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느낌을 위해 지은이:D. H. 로렌스 외 차례 낙타를 나누는 방법:이드리스 샤 고독, 그 자체를 위한 고독:윌리엄 헤슬릿 대화의 기술:미셸 드 몽테뉴 전통과 개인적인 재능:T.S. 엘리엇 살아 있는 것은 다 성스럽다:에드먼드 윌슨 모자를 쫓아서:G.K. 체스터턴 마술적 암시성에 대한 예술가의 열망:조셉 콘래드 고전이란 무엇인가?:상뜨 뵈브 행복한 사람:버트랜드 러셀 침대 속의 제왕:찰스 램 램프를 든 소년: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슬픈 생존:존 버로우 투우와 비극:어니스트 헤밍웨이 튤립:조셉 에디슨 관대한 도시:E.B. 화이트 진정한 휴머니스트:제럴드 라루 회화체 불어와 영어:디오더 프라트 이기적인 개를 닮은 주인:유진 필드 짧은 달:브래드포드 토레이 낡은 상자 속의 진실:크리스토퍼 몰리 공부에 대하여:프란시스 베이컨 '집안의 천사'를 죽이는 일:버지니아 울프 살아 있는 느낌을 위해:D.H. 로센스 망명자의 언어:아이작 바쉬비스 싱어 예수의 생애:찰스 디킨스 종교의 윤리적 헌신:콘스탄틴 콜렌더 천국에는 유머가 없다:마크 트웨인 진실한 유머는 마음을 울린다:찰스 S. 브룩스 유머를 찾아서:프랭크무어콜비 낙타를 다루는 방법 이드리스 샤:(1924년__) 페르시아의 사사니언 황제와 예언자 무하마드의 혈통을 이어받아 출생. 16권의 저서를 남겼고 그 책들은 5개 국어로 번역되었으며 전세계적으로 45판 인쇄를 기록. 여행, 문학, 유머, 철학, 역사 등에 관한 것들이 그의 주제이며, 여기에 실린 글들은 그의 사상의 일단을 보여주는 교훈적인 글들임. 하이다르의 한 제자 하이다르의 한 제자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저는 이러이러한 책을 사지 않았던 것을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지식의 근원에 도달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통과 필요 없는 경비를 절약할 수 있었습니다." 일 년 후에 하이다르는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그에게 책을 건네 주었다. "자네는 나를 12개월이나 섬겨 왔지. 자네의 그 봉사는 백 냥에 해당하네. 그 돈 대신 이 책을 주는 것일세." "책 한 권에 백 냥을 지불하지는 않으시겠죠. 그렇게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네는 이 책을 받아야만 하네. 그러니 자 받게. 여기 있네. 여기 있네. 자네가 만약 낙타가 필요 없다면 동전 한 닢의 가치밖에 없을 걸세. 단 한마디의 말도 그것이 자네에게 긴요하다면 천 냥의 가치가 있는 걸세." 퇴학 어떤 사람이 바하딘 나스반드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떤 학생을 내쫓느라고 분명히 고통스러웠겠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가능하다면 학생을 시험하고 도와주는 방법 중에서 최고의 방법은 그를 내쫓는 것입니다. 만약 그 학생이 당신에게 대들면 그는 자기를 내쫓게 한 그 경박함과 결함을 발견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그 학생이 당신을 용서한다면 그는 자기가 하는 일이 위선적인 일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기회를 가질 것입니다. 만약 그가 침착을 다시 찾는다면 그는 자기가 공부한 것에서 이득을 얻고, 특히 자기 자신을 유리하게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보크하라 이스레일의 말들 가르치는 것은 공기와 같다. 사람들은 공기 속에서 살고 있으나 그 공기가 없으면 자기들은 죽게 된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공기가 오염되었을 때, 예를 들면 연기가 올 때에만 공기를 볼 수 있다. 그는 오염된 공기를 마시며 본다. 그리고 그것이 순수한 물질이라고 상상한다. 공기가 없으면 사람은 죽는다. 그러나 그가 숨이 막히면 자기가 필요한 것은 공기의 회복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평범한 물질들이 이렇게 너무나 부주의하게 취급당하기 때문에 아무도 그것의 존재를 인식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공기는 이러한 경우의 교훈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현자의 돌 루미라는 사람이 보통의 돌 하나에다 그것을 보는 사람들이 그것을 루비하고 생각하게 할 정도의 특징들을 부여했다. 그 돌은 보석상에서 은 100,000냥에 팔렸다. 그 돌의 변화에 대해서 루미 자신은 이렇게 말했다. "현자의 돌을 사용해서 구리를 금으로 만드는 것은 정말로 훌륭한 일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놀라운 일은 순간의 부주의로 현자의 돌이 구리로 변한다는 사실이다." 라비아 엘 아다위아 어느날 하산이 라비아한테 왔다. 이때 라미아는 많은 명상가들과 함께 앉아 있었다. 하산은 입을 열었다. "나는 물 위에서 걸을 수 있네. 자 우리 둘이서 저쪽의 물 위로 가세. 거기에 앉아 영적인 토론을 하세." 라비아는 말했다. "자네가 이 엄숙한 친구들한테서 나가고 싶으면 나와 함께 공중을 날으세. 그리고 거기서 이야기하면 어떤가?" 하산은 말했다. "나는 그것을 할 수 없네. 왜냐하면 자네가 말하는 그 능력을 나는 갖고 있지 않네." 라비아는 말했다. "자네가 물에 조용히 앉을 수 있는 힘은 고기가 갖고 있는 힘이지. 내가 공중을 날 수 있는 힘은 새가 갖고 있지. 이런 능력들은 참된 진리의 일부분이 아니네. 그들은 자존심과 경쟁심의 기초는 될 수 있어도 영적인 것의 기초는 될 수 없네." 늙어진다는 것 그들은 옴드루만에게 이렇게 물었다. "늙어지는 것이 좋습니까, 젊어지는 것이 좋습니까?" 그는 말했다. "늙어진다는 것은 앞에서 보면 시간이 없고 뒤에서 보면 실수만 많이 생기는 것이다. 어느 것이 좋은지는 여러분들의 판단에 맡기겠다." 던져 버려지는 것에 대하여 낙타를 타고 있는 어떤 사람이 현자인 자라두를 지나가다가 많은 제자들이 위대한 스승이라고 믿었던 그 비천한 살마(자라두)의 모습을 보고 소릴 질렀다. "만약 가르침의 목적이 사람들을 향상시키는 것이라면 버림받은(던져 버려진)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많습니까?" 자라두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만약 가르침을 받지 않았다면 그는 던져 버려지지 않고 완전히 죽어 버렸을 것이다." 진리를 깨닫는 세 단계 산에서 멀지 않은 어떤 곳에서 한 사람이 조용히 살고 있었다. 그는 행실이 좋았고 세련되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그에게서 놀라운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매력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그는 친절하고 이해심이 많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그를 찾아 그의 충고를 들으려 했다. 그는 자기를 찾아오는 사람에게는 누구를 막론하고 충고를 해주었다. 어떤 사람은 가게를 여는 데에 대한 자문을 구했으며 어떤 사람은 서까래를 세우는 데 대해서 또 어떤 사람은 식물을 재배하고 정원을 가꾸는 일에 대해서 자문을 요청해 왔다. 어느날 진리를 찾으려고 길을 떠난 많은 사람들이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서로 이야기했다. 첫번째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우리들이 그 위험스런 급류를 무사히 건너게 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나에게 서까래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두번째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이 산도둑들한테 붙들렸을 때 나는 그들에게 정원을 가꾸는 법을 가르쳐 주어서 우리들을 석방시켰다.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어떤 사람이 나에게 꽃과 정원에 대해서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세번째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은 여행 도중 야생동물의 공포에서 벗어났다. 그것은 어떤 사람이 나에게 가르쳐 준 교훈 때문이다. 나는 그에게 내가 인생에 있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물어 본 일이 있었는데 그는 나에게 야생동물을 이기는 법을 배우라고 가르쳐 주었다." 이렇게 해서 여행자들은 모두 자기 나름의 이야기를 말했다. 여행자 각각은 인생에 있어서 진보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을 한 가지씩 다 배웠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배운 것이 자기들의 생존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거의 인식하지 못했다. 여행 도중 그들과 같이 있었던 안내자는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들이 만약 그 사람은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더라면 여러분들 중의 아무도 이곳에 올 수 없었을 것이다. 그에게 충고를 받으러 갔던 많은 사람들이 그를 비웃거나 그의 교훈을 잊어버렸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가 한 말 속에는 깊은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행자들이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자신들의 안내자가 산기슭에 살면서 자기들에게 충고를 해주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이 찾고 있던 진리가 다름 아닌 바로 그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당황했다. 그리고 그들의 대변자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당신이 우리가 지금 보는 바와 같이 진리라면 왜 처음부터 그 사실을 말해 주지 않았는가? 말해 주었더라면 이렇게 고생하면 이 먼 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그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았다. 즉 그들은 세 단계(충고를 받아들이는 단계, 여행을 통해서 그것을 응용하는 단계, 그리고 진리 그 자체를 인식하는 단계)를 거치지 않았더라면 결코 진리를 깨닫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들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 마음속에 있는 그 어떤 것이 산기슭에 있는 그 사람의 평범한 충고 속에서 진리의 어떤 울림, 다시 말하면 어떤 현실을 인식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절대적인 진리에 도달할 수 있었다. 무엇을 할 것인가? 수피(회교의 일파) 현인인 압둘라림은 가르치기를 거절했다. 그러나 그는 가끔 인생 행로에 대하여 사람들에게 충고를 해주곤 했다. 배움에 대한 능력도 없고, 신비스런 의식에 참석함으로써 비정상적이 된 어떤 사람이 그를 찾아왔다. 그는 물었다. "현인들의 가르침에서 어떻게 하면 가장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을까요?" 수피는 말했다. "자네의 능력에 해당하는 틀림없는 방법이 있네." "그것이 무엇입니까?" "자네의 귀를 틀어막고 무(먹는)에 대해서 생각하게." "강의와 운동 전에 합니까, 도중에 합니까, 후에 합니까?" "아무것도 참석하지 않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되네." 현인의 길 파타우가 라스구에게 말했다. "수피 교수들은 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연구를 합니까?" 라스구는 대답했다. "만약 어떤 학생이 단순히 암기하거나 현인과 교제를 함으로써 어떤 것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전혀 학생의 자격이 없다. 만약 어떤 선생이 학생들에게 자습만을 하라고 하고 규율이나 의식만을 주장함으로써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학생만큼 어리석은 사람이다." 현인의 길을 배울 때에는 많은 방법으로 보통 세상의 보통 일을 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차원이 낮은 어떤 것을 가르치는 데 사용하는 얼마 안되는 수단들 갖고 차원이 높은 것을 배우려고 하는 것은 아직도 학생이 되지 않은 사람의 표식이다. 비교하는 법 온갖 종류의 비교를 좋아하는 어떤 사람이 회교탁발승에게 편지를 내어 비교하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말했다. 그 탁발승은 기름과 물이 든 병 한 개와 무명실로 된 심지를 그에게 보냈다. 이 소포 속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가 들어 있었다. "친애하는 친구여, 만약 그대가 심지를 기름 속에 넣고 거기다 불을 붙이면 빛이 생길 것이다. 만약 그대가 물 속에 기름을 쏟아 넣고 그 위에다 심지를 넣으면 빛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대가 기름과 물을 한데 섞어서 그것을 흔들고 그 속에 심지를 넣으면 지글지글 소리가 날 것이다. 이렇게 간단히 비교할 수 있는데 나한테 찾아와서 실험을 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할라비 그들은 할라비에게 이렇게 물었다. "당신은 당신이 만났던 사람들의 특질들을 결정하는 데 어떤 행동을 취했습니까?" 그는 말했다. "나는 일반적으로 유순하고 겸손한 태도를 취했다. 나의 겸손한 태도에 대해 공격적인 태도를 취한 사람들을 나는 되도록 피했고, 나의 겸손 때문에 나를 존경한 사람들도 나는 피했다." 세 가지 해석 진리를 찾을 결심을 한 세 명의 탁발승이 위대한 스승의 집에 도착했다. 그들은 그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에 대한 답변으로 그는 그들을 그의 정원으로 데리고 갔다. 그는 죽은 나무 조각을 하나 들고 이 꽃에서 저 꽃으로 걸어다니며 가장 큰 꽃들을 다 쳐 없앴다. 그들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현자는 제자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물었다. "내가 행한 행동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내 질문에 올바르게 대답하는 사람들은 나에게서 배울 수 있다." 첫째 제자는 말했다. "선생님의 교훈은 이렇게 해석합니다. 자기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가르치는 데 있어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합니다." 두번째 제자는 말했다. "선생님의 교훈은 이렇게 해석합니다. 외모가 아름다운 것들은 전체적으로 볼 때 중요하지 않습니다." 세번째 제자는 말했다. "저는 선생님의 말씀을 이렇게 생각합니다. 죽은 것들은 살아 있는 것까지 해를 줄 수 있습니다." 스승은 말했다. "여러분들은 다 나의 제자가 될 수 있네. 그러나 여러분들은 부분적으로 알고 있으나 완전하지는 않네. 그러나 각자의 말은 옳네." 돈의 가치 아와드 아피피는 책을 한 권 갖고 있었는데 그는 이 책에다 자신이 20년 동안 여행하고 공부하면서 현인들과 철학자들과 이야기한 것을 기록해 두었다. 어느날 한 학자가 찾아와서 그 책을 복사해 갈 수 없느냐고 물었다. 아와드는 말했다. "네, 물론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복사해 주는 대가로 금 천 냥을 받아야겠습니다." 그 학자는 말했다. "그건 굉장히 많은 돈인데요. 베끼는데 그만한 돈을 지불할 수 없어요. 게다가 지식에다 돈을 청구하는 것은 온당한 일이 못됩니다." 아와드는 말했다. "나는 지식 자체에 대해서 돈을 청구하지 않았습니다. 그 금 천 냥은 여행을 할 수 없는 제자들의 여행비로 쓸 작정입니다. 그리고 금액이 많다고 하십니다만 나는 나의 여행에 금 5만 냥을 썼고 20년이라는 세월을 보냈어요. 제 말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외양과 평가 어떤 남자가 이만 자이누라비딘에게 가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당신을 저의 지도자와 선생님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으로부터 배울 수 있게 해주십시오." 이만은 물었다. "왜 나를 지도자이자 선생님으로 생각하시오?" 손님은 대답했다. "저는 친절하고 따스하고 외양이 좋은 그런 사람을 일생 동안 찾아왔으나 아직도 그런 사람을 찾지 못했습니다." 이만은 울며 말했다. "친구여, 인간처럼 가냘프고 많은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이 또 어디 있겠소? 내가 가지고 있다는 바로 그 명성과 행동은 이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사람들 중의 몇몇 사람들이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모든 사람이 외양만 보고 사람을 평가한다면 모든 악마도 성자로 생각될 것입니다." 포도 한 송이 옛날에 남자 세 명이 여행을 함께 떠났다. 그런데 그들은 길가에서 우연히 자그마한 동전 하나를 발견했다. 그들은 수중에 다른 돈이 없었기 때문에 그 돈을 가지고 무엇을 살 것인가에 관해 서로 논쟁을 하기 시작했다. 첫번째 사람이 입을 열었다. "나는 맛있는 것을 원합니다." 두번째 사람은 말했다. "아닙니다. 나는 단것을 몇 개 원합니다." 세번째 사람은 말했다. "나는 갈증을 풀고 싶소." 지나가던 어떤 현인이 걸음을 멈추었다. 그들은 그에게 중재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여러분들이 원하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을 할 수 있소. 나는 여러분들을 다 만족시킬 수 있소." 그는 가까운 곳에 있는 가게에 가서 그 돈을 가지고 포도 한 송이를 사서 그것을 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첫번째 사람은 말했다. "이것은 맛있는 것이군요." 두번째 사람은 말했다. "이것은 단것 몇 개군요." 세번째 사람은 말했다. "이것은 나의 갈증을 풀 수 있는 것이군요." 낙타를 나누는 방법 옛날에 수피 선생이 한 사람 있었는데 그는 자기가 죽은 후에 자기의 제자들이 올바른 선생을 찾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는 법이 정한 의무적인 유산인 낙타 17마리를 제자들에게 남기면서 다음과 같이 명령했다. "자네 셋은 다음과 같은 비율로 낙타들을 나누어 가져야 한다. 나이가 가장 많은 사람은 반을, 중간 나이의 사람은 삼분의 일을, 그리고 가장 어린 사람은 구분의 일을 가져라." 그가 죽자마자 유서가 낭독되었을 때 제자들은 스승의 그 비능률적인 분배 방침에 놀랐다. 어떤 제자는 말했다. "낙타들을 공동으로 소유하자." 그러나 다른 제자는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누어 갖자." 다른 한 제자는 말했다. "낙타를 팔아서 돈으로 나누어 갖자." 그러다가 그들은 선생의 유산에는 어떤 숨은 뜻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들은 누가 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풀 수 있는가에 대해서 탐문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부탁한 사람은 누구나 다 실패를 했다. 그러다가 그들은 선생님의 사위 되는 하즈라트 알리에게 왔다. 그는 말했다. "저는 이렇게 해결하고자 합니다. 현재 있는 낙타에다가 한 마리를 더하십시오. 그러면 18마리가 되겠는데 이 18마리 중에서 반(9마리)을 가장 나이가 많은 제자에게 주시오. 둘째로 나이가 많은 제자는 전체의 수의 삼분의 일(6마리)을 가지시오. 나머지 제자는 구분의 일(2마리)을 가지시오. 그러면 17이 될 것입니다. 한 마리 남은 것은 나에게 돌아올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렇게 해서 스승의 뜻을 알았다. 개개인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는 원칙 옛날에 영적인 업적과 세상사에 있어서의 업적 때문에 명성을 얻게 된 어느 탁발승이 있었는데 그의 명성은 날이 갈수록 커졌다. 그런데 어느날 그는 결혼하기로 작정했다. 그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가 수마일 내의 지역에서 가장 성질이 고약한 여자와 결혼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을 알고 아주 놀랐다. 그가 결혼할 후에 어떤 아라비아인이 이 성자가 그 어리석은 여자한테서 비판받고 있는 것을 알고 자신의 호기심을 누를 길이 없었다. 그는 그 탁발승에게 왜 그 여자하고 사는가를 물어 보았다. 그 탁발승은 말했다. "나의 부인의 잔소리는 나로 하여금 너무 건방지지 않게 해줍니다. 그녀가 아니라면 성자로서의 나의 위치는 흔들릴 것입니다. 게다가 그녀는 나의 행동을 자기 자신의 행동과 대조함으로써 자신의 그 무례함을 수정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현인을 모방하는 일은 정말로 해볼 만한 일이겠다.' 하고 그는 혼자서 이야기했다. 그는 스승의 설명에 너무나 감동이 되어 집에 도착하자마자 자기가 발견할 수 있는 가장 성질이 고약한 여자와 결혼했다. 그녀는 자기의 친구들, 친척들, 그리고 제자들 앞에서 자기 남편의 흉을 봤다. 그러나 그가 온순한 태도를 취하면 취할수록 그녀의 조롱과 야유는 증가했다. 몇 달도 못 가서 그녀는 미쳐 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람들을 못살게 구는 데 익숙해 있었기 때문에 어느날 그녀는 자기보다 더 성질이 고약한 여자와 말다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성질이 더 고약한 여자는 그녀를 죽이고 말았다. 홀아비가 된 그 아라비아인은 다시 방랑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드디어 옛날의 탁발승의 집에 오게 되었다. 그는 탁발승에게 자신의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탁발승은 말했다. "당신이 잘 이해하지 못했던 그 원칙을 서둘러 실천에 옮기기 전에 나에게 자문을 구했더라면 나는 그 원칙은 일반적인 원칙이 아니었다는 것과 그 원칙을 개개인에 따라 다르게 적용하는 법을 가르쳐 드렸을 것입니다." 허풍선이의 제자들 터키스탄의 세 남자가 있었는데 그들은 페르시아어를 조금할 줄 아는 어느 허풍선이의 추종자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이 허풍선이의 제자들이라고 불렀다. 그는 이들에게 세 개의 말을 가르쳐 주었다. 그들은 각자가 세 마디 말, '우리들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를 외웠다. 이 지식을 습득하자마자 그들은 모든 지식이 담겨져 있는 성소로 여행을 떠났다. 그러나 그들이 코라산에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사람이 하나 땅에 죽어 누워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이 이상한 광경을 보고 말에서 내렸다. 그들이 말에서 내리자 몇 명의 코라상인들이 다가와서 말했다. "누가 이 사람을 죽였소?" "우리들." 이라고 첫째 제자가 전에 배운 단어를 사용해서 대답했다. 그들은 체포되어 법정으로 연행되었다. 재판관은 말했다. "너희들은 이 시체 주위에 서 있었느냐?" 둘째 제자가 말했다. "않았습니다." "그건 거짓말야." 재판관은 말했다. 그리고나서 재판관은 물었다. "너희들이 그 사람을 죽일 때 기분이 어떠하더냐?" "행복하지." 라고 세번째 제자가 말했다. "이놈들은 틀림없는 괴물들이야."라고 코라상인들이 소리쳤다. 재판관은 다시 물었다. "그 범죄를 왜 저질렀느냐?" 그 세 제자들은 그들의 모든 페르시아 말을 사용해서 "우리들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라고 소리쳤다. "저들은 틀림없는 불치의 살인자들이야!" 라고 그 재판관은 교수형을 선고하면서 말했다. 고독, 그 자체를 위한 고독 윌리엄 헤슬릿(1778__1830):영국의 낭만주의 시대에 있어서의 찰스 램과 더불어 대표적인 수필가, 문학평론가. 그의 대표작으로는 "셰익스피어 각본의 작중 인물들"이 있으며, "식탁에서의 이야기", "당대의 정신"등의 수필집이 있음. 이 세상에서 가장 유쾌한 것 중의 하나는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나는 혼자 여행을 떠나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사교생활은 방안에서 하지만 집 밖에 나가면 자연이 나의 동반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혼자 있을 때에도 결코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다. "들판은 그의 서재이고 자연은 그의 책이다." 나는 걸으면서 동시에 말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시골에 있을 때에는 식물 같은 생활을 하고 싶어한다. 나는 산울타리와 검은 소들을 비판하는 것을 싫어한다. 나는 도시와 도시에 있는 모든 것을 잊기 위해서 도시를 빠져 나온다. 나는 고독을 좋아하며, 또 고독 그 자체를 위해서 고독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외딴 곳에서 고독의 향기로움을 속삭일 수 있는 친구'를 원하지도 않는다. 여행의 정신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고, 느끼고, 행사할 수 있는 자유, 그것도 완전한 자유인 것이다. 우리들이 여행을 하는 것은 주로 모든 방해물과 불편함으로부터 벗어나고 우리 자신들을 뒤에 남겨 두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빠져 나오려고 하는 데 있다. 내가 여행을 하려는 것은 중요치 않은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내가 도시에서 잠시 없어져 혼자 남아 있을 때에도 당황함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이다. 역마차나 이륜마차를 타고 친구와 함께 그 진부한 이야기를 반복하는 대신 나는 머리 위에 맑고 푸른 하늘과 발밑에는 푸른 잔디와, 나의 앞에는 구불구불한 길, 그리고 세 시간 동안 걸어서 저녁 식사를 하고 그 다음에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그런 것을 좋아한다. 나는 웃고, 달리고, 도약하고, 기뻐서 노래를 부른다. 태양빛에 그을린 인디언들이 자신들을 고향의 해안으로 실어다 줄 파도 속으로 거꾸로 뛰어드는 것과 같이 나는 나의 과거 속으로 뛰어들어 그곳에서 혼자 좋아한다. 오랫동안 잊혀졌던 것들, 예를 들어 '침몰된 난파선과 액수를 알 수 없는 보물들'과 같은 것들이 나의 열렬한 시야 속으로 갑자기 떠오른다. 그리고는 느끼고, 생각하고, 다시 나 자신이 되기 시작한다. 나의 침묵은 위트(기지)를 보여주려고 시도하다가 깨어진 그런 거북한 침묵이 아니라 혼자서도 완전한 웅변이 되는 그 혼란 되지 않은 침묵이다. 나처럼 말재주, 두운법, 댓구, 논쟁, 분석 등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제발 혼자 쉬게 내버려 두십시오." 현재 나는 다른 할 일이 있는데 이 일은 독자들에게는 한가한 일로 보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양심의 바로 그 소재'이다. 이 야생 장미가 이렇게 아름다운데 한 마디 논평이 없을 수 있을까? 이 들국화는 에메랄드 색깔의 옷을 입고 나의 마음속으로 뛰어들지 않는가? 그러나 만약 내가 나에게 매우 귀중한 이러한 상황들을 여러분에게 설명한다면 여러분들은 그저 웃고 말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순간적으로 기분이 내키면 혼자서 걷거나 말을 타거나 자기 자신의 꿈을 즐긴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이것은 좋은 예법인 것 같지는 않으며 그것은 다른 사람들을 등한시하는 결과를 가져오며 자기 일행에 끼어야겠다는 생각을 항상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전적으로 나 혼자 있든가, 아니면 전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든가 둘 중의 하나를 택한다. 나는 많은 생각들을 일단 덮어두었다가 나중에 그것을 검토하기를 좋아한다. 나는 나의 희미한 생각들이 미풍에 흔들리는 엉겅퀴의 솜털처럼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나의 생각들이 논쟁의 가시덤불 속에 엉켜 있는 것을 싫어한다. 나는 단 한 번만이라도 내 마음대로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은 혼자 있어야만 가능하다. 나는 20마일 되는 도로를 걸으면서 어떤 사람과 함께 어떤 점에 대해서 논쟁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즐거움을 얻기 위해 하지는 않는다. 만약 내가 나의 동료에게 도로를 횡단하다가 콩밭의 향기에 대해서 말한다 해도 그는 아마도 그 냄새를 맡지 못할 것이다. 만약 내가 먼 곳을 가리켜도 그는 근시안이기 때문에 안경을 꺼내야 볼 수 있을 것이다. 대기 속에는 느낌이 있고 그름의 색채 속에는 색조가 있다. 그런데 이들은 우리들의 공상을 자주 하지만 그들의 그 효과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가 없다. 이런 경우에는 공감이 생기지 않고, 그들을 추구하려는 불안스러운 갈망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도중에 불만이 생겨, 끝내는 짜증만 내게 마련이다. 여행만큼 근시안적인 상상이나 변덕을 보여주는 것은 거의 없다. 사람들은 여행의 장소를 바꿀 때 생각도 달리 먹는다. 아니, 의견이나 감정까지도 변화시킨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잊혀진 옛날 장면들을 보고 애써서 그 옛날의 모습을 상기해 보려고 하지만 그 장면을 보지 않으면 그 장면들에 대해서는 다시 잊어버리게 된다. 그러면 사람들은 한 번에 한 장소밖에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환상의 캔버스는 크기가 일정하기 때문에 그 위에다 한 벌의 물건들을 그리면 그들은 즉각적으로 모든 다른 것들을 말살시켜 버리게 된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개념들을 확대시킬 수 없고 단지 견해를 바꿀 뿐이다. 거치른 불모의 시골을 여행할 때 나는 나무가 많고 경작된 시골을 생각할 수 없다. 어 거치른 불모의 시골을 보면 세상은 다 불모인 것처럼 보인다. 시골에서 우리들은 도시에 관해서 잊어버리고 도시에서는 또 시골을 경멸한다. 포플링 플러터 경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이드 파크(공원)를 넘어서면 모든 것이 다 사막과 같다. 우리들이 보지 않는 그 모든 것은 공백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우리가 보고 있는 그 영역은 하나의 전망이 다른 전망으로 확대될 그런 것이 아니며 한 군이 다른 군과 연결되었거나 바다가 육지와 연결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마음은 눈이 일견에 받아들이는 그 공간의 개념 이상의 것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그 외의 나머지 것은 지도책에 쓰여져 있거나 산수의 계산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들 혼자서 온 누리를 측정하며 자신들의 존재의 바탕을 조금씩밖에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렇게 해서 수많은 물건들과 장소들을 기억한다. 마음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 곡들을 연주하는 기계로 된 악기와 같은 것이지만 이 곡들은 연속적으로 연주해야 한다. 하나의 개념은 또 하나의 다른 개념을 상기시켜 주지만 그것은 동시에 모든 다른 개념들을 배척한다." 대화의 기술 미셸 드 몽테뉴(1533__1592):프랑스의 사상가. 문필가. 에세라는 문학 형식을 만들어 냈으며, 그의 대표작 "수상록"을 통하여 인간 정신에 대한 회의주의적 성찰과 라틴 고전에 대한 해박한 교양을 반영. 어떤 사람들을 경고로서 비난하는 것이 우리의 정의의 관습이다. 그러나 플라톤이 말한 바와 같이 그들이 잘못했다고 해서 비난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왜냐하면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는 똑같은 과오를 범하지 않도록 경고를 받는 것이다. 나의 과오는 가끔 자연스럽고 교정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정직한 사람들은 하나의 본보기를 보여줌으로써 일반 사람들에게 이득을 주지만 나는 사람들로 하여금 나의 본보기를 피하게 함으로써 그들에게 이익을 준다. 만약 내가 나의 결함들을 노출시켜 사람들에게 알린다면 어떤 사람은 그것을(나의 결함)을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특성들은 나 스스로를 칭찬하는 데서 오는 명예보다는 나 스스로를 비난하는 데서 오는 명예에서 유래한다. 그래서 나는 나의 결함을 자주 의존하고 그것들을 자세히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자기 비난은 믿어도 자기 칭찬은 믿지 않는다. 나와 같이 다른 사람들의 본보기를 모방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결점들을 피함으로써 더 많은 것들 배우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카토가 바보들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배운다고 말한 것은 위와 같은 이야기를 염두에 둔 것이다. 잔혹에 대한 공포는 여하한 관대함보다도 나로 하여금 더 관대함을 느끼게 한다. 승마를 잘하는 사람이 나의 승마 기술을 낫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어떤 변호사나 베니스 사람이 나의 승마 기술을 낫게 해준다. 좋은 연설 스타일은 나쁜 연설 스타일만큼 나의 연설을 향상시키지 못한다. 매일 다른 사람의 어리석은 행동은 나의 경고하고 충고해 준다. 짜증나게 하는 것은 기쁘게 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들에게 영향을 주고 우리들을 각성시킨다. 우리들을 낫게 해주는 것은 동의보다는 의견의 불일치, 유사성보다는 차이점에 의해서이다. 나는 나에게 매일의 교훈을 주는 나쁜 것을 이용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불유쾌한 것을 보고 나 자신이 유쾌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 내 의견으로는 우리들의 마음에 있어서 가장 유익하고 가장 자연스러운 일은 대화이다. 나에게 있어서 대화라는 것은 생활에 있어서 그 어느 것보다도 유쾌한 일이다. 그래서 만약 나에게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나의 시력을 잃는 한이 있어도 듣는 것이나 말하는 것은 잃지 않겠다. 아테네인들과 로마인들은 그들의 아카데미에서 대화를 크게 존중했다. 오늘날까지도 이태리인들은 이러한 전통을 지니고 있다. 책을 공부하는 것은 우리들을 흥분시키지 못하는 나른하고 활력이 없는 행동이지만 대화는 우리들을 가르치고 운동을 시키는 데가 있다. 내가 만약 강력한 마음의 소유자와 말씨름을 하게 되면 그의 생각은 나의 생각에 자극을 준다. 그의 경쟁심, 허영심, 그리고 투쟁심은 나를 자극하고 나를 끌어올린다. 그래서 동의한다는 것은 대화에서는 아주 필요한 요소이다. 나는 토론을 하고 논쟁을 하기를 좋아하지만 조그만 규모의 친구들과, 개인적으로 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과시하거나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면서 자신의 기지를 자랑삼아 보이는 것은 신사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리석음은 불행의 특징이다. 그러나 그것(어리석음)을 참지 못하거나, 그것을 화내거나 걱정을 하는 것은(내가 이런 경우에 해당된다) 또 하나의 취약점이다. 그리고 나는 나의 이러한 점을 비난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나와 대화를 할 때 뚫고 들어갈 수 없는 깊은 장애물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더 자유롭고 쉽게 대화를 하고 토론을 할 수 있다. 상대방의 주장이나 믿음이 아무리 나의 것과 반대되는 입장에 있다 하더라도 나는 결코 놀라거나 화를 내지 않는다. 어떠한 생각도 나에게는 인간의 기지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며, 그렇게 경박하거나 지나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나에게 반대되는 의견들은 나를 불쾌하게 만들거나 나를 소외시키지 않는다. 그들은 나를 각성시키고 내 마음을 운동시킬 뿐이다. 우리들은 교정 받는 것을 싫어한다. 우리들은 그 교정이 학교의 수업의 형태가 아니라 대화의 형태로 제시된다면 우리들은 그 교정에 타협을 하고 그것을 환영해야 한다. 우리들은 반박의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 반박이 정당한 것인지 아닌지 생각하지 않고, 좋은 수단이든 나쁜 수단이든 가리지 않고 그 반박을 물리치려고 할지도 모른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손을 뻗는 대신에 발톱을 내보이는 것이다. 나는 나의 친구가 "자네는 바보야, 자네는 꿈을 꾸고 있네."라고 심한 말을 하는 것을 참을 수 있다. 나는 신사들의 대담한 의견 제시를 좋아한다. 우리들은 그 섬세하고 의식적인 말의 소리에 대하여 우리들의 귀를 강화하고 단단하게 만들어야 한다. 나는 강력하고 남성다운 친교와 친숙함, 다시 말하면 거칠고 정력적인 교제의 우정을 좋아한다. 어떤 사람이 나를 반대하는 말을 할 때 그는 분노가 아니라 주의력을 불러일으킨다. 그가 나를 반박하고 나의 잘못을 고쳐줄 때에 나는 그와 타협한다. 진리에 대한 원인은 우리들 둘 다에게 공통되는 원인이어야 한다. 만약 우리들의 논쟁이 내기하는 방식에 의하여 결정되고 우리들이 우리들의 손실을 기억할 수 있도록 실제로 점수를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은 좋은 일일 것이다. "당신은 20번의 경우에 있어서 무식과 고집 때문에 100크라운 손해를 봤어요." 나는 누구에 의해서 진리가 발견되든 간에 진리를 환영한다. 나는 진리가 멀리서 나에게 접근해 올 때 기꺼이 항복하고 나의 정복된 칼을 진리에게 넘겨준다. 그리고 사람들이 나의 저작품에 대하여 지나치게 건방지고 학교 선생 같은 태도로 비평하지 않는 한 나의 저작품에 대한 비평을 권장한다.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주장에 가해진 모든 반박을 미소로 환영했다는 사실은 그의 힘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그는 상황이 자기에게 유리해지면 그것을 새로운 승리의 계기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반면에 우리들의 적의 우월성에 대해서 우리들이 갖고 있는 감정과 우리들에 대한 경멸만큼 우리들로 하여금 반박에 대하여 그렇게 민감하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관찰할 수 있다. 사실상 나는 나를 매도하는 사람들과 사귀려고 한다. 당신을 찬미하고 당신에게 양보하는 사람들과 사귀는 것은 단조롭고 해로운 만족을 준다. 안티스테네스는 자기 자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을 칭찬하는 사람을 감사와 호의로 보지 말라." 나는 나의 적의 약점을 이용해서 얻은 승리에 만족했을 때보다 그의 주장의 힘에 내 자신을 양보할 때 내 자신을 극복함으로써 얻은 승리를 더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나는 게임의 규칙에 의해서 나에게 가해진 타격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나는 부정하게 가해진 타격들은 참을 수 없다. 나는 누가 이기는가에 대해서 상당히 무관심하다. 나는 논쟁이 규칙에 따라서 수행된다면 하루종일 평화스럽게 논쟁할 수 있다. 우리들의 말다툼은 다른 말의 범죄처럼 금지되어야 하고 처벌받아야 한다. 말다툼이 분노에 의해 지배당할 때 얼마나 많은 악이 발생하는가! 우리들은 처음에는 이성과 싸우다가 그 다음에는 사람들과 싸운다. 우리들은 오직 반박하기 위해서 토론하는 것을 배운다. 그래서 토론의 모든 대상자들이 논박을 하고 논박을 당할 때 결과적으로 진리는 묵살을 당하고 무효화된다. 토론의 목적은 무엇인가? 토론자들의 한 사람은 동쪽으로 가고 한 사람은 서쪽으로 간다. 그러다보면 그들은 요점을 잃게 되고 많은 부수적인 질문들 속에서 요점을 보지 못하게 된다. 한 시간 동안 토론하다 보면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추구하는지 잊어버리게 된다. 토론자는 자기 자신의 이유만을 추구하고 상대방의 이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자기의 입장이 약해졌음을 발견하고 두려운 마음이 생겨 모든 논쟁을 거부한다. 그는 처음에는 문제들을 혼동시킨다. 아니면 논쟁이 열기를 띠고 있을 때 그는 갑자기 말을 중지하고 불끈 화를 내며 자신의 무지에도 불구하고 오만한 경멸을 드러내 보인다. 토론자가 자기의 적이 자기에게 필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적에게 가르치는 것만큼 더 큰 승리는 어디서 기대할 수 있겠는가? 토론자가 논쟁의 내용에 의해서 유사한 점을 얻는다면 승리하는 것은 진리이다. 그리고 토론자가 토론을 진행하는 방법에 의해서 유리한 점을 얻는다고 하면 그는 토론에 있어서 승리하는 것이다. 전통의 개인적인 재능 T. S. 엘리엇(1888__1965):미국 태생으로 영국에 귀화한 평론가, 시인, 극작가. 그의 대표작으로는 시 "황무지", 희곡 "대성당의 살인" 등이 있으며 1948년 "4개의 4중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함. 우리들은 영어를 쓰는 데 있어서 전통의 부재를 한탄하면서 가끔 전통이라는 말을 쓰고 있으나 전통에 대해서는 말하는 경우는 드물다. 우리들은 '그 전통' 아니면 '하나의 전통'을 말할 수 없다. 우리들은 기껏해야 이러저러한 시가 '전통적'이라거나 '너무 전통적'이라고 말하면서 전통이라는 말의 형용사를 사용한다. 아마 전통이라는 단어는 비난하는 말을 할 때를 제외하고는 좀처럼 사용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전통이란 단어는 어떤 유쾌한 고고학적인 재현을 인정할 때 막연하게 사용된다. 이와 같이 확실한 고고학에 관한 유쾌한 관련이 없이 전통이라는 말을 영국인들의 귀에 기분 좋게 들리게 할 수는 없다. 우리들이 살아 있거나 죽은 작가들을 감상할 때 확실히 전통이라는 단어는 나타날 가능성이 없다. 모든 민족과 인종들은 자기 나름의 창조적인 정신뿐만 아니라 비판적인 정신이 있다. 그들은 또한 자기들의 창조적인 천재들의 결함과 한계보다는 자기 자신의 비판적인 습관의 결함과 한계를 더 잘 망각한다. 우리들은 불란서 언어에 나타난 막대한 분량의 비평문에서 불란서 국민들의 비판적인 방법과 습관을 알고 있거나 아니면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들은 불란서 국민들이 우리들(영국인)보다 더 비판적이며, 또 불란서인들은 영국인들보다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결론을 내린다.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들은 비평에 숨쉬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가피한 것이며 책을 읽고 그것에 대해 무엇인가 느낄 때 우리들의 마음속에 스쳐 가는 것을 분명히 말한다고 해서 더 나빠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우리들 자신에게 상기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 있어서 해명되는 사실들 중의 하나는 우리들은 어느 시인을 칭찬할 때 그의 작품이 다른 사람들을 닮지 않은 점을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그의 작품에서 개인적인 것, 다시 말하며 그에게서 독특한 것을 찾는 체하고 있다. 우리들은 그 시인이 그의 선임자들과 다르다는 것을 만족스럽게 부여한다. 우리들은 따로 떨어져 즐길 수 있는 어떤 것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만약 전통의 유일한 형태가 우리의 바로 앞의 세대의 성공을 맹목적으로, 그리고 소심한 마음을 갖고 따르는 데 있다면 그 '전통'은 확실히 권장되어서는 안된다. 우리들은 그러한 경향이 곧 사라져 버리는 것을 많이 보았다. 새로운 것은 반복보다 낫다. 전통이라는 것은 이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전통은 상속될 수 없다. 만약 사람들이 전통을 원한다면 그들은 노력을 많이 해서 그것을 얻어야 한다. 우선 전통은 역사적인 감각을 내포하고 있는데 이 역사적인 감각은 25세 이상 된 시인이 계속해서 시인이 되듯 그 어느 누구에게든지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그리고 역사적인 감각은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까지고 이해하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역사적인 감각은 사람들로 하여금 호머로부터 시작된 유럽의 전체 문학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감각을 갖고 글을 쓰게 한다. 역사적인 감각은 영구성과 세속성을 갖고 있는데 이것이 작가를 전통적으로 만든다. 어느 시인이나 어느 예술가도 자기의 완전한 의미를 갖고 있지 못하다. 그의 의미와 그의 감상은 죽은 시인들과 예술가에 대한 관계를 감상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그를 따로 떼어서 평가할 수 없다. 우리들은 그를 죽은 사람들과 대조해 보고 비교해 보아야 한다. 나는 이것이 단순히 역사적인 비평만이 아니라 심미적인 비평이라고 생각한다. 그가(시인이나 예술가) 다른 사람들과 순응해야 한다는 것은 일방적인 말은 아니다. 새로운 예술 작품이 창조되었을 때 발생되는 일은 그 작품에 선행된 모든 예술 작품에 동시에 발생하는 것이다. 현존하는 불후의 작품들은 자기들 사이에서 하나의 이상적인 질서를 형성하는데, 이 이상적인 질서는 현존하는 불후의 작품들 사이에 새로운 예술 작품이 도입됨으로써 수정된다. 새로운 작품이 도입되기 전에 기존 질서는 그 자체로 완전하다. 그러나 새로운 질서가 들어온 후에 기존 질서가 살아 남기 위해서는 자신은 전부 수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각 예술 작품의 관계, 균형, 그리고 가치는 다시 조정된다. 이것이 새 것과 낡은 것과의 조화이다. 이러한 질서와 개념을 인정한 사람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과거는 현재에 의해서 수정되고 현재는 과거에 의해서 수정된다는 것이 엉터리 같은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시인이나 예술가는 자기 자신은 과거의 기준에 의해서 불가피하게 평가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 것이다. 과거의 기준에 의해서 평가받는 것이지 불구가 되도록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며 또 죽은 비평가의 기준에 의해 평가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두 개의 물건이 서로 평가되고 비교되는 것이다. 시인의 과거에 대한 관계를 좀 더 지성적으로 논해 보자. 그는 과거를 통해 받아들일 수 없고, 전적으로 한두 개의 개인적인 찬사에 의거하여 자기 자신을 형성할 수 없으며, 또 자기가 좋아하는 시기에 의거하여 자기 자신을 형성할 수 없다. 시인은 주류를 매우 의식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이 주류는 가장 두드러진 명성을 통해서만 항상 흐르는 것은 아니다. 그는 또한 예술은 결코 향상되지 않으며 예술의 소재는 결코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는 유럽의 정신, 그리고 자기 나라의 정신은 자기 자신의 정신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이 정신도 변화하고 있으며 이 변화는 그 변화 과정에서 아무것도 버리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그 변화하는 과정에서 셰익스피어나 호머 같은 작가들이 낡은 것으로 일축되는 것은 아니다. 예술가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발전, 세련, 복잡화는 향상은 아니다. 아마 심리학자가 본다 해도 그것은 향상이 아니다. 그러나 현재와 과거와의 차이는, 의식하는 현재는 어느 정도 과거를 알고 있으나 과거는 자기가 자신을 알고 있는 것을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죽은 작가들은 우리들로부터 거리가 멀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그들의 업적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이 자신의 필요한 감수성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많은 것들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 우리들은 주장하고 있으나 그 지식이 시험이나 응접실과 같은 것을 위한 유용한 형태로 쓸 수 있는 것에 국한되어서는 안된다. 어떤 시인은 지식을 빨리 흡수할 것이고 또 어떤 시인은 땀을 흘려서 지식을 흡수할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대영제국의 박물관에서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을 플루타크로부터 얻었다. 내가 여기서 주장하는 것은 시인은 과거의 의식을 얻어서 그것을 발전시켜야 하며 그의 생애 동안 그 의식을 계속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시인은 현재의 자기를 가치 있는 어떤 것에다 계속 양보해야 한다. 시인의 발전은 계속적인 자기 희생이며 자기 개성을 소멸시키는 것이다. 이제 비개인화의 과정과 그것의 전통 감각에 대한 관계를 정의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이러한 비개인화 과정에서 예술이 과학의 조건에 접근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정직한 비평과 예민한 감상은 시인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시를 겨냥한 것이다. 만약 우리들이 신문 비평가들의 혼란된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우리들은 시인들의 이름을 많이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즐길 수 있는 시인이나 시를 찾는다면 그런 것은 좀처럼 찾을 수 없다. 나는 하나의 시가 다른 작가들의 시에 대해 가지는 관계의 중요성을 지적하려고 애를 썼고 지금까지 쓰여졌던 모든 시의 살아 있는 전체로서의 개념을 시사한 바 있다. 그리고 성숙한 시인의 정신이 미숙한 시인의 정신과 다른 점은 '개성'의 평가나 아니면 '할 말이 더 많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특수하거나 매우 다양한 감정이 새로운 것으로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는 더 완전한 매개체가 되는 데 있는 것이다. 만약 우리들이 가장 위대한 시의 대표적인 구절 몇 개를 서로 비교한다면 새것과 옛것이 얼마나 다양하게 결합되어 있는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들은 '숭고함'의 준 윤리적인 기준이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중요한 것은 '감정'의 위대함이나 강렬함이 아니라, 말하자면 결합이 발생하는 예술적인 과정의 강도이기 때문이다. 파울로와 프란체스카(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사람들인데 이들은 지옥의 제2편에서 단테가 만나는 연인들이다)의 일화는 분명한 감정을 사용하고 있으나 이 시의 강도는 측정되는 경험상의 강도가 주는 그런 인상과는 아주 다르다. 더구나 이 일화는 직접적으로 감정에 의존하지 않는 율리시스의 항해보다 강력하지 않다. 감정의 변화의 과정에 있어서는 다양성이 많이 있을 수 있다. 아가멤논의 살해(그의 부인 클라티메스트러에 의해 살해당했음:에스킬러스의 연극인 아가멤논의 중심 장면)아니면 오셀로의 고민은 단테의 신곡의 장면보다 더 명확히 예술적인 효과를 주고 있다. 아가멤논에 있어서 예술적인 감정은 실제 관객의 감정과 비슷하며 오셀로에 있어서 예술적인 감정은 주역 자신의 감정과 비슷하다. 예술과 사건 사이의 차이는 항상 절대적이다. 아가멤논의 살해에서의 사건과 감정의 결합은 율리시스의 항해에서의 사건과 감정의 결합과 마찬가지로 복잡할 것이다. 이 두 가지 중 어느 것이나 다 여러 요소들이 결합된 것이다. 키츠(영국의 시인)의 송시는 특별히 나이팅게일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나이팅게일이 자신의 매력적인 이름과 명성 때문에 생기게 된 여러 감정들을 포함하고 있다. 내가 여기서 공격하려고 노력하는 관점은 정신의 실질적인 통일체에 관한 형이상학적인 이론과 관계가 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시인은 발표할 개성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상과 경험이 어떤 독특하고 예기치 않은 방법으로 결합되어 있는 특별한 매개체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 중요한 인상과 경험은 시에서는 설 자라가 없을 것이며 시에서 중요한 인상과 경험은 개성에 있어서는 아주 대수롭지 않은 역할을 할 것이다. 살아 있는 것은 다 성스럽다 에드먼드 윌슨(1895__1972):미국 뉴욕 태생의 작가. 프링스턴 대학 졸업 후 여러 신문, 잡지의 편집인으로 활동하면서 시, 소설, 각본 등을 발표. "불경기의 해", "핀란드 정거장으로", "해커티 군의 비망록", "세 명의 사상가" 등의 작품이 있음. 존 스타인벡(미국의 소설가. 노벨상 수상자)은 캘리포니아 태생이며 다른 어느 작가에 못지 않게 캘리포니아 주의 일에 관여하였다. 샐리나스 밸리라는 지역에 관해서 그는 소설을 통하여 최근의 어느 소설 못지 않게 끈기 있고 줄기차게 묘사하였다. 예외가 있다면 그것은 포그너(미국의 소설가. 노벨상 수상자)가 미시시티 주를 철저히 묘사했다는 것뿐이다. 그러면 스타인벡은 그가 그렇게 잘 알고 있는 고장에서 무엇을 발견했던가? 나는 그의 순수한 기술적인 면의 기교가 그의 주제를 흐려 놓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여덟 권의 책을 내놓았는데 이 책들은 많은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토틸라 플랫(Tortilla Flat)"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거의 단순화시킨 익살맞은 전원곡 같은 소설이다. "생쥐와 인간"은 치밀하게 짜여진 작은 드라마인데 이 소설은 너무나 재치 있게 고안되었고 비정치적인 관점에서 인간성을 비판한 하나의 우화이다. "긴 계곡"은 동물들을 다루는 일련의 단편소설들인데 여기서는 시적인 상징들이 현실적인 배경 속에 나타나 있으며 또 그것들은 구체적인 세부 사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분노의 포도"는 설교와 사회적은 막간으로 가득 차 있다. 