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독사의 이빨 하늘에는 둥근 보름달이 걸려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정처없이 걷고 또 걸어갔습니다. 그 남자가 쟈베르인지 아닌지는 확실히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요즘 몇 가지 이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무슨 일에든 조심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코제트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아저씨의 손에 매달려 가듯이 열심히 걷고 있었습니다. 조금은 무섭기도 했지만 이 아저씨와 함께라면 어디를 가도 괜찮은 것 같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일부러 구불구불한 길을 골라 걸었습니다. 시각은 임 11시 가까이 되어 마을은 깊은 잠에 빠지려 하고 있었습니다. 붉은 등이 켜진 파출소 앞을 지날 때 이제는 괜찮겠지 하고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아뿔싸!' 장발장은 마음 속으로 외쳤습니다. 동시에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뒤에서 남자 셋이 따라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달빛이 그들을 비추기 시작했습니다. 앞쪽의 키가 큰 남자는 말할 것도 없이 쟈베르 형사였습니다. 장발장은 코제트를 안고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정신없이 뛰다 보니 좁은 골목길로 들어섰습니다. 양쪽에는 높은 담이 이어져 있었습니다. 주위는 깜깜했습니다. 하지만 상관하지 않고 뛰어가니 두 갈래 길이 나왔습니다. 오른쪽 길을 택하자 다시 뛰었습니다. 추격자들과의 거리는 꽤 벌어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길은 막다른 골목길이었습니다. 당황해서 되돌아가 왼쪽 길로 들어가려고 하자 앞쪽에 여러 사람의 그림자가 비쳤습니다. 역시 추격자의 무리인 것 같았습니다. 다시 막다른 골목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제 독 안에 든 쥐의 신세가 되었습니다. 추격자의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졌습니다. 이러고 있다가는 그냥 잡히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도망을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도망가기 위한 방법은 딱 한 가지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돌담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담 위에 커다란 나뭇가지 뻗어 있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조금 떨어진 가로등에 램프를 올렸다가 내렸다 하는 밧줄이 늘어져 있었습니다. 그는 그 곳으로 달려가 칼로 줄을 잘라 냈습니다. 그리고 신발을 벗어 담 안으로 던져 놓고 줄 끝을 코제트의 몸에 붙들어 맨 다음 한쪽 끝을 입에 물고 높은 담에 손과 발을 걸치는가 싶더니 단숨에 기어올라가 나뭇가지를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담 위에 서자 줄을 끌어당겨 스르르 코제트의 몸을 끌어올렸습니다. 지금까지의 고통스러운 생활 속에서 단련되어 온 체력과 정신력 그리고 가벼운 몸의 움직임 등이 지금 여기서 단단히 한몫을 한 셈입니다. 그는 코제트를 껴안은 채 담 안쪽의 넓은 뜰처럼 보이는 곳으로 뛰어내렸습니다. 담 바깥쪽에서는 뚜어 돌아다니는 추격자들의 발소리가 어지럽게 뒤섞여 들려 왔습니다. "막다른 골목을 다시 한 번 찾아봐! 출구는 없으니까 도망가진 못했을 거야!" 그렇게 소리치는 것은 분명한 쟈베르의 목소리였습니다. 두 사람이 내려선 곳은 넓은 정원의 한구석인 듯 전혀 인적이 없는 장소였습니다. 달빛 사이로 보니 멀리 저 쪽에 큰 건물이 있고 가까이에는 작은 오두막집이 있었습니다. 넓은 야채밭도 보였습니다. 그러나 정원 외의 다른 곳은 몹시 황폐했습니다. 잠시 그늘에 몸을 숨기고 동태를 살피니 담 밖의 발소리도 점점 멀어져 갔습니다. 장발장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드디어 체념한 모양이었습니다. 한밤중이 지난 새벽 1시나 2시쯤 되었을 시각입니다. 코제트는 추위로 떨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장발장만을 믿고 그의 가슴에 얼굴을 푹 파묻고 있었습니다. 장발장은 일어서서 자기의 웃옷을 벗어 코제트의 등에 덮어 주면서 말했습니다. "여기서 꼼짝 말고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 올 테니까." 바로 그 때 그의 귀에 방울 소리가 들렸습니다. 살짝 엿보니 남자의 그림자 같은 것이 채소밭 안을 왔다갔다 하고 있었습니다. 방울은 그 남자의 허리에 매달려 있는 것 같았습니다. 남자는 다리가 불편해 보였습니다. 사람의 그림자가 멈춰서자 방울 소리도 그쳤습니다. 저 남자는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왜 소나 양처럼 방울을 달고 다니는 것일까? 도대체 여기는 어떤 곳일까? 그럼 생각에 빠져들면서 문득 코제트의 손을 만져 보니 얼음장처럼 차가웠습니다. "코제트! 코제트!" 하고 부르며 몸을 흔들어 보았으나 코제트는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얼굴은 창백하고 몸도 축 늘어져 있었습니다. "죽은 것일까?" 아니, 코제트는 죽지는 않았으나 추위와 피로 때문에 정신을 잃고 말았던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코제트를 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는 이미 다른 것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야채밭의 사람 그림자가 비치는 쪽으로 다가갔습니다. "여보세요, 오늘 밤 여기서 좀 묵어 갈 수 없을까? 사례로 백 프랑을 드리겠습니다만." 마침 달빛에 비친 장발장의 얼굴을 흘끗 본 남자는 깜짝 놀란 듯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저어, 혹시 당신은 마들렌 시장님이 아니신가요? 이런 곳에서 만나 뵙다니.그런데 도대체 어디로 들어오셨습니까?" 뜻밖의 장소에서 전혀 낯모르는 사람이 자기 이름을 대자 장발장도 깜짝 놀랐습니다. "당신은 누구시죠?" 하고 그는 상대편 남자에게 되물었습니다. "저를 모르시겠습니까?" "모르겠는데요. 그런데 도대체 여기는 어디입니까?" "저는 전에 마차에 깔려 생명이 위험했을 때 시장님께서 구해 주신 포슐방입니다. 그리고 여기는 시장님께서 일자리를 주선해 주신 수녀원입니다." "아, 당신이었군요. 이제야 생각이 납니다. 이런 곳에서 만날 줄은 몰랐군요. 그건 그렇고 당신은 어째서 허리에 방울을 달고 다니나요?" "이것은 일종의 신호입니다. 이 곳은 여자들만 있는 수녀원이기 때문에 남자의 얼굴을 보아서는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방울 소리가 나면 수녀들은 저를 피하는 것입니다." 장발장은 자기가 포슐방 영감을 부탁한 그 수녀원에 우연히 들어온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니, 그런데 어떻게 여길 들어오셨습니까? 여기는 남자는 일체 들어오지 못하게 되어 있는데." "그렇게 말하는 영감님은 남자가 아닙니까?" "저는 특별하지요. 저만은요." "그렇지만 사실 나는 당분간 여기에 꼭 좀 있었으면 좋겠소." 포슐방 영감은 몹시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다물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당신의 생명을 구해 주었소. 이번에는 당신의 힘을 빌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군요." "시장님께서는 제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어떤 일이라도 할 테니 말씀만 해 주십시오 "당신은 어디에 살고 있나요?" "바로 앞의 오두막집입니다. 비좁은 곳이긴 하지만 빈 방도 있습니다." "그럼 부탁하고 싶은 것이 두 가지 있어요. 하나는 내 이야기를 절대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 것과 또 하나는 나에게 아무것도 물어 보지 말 것. 이렇게 두 가지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나와 함께 가 주지 않겠소? 아이를 데리고 와야 해요." "아니 아이가 있습니까?" 그러나 할아버지는 그 이상은 아무 말도 묻지 않고 잠자코 뒤를 따라왔습니다. 곧 코제트는 할아버지의 오두막으로 옮겨져 따뜻한 불을 쬐자 원기를 되찾아 푹 잠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장발장과 포슐방 영감은 한잠도 자지 못했습니다. 장발장으로서는 이미 쟈베르에게 들킨 이상 파리 시내로 나가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싫어도 이 수녀원에 있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습니다. 이 곳은 남의 눈에 뛸 염려도 없는 더할 나위 없이 안전한 장소가 아닌가. 포슐방 영감은 자꾸만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습니다. 높은 담으로 둘러싸여 있는 이 수녀원 안으로, 더구나 아이까지 데리고 어떻게 들어온 것일까? 그리고 저 마들렌 시장이 어째서 이런 차림을 하고 있는 것일까? 포슐방 영감은 수녀원의 문지기가 된 이후로는 몽뜨르유 마을의 소식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틀림없이 사업에 실패해서 빚쟁이에게 쫓기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으면 뭔가 정치적인 일로 몸을 숨기려고 하는 것이리라. 할아버지에게 있어서 분명한 것은 마들렌 씨가 자신의 생명의 은인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자기는 마들렌씨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장발장에게 말했습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해 보았는데 우선 어떻게든 시장님을 저와 함께 이 곳에서 일하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렇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기는 남성 금지 구역이니까요.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여기에서 나가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장발장은 얼굴색이 변했습니다. 자기가 이 곳에 숨어들었다는 것이 알려진 이상 밖으로 나가는 것은 스스로 잡히러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니오, 그것은 안 돼요. 이대로 여기 있게 해 줄 수는 없겠소?" "그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곤란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오늘만은 괜찮습니다. 수녀님 한 분이 임종이 임박해 모두들 하루 종일 기도를 드리고 있으니까 이 근처에 사람들이 올 염려는 없습니다. 다만 기숙사의 학생들은 언제 어느 때 올는지 모르겠습니다." "아, 여기에 학생 기숙사도 있나요? 그러면 이 아이의 교육도 부탁했으면 하는데." "따님인지 손녀인지는 모르겠지만.이 어린 소녀라면 문제 없습니다. 풀 베는 바구니에 넣어서 제가 등에 지고 나가면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아는 집에 맡겨 두면 됩니다." 무엇보다도 몸집이 큰 장발장을 어떻게 밖으로 내가느냐 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이 곳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정식으로 문을 통해 들어온 사람이어야만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일단 이 곳에서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 때 큰 건물 쪽에서 종이 울렸습니다. "드디어 수녀님이 돌아가셨군요. 원장 수녀님으로부터 여러가지 지시가 있을 것입니다. 마침 잘 됐습니다. 이 기회에 시장님의 일을 잘 부탁드려 보겠습니다. 제가 돌아올 때까지는 꼼짝 말고 숨어 계십시오." 할아버지가 나간 뒤 마침 코제트가 눈을 떴으므로 장발장은 여러 가지 사정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잠시 뒤에 할아버지가 돌아와 말했습니다. "시장님을 고용하도록 이야기가 잘 되었습니다. 내일 원장 수녀님께서 만나시겠다고 합니다. 일이 잘 풀릴 것 같습니다. 원장 수녀님으로부터 부탁받은 어려운 일을 떠맡아 하는 대신 시장님을 이곳에서 일하실 수 있도록 부탁한 것입니다. 다만 그 전에 어떻게든 여기서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는군요. 기적이 일어나길 기대해 보는 수밖에는." 원장 수녀로부터 부탁받은 어려운 일이란 죽은 수녀가 자신의 시체는 밖의 묘지가 아니라 수도원의 제단 밑에 묻어 달라고 유언했기 때문에 나라의 법률을 어기는 일이 되지만 간절한 그 소원을 들어 주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일을 잘 처리해 주도록 포슐방에게 부탁하고 싶다는 것이 원장 수녀의 말이었습니다. "그 부탁을 받아들이는 대신 제 동생을 저와 함께 정원지기로 일하게 해 주고 그 아이도 기숙사에 넣어 달라고 단단히 부탁해 승낙을 받아 낸 것입니다. 그건 그렇다 치고 곤란한 일이 또 한 가지 있습니다. 관을 무덤 파는 일꾼이 메고 나갈 때 안이 텅 비어 있으면 곧 발각이 될 것입니다.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장발장은 물었습니다. "관의 크기는 어느 정도인가요?" "2 미터쯤 됩니다." "그럼 그 안에 뭔가를 넣으면 되지 않겠소?" "흙이나 돌멩이 말인가요? 그런 것을 넣으면 금방 발각이 됩니다. 죽은 사람을 대신 찾을 수도 없고." "그런 것이 아니오." "그럼 도대체 무엇을?" "살아 있는 사람을 넣는 것이오." "어디의, 누구를 말입니까?" "여기 있는 나를 말이오." 할아버지는 몹시 놀라 장발장을 뚫어지게 쳐다보았습니다. "안 될 일도 없지 않겠소? 내가 그 안에 들어가 밖으로 나가면 두 가지 문제가 한꺼번에 해결되는 것이 아니겠소?" 포슐방 영감은 기가 막히는 한편 감탄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기는 해도 얼마나 위험한 모험인가. 안에서 숨이 막혀 버릴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장발장은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런데 관에 못을 박는 것은 관청에서 보낸 일꾼인가요?" "아니오, 그 일은 바로 제가 합니다." "그렇다면 적당히 헐겁게 못을 박아 주면 좋겠소." "그래도 숨이 막힐 겁니다." "아니오, 송곳으로 작은 구멍을 몇 개만 뚫어 놓으면 괜찮아요. 눈에 띄지 않도록 말이죠. 그렇게 하면 숨도 쉴 수 있으니까요. 여하튼 관 속에 들어가 여기서 밖으로 나가는 것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을 것 같군요. 일이 어떻게 되든 그 다음은 하느님께 맡기는 수밖에 없소." 그의 결의에 찬 모습을 보고 포슐방 할아버지도 그 뜻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단, 문제는 묘지로 옮겨간 후의 일이오." "그 점이라면 염려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묘를 파는 영감과 저는 서로 잘 아는 사이인데 아주 술고래라서 술집으로 데리고 가 잔뜩 술에 취하게 만들어 버리면 됩니다. 그리고 묘지에 출입하는 데 필요한 통행증을 영감에게서 슬쩍 꺼내 저 혼자서 묘지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시장님을 관에서 나오게 해 둘이서 묘지를 빠져 나가면 됩니다." "과연, 그렇게 하면 되겠군요. 영감님, 이것으로 이제 일은 잘 될 것이오." 장발장은 자신에 찬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습니다. 산 송장 다음 날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어 갈 무렵, 수녀원을 나선 장례 행렬은 조용하게 묘지를 향해 나아갔습니다. 물론 관 속에 누워 있는 사람은 장발장이었습니다. 드디어 마차는 묘지의 문 앞에 도착했습니다. 포슐방 영감이 문지기에게 시체를 묻기 위한 허가증을 보이고 있는데 낯선 젊은 남자가 나타나 관 옆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는 어깨에 곡괭이를 메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요?" 하고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영감이 물었습니다. "무덤을 파는 사람이올시다." 포슐방 영감은 깜짝 놀랐습니다. "당신이 무덤 파는 사람이라고? 메티엔느 영감일 텐데!" "그 영감은 죽었소. 그래서 내가 그 후임으로 나온 거요." 뜻밖의 일에 포슐방 영감은 새파랗게 질려 젊은 남자의 얼굴을 꼼짝 않고 쳐다보았습니다.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메티엔느 영감이 죽었다고? 흐흠, 그럼 우리 영감을 애도하는 뜻에서 기도하는 틈을 타 한잔 하러 가지 않겠소?" "아니오, 일이 먼저요. 그리고 난 술을 마시지 않아요." "그래도 서로 사귀게 된 기념으로 한잔 하러 가세." "내게는 일곱 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있소이다. 