만 이 두꺼운 입술에서 나오는 말은 언제나 정열적이며 생동감 있고 유창하여, 마치 영원히 녹슬지 않는 파종기와도 같이 끊임없이 학생들의 마음에 혁명사상과 지식의 씨를 뿌렸다. 또한 마치 한 자루의 비와도 같이 쉬지 않고 학생들의 마음속 먼지를 무섭게 쓸어 버리는 것이었다. 공안국으로 가는 짱 선생의 표정은 매우 고요하고 편안한 것 같았다. 공안국 동지에게서 상황 설명을 듣고, 서류를 다 훑어보고 나서야 그의 얼굴에 비로소 강렬한 표정이 드러났다. 완전히 분개하는 것도 아니었고, 또한 혐오와 멸시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한 채 점차로 어떤 결심을 하려는 듯했으나 그의 표정에서는 우려와 심각함을 분명히 엿볼 수 있다. 짱 선생이 공안국에서 학교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오후 3시였다. 그는 매우 깔끔하게 접어 놓은 손수건을 꺼내어 이마 위의 땀을 닦으며 3학년 교무실로 들어갔다. 동료 선생들은 이미 쑹빠오치가 내일이면 그의 반에 등교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수학을 가르치는 인따레이 선생이 제일 먼저 그를 맞으며 쑹빠오치에 관한 첫번째 파란을 일으켰다. 3 인 선생과 짱 선생은 동갑으로, 같은 사범학교를 졸업했으며, 동시에 광명중학에 부임하여 줄곧 같은 학년을 가르쳤다. 그들은 한결같이 믿고 의지하는 사이로, 말다툼을 하더라도 결코 몰래 상대방을 헐뜯거나 비꼬아 욕하는 일이 없이 언제나 자신의 생각을 모두 털어놓아 조금의 응어리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인 선생은 몸집이 크고 말랐으며 이목구비가 반듯하여 영원히 동안이란 말을 면할 수 없었으나, 다행히 콧등에 도수 높은 오목렌즈가 걸려 있어 학생들 앞에서 윗사람으로서의 존엄성을 잃는 지경에까지 이르지는 않았다. 이 1977년의 봄에 인 선생의 마음속에는 한 줄기 찬란한 햇살이 비쳤다. 그의 머릿속의 교육과 자신의 학교, 가르치는 과정, 그리고 학년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는 모든 불합리한 것들이 신속히 개선되어야 하고, 또 실제로 될 수 있다고 느꼈다. 그는 이미 축출된 '4인방'이 교육계에 남긴 독소를 완전히 없애고, 이상적인 상태를 만드는데 많은 시간이 걸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 며칠 동안 그는 마음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 봄날 강물에 배를 띄우듯 순조롭길 바랐으나 여전히 약간의 복잡한 문제에 부딪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쑹빠오치가 '왕림'하리라는 소식이 그의 귀에 들어오자마자 그는 뜨거운 피가 끓어오름을 어쩌지 못했다. 짱 선생이 막 교무실로 성큼 들어서자, 인 선생은 가슴 가득한 불만을 오랜 전우에게 퍼부어 댔다. 그는 얼굴을 맞대고 짱 선생을 책망했다. "자네 어쩌자고 승낙을 했나? 지금 전학년이 처한 형세가 교육의 질에 상당히 역점을 두고 있는데, 자네가 불량소년을 끌어들여 개별지도의 수렁 속에 빠뜨리면 무슨 정력으로 교육의 질에 힘을 기울이겠는가? 자칫하면 한 덩어리의 쥐똥이 한 솥의 죽을 망치는 꼴이 된다구! 자네 말이야, 냉정히 생각하지 않고 승락을 한 모양인데 정말 이해할 수 없군." 주위의 다른 선생들 중 어떤 이는 인 선생이 견해에는 찬성했으나 그의 그런 무뚝뚝한 태도에는 반대했고, 어떤 이는 그의 견해에 찬성하진 않았으나 그가 선의로 한 말이라 여겼고, 또 어떤 이는 한동안 도리적으로 어찌 보아야 할지 몰라 단지 짱 선생이 까닭 없이 이런 무거운 짐을 진 데 대해 동정과 근심을 할 뿐이었다. 따라서 비록 모두들 짱 선생을 바라보고는 있었으나 한동안 아무런 말이 없었다. 선반 위에 놓아둔 생물과 교구인 귀 모형마저도 마치 일부러 자신을 한 자 반으로 늘이고 주의를 기울여 짱 선생이 대답하길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짱 선생은 인 선생의 의견이 편견이라고 느꼈지만, 결코 인 선생의 말이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는 잠시 동안 조용히 생각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이젠 쑹빠오치를 공안국에 되돌려 보낼 방도가 없네. 또한 그를 원래의 학교로 돌려보낼 필요도 없고, 내가 이왕에 담임을 맡기로 했으니 그가 온다면 맡아서 지도하겠네." 이는 실로 담담하고 흥미 없는 말이었다. 만일 짱 선생이 핏대를 올려 인 선생의 의견을 반박했다면, 아마도 한바탕 불꽃 튀는 논쟁이 벌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의외의 답변에 인 선생이 도리어 설복 당한 듯했다. 다른 선생들도 매우 감동하였다. 어떤 이는 고개를 떨구고 이렇게 자문했다. "만일 쑹빠오치가 우리 반에 온다면 나는 어떻게 생각할까?" 짱 선생은 곧 일을 시작해야 했다. 왜냐하면 바로 이때 그이 반 단지부 서기인 시에후이민이 그를 찾아왔기 때문이다. 4 시에후이민의 키는 보통 남학생보다 컸고, 그녀의 허리는 항상 똑바로 퍼져 있어 매우 건강해 보였다. 언젠가 그녀가 과외활동 체육시간에 울타리 밖을 지나다 한눈에 농구 코치의 눈에 들었다. 코치는 적극적으로 그녀를 들어오게 하고는 얻기 힘든 양성 대상을 발견했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 달걀 모양의 얼굴에 눈이 큰 아가씨에게 몇 차례 슛을 시켜본 뒤 의외로 실망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녀는 점프력이 모자라고 팔과 손목의 관절도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었다. 알고 보니 그녀는 본래 어떤 구기종목에도 흥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확실히 시에후이민은 여럿이 함께 영화를 보거나 각 단계의 추천가곡을 부르는 외에는 거의 어떤 과외활동도 좋아하지 않았다. 그녀의 성적은 보통이고 때로는 숙제도 다 하지 못했으나 사회활동에 들인 정력과 시간이 매우 많아서 오히려 선생님과 반 친구들의 양해를 얻을 수 있었다. 작년 여름 짱 선생이 이 반의 학급담임을 맡았을 때, 시에후이민은 이미 단지부 서기였다. 짱 선생이 담임을 맡은 지 얼마 안 되어 이 반이 농촌교육을 갈 차례가 되었다. 학교로 돌아오던 날, 대열이 마을을 2리 남짓 벗어났을 때였다. 어떤 남학생이 손에 보리 이삭을 굴리고 있는 것을 본 시에후이민이 놀랍고 화나는 것을 참지 못한 채 가서 꾸짖으며 말했다. "너는 어떻게 가난한 농민의 보리를 가져올 수 있니? 내놔! 돌려줘야 돼!" 그 남학생은 지지 않으려고 대들며 말했다. "난 이걸 가져다가 집안 식구들에게 보여 주고 그들이 이곳의 보리가 얼마나 잘 자랐는지를 알게 하려는 거야!" 결국 한바탕 논쟁이 벌어졌는데, 대다수의 학생들은 시에후이민의 편에 서지 않았다. 어떤 학생은 그녀가 '고집불통'이라고 말했고, 어떤 학생은 그녀의 행동이 너무 지나치다고 말했다. 이제 짱 선생이 태도를 밝힐 차례가 되었다. 시에후이민은 손에 그 통통한 보리 이삭을 꼭 쥐고는 입술을 약간 벌리고 기대하는 눈빛으로 짱 선생을 바라보고 있었다. 많은 학생들의 예상과는 달리 짱 선생은 보리 이삭을 돌려 주어야 한다는 시에후이민의 의견에 동의했다. 귓전에는 한바탕 큰소리의 논쟁과 감정이 엇갈려 이루는 '우우'하는 낮은 소리의 음파가 울렸다. 짱 선생은 비가 온 뒤 진흙탕이 된 큰 찻길을 뛰어 마을로 돌아가는 시에후이민의 그 독특한 뒷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문제는 보잘것없는 보리 이삭을 반드시 이렇게 처리해야 하는가, 아닌가에 있는 것이 아니다. 보라, 겨우 3개월밖에 안 된 단지부 서기가 순결하고 고상한 감정으로 '절대로 가난한 농민이 한 알의 보리라도 잃게 할 수는 없다'는 신념을 옹호하는 것을... 그녀의 몸에는 얼마나 고귀하고 빛나는 소질이 있는가!' 그러나 이 이후로 4인방이 축출되기 전까지 짙은 먹구름이 조국의 대지를 뒤덮고 있었고, 먹구름의 어두운 그림자는 자연히 광명중학 3학년 3반에까지 드리워졌다. 4인방에 의해 통제 당하는 단시위는 이미 광명중학에 연락원을 파견하여 주둔시켰는데, 듣자 하니 어떤 '전형'을 배양하려 한다고 했다. 3학년 3반에 설치할 것인지 아닌지는 이미 그들이 고려했을 것이다. 시에후이민은 자연히 늘 그들에게 불려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에후이민은 그들의 '훈육'에 대해 결코 감복할 수 없었는데, 왜냐하면 그녀는 털끝만큼도 정치적인 투기심리가 없었으며 단순하고 진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때부터 짱 선생과 시에후이민 사이에 모종의 분명히 알 수 없는 듯한 모순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언젠가 시에후이민이 와서 고발하길, 단지부가 조직생활을 할 때 다섯 명의 단원 가운데 둘은 졸고 있다고 했다. 짱 선생은 그 두 명의 단원답지 못한 단원을 꾸짖지는 않고 시에후이민에게 다음과 같이 건의했다. "왜 조직생활을 하면서 늘 신문을 읽어야 하지? 다음 번에는 등산 대회를 열면 어떻겠니? 그러면 그들이 졸지 않을 것을 보증하지!" 시에후이민은 두 눈을 둥그렇게 뜨고 거의 자신의 귀를 믿으려 하지 않았고, 한참이 지나서야 비로소 항의하며 말했다. "등산이라구요? 그것을 무슨 조직생활이라고 합니까? 우리가 읽은 것은 쑹지앙을 비판하는 글인데..." 또 언젠가 시루 속에 갇혀 있는 것처럼 덥던 날, 수업이 끝나 여자 아이들이 모두 창가로 몰려가 숨을 내쉬고 있는데 짱 선생이 시에후이민을 한쪽으로 불러서 위아래로 살피며 말했다. "너는 왜 아직도 긴 팔 셔츠를 입고 있니? 네가 앞장서서 반소매로 갈아입으렴. 여자 아이들은 치마를 입는 것이 좋아!" 시에후이민은 비록 계속 숨을 헐떡거릴 정도로 더웠으나, 도리어 얼굴이 온통 붉어지도록 놀랐고, 짱 선생이 무슨 작풍을 제창하고 있는 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반에선 단지 선전위원인 쓰홍만이 자잘한 꽃무늬의 반소매 셔츠에 주름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이는 시에후이민이 보기에 바로 '유산계급의 작풍'에 물든 표현이었던 것이다. 4인방이 축출된 뒤에, 짱 선생과 시에후이민 사이의 대립은 자연 어느 정도 해소되었으나, 결코 완전히 소멸되지는 않았다. 지금 시에후이민은 짱 선생을 찾아와 보고하고 있다. "반 학생들이 모두 쑹빠오치가 올 것을 알고 있어요. 어떤 남학생은 그가 원래 무슨 '장터의 불량배'라던가 하면서 매우 지독하다고 하고, 몇몇 여학생들은 무섭다며 내일 쑹빠오치가 정말 온다면 학교에 오지 않겠대요!" 짱 선생은 깜짝 놀라 멍하니 있었다. 그는 아직 이런 상황까지는 예측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이런 상황이 벌어지니 그는 각별히 단지부와 함께 일을 해야겠다고 느끼고, 곧 시에후이민에게 물었다. "너도 무서우냐? 어찌하면 좋겠니?" 시에후이민은 짧게 딴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뭐가 무서워요? 이것은 계급투쟁인걸요! 그가 감히 멋대로 군다면 우린 그와 투쟁해야죠!" 짱 선생의 가슴속은 달아올랐다. 진흙탕이 된 큰 찻길을 뛰어가던 시에후이민의 뒷모습이 잠시 기억의 장막 위에 떠올랐다. 그는 다정하게 시에후이민에게 말했다. "서둘러서 단지부와 반위원회의 사람들을 불러 모아라. 우리 교실에서 간부회의를 열자!" 5 4시 20분경에 간부회의는 끝났다. 