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1 어느 날 아침, 잠자던 그레고르는 뒤숭숭한 꿈자리에서 개어나자 자신이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흉측한 벌레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각질로 된 갑옷처럼 딱딱한 등을 밑으로 하고 위를 쳐다보며 누워 있던 그가 머리를 약간 쳐들자, 볼록하게 부풀어오른 자신의 갈색의 배가 보였다. 배 위에는 몇 가닥의 주름이 져 있고, 주름 부분은 움푹 패여 있었다. 그 배의 불룩한 부분에는 이불의 끝다락이 가까스로 걸려 있었으며, 금방이라도 미끄러져 내릴 것만 같았다. 그런데 다른 부분에 비해 비참할 정도로 가는 수많은 다리가 그이 눈앞에서 불안스럽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일까?' 하고 그는 생각했다. 진정 꿈은 아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조금 작가는 하지만 어쨌든 사람이 사는 평범한 방. 틀림없이 자신의 방이었다. 사방의 벽도 낯익고 아늑한 바로 그 벽으로 둘러져 있었다. 탁자 위에는 따로따로 묶어 놓은 옷감 견본들이 여기저기 잡다하게 흩어져__그레고르는 외판 사원이었다__탁자 위의 벽에는 얼마 전에 ㅎ에서 오려내어 예쁜 금박 액자에 넣어서 걸어 놓은 그림이 걸려 있다. 그것은 어떤 부인의 자태를 묘사한 것으로, 그녀는 모피 모자와 모피 목도리를 두르고 커다란 모피 토시 속에 푹 집어 넣은 양팔을, 보는 이를 향하여 추켜든 자세로 단정하게 의자에 앉아 있었다. 다음 순간 그레고르는 창 밖을 보았다. 창틀의 양철판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음산한 날씨가 그의 기분을 몹시 우울하게 했다. '잠이나 좀더 자 두기로 하고 더 이상 이런 허튼 생각은 하지 말아야지.' 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레고르는 늘 오른쪽으로 돌아누우려 해도, 그 때마다 몸이 흔들려서 결국 위를 향해 똑바로 누운 본래의 자세로 되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그 짓을 백 번도 더 시도해 보았으리라. 그는 그 동안에도 허우적거리는 다리들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은 채로 있었다. 그런데 지금가지 느껴 보지 못했던 허리춤의 가벼운 통증으로 인해 오른쪽으로 돌아누우려던 것을 포기해야만 했다. '제기랄! 나는 어째서 이렇게 고된 직업을 선탯했을까! 날이면 날마다 출장 또 출장이다. 사무실에서의 근무도 여러 가지 귀찮기는 하지만, 외관에 따르는 고충은 훨씬 더 각별한 것이다. 기차 시간에 대한 걱정과 불규칙하고 무성의한 식사, 그리고 끊임없이 계속되는 오래 지속되지 않고 진정으로 가까워지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배 위쪽이 좀 가려웠다. 그는 쉽게 머리를 쳐들 수 있도록 몸을 침대 끝의 기둥 쪽으로 밀어 갔다. 조그마한 하얀 점들이 오글오글 붙어 있는 가려운 그 자리가 보였다. 그 점들이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다리 하나를 뻗쳐서 그 자리를 만져 보려고 했으나, 이내 다리는 움츠러들고 말았다. 다리가 슬쩍 그 곳에 닿자 오싹 소름이 끼쳤기 때문이다. 그는 다시 몸을 이끌고 이전의 위치로 되돌아갔다. '사람이 너무 일찍 일어나면 이렇게 멍청해지는 법이야. 사람은 충분한 수면이 꼭 필요한 법이야. 다른 외판원들은 마치 후궁(後宮)의 궁녀들처럼 지내고 있지 않은가. 가령 내가 밖에서 한 가지 일을 끝내고 오전 중에 숙소로 돌아와서 주문받은 것을 정리하고 기입해 둘 때에서야 비로소 그들은 아침 식사를 시작하지 않던가. 만약 내가 사장 앞에서 그런 짓을 한다면 그는 나를 당장 해고시킬거야. 그런 생활이 이로운지 어떤지 잘 모르지만 그런 식으로 여유 있게 살고 깊어. 부모님만 아니라면 이렇게 참고만 있지는 않았을 거야. 벌써 사표를 던지고 말았을 걸. 사장 앞으로 걸어가서 내가 생각하고 있던 바를 거리낌없이 털어놓을 것이다. 그러면 틀림없이 그는 놀라서 책상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말리라. 하여튼 책상 위에 걸터앉아 어개 너머로 사원들을 내려다보며 이야기하는 것이라든지, 귀가 멀어서 말할 때마다 사원들에게 아주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면 안 되는 등 매우 이상한 버릇의 소유자야. 그러나 전혀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야. 부모님이 진 빛을 청산할 수 잇을 만큼 돈을 모은다면__아마도 5,6년은 걸리겠지만__그렇게만 된다면 꼭 결행할 테다. 그것이 내 일생 일대의 전환기가 되겠지. 그것은 그렇다 치고, 우선 지금은 일어나야만 돼. 기차는 5시에 출발하니까.' 그리고 그는 책장 위에서 째깍거리는 자명종 시계를 바라보았다. '하느님 맙소사!' 시계는 6시 반이었다. 조용히 계속 움직이는 시계 바늘은 이미 30분을 지나, 거의 45분에 육박하고 있었다. 종이 울리지 않았단 말인가. 침대에서 보아도 정각 4시에 울리도록 맞추어져 있었다. 틀림없이 울리긴 울렸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요란하게 울려대는 종소리에도 깨지 않고 편안히 잠을 잘 수 있었단 말인가? 그러나 실은 밤새도록 편안하게 잘 자지도 못한 터이다. 그렇기 때문에 종이 울린 후에 더욱 정신없이 곯아떨어졌는지도 모른다. '그러나저러나 이제 어떻게 한다? 다음 기차는 7시에 있으니, 그것을 타려면 미친 듯이 서둘러야만 할 텐데.' 아직 견본들을 꾸려 놓지도 못한 데다가 기분도 결코 개운하거나 유쾌하지 않았다. '만약 그 기차를 탄다 해도 결코 사장의 불벼락을 피할 수는 없을 거야. 왜냐하면 5시 기차로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던 급사 녀석이 내가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한 사실을 이미 보고했을 테니까. 그 녀석은 아첨꾼으로, 줏대도 없고 분별력도 없는 사장의 앞잡이니까. 그렇다면 몸이 아프다고 말하면 어떨까? 그러나 그것은 더없이 괴로운 일이야. 더욱이 수사쩍게 생각할 것이 틀림없어. 나는 지난 5년 동안 외판원 생활을 하면서 단 한번도 아팠던 적이 없으니까. 아마 아프다고 말하면 시장은 조합 주치의를 데리고 올 것이다. 태만한 자식으로 인해 부모님까지 욕먹을 지도 모른다. 그 의사에게 일단 진찰을 받게 되면 아무리 발뺌을 해도 통할 리가 없을 것이다. 사실 그 조합 주치의가 본다면 건강하면서도 단지 일하기 싫어 꾀부리는 사람으로만 보일 것이다. 그러나 사실 지금 나의 경우 주치의가 나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그레고르는 여전히 피곤하긴 했으나 잠을 푹 자고 나면 머리가 상쾌하고, 다소 강한 식욕까지도 느껴 온 터였다. 이런 순간적인 생각들에 빠져 있다가, 그만 잠자리에서 일어나야 되겠다고 결심한 채 하기도 전에__그 때 자명종 시계가 6시 45분을 쳤고__침대 머리맡 쪽에 있는 문에서 조심스럽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레고르야, 6시 45분이다. 일하러 안 나가니?" 하고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 저 부드러운 목소리! 그러나 그기에 대답하는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그레고르는 깜짝 놀랐다. 물론 틀림없는 자신의 목소리였지만, 어쩐지 밑에서부터 울려 나오는 듯한 찍찍거리는 괴로운 신음 소리가 섞여 나오는 것이었다. 처음에 튀어나온 말소리는 명확했지만 그 다음 말소리는 이 찍찍거리는 소리가 말 끝머리를 흐려 놓아 자칫 상대방이 이쪽 말을 제대로 알아들었는지 조차도 의심스러울 지경이였다. 그레고르는 상세하게 모든 것을 설명하려고 했다. 그러나 "네! 네! 어머니 곧 일어납니다." 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문 바깥쪽에 있는 사람은 문이 나무 판자로 되어 있었으므로 그레고르의 목소리가 변했다는 것을 아마 몰랐을 것이다. 어머니는 그의 대답에 안심하고 다리를 끌며 가 버렸다. 그러나 이 간단한 대화로 다른 가족들은 그레고르가 아ㅣㄱ 출발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말았다. 아니나 다를까 아버지가 다른 쪽의 문을 주먹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그레고르, 그레고르! 도대체 왜 그러느냐?" 하고 아버지는 소리를 질렀다. 잠시 후 한층 낮은 목소리로, "얘야, 그레고르야!" 하고 재촉을 했다. 그ㄹ 맞은편 문 밖에서는 누이동생이 작은 소리로 걱정스럽게 애원하고 있었다. "오빠, 몸이 어디 불편하세요? 무슨 일이 있난요?" "이제 준비 다 되었어요." 하고 대답하며, 한 마디 한 마디 말과 말 사이를 오랜 간격을 두어 조심스럽게 발음했다. 그러므로 목소리가 변질되어 울리는 것을 감추려고 애썼다. 아버지는 아침 식사를 하려고 되돌아갔으나, 누이동생은 아직 문 뒤에 서서 "오빠, 제발 문 좀 열어 주세요, 네. 부탁이에요." 하고 애원했다. 그러나 그레고르는 문을 열 수가 없었다. 오히려 출장중에서 얻은 습관대로 밤이면 모든 문의 빗장을 잠궈 버리는 자신의 조심성에 감사할 정도였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방해받지 않고 조용히 일어나 옷부터 입고, 무엇보다도 아침을 먹은 후, 비로소 그 다음 일을 생각하고 싶었다. 침대 속에서 아무리 고민을 하고 있는다 해도 별다른 결론에 도달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다. 가만 생각해 보니 불편한 잠자리에서 몇 번인가 가벼운 통증 때문에 일어나 보면__아마 그것은 잠을 험하게 잤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__고통이 전혀 없었던 것처럼 멀쩡했던적이 이전에도 자주 있었다. 그러므로 그레고르는 오늘의 여러 가지 일들도 점차로 어떻게든 풀릴 것이라고 생각하며 긴장해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목소리가 변한 것도 지도간 감기 때문에, 즉 자주 출장을 떠나야하는 외판원의 고질적인 직업병의 전조한 불과한 것이라고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이불을 걷어치우는 일은 매우 간단하였다. 그저 숨을 약간 들이마셔 배에 힘을 주기만 하면, 이불은 자연히 밑으로 미끄러져 내렸다. 그런데 몸을 일으키려면 팔과 손의 도움을 받아야 했으나, 도리어 그 다리는 먼저 쭉 뻗어 버리는 형편이었다. 마침내 그 다리를 사용해서 목적했던 일을 끝마치면, 그 동안 다른 모든 다리들이 마치 해방이라도 맞은 것처럼 요란스럽게 꿈틀거리는 것이었다. '침대 속에서 더 이상 꾸물거려야 아무 소용이 없겠는데......'하고 그는 중얼거렸다. 우선 그는 하반신부터 침대 밖으로 끄러내려고 했다. 그러나 아직 자신의 눈으로 보지도 못했으며, 또 어떻게 생겼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 하반신을 움직이기란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그 일은 많은 시간이 걸렸고 매우 힘이 들었다. 그래서 약간 화가 난 그는 있는 힘을 다해 정신없이 하체를 마구 앞으로 밀고 갔다. 그런데 방향을 잘못 잡아 침대 다리 쪽 기둥에 다리를 심하게 부딪쳤다. 후끈거리는 심한 통증을 느끼고서야 비로소 자신의 몸에서 가장 감각이 예민한 부분이 하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상체를 먼저 침대 밖으로 끄러내려고 조심조심 머리를 침대 가장자리로 돌렸다. 그 일은 별로 힘들지 않게 할 수 있었다. 몸통은 그 폭이나 무게가 볼품없이 컸지만, 그래도 머리가 돌아가는 방향으로 같이 움직여 주었다. 그러나 머리가 막상 침대 밖으로 나가려니까 불안했다. 이런식으로 침대 밖으로 나가다가는 결국엔 그대로 침대 밑으로 떨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기적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한 머리 부분이 무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정신을 똑바로 차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차라리 이대로 침대에 있는 편이 났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앞서와 같이 애를 쓴 후에야 한숨을 몰아 쉬면서 본래의 자리에서 다시 누울 수가 있었다. 그는 눈앞에서 조금 전보다 더 약이 오른 듯이 서로 엉클어져 허우적대는 자신의 가냘픈 다리들을 보면서, 이 혼란 속에서 휴식과 질서를 찾을 방법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 이상 그냥 침대에 누워 있을 수도 없고, 설령 침대 밖으로 나갈 수 있는 희망이 거의 없다고 할지라도, 모든 희생을 각오하더라도 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현명할 거야.'라고 중얼거렸다. 동시에 그는 자포자기하는 것보다는 심사숙고하는 쪽이 훨씬 낫다는 생각도 해 보았다. 그러면서 그는 순간 순간 날카로운 시선을 창 쪽으로 집중시켰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좁은 골목 건너편에 늘어선 집들까지도 뒤덮고 있는 아침 안개 때문에 밖을 바라보아도 자신감이나 상쾌함 같은 것은 느낄 수가 없었다. 자명종 시계가 7시를 치는 소리가 듣자 그는 중얼거렸다. "벌써 7시인데 아직 저렇게 안개가 짙다니, 참!" 그리괴 그는 이 완전한 정적에 의해 혹시라도 평소의 자신의 상태로 되돌아가지나 않을까, 혹 기대라도 하듯 잠시 동안 숨을 내쉬며 조용히 누워 있었다. 그러나 그는 또다시 중얼거렸다. "7시 15분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침대에서 일어나야만 된다. 그 때쯤이면 아마 위쪽으로 치켜들면 아마도 머리는 안전할 수 았을 것이다. 등은 딱딱하니까 카펫 위에 떨어져도 별일은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걱정이 되는 것은 추락할 때 나는 쾅하는 소리였다. 그 소리는 식구들을 크게 놀라는 하지는 않았겠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하고 그들에게 불안감을 안겨 줄 것이다. 그러나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레고르가 이미 절반쯤 몸을 침대에서 일으켰을 때__이 새로운 동작은 힘든 일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장난 같아서 몸을 좌우로 조금씩 흔들면 그만이었기 때문에__누군가가 조금만 도와주면 일은 매우 쉽게 끝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힘센 사람이 두 명만 와 준다면__부친과 하녀가 생각났다__충분할 것이다. 그들이 둥글게 솟아오른 나의 등 밑에다 팔을 집어넣고 침대에서 몸을 굽혀 방바닥에 내려놓으면 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방바닥에서 몸을 뒤집을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 주면 된다. 그렇게만 되면 이 조그만 다리들도 제구실을 할 것이다. '문이 모두 잠겨 있지만 않다면 구원을 청할 수도 있을 텐데.' 그는 이런 곤경 속에서도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벌써 몸을 너무 세게 흔들어 균형을 잃고 침대에서 굴러 떨어지기 직젖의 상테에까지 와 있었다. 우물쭈물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마침내 최후의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앞으로 5분만 지나면 7시 15분이다. 그때 현관문에서 벨이 울렸다. '회사에서 누가 왔구나' 하는 생각에 그는 온몸이 뻗뻗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의 다리들은 더욱 분주하게 꿈틀거렸다. 그 순간 온 집안이 매우 조용했다. "아무도 문을 열어 주지 않는구나." 하고 중얼거리면서, 그레고르는 그 어떤 부질없는 희망에 매달려 보았다. 그러나 잠시 후 언제나처럼 하녀가 침착한 걸음걸이로 나가서 문을 열어 주었다. 그레고르는 방문객의 인사말만 듣고도 그것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그는 바로 지배인이었다. 도대체 왜 자기는 잠깐 게으름을 피웠다고 해서 금방 의심을 사는 그런 회사에서 근무해야 하는 팔자를 타고났을까? 도대체가 너나할것없이 고용인들은 모두 쓸모없는 건달들이란 말인가? 그들 중에는 아침에 두서너 시간 정도 일을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얼까지 빠질 지경이 되어 침대 신세를 지게 된, 그런 충실하고도 희생적인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말인가? 형편을 알아보기 위한 것이라면 급사 정도로도 충분하지 않을까__물론 그 '형편을 알아본다'는 일이 필요할 때의 말이지만__? 그런데 꼭 지배인 자신이 와야 한단 말인가? 이 수상쩍은 사건의 조사를 지배인 이외의 사람에게는 맡길 수 없기 때문에 죄 없는 가족에게까지 알려야 한단 말인가? 그레고르는 침대에서 힘껏 몸을 굴려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것은 확고한 결단에서가 아니라, 이런 저런 생각에 너무 흥분을 했기 때문이다. 쾅하고 큰 소리가 났다. 그러나 그다지 요란한 것은 아니었다. 바닥에 카펫이 깔려 있었으므로 사람들이 놀랄 만큼 둔탁한 소리는 나지 않았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등 껍질도 탄력이 있었다. 다만 고개를 조심스럽게 쳐들지 않았기 때문에 머리를 바닥에 약간 부딪쳤다. 그는 화가 치밀어 아픈 머리를 카펫에다 비벼 댔다. "저 안에서 무엇인가 떨어진 모양이군요." 왼쪽에 있는 옆 방에서 지배인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레고르는 오늘 자신에게 일어난 일과 똑같은 일이 언젠가는 지배인에게도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보았다. 그런 일이 생기지 않는다고는 아무도 보장할 수 없다. 그러나 그레고르의 그런 의문에 대답이라도 하는 듯, 옆방에서 지배인이 에나멜 장화로 몇 발짝 거닐면서 삐걱거리는 구두 소리를 냈다. 그 때 오른쪽 방에서 그레고르에게 지배인이 온 것을 알리는 누이동생의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려 왔다. "오빠, 지배인님이 오셨어요." "알고 있어." 하고 그레고르는 중얼거렸다. 그 중얼거림은 누이동생이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작았으나 감히 목소리를 높일 수도 없었다. 이번에는 왼쪽 방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레고르야, 지배인께서 네가 왜 아침 기차로 출발하지 않았느냐고 묻고 계신다. 어떻게 대답을 해 드려야 좋을지 모르겠구나. 하여튼 너와 직접 말씀을 나누고 싶다고 하신다. 그러니 문을 열어라. 뭐, 다소 방안이 어수선해도 그것은 이해하실 것이다." "여보게, 잠자군." 하고 지배인이 다정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그애는 몸이 아파요." 아버지가 아직 문 앞에서 그레고르에게 말을 걸고 있는 사이게, 어머니가 지배인을 향해 말씀하셨다. "몸이 편치 않을 거예요. 지배인님, 믿어 주세요. 그렇지 않다면 그애가 기차를 놓치거나 할 리가 없습니다. 그애는 일밖에는 아무것도 몰라요. 때로는 기분 전환을 위해서 밤에 외출이라도 하라고 이쪽에서 먼저 잔소리를 할 정도이니까요. 오늘까지 벌써 일주일 동안이나 시내에 와 있으면서도 매일 저녁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어요. 차를 마시는 동안에도 테이블 앞에 앉아서 조용히 신문을 읽거나 기차 시간표를 점검하곤 합니다.그애에게 취미라면 오로지 톱으로 무엇인가 만드는 일 뿐이에요. 저번에는 이삼 일 저녁 계속해서 조그마한 액자를 하나 만들었답니다. 그것은 매우 훌륭한 액자로 그애 방에 걸려 있어요. 저애가 방문을 열면 곧 보실 수 있을 거예요. 하여튼 이렇게 직접 찾아 주셔서 참으로 고맙습니다. 우리 식구끼리만 있었더라면 문을 열라고 할 수 없었을 거예요. 대단한 고집쟁이거든요. 아침에 물어 보았더니 아무렇지 않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분명히 아픈 모양이에요." "곧 가겠어요." 하고 그레고르는 천천히 말했으나, 밖의 대화를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꼼짝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있었다. "그렇겠죠, 부인 아무래도 달리 생각할 수가 없겠군요." 이번에는 지배인이 말했다. "대단한 병이 아니길 바랍니다만 한가지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우리 장사하는 사람들은__행인지 불행인지 간에__사소한 병쯤은 대개 장사에 대한 열성으로 극복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지배인께서 들어가셔도 되겠느나?" 아버지가 더 이상은 참지 못하겠다는 투로 말씀하시며 다시금 문을 두드렸다. "안 돼요!" 그레고르의 대답에 왼쪽 방에서는 숨막힐 듯한 침묵이 흘렀다. 오른쪽 방에서는 누이동생이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도대체 누이동생은 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지 않는 것일까? 틀림없이 방금 일어나서 아직 옷도 제대로 갈아입지 않은 모양이다. 그런데 울기는 왜 울까? 내가 일어나지도 않은 데다가 지배인을 방에 들여놓지 않았기 때문일까? 내가 실직당할 것 같아서? 만일 그렇게 되면 사장이 다시 옛날의 빚을 가지고 부모님을 괴롭힐까 봐 두려워서 우는 것일까? 그러나 그것은 지금으로서는 쓸데없는 걱정인 것이다.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이렇게 있으며, 가족들을 저버릴 생각은 추호도 없다. 잠시 동안 그는 양탄자 위에 편안하게 누워 있었다. 현재 그의 상태를 아는 사람이라면 아무도 그를 향해서 지배인을 이 방으로 들여보내라고 강요하지 못할 것이다. 물론 이것은 무례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은 나중에 적당히 변명할 수 있는 사소한 것이며, 그것이 당장 그를 해고시킬 만한 일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사정사정하며 지배인에게 애원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지배인을 그대로 가만히 내버려두는 것이 더 현명한 처사라고 그레고르는 생각했다. 그러나 부모들은 불안한 나머지 다른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고 변명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잠자 군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자네는 자기 방에 틀어박혀서 단지 네, 아니오라는 대답뿐이군, 부모님에게는 쓸데없는 걱정만 끼쳐 드리고, 게다가__이것은 이야기라 나왔으니 말이지만__자네는 실ㄹ 얼토당토 않는 방법으로 직무를 태만히 하고 있어요. 