술이라니 당치 않아요." 포슐방 영감은 아주 난처한 입장에 빠졌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드디어 관을 넣을 묘지에 다다랐습니다. 무덤 구멍은 이미 파여 있었습니다. 그 안에 관이 놓여졌습니다. 신부가 기도문을 외고 소년 합창단이 고운 목소리로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사람들은 손으로 흙을 떠올려 관 위에 드문드문 뿌렸습니다. 포슐방은 관 속의 마들렌 씨를 생각하자 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식이 끝나자 일행은 돌아갔습니다. 나중에 남은 일꾼이 곡괭이를 손에 들었습니다. 포슐방 영감은 이제 필사적으로 매달렸습니다. "여보게, 잠깐만 기다리게나. 우선 한잔 하고 난 다음에 일을 하세. 돈은 내가 낼 테니까. 자, 어서!" "거 참, 끈질긴 영감이로군. 술은 일이 끝난 뒤에 해도 되지 않소?" "너무 그렇게 쌀쌀맞게 굴지 말게. 한잔 하면 힘이 나서 일을 더 잘 할 수 있다니까. 자, 우선 술부터 한잔 하세." "마음대로 하시오, 영감. 나는 우선 일을 끝내야 하니까." 젊은 남자는 더 이상 영감과는 말하지 않고 흙덩이를 파 놓은 구멍 속으로 던져 넣었습니다. 난감해진 포슐방 영감은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습니다. 젊은 남자는 상체를 구부려서 흙을 떠올려 구멍 속으로 던져 넣고 있었습니다. 이 때 포슐방 영감은 젊은이가 앞으로 구부릴 때 웃옷 주머니로부터 하얀 통행증이 나와 있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영감은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해 젊은이의 표를 살짝 빼냈습니다. 그것은 폐문 시각 이외에도 묘지에 출입할 수 잇는 증명서였습니다. 포슐방 영감은 시치미를 떼며 젊은이에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자네 통행증은 틀림없이 가지고 왔겠지? 이제 곧 문 닫을 시간이네." "물론 가지고 왔죠." 그렇게 말하고 젊은이는 웃옷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당황하며 바지 주머니를 뒤졌습니다. "앗, 없다! 이상한데. 분명히 가지고 왔는데!" "통행증이 ,ㄳ면 벌금 15프랑을 물어야 해." 영감은 일부러 위협하는 듯한 말투로 말했습니다. 젊은이는 얼굴색이 변했습니다. "15 프랑! 5 프랑짜리 은화가 3개나 있어야 되잖아!" "그래, 큰 돈이야. 하지만 방법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지." "어떻게 하면 좋지요, 영감님?" "앞으로 5분만 지나면 문이 닫히네." "그렇군요." "5분 내에 구멍을 다 메울 수는 없네. 어쨌든 이렇게 깊으니 말일세. 하지만 지금은 좀 여유가 있으니까 어떻게든 해 보세. 자네, 집이 어딘가?" "여기서 15분 정도 걸리는 곳에." "그럼 지금 빨리 집으로 가서 찾아오는 것이 좋겠네. 그 때 까지 내가 여기서 지키고 있을 테니."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젊은이는 정신없이 뛰어나갔습니다.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포슐방 영감은 무덤 구멍 속으로 뛰어내려, 관 위에 덮인 흙을 마구 파헤치며 큰 소리로 불렀습니다. "시장님.마들렌 시장님.괜찮으세요?" 그러나 관 속에서는 대답이 없었습니다. 개미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습니다. 포슐방 영감은 가슴이 섬뜩했지만 가지고 온 끌과 쇠망치로 관 뚜껑을 비틀어 열었습니다. 누워 있는 장발장의 모습이 나타났으나 눈을 꼭 감은 채, 아무런 기척이 없었습니다. "아니 이럴 수가! 돌아가셨구나! 도와 드리려고 한 것이 그만 이런 꼴이 되고 말았어!" 영감은 그 자리에서 쓰러질 것 같았습니다. 그는 마구 소리 치면서 머리를 쥐어뜯었습니다. 그러자 그 때 죽은 줄로만 알았던 장발장이 갑자기 눈을 뜨고 영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아아, 한잠 푹 잔 것 같군." 그렇게 말하고 장발장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습니다. 틀림없이 죽은 것이라고 생각했던 마들렌 씨가 입을 열었으므로 포슐방 영감은 너무나 기뻐서 서 소리쳤습니다. "시장님, 돌아가시지 않았군요! 살아 계셨군요! 아, 다행이다! 정말 잘 됐어요!" "웬지 좀 추운 것 같군." 하고 장발장은 말했습니다. 포슐방 영감은 준비해 온 술병을 주머니에서 꺼내며 말했습니다. "그럼 이걸 마시고 몸을 좀 녹이세요." 장발장은 그것을 마시고 몸이 따뜻해지자 완전히 원기를 회복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둘이서 텅 빈 관에 열심히 흙을 끼얹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아주 깜깜해진 묘지를 떠나왔습니다. 장발장은 포슐방 영감이 젊은이로부터 살짝 빼낸 통행증을 가지고 유유히 통과했던 것입니다. 포슐방 영감은 도중에 젊은이의 집을 찾아가 통행증이 묘 옆에 떨어져 있었다고 하며 그것을 돌려 주었습니다. 그로부터 1시간쯤 지났을 무렵 두 남자와 한 여자 아이가 수녀원 문으로 들어갔습니다. 물론 이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이 포슐방, 장발장 그리고 코제트 이렇게 세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장발장은 수녀원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포슐방 영감의 동생이라고 하며 정원지기 일을 돕게 되었습니다. 코제트도 수녀원의 기숙사에 들어가도록 허락을 받아 그 곳에서 다른 여학생들과 함께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루에 한 시간은 '아버지'를 방문할 수 있도록 허락도 받았습니다. 장발장과 코제트에게 평온하고 즐거운 날들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코제트는 밝고 건강하고 총명한 소녀로 커갔습니다. 장발장의 가슴에는 부드럽고 온화하고 깨끗한 마음이 넘쳐 흐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몇 년이 흘렀습니다. 마리우스 프랑스에서는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한 일을 계기로 그 때까지 세력을 잃고 지중해의 엘바 섬에 유배되어 있던 나폴레옹이 1815 년 3월에 파리에 입성해 다시 권력을 장악했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도 이야기했듯이 나폴레옹은 1815 년 6월 18일 위털루 전쟁에서 영국, 프러시아(지금의 독일) 연합군에 패해 황제의 지위도 잃어버리고 미국으로 망명하려다가 실패하고 붙잡혀서 8월에는 대서양의 외딴 섬 세인트 헬레나에 유배되었습니다. 그리고 루이 18세가 왕위에 올라 프랑스를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나폴레옹을 섬기고 그 밑에서 일했던 사람들로서는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런 사람들 중의 한 사람으로 풍메르시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군인은 워털루 전투에서 적군의 군기를 빼앗는 공적을 세웠습니다. 그 때 적군의 칼에 찔려 중상을 입었습니다. 나폴레옹은 그의 용기와 공적을 기려 풍메르시 남작이라는 귀족의 직위를 수여했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섬으로 유배되고 루이 18세가 당시 왕위에 오른 지금에는 세상이 완전히 바뀌어 풍메르시는 세상을 등지고 숨어 살듯이 쓸쓸하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와 같이 나폴레옹 시대를 그리워하고 루이 18세의 정부를 증오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는 지르노망이라는 파리 갑부의 딸을 아내로 맞아 마리우스라는 남자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내는 어린 마리우스를 남기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루이 18세의 열렬한 지지자이고 원래 딸의 결혼에 반대했던 지르노르망 노인은 딸이 죽자 그 아이를 억지로 빼앗아 와 아이의 아버지와는 절대로 만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게다가 아이에게는 그의 아버지가 나쁜 사람이라고 철저히 가르쳤습니다. 풍메르시는 1 년에 두세 번 정도 파리로 나가서는 아들인 마리우스가 지르노르망 가 사람들의 손에 이끝려 교회의 일요일 미사에 가는 모습을 남몰래 지켜 보고 마음을 달래곤 했습니다. 1827 년, 마리우스는 이미 17세의 청년이 되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 밖에서 돌아오자 할아버지로부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아 나폴레옹이나 그를 받들던 아버지나 다 변변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그다지 슬프게 여겨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는 아들로서 아버지가 살던 마을인 베르농으로 갔습니다. 베르농으로 간 마리우스는 이미 숨을 거둔 채, 침대에 누워 있는 아버지를 처음으로 보았습니다. 그 얼굴에는 위엄과 인자함이 넘쳐 흘러 할아버지 말했던 것처럼 그렇게 나쁜 사람으로 도저히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그 집의 하인으로부터 마리우스 앞으로 쓴 아버지의 유서를 전해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나는 워털루 전쟁에서 세운 공적으로 나폴레옹 황제로부터 남작의 직위를 하사받았지만 현재의 정부는 이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너에게는 내 아들로서 이 남작의 직위를 주장할 권리가 있다. 또한 워털루 전쟁에서 테나르디에라는 하사관이 나를 위험에서 구해 주었다. 만일 이 사람을 만나면 아버지를 대신해서 꼭 은혜를 갚아 다오. 마리우스는 베르농 마을에서 아버지와 가까이 지냈던 사람들로부터 아버지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진실하고 훌륭한 인물이었다는 것과 아들인 그를 얼마나 사랑했고 그와 함께 살 수 없어서 얼마나 쓸쓸했는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어린 마리우스를 지르노르망 가로 보냈던 것도 그의 행복을 위한 일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일로 인해 마리우스의 마음은 바뀌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파리에 돌아온 그는 도서관을 다니며 나폴레옹 시대의 신문과 기록을 모조리 조사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의 이름이 훌륭한 공훈을 세운 군인으로서 여기저기 실려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마리우스는 자신의 아버지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 영웅이었다는 것과 그런데도 세상에서 받아 주지 않아 쓸쓸한 생애를 마쳤다는 사실에 대해 눈물을 흘렸습니다. 마침내 마리우스가 할아버지와 충돌할 순간이 닥쳐 왔습니다. 어느 날 할아버지는 마리우스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풍메르시인지 누군지의 유언을 진짜로 받아들여 남작이 될 모양인데 어리석은 짓은 그만두거라. 그리고 점점 이상한 생각에 열중해 가는 것 같구나." "어쩔 수가 없어요. 전 풍메르시 남작의 아들이니까요."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말아라! 네 아버지는 여기 있는 내가 아니냐?" "아니오, 저의 진짜 아버지는 퐁메르시 남작입니다. 아버지는 프랑스를 위해 용감하게 싸운 훌륭한 군인이셨습니다. 여러 가지 사실을 조사해 본 결과 그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를 진심으로 사랑해 주셨던 분입니다." 이런 마리우스의 단호한 말을 듣고 지르노르망 노인은 불같이 화를 냈습니다. 노인은 자신에게 정면으로 거역하는 마리우스를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나폴레옹 퐁메르시의 편을 드는 너 같은 어리석은 녀석은 더 이상 이 집에 있을 필요가 없다! 당장 나가거라!" 마리우스는 말없이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고 그 앞을 떠나갔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 되는 돈과 두세 벌의 옷만을 챙겨 파리의 거리로 향했습니다. 소녀와 노인 할아버지의 집을 뛰쳐 나온 마리우스는 파리의 뒷골목에 살면서 대학에서 법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혼자 힘으로 살아 나가야 했으므로 외국어를 번역하거나 광고문을 쓰는 등 닥치는 대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지 했습니다. 그런 일로 버는 돈은 극히 적었으므로 그의 생활은 그 날 하루 하루 먹고 살기에도 힘들 정도로 괴로웠습니다. 싸구려 하숙집의 꾀죄죄한 방에서 양의 갈비뼈를 씹으며 허기를 달랜 적도 있었습니다. 이런 고통스러운 생활이었지만 마리우스는 열심히 공부를 해 드디어는 변호사 자격을 딸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풋내기 변호사에게는 그다지 사건을 의뢰하는 손님이 많지 않아 생활은 여전히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조용하고 싼 집을 찾아 돌아다니고 고르보 저택을 발견하고 그곳의 방 하나를 빌렸습니다. 고르보 저택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듯이 장발장과 코제트가 살았던 낡은 저택입니다. 마리우스의 가슴에는 아버지의 이름과 함께 테나르디에라는 이름이 깊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워털루 전쟁에서 중상을 입고 쓰려져 있던 아버지를 구해 준 하사관이라는 사실을 그는 아버지의 유서를 통해 알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이 사람을 찾아 내 꼭 은혜를 갚으라고 유서에서까지 아들인 마리우스에게 부탁하고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수단을 써서 겨우 알아낸 것은 그 하사관은 한동안 몽뜨르유 마을에서 여관을 경영했으나 장사에 실패하고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는 이야기뿐이었습니다. 그 고르보 저택은 방이 많고 그 때쯤에는 몇 세대가 살고 있었습니다. 마리우스는 고르보 저택의 2층 방 하나를 빌려서 살고 있었는데 옆방에는 아주 가난해 보이는 가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가족들과 정면으로 얼굴을 마주 대한 일은 없었지만 이 가족들이 머지않아 이 곳에서 쫓겨날 것이라는 이야기를 관리인 할머니로부터 들었습니다. "왜 쫓겨나는 것이지요?" "방세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랍니다." "방세가 어느 정도 밀려 있습니까?" "20 프랑이에요. 그 집에서 방세를 지불한다는 것은 무리이지요." 그 말을 듣고 마리우스는 잠시 생각한 뒤에 방으로 들어가 서랍 속에 소중히 간직해 두었던 30 프랑을 꺼내 와 할머니에게 건네 주며 말했습니다. "이 돈으로 그 사람들의 방세를 치르고 나머지는 그 사람들에게 주십시오. 제가 주었다는 이야기는 하지 마시고요." 마리우스는 사람이 붐비는 곳 따위에도 가지 않고 그다지 사람들과도 사귀는 일 없이 책을 읽거나 가까운 뤽상부르 공원으로 산책하러 나가는 것을 일과로 삼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산책을 하러 나갈 때 가끔 공원 안에서 노인과 젊은 아가씨를 만나는 일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언제나 같은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노인은 60세 정도로 튼튼해 보이는 몸집을 하고 있었으며 위엄 있는 표정에는 예전에 군인이었을 것 같은 인상을 풍기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우스는 그 사람의 표정에는 동시에 어딘가 쓸쓸해 보이는 면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한편 노인의 곁에 바싹 다가앉아 있는 아가씨는 꽃처럼 사랑스러운 16,7세의 소녀였습니다. 넘실거리는 금발, 아름다운 이마, 장밋빛 뺨 그리고 푸른 눈동자는 드높은 하늘처럼 맑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습니다. 뤽상부르 공원에도 싱그러운 봄의 향기가 넘쳐 나 마로니에 가지에서는 작은 새들이 지저귀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그는 소녀에게 말을 걸 수 없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지만 도저히 그런 일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든 소녀의 이름과 주소만이라고 알 수는 없는 것일까? 소녀 쪽에서도 마리우스가 마음에 있는 듯 이따금 그에게 뭔가 생각에 잠긴 듯한 눈길을 보내고 그가 눈치챈 것을 알아 차리면 살짝 얼굴을 붉히는 일도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마리우스는 마침내 결심을 하고 공원에서 나가는 두 사람의 뒤를 쫓았습니다. 노인과 소녀가 들어간 곳은 파리 안에서고 호젓한 곳에 있는 쓸쓸한 건물이었습니다. 그는 용기를 내어 문지기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지금 여기로 들어간 사람들의 방이 어디입니까?" "4층 통로 쪽에 있는 방인데요." "이름은 뭐라고 합니까?" "르블랑 씨입니다. 