다른 간부들은 모두 가고, 교실에는 오직 짱 선생과 시에후이민, 그리고 쓰홍 세 사람만이 남았다. 쓰홍은 마침 창문을 향해 앉아 있었는데, 오후의 햇볕이 그녀의 둥근 얼굴에 비쳐 두 볼을 더욱 붉게 물들였다. 그녀의 펜을 든 손은 뺨을 받치고 있고, 크게 뜬 눈언저리 속에는 반짝이는 눈동자가 천천히 구르고 있으며, 통통히 살찐 아래턱은 조금씩 위로 비틀리는데, 이것은 매번 그녀가 기막힌 방법을 생각해 내어 수학문제를 해결할 때마다 하는 버릇으로, 수학선생이 잘 알고 있고 좋아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수학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내일 아침 모두들--쑹빠오차를 포함하여--보게 될 '구호시'를 어떻게 쓸까 궁리하고 있는 중이다. 짱 선생과 시에후이민은 한쪽에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쑹빠오치를 받아들이는 문제와 관련된 선결문제들은 모두 결정됐다. 남학생 간부들은 각자 남학생들을 찾아 일을 하러 갔다. 그들은 남학생들에게 쑹빠오치가 결코 무슨 장터를 뒤흔들던 '영웅'이 아니라 단지 잘못을 저질러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며, 그에 대해 호기심이나 경외심을 갖지 말고, 또한 차별대우로 타격을 주어서도 안 되며 함께 협력하여 그를 돕자고 말할 것이다. 여학생 간부들은 각기 그 몇몇 담이 작거나 혹은 화가 나서 내일 학교에 오지 않겠다고 선포한 여학생들의 집을 찾아가 그들과 그들의 부모에게 학교는 반드시 여학생들이 쑹빠오치에게 모욕당하지 않게 할 것을 보증할 수 있으며, 쑹빠오치 같은 이러한 불량소년에 대해 소극적으로 피하면 단지 그의 악습을 조장시킬 뿐이며, 오직 단결하여 그와 투쟁하고 교육시켜야 비로소 유해함이 무해함으로 변하고, 아울러 점차 무해함이 유익함으로 변하게 된다고 분명하게 말할 것이다. 짱 선생은 쑹빠오치의 가정을 방문하여 그와 그의 가족에 대해 초보적인 이해를 하고, 아울러 일차적인 사상 공작을 하기로 했다. 쓰홍의 구호시는 내일 아침 모두에게 "우리 교실의 강령을 철저히 지켜 나라를 다스리는 발소리가 울려 퍼지게 하자."라고 강조할 것이다. 쓰홍의 구호시가 거의 완성될 즈음, 짱 선생과 시에후이민의 이야기가 끝났다. 짱 선생은 탁자 위에 늘어놓고 방금 간부들에게 보여 주었던 몇 가지 물건을 한데 모았다. 그것은 짱 선생이 파출소에서 가져온 것으로, 쑹빠오치가 사건을 저지른 뒤에 수색해낸 물품인데, 싸울 때 사용하는 자전거 체인, 해지고 번들번들한 카드, 기발한 모양의 라이터가 달린 아연 도금한 담뱃갑과, 표지가 벗겨진 한 권의 소설책이 있었다. 어린 간부들은 이렇나 물건을 보고 모두 콧날이 찡그리며 입을 비쭉거렸다. 그때, 시에후이민이 한 가지 제의를 했다. "단지부는 내일 수업이 끝난 뒤 현장 회의를 열고 적극적인 학생들도 참가시켜 이 물건들을 늘어놓고 신랄하게 한바탕 비판합시다!" 모두들 동의했고, 짱 선생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이 기회를 이용하여 부패반대교육을 한층 더 단단히 하지." 짱 선생이 이 물품들을 거둘 때, 뜻밖의 문제가 생겨 분위기가 매우 딱딱해졌다. 다른 물건은 모두 책가방에 넣었고, 단지 그 소설책만이 남았다. 짱선생은 원래 자세히 들추어 보지 않았는데, 이때 집어들고 언뜻 살펴보다가 무의식중에 "아!" 하고 외쳤다. 알고 보니 그것은 문화대혁명 이전에 중국청년출판사가 출판한 장편소설 "뉴멍"이었다. 시에후이민은 짱 선생의 태도가 약간 이상하다고 느끼고, 얼른 그 책을 뒤적거렸다. 그녀는 전에 이 책에 대해 들은 적도, 본 적도 없었다. 그녀는 책 속에 외국 남녀가 연애하는 모습을 묘사한 삽화가 있는 것을 보고 놀라 소리질렀다. "어머나! 정말 퇴폐적이야! 내일 이 퇴폐서적을 신랄하게 비판해야겠네!" 짱 선생은 눈살을 찌푸리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중학 시절을 회상했다. 그때 단지부는 반 학생들에게 이 소설을 추천했었고, 학생들은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모두들 청춘의 정열로 돌려가며 그것을 낭독했었다. 만리장성 울타리에 기대어 모두들 열렬히 '뉴멍'이란 인물의 장단점을 토론하기도 했었다. 영국 소설가 보이니취(Voynich)가 쓴 이 작품은 일찍이 당시의 짱 선생과 그의 동년배들을 크게 감동시켰으며, 그들은 소설 주인공의 형상 속에서 향상의 힘을 얻곤 했었다. '혹시 그때 이 소설의 결점에 대해 비판이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혹시 그때 소설의 정수 부분에 대해 정확하고 철저하게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그러나 어쨌든...' 짱 선생은 여기까지 생각하고는 참지 못하고 시에후이민에게 입을 열어 변명했다. "이 "뉴멍"을 퇴폐서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 거야." 시에후이민의 두 눈썹이 이마로 가파르게 치켜 올라갔다. 그녀는 두 눈을 둥그렇게 뜨고 짱 선생을 바라보며 격렬하게 물었다. "뭐라구요? 퇴폐서적이 아니라구요? 이 책이 퇴폐서적이 아니면 무엇이 퇴폐서적입니까?" 시에후이민의 마음속에는 이미 어떤 굳은 논리가 형성돼 있었다. 그것은 바로 서점에서 파는 책도, 도서관에서 빌려 주는 책도 아니며, 완전히 악서요, 퇴폐서적이라는 것이었다. 사실 그녀를 나무랄 수도 없다. 그녀가 책을 접하기 시작하던 그 당시에는 마침 4인방이 파쇼적인 문화전제주의를 가장 심하게 행하던 때였다. 사랑스럽고 또한 불쌍한 시에후이민이여, 그녀는 단순히 활자로 새로 인쇄된 모든 것들을 숭상했는데, 4인방이 여론의 도구를 억압했던 그 몇 년 동안 그녀가 경건한 태도로 배독하던 신문과 간행물은 그들의 '방문'으로 가득 차 있어, 많은 청소년을 해치는 독액을 뿜어내지 않았던가! 만일 시에후이민의 가장 친한 사람들 가운데 누군가 때맞춰 그녀에게 짱춘치아오와 이야오원위앤의 두 편의 '무산계급 전제정치 이론의 천명'이라 불리는 '중요 문장'이 크게 의심스러우며, "양효", "당효문"과 같은 장편의 글도 결코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권위 논저'가 아님을 지적해 주었더라면 그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로 그녀에게 이 점을 지적해 주는 이가 없었다. 그녀의 부모는 늘 시에후이민과 그 동생들에게 마오 주석의 말을 듣고, 성실히 방송과 신문을 보라고 당부했으며, 규율을 준수하고, 스승을 따르며, 열심히 공부하라고 타일렀다. 시에후이민은 이러한 가정교육에서 얻은 바가 적지 않아 강렬한 무산계급 감정과 노동자 후예의 기질을 갖추었다. 그러나 유산계급과 수정주의의 사악한 요괴들이 미녀로 변하는 현상의 투쟁 환경 속에서 단지 소박한 무산계급 감정은 쉽게 경신과 맹종에 빠져들게 되며, '사악한 요괴'들은 곧 힘을 다해 몇몇 사람의 경신과 맹종을 이용하여 그들의 교태를 적극적으로 부려대지 않았던가! 이리하여 시에후이민은 바로 한참 나이에 가슴 가득 훌륭한 혁명가가 되리라는 마음을 먹고, 공산주의라는 이 큰 목표를 위해 투쟁하려 생각했으나, 도리어 4인방에 의해 안목이 좁아지고 옳고 그름을 가리지 못하게 되었다. 어찌 "뉴멍", 이 책을 그녀가 독초라고 여기게 되었는지... 이 일이 생겼을 때, "청춘의 노래"는 이미 재판이 진행되고 있었으나, 시에후이민은 여전히 4인방이 축출되기 전에 형성된 습관을 지니고 있었으므로 '문예 소식' 방송을 열심히 들으며, 어떤 새로운 영화가 상연된다느니, 텔레비전에 어떤 새로운 노래가 방송되었다느니 하면서 떠들어대는 그런 친구들을 유산계급사상에 물들었다고 여겼다. 바로 며칠 전에 그녀는 쓰훙이 자습시간에 두꺼운 소설책을 읽고 있는 것을 보고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곧 빼앗아 버렸다. 그것은 1959년에 출판된 "청춘의 노래"였는데, 시에후이민은 몇 페이지 뒤적거려 보고는 스스로 가슴이 두근거리고 정신이 혼란하여 퇴폐서적이라 단정하고, 짱 선생에게 드리려고 생각했다. 쓰훙이 빙그레 웃으며 책을 확 빼앗고는 표지를 두드리며 말했다. "매우 재미있어! 너도 읽어 봐!" 결국 둘은 한바탕 입씨름을 벌였다. 마침 시에후이민은 급히 당위원회로 가서 회의를 해야 했기 때문에 장 선생에게 보고하는 것을 잊고 있었는데, 뜻밖에 오늘 짱 선생이 쓰훙보다 한술 더 떠 스스로 이 외국의 퇴폐서적을 퇴폐서적이 아니라고 부인하다니! 시에후이민의 생각으로는 외국의 퇴폐서적은 당연히 모두 중국의 퇴폐서적보다 더욱 퇴폐서적인 것이었다. 시에후이민은 짱 선생을 바라보며 예전의 많은 자질구레한 충돌을 연상했다. 그리하여 평소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했던 존경심이 순간적으로 상당히 감소되었다. 그녀는 입을 비쭉거리며, 치켜 올린 눈썹을 떨구고 고통스런 표정을 지었다. 이때 쓰훙은 구호시를 다 쓰고, 짱 선생과 시에후이민에게 낭송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뉴멍"을 퇴폐서적이라고 할 수 없다는 짱 선생의 말을 듣고서 비로소 그 해진 책이 바로 "뉴멍"이라는 것을 알고는, 얼른 시에후이민이 큰 소리로 질문하자, 쓰훙은 곧 정열적으로 시에후이민의 팔을 흔들며 말렸다. "그런 소리 마! 아버지 어머니도 이 "뉴멍"이라는 책은 읽을 만하다고 하시던데! 요즘 나는 "강철은 어떻게 제련되는 것인가"를 읽고 있는데, 거기에 폴 크츠킨은 무산계급의 영웅으로 '뉴멍'에게 특히 탄복하더라." 시에후이민의 손에서 책을 가져다 펼쳤을 때, 쓰훙의 마음속에선 강렬한 지식욕이 끓어올랐다 쓰훙은 벌써부터 "뉴멍"을 읽으려 했으나, 여태껏 구하질 못했던 것이었다. '이 책에 씌어진 것은 어느 시대의 일일까? 이야기는 어디에서 일어난 것일까? 뉴멍은 과연 어떤 사람인가? 정말 탄복할 만한 곳이 있을까? 쓰훙은 그 해진 책을 짱 선생에게 돌려 주며 질문을 했다. "이 책을 읽을 때, 어디에 주의해야 돼요? 무엇을 배워야 하죠?" 시에후이민은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입술을 깨물고 눈을 가늘게 뜨고는 불만스럽게 쓰훙을 바라보았다. 짱 선생은 그 모진 고초를 겪은 "뉴멍"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그는 본래 인내심을 가지고 시에후이민에게 어째서 그것을 퇴폐서적이라 할 수 없는지 설명해 주려 했으나, 이 책이 숭빠오치에게서 압수한 것인데다가 여주인공 충마가 등장하는 삽화마다 모두 야만스럽게 8자 수염을 그려 놓았으니... 또한 쑹빠오치 무리들이 그것을 퇴폐서적으로 알고 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생활현상은 복잡한 것이다. 이 "뉴멍"과의 만남은 실로 기기묘묘한 것이다. 시에후이민과 같이 사실상 아직 유치한 어린아이에게 있어서, 복잡한 생활현상과 훌륭한 것과 잡동사니가 공존하는 문예작품을 분석하는 데는 충분한 시간과 적당한 기회가 필요하다. 여기까지 생각이 마치자, 우리의 장 선생은 해지고 낡은 "뉴멍"을 가방에 넣고 다정하게 시에후이민에게 말했다. "이 책에 대해서는 우리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자. 자, 곧 5시가 되니 우리 얼른 쓰훙이 쓴 구호시를 듣고 나서 각자 계획에 따라 움직이도록 하자." 쓰훙이 읽는 구호시를 시에후이민은 한 구절도 머릿속에 집어넣지 않았다. 