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옹옹옹옹옹옹옹옹옹옹 옹 노틀담의 꼽추 옹 옹옹옹옹옹옹옹옹옹옹옹 지은이:빅토르 위고 @ff 차례 제1장 광인 교황의 날 제2장 시인과 집시 여인 제3장 노틀담의 성당 제4장 분홍신 제5장 숙명 제6장 마녀 재판 제7장 연정과 정욕 제8장 기적궁 사람들 제9장 땅으로, 하늘로 제1장 광인 교황의 날 1 센 강 가운데의 시테 섬과 대학과 수도의 거리거리에서 모든 종들이 요란스레 울려 퍼진 그날의 그 소리에 파리 시민들이 잠을 깬 지가 오늘로 어언 348년 하고도 여섯 달 가량이 되었다. 그러나 이날은 결코 역사가 기억하고 있을 정도의 날은 아니었다. 그처럼 이른 아침부터 파리의 종과 시민들을 뒤흔들었던 사건 속엔 아무것도 특이한 점이 없었다. 그것은 피카르디 사람이나 부르고뉴 사람들이 공격해 오는 것도 아니었고, 어떤 성스런 행렬이 지나가는 것도 아니었으며, 라스의 포도밭에서 학생들이 데모를 일으킨 것도 아니었다. 또한 파리 재판소에서 악한과 잡년들이 교수형에 처해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 1482년 정월 초엿샛날에 온 파리 시민을 들뜨게 하고 있는 것은, 아득한 옛날부터 한데 합쳐져 벌어지는 민중의 축제인 그리스도 공현절과 광인절이었다. 이날은 그레브 광장에선 환희의 불꽃놀이가, 브라크 예배당에선 식목제가, 그리고 재판소에서는 연극 공연이 있기로 돼 있었다. 그 공고는 하루 전날, 크고 하얀 십자가를 가슴에 달고 자줏빛 제복을 입은, 파리 시장 나리의 부하들에 의해 네거리에서 요란스런 팡파르로 행해졌었다. 그리하여 남녀 시민들은 문들을 꼭꼭 닫아 놓고, 아침 일찍 도처에서 떼를 지어 그 세 곳 가운데 한 곳을 향해 몰려가고 있었다. 그들은 특히 재판소 거리로 몰려가고 있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이틀 전에 도착한 플랑드르의 사신들이 연극 공연과 대광실에서 거행될 광인 교황 선발식에 참석할 계획이라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이 대광실은 세상에서 가장 큰 방이란 명성을 얻고 있었는데도 이날 그곳에 들어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붐비는 재판소 광장은 창문에서 바라보는 구경꾼들에겐 바다 같은 인상을 주었으며, 대여섯 개의 거리가 이 바다 속으로 시시각각 새로운 사람의 물결을 쏟아 내고 있었다. 이 끊임없는 물결은 광장의 고르지 못한 유역 여기저기에, 마치 곶처럼 튀어나와 있는 집들 모서리에 부딪히고 있었다. 외침 소리와 웃음소리, 그리고 수천의 발 구르는 소리가 일대 법석을 이루었다. 때때로 그 법석과 소음은 더욱 요란스러워지고, 그 모든 군중을 큰 계단 쪽으로 밀어 올리는 물결은 역류하고 혼란에 빠지고 소용돌이치곤 했다. 질서를 잡기 위해 이따금 경찰관이 개머리판을 휘두르는가 하면, 경시청 기마대의 말이 뒷발질을 하였다. 만일 우리들 1830년대의 사람들이 상상 속에서 이 15세기의 파리 사람들 속에 끼여들어, 1482년 정월 초엿샛날 그렇게도 빽빽했던 그 거대한 재판소 안으로 밀치락달치락 곤두박질을 하면서 들어 갈 수 있다면, 그 구경거린 재미없지 않을 것이며 퍽이나 신기해 보이리라. 나는 머릿속에 한번 그 인상을 떠올려 보겠다. 우선 귀가 먹먹해지고 눈이 아찔해진다. 머리 위엔 무늬를 새긴 벽판을 붙이고, 하늘색으로 칠하고, 금빛 나리꽃 장식을 한 거대한 궁륭. 발 아랜 희고 검은 대리석을 번갈아 깔아 놓은 멋진 바닥. 거기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엔 하나의 우람한 기둥, 그 다음 또 하나의 기둥, 또 다른 기둥 해서 모두 일곱 개의 기둥이 늘어서 당당히 떠받치고 있다. 실내의 사방에는 높다란 벽을 따라 문과 문, 창과 창, 기둥과 기둥 사이로 파라몽(역주:전설에 의하면 프랑스 초대 왕이라 함)을 비롯한 프랑스 역대 왕들의 조각상이 늘어서 있다. 게으른 왕들은 팔을 늘어뜨린 채 눈을 내리뜨고 있으며, 용감하고 호전적인 왕들은 씩씩하게 머리와 손을 하늘로 쳐들고 있다. 정월의 희끄무레한 햇빛이 비쳐 들어 벽을 따라 내려가고, 일곱 기둥 주위에서 맴도는 요란스런 군중이 잇달아 밀려들어오는 길쭉하고 큰방을 상상해 보라. 만일 라바약이 앙리 4세를 암살하지 않았더라면 재판소의 기록보존실에 라바약의 소송 기록이 있을 리 만무하고, 그 기록을 태우기 위해 보존실을 태우고, 기록보존실을 태우기 위해 재판소를 태울 수밖에 없었던 방화범들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되었다면 1618년의 화재도 없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그 재판소는 대광실과 함께 아직도 남아 있을 것이며, 나는 독자에게 '가서 그걸 직접 보시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재판소에 관한 묘사를 할 필요가 없고, 독자는 또 이렇게 힘겹게 읽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것은 바로 다음과 같은 진리를 증명해 준다. 즉 '큰 사건들은 헤아릴 수 없는 자식들을 낳는다'라는 진리다. 이 커다란 평행사변형의 양쪽 끝 중 한쪽엔 훌륭한 대리석 탁자가 놓여 있었는데, 어찌나 길고 넓고 두꺼웠던지, 당시 기록을 보면 "세상에 이런 대리석 조각은 결코 본 일이 없다"고 감탄하고 있다. 다른 한쪽 끝은 예배당이 차지하고 있는데, 거기엔 루이 11세가 성모 마리아 앞에 무릎을 끊고 있는 자기 모습을 조각해 놓게 했다. 플랑드르의 사신들과 연극에 초대된 다른 고위급들을 위해 방 중앙에, 큰 문 맞은편으로 벽에 기대어 단을 하나 세우고 금수단을 드리워 놓았으며, 깔끔한 복도의 창을 이용하여 그 단에 특별 출입구를 마련해 놓았다. 관례에 따라서 연극의 상연은 이 대리석 탁자 위에서 이루어졌다. 그러기 위해 탁자는 아침 일찍부터 준비되었다. 축제일이나 형 집행일에 한결같이 민중의 여러 즐거움을 지켜 주는 데 필요 불가결한 법원장의 네 집달관이 대리석 탁자의 네 모퉁이에 하나씩 서 있었다. 연극이 시작되려면 재판소의 큰 시계가 정오의 종을 쳐야만 했다. 연극 상연을 위해서는 너무 늦은 시간일 수도 있지만, 사절들의 형편에 맞는 시간을 택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군중들은 아침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이 한떼의 고지식한 구경꾼들은 꼭두새벽부터 재판소 계단 앞에서 추위에 떨었다. 어떤 사람은 맨 먼저 들어가기 위해 큰 문 앞에서 밤을 새웠다고까지 말하고 있었다. 군중은 시시각각 들어차서, 마치 수위를 초과하는 물처럼 벽을 따라 불어 올랐고, 기둥들 주위와 창의 문지방, 조각들의 돋을 새김 위로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숨이 막힌 그들의 아우성은 귀를 찢는 듯한 구슬픈 어조를 빚어내고 있었다. 들리는 것이라고는 플랑드르인에 대한, 시장에 대한, 법원장에 대한, 추기경에 대한, 오스트리아의 마르그리트 공주에 대한, 몽둥이를 든 집달관에 대한, 추위와 더위에 대한, 광인 교황에 대한, 기둥과 닫힌 문에 대한 불평뿐이었다. 여러 떼거리들 중에서도 특히 신나게 떠드는 한 무리의 장난꾸러기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유리창 하나를 박살낸 뒤 배짱 좋게도 높은 자리에 걸터앉아 실내의 군중과 광장의 군중을 번갈아 보면서 농담을 던지곤 했다. "아니, 누군가 했더니 자넨 장 프롤로 뒤 물랭(역주:풍찻간이란 뜻)이 아닌가!" 그들 중 하나가 원기둥 머리 장식에 매달려 있는 갈색 머리칼의 장난꾸러기 같은 학생에게 외쳤다. "자네 이름은 참 잘 지어 붙였단 말야. 왜냐하면 자네의 두 팔과 두 다리는 바람을 타고 도는 네 날개 같거든. 그래 언제부터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나?" "벼락맞을!" 장 물랭이 대답했다. "네 시간도 더 됐단 말야. 이 시간만큼은 내가 연옥에 가 치러야 할 시간에서 공제됐으면 좋겠어. 난 생트 샤펠에서 시실랴 왕의 여덟 성가 대원이 대미사의 첫 구절을 노래 부르기 시작하는 걸 들었단 말야" "참 멋진 성가 대원들이지. 그들의 목소리는 그들의 모자보다 더 뾰족하거든! 미사를 드리기 전에, 왕께옵서는 성 요한 나리께서 시골 말투로 라틴어를 읊조리는 걸 좋아하시는지 어떤지 알아봐야만 했을 텐데 말야" "임금님이 그런 미사를 꾸며 내신 건 그 망할 놈의 성가 대원들을 부려 잡숫기 위해서라오!" 창 아래쪽 군중 속에서 한 노파가 외쳤다. "생각 좀 해보라고요! 미사 한 번 드리는 데 무려 일금 천 리부르나 쓰다니, 글쎄 그것도 가난뱅이가 시장에서 생선 판 돈을 거두어서 말야. 세상에 원!" "그런 말 마시오!" 고기장수 노파 옆에서 한 뚱뚱한 남자가 코를 막고 말을 시작했다. "마땅히 정성을 바쳐야죠. 당신은 폐하께서 다시 병환이 나길 바라진 않겠죠?" 이때 기둥 꼭대기에 매달린 장 물랭이 외쳤다. "말씀 한번 잘 하셨소, 왕실 모피 상인 나리이신 질 르코르뉘 씨!" 가엾은 모피 상인의 이름은 모든 학생들의 폭소를 자아냈다(역주:질 르코르뉘는 뿔 달린 익살꾼이란 뜻). 뚱보 상인은 한 마디도 대꾸하지 못하고, 사방에서 쏠리는 눈길로부터 도망치려 애쓰고 있었으나, 공연히 땀만 뻘뻘 흘릴 따름이었다. 그렇게 애를 쓸수록 나무 속에 빠져들어 가는 쐐기처럼, 분노로 새빨갛게 떨리는 그 넓적한 얼굴이 어깨 속으로 더욱 깊이 기어 들어갈 뿐이었다. 이윽고 그와 마찬가지로 뚱뚱하고 땅딸막하고 존경할 만한 한 인물이 나서서 그를 도왔다. "망측한 일이구나! 학생들이 시민들에게 그렇게 지껄이다니! 옛날 같으면 네놈들을 한 다발의 회초리로 때려 준 뒤 그 회초리로 태워 죽여 버렸을 텐데!" 그러자 학생들은 일제히 아우성을 쳤다. "아니, 누가 호통을 치신다지? 재수 없는 부엉이처럼 왜 나서실까?" "옳지, 난 알겠어. 앙드리 뮈스니에 나리로군" "저 양반은 대학의 네 서적 상인 가운데 한 분이야" "자, 한바탕 법석을 떨어 주자꾸나!" "상인 나리, 우리는 당신 책을 불사르겠다" "영감님, 우리는 당신 여편네를 겁탈하겠다" "그 착한 뚱보 아가씨는 싱싱하고 쾌활하거든" "망할 녀석들 같으니라고!" 뮈스니에 나리는 우거지상이 되어 중얼거렸다. 싸움터의 지휘자인 장 물랭은 의기양양하여 계속했다. "우리 대학의 어르신네들은 참 훌륭한 양반들이라니까! 오늘 같은 날에도 우리의 특권을 묵살하다니 원! 보시는 것처럼 도시에는 식목 축제와 기쁨의 불꽃놀이가 있고, 시테 섬엔 연극과 광인 교황이 있는데, 대학에는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학생들 가운데 하나가 외쳤다. "총장과 선거인과 소송 대리인들을 타도하라!" "오늘 저녁 샹 가야르에서" 또 하나가 계속했다. "뮈스니에 나리의 책으로 기쁨의 불꽃놀이를 해야 할까 보다" "타도하라! 뮈스니에 나리를, 권력자들과 서기들을, 신학자들을, 의사와 교회법 박사들을, 소송 대리인들을, 선거인들과 총장을!" "세상 참 말세로구나!" 뮈스니에는 귀를 막으며 중얼거렸다. "저기 티보 총장이 온다! 광장을 버젓이 지나가고 있지 않은가!" 창 곁에 있던 학생들 중 하나가 외쳤다. 학생들은 너나없이 일제히 광장 쪽을 바라보았다. 아닌게 아니라 총장과 대학의 모든 고관들이 줄을 지어 사절단을 맞이하러 재판소 광장을 지나가고 있었다. 학생들은 창가로 몰려가서 그들이 지나가는 데 대고 마구 야유를 퍼부었다. 일행의 선두에서 걸어가는 총장이 최초의 일제 사격을 받았다. "야아! 티보 총장님, 안녕하시오! 늙은 바보, 늙은 노름꾼이여!" "나귀를 타고 종종걸음치는 꼴 좀 봐! 나귀의 귀때기가 저치의 귀보다 더 짧군 그래" "하나님이 그댈 지켜 주시길! 노름과 주사위에 빠져 푸르죽죽한 납빛으로 변한 저 초췌한 얼굴!" "어딜 그렇게 가시나, 혹시 티보토데 거리로 잠자리를 찾으러 가는 것 아냐? 악마 노름판의 총장 나리여!" 그 다음엔 다른 고관들의 차례였다. "저 여섯 신학자들을 그 흰 법의와 더불어 타도하라!" "거기 가는 게 신학자들이냐? 난 여섯 마리의 흰 거위인 줄 알았다오!" "의사들을 타도하라!" "악마가 저 독일 소송 대리인의 숨통을 눌러 줬으면 좋겠구나!" "저건 문학사 나리들이다! 저 모든 아름다운 검정 법의를 봐라! 저 모든 아름다운 빨강 법의를 봐라!" "저게 모두 총장 나리의 예쁘장한 꼬리를 이루고 있구나!" "생트 죄느비에브 성당의 참사원들이 가고 있다!" "클로드 쇼아르 신부다! 그대는 마리 지파르드를 찾고 있는 게 아냐?" "그녀는 글라티니 거리에 있다!" "어이, 저기 피카르디의 선거인 시몽 상갱 나리가 엉덩짝에 여편네를 태우고 간다!" "말 탄 사람 위에 검은 걱정이 앉아 있구나!" "대담한 시몽 나리여!" 그 동안 대학의 서적 상인 앙드리 뮈스니에는 모파 상인에게 말하고 있었다. "분명히 말해 두지만, 이건 정녕 말세군요. 학생놈들이 이렇게 방자하게 구는 꼴은 여태껏 본 일이 없었죠. 빌어먹을 현대의 발명품들이 모든 걸 망쳐 놓고 있어요. 대포며 세르팡틴 포며, 특히 저 독일에서 온 가증스런 발명물인 인쇄술 같은 것 말이오. 이젠 필사본도 없어지고 책도 없어졌소. 말세가 왔어요!" 이때 정오의 종소리가 울렸다. 모든 군중이 이구동성으로 수군거렸으나 학생들은 입을 다물었다. 이어서 대이동이 시작되어 발과 머리가 마구 움직이고, 온 방 안이 기침 소리와 손수건 소리로 요란스러워졌다. 저마다 준비를 갖추어 제자리를 잡고, 끼리끼리 무리를 이루었다. 그런 뒤엔 쥐죽은 듯한 고요... 사람들은 모두 목을 빼고, 입을 벌리고, 대리석 탁자 쪽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었다. 1분, 2분, 3분... 15분을 기다렸으나,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단은 여전히 텅 빈 채이고 무대는 잠잠했다. 그러는 동안 안타까움에 이어 울화증이 났다. 아직 나지막하긴 했지만 성난 말소리가 돌고 있었다. "연극을 시작하라!" 하고 사람들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아직 기세를 부리지 못한 폭풍우가 이 군중 위에 떠돌고 있었다. 거기서 맨 먼저 섬광을 끌어낸 것은 장 물랭이었다. "연극을 시작하라! 그리고 플랑드르놈들은 꺼져 버려라!" 그는 기둥 주위에서 뱀처럼 몸을 비틀며 힘껏 소리쳤다. 군중은 그에게 박수 갈채를 보냈다. "우리는 당장 연극이 필요하다. 그렇잖으면 내 의견으론 희극 대신 법원장의 모가지를 매다는 게 마땅하다고 여겨진다!" "말 잘했다. 그럼 우선 그의 네 집달관의 목부터 시작하자!" 군중의 동의와 갈채가 뒤를 이었다. 그러자 그 네 명의 가련한 사내들은 낯이 새파래져서 군중들을 바라보았다. 군중은 그들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으며, 그들과 군중 사이를 가로막은 가냘픈 나무 난간은 벌써 군중의 압력 아래 구부정하게 휘는 것이 그들에게 보였다.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잡아 죽여라! 잡아 죽여!" 사람들은 사방에서 외쳤다. 그 순간, 저쪽 계단 위의 휘장이 오르고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그것을 본 군중은 갑자기 멈칫했으며, 분노는 마술에 걸린 듯 호기심으로 변했다. "조용히! 조용하라!" 그 사람은 무척이나 불안한 듯 사지를 떨면서 꾸벅꾸벅 절을 하며 대리석 탁자의 가장자리까지 왔는데, 군중과 가까워짐에 따라 그는 더욱 깊이 허리를 구부려 무릎을 끊는가 싶을 지경이었다. "남녀 시민 여러분" 하고 그는 말을 꺼냈다. "저희들은 추기경 각하 앞에서 '성모 마리아의 훌륭한 심판'이란 제목을 가진 한 편의 아름다운 우의극을 상연하게 됨을 영광으로 생각하는 바입니다. 주피터 신의 역을 맡게 된 것은 저올시다. 추기경 각하께서는 지금 외국의 고귀하신 사절단과 동행하고 계시온데, 이 사절단은 현재 보데 성문에서 대학 총장님의 환영사를 들으시느라고 지체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추기경 각하께서 당도하시는 대로 저희들은 시작하겠습니다" 주피터 의상은 상당히 아름다워서 군중을 진정시키는데 적잖이 이바지 했다. 주피터는 검은 우단으로 덮이고 금빛 못이 박힌 쇠사슬 갑옷을 입었으며, 도금한 은단추가 달린 두건을 쓰고 있었다. 2 그러나 그 옷에 의해 만장일치로 발현된 만족과 탄성은 그 말을 듣자 스러져 갔으며, 불행히도 그가 "추기경 각하께서 당도하시는 대로 저희들은 시작하겠습니다"라는 결론에 이르렀을 때, 그 목소리는 천둥과도 같은 함성 속에 묻혀 버렸다. "시작하라! 즉시 연극을 시작하라!" "당장 시작하라! 그렇잖으면 배우들과 추기경을 잡아 매달겠다!" 주피터는 가엾게도 눈이 휘둥그래지고 분장한 얼굴이 더욱 새하애져서, 들고 있던 것을 떨어뜨리고 두건을 벗어 들었다. 그러고는 꾸벅꾸벅 절하고 달달 떨면서 더듬거렸다. "추기경 각하께선... 사절단이..." 그는 뭐라고 변명해야 좋을지를 몰랐다. 그는 마음속으로 목이 매달릴까봐 잔뜩 겁먹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 다행히 어떤 사람 하나가 나타나 그를 곤경에서 구해 주었다. 나간 이쪽으로, 대리석 탁자 주위의 비어 있는 공간에 한 사나이가 서 있었지만 그때껏 아무 눈에도 띄지 않았던 것인데, 그만큼 그의 길고도 가냘픈 몸은 그가 기대고 선 원기둥에 의해 완전히 가려져 있었던 것이다. 이 키 크고 빼빼 마르고 금빛 머리칼에 얼굴은 창백하고, 이마와 뺨엔 벌써 주름살이 잡혔지만 아직은 젊고, 입엔 미소를 머금고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오래되어 헐고 윤이 나는 검은 세루 옷을 입은 사나이는 대리석 탁자 옆으로 걸어 나와선 가련한 주피터에게 손짓을 했다. 그러나 상대방은 얼이 빠져 보지 못하고 있었다. "이봐요, 주피터!" 상대방은 듣지도 못하고 있었다. 마침내 금발의 키다리는 안달이 나서, 목을 빼고 발을 구르며 외쳤다. "미셀 지보르느!" "누가 날 부르지?" 주피터는 잠에서 깨어난 듯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이쪽이요" "아!" "즉각 시작해서 군중을 만족시켜 주시오. 법원장님은 내가 책임지고 달랠 테니까. 추기경은 법원장님이 달래실 테고" 그러자 주피터는 심호흡을 하곤 계속해서 아우성치고 있는 군중에게 목청이 찢어져라 소리를 질렀다. "시민 여러분, 즉시 시작하겠습니다!" "좋다, 좋아!" 군중은 이렇게 외치고 귀청이 찢어질 듯 박수를 쳤으며, 주피터는 이미 휘장 아래로 들어가 버리고 없는데도, 방 안은 계속 박수 갈채에 떨리고 있었다. 마치 요술이라도 부린 듯 폭풍을 잠재워 버린 그 알 수 없는 사나이는 어느새 기둥 뒤의 어두컴컴한 곳으로 되돌아가 있었는데, 구경꾼들의 맨 첫 줄에 있다가 주피터와 그의 대화하는 것을 본 두 젊은 아가씨에 의해 불려 나오지 않았던들, 그는 틀림없이 전과 같이 그곳에서 언제까지나 사람 눈에 띄지 않은 채 가만히 서 있었으리라. "수도사님" 그녀들 중의 하나가 그에게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하면서 말했다. "얘, 가만 있어, 리에나르드" 그 옆의 젊고 예쁜 여자가 나들이옷을 잘 차려 입은 탓으로 용기를 내어 말했다. "저분은 성직자가 아니라 일반인이야. 그러니까 수도사님이라고 해선 안되고 선생님이라 해야 하는 거야" "선생님..." 리에나르드가 불렀다. 알 수 없는 사나이는 난간으로 다가오더니 정중히 물었다. "왜 그러죠, 아가씨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리에나르드는 무척 당황해 말했다. "제 옆에 있는 지스케트 라 장시에느가 선생님께 얘기하고 싶은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지스케트가 얼굴이 새빨개지면서 대꾸했다. "리에나르드가 당신께 수도사님이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전 '선생님'이라고 말하는 법이라고 가르쳐 준 거예요" 두 아가씨는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대화를 나누게 된 것을 무척 기뻐하는 듯 빙그레 웃으면서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그럼 내게 아무 하실 말씀이 없으신가요, 아가씨들?" "네, 아무것도 없어요" 리에나르드가 말했다. 금발의 젊은 빼빼는 물러가려고 한 발을 내딛었다. 그러나 아가씨들은 사실 놓아 주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선생님" 지스케트는 급한 결심을 내린 여인과 같이 격렬한 어조로 말했다. "그들이 저기서 하려고 하는 건 아름다울까요?" "퍽 아름답지요, 아가씨" 이름 모를 사나이는 주저없이 활기차게 대답했다. "그게 뭐지요?" 리에나르드가 꿈꾸는 듯한 눈을 들며 물었다. "우의극인 '성모 마리아의 훌륭한 심판'이라는 거예요, 아가씨. 전혀 새로운, 아직 한 번도 상영되지 않은 거죠" "그러니까 그건 이틀 전, 교황 특사가 입성하던 날에 상연한 것과는 다른 거군요. 그땐 등장 인물로 세 아리따운 아가씨가 있었는데..." "그리고 모두 발가벗은 아가씨들이죠" 젊은이가 덧붙이자 리에나르드는 다소곳이 고개를 숙였다. 지스케트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교황 특사가 지나갈 때 이백 마리도 더 되는 온갖 종류의 새들을 다리 위에서 날려보냈지. 참으로 아름다웠잖니?" "오늘은 더 아름다울 것이오" 웃으며, 그러나 안타깝게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았던 사나이가 말했다. "이 연극이 아름다우리라고 장담하실 수 있나요?" "그럼요. 제가 오늘 이 연극의 작가니까요" "정말이세요?" 아가씨들은 깜짝 놀라 물었다. "그럼요!" 작가는 좀 뻐기면서 대꾸했다. "다시 말하자면 두 사람이 만든 것인데, 장 마르샹은 널빤지를 톱으로 켜서 무대 장치를 맡아 했고, 저는 희곡을 지었지요. 에, 제 이름은 피에르 그랭구아르라고 하지요" 주피터가 휘장 아래로 돌아간 때부터 이 새로운 우의극의 작가가 지스케트와 리에나르드의 순진한 감탄 앞에 불쑥 이름을 밝힌 순간까지 벌써 꽤 시간이 흘렀음을 독자는 짐작하고 있으리라. 주목할 만한 점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토록 법석을 떨던 그 모든 군중이 이젠 배우의 말을 믿고 너그럽게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우리들의 극장에서 아직도 느낄 수 있는 영원한 진리, 즉 관객으로 하여금 참을성 있게 기다리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즉시 시작한다고 관객에게 말하는 것이라는 저 영원한 진리를 증명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장 물랭은 잠자코 있지 않았다. 그는 소란 뒤에 계속된 조용한 기다림 속에 느닷없이 외쳤다. "주피터, 성모 마리아, 악마의 어릿광대들아! 사람을 조롱하는 거냐? 연극을 시작하라! 너희들이 시작하지 않는다면 우리들이 시작하겠다!" 더 이상은 필요하지 않았다. 높고 낮은 악기들의 연주음이 곧바로 무대 장치 안쪽에서 들려 왔다. 이어 휘장이 올라갔다. 그러자 요란스레 분장하고 화장한 네 인물이 나와 무대의 가파른 사다리를 기어올라 단 위에 오른 뒤, 관객들 앞에 늘어서서 깊이 허리를 굽혀 절을 했다. 순간 음악이 뚝 멎었다. 드디어 연극이 시작되는 것이다. 네 명의 등장 인물은 인사에 대한 대가로 아낌없는 박수를 받고 나서, 종교적인 정적 속에서 천천히 서시를 낭독하기 시작했는데, 이에 관해서는 더 말하지 않겠다. 사실 관중은 배우들이 지껄이는 사설보다도 더 그들의 복장에 마음이 쏠렸던 것인데, 기실 그것은 옳은 노릇이었다. 그들 네 명은 모두 반반씩 노랗고 흰 두 부분으로 된 긴 옷을 입고 있었는데, 옷감의 질밖엔 딴 차이가 없었다. 첫번째 옷은 수단과 금은으로, 두 번째 옷은 명주로, 세 번째 옷은 양털로, 네 번째 옷은 무명베로 되어 있었다. 첫째 인물은 오른손에 칼을, 둘째 인물은 두개의 금열쇠를, 셋째 인물은 저울을, 넷째 인물은 삽을 각각 가지고 있었는데, 이런 상징을 명백히 하기 위해 다음처럼 커다란 검은 글자가 수놓여 있었다. 수단옷 아래엔 '내 이름은 귀족이다', 명주옷 아래엔 '내 이름은 성직이다', 양털옷 아래엔 '내 이름은 상품이다', 무명옷 아래엔 '내 이름은 농사다'. 두 남성 명사(성직과 농사)의 성은 그들의 좀 짧은 옷과 머리에 쓰고 있는 모자에 의해 어떤 판단력 있는 구경꾼들에게도 뚜렷이 감지되는 반면, 두 여성 명사(귀족과 상품)는 더 긴 옷을 입고 머리 수건을 쓰고 있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나아가 또 악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서시를 통해 농사는 상품과 결혼했고, 성직은 귀족과 결혼했다는 것을, 그리고 이 행복한 두 쌍의 부부는 아름다운 황금 돌고래(역주:원어인 dauphin이란 말엔 프랑스 황태자란 뜻도 있음)를 공동으로 갖고 있으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에게밖엔 그것을 주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네 명의 배우가 서로 뒤질세라 은유의 물결을 군중 위에 쏟고 있었는데, 이 군중 속에서 좀 전에 두 아가씨에게 자기 이름을 밝히는 기쁨을 억제하지 못했던 작가인 저 착한 피에르 그랭구아르의 눈과 귀와 가슴보다 더 유심히 듣고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는 기둥 뒤로 돌아가 거기서 귀를 기울이고 바라보면서 음미하고 있었다. 자기 작품의 시작을 맞아 준 호의적인 박수 갈채는 아직도 그의 마음속에 울리고 있었으며, 작가가 수많은 청중의 침묵 속에 배우의 입으로부터 바로 자신의 사상이 하나씩 하나씩 떨어지는 것을 볼 때 갖는 저 황홀한 명상과 같은 종류의 명상 속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가슴 아픈 일이지만, 이 최초의 환희는 이내 깨지고 말았다. 그랭구아르가 그 희열과 감격으로 취하게 하는 술잔에 입술을 채 갖다 대기도 전에 한 방울의 쓴맛이 거기 섞여 들었던 것이다. 누더기를 걸친 웬 거지 하나가 군중 속에 파묻혀 재미를 보지 못하고, 옆에 있는 관객들의 호주머니 속에서 아마 충분한 보상금을 발견치 못했음인지,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 동냥을 얻기 위해 모두의 눈에 잘 띄는 곳에 걸터앉을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그는 서시의 첫 줄을 낭송하는 사이에, 비어 있는 단의 기둥을 이용해 슬금슬금 난간 가까이 있는 받침대까지 기어올라가, 거기 앉아 그 누더기와, 오른팔을 덮고 있는 무서운 상처를 보이면서 군중의 주의와 동정을 끌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침묵은 아무 탈없이 서시를 진행케 하였으며, 만일 불행하게도 학생장 물랭이 기둥 위에서 이 거지의 거동을 보지 않았던들 이렇다 할 아무런 혼란도 닥치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그 거지의 꼬락서니를 본 젊은 장난꾸러기는 미친 듯 웃어 대며 연극을 중단시키고, 모든 관객의 명상을 깨뜨리든 말든 아랑곳없이 유쾌하게 외쳤다. "저것 봐! 저 비렁뱅이가 사업을 하시고 있네!" 개구리들이 사는 늪 속에 돌멩이를 하나 던져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모든 관객의 주의를 집중시키고 있는 판에 그런 괴상스러운 말을 던짐으로써 빚어진 효과가 어떤 것이었을지 상상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랭구아르는 마치 전기에라도 닿은 것처럼 떨었다. 연극은 중단되고, 모든 사람의 눈은 소란스레 거지 쪽을 돌아보았으나, 거지는 당황하기는 커녕 도리어 이런 사건으로 말미암아 돈푼이나 거둬들일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곤, 짐짓 처량한 몰골을 하고서 눈을 반쯤 감으며 뇌까렸다. "제발 도와줍쇼!" "아, 난 누구라고. 클로팽 트루유푸 아냐? 어이, 친구! 그 상처 때문에 다리까지 불편한 모양이군, 다리를 팔 위에 올려놓고 있는 걸 보니" 그렇게 말한 장 물랭은 거지가 아픈 팔로 내밀고 있는 기름 묻은 펠트 모자 속에 작은 동전 한 닢을 능란하게 던졌다. 거지는 태연스럽게 그 야유와 적선을 받고는 구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제발 도와줍쇼!" 이 대화는 적잖이 청중의 기분을 전환시켜 주었지만 그랭구아르는 자못 불만스러웠다. 처음에 어리둥절했다가 제정신으로 돌아온 그는, 두 훼방꾼에게 감히 경멸의 시선도 보내지 못한 채, 무대 위의 배우들에게 "계속해! 제기랄, 계속해!" 하고 숨가쁘게 외쳤다. 이때 그는 누구 자신의 외투 자락을 잡아당기는 걸 느꼈다. 그는 좀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뒤돌아보고 애써 미소지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스케트 라 장시에느가 그 부드러운 팔을 난간 너머로 뻗치고 그의 주의를 끌고 있었으니까. "아저씨" 아가씨는 물었다. "계속하게 되어요?" "물론이죠" 그랭구아르는 성이 난 채 대답했다. "그렇다면 설명을 좀 해주셨으면 정말 고맙겠어요..." "그들이 말할 대사 얘긴가요?" "그게 아니라 그들이 지금까지 말한 것 말예요" 그랭구아르는 마치 생살이 드러난 상처에 누가 소금을 뿌리기라도 한 것처럼 펄쩍 뛰어올랐다. "이런 백치 계집애가 있나!" 그는 입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으며, 그 순간부터 지스케트는 그의 머릿속에서 지워져 버렸다. 그러는 사이 배우들은 그의 명령에 복종하였고, 관객도 다시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였으나, 그처럼 불현듯 중단된 희곡의 두 부분 사이에 이뤄진 때늦은 연결 속에 숱한 아름다움이 잃어버려지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독자도 짐작하겠지만, 극중의 네 인물은 그들의 황금 돌고래를 주어 버릴 만한 적당한 사람을 찾아내지 못한 채 3대주를 쏘다닌 나머지 좀 피로해졌다. 그리하여 당시 앙부아즈에 퍽이나 우울하게 칩거한 채, 농사와 성직, 그리고 귀족과 상품이 자신을 위해 세계를 일주하고 있는 줄도 모르는 왕태자를 가지가지로 암시하면서 그 희한한 돌고래에 대해 찬사를 늘어놓았다. 즉 여기서 말하는 돌고래는 젊고 아름답고 힘이 세며, 특히 프랑스 임금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상품 아가씨와 귀족 마님 사이에 한창 옥신각신 의견 대립이 벌어지고 농사 나리가 다음과 같은 시구를 야릇하게 읊조리고 있을 때, 일찍이 숲속에서 이보다 더 의기양양한 짐승을 본 적은 없었다... 여지껏 그토록 시기에 어울리지 않게 닫혀 있던 비어 있는 단의 문이 더욱 시기에 어울리지 않게 열리고, 문지기의 우렁찬 목소리가 부르봉 추기경 나리의 도착을 알렸다. 3 애처로운 그랭구아르! 모든 커다란 쌍겹 폭죽의 폭발음도, 백 자루의 화승총의 발포도, 저 비이 탑의 이름 높은 세르팡틴 포의 소리도, 이 엄숙하고 극적인 순간에 "부르봉 추기경 나리!" 하고 문지기의 입에서 솟아난 그 말보다는 덜 가혹하게 그의 귀를 찢었으리라. 그것은 피에르 그랭구아르가 추기경을 무서워하거나 경멸하고 있었기 때문이 결코 아니다. 그는 그렇게 비겁하진 않았다. 오늘날 같으면 진정한 절충주의자라고나 할 수 있을 그랭구아르는, 항시 모든 것의 한가운데에 몸을 둘 줄 알고 있고, 추기경들을 존경하면서도 이성과 자유로운 철학으로 가득 차 있는 온건하고도 민첩한 정신의 소유자들 중 한 사람이었다. 때문에 우리의 시인은 너무나 많은 교양과 너무나 해진 누더기를 걸치고 있었으므로, 자기 시 속의 숱한 암시와 특히 프랑스 폐하의 돌고래 아들에 대한 찬미가 추기경의 귀에 들어가는 것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인들의 고상한 성격 속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이기심이 아니다. 나는 시인의 실체를 열 가지의 요소로 나타낼 수 있다고 가정하거니와, 화학자가 그것을 약물 분해한다면, 이 실체는 아홉 부분의 자존심에 대해 한 부분의 이기심으로 구성돼 있음을 발견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추기경을 위해 문이 열렸을 때, 군중의 감탄의 숨결에 부풀어오른 그랭구아르의 아홉 자존심은 무시무시하게 증대된 상태에 있었으므로, 그런 상태 아래서 필자가 좀 전에 시인의 구성 요소 속에 식별한 그 극미한 이기심의 분자는 숨막힌 듯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그것은 실로 잔여 부분의 귀중한 성분이요, 그것 없이는 시인들이 땅에 발을 댈 수 없는 균형추인 것이다. 그랭구아르는 만장의 관객들이 자기 작품의 모든 부분에서 끝없이 솟아오르는 장광설 앞에 화석처럼 굳어져 있는 것을 느끼고 보고, 말하자면 손으로 만져 보고 있었다. 그러니 추기경의 갑작스런 왕림이 우리의 시인에게 어떤 감명을 주었을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추기경의 등장은 청중을 혼란에 빠뜨렸다. 모든 사람들의 머리는 단 쪽으로 돌아갔다. 이젠 말소리도 제대로 들리지 않을 지경이었다. "추기경이다! 추기경이다!"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되뇌었다. 불행한 연극은 두 번째로 중단되었다. 추기경은 단으로 진입하는 문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그가 청중들을 꽤 무관심한 눈으로 한번 둘러보고 있는 동안 장내는 떠들썩했다. 저마다 그를 더 잘 보려고 앞을 다투어 옆사람의 어깨 위에 머리를 올려놓는 것이었다. 그는 과연 높으신 분이며, 그를 구경한다는 건 어떤 희극을 구경하는 것에 못지 않았다. 부르봉 추기경이자 리옹의 대주교 겸 백작이며 골의 수석 대주교인 샤를르는, 국왕의 장녀와 결혼한 그의 형인 보죄의 영주 피에르로 말미암아 루이 11세와 인척간인 동시에, 그의 어머니인 아니에스 드 부르고뉴로 말미암아 샤를르 테메레르와도 친척 관계가 되었다. 그런데 그의 성격의 지배적인 특징은 신하로서의 충성이요 권세가에의 헌신이었다. 게다가 그는 호인이었다. 그는 즐거운 추기경 생활을 하고, 샬뤼오의 특산주를 마시며 흥겹게 지내고, 늙은 여자보단 예쁜 아가씨들에게 축복을 주었으며, 이런 모든 이유로 해서 파리 시민들에게 그는 매우 기분 좋은 사람이었다. 그는 걸어다닐 때엔 으레 여자에게 친절하고 음탕하며 필요할 땐 지체 높은 주교와 사제들로 구성된 소수의 측근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생 제르맹 독세르의 착한 여신도들은 밤에 부르봉 대주교관의 환히 밝혀진 창 아래를 지나가면서, 그날 낮에 자기들에게 설교를 하던 그 같은 목소리들이, 야릇한 육담을 술잔 소리와 함께 뇌까리는 소리를 듣고 눈살을 찌푸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좀 전까지만 해도 그토록 불만스러웠고, 바야흐로 교황을 선출하려 하는 이날 역시 조금도 추기경을 존경할 생각이 없었던 이 군중이, 입장 때 그를 냉대하지 않은 것은 아마도 이러한 인기 덕분이었을지도 모른다. 기실 파리 사람들은 별로 앙심을 품지 않는다. 게다가 독단적으로 연극을 시작케 함으로써 착한 그들은 추기경을 이겨냈던 것이며, 이런 승리만으로도 그들에겐 충분했다. 뿐만 아니라 부르봉 추기경은 미남인데다 아름다운 붉은 법의를 멋지게 걸치고 있었는데, 그것은 모든 여성들을, 청중 중 최소한 반수는 그의 편으로 가지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그리하여 그는 들어서자 군중에 대한 저 대귀족의 세습적인 미소를 지어 인사하고, 마치 다른 것을 생각하는 듯한 표정으로 주홍빛 우단이 덮인 안락의자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오늘날 같으면 주교와 사제의 참모부라고도 부름직한 그의 수행원들이 따라 들어오자, 아래쪽 관람석에선 더욱 법석과 호기심이 일어났다. 그런 모든 것엔 숱한 말과 귀에 거슬리는 소리들이 섞여 있었다. 학생들은 상스러운 말을 마구 내뱉고 있었다. 이날은 그들의 날이며, 그들의 잔치며, 그들의 광인절이며, 서기단과 학교의 연례적인 축제였다. 이날만은 어떤 난잡한 언동도 권리가 있고 신성한 것이었다. 게다가 군중 속엔 시모노 카드르리브르, 아니스 가디드, 로비느 피에드보와 같은 미친 듯 수다스러운 여자들도 있었다. 이렇듯 좋은 날, 이렇듯 훌륭한 성직자들과 창부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는, 마음껏 욕설을 하고 하느님의 이름을 좀 저주한들 별일도 아니지 않은가? 그들은 단 위에 새로 입장한 사람들 중에서 제각기 검정 법의를, 혹은 회색 법의를, 혹은 흰 법의를, 혹은 붉은 법의를 공격했다. 장 물랭이 대담하게 공격한 것은 붉은 법의였으며, 추기경을 뻔뻔스런 눈으로 쏘아보면서 목청이 터지도록, "포도주로 가득 찬 추기경의 망토!" 하고 노래를 불렀다. 추기경은 그런 것들에 별로 놀라지 않았다. 그만큼 이날의 방종은 풍속화 돼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다 그 표정에도 역력히 나타났거니와 그에겐 더욱 절실한 걱정거리가 있었으니, 그것은 플랑드르의 사절단이었다. 그것은 그가 속깊은 정치가여서가 아니며, 자기 조카딸인 마르그리트 드 부르고뉴 공주와 자기 조카인 비엔나의 황태자 샤를르와의 결혼에서 생길 수 있을 어떤 결과를 염려해서가 아니었다. 샤를르 백작이신 그가 뭔지도 모를 그 평민들을, 추기경인 그가 그 속관들을, 향연을 애호하는 프랑스인인 그가 맥주꾼인 플랑드르인들을, 그것도 군중 앞에서 환영하고 환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아닌게 아니라 좀 가혹한 노릇이었다. 이것야말로 분명 국왕을 즐겁게 해드리기 위해 그가 여태껏 마음에도 없이 짐짓 꾸며 보여야 했던 표정 중에서도 가장 하기 싫은 표정의 하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문지기가 우렁찬 목소리로 오스트리아공의 사절들의 도착을 알렸을 때, 그는 퍽이나 우아한 표정으로 문 쪽을 돌아보았다. 관객들 역시 그렇게 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때 오스트리아 막시밀리앙의 48명의 사신들이 샤를르 드 부르봉의 활달한 수행원들과는 대조적인 엄숙한 태도로 둘씩 들어왔다. 모두들 점잖고, 꿋꿋하고, 뻣뻣하고, 긴 비단옷을 입고, 금실로 만든 커다란 술이 달린 검은 비로드 모자를 쓰고 이었다. 요컨대 모두들 플랑드르의 착한 얼굴들, 렘브란트가 그의 '밤의 춤'의 검은 배경 위에 그토록 힘차고 장엄하게 솟아오르게 하고 있는 인물들의 유형에 속하는 그런 의젓하고 엄격한 얼굴들---모두들 이마 위에, 오스트리아의 막시밀리앙이 그의 선언문 속에서 말한 바처럼, '그들의 판단력과 경험과 충성과 용기와 정직을 전적으로 신용해 마땅한' 그런 인물들이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예외자가 있었다. 그것은 약삭빠르고 교활한 얼굴, 일종의 원숭이 같은 낯짝과 외교관다운 얼굴로서, 추기경은 그의 앞으로 세 걸음 걸어나가 깊이 절을 했었는데, 그 이름은 강 시의 참의원 겸 연금 수급자 교므 랭이었다. 교므 랭이 어떤 자인지 그 당시 알고 있는 사람은 적었다. 그는 혁명 때 같으면 사건의 표면에 뚜렷이 드러날 수도 있었겠지만, 15세기엔 지하 음모에 시종하고, 생 시몽의 말마따나 참호 속에서 사는 데 그친 희귀한 재주꾼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유럽 최고의 '참호 파는 공병'으로부터 진가를 인정받아, 루이11세와 함께 직접 음모를 꾸몄던 것이다. 이런 모든 것을 군중은 전혀 모르는 터였으므로, 이 플랑드르의 빼빼 마른 손님에게 추기경이 공손히 인사하는 것을 보곤 모두 놀라고 있었다. 4 이 빼빼 선생과 추기경이 서로 허리를 낮춰 절하고 더욱 목소리를 낮춰 몇 마디의 말을 주고받는 동안, 키가 후리후리하고 얼굴이 넓고 어깨가 건장한 사내 하나가 나타나 교므 랭과 나란히 들어오려 했다. 흡사 여우 옆에 불독이 걸어오는 듯했다. 그의 펠트 벙거지와 가죽 저고리는 주위의 비단옷 가운데서 어울리지 않았다. 문지기는 웬 마부가 길을 잘못 알고 들어오는 줄 알고 급히 그를 제지했다. "이봐요, 들어가지 말아요!" 가죽 저고리를 입은 사내는 어깨로 그를 밀어내며 "이자가 날 어쩌자는 거지" 하고 아주 우렁찬 목소리로 말하여, 모두가 그 괴상한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성함은?" 문지기가 물었다. "작크 코프놀" "신분은요?" "강 시에서 트루아 세네트란 간판을 가진 옷장수야" 문지기는 머뭇거렸다. 시장과 부시장이 온 것을 알리는 자라면 모르지만, 옷장수는 곤란했다. 추기경은 조마조마했다. 온 시민들이 듣고 보고 있었다. 이틀 전부터 추기경은 이 플랑드르의 제멋대로인 곰들을 군중 앞에 더 떳떳하게 내놓을 수 있도록 그들에게 손질하느라 애써 왔는데도, 역시 여간 버르장머리 없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는 동안 교므 랭이 그 교활한 미소를 지으면서 문지기에게 다가가 나직한 소리로 소곤거렸다. "강 시 부시장님의 서기인 작크 코프놀 나리의 성함을 고하구려" 이어서 추기경이 큰 소리로 말했다. "문지기, 고명한 도시 강의 부시장 서기인 작크 코프놀 나리의 성함을 알리오" 그것은 실수였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교므 랭 혼자서 이 까다로운 입장을 얼버무려 버렸을 텐데, 코프놀이 추기경의 말을 들었던 것이다. 그는 벽력 같은 목소리로 외쳤다. "아니야, 젠장맞을! 그냥 옷장수 작크 코프놀이라고 그래. 알아들었느냐, 문지기? 더 붙이지도 빼지도 마라. 젠장맞을! 옷장수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거란 말야. 대공 전하께서는 내 물품들 가운데서 장갑을 골라 가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셨거든" 군중 속에서 웃음과 박수 갈채가 터졌다. 파리에서는 야유가 곧 이해되며, 따라서 항상 칭찬을 받는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코프놀은 서민이고, 그를 둘러싸고 있는 이 관중도 서민이었다. 따라서 그들과 그와의 사이의 공감대 형성은 신속하고 전격적이었다. 플랑드르 옷장수의 그 거만한 수작은 권위자들에게 모욕을 줌으로써 모든 하층민의 마음속에 그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켜 놓은 것이다. '지금 막 추기경에게 대항한 이 옷장수는 우리와 동등한 인간이다!' 하는 생각은, 추기경의 옷자락을 받드는 생트 죄느비에브 수도원장의 또 하위자인 법관의 집달관의 하인들에 대한 존경과 복종에 길들어 있는 불쌍한 민중들에겐 퍽 유쾌한 생각이었던 것이다. 한편 아까 서시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단의 가장자리에 와서 매달린 그 뻔뻔스런 거지는 고명하신 손님들이 도착했는데도 조금도 자리를 내놓지 않았으며, 고위 성직자들과 사신들이 단 위의 특별석 속에 빽빽이 들어차는 동안 마음놓고 앉아 용감하게도 두 다리를 엇걸고 있었다. 무엄하기 짝이 없었으나, 사람들은 딴 데 정신이 팔려 있었으므로 처음엔 아무도 깨닫지 못했다. 거지 자신도 실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깨닫지 못하고 그저 태평스레 머리를 흔들면서 이따금 습관처럼 "한푼 적선합쇼!"를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군중 가운데 오직 그만이 코프놀과 문지기의 말다툼에 머리를 돌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미 민중이 호감을 품게 되고 모든 사람들의 눈이 쏠리고 있는 그 강 시의 옷장수 나리가 단상의 첫줄, 바로 이 거지 위에 와서 앉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 플랑드르의 사신이 자기 눈 아래 자리잡고 있는 그 건달을 살펴보고 나서, 누더기를 걸친 그 어깨 위를 툭툭 정답게 두드리는 것을 보았을 때 사람들은 적잖이 놀랐다. 거지는 돌아보았다. 순간 깜짝 놀라고, 서로 알아보고, 두 사람의 얼굴빛이 활짝 펴지는 것이었다. 그런 뒤 관객들에겐 조금도 아랑곳없이, 옷장수와 거지는 손에 손을 마주잡고 나직한 목소리로 얘기하기 시작했다. 이때 단에 드리운 금수단 위에 펼쳐진 그 누더기는 오렌지 위의 송충이 같은 인상을 주었다. 이런 해괴한 장면을 보고 사람들이 어떻게나 미친 듯 흥겨워하며 떠들어댔던지, 이윽고 추기경도 그것을 알아채기에 이르렀다. 