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변 신 F.카프카 /김재하 옮김 혜원출판사 성(城) K가 도착한 것은 밤이 이슥한 뒤였다. 마을은 깊은 눈 속에 파묻혀 있었다. 성이 있는 산은 전혀 보이지 않았는데 안개와 어듬이 산을 둘러싸고 있었기 때문에 큰 성이 있는 것을 알리는 희미한 불빛조차도 눈에 띄지 않았다. K는 오랫동안 큰길에서 마을로 통하는나무 다리 위에 서서 허허로이 보이는 저편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숙소를 찾아 나섰다. 여관집에서는 아직도 사라들이 자지 않고 있었다. 주인은 빈 방이 없었으나 이 밤늦게 찾아온 손님에 당황한 나머지 K를 식당에 있는 짚방석 위에 재우려고 했다. K는 그 말에 동의했다. 몇 사람의 농부가 아직도 맥주를 마시고 있었으나 K는 아무와도 말을 하고 싶지 않았으므로 다락방에서 몸소 짚방석을 가져다가 난로 가까이에 깔고 드러누웠다. 방은 따뜻하였고 농부들은 조용하였다. K는 피곤한 눈빛으로 그들을 살펴보다가 어느덧 잠이 들어 버렸다. 그러나 잠이 들자마자 깨고 말았다. 도시 사람 같은 옷차림으로 배우 같은 생김새의 눈이 가느다랗고 눈썹이 짙은 한 젊은이가 주인과 함께 K곁에 서 있었다. 농부들도 아직 그 자리에 남아 있었는데 두세 사람은 그 모양을 더 잘 보고 들을 양으로 의자를 돌려놓고 앉았다. 젊은이는 K를 깨운것에 대해 매우 공손히 사과하면서 자신을 성의 집사의 아들이라고 소개를 한 다음 이렇게 말했다. "이 마을은 성의 영지입니다. 여기서 살거나 머무는 사람은 말하자면 성안에서 거주하거나 숙박하는 것이 됩니다. 누구든 백작님의 허가 없이는 그런 일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그런 허가장을 가지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보여 준 일도 없었습니다." K는 몸을 반쯤 일으키고 머리를 단정하게 쓰다듬은 다음, 고개를 들고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내가 길을 잘못 든 모양인데 도대체 여기가 어느 마을인가요? 여기가 성인가요? "그렇습니다. 베스트 베스트 벡작의 성입니다." 하고 젊은이는 천천히 말했으나 여기저기서 K를 수상하게 여기고 머리를 설레설레 흔드는 사람도 있엇다. "그래서 숙박 허가가 필요하다는 거군요?" 하고 K는 물었으나, 상대방이 아까 한 말이 혹시 꿈이나 아닐까 하고 확인이라도 하는 듯한 말투였다. "허가가 없으면 안 됩니다." 라는 대답이었다. 젊은이가 팔을 뻗치고 주인과 손님들에게, "아니 그래 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말인가요?" 하고 물었을 때에는 K를 심하게 조롱하는 듯이 보였다. "그렇다면 나도 허가를 받아와야겠군요." 하고 K는 하품을 하면서 말하고는 일어나려는 듯이 이불을 밀어젖혔다. "그래 도대체 누구의 허가를 얻으려는 겁니까?" 하고 젊은이가 물었다. "백작님에게서지요." 하고 K는 말했다. "그 밖에 달리 받을 길이 없지 않습니까?" "이런 한밤중에 백작님의 허가를 맡아 오신다고요?"하고 젊은이는 외치면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안 된다는 말씀인가요?" 하고 K는 침착하게 물었다. "그렇다면 왜 나를 깨웠지요?" 이 말을 듣고 젊은이는 잔뜩 화가 나고 말았다. "마치 부랑자 같은 태도군 그래! 하고 그는 외쳤다. "백작님의 관청에 대한 존경을 잃지 말란 말이오! 당신을 깨운 것은 지금 당장에 백작님의 영토를 떠나 달라고 말하기 위해서였소." "농담은 그만두시오." K는 유달리 낮은 목소리로 말하고는 벌렁 드러누워 이불을 덮었다. "젊은 친구, 당신은 좀 정도에 지나친 것 같은데요. 당신의 무례한 행동에 대해서는 내일 다시 이야기하기로 합시다. 주인과 여기 있는 분들이 증인이오. 증인이 필요하다면 말이지요.이왕 말이 나온 김에 나는 백작님이 불러서 온 토지 측량 기사라는 것만은 말해 두지요. 내 조수들은 내일 도구를 가지고서 차를 타고 뒤쫓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나는 사실 눈 때문에 오는 시간이 더 걸긴다는 것이 싫었는데 유감스럽게 여러 번 길을 잃어버려서 이렇게 늦게 도착했어요. 성으로 인사 가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라는 것쯤은 당신이 말 안 해도 나도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나는 여기 이런 숙소라도 만족한 것이오. 그런데 당신은 그것마저 방해하는--좋게 말해서--실례를 범했어요. 이것으로써 내 말은 끝났어요. 잠이나 자세요, 다들." 그렇게 말하고 K는 난로 쪽으로 몸을 돌렸다. "토지 측량 기사라고?" 뒤에서 머뭇거리며 묻는 소리가 드리더니 다시 모두들 조용해졌다. 그러나 젊은이는 곧 마음을 가다듬고 주인을 향하여 말했다. "전화로 물어 봐야겠어요." 그는 K가 자고 있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듯이 목소리를 죽였지만, 그러나 K에게도 충분히 들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시골 여관에 전화가 있다니? 참 설비를 잘해 놓았는데. 하나하나 쳐들어 본다면 K를 놀라게 하는 일이었지만 전체적을로 본다면 물론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다. 전화기는 바로 그의 머리 위에 설치되어 있었으나 졸려서 보지 못한 모양이다. 그 젊은이가 당장 전화를 걸려면 아무래도 K의 잠을 방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전화 거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두느냐 마느냐가 문제될 뿐이었다. K는 내버려두기로 결심했다. 막상 그렇게 하기로 하면 자고 있는 체하는 것도 물론 뜻이 없는 일이어서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다. 농부들이 모여 앉아서 수근거리는 것이 눈에 띄였다. 측량 기사 한 사람의 도착도 사소한 일은 아닌 모양이었다. 부엌 문이 열리다니 문이 열리더니 문이 좁을 만큼 건장하고 뚱뚱한 안주인의 모습이 나타났는데 바깥 주인은 그 여자에게 사정을 알리기 위하여 발끝으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이제 전화로 이야기가 시작됐다. 집사들은 자고 있었는데, 하급 집사--몇 사람의 하급 집사 중의 한 사람인 프릿츠 씨가 나왔다. 쉬바르처라고 자기 소개를 한 젊은이는 K를 발견한 경과 보고를 대략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삼십대의 남자로 형편없이 초라한 옷을 입고 있으며,작은 배낭을 베개로 삼고, 마디 있는 지팡이를 가까이 놓고, 짚을 넣은 요 위에서 자고 있었다고 말했다. 물론 그 남자는 자기 눈에는 수상하게 보였으며, 여관 주인이 명백히 이행할 의무를 소홀히 했기 때문에 사태를 밝히는 것은 자기--쉬바르처--의 의무가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 남자는 자고 있는것을 깨웠을 때나, 마땅히 백작님의 영토에서 밖으로 추방되어야 한다고 위협했을 때도, 퍽 무자비하다고 생각한 모양이라고도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가 그렇게 불쾌하게 느낀 것도 아마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라고 하면서,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자기가 백작님에게서 임명된 측량 기사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사람의 주장을 재겁토해 보는 것은 물론 형식상의 의무일 것이며, 그래서 프릿츠 씨에게 부탁 말씀이 있는데, 이런 측량 기사가 정말 오기로 되어 있는지 어쩐지 중앙 사무국에 알아보시고 곧 그 대답을 전화로 연락해 달라는 것이었다. 전화가 끝나자 조용해졌다. 프릿츠는 저쪽 성에서 조회를 하고 있고 이쪽에서는 그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K는 그대로 있었으며 한번도 돌아다보지 않고 거기에 대하여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이 멍하니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악의와 신중성이 뒤섞인 쉬바르처의 이야기는 말하자면 그가 외교적 교양을 몸에 지니고 있음을 엿보게 하는 것이었다. 성에서는 쉬바르처와 같은 부지런한 점에 있어서도 부족하다고 할 수 없었다. 중앙 사무국에서는 야근을 하고 있엇다. 그래서 즉각 대답을 보내온 것이었다. 벌써 프릿츠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성에서의 대답은 퍽 짧은 것이었다. 쉬바르처는 화를 버럭 내면서 수화기를 내동댕이쳤다. "그것 봐, 측량 기사란 새빨간 거짓말이야. 비천함 협잡이 부랑배야. 아마도 더 악질일지도 몰라." 그 순간 K는 쉬바르처, 농부들, 주인 그리고 주인 마누라 할 것 없이 모두들 자기에게도 덤벼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선 덤벼드는 것이라도 피하려고 이불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그 때 또 한 번 전화가 걸려 왔는데, K에게는 이번엔 더 세게 벨이 울린 것 같았다. K는 또다시 천천히 머리를 쳐들었다. 이번에도 K에 관한 전화라고 만은 생각할 수 없었으나 모두들 머뭇거리고 쉬바르처는 전화기 옆으로 돌아와 버렸다. 그는 거기서 상당히 긴 설명을 듣고 있다가 드디어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 "그렇다면 무슨 착오라도 있었던가요? 그것은 불쾌하기 짝이 없는데요. 국장 자신이 전화를 걸었다고요? 그러면 측량 기사에게 무어라고 설명하면 좋을까요?" K는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성에서는 그를 측량 기사로 임명했던 것이다. 이것은 한편 그에게는 불리했다. 왜냐하면 그를 측량 기사로 임명한 이상 성에서는 그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샅샅이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상대방에서는 세력 관계를 계산에 넣고 자신편으로는 대단히 유리한 점도 있다. 그것은 K의 의견으로는 자기가 확실히 성에서 과소 평가를 받고 있으니까 그 때문에 미리부터 기대했던 것보다도 훨씬 자유롭게 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측량 기사의 신분을 승인했다는 사실은 확실히 상대방의 정신적인 탁월성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이것으로써 언제까지나 그를 공포에 사로잡히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잘못이다. 약간 소름이 끼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주춤거리면서 가까이 다가오는 쉬바르처를 K는 손짓으로 못하게 막았다. 주인 방으로 옮기라고 모두들 권유했지만 K는 보기 좋게 거절해 버리고, 주인에게서는 수면제가 될 만한 음료수를, 안주인에게는 비누, 타월과 함께 세숫대야를 받았다. 따라서 이 홀을 비워 달라고 요구할 필요조차 이제는 없어졌다. 만일에 그 다음날이라도 어젯밤 그 자식이라고 얼굴을 익힐까봐 두려워서 모두들 얼굴을 외면하고 부랴부랴 뛰어나가 버렸기 때문이다. 등불이 꺼진 다음에야 그는 비로소 잠을 잘 수 있었다. 뛰어다니는 쥐때문에 한두 번 잠이 깰 뻔했을 뿐 그 다음날 아침까지 느긋하게 깊이 잠들어 푹 쉴 수 있었다. 아침 식사 대금은 역시 K의 모든 다른 요금과 마찬가지로 주인의 신고에 의하여 성에서 지불하기로 되어 있었다. 아침 식사 후 그는 곧 마을로 가려고 했다. 그는 주인의 어제 행동이 생각나서 지금까지 꼭 필요한 용건 이외에는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주인이 잠자코 그의 주위를 돌면서 애원하는 꼴이 보기 딱해서 잠시 도안 자기 옆에 걸터앉게 했다. "나는 아직 백작님을 알지도 못하지만 이런 기술자에게는 보수도 좋다는데 사실인가요? 나처럼 집에서 멀리 떨어져서 일하러 나와 있으면 번 돈을 집에 갖다 주고 싶은 생각도 난단 말이오." 하고 K는 말했다. "그 점에 대해서는 걱정하길 것 없어요. 보수가 나쁘다는 불평은 이제껏 들어 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래요, 나는 겁재이는 아니니까 백작님께 의견을 말씀드릴 수도 있어요. 그러나 다른 분들과도 원만하게 타협해 나갈 수 있다면 물론 훨씬 낮다고 생각하는데요." 이것은 K의 말이었다. 주인은 K와 마주보고 창 옆 벤치 가에 앉아서 감히 더 편안한 자리로 옮기려고도 하지 않고, 갈색 빛을 띈 큰 눈은 불안한 눈초리로 줄곧 뚫어지게 K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가 K에게고 쫓아왔지만 지금은 될 수 있은면 내빼고 싶은 눈치였다. 백작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물어 볼까봐 두려워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K를 점잖은 '신사'라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신사'란 믿을 수 없다고 두려워하고 있는 것일까? K는 주인의 기분이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시계를 보면서 말했다. "이제 조수둘이 올 시간이 되었는데 그들을 여기에 재워 줄 수 있을까요?" "물론이지요. 그러나 그분들도 선생님과 함께 성에서 숙박하시지 않나요? "물론이지요. 그러나 그분들도 선생님과 함께 성에서 숙박하시지 않나요?" "왜,이 사람은 이렇게도 순순히 손님들, 그 중에도 K같은 손님을 단념하고 두조건 성으로 가라고 권고하는 것일까? 이윽고 K는 말을 꺼냈다. "그 점은 아직도 분명하지 않아요. 먼저 내가 어떤 일을 하게 될지 물어 보지 않으면 안 되거든요. 이를테면 성 밑의 이 곳 마을에서 일하게 된다면 여기서 묵는 것이 현명하겠지요. 게다가 위에 있는 성 안의 생활이 내 성미에 안 맞을까봐 염려되니까요. 나는 언제나 자유의 몸으로 있고 싶어요." "선생님은 성을 모르세요." 주인은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 물론이지요. 너무 성급하게 미리 판단해서는 안 되지요. 지금 당장 내가 성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라곤 성 사람들이 옳은 측량 기사를 선발할 줄 안다는 것 뿐이지요. 아마도 성에는 이 밖에도 좋은 점이 있을 거예요." 거기서 그는 불아스럽게 입술을 깨물고 있는 주인을 놓아 주기 위해서 일어섰다. 이 사람의 신용을 얻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K는 떠날 때 벽에 걸려 있는 까만 사진틀 속의 검은 초상화에 주의가 끌렸다. 침대에 드러누워 있을 때도 눈에 띄기는 했지만,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세밀한 부분까지는 똑똑히 알 수 없었다. 그래서 K는 그림 알맹이는 빼아 버리고 다만 뒤에 댄 나무 바탕만 보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자세히 보니까 역시 그림이 틀림없는데, 나이가 오십쯤 되어 보이는 남자 노인의 반신상이었다. 이 노인은 머리를 깊숙이 가슴 위에 수그리고 있는 까닭에 육중하고도 높은 이마와 귿세게 아래로 처진 매부리코가 뚜렷이 드러나 보였다. 뺨에서 턱에 걸쳐서 텁수룩하게 난 수염은 역시 머리를 수그리고 있기 때문에 턱에 짓눌렸으며, 아래에서 헝클어져서 부풀어오른 것처럼 보였다. 왼손은 손가락을 펴고 더벅머리 속에 집어 넣고 있으나 이미 머리를 쳐들 수는 없는 모양이다. "저분은 주구신지요? 백작님이신가요?" K는 초상화 앞에 서서 주인 쪽을 돌아다보지도 않고 물었다. "아니에요, 집사지요." 주인의 대답이었다. "성 안에는 미남자 집사도 계신데요. 버릇없고 형편없는 자식을 둔 것이 유감스럽기는 하지만요." "천만의 말씀이지요." 하고 주인은 말하더니 K를 약간 자기에게로 끌어 잡아당기는 듯하면서 귓속말로 속삭였다. "쉬바르처는 어제 너무 지나치게 굴었지요. 그 사람 부친은 겨우 하급 집사인데요. 그것도 제일 아래지요." 이 순간 K에게는 이 주인이 마치 어린에처럼 느껴졌다. "망할 자식!" 하고 웃으면서 말했으나 주인은 따라 웃지도 않고, "그의 부친도 힘은 있어요." 하고 말했다. "어리석은 소리 하지 말아요. 당신은 누구나 다 권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나도 그렇다고 생각하나요?" K는 쏘아붙였다. "선생님한테 권력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는 은근히 수줍어하면서도 시치미를 떼고 점잖게 말했다. "그러니까 당신은 통찰력이 좋다고 할 수 있어요. 솔직히 말해서 나는 사실 권력이 없어요. 그래서 권력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당신에게 지지 않을만큼 존경하는 마음을 품지만 다만 나는 당신처럼 솔직한 성격은 아니어서 그것을 절대로 고백하려고 하지 않을 따름이죠." K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K는 주인을 위로해 주고 자개에게 한층 더 호의를 갖도록 뺨을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주인도 약간 미소를 지었다. 사실 이 사람은 거의 수염도 나지 않은 부드러운 얼굴을 가진 젊은이였다. 어떻게 해서 이 젊은이가 중년의 뚱뚱보 여편네와 같이 살게된 것일까? 그 여편네가 안이 들여다보이는 창문을 통하여 옆방 부엌에서 양쪽 팔을 팔꿈치까지 쭉 걷어올리고 부지런히 일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K는 그 이상 더 이 사람을 괴롭히려고 하진 않았다. 방긋이 띄운 미소를 사라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주인에게 문을 좀 열라고 눈짓을 하고 맑은 겨울 아침 햇빛 속으로 나갔다. 이제 K의 눈에는 저 멀리 왼쪽으로 맑은 공기 속에 윤곽도 뚜렷하게 성이 보였다. 얇은 눈의 층이 고르게 전면적으로 쌓여 있어서 모든 물건의 형상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고 있었다. 그래서 성의 윤곽은 한층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 좌우간 산 위는 이 곳 마을보다도 훨씬 적게 눈이 쌓여 있는 것 같았다. 마을에서는 어제 걸었던 큰길 이상으로 고생했다. 이 곳에는 눈이 작은 집 창문께까지 닿고 있으며 낮은 지붕 위에 무겁게 덮여 있으나 산 위에는 모든 건물이 자유로이 경쾌하게 솟아 있었다. 적어도 여기서는 그렇게 보였다. 대체로 성은 이 곳 먼 곳에서 보아도 K의 기대와 틀림없었다. 그것은 오래 묵은 기사의 성도 아니고 화려하게 꾸민 저택도 아니었다. 옆으로 퍼진 폭이 넓은 건축으로 몇 개 안 되는 삼 층 건물과 오밀조밀 총총히 서 있는 많은 건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것이 성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지 못했으면 작은 도시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단지 탑 하나가 K의 눈에 띄었으나 주택 건물의 일부인지 그렇지 않으면 교회의 그것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까마귀 떼들이 이 탑을 빙빙 돌고 있었다. K는 계속해서 걸어갔으나 눈은 줄곧 성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밖에는 아무것도 그의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가까이 가보고 나서 그는 적잖게 성에 대해 실망하고 말았다. 아무튼 아주 형편없는 작은 부락이고 시골집이 모요 있는 데 불과할 뿐더러 겨우 사함들의 주목을 끄는 것이라곤 아마도 이 시골집들이 모두 돌로 만들어져 있다는 점 그것뿐일 것이다. 그것도 겉칠은 모두 벗겨지고 돌이 허물어질 지경이었다. K는 언뜻 고향의 작은 도시를 생각해 보았다. 그 고향의 도시도 이런 성에 비하면 거의 손색이 없었다. 단지 성을 시찰하기 위한 것이라면 일부러 긴 여행을 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벌써 오랫동안 가본 적이 없는 고향을 다시 한 번 방문해 보는 편이 더 현명했을지도 모르겠다. K는 고향의 교회의 탑과 저쪽 위에 서 있는 탑을 머리 속에서 서로 비교해 보았다. 서슴지 않고 자신 있게 곧장 하늘을 향하여 뾰족하게 솟아서 넓은 지붕의 끄트머리가 ㅂ은 기와로 끝나는 저 고향의 탑, 그것은 지상의 건물이지만--우리들이 지상의 건물 이외에 다른 것이야 세울 수 있으랴?--그러나 땅ㅇ르 기는 것 같은 가옥들보다는 드높은 이상을 간직하고 있었으며 우울하게 일하는 평일이 지닌 표정보다는 훨씬 밗은 인상을 주고 있었다. 여기에 솟아 보이는 탑은--그것이 단 하나 눈에 띄는 탑이었다. 지금 알았지만 사람의 주택이 디어 있는 탑, 아마도 성의 주요부의 탑으로 단조로운 둥근 건물인데 그 일부를 댕댕이덩굴이 보기 좋게 덮고 있었다. 작은 창문들은 지금 햇빛을 받고 번쩍거리고 있었는데 그것은 어딘지 모르게 미치광이 같은 인상을 주었으며--발코니 모양으로 생긴 것의 끝에는 톱니처럼 뾰족뾰족한 흉벽이 달려 있어서 이것이 겁을 먹거나 또는 방종한 어린에 손을로 그려진 것처럼 불확실하게 불규칙적으로 부서지듯이 푸른 하늘에 울퉁불퉁 윤곽선을 나타내고 있었다. 마치 법의 제재에 의하여 집안의 가장 멀리 떨어진 방에 갑금당해 우수에 잠긴 거주자가 자기 자신을 세상에 내세우려고 하여 지붕을 뚫고 가만히 몸을 일으킨 모습이라고 형용할 수 있을 것이다. K는 다시금 걸음을 멈추었다. 마치 걸음을 멈추어야만 판단력이 더 강해지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는 바로 방해를 받았다. 그가 서 있던 바로 옆에는 마을 교회가 --이것은 단지 예배소에 불과했고 신도들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확장되어서 창고처럼 보였는데--있고, 그 뒤에는 학교가 서 있었다. 임시로 지었다는 것과 아주 낡았다는 인상이 이상스럽게 뒤섞여진 나지막하고 기다란 ㄱㅎ사였는데 이것이 울타리로 둘러싸인 교정 저쪽에 서 잇었다. 이 교정은 지금 그 전체가 눈의 벌판으로 변해 버렸다. 그 때 마침 어린애들이 선생과 함께 나왔다. 어린애들은 웅성거리며 선싱을 둘러싸고 눈초리는 계속 선생을 응시한 채 사방에서 지껄여댔다. K는 그들이 빠른 어조로 말하는 소리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몸집이 작고 어깨 폭이 좁은 젊은 선생은 몸을 아주 꼿꼿이 가누고 있었다.--그래도 그다지 이상그럽게 보이지는 않았느데--벌써 멀리서 K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다만 선생과 어린애들을 제외하고는 눈으로 덮인 이 넓은 벌판에서 K가 단 한 사람의 인간이었다. K는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이 거만하고 왜소해 보이는 사람을 향하여 먼저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하고 그는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어린애들은 금방 이ㅂㄹ 다물어 버렸다. 그렇게 갑자기 조용해진 것이 자기 말을 끄집어내는 계기가 되어서 선생은 은근히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성을 구경하십니까?" 선생은 K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부드러운 어조로 물었다. 그러나 K가 성에 정신팔리는 것을 나무라는 말투였다. "네, 저는 이 곳이 처음입니다. 어제 저녁에 여기에 도착했습니다." K가 이렇게 대답하자, "성이 마음에 안 드십니까?" 선생은 빠른 어조로 물어 보았다. "무슨 말씁이십니까?" K는 약간 당황해서 그렇게 되물어 보고 더 부드러운 어조로 질문을 되풀이했다. "성이 마음에 드느냐고 물으십니까? 왜 마음에 안 든다고 생각하십니까?" "타향 사람에게는 마음에 들지 않습니까." 선생이 대답했다. 상대방의 감정을 해치는 말은 일체 입 밖에 내지 않으려고 K는 화재를 돌려서 물었다. "선생님은 아마 백작님을 아시겠지요?" "모릅니다." 선생은 말을 던지고 가버리려고 했다. 그러나 K는 악착같이 또 한 번 물었다. "그래 백작님을 안다고 생각하십니까?" 선생은 나지막한 소리로 묻고, 그 다음에 음성을 높여서 프랑스 말로 덧붙여서 말했다. "순진한 어린애들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 좀 해 보십시오." 그 말을 듣자 K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의젓하게 물었다. "선생님, 언제 선생님을 방문해도 좋습니까? 저는 한동안 이 곳에 머물기로 되어 있지만, 지금 벌써 고독하고 쓸쓸한 느낌이 듭니다. 저는 농민의 벗도 아니고, 그렇다고 성 사람도 아닙니다." "농민과 성 사람 사이에는 그다지 큰 차이점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선생은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그렇다고 해도 제 상태는 조금도 변함없습니다. 언제 한번 방문해도 좋습니까?" "나는 백조 거리에 있는 정육점에 살고 있습니다." 그것은 초대라기보다는 오히려 주소를 알려 준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K는, "알겠습니다. 찾아가 뵙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선생은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곧 다시 고함을 지르기 시작한 어린애들을 데리고 멀리 가버렸다. 그들은 어느덧 험한 비탈길 아래로 사라져 버렸다. 한편 K는 방심한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 이 대화가 약간 기분 나빴다. 그는 여기에 도착한 이래로 처음으로 절실한 피로를 느꼈다. 여기까지 먼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지ㅊ다고 전혀 생각되지 않았다. 그는 하루하루를 얼마나 침착하게 한 걸음씩 옮겨 놓았던가!--그런데 하필이면 마침 형편이 나쁜 이 때에 지나치게 긴장한 결과가 나타났다. 그는 새로운 친구를 찾는다는 어쩔 수 없는 욕구를 느꼈지만, 그 새로운 친구가 생길 때마다 그의 피로는 더 심해졌다. 그의 오늘과 같은 상태로서는 성의 입구까지 역지로 산보 코스를 뻗치는 것만 하더라도 상당한 고역이었다. 이렇게 그는 또 앞으로 걸어왔다. 그 길은 기다랗게 뻗쳐 있었다. 큰길, 즉 마을의 큰길은 성이 있는 산으로 통하고 있지 않았다. 단지 성이 있는 산에 가까이 접근하는 듯하면서 사실은 짓ㄱ게 구부러지곤 했다. 하여튼 성에서 멀어지는 것은 아닌데 그렇다고 도무지 가까워지는 것도 아니었다. 나중에는 이 길이 틀림없이 성으로 구부러져 들어갈 것이라고 K는 끊임없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희망을 품고 있었 때문에 그래도 앞으로 걸어가는 것이었다. 그는 너무나 지쳤기 때문에 오히려 이 길을 단념해 버릴수가 없었다. 한없이 기다랗게 뻗친 이 마을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가도 작은 집들과 얼어붙은 유리 창문과 눈뿐이고 사람의 그림자라곤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드디어 그는 자꾸 달라붙는 큰길에서 몸을 뿌리치고 간신히 접은 골목으로 접어 들었다. 눈은 더욱 깊어서, 쑥쑥 빠져들어 가는 발을 빼기가 무척 어려웠다. 땀이 많이 흘러서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으나 그 이상 한 발짝도 더 내디딜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인가에서 먼 벌판에 우뚝 혼자 서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왼편에도 오른편에도 농가는 있었다. 그는 눈을 공처럼 빚어서 한 농가의 창문을 향하여 던졌다. 곧 문이 열렸다--이것은 그가 마을 길을 걷기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열린 문이었다.--갈색 가죽 점퍼를 입은 늙은 농부가 고개를 갸우뚱 옆으로 기울이고 친절하나 쇠약한 모습으로 문 앞에 서 있었다. "잠깐만 댁에서 쉬게 해 주시겠습니까? 몸이 아주 피곤해서 그럽니다." 노인의 말이 그의 뒤에는 도무지 들리지 않았으나 고맙게도 눈 위로 판자를 내밀어 준 것을 받아 들었다. 그는 이 판자 덕분에 눈 속에서 구울되었다. 두서너 걸음 걸으니까 벌써 방안에 와 있었다. 커다란 방안은 어둠침침하였다. 바깥에서 들어온 사람에게는 처음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K는 세탁통에 걸려서 비틀거렸으나 어떤 여자의 손이 그의 몸을 붙들었다. 어느 구석에선가 어린애들의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 왔다. 또 다른 구석에서는 연기가 뭉게뭉게 서리며 돌고 어스름 속에 검은 그림자를 이루고 있었다. K는 마치 구름 속에 서 있는 것 같았다. 누군지, "술 취한 사람이야!" 하고 말했다. "누구시오?" 이번에는 거만한 소리로 말한 사람이 있었는데 다음에는 먼저 노인에게로 향해서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왜 이 사람을 끌어들였지요? 거리를 방황하는 사람을 죄다 끌어들여도 좋단 말인가요?" "나는 백작님의 측량 기사입니다." K는 이렇게 말하고 여전히 보이지 않는 상대방에 대하여 변명하려고 했다. "아아, 측량 기사군요." 라는 여자 목소리가 나더니 아주 조용해졌다. "나를 아십니까?" K는 물었다. "물론이지." 같은 목소리가 짤막하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K를 알고 있다고 하는 것이 K에 대한 인상이 좋다는 것으로는 생각될 수 없을 것 같았다. 드디어 자욱이 끼었던 연기가 좀 흩어져서 K는 차츰차츰 방안의 동정을 알게 되었다. 빨래하려고 받아 놓은 날인 모양이었다. 문 옆에서 속내의를 세탁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연기는 다른 쪽 구석에서 흘러 나오고 있었다. 거기서는 K가 지금까지 본 일이 없을 만큼 큰 나무통-- 침대 두 개의 부피만한 크기인데--속에 수증기가 자욱한 데서 남자 두 사람이 목욕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사람의 주목을 끈 것은 오른편 구석이다. 다만 무엇이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지 그점은 확실치 않았다. 거기에는 뒷벽에 있는 단 하나밖에 없는 큰 채광창으로부터--아마도 뜰에서인 것 같은데--희미한 눈빛이 비쳐 들어오고 있었다. 깊숙이 방구석에 놓인 키가 높은 안락의자 위에 피곤한 모습으로 앉아서 거의 드러눕다시피 하고 있는 여자의 옷에, 이 눈빛이 방사하여 마치 명주와 같은 광채를 내고 있었다. 여자는 젖먹이를 품에 안고 있었다. 주위에는 애들이 두셋, 언뜻 보기에도 알수 있는 시골애들이 놀고 있었는데, 그 여자가 이 어린애들의 어머니는 아닌 것 같았다. 물론 질병과 피로로 시골 사름들은 헬쑥해 보였다. "앉으시오!" 남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말했다. 얼굴 전체가 털로 뒤덮여져 있었으며, 입은 마냥 벌린 채 거칠게 숨을 쉬고 있었는데 코밑에도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이 사람은 조금 우습게 보이기 위하여 통의 테두리 너머로 나무 궤짝을 가리키자가 K의 얼굴에 더운 물을 튀겼다. 벌써 이 궤짝 위에는 처음에 K를 끌어들인 노인이 멍하니 깊은 생각에 잠겨서 걸터앉아 있었다. 좌우간 걸터앉게 허락해 주어서 K는 고마웠다.이제 누구 하나 그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은 없었다. 세탁통 곁에 있는 기운찬 금발 여인은 일하면서 나직한 소리로 노래부르고 있고, 목욕하는 남자 두 사람은 발을 구르기도 하고 또 몸을 빙 돌리기도 했다. 어린애들이 이 두 사람에게 가까이 가려고 하다가도 번번이 튀는 세찬 물방울에 쫓겨나고 말았다. 그 튀는 물이 K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안락의자에 앉아 있는 여인은 죽은 듯이 기대 앉아서 품에 안은 어린애를 쳐다보지도 않고 우두커니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다. K는 조금도 변치 않는 이 아름답고 애처로운 여인의 모습을 오랫동안응시하고 있다가 어느덧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큰 소리로 부르는 바람에 깜짝 놀라서 눈을 떴을 때에는 그는 곁에 앉아 있는 노인의 어깨 위에 머리를 기대고 있었다. 남자 두 사람은 목욕을 끝마치고 옷을 입고 K 앞에 서 있었다. 그 대신에 어린애들이 금발 여인의 감독하에 더운물 속에서 서로 쫓고 쫓기며 장난치고 있었다. 크게 소리치며 말하는 털보는 이 두 사람 가운데서는 대수롭지 않은 사람 같았다. 이 털보와 비슷한 키에 수염이 훠씬 적게난 또 한 사람은 조용히 생각하는 성격을 가진 말이 적은 남자였는데, 체격도 당당하고 얼굴도 넓적했지만 고개만은 푹 수그리고 있었다. "측량 기사 양반, 미안하지만 당신은 여기 있을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은 그렇게 말했다. "저도 실례할 생각은 아닙니다. 다만 조금 쉬었을 따름입니다. 이젠 다 됐으니 가보기로 하겠습니다." K는 말했다. "틀림없이 이런 대우에 실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에게는 손님을 대접하는 풍습이 없을 뿐더러 손님도 필요 없습니다." 하고 그 사람은 말했다. 잠은 자고 나서 기운도 좀 회복되고 전보다는 귀도 더 잘 들리게 되어서 K는 이 솔직한 말을 듣고 반가워했다. 그는 몸을 움직이는 것도 전보다는 편해져서, 지팡이를 이리저리 한 번씩 짚으면서 안락의자에 앉은 여인에게로 가까이 갔다. 그러고 보니 키도 그 방안에서는 K가 제일 컸다. "물룬이죠. 무엇 때문에 당신네들에게 손님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러나 어쩌다가 손님을 필요로 할 때가 생길 것입니다. 예를 들면 나와 같은 측량 기사를 손님으로 상대할 필요가 있을 때도 생길 것입니다." 하고 K는 말했다. "그런 걸 내가 알게 뭡니까? 그러나 정말로 당신을 초대했다면 틀림없이 당신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은 예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처럼 신분이 천한 사람은 아무래도 규칙대로 지켜나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나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 사람은 천천히 말했다. "원 별말씀을, 나는 당신뿐만 아니라 여기 계신 여러분 모두에게 그저 가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K는 이렇게 말을 끝마치자 새처럼 몸을 훽 돌려서 순식간에 여자 ㅇ에 가 섰다. 그 여인은 피곤한 눈초리로 K를 쳐다보았다. 명주로 만든 투명한 머릿수건이 이마 한가운데까지 덮였으며 젖먹이는 그 품안에서 자고 있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K는 물어 보았다. 멸시하는 듯이, 다만 이 모욕이 K에게 대하는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그 여자 자신의 대답을 대상으로 하는 것인지 확실치 않았으나 그 여인은, "성에서 온 여자예요." 라고 말했다. 모든 것은 순간적인 사건이었다. 당장에 K는 좌우 양쪽으로부터 두 남자에게 붙들려서 끽 소리도 못하고 억지로 문까지 끄려갔다. 그들은 이해시키는 방법으로써 완력이라도 쓰지 않으면 다른 도리가 없다는 눈치였다. 이 꼴을 보고 무엇이 재미있는지 노인은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세탁하고 있던 여자도 갑자기 미친 듯이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한 어린애들 옆에서 큰 소리로 웃어댔다. 그러나 K는 곧 거리로 나왔으며 남자들은 현관 문에서 K를 살피고 있었다. 여전히 눈이 평펑 쏟아지고 있었으나 오히려 좀 밝아진 것 같았다. 털보 남자가 초조하게 외쳤다. "어디로 가실래요? 이쪽은 성으로 가는 길이고,저쪽은 마을로 통하는 길인데." K는 이 남자에게는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약간 뻐기고는 있었지만 이 사람 보다도 상냥해 보이는 다른 남자를 향하여, "당신은 누구시죠? 여러 가지로 폐를 끼친 데 대한 인사의 말씀은 어느분께 드리면 좋겠어요?" 하고 물었다. "피혁 가게 주인 라제만이오. 그러나 당신은 누구에게도 감사할 필요는 없어요." 그 사람의 대답이었다. "그래요. 언젠가 다시 만나 뵐 기회도 있을지 모르겠어요." K가 말했다. "왠걸요." 라고 그 남자가 말했다. 이 때에 털보가 손을 쳐들고 외쳤다. "안녕하세요, 아르투르! 안녕하세요, 예레미아스!" K는 돌아다보았다. 이 마을의 이런 길에도 역시 사람이 나타났다! 성의 방향으로부터 젊은이가 두 사람 오고 있었다. 두 사람 다 키는 중간 정도인데다가 날씨한 편이고 옷차림도 말쑥했으며 얼굴까지 서로 꼭 닮았다. 얼굴빛은 암갈색인데 뾰족한 수염이 유난히도 검어서 그 얼굴빛과는 아주 뚜렷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큰길이 이처럼 눈에 파묻혀서 평편없는데도 그들은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걷고 있었으며, 그것도 보조를 맞추어서 기다란 다리를 내디디고 있었다. "왠일이오?" 털보가 외쳤다. 그들은 무섭게 빨리 걸으며 멈추지도 않았기 때문에 크게 소리지르지 않으면 알아듣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볼일이 있어요!" 그들은 웃으면서 대꾸했다. "어디서요?" "여관집서지요." "나도 여관집에 가는데!" K는 갑자기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고함을 질렀다. 이 두 사람에게 거기까지 데려다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그들과 함께 가봤자 그다지 소득이 있을 것같지 보이지는 않았으나 다만 원기를 북돋우어 주는 좋은 길동무임에 틀림없었다. 그들은 K의 말을 듣고 잠시 고개를 끄덕거렸을 뿐 그대로 지나가고 말았다. K는 여전히 눈 속에 서 있었다. 자기 발을 일부러 눈 속에서 빼서 또다시 조금 앞으로 깊은 눈 속으로 옮겨 놓을 생각은 거의 없었다. 피혁 가게 주인과 그의 동료는 속시원하게 K를 쫓아낸 데 대하여 자못 만족의 빛을 띄면서, 계속하여 K쪽을 돌아다보았다. 그들은 약간 열려 있는 문틈으로 천천히 몸을 밀어 넣는 듯하면서 집 안으로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K는 자기 모도 파묻힐 듯한 눈 속에 홀로 남게 되었다. '내가 아무 목적도 없이 그저 우연히 우뚝 서 있다고 하면 약간 절망할 만한 이유는 되는데.' 이런 생각이 문들 K의 머리 속에서 떠올랐다. 그 때 왼편 오막살이 집에 작은 창문이 열렸다. 닫혀 있을 때는 짙고 푸른 빛으로 보였는데 아마도 눈이 반사된 모양이다. 그 창이 막상 지금 열리고보니 너무나 작은 탓인지 안에서 내다보고 있는 사람의 얼굴 전체가 다 보이지는 않았다. 단지 눈만이, 즉 갈색의 늙은 눈만이 보였다. "저기에 서 있어요." K는 떨리는 여자 목소리를 들었다. "저 사람이 측량 기사야." 남자 목소리였다. 그 남자는 곧 창 옆으로 와서 적이 친절한 목소리로 K에게 물어 보았다. 다만 그의 말투는 마치 자기 짚 앞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조리 해결해 두지 않으면 꺼림칙하다는 듯이 들렸다. "누구를 기다리는 거요?" "누가 썰매를 태워 줄까 하고 기다리고 있어요." 하고 K는 말했다. "여기는 썰매 같은 건 오지 않아요. 탈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어요." "그래도 이 곳은 성으로 통하는 길이지요?" 하고 K는 물어 보았다. "아니, 그래도 여긴 탈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 남자는 무뚝뚝한 말투로 말했다. 그리고 나서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사람은 무슨 궁리를 하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왜냐하면 연기가 흘러나가고 있는 창문을 아직 열어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길이 나쁜데요." K는 이 사람의 궁리를 도와주려고 말을 끄집어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네, 그러게나 말이에요." 하고 대답했을 뿐이다. "원하신다면 제 썰매로 모셔다 드리지요." "부탁해요, 꼭 부탁해요. 요금은 얼마 받겠어요?" K는 기뻐하며 물었다.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 K는 매우 놀랐다. "당신은 하여튼 측량 기사시고 따라서 성에 소속하고 있는 셈이지요. 그런데 당신은 대체 어디로 가시려는 거요?" 그 사람은 설명하는 말투로 나오더니 나중에 그렇게 물었다. "성으로 가지요." K는 재빨리 대다했다. "그러시다면 안 가겠소!" 그 남자는 당장에 대답했다. "그렇지만 나는 성에 소속해 있는데." 하고 K는 그 사람의 말을 되풀이하면서 말했다. "그럴지도 몰라요." 그 사람은 거부하는 어조로 대답했다. "그러면 여관집으로라도 날 데려다 주시오." 하고 K가 부탁하니까, "좋아요, 그러면 곧 썰매를 끌고 올게요." 하고 그 사람은 대답하는 것이었다. 이런 것 모두가 그 사람이 특별히 친절하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K는 이 사람이 일종의 무척 이기적이고 신경질적이며, 아니 거의 고집이 센 그런 노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 그 노력이란 K를 이 집 앞에 있는 빈터에서 내ㅉ아 버리려는 그런 의도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대문이 열리자 좌석도 없는, 소화물을 운반하는 납작하고 작은 썰매가 빈약한 말에 끌려서 나왔다. 그 뒤를 이어 한 남자가 나타났는데 보기에도 약해 보였으며 허리는 구부러지고 다리는 절름거리며 걸었다. 얼굴은 여위고 붉은 빛을 띄고 있었는데 감기 기운까지 겹친 모양이었다. 머리에다 꼭 감은 털목도리 때문에 얼굴마저 굉장히 작게 보였다. 확실히 이 남자는 병자였는데 단지 K를 ㅉ아 버릴 목적으로 병을 무릅쓰고 나타난 모양이었다.K가 이 점에 대하여 넌지시 암시를 주었으나 그 남자는 손짓을 하며 그의 말을 제지했다. K가 들은 바에 의하면 이 남자는 마차꾼 게르스텍커라는 것과, 마침 준비 되어 있었기 때문에 불편하지만 이 썰매로 정했던 것이고 다른 썰매를 끌고 나오다가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지장이 많을 것이라는 그 정도였다. "타세요." 그는 말하고, 말 채찍으로 썰매의 뒤쪽을 가리켰다. "나는 당신과 함께 나란히 앉을 테요." 하고 K는 말했다. "나는 걸어가요." 하고 게르스텍커는 말했다. "그건 또 왜요? K는 물었다. "나는 걸어가요." 게르스텍커는 같은 말을 되풀이했는데 갑자기 기침의 발작으로 몹시 몸이 흔들려서 두 다리를 눈 속에 꼿꼿이 버틴 채 두 손으로 썰매의 모서리를 꽉 붙들고 있지 않으면 안 되었다. K는 그 이상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썰매뒤에 걸터앉았다.기침은 천천히 가라앉았으며 두 사람은 출발했다. K가 오늘중이라도 도착할 수 있다고 희망을 품고 있었던 저 건너편 위에 보이는 성은 이제 벌써 이상스럽게도 어두워진 채 점점 다시 멀어져가고 있었다.이제 당분간 만나지 못하겠다고 작별 인사를 고하는 듯이, 성에서는 즐겁게 가슴을 울렁거리게 하는 종소리가 울려 왔다. 막연한 동경의 대상을 실현시켜 주겠다고 위협하는 듯이--종소리는 또 고통스럽기도 했기 때문에--일순간 마음을 떨리게 하는 종소리였다. 그러나 곧 이 큰 종소리도 잠잠해져 버리고 아마도 위쪽에서 또는 마을에서인지도 모를 약한 단조로운 종소리가 대신 울려 왔다. 그러나 말하자면 지금 울리는 종소리가 느리게 달려가는 썰매나 초라하고 완고한 마차꾼에게 한층 더 어울리는 것이었다. "여보시오!" K는 갑자기 소리쳤다--그들은 벌써 교회 가까이 와 있었고, 여관집까지의 거리도 멀지 않았기 때문에 K는 대담하게 나올 수도 있었다-- "당신 맘대로 나를 이렇게 멀리 끌고 나오더니 언어도단이야. 대체 당신에게 그런 권리가 있어요?" 게르스텍커는 그 소리를 들은 체 만 체, 아주 무관심한 태도로 말과 나란히 걸어갈 뿐이었다. "여봐!" 하고 외치고 나서 K는 썰매 위에서 약간의 눈을 뭉친 다음 게르스텍커의 귀에 보기 좋게 명중시켰다. 그제서야 그는 걸음을 머추고 돌아다보았다. K는 아주 가까운 곳에서 그 사람을 바라보게 되자--마차꾼은 정지했지만 썰매는 그래도 약간 앞으로 미끄러져 나갔다--허리가 구부러지고 어느 정도 학대를 받았다고 말할 수 있는 그 모습, 즉 지칠대로 지치고 마를 대로 마른 붉은 얼굴, 한쪽은 펀펀하고 또 한쪽은 쑥 들어가서 양쪽이 고르지 않은 뺨, 드문드문 이가 두서너 개씩 보이고 멍하니 벌리고 있는 입, 이런 것들이 눈에 띄어서 K는 먼저 악의를 가지고 한 말을 이번에는 동정심을 가지고 되풀이했다. 즉 K를 실어다 주었기 때문에 게르스텍커가 처벌당하는 일이나 없을까 하고 물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뭐라고요?" 하고 게르스텍커는 무슨 영문이지도 모르고 물었으나, 그 이상 더 설명을 들으려고 하지 않고 말을 향해서 소리질렀다. 두 사람은 다시 앞으로 썰매를 몰았다. 2 그들이 여관집 여관집은 길이 구부러지는 곳에서 K의 눈에 띄었는데-- 가까이 왔을 때는 날이 아주 컴컴해져서 K는 깜짝 놀랐다. 그렇게 오랫동안 돌아다녔는가? 기껏 한 시간이나 두 시간밖에 걸리지 않은 것 갖은데 암만해도 이상했다.좌우간 아침 일찍 출발했고 배도 전혀 고프지 않을 뿐더러 조금 전만 하더라도 한결같이 환한 대낮이었는데 이렇게 빨리 어두워진단 말인가. "해가 짧다, 해가 짧아!" K는 중얼거리며 썰매애서 내려 여관집을 향해 걸어갔다. 정면 입구의 작은 계단 위에는 마침 반갑게 여관 주인이 서서 등불을 높이 쳐들고 K 쪽을 비춰 주었다. 문득 마차꾼 생각이 나서 K는 걸음을 멈추었다. 어딘지 컴컴한 곳에서 기침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마차꾼의 기침 소리였다. 가까운 장래에 곧 다시 만날 길회도 있을 것이다. 공손하게 인사하는 주인 옆으로 올라갔을 때 비로소 K는 문 양쪽에 남자가 한 사람씩 서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주인의 손에서 등불을 받아들이고 이 두 사람을비춰 보았다. 먼저 그가 만난 일이 있는 아르투르와 예레미아스라고 부르는 사람들이었다. 두 사람은 군대식으로 경례했다. 군대에 있었던 행복했던 그 시절을 생각하고 K는 웃었다. "자네들은 누군가?" 하고 묻고 나서 한 사람 한 사람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선생님의 조수 입니다." 두 사람은 대답했다. "이분들은 조수예요." 주인은 나지막한 소리로 확인했다. "뭐라고? 나의 그 전부터의 조수, 내가 뒤따라오더라고 한, 내가 고대하고 있던 바로 그 조수들인가?" 하고 K가 물었더니 두 사람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건 참 잘됐어. 자네들이 와 준것은 참으로 고마워." 잠시 후에 K는 말했다. "좌우간 퍽 늦었는데. 자네들은 무척 게으름뱅이야." 하고 K는 다시 얼마가 지난 후에 말했다. "길이 워낙 멀어서요." 하고 한 사람이 말했다. "길이 멀다고?" K는 되받아서 말하더니 이어서, "나는 자내들을 성에서 돌아오는 길에서 만났단 말이야." 하고 말했다. "네." 하고 두 사람은 대답했을 뿐 그 이상 아무 설명도 하지 않았다. "자네들은 도구들도 어디다 두었지?" K가 물었다.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안습니다." 두 사람은 대답했다. "내가 자네들에게 맡겨 두었던 도구 말이야." 하고 K가 말하자,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하고 그들은 되풀이했다. "아아 자네들은 참 답답하군. 그래 측량술은 좀 알고 있나?" "모릅니다. 두 사람은 대답했다. "그러나 자네들이 전부너의 내 조수라면 잘 알고 있을 텐데." K는 말했다. 그들은 잠잠했다. "그렇다면 하여간 들어가게." K는 그들을 집안으로 밀어 넣었다. K가 한가운데 앉고 조수들은 좌우로 갈라 앉아, 객실의 작은 식탁에서 맥주를 마셨는데 세 사람은 모두 별로 말이 없었다. 그 밖에는 어젯밤과 마찬가지로 농부들이 식탁 하나를 둘러싸고 앉아 있을 뿐이었다. "자네들은 참 골치야." 하고 K는 말하고 지금까지 가끔 하던 버릇대로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도대체 어떻게 자네들 두 사람을 구별하면 좋을까? 틀린 것은 이름뿐이고 그 외에는 두 사람이 아주 기막히게 닮았으니, 마치......" 거기서 그는 말이 막혔으나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말해 버렸다. "그 외에는 마치 두 마리 뱀처럼 서로 닮았어." 그들은 빙긋이 웃었다. "그래도 모두들 우리들을 잘 분간하던데요." 그들은 변명했다. "그럴 거야. 나도 직접 목격했으니까. 그러나 나는 내 눈을 가지고 보고 있을 따름이지, 그 눈으로 자네들을 구별할 순 없단 말이야. 그러니까 나는 자네들 두 사람 중에서 하나는 그런 이름일 거야. 아마도 자네지?" 하고 한쪽 남자에게 K가 물었다. "아니오, 예레미아스예요." 그 남자가 말했다. "그것은 아무래도 사관없어. 나는 자네들을 아르투르라고 부를 테니까. 아르투르 어디로 갔다 오라고 하면 자네들 둘이서 갈 것이며, 아르투르, 이 일을 하라고 하면 함께 해야 돼. 나는 자네들을 따로따로 일을 시킬 수 없으니까 대단한 손해야. 그 대신 내가 명령한 모든 일의 책임은 자네들 두 사람이 개별적이 아니라 공동적으로 연대 책임을 지게 때문에 그 점은 유리하단 말이야. 다만 둘이서 어떻게 일을 분담하든지간에 내게는 아무 상관 없단 말이야. 다만 둘이서 서로 책임을 전가하는 일이 있으면 안 되지. 내 눈으로 보면 자네들은 한 사람이나 마찬가지야." K는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한참 생각해 보더니, "그건 기분 나쁜 일인데요." 하고 말했다. "그럴걸세. 자네들도 참 기분 나쁘기는 하겠지만, 그건 그저 그래 두지." 하고 K가 말했다. 좀 오래 전부터 농부 하나가 식탁 주위를 가만가만 발소리를 죽이며 걸어다니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이 농부는 나중에는 무슨 결심이나 한 것처럼 한쪽 조수에게로 가까이 가서 귀엣말로 무엇을 속삭이려고 했다. "미안하지만." K는 손으로 식탁을 치고 일어나면서 말했다. "이 사람들은 내 조수고, 지금 의논하고 있는 중이오. 아무도 우리를 방해할 권리는 없는 거요." "아아, 네, 실례했습니다." 하고 농부는 겁을 먹고 말하더니 뒷걸음질로 자기 동료 있는 곳으로 물러갔다. "이 점을 무엇보다도 주의해 주어야 해." 하고 K는 다시 앉으면서 말을 끄집어냈다. "자네들 두 사라은 내 허가 없이 아무하고도 이야기해선 안 된단 말이야. 나는 이 땅이 타향이고, 자네들도 과거의 내 조수라면 피차 타향 사람이긴 마찬가지지. 그러니까 우리들 타향 사람 셋은 단결하지 않으면 안 돼. 그런 의미에서 내개 맹세한다는 악수를 해 봐." 기뻐 날뛸 듯이 그들은 곧 K에게 손을 내밀었다. "손을 치워! 그러나 내 명령은 어디까지나 지켜야 돼. 나는 이젠 잘 텐데, 자네들도 자는 게 좋을 것 같아 말하는 거야. 오늘은 하루 종일 일을 못했으니까 내일은 아침 일찍부터 일을 시작하지 않으면 안 돼. 성으로 타고갈 썰매를 마련해서 아침 여섯 시면 이 집 앞에서 떠날 준빌 하고 있어야만돼." K가 그렇게 말하자, "네, 알았습니다." 하고 조수 한 사람이 대답했지만, 다른 조수가 끼어들어, "알았다고 너는 말하지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 않나." 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던 K가, "조용히 해! 자네들은 벌써부터 개인 행동을 취하고 싶어하는 모양이군." 하고 말했다. 그러나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첫번 조수가 입을 열고 말했다. "이 친구의 말이 옳습니다. 불가능한 일입니다. 허가가 없이는 타향 사람이 성 안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어디서 그 허가를 신청하면 좋겠나?" "자세히 알 순 없어도 아마 집사에게 할 것입니다." "그러면 전화로 신청해 보기로 하고, 어서 자네들 둘이서 집사에게 전화를 걸어 보게." 두 사람은 전화기 있는 데로 가서 집사에게 전화로 연락하여--그 둘이 거기서 서로 옥신각신하는 광경은 꼴불견이었다. 그들은 다 왜양만은 우스울 만큼 양순했다.--내일 K가 자기들과 함께 서에 가도 좋으냐고 물었다. "안 돼!" 하는 대답 소리가 K가 있는 식탁에까지 들려 왔다. 더욱이 대답 소리는 또렷했다. 곧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었다. "내일도 안 되고 다른 날도 안 된다고!" "내가 직접 이야기해 보지." K는 그렇게 말하며 일어섰다. 조금 전에 농부 하나가 일으킨 그 사건을 제외하고는 이 때까지 K와 조수 두 사람에 대하여 아무도 거의 주의하지 않았다. 그런데 K가 일어서며 던진 한 마디 말이 모든 사람의 주목을 끌었다. 거기 있는 사람들이 모두 K와 함께 일어나서 주인이 말리려고 하는 것을 듣지도 않고 전화기 옆에 모여서 K를 삥 둘러쌌다. 그들 사이에서는 K가 아무런 대답도 얻지 못하리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K는 그들의 의견을 듣고 싶어하는 것은 아니니 조용히 해 달라고 부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화기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울려 왔는데, K는 지금까지 그런 전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마치 수많은 어린애들의 떠들썩한 소리 같았는데--그런데 이것은 사실 소음은 아니고 머나먼 곳에서 들려 오는 노랫소리였다--이런 소음에서 말하자면 불가능한 방법으로써 높고도 센 한 소리가 이루어지는 듯하였다. 또 귓전에 울리는 이 소리가 단순히 빈약한 청각에 도달하는 것보다는 더 깊은 곳으로 침입할 것을 요구하는 것 갓았다. K는 전화를 걸지도 않고 단지 수화기에 귀를 기울였다. 왼팔을 전화대 위에 버티고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K는 알 수 없었다. 드디어 주인이 옷을 잡아당기며 하인이 왔다고 알려 주었다. "귀찮아!" K는 참지 못해 큰 소리를 질러 버렸다. 아마도 전화통 속에다 대고 외쳤던 모양이다. 저쪽에서 누군지 대답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음과 같은 대화가 계속되었다. "나는 오스발트인데 당신은 누구십니까?" 하고 물어 왔다. 엄숙하고 거만한 목소리였는데 약간 발음을 잘못하는 곳이 있는 것처럼 K에게는 느껴졌다. 정도에 지나치게 한층 더 그 엄숙성을 과장함으로써 발음의 과오를 살짝 감추려고 하는 것 같았다. K는 자기 이름을 대는 것을 주저하고 있었다. 전화에 대해서는 이쪽은 무방비 상태이고 상대방은 자기에게 공갈 협박할 수도 있을 뿐더러 제멋대로 수화기를 놓아 버릴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K로서는 그래도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길이 차단되어 버리는 셈이다. K가 머뭇거리고 있으니까 상대방은 초조해졌다. "댁은 누구십니까?" 하고 상대방은 되풀이하더니 덧붙여서 말했다. "댁에서 그렇게 너무 자주 전화를 걸지 않도록 해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조금 전에도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K는 이런 불평에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갑자기 이렇게 이름을 댔다. "나는 측량 기사의 조수입니다." "어떤 조수지요? 어느 분의? 어떤 측량 기사시죠?" K는 문득 어제 전화 이야기가 머리에 떠올랐다. "프릿츠에게 물어 보시구려." 그는 짤막하고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설마하고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이 말의 효과는 있었다. 그런데 그 효과가 있었다는 것보다는 성 안의 일이 통일성과 조직성을 가지고 움직이는 데는 한층 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대답이었다. "알겠습니다. 영원한 측량 기사시군요. 네에, 네, 그리고 또 무슨 말씀이시죠? 어느 조수이신지?" "요제프." 하고 K 는 말했다. 뒤에 있는 농부들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약간 방해가 되었다. 농부들은 K 가 정말로 자기 이름을 대지 않기에 틀림없이 불만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런 자들을 상대할 시간 여유라곤 전혀 없었다. 전화 쪽이 더 그에게는 중요해서 온 신경을 집중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다. "요제프?" 하고 되물어 왔다. "조수들의 이름은--잠시 동안 누군지 다른 사람에게 그 이름을 묻고 있는 모양이다--아르투르와 예레미아스지요." "그 사람들은 새 조수요." 하고 K가 말하니까, "아니 옛날부터 오리된 조수지요." 하고 대답했다. "그들은 새 사람들이오. 나는 오래된 조수고, 측량 기사의 뒤를 쫓아와서 오늘 도착했어요." "아니오!" 드디어 상대방은 외쳤다. "그러면 내가 누구란 말이오?" 하고 K는 지금까지처럼 태연하게 물었다. 그리고 잠시 시간이 지난 후에 같은 목소리로 같은 발음의 과오를 범하면서 말했다. 그러나 마치 다른 사람처럼 깊이와 무게를 가지고 있는 음성이었다. "당신은 오래된 과거의 조수야." K는 그 음성에 기울이고 있다가 하마터면 질문을 미처 못 알아들을 뻔했다. "용건은?" 하고 묻는 질문이었다. K의 기분으로는 될 수 있으면 수화기를 놓고 싶었다. 이런 대화에는 아무런 기대도 가질 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만둘 수도 ㅇ어서 할 수 없이 물어 보았다. "우리 주인은 언제 성으로 들어가게 되겠습니까?" "절대로 불가능하지." 이것이 대답이었다. "좋습니다." K는 말하고 나서 수화기를 놓았다. ㅜ뒤에 있던 농부들이 벌써 아주 가까이 바짝 다가왔다. 조수들은 힐끔힐끔 K족을 곁눈질해서 쳐다보면서 이 농부들을 멀리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러나 그 꼴이란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사실 농부들도 이 전화 문답의 결과에 만족하여 천천히 점잖게 물러갔다. 그때 뒤에서 농부들의 무리를 헤치고 남자 한 사람이 빠른 걸음으로 가까이 와서, K 앞에서 허리를 구부리고 인사하더니 편지를 한장 내주었다. K는 그 편지를 손에 든 채 그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바로 이 순간 K의 눈에는 그 사람 자신이 더 중요한 것처럼 보였다. 그 사람과 조수들 사이에는 꽤 닮은 점이 많았다. 몸이 날씬한 것도 조수들과 같고, 착 붙는 팽팽한 옷을 입고 있는 것도 꼭 같을 뿐더러 동작에 절도가 있고 민첩한 점도 신통하게 같았다. 그러나 완전히 다른 점도 있었다. '저 조수 두 놈 대신에 이 친구를 조수로 썼으면 좋겠군.' 하고 K는 생각했다. 그 사나이에게는 먼저 피혁 가게 중인의 집에서 본 일이 있는 젖먹이를 안고 있던 여자를 상기시키는 점이 약간있었다. 그는 거의 흰색에 가까운 옷을 입고 있었다. 물론 명주옷은 아니고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겨울 옷이었지만,마치 명주옷처럼 부드럽고 장중하게 보였다, 그의 얼굴은 환하고 명랑 하게 해 주었다. 이 미소를 쫓아 버리려는 듯이 그는 얼굴 위로 손을 가져갔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자네는 누구지?" 하고 K가 물으니까, "바르나바스라고 부릅니다. 심부름꾼이에요." 하고 대답했다. 말을 하느라고 입술을 움직이는 모양이 씩씩하면서도 부드럽게 보였다. "여기가 어때?" 하고 묻고 나서, K는 자신이 아직 조금도 흥미를 잃어버리지 않은 농부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 농부들은 마치 많은 괴로움을 겪은 듯한 얼굴로-정수리를 얻어맞아서 납작하게 짜부러진 것처럼 보이며, 또 그 맞고 짜부라지는 고통속에서 얼굴의 표정이 이루어진 것 같았다. ___그들은 부푼 듯한 입을 벌인 채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때로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그의 눈초리는 가끔 엉뚱한 곳을 방황하다가 제자리로 돌아오기전에 무엇인지 쓸데없는 물건에 솔리곤 했기 때문이었다. K는 조수들 쪽을 가리켜 보았다. 조수들은 서로 껴안고 서로 뺨을 댄 채 빙그레 웃고 있었는데, 공손한 것인지 또는 조롱하는 행동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K는 이 사람들 전부를 마치 무슨 특수한 사정이라도 있어서 자기에게 억지로 떠맡겨진 심부름꾼을 소개하는 것처럼 바르나바스에게 보여 주었다. 동시에 바르나바스가 자기와 이들과를 똑똑히 구별하여 그 차이점을 인식해 줄 것을 바라고 있는 것 같았다. 또 거기에는 친밀성이 깃들여 있었는데 그것이 K에게는 대단히 중대한 일이었다. 그런데 바르나바스는__무척 순진하기 때문이라는 것은 언뜻 보기에도 알 수 있었으나__이 질문은 전혀 상대도 하지 않았을 뿐더러 잘 교육을 받은 하인이 주인에게 단지 건성으로 명령받은 말에 복종하는 것처럼 주인의 질문에 대해서 예의상 주위를 돌아보았다. 낯을 아는 농부에게는 손짓으로 인사하는가 하면 조수들과는 두서나 마디 말을 주고받았다. 그 모든 언행은 자우그럽고 자주적인 태도여으며 이들과 함부로 어울리지는 않았다. K가__퇴짜맞은 셈이지만 부끄럽게 생각하지는 않았다.__손에 든 편지를 뜯고 펴보니까 다음과 같은 사연이 실려 있었다. '삼가 말씀드립니다. 귀하가 잘 아시는 바아 같이 위하는 영주이신 백작의 성의 근무하도록 채용되셨습니다. 귀하의 직속 상관은 이 마을의 면장이고 면장이 귀하에게 대하여 업무와 보수 조건에 관한 사항을 상세하게 통지 하도록 되어 있는 동시에, 귀하도 면장에게 대하여 보고할 의무를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 본관도 늘 귀하의 언동을 감시하는 바입니다. 이 서한의 전달인 바르나바스는 귀하의 요청을 알아보고 본관에게 보고하도록 때때로 귀하를 방문할 예정입니다. 본관은 언제나 가급적 귀하의 신청에 응할수 있도록 준비를 갖추고 있으니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좌우간 근로자에게 만족을 주는 것을 본관의 본분으로 생각합니다.' 서명된 글자는 읽을 수 없었으나 그 옆에 'X처 장관' 이라는 인쇄 문자가 있었다. "좀 기다리시오!" K는 벌써 인사하고 나가려는 바로나바스에게 말했다. 그리고 K는 주인을 불러서 자기 방을 보여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잠시 혼자 이 편지의 내용을 연구하고 싶었다. 바르나바스에게 대해서는 퍽 친근감을 느꼈으나 좌우간 단순한 심부름꾼에 불과한 것을 생각하고 맥주를 대접하도록 시켰다. 바르나바스가 그 맥주를 어떤 태도로 받아들일 것인가 하고 K는 주목했는데,그는 확실히 만족한 모양을로 당장에 들이켰다. K는 주인과 함께 식당을 나왔다. 원래 이 작은 여관들 속에서 K에게 배당할 수 있는 방이라곤 좁은 다락방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 아닌게아니라 하녀들을 쫓아냈다 뿐이고, 그밖에 방안이 달라진 것이라곤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시트도 덮여 있지 않은 침대 하난가 놓여 있고 쿠션 두서너 개와 말 안장 덮개가 있을 뿐인데 이 모든 것들이 어젯밤부터 흩어져 있던 그대로의 상태로 남아 있었다. 벽에는 두서너 장의 성자의 그림과 군인들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통풍이 되도록 방안이 걸계되어 있지도 않았다. 확실히 여관 사람들은 새 손님이 오래 묵지 않기를 바랐으며, 따라서 붙드는 눈치라곤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나 K는 그 눈치를 다 알아차리고 이불을 몸에 두른 다음 책상에 앉아서 촛불빛에 또 한 번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편지의 내용은 일관된 것은 아니었다. 개인의 자유과 의지가 인정되어 있는 자유인에게 대하는 것처럼 K에게 말을 걸고 있는 구절도 있었다. 편지의 겉봉이 그렇고, 또 그의 희망에 관한 구절도 그랬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터놓고 또는 은연중에 K가 그 장관의 자리에서 보면 거의 눈에 띄지 않는 하찮은 한 노동자로서 취급되어 있는 구절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또 한편 명분상 장관이, '언제나 그의 행동을 감시하도록' 노력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그의 상관은 기껏해야 이 마을의 면장에 지나지 않을 뿐더러, 그는 그 면장에게 보고할 의무까지 지고 있다. 또 그의 유일한 동료라야 마을의 경찰 정도일 것이다. 그것은 의심할 여지도 없는 모슨이다. 틀림없이 계획적이라고 생각될 만큼 너무나 명백하게 드러나 보이는 모순이다. 틀림없이 계획적이라고 생각될 만큼 너무나 명백하게 드러나 보이는 모순이다. 관청의 결단성 없는 태도로 작용되어 이런 모순이 빚어졌다고 하는, 관청에 대한 허무맹랑하고도 어리석은 생각은 K의 머리에 떠오르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는 그 속에 공연하게 제공되어 있는 선택의 자유를 보았다. 다시 말하면 그가 이 편지의 명령에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즉 어쨌든 표가 나기 마련이지만 성과 관련성을 가지고 있는 마을의 노동자가 되려고 하는가, 그렇지 않으면 사실 어떤 일이든지 바르나바스가 갖다 주는 통지에 의하여 결정짓는 그러한 외양으로만의 노동자가 되려고 하는가, 이 선택이 K에게 맡겨져 있었다. K는 선택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만일 지금까지의 경험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주저하지 ㅇ았을것이다. 되 수 있는 한 성 안의 사람들에게 멀리 떨어져서 마을의 노동자로서 머무르는 경우에 있어서만이 그는 성 안의 그 무엇에 도달할 수 있다. 아직도 그를 조금도 믿지 않는 마을 사람도, 가령 벗이 아닐지라도, 마을의 백성으로서 그들의 반려가 되었을 때 비로소 말을 걸어올 것이다. 또 언젠가 그가 게르스택커나 라제만과도 구별할 수 없는 인간이 되면__그러고 보면 빨리 그렇게 될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일 전체가 그것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__그 때면 틀림없이 모든 길이 한꺼번에 K 앞에 열릴 것이다. 그 길이란 성 사람이나 그 은총에게만 맡겨 두면 차단될 뿐만 아니라 눈에도 보이지 않게 될는지도 모를 것이다. 물론 위험성은 있다. 그 점은 편지 속에서도 충분히 강조되어 있을 뿐더러 빠져나갈 수 없는 것이라는 듯한 어떤 일종의 기쁨을 가지고 표현되어 있다. 위험성이란, 즉 노동자의 신분을 말한다. 근무, 윗사람, 노동, 임금 규정,보고, 노동자, 이와 같은 말로써 편지는 가들 차 있었다. 그리고 다른일, 개인적인 일이 언급되는 경웅에도 항상 그 관점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만일 K가 노동자가 되려고 하면 가능한 일이지만 단지 그 때에는 다른 것이 된다는 희망은 다 희생시켜 버려야 하는그야말로 소름이 끼칠 만큼 심각하고도 진지한 이야기다. K는 자기가 현실적인 강제의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아닌게아니라 그는 일반적으로 현실적인 강제 같은 것을 무서워하지도 않았으며, 이 경우에는 거의 아무런 공포도 품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기상을 꺽어 버리는 환경이라든지 실망 낙담에 젖어 버리는 것, 순간순간의 눈에 띄지 않는 영향, 이런 것들이 지니고 있는 무서운 폭력을 그는 두려워했다. 그러나 그는 이런 위험성과 감히 대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편지에는 또한 만일 싸움이 벌어진다면 뻔뻔스럽게도 싸움을 건 책임이 K쪽에 있다는 사실까지도 언급되어 있었다. 다만 이것은 미묘한 표현으로써 언급되어 있었으므로 편안치 않은 양심만이__편안치 않은 양심뿐으로 나뿐 양심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__깨달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를 채용해서 근무시키는 데 관해서도, '귀하가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라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K는 이미 자기 이름과 도착했다는 사실을 신고해 놓았는데, 벌써 이 때부터 편지 속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자기 자신이 채용된 사실을 알고 있었다. K는 벽에 걸려 있는 그림을 하나 떼고 그 못에 편지를 꽂았다. 이 방에서 묵게 되는 이상 편지는 이 곳에 걸어 두기로 작정했다. 그리고 나서 K는 식당으로 내려갔다. 바르나바스는 조수들과 함께 작은 식탁 옆에 앉아 있었다. "아아, 자네 거기 있었군." K는 특별한 이유도 없이 단지 바르나바스의 모습을 보는 것이 기뻐서 말했다. 그는 벌떡 일어섰다. K가 이 방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농부들은 일어서서 그에게고 가까이 오려고 했다. 늘 K의 뒤를 쫓아다니는 것이 그들의 습관이 되었다. "대체 자네들은 나를 어떻게 하려고 항상 뒤쫓아 다니는 거야?" K가 외쳤다. 그들은 이 말을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고 천천히 꽁무니를 빼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한 사람은 걸어가면서 경솔한 말투로 해명하려는 듯이, "언제나 무엇인지 새로운 것을 듣고 싶어서." 하고 말하며 이상한 미소를 던졌는데, 다른 두서너 사람들도 그에게 호응해서 같은 미소를 지었다. 뿐만 아니라 이 사람은 새로운 것이 맛있는 음식이라는 듯이 자기 입술을 핥고 있었다. K는 타협적인 이야기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들이 자기 옆에서 존경심을 가지고 어려워하도록 하는 것이 좋았을 게다. 그런데 그는 바르나바스는 옆에 앉자마자 목 뒤에서 농부의 입김을 느꼈다. 이 농부는 소금 항아리를 찾지 않고 그대로 니빼 버렸다. K에게 화를 내게 하는 것은 정말로 쉬운 일이어서, 예를 들면 그저 농부들은 그에게로 덤비도록 하기만 하면 됐다. K에게는 이들의 고집 세고 깐깐한 관심이 다른 사람들의 비타협적인 태도보다는 한층 더 지독한 것처럼 느껴졌다. 뿐만 아니라 관심이라고 하지만 역시 비타협적인 태도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만일에 K가 스스로 그들 식탁 옆에 앉았으면 그들은 그대로 그 자리에 ㅇ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K는 소동을 일을키려고 하다가 바르나바스가 거기 있기 때문에 그만두어 버렸다. 그래도 그는 위협 하는 태도로 농부들 있는 쪽을 돌아보았다. 그들도 이쪽으로 얼굴을 돌리거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이처럼 각자 제자리에 ㅇ아서 서로 이야기도 하지 않고 서로 뚜렷한 관계도 없이 단지 그들이 K를 응시하는 것만을 인연으로 하여 맺어져 있는 것을 보면 그들이 자기 뒤를 ㅉ아다니는 것도 전혀 악의에서 나온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그들은 사실 사실 그에게 바라는 것이 있겠지만 단지 그것을 입 밖에 내서 표현할 수 없는 모양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마도 한낱 순진성에서 나온 짓일 게다. 좌우간 여기서는 순진성이 특색인 것처럼 보였다. 이 집 주인은 손님에게 가지고 가는 맥주컵을 두 손에 든 채 걸음을 멈추고 K쪽을 쳐다보면서, 부엌의 작은 창문으로 상반신을 내밀고 소리를 지르고 있는 마누라의 말을 건성으로 듣곤 했는데 그런 주인 남자도 순진하다고 할 수 없을까? 전보다 더 침착한 마음으로 K는 바르나바스 쪽을 쳐다보았다. 두 조수들을 멀리하고 싶었으나 좋은 구실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조용히 그들의 맥주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편지를 읽었다. 자네는 편지 내용을 아는가?" K는 말을 끄집어냈다. "모릅니다." 하고 바르나바스는 대답했다. 여러 말보다도 눈의 표정이 더 풍부했다. K는 농부들의 대한 악의의 점에 있어서나, 이 남자에 대한 선의에 점에 있어서나 다같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남자가 있어서 기분 좋게 느껴지는 점에는 변함이 없었다. "편지에는 자네 말도 나오지. 즉 자네는 나와 상관 사이를 가끔 왕래하여 통신 연락을 하도록 되어 있어. 그래서 자네도 편지 내용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저는 단지 편지를 전해 드리고 읽으실 때까지 기다린 다음, 필요하시다면 구두 또는 서면으로 회답을 가지고 돌아오도록 명령을 받고 왔습니다." 바르나바스의 말이었다. "좋아, 쓸 필요도 없지. 상관에게 말씀드려서__그분의 성함이 무엇이었지? 사인을 보았으나 알아볼 수가 없었어." K가 말했다. "클람입니다." 하고 바르나바스가 말했다. "그러면 클람 씨에게 채용해 주신 것과 각별한 친절과 호의를 베풀어 주신 데 대하여 감사하고 있다고 말씀드려 주게, 하여간 나는 이 땅에서 아직 아무런 증명도 되어 있지 않은 인물이기 때문에 그런 친절을 대단히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고 전해 주게. 나는 그분이 뜻하는 대로 행동할 거야. 오늘은 다른 요청은 없어." 한 마디 한 마디 빠뜨리지 않으려고 귀를 기울이고 있었던 바르나바스는 부탁받은 말을 K 앞에서 복창해도 좋으냐고 물었다. K가 허라하자, 바르나바스는 K의 말을 전부 그대로 복창했다. 그리고 작별을 하려고 일어섰다. 아까부터 쭉 K는 바르나바스의 얼굴을 살펴보고 있었는데 지금 또 한 번 마지막으로 그 얼굴을 음미해 보았다. 바르나바스의 키는 K와 거의 비슷했다. 그러나 K에게 대해서는 눈을 아래로 뜨고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태도는 어디까지나 공손하고, 이 사람이 다른 누구를 부끄럽게 하는 일은 없을 성싶었다. 물론 이 사람은 단지 심부름꾼에 불과하고 자기가 배달하는 편지 내용도 알지 못했을 뿐더러, 자기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의 눈초리, 미소, 걸음걸이까지도 심부름이라는 신분이 잘 나타나 있었다. 사실 K는 작별하기 위하여 손을 내밀었는데, 이 정다운 행동이 그를 깜짝 놀라게 한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바르나바스는 인사만 하고 그대로 나가 버리려고 했었던 것이다. 바르나바스가 나가자마자__문을 열기 전에 K는 잠시 동안 어깨를 문간에 기대고 어느 한 사람 만을 상대로 하지 않는 듯한 눈초리로 방안 전체를 쳐다보았다__곧 K는 조수들에게 말했다. "방안에서 서류를 가져올 테야. 그리고 우선 일에 대해서 상의하기로 하자." 그들은 함께 따라가려고 했다. "자네들은 여기 있어야 돼!" K가 말했다. 그래도 그들은 여전히 따라가려고 했다. K는 더욱 엄숙한 어조로 명령을 되풀이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데 현과에는 이미 바르나바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지금 막 나갔었는데, 그러나 이 집 앞에도__눈이 다시 퍼붓기 시작했다__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바르나바스!" 하고 불러 보았으나 아무 대답이 없었다. 아직도 집안에 남아 있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다른 가능성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K는 또 한번 있는 힘을 다해서 이름을 불러 보았다. 바르나바스라는 이름이 마치 산울림처럼 어둠 속에 울렸다. 저 먼 곳에서부터 희미한 대답 소리가 들려 왔다. 그리고 보면 바르나바스는 벌써 그렇게 먼 곳까지 가버렸던 것이다. K는 그에게 돌아오라고 소리치고, 동시에 그 사람 쪽으로 걸어갔다. 두 사람이 만난 장소는 여관집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서 그들의 그림자가 전혀 보이지도 않았다. "바르나바스." 하고 K는 말했느데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아직도 자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이쪽에서 성에 무엇인지 부탁할 요건이 있을 때, 자네가 우연히 찾아오기를 하늘처럼 믿고 있다가는 큰 낭패라는 점을 깨달았어. 만일에 내가 다행히 자네의 뒤를 쫓아오지 않았다면__자네는 날으는 새처럼 빠른데, 나는 자네가 아직도 집에 있다고만 생각했어__자네가 다음에 다시 와 줄 때까지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려야 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야." "제가 선생님이 정해 주신 시간에 어김없이 오도록 상관에게 부탁하면 어떻습니까?" 바르나바스의 말이었다. "그래도 충분치는 못해. 아마도 나는 일 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거야. 또 어쩌면 자네가 떠난 지 십오 분도 지나기 전에 긴급하게 전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고." K가 말했다. "그렇다면 제가 상관과 선생님 사이를 연락할 뿐만 아니라 다른 연락 방법도 강구해 달라고 그렇게 상관께 말씀드릴까요?" 하고 바르나바스가 말했다. "아니야, 아니야, 전혀 그렇지 않아. 이것은 단지 겸사겸사 말했을 뿐이야. 오늘 이번만은 다행히도 운이 좋아서 자네를 뒤쫓아왔단 말이야." K가 말했다. "여관으로 되돌아가기로 할까요? 새로운 부탁 말씀을 얻게 될 것이니 말입니다." 하고 바르나바스는 말하면서 벌써 여관 쪽으로 한 발짝을 옮겨 놓고 있었다. "바르나바스, 그럴 필요는 없어. 잠시 자네와 함께 걷기로 하지." K가 말했다. "왜 여관집으로 가시려고 하지 않습니까?" 하고 바르나바스가 물었다. "농부들이 뻔뻔스러운 것을 자네는 눈으로 보지 않았는가. 그자들이 귀찮아 죽겠어." K가 말했다. "둘이서 선생님 방으로 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고 바르나바스가 말했다. "그런데 그 곳은 하녀들 방이야.더럽고 곰팡이 냄새가 나서 숨막힐 지경이야. 그것을 면하기 위해서도 자네와 잠시라도 함께 걷고 싶어. 자네는 그저." K는 자기가 주절하는 기색을 단연코 이겨내기 위하여 스스로 덧붙여서 말했다. "나에게 자네의 팔짱을 끼게 해 주게. 자네의 걸음걸이가 더 확실하니까 말이야." 그렇게 말하고는 바르나바스의 팔에 자기 팔을 끼려고 기대어 보았다.주위는 아주 깜깜해서 바르나바스의 얼굴은 전혀 보이지 않을 뿐더러, 몸 전체의 윤곽조차 희미했다. K는 조금 전에도 그의 팔을 손으로 더듬어서 만져 보라고 했다. 바르나바스도 K의 말에 따라서, 두 사람은 여관집을 등지고 멀리 걸어갔다. K에게는 이렇게 느껴졌다. 즉 자기가 아무리 기를 써 보았자 이 사람과 같은 보조로 걸어갈 수는 업을 뿐더러, 오히려 이 사람이 자유스럽게 걸어 가는데 방해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또 보통 때 같으면 이런 대수롭지 ㅇ은 일 가지고 꼼짝 못할 정도로 녹초가 되어 버리고 틀림없이 뒷골목에서 쓰러졌을 것이다. 오늘 아침도 호젓한 골목길에서 눈 속에 파묻혀 오도 가도 못하였는데, 지금도 바르나바스가 자리를 도와주지 않으면 이 길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고 그렇게 K에게는 이런 걱정을 보기 좋게 물리쳐 버렸다.게다가 바르나바스가 입을 열지 않고 잠자코 있었기 때문에 한결 기분이 가벼웠다. 게다가 바르나바스가 입을 열지 않고 잠자코 있었기 때문에 한결 기분이 가벼웠다. 두 사람은 입을 다물고 걸어갔는데 그러고 보니 바르나바스에게 있어서도 그저 앞으로 걸어가는 것 단지 그것만이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목적이고 보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은 자꾸 걷기만 했는데 K는 어디로 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더구나다나 아무것도 분간할 목표들이 없었다. 벌써 교회 앞을 통과했는지 어쩐지 그것조차 알 도리가 없었다. 단지 걸어가는 것 때문에 지쳐 버리고 지쳤기 때문에 자기 생각을 가다듬을 수가 없었다. 머리 속에서 확실히 목표를 지향하지 못하고 생각이 산산히 흩어져 버렸다. 끊임없이 고향 생각이 머리에 떠오르고 고향 생각으로 가슴이 벅찼다. 고향의 광장에도 교회가 있어서 여기저기 둘레는 오래된 모지로 둘러싸이고, 또 이 모지는 높은 담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이 담 위로 기어 올라갈 수 있는 것은 아주 극소수의 애들뿐이었고 K 역시 끝내 오라가지 못하던 축이었다. 어린애들은 호기심에 못 이겨서 이런 짓을 한 것은 아니었다. 묘지는 어린애들의 눈에는 조금도 신비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작은 살창문을 통하여 그들은 벌써 ㅂ 번이고 묘지 안으로 들어갔다. 단지 높고 미끄러운 담을 정복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어느 날 오전에 조용하고 인기척이 없는 광장은 밝은 빛으로 넘쳐 흐러고 있었다. K는 이전에도 또 그 후에도 디 광장의 이런 광경을 본 적이 없었다.__K는 놀랄 만큼 쉽게 이 담을 정복할 수 있었다. 몇 번 시도했으나 여지없이 실패했던 그 장소에서 작은 깃대를 입에 문채 단숨에 이 담 위로 기어 올라갔다. 담 꼭대기로 올라가니 조약돌이 데굴데굴 굴러내렸다. 깃대를 꽂으니까 마침 바람을 안고 팽팽하게 나부꼈다. 그는 아래를 내려다보고 사방을 돌아보고 또 어깨 너머로 땅에 꽂힌 수많은 십자가들을 바라보았다. 지금 이 자리에서는 아무도 따를 수 없을 정도로 위대했다. 그 때 우연히 선생님이 지나가다가 노기를 띈 눈초리로 K를 아래로 내려오도록 야단쳤다. 뛰어내릴 때에 무릎을 다쳐서 K는 간신히 집에 돌아왔다. 그러나 담을 정복했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었다. 이 승리의 감정은 이 때부터 긴 생애를 통하여 하나의 발판이 되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그것은 그리 어리석다고 할 순 없었다. 왜냐하면 벌써 그 때부터 오랜 세월이 흘러간 지금에 와서도 그가 바르나바스의 팔에 기대고 걸어가는 이 눈 내리는 밤에, 그것이 그에게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까보다 더 바짝 바르나바스의 팔에 매달렸다. 바르나바스는 그를 끌고 가디시피 했다. 침묵은 전혀 깨트려지지 않았다. K가 단지 길에 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그 거리의 상태로 미루어 보아 아직도 옆길로 구부러지지 않았다는 것 그것뿐이었다. 아무리 길이 걷기 어렵다고 하더라도 또 돌아오는 길이 어떻게 된다고 하더라도 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마음 속으로 굳게 맹세했다. 결국 질질 끌려가기 마련이니까, 그의 체력을 가지고도 넉넉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길이 무한히 계속된다는 일이 가능할까? 낮에 보니까 성은 문제없이 도착할 수 있는 목표인 것처럼 눈앞에 가로놓여 있고 그뿐더러 심부름꾼 바르나바스는 틀림없이 지름길을 알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자 바르나바스가 걸음을 멈추고 섰다. 여기는 어디쯤 될까? 벌써 길이 막혔단 말인가? 바르나바스는 K에게 작별하려고 하는 것일까? 그렇게는 잘 안 될 것이다. K는 자기 자신이 몸이 아파질 정도로 바르나바스의 팔을 꼭 붙들고 있었다. 또는 혹시 믿을 수 없는 기적이라도 일어나서 두 사람은 벌써 성 안이나 또는 성문 앞에 와 있다는 것일까? 그러나 K가 알고 있는 한, 두 사람이 언덕길을 올라온 기억은 전혀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바르나바스가 눈치채지 않도록 몰래 자기를 끌고 언덕길을 올라왔던가? "대체 역기가 어딜까?" K는 나지막한 소리로 바르나바스에게라기보다도 혼잣말하듯 물었다. "집입니다." 바르나바스도 역시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집이라고?" "그런데 미끄러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길이 급하게 아래로 내려가니까." "내려가는 길이라고?" "단지 두서너 걸음입니다." 하고 그는 덧붙여서 말하기가 무섭게 벌써 문에다 노크하고 있었다. 처녀 하나가 문을 열었다. 그들 두 사람은 큰 방 입구에 서 있었다. 방안은 거의 깜깜하고, 왼편 깊숙이 식탁 위에 빈약한 석유 램프 하나가 매달려 있을 뿐이었다. "함께 오신 분은 누구세요, 바르나바스?" 하고 처녀가 물었다. "측량 기사님이셔." 그가 말했다. "측량 기사시라고요." 하고 처녀는 식탁 쪽을 향하여 더 큰 소리로 되풀이했다. 그 소리를 듣자 안쪽 깊숙한 곳에 있던 늙은 부부와 또 한 처녀가 일어났다. 사람들이 모두 K에게 인사했다. 바르나바스는 가족 전부를 그에게 소개했다. 양친과 자매 올가와 아말리아였다. K는 그들 쪽을 거의 바라보지도 않았다. 가족 중에는 K의 흠뻑 젖은 상의를 벗겨서 난로 옆에 말려 주는 사람도 있었다. K는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여기는 두 사람의 집이 아니고 바르나바스만의 집이다. "그런데 대관절 우리들이 어떻게 여기에 와 있는 것일까?" K는 바르나바스를 옆으로 불러다가 물어 보았다. "왜 자네 집으로 와 버렸나? 혹 자네들은 성의 영내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영내라고요?" 하고 바르나바스는 K가 한 말의 뜻을 모르겠다는 듯 되풀이했다. "바르나바스, 자네는 여관집에서 성으로 가려고 하는 것 같았는데." K가 말했다. "아닙니다. 저는 집으로 돌아오려고 생각했습니다. 성에는 아침 일찍이 갈 뿐이고 거기서 묵은 일은 없습니다." 하고 바르나바스가 말했다. "그래, 자네는 성으로 가려고 한 것이 아니라 여기로 오려고 했을 뿐이군." K는 말했다__바르나바스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가 전보다 더 넋빠진 것처럼 그리고 모습 자체도 더 초라한 것처럼 K에게는 느껴졌다__ "왜 자네는 내게 그렇게 말하지 않았나?" "선생님이 제게 물어 보시지 않았으니까 그랬습니다. 선생님이 제게 무슨 부탁을 하시려고 하면서 식당에서나 방에서나 말씀하시기를 꺼리시기에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즉 제 양친 계신 곳이라면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그 부탁을 말씀하실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요. 만일에 선생님이 명령만 하신다면 모두들 여기서 자리를 비킬 수도 있습니다. 그뿐더러 이 곳이 마음에 드시면 묵으셔도 좋습니다. 제가 무슨 옳지 못한 일이라도 했습니까?" K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오해가 생긴 것이다. 천하고 야비한 오해라도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K는 이 사람에게 완전히 몸을 맡겼던 것같다. 몸에 착 붙고 명주처럼 번지르르하게 윤택이 나는 바르나바스의 윗도리에 매력을 느끼고 정신이 팔렸던 모양이다. 그런데 지금은 바르나바스가 이 윗도리의 단추를 풀고 있어서 그 밑으로부터 초라하니 시꺼멓게 더러워지고 누덕누덕 기운 허름한 셔츠가 젊은이의 굳세고 모진 가슴 위로 내다보였다. 그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이 이 셔츠와 적합할 뿐더러 오히려 그것을 능가하고 있었다. 중풍을 앓는 늙은 부친은 천천히 내딛는 듯하면서 움직이는 빳빳한 다리보다도 오히려 손으로 더듬으면서 겨우 걸어다니고 있었다. 또 모친은 모친대로 가슴 위에 손을 얹고 무척이나 뚱뚱하기 때문에 아주 느리게 조금씩밖에는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이 양친 두 분은 K가 방안에 들어왔을 때부터 아까 앉아 있었던 방구석에서 K 쪽으로 발을 옮겨 놓았는데 아직도 그에게는 이르지 못하고 있었다. 금발의 누이들은 체격도 좋고 몸도 튼튼한데, 서로 닮았을 뿐더러 바르나바스와도 비슷하지만, 그보다는 더 쌀쌀한 표정을 가지고 있는 누이들은 새로 온 K를 둘러싸고 무슨 인사의 말이라도 받을까 하고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한 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이 마을에서는 누구나가 다 자기에게는 중요한 사람들이라고 그는 믿고 있었으며 또 사실 그랬으나, 이 집 사람들만은 예외적인 존재여서 K는 그들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다. 만일에 여관집으로 가는 길을 알고 있어서 혼자라도 돌아갈 수 있다면 망설이지 않고 떠나 버렸을 것이다. 아침 일직이 바르나바스와 함께 성으로 갔으면 하는 생각에는 아무런 매력도 느끼지 못했다. 그저 오늘 밤중에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고 바르나바스의 안내로 성으로스며 들어갔으면 했다. 다만 그 안내를 하는 바르나바스는 여태까지 K의 눈에 비친 대로의 바르나바스, 즉 이 마을에서 만난 누구보다도 친밀감이 느껴질 뿐더러 표면상의 신분보다도 훨씬 긴밀하게 성과 결합이 되어 있다고 K가 믿고 있는 장본인이 아니면 안 된다. 그런데 이 집의 아들과__바르나바스는 완전히 이 집안에 속할 뿐더러 사실 벌써 가족들과 식사를 하려고 자리를 같이하고 앉아 있었다__주목할 만한 사실로써 아직 한번도 성에서 숙박하는 허가를 받지 못한 이 사람과 대낮에 팔을 끼고 성으로 가는 것은 아무래도 불가능한 일이며 우스울 만큼 희망 없는 시도라 아니할 수 없었다. 역시 여기서 묵기로 하되 그 밖에는 더 이상 이 가족의 신세를 지지 말자고 결심하고 K는 창 옆 의자에 앉았다. 그를 ㅉ기도 하고, 또 그를 무서워 하기도 하는 마을 사람들이 먼저 생각했던 것보다는 위험스럽지 않은 것처럼 K에게 느껴졌다. 그들은 결국 자기 자신만을 의지하도록 그에게 암시를 준 것이며 그의 힘을 축척 집중하도록 도와준 셈이다. 그런데 이처럼 언뜻 보기에는 그의 원조자 같은 사람들, 즉 약간 탈을 썼기 때문에 성으로 그를 데리고 가는 대신에 자기 가족에게로 안내한는 사람들은 그들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간에, 그로 하여금 목표로 가는 길에서 빗나가게 하고, 그의 힘을 파괴시키는 역활을 한 것이다. 가족들이 앉아 있는 식탁에서 어서 오라는 권유를 받았으나, 그런 소리는 들은 둥 만 둥, K는 고개를 숙인 채 의자에서 움질이려 하지 않았다. 바로 그 ㄸ에 올라가__두 자매들 중에서 비교적 얌전한 성격이었으며 사실 처녀답게 어쩔 줄을 모르는 당황의 빛까지 띠고 있었는데__일어서더니 K에게로 걸어와서 빵과 베이컨이 준비되었고 맥주도 가져올 테니 식탁으로 오라고 권했다. "어디서 가져오느냐?" 고 물었더니, "여관에서 가져오죠." 하고 그녀는 대답했다. 그것이 K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그래서 그는 맥주를 가져오는 것은 그만두고 그저 자기를 여관집까지 보내 달라고 그녀에게 부탁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 보니 그녀는 그렇게 멀리 자기가 정하고 있는 여관집으로 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옆에 있는 다른 여관집 신사관으로 가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그는 따라가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틀림없이 그 여관에서 숙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관집의 잠자리가 어떤 것일지라도 이 집의 제일 좋다는 침대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느껴졌다. 올가는 곧 대답을 하지 않고 식탁 쪽을 돌아다보았다. 그 식탁에서는 바르나바스가 일어서서 찬성의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말했다. "선생님이 원하시면 함께 가 드려요." 찬성의 말을 듣자, K는 자기가 끄집어낸 부탁을 철회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이 사람은 하찮은 일밖에는 동의할 줄 모르는 자다. 그러나 K를 여관에서 받아 줄지 어떨지 그 문제를 가족들이 모두 걱정을 했지만, K는 곧 데려가 달라고 더욱 졸라댔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기 부탁에 대하여 납득이 갈 만한 이유를 찾아내지 못했다. 이 가족들은 그의 염치없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말하자면 그는 이 가족에 대해서 조금도 수치스러운 감정을 품고 있지 않았다. 가족 중에서 단지 아말리아만이 진지하고 솔직하고 태연하지만 약간 둔한 눈초리로 그의 마음을 산란케 했다. "여관집까지 아주 가까운 거리였다. 가는 도중에서__K는 올가에게 팔을 끼고 몸을 의지한 채로, 그밖에는 아무 도리도 없었지만, 앞서 길에서 바르나바스에게 끄려오다시피 한 거나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그녀에게 거의 끌려서 갔다__들은 바에 의하면 그 여관집은 원래가 성 사람 전용으로 지정되어 있어서, 그 사람들이 마을에 무슨 용무가 있을 때면 식사나 혹 때로는 숙박도 하기로 되어 있는 곳이다. 올가는 다정스러운 어조로 나지막하게 K와 이야기했다. 그래서 그녀와 함꼐 걸으면 바르나바스와 걷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한없이 기분이 좋았다. K는 이런 쾌감을 억제하려고 애썼으나 도저히 억제할 수 없었다. 역관집은 언뜻 보기에 K가 숙박하고 있는 여관집과 비슷했다. 대체로 이 마을의 집들은 겉으로 보면 큰 차이점이 없었으나 그래도 이 여관집이 먼젓번 여관집과 세세한 점에 있어서 다른 것이 바로 눈에 띄었다. 입구에 계단에는 난간이 달려 있고 문 위에는 아름다운 등이 설치되어 있는 그런 점이다. 그들이 집 안에 들어갔을 때 두 사람의 머리 위에는 천이 펄럭거렸는데, 이것은 백작 가문을 표시하는 물들인 깃발이었다. 현관에서 두 사람은 주인과 딱 마주쳤는데, 주인은 감독 순시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 사람은 지나가면서 살펴보는 눈치였고 졸린 듯 보이는 작은 눈으로 K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측량 기사는 술집까지밖에는 가지 못합니다." "알고 있어요." 하고 올가는 K의 편을 들며 말을 끄집어냈다. 이어서 "이분은 나를 따라온 것뿐이에요." 하고 말했다. 그러나 주인은 야속하게도 올가 곁에서 K를 떼내어 옆으로 데리고 갔다. 올가는 그 동안 현관 구석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여기서 묵고 싶은데요." 하고 K가 말했다. "미안하지만 안 되겠습니다. 당신은 잘 아시지 못하는 모양인데 이 집은 성에서 오신 분의 전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라는 주인의 대답이었다. "글쎄, 그런 규정일는지 몰라도 어느 구석에다 재우는 것쯤은 가능할 것같은데." K는 반문했다. "손님의 뜻을 받아들인다면 좋겠지만 지금 손님이 타향에서 오신 분과 같은 말투로 말씀하신 그 규정이 암격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안 될 말입니다. 왜냐하면 성의 양반들은 대단히 신경질적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렇게 믿고 있습니다. 즉 그 양반들은 타향 사람의 모습을 보면 견딜 수 없는 모양입니다. 적어도 예기치도 않은 때에 느닷없이 보게 되면 환장하는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당신을 여기서 재운다 하더라도, 만일에 당신이 우연히__더욱이 이 우연이라는 것은 언제나 성 양반들 편에 달려 있지만__발각되는 일이라도 있으면 모가지가 날아가는 것은 나뿐이 아니라 당신도 같은 운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리석은 소리를 한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사실인데 어떻게 합니까?" 주인은 그렇게 말했다. 키가 크고 단추를 꼭 낀 이 주인은 한 손은 벽에 또 한 손은 허리에다 짚고서 두 발을 꼬고 K에게로 약간 상반신을 구부리면서 정답게 말을 걸었다. 이 주인은 농촌 사람들이 경사 때나 제사 때에 입는 것처럼 짙은 색깔의 옷을 입고 있었으나 아무리 보아도 촌사람 같지는 않았다. "나는 당신 말씀이 전부 옳다고 생각해요. 내 표현 방법이 서투른지 몰라도 규정의 중요성을 경시한 일은 절대로 없어요. 단지 한 가지 내가 당신의 주의를 환기하고자 하는 것은 내가 성 안에 귀한 연고자를 알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장래는 더욱 중요한 인물과 관계를 맺게 되리라는 것이지요. 그런 연고자들은 내가 여기 묵었기 때문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위험에서 당신을 보호해 주시겠지요. 그뿐만 아니라 내가 사소한 호의에 대해서도 충분히 사례할 수 있는 신분이라는 것도 보증해 줄 수 있지요." K의 말이었다. 주인은, "알고 있습니다." 라고 말하더니 또 한 번 되풀이해서, "나도 그걸 알고 있습니다." 라고 말했다. 본래 같으면 K는 여기서 자기 요구를 더 강겨하게 주장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침 주인의 이 대답을 듣고, 그는 맥이 풀려서 그저 이렇게밖에는 물어 보지 못했다. "오늘은 성 양반들이 많이 묵고 있나요?" "그 점에 있어선 오늘은 형편이 좋습니다. 단지 한 분만이 묵고 계실 뿐입니다." 하고 주인은 거의 유혹하는 것 같은 말투로 이야기했다. 그 말을 듣고도 K는 억지를 쓰지 못하고 있었으나 그럭저럭 받아 줄 것도 같아서 그 양반의 이름만을 물어 보았다. "클람." 하고 주인은 대수롭지 않게 말하면서 자기 아내를 돌아다보았다. 그 때 마침 그의 아내는 시대 유행에 뒤떨어지고 있는데다 헐어 빠지고 구김살투성이긴 하지만 그래도 도시 냄새를 풍기는 화려한 옷을 입고 옷자락을 팔랑거리며 이 쪽으로 걸어왔다. 상관이 어떤 일로 부른다고 하면서 주인을 데리려 왔다. 주인은 떠나기 전에 또 한 번 K 쪽으로 몸을 돌렸다. 숙박하고 않고는 자기가 결정할 것이 아니라 K 자신이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눈치였다. 그러나 K는 한 마디도 입 밖에 낼 수가 없었다. 공교롭게도 바로 그의 상관인 그 사람이 여기에 묵고 있다는 그 현실 앞에 K는 적이 당황하고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자기 스스로도 똑똑히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클람에 대해서는 성의 다른 사람들에게 대해서 느끼는 것처럼 자유스러운 기분을 가질 수가 없었다. 여기서 현장이 발견된다고 하더라도, 주인이 말한 것처럼 깜짝 놀라는 일은 없겠지만, 그러나 말할 수 없이 괴롭고 난처한 일에는 틀림없었다. 마치 신세를 진 사람에게 대해서 경솔하게도 어떤 쓰라린 고통을 주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그와 동시에 이와 같이 심상치 않은 사태 속에 전부터 두려워하고 있었던 하급자의 신분이라는 좋지 못한 결과가 뚜렷하게 나타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두려워하고 있었던 그 결과가 이렇게 뚜렷하게 나타나 있는 바로 이 시점임에도 그것을 극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고서 그 때문에 그는 무겁게 억눌리는 것 같은 심란한 기분에 사로잡히고야 말았다. 그는 우뚝 서 있었으며 입술을 깨물고 한 마디도 입 밖에 내지 못했다. 주인은 집안으로 자취를 감추기 전에 또 한 번 K쪽을 돌아다보았다. K는 주인의 뒷모습을 쳐다본 체 그 자리에서 움직이려고도 하지 않았다. 드디어 올가가 와서 그르 잡아 끌었다. "여관집 주인에게 무슨 용무라도 있으셨나요?" 올가가 물었다. "이 집에서 묵으려고 했어." 하고 K는 말했다. "제 집에 묵으시면 좋은데." 올가는 의아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확실히 그래." 하고 K는 대답하고 이 말의 뜻을 해석하는 것은 그 여자에게 맡겼다. 3 술집은 한가운데에 전혀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않은 큰 방이었는데, 농부 몇 사람은 벽에 기대어 나란히 놓인 통 옆에 자리잡기도 하고, 또 직접 통위에 앉기도 하였다. 그들은 K가 숙박하고 있는 여관집에 있는 농부들과는 다르게 보였다. 그드은 K가 숙박하고 있는 여관집에 있는 농부들과는 다르게 보였다. 그들은 회색빛을 띤 누렇고 거친 천으로 된 옷을 입고 있었는데 훨씬 산뜻하고 서로 비슷한 옷차림이었다. 윗도리는 헐렁헐렁했으나 바지는 몸에 착 붙어 있었다. 그들은 언뜻 보기에 서로가 무척 닮았고 몸집이 자그마한 사람들이었는데 얼굴은 넓적하고 뼈가 드러났으나 두 볼은 둥글둥글했다. 그들은 말이 적고 거의 거의 움직이지도 않았다. 다만 그들은 거기에 들어온 K와 올가를 시선으로 쫓았을 뿐이지만 그것조차도 느리고 아주 무관심한 태도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 수가 많은 것과 아주 조용히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K와 K의 마음 속에 어떤 뚜렷한 인상을 주었다. K는 또 한 번 올가의 팔을 잡았는데 그것은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 자기가 이 곳 사람이라는 것을 설명해 보이기 위한 것이었다. 그석에 있던 남자 한 사람이 일어섰다. 올가와는 아는 사이므로 그녀에게로 가까이 오려고 했다. 그런데 K는 끼고 있는 팔로 올가의 몸의 방향을 돌려 버렸다. 그녀 이외에는 아무도 눈치채는 사람이 없었으나 그녀는 곁눈질을 하고 미소를 띠면서 하는 대로 잠자코 있었다. 서비스를 해 주는 사람은 프리다라고 부르는 젊은 여자였다. 몸집이 작고 사람 눈에 잘 띄지 않는 금발 아가씬데 눈에는 애수를 띠고 뺨은 야위었으나 각별히 우월감을 나타내는 그녀의 눈초리는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만 했다. 이 눈초리가 K에게로 쏠렸을 때, 바로 그 눈초리가 K의 일신상에 관계된 일을 해결해 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 자신은 그런 일이 존재하는지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으나 그 눈초리가 그런 일의 존재를 그에게 확신시키는 것이었다. 프리다가 올가와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에도 K는 곁에서 물끄러미 그 여자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올가와 프리다는 단지 냉담하게 말을 두서너 마디 주고받았을 뿐 친구인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K는 두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아 주려고 생각하고 프리다에게 다짜고짜 이렇게 물었다. "당신은 클람 씨를 아시나요?" 그러자 올가가 웃음을 터뜨렸다. "무엇이 우스워요?" K는 성을 내면서 물었다. "웃는 게 아녜요." 하고 올가가 말했으나 그래도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올가는 아직도 어린애야." K는 그렇게 말하고 목로 위로 쭉 상반신을 구부렸다. 또 한 번 프리다의 눈초리를 자기에게로 끌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눈을 아래로 뜬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클람 씨를 만나시려고 합니까?" K는 그를 마나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자기 바로 왼쪽에 있는 문을 가리켰다. "여기 작은 구멍이 있는데 이 구멍으로 들여다보면 보입니다." "그러면 여기 있는 사람들은?" 하고 K가 물었다. 그녀는 아랫입술을 쫑긋 내밀고 한없이 부드러운 손목으로 K를 문으로 데리고 갔다. 확실히 동정을 살피기 위한 목적으로 뚫어 놓은 구멍인데, 이 작은 구멍을 통해서 보면 옆바을 거의 남김없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클람은 방안 한복판 옆의 둥근 안락의자에 기분 좋게 앉아서, 눈앞에 얕게 매달린 백열등의 조명을 눈부시게 받고 있었다. 키는 중키이고 몸이 육중하게 보이는 뚱뚱보였다. 얼굴은 매끈매끈 윤이 났으나 양쪽 뺨은 나이를 먹은 관계로 약간 쳐저 있었다. 코밑의 검은 수염이 무척 길게 뻗쳐 있었다. 코 위에 비스듬히 걸친 코 안경이 양쪽 눈을 덮고 번쩍거리며 광선을 반사하고 있었다. 클람이 제대로 책상을 대하고 있었더라면 K는 옆모습 밖에는 볼 수 없었을 것이나 클람이 정면으로 K 쪽을 향하고 있었으므로 똑바로 그 얼굴을 온전히 볼 수 있었다. 클람은 왼쪽 팔꿈치를 책상 위에 올려 놓고 버지니아 담배를 들고 있는 오른손을 무릎 위에 얹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맥주컵이 놓여 있었다. 책상의 가장자리의 턱이 높아서 그 위에 서류가 놓여 있는지 어떤지 알려 달라고 프리다에게 부탁했다. 그런데 그녀는 조금 전에 이 방에 다녀왔었기 때문에 책상 위에 서류가 놓여 있지 않다는 사실을 당장에 확언할 수 있었다. K는 프리다에게 이제는 가야 되지 않느냐고 물어 보니까, 마음껏 들여다보다도 상관없다는 대답이었다. K는 프리다와 단둘이만 남아 있었다. 재빨리 주위를 살펴보니까 올가는 아는 남자 옆으로 가 버리고 통 위에 걸터앉아서 발을 퉁퉁거리며 통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었다. "프리다, 클람 씨와는 잘 아는 사이인가요?" K가 속삭이는 듯이 말했다. "아아, 네, 잘 알고말고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는 K와 나란히 등을 기대고 있는데, 지금에야 K의 눈에 띄었지만,앞가슴을 넓게 파낸 경쾌해 보이는 크림색 블라우스를 만지작거리며 고치고 있었다. 이 블라우스는 그녀의 빈약한 몸에 비하면 아주 어색하게 보였다. 그러자 그녀는 질문을 끄집어냈다. "올가가 웃은 것을 기억하고 계시지요?" "아암, 예의를 모르는 여자야." K는 말했다. "그래도." 하고 그녀는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웃을 이유가 있었어요. 제게 클람을 아느냐고 물으셨지만, 저는......" 여기서 그녀는 무의식중에 약간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지금 화제에 올랐던 것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그녀의 뻐기는 눈초리가 슬쩍 K의 얼굴 위를 지나가는 것이었다. "저는 그분의 애인이에요." "클람의 애인이시라고요." 하고 K는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다면 당신은 내가 경의를 표할 만한 사람이군요." K는 두 사람 사이에 너무 거북한 공기가 떠돌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미소를 띠면서 그렇게 말했다. "당신에게 있어서만이 아니에요." 하고 그녀는 정답게 말했으나, 그의 미소를 상대로 하지도 않았다. K는 그녀의 거만한 태도를 꺾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었으므로 그 방법을 한 번 써보려고 다음과 같이 물어 보았다. "당신은 성에 가 본 일이 있나요?" 그러나 그 질문은 아무 효과가 없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아뇨, 제가 이 술집에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나요?" 그녀의 허영심은 확실히 광적이었고 지금 바로 K를 붙잡고 그 허영심을 만족기키려고 하는 모양이었다. "물론 당신은 이 술집에서 주인이 해야 할 일까지도 하고 있는 셈이겠죠." K의 말이었다. "그래요. 그러나 저는 교반관이라는 여관집의 마구간 하녀부터 시작했어요." 그녀는 말했다. "이 가느다란 손으로." 하고 반은 물어 보는 것처럼 K는 말했으나 자기가 단지 그녀의 비위를 맞추려고 하는 소린지, 그렇지 않으면 그녀에게 홀딱 반해 버려서 하는 수작인지 자기 스스로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녀의 손은 확실히 작고 연약했다. 오히려 가느다랗고 길어서 형편없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그 당시는 아무도 그런 것을 주의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지금도......" 그녀는 말했다. K는 의심쩍은 눈초리로 그녀를 쳐다보았지만 그녀는 머리를 흔들며 더 이상 말을 계속하려고 하지 않았다. "물론 당신에게는 당신 자신의 비밀이 있을 것이고 그 사람과는 어떤 관계인지 겨우 반 시간 전에 사귄 남자에게, 즉 아직 자기 신변에 관하여 이야기할 기회도 없었던 남자에게 이야기하려고 생각하지는 않겠지요." K의 말이었다. 그런데 곧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것은 적당치 못할 발언이었다. K에게는 안성맞춤이었던 졸면서 꿈꾸는 듯한 프리다의 상태에서 눈을 뜨게 하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그녀는 허리띠에 차고 있었던 가죽 주머니에서 작은 나무 조각을 끄집어내어 들여다보는 구멍을 막아 버렸으나, 자기 마음이 변한 것을 상대방이 눈치챌까 봐 두려워서 눈에 띌 정도로 억지로 기분을 억누르려고 애쓰면서 K를 향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선생님에 관해서는 다 알고 있어요. 선생님은 측량 기사시죠?" 다시 말을 이어서, "그렇지만 저는 또 일을 시작해야 돼요." 하면서 목로 뒤에 있는 자기 자리로 되돌아갔는데, 그 사이에도 그녀의 손으로 술을 부어 달라고 빈 컵을 여기저기서 추켜드는 자들이 있었다. K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한 번 더 그녀와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선반에서 빈 컵을 가지고 그녀에게 가서 다음과 같이 말을 걸었다. "프리다 양, 한 마디만 더 허락해 주세요. 마구간 하녀에서 시작해서 목로 색시가 된다는 것은 정말로 대단한 일일 뿐더러 뛰어난 재간이 필요해요. 그러나 그것만으로 우수한 인재가 최종 목적을 달성했다고 할 수야 있겠어요? 어리석은 질문이지요. 프리다 양, 웃지 마세요. 당신의 눈은 지나간 과거의 싸움보다도 앞으로 닥쳐올 미래의 싸움을 한층 더 여실히 말하고 있어요. 그러나 세상의 저항이란 큰 것이며 목표가 커지면 커질수록 더 커 가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아무 세력도 없고 또 빈약한 인간에 틀림없지만, 그래도 당신과 마찬가지로 싸우고 있는 남자의 조력을 확보해 두는 것이 조금도 수치가 되진 않을 거예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의아스럽게 힐끔힐끔 쳐다보는 분위기가 아니고 앞으로 언젠가는 마음을 터놓고 자유스럽게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 말을 듣고 그녀는,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본의는 아니지만 지금까지처럼 생활의 승리가 아니라, 한없는 실망이 담겨져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당신은 아마도 저를 클람에게서 떼어 버리려고 하시는 거지요. 아아, 하느님 맙소사!"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손뼉을 쳤다. "당신은 내 마음 속을 들여다보셨군요." 하고 K는 말했는데 그렇게도 심한 불신의 태도에 자못 지쳐 버린 듯 난처한 표정이었으나 이어서, "이것이야말로 바로 내가 가슴 속 깊이 간직했던 계획이었어요. 당신이 클람을 버리고 내 애인이 되어 달라는 것이지요. 자아, 그 말을 했으니 이제는 갈 수 있어요. 올가! 집으로 가지." 하고 K는 외쳤다. 올가는 고분고분하게 통 위에서 아래로 미끄러져 내렸는데, 남자들이 그녀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어서 곧 빠져 나올 수가 없었다. 바로 그 때에 프리다가 위협하는 눈초리로 K를 노려보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언제 선생님과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 내가 묵어도 좋을까요?" 하고 K가 물었다. "네." 하고 프리다는 대답했다. "이대로 쭉 여기 있어도 좋아요?" "올가와 함께 나가 주세요. 그러면 저는 여기 있는 사람들을 내쫓을 수 있으니까요. 잠시 후에 다시 돌아오세요." "알았어요." 하고 K는 말하고 초조한 기색으로 올가가 돌아오는 것을 기다렸다. 그런데 농부들이 그녀를 놓아 주지 않았다. 그들은 일종의 댄스를 생각해 냈는데 그 중심 인물이 올가였다. 둥근 원을 그리면서 춤추고 돌아다니고 모두들 한꺼번에 소리지르면, 그때마다 한 사람이 그녀에게로 가까이 가서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꼭 껴안고 소용돌이처럼 그녀를 뺑뺑 돌렸다. 이리하여 원무를 템포는 더욱 빨라지고, 무엇에 굶주린 것 같고, 목구멍에서 가래가 끓듯이 골골 소리내면서 그들이 외치는 소리는 점점 한 ㅓ어리의 부르짖음으로 변해갔다. 먼저까지는 웃으면서 그 동그라미를 뚫고 나가려던 올가도 이제는 머리를 풀어헤친 채 한 남자의 손에서 다른 남자의 손으로 비틀거리며 돌아다닐 뿐이었다. "저런 사람들을 제게 보내 온다니까요." 하고 말하며 프리마는 홧김에 얇은 입술을 깨물었다. "저 사람들은 누군가요?" K가 물었다. "클람의 하인들이지요. 자꾸만 그이는 저런 사람들을 데리고 오는데, 그들이 있으면 아주 뒤숭숭해져요. 측량 기사님, 오늘 제가 선생님과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거의 알 수 없어요.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으시면 용서해 주세요. 이 사람들이 있었던 탓이에요. 제가 아는 사람 중에서 제일 하류층이고 가장 보기 싫은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이 사람들 컵에 맥주를 따라주지 않으면 안 돼요. 이런 사람들을 집에서 데리고 나오지 않도록 몇 번이나 클람에게 부탁했는지 모르겠어요. 만일 다른 분들의 하인들도 제가 참지 않고는 안 된다면, 그이는 그래도저를 생각해 주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아무리 부탁해도 봐도 소용이 없었어요. 그이가 도착하기 한 시간 전이면 언제나 마치 가축들이 외양간 속에 들어가는 것처럼 떼를 지어서 몰려와요. 그렇지만 그들을 마땅히 있어야 할 그들의 축사로 보내지 않으면 안되겠어요. 만일에 선생님이 거기 안 계신다면 저는 여기 이 문을 열어 젖혀버리겠어요. 그러면 클람이 직접 그들을 쫓아 주어야 할 거예요." 프리다는 이렇게 말했다. "그들의 시끄러운 소리가 그의 귀에는 들리지도 않나요?" K가 물었다. "안 들여요. 자고 있으니까요." 하고 프리다가 대답했다. "뭐요! 자고 있어요? 내가 방안을 들여다보았을 때는 아직도 일어나 앉아서 책상을 마주보고 있었는데." K는 그렇게 외쳤다. "언제나 그런 모양으로 앉아 있는 거예요. 선생님이 들여다보셨을때는 아직도 일어나 앉아서 책상을 마주하고 있었는데." K는 그렇게 외쳤다. "언제나 그런 모양으로 앉아 있는 거예요. 선생님이 들여다보셨을 때도 때도 벌써 잠자고 있었어요. 그렇지 않으면 제가 그 방안을 당신에게 보여 드릴줄 아세요. 그것이 그의 취침 자세라는 거예요. 성 양반들은 지나치게 잠만자요.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에요. 사실 그렇게 많이 잠자지 않는다고 하면 대체 어떻게 그이가 이 사람들에게 배겨낼 수 있겠어요?. 이제 제가 직접 이 사람들을 몰아내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요." 프리다는 말했다. 그녀는 방구석에 있는 채찍을 손에 들자 마치 염소 새끼가 뛰는 것처럼 약간 서투른 점은 있었지만, 한 번 펄쩍 높이 뛰더니, 사람들이 춤추고 있는 곳으로 내려갔다. 처음에 그들은 새 댄서가 왔다고 생각한 듯이 그녀 있는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런데 바로 이 순간, 프리다는 하마터면 채찍을 떨어뜨릴 뻔했다. 그러나 곧 채찍을 쳐들었다. "클람의 명령이니 마구간으로 가세요! 다들 마구간으로 가간 말이에요!" 그녀는 외쳤다. 그들은 정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K에 대해 알수 없는 어떤 공포에 싸여 그들은 뜰 뒤로 물러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K에 대해 알수 없는 어떤 공포에 싸여 그들은 뜰 뒤로 물러가기 시작했다. 선두에서 도망치는 자에게 부딪쳐서 거기 문이 열렸기 대문에 밤바람이 흘러 들어왔다. 그 순간 모두들 프리마와 함께 자취를 감추고야 말았다. 그녀는 분명히 뜰을 지나서 마구간까지 이 사람들을 몰고 갔을 것이다. 그 때 갑자기 조용해진 정적 속에, 현관에서 누군지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가 K의 귓가에 들려 왔다. 어떻게든지 안전한 곳을 찾을 생각으로 K는 목로 뒤로 뛰어 들어갔다. 목로 아래 외에는 아무 데도 숨을 만한 곳이 없었다. 물론 술집에 남아 있는 것이 금지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여기서 묵으려고 생각한 이상, 사람들의 눈에 뛰지 않도록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예상한 대로 문이 진짜 열렸을 때 그는 술상 밑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이런 곳에서 들키는 것도 위험 천만이겠지만, 좌우간 그 때는 그 때대로 농부들이 난폭한 행동을 하니까 그것을 피하기 위하여 숨었노라고 변명하고 이유를 갖가 대면 그럴 듯하게 들리지 않을 것도 없었다. 