그녀는 고통스럽고 두려운 표정으로 책상 위에 비친 그 얼룩덜룩한 나무 그림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짱 선생을 존경하려 했으나, 이런 책에 대한 짱 선생의 태도는 너무도 괴이하여 마음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선생님인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6 5시가 막 지나서 짱 선생은 쑹씨네 새집에 도착했다. 작은 마당과 두개의 방안에는 물건들이 아직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채 여기저기 놓여 있어 매우 어수선해 보였다. 예를 들어, 막 꽃이 피기 시작한 선인장 화분이 매우 부적당하게도 비닐 보자기가 비뚤게 덮여져 있는 재봉틀 위에 놓여 있었다. 쑹빠오치의 어머니는 판매원인데, 이날은 마침 이사 때문에 휴가를 얻어 분주히 방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녀는 짱 선생이 온 것을 보고 안심하는 한편, 조금 부끄러워하면서 얼른 쑹빠오치를 방에서 불러내어 선생님께 인사시키고는 차를 따르게 했다. 우리도 서서히 짱 선생의 눈빛을 따라 쑹빠오치를 살펴보자, 우선 짱 선생은 따라 않아서 쑹빠오치의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며, 이 가정에 대해 한번 알아보자. 쑹빠오치의 아버지는 산림청의 모종 재배소에 다니는데, 정상반이어서 오후 6시면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항상 8시나 9시가 되어야 집에 돌아오곤 했다. "왜냐구요?' 쑹빠오치의 어머니는 계속 탄식하며 말했는데, 알고 보니 요 몇 년 사이에 그는 나쁜 버릇이 생긴 것이었다. 그는 퇴근길에 달에 제사를 드리는 재단을 지나는데, 늘 자전거를 버려둔 채 작은 수풀 속에서 몇몇 사람들과 자리를 깔고 앉아 카드 놀이로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때로는 날이 어두워져도 파하지 않고 가로등 아래로 옮겨 계속하다가 그 가운데 누군가가 일어나서 서둘러 공장의 야근반에 출근을 해야만 그들은 파했다. 분명 이러한 아버지는 이미 풍부하고 의식 있는 정신생활이 결핍되어 있을 것이니 쑹빠오치에 대한 교육 단속의 결핍도 미루어 알 수 있었다. 어머니의 상황에 이르러서는, 그녀의 한을 품은 설명 속에서 그녀가 사랑하는 외아들을 얼마나 내버려둔 채 키워 왔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결코 이 가정이 뒤떨어져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짱 선생이 주의를 기울여 살펴보니, 비록 그들은 아직 정리하고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았고, 겨우 방안을 밝고 깨끗하게 해놓은 정도에 불과했으나, 두장의 유리를 낀 마오 주석과 후와 주석의 사진틀이 단정하게 나란히 북창에 걸려 있었고, 아울러 한 장의 약간 작은 쪼우 총리의 초상이 손수 만든 은백의 매화 무늬 유리를 낀 사진틀에 끼워져 정중하게 작은 옷장의 한가운데 놓여져 있었다. 이는 이 반백을 넘긴 평범한 부부의 마음속에도 역시 수많은 인민들과 같은 감정의 기복이 솟구치고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 자신의 약점을 제외하고, 누가 그들의 정신생활의 결핍에 대해 책임질 수 있겠는가? 6시 15분 전에 짱 선생은 어머니에게 집안일을 보도록 하고는 쑹빠오치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 불량소년과의 제1차 담화를 시작했다. 이제 우리는 쑹빠오치가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 자세히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위에 단지 나일론 조끼만을 걸치고 있었는데, 드문드문 흠집이 있는 흉측한 얼굴과 그 희고 불그스레한 피부색은 그가 우리들의 이 의식에 곤란을 느끼지 않는 사회 속에서 얼마나 행복하게 생활하고 있으며, 영양이 얼마나 충분하며, 몸 속에 얼마나 넘쳐흐르는 정력이 축적되어 있는지를 충분히 말해 주고 있었다. 아! 그의 그 얼굴! 언제나 피교육자를 직시하는 것이 습관이 된 짱 선생은 그의 얼굴을 언뜻 보자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결코 이목구비가 반듯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얼굴의 피부에서, 싸우다가 찢어져 꿰맨 윗입술에서, 콧방울의 신경질적인 움직임에서, 특히 그 일목요연하게 공허와 어리석음으로 가득 찬 눈매에서 당신은 사람을 섬뜩하게 하는 그 무언가를 즉각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마치 하나의 더러운 물에 의해 형태가 변한 영혼이 적나라하게 헤드라이트 아래 서 있는 것 같았다. 30여 차례의 문답이 오고 가는 동안 짱 선생은 이미 마음속으로 쑹빠오치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그는 최소한의 정치적인 각오도 결핍되어 있고, 지식 수준은 대략 중학 1학년 정도이며, 온몸에 강력한 근육이 있기는 하나 실제로는 어떠한 정규적인 체육활동에도 능숙하지 못한 것 같았다. 짱 선생은 일부 딱지를 붙이는 데 만족하는 사람들은 쑹빠오치와 같은 이러한 불량소년에 대해 유산계급사상으로 가득 차 있다고 비판할 것이다. 그러나 더욱 깊이 질문을 해감에 따라 짱 선생은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고 느꼈다. 대충 쑹빠오치와 같은 이런 불량소년이 유산계급사상을 갖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거의 부질없는 짓이며 그가 정도를 걷도록 이끄는 데 아무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말이다. 쑹빠오치는 분명 유산계급사상을 가지고 있었으나, 도대체 어떤 유산계급사상이란 말인가? 유산계급은 자유, 평등, 박애를 표방하고, 개인투쟁과 성공에 집착하며, 허위의 인생론으로 그들이 추구하는 박탈과 억압의 범죄행위를 가린다. 그러면 쑹빠오치는? 그는 그 불량집단에 빠져든 뒤에 매순간 삼엄한 구속하에 있었으며, 게다가 여러 차례 왕초인 '귀싸대기 때리는 가지'에게 담배꽁초로 뒤통수를 지지는 꼴을 당했다. 그가 화를 냈던가? 반항했던가? 아니다. 그는 개성해방을 추구하지도 않았고, 자유, 평등의 사상과 행동을 외치지도 않았으며, 박애는 생각한 적도 없었다. 그는 한편으로는 그저 '형님들의 의협심'을 믿으며 진심으로 만족한 마음으로 왕초를 위해 한 덩어리가 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보다 어린 불량배의 귀싸대기를 때리는 것을 최대의 낙으로 삼았다. 무슨'성공이니 하는 것도 그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는데, 왜냐하면 그가 사리를 알게 된 뒤로 과학자, 기술자, 작가, 교수 등 모든 전문가들은 거의 모두 린삐아오의 무리나 4인방에 의해 '냄새 나는 놈들'이 되어 버렸고, 서열을 따지면 마치 그들 불량배의 아래에 있는 듯하였으니, 그에게 있어 어찌 부러운 것이 있겠는가? 또 어찌 분투하여 추구할 필요를 느꼈겠는가? 유산계급의 전형적인 사상의 하나는 "지식은 힘이다"인데, 미안하게도 우리는 쑹빠오치에게는 결코 이러한 관념이 없었다. 지식은 무엇에 쓰는가?...그러므로 대충 숭빠오치에게 유산계급사상이 가득차 있다는 딱지를 붙여 놓고서 그만둘 수는 없으며, 증세에 맞게 약을 주어야 하지 않는가! 유산계급이 상승 단계에 있는 그러한 사상 관점은 그의 머릿속에 결코 많지 않다. 아니, 하나도 없다. 그에게 있는 것은 도리어 봉건시대의 '형님들의 의협심'과 유산계급이 몰락 단계에 있는 향락주의와 같은 반동사상의 영향이다. 짱 선생의 쑹바오치에 대한 이러한 분석 앞에서 당신은 눈을 감거나 귀를 막거나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만일 당신이 우리 조국을 사랑하며, 우리의 사랑하는 조국의 미래를 걱정한다면, 쑹빠오치의 신상에 되비추어진 이러한 문제가 매우 유감스럽게도 결코 특별한 것이 아님을 인정해야 하지 않는가! 부디 실제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 조국의 건장한 신체의 국부적인 부스럼을 치료하겠다는 태도를 가지고 짱 선생과 함께 쑹빠오치와 같은 청소년을 어떻게 교육하고 변화시켜야 하는지 고려해 보도록 하자. 짱 선생은 가방에서 그 충분히 유린당한 소설책을 꺼내고는 쑹빠오치에게 물었다. "이 책의 이름이 무엇인지 아직 기억하고 있니?" 쑹빠오치는 이제 막 전제정치 기관원으로부터 엄중한 심문과 강제성을 띤 훈계를 겪었고, 그것은 일개 담임선생의 질문 및 교육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견디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가장 공손한 태도로 대답했다. "기억해요. 이것은 뉴왕입니다." 그는 멍 자를 알지 못하여, 그가 글자를 익히는 습관대로 단지 절반만을 읽었다. "뉴왕이 아니고 뉴멍이야. 이 두 글자가 무슨 뜻인지 아니?" 쑹빠오치는 아무 표정도 없이 두 눈을 멍하니 뜨고 맞은편 유리창에 부딪히는 한 마리 나비를 바라보며, 매우 솔직하게 대답했다. "몰라요." "그럼 이 책을 도대체 다 읽긴 한 거니?" "뒤적거려 봤는데 잘 모르겠어요." "모른다면, 그것으로 무얼 하려 했지? 이 책은 어디에서 가져온 거니?" "우리가 훔친 거예요." "어디서 훔쳤지? 훔쳐서 무얼 하려고 했어?" "원래 우리 학교 폐서고에서 훔친 것입니다. 듣자니 그곳의 책은 모두 빌려 주지도 않고 보여 주지도 않으며, 전부 못쓰는 책이라고 해서 자물쇠를 비틀어 열고 두 묶음을 훔쳤어요. 우리가 훔친 것은 팔기 위한 것이었어요." "왜 이 책은 팔지 않았지?" "다른 책들도 모두 팔지 않았어요. 도서관의 도장이 찍힌 책을 우리가 만일 판다면 남들이 곧 우릴 붙잡을 거라고 해서." "너희들이 훔친 책 가운데 또 무슨 책이 있었지? 책 제목을 생각나는 대로 말할 수 있겠니?" "네!" 쑹빠오치는 자신이 결코 우둔하거나 어리석지 않다는 것을 나타낼 수 있었으므로 매우 기뻤다. 그는 눈을 깜빡거리고는 처음으로 정신을 집중하며 기억해내려 애썼다. "'홍암'이 있었고, 또... '평화와 전쟁', 아니면... '전쟁과 평화'. 맞아요! 또 매우 이상한 책이 있었는데, 뭐라더라... '신가거의 사'라던가..." 이 말에 짱 선생은 깜짝 놀랐다. 그는 펜을 꺼내서 손바닥에 '신가헌사선'이란 몇 자를 적고는 쑹빠오치에게 내밀어 보여 주었다. 그러자 쑹빠오치는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요! 틀림없어요." 짱 선생은 가슴이 한차례 아파옴을 느꼈다. 그것은 몇몇 불량소년이 책을 훔쳤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었다. 문제는 무슨 근거로 이런 가치 있는 책들을 모두 창고 속에 가두어 두고 금서라고 선포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 책들은 독초가 아닐 뿐만 아니라, 몇몇 책들은 보배와도 같은 것이었다. 쑹빠오치와 그 불량배들이 타락한 원인은 일반인의 논리와 추리 밖에서 생겨난 것이지, 결코 독소가 있는 책을 읽고 중독 되어 입은 피해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멋대로 굴러다닐 수 있고 '제 몫을 제공'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어떤 책도 읽지 않아 무지의 깊은 수렁에 빠지지 않았는가! 짱 선생은 "뉴멍"을 뒤적거리며, 쑹빠오치를 나무랐다. "이 삽화의 여인에게 모두 수염을 그려서 대체 무엇을 할 셈이었지?