나는 지금 이 자기에서 진지하게 자네 부모님과 사장님을 대신해서 말하겠는데, 즉각 자네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 명백한 설명을 요구하네. 정말 이럴 수가 있나? 나는 그래도 자네를 침착하고 분별력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갑자기 자네는 이상 야릇한 변덕을 부리려고 작정한 사람 같네. 사실은 오늘 아침 일찍 사장님께서 내게 자네의 결근 이유를 추측해서 이야기해 주셨는데__즉, 최근 자네에게 맡겨 놓았던 회수금에 관한 문제였네__즉, 최근 자네에게 맡겨 놓았던 회수금에 관한 문제였네__그러나 나는 그것은 사장님의 지레 짐작에 불과하다고 분명하고 단호하게 이의를 제기했네. 그러나 이와 같은 자네의 이해하 수 없는 고집을 본 이상 나 역시 자네를 두둔해주고 싶었던 마음마저 송두리째 사라져 머렸다네. 게다가 말해 둘 것은 자네의 지위가 그다지 안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일세. 물론 난 자네와 단둘이서 이런 말을 하려고 생각했었네. 그런데 자네가 이처럼 쓸데없이 시간만 낭비했기 때문에, 자연히 자네 부모님 앞에서 말씀드리게 된 것일세. 또한 자네의 최근 판매 실적은 별로 신통치가 못했네. 물론 계절적으로 판매 실적이 좋을 때가 아니라는 것은 우리도 잘 알 고 있네. 그렇지만 전혀 실적을 올리지 못하는 철이란 있을 수가 없는 법이네. 있어서도 안 돼고. 잠자 군, 알아듣겠나?" "그러나 지배인님!" 하고 그레고르는 흥분한 나머지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정신없이 소리쳤다. "곧 문을 열겠습니다. 정말 곧 열겠어요. 기분도 좋지 않은데다가 현기증이 나서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아직 잠자리 속에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매우 좋아졌어요. 지금 침대에서 일어나는 중입니다. 제발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아직도 상태가 완전하게 좋지는 못합니다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이렇게 갑자기 병이 날 줄이야! 사실 어제 저녁에만 해도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부모님들도 잘 알고 계십니다. 아니, 그렇게 말하고 보니 어제 저녁 아무래도 좀 이상한 감이 들긴 했습니다. 나를 주의해서 보셨더라면 역시 좀 상태가 안 좋았다는 것을 아셨을 겁니다. 회사에 미리 알렷어야 했는데! 하지만 이만 병쯤은 집에 돌아오지 않고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발 부모님께만은 싫은 소리를 하지 말아 주십시오. 지금 이것저것 저를 책망하셨는데, 모두 당치도 않은 말씀이십니다. 지금까지 한번도 그런 비난은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최근에 제가 발송한 주문서를 미처 보지 못하신 것이 아닌가요? 하여튼 8시 기차로 떠나겠습니다. 두어 시간 쉬었더니 좀 기운이 납니다. 제발 지배인님, 먼저 돌아가 주십시오. 저도 곧 일을 하러 회사로 가겠습니다. 그리고 너그러우신 마음으로 사장님께 잘 말씀해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많은 말들을 단숨에 지껄이면서도 그레고르는 자기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레고르는 침대 위에서 익힌 경험을 살려 옷장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옷장에 매달려 일어서려고 애를 썼다. 그는 정말로 문을 열고 지배인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면서 그와 이야기하리라 마음먹은 것이다. 지금 저토록 자신을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막상 자신의 변해 버린 모습을 확인한다면 그들은 무슨 말을 할 것인가 궁금하기도 했다. 만일 그들이 깜짝 놀라더라도, 내게는 하등의 책임이 없으니까 그저 조용히 있으면 된다. 그들이 태연하게 받아들이면, 나 역시 흥분할 이유가 없으므로 8시 기차를 탈 수 있도록 서둘러 역으로 미끄러졌으나, 마침내 간신히 몸을 흔들어 일으켜 그 곳에 똑바로 서게 되었다. 하반신이 몹시 쑤시고 불에 덴 듯이 아팠지만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가까이에 있던 의자 등받이에 몸을 던져, 조그마한 다리들을 이용해 등받이 끝에 매달렸다. 그렇게하자 그는 자제력도 생겨 지껄이는 것을 중단했다. 왜냐하면 겨우 지배인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당신들은 단 한 마디라도 알아들으셨습니까? 설마 우리를 놀리려고 하는 것은 아니겠죠?" 하고 지배인이 부모님에게 소리쳤다. "천만에요." 하고 벌써 모친은 울먹이며 외쳤다. "틀림없이 중병에 걸린 거예요. 가엾게도 우리는 그애를 괴롭히고 있는 거예요. 그레테야, 그레테!" 하고 어머니가 누이동생을 불렀다. "네, 어머니?" 하고 누이동생이 맞은편에서 대답했다. 그들은 그레고르의 방을 가운데에 두고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당장 의사한테 갔다 오너라. 네 오빠가 아프단다. 빨리 의사를 불러 오너라. 너도 방금 그레고르가 말하는 소리가 들었지?" "그것은 무슨 짐승의 목소리였어." 하고 지배인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어머니의 큰 목소리에 비해 매우 낮은 목소리였다. "안나, 안나! 얼른 열쇠 장수를 불러 오너라." 하고 아버지가 손뼉을 치며 문간방을 통해 주방에 대고 소리를 치셨다. 그러자 벌써 두 소녀는 옷자락 펄럭이는 소리를 내며 문간방을 빠져나갔다__도대체 누이동생은 어쩌면 그렇게 빨리 옷을 갈아입을 수 있었을까?__. 그리고 현관문이 열렸다. 그러나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열어 둔 채로 나가 버린 모양이었다. 무슨 큰일이라도 일어난 집 같았다. 그러나 그레고르의 마음은 점점 더 침착해졌다. 다른 사람들은 그가 한 말들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 자신에게는 아주 분명하게, 조금 전보다도 훨씬 명료하게 들렸는데도......, 이미 자신의 귀에 익숙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하여튼 다른 사람들은 그의 상태가 정상이 아님을 확신하고 그를 도와주려 하고 있었다. 그런 최초의 조치가 취해진 데 대한 기대와 신뢰감으로 그는 기분이 좋아졌다. 그는 또다시 사람이 사는 세계와 자신이 연결되어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의사와 열쇠 장수를 제대로 구별하지도 못하면서, 이 두 사람에게 그는 커다란 경이적인 성과를 기대했다. 시시각각으로 다가오고 있는, 운명을 결정지어 줄 담판이 시작될 때 될 수 있는 대로 정확한 음성으로 말하기 위해서 그는 몇 번 헛기침을 해 보았다. 애써 점잖게 기침 소리를 내었다. 그것은 자신의 헛기침 소리가 인간의 소리와는 다르게 들릴 염려가 있었으며, 실은 그 자신은 이미 그것을 판단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러는 동안 옆방은 매우 조용해졌다. 아마도 부모님은 지배인과 거실 테이블에 이마를 맞대고 앉아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모두들 문에 기대 서서 이쪽 방을 엿듣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레고르는 의자를 천천히 문 쪽으로 밀고 갔다. 거기에다 의자를 놓고 문에 몸을 기대고는 꼿꼿이 썼다___그의 다리 끝에선느 끈적거리는 액체가 약간 분비되고 있었다__. 그리고 잠시 동안 지친 몸을 쉬었다. 그런다음 입으로 열쇠 구멍에 꽂힌 열쇠를 돌리기 시작했다. 치아가 없다는 것이 매우 유감스러웠다.__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으로 열쇠를 돌린담!__그러나 이가 없는 대신 힘센 턱이 있었다. 그는 턱의 힘으로 열쇠를 돌렸다. 그 때 분명히 어딘가 상처를 입었지만 그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누르스름한 액체가 입에서 나와 열쇠 위를 따라 방바닥에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저 소리 좀 들어 봐요. 그가 열쇠를 돌리고 있어요." 하고 옆 방에 있는 지배인이 말했다. 이 말은 그레고르에게 큰 힘이 되었다. 그러나 아버지와 어미니도 함께 힘을 내라고 소리쳐 주었으면 싶었다. "그레고르, 힘을 내라. 힘을 내라. 자물쇠를 꼭 잡아라." 이 정도의 말은 해 줄 법도 한데 말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응원하면서 그의 노력을 지켜보고 있다는 상상을 하는 순간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열쇠를 물고 매다렸다. 그리고 열괴가 돌아감에 따라 그는 자물쇠의 주의를 빙글빙글 돌았다. 지금 그의 몸은 입에 힘 하나로 버티고 있었다. 필요에 따라 열쇠에 매달리기도 하고, 전신의 무게를 실어 열쇠를 내리누르기도 했다. 마침내 자물쇠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그는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그는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중얼거렸다. "이젠 열쇠 장수가 필요 없게 되었어." 그리고 그는 문을 활짝 열기 위하여 고개를 손잡이 위에 올려 놓았다. 이렇게 해서 겨우 문은 열렸지만, 문이 안쪽으로 열렸기 때문에 그의 모습은 문 뒤에 가려져 밖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열린 문짝을 따라 처천히 밖으로 돌아 나와야만 했다. 더욱이 문 앞에서 보기 흉하게 벌렁 자빠질 우려가 있기 때문에 극히 신중하게 움직여야 했다. 이렇게 더욱 힘이 드는 작업에 몰두하느라 그느 다른 사람들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나머지, 지배인이 큰 소리로 "앗!" 하고 신음 소리를 냈을 때에야__마치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처럼 들렸다.__비로소 지배인의 모습을 발견했다. 지배인은 문에 바짝 붙어 서 있다가 그를 보자 멍청하게 벌린 입을 손으로 가리고 서서히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의 작용에 의해 떠밀려 가는 듯한 모습이었다. 지배인이 와 있는데도 풀어헤친 머리를 손질조차 하지 않은 어머니는 양손을 합장하고 아버지를 보는가 싶더니 이내 그레고르 쪽으로 두어 걸음 나가서다가는 맥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그 순간 주름 치마가 활짝 펼쳐졌고 얼굴은 가슴속에 파ㅁ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증오심에 불타는 표정으로 주먹을 불끈 쥐며 그레고르를 다시 방안으로 밀어 넣을 듯했으나, 다음 순간 불안한 시선으로 거실 안을 두리번거리다가 이윽고 양쪽 눈을 가리고 뚱뚱한 가슴을 들썩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그레고르는 방안으로 들어설 생각은 않고 닫혀져 있는 문의 안쪽에 기대어 있었기 때문에 문 밖에서는 그의 몸체의 절반만이 보일 뿐이었다. 그는 비스듬히 기울인 고개를 다른 사람들 쪽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날이 훤하게 밝아졌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이는 길다란 짙은 회색빛 건물의 일부가 뚜렷하게 보였다. 그것은 병원이었다. 그 건물 벽에는 규칙적으로 창문이 뚫려 있었다. 그 때까지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눈에 보일만큼 굵직굵직한 빗방울이 땅 위에 떨어지고 있었다. 식탁 위에는 아침 상에 올랐던 식기드리 너저분하게 쌓여 있었다. 아버지에게는 아침 식사가 하루 중에서 가장 중요한 식사였다. 그는 여러 가지 신문을 읽으면서 두세시간씩이나 머물러 있었다. 마침 맞은편 벽에는 그레고르가 군대 시절에 찍은 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것은 육군 소위 시절의 사진으로 한 손은 군도에 얹어 놓고 자연스러운 미소를 띄고 있었으나,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놓고 자연스러운 미소를 띄고 있었으나,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로 하여그 ㅁ자신의 모습과 군복에 경의감을 표하라는 듯한 모습이었다. 현관 쪽의 문간방으로 통하는 문은 활짝 열린 채로 있었고, 거실의 문도 열려 있었으므로 건너편 현관과 2층으로 통하는 계단도 보였다. 이 상황에서도 냉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자기 혼자뿐이라는 것을 확신하며 그레고르는 입을 열었다. "자, 그럼 곧 옷을 입고 견본을 챙겨 가지고 출발하겠습니다. 출발해도 되겠지요? 지배인님, 보시다시피 저는 고집쟁이가 아니며 이릉ㄹ 무척 좋아한답니다. 물론 출장 판매는 무척 고된 일이지만, 그렇다고 출장 없이 어떻게 살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지배인님, 지금부터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회사로 나가십니까? 그렇죠? 그리고 모든 일을 사실대로 보고하시겠지요? 누구나 잠깐씩은 일을 하지 못하게 되는 불가피한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경우에는 평소의 실적을 참작하셔서, 건강만 좋아지면 물론 배전의 노력과 주의를 기울여 한층 더 열심히 일한다는 사실을 믿어 주십시오. 지배인님도 잘 아시다시피 저는 사실 사장님의 신세를 많이 진 사람입니다. 게다가 제게는 부모님고 누이동생에 대한 일도 걱정이 됩니다. 지금은 곤란한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만 어떻게 해서든지 이 곤경을 헤쳐 나갈 것입니다. 그러니 제발 저를 더 이상 이전보다 더한 곤경 속으로 몰아넣지만 말아 주십시오. 다른 사람들이 외판원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외판원이 큰 돈을 벌어서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다고들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이러한 편견을 고쳐 주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또 그런 계기가 있는 것도 아니구요. 하지만 지배인님께서는 다른 사람들보다도 회사의 실정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아니 이 자리에서이니까 말씀드립니다만, 사장님보다도 지배인님께서는 훨씬 더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사장님은 자신이 기업주라는 입장 때문에 자칫하면 고용인에 대해 불리한 판단을 내리기도 하니까요. 이런 일은 번거롭게 말씀드릴 팰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우연한 사고이며, 근거없는 비난을 짊어져야 하는 희생물이 되기 쉬운 처지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외판원은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사실 말이지 외판원들은 사무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전혀 모르기 때문에 그것을 막아낼 방법도 알지 못합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부지런히 출장길에서 돌아왔을 때 비로소 무언지 알 수 없는 꺼림칙한 분위기를 느끼면서도 그저 가슴만 서늘해질 뿐입니다. 지배인님, 제발 돌아가시기 전에 제 말에도 다소는 일리가 있다고 한 마디만이라도 말씀해 주십시요." 그러나 지배인은 그레고르의 말을 서너 마디도 채 안 듣고 이미 돌아서서 입을 내민 채 벌벌 떨면서 뒤를 돌아볼 뿐이었다. 그리고 그레고르가 말하고 있는 동안에도 시선을 그에게 고정시켜 놓은 채 현관 문을 향해서 슬금슬금 물러서고 있었다. 마치 이 방을 벗어나면 안 된다는 금지령이라도 내려진 것처럼 뒷걸음질만 치는 것이었다. 그는 어느덧 현관 앞에 다다랐다. 그가 한쪽 발을 현관에 내딛는 순간의 동작은 마치 발뒤꿈치에 화상이라도 입은 사람처럼 황급한 동작이었다. 현관에 이르른 그는 마치 신의 구원의 손길이라도 잡으려는 듯 계단 쪽을 향해 오른쪽을 뻗을 수 있는 데까지 뻗었다. 이런 일로 회사에서 자신의 위치가 위태로워지면 곤란하다고 생각한 그레고르는 이대로 지배인을 돌려보내서는 절대 안 될 것 같았다. 부모님은 이런 모든 실정까지는 잘 모른다. 부모님은 오래 전부터 그레고르가 이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안정되고 편안한 생활은 문제없을 거라는 확신을 가졌었다. 부모들은 지금 눈앞에 닥친 근심 때문에 장래를 걱정할 여유가 전혀 없었다. 그러나 그들과는 달리 그레고르는 바로 그 장래를 걱정하고 있었다. 지배인을 붙들어 놓고 마음을 진정시킨 후 설득을 하고, 마침내 이쪽에 호의를 갖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레고르 자신과 가족의 장래가 바로 그 성패에 달려 있었다. 이 자리에 누이동생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누이동생은 현명하다. 그레고르가 자빠져 누워 있었을 때도 그를 위해 울어 주었다. 게다가 지배인은 여자에게는 친절한 사람이니까 누이동생이 말하면 틀림없이 설복될 것이다. 누이동생이 있으면 응접실 문을 꼭 닫아 버리고, 현관에서 지배인을 붙들고 설득시켜 그의 놀란 마음을 진정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지금 그 누이동생은 없다. 할 수 없이 그레고르 자신이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그레고르는 현재 어떻게 해야 자시느이 몸을 움직일 수 있는지 그것도 고려해 보지 않고, 또 설사 무슨 이야기를 한다 해도 십중 팔구는 상대방이 알아듣지 못할 것은 생각지도 않고, 그는 문짝을 떠나 슬금슬금 문지방을 넘었다. 그리고 지배인 쪽으로 가려고 했다. 그 때 이미 지배인은 두 손으로 현관의 난간을 잡고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배달려 있었다. 그레고르는 몸을 의지할 곳을 찾다가 곧 작은 비명을 지르며 숱한 발들을 아래로 하고 넘어졌다. 그 순간 그는 오늘 아침 처음으로 모미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다리들은 이제야말로 딱딱한 마룻바닥을 딛고 있었으며,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을 알고 그레고르는 기뻐했다.뿐만 아니라 다리들은 그가 가고 싶어하는 곳까지 그의 몸을 운반시켜 주려고 애썼다. 마침내 이것으로 해서 그 동안의 모든 비운이 곧 사라질 것 같았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어머니가 게신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몸을 일으키며 두 팔을 쭉 뻗어 손가락이란 손가락은 모두 활짝 벌린 채, "사람 살려요!" 를 연발 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레고르의 모습을 자세히 보기라도 하려는듯이 고개를 갸우뚱거렸으나, 그레고르를 쳐다보기는커녕 정신없이 뒷걸음질 쳐 달아나는 것이었다. 그녀는 뒤에 아침 식사가 준비되어 있는 식탁이 있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그 곳에 닿자 급히 식탁 위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로 인해 그녀 바로 옆에 있던 큰 커피포트가 엎어져 카펫 위로 커피가 쏟아져 내렸으나 그녀는 전혀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어머니, 어머니." 그레고르는 나직하게 부르면서 어머니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는 동안 지배인에 대한 생각은 머리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그 대신 흘러내리는 커피를보자 몇 번이나 허공을 향해 입맛을 다시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을 보자 어머니는 또다시 큰 소리를 지르곤 식탁에서 도망쳐 때마침 달려온 아버지의 품안으로 쓰러져 안겼다. 그러나 그는 이제 부모님에게 신경을 쓰느라 머뭇거리고 있을 수가 없었다. 지배인은 벌써 계단위에 서 있었다. 그는 난간위에 턱을 내밀고 마지막으로 뒤를 한번 돌아보았다. 그레고르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배인을 붙들기 위해 비틀거리며 달리기 시작했다. 이것을 보고 지배인은 질겁을 한 모양이었다. 한꺼번에 두세 계단식 뛰어내려 자취를 감추어 버렸으니 말이다. 그러나 "휴!" 하고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계단 밑에서부터 들려 왔다. 그런데 지배인이 도망치자 그 때까지 비교적 침착했던 아버지가 당황의 빛을 띠기 시작했다. 그는 몸소 지배인을 쫓아간다든가, 혹은 지배인을 뒤쫓아가려는 그레고르를 내버려두기는 커녕 지배인이 소파 위에 내팽개치고 간 모자와 외투 그리고 단장을 오른손에 집어들고, 왼손으로는 식탁 위의 두터운 신문지를 움켜쥐고는 발까지 그르면서 단장과 신문지를 휘둘러 그레고를를 그의 방으로 몰아넣으려고 했다. 그레고르가 아무리 애원을 해도 소용이 없었고 사정하는 말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가 단념하고 머리를 돌리려 했으나, 오히려 아버지는 점점 더 무섭게 발을 구를 뿐이었다. 저쪽에서는 어머니가 날씨가 추운데도 창문을 열어 놓고 몸을 창가에기댄 체 고개를 밖으로 쑥 내밀고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골목 안과 계단 사ㄹ이로 세찬 바람이 불어와 창문에 늘어진 커튼이 휘날리고, 책상 위에 있던 신문지도 바스락거리더니 마침내 몇 장인가 마룻바닥 위로 떨어졌다. 야속하게도 아버지는 야만인처럼 사납게 그레고르를 방으로 몰아넣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레고르는 그때까지 뒷걸음질을 쳐 보지 못했으므로 매우 느릴 수밖에 없었다. 방향 전환만 제대로 할 수 있다면 힘들이지 않고 자신의방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방향을 돌리는 데 시간이 지체되면 다시 아버지의신경질을 돋울까 두려웠다. 게다가 언제 어느 때 아버지의 손에 들려 있는 단장에 등이나 머리를 얻어맞아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위협을 느꼇따. 