거기로 들어온 사람은 주인이었다. "프리다!" 하고 그는 외치더니 두서너 번 방안을 왔다갔다 ㅐ다. 다행이도 프리다는 곧 돌아왔으나 K 이야기는 올리지도 않고, 단지 농부들에 관하여 불평 불만을 늘어놓았을 뿐, K를 찾아내려고 목로 뒤로 걸어갔다. 그래서 K는 그녀의 발을 만질 수 있었으며 이제는 안전하다는 안도감을 느끼게 되었다. 프리다가 K에 관하여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주인 쪽에서 말을 끄집어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데, 측량 기사 양반은 어디로 갔어요?" 주인이 물었다. 대체로 이 주인이란 사람은 말하자면 고위층 사람들과 오랫도안 비교적 자유스럽게 교제해 와서 정중하고 예의바른 남자였다. 그가 프리다와 이야기할 때는 각별히 공손한 말씨였다. 이런 공손한 태도가 유난히 주목을 끄는 첫째 이유로서는 이 남자가 말할 때 고용주로서 한 사람의 피고용인이란 정말로 뻔뻔스럽기 짝이 없는 여자였기 때문이다. "측량 기사 양반을 깜박 잊고 있었군요. 확실히 훨씬 전에 나가 버렸을 거예요." 하고 프리다는 말하고 K의 가슴 위에다 귀여운 다리를 올려 놓았다. "나는 계속해서 현관에 쭉 있다시피 했는데, 그 사람을 못 봤어요." 주인이 말했다. "그래도 이 곳에는 없는 걸요." 하고 프리마는 시치미를 뚝 떼고 말했다. "아마 그는 숨어 있을 것 같아요. 그에게서 받은 인상으로는 무슨 짓을 하고도 남게 생겼어요." 주인의 말이었다. "그러나 그런 대담한 짓을 할 사람은 아닌데요." 하고 프리마는 말하고, K의 가슴 위에 올려 놓은 발을 전보다 더 세계 꾹 늘렀다. 지금까지 깨닫지 못한 일이었지만 그녕의 무엇인지 쾌활한 점, 자유스러운 점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성격이 터무니없이 확대되어 갔다. 즉 그녀는 느닷없이, "틀림없이 그 사람은 이 밑에 숨어 있을 거예요." 하고 웃어대면서 K위에 허리를 구부리고 살짝 키스하는가 하면, 다시 뛰어오르는 것처럼 몸을 일으키고 이번에는 자못 슬픈 표정으로, "아니에요, 여기는 없어요."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한편 주인도 다음과 같이 말하여 적이 사람을 놀라게 했다. "그가 나갔는지 어쩐지 확실히 알 수 없다는 것은 대단히 불쾌스러운 일이오. 단지 클람 씨만이 문제가 아니라 규칙이 문제지요, 프리다 양, 나와 마찬가지로 당신도 이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안 돼요. 술집만은 당산이 책임지세요. 그 밖의 집안의 다른 곳은 내가 더 찾아볼 테니까요. 그러면 편히 쉬세요." 주인이 방안에서 나가기가 무섭게 벌써 프리다는 스위치를 비틀어서 전등을 꺼 버리고 목로 밑의 K 옆으로 와서 드러누웠다. "내 사랑! 그리운 내 애인!" 하고 그녀는 속삭였으나 K의 몸에는 손가락 하나 대지도 않았다. 사랑이 도지고, 그리움에 겨워서 정신을 잃은 모양으로 벌렁 드러누운 채 두 팔을 쭉 벌렸다. 그녀의 행복한 사랑 앞에 시간은 한정이 없었으며 그녀는 노래라기 보다는 탄식하는 곡조로 어떤 노래를 불렀다. 그 때 그년는 K가 조용히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일어났다. 이번에는 마치 어린애처럼 그를 끌어당기면서, "자아, 오세요. 이 밑에서는 숨이 막히겠어요!" 하고 외쳤다. 두 사람은 서로 껴안았다. 여자의 작은 몸은 K의 품안에서 불타고 있었다. 두 남녀는 마치 넋잃은 사람처럼 두서너 걸음의 거리를 굴러서 돌았다. K는 끊임없이 이런 실신 상태에서 빠져 나가려고 몸부림쳐 봤으나 아무 소용도 없었다. 두 사람은 꼭 껴안은 채 클람의 방문에 쿵 하고 부딪친 다음, 맥주와 그 밖의 바닥을 덮고 있는 오물 속에 누워서 뒹굴게 되었다. 거기서 두 사람의 호흡은 하나로 합치고, 심장의 고동조차 하나가 된 채 몇 시간인가 지나갔다. 그 동안에는 K는 자기가 길에서 헤매고 있다고 느꼈으며, 또는 자기보다 앞서가는 아직 한 사람도 온 일이 없는 타향에 발을 디뎌놓았는데 이 타향에서는 공기의 성분조차 고향과는 아주 다를 뿐 아니라 만사가 너무나 이방적이어서 숨막힐 지경이며, 도 타향의 그러한 어리석고 뜻없는 유혹에 사로잡혀서 더 멀리 앞으로 걸어가고 더욱 길에서 방황하는 것 밖에는 아무 도리도 없다는 감정을 줄곧 품게 되었던 것이다. 클람의 방에서 점잖고 명령하는 듯한 냉엄한 목소리로 프리다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을 때, 그는 적어도 처음에는 공포를 느끼지 않았으며, 오히려 마음을 즐겁게 해 주는 여명처럼 의식을 깨우치는 한 줄기의 희망조차 느낄 수 있었다. "프리다!" 하고 K는 프리다의 귓속에 속삭이고 이어서 그 속삭임을 되풀이했다. 프리다는 마치 타고난 온순한 마음씨를 가진 듯 고분고분하게 뛰어 일어나려고 했다. 그러나 그 다음 순간에는 자기가 있는 위치를 생각하고, 기지개를 켜더니 싱긋이 웃으면서 말했다. "저는 안 가겠어요. 다음부터는 절대로 그에게 가지 않겠어요." K는 반대하려고 했다. 클람에게 가도록 권고하려고 그녀의 흐트러진 블라우스를 고쳐 주기 시작했으나, 한 마디도 말을 끄집어낼 수 없었다. 프리다를 팔에 껴안고 있으니 하늘에 올라가는 것처럼 행복했다. 너무나 행복해서 동시에 말할 수 없는 불안까지 느끼게 되었다. 왜냐하면 만일 프리다에게 버림 받으면 그것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잃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한편 프리다는 K의 동의를 얻어 큰 힘이라도 생긴 듯이 주먹을 불끈 쥐고, 그 주먹으로 문을 두드리면서 외쳤다. "저는 측량 기사와 함께 있어요! 저는 측량 기사 곁에 있어요!" 그러자 물론 클람은 조용해졌다. 그러나 K는 몸을 일으키고 프리다 옆에 무릎 꿇고 앉아서 희미하게 밝아오는 여명 속을 들여다보았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나의 희망은 어디로 사라져 버렸을까? 만사가 폭로되어 버렸는데 새삼 무엇을 프리다에게 기대할 수 있을까? 싸움은 걸어오는 원수와 목표의 크기에 어울리도록 거기에 대비하여 신중한 태도로 전진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난 밤새도록 여기 맥주가 괸 곳을 이리저리 뒹굴었다. 그 냄새는 지금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떠돌았다. "너라는 놈은 대체 무슨 짓을 했는가? 우리 두 사람은 이제 그만이다." 하고 K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아니에요. 그만인 것은 나 혼자만이에요. 그래도 당신은 제 것이 되었어요. 안심하세요. 저것 보세요. 두 사람이 웃고 있어요." 프리다는 말했다. "누구 말이오?" 하고 K는 묻고 돌아다보았다. 목로 위에 두 조수들이 약간 수면 부족인 감은 있으나 즐거운 얼굴로 앉아 있었다. 그것은 충실하게 의무를 이행한 데서 나오는 명랑성인 것 같았다. "무엇 하러 여기에 왔어?" 하고 K는 외쳤는데, 마치 모든 것이 두 사람 잘못이라는 듯한 말투였다. 그는 어제 저녁에 프리다가 가지고 있었던 채찍을 찾으려고 돌아다녔다. "아무튼 우리들은 선생님을 찾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우리들이 있는 식당으로 내려와 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바르나바스 댁으로 선생님을 찾으로 가서 드디어 여기서 선생님을 만나 뵙게 되었습니다. 둘이서 밤을 새면서 여기에 앉아 있었습니다. 근무하는 것도 대단히 힘이 듭니다." 조수들의 말이었다. "내가 너희들을 필요로 하는 것은 낮이지 밤은 아니란 말이야. 둘 다 꺼져 버려!" K가 말했다. "지금은 낮입니다." 하고 두 조수들은 말하며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다. 아닌게아니라 벌써 낮이었다. 뜰로 통하는 문이 열리더니 농부들이 올가와 함께 떼를 지어서 몰려 들어왔다. K는 올가를 완전히 잊고 있었던 것이다. 옷은 단정치 못하고 머리도 잘 손질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어제 저녁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생기 있었는데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K를 찾고 있었다. "왜 저와 함께 집으로 가시지 않았어요?" 그녀는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말하더니, "그런 여자 때문에!" 하고 덧붙이고 이 말을 두서너 번 되풀이했다. 잠시 동안 자취를 감추고 있었던 프리다는 얼마 안 되는 속옷 보따리를 가지고 되돌아왔다. 올가는 슬픈 기색으로 옆으로 물러섰다. "자, 가시지요!" 하고 프리다가 말했다. 그녀가 교반관으로 가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K와 프리다, 그 뒤에 조수 두 사람이 따랐는데, 이것이 그 일행이었다. 농부들은 프리다에 대해서 퍽 멸시하는 기색을 보였는데 지금까지 그녀가 그들을 심하게 억눌렀던 만큼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중 한 사람은 지팡이를 손에 들고, 그 지팡이를 넘지 않고서는 놓아 보내지 않겠다는 위협적인 태도로 나오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녀의 눈초리만으로도 이런 남자를 쫓아 버리는 데 충분했다. 바깥 눈 속으로 나가자 K는 약간 안도의 숨을 돌렸다. 좌우간 바깥에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히 기쁜 일이어서 이번에는 힘이 들 길을 고생해 가면서 걷는 것도 참아 낼 수가 있었다. 만일에 혼자라면 더 수월하게 걸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여관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자기 방으로 가서 침대 위에 드러누웠다. 프리다는 침대옆 마룻바닥 위에 잠자리를 마련해 놓았다. 조수들도 함께 들어왔는데 쫓겨나자 이번에는 창문으로 들어왔다. K는 너무나 피곤해서 그들을 쫓아낼 기운도 없었다. 안주인이 프리다를 마나보러 일부로 오라왔다. 프리다는 그녀를 아주머니라고 불렀다. 그들은 키스하기도 하고, 오랫동안 껴안기도 하며 알 수 없을 만큼 정다운 인사를 계속해서 나누었다. 대체로 이 작은 바은 조용해질 사이가 없었다. 남자 장화를 신은 하녀까지도 늘 퉁퉁거리며 들어와서 무얼 가지고 오기도 하고 가져가기도 했다. K가 자고 있는 침대 밑에는 여러 가지 물건이 가득 차 있었는데, 그 중에서 어느 물건이든 필요하면 사정없이 무척 시끄러웠는데도 불구하고, K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스물 네 시간 동안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약간의 잔심부름은 프리다가 맡아 주었다. 드디어 그 다음날 아침 그는 대단히 상쾌한 기분으로 일어났다. 그것은 그가 마을에 묵게 된 지 벌써 나흘째 되는 날이었다. 4 그는 프리다와 단둘이서만 다정하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런데 조수들은__프리다도 가끔 그들과 함께 농담을 하거나 웃기도 했지만__단지 그들이 언제나 눈앞에서 뻔뻔스러운 태도를 취하는 것만으로도 그에게는 적지 않게 방해가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각별히 건방진 태도를 취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들은 한구석 마룻바닥 위에 헌 스커트 두 벌을 깔고 잠자리를 마련하고 있었다. 측량 기사에게 방해를 하지 말 것과 될 수 있으면 자리를 적게 차지할 것, 이것이야말로 그들이 종종 프리다와 이야기 한 바와 같은 그들의 큰 소원이었다. 그 때마다 속삭이기도 하고 또 깔깔대며 웃기도 했는데 이 점에 관해서 그들은 여러 가지 시도를 해 보았다.팔다리를 끼기도 하고 두 사람이 한데 쭈그리고 앉기도 하고 어슴푸레한 속에서 보면 두 사람이 있는 구석에는 단지 공같이 감은 실뭉치는 사실인즉 주의 깊은 관찰자이고 언제나 가만히 K 쪽을 엿보고 있다는 사실이 유감스럽게도 밝혀졌다. 겉으로 보기에는 유치한 장난을 치고 두 손으로 망원경을 보는 흉내를 내며 그와 비슷한 쓸데없는 수작을 부릴 때도, 이 두 사람이 K쪽을 엿보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또 이쪽을 향해서 단지 눈을 깜빡거리거나 자기네들의손질하기가 바쁜 것처럼 보일 때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수염에 대해서는 그들 둘이 다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몇 번이나 그 길이와 분량을 서로 비교하고는 어느 쪽이 근사한가 프리다에게 판결을 내리게 했다. K는 가끔 침대 속에서 물끄러미 세 사람이 하는 짓을 건너다보고만 있었다. 이제는 충분히 원기를 회복하여 침대에서 일어날 수도 있다고 느꼈을 때, 그들 세 사람은 신변을 돌봐 주기 위하여 모두들 다가왔다. 그러나 그들이 시중을 들어 주는 것을 거절할 만큼 원기를 회복하지는 못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어떤 나쁜 결과를 야기시킬지도 모르는 어느 의존 상태에 빠져 버렸다고 깨달았지만, 그러나 되는 대로 내버려두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식탁 옆에 앉아서 프리다가 갖다 준 좋은 커피를 마시고, 프리다가 불 때 눈 난로불을 쬐고, 졸렬하기는 했으나 그래도 열의 있는 조수들에게 몇 번이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시켜서 세숫물, 비누, 빗, 거울을 가져오게 하고 나중에는 K가 작은 소리로 넌지시 희망하는 것에 대해서 암시를 주었기 때문이었지만 술 한 컵까지도 가져오게 했을 때에는 그다지 기분 나쁜 일이라곤 할 수 없었다. 이처럼 자기가 명령하기도 하고, 또 주위 사람들이 시중을 들어 주고 있는 동안에 어떤 성과를 기대하느니보다는 유쾌한 기분으로, "자아, 자네들 두 사람은 나가 줘, 당분간 자네을은 필요 없어. 나는 프리다양과 단둘이서 이야기하고 싶은 거야." 하고 K는 말했다. 그들의 얼굴에 별로 반항의 빛은 보이지 않아 좀 안 됐다고 달래기 위하여 덧붙여서 말했다. "나중에 우리들은 셋이서 면장에게 가기로 하세. 아랫방에서 기다려 주게." 이상스럽게도 그들은 온순하게 말을 들었다. 다만 방을 나오기 전에, "우리들도 여기서 기다리고 싶습니다." 하고 말했다. "다 알고 있어. 하지만 나는 그것을 원치 않는 거야." K의 대답이었다. 프리다는 조수들이 나가자 그의 무릎 위에 올라앉아서, "여보세요, 조수들의 어디가 마음에 안 드셔요? 우리들은 그들을 속이거나 또는 숨기는 일이 있으면 안 되겠어요. 그들은 충실하니까요." 하고 말했는데, K에게는 이 말이 화가 나기도 하고 또 어느 면에서는 은근히 귀에 솔깃하게도 들렸다. "충실하다고? 그들은 늘 동정만 살피고 있어. 어리석고도 지긋지긋한 일이야." K가 말했다. "저는 당신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녀는 그 말과 동시에 그으 목에 매달려서 말을 더 계속하려고 했으나 말문이 막혀 버렸다. 앉아 있었던 의자가 마침 침대 바로 옆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침대로 비틀거리며 간신히 가서는 그 위에 쓰러져 버렸다. 그들은 그 위에 드러누워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지난 밤 그 때처럼 모든 것을 바치는 태도는 아니었다. 그녀는 무엇을 요구했으면 그는 무엇을 더듬었다. 미친 사람첨 날뛰고 상을 찌푸리는가 하면 서로 고개를 상대방의 가슴에 처박으면서 그들은 서로 더듬고 있었다. 서로의 포옹이나 서로 내던지고 있는 그들의 육체도, 그들이 요구하고 의무를 잊지 않게 했을뿐더러 머리에 떠오르게 했다. 마치 절망한 개가 땅을 긁고 파듯이 그들은 서로서로의 몸을 긁고 문질렀다. 그리고 최후의 행복을 얻는 것조차 단념해 버리고 절망한 나머지 서로 혓바닥을 내밀고 상대방의 얼굴을 핥는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드디어 찾아온 피로감만이 겨우 그들의 마음을 가라앉히고 상대방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일으키게 했다. 그 때에 하녀들도 올라왔다. "아이고 망측해라! 이 꼴 좀 보야요!" 하고 하나가 말하더니 보기 민망한지 이불을 그들 몸에 덮어 주었다. 잠시 후에 K가 이 이불을 벗기고 주위를 돌아다보니까__놀라지는 않았으나__조수들이 늘 있던 구석에 자리잡고 앉아서 K 쪽을 손가락질하면서 서로 점잖아야 된다고 경고하면서 시치미를 떼고 인사했다. 그 밖에도 침대 바로 옆에는 안주인이앉아서 양말을 뜨고 있었는데, 이런 꼼꼬한 일은 거인처럼 거의 방안을 어둡게 하고 있는 그녀의 큰 몸집에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았다. "참 오랫동안 기다렸어요." 그녀는 말하고 얼굴을 쳐들었다. 넓적한 얼굴에 늙어서 주름살이 많이 잡혔는데 그래도 전체적으로 보면 아지고 윤기가 돌고 있어서 옛날에는 아름다웠으리라고 상상 할 수 있엇다. 그녀의 말은 나무라는 소리처럼, 그나마 얼토당토않게 비난하는 소리처럼 들렸다. K는 한번도 그녀에게 와 달라고 부탁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그녀의 말을 시인한다는 표시로서 고개를 끄덕거리고 몸을 일으키고 꼿꼿이 앉았다. 프리다도 일어나 앉았으나 이번에는 K 곁을 떠나서 안주인 의자에 기대었다. K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말했다. "아주머니, 아주머니가 말씀하시려는 것을 제가 면장에게 다녀올 때까지 보류해 주실 수 없을까요? 저는 면장고 중요한 일을 상의해야 되니까요." "이쪽 이야기가 더 중요해요. 정말이에요. 그러나 여기서는 한 사람의 인간이 문제가 되니까요. 프리다, 즉 제가 사랑하는 하녀가 문제가 되지요." 안주인이 말했다. "아아, 그래요. 그렇다면 왜 이 문제를 우리 두 사람에게만 맡겨 주지 않는지, 참 그것을 알 수 없군요." K가 말했다. "애정 문제니까 걱정이 되어서 그렇지요." 하고 안주인은 말하며 프리다의 머리를 휘감아 당겼다. 프리다는 서 있었는데 앉아 있는 안주인의 어깨에 겨우 닿을 정도였다. "프리다가 아주머님을 이처럼 믿고 잇으니까 저도 믿는 수밖에 없어요. 그뿐만 아니라 프리다가 조금 전에 제 조수들을 성실하다고 평한 일도 있거니와, 여하튼 여기서 우리들은 모두 친구지간이 되는 셈이지요. 따라서 저는 아주머니께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어요. 즉 저는 프리다와 가까운 시일 내로 결혼할 작정인데,저는 그것을 아주 중요한 상책으로 생각하고 있다고요.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프리다가 저 때문에 잃은 것을 보충할 수 없는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어요. 이를테면 신사관의 직장이라든지, 클람과의 우정 관계 같은 거지요." 프리다는 얼굴을 쳐들었다. 눈에는 눈물이 가득 괴고 승리감 같은 건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왜 하필이면 접니까? 왜, 하필이면 제가 그 때문에 선발됐단 말입니까?" "뭐라고?" K와 안주인이 동시에 반문했다. "불쌍하게도 얘는 머리가 돈 모양이에요. 너무나 한꺼번에 행복과 불행이 몰려왔기 때문에 머리가 약간 이상해진 모양이에요." 그 때 프리다가 이 말을 증명하려는 듯이 허물어지듯 K의 위로 몸을 내던지고, 마치 두 사람밖에는 아무도 그 방안에 없다는 듯이 폭풍과 같은 키스를 퍼부었다. 그러더니 그녀는 울면서 K의 몸을 껴안은 채 그 앞에 쓰러져 버렸다. K는 두 손으로 프리다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안주인에게 물었다. "제가 옳다고 생각하시겠지요?" "선생님은 훌륭한 분이세요." 하고 안주인은 말했는데 그녀도 눈물 섞인 목소리였다. 약간 충격이 심했던 모양으로 숨가쁘게 호흡하고 있었으나 그래도 기운을 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이 이쯤 되면 선생님이 프리다에게 주지 않으면 안 되는 몇 개의 보증에 대해서 생각하서야 돼요. 왜냐하면 아무리 제가 선생님을 존경하고 있다 하더라도 역시 선생님은 타향 분이세요. 누군지 다른 사람을 증인으로 데리고 올 수 없는 노릇이고 가정 사정도 이 땅에서는 도무지 알 수가 없기때문이에요. 그러니까 보증이 필요하단 말이에요. 이 말씀 알아들으시겠지요. 측량 기사님, 선생님이 직접 열거하신 바와 같이 프리다는 선생님과 만났기 때문에 앞으로 얼마나 잃어버릴는지 알 수 없어요." "그래 물론 확실히 보증은 해야 해요. 제일 좋기는 공증인 앞에서 증명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아마도 이것은 다른 백작님의 관청에서 간섭하려고 들것 같아요. 거기다가 저도 결혼식 전에 꼭 해 놓아야 할 일이 있어요. 좌우간 클람과 만나야 되겠어요." K의 말이었다. "그것은 안 될 말이에요. 그런 생각을 하시다니!" 하고 프리다는 말하고 약간 몸을 일으켜서 K에게 기대었다. "꼭 필요한 일이죠. 만일에 내가 성공 못하면 당신이 해야 돼요!" 하고 K가 말했다. "저는 안 돼요, K. 저는 안 된다니까요. 클람이 당신과 이야기할 줄 아세요! 대체 클람이 당신과 이야기할 거라고 어떻게 믿느냔 말이에요?" 프리다가 말했다. "당신과는 이야기를 해요?" 하고 K가 물었다. "저와도 안 돼요, 당신과도 안 되고 좌우간 전혀 안 된단 말이에요." 프리다의 말이었다. 그녀는 양쪽 팔을 뻗치고 몸을 안주인 쪽으로 돌리더니, "아주머니, 그의 소원 좀 들어 보시지요." 하고 말했다. "선생님은 이상한 분이세요. 안 되는 일을 바라고 계세요." 안주인은 꼿꼿이 일어나 앉았는데 두 다리를 벌리고 얄딸란 스커트 천 밑에 굵고 억센 무릎이 솟아오르게 하고 있는 꼴은 참으로 놀라운 광경이었다. "왜 불가능해요?" 하고 K가 물었다. "설명해 드리지요." 하고 안주인이 말했는데 그 말투를 들어 볼 때 이 설명은 말하자면 최후의 호의라기보다는 그녀가 내리는 최초의 처벌인 것 같았다. 이어서, "그러면 기꺼이 설명해 드리겠어요. 물론 저는 성 사람이 아니고, 한낱 여자에 불과하고 그것도 겨우 여편네, 이 제일 하류 여관집__가장 하류는 아니더라도, 말하자면 그와 비슷한__여편네에 지나지 않아요. 그래서 당신이 제 설명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실지도 몰라요. 그러나 저는 평생 동안 두 눈을 뜨고 살아왔을 뿐더러 또 많은 사람들과 만났으며 힘든 일어나 고생도 혼자서 짊어지고 왔어요. 왜냐하면 재 남편은 물롱 좋은 사람이지만 그러나 여관 주인위 자격은 없어요. 거기다가 책이란건 조금도 모르는 사람이니까요. 그러나 이를태면 선생님이 이마을에 있을 수 있는 것이라든지, 또 선생님이 이 침대 위에서 쳔안하고 기분 ㅈ게 앉아 있을 수 있는 것도 모두 __저는 그날 밤 벌써 지쳐서 쓰러져 버릴 지경이었지만__우리집 양반이 무관심한 덕분이예요." "왜 그렇지요?" K는 분격했다기보다는 오히려 호기심네 자극된 일종의 방심 상태에서 깨어나면거 물었다. "단지 그분이 무관심한 덕분이지요!" 안주인은 K를 향하여 삿대질을 하면서 되풀이해서 외쳤다. 프리다는 그녀를 달래느라고 애썼다. "무엇이라고?" 하고 안주인은 홱 돌아서서 말했다. "측량 기사님이 내게 물으니까 나로서는 대답하지 않을 수 없잖아! 클람씨가 이분과 이야기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우리들은 뻔히 알고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하면 이분에게 알려드릴 수가 있어! 나는 지금 클람 씨가 이분과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닐 결코 이야기하지 못할 거 아냐. 그러면 제 말씀 좀 들어 보세요, 측량 기사님! 클람 씨는 성 양반이세요. 그는 그 사실만으로도, 그 밖의 그분의 지위 같은 건 도외시하고 생각하더라도 대단히 귀하신 분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대체 당신은 무엇이죠? 모두들 여기서 이처럼 겸손한 태도로 굽실거리면서 결혼의 승낙을 얻고자 하는 바로 그 장본인인 당신은 대체 누구시죠? 당신은 성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마을에서 난 것도 아니고 요컨대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당신은 역시 그 무엇이기는 해요. 즉 당신은 타향 사람이고 가외 사람이어서 어디로 가서나 방해가 되는 사람이에요. 그 사람 때문에 늘 다른 사람들이 괴로음을 당하고 또 그 사람 때문에 하녀들을 다른 곳에서 옮기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에요. 늘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도 없으며, 우리들의 귀엽고 귀여운 프리다를 유혹했으니 할 수 없이 그애를 아내로 주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에요. 그러나 사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당신을 비나하고 있는 것은 아니에요. 당신은 당신 나름대로의 한 사람의 인간이지요. 저는 저대로 지금까지 너무나 많이 이런 꼴을 당했으니까, 이와 같은 광경을 보고도 견딜 수가 있어요. 그런데 당신이 대체 어떤 요구를 하는지 그 점을 잘 생각해 보세요. 당신이 클람 같은 분과 면회를 하고 싶다고요! 프리다가 당신에게 구멍 속으로 들여다보게 했다는 이야기를 괴로운 마음으로 들었어요. 이애가 그런 짓을 한 것도 당신에게 유혹을 당한 까닭이지요. 그것은 그렇다고 하고 당신은 클람의 모습을 어떻게 보셨나요. 그걸 한 번 말씀해 보세요. 아니 당신은 대답할 필요도 없어요. 다 알고 있어요. 당신은 클람의 모습을 보고도 견딜 수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사실 당신이 클람을 만나는 일은 불가능해요. 이것은 제가 뻐기고 하는 소리가 아니고, 저 자신도 만날 수 없으니까요. 당신은 클람과 면회하고 싶어하지만, 클람은 마을 사람과 면회하지 않아요. 그분이 지금까지 마을 사람과 면회한 적은 한번도 없었어요. 그런데 그가 적어도 프리다의 이름만은 언제나 부르고 있었고, 프리다는 마음내키는 대로 언제나 그를 향해서 말할 수 있었고, 구멍으로 들여다보는 허가까지 받았어요. 이런 특권은 프리다의 굉장한 명예이고 따라서 저는 죽을 때까지 이 명예를 제 사랑으로 삼을 것이에요. 그러나 그분은 이애와 아직 한번도 이야기해 본 적이 없어요. 그리고 그분이 가끔 프리다를 불렀다고 하지만 사람들이 흔히 과장해서 생각하는 것처럼, 그런 큰 뜻이 있는 것은 결코 아니에요. 그분은 단지 '프리다'라는 이름을 불렀을 뿐이지요__그분의 마음 속을 누가 압니까?__프리다는 당연히 곧 뛰어갔지만, 이것은 프리다에게만 관계한 일이에요. 다만 이애가 아무런 반대도 없이 클람의 방안에 들어가게끔 허가를 받은 것은 확실히 그분의 호의였는데, 그렇다고 해서 역시 클람이 프리다를 불러들였다고 단언할 수는 없는 노릇이에요. 물론 지금은 영원히 지나간 과거지사가 되고 말았지만, 혹시 지금도 클람은 '프리다'라는 이름을 부를지도 몰라요. 그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에요. 그러나 이애는 결코 이젠 그 사람 방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받지 못할 것이에요. 당신과 관계를 가진 여자니까요. 그리고 다만 한 가지, 이 빈약한 제 머리를 가지고는 이해할 수 없어요. 즉 다른 사람들로부터 클람의__저는 이것을 너무나 과장된 표현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__애인이라고 불리우던 색시가 어찌해서 당신에게 움직였는가 하는 바로 그것이에요." 안주인의 말이었다. "정말 이상한 일인데요." 하고 K는 말하고, 고개는 수그리고 있었지만, 곧 자기 동작에 따라온 프리다를 자기 무릎 위로 끌어당겼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점에 있어서도 전부가 모두 당신이 믿고 있는 것과 똑같은 사정은 아니라는 점을 증명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클람에 비교하면 저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당신이 말씀하는 것도 당연해요. 그래도 제가 지금 클람과 면회를 원한다고 하더라도, 또 당신의 설명을 듣고 조금도 용기를 잃지 않고 있다고 해서 아무런 거리감 없이 클람의 모습을 태연히 볼 수 있으리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니까, 그가 방안에서 나오자마자 제가 방에서 내빼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요. 그러나 가령, 아무리 정당하다고 하더라도 저로서는 이 염려만으로 일을 감행하지 않는다는 이유가 되진 못할 거예요. 만일 제가 그를 감당해 낼 수만 있다면, 그가 저와 면회하는 것은 이미 아무런 소용도 필요성도 없는 일이지요. 제 말이 그에게 준 인상을 보기만 하면 그것으로써 저는 만족해요. 제 말이 아무런 인상도 주지 못했다 하더라도, 또 그가 전혀 제 말을 듣지 ㅇ는다고 하더라도 저는 한 사람의 권력자 앞에서 자유스럽게 말했다는 소득이 있지요. 그러나 주인 아주머니, 당신은 인생이나 인간 문제에 능통하고 계시며, 프리다는 프리다대로 어제까지도 클람의 애인이었으니까__제가 구태여 이 말을 피할 필요는 없어요__당신네들 두 사람이 저를 위해서 제가 클람과 만나서 이야기할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도 확실히 쉬운 일이 아닐까요? 만일에 다른 방법이 불가능하다면 신사관이라도 좋아요. 그는 틀림없이 오늘도 그 여관에 묵을 것이니까." "그것은 안 될 말이에요. 저는 당신이 그것을 도저히 이해하실 수 없다고 생각해요. 도대체 당신은 클람과 무슨 이야기를 할 작정이시죠?" 안주인의 말이었다. "물론 프리다 이야기지요." 하고 K는 대답했다. "프리다에 관한 이야기라고요?" 안주인은 도무지 알 수 없다고 표정으로 반문하더니 프리다 쪽으로 몸을 돌렸다. "들었어, 프리다? 네 일 때문에 이분이, 바로 이분께서 클람과 만나서 이야기하시겠단다. 클람과 이야기하신다는 거야." "아아 참, 아주머니는 똑똑하시고, 사람들에게 존경심을 일으키면서도, 쓸데없는 일에 늘 놀라시기만 하는군요. 그런데 제가 프리다에 관해서 그와 이야기하겠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라기보다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요. 제가 나타난 그 순간부터 프리다가 벌써 클람에게는 아무런 뜻이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고 당신이 생각하신다면, 그럿은 분명히 당신의 착각이에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당신은 그를 과소 평가한 게 돼요. 이런 일을 당신에게 말씀드리다니 주제넘은 짓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어요. 클람과 프리다의 관계는 저 때문에 변한 것은 하나도 없어요. 그들 두 사람 사이에는 관계가 있었는가 없었던가 두 가지 경우밖에 없어요. 만일에 이렇다 할 관계가 없는 경우에는__이것은 원래 프리다에게 애인이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을 붙여 준 사람들이 하는 소린데__그런 관계는 말하자면 현재도 없을 것이고 혹 또 어떤 관계가 생겼다고 하면 그것이 어째서 저로 말미암아__당신이 잘 맞힌 것처럼 클람의 눈으로 보면 아무것도 아닌 저로 말미암아__파괴되는 일이 있을까요? 그런 어리석은 일이란 깜짝 놀란 처음 순간만 사람들은 믿는 것이지요.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곧 고쳐지고 말아요. 좌우간 이에 대한 프리다의 의견을 들어 보기로 하지요." 시선을 더 먼 곳으로 옮기면서, 뺨을 K의 가슴에 댄 채 프리다는 말했다. "그것은 아주머니가 말씀한 대로예요. 클람은 이미 제게 관해서 아무것도 알려고 하지 않아요. 그렇다고 해서 여보세요, 당신이 왓다고 해서, 그런 것도 아니에요. 그는 그런 것으로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아요. 뿐만 아니라 우리들이 저 목로 밑에서 만난 것도 사실은 그분이 꾸민 장난이라고 생각해요. 그 시간은 축복을 받아 마땅하지 결코 저주받을 것은 아녜요!" "만일 그렇다면." 하고 K는 천천히 말했다. 프리다의 말이 너무나 달콤했기 때문이다. 그는 프리다의 이 말을 음미하기 위하여 이삼 초 동안 눈을 감고 있다가, "만일 그렇다면 클람과 이야기하는 것을 두려워할 이유는 더욱 적어지지요." 하고 말했다. "참말로." 하고 안주인은 말하더니 높은 곳에서 K를 뚫어지게 내려다보면서, "당신은 가끔 우리 주인을 생각나게 해요. 당신이나 그분이나 외고집쟁이고, 어린애처럼 유치해요. 당신은 여기 온 지 아직 이삼 일밖에 안 되는데, 당신은 무엇이든지 이 고장 사람들보다도 더 잘 알려고 해요. 이 할멈인 저보다도, 그리고 신사관에서 많이 보고 들어서 겨험을 쌓은 프리다보다도 더 잘 알고 싶어해요. 번번이 규칙에 어긋나고 오랜 관습에서 벗어나는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운수 좋게 성공할 수도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겠어요. 저는 아직 그런 경험은 없지만, 적어도 그와 비슷한 예가 있을 것처럼 느껴져요. 그러나 그것은 확실히 지금 당신이 취하고 있는 방법이나 태도와는 달라요. 당신은 늘 '아니다, 아니다' 하고 말할 뿐이며, 자기 머리만 믿고 호의에 넘치는 충고를 귀담아듣지 않고 마이동풍으로 넘겨 버리기가 일쑤지요. 대체 당신은 제가 당신을 걱정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당신이 혼자 계신 당신에게 대해서 여러 가지로 관심을 가졌던가요? 그렇게 하는 것이 얼마나 좋았는지 모르겠고, 많은 일을 피하려면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에요. 그 당시 제가 단 한 마디 당신에 관해서 주인에게 한 말이 있는데, 그것은 '그 사람을 피하도록 것이에요' 라는 이와 같은 말이었어요. 만일 프리다가 지금 당신의 운명에 휩쓸려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저는 지금도 똑같은 소리를 되풀이했을 것이에요. 이것이 당신의 마음에 들건 안들거 제가 당신을 염려하는 것이라든지, 더군다나 각별히 고려하는 것도 모두 이애의 덕택이에요. 당신은 함부로 저를 구박할 수는 없어요. 왜냐하면 당신은 제게 대해서는, 즉 이 귀여운 프리다를 어머니처럼 걱정하면서 보살피고 있는 여자에게 대해서는 무거운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정말로 프리다의 말이 옳고, 일어난 사건은 모두 클람의 지령일지도 몰라요. 그러나 저는 지금 클람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몰라요. 앞으로도 결코 그분과 만날 기회도 없을 것이고, 제게는 전혀 손이 미치지 않는 곳에 있는 분이에요. 그런데 당신은 여기에 앉아서 제 프리다를 껴안고, 동시에 제게__그런 일을 감추어 둘 필요도 없지만__ 바로 제 품안에 안겨 있는 거나 마찬가지지요. 왜냐하면 제가 당신을 이 집에서 쫓아낸다면 개 집이든 무엇이든 이 마을에서 묵을 데가 있나, 한 번 찾아봐요." 하고 안주인은 말했다. "고마워요. 솔직한 말씀인데요. 당신의 말씀을 그대로 믿겠어요. 그러고보면 제 입장이나, 또 제 입장과 관련되고 있는 프리다의 입장도 상당히 불안한 것인데요." K가 말했다. "아니에요!" 하고 안주인은 그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미친 사람처럼 날뛰면서 외쳤다. "프리다의 입장은 그 점에 있어서는 당신의 입장과 손톱만큼도 상관이 없어요. 프리다는 제 집사람이에요. 제 집에 속하는 그애의 입장을 불안스럽다고 말할 권리를 가진 사람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을 거예요." 그렇게 안주인은 말했다. "좋아요, 좋아요. 저는 그점에 있어서도 당신이 옳다고 인정해요. 더군다나 저도 그 이유을 알 수 없지만, 프리다는 당신을 대단히 무서워하는 모양이어서 이 의논에는 한몫 끼려고도 하지 않으니까 더 말할 것도 없어요. 그러면 우선 이야기를 오로지 제 일신상에 관한 것에만 국한시키기로 하지요. 제 입장이란 극도로 불안한 것이에요. 이것은 당신도 부정하지 않을 뿐더러 증명하려고 애쓰고 계세요. 이것도 당신의 말씀대로 대개는 옳지만 그러나 하나에서 열까지 전부가 다 옳다고는 할 수 없어요. 예를 들어서 말하자면 저는 언제나 마음이 내키는 대로 들 수 있는 정말로 근사한 숙소를 하나 알고 있어요." "K의 말이었다. "어디에요? 대체 어디란 말이에요?" 하고 프리다와 안주인이 이구동성으로 무척 호기심을 가지고 외쳤다. 두 사람이 같은 동기에서 질문하는 것 같은 말투였다. "바르나바스네 집에서요." 하고 K는 말했다. "저 건달들! 능구렁이처럼 교활한 자식들! 그 바르나밥스 집에서라고? 좀 들어 봐요......" 안주인은 이렇게 외치더니 방안 한구석을 돌아다보았다. 그런데 조수들은 벌써 어느 결에 나타나서 서로 팔을 끼고 안주인 뒤에 버티고 서 있었다. 그때에 안주인은 무엇이든 기대는 것이 없어서 곤란한 듯이 조수 한 사람의 손을 붙들고, "들어봐요, 이분들이 어디를 헤매고 돌아다녔는지! 하필이면 바르나바스의 집이라고! 물론 거기라면 언제나 묵을 수 있을 거야. 아아! 신사관에 들지 말고 차라리 거기에 묵는 쪽이 얼마나 나았을까 몰라. 그런데 좌우간 당신네들은 어디서 기다렸지요?" 하고 물었다. "주인 아주머니!" 하고 K는 조수들이 아직도 대답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말했다. "이 두 사람은 제 조수들이에요. 그런데 당신은 이 두 사람이 당신의 조수인 동시에 제 감시인을 겸한 것처럼 취급하고 있어요. 적어도 다른 일이라면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대로 공손하게, 당신의 의견에 대해서는 토론할 마음의 준비를 갖추고 있지만 다만 조수에 관해서는 비판의 여지가 없어요. 왜냐하면 이것은 사리가 너무 명백하기 때문이죠. 제발 제 조수들과는 이야기하지 마세요. 만일 이렇게 부탁 말씀드려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저는 두 사람에 대해서 대답하는 것을 금지해 버리겠어요." "그렇다면 저는 당신네들과 이야기할 수 업는 것이군요." 안주인이 이렇게 말하자, 세 사람은 다 웃었다. 안주인의 웃음은 조수들의 웃음은 늘 웃는 그것이었으며, 뜻 깊은 것 같으면서도 뜻이 없는 것도 같고 모든 책임을 거부하는 것 같은 그런 웃음이었다. "화는 내지 마세요." 하더니, 프리다는 이어서 말했다. "당신은 우리들이 흥분하고 있는 기분을 양해해 주시지 않으면 안 돼요. 말하자면 우리들이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인연을 맺게 된 것도 전적으로 바르나바스 덕분이지요. 제가 처음으로 술집에서 당신의 모습을 보았을 때__당신은 올가오 팔을 끼고 들어오셨는데__벌써 저는 당신 이야기를 몇가지 듣고 있었어요. 그러나 당신은 제게 있어서는 아무래도 좋은 것이 아니라 거의 전부가 아무래도 좋은 것이었어요. 저는 그 당시에 불만이 많았으며, 여러 가지 일에 대해서 화를 냈어요. 그러나 그것은 어떤 불만이며 또 어떤 분노였을까요! 예를 들면 술집에서 손님 한 사람이 저를 모욕한 일이 있었어요. 그들은 늘 제 뒤를 쫓아다니기만 했어요__당신은 거기 있던 젊은이들을 보셧을 거예요. 그런데 더 지독한 자들이 왔어요. 클람의 하인들이 제일 지독한 것은 아니었어요__그런데 그들 손님들 가운데 한 사람이 저를 모욕했어요. 그러니 그것이 결국 제게는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요? 제게는 그것이 마치 몇 해 전에 일어난 일처럼 느껴졌어요. 또는 그런 일이 전혀 일어나지도 않은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런 소리를 이야기로만 들은 것처럼 또는 저 자신도 벌써 다 잊어버린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러나 저는 이제 그것을 형언할 수도 없고, 또 상상할 수도 없어요. 클람이 저를 버리고 만 다음부터는 모든 것이 다 달라졌어요." 거기서 프리다는 말을 끊었다. 슬픈 듯이 고개를 푹 수그리고 무릎 위에 두 손을 깍지끼고 있었다. "좀 보세요." 하고 안주인은 외쳤는데 그 말투는 그녀 자신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프리다의 내심의 부르짖음에 대해서 자기 목소리를 빌려 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프리다 옆으로 다가앉아서 다음과 같이 말을 계속했다. "측량 기사 양반, 당신이 한 일의 결과를 살펴보세요. 그리고 저는 그들과 말할 자격도 없지만 당신의 조수들도 그들의 장래의 교훈을 위해서 잘 알아 두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지금까지 이애에게 주어진 가장 행복한 상태에서 당신이 이애를 빼앗아 버렸어요. 당신이 이처럼 성공한 것은 무엇보다도 프리다가 지나치게 순진한 동정심에 사로잡혀서 당신이 올가의 팔에 매달려 바르나바스 집으로 갈 것처럼 보였을 때, 그 꼴을 차마 보고만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애는 당신을 구제해 드린 반면에 자기 자신은 희생되고 말았어요. 이제 일은 그쯤 되어 버렸고, 프리다가 가지고 있었던 모든 것을 이와 같이 단지 당신의 무릎 위에 앉는다는 행복과 바꿔 버린 이 마당에 있어서, 당신이 찾아와서 최후 수단을 쓴답시고 당신이 언젠가는 바르나바스 집에 묵을지도 모른다는 그 가능성을 주장했어요. 아마도 당신은 그렇게 말함으로써, 당신이 제게서 엄연히 독립해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던 모양이지요. 아닌게아니라 만일 당신이 바르나바스 집에 묵었더라면 틀림없이 당신은 제게서 완전히 독립해서 지금이라도 당장에 제집을 떠나 버려야만 될 것이에요." "저는 바르나바스의 집의 죄과를 몰라요." K는 마치 생기가 없어진 것처럼 보이는 프리다의 몸을 조심스럽게 껴안아서 천천히 침대 위에 올려 놓고 자기 자신도 일어서면 또 말을 계속했다. "아마도 아주머니 말씀은 그 점에 있어서는 옳을지도 몰라요. 그러나 제가 우리들 두 사람, 즉 프리다와 저와의 두 사람 사이의 일을 우리들 두 사람에게만 맡겨 달라고 부탁한 것은 확실히 제가 옳았어요. 그 때 아주머니는 사랑과 걱정에 관해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데 저는 특별히 그 이상 더 염두에 두지도 않았어요. 그 반면 증오, 조소, 추방에 대해서는 더욱더 멀리를 썼지요. 아주머니가 프리다를 제게서부터든지 또는 저를 프리다에게서부터든지 떼어놓으려고 생각하셨다면 아주 교묘한 수단이었는데요. 그러나 아주머닌 확실히 이것에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에요. 만일 아주머니가 이것에 성공한다면 아주머니가 그것을__약간 위협조위 말을 쓰는 것을 용서하세요__굉장히 후회하실 거에요. 또 빌려 주신 거처에 대해서는__ 거처라고는 하나 아주머니가 생각하시는 것은 이 지긋지긋한 굴에 지나지 않을 것이지만__이 방을 아주머니가 자진해서 빌려 주셨는지 어쩐지 대단히 의심스러워요. 혹시 여기에 대해선 백작의 관청에서 지령 같은 것이 내린 건 아닌지요. 그렇다면 제가 이 곳을 쫓겨난 사실을 거기에 신고하겠어요. 제가 다른 거처로 배치되면 아마도 아주머니 숨을 내쉬고 안도감을 느낄 테지요. 그러나 저는 그 이상 더 안심이에요. 그건 그렇고, 저는 이제 이 일 저 일로 면장한테 다녀오겠어요. 미안하지만 프리다만이라도 돌봐 부세요. 아주머닌 프리다를, 말하자면 어머니가 하듯이 설교나 꾸지람으로 지독하게 혼내셨지요." 그리고 나서 그는 조수들이 있는 쪽으로 몸을 돌렸다. "이리 와!" 하고 그는 외치고 못에 걸린 클람의 편지를 빼내서 나가려고 했다. 안주인은 잠자코 그를 쳐다보고 있다가, 그가 문의 손잡이에 손을 대었을 때에 비로소 말을 끄집어냈다. "측량 기사 양반! 당신께 가시는 길에 뭘 좀 드릴 것이 있어요. 왜냐하면 당신이 어떤 연설을 해도, 저와 같은 이런 할멈을 아무리 모욕하려고 할지라도 당신은 역시 프리다의 장래에 남편이시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참고 삼아 말씀드리겠는데, 당신은 이 땅의 여러 가지 사정에 대해서는아주 깜깜하세요. 말씀을 듣고 있으려면, 그리고 들은 말씀과 생각을 머리 속에서 현실과 비교해 보면 아주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에요. 이런 무식이란 결코 한꺼번에 고쳐지지도 않고, 아마도 절대로 고ㅊ지지 않을지도 모르겠어요. 글러나 당신이 조금이라도 제 말을 믿어주신다면 또 이 무식이란 것을 언제나 잊지 않으신다면 많은 것이 더 나아질 것이에요. 그러면 당신은, 말하자면 당장에 제게 대해서 좀더 친절한 분이 되시겠지요. 또 제가 가장 귀여워하는 이애가, 예를 들면 음흉한 도마뱀과 인연을 맺기 위해서 독수리를 버렸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을 때, 제가 얼마나 깜짝 놀랐던가__그당시의 놀라움이 아직도 가시지 않고 남아 있지만__그것도 깨닫게 될 것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저는 도저히 당신과 조용하게 말을 주고받고 할 수도 없을 것이에요. 아아, 당신은 또다시 화를 내시는 모양이군요. 아아, 아직 가시면 안 돼요. 또 한 가지 이 소원만은 들어 주세요. 어디로 가시든, 당신은 이 땅에서는 자기가 가장 무식한 인간이란 사실을 잊지 마시고 항상 조심하셔야 해요. 그러면 당신은 프리다가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무안과 수치를 당하지 않고 넘어갈 수 있었던, 여기 우리 집에서 속시원하게 잡담을 하셔요 좋아요. 또 그 때에는 예를 들면 왜 당신이 클람과 만나려고 생각하는가를 우리들에게 털어놓고 이야기하실 수도 있어요. 그러나 정말 실제로 실천에 옮기는 것만은 제발 그만둬 주세요." 그녀는 흥분에 못 이겨서 좀 비틀거리면서 일어섰는데 K에게로 걸어가서 그 손을 잡더니 애원하는 듯이 그를 쳐다보았다. "주인 아주머니, 아주머닌 그런 대수롭지 않은 일 때문에 왜 그다지도 굽실거리면서 제게 부탁하는지 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어요. 만일 당신 말씀대로 클람과 면회할 수 없다면 사람들이 제게 원하든지 않든지간에 원래 제게는 성공하기 어려운 일이 아닐까요? 그러나 만일에 그것이 가능한 일이라면 왜 제가 해서는 안 된다는 법이 있을까요. 더군다나 가능할 때는 아주머니의 중대한 반대 이유가 없어지는 것과 동시에 당신의 다른 여러 가지 염려도 대단히 의심스러운 것이 되겠지요. 물론 저는 무식해요. 이것은 제게 대단히 슬픈 일이지만 사실은 사실이니까 어찌 할 수 없어요. 이것은 제게 대단히 슬픈 일이지만 사실은 사실이니까 어찌 할 수 없어요. 그러나 한편 무식한 자는 오히려 대담하게 단행하는 이점도 있으니까, 저는 그 무식이라든지 또 그 형편 없는 결과까지도 당분간 힘이 자라는 한 참고 있으려고 마음먹고 있어요. 그러나 이 여러 가지 결과란 뭐니뭐니 해도 본질적으로는 제게만 해당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왜 당신이 제게 탄원하시는지 특히 그 점을 이해할 수 없어요. 여하튼 프리다만은 앞으로도 당신이 여러가지로 돌봐 주실 것이라고 믿고 있어요. 그리고 만일에 제가 프리다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아마 당신의 입장에서는 단지 행복을 뜻하는 것 이외는 아무것도 아닐 것이니까요. 그렇다면 당신은 대체 무엇을 두려워하시는 거지요?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혹시__무식한자에게는 무엇이든지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__" 여기까지 말하고는 K는 문을 열었다. "혹시 당신은 클람을 생각하고 염려하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안주인은 그가 게단을 재빨리 내려가고, 그 뒤를 조수들이 따라가는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5 면장과의 면담이 그다지 걱정도 되지 않는 걸 K는 스스로 이상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백작의 관청과의 직무상의 교섭이 참으로 간단하였기에, 이번에 의외로 태연한 것도 그 경험이 머리 속에 남아 있는 까닭이라고 억지로 이유를 붙여 보기도 했다. 아무튼 한편으로는 K의 사건 처리에 있어서 외견상은 그에게 아주 유리한 어떤 근본 원칙이 세워졌으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관청 사무 계통이 감탄할 만큼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 통일성이란 언뜻 보기에 통일성이 없는 곳에 특히 완전한 통일성이 있는 것이 아닌가고 느껴지는 따위였다. K는 흔히 이 유리한 근본 원칙과 통일된 사무 계통을 생각할 때마다 우선 자기의 입장을 만족스럽게 생각했다. 자못 만족을 느끼고 기분이 좋아진 다음에는 언제나 바로 여기에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다고 재빠르게 중얼거리곤 했다. 백작의 관청과 직접 교섭하는 일은 그다지 곤란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이 관청이 아무리 잘 조직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멀리 떨어져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성 사람들의 이름으로서만 언제나 멀리 떨어져 눈에 띄지도 않는 사람을 옹호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한편으로는 K는 아주 절실한 신변의 일로, 즐 자기 자신을 위하여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K는 적어도 애초에는 스스로 자원하여 투쟁한 사람, 즉 공격자였다. 그리고 그는 혼자서 자기 자신을 위해서 투쟁했을 뿐만 아니라 확실히 다른 힘들도 그를 도와주었다. 그는 힘을 알지 못했지만 관청의 처분으로 미루어 보아 그 힘의 존재를 믿을 수 있었다. 그런데 관청은 하찮은 일을 가지고__지금까지 오로지 하찮은 일밖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__K의 비위를 맞추려고 퍽 애써 왔지만 그것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놓쳐 버렸다, 동시에 승리에 따르는 만족감과, 앞으로 일어나는 더 큰 투쟁에 대해서 자신 만만하게 대결할 수 있는 힘을 잃어버렸다. 그 대신 직무를 떠난 아주 걷잡을 수 없는 우울하고도 기이한 생활 속으로 그를 몰아 넣었다. 이와 같이 하여 만일에 그가 늘 조심하지 않았더라면, 관청에서 아무리 친절하게 해 준다고 하더라도, 또 정도에 지나치게 쉬운 직무상의 의무를 그가 완전히 이행했다고 하더라도, 자기에게 실속도 없이 건성으로 보여 준 호의에 눈이 어두워 모르는 사이에 직무 외의 생활을 아주 경솔하게 보내게 되었다. 그 결과 그는 거기서 좌절해 버리는가 하면, 관청 쪽에서는 여전히 온건하고도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고, 말하자면 자기네들의 의사와는 반대로 할 수 없이 한다는 듯이, K는 모르는 공적 질서라는 명목 아래 를 없애 버리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그 직무 이외의 생활이란 대체 무엇일까? K는 공무와 사생활이 이처럼 중복되어 있는 것을 다른 곳에서는 아직 본 일이 없었다. 공무와 사생활이 서로 혼동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고 의심할 정도로 공과 사가 뒤바뀌었다. 예를 들면 클람이 K의 직무상에 미치고 있는 지금까지는 단지 형식적인 것에 불과했던 세력은, 같은 클람이 K의 침실에서 여실히 발휘하고 있는 세려과 비교하면 과연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이 마을에서는 관청과 직접 대결하는 경우에는 약간 경솔한 행동이 있더라도 상관이 없다. 즉 약간 긴장을 늦추어도 상관이 없다. 그런데 그 밖의 다른 경우에 있어서는 커다란 주의가, 즉 한 발짝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언제나 사방을 돌아다보는 조심성이 필요하다. K는 이 고장의 관청에 대한 자기 견해가 옳다는 사실을 우선 면장을 통해서 확신을 얻었다. 면장은 친절하게 보였으며 뚱뚱하고, 매끈매끈하게 수염을 깎는 남자였는데, 병이 들어서 중풍의 발작이 있었기 때문에 침대에 누운 채 K를 맞았다. "우리들의 측량 기사가 오셨구먼!"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인사 차례로 일어나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두 다리를 가리키고 변명하면서 이불 속에 다시 누워 버렸다. 창이 작은데다가 커튼이 걸려 있어서 방안은 더욱 어두웠으나 그 어슴푸레한 분위기 속에서 희미한 그림자처럼 보이는 부인이 K을 위하여 잠자코 의자를 갖다가 침대 옆에 놓았다. "앉으세요, 어서 앉으세요. 측량 기사! 앉아서 무슨 소원이나 희망 같은 것이 있으면 말해 보세요." 면장이 말했다. K는 클람의 편지를 낭독하고 거기다가 몇 마디 덧붙여서 말했다. 또다시 그는 관청과 교섭하는 것이 거져 먹기라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관청은 정말로 어떤 무거운 짐이라도 부담시킬 수가 있고, 자기 자신은 모르는 체하고 자유스러운 기분으로 지낼 수도 있다. 면장도 그 눈치를 챈 듯, 기분 나쁘다는 듯이 돌아눕더니, 드디어 말을 꺼냈다. "측량기사, 당신도 벌써 짐작했겠지만 나는 이 사건 전체에 대하여 샅샅이 잘 알고 있어요. 그러나 내가 직접 이 일에 착수하지 않은 이유로는 두 가지를 들 수 있어요. 첫째로는 내가 병을 앓고 있었다는 것과, 둘째로는 당신이 상당히 오랫동안 오지 않았기 때문에 당신이 벌써 단념해 버린 것이라고 추측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당신이 친절하게도 몸소 나를 방문해 주셨으니까, 사실을 사실대로, 모조리 불쾌한 일이기는 하지만,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어요. 당신은 당신 말대로 측량 기사로서 채용되었어요.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들은 측량 기사를 구하고 있던 것은 아니지요. 측량 기사가 할 일은 하나도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지요. 우리들이 관리하고 있는 작은 영토는 말뚝으로 경계선을 표시하고 있으며 모든 것이 제대로 기록되어 있어요. 소유지의 변동은 거의 일어나지 않고 경계에 관한 사소한 소송 사건은 우리들 스스로가 조정 해결하고 있어요. 이러고 보면 우리들이 무엇 때문에 측량 기사가 필요한지 알 수 없지 않아요?" 지금까지 그런 일을 깊이 생각해 본 것은 아니었지ㅁ, K의 마음 속에 품고 있던 계획이 송두리째 뒤집히고 말았습니다. 무슨 오해라도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것만이 한 가닥의 희망입니다." "미안하지만, 오해 같은 것은 없어요. 내가 말씀드린 그대로지요." 면장은 대답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렇게 먼 여행을 하고 왔는데, 무자비하게 송환당하다니 말이 됩니까?" K는 그렇게 말했다. "그것은 이야기가 달라요. 내가 결재하는 권한 외의 문제지요. 그런데 전에 어떻게 오해가 일어날 수 있었나 하는 점은 물론 설명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백작님의 관청처럼 큰 관료 기관에 있어서, 어느 과거에서는 갑의 사항을, 다른 기관에서는 을의 사항을 각각 전담 관할하는 관계상, 어느 과도 다른 과에서 맡은 일을 모르지요. 물론 상부의 감독 통제는 철저하고 면밀한 것이지만, 그 성질상 하달되는 것이 늦은 게 보통이어서 늘 분규가 일어나곤 해요. 물론 그것은 언제나 당신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미미한 일에 불과했지요. 중대한 사건에 있어서는 아직도 과오가 있었다는 소리를 들어 본적이 없는데, 하찮은 일일수록 두통거리는 되기 일쑤지요. 당신의 일에 관해서는 직무상의 비밀에 붙이지는 말고__나는 그런 짓을 하는 관리는 아니고 어디까지나 농부일 뿐더러 평생 농부이기는 변함이 없을 것이지만__사건의 전말을 솔직히 이야기하기로 하지요. 훨씬 전의 일인데, 당시 나는 면장이 되어서 아직 두서너 달밖에 안 되었던 때에 명령이 내렸어요. 어느 과에서 그 명령을 발송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거기에는 그들의 독특하고 단정적인 표현으로써 측량 기사를 초빙하라고 써 있었으며, 마을은 측량 사업에 필요한 계획서와 도표류를 준빕하도록 명령받았어요. 이 명령은 몇 해 전 이야기니까 물롱 당신에게 관계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나도 지금 이렇게 병으로 침대에 누워서 쓸데없는 일을 곰곰히 생각하는 시간 여유가 없었더라면, 그렇게 우습기 짝이 없는 일이 기억에 떠오르지도 않았을 것이지요." "미치!" 하고 그는 갑자기 이야기를 중단하고 아주 바쁘게 방을 지나가는 아내를 불렀다. "미안하지만, 거기 장 속을 좀 찾아봐 줘요. 아마도 명령서가 있을 테니까." "이 명령서는 내가 처음에 관리로 취임했을 때의 것이오. 그 당시는 나도 무엇이나 보관해 두는 버릇이 있었어요." 그는 K를 향하여 섦여하듯 말했다. 면장 부인은 곧 장을 열고, K와 면장은 그쪽을 바라보았다. 장에는 서류가 가득 차 있었다. 장을 열자마자 마치 장작 묶음처럼 둥그렇게 동여맨 큰 서류 다발이 굴러 나와서 부인은 깜짝 놀라 옆으로 물러섰다. "아래에 있을는지 몰라요, 아래에." 면장은 침대 속에서 이렇게 지시했다. 부인은 고분고분하게 남편 말에 복종하여 두 팔로 서류를 안아서 내던지고 장을 비게 하여 아래에 깔린 서류를 끄집어낼 수 있도록 했다. 당장에 방안의 절반은 서류를 파묻혀 버렸다. "거창한 일이 되었군." 하고 면장은 혼자서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런데 이것은 일부분에 불과해요. 대부분은 창고 속에 보관하고 있지만 물론 거의 분실되고 말았어요. 그 누군들 죄다 보존해 둘 수야 있어요? 그러나 창고 속에는 아직도 많이 남아 있어요." "명령서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표지에 '측량 기사' 라는 글자가 씌어 있고 그 아래에 푸른 잉크로 줄을 그은 서류를 찾아야 해!" 하고 그는 이번에는 또 아내 쪽을 향하여 말했다. "여기는 너무나 어두워서 촛불을 가져와야겠어요." 하고 부인은 말하면서 종이가 높이 쌓인 위를 넘어 방 밖으로 나갔다. "집사람은 이런 어려운 공무를 집행할 때면 참 큰 도움이 돼요. 더욱이 이 일은 부수물로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나는 서류 작성의 일을 시키기 위해서 또 한 사람 학교 선생을 조수로 쓰고 있는데, 그래도 일을 다 해내지 못해서 하다 남은 일거리를 거기 그 상자 속에 모아 두었어요." 하고 면장은 말하면서 다른 장을 가리켰다. "설상 가상으로 내가 지금 병을 앓고 있으니까 쌓이기만 하지요." 하고 그는 말하고, 자못 피곤한 기색이었으나 그래도 자랑스럽게 몸을 뒤로 기대었다. "뭣하면 제가." 하고 K가 말했는데 그 때 부인은 촛불을 가지고 돌아와서 상자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명령서를 찾기 시작했다. "제가 사모님을 도와서 함께 찾기로 할까요?" 면장은 빙그레 웃으면서 머리를 흔들었다.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당신에 대해서는 직무상의 비밀 같은 것은 없어요. 그렇다고 해도 당신에게 직접 서류를 찾으시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방안은 아주 고요했으며, 단지 종이가 바스락거리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면장은 약간 졸고 있는 모양이었다. 문을 가볍게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서 K는 돌아다보았다. 틀림없이 조수들일 것이다. 여하튼 그들은 약간 교육은 받아서 당장에 방안으로 뛰어 들어오지는 않고 조금 연 채 그 문틈으로 속삭였다. "바깥이 너무 추워서 죽겠어요." "누군가요?" 면장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제 조수들인데 어디서 기다리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바깥은 몹시 춥고 여기는 또 여기대로 폐가 되니까 말입니다." K의 대답이었다. "여기 있어도 상관없어요. 들어오라고 하세요. 좌우간 두 사람은 낯이 익은 사람이에요. 전부터 아는 사이지요." 면장은 친절하게 말했다. "그러나 제게는 지장이 있습니다." 하고 K는 솔직히 말하고 나서, 눈초리를 조수들에게서부터 면장에게로 돌리고 다시 면장에게서부터 조수들에게 옮겼다. 세 사람이 입 언저리에 띄우고 있는 미소는 너무나 닮아서 서로 가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그는 시험삼아서, '자네들은 벌써 방안에 들어왔구만. 그렇다면 자네들은 여기 있기로 하고 저기 계신 사모님을 도와서 서류를 찾아 주게. 표지에 '측량 기사' 라고 써있고, 프른 잉크로 줄을 친 서류인데." 하고 말해 봤다. 면장은 아무 반대도 하지 않았다. 서류에 손을 대는 것은 K에게는 허락되지 않았지만 같은 일을 조수들은 해도 좋았다. 두 사람은 바로 산더미 같은 서류로 덤벼들었으나 찾는다는 것보다는 종이 뭉치를 파헤치고 뒤적거리기만 했다. 한 사람이 서류의 표지 제목을 한 자씩 토막으로 갈라서 읽으면, 또 한 사람은 그것을 상대방의 손에서 채뜨리곤 했다. 부인은 빈 상자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으나 전혀 찾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좌우간 촛불은 그녀가 있던 곳에서 상당한 거리에 놓여 있었다. "그러면 조수들이 당신에게는 거추장스럽고 귀찮다는 거지요. 그러나 당신 자신의 조순데요." 면장은 그렇게 말하면서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마치 모든 것이 자기 지령에서 나왔는데, 아무도 그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다고 비웃는 듯한 미소였다. "아닙니다, 그들은 제가 여기에 온 후에 뒤쫓아왔습니다." 하고 K는 냉랭하게 대답했다. "뒤쫓아왔더니 이상한 표현인데요. 아마도 배치됐다고 말씀하시려는 거겠지요." 면장이 말했다. "그렇다면 배치되었다고 해 두겠습니다. 그들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거나 마찬가집니다. 그 배치란 아닌 밤중에 홍두깨 식으로 엉터리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여기서는 엉터리 일이라곤 하나도 일어나지 않아요." 하고 면장은 말하면서 발이 쑤시고 아픈 것조차 잊어버리고 몸을 똑바로 일으켰다. "엉터리 일은 하나도 없다고 말씀하시지만 저를 부르신 문제는 어떻습니까?" K는 물었다. "당신의 초빙 문제도 충분히 검토했어요. 단지 부수적인 세세한 문제가 복잡해서 사건을 혼란하게 만들고 있을 뿐이지요. 서류로써 그 증거를 보여 드릴 테니까요." 면장의 말이었다. "서류를 찾을 것 같지가 않습니다." K는 말했다. "찾을 것 같지 않다고요?" 하고 면장은 말했다. "미치, 좀 빨리 찾아 주어요. 하여튼 나는 서류가 없더라도 말씀드릴 수는 있어요. 먼저 말씀드린 그 명령에 대해서 우리들은 유감스럽지만 측량 기사는 필요 없다고 대답했어요. 그런데 이 대답은, 그 명령이 나온 본래의 과__가령 이것을 A과로 되돌아가지 않고 무슨 착오로 다른 B가도 우리들 손에 남아 있는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도중에서 분실되었는지 어느 쪽인지는 알 수 없지만__과 안에서 분실된 것은 절대로 아니라느 점은 내가 장담해도 좋아요__좌우간 B과는 단지 서류의 봉투밖에는 접수하지 않았어요. 그 봉투 겉에는 안에 든 서류 내용이 측량 기사의 초빙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만이 기록되어 있을 뿐이었어요. 그러는 동안에 A과에서는 우리들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물론 A과에는 그 문제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었지요. 그러나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는 것은 알 수 있는 일이고, 또 모든 수속 절차의 결제의 정확성을 기한ㄷ 하더라도 흔히 발생하는 일이기도 해요. 그래서 보고자는 우리들이 대답해 주는 것만 고대하고 있다가 그 대답을 본 다음 측량기사를 초빙하든가, 또는 필요에 따라서는 우리들과 계속해서 통신 연락을 하든가, 어느 쪽이든지 태도를 결정하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보고작 사건의 메모를 적어 두는 것을 소홀히 해서 전부 다 잊어버리게 되었죠. 그러나 B과에서는 양심적이라는 것으로 유명한 보고자가 서류의 봉투를 받았어요. 수르디니라는 이름의 이탈리아 사람인데, 내정을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 사람처럼 유능한 사람이 어째서 언제까지나 아랫자리에 머물러 있는지 이해가 안 가요. 소르디니는 물론 빈 봉투를 우리들에게 돌려보내고 알맹이가 비었으니까 그것을 넣어 보내라고 요청했어요. 그러나 그것은 A과의 맨 먼저 문서를 써 보냈으니까 몇 년은 지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몇 달은 지난 후였어요. 설명할 필요도 없을 만큼 명백한 일이지만, 보통 문서가 제대로 배달되는 경우에는 늦어도 하루면 해당되는 과에 전달되어 그 날로 문제가 처리되게 마련이지요. 그러나 반대로 문서가 길을 잃고 헤매는 겨우에 있어서는__관청 조직이 후륭한 만큼 문서는 길을 잘못 들어 더욱 빗나갈 수밖에 없어요. 그 길밖에는 길이 없어요__그 때야말로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리지요. 따라서 소르디니가 보낸 문서를 받았을 때는, 우리들은 둘뿐, 즉 미치와 나와 둘만이 일을 보고 있었고 학교 선생은 아직도 배치되지 않았으니 아주 중대한 요건 이외는 사본을 보관해 두지도 않았어요. 요컨대 우리들은 아주 애매하게 그런 초빙 문제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를 뿐더러, 측량 기사는 소용없다고 대답하는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어지요. 그런데." 하고 면장은 여기서 자기가 너무나 이야기에 열중했다는 듯이 또는 적어도 지나치게 이야기에 열을 올리지나 않았나 하고 두려워하는 듯이 이야기를 중단해 버리고. "이 이야기가 지루하지 않아요?" 하고 물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퍽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K의 말을 받아, 면장은, "심심풀이로 하고 있는 이야기는 아니데요." 하고 말했다. "제가 말씀을 재미있게 듣고 있다고 말씀드린 것은, 오로지 말씀을 듣고서 하찮은 착오가 경우에 따라서는 인간의 생활을 결정적으로 좌우한다는 사실을 통찰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K가 말했다. "아직도 통찰하시진 못했지요." 하고 면장은 정색을 하고 말했다. "그러면 또 이야기를 계속하기로 하지요. 물론 소르디니 같은 사람은 우리들의 대답으로는 만족하지 않았거든요. 나는 그에게 아주 감탄해요. 사실 그가 내게는 참 주통거리지만, 즉 그는 아무도 믿지 않아요. 예를 들면 지금까지 몇 번이고 믿을 수 있을 만큼 사귀어서 아는 사람이라도ㅗ 다음 기회에는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더 정확하게 말하면 건달 대하듯 전혀 신용하지 않아요. 그것은 틀림없이 옳다고 생각해요. 관리는 마땅히 그렇게 행동해야 돼요. 유감스럽게도 나는 내 성미가 이상해서 이 원칙을 지킬 수가 없어요. 보시는 바와 같이 나는 생전 처음 만나는 당신에게 대해서 무엇이든 털어놓고 이야기하고 있지요. 나는 그렇게밖에는 할 수 없어요. 그런데 빈번한 통신 왕래가 벌어졌지요. 소르디니는 나에게, 왜 측량 기사를 초빙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떠오르게 되었는지 물었어요. 나는 미치의 우수한 기억력의 힘을 빌려서, 최초의 제안은 직무상 그족에서 나온 것이며, 이쪽에서 측량 기사를 부르자고 제안한 일은 없다고 대답했어요(제안한 것은 다른 과라는 사실을 물론 아주 옛날에 까맣게 잊어버렸어요). 여기에 대해서 소르디니는 왜 내가 이 일에 관해서 처음 관청에서 온 서한의 이야기를 이제 비로소 끄집어내느냐고 물었어요. 나는 그 답장에서. 지금 겨우 그 일이 생각났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지요. 이어서 소르디니와 나와의 사이에는 옥신각신 다음과 같은 말을 주고받았어요. 고르디니__그것은 참 괴상한 일이다. 나__이렇게 오래 끌던 문제니가 조금도 괴상하지 않다. 소르디니__그러나 역시 이상하다. 당신이 기억하고 있다는 서한이 없다. 나__그 서한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서류 전부가 분실되었으니까. 소르디니__그렇다고 해도, 그 처음 서한이 장부에 베모로써 기입되어 있어야 할 탠데 그런 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막혀 버렸어요. 왜냐하면 소르디니의 과에 과오가 있다고 감히 주장할 수는 없는 일이었으며, 또 믿어지지도 않았기 때문이지요. 측량 기사 양반, 당신은 아마도 마음 속에서 소르디니를 비난하고 계실 테지요. 내 주장과 의견을 고려해서 다른 과에 그 일을 조회하는 성의를 보여 주었어야만 되는데 하고 나무라실지도 모르겠어요. ㅁ그러나 바로 그런 생각은 옳지 않아요. 나로서는, 비록 당신의 머리 속에서나마 이 사람에 대한 나쁜 인상이나 오점을 남기고 싶지 않기 때문이지요. 대체로 과오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가능성 같은 것은 전혀 계산에 넣지 않는 것이 관청 사무의 원칙이지요. 전체 조직이 잘되어 있으면 이 원칙은 정당한 것으로서 통해요. 또 일을 아주 빨리 처리해야 되 때는 이 원칙이 필요해요. 그래서 소르디닉 다른 과에 조회한다는 것은 전혀 허락되지 않았지요. 그뿐더러 조회했다고 하더라도 상대펀 과에서는 절대로 대답을 보내 주지 않았을 거예요. 왜냐하면 혹시나 그 과에 과오라도 있어서 그것을 조사하기 위해조회해 온 것이나 아닌가 하고 바로 눈치를 채게 되기 때문이지요." "면장님, 말씀 도중에 실례지만 잠깐 여쭤 보겠습니다.먼저 아까 감독 관청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지 않습니까? 관청의 운영 방법은, 말씀을 듣자니 감독 통제가 없는 경우란 상상만 해도 기분 나쁜 정도로 엄중합니다." 하고 K가 말했다. "당신의 말씀은 대단히 엄격하군요." 하고 면장이 말하며, "그러나 당신이 그 엄격성을 천 배 만 배로 곱하더라도 관청이 자기 스스로에게 과하고 있는 엄격성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데요. 감독 관청이 있느냐고 묻는 사람은 당신처럼 아무런 사정도 모르는 타향 사람뿐이지요. 성에는 감독 관청밖에는 없어요. 물론 일반적인 뜻으로 과오를 찾아내는 것이 감독 관청의 역활은 아니지요. 왜냐하면 과오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지요. 가령 당신의 경우처럼 과오가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대체 누가 그것이 과오라고 단정을 내릴 수 있을까요?"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퍽 색다른 의견이십니다." 하고 K가 말했다. "내게는 말하자면 케케묵은 이야기지요. 하며, 이어서 면장이 말하기를, "과오가 일어났다고 믿고 있는 점에서는 나도 당신과 그다지 다르지 않아요. 소르디니는 그 일에 절망한 나머지 중한 병에 거렸어요. 과오의 근원을 적발해 주는 제 1감독 관청도 이 때에는 과오를 인정하고 있었어요. 그러나 제2감독 관청이 똑같이 판단하고, 제3, 제4 그 밖의 다른 감독 관청들도 똑같은 판정을 내릴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요?" 라는 것이었다.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고 K가 입을 열어, "그러나 저는 무슨 간섭을 하기 위해 그런 일을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 감독 관청 이야기도 금시 초문이고, 물론 아직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단지 제가 생각하는 것은, 여기서 두 가지 종류를 구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즉, 첫째로는 관청 내부에서 일어난 일이라든지, 그리고 관청의 입장에서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는 일입니다. 다음에 둘째로는 '저' 라는 현존하고 있는 인간, 즉 관청 밖에 있기도 하거니와 관청으로부터 어떤 손해를 입을 위험성이 있는데, 그것이 언뜻 보기에는 대수롭지 않아서 위험이 정말 다가왔는지 아직도 저라는 인간은 생각조차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면장님, 기가 막히게 관청 사정에는 능통하고 계시지만, 면장님의 면장님은 그런 풍부한 지식을 다 쏟아서 이야기해 주신 것은 아마도 제가 말씀드린 첫번째 경우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저는 이 '저' 라는 인간에 관해서라도 한 마디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하고 말했다. "당신에 관해서라도 이야기하기로 하지요. 그러나 미리 몇 마디 설명하지 않으면 아시기 어려울 것 같아요. 지금 내가 감독 관청 이야기를 했지만 그것조차 시기 상조였던 것 같아요. 따라서 화제를 돌려서 소르디니와 이야기가 맞지 않고 서로 어긋났던 점에 대해 언급하려고 해요. 먼저 말슴드린 것처럼, 내 방어력은 점점 약해져 갔어요. 그런데 소르디니가 어떤 사람에 대해서 아주 사소하게 유리한 점이라도 손에 쥐고 있으면 그는 벌써 승리해버린 거나 마찬가지지요. 왜냐하면 그 때에는 그의 주의력, 정력, 침착한 태도가 훨씬 높아지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그는 그의 공격을 받는 상대방에게는 무서운 존재인 반면, 공격받는 상대방의 적에게는 참 훌륭한 존재이지요. 이 후자의 경우도 나는 다른 기회에 직접 경험해 보았어요. 지금 이처럼 그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지요. 여하튼 나는 그를 아직도 이 눈으로 보지 못하고 있어요. 그는 너무나 바빠서 아랫마을로 내려올 수가 없어요. 사람들이 말하는 소리를 들으니 그의 사무실은 큰 서류 묶음이 몇층이나 쌓여서 기둥처럼 되어 있고, 사방 벽든 이 서류의 기둥으로 덮여 있다고 하더군요. 소르디니가 일할 때 필요한 것은 단지 서류뿐이라니까요. 그리고 그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 무더기 속에서 늘 서류를 잡아 빼내기도 하고 또 속으로 집어 처넣기도 하는데. 그런 동작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기둥처럼 높이 쌓인 이 서류의 산더미가 늘 무너지기 마련이어서 언제나 그 무너지는 소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끊임없이 들려 오는데, 그 소리가 소르디니의 특색이라고 해요. 확실히 소르디니는 일꾼이며, 아주 사소한 일에도 중대한 일과 마찬가지로 세심한 주의를 아끼지 않아요." 하고 면장이 말했다. "면장님, 면장님께선 언제나 아주 하찮은 일의 하나로 취급하고 게십니다. 그러나 이 문제 때문에 많은 관리들이 아주 바쁘게 일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이 문제는 처음에는 아마도 극히 사소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소르디니 씨와 같은 관리가 열심히 활동한 결과 중대한 문제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것은 유감스러운 일일 뿐덜러 또 제 뜻대로 어긋나는 일입니다. 왜냐 하면, 제 자존심은 제게 관한 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였다가 이것이 한꺼번에 무너지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측량 기사로서 자그마한 제도 책상 옆에 조용히 앉아서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K의 말이었다. "아니오, 그것은 중대한 문제는 아니지요. 이 점에 대해서 당신은 불평할 이유라곤 없을 거요. 그것은 사소한 일 중에서도 가장 사소한 일의 하나지요. 일의 규모에 의하여 문제의 중요도를 결정 지을 수는 없어요. 당신이 그런 생각을 품고 있다면 백작님의 관청을 이해하는 데는 아직도 거리가 멀어요. 그러나 설사 일의 규모가 문제된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당신의 경우는 가장 사소한 일의 하나지요. 보통 일, 즉 소위 과오가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 보람은 있셌지만 훨씬 힘이 들어요. 좌우간 당신은 당신 문제 때문에 관청이 한 일을 사실은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있어요. 그것을 지금부터 이야기해 드리지요. 우선, 소르디니는 나를 내버려두었지만 그의 부하 관리들은 매일같이 신사관으로 찾아와서 마을의 유력한 사람들을 신문하여 조서를 작성했어요. 대개는 내 편을 들었지만, 그 중 완고한 자가 몇 사람 있었어요. 측량의 문제는 농부들에게는 절실한 모양이고, 그들은 그 배후에 무슨 비밀 협정이나 부정 행위라도 있는 것이 아닌가고 냄새를 맡고 돌아다니고, 더욱이 그 일에 지도자 격인 인물을 발견해 냈어요. 그래서 소르디니는 자연히 그들의 진술을 듣고 다음과 같은 확신을 갖게 되었어요. 즉 내가 면의회에 문제를 제기했으면 측량 기사 초빙 문제에 대해서 모두들 반대는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래서 명백한 일__측량 기사는 필요 없다는 일__이것이 적어요 문제삼을 여지가 있게 되었어요. 여기서 특히 브룬스빅크라는 자가 유난히 많은 활동을 했어요__당신은 이 사람을 모르시겠지만__이 사람은 나쁜 인간은 아닌 것 같으나 우둔하고 공상을 즐기며 라제만과는 의형제 사이지요." 면장의 말이었다. "피혁 가게 주인 라제만 말입니까?" 하고 K는 묻고, 라제만의 집에서 만난 텁석부터 이야기를 했다. "네, 바로 짐작으로 말했다. "그러시겠지요." 면장은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미인입니다. 약간 안색이 좋지 않고 환자처럼 보이던데, 아마 성 출신이지요?" K는 이 말을 반은 질문하는 어조로 말하였다. 면장은 시계를 쳐다보더니, 숟가락에 가득히 약을 따라서는 급히 그것을 마셔 버렸다. "성 안의 일로서는 단지 사무 조직에 관한 일밖에는 모르십니까?" K는 약간 실례가 될 정도로 물어 보았다. "네." 하고 면장은 약간 비꼬면서 그러나 고맙다는 듯이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 이어서, "사실은 그 사무 조직이 가장 중요한 것이지요. 그런데 브룬스빅크 말인데, 그자를 이 마을에서 내쫓을 수만 있다면 대개들 기뻐할 거예요. 라제만이라고 기뻐하지 않을 리 없어요. 그러나 그 당시 브룬스빅크는 약간 세력이 있었어요. 물론 그는 웅변가는 아니지만 큰 소리로 부르짖는 사람이고, 그것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들었어요. 이리하여 나는 문제를 면의회로 제기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 당장은 아무튼 부룬스빅크 혼자서 판쳤으니까요. 그도 그럴 것이, 면의회에서는 물론 대다수가 측량 기사 한 사람의 일쯤 아무래도 좋다는 태도였기 때문이지요. 그것은 지금부터 벌써 몇 년 전 일이지만 그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쭉, 이 문제는 낙착을 보지 못한 채 질질 끌어 왔어요. 그것은 한편으로는 소르디니의 야심적인 태도에서 의견까지도 지극히 면밀한 조사에 의하여 규명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이지요. 또 한편으로는 부룬스빅크의 우둔성과 명예욕에 그 원인이 있는 것으로, 그는 백작님의 관청과는 여러 가지로 개인적인 연고 관게가 있었는데, 그의 독특한 망상으로 해서 여러 가지를 꾸며내서 선전하고 관련성이 끊어지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죠. 소르디니는 물론 브룬스빅크에게 속아 넘어가지는 않았어요. 어떻게 브룬스빅크가 소르디니를 속일 수가 있겠어요?__그러나 마침, 속아넘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소르디니는 새로운 조사를 할 필요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 조사가 아직도 끝나기 전에 브룬스빅크는 또 새로운 것을 생각해 냈어요. 브룬스빅크라는 사람은 아주 만첩한데 그것도 그의 우둔성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자아, 이젠 우리들 관청의 특수한 성격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가 온 것 같군요. 관청의 조직은 정밀한 만큼 또한 지극히 민감하리도 해요. 한 문제가 쭉 오랫동안 검토되고 있을 때 그 검토가 아직 끝나기도 전에 예상할 수도 없는 장소, 또 나중에 가서는 이미 어디였던가 알 수도 없는 장소에서 갑자기 번갯불처럼 해결의 서광이 비추어 오는 수가 있어요. 그래서 대개 결과적으로 보면 참 옳았다고 하지만 말하자면 제멋대로 그 문제의 끝을 맺게 되는 일도 있어요. 그것은 마치 신광이 그 자체로서는 사소한 한 가지 문제 때문에 몇 해 동안이나 자극을 받고 긴장을 계속하는 사이에 이젠 견뎌내지 못하게 되어 나중에는 관리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자기 자신 스스로 결말을 지어 버리는 것 같아요. 물론 그것은 기적이 일어났다고는 할 수 없어요. 확실히 관리 중의 어떤 사람이 그 처결을 문서에 기록했던지, 또는 문서에는 쓰지도 않고 그대로 결론을 내려 버렸던지 둘 중의 하나일 거예요. 그러나 좌우간 이 경우에 어떤 관리가 결정을 지었는지 또 어떤 근거에서 그런 결론을 내렸는지 그 점에 대해서는 우리측, 즉 여기서는 물론 해당 관청 측에서도 확실히 관리 중의 어떤 사람이 그 처결을 문서에 기록했던지, 또는 문서에는 쓰지도 않고 그대로 결론을 내려 버렸던지 확인하게 되어 있어요. 그러나 그렇게 되면, 우리들은 알 도리가 없어요. 아무튼 그 때쯤 되면 거의 어떤 사람의 흥미도 끌지 못할 것이니까요. 먼저 말씀드린 것처럼 이 결정은 대개 아주 흥미도 끌지 못할 것이니까요. 먼저 말씀드린 것처럼 이 결정은 대개 아주 훌륭한 것이지요. 단지 이 결정 방법으로 곤란한 것은, 보통 자연히 그렇게 되는 수밖에 없지만 이 결정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것은 오랜 시간이 경과한 후라느 점과 따라서 결정의 가부를 알게 될 때까지는 아주 오래 전에 낙착된 문제를 줄곧 그리고 지극히 열심히 상의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당신의 경우에도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어떤지 나는 알 수 없지만 거기에는 긍정과 부정의 양론이 성립하고 있어요__결정이 내렸다고 해도 초빙의 통지가 당신에게 발송되고, 그 다음에 당신은 먼 여행을 해서 여기까지 오셨으니까 퍽 오랜 시간이 경과되었어요. 그 동안 소르디니는 여기서 여전히 같은 문제와 씨름해서 기운이 다 빠질 정도로 일에 몰두하고, 브룬스빅크는 음모를 꾸미고, 나는 이 두 사람에게 고통을 받은 것이지요. 지금은 오로지 이런 일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가능성을 암시할 뿐이지만, 다음과 같은 것을 나는 아주 뚜렷하게 알고 있어요. 즉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감독 관청 쪽에서는 몇 해 전에 측량 기사에 관해서 A과가 면사무소에 대해서 공문 조회를 발송했는데 아직껏 회답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어요. 최근에 내게도 조회가 왔는데 그때에 모든 사정이 밝혀졌어요. 그래서 A과는 측량 기사는 필요치 않다고 써보낸 내 회답에 만족했으며, 소르디니는 자기가 이 문제에 관해서는 권한이 없었다는 사실과, 물론 자기 잘못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쓸데없는 귀찮은 일만 해 왔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만일에 새로운 일이 보통때 처럼 사방에서 마구 밀려들지 않았더라면, 또한 당신의 문제가 단지 쓸데없는 문제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더라면__사실 당신의 일은 사소한 문제 중에서도 가장 사소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데요__우리들은 틀림없이 모두들 숨을 크게 내쉬었을 것이지요. 나는 소르디니도 역시 그랬으리라고 생각해요. 단지 브룬스빅크만이 원한을 품었을 것인데 그것은 참 우스운 일에 지나지 않아요. 그런데 측량 기사 양반, 내가 얼마나 실망했는지 알아 주세요. 다행히도 사건 전부가 처리된 후에__그 때부터 벌써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__지금, 아닌 밤중에 홍두께 식으로 당신이 나타나서 모든 일을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는 형펀이니까요. 그런 일은 나로서는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작정이지요. 그 점은 당신도 잘 아시겠지요?" 면장은 무척이나 장황한 이야기를 끝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더욱 잘 아겠는 것은 이 땅에서 제게 대해 크나큰 불법 행위를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것을 막아낼 생각입니다." K의 대답이었다. "어떻게 그것을 막아내려고 해요?" 하고 면장이 물었다. "그것은 말할 수 없습니다." K가 말했다. "나는 당신에게 억지 쓸 생각은 없어요. 단지 나는 당신의__친구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지요. 왜냐하면 우리들은 초면이니까__말하자면 사무상의 친구라는 것, 이 점만은 한 번 생각해 주시리라 믿고 싶어요. 당신을 측량 기사로소 채용하는 일만은 인정하지 않지만, 그 밖의 일로서는 당신은 언제든지 나를 신용해도 좋아요. 물론 가능한 범위 내에서 내 힘이 자라는데까지 최선을 다해 보지요. 그렇다고 해서 무슨 큰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면장의 말이었다. "자꾸 제가 측량 기사로서 채용될 것인가 아닌가를 말씀하시는데, 그러나 저는 벌써 채용되었습니다. 이것이 클람의 편지입니다." K의 말이었다. "클람의 편지라고요? 이것은 참 귀하고 얻기 어려운 것인데요. 클람의 사인이 있군요. 틀림없이 그의 필적처럼 보이는데요. 그러나__나 혼자만의 감정(勘定)으로는 그렇다고 확인할 수 없으니까__미치!" 하고 부르더니, 그 다음에, "대체 자제들은 무얼하고 있나?" 하고 물었다. 면장이나 K는 상당히 오랫동안 조수들과 미치를 잊고 있었는데, 그들은 확실히 찾고 있는 서류를 발견해내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끄집어낸 서류를 장 속에 도로 넣어 두려고 했으나, 산더미 같은 서류를 간추리지 않았기 때문에 힘들었다. 결국 조수들이 꾀를 내어 장을 바닥 위에 눕혀 놓고 서류를 전부 처넣은 다음, 미치와 함께 장의 문 위에 앉아서 지금 막 그것을 짓누르고 있었다. "그러면 서류는 아직 찾지 못했군." 면장의 말이었다. "그것 참 안됐는데, 하여튼 지금 이야기했으니까 줄거리는 아시겠지요. 하기야 서류 같은 건 필요 없게 되어 버렸어요. 언젠간 서류를 찾게 되겠지요. 아마도 학교 선생에게 있을 거요. 그에게는 아직도 굉장히 많은 서류가 남아 있으니까요. 그런데 미치, 촛불을 가지고 이리 와서 내게 이 편지를 읽어 줘요." 미치는 침대가로 다가와 걸터앉더니 튼튼하고 정력이 센 남편에게 몸을 기대었다. 남편은 아내를 포옹하고 있었는데, 이러고 보니 그녀는 전보다도 파리하고 초라하게 보였다. 그녀의 작은 얼굴에 촛불이 비치어서 이채를 디었으며 그 얼굴의 윤곽을 뚜렷하고 엄숙하게 드러내고 있었는데, 늙고 쇠약한 탓인지 그것은 부드럽게 보였다. 편지에 시선을 떨어뜨리자마자 가볍게 두 손을 합치고 "클람에게서." 하고 말했다. 그 다음에 둘이서 함께 편지를 읽으면서 두서너 마디 서로 속삭였다. 한편 조수들이 누르고 있던 장의 문을 잠그는 데 성공하여 "만세!" 하고 고함을 지르자, 미치는 잠자코 고맙다는 눈초리로 그들을 쳐다보았다. 그때에 면장은 말을 끄집어냈다. "미치도 완전히 나와 같은 의견이니까 솔직히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이것은 결코 공문이 아니고 사신(私信)이지요. 그것은 '삼가 사뢰나이다'라는 편지 첫머리 문구를 보아도 똑똑히 알 수 있어요. 그것은 그렇다고 하고, 이 편지 속에는 당신을 측량 기사로 채용했다는 소리는 일언 반구도 없어요. 단지 일반적으로 영주에 대한 봉사라는 것이 문제가 되어 있을 뿐이고. 그것조차 의무적 또는 강제적으로 언급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주지하는 바와 같이' 라는 단서를 붙여서 당신은 채용되었어요. 그 뜻은 즉, 당신이 채용됐다는 책임은 당신 자신이 부담해야 됨다는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내가 당신에게 세세한 모든 일을 전달하도록 되어 있다고 하는데, 그 대부분은 벌써 다 말씀드렸으니까요. 관청 관계의 공문을 잘 읽을 줄 아는 사람, 따라서 공문 이외의 사신을 더 잘 해득하는 사람에게는 이런 일은 모두 너무나 명백해요. 이런 사정을 잘 모르는 당신이 그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지요. 결국 이 편지의 취지는 요약해서 다음과 같은 내용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즉 당신이 백작님의 관청에 근무하도록 채용된 경우에 있어서 클람이 사적으로 당신을 돌봐 주겠다는 거지요." 이것이 면장의 이야기였다. "면장님, 면장님은 이 편지를 아주 멋있게 해석하셨는데 너무나 근사하게 해석하신 나머지 결국 한 장의 백지에 쓴 서명밖에는 남지 않게 되어 버렸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귀하신 분이라고 입에 올린 클람의 이름을 멸시하게 되는 것을 깨닫지 못하십니까?" 하고 K는 말했다. "그것은 오해지요. 나는 결코 편지의 뜻을 잘못 해섯하지는 않았어요. 내가 멋대로 해석해서 이 편지를 무시하는 태도는 취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그 반대지요. 클람의 사신은 물론 공문보다도 훨씬 중요한 뜻을 가지고 있어요. 단지 당신이 이 편지에서 찾아보시려고 하는 것 같은 그런 뜻은 없다는 거지요." 면장이 말했다. "쉬바르처를 아십니까?" 하고 K는 물었다. "아니, 몰라요. 미치! 당신은 혹시 알아? 당신도 모른다고? 우리 두 사람 다 모르는데." 면장의 말이었다. "그것 참 이상합니다. 하급 집사의 아들입니다." 하고 K가 말했다. "측량 기사 양반, 대체 내가 어떻게 그 많은 하급 집사의, 그나마 아들을 알 수가 있겠어요?" 면장이 말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쉬바르처는 하급 집사의 아들이라고 해 두십시다. 제가 이 곳에 도착한 날 벌써 이 쉬바르처와 감정적으로 다투었습니다. 그때에 그자는 프릿츠라는 하급 집사에게 전화를 걸고 조회한 결과, 제ㅐ가 측량 기사로서 채용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면장님, 이 사실을 어떻게 설명하시렵니까?" "아무것도 아니지요. 당신은 사실을 아직 한번도 우리 관청과 교섭해 본 적이 없어요. 당신이 내게 말씀한 것 같은 교섭은 모두 그럴듯하지만, 사정을 모르시니까 그것을 정말로 교섭이라고 생각하고 계시는 거지요. 전화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보시는 바와 같이내게는 전화도 없는데, 그래도 나는 얼마든지 관청과 교섭하고 있어요. 식당 같은 데서는 전화가 도움이 될는지 몰라도 그것은 말하자면 자동 피아노 같은 것이고, 그 이상 가는 역활은 하지 못해요. 당신은 여기 오셔서 전화를 걸어 보신 일이 있지요? 그러면 아마도 내 말을 알아들으시겠지요. 성 안에서의 전호의 용도는 참 크지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성 안에서는 끊임없이 전화로 연락하고 있다는데, 물론 그것으로써 사무 능률을 상당히 올리고 있어요. 우리들이 마을의 전화를 걸면, 성 안에서 그칠세 없이 거는 전화 소리가 떠들썩하게 또는 노랫소리처럼 들리는데, 그 소리를 당신도 확실히 들으셨겠지요. 그런데 이 떠들썩한 소리와 노랫소리 같은 것은 마을의 전화가 우리들에게 전달해 주는 것 중에서 가장 올바르고도 신용할 만한 것이고, 다른 모든 것은 가짜고 협잡이지요. 성과 마을 사이에는 아무런 일정한 전화 연락이 없을 뿐더러, 우리들의 요청을 저쪽으로 연결해 주는 중앙 전화국 같은 것도 없어요. 여기에서 전화를 걸고 성의 누구인가를 불러내려고, 하면 저쪽에서는 가장 하급의 여러 과의 전화기가 전부 울리지요. 그뿐더러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대개의 전화기는 전령(電鈴) 장치를 단절해 놓았으니까 그 정도로 그치는 것이고, 만일 그렇지 않으면 성 전체의 전화가 한꺼번에 울리게 되는 거지요. 그러나 가끔 피곤한 관리가 심심풀이로, 특히 저녁땍나 밤에 많지만, 그 전령 장치를 연결하는 일이 있어요. 그럴 때 우리들은 마치 농담으로밖에는 들리지 않는 대답을 받을 때가 있어요. 그것도 이히가 가는 일이지요. 늘 무척이나 중요한 일들이 계속적으로 맹렬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그 와중에 개인적인 사소한 용무 때문에 전화를 걸고 폐 끼치는 일이 대체 누구에게 허락될 수 잇을까요? 그리고 내게도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은, 이 곳에 처음으로 도착한 타향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예를 들면, 소르디니에게 전화를 걸어서 그를 불러냈을 때 자기에게 대답하고 있는 상대방이 정말로 소르디니라고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냔 말이에요. 얼토당토않게 저쪽에 나온 상대방이 전혀 다는 과의 미미한 기록계원을 불러내려고 했을 때, 도리어 소르디니에 수화기를 내리고 내빼는 것이 확실히 나올 것이에요." 면장의 말이었다. "설마 그러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자세한 점까지 알 순 없었습니다. 그러나 전화로 이야기하는 데 대해서는 그다지 믿기지 않았으며, 성 안에서 경험하거나 얻은 일만이 참말로 중요한 일이라는 의식을 늘 가지고 있었습니다." K는 말했다. "아니지." 하고 면장은 소중히 한 마디도 빠뜨리지 않겠다는 듯이 이어서 말했다. "이런 전화의 대답일수록 중요한 뜻이 있는 거지요. 그렇지 않겠어요? 성의 관리가 알려 주는 일이 어찌 무의미할 수가 있겠어요? 클람의 편지 이야기가 나왔을 때 벌써 그 말씀을 드렸지만 이런 말들은 모두 직무상의 뜻을 가지고 있지 않아요. 만일 당신이 이런 말에 직무상의 뜻이 있다고 생각하시면 대단히 잘못이지요. 그와는 반대로 그런 말은 호의적인 뜻이건 적대시하는 뜻이건 간에 개인적인 뜻을 다분히 가지고 있어서 대개는 직무상의 뜻보다 더 크니까요.' 라고 말했다. "좋습니다." K가 말했다. "모든 사정이 그렇다면 저는 성 안에 좋은 친구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잘 생각해 보면 벌써 훨씬 오래 전에 언젠가 측량 기사를 부르게 되리라고 그 과에서 계획을 세운 것은 제게 대한 호ㅇ서 나온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후 쭉 이어서 이 호의적인 행동이 계속되고, 결국은 저를 유인해 놓고 이번에는 쫓아내려는 그런 무자비한 행동을 감행하려는 것입니다." 하고 K가 말했다. "당신의 견해도 일리는 있어요. 성에서 하는 말을 액면 그대로 곧이 들어서는 안 되는데, 그 점에서는 당신의 말이 옳아요. 그러나 조심성이라는 것은 어디 가서도 필요한 것이고 비단 여기서만이 아니지요. 그리고 문제의 발언이 중대해지면 중대해질수록 조심성이란 더 필요하지요. 그래서 당신이 유인당했다고 말씀하신 것은 나로선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엥. 두서 없이 여러 가지로 이야기했지만 내가 설명한 내용을 더 잘 살펴보면, 당신을 여기로 초빙하는 문제가 대단히 어려운 일이므로 이렇게 이야기를 주고받았지만 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이제 틀림없이 아시게 되겠지요." 하고 면장이 말했다. "그러면 이문제의 결말은 이렇게 흐리멍텅하게 해결도 안 된 채, 결국에 가서는 제가 추방당할 운명일 뿐이군요." K의 말이었다. "측량 기사 양반, 누가 당신을 추방하려고 생각하나요? 지금까지 여려가지 선결 문제를 애매하게 다룬 것은, 당신에게 가장 예의를 지켜서 올바른 대우를 보장해 드리려는 태도에서 나온 것이 아니겠어요. 당신도 참 보기에 무척 신경질적인 것 같군요. 아무도 당신을 이 곳에 붙잡아 두려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당신을 추방하려는 것은 아니지 않아요?" 면장이 말했다. "아아 면장님, 면장님은 무엇이든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속까지 들여다보고 계시네요. 이제 저를 여기에 붙들어매고 있는 것을 몇 가지 말씀드려야겠습니다. 고향을 떠나올 때 제가 바친 희생, 오래 걸린 고새으러운 여행, 여기서 채용될 것을 전제로 해서 가슴에 품었던 희망과 기대, 재산을 전부 잃어버린 것, 이제부터 다시 집으로 돌아가서 다른 적당한 일을 구할 수 없다는 것, 이제부터 다시 집으로 돌아가서 다른 적당한 일을 구할 수 없다는 것,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이 마을 사람인 제 약혼자입니다." "아아, 프리다 말인가요?" 하고 면장은 조금도 놀란 기색 없이 말했다. 이어서, "알고 있어요. 프리다ㅡㄴ 당신이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겠지요. 그 밖의 일에 관해서는 물론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그 일에 대해서는 성에 보고하도록 하겠어요. 성의 결정이 오더라도, 또 그보다 먼저 당신을 또 한번 신문할 필요가 생기더라도 좌우간 당신을 부르러 보내겠어요. 아시겠지요?" 면장의 말이었다. "아니, 찬성할 수 없습니다. 저는 성에서 내리는 무슨 은총이나 자선 같은 것을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제 권리를 주장할 따름입니다." K의 말이었다. "미치." 하고 면장은 자기 부인에게 말했다. 그녀는 여전히 자기 남편에게 몸을 기대고 착 붙어 앉아서 몽상에 잠긴 듯이 클람의 편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편지를 작은 배처럼 접었다. 그걸 보고 K는 깜짝 놀라서 얼른 그녀의 손에서 편지를 빼앗았다. "미치, 다리가 또다시 쑤시고 아프기 시작했어. 찜질약을 갈아 붙여야 되겠어." K는 일어서서, "그러면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미치는 남편을 향하여, "네." 하고 대답하더니 재빨리 연고를 준비하면서, "문바람이 셉니다." 하고 말했다. K는 뒤를 돌아다보았다. 조수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지나친 열성을 보여 K의 말을 듣자마자 문을 좌우간 열어젖혔다. K는 세게 불어 들어온는 찬바람을 환자 방으로 스며들지 못하게 하려고, 면장에게는 슬쩍 가볍게 인사만 했다. 그리고 조수들을 끌어당기다시피 하면서 뛰어나와 재빨리 방문을 닫았다. 6 여관집 앞에서 주인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쪽에서 묻지 않으면 말할것 같지도 않아서 K는 무슨 용무냐고 주인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새 여관을 정하셨나요?" 하고 주인은 시선을 땅 위에 떨어뜨리면서 물었다. "당신은 주인 아주머니한테 부탁받고 묻는 거지요? 주인 아주머니에게 얽매여서 사시는 모양이군요." K가 말했다. "원 천만에, 집사람에게 부탁받고 묻는 것은 아니라니까요. 집사람은 선생님 때문에 흥분해서 슬퍼하고 있어요. 일도 손에 안 잡히는지 드러누운 채 끊임없이 한숨만 쉬고 있어요." 하고 주인이 말했다. "주인 아주머니에게로 찾아갈까요?" K가 물었다. "꼭 부탁해요. 사실은 선생님을 모셔가고 싶은 마음에 면장댁 문 앞에서 귀를 기울이고 엿듣고 있었어요. 두 분이 한참 이야기하고 계셔서 방해가 될까 봐 염려했지만, 집사람 일도 걱정이 돼서 빨리 되돌아왔어요. 그런데 집사람은 제가 곁에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요. 선생님이 돌아오시길 기다리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지요." 주인의 말이었다. "그러면 어서 따라오세요. 곧 주인 아주머니의 마음을 가라앉혀 드릴 테니까." K가 말했다. "그게 잘되기만 하면 좋으련만." 하고 주인이 말했다. 두 사람은 밝은 부엌을 지나갔다. 하녀들이 서너 명 서로 떨어진 곳에서 무슨 일인지 하고 있다고 K의 모습을 보자 적이 놀라서 멈칫했다. 안주인의 탄식 소리는 부엌에까지 들려왔다. 그녀는 얇은 판자벽으로 부엌과 분리되어 있는 창문도 없는 칸막이 방에 누워 있었다. 커다란 이인용 침대와 장 하나가 놓였을 뿐인데 방이 꽉 차 보였다. 침대는 부엌을 내다볼 수 있으며 일을 감시할 수 있는 위치에 놓여 있었다. 방안은 상당히 어둡고, 불그스름한 이부자리만 희미하게 비쳐 보일 뿐이었다. 방안에 들어가서 어둠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아무것도 자세히 분간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이제 오셨어요?" 하고 안주인은 힘없이 말했다. 그녀는 사지를 편 채로 천장을 쳐다보고 드러누워 있었는데, 숨을 쉬는 것이 힘에 겨운지 새털 이불을 발치로 걷어 젖히고 있었다. 침대에 누워 있으면 일어나서 옷을 입고 있는 것보다도 훨씬 젊게 보이는 법인데, 머리에 쓰고 있는 레이스를 두른 얇은 침실용 모자가 __너무나 작아서 벅겨질 것만 같이 머리 위에서 간들간들 흔들리고 있었지만__파리한 얼굴을 더욱 애처롭게 보이게 했다. "부르지도 않으셨는데 찾아와서 폐가 되지않을까요?" 하고 K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퍽 오랫동안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하고 그녀는 말했는데 그 말투에는 환자다운 고집이 나타나 있었다. "걸터앉으세요." 하고 그녀는 말하면서 침대가를 가리키고는, "그리고 다른 분들은 나가 주세요!" 하고 외쳤다. 어느 사이에 조수들 뿐만이 아니라 하녀들까지도 방안에 들어와 있었다. "나도 나가지, 가르데나!" 하고 주인이 말했다. K는 이 때 비로소 그 안주인의 이름을 들었다. "물론이에요." 하고 그녀는 천천히 말하면서, 다른 생각에 잠긴 듯이 건성으로 덧붙여서, "무엇 때문에 당신이 여기 남아 있으려는 거예요?" 했다. 그러나 그들이 모두 부엌으로 나가 버리자__조수들도 이번에는 즉시 말을 들었다. 그것도 하녀 한 사람의 꽁무니를 쫓았기 때문이다__ 그래도 가르데나는 눈치가 빨라서, 칸막이 방에는 문이 없으니까 여기서 말하는 소리가 부엌에서 환히 다 들린다고 깨닫고, 부엌에서도 나가라고 명령했다. 명령은 당장에 실천되었다. "측량 기사님, 저 장을 열면 바로 앞턱에 숄이 걸려 있어요. 미안하지만 그것 좀 집어 주세요. 그것을 몸에 걸치고 싶어요. 답답해서 새털 이불은 견딜 수가 없어요." 하고 가르데나가 말했다. K가 숄을 집어 주니까, "보세요, 이건 참 아름다운 숄이지요?" 하고 말했다. 그 숄은 보통 흔히 볼 수 있는 털로 짠 것으로 K에게는 생각 되었다. 호의로 한 번 슬쩍 만져 보았을 뿐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네, 이것은 정말 근사한 숄이에요." 하고 그녀는 말하더니 그 숄로 몸을 감았다. 이번에는 마음이 놓이는 듯이 드러누워 있기 때문에 흩어진 것을 깨닫고 잠깐 몸을 일으키더니 침실용 모자 둘레의 머리칼을 손질하고 있었다. 참 탐스러운 머리칼이었다. K는 참을 수가 없어서 이렇게 말을 끄집어냈다. "주인 아주머니, 제가 벌써 다른 거처를 정했느냐고 아주머니께서 제게 물어 보도록 시켰지요?" "제가 사람을 시켜서 물어 보도록 했다고요? 아니에요. 그것은 오해에요." 안주인이 말했다. "주인 양반이 방금 제게 그 말을 묻던데요." "그러리라고 생각했어요. 그이는 영 질색이에요. 제가 선생님을 이 곳에 숫박시키는 것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을 때는 그이는 당신을 이 곳에 붙들어 놓고, 지금은 당신이 이 곳에 묵고 계신 것을 제가 기쁘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이번에는 당신을 쫓아내려고 해요. 그이가 하는 짓은 언제나 그렇지요." 안주인의 말이었다. "그러면 당신은 저에 대한 생각이 아주 달라졌나요? 한두 시간 사이에?" 하고 K가 물었다. "생각이 변한 것은 아니에요." 하고 안주인이 말했는데 음성은 더욱 약해졌다. "손을 내밀어 주세요, 그렇게 악수하고 약속해 주세요. 모든 것을 다 고백하겠다고, 저도 그렇게 할 테니까요." "네, 그런데 두 사람 중에서 누가 먼저 시작하지요?" 하고 K가 물었다. "제가 먼저 시작하겠어요." 안주인이 말했는데, K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말한 것 같지는 않고, 오히려 먼저 지껄이고 싶어서 참을 수 없는 모야이었다. 그녀는 요 밑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어 K에게 내주었다. "이 사진 좀 보세요." 하고 그녀는 애원하는 듯이 말했다. 사진을 더 잘 보기 위하여 K는 부엌 쪽으로 한 걸음 옮기면서 들여다보았지만 그래도 사진에 무엇이 찍혀 있는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왜냐하면 이 사진은 오래 되고 색이 바래서 희미한 데다가 여기저기 찢어지고 구겨져서 얼룩까지 져 있었기 때문이다. "아주 못 쓰게 되었는데요." K가 말했다. "퍽 유감스러워요. 여러 해 동안 늘 몸에 지니고 다녔더니 그렇게 되어 버렸어요.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죄다 알게 되실 거예요. 틀림없어요. 게다가 또 제가 도와 드리지요. 무엇이 보이나 말씀해 보세요. 이 사진 이야기를 듣는 것은 참 재미있어요. 그래, 무엇이 보이시죠?" 안주인이 물었다. "판자 위에 드러누워서 기지개를 켜며 하품하고 있어요. 그렇게 보이는 걸요." 안주인은 웃었다. "아니, 틀렸어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러나 여기에 판자가 있고, 여기에 그 남자가 드러누워 있어요." K는 그렇게 말하고 자기 의견을 고집했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세요. 정말로 드러누워 있나요?" 그녀는 안타까운 듯이 말했다. "아니군요. 누워 있는 것이 아니라 허공에 떠 있어요. 그래요, 판자가 아니고 틀림없이 끄나풀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 젊은이는 높이뛰기를 하고 있는 거네요." 하고 K가 말했다. "그래요. 그것은......" 하고 안주인은 자못 기쁜 듯이 말했다. 이어서, "높이뛰기를 하고 있는 거지요. 관청의 사환들은 이렇게 연습해요. 저는 당신이 아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면, 얼굴도 분간하시겠어요?" "얼굴은 잘 알 수 없어요. 그는 분명 몹시 힘을 쓰고 있어요. 입을 벌리고 눈을 감고 머리칼은 바람에 나부끼고 있군요." K의 말이었다. "참 잘 맞히셨어요. 직접 만나신 일이 없으시면 그 이상 분간하기 어료울거예요. 그런데 그분은 아주 잘생긴 청년이었어요. 저는 이 미남자를 한 번 슬쩍 봤을 뿐인데,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만 같아요." 안주인이 말했다. "대체 누군데요?" 하고 K가 물었다. "이 사람은 사환인데, 클람이 맨 처음에 저를 불렀을 때 이 사람을 시켜서 보냈어요." 그녀의 말이었다. K는 안주인의 말을 똑똑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유리 창문이 덜컹거리는 소리에 정신이 팔렸기 때문이다. 그 방해의 원인은 곧 알게 되었다. 조수들이 바깥 뜰의 눈 속에서 두 발을 하나씩 번갈아 들며 뛰고 있었다. K의 모습을 다시 보게 되어 반갑고 기쁜 듯이 서로 펄쩍펄쩍 뛰면서 K를 손가락질하는 바람에 그들의 손가각 끝이 끊임없이 부엌 창문에 닿아서 똑똑 두드리는 소리를 내곤 했다. K가 위협하는 태도로 나오면 곧 멈추고, 서로 상대방을 떠밀고 뒤로 물러가는 시늉을 하지만, 어느 쪽이라 할 것 없이 날쌔게 몸을 빼서, 어느 새 창문 옆에 달려와 있었다. K는 재빨리 칸막이 방으로 들어가 버렸는데 이 곳이면 바깥에서 조수들에게 보일 염려도 없을 뿐더러 이쪽에서도 조수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좋았다. 그러나 유리 창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는 그가 방안으로 숨어 들어온 후에도 여전히 나지막하게 에원하는 듯이 오랫동안 귓전에 울려 퍼졌다. "또 조수들이." 하고 K는 변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안주인에게 말하고 바깥을 가리켰다. 그러나 그녀는 K의 말은 염두에도 없었다. 어느새 그의 손에서 빼앗은 사진을 뚫어지게 들여다보고는 손으로 어루만진 다음 다시 요 밑에 밀어넣었다. 동작이 전보다 느려졌지만 피곤 때문이라기보다는 한없는 추억과 회상에 가슴이 벅찼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K에게 이야기하면서도 이야기 도중에 K의 존재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녀는 숄의 레이스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잠시 후에 비로소 눈을 위로 뜨고 손으로 눈꺼풀을 비비고 나서 말을 끄집어냈다. "이 숄도 클람에게서 바든 것이고, 이 작은 침실용 모자도 그래요. 사진, 숄, 침실용 모자, 이 세 가지는 클람의 기념품이에요. 저는 프리다처럼 젊지도 않고 그애처럼 허영심도 강하지 않고 또 그렇게 섬세한 감정을 가지고 있지도 않아요. 그애는 참 부드러운 마음씨를 가지고 있어요. 하여튼 저는 살림살이에 순응할 줄 알게도 되었지만 그래도 솔직히 말해서 이 세 가지가 없었더라면, 여기 생활을 이처럼 오래 지탱해 나가진 못했을 거예요. 그래요, 아마 하루도 배겨낼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이 세 가지 기념품이 당신 눈에는 하찮은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좀 보세요. 프리다는 그렇게 오랫동안 클람과 교제했는데도 기념이 될 만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어요. 그애에게 물어 봤는데 그애는 공상을 좋아하고 욕심이 많아요. 그와 반대로 저는 세 번박에는 클람에게 간 일이 없지만__그 후로는 더 이상 저를 부르지도 않았어요. 마치짧은 인연이라는 것을 예감으로써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나 늘 그 점을 염두해 두지 않으면 안 돼요. 클람은 스스로 직접 아무것도 주지는 않으니까요. 클람에게서 마음에 드는 물건이 눈에 띄면, 그것을 달라고 조르면 돼요." K는 아무리 자기에게 관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런 이야기를 듣고 보니 기부니 나빴다. "대체 그 이야기는 몇 년 전 일이지요?" K는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이십 년 전이지요. 아니, 이십 년도 더 됐지요." 하고 안주인이 말했다. "상당히 오랫동안 클람을 생각하고 수절해 왔군요. 주인 아주머니, 당신이 고백하시는 말씀을 듣고 앞으로의 제 결혼 문제를 생각하면 크게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K의 말이었다. 안주인은 K가 자기 일을 끄짐어내서, 이 이야기 중에 끼어들려고 한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화를 내면서 곁눈으로 흘겨 보았다. "그렇게 화내지 마세요. 주인 아주머니! 저는 클람에게 대해서 반대한 것은 아니지요. 그러나 저는 여러 가지 사건 때문에 클람과의 사이에 어떤 관계가 생겼어요. 클람을 가장 숭배하는 사람도 이 사실만은 부정할 수 없어요. 일이 그렇게 되어 버린 거지요. 그래서 저는 클람의 이야기가 나오면 언제나 저의 일을 생각하게 돼요. 이것만은 어쩔 수 없어요. 그런데 주인 아주머니." __여기서 K는 그녀가 머뭇거렸는데도 아주 어색하게 끝났는데, 이번에는 사이좋게 헤어지도록 하지요." "옳은 말씀이에요." 하고 안주인은 말하더니 고개를 수그렸다. 이어서, "그러나 제 사정도 좀 봐 주세요. 저는 다른 사람처럼 민감하지 못해요. 모두들 여러 가지로 감수성이 예민하지만, 저는 단지 이 일에 대해서만 민감해요. "공교롭게도 그 일에 대해서는 저도 역시 민감해요." K가 말했다. "그러나 저는 충분히 자제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주인 아주머니, 설명해 주세요. 결혼한 후에도 프리다가 클람에 대해서 터무니없는 정조를 지키려고 하면, 저는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요?" 하고 안주인은 으르렁거리며 이 말을 되풀이했다. 이어서, "대체 그럿이 정존가요, 저는 남편에 대해서 정조를 지키고 있어요. 그러나 클람에 대해서라고요? 클람은 과거에 저를 애인으로 삼았는데, 제가 앞으로 그 지위를 잃는 일이 있을까요? 그리고 당신은 프리다가 그런 태도로 나오면, 어떻게 견딜 수 있느냐 말이지요? 아아 측량 기사님, 당신이 그런 말을 물으시다니 대체 어찌 된 셈이지요?" "주인 아주머니!" 하고 K는 상대방의 말투가 너무 심하다고 경고하는 기색을 보였다. "미안해요." 하고 안주인은 부드럽게 말했다. 이어서, "그러나 우리 주인은 그런 말을 물어 보지는 않았어요. 당시의 제 입장과 지금의 프리다의 처지를 놓고 봤을 때 어느 쪽이 비참하다고 할는지 모르겠어요. 그것은 아마 프리다가 더할 거예요. 물론 그애는 전체적으로 그 점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지 않지만요. 그러나 그 때의 저는 지금보다도 훨씬 더 불행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어요. 왜냐하면, 그 증거로, '왜 이렇게 되어 버렸지? 클람이 나를 부르러 세 번씩이나 사람을 보냈는데 네번째는 보내지도 않고, 또 그 네번째는 절대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하고 늘 제 스스로 물어 보게 되고 지금도 사실은 계속해서 의문을 품고 있어요. 그 당시 그 이상 제 마음에 가득 찼던 일은 하나도 없었어요. 그런 일이 있었던 제가 결혼한 지금의 주인과 다른 일에 관해서 이야기할 수가 있었겠어요? 낮에는 우리들은 틈이 없었어요. 이 여관을 형편없는 상태에서 인계 받았기 때문에 다시 번창하도록 애써서 일하지 않으면 안 되었어요. 그러나 밤은 다르지요. 몇 해 동안이나 우리들은 클람의 일, 그리고 왜 그가 마음이 변했나 하는 것만 이야기했어요. 그래서 주인이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이에 잠들어 버리면 저는 주인을 깨워서 다시 이야기를 계속했지요." "그런데 당신이 허락하신다면 대단히 실례의 말씀을 여쭈어 보겠어요." K가 말했다. 안주인은 대답이 없었다. "아니 질문하면 안 되는 모양이군요. 그렇다면 좋아요." 하고 K가 말했다. "그야 뭐, 물론 그것도 괜찮은 거예요. 더군다나 당신이야. 당신은 무엇이든 오해하시는 버릇이 있고 제가 대답하지 않은 것까지도 오해하시고. 당신은 오해하시는 것밖에는 다른 능력은 없으시군요. 물어 볼 것이 있으면 물어 보세요." 안주인의 말이었다. "만일에 무엇이든 오해하는 버릇이 있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 자체도 오해겠지요. 따라서 그렇게 실례가 되는 질문이 아닐는지도 모르겠어요.단지 이런 것을 알고 싶을 따름이에요. 당신이 어떻게 주인을 알게 되었으며, 어떻게 이 여관이 당신의 소유가 됐나 하는 것이지요." K가 말했다. 안주인은 이마에 주름살을 짓더니, 무관심한 태도로 말했다. "그 이야기는 참 간단해요. 아버지는 대장간을 경영했었고, 지금 남편 한스는 큰 지주의 말을 시중드는 하인이었어요. 그래서 한스는 자주 아버니에게로 놀러오곤 했어요. 그 당시는 제가 클람과 마지막으로 만난 후였어요. 저는 퍽 불행했지만, 사실은 불행해서는 안 되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모든 것이 올바르게 되었기 때문이지요. 제가 클람을 만나러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은 바로 클람이 결정한 일이고, 따라서 옳다고 할 수 있어요. 다만 클람의 마음이 변한 이유만은 애매해서, 그것을 캐어 볼 권리는 제게 있었어요. 그래서 불행해서는 안 되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저는 역시 불행해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제 집의 작은 앞뜰에 온종일 앉아 있기만 했어요. 거기서 한스는 저를 쳐다보고 곧잘 제 옆으로 와서 앉곤 했어요. 저는 그에게 고민을 고백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제가 무엇 때문에 저와 함께 울어 주곤 했어요. 당시 여관 주인은 홀아비였어요. 그러니 여관 경영도 그만두지 않으면 안 되었지만__거기다가 벌써 할아버지였어요__이분이 언젠가 제 집 뜰 앞을 지나가다가 우리들이 거기 ㅇ아 있는 것을 보고 걸음을 멈추었어요. 그리고 다짜고짜 이 여관을 세놓겠다는 말을 끄집어냈어요. 그 사람은 우리들을 믿고 있었으니까 서늑ㅁㄹ 받지도 않고 참 싼 값으로 제놓아 주었어요. 저는 아버지를 괴롭히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을 뿐이고 그 밖에는 아무래도 상관없었어요. 그래서 저는 여관 일이라든지 새로운 일을 생각하고, 이 이릉ㄴ 다소라도 과거의 일을 잊게 해 줄 거라고 생각하고 한스의 결혼 신청을 승낙했어요. 단지 그 뿐이지요." 잠시 동안 두 사람은 잠자코 있다가 드디어 K가 말했다. "그 여관 주인의 행동은 훌륭했지만 경솔했던 것처럼 느껴져요.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에게는 당신들 두 분을 믿을 만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던가요?" "그분은 한스를 잘 알고 있었어요. 