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쑹빠오치는 눈꺼풀을 떨구고, 잘못을 인정하며 말했다. "우리는 한 사람이 한 권씩 가지고, 그림을 펼쳐서 여자가 나오면 수염을 그려서 제일 많이 그린 사람이 이기는 시합을 했습니다." 짱 선생은 분개하여 쑹빠오치를 주시하며,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쑹빠오치는 눈꺼풀을 치켜 올려 짱 선생을 흘끗 보고는 필시 자신의 태도가 아직 솔직하지 못하기 때문인가 하여 얼른 보충하여 말했다.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이 퇴폐서적을 보지 말았어야 했는데... 우리는 누가 먼저 여자친구를 사귀느냐로 점을 칩니다. 우리는...아니, 저는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그는 공안국에서 심문을 당하던 정경을 떠올렸다. 또 그가 나오던 날, 마중 나왔던 어머니의 고통과 한으로 얼룩진 붉은 눈동자를 생각했다. "이 퇴폐서적을 보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 말은 마치 북채가 북 위에 떨어지듯 짱 선생의 가슴을 '둥'하고 울렸다. 이상하군. 시에후이민과 같이 품행이 단정하고 착한 아이와 쑹빠오치와 같이 품행과 성질이 좋지 못한 몹쓸 녀석과는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가! 그러나 "뉴멍"을 퇴폐서적이라고 생각하는 점에 있어서는 서로 일치하는 것이다. 더욱이 그들은 모두 이 책을 읽어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자연히' 그런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것은 얼마나 사람을 놀라게 하는 일종의 사회현상인가! 누가 조성한 것인가? 누군가? 당연히 4인방이 아니던가! 4인방에 대한 가슴에 맺히고 뼈에 사무치는 원한이 화산처럼 짱 선생의 가슴속에 타올랐다. 지금까지 인류 문명사에 있어, 4인방과 같이 이토록 가장 혁명적인 논리와 구호로 가장 반동적인 우민정책을 사용한 예를 얼마나 찾을 수 있겠는가? 쑹빠오치는 고개를 떨구고 침대에 앉아 통통한 두 팔로 침대 가를 짚고는 무료한 듯 두 눈을 굴려대고 있었다. 짱 선생은 모든 인류문명사상의 유익한 지식과 아름다운 예술의 결정품을 받아들이길 거절한 쑹빠오치를 바라보면서, 가슴속에서 불꽃이 불쑥불쑥 위로 치밀어 오르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어떤 무형의 힘이 그의 목구멍을 때리는 것을 느끼면서, 그는 거의 소리를 지를 뻔했다. '4인방에 의해 해를 입은 아이를 좀 구해 주시오!' 7 봄날은 해가 짧다. 멀리 전신국 건물에서 7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은은히 바람을 타고 올려 왔을 때, 땅거미는 이미 광명중학 부근의 길거리와 골목을 덮고 있었다. 짱 선생은 자전거를 끌고 주야로 개방하는 작은 무료 공원 안으로 돌아 들어갔다. 그는 한적한 곳의 긴 의자를 찾아 자전거를 기대 놓고, 의자에 앉아 담배를 한 대 붙여 물었다. 그러고는 눈썹을 움직거리며 가슴속에서 용솟음치는 감정의 기복을 이지의 수문에 집중시켜 합리의 도랑을 따라 흘려 보냄으로써 강력한 행동으로 변화시켜 담임선생으로서의 직책을 수행할 수 있도록 했다. 의자 위의 버들가지에까지 불어온 저녁 바람은 느릅나무 열매를 빙빙 날게 해서 그의 몸 위에 떨구었고, 보이지 않는 곳에 피어 있는 라일락꽃 향기를 휘날려 가슴에 스며들게 했다. 짱 선생과 쑹빠오치 본인, 그리고 그 가정과의 초보적인 접촉은 결국 마음속에 있는 사랑의 현과 미움의 현을 극렬히 울리게 하여, 짱 선생으로 하여금 자신을 억제할 수 없는 지경으로까지 몰고 가게 했다. 그는 당장 학생들을 소집하여 이 긴의자 앞에서 반회의를 열지 못함을 한탄했다. 지금 그의 머릿속은 많은 심각하고 감동적인 생각과 전지하고 엄숙한 신념, 그리고 마음에서 우러나온 중대한 부탁, 건의, 비평, 인도와 호소로 가득 차 있으므로, 바로 이때에 가장 분방한 감성과 가장 설득력 있는 방법으로, 그리고 저절로 튀어나오는 풍부하고 기발하며 아이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많은 예증과 비유를 이용하여 통쾌하고 충분하게 나타낼 수 있을 텐데... 그는 이전의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조국을 사랑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는 조국의 미래를 생각했다. 이 세기가 끝나고 다음 세기가 시작될 때, 처음 규모를 갖춘 '쓰후와'가 갈피를 못 잡을 상황을 생각하자, 그는 곧 조국을 모독하고 희롱하는 자와 족구의 미래를 말살하고 질식시키는 자는 어느 누구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강렬한 감정이 생겨났다. 그는 자신이 직책-선생, 담임선생-을 생각했다. 그가 배양한 것은 단지 학생들이요, 꽃봉오리들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분명히 조국의 미래요, 바로 중화민족으로 하여금 960만 평방킬로미터의 토지 위에서 강성하게 지속되고 발전되어 세계 민족의 수풀 속에 우뚝 솟아 있게 할 미래가 아닌가! 그는 이전의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심각하게 국가와 민족에게 재앙을 가져온 4인방이라는 독충에 대해 원한을 품었다. 단지 4인방이 국민경제에 끼친 유형의 피해만을 볼 것이 아니라, 수많은 영혼들에게 묻혀 놓은 무형의 더러움도 보아야 한다. 단지 4인방이 배양한 '머리에는 긴 뿔, 온몸에는 긴 가시'라는 짱티에썽 식의 추물들만을 주의할 것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쑹빠오치 식의 '기형아'가 이미 생겨났는지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심지어 시에후이민과 같이 본질이 순수한 아이의 몸에까지도 4인방은 중화민족의 현재만을 짓밟은 것이 아니라 미래까지도 해치지 않았는가! 추물들에 대한 증오는 인민들에 대한 사랑을 더욱 깊게 했고, 인민들에 대한 사랑은 추물들에 대한 증오를 더욱 깊게 했다. 사랑과 원한이 함께 엇갈릴 때, 사람들은 진리를 위한 투쟁의 무궁한 용기가 생겨나고,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고 승리를 탈취하는 무궁한 힘이 생겨난다. 짱 선생은 갑자기 일어서서 시계를 보았다. 7시 15분이었다. 그는 저녁밥을 생각했다. 시장기를 느낀 것이 아니고, 자신이 집에 저녁을 먹으러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는 자신이 저녁을 먹어야 한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직접 몇몇 학생들의 집으로 찾아가 쑹빠오치가 3학년 3반에 오는 것에 대한 그들의 반응을 알아보려고 마음먹었다. 지금 학생들은 집에서 식사를 하고 있을 것이며, 식사를 하는데 가정방문을 하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뒷짐지고 작은 공원 안을 거닐면서 결심했다. '7시 30분경에 이곳에서 떠나리라.' 라일락 향기가 더욱 짙어졌다. 짙은 향기는 사람들로 하여금 가장 만족스러웠던 일을 연상하게 한다. 짱 선생은 4인방이 이미 제거되어 쓰레기통에 들어갔음을 생각했고, 후와 주석이 우두머리로 있는 당중앙이 반년이라는 짧은 기간 내에 참신한 국면을 맞게 될 것을 생각했으며 친애하는 조국에 오늘날 믿을 만한 보증이 있고, 미래 또한 더욱 더 희망에 가득 차 있음을 생각했다. 그는 쑹빠오치가 결코 썩어서 조각할 수 없는 부패된 나무가 아니며, 시에후이민의 어리석음과 자신에 대한 오해와 반감의 문제에 있어서도 그녀의 몸에 숨겨져 있는 우수한 소질과 사회주의 적극성을 검토해 볼 때 전혀 녹기 어려운 빙설은 아니라고 느끼게 되었다. 8 짱 선생이 자전거를 밀며 공원을 나설 때, 마침 달그락거리는 플라스틱 가방을 들고 공원문 앞을 지나가는 인 선생을 만났다. 인 선생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이보게, 자네 공원을 거니는 고상한 취미를 아직도 가지고 있나?" 짱 선생은 웃기만 할 뿐 아무 말이 없었다. 그는 결코 인 선생에게 어디에서 오는 길이며 어디로 가는지를 묻지 않았다. 그는 인 선생이 한달 남짓 매일 오후 4시 이후에 학교에서 몇몇 수학이 뒤진 학생들을 모아 보충수업을 하고 있으며, 그들의 집으로 가서 개별지도까지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짱 선생은 인 선생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데, 특히 그는 4인방이 교육행정을 통제하던 시기에 교육부 대해, 학교에 대해, 학생에 대해, 학부형에 대해, 가슴 속 가득 불만을 품었다. 만일 외부 사람이 그의 이러한 격분한 감정이 가득 표현된 말을 듣는다면, 그를 해야 할 일조차 내팽개치는 사람이라 여길 것이다. 그러나 그는 언제고 무슨 타격이나 장애, 곤란과 좌절을 만난다 할지라도, 고생스러운 교육활동을 내팽개친 적이 없었다. 바로 4인방에 의해 학생들 가운데 무정부주의 사조의 선동이 극에 달하여 교실 안이 항상 끓는 죽과도 같이 소란스러울 때, 그는 비록 교무실에서 교육을 집어치우자고 말할 정도로 불만을 털어놓을지라도 수업 시작종이 울리면 곧 교실로 달려가 여전히 온힘을 다해 분필로 칠판을 두드리고, 타이르고, 소리지르고, 설득하고, 화내며 그가 방정식과 다면체에 관해 설명하는 것을 학생들이 듣도록 했다. 짱 선생은 그가 개별지도를 끝내고 골목 밖의 정거장으로 달려가 차를 타고 집으로 가려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는 서둘러 일을 끝냈으나, 불만은 일촉즉발의 상태였다. 아니나다를까, 짱 선생이 입을 열기도 전에 그는 짱 선생의 자전거 안장을 두드리고는 길게 탄식하며 말했다. "4인방이 우리들에게 어떤 상태로 만들어 놓은 학생들을 되맡겼나? 자네도 생각해 보게. 내가 방금 가르친 두 명의 학생은 중학 3학년인데, 그들을 위해 여지껏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직각 삼각형의 정리를 가르쳐야 했다네. 하기야 자네는 나보다 더 '복'이 있지. '신문맹' 쑹빠오치에 대해 얘기해 보자구! 정말이지 난 자네를 이해할 수 없어. 처리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였는데도 자네는 오늘 오후 내내 오로지 한 불량소년을 거두기 위해 그토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다니...그것이 그토록 가치 있는 일이었는가? 쑹빠오치를 내버려두게! 공안국이 받아 주지 않으면 그를 원래의 학교로 보내라구! 원래의 학교에서 싫다고 하면, 그냥 집에서 빈둥거리도록 놔두든지!" 짱 선생은 진지하게 말했다. "나는 오늘 오후를 보내면서, 중요한 것은 쑹빠오치를 반드시 받아들여야 하느냐 마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네. 확실해. 마땅히 이러한 학생들을 위한 전문적인 학교를 열던가, 혹은 그와 같은 학생들의 지도를 위해 별도의 반을 편성해야 할 거야. 그렇지 않으면 지식 수준에 따라, 아예 그를 1학년으로 내려보내 처음부터 배우도록 하든가. 그러나 이 모두가 중요한 것이 아니야. 오늘 오후에 쑹빠오치를 받아들이는 것을 둘러싸고 일어난 일련의 일들은 마치 하나의 안경에 비길 수 있어서, 4인방이 우리 다음 세대에 끼친 피해를 비춰내고 있네. 