이리하여 스타인벡의 소설들을 읽어보면 항상 내용의 방향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스타인벡의 소설에는 항상 변하지 않고 어떤 중요성을 띠고 있는 토대가 있다. 스타인벡의 소설에 항상 나타나 있는 그 토대는 그가 생물학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뱀"이라는 단편소설에서 생물학 연구소는 그가 직접 알고 있으며 그가 강력하고 특별한 감정을 갖고 있는 것이다. "뱀"에 묘사된 실험실, 과학자가 흰쥐에서부터 시작하여 방울뱀에게 먹이를 주고 불가사리의 난자를 수정하는 물 위의 밀폐된 작은 건물은 그의 소설의 중요한 이미지의 하나이다. 그것은 스타인벡이 인간 생활을 동물의 용어로 표현하려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스타인벡은 그의 소설에서 하등 동물이나 아니면 인간들을 너무나 기본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거의 동물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동물과 인간 사이의 관계는 데이비드 가넷과 D.H. 로렌스의 동물애호소설과 가깝다. "천국의 목장"이라는 소설에서 작은 개구리와 이리라고 불리우는 그 바보는 새들과 동물들의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줌으로써 자신이 동물과 유사하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토틸라 플랫"에서는 해적이 하나 있는데 그는 개집에서 개들과 함께 살고 있으며 인간과의 교우를 잊어버렸다. "의심스러운 싸움"이라는 글에서도 한 작중 인물이 있는데 그의 성격과 개의 성격이 혼동되어 있다. "분노의 포도"에서 조드 가의 여행은 처음에는 거북이의 걸음으로 비유되었고 여행하는 도중 내내 동물, 곤충, 그리고 새들이 동반되었다. 오클라호마에서 소유권을 빼앗긴 소작인들이 농장을 떠나지 않으면 안되었을 때 우리들은 그 집으로 박쥐, 족제비, 부엉이, 생쥐 그리고 들판으로 돌아갔던 애완용 고양이들이 다시 돌아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생쥐와 인간"에 나오는 레니는 애완용 동물들을 갖고 다니기를 좋아하는데 그는 동물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해서도 살인적인 동물적 본능을 갖고 있다. "롱 밸리"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거의가 다 동물과 식물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스타인벡은 로렌스나 키프링처럼 동물을 낭만적인 인간의 수준까지 끌어올리지 않고 인간을 동물과 동화시키는 효과를 내고 있다. "국화꽃", "흰 메추라기" 그리고 "뱀"에서는 자신들을 각각 국화, 흰 메추라기, 그리고 뱀과 동일시하고 있는 여자들을 다루고 있다. "도주"라는 작품에서 어린 멕시코 소년은 남자를 한 명 죽이고 산 속으로 도망간다. 그는 동물들의 모습과 너무나 비슷하게 닳았기 때문에 산속의 사자도 그를 네발 달린 짐승으로 착각하고 있다. "처녀 성캐티"에서는 사악한 돼지가 참회를 하고 성자가 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성프란시스의 작은 꽃들"에서처럼 돼지를 고귀하게 만들지는 못하고 있다. 스타인벡은 D.H. 로렌스처럼 자신의 동물을 사랑하지 않는다. 상술한 관점은 "알려지지 않은 신"에 나오는 토마스 웨인과 관련해서 잘 그려져 있다. 그는 동물에게 친절하지 않았으며 동물들이 서로 친절하게 대하는 것 이상의 친절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동물들이 이해할 수 있는 시종일관성을 갖고 행동했음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모든 동물들은 그를 신임했기 때문이다. 토마스는 동물들을 좋아했고 이해했다. 그리고 동물들이 서로 죽일 때 그런 감정을 갖고 그는 동물들을 죽였다. 그는 자기 자신이 너무나 동물적이기 때문에 동물에 대해서 감상적인 태도를 가질 수가 없었다. 그리고 스타인벡은 로렌스처럼 그의 여러 가지 동물들의 완전함에 대해서 더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스타인벡이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동물의 습관이나 행동이지 인상이 아니다. 이리하여 스타인벡의 중요한 주제는 가장 신중하고, 상상적이고, 건설적인 인간성의 단면이 아니고, 인간에게 가장 매력적인 동물의 양상이 아니라 생활 자체의 과정이다. 자연의 일반 과정에 있어서 살아 있는 유기체는 계속해서 파괴되고 있다. 이 살아 있는 유기체를 파괴시키고 있는 중요한 것들 중에는 생존과 번식을 위해 필요한 약탈적인 식욕과 경쟁적인 본능이 있다. 살해자의 이 충동은 "생쥐와 인간"의 레니와 같은 바보 속에 잘 보존되어 있는데 그 충동은 거의 천진난만한 형태로 되어 있다. 그러나 레니는 그러한 충동에 굴복하는 것은 '나쁜'일을 하는 것이라는 것을 그의 고도로 개화된 친구한테서 배운다. 그는 그의 본능에 항거하는 투쟁에서 지고 만다. 레니는 좋은 사람인가, 아니면 나쁜 사람인가? 작가가 암시하는 바와 같이 그는 우리 인간의 모든 외도가 그러하듯이 우리의 동물적인 천성의 불확실성에 의해 배반당하고 만다. 그러고 스타인벡은 일반적으로 이 원시적인 수준에서 도덕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분노의 포도"에서 설교사는 인간의 도덕성에 환멸을 느낀다. 생전에 매우 호색적이고 비천했던 조드 할아버지의 무덤에서 행했던 그의 다음과 같은 설교는 스타인벡의 견해를 분명히 나타내고 있다. "여기에 한 늙은이가 살다가 그저 가 버렸다. 나는 그가 훌륭했는지 아닌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가 살아 있었다는 것, 그것이 중요한 것이다. 지금은 가 버렸으니 중요한 문제는 없어진 것이다. 나는 어느 시인이 한때 '살아 있는 것은 어느 것이나 다 성스럽다.'라고 말한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인간 사회를 다루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는 "분노의 포도"의 주제는 "붉은 조랑말"의 주제와 같다. "붉은 조랑말"은 말들을 다루는 것으로 생각되어 있는데 이 두 작품들의 주제는 다 생명에 대한 충실이다. 붉은 조랑말을 죽게 한 데 대한 책임을 느낀 사람들은 새 조랑말이 살아서 태어나도록 암말을 희생시킴으로서 조랑말에 대한 보상을 한다. 그래서 로즈 오브 쉐런조드는 영양실조로 사산된 아기를 안고 자신의 젖을 아사 직전에 있는 그 비참한 희생자에게 제공한다. 설교사는 이렇게 계속 말한다. "나는 죽은 사람에게 기도를 하고 싶지 않다. 그는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는 직업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모두 끝났다. 우리들이 할 일은 한 가지밖에 없다. 그러나 그 방법은 천 가지가 있어서 우리들은 어느 것을 택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만약 내가 기도를 한다면 그것은 어느 길을 택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하겠다." "분노의 포도"에서 스타인벡의 최초의 소설 중의 하나인 "알려지지 않은 신에게"로 관심을 돌려보는 것은 좋은 일이다. 이 책에서 스타인벡은 자연의 기본적인 원칙으로서의 파괴적이고 재생산적인 힘을 솔직하게 다루고 있다. 작품의 한 대목에서 주인공은 다른 작중 인물에 의해서 결코 '사람을 알지 못한' 사람으로 이렇게 묘사되고 있다. "당신은 사람들을 결코 알지 못하고 있소, 조셉 씨." 그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원시적인 자연 숭배를 하고 있는데 그는 이 원시적인 자연 숭배를 위해서 가뭄이 생겼을 때 비를 내리게 하기 위한 피의 헌납을 위해 우선 자기 자신은 희생시키고 그 다음에는 자기 부인을 희생시킨다. 이 이야기는 불합리한 이야기이지만 약간 흥미 있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것은 막 30고개에 들어선 스타인벡이 세상에 대한 견해와 세상을 움직이는 힘에 대한 개념을 표현하려는 성실한 시도임을 분명히 나타낸다. 모자를 쫓아서 G. K. 체스터턴(1874__1936):영국의 비평가, 시인, 수필가, 소설가. 20세기의 새뮤얼 존슨과 같은 인물로서, 시, 수필, 각본, 전기, 탐정소설 등을 비롯한 약 90여권의 작품을 남겼으며, 그의 대표작으로는 "다른 사람의 모자를 뒤쫓는 일", "넌센스 옹호", "목요일의 남자" 등이 있음. 내가 시골에 가고 없을 때 런던에 홍수가 났다는 소리를 듣고 나는 거의 야만적인 질투를 느낀다. 내가 사는 바터시라는 곳은 내가 알기로는 물들이 서로 만나는 장소이다. 바터시는 내가 거의 말할 필요도 없이 인간이 사는 곳치고는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바터시는 베니스의 모습을 갖고 있음에 틀림없다. 고깃간에서 고기를 운반한 배는 마치 곤돌라처럼 잔잔한 은빛 물결을 헤치고 그 좁은 수로를 따라 쏜살같이 움직여 나갔다. 래치모오 도로의 골목까지 채소를 운반한 식료품 상인은 곤돌라 선장의 그 우아한 솜씨로 노를 저었음에 틀림없다. 섬처럼 시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어느 한 지역이 홍수가 나면 그것은 하나의 군도가 된다. 어떤 사람들은 홍수나 화재를 낭만적으로 보는 것은 약간 현실성이 부족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불편한 일을 낭만적으로 보는 것은 다른 견해만큼 아주 실제적이다. 홍수와 같은 것에서 쾌락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할 수 있는 사람은 그러한 것을 불평하는 '보통 납세자'만큼 아주 논리적이고 또 훨씬 더 지각이 있다. 치통과 같은 진짜 고통은 거의 즐길 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남자들로 하여금 욕설을 퍼붓게 하고 여자들로 하여금 울부짖게 하는 대부분의 불편한 일들은 정말로 감상적이거나 아니면 상상적인 불편들, 다시 말하면 전적으로 마음속에서만 생각하는 것들이다. 예를 들어 우리들은 어른들이 기차 정거장에서 기다려야 한다고 불평하는 것을 듣는다. 그런데 독자는 어린 소년이 정거장에서 기차를 기다려야 한다고 불평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런 적은 결코 없을 것이다. 그가 기차 정거장 안에 있는 것은 경이의 동굴과 시적인 쾌락의 궁전에 와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에게는 빨간 신호등과 파란 신호등은 마치 새로운 태양과 새로운 달과 같은 것이다. 나무로 된 신호기가 떨어지면 그것은 그에게는 마치 어느 위대한 왕이 자신의 막대기를 던져 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런 문제에 있어서 나는 어린애와 같다. 예를 들어 기차는 2시 15분까지 사람들을 서서 기다리게 한다. 기다리는 동안에 사람들은 풍성하고 유익한 명상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나의 전성기의 대부분을 지금은 아마 물속에 잠겼을지도 모르는 클라팜 정션에서 보냈다. 그곳에서 나는 어떤 고정된 신비로운 생각에 사로잡혀 나도 모르게 물이 내 허리까지 올라오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내가 말한 바와 같이 이러한 불편도 감정적인 견해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을지 모른다. 독자들도 일상생활의 전형적인 불편한 점들이라고 현재 언급되는 있는 거의 모든 것들에 대해 나와 같이 생각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어 모자를 주우려고 바삐 쫓아다니는 것은 불유쾌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마음을 혼란 되지 않고 경건하게 가지려는 것이 왜 불유쾌하단 말인가? 모자를 주우려고 쫓아다니는 그 사람이 게임이나 스포츠에는 훨씬 더 빨리 뛰어다닌다. 이 동일한 사람들은 그 좋은 비단 모자보다는 그 재미없는 작은 가죽공을 집으려고 더 열심히 뛰고 있다. 모자를 하나 주우려고 애쓰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확실히 코믹한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매우 코믹한 동물이며 그가 하는 대부분의 일이 코믹한 것이다. 따라서 모자를 쓰기 위하여 수선을 떤다는 것은 부인을 얻으려고 쫓아다니는 남자만큼 그렇게 우스꽝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사람은 이 모자 문제에 대해서 올바르게 느낀다면 가장 남자다운 정열과 가장 성스러운 기쁨을 갖고 모자를 추구할 수 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유쾌한 사냥꾼이 야생동물을 추격하는 사람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사실상 나는 바람이 부는 날 모자를 찾는 것은 앞으로는 상류 사회의 스포츠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바람이 몹시 부는 날 아침 귀부인들과 신사들이 어떤 고지를 지나가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직업적인 몸종들이 이러저러한 숲에서 바람에 불려 날린 모자를 찾기 시작했다는 말을 귀부인들과 신사들은 들을 것이다. 모자를 찾는 일은 스포츠와 인도주의를 겸하는 일임을 주목하라. 모자를 사냥하는 사람들은 고통을 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모자 사냥을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쾌락을 가져다 준다. 이와 비슷한 상황이 모든 다른 집안의 걱정에도 적용될 수 있다. 우유에 파리 한 마리를 끄집어내려고 노력하거나 포도주잔에서 코르크를 한 개 끄집어내려고 노력하는 신사는 가끔 자신을 짜증스럽게 생각한다. 그에게 어두운 물웅덩이에 앉아 있는 낚시꾼들의 인내심을 잠시나마 생각하게 하라. 나의 어떤 친구는 서랍 하나가 말을 안 들어 늘 짜증을 내곤 했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네는 마치 어떤 강력한 적과 상대해서 싸우고 있다고 상상해 보게. 아니면 알프스 계곡에서 동료를 로프로 끄집어내고 있다고 상상해 보게." 나는 이런 말을 하고 곧 그를 떠나 버렸다. 틀림없이 나의 말은 그에게 최고의 열매를 맺게 해주었을 것이다. 틀림없이 그는 상기된 얼굴로 임전태세를 갖추고 스스로를 격려하면서 서랍의 손잡이를 잡아당길 것이다. 나는 런던의 홍수가 시적으로 용납되거나 향유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전적으로 공상적이거나 믿을 수 없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런던의 홍수는 불편을 준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야기시키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모험이라는 것도 하나의 불편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 불편이라는 것은 잘못 생각된 하나의 모험이다. 마술적 암시성에 대한 예술가의 열망 조셉 콘래드(1857__1924):폴란드 태생의 영국 작가. 주로 해양 소설을 많이 다루었으며,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로드 짐", "어둠 속에서", "나시서스의 흑인", "노스트로모" 등이 있음. 예술의 상태에 도달하려는 작업은 모든 면에 있어서 자신의 정당성을 지니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예술 그 자체는 진리를 밝힘으로써 가시적인 우주를 가장 공평하게 처리하려는 성실한 시도라고 정의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예술은 자신의 형태와 색채, 빛깔, 그림자, 문제의 양상, 생활의 사실에서 기본적이고 지속적인 것, 다시 말하면 이들의 존재의 기본적인 것을 찾으려는 시도인 것이다. 그래서 예술가는 사상가나 과학자처럼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에 호소한다. 사상가가 만약 세상의 양상에 인상을 받으면 그는 개념 속으로 뛰어들며 과학자가 우리들의 상식, 우리들의 지성, 우리들의 평화에 대한 갈망에 대해 권위 있게 말한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들의 편견, 그리고 가끔 우리들의 두려움이나 이기주의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고 항상 우리들의 그 경신성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그들의 말은 경건하게 경청된다. 왜냐하면 그들의 관심사는 중요한 문제들, 예를 들어 우리들의 정신을 함양하고, 우리들의 몸을 적당히 돌보고, 우리들의 야망을 달성하고 우리들의 수단을 완성시키고, 우리들의 귀중한 목적들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들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술가에게 있어서는 그렇지 않다. 예술가는 그 동일한 장관에 부닥치면 그는 혼자서 그것을 생각하고 중압과 투쟁의 그 고독한 영역에서 자신이 무엇을 호소할 것인가를 발견한다. 그는 우리들이 덜 명백한 능력에 호소한다. 다시 말해서 더욱 더 저항적이고 어려운 특질 안에서 필연적으로 사라지게 되는 그러한 천성에 호소한다. 그의 호소는 그렇게 시끄럽지 않고 덜 분명하지만, 깊이가 있으며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그러나 여기서 발생하는 효과는 영원히 지속된다. 연속되는 세대들의 변화하는 지혜로 인하여 개념은 파기되고 사실은 의심을 받고 이론들은 파괴된다. 그러나 예술가는 지혜에 의존하지 않는 우리들의 존재의 그 부분에 호소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습득한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날 때부터 갖고 있는 그 부분에 대해 호소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더 영원히 지속된다. 그는 기쁨과 놀라움, 우리의 눈을 둘러싸고 있는 신비로움, 연민과 아름다움, 고통, 그리고 모든 창조물과 교우하는 그 잠재적인 감정에 호소한다. 그는 또한 수많은 마음의 고독을 하나로 묶어 주는 그 오묘하지만 물리칠 수 없는 결속의 확신에 대해 호소하고, 사람들을 서로 결합시켜 주고__죽은 사람을 산 사람과 산 사람을 죽은 사람과 연결시켜 준다__꿈, 기쁨, 슬픔, 열망, 망상, 희망, 두려움 속에 있는 그 유대감에 호소한다. 소설은__만약 그것이 예술을 지향하는 것이라면__기질에 호소한다. 그리고 사실상 소설은 미술이나 음악이나, 아니면 모든 예술처럼 하나의 기질을 모든 다른 기질에다 호소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이 모든 다른 기질의 오묘하고 저항력이 없는 힘은 발생하는 사건들에 참다운 의미를 부여하고, 장소와 시간의 도덕적이고 감정적인 분위기를 창조한다. 이러한 호소가 효과를 발휘하려면 그 호소는 감각을 통해서 전달되는 인상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사실상 이러한 호소는 만들어질 수 없다. 왜냐하면 기질이라는 것은 그것이 개인적인 것이건 집단적인 것이건 간에 설득을 당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예술은 일차적으로 감각에 호소한다. 그리고 문자로 자신을 표현할 때의 예술적인 목적은 감각을 통해서 호소하는 것이어야 한다. 예술은 조각의 조형성, 미술의 색채, 음악의 마술적인 암시성을 꾸준히 열망하고 있어야 한다. 조형성, 색채, 마술적인 암시에 대한 접근의 시도가 가능한 것은 형태와 소재의 완전한 혼합에 완전히, 그리고 변함없이 헌신할 때이다. 그 창조적인 일을 성취하고, 자기의 힘이 닿는 데까지 멀리 나가고, 실수나 지루함이나 질책에 방해를 받지 않고 앞으로 나가려는 성실한 노력은 산문작가를 정당화시켜줄 수 있는 유일한 근거이다. 만약 그의 양심이 깨끗하다면 즉각적인 이익을 찾고, 구체적으로 교화되고 위로를 받고, 즐겁게 되기를 요구하며, 즉시 향상되고 격려를 받고, 아니면 충격을 받거나 매혹을 당하기를 요구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한다. "내가 성취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나의 과업은 쓰여진 단어의 힘에 의하여 여러분들을 듣고, 느끼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눈으로 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이며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만약 내가 나의 과업에 성공한다면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이 요구하고 있는 격려와, 위로와 매력 등 그 모든 것과, 또 아마도 여러분들이 요청할 것을 잊어버린 그 진리의 일면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후회 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인생의 일시적인 국면을 포착하는 것은 소설가의 과업의 시작에 불과하다. 부드럽고 성실하게 접근하는 그 과업은 선택도 후회도 없이 포착된 그 단편을 성실한 분위기 속에서 모든 사람들이 보도록 붙잡고 있는 것이다. 그 과업은 포착된 단편의 진동, 색깔, 그리고 형태를 보여주고 그것의 운동과 형태와 색채를 통해서 진리의 본질을 보여주며 고무적인 비밀을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위와 같이 표현된 확신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소설가의 기술의 그 일시적인 공식들을 성실히 지킬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 공식들 중의 영속적인 부분인 진리는 소설가의 재산 중에서 가장 귀중한 것으로 소설가와 함께 있지 않으면 안된다. 사실주의, 낭만주의, 자연주의, 그리고 감상주의 등, 이 모든 것들은 소설가와 잠시 동안 교우하다가 성전의 문턱, 다시 말하면 양심의 머뭇거리는 소리와 소설가 자신의 작품의 애로에 대한 솔직한 의식에 자리를 양보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불안스러운 고독 속에서 예술을 위한 예술의 지고의 울부짖음 속에서는 자신의 명백한 부도덕성이 상실된다. 가끔 우리들은 길가의 나무 그늘 속에서 편안히 다리를 쭉 뻗고 먼 들판에서 일꾼이 움직이는 것을 보며 잠시 후에는 그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을까에 대하여 나른한 마음으로 궁금히 생각하기 시작한다. 우리들은 그의 몸의 움직임과 그의 팔의 움직임을 본다. 우리들은 또한 그가 허리를 굽혔다가 일어나서 머뭇거리다가 다시 움직이는 것을 본다. 그의 노력의 목적을 알게 되면 한가한 시간에 매력을 가져다줄지도 모른다. 만약 그가 돌을 집어들거나 도랑을 파거나, 나무 그루터기를 뽑아 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우리들은 더 참된 관심을 갖고 그의 노력을 지켜볼 것이다. 우리들은 조용한 분위기에서 움직이고 있는 그를 잘 봐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또한 그의 실수도 용서해줄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그의 목적을 이해한다. 그리고 결국 그는 노력은 했으나 힘이 없었다. 아마 그는 지식이 없었던 모양이다. 우리는 그를 용서하고 우리의 갈 길을 간다. 그리고 잊어버린다. 그리고 이것은 예술을 하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그리고 성공은 먼 곳에 있다. 이리하여 성공할 수 있는 힘이 있는지 없는지 의심을 하면서 우리들은 인생 자체와 같이 고무적이면서도 어렵고 안개처럼 흐려진 예술의 목적에 대해서 조금밖에 이야기하지 않는다. 고전이란 무엇인가? 상뜨 뵈브(1804__1869):프랑스의 대표적인 소설가. 대표작으로 "육체의 기쁨"이 있으며, 고대 및 현대 작가들에 관한 연구서로서 "자서전" 등이 있음. 고전 작가란 일상적인 정의에 의하면 찬미에 의해 신성화된 오래된 작가이며 그의 특별한 문체로 타인들에게서 인정을 받는 권위자이다. 고전이란 말을 이러한 의미로 처음 사용한 사람들은 로마인이었다. 처음에 현대인을 위한 참된 유일한 고전은 고전 작가들의 작품이었다. 그리스인은 그들의 독특한 행운과 자연스러운 마음의 개발에 의하여 자기들 외에는 다른 고전 작가들을 갖고 있지 않았다. 로마인들은 그리스인 작가들을 자신의 유일한 고전 작가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로마인들은 그리스인을 모방하려고 애를 썼다. 시세로와 버질이 나타난 이후 로마문학의 위대한 기간이 지나간 후에 로마인들은 자기들 나름의 고전 작가를 갖게 되었으며 이 고전 작가들은 그 후 몇 세기 동안 고전 작가로서의 독점적인 지위를 갖게 되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그렇게 라틴어에 무식하지는 않았으나 균형과 취미가 결여되었을 중세기에 있어서는 순위와 질서를 혼동했었다. 중세에 있어서 오비드는 호머보다 더 중요시되었고 뵈티우스는 플라톤과 필적하는 고전 작가처럼 보였다. 15세기나 16세기에 있어서 학문의 부활은 이 장구한 혼돈을 바로잡는 데 도움을 주었고 고전 작가들을 제대로 찬미할 수 있게 만들었다. 따라서 그리스와 라틴의 진정한 고전 작가들이 햇빛을 보게 되었고 조화 있게 제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한편 근대문학은 마치 이태리인처럼 태어났고 단테가 나타나자마자 후손들은 그를 고전 작가로 맞이하였다. 근대 이태리는 자신의 고전 작가들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스페인인들은 불란서가 자신의 고전 작가를 찾고 있을 때 이미 자신의 고전 작가들을 갖고 있었다고 믿었다. 독창력과 예외적인 활력을 가진 몇몇의 재능 있는 작가들은 고립된 채 단절되었기 때문에 한 국민에게 견실하고 당당한 문학적인 부의 기초를 제공하지 못했다. 고전이라는 개념은 계속과 시종일관성을 의미하며 단일성과 전통과 유행을 창출하며 스스로를 전달시키면서 오래 가는 그런 것이다. 루이 14세의 그 영광스러운 시기가 지나간 후에야 비로소 불란서 국민들은 자기들이 그렇게도 훌륭한 행운을 가졌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느꼈다. 누구나 루이 14세에게 아첨과 과장으로 강조를 하면서 그 찬란한 시기를 알려주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어떤 진실의 감정이 있었다. 그러자 이상하고 두드러진 모순이 발생했다. 위대한 루이와의 시대의 경이에 가장 많이 매혹되었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불치의 반대자들과 적대자들로 생각했었던 그 사람들을 신성화하고 고양하려고 했다. 근대 작가들을 위해서 고대 작가들을 희생시키기까지 했던 사람들(이 사람들 중의 중심 인물은 페롤트였다)이 페롤트에게 반기를 들고 고전 작가들을 옹호했다. 실례가 가장 좋은 정의가 될 것이다. 불란서는 루이 14세 이래로 고전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숙고해 왔다. 불란서에서는 18세기에 네 명의 위대한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서 고전에 대한 개념을 강화시켜 왔다. 볼테르의 "루이 14세의 시대", 몽테스큐의 "로마인들의 위대성과 몰락", 부퐁의 "자연의 신기원", 그리고 루소의 "사보야르드의 목사"를 읽어라. 그리고 18세기의 불란서인들이 이 기억할 만한 작품들을 통해서 전통을 발전과 독립의 자유와 조화시키는 방법을 이해하지 못했는가를 이해하라. 그러나 금세기 초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새롭고 다소 모험적인 문학에 대한 최초의 시도 속에서 고전에 대한 개념은 이상하게 그 범위가 좁혀졌고 축소되었다. 최초의 아카데미 사전(1694)은 고전 작가의 정의를 '많이 인정받은 고전 작가로서 자기가 취급하는 주제에 있어서는 권위자'라고 쓰고 있다. 1853년의 아카데미 사정은 이 정의를 더욱 더 축소시켜 정확성과 한계를 갖고 있다. 이 사전은 고전적인 작가를 '어떠한 언어에 있어서 모델이 되는 사람들'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다. 고전에 대한 이러한 정의는 존경받는 학술회원들이 그 당시에 소위 낭만주의자들을 상대로 하여 내린 것이었다. 나는 지금이야말로 이러한 소심하고 제한적인 정의를 부인하고 우리의 마음을 활짝 열 때라고 생각한다. 내가 정의 내리고 싶은 진정한 고전 작가란 인간의 마음을 동요하게 만들었고 인간의 보물을 증가시켜 주었고 인간의 마음을 발전시키게 했으며 애매모호한 진리가 아니라 어떤 도덕을 발견했고 마음속에 영원한 정열을 보여주었고, 위대하고 세련되고 건전하고 아름다운 형태로 자신의 사상과 관찰과 창안을 표현하고, 자기 자신의 독특한 문체, 다시 말하면 전세계의 문체가 될 수 있는 그런 문체로 모든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그런 작가이다. 원한다면 나는 상술한 정의에다 작가 이름을 적용할 수도 있겠다. 우선 나는 몰리에르를 들겠다. 그는 불란서가 가진 가장 완전한 천재, 시적인 천재이다. 비평가들의 왕과 같은 존재인 괴테는 그를 가리켜 이렇게 말했다. "몰리에르는 너무나 위대하기 때문에 우리들은 그를 읽을 때마다 놀라곤 한다. 그의 각본은 비극에 가깝다. 아무도 그는 모방하려고 시도한 용기를 가진 사람들은 없었다. 악덕이 아들과 아버지 사이의 모든 것을 파괴해 버리는 그의 작품 "수전노"는 가장 숭고한 작품 중의 하나이며 최고의 극작품이다. 드라마에 있어서의 모든 행동은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점에 있어서 "위선자"는 모범적인 작품이다. 첫 장면은 대단히 설명이 잘 되어 있다. 모든 것은 처음부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으며 훨씬 더 중요한 것을 예고한다. 렛싱의 각본의 설명은 매우 훌륭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위선자"를 더 인정하고 있다. 이 작품은 우리가 갖고 있는 가장 좋은 작품 중의 하나이다. 나는 매년 몰리에르를 읽을 때마다 이태리의 위대한 대가를 모방한 조작품을 깊이 생각하게 된다." 불란서에서는 루이 14세 이전에 위대한 고전은 없었다. 그래서 단테나 셰익스피어 같은 사람들이 없었다. 마투렝 레기니어나 라베라이처럼 이상이나 깊은 감정, 혹은 심각성이 결여되어 있는 시인만이 있었을 뿐이다. 몽테뉴는 호러스를 본딴 조숙한 고전 작가였다. 그러나 그는 적당한 환경의 부족으로 인하여 문체와 익살에 있어서 무절제한 환상적 요소를 남기었다. 고전을 만드는 처방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점은 명확히 인식되어야 한다. 어느 작가가 순수성, 정확성, 우아함, 그리고 문체와 영감의 특질을 모방함으로써 고전 작가가 된다고 믿는 것은 마치 아버지 라신느가 죽은 후에는 아들 라신느가 아버지 라신느의 자리를 차지한다고 믿는 것과 같은 것이다. 더구나 동시대인들이 보는 앞에서 너무 빨리, 그리고 아무런 반대 없이 고전 작가의 자리를 확보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이런 경우에 고전 작가가 된 사람은 후세에 있어서 그 자리를 유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퐁텡은 생전에 그의 친구들에 의해서 순수한 고전 작가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조숙한 고전 작가들이 잠깐 동안만 그 자리를 유지하고 오래 가지 못했던 일이 얼마나 많은가! 세비그네 부인은 이러한 고전 작가들은 항상 변하는 색채를 띠고 있다고 재치 있게 말한 적이 있었다. 고전에 관한 한 가장 기대되지 않았던 작가가 가장 훌륭하고 가장 위대한 작가로 판명된다. 루이 14세 시대에 나타난 네 명의 위대한 시인들 중에서 가장 고전적이 아닌 시인은 몰리에르였다. 사람들은 그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그를 좋아했던 것이다. 몰리에르 이후에는 라 퐁텡이 가장 고전적인 아닌 것처럼 보였다. 200년이 지난 지금 결과를 보아라. 이 두 작가들은 버로우 이상으로, 심지어는 라신느 이상으로 모든 것을 내포하는 도덕의 특징들을 갖고 있는 작가라고 생각되고 있지 않는가? 행복한 사람 버트랜드 러셀(1872__1970):영국의 철학자, 논리학자, 문필가. 1950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수리논리학 분야의 저작들과 평화 운동, 핵무장 반대운동을 비롯한 사회 정치운동으로 유명함. 사랑 사람들이 흥미가 부족하게 되는 중요한 원인들 중의 하나는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며, 이와 반대로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끼게 되면 무슨 일에든지 흥미를 느끼게 된다. 사람은 여러 가지 이유로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감정을 갖게 된다. 그는 자기가 불쾌한 사람이기 때문에 아무도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는 어렸을 때 다른 아이들보다 사랑을 덜 받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또는 사실상 그는 아무에게서도 사랑을 받을 수 없는 그런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에 있어서는 어렸을 때의 불행 때문에 생긴 자신감의 부족이 원인이 될 것이다.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사람은 결과적으로 여러 가지 태도를 취하게 된다. 그는 아마 예외적인 친절을 베풂으로써 사랑을 얻으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경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일에 있어서 아마 성공을 거둘 가능성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친절의 동기는 그 친절을 받는 사람들에 의해서 쉽사리 파악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비로운 행위에 의해서 사랑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인간의 배은망덕을 경험하고 환멸을 느끼게 된다. 그는 그가 얻으려는 사랑이 그 사랑의 대가로서 제시하는 물질적인 이득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다는 생각은 결코 떠오르지 않는다. 솔직히 이러한 생각이 그의 행동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그는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음을 주목하고 세상에 대해서 복수를 하려고 할지도 모른다. 이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를 제외한 세상에 대항하게 하는 데 충분한 성격의 힘을 요하는, 불행에 대한 하나의 과감한 행위이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를 하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대부분의 남녀들은 그들이 비록 사랑을 받지 못한다 할지라도 소심한 절망 속에 잠기게 될 뿐이며 이따금씩 질투와 악의로 그 절망을 경감시킬 뿐이다. 일반적으로 그러한 사람들의 생활은 지극히 이기적이 되며 사랑의 부재는 그들에게 불안감을 준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생활을 완전히 지배하는 버릇을 가짐으로써 불안감을 본능적으로 피하려고 한다. 항상 똑같은 일상생활의 노예가 되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차가운 외부 세계에 대한 공포에 자극을 받아 행위를 하게 된다. 여하튼간에 안정감을 갖고 생활을 해나가는 사람들은 불안정감을 갖고 생활하는 사람보다 행복하다. 단, 이 안정감이 그들을 불행으로 이끌지 아니한다면 말이다. 다 그렇다고는 말할 수 없으나 많은 경우에 있어서 안정감은 사람들로 하여금 위험을 피하게 하는 데 도움을 준다. 좁다란 널판지 위를 건너갈 떼에는 두려운 마음을 갖지 않을 때보다 두려운 마음을 갖고 있을 때 더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똑같은 일이 인생의 행위에 적용된다. 두려움이 없는 사람은 갑작스런 재난을 당하는 경우에 많은 어려운 상황을 해를 입지 않고 무사히 지나갈 수 있으나 소심한 사람은 슬픔을 당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유용한 자신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 어떤 사람은 산이나 바다에서 자신을 갖고 있으며 어떤 사람은 공중에서 자신을 갖고 있다. 그러나 생활에 대한 일반적인 자신은 무엇보다도 자기가 필요한 올바른 애정을 받는 데서 오는 것이다. 내가 이 장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흥미의 근원으로서 생각되는 마음의 습관이다. 애정이라는 것은 대부분은 상호교환적이지만 위에서 말한 안정감을 주는 것은 받는 사랑이 아니라 주는 사랑이다. 엄격히 말해서 이러한 효과를 갖고 있는 것은 사랑뿐만 아니라 감탄도 해당된다. 배우, 설교사, 연사들과 같이 일반인들의 찬미를 얻는 것이 직업인 사람들은 갈채에 더욱 더 의존하게 된다. 그들이 일반일들로부터 정당한 인정을 받으면 그들의 생활은 흥미로 가득 차게 된다. 그렇지 못하면 불만을 갖게 되고 이기주의적인 마음을 갖게 된다. 부모에게서 사랑을 받는 아이는 부모의 사랑을 자연의 법칙으로 받아들인다. 보모의 사랑이 어린애의 행복에 있어서는 중요한 것이지만 어린애는 그것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에게 발생하는 모험과 성인이 될 때에 일어날 더 놀라운 모험에 대해서 생각한다. 이러한 외적인 관심사의 배후에는 그가 재난이 발생했을 때에 부모들이 자기들을 보호해줄 것이라는 생각이 존재한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아이는 소심하고 모험심이 없으며 공포와 자기 연민에 꽉 차 있고 즐거운 마음으로 세상일을 탐구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러한 아이는 놀라울 정도로 어린 나이에 삶과 죽음과 인간의 운명에 대해서 숙고하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그는 처음에는 내성적이며 우울한 성격의 소유자가 되지만 어떤 계통의 철학이나 신학의 비현실적인 위안을 찾을지도 모른다. 세상은 유쾌한 일들과 불유쾌한 일이 뒤범벅이 되어 있다. 그래서 이것들로부터 이해할 만한 체계나 패턴을 만들려는 욕망은 사실은 두려움의 결과, 다시 말하면 탁트인 공간을 무서워하는 데에서 생긴 것이다. 소심한 학생은 그의 서재의 네 개의 벽 안에서 자유를 느낀다. 만약 그가 세상이 똑같이 잘 정돈되어 있다는 것을 믿는다면 그는 거리로 나가서도 거의 똑같이 안심을 느낀다. 이러한 사람은 만약 더 많은 사랑을 받는다면 진짜의 세계에 대해서 덜 두려워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애정이 항상 모험심을 갖게 하는 것은 아니다. 주어진 사랑은 소심한 것이 되지 말고 강건한 것이 되어야 하며, 안전에 대해서는 결코 무관심한 것은 아니지만 안전보다는 탁월성을 갈망하는 그런 것이어야 한다. 발생할지도 모르는 재난에 대해서 아이들에게 항상 경고하며, 모든 개들은 다 물며 모든 암소들은 황소와 같다고 생각하는 어머니와 유모들은 아이들이 그들의 바로 옆에 있지 않으면 결코 안전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아이들에게 생각하게 할 것이다. 지나치게 소유욕이 강한 어머니는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어린애를 기분 좋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녀는 자기의 아이가 세상을 이겨내는 능력보다는 그 여자에게 의존하기를 더 갈망하고 있을지 모른다. 어린 시절에 형성된 마음의 습관은 일생 동안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사랑을 하게 되는 많은 사람들은 세상으로부터 작은 안식처를 찾는다. 그런데 이 안식처에서 그들은 자신이 칭찬을 받지 못할 만한 사람이면서 칭찬을 받는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가정은 진리로부터의 피난처이다. 그들은 그들이 전에 현명하지 않은 어머니로부터 얻은 것을 부인에게서 찾는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부인이 자기들을 나이만 먹은 어린애로 간주한다면 놀라워할 것이다. 가장 좋은 사랑이란 어떤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사랑에는 어떤 보호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을 우리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상처에 대해서 무관심할 수가 없다. 그러나 나는 불행을 염려하는 것은 실제로 일어난 불행에 대한 동정과는 반대로 사랑에 있어서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공포는 우리들에 대한 공포보다 더 큰 것이 아니다. 더구나 그러한 공포는 소유욕에 대한 하나의 위장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서 공포심을 불러일으켜서 다른 사람들을 완전히 소유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물론 이것은 왜 남자들이 소심한 여자들을 좋아하는가에 대한 이유 중의 하나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남자들은 여자들을 보호함으로써 여자들을 소유하게 되기 때문이다. 튼튼하고 모험심이 강한 사람은 해를 입지 않고 많이 버틸 수 있으나 소심한 사람에게서는 거의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 타인으로부터 받은 사랑은 두 가지 기능을 하고 있다. 우리들은 지금까지 안정과 관련해서 이것을 언급해 왔다. 그러나 성인의 생활에 있어서 이것은 더욱 더 긴요한 생물학적인 목적을, 다시 말하면 어버이가 되는 것이다. 성에 대한 사랑을 불러일으킬 수 없는 것은 여하한 남녀에 있어서 중대한 불행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생에 있어서 최대의 기쁨을 그들로부터 빼앗기 때문이다. 이러한 박탈은 조만간 사람들로부터 흥미를 파괴해 버리고 내성적인 성격을 만들어낼 것임이 거의 확실하다. 어렸을 때 있었던 불행은 말년에 사랑을 얻지 못하게 하는 성격의 결함을 만들어 낸다. 이것은 여자들보다는 남자들에게 아마 더 해당될 것이다. 왜냐하면 여자들은 남자를 사랑할 때에는 성격을 더 중요시하는 반면에 남자들은 여자들의 외양을 더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열등하다는 것을 스스로 보여주고 있다. 남자들이 여자들에게서 발견하는 유쾌한 특질보다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지금까지 우리들은 사랑의 대상이 되는 사람에 관해 말해 왔으나 이제는 주는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하겠다. 여기에는 또한 두 가지 종류가 있다. 그런데 이 중의 하나는 아마 인생의 흥미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표현이고 다른 하나는 공포에 대한 표현이다. 전자는 완전히 칭찬할 만한 것으로 보이지만 후자는 기껏해야 위로에 지나지 않는다. 어느 날씨 좋은 날 아름다운 해안을 따라 배를 타고 항해한다면 해안을 찬미하고 해안에서 쾌락을 느끼게 된다. 이 쾌락은 전적으로 바깥쪽을 내다보는 데서 오는 것이며 우리들 자신의 절실한 필요성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반면에 배가 만약 난파되어 해변가로 헤엄을 쳐서 오게 되면 해변에서 새로운 사랑을 얻게 된다. 해변은 파도로부터의 안전지대이며 해변의 아름다움이나 추함은 중요치 않은 문제가 된다. 더 좋은 애정은 안전한 배를 타고 있는 사람의 심정과 비슷하며 덜 좋은 애정은 난파된 배로부터 헤엄쳐 가는 사람의 심정과 같다. 전자의 사랑은 사람이 안전을 느끼거나 자기에게 부닥친 위험에 무관심한 태도를 갖고 있는 한 가능할 뿐이다. 이와는 반대로 후자는 불안감에 의해서 야기된다. 불안정에 의해서 야기되는 느낌은 그렇지 않은 느낌보다 훨씬 더 주관적이고 자기 중심적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종류의 사랑은 인생에 있어서 본질적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상 모든 참된 사랑은 두 가지를 다 갖고 있으며 사랑이 불안정감을 정말로 치유하는 한 위험과 두려움이 있을 때 흐려지게 되는 그러한 관심사를 다시 자유롭게 느끼게 한다. 가장 좋은 사랑은 서로서로 생명을 주고 받는 그런 것이다. 다시 말해서 각자는 기쁘게 사랑을 주고 쾌히 사랑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각자는 이러한 상호교환적인 사랑의 결과로서 세상은 더욱 더 흥미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다. 그러나 이와는 다른 종류의 사랑이 있는데 그것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생명력을 빨아들이고 다른 사람이 주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 대가로 아무것도 주지 않는 그런 사랑이다. 어떤 활기에 찬 사람들은 이 흡혈귀 같은 사람들에 속한다. 그들은 이 사람 저 사람으로부터 활력을 빨아낸다. 그들은 번성하고 흥미를 가지게 되지만 이들에게 활력을 주고 있는 사람들은 창백해지고 희미해지고 둔해진다. 이러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자기들의 목적에 대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그들을 결코 목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근본적으로 자기가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결코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은 오직 자신의 활동에 대한 자극만을 생각한다. 분명히 이것은 그들의 성격의 어떤 결함에서 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진단하거나 치료하기에 결코 쉽지 않은 것이다. 이것은 빈번히 커다란 야심과 관련되어 있으며 무엇이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가에 대한 부당한 일방적인 견해에 뿌리를 박고 있다. 두 사람이 진정한 의미에서 서로간의 선에 대한 수단뿐만 아니라 공동선을 갖는 하나의 결합체로서의 사랑은 진정한 행복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이다. 자신의 자아가 강철벽 속에 둘러싸여 그 자아를 확대하는 것이 불가능한 사람은 자기 직업에 있어서 아무리 성공한다 하더라도 인생이 주는 최고의 것을 얻지 못하게 된다. 사랑은 제거하는 야심은 일반적으로 인류에 대한 어떤 분노와 증오의 결과인데 이것은 젊었을 때의 불행이나 인생 후기에 있어서의 불공평에 대해서나 아니면 피해망상증을 가져오는 원인들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너무나 강력한 자아는 세상을 충분히 즐기기 위해서는 피해 버려야 하는 하나의 감옥이다. 참다운 사랑을 할 수 있는 능력은 감옥 자체에서 탈출해 나온 그 사람의 표식 중의 하나이다. 사랑은 받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받은 사랑은 다시 내보내야 한다. 이 두개가 똑같이 존재하는 곳에서 사랑은 최고의 가능성을 성취하는 것이다. 상호교환적인 사랑을 꽃피우게 하는 데에 대한 심리적이고 사회적인 장애물들은 중대한 악이며 세상은 이것 때문에 고생을 했고 아직도 고생을 하고 있다. 사람들이 남을 잘 찬미하지 않는 것은 혹시 그 찬미를 제대로 못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서 나오는 것이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잘 주려고 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이 사랑을 베푸는 사람들에 의해서, 아니면 탈 잡기를 좋아하는 세상에 의해서 고생을 당하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서 나온 것이다. 도덕과 세상의 지혜라는 이름으로 주의가 요구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사랑에 관한 한 관용과 모험심은 풀이 죽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은 인간에 대해 소심과 분노를 만들어 내는 경향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을 일생동안 얻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점에 있어서 부도덕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우수하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성적인 관계에 있어서 참된 사랑이라는 것은 거의 없다. 남녀는 각각 자기 자신은 상대방에게 주어 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각자는 근본적인 고독을 지키고 있으며 손을 대지 않은 채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경험 속에서는 근본적인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다. 가족 과거로부터 우리들에게 전해진 모든 제도 중에서 가족만큼 그렇게 분열되어 있고 본 궤도에서 이탈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자식들에 대한 부모들의 사랑과 부모들에 대한 자식들의 사랑은 행복의 가장 큰 근원 중의 하나가 될 수 있으나 사실상 현재로서 자식과 부모와의 관계는 십중팔구 양 당사자들(부모와 자식들)에게 불행의 근원이 되며, 적어도 백이면 아흔 아홉은 두 당사자들 줄의 하나에 불행의 근원이 된다. 원칙적으로 가족이 줄 수 있으나 주지 못하고 있는 근본적인 만족은 우리의 시대에 널리 존재하고 있는 불만의 가장 뿌리 깊은 원인 중의 하나이다. 자식들과 행복한 관계를 갖고 싶어하거나 자식들에게 행복한 생활을 마련해 주고 싶어하는 어른들은 부모가 되는 것에 대해 깊이 숙고해야 한다. 그리고 숙고한 다음에는 현명하게 행동해야 한다. 가족의 문제는 너무나 방대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 자신의 특수한 문제, 다시 말하면 행복의 정복에 관련된 것을 제외하고는 이 책에서 다룰 수 없다. 그리고 그 문제와 관련시킨다 해도 우리들은 사회구조의 변화 없이 각 개인의 힘이 미치는 범위 내에서 가족 관계의 향상 문제를 다룰 수는 없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중대한 제안이다. 왜냐하면 오늘날에 있어서 가족의 불행의 원인은 심리적, 사회적, 교육적, 그리고 정치적인 것으로 아주 다양한 원인들로 되어 있다. 부유층에 관한한 두 가지 이유가 다 결합되어 여자들이 부모가 되는 것을 전보다도 더 부담스럽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이 두 원인은 독신 여자들에게 직업의 길을 열어 주는 것이고, 집안일에 대한 중압감으로부터의 탈피이다. 옛날에 여자들은 노처녀라는 그 참을 수 없는 상태로 인하여 마음에 내키지 않은 결혼을 했다. 노처녀들은 집에서 처음에는 아버지에게, 그 다음에는 마음 내켜 하지 않는 오빠에 의존해 살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녀는 하루를 채울 직업이 없었고 집 밖에서 시간은 재미있게 보낼 수 있는 자유가 없었다. 그녀는 성적인 모험을 할 수 있는 기회나 성향이 없었다. 또 그녀는 이 성적인 결혼 외의 이성적인 모험은 저주할 만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모든 안전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계획적인 유혹자의 간계에 의해서 처녀성을 상실했다면 그녀의 처지는 정말로 동정을 받을 만한 것이다. 이것은 '웨이크 필드의 목사'에 다음과 같이 아주 정확히 그려져 있다. 그녀의 죄를 은폐하고 그녀의 수치를 만인의 눈으로부터 감추고 그녀의 연인을 참회하게 하고 그의 마음을 괴롭히는 길은 죽는 것뿐이다 현대의 노처녀는 이런 상황에서는 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만약 교육을 잘 받았으면 그녀는 편안한 생활을 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며 부모의 승낙을 받을 필요도 없는 것이다. 부모들을 딸들에 대해서 경제적인 힘을 상실했기 때문에 딸들에게는 도덕적인 불찬성을 표시하는 데 조심성을 기울인다. 꾸지람을 받지 않으려는 사람을 꾸지람했댔자 소용없는 일이다. 젊은 미혼 여성은 지성과 매력이 평균 이하가 아니고 자식을 갖고 싶어하는 욕망이 없다면 요사이에는 완전히 즐거운 생활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식을 갖고 싶은 욕망이 압도적인 것이 된다면 부득이 결혼하지 않을 수 없고 직업을 잃게 되는 것이 확실하다. 그녀는 전에 누리던 즐거움보다 훨씬 더 낮은 수준의 즐거움을 누리게 된다. 왜냐하면 남편의 수입은 자기가 전에 벌던 것이나 별반 차이가 없으며 게다가 가족까지 돌봐야 하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독립된 생활을 하다가 필요한 비용의 모든 것을 다른 사람에게 의존한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여자들은 어머니가 되는 것을 주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하는 여자는 이전 세대의 여자들에 비해서 새롭고 놀라운 문제, 다시 말하면 형편없을 정도로 집안 일을 하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현대의 여자들은 집안 일에 얽매여 자신의 능력과 교육에 아주 걸맞지 않는 많은 자질구레한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만약 자기가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집안 일을 등한시하는 하녀들을 꾸짖음으로써 자신의 성격을 망쳐 버린다. 실제로 아이들을 맡기는 문제에 관해서도 자기가 애를 써서 이 문제에 대해서 잘 알게 되면 자기가 어떤 기관에서 광범위한 훈련을 받은 보모를 채용할 능력이 없는 한 청결이나 위생에 관해서는 보모에게 맡기거나, 아니면 기본적인 예방책에 관하여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는 것은 불가능하며 또 맡긴다면 중대한 불행이 있을지도 모르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많은 시시한 일들에 눌려서도 자신의 모든 매력과 자기 지성의 4분의 3만 잃지 않는다면 그녀는 운이 좋은 여자이다. 저녁이 되어 남편이 직장에서 돌아왔을 때 낮동안에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여자는 지루한 여자이며 이야기를 하지 않는 여자는 무관심한 여자이다. 여자가 아이를 갖기 위해서 치른 희생을 그녀는 항상 마음속에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녀는 기대 이상으로 더 많은 보상을 거의 틀림없이 요구하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그녀는 자질구레한 일들에 끊임없이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에 말참견이 많아지고 편협한 마음의 소유자가 된다. 