그다지 큰 부자도 아닌 것 같은데 이 근처의 어려운 사람들을 잘 돌봐 주시는 분이지요."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문지기는 의아한 표정으로 마리우스에게 되물었습니다. "당신은 경찰입니까?" 마리우스는 몹시 당황해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다음 날, 어찌 된 일이지 노인과 소녀는 공원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두 사람은 여전히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리우스는 매우 우울해서 견딜 수 없게 되자 드디어 두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을 다시 찾아가 보았습니다. "4층의 그 노인은 어떻게 되셨습니까?" "어제 이사가셨어요." "어디로 이사를 가셨지요?"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는데요." 문지기는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그의 얼굴을 보면서 다시 말했습니다. "아, 당신이군요. 역시 경찰이었군요." 어느 날 아침 누군가가 마리우스의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문을 열어 보니 웬 아가씨 한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차림새가 몹시 초라하고 매우 수척한 얼굴에 나이는 15,6세 정도 되어 보였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하고 마리우스는 물었습니다. "저는 옆방에 사는 종드레트 씨의 딸입니다. 아버지의 편지를 가지고 왔는데요." 그 소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허락도 받지 않고 제멋대로 남의 방에 들어와 한 통의 편지를 내밀었습니다. 마리우스가 편지를 열자 거기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습니다. 옆방의 친절한 젊은 분께 반 년 전 당신이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저희들의 밀린 방세를 대신 갚아 주신 일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가족이 모두 4명인데 그저께부터 한 조각의 빵도 없이 지내는 데다가 아내는 병으로 누워 있습니다. 얼마만이라도 인정을 베풀어 주신다면 생명의 은인으로 일생 동안 그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종드레트 그가 편지를 읽고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에 소녀는 책상에 다가가 그 곳에 있는 책이 있는 것을 발견하자, "앗, 책이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때까지 게슴츠레하던 눈이 갑자기 반짝였습니다. "나도 책을 읽을 수 있어요." 그리고 그 책을 들어서 아주 거침없이 읽어 보였습니다. "아아, 워털루! 나도 알아요. 굉장한 전쟁이었지요? 우리 아버지도 참가했었어요. 군인이었거든요." 소녀는 책을 놓자 이번에는 펜을 집어들고 소리쳤습니다. "나 쓸 줄도 알아요!" 그렇게 말하고는 펜이 잉크를 찍어 흰 종이에 '개가 있다'라고 썼습니다. "맞춤법, 안 틀렸죠? 나도 어릴 때는 공부를 했었거든요. 원래부터 이렇지는 않았어요, 우리들도." 이 때 마리우스는 언젠가 시내에서 이 소녀와 자매인 듯한 소녀가 마리우스의 곁을 스치고 지나갔을 때 두 소녀가 편지 뭉치를 떨어뜨린 것을 주운 생각이 났습니다. "이것은 아마 아가씨의 물건 같은데 돌려 드리지요." 소녀는 손뼉을 치며 소리쳤습니다. "어머나, 그것 때문에 얼마나 여기저기 찾아다녔는지 몰라요! 당신이 주우셨군요. 큰 길을 달려가다가 바보 같은 내 동생이 떨어뜨린 것이에요. 우린 매맞기가 싫어서 잘 전했다고 거짓말을 했죠. 그런데 그것이 내 거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나요? 아아, 글씨가 똑같구나!" 소녀는 그 중의 한 통을 열어 보였습니다. "이건 언제나 교회의 미사에 오는 인정 많은 할아버지에게 보내는 것이에요. 아, 참 그렇군요. 마침 그 할아버지가 올 시간이 되었으니까 빨리 이 편지를 전하러 가야겠어요. 식사비 정도는 받을 수 있을지 모르니까요." 이 때 마리우스는 소녀가 자기에게로 온 이유가 생각났습니다. 조끼 주머니와 여기저기를 뒤져 겨우 5 프랑 60수를 찾아냈습니다. 그것은 이 때 그가 가진 전재산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저녁 식사비로 60수를 남겨 놓고 나머지 5 프랑은 모두 소녀에게 건네 주었습니다. "어머나, 좋아라! 5 프랑짜리 금화야! 이것으로 온 식구가 이틀은 먹을 수 있겠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방을 나가려던 소녀는 찬장 구석에 먼지를 뒤집어쓴 딱딱해진 빵조각을 발견하자 갑자기 달려들어 으드득 으드득 씹어먹기 시작했습니다. "아, 맛있어! 딱딱해서 이가 부스러질 것 같지만 그래도 맛있어." 소녀는 빵조각을 들고 방을 나갔습니다. 옆방 어떤 가족일까? 마리우스는 그들이 매우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종드레트의 딸을 만난 날부터 이 가족의 생활 모습이 어떤가 알고 싶어졌습니다. 문득 보니 옆방과의 경계인 벽 천장 가까운 부근에 틈이 있었습니다. 그는 곧 벽장 위로 기어올라가 옆방의 동정을 살펴보았습니다. 그의 눈에 비친 것은 인간이 사는 곳이라기보다는 짐승의 소굴이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리는 기가 막힌 광경이었습니다. 가구라고 해야 다 부서지고 속의 짚이 비어져 나온 다리가 하나뿐인 의자와 다 쓰려져 가는 식탁 그리고 곧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두 개 뿐이었습니다. 한쪽으로 기운 테이블을 향해 나이든 남자 한 사람이 앉아 있었습니다. 나이는 60세쯤 되었고 깡마르고 얼굴색은 창백하고 어딘지 모르게 잔인하고 교활한 표정이 엿보였습니다. 이 집의 가장인 종드레트일까? 지저분한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리고 파이프를 입에 물고서는 무엇인가를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아마도 아까 마리우스가 보았던 것과 같은 편지를 여기저기 보내려고 쓰고 있는 것이겠지요. 작은 불꽃이 바지직 타고 있는 난로 옆에는 몸집이 커다란 여자가 웅크리고 있습니다. 몸에 걸친 것은 역시 꾀죄죄한 셔츠와 스커트입니다. 그리고 침대 하나에는 바싹 마른 소녀가 앉아 있었습니다. 아까 온 소녀의 동생임에 틀림없었습니다. 눈은 뜨고 있지만 특별히 무엇을 보는 것도 아니고 그저 멍하니 시선을 앞으로 향하고 있을 따름이었습니다. 이 때 갑자기 방문이 열리고 아까 보았던 그 소녀가 들어와 가족들을 향해 말했습니다. "와요, 이리로. 그 노인이." 종드레트는 펜을 집어던지며 되물었습니다. "정말이냐? 노인이 그 편지를 읽었단 말이냐?" "정말이에요. 교회에서 잽싸게 편지를 전해 주었는걸요. 언제나 같이 다니는 그 딸 아이와 함께 마차를 부르고 있었으니까 이제 곧 올 거예요." "고맙기도 해라! 이 영감, 잘 걸려들었군! 역시 머리는 쓰고 볼 일이야. 자아, 물을 끼얹어 난로 불을 꺼라." 그렇게 말하고 자신은 침대의 지푸라기를 전부 끄집어 내 여기저기 흩뿌리고 나서 주먹을 꽉 쥐고 유리창을 깼습니다. 그리고 멍하니 서 있는 세 여자를 향해 냅다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직도 모르겠어? 남한테서 돈을 우려 내려면 될 수 있는 한 비참하게 보이는 것이 제일이라구!" 그러고 나서 다시 부인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아니, 언제까지 그렇게 우두커니 서 있을 거야! 빨리 가서 누우라니까. 당신은 중병에 걸린 사람이라고 ."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고 찬 바람이 눈을 방 안으로 몰아쳤습니다. 세 여자는 불 꺼진 난로 옆에 바싹 다가가 오들오들 떨고 있었습니다. "보기 좋군 그래. 이 꼴을 보면 어느 누구라도 돈을 듬뿍 내놓고 싶어질 거야.그건 그렇다 치고 이거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잖아? 혹시 주소를 잘못 안 것 아냐?" 그가 이렇게 투덜거리고 있을 때,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종드레트는 튕겨 나가듯이 문으로 달려가 방문을 열고 공손하게 절을 하며 말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자, 자 어서 들어오십시오. 정말 잘 와 주셨습니다." 노인과 소녀가 들어왔습니다. 자기 방 틈새로 안을 엿보고 있던 마리우스는 자기도 모르게 앗 하고 소리를 지를 뻔했습니다. 방에 들어온 사람들은 바로 공원에서 날마다 보았던 그 노인과 소녀가 아닌가! 마리우스가 그렇게도 보고 싶었던 그 두 사람이 아닌가! 꿈이 아닐까? 그 두 사람이 어떻게 해서 이런 곳까지 오게 된 것일까? 마리우스는 가슴이 뛰고 현기증이 날 것만 같았습니다. 소녀는 테이블 위에 큰 꾸러미를 놓았습니다. 종드레트 일가에게 주는 선물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드레트의 아내와 두 딸은 소녀의 몸에 장식된 것들과 그 모습을 질투하는 듯한 음흉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 안에는 옷과 담요, 양말 등이 들어 있습니다. 부디 받아 주셨으면 합니다." 하고 노인은 테이블에 다가서며 말했습니다. "원, 이렇게 자비로우신 어른이 또 어디 계실까.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종드레트는 이마를 바닥에 문질러대듯이 하며 그렇게 말했지만 마음 속으로는 이런 것 말고 어떻게든 현금을 우려 내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어, 나으리. 이것 좀 보십시오. 저희 방에는 불도 없고 당장 먹을 빵도 없습니다. 유리창은 깨진 채 그대로이고 눈이 휘몰아쳐 들어오는데 아내는 누웠다 일어났다 정신을 못 차리고. 게다가 저까지 공장에서 이렇게 상처를 입고 말았으니." 그렇게 말하고 종드레트는 유리를 깰 때 다친 손을 내보였습니다. "그것 참 안됐군요." 하고 노인이 한숨 섞인 말투로 걱정을 하자, 소녀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종드레트는 이윽고 거짓 눈물을 흘리면서 또 마구 지껄여댔습니다. "이 손의 상처 말씀인데요, 어쩌면 팔을 잘라 버려야만 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일은 할 수 없고 돈은 한 푼도 없고 도대체 어떻게 될지." 그러나 종드레트는 이렇게 마구 떠벌리면서 노인의 얼굴을 아까부터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뭔가 옛 기억을 더듬으려고 할 때의 표정이었습니다. 그는 다시 노인에게로 얼굴을 돌려 더욱 처량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친절하신 나으니, 또 한 가지 곤란한 것은 이제 내일이라도 당장 여기서 쫓겨날 판입니다. 도저히 방세를 낼 수는 없고 밀린 방세가 60 프랑이나 되어." "공교럽게도 지금은 5프랑밖에 가진 것이 없군요."라고 말하면 노인은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았습니다. 종드레트가 속으로 노인을 우습게 여기며 이까짓 5 프랑으로 어떻게 하란 말이냐 하고 투덜거리자 노인은, "지금은 5 프랑밖에 없지만 필요한 만큼의 돈을 가지고 오늘 저녁 6시까지 다시 한 번 들르지요." 하고 덧붙여 말했습니다. 그리고 소녀의 손을 잡고 입구 쪽으로 갔습니다. 딸이 그것을 말하려 하자 종드레트는 쏘는 듯한 무서운 눈초리로 딸을 노려보았습니다. "그럼, 나중에." 그렇게 말하고 노인과 소녀는 떠나갔습니다. 흉계 마리우스는 엿보기를 그만두고 바닥으로 내려섰습니다. 이제 막 엿본 광경은 그에게 있어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랄 만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환상처럼 사라져 버렸던 그 천사 같은 소녀를 다시 본 것만으로도 그는 정신이 없었습니다. 아무튼 이번에는 그 소녀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두 사람의 뒤를 쫓으려고 현관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 때는 이미 그가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마차가 멀리 사라져 가고 있었습니다. 마리우스는 실망해서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자 그 곳에는 종드레트의 딸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무뚝뚝하게 말했습니다. "왜 또 왔습니까? 대체 무슨 일이지요?" 소녀는 입구에 선 채 주삣주삣하며 말했습니다. "당신은 부자가 아닌데도 오늘 아침에는 저희들에게 친절하게 해 주셨어요. 당신은 지금 어쩐지 매우 슬퍼 보이는군요. 당신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하겠어요. 제게 어떤 일이든 시켜 주세요." 마리우스는 잠시 당황했으나 문득 생각이 떠올라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가씨 방에 손님이 왔었지요? 그 사람들의 주소를 알고 있어요?" "아니오." "내가 그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서 그래요."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그 사람들을 찾든 말든." "만일 아가씨가 찾으면 뭘 해 줄까요?" "무엇이든 좋아요. 그럼 꼭 찾아오겠어요." 그렇게 말하고 소녀가 나간 뒤 혼자가 되자 마리우스는 아까 보았던 이상한 광경에 대해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노인과 소녀가 어째서 그런 곳에 나타났는지 그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 때 옆방으로부터 종드레트의 커다란 외침 소리가 울려왔습니다. "분명히 그 놈이야. 내 눈이 틀림없다구!" 마리우스는 다시 벽장 위로 기어올라가 벽의 틈새로 엿보았습니다. 종드레트가 눈을 번뜩이면서 방 안을 왔다갔다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그런 일이." 하고 부인이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말투로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니까 당신 눈은 있으나마나 소용이 없다구. 벌써 8 년 가까이나 된 일이지만 나는 그 놈인 줄 첫눈에 알아봤지. 차림새는 나아졌지만 목소리나 얼굴 모습은 변하지 않았어. 그런데 또 한 가지 매우 재미있는 사실을 가르쳐 줄까?" "그게 뭔데요?" "녀석이 데리고 있던 딸 아이 말이야." "그 딸 아이가 어쨌는데요?" "그 아이가 바로 우리 집에 있던 그 애라구." "네엣? 설마!" "설마가 아니야. 정말이라니까." 그 이야기를 듣고 놀라는 부인의 모습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어머나, 세상에! 그렇게 멋지게 차려 입은 예쁜 아가씨가 그 계집애란 말이에요?" 부인은 귀신 같은 모습을 하고 소리쳤습니다. "이거 어디 분해서 견딜 수가 있나. 내게 좋은 생각이 있다고, 놈은 6시에 온다고 했어. 마침 옆방의 가난뱅이 변호사도 저녁을 먹으러 나가고 관리인 할머니도 밖으로 나가는 시간이야. 이제부터 가서 친구들을 서너 명 데리고 와야겠어. 놈을 해치우고 돈을 왕창 우려 내는 거야!" "그래요, 잘 해 봐요." "금방 나갔다 올게. 친구하고 계획을 짜 가지고 와야지. 이번에야말로 그 놈의 가면을 벗겨 버려야겠어!" 옆방의 틈새로 모든 것을 보고 들은 마리우스는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밤 이 곳에서 무서운 흉계가 꾸며지고 있는 것입니다. 노인뿐만 아니라 그 소녀도 말려들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어떻게 하면 두 사람을 구해 낼 수 있을까? 잠시 생각한 뒤에 마리우스는 곧장 경찰서로 달려가 안내하는 소년을 따라 어느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곳에는 스토브 앞에 키가 큰 형사가 서 있었습니다. 네모진 얼굴, 얇은 입술, 게다가 남의 마음 속 구석구석까지 꿰뚫어보는 쏘는 듯이 차갑고 예리한 눈빛. 이 사람은 우리들이 이미 알고 있는 형사입니다. 마리우스는 이 형사에게 일종의 불쾌감을 느꼈으나 동시에 강한 신뢰감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는 바로 조금 전에 들은 이야기를 남김없이 상세하게 말해 주었습니다. 그 집의 위치를 말하자 형사는 그 집을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 복도 맨 끝의 구석방이군요." 그렇게 말하고 나서 형사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어 권총을 두 자루 꺼내 마리우스에게 건네 주었습니다. "두 자루 다 총알이 들어 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방에 숨어 계십시오. 노인과 아가씨에게 위험이 닥치면 천장이나 바닥을 향해 총을 쏴 주십시오. 그러면 우리들이 뛰어들겠습니다. 단 너무 일찍 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마리우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권총을 자기 주머니에 집어넣었습니다. "만일 저에게 연락할 일이 있으면 쟈베르를 찾으면 됩니다." 하고 형사는 뒤돌아서 나가는 마리우스에게 말했습니다. 