그러나 결국은 방향 전환을 하는 것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어차피 뒷걸음질 치다가 방향을 잘못 잡으면 더욱 큰일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계속 아버지 쪽을 힐끗힐끗 훔쳐보면서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그러나 실제로는 매우 느린 동작으로 방향 전환을 하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아버지께서도 그레고르의 착한 마음씨를 알아차렸는지, 그가 하는 행동을 방해하지 않고 오히려 단장 끝으로 이리저리 방향을 지시해 주었다. 저 듣기 싫은 쉿쉿하는 소리만 없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레고를는 그 소리만 들으면 침착성을 잃어버리는 것이었다. 그가 거의 방향을 잘못 잡아 다시 제자리로 되돌아가기도 했다. 다행히도 머리가 문지방을 향해 틀어져 있었으나, 그대로 들어가기에는 그의 몸통의 폭이 너무 넓어서 그대로는 문을 통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닫혀져 있는 다른 한쪽의 문이라도 열어 준다면 그레고르는 무사히 통과할 수도 있을텐데, 물론 정신없는 아버지가 그것을 알 리가 없었다. 아버지는 지금 상태로 보아 그레고를를 위한 그러한 배려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만 같았다. 아버지는 그레고르에게 닥친 장애는 생각지도 않고, 한층 더 큰 소리로 그레고르를 몰아댔다. 이미 등뒤에서 들려 오는 그 소리는 이 세상에서 단 한 사람뿐인 아버지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정녕 웃을 일이 아니었다. 그레고르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무작정 문을 향해 돌진했다. 한쪽 몸통이 문에 끼여 위를 향해 치켜졌으므로, 그는 방문 사이에 비스듬히 걸려 있었다. 한쪽 옆구리가 심하게 벗겨지고 하얗게 칠한 문에는 보기 흉한 얼룩이 묻었다. 자신의 힘으로는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꼼짝달싹도 할 수 없게 되었다. 한쪽의 다리들은 허공을 향해 바르르 떨었으며, 다른 쪽 다리들은 마룻바닥에 짓눌려서 몹시 아팠다. 그 때 아버지가 뒤에서 힘차게 그를 밀었다. 그 때문에 그레고를는 피투성이가 되어 자신의방안으로 밀려 들어와 엎어졌다. 그리고 단장으로 방문을 닫는 소리가 꽝 하고 들렸다. 그리고 나서야 마침내 주위가 조용해졌다. 2 날이 어둑해져 가는 저녁 무렵쯤에 그레고르는 겨우 혼수상태와 같은 잠에서 깨어났다.무슨 약속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제는 눈을 떠야 할 시 각이었다. 왜냐하면 푹 수면을 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은 소란 스럽게 걷는 발소리와 문간방 쪽으로 통하는 문을 조심스럽게 여닫는 소리에 잠이 깬 것 같았다. 천장과 가구 위에 가로등의 불빛이 새어 들 어와 비치고 있었으나, 방바닥과 그레고르의 주위는 어두웠다. 그제서 야 그레고르는 촉각을 서투르게 작용시키면서 무슨 일이 일어났나 알아 보려고 살그머니 문 쪽으로 기어갔다. 왼쪽 허리 언저리에 불쾌하게 땡 기는 듯한 커다란 상처가 생겨서 그는 두 줄로 된 양쪽 다리를 절름거 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아침에 소란으로 한쪽 다리에 심하게 부상을 입고 있었다.__부상입은 다리가 다행스럽게도 하나뿐인 것은 정 말 기적이라고 해도 좋다__그는 힘없이 질질 다리를 이끌고 기어갔다. 그는 문 앞까지 와서야 비로소 무엇이 그를 유혹했는지를 알게 되었 다. 그것은 바로 음식 냄새 때문이었다. 즉, 그곳에는 흰 빵 부스러기 가 둥둥 떠 있는 우유 그릇이 놓여 있었다. 그레고르는 기쁜 나머지 탄 성을 지를 뻔 했다. 아침 나절보다도 배가 더 고팠기 때문이다. 그는 곧 우유 속에 눈까지 잠길 정도로 머리를 집어 넣었다. 그러나 이내 실 망하고 목을 움츠렸다. 몸통의 왼쪽 허리 언저리가 아파서 먹기가 부자 유스러웠을 뿐 아니라, ___물론 애를 쓰면 먹을 수도 있었지만___ 평소 에는 아주 즐겨 먹던 것이었고, 그렇게 때문에 누이동생이 생각해서 방 안에 넣어 준 우유였는데, 지금은 전혀 맛이 나지 않았다. 그는 온몸에 소름이 끼치는 것 같아서 음식을 밀치고, 방 한가운데로 기어서 왔다. 문틈으로 내다보니, 거실의 가스등이 훤히 밝혀져 있었다. 여느 때 같았으면 이 시각에는 아버지가 석감 신문을 어머니나 누이동생에게 큰 소리를 내어 읽어 주었을 텐데, 지금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리고 보니 누이동생이 항상 들려 주었고, 출장 때면 편지로 알려 주던 아버지의 신문 낭독 행사가 요즘에 와서는 막을 내린 모양이었다. 그렇 다 해도 집안에 사람이 전혀 없지는 않을 텐데 주위가 너무나도 조용했 다. "어쩌면 이렇게들 조용하게 지낼 수가 있을까!" 하고 그레고르는 혼잣말을 했다. 그리고 밀려오는 어둠을 지켜보면서, 부모님과 누이동생에게 이런 좋은 환경에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 준 자신이 대견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지금의 안락, 행복, 만족의 일체가 무서운 종말로 다가온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환상을 떨쳐 버리기 위해서 차라리 몸이라도 움직여 보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한 그레고르는 이리저리 방안을 기어 다녔다. 오랜 저녁 시간이 흐른 사이에 옆쪽 문이 한 번, 그리고 맞은편 문이 한 번 빠꼼히 열렸다가 이내 닫혀 버렸다. 누군가가 뭔가를 하기 위해 방을 기웃거리는 모양이지만 불안해서인지 망설이는 눈치였다. 그레고 르는 문 옆에 몸을 바짝 밀착시키고 들어오기를 주저하고 있는 방문자 를 어떻게 해서든지 방안으로 들어오게 하든가,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상대가 누구인가를 알아내려고 했다. 그러나 문은 한참을 기다 려도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문이란 문은 모조리 잠겨 있었던 오늘 아 침에는 저마다 서로 그레고르의 방으로 들어오려고 했었는데, 지금은 아무도 들어오려 하지 않았다. 더구나 문 하나는 이미 그레고르가 열었 었고, 다른 문들은 모두 낮 동안에 열렸을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지금 은 모근 자물쇠가 밖에서 채워져 있었다. 밤이 깊어 거실의 등불이 꺼졌을 때에야 비로소 그는 부모님과 누이 동생이 그 때까지 자지 않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 때 발끝으 로 걸어서 가만가만히 멀어져 가는 세 사람의 발소리를 똑똑히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음날 아침까지는 아무도 그레고르의 방을 방문하 지 않으리라. 그리하여 그레고르는 새벽녘까지의 남은 시간을 이용하여 앞으로의 생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볼 작정이었다. 그런데 지금 방바 닥 위에 납작하게 엎드려 있는 이 방, 천장이 높고 텅 빈 이 방은 그를 묘한 불안 속으로 몰아넣었다. 도대체 원인은 알 수 없었다. 5년 동안 이나 지내온 자신의 방이 아닌가? 그레고르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몸을 굽혀 부끄러운 생각을 하면서 소파 밑으로 기어 들어갔다. 등허리가 약 간 눌리고 고개를 쳐들 수는 없었지만, 소파 밑은 매우 편안하고 아늑 했다. 단지 몸통이 너무 커서 전신이 완전히 들어 가지 않는 것만이 안 타까웠다. 밤새도록 소파 밑에 엎드린 채로 가끔은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이따 금 배가 고파서 잠에서 깨어나기도 하고, 또 걱정과 막연한 희망에 사 로잡히기도 하면서 하룻밤을 새웠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결 론은 한 가지였다. 즉, 당장은 침착하게 가족들로 하여금 인내와 최대 의 조심성으로써, 그로 인해 일어나는 여러 가지 불쾌감을 견딜 수 있 도록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이런 모습은 아무래도 집안 사 람들에게 혐오감을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해가 채 뜨기도 전인 새벽녘에, 그레고르는 자기가 다진 결심을 시험 해 볼 기회를 얻었다. 문간방에서 어느새 옷을 갈아입은 누이동생이 긴 장된 얼굴로 문을 열고 방안을 들여다본 것이다. 그녀는 한참 뒤에 소 파 밑에 있는 오빠를 발견하자, 몹시 놀라며__그렇게 놀랄 것은 없는 데. 방안 어디에든 내가 있는 것은 뻔한 일 아닌가! 어디로 날아서 도 망칠 수도 없는 노릇이고__그녀는 스스로를 어찌 할 바를 몰라 하다가 밖에서 문을 닫아 버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내 자신의 태도를 뉘우친 양 다시 문을 열고는 방안으로 들어왔다. 마치 중병 환자나 낯선 사람 의 방에 들어오는 듯 조심스런 태도였다. 그레고르는 소파 가장자리까 지 목을 빼고 누이동생을 관찰했다. 우유를 마시지 않은 이유를 누이동 생이 알아줄까? 배가 고프지 않아서 먹지 않은 게 아닌데. 좀더 구미에 맞는 맛있는 것을 가져다 줄 수는 없는 걸까? 누이동생이 시키지 않아 도 자진해서 가져다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로서는 누이동생으로 하 여금 그것을 깨닫게 하느니보다는 차라리 굶어 죽는 편이 나을 것 같았 다. 그렇지만 그레고르는 소파 밑에서 다시 뛰어나와 누이동생 발 밑에 몸을 던지며 무엇이든 맛있는 것을 가져다 달라고 청하고 싶었다. 그러 나 누이동생은 놀란 표정으로 조금도 줄지 않은 우유 그릇을 곧 발견했 다. 그릇 주위엔 약간의 우유가 흘러 있을 뿐 우유는 그대로 남아 있었 다. 그녀는 곧 그릇을 집어 들었다. 맨손이 아니라 걸레 조각으로 말이 다. 그리고는 마시지 않은 우유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이번에는 우유 대신에 무엇을 가져다 주려나 하고 그레고르는 기대를 걸고 이것저것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누이동생이 정성껏 들고 온 것을 보고는 그는 다시 말문이 막혀 버렸다. 누이동생은 오빠의 식성을 시험 해 보기 위하여 여러가지 음식물을 한꺼번에 가지고 와서 그것들을 헌 신문지 위에다 펼쳐 놓는 것이었다. 그것들은 반쯤 썩은 야채와 가장자 리에 흰 소스가 말라붙어 있는 저녁 식사때 먹다 남은 뼈다귀, 건포도 와 편도 몇 알, 그레고르가 이틀 전에 이런 것도 먹을 수 있느냐고 핀 잔을 주었던 치즈,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마른 빵과 버터를 바른 빵, 똑같이 버터를 발라 소금을 뿌린 빵, 그리고 물을 담은 그릇이 있었다. 아무래도 이것은 그레고르를 위해 정해 놓은 음식인 모양이었다. 그리 고 누이동생은 서둘러 방 밖으로 나가더니 이내 밖에서 방문을 잠그어 버렸다. 누이동생은 그레고르가 자기 앞에서는 아무것도 먹지 않을 것 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문을 잠근 것은 다른 사람이 보지 않으니 마음놓고 식사하라는 그녀의 신호였던 것이다. 그는 밥을 먹기 위해서 다리를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상처는 어느새 다 나아버린 듯 했 다. 이제는 아무데도 아프지 않았다. 이 점에 대해서 그레고르는 몹시 놀랐다. 한 달 전에 칼로 벤 손가락이 어제까지 욱신욱신 쑤셔 대지 않 았던가. '그렇다면 나의감각이 갑자기 둔해진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 하며 그는 허겁지겁 치즈를 먹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음식 중에서 그 레고르의 구미를 당긴 것은 다름아닌 이 치즈였다. 치즈, 야채, 소스의 순서로 순식간에 먹어 치우며, 만족스러운 나머지 눈물까지 흘러나왔 다. 그런데 신선한 식품 쪽은 오히려 맛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냄새부 터 견딜 수가 없어서, 먹고 싶은 것만을 골라 한쪽 옆으로 끌어가 먹기 까지 하였다. 그가 다먹어 치운 후,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 태평스럽게 뒹굴고 있는데 누이동생이 천천히 열쇠를 돌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소 파 밑으로 들어가라는 신호였다. 이미 막 잠이 들려는 상태였음에도 불 구하고, 그는 그 소리에 놀라 급히 소파 밑으로 기어 들어갔다. 그런데 누이동생이 방안에 있는 동안의 그 짧은 시간조차 소파 밑에 들어가 있 는 일이 그레고르로서는 쉽지 않은 고역이었다. 왜냐하면 음식을 잔뜩 먹었기 때문에 배가 불러 얕은 소파 밑은 갑갑해서 숩도 제대로 쉴 수 없을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사실을 전혀 누치채지 못한 누이동생 은 먹다 남은 찌꺼기 뿐만 아니라 전혀 입도 대지 않은 것까지도 빗자 루로 쓸어 모았다. 일단 이 곳에 가지고 온 음식은 입을 대지 않은 것 이라도 쓸모가 없다는 식이었다. 그리고는 재빨리 모든 음식을 쓸어 통 속에 넣고는 나무 뚜껑을 닫은 후에 방을 나갔다. 그레고르는 숨이 막 혀 빌식할 듯한 상태에서 약간 튀어나온 눈으로 누이의 모습을 바라보 았다. 누이동생이 등을 보이며 돌아서자마자 그레고르는 금방 소파 밑 에서 기어 나와 기지개를 켜며 편안한 자세가 되었다. 이런 식으로 매일의 식사가 그레고르에게 제공되었다. 아침 식사는 부모님과 하녀가 일어나기 전에, 점심 식사는 식구들의 식사가 모두 끝 난 후에 주어졌다. 왜냐하면 점심 후에는 늘 부모님은 잠시 동안 낮잠 을 잤고, 하녀는 누이동생의 심부름으로 시장을 보러 외출하기 때문이 었다. 물론 아무도 그레고르를 굶겨 죽이려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시간에 음식을 주는 이유는, 결국 집안 사람들이 그레고르를 피하고 싶 었기 때문이며, 그레고르에 대한 이야기는 누이동생의 입을 통해서 듣 는 것만으로도 만족했기 때문이다. 또, 누이동생으로서는 가족들에게 더 이상 이 일로 걱정을 끼쳐, 슬픔을 더 크게 확대시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레고르로서는 도대체 첫날 아침에 불러왔던 의사와 열쇠 장수를 어 떤 구실을 붙여서 돌려보냈는지, 그 무렵의 일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레고르가 하는 말은 상대방이 이해하지 못했으며, 또 사람들은 그레 고르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믿 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누이동생도 그레고르의 방에 들어와서는 가끔씩 한숨을 쉬거나, 성자의 이름을 외우며 기도하 는 것 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레고르도 그것을 듣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후에 누이동생이 모든 일에 다소 익숙해 졌을 때, 완전히 익숙해진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레고르가 종종 선의의 말, 혹은 선의라고 풀이할 수 있는 말 정도는 아랑들을 수가 있게 되었다. 그레고르가 식사를 남김없이 다 먹었을 때, 누이동생은 "어머, 오늘은 맛이 있었던 모양이네요." 하고 말했고, 반면에 대부분의 경우에는 "또 전혀 먹지를 않았군요." 하고 슬픈 듯이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후자의 경우가 차츰 빈번 하게 반복되기 시작했다. 직접적으로는 아무것도 새로운 사실을 전해 들을 수가 없었으므로 그 레고르는 옆 방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조금이 라도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면 그는 곧 문 옆으로 기어가서는 몸을 문에 다 바짝 붙였다. 특히 처음 며칠 동안에는 속삭이는 소리이기는 했지만 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은 적이 한번도 없었다. 이틀 간을 계속 해서 세 번의 식사때마다 어떻게 할 것인지를 상의하는 말소리가 들렸 다. 그런데 식사와 식사 사이의 시간에도 집안의 누군가가 자기에 대하 여 서로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즉, 아무도 혼자서는 집에 남아 있 고 싶어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만일의 경우를 위하여 집안 식구가 모두 나가 버릴 수는 없으므로, 언제나 최소한 두 사람은 집안에 남아 있었다. 하녀가 이번 일에 대하여 무엇을 어느 정도로 알고 있는지는 충분히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미 첫날에 그녀는 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고 당장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15분쯤 지나 마침내 집 을 나갈 때에는 마치 큰 은혜나 입은 것처럼 눈물을 흘리면서 해고시켜 준 데 대하여 감사를 표시하고, 이쪽에서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이번 일에 대해서는 털끝만큼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겠노라고 굳게 맹세 하고 떠났다. 그렇게 되자 이제부터는 누이동생이 어머니와 함께 부엌일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 일이란 것이 크게 힘든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식구 들은 모두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 에게 많이 먹으라고 게속 권하였으나 그렇게 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상대방은 "고마워요, 많이 먹었어요." 하는 정도의 말 이외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레고르는 그런 식으로 서로 대화하는 것을 자주 들었다. 술 종류도 마시지 않는 모양 이었다. 누이동생이 곧잘 아버지에게 맥주를 드시겠느냐고 물어 보았 다. 그러나 아버지가 대답을 하지 않으므로 누이동생은 그것을 소문을 꺼리는 침묵이라 짐작하고, 문지기 여자에게 말해서 가져오게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 아버지는 마침내 악을 쓰며 큰 소리로 "안 마시겠다."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으로 맥주에 대한 이야기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이미 첫날, 아버지는 아내와 누이동생에게 모든 재정 상태며, 장래의 전망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는 이따금 작은 금고에서 문서나 장부 같은 것을 들고 왔는데, 이 금고는 5년 전, 그의 사업이 파산했을 때 겨우 건져낸 것이었다. 복잡한 자물쇠를 열고 필요한 것을 찾은 후에 다시 잠그는 소리가 들려 왔다. 부친의 이러한 설명은 어떤 점에서는 그레고르가 감금 생활을 시작한 이래로 그의마음을 위로해 주는 최초의 것이었다. 이제까지 그는 부친이 파산했기 때문에 빈털털이가 되어 버 렸다고만 믿고 있었다. 부친은 최소한 그레고르에게 그 반대의 말은 하 지 않았던 것이다. 또 그레고르쪽에서도 거기에 대해서 부친에게 물어 본 적이 없었다. 당시 그레고르로서는 가족들을 완전한 절망으로 몰아 넣은 그 사업상의 불행을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가족들의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는 데 힘을 기울이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 랬기 때문에 그레고르는 남보다 열심히 일했으며, 하룻밤 사이에 미미 한 일개 점원에서 외판원으로 뛰어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외판원 이 되고부터는 돈을 버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알게 되었으며, 일의결과 는 당장 수수료나 현금의형태로 바뀌었다. 그래서 이 돈을 집으로 가져 와 가족들이 놀라게 테이블 위에 펼쳐 보일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 무 렵은 정말 신났었다. 후에 그레고르는 충분히 한 가정을 지탱할 수 있 을 정도의, 그리고 현재 집안 재정을 꾸려 나가는 데 넉넉한 돈을 벌기 는 했지만, 그 신이 나던 시절은 이제는 더 이상 그 옛날의 화려함과 더불어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가족들도 그레고르도 그것이 모두 습관 이 되어 버려서 돈을 받는 쪽의 감정과 내놓은 쪽의 호기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거기에는 이미 훈훈한 정이 담긴 특별한 감정이 나올 수가 없었다. 오직 누이동생만이 변함없이 오빠에게 각별한 애정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레고르와는 달리 그녀는 음악에 재능이 있었다. 바이올린 솜 씨가 훌륭했으므로, 이 누이동생을 내년에는 음악 학교에 입학시켜 주 어야겠다는 것이 그레고르가 평소에 생각해 둔 게획이었다. 특히 학비 가 많이 들겠지만, 그 정도의 돈은 또 다른 방법으로 어떻게 해서든지 변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레고르가 이따금 잠시 집 에 돌아와 있는 동안에도 음악 학교에 대한 이야기는 가끔 오누이 사이 의 화제가 되었으나, 그것은 불가능한 아름다운 꿈으로만 여겨지고 있 었다. 부모님은 그런 순진한 대화를 듣기만 해도 인상을 찌푸리곤 했 다. 그러나 그레고르는 이 계획을 빈틈없이 세워 놓고 크리스마스 이브 에는 그것을 엄숙하게 발표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던 것이다. 그레고르는 꼿꼿이 일어서서 몸을 문에 기댄 채 귀를 기울이고 있는 동안에도, 현재로써는 생각해 보았자 아무 소용이 없는 그런 일들을 문 득문득 생각하였다. 때로는 엿듣기 위하여 귀를 기울이고 잇는 동안 온 몸에 허기가 져서, 무의식중에 머리를 문에 부딪치는 일도 있었다. 그 럴 때면 급히 문을 꼭 붙들었다. 왜냐하면 그러한 아주 작을 소리까지 도 옆 방 사람들의 귀에 들어 갈 경우에는 모두가 말을 멈춰 버리기 때 문이다. 그리고 잡시 사이를 두었다가 부친이 문쪽을 향해서 "또 무슨 짓을 하는군." 하고 말하고는 잠시 동안 중지했던 대화를 다시 소곤소곤 시작하는 것 이었다. 그레고르는 그들의 대화를 거의 모두 엿들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자신의 말을 누누이 반복하는 버릇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버지 로서도 이미 오랜 세월 동안 그런 이야기를 꺼내지 않은데다가, 또 이 야기를 듣는 어머니도 단번에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는 법이 없었기 때 문이다. 아버지의 설명을 엿듣고, 그레고르가 분명하게 안 사실은, 여 러 가지로 타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옛날의 재산이 아직도 조금 남 아 있으며, 그 동안에 전혀 쓰지 않고 남에게 빌려 준 돈이 적지만 어 느 정도 이자가 불어났다는 것이다. 