이것이 기혼녀가 당해야 할 모든 부당한 일들 중에서 가장 해로운 일이다. 다시 말해서 가정주부는 자신의 집안일 의무를 다함으로써 집안 일들을 등한시하여, 유쾌하고 매력 있는 태도를 보여주었더라면 집안 식구들은 아마 그녀를 사랑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본질적으로 경제적인 것이지만 이것과 거의 똑같이 중대한 다른 문제도 있다. 대도시의 인구 집중으로 생긴 주택난 말이다. 중세기에 있어서 도시들은 오늘날의 시골과 같았다. 아이들은 다음과 같이 자장가를 불렀다. 바오로 사원의 첨탑엔 나무가 하나 있네 그 나무엔 사과도 많이 열렸네 런던 시의 어린 소년들은 막대기로 그것을 따려고 뛰어가네 그들은 이 울타리 저 울타리로 뛰어서 런던교(다리)로 돌아오네 폴의 첨탑을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성 바오로 사원과 런던교 사이에 있는 이 울타리들이 언제 사라졌는지 모른다. 런던의 어린 소년들이 이 자장가가 시사하는 기쁨을 향유한 지도 몇 세기가 흘렀으나 인구의 많은 수가 시골에 살았던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도시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도시 밖으로 나오는 것은 쉬운 일이며 그들의 집에 정원이 딸려 있는 것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현재 영국에서는 농촌 인구보다 도시 인구가 굉장히 많다. 미국에서는 도시는 농촌보다 약간 인구가 더 많을 뿐이지만 도시의 인구는 신속하게 증가하고 있다. 런던과 뉴욕 같은 도시들은 너무나 크기 때문에 도시 밖으로 빠져 나오는 데에는 오래 걸린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한 줌의 흙도 없고 적당한 수입을 가진 사람들이 최소한의 공간에 기거해야 하는 아파트에 대개 만족하지 않으면 안된다. 만약 어린아이들이 있다면 아파트의 생활은 어려워진다. 아파트에서는 아이들이 놀 공간이 없고 부모들은 아이들의 그 시끄러운 소리들을 피해 갈 곳이 없다. 따라서 지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교외에 사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아이들의 관점에서 볼 때에도 틀림없이 바람직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나는 경제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는 여기서 논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가 여기서 관계하는 문제, 다시 말하면 사람이 현재 행복을 찾기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현재 자식과 부모와의 관계에 있어서 심리적인 어려움을 취급할 때 이 문제에 더욱 더 가까워지게 된다. 이것은 민주주의에 의해서 제기된 문제들의 일부이다. 옛날에는 주인과 노예가 있었다. 주인들은 일에 있어서 결정을 내렸고 그들은 대체로 노예들이 좋아했다. 왜냐하면 노예들은 주인들의 행복에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노예들은 아마 주인들을 싫어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민주주의의 이론에 의해서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거의 보편적으로 발생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노예가 주인을 증오한다 해도 주인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주인은 여하튼간에 행복을 느낄 것이다. 민주주의 이론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자 이 모든 것은 변했다. 다시 말해서 전에는 말없이 복종하던 노예들은 더 이상 복종을 안하게 되었다. 전에는 자신들의 권리에 대해서 의심을 품지 않았던 주인들은 주저하고 불안감을 갖게 되었다. 양쪽에서는 마찰이 생겼고 불행이 야기되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의 변화는 민주주의의 일반적인 전파의 특별한 예이다. 부모들은 자식들에 대한 자신의 권리에 대하여 더 이상 자신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식들은 부모들을 공경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지 않다. 전에는 아무런 의심없이 요구되었던 복종의 미덕은 유행이 되지 못하고 있는데 그것도 일리가 있는 이야기이다. 정신분석은 얼떨결에 아이들에게 입힐지도 모르는 피해로 교육받은 부모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만약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입을 맞추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생길지도 모르며 만약 입을 안 맞추면 질투와 분노가 생길지도 모른다. 만약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어떤 일들을 하라고 명령한다면 그들은 죄의식을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어른들이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생각하는 그런 습관을 갖게 된다. 부모들이 자기네 애기가 엄지손가락을 빠는 것을 보면 그들은 온갖 추측을 다 하게 되지만 그들은 이 애기의 행위를 어떻게 금지해야 할지 몰라서 당황하고 있다. 과거에는 의기양양하게 힘의 행사를 했던 부모들의 입장은 소심하고 걱정을 하는 그런 입장이 되었고 양심적인 의문에 가득 차게 되었다. 그 옛날의 단순한 기쁨은 사라졌다. 그리고 독신녀의 새로운 자유 때문에 어머니가 되고자 결심한 여자들은 전보다도 더 많은 것을 희생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상황에서 어머니들은 자식들에게 너무나 조금밖에 요구하고 있지 않으며 비양심적인 어머니들은 너무나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 양심적인 어머니들은 자신의 본래의 사랑을 억제하고 조심하게 된다. 비양심적인 어머니들은 자기들이 얻지 못한 기쁨을 아이들한테서 보상 받으려고 한다. 전자의 경우에 있어서는 자식의 사랑은 굶주려 있게 되고 후자에 있어서는 지나친 자극을 받게 된다. 어느 경우에나 가족은 그 간단하고 자연스런 행복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모든 문제에 비추어 볼 때 출산율이 감소되는 것이 이상하게 보이는가? 인구에 있어서 출산율의 감소 인구가 곧 감소되리라는 것을 보여주는 시점까지 도달했다. 그러나 부유한 계층에 있어서 이 시점을 오래 전에 지나갔다. 부유 계층에 있어서의 출산율에 대한 통계는 많지 않다. 그러나 진 앨린의 책에서 인용된 두 개의 사실은 상술한 것을 언급하고 있다. 스톡홀롬에서 1919년부터 1922까지 직업여성들의 임신율은 인구 전체의 3분의 1밖에 안되었으며 미국의 웰레슬리 대학의 4,000명 졸업생 가운데에서 1896년부터 1913년 사이에 여자 졸업생들이 낳은 아이들의 총수는 약 3,000명이었다. 그런데 자손들이 실제로 줄어드는 것을 막으려면 어렸을 때 죽지 않고 8,000명을 낳아야 한다. 백인종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문명은 그들이 이 문명을 받아들이는 비율에 따라서 출산율도 적어진다는 특징을 갖고 있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가장 문명화된 인종이 가장 출산율이 낮다. 가장 개화되지 않은 인종이 출산율이 높다. 그리고 이 둘 사이에는 연속적인 등급이 매겨져 있다. 부모의 행복의 기쁨의 근원에는 두 가지가 있다. 그 중의 하나는 자기 자신이 죽은 다음에도 자기의 몸이 연장되게 하여 자신의 몸을 구제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힘과 애정이 친밀하게 결합되어 있는 것이다. 새로 난 아기는 무력하기 때문에 부모는 아기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싶은 충동이 있다. 그런데 이 충동은 아이에 대한 부모의 사랑뿐만 아니라 힘을 위한 부모의 욕구를 만족시켜 준다. 무력함을 느끼는 한 어린애에게 주어지는 사랑은 비이기적이다. 그러나 어렸을 때부터 부모가 아이들을 좌지우지하려는 소망과 아이들을 위하려는 소망 사이에는 갈등이 생긴다. 왜냐하면 아이들을 지배하려는 것은 어느 정도까지는 자연적으로 생기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아이가 될 수 있는 대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독립심을 배우는 것은 바람직스럽다. 그러나 이것은 부모의 지배욕의 측면에서 볼 때에는 불쾌한 일이다. 어떤 부모들은 이러한 갈등을 결코 의식하지 못하며 아이들이 반항할 때까지 자식들에게 난폭하게 군다. 이러한 갈등에 있어서 부모의 행복은 상실된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여러가지로 다 돌봐 주었는데도 결과적으로 아이가 부모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것을 보고 마음이 괴로워진다. 부모들은 자식이 군인이 되길 바랐으나 평화주의자가 된다든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모들이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자식들이 나이를 먹은 후에 나오는 것만은 아니다. 혼자서 식사를 할 수 있는 어린아이에게 밥을 먹여 주면 어린아이는 수고를 덜어 주는 친절을 베푸는 것처럼 보일지는 모르나 부모는 아이의 복지를 위하기보다는 어린아이 앞에서 군림하는 것과 같다. 만약 부모가 어린애에게 위험을 너무나 생생하게 보여준다면 그것은 아이들을 부모들에게 너무 의존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만약 아이에게서 반응을 기대하는 그런 애정을 실제로 보여준다면 그것은 아이의 감정에 의하여 아이를 부모편에 붙들어 두려는 것과 같다. 크고 작은 부모들의 소유하려는 욕망은 부모들이 매우 조심성이 있거나 마음이 깨끗하지 않는 한 아이들을 잘못 인도하게 된다. 이러한 위험을 알고 있는 현대의 부모들은 아이들을 다루는 데 자신을 잃고 우연히 실수를 할 때보다도 아이들에게 더 쓸모가 없게 된다. 왜냐하면 성인들의 확신과 자신의 부족만큼 아이들의 마음속에 걱정을 만드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조심성을 가지는 것보다는 마음이 순수한 것이 더 낫다. 아이들이 잘 되기를 진정으로 바라는 부모들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면 안되는가를 말하기 위해서는 정신분석에 관한 교과서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본능에 의해 올바른 인도를 받는다. 이런 경우에 자식과 부모와의 관계는 처음부터 끝까지 조화를 가져오며 아이들에게 반항심을 불러일으키지 않고 부모에게는 좌절감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처음부터 부모가 아이들의 인격을 존중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아이들에게만 바람직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것은 결혼과 우정에 있어서도 매우 필요하다. 이제 이 책에 관계하는 문제에 대해서 말해 보자. 현대 세계에 있어서 부모의 완전한 기쁨은 내가 언급했듯이 아이에 대한 존경을 깊이 느끼는 사람들만 얻을 수 있다. 왜냐하면 이런 부모들은 자식들을 지배하려고 짜증이 날 전도로 억제할 필요도 없고, 자식들이 자유를 얻을 때 억압적인 부모들이 경험하는 쓰디쓴 환멸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이러한 태도를 가진 부모들은 억압적인 부모들보다 더 많은 기쁨을 얻는다. 일하는 것 일하는 것이 행복의 원인이 될 수 있는가 아니면 불행의 원인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아마 의심스러운 문제로 간주될 수 있다. 지극히 짜증나는 일이 확실히 많이 있으며 일이 지나치게 많으면 그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나는 일이 지나치게 많지 않으면 아무리 재미가 없는 일이라도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빈둥빈둥 지내는 것보다는 덜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에는 일의 성격과 일하는 사람의 능력에 따라, 지루함을 그저 없애는 일로부터 시작하여 가장 심원한 기쁨에 이르는 일 등 종류가 여러 가지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야 하는 일은 그 자체는 흥미가 없으나 그러한 일도 어떤 큰 장점을 갖고 있다. 우선 무슨 일을 해야 할 것인가를 결정할 필요가 없이 하루의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 기호대로 하고 싶은 시간이 있다면 할 만한 가치 있는 유쾌한 일을 어떻게 생각해 낼까 쩔쩔맨다. 그들은 무엇을 결정하든 간에 다른 일이 더 유쾌할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마음이 괴로워진다. 남아도는 시간을 현명하게 보낸다는 것은 문명의 마지막 산불이며 현재로서는 이 수준에 도달한 사람은 극소수이다. 더구나 무슨 일을 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일은 그 자체가 싫증을 느끼게 한다. 단 예외가 있다면 비상한 진취성이 있는 사람에게는 무엇을 하라는 명령이 지나치게 불유쾌하지 않다면 일을 하라는 말을 듣는 것은 확실히 유쾌하다. 대부분의 부유한 사람들은 고된 일에서 벗어난 대가로 말할 수 없는 지루함에 시달린다. 그들은 때때로 아프리카로 사냥을 가거나 비행기를 타고 세계일주를 함으로써 위안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나 이러한 감동적인 일은 제한되어 있으며 젊은 시절이 지나간 후에는 특히 그렇다. 따라서 영리한 부자는 마치 자기가 가난한 사람인 양 열심히 일한다. 그런고로 일을 한다는 것은 우선 지루함을 방지하는 것으로서 바람직스럽다. 왜냐하면 흥미 없는 일이지만 그런 일이라도 하면서 느끼는 지루함은 일을 하지 않을 때에 느끼는 그런 지루함에 비해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일은 또 하나의 장점이 있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휴일을 더 달콤한 것으로 만든다. 정력을 다 쏟아 부을 정도로 열심히 일을 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면 그는 게으른 사람보다는 한가한 시간에 더 많은 흥미를 발견할 것이다. 보수를 받는 일이든 보수를 받지 않는 일이든 일의 또 다른 장점은 성공과 야심의 기회를 준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일에 있어서 성공은 수입으로 측정된다. 수입을 늘리고 싶은 욕망은 성공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높은 수입이 가져다주는 안락한 생활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일이란 아무리 지루하더라도 만약 그것이 명성을 쌓는 수단이 된다면 참을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목적의 지속성은 행복의 가장 긴요한 요인들 중의 하나이며 대부분의 사람의 경우에 이것은 자신의 일을 통해서 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집안 일에 종사하면서 살아 나가는 여자들은 남자들, 그리고 밖에서 일하는 여자들보다 행복하지 못하다. 집안 일을 하면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보수를 받지 않으며 자기 자신을 향상시킬 수 있는 수단도 없고 남편과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남편이 부인을 알아주는 것은 집안 일을 해서가 아니라 부인의 다른 특질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아름다운 집들과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어 이웃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될 정도로 부유한 여자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여자들은 비교적 적으며 대부분의 가정주부들은 다른 종류의 일이 남자와 직업여성들에게 가져다주는 그런 만족을 얻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일에 있어서 그것이 아무리 변변치 못한 일이라도 시간을 때우면서 어떤 출구를 찾는 만족을 가져다주며 지루한 일이라도 하고 사는 사람은 전혀 할 일이 없는 사람보다 평균적으로 볼 때 행복하다. 그러나 일이 흥미가 있을 때에는 그것은 지루함에서 벗어나는 안도감보다는 훨씬 높은 차원의 만족을 줄 수 있다. 흥미가 있는 일은 약간 흥미가 있는 일에서 시작하여 위대한 인간의 전체 정력을 흡수할 가치가 있는 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일을 흥미 있게 만드는 두 가지 요소가 있는데 첫째는 기술을 행사하는 것이고 둘째는 건설이다. 어떤 예외적인 기술을 가진 사람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그 기술의 행사가 당연한 것이 되거나, 아니면 더 이상 기술을 향상시킬 수 없을 때까지 기술을 사용한다. 이러한 현상은 유아기에 시작한다. 예를 들어 머리를 땅에 대고 설 수 있는 아이는 발을 땅에 딛고 서기를 싫어한다. 많은 일은 기술을 씀으로써 기쁨을 가져다준다. 또 변호사의 일 같은 것은 카드 놀이를 하는 데서 얻는 그런 즐거움을 많이 내포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기술을 행사해야 할 뿐만 아니라 기술을 가진 적대자를 기지로 이겨내야 한다. 비행기를 타고 묘기를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일이 너무나 좋기 때문에 그는 그 일에 기꺼이 목숨을 걸려고 한다. 나는 유능한 외과의사가 자기가 하는 일이 고통스럽다 하더라도 자신의 절묘한 수술에서 만족을 얻는다고 생각한다. 이보다는 그 강도가 크지는 않지만 더 비천한 일에서 똑같은 만족을 얻을 수 있다. 기술을 요하는 모든 일은 그 기술이 다양하거나, 아니면 무한하게 향상될 수 있다면 유쾌한 것이 될 수 있다. 만약 이러한 조건이 빠진다면 최대의 기술을 습득했다 해도 그 일은 더 이상 흥미를 주지 못한다. 3마일 경주를 뛸 수 있는 사람은 나이가 들어서 그 기록을 깨뜨릴 수 없을 때에는 그 경주에 흥미를 잃게 된다. 다행히도 중년기에 이를 때까지 새로운 상황이 새로운 기술을 요하고 계속 향상을 기할 수 있는 일이 상당히 많이 있다. 행복의 근원으로서 기술이 행사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또 하나의 요소가 있다. 이것은 건설적인 요소이다. 대부분의 일에 있어서는 아니지만 어떤 일에 있어서는 그 일이 완성될 때에는 그 일은 하나의 기념비처럼 남게 된다. 우리들은 다음의 기준에 의하여 건설과 파괴를 구별할 수 있겠다. 건설에 있어서는 일의 최초의 상태는 비교적 짜임새가 없지만 마지막 단계에 가서는 목적의 구체화가 이루어진다. 파괴에 있어서는 이와는 반대의 현상이 일어난다. 일의 최초의 상태는 목적을 구체화하지만 마지막 단계는 아무런 체계가 없이 이루어진다. 다시 말해서 파괴자가 의도하는 것은 어느 것을 막론하고 어떤 목적을 구체화하지 않는 일의 상태를 만들어 낸다. 이러한 기준은 건물을 건설하고 파괴하는데 적용된다. 건물을 세우는 데 있어서는 사전에 세운 계획이 실천에 옮겨진다. 그러나 파괴에 있어서는 파괴가 이루어진 다름에 그 자재들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아무도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물론 파괴는 다음 건설을 위한 준비 단계로서 매우 필요하다. 이러한 경우에 그것은 건설의 일부분이다. 그러나 후에 올지도 모르는 건설에 개의하지 않고 파괴적인 목적을 가진 행동에 참여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러나 그는 새로 건설하기 위해서 파괴해 버린다고 생각하면서 상술한 사상을 은폐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에게 다음에는 어떤 것을 건설하겠냐고 물으면 금방 그의 가면을 밝혀 낼 수 있다. 이에 대해서 그는 모호하고 열의가 없이 대답할 것이다. 큰 건설 공사의 성공에서 얻는 만족은 그것이 비록 예외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만이 느끼는 것이긴 하지만 인생이 제공할 수 있는 가장 큰 만족의 하나이다. 그의 일이 결과적으로 나쁘게 되지 않았다는 것이 판명된다면 중요한 일을 성취했을 때의 그 행복을 남에게서 뺏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만족에는 많은 형태가 있다. 관개 사업에 의하여 황무지에 꽃을 피우게 한 사람은 가장 구체적인 형태로 자신의 일을 즐길 수 있다. 또한 가장 명백한 예들은 예술가와 과학자들이다.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시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이 숨을 쉴 수 있는 한, 눈으로 볼 수 있는 한 이것은 오래 지속된다." 이러한 생각이 셰익스피어의 불행을 위로해 주었다는 데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그는 14행 시에서 그의 친구에 대한 생각이 자신에게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그가 그의 친구에게 쓴 그 14행 시는 친구 자신보다는 이 목적을 위해 더욱 더 효과적이다. 위대한 예술가나 과학자들은 그 자체로 즐거운 일을 한다. 그들은 그 일을 할 때에는 받을 만한 가치 있는 존경을 받는데 이 존경은 그들에게 가장 기본적인 힘을, 다시 말하면 인간의 사고와 감정을 지배하는 힘을 주고 있다. 그들은 또한 자기 자신을 좋게 생각할 만한 다른 이유를 갖고 있다. 이러한 운이 좋은 상황의 결합은 어떠한 사람도 행복하게 해주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미켈란젤로는 대단히 불행한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가난한 친척들의 빚을 갚아야 하지 않았었던들 그렇게 고심해서 예술 작품을 만들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항상 그렇지는 않지만 위대한 예술 작품을 만들어 내는 힘은 기질적인 불행과 관계되어 있으며 그 불행은 너무나 크기 때문에 예술가는 그의 일에서 얻는 기쁨이 없다면 아마 미쳐 버릴 것이다. 그런고로 우리들은 가장 위대한 일도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할 수 없다. 우리들은 그것이 인간을 덜 불행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예술가들보다 기질적으로 덜 불행하다. 그리고 과학에 있어서 큰 일을 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들인데 이들의 행복은 일차적으로 일에서 온다. 오늘날 지성인들에 있어서 불행의 이유 중의 하나는 문학적인 재능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재능을 독립적으로 행사할 기회가 없이 부유한 회사에 고용되는데, 이 회사들은 상술한 문학적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해롭고 무의미한 것을 만들어 낼 것을 주장하는 데 있다. 인간은 자신의 생활을 전체적으로 보는 데 있어서 그 견해가 매우 다양하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렇게 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행복에 긴요하다. 다른 사람들에게 인생이란 지침이나 통일성이 없는 일련의 분리된 사건으로 보인다. 나는 전자가 후자보다 더 행복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만족과 자존심을 얻을 수 있는 그런 상황들을 점진적으로 쌓아 올릴 수 있으나 후자는 어떤 피난처에도 도착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바람부는 대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인생을 하나의 전체로 보는 습관은 지혜와 도덕의 중요한 부분이며 이것은 교육에 의하여 권장해야 할 것 중의 하나이다. 시종일관된 목적만 가지고는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데 충분하지 않으나 그것은 행복한 생활의 거의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그리고 시종일관된 목적은 주로 일하는 데에서 자신을 구체화시킨다. 행복은 성취하는 것이다. 중용이라는 것은 흥미가 없는 이론이다. 그리고 나는 어렸을 때 중용이라는 것을 경멸과 체념을 갖고 거부한 일이 생각난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나는 영웅적인 것을 찬미했었기 때문이다. 진리라는 것 또한 항상 흥미 있는 것은 아니다. 중용이 이에 대한 적절한 예가 될 수 있다. 즉 중용이라는 것은 흥미가 없는 이론일지는 모르나 매우 큰 많은 문제에 있어서 그것은 진실한 것이다. 중용을 지켜야 할 필요가 있는 하나의 경우는 노력과 체념 사이의 균형에 관해서이다. 이 두 가지 이론은 극단적인 옹호자들을 갖고 있다. 체념의 이론은 성자와 신비주의자에 의해서 설파되었고 노력의 이론은 능률 전문가와 힘센 기독교인들에 의해서 설파되었다. 이 두 학파는 다 진리의 일부분만 갖고 있지 전체는 갖고 있지 않다. 나는 이 장에서는 이 두 가지 이론 사이에 균형을 취하고 싶다. 그리고 나는 노력을 지지하는 경우부터 시작하겠다.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 행복이라는 것은 운이 좋은 상황이 단순히 작용하여 익은 열매와 같이 입에 떨어지는 어떤 것은 아니다. 피할 수 있는 불행, 피할 수 없는 불행, 병과 심리적인 갈등, 분쟁과 악의로 가득찬 세상에 있어서는 행복을 찾고자 하는 사람은 각 개인이 당하고 있는 불행의 많은 원인들과 싸우는 방법을 찾지 않으면 안된다. 드물기는 하지만 행복을 얻는 데 그렇게 큰 노력이 들지 않는 경우도 있다. 충분한 재산을 상속받고 건강도 좇은 데다가 간단한 취미를 가진 무사태평한 호인은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으며 사람들이 왜 그렇게 소란을 떨고 있는가에 대하여 궁금히 여길지도 모른다. 어느 잘생기고 게으른 여자가 만약 부유한 남자와 우연히 결혼을 하게 되어 남편에게서 큰 노력을 요구받지 않고, 결혼 후에도 뚱뚱해지는 것은 걱정 안해도 된다면 그녀는 자식들만 걱정을 끼치지 않는다면 상술할 남자와 똑같이 한가한 생활을 즐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는 예외적인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며 많은 사람들은 천성이 그렇게 호인이 못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조용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참을 수 없이 지루한 것으로 만드는 불안한 정열을 갖고 있다. 건강은 아무도 보존한다고 장담 못하는 축복이다. 이러한 모든 이유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행복은 신의 선물이라기보다는 성취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성취에 있어서 내적인 노력과 외적인 노력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내적인 노력에는 필요한 체념의 노력이 포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현재로서는 외적인 노력만 고려해 보자. 남녀를 불문하고 생계를 위해서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의 경우에 있어서 노력의 필요성은 너무나 명백하기 때문에 강조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인도 탁발승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신도들의 적선으로 생활을 해 나갈 수 있으나 서구 사회에서는 이런 생활 방식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더구나 덥고 건조한 나라에 있어서보다 서구 사회에서의 기후는 위와 같은 생활을 하는 것을 덜 유쾌한 것으로 만든다. 다시 말해서 겨울에는 따스한 방에서 일하기보다는 밖에서 한가하게 시간을 보낼 정도로 게으른 사람은 없다. 따라서 서구 사회에서는 체념만 가지고는 행복에 가는 길을 찾을 수 없다. 서구 국가들의 많은 사람들은 성공하는 데에서 만족을 얻으려고 하기 때문에 단지 생계를 이어가는 것만으로는 행복을 얻지 못한다. 예를 들어 과학적인 조사 연구와 같은 직업에 있어서 많은 수입을 벌지 못하는 사람이 이러한 감정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직업에 있어서 수입은 성공의 척도가 된다. 여기에서는 체념이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바람직스러운 문제에 대해서 언급하겠다. 왜냐하면 경쟁적인 세상에 있어서는 두드러진 성공은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결혼은 상황에 따라서 노력이 필요하기도 하고, 필요하지 않기도 한 그런 문제이다. 영국이나 오스트레일리아처럼 남성이나 여성 중 어느 한 성이 소수에 속한다면 그 성의 구성원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결혼을 하는 데 일반적으로 노력이 들지 않는다. 그러나 다수에 속하는 성은 위와는 반대이다. 여성들이 다수인 곳에서 소모되는 노력과 사고의 양은 여성 잡지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명백해진다. 남성이 많은 곳에서는 연발 권총을 사용하는 것과 같은 신속한 방법을 사용한다. 이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왜냐하면 다수의 남자들은 가장 빈번하게 문명의 개척 지대에서 생기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성공적으로 키우는 데 관련된 노력은 너무나 명백한 것이기 때문에 아마도 그것을 아무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체념을 믿고 그릇된 '영적'인 인생관을 믿는 나라들은 유아 사망률이 높은 나라들이다. 의학, 위생, 방부법, 적당한 식사 등은 실제적인 집념이 없이는 성취할 수 없다. 그들은 물질적인 환경을 위한 정력과 지성을 필요로 하고 있다. 물질을 하나의 망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흙먼지도 그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며 그렇게 생각함으로써 결국 자식들을 죽게 만드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한다면 본래의 욕망이 위축되지 않은 사람인 경우에 있어서는 어떤 힘이 그의 정상적이고 이치에 맞는 목적을 형성한다. 사람이 욕망 하는 힘은 그의 지배적인 정력에 달려 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의 행동을 지배하려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사상을 지배하려고 하며, 또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지배하려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물질적 환경을 지배하기를 바라며 어떤 사람은 지적인 탁월성의 힘을 원한다. 온갖 종류의 공적인 일은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모으는 것이 목적이 아닌 한 어떤 권력에 대한 욕망을 내포한다. 그러나 체념도 행복을 얻는 데 있어서 하나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그 역할은 노력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 못지 않게 긴요하다. 현명한 사람은 예방할 수 있는 불행을 당했을 때에는 그냥 앉아 있지 않겠지만 피할 수 없는 것에는 시간과 감정을 낭비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잘못되어 가고 있는 모든 사소한 일에 대해서 짜증을 내고 화를 내며 이렇게 해서 더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많은 정력을 낭비한다. 심지어는 정말로 중요한 일을 하는 데에 있어서도 감정에 너무 집착하기 때문에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생겨나 그것이 마음의 평화를 위협하도록 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일이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의지에 복종하는 것을 가르쳤으며 이러한 말은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에게도 해당된다. 실제적인 일에 있어서의 능률은 그 일에 투입되는 감정과 정비례하지 않는다. 사실 감정은 때때로 능률에 장애물이 된다. 일을 할 때에는 최선을 다하고 결과는 운에 맡기는 것이 필요한 태도이다. 체념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절망에 뿌리를 박고 있으며 다른 하나는 달성할 수 없는 희망에 뿌리를 박고 있다. 첫번째 것보다는 두번째 것이 좋다. 무엇인가를 달성하려다가 근본적으로 좌절한 사람은 절망의 체념을 배우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는 자신의 절망을 종교적인 말로 위장하거나, 아니면 명상이라는 것은 인간의 진정한 목적이라는 이론으로서 위장을 한다. 그러나 내면적인 패배를 감추기 위해 무슨 위장을 하든지간에 그는 본질적으로 쓸모가 없고 근본적으로 불행하다. 달성할 수 없는 희망에 기초를 둔 체념을 가진 사람은 아주 다르게 행동한다. 달성할 수 없는 희망은 큰 것이며 개인적인 것으로는 달성하기에 어려운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무슨 활동을 하든지간에 죽음이나 어떤 질병에 의해 패배를 당한다. 나는 나의 적에 의해서 압도를 당할지도 모른다. 또 나는 성공을 가져오지 못하는 어리석은 길을 택했다는 것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이렇듯 수많은 장애물로 인한 개인적인 희망의 좌절은 불가피한 것이다. 그러나 개인의 욕망이 인류를 위한 더 큰 희망의 일부분일 때에는 실패가 온다 해도 그것은 위와 같은 완전한 패배는 아니다. 자신이 위대한 발견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지도 모르며, 또는 정신적인 좌절을 맛보고 자신의 희망을 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과학의 진보를 깊이 원하고 그 목적에 대한 자신의 공헌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는 순전히 이기적인 동기에서 연구를 한 사람이 느끼는 그런 절망을 느끼지 않는다. 필요한 개혁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은 전쟁 때문에 자신의 노력이 뒷전으로 밀려났다는 것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르며 자신이 애를 쓴 것이 자신의 생전에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부득이 인식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 자신의 참여와는 관계없이 인류의 미래에 관심이 있다면 완전히 절망에 빠질 필요는 없다. 우리가 여기서 생각하는 경우들은 체념하기가 가장 어려운 것들이다. 체념이 훨씬 쉬운 경우들도 많이 있다. 인생의 중요한 목적이 계속해서 성공의 전망을 보여주지만 이차적인 목적이 좌절되는 그런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중요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은 결혼의 불행 때문에 마음이 산란해진다면 바람직한 체념을 하지 못한다. 만약 그가 일에 정말로 몰두한다면 결혼 생활이 행복할 때와 마찬가지로 불행할 때에도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인생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그 작은 고통들도 인내심을 갖고 참지 못한다. 그들은 기차를 놓치면 화를 내고 저녁 식사가 제대로 요리되지 않으면 노발대발하며 굴뚝의 연기가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절망한다. 그러한 사람들이 그 사소한 문젯거리에 낭비하는 에너지는 만약 그것이 제대로 사용된다면 많은 나라들을 세울 수 있을 정도로 큰 것이다. 현명한 사람은 하녀가 털지 않은 먼지, 요리인이 요리하지 않은 감자, 굴뚝 청소부가 쓸어버리지 않은 그을음 등을 눈여겨 보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가 이러한 문제들을 개선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만약 그가 그렇게 할 시간이 있다면 그는 아무런 감정도 갖지 않고 그 문제들을 처리한다는 것이다. 걱정과 초조와 짜증은 아무 데도 쓸모가 없는 것이다. 걱정과 초조와 짜증은 아무 데도 쓸모가 없는 것이다. 이런 것들(걱정, 초조, 짜증)을 강력하게 느끼는 사람들은 그것들을 극복할 수 없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들이 우리가 앞에서 마란 근본적인 좌절이 아닌 그 어떤 것에 의해서 압도를 당하는지 아닌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일의 실패나 불행한 결혼의 고통을 참게 해주는 더 큰 희망에의 정신 집중은 그가 기차를 놓쳤거나 진흙 속에다 우산을 떨어뜨렸을 때 참게 하는 일을 가능케 한다. 걱정에서 벗어난 사람은 계속 짜증이 날 때에도 인생이 전보다 훨씬 더 유쾌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에는 비명의 소리라고 지르고 싶게 만들었던 그 개인적인 특성들은 이제는 단순히 재미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A라는 사람이 그에게 티에라 델 휴의고의 일화를 340번이나 이야기해도 그는 그 횟수를 세어 가면서 즐거워할 것이며 자기 자신의 일화를 말함으로써 헛되게 다른 방향으로 화제를 돌리려 하지 않을 것이다. 어느날 아침 일찍 기차를 타려고 서두를 때 구두끈이 끊어졌다고 해도 그는 이일은 역사에 있어서 커다란 중요성을 갖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가 구혼을 하려고 하는데 지루한 이웃 사람이 찾아와서 방해를 한다면 그는 아담을 제외하고 모든 인류가 이런 불행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상한 유추에 의해서 사소한 불행에 대하여 위안을 줄 수 있는 것은 무한정으로 많다. 개화된 모든 남녀들은 자기 자신의 그림을 마음속으로 간직하고 있으며 이 그림을 망치게 하는 어떤 일이 발생하면 괴로워한다. 가장 좋은 치유 방법은 그 그림을 하나만 갖고 있을 것이 아니라 화랑 전체를 갖고 문제가 되는 사건에 적당한 것을 골라내는 것이다. 만약 그 초상화 중 하나가 웃어 넘길 정도로 사소한 것이라면 더욱 더 좋은 일이다. 자기 자신을 마치 비극의 영웅처럼 하루종일 보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그렇다고 자기 자신을 항상 희극에 나오는 광대처럼 생각하라는 것은 나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사람은 더욱 더 짜증을 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황에 적당한 역할을 선택하는 데에는 약간의 재치가 있어야 한다. 물론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고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감탄할 만한 일이다. 많은 사람들은 최소한의 체념과 유머가 일을 하게 하는 정력과 성공을 달성하게 하는 결실을 파괴한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일의 중요성이나 일의 용이성이나 난해도에 대하여 자신을 속이지 않는 사람은 가치 있는 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자기 기만에 의해서 고양되었을 때에만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일을 계속하기 전에 진리를 감내 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공상적인 일에 의해서 도움을 받으려는 소망은 이익보다는 해를 준다. 사실을 알기 위해 쓰여진 약간의 시간은 낭비된 시간이 아니며 그 후에 행해진 일은 자신의 정력에 대한 자극제로서 자신의 이기주의를 계속 확대할 필요가 있는 사람에 의해서 행해지는 그런 일보다도 덜 해로울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사실을 기꺼이 직면하려는 데에는 어떤 체념이 있다. 이런 체념은 처음 순간에는 고통을 줄지는 모르나 궁극적으로는 자기 기만자들이 당하기 쉬운 실망과 자기 기만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줄 것이다. 매일 믿을 수 없게 되어 가고 있는 것들을 믿으려는 노력보다 더 피로하고 짜증이 나는 일은 없다. 행복한 사람 행복이라는 것은 외적인 상황과 자기 자신에 달려 있다. 여기서 우리들은 자기 자신에 관련된 부분을 취급하며 이 부분에 관한 한 행복에 대하 처방은 간단한 것이라는 것을 믿게 되었다. 어느 정도의 종교적인 신조가 없이는 행복은 불가능하다고 사람들은 믿었다. 또한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슬픔은 복잡하고 지적인 근원들 갖고 있다고 믿는다. 나는 이런 것들이 행복이나 불행의 참된 원인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것들은 증상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일반적으로 불행한 사람은 불행한 신조를 받아들이고 행복한 사람은 행복한 신조를 받아들인다.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과 불행은 자신의 신념으로 돌린다. 그러나 참된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어떤 것들(즉 음식, 주택, 건강, 사랑, 성공적인 일 등)은 대부분의 남자들에게 필수불가결하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간단한 것들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게 어버이가 되는 것은 긴요한 일이다. 이러한 것들이 없을 때에는 예외적인 사람만이 행복을 달성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즐길 수 있으면서도 아직도 불행을 느끼고 있는 사람은 어떤 심리적이 부적응을 겪고 있다. 그런데 이 부적응은 증상이 심하면 정신병리학자의 도움을 얻을 필요가 있을지 모르지만 자기 자신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만 한다면 보통 경우에는 환자 스스로 고칠 수 있다. 외적인 상황이 그렇게 나쁘지 않는 한 자신의 정열과 관심사가 내적이 아니라 외적으로 향하게 된다면 그는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그런고로 우리들은 교육과 세상에 적응하는 일에 있어서 항상 우리 자신들만 염두에 두지 않도록 할 그런 사랑과 관심사를 얻는 노력이 있어야 하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옥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들 자신을 스스로 감금시키는 그런 정열은 최악의 감옥 중의 하나이다. 그러한 정열 중에서 가장 흔한 정열은 공포, 시기, 죄악감, 자기 연민, 그리고 자기 찬미 등이 있다. 이 모든 일에 있어서 우리들의 욕망은 우리들 자신을 중심으로 모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다른 세계에 대해서는 진정으로 관심이 없으며 있다면 우리들 자신의 이기주의가 외부 세계에 대한 관심사에 의해서 손상이나 당하지 않을 까 하는 것뿐이다. 두려움이라는 것은 인간이 왜 그렇게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으려 하며 자기 자신을 신비의 따스한 옷으로 감싸려고 하는가에 대한 이유가 된다. 가시는 따스한 옷을 찢어 내며 추위는 그 찢어진 속으로 침투해 들어온다. 그리고 늘 온기에 젖어 있는 사람은 처음부터 자기 자신을 단련한 사람보다 더 고통을 겪는다. 더구나 자기 자신을 속이는 사람은 사실이 그렇게 된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알고 있다. 이기주의적인 정열에 대한 큰 결점들 중의 하나는 그 결점들은 인생에 있어서 거의 아무런 다양성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난잡성 때문에 비난 받을 수는 없으나 그는 항상 똑같은 헌신의 대상으로부터 참을 수 없는 지루함을 느끼게 되어 있다. 죄의식을 느끼는 사람은 특별한 자기애로 고생한다. 이 모든 세상에서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자기 자신은 미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런 특수한 자기 중심주의를 권장했다는 것은 전통적인 종교에 있어서 하나의 큰 결함이다. 행복한 사람은 객관적으로 생을 영위하며 자유로운 사랑과 광범위한 관심사를 갖고 있으며 이런 관심사와 애정을 통하여 자기 자신의 행복을 얻고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과 애정의 대상이 되게 하는 사람이다.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행복의 잠재적인 원인이 된다. 그러나 사랑을 요구한다고 해서 그 사랑이 그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크게 말해서 사랑을 받는 사람은 사랑을 주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것처럼 타산적으로 사랑을 베풀려고 하는 것은 무익한 일이다. 왜냐하면 타산적인 사랑은 진정한 것이 아니며 받는 사람도 그렇게 생각하게 마련이다. 자기 우리 안에 갇혀 있기 때문에 불행을 느끼는 사람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가 자신의 불행의 원인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는 한 그는 계속해서 이기주의적이 되며 악순환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다. 그가 그곳에서 빠져 나오려면 그저 의약품으로서 채택된 위장된 관심사에 의해서가 아니라 진정한 관심사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은 정말로 어려운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문제를 올바로 진단한다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있다. 예를 들어 만약 그의 문제가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간에 죄의식 때문에 생긴 것이라면 그는 우선 죄의식을 느낄 이유가 없다는 것과 그의 무의식적인 마음속에다 합리적인 확신을 심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만약 그가 죄의식을 없애 버리는 데 성공한다면 객관적인 관심사가 발생하는 것은 가능하다. 만약 자기 연민이 문제라면 그는 우선 자기의 상황에 있어서 특별히 불행한 것은 없다고 자신을 설득시킴으로써 문제를 다룰 수 있다. 만약 두려움이 문제라면 그는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 전쟁에 있어서 용기는 옛날부터 하나의 중요한 미덕으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로 하여금 전쟁에 나가서 두려움을 모르는 성격을 만들기 위해 많은 훈련이 수행되었다. 그러나 도덕적인 용기와 지적인 용기는 그렇게 많이 연구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들은 그 나름대로 쓸모가 있다. 괴롭지만 하루에 진리 하나를 인정하라. 그러면 그것은 보이 스카우트의 매일매일의 행동처럼 유용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자신이 모든 친구들보다 미덕과 지성에 있어서 우수하지 않을지라도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것을 자신에게 가르쳐라. 이러한 행동을 몇 년 계속하면 현실적인 일을 주저하지 않고 대처할 수 있으며 공포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자기 집착의 병폐를 극복하고 난 다음에 어떤 객관적인 관심사를 가져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은 자신의 천성과 외적인 환경의 자연발생적인 작용에 의해서 결정된다. "우표수집에 몰두할 수 있었으면 좋을 텐데." 라고 미리 말하고 우표수집을 시작하지 말라. 왜냐하면 우표수집이 재미가 없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흥미를 주는 것만이 도움이 된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 몰두하지 않는 것을 배우자마자 진정한 객관적인 관심사가 생겨날 것이다. 행복한 생활은 착한 생활과 대단히 유사하다. 직업적인 도덕가들은 자기 부정을 지나치게 중요시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강조할 곳을 제대로 강조하지 못했다. 의식적인 자기 부정을 사람을 자기 도취에 빠지게 하며 자기가 희생한 것을 생생하게 알게 해준다. 결과적으로 자기 부정은 직접적인 대상과 목적에 있어서 실패를 맛본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자기 부정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미덕을 추구하는 사람이 의식적인 자기 부정에 의해 수행하는 그런 행동을 자발적으로 나오도록 하게 하는 것이다. 나는 쾌락주의자로서 다시 말하면 행복을 선으로 간주하는 그런 사람으로서 이 책을 썼다. 그러나 쾌락주의자의 견지에서 권장되는 행위는 일반적으로 불 때 건전한 도덕가가 권장하는 행위와 같다. 그러나 도덕가는 보편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정신상태보다는 행동을 너무 강조하지 않나 생각한다. 행위가 행위자에 대한 효과는 마음의 상태에 따라서 광범위하게 다르다. 만약 물에 바진 어린아이를 보고 그 애를 구해야겠다는 충동에서 그 애를 구했다면 그 행위는 도덕적으로 나쁜 것은 아니다. 반면에 "어쩔 수 없는 사람을 돕는 것은 미덕의 일부이기 때문에 나는 덕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면 전보다 더 나쁜 사람이 될 것이다. 내가 권장한 생활 태도와 전통적인 도덕가 사이에는 또 다른 미묘한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전통적인 도덕가는 사랑은 이기주의적이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어떤 점에서 이것은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사랑은 어느 정도까지는 비이기주의어야 한다. 만약 어떤 남자가 어느 여가에게 청혼하는 경우에 그녀의 행복을 열렬히 바라고 이와 동시에 그녀가 그에게 자기 부정의 기회를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녀가 그것을 기뻐할지 안한지는 의문이다. 의심할 바 없이 우리들은 우리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행복을 바라고 있으나 그것은 우리들 자신의 행복을 버리고 그러는 것은 아니다. 행복은 아직도 가능한가 나는 친구들과 대화를 해보고 책도 읽어본 결과 행복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혼자 생각해 보기도 하고 외국을 여행해 보기도 하고 정원사와 이야기를 하면서 이러한 견해는 사라지게 되었다. 이 장에서는 내가 나의 인생 과정에서 만났던 행복한 사람들의 예를 들어 보겠다. 행복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그 사이에도 중간 정도의 행복이 있다. 내가 의미하는 두 가지 종류란 평범한 것과 공상적인 것, 동물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 감정적인 것과 지적인 것이다. 이 두 가지 대안 중에서 어느 것을 골라야 하는가는 물론 증명되어야 할 명제이다. 현재 나는 이 명제를 증명하지 않고 다만 기술만 하겠다. 아마 두 가지 종류의 행복의 차이를 기술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하나의 행복은 모든 인간에게 다 개방되어 있고 다른 한 가지 행복은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에게만 개방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일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 직업으로 우물을 파는 사람이 행복에 겨워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키가 굉장히 크고 힘도 대단히 세다. 그러나 그는 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다. 그는 1885년에 투표권을 받고 나서야 이런 제도도 있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그의 행복은 지적인 근원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 또한 그것은 자연법칙, 인간의 완전성, 제7안식교인들의 궁극적인 승리, 아니면 지식인들이 자신의 행복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기타 신조에 기초를 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육체적인 정력, 충분한 일, 암석의 장애물을 제거하는 일에 기초를 두고 있었다. 나의 정원사도 이와 비슷한 사람이었다. 그는 나이가 70이 훨씬 넘었지만 하루종일 일하고 일하기 위하여 언덕 위로 자전거를 타고 16마일을 달린다. 그러나 그의 기쁨의 원천은 끊임없이 솟아 나온다. 그러나 이러한 소박한 기쁨은 우리들과 같이 우수한 사람들에게는 개방되어 있지 않다고 말할 것이다. 이 주장은 빈약한 주장처럼 보인다. 정서적인 내용에 관한 한 나의 정원사의 즐거움과 꼭같은 즐거움은 교육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들에게도 개방되어 있다. 어떤 일을 성취하는 기쁨은 결과적으로 다 성취되지만 처음에는 어려움이 있다. 이것은 자신의 힘을 적당하게 평가하는 것이 행복의 근원이 된다는 중요한 원인이다.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사람은 성공을 하면 언제나 놀라고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사람은 실패에 의하여 자주 놀란다. 전자의 놀라움은 유쾌한 것이고 후자의 놀라움은 불유쾌하다. 그런고로 지나치게 자만심을 갖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오늘날 가장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 중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과학자이다. 