한스의 아저씨였으니까요." 하고 안주인이 말했다. "그렇다면 물론 잘 아고 있었겠군요. 그러고 보면 한스네 집 가족들에게는 당신과의 결혼 문제가 확실히 중요했던가요?" "그렇지도 몰라요. 저는 잘 알지도 못했지만 염두에 두고 잇지도 않았어요." 하고 안주인이 말했다. "그러나 그랫을지도 모르지요. 가족들이 돈벌이를 희생해 가면서 까다로운 조건도 내걸지 않고, 더군다나 담보도 없이 여관을 당신네들 부부에게 양도해 주었으니까요." K가 말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그것이 경솔한 일은 아니었어요. 저는 일에 몰두했어요. 대장장이의 딸이었으니까 몸은 튼튼했어요. 하녀나 하인도 필요치 않았어요. 실당, 부엌, 외양간, 뜰 어느 곳이든 제가 맡아서 일했어요. 음식 솜씨도 좋아서, '신사관' 손님까지도 빼앗아 올 지경이었어요. 당신은 아직 점심때 식당에 오신 일이 없으니까 집으로 점심 먹으러 오는 손님들을 아시지 못할 거예요. 거기까지는 좋았지만, 저는 그로 해서 너무나 지나치게 일했기 때문에 건강ㅇ르 해치고 심장명을 앓아서 결국 이런 할머니가 되어 버렸어요. 틀림없이 제가 한스보다도 훨씬 위라고 생각하실는지 몰라도, 사실은 그가 겨우 두서너 살 아래지요. 그뿐더러 그는 앞으로 결코 나이를 먹지 않을 거예요. 좌우간 그런 일로 소일만 하면__파이프 담배나 피우고 손님들 이야기나 곁에서 듣고, 그리고 파이프를 두드려서 담뱃재를 털어내기나 하고 가끔 맥주를 함께 나르기나 하면__절대 늙지 않을 거예요." 안주인의 말이었다. "당신의 공적은 대단하시던데요. 그 점은 의심할 여지도 없어요. 그러나 지금 여기서는 당신이 결혼하시기 전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었던가요? 말하자면, 한스의 가족들이 돈벌이를 희생해 가며, 적어도 이런 큰 여관집을 양도한다는 위험을 무릅쓰고 두 사람을 기어코 결혼시키러고 애썼다는 사실과, 동시에 아직 어느 정도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당신의 수완과, 벌써 무능하기 짝이 없다고 소문이 돌았었을 한스이 수완을 알고 있었다면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까요?' 하고 K가 말했다. "그러고 보면, 참." 하고 안주인은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이어서, "당신이 어디에 목표를 두고 계신지, 또 그 목표에서 어떻게 벗어나고 있는지도 알 수 있어요. 이 이야기는 클람과는 아무 상관도 없어요. 무엇 때문에 클람이 저를 돌봐 주겠어요? 더 정확히 말하자면, 대체 클람이 저를 돌봐 줄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가요? 그 분은 제게 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했어요. 그가 저를 부르러 하인을 보내지 않았다는 것은 그가 저를 잊어버렸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지요. 자기가 하인을 보내서 부르지도 않는다면 다 잊어버린 거나 마찬가지예요. 이런 소리는 프리다 앞에서는 하고 싶지도 않아요. 그러나 잊어버리는 것뿐만이 아니에요. 그보다도 훨씬 더 하지요. 잊어버린 사람이면 다시 사귈 수도 있어요. 그러나 클람에게는 그런 일도 있을 수가 없어요. 그가 상대방을 부르러 보내지 않는다면 상대방의 과거를 모조리 잊어버렸을 뿐만이 아니라 미래까지도 완전히 잊어버린 것이지요. 제가 기를 쓰고 노력하면 당신과 같은 생각을 할 수도 있지요. 그 생각이란 당신의 고향에서는 통했을지 몰라도 이 땅에서는 어리서기 짝이 없지요. 아마 당신은 클람이 일부러 한스 같은 사람을 제게 제공하고 앞으로 언젠가 저를 부를 때에도 지장이 없도록 했다고 생각하실지도 몰라요. 그 이상 가는 꼴불견은 없을 거예요. 클람이 신호를 주었을 때, 제가 클람에게 달려가는 것을 방해할 수 있는 남편이란 아무 곳에도 없을 것이니까요. 이런 어리석은 일을 이것저것 공상하고 있다가는 미치고 말 거예요." "아니지요." 하고 K는 말했다. "피치 미치고 싶지 않아요. 저는 아직도 도저히 당신이 상상하시는 그런 정도로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사실은 그런 경향도 있었지만. 그러나 제가 약간 이상하다고 여긴 것은, 친척들이 이 결혼에 대해서 큰 기대를 품고 있었다는 점과, 더구나 그 기대가 실현되었다는 점이지요. 물론 그것은 당신의 심장과 건강을 희생으로 해서 이루어진 일이기는 하지만, 이 사실과 클람과의 사이에 무슨 연관성이 있으리라는 추측은,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물론 머리에 떠올랐지만, 지금 당신이 말씀하신 것처럼 강하지는 않았어요. 도저히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어요. 당신은 또 저를 여지없이 혼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분명히 그게 재미있어서 그런 말씀을 하셨겠지요. 그러면 재미를 기대해 보세요! 그러나 제 생각은 좀 다른 걸요. 즉 두 사람이 결혼하는 동기가 된 것은 뭐니뭐니해도 클람이라고 저는 생각했어요. 클람이 없었더라면 당신이 불행에 빠지는 일도 없었으며,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서 우두커니 앞뜰에 앉아 있는 일도 없었으며,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서 우두커니 앞뜰에 앉아 있는 일도 없었겠지요. 클람이 없었더라면 한스가 앞뜰에 있는 당신을 보았을 리 만무하고, 당신이 슬픔에 잠기지 않았으면 수줍은 한스가 당신에게 마릉ㄹ 걸어 볼 용기도 내지 못했겠지요. 클람이 없었더라면 당신은 한스와 함께 눈물에 젖는 일도 없었을 것이며, 클람이 없었으면 늙은 여관 주인 아저씨에게 당신과 한스가 거기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정답게 앉아 있는 꼴을 보지도 않았을 것이지요. 또 클람이 없었더라면 당신이 인생에 대해서 무관심한 태도도 취하지 않았을 것이며, 따라서 한스와 결혼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요. 이 모든 것에 온통 클람의 그림자가 깃들여 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그러나 이것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지요. 클람과의 관계가 없었더라면 당신은 과거를 잊어버리려고 노력도 하지 않았을 것이며, 몸도 돌보지 않고 무리해서까지 일하려고 하지 않았을 더러, 사업 경영을 그토록 번창시키는 일도 없었을 것이지요. 따라서 여기에도 클람의 그림자가 깃들여 있는 샘이지요. 게다가 그 점은 그만두고라도 우선 클람은 당신의 병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어요. 왜냐하면 당신의 심장은 벌써 결혼하기 전에 불행한 사랑 때문에 좀먹었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뒤에 남은 문제로서는 한스의 친척들이 무슨 이유로 그다지도 두 사람을 결혼시키려고 마음을 썼는가 하는 그 문제뿐이지요. 아까도 클람의 애인이 되는 것은 언제까지나 통하는 승격 영달의 길이라고 말씀하셨지여요. 여기에 당신의 마음이 끄렸을지도 모르겠어요. 그 밖에도 당신에게는 이런 희망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당신은 운이 좋아서 클람에게 불려가는 신세지만-운이 좋다고 가정해서 하는 소리며, 당신은 그렇게 주장하시지만-그 운명의 별이 당신의 것이고 따라서 언제까지나 틀림없이 당신의 몸에 머물러 있을 것이기에. 또 그 운명의 별이란 클람과는 달라서 저렇게 느닷없이 당신을 저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희망이지요." "그런 일을 모조리 진심으로 생각하고 계신가요?" 하고 안주인이 물었다. "진심이지요." 하고 K가 빠른 어조로 말했다. 이어서, "다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한스와 친척들이 기대하고 있었던 것은 꼭 이치에 맞지도 않았으며, 그렇다고 해서 전혀 안 맞았다고는 할 수 없었어요. 또 그뿐더러 그 희망이 원인이 되어서 일어난 과오까지 제게는 알 수 있는 것처첨 생각돼요. 겉으로 보면 모든 일이 잘된 것처럼 보이지요. 한스는 생활의 걱정이 없어졌고 잘 생기고 훌륭한 아내를 얻었으며, 세상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게 되었을 분만 아니라 살림해 나가는 데 빚도 없는 상태지요. 그러나 사실은 만사가 전부 잘 된것은 아니었어요. 한스는 자기를 기막힌 첫사랑의 애인으로서 사랑해 주는 소박한 소녀와 함께 어울리는 것이 훨씬 더 행복했을 것이에요. 당신이 비난하시는 것처럼 한스는 가끔 식당에서 우두커니 앉아 있었는데, 그것은 아닌게 아니라 넋잃은 사람 같았기 때문이지요. --그렇타고 해서 그는 불행해진 것은 아니지요. 그 정도는 저도 그를 알고 있어요.--그러나 그와 동시에 확실한 것은, 똑똑하고 미남자인 이 젊은이가 다른 여자와 결혼했더라면 더 행복했으리라는 것이지요. 사실 이 '행복'이라는 말 가운데는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 근면하고, 사내답게 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어요. 그런데 당신 자신도 확실하게 행복하시지 않아요. 당신 말씀처럼 세 가지 기념품이 없으면 당신은 살아나갈 용기가 나지 않을 뿐더러, 심장까지 병들으셨으니까요. 그렇다면 한스의 친척들이 희망을 품은 것은 잘못이었던가요? 저는 그렇게는 생각 안 해요. 축복은 당신의 머리 웨에서 빛나고 있었는데, 아무도 그것을 자기들 있는 곳으로 끌어내릴 줄 몰랐을 뿐이지요." "대체 무엇을 소홀하게 놓쳤단 말이지요?" 하고 안주인이 물었다. 그녀는 이제 누워서 사지를 쭉 뻗고 천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클람에게 물어 보세요." K가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다시 당신 문제로 되돌아가는 것이지요." 하고 안주인이 말했다. "아니지요. 당신 문제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우리들의 문제는 서로 밀접하게 연관돼 있어요." K의 말이었다. "그러면 당신은 클람에게 무엇을 클람에게 무엇을 희망하시는 건가요?" 하고 안주인이 물었다. 몸을 일으키고 꼿꼿이 앉았지만, 앉은 채로 등을 기댈 수 있도록 정면으로 K를 쳐다보았다. "저는 당신에게 저에 관한 일을 모조리 터놓고 이야기했어요. 약간 참조가 되셨을지도 모르겠어요. 이번에는 당신 차례지요. 클람에게 무엇을 물으려고 생각하시는지, 저처럼 솔직하게 말씀해 주세요. 프리다에게 자기 방을로 올라가서 거기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간신히 설득했어요. 그애가 있으면 당신이 마음 놓고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두려워했기 때문이지요." "감춰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어요. 그보다 먼저 당신에게 약간 주의를 환기시켜야 할 일이 있어요." 하고 K는 말했다. "클람은 곧 잊어버릴는 버릇이 있다고 당신은 말씀했지요. 첫째로 이것은 제게는 전혀 있을 수 없는 것처럼 생각돼요. 둘째로는 그것은 증명하기 어려운 일이지요. 클람에게 총애를 받던 처녀들이 머리 속에서 꾸며 낸 전설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에요. 당신이 이런 허무 맹랑한 이야기를 믿으시다니 참 이상해요." "전설이 아니에요. 모든 사람들의 경험에서 그런 결론이 나왔다고 할 수 있지요." 하고 안주인이 말했다. "그렇다면 새로운 경험으로써 반박할 수도 있겠군요. 그리고 당신의 경우와 프리다의 경우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어요. 클람이 프리다를 부르지 않게 되어 버렸다는 것은 말하자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할 수 있어요. 반대로 클람이 그녀를 불렀는데, 그녀 쪽에서 따라가지 않았지요. 클람은 늘 프리다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지요.' 안주인은 입을 다물고 말이 없었다. 살피는 눈초리로 K를 힐끔힐끔 쳐다볼 뿐이었다. 그러자 입을 열고, "저는 당신 말씀을 끝까지 조용히 들어 보려고 생각해요. 이쪽의 감정을 해칠까 봐 두려워하시지 말고 솔직히 이야기해 주세요. 한 가지 소원이 있어요. 클람의 말을 할 때, 클람이라는 이름으로 부르지 마세요. '그분'이라든지 다른 어떤 것으로 불러 주세요. 그러니 제발 이름으로는 부르지 마라 주세요." 하고 말했다. "알았어요. 그러나 제가 그에게서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는 정말로 표현하기 어려워요. 무엇보다도 저는 그를 가까이서 보고 싶고, 그의 목소리를 듣고 싶고, 그 다음에 그가 우리들의 결혼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알고 싶어요. 그리고 제가 그에게 무슨 부탁을 하게 될까, 그것은 그와 이야기해 봐야 알겠어요. 좌우간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올 것이지만, 제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와 대면하는 그 자체지요. 즉 저는 아직 한번도 진짜 관리와 직접 이야기해 본 적이 없어요. 이것은 생각했던 것보다도 성취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한 개인으로서의 그와 이야기할 의무가 있어요. 저로서는 이것이 훨씬 실천하기 쉽다고 생각해요. 관리로서의 그를 만나려고 하면 그의 사무소로 찾아가야 되는데, 사무소에서는 만나 줄 것 같지 않아요. 도대채 그 사무소가 성 안에 있는지, 그렇지 않으면 신사관 안에 있는지 문제지요. 그러나 개인으로서의 그를 만난다면 집안에서든 길에서든 어느 곳에서든지 만날 수 있는 데서 이야기할 수 있어요. 그와 동시에 관리로서의 그를 상대로 하게 된다 하더라도 아무 상관 없어요. 그렇다고 그것이 저의 첫째 목적은 아니지요." K의 말이었다. "좋아요." 하고 안주인은 말하고 무슨 창피한 말이라도 하는 듯이 베개에다 얼굴을 파묻어 버렸다. "만일에 제 주선으로, 만나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당신의 소원이 클람에게 통하는 경우에 있어서는, 회답이 올 때까지 당신이 제멋대로 독단적인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저에게 약속해 주세요." "그것은 약속하기 어려워요. 당신의 요청대로, 또는 당신의 기분에 맞추고 싶은 생각은 간절하지만. 그러나 사태는 급해요. 더군다나 면장과 담판한 결과가 신통치 못해서 그렇지요.' K가 말했다. "그런 반대 의견은 이치에 맞지 않아요. 면장은 하찮은 인물이지요. 대체 그걸 깨닫지 못하셨나요? 부인이 모든 일을 처리해 주지 않는다면 하루라도 면장의 지위를 유지하지 못할 거예요." 안주인이 말했다. "미치 말인가요?" 하고 K가 물으니까, 안주인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제가 갔을 때도 거기 있었어요." 하고 K가 말했다. "그분은 자기 의견을 말씀하시던가요?" 안주인이 물었다. "아니오, 그러ㅏ 부인의 수단이 놀랍다는 그런 인상은 받지 않았는데요." 하고 K가 말했다. "그러니까 당신은 여기서 하나에서 열까지 모조리 잘못 보시는 거지요. 어쨌든 면장이 당신에 대해서 처리한 일은 결코 대단한 일은 아니에요. 제가 기회를 봐서 부인과 상의해 보겠어요. 그리고 클람의 회답이 늦어도 일주일 안에 올 것이라고 저는 새삼스럽게 당신에게 약속을 하겠어요. 그러면 제 말씀을 들어 주시지 않는다는 이유는 서지 않을 테니까요." 안주인의 말이었다. "그 모든 것은 아직 결정적이라고 할 수 없어요. 제 결심만은 확고하고, 거절의 회답이 오더라도 결심한 일은 끝까지 해 보려고 생각해요. 처음부터 이런 의도를 가지고 있으니까, 더군다나 사람을 중간에 넣고 면담을 신청할 수는 없어요. 신청하지 않고 다짜고짜 부닥쳐 보면, 대답하지만 악의 없는 시도일지는 몰라도 거절의 회답을 받게 되면 노골적인 반항으로 변해 버릴 것이지요. 물론 이것이 훨씬 더 나쁘지요." K의 말이었다 "좋지 못하다고요? 어쨌든 반항인 점에는 다름이 없어요. 그러면 마음대로 하세요. 스커트를 집어 주세요." K가 있다고 해서 조금도 주저하는 기색도 없이 스커트를 입은 안주인은 부엌으로 달려갔다. 꽤 오래 전부터 시끄러운 소리가 식당 쪽에서 들려 왔다. 부엌과 식당 사이에 있는 조그마한 들여다보는 창무능ㄹ 두드리는 자가 있었다. 조수 두 사람이 그 창문을 열어젖히고 안을 향하여 배가 고프다고 소리쳤다. 드디어 다른 사람들의 얼굴도 차례차례 그 곳에 나타났다.작은 소리로 합창하는 노랫소리까지도 들려 왔다. K와 안주인이 이야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점심 식사 준비가 상당히 늦어져서 아직 다 되지도 않았는데 손님들이 모여들어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아무튼 안주인의 금지 명령을 거스르고 부엌에 발을 들여 놓을 용기가 있는 자는 아무도 없어ㅆ 그러나 창문으로 들여다보고 있었던 자들이 안주인이 온다고 말하니까, 하녀들은 곧 부엌으로 뛰어 들어갔다. 막상 식당으로 들어가 보니 놀랄 만큼 많은 사람이, 남녀 합쳐서 스무 명도 넘늠 사람들이, 시골 풍속으로 옷차림은 했으나 그렇다고 농사꾼 냄새라곤 배어 있지 않는 사람들이 지금까지 떼를 지어 있었던 창문에서부터 식탁으로 우르르 몰려가서 자리를 잡으려고 서로 다투었다. 한구석의 작은 식탁에는 벌써 한 쌍의 부부가 어린애 두서넛을 데리고 앉아 있었다. 남편은 푸른 눈을 가진 친절한 사람이었고, 회색 머리칼과 수염이 잡아 뜯긴 것처럼 거칠고 텁수룩했는데, 이 사람은 아이들 쪽을 향해서 약간 허리를 구부리고 서 있었다. 나이프를 가지고 아이들의 노랫소리에 장단을 맞추고 있었는데, 늘 노랫소리가 커ㄴ지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었다. 아마도 어린애들에게 노래부르게 해서 배고픔을 잊어버리게 할 작정이었던 모양이다. 안주인이 ㅣ모든 사람들 앞에서 아무렇게나 변명했는데 아무도 나무라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는 주인이 없나 하고 주위를 살펴보았으나, 남편은 사태가 심상치 않은 것을 눈치채고 재빨리 도망쳐 버렸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천천히 부엌 안으로 들어갔다. K는 프리다를 만나려고 자기 방으로 빨리 들어갔는데, 안주인이 이미 K를 본 체도 하지 않았다. 7 위층에서 K는 선생을 만났다. 다행히도 방안은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모양이 달라져 있었다. 프리다가 부지런히 일한 덕택이었다. 충분히 공기도 바꾸어 놓았고 난로불은 후끈하게 타고 있었으며 마룻바닥은 깨끗이 씻기고 침대는 깔끔하게 정돈되고 하녀들이 남겨 놓고 간 지긋지긋한 페물들도 그네들의 그림과 더불어 완전히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전에는 식탁 위가 늘 빵 껍질과 부스러기 천지고 어느 쪽을 돌아다보아도 더러운 물건으로 가득 차 있어서 형편 없었는데, 이제는 수를 놓은 흰 식탁보가 덮여 있었다. 이만 하면 손님을 접대해도 좋겠다. 프리다가 아침에 빨아 널었음에 틀림없는 K의 자질구레한 세탁물을 난로 옆에 널어서 말리고 있었는데, 이것은 그다지 방해가 되지 않았다. 선생과 프리다는 식탁 옆에 앉아 있었는데 K가 방안으로 들어가자 두 사람 다 일어났다. 프리다는 K에게 키스로 인사하고 선생은 약간 몸을 앞으로 구부렸다. K는 안주인과 이야기하는라고 흥분된 마음이 가시지 않은 채 어수선해 있었으나 지금까지 선생을 방문하지 못한 변명을 시작했다. 마치 K가 방문하지 않아서 참다못해 선생 쪽에서 찾아왔다고 생각하는 것 가타은 말투였다. 그러나 선생 쪽에서는 점잔을 빼고 있었으며, 그제야 비로소 차츰차츰 언젠가 자기와 K가 일종의 방문 약속 같은 것을 한일이 있었던 것을 상기하는 모양이었다. "측량 기사님, 당신은 타향에서 오셨지요? 이삼 일 전에 교회의 마당에서 서로 이야기한 일이 있었지요." 그는 천천히 말했다. "그래요." 하고 K는 짤막하고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그 당시는 자기가 혼자 있었으니까 할 수 없이 억지로 참았다고 하지만 지금 자기 방안에서까지 타향 사람처럼 천대받을 이유는 없었다. 그는 프리다 쪽을 향하여 이제부터 곧 중요한 방문을 해야 되겠는데, 그러자면 될 수 있는 대로 좋은 옷을 입어야 할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상의해 보았다. 프리다는 자세한 말을 물어보지도 않고 새 식탁보를 열심히 음미하고 있는 조수 두 사람을 불러서, 아래에 있는 뜰에서 K의 옷을 잘 손질하고 구드를 닦도록 명령했다. K는 곧 구두와 옷을 벋기 시작했다. 그녀 자신은 줄에 널었던 셔츠를 하나 걷어서, 다림질하기 위하여 부엌으로 내려갔다. K는 다시 잠자코 식탁 옆에 앉아 있는 선생과 단둘이만 남았는데, 조금 더 기다려 달라고 선생에게 말하고 셔츠를 벗도 세숫대야 물로 얼굴을 씻기 시작했다. 그 때 비로소 그는 등을 선생에게 돌린 채 방문한 이유를 물었다. "면장님의 부탁을 받고 왔어요." 하고 선생은 말했다. K는 그 용건을 들으려고 했다. 그런데 물이 찰랑거리는 바람에 K의 말을 잘 알아들을 수가 없자 선생은 할 수 없이 가까이 와서 K 옆에있는 벽에 기대었다. K는 이처럼 얼굴을 씻고 수선을 떠는 것은 지금부터 급히 방문할 곳이 있기 때문이라고 변명했다. 선생은 그런 변명은 들은 둥 만 둥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꺼냈다. "당신은 면장님한테 대단히 실례 되는 행동을 하신 모양이더군요. 그분은 많은 공적도 싸ㅣ았고 경험도 풍부할 뿐더러, 존경할 만한 노인인데." "제가 공손치 못했는지 어땠는지 모르겠어요." 하고 K는 얼굴의 물기를 닦으면서 말했다. 이어서, "고상한 행동과는 아주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만은 확실한데요. 왜냐하면 제게는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였기 때문이지요. 뻔뻔스러운 관청의 횡포성으로 말미암아 저의 생존이 송두리째 위협을 받았으니까요. 당신 자신도 이 관청의 현직원의 한 분이니까, 세세한 일을 하나하나 다 말씀드릴 필요는 없겠지요. 그런데 면장님이 저에 관해서 무슨 불평이라도 말하시던가요." "대체 누구에 대해서 그가 불평을 한단 말인가요?" 가령 그런 상대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대체 그가 불평을 하겠습니까? 나는 면장님이 부르시는 대로 당신과 면장님과의 대화의 간단한 조서를 작성했을 뿐인데, 그것을 통해서 면장님의 친절한 태도와 당신이 그것에 대해서 답변하는 태도를 충분히 알 수 있었어요." 프리다가 어데에 넣어 두었을 것 같은 빗을 찾으면서 K는 말했다. "네, 조서라구요? 담판할 때는 전혀 그림자조차 비치지 않았던 ㅏ람이 나중에 제가 자리에 없을 때 기록을 만들었다구요? 기록을 만드는 건 나쁘지는 않아요. 그런데 그 기록을 조서라고 부르는 건 왜 그렇지요? 우리들의 담판은 대체 공적인 것이었던가요?" "아니오, 반만 공적인 것이지요. 조서도 반만 공적인 것에 불과해요 조서를 작성하게 된 것은, 우리 마을에서는, 모든 일에 있어서 엄연한 질서가 유지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단지 그 이유때문이지요. 어쨌든 당신의 조서는 다 작성되어 있어요. 당신에게는 명예스럽지 못한 조서지요." 선생이 말했다. 침대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 빗을 찾았기 때문에 K는 전보다도 더 침착하게 말했다. "조서가 작성되었다고 해도 아무런 상관은 없지만, 그것을 알리러 오셨나요?" "아니지요. 나는 로봇은 아니니까. 내 개인의 의견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런데 내가 부탁받고 온 말씀을 전해 드리면 면장님이 친절하시다는 것이 명백해지지요. 특히 강조해서 말씀드릴 것은 면장님이 왜 이렇게까지 친절하신가 나로서는 알 수 없다는 것과, 내가 이 명령을 실행하는 것은 단지 내 입장으로 보아 부득이한 일이며, 또 한편으로는 면장님을 존경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이지요." 선생의 말이었다. 얼굴을 씻고 머리를 빗질한 K는 이번에는 손질한 옷들이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기 위하여 탁자 옆에 앉았다. 그는 선생이 자신에게 전달해주는 일에 대해선 아무런 흥미도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그는 안 주인이 면장을 멸시하는 태도에서도 은연중에 영향을 받고 있었다. "벌써 점심때도 지난 모양이지요?" 하고 K는 이제부터 어느 길을 어떻게 갈까 하고 그것을 생각하면서 물어 보았는데, 곧 자기 말을 다시 정정하려는 듯이, "제가 전달할 면장님의 말씀이라도 가져오셨나요?" 하고 물었다. "있고말고요." 하고 선생은 말하고 어깨를 으쓱했는데, 자기의 모든 책임을 몸에서 털어버리려는 것 같았다. "면장님이 두려워하는 것은, 당신의 용건의 결정을 너무 오래 끄는 경우에 당신이 독단적으로 경솔한 짓을 저지르지나 않을까 하는 점이지요. 개인적으로는, 왜 면장님이 그런 일을 염려하시나 도무지 이해가 안 가요.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제멋대로 하시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해요. 우리들은 당신을 보호하는신도 아니고, 당신이 가시는 곳마다 쫓아다닐 의무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것은 그렇다고 해 두고, 면장님의 의견은 다르시던데요. 백작님의 관청만이 해결할 권한을 가진 사항을 빨리 처리하도록 박차를 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러나 그분은 자기 권한이 미치는 범위 내에서 무척 너그러운 처분을 내리려 하고 계셔요. 그분은 당신에게 우선 학교 소사의 자리를 마련해 주셨어요." 선생님의 말이었다. K는 자신에 대하여 마련된 취직 이야기라고 해도 당장에 마음이 쏠리지도 않았지만 어쨌든 자기에게 무엇이 제공되어 있다는 그 사실에는 적이 중요한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면 일을 대단히 중대하게 여기는 모양이다. 벌써 꽤 오랫동안 K를 기다렸으며, 또 조금 전에는 조서까지 작성했다는 이 선생은 마침내 면장에게서 쫓기다시피하면서 여기로 달려왔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선생은 자기 때문에 K가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된 것을 보자 말을 계속했다. "나는 반대 의견을 진술했어요. 지금까지 학교 소사는 필요 없었다고 지적했어요. 교회 하인의 아내가 가끔 청소를 하고, 여선생 기자 양이 그것을 감독하지요. 나는 아이들 일만 하더라도 지긋지긋하게 골치를 골치를 앓고 있는데 거기다가 학교 소사 일에까지 골치 썩고 싶지는 앓다고 면장님에게 말씀드렸어요. 이 말을 듣고 면장님은 학교 안이 굉장히 더럽지 않느냐고 말씀했지요. 그런데 나는 사실대로 그다지 심하지는 않다고 대답했어요. 그리고 덧붙여서, 다음과 같이 물었어요. '그 사람을 소사로 쓰면 더러운 것이 고쳐질까요?' 그리고 난 도저히 가망이 없을 것이라고 했지요. 그 사람이 소사의 있지 않는 큰 교실 두개가 있을 뿐이다. 소사는 가족들과 함께 그 교실 하나에 자리잡고 거기서 자고 아마 밥도 끓여 먹지 않으면 안 되게 되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학교 건물이 깨끗해질 수가 없는 것이고, 그 점에는 의심할 여지조차 없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러나 면장님은 곤란을 받고 있는 당신에게 이 직업을 마련해 주면 큰 도움이 되는 것이고, 따라서 당신은 있는 힘을 다해서 직책을 완수할 것이라고 말씀했어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면장님은 우리들이 당신을 소사로 채용하면 당신의 부인과 동시에 조수 두 사람의 힘까지 빌릴 수 있게 되니까, 그 결과 학교 건물뿐만이 아니라 학교 정원까지도 이상적으로 정리 정돈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더군요. 나는 서슴지 않고 이 의견을 반박했지요. 그래서 나중에는 면장님은 당신을 위하여 무엇 한 가지 유리한 것을 내놓지 못하게 되자 웃으면서 당신은 측량 기사니까 교정에 있는 화단을 각별히 아름답게 가꿀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아무튼 그런 농담에 대해서 기를 쓰고 반박해 봤자 아무 소용도 없으므로 나는 면장님의 부탁을 당신에게 전달하기 위하여 이렇게 찾아온 거예요." "당신은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계셔요. 선생님! 그 직무를 맡을 생각은 조금도 없어요." 하고 K가 말했다. "대단하신데요. 무조건 거절하는 걸 보니 아주 대단하지요." 선생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 모자를 손에 들고 인사하더니 밖으로 나가 버렸다. 곧 이어서 프리다가 당황한 표정을 하고 위로 올라왔다. 다림질하지 않은 셔츠를 그대로 가지고 와서 무엇을 물어 보아도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마음을 풀게 하고 위안해 주기 위하여 K는 선생 이야기라든지, 가지고온 취직 자리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셔츠를 침대 위에 내던지고 성급히 밖으로 뛰어나가 버렸다. 그녀는 선생을 데리고 곧 되돌아왔다. 선생은 기분이 언짢아 있었던지 전혀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프리다는 그에게 좀 참아 달라고 부탁했다__확실히 여기로 데리고 오는 도중에도 여러 차례 같은 부탁을 했을 것이다__그 다음에 그녀는 K를 끌고, 지금까지 그런 곳이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했던 옆에 달린 문을 통해서 가까운 다락방으로 데리고 가더니 거기서 비로소 자기 신변에 일어나 사건의 전말을 이야기했는데, 흥분해서 숨이 넘어갈 듯이 허덕거렸다. "주인 아주머니가 몹시 화를 냈어요. 그녀는 당신에게 모든 것을 고백했는데, 게다가 당신이 클람과 만나서 이야기하는 일에 대해서는 그녀가 양보하는 태도로 나왔는데도, 당신은 냉정하고 옳지 못한 말투로써 거절해 버렸다고 무척 골을 냈어요,. 그래서 당신을 절대고 이 이상 더 집에 두어 둘 수 없다나요. '만일에 K씨가 성과 관계가 있다면, 하루바삐 그것을 이용하면 좋을 거야. 오늘이라고, 지금 당장이라도 이 집을 나가 달라고 하겠어. 성에서 이 곳으로 특명이나 압력을 가하지 않는 한 K씨를 다시 받아들이는 것은 절대로 반대하겠어. 성에서 그런 태도로 나오지 않기를 바라고 있어. 나도 성과의 연락의 길이 있으니까 그 길을 한 번 취해 보겠어. 대체 K씨는 우리 주인이 등한히 했기 때문에 묵게 되었거든. 우리 집이 아니면 곤란하다는 것도 아닐 테니까. 오늘 아침만 하더라도 언제든지 가서 잘 곳이 있다고 하면서, 잠자리가 있다고 자랑했으니까 말이야.' 하고 말하지 않아요. 그러면서 저는 남아 있으라는 거예요. 지금도 주인 아주머니는 아래 부엌에서 제가 나간가는 것을 지레 집작하고 난로 옆에서 울면서 쓰러져 버렸어요. 불쌍하게도 심장병을 앓는 주인 아주머니! 그러나 주인 아주머니는 할 수 없어요. 이제는 클람과의 추억을 소중하게 마음 속에 간직한 채 오로지 거기에만 삶의 보람을 찾고 있는 형편이니까요. 그런데 주인 아주머니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저만은 물론 단신이 가시는 곳이라면 어디까지나 따라가겠어요. 눈 속이든 얼음 속이든 가리지 않겠어요. 이제 이 이야기는 더 이상 할 필요도 없어요. 하여간 우리들 두 사람이 당장 곤란한 입장에 놓여 있는 것은 사실이니까 저는 면장님의 말씀을 듣고 무척 기뻤어요. 당신에게 그다지 적당한 일자리가 아닐지라도 그야말로 임시적인 것이라고 하니까 괜찮을거예요. 그러면 자연히 시간 여유가 생기니까 곧 다른 일자리를 물색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설사 마지막에 가서 불리한 결과로 낙착된다고 하더라도 말이에요." 프리다는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나서, 마침내 K의 목에 매달리면서 말했다. "우리들이 아슬아슬한 고비에 부닥치게 되면 다른 곳으로 떠나기로 해요. 무엇 때문에 이 마을에 있지 않으면 안 되겠어여? 우선 면장님의 제의를 받아들이기로 해요. 선생님을 데리고 왔으니까 '응낙한다'고만 말씀하세요. 그러면 돼요. 그리고 학교로 이사하기로 해요." "그건 곤란한데." 하고 K는 말했지만 진정으로 한 소리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주택 문제 같은 것은 거의 걱정도 되지 않을 뿐더러, 다락방은 양쪽에 벽이나 창도 없이 직접 지붕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살을 에이는 것 같은 찬바람이 스며들어서 셔츠 바람으로 있자니 추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당신이 방안을 이렇게 깨끗이 치워 주었는데, 또 나간다니! 아무래도 이번 취직 자리는 탐탁하지 않아! 잠시 동안이라도 그 너절한 선생 나부랑이 앞에서 고개를 수그리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일인데, 그자가 상관이고 보니 딱한 노릇이지. 어떻게 해서든지 여기서 잠깐만 버티면 오늘 오후라도 내 사정은 확실히 달라질 거야. 당신 혼자라도 여기에 잠깐만 버티면 오늘 오후라도 내 사정은 확실히 달라질 거야. 당신 혼자라도 여기에 남아 주면, 선생에게는 그저 애매한 대답을 해 두고, 상황이 변하는 것을 보고 시기를 기다리면 되지 않아. 나만이라면 언제든지 잠자리 하나쯤은 물색할 수 있거든, 형편이 어쩔 수 없으면 사실 술집에서라도......" 프리다는 손으로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것은 안 돼요." 하고 그녀는 불안스럽게 말했다. "제발 그런 말씀은 두 번 다시 하지 마세요. 그 밖의 다른 말씀이라면 무슨 말씀이든 따라가겠어요. 만일 당신이 원하신다면 아무리 슬퍼도 혼자 여기에 남겠어요. 당신이 원한다면 저는 면장님의 제의도 거절해 버리겠어요. 어쩐지 거절하는 것은 안 된 것 같지만. 제 말 좀 들어 보세요. 만일 당신이 다른 취직 자리를 당장에 포기해 버리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요. 아무도 방해를 하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선생 앞에서 고개를 수그리는 것이 아니꼽고 싫다고 말씀하셨지만, 그 일 같으면 제게 맡겨 주세요. 당신이 조금도 비굴하게 생각하시지 않도록 마련해 드릴 테니까요. 제가 직접 상의해 볼 테니까 당신은 옆에서 잠자코 계시면 돼요. 그것은 나중에도 마찬가지예요. 당신이 원하시지 않는다면 직접 그분과 이야기하지 않아도 좋을 거예요. 사실 저만이 그분의 부하가 되는 셈이지요. 그러나 저도 결코 그분의 부하가 되지는 않을 거예요. 왜냐하면 저는 그분의 약점을 꼭 잡고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우리들이 그 일자리를 받아들이면 아무런 손해도 없지만 거절하면 굉장히 손해를 보는 셈이지요. 무엇보다도 당신이 오늘 안으로 성에서 무슨 성과를 거두시지 못하면 정말로 당신 혼자만의 잠자리도 이 마을에서는 도저히 구하지 못할 거예요. 잠자리란 장차 당신의 아내가 될 사람이 부끄럽게 생각지 않을 만큼 후륭한 잠자리를 말하는 거예요. 만일 당신이 잠자리를 구하실 수 없다면 당신이 추운 겨울밤에 헤매고 돌아다닐 것을 제가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저 혼자만 여기 따뜻한 방에서 자락 말씀하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K는 그 동안 쭉 조금이라도 몸이 훈훈히지라고 양쪽 팔을 가슴 위에 포개 얹고 손으로 등을 두드리고 있었는데, 이윽고, "그러면 받아들이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구먼, 와요!" 하고 말했다. 방으로 들어가자 그는 곧장 난로 옆으로 달려갔다. 선생 생각은 염두에도 없었다. 선생은 탁자 옆에 앉아 있다가 시계를 꺼내 보더니 말했다. "퍽 늦었어요." "그래도, 저희들은 완전히 일치했어요. 선생님, 저희들은 직무를 맡기로 하겠어요." "좋아요. 그러나 일자리는 측량 기사에게 제공된 것이니까 측량 기사 자신이 직접 의사를 표시하지 않으면 안 왜요." 하고 선생이 말했다. 프리다가 K의 편을 들었다. "물론, 이분은 직무를 맡아요. 그렇지요, K?" 그래서 K는 간단히, "으음." 하고 대답하기만 하면 되었지만, 이것은 결코 선생한테 한 소리가 아니고 프리다에게 한 소리였다. 그러면 당신의 근무상의 의무를 설명할 것만은 아직도 남아 있는 셈이 되지요. 그 점에 있어서는 의견이 서로 어긋나는 일 없이 완전히 합의를 보아야 되니까요. 측량 기사, 당신은 매일같이 교실 두 개를 청소하고 난로에 불을 지피고, 그리고 학교 건물과 비품 또는 체조 기구의 간단한 수선을 자기 손으로 처리하고, 학교 정원으로 통하는 길 위에 쌓인 눈을 치워서 걸어 다닐 수 있도록 만들고, 나와 여선생을 위하여 잔심부름을 하고, 따뜻한 계절에는 모든 정원 일을 보살피지 않으면 안 돼요. 그 대신 당신은 교실 두개 중에서 어느 쪽이든지 마음에 드는 곳에 몸담아 있어도 되는 권리를 가지고 있어요. 그러나 교실 양쪽에서 동시에 수업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마침 당신이 몸담아 있는 교실에서 수업을 하게 되는 경우에는, 물론 다른 쪽 교실로 옮기지 않으면 안 돼요. 취사는 학교에서 해서는 안 돼요. 그대신 당신과 당신의 가족들의 식사는 마을의 비용으로 이 여관집에서 제공하도록 되어 있어요. 다만 학교의 체면을 손상시키지 않도록 품위 있는 행동을 할 것과, 특히 어린이들에게 대해서는 수업을 실시하고 있는 동안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어느 때를 막론하고 당신의 가정 생활의 아름답지 못한 면을 보이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 주실 것, 이런 점을 단지 겸사겸사 말씀드릴 따름이지요. 왜냐하면 당신은 교양이 있으니까 그런 것쯤은 알고 계시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그것과 관련해서 잠깐 말씀드릴 것은, 우리로서는 당신이 프리다와의 관계를 될 수 있으면 빨리 합법적으로 처리하도록 주장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이런 모든 요건이라든지, 그 밖의 세세한 점에 대해서는 고용 계약을 체결 작성하게 되는데, 당신은 학교 건물로 이사 오시는 대로 곧 서명해야 할 거예요." 선생의 말이었다. K에게는 이 모든 일이 중요치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자기에게는 저혀 관계도 없거나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자기를 속박하거나 부담을 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만 선생의 거만한 태도가 비위에 거슬렸기 때문에 가벼운 말투로, "그래요, 아주 평범한 조건인데요." 하고 말했다. 이 말이 주는 인상을 약간 부드럽게 하기 위하여 프리다는 보수에 대해서 물었다. "보수를 지불하느냐 않느냐에 대해서는 우선 한 달만 일을 시켜 보고, 그 일의 성과를 검토한 다음 결정하게 될 거예요." 하고 선생이 말했다. 프리다가, "그러나 그것은 저희들에게는 너무 가혹한데요. 저희들은 거의 돈 없이 결혼했기 때문에 생활비도 없는 상태예요. 선생님, 조금이라도 좋으니 곧 월급이 나오도록 면사무소에 청원서를 내고 부탁해 볼 수는 없을까요?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하고 말했다. "안 되지요." 하고 선생은 입을 열었는데, 그는 여전히 K를 향하여 말을 걸고 있었다. 이어서, "그런 청원이라면 내가 직접 부탁하면 들어 준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나는 그런 중간 역활을 하지 않을 거요. 소사의 일자리를 주는 것 자체가 당신에 대한 호의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디까지나 공적인 책임을 잊지 않기 위해서는 호의라는 것도 정도에 지나치지 않도록 적당히 해 두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요." K는 여기서 본의 아닌 말을 입 밖에 내버렸다. "호의라는 점에 관해서는 선생님, 당신이 잘못 생각하고 계십니다. 그런 호의라는 것은 아마도 오히려 제쪽에서 가지고 있지요." "아니지요." 하고 선생은 미소를 띄우면서 말했는데, K에게 억지로 이야기시키는 것에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당신이 말씀하려는 사정은 내가 잘 아고 있어요. 그런데 아닌게아니라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학교 소사나 측량 기사나 필요한 정도에 있어서는 조금도 다름이 없어요. 소사든지, 측량 기사든지 우리들에게는 똑같이 큰 점이지요. 이런 인건비 지출의 이유를 어떻게 마을 사람들에게 설명할 것인지, 이것은 오랫동안 두고두고 연구해 봐야 되겠지요. 이 요구를 책상 위에 내동댕이치고 그 이상 아무런 이유도 붙이지 않는 것이 가장 좋고 또 가장 사실에 부합하는 방법이라고 하겠어요." K가, "저도 동감인데요. 당신은 본의가 아니면서도 저를 채용하지 않으면 안돼요. 그 때문에 당신이 마음 속에 괴로움을 느끼며 여러 가지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면서도 당신은 저를 채용하도록 되어 있어요. 만일 갑이 을을 채용하도록 강요하고 있고, 을이 자기가 채용되는 것을 승낙한다면, 친절한 것은 을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하고 말했다. "이상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대체 무엇이 당신을 채용하도록 우리들을 강요한단 말이지요? 우리들을 강요하는 것은 면장님의 착하신, 특별히 착하신 마음씨지요. 측량 기사, 나는 잘 알고 있지만 당신은 여러 가시 쓸데없는 공상을 버리지 않으면 유능한 소사가 되지 못하실 거요. 당신이 말씀하신것 같은 그런 의견은, 월급을 줄 것을 승인하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대하여 아주 기분을 잡치게 하는 결과가 될 것이오. 거기다가 유감스럽게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당신의 태도나 행동이 앞으로도 상당히 내게는 두통거리가 될 것이라는 점이지요. 나와 애기하고 있는 동안에도 당신은 쭉__나는 한결같이 이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 거의 내 눈을 의심할 지경인데__셔츠와 팬티 바람으로 계시거든요." 선생의 말이었다. "정말 그렇군요." 하고 K는 손뼉을 치면서 웃었다. "지독한 좃수들인데, 대체 그놈들은 어디 갔어!" 프리다가 빠른 걸음으로 문쪽으로 가자, 선생은 K가 이미 자기와는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눈치채고는 나가려던 프리다에게 언제 학교로 이사오겠느냐고 물었다. "오늘 이사해요." 하고 프리다는 말했다. "그러면 나는 내일 아침에 시찰하려 가겠어요." 하고 선생은 말하며 손짓으로 인사를 하고 프리다가 자기를 위하여 열어 놓은 문을 통하여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거기서 그때 마침 이 방안에 몸담아 살기 위하여 여러 가지 소지품을 가지고 들어온 하녀들과 부딪쳐 버렸다. 이 하녀들은 누구를 만나도 절대로 뒤로 물러나거나 양보할 기색이 없이 때문에, 선생은 간신히 그녀들 사이를 빠져 나가다시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프리다가 그의 뒤를 따랐다. "무철 바삐 서두르는군." 하고 K는 말하면서도, 전과는 달리 아주 만족한 기색으로 그들을 맞이했다. "우리들이 아직 이 방안에 있는데 당신네들은 벌써 이 방안으로 몰려 들어오나요?" 하고 그는 말했다. 그녀들은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당황해 하면서 손에 들고 있던 보따리를 뺑 돌렸는데, 그 보따리 속에서 눈에 익은 더러운 헝겊이 비쭉 나와 늘어져 있는 것이 K의 눈에 띄었다. "당신네들은 아마 한번도 옷을 세탁한 일이 없는 모양이군요." 하고 K는 말했지만, 그것은 심술ㄱ게 말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애정을 가지고 말한 것이었다. 그들은 그런 눈치를 채자 동시에 무뚝뚝한 입을 벌리고 아름답고 튼튼한 동물 같은 이빨을 보이면서 소리도 내지 않고 웃었다. "자, 들어와요. 당신네들의 방이니까, 마음대로 사용해요." 하고 K는 말했다. 그들은 여전히 머뭇거리고 있었다__분명히 자기 방이 너무나 변해 버린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__K는 그들 가운데서 한 사람의 팔을 붙들고 더 들어오도록 끄러당기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곧 그 팔을 놓았다. 왜냐하면 하녀들 두 사람은 서로 마음이 통한 것 같은 눈초리로 힐끔 눈짓을 하더니 계속해서 K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는데, 그 눈동자 속에는 무척 놀란 빛이 깃들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당신네들은 내 얼굴을 싫증나도록 구경했지요." 하고 K는 말하고, 스스로 어떤 불쾌한 감정에 사로잡히는 것을 막으려고 애썼다. 그 때 마침 프리다가 옷과 구두를 가져와서 그것을 받아 입고, 신기 시작했다. 프리다는 조수 두 사람을 거느리고 수줍은 모습으로 나타났는데, K는 언제나 그리고 지금도 왜 프리다가 조수들을 잠자코 보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이 두 조수들에게 뜰에서 양복에 손질을 하라고 명령했는데, 오랫동안 찾은 결과 그들이 아래층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려고 아주 태연하게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들은 아직 솔질도 하지 않은 양복을 무릎 위에 올려 놓은 채 쭈글쭈글 그겨지게 짓누르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 스스로 양복에 솔질하고 그두를 닦는 등 모든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천한 사람들을 잘 부릴 줄 아는 그녀는 듣기 싫게 잔소리조차 하지 않았다. 그뿐더러 그들이 있는 앞에서 그들의 대단한 게으름을 마치 사소한 농담처럼 이야기하고, 조수 한 사람의 뺨을 애교부리면서 가볍게 두드리기까지 했다. K는 가까운 장래에 이 일로 그녀를 꾸짖어 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그 때는 바로 떠나야만 하는 절박한 순간이었다. "조수들은 이 곳에 남아 있어야 해. 이사할 때 당신을 도와주도록 말이야." 하고 K는 말했다. 조수들이 물론 그런 일을 승낙할 리가 만무했다. 배는 부르고 기분은 좋았으니 약간 운동도 하고 싶었던 것이다. 프리다가, "그래요, 당시네들은 이 곳에 남으세요." 하고 말했을 때, 겨우 그들은 그 말에 따랐다. "내가 어디로 가려는지 알고 있어?" 하고 K가 물었다. "네." 하고 프리다는 말했다. "그러면서도 당신은 나를 말리려고도 하지 않나?" 하고 K가 물었다. "당신은 여러 가지로 곤란을 겪으실 거예요. 그러나 제가 말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는 K에게 작별 키스를 하고 K가 점심 식사를 하지 않았으므로, 아래에서 그를 위해 가져온 빵과 소시지가 들은 작은 보따리를 내주었다. 그리고 돌아올 때는, 이젠 이 곳으로 오지 말고 직접 학교 쪽으로 오라고 주의시키고 그의 어깨에 손을 얹고는 문 앞까지 따라나와서 배웅했다. 8 무엇보다도 K는 하녀들과 조수들이 우글거리던 더운 방을 빠져 나와서 숨을 돌렸다. 거기다가 바깥은 약간 온도가 떨어져 추워졌기 때문에 눈도 굳어져서 전보다 걷기가 쉬웠다. 해가 저물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는 걸음을 서둘렀다. 성은 그 윤곽이 벌써 어둠 속에 사라지기 시작했는데 언제나 그렇듯 조용하기만 했다. K는 아직 한번도 이 성 안에 사람이 살고 있는 어떤 징조를 본 일이 없었다. 이렇게 먼 데서 무엇을 알아본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래도 K의 눈은 기어이 무엇을 알아보려고 했으며, 이 조용한 성의 모습을 그대로 참고 보고 있으려고 하지 않았다. 성을 쳐다보고 있으면 K에게는 가끔 어떤 사람을 보고 있으려고 하지 않았다. 성을 쳐다보고 있으면 K에게는 가끔 어떤 사람을 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었다. 태연하게 거기에 앉아서 우두커니 앞을 바라보고 있으며, 그렇다고 생각에 잠겨 있는 것이 아니라 일체의 사물로부터 동떨어져서 완전히 자기 혼자 서 있고 아무도 쳐다보는 사람은 없다는 듯, 자유롭고도 무심한 태도를 간직한 인간 같았다. K가 그런 인간을 쳐다보고 있으니까 자연히 상대방도 K가 자기를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사실은 조금도 이 사람의 평온한 기분을 해치는 일은 없는 듯했다. 그리고 사실__그것이 이 원인인지 결과인지 알 수 없었지만__관찰자 K의 시선은 아무데도 멈출 곳 없이 미끄러져 떨어져 버렸다. 이런 인상은 오늘 일찍이 깃들인 어둠으로 말미암아 더 심해졌다. 오래 쳐다보고 있으면 있을수록 더욱 모든 것을 분간하기가 어려워지며 점점 황혼 속 깊이 가라앉아 버리는 것이었다. K가 아직 불이 켜 있지도 않은 신사관에 도착했을 때, 마침 이층 창문이 하나 열리면서 수염을 곱게 깎고 털가죽 웃옷을 입은 뚱뚱한 젊은이가 창문 밖으로 상반신을 내밀었다. 이 사람은 잠시 동안 그대로 창문에 기대고 있었다. K가 인사해도 답례로 고개 하나 까딱하려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현관에서나 술집에서도 K는 아무도 마나지 않았다. 변질된 맥주의 냄새는 전보다도 더 심했는데, 이런 일은 교반관에서는 아마도 있을 수 없을 것이다. K는 곧장 먼저 클람을 들여다본 일이 있었던 문 옆으로 가서 조심스럽게 손잡이를 돌려 보았는데 문은 잠겨져 있었다. 그래서 들여다보는 그명을 손으로 더듬어 보았다. 그런데 자물쇠가 꼭 박혀 있는 듯, 손으로 더듬어서는 그 자리를 제대로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그는 성냥불을 켜 보았다. 그 때에 그는 사람이 외치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난로 옆에, 문과 배선대 사이 한구석에 젊은 처녀가 쭈그리고 앉아 있었는데, 성냥불에 비치자 졸린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프리다의 뒤를 이어 취직한 처녀임에 틀림없었다. 그녀는 곧 정신을 차리고 전등을 켰는데, K라는 것을 알게 되자 그녀의 흥분한 얼굴 표정은 한참 동안 가시지 않았다. "아아, 측량 기사님." 하고 그녀는 웃으면서 말하더니 손을 내밀고 자기 소개를 했다. "제 이름은 삐삐라고 해요." 그녀는 몸집이 작고 혈색이 좋아 건강해 보였으며, 불그스름하고 숱이 많은 갈색 머리를 단단하게 땋아 내렸는데 곱슬곱슬한 머리칼은 둥그렇고 얼굴 주변에서 물결치고 있었다. 그녀는 그다지 어울리지도 않는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것은 회색빛을 띤 번쩍이는 옷감으로 만든 매끄러운 내리닫이 옷이었다. 비단 리본으로 어린애처럼 보기 어색하게 아래를 졸라매고 있어서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이 아주 거북하게 보였다. 그녀는 프리다에 관해서 묻고 또 그녀가 곧 돌아오지 않느냐고 물었는데, 그의 심술궂은 질문이었다. "저는 프리다가 나가자 바로 이 곳으로 불려왔어요. 아무라도 상관없이 마음대로 사람을 쓸 수는 없으니까요. 저는 지금까지 손님 방을 맡은 하녀였어요. 그러나 이번에 여기로 옮겨왔지만 별로 나올 것도 없어요. 여기서는 저녁부터 밤에 이르기까지 너무 일이 많아서 배겨 낼 것 같지가 않아요. 프리다가 이 일을 집어치운 것도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녀가 말했다. "프리다는 여기서 대단히 만족하고 있었어요." 하고 K는 말하고 삐삐에게, 삐삐가 미처 보지 못하고 있는 그녀와 프리다와의 차이점에 대해서 주의를 환기시키려고 했다. "그녀의 말씀을 곧이들어서는 안 돼요." 하더니 삐삐는 이어서, "프리다는 아무도 쉽게 흉내내지 못할 정도로 스스로를 억제하는 힘을 가지고 있어요. 그녀는 자기가 고백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절대로 고백하지 않아요. 그럴 때 그녀가 고백할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주위 사람 중에서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어요. 저는 그녀와 함께 여기에서 근무한 지 벌써 이삼 년이 되었고, 더군다나 늘 한 침대에서 자고 있었지만, 그녀와 다정한 사이라고는 할 수 없어요. 확실히 지금쯤은 저를 잊어버렸을 거예요. 역시 프리다다운 일이에요." 하고 말했다. "프리다는 내 약혼잔데요." 하고 K는 말하면서 문의 들여다보는 구멍을 손으로 더듬었다.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런 말씀을 드리는 거지요. 그렇지 않으면 이런 말씀드려 봤자 아무 소용이 없을 거예요." 하고 삐삐가 말했다. "알았어요. 내가 아조 옹졸하고 어울리지도 않는 여자를 자기 소유로 한것을 자랑 삼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이기군요." K의 말이었다. "그래요." 하고 그녀는 말하고, 자기가 프리다의 일에 대하여 K에게 암묵의 양해를 얻는 데 성공했다는 듯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띠었다. 들여다보는 구멍을 찾는 일에서 조금이라도 K의 관심을 끌고, 그의 주의를 돌리게 한 것은 그녀의 말이 아니고 대체로 그녀의 외모였으며, 또 그녀가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물론 그녀는 프리다보다 훨씬 젊고 아직도 어린애였고 차림새도 우스웠다. 확실히 그녀는 술집 색시라는 것에 대히서 품고 있는 과장된 상상에 알맞는 그런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과장된 상상이란 그녀로서는 무리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에게는 적당치 않은 이 자리가 다만 당분간이라는 조건으로 자격도 없는데 갑자기 그녀에게로 돌아왔으며 프리다가 늘 허리띠에 지니고 있었던 가죽 지갑이 전혀 그녀에겐 맡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녀가 이 자리를 불만스럽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너무 정도에 지나치게 자기 자신을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린애처럼 지각은 없지만 분명히 그녀도 성과 관계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본인의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면 객실을 맡은 하녀였다고 하니까. 그녀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성과의 관계라는 것의 가치도 알지 못하고 매일 이 곳에서 낮잠만 자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동통하고 약간 등허리가 둥그런 그녀의 육체를 이 품안에 껴안으면, 그녀가 지니고 있는 소중한 물건을 빼앗을 수는 없을지 몰라도, 그 포옹은 K를 몸보림치게 하고 원기를 복돋아서 가시덩굴의 길도 극복해 나갈 수 있도록 해 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아마도 프리다의 경우와 조금도 다름이 없지 않나? 아니, 그래도 다르다.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프리다의 눈초리를 생각해 보기만 하면 된다. 뻬삐는 어떤 일이 있어도 K의 몸에 손을 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는 잠깐 눈을 가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처럼 정욕에 불타는 눈초리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불을 켜 둘 필요는 없어요." 하고 뻬삐는 말하고 다시금 스위치를 돌려서 전기를 꺼 버렸다. "선생님 때문에 너무 놀라서 전기를 켰을 따름이에요. 대체 이 곳에 무슨 용무가 있으신가요? 프리다가 무슨 물건이라도 잊고 갔나요?" "네." 하고 K는 말하고 문을 가리켰다. "여기 옆방에 흰 편물 책상보를 잊었어요." "아아 그녀의 책상보, 지금 생각났는데 아주 훌륭한 물건이죠. 그걸 만들때 제가 그녀를 도와 드렸죠. 그런데 아마도 이 방안에는 없을 거예요." 하고 뻬삐가 말했다. "프리다는 있다고 말하던데요. 대체 여기에는 누가 묵고 있나요?" 하고 K는 물었다. "아무도 없어요. 여기는 성 양반들의 방이고, 여기서 마시거나 식사를 하시지요. 즉 이 방은 그런 목적으로 사용하도록 되어 있어요. 그너나 대부분의 양반들은 위층 자기 방에 계시고 여기에 내려오시지 않아요." 뻬삐의 말이었다. "만일 지금 옆방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확실하다면 들어가서 책상보를 찾았으면 좋겠는데, 그러나 그것도 어떨지 모르겠어요. 예를 들어 클람이 흔히 앉아 있다고 하던데요." K가 말했다. "클람이 옆방에 없는 것만은 확실해요. 그분은 지금 곧 출발해요. 썰매가 벌써 마당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하고 뻬삐가 말했다. K는 곧 한 마디 설명도 없이 술집에서 뛰어나와 버렸다. 현관에서 출구쪽으로 나가지 않고, 건물의 내부로 향하여 몇 걸음 안 가서 안뜰에 이르렀다. 여기는 참 조용하고 아름답다. 제모진 안뜰은 삼면이 건물에 면하고, 거이에 면한 쪽은__이 거리는 K도 모르는 뒷골목이었는데__희고 높은 담으로 경계를 짓고 있었는데, 이 담에는 크고 육중한 문이 달려 있으며 마침 그 때 그것이 열려 있었다. 건물은 이 안뜰로 면한 부분에서는 바깥으로 면한 부분보다도 높은 것처럼 보였다. 적어도 2층은 완전히 증축해서 겉에서 보는 것보다도 더 훌륭했다. 2층의 주위를 뺑 둘러싼 목조 복도는 안뜰에서 보면, 눈의 높이에서 작은 틈을 제외하고는 나머지는 총총하게 판자를 대고 있기 때문에 훌륭하게 보이는 것 같다. K의 앞에 비스듬히 건물로 들어 가는 입구가 있고 문도 없이 열린 채로 있었다. 그것은 아직도 중앙 건물에 속하고 있으나 K의 맞은편 옆 건물에 연결되는 모퉁이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 앞에 거무스름한 썰매가 서 있었는데 말 두 마리가 끄는 썰매였고 문은 닫혀 있었다. 마부를 제외하고는 사람의 그림자라곤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 마부도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을 뿐더러 주위에는 황혼이 짙었기 때문에 K는 마부라고 생각했다기보다는 오히려 그렇게 짐작했던 것이다. K는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조심스럽게 주위를 돌아다보면서 담장을 따라서 안뜰의 양끝을 돌아서 결국 썰매 가까이에 이르렀다. 마부는 며칠 전에 술집에 있었던 그 농부 가운데 한 사람이었으며, 짐승의 털가죽으로 몸을 감고 차가운 눈길로 K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마치 고양이가 걸어가는 것을 쫓는 것 같은 눈초리였다. K가 어느새 그 사람 가까이 가서 인사를 해도, 더욱이 어둠 속에서 사람의 그림자가 떠올랐기 때문에 말이 놀라 소란을 떨었을 때도, 그 사람은 아주 태연한 태도였다. K에게는 다행한 일이었다. 담에 기대어 도시락을 풀고, 이렇게 자기를 잘 돌봐 주어서 고맙다고 프리다에게 감사하면서, 건물 내부의 모양을 살펴보았다. 직각으로 구부러진 계단은 아래로 통해져 있는데 그 아래에서 천장은 낮지만 보기에도 깊숙한 복도와 엇갈리고 있었다. 모든 것이 깨끗하고 흰색으로 칠해져서 뚜렷하게 윤곽이 드러나 있었다. K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오랫동안 거기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오래 전에 도시락은 다 먹어 버렸다. 추위가 몸에 스며들고 해는 져서 어느덧 황혼이 어둠의 장막으로 변해 버렸는데도 클람은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다. "아직도 시간이 더 많이 걸릴지 몰라." 하고 갑자기 귓전에서 쉰 목소리로 외쳤으므로 K는 깜짝 놀라서 몸을 움츠렸다. 그것은 마부였는데 지금 잠이 깼다는 듯이 기지개를 켜더니 큰 소리로 하품했다. "무엇이 오래 걸린단 말이오?" 하고 K가 물었는데, 방해된다고 못마땅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조용함과 긴장감이 오래 계속되어서 벌써 싫증이 났기 때문이다. "당신이 물러갈 때까지요." 하고 마부가 말했다. K는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으나 그 이상 더 묻지도 않았다. 묻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이 이 거만한 사람에게 말을 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어둠 속에서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은 거의 상대방에게 말하라고 자극을 주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역시 아닌게아니라 마부는 잠시 후에 물었다. "꼬냑 좀 마시겠어요?" "좋지요." 하고 K는 잘 생각해 보지도 않고 말했다. 추워서 몸이 떨렸기 때문에 마부가 한 소리에 무척 마음이 끌렸다. "그러면 썰매의 문을 열어 보세요. 문에 달린 주머니에 술이 두서너 병 들어 있으니까, 한 병 꺼내어 마셔 보세요. 마신 다음 내게 돌려 주세요. 털가죽 옷을 입고 있으니까 운전대를 내리는 것이 거북해서 그래요." 이런 잔심부름을 해 주는 것은 불쾌한 일이었지만, 이 마부와 상관하게된 이상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여 K는 그 말대로 했다. 썰매 옆에서 갑자기 클람에게 습경당할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무릅쓰면서도. 폭이 넓은 문을 열고 문의 안쪽에 달려 있는 주머니에서 병을 끄집어내려고 했는데, 막상 문을 여니까 썰매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충동이 솟구쳐 올라왔다. 결국 그 충동에 사로잡혀서 잠시 동안이라도 안에 걸터앉아 볼까 하고 생각했다. 그는 살짝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썰매 안은 이상하게 따뜻했다. 문을 닫아 버릴 용기가 없어서 문은 환히 열린 채로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온도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자기가 의자에 앉아 있다고는 느껴지지 않을 만큼 폭신폭신한 담요 쿠션과 털가죽 속에 파묻혀 버렸다. K는 자신도 모르게 모ㅁㄹ 편안히 감까주는 폭신폭신하고도 따뜻한 속으로 점점 파묻혀 들어가고 말았다. 양쪽 팔을 쭉 뻗치고는 K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푹 삼싸주는 쿠션에 머리를 기대고 앉아 어두운 건물 속을 쳐다보았다. 클람은 왜 이렇게 안내려오는 것일까? 눈 속에 오랫동안 서 있었다가 따뜻한 썰매 속에 있으려니까 정신이 몽롱해 왔지만, 몽롱한 상태로 K는 클람이 빨리 와 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살며시 그 소원을 방해나 하는 듯이 차라리 이런 상태에서는 클람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떠오랐지만 그것은 아주 희미한 것에 불과했다. 이러한 망각의 세계에서 헤매게 된 것도 마부의 태도 덕분이었다. 마부는 그가 썰매 속에 있는 것을 알 텐데도, 꼬냑을 달라고도 하지 않고 그를 거기에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퍽이나 사정을 봐주는 태도였으나, K로서도 이 사람에게 상당히 서비스해 주고 있는 셈이었다. 그는 자세를 바꾸지 않은 채 손을 힘들여 문의 주머니 속으로 뻗었는데 열려져 있는 문은 거리가 너무나 멀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결과적으로 보면 아무래도 좋았다. 닫혀 있는 문에도 술병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병 하나를 꺼내서 뚜껑을 열고 냄새를 맡아 보았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띄우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냄새가 무척이나 감미롭고 매혹적이어서, 마치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 친절한 말을 걸어 주거나 칭찬해 주었을 때 대체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또 그것을 조금도 알려고도 하지 않으면 단지 말을 걸어 주는 사람이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의식하는 것만으로도 한없이 행복에 겨워하는 그런 경우와 비슷했다. "이것이 꼬냑인가?" 하고 K는 의심스럽게 스스로 물어 보고, 호기심에 못 이겨 시험 삼아 조금 맛보았다. 영락없는 진짜 꼬냑이었는데 술기운이 돌면서 가슴 속은 불타오르고 몸은 후끈후끈 달아올랐다. 이 액체를 마시면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 것일까! 처음에는 그윽한 향기를 지니고 있는 액체에 지나지 않았는데, 마부가 마시기에 적합한 술로 변한다. "이럴 수도 있을까?" 하고 K는 자기 자신을 나무라는 말투로 물어 보고는 또 한 모금 마셔 보았다. 그 때 갑자기 K가 꼬냑을 단숨에 들이키는 것과 때를 맞춰 주위가 환하게 밝아졌다. 집안의 계단, 복도, 현관은 물론이고, 집 바깥 입구의 추녀 밑에도 전등이 켜졌다. 계단을 내려오는 발소리가 들리자 K의 손에서 병이 미끄러져 땅에 떨어지고 꼬냑이 털가죽 위에 엎질러졌다. K는 잽싸게 썰매에서 뛰어나와 얼른 문을 닫았다. 문은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면서 닫혔다. 곧 이어 건물 속에서 신사 한 사람이 천천히 나타났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 사람이 클람이 아니어서 그나마 마음이 놓였다. 아니 오히리 반대로 유감스러운 일이었던가? 나타난 사람은 조금 전에 이층 창문가에 있는 것을 본 일이 있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이 젊은이는 언뜻 보기에는 대단히 건강해 보였고 살결은 희고 혈색이 좋았는데 퍽 고지식하게 보였다. K도 역시 우울한 기색으로 그를 쳐다보았는데 사실은 그 눈초리로 자기 자신을 쳐다보는 것이었다. K는 차라리 자기 대신에 조수 두 사람을 이 곳으로 파견하는 것이 더 나을 뻔했다고 생각했다. 자기가 한 것 같은 행동이라면 조수들이라도 넉넉히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넓은 가슴을 가졌어도 생각하고 있는 이야기글 끄집어내기에는 그래도 숨이 찬 모양이었다. "이건 놀랐는데." 드디어 그 젊은이는 그렇게 말하면서 모자를 약간 이마에서 추켜올렸다. 에, 무어라고? 이 사람은 K가 썰매 속에 있었던 듯이 말하고 있지 않은가? K가 안뜰에 들어갔다고 그렇게 말하는 것일까? "대체 여긴 어떻게 오셨나요?" 그 젊은이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숨가쁘게 허덕거리면서 말했는데 움직일수 없는 일을 감수하고 있다는 태도였다. 무슨 질문인가! 무슨 대답을 한단 말인가! 자기가 많은 기대를 품고서 출발했던 길이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이 사람에게도 그대로 말할 것인가? K는 대답도 하지 않고 썰매 쪽으로 가서 문을 열고 그 속에 놓아 두고 잊어버렸던 모자를 끄집어냈다. 꼬냑이 썰매의 발판 위에 엎질러진 것을 보고 K는 기분이 나빴다. 그리고 K는 다시 이 젊은이 쪽으로 몸을 돌렸다. 자기가 썰매 속에 앉아 있었던 사실을 이 사람에게 알려 주어도 별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그 사실 자체는 그리 나쁜 일이 아니었다. 만일 질문을 받게 되면__묻지 않으면 그럴 필요도 없지만__마부 쪽에서 먼저 유혹한 일이고, 적어도 썰매의 문을 여는 것만은 마부가 자기를 부추겨서 시킨 일이라고 털어놓고 말해 버리려 했다. 그런데 정말로 안타까운 것은 젊은이가 느닷없이 나타났기 때문에 몸을 숨길 만한 시간 여유가 없었고 따라서 마음놓고 클람을 기다릴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렇지않으면 썰매 속에 앉아서 문을 닫아 버리고 거기서 털가죽 위에 앉은 채로 클람을 기다릴 만한 마음의 여유, 적어도 그 ㅈ은이가 가까이 올 때까지 썰매 속에 그대로 앉아 있을 만한 침착한 태도가 아쉬웠다는 바고 그 점이다. 그러나 막상 이제라도 클람 자신이 당장 나타날 경우에는 썰매 밖으로 뛰어 나가서 그를 공손하게 맞게 될것임은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참으로 이 때에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는데, 이제는 아무것도 소용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일은 다 끝났기 때문이다. "나와 함께 갑시다!" 하고 그 젊은이가 말했다. 그 말 자체는 비록 명령적인 말투는 아니었지만 명령은 말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을 입 밖에 내면서 일부러 냉담하게 손을 흔든 그 태도 속에 포함되어 있었다. "저는 여기서 어떤 사람을 기다리고 있어요." 하고 K는 말했는데, 무슨 효과를 노리고 한 말이 아니라 사실 그대로를 말했을 뿐이었다. "오세요!" 하고 그 젊은이는 조금도 서슴지 않고 다시 말했는데, K가 어떤 사람을 기다린다는 것을 조금도 의심치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주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당신과 함께 가면 기다리는 사람을 만나지 못해요." K는 몸을 떨면서 말했다.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지금까지 얻는 것은 일종의 소유물이고, 물론 아직도 단지 겉으로만 확보하고 있는 데 지나지 않지만, 그런 하찮은 명령으로 포기할 수는 없다고 K는 느끼고 있었다. "여기서 기다리든, 또는 나와 함께 가든, 어쨌든 당신은 그분을 만나지 못해요." 하고 그 젊은이는 자기 의견을 굳세게 주장했으나, 그래도 K의 생각에 대해서는 이상하게도 양보하는 태도로 나왔다. "차라리 여기서 기다리다가 만나지 않는 쪽이 더 낫겠요." 하고 K는 반항적인 어조로 말했다. K는 그 젊은이가 입 밖에 낸 말만으로는 조금도 여기서 움직이려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이 말을 듣자, 그 젊은이는 뻐기는 표정으로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잠시 동안 눈을 감고 있었다. 마치 K의 몰이해로부터 다시 자기 자신의 이성으로 돌아오려고 하는 태도였다. 그리고 혀끝으로 조금 열린 입술 언저리를 핥더니, 마부를 향하여 말했다. "말을 썰매에서 떼어 주게!" 마부는 K쪽을 곁눈질하며 심술ㄱ게 쳐다보았는데, 젊은이가 하는 소리에 고분고분 복종하여, 이번에는 털가죽 옷을 입은 채 운전대에서 내려오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고 젊은이가 명령을 취소하는 건 기대하지 않지만, K쪽에서 생각을 달리하기를 바란다는 듯이, 무척이나 머뭇거리면서 썰매를 붙인 채 뒷걸음질 시켜 옆 건물 쪽으로 말을 몰고 가기 시작했다. 그 건물에 있는 큰 문을 열면 그 속에는 틀림없이 마구간과 차고가 설비되어 있을 것이다. K는 자기 혼자 뒤에 남아 있는 것을 깨달았다. 한쪽에서는 썰매가, 다른 쪽 즉 K가 걸어온 길에서는 젊은이가, 양쪽이 서로 무척이나 느린 속도로 멀어져 갔는데, 그것은 K에게 아직도 그의 힘으로써 이 양자를 끌어 잡아당길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려는 것 같은 태도였다. 어쩌면 K는 그들을 다시 끌어 잡아당길 만한 힘을 가지고 있었을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힘이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썰매를 다시 되돌아오게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쫓아 버리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는 이 자리를 지키는 단 하나의 인간으로서 잠자코 그 곳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이것은 기쁨이 따르지 않는 승리였다. 그는 젊은이와 마부 쪽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젊은이는 벌써 K가 맨 처음에 안뜰로 나왔던 문에 이르렀는데, 거기서 또 한번 이쪽을 돌아다보았다. K는 자기가 너무나 완고해서 이 사람이 고개를 살살 내두르고 있는 것을 보는 것처럼 느꼈다. 그러고 나서 젊은이는 이제 마지막이라는 듯이 결단성 있게 재빨리 몸을 돌려 현관에 발을 들여놓더니, 곧 자취를 감춰 버렸다. 마부는 더 오랫동안 안뜰에 남아 있었다. 그는 썰매를 치우는 데 상당히 애를 먹고 있었다. 묵직한 마구간의 문을 열고 썰매를 뒷걸음쳐서 제자리에 갖다 놓고, 말을 썰매에서 떼어서 여물통 있는 곳으로 끌고 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는 그런 모든 일을 성실하게 한눈도 팔지 않고 했는데 곧 다시 출발할 기미는 없는 듯싶었다. K쪽을 곁눈질해서 쳐다보지도 않고 잠자코 일하고 있는 이 마부의 태도는 K의 눈으로 보면, 그 젊은이의 행동보다도 훨씬 엄격한 비난처럼 느껴졌다. 마부는 마구간 일을 끝마치자 그의 특색 있는 태연한 걸음걸이로 몸을 좌우로 흔들면서 안뜰을 비스듬히 가로지르더니 큰 문을 닫고 그리로 되돌아왔는데, 이런 모든 행동을 눈 속에 남는 자기 발자국만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천천히 그리고 꼼꼼히 해 냈다. 그런 다음에 마구간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는 곧 이어서 전등을 모조리 꺼 버렸다__누구를 위하여 전등을 켜 두는 것일까?__그러나 위에 있는 목조 회랑의 틈에서만은 여전히 밝은 빛이 새어 나와서 허공을 헤매는 눈초리를 좀 잡아 둘 수 있었다. K에게는 이제 다른 사람과의 대인 관계는 모조리 중단되었고, 물론 과거 어느 때보다도 자유롭게 되었으며, 보통 때 같으면 그에게는 출입 금지 되어 있는 이 장소에서 얼마든지 기다릴 수가 있게 되었다. 이 자유란 자기 스스로 쟁취한 것이고 다른 사람은 흉내도 낼 수 없는 것이다. 아무도 그에게 손을 대거나 그를 쫓아낼 수 없으며 그에게 말을 거는 것조차 용납되지 않는다고 K에게는 생각되는 것이었다. 그러나__다음과 같은 확신도 그것에 못지 않을 만큼 강했는데__그와 동시에 이렇게 자유로온 것,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 것,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아무런 침해도 받지 않는 것, 이런 것보다도 더 무의미하고 절망적인 일은 없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9 그래서 그는 즉시 안뜰을 떠나서 건물 속으로 되돌아왔는데, 이번에는 담장을 따라가지 않고 정원 한복판 눈 속을 걸어갔다. 복도에서 주인을 만났는데 주인이 잠자코 인사하며 술집 문 쪽을 가리키기에 그의 지시에 따랐다. 추워서 견딜 수 없었고 사람의 그림자가 그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러 갖다 놓았다고 생각되는 작은 탁자__왜냐하면 여기서는 언제나 통을 식탁 대용으로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__옆에 아까 만났던 젊은이가 앉아 있었으며 이 젊은이의 맞은편에__K를 낙담케 하는 광경이었지만__교반관의 안주인이 서 있는 꼴을 보았을 때는 자못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뻬삐는 거만한 태도로 고개를 뒤로 젖히고 언제나 변함없는 미소를 띠우며 자기의 품위를 지나칠 정도로 의식하고, 몸을 돌릴 때마다 땋아내린 머리를 흔들거리며, 여기저기 바쁘게 돌아다니다가, 우선 맥주를 그 다음에는 잉크와 펜을 가져왔다. 왜냐하면 그 젊은이가 서류를 앞에 펴놓고 그 서류의 날짜와 탁자의 또 다른 쪽 가에 있는 서류의 날짜를 비교한 다음 무엇을 쓰려고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주인은 잠자코 입술을 약간 위로 말아올리고 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자기가 서 있는 위치에서 젊은이와 서류를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필요한 일은 전부 말해 버렸고 그것도 다 뜻대로 받아들여졌다는 표정이었다. "드디어 측량 기사 양반이 오셨구먼!" 하고 젊은이는 K가 들어오는 걸 힐끔 쳐다보면서 말하고는 곧장 자기 서류에 열중했다. 안주인도 전혀 놀란 기색 없이 지극히 무관심한 태도로 슬쩍 K에게 시선을 던졌을 뿐이었다. 뻬삐는 거만한 태도로 고개를 뒤로 젖히고 언제나 변함없는 미소를 띠우며 자기의 품위를 지나칠 정도로 의식하고, 몸을 돌릴 때마다 땋아내린 머리를 흔들거리며, 여기저기 바쁘게 돌아다니다가, 우선 맥주를 그 다음에는 잉크와 펜을 가져왔다. 왜냐하면 그 젊은이가 서류를 앞에 펴놓고 그 서류의 날짜와 탁자의 또 다른 쪽 가에 있는 서류의 날짜를 비교한 다음 무엇을 쓰려고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주인은 잠자코 입술을 약간 위로 말아 올리고 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자기가 서 있는 위치에서 젊은이와 서류를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필요한 일은 전부 말해 버렸고 그것도 다 뜻대로 받아들여졌다는 표정이었다. "드디어 측량 기사 양반이 오셨구먼!" 하고 젊은이는 K가 들어오는 걸 힐끔 쳐다보면서 말하고는 곧장 자기 서류에 열중했다. 안주인도 전혀 놀란 기색 없이 지극히 무관심한 태도로 슬쩍 K에게 시선을 던졌을 뿐이었다. 뻬삐는 K가 목로 앞으로 가까이 가서 술 한잔을 주문했을 때 비로소 K가 왔다는 사실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K는 목로에 기대고 양쪽 눈 위를 손으로 누르고 있었을 뿐 아무것도 염두에 없었다. 그리고 꼬냑을 한 모금 마셨는데 맛이 없어서 마실 수 없다는 듯이 잔을 밀어 놓아 버렸다. "다른 분들은 이걸 마시는데요." 하고 뻬삐는 무뚝뚝하게 말하고는 컵 속의 나머지를 비운 뒤 씻어서 선반에 다 얹어 놓았다. "여기 양반들은 더 나은 것을 가지고 있어요." 하고 K는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제게는 없어요." 뻬삐가 말했다. 그녀는 그 이상 K를 상대하지 않고 또다시 젊은이를 도우러 갔다. 그런데 젊은이는 아무것도 필요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젊은이 뒤로 반원을 그리며 끊임없이 왔다갔다하면서 수줍게 사람의 어깨 너머로 서류 위를 바라보려 하였다. 물론 이것은 단지 걷잡을 수 없는 호기심인 동시에 거만한 허영심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안주인은 눈살을 찌푸리고 불만의 뜻을 나타냈다. 갑자기 안주인은 귀를 기울이고 온몸의 신경을 청각에 집중시키면서 허공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K는 돌아보았으나 아무것도 특별한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다른 사람에게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안주인은 발꿈치를 들고 큰 걸음걸이로 안뜰로 통하는 뒤쪽 문으로 걸어가서 열쇠 구멍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눈을 크게 뜨고 얼굴을 붉히면서 모두들 모인 쪽을 돌아다보고 손가락질하면서 불렀다. 모두들 그쪽으로 가서 번갈아 들여다보았다. 안주인은 마지막까지 가장 열심이었으며, 뻬삐도 무엇인가 하고 궁금히 여겼는데, 그 젊은이만은 비교적 냉담한 태도였다. 뻬삐와 젊은이는 곧 되돌아왔지만, 안주인만은 긴장하여 몸을 깊숙이 구부리고 거의 무릎을 꿇을 듯한 자세로 들여다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광경을 보고 마치 그녀가 자기 몸을 통과시켜 다라고 열쇠 구멍에 하소연하고 있는 것 같은 그런 인상까지 받았다. 왜냐하면 그 땐 이미 볼 만한 것이라곤 없어졌기 때문이다. 얼마 후에야 그녀는 겨우 몸을 일으키고 두 손으로 얼굴을 어루만지며, 머리칼도 매만지고는 심호흡을 한 다음, 자기 눈을 이 방안과 사람들에 익숙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듯한,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는 듯한 그런 태도를 보였다. 그 때에 K는 다 아는 사실을 학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마음 속으로 두려워하고 있었던 안주인의 공격에 대하여 선수를 쓰기 위해서, "그러면 클람은 벌써 떠났지요?" 하고 말했는데, 지금 그는 아주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다. 안주인은 대답도 하지 않고 그의 옆을 지나갔지만, 그 젊은이는 조그마한 탁자에서 이쪽을 향해 말했다. "그래요. 당신이 감시를 그만두었기 때문에 클람은 떠날 수가 있었어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클람의 신경 과민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어요. 주인 아주머니, 클람이 얼마나 불안스럽게 주위를 돌아다봤는지 보셨지요?" 안주인은 그걸 깨닫지도 못한 모양이었지만 젊은이는 그것에 구애되지 않고 말을 계속했다. "그러면 다행히도 이미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았던 것 같군요. 마부가 눈위의 발자국까지도 쓸어서 없애 버렸으니." "주인 아주머니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했군요." 하고 K가 말했지만 무슨 기대를 가지고 한 말이 아니라, 그 젊은이의 주장이 너무나 독단적이고 고압적이었기 때문에 그것에 자극을 받아 약간 흥분했던 까닭이었다. "아마 제가 열쇠 구멍으로 들여다보고 있지 않았을 땐가 보지요." 하고 안주인은 말하고 처음에는 젊은이를 변호했다. 그 다음으로는 클람이 한 일이 옳다고 주장하려는 듯이 덧붙여서 말했다. "물론 클람이 그렇게 신경 과민이라고는 생각지 않아요. 우리들은 물론 클람을 염려하고 그의 신변을 보호해 주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런 경우에 있어서 우리들은 우선 클람이 대단히 신경질적이라고 가정해 놓고서, 거기서부터 일을 시작해요. 그것이 좋아요. 클람도 확실히 그것을 희망하고 있어요. 그러나 사실 사정은 어떤지 우리들은 알 수 없어요. 물론 클람은 자기가 이야기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과는 결코 만나지 않을 거예요. 그 사람이 만나기 위해서 아무리 애쓰고, 악착같이 공작하고,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뻔뻔스러운 태도로 나오더라도 안 될 거예요. 클람은 자기가 만나기 싫은 사람과는 결코 이야기도 하지 않고, 자기 앞에 나오지도 못하게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해요. 그러나 클람이 어떤 사람의 꼴을 보기도 싫어한다는 일이 어째서 있을 수 있을까요?" 그 젊은이는 정말 그렇다는 듯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물론 근본적으로는 나도 같은 의견이지요. 나는 약간 다르게 내 생각을 표현했는데, 그것은 측량 기사 양반에게 알기 쉽게 하기 위한 것이지요. 그러나 클람이 아까 밖에 나갔을 때 몇 번씩이나 자기 둘레를 돌아봤다는 것은 사실이지요." "확실히 그는 저를 찾고 있었을 거요." 하고 K가 말했다. "그럴 듯한데요. 거기까지는 내 생각도 미치지 못했어요." 젊은이는 말했다. 모두들 한꺼번에 웃었다. 뻬삐는 무슨 영문인지 모르면서도, 가장 큰 목소리로 웃어댔다. "지금 우리들이 한데 모여서 이렇게 즐거운 기분에 젖어 있는 동안, 측량 기사 양반, 당신이 두서너 마디 말씀으로 서류의 미비한 점을 보충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하고 젊은이가 말했다. "굉장히 많이 써 있는데요." 하고 K는 말하고, 멀리서 서류를 바라보았다. "네, 나쁜 습관이지요. 그런데 당신은 내가 누군지 모르실 거예요. 클람의 제야 비서 모무스라고 해요." 이 한 마디로 방안 전체에 무거운 공기가 떠돌았다. 안주인과 뻬삐는 이 젊은이를 물론 알고 있었으나, 그 이름과 위엄 있는 직분이 소개되는 소리를 듣자 자못 놀란 시늉을 했다. 거기다가 이 젊은이 자신이 마치 자기가 분에 넘치는 말을 입 밖에 냈다는 듯이, 또 자기 말 속에 포함되오 있는 엄숙한 음향이 뒤에 남는 것만은 제발 피하고 싶다는 듯이 서류 속에 얼굴을 쳐박고 쓰기 시작했으므로 방안에는 글씨 쓰는 소리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대체 잠시 후에 그렇게 물어 보았다. 모무스는 자기 소개를 해 버린 이 마당에 있어서 자기 스스로 이런 설명을 하는 것이 적당치 않다고 생각했으므로, 안주인이 대신 나서서 대답했다. "모무스 씨께서는 클람의 다른 비서분들과 마찬가지로 클람의 비서 중의 한 분이시지요. 그러나 이 양반의 근무지와__제가 잘못 생각한 것이 아니라면__직무상의 권한을 보면......" 그 때에 모무스는 쓰던 손을 멈추고 세차게 고개를 내둘렀다. 그래서 안주인은 할 수 없이 말을 고쳤다. "그러면 권한 문제가 아니고 단지 근무처에 관한 이야긴데, 그것은 지역적으로 보아 이 마을에 국한되어 있어요. 모무스 씨는 이 마을에서 클람의 문서상의 사무를 보실 필요가 있을 때는, 여러 가지 사무를 처리 또는 집행 하셔요. 또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으로써 클람에게로 보내는 청원서는 모조리 이분이 접수하셔요." K가 이런 여러 가지 설명을 들어도 거의 감동하는 기색도 보이지 않고 허무한 눈초리로 안주인을 쳐다보고 있으니까, 그녀는 약간 당황한 듯이 덧붙여서 말했다. "그렇게 조직이 되어 있어요. 성 양반들은 모두 재야 비서를 가지고 있는 셈이지요.' 모무스는 K보다도 훨씬 주의 깊게 그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는데, 그녀의 말을 보충하려는 듯이 안주인을 향하여 이렇게 말했다. "제야 비서는 대개 단 한 분을 위해서 일하는 거지만, 나는 클람과 바라베네, 두 분의 일을 맡아 보고 있어요." "그렇지요." 하고 안주인은 자기 스스로도 그 일을 생각해 보면서 말했다. 그리고 K쪽을 향하여, "모무스 씨는 클람과 바라베네 두 분의 일을 맡아 보고 계세요. 따라서 겸임의 재야 비서라고 할 수 있지요." 더군다나 겸임이시라고요!" 하고 K는 말하고, 사람들 앞에서 칭찬받는 어린애에게 대한 것처럼, 모무스에게 대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모무스는 이제 아주 몸을 앞으로 내밀다시 피하면서 K를 정면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이 때 K의 태도에는 일종의 멸시하는 빛이 보였는데, 그들 두 사람은 그 눈치를 깨닫지 못했거나 깨달았다고 하면 멸시당하기를 바라고 있었던 거나 마찬가지였다. 하필이면 클람이 우연히라도 한 번 만나 줄 만한 자격도 없는 K 앞에서, 클람의 가장 가까운 측근자의 공적이 상세하게 나열된 것이다. 더군다나 억지로라도 K에게 감탄과 칭찬을 받으려는 노골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 빤히 들여다보였다. 그런 것에 대한 올바른 감각을 공교롭게도 K는 가지지 못했다. 있는 힘을 다하여 클람을 순간적으로라도 만나 보려고 노력하고 있었으나, 예를 들면 모무스 같은 사람의 지위를__설사 그가 클람의 측근에서 생활하게끔 허락이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__높이 평가하지도 않았으며, 감탄하거나 더욱이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__높이 평가하지도 않았으며, 감탄하거나 더욱이 질투의 감정을 일으키는 일은 거의 없었다. 왜냐하면 클람과 가까워진다는 사실 자체가 애써 볼 만한 보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아무도 아닌 이 K 자기 자신의 소원을 가지고 클람에게 접근하는 것만이 노력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그것은 클람 옆에서 편안하게 지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옆을 지나가기 위해서 그리하여 한 걸음 더 나아가 성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K는 시계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이제 천천히 뒤바뀌어 모무스가 유리하게 되었다. "네 그렇겠죠. 학교의 소사라는 직무 때문에 학교로 가봐야 할 거예요. 그러나 아직은 잠시 동안 내게 시간을 내 주셔야 하겠는데요. 단지 두서가지 간단한 질문이 있어요." 하고 모무스가 말했다. "저는 흥미 K는 그렇게 말하고 문 쪽으로 가려고 했다. 모무스는 문서 하나를 손에 들고 탁자를 치며 일어섰다. "클람의 이름으로 내 질문에 대답하기를 당신에게 요구해요!" "클람의 이름으로라고?" 하고 K는 그 말을 그대로 되풀이했다. "대체 그분은 저의 일을 염두에나 두고 있나요?" "그것은 판단 내릴 수 없어요. 더군다나 당신은 판단하기 어려울 거요. 그래서 우리들은 서로 그것을 안심하고 당사자에게 맡겨 두기로 합시다. 그라나 나는 클람에게 위임받은 직책상의 권한으로써 당신에게 여기 남아서 대답할 것을 요구해요." 하고 모무스는 말했다. "측량 기사 양반." 하고 안주인이 참견했다. "저는 이 이상 당신에게 충고하는 것을 삼가겠어요. 저는 지금까지 여러가지 충고를 그나마 어디서도 경험할 수 없는 친절한 충고를 했는데 당신에게 여지없이 거절당하고 말았어요. 그래서 제가 지금 여기 비서님에게로__제가 숨겨야만 될 일은 하나도 없어요__온 것도 단지 관청에다가 당신의 거동과 의도를 적당히 보고해서, 앞으로는 당신이 또 제집에 묵는 일이 절대로 없도록 하려는 것이지요. 우리들은 이런 사이가 되었는데, 이 사이란 앞으로도 변치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따라서 이제부터 제 의견을 말씀드리는 것은 당신을 도우려는 것은 아니고 비서님의 어려운 직무를__그것은 당신 같은 사람을 상대로 하는 것을 말하는데__조금이라도 덜어 드리려는 것이지요. 그러나 저는 아주 공평하고 솔직한 사람이니까__저는 당신과 솔직하게밖에는 교제할 수 없어요. 저는 본의가 아니면서도 그렇게 하고 있는 거예요__당신 마음이 내키신다면 제 말씀을 당신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이용할 수도 있어요. 이 기회에 당신에게 주의를 환기시키려 하는 것은, 당신이 클람에게 도달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깊은 이 비서님의 조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는 거지요. 표현이 과장될까 봐 두려워서 말씀드리는 거지만, 혹시 그 길은 클람에게까지 통하고 있지 않을지도 모르겠어요. 어쩌면 그 길은 훨씬 앞에서 끊어졌을지도 모르겠어요. 그것은 비서님의 생각 하나로 결정돼요. 어쨌든 당신에게 있어서, 클람에게로 통하는 길은 적어도 이것 하나로 결정돼요. 어쨌든 당신에게 있어서, 크람에게로 통하는 길은 적어도 이것 하나밖에 없어요. 그런데 당신은 그저 반항하기 위해서, 단 하나밖에 없는 이 길을 단념해 버리려고 하시나요?" "아아, 주인 아주머니, 그것은 클람에게 통하는 단 하나의 길도 아니며, 다른 것보다도 더 나은 길도 아니지요. 그리고 비서 양반, 당신은 제가 여기서 한 말을 클름에게 상신할 것인가 아닌가를 판정하시나요?" 하고 K가 말했다. "물론이지요." 하고 모무스는 말하고, 거만스럽게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눈초리를 좌우로 돌려서 아무것도 없는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렇지 않으면 대체 내가 무엇 때문에 비서 노릇을 하고 있겠소?" "그런데 주인 아주머니, 클람에게로 가는 길보다는, 우선 비서 양반에게로 통하는 길이 필요한 것 같아요." 하고 K가 말했다. "그 비서님에게로 통하는 길을 열어 드리려고 생각했어요. 당신의 청을 클람에게 말씀드릴까 하고 오전중에 문의하지 않았어요? 당신의 청은 비서님의 손을 거치도록 되어 있어요. 그런데도 당신은 그 제의를 거절해 버렸어요. 그러나 지금도 당신에게는 이 길밖에는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아요. 물론 오늘 행동한 것처럼 클람의 약점을 찌르려고 노렸다가는 성공하는 희망도 희박해지지요. 그라나 방금 사라져 버리려고 하는 마지막의 가냘픈 희망, 원래는 전혀 존재하지도 않는 희망이 그래도 당신이 의지하는 한 가닥의 희망이지요." 안주인의 말이었다. "주인 아주머니, 그것은 왜 그렇지요? 당신은 처음에는 제가 클람을 마나러 가려는 것을 그렇게도 강력하게 말리더니 이제와서는 제 청을 대단히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제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는 경우에는 저를 타락한 인간이라고 생각할 것 같군요. 데체 클람과 마나려고 노력하는 것이 틀렸다고 제게 솔직한 마음으로 충고해 줄 수 있었던 분이, 지금 뵙기에는 그 솔직한 마음이라는 것으로 이번에는 마치 클람에게 이르는 길로 곧장 나가라고 선동하는 태도로 나오더니__가령 그 길이 결코 클람에게로 통하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__대체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K의 말이었다. "당신이 시도해 보아도 희망이 없다고 제가 말하면, 그것이 전진하라고 선동하는 결과가 되나요. 그것은 말하자면__만일 당신이 그렇게 자기 책임을 제게 돌리려고 한다면, 참말로 뻔뻔스럽기 짝이 없는 거예요. 당신이 그런 마음을 일으키는 것은 분명히 비서님이 눈앞에 계시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아니에요. 측량 기사 양반, 저는 결코 당신에게 무얼 하라고 선동하지는 않아요. 단지 한 가지 고백할 것이 있다면 제가 처음으로 당신을 만났을 때, 당신을 약간 높아 평가했다는 것이지요. 당신이 재빠르게 프리다를 정복해 버렸기 때문에 깜짝 놀랐고, 당신이 이 이상 무슨 짓을 할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는 그 점이 미지수였어요. 그래서 그 이상 불행이 일어나는 것을 막으려고 생각하고, 그러자니 애걸하기도 하고 또 협박하기도 해서 당신의 마음을 움직여 보는 수밖에는 달리 도리가 없었던 거예요. 그러는 동안 저는 전체를 더 생각하게 되었어요. 어쨌든 좋도록 해 주세요. 아마도 당신이 할 수 있는 짓이란 바깥 안뜰의 눈 위에다 깊은 발자국이나 남기는 일뿐일 것이고 그 이상은 불가능할 거예요." 하고 안주인이 말했다. "제 눈에는 모순이 전부 해명된 것처럼 보이지 않아요." 하고 말한 K는 이어서, "그러나 모순을 지적한 것만으로 만족하기로 하지요. 그런데 비서 양반, 부탁 말씀이 있어요. 주인 아주머니의 의견으로는 당신이 작성하시려고 하는 제 조서가 완성된 후에는 시간이 경과됨에 따라서 클람과 면회하는 일도 실현될는지 모른다는데, 그 의견이 옳은지 어쩐지 말씀해 주세요. 만일에 그 의견이 옳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기꺼이 모든 질문에 대답할 용의가 있어요. 클람과 만나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고 하겠어요." 모무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니, 조서와 면담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어요. 단지 클람의 사무 기록 장부 때문에 오늘 오후에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을 정확하게 기록해 두지 않으면 안 돼요. 기록은 다 되었으니, 정리하기 위해서 단지 두서너 개 빈칸을 메워 주시면 돼요. 다른 목적이란 있을 수도 없고,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것이 이루어질 리도 없어요." K는 입을 다물고 안주인을 쳐다보았다. "왜 당신은 제 얼굴만 쳐다보세요?" 하고 안주인이 물었다. "제가 뭘 틀린 소리라도 했나요? 이분은 언제나 그래요. 비서님, 언제나 그렇다니까요.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소문을 제멋대로 뜯어 고쳐서, 그런 그릇된 소문을 들었다고 주장해요. 이분을 클람이 만나 주는 희망이라곤 손톱만큼도 없다는 사실을 오래 전부터 타일었고, 지금도 늘 그 말만 하고 있어요. 어쨌든 희망이라곤 전혀 없으니까 이 조서를 가지고도 그런 희망을 얻지는 못할 거예요. 이보다도 더 명백한 일이 있을 까요? 더 자세히 말씀드리자면, 이 조서를 통해서만이 이분은 클람과 참다운 공무상의 관계를 맺게 될 수 있어요. 그것은 참으로 분명하고 의심할 여지도 없는 일이에요. 그러나 이분이 제 말을 믿지 않고 한결같이__도대체 또 무슨 목적으로 그렇게 하려고 하는지 알 수 없지만__클람의 눈앞에 나타나기를 희망한다면 이분의 사고 방식대로 해석해서, 즉 이분의 입장에서 볼 때 이분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라곤 클람과의 단 하나의 공무상의 관련성, 즐 이 조서가 있을 따름이지요. 저는 이 말씀을 드렸다 뿐이에요. 다른 무엇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제 말을 악의로 비꼬아서 말하는 거지요." "주인 아주머니, 사정이 그러시다면 용서해 달라고 빌겠어요. 당신은 저를 오해하셨어요. 저는,__그것이 잘못된 것이 지금 밝혀졌는데__당신이 먼저 하신 말씀을 듣고 제게는 그래도 한 가닥의 희망은 있다고 생각 했어요." 하고 K는 말했다. "그래요, 물론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안주인은 말을 이어서, "당신은 또 제 말을 곡해하고 계세요. 그것도 이번에는 반대쪽으로 곡해하시는 거지요. 당신에게는 그런 희망이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그 희망의 근거는 이 조서에 있어요. 그러나 '당신의 질문에 대답하면 클람과 만나는 것이 허락되는가?' 하는 질문으로써, 선뜻 비서님을 공격할 수 있는 형편에 있는 것은 아니에요. 어린애가 그런 말을 물으면 사람들은 웃을지 몰라도 어른이 묻는 경우에는 관청을 모욕하는 결과가 되니까요. 다행히도 비서님이 교묘하게 대답해서 당신의 실례를 덮어 주셨어요. 제가 여기서 말하는 희망이란, 즉 당신이 조서를 통해서 클람과 일종의 관련성을__아마도 일종의 관련성일 거예요__갖는다는 거지요. 이것은 훌륭한 희망이 아닐까요? 이런 희망의 선물을 받을 만한 공적이 당신 쪽에 있느냐고 물으면, 당신은 아주 사소한 공적이라도 끄집어낼 수 있겠어요? 이 희망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할 수도 없을 것이고, 또 특히 비서님은 직무의 성질상 이것에 대해서 조금도 암시를 줄 수도 없을 거예요. 그분이 직접 말씀한 대로 비서님에게는 정히상 오늘 오후에 일어난 사건을 기술하는 것만이 문제지요. 가령 당신이 지금 당장 제 말에 관련해서, 비서님에게 그 말씀을 물어 보시더라도 그 이상 더 언급하시지 않을 거에요." "비서님, 대체 클람은 이 조서를 읽나요?" 하고 K가 물었다. "아니오." 모무스의 답은 이어서, "왜냐하면 클람이라고 할지라도 조서를 전부 다 한번 쭉 훑어볼 수는 없어요. 거기다가 클람은 읽지 않는 편이지요. '조서 같은 건 지긋지긋하게 싫어!' 하고 늘 말하고 있는 형편이니까요." "측량 기사 양반." 하고 안주인은 자못 난처하다는 듯이 말했다. '당신은 언제까지나 그런 어리석은 질문으로써 저를 괴롭히셔요. 대체 클람이 이 조서를 읽고서 당신의 생활에 관하여 아무 소용도 없는 사실을 거기에 써 있는 대로 이해한다는 것이 필요한, 아니 필요하다고 하지 않을지라도 바람직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보다도 차라리 클람에게 조서를 보이지 마라 달라고 부탁할 마음은 없으신가요? 이것은 결국 전과 같이 미련한 소원일 것이지만__왜냐하면 아무도 클람 앞에서 무엇을 감출 수는 없을 것이니까요__그러나 전보다도 더 동정할 수 있는 점이 있을 거에요. 그런데 대체 그것이 당신의 소위 희망을 위해서 필요한 일일까요? 클람이 당신을 보든 말든, 또 당신 말씀에 귀를 기울이든 말든, 그분 앞에서 미야기할 기회를 얻기만 하면 만족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어요? 그런데 당신은 이 조서를 통해서 적어도 그 정도는, 오히려 확실하게 그 정도 이상으로 성공할 수 있지 않아요?" "그 정도 이상으로라구요? 어떤 방법이지요?" 하고 K가 물었다. "당신이란 사람은 언제나." 하고 안주인은 소리쳤다. "어린애처럼, 무엇이든 곧 먹을 수 있도록 장만해서 내놓지 않으면 납득하시지 않는군요! 대체 누가 당신의 그런 질문에 대답할 수 있겠어요? 이 조서는 클람의 사무 장부에 올리도록 되어 있는데, 그 말씀은 벌써 들어셨지요. 그것에 대해서 그 이상 더 분명히 말씀드릴 수는 없어요. 그러나 당신은 조서나 비서님이나 또는 사무 장부가 가지고 있는 뜻을 죄다 아시나요? 비서님에게 신문당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셔요? 아마도 비서님 자신도 이것은 모르실 거예요. 경우에 따라서는 십중팔구 그럴지도 몰라요. 단지 태연하게 앉아서, 자기가 말한 것처럼 정리하기 위해서 자기 직무를 수행하고 있을 따름이지요. 그러나 생각 좀 해 보세요. 클람이 이분을 임명했고, 이분은 클람을 대리해서 사무를 집행하고 계세요. 따라서 이분이 하시는 일은__그것이 한번도 클람에게 보고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__처음부터 클람의 동의를 얻고 계세요. 하여튼 클람이 동의하고 있는 이상, 클람의 정신이 배어 있지 않을 리가 있겠어요? 이런 말씀을 드린다고해서 서투르고 어색하게 비서님의 비위를 맞출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어요. 이분 자신도 그런 일은 거절해 버릴 거예요. 그러나 저는 이분의 독립된 정신에 대해서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처럼 클람의 동의를 얻고 있는 이분에 관해서 말씀드리는 거니까요. 그러므로 이분은 말하자면 클람의 손이나 도구처럼 움직이는 집행 기관이니까, 이분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누구나 다 좋지 않을 거에요." K는 안주인의 협박 공갈 같은 건 무섭지도 않았고, 그의 환심을 사려고 희망을 강조하는 그녀의 말에도 싫증이 나 버렸다. 클람은 먼 곳에 있었다. 언젠가 안주인이 클람을 독수리에 비교했을 때 어리석은 일처럼 생각이 되었는데 지금은 그렇징 않았다. 클람과의 먼 거리, 침해할 수 없는 그의 주거, 아직도 K가 귀에 담다 들은 적이 없은 울부짖는 소리 같은 것에 의해서만 중단시킬 수 있는 그의 침묵,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날카로운 눈초리__이것은 절디로 확인할 수도 없고 부정할 수도 없었다__그가 위에 있는 성에서 무엇인지 정체를 파악할 수 없는 율법에 따라 그어 놓은 세력권__이것은 K처럼 아래에 있는 낮은 신분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깨뜨릴 수도 없는 것이며 단지 순간적으로 눈에 띌 뿐이었다__이런 것들을 K는 생각해 보았다. 이것들은 모두 클람과 독수리의 공통된 요소였다. 그러나 이 조서는 이런 것과는 확실히 아무런 관계도 없다. 지금 마침 모무스는 이 조서를 놓고서 소금을 뿌린 과자를 쪼개어 맥주 안주로 먹고 있었는데 떨어진 소금과 과자 부스러기가 잔뜩 흩어져 있었다. "편안히 주주세요. 신문이란 전 지긋지긋하게 싫어요." 하고 K는 말하고 이번에는 정말로 문으로 갔다. "저 사람 역시 돌아가는 군요." 하고 모무스는 자못 불안스러운 기색으로 안주인에게 말했다. "설마 돌아갈라고요." 하고 안주인은 말했지만 K에게는 그 이상 더 들리지도 않았다. 벌써 현관으로 나와 있었는데, 추었으며 거센 바람이 불고 있었다. 맞은편 문에서 주인이 나왔다. 그는 문의 들여다보는 구멍으로 현관을 감시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여기 현관 안에서도 바람이 옷자락을 뒤집을 정도로 새어들어왔기 때문에 주인은 그 옷자락을 누르고 있지 않으면 안 되었다. "측량 기사 양반, 벌써 돌아가십니까?" 하고 그는 말했다. "지금 가면 이상한가요?" 하고 K가 물었다. "네, 이상합니다. 그런데 대체 신문은 받으시지 않습니까?" 주인의 말이었다. "네, 신문 같은 건 받지 않고 왔어요." 하고 K가 말했다. "왜 그러십니까?" 하고 주인이 물었다. 이어서, "저는 왜 신문받지 않으면 안 되는지 알 수 없어요. 거기다가 농담인지 관청의 기분인지, 또는 변덕인지 분간할 수도 없는 일에 왜 따라가야만 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요. 어쩌면 이 다음에는 저도 농담, 기분 또는 변덕으로 신문을 받을는지 몰라도 오늘만은 절대로 안 돼요." 하고 말했다. "네 틀림없이 그렇습니다." 하고 주인은 말했으나, 이것은 단순히 예의상의 동의일 뿐 결코 그의 확신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자아 그러면 하인들을 술집 안으로 들여보내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벌써 그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저는 단지 신문하는 데 방해를 하고 싶지 않았을 뿐입니다." "당신은 그렇게 중대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나요?" 하고 K가 물었다. "네, 물론입니다." 주인이 말했다. "그러면 거절해서는 안 되었군요." 하고 K가 말했다. "네, 거절하는 것은 좋지 못했습니다.' K가 잠자코 있으려니 K를 위로하려고 했는지 그렇지 않으면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이 곳을 떠나려고 했는지, 주인은 다음과 같이 덧붙여서 말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곧 공중에서 유황이 비처럼 쏟아지는 일은 없습니다(구약 성서<창세기> 19장 24~25절 소돔과 고모라의 고사 참조)." "네 그렇군요. 그런 날씨처럼 보이지도 않아요." K가 말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웃으면서 헤어졌다. 10 바람이 거세게 부는 바깥 계단으로 나와서 K는 어둠 속을 쳐다보았다. 형편없이 나쁜 날씨였다. 아무튼 이 일과 관련하여 고분고분하게 조서에 따르게 하려고 안주인이 상당히 애쓴 것과,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기가 그녀의 권고를 듣지 않고 고집을 부렸던 일이 그의 머리에 떠올랐다. 그녀의 그런 노력은 물론 솔직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런 구실로써 몰래 그를 조서에서 떼어 버리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그가 저항했는지 그렇지 않으면 복종했는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는 상당히 음모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멀리 타향에서 정체도 알 수 없는 사명을 띠고 왔으면서도 겉으로는 아주 태연하고 무심한 체하면서 일하고 있다. 마치 바람과도 같이. 큰길을 ㅂ 발짝 걸어가지 않아서 먼 곳에서 등불 두 개가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이 생명의 표지를 보고 반가워서 등불 쪽으로 걸음을 서둘렀는데 그 등불 쪽에서도 이 쪽을 향해 흔들거리며 다가왔다. 그것이 두 사람의 조수인 것을 깨달았을 때는 말할 수 없는 환멸과 비애를 느꼈는데, 왜 그랬는지는 자기도 알 수 없었다. 아마도 프리다가 이 두 사람을 마중 내보낸 것같았다. 주위에서 무엇인지 시끄럽게 울부짖으며 덤벼드는 것 같은 이 어둠을 물리쳐 주었던 두 개의 등불은 그 자신의 소유물임에 틀림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실망하고 말았다. 낯선 사람을 기대했던 것이지 이처럼 괴롭게도 무거운 짐이 되는 낯익은 지인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마중나온 것은 두 사람의 조수뿐만이 아니었다. 두 사람 사이의 어둠 속에서 바르나바스의 모습이 나타났다. "바르나바스!" 하고 K는 외치고 그 사람 쪽으로 손을 뻗쳤다. 이어서, "나를 찾아왔나?" 하고 물었다. 전에 바르나바스 때문에 화를 낸 일이 있었지만, 느닷없이 만났다는 놀라움이 우선 모든 감정을 씻어 주었다. "네, 선생님께 찾아가던 길입니다." 하고 바르나바스는 전과 조금도 다름없이 정답게 말했다. "클람 씨에게서 편지 한 장 가져왔어요." "클람 씨가 보낸 편지라고?" 하고 K는 말하며 고개를 뒤로 젖히고, 바르나바스의 손에서 날쌔게 편지를 채뜨렸다. "비춰 주게!" 하고 그가 조수들에게 말하자 두 사람은 좌우에서 바짝 가까이 다가와서 등불을 높이 쳐들었다. 바람의 방해를 받지 않고 읽기 위하여 큰 편지를 아주 작게 접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가 읽은 편지 사연은 다음과 같았다. '교반관에 묵고 계시는 측량 기사 귀하! 지금까지 종사하신 측량의 업적에 대하여 본관은 만족하며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조수들의 근무 상태도 또한 칭찬할 만합니다. 귀하는 그들을 격려하여 일에 종사시키는 요령을 터득하고 계십니다.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일하는 그들의 열의가 식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일을 끝까지 완수하고 좋은 성과를 거두도록 유의해 주십시오. 일을 중단하는 일이 있으면 본관은 분격하고 말 것입니다. 좌우간 안심하십시오! 일을 마쳤을 때에 지급하는 임금의 문제는 곧 결정되리라고 믿습니다. 본관은 항상 귀하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K보다도 훨씬 읽는 속도가 느린 조수들이 반가운 소식을 듣고 기쁜 나모지 만세를 부르고 등불을 흔들었을 때, K는 겨우 편지에서 눈을 떼고 위를 쳐다보았다. "조용히 해라!" 하고 그는 말하고, 그 다음에 바르나바스를 향하여, "이건 오해다." 라고 말했다. 바르나바스는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건 오해야." 하고 K는 되풀이했다. 오후의 피로감이 또다시 되살아 났다. 학교가지의 거리는 아직도 상당히 먼 것 같았다. 바르나바스의 등 뒤에 그의 온 집안 식구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조수들은 여전히 몸을 비벼대며 달려들었다. K는 할 수 없이 팔꿈치로 떠밀었다. 프리다에게 조수들을 붙들어 두라고 명령했는데 어째서 그들을 그에게 보냈단 말인가? 자기 혼자라도 돌아가는 길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들과 함께 가느니보다는 혼자 가는 편이 훨씬 마음이 편하다. 더군다나 한 놈은 머플러를 목에 두르고 있었는데, 그 머플러 끝이 바람에 나부끼면서 두서너 차례 K의 얼굴을 쳤다. 물론 다른 조수 한 놈은 그럴 때마다 간들간들 움직이는 기다랗고 뾰족한 손가락으로 K의 얼굴에서 머플러를 치웠지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태가 더 나아진 것은 아니었다. 두 사람은 바람과 밤의 불안에 은근히 흥분한 것 같더니, 이번에는 그 근처를 여기저기 왔다갔다하는 데 흥미를 느끼기 시작하였다. "이 자식들아, 꺼져 버려!" 하고 K는 소리질렀다. "너희들은 일부러 마중 나오면서 왜 내 지팡이를 가지고 오지 않았어? 무엇을 휘둘러서 너희들을 쫓아내느냔 말이야?" 두 사람은 바르나바스 뒤에 살짝 숨어버렸는데, 그다지 걱정스러운 눈치도 보이지 않고 방패가 된 바르나바스의 좌우 어깨 위에 등불을 올려 놓았다. 물론 바르나바스는 곧 그것을 떨어뜨려 버렸다. "바르나바스." 하고 K가 말했다. 바르나바스가 확실히 그를 이해하고 있지 않는 것 같아서, 이것이 그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또 보통 때면 그렇게 아름답게 빛나던 그의 윗도리가, 아주 중요할 때는 도무지 아무 소용도 없고 단지 잠자코 이쪽의 방해만 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우울한 일이었다. 그것도 소극적인 반항이니까 덤벼들어서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단지 그의 미소만이 빛나고 있었는데, 그것조차 하늘에 반짝이는 별이 땅 위의 폭풍을 어찌할 수 없는 거처럼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이봐! 클람이 내게 이런 것을 써 보냈다." 하고 K는 말하고 편지를 그의 눈앞에 갖다대었다. "그 사람은 잘못 알고 있어. 왜냐하면 나는 측량 일은 손도 대본 적이 없었고, 조수들도 얼마나 신통치 못한가 하는 것은 자네도 눈으로 봐서 알 거야. 하지도 않은 일에 중단이란 있을 수도 없고, 클람을 자극하여 분노를 일으킨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대체 내가 이 사람에게 인정받을 만하다고 생각하는가! 게다가 첫째로 마음이 놓일 수도 없지 않나 말이다." "제가 클람에게 그 말씀을 드리는 중간 역활을 하지요." 하고 바르나바스가 말했다. 그는 K가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 쭉 편지 사연을 훑어보았는데, 너무나 얼굴 가까이 갖다대었기 때문에 거의 읽을 수도 없었던 것이다. "아아, 자네는 꼭 이행하겠다고 장담하지만, 대체 자제가 하는 소리를 정말로 곧이들어도 좋을까? 나는 믿을 만한 심부름꾼이 필요해. 지금은 더욱더 그렇단 말이야." 하고 K는 말했으나 초조한 빛을 띠며 입술을 깨물었다. "측량 기사님." 하고 바르나바스는 고개를 한쪽으로 가볍게 갸우뚱하면서 말했다__그런 바르나바스의 동작에 유혹당하여 K는 하마터면 바르나바스를 믿어 버릴 뻔했다__ "그 말씀은 제가 책임지고 클람에게 말씀드리지요. 선생님이 먼젓번에 부탁하신 말씀도 꼭 전하겠습니다." "무엇이라고!" 하고 K는 외쳤다. "자네는 아직도 그 말을 전하지도 않았나? 그 다음날 성으로 가지도 않았단 말인가?" "네 못 갔습니다. 선생님께서도 보시다시피 아버지께선 노인이십니다. 게다가 일이 잔뜩 밀려서 아버지를 도와 드리지 않으면 안 되었어요. 하지만 가까운 시일내로 다시 성으로 가려고 합니다." "대체 자네는 무얼 하고 있는가? 이상한 놈이군!" 하고 K는 말하고, 자기 이마를 쳤다. "다른 어느 일보다도 클람의 용건이 더 중요하지 않은가? 자네는 심부름꾼이라는 중요한 역활을 맡아 보는 입장에서 그렇게 형편없이 임무를 수행하고소도 부끄럽지 않단 말인가? 자네 아버지의 일 같은 건 알게 뭐야! 클람은 보고를 기다리고 있는 거야. 자네는 달이다가 넘어지는 대신 마구간에서 말똥이나 긁어내는 게 더 좋단 말인가!" "제 아버지는 구둣방을 합니다. 하고 바르나바스는 서슴지 않고 말했다. "아버지는 브룬스빅크의 주문을 바다고 있었어요. 그리고 저는 아버지 밑에서 일하는 직공입니다." "구둣방__주문__브룬스빅크." 하고 K는 말의 한 마디 한 마디를 없애 버리려는 듯이 심술ㄱ게 말했다. "그런데 이 곳 큰길은 언제나 사람의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는데, 대체 누가 신발이 필요하단 말이야? 그 따위 구둣방 영업이 대관절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야? 내가 자네한테 심부름을 부탁한 것은 구둣방에서 심부름을 잊어버리거나 형편없이 망쳐 버려도 좋다는 것이 아니라, 곧 성의 그 양반에게 전해 달라는 것이 아닌가." 여기서 K는 클람이 쭉 계속해서 신사관에 묵고 있었으니 성에는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머리에 떠오르자 약간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런데 바르나바스가 K의 처음의 보고를 아직도 잘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하여 외우기를 시작했을 때, K는 화를 내고 말았다. "됐어, 나는 더 알고 싶지 않아." 하고 K가 말했다. "제 잘못이 아니에요. 선생님!" 그는 그렇게 말하고 무의식중에 K에게 항의하려는 듯이 시선을 돌리더니 눈을 아래로 떨구었다. K가 큰 소리를 질렀기 때문에 틀림없이 당황했던 모양이었다. "나는 자네한테 화가 난 것은 아닐세." 그는 그렇게 말하고 무의식중에 K에게 항의하려는 듯이 시선을 돌리더니 눈을 아래로 떨구었다. K가 큰 소리를 질렀기 때문에 틀림없이 당황했던 모양이었다. "나는 자네한테 화가 난 것은 아닐세." 하고 K는 말했으나, 그 마은 속에는 불안스러운 흔들림이 은연중에 퍼졌다. "자네 때문에 화를 낸 것은 아닐세, 중대한 용건을 전하는 데 자네 같은 심부름꾼밖에는 없다는 것이 안타까워서 그러네." "이것 보세요." 하고 바르나바스는 심부름꾼으로서의 명예를 지키려는 듯 지나칠 정도로 말을 옹호하면서 말했다. "클람이 설마 보고를 기다리고 있을 리 없습니다. 그뿐더러 제가 가면 화를 낼 겁니다. 그분은 언제가 '또 새 보고란 말인가?' 하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멀리서 오는 것을 보시면 대게 그분은 일어서서 옆방으로 가버기시고 만나려고도 하시지 않습니다. 게다가 제가 통지할 일이 있기만 하면 곧 그것을 가지고 가도록 되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차라리 그렇게 결정되어 있다면 곧 가지고 갑니다. 그러나 그런 것에 대해서는 무엇 하나 결정되어 있는 것이 없습니다. 보고를 가지고 가는 일이 없다고 해서 재촉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시겠지요. 