권총을 손에 들고 마리우스는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게 살짝 자기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6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입니다. 마리우스는 다시 벽장 위로 기어올라가 벽의 틈새로 옆방의 상황을 살폈습니다. 그의 눈에 비친 것은 섬뜩하리만큼 이상한 광경이었습니다. 테이블에 양초가 한 자루 놓여 있었는데 온 방 안이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난로 안에서 석탄이 활활 타오르고 그 안에 꽂힌 쇠로 만든 인두는 시뻘겋게 달구어져 불꽃을 튀기고 있었습니다. 종드레트는 물론이고 그 부인도 얼굴이 아주 빨갛게 물들어 마치 악마 부부와도 같았습니다. 드디어 교회의 큰 시계가 6시를 알렸습니다. 약속 시간에 정확히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종드레트의 부인이 서둘러 문을 열고 억지 웃음을 띠면서 매우 공손한 말씨로 인사했습니다. "아이고, 어서 오십시오. 나으리." 노인이 들어왔습니다. 이번에는 혼자 왔습니다. 노인은 테이블에 금화 네 닢과 80 프랑 놓으며 말했습니다. "이것은 밀린 방세와 당장 필요한 일에 써 주십시오. 그 다음 일은 나중에 다시 의논합시다." "원, 이렇게 고마우실 데가. 당신에게 신의 축복이 내리시기를." 그렇게 말하고 나서 종드레트는 부인의 귀에 대고 속삭였습니다. "이 늙은이의 마차를 빨리 돌려 보내라구." 부인은 즉시 그가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따님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고 노인이 침대에 아무도 누워 있지 않은 것을 보고 물었습니다. "아, 예, 상태가 좋지 않아서 병원에 갔습니다." "그렇습니까? 부인은 건강이 좋아 보이시는 것 같군요." "아니오, 결코 건강 상태가 좋지는 않지만 여자는 원래 소나 말 같아서 이상하게도 완전히 녹초가 되지는 않습니다." 종드레트가 열심히 지껄이고 있을 때 마리우스는 문이 소리도 없이 쓱 열리며 한 남자가 들어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부랑자처럼 보이는 차림을 하고 양팔에 흉측한 문신을 새겨넣은 남자였습니다. "저 사람은 누구입니까?" 하고 노인은 그 남자에게 신경이 쓰이는 듯 물었습니다. "네, 저 사람은 옆방에 사는 사람인데 신경쓰지 마십시오." 그렇게 대답하고 나서 종드레트는 화제를 돌렸습니다. "그런데 나으리, 보다시피 저희들은 이렇게 찢어지게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어서 옛날에 가지고 있던 것들도 전부 팔아 버렸습니다. 그래도 그림만은 한 장 가지고 있는데 이것도 처분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습니다. 부득이한 경우에는 어쩔 수 없었으니까요. 나으리께서 사 주신다면 고맙겠습니다만." 그 때 시 소리 없이 문이 열리고 서너 명의 남자가 슬쩍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모두가 인상이 좋지 않은 수상쩍은 무리였습니다. 종드레트는 그림을 꺼내 왔습니다. 그림은 아주 조잡한 것으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간판 그림이었습니다. 노인은 그 그림을 보면서 방의 구석으로 흘끗 시선을 돌렸습니다. 거기에는 네 명의 남자가 버티고 있었습니다.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어딘가 수상쩍고 당장이라도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그런 패거리들이었습니다. "나으리, 이 친구들은 이 근처에 사는 저와 절친한 녀석들이죠. 그런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그림을 사 주기지 않겠습니까? 제 딸이나 마찬가지로 소중히 아껴 온 것입니다만." "어는 가게의 간판 같군요. 3 프랑이나 나가겠습니까?" "아이고, 나으리. 무슨 농담을 그렇게. 5천 프랑이면 어떻습니까?" 이 말을 듣자 노인은 벌떡 일어서 벽을 등지고 방 안을 휘둘러보았습니다. 순간 종드레트는 태도를 확 바꾸어 갑자기 깡패 같은 말투로 소리쳤습니다. "이봐, 영감. 내 얼굴을 본 기억이 없나!" "없소." 하고 노인은 대답했습니다. 긴장을 한 탓인지 약간 창백해지기는 했으나 두려워하는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 때 마치 서로 미리 짠 듯이 문이 열리며 세 사람의 남자가 더 들어왔습니다. 세 사람 다 복면을 하고 푸른 작업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쇠막대기를 손에 쥐고, 또 한 사람은 소를 잡을 때 쓰는 도끼를 들고, 다른 한 사람은 교도소에서라고 훔친 듯한 커다란 갈고랑이를 늘어뜨리고 있었습니다. 노인은 여러 명의 적을 앞에 놓고도 억세 보이는 주먹을 불끈 쥐고 한 발짝도 물러나지 않을 자세로 서 있었습니다. 아까까지만 해도 인정 많고 지금은 힘세고 용감한 투사로 변해 있었습니다. 남몰래 그 광경을 지켜 보던 마리우스는 자기도 모르게 감탄사가 터져 나올 정도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보다도 신호를 표시하는 권총을 발사해야만 할 때가 다가왔습니다. 그는 권총을 방아쇠에 손을 가져갔습니다. 종드레트는 아주 밉살스러운 말투로 다시 소리쳤습니다. "모르겠다면 가르쳐 줄까! 난 종드레트 따위가 아니야! 테나르디에라고! 몽페르메이유에서 여관을 했던 바로 그 테나르디에란 말이야! 자, 이제 알겠지!" 노인의 얼굴에 놀라운 빛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노인은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잘 모르겠소." 놀란 것은 마리우스였습니다. 테나르디에! 아버지의 유서에 씌어 있던 그 이름이 아닌가! 그는 하마터면 손에 들고 있던 권총을 떨어뜨릴 뻔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유서에 테나르디에를 만나면 반드시 은혜를 갚으라고 하지 않았던가. 워털루의 용사였던 인물이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인물은 그가 이제껏 머릿속으로 그려 왔던 것처럼 훌륭한 인물은 커녕 이렇게 흉악한 인간이 아닌가! 지독한 악당이 아닌가! 더구나 그 악당은 마이우스가 동경하고 오랫동안 찾아온 그 소녀의 아버지를 지금 죽일지도 모릅니다! 지금 자기가 총을 쏘면 악당은 체포되고 노인은 무사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아버지 유언을 어겨야만 합니다. 아버지의 은인을 그냥 놔 두면 소녀의 아버지의 목숨이 위태롭습니다. 마리우스는 매우 난처한 입장에 빠졌습니다. 그 동안에도 종드레트, 즉 테나르디에는 의기 양양해서 노인을 쏘아보며 계속 큰 소리로 외쳐 댔습니다. "여기 있는 나를 모른다고? 멍청한 영감쟁이 같으니라구! 8 년 전 크리스마스날 밤, 몽페르메이유의 우리 여관에 와서 그 작은 계집아이를 데려갔던 게 바로 영감이었잖아? 단돈 1500 프랑에 그 계집아이를 채 갔지. 덕분에 우린 그 이후로 온통 나쁜 일만 생겼다구. 내가 되찾으러 갔을 때, 숲속에서 날 위협했었지. 그 때는 영감이 이겼지만 이번에는 내가 승리할 차례야. 자, 잘 보라구. 영감은 내 덫에 걸려든 거리니까!" 노인은 잠자코 듣고 있다가 조용히 말했습니다. "나는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소. 당신이 누군가와 착각을 하고 있는 거요!" "착각이라고? 시치미떼는 짓은 작작해 둬! 누굴 얕보는 거야! 이래봐도 난 원래 프랑스 군인이었다고. 워털루 전쟁에서는 아주 훌륭한 군인을 구해 준 용사란 말이야! 그렇지만 뭐 그건 아무래도 좋아. 난 지금 돈이 좀 필요하단 말이야. 그걸 당신 딸이 가져오도록 시켜야겠어. 어때? 싫으면 목숨을 내놓든지." 테나르디에가 자신만만하게 큰 소리를 치며 무엇인가 동료와 의논하려고 등을 돌린 틈을 타, 노인은 재빨리 의자를 걷어차고 테이블을 밀어젖히며 창가로 뛰어갔습니다. 그러나 창문에 발을 걸치고 밖으로 뛰어내리려는 순간 악당들에게 웃옷 자락을 잡히고 말았습니다. "이 영감쟁이가! 어딜 도망가려고!" 한 악당이 노인의 머리를 쇠막대기로 내리치려고 했습니다. "기다려! 죽이면 안 돼!" 하고 테나르디에가 소리쳤습니다. "꽁꽁 묶어서 밧줄 끝을 침대 다리에 붙들어매." 노인은 그들이 하는 대로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의 몸과 양팔은 밧줄에 칭칭 감기고 두 다리는 침대 다리에 묶어져 있었습니다. 테나르디에는 노인 앞으로 의자를 끌어당기고 갑자기 부드러운 목소리로 간사하게 말했습니다. "나으리, 우리 서로 위험한 일은 하지 말기로 합시다. 창문에서 뛰어내리기라도 하면 틀림없이 다리를 다칠 것입니다. 그보다는 서로 좋게 이야기를 끝내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이 있군요. 나으리는 이런 와중에서도 전혀 소리를 지르지 않으시는군요." 그 말을 듣고 있던 마리우스는 과연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지금껏 신음 소리 하나 내지 않았던 것입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살려 달라고 소리쳤을 텐데 말이야. 하지만 소리를 내면 달려오는 것은 경찰이겠지? 어쩐지 영감도 경찰은 딱 질색인 모양이로군. 그렇다면 뭔가 뒤가 켕기는 일이 있다는 증거라구. 그러니까 얘기를 빨리 끝내자구." 테나르디에는 씩 웃더니 난로 앞의 병풍을 치웠습니다. 난로 안에는 시뻘겋게 달구어진 커다란 인두가 들어 있었습니다. "어쨌든 우린 돈이 필요하단 말이야. 한 20 만 프랑쯤 있으면 되겠는데 말이야." 노인은 입을 다문 채 아무 대답도 없었습니다. "그래, 지금 당장은 가지고 있는 돈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니까 내가 하는 말을 그대로 종이에 받아 적으면 되는 거야." 테나르디에는 그렇게 말하고 잉크와 종이를 테이블 서랍에서 꺼내 와 노인 앞에 놓았습니다. "아, 참 그렇지. 팔이 묶여 있으니 글씨를 쓸 수 없겠군. 오른쪽 팔은 풀어 주어야지." 그리고 노인의 오른쪽 팔에 감긴 밧줄을 풀면서 다시 말했습니다. "좋다, 나도 좋아서 일부러 이런 난폭한 짓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지금 내 말대로 얌전하게 써서 그걸 심부름꾼이 가지고 갔다 돌아오면 일은 그것으로 끝나는 거야. 물론 밧줄도 즉시 풀어 줄 것이고." "뭐라고 쓰면 되겠소?" "좋아, 내가 말하는 대로 쓰는 거야. 얘야, 지금 바로 오너라. 꼭 와야 한다. 이 편지를 가지고 가는 사람이 너를 내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 줄 것이다. 너를 기다리고 있겠다. 안심하고 오너라. 이제 됐어. 거기에 서명하는 것도 잊지 말고. 영감, 이름이 뭐지?" "유르방 파블르." 하고 노인은 가짜 이름을 댔습니다. "주소도 쓰라구. 영감 주소 말이야." 노인이 그가 시키는 대로 쓰자 테나르디에는 부인을 불렀습니다. "자, 편지를 다 썼으니까 밑에 내려가 마차를 부르라구. 당장 가서 데려와. 옳지, 누구 한 사람 따라가는 것이 좋겠군. 딸 아이를 빨리 데리고 와." 부인은 곧 남자 한 사람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노인은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옆방의 벽 틈새로 엿보고 있는 마리우스의 귀에는 무엇인가를 비벼대는 듯 둔탁한 소리가 희미하게 노인의 근처에서 들려 오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테나르디에가 다시 노인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안됐지만 우리 계획대로 다 되었군. 아내는 영감의 그 편지를 가지고 가서 당신 딸을 데리고 올 거야. 하지만 여기로는 오지 않는다구. 어떤 다른 장소에 숨겨 놓을 테니까. 아니, 그렇다고 딸에게 손을 대지는 않겠어. 20만 프랑만 받아 내면 딸은 돌려 보내 주겠다." 노인은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마리우스는 또다시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습니다. 악당들은 그 소녀를 이 곳으로 데리고 오지 않고 어딘가에 숨기려고 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지금 권총을 쏘아 경찰관들에게 알리는 것은 도리어 소녀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는 결과가 될지도 모른다. 잠시 뒤에 현관문이 거칠게 열리며 뛰어 들어오는 발소리가 들렸습니다. 동시에 부인이 숨을 헐떡이며 방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엉터리 주소예요!" 하고 부인은 소리쳤습니다. "아무도 없어요! 유르방 파블르 따위는 아무도 모른대요!" 테나르디에가 신음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엉터리 주소라고! 나를 잘도 속여 넘겼겠다. 이봐, 왜 그런 짓을 했지?" "시간을 벌기 위해서다!" 하고 노인은 갑자기 방 안이 떠나갈 듯한 소리로 외치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습니다. 놀랍게도 노인의 몸을 묶고 있던 밧줄은 전부 끊어져 있었습니다. 한쪽 다리만이 침대에 묶여 있었습니다. 악당들은 한편 놀라면서도 노인에게 덤벼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노인은 난로 쪽으로 몸을 기울여 시뻘겋게 달구어진 커다란 인두를 덥석 잡았습니다. 제 아무리 흉악한 악당들이지만 그것을 보자 멈칫하며 뒤로 물러섰습니다. 그건 그렇고 도대체 단단히 꽉 묶여 있던 밧줄이 어떻게 해서 끊어져 버렸을까? 그것을 설명하려면 나중에 경찰관들이 현장에서 발견한 한 개의 동전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 동전은 둘로 나누어지는데, 안에 시계의 강철톱이 숨겨져 있어 이것을 사용하면 어떤 단단한 것이라도 자를 수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마리우스가 아까 들었던 둔탁한 소리는 바로 아 도구를 사용해 노인이 밧줄을 끊으며 낸 소리였습니다. 악당들은 놀라며 소리쳤습니다. "걱정 마! 아직 왼발이 묶여 있어. 도망가지는 못할 거야!" 그 때 노인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난 목숨이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다. 다만 나에게 쓰고 싶지 않은 것을 강요하거나 말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하게 한다면." 노인은 왼팔 소매를 걷어올리며 말을 이었습니다. "자, 다들 잘 봐라! 모두 이렇게 해 주겠다!" 노인은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시뻘겋게 단 인두를 서슴없이 자기 팔에 갖다대었습니다. 그 흉측한 악당 패거리들도 숨을 죽인 채 얼굴이 창백해졌습니다. 피부가 타들어가는 소리와 함께 이상한 악취가 온 방안에 퍼졌습니다. 그러나 노인의 얼굴에서는 고통의 빛이나 증오의 빛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으며 장엄할 정도의 엄숙한 분위기가 엿보였습니다. 노인은 차분한 눈길로 테나르디에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이제 알겠지? 난 너희들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 너희들 마음대로 해라." 그리고 인두를 창 밖으로 내던졌습니다. "좋아, 해치워!" "죽여 버려!" 악당들은 저마다 소리치면서 노인에게 달려들려고 했습니다. 테나르디에는 서랍에서 예리한 칼을 꺼내들었습니다. 한편 옆방의 마리우스는 권총을 쏘아야 할지 어떨지 아직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 때 자기 방 테이블 위에 떨어져 있던 종이 쪽지가 그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것은 테나르디에의 큰 딸이 이 곳에 와서 자기도 글씨를 쓸 수 있다고 하며, '개가 있다'고 써 보였던 쪽지였습니다. 그의 머리를 번뜩이며 스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급히 벽장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와 그 종이 쪽지를 벽의 틈 사이로 해서 테나르디에의 방 안으로 집어 던졌습니다. "여보, 뭔가 떨어졌어요." 하고 테나르디에의 부인이 외치며 그것을 주워 남편에게 건네주었습니다. "어디에서 떨어졌지?" "어디긴 어디에요? 보나마나 창문으로 들어왔겠죠." 서둘러 종이 꼭지를 펼쳐 촛불 가까이 갖다댄 테나르디에는 허둥대며 소리쳤습니다. "딸애의 글씨야! 개가 왔다고 씌어 있어! 이거 큰일났군!" 악당들은 서로 앞다투어 도망치려고 했습니다. 창문으로 타고 내려갈 밧줄이 던져졌지만 그들은 누가 먼저 내려갈 것인가를 놓고 서로 욕을 퍼부으며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 때, 쟈베르를 선두로 경찰관들이 우르르 방 안으로 밀어닥쳤습니다. 사라진 노인 쟈베르는 마리우스가 신호로 보내기로 한 권총 소리를 기다리다 못해 밀어닥쳤습니다. 악당들은 자신들이 도망갈 수 없다는 것을 알자 돌연 위협 적으로 저항할 기미를 보였습니다. "쓸데없이 저항할 생각 말고 흉기를 버려!" 그들은 경찰관의 수가 많은 것을 보고 쟈베르의 말에 따라 손에 들고 대항했지만 곧 체포되고 말았습니다. 테나르디에만은 될 대로 되라는 듯 칼을 머리 위로 번쩍 쳐들고 대항했지만 곧 체포되고 말았습니다. 테나르디에의 부인이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쟈베르에게 바닥에 있던 돌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돌은 쟈베르에게 맞지 않고 바닥을 굴렀습니다. 부인도 꼼짝 못 하고 항복했습니다. 쟈베르는 테이블에 앉아 악당들의 이름을 모두 서류에 써 넣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부하 경찰관에게 말했습니다. "묶여 있던 그 노인을 이리고 데리고 오게." 