과학자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들은 자신의 일로부터 너무나 깊은 만족을 얻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식사를 할 때도 즐겁고 결혼할 때도 즐겁다. 예술가들이나 문학가들은 자신의 결혼 생활이 불행하다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옛날의 집안에서의 행복을 여전히 누리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현대세계에서 과학은 발전하고 있으며 강력하며 과학의 중요성은 과학자 자신들뿐만 아니라 일반일들에게도 의심은 받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복잡한 감정을 가질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단순한 감정은 장애물을 만나지 않기 때문이다. 감정의 복잡함은 마치 강물 속의 거품과 같다. 그것은 잔잔하게 흘러가는 물을 파괴하는 장애물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과학자의 생활에서는 행복의 모든 조건이 실현된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도로 이용하고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일반일들에게도 중요한 것처럼 보이는 결과를 성취한다. 이런 점에 있어서 과학자들은 예술가들보다 더 운이 좋다. 일반 사람들이 그림이나 시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들은 그것이 좋지 않은 시이거나, 아니면 나쁜 시라고 결론을 내린다. 그들이 상대성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들은 자신의 교육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따라서 아인슈타인은 영광을 누리는 반면에 최고의 화가들은 다락방에서 굶어 가고 있는 경우가 없지 않으며 아인슈타인은 행복하지만 화가들은 불행하다. 자기들과 함께 사귀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차가운 세상을 잊어버리지 않는 한 일반사람들에게서 의혹의 눈초리에 대항하여 계속 자기 주장을 하는 생활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과학자들은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이 필요 없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의 동료를 제외하고는 누구에게서나 좋게 생각되어지기 때문이다. 이와는 반대로 예술가는 멸시를 당하느냐 천한 존재가 되느냐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할 괴로운 입장에 있다. 그의 재능이 일류라면 이 불행 중에서 하나를 얻게 된다. 다시 말해서 그의 재능을 사용한다면 전자의 것을 초래하게 되고 재능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후자의 것을 얻게 된다. 이것은 언제나 항상 그런 것은 아니었다. 훌륭한 예술가가 젊었을 때에도 좋게 받아들여질 때가 있었다. 율리우스 2세는 미켈란젤로를 학대했는지는 몰라도 그가 그림을 그릴 수 없다고 결코 생각해 보지 않았다. 현대의 백만장자는 나이가 많은 미술가들에게 돈을 쓰고 있으나 그들의 일이 자기의 일처럼 중요하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 이것은 미술가들은 일반적으로 과학자들보다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우리들의 기계 시대에 있어서는 기능공들이 전보다 기쁨을 맛보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이 관례적이다. 나는 이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날의 기능공은 중세기의 기능공과는 아주 다른 것들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기능공은 기계 경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고 아주 긴요하다. 기능공 중에는 과학 기계와 까다로운 기계를 만들어 내는 기능공도 있고 도안사도 있고 비행기 기계공, 운전수, 그리고 무한대로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는 많은 기능공들이 있다. 비교적 원시적인 사회에서 농업 노동자와 농부들은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는 자동차 운전사나 기관수만큼 행복했다. 자기 땅을 경작하는 농부의 일은 여러 가지로 다양하다. 그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거두어 들인다. 그러나 그는 자연의 힘에 의존하며 그 의존을 의식하고 있다. 이에 반하여 현대의 기계를 다루는 사람은 힘을 의식하고 있으며 인간이 자연의 힘의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물론 최소한의 변화만 있을 뿐 반복해서 기계를 움직이는 많은 기계공에게 자기가 하는 일은 흥미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일이 흥미가 없어지면 없어질수록 기계로 일이 수행될 가능성이 더 많아진다. 기계 생산의 궁극적인 목적은 흥미가 없는 것들이 기계에 의해 행해지고 인간은 다양성과 창조력을 요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는 농업이 도입된 이후로 일은 덜 지루하고 덜 우울해질 것이다. 인간은 농업을 받아들이면서 기아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 단조로움과 권태를 참기로 결심했다. 인간이 사냥에 의해서 음식을 얻었을 때 그 일은 하나의 기쁨을 가져다 주었다. 이런 현상은 부유한 사람들이 오락을 위해 이 옛날의 일을 아직도 추구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농업의 도입과 더불어 인색함, 비참, 그리고 광기의 장구한 시기에 들어갔으나 기계에 의해서 이러한 것들로부터 벗어나고 있다. 감상주의자들이 흙과 접촉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하디의 소설에 나오는 철학적인 농민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모두가 다 좋은 일이다. 그러나 시골의 모든 젊은이들의 소망은 바람과 날씨의 노예고 인간적인 분위기로 들어갈 수 있는 도시에서 일자리를 찾는 것이다. 친교와 협력은 보통 인간의 행복에 있어서 긴요한 요소이며 이것들은 농업에 있어서 보다는 공업에서 더 얻을 수 있다. 살아 있는 가장 유명한 수학자들 중의 한 사람은 그의 시간을 수학과 우표수집으로 나누어 쓰고 있다. 나는 후자는 전자가 잘 풀려 나가지 않을 때 위안을 준다고 생각한다. 숫자의 이론에 있어서의 명제를 증명하는 것은 우표수집이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슬픔은 아니다. 또한 수집될 수 있는 것은 우표만이 아니다. 오래된 도자기, 콧담배갑, 로마의 동전, 활촉, 그리고 부싯돌 연장 등을 생각해 보면 기쁨을 가져다 주는 분야가 얼마나 많은가를 상상할 수 있다. 우리들 중의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것에서 즐거움을 얻기에는 너무나 나이가 들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들은 이 모든 것을 어렸을 때 경험했기 때문에 어른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전혀 잘못된 생각이다. 다른 사람에게 아무런 해를 가하지 않는 즐거움은 어느 것을 막론하고 가치가 있는 것이다 야구팬의 그 정열적인 기쁨을 다시 생각해 보아라. 그는 탐욕스럽게 신문을 들여다보며 라디오는 그에게 강렬한 전율을 맛보게 한다. 나는 미국의 중요한 문인 중의 한 사람을 처음으로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공교롭게도 가장 결정적인 야구 경기의 결과가 발표되고 있었다. 그는 나와, 문학과, 이 세상의 모든 슬픔을 다 잊어버리고 그가 좋아하는 팀이 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을 듣고 소리를 질렀다. 일시적 유행이나 취미는 많은 경우에 있어서 근본적 행복의 근원은 아니지만 현실에서 벗어나고 직면하기에 너무나 어려운 어떤 고통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수단이 된다. 사람에 대한 우정 있는 관심사는 애정의 한 형태이긴 하나 그것은 소유욕이 강하여 항상 강력한 반응을 요하는 그런 형태는 아니다. 후자의 형태는 왕왕 불행의 근원이 된다. 행복에 기여하는 그런 애정은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특징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 이러한 태도를 갖고 있는 사람은 행복의 근원이 될 수 있으며 서로 친절을 베풀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이러한 관계는 자신의 이해관계와 애정을 둘 다 만족시킬 수 있다. 그는 배은망덕 때문에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그러한 일을 겪는 일이 거의 없으며 겪는다 해도 거의 주목하지 못한다. 다른 사람의 신경을 건드려 화를 내게 할 수도 있는 그런 특징들도 그에게는 부드러운 오락의 원천이 될 것이다. 그는 노력을 들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오랫동안 애를 써도 달성하기에 힘든 결과를 달성할 것이다. 그는 자신이 행복하기 때문에 유쾌한 친구가 될 수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그의 행복을 증가시킨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야 한다. 그것은 의무감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의무감이라는 것은 직장에서나 필요한 것이지 인간관계에서는 불쾌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그리고 아무런 노력도 들이지 않고 사람들을 좋아하는 것은 개인적인 행복의 무든 근원 중에서 아마 가장 큰 것일 것이다. 조금 전에 나는 이른바 사물에 대해서 우정 있는 관심사를 보여주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이것은 아마 무리한 말처럼 들릴 것이다. 사물에 대해서 정다움을 느낀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질학자가 바위에 대해서 갖는 관심이나 고고학자들이 유적에 대해 갖는 관심은 우정과 비슷한 데가 있다. 이러한 관심사는 개인과 사회에 대한 우리들의 태도에 있어서 하나의 요소가 되어야 한다. 우정 있는 사물보다는 적대적인 사물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가능하다. 거미의 서식지에 관한 사실을 수집하는 이유는 그가 거미를 미워한 나머지 거미가 거의 없는 곳에서 살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심사는 지질학자가 그의 바위에서 얻는 만족과 같은 것은 아니다. 사물에 대한 관심사는 사람들에 대한 정다운 태도보다는 덜 중요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매우 중요하다. 세상은 넓고 우리들의 힘은 제한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들의 개인적인 상황과 밀접한 관계에 대해서 인생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인생으로부터 요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인생의 행복은 이렇다. 즉 되도록이면 광범위한 행복을 가져라. 자신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들과 물건들에 대해서 되도록이면 적대감보다는 우정 있는 태도를 지녀라. 침대 속의 제왕 찰스 램(1775__1834):영국의 수필가, 비평가. 낭만주의 시대에 있어서의 위대한 서간문 작가 중의 한 사람이며 날카로운 문학비평가로서도 활약. 그의 대표작으로 "일리아의 수필(Essays of Elia)"이 있음. 나는 지난 몇 주일 동안 신경성 열병으로 꼼짝 못하고 있다가 이제야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다. 그러니 독자들이여, 나에게서 건전한 결론은 아예 기대하지 말라. 나는 독자들에게 그저 병자의 꿈만을 제공할 뿐이다. 그리고 사실 병의 상태는 전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즉 사람이 대낮에 커튼을 치고 침대에 누워서 태양 밑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을 잊어버린다는 것, 다시 말해서 희미한 맥박을 제외하고는 인생의 모든 움직임에 무감각해진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만약 왕이 누리는 고독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병자의 침대이다. 병자야말로 침대에서는 왕의 행세를 하고 있다. 침대에 누워 있는 병자만큼 무절제하게 변덕을 부리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는 자기가 마치 왕인 양 베개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고, 이리 던지기도 하고 저리 던지기도 하며, 납작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환자)는 대자로 누웠다가, 몸을 반으로 굽혔다가, 다시 비스듬히 눕기도 하면서 침대에서 위치를 바꾸는 것이다. 네 개의 커튼 안에서 그의 힘은 절대적이다. 그는 이 곳에서는 모든 것을 좌지우지한다. 병은 인간 자신의 차원을 자기에게로 확대시켜 준다. 그는 자기 자신의 독점적인 대상이다. 그는 최고의 이기주의를 자신의 유일한 의무라고 생각한다. 환자는 최고의 이기주의를 마치 십계명이 써 있었던 서판으로 생각한다. 그에게는 병이 나아야겠다는 생각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얼마 전에 이 환자는 자기의 가장 친한 친구를 망칠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는 법률소송사건에 관계하고 있었다. 그(환자)는 이 사람의 부탁을 받고 시내에서 50마일 떨어진 곳에 가서 증인들의 기억을 새롭게 해주고 변호사를 격려할 예정이었다. 이 사건의 재판은 어제 있을 예정이었으나 그는 재판의 결정이 어떻게 나올 것인지에 대해서 전혀 무관심이었다. 그는 어떻게 하면 병이 나을 것인가 하는 생각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는 병이라는 강력한 갑옷을 입고 있으며 몸은 고통이라는 무딘 가죽으로 덮여 있다. 그는 자기 자신을 동정하면서, 그리고 신음하면서 침대에 누워 있다. 그리고 자기가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창자가 녹아 나는 것 같다. 그는 자기 처지를 보고 울음을 터뜨려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 뭔가 좋은 일을 할 수 없는가 항상 궁리를 하고 자질구레한 전술까지도 연구해 낸다. 그는 자기의 아픈 머리, 그리고 통증에 대해서 그것이 마치 자기에게서 분리된 것처럼 생각한다. 아니면 그는 길고 끈적끈적하고 여윈 손가락들을 동정한다. 그는 몸 전체를 동정한다. 그는 자기 자신을 동정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 동정하는 일을 자기보다 더 잘 수행하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고 희미하게 느끼고 있다. 아무리 방문객이 많이 와도 그는 이들이 자신의 비극을 알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기를 위로해 주고 고깃국과 강장제를 가져다 주는 그 늙은 간호부만이 그를 즐겁게 해준다. 그는 세상일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감각하다. 그는 사람들이 어떠한 직업을 갖고 있는가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없다. 의사가 매일 찾아줄 때에만 그는 희미하게 직업에 대해 생각한다. 그는 또 자기 집안의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에 대해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집안 일에 대해서 무엇인가 위로를 느낀다 해도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지 못하고 있다. 그는 아무것도 알려고 하지 않고 어떤 일에 대해서도 생각하려고 하지 않는다. 하인들이 계단 아래위를 밟으면서 오르락내리락할 때 그는 귀를 곤두세우기는 하지만 그들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오르락내리락하는가에 대해서는 일부러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 누구누구의 심부름을 하고 있으려니 생각하는 것이다. 사물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려고 한다면 그것은 그에게는 부담이 될 것이다. 그는 그저 추측하는 일만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희미하게 눈을 뜨지만 "거기 누구죠?" 라는 말을 하지도 않은 채 다시 눈을 감는다. 그는 자기에게 병문안을 하러 온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일반적인 생각을 하고 속으로 기뻐하지만 그 병문안자가 누구인지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조용히 누워서 자신이 이 병실의 주인임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병에 걸린다는 것은 군주의 특권을 즐기는 것과 같다. 몸이 아플 때에는 간호원들은 조용조용히 걸어다니고 말없이 거의 눈으로만 간호를 하지만 병이 좀 차도가 있을 때에는 격식을 차리지 않고 아무렇게나(예를 들면 문을 쾅쾅 닫거나 아니면 문을 열어 두는 것 등이다) 행동을 한다. 내 생각에 침대에 누워 있다가(나는 이 침대를 왕좌라고 부른다)차도기에 앉는 그 안락의자로 자리를 옮긴다면 그것은 폐위를 당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병자가 병의 차도가 있을 때에는 다시 옛날의 상태로 돌아간다. 그가 최근까지 차지하고 있었던 그 방, 그리고 그 안에서 여러 가지의 방자한 생각을 했던 그 방은 하나의 평범한 침대로 변하는 것이다. 병을 하나의 당당한 것으로 보이게 만들었던 그 모든 것, 집안 식구들을 잠잠하게 했던 그 기간, 사막에서 느낄 수 있는 고요함, 말없이 움직였던 하인들, 사람들의 얼굴에 나타나는 위로의 모습 등과 작별하게 되면 병자는 자기 자신의 본래의 세계로 돌아간다. 나는 손에 대지 않았던 그 시시한 세상일에 다시 관심을 갖게 되고 서서히 활동을 할 생각을 갖게 되고 그 터무니 없는 꿈으로부터 손을 떼게 된다. 나의 우울증의 상태도 서서히 사라진다. 그리고 내가 상상의 날개를 폈던 그 넓은 영역도 함 뼘의 작은 장소로 변해 버리는 것이다. 램프를 든 소년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1850__1894):영국의 대표적인 소설가, 시인, 수필가. "보물섬", "유괴 당한 사람", "지킬 박사와 하이드" 등의 작품으로 유명함. 이 소년들은 매년 가을마다 동부 어촌에 모였다. 이곳은 젊은 신사들의 기분 전환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 같았다. 집이 있는 거리가 한두 개 있었는데 대부분은 타일이 깔려져 있었다. 멋진 나무들이 목사관(목사의 집)과 그의 집을 뒤덮었고 거리를 그늘진 골목길로 만들었다. 많은 작은 정원들이 꽃들로 환히 빛나고 있고 그물들이 말리어지고 있었다. 어부들의 부인들은 뒷마당에서 입씨름을 하고 있었으며 생선 냄새, 해초 냄새가 바람결에 풍겨 왔다. 어떤 상점은 골프공과 막대기 끝에 붙은 사탕을 팔고 있었다. 또 다른 상점에서는 그 놀랄 만한 담배와, 깜짝 놀랄 만한 그림 때문에 나에게는 귀중한 '런던 신문'과 그들의 암시적인 이름들 때문에 나에게는 귀중한 몇 권 안되는 소설들을 팔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이러한 것들이 이 도시의 내용물들이었다. 만약 독자가 소년이라면 이러한 곳에서 여름을 보내도 손해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원하면 골프도 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일을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또한 이곳에서는 습기에 의해서 녹색이 된 이끼가 낀 어떤 음침한 계곡 사이로 숨어 버릴 수 있을 것이다. 소년들이 이런 곳에 늘 찾아온다. 그렇지 않으면 독자들은 우리들의 낚시 일행에 참가할 수 있다. 우리들은 마치 북양가마우지와 같이 앉아서 서로의 머리 위에서 낚시질을 했기 때문에 낚싯줄의 엉켜서 포드리라는 고기를 많이 놓쳤다. 그러나 포드리는 식탁에서는 진미로 생각되지 않는다. 독자는 지금 우리가 애처롭게 여름이라고 부르는 그 날씨에 해수욕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강풍이 불어서 모래가 독자들의 드러난 몸을 때릴 것이며 큰 파도의 거품이 독자들을 덮칠 것이다. 독자는 또한 봄에 바닷물이 나갈 때 개펄에 우뚝 솟은 바위를 탐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로빈슨 크루소 식의 생활을, 다시 말하면 야외에서 손에 닿는 것은 아무것이나 먹고 움막을 만들고 해산물로 불을 지피면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기뻤던 많은 기억들과 우울했던 기억들이 뒤범벅이 된다. 예를 들어 캔티만에서 스스로 목에 상처를 내었던 어느 어부의 부인의 경우가 그것이다. 사람들이 말없이 달구지를 호위하고 가는데 그 달구지 속에는 목에 상처를 내었던 부인에 목에 붕대를 감고 있었고 그 붕대는 피투성이였다. 보기에도 끔찍한 장면이었다. 그녀에 대한 생각은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어느 작은 감옥에 투옥되었는데 나는 그녀가 거기서 죽었는지 알아보지 않았다. 여하튼 그것은 음침한 비극이었다. 이렇게 여러 해가 흘렀어도 그 가련한 미친 죄인이 나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9월이 되어 개학이 임박해지고 저녁이 되어 어두워지자 우리들은 각자가 램프를 들고 자신들의 마을로부터 나가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그 램프를 벨트로 허리에다 차고 그 위에다 오버를 입었다. 이 램프는 부풀은 깡통 냄새가 났다. 우리들은 이 램프 때문에 항상 손가락을 데었으나 램프가 제대로 타 본 적은 결코 없었다. 이 램프가 주는 쾌락은 그저 공상적인 것이다. 그러나 큰 오버를 입은 소년들은 이 램프라면 사족을 쓰지 못했다. 어부들은 램프를 배에서 썼는데 우리들은 이 어부들한테서 힌트를 얻었다. 경찰들은 허리에다가 램프를 착용했는데 우리들은 그들을 쉽게 모방했다. 그러나 우리들은 경찰들과 같은 태도는 취하지 않았다. 여하튼간에 램프에 대해서 총 결산을 해보면 이 램프에서 오는 쾌락이라는 것은 상당한 것이었다. 어린 소년이 오버 속에다 램프를 넣어 가지고 다닌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했다. 두 소년들이 만나는 경우에는 "너 램프 있니?"하며 큰 관심을 갖고 물어 보았다. 그러면 만족스럽다는 듯이 "그래."라고 말하곤 했다. 이것은 사실상 필요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유럽산 족제비처럼 냄새를 맡지 않으면 그 사람이 램프를 갖고 다니는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열 명이 타는 범선에 서너 명의 소년들이 가끔 올라가는 경우가 있다. 선실은 대개 문이 잠겨져 있기 때문에 그들은 머리 위에서 휘파람 소리가 나는 움푹 들어간 장소를 찾아 웅크리고 앉아 있곤 했다. 그러나 그들의 코트 단추를 벗겨 보면 램프가 들어 있었다. 밤의 거대한 홀 밑에서 토스트를 구워 먹으면서 이 운이 좋은 젊은이들은 어선 속에 웅크리고 앉아서 한담을 늘어놓곤 했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는 정열적이고 천진난만하며 대단히 어리석고 또 어리다. 여하튼간에 그들의 이야기는 분위기를 북돋우는 데 도움을 준다. 그리고 이러한 모임은 램프를 지참하고 다니는 사람들의 생애에는 하나의 우연적인 사건이다. 이 다시없는 행복의 요체는 오버 속에다 램프를 넣고 캄캄한 밤중에 혼자서 걸어가면서, 자기 마음속에 자기만이 램프를 갖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기뻐하고 속으로 노래까지 부르는 데 있는 것이다. 슬픈 생존 존 버로우(1837__1921):미국 뉴욕 태생의 수필가로서 많은 수필을 남겼으며, 그 가운데에서도 이 글은 1895년에 쓰여진 작품으로서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임. 나는 어느 날 아침 붉은 다람쥐가 작은 히코리(북미산 호두과의 식물)에서 호두를 따가지고 그것을 강둑에 있는 자기의 집으로 가지고 가는 것을 보았다. 나는 이 야생동물들의 생활의 끊임없는 공포와 걱정의 상태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많은 실질적이고 가상적인 위험에 둘러싸여져 산다는 것은 어떨까 하는 것을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그 다람쥐는 나무에서 쏜살같이 나와서 호두를 물고 가장 위태로운 방법으로 아래로 달려가곤 했다. 집으로 가는 도중에 한번 더 관찰하기 위해 또 다른 나무 줄기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가까운 곳에는 위협이 없다는 것을 알고 붉은 다람쥐는 자기집 속으로 곤두박질하듯이 달려갔다가 다시 나타났다. 호두를 또 따려고 가는 도중에 붉은 다람쥐는 두번째 나무 위로 다시 올라가 관찰을 하는 것이었다. 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호두가 열린 그 나무 위로 마치 팽이가 돌아가듯 날쌔게 올라가서 호두를 물고 다시 내려왔다. 내가 창가에서 보고 있었던 이 30분 동안에 붉은 다람쥐는 한 번도 실패를 하지 않았다. 붉은 다람쥐는 그저 '낚아채어 달아나는' 그런 방법을 쓰고 있었다. 붉은 다람쥐에게는 항상 "경계하라, 경계하라", "고양이다", "매다", "부엉이다", "총을 든 소년이다"라고 그 무엇이 말해 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날은 어느 쓸쓸한 겨울날이었다. 차갑게 휘몰아치는 눈보라의 그 첫 눈송이가 막 떨어지고 있었고, 그 다람쥐는 열심히 자신의 수확물을 모으고 있었다. 이 다람쥐가 얼마나 서두르고 불안과 초조에 싸여 있었던가를 눈으로 보니 참으로 안쓰러웠다. 나는 밖에 나가 도와주고 싶었다. 그 호두는 보잘것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 다람쥐가 그 속에 들어 있는 알맹이를 얻기 위해 그 호두들을 쏠고 또 쏠 것을 생각해 보았다. 나의 어린 남자애는 문 곁의 벽에 살고 있는 다람쥐를 동정한 나머지 호두를 까서 다람쥐가 앉아서 편안히 먹을 수 있는 작은 나무 선반 위에 놓았다. 얼룩 다람쥐는 붉은 다람쥐보다 선견지명이 있었다. 붉은 다람쥐는 이따금씩 생각날 때에 불규칙적으로 저장을 한다. 그래서 그 음식은 겨울까지 가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붉은 다람쥐는 일년 내내 활동을 해야 한다. 겨울의 눈이 오기 오래 전에 얼룩 다람쥐는 매시간마다 자기 집으로 호두와 메밀들을 한아름씩 며칠을 두고 물고 왔다. 그러기 때문에 얼룩 다람쥐의 음식은 4월까지 가는 것이다. 내가 믿기에 얼룩 다람쥐는 겨울에는 집 밖에 나올 필요가 없다. 그러나 붉은 다람쥐는 요행을 더 믿어야 한다. 붉은 다람쥐는 정신을 차리고 경계를 하지만 가끔 고양이에게 붙잡힌다. 나의 고양이 닉은 붉은 다람쥐의 살냄새를 잘 안다. 나는 또 붉은 다람쥐가 검정 고양이에게 사로잡혀 삼켜지는 것을 보았다. 뱀은 붉은 다람쥐를 잡으려고 숨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들은 이 야생동물들의 끊임없는 위험에 대해서 거의 아무것도 모른다. 나의 고양이 닉보다 더 까맣고 더 무시무시한 고양이가 야생동물들을 잡아먹으려고 숨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나라의 초기 개척자들도 인디언들로부터 위와 유사한 불안을 경험했음에 틀림없다. 오늘날 아프리카의 많은 부족들이 다른 적대적인 부족들을 끊임없이 두려워하면서 살고 있을 것이다. 유사 이전의 우리 조상들도 이와 유사한 두려움을 가졌을 것이다. 또한 갓난아기나 아이들은 젊은이나 어른들에 비해서 더 많은 공포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갓난아기는 낯선 사람들을 항상 두려워하고 있다. 가축에 있어서도 어린것들은 늙은 것들보다 두려움이 더 많다. 어미소가 숲속이나 외딴 들판에 숨겨둔 한두 살 먹은 송아지가 농장의 소년들에게 발견되면 광적으로 울부짖으며 소년에게 달려든다. 이렇게 두려움을 표시한 후에 송아지는 대개는 어미소 곁으로 간다. 야생동물들은 항상 경계를 취하고 있다. 그런데 야생동물들 중에 내가 이해가 안가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물자라다. 나는 이 동물이 왜 그렇게 공포심이 많은지 이해가 안 간다. 물자라의 적은 무엇인가? 이 자라에게 달려드는 적은 내가 알고 있기로는 없다. 그러나 이 자라들이 통나무나 바퀴 위에 앉아서 햇빛을 쪼일 때 그들은 너무나도 경계하고 의심스런 눈초리를 하고 있다. 사람들이 만약 총으로 쏘아서 잡을 수 있는 거리에 가까이 다가가면 자라는 물 속으로 미끄러져 가버리고 만다. 반면에 육지에 사는 자라는 조금도 두려워하는 흔적이 없다. 이 자라는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가면 걸어가다 잠깐 쉰다. 그리고 사람들이 발이나 지팡이로 찌를 때까지 껍질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육지에 사는 자라에게는 아무런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물자라는 마치 이 세상의 모든 생물들이 자기를 찾고 있는 것처럼 두려워하고 있다. 사람들은 스컹크가 두려움이 없는 동물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농장의 개만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동물이 이 스컹크에게 길을 비켜 준다. 모든 동물은 스컹크의 무시무시한 무기를 두려워한다. 사람들이 만약 황혼의 들판에서 스컹크를 만나면 스컹크가 사람들에게 길을 비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스컹크에게 길을 비키는 확률이 더 많다. 심지어는 사람들을 추격하기도 한다. 그것은 사람들이 도망가는 것을 보는 재미 때문이다. 스컹크는 유쾌한 기분으로 사람들에게 대담하게 다가온다. 우리들이 잘 아는 동물 중에서 너구리가 가장 용감한 동물일 것이다. 너구리가 지금까지 백기를 드는 것을 누가 본 적이 있는가? 너구리는 아무리 승산이 없어도 침착하게 대든다. 나는 너구리 한 마리가 네 명의 사람과 두 마리의 개에게 둘러싸여 있던 장면을 목격했는데 잠시도 마음의 침착함을 잃거나 두려움을 표시한 적이 없었다. 여우는 야생적이고 의심이 많은 동물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여우는 사람을 갑자기 만나거나, 덫에 걸리거나, 사냥개에게 쫓기었을 때에는 두려움이 아니라 창피와 죄의식을 나타내고 있다. 이 경우에 여우는 굴욕감에 압도되어 몸집이 줄어드는 것같이 보인다. 여우는 자신이 늙은 도둑이라는 것을 알고 그 때문에 당황해 하고 있는 것일까? 여우에게는 사람 외에는 적이 없다. 그래서 사람의 꾀에 넘어갔을 때에는 창피를 얼굴에 나타낸다. 토끼의 마음속에는 두려움이 항상 자리를 잡고 있다. 토끼의 툭 튀어나온 눈을 보라. 토끼는 마치 새처럼 앞뒤로, 그리고 좌우로 볼 수 있다. 토끼를 잡으려고 하는 동물들 중에는 여우와 부엉이가 있고, 사냥꾼들도 뒤쫓고 있다. 그러므로 토끼가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무기는 속력밖에 없다. 토끼는 자신을 잘 은폐한다. 북부지방의 토끼는 무성한 숲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토끼가 넓은 빈터를 지나갈 때에는 마치 생쥐처럼 빨리 지나간다. 생쥐는 매가 덮칠 위험에 봉착하고 있으며 토끼는 흰 부엉이한테, 아니면 다른 부엉이한테 덮쳐질 위험에 직면해 있다. 내 친구 하나는 빈 들판을 통해서 어느날 아침 토끼의 발자국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한 지점에 이르러 토끼에게 날개가 달린 듯이 발자국이 끝나 있었다. 마지막 발자국 주변에는 몇 개의 평행선들이 눈 속에 나 있었는데 이것은 큰 부엉이가 이 토끼를 덮쳐 가지고 갈 때에 날개가 만든 자국들이었다. 이 평평한 들판에 이렇게도 비극적인 일이 쓰여져 있을 수 있을까? 토끼는 기지가 없다. 나는 어렸을 때 토끼 한 마리를 찾아서 몇 야드 떨어져 있었던 개가 보는 앞에서 그냥 놓아준 적이 있었다. 그 가련한 동물은 마음의 침착을 잃고 그 서투른 개에게 곧 붙잡혔다. 언젠가 어느 사냥꾼은 토끼가 랜젠리 호수의 얼음 위를 뛰어가는 것을 보았다. 이윽고 살쾡이가 쏜살같이 따라왔다. 토끼는 자기가 추적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자마자 어리석게도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이것은 살쾡이에게 커다란 이점을 주었다. 추격을 당하던 토끼는 곧 잡히고 말았다. 나는 한 때 이와는 반대되는 결과를 가져온 붉은 다람쥐와의 실험을 목격한 바 있었다. 한 소년이 철사덫으로 다람쥐를 잡았는데 그에게는 크기가 여우만 하고 동작이 날쌘 개가 한 마리 있었다. 이 개는 나무만 없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다람쥐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이 소년은 우리 안에 다람쥐를 넣어 가지고 빈 들판의 한복판으로 나갔다. 개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나 있는 듯이 소년의 주위를 깡총깡총 뛰면서 따라왔다. 소년이 다람쥐를 놓아주었을 때 개는 몇 야드 떨어져 있었다. 드디어 오랫동안 목격했던 가장 흥미 있는 경주가 시작되었다. 개나 다람쥐는 아 경주를 농담으로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으나 구경꾼들은 허리를 쥐고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다람쥐는 조금도 혼란된 기색을 보여주지 않았다. 다람쥐는 뛰는 데에 있어서는 개에게 필적이 안되었다. 다람쥐는 이 사실을 3초도 안되어서 알아냈다. 그래서 다람쥐는 전략으로 이겨야겠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다람쥐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나무에 지그재그식으로 뛰어갔다. 개가 다람쥐를 틀림없이 잡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에 다람쥐는 사라져 버렸다. 개는 어리둥절해졌다. 다람쥐는 이리저리 몸을 피했다. 개는 놀라고 짜증이 나 보였다. 그러자 다람쥐는 개에게 들키기 전에 나무를 향해 세 번 점프를 하였다. 우리들은 허리가 끊어질 정도로 웃었다. 다람쥐가 이길 것이라는 것은 명백했다. 개는 더 한층 노력을 하는 것 같았다. 다람쥐는 한 번 더 뛰어 나무 위에 올라갔다. 개는 당황하고 염증을 느꼈다. 개는 자신의 감각을 믿을 수가 없었다. '빈터에서 다람쥐 한 마리를 잡지 못하다니! 가서 잡아야지.' 개는 분하고 화가 나서 자기 머리 위의 높이로 나무로 뛰어 올라가 나무껍질을 물어뜯었다. 이 소년의 말에 의하면 그 후부터 개는 붉은 다람쥐를 잡는 것에 대해서 자랑하는 것 같지 않았다. 투우와 비극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__1961):미국의 유명한 소설가로서,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무기여 잘 있거라", "태양은 또다시 떠오른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등이 있으며, 1954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함. 여기에 실린 글은 주간지 "토론토 스타"에 실린 수필임. 파리의 봄은 모든 것이 약간 지나치게 아름다웠다. 마이크와 나는 스페인에 가기로 결정했다. 스트레이터는 우리들에게 스티릭스 식당의 메뉴의 뒷면에다 스페인의 그름을 잘 그려 주었다. 또한 그는 이 메뉴에다 어린 돼지 로스구이가 별미인 마드리드의 식당 이름과 투우사들이 살고 있는 비아 산 제로니모의 하숙집의 이름을 적어 주었다. 우리들은 이 메뉴와 낡은 옷으로 완전히 준비를 한 다음에 스페인으로 떠났다. 우리들의 목적은 단 한 가지, 투우를 구경하는 것이었다. 우리들은 어느날 아침 파리를 떠나 그 다음날 12시에 마드리드 기차역에서 내렸다. 우리는 그날 오후 4시 30분에 투우를 처음으로 구경했다. 표를 얻는 데에 두 시간이나 걸렸다. 마침내 우리들은 암표상한테서 25페스타씩 각각 주고 표를 구입했다. 투우장은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우리들의 자리는 링사이드의 첫줄이며, 투우들이 나오는 바로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었다. 우리는 암표상에게 12페스타를 더 줄테니 눈에 잘 띄는 자리를 얻을 수 있는지 물어 보았다. 그는 그런 자리는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들은 두 장에 50페스타를 지불한 다음 그 표를 주머니에 넣고 퓨에르타 델 솔 근처에 있는 큰 카페 앞에 있는 인도에 나와 있었다. 표를 주머니에 넣고 스페인에서 첫 하루를 카페 앞에 앉아 있는 것은 매우 재미있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비가 오나 개거나 간에 한 시간 반 동안 투우를 구경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플라지 더 토소라는 이 투우장은 어떤 들판의 거리 끝에 있는 황갈색의 큰 벽돌 원형극장이었다. 노랗고 붉은 스페인 깃발이 그 위에 나부끼고 있었다. 입구 근처에는 거지들의 떼가 있었다. 남자 어른들은 붉은 질그릇병 속에 든 물을 팔고 있었다. 아이들은 부채와 지팡이, 구워서 소금을 친 복숭아를 팔고 있었다. 군중들은 유쾌하고 즐거워했지만 모두가 출입구로 열심히 밀고 들어가고 있었다. 말은 탄 민간 경비원들은 가죽 모자를 곧바로 쓰고 기총을 허리에 찬 채 마치 조상처럼 말 위에 앉아 있었고 군중들은 물결처럼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투우장 안에서 사람들은 이야기를 하면서 특별 관람석에 있는 여자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어떤 남자들은 더 잘 보기 위하여 망원경을 갖고 있었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좌석을 찾았고 군중들은 투우장을 떠나 콘크리트로 된 좌석의 열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투우장은 원형으로 되어 있었고 바닥은 모래가 있었다. 링 주위는 사람이 뛰어넘을 수 있을 정도로 높은 나무판대기로 된 벽이 있었다. 바레리아라고 불리우는 이 나무 판대기벽과 좌석의 첫 줄 사이에는 좁은 길이 나 있었다. 원형경기장 안에 있는 좌석은 만원이었으며 경기장은 말끔히 청소되어 있었다. 중세기의 복장을 한 네 명의 의전관들이 일어나서 나팔을 불자 경기장의 군중들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자 링 저쪽 끝에 있는 입구에서 검은 비로드 옷을 입고 풀이 뻣뻣한 칼라를 한 네 명의 기수들이 말을 타고 햇볕이 빛나는 경기장 안으로 들어왔다. 양지바른 곳에 있는 사람들은 열기 속에서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네 명의 기사들 뒤에는 투우사들의 행렬이 뒤따르고 있었다. 그들은 입구에서 모두 대오를 짜서 행진을 할 준비를 하고 있었고 음악이 나오기 시작하자 안으로 들어왔다. 앞 열에는 세 명의 에스파다스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이날 오후에 여섯 명의 황소를 죽이는 일을 떠맡을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짙은 수를 놓은 노랗고 까만 복장과 금으로 된 자수, 어깨 망또, 재킷, 셔츠, 칼라, 무릎까지 내려오는 바지, 그리고 분홍색 스타킹을 착용한 그 낯익은 투우사의 옷을 입고 있었다. 투우할 때에 그 분홍색 스타킹의 어울리지 않는 모습은 항상 나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세 명의 투우사 뒤에는 팀들이 행진했다. 그들은 투우사들과 똑같이 옷을 입었지만 그들만큼 화려하게 입지는 않았다. 투우사들은 넓고 납작한 모자를 쓰고, 크고 묵직한 갈색의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마치 창문을 버티는 긴 막대기와 같은 창을 갖고 있었다. 이들의 뒤를 유쾌한 마구를 단 노새팀들과 투우장의 종업원들이 따라갔다. 투우사들은 투우장을 가로질러 행진하여 대회장석으로 갔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활보하면서 조금도 과장된 모습을 드러내 보이지 않았다. 그들 모두는 자연스런 우아함과 직업 선수의 약간 구부정한 모습을 띠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로 미루어 보건대 그들은 주요 야구선수단원이 될 수도 있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회장에게 인사를 하고 짙게 수놓은 그 어깨 망또들을 종업원들이 붉은 담에 놓았던 그 투우용 어깨 망또와 바꾸었다. 우리들 바로 밑에는 오후에 싸울 세 명의 투우사들이 담에 기대어 이야기하고 있었다. 한 투우사는 담배를 피웠다. 그는 키가 작고 피부 색깔이 고운, 집시인 지타닐로라는 사람이었는데 금으로 수놓은 굉장히 좋은 재킷을 입고 있었다. "그는 그렇게 기술이 좋지 않아." 나는 옆에 앉아 있던 밀짚모자를 쓰고 틀림없이 미국제일 신발을 신고 있는 젊은이가 말했다. "그러나 그 친구는 황소들을 알고 있어. 그는 위대한 킬러야." "당신은 미국인 아니십니까?" 마이크는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그 젊은이는 씽긋이 웃었다. "하지만 나는 이 투우사들을 알고 있어요. 저 사람은 지타닐로입니다. 아저씨는 그를 보고 싶죠. 통통한 얼굴을 한 애는 취쿠엘로입니다. 그는 투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시민들은 그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그의 옆에 있는 사람은 빌랄타입니다. 그는 굉장한 투우사입니다." 나는 빌랄타를 전에 본 적이 있었다. 그는 창과 같이 곧았고 마치 늑대처럼 걸어다녔다. 그는 관람석에 있는 친구에게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하고 있었다. 그의 광대뼈 위에는 큰 붕대가 접착 테이프로 붙여져 있었다. "그는 말라가에서 황소에 찔렸어요." 라고 그 미국인은 말했다. 경기장에서 투우사들은 그들의 흔들리는 안장에서 곧바로, 그리고 뻣뻣한 자세로 앉아서 그들의 노쇠한 말들을 타고 껑충껑충 뛰고 있었다. 그러자 세 명의 투우사들만 남고 다 링에서 사라졌다. 이 세 명은 붉은 페인트를 칠한 담으로 몰려갔다. 그들의 말은 눈이 하나씩 붕대로 덮인 채 기대어 있었고 창은 벽에 세워 두고 있었다. 비로드 재킷과 흰 주름 칼라가 달린 옷을 입은 두 명의 의전관들이 말을 타고 들어왔다. 그들은 회장석으로 말을 몰아 모자를 벗고 나즈막하게 인사를 했다. 회장석에서 어떤 물건이 하나 던져졌다. 의전관 중의 한 명이 그의 깃털이 있는 모자로 그것을 받았다. "황소 우리를 여는 열쇠입니다." 라고 진 보틀 킵이라는 미국인이 말했다. 두 명의 의전관은 급히 경기장을 가로질러 말을 타고 달렸다. 그들 중의 한 명이 그 열쇠를 토레로 복장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주었다. 이들 두 사람은 깃털이 있는 모자를 흔들며 인사를 하고서 링에서 사라졌다. 큰 문은 닫혀져 빗장이 걸려졌다. 더 이상의 출입구는 없었다. 군중들은 외치면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갑자기 쥐죽은 듯한 침묵이 흘렀다. 열쇠를 가진 사람이 쇠로된 빗장이 있는 붉은 문으로 향하여 가더니 그 빗장을 벗겼다. 문이 확 열려졌다. 그 남자는 문 뒤에 숨었다. 그 문 안은 캄캄했다. 갑자기 황소 한 마리가 머리를 숙이면서 컴컴한 우리에서 경기장 안으로 나왔다. 무게가 1톤 이상 되는 이 황소는 부드럽게 뛰면서 나왔다. 이 황소가 나올 때 태양은 순간적으로 그를 눈부시게 하는 것 같았다. 그는 마치 얼어붙은 것처럼 서 있었으며, 그의 근육은 빳빳해져 있었고 눈은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고슴도치 바늘처럼 까맣고, 희고, 날카로운 그의 뿔은 앞을 향하고 있었다. 그러자 그는 돌격 자세로 앞으로 나갔다. 그가 돌격하고 있을 때 나는 갑자기 투우라는 것이 무엇인지 볼 수 있었다. 왜냐하면 황소라는 것은 완전히 믿을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완전히 치명적이고 악독한 어떤 큰 유사이전의 동물처럼 보였다. 그러다가 그는 조용히, 그리고 서서히 뛰면서 돌격했다. 그는 돌아설 때에 마치 고양이처럼 네 발로 돌았다. 그가 돌격을 할 때 그의 눈에 처음 들어온 물건은 그 비참한 말을 타고 있는 투우사였다. 투우사는 그의 박차를 말에다 박고 깡충깡충 뛰어갔다. 그 황소는 전속력으로 달려서 말의 옆구리를 꽝하고 밀고 들어갔다. 그리고나서 그는 말을 쳐다보지도 않고 그의 뿔의 하나를 높이 들어 투우사의 넓적다리 쪽으로 몰고 들어가 투우사와 안장과 그밖에 모든 것을 말의 등에서 떼어내 버렸다. 황소는 경기장에 누워 있는 그 투우사를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괴롭혔다. 그 다음의 투우사는 돌격의 충격을 받을 준비를 하고 창을 쥔 채 그의 말 위에 앉아 있었다. 황소는 측면에서 그를 쳤다. 그러자 말과 투우사는 공중 높이 솟아 오르더니 황소의 잔등 위로 가로질러 떨어졌다. 보병같이 생긴 취쿠엘로는 담장을 뛰어넘더니 황소 쪽으로 달려가 그의 어깨 망또를 황소의 얼굴에 대고 펄럭거렸다. 그 황소는 그 어깨 망또를 공격했고 취쿠엘로는 뒤로 피했다. 순간의 머뭇거림도 없이 황소는 취쿠엘로를 공격했다. 취쿠엘로는 서서 그의 발뒤꿈치로 돌면서 어깨 망또를 마치 발레 무용가의 스커트처럼 황소의 얼굴에 대고 펄럭거렸다. "와와!" 군중들은 함성을 질렀다. 황소는 다시 재빨리 달려들어 공격했다. 취쿠엘로는 움직이지 않고 계속 황소와 싸웠다. 그의 다리는 뻣뻣해졌으나 황소의 공격으로부터 몸을 피하면서 어깨 망또를 아름답게 좌우로 흔들었다. 군중들은 또 다시 함성을 질렀다. 취쿠엘로는 이 일을 일곱번이나 했다. 그때마다 황소는 몇 인치 차이로 그를 놓치고 말았다. 그럴 때마다 군중들은 그에게 함성을 질렀다. 그는 한번은 황소에다 대고 어깨 망또를 펄럭거리면서 황소 뒤로 돌아가서 황소에게서 빠져 나왔다. "그는 잘하고 있군요." 라고 진 보틀 킹은 말했다. "어깨 망또를 가지고 좌우로 흔드는 것을 베로니카라고 부릅니다." 일곱 번이나 놀라운 베로니카를 했던 그 얼굴이 통통한 투우사는 바로 우리들 밑에 있는 담에 기대어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햇빛 속에서 땀으로 반짝였고 거의 표정이 없었다. 그의 눈은 투우사를 돌격하기로 결심을 하면서 서 있었던 투기장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그 황소를 자세히 살피고 있었다. 왜냐하면 몇 분 후에 이 황소를 죽이는 것이 자신의 의무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가 일단 그의 붉은 칼자루가 있는 가는 칼과 붉은 헝겊 조각을 갖고 그 황소를 죽이러 나서면 그가 죽냐, 아니면 황소가 죽냐 둘 중의 하나였다. 나는 이날 오후의 나머지 일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겠다. 이날 내가 본 것은 나에게는 최초의 투우였으나 그것은 최고의 투우는 아니었다. 최고의 투우는 나바르 구릉 위에서 있는 팜플로나라는 소도시에서 몇 주일 후에 벌어진 것이었다. 팜플로나에서는 서기 1126년 이후부터 매년 6일 동안 투우가 계속되었고 매일 아침 6시에는 시민들의 반은 황소보다 앞장서서 뛰어가고 그 뒤를 황소들이 뛰었다. 그래서 그런지 팜플로나에서는 모든 남자와 소년들이 아마추어 투우사였고 20,000명이 참석하는 가운데 아마추어 투우가 벌어졌다. 나는 투우에 대해 변명의 말을 하지 않겠다. 투우는 로마의 대연기장이 있었던 시대의 유물이다. 그러나 이것은 정말로 설명이 필요하다. 투우는 스포츠가 아니다. 그것은 결코 스포츠로 생각되지 않았다. 그것은 하나의 비극이다. 매우 큰 비극이다. 비극은 황소의 죽음이다. 그것은 세 개의 분명한 행위에서 수행된다. 그런데 진(술)을 마시지 않는 진 보틀 킹은 우리들이 구운 어린 돼지와 옥수수빵을 별미로 하고 있는 그 작은 식당의 이층방에 앉아 있을 때 이와 같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다. 나머지 이야기는 비아 산 제로니모에 있는 투우사들의 하숙집에서 배웠다. 우리들은 산 세바스치엔으로부터 그라나다에 이르기까지 스페인의 여러 다른 곳에서 투우를 16번 구경했었다. 여하튼간에 투우는 스포츠가 아니다. 그것은 비극이며 그것은 인간과 동물들 사이의 투쟁을 상징한다. 한 번 투우하는 데는 황소가 대개 6마리가 나온다. 투우는 경마용 말처럼 사육된다. 이 투우를 사육하는 어떤 곳은 수백 년이 된 곳도 있다. 좋은 황소는 2,000불이나 나간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속력, 힘, 그리고 악독함을 길러 준다. 다른 말로 하면 좋은 황소는 절대로 교정불가능한 나쁜 황소이다. 투우는 지극히 위험한 직업이다. 16변의 시합에서는 심한 상처가 발생하지 않았던 경우는 겨우 2번밖에 없었다. 반대로 이 직업을 보수가 매우 좋다. 인기 있는 투우사는 오후에 한 번 나오는데 5,000불을 받는다. 그러나 인기가 없는 투우사는 500불도 받지 못하는 수도 있다. 투우사는 어느 때를 막론하고 황소의 정면에서 직접 접근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위험의 요소이다. 마치 당구 선수처럼 되도록이면 많은 테크닉을 사용하면서 어깨 망또를 갖고 수행해야 하는 온갖 종류의 복잡하고 어려운 고비가 있다. 또한 관습대로, 그리고 법에 정해진 대로 이 오래된 비극(투우)을 수행해야 한다. 투우는 우아하고, 외견상으로는 힘 안들이고, 그리고 항상 위엄 있게 수행되어야 한다. 이 비극의 세 개의 행위는 우선 투우사들이 투우들한테 공격을 받고 창으로 자기를 보호할 때이다. 이때 말들은 퇴장한다. 두번째의 행위는 던지는 화살이다. 이것은 새로운 투우 팬들이 이해하기에는 가장 흥미 있고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이 던지는 화살은 길이가 3인치이다. 이 던지는 화살을 황소에게 꽂을 사람이 혼자서 투우가 있는 곳으로 나온다. 그는 이 화살을 들어서 투우에게 던진다. 그리고나서 그는 "토로, 토로"라고 소리친다. 황소는 그를 향해 돌격한다. 황소는 처음으로 완전히 당황한다. 그는 피할 수 없는 화살의 그 따끔따끔한 맛을 보고 있다. 그는 돌격할 말이 없기 때문에 투우사에게 계속 돌격한다. 그러나 그가 돌격할 때마다 그는 많은 화살의 세례를 받는다. 마지막으로 황소의 죽음이 온다. 각 투우사는 오후에 두 마리의 황소를 맡는다. 황소의 전면적인 공격을 받아야 하는 투우사는 칼로 황소의 목 바로 뒤에 있는 어깨와 뿔 사이를 찌른다. 그러나 그는 이 황소를 죽이기 전에 큰 냅킨 만한 붉은 헝겊을 갖고 일련의 어려운 고비를 넘겨야 한다. 이때에 대부분의 치명적인 사고가 발생한다. 튤립 조셉 에디슨(1672__1719):영국의 대표적인 문필가로서, 리처드 스필과 더불어 "구경꾼"이라는 잡지를 발행하여 많은 글을 발표함. 나는 이번 여름 어느날 아침에 우연히도 일찍 일어나서 들판과 목장 사이로 기분 전환을 하기 위해 산책을 나섰다. 꽃들은 만발하였고 초록은 그 싱그러움을 보여주고 있었다. 연중 이 무렵에는 모든 오솔길은 아름다웠고 모든 관목은 꽃다발로 가득차 있었기 때문에 나는 다양한 종류의 새들이 노래하는 덤불 사이에서 넋을 잃고 말았다. 새들의 유쾌하게 지저귀는 소리는 겨울을 소음과 연기 속에서 지낸 사람들에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로 들렸을 것이다. 나의 주위의 모든 것 위에 놓여 있었던 이슬의 신선함은 아침의 신선한 숨결과 더불어 새들에게 유쾌한 본능을 고취하였고 나에게 있어서도 똑같은 동물적인 쾌락을 불러 일으켰으며 설명할 수 없는 기쁨의 감정과 만족을 나의 가슴에 넘치게 해주었다. 겸손한 작가들의 작품에 정통해 있는 사람들은 시골에서 추가적인 즐거움을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시골은 상술한 작가들이 빈번히 묘사하고 있는 매력적인 장면을 상기시켜 주기 때문이다. 얼마쯤 걷다가 구름이 하늘을 가리고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걷고 있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집으로 갔다. 나는 이 집에서 두세 사람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들은 매우 열심히 토론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알렉산더 대왕과 같은 고대의 위인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몇몇 위대한 사람들을 비교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나에게는 근거가 없는 허황된 것처럼 보였다. 그 중 한 사람은 에드워드 3세의 왕자(1330__1376)가 벤도솜 공작보다 더 위대하다는 말을 했는데 나는 이 말을 듣고 놀랐다. 벤도솜 공작이 어떻게 에드워드 3세의 왕자와 필적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나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가 이런 이상한 지식을 어디서 얻었는지 궁금히 여기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그들이 헤세의 왕자, 스웨덴의 왕과 같은 몇몇 장군들의 이름을 열거하는 것을 듣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 집주인은 나에게 만약 내가 꽃을 좋아한다면 그의 집에 머무를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는 전국에서 비교가 안되는 훌륭한 튤립을 나에게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나는 내 주위에 있는 이 풍성하고 유쾌한 식물들의 영광스러운 구경거리를 매우 기뻐했고 또 놀랐다. 가끔 나는 튤립 화단 전체를 생각하면서 지금까지 살았던 가장 위대한 철학자들과 수학자들을 생각했다. 그 일행이 나를 조소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나는 나의 철학적인 생각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나는 튤립이 내가 본 꽃들 중에서 가장 훌륭한 꽃이라고 얼떨결에 칭찬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이 집주인에게 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 무엇인지 가르쳐 달라고 말했다. 그리고서 나는 가장 아름다운 꽃이 가장 가치가 있는 꽃이며 가장 유쾌한 색깔을 가지고 있는 꽃들이 가장 아름다운 꽃이라고 말했다. 집주인은 나의 무식에 미소를 지었다. 그는 매우 평범하고 정직하며 지각이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다만 그는 튤립에 대해서는 광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나에게 우리들 앞에 있는 길이가 20야드 되고 폭이 2야드 되는 화단을 영국에 있는 가장 좋은 백 에이커보다 더 귀중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그는 이에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지난 겨울에 나의 어리석은 식모가 튤립 뿌리를 양파 뿌리인 줄 알고 그것을 뽑아서 나에게 야채수프를 한 접시 끓여 주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나에게 튤립의 좋은 점들을 이야기해 주었답니다." 