보고를 가지고 간다는 것은 제가 자발적으로 하는 일입니다." "그렇군." 하고 K는 일부러 조수들에게서 눈길을 돌리고 바르나바스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두 사람이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 조수들은 바르나바스의 어깨 뒤로 숨어서 마치 참호 속에서 고개를 내미는 것처럼 번갈아서 위로 고개를 내밀곤 하였는데 K를 보고 깜짝 놀랐다는 듯이 바람 소리와 같은 가벼운 휘파람을 불면서 곧 다시 번개처럼 고개를 움츠리는 것이었다. 이런 장난을 하면서 그들은 오랫동안 즐기고 있었다. "클람이 있는 곳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나는 모르지만, 그런데 자네가 그곳을 자세히 알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좀 이상해. 설사 자네에게 가능하다고 할지라도 지금 이 문제를 조금도 호전시킬 수는 없을 거야. 그러나 심부름을 하는 것만은 자네에게도 가능하니까. 그것을 자네에게 부탁하는 거야. 아주 간단한 심부름이다. 내일 바로 심부름 가서 당일로 빨리 내게 회답을 전하거나, 혹은 적어도 클람이 어떻게 자네를 맞이했는가 그것만이라도 알려 줄 수 없겠나? 가능한가 하는 것보다는 그렇게 할 뜻이 있느냐 말이야? 그렇게만 해 준다면, 정말, 내게는 무척 큰 도움이 되겠는데. 틀림없이 자네에게는 상당한 사례를 할 거야. 그것보다도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내가 들어 줄 수 있는, 무슨 소원이라도 있으면 말해 봐!" "꼭 말씀대로 이행하겠습니다." 하고 바르나바스가 말했다. "그러면 내 부탁을 가급적 들어 주겠다는 거지? 내 부탁을 직접 클람에게 전하고 클람 자신에게서 회답을 받아 오겠다는 거지? 지금 당장 빨리 서둘러서 내일, 아니 내일 오전중이라도 좋으니까 그렇게 해 주겠나?"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물론 언제나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만." "자아, 이제 우리들은 말다툼은 그만두기로 하지! 말을 전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거야. 즉 측량 기사 K가 상관님에게 직접 면회하는 것을 허가해 달라고 청원하고 있다고, 이것이 허가되는 경우에는 그와 관련해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K는 미리 승낙하고 있다고, 이런 청원을 제출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된 이유는 지금까지 중간에 선 사람들이 모두 무위 무능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그 증거로서는 K가 오늘까지 조금도 측량의 일을 하고 있지 않을 뿐더러 면장의 통지에 의하면 앞으로도 결코 측량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고, 따라서 최근에 받은 상관임의 편지를 절망적인 수치의 감정을 품고서 읽었는데 사태가 이쯤 되고 보면, 상관님을 직접 방문하는 것 이외는 달리 해결하는 방도가 없다고 생각된다고, 측량 기사는 이 청원이 얼마나 불손한 것인가를 알고 있으나, 상관님에게는 될 수 있는 한 폐를 끼치지 않도록 할 뿐만 아니라 모든 시간의 제한에도 따라갈 것이며, 또 회담할 때 사용할 만의 수효 같은 것도 상관님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결정에 따라갈 것이라고 기껏해야 열 마디면 충분할 것이라고 그는 생각하고 있으며, 깊은 존경을 가지고 상관님의 결정을 고대하고 있다고, 이상과 같이 말을 전해 주게나." 마치 클람의 문전에서 문지기와 지껄이는 것처럼 K는 자기를 잊고 떠벌렸다. "생각했던 것보다도 길어졌구나." 하고 K는 말한 다음 이어서, "그러나 자네는 이것을 입으로 전해 드리지 않으면 안 돼. 좌우간 편지는 쓰고 싶지 않아. 왜냐하면 편지로 쓰면 소속 불명이 되어 이리저리 한없이 헤매고 돌아다닐 것이니까." 라고 말했다. 그래서 K는 단지 바르나바스를 위하여 종이 한 장을 조수 한사람의 등 뒤에다 대고 지금 말한 소리를 끄적거리면서 썼는데 그 동안 다른 조수 한 사람은 등불을 비추고 있었다. 그런데 바르나바스는 하나하나 문구를 다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어서 조수가 옆에서 틀린 소리를 끄집어내도 거기에는 조금도 구애되지 않고 국민학교 어린이처럼 정확하게 암송했다. 따라서 K는 바르나바스의 구술 전달에 따라 그대로 종이에 받아 쓸 수가 있었다. "자네의 기억력은 정말 굉장한데." 하고 K는 말하고 바르나바스에게 종이를 내주었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도 비상한 점을 보여 달란 말이야. 그런데 대체 소원은 뭔가? 아무것도 없나? 솔직한 이야기지만 자네가 무슨 소원을 말하면 이 심부름의 전망에 대해서도 약간 안심할 수가 있단 말이야." 처음엔 바르나바스는 잠자코 있었지만 드디어 입을 열고, "네 누이들이 선생님께 안부 전해 달라고 합니다." "누이라고, 그래 그 키가 크고 튼튼한 처녀들 말이지?" 하고 K는 물었다. "둘이 다 선생님께 안부 전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중에도 특히 아말리아 쪽입니다. 아말리아는 오늘도 선생님을 위해서 이 편지를 성에서 제게고 가지고 왔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런 소식에 매달리듯 하면서 K는 다급히 물었다. "아말리아도 내 부탁을 가지고 성까지 가 줄 수 있을까? 그렇지 않으면 너희들 둘이 가서, 각자 잘되나 안 되나 봐 줄 수는 없을까?" "아말리아는 사무국에 들어갈 자격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주 기뻐서 해 드릴 것입니다." 하고 바르나바스가 말했다. "아무튼 나는 내일 자네 집을 찾아갈 거야. 우선 자네가 머저 회답을 가지고 오게. 학교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자네의 누이들에게 내가 안부 전하더라고 말해 주게." K의 말이었다. K의 약속의 말은 바르나바스를 대단히 기쁘게 한 것 같았다. 작별의 악수를 교환한 다음에 바르나바스는 또 한번 K의 어깨에 살짝 손을 댔다. 이리하여 바르나바스가 으리으리한 옷차림을 하고 처음으로 식당의 농부들 사이에 나타났던 때의 모습이 지금 그대로 재현된 것 같았다. K는 물론 미소를 띠면서 바르나바스가 자기 어깨에 손을 댄 그 행동은 자기를 추켜 주는 그러한 무슨 ㄸ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조금 전보다도 한결 기분이 좋아졌으므로, K는 돌아가는 길에서도 조수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11 그는 추위에 온몸이 얼어붙은 상태로 학교에 도착했다. 등불의 초는 벌써 다 타버렸다. 주위는 완전히 어둠의 장막 속에 가려져 지척도 분간할 수 없었다. 조수들은 벌써 학교의 구조를 샅샅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두 사람의 안내를 받으며 손으로 더듬어 가면서 교실로 올라갈 수 있었다. "처음으로 자제들은 칭찬받을 만한 일을 했어." 하고 그는 클람의 편지를 생각하면서 말했다. 교실 한구석에서 꿈속을 헤매고 있는 듯 프리다가 외쳤다. "K를 자게 내버려두세요! 그르 방해하지 마세요!" 잠에 못 이겨서 K가 돌아오는 것을 기다릴 수는 없었으나 그녀의 머릿곡은 여전히 K의 일로 가득 차 있었다. 이제 불이 켜졌는데 석유가 얼마 남지 않아서 램프의 불꽃을 크게 할 수가 없었다. 사실 이사해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살림살이가 부족한 게 많았다. 물론 불은 때었지만 체조장으로도 사용되고 있었던 큰 방이었기 때문에__체조 기구가 주위에 놓여 있기도 하고, 도는 천장에 매달려 있기도 했는데__저장해 놓았던 장작을 전부 다 때어 버렸다. 사람들이 말하는 소리를 들으니 아까는 무척 기분 좋게 방이 훈훈했는데 유감스럽게도 얼마 안 가 다시 차디차게 식어 버렸다는 것이다. 창고 안에는 장작이 잔뜩 저장되어 있었다. 그런 이 창고는 자물쇠로 잠겨져 있었고 열쇠는 선생이 보관하고 있었는데 수업 시간에 한해서만 장작을 꺼내는 것이 허락되었다. 침대라도 있어서 그 속으로 들어갈 수만 있다면 그래도 참을 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침구라고는 짚을 넣은 요가 하나 있을 뿐이었다. 이것은 털로 짠 프리다의 숄로 제법 깨끗하게 덮어져 있었다. 그러나 새털로 만든 요는 없고 단지 엉성하고 빳빳한 이불이 둘 있을 뿐인데 거의 몸을 따뜻하게 해 줄 수도 없었다. 그것은 짚으로 만든 형편없이 빈약한 것인데도 그나마 조수들이 욕심을 내면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 위에 드러누울 가망성은 물론 없었다. 프리다는 불안스럽게 K를 쳐다보았다. 교반관에서는 아무리 비참한 방이라도 그것을 사람이 살 수 있는 방으로 뜯어 고치는 솜씨를 보여 주었으나, 여기서는 돈이 없어서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이 방의 단 하나의 장식품은 체조 기구예요." 하고 그녀는 눈물어린 얼굴에 억지로 쓰디쓴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 그러나 가장 곤란한 일, 즉 만족스러운 잠자리와 충분한 장작이 없는 점에 대해서는 그녀도 분명한 어조로 내일이라도 꼭 어떤 방법을 강구하겠다고 약속하고, 그러니 제발 그 때까지 참아 달라고 K에게 부탁했다. 어떤 말이나 어떤 암시나 어떤 얼굴 표정으로 보아도, 그녀의 마음 한구석에서 조금이라도 K에 대한 불평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그녀를 신사관에서 또 교반관에서 억지로 끌고 나온 것은 바로 K였다. 이 점은 K 자신도 인정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K는 이 모든 것을 참을 수 있다고 생각하려 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자기가 바르나바스와 함께 하염없이 걸어가면서 클람에게 전하는 말을 한 마다씩 되풀이하는 장면을 머릿속에 그려 보았기 때문이다. 다만 그 말만은 바르나바스에게 구술해 주었던 대로가 아니라 바르나바스가 클람 앞에서 진술, 보고할 때는 이와 같이 할 것이라고 상상되는 말투로 되풀이했다. 그와 동시에 프리다가 알코올 램프 위에서 커피를 끓이는 것을 보며 진심으로 기뻐했다. 점점 식어가는 난로에 기대어 그녀가 민첩하고 익숙한 동작으로 일하는 모양을 일일이 눈으로 쫓아다녔다. 그녀는 꼭 덮어야만 하는 식탁보를 교탁위에 펴고 꽃무늬가 그려진 커피 잔을 늘어놓은 다음, 빵과 베이컨, 그리고 정어리 통조림까지도 꺼내 놓았다. 이제 만반의 준비가 다 되었다. 프리다도 아직 식사를 시작하지 ㅇ고 K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의자가 두 개 였으므로 K와 프리다는 식타글 향하여 의자 위에 서터앉고, 조수 두 사람은 그들의 발치에 있는 교단 위에 앉았다. 그들은 조금도 얌전히 있지를 않았다. 식사 중에도 수선스럽게 심술만 부리고 있었다. 음식도 미리 잔뜩 받아 놓고, 다 먹으려면 아직도 멀었는데, 가끔 일어서서 식탁 위에 먹을 것이 많이 남아 있는지, 자기네들 몫을 더 받을 수 있는지 확인해 보곤 했다. K는 이 두 사람을 염두에도 두지 ㅇ고 있었다. 프리다가 웃는 바람에 비로소 눈치를 챘다. 그는 식탁 위에 놓인 그녀의 손 위로 애교를 부리며 자기 손을 얹고서 가느다란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물었다. 왜 그들의 행동을 관대하게 봐 주고, 버릇없을 정도로 실례가 되는 일까지 그와 같이 너그럽게 받아들이는가, 이런 방법으로는 도저히 그들을 떼어 버릴 수는 없다. 말하자면 어느 정도 강경한 취급, 사실 그들의 행동에 알맞는 취급을 하면 그들을 억제할 수 있을는지도 모르겠지만__또는__이렇게 하는 것이 더 가능성이 있고 훨씬 좋을지도 모르겠지만__즉 그들 쪽에서 직업에 싫증이 나서 나중에는 도망쳐 버리든가, 둘 중의 목적 하나는 달성할는지도 모르겠디거 했다. 아무래도 학교에서 산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좌우간 여기서 오래 살게 되지도 않겠지만 조수들이 나가 버리고 자기네들 두 사람만이 이 조용한 교사에서 살게 되면 여러 가지 부자유스러운 일도 그다지 마음에 걸리지 않을 것이다. 프리다는 그들이 나날이 뻔뻔스럽게 되어 가는 꼴이 눈에 띄지 않는 양 그들의 원기 왕성하게 날뛰는 것도 그녀가 그 자리에 있을 때만인데, 그녀 앞에서는 K도 다른 때와 달라서 멱살을 잡고 혼을 내주는 짓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 밖에도 그들을 손쉽게 쫓아 버릴 간단한 방법이 있을는지 몰라도 그런 방법은 그녀도 반드시 알고 있을 것이니__그것은 그녀가 이 곳 사정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__어떻게 해서든지 조수들을 쫓아 버리면 그들에 대해서 한 가지 친절을 베풀어 주는 셈이 된다. 여기서 보내는 생활도 그렇게 안락한 것 같지 않으며, 그들이 지금까지 즐겨온 태만한 생활도 그렇게 안락한 것 같지 않으며, 그들이 지금까지 즐겨온 태만한 생활도 여기서는 적어도 일부분만이라도 청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일하지 않으면 안 되며, 한편 프리다는 며칠 동안 흥분한 뒤니까 몸을 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K는 K대로 곤경에 빠진 상태에서 벗어나갈 수 있는 활로를 발견하도록 있는 힘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하튼 조수들이 나가기만 하면, 마음이 무척 편해져서 소사의 일이나 다른 일이나 모조리 손쉽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프리다는 K가 이야기하는 동안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이고 있었는데 살그머니 K의 팔을 어루만지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었다. 지금 K의 이야기는 모두 그녀도 똑같이 생각했던 것이며, K가 조수들의 좋지 못한 품행에 대해서 너무나 신경을 써서 문제라고. 그들은 성격이 쾌할한 데다가 약간 어리석은 젊은이들이고 성의 엄격한 규율에 견디다 못해 쫓겨나서 처음으로 낯선 사람 밑에서 일하게 된 것이라고. 따라서 그들은 약간 흥문한 나머지 상기되어서 더더욱 놀란 토끼 모양으로 보이는 거라고. 그래서 그들은 자연히 여러 가지로 어색한 짓을 하고 우둔한 일을 저지르는 것이니까, 화를 내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만 웃어 넘기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그녀는 가끔 웃음을 참지 못할 때가 있다고, 그난 그들을 쫓아내고 단둘이서 지내는 것에 대해 언제나 찬성이라는 점에서는 K와 완전히 같은 생강이라고 그녀는 말을 마치고 나더니, K에게 바짝 다가와서 그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녀는 그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은 채 이야기를 계속하는 것이었는데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K는 그녀에게로 상반신을 구부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프리다는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조수들을 쫓아내는 방법을 모르겠으나 K가 제안한 일은 가능성이 희박하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다고. 그녀가 알고 있기에는 그 두사람을 요청한 것은 K 자신이니까 따라서 현재는 물론 장래라 할지라도 옆에 두고 데리고 있게 될 것이라고. 가장 좋은 방법으로는 그들을 무조건 그저 있는 그대로 경솔한 인간으로서 취급하는 거라고, 그러면 이쪽도 자연히 그들을 가장 잘 참고 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K는 이 대답에 만족할 수 없어서 반은 농담으로 반은 진담으로 이렇게 말했다. 프리다는 그들과 결탁하고 있거나, 적어도 그들에 대해서 굉장히 애착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고. 물론 그들은 젊은 미남자들인데, 사실은 약간 호ㄹ를 가졌다고 해서 내쫓디 못한다는 일도 없을 테니까, 이 조수들을 그예로 삼아 내쫓을 수도 있다는 것을 K는 프리다에게 보여 줄까 한다고 말했다. 프리다는 말하기를 만일 그 일이 성공한다면 K에게 감사하겠다고. 좌우간 앞으로는 절대로 그들과 웃거나 쓸데없는 이야기를 지껄이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이제부터는 그들을 보더라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지만, 끊임없이 두 사람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도 사실 사소한 일은 아니라고 했다. 이 때 조수들은 일어서서 먹을 것이 아직도 남아 있나 살펴보기도 하고 동시에 두 사람이 오랫동안 속삭이고 있는 원인을 알아보려고 하자, 그녀는 몸을 움츠렸다. K는 될 수 있으면 이 기회를 이용하여 프리다가 조수들에게 싫증이 나도록 하려고 했다. K는 프리다를 옆으로 바짝 끌어당겨서 함께 식사를 끝마쳤다. 그런데 잠잘 시간이 되었는지 모두들 굉장히 피곤했다. 조수 한 사람은 식사하다가 잠들어 버렸다. 또 다른 조수 한 사람은 이 꼴을 보고 무척이나 재미있어 하다가 K와 프리다로 하여금 잠자고 있는 넋빠진 얼굴을 자세히 보도록 하려고 애썼지만 잘되지 않았다. 두 사람은 그 조수의 그런 시도 같은 건 아랑곳없이 높은 곳에 앉아 있었다. 못 견딜 정도로 추워졌기 때문에 두 사람은 잠자리에 들기를 주저하고 있었다. 그래서 K는 견디다 못해, "불을 좀 피우지 않으면 안 되겠어. 그렇지 않으면 자지도 못하겠는걸." 하고 말했다. K는 도끼를 찾아보았다. 조수들이 도기 둔 곳을 알아서 하나 가지고 왔다. 그래서 모두들 장작 창고로 달려갔다. 잠시 후 얇은 문은 부서졌다. 조수들은 이런 멋진 일은 처음이라는 듯이 기뻐하고, 서로 부딪치고 장난하면서 장작을 교실로 나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교실에는 장작이 산더미처럼 쌓여졌다. 드디어 불을 피우고 모두들 난로를 둘러싸고 드러누웠다. 조수들은 이불 하나를 갖다가 덮었다. 이불은 하나만으로도 충분햇다. 왜냐하면 언제나 두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은 자지 않고 앉아서 불이 꺼지지 않게 보살피도록 약소기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에 난로 옆은 무척 더워져서 이젠 이불 같은 건 필요 없게 되었다. 램프도 꺼졌다. K와 프리다는 따뜻하고 조용한 분위기에 만족하여 자려고 드러누웠다. K는 밤중에 무슨 소리를 듣고 잠이 깨어 반쯤 졸면서 프리다 쪽을 어렴풋이 더듬어 보다가, 프리다 대신에 조수 한 사람이 자기와 나란히 누워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마을에 와서 이렇게 깜짝 놀란 적은 없었다. 아마도 신경 과민 때문일 것이다. 원래 갑자기 잠이 깬 것도 그 때문이었다. 고함을 지르면서 반쯤 몸을 일으키고, 무의식중에 이 조수를 주먹으로 한 대 갈겼다. 얻어맞은 조수는 울기 시작했다. 좌우간 이 사정은 곧 밝혀졌다. 그보다 먼저 프리다는__적어도 그녀에게는 그렇게 느껴졌지만__무엇인지 큰 동물이, 아마도 고양이 같았는데, 그녀의 가슴 위로 뛰어 올아왔다가 곧 다시 내빼는 바람에 잠이 깼던 것이다. 그녀는 일어나서 양초에 불을 켜고 큰 방안을 구석구석까지 이 동물을 찾아 돌아다녔다. 조수 한 사람이 그 기회를 이용하여 짚을 넣은 요 속으로 기어들어가서 잠시 동안이나마 재미를 보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조수는 자기 행도의 죄 값으로 단단히 혼이 났다. 한편 프리다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고__ 틀림없이 착각했던 모양이다__K에게로 되돌아왔다. 프리다는 돌아오는 도중, 저녁때 K와 약속한 일을 잊어버린 것처럼, 쭈그리고 앉아서 신음하고 있는 그 조수의 머리를 가엾다는 듯이 쓰다듬어 주었다. K는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다만 조수들에게 불 때는 것을 그만두라고 명령했을 뿐이었다. 산더미처럼 쌓였던 장작을 전부 다 때어 버렸기 때문에 너무 더워서 견딜수가 없었던 것이다. 12 아침이 되어 모두들 눈을 떴을 때에는, 일찍이 등교한 어린이들이 어느새 교실에 들어와서 호기심을 가지고 잠자리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것은 기분 나쁜 일이었다. 왜냐하면 물론 새벽녘이 되면서 다시 차가운 공기가 떠돌았지만, 어젯밤은 너무나 방에 불을 덥게 땠기 때문에 모두들 셔츠까지 벗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침 옷을 입기 시작했을 때, 여선생 기자가 문에 나타났다. 기자는 금발 머리에 키가 크고 아름다운 용모를 가지고 있었지만 약간 딱딱한 인상을 주는 처녀였다. 그녀는 새로 들어온 소사를 만날 것을 예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거기다가 남선생에게서 어떻게 행동하면 좋을지 지시도 받은 것 같았다. 그 증거로써 그녀는 교실 문턱으로 들어오자마자, 다짜고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요. 이 꼴이 뭐예요? 당신네들은 교실에서 잠자는 것을 허락받았을 뿐이지 내가 당신네들의 침실에서 수업해야 된다는 의무는 없어요. 소사의 가족이라는 사람들이 아침 늦게까지 잠자리 속에서 우물쭈물하고 있다니, 그런 일이 어디 있어요. 별꼴 다 봤네!" 이제 그 말에 대해서는 한두 가지 할말이 있다. 특히 가족과 침대에 대해서는 무슨 말을 할 필요가 있다고 K는 생각했다. 그러나 K는 그 동안에도 프리다와 힘을 합하여__조수들을 이 일에 동원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마룻바닥 위에 누운 채 깜짝 놀라서 여선생과 어린이들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__재빨리 평행봉과 목마를 밀고 와서 양쪽 위에 이불을 덮어 씌우고 작은 공간을 마련하여, 어린이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가리고서 옷만은 입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물론 잠시도 마음이 놓이진 않았다. 우선 여선생이 세숫대야에 깨끗한 물이 없다고 야단법석이었다. K는 마침 자기 자시과 프리다를 위해 세숫대야를 가져오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선생의 감정을 심하게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선 그 생각을 버려야 했다. 그러나 그 생각을 버려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곧 이어서 쾅 하고 울리는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불행히도 어제 저녁 식사한 나머지를 교탁 위에서 치우지 않았기 때문에 여선생이 자로 단번에 후려친 모양이었다. 음식물 전부가 한꺼번에 땅바닥으로 떨어져서 떼굴떼굴 굴렀다. 정어리 기름과 커피 찌꺼기가 흘러나오고 커피 주전자가 망가졌다. 그래도 여선생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와 같은 뒷처리는 소사가 다 해야만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 태도를 보였다. 아직도 옷을 다 입은 것은 아니었지만, K와 프리다는 평행봉에 기대어 자신들의 자질구레한 소지품이 망갖는 것을 쳐다보고 있었다. 조수들이 옷을 주워 입으려는 눈치는 조금도 보이지 않고 이불 틈으로 그러한 광경을 엿보고 있어서 어린이들의 좋은 웃음거리가 되었다. 커피 주전자가 망가진 것을 가장 가슴 아파하는 사람은 물론 프리다였다. 그녀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하여 곧 면장한테 쫓아가서 배상을 요구하고 대용품을 가져오겠다는 K의 말을 듣고서야 프리다는 겨우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래서 식탁보라도 더 더럽히지 않도록 찾아오려곰 셔츠와 속치마 바람으로 작은 공간을 뛰어나갔다. 여선생은 놀래 주려는 듯이 자로 끊임없이 교탁을 두드리며 프리다를 쫓아 버리려고 했다. 그래도 프리다ㅡㄴ 식탁보를 벗겨 오는 데 성공했다. K와 프리다는 옷을 다 입고 나자 조수들한테 명령하기도 하고 떠다밀고 때리기도 하면서 옷을 입으라고 재촉했다. 그러나 재촉하면서도 손수 직접 옷을 입혀 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들은 연달아서 일어나는 사건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마치 넋빠진 사람처럼 멍하니 있었다. 모두들 옷차림을 다 갖추자 K는 우선 이제부터 할 일을 할당했다. 조수들은 장작을 운반해다가 불을 피울 것, 그것도 다른 교실에서부터 시작할 것, 그런데 이 다른 교실에는 더 큰 위험성이 있었다__왜냐하면 벌써 그 곳에는 그 남선생이 와 있을는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프리다는 마룻바닥을 청소할 것, K는 물을 길어와서 그 밖의 다른 정리 정돈을 할 것, 아침 식사에 관해서는 당장 생각할 여지도 없었다. 그런데 대체 여선생이 어떤 기분으로 있는가 살펴보기 위해서 K는 맨 먼저 이 울 안에서 밖으로 나가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은 K가 나오라고 소리를 지르면 따라나오기로 했다. K가 이런 대책을 강구하여 처리한 것은 한편으로는 조수들의 어리석은 행동으로써 상태를 더 악화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명예욕을 가지고 있으나 자기는 그렇지 않고, 또 그녀는 사리에 민감하지만 자기는 그렇지 않다는 것과, 그녀는 눈앞에 일어나는 불쾌하고 사소한 일만을 생각하고 있지만 자기는 바르나바스와 장래의 일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프리다는 그의 어떤 말에도 그대로 순종하면서 눈을 거의 그에게서 떼지 않았다. K가 울 안에서 밖으로 나타나자 여선생은, "그래 편히 쉬셨어요?" 하고 물었다. 어린이들은 깔깔대고 웃었는데 그 웃음 소리는 금방 그칠 줄을 몰랐다. 여선생의 말은 질문이라고 할 것도 없어서 유의하지도 않고 곧장 세면대 쪽으로 뛰어가려나까, 또 여선생이 물었다. "당신네들은 내 미체에게 무슨 짓을 했지요?" 몸집이 크고 늙은 살찐 고양이가 사지를 쭉 펴고 탁자 위에 드러누워 있었다. 여선생은 약간 다쳤을지도 모르는 고양이의 다리를 조사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프리다의 판단은 맞았다. 물론 고양이의 다리를 조사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프리다의 판단은 맞았다. 물론 고양이가 그녀의 몸 위로 뛰어 올라간 것은 아니었다__왜냐하면 이 늙은 고양이는 이제는 뛸 기력도 없었기 때문이다__다만 몸 위로 기어서 넘어갔을 뿐이다. 보통 때는 인기척조차 없었던 이 건물에 사람이 있으니까 깜짝 놀리 성급히 숨으려다가 바람에 너무나 바삐 서둘렀기 때문에 다쳤던 것이다. K는 이 사유를 조용히 여선생에게 설명하여고 했다. 그러나 여선생 쪽에서는 결과만을 쳐들어서 말했다. "당신들이 이 고양이에게 상처를 입혔지. 당신들은 들어오면서 첫인사가 아주 멋진데. 이걸 좀 봐요!" 그리고 K를 교단 위로 부르더니 고양이의 다리를 그에게 보였다. 눈깜짝 할 사이에 그녀는 고양이의 발톱으로 K의 손등을 할퀴었다. 발톱은 이미 날카롭지 못했으나, 아무튼 여선생 쪽에서 이번에는 고양이 같은 건 전혀 생각지도 않고 꼭 붙잡고서 사정없이 할퀴었기 때분에, 그 자국에 피가 기다란 선으로 맺혀서 부풀어 올라왔다. "그러면 일을 시작해요!" 하고 그녀는 초조하게 말하고 또 고양이 쪽으로 몸을 구부렸다. 프리다는 조수들과 함께 평행봉 뒤에서 보고 있다가, K의 손등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K는 그 다친 손을 어린이들에게 보이면서 말했다. "이것 좀 봐! 그놈의 나쁜 고양이가 이렇게 했어!" 물론 그는 어린이들에게 이런 소리를 한 것은 아니었다. 어린이들의 부르짖는 소리와 웃음 소리는 벌써 그것만으로 상당히 크게 확대되어서, 이제 새삼스럽게 집적거리거나 건드릴 필요도 업었으며, 또 이 소란한 속에서 이쪽에서 말하는 소리가 어린이들의 귀에 들어가고 그들의 마음을 좌우할 만큼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은 사실상 이ㅆㄹ 수 없는 일이었다. 여선생 쪽에서도 이 모욕적인 언사에 대하여 단지 힐끔 곁눈질을 해서 대답했을 뿐이고, 그후는 여전히 고양이를 살펴보고 있었다. 즉 그녀의 처음의 분노는 K의 손등을 피로 물들이는 것으로 일단락 지은 셈이다. 그래서 K는 프리다와 조수들을 불렀다. 드디어 일은 시작됐다. K는 더러운 물이 들은 양동이를 비우고 깨끗한 물을 길어다가 천천히 교실의 먼지를 쓸기 시작했다. 그 때 열두 살 가량 되어 보이는 어린이가 의자에서 이러나서 오더니 K의 손에 손을 대고 무슨 말을 했는데, 이 소란 속에서는 무슨 소린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 때 갑자기 소란이 멎었다. K는 뒤를 돌아다보았다. 아침부터 쭉 두려워하고 있었던 일이 일어났다. 문에 남선생이 우뚝 서 있었는데 몸집은 작으면서도 양쪽 손에 하나씩 조수들의 멱살을 잡고 있었다. 조수 두 사람이 장작을 끄집어내는 현장에서 들킨 모양이었다. 왜냐하면 남선생이 굵고도 거센 목소리로 이렇게 외쳤기 때문이었다. 그느 한 마디씩 똑똑 끊어서 소리질렀다. "장작 창고의 문을 쳐부수고 들어간 놈이 어떤 자식이야? 그놈의 자식 어디 있어? 당장에 죽여 버릴 테니까." 그 때 여선생의 발밑에서 열심히 마룻바닥을 닦고 있었던 프리다가 몸을 일으키고 K를 쳐다보았다. 힘을 얻었으면 하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전과 같은 우월감을 눈초리와 태도에 약간 나타나면서 말을 끄집어내는 것이었다. "제가 했어요, 선생님. 다른 도리가 없었어요." 하고 프리다는 이어서, "아침 일찍이 교실 난로에 불을 피우라고 해서 창고 문을 열지 않으면 안 되었어요. 밤중에 당신에게로 열쇠를 가지러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집 양반은 신사관에 가 있으니까 아침까지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저 혼자 결정한 것이에요. 잘못된 점이라도 있으면 제가 서둘러서 그런 것이니 용서해 주십시오. 집 양반은 제가 한 지시을 보고 굉장히 나무랐어요. 그뿐더러 집 양반은 아침 일찍이 난로에 불을 피우는 일까지 그만두라고 했어요. 왜냐하면 선생님이 창고에 열쇠를 채워 두신 것은, 선생님 자신이 여기 오시기 전에는 불을 피우지 않은 것은 집 양반의 책임이지만, 창고 문을 두드려 부슨 것은 제 책임이에요." "문을 두드려 부슨 것이 어떤 놈이야?" 남선새은 조수들에게 물어 보았다. 조수들은 여전히 멱살 잡힌 손을 뿌리쳐 버리려고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주인입니다." 하고 조수 두 사람은 말하고 의심할 여지가 없도록 일부러 K를 가리켰다. 프리다는 웃었다. 이 웃음 소리를 들으면 그녀가 한 소리가 더욱 정말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녀는 마룻바닥을 닦은 걸레를 양동이에다가 짜기 시작했다. 마치 그녀의 설명으로 말미암아 이 돌발 사건은 끝났으며 조수들의 발언은 농담으로 덧붙인 데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려는 것 같은 눈치였다. 그녀는 다시 일을 계속하려고 마룻바닥 위에 무릎을 꿇고 나서야 비로소 다음과 같이 변명했다. "우리 조수들은 상당히 나이를 먹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어린이 의자에 앉혀도 좋을 정도예요. 저는 어제 저녁에 혼자서 창고 문을 도끼로 두드려 부쉈어요. 아주 간단했어요. 조수들의 손을 빌리지 않아도 ㄷ어요. 그들에게 도와 달라고 해도 확실히 방해가 됐을 거예요. 그리고 밤에 집 양반이 돌아와서 부서진 것을 보고 될 수 있으면 고치겠다고 말하면서 나갔어요. 그 때 조수들도 뒤따라 갔어요. 아마 여기에 단둘이 남는 것이 무서웠던 모양이죠. 그래서 집 양반이 부서진 문에서 일하고 있는 것을 보았어요. 그래서 그들은 지금 그런 소리를 한 것이지요__진짜 어린애들이라니까요__" 조수들은 프리다가 설명하고 있는 동안, 끊임없이 고개를 흔들면서 부정하고 K를 또다시 가리키면서, 말도 하지 않고 얼굴 표정만으로 프리다의 의견을 바꾸어 놓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것이 잘되지 않으니까, 나중에는 얌전해져서 프리다의 말을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남선생이 새로 물어도 대답도 하지 ㅇ게 되어 버렸다. "그런가, 그렇다면 너희들은 거짓말을 했구나? 경솔하고 비굴하게도 소사에게 죄를 덮어씌우려고 했지?" 그들은 여전히 잠자코 있었다. 그러나 몸부림치면서 겁을 집어먹은 눈초리를 보이고 있는 꼴이 마치 죄를 의식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면 곧 너희들을 때려 줘야겠구나!" 하고 남선생은 말하고, 어린이 하나를 다른 교실로 보내서 등나무 회초리를 가져오게 했다. 그가 이 회초리를 쳐들었을 때 프리다가 외쳤다. "조수들이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에요. 사실을 말했어요!" 그녀는 낙담하며 걸레를 양동이 속에 집어 던졌다. 그러자 물이 높이 튀었다. 그녀는 평행봉 뒤로 달려가서 숨어 버렸다. "거잿말쟁이!" 하고 여선생이 외쳤다. ㅕ섯생은 그 때 마침 고양이 다리에다 붕대를 감고난 뒤 무릎 위에 고양이를 올려 놓고 있었다. 이 고양이는 너무나 커서 그녀의 무릎에는 벅찰 지경이었다. "그러면 소사는 이 곳에서 남아 있어." 하고 남선생은 말하더니 조수들을 떠다밀고 K쪽으로 몸을 돌렸다. K는 아까부터 빗자루에 몸을 의지하고 이야기를 엿듣고 있었다. "소사는 자기가 저지른 비열한 행동의 죄가 다른 사람에게 잘못 전가되는 것을 비겁하게도 그대로 보고만 있는 모양이구려." "그렇지만." 하고 K는 말했으나, 프리다가 게입함으로써 남선생이 처음에 품었던 화가 다소 누그러졌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조수들이 약간 얻어맞았다고 하더라도 이쪽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놈들이 당연히 얻어맞아야 했는데 열 번씩이나 관대하게 봐 주었으니까 지금 억울하게 얻어맞는 것으로 과거의 잘못을 한꺼번에 속죄할 수도 있어요. 만일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선생님과 제가 정면 충돌을 피할 수 있었으니까 제게는 기쁜 일이라 아니할 수 없지요. 아마 당신 쪽에서도 그것이 형편상 좋았을 것이지요. 좌우간 프리다가 조수들을 위해서 저를 희생했어요." 여기서 K는 잠시 쉬었다. 사방은 고요한데, 평행봉에 걸친 이불 뒤에서 프리다가 흐느껴 우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물론 사건의 흑백을 가리지 않으면 안 되는 단계에 이르렀어요." K가 말했다. "원, 별쇨 다 듣겠네." 하고 여선생이 말했다. "나도 선생과 같은 의견이에요. 기자 양!" 하고 남선생이 말했다. "그리고 소사 양반! 당신은 당신의 근무를 이렇게 비열하게 게을리했으니까 지금 당장 해직이란 말이오. 도 여기에 이어서 따르게 되는 벌은 보류키로 하겠소. 자, 이제는 당신의 짐을 모조리 가지고 학교에서 곧 나가 주시오. 그러면 우리들도 한숨 돌리겠소. 그 동안 밀혔던 수업도 제대로 시작할 수 있는 것이요, 그러니까 우물쭈물하지 말란 말이오." 남선생의 말이었다. "끔찍도 하지 않겠어요." K는 이렇게 말하고 이어서, "당신은 저의 상관임에는 틀림없지만, 제게 이 일자리를 마련해 준 분은 아니지요. 이 직무를 수여해 주신 분은 면장님이니까요. 따라서 저는 그분의 해직 통지밖에는 받아들일 수 없어요. 그러나 면장님이라고 할지라도 설마 제가 여기서 제 아내와 조수들과 함께 얼어 죽으라고 이 직무를 주신 것은 아닐 겁니다. 당신 자신이 말씀하신 것처럼 제가 자포 자기가 되어서 지각 없는 행동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지요. 그러니까 지금 당장에 저를 파면하면 전적으로 면장님의 뜻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제가 직접 면장님 입에서 취소한다는 말씀을 듣지 않는 한 믿지 않겠어요. 그뿐더러 제가 당신의 경솔한 해직 명령에 따라가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히 당신에게도 유리한 일일 겁니다." K의 말이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내 말을 듣지 못하겠다는 거요?" 하고 남선생이 물었다. K는 듣지 못하겠다고 고개를 살살 내둘렀다. "잘 생각해 보란 말이오. 당신의 결심이 언제나 최상의 것이라고는 할 수 없어요. 예를 들면 어제 오후, 당신이 시니문당하는 것을 거부했을 때의 일을 생각해 봐요." 남선생의 말이었다. "왜 지금 그런 말씀을 하시지요?" 하고 K가 물었다. "말하고 싶으니까 하는 거지. 자아 이제 마지막으로 또 한번 되풀이하겠는데, 어서 나가란 말이야!" 그러나 이것도 아무런 효과가 없으니까, 남선새은 교단 옆으로 가서 여선생과 나지막한 목소리로 상의했다. 그녀는 경찰의 힘을 빌리면 어떠냐는 의견을 입에 올렸으나 남선생 쪽에서는 그것을 거부했다. 나중에는 두 사람의 의견이 일치되었다. 남선생은 아이들에게 저쪽 자기 교실로 옮겨가서 다른반 어린이와 함께 합반 수업을 받으라고 명령했다. 이렇게 교실을 바꾸는 것을 어린이들은 모두 기뻐했다. 모두 웃고 소리소리 지르며 떠들썩하게 교실에서 나갔다. 남선생과 여선생이 맨 끝으로 따라서 나갔다. 여선생은 출석부 위에 살찐 고양이를 얹어서 가져갔다. 고양이는 아주 무관심한 표정을 짓고 이썽ㅆ다. 남선생이 그 고양이를 여기다가 두고 가는 게 어떨까 싶어 슬쩍 그 이야기를 꺼내니까 K가 잔인하다는 이유로 여선생은 단연코 그 의견에 반대했다. 그래서 K는 무척 화가 나면서도 할 수 없이 귀찮은 짐이 되는 그 문젯거리인 고양이를 난선생에게 넘겨 버렸다. 남선생은 문을 나가면서 K에게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는데, 고양이를 맡은 것이 여기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모양이었다. "기자 양은 할 수 없이 어린이들과 함께 이 교실을 나가려고 결심했소. 그 원인으로는 첫째로 당신이 강경히 내 해직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탓이고, 둘째로는 아무도 이 ㅈ은 기자 양에게 내 해직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탓이고, 둘째로는 아무도 이 젊은 기자 양에게 당신의 더러운 집안 살림 한가운데서 수업을 하라고는 권할 수 없는 까닭이오. 그러면 당신네들만 여기 남아요. 예의 바른 구경꾼들의 방해를 받는 일도 없을 테니까 마음대로 여기서 판쳐 보아요. 그러나 오래 계속되지는 못할 거요. 그 점은 내가 장담해요." 이렇게 말하면서 남선생은 문을 닫았다. 13 모두들 방에서 나가자마자, K는 조수들에게 외쳤다. "나가!" 그들은 느닷없는 명령에 어리둥절해 하면서 명령대로 움직였다. 그러나 나가는 뒤에서 K가 문을 닫아 버리자 두 사람은 또 되돌아오려고 울면서 문을 두드렸다. "너희들은 파면이다. 이제는 너희들을 두 번 다시 내 조수로 쓰지 않겠다." 하고 K는 소리쳤다. 두 사람은 물론 이 말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손과 발로 문을 요란스럽게 두드리고 찼다. "제발 선생님한테 되돌아가게 해 주세요! 하고 그들은 울부짖었는데 마치 K가 마른 육지라면 그들은 금방이라도 큰물에 휩쓸려 죽게 된 익사자와 같았다. 그러나 K는 동정하지 않았다. 시끄러운 소동이 참을 수 없이 확대되어 남선생이 간섭하지 않을 수 없게 되기를 그는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예상했던 대로 일이 벌어졌다. "이 고약한 조수들을 들어가게 하면 어떤가?" 하고 남선생이 외쳤다. "저는 그놈의 자식들을 파면시켜 버렸어요!" K는 큰 소리로 외치면서 대꾸했다. 이 대답은 예상하지도 못했던 부작용을 일으켰다. 즉 단순히 해직 통지를 할 뿐만 아니라 그 통지를 실지 실행할 만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 어떤 결과로 된다는 것을 남선생에게 보여 준 셈이 되었다. 남선생은 친절한 말로 조수들을 타이르려고 했다. 즉 그들은 여기서 얌저하게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고, 나중에는 틀림없이 K가 그들을 방안에 넣어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가버렸다. 이것으로써 가라앉을 수 있었을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K는 또 조수들을 향해서 소리치기 시작했다. 즉 K는 그들을 이제 마직막으로 해직해 버렸을 뿐더러 이젠 절대로 그들을 다시 조수로 채용하는 일은 없을 것이니까. 그렇게 단념하고 있으라고 야단쳤다. 이 말을 듣고 조수들은 또다시 먼저와 마찬가지로 소동을 일으켰다. 또 남선생이 나타났는데, 이번에는 그들과 상의도 하지 않고 무서운 등나무 회초리를 들고서 그들을 학교 건물 밖으로 내쫓아 버렸다. 쫓겨난 조수들이 드디어 체조 교실 창문 앞에 나타나서 유리창을 똑똑 두드리고 무어라고 소리쳤는데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거기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지는 않았다. 자기들의 불안스러운 기분을 가시게 하기 위하여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싶었지만 이 깊은 눈 속에서는 그것조차 불가능했다. 그러자 학교 마당 울타리 옆으로 달려가서 돌축대 위에 뛰어올랐다. 물론 거리는 상당히 멀었지만 이 축대 위에서는 창문 앞에서 보는 것보다 교실 안을 더 잘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들은 울타리를 꼭 붙들고 축대 위를 여기저기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그들은 또 거기서 걸음을 멈추고 두 손을 합장한 채 K쪽으로 뻗고 애원하는 것 같은 태도를 취했다. 무슨 짓을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조차 개의치 않고 오랫동안 이런짓만 하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홀린 사람들 같았다. 그 꼴이 보기 싫어서 K가 창문의 커튼을 내렸는데도 그들은 여전히 그 짓을 계속하고 있었다. 커튼을 내렸기 때문에 어둠침침해진 방안에서 K는 프리다의 모습을 보려고 평행봉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K의 시선이 집중되자, 그녀는 일어나서 흩어진 머리를 고치고 얼굴의 눈물을 닦고나서 아무 말 없이 커피를 끓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사건의 모든 경과를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K는 조수들을 내쫓는 데 대해서 일단 그녀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녀는 단지 고개를 끄덕거릴 뿐이었다. K는 아동용 의자에 걸터앉아서 그녀의 피곤한 듯한 동작을 응시하고 있었다. 청신함과 과단성 있는 태도가 그녀의 보잘것없는 육체를 아름답게 보이게 했는데, 이제는 그 아름다움마저 사라져 버렸다. K와 함께 지낸 며칠간이 그녀의 아름다움을 빼앗기에 충분했다. 술집 일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녀의 성격에는 확실히 맞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클람과 떨어져 있는 것이 이렇게 야위게 된 중요한 원인인 것일까? 클람 가가이 있다는 사실이 그녀를 그처럼 한없이 매력적으로 만들었고 그 매력에 끌려서 K는 그녀를 억지로 데리고 나왔는데 이제 그녀는 그의 팔에 안겨 시들어 가는 것이었다. "프리다." 하고 K는 말했다. 그녀는 커피 가는 기계를 손에서 놓고 의자에 앉아 있는 K에게로 다가왔다. "저한테 화내고 계시지요?" 하고 그녀는 물었다. "아니야, 당신으로선 다른 방법이 없었으리라고 생각해요. 당신은 신사관에서 편안하게 살고 있었어요. 차라리 당신을 거기에 그대로 내버려둘 걸 그랬어." K의 말이었다. "네." 하고 프리다는 슬픈 눈으로 우두커니 앞을 바라보았다. "당신이 저를 거기에 그대로 내버려두었으면 좋았어요. 저는 당신과 함께 살 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이에요. 저에게서 해방되면 당신은 무엇이든 원하시는 대로 되실 거예요. 당신은 저를 염려해 주시느라고 거만하기 짝이 없는 남선생한테 억울한 꼴을 당하고, 이런 형편없는 일자리를 맞게 되고, 갖은 고생을 다하면서 클람과 면회하려고 애쓰시는 거지요. 모두 저 때문인데 변변히 보답도 못해 드리고." "아니야." 하고 K는 말하고, 위로하려는 듯이 산 손으로 그녀를 껴안았다. "당신이 말한 이야기는 전부 지극히 사소한 일이야. 나는 조금도 슬퍼하조 있지 않아. 그리고 클람을 만나려고 하는 것은 당신을 위해서만도 아니니까. 당신은 내게 참 여러 가지로 호의를 베풀어 주었어. 이 마을에 와서 아무도 나를 달갑게 맞아 주는 사람도 없고, 내가 무리해서 찾아가도 곧 억지로 잡아떼는 형편이었어, 그래서 내가 어떤 사람집에서 쉴 수가 있다고 하면, 이번에는 내가 빠져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사람네 집이었어. 예를 들면 바르나바스의 가족들같이......" "당신은 그분네 집에서 내빼왔나요? 당신이!" 하고 프리다는 활발하게 K의 말을 가로채면서 말했다. K가 머뭇거리면서, "그래." 하고 말하자, 프리다는 풀이 죽어서 시름 없이 축 늘어져 버렸다. 그러나 K에게는 이미 프리다와 동거하고 있기 때문에 만사가 자기에게 팔을 풀었다. 두 사람은 잠시 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드디어 프리다가 K에게 안겼을 때에 느껴진 K의 따뜻한 체온 같은 것이 이제 그녀에게는 없어서는 안 된다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저는 여기 이런 생활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요. 만일 당신이 저를 버리시지 않을 작정이라면 우리들은 어디론지 남쪽 프랑스나 또는 스페인으로 이주하지 않으면 안 돼요." "나는 이주할 수 없어. 나는 이 곳에 살려고 온 거야. 나는 이 땅에 살게 될 거야." K는 이렇게 말하더니 혼자 독백처럼 덧붙여서 말했다__그 말에는 모순이 있었지만 그는 조금도 그 모순을 해명하려고 하지 않았다__ "이 땅에 뿌리박고 살려는 희망이 없으면 대체 무엇 때문에 이쓸쓸한 땅에 매력을 느꼈떤가?" 그리고 또 말을 계속했다. "그러나 여기는 당신의 고향이니까 당신은 여기에 머물러 있기를 원하는 거지. 단지 하나, 클람만이 당신에게는 부족해서 당신은 절망적인 생각에 빠지는 거지." "클람만이 제게 부족하다고요? 이 땅에는 클람 같은 사람이 얼마든지 있어요. 가는 곳마다 클람 천지고 발에 걸려서 처치 곤란할 지경이에요. 사실은 클람을 회피하기 위해서 이 땅을 떠나려고 하고 있는 거예요. 여기서는 모두들 저를 주목하고 끌어 잡아당기기만 해서 저는 당신과 흐믓하게 지낼 수가 없어요. 당신 곁에서 조용하게 지낼 수 있도록 제게서 아름다운 가면이 벗겨지고, 제 육체가 보잘것없이 초라해지면 좋겠어요." K는 그 말 가운데 단지 한 가지만을 알아들었다. "클람은 지금도 여전히 당신과 연락하고 있나? 당신을 부르던가?" 그는 곧 물었다. "클람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저는 지금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조수 같은 사람들 말이에요." 하고 프리다가 말했다. "아아, 그 조수들! 그 녀석들이ㅣ 당신 뒤를 쫓어더나너!" K는 깜짝 놀라서 말했다. "그 눈칠 채시지 못했나요?" 하고 프리다가 물었다. "아니, 전혀 몰랐어." 하고 K는 말하고 세세한 일을 생각해 내려고 애썼으나 아무것도 기억에 떠오르지 않았다. "확실히 뻔뻔스럽고 여자를 좋아하는 놈들이지만, 그놈들이 당신에게 접근하려고 노리고 있었다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어." "눈치채지 못했다고요? 교반관의 우리 방에서 그들을 쫓아낼 수가 없었고, 그들이 심술ㄱ은 질투의 눈으로 우리들이 관계를 감시하는가 하면,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어젯밤 제 잠자리로 기어들어오기로 하고, 그들이 당신을 쫓아내어 당신의 신세를 망쳐 버리고 저와 함께 살기 위해서 당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했는데, 당신은 도무지 이런 눈치를 채시지 못했단 말이에요?" 프리다의 말이었다. K는 대답도 하지 않고 프리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조수들에게 대한 이런 비난은 확실히 옳았지만, 또 동시에 그것은 조수 두 사람의 아주 우습고 유치하고 마음이 변하기 쉬운 그런 엉터리 성질로 미루어 본다면 훨씬 천진난만한 것처럼 해석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언제나 K와 함께 어디로 가려고 하고 프리다와 함께 뒤에 남으려고 하지 않았던 사실은, 이런 고발을 반박하는 것이 아닐까? K는 그런 논리도 약간 언급해 보았다. "그런 건 위선인데, 당신은 그 눈치도 알아채지 못했나요? 그러면 제가 말한 것 같은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왜 그들을 내쫓아 버렸어요?" 프리다가 말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하면서 창문 옆으로 가서 커튼을 약간 옆으로 밀어젖히고 바깥을 내다보며 K를 창문가로 불렀다. 조수들은 여전히 학교 마당에 남아 있었고, 벌써 피곤한 것처럼 보였으나 그래도 가끔 있는 힘을 다해서 팔을 학교 건물 쪽으로 뻗고 애원하는 시늉을 했다. 그들 중 한 사람은 끊임없이 울타리를 붙들고 있지 않아도 좋도록 웃옷을 아주 뒤 울타리의 살창 끝에 꿰고 있었다. "아이고, 불쌍해! 아이고 불쌍해!" 프리다는 말했다. "내가 왜 조수들을 내쫓아 버렸느냐고? 그 직접적인 동기는 당신이었어." 하고 K는 말했다. "저라고요?" 하고 프리다는 여전히 바깥을 내다보면서 물었다. "조수들을 다루는 당신의 태도는 너무나 지나치게 친절해요." K는 말을 이어서, "그들의 못된 행동을 관대하게 봐 주어 웃음으로써 용서해 주고, 그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늘 그들을 동정해서 '아이고 불쌍해, 아이고 불쌍해.' 하는 말이 입버릇처럼 젖어 나오고, 그리고 마지막에는 최근의 그 사건까지 벌어지게 되었는데, 그 때 당신은 조수들을 회초리에서 구출하기 위해서 나라는 인간을 형편없이 평가한 것이지 뭐야." K의 말이었다. "네, 그래요. 먼저부터 제가 말씀드리는 것이 바로 그 점이에요. 그것이 저를 불행하게 만들고, 저를 당신에게서 멀리 떼어놓고 있는 거예요. 저에게는 언제까지나 한없이 당신 곁에 있는 것보다 더 큰 행복음 없어요. 그러나 우리들에게는 어쩐지 이 지상에서 서로 사랑하고 마음놓고 지낼 수 있는 장소라고는 없는 것 같아요. 이 마을은 물론 다른 곳에도 없는 것처럼 느껴져요. 그래서 깊고 좁은 무덤 구멍을 상상하고 있어요. 거기서는 우리들이 집게에 물리고 꼭 죄어진 것처럼 서로 껴안고, 서로 얼굴을 파묻어도, 결코 아무도 우리들을 보지 못할 거예요. 그러나 여기서는__조수들을 좀 보세요! 그들이 손을 합장하고 있는 것은 당신에게 대해서가 아니라 제게 대해서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에요." 프리다의 말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하는 짓을 열심히 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니라 당신이지." 하고 K가 말했다. "물론 저지요." 하고 프리다는 거의 화를 내면서 말했다. "그래서 아까부터 그 말씀을 드리지 않았어요? 그런 일이 없으면 조수들이 저를 괴롭힌다는 일이 문제가 될까요? 가령 그들이 클람에게서 파견되었다고 하더라도 말이에요......" "클람에게서 파견되었다고?" 하고 K가 말했다. 그들에게 이런 딱지를 붙인다는 것은 아주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으나, 그것을 듣자 그는 정말 깜작 놀랐다. "틀림없이 클람에게서 파견되었어요." 하고 프리다는 이어서, "두 사람이 클람에게서 파견되었다고 하더라도 역시 어리석은 어린이들이라는 점에서는 변함이 없고, 그들을 교육하는 데는 아직도 회초리를 내두를 필요가 있어요. 얼마나 밉살스러운 아이들이에요. 얼굴을 보면 어른이나 대학생처럼 보이는데, 하는 짓이라곤 마치 어린애처럼 어리석은 짓만 하고 있어요. 참 지긋지긋히요! 당신은 제가 그런 일도 모른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그들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들이 저에게 반발을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그들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늘 그들을 쳐다보게 돼요. 모두가 그들에 대해서 골을 낼 때는 저는 웃고 있지 않으면 안되고, 모두들 그들을 때리려고 생각할 때면 저는 그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지 않으면 안 되었어요. 뿐만 아니라 밤에 당신 옆에 드러누울 때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당신 너머로 두 사람이 무얼 하고 있는지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되었어요. 한 사람은 이불에다 몸을 둘둘 말다시피 하고는 잠자고 있고, 또 한 사람은 난로 아궁이를 열고 그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불을 피우고 있는데, 그런 광경을 보느라고 자고 있는 당신 위에 몸을 구부리다가 당신의 잠을 깨울 뻔하게 되는 걸요. 그리고 어젯밤 고양이 사건만 하더라도 고야이가 저를 깜짝 놀라게 한 것이 아니라__아아, 저는 고양이 같은건 진기하게 생각하고 있지도 않고, 술집에서 불안스럽게 졸다가 깜작 놀라 잠이 깨는 밤을 경험하고 있지요__그런니까 고양이가 저를 깜짝 놀라게 한 것이 아니라 제가 제자신에게, 즉 제 겁에 놀란 것이지요. 하여튼 고양이 같은 괴물은 조금도 필요 없어요. 저는 작은 소리만 들어도 깜짝 몰라서 움츠리고 몸부림치곤 해요. 한쪽으로는 당신의 잠을 깨워서 만사가 다 수포로 돌아가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그래도 일어나서 촛불을 켜놓고 당신이 빨리 눈을 뜨고 저를 지켜 주기를 은근히 바라는 거지요." 하고 말했다. "네, 끝내 두 사람은 가고야 말았어요." 하고 프리다가 말했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고민의 그림자가 비치고 기쁜 기색은 엿보이지 않았다. 이어서, '우리들은 그들이 어떤 인간인지 알지 못해요. 저는 머릿속에서 장난으로 클람에게서 파견된 자라고 불렀는데 그들은 정말로 그럴지도 몰라요. 그 사람의 눈, 소박하지만 반짝이는 눈, 참말로 그 눈은 웬일인지 클람의 눈을 연상시키는군요. 가끔 제 몸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그들의 눈빛은 바로 클람의 눈초리예요. 그러니까 제가 그들을 부끄러워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은 옳지 못해요. 아닌게아니라 그랬으면 하고 원하고 있어요. 하여간 다른 장소에서 또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경우에는 불쾌하고 비위에 거슬리는 어리석은 행동이, 같은 일이라도 그들이 하는 경우에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거든요. 저는 스스로 그 점을 의식하고 있어요. 존경과 감탄의 마음으로 그들의 어리석은 행동을 보고 있어요. 그들이 클람에게서 파견된 자라면, 누가 우리들을 그 두사람에게서 해방시켜 줄까요? 또 그들에게서 해방된다는 것이 대체 좋은 것일까요? 차라리 그들을 곧 불러들이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그래서 만일에 그들이 돌아와 준다면 그래도 다행스런 일로 여겨야 되지 않을까요?" "내가 그 두 사람을 여기에 바아들이는 것을 당신은 바라는 거지?" 하고 K는 물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저는 다시 만나는 그들의 기쁨, 어린애들처럼 날뛰고, 의젓한 남자면서도 팔을 뻗치는 동작, 저는 아마도 그들을 참고 볼 수 없을 거예요. 만일에 당신이 그들에게 여전히 쌀쌀한 태도를 취한다면 클람 자신이 당신에게 가까이 오는 것까지도 거부해 버리는 결과가 되지나 않을까 염려되기 때문에 갖은 수단과 방법을 다해서 그렇게 되지 않도록 막고 싶어요. 그러니까, 당신이 그들을 여기에 들어오게 해 주세요. 제게 관해서는 조금도 염려하지 마세요. 제가 대관절 뭐란 말인가요! 저는 될 수 있는 한 제 몸을 보호하겠어요. 그러나 아무래도 몸을 망치지 않으면 안 될 때에는 망치게 될 거예요. 그 때에는 그 원인이 당신에게 있다고 생각할 거예요." 프리다는 그와 같이 말했다. "나는 당신 이야기를 듣고 조수들에 관한 내 판단이 옳다는 확신을 얻었을 뿐이야. 나는 결코 그들을 여기에 다시 오게 하자는 의견에는 동의하지 못하겠어. 그러나 내가 그들을 추방했다는 것은 우리들이 경우에 따라서는 그들을 마음대로 좌우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게 되는 것이고, 그뿐더러 마음대로 좌우할 수 있다는 것은 그들과 클람과의 사이에 본격적인 관계가 없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 아닐까? 어제 저녁에 비리소 클람에게서 한 통의 편지를 받았는데 그 편지 내용으로써 추측해 보면 클람은 조수들에 관해서 아주 그릇된 소문을 듣고 있다는 점이지. 그것으로 미루어 보아 조수들이 클람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존재라는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안 되지. 왜냐하면, 만일 그렇지 않으면 클람은 조수들에 관해서 정확한 보고를 입수했을 것이니까. 그런데 당신이 그들 속에 클람의 그림자를 본다는 것은 아무 증명도 되지 않는 거야. 왜냐하면 당신은 지금까지도 유감스럽지만 주인 아주머니의 영향을 받아 가는 곳마다 클람의 그림자를 보고 있기 때문이지. 아직도 여전히 당신은 클람의 애인이고, 내 아내라는 입장과는 거리가 멀어요. 가끔 나는 그런 생각돼요. 또 그럴 때면 간신히 마을에 도착했던 그 때처럼 느껴져요. 그것도 희망으로 가슴이 부풀어오른 것이 아니라__사실 내가 마을에 도착했던 그 당시는 가슴이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__오로지 환멸적인 비애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그런 의식을 가지고 있을 뿐이고, 그것을 차곡차곡 맛보고 나중에는 마지막으로 가라앉은 찌꺼기까지도 맛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K의 말이었다. K의 말을 듣고 프리다가 쓰러져 버린 것을 보자, "그러나 그것은 단지 가끔 그랬을 뿐이다." 하고 그는 빙그레 웃으면서 덧붙여 말했다. "당신이 내게 암시를 주었는데 그것은 결국 대단히 유익한 일이야. 그래서 당신이 지금, 당신이나 또는 조수나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고 요구한다면, 말할 것도 없이 조수들의 참패로 돌아가는 거야. 당신과 조수, 어느쪽이라도 골라잡으라고 하다니 생각만 해도 우스운 일이 아닌가! 그들과는 이제 인연을 끊어 버리기로 하자. 그들 이야기는 두 번 다시 입 밖에 내지도 말고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해. 그건 그렇고 우리 두 사람이 다 약한 마음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직도 우리가 아침 식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리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을까?" "그럴 수도 있어요." 하고 프리다는 말하고, 피곤한 미소를 띄우며 일에 착수했다. K도 빗자루를 손에 잡았다. 얼마 후에 문을 가볍게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바르나바스!" 하고 K는 외치더니 빗자루를 내동댕이치고 한 번 껑충 뛰어서 문 옆으로 갔다. 무엇보다도 그 이름에 깜짝 놀라서 프리다는 K를 쳐다보았다. K는 서투른 솜씨로 자물쇠를 열려고 했는데 그 낡은 자물쇠는 곧 열리지 않았다. "곧 열어 줄게!" 하고 그는 끊임없이 그 말만 되풀이하고,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대체 누구인지 물어 보지도 않았다. 문을 활짝 열어젖히자 들어온 사람은 바르나바스가 아니라 전에 언젠가 잠깐 K에게 말을 걸려고 한 일이 있었던 작은 사내 아이였다. 그런데 K는 이 아이를 생각해 내려고도 하지 ㅇ았다. "대체 여기에 무슨 일이 있지? 수업은 옆방에서 하고 있는데." 하고 그가 말했다. "바로 그 옆방에서 왔습니다." 하고 그 사내아이는 말하고 그 갈색의 눈을 치켜뜨고 침착하게 K를 쳐다보면서 두 팔을 바짝 옆구리에 붙이고 단정하게 서 있었다. "그러면 무슨 용무냐 말이야? 빨리 말해 봐!" 하고 K는 말하고, 아이가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기 때문에 그 아이 쪽으로 약간 몸을 구부렸다. "도와 드릴 일은 없습니까?" 하고 사내아이가 물었다. "이 아이가 우리들을 도와준대." 하고 K는 프리다 쪽을 향해서 말하더니, "이름은 무엇이지?" 하고 물어 보았다. "한스 브룬스빅크라고 합니다. 제4반 학생이고 마델라인 거리에서 구둣방을 하고 있는 옷토 브룬스빅크의 아들입니다." 그 사내아이의 말이었다. "그래 브룬스빅크말이지!" 하고 K는 말하고, 더 정다운 태도로 나왔다. 한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여선생이 고양이 발톱으로 K의 손등을 할퀴어 K의 손등이 핏줄기가 빨갛게 부풀어오른 것을 보고, 너무나 딱하고 불쌍해서 그 때부터 K의 편을 들려고 결심했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 굉장한 처벌을 받는다는 위험을 무릅쓰고 자진해서 탈주병처럼 옆 교실에서 몰래 빠져 나왔던 것이다. 그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이런 사내아이다운 생각인 듯했는데, 그의 행동에서 엿보이는 진지한 성격도 역시 그의 상상에 어울리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수줍어서 우물쭈물하고 있었으나 곧 K와 프리다에게 정들어서, 다뜻하고 맛있는 커피를 대덥받았을 때에는 숫기 좋고 정다운 태도로 변했다. 그리고 두 사람을 향해서 열심히 꼬치꼬치 질문했는데, 마치 될 수 있는 대로 중요한 일을 안 다음, K와 프리다를 위하여 힘을 쓰도록 결심할 수 있으면 하는 눈치였다. 그의 태도에는 어딘지 사람에게 명령하는 것 같은 그런 점도 있었다. 그러나 어린애답게 천진 난만한 동심이 섞여져 있었으므로, 반은 장난삼아서 그의 말을 들어 주었다. 좌우간 그는 두 사람의 주목을 한 몸에 모았다. K와 프리다는 일하던 손을 멈췄고, 아침 식사는 언제까지나 늦추어졌다. 이 어린이는 아동용 의자에 걸터앉고, K는 교탁에, 프리다는 그 옆의 안락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한스가, 마치 선생이 되어 그가 문제를 내고 그 대답에 대하여 판정을 내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린이의 부드러운 입 언저리에 약간 떠도는 미소로 미루어 보면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당지 장난에 불과하다는 것을 자기 스스로가 의식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장난인 만큼 더욱 진지하게 이 문제와 대결하고 있는 것이고, 마아도 그의 입가에 떠도는 것은 미소라기보다는 어린 시절 행복 그 자체였을 것이다. 그는 한참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비로소 사실은 K가 라제만에게 들렸을 때부터 K를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K는 그 말을 듣자 아주 기뻐했다. "그 때 너는 부인의 발치에서 놀고 있었지?" 하고 K는 물었다. "네, 그분은 제 어머닙니다." 한스의 대답이었다. 그래서 어린이는 자기 어머니의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는데 머뭇거리다가 몇 번이나 재촉당한 뒤에야 비로소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그의 말투를 들으면 그가 아직도 어린애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가끔 특히 그가 질문할 때면__물론 아마도 미래에 대한 예감이었을지도 모르겠으나, 그리고 또는 불안스러운 기분으로 긴장해서 듣고 있던 사람의 착각이었는지도 모르겠으나__정력적이며 현명하고 장래를 내다보는 남자 어른 한 사람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가 하면 그 직후에는 바로 별수없는 국민학교 아동으로 변해 버려서 여러 가지로 물어 보는 질문의 뜻을 전혀 모르기도 하고, 또는 그릇된 뜻으로 오해하기도 했다. 또 어린이답게 상대방을 도무지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소리가 너무 작다고 몇 번씩이나 주의했는데도 불구하고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나지막한 소리로 이야기하고 나중에는 꼬치꼬치 물어 보는 질문에 대해서는 고집을 세워서 반항적으로 꼭 입을 다물어 버렸다. 더군다나 상대방의 질문에 대해서 조금도 당황하는 빛을 띠고 있지 않는 점도 어른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었다. 대체로 한스의 태도를 보고 있으면 질문하는 것은 자기에게만 할 수 있었다. 대체로 한스의 태도를 보고 있으면 질문하는 것은 자기에게만 허락되고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질문하는 것은 어떤 규칙 위반이며, 말하자면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그런 사고 방식인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이 질무할 때면 그는 상체를 꼿꼿이 가누고 머리는 수그리고 아랫 입술을 내민 채 오랫동안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 모양이 프리다의 마음에 들어서 그녀는 종종 어린이에게 질문을 했는데, 자기의 질문으로써 어린이의 말문을 막았으면 하고 은근히 바랐다. 그런데 사실 그것이 성고한 일이 몇 번이고 있었으나, K는 그것이 기분 나빴다. 대체로 이 소년에게서 들은 이야기는 아주 적었다. 그의 어머니는 약간 병을 앓고 있다고 하지만 어떤 병인지는 알 수 없었다. K가 찾아갔을 때, 그의 어머니가 무릎 위에 안고 있었던 어린애는 한스의 누이동생이고 프리다라는 이름이었다(한스는 자기 누이동생이 자기에게 귀찮게 꼬치꼬치 캐묻는 부인과 이름이 똑같은 것을 알고 불쾌한 표정을 지였다). 그들은 모두 마을에 살고 있었는데, 라제만의 집은 아니고, K가 들렀을 때는 목욕하기 위해서 거기에 와 있었을 뿐이었다. 라제만에게는 큰 대야가 있었고, 작은 아이들은__한스는 거기에 한몫 기지도 못했다__그 속에서 목욕하기도 하고 또 쫓고 쫓기는 장난을 치는 것을 특별히 즐겼엇다. 한스는 자기 아버지를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는 듯 이야기했는데, 그것은 단지 어머니가 화제에 오르지 않을 때에 한해서 그랬고, 어머니에 비교하면 아버지의 가치는 분명히 작은 듯했다. 이 밖의 가정 생활에 관한 질문에는 K와 프리다가 아무리 화제를 돌리려고 해도 일체 대답이 없었다. 아버지의 직업에 대해서는, 아버지는 이 고장에서 가장 큰 구둣방을 경영하고 아무도 그를 따를 사람이 없으며__전혀 다른 질문을 받았을 때에도 한스는 이 말을 가끔 되풀이했다__더군다나 다른 구둣방에, 예를 들면 바르나바스의 아버지에게 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바르나바스의 아버지에게 일거리를 주는 것은 오로지 특별한 호의에서 나온 것임에 틀림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적어도 한스가 자랑스럽게 고개를 돌린 그 태도가 그러한 점을 암시하고 있었다. 그 모양을 보고 프리다는 성에 가 본 적이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몇번이고 질문을 되풀이한 다음에야 겨우 대답했는데 그것도, "없습니다." 하는 한 마디였다. 그러면 어머니는 어떤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전혀 대답조차 없었다. 드디어 K는 싫증이 났다. K의 생각에도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 같았으며, 이 점에 관해서는 어린이의 태도가 옳은 것처럼 느껴졌다. 순진한 어린애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가정의 비밀을 탐지하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일 뿐더러 캐서 물어 보아도 알아내지 못한다는 것은 더욱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아니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끝맺디 위해서, 대체 한스가 무엇으로써 도와주려고 하는가고 물었다. 그 질문에 대해서 한스는 자기가 여기서 일을 도와주려고 생각한 것은 오로지 남선생과 여선생 두 사람이 이 이상 K에 대해서 잔소리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것뿐이라고 대답했는데, K는 그 대답을 듣고도 놀라지 않았다. K는 한스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선 그와 같은 원조는 필요치 않다. 잔소리하는 것은 학교 선생의 본성이니까 아무리 시키는 대로 면밀하게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잔소리는 면하지 못할 것이다. 일 자체는 까다롭지 않으나 오늘은 단지 우연한 사정 때문에 일이 밀렸다 뿐이다. 그리고 잔소리를 듣는다고 하더라도 자기는 학교 아이들처럼 그렇게 심각하게 느끼지는 않는다. 설사 약간 잔소리를 듣는다고 하더라도 상대도 하지 않고 넘겨 버리니까 사실 문제 삼을 필요조차 없다. 첫째로 K는 가까운 장래에 그 선생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사라져 버릴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서 K가 선생에게 책망 듣지 않도록 도와주려고 한다니 무엇보다도 고맙게 생각하지만, 한스도 제자리로 돌아가면 좋겠다고 아마도 지금 돌아가면 벌을 받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K는 말했다. K는 자기가 선생에게 대항하는 데에 협력하겠다는 것에 어떤 사람의 원조도 필요치 않다는 사실을 의식적으로 강조한 것이 아니라 다만 넌지시 암시를 준 데 지나지 않았다. 한편 그는 다른 사람의 원조가 필요한가 어떤가의 문제는 해결하지 않은 채 보류해 두었다. 그런데 한스는 그 말을 똑똑히 알아듣고 혹시 K가 다른 사람의 원조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냐고 물었다. 한스는 기꺼이 K를 도와주겠다고 말하면서, 만일 자기에게 불가능한 경우에는 어머니에게 부탁해 보겠는데, 그것은 틀림없이 성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간혹 아버지가 곤란을 느낄 때에는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힘을 빌려 달라고 부탁한다고 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언젠가 K의 말을 물어 본 일이 있었다. 어머니는 거의 집을 떠나는 일이 없고, 요 먼저 라제만 씨 댁을 가서 아이들하고 노는데, 그래서 어머니가 그 후 라제만 씨 댁에 또 측량 기사가 찾아오지 않았느냐고 한스에게 물어 본 일이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몹시 몸이 쇠약해서 어머니를 쓸데없이 자극하지 않기 위해 한스는 그저 측량 기사를 본 일이 없다고 대답했는데 그 이상 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스는 학교에서 K를 보았기 때문에 말을 걸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어머니에게 K 이야기를 보고할 수 없으니까, 왜냐하면 뚜렷한 명령은 없지만 어머니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면 어머니는 가장 기뻐하기 때문이라고 한스는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잠깐 생각한 다음 K는 말했다. K는 원조를 필요치 않으며, 필요한 것은 모조리 가지고 있다고, 그러나 한스가 K를 도와주려고 하니 신통하고 그 마음씨가 고맙다고, 다만 나중에 언젠가 힘을 빌릴 필요가 있을는지도 모르겠는데 주소까지 알고 있으니까 그 때는 한스에게 부탁하게 될 것이라고, 그 대신 지금은 그가, 즉 K가 한스를 약간 도와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한스의 어머니는 아프고, 이 땅에서는 아무도 그 병을 고치는 의술이 하나도 없는 것 같은 것이 유감 천만이라고, 치료도 하지 않고 이런 상태로 내버려둔다면 본래 가벼운 병이라도 중병이 되는 경우도 가끔 있다고, 그런데 K는 의학의 지식을 약간 가지고 있을 뿐더러 환자를 치료해본 귀중한 경험도 있다고, 의사들이 고치지 못한 병을 자기가 고친 일까지 몇 번이나 있다고, 고향에서는 병을 고치는 신비스러운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모두들 K를 '쓰디쓴 약초' 라고 불렀다고, 좌우간 K는 한스의 어머니를 만나서 이야기해 보고 싶다고, 아마도 큰 도움이 되는 충고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스를 생각해서 꼭 그렇게 해 드리고 싶다고 K가 말했다. K가 이렇게 말하고 제의하는 소리를 듣고 비로소 한스의 눈은 빛났다. 그것에 힘을 얻어 K는 더욱 열을 올려 기를 쓰고 제의를 되풀이해 봤으나 결과는 신통치 못했다. 즉 한스는 여러 가지 질문을 받아도 그다지 슬픈 표정도 보이지 않고 병든 어머니를 잘 간호해 드려야 하니까 얼굴을 잘 아는 사이가 아니면 아무도 어머니에게 문병을 와서는 안 된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K는 어머니와 거의 이야기도 하지 않았는데도 그 후 며칠 동안 침대에 누워 버렸는데 그런 일도 드믈지는 않다. 아버지가 그 때 K한테 화를 내셨으니 K가 어머니를 문병하는 일은 결코 허락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그당시 K의 행동을 추궁하고 비난하기 위해서 K를 찾아내려고 했는데 어머니가 제발 그러지 말라고 아버지를 말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대체로 어머니 자신은 아무와도 이야기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머니가 K를 만나고 싶으면 분명히 의사 표시를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가 말을 끄집어내지 않은 걸 보면 그것으로써 어머니의 뜻을 똑똑히 짐작할 수 있다. 어머니는 K의 소식을 듣고 싶은 것이지 그렇다고 K와 면회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거기다가 어머니가 앓고 있는 그 병은 결코 진짜 병이 아니다. 어머니 자신이 자기 병의 원인을 썩 잘 알고 있어서 가끔 그 말을 비치는 때도 있는데, 어머니는 대체로 이 마을의 공기를 견딜 수 없는 모야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전보다 병세가 낫다고 하더라도 남편과 어린애들을 생각하고 이 땅을 떠나려고 하지 않는다. K가 한스에게서 들은 이야기는 대충 그런 줄거리였다. 한스는 자기가 K를 도와주겠다고 입 박에 내면서도 자기 어머니를 K에게서 수호하지 않으면 안 될 때는 한스의 사고력은 뚜렷하게 커지는 것이었다. 한스는 K를 어머니에게 면회시키고 싶지 않다는 착한 선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자기가 먼저 말한 것과는 모순된 발언을 했다. 예를 들면 병에 관한 말이 그랬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K는 한스가 지금도 여전히 자기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는 것을 인정했다. 다만 한스는 어머니 일 때문에 다른 모든 일을 잊어버리곤 했다. 누구를 막론하고 한스의 어머니의 상대자가 되면 나쁜 사람 취급을 받고 마는 것이다. 지금은 공교롭게도 K가 그 역활을 맡았으나, 예를 들면 그것이 아버지라도 마찬가지였다. K는 그것을 시험해 보려는 생각에서 한스의 마음을 떠보았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즉 한스의 아버지가 어머니를 어떤 일로도 괴롭히지 않으려고 조심하고 계신 것은 확실히 갸륵한 일이다. K도 그 당시에 조금이라도 그런 눈치를 채고 있었더라면, 확실히 어머니에게 말을 걸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약간 시간은 늦었지만, 집에 돌아가거든 K가 어머니에게 죄송하게 됐다고 사과하더라고 말을 전해 달라. 그러나 K에게 도저히 납득이 안 되는 일은 한스가 말하는 것처럼 병의 원인이 그렇게 확실하다면 왜 아버지는 어머니가 전지 요양하겠다는 것을 말리는지 바로 그 점이다. 아무래도 아버지가 어머니를 만류하고 있다고밖에는 달리 표현할 수가 없다. 어린아이들과 아버지를 생각해서 어머니가 집을 떠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어린애들은 함께 데리고 갈 수도 있고 오랜 기간 먼 거리까지 갈 필요도 없다. 바로 위에 성에 있는 산만 해도 공기는 아주 다르다. 이런 전지 요양의 비용을 아버지느 염려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 마을에서 제일가는 구둣방이고 성에서는 어머니를 기꺼이 맞이해 주는 친척이나 지인이 아버지 쪽에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어머니 쪽에 있을 것이다. 왜 아버니는 어머니를 놓지 않는 것일까? 아버지가 이런 병환을 경시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K는 어머니를 언뜻 보았을 뿐인데 안색이 나쁘고 몸이 너무나 쇠약한 모양을 보고 깜짝 놀랐기 때문에 말을 걸어 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 때 벌써 K는 아버지가 목욕탕겸 세탁장의 더러운 공기 속에 병든 어머니를 내버려두고, 자기는 높은 소리로 떠드는 것조차 삼가려고 하지 않는 데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ㅡㄴ 무엇이 중요한가 문제의 초점을 잘 모르는 모양이다. 아마도 최근에는 병세도 좋아진 것 같지만, 가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런 병은 변덕스러워서 안심하고 있으면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게 되어 그 때는 시기를 놓쳐 버리는 것이다. 가령 K가 어머니와 이야기할 수 없다 하더라도 아버지와 만나서 충고해 드리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K는 말했다. 한스는 K의 말에 긴장하여 귀를 기울이고 있었는데 대충은 알아들었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에서는 협박감을 강렬하게 느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말했다. K는 아버지와 이야기할 수 없다. 그것은 왜냐하면 아버지는 K를 싫어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아버지는 대개 남선생이 한 것처럼 K를 취급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스는 K 이야기를 입에 올릴 때는 미소를 띠고 수줍어 했으며, 아버지 이야기를 입에 올릴 때는 못마땅해서 씁씁하고도 불쾌한 그러면서도 슬픈 표정으로 지껄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스는 이렇게 덧붙여서 말했다. K는 혹시 어머니와 이야기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다만 아버지 몰래 비밀에 붙여야 된다. 그리고 한스는 마치, 벌을 받지 않고 금지된 일을 해 보려고 그 방법을 궁리하고 있는 여자처럼 잠깐 눈을 부릅뜨고 응시하며 생각에 잠겨 있다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아마도 모레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저녁때 신사관에 가서 거기서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돈다. 그러니까 한스가 저녁때 와서 K를 어머니에게로 안내하겠다. 물론 어머니가 이 일에 동의한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의 말인데 어머니가 동의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어머니는 아버지의 뜻에 거슬리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고, 만사를 아버지 말씀에 따라간다. 한스 자신도 도무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분명히 알 수 있는 일까지도 그렇다. 아닌게아니라 한스는 K가 아버지에 대해서 대책을 강구해 주기를 바랐다. 그느 K를 도와주려고 생각했었는데, 사실은 전부터 알고 있었던 자기 주위의 사람들을 아무도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이렇게 갑자기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어머니의 입에까지 오른 이 낯선 사나이에게 혹시 몸을 의지할 수 있지나 않을까 하고 탐지해보려고 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말하자면 그는 자기 자신을 속이고 있는거나 마찬가지였다. 이 아이는 거의 무의식중에 본심을 감추었고 능글맞기 짝이 없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그 아이의 태도나 말씨에서는 거의 엿볼 수 없었던 것이었는데, 지금 약간 시간은 늦었지만 반은 우연히 반은 일부러 의식적으로 이 아이에게 고백시킴으로써 비로소 그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 아이는 K와 오래도록 이야기하는 동안 어떠한 곤란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를 말했다. 한스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것은 거의 극복하기 어려운 곤란이었다. 깊이 생각에 잠기면서도 도와달라고 애원하는 듯이 한스는 불안스럽게 눈을 깜빡거리면서 뚫어지게 K의 얼굴을 응시했다. 아버지가 집을 나가기 전에는 어머니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만일 말하면 아버지가 그 사실을 알게 되고 만사가 수포로 돌아가 버린다. 그러니까 나중이 아니면 그 일을 입 밖에 낼 수 없다. 그러나 지금 말한다 하더라도 어머니의 건강을 생각하면, 갑자기 성급하게 말할 수는 없고 적당한 기회를 봐서 천천히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야 비로소 어머니의 동의를얻게 되고 그리고 나서 겨우 K를 데리러 올 수 있다. 그러나 그 때면 너무 늦지나 않을까? 곧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을까? 아니다, 역시 불가능하다. K는 한스의 비관적 태도에 대하여 절망적인 것은 아니라고 다짐을 했다. 시간이 부족하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잠깐 동안만 만나서 이야기하면 충분하다. 그뿐더러 K를 부르러 올 필요도 없다. K는 어느 곳이든 한스의 집 근처에 숨어서 대기하고 있다가 한스가 신호를 보내면 곧 가기로 하겠다고 말했다. 안 된다고 한스가 말했다. 집 근처에서 K가 기다림면 안 된다__ 또다시 한스는 어머니 일 때문에 신경 과민이 되어 버렸다__어머니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K가 와서는 안 된다. 한스는 어머니의 양해도 없이 K와 비밀 협정을 맺을 수 없다, 한스는 K를 할교에서 불러오지 않으면 안 되고 그것도 어머니에게 그 사유를 말하고 동의를 얻은 후가 아니면 안 된다. K는 좋다고 말했다. 그렇게 되면 사실 위험성이 많고, 집에서 아버지에게 현장을 들켜서 붙들리는 일이 없다고 장담할 수 없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하더라도 어머니는ㄴ 그것이 두려워서 절대로 K를 가까이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아버지 때문에 만사가 수포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이번에는 한스가 반박하고, 이리하여 토론은 옥신각신하며 그칠 줄을 몰랐다. "벌써 상당히 오래 전부터 K는 한스를 아동용 의자로부터 교단 자기 옆으로 불러서 무릎 사이로 끌어다 잡아당기고 가끔 달래는 듯이 쓰다듬어 주었다. 이렇게 두 사람이 접근한 덕분으로 한스가 때로는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두 사람 사이에는 그럭저럭 의견 일치를 보게 되었다. 그 합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즉 한스는 우선 어머니에게 진실을 전부 고백한다. 그러나 어머니가 쉽게 동의해 주도록 K는 또 브룬스빅크와도 이야기하겠다. 물론 그것은 어머니 때문이 아니라 자기의 용건 때문이라고 덧붙여서 말한다. 그 결론은 사실 옳았다. 말하고 있는 사이에 K의 머리에 언뜻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즉 브룬스빅크가 평상시에는 위험스럽고 나쁜 사람일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 원수는 아니다. 아무튼 적어도 면장이 알려 준 바에 의하면 브룬스빅크는 정치적인 이유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하지만 측량 기사의 초빙을 요구한 사람들의 두목이었다. 따라서 K가 마을에 도착한 것을 브룬스빅크는 확실히 환영했다. 그렇다면 첫날에 K에게 잇사했을 때의 불쾌스러운 태도와 한스가 말한 것 같은 싫어하는 기색은 아무래도 알 수 없는 일이다. 혹시 브룬스빅크는 K가 맨 먼저 자기에게로 원조를 청해오지 ㅇ은 것을 노엽게 생각했거나 또는 다른 오해를 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런 오해는 두서너 마디 이야기하면 풀릴 것이다. 사태가 이쯤 됐으니까, 브룬스빅크는 K가 남선생이나 면장에게 대항하는 데 있어서 기둥의 역활을 해 줄 것이며 배경이 되어 줄 것이다. 좌우간 관청에서 일삼고 있는 기만__대체 그것은 기만이 아니고 무엇일까?__면장과 남선생이 방해를 부려서 백작의 관청에도 보내지 않고 억지로 소사의 자리를 맡겨 버린 사기 행위의 전체를 폭로할 수 도 있을 것이다. 브룬스빅크와 면장 사이에, K를 둘러싸고 새삼스럽게 싸움이 벌어질 때는 틀림없이 브룬스빅크는 K를 자기편으로 끌어넣을 것이다. K는 브룬스빅크 집의 손님이 될 것이다. 브룬스빅크는 면장에게 반대하고 K에게 자기의 세력을 자유스럽게 이용하도록 맡겨 줄 것이다. 그렇게 되면 K에게는 얼마나 일이 유리하게 전개될것인가? 도저히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좌우간 브룬스빅크의 부인에게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다__그 동안 한스는 어머니만을 생각하면서 입을 다물고 있는 K를 심란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어려운 경우에 처하여 비상 수단을 써서 난관을 모면하려고 궁리하고 있는 의사를 쳐다보는 격이었다. 측량 기사의 자리 때문에 아버지인 브룬스빅크와 면회하려는 K의 제안에는 하스도 동의했느나 물론 그렇게 하기만 함ㄴ 아버지에 대해서 어머니를 보호해 주는 것이 되겠고, 그뿐더러 곤란한 경우가 발생해서 변명할 필요가 생기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스는 또 K가 늦은 시간에 방문하는 것을 어떻게 아버지에게 설명할 것인가 그 점을 질문했는데, 결국 소사의 직무는 견딜 수가 없을 뿐더러 선생이 사람을 멸시하는 대우를 했기 때문에 갑자기 절망감에 사로잡혀 모든 분별조차 잊어버렸다고 변명하겠다는 K의 말을 듣고 약간 우울한 표정으로서나마 납득했다. 이와 같이 예견할 수 있는 일을 미리 고려하고 나자 성공의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란 희망이 보였기 때문에 한스는 심란하게 생각하던 고통에서 해방되어 자못 즐거운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는 처음에는 K를 상대로 그 다음에는 프리다를 상대로 잠시 동안 어린애다운 순진한 태도로 지껄이고 있었다. 프리다는 오랫동안 아주 다른 일을 생각하는 것처럼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이 때 비로소 이야기에 한몫 끼게 되었다. 다른 말 끝에 겸사겸사해서 그녀는 한스에게 무엇이 되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한스는 그다지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고 K와 같은 인물이 되겠다고 대답했다. 왜 그런가 그 이유를 물었으나 한스는 물론 대답하지 못했다. 학교 소사 같은 것이 되겠느냐고 물었더니 그렇지 않다고 똑똑히 부정했다. 더 질문을 게속햐 너건 후에야 비로소 그 아이가 어떤 코스를 돌아서 그런 희망을 품게 되었는지 그 진상이 밝혀졌다. 현재 K의 신분이란 결코 부러워할 만한 것이 못되고 슬프고도 멸시당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한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걸 인식하기 위하여 일부러 다른 사람의 생활을 관찰할 필요는 조금도 없었다. 한스 자신은 스스로, 될 수 있으면 K가어머니를 쳐다보거나 어머니에게 말을 걸지 못하도록 말리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스는 K에게로 찾아와 원조를 청하였으며 K가 그 청을 응낙하였을 때에는 기쁘게 생각했다. 한스의 입장에서 볼 때 K에게 특히 타인과 다른 점이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았으나 무엇보다도 어머니 자신이 K의 이야기를 입 밖에 냈다는 사실은 무시할 수 없었다. 한스는 이런 모순에서, 지금 K는 물론 비천하고 형편없는 신분이지만 거의 생각해 볼 수도 없는 먼 장래에는 다른 모든 사람을 능가할 것이라는 확신을 얻게 되었다. 이리하여 마침내 바로 이 어리석기 짝이 없는 머나먼 장래와 그 장래에 이루어지게 될 자랑스러운 발전에 대하여 한스는 무한히 마음이 끌렸다. 그래서 한스는 현재의 K를 장해의 값으로 사려고 생각했는데, 이 소원 속에는 특히 어린애의 깜찍한 성격이 깃들어 있었다. 그것은 한스가 K를 구태여 나이 어린 동생이나 후배처럼 내려다보고 그의 장래를 자기 자시느이 장래보다도 훨씬 멀리 뻗쳐 있는 것처럼 생각한 점이다. 그래서 한스는 프리다에게 연달아서 질문을 받고 대답하는 것에 곤란을 느끼면서도 아주 무겁고 심란한 기분으로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이다. 따라서 K가 입을 열고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 비로소 어린애의 얼굴에는 다시 명랑한 빛이 떠돌았다. 한스가 무엇 때문에 K를 부러워하는지 알고 있다. 즉 K가 가지고 있는 마디가 있는 아름다운 지팡이 때문이겠지. 그 지팡이는 탁자 위에 놓여 있었고, 한스는 이야기하면서 무심코 그것을 만지고 있었다.그런데 이런 지팡이를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들의 계획이 성공하기만 하면 한스에게 더 훌륭한 지팡이를 만들어 주겠다고 K가 말했다. 한스는 사실 지팡이밖에는 염두에 없지 않았던가. 지금은 그렇게도 생각되었다. 한스는 K의 약속을 듣고 무척이나 반가워하며 기쁜 마음으로 작별했는데, 작별할 대 K의 손을 꼭 붙들고, "그러면 모렙니다." 하고 말했다. 한스가 방안을 나간 것은 아슬아슬한 시간이었다 왜냐하면 그가 나가자마자 남선생이 갑자기 문을 열고 K와 프리다가 둘이서 한가하게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외쳤기 때문이다. "방해해서 미안하지만 대체 언제 이 방을 치워 줄 거야? 우리들은 저쪽에서 콩나물처럼 빽빽하게 앉아 있지 않으면 안 되는 데다가 비좁아서 수업도 잘하지 못하겠어. 그런데 당신네들은 이 넓은 체조장에서 편하게 사지를 펼 대로 펴고 몸을 뻗을 대로 뻗고 있으니. 그것도 부족해서 조수들까지도 내쫓았지! 자아, 일어서 봐! 움직이기라도 해 보란 말이야!" 그 다음엔 K에게 이렇게 말을 하였다. "자네는 기금 곧 교반관에 가서 점심 식사를 가져와!" 남선생은 펄펄 뛰면서 화를 내며 외쳤지만 비교적 말시는 부드러웠고, 그 자체가 거칠게 들리느 '자네' 라는 말조차 그랫따. k는 곧 명령에 복종하려했으나 남선생의 마음을 떠보려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해고당했을 겁니다." "해고당했건 안 당했건, 좌우간 점심 식사를 가져오란 말이야!" 하고 남선생이 말했다. "해고당했는지 안 당했는지 저는 그 점을 알고 싶습니다." 하고 K가 말했다. "무슨 소리를 지저분하게 떠벌리는 거야? 자네는 해고 통지를 거부하지 않았는가 말이야!" "해고 통지를 무효로 하는데는 그것만으로 충분합니까?" 하고 K가 물었다.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내가 그렇게 생각지 않는 것은 확실한데, 면장은 그러면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야. 도무지 알 수 없어. 자, 빨리 뛰어가거라. 그렇지 않으면 정말 여기서 없어지란 말이야!" 남선생은 그렇게 말했다. K는 만족했다. 그러면 이 사람은 어느 새 면장과 만나서 이야기한 모양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사람은 전혀 면장과 면회도 하지 않고 단지 면장이 말할 것 같은 의견을 추측했을 뿐인지도 모르겠다. 그 의견이 확실히 K에게는 귀에 솔깃하게 들렸다. 그래서 K는 곧 점심식사를 가지러 가려고 바삐 서둘렀다. 그러나 얼마 가지도 않아서, 남선생이 그를 불러 세웠다. 점심 식사를 가져오라는 색다른 명령을 내려서 K의 근무하는 태도가 얼마나 열심인가, 그것을 앞으로의 참고로 삼으려고 시험해 보려고 한 것일까? 또는 여기서 다시 새로운 명령을 내리고 싶어졌거나, K에게 바쁜 심부름을 시켜 달음박질을 시켜 놓고 곧 다시 명령을 내려서 사환처럼 날새게 방향 전환을 시키고 그 꼴을 보고 즐기고 있는 것일까? 그 둘 중에 어떤 쪽인지 알 수 없으나, 좌우간 남선생은 그를 다시 불렀다. K쪽에서는 자기가 너무나 하라는 대로 복종하면 남성생의 노예나 바뀌치기 소년(궁중에서 귀족이 자제가 맞어야 할 매를 대신 맞는 소년)밖에는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이제 어느 한도까지는 남선생의 변덕을 참고 받아들이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알려진 바와 같이, 남선생은 합법적으 K를 해고할 수는 없어도 K의 지위를 견딜 수 없을 만큼 괴롭힐 수는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지위는 지금의 K에게 있어서는 전보다 더 중요한 것이었다. 한스와의 대화에서 K는 사실 무근이고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하더라도 결코 잊을 수 없는 희망을 새로이 품었다. 이 희망 때문에 바르나바스의 그림자까지도 거의 갈려질 지경이었다. K는 이 희망만을 추구하고 달리 어떻게 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자연히 전력을 여기에 집중시키기고, 다른 일은 모조리 즉 식사, 주택, 면사무소, 심지어는 프리다의 일까지도 고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실을 고백하면 프리다와의 일만이 문제였다. 그 밖의 다른 모든 일은 프리다와 관게만 없으면 아무 상관도 없었다. 그래서 K는 지금 신분을__그것은 프리다의 생활에 야간의 안정감을 주고 있는데__유지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따라서 이 목적 때문에 남선생의 무례를 다른 경우 같으면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생각될 만큼 참고 견디어 냈다. 그런데 그런 일로 그가 후회하는 것은 당치도 않았다. 그 모든 것이 너무나 그통스럽다고 말할 정도의 것은 아니었다. 이런 일은 일상생활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사소한 고뇌의 일부분이며 K가 지금 추구하고 있는 것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대체로 K가 이 곳으로 온 것은 명예롭고 편안한 생활을 보내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이리하여 K는 여관집에서 심부름 가려고 생각했다가 남선생이 명령을 변경했기 때문에, K는 곧 우선 방을 치우고 여선생이 어린이들과 함께 들어올 수 있도록 하려고 했다. 그런데 방안을 치우는 일은 굉장히 빨리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왜냐하면 이어서 바로 점심 식사를 가져오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남선생은 벌써 무척 배가 고프고 목이 말랐다. K는 말씀대로 다 하겠다고 장담했다. 잠시 동안 남선생은 K가 빨리 침대를 치우고 체조 기구를 제자리에다 정돈해 놓고 재빠르게 방을 쓸어내는 것과 프리다가 교단을 씻고 닥고 문지르는 광경을 쳐다보고 있었다. 두 사람이 열심히 일하고 있는 모양을 보고 남선생은 자못 만족을 느끼는 것 같았다. 남선생은 또 문 앞에다 난로에 땔 장작을 한 무더기 준비하도록 주의시키고__그는 K를 창고로 보내고 싶지는 않았지만__곧 다시 돌아와서 현장을 살피겟다고 위협하며 어린이들이 있는 쪽으로 가버렸다. 잠시 동안 두 사람은 잠자코 일하고 있다가, 드디어 프리다는 대체 왜 남선생에게 그렇게 고분고분하게 복종하느냐고 K에게 물었다. 그것은 확실히 동정해 주고 염려해 주는 질문이었으나, K는 처음에 프리다가 자기를 남선생의 명령이나 난폭한 행동에서 수호해 주겠다고 약속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거의 잘 안 된 것을 생각하고는 일단 소사가 된 이상 직무를 이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간단하게 대답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입을 다물어 버렸다. 나중에 K는__그 때까지 상당히 오랫동안 프리다가 아주 걱정에 잠겨서 근심하고 있는 것 같았다는 점, 그것이 K는 지금 잠간 이야기했을 뿐인데 생각났다__장작을 날라들이면서 대체 무얼 생각하고 있느냐고 그녀에게 터놓고 물었다. 그녀는 천천히 얼굴을 쳐들고 그를 쳐다보면서, 두드러지게 확실한 일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안주인 일과 안주인이 말한 여러 가지가 참말이었던 사실, 그저 그런 일을 두서없이 생각하고 있을 따름이라고 대답했다. K에게 재촉을 받고서 몇 번이나 거부한후에 비로소 그녀는 전보다 더 자세한 대답을 했다. 그녀는 일하는 손을 쉬지 않았는데, 그것은 일에 열중하기 때문이 아니라__그 증거로써 그 동안 일은 조금도 진척되지 않았으니__그러고 있으면 K의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프리다의 이야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즉 그녀는 K가 한스와 이야기하는 소리를 처음에는 침착하게 듣고 있었다. 그리고 K의 몇 마디 말을 듣고 깜짝 놀라서 그 말의 뜻을 명백히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 후 계속해서 K의 말 속에 안주인이 프리다에게 해 준 경고의 증명이 될 만한 것을 듣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 경고를 프리다는 지금까지 결코 정당하다고 믿지 않고 있었다. K는프리다의 막연한 표현에 기분이 상했고, 눈물겹게 호소하는 것 같은 소리를 듣고 나서 ㄱ동했다기보다는 초조해져서__무엇보다도 지금 또 안주인이 적어도 기억을 통해서 그의 생활에 관계해 왔기 때문이다. 기억을 통해서라고 하는 이유는 안주인은 사실 지금까지 거의 개인적으로는 K의 생활에 산섭해서 성공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__팔에 안고 온 장작을 내동댕이 치고 나서 마룻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진지한 말투로 똑똑히 해명해 달라고 그녀에게 요청했다. 그래서 프리다는 다음과 같은 말을 시작했다. "벌써 여러 차례나 처음부터 주인 아주머니는 제게 당신을 의심하게 하려고 해써 왔어요. 그러나 당신이 거짓말쟁이라고 주장한 것은 아니에요. 절대로 그렇지는 않아요. 주인 아주머니 말은 이래요. 즉 당신은 어린아이처럼 솔직한 사람이라고, 그러나 당신은 우리들과는 아주 사람이 다르니까 설사 당신이 솔직하게 말한다 하더라도 우리들은 도저히 당신의 말을 믿을 수 없고, 따라서 좋은 친구라도 있어서 일찌감치 우리들을 구해 주지 않는 한 우리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당신의 말을 믿게 되기까지에는 쓰라린 경험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고, 주인 아주머니는, 주인 아주머니의 말을 그대로 되풀이한다면__당신의 '모략을 알았다'는 거지요. '이제는 K씨에게 속아 넘어가지 않아요. K씨가 아무리 모르는 체해도 안 돼요' 하고 말했어요. 그러면서도 당신은 뒤에 무얼 감추지 않는 사람이라고 늘 되풀이해서 말했지요. 그리고 이런 말도 하더군요. 언제든지 기회가 있으면 단신의 말씀을 잘 들어 보라고. 그것도 단지 건성으로가 아니라 귀를 기울이고 잘 들어 보라고. 주인 아주머니는 그 이상 더 말을 하지 못했지만 동시에 제게 관해서 다음과 같은 정보를 들려주더군요. 당신이 제게 접근해 온 것은__주인 아주머니는 이런 수치스러운 인사를 썼지요__단지 제가 우연히 당신의 눈에 띄어서 마음에 들었다 뿐이라고요. 게다가 당신이 목로집 색시라는 것은 손님이 손을 내밀기만 하면 누구에게나 희생되게 마련이라고 잘못 생각했기 대문이라는 거예요. 그뿐더러 주인 아주머니가 신사관 주인에게서 들은 바에 의하면, 당신은 그 당시 어떤 이유로 신사관에 묵으려고 했으며 그러자면 아무래도 저를 이용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것이에ㅇㅅ. 이것만으로도 그 날 저녁 당신이 저를 애인으로 삼을 만한 동기로서는 충분하다고 생가가한다는 거예요. 그러나 우리들 사이가 그 이상 발전하는 데는 어떤 다른 원인이 있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 원인이 클람이라는 거에요. 주인 아주머니는 당신이 클람에게서 무엇을 요구하는지 알고 있다고는 주장하지 않았어요. 즉 당신은 저를 알기 전에는 클람을 만날 희망이 전혀 없었지만, 저를 알게 된 후로는 멀지 않은 장래에 참말로 떳떳하게 클람 앞에 나타나는 확실한 수단 방법을 저를 통해서 손아귀에 넣었다고 생각하고 계시는데, 그것이 그전과 다른 차이점이라는 거예요. 당신이 저를 알기 전에는 여기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었다고 당신이 말씀하셨을 때--물론 그 이야기는 별로 깊은 근거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단지 지나가는 말로 슬쩍 입에서 새어나온 데 지나지 않아/ㅆ지만--저는 적이 깜짝 놀랐어요. 아마도 그와 독같은 이야기를 주인 아주머니도 입 밖에 낸 것으로 기억하고 있어요. 또 주인 아주머니는 이렇게 말했어요. K씨는 프리다를 알게 된 후 비로소 목적을 의식하게 됐다구요. K씨가 그렇게 된 원인으로는 K씨는 클람의 애인 프리다를 손아귀에 넣었으니까, 최고 가격이 아니면 함부로 내놓지 않는 담보를 확보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K씨 자신이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요. 이 최고 가격, 즉 그 금액에 대해서 클람과 교섭하는 것이 K씨의 단 하나의 과제라고요. K씨는 프리다에 대한 일이라면 서슴지 않고 다른 사람의 비위에 맞추는데, 다만 그 금액에 관해서는 아주 고집을 부린다고요. 주인 아주머니는 대충 이런 요지의 이야기를 했어요. 그래서 당신은 제가 신사관에서 솔직히 실직한 것이라든지 교반관을 나오지 않으면 안 되었던 일, 그리고 어려운 소사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까지도 무관심한 태도를 취하시는 거예요. 당신은 조금도 애정이라고는 없을 뿐더러 저를 위해서 시간도 내주지 않아요. 저를 조수 두 사람에게 맡긴 채 질투하지도 않고, 제가 당신에게 무슨 가치가 있느냐 하면, 단지 클람의 애인이라는 것분이에요. 당신은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저로 하여금 클람을 잊지 않도록 하는가 하면, 나중에 최후 결정적인 시기가 닥쳐왔을 때 제가 너무나 맹렬히 반항하지 못하도록 애쓰시는 거지요. 그처럼 냉정하신 당신이 주인 아주머니와는 곧잘 다투시더군요. 당신은 저를 당신에게로 빼앗을 있는은오로지지주인아주머니뿐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주인 아주머니와 끝까지 먕렬히 다툰 다음 저를 데리고 교반관을 나오신 거지요. 그러면서도 어떤 일이 있더라도 제가 당신의 소유물이고, 제가 책임을 지고 제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한, 즉 마음이 변할 염려는 없을 것이라는 점에 관해서는 굉장히 자신이 있으신 모양이지요. 당신은 클람과의 면담을 현금을 거래하는 장삿속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계세요. 그리고 당신은 여러 가지 가능한 경우를 계산에 넣고 계셔요. 만일 기대하는 가격을 얻을 가능성이 있을 때는 무슨 짓이라도 할 작정이지요. 클람이 저를 바란다면 서슴지 않고 저를 내줄 것이며, 그가 당신더러 제 옆에 가 있으라고 하면 제 곁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고 또 그가 저를 버리라고 요청하면 당신은 그대로 저를 차 버릴 것이에요. 뿐만 아니라 당신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연극을 꾸미고도 남을 거예요. 그 때에 클람이 만일 태연한 태도를 취하면 클람과 싸움을 걸겠지만, 그 방법으로는 당신이 하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구태여 드러나게 하고 그런 하찮은 사람에게 애인을 빼앗겻다는 사실을 쳐들어서 클람으로 하여금 무색케 하려는 거지요. 또 다른 방법으로는 제가 그 사람에 대해서 한 사랑의 고백을__저는 사실 사랑의 고백을 했지만__당신이 그 사람에게 전하고, 물론 당신의 희망하는 금액을 받는다는 조건으로 저를 다시 받아들여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지요. 그래도 어쩔 수 없게 되면__주인 아주머니도 그런 결론을 내렸지만__당신의 지금까지의 추측, 희망, 클람에 대한 공상, 그리고 클람과 저와의 관계에 대한 상상, 그런 것이 모두 착각이었다고 깨닫게 되면 그 때는 그 때는 제 지옥이 시작되는 거지요. 그렇게 되면 저는 정말로 당신의 단 하나의 소유물이 되니까요. 당신은 그 소유물에 의지하는데 그 소유물이 가치가 없다는 사실은 이미 증명되었으며, 다신은 그 소유물을 자기에 맞도록 취급하시겠지요. 당신은 제게 대해서 소유자로서의 감정 이외에 아무런 감정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에요." 귀를 기울이고 입을 한일자로 꼭 다물고 자못 긴장한 상태로 K는 듣고 있었다. 아래에 깔고 앉았던 장작이 떼굴떼굴 굴러 나와서 그는 하마터면 마룻바닥 위에 미끄러질 뻔했는데 조금도 그것에는 정신이 팔리지 않았다. 간신히 그는 일어서서 교단 위에 걸터앉아 프리다의 손을 잡았는데, 그녀는 살며시 손을 빼려고 했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당신과 주인 아주머니의 의견을 똑똑히 분간할 수 없는 대목잉 있어." "이것은 전부 주인 아주머니의 의견이에요." 프리다는 말했다. 그녀는 이어서, "저는 주인 아주머니를 존경하고 있기 때문에 아주머니 말씀이라면 무엇이든 귀를 기울였어요. 제가 그분의 의견을 전적으로 거부한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에요. 그분의 말은 너무나 한심스러웠고 우리들 두 사람에 대한 이해서이 아주 형편없는 것 같았어요. 오히려 제게는 그분이 말한 것과 정반대의 일이 옳은 것처럼 느껴졌어요. 저는 우리들이 첫날밤을 지낸 후의 저 우울한 아침을 생각했어요. 당신이 제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이제 모조리다 수포로 돌아가 버렸다는 눈초리를 보였던 그 장면을 상상했어요. 그리고 사실 저는 열심히 이릉ㄹ 하는데도 당시느이 도움이 되기는커녕 방해만 놓고 있는 형편인 것을 절실히 느꼈어요. 저 때문에 주인 아주머니는 당시느이 원수가, 그것도 강적이 되어 버렸어요. 당신은 지금도 그분을 여전히 업신여기고 있지만요. 당신은 저를 여러 가지로 걱정해 주시고 저를 위해서 당신은 일자리를 구하려고 싸우지 않으면 안 되었을 뿐더러 면장에 대해서 불리한 입장에 서게 되었으며, 또 학교 선생에게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조수들에게까지 약점을 잡혀서 완전히 그들의 손아귀에 들게 되어 버렸어요. 그런데 가장 나쁜 것은 당신이 저 때문에 아마도 무례한 짓을 했으리라는 것이에요. 당신은 클람에게로 가려고 애썼지만, 그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를 달래고 화해시키는 허무한 노력에 지나지 않았어요. 주인 아주머니는 이런 사정을 틀림없이 저보다도 잘 알고 있으니까 제게 귀띰해서 제가 너무나 심한 후회를 하지 않도록 저를 염려해 준 것이라고 혼자 생각했어요. 친절하지만 헛수고였어요! 당신에 대한 저의 애정은 저로 하여금 모든 난관을 견디어 내게 해 주었어야만 했으며, 끝내는 저의 애정의 힘으로 당신도 전진했어야 됐을 거예요. 이 마을이 아니면 어디 다른 곳에서라도 말이지요. 이 애정의 힘은 벌써 증명이 끝난 셈이고, 이 힘을 당신은 바르나바스의 가족들에게서 구했어요." "그러면 그것이 그 당시의 당신의 생각이었던가? 그런데 그 후 그 생각이 어떻게 변했지?" 하고 K가 물었다. "저도 모르겠어요." 하고 프리다는 말하고 그녀의 손을 잡고 있는 K의 손을 보았다. "아마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을 거예요. 당신이 이처럼 제 옆에 계시고, 이렇게 침착하게 물으시면, 저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나 사실은......" 그녀는 K의 손을 뿌리치고 K를 마주보며 똑바로 앉아서 자기 얼굴을 가리지도 않고 울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얼굴을 그에게로 돌리고 있었는데, 그 모양은 마치 자기 자신 때문에 울고 있는 것이 아니니까 아무것도 감출 것이 없으며, 단지 K에게 배신다ㅇㄴ 것이 슬퍼서 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따라서 K에게 우는 꼴을 보여 주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먼저 꺼낸 말을 이어서, "그러나 사실은 당신이 한스와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다음부터 모든 사정이 달라졌어요. 당신은 아주 순진한 것처럼 시치미를 떼고 말을 끄집어내고, 가정 사정과 그 밖의 여러가지 일을 이것저것 물으셨어요. 마치 당신이 아주 다정스러운 태도로 저 술집에 들어오셔서 천진난만하고 열렬하게 내 눈초리를 찾으시던 그 모습을 제 눈앞에 그려 보는 것 같았어요. 그 때와 조금도 다름없었어요. 그래서 저는 단지 주인 아주머니가 여기 있어서 당신의 말을 듣고도 자기의 의견을 고집하려고 한다면 참 재미있으리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그 다음에 갑자기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당신이 무슨 목적으로 한스오 이야기하셨는지 깨닫게 됐어요. 당신은 동정 어린 말로써 얻기 어려운 그 아이의 신용을 획득했는데 그것은 방해를 받지 않고 당신의 목표를 향해 돌진할 수 있기 위한 것이었어요. 당신의 목표는 말씀을 듣고 있는 동안 점점 똑똑해졌지만, 바로 브룬스빅크 부인이었어요. 당신은 겉으로는 부인을 염려하고 계신 것처럼 말씀하셨지만 그 이야기를 들어 보니까 당신은 자기 자신의 일 외에는 염두에 두시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당신은 부인을 획득하기 전에 벌써 부인만 기만하셨어요. 당신의 말씀을 듣고 저의 과거뿐만이 아니라 저의 미래가 어떤 것인가 하는 것까지도 알 수 있었어요. 제게는 마치 이렇게 느껴졌어요. 즉 주인 아주머니가 제 옆에 앉아서 제게 모든 사정을 설명한다, 저는 있는 힘을 다해서 주인 아주머니를 뿌리치려고 한다, 그런데 이런 노력도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게 된다, 그런데 그 때 사기당한 것은 사실은 전혀 저와 다른 사람으로__저는 결코 사기당하지는 않았어요__알지도 못하는 부인이었어요. 그래도 저는 다시 용기를 내서 한스에게 무엇이 되겠는가고 물어 보았더니, 한스는 당신과 같은 사람이 되겠다고 대답했어요. 즉 그 때 한스는 벌써 완전히 당신의 소유가 되어 버린 것이에요. 이쯤이면 좋지 못한 일에 이용당한 이 착한 한스와 그 당시 술집에 있었던 저와는 대체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요?" "당신의 말은 전부." 하고 K는 말했는데, 비난에 익숙해지는 데 따라서 침착한 태도로 되돌아갔다. "당신이 한 소리는 어떤 의미에서는 옳아. 확실히 틀리지는 않았자만 단지 적개심이 깃들여 있어. 당신이 아무리 자기 생각이라고 믿고 있어도 그것은 나의 원수인 주인 아주머니 생각이야. 그래서 나는 안심했어. 그러나 그 생각에는 교훈적인 점도 많을 뿐더러 또 그 밖에도 주인 아주머니에게서 여러 가지로 배울 점이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주인 아주머니는 다른 일에도 나를 소중히 여겨 주지 안았지만, 지금처럼 그런 심한 소리도 내게 하지 않았어. 그녀가 당신에게 이런 무기를 맡긴 것은 확실히 당신이 이 무기를 내가 특별히 곤란하고 아슬아슬할 때에 사용할 것을 바라고 있는 거야. 만일에 내가 함부로 당신을 학대했다면 주인 아주머니도 똑같이 당신을 핫대한 것이 된단 말이야. 그런데 프리다, 생각을 좀 해 보란 말이야. 만사가 꼭 주인 아주머니가 말하는 그대로라고 하더라도 단지 대단히 형편이 나쁜경우, 즉 당신이 말하는 그대로라고 하더라도 단지 대단히 형편이 나쁜 겨우, 즉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경우에 한해서만 타당하다고 말할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되면, 또 그 경우에 한해서만 타당하다고 말할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되면, 또 그 경우에 한해서만 내가 당신을 미끼로 폭리를 보아서 수지를 맞추려고 지독한 타산과 모략으로 당신을 소유했다고 할 수 있을 거야. 그러고 보면, 내가 당신의 동정심을 자아내기 위해서 그 당시 올가와 팔을 끼고 당신 앞에 나타났다는 것도 아마 내 모략의 하나라고 할 수 있지 않겠어. 다만 주인 아주머니가 내 죄과를 열거할 때 이것을 게산에 넣는 것을 잊었을 따름이야. 그러나 이렇게 극단의 경우가 아니고 만일에 교활한 맹수가 당신을 빼앗아 버린 것이 아니라 내가 당신에게 다가갔던 것처럼 당신의 내게로 다가와서 두 사람이 다 자기 자신을 잊고 상대방을 발견했다고 하면, 프리다, 그 때는 대체 어떨까? 그렇게 되었을 때는, 나는 나 자신의 일과 당신의 일은 조금도 가릴 수 없고, 단지 적개심을 품고 있는 주인 아주머니만이 그것을 구별할 수 있을 뿐이지. 이 원칙은 모든 것에 해당될 뿐만이 아니라 심지어는 하스의 경우에도 해당된다 말이야. 여하튼 당신은 나와 한스의 이야기를 판단하는 데 있어서 당신이ㅣ 얌전한 마음씨를 가졌기 때문에 일을 과장해서 생각하는 거야. 왜냐하면 한스의 의도와 나의 의도가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양자 사이에 대립과 비슷한 상태가 벌어지는 데까지는 가지 않았으니까 말이지. 거기다가 우리들 부부 사이의 의견 대립과 불화를 한스가 눈치채지 못하고 있을 리 없지 않나. 만일 당신이 한스가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약삭빠른 어린애의 가치를 대단히 낮게 평가하는 거야. 그리고 가령 한스가 모든 일을 눈치채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해를 입을 수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이며, 또 그렇기를 나는 바라고 있어." "일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참 어려워요." 프리다는 말하고 한숨을 쉬었다. 이어서, "저는 어쩌면 당신에게 의심을 품은 일이 없는지도 모르겠어요. 만일에 의심 같은 감정이 주인 아주머니에게서 제게로 전염되었다고 하면, 저는 그것을 기꺼이 털어 버리겠어요. 그리고 무릎 꿇고 당신의 용서를 빌겟어요. 제가 아무리 욕설을 퍼붓는 여자라고 하더라도, 이것만은 쭉 실행해 왔어요. 그러나 당신이 비밀로 감추고 있는 사실이 많다는 점에느 변함이 없어요. 당신은 돌아오셔서 도 나가시는데, 어디서 오셔서 어디로 나가시는지 저는 몰라요. 아까 한스가 문을 노크했을 때 당신은 바르나바스의 이름을 부르셨어요. 