그는 몸을 반쯤 기울였으나, 현재 있는 자리에서는 거지가 적선을 구하고 있는 줄 생각하고, 그런 철면피에 격분하여, "법원장, 저 건달을 강물 속에 던져 버리시오!"라고 외쳤다. "아서요! 추기경 각하" 코프놀은 거지의 손을 놓지 않고 말했다. "이분은 내 친구입니다" 추기경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옆에 있는 생트 죄느비에브의 사제 쪽으로 몸을 기울이곤 나지막이 말했다. "마르그리트 공주가 오시는 걸 알리기 위해 대공 전하는 참 별스런 사신을 보냈단 말야" 그러자 상대방도 언짢은 낯으로 한숨을 쉬곤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제 오늘날의 화법으로 말하듯이, 하나의 인상과 느낌을 수렴하는 힘을 갖고 있는 우리 독자들은, 내가 재판소의 드넓은 평행사변형의 대광실이 제공하는 광경을 뚜렷이 상상할 수 있는지 어떤지 묻는 것을 허락해 주기 바란다... 방 가운데엔 서쪽 벽에 기대어 하나의 커다랗고 화려하게 꾸며 놓은 단이 보인다. 그 안으로 하나의 조그마한 첨두형 문을 통하여 점잖은 양반들이 줄지어 들어오면 날카로운 문지기의 목소리가 차례차례 그들의 이름을 알린다. 앞쪽의 좌석엔 흰 담비 모피와 비로드와 주홍빛 피륙으로 된 모자를 쓴, 퍽 존경할 만한 위인들이 벌써 앉아 있다. 확실히 구경거리는 진기하고 구경꾼의 눈길을 충분히 모을 만했다. 그러나 저 아래 맨 끝쪽으로, 위엔 울긋불긋한 옷을 입은 네 개의 꼭두각시가 있고 아래에도 또 다른 네 개의 꼭두각시가 있는 저 마룻장 같은 건 대체 무엇인가? 마룻장 옆에 남루한 검은 옷을 입고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는 저 사나이는 대체 누구인가? 아, 애달픈 일이로다! 사랑하는 독자여, 그것은 바로 피에르 그랭구아르와 그의 연극인 것이다. 추기경이 들어왔을 때부터 그랭구아르는 자기의 작품을 살리기 위해 활동하기를 그치지 않았었다. 우선 그는 엉거주춤해 있는 배우들에게 계속하라고, 목소리를 높이라고 명령한 뒤, 아무도 구경치 않음을 보고 중단시켰다. 연극이 중단되는 사이 그는 발을 동동 구르고, 이리저리 날뛰면서 지스케트와 리에나르드에게 말을 걸고,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극을 계속 보도록 독려하는 것을 그치지 않았다. 그러나 모두 허사였다. 이 숱한 눈길의 유일한 구심점인 추기경과 사절단의 자리에서는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또 이건 마지못해 말하거니와, 추기경이 여기에 그렇게도 야릇하게 기분 전환을 하러 왔을 때부터 연극은 관중에게 방해가 되기 시작했다고 믿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단상에서도 대리석 탁자 위에서와 마찬가지로, 그것은 언제나 같은 구경거리, 즉 농사와 성직, 귀족과 상품의 갈등이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그것들이 분장하고 서로 얘기하고, 말하자면 그랭구아르가 괴상망측하게 입혀 놓은 노랗고 흰 옷 아래 싸여 있는 것을 보는 것보다는, 그것들을 직접 보는 것을, 저 플랑드르의 사신들 속에, 저 성직자들 속에, 코프놀의 저고리 아래 살아서 숨쉬고 움직이고 서로 피부가 맞닿는 것을 직접 보는 걸 좋아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시인은 좀 조용해진 것을 보았을 때, 모든 것을 반전시킬 수 있을 계략을 곰곰 궁리했다. 그는 참을성 있는 얼굴을 한, 뚱뚱하고 정직해 보이는 사람 하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다시 시작하면 어떻겠습니까?" "뭘 말이오?" "아! 연극 말씀입니다" "좋도록 하슈" 이런 반승낙만으로도 충분했으므로, 그랭구아르는 될수록 군중 속에 뒤섞여 들어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다시 시작하라! 다시 연극을 시작하라!" 이렇게 떠들어 대는 소리는 추기경의 귀를 잡아끌었다. "법원장!" 하고 그는 자기로부터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있는 키 크고 새까만 사람에게 말했다. "저 악마들은 성수반 속에 빠졌나요, 저렇게 지독한 소리를 지르고 있게?" 법원장은 동시에 쥐와 새, 판사와 군인의 성향을 갖고 있는 일종의 이중 성격적 관리, 사법계의 일종의 박쥐였다. 그는 추기경 옆으로 가서, 그의 불만을 무척 두려워하면서 군중의 무례함을 더듬더듬 설명했다. 정오가 추기경 각하보다 먼저 와서 부득이 배우들은 각하를 기다리지 못하고 연극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고. 추기경은 껄껄 웃었다. "이런 경우엔 틀림없이 대학 총장 선생도 그랬을 거야. 교므 랭 선생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각하" 교므 랭은 대답했다. "연극의 절반을 못 보게 된 걸 다행으로 여깁시다. 그만큼 이득을 본 셈이니까요" "저 악당들이 연극을 계속해도 좋겠습니까?" 법원장이 조심스레 물었다. "계속하오, 계속하오. 난 아무래도 상관없어. 난 그 동안 성무 일과서나 읽겠소" 추기경이 말하자 법원장은 단 가장자리로 나아가, 손을 흔들어 관중을 조용하게 한 뒤 외쳤다. "시민들이여, 다시 시작하길 바라는 사람들과 그만 끝내기를 바라는 사람들을 모두 만족시키기 위해서 추기경 각하는 계속하길 명령하십니다" 그리하여 무대 위의 배우들은 다시 그들의 일을 시작하였고, 그랭구아르는 적어도 자기 작품의 나머지만은 들어 주게 되길 희망했다. 아, 하지만 그 희망은 그의 다른 환상과 마찬가지로 곧바로 깨어지고 말았다. 사실 군중 속에 정숙은 겨우 회복됐으나, 그랭구아르는 추기경이 계속하라는 명령을 내렸을 때 단상은 아직 완전히 차지 않았으며, 플랑드르의 사신들 뒤에 행렬의 일부를 이룬 새로운 인사들이 들어오는 걸 못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이름과 칭호가 문지기의 간헐적인 고함에 의해 장내에 던져져 대사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있었던 것이다. 연극이 한창일 때, 느닷없이 외치는 소리가 두 개의 운 사이와 때로는 두 개의 구절 사이에 다음과 같은 삽입구를 던지는 것을 상상해 보라. --교회 법정 검사, 자크 샤르몰뤼 나리! --파리 시 야경대장 사무실의 근위병, 장 드 아를레 씨! --근위 포병대장이며 부뤼삭의 영주, 갈리오 드 즈누아락님! 연극을 계속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는 이 이상한 반주는 그랭구아르를 더욱 미치게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 그는 이 연극의 흥미는 자꾸만 증가 일로에 있으므로, 작품에 필요한 것은 들어 줄 청중뿐이란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극중의 네 인물이 심히 난처한 형편에 빠져 한탄하고 있을 때, 비너스의 화신이 훌륭한 집안의 문장을 수놓은 아름다운 옷을 입고 나타났다. 그녀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에게 약속되어 있는 돌고래를 요구하러 온 것이다. 주피터의 천둥 소리가 저쪽 안에서 우르르 우르르 울리는 것이 들려와, 그가 비너스를 지지하고 있음을 알려 주었다. 그리하여 여신은 바야흐로 이기려 하고 있는데, 다시 말하자면 돌고래 도련님과 결혼하려 하고 있는데, 이때 흰 능라 비단옷을 입고 손에 하나의 진주를 든 어느 계집아이가 와서 비너스와 싸웠다. 극적 변화이자 대단원이다. 그러나 그토록 많이 중단되고서야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는 것인지 분간하기도 어려웠다. 그건 이미 볼장 다 본 것이었다. 그 깊은 뜻을 느껴 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추기경이 들어왔을 때,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한 가닥 마술의 실이 홀연히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겨 놓은 것만 같았다. 우리의 시인은 얼마나 고통스런 마음으로 자기가 쌓아올린 영광과 시의 모든 더미가 한 조각 한 조각 허물어지는 것을 보고 있었을까! 바로 이 군중이 자기의 작품을 보고 싶어 못 견딘 나머지 아까는 법원장에 대해 폭동까지 일으키려 했으니 놀라운 일이 아닌가! 그것을 보게 된 지금 사람들은 염두에도 두지 않고 있다. 그토록 뜨거운 박수 갈채로 시작되었던 바로 그 연극을! 하마터면 법원장의 집달관들을 교수형에 처할 뻔하기까지 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문지기의 거친 독백은 그쳤다. 모두가 다 도착했던 터여서, 그랭구아르는 긴 숨을 쉬었다. 배우들은 씩씩하게 계속하고 있었다. 그런데 별안간 옷장수 코프놀 나리가 일어서더니, 만장의 관객들이 귀를 바짝 기울이고 있는 가운데 다음과 같은 얄미운 언사를 늘어놓는 것이 아닌가! "파리의 시민 여러분, 우리들이 지금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지 난 알 수가 없소이다. 저기 저 구석 마룻장 위에서 사람들이 싸우려 하는 것같이 보이는데, 바로 저것이 여러분의 소위 연극이라고 하는 것인지 난 모르지만 퍽 재미가 없군요. 저자들은 혓바닥으로만 싸울 뿐, 더 이상은 아무것도 없소. 벌써 15분 전부터 이제나저제나 활극이 시작될까 기다리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군요. 이건 내가 들은 얘기하곤 다릅니다. 사람들이 내게 약속한 것은 교황을 선출하는 광인 축제였소. 강에도 역시 식의 광인 교황이라는 게 있는데, 이것에 있어선 우리도 결코 남들에게 뒤지진 않는단 말요. 그런데 그걸 우리는 이렇게 한다오. 지금 여기서처럼 민중이 모입니다. 그런 뒤 각자 차례차례 하나의 구멍으로 대가리를 내놓고 남들에게 상을 찌푸려 보이는 거요. 그래서 가장 추악한 찡그린 얼굴을 만드는 자가 만인의 갈채를 받아 교황으로 뽑히는 것이오. 아주 재미있어요. 여러분, 우리네 방식으로 교황을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랭구아르는 뭐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어리둥절하고 격분한 나머지 말이 나오질 않았다. 게다가 옷장수의 제안이 어찌나 열광적으로 받아들여졌던지, 그 어떤 저항도 소용없었다. 그랭구아르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5 눈 깜짝할 사이 옷장수의 제안을 실천에 옮기기 위한 만반의 준비가 갖추어졌다. 대리석 탁자 맞은편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예배소가 얼굴 찌푸리기의 무대로 선택되었다. 예배소 문 위의 둥근 유리창을 깨뜨려 동그랗게 구멍을 내고, 그곳으로 경쟁자들이 머리를 내놓기로 정해졌다. 거기에 키가 닿기 위해서는, 어디서 통을 두 개 갖다 위아래로 높이 쌓아 올려놓고 그 위로 기어 올라가기만 하면 되었다. 후보자는 남자든 여자든 모두, 찌푸린 얼굴의 인상을 순수하고 완전한 것이 되게 하기 위해서, 모습을 나타낼 때까진 얼굴을 가리고 예배소 안에 숨어 있도록 규정되었다. 몇 분 후 예배소는 경쟁자들로 가득 차고 문이 닫혔다. 옷장수는 그의 자리에서 모든 것을 지도하고 명령하고 조정하고 있었다. 그렇게 와글와글 떠들어 대는 사이, 추기경은 그랭구아르 못잖게 당황해서 용무와 만종 기도를 핑계삼아 모든 수행원들과 더불어 물러가 버렸는데, 그가 올 때는 그렇게도 법석을 떨던 그 군중이 그가 떠날 땐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군중의 주의도 태양의 운행처럼 제 길을 따르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얼굴 찌푸리기가 시작되었다. 처음으로 창에 나타난 상판은 눈꺼풀을 뻘겋게 까뒤집고, 아가리를 떡 벌리고, 이마는 제국 시대 경비병의 승마용 장화 마냥 쭈굴쭈굴 주름살이 잡혀서 어떻게나 그칠 줄 모르는 웃음을 터뜨리게 했던지, 호메로스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 모든 관객들을 신으로 알았을지도 모른다. 이어서 둘째, 셋째의 찌푸린 상판이 계속 나타나고, 뒤이어 또 하나의 상판이, 그런 뒤 또 다른 것이 연이어 나타나, 웃음소리와 즐거워서 발을 동동 구르는 소리는 더욱 요란스러워지고 있었다. 이 구경엔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현기증 같은 것, 거센 도취와 매혹 같은 게 깃들어 있었다. 세모꼴에서부터 사다리꼴에 이르기까지, 원뿔에서 다면체에 이르기까지, 온갖 기하학적 형태를 차례 차례로 나타내는 일련의 추악한 배우들을 상상해 보라. 분노에서 음란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그 온갖 표정을... 갓난애의 주름살에서부터 죽어 가는 노파의 주름살에 이르기까지! 이젠 학생도 시민도 사절도 남자도 여자도 없었다. 이미 크로팽 트루유푸도 질 르코르뉘도 로뱅 푸스팽도, 마리 카트르리브르도 없었다. 모든 것이 한통속이 되어 제멋대로 떠들어 대고 있었다. 대광실은 이제 뻔뻔스러움과 쾌활함의 거대한 도가니에 불과해졌다. 그 속에선 입마다 고함질이요, 눈마다 번쩍임이요, 얼굴마다 찌푸린 꼴이요, 사람마다 하나의 유별스런 자세였다. 차례차례 창구멍으로 와서 이를 갈아 대는 괴상망측한 얼굴들은, 마치 모두가 불 속에 짚단을 던져 넣은 듯한 효과를 빚어 내는 것이었다. "어머나 망측해라!" "저 쌍통 좀 봐라!" "저건 신통찮구나" "다른 놈 나오거라!" "저 황소 대가릴 좀 봐라! 없는 건 뿔뿐이야" "어머나, 세상에 무슨 낯짝이 저럴까?" "야! 그건 속임수다. 반만 낸놓아선 안 돼, 임마!" "어머 숨막혀!" 한편 그랭구아르는 낙심의 첫 충격을 치러 낸 뒤 서서히 침착을 되찾고 있었다. 그는 역경에 대항해서 꿋꿋이 싸웠다. "계속 하시오!" 하고 그는 세번째로 배우들에게 말했다. 그런 뒤 대러석 탁자 앞을 성큼성큼 거닐면서, 비록 그것이 그 배은망덕한 민중에게 얼굴을 찌푸려 주는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서일 뿐이라 할지라도, 자신도 예배소의 창구멍으로 가서 얼굴을 나타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아니다, 그건 떳떳한 일이 못된다. 복수는 그만두고 끝까지 싸우자. 시의 힘은 민중 위에서 큰 것이다. 나는 그들을 도로 끌어오리라. 찌푸린 얼굴이 이기느냐, 예술이 이기느냐!' 하고 입술을 깨물며 고쳐 생각했다. 하지만, 아 슬픈 일이다! 오직 그만이 자기 연극의 유일한 관객이었다. 그것은 좀 전보다도 더 나빴다. 그에겐 이제 사람들의 등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니다, 아까의 그 참을성 있는 뚱보는 여전히 무대 쪽으로 돌아서 있었다. 그랭구아르는 속으로 그 유일한 구경꾼의 성실성에 감동했다. 그는 그에게 다가가 그의 팔을 가볍게 흔들면서 말을 걸었다. 왜냐하면 이 착한 사나이는 난간에 몸을 기댄 채 잠이 들어 있었으니까. "여보시오" 그랭구아르는 말을 꺼냈다. "고맙습니다" "여보시오" 뚱보는 하품을 하면서 대꾸했다. "왜요?" "당신이 왜 싫증나시는지 전 알고 있어요" 시인은 말을 이었다. "저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당신은 마음대로 대사를 들으실 수가 없겠죠. 그러나 안심하십시오. 당신의 이름은 후세에 전해질 테니까요.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르노 샤토요. 파리 샤틀레 감옥의 총무로 있죠" "당신은 여기서 시의 여신들의 유일한 대표자입니다. 이 극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좋아요!" 뚱보 관리는 잠에서 절반쯤 깨어나 대답했다. 그는 말을 이었다. "제법 유쾌한 극이올시다" 그랭구아르는 이 칭찬만으로 만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비상한 함성과 더불어 우레 같은 박수가 터져 그들의 대화를 중단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히야! 히오! 광인 교황이 뽑혔다!" 군중은 사방에서 외쳐 댔다. 이때 그 창구멍에서 빛나고 있는 것은 과연 희한한 얼굴이었다. 그 창에 갖가지 기괴한 상판이 차례로 나타났었으나, 모두들 이 묘한 잔치로 들뜬 상상력 속에서 꾸며 낸 기괴망측한 꼴의 이상을 실현치 못한 뒤에 만장의 동의표를 얻기 위해서는 바로 저 완벽하게 찌푸린 상만이 필요했던 것이다. 코프놀 자신도 박수 갈채를 보냈으며. 경쟁에 참가했던 클로팽 트루유푸도-그의 얼굴이 얼마나 고도의 추악함을 보일 수 있었는지는 신이 아신다-패배를 자인했다. 그 사면체의 코, 말발굽 같은 입, 하나의 커다란 물사마귀 아래 사라져 버리고 없는 오른쪽 눈과 더부룩한 붉은 빛 눈썹으로 가려진 조그만 왼쪽 눈, 요새의 총안 같이 여기저기 빠진 고르지 못하고 누런 이, 그 이 가운데 하나가 코끼리의 어금니처럼 뻗어 나온 그 굳어 빠진 입술, 두 갈래 난 턱, 그리고 특히 그 모든 것 위에 번져 있는 표정, 심술과 놀라움과 슬픔의 뒤섞임. 이 모든 것들에 대해 나는 독자에게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가능하다면 그 전부를 한번 상상해 보라. 박수 갈채는 만장 일치였다. 사람들은 예배소 쪽으로 몰려들었다. 거기서 의기양양하게 행복한 새 광인 교황을 끌어냈다. 그러나 그 순간 사람들의 놀라움과 경탄은 절정에 달했다. 그 찌푸린 상이란 바로 그의 원래 얼굴이었던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의 신체 전부가 찌푸린 상이라 해야겠다. 붉은 머리털이 곤두선 커다란 머리통, 두 어깨 사이에 그 동산이 앞에서도 보이는 어마어마한 곱사등, 야릇하게 뒤틀려 무릎밖엔 서로 닿지 않고, 앞에서 보면 자루에서 합쳐진 반원형 낫의 두 반달처럼 생긴 허벅지와 다리의 조직, 커다란 발, 괴물 같은 손, 이 모든 기형과 더불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힘세고 날래고 씩씩한 걸음걸이-힘도 아름다움과 마찬가지로 조화에서 생겨나길 바라는 저 영원한 법칙에 있어서의 이상한 예외였다. 미친 듯 우글대는 군중들이 지금 막 떠받든 교황은 바로 그러했다. 마치 부서진 거인을 서투르게 다시 맞추어 놓은 것 같았다. 땅딸막하고, 몸집 크기가 거의 키와 맞먹고, 어느 위인의 말마따나 '밑바닥으로부터 떡 벌어진' 이 일종의 외눈 거인이 예배소 문 앞에 나타나 꿈쩍 않고 서 있을 때, 반반씩 붉고 자줏빛인데다 은빛 종루 무늬가 있는 그의 외투를 보고, 특히 그의 완전 무결한 추악함을 보고서 군중들은 당장 그를 알아채곤 이구 동성으로 외쳤다. "노틀담의 꼽추 카지모도다! 종치기 카지모도다! 애꾸눈 병신 카지모도다! 앙가발이 녀석 카지모도다! 얼씨구절씨구!" 이와 같이 이 불쌍한 인간은 골라잡을 만큼 별명이 많았다. "아기 밴 여자들 조심하슈!" 하고 학생들은 외치는 것이었다. "아기 배고 싶은 여자들도 조심해야지" 하고 장 물랭이 말했다. 여자들은 과연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그러나 제각기 한마디씩 했다. "에구머니! 저다지도 보기 흉한 원숭이가 어디 있담" "못생기기도 했지만 심술도 사나워요" "저건 악마일 거야" "난 불행히도 노틀담 옆에 살고 있는데, 밤새도록 저 녀석이 처마의 홈통 속을 얼쩡거리는 소리를 듣는다구" "고양이들과 함께..." "저번 날 저녁엔 저 녀석이 우리 집 천정에 와서 내게 상판을 찌푸려 보였어. 난 그래도 사람인 줄 알고 있었지. 어떻게나 혼이 났는지" "저 녀석은 틀림없이 악마들의 밤잔치에 가리라고 생각해. 언젠가 저 녀석이 우리 집 뒷마당에 빗자루를 놓고 갔어" "에그, 흉측한 물건 같으니!" 반대로 남자들은 기뻐하며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이 화제의 대상인 카지모도는 여전히 예배소 문 앞에 묵묵하고 으젓하게 서서 찬탄하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학생 하나가 그의 코앞으로 가서 얼굴을 바짝 대고 웃었다. 카지모도는 불시에 그의 허리띠를 잡아 열 걸음쯤 떨어진 군중 속에 내동댕이쳐 버리는 것으로 만족했다. 코프놀이 감격한 눈빛으로 그의 옆으로 갔다. "젠장맞을! 너는 정녕코 내가 난생 처음 보는 가장 아름다운 추물이다. 넌 이곳에서와 마찬가지로 로마에서도 교황이 될 만하다!" 그렇게 말한 그는 즐거운 듯 꼽추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카지모도는 움직이지 않았다. 코프놀은 말을 이었다. "넌 참으로 괴짜다. 난 너하고 한상 잘 차려 놓고 먹고 싶구나. 비록 수백냥의 돈이 들더라도 말이야. 넌 어떻게 생각하냐?" 카지모도는 대꾸하지 않았다. "젠장맞을! 넌 귀가 먹었느냐?" 그는 과연 귀머거리였다. 그러나 그는 그 낙관적인 옷장수가 하는 짓에 짜증이 나기 시작하여, 무시무시하게 이를 갈면서 느닷없이 그를 향해 홱 돌아섰으므로, 플랑드르의 거한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쳤다. "음, 난 알겠다!" 카지모도를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해 마침내 기둥머리에서 내려온 장 물랭이 외쳤다. "저건 우리 형 부주교의 종치기네. 카지모도, 잘 있었냐!" "무슨 놈의 사람이 저래!" 카지모도에게 내던져졌던 학생이 투덜투덜 말했다. "그가 나타나는 걸 보면 꼽추고, 걷는 걸 보면 앙가발이고, 응시하는 걸 보면 애꾸고, 얘기를 해보면 귀머거리라" "그럼 저놈은 혓바닥으로 뭘 하는 거지?" "말을 하고 싶을 땐 말을 해도. 종을 치느라고 귀가 먹게 됐지만 영 벙어린 아니에요" 어떤 노파가 대꾸를 했다. 그동안 모든 천민들과 거지들과 소매치기들은 학생들과 합류하여, 줄지어 서기단의 장롱으로 가서 광인 교황의 모조 관과 시시한 법의를 챙겨 왔다. 카지모도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순순하면서도 의기양양하게 그것들을 자기에게 씌우고 입히게 내버려두었다. 그런 뒤 사람들은 그를 울긋불긋하게 장식한 들것 위에 앉혔다. 광인 축제단의 열두 임원이 그것을 어깨에 메었다. 그리고 애꾸 교황이 자신의 추악한 발 아래, 그 모든 아름답고 반듯하고 잘생긴 사내들의 머리를 보았을 때, 일종의 고통스럽고도 경멸적인 기쁨이 그 우울한 얼굴 위에 스물스물 피어올랐다. 요란스런 누더기의 행렬이, 관례에 따라 큰길과 네거리를 쏘다니기 전에 재판소의 산책 회랑 안을 돌기 시작했다. 6 이 모든 장면이 계속되는 동안 그랭구아르와 그의 연극이 잘 버티어 왔음을 독자에게 알려 주게 되어 필자는 기쁘게 생각한다. 배우들은 그의 격려를 받아 대사 외기를 중단치 않았으며, 그는 그걸 듣는 것을 중단치 않았었다. 그는 그 소란도 다 팔자 탓이려니 체념하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관중의 주의가 되돌아오는 때도 있으려니 하고 끝까지 해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러한 희망의 빛은, 카지모도와 옷장수와 광인 교황의 소란스런 행렬이 떠들썩하게 나가는 것을 보았을 때 되살아났다. 군중은 그들을 뒤따라 허둥지둥 뛰어나갔다. "됐다!" 이를 본 그랭구아르는 중얼거렸다. 흐리멍텅한 바보들은 다 가버리는구나... 그러나 불행히도 흐리멍텅한 바보들이란 바로 관객이었던 것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대광실은 텅 비어 버렸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직도 약간의 구경꾼은 남아 있었다. 어떤 이들은 흩어져 있고 또 어떤 이들은 기둥 둘레에 모여 있었는데, 모두 여자들과 늙은이, 또는 어린애들로서 유쾌한 듯 떠들고 있었다. 몇몇 학생은 여기저기 창틀에 걸터앉아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랭구아르는 생각했다. '아직도 내 연극의 피날레를 보기에 필요한 만큼의 관객은 있다. 수는 적지만 우수한 관객, 유식한 관객이다' 한참 후에,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는 장면에서 가장 큰 효과를 내야 할 교향악이 울리지 않았다. 그랭구아르는 자기 악대가 광인 교황의 행렬에게 끌려가 버린 것을 알아챘다. 그는 꾹 참고서, 희곡에 관해 얘기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이는 한떼의 관객 옆으로 다가갔다. 그가 들은 그들의 얘기는 이러했다. "느무르 씨의 소유였던 나바르 관을 아세요?" "아, 브라크 예배당 맞은편에 있지요" "그런데 국세청은 그걸 알렉산드르 씨에게 빌려줬어요, 일년에 6리브르 8솔의 임대료로" "아, 무척 올랐군요!" "좋아!" 그랭구아르는 한숨을 쉬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다른 사름은 듣고 있으니까" 이때 별안간 창가에 있던 젊은 장난꾸러기 중의 하나가 외쳤다. "라 에스메랄다다! 라 에스메랄다가 저기 광장에 있다!" 그 말은 마술과도 같은 효과를 냈다. 방 안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모두 창문으로 뛰어가 밖을 내다보려고 벽으로 기어오르면서 외쳐 댔다. "에스메랄다! 라 에스메랄다!" 동시에 바깥에서는 요란한 박수 소리가 들려 왔다. 그랭구아르는 서글픈 듯 두 손을 마주잡으며 중얼댔다. "무슨 뜻일까, 라 에스메랄다라는 게?" 그가 대리석 탁자 쪽을 돌아보니 연극은 중단되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주피터가 벼락을 갖고 나타나야 할 순간이었다. 그런데 주피터는 무대 아래에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이었다. 시인은 성이 나서 외쳤다. "미셀 지보르느! 거기서 뭘 해? 네가 나설 차례라면 어서 올라가려무나!" 주피터가 대꾸했다. "학생 하나가 사다리를 가져가 버렸는걸" 그랭구아르는 보았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고얀 놈! 그 녀석은 왜 사다리를 가져갔지?" "라 에스메랄다를 보려고" 주피터는 울상이 되어 대답했다. "그 녀석은, '옳지, 사다리가 있구나!' 하면서 그걸 가져가 버렸어" 그랭구아르는 체념하고 말았다. 그는 퇴각했다. 머리를 수그린 채, 그러나 마지막까지 잘 싸우고 난 장수처럼... 그리고 꾸불꾸불한 재판소 계단을 내려가면서 입 속으로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놈들은 연극을 보러 와서 전혀 보지도 않는다! 놈들은 바보 같은 사람들에게만 넋이 팔렸다. 거지 트루유푸에게, 위선자 추기경에게, 뻔뻔스런 옷장수에게, 꼽추 카지모도에게, 악마에게도! 그러나 성모 마리아님에겐 아랑곳도 하지 않았다. 얼빠진 녀석들! 그런데 나는 사람들 얼굴을 보러 와서 등밖에 못 보다니! 시인이면서 약장수의 성공도 못 얻다니! ...하기야 호메로스는 희랍의 마을을 돌아다니며 구걸했고, 오비듀스는 귀양 살다 죽었것다. 아무튼 만약 그들이 에스메랄다라고 한 말이 무슨 뜻인지 내가 알고 있다면 악마가 내 껍질을 벗겨도 좋다! 대체 그 단어는 무엇일까? 이집트말 같기도 한데 말야... 에잇, 제기랄!" 제2장 시인과 집시 여인 1 정월엔 밤이 빨리 온다. 그랭구아르가 재판소로부터 나왔을 때 거리는 이미 어둠에 묻혀 있었다. 이 컴컴한 밤이 그는 좋았다. 한시라도 빨리 그는 컴컴하고 인적 없는 골목 어귀에 도달해 마음껏 사색에 잠기고, 철학자가 시인의 상처를 치료해 줄 수 있게 되길 바랐다. 실제로 철학은 그의 유일한 안식처였다. 왜냐하면 그는 어디서 자야 좋을지를 몰랐기 때문이다. 첫 연극의 시도가 어이없이 실패한 지금 그는 감히 이제껏 묵고 있던 숙소인 그르니에쉬를로 거리를 돌아갈 수가 없었다. 시장 나리가 자기 연극의 대가로 세금 징수 청부인 시르 씨에게 지불할 여섯 달치의 방세를 정중히 주리라고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인데, 그에게 빚진 여섯 달치 방세는 파리 주화 12솔이나 되는 바, 그의 짧은 바지와 속옷과 벙거지까지도 포함해 그가 이 세상에서 가진 모든 재산의 열두 배나 되는 돈이었다. 그는 생트 샤펠의 출납관 집 작은 쪽문 아래 잠시 몸을 의지하고, 파리의 길이면 어느 것이나 숙소로 골라잡을 수 있으므로 오늘 저녁은 어디로 정할까 하고 잠시 궁리한 끝에, 전번에 사바트리 거리에 있는 파리 고등법원 판사의 집 문 앞에서 나귀 타는 디딤돌 하나를 보고 그 돌이 그럴 필요가 있을 경우엔 거지나 시인을 위해 퍽 훌륭한 베개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는 이런 좋은 생각을 보내 주신 하느님께 감사했다. 그런데 오늘날까지도 건재해 있는 비에유 드라프리 거리, 바리유리 거리, 사바트리 거리, 쥐이브리 거리, 쥐이브리 거리 등 어느 것이나 엇비슷하게 닮은 그 모든 지저분한 거리들이 꾸불꾸불 통하고 있는, 시테 섬의 꼬부라진 미로에 이르기 위해 재판소 앞 광장을 막 건너가려 할 때, 그랭구아르는 광인 교황의 행렬이 역시 재판소에서 나와 횃불을 환히 켜들고 악대를 세워 와글와글 떠들면서 자기가 가는 길 가운데로 몰려드는 것을 보았다. 그것을 본 그는 자존심에 입은 상처가 덧나고 아픔이 새삼 되살아나 달아났다. 연극의 실패로 말미암아 슬픔 속에 빠져 있는 그에게 이날의 축제를 회상케 하는 것은 무엇이든 마음을 격분케 하고, 상처에 피를 흘리게 했다. 그는 생 미셀 다리로 건너가려 했다. 거기서는 어린애들이 불꽃놀이 기구를 가지고 이리저리 달리고 있었다. "빌어먹을, 불꽃이 다 뭐란 말야!" 그랭구아르는 이렇게 뇌까리고 갑자기 퐁토 샹즈 다리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다리 어귀의 집들에는 국왕과 왕태자와 플랑드르의 마르그리트 공주를 상징하는 세 가지 깃발과, 오스트리아 공작과 보죄 전하와 부르봉 추기경과 잔느 드 프랑스 공주와 부르봉 서자 전하와, 그리고 누군지 모를 또 하나의 초상이 그려져 있는 여섯 가지의 조그만 깃발을 붙여 놓았는데, 이 모든 것들은 횃불로 환히 밝혀져 있었다. "저걸 그린 자는 행복한 그림쟁이로군!" 그랭구아르는 크게 한숨을 쉬면서, 큰 깃발과 작은 깃발들에 등을 돌려 버렸다. 앞에 거리가 하나 있었다. 그 길이 무척 캄캄하고 왕래가 없는 것 같아서, 거기서라면 모든 축제의 메아리와 불빛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그는 그곳으로 들어갔다. 한동안 걸어갔을 때, 발이 장애물에 부딪쳐 그는 비틀거리다가 쓰러졌다. 그것은 식목제의 묘목 다발이었는데, 서기단의 사람들이 아침에 이날의 축제 의식을 위해 고등법원장의 문 앞에 갖다 놓은 것이었다. 그랭구아르는 이 새로운 훼방을 씩씩하게 참아 냈다. 그는 다시 일어나 강가에 이르렀다. 재판소를 뒤에 두고 궁궐 정원의 넓은 벽을 따라, 진흙이 발목까지 올라오는 포석을 깔지 않은 모래톱 위를 걸어 시테 섬의 서쪽 지점에 도착하여, 청동의 말과 퐁 뇌프 다리 아래 작은 섬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 작은 섬은 어둠 속에서, 그것과 그와의 사이에 흐르고 있는 희끄무레한 좁은 강물 저편에 하나의 검은 덩어리처럼 보였다. 거기엔 밤에 뱃사공이 몸을 의지하는 벌통 모양의 오두막 같은 것이 조그만 불빛에 드러나 있었다. "그 암소 뱃사공은 팔자도 좋지!" 하고 그랭구아르는 중얼거렸다. "너는 영광도 생각지 않고 축혼가도 짓지 않는다! 왕이며 공주들 같은 게 네겐 무슨 소용이랴! 너는 4월의 잔디밭이 네 암소들에게 뜯어먹게 해주는 마르그리트(역주:공주의 이름. 마르그리트는 식물명이기도 함) 외에 다른 마르그리는 모르고 있다! 그런데 시인인 나는 야유를 받고, 추워서 떨고, 12솔이나 빚이 있고, 신발 바닥은 환희 비쳐 보여 네 초롱에 유리로 써먹을 수 있을 지경이다. 오, 고맙다! 암소 뱃사공이여! 네 오막살이는 내 눈에 휴식을 주고, 나로 하여금 파리를 잊게 해주누나!" 그는 그 행복스런 오두막에서 느닷없이 터져 나온 커다란 쌍겹 폭죽에 의해 퍼뜩 정열적인 도취경에서 깨어났다. 그것은 암소 뱃사공이 이날의 축제에 한몫 끼여 스스로 불꽃을 쏘아 올린 것이었다. 그랭구아르는 소름이 끼쳤다. "망할 놈의 축제 같으니! 넌 어디까지 날 따라다닐 테냐? 아, 세상에 이럴 수가! 암소 뱃사공의 집에까지도..." 그러다가 아래 센 강을 내려다본 그는 문득 무서운 유혹에 사로잡혔다. "아, 물이 저렇게 차갑지만 않다면 기꺼이 빠져 죽으련만!" 그러자 하나의 절망적인 결심이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것은 광인 교황에서도, 거창스런 깃발에서도, 나무 다발에서도, 불꽃이나 폭죽에서도 벗어날 수 없으므로, 바로 그 축제의 한복판에 대담스레 뛰어들어 그레브 광장으로 가자는 것이었다. 그는 생각했다. '적어도 거기서라면 기쁨의 화톳불에 몸을 녹일 수 있을지도 모르고, 시에서 공식적으로 식탁 위에 차려 놓았음에 틀림없는 커다란 빵 부스러기를 얻어먹을 수도 있겠지' 2 당시의 그레브 광장의 모습에 관해 말하자면, 오늘날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 하나의 흔적밖에 남아 있지 않다. 그것은 광장 북쪽 모퉁이에 자리잡은 매혹적인 소탑인데, 그것은 이미 그 조각물의 선명한 선에 더덕더덕 칠한 야한 물감 아래 파묻혀 있거니와, 아마도 머지않아 파리의 모든 옛 건물의 정면을 그토록 빨리 삼켜 가는 저 새 집들의 범람에 침몰돼 사라져 버릴 것이다. 루이 15세 시대의 두 낡은 건물 사이에 끼여 있는 이 가련한 소탑에 연민의 눈길을 던지지 않고는 그레브 광장을 지나치지 못할 사람들이라면, 이 소탑이 속해 있던 건물 전체를 쉽사리 머릿속에서 재구성할 수 있으리라. 그것은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한쪽은 강둑에 인접하고 다른 세 쪽은 높고 침침한 일련의 집들에 둘러싸인 하나의 반듯하지 못한 사다리꼴이었다. 낮에는 거기서 다양한 건물들을 구경할 수 있었는데, 모두가 돌과 나무로 조각돼 있었다. 광장 동쪽 중앙에는 세 채의 집이 나란히 합쳐진 거대한 건물 하나가 솟아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세 가지의 이름으로 불렀는데, 이것이 그 역사와 건축 양식을 설명해 주는 터였다. 샤를르 5세가 왕태자 시절에 거기서 살았으므로 '동궁'이라고도 부르고, 시청으로도 사용되었으므로 '관청'이라고도 부르고, 일련의 굵은 원기둥이 그 건물을 떠받치고 있었으므로 '기둥집'이라고도 불렀던 것이다. 시민들은 거기에서 파리와 같은 좋은 도시에 필요한 모든 것을 발견하고 있었다. 하나님에게 기도 드리기 위한 예배당, 재판을 하고 또 필요한 경우엔 궁정인을 혼내 주기 위한 변론실, 그리고 꼭대기엔 대포로 가득한 병기창 따위였다. 왜냐하면 파리 시민들은 도시의 자주권을 위해서는 어떤 경우에도 기도를 드리고 변론을 하는 것만으론 충분치 않다는 점을 알고 있었으므로, 시청 창고에 언제나 훌륭한 화승총을 보존해 두었던 것이다. 그레브 광장은, 이 광장이 불러일으키는 끔찍한 느낌과 기둥집 대신 들어선 음침한 시청으로 말미암아 오늘날까지도 풍겨 주는 저 불길한 분위기를 이미 그 당시부터 지니고 있었다. 이 포석 깔린 마당 한가운데 나란히 세워져 있던 교수대와 죄인 공시대는, 건강한 생명으로 넘쳐흐르는 숱한 인간들이 죽어간 이 숙명적인 광장-50년 뒤의 저 생 발리에 열병, 저 교수대의 공포병,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게 아니라 인간으로부터 오므로 모든 병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병인 그 열병이 엄습하게 될-에서 눈을 돌리게 하는 데 적지 않게 이바지했던 것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사형은 300년 전만 하더라도 아직은 그 쇠바퀴며 돌 교수대며 포석 바닥에 견고히 고정시켜 놓은 그 모든 형구로써 그레브 광장과 중앙 시장, 도피느 광장, 크루아 뒤 트라와르, 저 끔찍한 몽포콩, 세르장 문 밖, 플라소 샤, 생 드니 문, 보데 문, 생 자크 문 등을 가득 채워 놓고 있었는데, 사제장과 주교와 성당 참사회와 사법권을 가진 수도원장들의 교수대는 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오늘날 이 봉건시대의 낡은 유물은 그 갑옷의 모든 부분과 그 풍부한 형벌과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마음 내키는 대로의 형법 제도를 차례차례 잃어버린 뒤 우리의 법률과 도시로부터 거의 추방되고, 법전에서 몰려나고, 광장에서 쫓겨나고 하여, 이제 우리의 넓은 파리에서 그레브의 불명예스런 한구석밖에 갖고 있지 못하며, 현행범으로 잡힐까 봐 늘 두려워하는 듯이 보이는, 사람 눈을 피하고 불안스러워하고 부끄러워하는 듯한 하나의 가련한 단두대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데, 이토록 그것은 성공을 거둔 뒤 재빨리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3 피에르 그랭구아르는 그레브 광장에 도착했을 때 제법 긴장되었다. 그는 퐁토 샹즈 다리의 혼잡과 그 모든 깃발을 피하기 위해 퐁토 뫼니에 다리를 지나왔었으나, 주교의 소유물인 여러 물레방아 바퀴가 지나갈 때 그에게 물을 튀겨 남루한 옷이 젖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의 연극의 실패로 더욱 떨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광장 한복판에서 훨훨 타오르고 있는 불을 향해 급히 다가갔다. 그러나 수많은 군중이 그 주위를 완전히 둘러싸고 있었다. "망할 자식들 같으니라고!" 하고 그는 혼자 중얼거렸다. 왜냐하면 그랭구아르는 극시인답게 곧잘 독백하기를 좋아했으니까. "저것들이 불을 가로막고 있구나! 난 정말 불이 필요한데. 내 신은 물을 들이켰고, 저 망할 놈의 주교 같으니라고! 대체 주교가 방앗간을 갖고 뭘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단 말야! 그런데 저 멍청이들이 자리를 비켜 줄지 어디 좀 보자. 저 녀석들은 저기서 뭘 하는지 모르겠군! 음, 불을 쬐고 있군. 썩 즐거운 일이렷다! 백 다발의 나뭇단이 타는 걸 바라보고 있군" 더 가까이 가서 살펴본 즉, 빙 둘러서 있는 군중은 그저 불을 쬐기 위해 모인 것보다는 훨씬 많은 수였으며, 그렇게 구경꾼들이 몰려와 있는 것은 단지 백 다발의 나뭇단이 아름답게 타오르는 것에 끌려 온 것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군중과 불 사이에 비어 있는 넓은 공지에서 아가씨 하나가 춤을 추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 아가씨가 인간인지 천사인지, 아무리 그랭구아르가 회의적인 철학자요, 아이러니컬한 시인이라 할지라도 첫 순간엔 해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만큼 그 아가씨의 눈부신 모습에 매혹되었던 것이다. 아가씨는 키가 크지 않았으나 커 보였으니, 그토록 그녀의 몸매는 우뚝 솟아 있었다. 만일 낮이라면 그녀의 살갗은 저 안달루시아의 여성들은 아름다운 금빛 광택을 내고 있음에 틀림없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의 발 또한 안달루시아의 여성다웠을 것이, 그 발은 그 고운 신 속에서 좁은 듯하면서도 또한 편해 보였다. 아가씨는 발 아래 아무렇게나 던져 놓은 낡은 페르시아 양탄자 위에서 춤추고, 빙글빙글 맴돌고, 소용돌이치고 있었으며, 빙그르르 돌면서 그 반짝이는 얼굴이 사람들 앞을 지나갈 때마다 그녀의 커다란 검은 눈은 사람들에게 번갯불을 던지는 것이었다. 그녀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입을 벌린 채 응시하고 있었는데, 아닌게 아니라 그 포동포동하고 깨끗한 두 팔로 꿀벌처럼 발랄한 그 가냘픈 허리 위에 들어올린, 방울 달린 조그만 북을 동당동당 치면서 춤추는 것을 보면, 그 주름 없는 금빛 가슴 옷이며, 부풀어오르는 울긋불긋한 치마, 드러난 어깨, 때때로 치맛자락을 헤치고 나오는 그 섬섬한 다리, 검은 머리칼, 그리고 불길이 타오르는 그 눈과 더불어 그것은 하나의 초자연적 창조물이었다. "정말!" 하고 그랭구아르는 중얼댔다. "저건 불도마뱀이야. 저건 님프야, 저건 여신이야. 저건 메날레앵 산에 사는 박카스 신의 무녀야!" 이때 그 님프의 땋아 늘인 머리가 풀려, 거기 꽂혀 있던 노란 구리쇠 조각 하나가 땅에 굴러 떨어졌다. "체, 아니군! 집시 계집애잖아" 하고 그는 말했다. 환상은 사라져 버렸다. 아가씨는 다시 춤추기 시작했다. 그녀는 땅바닥에서 두 자루의 칼을 집어들어, 칼끝을 이마에 대곤 자기가 도는 것과는 반대 방향으로 돌렸다. 그건 과연 집시 여자일 따름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랭구아르가 환멸을 느꼈다 하더라도 이 광경 모두는 마력과 매력이 없지 않았으니, 기쁨의 화톳불은 강렬한 붉은 빛으로 장면을 환히 비추고, 빙 둘러서 있는 군중의 얼굴 위와 그 젊은 아가씨의 이마 위에 뛰노는 불빛은, 광장의 안쪽까지, 그리고 한편으론 돌 교수대 위에 사람들의 그림자로 흔들리는 희번한 반사광을 던졌다. 그 불빛이 주홍빛으로 물들이고 있는 수많은 얼굴 가운데, 다른 어떤 사람보다 더 춤추는 아가씨를 골똘히 들여다보고 있는 한 얼굴이 있었다. 그것은 준엄하고 침착하고 침울한 사나이의 얼굴이었다. 그 옷이 주위의 군중에 가려져 있는 이 사나이는 서른 다섯 살이 넘어 보이지 않았으나, 이미 대머리여서 관자놀이에 반백의 듬성듬성한 머리칼이 겨우 몇 뭉치 있을까말까 했으며, 넓은 이마에는 주름살이 패기 시작하고 있었지만, 쑥 들어간 눈엔 비상한 젊음이, 타오르는 생명이, 깊은 정열이 깃들어 있었다. 그는 그 눈을 줄곧 집시 아가씨에게서 떼지 않고 있었는데, 그 열여섯 살의 아가씨가 모든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가운데 미친 듯 춤추고 폴딱폴딱 뛰고 있는 동안, 이 사나이의 몽상은 한층 침울해져 가는 것 같아 보였다. 때때로 미소와 한숨이 그의 입술 위에서 마주치곤 했으나, 미소는 한숨보다 더 고통스러웠다. 이윽고 아가씨는 숨이 차서 춤추기를 멈추었고, 군중은 기쁜 듯 박수 갈채를 보냈다. "잘리!" 하고 그녀는 해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러자 그랭구아르는, 여지껏 보이지 않던 염소 한 마리가, 금빛 뿔과 금빛 발과 금빛 목걸이를 지닌 민첩하고 활발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희고 예쁜 염소 새기 한 마리가, 그때까지 양탄자의 한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주인 아가씨가 춤추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가 일어나 오는 것을 보았다. 그런 다음 그녀는 앉아서 그 방울 달린 조그만 북을 맵시도 아리땁게 염소에게 내밀었다. "잘리!" 그녀는 염소를 향해 물었다. "지금이 무슨 달이니?" 그러자 염소는 앞발을 들어 북을 한 번 쳤다. 과연 지금은 1월이었다. 군중은 환성을 내질렀다. "잘리!" 하고 아가씨는 또 북을 다른 쪽으로 돌리면서 말했다. "오늘은 며칠이지?" 그러자 잘리는 그 조그만 금빛 발을 들어 북을 여섯 번 치는 것이었다. "잘리!" 하고 집시 아가씨는 다시금 북을 새로 돌려 놓으면서 말을 계속했다. "지금 몇 시지?" 잘리는 일곱 번을 쳤다. 그와 동시에 광장의 큰 시계가 일곱 시를 알리는 종을 울렸다. 구경꾼들은 감탄해 마지않았다. "이건 마술이야" 군중 속에서 한 음산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집시 아가씨로부터 눈을 떼지 않고 있었던 그 대머리 사나이의 목소리였다. 여자는 몸을 바르르 떨며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 순간 박수 갈채가 터져 그 음침한 소음을 지워 버렸다. 그 박수 소리는 아가씨의 머릿속에서도 그 언짢은 음성을 완전히 씻어 버렸으므로, 그녀는 다시금 염소에게 질문을 했다. "잘리, 성축절에 시의 기마대장 기샤르 그랑 나리는 어떻게 하지?" 잘리는 뒷발만으로 일어서서 매애매애 울며 어찌나 점잖게 걷기 시작했던지, 둘러서 구경꾼들은 모두 기마대장의 타산적인 신앙심에 관한 그 풍자적인 흉내에 폭소를 터뜨렸다. "잘리!" 아가씨는 자꾸만 커져 가는 성공에 용기를 얻어 말을 이었다. "교회 법정 검사인 자크 샤르몰뤼 나리는 어떻게 설교하지?" 염소는 엉덩이를 깔고 앉아 매애매애 울기 시작하면서 어찌나 기묘하게 앞발을 흔드는지, 그 서투른 프랑스어와 라틴어를 제외하곤 억양도 태도도 자크 샤르몰뤼를 고스란히 닮아 있었다. 군중은 더욱 박수 갈채를 보냈다. "신성 모독이다!" 