나는 봄철에는 시골 전체를 하나의 넓은 정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국화가 있는 곳이나, 오랑캐꽃이 있는 둑을 찾아 간다. 내가 사는 곳에서 일 마일 내에는 꽃이 피어 있는 덤불이 있는 곳이 없다. 나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을 갖고서 몇 개의 들판을 거쳐 집으로 돌아왔다. 관대한 도시 E.B. 화이트(1899__1985):미국의 수필가, 문장가. 기자 출신의 문필가로서 여러 신문과 잡지에 글을 발표. 대표작으로는 "어린 스튜어트", "샬럿의 거미줄", "백조의 트럼펫" 등이 있으며, 1978년 퓰리처 특별상을 수상함. 여기에 실린 글은 1948년 "홀리데이"라는 잡지에 실린 수필임. 뉴욕은 고독과 프라이버시를 제공해 줄 수 있는 곳이다. 뉴욕의 이러한 관대함 때문에 현재 뉴욕에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맨하탄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성역을 찾거나, 아니면 대소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온 낯선 사람들이다. 이러한 의심스러운 선물을 줄 수 있는 능력이 뉴욕의 신비스러운 특질이다. 그 능력은 운에 따라서 어떤 사람을 망칠 수도 있고 흥하게 할 수도 있다. 따라서 뉴욕에 있으려면 운이 좋아야 하겠다. 뉴욕은 예술, 상업, 스포츠, 종교, 연예, 금융이 집중된 곳으로서 전도사, 발기인, 배우, 무역업자, 상인 등이 모이는 곳이다. 뉴욕은 장구한 과거의 씻어지지 않는 냄새가 나는 곳이기 때문에 뉴욕에서는 어디를 가든지 위대한 시기, 사람들, 사건들, 그리고 일들이 고동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나는 화씨 90도가 되는 호텔방에 앉아 있다. 이 방은 통풍이 잘 안된다. 그러나 나는 나의 바로 주위 환경에 의해 이상하게도 영향을 받고 있다. 나는 나탄 헤일이 처형된 곳에서 여덟 구역 떨어져 있고, 월트 휘트먼(미국의 시인)이 "브룩클린 이글"지를 위해서 땀을 흘리며 사설들을 써냈던 곳에서 4마일 떨어진 곳에 있으며, 윌라캐더(미국의 소설가)가 네브라스카 주에 관해서 글을 쓰기 위해 와서 살던 뉴욕의 그 거리에서 34구역 떨어진 곳에 있으며, 역사가 조우 굴드가 여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라디오를 발로 차서 박살을 냈던 그곳에서 36구역 떨어져 있다. 몇 분 전에 점심 식사를 하러 갔을 때 나는 배우인 프레드 스토운 옆에 앉게 되었다. 프레드 스토운과 나와의 관계는 내가 금세기 초에 그를 '오즈의 마법사'라는 영화에서 본 것뿐이다. 그러나 나의 웨이터도 그 영화의 배우와 가까이 있었다는 것에서 똑같은 자극을 느꼈다. 그리고 스토운 씨가 가버리고 없을 때 웨이터는 이 나라에 처음 와서 영어를 한 마디도 못했을 때 여자 친구와 함께 첫 극장 데이트를 하면서 '오즈의 마법사'라는 영화를 보았다고 나에게 말했다. 그 영화는 훌륭한 영화라고 웨이터는 말했다. 그리고 "스토운 씨는 식욕이 좋은 분입니다"라고 생각에 잠긴 듯이 말했다. 뉴욕은 프라이버시 이외에도 참여의 흥분도 제공하고 있다. 뉴욕은 시시각각으로 일어나고 있는 그 모든 굉장하고, 격렬하고 놀라운 사건들로부터 개인들을 격리시키는 데 있어서 그 어느 인구조밀지역보다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 내가 이 답답한 방에 앉아 있는 동안 많은 떠들썩한 사건이 시내에서 발생했다. 어느 남자가 질투심에서 자기 부인들 쏘아 죽였다. 이 사건은 이 구역 밖에서는 센세이션을 일으키지 못했고 신문에도 조금밖에 언급되지 않았다. 내가 뉴욕에 도착한 이후 지상 최대의 에어 쇼가 시내에서 벌어졌다. 나는 이 쇼를 구경하지 않았다. 많이들 모였다고는 하지만 800만 주민들 중의 대부분은 구경하지 않았다. 나는 몇 대의 상업용 비행기들을 빼놓고는 다른 비행기 소리는 거의 듣지 못했다. 북대서양에서 가장 큰 대양정기선들이 오고 갔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왔는지 갔는지 보지 못했고 대부분의 다른 뉴욕시민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뉴욕이 세계에서 가장 큰 항구라는 말을 들었다. 선창가의 길이가 650마일이나 되며 많은 외국배들이 드나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브룩클린 다리를 건너가면서 조그만한 범선 한 척밖에 보지 못했다. 구기장과 경마장에서는 최대의 스포츠 행사가 벌어졌다고 하지만 선수나 경마 하는 사람을 나는 보지 못했다. 주지사가 시내에 왔다고 한다. 나는 사이렌 소리를 들었으나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이런 말들을 하는 이유는 뉴욕이란 곳은 뉴욕에 들어오는 것은 거의 어떤 것이나 다 흡수하도록 건설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뉴욕에서는 모든 사건(일)들이 선택적이며 주민들은 자기들이 보고 싶은 것만 골라서 즐길 수 있는 행복한 위치에 있다. 뉴욕의 주민들을 생활로부터 격리시키고 있는 뉴욕의 특징은 개인으로서의 주민을 약화시킬지도 모른다. 어쩌면 주지사가 지나갈 때 여하튼간에 그의 모자를 볼 수 있는 그런 지역 사회에 사는 것이 더 건전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점에서 나는 옹호하지 않는다. 뉴욕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아마 현실을 직면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피하기 위해서 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든 간에 그것은 하나의 진귀한 선물이며 내 생각에 그것은 뉴욕인들의 창조적인 능력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뉴욕이 외로움과 적막감을 주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죽었거나 놀 만한 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뉴욕에서는 10블록(구역)가량 거주지를 옮기거나 5불을 사용하면 활기 넘치는 경험을 얻을 수 있다. 참다운 정신적인 독립심이 없는 사람들은 정신적인 유지를 위해 도시의 굉장히 다양한 흥미거리에 의존하다. 시골에서는 활기 넘치게 하는 것이 몇 가지 있는데 날씨의 변화와 우편물을 통해서 오는 것들이다. 그러나 뉴욕에서는 그런 것들은 한이 없다. 뉴욕에는 대개 세 가지 종류의 뉴욕이 있다. 첫째는 뉴욕에서 태어나서 뉴욕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뉴욕의 크기와 소란스러움을 당연하고 불가피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뉴욕이다. 둘째는 통근자들의 뉴욕, 다시 말하면 낮에는 가득 찼다가 밤에는 없어지는 그런 뉴욕이다. 셋째는 다른 곳에서 태어나서 무엇인가 찾기 위해 뉴욕에 온 사람들의 뉴욕이다. 이 세 가지의 뉴욕 중에서 가장 큰 뉴욕은 마지막 목적지의 뉴욕인 세번째의 뉴욕이다. 이 세번째의 뉴욕은 극도로 긴장된 성격, 시적인 모습, 예술에의 헌신, 그리고 굉장한 업적이 있는 곳이다. 통근자들은 뉴욕을 안절부절하게 만들고 본토박이들은 뉴욕을 견고하고 지속성 있게 만든다. 통근자들이 살고 있는 교외는 자기 자신의 필수적인 활력소를 갖고 있지 못하고 그들이 하루 일이 끝나면 자서 잠이나 자는 그런 곳이다. 마나로넥크나 리틀넥크나 아니면 티넥크에 살면서 뉴욕에 직장을 갖고 있는 사람은 버스와 가차의 도착과 발차 시간, 그리고 빨리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 이외에는 도시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다. 그는 책상에만 앉아 있기 때문에 한가하게 걸어다니면서 공원에 있는 벨비더 탑도 보지 못한다. 그는 기차 시간 때문에 뉴욕을 한가하게 걸어다니면서 이것저것 보지 못한다. 그는 맨하탄의 돈지갑에서 돈을 빼냈으나 맨하탄의 숨소리는 결코 들어보지 못했다. 평일에는 약 400,0000만 명의 남녀들이 지하철과 지하도에 실려 이 섬으로 들어온다. 이들 중에서 공공도서관에서 오후에 한가하게 책을 읽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들은 시내의 금융 중심지에서 일을 해도 록펠레 센터의 식물들__수선화, 히야신스, 자작나무, 그리고 깃발들__을 보지 못한다. 통근자는 굉장히 많이 여행을 해도 방랑자라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뉴욕의 지형을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거주자들은 결국에는 통근자들보다 더 많이 여행한다. 작곡가 어빙 벌린이 이스트 사이드에 있는 췌리 가에서 아파트 주택가까지 골목길을 통해서 갔는데 마일 수로는 3내지 4마일밖에 안되지만 그것은 마치 세계일주를 한 것과 같았다. 시라는 것은 작은 지면에 많은 것을 압축하고 거기에다 음악을 첨부하여 그것의 의미를 한층 드높인다. 뉴욕은 시와 같기 때문에 모든 생활과 인종을 작은 섬 속에다 압축하여 거기에다 음악과 내연 기관의 반주를 덧붙인다. 맨하탄 섬은 의심할 바 없이 이 지상에서 가장 인구가 밀집된 곳이다. 그리고 수백만 명의 거주인들은 이 시의 시적인 마술을 이해하지만 완전한 의미는 아직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뉴욕은 파리와 같은 곳은 아니며 그렇다고 런던 같은 곳도 아니다. 뉴욕은 스포케인이나 디트로이트와 같은 곳은 아니다. 뉴욕은 도시들 중에서 가장 높이 솟아 있는 도시이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공중으로 1,250피트나 솟아올라 왔다(그런데 이 빌딩은 안개 속에서 비행기에 부딪힌 적이 있었고 벼락을 수없이 맞았다. 그리고 불행한 사람들이 수없이 이 건물에서 뛰어내렸다. 그래서 50가와 34가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걸음을 빨리 재촉한다). 맨하탄 섬은 다른 방향으로는 성장할 수 없기 때문에 위로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뉴욕이 실제로 웅장하게 보이는 것이다. 뉴욕이 실제로 그 기능을 다한다는 것은 하나의 기적이다. 그것은 전체가 믿기 어려운 일 같다. 뉴욕주민이 이를 닦을 때마다 캣스킬 산이나 웨스트췌스트에서 수백만 갤런의 물을 끌어들여져야 한다. 맨하탄에 있는 어느 젊은이가 브룩클린에 있는 애인에게 편지를 전달할 때에는 그 편지는 공기 튜브로 전달된다. 전화 케이블, 동력선, 증기 파이프, 가스 본관, 하수 파이프 등, 이 모든 것이 이 섬을 보기하고 싶을 만큼 복잡하다. 따라서 뉴욕은 화재나 순환 장치에 있어서 중요한 보급선의 고장으로 오래 전에 스스로 파괴되었어야 할 도시이다. 또 뉴욕은 어떤 좁은 통로에서 해결 불가능한 교통 혼잡을 경험했어야 했고 사방에서 밀려오는 바닷물에 가라앉았어야 했다. 그러나 뉴욕은 항상 이러한 상황을 그럭저럭 피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폐쇄 공포증에 걸리지 않고 지하철을 타고 있으며 인내성 있게 혼란과 혼잡에서 빠져 나온다. 어느 시설이나 다 부적당하다. 병원, 학교, 운동장 등은 너무 혼잡하고 충분한 공기도 없고 충분한 광선도 없다. 외국인들이 뉴욕에서 하루 머문다면 그것은 당황과 불쾌감과 실망을 가져다 줄 것이다. 예를 들면 웨이터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지하철을 잘못 타고, 거리의 소음이 침실을 메우기 때문에 잠이 안 오는 밤을 견뎌 내야 하는 것 등이다. 관광객들은 특히 여름철이 되면 뉴욕에 모여든다. 그들은 자유의 여신상 주위에 모여든다(이 근처에 사는 주민들 중에서 이 자유의 여신상 근처에 발도 들여놓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라디오 방송국과 성 패트릭 성당 등을 방문한다. 그리고 상품 진열장 등을 구경한다. 물론 뉴욕에 대해 가끔 언급되는 말은 이렇다. 뉴욕은 놀랄 만한 장소이지만 거기서 사는 것은 싫다. 나는 마을과 소도시에 살던 사람들이나 이웃 사람의 친절함에 익숙해 있던 사람들은 뉴욕에서의 생활은 이웃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그런 방식을 따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뉴욕시는 문자 그대로 수만 개의 작은 이웃집들의 단위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큰 구역도 있고 큰 단위도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뉴욕은 수없이 작은 인근 이웃집들의 단위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대개 각 이웃집들의 단위는 길이가 두세 구역, 넓이가 두어 구역 된다. 그래서 뉴욕에서는 어디서 살든지 간에 한두 구역 내에 식료품상, 이발소, 신문 파는 곳, 구두 닦는 곳, 세탁소, 꽃 파는 곳, 문방구점, 잡화상, 영화관, 라디오 수선과, 문방구점, 철물점, 구두 수선소 등을 찾을 수 있다. 아침에 직장에 나가는 사람은 200야드도 못 가서 몇 가지 일을 완수한다. 즉 그는 신문을 하나 사고, 구두창을 대고, 담배를 한 갑 사고, 위스키 한 병을 주문하여 집으로 배달하도록 하며, 세탁소에 가서 세탁물이 하나 있다고 알려준다. 여덟 시간 후에 집에 올 때 그는 버드나무 한 다발을 사고, 전구를 하나 시고, 마실 것과 구두약을 산다. 이 모든 구매는 그가 버스에서 내려서 아파트에 갈 때까지 사는 것이다. 이처럼 이웃간의 왕래는 완전하고 강력하기 때문에 많은 뉴욕인들은 시골의 어느 마을보다 작은 이웃 동네에서 일생을 보낸다. 그들은 자기들이 사는 골목에서 두어 구역 밖으로 나가면 낯선 땅에 온 것과 같은 생각이 든다. 가겟집 주인들은 특히 인근 이웃집들의 경계선에 신경을 쓴다. 나의 여자 친구 하나가 최근에 세 구역 떨어진 곳으로 아파트를 옮겼다. 그녀가 이사한 후에 그녀가 수 년 동안 단골을 해오던 그 식료품상에 나타났을 때 그 가게 주인은 거의 울먹이면서 말했다. "이사했으니 다시는 못 볼 줄 알았어요." 뉴욕은 흥분뿐만 아니라 구경거리도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다. 나는 신문에 낼 것이 혹시 없나 하고 구경거리를 조사하고 있었다. 토요일 오후에 나는 48가를 지나가게 되었는데 열려진 창문에서 활기가 없는 음악 소리가 들려 왔다. 코르트 극장에서는 낮 흥행관람객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그 구역 전체가 어느 가수의 강력한 소리로 울렸다. 그는 청중들을 찾으면서 머리를 뒤로 젖힌 채 거리를 활보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여름의 주말에는 시내는 텅 빈다. 나는 토요일 오후에 내 사무실을 찾아가 보았다. 전화도 걸려 오지 않고 서류 같은 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빌딩은 무서운 긴장감이 나도는 죽은 건물이었다. 도시 전체는 벌이 버리고 간 벌집과 같았다. 이따금씩 어디선가 야간 벨이 울리고 특수화재경보가 울릴 뿐이었다. 라파에트 카페에는 단골 손님들이 앉아서 이야기한다. 이 카페는 바쁘지만 조용하다. 나는 술을 한 잔 마시면서 서쪽 창문을 통하여 제조업자 신탁회사와 빨간불이 서서히 자줏빛으로 바뀌는 것을 본다. 벽돌 건물들은 하루가 끝나면 그 색깔이 변하는 버릇이 있다. 그것은 마치 붉은 장미가 시들어 가면서 약간 푸르스름하게 변하는 것과 같다. 카페는 안전한 대피소이다. 웨이터들은 나이를 모르는 듯이 변하지 않는다. 카페에서는 아무것도 현대화되지 않았다. 이곳의 커피는 맛이 진하고 좋은 제품이었다. 많은 인종, 신념, 국적을 대표하는 수백만 명의 외국 태생의 사람들은 뉴욕을 하나의 영원한 전시장으로 만들고 있다. 뉴욕 시민은 성격상으로 뿐만 아니라 필요에 의해서 관대하다. 도시는 관대하지 않으면 안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곳은 증오, 원한, 고집으로 폭발해 버릴지도 모른다. 뉴욕에는 모든 인종 문제들이 잠재해 있으나 표면화되지 않고 항상 휴전 상태에 있다. 진정한 휴머니스트 제럴드 라루:1958년 이후 남가주 대학에서 성서사 및 고고학 교수로 지냄. "고고학의 미래", "고대의 신화와 현대인" 등의 저서를 남김. 지금은 모든 것이 다 끝났다. 숨이 끊어진 것이다. 죽음 앞에서는 더 이상의 고통도 없고, 무엇이 일어날까 하고 기다릴 필요도 없다. 카레이는 죽은 것이다. 그의 가장 친한 친구인 보브는 일요일에 나에게 전화를 걸어서 카레이가 병원에 옮겨졌으나 그의 암치료를 위해서 더 이상의 화학요법은 쓸모가 없다고 말했다. 카레이는 마치 죽음을 직면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에게 나의 계획(그에게 전보를 치고 후에 방문하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본능적으로 이 계획은 적당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날 저녁에 로스앤젤러스에서 산호제로 가는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카레이의 두 친구가 나와 같이 가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카레이의 여자 친구인 스리노이와 급우인 에밀리였다. 보브는 우리들을 공항에서 맞이하여 산타쿠루즈에 있는 도미니컨 병원으로 안내했다. 내가 그의 어머니, 그의 누나, 그리고 보브와 함께 침대 옆에 앉아서 카레이의 숨결을 지켜보고 있을 때 나는 인도주의자적인 상담역으로는 적당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만약 가톨릭 신부였다면 나는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주는 의식을 거행했을 것이다. 이 의식은 환자에게 마지막으로 죄를 고백하게 하고 슬픔과 참회를 표시하게 하고 하나님의 의지에 자기 자신을 맡기게 하는 기회를 준다. 또한 그것은 환자나 죽어 가는 사람들에게 영적인 위안을 준다. 여하튼간에 이 의식을 행하는 사람은 '무엇인가 하고'있는 것이다. 나는 기도를 드릴 수도 있는 개신교 목사를 생각해 보았다(카레이는 루터교회의 교인이었다). 주기적으로 병실을 찾아온 도미니컨 수녀는 고요함, 친절함, 그리고 관심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카레이에게 가까이 와서 "당신에게 평안이 있기를" 또는 "하나님이 그대를 축복하시기를", 아니면 두 가지 말을 다 해주었다. 어떤 젊은 부속교회목사가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카레이에게 성찬식을 베풀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보브에게 카레이가 '예수의 음식'을 받았다고 말했다(보브는 종교를 거부했기 때문에 이 말을 조잡하고 불쾌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인도주의에는 마술적인 공식이나 저승의 음식은 없다. 그러면 휴머니스트는 환자의 마지막 순간에 있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보브가 나의 강좌인 '죽음과 빈사의 신화와 상징'을 수강했을 때 보브를 통해서 카레이를 알았다. 그들은 동숙자들이었다. 보브는 호지킨스씨병(악성 육아중병)에 걸린 그의 친구에 대해서 계속 그의 일지에 써 놓았으나 그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나는 아파트로 저녁 식사 초대를 받았는데 거기에는 보브, 카레이, 스리노이가 함께 있었다. 우리들은 닭고기를 먹었다. 우리들은 학교, 직업 등에 대해서 이야기했으나 암이나 죽음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 후 얼마 안되어 카레이가 나의 사무실을 방문했다. 그는 암에 걸렸다고 나에게 이야기했다. 그는 열 다섯 살 때 호지킨스씨병에 걸렸으나 치료를 했기 때문에 누르러졌다. 그런데 그는 지금(20세) 병이 다시 악화되었다. 나는 화학요법을 썼기 때문에 머리칼이 다 없어졌다. 그 때문인지 병이 누르러져서 더 이상 악화되지는 않았다. 그 다음 학기에 그는 나의 강좌인 '고대 신화와 현대생활'에 등록했다. 처음에 그는 문 가까이에 있는 뒤쪽에 앉았다. 나는 이러한 태도를 그가 나를 조심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해석했다. 학기 도중에 그는 클라스의 중간 지검으로 이동하더니 나중에는 앞줄에 앉았다. 나는 그가 앞줄에 앉은 것은 매력적인 여자가 있기 때문이 아니냐고 그를 곯려 주었다. 나는 그가 앞줄로 이동한 것은 그가 나와, 반학생들과,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해석했다. 그 다음 학기에 카레이의 머리카락은 다시 돋아나기 시작했고 그는 더 원기가 나는 것 같았다. 그 다음 학기에 그는 '죽음과 빈사의 신화와 상징'이란 나의 강좌를 택했다. 스리노이도 이 강좌에서 학점을 따고 있었다. 그러나 암은 재발했다. 카레이는 두려움을 느꼈고 극단적인 통증을 느꼈다. 우리들은 그의 병을 공개하지 않았다. 그는 클라스에 참가했고 일주일에 한 번씩 밖에서 반 학생들을 만났다. 어떤 학생들은 나한테 와서 호지킨스씨병이 무엇이며 카레이의 병은 어느 정도이며 카레이는 병이 나아가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급우들이 자기가 암에 걸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자기가 마치 문둥이처럼 피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피하지 않았다. 마이클이라는 어느 젊은 학생은 철학적인 논쟁을 좋아했다. 그런데 그는 어느날 나의 사무실에 와서 카레이와 점심시간에 캠퍼스 중심부에 있는 분수대에서 매주 만났다고 말했다. 그들이 먹고 이야기하고 있을 때 카레이는 검은 색깔의 액체가 든 병을 꺼내서 그것을 들이마셨다. 마이클을 말했다. "감기 때문에 그러는 거겠지!" 호지킨스씨병이 그의 폐까지 침투해 들어가자 그는 규칙적으로 심한 기침을 했다. "아냐." 카레이는 대답했다. "이것은 내 호지킨스씨병 때문에 마시는 비타민이야." 마이클은 놀랐다. 그는 카레이가 암에 걸렸다는 것을 몰랐다. 나는 마지막 수업 시간에 카레이의 병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말을 했다. 그리고 그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 그의 고통, 그리고 인간적인 따스한 손길을 필요로 한다는 것에 대해서 말했다. 그 시간은 참 좋은 시간이었다. 카레이는 모든 질문에 응답했다. 그는 반 학생들이 자기를 받아들였다는 것과 자기의 병이 반 학생들과의 우정에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카레이는 6월에 졸업하여 어머니와 같이 언덕 위에 있는 농가처럼 생긴 집에서 살기 위해 산타쿠루즈로 갔다. 그곳에는 괴물같이 생긴 35파운드의 고양이와 말과, 까만 고양이 새끼, 신선한 공기, 그를 바쁘게 할 책과 음악이 있었다. 처음에 그는 고독과 외로움을 느꼈으나 얼마 안 있어 주위 환경과 그것의 잠재력을 향유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암은 악화되고 있었다. 몇 주일 전에 스리노이가 나를 찾아왔을 때 우리들은 그에게 전화를 해 주었다. 그는 침실에만 있었다. 그런데 어느 일요일날 보브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카레이가 병원에 있으며 그가 살아나지 못하리라는 데에는 거의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들 셋은 비행기를 타고 산호제로 갔다. 우리들은 일요일 밤을 카레이 집에서 보냈다. 이 집은 분명히 잘 가꾸어지지 못했다. 카레이의 어머니와 보브는 그들의 시간을 전부 카레이와 같이 보냈다. 카레이의 어머니는 그의 병실에 있는 작은 침대에서 잤다. 보브는 매일 저녁 10마일 떨어진 곳까지 차를 몰고 가서 가축을 돌보았다. 집안에는 카레이를 기억시켜 주는 것들이 많았다. 잘생긴 고교선수로서 찍은 그의 사진, 축음기판, 책, 물을 넣은 고무 이불, 테이프 등. 나는 카레이 어머니가 특히 카레이를 위해서 산 그 집에 돌아왔을 때 그녀가 느낄 그 고통과 카레이 소지품 중에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보관할 것인가를 결정할 때의 그 고통을 생각해 보았다. 가족의 고통은 환자의 고통, 입원, 그리고 죽음의 기간이 지나도 계속된다. 환자가 남긴 추억물이 남게 되어 계속 고통을 주는 것이다. 우리들은 카레이와 함께 월요일을 보내고 저녁에 로스앤젤래스로 돌아왔다. 화요일 아침에 보브는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울음 섞인 어조로 카레이가 밤새 죽었다고 우리들에게 말해 주었다. 나는 그의 친구로서, 그리고 휴머니스트 자문역으로서 나 자신을 평가해 보았다. 나는 그를 위해 무엇을 했단 말인가? 휴머니스트 자문역은 죄를 용서해 주거나 죄를 경감해 주거나 죽은 후에 생명을 보장해 줄 수는 없다. 또한 그의 죽음에 대비한 의식도 베풀지 않고 '예수의 음식'도 제공하지 않고 기도도 하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그리고 사랑스러운 지원만을 할 뿐이다. 나는 카레이에게 내가 그에게 관심이 있기 때문에 그를 찾아왔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그에게 긍정적이고 현실적인 생각을 전달했다. 나는 약과 의학이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줄 수 있고 치료와 힘은 자기 마음속에서 나온다고 그에게 말했다. 나는 그를 사랑하는 우리들이 그와 함께 있으면서 사랑과 관심을 갖고 그를 지원하고 있다고 그에게 말해 주었다. 그는 나의 말을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관심의 초점을 그의 어머니에게 집중시켰다. 우리들은 오랫동안, 그리고 열심히 이야기했다. 우리들은 카레이에 대한 일화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카레이를 생각나게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그가 죽은 후에 텅 빈 집에 돌아왔을 때 실망을 금치 못했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사랑과 관심을 갖고 기꺼이 하겠다는 말해 주었다. 나는 보브가 일주일 후에 그의 대학원 공부를 시작하기 위해 학교에 돌아오면 나는 찾아오라고 말한 것이 있었다. 그가 전화로 카레이가 죽었다는 것을 알려주었을 때 나는 카레이에 대한 나의 관심사를 재확인했다. 나는 에밀리와 스리노이와 접촉하고 그들을 위로하려고 애를 썼다. 휴머니스트 카운셀러는 마술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다. 카레이의 경우에 있어서도 나는 직업적이면서도 친구로 남아 있었다. 장례식은 루터파식으로 할 것이다. 나는 참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인도주의는 그 장례식을 이해한다. 카레이는 나의 비종교적인 도덕론을 알고 있었다. 휴머니스트들은 신화나 사후의 약속 같은 것 속에서 자기 자신을 은폐하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들은 어려운 현실을 그대로 직면한다. 죽음은 카레이의 생활에 종말을 뜻한다. 아무것도 그를 소생시킬 수 없다. 그의 병과 고통은 그를 알았고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그에 대한 우리들의 사랑은 그에게 영향을 주었다. 우리들이 내 사무실에서 카레이의 죽음의 공포에 대해서 이야기했을 때에 만능약이란 것은 없었다. 다만 그 공포를 이겨내는 방법에 대해 논의했을 뿐이다. 우리들은 사람들을 인간 대 인간으로 다루고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어떤 마술적인 힘에 의하여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들은 한 인간만이 다른 인간에게 손을 뻗쳐서 그를 치료하고 위로하고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들은 개인적으로 관련을 맺어야 하며 나는 그런 방식을 좋아한다. 회화체 불어와 영어 디오더 프라트(1901__):미국 미네아폴리스 태생의 작가. 콜롬비아 대학 졸업 후 기자, 특파원, 자유기고가 생활을 하면서 단편소설, 소설 각본 등을 발표. 나는 대학에 다닐 때 불어(1)을 세 번 낙제했다. 이것은 나의 잘못은 아니었다. 나의 불어 교수는 불란서를 너무나 열렬히 사랑했기 때문에 그는 수업을 시작할 때마다 학생들에게 불란서 국가를 부르게 했다. 나는 마음이 너무나 혼동되어서 학기가 끝날 때 나는 합격 점수를 결코 얻을 수가 없었다. 나이가 훨씬 든 후에 나는 니스에서 그 불어 교수를 만났다. 우리들은 카페에서 술을 같이 마셨다. 그때 나는 나의 불어 회화 지식으로 그에게 인상을 주려고 웨이터에게 "계산서에 얼마나 나왔어요?"라고 말을 건네었다. 그 교수는 익살맞게도 연필을 꺼내어 탁자 위에다 A@m+@e점수를 써 주었다. 이 자랑스런 점수는 내가 불란서에 몇 년간 체류하면서 적당한 단어와 발음을 배우고 수없이 실수를 한 후에 딴 것이었다. 내가 불어를 그 근원지에서 배울 때 저지른 가장 큰 실수 중의 하나는 큰 거리에 있는 어느 식당에서의 점심시간 도중이었다. 나는 이 식당에서 내 아내를 만나기로 했었다. 그런데 그녀는 시간이 늦었고 나는 배가 고팠다. 그래서 나는 혼자서 식사를 했다. 식사가 처음에 두세 번 나오는 동안에 나는 불어를 훌륭하게 구사했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는 비참할 정도로 잘 나오지 않았다. 웨이터가 그 다음의 음식을 주문 받으려고 내 옆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동안 나는 메뉴의 크로켓이란 단어를 보고 웨이터에게 그것을 먹겠다고 말했다. 나는 적어도 그 단어를 정확하게 말해준 것으로 생각했었다. 내 아내가 식당에 들어와서 나를 보았을 때 한 젊은 화류계 여자(불어로 Cocotte라고 함)가 내 옆 식탁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내가 저지른 또 하나의 큰 실수는 여분의 가솔린을 넣어 가지고 다닐 수 있는 통(bidon)과 관련된 것이었다. 나는 보우프레씨의 철물점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 단어는 나에게 새로운 단어였으나 나는 자랑스럽게 이 단어를 보우프레 부인에게 발음했다. 그녀는 정열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녀가 나의 발음을 인정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가 국부세척기(bidets)가 있는 곳으로 나를 안내했을 때 나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감정이 가끔 슬픈 결과를 가져온다고 하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 현상을 내가 불란서에서 실수를 거듭하면서 단어를 한두 마디씩 배울 때 적용되었다. 내가 불란서의 어느 지방 호텔에서 나의 아내와 하룻밤을 지내고 있을 때 나는 갑자기, 그리고 운 좋게도 그날이 우리들의 결혼기념일이라는 것이 머리에 떠올랐다. 나는 이 날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나의 부인을 위해 꽃 한아름 샀다. 그리고 그것을 그녀에게 선사하기 전에 그것을 넣을 꽃병을 얻으려고 애를 썼다. 나는 급사를 전화로 불렀다. 내가 그에게 꽃을 보여주니까 그는 그 꽃이 매우 아름답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그 다음부터 나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물을 넣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내가 마시고 싶어하는 것은 비시 탄산수인지 아닌지 알고 싶어했다. 나는 마음이 괴로웠다. 그리고 꽃병이란 단어는 영어와 불어에서 똑같이 쓰고 있다는 것을 가까스로 생각해 냈다. 그러나 이 꽃병이란 단어의 발음도 제대로 되지 않은 탓인지 급사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는 듯이 서 있었다. 그가 내가 원하는 대로 잘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나는 그 물건은 '하룻밤'만 쓸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하룻밤을 위해서."라고 소리쳤다. 그는 희미하게나마 알았다는 듯이 "아!"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놀라는 기색이었다. 그리고 얼굴에는 당황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나는 계속 "네, 그렇게 해주십시오."라고 힘주어 말했다. 드디어 그는 고개를 저으면서도 꽃병 속에 꽃을 넣기 위해 꽃을 가져갔다. 잠시 후에 급사가 '밤의 꽃병', 다시 말하면 요강 속에 꽃을 넣어 가지고 왔을 때 나의 아내는 비명을 질렀고 그 바람에 많은 호텔 투숙객들이 잠을 깬 적이 있었다. 이러한 뜻하지 않은 사고의 계기는 언어의 능숙함에 의해서가 아니라 아주 다른 것에 의해서 제거되었다. 우리들이 거주하려고 불란서에 처음 갔을 때 우리들은 불어를 말할 필요가 있었다. 우리들은 가니어 로제라는 어느 의심 많은 부인한테서 레슨을 받았고, 그녀가 영어를 하고 싶지 않을 때에는 그녀와 함께 불어 회화를 했었다. 그러나 이 모든 노력은 결과적으로 낭비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다시 말해서 하나의 언어를 안다는 것은 필수 조건이 되지 못했다. 사실상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하루에 16분 동안의 불어'에 시간을 낭비하고 그 다음 번에는 그 배운 불어를 잊어버리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불란서 국민들은 영어를 열심히 배우려고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그들은 자기들이 배운 영어 지식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었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 실력을 보여주었다. 내가 쿨레망 드라 풀로르 씨에게 불어로 말을 건네자 그는 영어로, 그것도 형편없는 영어로 대답했다. 내가 카페에서 웨이터에게 나의 최고의 속어를 사용했을 때 그 웨이터는 나에게 "트레 프랑 미스테어(3프랑입니다. 선생님)."라고 말했다. 감벨의 식료품상에서 무엇인가 일이 잘 안되어 욕을 하고 싶을 때에는 그는 "선 오브 비치(개새끼)!" 아니면 이보다 더 심한 욕을 영어로 하는 것이었다. 담배 카운터를 보고 있는 여자에게 나의 편지에 붙일 우표가 충분히 있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올 라이트(네,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거리의 아이들도 어른들 흉내를 냈다. 어느날 우리들은 까만 옷을 입은 두 어린애가 "굳바이."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꽁뜨 씨는 나에게 열광적으로 "헬로(여보세요)."라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들은 우리들끼리 불어로 이야기하고 정확하게 말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언젠가 한번은 벨(지명)에서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불어로 "그라스(Grahass)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라고 물어 보았다. 그리고 그 도시의 이름을 마치 그라스(grass)처럼 발음했다. 그러자 상대방은 우리들을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우리들은 이 똑같은 사람에게 똑같은 것을 여섯 번 질문했으나 그는 여전히 우리들을 노려보았다. 게다가 더욱 더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들은 향수에 관한 도시에 대한 것을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그는 매우 환한 미소를 지으며 "아! 그라스(Grahass) 말씀이시군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후에도 우리들은 그 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그라스는 어떻게 가면 됩니까?" 물으면 거의 모든 불란서인들은 우둘투둘한 손가락으로 "저 길로 갑니다."라고 대답했다. 언어학적으로 볼 때 자기를 나타내기를 좋아하는 어느 불란서 의사는 나와 영어로 대화하기를 요청했다. 그는 이렇게 해서 나와 나에 관한 모든 것을 알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당신의 부인은 아주 훌륭합니다."라고 용기 있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는 나의 부인의 사소한 병을 치료해준 적이 있었다. "당신의 부인에 관해 말씀드리면 그녀는 독립심이 강한 여잡니다." 그는 계속 말했다. "뭐 논평하실 것 없으십니까?" 나는 그의 도움은 효율적이고 훌륭한 것이었고 그에 대해서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나의 이 말을 논평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는 어깨가 귀까지 쑤욱 올리고 나서 나를 보더니 나의 말을 기다렸다. "아!" 나는 말했다. "치료비는 얼마죠?" 그는 내가 미국인이라는 것을 안다는 만족감에서 그러는지 몰라도, 어깨를 귀에서부터 내리면서 대답했다. "치료비 말씀이십니까? 1,000프랑입니다." 내가 그 엄청난 돈에 충격을 표시하지 그는 "선생님, 당신의 부인을 위해서 그것이 비싸단 말씀이십니까?"라고 되물었다. 나는 내가 놀라고 있는 이유가 나의 부인 때문은 아니고 나의 저금통장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나는 그만한 돈은 지불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나는 그가 요구하는 돈의 반은 줄 수 있었다. "그러나 선생님." 그는 다그쳐 나에게 말했다. "북미에 있는 당신의 친척들이 나머지 500프랑은 낼 수 있지 않습니까?" 나는 그렇게는 안될 것이라고 그에게 애써서 설명했다. 그러자 그는 "아!"라고 하더니 "선생님은 부유한 숙부님이 한 분 계시지 않습니까?" 나는 나의 숙부는 그가 말한 대로 그렇게 해 줄 사람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렇습니까?"라고 말했다. "그러면 이런 일을 해줄 숙모님이 한 분 계시지 않습니까?"라고 덧붙였다. 나는 숙모가 한 분 있지만 그녀는 나를 지원해줄 그런 여자는 아니라고 그에게 말했다. 그녀는 그가 생각했던 그런 성격의 여자는 아니었다. 그는 나의 말에 놀랐다. 나는 의존할 수 있는 친척은 하나도 없었다. 사실상 나는 그가 지적한 그런 친척은 하나도 없었다. 그는 유감스럽다는 듯이 나를 보았다. 미국인은 친척간에 유대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이해가 안 간다고 말했다. 그의 망상은 산산이 부서졌다. 그는 대단히 유감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나서 그는 마침내 "좋습니다. 500프랑만 내시오."라고 말했다. 이기적인 개를 닮은 주인 유진 필드(1850__1895):미국 세인트루이스 태생의 시인, 단편소설작가, 유머작가. 녹스 대학, 미조리 대학 졸업 후 신문사에 근무하면서 칼럼니스트로 활약. 최초의 신문 칼럼니스트 중의 한 사람이며, "덴버 트리뷴", "서양시 모음 소책자" 등의 대표작이 있음. 어느날 아침 나의 어린 해바라기와 토마토 덩쿨이 밤새 무법의 약탈자에 의해 잘려 넘어진 것을 발견하고 대단히 화가 났다. 나는 어느 누구도 그렇게 방자한 행동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파괴된 재산의 가치는 크지는 않았다. 나는 토마토 덩쿨 20개에 5센트밖에 지불하지 않았고 해바라기는 파다 피어스로부터 선물을 받은 것이었다. 이것들의 본질적인 가치가 너무나 작았기 때문에 나는 그것들을 그렇게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우아한 피조물들이 단순한 싹에서 귀엽고 크게 자라는 것을 보면서 나는 이들에게 감상적인 애착을 가지게 된 것이다. 나는 토마토 덩쿨의 과일에 대해서는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온화한 8월의 태양 아래서 익게 될 그 감미로운 과일을 따먹는 장면을 만족스럽게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더구나 나는 나의 첫 과일을 보낼 도시 친구들의 명단까지 작성했었다. 헤일리 씨 일가, 린치 씨 일가, 화핀 씨 일가, 맥스웰 씨 일가, 스콧 씨 일가, 훼이 씨 일가, 듀이 씨 일가, 모리스 씨 일가, 밀러드 씨 일가, 라네드 씨 일가, 돌레처 씨 일가, 웨이 씨 일가 등 이들 운이 좋은 옛 친구들은 과일이 열리면 나의 하사품을 받을 사람들이었다. 해바라기의 장래에 대해서는 토마토처럼 그렇게 유쾌한 면은 없다. 단지 해바라기는 내가 좋아하는 꽃에 불과한 것이다. 토마토 덩쿨과 해바라기가 그렇게 무참히 잘려 넘어진 것을 보았을 때 나는 원예를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내가 본 그 파괴 행위에 너무나 화가 나서 이 만행을 저지른 자를 알려주는 사람에게는 이웃 사람들한테 돈을 꾸어서라도 기꺼이 보상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종이 한 장에다 현상금 5불을 준다는 내용을 써 가지고 그것을 모든 행인들이 보고 읽을 수 있는 장소 앞에 있는 단풍나무에다 못으로 박았다. 그날 늦게 나는 파다 피어스에게 가서 나의 그 애로 사항을 말해 주었다. 그는 나를 위로하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 파괴 행위는 내가 추측한대로 인간이 한 것이 아니라 뿌리를 잘라먹는 벌레가 한 짓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벌레는 일종의 파충류로서 이틀이 멀다 하고 농부들을 비참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파다 피어스는 파리스라는 약이 이 파괴적인 벌레에 대해서 효과적이라고 나에게 말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그 약을 한 통 주문했다. 나는 이 약을 나의 모든 화단과 채소밭에다 뿌릴 생각이다. 나는 또한 농무장관 모턴 씨한테 편지를 내어 뿌리를 잘라먹는 그 벌레를 없앨 약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다. 편지를 보낸 지 5주일이 지났으나 나는 농무성으로부터 아무런 말도 받지 못했다. 나는 농무장관 모턴 씨를 개인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더 모욕을 느꼈다. 왜냐하면 나는 1884년에 웨스턴 과학원의 4년마다 열리는 총회에서 소개를 받고 그와 악수를 했기 때문이다. 농무장관은 그가 만약 대통령 후부가 된다면 나를 불쾌하게 만든 자신의 오류를 인정할 것이다. 나의 해바라기와 토마토는 앞서 말할 것처럼 수난을 당했으나 감자는 무사했다. 감자밭은 뒤뜰의 포플러 나무 옆에 있었다. 이 밭은 북두칠성처럼 생긴 밭인데 이곳에다 감자를 처음 심었을 때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는 심기 전에 감자의 껍질을 모두 벗기고 눈을 따냈기 때문이다. 감자가 자라려면 절대로 껍질을 벗기거나 눈을 따서는 안된다. 나는 그 이유를 모르겠으나 그것은 사실이다. 여하튼간에 내가 두번째 심은 것은 성공이었다. 나는 그 부드러운 열매가 커지는 것을 매일매일 관찰할 수 있었다. 나의 젊은 친구인 버드 테일러는 나에게 옥수수 열 개 정도를 주었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따스하고 양지 바른 곳에다 심었더니 곧 무성하게 자라났다. 나는 새만 아니라면 시카고 시장에 내다 팔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새들이 이 옥수수를 어떻게 발견했는가는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내가 말한 새들은 알고 보니 어린 까마귀들이 아니라 찌르레기였다. 어느날 아침 나는 30여 마리의 이 밀렵꾼들이 나의 옥수수밭 쪽을 향해 살금살금 걸어오는 것을 발견했다. 눈깜짝할 사이에 깃털이 달린 이 악당들은 나의 옥수수를 망쳐 놓았다. 그 후 나는 책에서 허수아비에 관한 글과 그림을 본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서 나는 허수아비를 하나 만들어 가지고 그것을 옥수수 심은 곳에다 세워 놓았다. 이것은 사람의 형상을 잘 모방한 것이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내 집사람이 네브라스카에 있는 자기의 가난한 친척에게 갖다 주자고 했던 그 옷을 허수아비에 입혔으니 말이다. 내가 이 허수아비를 마당에 세워 놓은 그 다음날 밤에 순경이 그의 직장 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클라랜던 가에 왔다. 그는 마당에 있는 허수아비를 살펴 보고 나서는 그것을 우리의 잔디밭 호스를 훔치러 온 도둑으로 잘못 알았다. 이 용감무쌍한 경찰은 용기를 내어, 그리고 아무리 칭찬해도 지나치지 헌신적인 의무감을 갖고 연발 권총으로 발포하여 허수아비에게 일곱 개의 구멍을 내었다. 이 총소리를 듣고 가장 가까운 이웃인 라이슨 씨는 즉시 자기의 불테리어(불독과 테리어의 잡종개)를 풀어 놓았다. 이 영리하지만 복수심이 강한 동물은 사건 현장에 나타나 경찰관을 나무 위로 몰고 갔다. 경찰관은 허수아비에 탄약을 다 썼기 때문에 자신의 가해자에게 대항할 수단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버드나무 위에서 밤을 세지 않으면 안되었다. 한편 불테리어는 허수아비를 보자 그것이 사람인 줄 착각하고 그 불행한 물건을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그 다음날 우리들의 잔디밭에는 밀짚과 단추들, 그리고 매우 품위 있는 옷이었던 것의 잔해들이 널려 있었다. 라이슨 씨의 이 불테리어는 나에게 베일러 일가의 개가 우리 집을 방문했던 일을 상기시켜 준다. 베일러 일가의 이 개는 흰반점이 있는 큰 개로서 약 한 살이 되고 무게가 175파운드(약 79Kg)나 나가는 개였다. 이 애교 있는 거물은 대개는 베일러 씨의 뒤뜰에 있었는데 이 곳은 이 거물이 돌아다니기에는 넓지 못한 곳이었다. 사건이 일어나던 저녁에 베일러 일가는 우리들이 부엌에 구리싱크대를 만들었는지 아니면 전기가 통하는 철싱크대를 만들었는지 알아보려고 우리의 새 집에 왔었다. 나는 그들이 무엇 때문에 이 개를 데리고 왔는지 모른다. 베일러 일가가 싱크대 문제를 조사하고 있는 동안 이 애교 있는 거물은 아주 흥이 나서 집 구내를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미에 대한 감각이 있는 아다(아내 이름)는 한련속의 식물과 붉은 제라늄을 많이 심었고 떡갈나무 밑에는 우아하고 멋있는 덩쿨들도 심었었다. 눈깜짝할 사이에 베일러의 이 거물은 순진한 꽃들을 휩쓸어 없애 버렸다. 그 다음 순간에 그는 작약, 팬지, 그리고 여자들이 수고를 아끼지 않고 가꾸는 다른 꽃들까지 망쳐 버렸다. 도자기 가게의 황소도 이 개만큼 파괴적인 행위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상하게도 나는 위의 사건이 매우 재미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다른 사람들의 개들이 우리에게 타격을 주는 것은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우리의 개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타격을 가하는 것은 가장 자연스런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어느날 저녁 베일러 씨가 화가 나서 그의 이웃인 맥리오드의 맹견을 그의 현관에서 몰아낸 것이 생각난다. 왜냐하면 이 맹견은 고양이를 볼 수 있는 망을 댄 문을 밀고 들어가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 순간에 그 맹견은 개의 지배적인 본능을 그대로 따르고 있었고 베일러 씨는 이 분별없는 행위 때문에 그 개를 증오했던 것이다. 그러나 베일러 씨는 그의 어설픈 개가 나의 화단을 여기저기 휘젓고 돌아다니는 것을 이 세상에서 가장 교활하고 매력적인 오락이라고 간주했던 것이다. 짧은 달 브래드포드 토레이(1843__1912):미국 매사추세츠 태생의 소설가. 소설 "숲 속의 새", "플로리다 스케치북", "테네시로부터의 봄 노트" 등이 있으며, 수필집 "숲 속의 점원"이 있음. 5월은 일년 중 가장 짧은 달이다. 2월은 적어도 이보다 두 배나 길다. 왜냐하면 달이라는 것은 심포니의 악장과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들이 어떤 노래의 길이를 말할 때에 우리들은 그 노래에 들어 있는 악보의 수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악보를 연주하는 시간을 생각하는 것이다. 5월은 스케르초(해학곡)이기 때문에 바람과 같이 가버린다. 어제의 날은 시작에 불과했고 오늘의 날은 거의 다 끝나 버렸다. "어떻게 하면 날짜를 잡아 둘 수 있을까?" 내 이웃집 친구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나도 또한 그렇게 말한다. 이 근처에는 8일 내지 10일 전에는 사탕단풍과 노르웨이 단풍이 만발했었고 계곡의 큰 버드나무에는 황녹색의 어린잎들이 돋아 나와 그렇게 아름다운 광경을 이룰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개나리속의 식물(관목)이 제 철을 만난 것이다. 이렇게도 무성하게 자라날 수 있을까? 전에는 그렇게 흔한 식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것이 이렇게 무성하게 자란 것이다. 어느 집 마당에 가 봐도 이 식물이 태양빛에 번쩍이고 있다. 그래서 이 식물은 '태양빛 관목'이라고 불러 마땅할 것이다. 나는 이 식물이 시들어 버릴 때까지 계속 지켜보겠다. 한두 주일만 있으면 이 식물을 시야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며 다시 보려면 내년이나 가야 될 것이다. 관목이라는 것은 남녀의 경우와 매우 흡사하다. 관목은 그때그때 자기들이 보여주는 옷에 따라서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나의 이웃집 뜰에는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아름다운 관목이 있는데 이 관목은 보스턴 시의 정원사들이 중요시하고 있는 튤립보다 나에게 더 많은 즐거움을 주고 있다. 촘촘히 모여서 단일색을 이루고 있는 백만 개의 튤립이 헐거롭고 자연스럽게 되어 있고 다양한 색깔을 가진 일이백 개의 관목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을까? 나의 취미에 관한 한 나는 이 질문에 쉽게 대답할 수 있지만 대답은 하지 않고 질문을 하는 것이다. 들판에는 이미 찬미할 것이 많이 있다. 털포장나무(관목)의 꽃은 이미 피었다가 졌고 지금은 안개 같은 윤여리아재비(관목)가 모든 울타리와 숲의 변두리를 희게 만들기 시작했고 사사프라스(녹나무과 식물)들이 얼마 안되는 방문객들을 위해서 노란 꽃송이들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밝은 햇빛을 받고 있는 산동이나물은 그늘진 시냇가에서 아직도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어떤 비판적인 사람들은 이 식물을 '늪의 금잔화'라고 부른다. 그것은 좋은 이름이다. 그러나 금잔화의 꽃이나 산동이나물의 꽃은 다 비슷하다. 할미꽃과 오랑캐꽃은 그 수가 많아지고 있으며 첫 산매발톱꽃의 돌출한 벼랑에 벌써 비었다. 이 산매발톱꽃이 있는 곳에는 범의귀과의 식물이 있다. 이 두 꽃은 모양은 서로 다르지만 아주 사이가 좋다. 산매발톱꽃은 그의 꿀단지를 아래로 척 드리운 채 우아하게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으며 범의귀과의 식물은 흰 컵 같은 덩굴을 위로 떠받치고 있어서 마치 그것은 많은 술잔이 쟁반 위에 있는 것과 같았다. 이 두 꽃은 어린아이들의 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두 꽃은 어린애들의 순진함과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 우리들이 만약 다른 꽃들을 따지 않으면 우리들은 항상 이 두 꽃과 할미꽃과 난초과의 분홍색 식물을 땄다. 그런데 이 화사한 난초는 속나무와 나란히 피어 있는 것을 나는 기쁘게도 일년 전에 발견했다. 어느 난초 하나는 꽃이 다 시들어 가고 있었고 다른 한 난초는 막 피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은 몇 야드 떨어진 채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있었다. 이곳은 에코 호숫가이며 이곳의 식물들은 사람들이 달력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그런 시기에 피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예를 들어 10여 야드 떨어진 곳에서 산딸나무가 성장의 온갖 단계를 보여주고 있었다. 눈더미가 늦게까지 있는 곳에서 이 산딸나무는 땅속에서 막 솟아 나오고 있었고 눈이 없는 곳에서는 산딸나무의 꽃이 만발하고 있었다. 5월이면 새들이 집에 온다. 이 때문에 5월 달은 짧아진다. 5월 중에는 발생되는 일의 반도 볼 시간이 없다. 이 도시에서 만도 많은 도보자들과 선량한 구경꾼들과 청취자들이 이번달(5월)에 겨울의 귀양살이에서 돌아오는 그 예쁜 동물들을 맞이한다. 물론 어떤 새들은 3월에 돌아왔고 어떤 새들은 4월에 돌아왔다. 그러나 지금 그 새들은 떼를 지어 오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보면 마음이 대단히 즐겁다. 오늘(5월 8일)도 그랬지만, 아침에 눈을 떠서 8개월만에 돌아온 꾀꼬리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을 가져다 준다. 새들은 4개월 동안 생활이 가능한 기후에서는 가정집을 자기들의 집으로 알고 있음에 틀림없다. 6일 전에(5월 2일) 장미 가슴을 한 콩새가 꾀꼬리보다는 멀리서 울어댔지만 꾀꼬리와 마찬가지고 나의 아침을 즐겁게 해주었다. 나는 일이 분 동안 서서 이 새의 지저귀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길을 건너서 그 장미빛 색깔의 새를 보았다. 그 새는 내가 기억했던 대로 밝은 색깔을 띠고 있었다. 금빛의 명금은 4월의 마지막 날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 다음날 아침 이 중 한 마리가 이상적인 피서지인 연못과 발랄한 시냇물이 있고 벌레들이 많은 숲속을 찾아 들어갔다. 그는 이곳에서 더 이상 멀리 가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숲을 지난 때마다 이 새의 노래를 듣는다. 이 숲속에는 개똥지빠귀 한 마리가 살고 있다. 나는 이 새를 5월 6일에 발견했다. 그런데 위의 명금과 이 개똥지빠귀는 서로 경쟁 의식과 악감정이 없었다. 그러나 만약 또 한 마리의 개똥지빠귀와 명금이 이 숲속에 들어와 살려고 한다면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또 5월에는 목이 흰 개고마리 비슷한 새(잘 우는 새)가 나를 찾아 주었다. 그 다음날에 극작조, 연작, 밤빛의 명금, 그리고 위에서 말한 콩새가 왔다. 그 다음날에는 극락조, 연작, 밤빛의 명금, 그리고 위해서 말한 콩새가 왔다. 날씨가 차가워 생활이 불리해지자 5월 6일이 될 때까지 다른 새는 오지 않았다. 5월 6일에 내쉬빌명금과 개똥지빠귀들이 찾아왔다. 5월 7일에 나는 초원의 명금의 노래를 들었다. 오늘은 꾀꼬리, 개똥지빠귀, 붉은 눈을 한 명금, 그리고 딱새들이 찾아왔다. 이런 일은 전에는 없었다. 이 계절에 이렇게 많은 새들을 볼 수 있었다가는 것은 우연한 일이다. 약간의 겨울새들은 아직도 떼를 지어 다닌다. 연작, 방울새, 그리고 자줏빛 방울새들은 특히 그렇다. 이틀 전에 나는 마치 혼례식이라고 치르듯이 화사한 옷을 입은 방울새 한 마리를 보았다. 자줏빛 방울새가 하늘 높이 떠서 너도밤나무의 꽃봉오리를 따먹고 있었다. 내가 본 여섯 내지 여덟 마리의 자줏빛 방울새는 문자 그대로 배를 꽉꽉 채우고 있었다. 그들의 식사 분량은 놀랄 만한 것이었다. 나는 그들이 계속 배불리 먹는 것을 보고 그 장소를 떠났다. 이 동안에 이 새들 중의 한 마리가 계속 노래를 불렀다. 시인이 훌륭한 사육가가 되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낡은 상자 속의 진실 크리스토퍼 몰리(1890__1957):미국의 작가로서 해버포드 대학 졸업 후 여러 신문사에 기고하면서 소설도 쓰는 등 문필 활동에만 전면. 