나는 4인방의 유독과 영향이 이토록 심각한지는 몰랐네. 나는 매우 많은 것을 생각했지. 따레이, 지금은 1977년의 봄이네. 이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한 봄인가. 우리들에게 더욱 적극적인 투쟁을 향해 나아가고, 더욱 힘든 노동을 하라고 요구하는 봄날이며, 또한 우리들에게 더욱 엄격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봄이 아닌가! 앞을 쳐다보게나, 따레이!" 인 선생은 짱 선생의 이 간단한 말로는 그가 느낀 모든 것을 느낄 수가 없었으나, 그의 눈이 짱 선생의 각오와 깊은 생각, 믿음, 역량이 가득한 감동적인 눈빛과 마주쳤을 때, 불만과 초조한 마음은 단번에 사라졌다. 1977년 봄의 저녁 바람이 지극히 평범한 두 사람의 교사에게 불어 왔다. 그 잠시 동안에 그들은 각기 자신의 심회를 휘날리게 내버려두고 아무런 이야기도 나누지 않은 채 조용히 있었다. 짱 선생은 며칠 전에 인 선생의 사고방식이 지나치게 단순하고 조급하다고 판단하고, 언젠가 한번 그와 차분히 얘기해 보리라 생각했었다. 감정이 절대로 정책을 대신할 수 없으며, 혁명사업이 발전되기를 조급하게 바라는 마음을 단순히 초조와 불안으로 표현해서는 안 되며, 한결같은 마음으로 투쟁해 나가는 동시에 반드시 사물의 발전에 대해서 서로 호응하는 적극적인 기다림의 태도를 지녀야 하고, 쑹빠오치와 같은 불량소년에 대한 미움 역시 조국의 어린 싹이 4인방의 피해를 받은 데 대한 동정과 사랑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인 선생과 철학을 이야기하고, 생활과 일을 말하며, "홍암"과 "뉴멍"에 대해서까지도 이야기를 나누고자 했는데... 멀리서 7시 30분이 됐음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오자, 짱 선생은 흩날리던 생각들을 거두고 인 선생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우리 따로 시간을 내서 차근차근 이야기하세. 난 몇몇 학생들의 집에 좀 가 봐야겠어." "빨리 쓰홍에게로 가 보게." 인 선생은 문득 생각이 난 듯 짱 선생에게 말했다. "내가 방금 그애들이 있는 곳에서 오는 길인데, 우리 반 학생의 말을 들으니 시에후이민과 쓰홍이 한바탕 싸웠다더군. 자네가 빨리 가서 좀 알아보게나!" 짱 선생은 깜짝 놀라서, 곧 자전거를 타고 쓰홍의 집 쪽을 향해 갔다. 9 쓰홍의 아버지는 구의 간부이며, 어머니는 국민학교 선생님이다. 두 사람은 모두 격렬한 '쓰칭'운동 중에 입당했고, 입당을 전후하여 특히 무산계급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 매우 좋은 습관을 들였는데, 바로 마르크스, 레닌, 마오 주석의 저작을 계속하여 공부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책꽂이에는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의 네 권의 전집과 마오쩌둥의 네 권의 선집, 그리고 마르크스, 레닌, 마오 주석이 지은 두께가 일정치 않은 단행본들이 꽂혀 있었다. 책 둘레에는 옅은 회색의 손자국이 있었고 책 속에는 책장을 접은 흔적과 밑줄, 그리고 어떤 깊은 뜻을 나타내는 부호가 가득했다. 집안의 진지한 독서 분위기에 깊은 감화를 받은 쓰홍 자신도 어린 독서광이 되었다. 쓰홍은 행운아였다. '저녁을 먹은 뒤'는 쓰홍네 집안의 전용어가 되었는데, 그것은 큰 네모진 탁자에 둘러앉아 서로서로 마르크스, 레닌, 마오 주석의 저작을 공부할 것을 독려하며, 서로 염려하는 분위기에서 각자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다. 아버지는 때때로 그가 즐겨 읽는 역사책을 읽었고, 어머니는 학생들의 작문을 수정했으며, 쓰홍은 입술을 오므리고 온 정신을 기울여 물리 숙제를 하거나 부등식을 풀곤 했다. 때로는 온 집안 식구가 함께 세상일을 분석하거나 문예작품을 이야기했는데, 그때마다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그리고 부모와 딸 사이에 유쾌하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4인방이 파쇼적인 문화전제주의를 가장 악랄하게 추진하던 상황에서도 이 집의 책꽂이에는 여전히 "폭풍취우", "홍암", "마오뚠 문집", "가일라르선집", "외제니 그랑데", "당시 300수" 따위의 서적들이 꽂혀 있었다. 짱 선생은 일찍이 쓰홍이 읽었던 "공산당선언", "마르크스주의의 3개 내원과 3개 조직부분"과 "마오 선집" 네 권, 그리고 그녀의 두 권의 노트를 학급 회의와 학부형 회의 시간에 보여 준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가 더욱 기쁘게 느낀 것은 이 아이가 늘 마르크스 레닌주의 와 마오쩌둥 사상의 원칙에 근거하여 어떤 문제들을 사고, 분석할 줄 안다는 사실이었다. 이러한 사고와 분석은 늘 비교적 정확했고, 아울러 그녀의 적극적인 행동 가운데서도 드러났다. 우리의 이 이야기가 일어난 그날, 짱 선생은 쓰홍네 집이 외짝문을 두드려 열고 나서, 문 맞은편의 방안에 사람들이 가득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쓰홍은 방안의 식탁 옆에 앉아서 책 한 권을 소리내어 읽고 있는 중이었다. 방안에 있던 다른 다섯 명의 여자아이들도 모두 짱 선생 반의 학생들이었다. 그 학생들은 서로 다른 자리에 흩어져 앉아서, 어떤 아이는 오른손으로 뺨을 받친 채 두 눈을 크게 뜨고 쓰홍을 바라보고 있었고, 어떤 아이는 두 팔을 구부려 의자의 등에 올려 놓고 머리를 기대었으며, 어떤 아이는 고개를 떨구고 땋은 머리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는데, 확실히 그들은 모두 열심히 듣고 있는 중이었다. 오후에 시에후이민이 보고한 바에 따르면, 이들이 바로 내일 쑹빠오치가 온다면 학교에 나오지 않겠다던 그 몇몇 학생들이었다. 쓰홍은 책을 읽는 데 열중해 있었기 때문에 짱 선생이 온 것을 깨닫지 못했고, 두세 명의 여자 아이들이 고개를 들어 짱 선생을 쳐다보았으나, 부끄러운 듯한 태도로 살짝 웃기만 할 뿐, 소리를 내어 인사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결코 예의에 어긋난 행동이 아니고, 이미 깊이 빨려들어간 그 감동적인 이야기를 중단할 수 없었던 것이다. 쓰홍의 어머니는 짱 선생을 옆 방으로 안내하여 앉게 하고는 나직이 말했다. "아이들은 지금 루쉰이 번역한 "시계"를 읽고 있어요." "시계"는 소련 작가 반트라예프가 10월 혁명이 끝난 지 얼마 안 되어서 쓴 아동문학 작품이다. 그것은 한 불량아가 소비에트 요양원에서 변화되는 과정을 묘사한 것이다. 루쉰은 그해에 크나큰 정열로 그것을 번역했다. 짱 선생은 비록 여러 해 동안 이 책을 보지 못했으나, 쓰홍의 어머니가 말을 꺼내자 등장인물의 형상과 단편적인 내용들이 문득 짱 선생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짱 선생은 짧은 몇 분 동안에 이미 쓰홍의 집 안에서 일어난 이러한 국면의 경위나 상태를 예측할 수 있었다. 쓰홍의 어머니가 그에게 말했다. "쓰홍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곧 쑹빠오치의 일을 저에게 말했어요. 저녁을 먹을 때 그애는 줄곧 눈을 깜빡거리더니, 설거지를 하고 있던 나에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어머니, 만일 내가 시에후이민과 약속하여, 쑹빠오치의 일로 발끈 화를 낸 반 친구들을 모두 불러다가 "시계"를 읽으면 어떨까요?' 그래서 저는 흔쾌히 찬성했지요. 그리고 그애에게 말했어요. '당의 영도가 있고, 사회주의 제도가 있으며, 노선이 맞으니, 선생님과 학생들이 집체적인 작용을 발휘한다면 불량소년도 변화될 수 있을 거야!' 나중에 그애는 반 친구들을 찾으러 갔어요. 그런데 웬일인지 시에후이민만은 오지 않더군요." 쓰홍의 어머니와 이야기하고 있는데, 쓰홍이 한 단락을 다 읽고 나서 짱 선생이 온 것을 알고는, 책을 들고 방안으로 뛰어와 기뻐하며 종알거렸다. "짱 선생님, 마침 잘 오셨어요. 얼른 우리에게 이야기 좀 해주세요!" 짱 선생은 쓰홍에게 이끌려 문간방으로 갔다. 그러자 소녀들이 모두 일어나 "짱 선생님!"하고 외치며, 그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여러 가지 문제를 앞다투어 물었다. "짱 선생님, 이 책이 정말 독초인가요?" "짱 선생님, 이 책 속의 불량소년이 어째서 사람을 화나게 하기도 하고, 동정하게도 하지요?" "짱 선생님, 시에후이민은 우리가 독초를 읽는다고 하는데, 이 책을 독초라고 할 수 있습니까?" "짱 선생님, 쑹빠오치를 보셨어요? 이 책에 나오는 불량소년과 비교해 볼 때 그가 더 좋은가요. 나쁜가요?" 짱 선생은 대답은 하지 않고, 도리어 그들에게 반문했다. "시에후이민은 왜 오지 않았지? 쓰홍이 그 아이와 싸웠다면서? 너희들이 힘을 합쳐 그 아이를 끌고 왔어야지!" 소녀들이 법석을 떨며 입을 모아 대답하기 시작했는데, 한꺼번에 떠들어대는 바람에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러자 쓰홍이 모두에게 조용히 하라고 이르고는 대표로 말했다. "끌어도 오지 않았어요! 그애는 신문에서 "시계"가 좋은 책이라고 발표하지 않은 이상..." 사실, 쓰훙이 막 시에후이민을 찾아갔을 때, 시에후이민은 쓰훙이 이렇게 일을 적극적으로 하는 것을 보고 매우 기뻐했다. 그러나 한데 모여서 외국소설을 읽자는 말을 듣자마자 그녀의 마음속에는 반감이 생겼다. 쓰훙은 시에후이민에게 이 책은 매우 훌륭하며, 같이 모여서 읽으면 그 몇몇 반 친구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설명했다. 시에후이민은 쓰훙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즉시 반문했다. "신문에서 추천한 적이 있니?" 이 질문은 쓰훙을 멍하게 만들었다. 쓰훙은 한참 후에야 비로소 대답할 수 있었다. "추천한 적은 없어." "추천한 적이 없는 책을 읽다니, 중독될까 두렵지도 않니? 지금 반부패를 외치고 있는데, 우리 간부가 앞장서서 부패될 수는 없어!" 시에후이민은 놀란 표정으로 이 활동에 참가하길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쓰훙에게 잘못을 저지르지 말라고 경고했는데, 이것이 쓰훙을 화나게 하여 한바탕 다투었던 것이다. 쓰훙은 돌아올 때 여전히 시에후이민의 손을 잡고는 그 책을 읽고 나서 얘기하자고 권했는데, 그녀는 쓰훙의 손을 뿌리쳤다. 쓰훙이 간 뒤에, 시에후이민은 후닥닥 집을 나섰다. 저녁 바람이 시에후이민의 달아오른 뺨에 불어왔고, 그녀는 매우 고통스러워하며 윗니로 아랫입술을 깨물어 매우 깊은 자국을 냈다. 쓰훙의 집에서는 계속하여 이러한 장면이 벌어졌다. 쓰훙과 그 몇몇 소녀들은 탁자 옆에 앉아 있는 짱 선생을 둘러싸고 아무런 구속도 없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시계"에서 소련의 변화까지 이야기했고, "시계" 속의 불량아에서 쑹빠오치까지 이야기 했으며, 불량소년을 어떻게 개조시켜야 하는가에서 시작하여 대다수의 불량소년은 잘 교육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했고, 끝내는 내일 이후 반에서 점차 벌어질 새로운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다. 짱 선생이 웃으며 그 몇몇 소녀들에게 물었다. "너희들 아직도 수업을 포기할 생각이니?" 그들은 서로 눈길을 주고받고는, 곧 짱 선생을 바라보며 거의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아니에요!" 