대머리 사나이가 또 외쳤다. 집시 아가씨는 다시 한 번 돌아보았다. "어머머!" 그녀는 말했다. "그 얄미운 사내잖아!" 그러곤 아랫입술을 쑥 내밀어 버릇인 양 입을 삐쭉거리고, 발꿈치로 뱅그르르 돌고 군중들의 적선을 방울 달린 북 속에 받아 모으기 시작했다. 작은 동전, 큰 동전, 뱅패 동전, 독수리 동전이 비오듯 쏟아지고 있었다. 갑자기 아가씨는 그랭구아르 앞을 지나갔다. 그랭구아르가 엉겹결에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으므로 그녀는 걸음을 멈췄다. "제기랄!" 시인은 자기 호주머니의 밑바닥에서 현실을, 다시 말하자면 텅 비어 있음을 발견하고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아리따운 아가씨는 거기 그냥 선 채, 그 커다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면서 그에게 북을 내밀곤 기다리고 있었다. 그랭구아르는 굵은 땀방울을 흘렸다. 만약 주머니 속에 돈이 있었더라면 그는 틀림없이 그것을 아가씨에게 주었을 것이었으나, 그랭구아르는 한푼도 갖고 있지 않았다. 이 때 뜻하지 않은 일이 그를 도왔다. "사라져 버리지 못하겠느냐, 이 보헤미아의 메뚜기야!" 날카롭게 외치는 목소리 하나가 광장의 가장 컴컴한 구석에서 터져 나왔다. 아가씨는 소스라쳐 돌아보았다. 그것은 대머리 사내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건 여자의 목소리, 믿음 깊지만 심술궂은 목소리였다. 집시 아가씨를 무섭게 한 그 고함 소리는 그곳을 얼씬거리고 있던 한떼의 어린이들을 기쁘게 만들었다. "저건 투르 롤랑 탑의 은자다" 하고 그들은 요란하게 웃으면서 외쳤다. "무섭게 으르렁대고 있다! 저 늙은이 저녁밥을 안 먹었나? 시의 식탁에 뭐고 남은 게 있으면 갖다 주자!" 모두들 소위 '기둥집' 쪽으로 뛰어갔다. 그랭구아르는 춤추는 아가씨가 당황한 틈을 타서 줄행랑을 쳤다. 그는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를 듣고 자기 역시 저녁을 먹지 않았다는 생각이 났다. 그래서 그는 재빨리 식탁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개구쟁이들이 그보다 더 좋은 다리를 가지고 있어서, 그가 도착했을 때 그들은 이미 식탁을 깨끗이 치워 버렸다. 딱딱한 빵 한 조각 남아 있지 않았다. 이제 그곳 벽 위에는 마티외 비테르느가 그려 놓은 몇 송이의 가느다란 나리꽃만이 몇 줄기의 장미와 뒤섞여 있을 뿐이었다. 우울한 저녁 식탁이었다. 저녁밥을 먹지 않고 잔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지만, 저녁밥을 먹지 않는다는 것과 어디서 자야 할지를 모른다는 것은 더욱더 유쾌하지 못한 노릇이다. 그랭구아르가 바로 그런 입장에 빠져 있었다. 빵도 없고 집도 없었다. 그는 사방에서 자연적인 욕구에 쫓기고 있었으며, 그 욕구가 무척 까다로움을 발견하고 있었다. 오래 전부터 그는 다음과 같은 진리를 발견하고 있었다. 즉, 주피터는 염세증 발작이 진행 중일 때 인간을 창조했으며, 현인은 평생 그의 운명이 그의 철학을 계엄령하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그랭구아르로 말하자면, 이렇게도 완전한 봉쇄를 여지껏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밥통이 항복의 종을 울리는 소리를 듣고 있었으며, 기구한 팔자가 자신의 철학에 기아 전술을 쓴다는 것은 온당치 못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우울한 사색 속에 자꾸만 빠져들어 가고 있을 때, 감미롭기 그지없으면서도 이상야릇한 노랫소리가 들려와 그는 퍼뜩 몽상에서 깨어났다. 그 예쁜 집시 처녀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목소리는 그녀의 춤과 같고 그녀의 아름다움과 같았다. 그것은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매혹이었다. 그 어떤 경쾌하고 맑고 낭랑하고 훨훨 나는 것이라고나 할까. 그것은 끊임없이 피어나는 것, 선율, 뜻하지 않은 억양, 그리고 날카로움이 섞인 단순한 구절, 그리고 꾀꼬리도 당황케 했을 조화로움을 잃지 않은 음계의 비약, 또 그녀의 젖가슴처럼 올라갔다 내려왔다 하는 옥타브의 부드러운 물결침이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은 천태만상으로, 가장 자유스런 영감으로부터 가장 우아한 품위에 이르기까지, 자기가 부르는 노래의 온갖 변화를 따르고 있었다. 아가씨가 부르는 노랫말은 그랭구아르가 모르는 언어였고, 또 그녀 자신도 모르는 듯한 것이, 그녀가 노래에 주고 있는 표정은 가사의 뜻과 거의 맞지가 않았다. 그리하여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다음의 시 구절은 미칠 듯 즐거운 것이었다. 그들은 값진 상자 하나를 기둥 속에서 발견했다네. 그 안엔 무서운 얼굴들이 그려진 새로운 군기들이 들어 있었네. 아라비아의 기사들이 꿈쩍도 못하리 만큼 칼을 차고 있었네. 잘 나가는 강철 활들을... 노래를 듣고 있던 그랭구아르는 자기 눈에 물방울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녀의 노래는 무엇보다 기쁨을 나타내고 있었으며, 그녀는 새처럼 고요하게 노래하고 있는 중이었다. 집시 아가씨의 노래는 그랭구아르의 몽상을 흐려 놓았으나, 그것은 백조가 물을 흐려 놓는 것과 같았다. 그는 그녀의 노래를 만사를 잊고 황홀하게 듣고 있었다. 그가 스스로 괴로움을 느끼지 않은 것은 몇 시간 이래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은 너무 짧았다. 아가씨의 춤을 중단케 했던 것과 같은 여자의 목소리가 노래를 중단시킨 것이다. "아가릴 못 닥치겠느냐, 지옥의 매미야?" 여자는 광장의 컴컴한 구석 쪽에서 외쳤다. 가엾은 매미는 부르던 노래를 뚝 그쳤다. 그랭구아르는 귀를 막고 외쳤다. "빌어먹을 이 바진 톱 같으니라고, 바이올린을 부숴 놓다니!" 그 동안 다른 구경군들도 투덜거리고 있었다. "뒈져라, 망할 년 같으니!" 하고 말하는 사람도 한둘이 아니었다. 그리고 만일 숱한 거리를 쏘다닌 뒤 바로 이대 횃불을 켜 와글와글 떠들면서 그레브 광장으로 쏟아져 나오는 광인 교황의 행렬에 그들의 주의가 쏠리지 않았더라면, 흥을 망친 그 노파는 집시 아가씨를 공격한 탓으로 맞아 죽었을지도 모른다. 재판소에서 떠난 이 행렬은 도중에 차츰 짜여지고, 파리에 사는 모든 불량배며 한가로운 도둑놈들과 부랑자들로 불어나 있었으므로, 그것이 광장에 도착했을 땐 어마어마했다. 그 군중의 한복판엔, 서기단의 임원들이 많은 촛불로 밝혀진 들것을 어깨에 메고 있었다. 그리고 이 들것 위에서는 법의를 입고 지팡이를 짚고 관을 쓴, 새로 뽑힌 광인 교황이, 노틀담의 종치기 꼽추 카지모도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재판소에서 광장에 이르는 동안 카지모도의 추악한 얼굴이 어느 정도로 자랑과 행복감으로 반짝이게 되었는지는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는 여태껏 모욕과 자기 처지에 대한 경멸과 자기 몸에 대한 혐오감밖에 몰랐었다. 그러므로 귀머거리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가 미움을 받음으로써 자기 역시 미워하고 있는 그 군중의 박수 갈채를 진짜 교황처럼 즐기고 있었다. 자기의 백성이 미치광이들과 병신패들과 도둑놈들과 비렁뱅이들의 무리라 할지라도 무슨 상관이랴! 그래도 그것은 백성임에 변함이 없고 자기는 임금인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그 모든 야릇한 환호를, 그 모든 우롱적인 존경을 정말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런데 군중의 그 존경과 환호 속엔 매우 현실적인 두려움도 약간 섞여 있었다는 것을 말해 두지 않으면 안 되겠다. 왜냐하면 이 꼽추는 단단하니까. 왜냐하면 이 앙가발이는 날쌔니까. 왜냐하면 이 귀머거리는 심술궂으니까. 결국 이 세 가지 점이 조롱을 완화시켰던 것이다. 게다가 이 새로 뽑힌 광인 교황이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과 자신의 자아내 주는 감정을 스스로 이해하고 있으리라곤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다. 이 추악한 육체 속에 깃들인 정신은 그 자체가 필연적으로 어떤 불완전하고 희미한 것을 갖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때 그가 느끼고 있었던 것은 매우 막연하고 흐리멍덩하고 몽롱한 것이었다. 다만 기쁨이 드러나 보이고 자랑이 넘쳐흐르고 있을 뿐이었다. 이 음울하고 불행한 얼굴 주위엔 반짝임이 보였다. 그랬으므로, 그렇게 반도취 상태에 잠겨 있는 카지모도가 '기둥집' 앞을 의기양양히 지나가고 있을 때, 난데없이 군중 속에서 한 사나이가 뛰어나와 격분한 듯 그의 손으로부터 광인 교황의 표지인 그 금빛 나무지팡이를 빼앗는 것을 본 사람들은 무척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대담함 인물은 바로 대머리 사나이, 조금 전에 아가씨의 구경꾼들 틈에 섞여 있다가, 위험과 증오의 말로 가엾은 아가씨를 오싹하게 만들었던 장본인이었다. 그는 성직자의 옷을 입고 있었다. 그가 군중 속에서 나왔을 때, 그때까지 전혀 보질 못하고 있었던 그랭구아르는 곧장 알아보았다. 그는 깜짝 놀라 외쳤다. "저분은 동 클로드 프롤로 부주교님이 아닌가! 대관절 그가 이 흉측한 꼽추에게 무슨 볼일이 있단 말인가? 그는 잡아 먹히고 말지 않을까?" 그러자 과연 무서운 비명 소리가 났다. 그 무시무시한 카지모도가 들것에서 뛰어내렸고, 여자들은 그가 부주교를 해치는 것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돌렸다. 그는 부주교 옆으로 폴딱 뛰어가 그를 바라보며 무릎을 끊었다. 신부는 그의 머리에 씌워진 관을 홱 벗겨 내고, 지팡이를 잡아 부러뜨리고, 그 번득거리는 법의를 찢어 버렸다. 카지모도는 여전히 무릎을 끊은 채 고개를 수그리고 두 손을 마주잡고 있었다. 그런 뒤 그들 사이엔 신호와 몸짓의 이상한 대화가 벌어졌다. 왜냐하면 어느 쪽에서도 말은 하지 않고 있었으니까. 부주교는 성을 내며 윽박지르면서 명령하는 것 같았고, 카지모도는 엎드려서 공손한 태도로 애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카지모도는 엄지손가락 하나로도 그를 으깨 버릴 수 있었으리라. 이윽고 부주교는 카지모도의 억센 어깨를 사정없이 잡아 흔들더니 일어나서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카지모도는 일어섰다. 그러자 떼거리들은, 처음엔 어리둥절하다가 정신을 차려, 그처럼 갑자기 옥좌에서 쫓겨난 자기들의 교황을 지키려 했다. 카지모도는 부주교 앞에 서서 굵직한 두 주먹을 휘둘러 보이고, 성난 호랑이처럼 이빨을 으드득 갈면서 덤비는 자들을 쏘아보았다. 부주교는 평소의 침울하고 엄격한 태도로 되돌아가, 카지모도에게 몸짓을 하곤 말없이 물러갔다. 카지모도는 급히 군중을 분산시키면서 부주교의 앞으로 걸어갔다. 그들이 군중을 헤치고 광장을 지나갈 때 한가로이 구경하던 떼거리들이 그들을 따라가려고 했다. 그러자 카지모도는 뒤로 돌아, 뒷걸음질치며 부주교를 따라갔다. 땅딸막한 키에 험상궂고 괴물 같은 몰골로 팔다리를 힘껏 놀리고, 멧돼지 같은 이빨을 하고 들짐승처럼 으르렁거리면서. 사람들은 단지 그 두 사람이, 감히 아무도 뒤쫓을 수 없는 컴컴하고 좁은 거리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4 한편 그랭구아르는 무턱대고 집시 아가씨를 뒤따라가기 시작했다. 그는 그녀가 염소와 함께 쿠텔르리 거리로 가는 것을 보았다. 그도 그쪽으로 갔다. 파리의 거리 철학자인 그랭구아르는, 미녀 뒤를 정처가 어딘지도 모르고 따라가는 것처럼 공상에 좋은 건 아무것도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자기 자유 의지의 그런 자의적인 포기 속엔, 저도 모르는 사이 또 하나의 다른 변덕에 자리를 내주곤 하는 그런 변덕 속엔, 끈기 없는 자주성과 맹목적인 복종과의 혼합이, 근본적으로 절충적이고 우유부단하고 복합적이며 모든 극단의 끝을 쥔 채 끊임없이 인간의 모든 성향들의 중간에 매달려서 그것들을 상호 중화시키는 정신의 소유자인 그랭구아르가 좋아하는 자유와 예속 사이의 그 어떤 것이 있었다. 만일 그랭구아르가 우리 시대에 살고 있다면 고전주의자와 낭만주의자의 꼭 중간을 차지하리라. 이것은 그랭구아르가 곧잘 하는 일이거니와, 그처럼 거리에서 행인(특히 여자 행인)의 뒤를 따라가지 위해서는, 어디서 자야 할지 모를 때가 가장 좋은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골똘히 생각에 잠겨 그 아가씨의 뒤를 따랐다. 아가씨는 걸음을 재촉하고, 그 예쁜 염소에게 종종걸음을 치게 하면서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거나, 이날 문을 열어 놓은 유일한 가게인 술집들의 문이 닫히는 것을 보곤 하였다. 우리 시인은 대충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쨌든, 저 여자는 어디고 잘 데가 있음에 틀림없다. 보헤미아 여자들은 인정이 있다고 했어... 그는 가냘프고 섬세하고 귀여운 그 두 개의 피조물의 조그만 발을, 예쁜 자태를, 맵시 있는 거동을 감탄해 바라보면서 그들을 서로 혼동할 지경이었다. 서로 사이가 좋고 친한 점으로 보아서는 둘 모두 아가씨인 듯싶었고, 날쌔고 능란하게 사뿐사뿐 걸어가는 모습으로 보아서는 둘 모두 염소인 듯싶었다. 거리는 어느덧 캄캄해지고 인적이 뜸해져 갔다. 소등의 종도 이미 오래 전에 울려서, 이젠 매우 드물게 밖엔 행인을 볼 수 없고, 창에서도 불빛을 볼 수 없게 되기 시작했다. 그랭구아르는 그 아가씨의 뒤를 다라 옛날의 생 지노상 묘지 주변에 있는, 고양이가 헝클어 놓은 실타래 같은 골목길의 착잡한 미로로 들어갔다. "이 거리들은 도무지 조리가 없구나" 끊임없이 같은 곳으로 되돌아오곤 하는 그 무수한 길을 헤매면서 그랭구아르는 그렇게 중얼거렸으나, 그런 길도 아가씨는 훤히 알고 있는 모양으로 서슴지 않고 더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얼마 전부터 그는 아가씨의 주의를 끌었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듯 여러 번 그를 돌아보았으며, 심지어 한 번은 걸음을 뚝 멈추더니, 문이 방긋 열린 빵집에서 새어 나오는 한 줄기 불빛을 이용해 그를 위아래로 유심히 훑어보았는데, 그랭구아르는 그녀가 그렇게 살펴본 다음 자신에게 입을 좀 삐쭉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런 뒤 그녀는 지나쳐 버렸다. 그녀가 그처럼 귀엽게 입을 삐쭉거리는 것을 보고 그랭구아르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아리땁게 얼굴을 찡그린 데엔 틀림없이 멸시와 조소가 담겨 있을 것이라고. 그리하여 그는 머리를 수그리고 포석을 세면서 좀더 멀찌감치 떨어져 아가씨를 뒤따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길모퉁이에 이르러 그녀가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갑자기 그녀의 날카로운 고함 소리가 들려 왔다. 그는 걸음을 서둘렀다. 거리는 캄캄했다. 그러나 기름을 빨아올린 솜뭉치가, 길모퉁이에 있는 성모 마리아상 밑의 쇠장 안에서 타고 있었으므로, 그랭구아르는 그 아가씨가 웬 두 사내의 팔 속에서 버둥거리는가 하면, 사내들은 그녀가 지르는 고함을 막으려고 애쓰고 있음을 알아볼 수 있었다. 가엾은 염소 새끼는 질겁하여 뿔을 수그리면서 매애매애 울었다. "여보시오, 야경대 양반들!" 그랭구아르는 고함을 지르며 용감하게 다가갔다. 아가씨를 붙잡고 있던 사내들 중 하나가 이쪽으로 돌아보았다. 그것은 천만 뜻밖에도 카지모도의 무시무시한 얼굴이었다. 그랭구아르는 도망치지는 않았으나, 한 걸음도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카지모도가 다가와서 손등으로 한 번 쳐 그를 포도 위 네 걸음쯤 떨어진 곳에 던져 놓고는, 자신의 한쪽 팔 위에 명주 목도리처럼 착 휘어진 아가씨를 가지고서 어둠 속으로 재빨리 들어가 버렸다. 그의 공범자는 그를 따라가고, 가엾은 염소는 매애매애 슬피 울면서 그들의 뒤를 쫓아가고 있었다.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불행한 집시 아가씨는 가까스로 외치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거기 멈춰라, 몹쓸 놈들아! 그리고 그 여자를 이리 내놓아라!" 난데없이 옆 네거리에서 쑥 튀어나온 기병 하나가 벽력같이 외쳤다. 그것은 장검을 손에 들고 완전 무장한 친위 헌병대의 어떤 중대장이었다. 그는 어리둥절해 있는 카지모도의 팔에서 아가씨를 빼내 자기 말안장 위에 옆으로 앉혔는데, 그 무시무시한 꼽추가 놀람에서 깨어나 자신의 약탈물을 되뺏으려고 달려드는 순간, 자기네들의 대장 뒤를 바짝 따라오던 열 대여섯 명의 헌병들이 긴 칼을 손에 쥐고 나타났다. 카지모도는 포위되고 체포되어 꽁꽁 묶였다. 그는 거품을 튀기며 으르렁거리고 물어뜯고 했는데, 만일 이때가 대낮이었다면, 격분으로 말미암아 더욱 흉악해진 그 얼굴만 보고도 순찰대는 모조리 뺑소니쳐 버렸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밤인 까닭에 그의 가장 무서운 무기인 추악함은 힘을 잃고 있었다. 그의 동행자는 싸우는 틈을 타서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집시 아가씨는 기병대장의 안장 위에서 맵시도 아리땁게 몸을 일으켜 두 손을 젊은이의 양어깨 위에 올려놓고, 그 잘생긴 용모와 그가 자기에게 베풀어 준 구원을 무척 기뻐하는 듯 한참 동안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런 뒤 그녀는 먼저 침묵을 깨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한결 부드럽게 해 그에게 말했다. "성함을 뭐라고 하시나요, 훌륭하신 나리?" "난 페뷔스 드 샤토페르 중대장입니다, 미인 아가씨!" 그는 몸을 반듯이 일으키면서 대답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페뷔스 중대장이 군대식으로 콧수염을 쓰다듬어 올리는 동안, 땅바닥에 떨어지는 화살처럼 말 아래로 빠져 내려갔다. 이어서 반딧불처럼 사라져 버렸다. "이런 젠장맞을... 이런 병신보다 저 계집을 붙잡아 놓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중대장은 카지모도의 포승줄을 꼭 죄어 매게 하면서 말했다. 헌병 하나가 대꾸했다. "별수 있나요, 대장님? 꾀꼬리는 날아가고 두더지만 남았습니다" 5 그랭구아르는 길모퉁이에 나가떨어진 채 정신을 잃고 있었다. 그는 처음 한동안 일종의 비몽사몽 상태에 빠져 있었는데, 그것은 포근한 맛이 없지 않았으며, 집시 아가씨와 염소의 경쾌한 모습이 카지모도의 묵직한 주먹과 뒤범벅돼 꿈결같이 어른거리는 것이었다. 그런 상태는 그러나 조금밖에 계속되니 않았다. 포석과 접촉한 신체 부분에 꽤 차가운 느낌이 들어 퍼뜩 깨어 현실로 되돌아왔다. 그제서야 그는 자기가 진창 한가운데에 있음을 깨달았다. "망할 놈의 곱사등이 같으니라고!" 그는 입속으로 중얼거리곤 일어나려 했다. 그러나 그는 너무나 정신이 얼떨떨하고 많이 다쳐 있었으므로 그냥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손은 자유로웠으므로 그는 코를 막고 체념에 빠졌다. 파리의 진창은 유난스레 고약한 냄새가 난다. 그것은 많은 휘발성 아질산염을 포함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뿐만 아니라 이것은 니콜라 프라멜 선생과 연금술사들의 의견이기도 한 것이다. '연금술사'란 단어가 불현듯 그의 머릿속에 클로드 프롤로의 생각을 떠오르게 했다. 그는 아까 언뜻 보던 그 납치 장면이, 집시 아가씨가 두 사내 사이에서 몸부림치고 있던 일이며 카지모도에게 동행자가 있었던 일이 생각났으며, 클로드 부주교의 우울하고 준엄한 얼굴이 어렴풋이 추억 속을 스쳐 갔다. 그렇다면 해괴한 일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고는 그러한 사실에 입각하여 추측의 환상적인 건물을 쌓아올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다시 한번 현실로 돌아와서 "아니 이러! 몸이 얼어붙은 것 같구나!" 하고 외쳤다. 아닌게 아니라 그곳은 점점 더 견뎌 내기 어려워져 가고 있었다. 질퍽거리는 물의 분자 하나 하나가 그랭구아르의 엉덩이에서 발산되는 열의 분자를 빼앗아가, 그의 몸뚱이 온도와 진창의 온도 사이엔 균형이 잡혀 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그와는 전혀 다른 성질의 귀찮은 일 하나가 닥쳤다. 한떼의 어린이-부랑아라는 영원한 이름 아래 어느 시대에나 파리의 거리를 쏘다니는 맨발의 거친 꼬마 장난꾸러기-들이, 이웃 사람들이 자고 있는 것은 아랑곳도 없다는 듯 마구 웃고 떠들어 대면서 그랭구아르가 뻗어 있는 네거리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뭔지 알 수 없는 보기 흉한 부대 같은 것을 뒤에 끌고 있었는데, 그들의 나막신 소리는 죽은 사람도 절반쯤 일어났다. "어이, 어이!" 하고 글들은 목청이 찢어지도록 내지르는 것이었다. "길 모퉁이의 철물장수 무봉 영감이 죽었다. 여기 그 영감의 짚방석이 있다. 이걸로 기쁨의 화톳불을 피우자꾸나!" 그러고는 그랭구아르가 있는 줄도 모르고 옆에 와서는 바로 그 짚방석을 던지는 게 아닌가! 그와 동시에 그들 중 하나가 한 주먹의 짚을 쥐고 불을 붙였다. "이런 빌어먹을! 난 이제 너무 뜨거워질 게 아닌가?" 하고 그랭구아르는 중얼거렸다. 위기의 순간이었다. 그는 바야흐로 불과 불 사이에 사로잡힐 지경이었다. 그는 안간힘을 썼으며, 마침내 일어나자 개구쟁이들에게 짚방석을 되던지곤 줄행랑을 쳤다. "철물장수가 되살아났다!" 하고 그들은 그들대로 뺑소니를 쳐 버렸다. 짚방석만이 이 난장판의 주인공으로 남았다. 르 쥐즈 신부가 확언하는 바에 따르면, 다음날 이 지역의 성직자들이 성대한 예식을 갖춰 그것을 주워다가 생트 오포르티느 성당의 보물 박물관에 갖다 놓음으로써, 그 성당지기는 1789년까지 이 모콩세유 거리 모퉁이의 성모 마리아상의 위대한 기적-1482년 정월 초엿새와 이레 사이의 그 기념할 만한 날 밤에 거기 존재해 있기만 함으로써, 악마에게 집을 주기 위해 죽으면서 심술궂게도 자기 넋을 그 짚방석 속에 감추었던 무봉 영감으로부터 마귀를 쫓아 버린 기적-을 가지고 꽤 좋은 수입을 올렸다고 한다. 한편 다리야 날 살리라고 달려가면서 거리의 숱한 모서리에 머리를 찧고, 수없이 진창을 뛰어넘고, 숱한 막다른 골목과 네거리를 건너고, 중앙 시장의 온갖 미로를 지나 달아날 구멍을 샅샅이 뒤진 뒤 우리 시인은 뚝 걸음을 멈추었으니, 첫째는 숨이 찼기 때문이요, 둘째는 그의 머릿속에 불쑥 솟아오른 딜레마에 의해 덜미를 잡혔기 때문이다. "피에르 그랭구아르 선생!" 하고 그는 손가락으로 이마를 짚으면서 자신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그대는 지금 철딱서니 없는 애처럼 달리고 있는 것 같군. 그 장난꾸러기 녀석들은 그대가 그들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그대를 두려워하진 않았다. 그대가 북쪽으로 달아나고 있는 동안 그들의 나막신 소리가 남쪽으로 달아나는 것을 그대는 들은 것 같단 말야. 그렇다면 두 가지 중 한 가지다. 그들은 어쩌면 달아나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런 경우 그들이 경황 중에 잊어버리고 갔을 것임에 틀림없는 그 짚방석이야말로 그대가 오는 아침부터 찾아다닌 바로 그 친절한 잠자리로써, 성모 마리아께서 그대를 위해 기적적으로 보내 주신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그 녀석들은 달아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 경우 그들은 짚방석에 불쏘시개를 갖다 놓았을 것인 바, 그야말로 그대가 기뻐하며 옷을 말리고 몸을 녹이기에 필요한 게 아니겠는가? 잠자리든 불이든 간에 짚방석은 하늘의 선물이니, 그대가 그토록 찾고 있는 것을 뒤에다 놓아 두고 꼬부랑길에서 달아난다는 건 미친 짓이다" 그리고 그는 오던 길을 되돌아가면서, 사냥개처럼 코를 벌름거리고 귀를 쫑긋 세워 방향을 가늠하고 이리저리 뒤지면서 짚방석을 다시 찾아내려고 애썼다. 그러나 섭섭하게도 허사였다. 있는 것이라곤 막다른 골목과 갈라진 길뿐이어서, 그는 그 한복판에서 어찌 할 바를 모르고, 끊임없이 머무적거리고 있었다. "제기랄 놈의 떼거리들 같으니라고!" 이렇게 욕설을 하고 나니 마음이 좀 가벼워졌으며, 게다가 마침 하나의 길고 좁은 골목길 끝에서 불그스름한 불빛 같은 것을 보았을 때, 그는 마침내 사기가 치솟았다. "햐, 고마워라! 저기서 내 짚방석이 불타고 있네" 그는 다가갔다. 경사지고 진흙투성이고 기울어져 가는 긴 골목길 안으로 겨우 몇 걸음 들어갔을 때, 그는 이상한 것을 보았다. 그 골목엔 아무도 없는 것이 아니었다. 여기저기에 길을 따라, 뭔지 알 수 없는 막연한 물체들이 기어가고 있었는데, 마치 밤중에 목동의 불을 향해 풀잎에서 풀잎으로 기어가는 둔중한 벌레들처럼 모두들 길 끝에서 흔들리고 있는 불빛을 향해 가고 있었다. 자기 호주머니의 위치를 느끼지 않는 것처럼 모험을 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그랭구아르는 계속 걸어 느릿느릿 기어가는 그 애벌레 같은 것들의 한 놈에게 곧 따라붙었다. 가까이 가 보니 그것은 상처를 입어 두 다리밖에 없는 무슨 벌레처럼, 두 손으로 폴딱폴딱 뛰어가는 한 불행한 앉은뱅이였다. 우리의 시인이 이 사람의 낯짝을 가진 거미 같은 것 옆을 지나가는 순간, 그것은 그를 향해 처량한 소리를 냈다. "적선 좀 하세요, 나리! 적선 좀 하세요!" "악마에게나 잡혀 가거라, 이 녀석아" 그랭구아르는 이렇게 말하곤 지나쳐 버렸다. 그는 그 얼쩡거리는 물체들 중의 다른 것 하나를 살펴봤다. 그것은 절름발이에다가 곰배팔이 병신인데, 어떻게나 그 정도가 심한지, 그를 떠받쳐 주고 있는 나무다리의 복잡한 장치가 신기하기까지 했다. 그랭구아르는 고상하고 고전적인 비교를 곧잘 하는지라, 머릿속에서 그를 불카의 살아 있는 삼각대에다 비교했다. 이 살아 있는 삼각대는 지나가는 그에게 인사를 했는데, 자기 모자를 턱 높이에 갖다 멈추면서 시인의 귀에다 입을 대고 외쳤다. "기사 나리, 빵 한 조각만 살 돈을...!" "귀에 거슬리는 말이로군. 이 녀석이 그 말의 뜻을 알고 있다면 나보다도 행복한 놈이렷다" 그는 중얼거리다가 갑작스런 연상이 떠올라 자기 이마를 탁 쳤다. '그런데 대체 그들이 오늘 아침에 에스메랄다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이었을까?' 그는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그러나 세 번째로 어떤 것이 그의 길을 가로막았다. 이것은 어떤 것이라기보다도 오히려 어떤 사람으로서 바로 소경이었다. 이 수염 난 얼굴의 조그만 소경은 주위의 공간에서 지팡이로 노를 젓고, 한 마리의 큰 개에게 끌려가면서 야릇한 어조로 콧소리를 내어 말했다. "도와주십쇼!" "거 참 반갑군! 내 얼굴이 무척 적선을 잘하는 사람 같아 보이는 모양이지. 내 주머니는 바싹 말라 있는데 이렇게 모두들 내게 동냥을 구하는 걸 보면. 여보게나(그러면서 그는 소경 쪽으로 돌아섰다), 지난 주에 나는 내 마지막 셔츠를 팔았다네" 그렇게 말한 그는 소경에게 등을 돌리고 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나 소경도 그와 동시에 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했으며, 별안간 앉은뱅이도 곰배팔이도 역시나 주발 소리와 포석 위에 목발 소리를 요란스레 내면서 부랴부랴 따라오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가엾은 그랭구아르를 밀치락달치락 쫓아오면서 그들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도와줍쇼!" 하고 소경은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적선을...!" 하고 앉은뱅이도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절름발이는 "빵 한 조각만!" 하고 되풀이하면서 목청을 높이는 것이었다. 그랭구아르는 달리기 시작했다. 소경도 달렸다. 앉은뱅이도 달렸다. 절름발이도 달렸다. 그랭구아르가 골목 속으로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앉은뱅이와 소경과 절름발이들이 더욱더 그의 주위에 득실거렸으며, 그리고 곰배팔이들과 애꾸눈들과 상처투성이의 문둥이들이 여기저기 집에서 나오거나 인접한 거리에서 나오고, 혹은 지하실의 환기창에서 나와서는, 아우성을 치고 고함을 지르고 으르렁거렸다. 모두들 절뚝절뚝 불빛 쪽으로 몰려들고 비 온 뒤의 괄태충처럼 진창 속에서 뒹굴고 있었다. 그랭구아르는 여전히 그 세 명에게 쫓기면서, 이러다간 장차 어떻게 될지 짐작도 못한 채, 잔뜩 겁을 집어먹곤 사람들 틈을 걸어갔다. 절름발이들을 돌고, 앉은뱅이들을 건너뛰고, 한떼의 득실거리는 문둥이들 속에 발이 얽혀 들어가고 있었다. 그는 오던 길로 되돌아가 볼까 하는 생각도 났으나, 때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그 모든 무리들이 뒤를 막고 있는데다가 그 세 거지가 꽉 붙잡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별수 없이 계속 걸었다. 그 막아 낼 수 없는 물결에 떠밀림과 동시에, 이 모든 것을 일종의 악몽처럼 여기게 해주는 현기증과 공포심에 떠밀리면서. 그는 마침내 거리의 맨 끝에 다다랐다. 그 거리는 널찍한 광장으로 나왔는데, 거기에는 여기저기 흩어져 보이는 수천의 불빛이 흐릿한 밤안개 속에 흔들거리고 있었다. 그랭구아르는 자기 다리의 속력에 의해 매달린 세 명의 병신 유령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광장으로 뛰어들었다. "어딜 가는 거야, 이 사람아!" 절름발이는 목발을 던지면서 외치곤, 파리의 길바닥에서는 여태껏 정상으로 걸어 보지 않았을 그 싱싱한 두 다리로 그의 뒤를 쫓아왔다. 그러는 동안 앉은뱅이는 두 발로 일어서서 그랭구아르의 머리에 무거운 쇠그릇을 씌우고, 소경은 타오르는 듯한 눈으로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여기가 어디죠?" 겁이 난 시인은 물었다. "흐흐흐, 기적궁이다" 어느새 다가와 있던 네 번째 유령이 대답했다. "정말이지 소경들이 눈으로 보고 절름발이들이 달음질치는 건 나도 똑똑히 보고 있지만, 그럼 구세주는 어디 있소?" 그들은 이 어눌한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음산한 웃음만 터뜨렸다. 가엾은 시인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는 과연 그 이름도 무서운 기적궁에 와 있었던 것이다. 어엿한 사람이 이런 시간에 기적궁에 들어온 일은 일찍이 한 번도 없었다. 감히 여기 들어온 경찰관이나 법원 관할의 헌병들은 산산조각이 되어 꺼져 버리던 마술적인 지역. 도둑놈들의 도시, 파리의 얼굴에 붙어 있는 보기 흉한 사마귀. 수도의 거리엔 으레 언제나 넘쳐흘러 있게 마련인 저 죄악과 구걸과 방랑의 개골창이 아침이면 거기서 흘러나오고 밤이면 거기로 되돌아와 괴어서 썩는 시궁창. 집시, 땡땡이 수도사, 타락한 학생, 외국의 모든 무뢰한들이, 우상 숭배자 등 모든 종교의 무뢰한들이, 위장한 상처투성이가 되어 가지고 낮에는 거지 행세를 하는가 하면 밤엔 불한당으로 변하는 거짓의 지역. 한 마디로 말해 도둑질과 매음과 폭력이 파리의 길바닥 위에서 연출하는 저 영원한 연극의 모든 배우들이 이 시대에 옷을 입고 벗는 거대한 갱의실. 당시 파리의 모든 광장이 그러했듯, 그것은 포석도 제대로 깔리지 않은 고르지 못한 광막한 지대였다. 여기저기서 불이 타고 있는데, 그 주위엔 이상한 떼가 득실거리고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은 왔다갔다 하면서 소리 지르는 것이었다. 날카로운 웃음소리와, 어린애들의 울음소리, 그리고 여자들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 군중의 손이며 머리들이 환히 빛나는 배경 위에 새카맣게 드러나 온갖 괴이한 몸짓을 그려 냈다. 불빛이 커다랗고 일정치 않은 그림자에 섞여서 흔들리고 있는 땅 위에, 때때로 사람 같은 개 한 마리가 지나가는가 하면, 개와 같은 사람 하나가 지나가곤 하는 것이 보였다. 남자도, 여자도, 짐승도, 나이도, 병도, 모든 것이 함께 섞여지고 겹쳐지고 어울려 있었다. 그랭구아르는 당황한 가운데도, 흔들거리는 희미한 불빛으로 그 거대한 광장 주위에 낡은 집들이 보기에도 흉하게 빙 둘러서 있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저마다 한두 개씩 뚫려져 있는 채광창으로 불빛이 보이는, 쪼그라지고 오그라진 그 케케묵은 집들의 정면은, 어둠 속에서 기괴하게 찌푸린 얼굴을 하고 둘러서서 눈을 깜박거리며 악마들의 야회를 바라보는 늙은 여자들의 커다란 머리처럼 여겨졌다. 그것은 마치 하나의 새로운 세계, 여태까지 들어보지도 못한, 기괴망측한 파충류의, 개미의, 환상적인 미지의 새로운 세계와도 같았다. 그랭구아르는 더욱더 겁이 나고, 마치 세 개의 집게 같은 그 세 명의 거지들에게 붙잡히고, 자기 주위에서 물결치고 짖어 대는 한떼의 다른 얼굴들로 귀가 멍해져서 침착을 되찾으려 애쓰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은 허사였다. 그의 기억과 생각의 줄은 끊어져 버렸으며, 모든 것을 의심하고, 자기가 보는 것과 느끼는 것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여, 끝내 다음과 같은 풀 수 없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것이었다-'내가 존재하므로 저것이 존재하는 것일까? 저것이 존재하므로 내가 존재하는 것일까?' 이때 또록또록한 고함 소리가 그를 둘러싸고 있는 소란스런 군중 속에서 솟아올랐다. "그놈을 대왕님께 끌고 가자!" 그러자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찬성을 표했다. 그는 끌려갔다. 서로 앞을 다퉈 그에게 덤벼들었다. 그러자 그 세 거지는 그를 놓지 않고, "이건 우리 거야!" 하고 부르짖으면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그를 뺏아 내는 것이었다. 그 끔찍한 광장을 가로질러 갈 때 시인의 현기증은 문득 사라졌다. 몇 걸음 걸어간 끝에 그에겐 현실감이 되돌아왔다. 그는 그곳 분위기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처음 순간엔 그의 시인다운 머리로부터, 아니 차라리 그의 텅 빈 위장으로부터 일종의 연기가 솟아올라 사물들과 그의 사이에 퍼져서, 그것들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악몽의 안개 속으로밖에는-모든 윤곽을 떨게 하고, 모든 형태를 찌푸리게 하고, 사물들을 터무니없이 큰 집단으로 보이게 하고, 물건들을 괴물로, 인간들을 유령으로 잡아 늘여 놓는 저 꿈의 암흑 속에서밖에는-보이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그런 환각에 이어 시나브로 보다 덜 착란 되고 보다 덜 확대되는 시각이 생겼다. 현실은 그의 주위에 나타나 눈에 부딪히고 발에 부딪혀, 그가 처음에 자기를 둘러싸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 무서운 극시를 산산이 찢어 놓았다. 그는 자신이 무대가 아니라 진창 속을 걸어가고 있고, 악마들이 아니라 도둑놈들과 팔꿈치를 맞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자기의 영혼이 아니라 생명이 문제되고 있다는 사실을(왜냐하면 강도와 양민 사이에 그렇게도 효과적으로 위치하는 저 귀중한 중재자인 돈주머니가 그에겐 없었으므로) 깨닫지 않으면 안 되었다. 마침내 그 수라장을 더 자세히 더 침착하게 살펴봄으로써, 그는 악마들의 연회에서 술집으로 떨어진 것이었다. 기적궁은 기실 하나의 술집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것은 포도주와 동시에 피로 새빨간 불한당의 술집이었다. 6 누더기를 걸친 호송대가 마침내 그를 목적한 장소에 갖다 놓았을 때 그랭구아르의 눈앞에 나타난 광경은 다시없이 범속하고 적나라한 현실이었다. 하나의 커다란 둥근 포석 위에서 활활 타오르며 그 불꽃으로 지금은 비어 있는 삼발이의 다리를 새빨갛게 달구고 있는 커다란 화톳불 주위에는, 낡아빠진 탁자 몇 개가 여기저기에 평행 되도록 가지런히 놓는다거나 그렇진 않더라도 적어도 너무 엉뚱한 각도로 교차되지 않도록 보살핀다거나 하는 기하학적 배려는 털끝만큼도 없이 아무렇게나 세워져 있었다. 또 탁자들 위에는 포도주와 맥주가 철철 흐르는 몇 개의 항아리가 번들거리고 있었으며, 그 항아리들 주위엔 불과 술로 주홍빛이 된 취한 얼굴들이 무수히 모여 있었다. 그들 중 배가 불룩 나오고 쾌활한 얼굴을 한 사내 하나는 뒤룩뒤룩 살찐 논다니 하나를 요란스럽게 껴안은 채였다. 가짜 병신 하나는 휘파람을 불면서 자기의 가짜 상처의 붕대를 푼 뒤, 아침부터 친친 동여매고 있던, 멀쩡하고 튼튼한 무릎의 저림을 가라앉히고 있었다. 그 맞은편에는 곰배팔이 하나가 앉아서, 애기똥풀과 쇠피를 가지고 다음날의 병신꼴을 준비하고 있었다. 탁자 두엇쯤 떨어진 곳에서는 순례자의 옷차림을 한 거지가 콧소리를 내며 성 여왕의 애가를 더듬더듬 외고 있었다. 딴 곳에서는 젊은이 하나가 늙은이로부터 간질병 교습을 받는 판인데, 그 늙은이는 그에게 비누 조각을 깨물어서 거품을 내는 기술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또 그 옆에서는 수종 환자 하나가 제 몸의 부기를 빼면서, 같은 탁자에서 그날 저녁에 훔쳐 온 어린애 하나를 갖고 서로 다투는 너댓 명의 도둑년들에게 코를 막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도처에서 너털웃음이 터져 나왔다. 난잡한 노랫소리도 들렸으며, 옆사람 말은 듣지도 않고 저마다 욕지거리와 육담을 뇌까리면서 제 잇속만 차리고 있었다. 항아리들이 부딪치고, 항아리가 부딪칠 땐 싸움이 벌어지고, 이빠진 항아리에 누더기가 찍찍 찢어지곤 했다. 커다란 개 한 마리가 꼬리를 깔고 앉아 불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린애들 몇이 이 잔치판에 섞여 있었다. 훔쳐 온 아이는 소리를 지르면서 울어 댔다. 또 네 살 짜리의 커다란 사내애 하나는 높은 벤치 위에 다리를 대롱거리며 말없이 앉아 있는데, 그 턱은 탁자에 닿아 있었다. 세 번째 아이는 초에서 흘러내리는 녹은 덩이를 손가락으로 탁자 위에 엄숙하게 벌여 놓고 있는 중이었다. 마지막으로 조그만 녀석 하나는 진흙 속에 쭈그리고 앉아 솥 안에 거의 파묻히다시피 되어서는 그 솥을 기와 조각으로 긁고 있었는데, 그 소리를 들으면 음악가는 기절을 하리라. 통 하나가 불 옆에 있고 거지 하나가 그 통 위에 앉았는데, 그것은 즉 옥좌에 임하신 와인 셈이었다. 그랭구아르를 붙잡은 세 거지가 그를 이 통 앞으로 끌고 갔다. 그러자 그 어린애가 들어 있는 솥의 소리를 제외하고는 한동안 법석은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그랭구아르는 숨도 못 쉬고 고개도 들지 못했다. "사나이여, 네 모자를 벗어라" 그를 붙잡은 세 불한당 중의 하나가 웅얼거렸는데, 그게 무슨 뜻인지 채 깨닫기도 전에 다른 불한당 하나가 그의 모자를 잡아 벗겨 버렸다. 보잘것없는 벙거지였음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햇볕 쬐는 날이나 비 오는 날엔 아직 쓸모가 있었던 것이다. 그랭구아르는 한숨을 쉬었다. 그러는 동안 왕은 앉아 있는 통 위에서 아래쪽으로 말을 던졌다. "이 악당은 뭐냐?" 위협으로 말미암아 거세게 발음되긴 했으나, 그 목소리를 들었을 때 그랭구아르는, 바로 오늘 아침 청중 속에서 "적선 좀 하슈!" 하고 콧소리를 냄으로써 자신의 연극에 최초의 타격을 가했던 그 목소리가 생각났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 과연 그것은 클로팽 트루유푸였다. 클로팽은 왕의 표지를 달곤 있었지만, 누더기를 더 걸치거나 덜 걸치고 있진 않았다. 그의 팔에 있던 상처는 이미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그는 당시 순경들이 군중을 몰아세우는 데 쓰던, 불라유라고 불리는 흰가죽 회초리 하나를 손에 쥐고 있었으며, 머리엔 위가 좁고 테를 두른 일종의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그것이 어린애의 모자인지 왕관이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엇비슷했다. 그러는 동안 그랭구아르는 무슨 까닭인지 몰라도, 기적궁의 황이 바로 그 대광실의 밉살스런 거지였음을 알아보곤 좀 희망을 되찾아 더듬더듬 말했다. "나리... 각하... 폐하...,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군요" "각하든 폐하든 친구든 너 좋을 대로 부르려무나. 그러나 빨리 해라. 네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무슨 할말이 있느냐?" "저는 오늘 아침에..." "이런 제기랄! 네 이름을 말하라. 그밖엔 아무것도 필요 없다. 내 말 들으라. 지금 넌 세 분의 강력한 군주 앞에 서 있는 것이다. 나 클로팽 트루유푸, 이 왕국의 최고 통수권자인 나와, 저기 머리에 걸레를 두르고 계시는 저 뚱뚱한 양반, 우리 세 사람은 너의 판사다. 너는 우리 왕국의 특권을 침해했다. 네가 야바위꾼이나 골골꾼이나 불거지가 아니라면, 다시 말해 일반인의 말로 도둑놈이나 거지나 떠돌이가 아니라면, 너는 벌을 받아야 한다. 네 신분을 밝혀라. 어서 네 무죄를 증명하라" "아! 슬픈 일이오만 저는 그런 명예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전 시인이올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거지왕은 우리의 시인의 말을 마치게 두지 않고 다시 입을 열었다. "널 교수형에 처하겠다... 선량한 시민 나리들이여! 그대들이 그대들의 나라에서 우리의 선량한 시민들을 다루듯, 우린 그대들의 시민을 우리나라에서 다룬다. 그 법률이 고약하다면 그건 너희들의 탓 탓이다. 때때로 저 삼목줄 위에 양민의 찡그린 낯을 볼 필요가 있다. 그건 삼목줄의 명예가 될 것이다... 자, 친구, 저 아가씨들에게 네 누더기를 기꺼이 나눠 줘라. 그들이 술을 마시도록 네 지갑을 줘라. 네가 무슨 종교 의식을 올려야겠다면, 저기 저 사발 속에 우리가 생 피에르 성당에서 훔친 썩 좋은 돌 하느님 하나가 있다. 그의 머리 위에 네 넋을 던지도록 사 분간을 주겠다" 판결은 무시무시했다. "대왕 및 상감마마" 그랭구아르는 침착하게 말했다(어떻게 된 일인지 그는 이제 꿋꿋한 태도로 되돌아와 단호한 어조로 말하고 있었다). "여러분께서는 이 점을 생각하시지 않았습니다. 제 이름은 피에르 구랭구아르란 시인으로서, 오늘 아침 재판소의 대광실에서 상연한 우의극의 작가입니다" "아! 선생, 그게 당신이었어!" 하고 클로팽은 말했다. "나도 거기 있었지, 제기랄! 그런데 친구, 네가 오늘 아침 우리를 싫증나게 했다고 해서, 그게 오늘 저녁에 교수형을 안 받아도 좋다는 이유가 될까?" "시인이 거지 틈에 끼여서는 안 된다는 법이 있나요? 방랑자 이솝도 그랬고, 걸객 호메로스도 그랬고, 도둑 메르큐리스도 그랬으며..." 클로팽은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넌 그 알아들을 수 없는 헛소리로 우릴 어리둥절하게 만들 요량이구나. 하지만 어림없다. 너무 사양 말고 네 목을 내놓아라!" "죄송합니다. 위대한 대왕님" 그랭구아르는 한치도 양보하지 않기 위해 대꾸했다. "이건 그럴 필요가 있습니다. 잠시 제 말씀을 들어 주세요... 제 말을 듣지 않곤 제게 선고를 내릴 수 없습니다..." 그의 불행한 목소리는 사방에서 나는 소음으로 거의 묻혀 있었다. 그 어린 사내애가 어느 때보다도 더 열심히 손을 긁고 있었으며, 설상가상으로 방금 한 노파가 새빨갛게 단 삼발이 위에 기름으로 가득 찬 프라이팬 하나를 갖다 놓아, 기름이 마치 어릿광대 뒤를 쫓아가는 한떼의 어린애들이 떠드는 것같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거지왕은 두 고위층과 잠시 의논을 한 것 같았다. 