게다가 매월 그레고르가 집에다 가 져온 돈도__그레고르 자신은 용동으로 겨우 2, 3 굴덴을 썼을 뿐이었다 __전부 소비된 것이 아니었고, 열심히 저축을 해서 약간의 돈이 모여져 있다는 것이다. 그레고르는 문 뒤에서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이 뜻 하지 않은 조심성과금검 절약을 기뻐했다. 옛날에 그러한 여유 있는 돈 이 있었다면 부친의 부채를 모두 갚아 버리고 홀가분하게 그 빅장을 그 만둘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부친이 취한 옳은 행동이 집안에 행운을 가져왔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돈이 좀 있긴 하지만 그 정도의 적은 이자로 한 집안의 생활을 꾸려 나가는 것은 힘든 일일 것이다. 아마도 그 정도의 돈으로는 1년이나 겨 우 2년 정도 연명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그것은 손을 대서는 안 될 돈이었고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남겨 두어야 할 정도의 금액에 지나 지 않았다. 생활비는 다른 방법으로 벌어야만 된다. 그런데 아버지는 건강하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이미 나이가 많은 데다가 5년 동안이나 아 무런 일도 하지 않고 지내 왔기 때문에 일을 할 자신을 상실하고 있었 다. 더욱이 고생만 하고 전혀 보람이 없었던 그의 평생에서 처음으로 얻은 휴가라고 할 수 있는 이 5년 동안에, 완전히 살이 쪄 버려서 몸조 차 자유로이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그렇다면 어머니가 일을 해야 되는데, 어머니는 심한 천식을 앓고 있어서 항상 창문을 열어 놓고 소 파 위에서 지내야 하는 형편이 아닌가? 그러면 남는 것은 누이동생인 데, 이제 겨우 열일곱 살의 소녀로서 지금까지의 생활이라야 몸치장이 나 하고, 잠만 자고, 고작해야 부엌 심부름이나 하고, 돈이 들지 않는 구경이나 다니고, 무엇보다도 바이올린을 켜는 일이나 하면서 지금까지 지내온 어린 아이가 아닌가. 이 어린 누이동생이 어찌 한 집안을 떠맡 을 수가 있겠는가? 옆방에서의 대화가 여기까지 나오면, 언제나 그레고 르는 문에서 떠나 바로 옆에 있는 싸늘한 가죽 소파 위에다 몸을 내던 졌다. 수치심과 슬픔 때문에 몸이 달아올랐기 때문이다. 그레고르는 가죽 소파 위에서 꼼짝하지 않고 소파에 씌워진 가죽을 쥐어뜯는 일이 잦아졌다. 그런가 하면 때로는 힘드는 줄도 모르고 의자 를 창가로 밀고 가서 창턱에 기어오르기도 했으며, 어떤 때는 그냥 그 의자에 의지한 채 창에 기대어 예전에 창 밖을 바라보면서 느꼈던 일종 의 해방감을 막연하게 회상하기도 했다. 매일 그렇게 바라보고 있노라 니 이제는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것도 날이 갈수록 그 윤곽이 차츰 희 미해져 갔다. 에전에는 아침 저녁으로 눈앞에 보이는 건너편 병원 건물 이 보기 싫어서 견딜 수 없었는데, 그 병원도 이제는 볼 수 없게 되었 다. 자신이, 한적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도시 한복판인 이 샬로테 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면, 그는 창 밖의 전망이 회색 하늘과 회색 대지가 분간되지 않은 채 뒤섞여 있는 황야라 고 해도 별로 의심치 않았을 것이다. 주의력이 깊은 누이동생은 단 두 번 창가에 놓여 있는 의자를 발견한 후, 방 청소를 끝내면 항상 창가의 그 자리에다 의자를 갖다 놓았고, 뿐만 아니라 그 이후로는 안쪽 창문 까지 열어 놓았다. 만일 그레고르가 누이동생과 이야기가 통해서 그런 모든 것에 대해 감사를 표시할 수만 있었다면, 누이동생의보실핌을 좀더 편안한 기분으 로 받아들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그 의 마음은 더욱 괴로웠다. 물론 누이동생은 여러 가지 사건으로 인한 괴로움을 될 수 있는 대로 잊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그러한 모든 일들은 점점 나아져 갔다. 게다가 그레고르 쪽에서 도 모든 것을 처음보다는 훨씬 정확하게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는 누이동생이 방안에 들어오기만 해도 그레고르는 겁을 냈다. 전에는 누이동생이 가능한 한 그레고르의 방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애를 썼으나, 이제는 그레고르의 방에 들어서기가 바쁘게 급히 창가로 달려가서는 마치 질식이라도 할 것처럼 얼른 창문을 활짝 열어 놓고는, 아무리 추워도 잠시도 창가를 떠나지 않았다. 그녀는 이러한 달음박질 과 창문의 덜거덕거리는 소리로 하루에 두 번씩 그레고르를 겁먹게 만 들었다. 그래서 그레고르는 누이동생이 방안에 있는 동안에는 항상 소 파 밑에서 움츠려 있어야 했다. 그러나 누이동생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만일 누이동생이 그레고르의 방에서 창문을 닫은 채로 일할 수 만 있었다면, 그는 이런 고통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그레고르가 변신한 지 한달 쯤 지난 어느 날 __그 무렵에는 이미 누 이동생은 그레고르의 모습을 보고도 새삼스럽게 놀라거나 하지 않았다_ _한 번은 누이동생이 평소보다 야간 빨리 왔기 때문에 그레고르가 꼿꼿 이 선 채로 꼼짝도 하지 않고 조용히 창 밖을 내다보고 있을 때, 그녀 가 들어온 적이 있었다. 누이동생은 그러한 그레고르의 모습을 보자 기 겁을 했다. 그레고르가 그렇게 창가에 서 있으면 바로 창문을 열 수 없 기 때문에 누이동생이 방안으로 들어오지 않은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 았다. 그러나 누이동생은 방안으로 들어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뒷걸 음질을 치다가 문을 닫아 버렸다. 모르는 사람이 보았다면, 그레고르가 누이동생이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그녀에게 덤벼들려고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도 무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물론 그레고르는 곧 바로 소파 밑으로 몸을 숨겼는데, 다시 누이동생이 찾아온 것은 정오 무렵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평소보다 더욱 안절부절 못하고 불안 스럽게 보였다. 그리고 보면 내 모습을 보는 것이 누이동생으로서는 여 전히 견딜 수 없는 노릇인 셈이다. 앞으로도 이런 상황이 계속될 것이 라는 사실을 그레고르는 그 일로 미루어 알고 있었다. 아무리 소파 밑 에 숨어 있어도 그의 몸통이 조금은 내보였다. 그런데 누이동생은 오빠 의 몸 일부분만 보아도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것을 참고 있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굉장히 자제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졌다. 어느 날 그레고르는 그의 몸이 조금이라도 누이동생의 눈에 띌까 봐 이불을 등에 올려놓고 소파 위로 날랐다__이 작업은 꼬박 네 시간이 걸 렸다__. 그리고 그는 자신의몸이 조금이라도 보이지 않게끔, 또 설사 누이동생이 몸을 구부린다 해도 보이지 않도록 이불을 잘 덮었다. 누이 동생이 이 이불이 불필요하다고 ㅐ각한다면 물론 치워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레고르가 재미삼아 이런 식으로 몸을 들어내지 않는 것이 아 니라는 것쯤은 누이동생도 짐작할 것 같았다. 그가 이불을 약간 치켜들 고 누이동생이 이런 행동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엿보았을 때, 누 이동생의 눈에는 마치 감사하는 듯한 미소마저 감돌았다. 처음 두 주일이 지나는 동안 부모님은 그의 방에 들어가기를 꺼려했 다. 예전에 부모님은 누이동생에게 자주 화를 냈었는데, 그것은 누이동 생을 탐탁치 않는 딸자식 정도로만 여겨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누이동생의 행동을 고마워하고 있다는 것을 이때금 그들의 대화에서 그 레고르는 짐작할 수 있었다. 이제는 누이동생이 그레고르의 방을 청소 하고 밖으로 나오면 부모님은 곧 방안의 상태며, 그레고르가 먹은 것이 며 행동 거지, 또는 조금 나아지는 징조가 보이는지에 대해서 물었고, 누이동생은 자세하게 부모님에게 설명해 주어야 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조만간에 그레고르를 만나 보고 싶어 했으나 부친과 누이동생이 갖가지 적당한 이유를 들어 그런 어머니의 방문을 저지했다. 그 이유라는 것을 그레고르는 매우 신경을 곤두세우며 듣고 있었는데, 그것은 참으로 옳 은 것이었다. 여지껏 어머니도 여러 가지 이유로 주저했으나, 마침내 아버지와 누이동생이 그녀를 필사적으로 만류하기에 이르렀다. 모친은 있는 힘을 다해 외쳤다. "들어갈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레고르를 만나야겠어요. 뭐니뭐니 해 도 그 애는 내 자식이니까요. 가엾은 아니라는 걸 당신도 잘 알고 계시 지 않아요." 매일은 안 되더라도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쯤은 어머니가 자식의 방 을 방문해 주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누구보다도 어머니가 모든 일을 더 잘 돌봐 줄 것이다. 누이동생의 마음을 고맙게는 생각하지만 단지 어린 소녀다운 가벼운 기분에서 그런 어렵고 귀찮은 일을 담당하고 있 는 것이니까.' 어머니를 만나 보고 싶다는 그레고르의 소원은 얼마 되지 않아 이루 어졌다. 그레고르는 부모님의 상심을 염려해서 한낮에는 되도록 창가에 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넓지 않은 방을 돌아다녀 보았자, 겨우 3평방 미터 넓이밖에 되지 않아 별 흥미가 없었다. 쥐죽은 듯이 지내는 것은 밤만으로도 충분했으며, 음식을 먹는 일도 요즘에 와서는 그다지 내키지 않았기 때문에 , 사방을 헤집고 다니는 습관을 들여 기분 전환 을 시키고 있었다. 그중에 천장에 달라붙어 있는 일은 그를 흥미롭게 했다. 방바닥에 엎드려 있는 것과는 또 다른 기분이었다. 마음이 편안 해지고 가벼운 진동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그는 천장에 달라붙어 있으 면서 너무도 행복에 젖어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상태에 빠져들었다가 무의식중에 다리가 방바닥 위로 떨어져 스스로 깜짝 놀라는 일도 종종 있었다. 그러나 변화된 자신의 몸을 지금은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으므로 그 렇게 추락을 해도 대단한 일은 아니었다. 누이동생은 그레고르가 생각 해 낸 이 새로운 취미를 이내 알아챘다__그레고르는 벽이나 천장을 기 어 다니면서 여기저기 찐득찐득한 점액 자국을 남겼던 것이다__. 누이 동생은 오빠가 움직이는데 방해가 되는 가구나 특히 옷장과 책장을 치 워 주려고 마음을 썼다. 그런데 그 일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못 되 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는 더더군다나 없었 다. 하녀도 물론 여간해서는 도와주는 법이 없었다. 왜냐하면 이 열여 섯 살쯤 되는 하녀는 엣날의 하녀가 그만둔 이후로 끈질기게 참고 있어 주었지만, 부엌 문을 항상 잠그어 놓고는 여간해서 문을 여는 일이 없 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버지가 없는 기회를 타서 어머니에게 청하는 도리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어머니는 기쁜 나머지 탄성을 지르며 도 와주려 했으나, 그레고르의 방문 앞에까지 오자 어머니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물론 누이동생은 어머니를 부르기 전에 그레고르의 방안 을 사전 점검했다. 그리고 확인이 끝난 후에야 비로소 어머니를 방안으 로 안내했다. 그레고르는 당황해서 이불을 보통 때보다 깊이, 그리고 일부러 주름을 많이 잡히게 해서 덮었다. 그래서 제대로 보지 ㅇ낳으면 그냥 소파 위에 널려 있는 이불처럼 보였다. 그레고르는 이번에도 습관 적으로 이불 밑에서 조심스럽게 상황을 엿보았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어머니의모습을 보는 것은 단념했다. 마침내, 어머니가 방문해 주었다 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흡족했다. "괜찮아요. 들어오세요, 어머니. 보이지 않아요." 하고 누이동생이 말했다. 들어가기를 망설이는 어머니의 손을 누이동생 이 끌어당기고 있는 것 같았다. 얼마 후, 그레고르의 귀에는 연약한 두 여인이, 꽤 낡고 무거운 옷장을 힘겹게 옮기는 소리가 들려 왔다. 그리 고 일의 대부분을 누이동생이 도맡아 하는지, 모친은 걱정스런 목소리 로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말리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누이동생이 계속 해서 부지런히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시간이 이럭저럭 15분 정도는 지났다고 생각될쯤, 어머니의 힘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이것은 그대로 이 방에 두는 것이 낫지 않겠니? 너무 크고 무거워서 아버지가 돌아오시기 전에 옮길 수 없을 것 같구나. 그렇다고 이 큰 것을 그냥 방 한가운데에다 방치해 두면 그레고르가 다니는 데 방해가 될 테고. 더구나 가구를 치워버리는 것을 그레고르가 좋아할지 우리로서는 알 수가 없지 않겠니. 차라리 전처럼 두는 편이 그레고르를 위하는 것이 아니겠느냔 말이야. 가구가 없으니 방안이 온통 텅 비어서 나로서는 허전한 기분이 드는구나. 그레고르가 오랫동안 이 방에서 지 내 왔으니, 갑자기 모든 것을 바꿔 버리면 그레고르는 아무래도 버림을 받은 기분이 들지 않을까? 게다가 이런 짓을 한다는 것은..." 하고 어머니는 여린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부터 어머니는 조용히 누이 동생의 귓가에 바짝 다가가 말을 하였다. 그레고르가 어디에 숨어 있는 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하여튼 자신의 목소리가 그에게 들리게 하고 싶지 않다는 태도였다. 그녀는 설마 그레고르가 사람의 말을 이해 하리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가구를 없애 버린다면, 마치 우리가 그 아이의 회복을 아주 단념해 버리고, 더 이상 그 아이에 대하여 신경을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 않 겠니? 나는 그런 생각이 든다. 방 모양을 옛날과 똑같이 놓아 두어야 그가 회복되었을 때라도 자신의 방이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을 보고 그 만큼 쉽게 그 동안의 일을 잊을 수가 있을 것 같구나." 이처럼 말하는 어머니의 말을 엿듣은 그레고르는 깨달았다. 사람들과 어울릴 수 없고, 더구나 집에서 단조로운 이 두달 동안의 생활이 아무 래도 자신의 머리를 동아 버리게 한 것이 아닌가 하고, 왜냐하면 방안 이 텅 비어 버리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제정신이라면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가구가 놓여 있는 정든 방을 텅 빈 동굴로 만들어 버리려는 생각을 감히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가구가 없으면 물론 구 석구석을 마음대로 기어 다닐 수는 있겠지만, 그와 동시에 옛날의 그의 삶은 순식간에 잊어버리게 되리라. 게다가 지금도 거의잊어 가고 있지 않은가? 지금은 어머니의 목소리를 오래간만에 들었기 때문에 잠시나마 자신의 본 모습으로 되돌아온 것이 아닐까. 어머니의 말씀처럼 이 방에 서 아무것도 치워져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을 그대로 두어야만 된다. 가 구가 자신의 그것 때문에 기어 다니는 데 불편을 준다 할지라도, 자신 으로서는 해가 된다기보다는 차라리 큰 이익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누이동생의 의견은 달랐다. 누이동생은 그레고르에 대해서만은 부모님보다는 훨씬 사정을 잘 알았고, 또 소식통으로써도 부당하지 않았으며 그의 사정을 잘 아는 처지였다. 애당초 누이동생의 생각은 옷장과 책상만을 치우는 것이었으나, 막상 어머니의충고를 듣 자, 생각이 달라져 반드시 있어야 할 소파를 제외하곤 모든 가구를 치 워 버리자고 고집을 부리기 시작했다. 누이동생이 이와 같은 고집을 부 리게 된 것은, 물론 어린 소녀다운 반항심이나 최근에 겪게 된 불의의 쓰라린 괴로움 때문에 생긴 탓만은 아니었다. 실제적으로 그녀는 오빠 에게 넓은 공간이 필요하며, 그렇기 때문에 방안의 가구들은 없는 편이 낫다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충분히 그 나이 또래의 소녀에게 서 흔히 볼 수 있는 맹목적인 고집스러움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한 정열은 언제나 자신을 충족시킬 수 있는 기회를 찾게 되는데, 그 심리 가 지금 그레테를 유혹해서 그레고르의 처지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고 있었다. 지금 그레테는 한층 더 열심히 그를 위해서 봉사하겠다는 열정 에 사로잡혀 있을 뿐 아니라, 그 유혹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사방의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방에 그레고르가 혼자 남게 되면, 그레테 이외에 는 누구도 들어오지 않으려 하지 않겠는가. 이런 이유에서 누이동생은 결코 자신의 결심한 바를 되돌리지 않았 다. 어머니는 지금 그레고르의 방에 있는 것만으로도 무척이나 겁먹은 듯이 불안해 보였다. 그래서 곧 아무 소리 없이 옷장 옮기는 일을 도왔 다. 그런데 이 옷장은 없더라도 별 문제가 안 되었지만, 책상은 달랐 다. 두 여자가 힘들게 옷장을 밀고 나가자마자 그레고르는 소파 밑에서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고, 어떻게 하면 신중하고도 조심스럽게 그들이 하는 일에 간섭할 수가 있을까 히고 생각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먼저 돌아온 것은 어머니 쪽이었다. 그레테는 아직도 옆방에서 이리저리 움 직이고 있었다. 물론 옷장의 위치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모친은 그레고르의 모습을 여지껏 자세히 본 적이 없으므로 그를 보게 되면 기절할지도 몰랐다. 그래서 그는 깜짝 놀라 소파의 다른 끝 쪽으 로 재빨리 움직였다. 그러나 그 때 이불의 앞쪽이 조금 들쳐짐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어머니는 반응을 보였다. 어머니는 문득 멈 추어 잠시 그대로 가만히 서 있었으나, 이윽고 옆방의 그레테에게로 달 려가 버렸다. 뭐 큰일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단지 가구 두세 개를 옮긴 것 뿐이 다. 그레고르가 그런 식으로 몇 차례 자신에게 타일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드나드는 소리와 나직하게 서로 부르는 소리, 방바닥 위에서 가 구가 부딪치는 소리들은 사방을 요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는 방바닥에서 조금도 몸을 움작이지 않았지만, 곧 그의 인내력도 한계에 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두 여인은 방을 완전히 변화시키고 있다. 그가 좋아하 는 물건들을 모조리 없애려 하고 있다. 실톱이며, 기타 기구들이 들어 있는 상자는 이미 옮겨 가 버렸다. 그리고 지금은 방바닥에 꼭 부착시 켜 놓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책상에 손을 대고 흔들고 있다. 그것은 어 린 시절부터 그레고르가 계속 공부하면서 사용해 온 소중한 책상인 것 이다.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그녀들이 하고 있는 선의의 일에 간섭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두 사람의 존재를 거의 잊어버렸다. 왜냐하면 두 사람은 이미 지쳐 있었기 때문에 아무 말도 없이 일만 하고 있었으므 로, 그에게 들리는 것은 오직 조심스런 그들의 발자국 소리뿐이었다. 그레고르는 더 이상 참고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소파 밑에 서 기어 나왔다__그녀들은 마침 옆방에서 옮겨 놓은 책상에 기대어 잠 시 숨을 돌리고 있는 중이었다__. 그는 어떤 가구를 남겨 놓아야 할지 결정하지 못하고 기어가는 방향을 네 번이나 바꾸었다. 이제 방은 텅 비어 단지, 예의 모피로 감싼 여인의 초상화만이 눈에 띄었다. 그래서 그는 급히 기어 올라가 유리 위에 몸을 바짝 붙였다. 유리는 그의몸을 시원하게 했다. 이 그림만은 아무도 가져가지 못하게 감추리라고 그는 생각했다. 이쪽으로 다시 오는 여인들의 모습을 살펴보기 위해서 그는 고개를 들어 거실고 통하는 문 쪽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잠시 쉬다가 곧 돌아왔다. 그레테는 힘이 빠진 어머니를 껴안다시피 부축하고 있었다. "자아, 이제는 어떤 것을 치울까요?" 하고 그레테가 말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때 그레테와 벽에 달라붙 어 있는 그레고르의 시선이 마주쳤다. 어머니가 있었기 때문에 누이동 생은 침착하게 행동하려고 애쓰면서 얼굴을 어머니 쪽으로 돌리며 말했 다. "어머니, 잠시 거시로 돌아가 계시는 게 좋겠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벌써 침착을 잃고 있었다. 그것은 앞뒤 분별도 없이 한 말이었다. 그레테의 속셈을 그로서는 눈치챌 수 있었다. '어머니가 나를 볼수 없게 안전한 곳으로 데리고 간 후에, 제자리로 쫓아 보내려 는 것이겠지. 좋아 쫓을 수 있으면 쫓아 보라지.' 그레고르는 그림을 둘러싸고, 결코 그것을 내주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림을 내주느니 차 라리 싸울 태세였다. 그러나 그레테가 그런 말을 한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왔다. 어머 니는 그레테의말에 처음부터 불안함을 느꼈다. 어머니는 한 걸음 옆으 로 물러서며 꽃무늬 벽지 위에 있는 큼직한 갈색 반점을 보고 그것이 그레고르라는 것을 깨닫기도 전에 소리를 질렀다. "앗! 저게 뭐냐? 사람 살려요!" 그리고 어머니는 양팔을 벌리고 마치 모든 것을 포기라도 하는 듯이 소파 위에 쓰러지더니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레고르!" 누이동생은 주먹을 쳐들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레고르를 쏘아보았 다. 