경찰관들은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노인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습니다. 노인은 혼란한 틈을 타 재빨리 창문으로 빠져 나간 것이었습니다. 경찰관 한 사람이 창가로 달려가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뜰에 사람의 그림자는 없었으나 창문으로 늘어뜨려진 밧줄이 아직도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아뿔싸! 놓쳤군! 그 자가 제일 거물이었는데!" 쟈베르는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마리우스는 그 다음 날 아침, 고르보 저택을 떠나 친구의 아파트로 이사했습니다. 짐승보다도 못한 추하고 잔인한 사람들의 행동을 직접 목격하니 더 이상 그 곳에 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노인과 소녀는 어디로 간 것일까? 그건 그렇고 그 노인은 그렇게 절박한 상황에서 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던 것일까? 경찰관들이 들이닥쳐 악당들을 체포했을 때, 어째서 모습을 감추어 버린 것일까? 모든 것이 마리우스에게는 의문투성이였습니다. 마리우스는 그 소녀를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꿈에서까지 소녀를 보았지만 세월은 덧없이 흘러갔습니다. 4월의 어느 날, 그는 아무 생각 없이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테나르디에의 큰딸을 만났습니다. "그 날 우리들도 경찰서에 끌려갔었어요. 하지만 우리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또 아이들이니까 곧 풀려 났지요. 결국 아버지는 교도소에 들어가셨지만." 마리우스는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잠자코 있었습니다. "웬지 쓸쓸해 보이시는군요. 왜 그러시는지 알아요.난 그 사람들이 있는 곳을 알고 있는데." "아니, 그게 정말입니까? 그럼 에포닌." "어머나, 제 이름을 기억해 주시는군요. 고맙습니다. 원하신다면 안내해 드릴 수도 있어요." "꼭 부탁합니다. 사례비는 얼마든지 내지요." "그럼 제가 바라는 대로 해 주시겠어요?" 마리우스는 주머니에 가지고 있던 5 프랑을 전부 다 꺼내 에포닌의 손에 쥐어 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을 뿌리치며 슬픈 듯이 말했습니다. "전 돈 같은 것은 원하지 않아요. 제가 원하는 것은 당신이 제 친구가 되어 주시는 거예요." 은신처 여러분은 이미 그 노인이 장발장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장발장은 왜 수도원을 나온 것일까요? 수도원에서 하는 정원지기 일에는 아무런 불만이 없었습니다. 장발장도 코제트도 모두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이대로 계속 살다가는 코제트는 자연히 이 곳에서 수녀가 될 것입니다. 그것은 장발장에게 있어서는 견디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포슐방 영감이 병이 들어 죽고 말았습니다. 그 일을 기회로 장발장은 수녀원장에게 도와 준 것에 대해 감사의 표시를 전하고 수녀원을 나왔습니다. 그로부터 벌써 5, 6 년이나 지났으므로 그 끈질긴 쟈베르도 이제는 그의 일은 잊어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므로 언제나 신분을 숨기고 포슐방이라는 이름을 사용해 파리의 다른 장소에 세 채의 집을 빌려 두었습니다. 이렇게 해두면 비상시에 몸을 숨기는 데 곤란을 겪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는 생활해 나가면서 돈 문제로 인해 힘든 일은 없었습니다. 마들렌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던 시절에 모아 두었던 큰 액수의 돈이 몽뜨르유 근처의 숲 속에 묻혀 있어 필요한 때면 그 곳에 가서 조금씩 파내 오곤 했습니다. 코제트는 수녀원을 나온 뒤에도 장발장을 친아버지처럼 따르며 어디를 가든지 꼭 따라다녔습니다. 코제트의 방은 아름답게 꾸며져 창문에는 다마스크 천으로 만든 커튼이 드리워지고 바닥에는 페르시아 카펫이 깔려 있었습니다. 추운 날에는 언제나 난롯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아름다워지고 화사한 모습에 행복해 보이는 코제트를 지켜 보며 장발장은 이 행복이 언제까지나 계속되도록 마음 속으로 기도했습니다. 장발장과 코제트는 늘 가까운 뤽상부르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습니다. 일요일에는 교회의 미사에 참석하고 가난한 사람을 만나면 자선을 베풀기도 했습니다. 테나르디에의 처량한 그 구걸 편지를 그의 딸로부터 전해 받은 것도 이 교회에서의 일이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코제트는 공원에 갈 때마다 기품 있는 멋진 청년이 항상 책을 읽으면서 산책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 청년은 마리우스였습니다. 그리고 마리우스가 코제트에게 마음을 빼앗겼던 것처럼 코제트도 마리우스에게 호의를 가지게 되어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는 어딘가 모르게 허전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침내 마리우스는 소녀에게 마음을 빼앗긴 나머지 두 사람의 뒤를 쫓는 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알아차리고 장발장은 그를 경계하게 되었습니다. 전혀 알지 못하는 청년이 왜 자신의 뒤를 쫓는지 그로서는 그 일이 마음에 걸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 뒤 바로 또 하나의 다른 집으로 이사해 버렸습니다. 그 이후로 마리우스가 날마다 뤽상부르 공원에 나가도 아름다운 소녀를 만나지 못해 몹시 우울해 있었던 일은 우리들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물론 코제트도 웬지 쓸쓸하고 허전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멍하니 생각에 잠겨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장발장이 몽뜨르유로 나간 어느 날 밤 코제트는 자기네 정원에 나와 보았습니다. 불현듯 공원에서 늘 마주쳤던 청년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문득 정원 구석에 누군가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뒤돌아 보니 과연 사람의 그림자가 어른거렸습니다. 그는 그녀가 지금 마음을 쏟고 있는 청년, 공원에서 늘 마주쳤던 그 청년 마리우스였습니다. 그는 에포닌의 도움으로 단단히 마음을 먹고 이 곳에 온 것이었습니다. 코제트는 주저하지 않고 그의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불안감이나 두려운 느낌은 전혀 없었습니다. 두 사람은 이 때 처음으로 말을 주고받았지만 아주 오래 전부터 서로 알고 있던 사이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이후로 마리우스는 늘상 코제트를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의 행복한 나날이 계속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진정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다만 웬지 코제트의 마음 속에서는 마리우스의 일을 장발장에게 이야기하기 힘든 일종의 두려운 느낌이 있었습니다. 어쩐지 장발장을 몹시 슬프게 할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던 것입니다. 어느 날 저녁 코제트는 매우 슬픈 표정으로 마리우스를 맞이했습니다. "마리우스, 오늘 아침 아버지께서 여행 떠날 준비를 해 두라고 말씀하셨어요. 가까운 시일 안에 영국으로 간다고 하시면서." "영국이라고요?" 마리우스는 몹시 놀라 자기도 모르게 그만 큰 소리를 냈습니다. 그렇게 되면 두 사람은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되고 결혼의 꿈도 깨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만 자신에게는 영국으로 갈 만한 돈이 없다.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두 사람은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코제트는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았습니다. 여러 가지 생각을 거듭한 끝에 마리우스는 할아버지에게 가서 돈을 받아 오기로 결심했습니다. "코제트, 내일 저녁에는 올 수 없지만 모레 저녁에는 틀림없이 이 곳으로 오겠소." 하고 마리우스는 말했습니다. 코제트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다음 날 마리우스는 단단한 결심을 하고 할아버지 지르노르망을 찾아갔습니다. 지르노르망 노인은 이미 나이가 81세나 되어 아직 건강하기는 했지만 돌아오지 않는 손자 마리우스와 쇠약해져 가는 자신을 생각하면 늘 어두운 생각이 그의 가슴을 짓누르곤 했습니다.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던 마리우스가 뜻밖에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자 노인은 놀라움과 기쁨으로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4 년 만에 돌아온 손자는 겉보기에도 훌륭하고 늠름한 젊은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마리우스는 오히려 초라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으나 그런 모습은 노인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오오, 잘 돌아왔다. 잘 돌아왔어. 나는 네가 반드시 돌아오리라고 생각하고 기다리고 있었단다. 내 말이 옳았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은 게로구나." "실은 부탁드릴 말씀이 있어서 할아버지를 찾아뵈었습니다. 저는 어떤 여성과 결혼을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영국으로 건너가고 싶은데 그만한 비용이 없어서 어떻게든 마련해야겠기에." 노인은 갑자기 얼굴이 변했습니다. "뭐라구? 결혼을 하겠다고? 그리고 영국으로 가겠다고? 그럼 사과를 하러 온 것이 아니란 말이냐? 결혼을 하겠다니, 상대는 어떤 집안의 아가씨냐?" "저와 같은 평범한 처녀입니다." "그럼 돈은? 지참금은?" "그런 것은 특별히 없습니다." "그렇다면 빈털터리가 아니냐! 안 된다! 그런 여자는 안돼! 절대로 안 돼!" "아무래도 안 된다는 말씀이신가요?" "안 된다!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는 이야기다! 그런 아가씨는 보나마나 변변치 못한 처녀다!" 할아버지의 이 말을 듣고 마리우스는 얼굴이 창백해졌습니다. "할아버지는 5 년 전에는 저희 아버지를 모욕하셨어요. 그리고 이번에는 저의 아내가 될 사람을 모욕하신 겁니다. 저는 이제 아무것도 의지하지 않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당황한 할아버지가 팔을 뻗쳐 일어서려고 했을 때에는 마리우스의 모습은 이미 대문 밖으로 사라져 버린 뒤였습니다. 마리우스는 무참히 짓밟힌 어두운 기분으로 파리 거리를 헤매고 돌아다녔습니다. 코제트는 영국으로 가 버린다. 이제는 결혼할 희망도 없는 것이다. 여하튼 코제트를 한 번 더 만나 보자. 뭔가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고 마리우스는 코제트가 사는 마을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러나 코제트의 집에 도착해 보니 창문은 전부 닫혀 있고 집 안은 쥐죽은 듯 고요하고 불빛 하나 새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소리를 지르며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런 대답도 없었습니다. 벌써 영국으로 떠나 버린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정원의 벤치에 앉아 머리를 감싸쥔 채 마리우스는 시간 가는 것도 잊은 듯 언제까지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습니다. 이 때 문득 공화파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가자는 생각이 그의 뇌리를 스쳤습니다. 그는 이 때 공화파 동료들의 모임에는 거의 참석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공화제를 지지하는 그의 정열이 그의 가슴으로부터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모두의 선두에 서 있는 앙졸라라는 청년의 정열에는 지금도 강하게 끌리고 있었습니다. 코제트를 잃어버리자 살 의욕도 없어졌습니다. 기왕 이렇게 된 바에는 공화파의 전투에 참가해 죽자. 마리우스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1832 년 여름이 가까워졌습니다. 봄부터 유행하던 콜레라가 극성을 부려 사람들은 불안에 떨었습니다. 정치적으로 볼 때, 파리에는 평온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나폴레옹은 워털루에서의 마지막 결전에 패해 대서양의 외딴 섬 세인트 헬레나로 귀양가 있었습니다. 그 뒤 프랑스는 다시 군주 제도로 돌아갔으나 루이 필립 왕을 중심으로 하는 정부는 나라를 다스려 나갈 힘이 부족했습니다. 군주 제도에 반대하는 공화파 사람들의 운동은 점점 거세어져 1789 년의 대혁명과 같은 소요가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정세였습니다. 그 때문에 경찰은 공화파 사람들은 물론 조금이라도 수상한 기미가 있는 사람들은 모조리 잡아들여 조사하고 있었습니다. 가명으로 살고 있는 장발장이 파리를 떠나 영국으로 건너가려고 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마리우스가 공화파 사람들 속에 가담해 싸우려고 결심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습니다. 전쟁터로 마리우스는 샹젤리제 거리를 빠져 나가 루브르 궁전에 가까운 상트렌느 거리로 들어갔습니다. 거리의 상점들은 거의 문을 닫았습니다. 광장에는 정부군 기병이 많이 모여 있었습니다. 마리우스는 공화파 동료들이 모여 있는 장소로 다가갔습니다. 바로 앞에 바리케이드(적의 공격을 막기 위해 임시로 만들어 놓은 장애물)가 보였습니다. 마리우스는 떼를 지어 몰려 있는 정부군의 총검이 번뜩이는 속을 빠져 나가 동료들이 모여 있는 선술집으로 들어가 겨우 무리와 합세할 수 있었습니다. 청년들은 만들다 만 바리케이드를 정부군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대항했습니다. 짐수레와 책상과 의장 등 온갖 물건이 동원되어 거리의 한가운데 겹쳐 쌓였습니다. 청년들의 지도자는 앙졸라라는 이름을 가지 학생이었습니다. 정의를 위해서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강한 정열과 굳센 결의가 청년들의 씩씩하고 젊은 얼굴에 넘치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멀리서부터 보조를 맞춘 육중한 발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정부군 부대가 가까이까지 쳐들어온 것입니다. 곧 정부군 장교인 듯한 사람의 외치는 소리가 바리케이드 저 쪽으로부터 울려 퍼졌습니다. "쓸데없는 저항은 그만두고 항복하라!" "뭐가 쓸데없는 저항이냐? 너희들이야말로 그냥 두지 않을 테다!" 흥분된 앙졸라의 외침과 함께 공화파의 젊은이들은 일제히 총을 쏘기 시작했습니다. 정부군도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맹렬한 총격전이 벌어졌습니다. 젊은이들은 미친 듯이 싸웠지만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정부군은 점차 바리케이드로 조금씩 다가섰습니다. 숨막히는 듯한 화염이 소용돌이치는 가운데 부상자들의 신음 소리가 고통스럽게 메아리쳤습니다. 정부군은 총을 번쩍 쳐들고 기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이 때 날카롭게 외치는 소리가 광장을 가로질렀습니다. "비켜! 바리케이드를 폭파하겠다!" 적도 아군도 모두 소리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한 젊은이가 화약통을 껴안고 바리케이드 쪽으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불빛에 비친 그 얼굴은 마리우스였습니다. 정부군이나 아군 모두 순간 숨을 죽이고 마리우스를 지켜 보았습니다. 마리우스의 얼굴에는 죽음을 각오한 숭고한 표정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알아차린 정부군 병사들은 두려워하며 바리케이드로부터 뛰어내려 서로 앞다투어 도망쳤습니다. 바리케이드는 여전히 굳게 지켜졌습니다. 동료들의 환호에 둘러싸여 바리케이드를 내려온 마리우스는 바로 앞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마리우스." 그것은 이제 곧 숨이 끊어질 듯한 희미한 목소리였습니다. 소리나는 쪽을 보니 땅바닥에 깔린 돌 위에 한 노동자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습니다. "저예요.에포닌이에요". "아니!" 마리우스는 놀라서 달려갔습니다. 그것은 남장을 한 에포닌이었습니다. "어째서 이런 곳에 왔소? 뭘 한 거요?" 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괴로운 듯 말했습니다. "아까, 당신을 총으로 쏜 놈이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그 앞으로 뛰쳐 나갔어요. 