그런 뒤 그는 날카롭게 외쳤다. "좀 조용들 해라!" 그런데도 솥과 프라이팬이 자기 말을 듣지 않고 여전히 그 이중창을 계속했으므로 그는 앉아 있던 동에서 뛰어내려가, 솥을 힘껏 걷어찼는데, 그것은 어린애와 더불어 열 발짝쯤 굴러갔고, 프라이팬을 걷어차자, 그 기름은 불 속에 깡그리 쏟아져 버렸지만, 그는 어린애의 숨막힌 울음소리에도 아랑곳 않고, 제 저녁밥이 아름다운 하얀 불꽃으로 변해 버린 그 노파의 투덜거림에도 아랑곳없이, 다시 의젓하게 자기 옥좌로 올라갔다. "들어라!" 그는 자신의 딱딱한 손으로 보기도 흉한 자기 턱을 쓰다듬으면서 그랭구아르에게 말했다. "네가 교수형을 면할 이유란 없다. 그게 네게 불쾌해 보이는 건 사실이겠지. 너희들 시민들은 그것에 익숙하질 못하니까. 어쨌든 우린 네게 나쁜 짓은 하지 않는다. 당분간 네가 곤경을 모면할 수 있는 방도를 주겠다... 넌 우리패에 들어오겠냐?" 목숨이 자신으로부터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 체념하기 시작하고 있던 그랭구아르에게 그 제안이 어떤 감명을 주었을지 독자는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열정적으로 생명을 붙잡고 늘어졌다. "물론, 그렇게 하고 말고요!" "그래, 넌 소매치기단에 가입하는 데 동의한단 말이지?" "네, 바로 그렇습니다" "우리 왕국의 시민이 되는 거지?" "네, 왕국의 시민이 되겠나이다" "진정으로?" "진정으로!" "그래도 역시, 넌 교수형을 면치 못하리라는 걸 주의해 둔다" "뭐라고요?" 시인은 눈이 동그랗게 되어 외쳤다. "다만 넌 나중에 교수형을 당할 것이다. 보다 더 격식을 갖춰, 진짜 파리시의 비용으로, 훌륭한 돌 교수대에서, 양민들에 의해서 말이다. 그건 위안이 될 것이다" "지당하신 말씀이올시다" 그랭구아르는 순순히 대답했다. "저는 거지요, 이 왕국의 시민이요, 소매치기요, 뭐든 대왕께서 바라는 대로 되겠나이다. 그리고 위대한 나랏님이시여, 저는 진작부터 그 모든 것이었나이다. 왜냐하면 전 철학자이니까요. 폐하께서도 아시다시피, 철학은 모든 사물을 포함하고 있으며, 철학자는 모든 인간을 포함하고 있으니까요" 거지왕은 눈살을 찌푸렸다. "날 누구로 아느냐? 넌 지금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거냐? 난 이제 도둑질은 하지 않는다. 난 그걸 초월하고 있다. 난 사람을 죽인다. 목치기, 그건 한다만, 소매치기 따위는 않는다 말야!" "황송합니다, 각하" "악당아! 그래, 넌 거지가 되겠단 말이지?" "물론입니다" 시인은 공손히 대답했다. "되겠다고 해서 전부 되는 게 아니다. 선의라는 건 스프에 양파를 하나 더 넣어 주는 게 아니며, 천국에 가는 데밖엔 쓸모가 없는 거다. 그런데 천국과 현실은 다르다. 현실 속에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네가 어떤 일에 쓸모가 있다는 걸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되겠으니, 저 마네킨의 주머니를 뒤져라" "뭐든 원하시는 대로 하겠나이다" 클로팽이 신호를 하자, 몇몇 패들이 둘러섰던 자리에서 떠났다가 잠시 후 되돌아왔다. 그들은 말뚝 두 개를 가져왔는데, 그 아래쪽 끝엔 각각 두 개의 주걱 모양의 뼈대가 달려 쉽사리 말뚝이 땅 위에 서도록 되어 있었다. 그들은 두 말뚝의 뒤쪽 끝에다 들보 하나를 가로질러 놓았다. 그리하여 그것은 매우 훌륭한 하나의 교수대가 되었다. 이제 아무것도 모자라는 건 없었으며, 들보 아래엔 밧줄까지도 보기 좋게 흔들거리고 있었다. '결국 저들은 어떻게 하겠다는 걸까?' 하고 그랭구아르는 적이 걱정되어 속으로 생각했다. 같은 순간 방울 소리가 울림으로써 그의 불안도 끝장이 났다. 거지들이 하나의 마네킨 목을 밧줄로 매달아 놓은 것인데, 그것은 일종의 새를 쫓는 허수아비로서, 빨간 옷을 걸쳐 놓았고, 서른 마리의 나귀 목에라도 달 수 있을 만큼 숱한 방울과 작은 종들이 매달려 있었다. 그 수많은 방울들이 밧줄이 흔들림에 따라 잠시 떨리더니 점차 희미해져 마침내 완전히 소리도 나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게 되었다. 클로팽은 그랭구아르에게 마네킨 아래 놓인 비틀거리는 낡은 의자 하나를 가리키며 명령했다. "저 위로 올라가라" "이런 맙소사!" 그랭구아르는 못마땅하다는 듯 말했다. "목뼈가 부러지겠군요. 저 의자는 심하게 절름거려요" "올라가!" 클로팽이 다시 명령했다. 그랭구아르는 별수 없이 의자 위로 올라갔는데, 머리와 팔이 다소 흔들거리긴 했으나 마침내 중심을 찾기에 이르렀다. "자, 이젠 오른쪽 발을 왼쪽 다리에 감고 왼쪽 발끝으로 서라" "오, 각하! 기어코 제 팔이나 다리가 부러지는 걸 보고 싶으신가요?" "여보게 친구, 넌 너무나 말이 많아. 한 마디로 말해 이렇게 하면 되는 거다. 내가 아까 말한 것처럼, 왼쪽 발끝으로 서라. 그렇게 하면 마네킨의 호주머니에 손이 닿을 것이다. 주머니를 뒤져 거기 있는 지갑을 꺼내라. 그래서 내가 그 모든 일을 방울 소리가 나지 않게 해내면 넌 거지가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린 여드레 동안 너를 후려치기만 하면 될 것이다" "오! 제발 그렇게는 안 되길! 만일 제가 방울 소리를 나게 한다면?" "그럼 넌 교수형이야. 알겠나?" "아니오, 각하. 난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제 이익은 뭡니까? 이런 경우엔 교수형을 당하고 저런 경우엔 맞는다면..." "거지가 된다는 건 어떻고? 그게 아무것도 아니란 말야? 네 몸뚱이를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너를 때린다는 건 바로 이익인 것이다" "대단히 감사하군요" "자, 빨리 하자. 마네킨을 뒤져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경고하는데, 단 하나의 방울 소리라도 들리면 넌 마네킨 자리에 매달려야 한다" 떼거리들은 두목의 말에 박수 갈채를 보내고 교수대 주위에 빙 둘러섰는데, 그들이 어떻게나 잔인하게 웃어 댔던지, 그랭구아르는 그들이 너무나도 즐거워하고 있으므로 정녕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이제 그에겐 자기에게 강요된 그 무시무시한 시험에 성공한다는 가냘픈 기회를 제외하곤 아무런 희망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그 기회를 잡기로 결심했으나, 바야흐로 자기가 주머니를 털려고 하는 마네킨에게 먼저 열렬한 기도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조그만 구리쇠의 혓바닥을 가진 수천의 방울 하나 하나가 그에겐 모두 입을 벌리고 쉬익쉬익 소리를 내며 물려고 드는 독사들의 주둥이 같아 보였다. "오, 내 목숨이 저 방울들 중에서도 가장 작은 방울의 가장 작은 떨림에 달렸다니...!" 그는 두 손을 마주잡고 중얼거렸다. 그러나 아무런 유예도 핑계도 있을 수 없음을 알고 그는 단단히 각오를 했다. 그는 오른발을 왼발에 감고, 왼쪽 발끝으로 서서 팔을 뻗쳤다. 그러나 마네킨에 손이 닿는 순간, 한 발밖에 딛지 않은 그의 몸뚱어리는 세 발밖에 없는 의자 위에서 비틀거렸다. 그는 반사적으로 마네킨에 기대려다가 그만 균형을 잃고 땅바닥으로 떨어졌는데, 마네킨은 그의 손의 압력에 못 이겨 처음엔 뱅글뱅글 돌다가 두 말뚝 사이에서 장엄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동시에 수천 개의 방울이 떨리는 숙명적인 소리에 그는 귀가 먹먹했다. "망했구나!" 그는 떨어지면서 외치곤 얼굴을 땅바닥에 댄 채 죽은 듯 있었다. 그러는 동안 그의 머리 위에서는 거지들의 악마 같은 웃음소리가,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하는 거지왕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저 악당을 일으켜 호되게 목을 달아매라!" 그는 일어났다. 사람들은 이미 그에게 자리를 내주기 위해 마네킨을 벗겨 내고 있었다. 놈들은 이어서 그를 의자 위에 올려 세웠다. 클로팽이 그에게 와서 목에 밧줄을 걸고 툭툭 어깨를 두드렸다. "안녕, 친구요! 넌 이제 빠져나갈 길이 없다" 그랭구아르는 슬며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아무런 희망도 없었다. 모두들 웃고 있었다. "벨비뉴 레투알, 가로장 위로 기어올라가라" 왕이 한 거대한 거지에게 말하자, 그는 옆에서 나와 가로지른 들보 위로 날쌔게 올라갔다. 그랭구아르는 잠시 후 눈을 들었는데, 그가 자기 머리 위의 가로장 위에 웅크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온몸에 소름이 쭉 끼쳤다. "자, 이젠," 클로팽 트루유푸는 말을 이었다. "내가 손바닥을 치면 즉시 앙드리 루즈 너는 의자를 무릎으로 차서 땅바닥에 쓰러뜨려라. 프랑수아 샹트, 넌 저 악당의 두 발에 매달려라. 그리고 벨비뉴, 넌 저 녀석의 어깨 위에 뛰어내려라. 셋이 모두 한꺼번에 해야 한다! 알아들었느냐?" 클로팽은 마치 세 마리의 거미가 한 마리의 파리에 달려들려는 것처럼 그랭구아르에게 덤벼들려고 하는 세 명의 부하들을 바라보았다. 클로팽이 불길 밖의 포도 넝쿨 몇 가지를 태연히 발끝으로 불 속에 밀어 넣고 있는 동안, 우리의 가엾은 수형자는 무시무시한 일순간을 체험했다. "다들 됐느냐?" 거지왕은 큰 소리로 묻곤, 손뼉을 치려고 손을 폈다. 일 초만 더 있었더라도 끝장이 났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불현듯 무슨 생각이 떠오른 듯 손을 멈추었다. "아, 잠깐!" 하고 그는 말을 꺼냈다. "깜박 잊어버리고 있었다. 우린 관습상 한 사내의 목을 매달기 전에 그를 갖고자 하는 계집이 있는가 어떤가 물어 보기로 돼 있다. 빼빼야, 이게 네 마지막 기회다. 넌 계집 거지와 결혼하거나 그렇잖으면 밧줄과 결혼해야 된다" 독자에겐 이 보헤미아식의 율법이 상당히 신기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오늘날까지 영국의 옛 법률 속에는 자세히 적혀 보존되고 있는 바이다. 그랭구아르는 숨을 크게 쉬었다. 그는 반시간 이래 두 번째로 되살아난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감히 그것에 지나치게 기대를 걸 수가 없었다. 다시 통 위로 올라간 클로팽이 외쳤다. "여봐라! 계집들아, 암컷들아, 너희들 중 마녀로부터 암고양이에 이르기까지, 이 떨거지를 갖고 싶은 화냥년이 있느냐? 어이, 콜레트 샤로니! 엘리자베스 투루뱅! 시모느 조두이느! 라 롱그! 미셀즈나유! 마리 피에드부! 롱 죠레유! 마트리느 지로루! 얘, 이자보 티에리! 와서 봐라!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사내다! 이걸 누가 갖고 싶으냐?" 이런 비참한 상태에 빠져 있는 그랭구아르는 그다지 탐스럽지 못했음에 틀림없다. 계집 거지들은 그런 제의를 시시하게 여겼다. 불행한 시인은 그녀들이 이렇게 대꾸하는 소리를 들었다. "싫어요! 싫어! 그놈의 목을 매달아요. 그럼 모든 여자들에게 즐거움이 될 거요" 그러나 그 가운데 세 여자가 어슬렁거리며 나와 그의 냄새를 맡으려 했다. 첫째 여자는 얼굴이 네모진 뚱뚱한 계집애였다. 그녀는 철학자의 처량한 옷차림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 남루한 윗도리는 헐어 빠져서 밤 굽는 냄비보다 더 많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계집애는 낯을 찌푸렸다. 둘째 여자는 늙고 검고 쪼글쪼글하며, 기적궁에서도 눈에 거슬릴 만큼 추물이었는데, 그랭구아르의 주위를 빙 돌았다. 그 여자가 자기를 갖고자 하지 않을까 싶어 그는 거의 몸을 떨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 여잔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이건 너무 말라 빠졌군" 하고 그 자리를 떠나가 버렸다. 셋째 여자는 꽤 젊고 그다지 추하지 않은 아가씨였다. "저를 살려 주세요!" 하고 이 가련한 시인은 나직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아가씨는 측은해 하는 듯 한참 그를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수그리고, 자기 치마에 주름을 잡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는 눈으로 그녀의 일거 일동을 살피고 있었다. 그것은 마지막 희망의 빛이었던 것이다. 이윽고 아가씨는 "안 돼" 하고 말했다. "그랬다간 교므 롱그가 나를 때릴 거야" 그 여자도 군중 속으로 돌아갔다. 클로팽은 통 위에 일어서서, 모두가 흥겨워 하는 가운데 경매장 집달관의 말투를 흉내내어 외쳤다. "그래, 아무도 원하지 않는단 말이지? 하나, 둘, 셋!" 그런 다음 그는 교수대 쪽으로 돌아서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사형 집행자들이 그랭구아르 옆으로 갔다. 바로 이때 고함 소리 하나가 떼거리들 사이에서 일어났다. "라 에스메랄다다! 라 에스메랄다다!" 그랭구아르는 바르르 떨며 소리나는 쪽을 돌아보았다. 군중이 갈라지며, 하나의 맑고 눈부신 얼굴에게 길을 열어 주었다. 그것은 춤추던 집시 아가씨였다. 이 세상에서도 보기 드문 아가씨는 기적궁 안에서까지도 그 매력과 아름다움의 힘을 미치고 있는 것 같았다. 남녀 패들은 그녀가 걸어 나오는 양옆에 조용히 늘어서 있었으며, 그들의 사나운 얼굴은 그녀를 바라보며 환히 밝아져 가고 있었다. 에스메랄다는 사뿐사뿐 걸어 우리의 시인 옆으로 갔다. 그녀의 예쁜 염소가 그 뒤를 따랐다. 그녀는 그랭구아르를 잠시 바라보더니, "이 남자의 목을 매다시려는 거예요?" 하고 클로팽에게 정색하고 물었다. "그렇다, 누이여, 네가 저 녀석을 남편으로 삼지 않는다면..." 거지왕의 대답에 아가씨는 아랫입술을 귀엽게 좀 삐죽거리더니 이윽고 말했다. "내가 갖겠어요" 그랭구아르는 이때, 자기는 아침부터 하나의 꿈만을 꾸고 있었는데, 이것은 그 계속이라고 확신했다. 운명의 급변은 상냥하긴 했지만 과연 급격하였다. 거지들은 목줄을 끄르고 시인을 의자에서 내려오게 했다. 그리고 늙은 고위층이 한 마디의 말도 없이 찰흙 항아리 하나를 가져왔다. 집시 아가씨는 그것을 받아 그랭구아르에게 내밀었다. "이걸 땅바닥에 던지세요" 항아리는 깨어져서 네 조각이 났다. 그러자 노인은 그들의 이마 위에 손을 올려놓고 말했다. "형제여, 이 여자는 네 아내다. 누이여, 이 남자는 네 남편이다, 앞으로 사 년 동안...!" 7 잠시 후 우리의 시인은 천장이 낮고 잘 닫혀진 조그만 방 안에 와서, 바로 옆에 매달려 있는 찬장에서 몇 가지 빌려다 놓기만 하면 될 것 같은 식탁 앞에 앉아 좋은 잠자리를 기대하면서, 어여쁜 아가씨를 마주 보고 있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진짜 동화책에 나오는 인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가씨는 그에게 아무런 주의도 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녀는 왔다 갔다 하면서, 의자를 아무렇게나 옮겨 놓기도 하고, 염소와 얘길 나누는가 하면, 이따금 입을 삐쭉거리기도 했다. 이윽고 그녀는 탁자 옆에 와 앉았으므로 그랭구아르는 마음껏 쳐다볼 수가 있었다. 더욱더 몽상 속으로 빠져들어 가면서 '바로 이것이다!' 하고 시인은 생각하는 것이었다. '라 에스메랄다란 바로 요거다! 거리의 무희! 천사 같은 여인! 대견하고도 하찮은 것! 오늘 아침 내 연극에 마지막 타격을 준 건 바로 이 여자다. 오늘 저녁에 내 목숨을 건진 것 역시 이 여자다. 참으로 아리따운 여자! 나를 이렇게 뺏아 온 것을 보면 나를 미칠 듯 사랑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이런 생각을 머릿속에 품고 그는 아가씨 옆으로 다가갔는데, 그 태도가 어찌나 절도 있으면서 애교가 흐르는지 그녀는 뒷걸음질을 치며 입술을 움직였다. "대체 저더러 어쩌라는 거예요?" "그걸 내게 물을 수 있어요, 사랑스런 에스메랄다?" 그랭구아르는 이렇게 대답했는데. 그것이 어찌나 정열적인 어조였던지 스스로 자기 말소리에 놀랐다. 예쁜 아가씨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무슨 말씀인지 전 모르겠어요" "아니, 무슨 말씀을! 난 당신의 것이 아닌가요, 정다운 아가씨? 그리고 당신은 나의 것이 아닌가요?" 그러면서 그는 순진하게 그녀의 허리를 잡았다. 아가씨의 가슴 옷은 헝겊처럼 스스로 그의 손 안에 떨어졌다. 그러자 그녀는 방 저쪽 끝으로 폴짝 뛰어가 몸을 구부리더니, 그것이 언제 어디서 나왔는지 그랭구아르가 미처 볼 겨를도 없는 사이에, 손에 조그만 비수를 집어들고 다시 몸을 일으켰는데, 입술이 퍼럴 정도로 성이 나고, 뺨은 능금처럼 빨갛고, 눈동자는 번개같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동시에 흰 염소는 그녀 앞으로 와서, 두 개의 매우 뾰족한 금빛의 예쁜 뿔이 솟아 있는 전투적인 이마를 그랭구아르에게 들이댔다. 우리 시인은 당황한 눈으로 염소와 아가씨를 번갈아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 "당신도 참 배짱 좋은 사내군요!" 아가씨가 침묵을 깨뜨렸다. "미안합니다, 아가씨" 그랭구아르는 빙긋이 웃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그럼 왜 나를 남편으로 삼았지요?" "당신의 목이 매달리게 내버려 둬야만 했을까요?" "그렇다면," 시인은 사랑의 기대에 실망을 느끼며 말하였다. "당신이 나와 결혼한 건 나를 살려 내겠다는 뜻밖엔 없었단 말이죠?" "그럼 무슨 딴 생각을 가졌기를 바라세요?" 그랭구아르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 동안에도 에스메랄다의 비수와 염소의 뿔은 여전히 방어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에스메랄다 아가씨," 시인은 말했다. "타협합시다. 난 법원 서기가 아니니 당신이 시장 나리의 금지령을 무시하고 이렇게 단도를 들고 있다고 해서 부질없이 소송을 하진 않겠어요. 그렇지만 당신도 모르고 있진 않을 거요. 노엘 레스크립뱅이 단검을 휴대했다고 해서 일 주일 전에 파리 주화 10솔의 벌금형을 받은 사실을. 그런데 그건 건 나와 상관없는 일이고, 난 요점만 말하겠소. 난 당신의 허가와 승낙 없이는 당신에게 접근하지 않겠다는 걸 내 시에 걸고 당신께 맹세하겠어요... 그러나 저녁밥은 좀 주시오" 잠시 아가씨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멸시하는 듯 입을 삐쭉거리고, 새 새끼처럼 머리를 치켜들고는 깔깔 웃었는데, 그 예쁘장한 비수는 나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벌이 어디다 그 침을 감추는지 그랭구아르는 보지도 못한 사이에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잠시 후 탁자 위에는 흑빵 한 덩어리와 비계 한 조각과 쭈글쭈글한 사과 몇 개, 그리고 한 병의 맥주가 놓여 있었다. 그랭구아르는 열심히 먹기 시작했다. 그의 포크와 사기 접시가 요란스럽게 딸각거리는 소릴 들어 보면, 그의 모든 욕정은 식욕으로 변해 버린 듯했다. 아가씨는 그 앞에 있는 듯 때때로 자기 생각에 미소지으면서, 한편 그 보드라운 손으로는 자기 무릎 사이에 끼어 있는 염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타오르는 양초 불이 그 탐식과 몽상의 장면을 환히 밝혀 주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뱃속의 첫 울음소리가 가라앉자 그랭구아르는 이제 사과 한 개밖에 남지 않은 사실을 보 보고 겉으로나마 다소 부끄러움을 느꼈다. "당신은 안 드시겠소, 에스메랄다 아가씨?" 그녀는 머릴 흔들어 안 먹겠다고 대답하고, 생각에 잠긴 눈을 들어 방 위의 둥근 천장을 응시했다. '제기랄, 이 여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랭구아르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목소리를 돋우어 불렀다. "아가씨!" 그녀는 이 소리를 들은 것 같지 않았다. 그는 더욱 큰 소리로 계속했다. "에스메랄다 아가씨!" 헛수고였다. 처녀의 정신은 딴데 가 있어서, 그랭구아르의 목소리는 그것을 되돌아오게 할 만한 힘이 없었다. 이때 다행히 염소가 도와 주었다. "왜 그래, 잘리?" 아가씨는 마치 꿈에서 깨어난 듯 크게 말했다. "배가 고프대요" 그랭구아르는 대화를 시작하게 된 것을 무척 기뻐하며 말했다. 에스메랄다는 빵을 부스러뜨리기 시작했고, 잘리는 그녀의 손바닥 안에서 귀엽게 먹고 있었다. 그랭구아르는 그녀가 다시 몽상에 잠길 틈을 주지 않고 용기를 내 미묘한 질문 하나를 던졌다. "그러니까 나를 남편으로 삼을 생각은 없단 말이죠?" 처녀는 뚫어지게 그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네" "애인으로?" 그랭구아르는 다시 말을 꺼냈다. 그녀는 또 입술을 삐쭉거리곤 대답했다. "싫어요" "친구로는?" 그녀는 그를 한참 바라다보고 곰곰 생각하고 나서 말했다. "그건 가능하겠죠" "우정이 무엇인지 아세요?" "네" 집시 아가씨는 또박또박 대답했다. "그것은 오누이가 되는 것, 두 넋이 서로 섞여 들지 않고 마주 닿는 것이죠" "그럼 사랑이란?" "오, 사랑이란!"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눈은 빛나고 있었다. "그건 둘이면서도 하나가 되는 거예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하나의 천사 속에 서로 섞여 드는 거예요" 이 거리의 춤추는 여인이 이렇게 말했을 때, 그 아름다움은 이상하게도 그랭구아르의 가슴을 쳤다. 그녀의 장밋빛 입술은 빙그레 미소짓고 있었고, 그 맑은 이마는 마치 숨결 아래 흐려지는 거울과 같이 때로 어떤 생각 아래 흐려지곤 했으며, 그 내리깐 검은 속눈썹에서는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일종의 빛이 솟아 나와, 라파엘이 그 후 처녀성과 모성의 신비로운 교차점에서 발견했던 저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그녀의 옆모습에 주고 있었다. 그랭구아르는 그럼에도 역시 계속했다. "그럼 당신 마음에 들기 위해서는 어떡하면 될까요?" "남자가 돼야만 해요" "아니, 그렇다면 난 뭔가요?" "남자라면 머리에 투구를 쓰고, 손에 칼을 쥐고, 뒤꿈치엔 금박차를 달고 있는 거예요" "쯧, 말이 없으면 남자가 아니란 말이군.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이 있나요?" 그러자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유별난 표정으로 말했다. "그건 곧 알게 될 거예요" "왜 오늘 저녁엔 모르나요?... 왜 나는 안 되나요?" 그녀는 정색을 하고 그를 힐끔 보았다. "난 나를 지켜 줄 수 있는 남자밖엔 사랑할 수가 없을 거예요" 그랭구아르는 얼굴이 빨개지고 가슴이 뜨끔했다. 그것은 분명 이 아가씨가 두 시간 전 그 위태로운 처지에 빠졌을 때 조금밖에 도와 주지 못한 것을 암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날 저녁의 다른 사건들로 말미암아 사라졌었던 그 기억이 되돌아와 그는 자기 이마를 탁 쳤다. "아참, 맨 먼저 얘길 해야 했을 텐데 그만... 아가씨, 용서해요. 그래 어떻게 해서 카지모도의 손아귀에서 빠져 나오셨지요?" 이 질문은 집시 아가씨를 떨게 했다. "오! 끔찍한 꼽추 같으니라고!" 그녀는 두 손 안에 얼굴을 파묻곤 심한 추위에 떨듯 와들와들 떨었다. "참으로 끔찍스런 놈이죠! 그놈이 왜 당신 뒤를 쫓았는지 아시나요?" "모르겠어요. 한데 당신도 제 뒤를 따라오셨는데, 당신은 왜 따라오셨죠?" "정말," 하고 그랭구아르는 대답했다. "나도 모르겠어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랭구아르는 포크를 가지고 탁자를 긁고 있었다. 아가씨는 이젠 생글생글 웃으면서 벽 너머로 무엇인가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기쁨에 찬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얼마 후 그녀는 별안간 노래를 뚝 그치고 잘리를 쓰다듬었다. "당신은 참 예쁜 짐승을 갖고 있군요" 그랭구아르가 말을 붙였다. "제 동생이에요" "사람들은 왜 당신을 라 에스메랄다라고 부르나요?" "전 몰라요" "그래요?" 그녀는 사슬로 꿰어 목에 걸고 있던 갸름한 작은 주머니를 가슴에서 꺼냈다. 그 주머니에서는 강력한 장뇌 향기가 풍겼다. 그것은 초록빛 명주로 되어 있고, 그 한복판에 에메랄드를 모방한 한 알의 굵은 초록빛 우리 세공품이 달려 있었다. "아마 이것 때문일지도 몰라요' 그랭구아르는 그 주머니를 만지려고 했다. 그녀는 뒤로 물러섰다. "만지진 마세요. 이건 부적인데, 만지면 마력이 훼손되거나, 당신에게 마력이 생겨요" 시인의 호기심은 점점 커졌다. "누가 그걸 당신에게 주었지요?" 그녀는 자기 입술 위에 손가락을 가만히 갖다 대곤 부적을 품안에 감추었다. "라 에스메랄다는 어느 나라 말이에요?" "이집트 말이라 생각해요" "당신은 프랑스 태생이 아니군요?" "전 몰라요" "부모님은 계십니까?" 대답 대신 그녀는 옛 노랫가락에 맞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 아빤 수새라오, 우리 엄만 암새라오. 난 거룻배 없이도 물을 건너요, 난 돛배 없이도 물을 건너요. "그래, 프랑스엔 몇 살 때 오셨나요?" "아주 어려서요" "파리엔?" "작년에. 우리들이 파팔 성문으로 들어올 때 저는 꾀꼬리가 쏜살같이 공중을 날아가는 걸 보았어요. 팔월 그믐께였죠. 전 그걸 보고 올 겨울은 지독히 춥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그랬어요" 하고 그랭구아르는 아가씨가 그렇게 격의 없이 얘기하기 시작하는 것을 기쁘게 여기면서 말했다. "난 이 겨울은 손가락을 불면서 지냈거든요" "호호호..." "아까 그 노인은 누구죠?" "우리 부족의 어른이셔요" "그래서 우릴 결혼시켜 주었군요?" 그녀는 버릇처럼 또 입술을 귀엽게 삐쭉거리곤 말했다. "전 당신 이름조차도 몰라요" "내 이름요? 알고 싶다면 가르쳐 드리죠. 피에르 그랭구아르예요" "전 그보다도 더 아름다운 이름을 하나 알고 있어요" "나쁜 사람이로군! 그러나 상관없어요. 당신에게 화를 내진 않겠어요. 당신이 나를 더 잘 알게 되면 아마 날 사랑하게 되실 거예요. 그리고 당신이 내게 그렇게 흉금을 터놓고 얘길 하셨으니 나도 얘기를 좀 해야겠군요... 그러니까 우선 내가 고네스의 공증인 사무소 소속 징세 청부인의 아들이라는 걸 아셔야겠죠. 이십 년 전, 파리가 포위되었을 때 우리 아버지는 부르고뉴 군사들에게 목졸려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피카르디 군사들에게 배를 찔려 돌아가셨지요. 난 여섯 살 때 고아가 되었는데, 그때 내 발에 신바닥이라고 하는 것은 파리의 포석밖에 없었죠. 내가 어떻게 여섯 살 때부터 열 여섯 살까지의 세월을 지내 왔는지 모르겠어요. 여기서 한 과일장수 여자가 내게 자두 하나를 던져 주는가 하면, 저기선 빵장수가 빵껍질을 던져 주곤 했어요. 겨울엔 상스 대주교관의 현관 아래서 햇볕을 쬐고 지지요. 군인도 되어 봤지만 난 그렇게 용감하질 못했어요. 수도사도 되어 봤지만 난 충분히 신앙심이 깊질 못했어요. 그리고 난 또 술을 잘 못 마시거든요. 난 학교 선생이 될 소질이 더 많이 있었어요. 내가 글을 읽을 줄 몰랐던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런 건 이유가 되지 않아요. 난 얼마쯤 지난 뒤 나 자신은 무엇에도 뭔가가 모자란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그래서 내가 아무것에도 쓸모 없다는 걸 알곤 기꺼이 시인이 되었지요. 그건 떠돌아다니는 사람이라면 언제라도 가질 수 있는 직업이고, 남의 것을 도둑질 하는 것보다는 나은 거죠. 다행히 난 어느 날 노틀담의 부주교님인 클로드프롤로를 만났어요. 그분은 내게 관심을 가져 주었는데, 오늘날 내가 라틴어를 알고, 스콜라 철학에도, 신학에도, 음률학에도, 또 저 지혜 중의 지혜인 연금술에도 무식하지 않을 만큼 학자가 된 건 그 양반 덕택이지요. 보시다시피 난 시시한 신랑감이 아녜요. 난 여러 가지 재미있는 곡예를 알고 있으니까 당신 염소에게 그걸 가르쳐 주겠어요. 예를 들면, 그 물방아들이 뫼니에 다리를 건너가는 행인에게 내내 물을 튀기는 저 망할 놈의 위선자 파리의 주교를 흉내내는 짓이라든지 말요. 그리고 또 내 연극은 만약 그 값을 정당하게 치러 준다면 내게 많은 주화를 가져다 줄 거예요. 끝으로 나는 당신이 명령하시는 대로 받들겠어요. 난 당신 좋을 대로 살아가려고 각오하고 있어요. 그렇게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신다면 부부간으로, 그보다 더 좋다고 생각하신다면 남매간으로 말예요" 그랭구아르는 입을 다물고 자기 장광설의 효과를 기다렸다. 아가씨는 가만히 땅바닥을 응시하고 있다가 나직한 목소리로 물어 왔다. "페뷔스란 무슨 뜻이에요?" 그랭구아르는 자신의 연설과 그 질문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지 잘 알진 못했으나, 자기의 박식을 과시하는 것이 싫지는 않았다. "그건 태양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예요" "태양!" 하고 아가씨는 탄성을 질렀다. "그건 아주 미남의 사수였던 신의 이름이죠" 그랭구아르는 덧붙였다. "신이라고요!" 되묻는 아가씨의 어조 속엔 생각에 잠긴 듯한 정열적인 것이 있었다. 이때 그녀의 팔찌 하나가 풀려 땅에 떨어졌다. 그랭구아르는 그것을 집으려고 허리를 구부렸다. 그가 다시 허리를 폈을 때 아가씨와 염소는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이어서 빗장 소리가 들렸다. "아, 슬프다! 그런데 내게 침대라도 하나 남겨 놓고 갔을까?" 우리의 철학자는 방 안을 빙 둘러보았다. 잠을 자기에 알맞는 가구라곤 좀 기다란 나무 상자 하나밖에 없었는데, 그것도 그 뚜껑이 닫혀 있었으므로 그랭구아르가 그 위에 드러누웠을 땐, 미크 로메가스(역주:볼테르의 단편 소설의 주인공. 키가 80리에 달하는 거인)가 알프스 산 위에 드러누웠을 때 느꼈을 감각과 비슷한 느낌을 그에게 가져다 주었다. 우리 시인은 자신을 될수록 거기에 잘 적응시키면서 말했다. "체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건 참 이상한 결혼 첫날밤이구나. 항아리를 깨뜨리는 이 결혼식엔 그 어떤 순진하고도 시대에 뒤떨어진 점이 있었어" 제3장 노틀담 성당 1 파리의 노틀담 성당은 오늘날에도 역시 장엄하고 숭고한 건물이리라. 그러나 그것이 낡아 가면서도 계속 아름다운 자기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해도, 세월과 인간들이 동시에 이 훌륭한 건축물에 입힌 무수한 풍화와 훼손 앞에서 한숨을 쉬지 않고 분개하지 않기란 어려운 노릇이다. 만일 이 옛 성당에 가해진 무수한 파괴의 흔적들을 독자와 함께 하나하나 살펴볼 틈이 있다면, 세월의 몫은 하찮은 것이고, 최악의 것은 인간, 특히 건축 예술가들의 몫임을 알 것이다. 노틀담의 연대기 저자들의 말마따나, 그 큰 덩치로 말미암아 구경꾼에게 두려움을 던지는 이 장엄한 대성당을 보러 갈 때, 지금도 아직 볼 수 있는 그대로의 정면으로 경건하게 돌아가 보자. 오늘날 이 정면엔 세 가지의 중요한 것이 결핍되어 있다. 우선 옛날엔 그것을 땅바닥 위에 높이 솟아 올리고 있었던 열한 층의 계단이며, 다음엔 세 현관문의 벽 앞을 차지하고 있었던 조각상들의 아래쪽 계열, 그리고 이층 화랑을 튼튼히 받쳐 주고 있는, 실드베르로부터 시작해 필립 위귀스트에 이르기까지 '제국의 능금'을 손에 잡고 있는 저 옛날 프랑스 역대 왕의 28개 조각상의 위쪽 계열이다. 계단으로 말하자면, 세월의 불가항력적인 흐름이 시테 섬의 지면 높이를 서서히 높임으로써 그것을 사라져 버리게 했다. 그러나 파리 거리의 팽창로로 이 장엄한 건물의 높이를 더해 주고 있던 그 열한 층계를 하나씩 하나씩 먹어 삼키게 하면서도, 세월은 이 성당에서 뺏어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아마 그것에 주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건축물의 낡음을 그 아름다움의 나이로 변화시켜 주는 저 세기의 검은 빛깔을 이 정면에 펼쳐 준 것은 바로 세월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가 그 두 줄의 조각상들을 없애 버렸는가? 누가 그 벽 앞을 비워 버렸는가? 누가 그 중앙 현관 복판에다 새로운 절충식 첨두 홍예를 뚫어 놓았는가? 누가 감히 비스코르네트의 아라비아식 장식 옆에 루이 15세식 조각을 한 그 멋없이 둔중한 문을 끼워 넣었는가?-인간들이다. 현대의 소위 건축 예술가들이다. 그리고 우리 선조들이 경탄의 눈으로 저 현관 정면의 장미꽃과 성당 뒤쪽의 첨두 홍예 사이를 바라보던 그 빛깔 짙은 그림 유리 대신 누가 저 싸늘한 흰 유리를 갈아 끼워 놓았는가? 그리고 16세기의 성가대 대장은, 우리의 파괴적인 대주교들이 그 아름다운 노란 물감으로 그들의 대성당을 칠해 놓은 것을 본다면 대체 뭐라고 말할까? 그는 옛날에 망나니가 죄인의 집들을 바로 그런 빛깔을 가지고 칠했었다는 사실을 회상하리라. 그는 이 성스러운 장소가 더럽혀졌다고 생각하곤 달아나 버리리라! 대개 어느 나라에서나, 특히 프랑스에서는 중세의 고귀한 예술이 그렇게 취급돼 왔던 것이다. 그 파괴에 관해 세 가지 방식을 분간할 수 있겠는데, 그 세 가지가 모두 저마다 다른 깊이로 그것에 상처를 입혔으나, 첫째 세월은 눈에 띄지 않게 여기저기 표면에 구멍을 내고 도처에 녹을 슬게 했고, 둘째 정치적, 종교적 혁명들은 그 자체의 성질이 맹목이요 분노인지라 소란스레 달려들어 그 조각물과 세공품의 풍부한 복장을 찢고, 그 둥근 창들을 도려내고, 그 아라비아식 장식과 작은 조각들의 목걸이를 부숴뜨리고, 혹은 자기들의 주교관을 위해 혹은 자기들의 왕관을 위해 그 조각상들을 뽑아 내 버렸으며, 끝으로 갈수록 기괴망측해지고 어리석어진 유행이 있으니, 건축 양식의 필연적인 타락 과정에 있어 르네상스의 무정부주의적인 화려한 탈선으로부터 비롯해 가지가지의 유행이 범람했다. 유행은 혁명보다 더 많은 해독을 끼쳤다. 유행은 뿌리째 뽑아 내고, 예술의 뼈대를 침식하고, 형식에 있어서나 상징에 있어서나 논리에 있어서나 미에 있어서나, 건물을 무너뜨리고 베고 자르고 죽여 놓았다. 그런 뒤 유행은 그것을 고쳐 만들었는데, 세월이나 혁명은 적어도 그런 야욕은 없었던 것이다. 유행은 높은 감식안이란 허영적 이름 아래 고딕 건축물의 상처 위에다가 그 시시껄렁한 일시적 장신구를, 그 대리석 리본과 그 금속의 술을 갖다 댔다. 다시 말하거니와, 이러한 건축물들은 예술가나 고고학자나 역사가에 있어서 조금도 흥미 없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이 명시해 주고, 또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인도의 거대한 탑들이 명시해 주는 것으로 보아, 건축술이란 것이 얼마나 원시적인가 하는 사실을 그것들은 느끼게 해주며, 건축술의 최대의 산물은 개인적인 작품이라기보다 더욱 사회적인 작품이요, 천재적인 사람들이 내던져 놓은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고통 겪은 민중들의 아이요, 한 국민이 남겨 놓은 유산이요, 기나긴 세월이 이룩해 놓는 퇴적물이요, 인간 사회의 계속적인 발산물의 침전이라는 사실을 느끼게 해준다. 세월의 물결 하나 하나가 그의 충적토를 쌓아올리고, 민족 하나 하나가 건물 위에 그의 널판을 올려놓고, 개인 하나 하나가 그의 돌을 가져다 놓는 것이다. 꿀벌들도 그렇게 하고, 해리들도 그렇게 하고, 인간들도 그렇게 하는 것이다. 2 이 성당이 15세기엔 지니고 있었으나, 오늘날엔 없어진 대부분의 아름다움은 대충 지적했으나, 한 가지 중요한 점을 빠뜨렸으니, 그것은 당시 성당의 탑 위에서 바라보는 파리의 풍경이다. 종탑의 두꺼운 벽 속에 수직으로 뚫려 있는 어두컴컴한 나선 계단을 오랫동안 더듬어 올라간 뒤, 마침내 햇빛과 공기가 넘쳐흐르는 두 개의 지붕들 중 하나 위로 나오면, 눈 아래 단번에 드넓게 펼쳐지는 경관은 과연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파리는 누구나 알다시피, 하나의 요람과 같은 꼴을 하고 있는 저 시테라는 옛 섬 안에서 태어났다. 이 섬의 모래사장이 그 최초의 성벽이요, 센 강은 그 최초의 방비호였다. 파리는 그 남쪽과 북쪽에 각각 하나씩 두 개의 다리와, 동시에 그 성문이자 요새이기도 했던 오른쪽 강둑의 그랑 샤틀레와 왼쪽 강둑의 프티 샤틀레의 두 교두보를 갖고서 수백 년간 섬의 상태로 머물러 있었다. 그러다가 첫 왕가의 역대왕 이후, 파리는 그 섬 안에서 너무 좁아 몸을 돌릴 수 없게 되자 물을 건넜다. 그리하여 그랑 샤틀레를 넘어서고 프티 샤틀레를 넘어서서, 담과 탑으로 된 최초의 성이 센 강 양쪽에서 들판을 베어먹기 시작했다. 집들의 물결은 차츰차츰 도심지에서 바깥으로 밀려나와, 이 성벽에서 넘쳐흐르고, 그것을 갉아먹고 헐어뜨리고 지워 버린다. 1367년 이후 도시는 성 밖에 퍼질 대로 퍼져, 특히 오른쪽 강둑에서는 새로운 울타리가 필요해진다. 샤를르 5세가 그것을 세운다. 그러나 파리 같은 도시는 끊임없이 커져갈 뿐이다. 그런 도시들 외엔 수도가 되지 않는다. 그것은 한 나라의 지리적, 정치적, 지적 경사면의 끝이, 한 국민의 모든 자연적 경사면의 끝이 와 닿는 깔때기이다. 그것은 이를테면 문화의 우물, 그리고 또 한 국가에 있어서의 상업, 공업, 학문, 인구, 모든 정력과 생명과 영혼이 한 방울 한 방울, 한 시대 한 시대씩 스며들어 괴는 하수도이다. 15세기까지만 해도 파리는 제각기 다른 모습과 특수성, 풍속과 습관, 특권, 그리고 역사를 지닌 서로 판이하게 구별된 세 개의 도시, 즉 시테와 대학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시테는 섬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가장 작지만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어, 다른 두 도시의 어머니격으로, 이런 비유가 허용된다면 마치 성장한 두 명의 아름다운 딸 사이에 끼인 조그만 노파처럼 그 두 도시 사이에 끼어 있었다. 대학은 센 강 왼쪽 둑을 덮고 있었는데, 투르넬로부터 네슬 탑까지에 걸쳤으니, 오늘날의 파리로 말하자면 포도주 시장으로부터 조폐국에까지 해당된다. 수도는 파리의 세 부분 중 가장 컸는데, 오른쪽 강둑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 강둑은 여러 군데 끊어지긴 했지만, 비이 탑으로부터 부아 탑까지 센 강을 따라 달리고 있었으니, 오늘날로 말하자면 공설 곡물 창고가 있는 지점으로부터 튈르리 정원이 있는 지점까지 걸쳐 있었던 것이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파리의 이 세 개의 큰 부분은 각각 하나의 도시였지만, 너무나 특수해 홀로는 완전할 수 없는 하나의 도시, 다른 두 도시 없인 견딜 수가 없는 하나의 도시였다. 그러므로 제각기 판이한 세 가지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시테엔 성당이 많았고, 수도엔 저택이 많았고, 대학엔 학교가 많이 있었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구역 관할의 복잡함 속에 총체적인 것만을 들면, 섬은 주교의 소관이고, 오른쪽 강둑은 행정 장관의 소관이고, 왼쪽 강둑은 대학 총장의 소관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전체 위에, 시의 관리가 아니라 조정의 관리인 파리 시장이 있었다. 시테는 노틀담을 갖고 있었고, 수도는 루브르 궁과 시청을 갖고 있었고, 대학은 소르본을 갖고 있었다. 그러면 이러한 전체가 1482년에 노틀담의 탑 위에서 내려다보았을 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었을까? 그 꼭대기 위에 숨을 헐떡거리며 도착한 구경꾼에게 그것은 맨 먼저 눈부신 지붕과 굴뚝과 거리와 다리와 광장의 종루들이었다.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눈을 사로잡는 것이었다. 깎아지른 듯하고 뾰족뾰족한 지붕, 성벽 모퉁이에 매달린 소탑, 11세기의 피라미드식 석조 건물, 성당의 단정하게 네모진탑, 둥근 탑... 눈길은 오랫동안 그 미궁 속에 깊숙하게 잠겨 드는데, 거기엔 저마다 나름의 독창성과 특성과 동기와 아름다움이 없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앞면에 칠과 조각을 하고, 뼈대가 바깥으로 불거지고, 문이 반궁륭형이고, 위층들이 앞으로 튀어나온 작디작은 가옥으로부터, 당시는 탑이 즐비했던 장엄한 루브르 궁에 이르기까지, 예술에서 오지 않은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3 이 얘기가 일어나고 있는 때로부터 16년 전의 일이었다. 그 해의 부활절 후 첫 일요일 아침 미사가 끝난 뒤였다. 노틀담 성당엔, 성 크리스토프의 조각상을 허물어 버릴 생각을 한 이래로 기사 앙트완 데제사르 나리의 돌로 새긴 얼굴이 무릎 끊고 마주 바라보고 있던 그 독실한 상자의 '커다란 그림'의 맞은편 왼쪽 성당 앞뜰에 박아 놓은 침대틀 위에 웬 살아 있는 물체 하나가 놓여 있었다. 세상 사람들의 자비심에 맡기기 위해 버린 아이들을 이 침대틀 위에 갖다 놓는 것은 관례가 돼 있었다. 원하는 사람은 거기서 아이들을 주워 가는 것이었다. 침대틀 앞엔 동냥돈을 넣기 위한 구리 접시 하나가 있었다. 1467년 부활절 후 첫 일요일 아침에 그 침대틀 위에 누워 있는 일종의 생물 같은 것은, 그 주위에 몰려들어 있던 꽤 많은 군중의 호기심을 비상하게 끌었다. 군중은 대부분 여성들이었으며 대개가 늙은 여자였다. 첫째 줄에서 침대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있는 여자들 중 넷은, 회색 겉옷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무슨 종교 단체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란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존경할 만한 네 부인의 이름을 후세에 전해서는 안 될 까닭이 없다. 그들의 이름은 아니스 라 에르므, 잔느 드 다르므, 앙리에트 라 골티엘, 고셸 라 비올레트였다. 네 여자 모두 과부이며, 또한 모두 에티엔 오르리 예배당의 착한 부인네들로서, 강론을 들으러 오기 위해 원장의 허가를 얻어 외출한 것이었다. "이게 도대체 뭐죠, 언니?" 아니스는, 그토록 많은 사람이 바라보고 있는 데 질겁하여 나무 침대 위에서 몸을 비틀며 우는 그 버려진 조그만 생물을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그러자 나머지 여자들도 제각기 감상을 털어놓았다. "이러다간 우린 장차 어떻게 된다지. 사람들이 이제 어린애를 이 모양으로 만들어 내다면?" "난 어린애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이건 어린애가 아녜요" "이건 원숭이가 되다 만 거군요?" "저 우는 소리에 성가 대원도 귀가 아프겠어" "내 생각엔 이건 짐승이야. 유대교도가 암퇘지하고 만들어 놓은 거야. 요컨대 물에나 불에 던져 버려야 할 거예요" "에구머니나, 끔찍스러! 저기, 강을 내려가다 골목길 아래쪽으로, 주교님댁 바로 옆에 있는 고아원의 그 가엾은 유모들에게 젖을 먹이라고 누가 이 새끼 괴물을 가져다 줄 사람은 없을까! 나 같으면 차라리 흡혈귀에게 젖을 빨리겠어" "어쩜 저렇게도 순진할까. 그래 언니는 보면 몰라요. 이 새끼 괴물이 적어도 네 살은 되었다는 걸. 이 앤 언니의 젖꼭지 보담 꼬치구이를 더 먹고 싶어하겠수" 아닌게 아니라, 이 새끼 괴물은 갓 낳은 게 아니었다(필자 자신도 뭐라고 달리 부르기란 퍽 난처하다). 그것은 무척 울룩불룩하고 꿈틀거리는 조그만 덩어리였는데, 당시 파리의 주교이던 샤르티에 씨의 이름 첫 글자를 박은 베 자루 속에다 머리만 나오게 넣어 놓은 것이었다. 거기 보이는 것이라곤 붉은 더벅머리와 한 개의 눈, 입, 그리고 이빨뿐이었다. 눈은 울고 있고, 입은 외치고 있었으며, 이는 물어뜯으려고만 하는 것 같았다. 이 모든 것이 자루 속에서 버둥거리고 있어서, 끊임없이 주위에 모여들어 자꾸 불어 가기만 하는 군중은 그것을 보고 놀라 자빨질 지경이었다. 