이것이 그레고르가 변신한 이후 처음으로 누이동생이 직젖 그에게 한 첫마디 말이었다. 누이동생은 어머니의 의식을 회복시킬 만한 약제 를 찾기 위해 옆방으로 뛰어갔다. 그레고르도 누이동생을 돕고 싶었다_ _아직 그림을 지킬 시간은 있다__. 그러나 몸이 유리에 착 붙어 있었으 므로 힘을 들여 몸을 떼야만 했다. 마치 옛날처럼 누이동생에게 어떤 충고라도 해 줄 수 있을 것처럼, 그러나 그는 속수무책으로 누이동생의 뒤에 그저 우두커니 서있을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여러 가지 잡다한 병들을 뒤적이던 누이동생은 뒤를 돌아보더니 다시 한 번 깜짝 놀랐다. 그 때 병 하나가 밑으로 굴러 떨어져 박살이 났다. 유리 조각 하나가 그레고르의 얼굴에 튀어 상처를 입히고 이상한 부식제 같은 약 물이 그의몸에 흘러내렸다. 그런데도 그레테는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고 손에 잔뜩 병을 들고는 어머니에게로 달려가면서 발로 문을 차, 쾅하고 닫아 버렸다. 이렇게 해서 그레고르는 어머니로부터 완전히 차단되었 다. 어머니는 그 때문에 거의 초죽음이 되어 있었다. 이 문을 열어서는 안 된다. 어머니 곁에 있어야 될 누이동생을 자신이 들어감으로 해서 쫓아낼 생각은 없다. 그는 이제 차분히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레고르는 자책과 불안에 쫓겨 기어다니기 시작했다. 벽과 가구와 천 장을 이리저리 기어 다녔다. 방 전체가 빙빙 돌기 시작하는가 했더니, 그레고르는 절망 상태에서 천장으로부터 아래 책상 위의 한복판에 떨어 지고 말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그레고르는 맥없이 늘어진 채로 누워 있었 다. 주위는 조용했다. 이것은 틀림없이 좋은 징조일 것이다. 그 때 초 인종이 울렸다. 하녀는 주방에 틀어박혀 있었음으로 그레테가 나가야만 했다. 아버지가 돌아온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니?" 아버지의 첫마디였다. 그레테의 표정을 보고 모든 것을 짐작했음에 틀림없다. "어머니가 기절하셨어요. 하지만 지금은 괜찮아지셨어요. 그레고르가 기어 나왔지 뭐예요." 그레테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것은 분명히 아버지의 가슴에 얼 굴을 파묻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 그럴 줄 알았다, 내가 항상 주의를 주었는데도...여자들이란 도 대체 사람 말을 안 들어 먹는단 말이야. 그러니까 이 모양이지." 아버지는 그레테의 아주 간단한 보고를 듣고, 그레고르가 무슨 난폭 한 짓이라도 저지른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레고르는 아버지의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는 일을 해야만 햇다. 그에게 사정을 설명할 시간도 가능성도 없었다. 그는 자신의 방문 앞으로 달려가 몸을 문에 바짝 붙였다. 그렇게 하 면 현관에서 들어오시는 아버지께서 문만 열어 주시면 곧 자신의 방으 로 들어가려고 하는 자신의 뜻을 알아주시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레고르의 그러한 섬세한 마음씨를 헤아릴 수 없었 다. 그는 방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그래!" 하고 소리쳤다. 분노와 희열이 뒤섞인 듯한 묘한 목소리였다. 그레고르 는 고개를 돌려 아버지 쪽을 쳐다보았다. 그의 눈앞에 있는 아버지는 정말 상상도 못했던 모습을 하고 계셨다. 물론 최근에는 기어 다니는 일에 정신이 팔려서 집안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통 모르고 지내는 형편 이었다. 그러니 달라진 집안 사정과 부딪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과연 이 사람이 정말 내 아버 지란 말인가? 옛날의아버지는 그레고르가 일찍 출장을 떠날 때면 침대 속에 축 늘어져 자고 있었고, 저녁에 출장에서 돌아오면 잠옷 차림으로 안락 의자에 앉아 그를 맞이했었다. 잘 일어서지도 못하고, 반갑다는 표시도 오직 두 팔만을 올려 보이던 분, 일년에 몇 번 있는 축제일 같 은 날에도 가족과 함께 산책을 나가면 원래 걸음이 느린 그레고르와 어 머니 사이에 끼어, 그는 더욱 느리게 낡은 외투를 걸친 채 항상 조심스 럽게 지팡이를 내딛으며 걷던 분, 어떤 말을 하고 싶을 때에는 거의걸 음을 멈추고 같이 온 두 사람을 의지하며 걷던 분, 그런 아버지와 지금 내가 마주하고 있는 사람이 같은 사람이란 말인가? 항상 그랬던 아버지 가 지금은 단정한 자세로 똑바로 서 있다. 은행 수위와 같은, 몸에 잘 어울리는 금단추가 달린 감색 제복을 입고 있었으며, 저고리의 칼라 부 분 위로 나온 턱은 두 겹으로 겹쳐 있다. 새까만 눈썹 밑에는 생기 있 고 초롱초롱한 눈이 번쩍였다. 예전에는 다듬지 않던 백발의 머리도 단 정하게 빗질을 해서 머리가 착 달라붙어 빛나고 있다. 그는 은행 이름 인 것 같은 금실로 머리글자를 수놓은 제모를 돌리 듯 방안의 침대 위 로 던졌다. 그리고 제복의 긴 옷자락 끝을 쓰다듬으며 양손을 바지 주 머니 속에 푹 넣고, 매우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레고르 쪽으로 걸어왔 다. 아버지는 아마도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어쨌든 그는 힘차게 걸었다. 그레고르는 아버지의 구두 바닥이 별스럽게 큰 것을 보고 놀랐다. 그러나 그는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다. 새로운 생활이 시작된 이래 아버지는 그를 최대한으로 엄하게 다룰 결 심인 듯했다. 그러나 그레고르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래서 아버지가 다가오면 도망치듯 물러섯고, 아버지가 멈추면 그도 따 라 움직이지 않았다. 아버지가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그는 이내 재빨리 도망쳤다. 그렇게 빙빙 돌기를 몇 번이나 했다. 아버지의 동작은 해치 려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벽이나 천장으로 도망친다면 아버지는 좋아하시지 않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레고르는 일단 마룻바닥에 가 만히 있기로 했다. 아무튼 그레고르는 마룻바닥 위를 기어 다니는 일도 그리 오래 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부친이 자리를 옮길 때마다 그레 고르도 따라 움직여야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옛날에도 페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는 가슴이 답답했다. 이렇게 힘을 다해 비틀거 리며 옮겨 다니다 보니 피곤해서 눈응 거의뜰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마룻바닥 위를 기어서 도망치는 일 외에는 다른 방 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자유롭게 벽을 기어오를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그 런 사실마저도 생각해 낼 수 없었다. 게다가 벽면에는 정성을 들여 조 각한 가구류 때문에 군데군데 뾰족하게 튀어나온 곳이 많았다. 바로 그 때, 그의 옆으로 무엇인가가 날아오더니 그의앞으로 굴러갔다. 그것은 사과였다. 연이어 두번째 사과가 날아왔다. 그레고르는 놀란 나머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더 이상 기어서 도망쳐 봤자 이제는 헛일이었다. 아 버지는 폭격을 가할 결의를 굳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찬장 위에서 사과 를 꺼내 주머니에다 가득 넣고는 마치 전기 장치로 조종되는 기계처럼 마룻바닥 위로 굴리는 것이었다. 슬쩍 던진 사과 한 개가 그의등을 스 쳤으나 별로 반응이 없었다. 그런데 이어서 날아오던 사과 한 개가 등 위에 정통으로 박혔다. 갑작스럽게 닥친 아픔을 잠시라도 잊어버리기라 도 하려는 듯이 그레고르는 다시 기어 도망치려고 했다. 그러나 이내 심한 통증을 느끼고 그 자리에 힘 없이 쓰러졌다. 마지막의 힘없이 감 기는 눈으로 그는 자신의 방문이 열리는 것을 겨우 볼 수가 있었다. 누 이동생의 뒤에서 어머니가 무슨 말인지를 외치며 달려나왔다. 겉옷이 풀려 속옷이 드러나 상태였다. 조금 전에 기절했을 때, 응급조치로 누 이동생이 옷고리를 풀어 놓았던 것이다. 어머니는 그 차림새로 아버지 께 달려갔다. 그 사이게 풀려진 치마와 저고리가 걸려 치마가 하나하나 마룻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어머니는 그 치마에 발이 걸리면서도 아버지 곁으로 달려가 그를 부둥켜안고는___그러나 그 때 이미 그레고르의 눈 은 감겨진 상태였다__어머니는 아버지를 붙잡고 그레고르의 목숨을 살 려 달라고 애원하며 흐느꼈다. 3 한 달 이상이나 그레고르를 괴롭힌 이 처참한 상처에서 누구도 감히 그 사과를 뽑아 내는 사람이 없었다. 그 사과는 이 사건을 나타내는 기념품으로써 살 속에 박힌 채로 있었다. 지금의 그레고르의 모습이 아무리 참담하고 징그럽다 하더라도, 그가 가족의 일원이며, 가족의 일원인 그를 원수처럼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아버지로 하여금 뉘우치게 하였다. 아버지는 혐오스런 감정을 가슴속에 접어 두고 오직 꾹 참는 것만이 가족의 의무라고 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 후 그레고르는 그 상처로 인해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는 일이 영원히 불가능해진 것 같았다. 지금으로써는 방을 건너가는 것만도 마치 병든 노인처럼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더구나 벽을 기어 올라간다는 것은 꿈도 못꿀 일이었다. 그런데 다른 일이 그를 기쁘게 했다. 그것은 거실과 그레고르의 방을 가로막고 있던 문이 열리게 된 것이다. 그레고르는 이제 문이 열리기 한두 시간 전부터 뚫어지게 문을 바라보는 것이 하루의 습관처럼 되었다. 어두운 방안에 갇혀 있는 그의 모습은 거실에 있는 사람들의 눈에는 띄지 않았고, 그 반대로 그레고르에게는 가스등이 환히 켜진 테이블 주위에 모여 있는 가족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제 그들의 대화를 옛날보다 훨씬 자유롭게 들을 수가 있게 된 것이다. 출장중, 어느 싸구려 호텔에서 칙칙한 침대속에 지친 몸을 던져야 했던 시절, 그레고르는 항상 부러운 눈으로 자기 집 거실에 모여 앉아 떠들석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식구들의 모습을 그리워했던 것인데, 지금 눈앞에 그들은 예날의 그 생기 있는 모습은 아니었다. 지금은 그냥 잔잔히 시간을 보낼 뿐이었다. 아버지는 저녁 식사 후, 평소와 같이 안락 의자에 앉은 채로 잠이 들었고, 어머니는 등불 아래에몸을 내밀고 얼마 전 가게에서 맡아 온 고급 속옷을 바느질하고 있었으며, 점원이 된 누이동생은 좀더 나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하여 저녁엔 속기술과 프랑스어를 공부하고 있었다. 이따금 아버지가 눈을떴는데, 잠꼬대인지 어머니를 향하여 "오늘도 너무 늦게까지 일을 하는군!" 하고 말하고는 곧 다시 잠들어 버렸다. 그러면 어머니와 누이동생은 서로 힘없이 미소를 조고받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집에 돌와와서도 좀처럼 수위 제복을 벗지 않았다. 실내복은 필요가 없었다. 그는 아직도 자기 직장에서 상관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제복을 단정하게 입은 채로 잠이 들었다. 어머니와 누이동생은 아버지가 소중히 여기는 제복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신경을 썼지만, 그러나 처음 지급받았을 때부터 새옷이 아니었으므로 언제나 윤이 나게 닦아서 번쩍번쩍 빛나는 금단추와, 이미 얼룩투성이로 더러워진 아버지와 제복 기지를 번쩍 빛나는 금단추와, 이미 얼룩투성이로 더러워진 아버지의 제복 기지를 바라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노인은 이 옷을 단정하게입고 매우 불편한 모습으로 그러나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10시가 되면 항상 어머니는 작은 목소리로 아버지를 흔들었다. 그리고침대로 가서 편히자도록 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사실 그런 상태로 잠을자게 되면 편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아버지는 아침 일찍 출근을 해야 하기 하기 때문에 충분한 수면이 필요했다. 그러나 수위가 된 이후로 고집만 세진 아버지는오래 거실에있기를 원했고 그러다가 이내 다시 잠이 들어 버렸다. 그런 아버지를 안락 의자에서 침대로잠자리를 옮기도록 하는 일은 무척 힘든 일이었다. 어머니와 누이동생이 잠을 깨우려고 흔들면 부친은 15분 정도는 눈을 감은채로 고개만 가로 저을 뿐 자리에서 움직이려 하지 않았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옷깃을 잡아당기면서 그의귓전에 대고 뭐라고 속삭였고, 누이동생은 하던 공부를 중단하고 합세했다. 그래도 아버지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고, 점점 깊숙히 안락 의자 속으로 파묻히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겨드랑이 밑으로손을 넣으면, 그제서야 그는 겨우 눈을 뜨고 어머니와 누이동생을 번갈아 보면서 입버릇처럼 늘 하던 말을 중얼거렸다. "이것이 인생이다. 이것이 나의 노후의 휴식처다." 그리고는 두 여인의 부축을 받으며 무겁게 몸을 일으켰다. 그것은 마치 자신의 몸이 자신에게도 무거운 짐으로 느껴진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아버지는 그녀들을 따라 문 앞까지 갔다. 그러나 어머니는 재빨리 바느질 도구를 챙기고 누이동생은 펜을 정리해서 아버지의 뒤를 쫓아서 잠자리를 돌봐 주는 것이었다. 모두 일에 지쳐 피곤해서 아무도 그레고를를 보살펴 줄 여유가 없었다. 집안 살림은 점점 궁핍해져 갔다. 결국은 하녀도 내보내게 되었고, 그 대신 나이 먹고 백발 흩날리는 몸집이 큰 여인이 아침 저녁으로 드나들며 가장 힘드는 일만을 해 주고 갈 뿐이었다. 그 외의 모든 일은 어머니가 바느질을 하면서 해 냈다. 심지어는 이전에 어머니와 누이동생이 친목회나 축하 모임이 있을 때면 화려하게 몸에 치장하던 여러 가지 잡다한 장식품 같은 것들도 팔게 되었다. 이 사실은 저녁에 가족들이 모두 모여서 그것을 얼마나 받고 팔면 될까 하고 서로 위논하는 것을 엿듣고서야 알게 된 일이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언제나 집 문제였다. 현재의 형편으로 이 집은 너무 컸다. 그러나 이사를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레고르를 어떻게 옮겨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레고르는 이사를 방해하고 있는 것이 단지 그레고르에 대한 고려 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적당한 상자에다 숨만 쉴 수 있게 해 놓으면그레고르쯤은 문제없이 운반할 수 있을 것이다. 이사를 방해하고 있는 진짜 이유는 완전한 절망감과, 여러 친척들의 눈총 때문이었다. 세상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보내는 갖가지 어려움에 대해서는 온 집안 식구들이 이미 포용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은행의 말단 직원들을 위해 아침 식사를 날라다 주는 일까지도 주저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남의 빨랫감을 얻어 하느라 자신을 희생했고, 누이동생은 손님의 기호에 따라 판매대 뒤에서 바쁘게 뛰었다. 그러나 이미 가족들은 지쳐 있었다. 아버지의 잠자리를 돌봐 주고 어머니와 누이동생은 다시 거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일감은 쳐다보지도 않고, 볼과 볼이 맞닿을 정도로 바짝 다가앉아 얘기를 나누었다. 어머니가 그레고르의 방을 가리키며, "그럴테야, 이제 저문을 닫아라." 하고 말했다. 그레고르는 또다시 어둠 속에 혼자 남게 되었다. 거실에선느 두 여인이 소리없이 눈물을 훔치며 테이블만 뚫어지게 응시하고 앉아 있었다. 그럴 때면 그레고르의 등의 상처는 방금 입은 상처인 양 다시 아파 오기 시작했다. 그레고르는 밤낮을 거의 뜬눈으로 새다시피 했다. 그는 종종 이번에 방문이 열리면 옛날처럼 집안 살림을 자신이 도맡아 하리라고 생각해 보았다. 그의 뇌리에는 오랫동안 보지 못한 회사 사장이나 지배인, 사원과 견습 사원들, 또는 몹시 머리가 둔한 급사, 다른 장사를 하고 있는 두세 명의 친구들이 가끔 떠올랐고, 어느 시골 호텔의 하녀며, 즐거운 추억들, 진지했으나 구혼이 너무 늦었던 어느 모자점의 회계원인 처녀의 모습도 나타났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들은 낯선 사람이나 이미 잊어버린 사람들 사이에 뒤죽박죽이 되어 나타났다. 그러나 그들을 만나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들의 모습이 다시 사라지자 오히려 머리가 맑아졌다. 그런가 하면 가족에 대한 걱정 같은 것은 전혀 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에는 자신에 대한 학대에 단지 하가 치밀 뿐이었다. 무엇을 먹으면 식욕이 생길는지 자신도 전혀 알 수 없었고, 또 배가 고픈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주방으로 기어가서 자기 입맛에 맞는 몇 가지를 가져올 계획을 세워 보기도 하였다. 누이동생도 요즘은 그레고르가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해 보지도 않고, 아침이나 점심때 가게에 나가기 전에 아무 음식물이나 바삐 챙겨서 발끝으로 그의 방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저녁때는 그가 음식에 손을 댔건 안 댔건__이런 일이 가장 자주 반복되었는데도__아무 반응도 나타내지 않고 비질을 해 버리는 것이었다. 누이동생이 늘 하던 방 청소도 지금에 와서는 하는 둥 마는둥 했다. 사방 벽을 따라 더러운 자국이 줄줄이 남아 있었으며, 여기저기에 갖가지 먼지와 오물 덩어리가 흩어져 있었다. 그는 처음에는 누이동생이 방에 들어올 때, 일부러 더러운 구석에 가 있음으로써 어느 정도 눈치를 주려 했다. 그러나 아무리 오랫동안 그 곳에 웅크리고 있어도 누이동생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누이동생은 그레고르와 마찬가지로 틀림없이 오물을 발견했을 텐데도, 마치 오물을 방치헤 두려고 결심한 사람처럼 보였다. 오히려 누가 그레고르의 방 청소에 대한 자신의 특권을 침해하기라도 할까 봐, 신경을 곤두 세웠다. 언젠가 어머니가 서너 통의 물로 그레고르의 방을 대청소한 일이 있었다. 그 때 방이 온통 물바다가 되어 기분이 몹시 상한 그레고르는 화가 나서 소파 위에서 꼼짝하지 ㅇ고 있었다. 결국 모친은 그 벌을 받았다. 왜냐하면 저녁에 돌아온 누이동생이 그레고르의 방 상태가 변한 것을 확인하고는 몹시 화를 내며 어머니에게 달려가 눈을 흘기며 돌아서서 울음을 터뜨렸던 것이다. 이 울음 소리에 놀란 아버지가 안락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의 태도에 부모님은 놀라고 질려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뒤늦게 전후 사정을 눈치챈 아버지는 어머니를 향해서 왜 당신은 그레고르의 방 청소를 딸아이에게 맡겨 두지 않았느냐고 어머니를 책망했고, 그 레테에게는 앞으로 다시는 어머니가 청소 같은 것을 하지 못하도록 다짐을 받겠다고 했다. 어머니는 당황하여, 격분해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아버지를 진정시키려 했다. 한쪽에서는 그레테가 경련을 일으키며 몹시 흐느껴 울며 테이블을 두드렸다. 방문이 닫혀 있었더라면 이런 장면을 보지 않아도 되고, 이런 소란을 듣지 않아도 될 것을 누구도 문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레고르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큰 소리로 쉿하는 소리를 냈다. 그러나 아무리 누이동생이 낮 근무에 시달려 그레고르를 돌보는 일에 싫증을 내고 있다 할지라도, 어머니가 딸 대신에 애를 쓸 필요는 조금도 없었다. 왜냐하면 고용된 늙은 할멈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랜 삶 동안 온갖 쓰라린 일을 겪어 온 이 할멈은 그레고르를 처음부터 조금도 두려워하지 ㅇ았다. 그녀는 어느 땐가 우연히 그레고르의 방문을 열어 본 일이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 아니었다. 몹시 놀란 그레고르는 누구에게 쫓기는 것도 아니면서 슬슬 피해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할멈은 양손을 아랫배 위에 대고 깍지 낀 채 그레고르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후론 시간만 나면 아침 저녁으로 슬그머니 문을 열고 몰래 그레고르를 들여다보는 일을 계속했다. 처음에 할멈은 "말똥벌레야, 이쪽으로 오너라." 라든가 "어머! 이 늙은 말똥벌레 좀 봐." 라는, 그녀로서는 다분히 정다운 말을 건네듯 그레고르를 자기 쪽으로 오도록 유인했다. 그러나 그레고른는 그런 소리는 무시해 버렸다. 문이 열린 것을 모른 체하며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늘 할멈이 심심할 때마다 한 번씩 무의미한 장난에 시달리느니 차라리 매일 할멈에게 방청소를 시키는 것이 나을 뻔했다. 어느 날 아침__세찬 빗방울이 유리창에 와 부딪쳤는데, 이것도 아마 봄이 오고ㅗ 잇는 증어였을 것이다___할멈이 또다시 그레고르의 방문을 역고 놀리기 시작했으므로, 그레고르는 몹시 화를 내며, 힘은 없었지만 달려들 듯한 자세를 하고 그 할멈 쪽으로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러나 할멈은 노랄기는커녕 문 옆에 있던 의자 하나를 꼿꼿이 쳐들었다. 입을 크게 벌리고 선 그 모습은 손에 든 의자로 당장이라도 그레고르의 등을 내리칠 것처럼 보였다. "뭐야, 겨우 그것뿐이냐!" 그녀는 그레고르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보며 그렇게 말하고는 자기도 의자를 조용히 구석에다 다시 내려놓았다. 최근에 와서 그레고르는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이딱ㅁ 넣어 준 음식물 옆을 스칠 때에만 장난삼아 한 입 먹어 보거나, 삼키지 않고 몇 시간 동안을 입에 머금고 있다가 대개는 나중에 뱉어 버렸다. 처음에 그는 이처럼 아무것도 먹을 수 없는 이유가 이 방의 상태가 너무 비참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으나, 실제로는 몇 번이나 변한 이 방의 상태에 곧 익숙해져 있었다. 또한 식구들에게는 이상한 습관이 생겼다. 그것은 달리 둘 곳이 마땅치 않은 갖가지 물건을 이 방에다 넣어 두는 것이었다 그러한 물건들은 꽤 많았다. 