저는 그 이유도 알 수 없었으나 당신은 그 때 이 지긋지긋한 이름을 아주 정답게 부르셨지만, 단 한번만이라도 제 이름을 그렇게 정답게 불러 주셨으면 하고 생각해요. 당신이 저를 조금도 믿어 주시지 않는데 어찌해서 제가 당신에게 의심을 품어선 안 될까요? 저를 믿지 않는다는 것은 절를 전적으로 주인 아주머니에게 맡겼다는 증거예요. 당신의 태도는 주인 아주머니의 말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 같아요. 무엇디든 다 그렇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에요. 당신이 하나에서 열까지 주인 아주머니의 말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그렇게 주장하려고는 하지 않아요. 좌우간 당신은 저 때문에 조수들을 내쫓으셨지요? 아아, 당신의 모든 행동이나 말씀 중에서, 가령 그것이 저를 괴롭히즌 것일지라도, 저를 위한 좋은 핵심점을 발견하려고 제가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그것을 알아 주시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무엇보다도 프리다, 나는 당신에게 조금도 감추지 않고 있어. 주인 아주머니는 나를 무척 미위하고 내게서 당신을 빼앗으려고 노리고 있어! 그뿐더러 얼마나 비겁한 수단을 쓰는지 몰라! 프리다, 당신은 얼마나 주인 아주머니에게 양보했느냐 말이야! 내가당신에게 그 무엇이라도 감추고 있단 말인가? 내가 클람을 만나고 싶어하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지. 당신이 나를 도와서 클람에게 면회시켜 주지 못하고, 따라서 나 혼자의 힘으로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당신은 잘 알고 있을 텐데. 지금까지 내가 그것에 성공하지 못한 사실도 당신은 알고 있을 거야. 이처럼 쓸데없는 시도에 대한 이야기만으로도 벌써 나는 자존심을 상실했는데, 이중으로 내 자존심을 상하게 할 작정인가? 클람의 썰매의 문 옆에서 벌벌 떨면서 오후의 기나긴 시간을 소비해 가며 클람을 기다렸는데, 기다리다가 맥이 빠진 이야기라도 자랑산아서 하란 말인가? 이와 가ㅏ은 일은 생각 안 해도 된다고 기뻐하면서 나는 당신에게로 빠릴 돌아온 거야. 그런데 당신은 기다리고 있다가 이런 싫은 일을 억지로 모두 내게 상기시키려고 하는 거지. 그리고 바르나바스라고? 그래 나는 바르나바스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어. 그는 클람의 심부름꾼으로 쓴 일은 한번도 없어." K의 말이었다. "또 바르나바스라고요!" 하고 프리다가 외쳤다. "저는 그가 좋은 심부름꾼이라고는 생각지 않아요." "아마도 당신의 말이 옳을지도 몰라. 그러나 그는 내게 파견된 단 한 사람의 심부름꾼인 걸." 하고 K가 말했다. "그렇다면 더욱더 나빠요. 그러니까 한층 더 그에게 조심하지 않으면 안돼요." "유감스럽게도 그는 지금까지 한번도 그럴 만한 동기를 주지 않았어." 하고 K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이어서, "그가 오는 것은 거의 드문데다가 가지고 오는 소식도 신통치 못해. 단지 그것이 직접 클람에게서 나왔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거야." "그렇지만 클람은 결코 당신의 목표가 아니죠? 아마도 그 점이 제게는 가장 불안스러운 것 같아요. 당신은 언제나 저를ㄹ 젖혀놓고 억지로 클람과 면회하시려고 했는데 그것이 나빠요. 그런데 지금은 당신이 클람에게서 벗어나고 있는 듯 보이는 것이 훨씬 더 나쁜 일이에요. 그것은 주인 아주머니가 전혀 예상요 하지 못했던 일이에요. 주인 아주머니의 말에 따르면 저의 행복은__의심스럽기는 하지만, 그러나 사실 확실히 맛보고 있는 행복은__당신이 클람에 대한 희망이 수포로 돌아갔다고 결정적으로 깨닫는 날 끝나는 거예요. 그런데 당신은 벌써 그런 날이 닥쳐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진 않아요. 갑자기 어린애가 들어오니, 당신은 그애의 어머니를 손아귀에 넣으려고 그애와 다투기 시작하는 거예요. 마치 생존하는 데 필요한 공기를 얻으려고 하는 것처럼." 하고 프리다가 말했다. "당신은 내가 한스와 이야기한 내용을 죄다 알아들었구먼, 사실 그래, 그러나 당신의 과거의 모든 생활이 송두리째 깊은 심연 속에 바져 버리고(물론 주인 아주머니는 제외하고 말이야. 주인 아주머니는 떠밀려서 함게 심연속으로 추락당할 여자는 아니니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투쟁을 겪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 훨씬 밑바닥부터 올라온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는 사실, 그런 사실들을 당신은 잊어버린 거싱 아닐까? 조금이라도 희망이 있는 것은 모조리 될 수 있으면 이용해 봐야 할 게 아닌가? 내가 여기에 도착한 날, 헤매던 끝에 라제만에게로 잘못 찾아갔더니 그 부인은 성에서 왔다고 스스로 말했어. 그렇게 말하는 사람에게 충고나 원조를 구하는 것보다도 더 절실한 일이 있었을까? 주인 아주머니가 클람과 만나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장애를 아주 잘 알고 있다면, 이 부인은 아마도 거기에 이르는 길을 알고 있을 거야. 자기 스스로 그 길을 통해서 성에서 내려왔으니까." K는 이렇게 말했다. "클람에게로 이르는 길 말인가요?" 하고 프리다가 물었다. "물론 클람에게로 통하는 길이지. 대체 그 밖에 어디로 가는 길이 있어 하고 K가 말했다 그리고 그는 벌떡 뛰어 일어나더니, "자아, 일 분 일 초도 우물쭈물할 수 없어. 점심 식사를 가지로 갈 시간이 다 되었으니까!" 하고 외쳤다. 프리다는 K에게 여기 있어 달라고 지나칠 정도로 간청했다. 마치 그가 여기에 남아 있어야만 비로소 그가 지금 위로해 준 말이 입증된다는 눈치였다. 그러나 K는 프리다에게 남선생을 상기시키고 지금 당장이라도 천둥처럼 요란한 소리로 활짝 열릴지도 모르는 문쪽을 가리켰다. 그리고 곧 돌아오겠다고 약속하고, 자기가 돌아와서 하겠으니 염려하지 말고 난로에 불을 지피지 않아도 좋다고 그녀에게 말했다. 드디어 프리다는 잠자코 그 말에 따랐다. K가 밖으로 나와서 눈 위를 터벅터벅 걸어갔을 때__훨씬 전에 길 위에 쌓인 눈을 치웠어야만 되었는데, 여태껏 치워지지 않은 꼴을 보고 깜짝 놀랐다__K는 울타리 옆에 조수 하나가 죽은 사람처럼 녹초가 되어서 축 늘어진 채로 달라붙어 있는 꼴을 보았다. 이젠 한 사람밖에 눈에 띄지 않는데 또 하나는 어디러 갔을까? 그러고 보면 적어도 한 사람밖에 눈에 띄지 않는데 또 하나는 어디로 갔을까? 그러고 보면 적어도 한 사람만은 K의 압력에 못견뎌서 내빼 버렸는가? 물론 뒤에 남은 조수는 아직 상당히 열성을 띠고 있었다. 이 조수는 K의 모습을 보자맞 숫기 좋게 팔을 쑥 내밀기도 하고, 안타까운 듯이 눈을 부릅뜨기도 했는데, 그 모양만 보아도 그 열성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자의 고집은 찬양할 만한데!" 하고 K는 혼자 중얼거렸으나 물론 이렇게 덧붙여서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고집을 부리다가는 울타리에서 얼어 죽는다니까!" 그러나 K는 단지 노골적으로이 조수에게 주먹을 쑥 내밀고 가까이 와서는 안 된다고 위협하는 태도로 나왔을 뿐이었다. 그러자 조수는 겁을 집어 먹고 뒤로 슬슬 물러갔다. 그 때 마침 프리다가 창문을 열었는데, 그것은__이미 K와 상의한 일이었지만__불을 피우기 전에 방안 공기를 바꾸려고 한 것이다. 조수는 곧 K를 단념하고 은근히 매력을 느끼는 것처럼 가만히 창 옆으로 다가섰다. 프리다는 조수에 대해서는 정다운 표정으로 그리고 K에 대해서는 어쩔 줄 모르는 나처한 표정으로 얼굴을 찌푸리더니, 위에 있는 창문에서 손을 흔들었다__그러나 그 조수는 손을 흔드는 것을 보고 당황해서 창으로 접근하기를 주저하는 기새은 없었다. 그 때 프리다는 성급리 덧창문을 닫아 버렸다. 그러나 창문 옆을 떠난 것은 아니고 창문 뒤에서 문고리를 잡은 채, 고개를 갸우뚱 한쪽으로 기울이고, 눈울 크게 부릅뜨고 어색한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그녀는 자기가 그런 태도를 취하면 조수들 무섭게 하기느 커녕 오히려 자기한테 마음이 끌리게 하는 결과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가? 그러나 K는 그 이상 두돌아보지 않았다. 그보다는 차라리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갔다가 이왕이면 빨리 돌아오려고 생각했던 것이다. 14 마침내__어둠이 꽤 짙어졌다. 늦은 오후였다__K는 학교 정원의 길위에 쌓인 눈을 쳐서 길 양쪽에 높이 쌓아 올리고 단단하게 굳으라고 두드렸다.이것으로써 오늘 이른 끝난 셈이다. 그는 학교 정원의 문 옆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벌써 몇 시간 전에 그조수를 쫓아 버렸다. 상당히 멀리까지 쫓겨갔다. 그 조수는 그 때 정원과 오막살이집 사이의 어딘가에 숨어 버렸는데 찾아낼 수도 없으며 그 후로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프리다는 집 안에 있었다. 세탁을 하고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여전히 기자의 고양이를 씻기고 있을 것이다. 기자가 프리다에게 이 일을 맡긴 것은 기자로서는 대단히 신뢰하고 있다는 표시를 나타낸 것이었다. 물론 그것은 구미에도 당기지 않는 부적당한 일이었다. 여러 가지로 일을 게으리 한 뒤이기에 기자를 위해 베풀어 줄 수 있는 기회는 모조리 이용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 만일 그렇지 않다면 K는 이런 일을프리다가 맡는 것을 보고 그저 잠자코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자는 K가 다락방에서 어린애 목욕통을 가져와서 물을 데우고, 나중에는 고양이를 조심스럽게 목욕통 속에 넣는 것을 보고 만족스럽게 쳐다보았다. 그리고 기자는 고양이를 완전히 프리다의 손에 맡겨 버렸다. 왜냐하면 K가 이 마을에 도착한 첫날 저녁에 만난 일이 있었던 쉬바르처가 찾아와서, 그날 밤의 일로 해서 생긴 공포의 감정과 소사에 대한 멸시의 감정이 섞인 그런 표정으로 K에게 인사한 다음, 기자와 함께 다른 교실로 가버렸기 때문이다. 지금도 두 사람은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교반관에서 K가 들은 소문에 의하면 쉬바르처는 집사의 아들인데 기자에게 반해서 벌써 오랫동안 마을에 살고 있으며 여러 가지 연고 관계를 통하여 마을에서 조교원이라는 자리를 얻었다. 그러나 어떻게 그 직책을 완수하고 있느냐 하면, 기자의 수업 시간에는 결석한 적이 없고 아이들 사이에 섞여져 아동용 의자에 앉아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__차라리 기꺼이__기자의 발치에 또는 교단에 앉아 있거나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조금도 수업의 방해는 되지 않았다. 어린이들은 벌써전부터 이 습관에 젖어 있었다. 이처럼 익숙해진 것은 쉬바르처가 어린이들에 대해서 애정도 이해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 어린이들과 거의 말도 하지 않고 단지 기자의 체조 시간만을 맡고 있었으며 그 밖에는 기자 가까이에서 기자와 같은 공기를 마시고 기자의 체온을 느끼면서 생활한다는 것으로써 만족하고 있었던 만큼 아마도 더욱 그렇게 되기가 쉬웠는지도 모르겠다. 이 사람의 가장 큰 기쁨은 기자 옆에 앉아서 어린이들의 연습장을 고쳐 주는 일이었다. 오늘도 두 사람은 이 일을 하고 있었다. 쉬바르처는 공책을 산더미처럼 가져왔으며 남선생은 언제나 자기 책임량까지도 이 두 사람에게 시켰다. 그래서 아직 밝은 동안까진 이 두 사람이 창가의 작은 ㅐ상 옆에 앉아서 머리를 서로 맞대고 함께 일하고 있는 광경이 보였으나, 이젠 거기에 촛불 두 개만 가물거리고 있는 것이 눈에 띌 뿐이었다. 기자와 쉬바르처, 이 두 사람을 맺어 주는 것은 진지하고도 말없는 사랑이었다. 이 사랑에서 주도권을 잡고 이끌어 나가는 것은 바로 기자 쪽이었다. 그녀의 둔하고도 답답한 성격은 난폭해져서 모든 한꼐를 넘는 일이 많았으나, 그러나 그 장본인인 그녀도 다른 경우에 다른 사람이 비슷한 짓을 했으면 결코 그것을 참고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활발한 쉬바르처도 그것에 보조를 맞추어서 천천히 걷고, 느리게 말하고, 되도록 침묵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되었다.그러나 그에게는 단지 기자가 잠자코 자기 눈 앞에 있다는 사실만을로도 그에 대한 모든 보상이__이것은 누가 보아도 분명한 일이었지만__충분히 되고도 남았다. 그런데 기자는 조금도 그를 사랑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좌우간 둥글고 회색빛의, 마치 한번도 깜박거리지 않는 것 같고 오히려 동공 속에서 회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녀의 눈은 그런 의문에 대해서는 아무런 해답도 주지를 못했다.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그녀가 별 이의도 없이 쉬바르처를 달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집사의 아들한테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얼만 영광스러운 일인가 분명히 이해하지 못해ㅆㄹ 것이다. 쉬바르처가 눈초리로 그녀의 뒷모습을 쫓거나 말거나 언제나 다름없이 침착하고 원기 왕성하게 풍만한 자태로 걸어 다녔다. 여기에 대해서 쉬바르처는 마을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한결같은 희생을 그녀에게 바쳤던 것이다. 그를 데려가려고 늘 찾아오는 아버지의 심부름꾼을, 그는 대단히 분개해서 쫓아 돌려보냈다. 마치 그런 심부름꾼 때문에 서의 일이라든지, 자식된 의무를 순간적이나마 상시하는 것이 그의 행복을 몹시 그리고 치명적으로 방해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에게는 사실 자유로운 시간이 얼마든지 있었다. 왜냐하면 기자가 그 사람 앞에 나타나는 것은 보통 수업시간과 연습장을 볼 때뿐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물론 그녀의 탸산에 나온 것이 아니라 그녀가 안락한 생활을, 따라서 단지 자기 혼자 있는 것을 무엇보다도 좋아했으며 집에 남아서 아주 편안한 기분으로 기다란 의자 위에__고양이가 있었지만 거의 움직일 수 없었으니까 조금도 방해가 되지 않았다__드러누울 수 있을 때면 아마도 가장 행복했었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쉬바르처는 하루의 대부분을 일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냈지만 그것이 또한 그에게는 좋았다. 왜냐하면 그럴 때면 언제나 기자가 살고 있는 '사자의 거리'라는 곳으로 찾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이고 사실 또 그는 그 기회를 썩 잘 이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럴 때면 그는 기자가 살고 있는 다락방으로 올라가서 언제나 잠겨 있는 문 앞에서 귀를 기울이고 형편을 갈펴보곤 했는데, 방안이 예외없이 알 수 없을 정도로 아주 고요한 것을 확인하자 성급히 그 곳을 떠나 버리는 것이다 하여튼 이런 결과로써, 그도 가끔__그러나 기자와 함께 있을 때는 결코 그런 일은 없지만__순간적으로 다시 고개를 쳐드는 관료적인 거만성을 우습게도 폭발시켰다. 그런데 그 관료적인 거만성이라는 것은 현재의 그의 신분에는 당치도 않은 것이었다. 그럴 때면 물론 흔히 그다지 좋은 결과를 맺지 못했다. 이것은 사실 K도 경험한 바였다. 적어도 교반관에서는 화제에 오르는 것이 존경할 만한 일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우스운 일인 경우에도 모두들 일종의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쉬바르처 이야기를 했는데, 여기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기자까지도 한몫 기어서 이 존경하는 마음의 은전을 받게 되었다. 그렇지만 조교원인 쉬바르처가 K와 비교해서 굉장히 뛰어났다고 생각한다면 옳지 못한 일이다. 그런 우월성이란 존재하지도 않는다. 학교 소사라는 존재는 교원에게 있어서 더군다나 쉬바르처와 같은 교원에게 있어서는 대단히 중요한 인물이고, 이 사람을 멸시해도 벌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일에 신분상 아무래도 경별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을 수 없는 때라도, 적어도 이 사람에게 거기에 대한 상당한 답례를 가지고 참아 넘길 수 있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 K는 때로는 그렇게 생각해 보았다. 그뿐더러 쉬바르처는 그 첫날밤 이래 K에게 빚을 지고 있는 형편이다. 그 다음날 이후의 경과를 보면 쉬바르처의 이런 대접은 본래 정당하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 빚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동시에 잊어서는 안 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쉬바르처의 그 대접이 아마도 거기에 따르는 모든 것에 대하여 나아가는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아주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쉬바르처 덕분으로 이 곳에 도착한 처음부터 벌써 관청의 주의가 진적으로 K에게 쏠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 당시에 K는 아직도 전혀 이 마을의 사정을 모르고, 아는 사람조차 없는데다가 도망칠래야 도망칠 곳도 없을 뿐더러, 머나먼 기릉ㄹ 거러왔기 때문에 몸이 피곤해서 녹초가 되다시피 축 늘어졌고 아무에게도 의지할 길 없이 저 짚으로 만든 요 위에 드러누웠으니. 관청의 손이 K에게로 뻗쳐와도 전혀 막을 도리조차 없었을 것이다. K의 도착이 하룩밤이라도 늦었더라면 만사가 다른 모양으로, 즉 아주 요용히 반은 비밀리에 진행되었을 것이다. 좌우간 누구 하나 K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을 것이며 의심도 품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그를 방랑하는 놈이라고 생각하고 하룻밤쯤 자기 집에 재우는 데도 까다롭게 굴지는 않았을 것이다. 쓸모도 있고 신용할 만한 젊은이라는 평을 받았을 것이며, 자연히 그 소문이 이웃간에 퍼져서 틀림없이 어느 곳에 하인으로라도 일자리를 찾았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 소문을 관청에서 모르고 지냈을 리는 없다. 그러나 K때문에 중앙 사무국 또는 전화통 옆에 있었던 누군가를 한밤중에 억지로 흔들어서 잠이 깨워지고 당장에 결정하라는 요구를 당하고, 겉으로는 겸손한 말투지만 사실은 귀찮고 무자비하게 요구를 당한 것이며 더군다나 그런 짓을 성 사람들이 모두들 싫어하는 쉬바르처가 했다는 것이다. 이것에 비교하면 이런 어리석은 일이 일어나는 대신에, K가 그 다음날 집무 시간에 면장을 찾아보고 사실은 이 곳에 처음으로 온 나그네지만 어떤 마을 사람에집에 묵고 있으며, 꼭 그 다음날에는 다시 떠날 것이라고 그럴 듯하게 신고하는 것과는 아주 굉장한 차이점이 있다. 단지 후자의 경우에는 전혀 있을 수 없는 사태가 벌어져서 K가 이 곳에서 일자리를 구한다는 일이 없다는 조건이 붙고, 일자리를 구하더라도 단지 이삼 일간이라는 조건이 붙었을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 이상 더 오랫동안 이 곳에 머무르려고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쉬바르처만 없었더라면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그때에도 관청은 계속해서 이 안건을 취급했을 것인데, 그러나 상대방의 초조감__관청에 있어서는 이것이 가장 참을 수 없지만__에 의하여 조금도 방해를 받지 않고, 조용히 관청의 관례의 따라서 일을 처리했을 것이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사실 K에게는 어떤 일에 있어서나 전혀 죄가 없고 죄는 쉬바르처에게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ㅏ 쉬바르처는 집사의 아들이고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정당하게 행도을 했으니까, K만이 그 죄를 쓰게 된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어리석은 일에 대한 원인을 살펴보면 그것은 아마도 그 날 애인 기자가 기분이 나빴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해서 그날 밤 쉬바르처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여기저기 쏘다니던 끝에 K에게 화풀이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K는 쉬바르처의 이런 행동 때문에 퍽 덕을 봤다고 말할 수도 있다. 오로지 그 덕분으로 K가 혼자서는 도저히 달성할 수 없고 또 감히 달성하려고 마음먹지도 못했던 일, 또 관청에서도 가능한 한도가 있지만__K가 처음부터 수단을 부리지 않고 공공연하게 서로 맞서서 당당하게 관청과 대립한다는 일, 그것이 가능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좋지 못한 선물이었다. 물론 그 때문에 K는 여러 가지로 거짓말을 하거나 남모르게 감추어 두지 않아도 좋지만, 그러나 그 때문에 K는 거의 무방비 상태가 외어서 좌우간 전투에서는 불리한 입장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만일 K가 관청과 K와의 힘의 차이는 유감스럽게도 굉장히 큰 것이어서, K가 아무리 거짓말을 하고 모략을 쓴다고하더라도 사실 이 어마어마한 차이를 K에게 우리하도록 단축 시킬 수는 없다고 스스로 타이르지 않았던들 K는 절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K가 스스로 위안을 느끼는 공상에 지나지 않았다. 쉬바르처는 여전히 빚을 지고 있었다. 그 당시 그는 K에게 손해를 입혔으므로 아마도 가까운 장래에 K를 도와줄 수도 있을 것이다. K는 앞으로도 아주 사소한 일, 즉 모든 일의 전제 조건에 있어서 조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하여 예를 들면 바르나바스도 역시 아무 소용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K는 상황을 살피러 바르나바스의 집으로 가고 싶었지만 프리다를 때문에 하루 온종일 머뭇거리고 있었다. 프리다의 면전에서 바르나바스의 방문을 받지 않도록 하려고 지금까지 바깥에서 일하고 있었으며 바르나바스가 오지 않나 하고 일이 끝난 다음에도 기다리고 있었으나, 바르나바스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제는 바르나바스 자매한체로 가 보는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다. 단지 잠깐 동안 문에서 바르나바스의 안부를 묻고 곧 다시 도리가 없었다. 단지 잠깐 동안 문에서 바르나바스의 안부를 묻고 곧 다시 돌아오려고 생각했다. 그는 눈 속에 삽을 꽂아놓고 달려갔다. 숨가쁘게 바르나바스의 집에 도착하자 잠깐 노크한 다음에 곧 문을 열어 젖히고 방안 상황도 주의해 보지 않고 물었다. "바르나바스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나요?" 그 때 그는 비로소 깨달았지만, 올가는 없고 노부부가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문에서 훨씬 떨어진 어슴푸레한 어둠 속에 앉아 있었는데, 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실히 알지도 못하고 천천히 얼굴들을 K에게로 돌렸다. 마지막으로 눈에 띈 것은 아말리아가 난로 옆의 기다란 의자 위에 이불을 덮고 드러누워 있다가 K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일어나서,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이마에다 손을 대고 있는 모습이었다. 만일 올가가 여기에 있기만 하면 곧 회답을 받고 돌아옥 수 있는데 K 는 어찌할 수 없이 적어도 두서너걸음 아말리아에게로 다가가서 손을 내밀고__그녀는 아무 소리 없이 그의 손을 잡고 악수했다__들떠 있는 양친이 걸어나오는 일이 없도록 해 달라고 그녀에게 부탁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녀는 두서너 마디 말하더니 K의 부탁에 따랐다. 아말리아의 말을 듣고 알았지만, 올가는 마당에서 장작을 패고 있고 아말리아는 몹시 피곤해서__별로 그 이유는 대지 않았지만__조금 전에 드러누워서 쉬지 않을 수 없었으며, 바르나바스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지만 성에서 묵는 일은 절대로 없으니까 곧 돌아올 것이라는 것이었다. K는 여러 가지로 알려 준데 대해서 고맙다고 인사했다. 이제는 돌아가도 상관이 없었다. 그런데 아말리아가 그래도 올가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보지 않겠느냐고 묻기에 유감스럽지만 시간 여유가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아말리아는 오늘 벌써 올가와 이야기 했느냐고 물었다. 그는 놀라서 아니라고 대답하고는 올가가 자기에게 무슨 특별한 일이라도 전하라고 하고 있느냐고 물어 보았다. 아말리아는 약간 기분이 나쁜 듯이 입을 일그러뜨리며 잠자코 고개를 끄덕거리고__그것은 확실히 작별의 표시였다__또다시 드러누워 버렸다. 그녀는 드러누운 채 그가 아직 거기 있는 것이 자못 이상스러운 듯이 살펴보았다. 그녀의 눈초리는 언제나 다름없이 차고 맑았으며 움직이지 않았다. 그 눈초리는 쳐다보는 목표에 곧장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__사람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것이었다__약간, 거의 깨달을 수 없을 정도지만, 그러나 의심할 여지도 없이 그 목표를 스쳐서 지나가는 것이었다. 이것은 무기력하기 때문도 아니고 동시에 당황하거나 성실치 못한 때문이라고도 할 수 없으며 다른 모든 감성을 능가하는 끊임없는 고독에 대한 갈망 때문인 것 같았다. 이 고독에 대한 갈망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마도 자신도 의식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K는 자기가 이 곳에 처음 도착했었던 그 날 저녁에도 그의 마음이 이 눈초리에 쏠렸던 사실 이라든지, 그뿐더러 이 가정이 당장에 준 그러한 불쾌스럽기 짝이 없엇던 인상의 전부는 틀림없이 이 눈초리__눈초리 자체는 불쾨한 것이 아니었는데, 거만하고 타협하지 않는 표정 속에서도 진실성을 띠고 있었다__때문이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아가씬 언제나 슬픈 것같이 보여요, 아말리아. 무슨 고민이라도 있나요? 그것을 말할 수 없나요? 나는 여태까지 아가씨와 같은 시골 아가씨를 본 일이 없어요. 그걸 확실히 깨달은 것은 오늘이고, 그것도 더욱이 바로 지금이에요. 아가씬 이 마을 출신인가요? 이 마을에서 나셨나요?" K가 그렇게 말했다. 아말리아는 K가단지 마지막 질문만을 한 것처럼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나서, "선생님은 올가를 기다리시는 거죠?" 하고 말했다. "무엇 대문에 자꾸 똑같은 질문을 몇 번씩이나 되풀이하시나요? 나는 오랫동안 여기 있을 수 없어요. 집에서 약혼자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K가 말했다. 아말리아는 팔꿈치를 세우고 몸을 의지했다. 그리고 약혼자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했다. K가 프리다의 이름을 댔으나 아말리아는 프리다를 알지 못했다. 올가는 그 혼인에 대해서 아느냐고 물었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올가는 K가 프리다와 함께 있는 것을 목격했을 뿐더러, 이런 소문은 곧 마을에 퍼지는 것이라고 K는 대답했다. 그런데 아말리아는 K에게 다음과 같이 확언했다. 올가는 그것을 알지 못할 것이며 그 말을 들으면 대단히 슬퍼할 것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올가는 K를 사랑하고 있는 모양이니까. 언니, 올가는 대단히 수줍어서 솔직히 그런 소리는 하지 않았지만 애정이란 건 정말로 무의식중에 은근히 알게 되는 것이라고. K는 아말리아가 잘못 생각했다고 확언했다. 아말리아는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는 슬픔이 깃들여 있었으나 심란하게 찌푸린 얼굴에 명랑한 기색으로 침묵을 깨트리고 말을 끄집어내더니 서먹서먹한 태도를 다정스러운 태도로 고치고 비밀을 털어놓는 것이었다. 이것은 또한 지금까지 소중히 지켜 오던 소유물__물론 다시 찾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전부는 다시 찾을 수 없는 소유물__을 포기하는 것이었다. 아말리아는 자기가 잘못 생각한건 아니라고 말했다. 계속해서 자기는 여러 가지 일을 알고 있으며 K가 올가에게 호의를 품고 여기로 찾아오면서도 바르나바스의 편지를 구실로 삼고 있지만 사실은 올가 때문이라고 알고 있다. 또 지금 아말리아는 모조리 알고 있으니까 그렇게 거북하게 생각하지 말고 종종 놀러와도 좋다. 이와 같은 이야기만은 K에게 하겨고 생각했다고 아말리아는 말했다. K는 고개를 흔들면서 자기가 약혼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아말리아는 이 약혼에 대해서는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는 것처럼 보였다. 약혼하고 있다 하더라도 지금 혼자서 우뚝 그녀 앞에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약혼하고 있다 하더라도 지금 혼자서 우뚝 그녀 앞에 서 있는 K의 직접적인 인상이 그녀에게 있어서는 결정적인 것이었다. 단지 그녀는 K가 겨우 이삼 일 전에 이 마을에 도착했는데, 대체 언제 그 아가씨와 사귀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K는 신사관에서의 그 날 저녁 이야기를 했다. 아말리아는 그 말에 대해서 단지 간단히 자기는 K를 신사관으로 데리고 가는 일에 절대 반대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올가를 증인으로 불렀다. 그 때 마침 올가는 한쪽 팔에 장작을 잔뜩 안고 들어왔다. 찬바람을 쐐서 뺨은 붉어지고 활발하고 원기 왕성한 모습이었다. 전에 방안에 서 우울하게 서 있었던 모습과 비교해 볼 때 일을 했기 때문인지 아주 변한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장작을 내동댕이치고 순진하게 K에게 인사하더니 곧 프리다 이야기를 물었다. K는 아말리아에게 눈짓을 했는데 그녀 쪽에서는 K가 자기 말을 반박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그 모양을 보고는 약간 기분이 이상했는지, K는 프리다에 관해서 보통때보다도 더 자세하게 이야기를 하고 그녀가 학교에서 곤란한 환경에 놓여 있으면서도 그 어려운 조건을 극복하면서 그럭저럭 살림을 맡아 보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성급히 이야기했기 때문에__곧 집으로 돌아가려고 생각하고__작별 인사를 한다는 것이 그만 서두르다 보니 자매 두 사람에게 한 본 꼭 놀러 오라고 초대하고 말았다. 물론 그 순간 깜짝 놀라서 말문이 막혔지만 아말리아는 조금도 그에게 말할 시간 여유도 주지 않고 찾아가겠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올가도 한몫 끼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자기도 찾아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K는 빨리 작별해야 되겟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마조마한데다가 암라리아의 시선을 받고 불안스러운 기분에 사로잡혀서 그 이상 더 꾸며 댈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고백해 버렸다. 사실 지금 초대했지만 잘 생각해 보지도 않고 K의 개인적인 감정에서 순간적으로 말이 튀어나왔을뿐이며 유감스럽지만 이 초대를 꼭 실행하겠다는 생각은 아니라고 했다. 왜냐하면 K로서는 물론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아말리아와 프리다 사이에 큰 반목이 놓여져 있는 것 같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목은 아니에요." 하고 아말리아는 말하고 긴 의자에서 일어나서 담요를 자기 뒤로 던ㄴ다. "그것은 그렇게 큰 사건이 아니에요. 세상 사람들의 말을 그대로 되풀이하는 데 지나지 않아요. 자아 빨리 가세요! 약혼자가 있는 곳으로 가시라니까요! 대단히 바쁘시겠지요. 우리들이 방문하는 것도 걱정하실 것 없어요. 처음부터 농담으로 장난삼아 말했을 뿐이에요. 그러나 선생님은 종종 으리들에게 놀러 오시지요. 당신이 오셔도 잘못되는 일은 없을 거예요. 언제나 사자 바르나바스에게 볼일이 있어서 왔다고 핑계 대시면 되지 않아요. 선생님이 거리낌없이 기분 좋게 오시도록 이것도 말씀드리지요. 바르나바스가 선새임을 위해서 성에서 소식을 가져온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선생님에게 알리기 위해서 또 학교에까지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에요. 그는 도저히 그렇게 쏘다니지는 못해요. 말하자면 불쌍한 청년이지요. 그는 심부름하느라고 기진맥진해 있으니까, 선생님이 직접 통지를 받으로 오시지 않으면 안 될 거예요." K는 지금까지 아말리아가 이와 같이 요령 있게 조리를 따져서 오랫동안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이야기하는 투도 보통 때와는 달랐다. 일종의 거만한 태도가 엿보였는데 K만이 아니라 아말리아를 샅샅이 잘 알고 있는 올가 언니까지도 분명히 그것을 느낀 모야이었다. 올가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두 손을 무릎 위로 내려뜨리고 또 언제나 하는 버릇대로 발을 약간 벌리고 몸을 약간 앞으로 기울인 자세로 서 있었다. 눈은 아말리아에게로 돌리고 있었으나 아말리아는 단지 K의 얼굴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진심으로 바르나바스를 기다리고 있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지요. 관청과의 사이에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나의 최대의 소원, 본래 나의 유일한 소원이라 할 수 있어요. 바르나바스가 그 일로 나를 도와줄 것이라고 나느 그에게 희망을 걸고 있어요. 물론 언젠가 그가 나에게 굉장한 실망을 준 일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그의 탓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내 잘못으로 돌려야 할 점이 많거든요. 더군다나 그 일은 내가 처음 여기에 도착했을 그 당시 어수선한 속에서 일어났으니까요. 그 때 나는 저녁때 잠깐 산보하면서 손쉽게 무엇이든 해치울 수 있다고 생각했지요. 따라서 불가능한 일이 불가능한 일이 불가능한 일이 불가능하다고 밝혀졌을 때에도 그의 잘못이라고 원망할지경이었으니까요. 아가씨네 집안이라든지 아가씨네 뒤 분에 대한 나의 인상에도 그런 요소들이 영향을 미치고 있었어요. 벌써 이것은 지나간 일이고 지금은 아가씨들을 전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아가씨들은 그뿐더러......" K는 여기서 적당한 말로 표현하려고 애썼으나 곧 머리에 떠오르지 않아서 임시적인 말로 만족하면서, "아가씨들은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는 아마 마을의 누구보다도 마음씨가 고와요. 그러나 아말리아 아가씬 오빠(바르나바스)의 근무를 경시함으로써 은근히 내 머릿속을 어지럽게 하고 있어요. 아마도 아가씬 바르나바스가 하고 있는 일을 자세히 모르실 거예요. 그렇다면 그대로라도 졸은 것이고 그 이상 캐묻지는 않기로 합시다. 그러나 아마도 아가씬 잘 알고 있을 것인데__오히려 나는 그런 인상을 받아요__그렇다면 그것은 좋지 못해요. 왜냐하면 아가씨의 오빠가 나를 속이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수도 있으니까 말이오." "진정해 주세요. 저는 알지 못해요. 거기에 간섭해서 사정을 알아내 보자고 제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정말로 선생님을 위해서 여러 가지로 돌봐 드린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선생님을 고려해서 그렇게 해 보자고 마음이 움직이는 일은 없어요. 왜냐하면 선생님 말씀대로 우리들은 마음씨가 고우니까요. 그러나 올바른 일은 오빠에게 맡겨 두면 좋아요. 제가 오빠 일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라곤, 듣기도 싫은데 가끔 우연히 귀에 들려 오는 소문뿐이에요. 그와 반대로 올가는 선생님에게 무엇이든 알려 드릴 수 있어요. 올가는 오빠와 통할 수 있는 사이니까요." 아말리아는 이렇게 말하고는 우선 양친에게 가서 무슨 소리를 속삭이더니 부엌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녀는 K에게 작별의 인사도 하지 않고 가버린 것이었다. 그녀의 태도는 마치 K가 아직도 쭉 여기에 묵을 테니까 작별 인사 같은 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15 K는 약간 놀란 표정으로 거기에 남아 있었는데, 올가는 그르 우스워하면서 난로 옆의 긴 의자로 끌고 갔다. 이제 비로소 K와 단둘이서 앉아 있게된 것을 그녀는 정말로 행복하게 느기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확실히 평화스러운 행복이었고 질투의 감정을로 말미암아 흐려진 것은 아니었다. 질투의 감정과 거리가 멀다는 것과, 따라서 아무런 거북하거나 가혹한 점도 없다는 감정과 거리가 멀다는 것과, 따라서 아무런 거북하거나 라혹한 점도 없다는 것이 바로 K에게는 기분이 좋았다. 그는 올가의 푸른 눈을__유혹하거나 거만한 것이 아니고 수줍어하며 조용히 견디어내고 있는__기꺼이 들여다 보았다. 프리다와 안주인의 경고를 듣고 있었기 때문에, 이 모든 일에 대해서 그의 마음이 보통 때보다도 더 너그러울 것은 없었지만, 그런 경고로 말미암아 그는 더 주의 깊고 더 예민하게 된 것 같았다. 그가 왜 하필이면 아말리아를 마음씨가 곱다고 말했는지, 아말리아에게는 여러 가지 성격이 있지만 마음씨가 곱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다고 올가가 말했을 때에는, 그도 올가와 함께 기분 좋게 웃었다. 거기에 대하여 K는 이렇게 설명했다. 마음씨가 곱다는 찬사는 물론 그녀, 즉 올가에게 어울리는 것이라고. 아말리아는 너무나 거만해서 자기 앞에서 말하는 소리는 모조리 자기 것으로 소유해 버릴 뿐 아니라, 모두들 자발적으로 무엇이든 그녀에게 말해 버리게 된다고 했다. "정말로 그래요." 하고 올가는 약간 정색을 하면서 말했다. 이어서, "선생님이 생각하는 것보다도 더 진실이에요. 아말리아는 저보다도 젊고 바르나바스보다도 나이가 아래지만,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나를 막론하고 집안 살림을 도맡아서 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은 그애예요. 물론 그애는 장점이건 단점이건 다른 사람보다도 더 많이 가지고 있어요." K는 그것은 지나치게 과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뭐니뭐니해도 아말리아 본인이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예를 들면 자기는 오빠 일에 조금도 간섭하지 않는데 올가는 이와 반대로 무엇이든 오빠 일을 알고 있다고. "그것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요?" 올가의 말이었다. "아말리아는 바르나바스에 관한 일이나 제게 관한 일이나 조금도 염주에 없어요. 원래 그애는 양친 일 이외는 아무 일도 걱저하지 않아요. 양친 일만을 낮이나 밤이나 돌봐 드리고 있어요. 지금도 양친이 좋아하시는 음식을 장만하러 부엌으로 갔어요. 양친을 위해서는 무리해서라도 일어나요. 그러나 그애는 낮부터 몸이 불편해서 이 긴 의자 위에 드러누워 있었어요. 그애는 저와 바르나바스 남매 일을 조금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지만, 그래도 우리들은, 그애가 마치 가장 나이 먹은 언니나 누나처럼 그애를 의지하고 있어요. 만일 그애가 우리들에 대해서 어떤 조언이라도 하면 우리들 남매는 그 조언에 따라갈 것이에요. 그러나 그애는 조언을 하지 않아요. 우리들은 그애 눈으로 보면 전혀 남과 마찬가진 모양이죠. 선생님은 인간 사회에 대해서 경험도 많으시고 타향에서 오셨는데 그애가 똑똑한 것처럼 보이지 않으시던가요?" 하고 올가가 물었다. "아말리아는." K의 말이었다. "특별히 불행한 사람처럼 보여요. 그러나 두 분이 그녀를 존경하는 것과 예를 들면 바르나바스가 이런 사자의 일을 __아말리아는 확실히 멸시하고 있지만__한다는 것과 어떻게 일치할까요?" "다른 무슨 일을 하면 좋을까, 그것만 안다면 바르나바스는 사자의 일을 곧 집어치울 거예요. 조금도 만족하고 있진 않으니까요." "대체 바르나바스는 솜씨가 좋은 구둣방 사람이 아니었던가요?" 하고 K가 물었다. "그래요. 바르나바스는 부업으로 브룬스빅크의 일을 돕고 있어요. 뜻만 있다면 밤낮으로 일이 있으니까 수입도 충붕해요." 하고 올가가 말했다. "그렇다면 사자의 일에 대한 보충도 되는 것이 아니오." K의 말이었다. "사자의 일에 대한 보충이라고요? 돈 때문에 그 일을 맡았다고 생각하셔요?" 올가는 깜짝 놀라서 물었다. "그렇지요. 바르나바스는 사자의 일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조금 전에 말하시지 않으셨어요?" 하고 K는 말했다. "네, 그래요. 그런데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요. 그러나 그것도 성에 대한 봉사이거든요. 적어도 성에 대한 봉사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적어도 그렇게 생각해야 할 거 아니에요?" 그렇게 올가는 말햇다. "뭐라고요? 그런 일에도 여러분들은 의심을 품고 있나요?" 하고 K가 물었다. "아니에요.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바르나바스는 사무국에 가서 하인들과 대등한 교제를 하고 있어요. 또 멀리서 관리 두서너 사람을 볼 때도 있을 뿐더러, 상당히 중요한 편지도 접수하고, 말로 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까지도 맡고 있어요. 이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대단한 일이며 그런 젊은 나이로서 그만큼 출세했으니까 우리들은 그 사실을 자랑해도 좋아요." 올가의 말이었다. K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집으로 돌아갈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자기 전용의 제복까지 가지고 있나요?" 하고 K는 물었다. "그 윗도리 말인가요? 아녜요. 그것은 아직 사자가 되기 전에 아말리아가 만들어 주었어요. 그러나 선생님은 어쩜 아픈 데를 아주 따끔하게 찌르시는군요. 그는 벌써 옛날에, 제복이 아니라__성에는 제복 같은 건 없으니까__당당한 관복을 정식으로 받았어야 했어요. 그런 확약까지 있었어요. 그런데 이 점에 있어서는 성 양반들은 아주 동작이 느려요. 그러나 불행히도 이 동작이 느리다는 것이 대체 무엇을 뜻하는지 아무도 한번도 알아낸일이 없어요. 혹시 이것은 일이 아직 전혀 시작도 안 됐다는 사실, 따라서 예를 들면 바르나바스에 관해서 지금이라도 시험해 보려는 의도를 뜻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관청일은 이미 끝났다는 것,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그 확약이 취소되어 바르나바스는 벌써 과녹을 지급받을 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 이상 더 자세한 일은 알 수도 없고 안다고 하더라도 훨씬 나중에나 가능할 거예요. 여기에 이런 속담이 있는데, 아마 선생님도 아시겠지요. 관청의 결정은 색시처럼 수줍어하고 부끄러워한다고요." 올가는 그렇게 말했다. "그것 참 멋진 관찰인데요." 하고 K는 말했다. 그는 올가의 말을 올가보다도 더 진정으로 해석했다. "멋진 관찰이야. 관청의 결정은 더욱 다른 점에서도 색새와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을는지도 모르겠는데." "아마 그럴지도 몰라요. 선생님이 어떤 뜻으로 말씀하시는지 물론 알 수 없어요. 아마도 대단히 칭찬하는 뜻으로 말씀하시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관복에 대해서 말하면, 이것이야말로 바르나바스의 걱정거리의 하나에요. 글런데 우리들 남매는 걱정을 함께 나누고 있으니까 동시에 걱정도 되지요. 왜 관복을 얻을 수 없느냐고 우리들은 서로 물어 보지만 아무 소용이 없어요. 그런데 이 일의 전체는 그리 간단한 것은 아니에요. 예를 들면 관리는 관복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아요. 이 마을에서 우리들이 아는 범위 내에서는, 그리고 바르나바스가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 보면, 관리들은 물론 아름다운 옷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평상시에 입는 옷을 입고 돌아다닐 뿐이라고 해요. 여하튼 선생님은 클람을 보셨지요. 그런데 바르나바스는 물론 관리, 가장 아래 계급에 속하는 관리도 아닐 뿐더러, 또 자기로서도 관리가 되려고 분에 넘치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그러나, 바르나바스가 하는 소리를 들어 보면 비교적 고급에 속하는 하인도__물론 이 마을에서는 결코 그들의 모습은 볼 수 없으나__관복을 가지고 있지 않대요. 그렇다면 마음이 놓이지 않느냐고 곧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는지도 몰라요. 그런데 그것은 거짓말이거든요. 여하튼 바르나바스는 비교적 고급에 속하는 하인일까요? 아니에요. 아무리 그를 좋아하고 그의 편을 든다고 해도 그렇게 말할 순 없어요. 고급 하인은 아니에요. 그가 마을에 온다는 사실과, 아니 여기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벌써 그러한 증거가 되지요. 고급 하인은 관리보다도 더 소극적이고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어요. 그것은 아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고 아마 그들은 많은 관리들보다도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요. 두서너가지 그것을 증명할 만한 일이 있을 거예요. 그들은 그렇게 많이 일하지 않아요. 그리고 바르나바스의 말을 들어 보면, 이처럼 특별히 몸집이 크고 강건한 사람들이 천천히 회랑을 걸어서 지나가는 광경은 정말로 장관이라고 해요. 바르나바스는 언제나 그들 옆을 따라서 사뿐사뿐 걸어간다는 거예요. 요컨대 바르나바스가 고급 하인인가 아닌가는, 문제 삼아서 화제에 올릴 필요조차 없어요. 그래서 고급 하인의 신분을 가진 사람이라도 되기를 소원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이 사람들이 바로 관복을 입고 있어요. 적어도 마을로 내려올 때는 그래요. 그것은 본격적인 제복은 아니고 가지각색으로 다른 점도 있지만, 그래도 그 복장으로 곧 성의 하인이라고 알아볼 수 있어요. 선생님은 그런 사람들을 신사관에서 보신 일이 있지요. 그 복장의 특색은 그것이 대게 몸에 착 달라 붙는다는 점이지요. 농부나 직공 같으면 그런 옷은 소용이 없을 거예요. 그런데 바르나바스는 이 옷을 가지고 있지 않아요. 이것은 단지 부끄럽다든가 불명예스럽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다면 차라리 참을 수도 있겠지만, 특히 슬플 때는__바르나바스와 저는 그럴 때가 있지만__모든 것에 대하여 의심을 품게 돼요. 바르나바스가 하고 있는 일이 과연 성에 대한 봉사라고 할 수 있을까 하고 말이에요. 그럴 때면 우리들은 종종 의문이 생겨요. 확실히 바르나바스는 사무국으로 가지요. 그러나 그 사무국이 본래의 성일까요? 그리고 설사 사무국이 성에 속한다고 하더라도 바르나바스가 출입이 허가되어 있는 곳이 정말로 사무굴일까요? 그는 사무국으로 들어가지요. 그러나 그것은 전체 사무국의 단지 일부분에 지나지 않아요. 그 앞에는 울타리가 있고, 울타리 뒤에는 또 다른 사무국들이 있어요. 그가 그 이상 앞으로 가지 못하도록 금지되어 있는 것은 아니에요. 그러나 그가 벌써 자기 상관들을 찾아냈고 상관들 쪽에서도 그를 붙들고 심부름을 시킨 다음 다시 파견하게 되면, 그는 그 이상 앞으로 뚫고 나갈 수는 없거든요. 그러니까 바르나바스가 이미 들어가 본 사무국이 있는데, 그 사무국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사무국이 이 마지막 울타리 뒤에 있다고 처음부터 생각해서는 안 돼요.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단지 마음이 심란할 때면 그렇다고 믿거든요. 그럴 때면 의심이 자꾸 생겨서 도저히 막아낼 도리가 없어요. 바르나바스는 관리들과 이야기하고 심부름할 일거리를 얻어요. 그런데 그것은 정말로 대단한 일이에요. 고급 하인이라도 이런 일은 없으니 거의 과분한 특전이라 아니할 수 없어요. 그래서 마음 속에 은근히 걱정도 되는군요. 그러면 직접 클람에게 배속되어서 클람과 서로 맞대면하면서 이야기한다고 생각 좀 해 보세요. 그러나 사실 그럴까요? 네, 사실 그래요. 그러나 그렇다면 왜 바르나바스는 거기서 클람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지는 관리가 정말로 클람인가 하고 의심을 품는 것일까요?" 그것은 올가의 말이었다. "올가, 농담하면 안 돼요. 클람의 외모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지 않습니까? 그 사람의 외모는 누구나 다 알고 있어요. 나도 직접 그를 본 일이 있어요." 하고 K가 말했다. "확실히 그렇지 않거든요, K씨. 농담은커녕 이것은 저의 진지하고도 심각한 걱정거리예요. 그렇다고 해서 제 마음을 가볍게 하고 그 반면 선생님의 마음을 무겁게 하기 위해서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에요. 선생님이 바르나바스에 관해서 물어 보셨을 뿐만이 아니라 저는 아말리아에게서 그 이야기를 하도록 부탁받았으며, 게다가 더 자세한 일을 아시는 것이 선생님께 큰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야기하는 거예요. 또한 저는 바르나바스를 위해서 이야기하는 것도 돼죠. 왜냐하면 선생님이 너무나 큰 기대를 걸지 않도록, 그라 선생님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또 선생님을 실망시킴으로써 그가 스스로 고민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이야기 하느 거니까요. 그러나 성에서는 모두들 사자의 사명에 대해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그것은 생각하시는 것과는 일치하지 않아요. 설사 바르나바스가 자기의 사명에 완전히 몸을 바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래요. 불쌍하게도 그는 그 사명에 대해서 때로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요. 그가 하고 있는 일이 정말로 사자의 사명이라는 것이 의심나지만 않는다면 무조건 따라가야만 되고, 그 일을 거역해서는 안 될 것이지요. 만일 그가 그런 짓을 한다면 그것은 그에게 있어서 자기 자신의 존재를 매장해 버리는거나 마찬가질 뿐더러, 자기 자신이 그 밑에 있으며 그 지배를 받고 있다고 믿고 있는 어떤 율법을 유린하는 결과가 되지요. 대체로 제게 대해서도 솔직히 이야기해 주지 않아요. 저는 그에게 키스를 하거나 비위를 맞추어서 비로소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이야기해 버린 다음에도 경계해서 그 의심을 의심이라고 인정하지 않으려고 기를 쓰며 아니라고 하거든요. 핏속에 무엇인지 아말리아와 통하는 것을 가지고 있어요. 저 혼자만이 그에게서 마음껏 신뢰를 받고 있지만, 그렇다고 제게 대해서까지도 전부 터놓고 이야기하지 않거든요. 그러나 클람에 관해서는 우리들은 가끔 상의해요. 저는 아직 한번도 클람을 본 일이 없어요-- 아시겠어요. 프리다가 저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클람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영광를 한번도 배풀어 주지 않았어요--그러나 물론 클람의 외모는 마을 사람들이 잘 알고 있어요. 몇 사람을 그의 모습을 본 일이 있어요. 마을 사람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그의 이야기를 소문으로 듣고 알고 있어요. 눈으로 목격하고, 귀로 소문을 듣고, 또 터무니 없는 다른 의도까지도 거기에 겹쳐서 한 개의 클람 상이 만들어졌어요. 다만 중요한 점에 있어서만 그럴 따름이에요. 그 밖의 다른 점에 있어서는 변하기 쉬워요. 그리고 변한다고 하지만 아마도 클람의 외모가 변하는 것처럼 그렇게 변하진 않을 거예요. 그는 마을에 올 때, 마을을 떠날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는 거예요. 맥주를 마시기 전과 마신 후가 다르고, 눈을 뜨고 있을 때와 잠자고 있을 때가 다르고, 혼자 있을 때와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가 다르다는 거지요. 그리고 이 일에 의해서 알게 된 것은, 성에서는 거의 아주 딴판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마을의 내부 사정까지도 현실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게 보고가 되어 있다고 해요. 이것은 말하자면, 키, 태도, 몸집, 수염 등의 차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단지 복장에 관해서는 다행이도 보고가 일치하고 있어요. 그는 언제나 똑같은 옷, 즉 옷자락이 기다란 검은 윗도리를 입고 있어요. 물론 이 모든 차이점은 무슨 요술 같은 것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곧 알 수 있는 일이지만, 목격자가 --그것도 대개는 단지 순간적으로밖에는 클람을 볼 수 없기 때문에-- 그속에 대개는 단지 순간적인 기분, 그 흥분의 정도, 그 희망과 절망의 무수한 단계, 그런 것들에 의해서 차이점이 생기는 거예요. 저는 그런 것을 모조리 바르나바스가 가끔 제게 설명히 준 대로 되풀리해서 선생님에게 이야기했어요. 그러니까 만일 이런 일에 개인적으로 직접 관계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것으로써 대개 안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들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해요.자기과 사실 클람과 이야기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는 바르나바스로서는 죽느냐 사느냐의 중대한 문제니까요." "나도 같은 입장이요." 하고 K가 말했다. 그리하여 그들 두 사람은 난로 옆의긴의자 위로 서로 가까이 다가앉았다. 올가의 이야기는 전부 이롭지 못한 뉴스였다. 물론 K는 이 이롭지 못한 뉴스를 듣고 적이 당황했지만. 그래도 다음과 같은 점에서 대충 그 손해를 메울 수가 있으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은 적어도 외적 사정이 자기 자신과 비슷한 사람, 따라서 자기가 벗으로 사귈 수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는 것과, 프리다와의 관계처럼 약간의 점에 있어서가 아니라, 참으로 많은 점에 있어서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K에게는 바르나바스가 사자로서 성공하리라는 희망이 점점 줄어든 것은 물론이지만, 그래도 성 안에 있어서의 바르나바스의 사정이 악화되면 악화될수록, 그는 이 마을에서 더욱 K에게로 가까이 왔다. K는 바르나바스와 아말리아 남매와 같은 그런 불행한 노력이 이 마을에서도 생기리라고는 지금까지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다. 물론 올가의 설명은 아직 충분하지 못했으며 나중에는 전혀 반대 방향으로 쏠릴는지도 모르겠다. 올가의 그 순진한 성격에 정신이 팔려서 다짜고짜로 바르나바스의 성실성까지도 믿어 버리는 과오를 범해서는안 된다. 올가는 말을 계속해서. "클람의 외모에 관한 여러 가지 보고를 바르나바스는 아주 잘 알고 있어요. 전부터 이 보고를 많이, 그것도 지나치게 많이 모으기도 하고 비교해 보기도 했어요. 언젠가 자기가 마을에서 마차의 창 너머로 클람을 보았대요. 아니 보았다고 믿고 있어요. 그래서 클람이라는 인간을 분간할 수 있는 준비는 충분히 갖추어져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때--선생님은 이것을 어떻게설명하세요?--바르나바스는 성의 어느 사무국에 들어갔어요. 그리고 어느 사람이 그에게 많은 관리 중에서 한 사람을 가리키고 이사람이 클람이라고 말했는데, 그 때 그는 클람을 알아보지도 못했을 뿐더러 그 후 오랫동안이나 그 사람이 클람이라는 생각이 들지않더래요. 따라서 만일 선생님이 지금 바르나바스에게 세상 사람들이 보통 클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인간과, 진짜 클람과는 과연 어떤 점이 다르냐고 물어 보아도 그애는 대답하지 못할 거에요. 그는 대답한답시고 성에서 본 관리의 모습을 묘사하려고 하겠지요. 그러면 그가 그려 보이는 클람의 모습과 우리들이 알고 있는 그것과는 일치되겠지요. '그러면 바르나바스, 왜 너는 의심하고 고민하는 거니?'하고 저는 말할 것이에요. 그러면 그는 분명히 난처한 기색으로 그성에서 본 관리의특징을 상세하게 늘어 놓기시작하겠지요. 그러나 동생의 모습은 이런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보다는 자기 머릿속에서 생각해 내고 있는 것처럼 보일 거예요. 더욱이 아주 신통치 못한 특징뿐일 테지요--예를 들면 특색있게 고개를 끄덕거리는 고갯짓이라든지, 기껏해서단추를 빼놓고 있는 조끼의 옷차림이라든지, 그런 시시한 일이 문제가 되겠지요--그래서 아무도 진지하게 생각하거나 곧이 들을 수가 없을 거예요. 저는 바르나바스는 제게 흔히 그 이야기를 해 주어요. 그림을 그려서 설명해 줄 때도 있어요. 보통 바르나바스는 큰 방으로 안내받는대요. 그러나 그것은 클람의 사무소는 아니에요. 대채로 관히 한 사람 한 사람의 사무실이라는 것은 없으니까요. 이 방은 세로로 벽에서 벽까지 닿는 책상이 하나 놓여져 있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방이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어요, 이렇게 책상으로 구분되어 있는 좁은 쪽은 사람들이 빠듯하게 스쳐서 지나갈 정도인데 이것이 관리인의 방이지요, 넓은 쪽은 진정인, 방청객, 하인, 사자들의 방이에요. 책상 위에는 큰 책들이 펼쳐진 채 여러 권이 놓여있고, 대부분의 책 옆에는 관리가 서서 그 책을 일고 있대요. 그러나 언제나 똑같은 책 옆에 서 있는 것은 아니래요. 책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자리만 바꾼대요. 이것은 장소가 좁기 대문이지만, 그처럼 자리를 바꿀때, 관리들이 저렇게 서로 부딪치면서 어떻게 지나다닐수 있을까 기겁을 할 지경이라고 바르나바스가 말해요. 앞쪽으로 쪽으로 책상에 바로 붙어서면 서기가 ㅇ아 있는 낮고 작은 책상이 있는데, 이 서기들은 관리들이 명령하면 말을 받아쓰기로 되어 있대요. 바르나바스는 언제나 이 받아스기에는 놀라고 있어요. 관리가 뚜렷하게 명령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높은 소리로 받아쓰게하는 것도 아니래요. 받아쓰고 있다고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고 오히려 관리는 전과 같이 책을 읽고 있다고밖에는 보이지 않는데, 다만 그러면서 관리는 끊임없이 무엇을 속삭이고 있으며, 동시에 서기는 그걸 듣고 있는 것이지요. 서기가 그자리에 앉은채로는 전혀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나지막한 소리로 받아쓰게 할 때도 있대요. 그럴 땐 서기는 늘 뛰어 일어서서 부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다시 빨리 걸터앉아서 그것을 쓰는가 하면, 또다시 벌떡 일어서서 먼저 했던 동작을 되풀이하지 않으면 안 된데요. 너무나 꼴이 이상해서 뭐가 뭔지 모르겠대요. 바르나바스는 물론 이런 광경을 관찰하는 시간 여유를 얼마든지 가지고 있어요. 왜냐하면 그가 방청석에서 몇 시간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며칠이고 서 있어야 비로서 클람의 눈초리가 그에게로 떨어지게 되니까요. 설사 그의 모습이 클람의 눈에 띄어서 바르나바스가 부동자세를 취한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아무것도 일을 낙착된 것이 아니거든요. 왜냐하면 클람이 또 그에게서 시서늘 돌려서 책을 들여다보거나 그르 잊어버리는 일도 있으니까요. 그런 일도 자주 있대요. 이렇게 하찮은 사자의 근무란 대체 무었일까요? 그래서 바르나바스가 아침 일찍이 성으로 산다는 소리를 들으면 제 마음은 우울해죠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무런 소용이 없고 보람도 없는 일, 아무리 보아도 헛수고만 하고 헛탕만 치는 하루, 아무리 살펴도 허무하기 짝이 없고 공전만 거듭하는 희망, 이런 것이 대체 무엇일까? 그러나 한편 집에는 구두를 만드는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서 브룬스빅크는 자꾸 재촉하는데, 바르나바스 이외에는 할 사람조차 없어요." "그러면 좋아요. 명령을 받을 때까지 바르나바스는 오랫동안 기다리지 않으면 안 돼죠. 이 마을에는 고용원들이 넘쳐 흐러고 있으니까 무리가 아닐거요. 누구라도 매일같이 명령을 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죠. 이 점에 대해서는 당신네들은 한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누구나 다 그러니까 말이오. 그러나 나중에는 바르나바스도 명령을 받게 될 거요. 내게도 벌써 편지를 두 장이나 전해 주었으니까." 하고 K가 말했다. "우리들이 한탄한 것은 잘못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특히 저로 말하면 단지 소문을 들어 알고 있을 뿐이고 아무래도 여자니까 바르나바스처럼 잘 이해하지 못하는지도 모르겠어요. 거기다가 그는 아직도 우리들에게 이야기하지 않은 일이 많이 남아 있어요. 그러나 편지, 선생님께 보낸 편지 이야기를 들어 보세요. 그는 이 편지를 직접 클람의 손에서 받지 않고 서기에게서 받았대요. 어느 날 어느 시간에__그러니까 성의 근무는 아무리 편안한 것처럼 보여도 대단히 피곤하거든요. 왜냐하면 바르나바스는 늘 긴장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죠__서기가 그를 생각하고 그를 불렀대요. 이것은 클람이 시켜서 그렇게 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클람은 조용히 자기 책을 읽고 있었대요. 종종__보통 때도 클람은 흔히 그렇게 하지만__그는 바르나바스가 왔을 때면 마침 코에 거는 안경을 닦곤 했대요. 그럴 때면 그는 으레 바르나바스를 쳐다본데요. 이것은 클람이 일반적으로 코에 거는 안경 없이도 본다는 것을 전제 조건으로 하지만, 바르나바스는 그 점을 의심하고 있어요. 그러나 클람은 그럴 때면 거의 두 눈을 감고 있기 때문에 잠자는 것처럼 보이고 단지 꿈속에서 안경을 닦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거예요. 그러는 동안에 서기는 책상 밑에 있는 많은 문서나 서류 중에서 선생님에게 보내는 펴지 한 장을 찾아낸대요. 따라서 그것은 서기가 그 때 갓 쓴 편지는 아니에요. 오히려 봉투의 모양으로 보아서 벌써 오랫동안 거기에 깔려 있었던 퍽 오래된 편지지요. 그러나 만일 그렇게 오래 묵은 편지라면 왜 바르나바스를 그다지도 오랫동안 기다리게 했을까요? 그리고 선생님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편지를? 왜냐하면 그 편지는 지금은 케케묵은 것이 되어 버렸으니까요. 그리고 바르나바스도 그 때문에 형편없고 느린 사자라는 나쁜 평판을 듣게 됐지요. 서기가 하는 일은 아주 간단해서 바르나바스에게 편지를 내주면서 '클람에게서 K에게로'하고 하며 바르나바스를 그것으로 내보내는 거죠. 그리고 바르나바스는 집으로 돌아와요. 숨가쁘게 헐떡거리면서, 간신히 새치기한 편지를 바로 몸에다 착 붙여서 감춘 채 달려와요. 그리고 우리들은 지금처럼 이긴 의자 위에 걸터앉아서 그가 이야기하면 둘이서 모든 것을 일일이 검토하고 그가 한 업적을 평가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그것이 대단히 하찮다는 것을 또 사소한 것일지라도 의심할 여지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요, 바르나바스는 편지를 내동댕이쳐 버리고 그것을 배달할 용기도 없이 그렇다고 자러 갈 생각도 하지 않고 구두 짓는 일에 착수해서 밤새도록 낮은 의자에 앉아서 일을 하지요, 사정은 그래요. K씨, 그리고 이것이 제 비밀이에요. 아마도 선생님은 이제 아말리아가 제 비밀을 알려고 하다가 단념해 버린 사실을 이상스럽게 여기시지 않겠지요." 하고 올가는 발했다. "그리고 편지는?" 하고 K는 물었다. "편지라고요? 그것은 얼마 후에 제가 바르나바스를 부지런히 태촉한 다음에__그러는 동안에 며칠이고 몇 주일이고 지나는 일도 있지만__그래도 좌우간 편지를 들고 배달하러 나가 보는 거죠. 그는 이런 대수롭지 않은 일에는 제 말을 잘 들어요. 저는 그의 이야기의 처음 인상을 지워 버리면,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신을 차릴 수가 있어요. 그러나 그는 아마도 많이 알고 있는 탓인지, 그에게는 이것이 불가능해요. 그래서 그는 아마도 많이 알고 있는 탓인지, 그에게는 이것이 불가능해요. 그래서 그럴 때면 저는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이렇게 말하는 거죠. '바르나바스야, 대체 너는 무엇을 소원하고 있는 거니? 너는 어떤 생애를 어떤 목표로 꿈꾸고 있는 거니? 너는 우리들을 아니 나를 완전히 버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 그것이 너의 목적이지 뭐냐? 나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냐? 그렇지 않으면 네가 지금까지 성취한 일에 대해서 그렇게 불만을 느낄 수는 없지 않니?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야. 우리들 주변에 누가 너 같은 사람이 있는지 둘러보란 말이야! 그렇지, 그들의 사정은 우리들과는 다르지. 우리들처럼 잘 살려고 노력할 아무런 이유도 없지. 그러나 아무튼 그런 비교를 해 보지 않더라도 너의 경우에 있어서는 만사가 썩 잘돼 나가고 있다고 누구나 다 생각할 거야. 여러 가지 장애, 갖가지 회ㄹ와 환멸도 있어. 그러나 그것은 우리들이 옛날에 알고 있었던 사실에 지나지 않아. 그것은 네가 다른 사람에게서 무엇하나 공짜로 얻을 수는 없는 것이며, 오히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하나하나 제 힘으로 쟁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뜻밖에는 없어. 자랑삼을 이유는 될망정 풀이 죽을 이유는 없지 않니? 그리고 네가 싸우는 것은 우리들을 위한 것도 되지 않니? 우리들을 위해서 투쟁한다는 것이 내게는 아무 소용도 없는 일이니? 네게는 아무런 새로운 힘도 주어지지 않니? 그리고 내가 그런 동생을 두었다는 행복, 거의 거만할 정도로 자랑으로 삼는다는 것, 그것이 네게는 아무런 확신도 주지 않니? 정말로 네가 성에서 한 일은 나를 실망시키지는 않지만 내가 너와 함께 있으면서 한 일을 생각하면 슬퍼지는구나. 너는 성 안에 들어가는 허가를 받고 있는 몸이고, 언제든지 사무국에 가서 하루 종일 클람고 같은 장소에서 지내고, 인정받은 사자니까 관복도 청구할 수 있고, 중요한 편지도 접수하고 배달할 수 있어. 그 모든 일을 너는 하고 있고, 또 해도 괜찮게 돼 있어. 그런데 네가 성에서 이 마을로 내려오면 사실은 행복에 겨워서 둘이 울면서 서로 껴안아야 하겠는데, 나를 보자마자 네 몸에서 용기는 날아가고 기운은 빠지고 마는 묘양이구나. 너는 모든 것에 대해서 의심을 품고, 단지 구두 짓는 일만이 네 마음을 끌 따름인가 보구나. 그리고 우리들의 장래를 보증해 준다는 편지는 깔아 놔 버리고,'저는 이렇게 동생에게 타이르지요. 그리고 내가 며칠이고 이런 말을 되풀이한 다음에야 비로소 동생은 한숨을 쉬면서 편지를 들고 나가느 것이에요. 그러나 아마 제 말의 효과가곤 도무지 없을 거예요. 그저 또다시 성으로 가고 싶은 생각만 복받쳐 올라오기 때문에 그러는 거겠지요. 명령을 다 이행하지 않고서는 감히 성으로 갈 생각도 나지 않을 것이니까요." 올가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당신이 바르나바스에게 한 이야기는 모두 옳은 말이오. 당신은 놀랄 만큼 정확하게 그 일에 대해서 간추려 말하는 솜씨를 보였어요! 굉장히 머리가 좋은데요." 하고 K가 말했다. "아니에요, 당신은 잘못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저도 아마 동생을 속이고 있는지도 몰라요. 대체 그가 무엇을 성취했다는 거죠? 물론 그는 어느 사무국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받고 있어요. 그러나 그것은 전혀 사무국 같은 것도 아니고 말하자면 사무국의 옆방이라고 할까, 아니 그것도 아닐 거예요. 틀림없이, 진짜 사무국에 들어가는 허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을 모조리 집합시켜 두는 방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는 클람과 이야기해요. 그러나 그것이 클람일까요? 그보다도 누구인지 클람을 약간 닮은 사람이 아닐까요? 기껏해서 비서 같은 사람이거나 클람을 약간 닮았거나 더 닮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사람, 클람이 흔히 하는 것처럼 꿈꾸는 듯이 흐리멍텅하게 잠이 덜깬 모습이면서도 자못 점잔을 빼고 재는 체하는 그런 사람이겠지요. 클라므이 성격의 그 밖의 다른 점은 조심해서 건드리지도 않지만, 그것을 시험해 보는 사람은 많이 있어요. 그리고 클람처럼 모두들 열렬히 동경하고 있는데도 거의 만나지 못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상상되기 쉬운 거예요. 예를 들면 클람은 여기서 모무스라는 이름의 마을 비서를 쓰고 있어요. 그렇지요? 선생님도 아시지요? 그 사람도 숨어서 소극적인 생활을 보내고 있어요. 저는 그를 두서너 번 본 적이 있어요. 젊고 튼튼한 사람이죠, 그렇지 않아요? 그런데 조금도 클람을 닮은 것처럼 보이지 않아요. 그래도 마을 사람들 가운데는 모무스가 바로 클람이라고 장담하는 사람까지 있어요. 이렇게 사람들은 자신들의 독특한 혼란과 분규에 박차를 가하는 거예요. 성 안에서도 대게 이와 비슷한 상태일 거예요. 어떤 사람이 바르나바스에게, '저 관리가 클람이다' 라고 말했다고 해요. 사실 두 사람 사이에는 어느 정도 닮은 점이 있어요. 그러나 이 비슷한 점에 대해서 바르나바스는 늘 의심을 품고 있어요. 그리고 이 모든 사실이, 그의 의심은 근거가 있다고 증명해 주거든요. 클람이 그런 속된 장소에서 다른 관리들틈에 끼어서 연필을 귀 뒤에 끼우고 함께 서성거릴 필요가 있을까요?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바르나바스는 약간 순진한 기분으로__그러나 그것은 퍽 믿을 만한 기분 이지만__가끔 이렇게 말하는 버릇이 있어요. '그 관리는 클람과 꼭 닮았습니다. 그가 자기 전용 사무실의 전용 책상 옆에 앉아 있고, 문에 클람이라는 이름만 붙어 있다면 저는 아무런 의심도 품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순진한 이야기지만 그래도 조리는 있거든요. 물론 다음과 같이 말하면 더 조리가 있을 거예요. 그것은 성에 갔을 때 그 자리에서 바르나바스가 두서너 사람들에게 진짜 사정은 어떻게 된 것인가를 물어 보는 거죠. 그런데 그가 말하는 소리를 들으면 방안에는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여기 저기에 서 있다고 해요. 그렇다면 가령 그들의 주장은, 물어 보지도 않았는데 저 사람이 클람이라고 가리킨 사람의 주장보다도 훨씬 더 믿음직하다고는 할 수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그들의 여러 가지 대답으로 말미암아 어느 지점, 즉 일치점이 생길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나 이것은 바르나바스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고 제 생각은 아니에요. 하지만 그는 그 생각을 대담하게 실행해 볼 용기가 없어요. 자기가 알지도 못하는 규칙을 자칫 잘못해서 뜻하지 않게 위반하게 되어 자기의 지위를 잃어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서 아무에게도 감히 말을 걸어 볼 생각도 못하고 있어요. 그토록 자기 자신을 불안정하다고 느끼고 있는 거죠.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원래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이 불안감이라는 것이 수많은 묘사나 표현보다도 그의 입장을 여실히 나타내고 있는 것이에요. 그가 이 천진 난만한 질문을 하기 위해서 감히 입을 벌리고 말조차 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그의 눈에 사무국의 모든 것이 얼마나 의심스럽고 무서운 것으로 비쳤는지 잘 알수 있어요. 저는 그것을 생각하면 제가 저도 모르는 장소에 그를 혼자 내버려둔 것에 대해서 스스로 가책을 느끼지 않을 수 없어요. 거기서 일이 진행되는 상태를 보면, 겁쟁이라기보다는 대답 무쌍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거라고 할지라도, 공포에 떨고 있다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지요." "여기서 당신은 결정적인 점에 이르렀다고 생각해요. 즉, 이래요." 하고 K는 이어서, "당신이 이야기해 준 것에 의해서 나는 겨우 눈을 뜬 거나 마찬가지예요. 바르나바스는 이 임무를 위해서는 너무나 젊어요. 그가 말한 것 중에서 무엇 하나 그대로 곧이들을 것이 없어요. 위에 있는 성에서 그는 공포에 떨고 몸이 오그라져서 아무것도 관찰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기와서는, 억지로 본 이야기를 시키니까, 어수선하고 어지러운 이야기밖에는 들을 수가 없지요. 나는 이것을 조금도 이상스럽게 생각하지 않아요. 관청에 대한 경외는 이 마을의 당신네들에게는 타고난 것이며, 앞으로 여러분의 평생을 두고 가지 각색으로 여러 방면으로부터 영향을 받게 될 것이며, 당신네들도 자기 스스로가 될 수 있는 한 그 일에 협력하고 있는 거지요. 그러나 나도 근본적으로 그것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반대하는 것을 아니에요. 만일 어므 관청이 좋다면 그것에 대해서 외경을 느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없어요. 단지 그렇다 하더라도 바르나바스와 같은, 마을 안에서 밖으로 나사 본 경험도 없는 젊은이를 갑자기 성으로 보내어 사실 그대로의 보고를 그에게 요구하려고 하거나,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계시의 말인 양 꼬치꼬치 캐어서 검토해 보거나, 나중에는 그 말을 해석하는 데에 그의 생활 전체의 행복이 좌우되도록 되어 버리거나 해서는 안 되지요. 이 이상 더 그릇된 일은 없지요. 물로 나도 당신과 조금도 다름없이 그 사람 때문에 착각을 일으킨 셈이에요. 그에게 기대를 걸고 있었던 만큼 환멸의 비애도 느끼게 되었지만, 그 기대나 환멸이 둘 다 그의 말을 근거로 삼고 있으니까, 따라서 따지고 보면 아무런 근거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하고 말했다. 올가는 잠자코 있었다. 그래서 K는 말을 계속했다. "당신의 동생에 대한 믿음을 동요시키는 것은 나로서는 쉬운 일은 아니지요. 그것은 당신이 얼마나 그를 사랑하고 있는지, 또 그에게 얼마나 기대를 걸고 있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그것은 필연적으로 그렇게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지요. 왜냐하면, 생각해 보세요. 늘 무엇이 당신을 방해하고 있어서__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알 수 없지만__바르나바스가 스스로 획득한 것이 아니라, 그에에 수여된 것, 그것을 당신은 완전히 인식할 수 없지 않아요. 스는 사무국으로__만일 당신이 희망한다면 옆방이라고 가정하면, 거기에는 앞으로 통하는 문이 있고, 만일에 사람들이 교묘한 기술만 가지고 있으면 넘어갈 수도 있는 울타리도 있지요. 그런데 나 자신을 예로 들어서 말하자면, 이 옆방이란 적어도 당분간은 들어갈 수 없는 곳이지요. 바르나바스가 거기서 누구와 이야기하고 있는지 알 수 없어요. 아마도 그 서기는 가장 말단 관리일 거예요. 그러나 가령 그 서기가 가장 말단관리라고 할지라도 그 서기는 자기 바로 위 상관에게는 바르나바스를 데리고 갈 수 있어요. 데리고 갈 수 없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그 사람의 이름을 대줄 수는 있어요. 만일 대줄 수가 없다고 하더라도, 누구하도 이름을 댈 수 있는 사람을 가리키고 거기로 가라고 지시할 수는 있어요. 소위 클람이라고 자칭하는 그 사람은 진짜 클람과는 손톱만큼도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 않아요. 비슷하다고 본 것은 다만 바르나바스가 흥분한 나머지 눈이 어두워 졌기 때문에 그렇게 비쳤을 뿐이지요. 그는 관리 중에서 가장 하급일지도 모르겠고, 또는 전혀 관리가 아닐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그도 책상 옆에 자리잡고 앉아서 무슨 임무를 띠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고, 자기의 큰 책을 펴놓고 무엇을 읽고 있으며, 무엇인지 서기에게 속삭이기도 하고, 오랜 시간이 지나는 사이에 그의 시선이 잠깐 바르나바스 위에 떨어지면, 그가 무엇인지 생각하고 있는 듯하기도 할 테지요. 그리고 그것이 전부 진실이 아니고, 그와 그의 행위가 전혀 아무것도 뜻하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그래도 좌우간 누군가가 그 사람을 그 자리에 배치했으며, 그 사람을 그 자리에 배치한 것은 어떤 뜻이 있을 거예요. 따라서 나는 이렇게 생각해 볼 때, 무엇인지 그 곳에 있다, 무엇인지 바르나바스에게 제공되어 있다고 적어도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그래서 그가 이것으로써 회의,불안,절망이외는 아무것도 얻을 수가 없다면, 그것은 오로지 바르나바스의 책임이라고 주장하고 싶어요. 그런데 나는 전혀 있을 수 없는, 가장 불리한 경우에서부터 출발하고 있거든요. 왜냐하면 우리들은 편지를 손에 들고 있기 때문이지요. 물론 나는 이것을 그다지 신용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바르나바스의 말보다는 훨씬 믿고 있어요. 가령 그것이 가치가 없는 낡은 편지이고, 그것과 아주 똑같이가치가 없는 편지를 산더미처럼 쌓아 올린 속에서 아무렇게나 빼낸 편지, 해마다 열리는 큰 시장에서 운명 판단의 점을 치기 위해서 무더기 속에서 제비 뽑는데 카나리아 새를 사용해서 입으로 쪼아 오게 하는 두뇌밖에 갖지 못한, 그런 식으로 편지를 빼냈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이 편지는 나의 일에 대해서 적어도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어요. 아마도 내게 유리한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좌우간 내게 보내온 것만은 확실해요. 그뿐만 아니라 이 편지는 면장 내외가 증명한 바에 의하면 클람 자신이 손수 쓴 것이고, 또 면장에게 들은바에 의하면 단순히 개인적인 것이며, 거의 분명치 않은 내용을 가지고 있는 편지라고는 하지만, 그러나 중대한 뜻을 가지고 있어요." "면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나요?" 하고 올가가 물었다. "네, 면장의 말이죠." 하고 K가 대답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바르나바스에게 해 주겠어요. 동생이 그 이야기를 들으면 분명히 기운을 내게 될 거예요." 하고 올가는 빠른 어조로 말했다. "원기를 북돋아 주는 것은 바르나바스에게는 필요치 않아요. 그를 고무하는 것은 말하자면 네가 옳다, 지금까지의 태도를 몸에 지니고 계속 밀고 나가야 된다고 그에게 타이르는 거나 마찬가 지지요. 그러나 그런 방법으로는 그는 결코 무엇이건 성취하지 못할 거예요. 이를테면 두 눈을 다쳐서 붕대로 감은 사람에게 붕대를 통해서 응시하라고 아무리 용기를 북돋아 준다해도 그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테니까요. 붕대를 풀어 주어야만 비로소 볼 수 있게 되지요. 바르나바스에게 필요한 것은 말하자면 그런 도움이지 격려는 아니에요. 좀 생각해 보세요. 저 산 위에는 얽혀서 풀 수 없는 복잡한 큰 관청이 있어요-내가 여기 오기까지는 그 관청이 어떤 것인지 대충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주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었어요-좌우간거기에는 관청이 있어서 바르나바스는 거기로 향해서 전진하는데 자기밖에는 아무도 없고, 가엾고 안타깝게도 그 사람 혼자뿐이지요. 만일 그가 평생을 그 사무국의 어둠침침한 한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을 수 있고 존재가 무시되는 일이 없다면 그것만으로도 그에게는 무상의 영광이라고 아니할 수 없지요." 하고 K가 말했다. "K씨, 우리들이 바르나바스가 맡은 임무의 중대성을 과소 평가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안 돼요. 우리들은 관청에 대한 경외의 마음을 충분히 가지고 있어요. 선생님 자신이 그런 말씀을 하시지 않앗어요." 하고 올가가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릇된 경외의 마음이지요. 그런 경외의 마음은 그 대상의 명예를 손상시켜 품위를 떨어뜨리게 하는 것이에요. 바르나바스가 그 곳으로 들어가는 입장 허가라는 은전을 거기서 무위 도식하는 데 남용하더라도 그것을 경외의 마음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까요? 또는 그가 마을로 내려와서 방금 그가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었던 그들을 의심하고 비난해도, 그것을 경외의 마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또는 그가 절망해선지 피로하기 때문인지 몰라도, 편지를 곧배달하지 않고 맡은 사명을 곧 수행하지 않더라도 그것을 경외의 마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니 이쯤 되면 벌써 경외의 마음이라고는 할 수 없어요. 그런데 올가 양, 이 비난은 한 걸음 더나아가서 당신 자신에게까지 미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해요. 나는 당신까지도 비난하지 않을 수 없어요. 당신은 관청에 대해서 경외의 마음을 품고 있다고 믿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젊고 연약한 바르나바스를 홀로 성으로 보냈으니까요. 적어도 못 가게 말리지는 않았지요." 하고 K가 말했다. "선생님이 제게 하신 비난을 저는 벌써 오래 전부터 제 자신에게 하고 있어요. 다만 제가 바르나바스를 성으로 보냈다는 비난은 물론 제게는 당치도 않아요. 제가 그를 성으로 보낸 것이 아니라 그가 제발로 걸어갔어요. 그러나 제가 갖은 수단을 다하거나 모략을 쓰거나, 또는 설복시켜서라도 강제로 그를 만류해야만 되었다고 말씀하시겠지요. 저는 그를 못 가게 붙들었어야만 되었는지 모르겠어요. 그러나 만일 오늘이 그 날, 그 결정적인 날이라고 치고, 제가 바르나바스의 곤란, 우리들 가족들의 곤궁을 그 때와 다름없이 오늘도 느끼고 있을 뿐 아니라, 바르나바스가 모든 책임과 위협을 명백히 의식하면서도 다시 미소를 띄우면서 조용히 저와 헤어져 떠나간다면, 저는 그 동안 모든 경험을 해 왔는데도 불구하고 오늘도 역시 그를 붙들지는 않을 것이에요. 선생님도 역시 제 입장에 서 계신다면 그 밖에 다른 도리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거예요. 선생님 은 우리들의 곤궁을 모르시나요. 그러니까 우리들을, 그 중에서도 바르나바스를 부당하게 취급하시는 거죠. 그당시 우리들은 지금보다도 더 희망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러나 그 당시에도 우리들의 희망은 크다고는 할 수 없었어요. 컸다면 우리들의 곤궁뿐이고, 지금도 그대로 그 상태가 계속되고 있어요. 하지만 프리다가 우리들에 관해서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았던가요?" 하고 올가가 말했다. "단지 암시를 주었을 따름이지요. 결정적인 이야기는 아무 말도 없었어요. 여하튼 당신네들 이 름만 들어도 흥분하니까요." 하고 K가 말했다. "단지 암시를 주었을 따름이지요. 결정적인 이야기는 아무 말도 없었어요. 여하튼 당신네들 이름만 들어도 흥분하니까요." 하고 K가 말했다. "주인 아주머니도 아무 말 없었나요?" "네, 아무 말 없었어요." "그러면 그 밖의 다른 사람들도 아무 말이 없었나요?" "네, 아무도 말하는 이가 없었어요." "물론 그럴 거예요. 아무도 이야기하지 못할 거예요. 누구든 우리들에 관해서 약간은 알고 있어요. 그것이 진실이든-그것도 사람들에게 통하는 한도 내에서지만-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사람들 에게서 들은 소문, 또는 대부분은 자기가 제멋대로 꾸며낸 유언 비어, 그런 것을 알고 있을 거예요. 누구나 필요 이상으로 우리들에 관해서 생각하고 있으나 아무도 그것을 솔직하게 다른 사람 에게 이야기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것을 입에 올리기를 누구나 삼가고 있어요. 또 그들이 그러는 것도 당연한 일이요. 이것을 이야기해 드린다는 것은, K씨, 아무리 선생님께라고 해도 어려운 일이에요. 그리고 아무리 선생님과는 관계가 없는 듯 보인다 하더라도, 이이야기를 들은 다음에는 떠나가 버리고, 우리들 일은 그 이상 알려고 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에요. 그러면 우리들은 선생님을 잃어버리는 거죠. 선생님은 벌써 이제 저에게는 바르나바스의 성근무보다도 더 소중하다고 할 수 있어요. 저는 그 점을 고백해요. 그러나-이 모든 모순으로 말미암아 저는 하룻밤 내내 쭉 고민했어요-이 사실을 아시지 않으면 안 돼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들이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곤란해지고, 언제까지나 바르나바스에게 부당한 취급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참 가슴 아픈 일이에요. 더군다나 서로 필요한 완전한 인화를 얻지 못하게 될 뿐 아니라, 당신은 우리들을 도와주시지도 못할 것이며, 반대로 우리들의 도움을-대단히 이상스러운 도움일지 몰라도-받으실 수 없게 될 거예요. 그리고 또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어요. 그것은 '대체 당신은 그것을 정말 알고 싶습니까?'하는 것이에요." "왜 그런 말을 묻지요? 꼭 필요하다면 알고 싶어하는 것도 당연하지 않아요? 그러나 왜 묻지요?" 하고 K가 물었다. "미신에서예요. 선생님은 아무런 죄도 없고, 바르나바스와 다름없이 순진하시지만, 우린들 사건 속으로 휩쓸리고야 말 것이에요." 하고 올가가 말했다. "어서 이야기하세요. 나는 무서워하지 않아요. 거기다가 당신은 불안을 느끼는 여자들의 마음 때문에 사실보다도 훨씬 나쁘게 생각하고 있어요." 하고 K가 말했다. 아말리아의 비밀 "스스로 판단해 주세요. 이 말이 아주 썩 간단한 것처럼 들리지요. 아주 중대한 뜻을 이 말이 가질 수도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당장에는 알지 못해요. 성에는 퍽 높은 관리로서 소르티니라고 불리는 귀하신 관리 한분이 계셔요." 올가는 그렇게 말했다. "그 분에 관해서는 나도 들은 일이 있어요. 나를 조치하는 문제에도 참가해서 큰 역할을 한 분이지요." 하고 K가 말했다. "아니, 그렇지 않을 거예요. 그분은 공석에는 잘 나타나지않으니까요. 소르디니라고 이탈리아 사람으로서 D자를 쓰는 사람과 혼동하신게 아닐까요?" 하고 올가가 물었다. "그렇군요, 소르디니였어요." 하고 K가 말했다. "그래요, 모두들 소르디니는 잘 알고 있어요. 그는 가장 부지런한 관리로서 사람들의 소문이 자자해요. 그와 반대로 소르티니는 대단히 소극적이고 들어박혀있는 사람이어서 사람들은 대개 그를 잘 몰라요. 삼 년 훨씬 전에 나는 그의 모습을 보았는데, 그때가 처음인 동시에 마지막이었어요. 7월3일, 소방대의 축하식을 거행되었는데, 성 양반들이 거기 참석하고 새 소방 펌프 한 대를 기부했어요. 소르티니는 소방대 문제를 취급하고 있다고 했는데, (아마그분은 대리로서 그 자리에 참석하고 있었던 모양이죠-대개 관리들은 서로 대리 노릇을 하고 있어요. 따라서 관리 피차간의 권한과 관할을 분리하기는 참으로 어려워요-그때 소방펌프 양도식에 참석했어요. 그 밖에도 성에서 여러 양반들이 참석했어요. 관리와 하인들이지요. 말하자면 그 사람다운 일이지만, 소르티니는 아주 뒷전에 물러서 있었어요. 키가 작고 약한 체격이었는데 무슨 생각에 잠긴 것처럼 보였어요. 소르티니의 모습을 본사람들이 모두 기묘하게 느낀 점은, 그의 이마에 주름살이 잡힌 모습이었죠. 모든 주름살이-확실히 지금 사십을 넘지 않았을 것인데도 주름살이 많이 잡혔어요- 말하자면 부체모양으로 이마 전체와 콧잔등까지도 퍼져 있었어요. 그렇게 주름살이 많은 사람은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그 축하식으로 말하자면, 우리들, 즉 아말리아와 저는 벌써 몇 주 전부터 이 축하식을 기쁜 마음으로 고대하고 있었어요. 주일 날에 입는 아름다운 이옷도 새로 장만해 놓았어요. 특히 아말리아의 옷은 아름다웠고, 흰 블라우스는 몇겹으로 레이스를 겹쳐 달아서 앞이 불룩하게 부풀어 있었어요. 그것은 어머니가 가지고 있던 레이스를 전부 빌려주신 거예요. 저는 그 때 샘이 단단히 나서 축하식 전날밤중 내내 울면서 새우다시피 했어요. 아침이 되어서 교반관 아주머니가 우리들의 모습을 구경하러 와서 비로서......" 하고 올가가 말했다. "교반관 아주머니가?" 라고 K가 물었다. "네, 그분은 우리들과 아주 친한 사이였어요. 그런데 그녀가 와서 아말리아 쪽이 조건이니 형편이니 낫다는 것을 깨닫고 제 마음을 누그러지게 하기 위해서 자기가 지니고 있었던 보헤미아 석류석의 목거리를 빌려 주었어요.드디어 출발준비가 다 외어서 아말리아가 제 앞에 서자, 우리들은 모두 그애의 모습을 감탄하며 쳐다보고 있었어요. 그러자 아버지는 '모두들 내 말을 잘 기 억해 두어. 오늘 아말리아는 신랑을 얻는다.' 하고 말씀했어요. 그때 저는 왜 그런지 모르겠으나, 제가 자랑으로 삼고 있었던 목거리를 끌어서 아말리아의 목에다 걸어 주었어요. 샘 같은 것은 찾아볼 수도 없었어요. 즉, 그애의 승리 앞에 고개를 수그릴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때는 아말리아가 보통 때와는 전혀 달라 보였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들은 놀랐나 봐요. 왜냐하면 원래 아름답지는 않았지만, 그애의 어두운 눈초리는-그 때부터 그애는 쭉 그런 눈초리를 지니고 있었지만-우리들 위를 높이 스쳐 지나가기 때문에 사실상 그애 앞에서는 거의 자기도 모르게 머리만 수그리게 됐지요. 모두들 그것을 ㄲ달았어요. 우리들을 데리러 온 라제만 부부도 그런말을 했어요." 하고 올가가 말했다. "라제만?" 하고 K가 물었다. "네, 라제만이지요. 우리들은 참으로 인기를 끌었어요. 예를 들면, 우리들이 없으면 축하 연회가 멋있게 시작되지 못했을 거예요. 왜냐하면 아버지는 소방대의 세 번째 연습지도자 였거든요." 하고 올가가 말했다. "아버지는 아직도 건강하시나요?" 하고 K가 물었다. "아버지가요?" 하고 올가가 똑똑히 모른다는 듯이 반문했다. "삼 년 전에는 아버지는 아직 젊은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원기가 왕성했어요. 예를들면 신사관에 불이 났을 ㄸ만 하더라도, 갈라터라는 몸이 육중한 관리 한사람을 업고 달려나와 구출해 냈어요. 저 자신도 그 자리에 있었지만, 사실 화재의 위험은 없었어요. 난로 옆에 놓았던 마른 나무가 그슬려서 불붙기 시작했을 뿐이에요. 그러나 갈라터는 겁을 집어 먹고 창문에다 대고 사람살리라고 소리쳤어요. 그래서 소방대가 쫓아오고 우리 아버지는 그를 구출해 내오지 않으면 안 되었어요. 벌써 그 때는 불은 꺼져 있었어요. 좌우간 갈라터는 뚱뚱해서 잘 움직이지도 못하는 사람이니까, 이와 같은 경우에는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됐어요. 저는 오로지 아버지를 위해서만 이 이야기를 하는거예요. 그 때부터 고작 삼 년 남짓 세월이 흘렀지만, 저기에 않아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좀 보세요." 그때야 비로서 K가 아말리아가 다시 방안으로 들어와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멀리 떨어져 있는 양친의 식탁옆에 앉아서, 신경통 때문에 팔을 움직이지 못하는 어머니에게 음식을 떠드리고 있었다. 어머니에게 식사를 떠드리는 동시에 아버지에게도 말을 걸고 잠깐만 더 참아주면 아버지에게 가서 음식을 떠드리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가 간절해서, 자기몸이 약한데도 불구하고 억지로 기운을 내서 수프를 숟가락으로 떠먹으려고 하는가 하면, 이번에는 직접 수프 접시를 입에 대고 마시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이 둘 다 뜻대로 잘 안 되니까 투덜거리며 불평을 했다. 사실 스푼이 입에 닫기도 전에 벌써 수프는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거기다가 입에 까지 닿아 본 적도 없었다. 축 늘어진 수염만이 언제나 수프속에 담겨져서 적셔 질 뿐 국물은 여기저기서 뚝뚝 떨어지며 튀어나가기만 하고, 거의 입에 들어가는 것이 없었다. "삼 년 동안에 저렇게 되어 보이셨나요?" 하고 K가 물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이 노인들과 이 식탁 한 모퉁이에서 벌어진 광경에 대해서 아무런 동정심도 갖지 못했다. 다만 싫증을 느꼈을 뿐이었다. "네, 삼 년 동안이지요." 하고 올가는 천천히 말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어느 잔치 때 단지 두서너 시간 사이에 저렇게 된 것이에요. 잔치는 마을 입구에 있는 작은 시냇물 옆의 목장에서 벌어졌어요. 우리들이 도착했을때는 벌써 야단법석 이었어요. 이웃 마을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어요. 사람들의 어수선하게 웅성거리는 시끄러운 소리에 머리까지도 어지러웠어요. 우리들은 물론 아버지에게 끌려서 먼저 소방펌프 있는곳으로 갔어요. 새 펌프를 보고 기뻐서 견딜 수가 없었던 모양이죠. 아버지는 펌프에 손을 대면서 일일이 설명하기 시작했어요. 아버지는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반대하고 말려도 말을 들으시지 않았어요. 펌프밑에 볼 것이 있으면 우리들은 모두 쭈그리고 펌프밑에 기어 들어가다시피 하지 않 으면 안 되었어요. 바르나바스는 그것이 싫다고 거부했기 때문에 매맞았어요. 단지 아말리아만은 펌프에 대해서는 염두에도 없었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채 거기에 서 있었어요. 그러나 아무도 그 애에게 한 마디도 하지 못했어요. 저는 가끔 그애한테로 뛰어가서 그애의 팔을 붙들었으나 그애는 잠자코 있었어요. 우리들은 지금도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좌우간 우리들은 상당히 오랫동안 펌프앞에 서 있었지요. 아버지가 펌프앞을 떠났을 때야 비로소 우리들은 소르티니가 와 있다는 사실을 ㄲ닫게 되었어요. 소르티니는 분명히 그때까지 쭉 펌프뒤에 숨어서 그 펌프 손잡이에 기대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 때 주위에서 아주 무서운 소동이 일어났어요. 단순한 잔치소동만이 아니었어요. 성에서는 소방대에 몇 개의 나팔도 기증했어요. 이 악기는 조금만 힘을 주어 불기만 하면-아마도 그건 어린애도 가능했을 거예요-굉장히 요란스런 소리를 냈어요. 그 소리를 들으면 꼭 터키 사람들이 눈앞에 쳐들어왔다고 생각될 정도였어요. 아무도 이런 소리에는 익 숙하지 못했어요. 모두들 나팔을 새로 불 때마다 몸을 움츠리곤 했어요. 그리고 새 나팔이었으니까 누구나 불어 보려고 했고, 뭐니뭐니해도 마을 사람들의 잔치였으니까 그런 짓을 해도 묵인해 주었어요. 마침 우리들의 주변에는-아마도 아말리아 때문에 모여든 것 같은데-그런 나팔 부는 사람이 두서너 사람 있었어요. 이런 상태에서 침착하게 마음을 가다듬고 있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어요. 더군다나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서 주위를 펌프 쪽으로 집중시키고 있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에 우리들로서는 그야말로 사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긴장 상태에 있었지요. 그래서 우리들은 이상스럽게도 오랫동안 소르티니가 있다는 사실을 ㄲ닫지도 못하고 있었어요. 물론 우리들 이 그 때까지 소르티니를 만난 일은 한 번도 없었지만. '저기에 소르티니가 있습니다.'라고 라제만이 아버지에게 속삭였어요-저는 두 분 옆에 서 있었어요-아버지는 참으로 공손하게 인사하고, 약간 흥분의 빛을 띠며 우리들에게도 인사를 하라고 눈짓했어요. 아버지는 전에 소르티니를 만난 일도 없었지만 그래도 쭉 그를 소방대 문제의 전문가로서 존경해 왔고 집에서도 그에 관해서 이야기 하곤 했으므로, 지금 소르티니의 모습을 실지로 눈앞에 본다는 것은 우리들에게 있어서 대단히 뜻밖의 일이며 또 뜻깊은 일이기도 했어요. 그러나 소르티니에게는 우리들은 염두에도 없었어요-이것은 소르티니의 특성이라고 말할 것은 없고, 관리들은 대개 백성들 사이에서는 아주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지요-그뿐더러 그는 몹시 피곤했어요. 단지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이 마을에 머무르고 있는 데 불과했어요. 이와 같은 대표의 의무를 특히 거북하게 느낀다고 해서 가장 나쁜 관리라고는 할 수는 없으니까요. 다른 관리나 하인들은, 좌우간 오기는 왔으니까 백성들 사이에 끼어 있었을 뿐이에요. 그러나 소르티니는 펌프옆을 떠나지 않았어요. 무엇인지 탄원하거나 아부하거나, 또는 그에게 접근하려는 사람들을 침묵으로써 얼씬 못하게 했어요. 그래서 자연히 우리들이 상대방을 눈치챈 후에 비로서 상대방은 우리들에게로 시선을 돌리더니 피곤한 눈초리로 한 사람씩 차례차례 쳐다보았어요. 하나씩 쳐다보면서 한숨까지 쉬는 것 같았는데 나중에 가서는 그 눈초리가 아말리아에게 멎었어요. 그애가 그보다도 훨씬 키가 컸기 ㄸ문에 눈을 위로 치껴뜨고 쳐다보지 않을 수 없었지요. 그는 그 순간 자뭇 놀란 듯이 우뚝 서더니 아말리아에 게로 가려고 손잡이를 뛰어넘었어요. 처음에 우리들은 그것을 오해하고, 모두들 아버지를 선두로 그에게 가까이 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는 손을 쳐들고 우리들을 제지하더니, 다음에는 가라고 손짓을 했어요. 그것뿐이었지요. 그리고 우리들은 정말로 신랑감을 구했다고 아말리아를 놀렸어요. 우리들은 좀 지각이 없이 그날 오후 내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어쩔 줄 몰라 하며 기뻐 날뛰 었어요. 단지 아말리아만은 전보다도 말이 없었어요. '아말리아는 은근히 소르티니에게 반했군' 하고 부룬스빅크가 말했어요. 이 사람은 약간 성질이 거칠지요. 그뿐더러 아말리아와 비슷해서 자연스러운 것에 대해서 이해가 없어요. 그런데 그 때만은 가의 말이 들어맞는 것처럼 우리들에게는 느껴졌어요. 우리들은 그 날 대개 가 탈선을 했지요. 자정이 지나서 집에 돌아왔을 때는 모두들-아말리아를 제외하고-성의 달콤한 술에 취해 있었어요." "그러면 소르티니는?" 하고 K가 물었다. "네, 저는 소르티니는 잔치 도중에 지나가면서 여러 번이나 봤어요. 그는 손잡이 위에 걸터 앉아서 가슴에다 팔짱을 끼고, 성에서 마차로 모시러 올ㄸ까지 꼼짝 않고 그러고 앉아 있었어요. 그때에 아버지는 연습하는 중에 소르티니가 보고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바로 그러길 바라고 있었기 때문에 같은 연배의 남자들 가운데서도 눈부신 활약을 했어요." "그러면 당신네들은 그에 관해서 그 이상 아무 소식도 듣지 못했나요?" 하고 K는 물었다. "당신은 소르티니를 대단히 존경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네, 존경하고 말고요." 올가는 말을 이어서, "우리들은 그에 관해서 소문을 더 많이 듣고 있었지요. 다음날 아침에 우리들은 취중에 잠자다가 아말리아가 소리지르는 바람에 잠이 ㄲ어 버렸어요. 다른 사람들은 곧 침대로 움츠리고 들어갔지만, 저는 아주 잠이 깨서 아말리아에게로 달려갔어요. 그 애는 창 옆에 서서 편지를 한 장 손에 들고 있었어요. 그 편지는 방금 한 남자가 창 너머로 던진 것 이었고 그 남자는 회답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아말리아는 그 편지를-사실은 짧은 편지였었는데-다 읽은 후 축 늘어진 손에 쥐고 있었어요. 그애가 그렇게 지쳐서 녹초가 된 꼴을 보면 저는 언제나 강렬한 애정을 느겨요. 저는 그애 옆에 무릎을 끓고 ㅇ은 채 그 편지를 읽었어요. 제가 다 읽기가 무섭게 아말리아는 힐끔 제 얼굴을 쳐다보더니 편지를 ㅃ앗아 갔어요.그러나 편지를 읽을 생각도 하지 않고 다짜고짜 찢어 버리더니, 그 찢어진 종이 조각을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는 남자 얼굴에 뿌리고는 창문을 닫아 버렸지요. 이것이 저 결정적인 날 자칭하는 그 사람은 진짜 클람과는 손톱만큼도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 않아요. 비슷하다고 본 것은 다만 바르나바스가 흥분한 나머지 눈이 어두워 졌기 때문에 그렇게 비쳤을 뿐이지요. 그는 관리 중에서 가장 하급일지도 모르겠고, 또는 전혀 관리가 아닐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그도 책상 옆에 자리잡고 앉아서 무슨 임무를 띠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고, 자기의 큰 책을 펴놓고 무엇을 읽고 있으며, 무엇인지 서기에게 속삭이기도 하고, 오랜 시간이 지나는 사이에 그의 시선이 잠깐 바르나바스 위에 떨어지면, 그가 무엇인지 생각하고 있는 듯하기도 할 테지요. 그리고 그것이 전부 진실이 아니고, 그와 그의 행위가 전혀 아무것도 뜻하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그래도 좌우간 누군가가 그 사람을 그 자리에 배치했으며, 그 사람을 그 자리에 배치한 것은 어떤 뜻이 있을 거예요. 따라서 나는 이렇게 생각해 볼 때, 무엇인지 그 곳에 있다, 무엇인지 바르나바스에게 제공되어 있다고 적어도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그래서 그가 이것으로써 회의,불안,절망이외는 아무것도 얻을 수가 없다면, 그것은 오로지 바르나바스의 책임이라고 주장하고 싶어요. 그런데 나는 전혀 있을 수 없는, 가장 불리한 경우에서부터 출발하고 있거든요. 왜냐하면 우리들은 편지를 손에 들고 있기 때문이지요. 물론 나는 이것을 그다지 신용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바르나바스의 말보다는 훨씬 믿고 있어요. 가령 그것이 가치가 없는 낡은 편지이고, 그것과 아주 똑같이가치가 없는 편지를 산더미처럼 쌓아 올린 속에서 아무렇게나 빼낸 편지, 해마다 열리는 큰 시장에서 운명 판단의 점을 치기 위해서 무더기 속에서 제비 뽑는데 카나리아 새를 사용해서 입으로 쪼아 오게 하는 두뇌밖에 갖지 못한, 그런 식으로 편지를 빼냈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이 편지는 나의 일에 대해서 적어도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어요. 아마도 내게 유리한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좌우간 내게 보내온 것만은 확실해요. 그뿐만 아니라 이 편지는 면장 내외가 증명한 바에 의하면 클람 자신이 손수 쓴 것이고, 또 면장에게 들은바에 의하면 단순히 개인적인 것이며, 거의 분명치 않은 내용을 가지고 있는 편지라고는 하지만, 그러나 중대한 뜻을 가지고 있어요." "면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나요?" 하고 올가가 물었다. "네, 면장의 말이죠." 하고 K가 대답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바르나바스에게 해 주겠어요. 동생이 그 이야기를 들으면 분명히 기운을 내게 될 거예요." 하고 올가는 빠른 어조로 말했다. "원기를 북돋아 주는 것은 바르나바스에게는 필요치 않아요. 그를 고무하는 것은 말하자면 네가 옳다, 지금까지의 태도를 몸에 지니고 계속 밀고 나가야 된다고 그에게 타이르는 거나 마찬가 지지요. 그러나 그런 방법으로는 그는 결코 무엇이건 성취하지 못할 거예요. 이를테면 두 눈을 다쳐서 붕대로 감은 사람에게 붕대를 통해서 응시하라고 아무리 용기를 북돋아 준다해도 그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테니까요. 붕대를 풀어 주어야만 비로소 볼 수 있게 되지요. 바르나바스에게 필요한 것은 말하자면 그런 도움이지 격려는 아니에요. 좀 생각해 보세요. 저 산 위에는 얽혀서 풀 수 없는 복잡한 큰 관청이 있어요-내가 여기 오기까지는 그 관청이 어떤 것인지 대충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주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었어요-좌우간거기에는 관청이 있어서 바르나바스는 거기로 향해서 전진하는데 자기밖에는 아무도 없고, 가엾고 안타깝게도 그 사람 혼자뿐이지요. 만일 그가 평생을 그 사무국의 어둠침침한 한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을 수 있고 존재가 무시되는 일이 없다면 그것만으로도 그에게는 무상의 영광이라고 아니할 수 없지요." 하고 K가 말했다. "K씨, 우리들이 바르나바스가 맡은 임무의 중대성을 과소 평가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안 돼요. 우리들은 관청에 대한 경외의 마음을 충분히 가지고 있어요. 선생님 자신이 그런 말씀을 하시지 않앗어요." 하고 올가가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릇된 경외의 마음이지요. 그런 경외의 마음은 그 대상의 명예를 손상시켜 품위를 떨어뜨리게 하는 것이에요. 바르나바스가 그 곳으로 들어가는 입장 허가라는 은전을 거기서 무위 도식하는 데 남용하더라도 그것을 경외의 마음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까요? 또는 그가 마을로 내려와서 방금 그가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었던 그들을 의심하고 비난해도, 그것을 경외의 마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또는 그가 절망해선지 피로하기 때문인지 몰라도, 편지를 곧배달하지 않고 맡은 사명을 곧 수행하지 않더라도 그것을 경외의 마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니 이쯤 되면 벌써 경외의 마음이라고는 할 수 없어요. 그런데 올가 양, 이 비난은 한 걸음 더나아가서 당신 자신에게까지 미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해요. 나는 당신까지도 비난하지 않을 수 없어요. 당신은 관청에 대해서 경외의 마음을 품고 있다고 믿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젊고 연약한 바르나바스를 홀로 성으로 보냈으니까요. 적어도 못 가게 말리지는 않았지요." 하고 K가 말했다. "선생님이 제게 하신 비난을 저는 벌써 오래 전부터 제 자신에게 하고 있어요. 다만 제가 바르나바스를 성으로 보냈다는 비난은 물론 제게는 당치도 않아요. 제가 그를 성으로 보낸 것이 아니라 그가 제발로 걸어갔어요. 그러나 제가 갖은 수단을 다하거나 모략을 쓰거나, 또는 설복시켜서라도 강제로 그를 만류해야만 되었다고 말씀하시겠지요. 저는 그를 못 가게 붙들었어야만 되었는지 모르겠어요. 그러나 만일 오늘이 그 날, 그 결정적인 날이라고 치고, 제가 바르나바스의 곤란, 우리들 가족들의 곤궁을 그 때와 다름없이 오늘도 느끼고 있을 뿐 아니라, 바르나바스가 모든 책임과 위협을 명백히 의식하면서도 다시 미소를 띄우면서 조용히 저와 헤어져 떠나간다면, 저는 그 동안 모든 경험을 해 왔는데도 불구하고 오늘도 역시 그를 붙들지는 않을 것이에요. 선생님도 역시 제 입장에 서 계신다면 그 밖에 다른 도리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거예요. 선생님 은 우리들의 곤궁을 모르시나요. 그러니까 우리들을, 그 중에서도 바르나바스를 부당하게 취급하시는 거죠. 그당시 우리들은 지금보다도 더 희망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러나 그 당시에도 우리들의 희망은 크다고는 할 수 없었어요. 컸다면 우리들의 곤궁뿐이고, 지금도 그대로 그 상태가 계속되고 있어요. 하지만 프리다가 우리들에 관해서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았던가요?" 하고 올가가 말했다. "단지 암시를 주었을 따름이지요. 결정적인 이야기는 아무 말도 없었어요. 여하튼 당신네들 이 름만 들어도 흥분하니까요." 하고 K가 말했다. "단지 암시를 주었을 따름이지요. 결정적인 이야기는 아무 말도 없었어요. 여하튼 당신네들 이름만 들어도 흥분하니까요." 하고 K가 말했다. "주인 아주머니도 아무 말 없었나요?" "네, 아무 말 없었어요." "그러면 그 밖의 다른 사람들도 아무 말이 없었나요?" "네, 아무도 말하는 이가 없었어요." "물론 그럴 거예요. 아무도 이야기하지 못할 거예요. 누구든 우리들에 관해서 약간은 알고 있어요. 그것이 진실이든-그것도 사람들에게 통하는 한도 내에서지만-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사람들 에게서 들은 소문, 또는 대부분은 자기가 제멋대로 꾸며낸 유언 비어, 그런 것을 알고 있을 거예요. 누구나 필요 이상으로 우리들에 관해서 생각하고 있으나 아무도 그것을 솔직하게 다른 사람 에게 이야기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것을 입에 올리기를 누구나 삼가고 있어요. 또 그들이 그러는 것도 당연한 일이요. 이것을 이야기해 드린다는 것은, K씨, 아무리 선생님께라고 해도 어려운 일이에요. 그리고 아무리 선생님과는 관계가 없는 듯 보인다 하더라도, 이이야기를 들은 다음에는 떠나가 버리고, 우리들 일은 그 이상 알려고 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에요. 그러면 우리들은 선생님을 잃어버리는 거죠. 선생님은 벌써 이제 저에게는 바르나바스의 성근무보다도 더 소중하다고 할 수 있어요. 저는 그 점을 고백해요. 그러나-이 모든 모순으로 말미암아 저는 하룻밤 내내 쭉 고민했어요-이 사실을 아시지 않으면 안 돼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들이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곤란해지고, 언제까지나 바르나바스에게 부당한 취급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참 가슴 아픈 일이에요. 더군다나 서로 필요한 완전한 인화를 얻지 못하게 될 뿐 아니라, 당신은 우리들을 도와주시지도 못할 것이며, 반대로 우리들의 도움을-대단히 이상스러운 도움일지 몰라도-받으실 수 없게 될 거예요. 그리고 또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어요. 그것은 '대체 당신은 그것을 정말 알고 싶습니까?'하는 것이에요." "왜 그런 말을 묻지요? 꼭 필요하다면 알고 싶어하는 것도 당연하지 않아요? 그러나 왜 묻지요?" 하고 K가 물었다. "미신에서예요. 선생님은 아무런 죄도 없고, 바르나바스와 다름없이 순진하시지만, 우린들 사건 속으로 휩쓸리고야 말 것이에요." 하고 올가가 말했다. "어서 이야기하세요. 나는 무서워하지 않아요. 거기다가 당신은 불안을 느끼는 여자들의 마음 때문에 사실보다도 훨씬 나쁘게 생각하고 있어요." 하고 K가 말했다. 아말리아의 비밀 "스스로 판단해 주세요. 이 말이 아주 썩 간단한 것처럼 들리지요. 아주 중대한 뜻을 이 말이 가질 수도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당장에는 알지 못해요. 성에는 퍽 높은 관리로서 소르티니라고 불리는 귀하신 관리 한분이 계셔요." 올가는 그렇게 말했다. "그 분에 관해서는 나도 들은 일이 있어요. 나를 조치하는 문제에도 참가해서 큰 역할을 한 분이지요." 하고 K가 말했다. "아니, 그렇지 않을 거예요. 그분은 공석에는 잘 나타나지않으니까요. 소르디니라고 이탈리아 사람으로서 D자를 쓰는 사람과 혼동하신게 아닐까요?" 하고 올가가 물었다. "그렇군요, 소르디니였어요." 하고 K가 말했다. "그래요, 모두들 소르디니는 잘 알고 있어요. 그는 가장 부지런한 관리로서 사람들의 소문이 자자해요. 그와 반대로 소르티니는 대단히 소극적이고 들어박혀있는 사람이어서 사람들은 대개 그를 잘 몰라요. 삼 년 훨씬 전에 나는 그의 모습을 보았는데, 그때가 처음인 동시에 마지막이었어요. 7월3일, 소방대의 축하식을 거행되었는데, 성 양반들이 거기 참석하고 새 소방 펌프 한 대를 기부했어요. 소르티니는 소방대 문제를 취급하고 있다고 했는데, (아마그분은 대리로서 그 자리에 참석하고 있었던 모양이죠-대개 관리들은 서로 대리 노릇을 하고 있어요. 따라서 관리 피차간의 권한과 관할을 분리하기는 참으로 어려워요-그때 소방펌프 양도식에 참석했어요. 그 밖에도 성에서 여러 양반들이 참석했어요. 관리와 하인들이지요. 말하자면 그 사람다운 일이지만, 소르티니는 아주 뒷전에 물러서 있었어요. 키가 작고 약한 체격이었는데 무슨 생각에 잠긴 것처럼 보였어요. 소르티니의 모습을 본사람들이 모두 기묘하게 느낀 점은, 그의 이마에 주름살이 잡힌 모습이었죠. 모든 주름살이-확실히 지금 사십을 넘지 않았을 것인데도 주름살이 많이 잡혔어요- 말하자면 부체모양으로 이마 전체와 콧잔등까지도 퍼져 있었어요. 그렇게 주름살이 많은 사람은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그 축하식으로 말하자면, 우리들, 즉 아말리아와 저는 벌써 몇 주 전부터 이 축하식을 기쁜 마음으로 고대하고 있었어요. 주일 날에 입는 아름다운 이옷도 새로 장만해 놓았어요. 특히 아말리아의 옷은 아름다웠고, 흰 블라우스는 몇겹으로 레이스를 겹쳐 달아서 앞이 불룩하게 부풀어 있었어요. 그것은 어머니가 가지고 있던 레이스를 전부 빌려주신 거예요. 저는 그 때 샘이 단단히 나서 축하식 전날밤중 내내 울면서 새우다시피 했어요. 아침이 되어서 교반관 아주머니가 우리들의 모습을 구경하러 와서 비로서......" 하고 올가가 말했다. "교반관 아주머니가?" 라고 K가 물었다. "네, 그분은 우리들과 아주 친한 사이였어요. 그런데 그녀가 와서 아말리아 쪽이 조건이니 형편이니 낫다는 것을 깨닫고 제 마음을 누그러지게 하기 위해서 자기가 지니고 있었던 보헤미아 석류석의 목거리를 빌려 주었어요.드디어 출발준비가 다 외어서 아말리아가 제 앞에 서자, 우리들은 모두 그애의 모습을 감탄하며 쳐다보고 있었어요. 그러자 아버지는 '모두들 내 말을 잘 기 억해 두어. 오늘 아말리아는 신랑을 얻는다.' 하고 말씀했어요. 그때 저는 왜 그런지 모르겠으나, 제가 자랑으로 삼고 있었던 목거리를 끌어서 아말리아의 목에다 걸어 주었어요. 샘 같은 것은 찾아볼 수도 없었어요. 즉, 그애의 승리 앞에 고개를 수그릴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때는 아말리아가 보통 때와는 전혀 달라 보였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들은 놀랐나 봐요. 왜냐하면 원래 아름답지는 않았지만, 그애의 어두운 눈초리는-그 때부터 그애는 쭉 그런 눈초리를 지니고 있었지만-우리들 위를 높이 스쳐 지나가기 때문에 사실상 그애 앞에서는 거의 자기도 모르게 머리만 수그리게 됐지요. 모두들 그것을 ㄲ달았어요. 우리들을 데리러 온 라제만 부부도 그런말을 했어요." 하고 올가가 말했다. "라제만?" 하고 K가 물었다. "네, 라제만이지요. 우리들은 참으로 인기를 끌었어요. 예를 들면, 우리들이 없으면 축하 연회가 멋있게 시작되지 못했을 거예요. 왜냐하면 아버지는 소방대의 세 번째 연습지도자 였거든요." 하고 올가가 말했다. "아버지는 아직도 건강하시나요?" 하고 K가 물었다. "아버지가요?" 하고 올가가 똑똑히 모른다는 듯이 반문했다. "삼 년 전에는 아버지는 아직 젊은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원기가 왕성했어요. 예를들면 신사관에 불이 났을 ㄸ만 하더라도, 갈라터라는 몸이 육중한 관리 한사람을 업고 달려나와 구출해 냈어요. 저 자신도 그 자리에 있었지만, 사실 화재의 위험은 없었어요. 난로 옆에 놓았던 마른 나무가 그슬려서 불붙기 시작했을 뿐이에요. 그러나 갈라터는 겁을 집어 먹고 창문에다 대고 사람살리라고 소리쳤어요. 그래서 소방대가 쫓아오고 우리 아버지는 그를 구출해 내오지 않으면 안 되었어요. 벌써 그 때는 불은 꺼져 있었어요. 좌우간 갈라터는 뚱뚱해서 잘 움직이지도 못하는 사람이니까, 이와 같은 경우에는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됐어요. 저는 오로지 아버지를 위해서만 이 이야기를 하는거예요. 