알로이즈 드 공들로리에라는 부유한 귀부인이 여섯 살쯤 된 예쁜 계집애 하나를 손에 잡고 머리쓰개의 끝에 기다란 베일을 늘어뜨린 채 그 침대틀 앞을 지나가다가 걸음을 멈추고 그 가엾은 생물을 잠깐 들여다보는 동안, 명주와 우단옷으로 몸을 감싼 귀여운 소녀 플뢰르 드 리스 공들로리에는 예쁜 손가락으로 침대틀에 항상 붙어 있는 '업동이'란 게시판 글자를 한자 한자 더듬어 읽고 있었다. "정말 난 여기다 어린애만 갖다 놓는 줄 알았는데..." 하고 귀부인은 불쾌한 듯 외면하며 말했다. 그녀는 등을 돌리며 접시 속에 플로린짜리 은전 한 닢을 던졌는데, 그것이 동전들 속에서 울려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래지게 했다. 잠시 후, 대법원장인 로베르 미스트리콜이 한쪽 팔엔 커다란 미사 경본을 다른 팔엔 아내를, 그렇게 해 자기 양쪽에 천상과 지상의 두 규제자를 끼고서 지나갔다. "주운 아이라!" 하고 그는 그 물체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나서 말했다. "이건 정녕 플레제토 강의 다리에서 주운 거렷다" "저건 눈이 하나밖에 없군" 하고 그의 아내가 지적했다. "다른 쪽 눈 위엔 물사마귀뿐이고" "그건 사마귀가 아니오" 대법원장 나리는 엄숙하게 대꾸했다. "그건 달걀인데, 그 속엔 또 똑같이 생긴 달걀 하나의 악마가 들어 있고, 그 속엔 또 다른 조그만 달걀 하나가 있는데 이 달걀도 다른 또 하나의 마귀를 갖고 있고, 또 거기도 내내 마찬가지요" "그걸 어떻게 아셔요?" "난 정확히 알고 있소" "대법원장님, 이 소위 업동이란 것으로 뭘 예언할 수 있나요?" 고셸이 물었다. "세상에도 무서운 불행이 닥쳐올 것이오" "아, 하나님 맙소사!" 한 노파가 소리쳤다. "지난 해엔 대단한 괴질이 있었고, 또 영국군이 아르플뢰로 대거 상륙해 오리란 소문이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난 파리의 선량한 시민들을 위해서 저 마술사는 널빤지 위보단 장작개비 위에 갖다 뉘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에요" 잔느가 외쳤다. "활활 타오르는 장작개비 위에 말예요!" 노파가 덧붙였다. 얼마 전부터 한 젊은 신부가 그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는 준엄한 얼굴, 넓은 이마, 깊숙한 눈의 소유자였다. 그는 말없이 군중을 헤치고 와선 그 '새끼 마술사'를 살펴보곤 손을 뻗쳤다. "내가 이 애를 가져다 기르리다" 신부는 이렇게 말하고 그 애를 자기 옷 속에 싸서 가져갔다. 군중은 놀란 눈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그는 잠시 후 당시 성당에서 수도원 경내로 통하던 붉은 문 안으로 사라졌다. 처음의 놀라움이 가시자 잔느가 작게 속삭였다. "내가 진작 말하지 않던가요, 언니. 저 젊은 신부 클로드 프롤로는 마법사라고요" 사실 클로드 프롤로는 평범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전세기의 타당찮은 말로써 '무차별하게 높은 평민 계급'이라고도 부르고, '작은 귀족 계급'이라고도 부르던 저 중간 가문의 한 집안에 속해 있었다. 이 집안은 파클레 형제로부터 티르샤즈의 봉토를 상속받았었는데, 그 봉토는 파리 주교의 소관이었으며 그것의 21가호는 13세기에 판사 앞에서 수많은 소송 거리가 되었다. 클로드는 어릴 때부터 이미 부모들에 의해 성직자가 되도록 결정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그에게 라틴어 읽기를 가르쳤으며, 눈을 수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하도록 길렀다. 아주 어려서부터 그의 아버지는 그를 대학 내의 토르시 학교에 가두었다. 그는 그곳에서 미사 독경과 독서로 자라난 것이다. 실제로 그는 침울하고 성실한 아이로서 열심히 공부했다. 놀 때에도 큰소리를 지르지 않았고, 푸아르 거리의 법석판에도 그닥 섞여 들지 않았으며, 연대기 작가들이 '대학의 여섯 번째 소동'이란 제목 아래 기록하고 있는 저 1463년의 폭동에도 전혀 가담치 않았다. 그는 또 가난한 학생들이 망토를 걸치고 다닌다고 해서 그들을 비웃는다거나, 도르망 학교의 장학생들이 까까머리에 청록색과 청색과 자주색의 삼색 나사 외투를 입고 있다고 해서 놀리는 일도 좀처럼 없었다. 반면 그는 생장 드 보베 거리의 크고 작은 학교에 부지런히 출석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열여섯 살 때 이 젊은 성직자 지망생은 신비 신학에 있어서 성당의 한 신부에 대하여, 율법 신학 시험에 있어서 공의회의 한 신부에 대하여, 그리고 스콜라 신학 시험에 있어서 소르본의 한 박사에 대하여 각각 자신의 설을 주장할 수가 있었다. 신학 수업을 마친 뒤 그는 교령에 뛰어들었다. 그는 '판결집'에서 '샤를르마뉴 법령집'으로 손을 뻗쳤다. 그리고 학문욕에 불타 차례 차례로 여러 교황령집을, 이스팔의 주교 테오도르의 교령집을, 윔스의 주교 뷰샤르의 교령집을, 샤르트르의 주교 이브의 교령집을, 그런 뒤엔 갸를르마뉴의 법령집에 계속된 그라티앵의 교령집을, 그 다음엔 또 그레고리 9세의 교령집을, 그 다음엔 오노리우스3세의 유명한 교서집을 탐독했다. 그는 테오도르 주교가 618년에 열고 그레고리 교황이 닫은 시대인, 저 중세의 혼돈 속에 투쟁해서 실시된 민법과 교회법의 방대하고 소란스러웠던 시대를 스스로 밝히고 그것에 정통하였다. 교령을 소화한 다음 그는 의학과 학예에 달려들었다. 그는 약용 식물학과 향초 약학을 연구했으며, 열병과 타박상과 농양의 전문의가 되었다. 또한 그는 학예의 모든 학사와 석사와 박사 학위 과정을 이수했다. 그리고 당시 사람들이 좀처럼 드나들지 않은 세전당인 라틴어와 희랍어와 히브리어 등의 언어를 공부했다. 그는 실로 모든 학문을 다 담으려는 정열에 불타 있었다. 이 젊은이에게 있어 인생은 단 하나의 목적, 즉 안다는 것밖엔 없는 것 같았다. 1466년 여름의 무더위로 인해 저 무서운 페스트가 창궐하여 자리의 자작령에서 4만의 인명을 앗아갔고, 특히 티르샤프 거리에선 이 역병의 피해가 크다는 소문이 대학에 퍼져 있었다. 바로 그곳, 그들의 봉토 한가운데엔 클로드의 부모들이 살고 있었던 것이다. 젊은 학생은 매우 놀라 부모의 집으로 달려갔다. 방에 들어가 보니,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미 죽어 있었다. 배내옷에 싸인 아주 어린 동생 하나가 요람 속에 버려진 채 울고 있었다. 가족 중 클로드에게 남아 있는 것은 그뿐이었다. 젊은이는 어린애를 안고 생각에 잠겨 나왔다. 여태껏 그는 학문 속에서밖에 살지 않았는데, 이젠 인생 속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었다. 젊은 나이에 형이 되고 가장이 된 그는 무참하게도 학문의 몽상에서 세상의 현실로 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이 어린 자신의 동생에 대해 열성을 다하였다. 아직 책밖엔 사랑하지 않았던 그에게 있어, 이 인간에 대한 애정이란 참으로 이상하고도 즐거운 것이었다. 그는, 이 세상엔 소르본의 사색과 호메로스의 시와는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을, 인간은 애정을 필요로 하고 애정과 사랑 없는 인생은 메마르고 시끄럽고 날카로운 톱니바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동생 장은 아직 젖먹던 때 어머니를 여의였던 것이므로 클로드는 자상한 유모를 대주었다. 티르샤프의 봉토 외에는 그는 장티의 사각탑에 속하는 물랭의 봉토를 아버지로부터 상속받고 있었다. 그것은 비세트르 성 근처의 한 언덕 위에 있는 방앗간이었다. 거기 방앗간 안주인이 귀여운 어린애 하나를 기르고 있었는데, 그곳은 대학에서 멀지 않았다. 클로드는 그 여자에게 직접 어린 동생 장을 안아다 주었다. 이때부터 그는 자신에겐 짊어지고 다녀야 할 짐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인생을 아주 진지하게 생각했다. 동생을 생각하는 것은 기쁨이 되었을 뿐 아니라, 그의 학문의 목적도 되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책임진 한 사람의 장래를 위해 자신을 송두리째 바치기로 각오하고, 자기 동생의 행복과 출세 외엔 다른 아내나 어린애를 결코 안 갖겠다고 결심했다. 그의 재능과 학문, 그리고 파리 주교의 직속 부하라는 신분으로 인해 성당의 문들은 그에게 활짝 열려 있었다. 그는 스무 살 때 교황청의 특별인가에 의해 신부가 되고, 노틀담의 가장 젊은 전속 신부로서 거기에선 느지막이 미사를 드리기 때문에 '게으른 사람들의 제단'이라 부르는 제단을 관리케 되었다. 그의 학자로서의 명성은 수도원에서 민중에게로 전해졌고, 그 당시엔 흔히 있던 일이지만, 그런 명성은 민중 사이에서 마법사란 평판으로 변해 갔다. 그가 그토록 증오의 대상이 되고 있던 그 불쌍한 '괴물'에게 다가간 것은, 자기가 죽으면 사랑하는 어린 장도 역시 저렇게 비참하게 널빤지 위에 던져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현듯 머리에 떠오른 환상과 그리고 삶의 모든 것이 한꺼번에 가슴 속에 밀어닥쳤기 때문이다. 그가 이윽고 어린애를 자루에서 꺼내 본즉, 과연 그것은 보통의 기형아가 아니었다. 이 가엾은 애는 왼쪽 눈 위에 물사마귀가 하나 있고, 머리는 어깨 속으로 들어가 있고, 등뼈는 활처럼 휘었고, 가슴뼈는 툭 불거져 나왔고, 다리들은 비틀려 있었으며, 무슨 말을 더듬거리고 있는지 알 순 없었지만 그가 지르는 소리는 어떤 힘을 나타내고 있었다. 젊은 신부의 동정심은 그 추악함으로 말미암아 더욱 커졌으며, 장래에 어린 장이 어떤 과오를 범하더라도 이 적선이 그 곁에 머물러 있도록, 그는 동생을 위해 이 아이를 기를 것을 가슴 속으로 맹세했다. 그는 아이에게 영세를 주고 카지모도란 이름을 붙였는데, 그건 그것으로써 그를 주운 날을 나타내고도 싶었거니와, 또한 그런 이름에 의해 이 가엾은 어린 생물이 얼마나 불완전하며 얼마나 생기다 만 정도였는가를 특징짓고도 싶어서였다(역주:카지모도는 부활절 후의 첫 일요일을 의미하며, 그날 미사의 첫 구절은 '갓 낳은 어린애들처럼'이란 말로 시작한다) 4 그리하여 1482년엔 카지모도는 성인이 되었다. 그는 몇 년 전부터 노틀담 성당의 종치기가 되어 있었는데 그것은 그의 양부인 클로드 프롤로 덕택이요, 클로드 프롤로는 조자스의 부주교가 되어 있었는데 그건 그의 종주인 루이 드 보몽 나리 덕택이요, 루이 드 보몽은 교므 샤르티에가 죽자 1472년에 파리의 주교가 되었는데, 그것은 하느님의 덕택으로 루이 11세 왕의 이발사가 된 올리비에르 댕이라는 그의 보호자 덕분이었다. 그래서 카지모도는 노틀담의 종치기였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이 종치기를 성당에 맺어 주는 뭔가 알 수 없는 밀접한 유대가 생겨났다. 그 알 수 없는 출생과 기형적인 체격이란 이중의 숙명에 의해 영원히 이 세상과 격리되고, 어려서부터 그 이중의 건너뛸 수 없는 원 속에 갇히게 된 가련하고 불쌍한 사내는, 이 세상에서 자기를 그늘 속에 맞아들여 준 성당의 벽 너머로는 아무것도 보지 않도록 길들어 버렸다. 노틀담은 그가 자라나고 커 감에 따라, 그에게 있어 차례 차례로, 달걀이었고 보금자리였고 집이었고 세계였다. 그리고 확실히 이 피창조물과 이 건물 사이엔 일종의 신비스런 조화 같은 것이 있었다. 아주 어렸을 적 그가 그 궁륭의 어둠 아래 꾸불꾸불 폴딱폴딱 뛰어다닐 때면, 정녕 괴물 같은 얼굴에 짐승 같은 모습을 하고 있던 그는, 마치 그 로마식 원기둥 머리와 그림자가 온갖 야릇한 형상을 던지고 있는 그 축축하고 컴컴한 돌바닥을 기어다니는 뱀과 같았다. 훗날 그가 처음으로 종탑 끈에 기계적으로 매달려 종을 흔들었을 때, 그것은 비로소 말문이 열려 얘기를 하기 시작하는 어린애 같은 인상을 그의 양아버지인 클로드에게 주었다. 그리하여 늘 대성당의 방향으로 자라 가고, 거기서 살고 자고, 거의 한 번도 거기서 나가지 않고, 줄곧 그 신비로운 압력을 받으면서, 시나브로 그는 그것을 닮아 가고 그 속에 틀어박혀, 마침내 그것의 일부를 이루기에 이르렀다. 그의 툭툭 불거진 각은 건물의 움푹움푹 들어간 각에 끼어 박혀, 그는 이 건물의 입주자일 뿐 아니라 그 자연적인 내용물이기도 한 듯했다. 카지모도는 그 안 깊이 들어가지 않은 곳이 한 군데도 없었고, 그 위 높이 올라가지 않은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 그는 다만 조각의 우툴두툴한 것을 이용해서 정면의 온갖 지점에까지 기어올라가는 일이 허다했다. 그 종탑들, 마치 수직의 벽을 기어다니는 도마뱀처럼 그가 그 바깥 표면을 기어다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었던 그 두 개의 거대한 쌍둥이같이 높고 험하고 무서운 종탑도, 그에겐 아무런 현기증도 공포감도 아찔아찔한 전율도 주지 않았다. 그의 육체만이 성당을 따라 형성된 게 아니라 그의 영혼 또한 그러했다. 그 넋이 어떤 상태에 있었으며 어떤 관습이 붙었던가, 그리고 그 굳어진 외피 아래서, 그 야성적인 생활 속에서 어떤 형태를 띠게 되었던가는 규정하기가 어렵겠다. 카지모도는 태어날 때부터 애꾸에다 꼽추에다 절름발이였다. 클로드가 그에게 말하기를 가르치기에 이른 것은 이만저만한 수고와 인내의 결과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 가엾은 병신에게는 하나의 숙명이 붙어 있었다. 열네 살에 노틀담의 종치기가 된 그에게는 또 하나의 새로운 불구가 찾아와 그를 완전 무결한 것으로 만들어 주었으니, 종들이 그의 고막을 찢어 결국엔 귀머거리가 되었던 것이다. 자연이 여태껏 세상을 향해 그에게 빠끔이 열어 놓았던 하나의 문이 느닷없이 영원히 닫혀 버린 셈이었다. 이 문이 닫히면서 아직 카지모도의 넋 속에 스며들어 있었던 단 한 줄기의 우울증은 그의 신체와 마찬가지로 고칠 수 없는 완전한 것이 되어 버렸다. 마지못해 말하지 않을 수 없게 됐을 때도 그의 혀는 굳어져 어둔하니, 마치 돌쩌귀가 녹슨 문과도 같았다. 정신이란 잘못된 육체 속에서도 위축됨이 확실하다. 카지모도는 자기 내부에서 자신의 형상대로 생긴 한 넋이 맹목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을 뚜렷이 느끼진 않았다. 물체의 인상은 그의 생각에 도달하기 전에 상당한 굴절을 받는 것이었다. 그의 두뇌는 하나의 특수한 중간이어서, 그것을 통과하는 관념들은 모두 비틀어져 가지고 나오는 거였다. 그의 불행의 두 번째 결과는 그를 심술궂게 만드는 것이었다. 사실 그는 심술궂었다. 왜냐하면 사귐성이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가 사귐성이 없는 것은 그가 추악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도 비상하게 발달된 힘은 그가 심술궂게 된 또 하나의 이유였다. "힘센 아이는 심술궂다"라고 홉스는 말했었다. 그에게 있어 심술궂음은 아마 천성적인 건 아니었을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 그가 첫발을 내딛었을 때부터 그는 자기 자신을 느꼈고, 다음엔 야유 당하고 모욕을 당하고 배척 당했었다. 인간의 말은 그에겐 항상 조롱이거나 저주였다. 그는 자라나면서 자기 주위에서 증오밖에 발견치 못했다. 그는 그 모든 사람들의 심술궂음을 배워 왔다. 어쨌든 성당만으로도 그에겐 충분했다. 성당은 적어도 그의 눈앞에서 웃음을 터뜨리지 않았으며, 그에 대해 조용하고 친절한 눈으로밖엔 보지 않았다. 그는 때때로 성당 내부의 조각상들 중 하나 앞에 웅크리고 앉아 호젓이 그와 더불어 얘기하느라고 몇 시간이고 보내기도 했다. 만약 뜻밖에 누가 오면 마치 세레나데를 부르다가 들킨 연인처럼 달아나 버리는 것이었다. 그가 이 어머니 같은 건물 속에서 무엇보다 사랑한 것은, 그리고 병신의 넋을 깨워 동굴 속에서 그렇게도 비참스레 오므리고 있던 그 가엾은 날개를 펴게 해준 것은, 다름 아니라 종탑들이었다. 그는 그것들을 사랑하고, 그것들을 애무하고, 그것들에게 얘기하고, 그것들을 이해하고 있었다. 종은 그에게 있어 마치 그가 기른 새들이 그를 위해서밖엔 노래하지 않는 그러한 새장과도 같았다. 그의 귀를 먹게 한 것이 바로 이종들이었지만, 어머니들은 흔히 자기들을 가장 괴롭힌 자식을 가장 사랑하는 것이다. 그것들만이 그가 아직 들을 수 있는 유일한 목소리였음은 사실이다. 종들을 크게 울리는 날 그의 기쁨이 어떠했을지는 좀처럼 상상하기 어렵다. 부주교가 그를 놓아 주며 "자!" 하고 말하면, 그는 종탑의 나선 계단을 다른 사람이 내려온 것보다 더 빨리 오르는 것이었다. 그는 헐레벌떡거리며 큰 종의 공중의 방 속에 들어가, 명상과 애정 속에서 잠시 들여다본 다음 조용조용 말을 걸고, 마치 바야흐로 장거리를 뛰게 하려는 말을 대하듯 손으로 어루만지는 것이었다. 그는 장차 종이 하게 될 수고에 대해 가엾어하였다. 카지모도는 종을 친 후 미친 듯 울음을 터뜨린다. 그러는 동안 종의 움직임은 한결 빨라지고, 그것이 더 넓은 각을 오고 감에 따라 카지모도의 눈도 더욱 크게 열려 불타오른다. 이윽고 종소리가 크게 울리기 시작하고, 온 탑이 흔들리고, 뼈대도 납덩어리도, 모든 것이 기초의 반석에서부터 탑 꼭대기의 장식에 이르기까지 한꺼번에 우렁우렁 울린다. 그러면 카지모도는 커다란 거품을 내면서 끓어오르고,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하며 탑과 더불어 머리에서 발끝까지 떤다. 종은 미친 듯 날뛰며, 수리 밖에서도 들리는 폭풍 같은 숨결이 쏟아져 나오는 그 청동의 아가리를 탑의 양쪽 안벽에 번갈아 열어 보인다. 카지모도는 그 떡 벌린 아가리 앞으로 가고, 웅크리고, 종이 돌아오면 다시 일어서고, 그 요란스런 숨결을 들이마시고, 저기 아래 까마득한 점처럼 군중이 우글거리는 깊은 광장과 시시각각 자기 귓속에 와 우렁거리는 그 거대한 구리 혀를 번갈아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것이 그에게 들리는 유일한 소리였고, 그에 있어 온 세상의 고요를 깨뜨리는 유일한 소리였다. 갑자기 종의 광란이 그를 사로잡아, 그의 눈은 이상한 빛을 띄고, 마치 거미가 파리를 기다리듯 느닷없이 그 위에 맹렬히 뛰어든다. 그리하여 심연 위에 매달리고 무시무시한 종의 흔들림 속에 던져진 그는 청동 괴물의 귀를 붙잡고, 두 무릎으로 그 여자를 껴안고, 두 뒤꿈치로 그녀에게 박차를 가하고, 전신의 충격과 무게로 더욱더 맹렬히 울리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는 동안 탑은 흔들리고, 그는 고함지르고 이를 갈며, 그의 붉은 머리털은 곤두서고, 그 가슴은 대장간의 풀무 같은 소릴 내고, 눈은 불꽃을 던지고 괴물 같은 종은 그의 아래에서 헐떡거리며 울곤 하는 것이었는데 그럴 때 그건 이미 노틀담의 종도 카지모도도 아니고 다만 하나의 꿈, 하나의 폭풍이었다. 이 비상한 존재가 있음으로 해서 성당 내엔 온통 뭔지 알 수 없는 생명의 숨결이 감도는 듯했다. 적어도 민중의 말이 전하는 말에 의하면, 노틀담의 모든 돌에 생명을 주고, 낡은 성당의 깊은 속까지 고동치게 하는 일종의 신비로운 발산물이 그에게서 풍겨 나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사실 이 성당은 그의 손아래서는 온순한 여자 같아서, 그것은 자기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그의 뜻을 기다리고 있었고, 마치 친밀한 수호신에 의해서처럼 카지모도에 의해 소유 당하고 충만돼 있었다. 그는 거기 어디에나 있었고 이 대건물의 모든 지점에서 갖가지로 활약하고 있었다. 때론 그 종탑들 중의 한 꼭대기 위에 기묘한 난쟁이 하나가 기어올라 꾸불꾸불 돌아다니곤 하는 것을 사람들은 볼 수가 있었는데, 그것은 새집에서 까마귀를 끄집어 내는 카지모도였다. 또 때론 성당의 캄캄한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 물상과 부딪치는 수가 있는데, 그것은 생각하는 카지모도였다. 흔히 밤중에 기괴한 형상 하나가 종탑 꼭대기를 장식한 가냘픈 난간 위를 얼쩡거리는 것을 보는 수가 있는데, 그것도 역시 노틀담의 꼽추였다. 그럴 때면, 이웃 여자들의 말에 의하건데, 온 성당이 어떤 환상적이고 초자연적이고 무시무시한 것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카지모도가 남들에 대한 악의와 증오에서 제외하여, 그의 대성당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사랑하고 있는 한 인간이 있었으니, 그것은 즉 클로드 프롤로였다. 그것은 단순한 일이었다. 클로드는 그를 맞아들여 양자로 삼았고, 그를 먹여 살리고 길러 주었던 것이다. 또한 클로드는 그에게 말하고 쓰고 읽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클로드는 그에게 종치기를 시켰으니, 그것은 줄리엣을 로미오에게 주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므로 카지모도의 고마움은 깊고 열렬하고 끝이 없었으며, 비록 그의 양아버지의 얼굴은 흔히 안개가 끼고 준엄하며, 그 말은 보통 짧고 무뚝뚝하고 고압적이었다고 할지라도, 그는 결코 일순간도 그 고마움을 저버리는 일이 없었다. 이 부주교는 카지모도의 속에 가장 순종하는 노예를, 가장 온순한 하인을 지니고 있었다. 5 1482년 카지모도는 스무 살 가량 되었고, 클로드 프롤로는 서른 여섯 살 가량 되었으니, 하나는 컸고 또 하나는 늙은 셈이었다. 클로드 프롤로는 이제 한 철부지의 자애로운 보호자였고, 많은 것을 알기도 하고 많은 것을 모르기도 하는 몽상적인 철학자였다. 그는 엄격하고 근엄하고 침울한 신부였고, 영혼의 책임자였으며, 조자스의 부주교님이었다. 그는 위압적이고 우울한 인물이어서 생각에 잠겨 위엄 있게 팔짱을 끼고, 얼굴이라고는 그 훌렁 벗겨진 커다란 이마밖엔 안 보일 정도로 머리를 가슴 위에 푹 수그리고서 성가대석을 천천히 지나갈 때면, 성가대의 어린이들이며 성가대 교관들이며 노틀담의 서기들은 그 앞에서 경직되고 마는 것이었다. 클로드 프롤로는 학문도 어린 동생의 교육도 포기하지 않고 있었으니, 그것은 그의 인생의 이대 관심사였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그 즐거운 일들에 약간의 고난이 섞여 들었다. 어린 장 프롤로-그가 자라난 곳의 이름으로 인해 장 프롤로 뒤 물랭이라고도 불리거니와-는 클로드가 그에게 들어서게 하고팠던 방향으로 커 가질 않았던 것이다. 형은 동생이 온순하고 경건하고 박학하고 훌륭한 학생이 되길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동생은 마치 정원사의 노력을 어기고 공기와 햇빛이 오는 쪽으로 끈덕지게 돌아가는 저 어린나무들처럼, 무성하고 울창한 아름다운 가지들을 나태와 무지와 방탕 쪽으로밖엔 뻗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때때로 장에게 매우 준엄하고 긴 설교를 하였는데, 장은 그것을 대담스레 받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설교가 지나가 버린 뒤면 그는 또 태연스레 그 반란과 엉뚱한 짓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 모든 것으로부터, 인간에 대한 애정 면에서 몹시 슬퍼지고 실망한 클로드는 더욱 열정적으로 학문의 품속에 뛰어들었다. 이 학문이라는 누이는 적어도 사람을 맞대 놓고 비웃지도 않으며, 때론 좀 실속 없는 돈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자기를 돌본 수고에 대해 언제나 대가를 지불해 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더욱더 학자가 되고, 또 그와 동시에 그 필연적인 결과로 성직자로서 더욱 엄격해지고, 인간으로서는 더욱더 우울해졌다.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인간 지식의 합법적인 것을 다 규명한 뒤 그는 불법적인 것 속에 과감히 뛰어들어 갔다고 한다. 그는 차례 차례로 지혜의 나무 열매를 모두 맛보고 나서 마침내 금단의 과실을 물어뜯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는 종종 1466년의 페스트에 희생된 사람들과 그의 부모가 묻혀 있던 생지노상 묘지를 찾아가곤 했는데, 그는 그 묘소의 십자가보다도, 바로 옆에 세워진 니콜라 플라멜과 그 아내의 무덤에 가득 차 있는 이상한 형상들에 훨씬 더 경건한 태도를 보이는 것 같았다. 분명한 것은, 사람들은 종종 그가 롱바르 거리로 걸어 내려가 에크리뱅 거리와 마리보 거리의 모퉁이를 이루고 있는 작은 집으로 슬그머니 들어가는 걸 보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니콜라 플라멜이 지은 집으로, 그가 거기서 죽은 후 사뭇 폐가가 되어 이미 허물어지기 시작했었는데, 그토록 모든 나라에서 온 수많은 연금술사들과 화금석 탐구자들이 자기 이름을 거기 새기는 것만으로 벽을 헐어뜨린 것이었다. 끝으로 분명한 것은, 부주교는 두 종탑 중 그레브 광장 쪽을 바라보는 탑속의 종이 있는 바로 옆에 조그만 독방 하나를 꾸며 놓고 있었는데, 그것은 극도로 비밀을 지켜, 사람들 말에 의하면 그의 허가 없이는 어떤 사람도, 주교라 할지라도 들어갈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 독방 속에 무엇이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으나, 밤이면 종탑 뒤쪽에 뚫린 하나의 조그만 채광창에 간헐적인 기묘한 붉은 불빛이 일정한 짧은 간격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곤 하는 것을 사람들은 시테 섬의 모래사장에서 종종 보았는데, 그 불빛은 풀무의 헐떡거리는 숨결을 따르는 것 같았고 등불보다 오히려 무슨 불꽃에서 오는 것 같았다. 어둠 속에 그 높은 곳에서 보이는 그런 불빛은 퍽 괴이한 인상을 주므로, 늙은 아낙네들은 이렇게 말하기도 하였다.-"저것 봐, 부주교가 숨을 쉰다" 그리고 늙어 가면서 그의 학문 속엔 심연이 형성되었는가 하면, 그 가슴 속에서도 역시 심연이 형성되었다. 적어도 얼굴을 살펴볼 때 거기엔 검은 구름을 통해서밖엔 그의 넋이 반짝이는 것을 볼 수 없었던 것으로 보아 사람들이 그렇게 믿는 것은 당연했다. 늘 수그리고 있는 머리, 한숨으로 늘 들어올려지는 가슴, 그것은 대체 어떻게 된 까닭일까? 그 찌푸린 두 눈썹이 싸우려 드는 두 마리의 소처럼 접근하는 바로 그런 순간 무슨 은밀한 생각이 그토록 씁쓸히 그의 입으로 하여금 미소짓게 하는 것이었을까? 어찌하여 그 남아 있는 머리털은 벌써 희끗희끗한 것일까? 이따금 눈길 속에서 터지는 그 내부의 불이 무엇이길래 그토록 그의 눈은 벽난로에 뚫린 구멍과도 같았을까? 이런 격심한 정신적인 불안의 징후는 이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는 시기에 특히 고도로 강렬해졌다. 성당 안에 홀로 있는 그를 보고 성가대의 소년이 무서워서 달아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는 더욱 엄격해져 갔고, 성격상으로나 직업상으로나 항상 여자들을 멀리하고 있었으며, 어느 때보다도 더 그들을 미워하는 것 같았다. 비단 치맛자락이 살랑거리는 소리만 들어도 그는 망토의 두건을 눈 위로 푹 내리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보헤미아 여자와 집시들에 대한 그의 증오는 얼마 전부터 더 심해진 것 같았다. 그는 특별히 집시 여자들이 성당 앞 광장에 와서 춤추고 북치는 것을 금지하는 포고를 내리도록 주교에게 청원했고, 또한 염소나 돼지나 양 등을 가지고 요망스런 짓을 한 공범자로서 화형이나 교수형에 처해진 남녀 마술사들의 예를 모으기 위해, 그때부터 성당 재판소의 곰팡이 슨 고문서를 모조리 조사했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부주교와 종치기는 대성당 부근의 시민들로부터 별로 사랑 받진 못하고 있었다. 클로드와 카지모도가 같이 외출하여, 노틀담의 비좁고 침침하고 싸늘한 거리를 함께, 하인은 주인 뒤를 따라 걸어가는 것을 사람들이 볼 때면, 악담이며 비꼬는 노래며 모욕적인 야유가 무수히 쏟아져 나왔다. 어떤 땐 당돌한 장난꾸러기가 말할 수 없는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 자칫 잘못하다간 뼈가 부러져 나갈 위험을 무릅쓰고 카지모도의 곱사등에 바늘을 꽂는 것이었다. 또 어떤 땐 예쁜 아가씨가 난잡하고도 뻔뻔스럽게, 부주교의 검은 법의를 스쳐 가면서 그의 코 밑에 향기를 풍기는 것이었다. 또 때론 한떼의 노파들이 대문 앞 계단 위의 어둠 속에 즐비하게 웅크리고 앉았다가, 부주교와 종치기가 지나갈 때면 "흥, 저것 봐! 하나는 넋이, 또 하나는 몸뚱이가 잘도 생겨 먹었어!" 하고 뇌까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신부와 종치기는 그런 욕설을 알아채지 못하고 지나쳐 버렸다. 그 모든 유쾌한 말들을 알아듣기엔 카지모도는 너무나 귀가 먹었고, 클로드는 너무나 몽상에 잠겨 있었던 것이다. 6 클로드의 명성은 멀리 퍼졌다. 그리하여 그 무렵 그는 방문 하나를 받게 되었는데, 그는 그 추억을 오래도록 간직했다. 어느 날 저녁, 그가 일을 마치고 성당의 독방으로 막 돌아온 참이었다. 이 독방은 한쪽 구석에 치워 놓은 꽤 수상한 일종의 분말로 가득 찬 몇 개의 유리병을 제외하고는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물론 여기저기 벽 위에 써 붙여 놓은 것들이 있었으나, 그것은 훌륭한 저자들의 책에서 뽑아 낸, 학문이나 신앙에 관한 금언이었다. 부주교는 필사본이 가득 쌓인 커다란 궤 앞 구리등 불빛 아래에 앉아 있었다. 그는 오노리우스 도당의 저서를 활짝 펴 놓고 그 위에 팔꿈치를 짚고서 한 권의 인쇄된 2절판의 책을 깊은 명상에 잠겨 뒤적거리고 있었다. 이 책은 그가 막 가져온 것으로서, 그의 독방 안에 있는 유일한 인쇄물이었다. 그가 한참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누가 문을 두드렸다. "누구요?" 하고 이 학자는 뼈를 물어뜯다가 방해 당한 개와 같은 목소리로 낮게 외쳤다. 그러자 바깥에서 한 목소리가 대답했다. "당신 친구인 자크 쿠악티에요" 클로드는 가서 문을 열었다. 그것은 과연 국왕의 주치의였는데, 그는 쉰 살쯤 된 인물로서, 그 무뚝뚝한 표정을 완화시키고 있는 것이라곤 오직 그 교활한 눈뿐이었다. 또 하나의 사내가 그 옆에 서 있었다. 두 사람이 다 회색 모피로 안을 댄 긴 가운을 빈틈없이 입고, 같은 빛깔의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들의 손은 소매 밑에 가려지고 발은 가운 밑에 가려지고, 눈은 모자 밑에 가려져 있었다. "이건 하느님이 도우신 거군요. 이런 시간에 이토록 고귀하신 방문을 받게 되리라곤 생각지 못했습니다" 부주교는 그들을 안으로 안내하며, 의사로부터 그의 동반자에게로 불안하고 탐색하는 듯한 시선을 돌렸다. "동 클로드 프롤로님과 같은 대학자를 찾아 뵙게 되어 그저 기꺼울 뿐입니다" 쿠악티에 의사는 대답했는데, 그의 프랑슈콩테 지방 사투리로 인해 말은 땅바닥에 끌리는 가운 자락처럼 장엄하게 끌렸다. 그리하여 의사와 부주교 사이엔 관례에 따라 이 시대 학자들간의 대화 앞에서 으레 교환되게 마련이었던 축하의 말이 시작되었다. "쿠악티에 박사, 조카이신 피에르 베르세께서 주교가 되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무척 기뻤습니다. 지금 그 분은 아미앵의 주교로 계시는지요?" "네, 그게 다 하느님의 은혜 덕택이죠" "크리스마스에 원장님께서 회계원 여러분들의 선두에 서 계실 때의 모습은 참으로 위풍당당하시더군요" "부원장이죠. 슬픈 일이지만 아직 그밖에 안 되었어요" "생 탕드레 거리에 짓고 계신 호화로운 주택은 이제 얼마나 진척되었나요? 그것은 루브르 궁전과 같더군요" "참 슬픈 일이지만, 그 모든 공사엔 엄청난 비용이 든답니다. 건물이 세워져 가는 데 따라 저는 파산할 지경이외다" "설마 그럴 리야 있겠습니까. 형무소와 대법원에서의 수입이 있고, 그 모든 건물과 푸줏간과 노점과 수도원의 단층집들로부터 수입이 있지 않습니까? 그야 썩 좋은 젖소에서 젖을 짜내는 것과 진배없을 텐데요" "푸아시의 내 영지에서는 금년에 아무 수입도 없었다오" "그렇지만 트리엘과 생 자므와 앙 레이의 통행세는 여전하겠지요?" "그건 백 몇십 리브로쯤 되지만, 파리 주화도 아닌 걸요" "박사께선 또 국왕 고문관이란 벼슬을 갖고 계시잖습니까. 그건 고종 수입이겠지요" "그렇죠. 그러나 그 빌어먹을 폴리니 장원은 평균하여 금화 육십 에퀴의 수입도 채 안 되거든요" 클로드가 쿠악티에게 보내는 찬사 속엔, 속인의 막대한 치부를 희롱하는 한 우월하고 불행한 사나이의 은근히 야유하는 듯한 신랄한 어조, 저 우울하고 잔인한 미소가 담겨 있었다. "그런데 참!" 하고 문득 클로드는 외쳤다. "댁의 환자이신 폐하께서는 요즘 어떠십니까?" "폐하께선 충분한 보수를 지불하시지 않습니다" 의사는 자신의 동행자에게 곁눈질을 하면서 대답했다. "그렇게 생각하오, 쿠악티에?" 동행자가 불쑥 물었다. 놀라움과 비난의 어조로 한 그 말에, 부주교의 주의는 이 알 수 없는 인물로 되돌아갔는데, 사실 그 사내가 방 안에 들어온 후 부주교는 한순간도 그로부터 눈을 완전히 뗀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쿠악티에가 다음과 같이 말했을 때 부주교의 표정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그런데 동 클로드님, 당신의 명성을 듣고 만나 보시고 싶어하는 교우 한 분을 모시고 왔답니다" 부주교는 쿠악티에의 동행자를 예리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 알 수 없는 사나이의 눈썹 아래서 그가 발견한 것은 역시 자기 못잖게 날카로이 경계하는 듯한 눈초리였다. 희미한 등불 빛으로 판단하는 한, 그는 예순 살 가량 된 노인으로, 키는 중키였고 꽤 약하고 노쇠한 것 같았다. 그 얼굴의 윤곽은 평민 같았지만, 어딘지 모르게 강력하고 준엄한 모습이었고, 그 눈동자는 동굴 안쪽에서 반짝이는 불빛처럼 깊숙이 휘어진 반달 같은 눈썹 아래서 반짝이고 있었다. 그는 장중한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부주교님의 명성은 저에게까지 들려 왔지요. 그래서 그 고견을 듣고 싶었던 겁니다. 저는 학자님들 방에 들어가기 전에 신을 벗는 한 보잘것없는 시골 양반에 불과합니다. 제 이름은 투랑조라고 합니다" 부주교는 그 어떤 강력하고 진지한 것 앞에 자기가 있음을 감지했다. 그는 높은 지성의 직관력에 의해 투랑조의 모피 달린 모자 아래서 역시나 못지 않은 하나의 높은 지성을 간파했으며, 그 장중한 얼굴을 바라봄에 따라, 쿠악타에의 존재가 그의 침울한 얼굴 위에 퍼져 오르게 했던 그 빈정거리는 조소의 빛은 밤의 지평선에 사라져 가는 석양빛처럼 차츰차츰 스러져 갔다. 그는 말없이 우울한 얼굴로 자신의 커다란 안락의자에 다시 앉고, 탁자 위의 여느 때와 같은 자리에 다시 팔꿈치를 짚고, 손으로 이마를 받쳤다. 잠시 명상에 잠기고 난 그는 두 손님에게 앉으라고 손짓하곤, 투랑조에게 말을 걸었다. "나리께서는 제 의견을 들으러 오셨다고 했는데, 무엇에 관해선지요?" "저는 병자입니다. 부주교님은 위대한 의술가라고들 하기에, 조언을 듣고 싶어 온 거지요" 부주교는 잠시 명상에 잠긴 듯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투랑조님, 돌아보십시오. 그러면 제 대답이 모두 벽에 씌어 있는 것을 보실 겁니다" 투랑조가 그의 말대로 돌아본즉, 다음과 같은 문장이 벽에 새겨져 있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의학은 몽상의 딸이니라" 의사 쿠악티에는 자기 동행인의 질문을 듣고 분노했는데, 동 클로드의 대답을 듣고는 더욱 분개했다. 그는 투랑조의 귀에 얼굴을 기울이고, 부주교에겐 들리지 않을 만큼 나직한 소리로 말했다. "이건 미친 놈이라고 진작 여쭙지 않았습니까, 그런데도 만나 보시러 하시다니!" "그야 이 미친 놈의 말이 옳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야, 자크 박사!" 그러자 의사는 쌀쌀하게 부주교에게 말을 건냈다. "당신은 재빨리 일을 해치우는군요, 클로드님. 그리고 원숭이가 개암 따원 아랑곳도 않듯 히포크라테스엔 아랑곳도 않으시는군요. 의학이 몽상이라고! 그래 당신은 피에 미치는 미약의 영향이나 살에 미치는 고약의 영향을 부인하시는군요! 병자를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영원한 약학을 당신은 부인하시는군요!" "저는 병자도 약학도 부인하지 않아요. 제가 부인하는 건 의사입니다" "그렇다면 물방울이 내부의 수포진이라는 것도, 대포의 상처에 구운 생쥐를 붙여 치료한다는 것도, 젊은 피를 적당히 주사해서 늙은 혈관에 젊음을 돌려 준다는 것도 모두 사실이 아니군요" "어떤 것에 관해서는 저는 저 나름의 생각을 갖는 거지요" 부주교는 조금도 흥분하지 않고 대답했다. 쿠악티에는 성이 나서 얼굴이 새빨개졌다. 투랑조가 한동안 잠자코 있다가 입을 열었다. "클로드 선생, 저는 참 난처합니다 그려. 저는 선생께 의논을 두 가지 하려고 했던 것인데, 하나는 제 건강에 대한 진단이고, 또 하나는 제 운명에 대한 판단이었지요" "선생님의 생각이 그러셨다면, 계단을 올라오시느라 헐떡거리지 말 걸 그랬군요. 전 의학을 믿지 않아요. 그리고 점성술 또한 믿지 않습니다" "정말인가요!" "별빛 하나 하나가 한 인간의 머리와 결부되는 실이라고 상상하다니 말도 안 됩니다!" "그럼 당신은 무엇을 믿습니까?" 부주교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다음과 같이 대답했는데, 그 미소는 마치 그 대답을 부인하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하느님을 믿습니다" "존경하는 선생님, 당신이 그렇게 훌륭한 종교를 지니고 계시는 걸 보니 전 마음속으로 퍽 기쁩니다. 그러나 당신은 이제 학문을 믿지 않을 정도로 그렇게도 위대한 학자이신가요?" 부주교는 투랑조의 눈을 보았는데, 열정의 빛이 그의 흐릿하던 눈동자 속에 타올랐다. "아니올시다. 저는 학문을 부인하진 않습니다... 저는 동굴의 숱한 갈랫길에서 납작 엎드려 손톱을 땅에 박고 오래오래 기어다닌 나머지 마침내 저 앞 멀리 어두컴컴한 지점에서 하나의 빛을, 하나의 불꽃을, 아마도 참을성 있고 슬기로운 사람들이 거기서 하느님을 뜻밖에 발견한 눈부신 중앙 실험실의 불빛일지도 모를 어떤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 결국 당신은 무엇을 진실하고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연금술입니다" 쿠악티에가 곧 반박했다. "부주교님, 연금술도 물론 제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만, 의학과 점성술을 모독하시는 까닭은 뭡니까?" "잠깐만요! 당신의 방법은 어느 것도 진실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반면 연금술은 갖가지의 발견을 했소. 나리는 다음과 같은 결과들에 이의를 내세우시렵니까? 땅 아래에 천 년 동안 갇혀 있는 얼음은 바위 수정으로 변해 가고 있습니다. 납은 모든 금속들의 선조입니다. 납은 각각 이백 년의 기간만 있으면 차례 차례로 납 상태에서 적비소 상태로, 적비소에서 주석으로, 주석에서 은으로 옮아갑니다. 이런 것들은 사실이 아닙니까?" "나도 연금술을 공부했는데, 난 단언하거니와..." 성급한 부주교는 그가 말을 마치게 두지 않았다. "나도 의학과 점성술과 연금술을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오직 여기에만 진리가 있어요(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궤 위에서 앞서 말한 그 분말로 가득 찬 유리병을 집었다) 오직 여기에만 빛이 있어요! 히포크라테스, 그건 꿈이오. 우라니아, 그것도 꿈이오. 헤르메스, 그건 사상이오. 금, 그건 태양이며, 금을 만든다는 건 신이 되는 것이오. 그것만이 유일한 학문이오. 허무, 허무... 인체는 암흑이요, 천체도 암흑입니다!" 그러더니 그는 강력하고 영감을 받은 듯한 태도로 안락의자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투랑조는 잠자코 그를 지켜보았다. 쿠악티에는 그를 비웃으려고 애쓰고, 약간 어깨를 들먹거리며 나지막하게 "미친 놈" 하고 뇌까렸다. "그래서 그 신묘한 목표에 도달하셨소? 금을 만드셨소?" 투랑조가 별안간 말했다. "만일 제가 금을 만들었다면," 부주교는 곰곰 생각하는 사람처럼 한 마디 한 마디 천천히 대답했다. "프랑스의 왕은 루이라는 분이 아니라 클로드라는 사람이 될 것이오... 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담?" 부주교는 말을 계속했으나, 이제 자신의 생각에밖엔 대답하고 있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렇지가 못하다. 난 아직도 기고 있다. 난 지하도의 조약돌에 무르팍을 벗기고 있다. 언뜻언뜻 볼 뿐 자세히 들여다보진 못한다! 난 읽는 것이 아니라 한자 한자 주워 읽을 뿐이다!" 투랑조는 벌써 오래 전부터 클로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된 것 같았다. 그는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이거야 원! 대관절 당신이 읽는 것이란 뭔가요?" "이것이 그 중의 하나입니다" 부주교는 이렇게 말하곤 독방의 창을 열면서 거대한 노틀담 성당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성당은 별이 총총한 하늘 위에 그 두 개의 탑과 돌의 옆구리와 괴물 같은 궁둥이의 검은 그림자를 우뚝 솟아 올리고 있어, 마치 시내 한복판에 앉아 있는 두 개의 머리를 가진 한 거대한 스핑크스와도 같았다. 부주교는 한동안 말없이 그 거창한 건물을 바라보고 있다가, 한숨지으면서 오른손을 자기 책상 위에 펼쳐 놓은 인쇄된 책 쪽으로, 왼손을 노틀담 쪽으로 뻗치고, 책에서 성당으로 슬픈 눈을 옮기며 외쳤다. "아, 슬프도다... 이것이 저것을 죽이리라!" 그는 깊은 명상 속에 여전히 잠겨 있는 것 같았으며, 유명한 누렌 베르크 출판사에서 나온 책 위에 둘째 손가락을 구부려 짚고 있었다. 그 뒤 그는 또 다음과 같은 신비로운 말을 했다. "오, 슬프도다! 작은 것들이 큰 것들 뒤에 온다... 이빨이 덩어리를 물리친다... 나일강의 쥐가 악어를 죽인다... 책은 건물을 죽이리라!" 수도원의 소등 신호가 울릴 때 자크 박사는 자기 동행자에게 아주 나지막한 목소리로 또 같은 말을 되뇌었다. "이건 미친 놈입니다" 이에 대해 그 동행자도 이번엔, "그런 것 같구려" 하고 대답했다. 이제 어떤 외부인도 수도원 안에 머물러 있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투랑조는 부주교와 작별하면서 말했다. "나는 학자들과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들을 사랑하며, 당신을 무척 존경하고 있소. 내일 투르넬 궁으로 와서 생 마르탱 드 투르의 사제를 찾아 주오" 부주교는 투랑조란 방문객이 어떤 인물이라는 것을 마침내 깨닫고, 생 마르탱 드 투르의 기록집에 있는 다음과 같은 문장을 회상하면서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생 마르탱의 사제, 즉 프랑스 국왕은 성당 참사원의 관습을 따르며, 성 베난티우스가 갖는 조그만 성직록을 가지며, 재무관 자리에 앉는다'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이때부터 부주교는 국왕이 파리에 올 때엔 자주 회견을 했고, 그의 신임은 국왕을 몹시 거칠게 다루는 의사 쿠악티에를 능가했다고 한다. 7 "이것이 저것을 죽이리라. 책은 건물을 죽이리라"라는 부주교의 수수께끼 같은 말은 대체 무슨 뜻일까? 필자의 판단으로는, 그것은 두 가지의 면을 갖고 있다. 그것은 첫째, 신부로서의 사상이었다. 그것은 하나의 새로운 기구인 구텐베르그의 빛나는 인쇄기에 대한 성직자의 두려움과 놀람이었다. 그것은 인쇄된 말에 놀라는 강론과 필사본이요, 지껄여진 말과 씌어진 말이었다. 천사 레지옹이 그의 육백만 날개를 펴는 것을 보는 한 참새의 당황과도 비슷한 그 무엇이었다. 그것은 해방된 인류가 벌써 웅성거리는 소리를 듣고, 미래에 지성이 서서히 신앙을 무너뜨리고, 여론이 믿음의 자리를 빼앗고, 세계가 로마를 뒤흔드는 것을 보는 예언자의 외침이었다. 그것은 '인쇄기가 성당을 죽이리라'는 것을 뜻하고 있었다. 두 번째는, 인류의 사상이 형식을 바꾸면서 바야흐로 그 표현 방법을 바꾸게 될 것이고, 각 세대의 주요한 생각은 이제 같은 재료와 같은 방식으론 기록되지 않을 것이며, 그렇게도 견고하고 영속적인 돌의 책은 바야흐로 한결 더 견고하고 영속적인 종이의 책에 자리를 내놓게 될 것이라는 예감이었다. 그것은 '인쇄술이 건축술을 죽이리라'는 뜻이었다. 실로 유사 이래 15세기에 이르기까지 건축술은 인류의 위대한 책이요, 힘에 있어서나 지성에 있어서나 간에, 그 여러 발전 단계에 걸쳐 인간의 중요한 표현이었다. 