왜냐하면 집 안의 방 하나를 하숙했기 때문이다. 그 성미가 까다로운 하숙인은__어느 땐가 그레고르가 문틈으로 확인한 바로는 세 사람이 모두 얼굴에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__지나칠 정도로 질서와 청결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이었다. 그것도 자기가 쓰는 방뿐만 아니라, 하숙생이 할지라도 어찌 되었든 이 집안 사람이 된 이상에는 이 집 전체, 특히 부억이 청결해야 된다고 이것저것 참견했다. 필요 없는 물건이나, 아주 더러워진 잡동사니들에 대해서는 한치의 야보도 없었다. 더구나 재를 치우는 상자며, 부엌에서 쓰던 쓰레기통까지도 그레고르의 방으로 옮겨졌다. 할멈은 당장 필요치 않은 물건들은 눈에 띄기 무섭게 모조리 그레고르의 방으로 쑤셔넣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레고르의 눈에는 날라 오는 물건과 그 물건을 들고 있는 손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틀림없이 할멈은 언제나 기회를 보아서 그런 물건들을 다시 찾으러 오거나, 혹은 전부 모아 두었다가 한꺼번에 내다 버릴 속셈이었겠지만, 사실은 모두 그대로 처음 던져 두었던 그 자리에서 뒹굴고 있었다. 그레고르는 그 잡동사니들 때문에 돌아다닐 수가 없었다. 자유스럽게 기어 다닐 통로가 없었기 때문에, 그는 할 수 없이 그것들을 치워 버렸다. 그러나 그런 일을 하고 난 후에는 초죽음이 되어 공연히 우울해져 몇 시간 동안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잡동사니를 옮기는 일에 점점 재미를 느끼게 되었다. 하숙을 하는 신사들은 가끔 한자리에 모여 저녁 식사를 하는 일도 있었다. 그럴 때는 항상 문을 닫았다. 그러나 그레고르는 이것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그는 문이 열려 있는 밤에도 그것을 이용하지 않았으며, 집안 사람들의 준에 띌까 봐 자기 방 제일 어두운 구석에 엎드려 지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할멈이 거실의 문을 약간 열어 놓은 채로 내버려둔 일이 있었다. 저녁이 되어 하숙인들이 거실로 들어와서 불을 켰을 때에도 문은 그대로 열린 채로 있었다. 세 사람은 테이블 윗자리에 앉게 되었다. 예전에 부모님과 그레고르가 앉았던 자리였다. 세 사람은 냅킨을 펼치고 나이프와 포크를 손에 들었다. 그러자 어머니가 고기를 담은 큰 접시를 들고 문 앞에 모습을 나타냈다. 곧 이어서 누이동생이 감자 담은 그릇을 들고 나타났다. 음식에선 김이 무럭무럭 오르고 진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하숙생들은 음식을 먹기 위해 대접 위로 몸을 구부렸다. 실제로 세 사람 중에서 우두머리격으로 보이는 중앙에 앉은 사내가 큰 접시에 담긴 고기를 할 조각 썰어냈다. 충분히 연한지 어떤지, 그러니까 주방으로 다시 보내지 않아도 좋은지 어떤지를 알기 위한 것이 분명했다. 그는 만족해 했다. 그 때서야 긴장된 표정으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어머니와 누이동생이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서로를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집안 식구들은 부엌에서 식사를 했다. 그래도 아버지만은 부엌으로 가기 전에 거실에 들러 제모를 손에 들고 머리를 한 번 꾸벅 숙여 보이고는 테이블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하숙인 세 사람 모두 일어서서 무슨 말인지 중얼거렸다. 그러나 자기들만 남게 되자 거의 아무 말 없이 식사를 계속했다. 그레고르는 이상한 소리를 들었는데, 그것은 식사 중에 아삭아삭 음식을 씹는 이빨 소리였다. 그 소리는 마치 그레고르에게, 음식을 먹는 데는 이빨이라는 것이 필요하며 아무리 훌륭한 입도 이빨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기 위해서 들려 오는 것 같았다. 그레고르는 슬픈 듯 중얼거렸다. "나도 무엇인가 먹고 싶다. 그러나 저런 음식은 싫어. 저들 식으로 먹어 치우다가는 죽어 버리고 말겠어." 바로 그 날 저녁의 일이었다. 주방 쪽에서 바이올린 소리가 들려 왔다__그레고르는 변신을 한 이후로 바이올린 소리를 한번도 들은 기억이 없었다__. 하숙을 하는 세 신사는 이미 식사를 마치고, 중앙에 있는 사람이 신문을 꺼내어 다른 두 사람에게 한 장씩 넘겨 주고 있었다. 그들은 각자 의자에 기대어 조용히 신문을 읽으면서 담배를 피웠다. 그 때 바이올린 소리가 들리자, 세 사람은 놀란 표정을 하고 의자에서 일어나 살금살금 현관 쪽으로 걸어가서는 부엌 문 앞에 모여 섰다. 부엌에서 그 발소리를 들었는지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시끄럽지 않으십니까? 그렇다면 당장 그만두게 하겠습니다." "천만에요." 하고 우두머리 격인 사내가 대답했다. "괜찮으시다면 따님께선 거실로 나오셔서 연주하시면 어떻겠습니까? 그 편이 훨씬 돋보이고 유쾌할 테니까요." "그렇게 합시다." 하고 아버지는 마치 자신이 바이올린을 연주한 장본인처럼 말했다. 하숙인들은 거실로 돌아와서 그들을 기다렸다. 이윽고 아버지는 악보대를 들고 어머니는 악보를, 누이동생은 바이올린을 들고 세 사람이 함께 거실에 나타났다. 누이동생은 침착한 태도로 연주 준비를 끝마쳤다. 이제까지 하숙을 친일이 없었기 때문에 부모님은 지나칠 정도로 하숙인들에게 예의를 갖추었다. 따라서 자신들은 의자에 앉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아버지는 문에 몸을 기대고 서서 제복의 단추들 사이에 오른손을 찔러 넣고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하숙인 한 사람이 의자를 권해 자리에 앉았다. 그 사람이 의자를 놓아 준 곳은 방안의 한구석이었지만 어머니는 그대로 앉아 있었다. 누이동생은 이윽고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각자의 자리에서 딸의 손놀림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레고르는 연주 소리에 끌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고개를 거실 안으로 내밀고 있었다. 그는 요사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거의 무관심한 상태로 지냈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의아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전까지는 다른 사람의 일에 관심을 쏟았었고, 또 그것을 자랑스럽게까지 여겼었다. 그런데 지금이야말로 남의 눈을 의식해야만 될 충분한 이유를 갖고 있지 않은가? 지금 그의 방안은 사방이 먼지투성이였기 때문에 조금만 움직여도 풀썩풀썩 먼지가 일었다. 그래서 그의 몸은 온통 먼지를 흠뻑 뒤집어쓰고 있는 상태였다. 그는 실밥이며 머리칼, 음식 찌꺼기 같은 것들을 등과 옆구리에 잔뜩 붙인 채로 기어 다니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몇 차례씩 등을 아래로 하고 누워서 바닥의 양탄자에다 몸을 비벼 대던 일도 모든 것에 대해 무관심해진 이후 도무지 그럴 의욕마저도 상실하고 있었다. 그런 상태로 휴지 하나 떨어져 있지 않은 거실로 기어 나오면서도 그레고르는 아무런 거기낌이 없었다. 물론 그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가족들은 바이올린 연주에 완전히 정신을 빼앗기고 있었다. 하숙인들은 손을 바지 주머니 속에 찔러 넣고서 악보대 바로 뒤에 자리를 잡고 서 있었다. 세 사람은 모두 악보를 들여다볼 수 있는 자리__확실히 누이동생의 연주에 방해가 되었을 것이다__였다. 그러나 그들은 곧 고개를 숙이고 나지막한 소리로 속삭이더니 창가로 물러갔다. 아버지는 불안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들은 훌륭하고 감미로운 바이올린 연주를 들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였다. 가 그만 싫증난 모양이었다. 단지 실례가 될까 마지못해 듣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특히 그들이 담배 연기를 코와 입으로 내뿜는 모습은 몹시 초조해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누이동생은 여전히 아름다운 연주에 몰두하고 있었다. 고개는 한쪽으로 기우뚱하고, 눈은 마치 무엇을 음미하듯 슬픈 표정으로 악보를 훑어내리고 있었다. 그레고르는 조금 더 앞으로 기어 갔다. 가능하다면 누이동생의 시선과 마주치기 위해 머리를 마룻바닥에 딱 붙어 버릴 정도로 낮게 수그렸다. 이토록 음악 소리에 감동을 느끼는데도 내가 아직 동물이란 말인가? 그레고르는 자신이 동경하는 마음의 양식을 얻는 길이 열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는 누이동생의 곁에 가서 치맛자락을 끌어당겨 누이동생에게 자기 방으로 와서 바이올린을 연주해 주기를 바란다는 그의 희망을 알릴 생각이었다. 실제로 이들 중에는 누이동생의 연주를 그레고르만큼 칭찬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그렇다, 실제 그렇게만 된다면 최소한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누이동생을 그의 방 밖으로 다시는 내보내지 않으리라. 흉측한 그의 몰골은 그 때 비로소 그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모든 출입구를 지켜서서 침입자에게는 으르렁거리면서 덤벼들 것이다. 그러나 누이동생을 강제로 방에 붙잡아 두어서는 안 된다. 누이 동생 스스로의 뜻이 아니면 안 된다. 누이동생과 나란히 소파 위에 앉아 그녀의 머리를 나의 쪽으로 기울이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녀를 음악 학교에 보낼 굳은 결심을 하고 있었노라고 누이동생에게 말해 주자. 만일 이ㅓㄴ 불행한 일만 생기지 않았더라면 크리스마스 때__크리스마스는 이미 지나 버렸겠지__어떤 반대를 무릅쓰고서라도 온 가족 앞에서 이 계획을 발표할 할 작정이었다고 말할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나면 분명히 누이동생은 감격한 나머지 눈물을 흘릴 것이다. 그러면 누이동생의 어깨까지 기어 올라가서 그녀의 목에 입을 맞추어 주리라. 누이동생은 직장에 나가고부터는 리본도 칼라도 달지 않고 목을 드러내 놓고 다녔다. "잠자 씨!" 돌연 우두머리 격인 사내가 아버지를 향하여 소리차더니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천천히 앞으로 기어 나오고 있는 그레고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 때 바이올린 소리가 멈췄다. 그 사내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다른 친구들에게 살짝 미소를 던지더니 다시 그레고르를 쳐다보았다. 아버지는 그레고르를 ㅉ아 버리는 것보다는 하숙인들의 마음을 진정시키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하숙인들은 흥분하기는커녕 오히려 바이올린 여주보다도 그레고르에게 더 흥미를 느끼는 듯하였다. 아버지는 급히 그들 쪽으로 다가가서 양팔을 크게 벌리고, 그들을 그들의 방으로 돌여보내려고 애를 쓰는 동시에 몸으로는 그레고르가 보이지 않도록 가로막았다. 그러자 그들은 약간 화를 내는 눈치였다. 아버지의 태도에 화를 내는 건지 아니면 그레고르와 가ㅌㄴ 존재가 바로 옆방엣 ㅏ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었는데, 그제서야 알게 되어 화가 난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하숙인들은 아버지에게 해명을 요구하고 자신들도 팔을 쳐들어 조급하게 수염을 꼬면서 천천히 자기들의 방으로 물러갔다. 그 사이 누이동생은 연주를 중단하고 잠시 동안 넋나간 표정으로 서 있었다. 이윽고 정신을 차리고 축 늘어 뜰렸던 양손에 바이올린과 활을 들고 계속 연주를 하려는 듯이 악보를 들여다보다가는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숨이 막히는 듯이 악보를 들여다보다가는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숨이 막히는 듯이 가슴을 들먹거리더니, 그대로 앉아 있던 어머니의 무릅 위에다 악기를 내려놓고는 앞질러 하숙인들의 방으로 달려갔다. 하숙인들은 아버지에게 쫓겨서 급히 자기들의 방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누이동생은 익숙한 솜씨로 침대에 있던 베개와 이불을 펼치더니 순식간에 잠자리를 깨끗이 정리했다. 그녀는 하숙인들이 방안으로 들어오기 전에 이미 침대 정돈을 끝내고 그 방을 빠져 나왔다. 아버지는 또다시 자기 고집에 사로잡힌 것처럼, 평소 하숙인들에게 베풀었던 친절조차 완전히 잊어버린 듯 오로지 세 사람을 밀어붙이기에만 여념이 없었다. 마침내 방문에 다달았을 때 우두머리 격인 남자가 쾅 하고 발을 굴렀기 때문에 아버지는 그만 멈추어 섰다. "지금 이 자리에서 선언해 두지만......" 그는 한쪽 손을 쳐들고 어머니와 누이동생의 모습을 힐끗보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집고 당신 가족들 사이에 존재하는 이 불쾌한 상태를 고려하여." __그는 순간적으로 결심을 한 듯 단호하게 마루에 침을 뱉었다__ "방을 해약하겠소. 물론 지금가지의 하숙비는 한 푼도 지불할 수 없소. 그대신 나는 앞으로, 극히 타당한 이유의 손해 배상 청구를 당신들에게 제기할__거짓말이 아니오__것인지 어쩔 것인지의 여부를 고려해 볼 작정이오." 그는 입을 다물고 마치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있는 것처럼 앞쪽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과연 그의 두 친구들이 곧 입을 열었다. "또한 우리도 이 자리에서 해약하겠소." 그런 다음 우두머리 격인 사내가 문 손잡이를 쥐고는 냉정하게 문을 닫았다. 아버지는 손을 더듬고 몸은 비틀거리며 자기 의자로 돌아와서는 털썩 주저앉았다. 언뜻 보기에는 평소처럼 저녁 잠을 자는 것 같았지만 불안정하게 머리를 끄덕이는 것으로 보아 결코 자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 동안 그레고르는 하숙인들이 처음 자기를 발견한 바로 그 자리에 조용히 웅크리고 있었다. 그는 그의 계획이 성공하지 못한 사실에 대한 실망과 오랫동안의 굶주림에서 오는 허가로 인해 도저히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는 당장에라도 그의 몸에 닥쳐올 무자비하고 몰인정한 상황에 대해 확실한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어머니의 손이 떨리더니 무릎에서 바이올린 미끄러져 아래로 떨어지면서 큰 소리를 냈지만 그레고르를 놀라게 하지는 못했다. "어머니......, 아버지!" 누이동생은 이렇게 말의 서두를 끄집어내며 손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더 이상은 그렇게 말의 서두를 끄집어내며 손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더 이상 이런 식으로 살아 나갈 순 없어요. 두 분께서는 깨닫지 못하고 계실지 모르지만 저는 잘 알아요. 저는 이 흉측한 괴물을 오빠라는 이름으로 입에 담고 싶지도 않아요. 그러니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는 저것을 없애 버릴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우리는 인간으로서 저것을 먹여 살리고 참고 견디는 데는 할 만큼 다했잖아요. 그 누구도 우리를 비난하지는 못할 거예요." "그래 네 말이 옳다." 하고 아버지는 혼잣말처럼 했다. 아직도 완전히 숨이 가라앉지 않은 어머니는 마치 넋나간 듯한 눈길로 아직도 숨이 가쁜지 입에 손을 대고 심하게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누이동생은 어머니에게로 급히 달려가서 이마를 짚어 주었다. 아버지는 딸의 이야기를 듣고 무엇인가 결심이라도 한 듯 똑바로 의자에 앉아서 하숙인들이 식사를 한 후에 아직 식탁 위에 놓여 있는 접시들 사이에서 자신의 제모를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이따금 꼼작하지 않고 누워 있는 그레고르를 쳐다보았다. "우리는 저것을 없애 버려야만 해요." 하고 누이동생은 아버지에게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어머니는 기침 때문에 아무 말도 알아듣지 못하였다. "저것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돌아가시게 할 거예요. 어쩐지 자꾸 그런 생각이 들어요. 모두 이렇게 고생하면서 일을 해야 하는 우리들 처지에 도대체 어떻게 저런 끝없는 골칫거리를 집 안에 두고 참을 수가 있겠어요? 저는 이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요." 이렇게 말하고 누이동생은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어머니의 얼굴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그것을 본 누이동생은 거의 기계적으로 손을 움직여 어머니의 얼굴에서 그 눈물을 닦아 주었다. "예야." 하고 아버지는 정답고도 동정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그러면 우리들이 어떻게 하면 좋겠다는 말이냐?" 누이동생은 무슨 구체적으로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듯이 그저 어깨를 득썩일 뿐이었다. 울고 있던 사이에 그처럼 단호했던 마음도 누그러져, 도리어 어떻게 해야 좋을는지 망설이는 태도였다. "저 녀석이 우리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아주기만 한다면......" 하고 아버지가 반쯤 묻는 듯한 투로 말했다. 누이동생은 울면서 그런 일은 생각지도 말라는 듯이 격렬하게 한쪽 손을 내저었다. "저 녀석이 우리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아준다면......" 아버지는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는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없다는 누이동생의 확신을 스스로에게 긍정이라도 하는 듯이 두 눈을 감아 버렸다. "그렇게만 된다면 저 녀석과 타협하는 것도 무리가 아닐 텐데...... 그런데 이 꼴이라니." "내쫓아 버리는 거예요." 하고 누이동생이 말했다. "그 방법밖에는 없어요. 저것이 그레고르 오빠라는 생각은 버리셔야 해요. 우리가 지금까지 그렇게 믿어 온 것이 사실은 우리들 자신의ㅣ 불행이었어요. 어떻게 저것이 그레고르란 말인가요? 만일 저것이 정말 그레고르였다면, 인간이 자기와 같은 짐승과는 함께 살 수 없다는 것쯤은 벌써 알아차리고 틀림없이 스스로 나가 버렸을 거예요. 그렇게만 되었다면 오빠는 없어졌어도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 남아서 오빠를 존경하며, 오빠에 대한 추억을 소중히 간직하며 지낼 수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저 짐승은 우리들을 희롱하고, 하숙인들을 내쫓고, 급기야는 이 집 전체를 점령하고 우리들을 길거리로 몰아낼 거예요. 네, 저것 좀 보세요, 아버지!" 하고 누이동생은 별안간 소리를 질렀다. "벌써 시작했어요!" 그레고르에 대한 알 수 없는 공포에 사로잡힌 누이동생은 어머니가 앉아 있는 의자로부터 멀찍이 떨어져서 무러났다. 누이동생은 그레고르 옆에서 자신이 희생되느니보다는 어머니를 희생시키는 편이 낫다는 듯이 어머니의 의자 뒤에서 어느덧 아버지의 등뒤로 도망쳤다. 아버지는 딸이 움직임에 흥분한 듯, 같이 일어서서 누이동생을 보호하려는 것처럼 양팔을 앞으로 쳐들었다. 그러나 그레고르는 누이동생은 물론 그 누구도 불안하게 만들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는 단지 자기 방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몸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참혹한 현재의 상태에서는 몸을 조금만 돌리려고 해도 머리의 힘이 필요했다. 그래서 여러 번 고개를 쳐들었다가는 마룻바닥에 내리쳤다. 그 이상한 동작은 그들을 의아스럽고 놀라게 했다. 그는 동작으라 중지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의 악의 없는 뜻을 겨우 알아차린 것 같았다. 그들의 놀라움은 모두 순간적인 것이었으며, 이제 가족들은 모두 입을 다물고 슬픈 표정으로 그레고르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니는 의자에 앉아서 두 다리를 모아 앞으로 쭉 뻗고 있었다. 누이동생은 한쪽 팔로 아버지의 목을 껴안고 있었다. '자, 이젠 다시 시작해도 상관없겠지.' 하고 그레고르는 생각하며 다시 방향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는 지쳐서 애써 숨을 돌리며 간혹 쉬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를 괴롭히는 사람은 없었다. 모든 것을 그가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그는 방향을 돌려 곧장 자기의 방으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방까지의 거리가 그렇게 멀게 느껴지는 것에 대해 새삼 놀랐다. 조금 전에는 도대체 어떻게 이 쇠약한 몸을 이끌고 이처럼 먼 거리를 간단하게 기어 나올 수 있었는지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빨리 기어가야만 된다고 생각한 나머지, 그는 가족들의 말소리나 한 마디의 외침도 전혀 그를 방해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거의 의식하지 못했다. 그는 거의 문 앞까지 왔을때에서야 비로소 뒤를 돌아보았으나 그개가 말을 잘 듣지 않았다. 목이 굳어져 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자신의 뒤쪽에서는 여전히 달라진 것이 없었고, 다만 누이동생이 서 있는 것만이 보였다. 그 때 그레고르의 마지막 시선이 어머니를 스쳤다. 어머니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 그가 방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성급하게 문이 닫히고 굳게 빗장이 거렸다. 갑자기 일어난 이 소란 때문에 그레고르는 몹시 놀라서 다리가 휘청거리며 꺾일 정도였다. 이렇게 성급히 굴어 댄 것은 누이동생이었다. 그녀는 미리 일어나서 기다리고 있다가 그레고르가 방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번개같이 달려와 문을 잠그었던 것이다. 그레고르의 귀에는 누이동생의 발자국 소리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었다. "이제는 됐어요, 겨우 끝났어요!" 하고 누이동생은 열쇠를 감궈 돌리면서 부모님을 향해 외쳤다. '자아, 이제는 어쩔 셈인가?' 