짱 선생이 쓰훙의 집을 떠날 때, 하늘에 가득한 별들이 밝은 남색의 밤하늘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는 자전거를 타고 시에후이민의 집으로 향했다. 실은 그가 쓰훙을 비롯한 몇몇 소녀들과 논의하는 동안, 그의 마음속에서는 시에후이민에 대한 생각이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 그는 시에후이민을 매우 좋아했는데, 마치 의사가 불행히도 전염병을 앓고 있는 건강한 아이를 좋아하는 것과 같았다. 그는 시에후이민의 정직한 성격과 진실한 감정에 의거하여 온힘을 기울여 치료하기만 한다면, 그 따위 4인망이 그녀의 몸에 뿌려 놓은 병균쯤은 반드시 뿌리뽑을 수 있다고 믿었다. 시에후이민의 집에 가까워질수록 짱 선생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 지난 날, 시에후이민을 이러한 상태로 만든 데 대해 그는 스스로 책임을 지기 어렵다고 느꼈다. 그가 처음에 학급을 맡았을 때, 그는 시에후이민에게 몇 가지를 지적했었다. 자질구레한 어록 따위만을 읽지 말고, 지도자의 사상을 해석한 글들을 함부로 믿지 말며, 원저를 성실히 학습하고,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러나 시에후이민은 결코 깨닫지 못했다. 오늘 짱 선생은 새로운 느낌으로 자신을 책망했다. 비록 작년 10월 이전의 상황이 먹구름으로 온통 혼란스러웠을지라도, 자신이 더욱 용감하고 굳건하게 반동적인 것들과 투쟁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더욱 힘을 기울여 시에후이민과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해서 그녀의 눈을 밝게 하고 참과 거짓을 분별하도록 이끌 수는 없었을까? 시에후이민의 집 앞에 거의 다다랐을 때, 하나의 계획이 짱 선생의 마음속에 윤곽을 드러냈다. '오늘 "뉴멍"을 시에후이민에게 주고 읽도록 설득해 보자. 그리고 이 책에 대하여 독후감을 발표하도록 한 뒤에, 그애 스스로 이 책을 분석하고 마르크스 레닌주의와 마오쩌둥 사상의 입장, 관점, 방법을 운용하여 일련의 상호 관련이 있는 문제들의 해답을 구하도록 이끌어 보자. 생활은 마땅히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 역사는 마땅히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인류사회가 만들어낸 모든 운명의 성과는 마땅히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과거 문화유산 속의 잡동사니를 어떻게 비판하고, 그 정수를 어떻게 흡수해야 하는가? 어떻게 전면적으로, 변증적으로 문제를 보아야 하는가? 향초와 독초를 어떻게 구별하고, 진위의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어떻게 구별해야 하는가? 자신은 마땅히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조국의 '쓰후와'를 위해, 공산주의의 찬란한 미래를 위해 어떻게 투쟁해야 하는가?' 짱 선생의 마음속에는 격앙된 감정의 파문이 일었다. 그가 자전거를 멈추고 시에후이민의 집 문 앞에 세워 뒀을 때, 마음속의 계획은 더욱 명확해졌다. '이 일에 착수하여 시에후이민이 4인방의 독소를 없애도록 도와 줄 분만 아니라, 4인방을 비판하는 것을 요점으로 삼아 독서운동을 전개하고 지도해서 쑹빠오치를 포함한 모든 반 학생들을 교육시켜야겠다.' 그는 내일 날이 밝으면 곧 단지부로 가서 물어 보기로 결정했다. '지지를 얻을 수 있을까?' 그의 눈앞에 라오차오가 지부회의에서 눈을 부라리며 발언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은 진실로 마오 주석의 사상체계에 따라 교육을 해야 할 때입니다.!" '그가 바로 '진실로'라고 하면서 한바탕 적극적으로 외쳐 댔으니, 반드시 조직적인 지지를 얻을 수 있겠지!' 그의 마음속에는 또 몇몇 선생들이 제기할 의문이 스쳐 지나갔으므로, 그는 교무회의에서 발언권을 얻어 자신이 생각을 천명하리라 다짐했다. '지금 우리는 학과교육을 강화하여 학생들이 수업에서 과학과 문화지식을 잘 이해하도록 하고, 지, 덕, 체의 전면적인 발전을 하도록 해야 하며, 그들이 공업과 농업을 배워서 이론과 실제를 결합시키도록 이끌어야 할 뿐만 아니라, 또한 그들이 더욱 광활한 세계에 주목하여 그들로 하여금 인류 전체의 문명 성과에 대해 흥미를 느끼도록 하고, 더욱 높은 분석능력을 갖추게 함으로써 나아가 사회주의 혁명과 사회주의 건설의 더욱 강력한 계승자가 되도록 이끌어야 하리라.' 이때, 봄바람은 코에 스미는 꽃향기를 보내 왔고, 하늘에 가득한 별들은 모두 깜빡거리며 웃고 있어서 마치 짱 선생의 그 아름다운 생각에 긍정과 격려를 보내고 있는 듯했다. (1977년) 리우신우의 작품 세계 "담임선생"은 리우신우가 1977년 "인민문학" 1월호에 발표한 작품이다. 10년 간의 문화혁명이 끝나고 문학계에 평화가 깃들이기 시작한 시기이다. 이 작품을 보면 광명 중학교 3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짱ㅉ스 선생이 전학 온 불량학생 쑹빠오치를 교육시켜 정화해 나가는 과정에서 이른바 4인방이 청소년에게 준 나쁜 영향을 감지하게 된다. 이 가운데에서 바탕이 순수한 단지부의 서기인 시에후이민에게 또 우민정책을 쓴다는 낙인이 붙는다. 짱 선생은 어떻든 간에 못된 병균을 없애고 4인방에 의해 죽어가는 아이들을 구해야겠다고 결심한다. 이 소설에서는 위의 두 인물, 쑹빠오치와 시에후이민을 통해 사회환경의 오염이 젊은 세대의 정신을 마멸시킨다고 경고를 함과 동시에, 과감하게 검은 부분을 폭로하여 미래의 밝은 세상에 대한 동경심을 불러일으킨다. 차오차오 작가 세계 차오차오는 1945년 대만의 대중 출신으로, 대만의 향토문학을 통하여 성장한 순수한 대만의 작가이다. 1975년 "대만 문단"으로 등단하였으나, 등단 이후 몇 편의 단편소설 이외에 이렇다 할 작품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의 작품에는 짙은 망향과 가족에 대한 귀소의식이 넘치고 있는데, 작가는 그곳에서 삶의 뿌리를 찾고 있는 것이다. 무한한 자애의 상징인 모성애가 흘러 넘치는 작품을 읽을 수 있다는 면에서 여기에 소개된 "어머니와 아들"은 작가의 대표작인 동시에 거의 절필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어머니와 아들 차오차오 아찐은 간질병 환자인데, 그의 정신은 자기의 생각과 행동을 전혀 조절할 수 없어, 이미 정상적인 생활습관과 능력을 상실하고 있었다. 집주인 아빠쌍의 유일한 아들인 아찐이 대를 이어 줄 수 있을지는 아빠쌍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터였다. 우리가 방을 보러 온 그날, 아빠쌍이 우리를 데리고 안길과 부엌을 지나 뒤뜰의 화초를 보여 주고 있을 때, 아내가 포도 받침대 아래에서 이상한 사람을 보고 몸을 움츠리며 나의 옷깃을 당겼다. 머리를 돌려 보니, 아찐이 두 손을 움켜잡은 채 상체를 꼿꼿이 세우고 낮은 등나무 의자에 멍하니 앉아서 마치 절구통처럼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부동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머리를 무의식적이고도 간헐적으로 흔드는 것이 마치 묵례를 하는 것 같았는데, 오른쪽으로 천천히 움직이다가 약 60도 위치에 이르러서 목을 세차게 돌리면 얼굴이 원위치로 돌아오곤 했다. 그는 이 단조로운 동작을 쉬지 않고 반복하고 있었다. 그 동작은 단조롭긴 했으나 심상치 않은 이치를 지니고 있는 듯했는데, 이는 마치 달이나 지구, 그리고 여러 행성들이 회전하는 것 같았다. 그 동력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 힘이 얼마나 센 것인지, 그리고 그 회전이 언제 멈출 것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아찐의 머리와 목의 요동은 일종의 신비롭게 잡아당기는 힘이 있었다. 그 작용은 마치 한 가닥의 무형의 끈을 잡아 움직이는데 한쪽 끝은 아찐의 귓바퀴에 매고 다른 한쪽 끝은 엄청나게 힘이 세고 큰 손바닥에 잡아 매어서, 먼저 천천히 끌어서 일정한 각도까지 잡아당겼을 때 손을 늦추면 근육탄력의 견제를 받아 원래의 위치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듯이 보였다. 아빠쌍이 대나무 빨랫대에 걸린 옷을 거두어 방으로 돌아갈 때에 아내가 내게 일깨우듯 말했다. "여기선 못 살겠어요. 방세가 아무리 싸도 못 있겠어요." "소진엔 학교가 매우 많고 공장과 기관이 날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집주인들이 모두 여관처럼 침대 수에 따라 집세의 기준을 삼고 있소. 우리도 벌써 네 집이나 보았지만 모두 한발 늦어서 세를 빼앗겼지 않소? 이 방을 계약하지 않으면 내일 아마 다른 사람이 올지도 모르오." "제가 차라리 남부에서 몇 달 더 살면 살았지, 정신병자와는 함께 살고 싶지 않아요."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이오. 그 사람과 가까이하지 않으면 되지 않소." "안 돼요. 당신은 매일 대부분의 시간을 사무실에서 보내지만, 저는 하루 종일 그 사람과 한 지붕 아래서 지내야 되잖아요. 생각만 해도 무서워요." 아내의 생각도 옳았다. 아내는 정신병자와 함께 거주하면 자신도 또한 정신이 이상해질지 모른다며 한바탕 우스갯소리를 했다. 그래서 아내는 자기의 의견을 고집하며 다른 방을 구하자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내의 배가 점점 불러 오고 있고, 또 내가 독신자 숙소에 머물며 식사 시간마다 식당에서 줄을 서야 하는 고충을 상상하고는, 내 주관대로 아빠쌍의 집 빈방을 세내기로 결정했다. 응접실과 부엌, 화장실은 모두 공용이고, 우리 방과 아빠쌍의 방 사이의 벽은 겨우 얇은 판자로 칸막이가 되어 있었다. 이런 생활권으로 이사한다는 것은 사실 매우 이상하고도 놀랄 만한 일이라 하겠다. 물론 아내의 놀라움은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이사한 첫날 밤, 나와 아내는 아빠쌍의 중얼거리는 소리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 소리는 칩거하는 벌레 소리 같아 말뜻을 알 수는 없었으나 그럴수록 신경은 더욱 응집되어 판자로 된 벽 저쪽의 숨소리까지도 마음이 쓰였다. 아빠쌍의 중얼거림이 그치자 이번엔 아찐이 울먹였다. "엄마, 미안해, 아..." "미안해! 엄마!" "..." 반복되는 그 한 마디가 훌쩍이는 울음과 함께 섞여 나왔다. 이 단조로운 어구는 아찐의 단순하고도 기계적으로 머리를 흔드는 동작과는 또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비록 그 어구가 단순하다 해도 의식주변으로부터 불러일으키는 아득한 기억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 품은 뜻이 어떠하건 간에 아찐의 그 같은 말에는 무거운 짐이 지워져 있었다. 하루 종일 이삿짐을 옮기느라 피곤했지만, 아빠쌍 모자의 그 기이한 대화를 들은 후부터는 피로를 풀기는커녕 극도로 흥분되어 도저히 진정할 수가 없었다. 