그 때부터 고작 삼 년 남짓 세월이 흘렀지만, 저기에 않아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좀 보세요." 그때야 비로서 K가 아말리아가 다시 방안으로 들어와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멀리 떨어져 있는 양친의 식탁옆에 앉아서, 신경통 때문에 팔을 움직이지 못하는 어머니에게 음식을 떠드리고 있었다. 어머니에게 식사를 떠드리는 동시에 아버지에게도 말을 걸고 잠깐만 더 참아주면 아버지에게 가서 음식을 떠드리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가 간절해서, 자기몸이 약한데도 불구하고 억지로 기운을 내서 수프를 숟가락으로 떠먹으려고 하는가 하면, 이번에는 직접 수프 접시를 입에 대고 마시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이 둘 다 뜻대로 잘 안 되니까 투덜거리며 불평을 했다. 사실 스푼이 입에 닫기도 전에 벌써 수프는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거기다가 입에 까지 닿아 본 적도 없었다. 축 늘어진 수염만이 언제나 수프속에 담겨져서 적셔 질 뿐 국물은 여기저기서 뚝뚝 떨어지며 튀어나가기만 하고, 거의 입에 들어가는 것이 없었다. "삼 년 동안에 저렇게 되어 보이셨나요?" 하고 K가 물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이 노인들과 이 식탁 한 모퉁이에서 벌어진 광경에 대해서 아무런 동정심도 갖지 못했다. 다만 싫증을 느꼈을 뿐이었다. "네, 삼 년 동안이지요." 하고 올가는 천천히 말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어느 잔치 때 단지 두서너 시간 사이에 저렇게 된 것이에요. 잔치는 마을 입구에 있는 작은 시냇물 옆의 목장에서 벌어졌어요. 우리들이 도착했을때는 벌써 야단법석 이었어요. 이웃 마을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어요. 사람들의 어수선하게 웅성거리는 시끄러운 소리에 머리까지도 어지러웠어요. 우리들은 물론 아버지에게 끌려서 먼저 소방펌프 있는곳으로 갔어요. 새 펌프를 보고 기뻐서 견딜 수가 없었던 모양이죠. 아버지는 펌프에 손을 대면서 일일이 설명하기 시작했어요. 아버지는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반대하고 말려도 말을 들으시지 않았어요. 펌프밑에 볼 것이 있으면 우리들은 모두 쭈그리고 펌프밑에 기어 들어가다시피 하지 않 으면 안 되었어요. 바르나바스는 그것이 싫다고 거부했기 때문에 매맞았어요. 단지 아말리아만은 펌프에 대해서는 염두에도 없었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채 거기에 서 있었어요. 그러나 아무도 그 애에게 한 마디도 하지 못했어요. 저는 가끔 그애한테로 뛰어가서 그애의 팔을 붙들었으나 그애는 잠자코 있었어요. 우리들은 지금도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좌우간 우리들은 상당히 오랫동안 펌프앞에 서 있었지요. 아버지가 펌프앞을 떠났을 때야 비로소 우리들은 소르티니가 와 있다는 사실을 ㄲ닫게 되었어요. 소르티니는 분명히 그때까지 쭉 펌프뒤에 숨어서 그 펌프 손잡이에 기대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 때 주위에서 아주 무서운 소동이 일어났어요. 단순한 잔치소동만이 아니었어요. 성에서는 소방대에 몇 개의 나팔도 기증했어요. 이 악기는 조금만 힘을 주어 불기만 하면-아마도 그건 어린애도 가능했을 거예요-굉장히 요란스런 소리를 냈어요. 그 소리를 들으면 꼭 터키 사람들이 눈앞에 쳐들어왔다고 생각될 정도였어요. 아무도 이런 소리에는 익 숙하지 못했어요. 모두들 나팔을 새로 불 때마다 몸을 움츠리곤 했어요. 그리고 새 나팔이었으니까 누구나 불어 보려고 했고, 뭐니뭐니해도 마을 사람들의 잔치였으니까 그런 짓을 해도 묵인해 주었어요. 마침 우리들의 주변에는-아마도 아말리아 때문에 모여든 것 같은데-그런 나팔 부는 사람이 두서너 사람 있었어요. 이런 상태에서 침착하게 마음을 가다듬고 있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어요. 더군다나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서 주위를 펌프 쪽으로 집중시키고 있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에 우리들로서는 그야말로 사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긴장 상태에 있었지요. 그래서 우리들은 이상스럽게도 오랫동안 소르티니가 있다는 사실을 ㄲ닫지도 못하고 있었어요. 물론 우리들 이 그 때까지 소르티니를 만난 일은 한 번도 없었지만. '저기에 소르티니가 있습니다.'라고 라제만이 아버지에게 속삭였어요-저는 두 분 옆에 서 있었어요-아버지는 참으로 공손하게 인사하고, 약간 흥분의 빛을 띠며 우리들에게도 인사를 하라고 눈짓했어요. 아버지는 전에 소르티니를 만난 일도 없었지만 그래도 쭉 그를 소방대 문제의 전문가로서 존경해 왔고 집에서도 그에 관해서 이야기 하곤 했으므로, 지금 소르티니의 모습을 실지로 눈앞에 본다는 것은 우리들에게 있어서 대단히 뜻밖의 일이며 또 뜻깊은 일이기도 했어요. 그러나 소르티니에게는 우리들은 염두에도 없었어요-이것은 소르티니의 특성이라고 말할 것은 없고, 관리들은 대개 백성들 사이에서는 아주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지요-그뿐더러 그는 몹시 피곤했어요. 단지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이 마을에 머무르고 있는 데 불과했어요. 이와 같은 대표의 의무를 특히 거북하게 느낀다고 해서 가장 나쁜 관리라고는 할 수는 없으니까요. 다른 관리나 하인들은, 좌우간 오기는 왔으니까 백성들 사이에 끼어 있었을 뿐이에요. 그러나 소르티니는 펌프옆을 떠나지 않았어요. 무엇인지 탄원하거나 아부하거나, 또는 그에게 접근하려는 사람들을 침묵으로써 얼씬 못하게 했어요. 그래서 자연히 우리들이 상대방을 눈치챈 후에 비로서 상대방은 우리들에게로 시선을 돌리더니 피곤한 눈초리로 한 사람씩 차례차례 쳐다보았어요. 하나씩 쳐다보면서 한숨까지 쉬는 것 같았는데 나중에 가서는 그 눈초리가 아말리아에게 멎었어요. 그애가 그보다도 훨씬 키가 컸기 ㄸ문에 눈을 위로 치껴뜨고 쳐다보지 않을 수 없었지요. 그는 그 순간 자뭇 놀란 듯이 우뚝 서더니 아말리아에 게로 가려고 손잡이를 뛰어넘었어요. 처음에 우리들은 그것을 오해하고, 모두들 아버지를 선두로 그에게 가까이 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는 손을 쳐들고 우리들을 제지하더니, 다음에는 가라고 손짓을 했어요. 그것뿐이었지요. 그리고 우리들은 정말로 신랑감을 구했다고 아말리아를 놀렸어요. 우리들은 좀 지각이 없이 그날 오후 내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어쩔 줄 몰라 하며 기뻐 날뛰 었어요. 단지 아말리아만은 전보다도 말이 없었어요. '아말리아는 은근히 소르티니에게 반했군' 하고 부룬스빅크가 말했어요. 이 사람은 약간 성질이 거칠지요. 그뿐더러 아말리아와 비슷해서 자연스러운 것에 대해서 이해가 없어요. 그런데 그 때만은 가의 말이 들어맞는 것처럼 우리들에게는 느껴졌어요. 우리들은 그 날 대개 가 탈선을 했지요. 자정이 지나서 집에 돌아왔을 때는 모두들-아말리아를 제외하고-성의 달콤한 술에 취해 있었어요." "그러면 소르티니는?" 하고 K가 물었다. "네, 저는 소르티니는 잔치 도중에 지나가면서 여러 번이나 봤어요. 그는 손잡이 위에 걸터 앉아서 가슴에다 팔짱을 끼고, 성에서 마차로 모시러 올ㄸ까지 꼼짝 않고 그러고 앉아 있었어요. 그때에 아버지는 연습하는 중에 소르티니가 보고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바로 그러길 바라고 있었기 때문에 같은 연배의 남자들 가운데서도 눈부신 활약을 했어요." "그러면 당신네들은 그에 관해서 그 이상 아무 소식도 듣지 못했나요?" 하고 K는 물었다. "당신은 소르티니를 대단히 존경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네, 존경하고 말고요." 올가는 말을 이어서, "우리들은 그에 관해서 소문을 더 많이 듣고 있었지요. 다음날 아침에 우리들은 취중에 잠자다가 아말리아가 소리지르는 바람에 잠이 ㄲ어 버렸어요. 다른 사람들은 곧 침대로 움츠리고 들어갔지만, 저는 아주 잠이 깨서 아말리아에게로 달려갔어요. 그 애는 창 옆에 서서 편지를 한 장 손에 들고 있었어요. 그 편지는 방금 한 남자가 창 너머로 던진 것 이었고 그 남자는 회답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아말리아는 그 편지를-사실은 짧은 편지였었는데-다 읽은 후 축 늘어진 손에 쥐고 있었어요. 그애가 그렇게 지쳐서 녹초가 된 꼴을 보면 저는 언제나 강렬한 애정을 느겨요. 저는 그애 옆에 무릎을 끓고 ㅇ은 채 그 편지를 읽었어요. 제가 다 읽기가 무섭게 아말리아는 힐끔 제 얼굴을 쳐다보더니 편지를 ㅃ앗아 갔어요.그러나 편지를 읽을 생각도 하지 않고 다짜고짜 찢어 버리더니, 그 찢어진 종이 조각을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는 남자 얼굴에 뿌리고는 창문을 닫아 버렸지요. 이것이 저 결정적인 날 아침의 일이었어요. 결정적인 아침이라고 저는 말했지만, 그 전날 오후의 순간조차도 그 다음날 아침과 마찬가지로 결정적이었어요" 하고 올가가 말했다. "그런데 그 편지에는 무어라고 씌어 있었나요?" 하고 K가 물었다. "그래 아직도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군요. 편지는 소르티니에게서 온 것 이었고, 편지 받는 사람의 이름은 '석류석의 목걸이를 건 소녀에게'라고 적혀 있었어요. 그 편지 내용을 그대로 되풀이할 수는 없어요. 신사관에 있는 자기에게로 찾아오라는 요구였어요. 그것도 자기가 삼십 분 이내에 출발할테니 빨리 오라는 요구였어요. 편지는 그 ㄸ까지 제가 한 번도 들어 본 일이 없을 만큼 야비한 말로 씌어 있어서 전체적인 관련성으로 종합하여 절반쯤 그 뜻을 추측할 수 있었어요. 아말리아를 잘 알지못하고 이 편지를 읽는 사람은, 어떤 남자에게 이런 형편없는 편지를 받은 타락한 색시인가 하고 반드시 그렇게 생각했을 거예요. 가령 그 어떤 색시가 아주 순결한 처녀라도 말이에요. 그리고 그것은 연애편지가 아니었어요. 여자의 마음에 들 만큼 달콤한 말은 한 마디도 써 있지 않았어요. 오히려 그의 마음이 아말리아의 그림자에 사로잡혀서 일의 방해사 되었다고 분명히 화를내고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들은 나중에 이 일을 이렇게 해석했어요. 즉 틀림없이 소르티니는 저녁때 곧 성으로 돌아가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로지 아말리아를 위해 마을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밤에 아말리아가 잊혀지지 않아서 새벽녘에 속이 상해 분격하면서 편지를 썼다고요. 그 편지에 대해서는 가령 아무리 무감각하고 냉정한 사람일지라도 처음에는 화가 났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이것이 아말리아 이외의 사람이라면, 그 다음순간에는 그 간악한 협박하는 문구ㄸ문에, 격분하는 감정보다도 불안스러운 마음이 더 지배적이었을 것이지요. 그 러나 아말리아의 경우에 있어서는 격분하는 감정뿐이었어요. 그애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나 다른 사람을 위해서나 불안이라는 것을 몰라요. 그 후에는 곧 침대 속으로 기어들어가면서 토막토막 끊어진 편지의 한 구절을 되풀이 했지요. '그러니까 네가 빨리 와야 해! 그렇지 않으면......'라 는 문구를 되풀이 했어요. 그 동안에 아말리아는 창문 옆 긴 의자 위에 앉아서 밖을 내다보고 있었어요. 그 모양은 마치 사자들이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찾아오면 첫 번째 사자처럼 혼을 내겠다고 벼르고 있는 것 같았어요." 하고 올가가 말했다. "말하자면 관리들의 상투적이 수단이지요." 하고 K는 머뭇거리면서 얘기했다. 이어서, "그런 수단을 쓰는 자들을 그들 사이에서 많이 볼 수 있어요. 당신의 아버지는 어떻게 했어요? 만일 직접 신사관에 가서 더 확실하고 빠른길을 택하셨다면 별문제지만, 당국에 출두해서 강 경하게 소르티니를 고소해 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인데요. 이 사건에서 가장 증오할 점은 아말리아에 대한 모욕 같은 것이 아니에요. 그런 모욕은 간단히 풀어주고 보상해 줄 수도 있어요. 바로 그런 점을 왜 당신이 그렇게 중대시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어요. 기껏소르티니가 한 그런 편지 한 통을 가지고 아말리아의 신세를 영원히 위태롭게 했다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요. 당신의 말을 듣고 있으면 그렇게 추측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런 일은 설마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아말리아는 아주 쉽게 명예를 회복할 수도 있었으며 이삼 일만 지나면 이런 사건은 곧 잊어버리게 되었을 것이니까요. 소르티니는 아말리아의 신세를 위태롭게 한 것이 아니라 사리는 자기 자신을 위험 속에 빠뜨리게 한 것이에요. 따라서 내가 소르티니를 두려워하는 점은 그가 권력을 그처럼 남용할 수 있다는 그 가능성에 대해서지요. 이 경우에 있어서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것은 말을 너무 까놓고 한 것과 아주 속까지 들여다 보이게 했다는 것과, 아말리아는 아주 뛰어난 적수를 발견했다는데 있어요. 그런데 그와 똑같은 것이 다른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경우에도-아말리아의 경우보다도 약간 불리한 경우에 그렇지만-완전히 성공하는 일이 있을 뿐 아니라, 어떤 사람의 눈도 피할 수 없으며 심지어는 유혹당한 본인의 눈까지도 벗어날 수 있는 법이지요." "조용히, 아말리아가 이쪽을 보고 있어요." 하고 올가가 말했다. 아말리아는 벌써 양친에게 식사를 떠드리는 임우를 끝마치고 이번에는 어머니의 옷을 벗겨드리려고 했다. 어머니의 스커트 끈을 풀고 어머니의 두팔을 자기 목 주위에 걸치게 한 다음 그대로 어머니의 몸을 약간 쳐들어서 스커트를 벗기고 나서 가만히 의자에 앉혔다. 그녀의 아버지는 아말리아가 어머니의 시중을 먼저 들어 드리는 것이 언제나 불만이었지고-사실 어머니가 아버지보다도 더 기운없는 몸이라는 점은 분명했지만-딸의 동작이 느리다고 자기 멋대로 생각하고 그것을 나무라는 듯이 스스로 옷을 벗으려고 해 보았다. 그런데 우선 가장 불필요하고 가장 쉬운 일, 즉 밭에 헐거워서 자꾸 벗겨지려는 슬리퍼를 벗는 일부터 착수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리 애써 봐도 벗을 수가 없었다. 곧 목구멍에서 골골 가래가 끓어서 단념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다시 사지에 힘을 주어 자기 의자에 기대어 버렸다. "가장 중요한 점을 모르시는는군요." 하고 올가는 말했다. 이어, "말씀은 전부 옳을지도 몰라요. 그러나 가장 중요한 점은 아말리아가 신사관에 가지 않았다는 점에 있어요. 그애가 사자를 어떻게 취급했는지 그것은 그리 대단치 않은 일이었어요. 감쪽같이 처리해 버리려고 생각만 하면 처치할 수도 있었어요. 그러나 그애가 가지 않았다는 사실로 말미암아 저주가 우리 집안 식구에게로 돌아왔어요. 일이 그쯤 되면 물론 사자에 대한 처분까지도 용서될 수 없었어요. 그뿐 아니라 이 사실이 온 세상에 확 퍼져 버렸어요." 하고 올가가 말했다. "무어라고요?" 하고 K는 소리쳤으나 올가가 애원하는 듯이 손을 쳐들었기 ㄸ문에 소리를 죽이면서, "당신은 언니로서 설마 아말리아가 소르티니의 말을 듣고 신시관으로 달려 갔어야 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하고 말했다. "아니에요. 제발 그런 오해는 마라 주세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아말리아처럼 모든 행동에 있어서 올바른 사람은 한명도 보지 못했어요. 만일 그애가 신사관에 갔더라면, 그래도 물론 그애를 여전히 옳다고 인정했을 거예요. 그러나 그애가 가지 않은 것은 정말 잘한 행동 이었어요. 저에 관해서 말하면-조는 숨기지 않고 고백하겠어요-만일에 제가 그런 편지를 받았더라면, 아마도 갔을지도 모르겠어요. 저 같으면 후에 닥쳐올 사태가 무서워서 견디지 못했을 것이에요. 아말리아니까 그것을 해낼 수가 있었지요. 물론 빠져나갈 구멍은 얼마든지 있었어요. 다른 여자 같으면 참으로 화려하게 치장을 하고 나섰을지도 모르겠어요. 잠시 동안은 그것으로 시간을 보냈을 거예요. 그리고 나서 겨우 신사관에 가게 되었지만, 소르티니는 벌써 출발했다는 사실, 아마도 그는 사자를 파견한 다음 바로 출발했다는 사실을 알았을지도 모르겠어요. 성 양반들의 기분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니까 그런 일도 충분히 있을 수 있어요. 아말리아는 이와 같은 일을 또 이와 비슷한 일도 하지 않았어요. 그애가 받은 모욕은 너무나 컸기 때문에 그애는 무조건 대담했어요. 단지 겉으로라도 따라가는 체했더라면, 적어도 그때 신사관의 현관에 한 발자국이라도 디뎌 놓을 수 있었더라면, 이런 액운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에요. 이 마을에는 아주 똑똑한 유능한 변호사들이 있어요. 그들은 하나의 무에서 무엇이든지 사람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 낼 수 있지요. 그런데 이런 경우만은 그 유리한 무라는 것도 전혀 존재하지 않았어요. 반대로 있는 것이라곤 소르티니의 편지 속에 나타난 모독적인 언사와 사자가 모욕을 당한 일이었어요." 하고 올가가 말했다. "대채 어떤 액운인가요? 또 무슨 변호사들인가요? 그러나 소르티니의 범죄자와 같은 못된 행위 때문에 아말리아를 고소한다거나, 더욱이 처벌하는 일 따위는 아무도 할 수 없는 것 아니오?" K의 말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가능했거든요. 물론 합법적인 소송에 의한 것도 아니고, 또 누구인지 직접 그애를 처벌한 것도 아닌데 다른 방법으로써 그애를 처벌했어요. 그애와 우리들 가족들을 모조리 처벌했어요. 이 벌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ㄲ닫기 시작하셨으리라 생각해요. 그것이 대단히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러나 이 마을에서는 그런 의견을 가진 사람이라곤 선생님 이외에는 하나도 없어요. 선생님의 의견은 우리들에게는 참으로 호의적인 것이니까 우리들이 마음의 위안을 받을 만도 해요. 그렇지만 그 의견이 분명히 잘못 생각하신 것이 아니라면 좋겠어요. 저는 그것을 선생님에게 증명해 드릴 수 있어요. 동시에 프리다에게 관해서 말이 나오더라도 양해해 주세요. 프리다와 클람 사이에는-마지막 결과를 제외하면-아말리아와 소르티니 사이에 똑같은 관계가 생겼어요. 그런데 처음에는 깜짝 놀라셨는지 모르겠지만-지금은 옳다고 생각하고 계신 것이 아니에요? 그런데 그것은 습관이라고는 할 수 없어요. 단순한 판단이 문제가 될 때 아무도 습관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무감각하게 될 수는 없지요. 오류를 벗어났을 따름이죠." 하고 올가가 말했다. "올가, 그렇지 않아요. 당신이 이 일에 왜 프리다를 끌어넣는지 나는 알수 없어요. 그러나 사건의 성질이 다르니까, 그렇게 근본적으로 다른 것을 서로 뒤섞지 말고 차근차근 계속해서 이야기해 보세요." 하고 K가 말했다. "제발 제가 또 비교하겠다고 주장해도 오해하지 마세요. 만일 선생님이 그녀를 비교하는 것을 그만두게 해야겠다고 생각하신다면, 프리다에 관해서는 아직도 잘못 생각하고 계신거지요. 그녀를 두둔해 줄 필요는 없고 그저 칭찬만 해 주면 되요. 제가 두 가지 경우를 비교한다고 해서 둘이 다 쪽같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들의 관계는 마치 흑백의 대조와 마찬가지에요., 백이 프리다라고 할 수 있어요. 최악의 경우라도 사들은 프리다에 대해서 웃을 수가 있을 뿐이지요. 제가 예의를 잃고-나중에 얼마나 후회했는지 몰라요-술집에서 한 것처럼 말이에요. 그러나 그런 경우에 웃는 사람은 악의가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질투하고 있거나 둘 중의 하나지요. 아무튼 여전히 웃을 수는 있는 것이지요. 한편 아말리아는 어떠냐 하면, 만일 사람들이 그애와 혈연 관계가 없다면, 사람들은 단지 그애를 경멸할 수 있을뿐이지요. 그러니까 이것은 말씀하신 대로 근본적이로 서로 다른두 가지 경우임에는 틀림이 없지만그래도 비슷한 것이지요." 하고 올가가 말했다. "서로 비슷한 점도 없어요." 하고 K는 말했고, 못마땅하다는 듯 고개를 살살 내돌렸다. 덧붙여서, "프리다 이야기는 그만 두세요. 아말리아 소르티니에게서 받은 것 같은 그런 추잡한 편지를 프리다는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어요. 프리다는 진정으로 클람을 사랑하고 있었어요. 의심스러우면 그녀에게 물어봐도 좋아요. 지금도 여전히 클람을 사랑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그것이 그다지도 큰 차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하고 올가가 물었다. 잠시 후, "클람쪽에서 프리다에게 소르티니와 똑같은 편지를 써 보냘 수 없다고 생각하나요? 성 양반들은 책상에서 일어서기만 하면 백성들의 실정이나 세상 물정에는 아주 깜깜해요. 그래서 그들은 방심 상태에 빠진 채로 아주 난폭한 언사를 쓰기가 일쑤지요. 물론 전부가 다 그렇다고는 할 수 없어도 그런 분이 많이 있어요. 아말리아에게 보내 온 편지도 그 모양이고, 실지로 종이위에 쓴 글자는 조금도 주의하거나 고려하지 않고 머리속에 생각나는대로 써버렸을지도 모르겠어요. 성 양반들이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우리들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요. =어떤 모양으로 클람과 프리다와 교제했는지, 직접 들으시거나 또는 다른 사람이 이야기 하는 소리를 들으신 일이 있나요? 클람이 몹시 난폭하다는 것은 모두 알고있는 사실이에요. 몇 시간이고 입을 다물고 있다가, 갑자기 듣는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는 말을 끄집어내기도 해요. 소르티니가 난폭한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어요. 일반적으로 소르티니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원래 소르티니에 대해서 모두들 알고 있는 것은 소르디니와 이름이 비슷하다는 점뿐이에요. 이렇게 이름이 닿지 않았더라면 모두들 그에 관해서 아무것도 몰랐을가예요. 소방대 전문가라는 것만 하더라도 확실히 소르디니와 혼동하고 있어요. 사실은 소르디니가 진짜 전문가지만, 자기와 소르 디니가 이름이 비 슷한 것을 이용하고 있는 거예요. 그것도 대표의 의무는 소르디니에게 전가해 버리고, 자기는 방해도 받지 않고 마음 편하게 자기 일에 열중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지요. 따라서 소르티니처럼 세상 물정도 모르는 미숙한 사나이가 갑자기 촌색시에 대한 애정에 사로잡히면, 물론 그것은 부근의 가구직공이 반한거와는 전혀 형태가 다르다고 할 수 있지요. 더욱이 관리와 구둣방집 딸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돼요. 다른 사람 이면 어떻게 하는지 몰라도 하여튼 소르티니는 그런 방식으로 다리를 놓으려고 했어요. 물론 우리들은 모두 성에 속하고 있어서 상호간에 아무런 거리도 없었으니까, 따라서 다리를 놓아 줄 필요도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것은 아마도 일반적인 경우에는 해당할는지 몰라도, 그러나 유감그럽게도 막상 아주 중요한 때에 가서는 그 외견이 전혀 맞지 않는다는 사 실이 나타나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좌우간 제 말씀을 끝까지 들으시면 소르티니의 상투 수단을 알게 될 것이고, 또 지금까지 상상하시던 것처럼 그렇게 어마어마하게 생각하지는 않게 될 것이에요. 아닌게아니라 그의 수단 방법을 클람의 그것과 비교하면 훨씬 이해하기가 쉬워요. 가령 휩쓸려 들어가는 한이 있다고 하더라도, 클람의 경우보다는 훨씬 참고 볼 수가 있어요. 클람이 연애편지를 쓴다면 소르티니의 가장 난폭 한 편지보다도 상대방을 더 괴롭힌 거예요.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저를 오해하지는 마세요. 저는 클람을 비판하려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선생님이 두 사람을 비교하는 것을 반대하고 계시니까 비교해 보았다 뿐이에요. 아무튼 클람은 여자 군대 사령관 같은 지위니까요. 이제 갑이라는 여자를 자기에게 오라고 명령하는가 하면, 다음에는 을이라는 여자에게오라고 명령하는 판이지요. 어느여자에게도 곧 싫증이 나지요. 그래서 그는 오라고 명령할 때와 마찬가지로 나가라고 명령하지요. 클람은 먼저 편지를 써 보내는 그런 귀찮은 짓은 하지 않을 것이에요! 이런 점을 비교해 보더라도, 숨어서 소극적인 생활을 보내고 있는 소르티니가, 적어도 여성 관계에 있어서는 미지수적인 서르티니가 마침 의자에 앉아서 관료적인 아름다운 필체로써 편지를-물론 지긋지긋한 내용의 편지라고 하지만-썼다는 사실은 역시 어마어마한 일임에 틀림없지요. 그런데 이 경우에 있어서 두사람 사이의 차이라는 것이 클람에게 유리하지 않고 그 반대로 소르티니에게 유리하다고 하 면, 그런 차이를 생기게 한 것은 프리다의 애정 ㄸ문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관리에 대한 부인들의 관계를 판단하는 것은, 저로서는 대단히 어렵거든 가 반대로 아주 쉽다던가, 둘 중의 하나라고 생각해요. 여자 쪽에 애정이 없는 경우란 없어요. 관리가 짝사랑, 또는 실연하는 일도 없어요. 따라서 이 점으로 미루어본다면, 한 소녀가 단지 사랑하기 ㄸ문에 관리에게 몸을 맡겼다는 -저는 그렇다고 여기서 프리다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에요-말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결코 칭찬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녀가 관리와 사랑하고 그에게 몸을 허락했다 뿐이고, 자랑 삼을 것은 하나도 없어요. 그러나 아말리아는 그를 사랑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혹은 사랑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 정은 확실히 무어라고 말할 수 없어요. 누가 감히 판단을 내릴 수 있겠어 요? 그애 자신도 알 수 없을 거예요. 아말리아는 관리가 그처럼 거부당한 얘가 없을 정도로 아주 무차비하게 차 버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기가 상대방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요? 아말리아는 지금도 가끔 자기가 삼 년전에창문을 탁 받아 보였을 때의 마음의 동요 ㄸ문에 떠는 일이 있다고, 바르나바스가 말해요. 이것은 정말이지요. 그러니까 그애에게 물어 볼 수도 없지요. 그애는 소르티니와 관계를 끊어 버렸다는 그 일밖에는 아무것도 알지못해요. 지금 자기가 그를 사랑하고 잇는지 어떤지 그애 자신도 모를 거예요. 그러나 우리들은 잘 알고 있어요. 여자의 마음이란 의젓한 관리들이 자기네들에게 몸을 돌리기만 해도 벌써 그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돼요. 그리고 소르티니는 단순히 아말리아 쪽으로 몸을 돌렸을 뿐만 아니라 아말리아를 보았을 때 소방창의 손잡이를 뛰어넘었어요. 더군다나 책상에 앉아서 일하느라고 빳빳이 굳은 다리 로 소르티니는 손잡이를 뛰어넘었어요. 그러나 아말리아는 예외라고 선생님은 말씀하실는지 몰라요. 네, 그애는 예외지요. 그애는 소르티니에게로 가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그것을 증명했어요. 그것은 훌륭한 예외지요. 그런데 여기서 아말리아가 소르티니를 사랑한 일도 없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이미 지나친 예외가 될 것이예요. 그런 일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우리들은 그 날 오후 확실히 아주 장님이 된 거나 마찬가지였는데, 그래도 그때 자욱하게 낀 안개 장막을 통해서 흐릿하게나마 아말리아의 그리워 하는 마음을 볼 수가 있는 것 같았어요. 그 정도의 분별은 가지고 있었지요. 그런데 이런 점을 모두 종합해서 비교해 본다면, 대채 프리다와 아말리아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요! 다만 아말리아가 거부한 일을 프리다가 했다는 차이점 뿐이요." "그럴지도 몰라요." 하고 K가 말했다. 이어서, "그러나 내게 있어서 큰 차이점이란 다음과 같은 것이죠. 즉 프리다는 내 약혼자지만, 아말리아는 결국 성의 사자 바르나바스의 누이동생이고, 그녀의 운명은 바르나바스의 근무 성적에 좌우 된다는 단지 그 점밖에는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어요. 만일 어떤 관리 한 사람이 아말리아에게 그토록 못된 짓을 했다면-당신의 말을 듣고 처음에 나는 이렇게 생각했어요-나의 중대한 관심을 끌었을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그것은 아말리아의 개인적인 고뇌라기보다도 공적인 문제로써 그렇지요. 그런데 당신의 이야기를 들은 뒤엔 사정이 상당히 달라졌어요. 그것이 어떻게 변했는지 나로서는 잘 알 수 없지만, 그러나 당신의 말이니까 그래도 믿을 수 있겠지요. 그래서 나는 이 일을 완전히 일소에 붙혀 버리려고 생각해요. 나는 소방수도 아닌데 소르티니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사실 프리다는 관계가 있지요. 그런데 내가 이상스럽게 느끼는 것은 나는 당신을 완전히 신용하고 될 수 있으면 언제까지든 신용하려고 생각하는데, 당신은 빙 돌려서, 즉 아말리아를 거쳐서 끊임없이 프리다를 공격하려 하고, 그리고 내가 프리다에게 혐의를 가지도록 공작하고 있는 점이에요. 나는 당신이 그것을 의식적으로 또는 악의를 가지고 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만일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는 벌써 여기를 떠나 버렸을 것이지요. 당신은 어떤 고의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정에 끌려서 할 수 없이 그렇게 되어 버렸어요. 아말리아에 대한 애정에 못 이겨 당신은 그녀를 높직하니 모든 여자들 위에 올려 놓으려고 애쓰고 있어요. 그런데 그녀 자신 속에서 이 목적에 맞는 미덕을 찾아볼 수 없으니까, 할 수 없이 다른 여자들의 트집을 잡고 분풀이 하려고 드는거죠. 아말리아의 행동은 이상스럽지만, 당신에게서 그녀의 행동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그것이 위대한 일이었는지 소견 없는 일이었는지, 현명했는지 어리석 었는지, 용감스러웠는지 비겁했는지 도무지 분간할 수가 없어요. 아말리아는 자기 행동의 동기를 가슴 속에 숨겨두니까, 아무도 그녀에게서 그것을 빼낼 수가 없을 거예요. 이와 반대로 프리다는 무슨 색다른 일을 한 것이 아니라 단지 마음을 따라갔을 뿐이지요. 이것은 기꺼이 프리다와의 마음과 접촉해 보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명백한 일이지요. 누구라도 검토해 볼 수 있어요. 이러쿵저 러쿵 떠벌릴 여지도 없어요. 그러나 나는 아말리아를 내리깎으려 하는 것도 아니고, 프리다의 편을 들려고 한 것도 아니에요. 단지 내가 프리다와 어떤 관계에 있는가를, 또 프리다에 대한 공격 하나 하나는 동시에 나라는 인간에 대한 공격이라는 것을 당신에게 밝히려고 했을 따름이지요. 나는 내 의사로써 여기에 묵고 있지만, 여기에 도착한 이래 일어난 모든 사건, 거기다가 무엇보다도 장래의 내 희망-아무리 희미하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희망은 있지요-이 모든 것이 프리다의 적분으로 생긴 것인데, 뭐니뭐니해도 이것을 무시할 수는 없어요. 물론 사람들은 나를 여기서 측량기사로서 받아들였지만, 그것은 표면뿐이고,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희롱당하고 또 모든 집에서 내 쫓겼어요. 그리고 지금도 희롱당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지요. 그뿐 아니라 더 까다로운 일이 있 어요. 나는 말하자면 '부피가 늘었는데' 이것은 확실히 굉장한 일이지요. 나는 이래봬도 미력이나마 벌써 가정을 갖고, 보잘것없지만 하나의 지위를, 실제의 직업을 가지고 있어요. 나에게는 약혼자가 있어서 내가 다른 일로 바쁠 때면 직무상의 일을 대신에 주지요. 나는 그녀와 결혼하여 이 곳의 일원이 될 것이지요. 나는 또 클람에 대한 공적인 관계 이외에, 물론 지금까지 이용하지 못한 사적인 관계도 가지고 있어요. 그것이 대단치 않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지요? 내가 당신네 집으로 찾아오면 당신네들은 누구한테 인사를 하지요? 당신은 누구에게 당신네들 집안의 이야기를 고백할까요? 당신은 누구에게서 어떤 도움의 가능성을-아무리 그것이 미미하고 시시한 것이라 할지라도-기대해 보겠어요? 설 마 이 나라는 인간-바로 일주일전에 라제만과 브룬스빅크한테 억지로 바깥으로 내 쫓긴 측량기사-에게는 아니겠지요. 당신은 그 도움을 어떤 권력의 배경을 가진 남자에게 기대하고 계시겠지요. 그런데 내가 이런 권력 배경을 얻은 것은 프리다의 덕택이지요. 프리다는 겸손한 여자니까, 만일 당신이 그런 질문을 하려 들면 조금도 그런 일을 알지 못한다고 주장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모든 사정을 고려해 보면 그 순진한 프리다 쪽이, 저 거만한 아말리아보다도 더 많은 일을 한 것 같아요. 내 말 좀 들어 보세요. 나는 지금 당신이 어둠을 구하고 있는 것은 아말리아 때문이라는 인상을 받고 있어요. 그리고 누구의 도움을 구하느냐 하면 결국 프리다의 도움을 구하고 있는 것이 되겠지요?" "제가 정말로 프리다를 그렇게 나쁘게 말했던가요?" 하고 올가가 말했다. 이어서, "우리들은 확실히 그렇게 할 생각도 없었고, 또 실지로 그렇게 했다고도 생각하지 않지만, 그러나 그럴지도 몰라요. 우리들의 경우란 그야말로 온 세상 사람들과 어긋나 버린 상태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일단 불평을 시작하면 견딜 수가 없어져서 저 자신도 무슨 소리가 나올지 모르지요. 말씀하신대로 지금 우리들과 프리다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어요. 그래서 그것을 강조해 보는 것도 좋을 일이에요. 삼 년 전에 우리들은 당당한 시민의 딸이었고, 고아인 프리다는 교반관의 하녀였어요. 우리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그녀의 앞을 지나갔어요. 확실히 너무나 거만햇 지만 그러나 우리들은 그렇게 교육을 받았어요. 그러나 선생님은 그 날 저녁 신사관에서 시간을 보내셨으니까, 현재의 상태를 잘 이해하셨을 거예요. 프리다는 손에 회초리를 들고 있었고 저는 하인들의 무리 속에 끼어 있었어요. 더욱 나쁜 것은 프리다가 우리들을 업신여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접이에요. 업신여기는 것은 그녀의 입장에서 당연한 일이지요. 정말로 형편상 어쩔 수 없게 되었어요. 그러나 우리들을 업신여기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어요! 우리들을 멸시하기로 작정만 해도 그것만으로 벌써 모든 사람들이 그룹에 한몫 낀 셈이 되는 걸요. 프리다의 뒤를 이어서 들어온 여자를 아시나요? 뻬삐라는 이름이에요. 저는 그저께 저녁에 비로소 그녀를 알게 되었어요. 지금까지 그녀는 손님방에서 하녀였어요. 그녀는 저를 멸시하는 점에서는 확실히 프리다 보다도 단수가 높아요. 그녀는 제가 맥주를 가지러 오는 것을 창너머로 보자 달려나와 문을 닫아 버렸어요. 저는 그녀가 문을 열어 줄ㄸ까지 오랫동안 애원하기도 하고, 머리에 단 리본을 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으면 안 되었어요. 그런데 문이 열린 다음에 뻬삐에게 그것을 주었더니, 그녀는 그것을 방구석 쪽으로 내동댕이쳐 버렸어요. 그녀가 나를 멸시하고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에요. 사실 저는 그녀와 온정만 바라고 있는 것이지요. 그뿐만 아니그녀는 신사관 술집에서목로집 색시 노릇도 하고 있어요. 물론 뻬삐는 다만 임시로 하고 있어요. 그녀는 확실히 계속해서 오랫동안 거기에 근무하기 위한 필요한 성격이나 조건을 갖추고 있지 않아요. 사실이지 신사관 주인이 어떻게 뻬삐와 이야기하나 들어 보시면 아실 거예요. 또 한편 프리다와 이야기하는 태도와 비교해 보아도 좋아요.그러나 뻬삐는 그런 것에는 구애되지 않고 아말리아까지도 멸시하고 있는 판이에요. 아말리아가 한 번 쏘아보기만 하면 땋은 머리에 편물 리본을 단 그 꼬마 뻬삐는 당장에 방안에서 뛰어나가 버릴 거예요. 그녀의 통통한 다리로는 도저히 낼 수 없는 속력으로 달아나 버려요! 어제만 해고 그녀가 아말리아를 두고 지껄이는 괘씸하게 약올리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 소리를 저는 손님들이-물론 벌써 보신바와 같이 그런 꼴이지만-저를 돌봐 주려고 데리러 올 ㄸ까지만 듣고 있었어요." "당신은 굉장히 마음이 조급하군요." 하고 K가 말했다. "나는 단지 프리다를 그녀에게 알맞은 자리에 배치해 놓았을 뿐이고, 지금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당신네들을 내리깎으려고 한 것은 아니지요. 도 당신네들 집안은 내가 봐도 아주 각별한 것을 지니고 있는데 그것을 나는 감추려고 하지 않았어요.그러나 대체 이 각별한 것이 어떻게 해서 멸시당하는 계기가 될 수 있나, 나는 도무지 알 수 없어요." "아아, K씨. 선생님도 곧 그것을 이해하시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그것이 염려가 되어서 죽겠어요." 하고 올가가 말했다. "소르티니에 대한 아말리아의 태도가 이처럼 멸시를 받게 된 최초의 동기 였다는 사실을 도저히 이해하시지 못하시나요?" "그렇다면 그것은 너무나 이상하지 않을까요?" 하고 K가 말했다. 이어서, "그것으로써 아말리아를 칭찬하거나 또는 처벌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러나 어떻게 멸시할 수 있을까요? 또 그 사람들이, 나로서는 이해하기 곤란한 감정으로 해서 실지는 아말리아를 멸시했다면, 왜 또 그 멸시의 감정을 당신네들에게까지, 즉 죄없는 가족에게까지 미치게 하는 걸까요? 예를 들어서 뻬삐가 당신을 멸시하고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지요. 내가 다음에 신사관으로 가는 일이 있으면 그녀에게 보복할 작정이에요." "K씨, 만일." 하고 올가가 말했다. "저를 멸시하는 사람들의 의식을 모조리 바꿔 놓을 작정이라면 그것은 어려운 일이지요. 왜냐하면 모든 것이 성에서 나온 것이니까요. 저는 그 날 아침부터 점심까지의 일을 지금도 잘 기억하고 있어요. 그 당시 우리들의 허드렛일을 해 주던 브룬스빅크가 보통ㄸ와 같이 나타났어요. 아버지가 그에게 일을 배당하고 그를 집으로 돌려보낸 다음, 우리들은 아침상을 받고 모두들 아말리아나 저까지도 대단히 활기에 넘쳐 있었어요. 아버지는 여전히 잔치 이야기를 했어요. 그는 소방대에 관해서 여러 가지 계획을 품고 있었어요. 즉 성에는 전속 소방대가 있고 잔치 때면 사람을 보내 왔는데, 그것에 대한 소문이 자자했어요. 마침 그 자리에 참석했던 성 양반들은 우리 소방대의 연습을 보고 대단히 유리한 논평을 가했고, 성의 소방대와 비교해서 볼 때 결과적으로 우리들 쪽이 낫다는 것으로 낙착되었어요. 그래서 성의 소방대를 새로 편성해야 된다는 필요성이 화제에 올랐는데, 그러기 위해서 마을에서 교도자가 나와야 되겠다는 것이었어요. 물론 여기에는 대상이 되는 후보자가 두서넛은 있었지만 그러나 아버지 로서는 자기가 뽑혀서 그 임무를 맡게 될 희망이 보였던 모양이지요. 마침 아버지는 그 일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이야기 했어요. 아버지는 식사때면 기분좋게 팔 다리를 쭉 펴기를 좋아했어요. 그 ㄸ도 양팔로 식탁을 반쯤 껴안는 시늉을 하면서 걸터 앉아서 열린 창문을 통해서 하늘을 쳐다보시는데 정말로 청춘과 희망으로 빛나는 것 같은 표정이었어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은 그 후 다시는 볼 수 없었어요. 그때 아말리아는 자기가 잘났다는 말투로써-아말리아에게 그런 점이 있으리라곤 믿어지지 않았는데-'성 양반들은 그러한 이야기는 그다지 신용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그러한 경우엔 흔히 마음 혹은 전혀 뜻이 없거나 둘 중에 하나지요. 입밖에 내자마자 영원히 잊어버려지는 것이죠. 물론 그 다음 기회에는 또 모두들 그들에게 꼼짝 못하고 속아 넘어가게 외어 있어요.'하고 말했어요. 어머니는 그러한 이야기를 나무랐어요. 아버지는 단지 그애가 노숙하고 약삭빠른 것을 웃었을 뿐이었는데, 잠시 후 갑자기 몸을 움추리고 무엇인지 없어졌다는 사실을 ㄲ달은 양 찾는체했어요.그러나 없어진 것이라곤 하나도 없었어요. 아버지는 브룬스빅크가 사자의 일과 찢어진 편지의 이야기를 하더라고 말한다음, 그것이 누구에게 관계가 있으며 어떤 일인가를, 혹시 우리들이 그것에 관하여 좀 아는 것이 없느냐고 우리들에게 물었어요. 우리들은 잠자코 있었어요. 아직도 새끼 양처 럼 나이가 어렸던 바르나바스가 어리석고 건방진 소리를 했어요. 모두들 다른 이야기를 하고 이 일은 잊어버렸어요." 아말리아의 벌 "그러나 우리들은 그 후 얼마 안가서 사방으로부터 편지에 관해서 질문의 공격을 받았어요. 친구, 원수,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들이 왔어요. 그러나 아무도 오랫동안 머물지 않았어요. 가장 친한 친구들일수록 총총히 떠나 버렸어요. 언제나 동작이 느리고 태도가 점잖던 라제만도, 마치 방의 넓이를 검사하러 온 것처럼 들어와서 방안을 뺑 둘러보더니 그대로 나가버렸어요. 라제만이 내빼자 아버지는 갑자기 다른 손님에게서 떠나 성급히 그의 뒤를 쫓아서 문까지 달려갔으나 거기서 뒤쫓는 것을 단념하고 말았는데, 그 모양은 마치 무서운 어린애 장난처럼 보였어요. 브룬스빅크가 와서 아버지에게 자기는 독립해서 나가겠다고 말했어요. 때를 이용할 줄 아는 약삭빠른 사나이지요. 손님들이 와서 아버지 창고에 들어가 수선하기 위해서 놓아두었던 자기네들의 신을 찾아냈어요. 아버지는 처음에는 손님들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려고 노력했으나-우리들도 조그마한 힘이나마 있는 힘을 다해서 아버지를 거들었어요-나중에는 할 수 없이 단념해 버리고, 잠자코 모두들 구두 찾는 것을 도와주었어요. 주문장에는 한 줄마다 선을 그어 갔어요. 우리집에 놓아두었던 손님들의 가죽도 제각기 임자들에게로 반환 되었어요. 빚도 갚고 모든일을 조금도 다투지 않 고 처리했어요. 우리들과의 관계를 빨리 느끼고 설사 그 때 약간 손해가 된다 해도, 그것에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어요. 그리고 드디어-그것은 예상했던 일이지만-소방대장인 제만이 나타났어요. 저는 지금도 그 광경이 눈앞에 보는 것 같이 선해요. 제만은 키가 크고 뼈가 굵은 사나이였으나 허리가 약간 앞으로 구부정하고 폐병장이였는데 언제나 성실한 사람이었어요. 그는 또한 도무지 웃는 일이 없었어요. 바로 그가 아버지 앞에-그가 지금까지 감탄해 왔고 그리고 다정스럽게 이야기 하면서 대장 대리의 지위를 약속해 준 일이 있었던-서 있었어요. 그런데 그는 아버지에게 조합에서 아버지를 면직한 사실과 증서의 반환을 요구하고 있었던 사실을 전하지 않으면 안 되었어요. 마침 우리 집에 와 있었던 사람들은 각각 일하던 손을 멈추고, 두 사람 주위에 몰려와서 둥그렇게 원을 그리며 둘러쌌어요. 제만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아버지의 어깨를 두드 리고 있을 뿐이었어요. 스스로 말을 해야 되겠는데 무어라고 해야 좋을지 몰라서 그 말을 아버지의 몸에서 두드려 내려고 하는 짓 같았어요. 그렇게 아버지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그는 한결같이 웃고만 있었어요. 웃는 것으로 말미암아 자긴 주위 사람들을 약간이라도 안심 시키려고 하는 짓 같았어요. 그러나 그는 웃을 수가 없었을뿐더러, 누구 하나 그가 웃는 소리를 한 번도 들은 일이 없기 때문에, 아무도 이것을 웃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러나 아버지는 벌써 이날 겪은 일 때문에 너무나 지치고 절망해서, 다른 어떤 사람을 도와준다는 것은 생각해 낼 수도 없는 모양이었어요. 우리들도 모두들 절망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단지 젊기 때문에, 그런 완전한 파멸이 정말로 있다고는 믿어지지 않았어요. 이렇게 방문객들이 줄을 지어서 오는 동안, 틀림없이 나중에는 누구라도 찾아와서 정지 명령을 내리고, 만사가 원상 복구되도록 압력을 가해 줄 것이라고 우리들은 줄곧 생각했어요. 우리들은 판별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우리들 눈에는 제만 이 그러기에는 안성맞춤의 인물처럼 보였어요. 이렇게 끊임없이 계속되는 웃음 뒤에 마지막에는 희망을 걸 수 있는 말이 튀어나오지나 않을까 하고, 우리들은 바짝 긴장하며 고대하고 있었어요. 우리들 신변에 일어난 이 어리석은 부정에 대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에 대하여 웃을 건덕지가 있을까요? '대장님, 대장님, 이제 이 사람들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우리들은 그렇게 말하려고 생각하면서 그의 옆으로 다가갔어요. 그러나 이것은 단지 그에게 이상스러운 선회운동을 시킨 데 지나지 않았어요. 물론 그는 드디어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우리들의 남모르는 소원을 이루어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의 원기를 북돋아 주는 소리와 화내면서 외치는 소리에 호응하기 위한 것이었어요. 우리들은 여전히 희망을 버리지 않았어요. 그는 무턱대고 아버지 를 칭찬하는 말부터 시작했어요. 아버지를 조합의 영예, 후배들이 도달하기 어려운 모범, 없어서는 안 될 조합원이라고 부르고, 아버지가 퇴직하시면 조합이 위태롭게 될 곳이라고 말했어요. 여기서 그만 두었더라면 모두 훌륭하나 말이었지요! 그런데 그는 또 말을 계속했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조합이-물론 당분간이라고는 하지만-그런 인물인 아버지에게 퇴직을 요청하도록 결정했으 니까, 조합이 이런 태도로 나오지 않으면 안 되었던 그 이유의 중대성을 사람들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니까요. 아마 어제 축하 잔치에서도, 아버지의 빛나는 업적이 없었더라면 그만한 성과 를 전혀 거둘 수도 없었을 것이라고. 그런데 마침내 당신이 이 업적이 특히 당국의 주위를 환기시켰다고. 조합은 지금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으니까 전보다 더욱더 자체의 결백성에 대해서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런데 갑자기 사자 모욕 사건이 발생했다고. 그래서 조합으로서는 다른 방도가 없어서 그 사람, 즉 제만이 그것을 전달해야 하는 어려운 역할을 맡게 되었다고. 그러니까 아버지가 그 이상 더 그 사람의 역할을 어렵게 하지 않도록 해 주기 바라는 바이라 고. 제만은 이렇게 연설을 끝마쳤는데, 퍽 만족한 기색이었어요. 그는 자기 연설에 확신을 느겼으므로 이제는 지금까지처럼 그렇게 지나치게 수줍어하지는 않았어요. 그는 벽에 걸려있는 사령 장을 가리키고 떼어 오라고 손가락질했어요. 아버지는 고개를 끄떡거리고 가지러 갔는데 손이 떨려서 못에서 빼올 수가 없었어요. 제가 의자 위에 올라가서 도와 드렸어요. 그리고 그 순간부터 모든 것이 끝나 버렸어요. 아버지는 사진틀에서 증서를 끄집어내려고도 하지 않고 그대로 전부 제만에게 내주어 보였어요. 그리고 한구석에 걸터앉은 채 움직이지도 않고 아무와도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우리들만이라도 되는 대로 손님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지 않으면 안 되었어요." "그러면 당신은 이 이야기의 어느 점에 성의 영향이 있다고 인정하시는 거죠?" 하고 K는 묻고, 이어서, "아직까지는 성이 이 사건에 간섭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요. 당신이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은 단지 사람들의 분별없는 불안이라든지, 이웃사람이 손해를 입은 것을 보고 기뻐하는 심보라든지, 믿을 수도 없는 우정이라든지, 즉 어디서나 흔히 경험할 수 있는 일이지요. 물론 당신의 아버지 쪽에도-모름지기 내개는 그렇게 느껴졌지만-다소 답답한 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왜냐하면, 저 증서, 대체 그것이 무어라는 것인가요? 그의 능력의 증명서라는 것인데, 그 능력이란 그가 스스로 몸에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만일 그 능력이 그로 하여금 조합에 없어서는 안 되는 인물로 만들고 있다면 더욱더 좋은 것이지요. 그리도 대장이 두 마디도 말하기 전에 아버지가 증서를 그 사람의 발 밑에 내동댕이쳤어야만 대장을 쉽사리 곤경에 빠뜨릴 수가 있었을 것이었어요. 그래도 당신이 아말리아에 대하여 말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것이 특히 인상적으로 느껴졌어요. 모든 것이 아말리아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녀는 시치미를 딱 떼고 뒤에 숨어서 집안 의 재난을 바라보고만 있었던 모양이군요." "아니에요. 아무도 나무랄 수는 없어요. 누구라 할지라도 그렇게 행동하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었어요. 이 모든 것이 다 성이 영향을 미친 ㄸ문이지요." 하고 올가가 말했다. "성의 영향이에요." 하고 아말리아가 되풀이했다. 그녀는 모르는 사이에 뜰에서 들어와 있었다. 양친은 벌써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성 이야기를 하시나요? 아직도 함께 앉아 계셨어요? K씨, 선생님은 곧 돌아가시는 것처럼 말씀하시지 않았어요. 벌써 열 시가 다 되어 가는데요. 대체 그런 이야기가 무슨 상관이 있나요? 이 마을에는 그런 이야기로 살이 찌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마치 두 분이 여기에 앉아 있는 것처럼 한데 모여 앉아서 서로 입맛 다시며 만담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선생님이 그런 부류의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데요." 아말리아의 말이었다. "천만의 말씀이지요. 나도 바로 그런 부류에 속해요. 그와 반대로 그런 이야기는 모르는 체하고, 다른 이야기에만 몸이 다는 사람에게서는 그다지 큰 감명을 받지 못해요." 하고 K가 말했다. "그래요. 사람들의 관심은 가지각색이니까요." 아말리아가 말했다. 이어서, "저는 언젠가 자나깨나 쉴새없이 성 일만 생각하고 있는 젊은이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 사람은 다른 모든 일을 포기해 버렸다는 거예요. 그의 머리가 완전히 성일로 가득 찰 만큼 몰골했으니, 모두들 그의 일상 생활에 대한 상식을 의심할 지경이었어요. 그러나 결국 그 사람은 원래 성 일이아니라, 단시 사무국에 있는 어느 하녀의 딸을 사모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물론 그 처녀를 손아귀에 넣었지만-그 후부터는 만사가 다시 순조롭게 되었다는 거예요." 하고 아말리아가 말했다. "어쩐지 나로서도 호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 같은데요." 하고 K가 말했다. "그 남자가 마음에 드신다는 것은 의아스럽지만 아마도 그 부인은 마음에 꼭 드실 거예요. 자아, 그러나 제 걱정은 하시지 마세요. 저는 먼저 잘 테니까요. 그리고 양친ㄸ문에 불을 끄지 않으면 안 돼요. 양친은 곧 깊이 잠이 드시기는 해도 한 시간만 지나면 단잠은 다 주무시고, 아주 희미한 불에도 깨시게 돼요. 그러면 안녕히 가세요." 정말로 곧 어두워졌다. 아말리아는 어딘지 양친 침대 옆 마루바닥 위에 잠자리를 마련한 모양이었다. "아말리아가 이야기한 그 젊은이란 대체 누군가요?" 하고 K가 물었다. "알 수 없어요. 아마도 브룬스빅크 말인가 봐요. 이야기가 들어맞지는 않아도 누군가 다른 사람인지도 모르겠어요. 동생이 농담으로 하는 소린지 또는 진정으로 하는 소린지 알 수 없을 때가 많아서 동생의 말을 똑바로 이해 하기는 어려워요." 하고 올가가 말했다. "구구한 설명은 그만두세요." K는 이어서, "대체 당신은 왜 동생에 대해 그렇게 큰 의뢰심을 가지나요? 저 큰 불상사가 일어나기 전에도 그러셨나요? 그렇지 않으면 불상사 후에 비로서 그러셨나요? 당신은 한 번도 동생에게 의지하지 않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소원해 본 적은 없으신가요? 대체 이 의뢰심에는 무슨 뚜렷한 그럴듯한 근거라도 있나요? 그녀는 가장 나이가 아래니까, 가장 연소자로서 마땅이 복종해야지요. 죄가 있던 없든 좌우간 집안에 불행을 초래한 것은 그녀지요. 그런데 그녀는 날이 새면 언제나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되풀이해서 용서를 빌어야 될 텐데, 오히려 여러분들보다도 더 거만스러워요. 그저 겨우 정답게 양친을 돌봐 드리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염두에 두는 일이라곤 없을 뿐만 아니라 자기 스스로 말하는 바와 같이 무슨일에도 휩쓸리는 것을 싫어해요. 그러다가 그녀가 당신네들과 이야기하면 그 이야기가 대개 진정에서 우러나온 것이기는 하지만 마치 비꼬아서 하는 소리처럼 들리는 형편이지요. 혹시 그녀는 당신이 여러 번 말씀하신 그 미모를 미끼로 집안을 지배하고 있는 건 아닌가요? 그런데 당신네들 세 남매는 서로 많이 닮았는데, 아말리아가 당신과 바르나바스, 두 남매와 다른 점은 그녀에게는 아주 불리한 점이지요. 나는 처음으로 그녀를 보았을 때부터 그 무감각하고 냉혹한 눈초리에 정이 떨어져 버렸어요. 그리고 그 다음에 그녀가 나이가 어린데도 불구하고 그런 젊음은 그녀의 외모에서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었어요. 그녀는 나이를 먹지 않았는데도 과거에 정말 젊었던 일이 없었던 것 같은, 나이를 초월한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어요. 당신은 날마다 보셔서 그녀의 딱딱한 표정을 도무지 깨닫지 못하실 거예요. 그러고 보면 나는 소르티니의 애착도 결코 대단히 진지한 것으로 생각할 수 없어요. 아마도 그는 편지를 통해서 그녀를 처벌하려고 했다 뿐이고 부르려고는 하지 않았을 거요." 하고 K가 말했다. "소르티니의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아요. 가장 아름다운 처녀가 문제가 되는 또는 가장 미운 처녀가 문제가 되든 간에 성 양반들은 못하는 짓이 없어요. 그러나 밖의 점에서는 선생님은 아말리아에 관해서 잘못 생각하고 계셔요. 아시겠어요. 저로서는 아말리아를 위해서 특히 선생님의 환심을 살 이유라곤 없으니까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제가 그렇게 하려는 것은 순전히 선생님을 위해서라고 말할 수 있어요. 아말리아는 좌우간 우리들의 불행의 원인이었어요. 그것은 틀림없이 그래요. 그러나 이 불행으로 큰 타격을 받은 아버지, 제대로 말조심해 본 적이 없었던-가정에서는 더군다나 그랬지만-그 아버지도 최악의 경우에 있어서는 아말리아에게 비난의 말을 한 마디도 해 본 일이 없어요. 그렇다고 해서 아버지가 아말리아의 행동을 시인해 주었기 ㄸ문이라는 것은 아니에요. 소르티니의 숭배자인 아버지가 어떻게 그것을 시인할 수가 있겠어요? 그는 도무지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어요. 만일 가능하다면 자기 자신과 자기가 가지고 있었던 전부를, 그는 소르티니를 위해 희생 시켰을 거예요. 다만 그것은 소르티니의 분노-틀림없이 분격하고 있을 테니까-밑에서, 지금 실지로 그렇게 되어 버린 것 같은 그런 것은 아닐테니까요. 우리들은 벌써 그 때부터 소르티니에 관한 소식이라곤 아무것도 들어온 일이 없으니, 확실히 분격하고 있을 거예요. 그가 그 때까지 꼭 숨어서 살았다고 한다면 이젠 없어져 버린거나 마찬가지예요. 정말로 그 무렵의 아말리아를 당신에게도 보여드리고 싶군요. 뚜렷한 처벌이 내리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들은 모두 잘 알고 있었어요. 다만 사람들이 우리들에게서 물러갔을 따름이지요. 마을 사람들이 물러가는 것은 깨달았지만 성에 관해서는 도무지 몰랐어요. 그때에 큰 병동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깨달을 수는 없었어요. 이 고요함이 가장 나쁜 짓이었어요. 이것에 비교하면 마을 사람들이 물러가는 것쯤은 전혀 문제도 되지 않았어요. 사실 그들은 무슨 굳은신념이라도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고, 혹시나 우리들에게 심각한 적개심이라도 품어서 그런 것도 아니었을 거예요. 그 때는 아직도 지금처럼 우리들을 멸시하는 일은 없었으며 다만 마음이 불안스러워서 우리 들을 추방했다 뿐이고 그런 뒤에 그들은 앞으로 일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주시하고 있었어요. 우리들의 생활에 곤란을 느낄 것이라는 걱정은 그 때만 하더라도 전혀 없었으니까요. 채무자들이 모두 갚아 주었으면 수지맞는 거래였어요. 식료품 증에서 모자라는 것이 있으면 친척들이 남몰래 융통해 주었어요. 때마침 추수철이어서 이것은 쉬운 일이 었어요. 물론 우리들은 밭 같은 건 가지고 있지 않았고 우리들을 함께 일 시켜 주는 곳도 없었어요. 말하자면 우리들은 생전 처음으로 무위 도식이라는 형의 선고를 받은 것이었어요. 이리해서 우리들은 칠팔 월 삼 복 더위에 창문을 닫은 채 모두들 함께 앉아 있었어요. 소환당하는 일도, 소식도,통지나 방문하는 사람도 아무것도 없었어요." 하고 올가가 말했다. "그러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런 뚜렷한 벌도 받을 것 같지 않았다면, 당신네들은 무엇을 무서워했던가요? 당신네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이지요!" 하고 K가 말했다. "이렇게 설명해드리면 될까요?" 하고 올가가 말하더니, 이어서, "우리들은 무엇 하나 닥쳐오는 것을 무서워 하고 있지는 않았어요. 우선 당면한 일에 고통을 느끼고 있었어요. 말하자면 우리들은 벌(罰)의 도가니 속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어요. 마을 사람들은 오로지 우리들이 그들에게로 찾아가기를, 아버지가 다시 작업장을 열기를, 아주 멋진 옷 을 만들 줄 알았던 아말리아가-그애는 물론 오로지 귀하신 분들의 옷만 만들었지만-다시 주문 받으러 올 것을, 단지 그것만을 고대하고 있었어요. 마을에서는 명망 있는 한 집안이 갑자기 완전 히 소외당하면 그 때문에 누구나 조금씩은 손해를 입게 되는 것이지요. 그들은 단지 자기네들의 의무를 이행하는 것만 생각했기 때문에 우리들과 절교하게 된 것이지요. 우리가 그들과 같은 입 장이었더라면 역시 같은 태도를 취했을지도 모르겠어요. 사실 그들은 무엇이 문제였는지도 똑똑히 알지 못했어요. 단지 사자가 손아귀에 종이 조각을 움켜지고 신사관으로 되돌아왔을 뿐이었는 데, 그자가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는 꼴을 프리다가 목격했어요. 프리다는 그 사자와 두 서너 마디를 주고 받았어요. 그때 그녀가 들은 이야기가 갑자기 마을에 퍼진 거예요. 그러나 이 것만 하더라도 조금도 우리들에게 대한 적개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단순히 의무감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똑같은 경우에 닥치면 누구라도 그렇게 하 는 것을 의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아까도 말한 바와 같이 사건 전체가 잘 해결만 되었다면 마을 사람한테는 제일 좋았을 거예요. 그래서 만일 우리들이 언젠가 갑자기 마을 사람들을 방문하고 만사가 잘 해결되었다고, 예를 들면 그 동안 상호간에 이상스러운 오해가 있었지만 이제 그 오해가 얼음 녹듯이 풀려 버렸다던가, 또는 물론 과실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이 행동으로 말미암아 잘 해결이 되었 다든가, 또는-이것만으로 모두들 만족했을 것이지만-우리들이 성에 대한 연고 관계로 말미암아 사건을 감쪽같이 해소시키는 데 성공했다던가, 그렇게 소식을 전해 준다고 해요. 그러면 사람들 은 모두 틀림없이 다시 두 손을 벌리고 우리들을 맞이하여 키스와 포옹을 해 주고 잔치가 벌어졌을 거예요.다른 사람들의 경우에 있어서 두서너 번 그런일을 경험해 본 적이 있거든요. 그러나 그런 소식도 결코 필요치 않았을 거예요. 단지 우리들이 제 발로 걸어가서, 이쪽에서 먼저 손을 내밀고 과거처럼 교제를 다시 시작하도록 재의 하고, 편지 사건에 대해서는 말 한 마디라도 경솔 하게 입을 놀리지 않도록 주의한다면 그것으로써 충분했을지 모르겠어요. 그러면 사람들은 모두 모두 그 사건에 대해 논의하는 것을 기꺼이 그만두었을 거예요. 사실 사정이 불안스럽기도 했지 만, 무엇보다도 사건이 까다롭기 때문에 모두들 우리들과 관계를 끊어 버린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들과 관계를 끊고 무조건 그 사건에 대해서는 아무 소리도 듣지 말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일도 생각하지 않고 좌우간 절대로 간섭하지 않도록 하고 싶어 했어요. 만일 프리다가 이 사건을 다른 사람에게 누설했다면, 그것은 사건을 즐기기 위해 한 일이아니라 자기가 모든 사람들을 이 사건에서 수호하기 위한 것이며, 또 모든 사람들이극도로 조심하여 멀리 떨어져서 상관하지 말아야 하는 일이 발생한 데 대해서, 마을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서 한 것이에요. 요기서는 가족으로서의 우리들의 문제가 되 것이 아니라 단순히 이 사건이 문제가 되었고, 또 우리들이 이 사건에 관련하고 있었기 ㄸ문에 간접적으로 우리가 문제가 된 것이지요. 그러니까 우 리들이 다시 나타나서, 지나간 일에는 손을 대지 않고 그대로 놔 두고, 우리들의 태도로 말미암아-그 방법은 어떻든간에-우리들이 이 사건을 극복한 사실을 보여 주었더라면, 그리고 세상 사람 들이 사건이-그것이 어떤 성질의 것이었던 간에-이제 두 번 다시 화제에 오르는 일은 없으리라는 확신을 얻었더라면, 그것으로써 만사가 잘 되었을 것이지요. 그리고 어디서나 ㅇ날과 다름없이 언제나 곤란할 때는 도와주러 하고 있는 것을 알았을 것이요, 또 설사 우리들이 이 사건을 아직도 완전히 잊지 않고 있다고 하더라도 모두들 그것을 이해해 주고 우리들이 완전히 잊어버릴 수 있도록 도와주었을 것이지요. 그러나 이런 노력은 전혀 하지도 않고우리들은 그저 집안에만 앉아 있었어요. 우리들이 무엇을 기대하고 있었는지 저는 알 수 없어요. 아마도 아말리아가 결심하는 것을 고대하고 있었을 거예요. 그애는 그 날 아침 집안의 지배권을 장악한 아래 쭉 그것을 확보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두드러지게 눈에 띄도록 무슨 행사를 거행하는 일도 없을 뿐더러, 명령이 나 청원도 하지 않고 오로지 침묵에 의해서 지배권을 꼭 쥐고 있어요. 물론 아말리아를 제외한 우리들에게는 의논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았어요. 그래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끊임엇이 속삭이기만 했어요. 아버지께서 갑자기 불안감에 사로잡혀서 우리들을 부르시는 경우가 자주 있었으며, 이럴때면 저는 침대 가에 걸터앉은 채로 거의 밤을 새우기도 했어요. 또 우리들, 바르나바스와 저는 자주 함께 쭈그리고 있었어요. 바르나바스는 겨우 모든 사정을 짐작할 만한 나이였는데, 아주 몸이 달아서 쉴새없이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설명해 달라고 요구했어요. 같은 또래의 젊은이들이 바랄 수 있는 그러한 근심 걱정 없는 세월이 벌써 자기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바르나바스는 잘 알고 있었어요. 그와 같이 우리들은 함께-K씨, 지금 우리들 두 사람처럼-앉아서 해가 진 것도 날이 샌 것도 다 잊어버린 채 앉아 있었어요. 어머니는 집안 식구들 중에서 가장 쇠약했어요. 한 집안 전체의 공통된 고뇌뿐만이 아니라,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의 고뇌까지도 함께 겪었 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우리들은 어미니에게 여러 가지 변화가 나타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는데, 우리들도 예감한 것이지만 이 변화는 동시에 집안 식구 전체가 당면한 그런 변화 였어요. 어 머니가 가장 좋아하시는 장소는 긴 의자의 한구석이었어요.-훨씬 전에 이 긴 의자는 없어져 버리고, 지금은 브룬스빅크의 큰 방에 놓여있지만-어머니는 거기에 걸터 앉아서-무어라고 생각해야 옳을 지 알 수도 없었지만-끄떡끄떡 졸기도 하고, 그렇지 않으면 입술을 움직이기 때문에 그렇게 보인 것이지만 오랫동안 혼자서 중얼 거리기도 했어요. 우리들이 끊임없이 편지 사건을 논의함에 있어서 명확한 점들과 명확치 않은 점까지도 이모저모로 검토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어요. 또 어떡게 해서든지 잘 해결할 뾰족한 방법이라도 없을까 하고 서로 의견을 피력하게 된 것도 당연하고 피치 못할 일이 있었다고 하겠어요. 그러나 좋은 일은 아니었어요. 사실 그 때문에 우리들은 스스로 피하려고 생각하는 구렁텅이 속으로 점점 깊숙이 빠져들어가고 말았으니까요. 거기다가 아무리 뛰어난 의견이라고 할지라도 머릿속에서 생각한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아무리 아말리아 없이는 일을 실천에 옮길 수 없겠지요. 그리고 그것도 모조리 미리 상의하는 정도 이상으로는 나갈 수 없었으니까 싱거운 일이었으며, 더군다나 그 미리 상의하는 것에서 결정을 지은 결과가 무엇 하나 아말리아의 귀에는 들어가지도 않았어요. 또 설사 아말리아의 귀에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침묵 이외에는 아무 반응도 없었을 것이니까요. 저는 다행히도 지금 그 당시 보다도 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어요. 아말리아가 어떻게 그것을 견디어 냈는지, 또 오늘도 우리들 사이에 끼어서 전과 다름없는 생활을 어떻게 보낼 수 있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예요. 어머니 는 아마도 우리들 전부의 고뇌를 짊어지셨는지도 몰라요. 그러나 그 고뇌가 어머니의 책임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짊어지셨다 뿐이지요. 그러나 어머니는 그 고뇌를 오래 짊어 지지는 못했어요. 따라서 어머니가 오늘날도 그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어요. 왜냐하면 어머니는 그 당시 벌써 정신이 혼란 상태에 빠져 버렸으니까요. 그러나 한편 아말리아는 고뇌를 짊어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고뇌를 통찰 하 는 분별력을 가지고 있었어요. 우리들은 오로지 결과만 을 보는데 그애는 원인까지도 관찰하고 있었어요. 우리들은 무엇인지 사소한 수단 방법에 희망을 걸고 있었는데, 그애는 전체의 대세가 벌써 결정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우리들은 늘 수근거리고만 있었는데, 그애는 그저 잠자코 있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애는 진실과 정면으로 대결해서 꿋꿋하게 살아나왔어요. 그리고 이런 생활을 지금과 다름없이 그 때도 참고 견디었어요. 우리들이 아무리 고생한다고 하더라도 그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물론 우리들은 우리들의 집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되었어요. 브룬스빅크가 우리집으로 이사오고, 우리들에게는 이 오두막집이 배당되었어요. 손수레를 한 대 빌려서 두서너 번 왕복해서 세간살이를 이 곳으로 운반해 왔어 요. 바르나바스와 제가 손수레를 끌고 아버지와 아말리아가 뒤에서 밀고 왔어요. 맨 먼저 여기 모셔다 놓았던 어머니는 집궤 위에 걸터 앉아서 손수레가 닿을 때마다 나지막한 소리로 울면서 우리들을 맞이해 주었어요. 그러나 지금도 기억하고 있지만, 우리들은 애써서 간신히 그 손수레를 끌면서도-이건 참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었어요. 왜냐하면 우리들은 수확물을 실은 차와 여러 차례 만났는데, 그 차에 따라가는 사람들이 우리들을 보더니 입을 다물고 눈을 돌려 버렸으니까요-우리들, 즉 바르나바스와 저는 이렇게 손수레를 끌고 가면서도 걱정 근심과 여러 가지 계획에 대해서 쉴새없이 서로 의논하곤 했어요. 그래서 자연히 이야기에 열중한 나머지 걸음을 멈추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아버지께서 '얘들아!'하고 깨우치는 말씀을 듣고서야 비로서 우리들이 할 일이 생각나기 일쑤였어요. 그러나 아무리 여러 가지로 의논했다고 하더라도 이사한 후에도 우리들의 생활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어요. 단지 하나 변한 점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우리 들이 차츰 빈곤의 고통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친척들의 보조도 끊어지고 우리들의 재산도 거의 바닥이 들어나게 되었어요. 그래서 바로 그때부터, 아시는 바와 같이 우리들에 대한 멸시가 싹트기 시작했어요. 우리들에게는 그 편지 사건에서 도저히 빠져나올 힘이 없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깨닫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에 대한 감정이 좋지 못했어요. 사람들 이 자세히는 알지 못했다고 하지만, 우리들의 운명의 중대한 시련을 극복했었더라면, 그만큼 우리들을 존경했을지 몰라도, 극복하는데 성공하지 못했으니까 지금까지는 단지 일시적이었던 것이 이번에는 본격적으로 된 것이지요. 우리들은 모든 단체나 회합에서 쫓겨나 버렸어요. 이쯤되고 보니 사람들은 우리들의 이야기를 하는 데 있어서, 인간대우도 해주지 않았어요. 우리들의 성을 불러주는 사람도 없었어요. 할 수 없이 우리들의 이야기를 입에 올릴때에는, 집안에서 가장 천진 난만한 동생 바르나바스의 이름으로 전체 가족을 대표해서 불렀어요. 이 오두막집까지도 비난의 대상이 되었으니까요. 당신도 스스로 반성해 보시면, 당신이 오두막집 안으로 발을 한 발자국 디뎌 놓았을 때 사람들이 그렇게 경멸하는 감정을 품게 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고 말씀하시게 될 거예요. 나중에 사람들이 우리 집에 찾아왔을 때도 아주 사소한 일에도 콧잔 등에 주름살을 잡으면서 경멸의 감정을 나타내곤 했어요. 한 가지 예를 들면, 작은 석유램프가 저기 식탁에 매달려 있으면 속이 시원할까요? 그러나 그들에게는 그것이 비위에 거슬리는 모양이죠. 가령 우리들이 그 램프를 어느 다른 곳에 걸어 놓았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싫어하는 마음에는 조금도 다름이 없 었을 것이에요. 우리들의 인격이나 소유물이나 다 같이 예외 없이 경멸의 대상이 되어 버렸어요." 하고 올가는 기다란 이야기를 끝마쳤다. 탄원하러 가는 길 "대체 우리들은 그 동안에 무엇을 했을까요? 우리들이 할 수 있었던 가장 나쁜 일을, 우리들 이 실지로 멸시당한 것보다 더 멸시당해도 할 수 없었던 일을 한거예요. 즉 우리들은 아말리아를 배반하고 그애의 침묵의 명령에서 이탈했어요. 우리들의 그런 생활을 계속할 수는 없었어요. 전 혀 희망 없이는 살아 나갈 수 없었어요. 그래서 각자 제멋대로 용서해 달라고 성에 애원하기도 하고, 무리하게 요청하기도 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 보았어요. 물론 우리들은 회복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른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또 우리들은 성과의 한 가닥 희망인 연고 관계가-그것은 바로 아버지에게 마음을 기울이고 있었던 관리 소르티니를 뜻하는 것이지만-마침 그 사건에 의하여 우리들의 손에 닿지 않는 것이 되어 버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그래도 일에 착수했어요. 아버지는 일을 시작했어요. 면장, 비서들, 변호사들, 서기들에게 대한 아무 소용 없는 탄 원 행각이 시작 되었어요. 대개는 면회도 하지 못하고, 상대방의 책략 또는 우연으로 말미암아 좌우간 면회하는 일이 있다고 해도-그런 소식을 들었을 때 우리들은 얼마나 기뻐하며 두 손을 맞 대고 비볐느지 몰라요-아버지는 당장에 쫓겨나고 두 번 다시 면회를 해 주는 일은 없었어요. 그에게 대답한다는 것은 너무나 쉬웠어요. 성으로서는 그런 일을 언제나 거저먹기라고 할 수 있지 요. 그는 대체 어떻게 하려는 거냐? 그에게 무슨 사건이 일어났느냐? 그는 대체 무엇을 용서해 달라는 거냐? 성에서 누가 그에게 손가락 하나라도 댔단 말 놀랐겠지만-이제는 시간 문제다. 다만 모든 것이 아직은 비밀이니까, 우리들의 비밀을 엄수해야 된다고 넌지시 우리들에게 알리려고 했어요. 그럴 때의 아버지의 모습은 참 보기에 딱했어요. 결국 나중에가서는 우리들이 더 이상 아버지에게 돈을 제공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만일 그렇지 않다면 지금 말씀드린 것처럼 확실히 더 오랫동안 시간을 끌었는지 모르겠어요. 그러는 사이에 바르나바스는 굉장히 애걸한 결과 겨우 브룬스빅크가 우 리 들 ㄸ문에 자기 사업에 대한 위협을 무릅쓰고 바르나바스를 맡아 준 만은 인정하지만, 그 대 신 바르나바스에게 아주 소액의 임금밖에는 지불하지 않았 어요. 바르나바스의 근무 상태는 휼륭했지만-채용은 되었다고 하더라도 바르나바스의 임금으로는 간신히 목구멍에 풀칠할 정도였어요. 그래서 우리들은 미리 잘 타협해 가지고 될 수 있으면 아버지를 자극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돈을 보 조해 드릴 수 없다는 사유를 말씀드렸어요. 아버지는 그저 조용히 그 말씀을 받아들이셨어요. 아버지의 이성으로는 벌써, 이제 자기가 여러 가지로 애쓰고 있는 일이 비관적이라는 점을 통찰할 만한 능력을 잃어 가고 있었어요. 실망에 실망을 거듭하는 동안 지칠 대로 지쳐서 완전히 판 단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죠. 다만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 하시더군요-대체로 아버지는 전과 같이 똑똑히 말씀하실 수가 없게 되었어요. 전에는 너무나 지나치게 똑똑하게 말씀하셨어요-아버지는 아주 적은 금액이라도 좋으니 돈이 필요하다고, 그러면 그 다음날이면, 아니 그 날 중이라도 모든 일을 다 알 수 있다고. 그런데 이제는 다 틀려 버렸고, 오로지 돈 때문에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 버렸다고 하시더군요. 그러나 아버지의 말투를 들으면 아버지도 자기가 하는 말을 믿지 않으신다는 눈치를 알 수 있었어요.그런가하면 그는 없이 새로운 계획을 피력하시기도 했어요. 그것에 의하면 아버지는 죄를 입증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에 공적인 방법으로는 이 이상 성공할 가망성이 보이지 않으니까, 전적으로 탄원에 의하여 개인적으로 관리들과 접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어요. 관리들 사이에는 확실히 동정심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어요. 물론 그들은 관청에선 인정에 약해서는 안 되지만, 관청 밖에서라면 적당한 시기에 그들을 찾아가서 어떻게 사적으로 교제해 본다면......" 여기서, 그 때까지 아주 풀이 죽어서 고개를 수그리고 올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던 K가 이야기를 가로채고 이렇게 물었다. "그러나 당신은 그것을 옳다고 생각하지 않겠지요?" 물론 이야기를 계속하면 곧 해답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즉시 그것을 알고 싶었다. "네." 하고 올가는 말하더니, 이어서, "친절이나 동정 같은 건 전혀 문제도 안 돼요. 우리들이 아무리 젊고 경험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쯤은 알고 있었으며 물론 아버지도 알고 계셨어요. 단지 아버지는 다른 일도 모두 그렇지만 이 일도 완전히 잊고 있었을 따름이에요. 그는 성에서 가까운 큰길 위에-그 위를 관리들의 차가 통과했는데-우뚝 서 있다가, 어떤 차가 지나가는 대로 붙들고 죄를 용서해 달라고 탄원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어요. 솔직하게 말하자면 아주 이성이 없는 계획이지요. 설사 불가능한 일이 가능하게 되고 탄원이 실지로 관리의 귀에 들린다고 하더라도 그렇지요. 대체로 관리가 단독으로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것인가요? 그런 일은 관청 전체의 이름으로 비로소 가능할 것이에요. 더욱이 관청 전체의 이름으로써도 십중팔구는 죄를 용서할 수가 없으며 오직 흑백을 가리는 것만이 가능하지요. 그리고 가령 관리가 차에서 내려서 탄원을 들어 보자고 하더라도 가난하고 지치고 늙고 초 라한 아버지가 입 안에서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어떻게 그 관리가 탄원 사건의 전모를 파악할 수가 있겠어요? 관리들은 모두 참으로 교양이 있지만, 한쪽에 기울어진 것이어서 누구나 자기 전문 분야라면 한 마디만 들어도 체를 조직적으로 통찰할 수 있지만, 다른 부문의소관 사항이면 첫 시간을 두고 설명해 주어도, 아마 그 말을 듣고 그럴 듯하게 고개를 끄덕거린다 해도 한 마디도 알아들은 것이 아니지요. 네, 이런 일이야 정말 당연한 일이지요. 자기에게 관계 있는 관청일로서는 그다지 중요치 않은 것, 관리가 어깨를 움츠리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그런 하찮은 일을 찾아 보세요. 그리고 그것을 철저하게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세요. 평생 걸려도 이해하시지 못할 테니까요. 그러나 만일 아버지가 운 좋게 담당 관리를 만났다고 하더라도 관리는 서류도 없이 더군다나 거리에서 사무 처리를 할 순 없지요. 그 관리는 사람의 죄를 용서할 수 없고 단지 공적으로 처리할 수 있을 뿐이에요. 그래서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기껏해야 또다시 공적인 수속을 지시해 주는 것이 고작이겠지요. 그런데 이런 정규의 수속을 밟고 무슨 목적을 달성하는 것에는 이미 아버지는 완전히 실패했어요. 대체 무슨 바람이 불어서 아버지는 또 이 새 계획을 관철시키려는 변덕을 부리셨는지 모르겠어요. 만일 그와 같은 가능성이 손톱만큼이라도 있다면, 그야말로 저기 큰길은 탄원하는 사람들로 웅성거릴 거예요.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어린아이라도 알 만한 사실이니까, 거기에는 사람의 그림자 하나 눈에 띄지 않는 거지요. 그러나 아마도 사람의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또 아버지의 희망을 굳게 한 모양이에요. 아버지는 각 방면으로부터 자기의 희망을 키우는 사람이었어요.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이 때에 대단히 필요하기도 했어요. 정상적인 머리를 가진 사람이면 그렇게 어마어마한 일을 정색해서 생각하지 않을 것이고 또 생각할 여지도 없이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똑똑히 알게 될 거예요. 관리들이 마을과 성 사이를 왕래하는 것은 결코 놀러다니는 것이 아니고, 마을에서나 성에서나 일이 기다 리고 있어요. 그래서 그렇게 빨리 차를 달리는 것이지요. 거기다가 또 그들은 결코 차의 창문 밖을 내다보거나 차 밖에 청원자가 없는가 하고 살펴볼 생각도 하지 않아요. 차 안에는 관리가 열람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서류가 가득 차 있 으니까요." "그런데 나는 관리의 썰매의 내부를 본 일이 있는데, 거기에는 서류 같은 것은 전혀 없었어요." 하고 K가 말했다. 올가의 이야기는 K에게 너무나 크고 거의 믿을 수 없는 세계를 보여 주었기 때문에, K는 자기의 조그마한 체험으로 그 세계를 건드리고, 그 존재에 의하여 자기 자신의 존재를 더욱 똑똑하게 확인해 보자는 충동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있을 수 있는 일이죠." 하고 올가가 말하더니 이어서, "그러나 그럴 때면 더욱 형편이 나빠요. 그럴 때면 관리의 용건은 너무나도 중요해서 서류가 굉장히 소중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부피가 커서 차에 싣고 다닐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런 관리 들은 전속력으로 차를 달리게 해요. 좌우간 아버지를 위해서 시간을 내주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어요. 그뿐만 아니라 성으로 올라가는 찻길은 얼마든지 있어요. 그 코스의 하나가 유행하면, 누구나 거기로 차를 몰고, 또 다른 코스가 유행하면 이번에는 모두들 거기로 몰려들어요. 어떤 규 칙에 따라서 이런 교체가 실시되는가, 그것은 아직도 발견되어 있지 않아요. 예를 들면, 아침 여덟 시에 모두들 어느 한 코스를 달려요. 반 시간 후에는 다른 코스를, 그 십 분 후에는 세 번째 코스를 또 반 시간 후에는 아마도 다시 첫 번째 코스를 달리고 그 후로는 온종일 그 코스를 달리게 되지요. 그러나 어느 순간에 그 코스가 변할지 몰라요. 물론 마을 가까이 오면 모든 차도가 하나로 합쳐지지만 거기서는 이미 모든 차들이 급속도로 달리고 있어요. 다만 성에 가까워지면 속도를 약간 떨어뜨리는 것이 보통이지요. 그렇지만 한길이 규칙적이 아니어서 차가 출발하는 것 을 살펴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차의 대수를 알아맞히기도 역시 어려워요. 차가 한 대도 보이지 않는 날이 가끔 있는가 하면 그 후로는 또 떼를 지어서 달리는 때도 있지요. 그러면 이런 예비 지식을 염두에 두고 우리 아버지를 생각해 봐 주세요. 매일 아침 제일 좋은 을 살펴볼 수 없알아맞히기도 역시 어려워요. 차가 한 대도 보이지 않는 날이 가끔 있는가 하면 그 후로는 또 떼를 지어서 달리는 때도 있지요. 그러면 이런 예비 지식을 염두에 두고 우리 아버지를 생각해 봐 주세요. 매일 아침 제일 좋은 옷을 사지만-안녕히 다녀오시라는 가족들의 인사를 받으시면서 아버지는 늠름한 모습으로 출근하셔요. 아버지는 원칙적으로 가져서는 안 되지만 소방대의 작은 휘장을 지니고 있어요. 마을 밖으로 나가면 옷에다 꽂으려고 하시는 것예요. 아버지는 마을 안에서는 휘장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고 계신데 사실 그것은 아주 작은 것이어서 두 발자국만 떨어지면 벌써 보이지 않을 정도예요. 아버지 생각으로는 그것이 차를 타고 지나가는 관리의 주목을 자기에게 끄는 데 효과가 있다는 거예요. 성 입구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야채 장수네 밭이 있어요. 베르투흐라는 사람의 소유고 그는 성에 야채를 공급하는 지정 상인이지요. 거기 정원 울타리의 좁은 대석 위에다 아버지는 자리를 잡았어요. 베르투흐는 그것을 용납해 주었어요. 왜냐하면 그는 전에 아버지와 사이가 좋았고 또 아버지의 가장 좋은 고객의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죠. 즉 그 는 발 하나가 약간 병신이었는데, 그 발에 꼭 맞는 구두를 만들어 주는 사람은 아버지밖에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죠. 그런데 아버지는 날이면 날마다 거기에 앉아 있었어요. 음산하고 비가 잦은 가을이었는데, 아버지에게는 일기 같은 건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 같았어요. 아침 일정한 시간에 문의 손잡이에 손을 대고 우리들과 작별 인사를 해요. 저녁때는-어쩐지 아버지는 나날이 허리가 구부러지는 것처럼 보였어요-흠뻑 젖어서 돌아오시면 방 한구석에 피곤한 몸을 던지셔요. 우선 아버지는 조그마함 체험담을 이야기해 주셨어요. 예를 들면 베르투흐가 동정과 옛날 우정을 잊지 않고 울타리 너머로 이불을 던져 주었다든가, 지나가는 차 속에 탄 어떤 관리는 아는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다든가 또는 어떤 차부가 가끔 저쪽에서 그를 쳐다보고 장난하느라고 말채찍으로 건드리고 간다든가, 그런 체험담이었어요. 그러나 아버지는 나중에는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그만둬 버렸어요. 분명히 아버지는 이미 거기서 무엇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잃어버렸어요. 이미 아버지는 나가서 거기서 하루를 보내는 것을 자기의 의무, 싱거운 직업이라고 밖에는 생각지 않았어요. 그 무렵부터 아버지는 신경통을 앓기 시작했어요. 겨울이 가까워지고 예년보다도 눈이 빨리 내렸어요. 여기서는 금방 겨울이 되어 버려요. 그래서 아버지는 그 때까지 비에 젖은 돌 위에 앉은 것처럼 이번에는 눈 속에 앉아 있었어요. 밤에는 고통에 못 이겨서 신음했어요. 아침에는 갈까말까 망설이다가 결국 자기 자신을 이겨내고 나갔어요. 어머니가 매달려서 가지 못하게 말리려고 하면 아버지는 사지가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이 약해져서 그런지 어머니에게 동행하는 것을 허락하셨어요. 그래서 어머니도 역시 병의 고통에 사로잡히고야 말았어요. 우리들은 종종 두 분 계신 곳으로 갔어요. 식사를 가지고 가기도 하고, 그냥 찾아 가기도 하고 두 분을 설득해서 집으로 돌아오시도록 하려고 간 적도 있었어요. 우리들은 몇 번이나 두 분이 그 좁은 장서에 쓰러져서 서로 기대고 있는 광경을 보아야만 했어요. 두 분은 얇은 이불을 잘 두르지도 못한 채 쭈그리고 앉으셨고 주위에는 회색의 눈과 안개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도 않고 며칠을 두고 주위의 사방 어느 곳을 내다보아도 사람이나 차의 그림자 하나도 눈에 띄지 않으니 그게 대체 무슨 꼴일까요? K씨, 얼마나 살풍경할까요? 드디어 어느 날 아침, 아버지는 그 빳빳이 굳은 다리를 침대 밖으로 내밀 수가 없었어요. 아주 절망적이어서 우리가 보기에도 안타까웠어요. 아버지는 가벼운 열에 사로잡혀서 '저 위에 베르투흐 집 옆에 차가 한 대 선다, 관리가 차에서 내린다, 울타리 옆에 내가 없나 하고 찾아본다, 고개를 흔들고 골을 내면서 다시 차 안으로 되돌아가 버린다', 그런 광경을 눈앞에 선하게 그려보는 것 같았어요. 그럴 때 아버지는 마치 여기서부터 위에 있는 관리에게 자기 소재를 알리고 자기의 부재가 얼마나 부득이한 일인지를 설명하려고 하는 듯이 굉장히 큰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어요. 사실그것은 오랫동안의 부재가 되어 버렸어요. 아버지는 이미 결코 거기에는 되돌아가시지 않았으니까요. 몇 주일이나 침대에 드러누워 있지 않으면 안 되었어요. 아말리아는 시중을 들고 간호하고 치료하는 것, 전부를 도맡았어요. 물론 중간에 좀 쉴 때도 있었지만 그런 생활을 오늘날까지 계속해 왔어요. 그애는 고통을 가라앉히는 여러 가지 약초를 알고 있어서, 거의 잠도 안 자고 지낼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무엇에 대해서도 결코 놀라거나 두려워하는 일도 없고 또 덤비거나 서두른적도 없어요. 양친을 위하여 무슨 일이든 다 해 드렸어요. 우리들은 별로 도와 드리지 못하고 그 근처에서 허둥지둥 돌아다니기만 했는데 아말리아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침착한 태도를 잃지 않았어요. 그러나 병환도 고비를 넘기고 아버지께서 조심스럽게 좌우로 부축을 받고 침대에서 일어나시게 되자, 아말리아는 곧 물러나 버리고 아버지는 우리들에게 맡겼어요." 거기서 올가는 일단 기다란 이야기를 매듭짓는 것이었다. 올가의 계획 "이번에는 또 한 번 아버지를 위해서 그에게 가능한 일을 물색해 드리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어요. 적어도 아버지께서 가족들의 죄를 씻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믿으실 만한 그런 일 말이에요. 그런 종류의 일을 물색한다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어요. 어떤 일이라도 베르투흐의 정원 앞에 앉아 있는 것보다는 나았으니까요. 그리고 실지로 물색한 것은 저에게도 약간 희망을 가지게 하는 일이었어요. 왜냐하면 관청에서, 서기들 있는 데서 또는 어딘지 다른 곳에서도 우리들의 죄가 화제에 오를 때는 언제나 소르티니의 사자를모욕했다는 것이 문제가 됐을 뿐이고, 감히 그 이상은 더 간섭하려고 하지 못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혼잣말로 말했어요. 일반의 의견이 가령 겉으로만이라도 사자 모욕 사건밖에는 문제로 삼지 않는 경우에 어서 그 사자를 달랠 수 있다면, 설사 이것이 또다시 겉으로만이라고 할지라도, 만사를 다시 한 번 처음으로 돌릴 수 있지 않는가고. 사실 모든 사람들이 말하는 바에 의하면 아직 아무런 보고도 도착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따라서 사건은 아직도 관청으로 넘어가지 았으니까, 용서한다는 것은 사자 개인의 자유이고 까다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물론 이런 것은 모두 아무런 결정적이 중요성을 띠지 않고 단지 겉으로 보기만 그럴 뿐이고 겉치레 이외에 아무 소득이 없어요. 그래도 아버지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릴 것이며 아버지가 기뻐하시면 여러 가지로 통지를 가져와서 아버지를 괴롭히던 사람들도 난처한 입장에 빠지게 되고 아마 아버지도 숨을 돌릴 수 있을 것이라고 추측되었어요. 물론 우선 사자를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되었어요. 이 계획을 아버지에게 이야기했더니 처음에는 퍽 화를 냈어요. 즉 아버지는 굉장한 고집쟁이가 되어 버렸어요. 한편으로는 언제나 아버지가 성공하려는 순간에 우리들이 그를 방해했다. 처음에는 돈의 보조를 중지한 것으로, 또 이번에는 침대에 억지로 눕혔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었지요.-이 오해는 특히 병중에 더욱 심해졌어요-또 한편으로는 사실 이미 다른 사람의 의견을 완전히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제가 끝까지 이야기해 버리기도 전에 계획은 벌써 거부당하고 말았어요. 아버지 의견으로도 앞으로도 베르투흐의 정원에서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되므로, 이젠 아버지가 매일같이 거기로 갈 수는 없으니까 우리들이 손수레로 그를 운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러나 저도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버지도 점점 제 생각과 타협하게 되었는데, 단지 그 때 곤란한 점은 이 일에 있어서 아버지가 완전히 제게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그 때에 사자를 목격한 사람은 저 혼자뿐이고 아버지는 그를 몰랐기 때문이에요. 물론 저만 하더라도 하인들이란 비슷비슷하니까 또다시 그를 만났을 때 꼭 그 사람이라고 식별할 만한 자신이 있었던 것은 아니예요. 좌우간 우리들은 그리고나서 신사관으로 가서 거기서 하인들을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물론 그는 소르티니의 하인이고 소르티니는 두 번 다시 마을로는 돌아오지 않았지만, 성 양반들은 늘 하인을 바꾸니까, 그는 아마도 다른 주인을 모시고 있을는지도 모르겠고 가령 본인이 없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다른하인들로부터 그에 관한 소문을 들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그런목적으로 매일 신사관에 가보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어디로 가나 우리들은 환영을 받지 못했고 더군다나 그런 장소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어요. 사실 떳떳하게 돈을 내는 손님으로서도 들어가는 것을 꺼리는 형편이었어요. 그러나 자연히 우리들을 필요로 하는 일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그도 그럴 것이 프리다에 있어서는 하인들이 얼마나 두통거리였던가 선생님은 잘 아실 거예요. 그들은 결국 쉬운 근무가 습관에 젖어 몸이 둔하게 되었으나 대개는 온순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지요. 관리들이 축사에서 흔히 '하인 같은 팔자를 바라노라!' 말하는 것처럼 사실 생활의 안락한 점만을 따진다면 하인이 성의 주인공이라 해도 좋지요. 또 그들도 그 가치는 잘인식하고 있어서 율법으로 움직이는 성에서는 조용히 그리고 얌전하게 품위를 지키고 있으며-그것은 여러 가지 소식을 통하여 장담할 수 있어요-이 마을에서도 하인들 사이에 그런 면모가 남아있음을 엿볼 수 있어요. 단지 그것은 약간 남아 있는 것에 지나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성의 율법은 마을에서는 이미 그들에게 조금도 효과를 발생하지 않으니까, 그들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한 것처럼 보여요. 그들은 율법 대신에 걷잡을 수 없는 충동에 의해 지배되어 난폭하고 반항적인 백성이 되어 버렸어요. 그들은 부끄럼도 모르고 한없이 뻔뻔스러워요. 그래도 마을을 위해서 다행한 일은 그들이 명령이 없이는 신사관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이지만, 그러나 신사관에 있는 동안은 그들과 정답게 지내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돼요. 또 프리다로서는 대단히 고통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에, 하인들을 무마하는 데 저를 이용한 것은 그녀로서는 잘된 일이었지요. 그 때부터 이 년 이상이나 적어도 일 주일에 두 번씩 저는 마굿간에서 하인들과 함께 밤을 보내고 있었어요. 전에, 그 때만 하더라도 아버지가 함께 신사관에 갈 수 있었는데, 아버지는 어느 술집 방에서 주무시면서 제가 아침 보고를 가지고 가는 것을 기다리고 계셨어요. 보고라곤 거의 없었어요. 우리들은 아직까지도 찾아내려고 애쓰는 그 사자를 발견하지 못했어요. 그는 여전히 자기를 높이 평가해 주는 소르티니에게 봉사하고 있다는 소문이지요. 그리고 소르티니가 더욱 멀리 떨어진 관청으로 전근갔을 때에 그는 소르티니를 따라갔다고 해요. 하인들은 대개 우리들이 그를 보지 못하게 된 후부터는 역시 그를 못 보았어요. 어떤 사람은 그를 보았다고 주장하지만 아마 착각일 거예요. 그러니까 제 계획은 정말로 실패했는지 모르겠지만 완전히 실패했다고는 할 수 없어요. 물론 우리들은 사자를 찾지 못했고, 또 유감스럽게도 신사관에 간 일이라든지 거기서 밤을 새운 일, 또는 저에 대한 동정심 따위가-그것도 아버지에게 그만한 능력이 있는 동안의 일이긴 했지만-아버지에게는 치명상이 되어서 거의 이 년 동안이 나 선생님이 보시는 바와 같은 상태에 놓여 있어요. 매일 같이 마지막인 것처럼 보이는 어머니보다는 그래도 아버지가 훨씬 나아요. 사실 아말리아의 초인간적인 노력 때문에 어머니의 목숨은 연장된 셈이지요. 그래도 제가 신사관에서 한 일은 다소 성 과의 어떤 연고 관계라고 할 수 있어요. 제가 신사관에서 스스로 한일은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해도 제발 저를 멸시하지 마세요. 그게 무슨 그리 대단한 관계냐고 생각하실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것도 옳은 말씀이긴 해요. 성과의 연고 관계도 그리 훌륭하다고는 할 수 없어요. 그러나 저는 지금 많은 하인을 알고 있으며, 다시 말해서 수년 동안 마을로 찾아온 거의 모든 양반의 하인들을 알고 있으니까 앞으로는 성으로 가는 일이 있더라도 거기서 생소한 일은 없을 거예요. 물론 그들은 마을에서 하인일 뿐이고 성으로 가면 전혀 딴판이지요. 아마 성에서는 아무도 그들 을 분간하지 못할 거예요. 따라서 마을에서 사귄 사람은 더 말할 것도 없고, 가령 성에서 다시 만나기를 기약한다고 마구간에서 천 번 만 번 맹세했던 사이라도 아무 소용이 없을 거예요. 사실 저는 그런 약속이 그들 전부에게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 직접 경험해 보았어요.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런 일이 아니에요. 저는 단지 하인을 통해서 성과 연고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아니 에요. 아마도 그리고 이것을 기대할 수 있는 일이지만, 누군지 위에서 제 자신과 제가 하는 일을 봐 주는 사람이 있어서-물론 많은 하인들을 관할할 수 있는 관청 업무 중에서도 대단히 중요하고 힘이 드는 일이지만-좌우간 저를 위해서 그렇게 봐 주는 사람이 있어서, 아마도 제게 대해서 다른 사람보다도 너그러운 판단을 내려 줄 것이며-물론 제 수단 방법이 형편없다고 하지만-제가 제 집안 식구를 위해서 분투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과 아버지가 애쓰시던 사업을 계승하고 있다는 사 실을 인정해 주실지도 모르거든요. 저는 이것으로 말미암아 성과 연고 관계를 맺고 있는 거예요. 그렇게 이 사실을 통찰하신다면, 아마도 또 제가 하인들에게서 돈을 거둬서 그것을 식구들을 위해서 쓰고 있는 것도 용서해 주실 거예요. 그 밖에도 제가 성취한일은 있지만, 물론 선생님은 그것을 제 잘못이라고 생각하시겠지요. 우회 작전을 쓰면 그렇게 어렵고 몇 해나 걸리는 공적인 채용 수속을 밟지 않고서도 손쉽게 성의 근무에 편입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인들한테서 많이 들었어요. 그런 경우에 있어서는 물론 공적인 근무자가 아니라 남몰래 그리고 반쯤 승인된 사람이라는 데 지나지 않아요. 권리나 의무도 없어요. 그리고 의무가 없다는 것은 그다지 좋지 못한 일이지만 무슨 일이 있더라도 가까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한 가지 좋은 점은 있어요. 즉 좋은 기회를 노려서 그것을 이용할 수 있어요. 아직 근무자는 아니지만, 마침 무슨 일이 있을 때 옆에 근무자가 없을 경우 사람을 불러서 얼른 쫓아가면 그 사람은 조금전까지만 해도 생각지도 못했던 존재가 되어 버려요. 즉 벌써 근무자가 되는 거지요. 물론 언제 그런 기회가 있는가가 문제지요. 대개는 당장에 들어가자 마자 주위를 살펴볼 여유도 없이 벌써 기회는 있어요. 새로 들어온 사람으로서 당장에 그런 기회를 잡을 만큼 침착성이 있는 사람은 적지요. 처음에 그런 기회가 없으면 공적인 채용 수속을 밟는 것보다도 오히려 더 오랜 세월이 걸려요. 그래서 그렇게 반쯤 인정된 그런 사람은 그 때는 벌써 결코 공적으로, 또 정식으로 채용되는 일은 없어요. 누구나 이 점을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거죠. 즉 공적으로 채용될 때는 엄선된다는 사실, 조금이라도 평판이 나쁜 가정 출신은 처음부터 거절당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이 돼 있지 않아요. 아무튼 예를 들어, 그런 가정 출신이 이런 수속을 밟는다고 하면 그야말로 본인은 그 결과 때문에 몸부림치고 세상 사람들은 어이가 없어서 어떻게 그처럼 희망도 없는 일을 감행할 생각이 떠올랐느냐고 첫날부터 질문의 화살을 퍼붓고 야단 법석일 거예요. 본인으로 말할 것 같으면, 달리 살아 나갈 도리가 없으니까 그래도 희망을 품어 보는 거예요. 그러나 몇 해가 지나서 이미 백 발 노인이 된 다음에야 겨우 그 사람은 자기가 거절당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돼요.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자기 일생마저 수포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알게 돼요. 물론 여기에도 예외는 있고 이 예외에는 누구라도 걸려들기가 쉬워요. 왜냐하면 바로 평판 나쁜 사람들이 결국 채용되는 일도 있으니까요. 관리 중에는 본의는 아니면서도 그런 짐승의 냄새를 무한히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서, 채용 시험 때 코를 실룩거리며 냄새를 맡기도 하고, 입을 일그러뜨리기도 하고, 큰 눈을 부릅뜨고 쳐다보기도 해요. 그들에게는 지금 말한 것 같은 사람이 굉장히 구미에 당기는 모양이지 요. 그래서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육법 전서에 꼭 의지해야 해요. 물론 그런 일은 대개 그런 남자가 채용되는 데 도움은 되지 않아요. 다만 채용 수속이 한없이 연장되어 갈 뿐이지요. 그 수속은 대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남자가 죽은 후에야 비로소 중지될뿐이지요. 따라서 채용이라는 것은 합법적이건 불법적이건간에 다 마찬가지며, 여러 가지 겉으로 드러난 곤란과 뒤에 숨겨져 있는 곤란으로 가득 차 있어요. 따라서 그런 일에 착수하려면 미리 모든 일을 면밀하게 검토 하는 것이 상책이겠지요. 그런데 우리들, 즉 바르나바스와 저는 결코 그런 점을 소홀히 하지 않았어요. 언제든지 제가 신사관에서 돌아오면 우리 두 사람은 함께 앉아서, 최근의 저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그래서 며칠이고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만 했지요. 그래서 일은 흔히 바르나바스의 손에서 필요 이상으로 지체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혹시나 이런 점에서 저는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죄가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물론 하인들의 이야기를 그다지 곧이 들을 수 없다는 사실까지 잘 알고 있어요. 하인들은 결코 제게 성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지 않았고, 언제나 다른 일로 화제를 돌려 버리고 제가 한 마디 한 마디 재촉하지 않으면 중요한 이야기를 해 주지도 않았어요. 또 그들이 마음이 내켜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하더라도, 서로 다투거나 쓸데없는 이야기를 지껄이거나, 뽐내고 호언 장담을 하는가 하면, 서로 과장하거나 허무맹랑하게 꾸며 대서 이야기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저 어두운 마구간 속에서 한없이 들려 오는 부르짖음 속에는 진실을 암 시하는 말이 있다고 하더라도 기껏해야 하나 둘에 지나지 않았고 그것도 빈약하기 짝이 없는 암시처럼 느껴졌어요. 그러나 저는 기억하고 있었던 대로 바르나바스에게 모든 것을 들이켜 버리 고, 계속 열렬하게 불타는 듯이 다른 것을 또 열망했어요. 그리고 사실 저의 새로운 계획이 잘 되고 못되는 것은 바르나바스에게 달려 있었어요. 하인들에게서는 그 이상 아무 소득도 없었어 요. 소르티니의 사자는 찾아내지도 못했고 또 결코 찾아낼수도 없었을 거예요. 소르티니와 동시에 그의 사자도 점점 그림자가 희미해 갈 뿐이고, 따라서 종종 그의 외모나 이름까지도 완전히 잊어버리게 되었어요. 저는 흔히 오랫동안 그들의 용모를 그려보았으나 사람들은 어슴푸레하게 기억을 더듬을 뿐 그 밖에는 아무 효과도 없었어요. 그리고 저와 하인들과의 생활에 대해서 말씀 드리면 저는 물론 그것이 사람들에게서 어떻게 판단되느냐에 대해서 아무 영향력도 없었어요. 다만 기껏해야 그것이 행해진 그대로 받아들여지도록, 또 그것으로써 우리집의 죄가 조금이라도 덜 어지도록 희망할 수 있었을 따름이지요. 그러나 사실 저는 그 희망이 이루어졌다고 생각되는 외적 증거는 하나도 얻을 수 없었어요. 그래도 저는 여전히 그런 짓을 계속했으나 저로서는 우리 집안일을 위하여 성에서 무슨 일을 실현할 가능성이 하나 보였어요. 왜냐하면, 제가 그럴 생각만있으면 그리고 얼마든지 가지고 있었지만, 하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성에 봉사하는 일에 채용된 사람은 자기 가족을 위해서 대단히 많은 일을 성취할 수 있다고 추측할 수 있었어요. 물론 하인 들의 이야기를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지 그것이 문제지요. 그것을 확인하기는 어려워요. 그러나, 그다지 신용할 수 없다는 것만은 분명해요. 그 이유로는 예를 들어서 하인 하나가 제게-저는 두 번 다시 그를 만나는 일이 없을 것이며, 만나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벌써 그 사람이라고 분간할 수도 없겠지만-동생을 위해서 성에서 어느 자리를 알선해 주겠다,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바르나 바스가 어떤 다른 연줄로 성으로 찾아오는 일이라도 있으면 그를 봐 주겠다, 즉 그의 원기를 복돋아 주겠다고 점잖게 확약해 준 일이 있어요. 왜냐하면 하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리를 얻 으려고 기대하는 사람들은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기니까. 돌봐주는 사람이 없으면 그 동안에 졸도하거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아주 신세를 망쳐 버리게 되기 때문이라는거에요. 즉 그와 같이 이 야기라든지, 또는 그 밖의 다른 이야기를 하인이 제게 해 주었는데, 아마도 그것은 경고로서는 그럴 듯했지만 거기에 맞는 약속으로는 어울리지 않았어요. 그러나 바르나바스에게는 그렇지 않 았어요. 물론 저는 동생에게 섣불리 그런 약속을 믿지 말라고 주의 했는데, 제가 그 약속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자마자 동생은 제 계획이 완전히 마음에 들었나봐요. 제가 스스로 게획을 변호하 기 위해서 열거한 것은 거의 동생의 주목을 끌지 못했고, 주로 하인들이 이야기가 그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어요. 그래서 당시 제가 의지할 사람이라곤 저 혼자밖에 없었어요. 대체 양친과 절충 한 사람이라곤 아말리아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으며, 그 아말리아도 제가 아버지의 과거의 계획을 실현해 보려고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제게서 멀어졌어요. 아말리아는 선생님이나 다른 사람 앞에 서는 저와 이야기 하지만, 그밖에 다른 때는 결코 입도 열지 않아요. 또 신사관 하인들로 보면 저는 노리개에 지나지 않았고 그들은 악착같이 이 노리개를 부수려고 했을 따름이에요. 저는 이 이 년동안 그들 가운데 아무와도 정다운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어요. 단지 뒤에 무엇을 감추어 둔 것 같은 수줍은 이야기, 꾸며 낸 이야기,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 그런 광적인 이야기 뿐이지 요. 그러고 보니 저에게는 바르나바스만이 남게 되었는데 그 바르나바스는 아직도 어린애였어요. 저의 보고를 듣는 그의 눈에 깃들여 있는 빛이 었는데-띠고 있었어요. 저는 그것을 보고 깜짝 놀 라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계획을 포기하지는 않았어요. 단지 저는 너무나 큰 것을 걸고 있는 것처럼 느꼈어요. 물론 아버지의 계획, 즉 허무하다고 하지만 그 커다란 계획을 제가 품고 있었던 것 은 아니에요. 남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결단성을 저는 가지고 있지 못했어요. 저는 여전히 사자에 대한 모욕을 보상하고 회복하는 일을 지향하고 있었을 뿐이고, 또 사람들이 이 겸손한 태도를 보고 저를 좋게 생각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어요. 그러나 지금 저는 저 혼자로서는 이루지 못했던 일을 바르나바스를 통해서 다른 방법으로 더 확실하게 이루어 보려고 마음먹었어요. 우리들은 사 자 한 사람을 모욕하고 그를 앞에 있는 사무국에서 내쫓아 버렸는데 그렇다고 우선 바르나바스를 새로운 사자로 내놓으면 어떨까요? 모욕당한 사자가 하던일을 그에게 시켜보면 어떨까요?그래서 모욕을 당한 그 사자가 얼마든지 요구하는 기간 동안 모욕을 당한 감정을 잊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기간을 조용히 먼 곳에 떨어져 있도록 해 주면 어떨까요? 물론 저는 이 계획이 아무리 겸손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역시 불손한 점이 있다는 것을 잘 깨닫고 있었어요. 그러면 우리들이 관청에 대해서 관청은 당연히 개인적인 문제까지도 해결하라고 독촉하는 것 같기도 하고, 또는 관청이 자발적으로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대로 처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들이 아직도 대책을 강구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하기도 전에 벌써 처분이나 조치가 끝나 버린다는 사실을 마치 우리들이 의심하고 있는 것 같은 그런 인상을 그들에게 줄는지도 모르니까요. 저는 물론 그렇게 알고 있으나, 한편 돌이켜서 다음과 같이 생각했어요. 즉 관청이 나를 그렇게 오해할 리는 만무하다. 만일 오해한다고 하더라도 고의로 오해할 리는 없다. 여하튼 내가 하는 모든 일이 자세히 조사되지도 않고 처음부터 함부로 거부당하는 일도 없으리라고 말이에요. 그래서 저는 계획을 중지하지 않았 으며 한편 바르나바스의 명예욕도 여전했어요. 이런 준비 단계에 있어서 바르나바스는 대단히 거만해져서 구둣방 일같은 것은 자기같이 앞으로 관청에 근무하게 될 사람에게는 너무나 비천한 일 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뿐만 아니라 그는 아말리아가 그에게 아주 드물게 어쩌다 한 마디 말을 거는 일이라도 있으면 마치 근본적으로 큰 의견의 차이라도 있는 듯이 아말리아에게 눈에 불을 켜고 대들었어요. 그러나 저는 이 순간적인 기쁨을 기꺼이 받아들여 주었어요. 미리 예측한 바와 같이 이 순간적인 기쁨과 거만한 태도도 그가 성으로 나가게 된 첫날부터 한꺼번에 사라져 버렸어요. 그래서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외관상의 근무가 시작됐어요. 다만 적이 놀란 것은 바르나바스가 처음인 데도 불구하고 성으로,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후 소위 그의 일터가 된 그 사무실로 거리낌없이 또 서슴지 않고 들어갔다는 거예요. 이 성과를 거둔 데 대해서 저는 그당시 거의 미친 사람처럼 날뛰었어요. 저녁때 집에 돌아와서 바르나바스가 그 이야기를 제 귓가에 속삭였을 때, 저는 곧 아말리아에게로 달려가서 그 애를 붙잡아 구석에 처박고선 입술과 이론 맹렬히 키스했어요. 그래서 그애는 놀라고 아파서 울기 시작할 정도였어요. 저는 흥분해서 말도 하지 못했어요. 아닌게 아니라 우리들은 오랫동안 서로 이야기한 일도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며 칠 후에 이야기하기로 작정했어요. 그러나 막상 그 날이 되자 이야기할 재료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사태는 그 후 조금도 진전을 보지 못했고, 첫날 그렇게 빨리 도달했던 그 점에 그대로 정지 하고야 말았어요. 바르나바스는 벌써 이 년 동안이나 이렇게 단조롭고 가슴을 억누르는 것처럼 숨가쁜 생활을 보내 왔어요. 하인들은 전혀 소용도 없었어요. 저는 바르나바스를 시켜서 하인들 에게 보내는 짤막한 편지 속에서 바르나바스를 보살펴 달라고 부탁하고 동시에 하인들에게 그들이 한 약속을 환기시켰어요. 바르나바스는 하인을 보기만 하면 곧 그 편지를 끄집어내서 보였대 요. 그런데 웬일인지 바르나바스가 만난 하인들 가운데는 아마 저를 모르는 사람도 무척 많았건 모양이고, 또 저를 안은 사람들도 잠자코 편지를 내미는 바르나바스의 태도가-바르나바스는 성에서 감히 말도 하지 못해요-성미에 거슬렸는지 아무도 바르나바스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니 너무 심하지 않아요? 그래서 하인 하나가 그 편지를-아마도 벌써 두서너 번이나 그 편지를 보게 된 사람 같은데-꾸깃꾸깃 뭉쳐서 휴지 무더기 속에 버렸을 때에는 마치 구제된 것처럼 숨을 돌렸대요. 물론 그런 구제받은 기분이라면 오래 전에 우리들이 스스로 비용을 내서라도 마련할 수가 있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 사람은 그 편지를 버리면서 이렇게 말해도 상관없었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했어요. '뭐니뭐니해도 너희들도 편지 다루는 법이 별수없지 않느냐'고. 그러나 이 이 년간이라는 세월이 다른점에서는 소득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일찍 늙은 것, 일찍 어른이 된 것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할 수가 있다면 좌우간, 바르나바스에게는 대단한 유리한 기간이었어요. 사실 동생은 여러 가지 점에 있어서 보통 남자 어른 이상으로 점잖고 현명하게 되었어요. 가끔 저는 동생의 얼굴을 쳐다볼 때면, 이 년 전의 소년다운 모습이 머리에 떠올라서 무어라고 말할 수 없는 슬픈 기분에 잠길 때가 있어요. 그런데도 조금도 못 받고 있어요. 제가 없었더라면 그가 성으로 들어가는 일도 설마 없었으리라고 추측이 되는데, 일단 성으로 들어간 후부터 동생은 제게 의지하지 않고 독립해 나가고 있어요. 저는 그의 단 하나의 믿을 만한 사람인데도 그는 확실히 자기 마음 속에 간직한 것을 단지 일부분 밖에는 제게 이야기 해 주지 않아요. 가는 제게 성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어요. 그러나 그의 이야기를 듣고 또 그가 전해주는 자세한 이야기를 가지고도 그것이 어찌해서 그를 그다지도 변하게 했는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에요. 그 중에서도 특히 알수 없는 일은 소년 시절에는 어른들을 실망시킬 정도로 지나치게 원기 왕성했던 동생이 어른이 된 오늘날에 있어서는 성에서 그렇게 완전히 기운을 다 빠진 것 같은 꼴을 보이는 점이에요. 물론 저렇게 우두커니 서서 기다리는 것, 매일같이 항상 되풀이해서 새삼스럽게 아무 변화의 희망조차 없이 지낸다는 것은 인간을 맥 풀리게 만들고 나중에는 될 대로 되라는 절망적인 기분으로 서 있는 것 외에는 다른 능력도 없는 거세된 인산을 만들어 버릴 거예요. 그러나 사실 그렇다면 동생이 처음에 전혀 저항해 볼 생각도 해 보지 않은 것은 왜 그럴까요? 특히 그는 곧 다음과 같이 깨달았을 것이에요. 즉 올가의 말은 옳다. 이 성에는 명예욕을 만족 시키는 것이라곤 없다. 그러나 아마도 우리 집의 상태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있을는지도 모르겠다고요. 왜냐하면, 거기서는 만사가-하인들의 변덕을 제외하고는-대단히 소극적으로 진행되니까요. 거기서는 명예욕은 사업 속에서 만족을 찾아요. 그렇게 되니까 사업 자체가 우위를 차지하게 되어서 명예욕은 아무 소멸해 버리고 어린이다운 순진한 소원은 들어갈 여지가 없게 되거든요. 그러나 바르나바스가 제게 이야기해 준 바에 의하면, 그는 자기가 들어 가는 것이 허락되어 있는 그 방의 지극히 수상한 관리라고 할지라도 그 권력과 지식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역력히 알 수가 있다고 말했어요. 관리들이 눈을 반쯤 감고 살살 손을 움직이면서 빠른 속도로 구술을 하는 모습이라든지 둘째 손가락 하나만으로 한 마디 말도 없이 불평을 늘어놓는 하인들을 쫓아내는 꼴이라든지. 하인들은 그럴ㄸ면 숨 가쁘게 허덕거리면서 자못 즐거운 듯이 미소를 띄운다고 하더군요. 아니면 책 속에 중요한 대목이라도 발견해서 관리들이 힘차게 책 위를 두드리면 하인들이 그 좁은 곳으로 가능한 한 모여 들어서 목을 쑥 빼고 그 대목을 보려고 덤벼드는 모양이라든지. 그런 광경을 보고 바르나바스는 만일 그들에게서 인정받고 그들과 몇 마디 -타인으로서가 아니라 관청의 동료로서, 물론 훨씬 지위가 낮은 동료로서-말을 하는 것이 호락되는 정도에까지 이르면 무엇인지 뜻하지 아니 한 것을 우리 집을 위해서 얻을 수가 있지 않겠나 하는 인상을 받게 되었대요. 그러나 사실은 공교롭게도 아직 거기까지는 가지 못하고 있어요. 바르나바스가 자기는 그런 데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을 감히 해 보려고도 하지 않아요. 그런데 그는 아직 젊지만 집안의 불행한 상태로 말미암아 책임이 무거운 가장의 지위에 떠받쳐저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는 있는데도 그렇거든요. 이제 이쯤해서 마지막으로 더 고백할 것이 있어요. 일주일 전에 선생님이 여기에 오셨어요. 거는 신사관에서 누군인지 그 소리를 하는 것을 들었지만 염두에도 두지 않았어요. 측량 기사가 하나 왔다던데 그것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했어요. 그런데 그 다음날 저녁에 바르나바스는-전부터 일정한 시간에 중간까지 마중나가기로 하고 있었는데-보통 ㄸ보다도 일찍 집에 돌아왔는데, 방안에 있는 아말리아를 보자 저를 거리로 끌고 나가서 제 어깨에 얼굴을 대고 몇 분 동안이나 울었어요. 그는 이전에 동심으로 돌아갔어요. 무슨 일인지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일이 일어난 것 같았어요. 갑자기 그의 눈앞에 아주 새로운 세계가 전개된 것 같았어요. 그리고 이처럼 완전히 새로운 행복과 걱정 근심을 그는 찾아낼 수가 없었던 것 같아요. 사실 일어난 일이라곤, 단지 그가 선생님에게 보내는 편지 한 장을 맡고 있을 뿐이었어요. 그러나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이 그가 처음으로 손에 쥐어 본 첫 번째 편지였고 천번재 일이었어요." 올가는 거기서 이야기를 끊었다. 주위는 고요했다. 다만 숨 가쁘게 골골하는 양친의 호흡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K는 아주 가벼운 기분으로 올가의 이야기를 보충하랴는 듯이 말을 끄집어냈다. "그렇다면 당신네들은 내개 대해서 위선적인 태도를 취하셨군요. 