총알은 제 등을 꿰뚫었어요. 이젠." "에포닌, 당신은 자신을 희생시키면서 나를 구해 주었군요! 자, 어서 안으로 들어가 치료를 받읍시다." "아니에요. 전 이미 가망이 없어요. 저어, 제 주머니 속을 뒤져 보세요. 편지가 있을 거예요. 우체통에 넣어 달라고 부탁 받았는데 전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제가 나쁜 여자지요? 하지만 전 당신을 좋아 했어요. 그래도 역시 좋아요." 가엾은 에포닌은 마리우스의 손을 잡은 채 편안히 숨을 거두었습니다. 마리우스는 망연히 그 곳에서 멈춰서 아름답고도 슬픈 에포닌의 마음을 생각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손에 들고 있던 편지 생각이 나자 촛불 가까이 다가가 그것을 읽었습니다. 편지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마리우스 아버지는 오늘 이사하시겠다고 말씀하셨어요. 일단 교외의 집으로 옮겼다가 일주일 뒤에는 런던에 가 있을 거예요. 코제트 아아, 코제트는 멀리 떠나가 버린다. 그리고 나는 이 곳에서 전사하는 것이다. 이것으로 우리 두 사람의 모든 것이 끝난다. 하지만 나의 죽음을 코제트에게 알리고 싶다. 마리우스는 수첩을 찢어 연필로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사랑하는 코제트 나는 조국 프랑스 민중을 위해 죽겠습니다. 비록 결혼을 하지 못했지만 내 영혼은 영원히 당신 곁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마리우스 그는 이 종이 쪽지를 넷으로 접어 받는이의 이름을 썼습니다. 그리고 아군의 잡무를 맡아 일하는 소년에게 그것을 건네 주며 전해 주도록 부탁했습니다. 받는이의 주소를 찾아온 소년은 어둠 속에서 노인인 듯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마침 교회 종소리가 밤 11시를 알렸습니다. "여보세요, 이 근처에 포슐방이라는 사람의 집이 어디 있습니까?" "그건 우리 집인데." "아, 마침 잘됐군요. 그럼 코제트 양이라는 사람에게 이 편지를 좀 전해 주시겠어요?" 소년은 노인에게 편지를 건네 주고는 곧 어둠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노인은 다름아닌 장발장이었습니다. 그는 집에 돌아오자 그 편지를 읽어 보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는 모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야 코제트가 슬픔에 잠겨 있는 까닭도 이해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젊은이를 구해야만 한다고 장발장은 결심했습니다. 장발장의 활약 날이 밝아 오기 시작하자 다시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정부군의 공격은 어제에 비해 한층 더 격렬해져 그에 따라 아군의 희생자 수도 점점 늘어만 갔습니다. 공화파 젊은이들은 모두 싸우다가 죽을 결심을 하고 필사의 저항을 시도하고 있었습니다. 그 곳에 한 노인이 아군 깊숙이 파고 들어왔습니다. "저건 누구지?" 하고 앙졸라가 물었습니다. "아, 저 노인은 내가 아는 사람일세. 수상한 사람이 아니야."라고 마리우스는 대답했습니다. 노인은 바로 장발장이었습니다. 그는 마리우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마리우스는 어리둥절했습니다. 저 노인이 어떻게 해서 갑자기 이 곳에 나타난 것일까?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습니다. 코제트 앞으로 보낸 편지를 보고 이 곳으로 달려온 것일까? 바로 그 때 적병 하나가 높은 굴뚝에 몸을 바싹 붙이고 이쪽을 정찰하기 시작했습니다. "아, 눈에 거슬리는 정찰병이 나타났군." 하고 앙졸라가 말했습니다. 장발장은 그 말을 듣자 잠자코 총을 겨누었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정찰병의 철모에 탄환이 명중해 소리를 내며 길가로 떨어졌습니다. 정찰병은 당황해서 몸을 숨겼습니다. 그러자 다른 정찰병이 나타났습니다. 이 병사도 역시 철모를 맞아 떨어뜨리자 몸을 감췄습니다. 그 뒤에는 더 이상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어째서 죽이지 않는 거요?" 누군가가 물었으나 장발장은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정부군의 포격은 점점 거세어졌습니다. 아군은 차례로 쓰러지고 탄환도 점차 얼마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본부가 되어 있는 선술집은 전사자와 부상자로 가득 차 신음 소리와 피비린내로 처참한 광경이었습니다. 갑자기 젊은이 한 사람이 벽 옆에 앉아 있는 몸집이 크고 나이가 들어 보이는 남자를 가리키며 앙졸라에게 속삭였습니다. "저 놈이 수상해. 아무래도 정부의 스파이 같아." 앙졸라는 잠자코 그 남자에게 다가가 갑자기 따져 물었습니다. "넌 누구냐?" 남자는 깜짝 놀라 얼굴을 들었으나 자신의 정체가 드러난 것을 알아차린 듯 대담하게 웃어 보이며 말했습니다. "나 말인가? 난 보다시피 너희들의 동태를 살피는 사람이다." "그럼 정부의 스파이로군." "정부의 관리다." "이름은?" "형사 쟈베르다." 앙졸라가 신호하자 너댓 명의 젊은이들이 쟈베르에게 달려들어 순식간에 꽁꽁 묶어 버렸습니다. "바리케이드가 무너지기 전에 너를 총살하겠다." 쟈베르는 두려워하는 기색도 없이 말했습니다. "왜 지금 당장 죽이지 않지?" "총알이 아까워서 그렇다." 그렇게 말하고 나서 앙졸라는 적의 포탄으로 무너진 바리케이드를 다시 쌓도록 지시했습니다. 미리 준비되어 있던 포석이 순식간에 쌓여 바리케이드는 다시 견고해졌습니다. 때마침 정오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습니다. 적은 마지막 공격 준비에 들어간 듯 잠시 총성이 멎었습니다. 이 때 앙졸라는 기둥에 묶여 있는 쟈베르를 가리키며 동료들에게 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일은 이 자를 사살하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장발장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습니다. "이 자를 처단하는 일을 나에게 맡겨 주지 않겠소?" 앙졸라는 노인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당신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을 해 주었소. 좋소, 당신에게 맡기겠소." 이 때 정부군의 돌격 나팔이 울리고 마리우스의 외치는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적이 공격해 온다!" 모두가 무기를 들고 달려나갔습니다. 뒤에는 장발장과 쟈베르만이 남았습니다. "일어서." 장발장은 쟈베르가 묶여 있는 밧줄 끝을 풀고 함께 선술집 뒤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꼼짝 않고 쟈베르를 쳐다보았습니다. 그것은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 눈길이었습니다. "자, 어서 보복해라." 하고 쟈베르는 쏘아보며 말했습니다. 장발장은 주머니에서 칼을 꺼냈습니다. "칼로 할 텐가? 그것도 좋겠지." 하고 쟈베르는 목청을 높였습니다. 장발장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쟈베르의 허리와 손과 목을 묶고 있던 밧줄을 끊어내고 말했습니다. "자, 이제 당신은 자유의 몸이야. 어디를 가든 마음대로 하시오." 쟈베르는 좀처럼 놀라지 않는 사람이었으나 이 때만큼은 몹시 놀라 그 자리에 선 채 움직일 줄을 몰랐습니다. "빨리 가는 게 좋을 거요. 나는 살아서 여길 빠져 나갈 수는 없겠지만 만일 살아 남는다면 언제든 나를 체포하시오." 쟈베르는 두세 발짝 걸어가다가 갑자기 뒤를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이건 곤란합니다. 차리리 나를 죽여 주십시오." 그는 자신의 말투가 정중해진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빨리 가시오." 하고 장발장은 되풀이해서 말했습니다. 쟈베르는 서서히 멀어져 가 모퉁이를 돌아서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이 때 장발장은 하늘을 향해 공포를 한 발 쏘아 처형이 끝난 것처럼 위장했습니다. 청년들은 용감하게 싸웠으나 마침내 바리케이드 중앙부가 무너져 정부군이 우르르 밀어닥쳤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몇 사람도 잇달아 쓰러졌습니다. 오직 마리우스 한 사람만이 끝까지 바리케이드에 매달려 있다가 마침내 어깨에 총을 한 방 맞고 굴러 떨어지려 하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두 개의 팔이 그의 몸을 받아냈습니다. 장발장의 팔이었습니다. 장발장은 그 때까지 바리케이드 안에 있기는 했지만 전투에는 참가하지 않고 쭉 마리우스의 행동을 살피고 있었습니다. 마리우스를 부둥켜안고 있는데 이미 주위에는 적병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습니다. 어디론가 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문득 보니 바로 그의 눈앞에 맨홀 뚜껑이 있었습니다. 지름 60센티미터 정도의 쇠로 만들어진 뚜껑이었습니다. 그는 그 뚜껑을 들어내고 마리우스를 껴안은 채 그 속으로 뛰어내렸습니다. 구멍의 깊이는 3 미터 정도로 그 곳에서부터 하수도 관이 길게 뻗어 있었습니다. 파리 시내에는 하수도가 그물코처럼 둘러쳐 있어 센 강으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질척질척한 물이 세차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물결에 발이 휩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만 했습니다. 지상의 소요가 거짓말처럼 여겨지는 침묵과 암흑과 악취의 세계였습니다. 하수도는 거미줄처럼 뒤얽힌데다 좌우에 샛길이 뻗어 있어서 다른 곳으로 빠져 헤매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리면서 물의 흐름을 따라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30분쯤 걸었을 때, 갑자기 뒤쪽으로부터 희미한 불빛이 비치더니 자신의 그림자가 천장에 어렴풋이 나타났습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 놀라서 뒤를 돌아보니 그가 걸어왔던 길에 붉은 빛이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경찰관들이 하수도 안을 수색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경찰관들은 그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좀더 확실히 하기 위해 그가 있는 쪽으로 총을 한 방 쏘고 멀어져 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발장은 한동안 꼼짝 않고 벽에 붙어 있었습니다. 이윽고 그는 다시 걷기 시작했습니다. 바닥의 질척거리는 폐수는 점점 깊어져 앞으로 나아가기가 더욱 곤란해졌습니다 배가 고프고 목이 말라 왔습니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어깨 위의 마리우스는 갈수록 무거워졌습니다. 그러자 어느 순간 갑자기 발이 주르르 진창 속으로 빠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당황해서 발을 빼려고 했으나 발버둥치면 칠수록 발은 한층 깊숙이 진창 속으로 빠져들어갔습니다. 순식간에 더러운 물이 가슴 근처까지 차올라왔습니다. 그래도 그는 죽을 힘을 다해 계속해서 발을 앞으로 움직였습니다. 마리우스를 받치고 있던 팔도 진창 속에서 발버둥치는 발도 마비되어 차츰 감각을 잃어 가고 있었습니다. "이젠 끝장이다!" 하고 절망의 신음 소리를 냈을 때 발에 딱딱한 것이 걸렸습니다. 그것은 뒤로 젖혀져 기울어진 포석 모퉁이였습니다. 그는 겨우 끝을 알 수 없는 진창을 빠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 곳에서부터는 포석이 쭉 깔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없이 기나긴 길이었습니다. 이러고 있다가는 마리우스는 숨이 끊어지고 자신도 기력이 다해 죽고 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문득 위를 올려다보았습니다. 그러자 앞쪽에 어슴푸레하게 불빛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아까 비쳤던 그 기분 나쁜 붉은 불빛이 아니라 흰 태양 광선이었습니다. 하수도의 출구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빛이었습니다. 그는 등의 무게도 피로도 허기도 잊은 채 빛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걷는다기보다는 오히려 뛴다고 하는 표현이 어울릴 것입니다. 드디어 출구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곳에서 우뚝 멈춰서고 말았습니다. 이 무슨 얄궂은 운명이란 말인가! 출구에는 튼튼한 철책이 꼭 맞게 끼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철책 밖에는 센 강변이 있고 그 건너편으로 해가 저물어 가는 파리 시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장발장은 마리우스를 옆의 납작한 돌 위에 내려놓고 미친 듯이 철책을 흔들었습니다. 그러나 철책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허탈 상태에 빠졌습니다. 이제 와서 원래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따위의 일은 생각할 수도 없었습니다. 우물쭈물하는 동안 마리우스는 죽어 버릴 것입니다. 그 때 갑자기 그의 어깨에 무엇인가 닿는 것이 있었습니다. 깜짝 놀라 뒤돌아보니 한 남자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고 있었습니다. "이봐, 반씩 나눠 먹는 게 어때?" 그렇게 말하는 것은 거지 같은 차림을 한 남자였습니다. 그 얼굴을 보자 장발장은 무의식중에 '앗!' 하고 소리를 지를 뻔했습니다. 남자는 바로 테나르디에가 아닌가! 그러나 테나르디에 쪽에서는 장발장의 얼굴이나 몸 전체가 ㄳ투성이가 되어 있었으므로 그라고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여기서 나가고 싶지?" 하고 남자는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게 있어서 나올 수가 없지?" "그렇소." "그러니까 반씩 나눠 먹자고." "대체 그게 무슨 소리요?" 장발장은 의아한 표정을 짓자 상대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습니다. "너, 그 녀석을 죽였지? 하지만 넌 여길 나오지 못해. 그런데 난 열쇠를 가지고 있다고. 그러니까 네 몫의 반을 주면 이걸 열어 주겠단 말이야." 테나르디에는 그를 강도로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녀석을 강물에 던져 버릴 거지? 이봐, 얼마 있었어? 반은 이리 내 놔." 장발장이 대답하지 않자 테나르디에는 마리우스의 주머니란 주머니는 모두 뒤졌습니다. 그러나 찾아 낸 것은 겨우 30 프랑이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전부 자기 주머니에 찔러넣었습니다. 게다가 마리우스의 웃옷 자락을 재빨리 뜯어 내 그것도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나중에 그것을 증거로 협박이라도 할 계산이었습니다. "자, 어쨌든 꺼내 주지." 테나르디에는 열쇠를 자물쇠에 질러 넣었습니다. 철책문은 소리도 없이 열렸습니다. 벌겋게 녹이 슬기는 했지만 이런 무리가 늘상 드나드는 것 같았습니다. 테나르디에는 장발장을 꺼내 준 뒤 다시 철책문을 잠그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쟈베르의 최후 밖으로 나온 장발장은 마리우스를 센 강변에 살짝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강물을 손으로 떠서 그의 얼굴에 끼얹어 보았으나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약간 벌린 입에는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문득 자신의 뒤쪽에 인기척을 느껴 뒤를 돌아보니 키가 큰 남자가 서 있었습니다. 그는 다름아닌 쟈베르였습니다. 그는 장발장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하자 경찰서로 돌아가 곧 도둑질을 한 테나르디에를 쫓아 이 곳에 온 것입니다. 테나르디에가 하수도 속에 숨어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쟈베르는 눈앞에 있는 남자가 장발장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장발장은 스스로 이름을 댔습니다. "나요, 장발장이오." 쟈베르는 깜짝 놀라 장발장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쟈베르 형사, 나는 이제 잡힌 몸이나 다름없소. 당신 마음대로 해도 좋소. 하지만 딱 한 가지 부탁이 있소." 쟈베르는 그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 듯 멍하니 서서 되물었습니다. "당신,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요? 그리고 이 남자는 누구요?" 그는 전처럼 장발장을 '너'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부탁이란 이 사람의 일인데 이 남자를 집에까지 데려다 주는 데 도움이 필요하오." 쟈베르는 아무 말 없이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강물에 적시더니 피투성이가 된 마리우스의 얼굴을 닦았습니다. "바리케이드에 있던 남자로군. 