하고 그레고르는 스스로에게 물으며, 어둠속에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는 자신이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되었음을 알았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지금까지 이 가느다란 다리로 기어 다닐 수 있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약간의 쾌감까지 느껴졌다. 물론 전신이 아프기는 했지만, 그것도 이내 가라앉았고 마침내 완전히 통증이 사라진 것을 느꼈다. 등에 박힌 썩은 사과며, 부드러운 먼지에 싸여 있는 그 주위의 염증조차도 이미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애정과 연민을 갖고 가족들의 일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자신이 사라져야 한다는 생각은 암 누이동생보다도 그 자신이 훨씬 더 절실한 것이었다. 그레고르는 교회의 종소리가 새벽 세 시를 칠 때까지, 이처럼 공허하고 편안한 명상에 잠겨 있었다. 창 밖이 훤하게 밝아오는 것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문득 그의 머리가 그도 모르게 밑으로 푹 수그러졌다. 그리고 그이 콧구멍에서는 나지막 숨소리가 가늘게 새어 나왔다. 아침 일찍 일하는 할멈이 왔을 때__제발 그런 짓만은 하지 말라고 지금까지 수차례나 좋게 타일었는데 문이란 문은 모조리 쾅쾅 때부술 듯이 성급하게 힘껏 여닫기 때문에, 이 할멈이 오면 집안 식구들은 더 이상 편히 잠을 수가 없었다__여느 때처럼 잠깐 그레고르의 방을 들여다보았으나 처음에는 별다른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다. 할멈은 그레고르가 기분이 좋지 않아 일부러 꼼짝도 않고 누워 있다고 생각했다. 할멈은 그레고르가 전부터 모든 것을 분별할 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문 밖에서 마침 손에 들고 있던 긴 빗자루로 그를 간지럽히려고 했다. 그래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그녀는 화를 내면서 그레고르의 몸을 슬쩍 안으로 밀어 보았다. 그레고르가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곧 일의 진상을 알게 되자 할멈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자신도 모르게 휘파람을 불었다. 할멈은 그 자리에서 머뭇거리지 않고 즉시 잠자 부부의 침실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는 어둠 속을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쳤다. "저리 좀 가 보세요, 저것이 뻗었어요. 저기 뻗어서 널브려져 있어요!" 잠자 부부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할멈이 하는 말의 뜻을 이해하려 들기는커녕 우선 할멈 앞에 당황한 모습으로 드러나 그 상태가 그들에게는 더욱 불쾌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곧 상황을 알아차리자 기겁을 하며 각자의 침대 좌우로 뛰어내렸다. 잠자 씨는 어깨에 담요를 두르고, 부인은 잠옷 차림으로 그레고르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는 동안에 거실의 문도 열렸다. 하숙인을 둔 이후 그레테는 거실에서 잠을 잤다. 그레테는 한잠도 자지 않은 것처럼 단정하게 완전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창백한 얼굴이 사실을 입증해 주는 것 같았다. "정말 죽었어요?" 하고 말하며, 부인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할멈을 쳐다보았다. 물론 스스로 확인해 볼 수도 있었고, 확인해 보지 않더라도 그냥 보면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죽은 것 같습니다." 하고 말하면서, 할멈은 증명이라도 해 보이려는 듯이 멀찍이 서서 빗자루로 그레고르의 시체를 쑥 밀어 보였다. 부인은 그 할멈의 행동을 제지하련는 태도를 보였으나 실제로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자, 이제 우리는 하느님께 감사를 드려야 하겠군." 하고 잠자 씨가 말하며 성호를 그었다. 나머지 세 여자들도 그가 하는 대로 따라 했다. 그 때까지 시체를 눈도 때지 않고 바라보던 그레테가 입을 열었다. "저것 좀 보세요. 어쩌면 저렇게 여위었을까요. 하기는 벌써 오래 전부터 아무것도 먹지를 않았어요. 먹을 것을 넣어 주어도 건드리지도 않은 채 그대로 되돌아 나오곤 했어요." 사실 그레고르의 몸은 납작하게 말라붙어 있었다. 이미 다리는 몸통을 받쳐 주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주의를 끌만한 것들이 모두 없어져 버린 지금에서야 비로소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레테야, 잠깐 이리 좀 따라오너라." 쓸쓸한 미소를 띤 채 잠자 부인이 말했다. 그레테는 시체 쪽을 자꾸 뒤돌아보면서 부모님의 뒤를 따라 침실로 들어갔다. 할멈은 방문을 닫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아직 이른 새벽인데도 신선한 공기 속에는 따뜻한 온기가 감돌고 있었다. 어느덧 3월도 말일이 가까워졌던 것이다. 세 명의 하숙인들이 방에서 나와 아침 식사를 찾으며 모두 어리둥절해 했다. 그러나 모두가 그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아침 식사는 어디 있지요?" 하고 우두머리 격인 남자가 할멈에게 불쾌한 듯이 물었다. 그러나 할멈은 아무 말 없이 손가락을 입에 대고, 빨리 그레고르의 방으로 와 보라는 시늉을 했다. 세 사람은 할멈이 시키는 대로 그레고르의 방으로 가서 다소 낡아 보이는 웃옷 주머니에 두 손을 찌르고는 완전히 밝아진 방안에서 그레고르의 시체를 둘러싸고 서 있었다. 그 때 침실로 문이 열렸다. 제복 차림의 잠자 씨가 한쪽 팔은 부인에게 또 한쪽 팔은 딸에게 부축을 받으며 나타났다. 세 사람은 모두 눈물에 젖은 얼굴들이었다. 그레테는 가끔 아버지의 팔에 얼굴을 묻었다. "당장 우리 집에서 나가시오!" 잠자 씨는 이렇게 말하고, 두 여인에게 부축받던 팔로 현관을 가리켰다. "무슨 말씀이신가요?" 하고 우두머리 격인 사내가 다소 놀란 듯이, 매우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른 두 사람은 뒷짐을 진 채로 계속 손을 비벼 대고 있었다. 마치 자신들에게 유리한 언쟁이 한바탕 벌어지기를 즐거이 기다리기라도 한다는 태도였다. "내가 방금 말했던 그대로요." 잠자 씨는 이렇게 말하고 두 여인과 함께 나란히 하숙인들 앞으로 걸어갔다. 우두머리 격인 사내는 꼼짝도 않고 그 자리에 선 채로, 이ㅣ 복잡한 일들을 새롭게 정리하려는 듯이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시다면 나가겠습니다." 라고 말하며, 그는 잠자 씨를 쳐다보았다. 별안간 겸손한 기분으로, 마치 이 새로운 결정에 대해서도 상대방의 승낙을 구하고 싶다는 태도였다. 그러나 잠자 씨는 몇 번인가 눈을 크게 뜬 채 그저 고개를 끄덕여 보일 뿐이었다. 그러자 그는 정말로 곧장 자신들의 방 쪽으로 걸어갔다. 다른 두 사람은 꼼짝도 않고 서서 이들의 대화를 주시하고 있더니, 곧 그의 뒤를 따라갔다. 마치 잠자 씨가 먼저 자신들의 방으로 들어가서 자신들과 그 사내 사이를 가로막지나 않을까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방안에 들어서자 세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이 옷장에서 모자를, 지팡이 통에서 지팡이를 뽑아 들고 무뚝뚝하게 인사를 하고는 아무 말 없이 집을 나섰다. 잠자 씨는 쓸데없는 의심을 하며__쓸데없는 걱정이었음은 곧 알게 되었다__두 여인과 함께 현관의 계단 앞 난간에 기대어 서서, 세 명의 사내가 천천히 차분한 발걸음으로 긴 계단을 내려가면서, 계단을 돌 때마다 한순간씩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이 아래로 내려갈수록 그들에 대한 잠자 씨 가족들의 관심도 점점 사라져 갔다. 밑에서 그들과 반대로 올라오고 있던 정육점의 심부름꾼 한 사람이 그들을 지나쳐 머리에 짐을 지고 거들먹거리면서 계단 앞의 난간을 떠나 홀가분한 기분으로 집 안에 들어왔다. 잠자 씨 가족은 오늘 하루를 휴식과 산책이나 하며 보내기로 했다. 그들은 쉬어야 할 이유가 충분히 있었을 뿐 아니라 반드시 휴식이 필요했다. 그러므로 세 사람은 테이블 앞에 앉아서, 잠자 씨는 지배인 앞으로, 잠자 부인과 그레테는 상점 주인 앞으로 각각 결근계를 썼다. 그 때 마침 할멈이 와서 아침 일이 끝났으니 그만 돌아가야겠다고 말했다. 세 사람은 결근계를 쓰던채로 얼굴도 들어 보지 않고 고개만을 끄덕거렸다. 그러나 그러나 좀처럼 할멈이 돌아가려는 기색이 없자, 그들은 불쾌하다는 듯이 얼굴을 쳐들었다. "무슨 할말이라도?" 하고 잠자 씨가 물었다. 할멈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문 앞에 서 있었다. 마치 가족들에게 무척 반가운 소식이라도 알려 주려 했다가, 상대방이 캐어묻지 않는다면 알려 주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할멈의 모자 위에는 작은 타조 깃털 하나가 거의 수직으로 세워져__예전부터 잠자 씨는 그 깃털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__가볍게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아직도 무슨 일이 남았나요?" 하고 잠자 부인이 물었다. 할멈은 가족들 중에서 잠자 부인을 가장 존경하고 있었다. "네." 하고 그녀는 대답했으나 정다운 미소를 짓느라고 곧바로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이제 옆방에 있는 것을 치워야 할 걱정은 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제가 벌써 다 치워 놓았어요." 잠자 부인과 그레테는 쓰다 만 결근계를 계속 쓰려는 듯이 다시 고개를 수그렸다. 잠자 씨는 할멈이 모든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하려는 것을 눈치채고, 손을 내밀며 단호하게 그만두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할멈은 상대방에게 거절을 당하자, 자신이 해야 할 바쁜 일들을 생각해 내고는 기분이 상한듯한 목소리로, "그럼, 모두 안녕히들 계세요." 하고 말한 후 획 돌아서서 요란스럽게 문을 닫고 돌아가는 것이었다. "저녁에 오면 할멈을 내보내도록 합시다." 하고 잠자 씨가 이렇게 말했으나, 부인도 딸도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간신히 되찾은 마음의 평정이 할멈으로 인해 다시 깨질까 두려웠던 것이다. 두 여인은 일어나 창가로 가서 서로 부둥켜안고 서 있었다. 잠자 씨는 의자에 앉아 몸을 돌려 잠시 두 사람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다가 문득 이렇게 말했다. "자, 그만 이리로 와요. 자꾸 지난 일을 생각하면 무엇하겠소. 이제는 내 생각도 좀 해 주야지." 그녀들은 그의 곁으로 다가가서 잠자 씨를 위로하고는 서둘러 결근계를 썼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함께 나섰다. 수개월 동안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그들은 전차를 타고 교외로 나갔다. 전차 안에는 그들뿐이었으며, 따스한 햇빛이 전차 안으로 비쳐들었다. 그들은 의자에 등을 기대로 편안히 앉아, 앞으로의 일들을 이것저것 상의했다. 잘 생각해 보면 그들의 앞날이 그렇게 어두운 것만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제까지 서로 물어 본 일은 없었지만, 세 사람의 직업은 모두가 괜찮은 편이었고 앞으로도 유망한 직종이기 때문이다. 현재 가장 시급한 것은 한경의 변화이지만 그것은 집을 옮기면 쉽사리 해결될 일이었다. 지금까지 그들은 그레고르가 마련한 집에서 계속 살아왔다. 그러나 세 사람은 현재의 그 집보다 작고, 집세도 싸고, 무엇보다도 위치가 좋고, 전체적으로 실용적인 집이 필요했다. 글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잠자 부부는 차츰 활기를 되찾는 딸의 모습을 바라보며, 딸이 최근 안색이 창백해질 정도의 온갖 근심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고 탐스러운 한 여인으로 성장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잠자 부부는 말없이 시선을 주고받으며, 앞으로 딸을 위해 좋은 신랑감을 찾아 주어야 할 때가 곧 올 것이라 생각했다. 이윽고 전차가 목적지에 도착하자, 그레테는 제일 먼저 일어나 젊고 싱싱한 팔다리를 쭉 뻗었다. 잠자 부부의 눈에는 마치 그 모습이 그들의 새로운 꿈과 아름다운 계획을 보증에 줄 것처럼 느껴졌다. 카프카의 생애와 작품 세계 시대의 풍속을 앞선 상징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1883. 7. 3.~1924. 6. 3.)라는 거대한 문학현상(文學現像)을 다룬 비평사의 끝없는 논의(論議)와 열기는 1059년대의 '카프카 유행'을 불러일으키기에 이르렀다. 오늘날에는 1950년대의 카프카 유행은 사라졌지만, 그의 작품이 주는 매력은 당시에 비해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또한 카프카 연구의 침체를 예견하는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다. 지금까지 그의 신비한 언어 세계에 대한 연구 문헌이 '5천여 권'의 방대한 양에 달하고 있지만 그 논지(論旨)들이 완전한 합의를 보지 못한 상태이다. '카프카, 그는 끝이 없는가'라는 의문이 계속 제기되는 한 카프카 문학에 대한 미련과 사랑은 좀처럼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미련과 사랑에 관계없이 카프카 문학에 대한 연구가 항상 벽에 부딪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카프카의 언어 구조와 표현 세계가 지니는 미로적(迷路的)특성 때문일 것이다. 카프카 문학의 언어와 표현이 미로이듯이, 카프카 문학의 수용사와 비평사 또한 미로사이다. 카프카에 있어서는 미로가 곧 그의 미학(美學)의 전부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카프카에 문하그이 본령을 찾는 것은 피라미드의 전설을 찾는 것만큼이나 풀리지 않는 수수깨끼이다. 카프카가 설계한 피라미드를 발굴하려는 사람들에게는 기존의 많은 연구서들이 그 실마리를 제공해 주리라고 생각하며, 여기서는 그애의 생애의 편린들과 작품 <성 Das Schlob>의 대략적인 줄거리를 소개하여 그의 난해한 작품을 읽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한다. 프란츠 카프카(Kafka는 체코 말로 'Kavka'이기 까마귀를 뜻한다)는 1883년 7월 3일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체코에 정착한 유태인이었는데, 그가 유태인이라는 사실은 프라하 태생이라는 것과 더불어 그의 예술과 사상에 깊은 함수 관계가 있다. 즉, 프랑하에서는 수세기 전부터 독일의 신비주의, 슬라브적 경건성, 그리고 유태의 비교사상(比較思想)이 자유롭게 융합되어 있었는데, 이와 같은 환경과 분위기는 카프카의 사상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또 유태인이라는 혈통적인 숙명은 그의 고독감을 심화시켜서 그의 작품에 반영되어 있으므로, 유태교에 대한 관계는 그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하나의 중요한 관건이다. 그는 선천적으로 허약했기 때문에 늘 질병이 잦았고, 일찍이 폐병으로 각혈했으며, 밤마다 꿈과 불면증으로 고생했다. 만년에는 후두 결핵에 걸려 언어 장애를 일으켜 의사 소통이 되지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만 하더라도 폐병은 마치 오늘날의 암처럼 불치의 천형병이었기 때문에, 그가 안고 있던 질병이 그의 작품 활동에 많는 영향을 기쳤으리라는 것 또한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의 부친 헤르만 카프칸는 인구가 백 명밖에 안 되는 작은 시골 보섹이라는 곳에서 정육점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유태인이 자유를 얻게 되자 그곳을 떠나 프라하로 이주했다. 부친 헤르만은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하여 젊었을 때 잡화 행상부터 시작하여 궁핍을 극복하고 자수 성가하여 직물 도매상을 경영하는 중간 계급으로 상승하였다. 부친 쪽의 형제 자매들은 모두 거대한 체구를 갖고 있었는데, 그이 부친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두 어깨가 떡 벌어진 당당한 체구를 지녔다. 그래서 아들 카프카는 평생 동안 이 부친의 위압적인 풍채에 눌려서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지냈다고 한다. 카프카는 부친에 대해 늘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는데, <아버지에게 드린느 편지 Brif an den Vater>라는 글에 그것이 잘 나타나 있다. 프로이트(Freud)파의 정신 분석학적 입장에서는 부친에 대한 콤플렉스가 그의 작품을 이해 하는 열쇠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장편 <성>을 분석하여 오이다프스 콤플렉스의 증거로 내세오고 있다. 카프카의 외가 쪽은 친가 쪽과는 대조적으로 학자, 종교가, 몽상가, 모험가, 그 밖에도 기인(奇人)들이 많았다. 그의 모친은 얌전하고 온화한 성격에다가 감정이 섬세하고 두뇌가 명석하여 뛰어난 예지로 가득 차 있었으며, 지혜와 재치가 넘치는 여성이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완고하고 봉건 보수적인 남편에 대한 내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카프카의 천부적인 총명한 재질은 주로 외가 쪽을 닮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카프카는 6남매 중 장남이었는데, 남동생 둘이 일찍 죽었기 때문에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여동생 셋(엘리, 발리, 오틀라)과 함께 자랐다. 어린 시절의 그는 성격이 내향적이고 신경질적이며, 어딘지 모르게 어두눈 그림자를 가진 소년이었다. 그의 모친은 온종일 남편의 시중과 어린 여동생들의 뒷바라지로 바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ㅋ아들의 교육은 전적으로 가정 교사와 학교 담임선생에게 맡겨 버릴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그는 소년 시절부터 심한 외로움과 참을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지냈다. 카프카는 유태계였지만 독일계 국민학교를 거쳐 역시 독일계 시립 중고등 학교에 진학하여 주로 독일어로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체코 어에 관해서도 많은 관심과 흥미를 갖고 그 지식을 습득했으며, 체코 문학에 대해서도 많은 이해를 갖게 되고 조예도 깊었다. 1901년 7월 국가에서 길시하는 고등학교 졸업 시험에 합격한 다음 카프카는 프라하에 있는 칼 페르디난트(Karl Fedinand) 대학에 입학하여 법학을 전공하게 되었다. 그가 법학을 택한 것은 부친의 간곡한 소망에 의한 것이었을 뿐, 그 자신은 법관이나 변호사가 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의 원래 희망은 뮌헨 대학에 들어가서 독문학을 전공하는 것이었다. 젊은 시절의 카프카는 젊잖고 몸가짐도 신중했으며, 취미와 오락도 건전한 것을 좋아하였다. 문학 작품에 나타난 것처럼 그의 정신 상태와 성향이 기이하고 엽기적인 것, 병적인고 비정상적인 것으로는 결코 나타나지 않는다. 즉, 젊은 시절의 카프카는 그의 작품이나 일기 또는 편지 등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은 병적이고 극도로 신경 쇠약적이며, 내면적인 실망이나 낙담, 절망, 그리고 열등감, 패배 의식, 피해 망상증에 사로잡힌 인간과는 대조를 이루고 있다. 대학시절의 카프카는 졸라, 헤세, 플로베르, 디킨스의 작품을 일고 감격하고, 토마스 만의 작품 <토니오 크뢰거> 에 매혹되었다. 이어서 그는 에밀 슈트라우스, 빌헬름 셰퍼, 한스 카로사, 헵벨, 폰타네, 슈티프터 등의 작품을 탐독했다. 벤자민 프랭크린과 발작의 작품을 일고 감탄하는가 하면, 극작가 클라이스트를 좋아하여 그의 문체에서 깊은 영향을 받았으며, 만년에는 키에르케고르의 철학에 심취했다. 카프카는 1906년 6월 페르디난트 대학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변호사를 지망하는 학생들을 위산 사법 실습을 마쳤다. 1908년 6월 카프카는 유태인으로서는 파격적으로 프라하에 있는 노동자 재해 보험국에 취직하였다. 그 곳에서 그는 파격적으로 프라하에 있는 노동자 재해 보험국에 취직하였다. 그 곳에서 그는 관료기구의 무자비성, 노동자 재해 보험국에 취직하였다. 그 곳에서 그는 관료기구의 무자비성, 노동자의 가혹한 처우, 비참한 생활을 직접 체험했다. 그 후에 나온 그의 작품 가운데서 그는 풍자와 해학을 섞어서 관료기구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이 당시의 경험이 바탕이 되었다. 그러나 이 동안의 카프카는 자신의 생활을 온통 직장 근무와 창작에만 바친 것은 아니었다.휴일이면 브로트와 함께 교외로 산책하기도 하고 또 파리, 루가노, 바이마르 등지로 여행을 하기도 했다. 때로는 극장이나 음악회에 가서 연극.가극. 음악 등을 감상하는 일도 있었다. 1912년 8월, 카프카는 친구 브로트의 집에서 우연히 베를린에서 온 펠리체바우어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그녀는 르로시아 계와 유태계의 혼혈아로서 체격이 큰 아가씨였다. 현모양처 형의 이 아가씨는 첫 눈에 카프카의 주목을 끌었고, 그 후 그는 그녀를 깊이 사랑하게 된 것이다. 펠리체와의 사랑은 그의 창작에 큰 영향을 미쳐, 그는 계속 새로운 테마를 발견하여 주요한 작품을 창작했다. 이 무렵 <사형 선고>를 비롯하여 <아메리카>의 제1장과 2장, <변신>이 완성되었다. 앞의 본문 중에도 실린 이 <변신>은 카프카와의 애저이 계속되는 가운데도 한 현대인이 변신을 통하여 겪는 소외 과정을 매우 충격적으로 묘사했다. 한편으로 상식을 뛰어넘는 듯한 소재의 선택 역시 글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충격적 공강대를 형성한다. 본래의 자신의 모습을 상실한 채 기능화된 인간으로서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 <변신>은 카프카의 문학 세계를 좀더 확실하게 표현한 작품 중의 하나이다. 펠리체와의 애정이 계속되는 가운데도 한 현대인이 변신을 통하여 겪는 소외 과정을 매우 충격적으로 묘사했다. 한편으로 상식을 뛰어넘는 듯한 소재의 선택 역시 글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충격적 공감대를 형성한다. 