바르나바스는 마치 오래되고 대단히 바쁜 사자처럼 편지를 갖다 주었으며, 당신이나 그리고 이번에는 당신과 한통속이 된 아말리아까지도 마치 사자의 직무나 편지 같은 건 단지 부업이나 덤처럼 취급했으니까요." "당신은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을 구별하시지 않으면 안 돼요." 하고 올가가 말했다. 이어서, "바르나바스는 그 편지 두통으로 말미암아 또다시 원래의 행복한 어린애가 되어 버렸어요. 자기의 활동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의심을 품고 있지만 이 의심은 단지 동생과 단 두 사람만의 문제지요. 동생은 상대방이 선생님인 경우에 있어서는 참다운 사자로서, 즉 자기의 상상에 의한 참다운 사자로서 행동하는 것이 다시없고 명예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이를테면, 두 시간 이내에 동생의 바지를 적어도 그것이 몸에 꼭 붙는 관복의 바지와 비슷하게-동생은 지금 정식 관복을 입고 싶다고 희망하게 되었지만-고쳐 주지 않으면 안 되었어요. 그 바지를 입고 선생님 앞에 오신 지 염려 되시지 않으니까 복장으로써는 감쪽같이 속일 수 있으니까요. 그것이 바르나바스의 얘기지요. 그러나 아말리아는 그야말로 사자의 역할을 무시하고 있는 형편이에요. 바르나바스나 저를 보고 또는 우리들이 함께 앉아서 쑥닥거리는 꼴을 보면 그애라도 곧 알게 될 테지만-그애는 더더욱 사자의 역할을 무시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아말리아는 진실을 말하고 있는 셈이에요. 결코 오해하시고 거기에 대해서 의심을 품어선 안 돼요. 그러나K씨, 만일에 제가 종종 사자의 역할을 모독한 일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결코 선생님을 속이려고 한 일이 아니라, 불안에 못 이겨서 자연히 그렇게 된 것이 에요. 우리 가족이 손에 쥐었던 최초의, 물론 아직도 충분히 의신의 여지는 있지만, 은총의 표시였어요. 이 전환은 참다운 전환이고 단순한 착각은 아니라는 전제로서 말씀드리는 것이지만-참다운 전환이기 보다는 단순한 착각인 경우가 많지만-선생님이 여기에 도착하셨다는 것과 관계가 있어요. 어느 면에서 본다면 우리들의 운명은 선생님 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에요. 어쩌면 이 두통의 편지는 단지 발단에 지나지 낳고 바르나바스의 활동은 선생님에 관한 사자의 역할 뿐만이 아니라 더욱 확대되어 나갈지도 모르거든요-적어도 좌우간 허용되는 한도 내에서는 우리들은 그것을 시대하고 싶어요-그러나 좌우간 지금 당장은 모든 일에 있어서 단지 선생님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거기다가 우리들은 위에 있는 성에서는 할당 배치되는 대로 만족하고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되지만, 이 곳 아래에 있는 마을에서는 자기 힘에 따라서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어요. 즉 다시 말하자면 선생님의 호의를 확보해 두는 것, 적어도 우리들을 싫어 하시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 또는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지만, 성과의 연고 관계가 선생님에게서 끊어지지 않도록-혹시 그 연고 관계로 말미암아 우리들이 살아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우리들의 경험과 힘이 자라는 대로 선생님을 보호하는 것 등이지요. 그런데 이런 일은 어디서부터 착수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요? 우리들이 선생님에게 가까이 가도 의심하시지 낳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지요? 처음으로 이 땅에 오셨으니까, 확실히 모든 것에 대해서 의심을 품고 계신것도 무리는 아니지요. 더군다나 우리들은 세상 사람들에게서 멸시를 당하고 있고 선생님으도 세상 사람들이 갖는 의견에 영향을 받고 계세요. 특히 약혼자 프리다를 통해서 그렇게 되셨어요. 어떻게 하면 우리들은-그럴 생각은 전혀 없지만-선생님의 감정을 해친다는 일없이 또 선생님의 약혼자와 대립하지 않고 선생님에게로 향해서 돌진하면 좋을까요? 그리고 그 통지, 선생님의 손에 넘어가기 전에 제가 자세히 읽어 본 그 통지는-바르나바스는 읽지 않았어요. 사자로서 그런 월권 행위는 허용되지 않았어요-아주 오래 되어서 언뜻 보기에 그렇게 중요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것은 선생님을 면장에게로 가라고 지시한 것으로써 중요성을 띠게 되었어요. 그렇다면 우리들은 이 일에 관해서 선생님에게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해야 될 것인가요? 만일 우리들이 그것의 중요성만 강조하고 있었더라면 스스로 혐의를 받게 되었을 거예요. 그 혐의란 다시 말하면, 분명히 중요치 않은 일을 과대평가하고 보고를 전달하는 사람으로서 선생님에게 그것을 과장 찬양하였을 뿐만 아니라 우리들 자신의 목적만을 추구하고 선생님의 목적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뿐만 아니라 그렇게 함으로써 그 통지 자체를 선생님의 눈에도 형편없이 보이도록 하여, 본의는 아니라고 하지만 선생님을 속이는 결과가 되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만일 우리들이 그 편지를 그다지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역시 혐의를 받았으리라고 추측해요. 그 이유로서는, 그렇다면 왜 우리들이 이 중요치 않은 편지를 내주는 데 그다지도 열을 올렸나 하는 점이지요. 왜 우리들의 말과 행동이 서로 모순되는가, 왜 우리들은 편지를 받는 선생님만이 아니라 우리들에게 편지를 부탁한 사람까지도 속이려는 것일까가 문제가 될 테니까요. 확실히 부탁한 사람은 우리들이 편지받는 사람에게 쓸데없는 설명을 하여 편지의 가치를 떨어뜨리라고 편지를 맡긴 것은 아닐 테니까요. 그래서 이 양극단의 중간을 간다는 것, 그러니까 편지를 올바르게 판단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에요. 편지는 스스로 끊임없이 가치가 변하고 있지요. 편지에 의해서 야기되는 깊은 생각이란 끝이 없는 것이고, 또 그런 깊은 생각에 잠기다가 마침 어디서 멈추게 되는가는 단지 우연에 의하여 정해질 뿐이니까, 따라서 의견도 또 역시 우연한 것에 지나지 않지요. 더군다나 선생님에 대한 불안감이나 염려가 그 사이에 개입한다면, 이제 모든 일은 엉망진창이 되어 버리는 거지요. 제가 이렇게 말씀드린다고 해서 너무나 엄격히 비판하셔도 사실은 곤란해요. 예를 들면, 언젠가 그런 일이 있었던 것처럼 바르나바스가 다음과 같은 보고를 가지고 왔다고 해 보세요. 즉 선생님이 바르나바스의 사자 근무에 대하여 불만을 품고 있으며, 바르나바스가 눈치를 채서 깜짝 놀라고 거기다가 유감스럽게도 사자로서의 독특한 신경과민까지 한몫 끼어서 이 근무에서 물러서겠다고 느닷없이 주장했다는 것이지요. 바르나바스가 그런 내용의 보고를 가지고 오면 저는 물론 실패를 만회하기 위하여, 그 때 유효하다면 속이고 거짓말을 하고, 온갖 나쁜 짓이라도 못하는 일이 없을 거예요. 하지만 적어도 제가 믿고 있기에는 저는 그 일을 선생님을 위하는 동시에 우리들을 위해서 하고 있는 거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자 올가가 달려나가 문을 열어 젖혔다. 어둠 속 등불에서 한 줄기의 광선이 비쳤다. 밤늦게 찾아온 방문객은 수군거리며 물었는데 대답하는 쪽에서도 수군거렸다. 그러나 방문객은 그 대답에 불만을 느꼈던지 방안으로 들어오려고 했다. 올가는 아마도 그 사람을 막아낼 수가 없었던지 아말리아를 불렀다. 올가는 양친이 잠을 깨지 않도록, 아말리아가 있는 꾀를 다해서 이 사람을 물리쳐 주기를 은근히 바랐다. 아닌게아니라 아말리아는 빨리 달려와서 올가를 옆으로 밀어젖히고 거리에 나서더니 뒤로 문을 닫아버렸다. 그러나 어니 사이에 그녀는 되돌아왔다. 올가가 하지 못했던 일을 순식간에 해치웠다. K는 올가로부터 그 방문객이 자기를 찾아온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수 한 사람이 프리다의 부탁을 받고 찾아왔던 것이다. 올가는 K가 그 조수를 만나지 못하게 방해를 부렸던 것이다. 조수가 자기를 찾아온 사실을 K 자신이 나중에 프리다에게 고백하려면 해도 좋지만, 조수에게 들키는 것은 안 된다는 일이었다. K는 그 말에 동의했다. 그러나, 여기서 밤을 새며 바르나바스를 기다리는 것이 어떠냐고 묻는 올가의 제의를 거절해 버렸다. 제의 그 자체로서는 K가 수락하는 것이 좋았을는지도 몰랐다. 왜냐하면, 밤은 벌써 깊었으며 거기다가 그가 이제 원하건 원하지 않던간에 이 가족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된 것처럼 K에게 느껴졌지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로 본다면 여기에 묵는다는 것은 고통일지도 몰라도 이와 같은 밀접한 관계를 고려해 본다면 이 마을에서는 이 집이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K는 거절했다. 조수가 찾아왔기 때문에 깜짝 놀랐던 까닭이었다. K의 의향을 알고 있었던 프리다와, K가 무서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그를 두려워 하던 조수들이 어떻게 합작하게 되었는지, 합작한 끝에 프리다가 어찌하여 감히 조수를 시켜서 K를 부르러 보냈는지-그것도 심부름 온 사람이 한 사람 뿐이고, 또 한 사람은 프리다에게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그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올가에게 채찍을 가지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채찍은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버드나무 회초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그것을 얻었다. 그리고 이집에 또 다른 출구가 있는냐고 물어 보았다. 안뜰을 지나가는 그런 출구가 있었다. 다만 그것은 거리에 나오기 전에 이웃집 정원의 울타리를 넘어서 그 마당을 지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K는 그 길을 택하려고 했다. 올가가 안뜰을 지나서 그를 울타리로 인도하는 동안 K는 걱정하는 그녀를 빨리 안심시키려고, 그녀가 이야기하는 도중에 약간 술책을 썼다고 해서 조금도 화가 나지 않았으며 오히려 자기는 그녀의 마음을 썩 잘 이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그녀가 자기에게 여러 가지로 이야기 해준 것은 자기를 신용해 주는 증거라고 생각한다고 감사하고, 또 밤중이라도 상관없으니 바르나바스가 돌아오면 곧 학교로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K는 또 이렇게 말했다. 바르나바스가 갖다 주는 통지가 자기의 단 하나의 희망은 아닐것이며 또 그것이 단 하나의 희망이라면 자기의 심정은 한심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자기는 결코 바르나바스가 갖다 주는 통지를 단념하지않을 것이다. 자기는 그것을 신뢰하는 동시에 그녀도 잊지 않겠다고 했다. 자기에게 있어서는 거의 모든 통지보다도 그녀 자신이 훨씬 소중하며 그녀의 용감성, 그녀의 신중한 태도, 그녀의 총명한 두뇌, 거기다가 가족에 대한 헌신적인 정신이 소중하다고 했다. 만일 자기가 올가와 아말리아 두 사람중에 한 사람을 골라잡아야 되는 경우가 생긴다면 결코 선택하기 어려워서 망설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그렇게 말을 끝마치자 그는 마음껏 그녀의 손을 꼭 쥐더니 어느 사이에 이웃집 정원의 울타리 위로 펄쩍 뛰어올랐다. 16 그 길로 K가 큰길에 서서 보니 앞이 잘 보이지 않는 흐릿한 밤이었으나, 조수는 여전히 위쪽 바르나바스의 집 앞을 오락가락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조수는 가끔 걸음을 멈추고 커튼을 내린 창 너머의 방안을 등불로 비춰 보려고 애를 썼다. K는 그를 불렀다. 그는 별로 놀라는 기색도 없이 집안을 정찰하는 것을 중지하고 K 쪽으로 걸어왔다. "누구를 찾고 있지?" 하고 K가 물었다. 그리고 자기 넓적다리에다 버드나무 회초리의 휘청거리는 그 탄력성을 시험해 보았다. "선생님을 찾고 있습니다." 하고 조수는 다가오면서 말했다. "대체 너는 누구냐?" 하고 K가 느닷없이 물었다. 아무래도 조수가 아닌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조수 보다도 늙었으며 피곤한 기색이었고, 주름살도 더 많이 잡힌것처럼 보였으며 얼굴도 더 통통하고 살이 쪘다. 그 걸음걸이도 관절에 전기가 오는 것처럼 민첩하게 걸어가는 조수들의 그것과는 딴 판이었다. 그것은 속도는 약간 느리고, 약간은 절름 거리며 갸냘프고 고귀한 걸음걸이 였다. "선생님은 저를 모르십니까?" 하고 묻더니, "선생님의 옛날 조수 예레미아스인데요." 하고 대답했다. K는, "응, 그래." 하고 벌써 등 뒤에 감추어 두었던 버드나무 회초리를 또 조금 집어내었다. "그런데 자네는 아주 사람이 변했는데." "그것은 제가 혼자 있으니까 그렇습니다. 혼자 있자니 자연히 즐거운 청춘도 날아가 버립니다." "대체 아르투르는 어디 있나?" 하고 K가 물었다. "그 귀여운 자식 말입니까? 그 자식은 근무를 그만둬 버렸습니다. 아무튼 선생님도 우리들을 약간 심하고 엄격하게 대하셨습니다. 마음씨가 고운 사람도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자식은 성으로 돌아가서 선생님에 대한 불평 불만이 대단했습니다." "그러면 자네는?" 하고 K가 물었다. "저는 남을 수가 있었습니다. 아르투르가 제 몫까지 호소해 주었습니다." 하고 예레미아스가 말했다. "대체 자네들은 무엇에 대해서 불평이 있나?" 하고 K가 물었다. "선생님이 조금도 농담을 이해하지 못하신다는 것입니다. 대체 우리들이 무슨 짓을 했단 말입니까? 약간 농담을 하고 약간 웃고 약간 선생님의 약혼자를 놀렸습니다. 그 밖에는 모두 명령대로 실행했습니다. 갈라터가 우리들을 선생님에게로 보냈을 때......" 하고 예레미아스가 말했다. "갈라터?" 하고 K가 물었다. "네, 갈라터입니다. 그 당시는 마침 그가 클람의 대리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 갈라터가 우리들을 선생님에게로 파견했을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저는 그것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긴 그것이 우리들의 천직이긴 하지만요-'자네들은 측량 기사의 조수로서 가는 거야'라고, 그래서 우리들이 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 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데요.'그랬더니 그는, '그런 일은 아무래도 상관없어. 필요하다면 측량 기사가 가르쳐 줄 거야. 가장 중요한 일은 너희들이 그 사람의 마음을 좀 명랑하게 해 주는 거야. 내게 보고가 들어온 것을 보면, 그는 만사를 대단히 까다롭게 생각하는 모양이야. 그가 이 마을에 왔다는 것 자체가 그로서는 대단히 중요한 일이야.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말이야. 그 점을 너희들은 그 사람에게 가리쳐 주지 않으면 안 되지.' 하고 말했습니다. 하고 예레미아스가 말했다. "응, 그러면 갈라터의 말은 옳았었나? 자네들은 명령을 정말로 살해했는가?" 하고 K가 물었다. "그런 건 알 수 없습니다. 게다가 이렇게 기간이 짧아서는 불가능했을 겁니다. 제가 알고 있는 것은 단지 선생님이 대단히 난폭했다는 것이며, 우리들이 불평한 것도 바로 그 점이었습니다. 그러나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은 여하튼 근무자의 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 선생님이, 더욱이 성 근무자가 된 것도 아닌 선생님께서 어째서 그런 근무가 괴롭다는 사실을 간파 못하시나 하는 겁니다. 또 하나는, 유치하게도 제멋대로 그리고 경솔하게도, 일하는 사람의 일을 더욱 곤란하게 하는 것이-사실 선생님은 그랬지만-얼마나 옳지 못한 일인가, 그것을 선생님은 간파 못하고 계십니다. 우리들을 울타리에서 얼어 죽을 뻔하게 하고 또 한 마디 나무라기만 해도 며칠을 두고 속으로 고민하는 사람인 아르투르를 주먹으로 요 위에 거의 때려눕히다시피 하고 게다가 오늘 오후처럼 눈 속에서 저를 여기저기로 몰고 쫓았기 때문에 조급하고 숨가쁜 것을 면하려면 한 시간이나 걸릴 지경이니 이런 무자비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도 이제는 어린애가 아닙니다!" 하고 예레미아스가 말했다. "예레미아스, 자네가 하는 말은 전부 당연해. 다만 자네는 그 말을 갈라터 앞에서 하란 말이야. 그가 자네들을 제멋대로 파견한 것이지 내가 자네들을 보내 달라고 부탁한 것은 아닐세. 그리고 내가 자네들을 요청하지도 않았으니, 또 나는 자네들을 송환할 수도 있었어. 나로서는 될 수 있으면 권력 행사를 하지 않고 조용히 자네들을 송환하려고 했는데 자네들은 분명히 권력을 행사해서 일을 처리하도록 바라고 있는 것 같단 말일세. 그것은 그렇다고 해 두고, 왜 자네들은 내게로 찾아왔을 때 바로 지금처럼 그렇게 솔직히 말하지 않았나?" 하고 K가 물었다. "근무중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분명한 일입니다." 하고 예레미아스가 말했다. "그렇다면 자네는 이제 근무중이 아니란 말이지?" 하고 K가 물었다. "지금은 근무중이 아닙니다. 아르투르는 성에 가서, 근무를 그만두겠다고 신고했습니다. 아마 지금쯤은 우리들을 성에서 결정적으로 해방시키기 위하여 수속이 진행되고 있을 것입니다." 하고 예레미아스가 말했다. "그런데 자네는 마치 아직도 근무중인 것처럼 나를 찾고 있지 않았나?" 하고 K가 말했다. "아닙니다. 저는 다만 프리다의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선생님을 찾고 있었습니다. 바르나바스 집의 색시에게 반하셔서 프리다를 차 버렸을 때 프리다는 몹시 슬퍼했는데, 그것은 선생님을 잃었다는 사실보다는 선생님에게 배신당했다는 그것을 슬퍼한 겁니다. 물론 프리다는 벌써 훨씬 전부터 그렇게 될 것을 짐작하고, 그것 때문에 무척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선생님이 그래도 이해성이 풍부해지셨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살펴보려고 일부러 한 번 학교 창문 옆으로 가봤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안 계시고 프리다만이 학교 벤치에 앉아서 혼자 울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프리다에게 다가갔고, 우리 두 사람은 그럭저럭 뜻이 맞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무엇이건 다 해치웠습니다. 그리고 저는 신사관의 객실 전속 사환입니다. 적어도 성에서 제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는 그렇습니다. 그리고 프리다는 다시 술집으로 되돌아왔습니다. 프리다로서는 그쪽이 훨씬 나을 것입니다. 프리다가 선생님의 사모님이 된다는 것은 결코 현명한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도 프리다가 선생님을 위하여 바치려고 하였던 희생, 그런 헌신적인 태도를 높이 평가하시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자꾸 프리다는 선생님이 어떤 사람에게서 억울한 짓이나 당하시지 않나 혹시 바르나바스 집으로 가시지 않았나 하고 걱정을 하고 있어요. 선생님께서 어디로 가셨나 그 점에 대해서는 물론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었지만, 저는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찾아왔습니다. 여러 가지로 흥분한 뒤니까, 프리다도 이젠 안심하고 잠잘 수 있도록 해 주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물론 저도 불쌍하고 딱한 사정은 마찬가집니다. 그래서 제가 찾아온 것입니다. 선생님을 찾았을 뿐만이 아니라 겸사로 색시들이 바늘에 실처럼 선생님을 따라다니고 선생님 명령대로 움직이는 꼴까지 목격했습니다. 그 중에도 살결이 검고 진짜 도둑 고양이 같은 여자가 선생님을 위해 마음을 쓰고 있더군요. 말하자면 누구나가 하고 싶은 대로 끌리는 대로 하는 겁니다. 여하튼 선생님은 이웃집 정원을 지나서 길을 돌아나올 필요는 전혀 없었습니다. 저는 그 길을 알고 있으니까 말이지요." 하고 예레미아스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예상하고 있었던 일, 그러면서도 막아낼 도리가 없었던 일이 드디어 일어난 모양이다. 프리다가 그를 차 버렸다. 그렇다고 모든 일이 결정된 것은 아니다. 아직은 사태가 그렇게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지금이라도 프리다를 다시 얻는 데는 늦지 않다. 대체로 프리다는 모르는 사람에게, 이 조수들에게까지도 문제없이 마음이 동하는 여자다. 조수들은 프리다의 입장을 자기네들 입장과 똑같이 생각하고 이제 자기네들이 그만두겠다고 말한 것을 계기로 하여, 프리다에게도 권해서 그렇게 하도록 한 모양이다. 그러나 K는 단지 그녀 앞에 나타나서 그에게 있어서 가장 유리한 사실을 모조리 그녀의 기억에 떠오르도록 하면 될 것이다. 그녀는 후회하여 다시 그의 소유가 될 것이다. 더욱이 바르나바스의 딸들 덕분으로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을 이유로 삼아, 이번 방문의 타당성을 설명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근사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K는 프리다에 관하여 스스로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이모저모로 깊이 생각해 봤지만, 사실인즉 조금도 안심이 되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도 그는 올가를 향하여 프리다를 칭창하고 프리다를 자기의 단 하나의 기둥이라고 자랑했는데, 그러나 이젠 이 기둥도 그다지 튼튼한 것이 못되었다. K에게서 프리다를 빼앗으려면, 구태여 힘이 센 사람이 손을 댈 필요는 없고, 신통하게 구미가 당기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 이 조수-가끔 그다지 생기가 없는 것 같은 인상을 준 이 살덩어리-로서 충분했던 것이다. 예레미아스는 벌써 점점 멀리 걸어가고 있었다. K는 그를 불러 세웠다. "예레미아스, 나는 자네에게 솔직하게 말하려고 하니까 자네도 정직하게 질문에 대답해 달란 말이야. 우리 두 사람 사이는 이미 주인과 하인 관계가 아니야. 이것은 자네들뿐만이 아니라, 나에게도 참으로 기쁜 일일세. 그러니까 우리들은 서로 속일 이유라곤 털끝만큼도 없는 셈이지. 이제 나는 자네가 보는 앞에서 이 회초리를 꺾어 버리겠네. 이 회초리는 자네를 때리려고 장만한 거야. 내가 정원 길을 택한 것은 자네가 무서워서가 아니고 갑자기 자네를 놀라게 하여 회초리로 두서너 대 갈겨 주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 그러나 지나간 일이니까, 내가 한 일을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 주게. 사실 만일 자네가 관청에서 내게 억지로 떠맡겨진 하인이 아니고, 단순히 한 사람의 지인이었다면, 확실히 우리들은 굉장히 사이가 좋아졌을 걸세. 다만 가끔 자네의 모습이 약간 나를 귀찮게 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야. 그러나 이제라도 늦지 않으니, 지금까지 소홀히 했던 일을 만회해 보기로 할까." 하고 K가 말했다. "정말입니까?" 하고 조수는 말하더니 하품하면서 피곤한 두 눈을 비볐다. 이어서, "저는 선생님에게 사정을 더 자세히 설명해 드릴 수도 있지만, 아무튼 시간 여유가 없습니다. 저는 프리다에게로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색시가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녀는 아직도 근무를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아마도 모든 것을 잊어버리기 위해서 바로 일에 덤벼들려고 했으나, 제 권고에 따라서 주인은 그녀에게 약간의 휴식 시간을 주었습니다. 그 시간만은 적어도 둘이서 보내려고 생각합니다. 또 선생님의 제안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저는 선생님에게 거짓말을 하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선생님을 믿고 무엇이건 맡기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즉 저와 선생님과는 아주 사정이 다릅니다. 선생님과 제가 고용 관계에 있었던 사이에는 선생님은 제게 대단히 중요한 인물이었습니다. 그것도 선생님의 성질 때문이 아니라 일을 명령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때만은 저도 선생님이 희망하시는 거라면 무엇이든 해 드렸지만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선생님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사람일 뿐입니다. 또 회초리를 꺾는 일조차 제 마음을 조금도 움직이지는 못합니다. 단지 제가 얼마나 난폭한 주인을 가졌었나 하고 새삼스럽게 돌이켜 생각할 뿐입니다. 그것으로써 제 마음을 끌려고 하다니 어림도 없습니다." "자네는 마치 절대로 두 번 다시 나를 무서워하는 꼴을 보이지 않겠다는 말투가 아닌가. 그러나 그렇게 생각한다면 큰 잘못이야. 아마도 자네는 아직 내게서 떨어져 나간 것은 아닐 걸세. 그렇게 빨리 일이 낙착되지는 않아......" "때로는 더 빠른 경우도 있습니다." 하고 예레미아스가 말했다. "때로는 그럴지도 몰라. 그러나 이 경우는 그렇다고는 말할 수 없을 거야. 적어도 자네는 문서상으로는 해결된 것을 손에 쥐고 있지 않아. 즉 수속은 겨우 지금 시작했을 뿐이고, 나는 연고 관계를 통해서 아직도 전연 손을 대고 있지 않지만 이제부터 그렇게 하게 될 거야. 하지만 그 결과가 자네에게 불리하게 되면, 그 때 자네는 자기 주인에게 마음에 드는 준비가 조금도 되어 있지 않아서 당황하게 돼. 그러고 보면 버드나무 회초리를 분지른 것은, 아마도 쓸데없는 짓이 되겠지 그리고 프리다를 끌고 나온 것을 자네는 퍽 뻐기고 있을 걸세. 그러나 내가 자네라는 인간에 대해서 경의를 품고 있다해도-자네가 내게 대해서 이미 경의를 품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나는 지금도 존경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어-자네가 프리다를 붙잡는 데 사용한 그 거짓의 탈을 벗기려면 내가 알기에는 내가 프리다에게 몇 마디만 귀띔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해. 사실 그저 거짓말을 늘어놓았으니까, 프리다를 내게서 이간시킬 수 있었던 거야." 하고 K가 말했다. "그렇게 위협해도 꿈쩍 않습니다. 정말로 선생님은 저를 조수로 둘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아마도 조수인 제가 두려운 모양이에요. 조수가 두려우신 거지요. 두려우시니까 그 착한 아르투르를 때리셨을 것입니다." 하고 예레미아스가 말했다. "그럴지도 몰라. 그렇다고 해서 아픈 것이 덜했나? 아마 나는 앞으로도 그런 식으로 자네에게 내게 대한 공포심을 얼마든지 보여 줄 수 있을 거야. 자네가 조수 노릇을 하는 데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지만, 나로서는 자네에게 억지로 조수를 시켜 놓는 것이, 이미 공포라는 개념을 떠나서 다시 없는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해. 이제는 아르투르를 그만두고 자네 하나만을 잡는 것이 중요한 일거리가 될 것 같아. 그러면 자네를 더 주의해서 관찰할 수도 있을 거야." 하고 K가 말했다. "대체 선생님은 제가 그런 것을 조금이라도 두려워할 걸로 생각하십니까?" 하고 예레미아스가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지. 확실히 조금은 무서워할 거야. 자네가 똑똑하다면 훨씬 더 무서워하겠지. 그런데 자네는 왜 훨씬 전에 프리다에게로 가지 않았나? 대체 자네는 그녀를 좋아하나? 말해 보란 말이야." 하고 K가 말했다. "좋아하느냐고 물으십니까? 그녀는 얌전하고 영리한 처녀고, 플람의 옛날 애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좌우간 경의를 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그녀는 선생님에게서 자유의 몸이 되고 싶다고 늘 제게 애원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녀를 돌봐 주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그렇게 한다고 해서 제가 선생님에게 폐를 끼치는 일도 없을 텐데 말이에요. 선생님은 바르나바스 집의 되지 못한 계집애들과 즐기시지 않았습니까?" 하고 예레미아스가 말했다. "이제 자네가 무엇을 염려하고 있나 알았어. 참 딱한 노릇이야. 자네는 거짓말로써 나를 속여 넘기려는 거지. 프리다가 원한 것은 단지 하나, 개처럼 추잡하게 날뛰는 조수들에게서 빠져나와 자유의 몸이 된다는 것뿐이었어.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녀의 소원을 다 들어줄 시간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지금 내가 게을렀던 결과가 나타난 거야." "측량 기사님, 측량 기사님!" 하고 부르는 소리가 골목길에서 들려 왔다. 소리의 주인공은 바르나바스였다. 그는 숨가쁘게 허덕거리며 쫓아왔으나 그래도 K에게 인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성공했어요." 하고 바르나바스가 말했다. "무엇이 성공했단 말인가? 내 청원서를 클람에게 제출했겠지?" 하고 K가 물었다. "그것은 잘 안 되었어요. 저는 상당히 노력해 보았는데 불가능했어요. 저는 명령도 없었는데도 하루 종일 책상 바로 옆에 서 있었어요. 책상 옆에 너무나 바짝 서 있었기 때문에, 한 번은 제 그림자로 가려진 서기에게 떠다 밀린 적도 있었어요. 클람이 고개를 쳐들 때마다 저는-그런 일은 금지되어 있지만 손을 높이 올리고 제가 거기 있다고 알려 주었어요. 될 수 있는 대로 오랫동안 사무국에 버티고 있노라니까, 나중에는 하인들과 저만이 거기에 남게 되었어요. 그리고 또 한 번 클람이 되돌아오는 것을 보고서 기뻐했는데, 클람은 저를 위해서 되돌아온 것은 아니엇어요. 그는 대단히 바쁜 기색으로 책을 열람 조사해 보려고 왔을 따름이었어요. 그리고 곧 다시 나가 버렸어요. 나중에는 제가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서 있으니까 하인이 마치 비로 쓸어내다시피 하면서 문 밖으로 저를 몰아내 버렸어요. 저는 선생님이 두 번 다시 제가 한 일에 대하여 불만을 느끼시는 일이 없도록 모든 것을 감추지 않고 말씀드리겠어요." 하고 바르나바스가 말했다. "자네가 아무리 애썼다고 하더라도 아무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면 내게 무슨 소용이 있겠나, 바르나바스?" 하고 K가 말했다. "그래도 저는 성공한 셈이지요. 제가 저의 사무국에서 나오자-저는 그 곳을 저의 사무국이라고 부르고 있어요-그 때 바로 깊숙한 복도에서 신사 한 사람이 천천히 걸어오더군요. 그 밖에는 사람의 그림자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어요. 좌우간 시간이 벌써 몹시 늦었던 모양이었으니까요 저는 그를 기다리기로 결심했어요. 거기에 남아 있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어요. 선생님한테 나쁜 보고를 가지고 오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저는 그 곳에 남아 있고 싶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그 밖에도 그 신사를 기다리고 있었던 보람은 있었지요. 그 신사는 에를랑어였어요. 선생님은 그분을 아시지 못합니까? 클람의 수석 비서 중의 한 사람이지요. 몸은 허약하고 작은 편이며 약간 절름발이지요. 에를랑어는 곧 저를 알아보았어요. 그는 기억력이 뛰어난 것과 세상 물정에 통하고, 인물 감식에 탁월하다는 것으로 유명0해요. 그는 그저 눈썹을 모으고 눈살을 찌푸리기만 하면 누구인지 곧 알아 낸다는 거지요. 한 번도 본 일이 없고 단지 소문으로 들었다든가 또는 신문, 잡지, 서적에서 읽은 사람을 만나도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맞히는 일이 가끔 있어요. 예를 들면, 저만 하더라도 그가 과거에 한 번도 저를 본 일이 있는 것 같지 않아요. 그렇게 사람을 알아맞히기로 유명한 사람이지만, 에를랑어는 그래도 확신을 갖지 못하는 것처럼 우선 물어 보아요. '그대는 바르나바스가 아닌가?' 그러더니, '그대는 측량 기사를 알고 있지, 그렇지 않아?' 이어서 또 '그것 참 잘됐어. 나는 지금 신사관으로 가는 길인데 측량 기사더러 나를 거기로 찾아오라고 하지. 나는 15호실에 숙박하고 있으니까. 좌우간 곧 와야 돼. 나는 거기서 두서너 가지 의논할 용건이 있을 뿐이고, 내일 새벽 다섯 시에는 다시 성으로 돌아와야 되니까. 그와 면회하는 것은 내게는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고 그에게 말을 전해 주게.' 이렇게 말했어요." 그 때 갑자기 예레미아스가 달려갔다. 그 때까지 혼자 흥분에 겨워 예레미아스를 조금도 알아보지 못한 바르나바스가 이렇게 물었다. "대체 예레미아스가 어쩌려는 거지요?" "나보다도 먼저 에를랑어에게로 가려고 하는 거야." 하고 K는 말하기가 무섭게 예레미아스의 뒤를 쫓아서 달리기 시작했다. K는 그를 붙들고 그의 팔에 매달리며 말했다. "이렇게 갑자기 자네 마음을 움직이게 한 것은 프리다를 사모하는 정인가? 그 점에 있어서는 나도 자네에게 지지 않네. 그러니까 똑같이 발을 맞추어서 가기로 하지." 17 어두운 신사관 앞에 몇 사람 안 되는 무리가 모여 있었다. 그 중 두서너 사람은 손에 등불을 들고 있어서 몇 사람의 얼굴을 분간할 수가 있었다. K는 한 사람 아는 얼굴을 발견했다. 마차꾼 게르스텍커다. 게르스텍커는 인사하면서 이렇게 물었다. "여전히 마을에 계신가요?" "네, 나는 오래 있으려고 왔어요." 하고 K는 말했다.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하고 게르스텍커는 말하고 힘차게 기침을 하더니 다른 사람 있는 쪽으로 돌아서 버렸다. 모두들 에를랑어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에를랑어는 벌써 도착했으나, 이 진정인들을 만나기 전에 잠깐 모무스와 의논하고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로는 건물 안에서 기다리는 것이 허락되지 않아서, 이렇게 바깥 눈 속에 서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바깥은 그다지 춥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이들을 밤에, 이렇게 몇 시간 동안이나 건물 앞에 서 있게 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자비한 일이었다. 그것은 물론 에를랑어의 책임은 아니었다. 이 실정을 에를랑어는 거의 몰랐다. 그는 말하자면 기분 좋게 사람과 접촉하는 성격이었으니까, 만일 이 사실이 그에게 알려졌더라면 틀림없이 굉장히 화를 냈을 것이다. 그것은 신사관 안주인의 책임이었다. 그녀는 이미 병적이라고 할 만큼 깔끔한 것을 좋아하는 성격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진정인들이 한꺼번에 신사관으로 밀려들어오는 것이 지긋지긋하게 싫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할 수 없고, 꼭 들어와야 되겠다면 이 집 사정을 좀 생각해서 제발 한 사람씩 차례로 들어와 주세요." 이것이 늘 그녀가 하는 말버릇이었다. 안주인이 자기 주장을 관철한 결과로 진정인들은-그들은 처음에는 곧장 방 앞의 복도에까지 가서 기다리고 잠시 후에 계단에서, 그 다음에 현관에서, 마지막으로 술집에서 기다리게 되었다-결국 거리로 내쫓겨 버렸다. 그래도 그녀는 만족하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자기 집이 끊임없이 포위당하고 있다-이것은 그녀 자신의 표현이다-는 것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진정인들이 드나드는지, 그녀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현관 계단을 더럽히기 위해서 드나드는 게지." 언제던가 어떤 관리가 아마도 골이 났던지, 그녀 질문에 대해서 그렇게 대답한 적이 있었다. 그녀는 이 말이 딱 마음에 들었던지 즐겨 인용하곤 했다. 그녀는 신사관 맞은편에 이 진정인들이 대기하고 있을 수 있는 건물을 한 채 건축하려고 노력했는데 그것은 바로 진정인들의 희망과도 일치했다. 신문이나 진정인들의 협의도 신사관 밖에서 실시하기를 그녀는 열렬히 바랐지만 관리들이 그것에 반대했다. 그다지 중요치 않은 문제에 있어서는 그 꾸준한 노력과 동시에 여성다운 상냥한 열성을 가지고 일종의 자그마한 전제 정치를 하기도 했지만, 관리들이 진정으로 반대했으므로 안주인은 물론 억지를 쓸 수가 없었다. 아마도 안주인은 앞으로도 신사관에서 협의와 신문이 실시되는 것을 참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성에서 마을로 출장 나온 양반들은 공무 집행에 있어서 신사관을 떠나기를 싫어했기 때문이다. 그 양반들은 언제나 바쁜 모양이고 단지 할 수 없이 마을에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이 곳 마을에서 묵는 것을 부득이한 기한 이상으로 연기시키려는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따라서 단지 신사관의 평화로운 분위기를 깨뜨리지 않으려는 생각에서, 관리들에게 잠시 동안이라도 서류 일체를 꾸려 가지고 길 건너 맞은 편 건물로 자리를 옮기고, 거기서 시간을 헛되이 보내 달라고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사실 관리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공무를 술집 또는 자기 방에서-경우에 따라서는 식사 중이라든지, 침대 속에 들어가서 잠들기 전에, 또는 아침에 너무나 지쳐서 일어날 수도 없어서 그대로 드러누워 있고 싶을 때-처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여관집 밖에서 협의나 신문을 실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지만, 반대로 대기소를 세운다는 문제는 유리한 해결점에 접근하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이것은 안주인에 대한 따끔한 처벌이었다. 왜냐하면-이것은 대수롭지 않은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았지만-바로 이 대기소 문제 때문에 여러 차례나 협의를 필요로 해서 신사관의 복도는 거의 비는 사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기다리는 사람들은 비교적 작은 목소리로 이런 이야기를 서로 지껄이고 있었다. 에를랑어는 한밤중이 되어서야 겨우 이 사람들을 불러들였다. 모두들 거기에 대해서 불평 불만이었으나 아무도 이의를 말하는 사람이 없는 데는 K도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이유를 물어 보았더니, 에를랑어는 오히려 그들에게 감사를 받아야 된다는 대답이었다. 마음이 착할 뿐더러 자기 직무에 대해서 높은 견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에를랑어는 마을까지 출장 나와 줄 생각이 우러났다. 그렇지 않다면 어떤 하급 비서라도 보내서, 조서를 작성하는 일도 가능하며, 또 그렇게 하는 편이 아마도 규칙에 맞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대개 이것을 거부하고 스스로 모든 일을 체험하려고 한다. 그러자면 자연히 며칠이고 밤 시간을 희생해야 된다. 왜냐하면 그의 직무 계획에는 마을로 출장 나오기 위한 시간 같은 건 예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말을 듣고 K는 다음과 같이 반문했다. 클람도 낮에 마을로 내려와서 며칠이고 묵지 않는가? 고작 비서의 신분인 에를랑어가, 성에서는 클람 이상으로 중요한 존잰가? 그러자 두서너 사람은 선의로 웃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당황해서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러나 거의가 다 침묵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K는 거의 대답다운 대답을 들어 볼 수가 없게 되었다. 단지 한 사람만이 머뭇거리면서, 물론 클람은 성에서나 마을에서나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라고 말했을 뿐이다. 그 때 현관문이 열리더니 램프를 든 하인 두 사람 사이로 모무스가 나타났다. "에를랑어 비서님에게 맨 처음으로 뵙기를 허가 받은 게르스텍커와 K, 이 두사람은 여기 있는가?" 하고 그는 물었다. 두 사람은 동시에 이름을 댔다. 그런데 그 둘보다도 먼저 예레미아스가, 저는 여기 객실 전속으로 있는 사환입니다." 하고 말했다. 모무스가 빙그레 웃으며 인사하는 뜻에서 그의 어깨를 툭 치니까 그는 집안으로 살그머니 미끄러져 들어갔다. '나는 이제부터 예레미아스에 대해서 더 주의해야 될 것 같구나.' 하고 K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이 때에 K는 예레미아스가 성에서 그에 대해서 반대 공작을 하고 있는 아르투르보다는 아마도 훨씬 위험성이 적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어쩌면 조수들이 성가시고 귀찮게 해도 차라리 그들에게 그 괴로움을 당하는 편이 그들을 제멋대로 사방을 쏘다니게 하고, 그들에게 음모를-그들은 음모를 꾸미는데 뛰어난 소질을 가지고 있는 것 같으니까-함부로 꾸미도록 내버려두는 것보다는 현명한 처사였던 것 같았다. 모무스는 K가 그 옆을 지나갔을 때에야 비로소 K를 측량 기사라고 알아본 것과 같은 태도였다. "아아, 측량 기사 양반, 신문 당하는 것을 그렇게도 싫어하시던 분이 신문 당하시러 오셨군요. 그 때 내게서 신문 받으시는 것이 훨씬 간단하셨을 텐데. 물론 옳은 신문을 선택하기는 어렵지만." 모무스가 이렇게 말하기에 그 말을 듣고 걸음 멈추려고 하자, 모무스가 말했다. "가세요, 가요! 그 때 같으면 당신의 대답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필요 없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K는 모무스의 태도에 약간 흥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당신 자신에 대한 것만을 생각하고 있군요. 나는 단순히 관청을 위해서 답변하는 건 아니지요, 그 때나 지금이나." 모무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우리들이 대체 누구를 생각해야 하나요? 그 밖에 또 누가 있어요? 어서 가세요!" 복도에서 하인 한 사람이 그들을 맞이하여 안내했다. K가 벌써 알고 있는 길을 지나서 안뜰을 횡단한 다음 입구로 들어가더니 천장이 낮고 약간 아래로 내려가는 복도로 데리고 갔다. 위층에는 고급 관리들만이 숙박하고 있는데 비해서, 비서들은 이 복도에서 하인 한 사람이 그들을 맞이하여 안내했다. K가 벌써 알고 있는 길을 지나서 안뜰을 횡단한 다음 입구로 들어가더니 천장이 낮고 약간 아래로 내려가는 복도로 데리고 갔다. 위층에는 고급 관리들만이 숙박하고 있는데 비해서, 비서들은 이 복도에 붙은 방에 묵고 있었다. 에를랑어도-그는 수석 비서의 한 사람이었다-그 점에 있어서는 다름이 없었다. 하인은 등불을 꺼 버렸다. 왜냐하면 이 곳에는 밝은 전기 조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설비의 규모는 작았지만 아담하고 우아했다. 공간은 최대한으로 잘 이용되고 있었다. 복도는 꼿꼿이 서야만 지나갈 수 있을 정도였다. 양쪽에는 문이 거의 빈틈없이 총총히 나 있었다. 양쪽 벽은 천장까지는 닿지 않았다. 이것은 아마도 환기를 고려했기 때문인 듯했다. 왜냐하면 여기에 있는 몇 개의 작은 방들은 이 깊숙한 지하실처럼 생긴 복도 쪽으론 창문이 달려 있지 않았다. 이와 같이 완전히 폐쇄되어 있지 않는 벽의 결점은 복도가 시끄럽고 따라서 필연적으로 방들까지도 시끄럽다는 것이었다. 많은 방들은 사람들이 들어 있는 것 같았는데, 사람들이 아직도 거의 자지 않고 있어서 인기척이라든지 망치를 두드리는 소리 또는 유리가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유쾌하다는 인상은 받지 못했다. 사람 목소리는 자연히 흐려져서 가끔 한두 마디 알아들을 정도였다. 또 안에서 3회의를 하고 있는 기색도 없고, 단지 누구인지 무엇을 필기시키고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무엇을 낭독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컵과 접시 소리가 들려 오는 방안에서는 한마디의 말도 새어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망치 소리는 K에게 어디선지 들은 일이 있었던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상기시켰다. 즉 많은 관리들은 끊임없는 정신적 긴장을 풀고 답답증을 가시게 하기 위하여 가끔 가구 공업이나 정밀 기계 공학 같은 것으로써 기분 전환을 꾀한다는 얘기였다. 복도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단지 어떤 문 앞에 얼굴빛이 나쁘고, 마르고, 키가 후리후리한 신사가-속에 자리옷을 입은 것이 그대로 보이는 채로-털가죽 외투를 걸치고 앉아 있을 뿐이었다. 아마도 방안에 있기가 너무나 지루하고 답답해서 방을 나와서 신문을 그것도 그저 우두커니 읽고 있는 듯했다. 가끔 하품을 하면서 읽는 것을 그만두고 앞으로 허리를 구부리기도 하고 복도를 두리번거리기도 했다. 아마도 그는 자기가 부른 사람이 있는데도 빨리 오지도 않고 꾸물거리고 있어 그가 나타나기만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세 사람이 그 옆을 지나갈 때 하인은 이 신사에 관해서 게르스텍커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핀츠가우어 씨!" 그 말을 듣고 게르스텍커는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저분은 벌써 오랫동안 마을에 내려오시지 않았어요." 하고 말했다. "네, 상당히 오랬동안 안 오셨지요." 하고 하인은 긍정했다. 드디어 그들은 어느 문 앞에 이르렀다. 다른 문과 조금도 다른 점은 없었으나 하인의 말에 의하면 이 방안에 에를랑어가 묵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인은 K의 어깨 위에 올라타고 위에 뚫려 있는 넓은 틈으로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침대에 드러누워 계십니다." 하고 하인은 어깨 위에서 내려오면서 말했다. 이어서, "물론 옷은 입고 계시지만 졸고 계신 것 같습니다. 여기 마을로 오시면 아주 생활 양식이 달라서 저렇게 갑자기 피곤을 느끼십니다. 우리들은 기다려야 하겠습니다. 그분이 잠을 깨시면 초인종을 울리실 것입니다. 사실 지금까지 마을에 계시는 동안은 잠만 주무시고 잠이 깨시면 곧 마차를 타고 성으로 돌아가시지 않으면 안 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아무튼 그분이 여기서 하시는 일은 자기 뜻대로 좌우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일입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끝까지 주무시는 게 낫겠어요. 아무튼 그분이 잠이 깬 후에 일을 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자기가 잔 것에 대해서 무척 불쾌하게 생각하고 모든 일을 성급히 닥치는 대로 처리해 버리려고 하실 테니까요. 그렇게 되면 거의 말도 붙일 수 없게 된단 말이지요." 하고 게르스텍커가 말했다. "당신은 건축용 재료의 짐을 내줘 오셨지요?" 하고 하인이 마차꾼 게르스텍커에게 물었다. 게르스텍커는 고개를 끄덕거리고 하인을 옆으로 끌고가더니 무슨 소린지 가만히 귀에다 속삭였다. 그런데 하인은 거의 귀를 기울이지도 않고 자기 어깨까지밖에 닿지 않는 게르스텍커의 머리 너머로 저쪽을 바라보고 자못 점잔을 빼면서 천천히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K가 무심코 주위를 돌아다보고 있으려니까, 상당히 멀리 복도가 구부러진 모퉁이에 프리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녀는 누군지 알 수 없다는 듯이 K를 그저 뚫어지게 바라볼 뿐이었다. 그녀는 빈 그릇이 놓인 쟁반을 손에 들고 있었다. 하인에게는 곧 돌아오겠다고 말하고, 그는 프리다에게로 달려갔다. 그러나 하인은 K에 대해서 전혀 주의도 하지 않았다. 이 하인은 사람이 말을 걸면 걸수록 정신이 빠진 사람처럼 보이는 듯했다. K는 프리다 옆으로 가서 그녀를 다시 자기 소유로 하겠다는 듯이 양 어깨를 붙들고 두서너 마디 의미도 없는 질문을 던지고 그와 동시에 그녀의 눈동자에서 무엇을 찾아내려는 듯이 들여다봤다. 그러나 프리다의 완고한 태도는 도무지 풀리지 않았다. 그녀는 멋쩍은 듯이 쟁반 위의 그릇을 이리저리 옮겨 놓으며 말했다. "대체 제게 무슨 용무가 있으시죠? 저분들 있는 곳으로 가보세요. 그분들의 이름을 무어라고 부르는지 당신은 아시겠지만. 당신은 그분들 있는 곳에서 오셨지요. 당신의 얼굴을 보면 알 수 있어요." K는 당황해서 화제를 돌렸다. 얘기를 이렇게 느닷없이 끄집어내면 갈피를 잡을 수 없다. 더군다나 가장 형편이 나쁜 일부터, 하필이면 내게 가장 거북한 일부터 얘기를 시작하다니! "나는 당신이 술집에 있는 줄만 알았어요." 하고 K가 말했다. 프리다는 깜짝 놀란 듯이 그를 쳐다보더니, 비어 있는 한 손으로 다정스럽게 그의 이마와 뺨을 어루만져 주었다. 그것은 마치 그의 얼굴 모습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손으로 더듬어서 회상해 보려는 것 같았다. 그녀의 눈초리조차 회상해 보려고 애쓰는 것같이 보였으며, 마치 베일이 덮인 것처럼 안타까운 표정이었다. "저는 또 술집에 채용되었어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마치 지금 하고 있는 이야기는 중요치 않으나, 이 이야기와 동시에 K와 또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그쪽이 훨씬 중요하다는 듯이 일부러 천천히 말했다.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은 제게는 소용도 없고 또 맞지도 않아요. 다른 어떤 여자라도 이런 일쯤은 할 수 있어요. 침대를 정돈하고, 애교 있는 표정을 보일 수 있고, 손님의 시중을 드는 것을 귀찮아 하지 않고 오히려 기꺼이 할 수 있는 여자라면, 누구라도 객실 전속의 하녀가 될 수 있어요. 그러나 술집이라면 약간 사정이 달라요. 그런데 저는 곧 술집에 채용되었어요. 그때 그다지 떳떳하게 술집에서 나오지 못했는데도 말이에요. 물론 이번에는 저를 돌봐 주는 보호자가 있어요. 그런데 주인은 제게 보호자가 있기 때문에 그 덕분으로 저를 다시 채용하기가 쉬웠다고 아주 기뻐하고 있었어요. 그뿐더러 모두들 제게 그 자리를 맡으라고 권고하지 않으면 안 되었어요. 술집이 제게 무슨 기억을 환기시키나, 그것을 잘 생각해 보시면 아실 거예요. 결국 저는 그 자리를 맡았어요. 제가 지금 여기 있는 것은 단지 임시로 보조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에요. 뻬삐는 자기가 곧 술집을 그만두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부끄러운 꼴은 당하지 않도록 해 달라고 애원했어요. 그래서 우리들은 그녀가 좌우간 열심이었고 모든 일을 힘이 자라는 데까지 최선을 다한 점을 고려해서 그녀에게 이십사 시간의 여유를 주었어요." "무엇이든 그럴 듯하게 꾸며져 있는데. 당신은 과거에 나 때문에 술집을 떠난 사람이 아니오. 그런데 하필이면 우리들이 곧 결혼식을 거행하게끔 되어 있는 이 마당에 또 술집으로 되돌아가려는 것이오?" 하고 K가 물었다. "결혼식 같은 건 있을 수 없어요." 하고 프리다가 말했다. "내가 성실치 못한 탓인가?" 하고 K가 다시 물었더니 프리다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생각 좀 해 봐요, 프리다. 당신은 불성실이란 말을 입에 올리지만, 이 불성실에 대해 우리들은 벌써 몇 번이고 이야기했었지요. 그리고 언제든지 결국은 그것이 얼토당토 않은 오해라는 것을 당신은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어요. 그 후 내게는 아무 변동도 없었어요. 모든 것이 순결 그대로였어요. 지금까지도 그랬으며,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지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의 사주를 받거나 그 밖의 일로 말미암아 틀림없이 당신이 변했을 거요. 좌우간 당신은 억울하게도 나를 비난하는 거지요. 도대체 그 두사람이 어떤 색시들인가 생각 좀 해 보세요. 그 중 살결이 검은 쪽은-이렇게 일일이 자기를 변호하지 않으면 안 된다니 정말 부끄러울 지경이지요. 그러나 당신이 그렇게 요구하고 있으니까-당신에게도 귀찮은 존재지만, 내게도 아마 당신 못지않게 귀찮은 존재라고 할 수 있어요. 만일 어떻게 해서라도 그 색시를 멀리할 수 있다면 나는 그렇게 하겠고, 또 사실 그녀의 성질로 보아 그것은 문제없을 거예요. 그 색시처럼 수줍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 말이요." "그래요." 하고 프리다는 외쳤다. 그 말은 마치 그녀의 본의가 아닌 것처럼 튀어나와 버렸다. 그녀의 기분을 그렇게 전환시킬 수 있었던 것을 보고 K는 기뻐했다. 프리다는 그녀 자신이 되고자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 버렸다. "당신은 그 사람을 수줍다고 생각하시지요. 여자 중에서도 가장 뻔뻔스러운 여자를 당신은 수줍다고 말씀하세요. 아주 곧이 들리지도 않는 소리를 진정으로 말씀하고 있군요. 당신이 위선적인 태도를 취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저는 잘 알고 있어요. 교반관의 주인 아주머니는 당신에 관해서 '나는 그이를 참고 볼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모르는 체할수도 없어요. 겨우 아장아장 걸어갈 수 있는 어린앤데 무턱대고 앞으로만 나가려고 하는 꼴을 보았을 때도, 이렇게 스스로 참고만 보고 있을 수 없어요. 아무래도 간섭하지 않으면 안돼요.'라고 말해요." 프리다가 말했다. "이번에는 주인 아주머니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거군요." 하고 K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이어서, "그러나 그 색시에 관해서는-그녀가 수줍으냐, 뻔뻔스러우냐 하는 문제는 도외시해도 좋겠지요-나는 이제 그 색시에 관해서는 듣고 싶지도 않아요." "그런데 왜 당신은 그녀를 수줍다고 말씀했지요?" 하고 프리다는 주저하는 기색도 없이 물었다. K는 프리다가 이처럼 자기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을 자기에게 유리한 징조라고 생각했다. "당신은 시험삼아 물으시는 건가요?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함으로써 다른 여자들을 멸시하려는 것인가요?" "그 어느쪽도 아니지요. 내가 그녀를 그렇게 말하는 것은 사실인즉 감사의 뜻에서 나온거지요. 이쪽에서 모르는 체해도 무관한 사이고, 가령 저쪽에서 종종 말을 걸어 온다손 치더라도, 감히 다시 찾아갈 엄두도 낼 수 없는 색시니까요. 하지만 그런 경우에는 찾아가지 않으면 내가 큰 손해를 보게 되지요. 아무튼 내가 찾아가는 것은 당신도 알다시피, 우리들 두 사람의 장래를 생각해서니까요. 그래서 나는 또 다른 색시와도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되는 거지요. 나는 그녀의 유능한 재주, 신중한 몸가짐이라든지 공평 무사한 태도를 높이 평가하고 있어요. 그 색시가 남자를 유혹한다고는 아무도 주장할 수 없을 거요." 하고 K가 말했다. "하인들은 다른 의견이던데요." 하고 프리다가 말햇다. "이 점에서든지, 또 다른 모든 점에서든지, 당신은 하인들의 정욕을 바탕으로 해서 내 불성실을 결론지으려고 하는 것이지요?" 하고 K가 말했다. "의자를 하나 갖다 드릴게요." 하고 프리다는 말하기가 무섭게 벌써 걷기 시작했다. "필요 없어요. 나는 당신 방으로 가지도 않고 의자도 필요 없어요." 하고 K는 말하더니 그녀를 붙들었다. 프리다는 그가 붙잡는 것을 꾹 참으며 고개를 깊숙이 수그리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요, 아래층에는 그분이 있으니까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셨나요? 그분은 제 침대에서 자고 있어요. 그는 바깥에서 얼어서 떨기만 했고 거의 식사도 못했대요. 결국 모든 것이 당신의 잘못이에요. 당신이 조수들을 몰아내지 않아더라면, 그리고 그런 사람들한테로 달려가지 않았다면, 우리들은 지금쯤 편안하게 학교 안에 앉아 있을 수 있었을 거예요. 당신이 우리들의 행복을 파괴해 버렸어요. 당신은 예레미아스가 조수의 일을 하는 동안 감히 저를 유혹하기라고 생각하셨나요? 그렇다면 당신은 이 곳 질서를 전적으로 오해하고 계세요. 확실히 그는 제게로 가까이 오려고 했으며, 그리고 괴로워했고 저를 노리기도 했어요. 그러나 그것은 단지 장난이었어요. 굶주린 개가 장난은 치지만, 그러나 감히 식탁으로 뛰어오르려고는 하지 못하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저도 역시 그랬어요. 확실히 저는 그분에게 끌렸어요. 그분은 저의 어렸을 때부터의 동무였어요-우리들은 함께 성 뒷산의 산비탈에서 놀았어요. 아름다운 시절이었어요. 당신은 한 번도 제 과거를 물으시지 않았아요-그러나 그런 일은 모두 예레미아스가 근무에 매어 있는 한 결정적인 것은 아니었어요. 왜냐하면 저는 당신의 장래의 아내로서의 의무를 터득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당신은 조수들을 내쫓아 버리고 그것이 마치 저를 위해서인 것처럼-어느 의미에서는 사실이지만-굉장히 자랑하셨어요. 아르투르의 경우에 있어서는 당신의 계획이-물론 단지 일시적이나마-성공했어요. 그렇다고는 하지만 잠시 동안이었더라도 아르투르는 연약한 사람이어서 예레미아스가 지니고 있는 것 같은 어떤 곤란이든지 두려워하지 않는 정열은 없어요. 그런데도 당신은 언젠가 밤에 그를 주먹으로 때려서-당신은 그렇게 때리는 것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을 불행 속으로 몰아넣었어요-거의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았어요. 그는 고소하러 성으로 도망쳐 버렸어요. 곧 돌아올지 몰라도 좌우간 지금은 없어요. 그러나 예레미아스는 남아 있었어요. 근무중엔 주인이 눈을 한 번만 깜박해도 무서워하지만 근무를 벗어나면 그는 아무것도 무서워하지 않아요. 그분이 와서 저를 포섭했어요. 당신에게 버림을 받고 옛 친구에게는 마음을 사로잡히게 되어서 저는 스스로 견디고 지탱할 수가 없었어요. 저는 학교 문을 열지 않았어요. 그분이 창문을 부수고 저를 빼냈어요. 우리들은 그런 객실 전속 사환을 두는 것만큼 근사하고 바람직한 일은 없지요. 그래서 우리들은 채용되었어요. 그분이 제 방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두 사람은 공동으로 한 방을 쓰고 있어요."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나는 조수들을 근무에서 몰아내어 버린 것을 후회하고 있지는 않아요." K는 말을 이어서, "만일 사정이 당신이 지금 이야기한 것과 같은 상태라면, 즉 당신이 충실한 것은 오로지 조수들이 직무상의 속박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불과하다고 한다면, 차라리 만사가 끝장을 본 게 잘됐다고 생각돼요. 단지 가중 채찍이 무서워서 복종하는 맹수 두 마리 사이에 낀 우리들의 결혼의 행복이란 대수롭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그래서 나는 그 집 사람들에게도 감사하고 있어요. 뜻하지 않게 우리들이 사이를 벌어지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해 주었으니까요." 하고 말했다. 두 사람 다 잠자코 있었다. 또 어깨를 나란히 해서 이리저리 왔다갔다 했다. 어느 쪽이 먼저 그 동작을 시작했는지 분간을 할 수 없었다. 프리다는 K에게 바짝 붙어서 그가 다시 자기를 껴안아 주지 않는 것을 야속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K는 다시 말을 계속했다. "그렇다고 일은 다 끝난 셈이군요 우리들은 작별해도 좋을 것 같아요. 이제 당신은 남편 예레미아스에게 가야 되겠지요. 아마도 예레미아스는 학교에서 몸이 언 채 돌아 왔을 것이며, 게다가 그가 그런 상태에 빠졌다고 생가하면 당신은 이 이상 더 그를 내버려둘 수도 없을 테니까요. 그리고 나는 혼자서 학교로 가든지 그렇지 않으면-당신이 업으면 거기선 아무것도 할 일이 없으니까-나를 받아 주는 집으로 가야지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 주저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제껏 당신이 말해 준 데 대해서 약간 의심을 품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지요. 나는 예레미아스에 대해서 정반대의 인상을 가지고 있으니까 말이오. 그는 조수로서 근무하고 있는 동안 늘 당신의 꽁무니만 쫓아다녔어요. 다라서 쭉 조수로서 근무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당신에게 덤벼드는 것을 진심으로 언제까지나 삼가하고 있었다고는 생각되지 않아요. 그러나 그가 조수의 직무는 이제 끝장났다고 보고 있는 지금에 있어서는 사정이 아주 달라요. 내가 그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해도 양해하세요. 당신이 그의 주인이었던 나의 약혼자가 아닌 이상 당신은 그에게 이미 전과 같은 유혹의 대상은 되지 못해요. 당신은 어렸을 때부터의 동무일는지 몰라도 그러나 그는-나는 원래 오늘 밤의 짧은 이야기만으로 그를 아는 데 지나지 않지만-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런 감정적인 요소를 그다지 중대시하고 있지 않아요. 당신의 눈에는 왜 그가 그렇게 정열적인 성격으로써 비치는지, 나는 도무지 알 수 없어요. 그의 사고 당신은 각별히 냉혹한 것 같아요. 그는 내게 관해서 무엇인지, 아마도 내게는 그다지 좋지 못한 명령을 갈라터로부터 받아서 이것을 이행하려고 하고 있어요 근무에 대한 일종의 정열을 가지고-나도 그것을 인정하기는 하나 여기서는 그런 정열도 그다지 보기 드문 것은 아니니까-이 명령을 이행하려면, 우리들 두 사람의 관계를 파괴해야 돼요. 그는 아마 그것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시도해 보았을 거요. 그 하나를 예로 들면, 육욕적으로 사모하는 정으로 당신을 유혹하려고 했어요. 또 하나는-이 점에서 주인 아주머니도 뒷받침을 한 셈이지만-내가 성실치 않다고 꾸며 댄 것이오. 그의 모략은 성공했어요. 아마도 무엇인지 그를 둘러싼 분위기에 클람을 연상시키는 점이 있어서, 그것이 이 경우에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그는 실직했지만 그러나 직업이 필요 없게 되었어요. 이제 그는 벌써 일의 성과를 거두고 당신을 학교의 창문에서 끌어 잡아당겼어요. 그러나 그것으로써 그의 일은 끝난 것이고 근무의 정열에서 해방이 되어 지쳐 버린 것이지요. 그는 오히려 아르투르의 처지를 부러워하고 있어요. 아르투르는 전혀 불평 불만도 없을뿐더러 칭찬이나 받고 새로운 명령을 받아 오니까요 그러나 좌우간 누구든지 남아서 사태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나 주시해 보아야 해요. 당신을 돌봐 드리는 것은 예레미아스에게는 귀찮고도 따분한 의무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란 말이요. 당신에 대한 애정이란 티끌만큼도 찾아볼 수없다고, 그는 내게 분명히 고백했어요. 말하자면 당신을 클람의 애인으로서 대하는 거지요. 물론 그도 당신을 존경해요. 따라서 그가 당신 방에 자리잡고 살며시 자기 자신을, '꼬마 클람'이라고 느껴 본다는 것은 틀림없이 대단히 기분 좋은 일일 거요. 그러나 그것뿐이지요, 당신이라는 존재는 벌서 그의 눈으로 보면 한푼의 가치도 없는 여자지요. 당시을 여기서 살게 한 것은 그의 본래 할 일의 부차적인 것에 불과해요. 당신의 마음을 불안스럽게 하지 않기 위해서 그도 스스로 여기서 묵기는 하지만 그것을 단지 일시적인 것이고 성에서 새로운 통지를 받을 때까지, 그리고 고작 당신에게서 감기를 치료받고 몸살을 풀 때까지나 계속되면 오래 간다고 할 수 있을 거요." "어머나 어쩌면 그렇게 사람을 중상하시죠!." 하고 프리다는 말하고 작은 두 주먹을 서로 쳤다. "중상이라고? 나는 그를 중상하지 않아요. 아마 그에게 억울한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물론 그것을 일을 수 있는 일이지요. 내가 그에 관해서 한 말은 확실히 표면상으로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어요. 그러나 중상한다고? 만일 중상한다면, 그것은 단지 그 사람에 대한 당신의 사랑과 싸운다는 목적이 있을 수있을 뿐이지요. 그것이 필요하고 또 중상이 적당한 수단이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중상할 거요. 그렇다고 해도 아무도 나를 비난하지 못할 거예요. 그는 나와 비교한다면 명령을 내리는 사람 덕택에, 고립되어 기댈 사람이 없는 내가 약간 중상한다고 하더라도 별 지장이 없을 정도로 유리한 입장에 있어요. 중상이란 비교적 죄가 되자 않는 것이고 결국 따져 보면 무력한 방어 수단이니까요. 그러니까, 주먹은 가만 두란 말이오." 그리고 K는 프리다의 손을 자기 손 안에 쥐었다. 프리다는 손을 그이 손에서 잡아빼려고 했으나, 미소를 띄우고 있었고 별로 힘을 주어서 빼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중상해서는 안 되지요. 왜냐하면 당신은 그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뿐이며 내가 그 명상에서 당신을 깨우쳐 주면 당신은 틀림없이 내게 감사할 것인가 말이지요. 만일에 누구인지 폭력을 쓰지 않고 그러나 도리 수 있는 대로 면밀한 주의와 계략을 써서 내게서 당신을 데리고 가 버리려고 하면, 그는 두 사람의 조수들의 손을 빌려서 하는 수밖에 없을 거요. 겉으로 보기에 선량하고 천진 난만하고 쾌활할뿐더러 책임도 없는, 그리고 높은 곳, 즉 성에서 날아온 젊은이이고 동시에 어린 시절의 추억도 가지고 있을 테니까. 그것은 대단히 사랑스러운 것이 아닐까요. 그것에 비하면 나라는 인간은 정반대라고 할 수 있어요. 그 대신 무슨 일을 하느냐 하면 당신은 전혀 이해하지도 못할뿐더러, 비위에도 맞지 않는 일 때문에 늘 몰려서, 더군다나 그 일 때문에 당신이 지긋지긋하게 싫어해야 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혐오의 약간을 내가 죄가 없는 데도 불구하고 내게로 전가하려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것은 더욱이 말할 나위조차 없어요. 단지 우리들 두 사람 관계의 결함이 짓궂게 또 대단히 교묘하게 이용당했다 뿐이지요. 어떤 관계라도 결함이 있어요. 우리들의 관계도 마찬가지요. 사실 우리들은 서로 아주 다른 세계에서 나와서 만났어요. 그리고 서로 사귄 아래 각자의 인생이 아주 새로운 길로 접어들어 우리들은 아직도 서로 불안을 느끼고 있어요. 너무나 새로운 인생 행로니까 할 수 없지요. 내 개인에 관해서는 중요치 않으니까 말할 필요도 없어요. 사실 나는 당신이 눈초리를 처음으로 내게 돌렸을 때부터 결국 끊임없이 당신의 호의를 받기만 했어요. 다른 사람의 호의를 받는 다는 것이 몸에 배기는 쉬운 일이지요. 그러나 다른 일은 다 그만두기로 하고, 당신은 말하자면 클람에게 억지로 납치당한 셈이지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나는 아직 짐작할 수없지만, 그래도 어슴푸레하게 나마 조금씩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사람은 비틀거리기도 하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갈피를 잡지 못하기 일쑤지요. 그런데 가령 내가 늘 당신을 받아들일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언제나 그 자리에 대기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며, 또 내가 거기서 대기하고 있었을 때에는 당신은 몽상에 잠기거나, 그렇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살아 있는 인물에게 사로잡히는 일, 즉 주인 아주머니 같은 사람에게 당신이 꼭 붙잡히는 일이 있었지요. 요컨대 당신은 나를 두고 한눈을 팔았고 무엇인지 불확실한 것을 동경하는 일이 있었지요. 그러는 동안, 마침 당신의 시선이 쏠리는 방향 바로 거기에 안성맞춤으로 사람들의 그림자가 나타나는 경우가 있었어요. 당신은 그런 사람들한테 마음을 빼앗기고 눈이 단지 순간적인 것, 환영, 옛 추억, 결국은 지나갔는데 더욱 사라져 가는 과거의 생활, 이런 것들이 지금도 당신의 현실적인 생활인 것 같은 그러한 착각에 당신은 빠지고 말았아요. 프리다, 그것은 과오지요. 우리들 둘의 결정적인 결함을 곤란하게 하는 마지막의-정확하게 관찰한다면 경멸할 만한-바로 그 장애란 말이오. 자아!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기 자신으로 돌아와 봐요. 그런 조수들은 클람에게서 파견됐다고 당신이 생각하더라도-사실 그렇게 않소, 갈라터가 그들을 보냈으니까-또 그들은 이 착각을 기화로 해서 완전히 당신을 매혹해 버린 결과 당신 스스로가 그들의 더러움과 음란 속에서 클람의 흔적을 찾아보았다고 생각할지라도-마치 거름 무더기 속엣 보석을 보았다고 생각하는 거나 마찬가지지요. 그런데 그 때에 가령 보석이 사길 거기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실지로는 결코 찾아낼 수 없지만-그들은 단지 머슴 따위의 젊은이에 지나지 않아요. 다만 그들이 몸이 허약해서 야간 찬바람을 쐬도 병에 걸려서 침대에 쓰러져 버리는 것을 제외한다면 말이지요. 그들은 말머슴다운 교활성을 가지고 있어서 자기가 드러누울 자리를 찾아낼 만한 요령은 터들하고 있어요."하고 K가 말했다. 프리다는 머리를 K의 어깨에 기대로 있었다. 팔과 팔을 서로 휘감고 두사람은 말없이 이리저리 왔다갔다했다. "우리들이 만일." 하고 프리다는 천천히 냉정하게 거의 기분 좋은 어조로 말했다. 마치 그녀는 자신에게 K의 어깨에 기대로 쉴 시간이 조금밖에 허용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그래서 이 짧은 시간을 끝가지 즐기려는 것 같았다. "우리들이 만일 그날 밤에 곧 다른 곳으로 이사했더라면 어디든지 안전한 장소에서 함께 지낼 수가 있었을 것이고 언제든지 당신의 손목을 잡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에 있을 수 있었을 것이에요. 당신이 가까이 계셔 주시는 것을 저는 얼마나 바랐는지 몰라요. 당신을 알게 된 후부터는 당신이 가까이 안 계시면 얼마나 쓸쓸하고 외로운지 모르겠어요. 당신이 가까이 계셔 주시는 것이 제가 꿈꾸고 있는 단 하나의 꿈이지요. 그 밖의 꿈은 꿔 본 적도 없어요." 그 때 옆으로 통하는 복도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예레미아스였다. 그는 계단의 맨 아래에 서 있었다. 셔츠 바람이었으나 프리다의 숄을 어깨에 두르고 있었다. 더벅머리는 쥐어뜯건 것처럼 어수선하게 헝클어지고 듬성듬성한 수영은 마치 비에 젖은 것과도 같고 애원하는 듯 나무라는 듯 눈을 크게 부릅뜨고 거무스름한 뺨이 시뻘개 가지고-그러나 그 뺨의 살은 너무나 힘없이 축 늘어진 것처럼 보였다-추위에 못 견디어 숄의 술까지 함께 흔들릴 정도로 벌거벗은 다리를 와들와들 떨면서 거기에 서 있었다. 그는 마치 병원에서 탈출해 온 환자와 같은 모양이었으며, 이런 환자에 대해서는, 곧 침대로 다시 돌려보내는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다. 프리다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K옆을 떠나서 곧 아래에 있는 그에게로 갔다. 그녀는 예레미아스 옆으로 가서 조심스럽게 숄을 꼭 몸에다 감싸 주었으며, 바삐 서둘면서 그를 방안으로 몰아넣으려고 서둘렀는데, 그러한 것들이 그의 원기를 적이 북돋아 준 모양이었다. 그 때 비로소 그는 K의 존재를 알았다는 듯이, "아아, 측량 기사님!" 하고 그는, 그 이상 더 이야기하는 것을 달갑게 생각지 않는 프리다의 뺨을 어루만지면서 타이르듯이 말했다. "방해를 해서 죄송합니다! 몸이 불편해서 실례합니다. 신열이 나는 것 같아서, 따끈한 차를 마시고 땀을 내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아무튼 학교의 저 지긋지긋한 울타리는 잊을래야 잊을 수없습니다. 더군다나 지금 몸이 언데다가 하룻밤내 뛰어 돌아다녔습니다. 사람들은 알지도 못하고 사실은 그다지 가치도 없는 일 때문에 자기 건강을 해치는 것입니다. 측량 기사님, 선생님은 저 같은 사람 때문에 방해를 받아서는 안 됩니다. 어서 우리방에 들어오셔서 문병해 주십시오, 겸사겸사 무슨 말씀이라도 있으시면 프리다에게 해 주십시오. 사실 정든 두사람이 서로 이별할 때는 헤어지는 마지막 순간에 서오 할 말이 산더미처럼 많을 것입니다. 이야기가 너무나 많아서 그런 이야기를 제삼자는-가령 그 제삼자가 침대에 누워서, 약속된 차를 갖다 주기만 바라고 있을 때에도-이해할 수 없습니다. 좌우간 들어오십시오. 저는 아주 조용하게 있겠습니다.." "이제 그만두세요." 하고 프리다는 마하며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이어서, "이분은 신열이 나고 무슨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지조차 몰라요. 그러니 K씨, 제발 당신은 함께 오지 마세요. 저것은 제 방인 동시에, 또 예레미아스의 방이기도 하지요. 오히려 제 독방이라고 할수 있어요. 저는 당신이 들어오시는 것을 막겠어요. 당신은 제 뒤를 따라오시는 것인가요? 아아 K씨, 왜 당신은 제 뒤를 쫓아오시는 거죠? 결코 저는 당신에게로 돌아가지 않아요. 그런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만 해도 몸서리치지 않을 수 없어요. 당신이 좋아하시는 그녀가 있는 곳으로 가세요. 그들은 난로 옆에 있는 소파 위에 속옷 바람으로 앉아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기던데요. 그리고 누가 당시을 데리러 가면 고양이처럼 으르렁거린다고 하던데요. 거기가 그렇게 도 당신의 마음을 끈다면 틀림없이 자기 집이나 마찬가지시겠군요. 저는 늘 당신에게 거기 가시지 말라고 말했어요. 거의 아무 효과도 없었지만 좌우간 만류했어요. 그것도 옛날 이야기고 지금 당신은 자유의 몸이 되셨어요. 아름다운 생활이 당신 눈앞에 전개될 거예요. 아마도 당신은 그 색시들 가운데 한 사람 때문에 하인들과 약간 싸우지 않으면 안되겠지만 다른 한 색시에 관해서는 아무도 그녀를 당신에게 내주지 않으려고 뻗대는 사람은 없을거예요. 당신들은 처음부터 축복받은 연분이에요. 거기에 대해서 구구한 변명은 그만두세요. 다 알고 있으니까요. 당신은 무엇이든 반박할 수 있어요. 그러나 결국 아무것도 반박한 보람이 없게 되었어요. 생각 좀 해 보세요. 예레미아스, 이분은 무엇이든 다 반박했지요!" 하고 프리다가 말했다. 예레미아스와 프리다는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하고 또 미소를 띄우기도 하면서 서로 은연중에 마음이 통하는 모양이었다. 프리다가, "그러나 가령 이분이 모조리 반박했다고 하더라도 과연 그 대가로 무슨 소득이 있었을까요? 제게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에요. 그들에게서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은 전적으로 그들과 이분 사이의 문제지요. 거기에 관한 문제는 아니에요. 제 문제는 당신이 과거와 마찬가지로 건강한 몸이 되실 때까지, 당신을 간호한다는 거예요. 저의 일로해서 K가 당신을 괴롭히기 전의 당신과 같이 건강한 모이 되도록." 하고 말했다. "그러면 선생님은 정말로 함께 오시지 않겠습니까, 측량 기사님?" 하고 예레미아스가 물었다. 그런데 프리다가 이제 전혀 K쪽을 돌아다보지도 않고,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듯이 예레미아스를 끌고 가 버렸다. 아래쪽으로 조그마한 문이 하나 눈에 띄었다. 그것은 여기 복도에 있는 문보다도 더 낮은 거이어서-예레미아스뿐만 아니라 프리다까지도 허리를 구부리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었다-방안은 밝고 따뜻한 것 같았다. 잠시 동안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예레미아스를 침대로 데리고 가기 위해서 여러 가지 사람어린 말로써 설복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 때 문이 닫혔다. 그때 비로서 K는 복도가 아주 조용한 것을 깨닫게 되었다. 복도의 이 부분-그가 프리다와 함께 서 있었던 이 부근은 전부 경영자 전용의 방으로 되어있는 모양인데-뿐만이 아니라, 조금 전에는 그렇게 활기를 띠었던 방마다에 달린 기다란 복도까지도 역시 조용했다. 그렇다면 성 양반들도 역시 잠든 모양이다. K는 대단히 피곤했다. 아마도 지친 탓인지 예레미아스에 대해서 당연히 취하여야 할 방비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쩌면 예레미아스의 예를 따르는 것이 현명했을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 정도로 감기가 들어 있었다-그의 초라한 모습은 감기에서 온 것은 아니고, 선천적인 것으로 따끈한 차를 마신다고 해서 감기를 뗄 수는 없는 노릇인데-예레미아스와 똑같이 흉내내는 것이 현명했을는지 모르겠다. 아닌게 아니라 대단히 지쳤으니까 그와 같이 그것을 노골적으로 겉으로 나타내서, 여기 복도에 스러져 버리는 것이-이것만으로도 퍽 기분 좋은 일이었는데-게다가 조금 졸기도 하고, 또 간호도 받아 보는 것이 현명했을지도 모르겠다. 단지 예레미아스의 경우와 같이 유리한 결과는 가져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이렇게 동정을 얻는 경쟁에 있어서는 확실히-그것도 말하자면 당연한 일이지만-유리한 지위와 승리를 차지했을 것이며 또 그밖의 다른 경쟁에 있어서도 같은 결과였을 것이다. K는 몸이 지칠대로 지쳤기 때문에 대부분이 빈방인 듯 보이는 방 가운데 어떤 방으로 들어가서 근사한 침대에서 마음놓고 자 봤으면 하고 생각해 보았다. 이것은 그의 생각으로는 여러 가지 일에 대한 보충도 되는 것이었다. 자기 전에 마실 술도 한 병 준비되어 있었다. 귀찮아하지도 않고 돌아와서, 그 작은 병에 든 람주를 다 마셔 버렸다. 그러자 K는 적어도 에를랑어 앞에 나설 만큼의 기운은 차린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에를랑어 방의 문을 찾았다. 그러나 이제는 벌써 하인의 모습이나 게르스택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으며 더구나 어느 문이나 모두 똑같아서 도저히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대충 복도의 어디쯤에 문이 있었는지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기가 찾고 있는 문이라고 짐작되는 문을 하나 열어 보려고 결심했다. 설마 열어 본다고 하더라도 그다지 위험스러울 것 같지도 않았다. 만일 에를랑어의 방이면 아마도 상대방은 자기를 맞아 줄 것이며 또 어떤 다른 사람의 방이라면 실례했다고 변명하고 다시 나올 수도 있는 노릇이다. 만일 손님이 자고 있다면-아무래도 이 경우가 가장 가능성이 많을 것 같은데-자기가 방문한 것을 상대방은 전혀 깨닫지도 못할 것이다. 다만 방이 텅 비어 있는 경우가 가장 난처할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경우에는 자기 자신이 침대 속에 들어가서 한없이 자 버리고 싶은 유혹을 도저히 이겨낼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복도를 다라 좌우 양쪽을 살펴보면서 걸어갔다. 제발 누구라도 좋으니 에를랑어의 문을 가르켜 주고, 이런 모험을 면하게 해 주는 사람이라도 오지 않을까하고 주위를 돌아다봤으나, 복도는 조용하고 인기척 하나 없었다. 그 다음의 문에 귀를 대고 방안의 인기척을 엿들어 보았다. 거기도 손님이 없는 빈 방같았다. 혹시 잠자는 사람이 잠을 깰까봐 가만히 문을 노크했지만 아무 반응도 있었다.. 조심스럽게 문을 살그머니 열어 보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나지막하게 소리지르면서 그를 맞아 주는 사람이 있었다. 그 곳은 작은 방이었고, 크고 폭은 넓은 침대가 방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침대 곁의 탁자 위에는 탁상 전등이 켜져 있고 그 전등 옆에 여행 가방이 놓여 있었다. 침대 속에서 누구인가 이불을 덮고 완전히 몸을 가린 채, 꿈틀거리면서 이불과 요 사이로 속삭이듯이 물었다. "누구야?" 사태가 이쯤되고 보니 그대로 나올 수도 없었다. 불룩하게 부푼 침대를-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들어있는-못마땅하게 바라보았다. 드디어 질문을 받은 것이 생각나서 이름을 댔다. 이름을 댄 것이 좋은 인상을 주었는지 침대에 누운 그 남자는 얼굴까지 덮은 이불을 약간 끌어내렸는데, 그래도 침대 밖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라도 벌어질까봐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당장이라도 다시 이불을 뒤집어 쓸 방비 태세를 갖추었다. 그러나 서슴지 않고 단번에 이불을 발로 힘차게 걷어차더니 몸을 꼿꼿이 일으켰다. 분명히 에를랑어는 아니었다. 키는 작지만 인품이 좋고 아주 잘생긴 신사로 그의 얼굴에는 어딘지 모순성이 떠돌고 있었다. 뺨은 어린애처럼 통통하고, 눈동자도 어린애처럼 즐거운 빛을 띠고 있었는데, 그 반면 높은 이마, 뾰쪽한 코, 입술이 거의 맞닿지 않는 가느다란 입매, 거의 없어져 버릴 것 같은 턱, 그것들은 전혀 어린애답지 않고 탁월한 사고력을 나타내고 있었기 때문에, 이처럼 모순된 인상을 주는 것이었다. 이 탁월한 사고력에 대한 만족감과 자기에 대한 만족감이야말로 진정한 어린애다운 순진성의 잔재를 그 얼굴에 간직하게 한 원인인 것 같았다. "프리드리히를 아세요?" 하고 그는 물었다. K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는 당신을 알고 있어요." 하고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K는 고개를 끄떡거렸다. 그에게도 자기를 안다는 사람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이것이 K의 인생 행로에 있어서 큰 장애의 하나이기도 했다. "나는 그 프리드리히의 비서지요. 내 이름은 뷔르겔이라고 해요." 하고 그 남자는 말했다. "실례했어요." 하고 K는 말하고 문의 손잡이를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 "다른 방문과 착각을 일으키고 이 방문을 열어서 대단히 미안해요. 저는 에를랑어 비서가 오라고 해서 가는 길이지요." 하고 K가 말했다. "그거 참 안됐군요.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호출당했다는 것이 아니라, 문을 서로 혼동한 것 말입니다. 그런데 나는 한 번 잠이 깨면 두 번 다시 잠들 수 없어서요. 이것은 말하자면 내 개인적인 불행이니까, 당신이 미안하게 생각하실 필요는 없어요. 왜, 여긴 문이 착각하도록 돼 있는지 모르겠군요? 물론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요. 옛날의 어느 격언에 의하면, 비서들의 방문은 언제나 개방되어 있어야 한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말 그대로 해석할 필요는 없겠지만." 뷔르겔은 그렇게 말하더니 K의 의향을 떠보려는 듯이 자못 기쁜 기색으로 K를 쳐다보았다. 지금 말한 불평과는 반대로 이 사나이는 마음껏 휴식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뷔르겔은 현재 K처럼 극도로 피곤한 경험을 지금까지 한 번도 갖지 못한 것 같았다." "대체 당신은 지금 어디로 가시려는 거요? 벌써 네 시인데, 가는 곳마다 당신은 사람들의 단잠을 깨워 버리지 않겠어요.. 누구나 다 나처럼 방해를 받는 데 습관이 되었다고 할 순 없고 또 누구나 다 그렇게 굳세게 그 방해를 참아낼 수 있다고는 할 수 없어요. 비서들이란 신경이 과민한 족속들이니까요. 그러니까 여기서 좀 기다려 보세요. 여기서는 다섯 시쯤이면 일어나기 시작해요. 그 무렵에는 당신은 가장 잘 호출에 응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그렇게 언제까지나 손잡이를 잡고만 계시지 말고 이리 와서 앉으세요. 보시다시피 여기는 장소가 협소하니까, 침대가에 앉아 주시면 제일 좋겠어요. 여기에는 의자나 탁자도 없어서 당신은 놀라시겠지요? 그래요, 나는 폭이 기다란 호텔 침대와 실내 가구 한벌을 손에 넣든가, 또는 이 커다란 침대와 화장대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방을 갖든가 양자 택일 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나는 그중에서 커다란 침대를 선택했어요. 침실에서는 뭐니뭐니해도 침대가 제일 중요하니까요! 이렇게 사지를 쭉 펴고 잠을 잘 수가 있는 사람에겐 그야말로 이 침대는 귀중한 것이지요. 항상 피곤하기만 하고, 그렇다고 편안하게 자지도 못하는 나로서는 하루의 대부분을 침대 속에서 보내고 있어요. 이 속에서 모든 통신문을 처리하고 진정인의 실정 청취까지도 하고 있어요. 아주 경과가 좋아요. 물론 진정인들이 앉을 장소는 없지만 그런 고통은 참아 주니까요. 진정인의 입장으로 보더라도 차라리 자기들은 서 있고 조서를 작성하는 사람이 기분 좋게 앉아 있는 편이, 자기들은 편안하게 앉아 있으면서 상대방에게 야단맞는 것보다는 훨씬 유쾌할 테니까요. 그리고 나는 침대가의 이 자리밖에는 앉으라고 권할 수 없는데, 여기는 결코 사무를 집행하는 장소는 못되고 밤에 환담하는 장소로만 사용하고 있어요. 그런데 측량 기사, 당신은 참 조용하시군요." 하고 뷔르겔이 말했다. "무척 피곤해서요." 하고 K는 말하고, 상대방이 권하는 대로 체면도 차리지 않고 곧 침대 위에 앉아서, 그 침대 기둥에 기대고 있었다. "물론 그러시겠지요." 하고 뷔르겔은 웃으면서 말했다. 이어서, "여기서는 누구나 피곤해요. 예를 들면 내가 어제와 오늘 이틀 사이에 한 일은 결코 사소하다고 할 수 없는 일이었어요. 내가 지금 잠든다는 것은 아주 불가능한 이야기지만, 그러나 이런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서 당신이 여기 계시는 동안 내가 잠드는 일이라도 있으면, 제발 조용히 해 주시고 문도 열지 마라 주세요. 그러나 염려하지 마세요. 내가 잠드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며, 또 그런 달콤한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고작 이삼 분 동안의 일일테니까요. 아마도 나는 진정인과 접촉하는 데 너무나 익숙한 탓인지, 사람과 대하고 있으면 가장 잠들기 쉬운 상태에 놓여 있게 돼요." 이 말을 듣고 기쁨에 넘쳐서, "어서 주무세요, 비서님!" 하고 K는 말하고 다시 이어서, "그러면 저도 조금 잘 테니까요." "아니오, 아니오." 하고 뷔르겔은 또 웃었다. 이어서, "단지 잠자라고 권하는 것만으로는 미안하지만 그렇게 쉽게 잠들 수 없어요. 다만 이야기하는 동안에 그런 기회도 생기는 것이고, 이야기하는 것이 나로 하여금 가장 빨리 잠들게 해 주는 거지요. 사실 우리들의 일은 성질상 신경이 지치기 마련이니까요. 나로 말하면 연락 비서관이지요. 연락 비서관이 무엇인지 모르시나요? 그러면 말씀드리겠는데, 가장 많은 연락 업무를 맡아보고 있는 것이 나지요." -여기서 그는 본의 아니게 자못 기쁜 표정으로 두 손을 비볐다- "즉 프리드리히와 마을과의 사이의 연락이지요. 나는 그의 성에 있는 비서들과 마을에 있는 비서들 사이의 연락 관계를 맡아보고 있어요. 대개는 마을에 있지만 그렇다고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지요. 언제든지 성으로 차를 달릴 준비를 갖추고 있지 않으면 안돼요. 여행 가방 좀 보세요. 불안정한 생활이지요. 누구에게나 적당한 직업이라곤 할 수 없어요. 그러나 한편에서 본다면 나는 이제 도저히 이런 종류의 일 없이는 지낼 수가 없다는 것도 옳은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모든 일이 내게는 아주 싱겁게 보이거든요. 당신의 측량 업무는 어떤가요?" "저는 측량 기사로서 일거리를 맡은 적이 없어요." 하고 K는 말했다. 지금 화제에 오른 일거리 같은 것은 거의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다. 사실 그가 열망하고 있었던 것은 단지 뷔르겔이 잠이 들어 주었으면 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것까지도 그는 단지 자기 자신에 대한 일종의 의무감에서 하고 있는 데 불과하고,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에서는 뷔르겔이 잠드는 것을 까마득하게 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알 수 없는 일인데." 하고 뷔르겔은 연신 고갯짓을 하면서 말하더니 무슨 기록을 해두기 위해서인지 이불 밑에서 메모 카드를 한 장 끄집어내었다. "당신은 측량 기사이면서도 측량의 일거리를 가지고 있지 않나요?" K는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는 침대 기둥에 왼팔을 뻗고 그 팔위에 고개를 얹고 있었다. 여러 가지로 편안한 자세를 취해 보았으나, 이 자세가 가장 기분 좋은 거이었다. 그제서야 비로서 뷔르겔의 하는 소리를 조금 주의해서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뷔르겔은 계속해서 말했다. "나는 이 사건을 앞으로 더 추궁해 볼 용의를 가지고 있어요 좌우간 여기 우리들에게는 어떤 전문적인 능력이 전혀 이용되지 않고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일은 용납되지 않도록 마련되어 있어요. 거기다가 그것은 당신을 모욕하는 거나 다름없어요. 대체 당신은 그것으로 고민하시지 않나요?" "저는 그것으로 고민하고 있어요." 하고 K는 천천히 말하고 혼자서 빙그레 웃었다. 사실은 지금 그런 일로 조금도 고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또 뷔르겔의 제의도 그에게 거의 감명을 주지 못했다. 제삼자가 심심풀이로 하고 있는 것으로 밖에는 생가되지 않았다. K를 초빙하게 된 구체적인 사정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또 그 초빙이 마을이나 성에서 부딪친 난관이라든지, K가 이땅에 머무르는 동안에 일어난-또는 일어날 것 같은 징조를 보이던-여러 가지 분규, 이런 것에 대해서는 조금도 몰랐다. 그뿐더러 그가 비서라면 육감으로 당연히 그런 일이 있을는지도 모르겠다는 예감이나 추측이 마음에 떠올라야 된다고 생각되는데, 그런 기색은 도무지 없고 뷔르겔은 다짜고짜로 작은 메모 카드에 기록하여 사건을 성에서 해결해 주겠다고 제의했다. "당신은 벌써 여러 번 실망하신 모양이군요." 하고 뷔르겔이 말했는데 그 말로써 그가 퍽 인간 사정에 통하고 있는 것을 나타냈다. 대체로 K는 이 방에 들어왔을 때부터 가끔 뷔르겔을 얕보아서는 안된다고 스스로 경고했지만, 하여간 지금 상태로는 자기 자신의 피로 이외에는 똑바로 판단하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아니지요." 하고 뷔르겔은 마치 K의 어떤 생각에 답변하려는 듯이 그리고 K에게 동정해서 말하는 수고를 덜어 주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실망으로 말미암아 겁을 먹거나 풀이 죽어서는 안돼요. 확실히 여기서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일이 꽤 많아요. 처음으로 여기 도착한 사람의 눈에는 그 장애를 뚫고 나아갈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지지요. 아무튼 나는 이 땅의 사정을 검토해 보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아마도 사람의 눈에 비치는 현상이 그 외관이 보여 주는 실지와 그대로 부합하겠지요. 좌우간 내 입장으로는 그것을 확인하는 충분한 거리가 부족해요. 그러나 주의해야 할 일은, 그래도 역시 전체의 상태와 거의 일치하지 않는 기회-그런 기획에 있어서는 단지 한 마디로, 눈초리 하나로 믿는다는 마음을 조금 나타내는 것으로써 평생동안 뼈아프게 고생하는 것보다도 더 많은 일을 이룩할 수있어요.-그런 기회가 흔히 생겨요. 확실히 그래요. 그러나 물론 그런 기회는 그것이 이용되지 않는지 한 역시 전체의 상태와 일치하고 있어요. 그러나 대체 왜 그것이 이용되지 않는지 나는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나 자신에게 물어 봐요." 하고 뷔르겔은 말했다. K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는 뷔르겔이 이야기한 내용이 자기에게 관계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으나 이제 그는 자기에게 관계 있는 모든 일에 대해서 무척 싫증이 났다. 그는 약간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렇게 함으로써 뷔르겔에게 질문의 길을 터주고 벌써 그 질문에는 상관않겠다는 눈치였다. "마을에서의 신문을." 하고 뷔르겔은 말을 계속하면서 팔을 뻗어 하품을 했는데, 그의 동작은 그의 진실한 말과 이상스러운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마을에서의 대부분의 신문은 밤중에 실시하지 않으면 안 되기 비서들은 늘 이만저만한 불평이 아니지요. 그런데 그들은 왜 불평을 할까요? 너무나 일이 힘드니까 그럴까요? 밤중에는 자고 싶은 까닭일까요? 아니지요. 그들은 절대로 그런 것을 불평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요. 어디서나 마찬가지로 물론 비서들 사이에도 부지런한 사람과 그다지 부지런하지못한 사람이 있어요. 그러나 그들 중에는 아무도 너무나 일이 힘들다고 불평하는 사람은 없어요. 더군다나 공공연하게 호소하는 사람은 없어요. 그것은 우리들이 할 짓이 아니니까요. 이 점에 관해서는 우리들은 평상시와 집무 시간과를 구별하지 않아요. 그런 구별 같은 건 전혀 우리들이 알 바가 아니지요. 그러면서 비서들은 밤의 신문에 대해서 왜 반대하는 걸까요? 혹시나 진정인에 대한 동정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아니, 아니, 결코 그런 것은 아니지요. 비서들은 진정인에게 대해서는 아주 무자비해요. 물론 자기 자신에게 대해서보다도 조금이라도 더 무자비하다는 것은 아니고, 단지 아주 똑같은 정도로 무자비하다 뿐이지요. 원래 이러한 가혹한 성격이라는 것은, 직무를 강철과 같이 엄격하게 준수하고 수행하는 것 이외는 아무것도 아니지요. 즉 이것은 바로 진정인이 스스로 바랄 수 있는 최대의 동정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것은 또한 근본적으로 보아서-피상적인 관찰밖에 못하는 사람은 깨닫지도 못하지만-모두들 전적으로 인정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진정인들에게 환영받고 있는 밤의 신문의 경우가 바로 그렇고, 밤의 신문에 대한 근본적인 불평 불만이 접수되어 본 적은 없어요. 그러면 비서들의 싫증이란 그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에 대해서도 K는 알 수 없었다. 그는 거의 아무것도 알 수 없었으므로 뷔르겔이 진정으로 답변을 요구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으면 건성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만일 당신 침대에 나를 재워 준다면 내일 낮에, 오히려 저녁때가 더 낫지만 당신의 모든 질문에 대답해 주지.'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뷔르겔은 조금도 주의하지 않는 것 같았다. 자기 자신이 제기한 질문에 대해서 아주 정신이 팔리고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한, 또 나 자신이 경험한 한도 내에서는, 밤의 신문에 관해서 비서들은 대략 다름과 같이 생각하고 있어요. 즉 밤에는 심리의 공적인 성격을 충분히 유지하기가 곤란해요. 아니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그래서 밤에 진정인들과 심리하는 것은 그다지 적당치 않다는 거지요. 이것은 외적인 것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형식은 물론 밤이라도 의향대로 낮과 똑같이 엄격하게 지켜질 수가 있어요. 따라서 그것이 문제가 되진 않지만, 밤에는 공적인 판단을 그르치게 돼요. 밤이면 무의식중에 사물을 사적인 관점에서 판단하기 쉬우니까요. 진정인들의 주장이, 그것에 적당한 정도 이상의 중요성을 띠게 돼요. 판단 속에는 진정인들의 다른 상태라든지, 그들의 고뇌나 걱정에 대해 거기에 적합한 고려가 전혀 참작되지 않아요. 진정인들과 관리들 사이의 필요 불가결한 울타리는 가령 그것이 겉으로는 나무랄 여지없이 존재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흔들리고 말아요. 그 밖에도-당연히 그래야만 되지만-단지 질문의 응답을 주고 받는 경우라도, 이상스러운 일이지만 아주 적당치 않게 임무의 교환이 이루어지는 것 같아요. 적어도 비서들은 그렇게 말하고 있어요. 따라서 일반 사람들, 직무상 그런 일에 대해서 아주 이상스럽게 예민한 감각이 부여되어 있는 그들에게 있어서는 더 말할 나위도 없어요. 그러나 그들일지라도-이것은 벌써 종종 우리들 사이에서 화제에 오른 일이지만-밤에 신문하고 있는 동안에는 그런 불리한 작용을 거의 깨닫지 못해요. 반대로 그들은 처음부터 그 불리한 작용을 저지하려 들고 그 결과 나중에는 아주 굉장한 일이나 한 것처럼 생각하게돼요. 그러나 나중에 그 조서를 다시 읽어 보면 명백히 드러난 그런 약점을 보고 어처구니 없을때가 한두 번이 아니지요. 그런데 이것이 적어도 우리들의 규칙에 비추어 보면 벌써 일반적인 간단한 수속으로는 수정할 수 없는 결점이고, 그뿐더러 진정인들로 말하면 부당 이득의 절반은 되는 셈이지요. 이것은 분명히 나중에는 감독 관청에 의해 개선될 것이지만 그러나 이것은 다만 정의를 위해서 필요한 조치일 뿐이고 그 이상 진정인들에게는 손해를 주지 않는 것이지요. 이런 사정이라면 비서들이 불평 불만을 하는 것도 참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죠?" '이 모든 것이 어찌된 일이지? 어떻게 된 거지?" 하고 스스로 물어 보면서 축 늘어진 눈꺼풀 밑으로 뷔르겔을 자기와 어려운 질의에 대해 말을 주고 받는 하나의 관리로서 바라보지 않고, 그저 자기를 감자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 그 밖의 뜻은 찾아볼 수 없는 무엇으로서 바라보았다. 그러나 뷔르겔은 아주 자기 자신의 사고 속에만 몰두하여 지금 K를 약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듯이 빙그레 웃었다. 그러나 K를 다시 옳은 길로 인도하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불평 불만을 그래도 아주 적당한 것이라고 부를 수도 없지요. 그야말로 밤의 신문은 어디에도 문자 그대로의 규칙이 있는 것은 아니지요. 그러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즉 일이 너무 벅차다든가 성에서의 관리들의 집무 태도, 일을 손에서 손쉽게 놓을 수가 없다는 것, 또는 진정인 신문은 다른 심리가 완전히 끝난 다음에 시작할뿐더러 즉시 완료하라는 규칙과, 또는 모든 다른 일이 밤의 신문을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렸어요. 그런데 한 번 이것이 필연적인 것이 되면-나는 그렇게 말해요-이것은 뭐니뭐니해도 적어도 간접적으론, 규칙의 결과이기도 해요. 그래서 밤의 신문제도에 대해서 투덜거리는 것은 말하자면-물론 약간 과장하곤 있었어요. 그러니까 과장으로써 이렇게 말해도 상관없겠지요-규칙에 대해 투덜거린다고 할 수 있어요. 이와 반대로 비서들이 규칙의 범위내에서, 밤의 신문과 아마도 외양만으로의 손해에 대해서 될 수 있는대로 스스로의 몸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은 오로지 비서들의 권한 내에 속하는 것일 거예요. 사실 그들은 그렇게 하고 있는데, 그것도 가장 큰 규모로 하고 있지요. 즉 그들은 어떤 듯에 있어서도 가능한 한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심리의 대상만을 인정해요. 심리하기 전에 미리 자세히 자기 기분을 음미하고 만일 음미한 결과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있으면 마지막 순간에 있어서도 심리를 모조리 취소해 버려요. 실지로 자기 앞으로 호출하기 전에 진정인 한 사람을 열 번씩이나 소환하는 일이 종종 있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이 붙게 하는거죠. 해당 사건을 담당하지 않고 따라서 권한이 없기 때문에 쉽게 그 사건을 처리할 수 있는 동료에게 부탁해서 대리해 달라고 하지요. 또 심리를 적어도 밤이 될 무렵이나 그날 무렵에 하기로 하고 그 중간 시간은 피해요. 이상 말한 것 같은 규준은 얼마든지 있어요. 그들은 좀처럼 쉽게 사람에게 넘어가거나 굽히지 않아요. 그들은 침범을 당하기 쉬운 반면 똑같은 정도로 저항력이 강해요." K는 자고 있었다. 물론 깊은 잠은 아니었다. 아마도 뷔르겔의 말을 아까 견딜 수 없을 지경으로 지친 채 눈을 뜨고 있었던 때보다도 더 잘 듣고 있었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그의 고막에 울렸다. 그러나 괴롭고 귀찮은 의식은 이제 다 사라져 버렸다. 그는 스스로 자유스러운 몸이 된 것처럼 느꼈다. 뷔르겔은 이미 그를 붙들고 있지 않았다. 그는 몇 번이나 뷔르겔에게로 손을 뻗치고 더듬어 보았을 뿐이다. 그는 아직도 깊은 잠에 빠지지는 않았다. 다만 벌서 잠의 분위기에 잠겨 있었을 뿐이었다. 이제 아무도 그에게서 이잠을 빼앗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에게는 자기가 그 일로 큰 승리나 거둔 것처럼 느껴졌다. 벌써 승리를 축하하기 위하여 사람들이 거기에 모여들었다. 자기든가 또는 다른 사람이든가가 이 승리를 축하하여 샴페인 잔을 높이 쳐들었다. 그리하여 무엇이 문제가 되어 있는지, 그것을 모두들 알게 되었다. 그래서 투쟁과 승리가 또 한 번 되풀이 된다. 아니 아마도 전혀 되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처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며, 그것을 벌써 미리 축하하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결과가 확실하니까 그의 승리를 축하하는 것이 중지되는 일도 없다. 벌거벗은 그리스의 어느 신의 조상과 꼭 닮은 비서 한 사람이 투쟁중에 K에게 맹렬히 공격을 받고 있다. 그것은 보기에도 참 우스운 광경이었다. 비서가 자랑스러운 자세를 취하면서 뻐기고 있는 것을 K는 끊임없이 덤벼들어서 상대방을 깜짝깜짝 놀라게 하고 있다. 상대방은 높이 쳐든 팔을 저으며 불끈 쥔 주먹을 휘두르면서 자기의 나체 모습을 가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동작이 옆에서 보기에 참으로 느렸다. K는 잠 속에서 그 꼴을 보고서는 빙글 웃었다. 싸움은 오래 계속되지 않았다. 한 발짝 한 발짝씩 K는 큰 걸음걸이로 어슬렁어슬렁 앞으로 나아갔다. 대체 그게 싸움이란 말인가? 참다운 저항 같은 건 하나도 없고 가끔 비서가 흑흑 흐느껴 울 뿐이었다. 이 그리스의 신은 소녀가 간지럼을 탈 때처럼 흑흑 소리내며 울었다. 그러자 끝내 비서는 가 버렸다. K 혼자서 관장에 남아 있었다. 완전히 전투 내세를 갖추고 그는 주위를 돌아다보고 적을 찾았다. 그런데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물러가 버리고, 단지 샴페인 잔만이 산산이 부러져서 땅바닥에 흩어져 있었을 뿐이다. K는 그나마 아주 짓밟아 버렸다. 그런데 유리 조각이 박히는 바람에 깜짝 놀라서 또 눈을 떴다. 선잠을 깬 어린애처럼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뷔르겔의 드러내 놓은 가슴을 보았을 때, 꿈에서 계속되었던 이런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갔다. 여기에 너의 그리스의 신이 있다. 그리스의 신을 깃이불에서 끄집어내라! "그러나." 하고 뷔르겔은 기억속에서 예증을 찾고 있으나, 그것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듯이 깊은 생각에 잠기며 얼굴을 천장으로 돌리면서 말했다. 이어서, "그러나 모든 주위의 규칙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진정인들은 비서들의 그런 밤중의 약점을-항상 그것을 약점이라고 가정해서 말이지만-자기 자신을 위해서 이용할 가능성이 있어요. 물론 아주 드문,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거의 실현될 수도 없는 가능성이지요. 그런데 그럴 가능성은 진정인이 밤중에 느닷없이 찾아오는 데에 있는 것이지요. 당신은 아마도 그런일이 밤중에 느닷없이 찾아오는 에데 있는 것이지요. 당신은 아마도 그런일이 언뜻 보기에 당장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데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는 것에 놀라실 거예요. 그래요. 당신은 우리의 사정을 잘 모르시니까요. 그러나 그런 당신일지라도 관청 조직이 얼마나 빈틈이 없는가를 깨닫고 깜짝 놀라실 거예요. 그런데 이처럼 빈틈이 없다는 데서부터 다음과 같은 일이 발생해요. 즉 무엇인가 관청에 청원할 것이 있는 사람이라든지, 또는 그 밖의 이유로써 무엇에 대해서 신문당하지 않으면 안되는 자는 누구나 곧 망설이지 낳고 아직 장본인은 그 사건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는데 벌써 소환을 받고 있어요. 그러나 이렇게 되어도 아직 심리를 받지 않아요. 대개는 여전히 심리를 받지 않지요. 대개의 경우 그다지 기회가 무르익지 않지요. 그러나 소환장은 가지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미 그는 아무 예고 없이 갑자기 올 수 는 없지요. 기껏해야 시기가 나쁠때나 공교로운 때 올 수가 있을 정도지요. 그럴 때면 그는 단지 소환장의 절차와 시간에 주의가 환기 될 뿐이지요. 그런 사람이 이번에는 제대로 올바른 시일에 찾아온다고 하더라도 보통은 쫓겨날 뿐이지요. 그런 경우 쫓아내는 일은 문제 없으니까요. 진정인이 손에 들고 있는 소환장과 서류에 기입되어 있는 문구 같은 것은 언제나 반드시 비서들을 납득시키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그대로 쫓아내기 위한 강력한 무기가 되는 것이지요. 물론 쫓아 버리는 것은 그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비서에게만 관계 있어요. 밤중에 자고 있는 다른 비서들을 느닷없이 찾아간다는 것쯤은 역시 누구에게나 가능하지요. 그러나 아무도 그런 짓을 하지 않을터이니 그것은 거의 무의미한 일이지요. 그런 짓을 하면 바로 담당비서의 감정을 해치는 것이 고작이지요. 우리들 비서는 상호간의 일에 대해서는 확실히 질투를 일으키는 일이 없어요. 누구나 무턱대고 함부로 높이 평가하고 대견하게 짊어진 일의 무거운 지을 부담하고 있어요. 우리들은 그러나 진정인이 관할을 무시하는 일은 결코 용납할 수 없어요. 그 담당자에게 신고해서는 이야기가 잘 진행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담당자가 아닌 자에게서 우물쭈물 빠져나가려고 시도했기 때문에 실패한 사람이 상당히 많아요. 그런데 그런 시도는 다음과 같은 사정에 부닥쳐서 꼭 박살나고 말아요. 즉 담당 아닌 비서는-이를테면 그가 밤중에 갑자기 진정인의 습격을 받고, 설사 그 진정인을 도와줄 생각이 간절하다고 하더라도- 그가 담당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의 어느 변호사 정도밖에는 간섭할 수 없어요. 또는 결국 거기까지도 채 가지 못하지요. 왜냐하면 그 비서에게는 사실- 그가 시간 여유만 있으면 모든 변호사들보다도 법의 뒷길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설사 무슨 일을 해 줄 수가 없어요. 이럴 줄을 뻔히 알면서 대체 누가 자기 담당도 아닌 일을 맡아 가지고 밤 시간을 낭비할까요? 거기다가 진정인들도 날마다 자기의 일이 있는 데다가 담당자로부터 소환이나 지시에까지 응하려고 하면, 사실 벅찰 테니까요. 다만 벅차다는 말은 물론 진정인들의 입장에서 말한 것이고, 우리 비서들의 입장에 '벅차다'고 할 때와는 사뭇 뜻이 다른 것이지요." K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제 자세히 알아들은 것 같았다. 그렇다고 뷔르겔이 한 말에 K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니고 단지 그는 지금 다음과 같이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얼마 안가서 그는 완전히 이번에는 꿈도 꾸지 않고 잠이 들어 버릴 것이다. 담당 비서들과 담당이 아닌 비서들 사이에 끼어서도 또 분주한 진정인의 무리를 앞에 보면서도 그는 깊은 잠 속에 빠져 버릴 것이다. 그러면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칠 수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나지막하고도 흐뭇한 것 같은, 그리고 자기 자신이 잠들기에는 조금도 효과가 없는 것 같은 뷔르겔의 음성에 이젠 벌써 완전히 익숙해졌기 때문에 그 목소리는 그의 잠을 방해하기는커녕 잠을 재촉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방아, 방아, 물방아야, 덜컹덜컹 돌아라! 그댄 나를 위해 덜컹덜컹 도누나!" 하고 그는 생각했다. "자아, 그렇다면 어디에." 하고 뷔르겔은 두 손가락으로 아랫입술을 만지작거리면서 눈을 크게 뜨고 목을 쑥 빼고 마치 그가 지금 애쓰고 방황하던 끝에 어느 매혹적인 조망에 가까워졌다는 듯이 말했다. "자아, 그렇다면 어디에 앞서 말한 드물고, 말하자면 결코 실현될 것 같지 않은 가능성이 있을까요? 그 비밀을 푸는 열쇠는 관할에 관한 근무 규정속에 감추어져 있어요. 즉 모든 사건에 대해서 오직 한 사람만의 특정된 비서가 담당이 된다는 규정은 없으며, 또 사실 크게 활동적인 조직에 있어서는 결코 그렇게 되지도 않아요. 한 사람의 비서가 이를 전담하고, 그 밖의 다른 많은 비서는 그다지 깊이 간섭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그 일에 관계할 따름이지요. 대체 그 누가-가령 최대의 활동가라고 할지라도-최소의 사건이나마 그것에 관한 모든 자료를 한꺼번에 자기 책상 위에 수집할 수가 있을까요?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한 사람의 비서가 전담하고'라고 는 말했는데, 그것 차제가 지나친 표현이었어요. 그들 비서들에게 있어서는 일에 거의 관계하고 있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도, 이미 그것이 전면적으로 관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이런 종류의 문제에 있어서는 사건을 파악하는 정열만이 결정적인 요소가 되는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이런 정열은 비서들에게 있어서는 항상 변치 않는 것이고 또 항상 완전한 강도를 가지고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야말로 비서들 상호간에는 차이점이 있을지도 몰라요. 사실 그 차이점을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어요. 그러나 정열에 관해서는 그렇지 않아요. 그들 중에서 누구도 어느 사건을-가령 자기 담당이 아닌 사건이라도-담당해 달라고 권유를 받으면 자제할 수 없겠지요. 물론 외부에 대해서는 사건이 질서 정연하게 심리되도록 해 두지 않으면 안돼요. 따라서 진정인들에게 있어서는 사건마다 정해진 비서가 한 사람씩 전면에 나타나는 거시며, 그들은 그 비서에게 대해서 공적으로 사건을 의뢰하게 돼요. 그러나 그 때 선발되는 비서는 사건에 대해서 최대의 권한을 가진 사람이어야만 한다는 법칙은 절대로 없어요. 누가 그 역할을 맡게 되는가, 그것은 조직이 결정해요. 또 그때그때의 특별한 필요성이 그것을 결정하게 돼요. 말하자면 실지로 사정은 대충 이래요. 그런데 측량 기사 양반, 좀 생각해 보세요. 진정인이 무슨 사정으로 말미암아 지금 당신에게 말씀드린 것처럼 장애와 난관은 어디로 가나 가로놓여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밤중에 해당 사건에 어느 정도 권한을 가지고 있는 비서를 갑자기 습격할 수가 있는 일인지 그 점을 좀 생각해 보세요. 그런 가능성에 대해서 당신은 아직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으시겠지요?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요. 사실 그런 일은 생각할 필요조차 없어요. 왜냐하면 그런 가능성이란 결코 없다고 해도 좋을 만큼 희박한 것이니까요. 그처럼 정밀하게 만들어진 듯한 채로 거를 때 그것을 빠져나가는 진정인이란, 말하자면 완전히 특정한 형태의, 작고 교묘한 낱이 아니면 안 될 것이니까요! 그런 것은 있을 리가 없다고 당신은 생가하시겠지요? 당신 말씀이 옳아요. 전혀 그런건 없어요. 그러나 어느 날 밤에-그 모든 것을 보증할 수 있는 사람이란 없지요-그런 일이 일어나곤 해요. 물론 내가 알고 있는 비서 중에 과거에 그런 일을 당했다는 사람 얘기는 들어 본적이 없어요. 단지 이것만으로는 증명도 되지 않아요. 내가 알고 있는 비서의 수는 여기서 문제가 된 인간의 수에 비교하면 아주 한정된 것이지요. 더욱이 그런 꼴을 당한 비서가 그것을 또 고백하리라고는 도저히 장담할 수 없으니까요. 아무튼 그것은 전혀 개인적인 일일뿐더러 또 어느 의미에서는 정말로 관리로서의 체면에 관계 되는 일이니까요. 어쨌든 내 경험이 증명하는 바에 의하면,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아주 드물고 사실은 단지 소문으로만 떠도는 따라서 그 밖의 다른 어떤 것에 의해서도 증명되지 않는 것이지요. 따라서 그런 것을 걱정하는 것은 아주 지나친 생각이라는 것이지요. 만일 실지로 그런일이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이 세상에는 그런 일이 있을 리가 없다고 증명할 수만 있다면-증명하기는 대단히 쉬운 일이지요-그것으로써 문제는 무난히 처리되는 셈이지요. 그렇게 생각해야 될 거예요. 하여튼 그것에 대한 불안 때문에 이불 밑에 숨어서 마음놓고 바깥을 내다보지 못한다는 것은 아주 병적인 것이지요. 거기다가 만일에 그런 전혀 있을 것 같지 않은 일이 갑자기 어떤 형태로 나타났다면, 그 때는 만사가 다 틀리게 된 걸까요? 만사가 틀리게 된다는 것은 가장 있을 수 없는 일 중에서도 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그렇다고 해도 진정인이 방안으로 들어와 버리면 이미 사정은 아주 곤란해지지요. 그 때는 가슴이 죄는 것 같아요. '얼마 동안이나 견디어낼 수 있을까?'하고 스스로 물어 보지 않으면 안 돼요. 그러나 전혀 견디어낼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지요. 당신도 이 경우를 올바르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늘 기다리기만 하였던, 정말로 갈망을 가지고 기다리고만 있었던, 그리고 언제나 목적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진정인이 거기에 앉아 있어요. 그 진정인은 잠자코 거기 있는 것으로써 그의 가엾은 인생 속으로 뚫고 들어와 달라고, 그 인생 속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고 물색해 달라고, 그리고 거기서 거의 절망적인 요구 하에서 함께 고민해 달라고 청하는 것 같아요. 고요한 밤에서의 이 청은 유달리 매혹적이지요. 그러나 이 청에 응한다는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는 관리의 신분을 포기한다는 거나 마찬가지지요. 이런 상태에서 청을 거부한다는 것은 벌써 불가능하게 돼요. 정확히 말하면 아무렇게나 될 대로 되라는 기분이지요. 더 정확하게 말하면 무척 행복한 상태라고 말할 수있어요. 될 대로 되라는 절망적인 기분은 무방비 상태와도 일맥 상통하지요. 우리들은 무방비 상태로 여기 앉아요 진정인의 탄원을 기다리고 있어요. 그리고 상대방이 그 소원을 한 번 입밖에 내기만 하면 그것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어요. 가령 그 소원이 적어도 우리들이 관측하기에 거의 관청 조직을 파괴해 버리는 일이 있더라도 그래요. 사실 이런 일은 공무 집행중에 일어나는 최악의 경우이지요. 왜냐하면 첫째로-그 밖의 일은 다 그만두고라도-나는 이 때에 우선 자기 자신을 위해서 억지로 터무니없는 승진을 요구하는 게 되 기 때문이지요. 말하자면, 우리들 지위로는 지금 여기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 같은 그런 탄원을 들어줄 자격은 전혀 없으니까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렇게 밤중의 진정인이 이처럼 가까이 있는 것으로써 어느 정도 우리들의 직무의 힘도 커지는 것이지요. 우리들은 우리들의 세력권 외에 속하는 일까지도 의무를 부담하게 돼요. 그리고 우리들은 그것을 실지로 수행하기도 하지요. 마치 숲에서 도적이 그렇듯이, 진정인은 다른 때 같으면 도저히 우리들에게 강요할 수 없는 그런 희생을 밤에 우리들에게 강요하는 것이지요. 그것도 좋다고 해 두지요. 좌우간 지금 진정인은 아직도 거기 있으면서 우리들을 격려하고 강요하고, 용기와 열의를 북돋아 주어요. 모든 일이 반은 의식을 상실한 상태에서 아직도 진행되고 있었어요. 그러나 그 다음은 어떻게 될까요? 일은 끝나 버리고 진정인은 싫증이 나고 관심조차 사라져서 우리들에게서 떠나 버리지요. 