마리우스라고 했던가? 그럼 당신은 이 남자를 바리케이드에서 이 곳까지 데려왔단 말이군." 장발장은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쟈베르는 마리우스의 손을 잡고 맥을 짚어 보았습니다. "죽었군." "아니, 아직 죽지는 않았소." 장발장은 마리우스의 웃옷을 뒤져 주소를 적은 종이를 쟈베르에게 보였습니다. 쟈베르는 그것을 보자, '지르노르망가.' 하고 작은 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마부!" 하고 소리쳤습니다. 마차가 조금 떨어진 곳에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마차는 세 사람을 태우고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쟈베르는 뭔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마차가 지르노르망 가의 문 앞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한밤중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문을 세차게 두드렸습니다. 드디어 잠에 취한 흐리멍덩한 눈으로 일어나 나온 문지기에게 쟈베르가 소리쳤습니다. "아드님을 데리고 왔소. 빨리 들어가 의사를 부르시오!" 온 집 안 사람들이 당황해서 허둥대며 소란을 피우는 사이에 두 사람은 마차로 되돌아왔습니다. 장발장은 쟈베르에게 침착한 말투로 이야기했습니다. "쟈베르 형사, 지금부터 잠시 집에 들르는 것을 허락해 주셨으면 하오. 일을 끝내면 곧 돌아오겠소. 그 다음에는 당신이 좋을 대로 처리하시오." 쟈베르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마차가 달리는 동안 두 사람은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드디어 마차는 목적지에 닿았습니다. "좋소, 혼자 갔다 오시오. 나는 여기서 기다릴 테니." 쟈베르가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마차를 돌려보냈습니다. 장발장은 깜짝 놀라 다시 쟈베르의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쟈베르가 범인을 자유롭게 행동하도록 놔 두는 일 따위는 전에 없던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장발장은 코제트에게 사실을 이야기하고 마리우스가 있는 곳도 가르쳐 주고 재산도 정리해 두고 싶었습니다. 코제트와도 이젠 이별이다. 하지만 그 아이만은 행복하게 해 주어야 한다.깊은 생각에 잠겨 2층으로 올라가 창가에 서서 문득 밖을 내려다보았습니다. 그러자 그 곳에 있어야 할 사람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쟈베르가 모습을 감추어 버린 것입니다! 쟈베르는 그 때 뒷짐을 지고 센 강변을 행해 걷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자신을 잃었을 때의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발걸음도 몹시 무거워 보였습니다. 그의 생각은 방황을 거듭하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악당이라고 생각하며 쫓아다녔던 사람 덕분에 목숨을 건졌던 것입니다. 그는 이제껏 법률 쪽에 선 자만이 정당하고 훌륭한 인간이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전부 악한 자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장발장의 행동은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쟈베르의 생각을 완전히 뒤바꾸어 버렸던 것입니다. 법률만으로 판결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는 지금 그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그 때까지 그의 모든 것을 지탱하고 있었던 것이 소리를 내듯 무너지는 것을 그는 느끼고 있었습니다. 센 강은 풍요로운 물을 가득 채우고 세차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쟈베르는 다리 위에 우뚝 서 한동안 넋을 잃고 물의 흐름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그의 눈에는 평소의 냉정한 빛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장발장, 난 당신에게 졌소!" 그렇게 중얼거리고 그는 난간 위에 섰습니다. 순간 그의 몸은 어두운 그림자가 되어 센 강의 물 위로 완전히 거꾸로 떨어져 갔습니다. 냉혹한 형사 쟈베르의 남자다운 최후였습니다. 할아버지와 손자 할아버지 지르노르망 가로 옮겨진 마리우스는 한때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헤맸으나 극진한 간호 덕분에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지르노르망 노인은 전에 자신이 그렇게 화냈던 것도 잊고 마리우스가 살아났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에는 너무나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고 옆에서 보는 사람이 우스울 정도로 좋아했습니다. "아, 마리우스! 살아났구나! 고맙다, 정말 고맙구나!" 노인은 그렇게 소리쳤습니다. 마리우스가 병석에 누워 있는 동안 훌륭한 옷차림을 한 백발의 신사가 날마다 찾아와서는 환자의 상태를 물었습니다. 3개월 정도 지났을 때 의사는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 때까지 마리우스는 높은 열에 시달리면서 바리케이드에서의 전투 상황을 희미하게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차례로 쓰러져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 간 동료들의 일과 에포닌의 가련한 죽음 등도 어슴푸레하게 의식 속으로 떠올랐다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다만 한창 전투 중에 갑자기 나타난 포슐방 씨의 일만은 아직껏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인 채 남아 있었습니다. 마리우스는 자기를 바리케이드에서 할아버지 집으로 데려다 준 사람이 누구인지도 몰랐습니다. 집안 사람들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는 이야기라고는 한밤중에 마차로 이 곳에 옮겨졌다는 것뿐이었습니다. 마침내 그를 태워다 주었다는 마부를 찾아 냈으나 그로부터 들은 것은 센 강변 하수도 근처에서 누군가에게 업혀 마차로 할아버지의 집까지 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내가 하수도 출구에 있었던 것일까? 그 바리케이드로부터 어떻게, 왜 그 곳까지 왔던 것일까? 점차로 몸이 회복되어 가던 어느 날 마리우스는 침대에서 상반신을 일으켜, 그의 머리맡에 앉아 있던 할아버지에게 결심을 하고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실은 특별히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무슨 이야기냐?" "저어.결혼을 하고 싶습니다." "아, 그 일이라면 벌써 알고 있다." "알고 계시다면?" "그 아가씨와 결혼한다면 나도 대찬성이다. 그 아가씨는 날마다 그 노신사를 대신해 여기 와서 네 상태를 물어 본단다 아주 훌륭하고 마음씨 고운 아가씨더구나." 마리우스는 너무 감동한 나머지 아무 소리도 나오질 않았습니다. 노인의 눈에는 눈물이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2, 3일 뒤 코제트가 노신사의 손에 이끌려 병문안을 왔습니다. 두 사람은 마치 꿈인 듯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습니다. 드디어 두 사람의 뺨에 기쁨의 눈물이 흘렀습니다. "오오, 생각했던 대로 훌륭한 아가씨야!" 하고 지르노르망 노인은 외쳤습니다. 노인은 첫눈에 코제트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씨를 알아차린 것 같았습니다. 코제트와 함께 들어온 사람은 물론 포슐방 씨, 바로 그 장발장이었습니다. 그는 손에는 무엇인가 꾸러미를 들고 조심스럽게 방의 구석에 서 있었습니다. 지르노르망 노인은 포슐방 씨에게 다가서며 친근감 있는 말투로 이야기했습니다. "포슐방 씨, 손자 마리우스 퐁메르시를 대신해 따님에게 청혼하고 싶습니다만." "감사합니다. 딸 아이는 기꺼이 받아들일 것입니다."라고 대답하고 포슐방 씨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습니다. 마리우스의 목숨을 구해 준 사람이 코제트의 아버지일 것이라고는 노인도 마리우스도 꿈에도 생각 못 했습니다. "이것으로 이야기는 다 되었습니다. 정말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단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저도 가진 재산을 거의 다 써 버려 마리우스에게 물려 줄 재산이 별로 없다는 사실입니다." "아, 그 이야기입니다만 실은 코제트는 60 만 프랑 정도의 지참금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하고 포슐방 씨는 꾸러미를 풀어 지폐 뭉치를 꺼내면서 말했습니다. "60 만 프랑이라고요! 그것 참 잘 됐군요. 마리우스는 운이 좋은 아이로군요." 놀란 것은 지르노르망 노인뿐만 아니라 마리우스나 코제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60 만 프랑은 장발장이 몽페르메이유 숲 속에 감추어 두었던 돈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그 날부터 코제트는 날마다 포슐방 씨와 함께 지르노르망가를 방문해 온 정성을 다해 극진하게 마리우스를 간호했습니다. 마리우스는 몰라보게 건강해졌습니다. 포슐방 씨는 그럴때면 언제나 방의 한구석에 멈춰서 다소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그다지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마리우스와 코제트의 결혼식은 다음 해인 1833 년 2월에 치러졌습니다. 그 날 포슐방 씨는 다쳤다고 하면서 목에서부터 오른손까지 붕대로 감고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그가 서명을 할 수 없어서 지르노르망 노인이 대신 후견인으로 서명했습니다. 코제트는 장발장과는 관계가 없는 사람으로서 결혼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날의 코제트는 비할 데 없이 아름다웠습니다. 새하얀 드레스가 잘 어울렸습니다. 마리우스도 코제트에게 뒤지지 않는 아름다운 젊은이였습니다. 교회에서의 결혼식이 끝나자 지르노르망 가에서 성대한 파티가 열렸습니다. 연회 테이블이 정돈되고 손님들이 각각 자리에 앉기 시작했을 때 지르노르망 노인은 포슐방 씨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하인에게 물었습니다. "손가락의 상처가 아프다고 하시면서 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주인님께 안부를 전해 달라고 하시고 내일 아침에 다시 오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장발장은 혼자 집으로 돌아와 팔을 걸어매고 있던 천을 풀고 손가락의 붕대로 풀어 버렸습니다. 손가락에는 상처 따위는 전혀 없었습니다. 코제트가 떠나 버린 방은 몹시 추워 보이고 텅 빈 느낌이 들었습니다. 앞으로는 혼자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는 허전한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습니다. 문득 생각이 떠올라 장롱에서 작은 트렁크를 꺼냈습니다. 그 안에는 코제트가 몽페르메이유의 테나르디에의 여관을 떠나올 때 입었던 옷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습니다. 그 때의 코제트는 그에게 매달려 이 세상에서 단 한 사람 그만을 의지하고 있었던 어린 소녀였습니다. 지난 일을 머리에 떠올리며 장발장은 얼굴을 침대에 파묻고 백발이 된 머리를 흔들면서 소리를 죽여 울었습니다. 진실 다음 날 장발장은 지르노르망 가를 방문했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그의 얼굴은 초췌해 있었습니다. 곧 마리우스가 나타나 다정하게 말을 걸며 어젯밤에는 연회에 나오질 않아 섭섭했다는 등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장발장은 마리우스의 이야기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는 듯 무엇인가 혼자만의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드디어 그는 중대한 결심을 했을 때의 긴장되고 창백한 얼굴로 갑자기 입을 열었습니다. "실은 자네에게 하지 않으면 안 될 이야기가 있네. 이젠 더 이상 숨기지 않겠네. 나는 원래 죄수였다네." "무슨 농담을!" "아니, 정말일세. 나는 도둑질을 한 죄로 19 년 간이나 교도소에 들어가 있던 사람이라네." 이 말을 듣고 마리우스는 상대의 말을 더 이상 의심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도 또한 얼굴이 창백해져 말했습니다. "전부 이야기해 주십시오. 어쨌든 코제트의 아버님이 아니십니까?" 장발장은 슬픈 듯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습니다. "아니, 아닐세. 난 코제트의 아버지가 아니라네. 내 본명을 포슐방이 아니라 장발장일세. 코제트는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네. 코제트는 고아였지. 나 같은 사람이라도 곁에서 그 아이의 힘이 되어 주고 싶었네. 하지만 지금은 이미 내 곁을 떠나 퐁메르시 부인이 되었네. 이제 코제트는 행복하게 되었지. 60 만 프랑은 전혀 꺼림칙한 돈이 아니니 걱정하지 말게. 세세한 일을 다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지. 내가 코제트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은 전부 끝난 셈이네." 마리우스는 너무 놀란 나머지 말이 막혀 우물거리며,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왜 일부러 하시는 겁니까? 잠자코 계시면 그것으로 그만이 아닙니까? 누구에게 쫓기고 계시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장발장은 쟈베르의 일을 떠올렸습니다. 집요한 형사 쟈베르까지도 자신을 보고 눈감아 주려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는 성실한 인간이 되고 싶었다네. 이대로 자네와 코제트와 함께 살더라도 나는 행복해질 수 없을 걸세. 아니, 나는 자네들과 함께 살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이 못 되네. 나는 어젯밤 한숨도 자지 못하고 고민했네. 그리고 오늘 아침이 되어서야 겨우 결심이 섰네. 이제 모든 것을 털어놓았네. 양심에 따라 그렇게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것일세." 두 사람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대로 묵묵히 서로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그 곳에 코제트가 들어와 두 사람에게 아침 인사를 하고 나서 장발장에게 다정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아버지, 어쩐지 얼굴빛이 나빠 보이시는데요. 손이 아프세요?" "아니다, 손의 상처는 이제 다 나았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아라. 잠시 마리우스와 할 이야기가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주겠니?" 코제트는 곧 방으로 나갔습니다. 장발장은 다시 마리우스를 향해 말했습니다. "마리우스, 내가 지금 했던 이야기는 부디 코제트에게 말하지 말게. 저 아이가 불쌍하니까." "이렇게 된 이상 자네는 내가 코제트와 만나는 것을 더 바라지는 않겠지." "그렇게 하는 편이 나으리라고 생각합니다만." "알겠네, 잘 알겠네." 장발장은 그렇게 중얼거리듯이 말하고는 문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그러나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애원하듯 슬픈 얼굴로 뒤돌아보았습니다. "마리우스, 자네는 연약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는 가끔은 코제트를 만나고 싶네. 나와 코제트는 19 년 가까이 쭉 같이 살아 왔네. 이것을 끝으로 그 아이와 만나지 못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다네. 이따금씩 만나러 오는 것을 허락해 주게. 얼굴만 보고 곧 돌아가겠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매일 저녁이라도 오십시오." 장발장은 안심한 듯 고개를 푹 숙이고 방을 나갔습니다. 다음 날부터 장발장은 가끔 코제트를 만나러 왔으나 잠깐 이야기만 나눌 뿐 허둥지둥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오는 횟수가 하루 걸러, 이틀 걸러, 그러더니 이윽고 전혀 그 모습을 나타내지 않게 되었습니다. 삶의 보람이고 마음의 지주였던 코제트가 자기 곁을 떠나자 장발장은 살아갈 의욕을 잃고 자리에 눕고 말았습니다. 그는 이제 아무 데도 나가지 않고 먹을 것도 목으로 넘어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밤, 그는 겨우 침대에서 일어나 언제나 곁에 두는 트렁크를 열었습니다. 