그가 남긴 작품은 총 50여 권이나 되며, 그의 대표작으로는 "샌디거프", "트로이의 목마" 등이 있음. 영국국교의 기도서에는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을 끄는 근사한 글이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첫번째 사람은 그날 그날을 위해 수집을 하고 두번째 사람은 마음의 평화를 위해 수집을 하고 세번째 사람은 잘 살기 위한 은총을 위해 수집한다" 이 세 명의 수집가 중에서 세번째가 우리들에게 해당되길 바란다. 그날 그날을 위해 수집하는 사람은 아마 다시 팔기 위해 수집을 하고 있을 것이다. 마음의 평화를 위해 수집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가장 좋은 책을 갖고 있다는 가치 없는 감정을 갖고 있다. 우리들은 은총을 받기 위해 책을 수집하고 있는 사람이길 바란다. 사람들은 자기 친구들에게는 연설조로 이야기를 하지 않고 그저 그들과 같이 이야기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들은 이들이 대화 중에 격식을 차리지 않는 태도를 용서해 주어야 할 것이다. 나는 최근에 이르기까지 나 자신을 수집가라고 생각해본 적이 결코 없었다. 그런데 나는 10년 만에 처음으로 도시의 아파트에서 겨울을 보낸 일이 있었다. 이 아파트의 선반에는 여러 책들이 있었고 작은 마분지 상자가 하나 있었다. 그런데 이 마분지 상자의 내용물들은 내가 여기서 하려는 이야기의 상징을 제공하고 있다. 이 상자 속에는 너무나 귀중해서 없애 버릴 수 없는 자질구레한 것들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이 물 건들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그런 것들이었다. 이 상자에서 나는 여러 가지 색깔의 낡은 극장표들을 많이 발견했다. 나는 또한 단추와 팔뚝시계 끈에서 나온 깨진 버클, 구리철사 한 개, 더럽혀진 유리, 은도금을 한 병의 코르크 마개, 인디언들이 쓰던 화살촉, 기타 시시한 것들을 발견했다. 나는 이러한 잡동사니를 볼 때 본능적으로 이런 것들은 치워 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이 이상한 물건들은 다 각각 하나의 이야기의 주제가 될지도 모른다. 나는 이 물건들 중에서 다섯 내지 여섯 개를 골라서, 우리들로 하여금 위대한 책을 소중히 여기게 하는 도덕적인 상징, 다양한 분위기의 상징으로 사용하고자 한다. 내 마음속에 처음 떠오른 물건은 구리줄이었다. 이 구리줄의 이야기를 다 하려면 시간이 너무 길다. 간단히 말해서 이 구리줄은 해버포드 대학에 있는(지금은 철거되었지만) 공중전화박스에서 온 것이다. 이 공중전화는 내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에 기숙사의 젊은이들의 로맨스의 출구로 이용되었다. 수년 동안 이 기숙사의 젊은이들은 이 구리줄을 사용하여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그런데 작년에 공중전화박스가 철거되었을 때 이 구리철사의 일부를 회수했다. 그런데 지금은 퇴색되었지만 이 구리줄은 그 희미한 색깔에서 약간의 피로의 기색을 보여 주는 것 같았다. 순진하고 젊은 혈기에 찬 전기가 그 빛나는 줄을 타고 틀림없이 여행했을 것이라는 감상적인 회상을 하며 그 구리줄은 의사 전달로서의 문학의 기능을 매력적으로 상징한다고 혼자 생각했다. 이 잡동사니들로부터 내가 선택한 두번째 물건을 한 유리병 세트에서 온 은도금한 코르크 마개였다. 이 병들은 몇 년 전에 어느 책 수집가한테서 얻은 것이다. 여하튼간에 이 작은 코르크는 문학이나 예술에 있어서 흥분과 환희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혼자 생각했다. 그것은 또한 문학에 있어서 중요한 마취적인 기능이나 진정제의 기능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마분지 상자 속의 세번째 물건은 석영유리로 된 인디언의 화살촉이었다. 이것은 지극히 더운 어느날 롱아일랜드의 집의 잔디밭에서 주운 것이다. 이 날은 가뭄 때문에 잔디의 뿌리가 드러나 보였고 정원사는 전보다도 더 조심스럽게 잔디를 가꾸고 있던 때였다. 정원사는 어느날 저녁 잔디를 깎고 물을 주다가 잔디 위에서 흰 면도칼 모양의 화살촉을 발견했다. 나는 이 화살촉을 보고 문학이라는 것은 역시 가끔 하나의 날카롭고 침투력이 있는 미사일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나는 이 화살촉이 규모를 크게 잡으면 볼테르와 같은 사람이며 규모를 작게 잡으면 우리들과 같은 문학인들을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상술한 수집품들 중에서 네번째의 물건은 14세기의 얼룩진 유리조각인데 이것은 솨트르 성당에서 온 것이며 이 성당 관리인 자신의 몇 년 전에 나에게 직접 준 것이다. 이 유리는 우리들이 이 유명한 건물의 서쪽에서 본 그 재생 불가능한 푸른색의 물건이었다. 이 유리는 전쟁 중에 그 고귀한 유리창문들을 땅 속에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철거되었을 때 깨진 것이다. 내가 이 유리조각을 보았을 때 나는 솨트르 성당은 만월이 있는 밤과 같이 보였음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이 성당의 관리인이 바타이 씨는 자신의 유일한 친구인 개와 함께 이 성당에서 잠을 잔다. 그는 우유빛 달빛이 비치는 밤에 이 성당의 복도에는 불란서 옛날 역사의 유령들이 여기저기서 움직였고 또 그들은 기둥 뒤에서 나왔다가 다시 사라져서 개는 귀를 곤두세우고 개 특유의 불안을 표시했다고 나에게 말했다. 그리고 이 솨트르 성당의 그 유리조각은 반투명한 형태로서의 문학의 힘을 나에게 암시해 주었다. 만약 우리들이 쉘리(영국의 낭만파 시인)를 기억한다면 이 유리조각은 인간의 정서와 고통으로 채색된 창유리를 통해 우리들에게 오는 그 흰 광선을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그 잡동사니들 중의 마지막 물건은 너무나 비천하고 흔한 것이기 때문에 나는 여기서 언급하기가 두렵다. 그러나 이 물건은 이 상자 속에서 나왔으니 나는 어떤 무의식적인 목적을 갖고 이 물건을 소중히 간직했음에 틀림없다. 이것은 유명한 상표의 소독제가 들어 있었던 병과 같이 따라다니는 매우 작은 코르크 따개였다. 그리고 이것은 나에게 문학의 방부제적이고 항독소적인 중요성을 암시해 주었다. 물론 이와 같은 상징들은 우연적이고 공상적인 것이다. 나는 '단순히' 공상적인 것이라고 말하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결국 존 키츠(영국의 시인)가 말한 대로 문학이란 것은 공상 속에서 배회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도 없고 아무런 기능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상술한 그 매우 시시한 상징들은 완전하거나 철저하지 못하지만 나는 대부분의 문학은 의사 전달, 흥분, 침투, 신비로움, 아니면 순화로서 분류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공부에 대하여 프란시스 베이컨(1561__1626):영국의 철학자, 정치가, 법률가. 셰익스피어의 동시대 인물로서 엘리지베스 여왕의 고문 역할도 했음. 오늘날까지도 그의 수필은 여전히 많이 읽혀지고 있음. 공부는 기쁨도 가져다 주고, 장식과 그리고 능력에도 이용된다. 공부가 즐거움을 가져다 주는 데 이용되는 중요한 계기는 개인적으로 혼자 있을 때이다. 공부가 장식에 사용되는 중요한 계기는 토론할 때이며 능력에 사용되는 중요한 계기는 일을 판단하고 처리할 때이다. 전문가는 세부적인 사항을 하나씩 하나씩 집행하고 판단해 나간다. 그러나 일반적인 자문과 일들의 계획과 정리 등은 학문이 있는 사람들로부터 가장 잘 얻을 수 있다. 공부에 너무나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은 게으름을 피우는 것과 같다. 공부를 장식용으로 너무 사용하면 그것은 남들에게 척하는 것과 같다. 전적으로 공부의 법칙에 의해서 판단을 내리는 것은 학자의 기질이다. 공부를 천성을 완성시키며, 또한 경험에 의해서 완성된다. 왜냐하면 타고난 능력은 야생식물과 같기 때문에 그것은 공부와 같은 것에 의해 가꾸어질 필요가 있다. 공부는 경험이란 것에 의해 한계가 정해지지 않으면 공부 그 자체는 자기 멋대로 방향을 잡는다. 교활한 사람들은 공부를 경멸하고 단순한 사람들은 공부를 찬미하며 현명한 사람들은 공부를 이용한다. 공부는 공부 자체를 어떻게 이용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러나 공부라는 것 없이 관찰에 의해서 얻어진 것이 현명함이다. 반박하거나 논박하기 위해서 독서를 하지 말라. 또 믿기 위해서, 아니면 이야기나 논쟁거리를 찾기 위해 읽지 말고 평가하고 고려하기 위해 읽어라. 어떤 책들은 맛만 봐야 되고, 어떤 책은 통째 삼켜 버려야 하며, 어떤 책은 씹고 소화해야 된다. 다시 말해서 어떤 책은 부분적으로만 읽어야 하고 어떤 책은 전부 읽어야 하며 어떤 책은 부지런히, 그리고 주의 깊게 읽어야 한다는 말이다. 독서는 완전한 인간을 만든다. 회담은 재치 있는 인간을 만들고 글을 쓰는 것은 정확한 인간을 만든다. 그래서 만약 사람이 글을 거의 쓰지 않으면 그는 굉장한 기억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만약 사람이 상담을 하지 않으면 그는 기지가 있어야 한다. 만약 사람이 독서를 거의 하지 않으면 그는 교활성이 많아야 한다. 역사는 사람을 현명하게 만들고 시인을 재치 있게 만든다. 수학은 사람들을 오묘하게 만들고, 자연철학은 인간을 깊이가 있게 만들고, 도덕은 인간을 엄숙하게 만들고, 논리와 수사학은 인간에게 싸울 수 있는 능력을 준다. '집안의 천사'를 죽이는 일 버지니아 울프(1882__1941):영국의 여류소설가, 수필가, 문학비평가.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댈리웨이 부인", "등대로", "파도" 등이 있으며, 그의 소설들은 일반적으로 의식의 흐름을 나타내는 경향을 지님. 여기에 실린 글은 어느 여성 단체에서 행한 연설문임. 여러분들의 서기가 저를 이곳에 초청했을 때 그녀는 이 협회가 여성들의 직업과 관계가 있다고 저에게 말씀해 주시면서 저의 직업상의 경험에 대해서 말해도 좋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여자이며 직업인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제가 직업적으로 무슨 경험을 얻었는지는 말하기가 어렵군요. 저의 직업은 작가입니다. 이 문학하는 여자는 다른 어느 여자들보다 경험한 바가 적습니다. 예외가 있다면 그것은 무대 위에서일 것입니다. 저보다 앞서간 유명 무명의 많은 여자들, 예를 들면 제인 오스틴(영국의 여류작가)이나 조지 엘리엇(영국의 여류작가)과 같은 분들이 길을 닦아 주었고 제가 걸어야 할 길을 조절해 주었습니다. 따라서 제가 글을 쓸 때에는 자료상의 장애물은 거의 없었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명예롭고 해가 없는 직업입니다. 펜대를 굴린다고 해서 가정의 평화가 깨지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글을 쓰는 직업은 가정으로부터 재정적인 요구를 하지 않습니다. 16펜스만 가지면 셰익스피어의 전 작품을 다 살 만큼의 충분한 종이를 살 수 있습니다. 작가는 피아노나 모델 등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물론 원고지의 값이 싸기 때문에 여자들은 따로 어떤 직업에서보다도 작가로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저의 이야기를 말씀드리자면, 그것은 간단한 이야기입니다. 여러분들은 침실에서 손에 펜을 들고 있는 한 여자를 상상하면 되겠습니다. 이 여자는 그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리고 시간은 아침 10시에서 오후 1시까지 펜대를 굴리면 되는 것입니다. 그녀는 간단하고 시시한 것들을 몇 장 써서 봉투에 넣고 봉투 모서리에 우표를 붙여 가지고 골목 우체통에 집어넣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저는 기고가가 되었어요. 저의 노력은 그 다음달 첫째날에 보답을 받았어요. 이 날은 저에게는 영광스러운 날이었어요. 편집인은 저에게 1파운드 10실링 6펜스 되는 수표를 보내 주었어요. 저는 제가 전문직에 종사하는 여자라고 불리울 만한 자격이 없으며 이런 기고가의 생활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솔직히 말씀드리는데 저는 이 돈을 빵과 버터, 집세, 신발, 스타킹이나 푸줏간 집의 청구서에 지불하지 않고 밖에 나가서 고양이 한 마리, 그것도 아름다운 페르시아산 고양이를 한 마리 샀어요. 그런데 이 고양이 때문에 나는 이웃 사람들과 말다툼까지 한 적이 있었어요. 기사들을 써서 그 수입으로 페르시아산 고양이를 한 마리 사는 것보다 더 쉬운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기사에는 무엇인가 담겨져 있지 않으면 안됩니다. 제가 지금 기억하기로는 저의 첫 기사는 유명한 사람의 소설에 관한 것이었어요. 이 평론을 쓰고 있는 동안 나는 만약 내가 평론들을 쓰려고 한다면 어떤 유령과 싸우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그 유령은 어떤 여자였어요. 내가 그녀를 더 잘 알게 되었을 때 저는 그녀를 어느 유명한 시의 여주인공의 이름을 붙여 주었어요. '집안의 천사(The Angel in the House:Coventry Patmore(1823__1896)가 쓴 시)'라는 이름이었죠. 제가 평론들을 쓰고 있을 때 저와 저의 평론 사이를 왕래하는 사람이 바로 이 여자였어요. 이 여자는 저를 귀찮게 굴었고 시간을 낭비하게 했으며 괴롭혔기 때문에 저는 마침내 그녀를 죽여 버렸어요. 저보다 더 젊고 더 행복한 세대인 여러분들은 그녀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며 제가 말하는 집안 의 천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할 것입니다. 이 여자에 대해서 되도록이면 간단히 말씀드리겠어요. 그녀는 대단한 동정적이었고 대단히 매력적이었고 비이기주의적이었어요. 그녀는 가정생활의 어려운 문제들을 훌륭하게 처리해 냈어요. 그녀는 매일 자기 자신을 희생시켰어요. 닭고기가 식사에 나오면 그녀는 자기가 먹었어요. 무엇보다도 그녀는 순수했어요. 그녀의 순수성은 그녀의 중요한 아름다움이었어요. 빅토리아 여왕 말기에는 어느 집에나 이 천사가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글을 쓰게 되었을 때 저는 처음부터 이 여자를 만나게 되었어요. 그녀의 날개의 그림자가 저의 원고지에 드러워져 있었고 방안에서 그녀의 스커트가 바스락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제가 그 유명한 사람의 소설에 대한 평론을 쓰려고 펜을 쥐었을 때 그녀는 저의 등뒤에 와서 이렇게 속삭이더군요. "여보세요, 당신은 젊은 여자입니다. 당신은 남자가 쓴 책에 관해서 글을 쓰고 계시군요. 동정을 갖고 부드럽게 쓰세요. 아첨도 하고 속이세요. 여성의 모든 기교와 간계를 이용하세요. 당신이 당신 자신의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마세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순수성을 지니세요." 그녀는 마치 저의 펜을 인도하듯이 행동하더군요. 저는 그 여자에게 달려들어 그녀의 목을 잡았어요. 그리고 혼신의 힘을 다해 그녀를 죽였어요. 제가 만일 법원에 송치된다면 저는 정당방위를 했을 뿐이라고 말할 참이었어요. 제가 그녀를 죽이지 않았더라면 오히려 그녀에게 죽음을 당했을 거예요. 그녀는 저의 작품에서 용기를 다 빼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원고지에 펜을 대는 순간 저는 저 나름의 정신을 갖지 않고는 소설 평론을 쓸 수 없으며, 또 인간관계, 도덕, 그리고 성에 대한 진실을 표현하지 않고는 소설 평론을 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집안의 천사의 말대로 한다면 여자들은 이 모든 문제들을 자유롭고 공개적으로 취급할 수 없게 되어 있어요. 오히려 여자들은 성공을 하기 위해서는 매력을 가져야 하고 유화적인 행동을 해야 하며 거짓말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여자의 날개나 아니면 그녀의 후광의 빛남을 볼 때마다 잉크병을 집어서 그녀에게 던졌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좀처럼 죽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허구적인 성격은 그녀를 크게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현실을 죽이는 것보다는 환영을 죽이는 것이 더 어려운 일입니다. 제가 그녀를 죽였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그녀는 슬슬 기어올라 왔어요. 그런데 마침내 그녀를 죽였다고 자만하고 있었으나 그녀와의 싸움은 심한 것이었어요. 그녀와 싸우느라고 시간이 많이 소비되었는데 이 시간은 희랍어 문법을 배우거나 모험을 찾아서 세계를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이 더 나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와의 싸움은 참된 경험이었어요. 이 경험은 그 당시 모든 여류작가가 부닥치지 않으면 안되는 그런 경험이었어요. 집안의 천사를 죽이는 일은 여류작가의 직업의 일부였어요. 다시 저의 이야기를 계속하겠어요. 그 천사는 죽었어요. 그런데 남은 것은 무엇입니까? 남은 것이란 잉크병이 있는 침실 속의 한 여성이라고 여러분들은 말씀하시겠죠. 다른 말로 하면 이 여성은 허위를 제거해 버렸으니 남은 것은 그녀 자신뿐이었지요. 아! '그녀 자신'은 무엇입니까? 제 말씀은 여성이란 무엇이냔 말입니다. 여러분들에게 확실히 말씀드리지만 저는 여성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누구도 인간적 기술에 공개된 기술과 전문직에 있어서 자신을 표현할 때까지는 여성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의 직업상의 경험을 계속 이야기하겠습니다. 저는 평론을 처음 써 가지고 1파운드 10실링 6펜스를 받았어요. 그리고 그 수입으로 페르시아산 고양이를 샀어요. 그러자 저에게는 야심이 생겼어요. 페르시아산 고양이는 좋은 것이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충분치 않았습니다. 저는 자동차가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소설가가 되었어요.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면 그들이 저에게 자동차를 제공한다는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이보다 더욱 더 이상한 일은 이 세상에는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더 즐거운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소설의 평론을 쓰는 것보다 훨씬 더 유쾌한 일입니다. 그러나 제가 여러분들의 서기의 말대로 소설가로서의 저의 직업적인 경험을 말한다면 저는 소설가로서 경험한 이상한 것들을 여러분들에게 말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이 경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은 우선 소설가들의 마음 상태를 상상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안됩니다. 소설가의 중요한 욕망은 되도록이면 무의식 상태에 있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이 말을 한다고 해서 제가 소설가의 비밀을 폭로하는 것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소설가는 영구적인 무기력 상태를 자신에게 끌어들이지 않으면 안됩니다. 소설가는 자기가 살고 있는 환상이 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자기가 글을 쓰고 있는 동안 똑같은 얼굴을 보고 똑같은 책을 읽고 매일매일, 그리고 다달이 똑같은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저는 이런 상태는 남자나 여자에게 다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간에 여러분들은 제가 무아지경의 상태에서 소설을 쓴다고 상상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손에 펜대를 쥐고 몇 분 동안. 그리고 정말이지 몇 시간 동안 그 펜대를 잉크병 속에 넣지 않고 그저 앉아만 있는 한 여자를 여러분들은 머릿속에 그려 주시기 바랍니다. 이 여자를 생각할 때 나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영상은 깊은 호숫가에서 낚싯대를 드리운 채 꿈을 꾸며 누워 있는 어느 어부의 모습입니다. 그녀는 무의식의 존재의 심연 속에 함몰되어 있는 세상의 바위와 바위틈바구니까지 구애를 받지 않고 상상의 날개를 펴고 있는 것입니다. 이때 저는 남성작가들에게보다는 여류작가들에게 훨씬 더 공통적인 것으로 생각되는 경험을 느꼈습니다. 여류작가의 상상력은 그 상상의 날개를 마구 펴나갔습니다. 그녀의 상상력은 큰 물고기들이 잠을 자고 있는 어두컴컴한 깊은 동굴 속을 찾아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어떤 충돌이 있었고 무엇인가 폭발했어요. 포말과 혼란이 그 뒤를 따랐어요. 상상력은 그 딱딱한 어떤 것을 향해 돌진했어요. 여류작가는 꿈에서 깨어났어요. 그녀는 사실 가장 격렬하고 어려운 슬픔의 상태에 있었어요. 그녀는 신체에 대한 어떤 것, 그리고 여자가 말하기에는 부적당한 것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그녀의 이성은 남자들이 이런 것을 보면 충격을 받을 것이라고 그녀에게 말해 주었어요. 자신의 정열에 대해 진리를 말하는 여자들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남자들이 이야기하고 있다는 의식이 그 여자의 무의식의 상태로부터 그녀를 깨워준 것입니다. 그녀는 더 이상 글을 쓸 수가 없습니다. 무아지경은 끝이 났습니다. 그녀의 상상력은 더 이상 작용을 할 수가 없었어요. 이것은 여류작가에게 매우 공통된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여류작가들은 이성의 극단적인 인습에 의해 방해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저 자신의 두 개의 진정한 경험입니다. 이것들은 저의 직업 생활에 있어서 두 개의 모험입니다. 최초의 모험은 집안의 천사를 죽이는 일이었는데 나는 이 문제는 해결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두변째의 경험, 다시 말하면 하나의 신체로서의 저 자신의 경험에 관한 진리를 이야기하는 것에 관해서는 아직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어느 여자도 이것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녀를 가로막는 장애물은 아직도 막강합니다. 그렇지만 이 장애물들은 정의를 내리기가 어렵습니다. 외견상으로 볼 때 책을 쓰는 것 외에 더 쉬운 일이 또 어디에 있겠어요? 외견상으로 볼 때 남자보다도 여자에게 무슨 장애물이 있겠어요? 그러나 여자는 마음속에 싸워야 할 많은 유령들이 있고 극복해야 할 많은 편견들이 있습니다. 사실이지 살해해야 할 유령과 부딪쳐야 할 바위가 없이 앉아서 글을 쓰려면 시간이 많이 흘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의 직업 중에서 가장 자유로운 직업인 문학이 이러할진대 여러분들이 지금 진출하고 있는 그 새로운 전문직들은 어떻습니까? 이런 것들은 제가 시간이 있다면 여러분들에게 하려고 했던 질문입니다. 사실이지 제가 저의 직업상의 경험을 강조했다면 그것은 저의 경험이 형태는 다르지만 여러분들의 경험과 같은 것이라고 믿습니다. 여자들이 의사나 변호사나 공무원이 되는데 표면상으로는 아무런 장애물이 없다 할지라도 많은 유령과 보이지 않는 장애물이 그들 앞에 어렴풋이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이런 문제를 토의하고 정의를 내린다는 것은 대단히 가치 있고 중요한 일입니다. 노력을 같이 해야 어려움을 해결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남자들만이 차지했던 집에서 여러분의 방을 얻은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큰 노력을 들인 것은 아니지만 집세를 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일년에 500파운드를 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시초에 불과합니다. 그 방은 여러분의 방이지만 방안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방안에 가구를 갖다 놓고 장식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이 방을 어떻게 장식하겠습니까? 여러분들은 무슨 조건으로, 누구와 함께 이 방을 쓰겠습니까? 역사상 처음으로 여러분들은 스스로 이러한 질문에 대한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기꺼이 이곳에 남아서 이러한 질문과 대답에 대해 논하고 싶습니다만 오늘밤은 안되겠습니다. 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만 마쳐야겠습니다. 살아 있는 느낌을 위해 D.H. 로렌스(1885__1930):영국의 소설가, 시인, 수필가. 한때 교직 생활을 했으나, 1912년부터 본격적으로 문학 활동에 전념.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무지개", "아들과 연인", "캥거루", "채털리 부인의 사랑" 등이 있음. 우리들은 우리들 자신에 이상한 갖고 있다. 우리들은 우리들 자신을 영혼이 깃들어 있는 육체로 생각하거나, 아니면 정신이 깃들어 있는 육체로 생각하거나, 아니면 마음이 깃들어 있는 육체로 생각한다. 세월은 술을 마셔 버리고 마침내 그 병을 던져 버린다. 물론 이 병은 육체이다. 그것은 하나의 재미있는 미신이다. 내 손이 이 단어들을 재치 있게 써 나갈 때 나는 왜 나의 손을 보고 그 손은 그것을 지도하는 정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단언하는가? 나의 손과 나의 두뇌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는가? 아니면 나의 손과 정신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라도 있단 말인가? 나의 손은 살아 있으며 손은 그 자신의 생명을 갖고 이리저리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손은 이상한 모든 삼라만상과 접촉을 하고, 많은 것들을 배우고, 많은 것을 안다. 이 단어들을 쓰고 있는 나의 손은 유쾌하게 미끄러지듯이 나아가고 마치 메뚜기가 i글자를 점찍듯이 빨리 움직이면서 테이블이 차갑다는 것을 느끼고 내가 너무 많이 글을 쓰면 약간 지루하다고 느낀다. 그리고 나의 손은 자기 나름의 기본적인 생각을 갖고 있으며 그것은 나의 두뇌, 정신, 영혼과 같이 나의 신체의 일부이기도 하다. 나는 왜 손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내 몸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나의 손이 완전히 살아 있기 때문에 나라는 존재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닌가? 물론 이에 반해서 나의 펜은 살아 있지 못하다. 나의 펜은 살아 있는 내가 아니다. 나의 신체에 있는 것은 어느 것이나 다 살아 있다. 나의 손의 어느 부분도 다 살아 있다. 주근깨, 피부의 주름 같은 것들도 다 살아 있다. 나와 그 무생물체 사이에 있는 그 작은 열 개의 무기인 손톱들만이 나와, 살아 있지 않은 펜과 같은 것 사이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 사실이지 만약 내가 손에 상처를 내면 손에서는 마치 버찌통에서처럼 피가 흐를 것이다. 그러나 상처가 난 피부, 피가 흐르는 정맥, 그리고 결코 눈에 보이지 않는 뼈 등은 흐르는 피처럼 다 살아 있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들이 소설가가 될 때 배우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만약 사람들이 목사나 철학자나 과학자, 아니면 어리석은 사람들이 되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 어느 사람이 목사가 된다면 그는 하늘에 있는 영혼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만약 그가 소설가라면 그는 천국은 자신의 손바닥에, 그리고 코끝에 있다는 것을 안다. 왜냐하면 그의 손바닥이나 코끝은 다 살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낙원이라는 것은 내세를 위한 것이다. 그리고 나로서는 내세에 관한 것에 대해 그리 신경을 쓰지 않는다. 만약 어떤 사람이 철학자라면 그는 무한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이고 모든 것들을 알고 있는 순수한 영혼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이다. 그가 만약 어느 소설을 읽어보면 그는 무한이라는 것은 나의 이 신체에 대한 운전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만약 나의 손가락이 불 속에 들어가면 나는 불이 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열반이라는 것은 하나의 추측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다. 살아 있는 나의 신체가 모든 것을 강렬하게 알고 있다. 지식에 관해서 말한 대로 그것은 내가 나의 신체를 통해서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의 집합체에 불과한 것이다. 생명 이외에 더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 자신에 관해 말한다면 삶을 영위해 가는 데에서 생명을 완전히 볼 수 있다. 비를 맞고 있는 양배추도 살아 있다. 살아 있는 것은 어느 것이나 다 놀라운 것이다. 그리고 죽은 것들은 다 살아 있는 것에 대해 종속적인 것이다. 죽은 사자보다 살아 있는 개가 되는 것이 더 낫다. 그리고 살아 있는 개보다 살아 있는 사자가 되는 것이 더 좋다. 이것이 생활이다. 성자, 철학자, 아니면 과학자들에게 이 간단한 진리를 계속 믿게 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 같다. 예를 들어 철학자들은 자신들은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생각 이외에 중요한 것은 없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것은 독기가 적은 환약 같은 것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에 적은 환약 같은 물건 이외에는 아무 것도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과학자도 내가 살아 있는 한 나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과학자에게 죽은 사람과 같다. 과학자는 나의 신체의 죽은 일부를 현미경 밑에 두고 그것이 나라고 부른다. 그는 나를 하나하나 분해한다. 과학자는 나를 심장, 간장, 그리고 복부로 분류한다. 그래서 나는 요사이는 하나의 뇌 아니면 신경이나 분비선이 된 것이다. 지금 나는 내가 영혼, 혹은 신체, 혹은 정신, 아니면 지성, 두뇌, 신경조직이나 나의 신체의 기타 다른 부분이라는 것을 단호히 부인한다. 전체는 부분보다 위대하다. 그리기 때문에 살아 있는 나는 나의 정신, 영혼, 신체, 의식, 아니면 나의 단순한 부분인 기타의 것보다 더 위대하다. 나는 하나의 인간이고 살아 있다. 나는 살아 있는 인간이다. 나는 계속 살아 있는 사람이 될 작정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나는 소설가가 되었다. 나는 소설가이기 때문에 인간의 여러 단편적인 것의 대가들인 철학자나 과학자나 시인 같은 사람들보다 더 우수하다고 생각한다. 소설은 생명의 책이다. 성경, 호머, 셰익스피어 등 이 모든 것들은 최고의 오래된 소설들이다. 그들은 모두가 인간과 관계되는 것을 취급하고 있다. 일 말은 이 소설들은 살아 있는 인간 전체에 영향을 끼이고 있다. 소설에서 작중인물들은 다 생동한다. 소설에서의 작중 인물은 살아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들도 역시 살아 있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살아 있고 살아 있는 인간이 되고, 살아 있는 전인적인 인간이 되는 데에는 소설이 도움을 줄 수 있다. 소설은 생활에 있어서 죽은 사람이 되지 않도록 하는데 도움을 준다. 소설은 사람들에게 생활에의 본능을 개발시켜 줄 수 있다. 망명자의 언어 아이작 바쉬비스 싱어(1904__1991):폴란드 태생의 미국 작가로서 197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함.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고레이에서의 악마", "루블린의 마술사", "노예", "바보 김펠", "쇼샤" 등이 있음. 다른 어느 시대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우리 시대의 작가나 시인은 단지 사회적, 정치적 이상을 설교하는 사람이 아니라 완전한 의미에서의 정신의 연예인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또 하나의 진실은 우리 시대의 진지한 작가라면 그의 시대의 문제들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종교의 힘, 특히 계시에 대한 신앙은 오늘날에 있어서는 다른 어느 시대보다 약하다는 것을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 더 많은 아이들이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없어, 그리고 심지어는 윤리의 타당성을 믿지 않고 성장한다. 진정한 작가는 가정이 자신의 영적인 기초를 잃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다. 이차 대전 이래로 오스왈드 슈펭글러의 그 암담한 예언은 현실적인 것이 되었다. 기술이 아무리 발달한다 해도 그것은 현대인의 실망, 고독, 열등감, 전쟁, 혁명, 공포에 대한 불안을 진정시켜 줄 수 없다. 우리의 세대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제도, 그리고 인간 자신에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 대한 신념을 상실했다. 말 많은 사람들은 절망한 나머지 말의 대가인 작가들을 쳐다본다. 그들은 재능과 감수성이 있는 사람이 문명을 구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아마 예술가에게는 예언자의 번득임이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광기가 줄 수 있는 가장 심한 타격을 받은 사람의 아들인 나는 참다운 출구를 찾는 일을 여러 번 단념했다. 나는 자유 의지를 믿도록 양육되었다. 나는 모든 계시를 의심하게 되었지만 우주가 하나의 물리적이고 화학적인 우연이라는, 다시 말하면 맹목적인 진화의 결과라는 생각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나는 비록 인간 정신의 상투적인 것과 우상적인 것을 인식하는 법을 배웠지만 우리들 모두가 언젠가는 받아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되는 약간의 진리를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자연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가능한 모든 쾌락과 모든 힘과, 지식을 달성하면서도 하나님을 검길 수 있는 길이 있음에 틀림없다. 나는 문학이 철학적, 종교적, 심미적, 그리고 심지어는 사회적인 범위와 관점을 가져올 수 있다는 환상을 하는 사람들 중에 속한다는 것을 부끄럼이 없이 솔직히 말한다. 고대 유대 문학사에 있어서 시인과 예언자 사이에는 기본적인 차이가 없었다. 우리들의 고대의 시는 가끔 율법이자 하나의 생활 방식이 되었다. 뉴욕에 있는 나의 옛친구들은 나를 비관주의자이자 퇴폐주의자라고 부른다. 그러나 체념 뒤에는 항상 신앙이라는 배경이 있다. 나는 보들레르, 베르뎅, 에드가 앨런 포, 그리고 스트린버그와 같은 비관주의자이자 퇴폐주의적인 사람들한테서 위안을 찾는다. 나는 영혼의 연구에 흥미를 갖다 보니 스웨덴보르그나 나하만 브랏츠레버와, 몇 년 전에 작고한 나의 친구인 아론 자이트린과 같은 위대한 시인한테서 위안을 찾게 된다. 창조적인 인간의 비관론은 퇴폐적인 것이 아니고 인간의 속죄에 대한 강력한 정열인 것이다. 시인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면서도 계속해서 영원한 진리를, 다시 말하면 존재의 본질을 찾고 있다. 그는 자기 나름대로 시간과 변화의 수수께끼를 해결하고, 고통에 대한 해답을 찾으며 잔인함과 불의의 바로 그 심연 속에서 사랑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이 말들은 이상하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나는 모든 사회적인 이론들이 무너지고 인간이 암담해지게 되면 시인이 우리 모두를 구원해줄 것이라는 생각을 장난 삼아 해본다. 스웨덴 한림원이 나에게 준 높은 영광은 이디시어(독일어에 히브리말을 섞어 히브리문자로 표기하며 유럽과 미국의 유태인이 쓴다), 다시 말하면 나라도 국경도 없는 망명자의 언어를 인정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상 유태인 지역에 사는 이디시어 사용자들은 위대한 종교가 실천한 것을 매일매일 실천하고 있다. 그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인간과 인간관계의 연구를 하는 것을 최고의 기쁨으로 알고 있다. 그들은 인간과 인간관계의 연구를 토라, 탈무드, 무사, 카발라라고 부른다. 유태인 거주 지역은 박해받은 소수민의 피난처일 뿐만 아니라 평화, 자기 훈련, 그리고 휴머니즘에 있어서 하나의 커다란 실험실이다.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라났다. 나의 부친의 집은 연구실이고, 재판소이며, 기도하는 집이며, 이야기하는 집이며, 결혼식을 올리는 곳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 나의 형이자 스승인 I. J. 싱어에게서 들은 이야기인데 스피노자에서 노도에 이르는 합리주의자들은 종교에 반대했다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진리를 의심하고 진리를 찾는 사람들에게 모든 답변을 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한테서 들었다. 모든 환멸과 모든 회의론에도 불구하고 나는 국가들이 유태인으로부터 많은 것들, 다시 말하면 그들(유태인)의 사고방식, 자녀 교육 방법,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비참과 굴욕만을 보는 곳에서 행복을 찾는 방법을 배울 것이라고 믿는다. 이디시어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행동은 동일하다. 사람들은 이디시어와 이디시어의 문체에서 경건한 기쁨, 생애에의 강한 욕구, 구세주에 대한 동경, 그리고 인간의 개성에 대한 깊은 감지 등을 발견할 수 있다. 이디시어에는 조용한 유머가 있고 일상생활과 일체의 성공, 그리고 사랑의 만남에 대한 감사가 있다. 이디시인들의 정신 상태는 거만하지 않다. 그들은 승리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요구하거나 명령하지 않고 어디에선가 하나님의 창조 계획은 아직도 그 시작의 단계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떤 사람들을 이디시어를 죽은 언어라고 말한다. 히브리어도 2,000년 동안 죽은 언어라고 불리워졌다. 그러나 이디시어는 매우 놀랄 만하고, 거의 기적적인 방법으로 우리 시대에 부활되었다. 아람(Aramaic)어는 확실히 수세기 동안 죽은 언어였다. 그러나 이 언어는 숭고한 가치가 있는 신비의 작품인 조하르(Zohar)를 햇빛을 보게 했다. 이디시 문학의 고전들은 현대 히브리 문학의 고전들이라는 것도 하나의 사실이다. 이디시어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보물들을 간직하고 있다. 이디시어는 순교자들, 성자들, 몽상가들, 그리고 히브리 신비철학자들의 언어였으며 그 안에는 인류가 결코 잊을 수 없는 유머와 기억이 담겨져 있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이디시어는 우리들 모드의 현명하고 겸손한 언어이며 놀라기도 하고 희망에 부푼 인간의 고유어이기도 하다. 예수의 생애 찰스 디킨스(1812__1870):영국의 대표적인 소설가로서, "데이비드 카퍼필드", "올리버 트위스트", "두 도시의 이야기", "크리스마스 캐럴" 등의 작품을 남김. 여기에 실린 작품은 그가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 신약 성경의 이야기에 관해 쓴 책으로서 비기독교인들도 읽어둘 만한 좋은 글임. 제1장 나의 어여쁜 아이들아, 나는 너희들이 예수의 일생에 대해서 뭔가 알고 있었으면 한다. 왜냐하면 누구나 그분에 대해서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았던 사람들 중에서 그처럼 훌륭하고 친절하고, 점잖고, 나쁜 일을 한 사람들을 위해 슬퍼한 사람은 없었다. 그는 지금 우리들이 가고 싶어하는 천국에 있기 때문에 우리들은 죽은 후에 그곳에서 모든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며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너희들은 예수가 누구이며 무엇을 했는지 알지 못하고서는 천국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약 2,000년 전 베들레햄이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나자렛이라는 곳에서 살았으나 사업상 베들레헴을 여행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의 아버지의 이름은 요셉이었고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였다. 그리고 그 소도시의 사람들이 매우 많았기 때문에 요셉과 마리아가 여인숙이나 가정집에서 기거할 방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마굿간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요람이나, 요람 비슷한 어떤 것도 없었다. 그래서 마리아는 그의 어린 아기를 이른바 말구유라는 곳에 놓았다. 그 애기는 곧 잠이 들었다. 그가 자고 있는 동안 들판에서 양을 치던 목동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밝고 아름다운 천사가 풀밭을 건너 자기에게 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처음에 그들은 무서워서 엎드려 얼굴을 가리었다. 그러나 천사는 말했다. "오늘 이 근처 베들레헴이라는 도시에서 아이가 하나 태어났다. 그런데 그는 매우 훌륭한 아이로 성장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그를 그의 아들로 사랑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언쟁을 하지 않고 해치지 말라고 가르칠 것이다. 그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가 될 것이며 사람들은 기도할 때 그의 이름을 말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좋아하시기 때문이다." 그리고나서 그 천사가 목동들에게 그 마굿간으로 가서 구유에 있는 어린 아기를 보라고 말했다. 그들은 천사가 시킨 대로 말구유 옆에 무릎을 꿇었다. "하나님이시여, 이 아기를 축복해 주옵소서." 그 나라의 수도는 런던이 영국의 수도인 것과 같이 예루살렘이었다. 그래서 왕은 예루살렘에서 살았고 왕의 이름은 헤로드였다. 그런데 현인 몇 명이 먼 동방으로부터 와서 왕에게 말했다. "우리들은 하늘에서 별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별은 한 아이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이며 그는 살아서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을 것이라고 우리들에게 알려주었습니다." 헤로드 왕이 이 말을 들었을 때 그는 사악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질투를 느꼈다. 그러나 그는 내색을 하지 않았고 그 현인들에게 말했다. "아이는 어디에 있느냐?" 현인들이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저 별이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별이 여기까지 움직여 왔고 아직도 하늘에 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헤로드는 그 별을 보면 그 아기가 살고 있는 곳을 알 수 있는지 물어 보았다. 그리고 그들이 만약 아기들을 찾으면 자기들에게 다시 오라고 명령했다. 그래서 그들은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별은 그들의 머리 위에서 조금 앞으로 계속 움직이다가 아기가 태어난 집 위에서 정지했다. 이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었으나,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도록 명령했기 때문이었다. 별들이 정지했을 때 현인들은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아기가 그의 엄마인 마리아와 같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그를 매우 사랑했기 때문에 그에게 약간의 선물을 주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가버렸다. 그러나 그들은 헤로드 왕에게 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가 말을 하지는 않았으나 질투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밤을 이용하여 자기네 나라로 가버렸다. 그리고 한 천사가 나타나서 요셉과 마리아에게 그 아기를 이집트라는 곳으로 데리고 가라고 말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헤로드 왕이 그를 죽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밤중에 빠져 나와 그곳에 무사히 도착했다. 잔인한 헤로드 왕은 현인들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과 이 아기 예수 그리스도가 어디에 사는지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자 병사들에게 명령하여 자기의 나라에 있는 아이들 중에서 두 살 미만 된 아이들은 다 죽이라고 명령했다. 그 고약한 병사들은 명령대로 했다. 어머니들은 아이들은 구하기 위하여 그들을 굴이나 지하실에 감추어 두기도 하며 아이들을 안고 거리를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병사들은 손에 칼을 들고 닥치는 대로 아이들을 죽였다. 이 무서운 살인은 '무고한 자의 학살'이라고 불리운다. 그 이유는 아이들에게는 죄가 없었기 때문이다. 헤로드 왕은 예수 그리스도도 병사의 칼에 죽었기를 바랬다. 그러나 그는 아시다시피 죽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나쁜 헤로드 왕이 죽을 때까지 이집트에 있었다. 제2장 헤로드 왕이 죽었을 때 한 천사가 요셉에게 와서 예루살렘에 가도 된다고 말하면서 아이들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요셉과 마리아와 그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루살렘을 향해 여행을 떠났다. 그러나 가는 도중에 헤로드 왕의 아들이 새로운 왕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그도 또한 아이들은 해치지 않을까 두려워서 가던 길을 변경하여 나자렛으로 갔다. 그들은 거기서 예수가 12살이 될 때까지 살았다. 어느날 요셉과 마리아는 큰 교회, 아니면 성당 등에서 그 당시에 자주 열렸던 종교적인 축제에 참석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갔다. 축제가 끝났을 때 그들은 많은 친구들과 이웃들과 함께 예루살렘에서 나자렛에 있는 자기 집으로 갔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강도가 두려워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여행을 했기 때문이다. 이 당시의 길은 지금처럼 안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보다 여행이 더욱더 어려웠다. 그들은 하루종일 여행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가 그들 중에 끼어 있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왜냐하면 일행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가 어디엔가 있을지도 모른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예수가 거기에 없다는 것을 알고 그가 아마 없어지지나 않았나 생각하고 대단히 걱정을 하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예수는 성전에 앉아서 박사라고 불리우는 사람들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에게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오늘날 우리들이 말하는 의사와는 다른 사람들이다. 그들은 병자를 치료하지 않았다. 그들은 학자이며 영리한 사람들이었다. 예수께서는 자기가 한 말과 질문에 있어서 대단한 지식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그들은 모두 놀랐다. 그는 요셉과 마리아와 함께 나자렛에서 30세나 35세가 될 때까지 살았다. 그 당시에 요한이라는 훌륭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마리아의 사촌인 엘리자베스라고 부르는 여인의 아들이었다. 당시의 사람들은 사악하고 포악하고 서로 죽이고 하나님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요한은 나라를 돌아다니며 더 좋은 사람이 되라고 설교했다. 그는 자기보다 다른 사람들을 더 사랑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선행을 베풀 때에도 자신의 일은 돌보지 않았다. 그는 초라한 낙타의 모피를 몸에 걸치고 메뚜기라는 곤충과 야생벌꿀을 먹었다. 여러분들은 메뚜기를 결코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메뚜기는 매우 멀리 떨어진 예루살렘 근처에서나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낙타도 마찬가지여서 여러분들은 낙타를 본 일이 없을 것이다. 여하튼간에 사람들은 그것을 이곳에 가끔 데려온 적이 있으므로 여러분들이 보고 싶으면 하나 보여 드리겠다. 예루살렘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요단강이라는 강이 있었다. 요한은 그곳에서 자기를 찾아온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많은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그를 보러 왔다. 예수 그리스도도 갔다. 요한은 그를 보며 말했다. "저보다 훨씬 나은 당신을 제가 어떻게 세례를 베풀 수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이에 대해 말했다. "지금은 그렇게 하도록 하시오." 그래서 요한은 그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그가 세례를 베풀자 하늘이 열리고 비둘기와 같은 아름다운 새들이 날아서 내려왔고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이는 내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니라." 라고 말씀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황야라고 부르는 거칠고 고독한 곳으로 가셨다. 거기서 그는 40일 동안 밤낮으로 자신이 사람들에게 쓸모가 있고 그들이 죽은 후에는 천국에서 행복할 수 있도록 가르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가 황야에서 나왔을 때 그는 그의 손을 사람들에게 올려 놓음으로써 병을 고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병을 고치는 힘과 내가 곧 여러분들에게 말하는 그 '그리스도의 기적'이라고 불리우는 놀랄 만하고 엄숙한 일을 할 수 있는 힘을 주셨기 때문이다. 나는 여러분들이 그 말을 기억하길 바란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을 다시 쓰겠다. 그리고 그것이 매우 놀랄 만한 것이고 하나님의 허락이나 도움이 없이는 행할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여러분께서 알아주시기 바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최초의 기적은 카나라는 곳에서 이루어졌는데 이곳에서 그는 자기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결혼 잔치가 벌어지고 있는 곳으로 갔다. 그런데 술이 나오지 않았다. 마리아가 예수에게 물이 가득 들은 돌 단지가 여섯 개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예수는 이 물을 손으로 들어올려서 포도주로 만들었다. 그리고 거기 있던 사람들은 모두가 그 물을 마셨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그런 기적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가 이런 기적을 행한 이유는 사람들이 그가 보통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그가 그들에게 가르친 것을 믿고 또 그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이라는 것을 믿게 함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듣고, 또 그가 병자를 고쳤다는 것을 듣고 나서 그를 믿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가 어디를 가든지 거리나 도로에서 사람들이 그를 따랐다. 제3장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와 함께 다니며 가르칠 수 있는 열두 명의 남자들을 자신의 동반자로 선택하였다. 이 열두 명은 사도 또는 제자들이라고 부른다. 이 열두 명의 이름들은 시몬 베드로, 안드레, 야곱, 제베디, 요한, 빌립, 바돌로메, 마태, 알패오, 라바이, 그리고 가롯 유다였다. 나중에 이 사람은 여러분들이 곧 알게 되겠지만 예수를 배반하였다. 이 제자들 중의 처음의 네 명은 가난한 어부였는데, 그들은 그리스도가 지나갈 때 해변가 보트에 앉아서 어망을 수리하고 있었다. 그는 갈 길을 멈추고 시몬 베드로의 배에 들어가서 고기를 많이 잡았느냐고 그에게 물었다. 베드로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들은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으나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 예수는 말했다. "그물을 다시 쳐 보아라." 그들은 그렇게 했다. 그러자 고기가 금방 많이 잡혔다. 