우리들만이 거기에 남아서 무방비 상태로써 우리들의 직권 남용에 당면하여 대체 어떻게 될 것인지 전혀 상상할 수도 없을 지경이지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행복해요. 얼마나 자멸적인 행복일까요! 분명 우리들은 진짜 사정을 진정인에게 감추려고 노력할 수도 있을 텐데 말예요. 진정인은 스스로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고 있어요. 사실 진정인은 그 자신의 생각으로 아마도, 다만 아무래도 좋은 우연한 이유에서-지치고 낙담하고 또 과로와 실망 때문에 아무 분별 없이 냉담해져서-생각하고 있었던 거와는 다른 방으로 침입해 들어온 것이지요. 그리고 아무 영문도 모르고 거기 앉아서 열심히-만일 그가 무엇이든 열중할 수 있다면-자기 과실이나 피로에 관해서 생가에 잠기고 있어요. 대체 그를 그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을까요? 아니 그것은 안 되지요. 우리는 행복한 사람의 독특한 수다스런 성격으로써 모든 것을 다 설명해 버려요. 우리들은 조금도 자기 자신을 아끼지 않고 무슨 일이 일아났나, 어떤 이유로써 일어났나, 그리고 이 기회가 얼마나 드문 것이며, 전례 없이 귀중한 것이라는 사실 등을 기어코 상세히 가르치고야 말죠. 우리들은 다음과 같은일까지 가르쳐 주게 돼요. 진정인은 의지할 곳도 없이-그 의지할 곳이 없다는 것은 일개의 진정인으로서 적합한 것이지만-헤매다가, 우연히도 이 절호의 기회를 얻은 것이다. 그래서 지금 그럴 생각만 있다면 측량 기사 양반, 잘 들어주세요. 모든 일을 뜻대로 지배할 수도 있다. 더군다나 그러기 위해서는 좌우간 진정인이 자기 소원을 진술하기만 하면 된다. 이쪽에서는 벌써 소원을 들어줄 만한 준비가 되어 있을뿐더러, 들어주고 싶어서 벼르고 있다고, 그런말을 죄다 말해 줘 버려요. 관리가 고생하는 것은 이때지요. 우리들이 그것까지 한다면 측량 기사 양반, 그것은 바로 아무래도 필연적인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지요. 우리들은 겸손한 태도로 꾸준히 기다리지 않으면 안 돼요." K는 진행되고 있는 모든 일에는 아랑곳없이 잠들고 있었다. 처음 K는 침대 기둥 위에 왼팔을 얹고 그 위에 머리를 올려 놓고 있었는데, 그 머리가 미끄러져서 허공에 뜨더니 점점 아래로 수그러졌다. 왼팔로 몸을 의지하는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아서 K는 저도 모르게 오른팔을 이불 위에 뻗치고 지탱하려고 했으나 그 때 공교롭게도 이불 밑으로 내민 뷔르겔의 발을 잡아 버렸다. 뷔르겔은 그쪽을 쳐다보았는데 그것이 퍽 괴로우면서도 발을 오그리지는 않았다. 그때 한쪽 벽을 두서너 번 세게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K는 깜짝 놀라 눈을 뜨고 그쪽을 쳐다보았다. "측량 기사가 거기에 있나요?" 하고 묻는 소리가 들렸다. "있어요" 하고 뷔르겔은 대답하고 K에게서 발을 빼더니 갑자기 어린애처럼 제멋대로 난폭하게 침대에 드러누워 버렸다. "그러면 이제 이쪽으로 보내 주세요." 하고 벽쪽에서 목소리가 났다. 뷔르겔에 관해서, 또 뷔르겔이 혹시 아직도 K를 필요로 할지도 모른다는 건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 말투였다. "에를랑어의 목소린데." 하고 뷔르겔은 속삭이듯 말했다. 에를랑어가 옆방에 있다고 해서 놀라는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곧 그에게로 가보세요. 벌써 화내고 있을 테니까요. 될 수만 있으면 그의 마음을 진정시키도록 하세요. 그는 대체로 잘 자는 편이지만 우리들이 너무 큰 소리로 지껄였어요. 사실 어느 문제에 관해서 지껄일 때는 자기도 자신의 목소리를 억제할 수가 없으니까요. 자아, 좌우간 가 보세요. 당신은 아직도 잠에서 깨지 못한 모양이시군요. 가보세요., 이 이상 여기서 무슨 용건이 있으세요? 아니, 당신은 졸리다는 변명을 할 필요는 없어요. 그렇지 않아요. 체력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며, 이 한계라는 것이 다른 경우에도 의미가 크다는 것을 무시할 수는 없는 거이지요. 그런 일에 대해서는 아무도 책임을 질 수 없어요. 우주까지도 한계에 의해서 운행을 조정하고 균형을 유지하고 있으니까요. 다른 점에서는 흥미가 없긴 하지만 이 점에 있어서는 사실 우주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기막히게 잘 되어 있는 묘한 조직 체계지요. 자아, 가 보세요. 왜 당신이 나를 그렇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군요. 만일 당신이 이상 더 우물쭈물하시면, 에를랑어는 내게 덤벼들거요. 나는 되도록 그런 것을 피하고 싶으니까요. 자아, 어서 가보세요. 저쪽에서 무엇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지 누가 압니까? 여기서는 모든 일에 있어서 기회는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물론 당연한 일이지만 어떤 의미로는 너무나 커서 이용할 수 없는 기회라는 게 있지요. 세상에는 자기 자신과 부딪쳐서 형편없이 망가지고 꼼짝도 할 수 없는 사물이 상당히 많지요. 그것은 참 놀랄 만한 일이지요. 사실 지금 같으면 그래도 좀 잘 수 있을 것처럼 느껴져요. 물론 벌써 다섯 시고 곧 떠들기 시작할 테지만, 좌우간 당신만이라도 나가 주세요!" 깊은 잠에서 갑자기 깨워졌기 때문에 정신은 흐리멍텅하게 아득하고, 아무리 자도 모자랄 정도로 졸리기만 했을뿐더러 불편한 자세로 졸고 있었기 때문에 온통 전신이 쑤셨다. K는 오랫동안 일어설 엄두도 내지 못하고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눈을 무릎 위에 떨어뜨리고 있었다. 아무리 뷔르겔이 끊임없이 작별을 재촉했다고 하더라도 그를 방 밖으로 나가도록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다만 이 이상 이 방에 남아 있어도 아무 소용 없다고 느꼈기 때문에 천천히 방을 떠나려고 했다. 이 방이 그에게는 말할 수 없이 처량하게 보였다. 이 방이 이렇게 거칠고 쓸쓸하게 되어 버렸는지 그렇지 않으면 원래 그랬었는지, 그는 알 수 없었다. 여기서 두 번 다시 잠들 수는 없을 것이다. 이 확신이 일을 결정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약간 미소를 띄우면서 일어서서 의지할 것이라면 아무것이든 침대, 벽, 문 할 것 없이 마구 붙잡고, 벌써 훨씬 전에 뷔르겔에게 작별을 고했다는 듯이 인사도 하지 않고 나와 버렸다. 19 아마도 열려진 문 옆에 에를랑어가 서서 아는 체도 않았더라면, K는 그방 앞에 무심코 지나갔을는지도 모를 뻔했다. 아는 체했다는 것은 둘째 손가락으로 잠깐 한 번 신호를 보냈을 뿐이었다. 에를랑어는 벌써 완전히 출발 준비가 되어서 외투깃은 빈틈없이 목에 꼭 기고 위에까지 단추를 잠근 검은 털가죽 외투를 입고 있었다. 하인 하나가 마침 그에게 장갑을 내주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하인은 털가죽 모자를 아직도 손에 들고 있었다. "당신은 더 빨리 찾아왔어야 했어요." 하고 에를랑어는 말했다. K는 사과하려고 했다. 에를랑어는 지그시 눈을 감고 변명 같은 건 필요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잠시 후 그는 말을 꺼냈다. "중요한 이야기니까 잘 들으세요. 전에 프리다라는 여자가 술집에 근무하고 있었어요. 나는 그녀의 이름만 기억하고 있을 뿐이고, 그 본인은 잘 몰라요. 그녀가 무엇이든, 또 어떻게 되었나 하는 건 아무 상관도 없어요. 그 프리다가 가끔 클람에게 맥주를 가지고 왔어요. 지금 거기에는다른 여자가 근무하고 있는 모양이더군요. 물론 이 정도의 변화란 아무것도 아니지요. 아마도 누구에게나 다 마찬가지일 겁니다. 더군다나 클람에게 있어서는 더 말할 나위도 없어요. 그러나 어느 일이 커지면 커질수록-그리고 클람의 일은 물론 가장 큰 것이지만-그만큼 외부에 대해서 자기 자신을 지키는 힘은 줄어들어서 조금밖에 남지 않게 되는 것이지요. 그 결과 아주 하찮은 일의 대수롭지 않은 변화의 하나하나가 은근히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수도 있어요. 책상 위의 지극히 작은 변화, 거기에 훨씬 전부터 얼룩졌던 오점이 없지는 그런 일만 있어도 마음에 거리껴서 뒤숭숭해져요. 시중 드는 여자가 새로 왔을 때도 그렇지요, 그런데 물론 그 모든 일은-가령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있어서는 어떤 일에 방해가 될지는 모르지만-클람의 정신을 산란하게 할 염려는 없어요. 그것은 도무지 문제가 되지 않지요. 그래도 우리들은 될 수 있는 대로 가능한 한 클람을 이왕이면 기분 좋게 해줄 의무가 있어요. 따라서, 클람에게는 아무 방해가 되지 않는 일일지라도-대체로 그에게는 방해란 있을 수 없으니까-제삼자인 우리들 눈으로 봐서 혹시나 방해가 되지 않을가 의심나는 경우에는 될 수 있는 한 그것을 제거하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돼요. 그렇다고 해서 그를 위하거나, 그의 일을 위해서 우리들이 이런 방해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을 위해서 우리들의 양심과 안심을 위해서 제거하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그 프리다는 곧 술집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돼요. 아마도 프리다가 돌아간다는 바로 그 일로 말미암아 물의를 일으키게 될 거예요. 그런 경우에는 그 여자를 다시 돌려보내기로 하고 좌우간 지금은, 그녀는 술집으로 돌아가야만 해요. 내가 듣기에는 당신이 그녀와 동거하고 있다는데 그렇다면 그녀가 돌아가도록 힘써 주세요. 지금 개인적인 감정 같은 건 도무지 고려할 수 없어요. 이런 일은 설명할 필요도 없어요. 따라서 나는 더 이상 이 문제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겠어요. 또한 다음과 같은 것까지 말한다면 나로서는 벌써 필요 이상의 일을 하게 되는 셈이지요. 즉 당신이 이 조그마한 일을 인정해 주신다면 이것이 어떤 기회에 당시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어요. 이 말씀만 드리기로 하지요. 따라서 내가 당신에게 말할 것은 이것뿐이지요." 그는 작별 인사로 K를 향하여 고개를 끄덕거리고 하인이 내민 털가죽 모자를 쓰고는 그 하인을 거느리고, 약간 절름거리면서 빠르게 복도 저쪽으로 걸어가 버렸다. 여기서는 가끔 명령이 내리지마, 모두 퍽 손쉽게 수행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었다. 그러나 K는 이와 같이 손쉽게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기뻐하지 않았다. 명령이 프리다에게 관계된 일이고, 더군다나 상대방이 명령으로써 하는 소리가 K에게는 마치 조소와 같이 들린다는 것 때문만이 아니라, 무엇 그리고 클람의 일은 물론 가장 큰 것이지만__그만큼 외부에 대해서 자기 자신을 지키는 힘은 줄어들어서 조금밖에 남지 않게 되는 것이지요. 그 결과 아주 하찮은 일의 대수롭지 않은 변화의 하나한가 은근히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수도 있어요. 책상 위에 지극히 작은 변화, 거기에 훨씬 전부터 얼룩졌던 오점이 없어지는 그런 일만 있어도 마음에 거리껴서 뒤숭숭해져요. 시중 드는 여자가 새로 왔을 때도 그렇지요. 그런데 물론 그 모든 일은__가령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있어서는 어떤 일에 방해가 될지는 모르지만__클람의 정신을 산란하게 할 염려는 없어요. 그것은 도무지 문제가 되지 않지요. 그래도 우리들은 될 수 있는 대로 가능한 한 클람을 이왕이면 기분 좋게 해줄 의무가 있어요. 따라서, 클람에게는 아무 방해가 되지 않는 일일지라도__대체로 그에게는 방해란 있을 수 없으니까__제삼자인 우리들 눈으로 봐서 혹시나 방해가 되지 않을까 의심나는 경우에는 될 수 있는 한 그것을 제가하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돼요. 그렇다고 해서 그를 위하거나, 그의 일을 위해서 우리들이 이런 방해를 제가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그 프리다는 곧 술집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돼요. 아마도 프리다가 돌아간다는 바로 그 일을 말미암아 물의를 일으키게 될 거예요. 그런 경우에는 그 여자를 다시 돌려보내기로 하고 좌우간 지금은, 그녀는 술집으로 돌아가야만 해요. 내가 듣기에는 당신이 그녀와 동거하고 있다는데 그렇다면 그녀가 곧 돌아가도록 힘써 주세요. 지금 개인적인 감정 같은 건 도무지 고려할 수 없어요. 이런 일은 설명할 필요도 없어요. 따라서 나는 더 이상 이 문제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겟어요. 또한 다음과 같은 것까지 말한다면 나로서는 벌써 필요 이상의 일을 하게 되는 셈이지요. 즉 당신이 이 조그마한 이릉ㄹ 인정해 주신다면 이것이 어떤 기회에 당신에게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어요. 이 말씀만 드리기로 하지요. 따라서 내가 당신에게 말할 것은 이것뿐이지요." 그는 작별 인사로 K를 향하여 고개를 끄덕거리고 빠르게 복도 저쪽으로 걸어가 버렸다. 여기서는 가끔 명령이 내리지만, 모두 퍽 손쉽게 수행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었다. 그러나 K는 이와 같이 손쉽게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기뻐하지 않았다. 명령이 프리다에게 관계된 일이고, 더군다나 상대방이 명령으로써 하는 소리가 K에게는 마치 조소와 같이 들린다는 것 때문만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먼저 그 명령으로써 K는 자기의 모든 노력이 소용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명령은 불리한 것이나 유리한 것이나 모두 그의 머리위를 지나가 버렸다. 설사 유리한 명령이라고 할지라도 궁극에 가서는 불리한 햇심을 지니고 있으며, 어쨌든 모든 명령은 그의 머리 위를 지나가 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 명령에 간섭하거나 또는 완전히 그것을 침묵시켜서 자기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하기에는 너무나 신분이 낮았다. 에를랑어가 거절하고 있는데 나는 어떻게 할 작정인가? 그가 거절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에게 무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그 동안 여러 가지로 형편이 불리했던 것 이상으로 오늘 그에게 화근이 된 것은 피로였다는 것을 K는 잘 알고 있었다. 왜 자기의 몸을 믿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그가, 또 이런 확신이 없었더라면 결코 타향으로 출발했을 리도 만무했던 그가, 왜 불편했던 이삼 일간의 밤과 잠을 자지 못한 하룻밤을 견디어낼 수 가 없었던가? 왜 마침내 여기서 이처럼 몸을 이겨내지 못할 정도로 지쳐 버렸을까? 여기서는 아무도 지친 사람이 없고, 아니 누구나가 한결같이 지쳐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일을 방해하지는 않고 오히려 일을 촉진시키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리고 보면 이것은 독특한 피로고, K의 피로와는 전혀 딴 판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는 것 같았다. 여기서는 행복한 일을 하는 도중에도 피로가 있는 것 같았다. 밖으로 나타나는 것은 피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파괴할 수 없는 안정 상태이며 파괴할 수 없는 평화라는 것이다. 그리고 낮에 사람이 약간 지친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하루가 행복하게, 순조롭게 잘 진행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여기 양반들은 언제나 대낮만 갖고 있는 것이다." 하고 K는 중얼거렸다. 이 생각은, 아직 다섯 시라고 하는데 벌써 복도의 양쪽이 활기를 띄기 시작한 것과 참으로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방마다 이처럼 요란스럽게 지껄이는 소린는 무엇인지 극도로 기쁜 일이나 있는 성싶었다. 그것은 소풍의 준비를 하고 있는 어린이들의 환성처럼 들리기도 하고 닭장에서 닭이 일제히 날개를 치고 날아 올라가려고 하는 것처럼, 즉 동이 트는 아침과 완전히 일치하는 기쁨처럼 들렸다. 어디선지 신사 한 사람이 닭의 울음 소리를 흉내 내었다. 복도에는 물론 아직도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으나 문들은 벌써 움직이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문이 잠깐씩 계속 열리는가 하면 곧 다시 닫혀지고, 이리하여 복도는 문을 여닫는 소리로 삐걱거리고 있었다. 가끔 K는 또 천장까지 닿지 않는 벽 위에 틈새로 아침이라 손질하지 않아서 흩어진 머리가 불쑥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멀리서 서류를 실은 수레를 밀고 하인 한 사람이 천천히 다가왔다. 또 한 사람의 하인이 수레와 나란히 걸어가면서 목록을 손에 들고 있었는데, 그걸 가지고 문의 번호와 서류의 번호를 맞추어 보는 모양이었다. 수레는 거의 모든 문 앞에서 섰다. 그리곤 대개의 문이 열려지고 관게 서류는__가끔 그것은 그저 한 장의 종이쪽지인 경우도 있었지만__방안에 넣어졌다. 그럴 때면 방안에서 복도를 향하여 짧은 말소리가 들렸는데, 아마 하인이 무엇인지 책망을 하고 있는 듯했다. 문이 닫힌 채로 있을 때면 서류는 조심스럽게 문지방 위에 쌓였다. 이런 경우에 서류는 이미 배달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근처의 문의 움직임은 그치지 않고, 오히려 더 심해지는 것처럼 K에게는 느껴졌다. 그것은 아마도 다른 방에 있는 사람들이__왜 그런지 이유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__거기 문지방 위에 여전히 쌓여진 그 서류를 은근히 엿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 방 사람들이 문을 열기만 하면 손쉽게 서류를 손에 넣을 수가 있는데 왜 열지 않는지, 그들에게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 서류가 나중까지 치워지지 않고 있으면, 마지막에는 다른 사람에게 할당되는 일이 없다고 장담할 수도 없었다. 그 외의 사람들은 지금도 가끔 살펴보면서 서류가 여전히 문지방 위에 있는가, 따라서 아직도 자기네들에게 그 서류가 분배될 희망이 있는가, 그 점을 확인하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 놓아 둔 서류들은 대개 큰 묶음으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K는 이것들을 일종의 자만심이나 악의에서, 또는 동시에 동료를 자극시키려는 감정에서 일시적으로 내버려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로 하여금 이 가정을 확신시키는 것은, 가끔__그것은 으레 그가 똑바로 쳐다보지 않을 때였지만__오랫동안 실컷 구경거리가 된 그 자루가 갑자기 방안으로 끌려 들어가고 그 후에 문이 다시 전과 같이 꼭 닫혀서 움직이지 않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자 주위의 문도 이와 같이 끊임없는 매혹의 대상이 드디어 치워진 것에 대해서 실망했는지, 그렇지 않으면 만족했는지 어쨌든 조용해지고 그러고나서 다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K는 그런 모든 것을 호기심에서 뿐만이 아니라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거의 자기가 이 활동의 한복판에 서 있는 것 같아서, 저쪽을 쳐다보고__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다고는 하지만__하인들의 뒤를 따라 걸어가면서 그들이 배분하는 일을 쳐다보았다. 물론 몇 번이나 하인들은 고개를 수그리고 입술을 삐죽 내밀며 매서운 눈초리로 그를 돌아다보곤 하였다. 배분의 일은 앞으로 가면 갈수록 순조로이 진행되지 않아서 목록이 전혀 드어맞지 않기도 하고, 또 하인들이 서류의 구별을 잘하지 못하거나 혹은 방안의 사람들이 다른 이유로써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다. 좌우간 한번 배분한 것을 돌려보내는 일도 상당히 있는 모양이고, 그러면 다시 수레가 되돌아와서 믄틈으로 서류 반환의 담판을 했다. 담판 그 자체가 대단히 까다로운 것이었다. 따라서 반환을 둘러싸고 옥신각신하기 시작하면 전에는 굉장히 활기를 띠며 움직이고 있던 문도 이번에는 요지부동으로 잠겨 버려서 그런 것은 이제 아예 듣고 싶지도 않다는 식으로 보일 때가 가끔 있었다. 사태가 이쯤 되고 보면 그 때부터 정말로 까다로운 일이 시작되는 것이다. 서류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초조해서, 방안에서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기도 하고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는가 하면 문틈으로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복도를 향해 일정한 서류 번호를 소ㄹ기도 했다. 그럴 대 수레는 그대로 내버려진 채 하인 한 사람은 흥분해서 날뛰는 사람을 타이르려고 정신이 없었으며, 또 한 사람은 닫혀진 문 앞에서 반환 문제로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두 사람 다 부척 고생하고 있었다. 흥분한 사람을 타이르려고 하면 한층 더 흥분만 하고 하인의 실속 없는 말에 대해서는 전혀 귀도 기울이지 않았다. 그에게는 위안의 말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서류가 필요한 것이다. 언젠가 그런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 세숫대야에 가득찬 물을 문 위 천장 사이에 뚫린 빈틈으로 하인에게 뒤집어 씌웠다. 그리고 또 다른 하인은 분명히 계급이 하나 위였는데 더욱 무서운 꼴을 당했다. 일반적으로 상대방이 협상을 시작하려고 하면 거기에는 지극히 구체적이고 사무적인 타협을 하게 된다. 그럴 때면 하인은 그 목록을, 당사자는 자기각서와 동시에 자기가 반환해야 되는 해당 서류를 각각 증거물로써 제시한다. 그런데 당사자 쪽에서는 반환할 서류를 손에 꼭 쥐고 있어서, 끊임없이 하인이 보려고 애쓸 때도 서류의 어느 부분도 보이지 않도록 경계하고 있다. 하인은 그럴 때면 또 새로운 증거물을 가지로 수레 옆으로__스레는 약간 경사진 복도 위에서 자꾸만 저절로 조금씩 앞으로 굴러갔는데__뛰어가기도 하고, 또는 서류를 요구하고 있는 사람에게로 가서 이번에는 지금까지의 서류를 들고 있던 자의 항의와는 또 다른 정반대의 항의를 듣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 담판은 대단히 오래 걸렸으나 때로는 의견이 일치해서서류의 일부를 제출하기도 하고, 또는 그 대신으로 다른 서류를 받기도 했다. 즉 서류의 행방이 단지 서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또한 요구된 서류를 모조리 선뜻 반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도__하인의 증명에 의해서 궁지에 빠졌든, 또는 끊임없는 타협에 싫증이 났든지간에__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럴 때면 서류를 하인에게 내주지 않고 갑자기 결심한 듯 그것을 멀리 복도로 내동댕이쳐 버리곤 하였다. 그래서 동여맸던 끈이 풀어지고 종이 쪽지가 날아가 버리면 하인들은 그것을 제대로 주워 모으느라고 이만저만 애를 쓰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것도 하인이 반환해 달라고 요구했는데도 대답을 받지 못하는 경우와 비교하면 훨씬 나은 편이었다. 대답도 듣지 못하는 경우에 있어서는 하인은 닫혀져 있는 문 앞에 서서, 탄원하고, 맹세하고, 목록을 든 손을 떨면서 또 관청의 규칙을 인용하기도 하지마, 그런 것은 모두 소용이 없어서 방안에서는 한 마디 말도 들려오지 않는 것이다. 분명히 하인은 허가 없이 방안으로 들어갈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은 않은 듯했다. 그럴 때면 그 우수한 하인이라 할지라도 자제하는 마음을 잃어버렸다. 그는 수레 옆으로 가서 서류 위에 걸터앉아 이마의 땀을 닦고, 잠시 동안은 하염없이 다리만 흔들 뿐이었다. 이런 상테에 대해서 굉장한 관심을 가진 주위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으며 조용하게 가만히 있는 문은 하나도 없었다. 거기다가 위에 있는 흉벽에는 천으로 거의 얼굴 전체를 가린 사람들이 잠시도 같은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쭉 계속해서 기묘하게도 일의 경과를 주시하고 있었다. K는 이렇게 불안스러운 소동의 도가니 속에서도 뷔르겔의 방이 그 동안 쭉 닫혀 있었다는 사실과, 두 사람의 하인은 벌써 복도의 이 부분을 지나갔는데도 불고하고 뷔르겔에게는 서류가 한장도 배달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아마도 뷔르겔은 아직도 자고 있을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시끄러운 속에서도 자고 있으니까 그것은 참 살이 찔 것 같은 수면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왜 그는 서류를 받지 못했을까? 이렇게 그냥 지나쳐 버린 방은 소수의 방 더군다나 사람이 없다고 추측되는 방뿐이었다. 그런데 한편 에를랑어는 날이 새기 전에 그 손님에게서 내쫓긴 셈이었다. 이런 일은 에를랑어의 냉정하고도 꼼꼼한 성격에는 어울리지도 않았으나, 그가 문지방에서 K를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되었던 사실이 그래도 그 점을 암시하고 있었다. 그런 부차적인 걸 이모저모로 관찰한다음 K는 곧 다시 심부름꾼 하인에게로 주의를 돌렸다. 언젠가 K가 일반 하인들에 관해서 들은 이야기, 즉 그들의 무위 무능이라든지 편안한 생활을 보내는 것, 거만스러운 태도에 관해서 들은 이야기는 적어도 이 하인에게만은 해당되지 않았다. 확실히 하인들 사이에도 예외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으면__이쪽이 더 가능성이 많은 것 같은데__그들 사이에는 여러 가지 부류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K가 느낀 바로는 여기에는 참으로 많은 부류가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 하인의 고집은 아주 그의 마음에 들었다. 이처럼 작고 완고한 방들과의 싸움에 있어서__K는 방안에서 사는 사람들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이 종종 그 자체와의 투쟁인 것처럼 느껴졌다__이 하인은 한 걸음도 양보하지 않았다. 물론 그는 지쳐서 녹초가 되었지만__어떤 사람인들 녹초가 되지 않는단 말인가?__그러나 곧 원기를 다시 정복도어야 할 문을 향해서 걸어갔다. 그런데 그는 두 번 그리고 세 번이나 격퇴당해 버렸는데__물론 대단히 간단한 방법으로, 즉 그 짓궂은 침묵으로 말미암아 지쳐 버린 듯 다른 문을 향하여 갔다가 잠시 후에 문제의 문으로 되돌아와서 일부러 큰 목소리로 다른 하인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마치 자기는 생각이 달라져서 방안 사람에게서는 아무것도 빼앗지 않는 것이 옳을 뿐더러, 오히려 그에게 더 많이 나누어 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는 듯이 그 닫혀진 문의 문지방 위에 서류를 쌓기 시작했다. 그런 다음에 그 하인은 앞으로 걸어갔는데 여전히 문을 주목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방안 사람이__곧 대개는 그렇게 되었지만__서류를 끌어들이려고 살그머니 문을 열면 하인은 펄쩍뛰어서 어느새 방 앞에 도달하여 발끝을 문과 기둥 사이에 집어넣고 방안에 있는 사람이 적어도 자기와 얼굴을 마주 대하여 담판히기를 강요했다. 이런 것은 대개 상당히 만족할 만한 결과를 가져왔다. 또 이런 것이 잘 성공하지 않거나, 또는 어는 문에서는 옳은 방법처럼 보이지 않을 때에는, 그는 다른 수단을 써서 시도해 보았다. 예를 들면 그는 그럴 때면 서류를 요구하는 사람만을 한결같이 상대했다. 동시에 그는 전혀 아무 가치도 없는 보조자, 즉 언제나 다만 기계적으로 일하는 또 한 사람의 하인을 옆으로 젖혀 놓고, 남몰래 속삭이는 목소리로 머리를 깊숙이 방에 처넣고 스스로 방안 사람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아무튼 그는 약속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다음 분배 때에는 다른 친구에게 응분의 벌을 주겠다고 장담하는 것 같았다. 적어도 그는 몇번이고 상대방의 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피곤하지만 그래도 가능한 한의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다고 하지만 한두 번은 물론 모든 시도를 포기해 버리는 경우도 있기는 했지만 그럴 때도 K는 그것이 단지 표면상으로 포기하는 것이거나 또는 적어도 무엇인지 그럴 듯한 이유가 있는 포기라는 것을 믿었다. 왜냐하면 하인은 조용히 걸어나갔고 이웃 사람들의 소동을 조금도 거리낌없이 참아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가 가끔 오랫동안 눈을 감고 있는 것으로 이 소동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방안 사람의 마음은 점점 가라앉았다. 그의 부르짖음은 마치 끊임없는 어린애의 울음 소리가 점점 간격을 두고 흐느껴 우는 소리로 옮겨가는 거와 비슷했다. 그러나 아주 조용해진 후에도 몇 번씩의 흐느낌이 간간이 들렸고 그 문을 열고 닫는 소리가 났다. 좌우간 여기서 하인이 취한 태도는 완전히 옳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리하여 결국 마지막에는 단지 한 사람, 아무래도 만족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만이 남았다. 오랫동안 그는 잠자코 있었는데, 그것은 단지 숨을 돌리기 위한 것이었다. 드디어 갑자기 침묵을 깨뜨리고 전보다는 한층 더 심하게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왜 그 사람이 그렇게 외치고 호소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아마도 그것은 서류 분배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그 동안에 하인은 그럭저럭 일을 끝마쳤다. 다만 한 장의 서류, 그것도 한 장의 종이쪽지 로 된 메모 조각에 불과했지만 그것만이 보조하는 사람의 잘못으로 수레 속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것을 누구에게 분배할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혹시 그것은 내 서류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이 K의 머릿속을 번갯불처럼 스쳐갔다. 면장은 늘 이런 지극히 드문 경우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 자신이 사실은 그런 가정을 대수롭지 않은 웃음거리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결국 K는 그 쪽지를 심상치 않게 한참 동안 들여다보고 있는 하인에게로 가까이 가려고 했다. 그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 하인은 K의 호의에 대해서 불손한 태도로 나왔다. 지금까지 아무리 괴로운 일을 하는 도중에서도 짓궂어선지 조바심에선지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돌려서 K 쪽을 쳐다보곤 하였다. 분배가 끝난 지금에야 비로소 그는 K를 좀 잊은 것 같았다. 대체로 그가 그 밖의 모든 일에 무관심하게 되어 버렸다고 하지만 그가 극도로 지친 것을 생각하면 그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는 지금 그 종이쪽지에 대해서도 그다지 마음을 쓰지 않았다. 따라서 그는 그 종이쪽지를 읽어 보지도 않았으며, 단지 겉으로만 그런 체하고 있었을 따름이다. 여기 복도에서 그 쪽지를 분배해주면, 아마도 모든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해 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다른 결심을 했다. 그는 분배에 관해서는 벌써 싫증이 났다. 그는 둘째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동반자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신호하더니__K는 아직도 그의 옆에서 상당히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__그 쪽지를 짝짝 찢어서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이것은 분명 K가 이 곳 사무소의 수행에서 처음 목격한 규칙 위반이었다. 아무튼 K가 규칙 위빈이 무엇인지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했을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가령 그것이 규칙 위반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용서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었다. 여기를 지배하고 있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보아 하인이 아무 과실 없이 일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쌓이고 쌓인 불만이 언젠가 한번은 터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작은 쪽지로 찢음으로써 불만이 쌓인 마음을 풀었다면, 그것은 그래도 순진한 행동이었다. 어떤 방법으로도 가라앉힐 수 없는 방안 사람의 목소리는 여전히 복도에 쨍쨍 울리고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하인은 다른 점에서는 그다지 사이가 좋지 못했지만, 이 소음에 대해서는 완전히 의견이 일치되는 모야이었다. 그 사람은 점점 단지 자기한테 말을 걸거나 자깅에게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격려해 주는 사람들을 위해서 시끄럽게 고함을 지르는 역활을 맡은 것만 같았다. 그러나 하인은 지금 그런 일을 조금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다. 그는 자기 일을 다 끝마쳤다. 그는 수레의 손잡이를 또 한 사람의 하인에게 잡으라고 재촉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수레를 끌고 출발했는데 다만 전보다는 마음이 흡족하 듯 그리고 수레가 그들 앞에서 튀어오를 정도로 빨리 밀고 갔다. 두 사람은 단 한번 몸을 움츠리고 뒤를 돌아다보았을 뿐이었다. 그것은 끊임없이 고함지르고 있었던 그 사람이__마침 그 문 근처를 K가 헤매고 돌아다녔는데, 사실 그것은 스 신사가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알고 싶어서였다__고함지르는 것만으로 충분치 못해서 아마도 미리 벨의 단추를 발견해 두었던지 이번에는 고함지르는 것을 그만두고 그 벨을__수고를 덜게 된 것들 대단히 기뻐하면서 쉴새없이__울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른 방에서도 왁자지껄 떠들기 시작했다. 그처럼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소리는 찬성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그 사람은 모두들 훨씬 전부터 하고 싶은 생각은 간절했으나 왜 그런지 망설이고 있었던 일을 해치운 모양이었다. 그 사람이 벨을 울린 것은 사환들, 아니 어쩌면 프리다를 부르려고 한 것이 아니었을까? 얼마든지 벨을 울리라고 하지. 그런데 프리다는 예레미아스의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 수건을 얹어 주느라고 무척이나 분주했다. 만일 예레미아스가 병이 다 나았다고 하더라도 프리다는 틈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때에는 그의 팔에 안겨 있을 테니까. 그런데 벨이 울리는 소리는 바로 효과가 있었다. 벌써 멀리서부터 신사관의 주인이 검은 옷을 입고 평소처럼 단정하게 단추를 꿰고, 바쁜 걸음으로 가까이 왔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위엄은 잊고 있는 것 같았다. 그처럼 바쁘게 달려왔다. 그는 마치 자기가 큰 불행 때문에 불리어 왔고, 자기는 그 불행을 붙들어서 가슴에 꼭 누르고 숨막히게 하기 위해서 왔다고 하려는 듯이, 팔을 반쯤 벌리고 있었다. 그리고 벨의 소리가 조금이라도 고르지 못하게 울릴 때마다, 약간 펄쩍뛰면서 바쁜 걸음을 한 층 더 재촉하는 듯 보였다. 그러자 그의 뒤쪽 멀리에 안주인도 나타났다. 그녀도 팔을 벌리고 달려오고 있었는데, 그 걸음걸이는 종종걸음에다가 멋까지 부리고 있었다. K는 생각하였다. 그녀는 늦게 올 것이고, 그 동안에 남편이 필요한 일을 전부 해치워 버릴 것이라고. K는 주인이 뛰어가는데 자리를 비켜 주기 위해서 벽에 바짝 붙어 섰다. 그런데 주인은 K를 목료로 달려온 것처럼 바로 K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거기에 또 안주인도 뒤쫓아와서 서로 K에게 비난을 퍼붓는 것이었다. K는 아무튼 놀라고 당황해서 이 비난이 무슨 소린지 이해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그 신사의 벨소리까지 합쳐서 지금은 필요하다느니보다도 단지 장난삼아서 흥에 겨운 나머지 다른 벨도 일제히 울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자기 죄를 자세히 안다는 것은 K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에 K는 주인이 자기를 껴안다시피 하면서 이 소동을 등지고 함께 떠나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 아주 달갑게 동의했다. 사실 소동은 더 커졌다. 이제 그들이 쉴새없이 말을 걸기 때문에 전혀 돌아다보지 더욱이 다른 쪽에서 안주인이 쉴새없이 말을 걸기 때문에 전혀 돌아다보지도 못했다__문이란 문은 모조리 확짝 열어젖뜨리고, 복도는 갑자기 활기를 띠기 시작하여. 마치 시끄럽고 좁은 골목길에서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해지는 것처럼 되어 갔다. 한편 그들 앞에 있는 문은 일분 일초라도 빨리 K가 지나가 주기를 초조한 듯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면 방안의 사람들을 밖으로 내보낼 수 있겠는데 하는 표정이었다. 이런 광경 속에서 마치 승리를 축하하려는 듯이 벨이 연달아서 울리고 거기다가 종까지 쳐서 더 시끄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K는 간신히__그들을 벌써 썰매가 두서너 대 기다리고 있는 조용하고 눈으로 하얗게 덮인 안뜰에까지 되돌아왔다__조금씩 지금 무엇이 문제가 되어 있는가를 알 수 있었다. 주인이나 안주인은 K가 어떻게 그런 일을 감행할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대체 제가 무엇을 했단 말인가요?" 하고 K는 질문했으나 오랫동안 똑똑한 대답을 얻을 수 없었다. 두 사람에게는 K의 죄가 너무나 명백했기 때문에 K가 진심으로 묻고 있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형편이었으니까, K는 모든 실정을 납득하는 데 상당히 시간이 걸렸다. 두 사람의 이야기의 요점은 다음과 같았다. K가 복도에 나타난 것이 옳지 못했다. 도대체 그로서는 기껏해야 술집에 들어가는 정도로 만족해야 한다. 그것조차도 동정해서 그럴 수 있는 것이며, 금지된 것을 거역하는 일이다. 만일 K가 어느 신사에게 소환당하면, 물론 소환된 장소로 출두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항상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의식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__K도 보통 사람의 상식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 아닌가?__즉 K 자신은 지금 있어서는 안 될 장소에 있다는 것과 단지 어느 신사가 공무 집행상 그것이 필요하고 또 허락되었으니까, 할 수 없이 K를 거기로 소환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K는 신문을 받기 위하여 빨리 출두해야 할 것이고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돌아가야만 한다. 대체 K가 그 곳 복도에 있었을 때 자기는 이런 장소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자각하지 못했단 말인가? 만일 그렇게 자각했다면, 어째서 거기서 마치 목장의 짐승처럼 헤매고 다닐 수 있었을까? 분명 K는 밤의 신문에 소환당하지 않았던가? 왜 밤의 신문을 실시하게 되는지 모르는가? 밤의 신문이란__여기서 K는 그 뜻을 새삼스럽게 설명받았다__성 안 사람들은 낮에 진정인들을 보면 견딜 수가 없으니까, 빨리 밤에 인공의 불빛 아래서 그들을 신문할 뿐더러 신문 후에는 모든 추악한 것을 잠 속에서 잊어버리자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런데 K의 행동을 보면, 그러한 모든 대책을 비웃어 버린 거나 마찬가지다. 귀신이라도 새벽녁에는 자취를 감춘다고 하는데 K 두 손을 주머니 속에 찌른 채 버티고 서 있었다. 마치 모든 방안의 사람들이 이 복도 전체오 함께 물러가기를 바라는 듯이 몸을 비키려고도 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이런 일도__그것을 K가 확신해도 좋지만__만일 그것이 가능하다면 틀림없이 실현되었을 것이다. 어쨌든 신사들의 온정은 한이 없으니까 아무도 K를 추방하지 않을 것이며, 또 결국 K가 떠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명백한 일도 입 밖에 내지 않을 것이다. 누구 하나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K가 있는 동안 그들은 흥분해서 몸부림칠 것이며, 또 그들이 좋아하는 아침 시간을 헛되이 해도 결코 그를 쫓아 버리거나 가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K에 대해서 단호한 수단을 취하는 대신에, 그들은 고뇌를 선택할 것이다. 물론 그런 경우 한 가닥의 희망도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즉 신사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결국 K도 이 명백한 사실을 틀림없이 점점 인식하게 되리라. 그리괴 우리 신사들도 괴롭기 한이 없지만 K 자신도 새벽부터 이런 복도에서 얼토당토않게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모으고 서 있는 것이 견딜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울 것이다'라고 그러나 그것은 헛된 희망이다. 어떤 외경에 의해서도 완화되지 않는, 완고하고 감각이 없는 마음이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지 못할 뿐더러, 그들은 겸손하고 친절하니까, 그런 일을 알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저 불쌍한 곤충인 밤나방도 날이 새면 조용한 방구석을 찾고 몸을 납작하게 움츠리며 숨어 있다가 나중에는 사라져 버리고 싶어하지 않는가? 그렇게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K는 그 반대다. K는 거기 사람들의 눈에 가장 잘 띄는 곳에 우뚝 서서 만일에 그것으로써 날이 새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면 틀림없이 그렇게 하려고 했을 것이다. 물론 K는 유감스럽게도 그것을 지체시키고 곤란하게 만들 수는 있다. K는 거기서 서류의 분배를 보았을 것이다. 가까운 관계가 이외는 아무도 봐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 집의 주인이나 안주인인 그들도 봐서는 안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들도 서류 분배에 관해서는 단지 암시적으로 이야기하는 소리를__예를 들면 오늘 그 하인들에게서 들었던 것처럼__들었을 뿐이다. 대체 K는 그 서류분배가 얼마나 곤란을 겪으면서 이루어졌는지 그 점을 깨닫지 못했단 말인가? 아무튼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좌우간 그 신사들의 한 사람 한 사람은 오직 일에만 봉사하고 있는 것이며, 결코 자기 한 개인의 이익 같은 건 염두에도 두고 있지 않다. 그래서 그들은 전력을 다하여 기본적이고 중요한 일인 서류 분배가 빠르고 순조롭게 틀리지 않고 이루어지도록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K도 약간 예감했겠지만, 모든 곤란이 생기는 주요한 원인은 분배가 거의 닫혀져 버린 문 앞에서__그들이 서로 직접 교섭하는 가능성조차 없이__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에 있는 것이다. 사실 하인에게 중간 역활을 시키면 몇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을 뿐더러 중간 역활을 하는 방법에 말썽이 안 생길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에게나 하인들에게나를 막론하고 늘 두통거리며, 아마도 이 후의 일에도 해로운 결과를 초래하고 말 것이다. 이것이 만일 그들끼리 서로 직접 교섭한다면 당장에 서로 이해가 성립되겠지만, 왜 그들이 서로 직접 교섭할 수 없는가고 묻는 것을 보니, K도 아직도 소식 불통인가? 이런 사람은 처음 보겠다고 안주인이 말하자 주인도 아주 동감이라고 맞장구쳤다. 지금까지 자기들은 여려 고집쟁이들과 접촉해 왔지만 말이다. 보통 때 같으면 입 밖에 낼 수 없는 일까지도 K에게는 노골적으로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K는 가장 필요한 일까지도 모르고 지나갈 테니까. 그래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기로 한다. 당신이 있기 때문에, 오직 그 이유만으로 그들은 그 방에서 나올 수 없었더 것이다. 아무튼 그들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자기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뵈는 것을 참 부끄러워하고 또 동시에 그것은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결과가 되니까. 분명히 그들은 아무리 근사한 옷차림을 했떠라도 이처럼 벌거숭이와 같은 복장으로소는 도저히 사람 앞에 자설 수 없다고 느끼는 모양이다. 그러면 왜 그들이 그렇게 부끄러워하는가, 그 이유를 설명하기는 대단히 어려우나 아마 그들은__영원한 일꾼인__오로지 그들이 잠을 잤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겸연쩍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보다도 그들은 자기의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 이상으로, 낯선 사람을 보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모양이다. 진정인이라는 견딜 수 없는 군상을 자기네들 눈으로 쳐다보는 것을, 그들은 불행중 다행으로 간신히 야간에 신문하는 것으로써 그럭저럭 면했는데, 이제 아침이 되어 느닷없이 노출된 모습으로 진정인 군상을 새삼스럽게 자기제들의 눈앞에 다시 대하기를 강요받는 것은 도저히 견디어낼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일은 공교롭게도 그들의 성미에 맞지 않는다. 그 사정을 고려해 주지 않다니 대체 어떤 인간일까! 그것은 분명 K와 같은 인간입에 틀림없다. 율법이건, 인간다운 고려와 동정이건, 모든 것을 그렇게 우둔한 무관심과 잠에 취한 눈초리로 무시해 버리는 사람, 서류 분배를 거의 불가능하게 하면서도 이 집의 명예를 떨어뜨리는 것쯤은 아무렇게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리고 그런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일을 일으키고도 태연한 사람이다! 사실 절망 상태에 빠진 그 신사들이 스스로 몸을 보호하기 시작하고 보통 사람 같으면 상상도 못할 만큼의 자제심을 가지고 마침내 벨에 손을 대고 다른 방법으로는 요지 부동의 K를 쫓기 위해서 구원을 청하다니! 대체 신사라는 양반들이 구원을 청했다는 일은 정말 여태까지 한번도 없었던 일이다. 그런 눈치를 챘으면 주인 내외는 물론이요, 종업원 전체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달려왔을 텐데. 그러나 그들은 가령 조금만 도와주고 곧 가 버린다고 하더라도. 부르지도 않았는데 아침에 무턱대고 신사들 앞에 나타날 용기가 없었다. K에 대해서 분노한 나머지 몸부림치면서, 스스로의 힘이 없는 것을 절망하면서 그들을 여기 복도의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사실 결코 기대하지도 않았던 벨소리가 일종의 구원이 되었던 것이다. 하여튼 최악의 상태는 지나갔다! K에게서 마침내 해방된 그 사람들의 기뻐하는 모습을 한번 K가 보았으면 좋을 텐데! 그러나 K에게는 물론 아직도 일이 끝난 것이 아니다. K는 자기가 여기서 저지른 일에 대해서 반드시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은 이렇게 이야기하는 사이에 술집 안에까지 들어와 버렸다. 주인이 대단히 화를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K를 여기까지 끌고 왔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아마도 주인은 K가 피곤하니까 우선 당장 이 건물을 나가게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을는지도 모르겠다. 앉으라고 권하는 것을 기다리지도 않고 K는 다짜고짜 맥주통 위에 앉아서 마치 가라앉다시피 녹초가 되어 버렸다. 그 곳 어두침침한 곳에 있는 것이 K에게는 기분이 조았다. 그 넓은 장소에는 단지 약한 전등불 하나만이 맥주통 위에 앉아서 마치 가라앉다시피 녹초가 되어 버렸다. 그 곳 어두침침한 곳에 있는 것이 K에게는 기분이 좋았다. 그 넓은 장소에는 단지 약한 전등불 하나만이 맥주톡 꼭지 위를 비추고 있을 뿐이었다. 바깥은 아직 캄캄 절벽이었고 눈보라가 치는 모양이었다. 이런 따뜻한 곳에 있는 것을 고맙게 여기고 쫓겨나지 않도록 조신해야겠다. 주인 내외는 여전히 K 앞에 서 있었다. 아직도 K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을 염려하는 듯이 그리고 전혀 신용할 수 없는 K인지라 갑자기 일어나서 복도로 달려나가는 경우조차 있을 수 있다는 듯이. 그러나 그들 자신도, 밤중에 놀란 데다 약간은 일찍 일어났기 때문에 피곤했다. 특히 안주인 쪽이 더 그랬다. 그녀는 명주처럼 흐느적거리는 갈색의 옷을__바삐 서두르면서 어디서 그런 옷을 끄집어냈는지 모르겠다__입고 있었다. 스커트는 폭이 좀 넓고 단추를 잠근 것이나 끈을 잡아맨 것이나 약간 고르지 못했다. 그리고 고개가 꺾어진 것처럼 남편 어깨에 기대고 고운 손수건으로 눈을 가볍게 두드리면서 그 사이사이로 어린애처럼 짓궂은 눈초리로 K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이 부부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K는 말했다. 그들이 지금 자기에게 해준 이야기는 모두 처음 듣는 이야기뿐이다. 물론 그런 일은 전혀 알지 못했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복도에 있지는 않았다. 사실 거기서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었다. 거기다가 결코 누구를 괴롭히려고 한 것은 아니고, 다만 지쳤기 때문에 그렇게 되어 버렸다. 따라서 그들이 저 불쾌한 장면에 결말을 짓게 해 준 데 대해서는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한 마디 변명하는 기회를 준다면 이상 다행한 일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밖에는 K의 행동에 대한 오해를 막는 방법이란 없을 것이니까. 좌우간 그렇게 된 것은 단지 피곤했던 탓이고, 그 밖에는 아무것도 핑계를 댈 것이 없다. 그리고 이 피곤은 그가 아직도 신문당하는 긴장에 익숙하지 못한 데서 기인한다. 사실 그는 이 땅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좌우간 앞으로 그런 일에 다소 경험을 쌓으면 틀림없이 그런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신문을 너무나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나, 그것은 그 자체로선는 하등의 결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는 신문을 두 번 계속해서 받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한 번은 뷔르겔의 신문이고, 또 한 번은 에를랑어의 신문 이었다. K는 그 중에서도 뷔르겔의 신문이고, 또 한 번은 에를랑어의 신문 이었다. K는 그 중에서도 뷔르겔에게 신문받을 때에는 기진맥진했다. 엘를랑어에게 신문받을 때에는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으며, 그는 단지 K에게 자그마한 일을 해 달라고 부탁했을 뿐이다. 그러나 두 번의 신문이 한꺼번에 닥쳐왔기 때문에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한 몸에 두 지게를 지지 못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아마도 일이 그렇게 몰려 닥치면 다른 사람, 주인이라고 할지라도 손을 들고 말았을 것이다. 두 번째 신문에서 그는 그야말로 비틀거리면서 나왔다. 말하자면 술취한 상태와 똑같았다. 아무튼 그는 생전 처음으로 그 두 분을 뵙고 귀하신 음성을 듣고 답변까지 하지 않으면 안 되었으니까. 그러나 그는 대체로 좋은 결과로 끝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그 후에 그런 불행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 먼저 일어난 사건을 이해해 준다면 아무도 그에게 책임을 전가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다만 유감스럽게도 에를랑어와 뷔르겔밖에는 그의 그런 상태를 알고 있질 못했다. 확실히 그 두 사람은 까다로운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힘을 써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에를랑어는 성으로 가려고 했음인지 신문 후에 곧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또 뷔르겔은 그 신문으로 말미암아 지쳤던지__그러므로 K에게 꾸준히 견디어내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한 주문이 아니었던가?__나중에는 꼬박 잠이 들어 버려 서류 분배중에도 자고 있었을 정도였다. 만일 K도 뷔르겔처럼 잘 수 있었더라면, 그도 기꺼이 그 기회를 이용해서 그렇게 했을 뿐더러, 금지되어 있는 시찰 같은 건 깨끗이 단념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실지로 아무것도 보지 못했을 만큼 잠에 취해 있었으므로 단념하기는 문제 없이 쉬웠을 것이다. 따라서 신경괌민한 그들이라 할지라도 K 앞에 서슴지 않고 몸을 나타냈어도 좋았을 것이다. 두 가지 신문에 대해서 언급한 것과__에를랑어의 신문까지 넣어서__또 K가 경의를 표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한 것이 주인에게 호감을 준 모양이었다. 주인은 벌써 K의 소원을, 즉 멕주통 위에 판자를 깔고 거기서 적어도 적어도 새벽녘까지 재워 주었으면 하는 소원을 들어 주려고까지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안주인은 분명히 반대 의견이었다. 그녀는 그 때 비로소 자기가 옷을 단정치 못하게 입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겸연쩍어서 어색하게 여기저기 잡아당기며 고쳐 보기도 하고, 몇 번이나 되풀이하며 고개를 살살 내둘렀다. 집안 청소에 대한 과거부터의 싸움이 다시 터지려고 고개를 살살 내둘렀다.집안 청소에 대한 과거부터의 싸움이 다시 터지려고 하는 모양이었다. 지금 이렇게까지 피곤한 상태에 있는 K에게 이 부부간의 이야기는 퍽 중요한 뜻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 다시 여기서 쫓겨난다는 것은 지금까지 체험해 온 것 전부보다도 훨씬 더 불행한 일처럼 느껴졌다. 그런 일이 있어서 될 말인가! 가령 주인 내외가 둘이서 합세해서 반대한다고 하더라도 안 될 말이다. K는 맥주통 위에 쭈구리고 앉아서 경과가 어떻게 되나 하고 두 사람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자 안주인은 K가 오래 전부터 눈치채고 있었던 그런 히스테리를 부리면서 갑자기 옆으로 무러서기가 무섭게__그녀는 이미 남편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던 모야이었다__이렇게 외쳤다. "이 사람이 저를 쳐다보는 꼴을 좀 보세요! 제발 빨리 내쫓아 주세요!" 그러나 눈치가 빠른 K는 자기가 여기에 머무르게 되는 것을 완전히 확신하고 거의 무관심할 정도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당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옷을 보고 있을 뿐이지요." "왜, 하필이면 옷을 봐요?" 하고 안주인은 성급하게 물었다. K는 어깨를 추슬러 보였다. "갑시다!" 하고 안주인은 남편에게 말했다. "이 사람은 술이 취했어요. 놈팽이! 여기서 술이 깰 때까지 자도록 내버려우어요!" 안주인은 그렇게 말하더니 뻬삐에게__뻬삐는 안주인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 곧 어둠 속에서 나타났는데, 머리는 흐트러져서 산발한 채로 몸은 피곤한 모습이고, 손에 빗자루를 들고 있는 모습도 멍하니 단정치 못하게 보였다.__무엇이든 베개가 될 만한 것이 있으면 이 사람에게 던져 주라고 명령했다. 20 K는 잠에서 깼을 때 처음에는 거의 잠도 자지 못한 것처럼 느껴졌다. 방안은 여전히 인기척이 없고 따뜻했다. 맥주통의 꼭지 위에 달려 있는 전등은 꺼져 있었다. 창 밖은 어두운 밤의 장막이었다. 그러나 그가 몸을 쭉 펴자 베개가 바닥에 떨어지고, 침대와 통에서 삐걱삐걱 소리가 나자 곧 뻬삐가 달려왔다. 그 때 K는 그녀에게서 벌써 저녁때가 되었다는 사실과 자기가 열두 시간 이상이나 잤따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안주인이 낮에 두서너 번이나 K의 상태를 물었고 게르스텍커도 K가 자고 있는 동안 한번 K의 동정을 살피러 여기를 다녀갔다는 것이다. 그는 아침에 K가 안주인과 이야기하고 있을 때, 여기 어둠 속에서 맥주를 마시며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동안에 이마 K가 자고 있어서 잠을 깨울 수도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프리다도 찾아와서 잠시 동안 K 옆에 서 있었다고 했는데, 그녀는 K를 만나러 온 것이 아니라 여기서 여러 가지로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그날 밤부터 다시 원래의 근무로 돌아가게끔 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뻬삐가 말했다. "그녀는 벌써 당신을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지요?" 하고 뻬삐는 커피와 과자를 슬픈 기색으로 물었다. 그 동안에 그년느 짓궂은 세상을 알았으며 이 짓궂은 세상과 비교하면 그녀 자신의 악의란 사실 아무 소용도 없고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녀는 고민을 함께 나누는 사람에게 말하는 것처럼 K에게 말했다. K가 커피를 맛보고 어쩐지 덜 달다고 느끼는 것 같은 기색을 보이자 그녀는 곧 달려가서 가득 찬 설탕 항아리를 갖다 주었다. 그녀는 슬픈 표정을 감출 길이 없는 듯 보였으나, 이마나 요 먼젓번보다 더 치장을 하고 있었다. 머리에 리본을 많이 엮어 넣었으며, 이마나 관자놀이의 머리칼은 곱슬곱슬 지져 붙이고 있었다. 거기다가 목 둘레에는 작은 목걸이를 걸고 있었는데 이것이 깊숙이 앞을 드러내놓은 젖가슴 근처까지 늘어져 있었다. 드디어 달게 자고 깼다는 기쁨과 이제는 커피를 마셔도 좋다는 만족감에서 K가 살그머니 머리를 땋은 곳에 손을 뻗쳐 그것을 풀려고 하니까 뻬삐는 기운이 하나도 없는 목소리로, "건드리지 마세요!" 하고 말하고, 그와 나란히 통 위에 걸터않았다. 일부러 K 쪽에서 그녀의 고민을 물어 볼 필요도 없었다. 곧 그녀 쪽에서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뚫어지게 커피 주전자를 응시하면서 이야기하는 도중에도 기분 전환이 필요하다는 태도였다. 그리고 자기 힘에 부치는 일이기 때문에 자기 고미에 대해 골몰하고는 있지만 거기에 아주 몰두할 수는 없다고 하는 그런 태도였다. 먼저 K는, 본래 뻬삐의 불행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K 자신이지만 그렇다고 그녀는 그를 원망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말하는 동안에도 K의 입에서 항의가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뻬삐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우선 당신은 프리다를 술집에서 데리고 나가서 제가 출세하도록 마련해 주었어요. 사실 그 밖의 다른 방법으로는 프리다의 마음을 움직여서 그녀로 하여금 그 곳을 떠나게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녀는 마치 거미가 거미줄이 매달려 있는 것처럼 술집 한구석에 앉아 있었어요. 또 그녀는 스스로 아는 범위내에서 사방에 거미줄을 치고 있었어요. 도저히 그녀를 억지로 거미집에서 끄집어내 올 수는 없었을 것이에요. 자기보다도 신분이 낮은 남자에 대한 사랑만이, 따라서 그녀의 지위에 적당치 않은 무엇인가만이, 그녀를 그 자리에서 몰아낼 수 있었어요. 그러면 저 자신은 어떠했을까? 대체 제가 그 자리를 얻으려고 한번이라도 생각한 적이 있었을까요? 저는 방안에서 심부름하는 하녀였어요. 중요치도 않고 거의 앞으로 희망도 없는 존재였어요. 물론 저도 다른 처녀들과 조금도 다름없이 아름다운 미래의 꿈을 가지고 있엇어요. 아무도 스스로 꿈을 꾸지 않도록 막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러나 그 이상 발전할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일은 없었어요. 저는 벌써 손에 넣은 것으로써 만족하고 있어요. 그런데 갑자기 프리다가 술집에서 사라져 버렸고 그것이 너무나 돌발적인 일이었기 때문에 주인은 그녀를 대신해 적당한 사람을 바로 구할 수 없었어요. 그 때 주인의 시선이 제게__물론 저는 정도에 알맞게 앞으로 나와 있었지만__머무르게 되었어요. 제가 당신을 사랑한 것은 바로 그 때였었고 저는 과거에 어떤 사람에게 대해서도 경험해 본 일이 없었을 정도로 당신을 열렬히 사랑했어요. 그 때까지는 저는 몇 달이나 조그맣고 어둠침침한 아랫방에 앉아만 있었어요. 그리고 거기서 몇 해 동안이고 재수가 나쁘면 평생 동안이라도 사람의 눈에 띄지 않고 파묻혀서 지낼 각오였어요. 그 때 당신이__한 사람의 영웅이며 소녀 해방자인 K가__나타났어요. 그리고 제게 출세의 길을 열어 주었어요. 물론 그 당시 당신은 제게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셨어요. 또 당신이 저를 위해서 한 일도 아니었어요. 그러나 그런 일은 제가 감사하는 마음과는 아무 상관도 없었어요. 임명되는 날 밤__임명은 아직 확정되어 있지 않았어도 벌써 십중 팔구는 그렇게 되리라고 추측이 되었어요__저는 몇시간이나 당신과 이야기하고 당신의 귓전에 감사의 말을 속삭이며 시간을 보냈어요. 그리고 당신이 몸소 책임을 맡은 무거운 짐이 마침 프리다였다는 것이, 제 눈에 비치는 당신의 행동을 더 높이 평가하게 했어요. 저를 끄집어내기 위해서 당신이 프리다를 자기 애인으로 삼았다는 사실 속에는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희생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어요. 프리다는 머리칼이 짧은 데다가 숱도 적을 뿐더러 야위고 예쁘지도 않은 노처며이며, 거기다가 무엇인지 비밀을 감추고 있는__이것은 확실히 그녀의 외모와 관계 있지만__마음 속을 알 수 없는 여자예요. 그처럼 얼굴이나 몸에도 의심할 여지 없이 비참한 빛이 감도는 것을 보면 적어도 무엇인지 그 밖의 비밀을__혹시나 그녀와 소위 클람과의 관계와 같은, 아무도 확인해 볼 수 없는 그런 비밀을__지니고 있음에 틀림없어요. 그 당시에 제게는 이런 생각까지 들었어요. 즉, 당신이 정말로 프리다를 사랑하다니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당신은 당신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또는 프리다 한 사람만을 속이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 모든 것의 단 하나의 결과란 아마도 저 자신이 출세하는 일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당신은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거나 아니면 그 잘못을 이미 감추려고 하지 않을 것이고 이젠 프리다를 보지 않고 단지 저만을 보려고 할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어요. 이것은 결코 저의 광적인 공상은 아닐 거예요. 왜냐하면 저는 처녀로서 일 대 일로 얼마든지 프리다의 지위였으며, 프리다가 그 지위를 환하게 비쳐 줄 수 있었던 광채였어요. 그래서 저는 이런 일까지 꿈꾸게 되었어요. 즉, 곧 제가 지위를 얻으면 당신은 애원하면서 제 가까이 올 것이고 그러면 그 때 저는 당신의 소원을 듣고 지위를 잃든가, 그렇지 않으면 당신을 거부하고 더욱 출세하든지, 그 중의 하나를 선택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저는 모든 것을 단념하고 자존심을 꺾고 당신에게로 찾아가서 당신이 프리다의 곁에다 꿈에도 경험하지 못했던 것 같은 사랑을, 세상의 어떤 명예스러운 지위에도 의존하지 않는 참다운 사랑을 가르쳐 주리라고 마음의 준비를 갖추었어요. 그런데 그 다음에 사정이 달라졌어요. 그것은 무엇 때문이며 또 누구 때문일까요? 무엇보다도 먼저 당신 때문이고 그 다음은 물런 프리다가 교활하기 때문이지요. 무엇보다도 당신 때문이지요. 왜냐하면 대체 당신은 무엇을 원하고 계시나요? 정날 당신은 좀 이상해요. 대체 당신은 무엇을 얻으려고 애쓰고 계시나요? 당신으로 하여금 일에 골몰하게 하고, 당신이 가장 가깝고, 가장 좋고, 가장 아름다운 것을 잊어버리게 만드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겠어요. 저는 그 희생이 되었고 모든 것이 어리석었고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야 말았어요. 만일 지금이라도 이 신사관 전체에 불을 질러 태워 버릴 만한 힘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도 완전히 아무 흔적도 남지 않을 정도로 마치 난로에 종이를 불살라 버리는 것처럼 태워 버릴 남자가 있다면 그분이야말로 지금으로선 저에게 가장 귀중한 사람이지요. 좌우간 그렇게 해서 나흘 저에 그것도 점심 식사 직전에 술집에 왔어요. 여기 일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라 거의 살인적이에요. 여기서 얻은 그러한 소득도 절대로 적지는 않아요. 여기로 오기 전에도 저는 하루라도 헛되게 보내지 않았어요. 그리고 제가 상당히 대담스러운 생각을 품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 지위를 저 자신을 위해서 요구한다는 것은 어림도 없었어요. 그렇지만 저는 충분히 관찰을 하고 있었고 그래서 이 지위를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잘 알고 있었어요. 미리 준비도 하지 않고 이 자리를 맞은 것은 아니었어요. 아무런 예비 없이는 아무도 이 자리를 맡을 수 없을 것이며, 가령 맡는다고 하더라도 몇 시간도 가지 않아서 다 헛탕이 될 거예요. 사실 여기서 방 심부름을 하는 하녀처럼 행동하려고 하면 그야말로 당장에 목이 달아날 것이에요. 방 심부름을 하는 하녀 노릇을 하고 있자면, 자기 자신이 아주 못 쓰게 된 것처럼 또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서 완전히 사라진 존재처럼 느껴져요. 이 하녀의 일이란 마치 광산의 일과 마찬가지예요. 적어도 비서들이 묵는 그 복도에서는 그렇다고 말할 수 있어요. 거기서는 며칠 동안이고 바쁜 걸음으로 았다갔다하면서 감히 눈을 치뜨지도 못하는 주간의 진정인을 제외하고는 두서너 사람의 심부름을 하는 하녀가 있을 뿐이고, 그밖에는 사람의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아요. 더군다나 그 하녀들까지도 똑같이 불쾌한 표정을 하고 있으니까요. 아침에는 방에서 나오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아요. 아침나절은 비서들이 자기네들끼리만 오붓하게 지내고 싶어하니까요. 식사는 보통 남자 하인들이 취사장에서 그들에게 날라다 주어요. 따라서 이 하녀들은 아무것도 할 일이 없지요. 식사중에도 우리을은 복도에 나타나서는 안 돼요. 다만 방안 사람들이 일하고 있을 때에 한해서 하녀들은 청소를 해도 좋다고 돼 있어요. 그것도 물론 사람이 쓰고 있는 방은 안 되고, 마침 사람이 들어 있지 않은 빈 방만이라고 국한되어 있어요. 그뿐만이아니라 신사들의 일에 방해가 안 되도록 전혀 소리를 내지 않아야 해요. 그러나 그런 방을 조용히 청소한다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며칠 동안이나 성의 양반들이 몸담아 계셨고 더욱이 천한 하인들이 들락날락 더럽힌 방인지라, 마지막으로 하녀들의 손에 맡겨질 무렵에는 '노아의 대홍수' 라도 깨끗이 씻어내릴 수 없을 지경으로 형편없는 상태니까요. 확실히 귀하신 신사 양반들이지요. 그러나 싫은 마음을 억지로 극복하지 않고서는 그분들의 뒤치다꺼리를 해 드릴 수 없어요. 방 심부름하는 하녀의 일이란 양적으로 굉장히 많은 것은 아니지만 꽤 힘이 드는 일이지요. 그리고 칭찬은 받기가 어렵고 언제나 책망뿐이에요. 그 중에도 가장 괴롭고 자주 듣는 책망은 청소하는 도중에 서류가 없어졌다는 거지요. 그러나 실지로는 무엇 하나 없어진 것이 아니에요. 어떤 종이쪽지라도 모두 주인에게 돌려 주니까요. 그런데도 서류가 없어지는데 그것은 결코 하녀가 잘못하기 때문은 아니에요. 그렇게 되면 그 다음에 위원들이 찾아오고 하녀들은 자연 방을 떠나지 않으면 안 돼요. 위원들은 침대를 들추고 찾아요. 위원들은 침대를 들추고 찾아요. 하녀들은 소지품이라곤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아요. 고작 등에 짊어지는 바구니에 들어가는 분량의 물품밖에는 없는데도 위원들은 몇 시간이고 뒤적거리면서 찾아요. 물론 위원들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해요. 대체 어떻게 한단 말인가요? 그런데 그 결과는 언제나 판에 박힌 듯이 실망한 위원들이 주이느이 입을 통해서 퍼붓는 책방과 욕설, 그리고 협박과 공갈뿐이지요. 그뿐더러 밤낮을 가리지 않고 조용히 쉴 시간 여유는 조금도 없어요. 한밤중까지 소란한가 하면 새벽부터 다시 시끄러워져요. 제발 거기를 떠났으면 하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거기서 살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어요. 왜냐하면 일하는 간간이 각각 주문에 따라서 취사장에서 간단한 음식을 날라오는 것은 아무래도 방안 심부름하는 하녀의 임무니까요. 특히 밤중에 더 그래요. 언제나 갑자기 하녀의 방문이 주먹으로 두드려지지요. 주문을 받아쓰고 취사장으로 달려 내려가서 자고 있는 요리사를 흔들어 깨워요. 주문 받은 음식을 쟁반에 담아서 하녀의 방문 앞까지 가지고 가면 거기서부터는 하인이 그것을 운반해요. 이런 일은 얼마나 한심스러운 일인가요! 그러나 이것이 가장 나쁜 일은 아니에요. 최악의 경우는 오히려 주문이 오지 않을 때지요. 즉 이미 잠들고 있을 때인데, 또 사실 사람들이 대개 잠시 들어서 자고 있을 무렵 한밤중에 하녀의 방문 앞을 누군지 살금살금 걸어다니기 시작할 때지요. 즉 이미 잠들고 있을 때인데, 또 사실 사람들이 대개 잠이 들어서 자고 있을 무렵 한밤중에 하녀의 방문 앞을 누군지 살금살금 걸어다니기 시작할 때지요. 그럴 땐 우리 하녀들은 침대에서 내려서__침대는 상하로 겹쳐 있어 사실 거기는 어디나 대단히 비좁고 따라서 우리들의 방안 전체는 일종의 셋으로 크게 나뉘어진 큰 장롱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데__문에 몸을 기대로 귀를 기울이고, 무릎읖 꿇고 불안스러워서 서로 껴안아요. 문 앞을 배회하는 사람의 발자국 소리는 여전히 들려 와요. 차라리 그 사람이 정말로 방안으로 들어와 주었으면, 모두들 기쁘게 생각할 지경이에요.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방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도 없어요. 그래서 이렇게 자기 자신에게 타이르지 않으면 안 돼요. 반드시 여기에 위험이 닥쳐온 것은 아니며, 저것은 틀림없이 그저 주문할 것인가 않을 것인가 하고 망설이면서 문 앞을 왔다갔다하면서도 내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어떤 사람일 거라고. 정말로 단지 그것뿐일는지도 몰라요. 그러나 어쩌면 그것과는 아주 다른 것일지도 몰라요. 원래 우리들은 방안 사람들을 전혀 알지도 못하며 거의 그들의 모습조차 본 일이 없어요. 좌우간 우리들은 방안에서 마음이 불안한 나머지 죽을 것만 같아요. 그리고 겨우 바깥에서 발자국 소리가 그칠 무렵에는, 우리들은 벽에 기댄 채로 기진맥진해서 다시 침대로 기어 올라갈 기운도 없을 지경이에요. 이런 생활이 다시금 저를 기다리고 있어요. 오늘 저녁이라도 하녀 방의 먼저 있던 자리로 옮기지 않으면 안 돼요. 왜 이렇게 됐을까요? 당신과 프리다 때문이지요. 거기서 간신히 빠져나왔는데 다시 그런 생활로 되돌아가야 해요. 물론 당신의 조력도 있었지만 그러나 저는 굉장히 애써서 빠져나올 수 있었어요. 거기서 근무할 땐 다른 데 같으면 세심한 주의를 다하는 하녀들도 몸치장을 아주 등한시하게 되지요. 주구를 위하여 단장할까요. 우리들을 봐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아요. 기껏해야 취사장 사람들 정도지요. 그런 사람으로써 만족할 수 있는 여자라면 모양을 내는 것도 괜찮을 거예요. 그 외에는 언제나 자기네들의 좁은 방에 있거나 들어가는 것 자체가 경솔하고 낭비라고 할 수 있지요. 언제나 전등불 밑에서, 그리고 언제나 불땐 방에서 생활하고 있으니까 늘 훈훈하고 답답한 공기 속에서 호흡하고 있는 셈이지요. 그래서 언제나 하루 온종일 피곤한 상태에 있는 거지요. 일 주일에 한 번 쉬는 오후 시간은 취사장 어딘가에 칸막이방에서 조용히 안심하고 자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고작이지요. 그런데 무엇 때문에 모양을 낼가요? 몸치장을 하기는 커녕 입을 것 재대로 입지 못하는 형편이에요. 그런데 저는 갑자기 술집으로 옮겨졌어요. 그 곳에서는 자기 자신을 내세우려면 하녀들의 일과는 정반대의 것이 필요해요. 또 거기서는 끊임없이 사람들의 시선을 받고 있으며, 그중에는 눈이 높고 관찰이 세밀한 신사 양반들도 계셔오. 따라서 거기서는 언제나 될 수 있는 한 우아하고 기분 좋게 보이도록 하고 있지 않으면 안 돼요. 이것은 하나의 전환기라고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저는 아무것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어요. 나중에 어떻게 되리라는 것은 걱정도 하지 않았어요. 또 저는 제가 이 지위에 필요한 여러 가지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동시에 또 확신하고 있었어요. 지금까지도 이 확신을 가지고 있어요. 사실 이 확신만은 어떤 사람이든 제게서 배앗을 수 없어요. 저의 패배의 날인 오늘도 그래요. 다만 처음에 그 재능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지, 이것이 어려운 일이었어요. 왜냐하면 저는 아무튼 입을 것도 몸치장할 것도 없는 불쌍한 방 심부름하는 하녀였을 뿐더러, 신사 양반들은 제가 발전해 나가는 모습을 길이길이 봐 줄 만한 참을성도 없을 것이고 따라서 과도기나 시간 여유도 없이 다짜고짜 술집 색시가 되어 주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어요__물론 그것도 당연한 일이지만__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등 돌리고 말아 버리니까요. 그러나 프리다도 거기에 응할 수 있었으니까, 그들의 요구는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몰라요. 그러나 그것은 옳지 못한 생각이에요. 저는 몇 번이고 그것을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가끔 프리다와 만나 보았으며 잠시 동안 그녀와 잠자리를 같이 한 일도 있어요. 그러나 프리다의 발자국을 더듬는다는 것은 용이한 일이 아니에요. 그리고 아주 조심하지 않으면__대체 어떤 신사가 그렇게 조심할까요?__곧 그녀에게 속을 거예요. 그녀의 외모가 얼마나 애처롭게 보이는가, 이것은 아무도 그녀 자신 이상으로 더 자세히 알지는 못해요. 예를 들면 그녀가 머리를 풀고 있는 꼴을 처음으로 본 사람은 가엾어서 손뼉을 탁 칠 거예요. 이런 여자는 만일에 일이 제대로 되어 나아간다면 도저히 방심부름하는 하녀도 되지 못할 거예요. 사실은 그녀 자신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그것 때문에 며칠 밤이고 자기 몸을 제게 기대고 제 머리를 자기 머리를 갖다대면서 울었어요. 그러나 그녀는 일단 일에 착수하기만 하면 모든 의구심이 깨끗이 사라져 버렸어요. 그녀는 자기 자신을 절세의 미인이라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 약삭빠른 방법으로써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이와 같은 감정을 일으키게 하는 요령을 알고 있어요. 그녀는 사람의 바음을 잘 알고 있는데, 이것이 그녀의 독특한 기술이라고 할 수 있어요. 또 그녀는 빨리 그리고 교묘하게 거짓말을 해서 무두들 그녀의 모습을 더욱 자세히 관찰하는 시간 여유를 주지 않도록 감쪽같이 사람의 눈을 속여요. 물론 오랜 시간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해요. 뭐니뭐니해도 사람들은 통찰하는 눈을 가지고 있으니까, 결국 그 눈에는 당할 수가 없어요. 그러나 그런 위험성을 깨닫자마자 그녀는 다른 수단을 준비하지요. 말하자면 최근에 있어서 클람과의 관계 같은 거지요. 아아, 그녀와 클람과의 관계! 만일 당신이 그것을 믿지 않으신다면 지금이라도 확인해 볼 수 있어요. 아무튼 클람에게로 가서 그에게 물어 보세요. 아아, 정말로 얼마나 교활한지 몰라요. 그러나 만일 당신이 그런 질문 때문에 클람에게 감히 갈 수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더욱 중요한 질문을 하더라도, 아마도 클람을 만나 보지 못하더라도, 그뿐더러 당신이 완전히 클람에게서 차단되어 있다고 하더라도__물론 단지 당신과 같은 사람에게만 차단되어 있어요. 왜냐하면 예를 들어 프리다 같은 사람은 언제나 가고 싶은 때에 그에게로 뛰어들어갈 수 있으니까요__사정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당신은 그 사건을 확인해 볼 수 있어요. 당신은 그저 기다리시기만 하면 돼요. 왜냐하면 클람은 그처럼 잘못된 소문을 도저히 오랫동안 참고 있지 못할 테니까요. 좌우간 그는 술집이나 홀에서 자기에 관해서 입에 오르고 소문을 그야말로 악착같이 꼬치꼬치 추궁하니까요. 그런 것이 그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이지요. 그리고 만일에 그것이 틀렸으면 그는 곧 그것을 고칠 것이겠죠. 그러나 그가 고치지 않은 것을 보면 고칠 것이 아무것도 없는 모양이지요. 모두 참말인 게지요. 사라들이 실지로 목격하는 것은 프리다가 맥주를 클람방에 날라다 주고, 돈을 받아 다시 방에서 나오는 장면뿐이에요. 사람들이 실지로 목격하지 않은 일을 프리다가 예기해 주는데 또한 그녀의 이야기를 곧이듣는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그녀가 그런 이야기를 할 리가 만무해요. 그녀는 결코 그런 비밀을 지껄이지도 않을 거예요. 사실은 그녀의 주위에서 여러 가지 비밀이 저절로 지껄여지게 마련이지요. 그리고 막상 그 비밀이 모조리 이야기되어 버리게 되면 물론 그 때에는 그녀도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두려워하지 않아요. 그러나 그것도 구태여 무엇을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겸손한 태도로 하는 것이에요. 아무래도 다 알려진 사실을 끄집어내는 것이니까요. 물론 그것도 전부를 끄집어내는 것은 아니에요. 예를 들면 그녀가 술집에 온 이래 클람은 전과 같이 맥주를 즐기지 않으며, 양이 퍽 줄은 것은 아니지만 좌우간 전과 같이 마시지 않게 되엇다는 사실은 명백하다는 등, 그녀는 그런 이야기는 절대로 지껄이지 않아요. 물론 거기에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요. 클람에게는 맥주가 전과 같이 맛이 나지 않는 시기가 왔다든가, 그는 아주 프리다에게 정신이 팔려서 맥주 마시는 것까지도 잊어버렸다든가, 그런 이유도 있을 수 있어요. 그러니까 좌우간 그것이 놀라운 일이기는 하지만 프리다가 클람의 애인이라는 확증이지요. 그녀가 클람까지도 만족시키는 정도인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만족시키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그래서 프리다__술집이 필요로 하는 성격을 구비한 색시__는 순식간에 굉장한 미인이 되었어요. 거의 지나치게 아름답고 괄시 못할 존재가 되어서, 벌써 술집 같은 데는 만족하지 못하게끔 되어 버렸어요. 그리고 아닌게아니라, 다른 사람의 눈에도 여전히 그녀가 술집에 머물러 있는 것이 이상하게 보였어요. 술집 색시라는 존재 자체가 평범한 것은 아니지요. 그 점만으로도 클람과의 관계가 대단히 믿을 만한 것으로 생각되었어요. 그러나 일단 술집 색시가 클람의 애인이 되었다면, 어째서 그는 그렇게 오랫동안 그녀를 술집에 내버려두는 걸까요? 왜 그녀를 더 높은 자리로 끌어올리지 않을까요? 여기에는 아무런 모순도 없으며, 클람이 그런 태도를 취하는 데에 일정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든가, 또는 갑자기 얼마 안 가서 프리다의 승진이 이루어진다든가 그런 말은 얼마든지 다른 사람에게 할 수 있어도 결국은 거의 아무런 효과도 없어요. 사람들은 일정한 관념을 가지게 되면 어떤 수단을 써도 영원히 그 관념에서 떠날 수가 없게 돼요. 확실히 이제는 아무도 프리다가 클람의 애인이라는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다른 사람보다도 분명히 사정에 능통한 사람들까지도 이제는 그것을 의심히는 일이 지긋지긋해졌나 봐요. '제기 참, 제멋대로 클람의 애인 노릇이나 하라지. 만일 당신이 이미 애인이 되었다면, 우리들에게 당신의 승진이라는 것으로 그 증거를 보여 달란 말이야.' 하고 그들은 생각했어요. 그러나 아무런 징조도 보이지 않았을 뿐더러, 프리다는 여전히 술집에 머물러 있었는데 차라리 그렇게 된 것을 남몰래 대단히 기뻐하는 것 같았어요. 반면 그녀는 사람들에게서 인기를 잃었어요. 물론 그녀도 그것을 깨닫지 못할 리가 없어요. 평소부터 무슨 일이 있기도 전에 벌써 그 일을 눈치채고 있었으니까요. 정말로 아름답고 애교가 있는 여자라면 한번 술집의 여러 가지 사정에 익숙해진 이상 구태여 기교를 부릴 필요는 없어요. 미인으로 통하는 동안은 어떤 특별한 불상사라도 갑자기 일어나지 아니하는 한 언제까지나 술집에서 일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프리다 같은 여자는 언제나 자기 자리를 걱정하고 있지 않으면 안 돼요. 물론 그녀는 마음 속으로는 늘 사람의 기분을 살펴보고 있어요. 그래서 그녀는 마음 속으로는 늘 사람의 기분을 살펴보고 있어요. 그래서 그녀는 사람들이 냉담해진 것을 알게 도었어요. 프리다의 모습이 나타나도 눈을 거들떠볼 가치도 없는 존재가 되고야 말았어요. 이제는 하인들까지도 그녀를 돌봐 주지 않았어요. 그들은 노골적으로 올가나 올가와 같은 여자에게만 붙어다녔어요. 또 프리다는 여기 주인의 태도에서도, 자기가 점점 그에게 필요치 않은 존재가 되어 낼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모든 일은 한계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드디어 그 프리다도 무엇인지 아주 새로운 것을 해 보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러나 대체 누가 그것을 곧 간파할 수가 있었을까요! 저는 어슴푸레하게 예감은 가지고 있었으나 유감스럽게도 간파하지는 못했어요! 프리다는 스캔들을 일으킬 결심을 했어요. 클람의 애인인 자기가 아무라도 좋으니 어떤 남자에게 그것도 아주 하찮은 남자에게 몸을 맡긴다는 것이지요. 그러면 그것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게 될 것이고 오랫동안 소문이 자자해져서 나중에 사람들은 다시금 클람의 애인이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명예를 새로운 사랑의 도취 속에서 포기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명예를 새로운 사랑의 도취 속에서 포기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점을 생각하게 될 것이라는 거지요. 그러자면 단지 거기에 알맞는 남자, 함께 이 재치 있는 연극을 해 낼 수 있는 적당한 남자를 물색한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었어요. 그것은 프리다가 알고 있는 남자를 물색한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었어요. 그것은 프리다가 알고 있는 남자는 안 되고 또 하인들 가운데 하나라도 절대 안 되니까요. 그런 남자라면 틀림없이 눈을 부릅뜨고 그녀를 쳐다보고는 그대로 지나가 버렸을 거예요. 무엇보다도 그런 남자는 진실성이라는 것을 충분히 보장할 수 없어요. 그뿐더러 만일에 프리다가 갑자기 이런 남자에게 습격당하여 정조를 지키지 못하고 무의식중에 정복당하고 말았다는 소문을 퍼뜨리는 것은 아무리 유창하게 떠벌린다고 하더라도 불가능한 일이지요. 좌우간 그 상대자는 설사 아무리 하찮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또 그의 어리석고 천한 수단 방법에도 불구하고 좌우간 그는 오로지 프리다만을 동경하고 있으며 앞으로 프리다와__아아, 얼마나 놀라운 일이지요?__결혼하는 것이이외에는 더 높은 희망을 품고 있지 않다가 믿어지는 남자가 아니면 안 되었어요. 더군다나 그 남자는, 아마도 하인보다도 더욱 신분이 낮은 훨씬 천한 남자라고 하더라도 어떤 색시에게도 조조당하지 않은 남자, 판단력을 갖춘 다른 여자일지라도 아마도 언젠가는 그에게 은근히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그런 남자가 아니면 안 되었어요. 그러나 대체 어디서 그런 남자를 찾아낼수 있을까요? 다른 색시라면 평생 두고도 그런 남자를 물색해 낼 수 없었을 거예요. 그러나 프리다의 행운의 여신은 그녀를 위해서 측량 기사 한 사람을 술집으로 데리고 왔어요. 그것도 그 계획이 아마도 처음으로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른 바로 그 날 저녁때지요. 그래요, 측량 기사 양반! 당신은 정말로 무엇을 생각하고 계시나요? 방 심부름하는 하녀들은 열쇠구멍으로 엿보는 일에 익숙한 자기제들이 실지로 목격하는 좁은 범위의 하찮은 사실만 가지고 어마어마하게, 더군다나 그릇되게 전체를 추측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 결과, 예를 들면 이 경우에 있어 당사자인 나보다도 당신이 훨씬 많이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어요. 나는 도저히 왜 내가 프리다에게서 버림을 받았는가, 그것을 당신이 설명해 준 것처럼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어요. 사람들은 내가 그녀를 등한시했다__당신도 이 점에 대해서는 잠깐 언급햇지만 충분히 걸명하지 않았죠__고작 그렇게 설명하는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그것은 유감스럽지만 사실이지이요. 나는 그녀를 소홀히 했으니까요. 다만 그것은__여기서 말할 성질의 것이 못 되지만__그것 자체로서 특별한 이유가 있었어요. 만일에 지금이라도 그녀가 내게로 돌아온다면 나는 행복하겠지요. 그렇지만 그렇게 된다면 나는 곧 또다시 그녀를 등한시하게 될 거예요. 그렇다니까요. 그녀가 내 곁에 있었으니까 나는 늘 방황하면서 당신의 조소의 대상이 되었던 거지요. 그녀가 떠나 버린 이 마당에 있어서는, 나는 거의 아무것도 할일이 없어져 버렸고 피곤해서 더욱 완전하게 할일이 없어지기를 바라고 있는 형편이지요. 그러면 내게 충고할 말은 없나요, 뻬삐?" "있는 걸요." 하고 뻬삐는 갑자기 활기를 띠면서 그리고 K의 어깨를 붙들면서 말했다. "우리 두 사람은 다 같이 속아 넘어간 사람들이에요. 그러니까 함께 삽시다! 자아, 저와 함께 아래에 그들 있는 곳으로 가요!" 그 말을 듣고 K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당신이 속았다고 불평하고 있는 동안은 당신과 타협할 수 없어요. 당신은 언제나 속았다고 주장하지요. 그러면 기분도 좋고 자기 마음을 감동시킬 수도 있는 모양이지요. 사실을 말하면 당신은 이 자리에 적당치 않았어요. 당신 눈으로 보아서 가장 무식한 사람인 나도 그것을 통찰할 수 있을정도니까 당신이 적당치 않다는 사실은 너무나 뚜렷해요. 당신은 참 좋은 아가씨지요, 빼삐. 그러나 그것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기가 힘들어요.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당신이 이런 자리에 있었으니까 머릿속에 약간 혼동이 생긴 것이고 이 자리는 대체로 당신에게는 적임이 아니지요. 물론 그렇다고 이 자리가 당신에게 너무나 과하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지요. 이런 자리란 그렇게 대서 특기할 만한 것은 못되고, 세세한 점까지 따지고 보면 당시느이 이전 자리보다는 약간 명예스러운 것일는지 몰라요.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지요. 양쪽 다 서로 혼동할 정도로 닮았어요. 따라서 거의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거예요. 방안 심부름하는 하녀로 있는 것이 술집에서 색시 노릇하는 것보다 나을 것이라고요. 왜냐하면, 거기서는 언제나 비서들 아래에서 일하지만 여기서는__홀에서 고급 비서들에게 봉사하는 것은 허용되어 있지만__훨씬 신분이 낮은 사람들, 예를 들면 나와 같은 사람도 상대를 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나는 법률상 이 술집이외의 다른 장소에 앉으면 안 되지만, 그래도 그런 나와 교제할 가능성을 가졌다는 것이 그렇게도 굉장한 영광일까요? 하긴 당신에게는 아무래도 그런 것 같고, 또 그것에는 상당한 이유가 있겠지요. 그러니까 더욱 당신은 적임자가 아니라는 거지요. 이런 지위란 어느 거나 마찬가지고 비슷비슷해요. 그런데 당신께서는 이것이 마치 천국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군요. 따라서 당신은 만사를 지나치게 열심히 해 버리는 거지요. 당신 생각에 의하면 자기 자신을 천사처럼 치장해 버리고__사실 천사들은 그것과는 다르지만__지위 때문에 긴장해서 떨고 있는 형편이고 늘 쫓기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켜요. 또 당신 눈으로 보아 당신을 지지해 줄 수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으면, 그들의 환심을 사려고 지나친 친절까지도 베풀어 주지만 사실은 그렇게 하는 것으로써 반대로 그들을 귀찮게 하고 밀쳐 버리는 결과가 되고 말아요. 누구라도 술집에서 편안하게 지내고 싶어하는 것이고 자기들 고생에다가 또 술집 색시의 걱정 근심까지 사고 싶지 않으니까아요. 프리다가 퇴직한 직후, 귀하신 분들은 아무도 이 사건을 깨닫지 못했는지 몰라도 이제는 그들도 이 일을 알고 있고 정말로 프리다에게 몸이 달아 있어요. 왜냐하면 프리다의 행동은 전부 당신과는 전혀 달랐으니까요. 설사 그녀가 다른 점에서는 어떤 상태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또 그녀는 그 자리를 소중히 여길 줄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근무에 있어서는 경험이 풍부하고 냉정하고 침착했어요. 당신은 이 점을 스스로 역설하면서도 조금도 이 교훈을 활용하려고 하지 않았어요. 당신은 그녀의 눈초리를 본 적이 있었나요? 그것으 이미 술집 색시의 눈초리가 아니라 떳떳한 안주인과 같은 그런 눈초리였어요. 그녀는 언제나 전체를 내다보고 있었으며, 동시에 사람 하나하나를 살피고 있었어요.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머뭇거리는 눈초리는 시선이 집중된 남자를 굴복시킬 만한 위력을 갖추고 있었어요. 그렇다면 그녀가 약간 말랐다든가 약간 나이를 먹었다든가, 그것보다 더 산뜻한 머리칼을 가지고 있었다고 상상해 보는 일은 무슨 문제가 될까요? 이것들은 그녀가 사실 가지고 있었던 것에 비교해 보면 아무것도 아니지요. 그리고 이런 결점에 정신이 팔렸던 사람은 오로지 더욱 위대한 것에 대한 감수성이 자기에게는 결핍되엇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지요. 클람은 결코 이런 비난을 받을 사람은 아니지요. 나이 어리고 경험 없는 색시로서의 그릇된 관찰 때문에 당신은 프리다에 대한 클람의 사랑을 믿을 수가 없어요. 클람은 당신에게는__그것도 무리는 아니지만__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것처럼 보여요. 그래서 당신은 또 프리다도 클람에게 가까이 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당신은 잘못 판단했어요. 가령 확실한 증거가 없다고 하더라도, 나만은 프리다의 말을 믿어요. 이것이 당신에게 아무리 믿을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또 세상과 관료주의, 여성의 아름다움의 고귀함과 그 영향력, 그런 것에 대한 당신의 생각과 얼마간 모순된다고 하더라도, 좌우간 이것은 정말이지요. 우리들의 여기서 나란히 앉아서 내가 당신 손을 내 손 속에 쥐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마도 클람과 프리다도 마치 그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당연하다는 듯이 나란히 앉아 있었어요. 그리고 그는 자진해서 아래층으로 내려온 것이에요. 더군다나 다른 일도 내버려두고 바삐 내려왔어요. 복도에서 그를 망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클람은 전력을 다해서 내려왔어요. 그리고 당신이 보고서 깜짝 놀랐다는 프리다의 옷의 결점 같은 건 클람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어요. 당신은 프리다의 말을 믿으려고도 하지 않지요! 더군다나 그것으로써 자기가 얼마나나 자기의 정체와 인간성을 드러내는지, 그것으로써 얼마나 자기가 경험이 없다는 사실을 폭로하고 있는지 깨닫지 못해요. 클람과의 관계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녀의 인품을 보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거지요. 즉 이 인품을 형성하고 있는 주체는 당신이나 나나 그리고 마을 사람들보다도 탁월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거지요. 그뿐더러 그녀가 하는 이야기 내용은 보통 손님과 색시 사이에서 주고받는 것 같은__그것이 당신의 인생 목적처럼 보이는데__그런 농담 따위를 훨씬 초월했다는 사실까지도 알 수 있는 거지요. 그러나 내가 당신에게 과격한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몰라요. 사실 당신은 스스로 프리다의 특성을 잘 보고 있으며, 그녀의 관찰 능력이나 결단력, 그리고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서도 충분히 깨닫고 있으니까요. 안지 당신은 모든 것을 잘못 해석하고 있어요. 당신은 그녀가 그것들을 모두 이기적으로 자기 이익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악용하기 위해서,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당시에 대한 무기로써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아니, 뻬삐, 가령 그녀가 그런 화살을 손에 쥐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런 가까운 거리에서는 쏠래야 쏠 수 없을 거예요. 이기적이라고요? 오히려 이렇게 말할 수 있을는지 몰라요. 그녀는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것, 자기가 기대할 수 잇는 것을 희생하고 우리 두 사람에게 더욱 높은 자리에 앉을 기회를 제공해 주었는데도, 우리들은 그녀를 완전히 실망시켰고 그녀가 곧 이 곳으로 되돌아오지 않을 술 없도록 해 버렸어요. 사실 그런지 아닌지 나는 알 수 없고, 또 나의 어디가 나쁜지 무엇이 잘못인지 명백치 않아요. 다만 나 자신을 당신과 비교해 보면 자꾸 그런 생각이 들어요. 프리다의 침착한 태도와 사무적인 요령과 시원한 성격으로는 눈에도 띄지 않고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을 우리 두 사람은 눈물로써, 할퀴고 쥐어뜯고 잡아당기는 것으로써 손에 넣으려고 너무나 맹렬하고 시끄럽고 유치하고 경험 없이 애만 썼던 것이 아닐까요? 그것은 마치 어린애가 식탁보를 잡아당기지만 아무것도 얻는 것은 없고 단지 위에 놓인 그릇을 전부 떨어뜨려서 깨뜨릴 뿐이고, 영원히 무엇하나 손에 남는 물건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정말로 그런지 어쩐지는 알 수 없어요. 그러나 당신이 말한 것보다도 이쪽이 더 진실성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을 나는 잘 알고 있어요." "그러시겠지요." 하고 뻬삐는 말했다. 이어서, "르리다가 당신을 두고 내빼 버렸으니까 당신은 완전히 그녀에게 반하신 거예요. 가 버린 여자에게 반해서 그리워하는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니까요. 그러나 가령 당신이 말씀하시는 대로라고 하더라도, 또 당신은 모든점에서 저를 조롱하시려고 하는 점에서는 옳다고 하더라도 지금 당신은 대체 어떻게 하실 작정이시지요? 프리다는 당신을 버리고 가 버렸으며, 제 설명이나 당신의 설명을 막론하고 그녀가 당신에게로 되돌아와 준다는 가망성은 없어요. 또 가령 그녀가 되돌아와 준다 하더라도 당신은 그 때까지 좌우간 어디서든지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 안 되셔요. 바깥은 추운데 당신은 일거리도 침대도 가지고 게시지 않아요. 우리들에게로 오세요. 제 친구들이 당신 마음에 꼭 들 거예요. 우리들은 당신을 편안하게 해 드리겠어요. 그러면 당신은 여자만으로는 사실 무리라고 생각되는 일을 도와 주시겠지요. 우리들도 의지할 곳 없이 외롭게 살아 나간다는 것을 면할 수 있고, 밤이 되어 공포와 불안을 느끼는 일도 없어질 거예요. 우리들에게로 오세요. 제 동무들도 프리다를 알고 있어요. 우리들이 당신이 싫증이 날 때까지 그녀의 이야기를 해 드리지요. 그러니까 오세요! 우리들은 프리다의 초상화도 가지고 있으니까 그것도 당신에게 보여 드리지요. 그 당시의 프리다는 지금보다도 훨씬 얌전했어요. 틀림없이 당신은 예전의 그녀와 현재의 그녀를 분간하시지 못할 거에요. 기껏해야 그녀의 눈, 벌써 그 때부터 무엇을 엿보고 있었던 눈 정도일 거예요. 그러니까 오시겠지요?" "대체 그렇게 해도 괜찮을까요? 어제는 내가 당신네들의 복도에서 붙들렸기 때문에 큰 소동이 일어났었는데." "그것은 당신이 붙들렸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우리들에게로 오시면 당신은 결코 붙들리지 않을 거예요. 우리들 세 사람 이외는 아무도 당신을 아는 사람이 없어요. 네, 정말로 재미있을 거예요. 이제 저는 조금 전보다도 거기서의 생활이 훨씬 견디어 내기가 쉬운 것처럼 느껴지는군요. 이제 여기를 떠나야만 된다고 하더라도 그다지 밑지는 일은 없을 것 같아요. 이보세요, 우리들은 지금까지 세 사람만이라도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어요. 아무튼 쓰디쓴 인생을 달콤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우리들의 인생이란 아주 젊었을 때부터 쓰디쓴 것이미 마련이지요. 그래서 우리들 세 사람은 한마음 한 뜻으로 살고 있어요. 될 수 있는 대로 기분 좋게 지내고 있어요. 특히 헨리에테가 당신 마음에 드실 거예요. 에밀리에도 그렇다고 할 수 있어요. 저는 벌써 그애들에게 당신 이야기를 해 두었어요. 그러나 거기서는 그런 이야기를 해도 아무도 곧이듣지 않아요. 마치 방 밖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날리가 없다는 듯이 믿지 않는 태도였어요. 거기는 비좁고 따뜻해요. 그래도 우리들은 서로 착 붙어 앉아 있어요. 아니, 서로 의지하고 있었지만 결코 권태를 느낀다는 일은 없었어요. 정반대예요. 그리고 동무들을 생각하면 거기로 돌아가는 것이 마치 당연한 것처럼 느껴져요. 무엇 대문에 제가 그들 이상으로 출세할 필요가 있어요? 우리들 세 사람은 모두 똑같은 모양으로 앞길이 막혔으니까 서로 뭉쳤어요. 그런데 지금 저 혼자만이 거기를 뚫고 나와서 그들에게서 멀어져 버렸어요. 물론 저는 그들을 잊지는 않았어요. 어떻게 하면 그들을 도와줄 수가 있을까, 이 걱정만이 언제나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아요. 그리고 저 자신의 지위가 아직도 불안정했는데__어느 정도로 그것이 불안정했는지, 저는 전혀 알지도 못했지만__저는 벌써 헨리에테와 에밀리에에 관해서 집주인과 이야기한 일이 있었어요. 집주인은 헨리에테에 관해서는 전적으로 양보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에밀리에에 관해서는 전혀 저에게 희망을 주지 않았어요. 그러나 생각해 보세요. 그들은 거기를 떠나려고 하지 않아요. 그녀들은 거기서 보내고 있는 생활이 비참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요. 그러나 마음씨가 고운 그녀들은 벌써 그것에 순응해 버렸어요. 그녀들이 헤어질 때에 흘린 눈물은 무엇보다도 저를 위해서 흘려 준 눈물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같이 있던 방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그리고 추운 곳으로__그 방에 있으면 방 바깥에 있는 것은 모조리 냉냉한 것처럼 보이지요__나간다는 것, 알지도 못하는 큰 방안에서 낯선 인간들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것__그리고 목적이 무엇이냐하면, 어떻게 해서든지 연명해 가겠다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그것만이 목적이라면 지금까지의 공동 생활에서도 그럭저럭 성공해 왔어요__그것을 그녀들은 슬퍼하고 있었어요. 그녀들은 제가 지금 돌아간다고 해도 조금도 놀라지 않을 거예요. 다만 제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한바탕 울고서 제팔자를 한탄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그녀들은 당신을 보고 제가 그 곳을 일단 떠난 것은, 좌우간 잘한 일이라고 깨닫게 되겠지요. 이제 어떤 사람이 조력자인 동시에 보호자로 와 준다면 모두들 행복한 신세가 될 거예요. 그리고 모든 것이 비밀에 부쳐지지 않으면 안 될 뿐더러 우리들이 이 비밀에 의해서 전보다 한층 더 굳게 맺어진다는 것을 그녀들은 참으로 황홀하게 기뻐하겠지요. 자아, 어서 오세요. 우리들에게로 오세요. 오신다고 해도 당신은 아무런 속박도 받지 않을 것이며, 또 우리들처럼 영원히 그 방에 얽매이는 일도 없을 테니까 말이지요. 드디어 봄이 와서 당신이 다른 곳에 숙소를 정하고, 우리들의 집에 마음에 드시지 않는다면, 그 때는 나가셔도 상관없어요. 물론 그렇게 하시더라도 비밀만은 지켜 주셔야 되고 우리들을 배신하는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지요. 왜냐하면 비밀이 새면 우리들은 신사관에는 있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지요. 또 그밖의 다른 경우라고 하더라도 당신이 우리들의 집에 계시는 이상은 우리들이 안전하다고 생각지 않는 곳에는 결코 나타나지 않도록 조심해 주시지 않으면 안 되겠어요. 좌우간 대체로 우리들의 충고를 들어주셔야 된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어요. 단지 이것만이 당신을 얽매이게 하는 단 하나의 속박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이것은 우리들에게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당신에게도 중요한 일이에요. 그러나 그 밖에는 단신은 완전히 자유의 몸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지요. 우리들이 당신에게 맡기는 일도 결코 어렵지 않으니 그 점은 염려하실 것 없어요. 자아, 그러니 가시겠지요?" "봄까지는 아직 얼마나 남았지요?" "봄까지라고요?" 하고 뻬삐가 되물었다. "이 땅에선 겨울이 길지요. 정말 길고 당조로운 겨울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러나 아래에 있는 우리들 사이에서는 아무도 그 점을 불평하지 않아요. 그것은 월동 준비가 제대로 잘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언젠가는 봄이 찾아오고 여름이 오고 아마도 제 시절을 맞이하게 될 거예요. 그러나 지금 제 기억으로는 봄이나 여름은 퍽 짧아서 마치 이삼 일간밖에 안 되는 것처럼 그렇게 짧게 느껴져요. 그리고 이삼 일간도__가장 날씨가 좋다고 하더라도__때로는 눈이 내리지요." 그 때 갑자기 문이 열렸다. 뻬삐는 깜짝 놀라 몸을 움츠렸다. 깊은 생각에 잠기고 있었던 그녀의 마음은 술집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프리다가 아니라 안주인이었다. 그녀는 K가 아직도 여기에 있는 것을 보고 어이가 없었던 모양이다. 사실은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K는 변명을 했다. 그는 곁들여서 이 곳에서 하룻밤을 묵게 해 준 데 대해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였다. 그녀는 왜 K가 자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K는 변명을 했다. 그는 곁들여서 이 곳에서 하룻밤을 묵게 해 준 데 대해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였다. 그녀는 왜 K가 자기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K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로서는 아직도 그녀가 자기에게 용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일에 그것이 착각이었다면 용서해 달라. 좌우간 자기는 이제 나가 봐야 겠다. 소사이면서도 학교 일을 상당히 게을리 하고 있었는데 이것도 모두 어제 소환장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자기는 이번 일 같은 사건에 대해서는 거의 경험이 없었다. 그래도 안주인에게 어제처럼 불쾌스러운 꼴을 당하게 하는 일은 두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고 싶다고 K는 말을 마치고 나가려고 인사했다. 그 때 안주인은 꿈꾸는 것 같은 눈초리로 그를 주시했다. 그 눈초리에 사로잡혀서는 상당히 오랫동안 그 자리를 떠날 수가 없었다. 안주인은 넌지시 미소를 지었다가 K의 깜짝 놀란 얼굴을 보고 비로소 약간 꿈에서 깬 모양이었다. 그것은 마치 자기 미소에 대한 답을 기다리고 있었는데__아무 대답이 나오지 않으니까__지금 비로소 눈을 떴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당신은 어제 제 옷이 대해서 뻔뻔스럽게도 무슨 말을 했었지요?" K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생각이 나시지 않나요? 어제는 대담 무쌍하시더니 오늘은 비겁하기 짝이 없군요." K는 어제 몸이 피곤했었다고 변명했다. 어제 자기가 엉뚱한 소리를 지껄인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좌우간 지금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대체 안주인의 옷에 대해서 무어라고 할 수가 있었겠는가. 그녀의 옷은 그가 본 일이 없을 만큼 아름답게만 보인다. 좌우간 K는 어떤 안주인도 그런 좋은 옷을 입고 일하고 잇는 장면을 존 적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런 말은 그만두세요!" 하고 안주인은 빠른 어조로 말했다. "저는 이제 옷에 대해서는 당신에게서 한 마디도 듣고 싶지 않아요. 제 옷에 대하여 걱정하지 마세요. 절대로 상관하지 마라 주세요." K는 한 번 깊숙이 허리를 구부리고 인사한 다음 문 있는 데까지 걸어갔다. "대체 그것은 무슨 의미지요?" 하고 안주인은 K의 뒤에서 말을 걸었다. "그런 옷을 입고 일하는 안주인을 본 일이 없다는 말씀이시죠? 그런 무의미한 말이 무슨 소용이 있어요? 아주 무의미한 말이 아닌가요? 도대체 무슨 의도를 가지고 말씀하셨나요?" K는 뒤를 돌아보고 안주인에게 제발 흥분하지 마라 달라고 부탁했다. 물론 그런 말은 무의미하다. 거기다가 자기는 옷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 같은 신분의 사람에게는 덧조각을 대고 깁지 않은 깨끗한 옷이면 무엇이든 훌륭하게 보인다. 단지 자기가 놀란 것은 그녀가 거기 복도에서 더군다나 밤중에 거의 옷다운 옷도 걸치지 않은 남자들 사이에 그렇게 아름다운 야회복을 입고 나타나는 장면을 보았기 때문이었고, 그 이상 다른 이유는 없다고 변명했다. "그렇다면." 하고 안주인이 말을 이었다. "당신이 드디어 당신이 어제 한 말이 생각난 모양이군요. 더욱이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아서 무의미한 주석을 붙이기도 하고요. 옷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당신의 말이 옳아요. 그렇다면 차라리__당신에게 간곡히 부탁했다고 생각하는데__훌륭한 옷이라든가 맞지 않는 야회보이라든가, 이러쿵저러쿵 쓸데없는 비평을 하는 것은 삼가 주세요......대체." 여기까지 말했을 때, 그녀는 으쓱으쓱 오한이 난 모양이었다. "당신은 제 옷에 관해서는 손끝만치도 걱정하실 것 없어요. 아시겠어요?" 그래서 K가 잠자코 또 저쪽으로 몸을 돌리려고 하자, 그녀는 이렇게 물었다. "대체 당신은 어디서 옷의 지식을 얻으셨나요?" K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어깨를 움츠렸다. "당신에게는 아무 지식도 없을 거예요." 하고 안주인이 말했다. "그렇다면 숫제 아는 체하시지 말란 말이에요. 회계실로 와 보세요. 당신에게 보여 드릴 것이 있으니까요. 그것을 보시면 그런 뻔뻔스러운 짓은 그만두어 주시겠지요." 그녀는 앞장서서 문 밖으로 나갔다. 계산해 달라는 것을 구실삼아 뻬삐에게 보여 드릴 것이 있으니까요. 두 사람은 빨리 서둘러서 서로 약속을 했다. K가 안뜰의 구조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문제는 아주 간단했다. 그 안뜰에는 옆길로 통하는 길이 있고, 문 옆에는 쪽문이 있다. 뻬삐가 지금부터 한 시간쯤 지난 후에 그 문 뒤에 서 있다가 세 번 노크를 하면 열어 준다는 약속이었다. 회계실은 술 마시는 자리와 마주보고 있었다. 현관을 가로질러 가지만 하면 되었다. 안주인은 벌써 불을 켠 그 회계실에 서서 초조한 기색으로 K쪽을 ㅂ고 있었다. 그런데 또 하나 방해가 생겼다. 게르스텍커가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K와 할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를 뿌리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안주인도 거들이 주면서 게르스텍커의 강제적인 태도를 나무랐다. "대체 어디를 가는 거지? 대체 어디로?" 하고 문이 닫힌 뒤에도 게르스텍커의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말은 한숨과 기침 소리가 지저분하게 섞여 있었다. 불을 너무 때서 후끈후끈한 조그만 방이었다. 좁은 쪽 벽에다 바짝 대서 책상과 쇠로 만든 금고가 놓여 있었고 넓은 쪽에는 장롱과 기다란 의자가 놓여 있었다. 대부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장롱이었다. 넒은 벽을 전부 가리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방 자체가 길었기 때문에 방을 몹시 좁게 만들고 있었다. 이 장롱을 열기 위해서 미닫이문이 세 개나 있었다. 안주인은 기다란 의자를 가리키며 K더러 거기 앉으라고 손짓하고 자기는 책상 곁의 회전의자에 앉았다. "당신은 한번도 재단을 배운 일이 없나요?" 하고 안주인이 물었다. "네, 한번도 없어요." 하고 K는 말했다. "대체 당신은 무엇하는 사람인가요?" "토지 측량 기사지요." "대체 그게 무엇이지요?" K는 그것을 설명했으나, 그 설명은 안주인에게 하품만 하게 만들 뿐이었다. "당신은 사실을 말하지 않으셔요. 왜 사실대로 말하지 않지요?" "당신은 바른대로 고백하지 않으면서." "제가요? 당신은 또 서서히 뻔뻔스러운 태도를 보이려는 건가요? 그리고 설사 제가 바른 대로 말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도대체 제가 당신한테 변명을 해야만 하나요? 그런데 어떤 점에서 제가 당신한테 바른대로 고백하지 않았다는 건가요?" "당신은 당신 스스로가 말씀하고 있는 그런 보통 안주인은 아니니까요." "뭐라고요! 당신은 어쩌면 그렇게 발견을 잘하시나요. 그렇다면 제가 그 밖에 무어란 말인가요? 당신의 뻔뻔스러운 태도는 점점 늘어만 가는군요." "당신이 안주인 이외에 무엇인가는 저도 모르겠어요. 제가 알고 있는 것은 당신이 안주인이고 그 밖에 당신이 입고 있는 옷은 여관집 안주인으로선 어울리지 않고, 또 제가 알고 있는 바로는 이 마을에서는 아무도 그런 옷을 입고 있지 않다는 것뿐이에요." "그렇다면 우리는 이야기의 본론에 들어간 셈이에요. 당신은 그 말을 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던 모양이지요. 당신이란 사람은 어쩌면 뻔뻔스러운 게 아니라 단지 무엇인가 어리석은 것을 알고서, 누가 뭐라든 그 말을 않고는 배길 수가 없는 어린애 같은 사람이에요. 그러면 말해 보세요. 이 옷이 어디가 이상하단 말이에요?" "제가 그걸 말하면 당신은 화내실 걸요." "아니지요. 그 말에 웃을 거예요. 보나마나 어린 아이 같은 말일 테니까요. 그래 이 옷이 어떻다는 건가요?" "그걸 아시고 싶으시다 이 말씀이지요. 그렇다면 말씀드리지요. 이 옷은 확실히 값진 좋은 천이에요. 그러나 이젠 구식이라 너무 복잡하게 꾸며져 있고 여러 번 수선을 했는데다 낡았고 당신 나이에도 당신 자태에도 당신 지위에도 어울리지가 않아요. 그것이 제 눈에 바로 띄었어요. 제가 당신을 처음 만나 뵈었을 때 말이죠. 약 일 주일 전에 여기 현관에서였지요." "잘 알았어요. 구식이고 복잡하게 꾸며지고 그리고 또 무엇이었지요? 그럼 대체 당신은 어디서 그런 말을 알게 되었지요?" "그것은 눈에 보이는 대로지요. 아무것도 배울 필요는 없어요." "당신은 간단하게 잘도 아시는데요. 누구한테서 들을 필요도 없이 유행이 요구하는 것을 곧 아는군요. 그러면 당신은 저에게 없어선 안 될 사람이 될는지도 모르겠군요. 왜냐하면 저는 아름다운 옷에 대해서는 백지니까요. 이 장롱이 옷으로 가득 찬 것을 보시면 당신은 뭐라고 말씀하실까요?" 그녀는 미닫이 문을 모두 열었다. 거기에는 옷이 장롱 가득히 차 있었다. 대개는 어두운 색과 회색, 빨간색과 검은 옷이었고, 모두 꼼꼼하게 펴서 걸려 있었다. "모두 다 제 옷이에요. 당신 말씀대로 모두 구식이라 복잡하게 꾸며졌어요. 하지만 이것은 다만 위층에 있는 제 방에는 갖다 넣을 자리가 없는 옷들뿐이에요. 위층에는 또 옷이 가득 찬 장롱이 둘 있어요. 장롱이 두 개란 말이에요. 둘 다 이것과 같은 정도의 크기지요. 어때요. 놀라셨나요?" "아니오, 대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당신은 단순한 안주인이 아니라 무엇인가 다른 것을 노리고 있다고." "제가 목표로 하고 있는 건 단지 아름답게 옷치레하는 것뿐이에요. 당신은 바보든가 어린애든가 아니면 몹시 성질이 고약한 위험 인물잉에요. 나가 주세요, 이네 나가 주세요!" K가 잽싸게 현관으로 나오자 게르스텍커가 또 그의 소매를 꼭 붙잡았다. 그 때 안주인이 K가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내일 새 옷이 다 돼요. 어쩌면 당신을 데리러 사람을 보낼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