그 안에는 코제트가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마음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모든 것이 끝났다. 코제트는 이미 결혼해 행복하게 잘 살고 있으니 나로선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앞으로는 코제트를 만날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그 아이를 만나 목소리만이라도 들을 수 있다면.' 그렇게 강했던 장발장의 눈에 눈물이 글썽였습니다. 눈물은 드디어 참을 수 없는 울음소리로 바뀌었습니다. 그것은 나이가 들어 살아갈 의욕을 잃은 노인의 구슬픈 울음소리였습니다. 그 때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렸습니다. 같은 날 정오를 조금 지났을 무렵, 한 남자가 마리우스의 저택을 방문해 하인에게 한 통의 편지를 내밀었습니다. 마리우스는 그 편지의 글씨와 종이와 잉크 색깔이 낯이 익었습니다. 그것은 일찍이 고르보 저택의 그 지옥 같은 방에 살면서 악마처럼 생활하던 종트레트가 그에게 자비를 구했던 편지와 똑같았습니다. 편지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습니다. 퐁메르시 남작 각하 저는 테나르라고 하는 사람인데 각하와 관계가 있는 중대한 비밀을 알려 드리려고 왔습니다. 들어만 주신다면 큰 영광으로 여기겠습니다. 아, 드디어 나타난 것일까! 워털루 전쟁에서 아버지의 은인인 테나르디에 쪽에서 먼저 찾아와 준 것이다! 마리우스로서는 은혜를 갚지 않으면 안 될 인물 중의 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는 하인에게 명령해 그 남자를 들어오게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들어온 사람은 아주 낯선 남자였습니다. 그 테나르디에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나이도 훨씬 들어 보였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각하, 제 편지를 읽어 주셨군요. 중대한 비밀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 대신 돈을 좀 주셨으면." "비밀이란 어떤 것이오?" "각하의 저택에는 끔찍한 살인자가 드나들고 있습니다." "내 집에?" "예, 그렇습니다. 그 남자의 이름은 장발장이라고 합니다." "그 이야기라면 알고 있소." "하지만 그 남자는 감옥을 탈출한 죄수입니다." "그것도 알고 있소" "지금 제 말을 듣고 아셨겠지요?" "아니오, 전부터 알고 있었소." 이 때 남자의 눈빛이 음흉하고 예리하게 빛났습니다. 그것은 고르보 저택에서 장발장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기다리고 있던 테나르디에의 눈빛이었습니다. 마리우스는 남자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나는 장발장의 이름과 마찬가지로 당신의 이름도 알고 있소." "그야 물론 그러시겠지요. 편지에 쓴 대로 저는 테나르라고 합니다." "거기에 디에가 붙겠지?" 남자는 움찔하는 눈치였습니다. "제 이름은 그게 아닙니다." "숨겨도 소용없소. 당신은 전에는 종드레트라고 했지. 몽페르메이유에서 여관을 했던 적도 있었고. 게다가 당신은 지독한 악당이야. 그 본성을 내가 다 알고 있소. 자 이걸 줄 테니 당장 돌아가시오!" 마리우스는 남자의 얼굴에 500 프랑짜리 지폐를 내던졌습니다. 남자는 깜짝 놀라기는 했으나 그렇게 큰 돈을 보자 싱글벙글했습니다. 그리고는 갑자기 말투를 바꾸었습니다. "이렇게 된 이상 모든 것을 다 말씀드리지요. 남작께서 말씀하신 대로 저는 테나르디에라고 합니다. 그렇게 말하고 안경을 벗자 원래 테나르디에의 얼굴 모습으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당황하여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장발장의 이름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름도 기억하고 있는 이 인물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테나르디에와 마리우스는 전에 고르보 저택에서 서로 옆방에 살고 있었지만 얼굴을 마주 대한 적은 없었습니다. 이 풍메르시 남작이 그 때의 가난뱅이 변호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리우스 쪽에서도 마음 속으로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얽혀 있었습니다. 이런 악당이 아버지의 생명의 은인이라는 사실이 어떻게 된 것인지 확실히 밝히고 싶었고 코제트의 지참금에 대해서도 물어 보고 싶었었습니다. "나는 당신 이름뿐만 아니라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일을 알고 있소. 당신이 말한 대로 장발장이 살인자에다 도둑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소. 그는 마들렌이라는 돈많은 공장주의 재산을 훔쳤고 쟈베르 형사를 권총으로 쏘아 죽였소. 나는 현장에 있었으니까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소." "남작님, 어딘가 이야기가 좀 이상하네요." "뭐가 이상하단 말이오?" "그렇다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하신 이야기는 사실과 전혀 다릅니다. 저도 진실을 말씀드리지만 장발장은 마들렌씨의 것을 훔치지도 않았고 쟈베르를 죽이지도 않았습니다." "어떻게 당신이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요?" "무엇보다도 자기가 자기 것을 훔치는 따위의 일은 없으니까요. 장발장과 마들렌 씨는 동일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엉터리 같은 소리가 어디 있소?" "쟈베르 형사를 죽인 것도 장발장이 아닙니다. 쟈베르는 스스로 센 강에 몸을 던져 죽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더니 테나르디에는 주머니에서 두 장의 낡은 신문을 끄집어냈습니다. "남작님, 저는 장발장이라는 녀석의 비밀을 파헤치려고 증거를 모았습니다." 그가 보인 신문 기사 하나는 마들렌 씨가 재판소에서 스스로 장발장이라고 밝힌 내용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쟈베르의 센 강 투신 자살을 보도한 기사로 자살하기 전에 쟈베르가 경시총감 앞으로 보고한 구두 기록이 덧붙여 있었습니다. 그것에 의하면 쟈베르는 바리케이드에서 포로가 되었으나 장발장이라는 남자가 권총을 하늘에 대고 쏘아 그를 구해 주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마리우스는 두 가지 기사를 단숨에 읽고 놀라움으로 정신이 없었으나 동시에 가슴 속이 후련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악인이나 살인자가 아니라 성인과 같은 사람이 아니오?" "그런데 그렇지도 않습니다. 놈이 도둑에다 살인자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옛날의 사소한 절도 행위를 말하는 것이지요? 그 일이라면 이미 오래 전에 끝난 이야기가 아니오?"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이건 저만이 알고 있는 비밀입니다. 작년 6월 6일 폭동이 한창이었던 날의 일입니다만 저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어서 하수도가 센 강으로 내려가는 출구에 숨어 있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마리우스는 깜짝 놀랐습니다. 센 강, 하수도 출구! 테나르디에는 다시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저는 그곳의 철문 열쇠를 가지고 있었지요. 밤 8시경이었는데 몸집이 큰 한 남자가 사람 시체를 메고 하수도 안에서 나오더군요. 자기가 죽인 시체를 센 강에 내버리려고 한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그 남자와 나는 딱 마주쳤습니다. 밖으로 나오고 싶다며 열쇠를 빌려 달라고 하더군요. 어찌나 억세 보이든지 저는 무서워서 열쇠를 빌려 주었습니다. 그 때 얼핏 보니 남자의 등에 업힌 죽은 사람은 얼굴 전체가 피투성이였는데 젊은 사람 같았습니다. 저는 기회를 엿보아 죽은 사람의 옷자락 끝을 살짝 찢어 두었습니다. 나중에 증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였죠. 그래서 그 남자가 장발장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 옷 조각으로 말씀드리면." 테나르디에는 피가 엉겨붙은 옷조각을 꺼내 손가락으로 집고 펄럭펄럭 흔들어 보였습니다. 마리우스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습니다. 너무 놀란 나머지 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겨우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리에서 일어나 옷장 속을 뒤져 웃옷 하나를 찾아 냈습니다. 검붉은 피가 달라붙은 낡은 웃옷이었습니다. "그 웃옷이란 바로 이것이오! 그 옷을 입고 있었던 사람은 여기 있는 나란 말이오!" 그렇게 소리치고 마리우스는 상대의 손에서 옷조각을 휙 잡아채 웃옷의 찢어진 부분에 갖다댔습니다. 찢어진 부분과 옷조각은 꼭 맞았습니다. 마리우스는 몸이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그렇다면 그 때 자신을 구해 주었던 사람은 장발장인 것입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자신은 그 사람에 대해서.동시에 그의 가슴에는 테나르디에를 향한 억누를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어 1000 프랑과 500 프랑짜리 지폐를 몇 장 끄집어내 그것을 테나르디에에게 들이대며 소리쳤습니다. "이 거짓말쟁이야! 너야말로 진짜 악당이 아니냐! 넌 그 사람에게 죄를 덮어씌우고 내게서 돈을 우려 내려고 찾아왔어. 하지만 공교롭게도 네 생각과는 반대로 그 사람이 내 생명의 은인이라는 사실을 증명한 셈이 되었군. 이봐, 테나르디에, 아니 종드레트, 나는 고르보 저택의 그 방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옆방에서 보고 전부 다 알고 있었다. 너를 교도소에 보내는 것은 간단해. 증거는 얼마든지 자지고 있으니까. 그렇지만 그렇게는 하지 않겠다. 이 1000 프랑을 줄 테니 당장 사라져 버리라고! 이것은 워털루 전쟁에서 은혜를 베풀어 준 대가다." "워털루? 아니, 그러면 그 때의 군인은 당신의." "그렇다. 아, 아직 3천 프랑이 더 남아 있군. 이것도 주겠다. 딸을 데리고 미국이든 어디든 떠나란 말이야. 그 때에는 2 만 프랑을 적선해 주겠다. 이것도 아버님과의 인연 덕분이라고 생각해라!" "각하, 고맙습니다!" 테나르디에는 영문을 모르는 채 지폐 뭉치로 불룩해진 주머니를 손으로 누르며 꾸벅 절을 하고 방을 나갔습니다. 마리우스는 즉시 코제트를 부르고 하인들에게 말해 마차를 준비시키고는 급히 장발장에게로 달려갔습니다. 마차 안에서 그는 코제트에게 장발장에 대해 모두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장발장에 대해 취했던 태도를 부끄럽게 여기며 후회했습니다. 그의 뺨에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영웅의 죽음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장발장은 대답했습니다. "들어오십시오." 그 목소리에는 아무런 힘이 없었습니다. 코제트와 마리우스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장발장이 눈을 크게 뜨고 무엇인가 말하려 했을 때에는 코제트가 이미 그의 목에 매달려 사랑과 미안함이 담긴 목소리로 장발장을 불렀습니다. "아버님!" 코제트 옆에서 마리우스는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 외에는 달리 장발장에 대한 자신의 감사와 사죄의 마음을 전할 방법이 없었던 것입니다. "아, 이제 자네도 나를 이해해 주는군. 고맙네."라고 장발장은 목쉰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코제트는 노인의 주름잡힌 이마에 입을 맞추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기도 하면서 어릴 때의 소녀처럼 행동했습니다. 장발장은 눈을 감은 채, 기쁨에 젖어 있었습니다. 이윽고 그는 한층 가늘고 희미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마리우스, 자네도 나를 이해해 주고 너도 이렇게 다정하게 대해 주니 참으로 기쁘구나. 하지만 나는 이미." "왜 그러세요, 아버지?" 하고 코제트가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쥐고 있던 장발장의 손이 점점 차가워 지는 것처럼 느꼈기 때문입니다. "어디가 아프세요. 아버지?" "아니다. 아픈 것이 아니라. 이제 죽을 때가 온 것 같다." 코제트와 아리우스는 자기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마리우스, 내가 준 그 60 만 프랑은 안심하고 써도 좋은 돈일세. 부디 코제트를 행복하게 해 주게나." 그 목소리는 점점 가늘어져 갔습니다. "나는 두 사람이 와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은 생각이 드는구나. 이제 행복하게 죽을 수 있어. 두 사람은 언제까지나 변함없이 사랑해야 해. 이 세상에 서로 사랑하는 것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 이것이 이 세상의 모든 고난과 비참함을 경험하면서 맑고 아름다운 영혼에 눈떠 이제 막 천국으로 여행을 떠나려는 장발장의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파리의 페르 라셰즈 묘지 한쪽 구석에 이름도 새겨지지 않은 작은 무덤이 있었습니다. 그 묘비에는 누군가의 손에 의해 다음과 같은 글이 씌어 있었습니다. 이 곳에 기구한 생애를 살다 간 한 사람이 잠들었네. 그는 자신의 천사를 잃자 세상을 떠났네. 낮이 가면 밤이 오듯이. (작품에 대하여) 장발장 빅토르 위고는 1802 년, 스위스 국경에 가까운 프랑스 동부 브장송에서 태어나 1885 년, 8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작가입니다. 즉 19세기와 함께 태어나 19세기와 함께 살았던 작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세기란 문학의 한 형식인 소설을 만드는 방법이 완성되어 소설이 가장 성행했던 시대입니다. 그 19세기 속에서도 위고는 가장 널리 알려지고 대표적인 작가 중의 한 사람으로 "장발장(원제목은 레미제라블로 불쌍한 사람들이란 뜻)"은 이 시대의 가장 위대한 소설의 하나로 꼽히고 있는 작품입니다. 위고가 태어나기 13 년 전인 1789 년에는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습니다. 프랑스 혁명은 미국 독립과 때를 같이해 18세기말의 세계적 대사건으로 낡은 사회가 새로운 사회로 바뀌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유럽 여러 나라는 물론 세계 각국이 낡은 사회로부터 새로운 사회로 옮겨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에서도 한 번의 혁명으로 사회가 바뀌고 안정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찬성하는 사람들과 반대하는 사람들이 대립하고, 게닥 외국의 세력도 가세해 19세기 전체를 통해 극심한 격동의 시대였습니다. 위고는 바로 그러한 시대의 정치적 격변기를 살았던 시인이자 작가입니다. 위고는 사회를 새롭게 만들려는 입장, 즉 공화파의 지도적인 중요한 인물이며, 시인, 소설가로서도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한때 프랑스를 떠나 영불 해협(영국과 불란서 사이에 있는 좁은 바다. 도버 해협이라고도 함)의 작은 섬으로 피신해 그 곳에서 19 년 동안이나 지낸 적도 있었습니다. 위고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어수선한 사회에서 불안한 생활을 했던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이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시대적 배경은 1815 년부터 1833 년에 걸친 시기입니다. 따라서 이 시대의 정치와 사회 문제, 사람들의 생활 태도, 사고 방식 따위의 문제들이 이 작품 속에 짙게 반영되어 있습니다. 위고의 문학 작품 성격은 낭만주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공화파가 낡은 사회를 바꾸어 새로운 사회로 만들려고 했듯이 낭만파 작가들도 작품을 만드는 데 있어서 딱딱한 규칙이나 규제를 버리고 인간의 기분과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사회와 인간의 모습 등을 생생하게 있는 그대로 묘사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위고는 낭만파의 지도적인 시인이며 소설가였습니다. "장발장"은 위고의 이러한 사상, 사회관, 인생관, 소설관에 입각해 씌어진 대작입니다. 그 바탕에 깔린 것은 인도주의적 사상입니다. 주인공 장발장이 이를 대표하는 인물인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서 장발장은 "이 세상에서 서로 사랑하는 것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고 말하며 죽어 갑니다. 그것은 그 말 그대로 작자 위고의 신념이었습니다. 위고가 1885 년에 세상을 떠나자 그를 국민적인 대작가, 공화제의 열렬한 옹호자로 이해했던 프랑스 국민은 국장의 예를 갖추어 그의 죽음을 애도했습니다. 이 작품은 방대한 분량의 대장편 소설이지만 그 줄거리와 작품의 정신을 최대한으로 살리도록 노력하면서 줄여 쓴 것임을 밝혀 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