그래서 그 고기를 들어올리는 데에는 여러 사람들의 힘이 필요했다. 이것은 예수의 또 하나의 기적이었다. 그리고나서 예수는 말했다. "나와 같이 가자." 그들은 즉시 그를 따라갔다. 그리고 그때부터 열두 제자와 사도들은 항상 그와 함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르고 그에게서 가르침을 받기를 원했기 때문에 그는 산 속에 올라가서 그들에게 설교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시여"로 시작하는 그 기도의 말을 하셨다. 이것은 주기도문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처음 말씀하신 것이고,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말로 기도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었다.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오셨을 때 나병이라는 무서운 병을 가진 사람이 그에게 나타났다. 이 당시에 나병은 흔한 병이었으며 이 병으로 앓는 사람은 나병환자(문둥이)라고 불리어졌다. 이 나병환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발밑에 엎드렸다. "주님, 저를 고쳐 주십시오." 예수께서는 불쌍히 여기시고 손을 펴서 "그래라, 너의 병이 나아라!" 라고 말하자 그의 병은 즉시 없어졌고 그는 고침을 받았다. 예수는 어디를 가나 많은 군중들이 따라다녔으므로 제자들과 함께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어느 집으로 들어갔다. 그가 집안에 앉아 있는데 중풍으로 몹시 아픈 어떤 사람이 들것에 실려 왔다. 그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떨고 있었고 움직이거나 서 있을 수 없었다. 예수는 그를 보자 동정심이 일어서 "일어나라! 그대의 침대를 갖고 집으로 가라." 라고 말했다. 그 사람은 일어나서 아주 건강한 몸으로 집에 갔다. 백인대장 한 명이 그에게 와서 말했다. "주님이시여! 저의 하인이 매우 아파 저희 집에 누워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대답했다. "가서 치료해 주겠다!" 그러나 백인대장은 말했다. "주님이시여, 주님께서 어떻게 저희 집에 오실 수 있겠습니까? 말씀만 하여주십시오. 그러면 그는 병이 나을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백인대장이 자기를 진실로 믿는다는 것을 기뻐하시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하라." 그리고 그 순간부터 그 하인은 건강해졌다. 그러나 예수에게로 왔던 많은 사람들 가운데에서 어느 지방 장관만큼 그렇게 슬픔에 가득 찬 사람은 없었다. 그는 손을 비비꼬며 말했다. "오, 주님이시여. 저의 딸, 저의 아름답고, 선량하고 어린 딸이 죽었습니다. 오셔서 주님의 축복 받은 손을 그 애에게 얹어 주십시오. 저는 다시 살아나리라고 생각합니다. 저와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십시오. 오, 주님, 우리들은 그녀를 너무나 사랑해요. 그런데 그녀는 죽었어요!" 예수 그리스도는 그와 함께 그의 집으로 갔다. 그리고 그의 제자들도 갔다. 그 가련한 죽은 어린 소녀가 누워 있는 방에서 친구들과 이웃들이 울고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녀를 보시고 슬픈 마음으로 그녀의 부모들을 위로하기 위해 말씀하셨다. "그녀는 죽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잠을 자고 있습니다." 그리고나서 예수께서는 방안에 있는 사람들을 나가라고 말씀하시고 그녀한테로 가서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그녀는 아주 건강하게 일어섰다. 마치 잠을 잤었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항상 자비로우시고 부드러우셨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선행을 하시고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죽은 후에 천국에 가는 희망을 품게 하는 것을 가르쳐 주셨기 때문에 그는 우리들의 구세주라고 불리운다. 제4장 우리의 구세주께서 기적을 행하시던 그 나라에 바리새인들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자존심이 매우 강했고 자기들 외의 사람들은 다 좋지 않다고 믿었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가 다 예수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보다 더 잘 가르치셨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유태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나라의 대부분의 주민들은 유태인들이었다. 우리의 구세주께서는 어느 일요일날 제자들과 함께 들판을 거니시다가 그곳에서 자라고 있는 곡식의 이삭을 먹기 위해 땄다. 바리새인들은 이것을 잘못된 행위하고 말했다. 그리고 예수께서 유대 회당에 들어가 손이 다 비뚤어진 사람들을 동정의 눈으로 보셨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은 또 말했다. "일요일날 사람들을 고치는 것은 옳은 일입니까?" 우리의 구세주께서는 말씀하셨다. "여러분들의 양들 중의 한 마리가, 설사 그것이 일요일에 웅덩이에 떨어졌다 해도 그것을 구해 내지 않겠는가? 그런데 인간은 양보다 얼마나 더 훌륭한 존재인가!" 그리고나서 예수께서는 그 가련한 사람에게 말했다. "그대의 손을 펴라." 그러자 그 손은 즉시 나아 다른 사람의 손과 같이 매끈하고 쓸모 있는 손이 되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어느 날이든 선을 행하시오!" 라고 말씀하셨다. 이런 일이 있은 후에 우리의 구세주께서는 네인(Nain)이라는 도시로 들어가셨는데 이때 많은 사람들, 특히 병든 친척들과 친구들과, 아이들이 예수를 따라갔다. 사람들은 아픈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가 지나갔던 거리와 도로에 데리고 나왔으며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손을 만져 달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렇게 하셨을 때 그들은 병이 나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무리 한가운데에서 계속 가시면서 도시의 문에 이르렀을 때 그는 장례식을 목격하였다. 그것은 어느 젊은 사람의 장례식이었는데 그 나라의 관습대로 열려지게 되어 있는 관에 실려 가고 있었다. 그의 가련한 어머니가 그 관을 뒤따르고 있었고 몹시도 울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다른 아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구세주께서 그를 보았을 때 그는 그녀가 그렇게 슬퍼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몹시 감동되었다. 그래서 그가 말했다. "젊은이여 일어나라!" 그 젊은이는 구세주의 목소리에 다시 소생하여 일어나서 말하기 시작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어머니에게 남겨 두고 자기의 갈 길을 갔다. 이 무렵에 군중은 너무 많아져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물가에 가셔서 보트를 타고 더 한적한 곳으로 가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보트에서 주무시고 계셨고 제자들은 갑판 위에 앉아 있었다. 그가 계속 잠을 자고 있는 동안 폭풍우가 일어났고 파도가 배 위를 쓸어버리고 울부짖는 바람이 배를 흔들었기 때문에 그들은 배가 침몰하지나 않을까 생각했다. 제자들은 놀라서 우리의 구세주를 깨웠다. "주님이시여, 우리를 구해 주소서. 그렇지 않으면 저희들은 다 죽습니다." 그는 일어나서 손을 들어 요동치는 바다와 휘몰아치는 바람에게 말했다. "잠잠할지어다!" 바다는 즉시 잠잠해졌고 날씨도 쾌청해졌고 잔잔한 물 위에서 보트가 안전하게 갔다. 그들이 바다 맞은편 쪽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도시 밖에 있는 거칠고 고독한 묘지를 지나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 당시에 모든 묘지들은 도시의 밖에 있었다. 이곳에는 어느 무서운 광인이 있었는데 그는 무덤 가운데에서 살면서 밤낮으로 소리를 질렀기 때문에 여행자들은 그 소리를 듣는 것을 두려워했다. 사람들은 그를 쇠사슬로 묶어 두었으나 그는 힘이 매우 세었기 때문에 그 쇠사슬을 끊어 버렸다. 이 비참한 사람이 멀리서 예수를 보았을 때 그는 소리질렀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오, 하나님의 아들, 나를 괴롭히지 말라!" 예수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그가 악형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에게서 광기를 쫓아내어 그것을 가까운 곳에서 음식을 먹고 있었던 돼지 속으로 들어가게 했고 그 돼지는 바다로 통하는 가파른 곳으로 거꾸로 떨어져 박살이 나버렸다. 무고한 아이들을 살해한 그 잔인한 왕의 아들인 헤로드가 통치를 하게 되었는데 그는 예수가 이러한 기적을 행하고 있으며 눈먼 사람들에게 광명을 주며 귀먹은 사람을 듣게 하며 말못하는 사람에게 말을 하게 하고 절름발이를 걷게 하고, 또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르고 있다는 것을 들었다. 헤로드는 이 이야기를 듣고 "이 남자는 세례 요한의 동반자요 친구이다." 라고 말했다. 여러분들이 기억하시겠지만 요한은 낙타의 털로 만든 옷을 입었고 석청을 먹었던 좋은 사람이었다. 헤로드는 그를 죄인으로 잡아와 그의 궁전의 감옥에 집어넣었다. 헤로드가 요한에 대한 화가 나 있었을 때 그의 생일이 다가왔다. 그리고 댄스를 잘하는 그의 딸 헤로디아스는 그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그의 앞에서 춤을 췄다. 그녀는 그의 기분을 너무나 좋게 해주었기 때문에 그는 그녀가 부탁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해주겠다고 맹세했다. "그러면" 그녀는 말했다. "큰 접시에다 세례 요한의 머리를 갖다 주세요." 왜냐하면 그녀는 요한을 미워했고 또 사악하고 잔인한 여자였기 때문이었다. 왕은 비록 그가 요한을 죄수로 붙잡고 있지만 그를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는 딸의 요구를 섭섭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그녀가 부탁하는 것을 다 들어주겠다고 맹세했기 때문에 세례 요한의 머리를 자르라는 지시와 함께 몇 명의 병사들을 감옥에 보냈다. 그들은 지시대로 했다. 그리고 그것을 그녀가 말한 대로 큰 쟁반 위에다 놓아 그녀에게 가지고 갔다. 제5장 바리새인들 중의 한 명이 우리의 구세주에게 자기 집에 가서 식사를 같이 하자고 간청했다. 그리고 우리의 구세주가 식탁에서 먹고 있는 동안 죄많은 인생을 살았던 그 도시의 한 여인이 그 방에 들어왔다. 그녀는 하나님의 아들이 자기를 볼까봐 부끄러워 했으나 그의 선생과, 나쁜 일을 했지만은 그것을 마음속으로 진정으로 뉘우친 모든 사람들에 대한 그의 동정을 너무나 신뢰했기 때문에 그가 앉아 있는 자리의 뒤로 살금살금 들어가 그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슬프게 눈물을 흘려 그 발을 적셨다. 그리고 그 발에 키스를 하고 긴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고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 연고로 문질렀다. 그녀의 이름은 막달라 마리아였다. 바리새인이 예수가 이 여자로 하여금 자기를 만지게 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을 보고 그는 예수가 이 여자가 얼마나 사악한 여자인지 알고 있지 못한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을 간파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에게 말했다 "시몬아__왜냐하면 그의 이름은 시몬이었기 때문이다__ 만약 어느 사람이 빚쟁이들이 있었는데 그 중의 한 사람의 빚은 50펜스 밖에 안된다고 할 때 그가 두 빚쟁이의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고 하면 두 빚쟁이 중에서 어느 빚쟁이가 이 채권자를 더 사랑하겠느냐?" 시몬은 대답했다. "가장 많이 탕감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는 "하나님께서 이 여자의 많은 죄악을 용서해 주셨기 때문에 그 여자는 그 때문에 하나님을 더 사랑하리라고 생각한다." 라고 말하고 나서 그녀에게 말했다. "하나님께서 그대의 조를 용서하셨다." 같이 있던 일행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죄를 용서하는 힘을 갖고 있었는지 의아하게 생각했으나 그 힘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감사하면서 자기의 갈 길을 갔다. 우리들은 우리들에게 해를 끼친 사람이 와서 그 행위를 정말로 뉘우치는 사람에게는 항상 용서를 베풀어야 한다는 것을 위의 이야기에서 배워야 한다. 그들이 비록 화서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들은 그들을 용서해 주고 그들을 미워하거나 불친절하게 대해서는 안된다. 이런 일이 있을 후에 유태인들의 대축제가 있었고 예수는 예루살렘으로 갔다. 양 파는 시장 근처에는 베데스다라고 불리우는 웅덩이가 있었는데 그곳에는 다섯 개의 문이 있었다. 축제가 벌어지는 한 해의 이 무렵에는 많은 병자들과 불구자들이 목욕을 하러 이곳으로 왔다. 그들은 천사가 와서 그 물을 휘젓고 천사가 그렇게 한 후에 그곳으로 우선적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어떤 병이든지 다 낫는다고 믿었다. 이 가련한 사람들 중에는 30년 동안 병을 앓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이 혼자서 침대에 누워 잇는 그를 동정했다) 그는 너무나 약하고 몸이 아프고 해서 물속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물 웅덩이에 들어가 본 적이 결코 없었다고 말했다. 우리의 구세주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침대를 들고 네 길을 가라." 많은 유태인들은 이것을 보았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더 미워졌다. 그들은 사람들이 예수에 의해서 가르침과 병고침을 받았기 때문에 유태인 성직자의 말을 믿지 않으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는 일요일에도 병을 고치고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죽임을 당하여야 한다고 자기들끼리 수근거렸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의 적을 만들고 거리의 군중들로 하여금 그를 살해시키게 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가 어디를 가든지 예수를 따라다니면서 예수를 축복하고 그에게서 가르침과 병고침을 받기를 바랬다. 왜냐하면 예수는 선한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과 함께 타이베리아 바다를 건너서 그들과 함께 언덕 위에 앉아 있었다. 이때 그는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는 많은 가련한 사람들을 보고 사도 필립에게 말했다. "이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빵을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 필립은 말했다. "주님이시여, 2백 페니어치의 빵 가지고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먹일 수가 없습니다." 시몬 베드로의 형제인 안드레는 "우리들은 빵 다섯 개와 작은 고기 두 마리밖에 없습니다." 라고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말했다. "사람들 모두를 다 앉게 하라." 그들이 모두 다 앉았을 때 예수는 빵을 가지고 하늘을 쳐다보며 그 빵을 축복해 주시고, 그것을 잘라서 사도들에게 나누어 주신 다음에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 다섯 개의 빵과 두 마리의 고기로 오천 명의 사람들이 다 충분히 먹었다. 그리고 그들이 모두 다 만족했을 때 남아 있는 음식물 열두 바구니를 모았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또 하나의 기적이었다. 그리고나서 우리의 구세주는 그의 제자들을 보트에 태워 바다 맞은편으로 보내시고 자기는 사람들을 보낸 다음에 곧 뒤따라 가겠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가버린 다음에 그는 혼자서 기도했다. 밤이 되었을 때 제자들은 여전히 배에서 노를 젓고 있었으며 그리스도가 언제 돌아올까 궁금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날 밤늦게 거센 바람과 파도가 치고 있을 때 그들은 예수가 자기들을 향하여 물 위를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이것을 보고 놀라서 외쳤다. 그러나 예수는 말했다. "나다. 놀라지 말라!" 베드로는 용기를 내어 말했다. "주여, 만약 당신이 그리스도이시라면 저더러 물위로 당신에게 가도록 말해 주십시오." 그리스도는 말했다. "오너라." 그리고 나서 베드로는 예수에게로 갔으나 사나운 파도와 울부짖는 바람소리를 듣고 놀라서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래서 예수가 손을 잡아 주지 않았더라면 그는 가라앉았을 것이다. 그 다음에 바람은 가라앉았다. 그리고 제자들은 자기들끼리 이야기했다. "그는 정말이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예수께서는 많은 기적을 행하셨고 병든 사람들을 많이 고쳐 주셨다. 그리고 힘이 없고 굶주린 채 사흘 동안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은 큰 군중들에게 그는 제자에게서 일곱 개의 빵을 몇 마리의 생선을 갖고 그것을 4,000명의 사람들에게 나누어 줬다. 그들 모두는 충분히 먹고 남았다. 그는 제자들을 나누어서 촌락과 마을로 보냈다. 그리고 자기는 사람들을 가르치며,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병을 고치는 힘을 주었다. 이때 그는 제자들에게(자기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예루살렘에 돌아가서 많은 수난을 당하고 확실히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죽은 지 사흘째 되는 날 무덤에서 올라와 천국에 올라가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6장 빵과 생선의 마지막 기적이 있은 지 6일이 되었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 명의 제자__베드로, 야곱, 요한__들과 같이 어느 높은 산으로 올라갔다. 그가 거기서 제자들에게 말하고 있을 때 그의 얼굴은 마치 태양처럼 빛났고 그가 입은 흰 옷은 빛나는 은처럼 반짝거렸다. 그리고 그는 그들 앞에서 마치 천사처럼 서 있었다. 이와 동시에 밝은 구름이 그들을 가리웠다. 그리고 구름 속에서 한 목소리가 이렇게 말했다. "이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며 나는 그를 만족하게 생각하고 있다. 너희들은 그의 말을 들어라." 이 광경을 보고 세 명의 제자는 무서워서 무릎을 꿇고 얼굴을 가리웠다. 이것은 우리의 구세주의 변신이라고 부른다. 그들이 산에서 내려와서 사람들 사이에 다시 들어갔을 때 한 사람이 예수의 발 앞에 무릎을 꿇고 말했다. "저의 아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그는 미친 아이이기 때문에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고 때로는 불 속에, 아니면 물 속에 뛰어들고 있어요. 당신의 몇몇 제자들이 그를 치료하려고 했으나 고치지 못했어요." 우리의 구세주는 그를 즉시 고쳐 주셨다. 제자들은 예수에게 물었다. "선생님, 천국에서는 누가 가장 위대합니까?" 예수께서는 한 작은 어린애를 자기에게로 불렀다. 그리고 그 애기의 팔을 잡고 그들 가운데에 서서 대답했다. "이와 같은 애이다. 어린애와 같이 겸손한 사람이 아니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나의 이름으로 이와 같은 어린애를 받아 들이는 사람들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그 어린애들 중의 하나라도 해치는 사람은 목에 멧돌을 달고 바다 깊은 곳에 빠져 죽는 것이 낫다. 천사들은 모두 다 어린애들이다." 우리의 구세주는 모든 어린애들을 사랑하셨다. 또 모든 세상을 사랑하셨다. 예수처럼 모든 사람을 그렇게 진실로 사랑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에게 물었다. "저는 저를 화나게 한 사람을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하겠습니까? 일곱 번입니까?" 우리의 구세주는 말했다. "70번씩 7번,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이 용서해 주어야 한다. 너희들이 다른 모든 사람들을 용서해 주지 않는 한 너희들이 잘못했을 때 어떻게 하나님이 너희들을 용서하기를 바라겠는가?" 그리고 예수는 그의 제자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옛날에 주인에게 많은 빚을 진 하인이 하나 있었는데 그는 그 빚을 갚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주인은 매우 화가 나서 이 하인을 노예로 팔려고 했었다. 하인은 무릎을 꿇고 대단히 슬퍼하며 주인의 용서를 빌었다. 그래서 주인은 그를 용서해 주었다. 그런데 이 하인에게는 자기에게 100펜스의 빚이 있는 동료 하인이 있었다. 그는 주인이 자기에게 친절히 해주고 용서해준 것처럼 그의 동료에게 해주지 않고 그를 빚이 있다고 감옥에 처넣었다. 그의 주인은 이 이야기를 듣고 그에게 가서 말했다. "오, 이 사악한 머슴아, 나는 너를 용서해 주었다. 그런데 너는 너의 동료 하인들을 왜 용서해 주지 않았느냐?" 그가 그의 동료 하인을 용서해 주지 않았으므로 그의 주인은 그를 비참한 마음으로 쫓아 버렸다. "그래서" 우리의 구세주는 말했다. "여러분들이 다른 사람들을 용서해 주지 않는다면 하나님한테서 어떻게 용서받을 것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우리들이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해 주는 것과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요."라고 말하는 주기도문의 그 부분이다. 그리고 그는 그들에게 또 다른 이야기를 해주었다. 옛날에 포도원이 하나 있는 어떤 농부가 있었다. 그런데 그는 몇 명의 일꾼들이 하루에 1페니를 받고 하루종일 일하겠다고 하는 데 동의했다. 그리고 머지 않아 시간이 좀 지나가 그는 밖에 나가서 똑같은 조건으로 다른 몇몇 일꾼들을 고용했다. 그리고 얼마 안되어 그는 다시 밖에 나갔다. 이런 식으로 그는 몇 차례나 일꾼들을 고용했다. 그날 일이 끝나자 일꾼들은 모두다 급료를 타러 왔다. 그러나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일한 일꾼들은 늦게 일을 시작한 사람들과 똑같이 급료를 받는다고 불평을 했다. 그러나 주인은 말했다. "이거 봐요, 나는 당신에게 1페니를 주기로 계약했소. 내가 다른 사람에게 돈을 똑같이 주었다고 해서 당신이 돈을 덜 받았단 말입니까?" 우리의 구세주께서 여기서 의미하는 것은 생전에 좋은 일을 한 사람들은 사후에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렸을 때 돌봐줄 친척이나 친구들이 없이 나쁜 일을 했던 사람도 늦게나마 후회를 하고 하나님에게 용서를 빌면 용서를 받고 천국에 갈 수 있다. 그는 이런 이야기들로 제자들을 가르쳤다. 왜냐하면 그를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듣기를 좋아하며 그런식으로 이야기해야 더 잘 기억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을 우화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우리의 구세주가 한 말을 모두 경청하였다. 그러나 그에 관해서는 자기들 간에는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했다. 바리새인들과 유대인들은 예수를 반대하는 말을 했으며 어떤 유대인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해치고 싶어하며 심지어는 살해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도 그에게 해를 가하는 일을 두려워했다. 왜냐하면 그는 선하고 신성하고 당당한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를 바라보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어느날 아침 예수는 올리브 산이라는 곳에 앉아서 그에게 모여든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이때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나쁜 일을 행한 한 여인을 사람들 가운데로 끌고 나왔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외쳤다. "선생님, 이 여자를 보십시오. 법률에 의하면 이 여자는 돌로 쳐죽이게 되어 있습니다. 선생님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예수는 그 시끄러운 군중들을 주의 깊게 쳐다보고, 그들이 그에게 온 목적은 그 법이 잘못되었고 잔인하다는 것을 자기의 입에서 나오도록 하게 하자는 것과 만약 그가 그렇게 말하면 그를 고소하여 죽이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예수께서 그들의 얼굴을 쳐다볼 때 부끄러워했고 두려워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소리를 질렀다. "자, 선생님의 의견은 어떠하신지요?" 예수는 허리를 구부리고 땅에 있는 모래 위에다 손가락으로 '너희들 중에 죄가 없는 사람들이 우선 이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라고 썼다. 그들이 이것을 읽고 나서 자기들끼리 서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예수가 이 말을 그들에게 반복하자 그들은 부끄러워서 한사람씩 한사람씩 가 버렸고, 나중에는 그 시끄러운 군중 중에는 한 사람도 남지 않았다. 이 여자는 얼굴을 손으로 가린 채 남아 있었다. 그러자 예수 그리스도는 말했다. "여인이여, 그대를 고소한 사람들은 다 어디에 갔는가? 아무도 그대를 비난하지 않았는가?" 그녀는 떨면서 말했다. "아닙니다, 주님." 그러자 우리의 구세주는 말했다. "나도 그대를 비난하지 않는다. 가라! 그리고 더 이상 죄를 짓지 말아라!" 제7장 우리의 구세주가 사람들을 가르치시고 그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을 대 어떤 법률가가 일어서서 말했다. "선생님, 제가 죽은 후에 다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예수는 그에게 말했다. "모든 계명 중에서 첫째의 것은 우리의 주님이신 하나님께서는 한 분의 주님이시고 그대는 있는 정성을 다하여 그대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두번째 것도 첫번째 것과 비슷하다. 그대는 그대의 이웃을 그대처럼 사랑하라. 이것보다 더 위대한 계명은 없을 것이다." 그러자 그 법률가는 말했다. "그러나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제가 알 수 있도록 말해 주십시오."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은 비유로 말씀하셨다. "옛날에 여행자가 한 명 있었다." 하고 예수는 말씀을 시작하셨다. "그런데 그는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여행하는 도중에 도둑들이 있는 곳을 지나가게 되었다. 도둑들은 그의 옷을 빼앗고 그에게 상처를 입히고 그를 도로 위에다 반쯤 죽인 채 버리고 가버렸다. 그 가련한 사람이 그곳에 누워 있는 동안 어느 사제가 그곳을 지나가다 그를 보더니 맞은편 길로 가버리고 말았다. 또 레위인 한 명이 그 길고 가다 그를 보았다. 그러나 그는 그를 잠시 보았을 뿐 그도 역시 가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그 길고 여행을 하고 있던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를 보자마자 그에게 동정을 하고 기름과 술로 그의 상처를 닦아주고 그를 자기가 탔던 그 짐승 위에다 얹어 놓고 여관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에 그의 주머니에서 2펜스를 여관집 주인에게 주면서 그를 잘 치료해 주고 비용이 더 들면 그 다음번에 와서 지불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 이 세 명 중에서 어느 사람이 도둑을 만난 그 사람의 이웃이라고 당신은 생각하는가?" 법률가는 말했다. "그에게 동정을 베푼 사람입니다." "맞다." 라고 우리의 구세주는 말했다. "가서 그와 같이 하라. 모든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가져라.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은 당신의 이웃이며 형제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비유로서 말했다. 그 비유의 뜻은 우리는 결코 거만해서는 안되며 하나님 앞에서 우리들 자신을 매우 선하다고 생각해서는 안되고 항상 겸손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말했다. "너희들이 축제나 결혼식에 초대받으면 가장 좋은 자리에 앉지 말라. 왜냐하면 너보다 더 영광스러운 사람이 와서 그 자리를 요구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제일 끝자리에 앉아라. 그러면 만약 네가 그럴 만한 인물이라면 더 좋은 자리가 너에게 주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누구나 자기를 높이려고 하는 자는 낮아질 것이요, 자기를 낮추려고 하는 자는 높아질 것이다." 그는 또한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비유로 말했다. "어떤 사람이 푸짐한 저녁 식사를 마련하고 나서 많은 사람들을 초대했다. 그리고 음식이 먹을 준비가 되었을 때 하인을 시켜 들어와 먹으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그들은 핑계를 댔다. 한 사람은 땅뙈기를 하나 샀으니 가봐야겠다고 말했고 또 다른 사람은 황소 다섯 마리를 샀기 때문에 그들을 돌봐야 되겠다고 말했다. 또 한 사람은 갓 결혼했기 때문에 올 수 없다고 말했다. 그 집 주인이 이 이야기를 다 들었을 때 그는 화가 나서 머슴에게 거리에 나가 가난한 사람들, 절름발이, 불구자들, 그리고 장님들을 저녁에 초대하라고 말했다." 우리의 구세주가 그들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는 이유는 자기 자신의 이익과 쾌락에 너무 바빠서 하나님을 생각하고 선을 행할 수 없는 사람들은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들만큼 은총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구세주가 여리고라는 도시에서 군중의 머리 위에서 자기를 쳐다보는 한 남자를 본 적이 있었다. 그는 재키이어스라는 사람으로 평범한 인간이며 죄인이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그가 지나갈 때에 그의 집에 가서 식사를 하지고 큰 소리로 말했다.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과 같은 사람들은 이 소리를 듣고 자기들끼리 "그는 죄인들과 식사를 하고 있구나."라며 수군수군 대었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는 다음과 같은 탕아의 비유를 들었다. 옛날에 두 아들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그른데 그중 막내 아들은 아버지에게 자기 몫에 해당하는 재산을 달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그의 요구를 들어주었고 그는 그 돈을 가지고 먼 나라에 가서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다 써버렸다. 그가 그 돈을 다 써버렸을 때 그 나라에는 카다란 재난과 가뭄이 닥쳐와 먹을 빵과 곡식이 없었고 땅에서 자라는 풀들도 다 말라 버리고 시들어 죽었다. 탕아는 너무나 비참하고 굶주려서 들판의 돼지에게 먹이를 주는 일자리를 얻었다. 그는 돼지들이 먹는 그 거친 곡식 껍질도 기꺼이 먹고자 했다. 그러나 주인은 그에게 이 음식도 주지 않았다. 그는 자기 아버지의 하인들은 많은 빵을 갖고 있는데 자기는 이렇게 굶주림으로 죽어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버님에게 가서, 아버지! 제가 하나님과 아버님에게 죄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아버님의 아들이라고 부를 자격이 없는 놈입니다, 라고 말하겠다.' 그래서 그는 다시 고통을 참으면서 아버지의 집으로 갔다. 그가 멀리 떨어져 있을 때 그의 아버지는 누더기를 입은 비참한 몸을 하고 있는 자기 아들을 알아 보고 그에게 달려가서 울면서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그는 하인들을 시켜 이 참회하는 아들에게 가장 좋은 옷을 입히고 큰 잔치를 베풀라고 말했다. 그러나 들판에 있었기 때문에 동생이 돌아온 것을 모르는 큰아들은 음악이 들리고 춤이 추어지고 있는 것을 듣고 하인들에게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하인은 그의 동생이 돌아왔다는 것과 그의 아버지는 그가 돌아온 것을 기뻐한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형은 화가 나서 집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는 이 말을 듣고 그를 설득하러 밖에 나왔다. "아버님" 그 형은 말했다. "동생이 돌아왔다고 그렇게 기뻐하시니 불공평하십니다. 저는 아버님과 같이 있으면서 아버지께 충성을 다했으나 저에게는 잔치를 한번 베풀어주신 적이 없었어요. 하지만 탕아로서 돈을 탕진한 동생이 왔는데도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시니 말입니다." "아들아" 아버지는 말했다. "너는 나와 항상 같이 있었고 내가 가진 것은 다 너의 것이다. 그러나 너의 동생은 죽은 줄로 알았는데 살아서 돌아오지 않았느냐? 그가 뜻밖에 집에 온 것을 기뻐한다는 것은 당연하고 올바른 일이다." 우리의 구세주가 이 이야기에서 의미하는 바는 나쁜 일을 하고 하나님을 잊어버린 사람도 그가 진실로 회개하며 하나님에게 돌아온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반겨 맞이하며 그에게 자비를 베풀 것이라는 것을 가르치고자 함이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우리의 구세주의 이 교훈들을 경멸적으로 받아들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부유하고 탐욕스러우며 자신들은 모든 사람들보다 더 우수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스도는 이들에 대한 경고로서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좋은 옷을 입고 매일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는 부자가 살고 있었다. 그리고 나사로라고 하는 거지가 있었는데 그는 온몸에 상처투성이였고 그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빵껍질을 먹고 싶어했다. 더군다나 개들이 와서 그의 상처를 핥았다. 그런데 이 거지가 죽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아브라함의 품안에 데려가졌다. 아브라함은 그보다 오래 전에 살았던 매우 좋은 사람이었다. 부자도 역시 죽었다. 그리고 땅에 묻혔다. 그는 지옥에서 몸부림을 치면서 멀리서 아브라함과 나사로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는 큰 소리로 말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시여, 나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나사로가 그의 손가락을 물속에 찍어서 나의 혀를 식혀 주도록 나사로를 보내 주십시오. 왜냐하면 저는 이 불 속에서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말했다. "아들아, 너는 생전에 좋은 일들을 다 경험했지 않았느냐. 나사로가 슬픈 일을 경험했듯이 그래서 지금 그는 위안을 받고 너는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이 동일한 바리새인들에게 이렇게 비유로 말하였다. 두 사람이 기도를 하러 성전에 갔는데 하나는 바리새인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수세리였다. 바리새인은 말했다. "하나님이시여, 저는 수세리만큼 부당하거나 나쁜 사람이 아닌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수세리는 멀찌감치 서서 하늘로 눈을 쳐들려고 하지 않고 가슴을 치며 말했다. "하나님이시여, 죄인인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우리의 구세주는 그 수세리가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를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만족해 하시고 그에게 자비를 베푸셨다고 말씀하셨다. 바리새인들은 이 말에 너무나 화가 났다. 그래서 몇 명의 스파이를 고용하여 우리의 구세주에게 질문을 하게 하여 그를 함정에 빠뜨리게 할 작정이었다. 시저라고 부르는 그 나라의 황제는 백성들에게 정기적으로 세금을 내라고 명령을 했었으며 이 세금 납부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잔인하게 대했다. 그 스파이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세금을 내는 것이 부당하다고 말하여 황제를 불쾌하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일부러 겸손한 체하면서 말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치고 계십니다. 시저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법적인 것인지 아닌지 말씀해 주세요." 예수 그리스도는 그들의 마음을 알고 이렇게 대답했다. "왜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하느냐? 나에게 동정을 하나 보여 다오." 그들은 그렇게 했다. "여기에 있는 이 상과 이름은 무엇이냐?" 그는 그들에게 물었다. 그들은 "시저의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그러면 시저의 것은 시저에게 주라." 라고 예수 그리스도는 말했다. 그들은 예수를 함정에 빠뜨리지 못한 것에 대해 매우 분하고 실망을 느끼면서 예수 곁을 떠났다. 그러나 우리의 구세주는 그들의 마음을 알고 있었으며 그들이 자기를 모함하고 있으며, 자기는 곧 죽음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가르치시며 기부금 모금 상자 옆에 앉아 있었다. 이 상자는 사람들이 지나다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돈을 집어 넣는 곳이다. 예수가 거기에 앉아 있는 동안 많은 부자들이 그곳에 많은 돈을 집어넣었다. 마지막으로 어떤 가난한 과부가 그날 돈을 기부했던 사람들 중에서 가장 자비로운 사람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은 부유하기 때문에 그 기부한 돈 때문에 구애를 받지 않았으나 그 과부는 먹을 빵을 살 돈으로 기부를 했으니 말이다. 우리는 우리가 자비롭다고 생각할 때는 그 가난한 과부가 한 일을 결코 잊지 말자. 제8장 베다니에 나사로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그는 깊은 병이 들어 있었다. 그는 그리스도에게 향수를 뿌리고 그의 발을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닦아준 그 마리아의 동생이었기 때문에 그녀와 그녀의 자매인 마르다는 예수에게 사람을 보내어 "주님, 당신이 사랑하는 나사로는 아파서 죽을 것 같습니다." 라는 말을 전했다. 예수는 이 전갈을 받은 후 이틀 동안 그들에게 가지 않았다. 그러나 이틀이 지나간 후에 예수는 그의 제자들에게 말했다. "나사로는 죽었다. 베다니로 가자." 그들이 거기에 도착했을 때 예수가 예언했던 대로 나사로는 죽어서 매장된 지 나흘이 되었다. 마르다는 예수가 온다는 것을 듣고 자기의 그 가련한 동생의 죽음을 위로하러 왔던 사람들에게서 일어나 예수를 영접하러 뛰어나갔다. 마르다는 예수를 보자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주님, 주님께서 이곳에 계셨더라면 저의 동생은 살았을 것입니다." 라고 마르다는 말했다. "그대의 동생은 다시 일어날 것이다." 우리의 구세주는 말했다. "말씀대로 될 줄로 알고 있습니다." 예수는 그녀에게 가서 말했다. "나는 부활이고 생명이다. 너희는 이것을 믿느냐?" 그녀는 대답했다. "네, 주님." 그리고 그녀는 자매인 마리아에게 뛰어가서 그리스도가 왔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마리아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예수가 있는 곳으로 향하였다. 그리고 예수의 발 앞에 무릎을 꿇고 울었다. 예수는 그들의 슬픔에 동정심을 느낀 나머지 자기 자신도 울며 말했다. "그를 어디에다 묻었느냐?" 그들은 말했다. "주님, 와서 보세요." 그는 동굴 속에 묻혀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큰 돌이 있었다. 그들 모두가 무덤에 왔을 때 예수는 돌을 굴려 내가도록 명령했다. 그들은 들은 대로 했다. 그리고 예수는 눈을 들어 하나님께 감사하고 우렁차고 엄숙한 소리로 말했다. "나사로야, 나와라!" 그러자 그 죽은 나사로는 다시 소생되어 사람들 사이로 나왔다. 그리고 누나들과 함께 집으로 갔다. 거기에 있던 많은 사람들은 이 광경을 보고 그리스도는 정말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인류를 가르치고 구원하기 위해 왔다고 믿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그날부터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죽일 결심을 했다. 그래서 그들은 만약 그가 유월절 이전에 예루살렘에 온다면 체포해야 한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예수가 나사로를 죽음에서 소생시킨 것은 유월절이 있기 6일 전이었다. 그리고 나사로를 포함한 그들이 저녁을 하려고 앉았을 때 마리아는 일어서서 향유 한 파운드(이것은 매우 귀중한 것이었다)를 가지고 그것을 예수의 발에다 바르고 다시 그녀의 머리카락으로 그의 발을 씻겼다. 예수의 제가 중 하나인 가롯 유다는 이것을 보고 화를 내는 체하고, 그 향유는 300펜스에 팔아서 그 돈을 가난한 사람에게 줄 수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사실 그렇게 말한 것은 그가 지갑을 갖고 다녔으며(그 당시에 다른 사람에게는 열려지지 않았으나) 그 자신이 도둑이었고 될 수 있으면 모든 돈을 다 가지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예수를 제사장의 손에 넘겨 주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유월절에 가까이 다가오자 예수 그리스도는 예루살렘 쪽으로 갔다. 예수의 일행이 그 도시에 가까이 갔을 때 그는 어떤 마을을 가리키고 두 제자한데 그곳에 가면 노새와 망아지가 나무에 매여 있는 것을 발견할 것인데 그것들을 자기에게 가져오라고 말했다. 예수가 말한 대로 이 동물들을 발견한 그들은 예수에게로 가져갔고 예수는 그것을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갔다. 예수가 예루살렘으로 들어갈 때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주위에 모였다. 그들은 옷을 땅 위에 던졌고 나무의 가지들을 잘라서 그가 가는 길 위에다 깔아 놓았으며 "다윗(다윗은 예루살렘에서 위대한 왕이었다)의 아들에게 영광이 있을지어다." 라고 외쳤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신 그 분은 나사렛의 예언자이신 예수이시다." 예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서 거기서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과 불법적으로 그곳에 앉아 있었던 환전상인들의 테이블을 던져 버리며 말했다. "나의 집은 기도하는 집인데 너희들은 이곳을 도둑의 소굴로 만들었구나." 그리고 사람들과 아이들이 성전에서 소리쳤다. "이분이 나사렛의 예언자이신 예수이시다." 그리고 눈먼 자와 절름발이가 떼를 지어 와서 예수의 손에 의해서 고침을 받았다. 제사장들과 서리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그에 대한 두려움과 증오로 가득 찼다. 그러나 예수는 계속해서 병을 고치시고 착한 일을 하시고 예루살렘에서 멀지 않은 베다니에 가서 묵으셨다. 그곳에서 어느날 밤 예수는 제자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던 중 일어나셔서 헝겊 조각과 대야의 물로 자신의 발을 닦았다. 제자 중의 한 사람인 시몬 베드로는 예수께서 스스로 발을 씻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의 구세주는 이것의 이유는 제자들이 이것을 기억하고 서로 친절을 베풀고 서로 자만심과 악의를 품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슬픈 모습으로 제자들을 돌아보고 말했다. "여기서 나를 배반할 사람이 한 사람 있다." 그들은 소리를 지르며 차례차례로 말하였다. "주님, 그 사람이란 제가 아닙니까?" 그러나 그는 이렇게 대답할 뿐이었다. "그 사람은 나와 함께 같이 식사를 하는 12명 중의 하나이다." 예수가 사랑했던 제자들 중의 한 명이 그 순간에 우연히도 예수의 가슴에 기대어 있었는데 시몬 베드로는 그에게 이 그릇된 사람의 이름을 물어 보라고 신호하였다. 예수는 대답하였다. "내가 빵을 접시에 담궜다가 주는 사람이 바로 그 사림이다." 그리고 그는 빵을 접시에 담궜다가 그것을 가롯 유다에게 주면서 "네가 하는 일을 빨리 하여라." 라고 말했다. 제자들은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으나 이는 예수께서 그의 나쁜 마음을 간파하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유다는 빵을 가지고 곧장 밖으로 나갔다. 그때는 밤이었다. 그는 제사장들에게 곧장 가서 말했다. "내가 그를 당신들에게 넘겨주면 저에게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그들은 그에게 은 30냥을 주기로 동의했다. 유다는 이 돈을 받기 위해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배반하여 그를 그들의 손에 넘겨주는 일에 착수했다. 제9장 유월절이 거의 다가오자 예수는 두 제자인 베드로와 요한에게 말했다. "예루살렘 시에 가라. 그러면 거기서 물병을 들고 있는 남자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를 따라서 그의 집에 가라. 그리고 그에게 손님방이 어디에 있으며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월절을 보낼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 물어 보라. 그러면 그는 너희들에게 큰 이층방을 보여줄 것이다. 거기서 저녁 식사를 준비를 하라." 두 제자는 모든 것이 예수가 말한 대로였다는 것을 알았다. 물병을 가진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의 집에 가서 저녁 준비를 했다. 그리고 예수와 그의 제자 10명은 식사를 하기 위해 자리를 같이 했다. 이 식사는 항상 '최후의 만찬'이라고 불리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과 식사를 한 것은 이것이 마지막이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식탁에서 빵을 집으시고 그것을 축복하시고 제자들에게 주셨다. 그리고 그는 포도주잔을 들고 그것을 축복하고 그것을 마시고 제자들에게 주며 "이것을 하면서 나를 기념하라." 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저녁 식사를 끝내고 찬송가를 부르고 나서 올리브산으로 올라갔다. 거기서 예수는 그들에게 그날밤 붙잡힐 것, 그리고 그들은 그를 혼자 남겨 두고 자신들의 안전만을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베드로는 자기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열심히 말했다. "닭이 울기 전에" 우리의 구세주는 말했다. "너는 나를 세 번 부인할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아닙니다. 주님, 제가 주님과 죽을망정 주님을 결코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제자들도 똑같은 말을 했다. 예수는 시드런이라고 부르는 작은 시내를 건너 겟세마니라는 동산으로 들어가서 세 명의 제자들과 함께 동산의 한적한 곳으로 갔다. 그리고나서 예수는 다른 사람들을 떠나면서 "여기서 기다려라. 그리고 지켜보아라!" 라고 말하면서 다른 쪽으로 가셔서 혼자서 기도하셨다. 한편 제자들은 피곤했음인지 잠들어 버렸다. 예수는 이 동산에서 마음의 커다란 슬픔을 느꼈다. 왜냐하면 그 사악한 예루살렘 사람들이 자기를 죽이려 하고 있으며 자기는 하나님 앞에서 피를 흘릴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의 기도가 끝나고 마음의 위로를 받았을 때 그는 제자들한테 돌아갔다. "자, 일어나서 가자! 나를 배반할 자가 내 가까이에 있다." 유다는 그 동산을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우리의 구세주는 제자들과 같이 가끔 그곳으로 걸어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구세주가 이 말을 하는 순간에 유다는 힘센 경비병과 장교들을 데리고 그곳에 왔다. 이들은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보낸 사람들이었다. 때는 어두웠기 때문에 그들은 호롱불과 횃불을 가지고 왔다. 그들은 칼과 나무 몽둥이로 무장을 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람들이 봉기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옹호하리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를 대낮에 체포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경비병 지휘자는 예수를 결코 본 일이 없었기 때문에 유다는 그들에게 "내가 입을 맞추는 사람이 그 사람입니다." 라고 말해 주었다. 유다가 이 사악한 키스를 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갈 때 예수는 병사에게 말했다. "그대들은 누구를 찾고 있는가?" 라고 말했다. "나사렛 예수다." 라고 그들은 대답했다. 그러자 우리의 구세주는 말했다. "내가 그 사람이다. 여기에 있는 나의 제자들은 자유롭게 해줘라. 내가 그 사람이다." 유다는 "주님, 만세." 라고 말하고 그에게 키스를 함으로써 예수임을 확인해 주었다. 그러자 예수는 말했다. "유다야, 너는 키스로서 나를 배반했다." 경비병들은 그를 잡으러 앞으로 달려왔다. 아무도 예수를 보호하려고 나서지 않았다. 다만 베드로가 칼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빼서 제사장의 하인의 귀를 짤랐다. 이 하인의 이름은 말카스라고 하는 사람이었다. 예수는 베드로에게 칼을 칼집에 넣으라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을 경비병들에게 맡기었다. 모든 제자들은 예수를 버리고 도망갔다. 예수를 동반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제10장 잠시 후에 베드로와 다른 제자 한 명이 용기를 내어 경비병을 따라 카이파스의 집까지 몰래 갔다. 이 집으로 예수가 붙잡혀 갔고 서기관들과 다른 사람들이 예수를 심문하기 위해 모였다. 베드로는 문에 서 있었다. 그러나 다른 제자는 제사장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집안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면서 문을 지키고 있었던 여자에게 베드로도 들여보내 주라고 말했다. 그녀는 베드로를 보고 "당신도 제자 중의 한 사람이 아닙니까?" 라고 말했다. 그는 "아닙니다." 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녀는 그를 들여보냈다. 그리고 그는 거기에 있었던 하인들과 장교들 사이에서 불을 쬐며 몸을 녹이고 있었다. 왜냐하면 날씨가 매우 추웠기 때문이었다. 이들 중 몇 명이 그 여자가 물었던 똑같은 질문을 했다. "당신은 제자 중의 한 사람이 아닙니까?" 라고 말했다. 그는 다시 부인하면서 "그렇지 않습니다." 라고 말했다. 베드로가 칼로 귀를 잘랐던 그 사람과 친척 관계인 사람이 베드로에게 말했다. "제가 당신을 동산에서 보지 않았습니까?" 베드로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자 닭이 울었다. 예수는 주위를 돌아보더니 베드로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러자 베드로는 닭이 울기 전에 예수를 세 번 부인할 것이라 하신 예수의 말씀을 상기하면서 밖에 나가 슬피 울었다. 제사장이 예수에게 물어본 질문 중에는 예수가 사람들에게 무엇을 가르쳤냐는 것이 있었다. 이 질문에 대하여 예수는 대낮에 길거리에서 가르쳤다는 것과 사람들이 그에게서 무엇을 배웠는가를 사제들에게 물어 보라고 말했다. 장교들 중의 한 명이 예수의 이 대답을 듣고 손으로 예수를 때렸다. 그리고 가짜 증인 두 명이 들어와 예수가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하여 그것을 사흘만에 다시 지을 수 있다고 말한 것을 들었다고 말했다. 예수는 거의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서기관들과 사제들은 예수가 신성모독의 죄를 범했기 때문에 사형에 처해져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에게 침을 뱉고 그를 때렸다. 가롯 유다는 예수가 정말로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을 알고 그는 자기가 한 일을 너무나 두려워한 나머지 은 30냥을 제사장에게 돌려주고 말했다. "나도 무고한 사람을 배반했습니다. 나는 이 돈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는 이 말을 하고 돈을 마루 위에다 뿌리고 뛰어나가더니 목을 매어 죽고 말았다. 