오로지 내일부터는 화해로운 날이 지속되어 이 새로운 생활환경에 익숙해지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아찐은 신체 결함이 너무 많아서 청년이 지녀야 할 활력과 사유하는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겉으로 보아서는 건실한 청년이지만 생활방식은 유아기에 정체되어 있어서, 식사며 옷 입는 것도 어머니가 도와 줘야 하고 잠자리에 들고 나는 일, 나들이하는 일 등 그 어느 하나도 아빠쌍이 없으면 안 되었다. 심지어 대소변 보는 일과 목욕도 어머니의 절대적인 도움을 필요로 했다. 아찐을 혼신의 힘으로 부양하는 아빠쌍의 모습은 험난하고 길을 걸어갈 때 비춰 주는 한 줄기 모성의 자애로운 빛과 같이 고난을 이기고 굳게 살아가는 산 표본이었다. 아빠쌍에게는 원우란 있을 수 없었다. 우리가 이 작은 천지에 들어온 후, 염려하던 의외의 어떤 공포스럽거나 곤란한 일도 일체 없었으며, 이로 인하여 아찐에 대한 경계도 가라앉았다. 이 약하고 불행한 만신창이의 병태생명에 대해 오히려 무한한 동정과 연민이 일어났다. 어느 날, 아빠쌍이 포도나무 받침대 아래에서 아찐에게 밥을 먹이고 있을 때, 아내가 뒤뜰로 나오며 전기요금 수금원이 왔다고 일러 주었다. "아빠쌍! 전기요금 수금원이 왔어요. 빨리 가 보세요!" "조금만 기다리라고 해요. 내 곧 갈 테니." 아내는 아빠쌍에게서 밥공기와 수저를 받아 들고 성급하게 말했다. "빨리 가셔서 지불하세요. 제가 먹이겠어요." "잠깐 기다렸다가 먹여도 상관없어요." "괜찮아요!" 아내는 마침내 아빠쌍 대신 아찐에게 익숙하고 끈기 있게 한 수저 한 수저씩 밥을 먹였다. 나는 매우 흥미 있게 생각했다. 아내의 배가 불룩하여 조금 있으면 어린 생명이 태어날 테니 미리 갓난애에게 먹이는 일을 경험해 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찐은 아내가 먹여 주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이며 한 수저의 밥을 받아 씹으면서 연상 머리는 기계적으로 오른쪽을 향해 요동하고 있었다. 밥을 위로 넘긴 다음, 입을 벌려 잠시 동작을 정지한 채 아내에게 밥을 넣어 달라고 하고는 다시 저작과 요동을 계속했다. 이런 동작은 마치 그의 생명력의 돌출한 표현 같았으니, 그것을 포기한다면 그 생명에는 더할 수 없는 적막과 비애가 깃들일지도 모른다. 아내가 부엌으로 밥을 더 가지러 간 새에 나는 호기심으로 가득 차 그에게 물었다. "아찐! 너 매끼니마다 밥 몇 공기씩 먹니?" "헤헤!" "너, 배부르니?" "헤헤!" "국 좀 마시겠니?" "헤헤!" "..." 나는 몇 마디 물었지만 그의 대답은 단지 그 간단한 두 자 "헤헤!"일뿐이어서, 이것으로는 가부와 시비를 분별할 수 없었으며 그 마음속을 헤아릴 수도 없었다. 그것은 아찐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총 답안이요, 다른 사람에 대한 유일한 언어 표현이었다. 그가 머리를 계속해서 흔들고 있는 동안 아내는 부엌에서 흰밥 한 공기를 담고 그 위에 짠 반찬을 덮어 들고 나왔다. 나는 다른 질문을 했다. "아찐! 너, 학교 다녔니?" "헤헤!" "..." 나는 답답해서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빠쌍이 전기요금을 지불하고 안길로 총총히 걸어 들어왔다. 그 크고 빠른 걸음새로 해서 그녀의 넓은 바지와 드리워진 머리는 몸의 진동에 따라 떨고 있었다. 아빠쌍은 얼굴에 감격 어린 웃음을 지으며 아내의 손에서 공기와 수저를 건네 받았다. "정말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새댁!" 아빠쌍은 조심스럽게 밥과 반찬을 받쳐들고 아찐의 입동작에 온 정신을 모았고 아찐은 그 두껍고 넓은 두 입술을 벌려 밥을 받아먹었는데, 그 모습은 마치 어미 제비가 새끼 제비를 먹여 키우는 모습과 같았다. 그 노르스름한 작은 주둥이를 열어 짹짹거리면, 생명을 보호해 주는 먹이를 알맞게 먹여 작은 생명이 굶주리지도 과하지도 않게 위장을 적당히 채워 주는 것과 비슷하였다. 아찐이 정신은 정상이 아니지만 식사량은 극히 정상이어서, 한 끼에 공기밥 세 그릇을 아빠쌍이 끈기 있게 먹였다. 그때마다 그녀의 눈동자는 모성의 자애로운 빛으로 충만해 있었다. 아빠쌍은 아찐에게 두 그릇째 공기밥을 다 먹이고는 혼자말로 원망하듯 말하였다. "빚은 그해 그달에 갚아 주면 되잖아..." "아찐의 식사가 매우 정상이니 차차 좋아질 겁니다..." "이젠 어쩔 수 없어요. 운수가 나쁜 걸요. 차오 선생님! 이미 3년이나 되었답니다." "아찐을 의사에게 보여 봤나요?" 아내도 조심스럽게 물었다. "양의사, 한의사에게 모두 보였지요. 그러나 효험을 보지 못했습니다." "..." 부엌으로 밥을 가지러 가는 아빠쌍의 뒷모습은 무거운 짐을 진 어머니의 고난을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었다. 지난 날 그녀가 아찐에게 바친 희생은 너무도 컸다. 이후에도 또한 그러하리라... 그녀의 신고는 예식장에서 방금 나온 부모 없는 우리 신혼 부부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아빠쌍과 서로 다정하게 지냈다. 아내는 가끔 큰 배를 불룩거리며 포도나무 받침대 아래 앉아 아찐에게 밥을 먹이면서 어머니로서의 정을 체험할 수 있었다. 나는 오른손으로 아찐의 허리를 껴안고 그의 왼팔을 나의 등허리에 대고서, 마치 부상병을 구호하는 듯한 동작으로 그를 안아 끌고서 집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가 황혼이 지면 방으로 데리고 들어오곤 했다. 처음엔 이를 본 아빠쌍이 한없이 감격해 했다. "감사합니다! 차오 선생님! 둘이서 병사 형제가 되니 참 좋군요!" 점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완연히 한집안 식구처럼 이것저것 가리지 않게 되었다. 아빠쌍은 방세를 내지 말라고 하였지만, 우리는 하루도 날짜를 어기지 않고 달마다 방세를 지불했다. 300원이 큰 액수는 아니지만, 아빠쌍에게 있어서는 확실히 많은 쓸모가 있으리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다리는 다리로 돌아가고 길은 길로 돌아가듯이, 인정은 인정이고 방세는 방세인 만큼, 비록 아빠쌍이 매월 방세 받기를 마다하기는 했지만 결국은 돈을 지갑에 받아 넣곤 했다. 어떻든 우리는 이런 예의 있는 고집을 지키고 싶었다. 화합하고 친절한 분위기가 이렇게 혈연 관계도 없는 가정에 넘쳐흐르고 있었으니, 만일 아찐이 없었다든가 또는 아찐이 정상적인 청년이었더라면 이 같은 분위기는 아마도 크게 덜해졌을 것이다. 그가 아니었더라면 일반 집주인과 세낸 사람끼리 흔히 있을 수 있는 오해와 마찰을 면하기 어려웠을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상상할 수 있는 사건이 마침내 발생했다. 어젯밤에 나는 숙직당번이어서 귀가하지 않고 아침에 출근하는 길로 사무실 책상에서 훈도계획을 짜고 있었는데, 아내로부터 급히 집으로 돌아오라는 전화가 걸려 왔다. 아내는 아찐이 일을 저질렀다는 두어 마디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나의 가슴속에 소용돌이치는 조급과 혼란, 그리고 분노는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나는 곧장 공문서를 거두고 숙직 책임을 다음 숙직 당번에게 인계하고는 서둘러서 집으로 향하였다. 나는 나름대로 상상을 했다. 틀림없이 아찐의 정신병이 발작하여 아내에게 무례한 행위를 했을 것이다. 은혜를 원수로 갚아도 유분수지, 보살펴 주고 사랑으로 대해 준 사람에게 어떻게 그런 금수 같은 행위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실로 이해할 수 없는 기막힌 일이다. 택시를 교구로 몰면서, 서문정의 요란한 인파와 화강교 위에 기지런히 선 가로등이 모두 우주선을 타고 달나라로 가듯 실감나지 않았다. 차창 밖의 경치가 나의 의식 속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머릿속에는 오직 아찐과 아내의 생각으로 가득했다. 나의 피는 택시보다 더 빨리 달리고 있었고, 나의 생각은 마냥 상상의 날개를 펴고 있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서 나에게 모욕을 준 적에게 어떻게 대할까? 또 모욕을 당한 사랑하는 아내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까? 택시에는 내려 요금을 지불하고 총총걸음으로 단숨에 대문 앞까지 와서 문을 밀쳐 열면서, 나는 두 주먹을 쥐고 아찐의 머리를 내리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가 정신병이 있어 대뇌로 그의 각종 신경을 조절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나, 이 순간엔 나도 모르게 이상한 충동을 느끼면서 넘쳐흐르는 감정을 이성으로 억제할 수 없었다. "부모를 죽이고 처를 빼앗은 자와는 하늘 아래 같이 살 수 없다(멸부탈처 불공대천)."는 말도 있듯이, 비록 아내를 그에게 빼앗기지는 않았다 해도 그가 과오를 저지른 이상 당당한 대장부로서 어찌 이 같은 모욕을 다하고 있을 수만 있단 말인가? 아찐이 손쓸 힘이 있건 없건, 또 비겁한 사나이건 용감한 사나이건 병든 사나이건 상관할 바 없이, 내가 승냥이처럼 한 대 쥐어박아서 그를 응징하는 것이 천하의 공도가 아닌가? 그러나 천만 뜻밖에도 응접실엔 사람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고, 소파며 테이블, 책상, 의자 이 모두가 질서 있게 정렬되어 있는 것이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나는 고개를 이러저리 돌려가며 방을 살펴보았으나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아빠쌍 방의 판자로 된 벽을 노크하여도 아무런 응답이 없었고, 부엌을 지나 뒤뜰로 나가 보아도 포도나무 받침대 아래는 냉랭할 뿐 인적은 어디 가고 뜰만 텅 비어 있었다. 더구나 길을 걸을 수 없는 아찐조차 종적을 찾을 수 없게 되니 머리끝까지 올라 있던 나의 노기는 곧 한 덩어리의 의혹으로 변하여 갔다. 도대체 사람들이 모두 어디에 갔단 말인가? 매일 세 끼 밥을 남이 먹여 줘야 하고, 대소변도 남의 힘을 빌어야 하며, 들고 나는 것도 남의 등에 의지해야 하는 아찐의 병이 흘연히 나았단 말인가? 그리고 다리도 영기를 얻었단 말인가? 아니야! 파출소로 가 봐야겠다. 옳다! 파출소로 가서 이 사정을 알리고 피해 받은 사람이나 그 상대방 쌍방간에 큰 일을 극소화해야 하겠다. 지금 곧 파출소로 가서 사실을 알려야 한다. 아내가 당한 굴욕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아내가 참을 수 있는 한도를 넘어섰으니 이 도리 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아내는 나의 체면을 생각해서 치안기관에 고소하지 않을 수 없다.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치자 나의 노기가 또 불타 올라서 즉시 파출소로 달려가 일이 도대체 어느 정도로 엄중한가를 보고자 했다. 나는 서문정을 거쳐서 역 앞에 이르러 숨을 헐떡이며 파출소에 들어섰다. 보초대 당직 순경이 보이지 않길래 안으로 밀고 들어가니, 아빠쌍이 책상에 엎드려 대성 통곡을 하고 있고, 그 곁에 아내와 순경이 서 있었다. 그러나 아찐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아내는 나의 구두 소리를 듣고 다가와 낮은 소리로 말했다. "아찐이 집을 나갔어요! 어제 저녁에 말이에요. 아빠쌍이 저토록 슬퍼하니..."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정말 사람 놀라게 만드는군! 어째서 아까 전화했을 때 분명히 말하지 않았지? 