본래의 자시느이 모습을 상실한 채 기능화된 인간으로서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 <변신>의 내용이 주는 사색의 영역은 무한히 깊고도 넓다. 그러나 펠리체와의 관계가 언제나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그녀와의 관계가 급속도로 진전하여 1914년에는 약혼할 단계까지 이르렀는데, 갑자기 그것을 파혼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카프카는 결혼이 자신에게 있어 딜레마이고, 마지막 구제인 동시에 소름이 끼치도록 무섭고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도 절망한 나머지 그와의 관계를 끊으려고 했다. 그러나 동시에 카프카는 그녀가 없으면 스스로 파멸해 버린다고 주장하고, 그녀와의 관계를 끈질기게 계속하려고 했다. 이와 같이 그녀와의 관계를 단절, 부활을 거듭하면서 3번이나 약혼했다가 결국 모두 파혼해 버리고 만다. 펠리체와 관계를 맺는 동안 카프카는 양친의 집을 나와 독립해서 생활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1915년 2월에 셋방을 얻어 양친의 집을 나왔다. <심판>의 원고는 점차 진전되었지만 그는 심한 두통과 불면증으로 고생했다. 당시 그가 탐독했던 서적들은 성경과 스트린베리, 도스토예프스키, 파스칼, 크로포트킨과 키에르케고르 등의 작품들이었다. 1917년 8월, 카프카는 처음으로 각혈을 했는데, 그 자신은 각혈의 원인이 정신적인 것에서 온 것이라고 주장하여 의사에게 진찰받는 것조차 거부했다. 브로트의 권유로 진찰을 받은 결과, 3개월간의 요양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요양소에 가는 것을 거부하고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막내 누이동생 오트라가 살고 있는 취다우로 가서 시골의 대자연 속에서 요양했다. 장편<성>에 나오는 마을의 상황 그중에서도 농민들의 모습은 바로 이취라우의 풍토가 소재가 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이 때 페리체와의 관계는 완전히 단절되고 말았다. 카프카의 취라우 체류는 폐병이 치료에 퍽 좋은 결과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후 병세는 다시 악화되었다.병세의 악화에도 불구하고, 단편 <시골 의사>를 비롯하여 <유형지에서>를 출판했다. 1919년 가을에는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를 써서 부자간의 딱한 사정을 부각시켜 부친에 대한 자기 자신의 의식을 똑똑히 밝히는 동시에, 스스로 최후의 독립적인 입장을 주장하려고 기도했다. 1920년에는 다시 프라하에서 직장에 근무할 수 있었는데, 그 때 그는 동료의 아들 구스타프 야누우와 알게 되었다. 야누우가 기록한 <카프카와의 대화>(1951)는 에카만의 <괴테와의 대화>와 쌍벽을 이루는 대화집으로 카프카와 오스트리아의 국경에서 가까운 티롤 지방의 메란이라는 곳에서 요양하다가 여류 평론가로 활약하고 있던 밀레나 예젠스카여사를 알게 되었다. 그녀가 그의 작품을 체코 말로 번역해 준 것이 인연이 되었다. 그녀는 이성과 정열을 함께 지닌 슬라브계의 체코 명문 출신으로 카프카보다 12세나 연하였지만, 카프카가 폐결핵 환자였던 만큼 그 사랑의 정열은 꺼져 가는 불의 마지막으로 되살아난 불꽃과 같았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에른스트 폴라크라는 유태계 은행원인 남편이 있었기 때문에 2년간이나 열렬했던 두사람의 사랑은 비련으로 끝나고 말았다. 카프카가 그녀에게 보낸 편지를 모은 <밀레나에게 보내는 편지>가 나중에 출판되어<카프카와의 대화>와 함께 카프카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밀레나를 사랑하게 된 시기를 전후해서 그의 병세는 더욱 악화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카프카는 1922년 3월 15일, <성>의 첫부분을 브로트에게 읽어 주었다. 브로트는 밀레나가 <성>에 나오는 프리다의 모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1923년 7월 그는 부친과 전적으로 인연을 끊고 도라와 함게 베를린에서 동거하기로 결심하고 프라하를 떠났다. 부친이 지배하는 전제적인 가정으로부터 독립하여 그이 세력권을 벗어나려고 열망하고 있었던 카프카의 숙원이 비로소 달성되어 두 사람은 베를린 교의 슈테글리츠라는 곳에 거주했다. 비록 신체는 극도로 쇠약하고 건강은 말이 아니었지만, 카프카는 일찍이 느끼지 못했던 행복을 맛보고 즉흥적인 낙천주의자가 되기도 했다. 창작 활동도 계속하여 <집> (혹은'소굴'로 알려지기도 함), <가수 요제피네>등 몇 편의 단편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에 패방한 독일에는 심각한 인플레이션이 밀어닥쳤다. 때는 마침 겨울이어서 카프카와 도라는 식료품과 땔감 등 생활 필수품의 부족으로 빈고노가 고난 속에서 극심한 고난을 겪었다. 그러나 어렵게 마련한 독립 생활의 보금자리가 간섭과 위협을 받을까 두려워서 그는 부친에게 경제적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24년 3월, 병세가 갑자기 악화되어 프라하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할 수 없이 귀향했다가, 빈의 요양소를 거쳐 클로스터노이부르크 부근에 있는 키를랑요양소에 입원했다. 이 때 목구멍에까지 결핵균이 침범하여 후두 결핵까지 발병하여 그는 대화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이처럼 마지막 요양 시기에 그는 경건한 태도로 의사의 지시에 따랐다. 아마도 도라에 대한 만년의 사랑이 카프카로 하여금 그토록 끈질기게 삶에 대해서 집착시켰던 걱 같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어, 도라가 지켜보는 가운데 문학의 천재 카프카는 1924년 6월 3일 마침내 숨을 거뒀다. 일주일 후, 유해는 프라하에 있는 슈트라슈니츠 유태인 묘지에 매장되었다. 그는 지금도 그 곳 가족묘지에 양친과 함께 고이 잠들어 있다. 카프카의 가족 가운데 누이동생들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나치스에게 체포되어 강제 수용소에서 희생당했다. 그의 만년의 연인 도라만은 구사일생으로 위기를 모면하여 1949년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했다가, 다시 영국의 런던으로 건너가 살다가 그 곳에서 사망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카프카 문학 세계의 배경을 이룬 정신적 풍토를 단적으로 말한다면, 제1차 세계대전 계기로 하는 중산계급의 몰락이고, 충실하고 참다운 삶의 잃은 사람들의 전쟁과 혁명시대에 있어서의 불안과 절망이다. 특히 위기 신학의 입장에서 그를 형이상학적 허무주의자라고 보는가 하면, 카톨릭적 입장에서는 그를 기독교를 믿을 수 없는 유태인의 비극이라고 보기도 한다, 프랑스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직전에 두 사라므이 프라하 출신 작가 카프카와 길케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는데, 그중에도 카프카는 마치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작가인 양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카프카야말로 마르셀 프루스트아 더불어 20세기 후반의 세계 문학에 있어서 거대한 쌍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카프카처럼 현대 작가로서 문학. 철학. 신학. 심리학. 사회학 등 여러 분야에서 토론과 논쟁의 대상이되 문제 작가의 예도 드물다. 카프카야말로 현대인의 정신 상황과 정면 대결한 작가이다. 현대에 있어서 인간은 그 실존으로 말미암아 유죄이기 때문에 인간이 오성의 힘을 빌어 스스로 고독을 극복하려고 모든 통로는 폐쇄되어 있다. 따라서 인간에 관한 한, 실존의 의의는 영원한 수수께끼의 베일에 쌓여 있다. <성(城)> 이 작품은 1922년 1월부터 9월까지 집필되었으며, '고독의 3부작' 가운데 가장 긴 장편이다. 괴테의 <파우스트>에 견주어 '카프카의 파우스트'라고도 불린다. 또한 <성>은 그의 최대 최고의 대표작이고, <아메리타>와 마찬가지로 미안으로 남아 있는 것이 특색이다. 절대적인 율법의 상징인 성(城)에 복종하고 있는 마을이 있다. 토지 측량기사인 K는 성으로부터 초청을 받고 고향의 처자 곁을 떠나 한밤중에 눈이 많이 쌓인 이 마을에 도착한다. K는 초청을 받고 왔지만, 막상 도착해 본즉 어디서 무엇 때문에 이곳에 왔는지 알려지지 않을 뿐더러, 이제는 하룻밤의 잠자리를 얻으려고 마을을 헤매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다음날부터 K는 자기의 임무를 다하기 위하여 성에 도달하려고 모든 노력과 수단을 강구한다. 그러나 마을에서는 토지를 측량할 필요가 없다고 하여, 성으로 들어가려는 K의 노력은 모두 좌절된다. 오히려 K가 성의 실체를 잡기 위하여 애를 쓰면 쓸수록 성은 더욱 짙은 안개 속으로 숨을 뿐이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K를 대하는 태도 또한 한없이 차감기만 하다. K가 만나려고 애쓰는 성의 고위 관리이며 실권자인 클람과는 개인적인 접촉마저 할 수 없다. 성으로부터 성으로의 출두는 '영원히 절대로 불가능하다' 라는 대답을 듣고도 K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 동안 K는 성의 관리들이 주로 드나드는 고급 여관 ' 신사관' 에서 여급으로 일하는 프리다를 사귀게 된다. 그녀는 성의 실권자인 클람의 애인이었다. "프리다 아가씨, 당신의눈은 지나간 과거의 투쟁보다도 앞으로 다가오는 미래의 싸움을 여실히 말해부고 있어요." 하고 K가 말하자, 씩식하고 자존심이 강한 프리다도 마침내 동하게 되어 두 사람은 서로 의기투합해 버린다. 그래서 프리다는 클람을 버리고 K를 택하고, K는 성과 인연을 맺은 야심을 품고 프리다와 성관계를 하게 된다. 그렇지만 여전히 성의 전체가 불가사의한 행정기구를 갖춘 정체불명의 관청이고, 수수꼐끼와 같은 미궁처럼 복잡 기괴한 것이어서, 그 핵심에는 도저히 뚫고 들어갈 수 없다. 일의 목적을 상실한 K가 할일없이 마을을 배회하자 면장은 그에게 국민학교의 소사라는 일자리를 준다, K는 프리다와, K를 감시할 목적으로 성에서 파련한 조수 두 사람을 데리고 국민학교로 입주한다. 그러나 그 곳에서도 K는 국민학교의 남녀 교사들에게 학대를 받는다. 조수들도 K를 웃기려고 할 뿐이고, 그이 지시에는 다르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프리다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는 형편이다. K는 마침내 조수들을 해고하고 그 날 오후에 성의 고위 관리인 소르티니의 추잡한 구애를 거부하다가 온 마을 사람들로부터 졀교 배척을 당하여 고립된다. 그녀의 가족은 절대 권위의 상징인 성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마을의 율법을 어겼기 때문에 종교적인 파문을 당한 상태나 다름없다. 이처럼 성의 마을 사람들에게 미치고 있는 영향과 지배력은 절대적인 것이다. K가 바르나바스 가족과 가까이 지낸다는 사실을 안 프리다는 K를 버리고 떠난다. 그날 밤 K는 성으로부터 소환되어 클람의 수석 비서인 엘를랑어의 방을 찾아간다. 하지만 문을 잘못 열어 성의 관리인 프리드리히의 비서 뷔르겔의 방으로 들어간다. K는 그와 중요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 극도로 피곤한 나머지 이상스러운 의식 상태에 빠지고 만다. 그러다가 번거로운 의식이 사라지자 K는 자유로움을 느낀다. 다음날 아침 K가 오랜 시간 동안 잠을 자다가 깨어나는데, 그 때 프리다가 여관 술집의 여급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K는 프리다를 대신해서 그동안 여급으로 일했던 뻬삐에게서 K가 프리다를 사랑란 것은 그녀가 클람의 애인이었기 때문이고, 만일에 K가 뻬삐 자신을 사랑해 준다면 서로간에 참다운 행복이 실현될 것이라고 말한다. 뻬삐는 계속해서 K를 유혹하지만 K는 도리어 그녀의 그릇된 생각을 지적해 준다. 그 때 마침 여관의 여주인이 들어와서 옷장 가득히 걸려 있는 옷들을 K에게 보여 주면서, "내일 새 옷이 다 되어요. 그러면 당신을 데리러 사람을 보낼는지도 몰라요." 하고 말하면서 이 소설은 일단 미완성으로 끝난다. 그 후의 이야기는 카프카가 친구 브로트에게 이야기한 바에 의하면, 주인공 K는 계속해서 송과 접촉하려고 애를 쓰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을 지경에 이른다. 그리고 '마을에 거주하겠다는 K의 요구는 인정되지 않지만, 어떤 부수적인 사정을 고려해서 이 곳 마을에서 생활하고 일하는 것을 조검부로 허락한다.' 라는 성으로부터의 통지가 K가 임종하는 자리에 도착하게 되어 있었다고 한다. 카프카 소설의 주인공들은 의식 속에서 차안이 아닌 피안적인 완전한 모습, 또는 상(橡)을 간직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자기 자신의 마음 속깊이 뚫고 들어가면 갈수록 스스로의 불안전성이 두려워지고 불안을 느끼게 된다. 이 불안이야말로 자기 자신을 각성한 인간의 참모습이고, 또 그것은 우주에 있어서 인간의 참모습을 자각시킨다. 그것은 또한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실존에 대한 그리고 진리 속에서 생활하는데 대한 동경과 갈망을 가능케 하는 좌표이기도 하다. 이 소설에서도 K는 장면마다 완전한 형상을 갖추지 못하고, 모든 것이 조직적 심리적으로 일관성을 갖고 발전하지 않으며, 오히려 K는 끊임없이 달려드는 난관과 장애와 방해에 부딪친다. 작품 또한 실제로는 별로 발전하지 않고 그저 장면에서 장면으로 옮겨질 뿐이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시간적 순서에 따라서 앞으로 공간적인 형태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이리저리 무질서하고 불규칙적하게 자유와 속박 사이의 절망적인 영역을 수동적으로 움직이며 방황할 따름이다. 카프카는 예술에 있어서의 완벽성을 추구했는데, 완벽한 것에 도달하려는 그의 모든 구체적인 시도는 수포로 돌아갔다. 그럼에도 그의 이러한 노력은 결코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 그의 좌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카프카 소설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어떤 한계상황에 처해 있으며, 그의 소설에는 사건 진행의 밑받침이 되며, 이야기의 구조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되는 시간의 흐름이 결여되고 별로 연광성도 없는 순간만이 존재한다. 그러한 특징적인 설정은 <성>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토지 측량 기사인 주인공 K는 성의 초청으로 마을에 도착하는데, 마을 사람드른 그가 무엇 때문에 찾아왔는지 모른다. K는 이방인으로서 세계 앞에 서는 것이다. 그의 유일한 과제는 어떻게 하면 성으로 대변되는 세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허용되는가 하는 문제다. K가 성의 세계의 진실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이 소설의 제1장 첫째 절이다. K가 마을로 들어가는 다리 위에 서서 무한한 희망을 약속해 주는 것 같으면서도 보이지 않는 성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성의 종소리를 듣는다. 그 순간 마음은 위협을 받는 것처럼 전율을 느낀다. 이 유대를 방해하는 장애는 무한히 있지만, 그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은 결코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것은 K가 미로의 방황 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결정적인 순간이기도 하다. 이 소설이 마을에 도착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도 의미심장한 일이다. K는 성에도 마을 사람에도 속하지 않는다. 시초의 원인과 종말의 결과에 대해서 알 길이 없는 K는 중간의 무한한 지반(地盤)에 자신을 한정하고 과거로 돌아가서 영원한 미래에 눈을 돌린다. 그러나 정처없이 떠도는 자의에 가까운 무한한 자유는 영원한 권위로부터 자유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 K는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자유스런 기분으로 성의 실권자 클람을 대했을 때, 그 자유, 그렇게 기다리는 상태, 그 불가침성 만큼 무의미하고 절망적인 것은 없다고 느낀다. 확실히 인간은 무엇인지 파괴되지 않는 것에 대한 실뢰를 갖지 않으면 살 수 없다. 완전한 것, 최고의 존재에로 다가서려는 카프카의 동경은 소설 <성>에 가장 명료하게 나타나 있다. 이 작품에서 성은 절대권자 또는 신을 상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K는 성의실권자 클람의 애인 프리다를 이용해 성에 도달하려고 시도한다. 프리다는 K에게 클람은 결코 K를 만나 주지 않을 것이라고 하지만, K는 신과 인간과의 질적 단절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 단절은신__세계를 지배하는 율법과 인간 사이의 심연이다. 인간을 지배하는 율법은 모든 이들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고 인간을 지배하는 극소수의 특권층의 독점물이자 비밀이다. 그러나 율법은 세계에의 소속이 허용되기 위한 절대적인 조건이다. 즉, 율법에 따르는 자는 선량한 시민으로 인정하고, 계약에 의한 보증과 은총이 주어진다. 반면 율법에 거부하는 자에 대해서, 세게는 그를 증오하는 자로 낙인 찍은 다음 지상으로부터 추방하여 멸망시켜 버린다. 따라서 율법은 초월적인 것일 수밖에 없고 그것과 인간 무리 사이에는 극복할 수 없는 단층이 놓이게 된다. 카프카의 벗인 브로트는 이 작품에 나오는 성을 신학적 측면에서 '신의 은총'을 상징하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이 작품은 신의 은총을 구하는 인간의 모습을 해명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카프카의 문학을 '신이 없는 문학'이라고도 부르는데, 그것은 신의 존재를 알면서도 신에 이르는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인간의 비극을 뜻한다. <성>에서의 K는 끈질긴 노력에도 불구하고 신의 은총을 받지 못하고 제자리 걸음만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그래서 카프카의 문학 세계를 절망적으로 안주를 갈구하는 '절망의 신학'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한편, 다른 상징성도 있다. 주인공 K는 절대적인 자유를 믿지만, 부자유의 세계 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자유에 대해서 아무 표상도 갖지 못한다. 그는 신의 은총이나 구제를 바라지 않고 그 자신의 권리를 원하고 거대한 조재와의 계약을 희망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기반이 없고 아무데도 정착할 수 없는 K의 입장이야말로 그의 약점이다. 항상 쟈유로워지려고 하는 그는 성이 있는 마을을 근거로 삼아 투쟁을 시작하려는 의지를 불태운다. K가 성에 도전하는 것에 의해서 행해지는 이 투쟁은 인간 내부와 외적 세게와의 투쟁인 동시에, 의식과 인간이 의식할 수 없는 인간 내부__무의식과의 갈등이기도 하다. 혹은 이 작품을 카프카의 정신적 고향인 유태민족의 신에 대한 추억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신에 대한 추억, 이것이야말로 수천 년 동안 유태민족의 생활을 지배한 신조이자 유태인의 골수에 사무친 유태교 및 시오니즘의 정신이기 때문이다. 브로트는 카프카야말로 창작을 통해서 현대 유태정신의 신화를 완성했다고 찬미한다. 하지만 유태인은 이 세계 속에 단 한 뼘의 땅조차도 허용되지 않는 영원한 이방인이다. K는 유태적 영(零)의 존재로서, 세계에 안식처를 구하지 못하는 이방인으로서 세계 앞에 선다. 그의 과제는 어떻게 해서 이 세계로의 입장이 허용되는가이다. 그의 작품이 도착의 장면으로 시작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K의 ㅅ으로부터 소외되어 어떤 세계에도 소속할 수 없는 이방인이다. K가 성 안으로 들어가려고 갈망하는 것은, 어떻게 세계로의 입장이 허용되고 어떤 방법으로 존재의 가치를 확인하느냐의 모색인 것이다. K가 마을에 안주하는 것이 실패로 끝나는 것은, 이방인에게 있어서는 세계를 지배하는 율법에 접근하는 길이 없기 때문이다. 율법은 그 세계의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약속이지만 이방인의 눈에는 전혀 알 수 없는 불가사의한 체계이다. 유태민족뿐만 아니라 현대의 인간들은 모두 이방인이자 세계를 상실한 실향민인 것이다. 카프카는 이 작품에서 신의 은총, 신과의 질적 단절, 원죄의 문제뿐만 아니라, 현대인의 거대한 악마적인 존재와의 무자비한 대겨에서 자멸하고, 자기 자신과의 투쟁에서 자아 분열을 일으켜 좌절하는 모습을 그렸다. 또한 무엇보다도 고독한 실향민__인간의 비애를 상징적으로 묘사했다. 카프카가 파악한 인간 사회의 메니커즘의 문제성은 앞으로 시대가 어떻게 변하더라도 수세기에 걸쳐서 인류가 극복할 수 없는 난제가 될 것이 분명하다. 현대인의 자기 소외, 내면적 고독화, 양심의 위기, 정신적 배경의 물질화 등의 문제는 기계 문명에 의한 인간의 물화(物化)가 극복되지 않는 한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평화가 영속하여 물질적으로 풍요해져서 유복한 복지 사회를 누리게 되면 인간은 무의식중에 타성에 빠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간은 자기 소외의 만성화 때문에 인생의 궁극적 문제와 대결하는 것을 회피하게 되고, 모든 자극에 대해서 불감증을 보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간은 자기 소외의 만성화 때문에 인생의 궁극적 문제와 대결하는 것을 회피하게 되고, 모든 자극에 대해서 불감증을 보일 것이며, 범람하는 물질의 압력하에 인간 정신은 한꺼번에 타도될 위험성마저 도사리고 있다. 자기의 모순을 깨닫고 자기 자신이 되려고 하자마자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는 그 작자에게 무자비하게도 죄인이라는 낙인을 찍는다. 그 수의 인간은 모든 관계를 박탈당하고 생활의 근거를 상실하여 존재의 영(零) 지점인 고독의 지옥 속에 빠져 버린다. 카프카는 전생애를 걸고 비인간화되어가는 인간 구제의 문제에 매달렸다. 그는 환상과 몽상을 통해서 새로운 신화를 창조하려고 시도하고 노력했다. 그는 창작에 의해서 인간의 고독과 절망의 문제를 제기하고, 현대의 인간적 상황에 있어서 영원의 좌표를 제시하려고 했다. 이처럼 카프카의 문학은 20세기의 새로운 신화(神話)를 실현했다는 점에서 그가 문제삼았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깊은 뜻이 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