그 로프는 약한 것이기 때문에 시체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끊어져서 그는 죽은 후에 땅에 떨어져 보기에도 처참하게 터져 버렸다. 제사장들은 그 돈으로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무연고자들의 묘지를 샀다. 사람들은 나중에 그 묘지를 피의 밭이라고 불렀다. 예수는 제사장들로부터 총독인 빌라도가 재판을 하기 위해 앉아 있는 재판소로 인계되었다. 빌라도(그는 유대인이 아니었다)는 예수에게 말했다. "너의 국민인 유대인, 그리고 너의 사제들이 그대를 나에게 넘겨주었다. 그대는 무슨 일을 했느냐?" 빌라도는 예수가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것을 알고 밖으로 나가면서 유대인들에게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가 사람들에게 진실이 아닌 것을 가르치고 있었으며 갈릴리에서 오래 전부터 그렇게 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갈릴리에서 법을 어긴 사람을 처벌할 권리는 헤로드가 갖고 있었기 때문에 빌라도는 말했다. "나는 그가 죄가 없음을 알았다. 그를 헤로드에게 보내라." 그들은 그를 헤로드에게 보냈는데 헤로드는 엄격한 군인들과 무장한 사람들에 의해 둘러싸여져 있었다. 이들은 예수를 놀리느라고 좋은 옷을 입혀서 다시 빌라도에게 보냈다. 빌라도는 사제들과 사람들을 다시 불러서 말했다. "이 사람은 잘못한 것이 없다. 헤로드도 나와 같이 생각하고 있다. 그는 사형을 당할 만한 일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큰 소리로 말했다. "그는 나쁜 일을 했습니다. 그는 죽어야 합니다." 빌라도는 그들이 예수에 반대해서 그렇게 시끄럽게 소리치는 것을 듣고 마음의 괴로웠다. 그의 부인도 밤새도록 이것에 관해 꿈을 꾸었다. 그녀는 재판석에 있는 남편에게 "그 올바른 사람에게 아무런 일이 없게 해주세요." 라고 말했다. 유월절에는 어떤 죄수를 놔주는 것이 관습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빌라도는 사람들에게 예수를 놔줄 것을 설득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들은(무식하고 열정적이고, 사제들로부터 그렇게 하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아닙니다, 아닙니다. 석방할 수 없습니다. 바라바스를 석방하십쇼. 이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으십시오." 바라바스는 죄를 짓고 감옥에 있는 사악한 범인으로 사형을 받게 될 사람이었다. 빌라도는 사람들이 예수를 단호히 반대한다는 것을 알고 그를 채찍질을 받게끔 병사들에게 넘겨주었다. 그들은 면류관을 만들어서 그것을 예수의 머리에 올려 놓고 자줏빛 옷을 입히고 그에게 침을 뱉은 다음에 그를 손으로 쳤다. 그리고 말했다. "유대인 왕 만세." 그들은 여러 가지 잔인한 방법으로 예수를 혹사했다. 그러나 예수는 그것을 인내심 있게 참았다. 그리고 기도했다. "아버지! 그들을 용서해 주소서! 그들은 자기들이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빌라도는 그를 자줏빛의 옷을 입히고 면류관을 씌워 사람들 앞에 데리고 나와서 "그 사람을 보시오!"라고 말했다. 그들은 야만스럽게 큰 소리로 외쳤다. "그를 십자가에 매달아라, 그를 십자가에 매달아라." 제사장들과 장교들도 마찬가지로 소릴 질렀다. "너희들이 그를 십자가에 못박아라." 빌라도는 말했다. "나는 죄가 있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소리를 질렀다. "그는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유대의 법률에 의해서 그는 사형을 받아야 합니다. 그는 자신을 유대인의 왕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로마의 법에 위배됩니다. 우리들은 로마의 황제인 시저 외에는 다른 왕은 없습니다. 만약 당신이 그를 석방시킨다면 당신은 시저의 편이 아닙니다. 그를 십자가에 못박아야 합니다. 그를 십자가에 못박아야 합니다." 빌라도는 아무리 설득해도 그들을 설득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그는 물을 가져오라고 해서 군중 앞에서 손을 씻고 "나는 이 올바른 사람의 피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라고 말했다. 그리고나서 그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도록 그들에게 넘겨주었다. 그들은 소리를 지르고 예수의 주위에 모여 잔혹하게, 그리고 모욕적으로 그를 다루면서 데리고 갔다. 제11장 사람들이 "그를 십자가에 못박아라."라고 한 말의 뜻을 여러분들이 이해하도록 말해야겠다. 그 당시에는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은 땅 위에 곧게 박힌 큰 나무 십자가 위에 산 채로 못을 박은 다음 태양과 바람에 밤낮으로 노출시켜 고통과 갈증으로 죽을 때까지 그냥 놔두는 관습이 있었다. 또한 십자가에 못 박혀진 사람이 더 큰 부끄러움과 고통을 겪도록 십자가를 등에 지고 처형장으로 가는 것도 그 당시의 관습이었다.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깨에 십자가를 메고 마치 가장 평범하고 가장 사악한 범인처럼 박해하는 군중들에게 둘러싸인 채 히브리어로 골고다라고 하는 곳을 향해 예루살렘을 떠났다. 그리고 갈보리산에 왔을 때 그들은 그의 손과 발에 못을 박았다. 그리고 그의 양쪽에는 보통 도둑이 못에 박혀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의 머리 위에는 "유대인의 왕, 나사렛 예수."라고 히브리어, 그리스어, 그리고 라틴어로 쓰여졌다. 예수께서 고통을 겪고 있는 동안 네 명의 경비병들은 땅 위에 앉아서 예수의 옷을 넷으로 나누어서 그의 옷을 차지하기 위해 내기를 하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쓴 것이 들어 있는 식초와 물약이 들어 있는 술을 마시라고 예수에게 권했다. 그리고 그쪽 길로 가던 사악한 사람들도 예수를 조롱하면서 "만약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와 봐라." 라고 말했다. 제사장들도 예수를 조롱하면서 "저 사람이 죄인들을 구하려 왔대. 자기나 구해 보지 그래!" 라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도둑은 뉘우치고 있었기 때문에 "주님, 주님께서 천국에 가시면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라고 말했다. 예수께서는 "오늘 그대는 나와 함께 천국에 있을 것이다." 라고 대답했다. 그곳에는 예수를 동정하는 사람은 제자 한 명과 여자 네 명밖에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이 여자들의 진정한 박애 정신을 축복해 주셨다. 그들은 예수의 어머니, 어머니의 자매, 클로오파스의 아내인 마리아,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예수의 발을 두 번이나 씻어 주었던 막달라 마리아였다. 제자 한 명은 예수가 사랑했고 예수의 가슴에 기대어서 배반자가 누구냐고 물었던 요한이었다. 예수는 그들이 십자가 밑에 서 있는 것을 보고 그의 어머니에게 그가 죽으면 요한이 아들이 되어 어머니를 격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 시간부터 요한은 예수의 어머니의 아들이 되어 그녀를 사랑했다. 약 여섯 시간이 경과되었을 때 지독한 어둠이 온 땅을 덮더니 아홉 시간까지 계속되었다. 이때 예수는 큰 소리로 말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 저를 버리셨나이까?" 이 소리를 들은 병사들은 스폰지에 식초를 적셔서 그것을 긴 갈대에 매가지고 예수의 입에다 갖다 댔다. 예수는 그것을 받아 "모든 것이 끝났다. 아버님, 저의 영혼을 아버님 소에 맡깁니다." 라고 하면서 숨을 거두었다. 그러더니 무서운 지진이 일어났다. 그리고 성전의 큰 벽이 금이 가고 바위들이 조각으로 갈라졌다. 경비병들은 이 광경을 보고 놀라서 자기들끼리 수근댔다. "확실히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었구나." 그리고 멀리서 십자가를 지켜보던 사람들(이들 중에는 여자들이 많았다)은 가슴을 치면서 두렵고 슬픈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그 다음날은 안식일이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시체들을 즉시 끌어내리고 싶어서 빌라도에게 허락해 달라고 했다. 그래서 몇 명의 병사들이 와서 두 명의 죄인의 다리를 꺾어 죽였다. 그러나 예수가 이미 죽은 것을 알고 그들은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기만 했다. 그 상처로부터 피와 물이 쏟아져 나왔다. 아라마티아에는 요셉이라는 착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예수를 믿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남몰래 예수의 시체를 달라고 빌라도에게 부탁했다. 빌라도는 이에 찬성을 했기 때문에 요셉과 나고데모는 예수를 아마포와 향수로 싸서__이 당시에는 이런 식으로 장례를 치렀다__ 십자가에 못 박힌 곳에 가깝고 아무도 지금까지 묻혀지지 않은 새 무덤 속에 매장했다. 그리고나서 그들은 무덤 입구로 큰 돌을 굴려 갔다. 그리고 그곳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만 남아서 무덤을 지키고 다른 사람들은 그곳을 떠났다.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후에 무덤에서 사흘만에 부활할 것이라고 제자들에게 한 말을 기억하고 빌라도에게 가서, 제자들이 예수의 시체를 훔쳐 예수가 부활했다고 나중에 이야기하지 않도록 그날까지 무덤을 잘 지켜 달라고 간청했다. 빌라도는 이에 동의하고 병사들을 시켜 잘 지키게 했고 게다가 돌로 무덤을 꽉 막아 놓았다. 이렇게 해서 사흘째 되는 날까지 무덤은 막아진 채 경비되었다. 그날은 주의 첫날이었다. 그날 아침이 밝기 시작하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와 몇 명의 다른 여자들은 미리 준비한 약간의 향료를 갖고 무덤으로 왔다. 그리고 그들이 "저 돌을 어떻게 굴릴 수 있을까?" 라고 자기들끼리 이야기하고 있을 때 하늘에서 천사가 한 명 내려와 그 돌을 굴려서 그 위에 앉았다. 그의 얼굴은 번개같이 빛났고 그의 옷은 눈같이 흰색이었다. 그리고 병사들은 그의 모습을 보고 마치 죽은 것처럼 공포에 떨어 기절해 버렸다. 막달라 마리아는 돌이 치워지는 것을 보고 더 기다릴 수가 없어서 무덤으로 오고 있었던 베드로와 요한에게 달려가서 말했다. "누가 주님을 어디론가 데리고 가버렸어요. 어디에다 갖다 놓았는지 모르겠어요." 그들은 즉시 무덤으로 달려갔다. 요한은 걸음이 더 빨랐기 때문에 무덤에 먼저 도착했다. 그는 허리를 굽히고 무덤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시체를 둘둘 말았던 아마포 옷을 보았다. 그러나 그는 들어가지 않았다. 베드로가 왔을 때 그는 무덤 안에 들어갔다. 그리고 아마포 옷이 한 곳에, 그리고 머리를 감았던 냅킨이 다른 곳에 있었다. 요한도 들어가서 똑같은 것을 보았다. 그리고나서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 주기 위해 집으로 갔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울면서 무덤 밖에 남아 있었다. 얼마 후에 그녀는 허리를 굽혀서 안을 들여다 보았다. 흰 옷을 입은 두 천사가 그리스도의 시체가 놓여 있던 곳에 앉아 있었다. 이 두 천사는 그녀에게 말했다. "아주머니, 왜 우십니까?" 그녀는 대답했다. "그들은 나의 주님을 가져갔는데 그를 어디에다 안치했는지 알 수가 없어서 그래요." 그녀가 이 대답을 하고서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때 예수가 그녀의 뒤에 서 있었으나 그녀는 그가 예수인 것을 알지 못했다. 예수는 말했다. "아주머니, 왜 울고 계십니까? 무엇을 찾고 계십니까?" 그녀는 예수를 정원사로 착각하고 이렇게 대답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 저의 주님을 어디에 가져가셨는지 알려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주님을 가져가겠습니다." 예수는 '마리아'라고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그녀는 그를 알아보고 '주님' 하며 소릴 질렀다. "나를 만지지 말라." 예수는 말했다. "나는 아직 나의 아버지 곁으로 올라가지 못했다. 나의 제자들에게 가서 내가 아버지께로, 너의 아버지께로, 나의 하나님께로, 너의 하나님께로 올라간다고 말해라."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가서 예수를 보았다는 것과 예수가 자기에게 한 말을 전해 주었다. 그리고 그녀가 두 제자 요한과 베드로를 부르러 갔을 때 무덤에는 다른 여자들이 있었다.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들이 무덤에서 빛나는 옷을 입은 두 사람들을 보았으며 그 사람들을 보자마자 두려워서 고개를 숙였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여자들은 주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과 이 사실을 말하기 위해 오는 도중에 그리스도를 보았다는 것과, 그리스도의 발을 붙들고 그에게 예배를 드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때에 사도들은 여자들의 이 말을 믿지 않았다. 기절했던 병사들이 의식을 회복하자 제사장들한테 가서 자기들이 본 것을 말해 주었다. 그러나 병사들은 제사장들한테서 많은 돈을 받고 입을 다물었다. 또 병사들이 잠을 자고 잇는 동안에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의 시체를 훔쳐 갔다고 말하라고 제사장들은 병사들에게 말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그날 시몬과 클레오파스__시몬은 열두 제자들 중의 한 명이고 클레오파스는 예수의 추종자들 중의 한 명이다__는 예루살렘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엠메이어스라는 마을로 걸어가면서 우연히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때 이 일행에 어느 낯선 사람이 끼어 들게 되었는데 그는 그 일행에게 성서에 관해 설명하고 하나님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했다. 그래서 그들은 이 낯선 사람의 지식에 대해서 놀랐다. 그들이 마을에 도착했을 때에는 캄캄해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이 낯선 사람에게 자기들과 같이 있자고 말했는데 그는 그렇게 하겠다고 동의했다. 그들 셋이 저녁을 하기 위에 앉았을 때 그 낯선 사람은 빵을 집어 가지고 그것을 축복하고 예수가 최후의 만찬에서 한 것처럼 그 빵을 나누었다. 그들이 놀라서 그 낯선 사람을 보자 그 사람의 얼굴은 그들 앞에서 변하려 그리스도 자신의 얼굴이 되었다. 그들이 그를 쳐다보자 그는 사라졌다. 그들은 즉시 일어서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거기서 제자들이 함께 모여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은 자기들이 본 것을 말해 주었다. 그들이 말하고 있는 동안 예수는 갑자기 그 일행의 한가운데에 서서 "너희들에게 평화가 있을지어다!" 라고 말했다. 그들이 대단히 놀라는 것을 보고 그는 자신의 손과 발을 그들에게 보여주고 그것을 만져 보라고 했다. 그리고 그들을 격려하고 마음을 진정시킬 시간을 주기 위해서 그는 그들 앞에서 구운 생선 하나와 꿀벌집을 하나 잡수셨다. 그러나 열두 제자 중의 하나인 도마는 그 당시에 거기에 있지 않았다. 그래서 나머지 사람들이 그에게 나중에 "우리들은 주님을 보았다." 라고 말했다. 그러나 도마는 "나는 그의 손에 못자국을 보고 그의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기 전에는 믿을 수가 없소." 라고 대답했다. 그때 문이 다 잠겨져 있었으나 예수는 그들에게 다시 나타나 "너희들에게 평안이 있을지어다!" 라고 말했다. 그리고나서 그는 도마에게 말했다. "네 손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아라. 그대의 손으로 내 옆구리를 찔러 보게. 신앙심이 없는 사람이 되지 말고 믿는 사람이 되게." 그리고 도마는 예수에게 대답했다.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그러자 예수는 말했다. "도마야, 그대는 나를 보고 믿는구나. 나를 보지도 않고 믿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그 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500명의 신자들이 모인 곳에 나타나셨고 다른 사람들과는 40일 동안 같이 계시면서 그들을 가르치시고 그들에게 세상에 나가서 그의 복음과 종교를 설교하라고 하시면서 사악한 사람들이 그들에게 하는 일에 개의치 말라고 말씀하셨다. 마지막으로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예루살렘에서 베다니로 인도하시어 그들을 축복하고 하늘에 올라가 하나님 우편에 자리를 잡으셨다. 그들이 예수가 사라진 밝고 푸른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동안 흰 옷을 입은 천사 두 명이 그들에게 나타나서 말하기를 그들이 예수가 승천하는 것을 본 것과 같이 앞으로 언젠가 이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볼 것이라고 했다. 그리스도가 더 이상 이 세상에서 그 모습을 나타내지 않게 되자 사도들은 예수가 말씀하신 대로 사람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사악한 유다 대신 마타아스라는 새 사도를 뽑아서 그들은 온 나라들로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생활과 죽음,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심과 부활, 그리고 그가 가르치신 것, 그리고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푼 것에 대해서 말했다. 그리고 예수가 사도들에게 준 그 힘을 이용하여 그들은 병자를 고치고 눈먼 사람들에게 광명을 주고 벙어리에게 말을 하게 하고 귀머거리를 듣게 했다. 그리고 베드로는 투옥을 당하는 일이 있었으나 밤중에 천사에 의해 구출되었다. 사도들은 어디를 가든지 박해를 받고 잔혹한 대우를 받았다. 스테반이라는 기독교도를 돌로 쳐죽인 야만스런 사람들의 옷을 들고 있었던 사울이라는 사람은 사도들에게 해를 가하는데 항상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후에 하나님께서는 사울의 마음을 돌려놓았다. 사울이 기독교인들을 찾아서 그들을 감옥에 집어넣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하늘에서 커다란 불빛이 그에게 비추어졌다. 그리고 하늘에서 "사울아, 사울아, 너는 왜 나를 박해하느냐?" 라는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리고 그는 그와 같이 말을 타고 가던 모든 경비병들과 병사들이 보는 앞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쓰러졌다. 그들이 그를 일으켰을 때 그는 눈이 멀었다. 그는 사흘 동안 식음을 전폐하다가 한 기독교인이(그 목적을 위해서 천사가 보낸) 예수의 이름으로 그의 시력을 회복해 주었다. 그후 그는 기독교인이 되어 다른 사도들과 함께 설교도 하고 가르치기도 하며 신앙생활을 하면서 큰 업적을 남겼다. 그들은 우리의 구세주 그리스도라는 말에서 크리스찬이라는 이름을 따왔고 그 표식으로 십자가를 가지고 다녔다. 왜냐하면 그는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에 세상에 있었던 종교들은 거짓되고 잔인한 것이었고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게끔 조장했다. 짐승들과 사람들까지도 교회에서 죽음을 당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짐승들과 사람의 피가 신들을 기분 좋게 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가장 잔인하고 구역질나는 의식이 많이 행해지고 있었다. 이런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기독교는 참되고 친절하고 선한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구종교들의 사제들은 기독교인들에게 온갖 핍박을 가하도록 부추겼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여러 해 동안 교수형을 당하고 목이 잘렸으며 화형을 당하거나 생매장을 당했고 일반인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야생동물들의 먹이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기독교도들의 입을 막거나 그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 놓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기독교도들은 자신의 의무를 다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천, 수만 명의 기독교인들이 새로 생겨 사람들을 가르치고 죽임을 당했으며 다른 기독교인들이 또 나타나 그들의 뒤를 이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기독교는 세계의 종교가 되었다. 기억하라! 우리들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들에게도 항상 선을 행하는 것이 기독교이다. 우리의 이웃을 우리들 자신처럼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이 우리들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해주는 것이 기독교이다. 부드럽고, 자비롭고, 용서를 해주며 그러한 미덕을 우리들의 마음속에 조용히 간직하는 것, 그리고 그 사실을 결코 자랑하지 않는 것, 또는 우리들의 기도나 하나님의 사랑을 결코 자랑하지 않는 것, 그리고 모든 일에 겸손하게 올바른 일을 함으로써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 기독교이다. 만약 우리들이 이 일을 행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교훈을 기억하고 그를 실천에 옮기려고 노력한다면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죄악과 잘못을 용서해 주시고 우리들로 하여금 평화롭게 살고 주게 해주시기를 자신 있게 바랄 수 있을 것이다. 종교의 윤리적 헌신 콘스탄틴 콜렌더:미국의 라이스 대학의 철학교수로서 "이성의 자유", "철학의 순례", "젊은이들을 위한 윤리" 들의 저서를 남김. 인도주의(휴머니즘)와 기독교는 대단히 흡사하다. 그래서 둘 다 인간의 생명을 지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또한 인도주의와 기독교는 인간의 무한한 가치를 믿는다. 나는 기독교인이 다음의 휴머니스트의 원칙에 불찬성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1. 인간은 윤리적인 존재다. 그는 어떤 절대적인 윤리적 규범을 인식하고 그 윤리에 의해서 지도를 받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러한 규정의 하나는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방지하고 인간의 복지를 증진시키는 것을 규정하고 있다. 이 규범의 이상적인 한계는 '네 이웃을 메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든가, 아니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말 속에 표현될 수 있겠다. 영웅들 중에는 이런 이상을 위해서 살았고 또 죽기까지한 사람들도 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산다는 것의 의미는 오해의 소지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사람들을 찬미한다는 것은 올바른 일이다. 2. 인간은 창조적이다. 그들은 지식을 창조하고 같이 나눌 수 있다. 그리고 그 지식은 지식 자체를 위해 향유될 수 있고 훌륭하고, 아름답고, 유용한 것들을 만들어 내는데 이용될 수 있다. 그 유용한 것들이란 집, 큰 건물, 도구, 기계, 컴퓨터, 조각품, 미술품, 그리고 문학작품 등이다. 이 문화적인 능력은 일차적으로 인간을 동물과 구별시킨다. 인간의 창조력은 경제적, 정치적, 교육적인 제도들을 만들고 그것들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에 나타나는데 그 제도들은 협동과 공동의 노력을 통해서 정의, 안정, 안락, 그리고 번영과 같은 윤리적인 목표를 달성하게 한다. 이러한 제도들이 성공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이 제도들이 인간을 윤리적이고 창조적인 존재로 얼마만큼 번영을 누리게 했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3. 인간은 자기 비판의 능력을 갖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실수, 탈선, 위법행위 등을 인식할 수 있다. 이런 사실을 주목하는 것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휴머니스트들은 우리들의 사악한 경향을 알지 못한다고 비난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인류는 완전하다거나, 아니면 완전하게 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서 배웠다. 인간의 이기주의적이고 범죄적인 충동을 계속 감시하는 것은 우리의 윤리적인 천성의 일부이다. 그러나 이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일에는 고통과 좌절이 뒤따르며 거기에 대해서는 인간의 고난이라는 대가가 지불된다. 그러나 우리들이 악을 악으로 인식하고 있는 한 우리들은 완전한 죄인이라는 말은 듣지 않게 될 것이다. 휴머니스트들은 인생을 축복하고 그것을 충분하게 가질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그는 이와 동시에 슬픔의 고상함을 존중하고 동정도 할 줄 알고 슬퍼도 할 줄 안다. 이 세 가지 능력, 다시 말해서 윤리적, 창조적, 그리고 자기 비판적인 능력은 인종, 색깔, 그리고 신조에 관계없이 모든 인간의 특징들이다. 기독교인이라면 이러한 인간의 이상적인 가능성에 대해서 왈가왈부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우리 인간을 분리시키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중심적인 특징은 기독교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많은 다른 종교에도 적용된다. 이 특징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는 초자연적인 것의 개념과 관계한다. 나는 여기서 여하한 사람들의 종교적인 감정을 손상시키고 싶은 의도는 없다. 이 심오한 인간의 관심사의 영역에 있어서는 우수한 지혜를 비웃거나 조소하거나 아니면 그것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나는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한다는 것이 인간에게 굉장한 이익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 아름다운 생각은 인간의 고뇌와 열망의 심연 속에서 나온다. 종교를 망상적인 소원 성취의 도구로 간주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과 불멸에 대한 생각을 불러일으킨 그 복잡한 동기들을 정당하게 평가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들은 인생의 깊은 의미를 느끼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죽는다는 사실은 우리들에게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내 생각에 종교는 이러한 문제를 풀기 위한 필요성에 뿌리를 박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에 대한 개념과 영원한 구원에 대한 개념과는 서로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야 할 한 가지 일은 하나님에 대한 개념은 한 가지 기능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 기능들 중에는 순전히 철학적인 기능이 있다. 우리들이 어렸을 때 배운 바와 같이 하나님이라는 말은 모든 질문을 막게 하는 단어이다. 하나님에 이르면 모든 것은 다 설명된다. 다시 말해서 세상은 왜 존재하며, 세상은 어떻게 생겼으며, 세상은 어디로 가고 있으며, 우리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등의 질문들이 다 설명되는 것이다. 휴머니스트의 견해를 설명하면서 나는 세상에서 무엇이 좋은 일이며 우리들이 어떻게 처신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우리들은 알고 있다고 이미 말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개념이 아마 답변을 제공할지도 모르는 다른 질문들은 일차적으로 종교적인 것이 아니라 논리적이고 철학적이고 과학적인 것이다. 물론 이것은 간단히 이야기해서 넘어갈 성질의 것이 아니다. 달라스 신학대학의 노먼 가이슬러 신학교수는 훌륭한 책을 하나 써냈는데 이 책에서 그는 신학 및 철학사 전체를 검토하고 나서 하나님의 개념에 대한 개념적인 싸움을 요약하고 있다. 그는 싸움은 일신론자들의 승리로 돌아갔다고 자신 있게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결론을 끌어내기 위해서 고전적인 논쟁과 현대의 주장들을 열거하고 있다. 그러나 이 주장들의 문제점은 그것들을 연구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위와 같이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끝없는 논쟁과 주장이 계속되고 영원히 결론을 얻지 못한다고 해서 신앙으로 토론을 간단히 중단시킨다는 것은 지나치고 의심할 만한 조치라고 생각된다. 나의 주장은 이렇다. 우리들의 그 확고부동한 윤리적인 확신을 아무리 해도 결론이 나지 않는 논쟁에다가 결부시키는 것은 잘못이다. 만약 우리들이 이런 식으로 결부시키고, 그 확고부동한 윤리적인 확신을 신학적인 토론의 결과에 의존하게 한다면 우리들은 두 개의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다. 그 위험 중의 하나는 회의론이고, 다른 하나는 종교적인 광신이다. 전자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가 거의 없으나, 다만 윤리적인 신념을 종교적인 견해에 의존하게 하는 사람들은 냉소자들이나 아니면 기회주의자들이 될 위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만약 윤리가 종교에 의존하고 종교적인 신념들이 서로 갈등을 보여주고 있다면 도덕의 기초는 무너지고 말 것이다. 이리하여 종교는 도덕의 아성이 되는 대신에 자신을 상대적인 것으로 만들고 있다. 적어도 이 현상은 환멸을 느낀 많은 신자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광신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으나 광신이라는 것은 자기만이 진리를 독점하고 있다고 믿는 것에서 시작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어떤 교리를 자신의 신념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생각하고 이 신념을 어떤 특정한 공동사회에 들어가는 데 필수불가결한 조건으로 만든다면 그는 다른 모든 신념은 틀렸거나 잘못되었다는 것을 암암리에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신념에 있어서의 동의는 어떤 긍정적인 효과, 다시 말하면 어떤 집단을 하나의 공동사회 속으로 결속시키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구성원과 비구성원 사이에 장벽을 세우고 있다. 배타성과 분리의 감각은 사람들이 자신의 교리를 요란스럽게 주장할 때 강하게 나타난다. 왜냐하면 자기가 그릇된 믿음을 갖고 있다는 말을 듣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말들을 읽고 나서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 궁금히 여기고 있다. 따라서 우리들은 다름의 사실을 주장할 수 있을지 모른다. '기독교만이 진실이다(노먼 가이슬러:Christian Apologetics, Grand Rapids, MI Baker Book House, 1976, p. 351)'라고. 물론 이 세상의 무장 충돌은 종교적인 아닌 다른 원인들, 다시 말하면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인 원인에 의해서 부분적으로나마 야기되고 있다. 그러나 기존의 배타적인 신앙들이 서로 싸우는 당사자들의 광신과 증오를 증가시킨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종교가 인류 역사에 있어서 선을 위한 힘이 될 수 있고 또 힘이 되어 왔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종교의 윤리적인 헌신은 세상을 인간화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러한 헌신이 하나의 제도로서 교회의 생활 속에 표현된다면 교회는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의 옹호자가 될 수 있다. 교황 바오로 2세가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은 그의 따스한 인간적인 개성과 교회를 조직하여 사람들의 어려운 점을 돌봐줄 수 있는 힘에 기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사람들의 어려운 돌봐줄 수 있는 힘에 기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사람들의 어려운 일을 돌봐 준다는 것이 교리적인 신앙에 엄격히 결부되어야 하느냐 아니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나는 이런 꿈을 갖고 있다. 교신학 연구원을 하나 만들어서 거기서 다양한 종교를 대표하는 사상가들이 모여 논쟁에 있어서 발생하는 논리적인 문제점들을 비교 평가하고 그 논쟁들의 유리한 증거와 불리한 증거를 모으는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이러한 상호간의 연구는 보람이 있고 종교적인 신자들 사이에 이해와 조화를 증진시키는 데 도움을 주리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시도를 하다 보면 종교에 있어서 영적__윤리적인 내용에 있어서 교리적__인 면을 따로 떼어 내는 것이 가능하고 바람직스럽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종교의 윤리적인 내용을 교리적이고 철학적인 내용과 분리한다고 해서 그것이 특정한 종교 집단에 의해서 개발된 의식적이고 공동사회적인 친교의 그 형태에 반기를 드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훌륭한 윤리적인 가치들이 종교적인 경전이나 예배에 나타나 있다. 그리고 아무도 상호 부조, 호의, 그리고 서로 친절하고 용서하고 관대한 것을 실천하려는 노력이 경주되는 그 분위기를 조소하지 않는다. 내 생각으로는 종교에 공감하는 휴머니스트는 큰 봉사를 할 수 있다. 그는 따로따로 떨어진 인간들 사이에 교량 역할을 할 수 있다. 휴머니스트들이 인간을 적대적이고 상호 불신케 하는 독단적이고 교리주의적인 주장을 지적하고 세계의 모든 종교들의 공통된 윤리적인 헌신을 강조할 때 참다운 초교파적인 힘이 될 수 있다. 천국에는 유머가 없다 마크 트웨인(1835__1910):미국의 대표적인 유머작가, 소설가, 연사로서, 본명은 새뮤얼 랭혼 클레멘스. 그의 대표작으로는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 "미시시피 강에서의 생활" 등이 있음. 악습이 없는 사람도 때로는 더 나쁜 악습을 가질 수 있다. 의심이 날 때는 진리를 말하라. 옳은 일을 하는 것보다 격언을 만드는 것은 더 고통스러운 일이다. 시끄러운 소리는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는다. 그저 달걀 하나를 낳은 암탉은 마치 불가사리를 낳은 것처럼 시끄럽게 울어댄다. 진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가치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을 절약해서 쓰자. 기후를 만드는 것은 당신의 인간적인 환경이다. 인간적인 것은 어느 것이나 다 연민의 정을 나타낸다. 유머 그 자체의 은폐된 근원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이다. 천국에는 유머가 없다. 진리는 허구보다 더 낯선 것이다. 그 이유는 허구는 가능성을 고수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인 데 반하여 진리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도덕적인 감각과 부도덕적인 감각이 있다. 역사가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는 도덕적인 감각은 우리들로 하여금 도덕을 인지하게 하는 동시에 그것을 피하게 만들 수 있으나 부도덕한 감각은 부도덕성을 인지하고 그것을 즐기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영국 국민들은 성경에 언급되어 있다. 즉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다. 동정은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고 질투는 죽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슬픔은 스스로를 돌볼 수 있으나 기쁨의 완전한 가치를 얻기 위해서는 기쁨을 나눌 어떤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는 의사로서 많은 경험을 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먹고 싶지 않은 것을 먹고 마시고 싶지 않은 것을 마시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는 데 있다." 자신의 겸손을 자랑하는 사람은 무화과 잎을 지니고 있는 상과 닮은 사람이다. 타인의 신을 무시하는 것은 정말로 불경한 것이다. 거짓말하는 데에는 869가지 종류가 있다. 그러나 이 중에서 하나만이 단호하게 금지되어 있다. '그대는 그대의 이웃에 대해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투기를 하면 안되는 때가 두 번 있다. 그것은 투기를 할 수 있을 때와 투기를 할 수 없을 때이다. 그녀는 소위 세련된 사람이라고 볼 수 없다. 그녀는 세련되지 않은 사람도 아니다. 그녀는 앵무새와 같은 사람이다. 당신이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매일 어김없이 하도록 하라. 이것은 고통을 느끼지 않고 의무를 수행하는 버릇을 얻을 수 있는 황금률이다. 환상을 버리지 말라. 환상이 없어져도 당신은 존재하기는 하겠지만 생을 사는 것은 이미 중지한 것이다. 우선 하나님께서는 바보들을 만드셨다. 이것은 연습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 다음에 그는 교육위원회를 만드셨다. 당신의 시계가 고장났을 때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그것을 불 속에 던져 버리는 것이고 하나는 시계 수리공한테 가지고 가는 것이다. 전자가 가장 빠른 길이다. 누구나 다 달을 하나씩 갖고 있으며 그러기 때문에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결코 보여주지 않는 암흑면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여행을 많이 했는데 천사들도 외국말투가 섞인 영어를 한다. 인간은 사랑을 받기 위해서, 그리고 선망의 대상이 되기 위해서 모든 일을 할 것이다. 깨끗한 영혼을 갖고 있으려면 옷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말라. '표준 영어'라는 것은 없다. 재산은 공동주식회사에 투자되었으며 우리들은 그 주식의 대부분을 갖고 있다. '고전이라는 것', 그것은 사람들이 칭찬하지만 결코 읽지 않는 것이다. 모든 훌륭한 일과 영웅적인 일을 하면서도 한 가지 일만 안하는 사람이 있다. 그 한 가지 일이란 자신의 행복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는 것이다. 인간은 부끄러워할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이다. 보편적인 동포에는 우리들의 가장 귀중한 재산이다. 바보들에게 감사하자. 바보들이 아니라면 바보가 아닌 사람들은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우리들을 존경하지 않을 때 우리들은 기분이 상한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스스로를 존경하는 마음은 하나도 없다. 화를 내는 마음은 죄악이기도 하고 저주이기도 하다. 화를 내는 그런 기질을 갖고 있는 사람은 말을 하기 전에 욕지거리부터 한다. 새로운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은 그가 성공을 할 때까지는 괴짜라고 불리운다. 우리들의 은인인 아담에게 감사하자. 그는 게으름의 '축복'으로부터 우리를 구해 내어 우리들로 하여금 일을 하게끔 해주었기 때문이다. 유혹을 막을 수 있는 몇 개의 좋은 보호책이 있다. 그러나 가장 확실한 보호책은 비겁이다. 번영은 원칙을 가장 잘 보호해 준다. 우리들은 노력을 함으로써 여경을 이겨내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사람들은 타고날 때부터 자신들의 다른 소유물들의 가치들을 능가하는 하나의 소유물이 있다. 그것은 그들의 마지막 숨이다. 배고픔은 천재의 시녀이다. 옛날 속담에 "잠자는 개는 그냥 놔두어라."라는 말이 있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많은 이해 관계가 걸려 있을 때에는 신문으로 건드려라. 진실한 유머는 마음을 울린다 찰스 S. 브룩스(1878__1934):미국 태생의 저술가. 1900년 예일대학 졸업 후 15년간 사업을 하다가 저술 활동으로 방향 전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수필집 "바그다드로의 여행", "피핀과 치즈", "굴뚝 구멍에 관한 논문", "순례자에 대한 암시", 소설 "루카 사르트", "여인숙의 창문" 등이 있음. 나는 위트(기지)와 유머를 정확히 구분할 자신이 없다. 그 차이는 너무나 미세하기 때문에 희끗희끗한 턱수염이 있는 사람들만이 구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신병자가 아닌 한 무식한 사람도 자기 나름의 의견을 갖고 있다. 나는 위트와 유머 중에서 유머가 편한 느낌과 발랄한 특질을 저 많이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유머가 있는 사람이 만약 참다운 재능을 갖고 있다면 그는 항상 사귀기에 유쾌한 사람이다. 그들은 유쾌한 말을 한다. 그러나 위트밖에 없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 또한 그들(위트가 있는 사람들)은 편안한 느낌을 주지 못한다. 이에 반해서 유머가 있는 사람들은 일반적인 즐거움을 발산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어두운 방안에 있는 하나의 촛불 같은 존재이다. 나는 위트를 찬미하고 있지만 그것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위트는 너무나 자주 나를 불리한 입장으로 몰아넣었으나 유머는 항상 나를 도와주었다. 유머는 나의 약점에 대해 손가락질을 하지 않았다. 유머러스한 사람은 안전하고 사귀기 쉽다. 그들은 뇌관에 연결되어 있는 폭발물 같은 존재는 아니다. 위트는 날카롭고 탐구하는 눈을 가진 깡마른 동물 같으나 유머는 날 때부터 친절하고 안락한 눈매를 하고 있다. 위트는 필요하다면 점수를 올리기 위해 나쁜 일을 서슴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금방이라도 뛰어 오르려는 고양이와 같다. 그러나 유머는 안락의자에서 조용히 휴식을 취하고 있다. 위트는 혼자서 노래를 부를 때에는 유머보다 더 훌륭한 목소리를 내지만 유머를 합창단에서 최고의 실력을 발휘한다. 위트는 번개와 같이 날카로우나 유머는 햇빛처럼 부드럽다. 위트는 계절의 유행을 따르고 그날 그날의 말과 판단을 정확히 사용하지만 유머는 구수하고 영원한 것들과 관계하고 있다. 위트는 비단옷을 입고 있으나 유머는 홈스펀(수직물)을 입고 있다. 위트는 올가미를 걸어 놓고 있으나 유머는 희생자를 마음속에 생각하지 않고 휘파람을 불고 나다닌다. 위트는 식탁에서는 날카로운 친구이지만 유머는 불행한 일에 있어서 도움을 준다. 최근에 나는 악명이 높을 정도로 위트가 있는 사람과 함께 식탁에 앉은 적이 있었다. 이 사람들 우리들의 여주인이 좌중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소개했다. 나는 그의 평론들을 많이 읽었는데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 평론들이 어렵고 지적이며 진리를 겨냥하고 있으나, 기본적인 유머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의 글은 너무나 역설을 선언하고, 예외적인 것을 주장하며, 하찮은 바늘 한 개를 찾기 위해서 값비싼 건초더미를 흐트려 놓고 있었다. 그의 평론이 제대로 정곡을 찌르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는 그저 자신의 평론의 왜곡성에만 관심을 갖게 했다. 나는 그의 말도 그의 글과 같다는 것을 알았다. 그와의 대화는 엄격히 말하면 대화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와의 대화는 단어와 아이디어가 교환되어야 하는 그런 대화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화는 한 사람이 물건을 팔고 다른 한 사람은 물건을 사는 그런 시장이 되어서는 안된다. 대화는 오히려 서로 주고 받는 협상이어야 하며 대화하는 사람은 스스로가 물건을 사기도 하고 팔기도 해야 된다. 그런데 그의 말을 하나의 연설이고 강연과 같은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차가운 지성으로부터 문학적인 비유와 기지와 경구를 끊임없이 쏟아 내고 있었다. 그는 메리디스(영국의 소설가)의 책의 한 페이지를 찢어 가지고 그대로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의 말은 나에게는 하나의 전혀 새로운 경험이었다. 왜냐하면 나의 친구들은 대개는 상식선에서 움직이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처음에 나는 그가 말하다가 좀 쉴 때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가 말을 잠시 쉬게 되면 내가 그 공백을 메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가 잠깐 말을 중지했을 때 나는 나즈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는 때를 놓칠세라 다시 폭포수처럼 말을 쏟아 냈다. 이것은 심각하게 말하면 공평하지 못한 처사처럼 보인다. 만약 어느 대화자가 대화의 주춧돌들을 다 놓겠다고 주장한다면 그는 다른 대화자가 적어도 주춧돌 사이의 틈바구니는 막도록 허용해야 한다. 저녁이 다 지나갔을 때 나는 피로와 불만에 싸여 집에 돌아왔다. 집에 돌아왔을 때에는 입을 사용하지 않은 탓인지 혀가 말라 있었다. 나는 이런 사람과 같이 돛단배를 타고 싶지 않으며 그런 사람과는 시골이나 아니면 문명권 밖의 여하한 지역이라도 가고 싶지 않다. 그는 만약 청중을 박탈당하게 되면 틀림없이 앵돌아질 것이다. 그러나 유머러스한 사람은 숲속 같은 데에서 불행한 일을 당한다 해도 같이 친구가 될 수 있는 좋은 사람이다. 그는 위로를 해준다. 나에게는 A라는 친구가 있다. 그는 나와 함께 캐나다의 어느 숲속을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그처럼 만족스러운 친구를 나는 다시는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그에게서 희극적인 말을 많이 들은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는 최고의 해학가들과 마찬가지로 마음속에는 심각한 데가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하루종일 기쁨과 즐거움이 있었다. 저녁밥이 너무 많이 탔다든가, 천막이 밤에 휘몰아치는 폭풍우 때문에 쓰러졌을 때에도 그는 마치 이러한 것이 없으며 여행이 즐길 가치가 없는 것처럼 사태에 대처했던 것이다. 이것은 말로는 하기 쉬운 철학이지만 젖은 천막이 비바람에 쓰러질 때에는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는 재난의 바로 그 순간을 웃음으로 넘겼다. 그것은 마치 어느 사람이 안락의자에 앉아서 웃는 것과 같았다. 나는 그가 우리들이 비에 온몸이 젖었을 때 몸을 말리려고 장작을 패면서 도끼를 휘두르는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참다운 유머는 일차적으로는 인간적인 것이며, 정확히 말하면 신적인 것이고, 그 다음에 재미가 자연스럽게 뒤따른다. 나는 바로 얼마 전에 불란서 극단의 루이 쥬베가 앤드루 에이그__잭크의 역을 하는 것을 보았다. 그 역은 대단히 유머러스한 것이었는데 배우는 일부러 웃기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는 우선 자신의 청중들로 하여금 자기를 사랑하게 했는데 이것이 이 코메디를 자극시킨 것이다. 그의 긴 다리는 우스꽝스러웠고 그의 질질 끌리는 듯한 말투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 희극의 본질은 그가 청중에게서 얻은 사랑인 것이다. 아주 유쾌한 마음으로 그는 자기 모자의 깃털을 매만지고 있었다. 또한 그는 결투를 하기를 얼마나 두려워했던가? 이러한 어리숙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그저 위트밖에 없는 사람은 상술한 사람과 마찬가지의 웃음을 자아낼 수 있을지 모르나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지는 못할 것이다. 책에 관해서도 차이가 있다. 위트에 관한 책은 잘 읽혀지지 않으나 유머에 관한 책은 오래 간다. 유머에는 영원성이 있으나 위트는 잊혀진 상황과 관련되어 있다. 위트는 또 유행에, 예를 들면 코트의 스타일에 매달린다. 그것은 잊혀진 한담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지방민들이 자기네들만 알고 있는 농담에 불과하다. 시드니 스미스는 당대에는 가장 유명한 재주꾼이었으나 그의 책은 오늘날에는 별로 읽혀지지 않는다. 또한 토머스 후드의 재담을 읽고 웃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과거의 재사들이 설 자리는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휠스타트, 램, 그리고 필딩의 유머는 유머가 진실을 띠기 위해서는 인간성과 진실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들에게 상기시켜 주고 있다. 유머를 찾아서 프랭그 무어 콜비(1865__1925):미국의 백과사전 편집자, 수필가. 1888년 콜롬비아 대학 졸업 수 콜롬비아, 바나드, 앰허스트, 뉴욕 등의 대학에서 10년 동안 교직 생활. 그후 뉴욕 상업 광고지의 논설위원으로 있으면서 여러 잡지에 많은 기고를 함. 대표작으로 "콜비 수필집"이 있음. 우리 미국인들은 그렇게 유머(해학)가 많지는 않으나 그것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들을 수 있다. 나는 여성들이 자기들 나름의 이 특질(유머)을 갖고 있는지 아닌지에 대한 논란이 신문에 난 것을 보았다. 이 기사를 읽는 것은 매우 엄숙한 일이었으나 약간 지루했다. 이 모든 기사를 다 읽다 보니 짜증이 생겼다. 이 논쟁에 참여한 사람들은 적절한 예들을 인용할 것을 주장했다. 그리고 누군가가 경솔하게도 자기가 의미하는 유머는 이런 것이라고 말을 꺼내자마자 평화로운 토론이 깨지고 만 것이다. 남자와 작가들이 유머의 실례를 들지 못하는 것은 늘 있는 일이다. 남자와 작가들은 이 문제를 두고 토론을 하다가 실망을 갖게 되고 때로는 증오를 하게 된다. 조지 메리디스(영국작가)도 우리들에게 다이아나(달의 여신)의 농담의 예를 들어서 우리들의 조소의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논쟁자들 간에는 어느 한 사람이 자기에게 할당된 시간 이상으로 주장하지 않을까봐 질투의 분위기가 맴돌았다. 첫번째 논객은 유머의 과학적인 정의를 들고 나오면서 자기가 마치 유머의 대가인 태도를 취했다. 그 다음의 논객은 그를 사기꾼으로 만들었고 자기가 유머의 문제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는 인상을 주려고 노력했다. 유머의 모든 토론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이 토론은 심한 공방전이 교차되는 가운데 진행되었다. 유머감각이 없는 것은 하나의 치명적인 결점이라고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흔히 듣는다. 점잔을 빼는 사람들도 유머러스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유머가 없는 생활은 다리가 없이 생활은 다리가 없이 생활하는 것과 같다. 유머가 없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항상 어딘가 모자라다는 느낌을 갖게 되며 친구들이 가는 곳에도 가지 못한다. 만약 간다 해도 그는 친구들에게 부담이 된다. 그러나 정말로 치명적인 일은 유머감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유머감각이 있는 체하는 것이다.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태도가 엄숙한 사람이 있다. 그들은 그렇게 되도록 되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본연의 태도에 충실하며 누구에게도 안전한 친구가 된다. 그러나 그들이 일부러 유머러스한 체하면 그것은 큰 일이다. 엄숙한 태도는 하나의 축복이 된다. 그래서 날 때부터 엄숙한 사람은 그 태도를 일부러 벗어 버리려고 해서는 안된다. 우리들은 유머를 너무나 많이 칭찬해 왔기 때문에 그 유머에 대한 찬미는 불성실한 데가 있다. 또한 마음속으로는 유머를 싫어하면서도 겉으로는 유머를 찬미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유머를 거짓되게 숭배하는 것은 사회의 죄악 중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고 자장 흔한 것이다. 마음속에 유머감각이 없는 사람들은 유머를 시간시간마다 찬미한다. 유머에 대한 정의를 내리려고 미친듯이 시도하는 것은 아무런 이익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유머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일은 약간의 이점을 줄지도 모른다. 유머에 대한 첫째의 법칙은 유머라는 것은 그것을 얻으려고 노력하면 결코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유머는 얻으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는 하나의 귀중한 것이다. 그래서 남자건 여자건, 주간 신문이건 잡지건 간에 누구를 막론하고 일부러 유머러스한 척하려고 한다면 그런 태도는 포기해 버리는 것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