최초의 인간들의 기억력이 스스로 과중함을 느꼈을 때, 인류의 기억의 짐이 너무나도 무거워지고 혼잡해져 고정되지 않은 벌거숭이의 말이 도중에 기억을 잃을 염려가 있었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가장 뚜렷이 보이도록, 가장 영구적임과 동시에 가장 자연스런 방식으로 땅 위에 옮겨 써 놓았었다. 최초의 건축물은 '쇠가 닿지 않은' 바윗덩이에 불과했다. 건축물은 모든 글자와 마찬가지로 시작됐다. 사람들은 하나의 돌을 세웠으니 그것은 하나의 글자였고, 글자마다 하나의 상형 문자였으며, 하나 하나의 상형 문자 위에, 마치 원기둥 위 기둥머리처럼 한 무리의 관념들이 놓였다. 최초의 인간들은 온 지상의 도처에서 같은 시기에 그렇게 했던 것이다. 전설은 상징을 낳고, 상징 이래 전통은 마치 잎사귀 아래 나무 줄기처럼 사라져 갔으며, 인류가 믿고 있던 그 모든 상징은 더더욱 커져 가고 불어 가고 엇갈려 가고 얽혀 가서, 초기의 건축물은 이제 그것을 담기에 충분치 못하게 돼 도처에서 그것이 넘쳐흘렀으니, 이 건축물들은 아직도 그것들과 마찬가지로 단순하고, 땅 위에 벌거숭이로 누워 있는 원시적 전통을 간신히 표현하고 있었을 따름이었다. 상징은 건물 속에서 온전히 피어날 필요가 있었다. 건축물은 이때 인간의 사상과 더불어 발달하고, 수천의 머리와 수천의 팔을 가진 거인이 되고, 영원하고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 볼 수 있는 형태 아래 그 모든 유동적인 상징을 고착시켜 놓았다. 힘의 상징인 데달루스가 측정하고 있는 동안, 지성의 상징인 올페우시가 노래하고 있는 동안, 하나의 글자인 기둥과 하나의 음절인 홍예와 하나의 낱말인 각뿔은 기하학의 법칙과 시의 법칙에 의해 동시에 움직여져, 서로 한데 어울리고 섞여지고, 내려가고 올라가고, 땅 위에 나란히 놓여지고 공중에 층층이 겹쳐져, 마침내 그것들은 한 시대의 생각의 구슬 아래 솔로몬의 신전과 같은 놀라운 건물이기도 한 책들을 썼다. 근본 사상인 하느님의 말씀은 다만 이 모든 건물들의 안쪽에만이 아니라 그 형태 속에도 있었다. 그 동심원적 울타리의 하나하나 위에서 성직자들은 표현되어 눈에 나타난 하느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하여 힌두스탄의 가장 태고적 파고다로부터 쾰른의 대성당에 이르기까지, 건축술은 인류의 위대한 문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실이어서, 비단 종교적 상징만이 아니라 인류의 사상이 그 거대한 책 속에 자신의 몫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문화는 신정으로 시작되고 민주주의로 끝난다. 통일의 뒤에 오는 이 자유의 법칙은 건축 속에 기록돼 있다. 그 예로서 중세를 들어 보자. 중세는 우리에게 보다 가까우므로 보다 똑똑히 보이기 때문이다. 교황적 통일의 확고한 상형 문자인 저 신비로운 로마식 건축술이 처음엔 혼돈 속에서 솟아나는 사람들이 듣고, 다음엔 기독교의 숨결 아래 조금씩 조금씩 솟아오르는 것을 본다. 사실 당시의 모든 사상은 로마의 양식 속에 씌어져 있다. 사람들은 거기에서 곳곳에 권위를, 통일성을, 침투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을 느낀다. 곳곳에 성직자를 느끼되 결코 인간을 느끼진 않으며, 곳곳에 특권 계급을 느끼되 결코 민중을 느끼진 않는다. 그러나 십자군이 도착한다. 그것은 커다란 하나의 민중 운동인데, 어떤 커다란 민중 운동도 그 원인과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그 마지막 앙금으로부터 으레 자유 정신을 발산시키기 마련이다. 바야흐로 새로운 것들이 나타나려 한다. 별안간 농민 폭동과 반란과 동맹들이 휘몰아치는 격동 시대가 열린다. 권위는 흔들리고 통일은 깨어졌으며, 유럽의 모습이 바뀌어졌다. 그러자 또한 건축의 모습도 바뀌어졌다. 문화와 마찬가지로 건축술은 책장을 넘겼고, 시대의 새 정신은 그 논술 아래 책장을 쓸 수 있도록 준비돼 있음을 발견한다. 옛날엔 그렇게도 독단적인 건물이었던 그 대성당 자체도 이후론 시민과 자유에 의해 침범되어, 성직자로부터 빠져나가 예술가의 세력 아래 떨어진다. 예술가는 그것을 제멋대로 세운다. 신화여, 신비여, 안녕! 여기 있는 것은 환상과 변덕뿐이다. 성직자가 그의 교회당과 제단을 갖고 있는 한 그는 아무런 할말도 없다. 사면의 벽은 예술가의 것이다. 건축의 책은 이제 성스런 종교에, 로마에 속하지 않는다. 그것은 상상력과 시와 민중의 것이다. 민중의 재능과 독창력은 주교들이 했던 일을 한다. 각 민족은 지나가면서 그 역사를 책 위에 쓴다. 모든 신정적 건축의 일반적 성격은 불변성, 진보의 혐오, 전통적인 선의 보존, 상징의 불가해한 변화를 갖고 있는 자연과 인간의 모든 양상의 변함 없는 주름이다. 그것은 비밀스런 전언에 통한 사람들만이 판독할 수 있는 난해한 책이다. 게다가 모든 형태가(기형마저도) 여기서는 하나의 뜻을 갖고 있어서 그것을 신성한 것으로 만들어 주고 있다. 이 건축에 있어서는 교리의 엄격함이 화석처럼 돌 위에 퍼져 있다. 반대로 민중의 건축물의 일반적 성격은 다양성, 진보성, 독창성, 풍만함, 항구적인 움직임이다. 이 건축은 이미 충분히 종교에서 떠나 있으므로, 자체의 아름다움을 생각하고 보살피며 끊임없이 그 장식을 바꿀 수 있다. 15세기엔 모든 것이 변한다. 인간의 사상은 건축보다 더 견고하고 내구력이 있을 뿐 아니라 더 단순하고 용이한 하나의 방법을 발견한다. 건축물은 실각한다. 올페우스의 돌글자에 이어 구텐베르그의 납글자가 오게 된다. 책은 정녕 건물을 죽이려 한다. 인쇄술의 발명은 역사상 가장 놀라운 사건이다. 그것은 근본 혁명이다. 인류의 표현 양식이 전적으로 새로워지고, 인간의 사상이 하나의 형태를 버리고 다른 형태를 취하는 것이다. 인쇄술이라는 형태 아래 사상은 어느 때보다 더욱 불멸의 것이 되었다. 그것은 날아다니고, 붙잡을 수 없고 파괴할 수 없다. 그것이 공기에 섞여 든다. 건축의 전성기엔 그것은 산이 되어 강력하게 한 시대와 한 장소를 점령하고 있었다. 이제 그것은 한떼의 새가 되어 사방으로 흩어지고 동시에 모든 공간의 점을 차지한다. 홍수가 온다 하더라도, 산은 물결 아래 사라져 버릴지언정 새들은 역시 날것이며, 대홍수의 표면에 단 한 척의 방주라도 떠 있다면 새들은 거기 앉아 배와 더불어 맑은 날을 볼 것이며, 그 혼돈 속에서 솟아 나올 새로운 세계는 눈을 뜨고서 삼켜져 버린 세계의 사상이 자기 위해 살아 날개를 펴고 둥둥 떠돌아다니는 것을 보리라. 인쇄술이 발명된 때부터 건축술이 차츰차츰 얼마나 여위어 가고 오그라져 가고 발가벗겨져 가고 있는가를 보라. 물은 줄어들고 진은 잦아들고 시대와 국민들의 생각은 건축에서 얼마나 물러가고 있는가! 출판은 아직 나약하여, 강력한 건축의 잉여 생명력을 우려먹을 뿐이다. 그러나 16세기부터는 건축술의 병은 눈에 보이기 시작하고, 이미 사회를 잘 표현치 못하게 되고, 고전 예술이 되어 버렸다. 이러한 쇠퇴를 사람들은 르네상스라 부른다. 그러나 화려한 쇠퇴이다. 건축술이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예술에 불과해지자, 그것이 이미 종합 예술이 아니게 되자마자, 그것은 다른 예술들을 붙잡는 힘을 잃게 되었다. 그러므로 다른 예술들은 해방돼 저마다 갈 길을 간다. 고립은 모든 것을 키워 주어, 조각술은 조상술이 되고, 판화는 회화가 되고, 돌림 곡조는 음악이 된다. 마치 하나의 제국이 그 황제 알렉산더가 죽자 해체돼 그 지방들이 왕국이 되는 것과 같다. 그리하여 라파엘, 미켈란젤로의 저 눈부신 16세기의 찬란함이 태어난다. 예술과 동시에 사상도 곳곳에서 해방된다. 16세기는 종교적 통일을 깨뜨린다. 인쇄술 이전이라면 종교 개혁은 교회 분리에 불과했을 터이나 인쇄술이 그것을 혁명으로 만들었다. 건축술이 쇠퇴함에 따라 인쇄술은 점점 진전하고 커져 갔다. 인간의 머리가 건물에 소비하고 있던 힘을 이후로는 책에 소비한다. 그리하여 16세기부터 쇠퇴하는 건축술의 수준까지 자란 인쇄술은 세계에 한 위대한 문학적 세기의 향연을 주기에 충분할 만큼 권위를 지니고 의기양양히 확고부동한 자리를 차지한다. 제4장 분홍신 1 인생을 조용하고 즐겁게 지낼 만한 숱한 이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파리 시장인 로벨 데스투트빌 씨는 1482년 정월 초이렛날 아침 잠을 깼을 때 몹시 기분이 나빴다. 어찌 된 까닭일까? 그것은 그 자신도 말할 수 없었으리라. 그건 하늘이 흐렸기 때문일까? 낡은 혁대가 잘못 죄어져 시장의 뚱뚱한 몸을 너무 묶어 놓고 있었기 때문일까? 창 아래 거리에, 건달들의 셔츠도 없이 맨몸에 저고리를 걸치고, 구멍난 벙거지를 뒤집어쓰고, 배낭과 술병을 허리에 차고서, 네 명씩 떼지어 자기를 경멸하며 지나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일까? 또는 미래의 왕 샤를르 8세가 파리 시장의 수입에서 370리브르를 떼내게 될 것을 예감했기 때문일까? 아무튼 그는 기분이 나빴다. 그것은 축제의 이튿날이었으니 누구에게 있어서나 고달픈 날이지만, 더구나 파리에서 축제가 빚어 놓는 모든 오물-본래적인 의미로나 비유적인 의미로나-을 쓸어 내야 하는 직책을 갖고 있는 이 관리에 있어서는 한층 그러했다. 그리고 그는 또 그랑 샤틀레에서 법정을 열어야만 했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바에 의하면, 재판관들이란 대개 국왕과 법률과 사법의 이름 아래 자기들의 짜증을 적당히 퍼부을 사람을 누구고 언제나 갖기 위해서, 그들의 재판의 날은 또한 그들의 짜증이 날이 되도록 미리 준비를 갖추는 것이 보통인 것이다. 재판은 시장 없이 시작되었다. 그의 재판 보좌관들이 관례에 따라 일을 대행하고 있었다. 아침 여덟 시부터 여남은 명 가량의 남녀 시민들이 샤틀레의 아래 법정의 어두컴컴한 한구석에 빽빽이 웅크리고 앉아, 갖가지의 광경을 참관하게 된 것을 무상의 기쁨으로 여기면서, 이곳의 배석 판사이자 파리 시장의 보좌관인 플로리앙 바르브디엔느 나리가 뒤죽박죽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내리는 재판을 즐기고 있었다. 법정실은 작고 낮고 둥근 천장을 하고 있었다. 나리꽃으로 장식한 책상 하나가 안쪽에 있는데, 조각한 떡갈나무로 만든 시장의 커다란 안락의자가 빈 채 거기 딸려 있고, 그 왼쪽엔 배석 판사 플로리앙 나리의 걸상이 놓여 있었다. 아래쪽엔 서기가 앉아 냅다 갈겨쓰고 있었으며, 그 맞은편에 민중이 있고, 문과 책상 앞엔 자줏빛 제복을 입은 수많은 경찰이 있었다. 두꺼운 벽에 좁다랗게 뚫린 단 하나의 첨두형 창문만이 정월의 희멀건 햇살로 두 개의 기묘한 형상-둥근 천장의 가장자리에 장식용으로 새겨 놓은 돌 악마와, 방 안쪽에서 의자 위에 앉은 판사를 비추고 있었다. 상상해 보라. 법정 책상의 무늬 없는 갈색 나사 법의 자락 위에 발을 올려놓고, 팔꿈치를 짚고 웅크리고 있는 사나이-그 얼굴은 흰 새끼양 모피 속에 싸여 있는데, 그 눈썹은 툭 튀어나오고, 붉고 까다로운 표정에, 눈을 깜박거리고, 턱 아래에 가서 합쳐진 양쪽 볼의 기름기를 위엄 있게 쳐들어 보이고 있는, 샤틀레의 배석 판사 플로리앙 바르브디엔느 나리를... 그런데 이 배석 판사는 귀머거리였다. 배석 판사로는 가벼운 결점이었다. 플로리앙은 그래도 요지부동으로 적절히 판결을 내리는 것이었다. 확실히 판사란 듣는 시늉만 하고 있으면 충분한 것인데, 이 존경할 만한 배석 판사는 그 주의가 어떤 소리라도 딴데 쏠릴 수 없으므로, 훌륭한 재판을 함에 있어서 필요한 조건을 갖고 있었던 셈이다. 게다가 그는 방청객 속에 자신의 일거일동에 관한 가차없는 비평자 하나를 갖고 있었으니, 그것은 곧 우리의 친구 쟝 프롤드 뒤 물랭이었는데, 이 귀여운 건달은 교수들의 강단 앞만 제외하곤 언제 어디서나 만나 볼 수 있는 인물이었다. "저런!" 하고 그는 자기 눈 아래 전개되는 사건을 논평하면서, 옆에서 히죽히죽 웃고 있는 친구 로뱅 푸스팽에게 나지막이 말하는 것이었다. "저건 잔느 통 뒤 뷔이송 아냐! 카냐르 노프의 미인 아가씨로군! 저 늙은이가 정말 저 여자에게 유죄 언도를 내리네! 그러고 보니 저 녀석은 귀도 없지만 눈도 역시 없구나! 두 개의 묵주알을 갖고 다녔다 해서, 파리 주화 15솔 4드니에의 벌금이야! 저 사람은 뭐야? 여관 주인 로뱅 빌 아냐! 여관업자의 인정을 받게 됐다 해서 돈을 치르게 한다? 이건 그의 가입금이렷다... 아니, 저 악당들 사이에 두 귀족이 있잖아! 에글레 수앵과 위탱 마이로구나. 아! 저 양반들은 주사위놀이를 했군. 난 언제나 우리 총장님을 여기서 뵐 수 있을까?... 국왕 폐하께 바치는 벌금으로 파리 주화 백 리브르라! 저 판사 나리는 사정도 없이 치는걸-하기야 그는 귀머거리이니까!-난 내 형처럼 부주교가 되고 싶다. 만일 그것이 내가 노름하는 걸 막아만 준다면... 그런데 아이고 성모 마리아님, 웬 아가씨들이 저렇게도 많이 차례 차례로! 오, 순한 양들이여... 앙브루아즈 레퀴엘! 이자보 베네트! 베라르드 지로댕! 난 저 계집애들을 다 알고 있지. 제기랄 것, 벌금형에 처함! 벌금형에 처함! 파리 주화 10솔의 벌금이야! 요염한 계집애들아! 오, 저 늙은 판사놈 같으니, 귀머거리에 멍텅구리! 오, 제게 식탁에 앉아 소송인들을 먹고 있다, 밥을 먹고 있다, 배를 양껏 채우고 있다!... 저 자식은 또 뭐야? 저건 헌병 지에프루아마본느가 아닌가! 저 녀석은 성부의 이름을 저주했구나. 벌금형에 처함. 이런 늙은 귀머거릴 보았나! 저기 끌고 들어오는 건 뭐냐? 수많은 순경들이 오지 않는가! 사냥개들이 다 동원됐군. 아주 굵직한 사냥감임에 틀림없다. 멧돼지쯤 되나?-과연 그렇다. 그것도 썩 훌륭한 놈이다! 저건 어제의 우리 왕이다, 우리 광인 교황이다, 우리 종치기다, 우리 꼽추다, 저건 카지모도다..." 바로 그임에 틀림없다. 카지모도는 꽁꽁 묶이고 친친 졸라 매인 채 엄한 감시를 받고 있었다. 그를 에워싸고 있는 경찰대는 가슴엔 프랑스의 문장을, 등엔 파리 시의 문장을 각각 수놓은 옷을 입은 부대장이 몸소 인솔하고 있었다. 게다가 카지모도에겐 그 기형을 제외하고는, 그 같은 총과 장비를 정당화 할 수 있는 건 그다지 없었다. 겨우 그 외눈이 때때로 자신을 동여매고 있는 포승 위에 엉큼하고 성난 시선을 던질 뿐이었다. 그러는 동안 판사 플로리앙 나리는 서기가 자기에게 제출한 카지모도에 대한 소송 문서를 주의 깊게 뒤적거렸는데, 그렇게 훑어보고 난 그는 한참 곰곰이 생각하는 것 같았다. 심문에 착수할 때 언제나 취하는 이런 신중함 덕택으로, 그는 미리 피고인의 이름과 신분과 범죄를 알게 되고, 예상된 대답에 대한 예상된 응수를 꾸미고 하여, 자기가 귀머거리임을 눈치채게 하지 않고 모든 우여곡절을 무난히 넘기기에 성공하는 것이었다. 만일 어쩌다가 무슨 엉뚱한 질문으로 그가 귀머거리임이 나타나게 될 때면, 어떤 사람들에게는 무슨 심오함으로 간주되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리석음으로 간주되곤 했다. 두 가지 경우에 모든 사법관으로서의 명예는 조금도 상처받지 않았을 것이, 판사란 귀머거리라는 평판을 받는 것보다는 어리석다거나 심오하다는 평판을 받는 것이 한결 낫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가 귀머거리임을 모든 사람들의 눈앞에서 감추는 데 몹시 신경을 썼으며, 보통은 퍽 잘 성공했으므로 마침내 아주 양호하다고 착각을 하게까지 되었다. 사실 그것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그렇게 되기 쉬운 법이다. 모든 곱사등이는 머리를 쳐들고 다닌다고 생각하고, 모든 말더듬이는 장광설을 한다고 생각하고, 모든 귀머거리는 나지막이 말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제 그는 카지모도의 문제를 심사숙고하곤, 머리를 뒤로 젖히고 한결 위엄과 공정을 갖추려고 반쯤 눈을 감고 있었으므로, 즉 귀머거리와 동시에 장님이 된 판이었다. 이런 태도로 그는 심문을 시작했다. "이름은?" 그런데 여기에 법률에 의해 예상되지 않았던 경우가 생겼으나, 즉 귀머거리가 귀머거리를 심문해야 할 경우였다. 카지모도는 자기에게 질문이 걸려온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기에, 대개의 경우 피고가 그러하듯 대답한 줄 믿고 태연스럽게 기계적으로 심문을 계속했다. "좋아. 나이는?" 카지모도는 이 질문에도 역시 대답하지 않았다. 판사는 그 질문이 충족된 줄 믿고 계속했다. "그럼 직업은?" 여전히 똑같은 침묵... 방청객은 그 동안 서로 마주 보며 쑤군거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됐어" 판사는 피고가 세 번째 대답을 끝냈다고 생각했을 때 말을 이었다. "그대가 우리들 앞에 고소된 것은, 첫째 밤중에 난동을 하였고, 둘째 미친 여자의 신체에 폭력을 가했고, 즉 창녀에게 가해하고, 셋째 국왕 폐하의 친위 헌병들에게 반항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점에 관한 그대의 의견을 진술하라... 서기, 피고인이 지금까지 말한 것을 다 기록했는가?" 공교롭게도 이 질문이 나오자 서기와 방청객들이 모두 폭소를 터뜨렸는데, 그것이 하도 격렬하고 하도 걷잡을 수 없이 장내를 가득 채웠으므로, 두 귀머거리들도 그것을 알아채지 않을 수 없었다. 카지모도는 경멸하듯 그 곱사등을 들먹거리면서 돌아보았고, 한편 판사 나리는 구경꾼들의 웃음이 피고의 어떤 무엄한 대답으로 인해 유발된 것임이 분명하다고 생각하곤 분노하여 그를 힐책했다. "저런 고얀 놈 봤나. 네가 지금 한 대답은 교수형을 받아 마땅하다! 그댄 지금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지 아는가?" 이런 질책은 장내에 흥취가 폭발된 것을 멈추기에 적절하진 못했다. 그것은 누가 봐도 뚱딴지 같고 얼빠진 것 같아, 미친 듯한 웃음이 문 앞의 순경들에게까지 옮아 갔다. 오직 카지모도만이 진지한 태도를 간직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자기 주위에서 일어나는 것을 통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 성이 난 판사는, 같은 태도로 계속함으로써 피고를 공포에 떨게 하면 그것이 청중에게 반향을 일으켜 정숙해지리라 싶어서 그렇게 해야겠다고 작정했다. "이 타락한 놈아! 그래, 그대는 감히 샤틀레의 배석 판사에게, 파리 민중 경찰의 사법관에게 무례하게 군단 말인가? 범죄와 악행을 수사하고, 모든 직업을 단속하고, 독점을 금지하고, 닭과 물새의 소매상을 못 하게 하고, 장작을 관리케 하고, 도시에선 진흙을 공기에선 전염병을 제거하고, 한 마디로 봉급도 없고 쉴 새 없이 공무에 종사하는 것을 직책으로 삼고 있는 이 사법관에게 말이다! 그대는 아는가, 본인은 파리 시장님의 보좌관이라는 것을?" 귀머거리에게 말하고 있는 귀머거리는 말을 멈출 이유가 없다. 만일 이때 안쪽의 낮은 문이 갑자기 열려 파리 시장 나리에게 길을 터주지 않았다면, 그처럼 웅변의 바다를 전속력으로 항해하고 있던 판사는 언제 멈출 것인지 하느님만이 아시리라. 시장 나리는 이맛살을 찌푸리고 카지모도에게 매우 위압적이고 의미심장한 몸짓을 했으므로, 이 귀머거리도 뭔가 좀 깨달았다. 시장은 그에게 준엄히 질문했다. "대관절 넌 무슨 짓을 했길래 여기 끌려 왔느냐, 이 악당아?" 그러자 가엾은 꼽추는 파리 시장이 자기에게 이름을 묻는 줄 알고, 평소에 지키던 침묵을 깨뜨리곤 목구멍에서 나는 쉰소리로 대답했다. "카지모도라고 해요" 다시금 폭소가 터지기 시작했고, 시장 나리는 새빨갛게 달아올라 외쳤다. "넌 나마저도 조롱하는 거냐, 흉악무도한 놈아!" 카지모도는 자기가 뭘 하는 사람인가를 설명해야 하는 것인 줄 알고 다시 대답했다. "노틀담의 종치기입지요" "종치기라고!" 시장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아침에 매우 기분 나쁜 상태에서 잠을 깼는지라, 그렇게도 괴상망측한 대답에 이를 갈았다. "나리님께서 소인의 나이를 알고 싶으시다면, 성 마르탱 제일에 스무 살이 되는 줄 아뢰오" 이번이야말로 너무나도 심했다. 시장은 이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요런 고얀 놈 봤나! 넌 시장을 우롱하는구나? 순경들, 저 흉측한 놈을 그레브의 죄인 공시대로 끌고 가서 한 시간 동안 때리고 돌려라. 제기랄 놈! 그리고 네 개의 나팔로 이 판결을 포고하라" 서기는 즉시 판결문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제기랄, 참 훌륭한 판결이군!" 학생 장 물랭이 한구석에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시장은 머리를 돌려 번쩍거리는 눈으로 다시금 카지모도를 쏘아보았다. "저 악당이 제기랄이라고 말한 것 같구나. 서기, 욕한 벌금으로 파리 주화 12드니에를 추가해라. 그리고 벌금의 반액은 생 퇴스 타슈 성당의 재산 관리 위원회의 소유로 돌리도록 해라. 난 그 성당에 대해 특별한 신앙심을 갖고 있으니까" 얼마 후 서기가 판결문을 제출하니 시장은 거기 도장을 찍고, 여러 법정을 돌아보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장 물랭은 속으로 웃고 있었다. 카지모도는 이 모든 것을 영문도 모르고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2 우리가 어제 그랭구아르와 더불어 에스메랄다를 뒤따르기 위해 떠났던 그레브 광장으로 독자를 다시 데려가는 것을 허락해 주기 바란다. 아침 열 시, 거기서는 모든 것이 축제 뒷날의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광장 돌바닥은 종이 조각이며 누더기, 장식용 깃털, 리본, 촛방울, 그리고 음식 부스러기들로 덮여 있다. 많은 시민들이 여기저기 산책하면서, 기쁨의 화톳불에서 생겨난 잿더미를 발로 차기도 하고, '기둥 집' 앞에서 간밤의 아름다웠던 장면을 회상하며 황홀감에 빠지기도 하고, 오늘은 그 자리에 박힌 못을 바라보면서 마지막 즐거움을 느끼기도 한다. 포도주와 맥주 장수들이 사람들 사이로 술통을 굴리며 간다. 몇몇 통행인이 분주하게 오락가락 한다. 축제며 광인 교황의 얘기가 모든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누가 더 그럴싸하게 비평하고 누가 더 잘 웃어 대는지 경쟁이라도 하는 것 같다. 그러는 동안, 조금 전에 죄인 공시대의 사방에 와서 자리잡은 네 명의 기마 순경은 벌써 그들의 주위에다 광장에 흩어져 있던 일부의 민중을 끌어 모아 놓았다. 광장 곳곳에서 벌어지는 시끄러운 광경에서 눈을 돌려 광장 서쪽의 투르롤랑의 옛집 쪽을 바라보면, 정면 모서리에 풍부한 채색 삽화가 든 커다란 공중용 성무 일과서가 있다. 그것은 조그만 처마로서 비를 막고, 철책이 붙어 있어 책장을 뒤적거리며 볼 순 있어도 훔쳐 가진 못하도록 돼 있다. 이 성무 일과서 옆에 하나의 좁다란 첨두형 채광창이 보이는데, 그것은 십자형의 두 쇠막대기로 닫혀 있고, 광장 쪽으로 틔어 있는 바, 이 낡은 집의 아래 층 벽 두께 속에 만들어 놓은, 멋없는 조그만 독방엔 오직 그 구멍을 통해서만 약간의 공기와 햇빛이 들어올 수 있으며, 파리에서도 가장 붐비고 가장 시끄러운 광장이 주위에서 웅성거리고 떠들어 대고 있느니만큼 이 독방은 더욱 더 깊고 음산한 고요로 차 있다. 이 독방은 약 3세기 전에, 롤랑드 드 롤랑 공주가 십자군에서 죽은 아버지의 상을 입고서, 자기 자신의 집 벽 안에 그 독방을 파게 하여 그 속에 영원히 틀어박히고 궁전의 나머지는 모조리 가난한 사람들과 하느님께 주어 버린 때부터 파리에서 유명해졌다. 비탄에 잠긴 공주는 20년 동안이나 이 무덤 속에서 죽음을 기다리면서 아버지의 혼백을 위해 밤낮으로 기도 드리고, 베개라곤 돌멩이 하나도 없이 재 속에서 자고, 검은 자루를 뒤집어쓰고, 행인들이 측은하게 여겨서 채광창 주위에 갖다 놓는 빵과 물로만 살았으니, 자기 스스로 적선한 뒤에 그처럼 남의 적선을 받았던 것이다. 그녀가 죽어 다른 분묘로 갔을 때, 그 여자는 이 분묘를 다른 괴로워하는 여자들에게 - 남을 위해서나 자기 자신을 위해 많이 기도 드려야 하고 격한 고통이나 커다란 고행 속에 산 채로 파묻히고자 하는 여자들에게 영원히 물려주었다. 그 시대의 가난한 사람들은 그녀에게 눈물과 축복의 아름다운 장례식을 해주었지만, 그들이 매우 섭섭히 여긴 것은, 이 경건한 아가씨는 후원자가 없었으므로 성인품에 오를 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로마에서보다는 천국에서 더 쉽사리 그것이 실현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고인을 위해 교황 대신 그저 하느님께만 기도를 드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롤랑드를 성녀로서 추억하고 그녀의 누더기를 고이고이 간직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한편 시청에서는 이 공주를 위해 공중용 성무 일과서를 창설하여 독방의 채광창 옆에 그것을 고정시켜 놓음으로써, 행인들로 하여금 설령 기도를 드리기 위해서만이라도 때때로 거기 걸음을 멈추게 하고, 기도를 드림으로써 적선을 생각케 하여, 롤랑드 공주의 동굴을 이어받은 가엾은 은자들이 완전한 굶주림과 망각으로 죽어 버리지 않도록 하였다. 이런 종류의 무덤은 중세의 도시에 있어서 그리 드문 것이 아니었다. 가장 왕래가 잦은 한길이나, 일종의 지하실이나 벽과 쇠살로 둘러친 오두막이 있어, 그 안쪽에선 어떤 영원한 한탄과 속죄에 자진해 몸을 바친 인간이 밤낮으로 기도 드리는 것을 사람들은 종종 볼 수 있다. 이 이상한 유령이, 집과 화장터와 묘지와 도시와의 일종의 중간 거리인 이 끔찍스런 독방 가운데 들어가 살아 있는 인간이, 어둠 속에서 마지막 기름을 태우고 있는 이 등불이, 묘혈 속에서 가물거리는 이 생명의 나머지 숨결이, 이 돌상자 속의 그 영원한 기도가, 이 토굴 속에 사로잡힌 육체가, 육신과 화강암의 외피 아래서 고통하는 이 영혼의 울림이, 오늘날 우리들의 마음속에 불러일으킬 가지가지 생각들-그러한 것을 당시의 군중은 별로 느끼지 않았다. 당시의 신앙심은 하나의 종교 행위에 있어 여러 가지 면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신앙심은 사물을 한 덩어리로 파악하고, 희생을 존중했으나, 그 희생의 고통을 분석하지 않았으며 그것을 별로 측은히 여기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그렇게 추상성도 없고, 과장도 없고, 확대경도 없이 육안으로 보고 있었다. 물질적인 것을 위해서나 정신적인 것을 위해서나, 아직 현미경은 발명되지 않았던 것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그다지 신기하게 여기진 않았지만, 방금 말한 바와 같이 도시 한복판에 그런 종류의 유폐의 예는 사실 흔히 있었다. 파리엔 하느님께 기도 드리고 고행하는 그런 독방이 꽤 많았으며, 거기엔 거의 다 사람들이 들어 있었다. 성직자들은 그런 독방을 비워 둘 생각이 없었다. 그것은 신자들의 신앙심이 미지근함을 뜻하기 때문이므로, 만일 고행자가 없을 경우엔 문둥이를 넣어 놓았던 것이다. 아무튼 이 이야기가 일어나고 있는 시대에 롤랑의 독방엔 사람이 들어 있었다. 그것이 누구였는지 알고 싶다면, 필자가 독자의 주의를 '독방'에 돌리고 있을 때, 강물을 따라 샤틀레로부터 그레브 쪽으로 거슬러 올라가 바로 독방 방향으로 가고 있는 착한 세 아낙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만 하면 되리라. 3 그 여자들 중 둘은 파리 시민 같은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흰 깃 장식이며, 붉고 푸른 줄무늬가 있는 치마, 가장자리에 색실로 수놓은 흰 양말을 다리 위로 바짝 치켜올려 신고 있는 모양이며, 특히 그녀들의 모자는 리본과 레이스를 잔뜩 드리우고 금박 은박으로 장식된 일종의 삼각모인데, 이 모든 차림새로 보아, 하인들이 '아주머니'라고 부르는 것과 '마님'이라고 부르는 것과의 중간을 차지하고 있는 저 부유한 상인 계급에 그 여자들이 속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여자들은 반지도 금십자가도 차고 있지 않았는데, 그것은 가난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벌금을 물까 봐 두려워 그렇다는 걸 이내 알 수 있었다. 그들과 동행하는 여자도 거의 비슷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으나, 그녀의 복장과 거동엔 뭔지 알 수 없는, 시골의 공증인 부인과 같은 느낌을 주는 데가 있었다. 그녀의 허리띠가 허리 위로 올라가 있는 점으로 보아 오래 전부터 파리에 와 있는 여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처음의 두 여자들은 시골 여자에게 파리를 구경시켜 주는 저 수도 여자 특유의 걸음걸이로 걷고 있었다. 세 번째의 시골 여자는 사내애 하나를 손에 잡고 있었고, 이 사내애는 커다란 빵과자 하나를 손에 들고 있었다. 날씨가 무척 추운 때인지라, 이 애가 제 혀를 손수건처럼 놀리고 있었음을(즉 코를 핥으려고) 덧붙여 두지 않을 수 없음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어린애는 힘겹게 끌려가면서 끊임없이 비트적거리고, 그럴 때마다 어머니로부터 야단을 맞는 것이었다. 그가 길보다는 빵과자를 더 많이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아마 무슨 중대한 곡절이 있어 그는 빵과자를 들고 가야만 했으리라. 볼이 포동포동한 사내애를 애타게 만들다니 잔인한 일이었다. 그 동안 세 아낙네들은 연이어 지껄이고 있었다. "빨리빨리 가요, 마예트 댁" 셋 중 가장 젊고 뚱뚱한 여자가 시골 여자에게 말했다. "너무 늦지 않을까 걱정이군요. 그를 곧 죄인 공시대로 끌고 가리라고 그러던데요" "아니, 그게 무슨 소리죠, 뮈스니에 댁?" 또 하나의 파리 여자가 말을 이었다. "그는 두 시간 동안이나 죄인 공시대에 묶여 있을 텐데 뭐. 마예트 댁, 조인을 공시대에 묶어 놓은 걸 본 적이 있으세요?" "네, 랭스에서 봤지요" "호호, 그까짓 것! 랭스의 죄인 공시대쯤 시시한 우리에 불과하고 거기서 돌리는 것도 기껏 농부겠죠" "농부라고요! 우린 거기서 참으로 굉장한 죄인을 봤는 걸요. 아비와 어미를 죽인 죄인들을 말예요! 농부라고요, 우릴 어떻게 보고 그런 말씀을 하세요!" 확실히 이 시골 여자는 자기네 죄인 공시대의 명예를 위해 화를 내려 하고 있었다. 다행히 신중한 뮈니스에 댁이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마예트 댁, 우리 플랑드르의 사신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랭스에도 그렇게 화려한 사신들이 있나요?" "솔직히 말해서 그 같은 플랑드르 사람들을 볼 수 있는 건 파리밖엔 없지요" "엊저녁에 그들은 시청에서, 파리 행정 장관님 댁에서 진수 성찬을 받았는데, 육계 포도주며, 사탕조림이며, 그 밖에 온갖 진기한 것들을 차려 냈어요" "지금 무슨 말을 하고 계세요, 아줌마?" 다른 파리 여자인 제르베즈가 외쳤다. "플랑드르 사람들이 저녁 식사를 한 건 추기경님 댁인 푸디 부르봉에서 였다오" "아녜요, 시청이에요" "안 그렇다니까요. 푸디 부르봉에서였어요" "시청이었다니까 그러네!" "아니, 부르봉에서였다니까! 그래서 그 저택 현관 대문 위에 적혀 있는 '희망'이란 말을 돋보기로 조명했다니깐 그러네" "시청이야! 위송 봐르가 플루트를 연주하기까지 했는걸!" "그렇지 않단 말야!" "그렇단 말야!" 만일 이때 마예트가 별안간 다음과 같이 외치지 않았던들 싸움은 커졌으리라. "저기 다리 끝에 모인 사람들을 좀 봐요! 그들 한복판에 뭐가 있는데 그걸 바라다보고들 있네요" "어머, 정말!" 제르베즈가 말했다. "북 치는 소리가 들리는군요. 에스메랄다 소녀가 염소와 함께 춤추고 있는 것 같구먼. 자, 빨리 가요! 마예트 댁, 발걸음을 재촉하고 얘기를 어서 끌어요. 아줌마는 파리의 신기한 것들을 구경하려고 여기 오신 게 아녜요? 어젠 플랑드르 사람들을 보셨으니 오늘은 잠시 계집애를 보셔야잖겠어요?" "집시 계집애!" 마예트는 갑자기 가던 길을 되돌아서고 아들의 팔을 힘껏 쥐면서 말했다. "제발 하느님께서 지켜 주시옵소서! 저 계집애는 내 아들도 훔쳐 갈 거야! 오너라, 외스타슈!" 그러면서 그녀는 강둑 위를 달리기 시작해 다리에서 썩 멀리까지 갔다. 그러나 어린애가 무릎을 끊고 쓰러졌다. 그녀는 숨이 차서 걸음을 멈추었다. 제르베즈가 다가가며 말했다. "저 집시 계집애가 댁의 아들을 훔쳐 간다니? 거참 별스런 생각도 다 하시는군요?" 마예트는 무슨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한 건..." 뮈스니에가 옆에 와서 지적했다. "그 자루 수녀도 집시 계집애에 관해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점이야" "자루 수녀란 뭐예요" 마예트가 물었다. "귀뒬 수녀 말예요" "귀뒬 수녀라니요?" "귀뒬 수녀가 뭔지 모르다니, 참으로 아주머니는 랭시 사람이군요! 그건 독방의 은자 말이라오" "아니, 지금 우리들이 이 빵과자를 갖다 주려는 그 가련한 여자 말인가요?" 마예트의 말에 뮈스니에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바로 맞혔어요. 그 여자는 광장에서 북치고 점치는 저 보헤미아의 방랑자들에 관해 아줌마와 같은 견해를 갖고 있어요. 그 여자가 어떡해서 집시와 보헤미아 사람을 무서워하게 됐는지 모르겠어요. 왜 그들을 보기만 해도 달아나죠?" "아!" 마예트는 자기 아들의 머리를 손으로 움켜잡으며 말했다. "나는요, 저 파케트 라 샹트 플뢰리에게 일어났던 일이 내게도 일어나길 바라지 않아요" "저런! 그 얘길 우리에게 들려 주시겠어요?" "그런 걸 모르다니, 참으로 아주머니들은 파리 사람임이 분명하군요! 그럼 얘기하지요. 그렇지만 그 얘길 하기 위해 걸음을 멈출 필요는 없어요. 그럼 얘기하겠는데, 파케트 라 샹트 플뢰리는 그때, 다시 말하자면 지금부터 18년 전에 나와 마찬가지로 열여덟 살의 예쁜 처녀였는데, 오늘날은 나처럼 남편과 아들 하나를 둔 서른 여섯 살의 어머니가 돼 있지 못한 것은 그 여자의 잘못이지요. 그건 그렇고 그 여자는 기베르토라는 랭스의 배의 음유 시인의 딸이었는데, 그이는 바로 샤를르 7세의 대관식 때 임금님 앞에서 노래를 부른 분예요. 이 늙은 아버지가 세상을 떴을 때 파케트는 아직도 어렸어요. 그래서 그녀는 어머니밖에 없게 되었는데, 이 어머니는 파리의 바랭 가를랭 거리에서 유기 그릇 장수를 하다가, 작년에 작고한 마티외 프라동 씨의 누이동생뻘이 되지요. 그녀의 어머니는 불행하게도 착한 여자여서, 파케트에게 약간의 장식품과 장난감 제조술밖엔 아무것도 가르쳐 주질 못했어요. 두 모녀는 랭스의 강가인 폴 페느 거리에서 살고 있었어요. 이 점을 주의해야 돼요. 파케트가 불행해진 건 바로 거기 원인이 있다고 생각되거든요. 우리의 임금님이신 루이 11세가 대관식을 하시던 해인 61년에, 파케트는 어떻게나 명랑하고 어여뻤던지, 어디서나 사람들은 그 애를 라 샹트 플뢰리라고밖엔 부르지 않았어요. 가련한 처녀였지요. 그 애는 고운 이를 갖고 있었고, 그것을 드러내 보이기 위해 웃기를 좋아했어요. 그런데 웃기를 좋아하는 처녀는 눈물을 향해 걸어가는 거고, 아름다운 이는 아름다운 눈을 타락시키는 법이지요. 아무튼 모녀는 어렵게 살림을 꾸려 가고 있었어요. 그들의 장난감 제조는 일주일에 6드니에 이상의 수입을 가져다 주지 않았으니, 기베르토 영감이 노래 하나 불러서 파리 주화 12솔을 벌던 시절은 어디 갔단 말인가? 그 해 겨울, 이 두 모녀가 장작도 나뭇가지도 없고 날씨는 몹시 추웠을 때, 샹트플뢰리가 아리땁게 꾸미고 나서자 사내들은 파케트, 파케트! 하고 불렀고, 또 많은 사내들은 파크레트, 파트레트! 하고 불러, 그 여잔 몸을 망쳐 버렸어요... 외스타슈, 넌 빵과자를 베먹으려는 거 아냐! 어느 주일날 그녀가 몸에 금 십자가를 걸고 성당에 나왔을 때 우린 이내 그녀가 타락한 걸 알았어요. 맨 처음엔 랭스에서 7마장쯤 떨어진 곳에 종탑을 가지고 있는, 그 젊은 코르몽트뢰유 자작이었어요. 그러나 마지막엔 늙은 초롱 장수 티에리에게로, 또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군요. 대관식 때, 같은 해인 61년에, 난봉꾼 중의 왕자와 잠자리를 해준 것이 바로 그녀였는데...!" 마예트는 한숨을 쉬곤 눈 속에 팽그르르 도는 눈물을 씻었다. "그 얘긴 그다지 이상할 것도 없네요. 그 속엔 집시도 어린애도 보이지 않는 걸요" "좀 참으세요! 곧 보게 될 테니까... 66년에 파케트는 계집애 하나를 낳았어요. 불쌍한 그 여잔 몹시 기뻐했지요. 오랜 전부터 어린애 하나 갖기가 소원이었으니까요. 그녀의 어머니는 이미 죽고 없었어요. 그러니 파케트는 이 세상에 사랑할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던 셈이죠. 이 세상에서 혈혈단신으로, 사람들한테서 손가락질 받고, 거리에선 야유를 당하고, 순경들한테서는 두드려 맞고 있었지요. 그리고 점차 나이가 듦에 따라 매춘도 옛날의 장난감 제조 이상으로 그 여자에게 수입을 가져다 주지 않게 되었어요. 그래서 그 여잔 매우 슬프고 매우 비참해, 눈물로 볼이 패일 지경이었어요. 그러나 그렇게 수치와 버림 속에 빠져 있으면서도, 만일 이 세상에 자기가 사랑할 수 있고 자기를 사랑해 줄 수 있는 어떤 것이 있다면, 그 여잔 덜 수치스럽고 덜 버림받을 것 같이 여겨졌겠죠. 그런데 그것은 어린애라야만 했어요. 왜냐하면 오직 어린애만이 그렇게 하기에 충분할 만큼 순결할 수 있으니까. 그 영잔 한 도둑놈을 사랑해 본 뒤 그걸 깨달았어요. 이 도둑만이 그 여자를 갖고 싶어할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이었지요. 그러나 얼마 안 가 그 여잔 그 도둑이 자기를 깔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어요.-사랑을 파는 여자들에겐 가슴을 채워 주기 위해 애인이나 어린애가 있어야 하는 거예요. 그렇잖으면 그 여자들은 퍽 불행하지요.-애인을 가질 수가 없었으므로 그 여잔 오로지 어린애를 하나 갖고 싶은 일념으로 돌아섰으며, 하느님께 어린애를 갖게 해달라고 열렬한 기원을 드렸어요. 그래서 계집애 하날 낳게 되었지요. 그 여잔 어린애에게 젖을 먹이고, 자기 침대 위에 하나밖에 없는 이불로 기저귀를 만들어 주고, 추위도 배고픔도 이젠 느끼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 여잔 다시금 아름다워졌지요. 노처녀는 젊은 어머니가 된 거죠. 사내들이 라 샹트 플뢰리를 다시 불러 오고, 그 여자는 고객을 되찾게 되어, 그 모든 끔찍한 것들을 가지고 배내옷이며, 모자를 만들고, 레이스 조끼며 조그만 사틴 모자를 만들고 했으나, 이불을 다시 살 생각은 꿈에도 않았어요. 어린 아네스는 -이것이 그 계집애 이름이에요. 세례명이지요.-틀림없이 도피네 공주님보다 더 많은 리본과 세공물로 싸여 있었을 거예요! 소녀는 그 중에서도 틀림없이 특히 한 켤레의 조그만 신을 가지고 있었어요. 루이 11세 같은 임금님도 그런 신은 가져 보지 못했을 거예요. 엄마가 아기를 위해 손수 그것을 만들어 수를 놓고, 성모 마리아의 옷처럼 온갖 장식을 해놓았던 거지요. 그것은 더없이 예쁜 두 짝의 분홍신이었어요. 그것은 아무리 길어 봤자 내 엄지손가락만 했는데, 계집애의 조그만 발이 거기 들어갈 수 있었다는 걸 믿으려면 그 발이 거기서 나오는 걸 봐야만 했어요. 아줌마도 어린애가 있으면, 그런 조그만 손발보다 예쁜 건 이 세상에 없다는 걸 알게 될 거예요" 뮈스니에가 대꾸했다. "그럼 오죽이나 좋겠소. 난 제발 그런 즐거움이 어서 찾아오길 기다리고 있어요" "게다가 파케트의 아기는 예쁜 발만 가지고 있었던 게 아녜요. 그 애가 넉 달 밖에 안 됐을 때 난 그 앨 봤어요.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그 애의 눈은 입보다 더 컸지요. 그리고 놀랍게도 매력적인 가느다란 검은 머리털이 벌써 곱슬곱슬했어요. 아기 어머니는 날이 갈수록 더욱 아기에게 미쳐 갈 뿐이었지요. 그 여잔 간지럽히고, 씻어 주고, 마치 잡아먹을 지경이었어요!" "얘긴 재미있긴 하데, 그 모든 것 속에 집시는 어디 있나요" "인제 나와요. 어느 날 랭스에 참 이상한 한떼의 말 탄 사람들이 도착했어요. 그것은 거지며 방랑자들이 그들의 지도자들에게 인솔돼 이 고장을 지나가던 길이었어요. 그들은 햇볕에 그을고, 머리는 곱슬곱슬했으며, 귀엔 은고리를 달고 있었어요. 보잘것없는 개를 안고, 낡은 홑이불을 어깨 위에 메고 있었으며, 머리는 마치 말꼬리 같았어요. 그들의 다리 아래서 뒹굴고 있는 어린애들을 보면 원숭이도 질겁했을 거예요. 그것은 한떼의 파문 당한 사람들이었어요. 이들이 모두 남부 이집트에서 폴란드를 거쳐 랭스로 오고 있었던 거죠. 사람들 말에 의하면, 교황님이 그들의 참회를 들으시고, 속죄를 위하여 그들에게 7년 동안 침대에서 자지 않고 세계를 돌아다니도록 하셨다는 거예요. 그들 무리는 방앗간이 있는 언덕 위의 굴 옆에서 야영을 했지요. 그렇게 되니 랭스에선 너도나도 앞다퉈 그들을 보러 갔어요. 그들은 사람들의 손금을 보고 신묘한 예언을 했어요. 그러나 그들은 어린애를 훔치고 돈주머니를 잘라 가고 사람 고기를 먹는다는 나쁜 소문이 돌고 있었지요. 점잖은 사람들은 '그런 곳에 가면 못쓴다'고 말하면서도 자기들은 남몰래 가고 있었어요. 집시 여자들이 어린애의 손금을 보고 온갖 기적적인 것을 읽어 주고 나면, 애 어머니들은 자기 아이들을 몹시 자랑했어요. 가련한 샹트 플뢰리도 바짝 호기심이 났어요. 그 여잔 자기 딸이 무엇이 될지, 그 예쁜 아기 아네스가 훗날 아르메니아의 황후가 될지, 또 뭐가 될지 알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곧 아기를 집시들에게 업고 간즉, 집시 계집애들은 어린애를 애무하고, 그 더러운 입으로 아기에게 키스하고, 그 손금을 보곤 감탄들을 했어요. 그러니 어머니는 얼마나 기뻤겠어요! 그런데 아기는 집시 계집들을 보곤 질겁해 울었어요. 어머니는 아기에게 더욱 힘차게 키스하고, 그 점쟁이 여편네들이 자기 딸 아네스에게 말한 예언을 무척 기뻐하면서 나왔어요. 아기는 장래 미인이 되고, 정숙한 여자가 되고, 영왕이 될 것이라는 거였죠. 그래서 그 여잔 자신의 오두막으로 돌아오면서, 여왕을 자기 집으로 데리고 온 것을 무척 자랑스럽게 여겼어요. 다음날 그 여잔 아기가 침대 위에서 자고 있는 틈을 타서 문을 방긋 열어 놓은 채 살그머니 나와 셰리스 거리의 한 이웃 여자한테로 달려가, 자기 딸 아네스는 장래 식탁에서 영국의 왕과 대공의 시중을 받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며, 그 밖에 갖가지 이야기를 자랑스레 했어요. 집에 돌아와 층계를 올라갈 때 아기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므로 '아, 여전히 자고 있군'하고 생각했어요. 그 여잔 문이 열어 놓았던 것보다 더 활짝 열려 있는 걸 발견했으나, 그래도 방 안으로 들어가 침대로 달려갔어요. 어린앤 이미 거기 없었고, 자리는 텅 비어 있었어요. 그 조그만 예쁜 신 한 짝을 제외하면 어린애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 여잔 방 밖으로 뛰어나가고 층계 아래로 달려 내려가서 '우리 아가! 우리 아길 누가 훔쳐 갔누?' 하고 외치며 벽에 머리를 찧기 시작했어요. 그 여잔 시내를 쏘다니고, 거리란 거리는 샅샅이 뒤지고, 온종일 뛰어다녔어요. 미친 듯, 넋을 잃고, 마치 새끼 잃은 짐승처럼 이집 저집의 문과 창으로 가서 냄새를 맡으면서, 그녀는 숨을 헐떡거리고, 머리를 산발하고, 눈 속엔 불이 일어 눈물이 말랐었어요. 그 여잔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들고 외치는 것이었어요. '우리 딸 우리 예쁜 아기! 우리 딸을 되돌려 주는 사람이 있으면, 난 그 사람의 종이 되겠어요. 그 사람이 원하다면 내 심장을 먹어도 좋아요!' 그 여자는 생 레미의 사제를 만나 이렇게 말했어요. '사제님, 저는 손톱으로 땅이라도 갈겠지만, 제발 우리 아길 돌려 주세요!'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었지요, 세상에 냉정한 남자인 퐁스 라카브르 검사마저도 우는 걸 난 봤어요. 저녁때 그 여잔 집에 돌아왔어요. 그 여자가 집을 비워 놓은 동안, 한 이웃 여자는 두 집시 여자가 꾸러미 하나를 안고 남 몰래 그 여자의 방으로 올라가더니 문을 닫고 다시 내려와 급히 달아나는 걸 봤어요. 그들이 떠난 뒤부터 파케트의 방 안에서는 일종의 어린애 울음소리 같은 것이 들렸어요. 어머니는 나는 듯이 층계를 올라가 문을 부수고 들어갔어요. 그런데 아, 끔찍한 일도 다 있지 않겠어요! 하느님의 선물이었던 그 주홍빛의 싱싱하고 귀여운 아기 아네스 대신 추악하고 애꾸눈이고 기형의 괴물 새끼 같은 게 방바닥을 기면서 울고 있었으니까요... 그 여잔 무서워서 자기 눈을 가렸어요. '에구머니나! 마녀들이 내 딸을 징그러운 짐승으로 탈바꿈시켜 놓았단 말인가?' 하고 그 여잔 외쳤어요. 사람들은 부랴부랴 그 안짱다리를 데려가 버렸어요. 그것은 악마에게 넘어간 어떤 집시 계집의 새끼였던 거지요. 그는 네 살쯤 돼 보였고, 전혀 사람의 말이라곤 할 수 없는 말을 하고 있었어요. 라 샹트 플뢰리는 조그만 신 위에 몸을 던졌는데, 그것은 그녀에게 남은 유일한 것이었던 거예요. 그 여잔 그 신을 부둥켜안은 채 언제까지나 말없이 숨도 쉬지 않고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그 여자가 그대로 죽어 버린 줄 알았어요. 