나는 당신에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잖소!" "저에게 무슨 일이 있겠어요?" 아내가 의아스럽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자 나는 아내의 귓가에 대고 나지막이 말했다. "아직도 모르겠소? 다시 생각해 봐요!" 아내는 그제야 내 말뜻을 이해한 듯 두 뺨이 주단처럼 붉어지며 응석 어린 표정을 지었다. "당신두! 어떻게 거기까지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런데 아찐은 대체 어디로 갔지? 다리도 성치 않고 행동도 불편해서 혼자서는 걸어 다닐 수 없을 텐데!" 나의 말투가 심각해지자 아내도 몹시 걱정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요! 그래서 아빠쌍도 크게 낙심하고 있어요. 지금 밖에는 큰길이며 작은 골목마다 차량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어서 잘못하다가 우주선을 몰 듯하는 과속 운전사라도 만나면 큰일이에요. 정말 생각조차 하기 싫어요." "에잇! 사실 그런 아이는 살아도 큰 죄야! 아빠쌍에게 빚만 안겨 주고 끝없는 고통만 짊어지게 할 뿐이라구! 죽는 것이 도리어 깨끗해! 귀찮지도 않고." "당신,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요? 자식을 키워 보지 않고는 부모의 은혜를 몰라요. 부모된 마음을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말 하시다가 아빠쌍이 듣는 날엔 우린 쫓겨나도 할말 없어요!" 아찐의 외출은 전혀 의외의 일이며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게다가 풀리지 않는 의문도 많았다. 그가 과연 걸어 나간 것인가? 또는 기어 나간 것인가? 가차를 탔는가? 자동차를 탔는가? 혼자 갔는가? 또는 남이 도와 준 것인가? 그가 어디서 차표 살 돈을 마련했는가? 어떻게 샀는가? 누가 그를 부축해서 차를 탔는가? ...아찐은 말로 의사 표현도 할 수 없고, 몸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며, 더구나 도와 줄 사람도 없는데, 날개도 없이 날아서 사라졌으니 실로 기이한 일이었다. 파출소 사무실 안에는 여섯 개의 테이블과 의자가 있었으며, 단순하고 엄정한 공기는 차분한 감을 주고 있었다. 순경이 정중히 다가와서 서로 인사와 명함을 교환한 후, 나는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선생님들께서 좀 도와 주셔야겠습니다. 노부인에게는 오로지 이 아들 하나뿐입니다. 비록 아들의 정신이 정상은 아니지만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한없이 넓고 큽니다. 굶주림을 참고 고통을 달게 받으면서 추호도 원망하는 말 한 마디 없으십니다. 만일 자식을 찾지 못하고 의외의 일이 생긴다면 노부인께서는 이 충격을 도저히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네네! 차오 선생! 진의 모든 거리를 누비며 샅샅이 찾았지만 아직까지는 이런 정신병 환자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공문을 작성해서 각 지서에 통지했으니 곧 무슨 연락이 있을 겁니다. 일단 소식이 들어오면 곧 그의 어머니께 통지해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나는 노부인의 집에 세 들어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부인은 외출을 잘 안 하셔서 바깥일은 잘 모르십니다. 노부인께서 우리를 친자녀처럼 대해 주시고, 우리도 그분을 존경하여 친부모처럼 모시면서 우애가 한가족 같기 때문에 그분의 일을 내 자신의 일처럼 성의껏 해 드릴 수 있습니다. 게다가 제 사무실에 전화가 있으니 연락하기도 편하구요." "네, 그렇군요! 좋습니다." 아내가 아빠쌍을 부축해서 일으키려니, 아빠쌍은 울음으로 목이 메어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눈물로 얼룩져 있는 그녀의 얼굴은 보는 이로 하여금 콧등이 시큰케 하여, 아무리 철석 같은 심정을 가진 사람도 차마 그녀의 비통한 모습을 직시할 수 없었고 실망하여 의지할 데 없는 그 통분한 애소를 차마 들을 수 없었다. 나는 아내와 함께 그녀를 위로하며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아빠쌍은 집으로 돌아온 후에 정상적인 의식을 상실하고 하루 종일 멍청하게 자다가는 깨어 울고, 울다간 지치면 잠들곤 했다. 매일 끼니때마다 아내가 꼬박꼬박 식사를 권하며 위로하여도 그녀는 식음을 전폐하고 자식을 잃은 슬픔에서 헤어날 줄 몰랐다. 이웃과 친지들이 찾아와 위로해 주었는데, 그 중에 자전거로 신발 장사를 하는 아한과 창문을 수리하러 다니는 황순싱은 특별히 아빠쌍을 위해 아찐의 행방을 찾으면 곧 데리고 오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아빠쌍의 마음이 진정될 리 없었다. 아빠쌍은 아찐에게 온 정신을 빼앗긴 듯이 실성한 몸으로 변하여 분노의 화신이 되어 있었다. 아들을 잃은 아픔이 피부를 벗기고 살을 에는 듯하니 그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오로지 몸소 그 괴로움을 겪는 모성만이 체험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아찐이 무사히 돌아오기만 하면 아빠쌍의 부서진 심령과 쓰라린 고통에 젖은 몸을 말끔히 회복될 수 있으리라. 아찐이 집을 나간 지 3일째 되는 날, 나는 사무실에서 천 순경의 전화를 받았다. 그의 말은 대갑 지소에서 한 정신병 환자를 억류하고 있는데, 그 용모와 신체가 아찐과 닮았으니 가보라는 것이었다. 나는 휴가 수속을 마치고 잠시 집에 들러 아내에게 이 사실을 전한 다음 총총히 10시 20분발 하행 특급열차를 탔다. 아빠쌍에게는 감히 사실대로 이야기할 수 없었다. 그 정신병 환자가 아찐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점과 또 아찐을 찾게 되었다는 말에 기쁨이 너무 컸다가 아닐 경우에 오는 엄청난 비통과 호곡을 염려한 때문이었다. 나는 급한 마음에 기차에서 내려 택시를 잡아타고는, 긴 날개로 훨훨 날아갈 수 없음을 원망하였다. 지소에 도착하여 순경에게 찾아온 이유를 설명하니 순경은 곧 나를 뒤쪽으로 데리고 가 확인하도록 했다. 긴 나무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은 틀림없는 아찐이었다. 아찐은 한 경건한 대법사가 부처님을 대하고 좌정하여 사물을 초연한 듯이 의연한 태도로 느릿느릿 그의 '두부운동'을 하고 있었다. 박자와 속도도 여전한 그 운동을 그는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었다. 나의 출현으로도 '큰 지혜 있는 자는 우둔해 보인다(대혜약우)'는 식의 그 연기를 방해할 수 없었다. 나는 다급히 물었다. "아찐! 너 어떻게 여기까지 왔지? 네 어머니는 널 애타게 찾고 계시단다." "헤헤!" "행동도 불편하고 차량도 복잡한데 너 정말 위험했겠구나!" "헤헤!" "이 멍청아! 온 집안 식구가 다 죽을 지경이란다." 순경도 한마디 거들었다. "헤헤!" "돈은 어디서 났니? 누가 차를 타게 도와 줬니?" "헤헤!" "..." 나는 그의 우둔한 입에서 만족한 만한 답안이 나올 리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조급한 마음을 억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묘한 자기도 취의 심리작용 때문인지 아찐의 전혀 무의미한 "헤헤!"하는 이 몇 마디 소리를 듣는 순간, 며칠 동안 파출소로 뛰어다니고 라디오를 듣고 휴가를 청하며 택시나 기차를 타고 아찐을 찾아 다니면서 세 끼 밥을 두끼로 때운 일들에서 오는 피로와 물결치던 원한의 탄식들이 한꺼번에 배설되면서 찰나적인 만족감에 젖어 들었다. 아찐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니, 이미 등불 휘황한 밤인데도 이웃과 부근 친지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응접실엔 낯익은 사람, 모르는 사람,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빽빽이 물샐틈없이 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아이들은 소파, 테이블, 책상 등에 올라가 발뒤꿈치를 들고 서로 밀치며 구경은 기이한 눈초리로 그의 바보짓을 감상하고 있었다. 아빠쌍은 더할 수 없는 기쁨에 아찐을 껴안고는 흐느끼고 있었다. 아내는 나를 사람들 틈에서 방으로 슬며시 끌어냈다. "오늘 저녁에 병원으로 가야겠어요. 오후부터 몸이 괴로우면서 진통이 와요." 아내는 테이블 위에 놓인 작은 보따리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준비는 다 했어요. 보온병, 화장지, 담요, 기저귀, 아기 옷, 세면도구 등..." "당신 대단한 전문가일세!" "아빠쌍이 일러 주지 않았으면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아들이든 딸이든 다 좋으니 정신병만은 가지고 나오지 말아 다오." "그럴 리 있겠어요?" 아내가 고통스럽게 미간을 찌푸리는 것을 보니, 생명이 맨손체조를 하는 모양이지... 세상일이란 실로 기묘하다. 아찐을 위해 분망하다가 이제 그 문제를 일단락 짓자 다른 한 생명을 위해 다시 바빠지니... 만일 순조롭게 아찐을 찾아 돌아오지 못했더라면 아내의 출산은 상상도 못할 곤욕을 치렀을 것이다. 응접실로 나가 시끄럽게 떠드는 아이들을 쫓아 보내고서야 비로소 집안 공기가 정숙해졌다. 아빠쌍은 사흘 반나절 동안 유랑한 아찐을 바라보면서 흐르는 눈물을 닦을 줄 몰랐다. "너 어디에 갔었냐? 이 에미는 기가 차 죽겠다. 죽겠단 말이야! 차오 선생님께서 힘쓰시지 않았더라면 나는 널 찾지 못했을 게다!" 아찐은 계속해서 목과 머리를 움직이면서 우리가 처음 이사온 날 밤에 들었던, 그러나 남에게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던 말을 또렷하게 되풀이했다. "엄마! 미안해!" "엄마! 미안해!" "..." (1975년 6월) 차오차오의 작품 세계 차오차오는 대만에서 널리 알려지진 않았으나, 형식과 안일로 가득 찬 현실 사회의식에 대해서 봉사와 희생의 상을 제시하여 참된 인간애의 발로를 강조하였다. "어머니와 아들"도 그 한 예인데, 가장 순수하고 숭고한 모성애에 초점을 맞추어서 깊은 감동을 자아냄으로써 20세기 후반의 메커니즘에서 순수한 인간 본성에의 회귀를 부각시키고 있다. 첫머리에서 "아찐은 간질병 환자인데, 그의 정신은 자기의 생각과 행동을 전혀 조절할 수 없어, 이미 정상적인 생활습관과 능력을 상실하고 있었다."라고 하여 불구인 아들을 둔 어머니의 처지를 제시하고 말미에 가서 "아찐은 계속해서 목과 머리를 움직이면서 우리가 처음 이사온 날 밤에 들었던, 그러나 남에게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던 말을 또렷하게 되풀이했다. '엄마! 미안해!'" 여기서 우리는 모성애의 극치는 희생과 위안으로 귀착된다는 점을 재확인할 수 있다. 이 소설이 주는 인간성 회복은 곧 가정과 혈육의 소중함과 지성의 결과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제시해 준다는 점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