별안간 그 여잔 온몸을 떨고, 그 신발에 미친 듯 키스를 퍼붓고, 심장이 터지기라도 한 듯 마구 흐느껴 울었어요... 지금도 그걸 생각하면 난 눈물이 쏟아져요. 우리 어린애들이란 우리의 뼈가 아니겠어요? 오, 내 귀여운 외스타슈! 이 애가 얼마나 귀여운지 아줌마들이 아신다면! 어젠 얘가 글쎄 이러지 않겠어요. '난 장군이 될래, 난 말야...' 오, 내 아들! 만일 내가 널 잃는다면...! 라 샹트 플뢰리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 랭스 시내를 달리면서 이렇게 외치는 것이었어요. '집시의 굴로 가자! 순경 나리들, 모두 가서 그 마술사들을 태워 죽여요!' 그러나 집시들은 이미 떠나 버렸어요. 때는 캄캄한 밤이어서 그들을 뒤쫓아갈 순 없었어요. 이튿날, 랭스에서 20리쯤 떨어진 히이드 벌판에서, 사람들은 커다란 화톳불 자국과 아네스가 달고 있던 몇 개의 리본과 떨어진 핏방울, 그리고 염소똥을 발견했어요. 그런데 그 전날 밤은 바로 토요일이었지요. 그래서 그 집시들이 이 황야에서 마술사의 밤잔치를 벌였고, 그 어린애를 잡아먹어 버렸으리라는 걸 사람들은 의심하지 않았어요. 라 샹트 플뢰리가 그 끔찍스런 일을 알았을 때, 그 여잔 울지 않고,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입술을 움직였으나 말하진 못했어요. 다음날 그녀의 머리털은 희끗희끗해지고, 다음 다음 날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어요" "아줌마가 그렇게도 집시들을 무서워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군요!" "그리고 아까 외스타슈와 함께 막 달아나신 건 잘하셨지요. 그들은 정녕 그렇게 긴 이빨을 갖고 있으니 어린애를 잡아먹음에 틀림없어요. 그리고 에스메랄다도 입을 삐죽거리면서 역시 어린애를 좀 먹는다 하더라도 난 놀라지 않을 거예요. 그 계집애의 흰 염소가 그렇게도 괴상한 곡예를 하는 걸 보면 무슨 미신이 숨어 있을 거예요" 두 파리의 여자가 동시에 말했다. 4 이윽고 세 아낙은 그레브 광장에 도착했다. 그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그녀들은 롤랑의 성무 일과서 앞에서 걸음을 멈추지 않고 지나쳐, 그 주위에 시시각각으로 군중들이 불어 가고 있던 죄인 공시대를 향해 걷고 있었다. 만일 이때 마예트가 손을 잡고 끌고 가던 여섯 살 난 외스타슈가 다음과 같이 말하므로써 주의를 환기시키지 않았던들, 아마도 그녀들은 그 독방과 거기서 잠깐 쉬려던 계획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말았으리라. "엄마, 이젠 이 과자 먹어도 돼?" 만일 외스타슈가 한결 약았더라면 그는 좀더 기다렸다가 그곳을 다 지나쳐서 질문을 해 보았을 것이다. 아이는 아직 순진했던 것인데, 그 질문에 마예트는 곧 생각이 났다. "아참, 우린 그 은자를 잊고 있었네요! 그 독방이 어딘지 가르쳐 줘요. 그녀에게 이 과잘 가져다 줘야지요" "지금 곧 그렇게 합시다. 좋은 적선이죠" 세 아낙은 오던 길로 다시 되돌아갔다. 그리고 롤랑의 집 가까이 이르자 뮈스니에가 두 여자에게 말했다. "자루 수녀가 놀라지 모르니 우리 세 사람이 한꺼번에 구멍을 들여다봐선 안 돼요. 아주머니들은 성무 일과서를 읽고 있는 척하세요" 그녀는 홀로 채광창으로 갔다. 그녀가 창 안을 들여다보았을 땐, 깊은 동정의 빛이 그 표정에 나타나고, 솔직한 그 얼굴빛은 갑자기 변해 마치 햇빛에서 달빛으로 변한 것 같았다. 그녀의 눈은 눈물에 젖고, 입은 울려고 할 때처럼 씰룩거렸다. 잠시 후 그녀는 입술 위에 손가락을 갖다 대고 마예트에게 와서 보라는 신호를 했다. 마예트는 감동하여 마치 곧 죽어 가는 사람의 침대에 다가가는 사람처럼 살금살금 발끝으로 걸어갔다. 두 여자들이 쇠살 달린 독방의 채광창에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숨죽여 바라보고 있을 때, 그들의 눈에 보인 광경은 사실 서글픈 것이었다. 좁고 아무것도 깔지 않은 바닥 위의 한쪽 구석에 여자 하나가 앉아 있다기보다 웅크려 있었다. 주름잡힌 갈색 자루로 몸을 완전히 싸고, 희끗희끗한 긴 머리털을 얼굴 위에서 다리를 따라 발끝까지 내려뜨린 채 웅크리고 있는 그 여자는, 언뜻 보기에 일종의 거무스름한 삼각형 같았다. 바닥에 박아 놓은 듯한 이 형체는 숨결도 생각도 없는 것 같아 보였다. 추운 정월에 햇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고 북풍만 불어 오는 그런 토굴 속에서 거의 알몸으로 있는 그 여자는 그러나 고통을 느끼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는 동안 마예트는 자꾸만 불안해져 가는 마음으로 그 핼쓱하고 시들어 빠지고 산발이 된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눈에 눈물이 가득 차 올랐다. 그녀는 채광창의 쇠창살 너머로 머리를 넣고, 그 불쌍한 형체가 변함없이 응시하고 있는 방 구석까지 자기 시선을 미치게 하는 데 성공했다. 채광창에서 머리를 빼냈을 때, 그녀의 얼굴에선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저 여잘 아줌마들은 뭐라고 부르나요?" 그녀가 물었다. "귀뒬 수녀라고 부르지요" "그러나 난..." 마예트가 말을 이었다. "난 저 여자를 파케트 라 샹트 플뢰리라고 부르겠어요" 그러면서 그녀는 자기 입에 손가락 하나를 갖다 대고, 어리둥절해 있는 뮈스니에에게 채광창 너머로 한번 보라고 신호했다. 그렇게 하고 본즉, 그 은자의 눈이 끝없이 응시하고 있는 방 구석엔 온갖 금실 은실로 수놓은 한 짝의 조그만 분홍빛 신이 보였다. 아낙들은 말 한 마디 하지 않았다. 그녀들은 비록 작은 소리로라도 감히 말할 수가 없었다. 눈물을 삼키며 금세라도 무릎을 끊으려 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마치 성당에 막 들어왔을 때와 같은 느낌이었다. 이윽고 세 아낙 중 가장 호기심이 많은 제르베즈가 그 은자로 하여금 말을 시켜 보려고 시도했다. "수녀님! 수녀님!" 그녀는 목소리를 높여 되풀이해 불렀다. 은자는 꼼짝하지 않았다. 말 한 마디 없었고, 숨 한 번 쉬지 않았으며, 살아 있는 기색 하나 없었다. 영혼이 육체를 아직 떠나진 않았다 치더라도, 그것은 이미 외부의 감각이 미칠 수 없는 깊숙한 곳으로 물러나 숨어 버렸음에 틀림없었다. 이때까지 외스타슈는 한 마디의 커다란 개에 끌려 조그만 수레 하나가 지나가는 것을 보느라고 정신이 팔려 있었는데, 세 여자가 채광창 안에서 뭘 들여다보고 있는 것을 알아채곤 호기심이 나서, 차량 차단대 위에 올라가 발끝으로 서선 그 불그레한 얼굴을 창구멍에 대고 외쳤다. "엄마, 내게도 보이는가 좀 볼게!" 이 맑고 생생한 어린애의 목소리에 은자는 몸을 떨었다. 그 여자는 강철 태엽처럼 느닷없이 몸을 움직여 고개를 돌리고, 그 기다랗고 수척한 손으로 이마 위의 머리털을 열고서, 놀라고 고통스런 눈으로 어린애를 쏘아보았다. "아줌마, 안녕" 어린애는 점잖스레 말했다. 충격이 은자의 잠을 깨워 놓은 셈이었다. 그 여자의 몸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한참 떨렸고, 이가 덜거덕거렸다. 그 여자는 놀란 눈으로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어린애 쪽으로 갑자기 그 여윈 손을 뻗쳤다. "애를 데려가시오. 그 집시 계집애가 곧 여길 지나가요!" 그러면서 그 여자가 낯을 땅바닥에 대고 쓰러지니, 그 이마는 돌 위에 돌이 부딪치는 것 같은 소리를 내며 바닥을 쳤다. 세 부인은 그 여자가 죽은 줄 알았다. 그러나 잠시 후 여자는 몸을 움직였으며, 무릎과 팔꿈치로 기어 그 조그만 신이 있는 방구석까지 갔다. 여자들은 감히 바라보지 못했고, 이제 그 여자가 보이지도 않았으나, 숱한 키스 소리가 비명에 섞여 들려 왔다. 그러나 얼마 후 뚝 그치더니 싸늘한 정적만이 감돌았다. "아, 자살을 했을까? 저걸 어떡해! 저 여잔 이제 까딱도 하지 않아!" 제르베즈가 외쳤다. 이때까지 숨이 막혀 말도 할 수 없었던 마예트가 힘을 다해 채광창 쪽으로 몸을 기울이곤 "파케트!" 하고 불렀다. 폭약의 도화선 위에서 섣불리 불을 불다가 자기 눈 속에서 그 폭발을 당한 사람도, 독방 속에 느닷없이 던져 넣은 그 이름이 자아낸 효과에 마예트가 스스로 기겁한 것처럼 놀라진 않을 것이다. 은자는 전신을 떨고 맨발로 일어서더니, 불타오르는 눈으로 채광창으로 뛰어왔으므로, 바깥의 세 아낙과 한 어린애는 강둑 난간까지 물러가 버렸다. 그 동안 은자의 험상궂은 얼굴이 환기창에 나타나 그 창살에 꼭 붙었다. 그 여자는 무시무시하게 웃으면서 외치는 것이었다. "흐흥, 날 부르는 건 집시 계집애렷다!" 이때 죄인 공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광경이 그 여자의 눈을 붙들었다. 그 여자의 이마는 무섭게 찡그려졌으며, 뼈만 앙상한 두 팔을 밖으로 뻗치곤 헐떡거리는 것 같은 목소리로 외쳤다. "또 너로구나, 집시 계집애 같으니! 날 부르는 건 너로구나, 어린애 도둑년 같으니! 오, 제발 벌을 받아라! 벌을! 벌을!" 5 그 외침은 말하자면 같은 시각에 다른 무대에서 제각기 전개되었던 두 장면의 결합점이 되는 셈이었다. 첫째 장면을 목격한 사람은 조금 전에 말한 세 아낙뿐이었으나, 둘째 장면을 구경한 사람은 그레브 광장의 죄인 공시대와 교수대 주위에 모여든 그 모든 사람들이었다. 공개적인 형 집행을 기다리는 데 단련된 시민들은 초조하게 굴지도 않고 죄인 공시대를 재미있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 죄인 공시대라는 것은 속이 비고, 높이가 열 자쯤 되는 하나의 입방체 석공물로 구성된 일종의 간단한 건축물이었다. 그 위엔 결이 촘촘한 떡갈나무로 만든 수레바퀴 하나가 수평으로 장치되어 있었다. 이 바퀴 위에 죄인을 무릎 꿇리고 팔을 등 뒤로 도려 비끄러매 놓는 것이었다. 그러면 이 조그만 건축물의 내부에 감춰진 도르래로 움직이는 축이 바퀴에 회전 운동을 일으킴으로써 죄인의 얼굴을 차례 차례로 광장의 모든 방향에 내보이는 것이었다. 이게 이른바 죄인 공시이다. 마침내 수형자가 수레 뒤에 포박돼 도착했는데, 그가 죄인 공시대에 끌어 올려져 가죽끈으로 묶여진 것을 볼 수 있었을 때 환호성과 야유가 광장에 울려 펴졌다. 그것은 카지모도였다. 그는 어제 바로 이 광장에서 광인 교황으로 선출돼 환호를 받았던 것이다. 이윽고 나팔수 미셀 누 아레가 시민들에게 조용하라고 하고, 파리 시장 나리의 명령에 의해 판결문을 외쳤다. 그런 뒤 그는 군복을 입은 사람들과 더불어 수레 뒤로 물러갔다. 카지모도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더없이 견고한 결박으로 인해 어떤 저항도 그에게는 불가능했는데, 가죽끈과 쇠사슬은 아마 그의 살 속까지 파고 들어 갔을 것이다. 그로 하여금 원판 위에 무릎 꿇리니 그는 아무 거역 없이 무릎을 끊었다. 허리까지 저고리와 셔츠를 벗겨도 그는 그대로 몸을 맡겼다. 새로이 가죽끈과 조임쇠로 포박해도 역시 가만 있었다. 다만 이따금 거칠게 숨을 몰아쉴 뿐이었다. 카지모도가 벌거벗겨져 그 곱사등과 낙타 같은 가슴과 털이 더부룩한 단단한 어깨가 보이자, 군중 속에서는 요란스런 웃음소리가 터졌다. 모두들 그렇게 즐거워하고 있는 동안, 키는 땅달막하나 건강해 보이는, 제복 입은 사나이 하나가 형틀 위에 올라와 수형자 옆에 자리잡았다. 그의 이름은 샤틀레의 고문관 피에라 토르트뤼였다. 그는 우선 공시대의 한쪽 구석에 검은 모래 시계 하나를 내려놓았는데, 그 윗덮개엔 붉은 모래가 가득 차 있어 아래의 그릇 속으로 떨어지도록 돼 있었다. 그런 뒤 그는 외투를 벗었는데, 번쩍번쩍 빛나고, 많은 마디와 쇠손톱이 달리고, 강인한 가죽끈으로 된 끝이 뾰족뾰족한 채찍이 그의 오른손에 쥐어 있는 것이 보였다. 마침내 고문관이 발을 구르자 바퀴가 돌기 시작했다. 카지모도는 포박된 채 움찔거렸다. 그 보기 흉한 얼굴 위에 갑자기 떠오른 당황의 빛을 보자 주위에 선 사람들은 더욱더 요란스럽게 웃어 댔다. 바퀴가 회전하면서 카지모도의 기괴한 등이 앞에 오자 피에라는 별안간 팔을 들었고, 그 무시무시한 채찍은 마치 한 마리의 뱀처럼 공중에 날카로운 소리를 내면서 그 가련한 사나이의 어깨 위에 세차게 떨어졌다. 카지모도는 한순간 펄쩍 뛰어올랐다. 그는 결박된 몸을 비틀었다. 놀람과 고통에서 오는 경련으로 얼굴 근육이 일그러졌으나, 그는 한숨 한 번 쉬지 않았다. 그는 다만 뒤로,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머리를 돌리고 옆구리를 찔린 황소처럼 머리를 흔들 뿐이었다. 두 번째의 매질이 이어졌고, 이어 세 번째의 매가, 그런 다음 또 매가, 또 다른 매가 잇달아 터졌다. 바퀴는 돌기를 그치지 않았고 채찍은 쏟아지기를 그치지 않았다. 이윽고 꼽추의 검은 어깨 위에 피가 줄줄이 흘러내리는 것이 보이고, 공기를 찢으면서 휘둘러지는 채찍은 그것을 군중 속에 방울방울 흩날리는 것이었다. 카지모도는 겉으로 보기엔 처음과 같은 침착을 되찾고 있었다. 그는 처음에 몸의 동요가 별로 드러나지 않도록 은밀히 포승을 끊으려 해보았다. 그의 눈이 번쩍이고, 근육이 굳어지고, 팔다리가 움츠러들고, 가죽끈과 쇠사슬이 당겨지는 것이 보였다. 안간힘을, 절망적인 힘을 다했으나 역시 오랜 포승은 거기에 견뎌 내 다만 삐걱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카지모도는 힘이 빠져 쓰러졌다. 그의 얼굴엔 심각하고 고통스런 절망감에 이어 망연자실한 빛이 떠올랐다. 그는 외눈을 감고 가슴 위에 머리를 떨어뜨리곤 죽은 사람같이 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다시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그를 꿈틀거리게 할 순 없었다. 끊일 줄 모르고 흘러내리는 그의 피도, 더욱더 사정없이 떨어지기만 하는 채찍질도, 제물에 달아오른 고문관의 분노도, 아무것도... 마침내 검은 말을 타고 사다리 옆에 있었던, 검은 옷을 입은 샤틀레의 임원 하나가 손에 들고 있던 검정색 막대기를 모래 시계 쪽으로 뻗쳤다. 고문관이 매질을 멈추었다. 바퀴가 돌기를 멈추었다. 태형은 끝난 것이다. 고문관의 조수가 피가 철철 흐르는 수형자의 어깨를 씻고, 어떤 상처라도 즉시 아물게 하는 고약으로 어깨를 문지르고, 그 등 위에 일종의 제복 같은 노란 옷을 던졌다. 그러나 카지모도에겐 다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아직도, 저 플로리앙 나리가 판결에 정당하게도 덧붙여 놓은 공시의 시간을 채우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재판이 끝까지 집행되도록 사람들은 모래 시계를 뒤집어 놓고 꼽추를 널빤지 위에 비끄러매 두었다. 특히 중세에는, 사회에 있어서의 민중은 꼭 가정에 있어서의 어린애와 같은 것이었다. 민중이 그 초기의 무지와 정신적 미성년 상태에 머물러 있는 한. 사실 카지모도가 가지가지의 이유로 말미암아 미움을 사고 있는 것은 이미 본 바와 같다. 그 군중 속에 노틀담의 고약한 꼽추를 원망할 만한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구경꾼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므로 그가 공시대에 나타난 것을 보았을 때 누구나 다 기뻐했으며, 형을 받은 후의 그 가련한 모습은 측은감을 불러일으키긴커녕 그들의 증오심을 즐겁게 해줄 뿐이었다. 그러므로 일단 범법 제재가 만족되자, 이제 온갖 개인적 복수의 차례가 되었다. 온갖 욕설이 비오듯 쏟아졌으며, 저주와 야유와 웃음소리가 터지는가 하면, 여기저기에서 돌멩이도 날아오고 있었다. 카지모도는 귀는 어두웠지만 눈은 밝았으니, 군중의 분노가 말 속에서와 마찬가지로 얼굴 위에 역력히 나타나 있는 것이 잘 보였다. 그는 처음엔 천천히 위협하는 눈으로 군중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그렇게 꽁꽁 묶여 있으니 상처를 물어뜯는 그 파리들을 쫓기엔 무력했다. 그러나 그는 질곡 속에서 몸부림쳤으나, 그 격렬한 요동도 널빤지 위에서 죄인 공시대의 낡은 바퀴를 삐걱거리게 할 뿐이었다. 분노와 증오와 절망으로 말미암아 그 흉측한 얼굴 위엔 더욱 어두운 구름이 천천히 내리 덮였다. 그러나 이 구름은, 말 한 마리가 신부를 태우고 군중 사이를 지나갈 때 잠시 밝아졌다. 그 말과 신부를 멀리서 보았을 때 이 가엾은 수형자의 얼굴은 부드러워졌다. 격분으로 굳어져 있었던 그의 얼굴엔 형언할 수 없는 다사로움으로 가득 찬 야릇한 미소가 떠오른 것이다. 신부가 다가옴에 따라 이 미소는 한결 뚜렷해지고 밝아졌다. 그것은 마치 오고 있는 구원자에게 인사를 하는 것과도 같았다. 그러나 말이 공시대에 충분히 접근해 수형자를 알아볼 수 있게 되자 신부는 고개를 수그리고 갑자기 되돌아서서 떠나가 버렸는데, 그 모양은 마치 창피스러운 꼴을 얼른 피하려 하는 것 같았다. 이 신부는 바로 클로드 프롤로였다. 더욱 검은 구름이 다시금 카지모도의 얼굴에 떨어졌다. 거기엔 아직도 잠시 미소가 섞여 있었으나, 그것은 몹시 고통스럽고 서글픈 미소였다. 시간은 흘러갔다. 그는 적어도 한 시간 반 전부터 거기 있었다. 갑자기 그는 쇠사슬에 묶인 채 더욱 절망적으로 몸부림쳤는데, 하도 격렬하여 형틀이 온통 흔들렸다. 그는 끈덕지게 지키고 있던 침묵을 깨뜨리곤 격분한 쉰 목소리로 "물 좀 줘!" 하고 외쳤는데, 그것은 사람의 고함이라기보다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 같았다. 그 비명은 공시대를 둘러싸고 있던 파리의 착한 시민들에게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기는커녕 더욱더 흥분만 돋워 주었다. 물론 이때 죄인의 얼굴엔 짙은 피가 흐르고 있었고, 눈은 분노에 떨고 있었고, 입은 고통으로 거품이 일고 있었고, 혀는 반쯤 빠져 있었으니, 측은하기보다 오히려 불쾌해 보인 건 사실이다. 또 말해 두거니와, 설령 군중 속에 가련한 인간에게 한 잔의 물을 갖다 주고 싶은 생각이 난 자비로운 시민이 있었다 하더라도, 죄인 공시대의 불명예스런 층계 주위엔 치욕의 편견이 가득 차 있었으니 별수 없었으리라. 잠시 후 카지모도는 절망적인 눈으로 군중을 둘러보며 더욱 비통한 목소리로 외쳤다. "물 좀 줘!" 그러자 다시 폭소가 터졌다. "이걸 마셔라" 로뱅 푸스팽이 진창에 떨어져 있던 걸레를 그의 낯바닥에 던지면서 외쳤다. "난 네게 빚을 갚겠다" "자, 이걸로 물을 떠 먹어라!" 한 사내가 깨어진 그릇을 그의 가슴에 던지면서 말했다. "네 놈이 내 여편네 앞을 지나가기만 했는데도 내 여편네는 머리가 이상한 애를 낳았단 말야!" "우리집 고양이도 발이 여섯 달린 새끼를 낳았다" 노파 하나가 악착스레 고함질렀다. "물 좀 줘!" 카지모도는 헐떡거리며 세 번째로 되풀이했다. 이때 그는 군중이 옆으로 비켜서는 것을 보았다. 이상야릇한 옷차림을 한 아가씨 하나가 군중 속에서 나왔다. 그 여자 뒤엔 금뿔 달린 흰 염소 한 마리가 따라오고 있었으며, 그 여자 손엔 방울 달린 조그만 북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카지모도의 눈은 빛났다. 그것은 간밤에 그가 겁탈하려 했던 집시 여자였으니, 바로 이 순간 사람들이 자기를 벌하고 있는 것은 이 강탈 때문이란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 여자도 또한 자기를 치려 한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과연 그는 그 여자가 빠른 걸음으로 사다리를 올라오는 것을 보았다. 이놈의 공시대를 무너뜨려 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그는 생각했으리라. 그리고 만일 그의 눈에서 튀는 불이 벼락을 일으킬 수 있었다면, 이 집시 아가씨는 공시대 위에 채 올라서기도 전에 산산조각 나 버렸으리라. 아가씨는 한 마디 말도 없이, 자기로부터 벗어나려고 공연히 몸을 비틀고 있는 수형자에게로 다가가, 허리띠에서 물통을 풀어 사나이의 바짝 마른 입술로 가져갔다. 그러자 이때까지 악으로 불타고 있던 카지모도의 눈 속에 커다란 물방울 하나가 돌더니, 오랫동안 절망으로 굳어져 있던 흉물스런 얼굴을 따라 천천히 떨어지는 것이었다. 그것은 아마 이 불우한 사내가 난생 처음 흘린 눈물이었으리라. 그는 물 마시는 것을 잊고 있었다. 집시 아가씨는 안타까운 듯 입술을 좀 삐죽거리고, 생긋 웃으며 카지모도의 뻐드렁니가 난 입에 물병 주둥이를 댔다. 그제서야 그는 꿀꺽꿀꺽 마셨다. 갈증은 목이 탈 정도였던 것이다. 다 마시고 나자 카지모도는 그 검은 입술을 쑥 내밀었는데, 아마 자기를 도와 준 그 아름다운 손에 맞추려 했던 것이리라. 그러나 아가씨는 경계심을 놓지 않고 있었을 것이고 간밤의 폭행 미수를 잊지 않고 있었으므로, 마치 짐승에게 물릴 것을 두려워하는 어린애처럼 깜짝 놀란 몸짓으로 얼른 손을 움츠려 버렸다. 그러자 가엾은 귀머거리는 말할 수 없는 슬픔에 가득 찬 눈으로 지긋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한편 지켜보던 그 모든 군중들도 어느 새 감동하여 "훌륭하다! 훌륭하다!" 하고 외치며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그 자루 수녀가 독방의 채광창에서 죄인 공시대 위의 집시 아가씨를 보고, "벌을 받아라, 집시 계집애야! 벌을 받아라!" 하고 험악한 저주를 던진 것은 바로 이때였던 것이다. 에스메랄다는 얼굴이 새파래진 채 비틀거리면서 공시대를 내려왔다. 그 은자의 목소리는 아직도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내려와! 내려와! 집시 도둑년아, 너는 뒷날 거기 다시 올라가게 되리라!" "자루 수녀가 또 변덕을 부리는구먼" 군중들이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더 이상은 아무 일도 없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이런 종류의 여자들을 두려워하고 성스럽게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밤낮으로 기도 드리고 있는 은자에겐 그 누구도 대들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제5장 숙명 1 그 후 여러 날이 흘러갔다. 3월이 왔다. 태양은 즐겁고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봄날이어서, 온 파리 시민들이 광장에 흩어져 휴일처럼 봄날을 즐기고 있었다. 그렇게 밝고 맑은 날이면 노틀담의 정면 현관을 구경해야 할 특정한 시간이 있다. 그것은 이미 서쪽에 기운 태양이 이 대성당을 거의 정면으로 바라보는 순간이다. 그럴 때면 더더욱 수평으로 되는 햇살은, 광장의 포석 바닥에서 물러나 천천히 수직으로 된 정면을 따라 올라가며 그림자 위에 숱한 무늬가 어른거리게 하는가 하면, 한편으론 그 커다란 중앙의 둥근 창은 대장간 화덕의 불빛을 받은 거인의 눈처럼 타오르는 것이다. 바로 그런 시각이었다. 석양으로 붉어진 붉은 대성당 맞은편의 광장과 파르비 거리의 모퉁이에 자리잡은 한 고딕식 호화 주택의 석조 발코니 위에서 아리따운 몇 명의 아가씨들이 온갖 미태를 다 지어 신바람나 웃고 지껄이고 있었다. 진주로 휘말린 그녀들의 뾰족한 머리쓰개로부터 발뒤꿈치에 이르기까지 드리워져 있는 너울의 길이에서, 그녀의 볼록한 젖가슴 위까지 드러나 보이게 하는 어깨 덮는 수놓은 슈미제트의 화사함에서, 겉옷보다 더 값진 속치마의 화려함에서, 그리고 특히 그녀들의 한가한 게으름을 나타내고 있는 하얀 손에서, 그녀들이 부유한 귀족 가문의 딸이라는 것을 짐작하기란 쉬운 일이었다. 과연 그것은 플뢰리 드 리스 공들로리에 아가씨와 그녀의 친구들인 디아느드에 크리스티유, 아믈로트 드 몽미셀, 콜롱브 드 가유퐁텐, 그리고 드샹슈브리에 소녀였다. 모두가 양갓집 딸들로서, 그들이 공들로리에 부인댁에 모여 있는 까닭은, 피카르디에서 플랑드르 사람들의 손으로부터 마르그리트 황태자비를 받으러 갈 때 이 태자비를 위한 시녀들을 뽑기 위해 보죄 전하 내외분이 사월에 파리에 올 예정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파리 사방 수백 리의 모든 시골 귀족들은 자기 딸을 위해 그 영예를 얻어 주기를 갈망하고 있었으며, 그들 중의 꽤 많은 사람들이 벌써부터 딸을 파리에 데리고 왔거나 보내 놓았던 것이다. 여기 모인 아가씨들의 부모는, 노틀담의 파르비 광장 자택에 자기 외동딸과 함께 물러앉아 있는, 옛 궁중 사수 대장의 과부인 알로이즈 드 공들로리에 부인의 신중하고도 존경할 만한 보호하에 자기 딸을 맡겨 놓은 것이다. 이 아가씨들이 있는 발코니는 금 문양을 박은 엷은 플랑드르 가죽으로 호화롭게 벽을 둘러친 침실로 통하고 있었다. 천장에 평행으로 줄을 긋고 있는 들보들은 멋들어지고 이상야릇한 조각물들로서 보는 눈을 즐겁게 했다. 안쪽으로, 위에서 아래까지 가문의 문장으로 장식된 높은 벽로 옆에 공들로리에 부인이 붉은 우단으로 된 화려한 안락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그녀의 쉰 다섯 살 된 나이는 그 얼굴에 못지 않게 의복에도 역력히 나타나 있었다. 부인의 옆에는 허세를 좀 부리곤 있지만 꽤 용맹스런 얼굴을 한 청년 하나가 서 있었는데, 그것은 관상을 잘 보는 남자라면 어깨를 으쓱하겠지만 여자라면 누구나 인정할 만한 그런 미남의 하나였다. 이 젊은 기사는 친위 헌병대의 찬란한 중대장복을 입고 있었다. 아가씨들은 일부분은 방 안에, 일부분은 발코니 위에, 어떤 아가씬 벨벳 방석 위에, 또 다른 아가씬 온갖 꽃과 문양을 새긴 떡갈나무 의자 위에 앉아 있었다. 그녀들은 제각기 무릎 위에 커다란 벽 휘장의 한 자락을 올려놓곤 함께 짜고 있었는데, 그 한 자락은 마룻바닥의 돗자리 위에 질질 끌리는 중이었다. 그녀들은 젊은 남자가 끼어 있을 땐 으레 그러듯이 소근거리는 목소리와 억지로 참는 웃음소리로 저희들끼리 지껄이고 있었다. 청년이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모든 여성들의 자존심을 움직이게 하기에 충분했는데, 장본인인 그는 그런 것엔 별로 아랑곳하지 않는 듯했으며, 이 아름다운 처녀들이 서로 더 많이 그의 주의를 끌려고 하는데도 그저 사슴 가죽 장갑으로 혁대의 버클을 닦기에 골몰하고 있는 것 같았다. 때때로 부인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걸면, 그는 어색하고 거북스런 듯한 일종의 예의를 갖추어 최선을 다해 대답하곤 하는 것이었다. 부인의 미소나 몸짓으로 보아, 중대장에게 나지막이 말하면서 자기 딸 플뢰르 리스 쪽으로 눈을 돌리고 깜박거리는 것으로 보아, 이 청년과 리스 사이는 이미 약혼 관계가 성립돼 있고, 또 어쩌면 머지않아 결혼식을 올릴 사이라는 것을 쉽사리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장교의 거북스럽고 냉정한 태도를 보면 적어도 그에 있어서는 애정이 식어 있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을 만했다. 그의 표정에는 권태의 빛이 역력히 나타나 있었는데, 오늘날 우리들의 주둔군 장교들 같으면 "이런 제기랄 놈의 고역!" 하고 말하리라. 착한 부인은 자기 딸에게 너무나 열중해 있는 나머지, 청년에겐 별로 정열이 없다는 것도 알아채지 못하고, 리스가 얼마나 바느질을 능란하게 하고 실타래를 풀고 하는가를 가만가만 그에게 지적해 주려 애썼다. "여보게 조카" 그녀는 그의 귀에 대고 얘기하려고 소매를 잡아당기는 것이었다. "저 애를 좀 보게나! 저것 봐, 몸을 구부리잖나?" "그렇군요" 젊은이는 대답하곤 다시금 딴데 정신이 팔린 듯 침묵을 지키는 것이었다. 잠시 후 부인은 또 몸을 기울이고 말했다. "자네 약혼자보다 더 귀엽고 명랑한 얼굴을 자넨 본 일이 있는가? 저보다 더 살결이 희고 더 금발의 여자가 있던가? 저렇게도 완전무결한 손이 있던가? 그리고 저 목을 보게, 꼭 백조 같잖아. 때때로 난 자네가 부러워. 자넨 남자여서 참 좋겠네. 고약한 난봉꾼 도련님! 우리 리스가 저렇게도 사랑스럽고 예뻐서 자넨 넋이 나갔잖은가?" "그런가 봐요" 그는 딴 생각을 하며 대답했다. "아니, 저 애에게 얘기 좀 하게나" 부인은 그의 어깨를 떼밀며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자넨 왜 그렇게 수줍어졌나?" 단언할 수 있거니와 수줍음은 이 중대장의 장점도 결점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상대방이 자기에게 요구하는 것을 해보려고 했다. "아름다운 사촌 누이" 그는 플뢰르 리스에게 다가가면서 말했다. "지금 만들고 있는 그 휘장의 자수의 소재는 뭐죠?" "멋진 사촌 오빠" 리스는 원망스러운 듯 대답했다. "그건 벌써 세 번이나 얘기해 드렸잖아요. 이건 바다 신들의 동굴이에요" 리스가 장교의 쌀쌀하고 건성인 태도를 자기 어머니보다 더 잘 알아채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그는 뭐든 좀 대화를 나누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 바다의 신의 자수는 누굴 위해 만드는 거죠?" "생 탕투아느 데 샹 수도원에 줄 거예요" 리스는 눈을 들지 않고 대답했다. "이건 뭐죠, 아름다운 사촌 누이, 여기 나팔을 힘껏 불고 있는 이 뚱뚱한 헌병은?" "바다의 신 트리토예요" 플뢰르 리스의 짤막짤막한 말 속엔 줄곧 조금 토라진 듯한 억양이 있었다. 청년은 불가불 그녀의 귀에 대고 싱거운 말이든 달콤한 말이든 뭐든 좀 속삭여 주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몸을 기울였으나, 다음과 같은 말보다도 더 정다운 것을 도저히 머릿속에서 찾아낼 수가 없었다. "왜 당신 어머니는 언제나 샤를르 7세 시대의 우리 할머니들처럼 저런 문양이 있는 윗옷을 입고 계시나요? 어머님께 좀 말씀드리세요, 아름다운 사촌 누이, 그건 이미 현대의 멋이 아니라고 말예요. 난 당신께 맹세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저렇게 입진 않거든요" 리스는 몹시 원망하는 듯한 그 아름다운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당신이 제게 맹세하는 건 그게 전부인가요?" 하고 그녀는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착한 부인은 두 사람이 그렇게 몸을 기울이고 소곤거리는 모양을 보고 무척 기뻐서 말하는 것이었다. "참으로 감격적인 사랑의 광경이구나" 이때 일곱 살 먹은 소녀 베랑제르가 발코니의 클로버 장식 구멍으로 광장을 내다보고 있다가 외쳤다. "어머나! 저것 봐요, 아름다운 플뢰르 리스 대모님, 저기 포석 위에서 예쁜 아가씨가 춤을 추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북을 치고 있어요!" 과연 방울 달린 북소리가 은은히 들려 왔다. "보헤미아의 집시 계집애겠지" 리스는 광장 쪽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어디 보자! 어디 봐!" 그녀의 발랄한 친구들이 외치곤 모두 발코니로 달려갔는데, 리스는 자기 약혼자의 쌀쌀함을 곰곰 생각하면서 그녀들의 뒤를 천천히 따라갔고, 청년은 거북스런 대화를 중단시켜 준 그 사건으로 홀가분해져 마치 병역이 해제된 군인처럼 만족한 듯 방 안쪽으로 되돌아왔다. 아름다운 아가씨인 리스의 태도란 여간 귀엽고 상냥한 것이 아니었는데도 청년은 차츰 싫증이 났고, 머지않아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는 생각은 날이 갈수록 그를 더욱 냉정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는 썩 지체 높은 집안에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군복을 입고 있는 동안에 별로 좋잖은 버릇에 물들었다. 그는 주색에 빠졌으니, 육담과 여자에 대한 수작과 호락호락 넘어가는 미녀와 손쉽게 얻는 성공밖엔 좋아하지 않았다. 너무 젊어서부터 국내를 돌아다니고 각처에 주둔함으로써, 날이 갈수록 귀족의 칠이 벗겨져 가고 있었다. 아직도 때때로 체면상 리스를 찾아가면서도, 그녀의 집에서 그는 이중으로 거북스러움을 느끼고 있었으니, 첫째는 온갖 장소에 너무나도 사랑을 흩뿌리고 다닌 나머지 그는 약혼녀를 위해 조금밖에 사랑을 남겨 놓지 않았기 때문이요, 다음엔 그토록 많은 미녀들 사이에서, 상말만 해 버릇한 자기 입이 별안간 날뛰어 술집의 말 속으로 도망치지나 않을까 끊임없이 두려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가 어떠했을지는 상상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좀 전부터 말없이 벽로의 조각된 장식에 몸을 기대고 있었는데, 그때 갑자기 플뢰르 리스가 돌아보면서 말을 걸었다. 결국 이 가엾은 아가씨가 그를 원망한 것은 본의가 아니었던 셈이다. "멋진 사촌 오빠, 두 달 전 밤중에 비밀 순찰을 도시다가 열두 명의 도둑놈들 손에서 집시 계집애 하나를 구해 냈다는 얘길 하시잖았어요?" "그런 것 같아, 아름다운 사촌 누이" "그럼 아마 저기 성당 앞뜰에서 춤추고 있는 게 그 집시 계집애일지도 몰라요. 그 여자를 알아보실 수 있는지 이리 와 보세요, 멋진 페뷔스 사촌 오빠" 그녀가 이름을 부르면서 자기 옆으로 와 달라고 한 그 부드러운 권유 속에서, 그는 그녀가 은근히 화해하고자 하고 있다는 것을 간파했다. 페뷔스 드 샤토페르 중대장은 천천히 걸어서 발코니로 다가갔다. 리스는 페뷔스의 팔 위에 정답게 자기 손을 올려놓으면서 말했다. "저기 저 동그라미 속에서 춤추고 있는 계집애를 보세요. 저게 그 집시 계집앤가요?" 페뷔스는 바라보고 나서 말했다. "그렇군. 저 염소를 보니 알 수 있겠어" "어머, 정말 예쁜 염소 새끼군요!" 리스의 친구들이 웃으면서 소리쳤다. "대모님" 줄곧 움직이고 있는 눈으로 갑자기 노틀담의 탑 꼭대기를 쳐다본 베랑제르가 외쳤다. "저 위에 있는 저 새카만 사람은 뭐예요?" 모든 아가씨들이 쳐다보았다. 아닌게 아니라 한 사나이가 그레브 광장 쪽을 향한 북탑의 맨 꼭대기 난간 위에 팔꿈치를 짚고 있었다. 그것은 한 성직자였다. 그 복장과 두 손 위에 받치고 있는 그의 얼굴을 똑똑히 알아볼 수 있었다. 게다가 그는 하나의 조각상인 양 까딱도 않고 있었다. "그건 부주교님이네" 리스가 말했다. "여기서 그를 알아보다니 언니는 참 눈이 좋으시군요!" 가유퐁텐이 지적했다. "어쩜 저렇게도 춤추는 계집애를 바라보고만 있을까!" 디아느 크리스티유가 말을 이었다. "저 집시 계집앤 조심해야지!" 리스가 말했다. "그는 이집트를 좋아하지 않거든" "그 애를 저렇게 바라보고 있는 건 참 유감인데요" 아믈로트가 덧붙였다. "저렇게도 황홀히 춤추고 있는데 말예요" "멋진 페뷔스 사촌 오빠" 갑자기 리스가 말했다. "저 집시 계집애를 아신다니 올라오도록 신호를 해봐요. 재미있을 거예요" "그것 좋겠어요!" 모든 아가씨들이 손뼉을 치며 외쳤다. "그런 미친 짓을" 페뷔스는 대답했다. "저 여잔 날 잊어버렸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난 저 여자의 이름이 뭔지조차 몰라요... 그렇지만 아가씨들께서 바라시니까 어디 한번 해봅시다" 그는 발코니 난간에 몸을 구부리고 소리지르기 시작했다. "소녀!" 이 춤추는 아가씨는 이때 북은 치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부르는 소리가 들려 오는 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그녀의 반짝이는 눈이 페뷔스를 응시하더니, 문득 춤추기를 뚝 그쳤다. "어이, 소녀!" 중대장은 되풀이하고 손가락으로 오라는 신호를 했다. 집시 아가씨는 여전히 그를 바라보더니, 마치 볼에 불꽃이 솟아오르기라도 한 듯 새빨개졌다. 그리고는 팔 아래 끼던 북을 손에 집어들고, 어리둥절하고 있는 구경꾼들 사이를 뚫고 페뷔스가 자기를 부르고 있는 집의 문 쪽을 향해서, 뱀의 홀림에 넘어간 새처럼 당황한 눈을 하고 가만가만 걸어왔다. 잠시 후 문의 커튼이 올라가고 집시 아가씨가 나타났는데, 얼굴은 홍당무가 돼 어쩔 줄 모르고, 숨을 헐떡거리고, 그 커다란 눈을 내리뜬 채 거기서 한 발도 더 걸어오지 못하고 있었다. 춤추는 아가씨의 출현은 처녀들의 무리 위에 야릇한 효과를 빚어 냈다. 확실히 이 미남 장교의 마음에 들려는 막연한 욕망으로 그녀들은 모두 한꺼번에 활기를 띠고 있었다. 그 찬란한 군복은 그녀들의 모든 교태의 과녁이 되고 있었으며, 그가 거기 와 있은 뒤부터 그 여자들 사이엔 그 어떤 은근한 경쟁이 벌어져, 그녀들 자신은 별로 의식하고 있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것은 그 여자들의 행동과 말 속에 줄곧 나타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들은 모두 엇비슷한 미인이었는지라 같은 조건에서 싸우고 있었던 셈이어서 저마다 승리를 기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집시 아가씨가 옴으로써 느닷없이 그런 균형이 깨어졌다. 그 여자는 세상에서 희귀한 미인으로, 그녀가 방문 앞에 나타난 순간 거기에 그녀 특유의 일종의 빛을 퍼뜨려 놓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처녀들에겐 하나의 적이 닥쳐 온 것이었으니, 모두가 그것을 느끼고 한데 뭉치었다. 그 여자들은 아가씨를 위아래로 훑어보고 나서 서로서로 마주 보았다. 여간 쌀쌀하지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집시 아가씨는 자기에게 말을 걸어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몹시 감동하고 있었으므로 감히 눈을 들 수가 없었다. 중대장이 맨 먼저 침묵을 깨뜨렸다. 그는 뻔뻔스럽고도 교만한 어조로 말했다. "이런, 정말 이건 아리따운 여자로군. 어떻게 생각해요, 아름다운 사촌 누이?" 리스는 멸시를 품은, 짐짓 상냥한 듯한 얼굴로 대답했다. "꽤 예쁜데요" 다른 아가씨들도 쑤군거리고 있었다. 이윽고 자기 딸 때문에 역시나 질투 하지 않을 수 없었던 부인이 춤추는 아가씨에게 말을 걸었다. "가까이 와요, 아가씨!" "가까이 오세요, 아가씨!" 베랑제르가 그녀의 허리 아래 와서 우스꽝스럽게도 의젓한 어조로 똑같이 되풀이했다. 집시 아가씨는 부인 쪽으로 걸어갔다. "예쁜 소녀여" 페뷔스가 그녀 쪽으로 몇 걸음 걸어 나가며 힘주어 말했다. "당신이 나를 알아본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겠는데..." "어머, 알아보고 말고요!" 아가씨는 말했다. "기억력이 좋은데요" 리스가 지적했다. "그런데..." 페뷔스는 말을 계속했다. "그날 밤 당신은 참으로 재빨리 달아나 버렸어. 내가 무서운가?" "어머, 그렇잖아요!" 집시 아가씨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어머, 알아보고 말고요!"라고 한 다음에 "어머, 그렇잖아요!"라고 한 그 어조에는 플뢰리 리스의 기분을 상하게 한 그 어떤 말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그녀의 원한은 시시각각으로 커져 갔다. 중대장이 이 집시 아가씨에게 매혹되어, 발꿈치로 빙그르르 돌면서 군대식으로 순진하고 거친 달콤한 말로 "참으로 예쁜 아가씨야"라고 되풀이한 것을 들었을 때, 그녀의 원한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참 옷을 야만스럽게도 입었군" 디아느 크리스티유가 아름다운 이를 드러내 놓고 웃으면서 말했다. 이 고찰은 다른 아가씨들에게 한 줄기의 빛이 되었다. 그것은 그녀들에게 아가씨를 공격할 수 있는 일면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 그녀의 아름다움을 물어뜯을 수 없으므로, 아가씨들은 복장을 향해 덤벼들었다. "정말 그렇구나. 얘야, 어쩜 이렇게 어깨 장식도 깃장식도 없이 거리를 쏘다니니?" "그 치마는 소름끼칠 만큼 짧구나, 얘" "이봐 아가씨, 그런 황금 띠를 감고 다니다간 순경들에게 잡혀 가고 말 거야" 이 아름다운 처녀들이 그 독설을 놀리면서, 이 거리의 춤추는 소녀 주위에서 뱀처럼 꿈틀거리고 있는 꼴은 참으로 가관이었다. 그것은 그칠 줄 모르는 웃음과 빈정거림, 그리고 모욕적인 언사의 연속이었다. 비꼬는 말들이 집시 아가씨들 위에 비오듯 쏟아지고, 거만한 호의와 심술궂은 눈길이 집중되고 있었다. 마치 저 젊은 로마의 귀부인들이 아름다운 노예의 젖가슴에 금바늘을 꽂고 노는 것을 보는 듯했다. 집시 아가씨는 그렇게 바늘로 찔러 대는 것을 못 느꼈던 것은 아니다. 때때로 수치감에서 오는 홍조와 분노의 섬광이 그녀의 눈이나 볼을 타오르게 하고, 경멸의 말이 그녀의 입술 위에서 주저하는 듯했으며, 독자가 이미 그 버릇을 알고 있듯 경멸하듯 입을 삐죽거리곤 하였으나, 입은 꼭 다물고 있었다. 까딱 않고 서서 그녀는 체념한 듯한 슬프고 부드러운 눈으로 페뷔스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 속엔 행복감과 애정의 빛이 깃들어 있었으며, 마치 쫓겨날까 봐 두려워서 꾹 참고 있는 것 같았다. 페뷔스로 말하자면 웃고 있었으며, 교만과 동정심 섞인 태도로 집시 아가씨의 편을 들었다. "저분들이 멋대로 지껄이게 내버려 두어요. 물론 당신 옷차림은 좀 괴이하고 야성적일지 모르지만 당신같이 아리따운 아가씨에겐 그따위 게 뭐 대수요?" 집시 아가씨의 눈엔 기쁨과 자랑의 빛이 떠올랐는데 이때 그녀는 무척 아름다웠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부인은 모욕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갑자기 외쳤다. "에구 대관절 뭐가 이렇게 다리 밑에서 꿈지럭거린담? 제길, 이런 더러운 짐승이!" 그것은 자기 주인을 찾으러 온 염소였는데, 집시 아가씨 쪽으로 걸어갈 때 부인의 옷자락에 그 뿔이 걸렸던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기분 전환이 되었다. 베랑제르는 기뻐서 폴딱폴딱 뛰며 외쳤다. "아이구! 저 염소 새끼 봐, 금빛의 다리를 가졌네!" 집시 아가씨는 무릎을 끊고 앉아 자기 볼에 염소의 정다운 머리를 꼭 댔다. 마치 그렇게 그와 떨어져 있었던 것을 사과라도 하는 것 같았다. 그러는 동안 디아느가 옆에 선 아가씨의 귀에 입을 대고 말했다. "아니, 이럴 수가! 난 어째서 더 일찍 생각나지 않았을까? 자 계집앤 마술사래. 그리고 염소는 매우 기적적인 짓을 한대" "그럼 저 염소더러 우릴 좀 즐겁게 해달래지" 디아느가 집시 아가씨에게 말을 던졌다. "이봐, 그 염소에게 기적을 하나 시켜 봐!" "그게 무슨 말인지 전 모르겠어요" 집시 아가씨는 딱 잘라 대답했다. "요컨데 요술 말야" "몰라요" 그녀는 좀 냉정하게 말했다. 그런 다음, "잘리! 잘리!" 하고 되풀이하면서 그 예쁜 짐승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이때 플뢰리 리스는 염소 목에 수놓은 가죽 주머니 하나가 매달려 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 "이게 뭐지?" 아가씨는 그녀 쪽으로 커다란 눈을 쳐들고 정색하면서 대답했다. "이건 제 비밀이에요" 그러자 몹시 기분이 상한 부인이 벌떡 일어섰다. "이봐, 집시, 너나 네 염소가 우리들에게 아무것도 보일 게 없다면 여기서 뭘 하는 거지?" 아가씨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문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러나 문에 가까워질수록 그녀의 발걸음은 더욱 느려졌다. 극복할 수 없는 하나의 자석이 그녀를 끌어당기고 있는 것 같았다. 별안간 그녀는 눈물 젖은 눈으로 페뷔스를 돌아보며 걸음을 멈추었다. "아!" 하고 중대장은 외쳤다. "그렇게 가 버려선 안 돼. 우리들에게 뭐고 좀 보여 줘. 그런데 사랑스러운 아가씨, 이름은 뭐라고 하지?" "에스메랄다" 춤추는 아가씨는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대답했다. 그 이름을 듣고 아가씨들은 미친 듯 웃음을 터뜨렸다. "거참, 아가씨 치곤 끔찍한 이름인걸!" 콜롱브가 말했다. 그 얼마 전부터, 아무도 주의하지 못한 사이에. 베랑제르는 과자 하나를 가지고 방 한쪽 구성으로 염소를 끌어다 놓고 있었다. 순식간에 그들 둘은 좋은 친구가 되었다. 이 호기심 많은 계집애는 염소 목에 매달린 주머니를 풀어 열곤 그 속에 있는 것을 돗자리 위에 쏟았다. 그것은 알파벳 글자 하나 하나를 회양나무 조각 위에 따로따로 써 놓은 것이었다. 이 장난감이 돗자리 위에 펼쳐지자마자, 아마 그것이 기적의 하나였는지도 모르는데, 염소가 그 금빛 발을 가지고 어떤 글자들을 끌어 내 발로 살살 밀어서는 어떤 일정한 순서로 늘어놓는 것을 본 어린애는 깜짝 놀랐다. 잠시 후 그것은 하나의 낱말이 되었는데, 염소는 훈련이 잘 되어 있는 듯 그 말을 꾸미는 데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으므로, 베랑제르는 감탄한 나머지 두 손을 마주잡고 외쳤다. "리스 대모님, 지금 염소가 해 놓은 걸 좀 보세요!" 리스는 달려가서 보고 몸을 떨었다. 마룻바닥에 늘어놓은 글자들은 다음과 같은 말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PHCEBUS(페뷔스) "이걸 염소가 썼느냐?" 리스는 깜짝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네, 대모님" 그것을 의심할 순 없었다. 계집애는 글씨를 쓸 줄 몰랐으니까. 그러는 동안, 어린애의 고함 소리에 모두가 달려왔다. 부인도, 처녀들도, 집시 아가씨도, 그리고 페뷔스도. 집시 아가씨는 염소가 저질러 놓은 어리석은 짓거리를 보았다. 그녀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고, 페뷔스 앞에서 마치 죄인처럼 떨기 시작했는데, 그는 만족하고 놀란 듯한 미소를 지으면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넌 기억력이 희한하구나!" 리스는 조각처럼 굳어져 있는 아가씨에게 말했다. 그런 뒤 갑자기 흐느끼면서, "오!" 하더니 아름다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곤 고통스러운 듯 쓰러졌다. "내 딸아! 내 딸아!" 부인이 다급히 외쳤다. "사라져라, 지옥의 집시 계집애야!" 에스메랄다는 눈 깜짝할 사이에 그 글자들을 주워 모으고, 잘리에게 신호하여 한쪽 문으로 나갔고, 동시에 사람들은 다른 쪽 문으로 플뢰르 리스를 옮겨 갔다. 페뷔스는 홀로 남자 두 문 중의 어느 것으로 갈까 잠시 망설이다가, 집시 아가씨의 뒤를 따랐다. 2 북쪽 탑 위에서 광장 위로 몸을 기울이고 춤추는 아가씨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던 그 신부는 과연 부주교였다. 부주교가 탑 속에 자기 것으로 잡아 놓고 있는 그 신비로운 독방을 독자들은 잊지 않았을 것이다. 남마다 해가 지기 한 시간 전에 부주교는 종탑 계단을 올라 이 독방에 틀어박혀, 때로는 거기서 고스란히 밤을 새우곤 했다. 그날 이 초라한 방의 문 앞에 이르러 늘 몸에 지니고 다니는 조금만 열쇠를 자물통에 꽂고 있을 때, 방울북 소리가 그의 귀에 들려 왔었다. 그 소리는 성당 앞뜰 광장에서 들려 오고 있었다. 이미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 독방엔 성당 후면으로 트인 채광창 하나 밖에 없었다. 클로드는 급히 열쇠를 집어넣고 생각에 잠긴 우울한 얼굴로 종탑 꼭대기로 올라갔던 것이다. 그는 거기 꼼짝 않고 엄숙히 서서, 한 가지 생각에 골똘히 빠져 한 군데를 응시하고 있었다. 파리의 온 시내가, 그 건물들의 숱한 첨탑과 수평선을 둥그렇게 에워싸고 있는 그 길다란 언덕들이, 다리들 아래 굽이굽이 흐르는 강과 거리거리에 물결치는 주민들이, 그리고 노틀담을 둘러싼 지붕들의 기복진 사슬이 그의 발 아래 펼쳐져 있었으니 부주교는 오직 한 집시 아가씨밖엔 보고 있지 않았다. 집시 아가씨는 춤추고 있었다. 그녀는 프로방스의 사라방드 춤을 추면서 손가락 끝으로 방울북을 빙빙 돌리고 공중으로 던져 올리곤 했다. 날쌔고 경쾌하고 즐겁게, 자기 머리 위에 떨어지고 있는 부주교의 매서운 눈도 느끼지 않고서, 그녀 주위엔 군중이 득실거리고 있었다. 때때로 붉고 누런 외투를 입은 사내 하나가 춤추는 여자로부터 몇 걸음 떨어진 곳에 놓인 의자 위에 돌아와 앉고, 자기 무릎 위에 염소 머리를 잡아 올려놓곤 했다. 이 사내는 춤추는 아가씨의 동반자인 것 같았다. 클로드는 그처럼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었으므로 그의 모습을 똑똑히 알아볼 순 없었다. 그 알 수 없는 사내를 보고 나서부터 부주교의 주의는 춤추는 아가씨와 그 사내와의 사이로 나눠지는 것 같았으며, 그의 얼굴은 더욱 침울해졌다. 그는 갑자기 벌떡 몸을 일으켰는데 전신이 와들와들 떨렸다. "저 사낸 대체 뭘까? 난 언제나 저 여자 홀로 있는 걸 봤었는데!" 하고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는 나선 계단의 꼬불꼬불한 천장 아래로 다시 들어가 층계를 내려갔다. 방긋 열려 있는 종탑 문 앞을 지나던 그는 이상한 것을 보았다. 카지모도가 커다란 겉창처럼 생긴 슬레이트 차양의 틈새에 몸을 기울이고 역시 광장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하도 골똘히 바라보고 있어서 양아버지가 지나가는 것조차 몰랐다. 그 짐승 같은 눈이 이상한 빛을 띠고 있었다. "거참 괴상한 일이로다!" 부주교는 중얼거리며 내려가기를 계속했다. 잠시 후 그는 종탑 아랫문을 통해 광장으로 나왔다. "그 집시 여잔 대체 어떻게 된 거요?" 그는 북소리를 듣고 모여들었던 구경꾼 무리 속에 섞여 들면서 말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옆에 있던 사람 하나가 대답했다. "방금 사라져 버렸어요. 저 맞은편 집으로 무슨 춤이라도 추려고 간 것 같습니다. 거기서 그 여잘 불렀으니까요" 조금 전만 하더라도 그 무희가 춤추고 있던 양탄자 위에 이미 그녀는 보이지 않고, 불고 누런 옷을 입은, 그 사내밖에 볼 수 없었는데, 이젠 이 사내 역시 몇 닢의 동전을 벌기 위해, 팔꿈치를 허리에 붙이고, 머리를 뒤로 젖히고, 얼굴은 빨갛고, 목은 팽팽히 긴장돼 가지고, 의자 하나를 이빨 사이에 물고 동그라미 주위를 거닐고 있었다. 그는 그 의자 위에 이웃 여자가 빌려 온 고양이 한 마리를 비끄러매 놓았는데, 고양이는 질겁하며 울고 있었다. "오, 맙소사!" 부주교는 그 곡예사가 굵은 땀방울을 흘리면서, 의자와 고양이를 피라미드처럼 쌓아올린 것을 입에 물고 자기 앞을 지나갈 때 이렇게 외쳤다. "피에르 그랭구아르 군은 거기서 뭘 하는 거야?" 부주교의 준엄한 목소리는 이 가련한 사내에게 어떻게나 심한 충격을 주었던지 그는 그 모든 피라미드 건축물과 더불어 균형을 잃고, 의자와 고양이는 군중의 머리 위에 뒤죽박죽 떨어졌다. 만일 피에르 그랭구아르 선생께서 그 야단법석의 틈을 타서 부주교가 자기를 따라오라고 손짓한 성당 안으로 재빨리 피난해 버리지 않았던들, 그는 그 고양이의 임자인 이웃 여자와 얼굴에 타박상을 입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딱한 꼴을 당하게 되었으리라. 성당은 이미 캄캄하고 사람도 없었다. 본당은 적막으로 가득 차 있었고, 예배당의 등불이 총총히 켜지기 시작할 만큼 어두워져 가고 있었다. 오직 정면의 커다란 둥근 창만은 그 숱한 빛깔이 햇살로 물들어, 마치 한 더미의 금강석처럼 반짝거리며, 본당 반대쪽에 그 눈부신 분광을 반사하고 있었다. 안으로 몇 걸음 걸어 들어간 클로드는 한 기둥에 몸을 기대곤 그랭구아르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랭구아르는 그런 어릿광대 옷을 입고 있는 것을 점잖은 사람에게 들킨 것을 부끄러워하곤 있었지만, 부주교의 눈은 그가 두려워하는 그런 눈초리는 아니었다. 신부의 눈초리는 조금도 비웃거나 빈정거리는 빛이 없었다. 그것은 진지하고 침착하고 예리한 눈이었다. "이리 오게, 피에르 군. 자넨 내게 여러 가지로 설명을 해줘야겠네. 첫째 벌써 약 두달 전부터 자넬 볼 수 없었던 건 어찌 된 일이며, 붉고 누런 그 아름다운 의상을 하고 네거리에 있는 꼴을 보게 되다니 대체 어찌 된 일인가?" "부주교님" 그랭구아르는 가련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이건 정말 희한한 복장이지요. 보다시피 이런 복장을 하고 있는 저는 호리병을 뒤집어쓴 고양이보다 더 당황하고 있습니다. 순경 나리들에게 외투 아래 철학자의 상박골을 때릴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것이 썩 잘못된 일이라는 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떡합니까, 존경하는 선생님, 그 잘못은 제가 옛날에 입고 있던 윗옷에 있는데 말씀예요. 그놈의 윗옷이 누더기가 되었으니 넝마주이의 망태로 가서 그만 쉬어야겠다는 핑계로 지난 겨울초에 비겁하게시리 저를 버리지 않았겠습니까. 어떡합니까? 게다가 또 바람도 몹시 춥지 않겠어요. 그러던 차에 이 외투가 나타났던 거죠. 그래서 저는 익살광대 옷차림을 하고 나선 거예요. 이건 일종의 몰락인 셈이지요" "흠, 참 좋은 직업에 종사하고 있구먼!" "하기야 고양이를 걸상 위에 떠받들고 다니는 것보다는 철학을 하고 시를 짓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 그러므로 선생님께서 뜻밖에 저를 부르셨을 때 저는 불고기 앞의 당나귀처럼 얼떨떨했지요. 하지만 어떡합니까. 날마다 살아는 가야겠고, 가장 아름다운 시구가 이빨 아래서는 한 덩이의 치즈만큼의 값어치도 없는 걸요. 그런데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저는 플랑드르의 마 마르그리트 공주를 위해 유명한 축혼극을 지었건만, 마치 소포클레스의 비극 한 편을 4에퀴의 돈으로 살 수 있었던 것처럼, 시에서는 값을 지불하지 않습니다 그려. 그래서 저는 굶어 죽을 지경이었지요. 다행히 저는 제 턱이 좀더 강한 것을 발견하곤 턱에게 이렇게 말했지요. '곡예를 해서 너 스스로를 먹여 살려라' 이렇게 말씀예요. 저의 좋은 친구가 된 한떼의 거지들이 가지가지의 힘드는 곡예를 가르쳐 주어서, 지금은 제 이빨이 낮에 땀흘려 번 빵을 저는 저녁마다 제 이빨에 주고 있지요. 그러나 결국, 저의 두뇌를 이렇게 부려먹다니 서글픈 일이고, 인간은 북을 치고 의자를 물고 하는 데 일생을 보내기 위해 태어난 것은 아니라는 걸 저도 인정하곤 있습니다... 그러나 존경하는 선생님, 인생이란 보내는 것만으로 충분한 것이 아니라 벌어먹고 살아야만 하지 않겠습니까!" 클로드는 잠자코 듣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의 움푹 들어간 눈이 예리하게 꿰뚫을 듯 빛을 띠게 되어, 말하자면 마음속 밑바닥까지 그 시선이 파고 들어 오는 것 같음을 그랭구아르는 느꼈다. "퍽 좋은 일이야, 피에르 군. 하지만 지금 자네가 그 집시 여자와 함께 있는 건 어찌 된 노릇인가?" "그거요! 그야 그 여자가 제 아내고 저는 남편이기 때문이죠" 클로드의 어두운 눈에 불길이 타올랐다. "그런 짓을 하다니, 이 고얀 놈 같으니! 네가 그 계집에게 손을 대다니 그렇게도 하느님으로부터 버림받았더란 말이냐?" "천국을 걸고 맹세합니다, 신부님. 그 점으로 걱정하신다면, 저는 맹세합니다만 그 여자에게 한 번도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남편이니 아내니 하는 건 무슨 소리냐?" 그랭구아르는 부랴부랴 자기가 기적궁에서 겪은 일이며 독자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에게 얘기해 주었다. 그런데 이 결혼은 아직도 아무런 결과를 가져오지 않은 것이, 저녁마다 그 아가씨는 첫날밤부터 신방 꾸미기를 회피해 온 모양이었다. "이건 환멸입니다" 하고 그는 얘기를 끝마치며 덧붙였다. "그러나 그 원인은 불행히도 숫처녀와 결혼했기 때문입니다," "그게 무슨 뜻이지?" 이야기를 들음에 따라 차차 노염이 가라앉은 부주교는 물었다. "그건 설명하기가 꽤 어려운데요. 그건 하나의 미신입니다. 저희들 사이에서 존경받는 한 늙은 거지가 말한 바에 의하면, 제 아내는 업동이, 또는 결국 마찬가지 말입니다만 잃어버린 아이랍니다. 그녀는 목에 부적 하나를 달고 있는데, 사람들이 단언하는 바에 의하면, 이 부적이 언젠가는 그녀로 하여금 부모와 만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인 바, 만일 아가씨가 순결을 잃으면 부적도 효능을 잃는다는 겁니다. 그런 까닭으로 저희들 부부는 매우 정결하게 지내고 있는 거지요" "그렇다면," 클로드는 더욱 이마가 밝아지면서 말을 이었다. "피에르 군, 자넨 그 여자가 어떤 남자에게도 접근한 일이 없었다고 믿는가?" "미신에 대해 감히 무슨 일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 여자 머릿속엔 그것이 꼭 박혀 있는 걸요. 호락호락 넘어가는 집시 계집애들 가운데서 끄떡도 않고 몸을 지키는 이 수녀 같은 절개야말로 확실히 희귀한 겁니다. 그러나 그 여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세 가지 것을 가지고 있어요. 첫째는 그녀를 자기의 보호하에 두고 있는 이집트 노인인데, 그는 아마 아가씨를 어떤 신부님에게 팔아 넘길 요량을 하고 있는지도 몰라요. 다음엔 그녀가 속해 있는 동아리 전체로서, 그들은 그녀를 마치 성모 마리아처럼 비상하게 숭배하고 있지요. 끝으로 파리 시장의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이 여자가 늘 몸 어딘가에 지니고 다니는 한 자루의 예쁘장한 비수인데, 누가 그녀에게 육박하면 그 비수는 곧 손으로 나오지요" 부주교는 그랭구아르에게 마구 질문을 퍼부었다. 그랭구아르의 판단에 의하면, 에스메랄다는 입을 삐쭉거리는 그녀 특유의 버릇이 있기는 하지만 어여쁘고 매혹적이고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여자이며, 순진하고 열정적인 처녀로서 아무 물정도 모르고 무엇에고 열중하고, 본래 그렇게 생겼는지라 무엇보다 춤과 법석과 바깥을 미칠 만큼 좋아하며, 일종의 벌 같은 여자여서 발엔 눈에 보이지 않는 날개를 갖고 있는 듯하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이런 성격은 그녀가 늘 하고 있었던 방랑 생활 탓이었다. 그랭구아르는 그녀가 아주 어렸을 적에 스페인과 카탈로니아, 그리고 시실리아까지도 돌아다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가 드나드는 거리의 민중은 그녀의 쾌활함과 상냥함, 그리고 활발한 그 춤과 노래로 말미암아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요컨대 이 철학자는 이런 종류의 플라토닉한 결혼 생활을 진득이 참아 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항상 잠자리와 빵을 확보해 주었다. 매일 아침 그는 대개의 경우 이 집시 아가씨와 함께 거지패를 떠나, 네거리에서 그녀가 방패 동전과 작은 백동전을 거두어들이는 것을 거들고, 매일 저녁 함께 같은 지붕 아래도 돌아와, 그녀가 자기 방에 들어가 빗장을 거는 대로 내버려 두고 자신은 편안한 잠을 자는 것이었다. 모든 것을 따져 보면 매우 안온한 생활이며, 몽상을 위해서도 썩 좋은 생활이라고 그는 말하는 것이었다. 그는 그녀와 거의 같은 정도로 그 염소도 사랑하고 있었다. 그것은 온순하고 영리하고 재치 있고 유식한 짐승이었다. 그랭구아르가 설명해 준즉 클로드는 매우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았다. 염소에게 어떤 요술을 시키려면, 대개의 겨우 어떤 일정한 방식으로 염소에게 방울북을 내밀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염소는 그런 훈련을 집시 아가씨로부터 받은 것인데, 그녀는 그런 묘기에는 희한한 재주가 있어서, 움직이는 글자를 가지고 '페뷔스'라는 낱말 쓰기를 염소에게 가르쳐 주는 데는 두 달로써 충분했다는 것이었다. "페뷔시!" 하고 신부는 말했다. "왜 페뷔스란 말을?" "저도 모르겠어요. 아마 이 낱말이 어떤 신비로운 마술의 효능을 지니고 있다고 그 여잔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지요. 그 여잔 자기가 혼자 있다고 생각할 때는 흔히 그 낱말을 중얼거리거든요" "자네 생각으론 확실히..." 클로드는 꿰뚫는 듯한 눈으로 쏘아보면서 말을 이었다. "그것이 어떤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한 낱말에 불과하다고 보는가?" "이름이라니 누구 이름이란 말씀인가요? 이 방랑자의 무리들은 배화교도여서 태양을 숭배하기에 페뷔스란 말을 중얼거리는 거겠지요" "나로선 자네만큼 그 점이 명백하지 않네 그려, 피에르 군" "어쨌든 그건 제겐 상관없습니다. 그 페뷔스란 말을 제멋대로 중얼거리라죠 뭐" 부주교는 손으로 턱을 괴고 잠시 몽상에 잠겨 있더니 느닷없이 그랭구아르 쪽으로 돌아섰다. "그래, 자넨 그녀에게 손을 대지 않았다고 내게 맹세하겠는가?" "암, 맹세합니다" "그래, 자넨 그 여자와 단둘이 있는 수가 흔히 있단 말이지?" "저녁마다 꼬빡 한 시간 동안은 같이 있지요" 클로드는 눈썹을 찌푸렸다. "목숨을 걸고 맹세하라. 네가 그 여자에게 손가락 끝도 내지 않았다는 것을" "맹세하겠습니다. 그러나 존경하는 선생님, 이번엔 제가 한 가지 물어 보는 걸 허락해 주십시오" "말해 보게나" "그게 선생님과 무슨 상관이 있나요?" 부주교의 핼쓱한 얼굴은 불현듯 새빨개졌다. 그는 한참 동안 대답을 않고 있더니, 눈에 띄게 당황하면서 말했다. "내 말 듣게, 피에르 그랭구아르 군. 내가 아는 한 자넨 아직 영벌을 받진 않았네. 난 자네에게 관심을 갖고 있고 자네가 잘되길 바란다네. 그런데, 그 악마의 집시 계집애에게 조금만 손을 댄다면 자넨 마왕의 신하가 될 걸세. 자네도 아시다시피 영혼을 타락시키는 건 언제나 육체인 거야" 부주교는 말을 마치자 어리둥절해 있는 그랭구아르를 놓아 두고 성당의 가장 컴컴한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 버렸다. 3 그 죄인 공시형이 있은 날 이후로 노틀담 성당 부근의 사람들은 카지모도의 종치는 열정이 아주 식은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예전엔 걸핏하면 종소리가 울렸으니, 기다란 새벽종이 조례가 시작될 때부터 끝날 때까지 계속되는가 하면, 대미사를 위한 모든 큰 종들의 주명 종소리, 영세와 혼례식을 알리는 종소리가 풍부한 음계로 울려 퍼져, 마치 공중에서 온갖 종류의 매혹적인 소리가 수를 놓듯 서로 섞여 드는 것이었다. 우렁차게 진동하는 낡은 성당은 끊임없는 종들의 환희 속에 잠겨 있었다. 사람들은 그 모든 구리쇠의 입으로 노래되는 하나의 소음과 광상곡의 정령이 줄곧 거기 있는 것을 느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정령이 사라져 버린 것 같았으며, 대성당은 맥이 빠진 듯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축제와 장례식 때는 의식이 요구하는, 단순히 그것들만을 위한 여운 없는 종소리만 들리 뿐이었다. 하나의 성당이 내는 이중의 소리인, 내부의 큰 오르간과 외부의 종소리 중에서 큰 오르간 소리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종탑 속에 연주가가 없어진 것 같았다. 그러나 카지모도는 여전히 거기 있었다. 그렇다면 대관절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단 말일까? 그 공시형을 받은 수치감과 절망감이 그의 가슴 속 밑바닥에 아직도 계속되고, 고문관의 매질이 끝없이 마음속에 메아리 치고, 그 같은 취급을 받은 슬픔이 그의 속에 있는 모든 것을, 심지어 종들에 대한 정열까지도 깨뜨려 버렸던 것일까? 그러던 중 이 은혜로운 1482년의 해에, 성모 영보제의 날인 3월 25일 화요일이 왔다. 이날은 공기가 하도 맑고 산뜻해 카지모도는 종들에 대한 그 어떤 애정이 자기 마음속에 되돌아옴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아래쪽 성당 문들을 활짝활짝 열어 놓곤 북탑으로 올라갔다. 종들이 매달린 높은 칸에 이르자 카지모도는 슬픈 듯 머리를 끄덕거리면서 여섯 개의 종을 한참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것은 마치 그의 가슴 속에서 종들과 자기 사이에 끼어 들어와 있는 그 어떤 낯선 것을 슬퍼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가 종들을 흔들었을 때, 그 주렁주렁 매달린 종들이 손 아래서 움직이는 것을 느꼈을 때, 마치 가지에서 가지로 뛰어다니는 새처럼 파닥거리는 옥타브가 그 음계 위를 오르내리는 것을 보았을 때-왜냐하면 그에겐 그것이 들리진 않으니까-그 악마 같은 음악인, 한아름의 찬란한 둔주곡과 아르페지오를 쏟아 내 그 악마가 이 불행한 귀머거리를 사로잡았을 때, 그는 또다시 행복해져 모든 것을 잊었으며, 상쾌해진 그의 가슴은 얼굴을 활짝 피어오르게 했다. 그는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며 손뼉을 치고, 이 밧줄 저 밧줄로 뛰어다니고, 마치 재주 있는 음악의 명인들을 고무하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목소리와 몸짓으로 그 여섯 가수를 격려하고 있는 것이었다. "자, 자" 하고 그는 중얼거렸다. "너희의 소리를 깡그리 광장에 쏟아라. 오늘은 축제일이다. 게으르면 안돼. 자, 자, 사람 눈에 보여선 안 된다. 모두를 나처럼 귀머거리로 만들어라! 옳지, 옳지..." 그는 종들을 울리느라 정신이 없었고, 여섯 개의 종들은 서로 앞다투어 뛰면서 그 번득거리는 엉덩이들을 흔드는 양이 마치 마부의 질타로 자극 받고 날뛰는 수레에 매인 말들 같았다. 그러다가 문득 그의 시선이 종탑의 깎아지른 벽을 비늘처럼 덮고 있는 슬레이트 사이로 떨어졌을 때, 그에겐 광장에 이상야릇한 옷차림을 한 아가씨 하나가 보였는데, 그 여자가 걸음을 멈추고 땅바닥에 양탄자 한 장을 펴니 그 위에 염소가 올라갔으며, 주위엔 숱한 구경꾼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것을 본 그의 생각의 흐름은 갑자기 방향이 바뀌고, 그의 음악에 대한 정열은 용해된 물질이 바람에 응고하듯 얼어 버렸다. 그는 종치기를 멈추고, 종들에게 등을 돌리고, 슬레이트 차양 뒤에 웅크리고 앉아, 이미 언젠가 한 번 부주교를 놀라게 했던 그 꿈꾸는 듯한 시선으로 춤추는 아가씨를 응시했다. 그 사이 버림받은 종들은 한꺼번에 뚝 소리를 멈추어, 종소리를 즐기던 사람들에게 큰 실망을 주었다. 4 같은 3월의 어느 날 아침, 우리의 젊은 친구인 장 프롤로 물랭은 옷을 입으면서, 지갑이 들어 있는 짧은 바지에서 아무런 쇠소리도 나지 않음을 알아챘다. "가엾은 지갑! 주사위와 맥주병과 비너스가 네 배때기에서 이렇게도 사정없이 창자를 긁어내 버렸구나!" 그는 서글퍼 하며 옷을 입었다. 그는 구두끈을 매다가 한 생각이 떠올랐으나, 처음엔 그것을 쫓아 버렸다가 또 그 생각이 되돌아와 그만 조끼를 뒤집어 입었다. 그것은 분명 마음속에 치열한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는 징표였다. 마침내 그는 모자를 방바닥에 내동댕이쳐 버리곤 외쳤다. "할 수 없다! 좋을 대로 하겠지. 형한테 가보자. 비록 설교는 받겠지만 한푼은 얻겠지" 그런 다음 그는 후다닥 외투를 걸치고, 모자를 주워 가지곤 미치광이같이 나갔다. 라 위세트 거리 앞을 지나가노라니, 쉴 새 없이 돌고 있는 저 먹음직스런 불고기 꼬치 냄새가 그의 후각을 감질나게 했다. 프티 퐁 거리를 건너고 생트 죄느비에브 거리를 지난 장은 노틀담 성당 앞에 이르렀다. 그러자 그는 다시금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르그리 씨의 조각상 주위를 한참 동안 오락가락하면서 극도의 불안에 사로잡혀 '설교는 틀림없이 받겠지만, 돈을 받는다는 건 의심스럽다' 하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그는 수도원에서 나오는 성당지기 하나를 멈춰 세웠다. "부주교님은 어디 계십니까?" "종탑 밀실에 계실 겁니다. 그러나 그리로 그분을 찾아가시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당신이 교황이나 국왕 폐하의 심부름을 오신 것이라면 상관없겠지만 말요" 장은 손뼉을 쳤다. '잘됐다! 이야말로 그 유명한 마술의 방을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이런 생각으로 확고한 결심이 선 그는 단호히 그 검고 작은 문 아래로 들어가, 종탑의 위층으로 통하는 나선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원주가 늘어선 회랑에 이르러 잠시 숨을 돌리고, 무한히 계속되는 층계에 대해 몇십 번이나 되는지도 알 수 없는 욕설을 한 뒤, 오늘날엔 일반 사람들에게 금지돼 있는 북탑의 작은 문을 거쳐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에구, 지겨워!" 하고 장은 말했다. "아마 여기겠지" 열쇠가 자물통에 꽂혀 있었다. 문은 바로 코앞에 있었다. 그는 살그머니 문을 밀고, 빠끔히 열린 틈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의 눈앞에 파우스트의 독방과 흡사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것은 햇빛도 제대로 들지 않는 캄캄한 굴 속이었다. 커다란 안락의자와 책상이 하나씩 있고, 큰 컴퍼스와 증류기, 천장에 매달린 동물의 해골, 바닥에 굴러 떨어져 있는 천구의, 그리고 금 이파리가 떨고 있는 병이며, 갖가지 모양으로 생긴 얼룩덜룩한 송아지 가죽 위에 놓인 해골 바가지, 활짝 편 채 아무렇게나 쌓아 놓은 두툼한 양피지 책들, 그리고 끝으로 온갖 종류의 학문 용구들이 뒤죽박죽 흩어져 있는데, 그런 더미들 위엔 어디고 먼지가 소복하고 거미줄이 늘어져 있었다. 이 방에 한 사나이가 안락의자에 앉아 책상 위에 몸을 구부리고 있었다. 그는 등을 돌리고 있었으므로 장은 그의 어깨와 뒷머리밖에 볼 수 없었으나, 그 대머리를 알아보기에 힘들진 않았는데, 자연은 마치 하나의 외적인 상징에 의해 성직자의 소명을 나타내려고라도 한 것처럼 아주 영원한 삭발을 해놓았던 것이다. 문이 아주 가만히 열렸기 때문에 클로드는 장이 와 있다는 것은 모르고 있었다. 이 호기심 많은 학생은 그것을 기회로 한참 동안 유유히 그 독방을 살펴보았다. 그가 처음엔 보지 못했던 커다란 화덕 하나가 안락의자 왼쪽 채광창 밑에 놓여 있었다. 그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둥근 거미줄을 꿰뚫는데, 거미줄은 채광창 속에서 멋스럽게 그 섬세한 원 무늬를 그려 내고 있었고, 그 한복판엔 건축가인 벌레가 꼼짝 않고 매달려 있었다. 화덕 위엔 온갖 종류의 항아리며 도기병, 유리 증유기, 목탄 플라스크 등이 어수선히 쌓여 있었다. 장은 거기에 냄비는 하나도 없는 것을 보곤 한숨을 쉬었다. '깨끗하구나, 부엌 도구들은!' 연금술 도구 가운데 장의 눈에 띈 유리 가면-이것은 아마 부주교가 무슨 무서운 물체를 만들어 낼 때 그의 얼굴을 보호하는 데 사용하는 모양인데, 그런 유리 가면 하나가 먼지에 덮여 마치 버림받은 것처럼 방 한구석에 놓여 있었다. 게다가 조그만 방 전체가 황폐된 채 내버려 둔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도구들을 아무렇게나 내버려 둔 꼴을 보면 이 방의 주인이 벌써 오래 전부터 무슨 다른 관심사로 말미암아 일을 팽개쳐 놓고 있는 것 같이 여겨졌다. 그러는 동안 이상야릇한 그림으로 장식된 한 권의 필사본 위에 몸을 기울이고 있는 방의 주인은 끝없는 한 가지 생각으로 고민하는 것 같이 보였다. 그가 생각에 잠겨 간간이 큰 소리로 잠꼬대 같은 말을 외치곤 하는 것을 듣고 있던 장은 적어도 그렇게 판단했다. "얼마 전부터," 그는 고통스러운 듯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난 내 모든 실험에 실패만 하고 있다! 고정 관념이 나를 괴롭히고 뇌를 마치 불에 발라 비틀어지는 클로버처럼 시들게 한다. 한 사나이를 약하게 하고 미치게 하기 위해서는 단 하나의 하찮은 생각만으로도 충분하다... 오!" 그런 뒤 그는 의자와 책상 위에 푹 쓰러져 버렸으므로, 거대한 서류더미 뒤에 가려져 장에겐 보이질 않았다. 얼마 동안 책 위에서 경련하는 그의 오그라진 주먹밖엔 보이지 않았다. 그러더니 별안간 벌떡 일어나 클로드는 컴퍼스를 집어 들고, 말없이 벽 위에 다음과 같은 희랍어를 크게 새겼다. ANATKH 부주교는 안락의자로 가서 다시 앉고, 이마가 무겁고 뜨거운 병자가 그러듯 두 손으로 머리를 받쳤다. 장은 자기 형을 놀란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그는 아직 알지 못하고 있었다. 이 세상에서 즐거운 자연 법칙은 지키지 않는 그는, 자기 정열을 제멋대로 흘러가게 하고 있던 그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인간의 정열의 바다가 모든 출구를 빼앗겼을 때, 그것이 둑을 무너뜨리기까지는 얼마나 맹렬하게 술렁거리고 끓어오르고, 얼마나 내부의 흐느낌과 은밀한 경련으로 폭발하는지를... 클로드의 엄격하고 냉정한 외관은, 가파르고 싸늘한 표면은 항상 장을 속여 왔었다. 이 쾌활한 학생은 에트나 산의 눈으로 덮인 이마 밑 깊숙한 곳에 맹렬히 끓어오르는 용암이 있으리라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가 이와 같은 것을 깨달았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으나, 설사 아무리 경솔하다 치더라도 그는 자기가 보아서는 안 될 것을 보았다는 것을, 그리고 형이 그런 줄을 알아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해했다. 형이 또다시 처음과 같이 부동 상태에 빠진 것을 본 그는 살그머니 머리를 빼고, 누가 왔다는 것을 아리기라도 하는 사람 모양으로 문 뒤에서 발자국 소리를 좀 냈다. "들어와요! 기다리고 있었소... 들어와요, 자크 씨" 부주교는 독방 안에서 외쳤다. 학생은 대담하게 들어갔다. 이런 장소에서 그런 방문을 받는다는 것은 부주교로서는 몹시 난처한 일이었으므로 그는 의자 위에서 몸을 떨었다. "아니! 너 장이 아니냐?" "네, 제 이름엔 변함이 없지요" 학생은 뻔뻔스럽고 쾌활한 얼굴로 그렇게 대답했다. 클로드의 얼굴은 다시금 그 준엄한 표정으로 되돌아갔다. "여긴 뭐하려 왔느냐?" "형님" 학생은 될수록 얌전하고 가련한 표정을 지으려고 애쓰고, 순진한 양 손 안에 벙거지를 굴리면서 대답했다. "부탁이 있어서 왔는데요..." "애야" 부주교는 쌀쌀한 어조로 말했다. "난 너를 대단히 못마땅히 여기고 있다" 그것은 무서운 시작이었다. 장은 심각한 타격을 받을 각오를 했다. "장, 네게 대한 불평이 매일 들어오는구나. 네가 알베르 드 라몽 자작이란 소년을 몽둥이로 후려쳤다는데, 대관절 무슨 일이냐?" "아, 그것요! 그 짓궂은 놈이 말을 진창 속에 달리면서 학생들에게 흙탕물을 튀기는 장난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네가 마이에 파르젤이란 사람의 가운을 찢었다는데 그건 어떻게 된 일이냐?" "체! 시시한 망토인 걸 뭐 그래요! 제가 꼬마둥이들에게 정당한 이유가 있어 따귀 좀 갈기고 뭇매질 좀 했다고 해서 그렇게 무서운 얼굴을 하실 정도로 형님은 저를 미워하세요?" "뭘 말하려는 거냐?" "글쎄요, 사실은 다름이 아니라 전 돈이 필요한데요..." 이런 뻔뻔스런 소리를 듣고 부주교의 얼굴은 완전히 교훈적인 표정을 띠었다. "장, 너도 아는 바와 같이 티르사프의 우리 영지에서 들어오는 수입이라곤, 스물한 가호의 집세와 땅세를 모두 합쳐 파리 주화 39리브르 11드니에에 불과하다" "전 돈이 필요해요. 클로드 형님, 밥 사 먹게 파리 주화 한 닢이라도 좀 주세요" 학생은 한 번 더 노력해 보았다. "얘야, 다음과 같은 좌우명을 네게 권하겠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 말지어다..." "아니 뭐라고요?" 자은 금세 두 주먹으로 찔러 빨갛게 눈물이 나게 한 눈을 뻔뻔스럽게 클로드 쪽으로 들었다. 그러고 나서 그가 하도 익살스럽고 거칠게 폭소를 터뜨렸기 때문에 부주교도 따라서 빙긋 웃고 말았다. "아! 착하신 클로드 형님" 장은 그 미소에 용기를 얻어 말을 이었다. "제 구두에 구멍이 뚫린 걸 보세요. 세상에 구두창이 혓바닥을 내놓고 있는 것보다 더 비참한 경우가 있겠어요?" 부주교는 재빨리 준엄한 태도로 되돌아갔다. "장, 넌 넋이 빠졌구나. 죄악은 교수대로 통한다" "교수대는 한쪽 끝엔 사람을, 다른 쪽 끝엔 온 지구를 갖고 있는 저울이지요. 그런 사람이 된다는 건 아름다운 일이죠" 이때 층계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 왔다. "조용히!" 부주교는 자기 입에 손가락을 갖다 대고 말했다. "자크 씨가 온다. 내 말을 들어라, 장" 그는 나지막한 소리로 덧붙였다. "네가 여기서 보고 들은 건 결코 입 밖에 내지 말아라. 빨리 저 가마 아래 숨어라. 그리고 숨도 쉬지 마라!" 학생은 가마 아래 들어가 웅크렸다. 거기서 그는 기발한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런데 클로드 형님, 숨을 안 쉬는 값으로 1플로린 주세요" "쉿! 그래 알겠다" "지금 줘야 돼요" "옛다, 가져라!" 부주교는 성이 나서 전대를 그에게 집어던졌다. 장이 다시 가마 아래로 들어가자 문이 열렸다. 5 방문객은 검은 법의를 입고 침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우리의 친구 장이(독자도 짐작되겠지만, 그는 모든 것을 마음대로 보고 들을 수 있도록 그 구석에서 노력하고 있었다)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은, 이 새로 온 사람은 옷차림도 얼굴도 말할 나위 없이 음산했다는 점이다. 그는 머리가 새하얗고, 이마가 쪼글쪼글하고, 눈을 자꾸 깜박거리고, 입술이 축 처져 있고, 손이 퉁퉁했다. 한편 부주교는 손님에게 문 옆에 있는 걸상에 앉으라고 하고, 전부터 하던 명상을 계속하는 듯 잠시 침묵을 지킨 다음에야 입을 열었다. "그래, 성공하였소?" "아, 선생님" 상대방은 서글픈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저는 여전히 바람을 불고 있지만, 재만 흠뻑 나올 뿐 금이라곤 한 점도 반짝이지 않습니다" 부주교는 안타까운 듯한 몸짓을 했다. "그 얘기가 아니오, 자크 씨. 그게 아니라, 당신의 마술사의 소송을 말한 거요. 그 이름이 마르크 스네느라고 했지요. 그는 제 마술을 자백했소? 당신의 심문이 성공했소?" "한심스럽지만 그렇지가 못합니다. 그 사내는 돌덩이거든요. 그 자가 뭐라고 불기 전엔 뜨거운 물에 튀기게 하렵니다만..." "아닙니다. 양피지를 발견했지요. 이 위엔 우리들이 모르는 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필립 형사는 히 히브리 말을 좀 배워 알고 있지요" 자크 나리는 양피지 한 장을 펼쳤다. "이리 줘요. 순전한 말술이오, 자크 씨!... '에맹-에탕!' 이건 흡혈귀들이 마술사의 야연에 갈 때 지르는 소리요. 자크 씨! 당신은 성당 재판소의 국왕 검사인데, 이 양피지는 흉악한 것이오" "그 자를 다시 심문에 붙이겠습니다. 아참, 깜박 잊고 있었군요! 그 마술사 소녀는 언제 체포했으면 좋겠는지요?" "마술사 소녀라니?" "선생님께서 잘 아시는 그 집시 계집애 말입니다. 종교 재판소 판사의 금지에도 불구하고 날마다 성당 앞 뜰에 와서 춤추는 여자 말예요! 그 계집애에겐 악마의 뿔이 달린 신들린 암염소가 있는데, 이건 글을 읽고 쓰고 수학을 아는 염소여서, 모든 보헤미아 사람들을 교수형에 처하게 하고도 남음이 있어요. 소송은 다 준비돼 있는데, 언제 시작할까요?" 부주교는 극도로 창백했다. 그는 또렷하지 못한 목소리로 더듬거렸다. "그건 나중에 말하겠소. 마르크 스네느의 일에나 신경 쓰시오" "그럼 그 소녀에 관해선 선생님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아참, 정면 현관문 아래를 지나갈 때, 성당으로 들어오면서 보이는 평면화에 그려져 있는 정원사는 무슨 뜻인지 좀 설명해 주십시오... 아니 선생님, 대체 뭘 생각하고 계십니까?" 클로드는 자기 생각 속에 잠겨 이제 그의 얘기를 듣지 않고 있었다. 자크가 그의 시선의 방향을 쫓아 본즉, 그것은 채광창을 덮고 있는 커다란 거미집에 멎어 있었다. 이때, 덤벙거리는 파리 한 마리가 3월의 햇빛을 찾고 있다가 그 그물 속에 날아들어 걸려 버렸다. 줄이 흔들리자 거미는 그의 가운데 방에서 재빨리 기어 나와 파리에게 달려들어, 앞의 촉각으로 도막내 그 끔찍스런 입으로 파리의 머리를 후벼파고 있었다. "가엾은 파리!" 성당 재판소의 검사는 이렇게 말하고 손을 들어 그 파리를 살려 내려 했다. 그러자 부주교는 자다가 벌떡 깨어 일어나듯 텁석 그의 팔을 붙들었다. "자크 씨, 숙명이 이루어지도록 내버려 두시오!" 검사 자크 샤르몰뤼는 깜짝 놀라 돌아보았다. 그는 마치 자기 팔이 쇠집게에 집힌 것만 같았다. 부주교의 눈은 고정된 채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으며, 파리와 거미의 그 작고 무서운 무리를 응시하고 있었다. "오, 그렇다!" 신부는 마치 오장육부에서 나오는 듯한 목소리로 계속했다. "저것이 모든 것의 상징이다. 파리는 날아다닌다, 즐겁다, 봄을 찾고 대기를 찾고 자유를 찾는다. 오! 그러나 그것은 숙명적인 창에 부딪히고, 거기서 거미가 나온다. ...춤추는 가엾은 파리! 미리 숙명지어진 가엾은 파리! 아, 슬프다! 클로드여, 너는 거미로다. 클로드여, 너는 또한 파리로다!... 너는 학문을 향해, 빛을 향해, 태양을 향해 날고 있었다. 너는 영원한 진리의 대기에 도달할 것밖엔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다. 딴 세계, 광명과 지성의 세계를 향해 트인 눈부신 창을 향해 뛰어가면서, 눈먼 파리여, 미련한 박사여, 너는 빛과 너 사이에 운명이 쳐 놓은 미묘한 거미줄을 보지 못하고, 거기 맹렬히 뛰어들었다. 그리하여 넌 숙명의 촉각 사이에서 머리가 부서지고 날개가 뽑힌 채 몸부림치고 있구나! 네 각다귀 같은 날개로 저 무시무시한 거미줄을 찢을 수 있게 되면 넌 햇빛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고 믿으리라만, 오 슬프다! 더 저쪽에 있는 저 유리창은, 저 투명한 장애물은, 모든 철학을 진리에서 격리하고 있는 청동보다 더 단단한 저 수정의 벽은 어떻게 넘어서겠느냐?" 그는 입을 다물었다. 자크 검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짐으로써 그로 하여금 현실을 의식케 했다. "그런데 선생님, 언제 오셔서 금을 만들 수 있게 도와 주시렵니까? 속히 성공을 보고 싶은데요" 부주교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자크 씨, 미셀 프셀루스의 저술을 읽으시오. 우리가 하고 있는 짓이 완전히 무고하다고는 할 수 없소" "더 작은 소리로 말하십시오, 선생님! 그건 저도 압니다. 그러나 투르 주화 30에퀴의 연봉을 받는 성당 재판소의 검사이고 보면, 다소 연금술사 노릇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처지가 아니겠습니까. 다만 더 작은 소리로 얘기하십시다" 이때 턱을 놀려 무엇을 깨무는 소리가 가마 밑에서 들려와, 검사의 불안한 귀를 놀라게 했다. "저게 뭡니까?" 그것은 장이었는데, 그는 숨어 있는 자리에서 매우 불편하고 따분하던 차에, 마침 거기서 딱딱한 빵 껍질과 곰팡이 슨 세모꼴 치즈 한 덩이를 발견하기에 이르러, 점심 삼아 체면 불구하고 먹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는 무척 배가 고팠으므로 한 입 먹을 때마다 큰 소리를 내고 있었으니, 그것이 검사에게 주의와 경계심을 일으켰다. 부주교는 얼른 말했다. "아, 저건 내 고양이인데 저 아래서 생쥐를 먹고 있는 거요" 클로드는 장이 또다시 무슨 엉뚱한 짓을 저지르지나 않을까 염려되었으므로, 검사에게 정면 현관문에 함께 관찰할 몇 개의 조각상이 있다는 것을 환기시키곤 독방에서 나갔다. 장은 "후!" 하고 안도의 숨을 쉰 뒤 급히 밖으로 기어 나왔다. "아, 머리가 종각처럼 우렁우렁 하는구나. 자, 어서 내려가자. 형님의 전대를 집자. 그리고 이 돈을 깡그리 술병으로 바꾸자!" 그는 애정과 감탄 어린 눈으로 그 소중한 전대의 내부를 흘끗 바라보고, 옷차림을 고치고, 구두를 문지르고, 재로 뽀얗게 된 가엾은 소매를 털고, 노랫가락 하나를 휘파람으로 불고, 깡총 뛰어 몸을 돌리고, 독방 안에 뭐 집어 갈 것이 있지나 않나 살펴보고, 끝으로 그의 형이 마지막 선심으로 열어 놓은 채 둔 문을 열고 나와, 새 새끼처럼 폴딱폴딱 뛰어서 빙글빙글 도는 계단을 내려왔다. 그는 땅 위에 나오자 발을 동동 굴렀다. "오! 즐겁고도 고귀한 파리의 길바닥이여! 하늘을 찌르는 저 돌의 나사 송곳 속으로 기어 들어가다니 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는 몇 걸음 걸어 나오다가, 형과 자크 나리가 정면 현관문 앞에 서서 조각물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을 봤다. 그는 발끝으로 살금살금 그들에게 다가가, 부주교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가장자리를 도금한 이 푸르스름한 빛의 돌 위에 욥을 새기게 한 것은 교므드 파리스요" "그런 건 내겐 아무려나 상관없다" 하고 장은 말했다. "지갑을 가진 건 나다" 이때 그에게는 자기 뒤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일련의 무시무시한 욕설을 내뱉는 것이 들렸다. "제기랄! 젠장! 젠장맞을! 꼴사나운 것! 망할 놈의! 빌어먹을! 벼락맞을!" "정녕코" 장은 외쳤다. "이건 내 친구 페뷔스 중대장임에 틀림없다!" 이 페뷔스라는 이름이, 마침 부주교가 검사에게, 김과 왕의 머리가 나오는 목욕탕 속에 꼬리를 감추고 있는 용을 설명할 때 그의 귀에 들려 왔다. 클로드가 바르르 떨면서 말을 뚝 그치므로 검사는 매우 어리둥절했는데, 그가 돌아다보니 동생 장은 공들로리에 댁의 문 앞에 서 있는 후리후리한 장교에게로 가고 있었다. 그것은 과연 페뷔스 중대장이었다. 그는 자기 약혼녀의 집 모퉁이에 등을 기대고 서서 그처럼 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페뷔스 중대장" 장은 그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참으로 열심히 욕을 하고 있군요" "벼락이나 맞아라!" 중대장이 대답했다. "당신도 벼락 맞아라다! 그런데 점잖은 중대장, 어째서 그렇게 좋은 말이 넘쳐흐르게 된 거요?" "미안하네, 좋은 친구 장" 페뷔스는 그의 손을 잡아 흔들면서 외쳤다. "한번 내닫기 시작한 말은 갑자기 얌전한 체하는 여자들 집에서 나오는 길인데, 내 목구멍엔 욕설로 가득 차 있었어" "술이나 마시러 가지 않겠소?" "그러곤 싶지만 난 돈이 없어" "내게 있으니까" 그러는 동안 부주교는 어리둥절해 있는 검사를 거기 둔 채 그들 쪽으로 와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걸음을 멈추곤 두 사람의 동정을 살피고 있었다. 그들은 그런 줄도 모를 정도로 전대를 들여다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디로 갈까?" 페뷔스가 말했다. "폼 데브로 갈까?" "아니, 비에유 시앙스로 갑시다" "장, 포도주는 폼 데브가 더 좋아. 그리고 또 문 옆에 포도나무 한 그루가 있어서, 거기서 술을 마시면 난 유쾌하단 말야" "그렇다면 그리로 가요" 두 친구는 술집을 향해 출발했다. 부주교는 불안하고 침울한 마음으로 그들의 뒤를 따랐다. 그가 그랭구아르를 만나 본 이래, 페뷔스란 저주스런 이름이 모든 생각 속에 섞여 들어오곤 했었는데, 이것이 바로 그 장본인이었을까? 그는 그런지 어떤지 몰랐지만, 결국 그것이 페뷔스란 사람이고 보면, 부주교는 살금살금 뒤를 밟으면서 불안한 마음으로 그들의 얘기를 엿듣고 일거 일동을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결투 이야기며, 계집 이야기, 술 이야기, 그 밖에 온갖 이야기를 했다. 한 거리의 모퉁이를 돌아갈 때, 방울 달린 북소리가 들려 왔다. 클로드는 장교가 학생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벼락 맞을! 빨리빨리 가자" "왜 그래요, 페뷔스?" "집시 계집앨 만날까 걱정이다" "에스메랄다 말인가요?" "맞아. 난 늘 그 빌어먹을 이름을 잊어버린단 말야. 그 여잔 날 알아볼 거야. 난 그 여자가 거리에서 내게 말 걸어오는 게 딱 질색이야" "그 여잘 알고 있나요, 페뷔스?" 이때 주교는 페뷔스가 히죽 웃으면서 장의 귀에 입을 기울이고, 나지막한 소리로 몇 마디 소근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런 뒤 페뷔스는 깔깔 웃고 의기양양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정말이요? 오늘 저녁에?" 장이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정말이고말구!" "틀림없이 그 여자가 올 거라고 생각해요?" "자네 미쳤나, 이런 일을 다 의심할 수 있나?" 부주교는 이 대화를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들었다. 그는 이가 덜덜 떨렸다. 그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술 취한 사람처럼 차량 차단석에 몸을 기대고 있다가, 다시 그 유쾌한 두 건달의 뒤를 밟았다. 6 술집은 롱델 거리와 바토니에 거리 사이에 있었다. 그것은 맨 아래층에 있는 방으로서, 노랗게 칠한 굵은 나무 기둥에 의지하고 있으며, 도처에 탁자가 놓여 있고, 번쩍거리는 술병이 벽에 걸려 있고, 언제나 술꾼들이 들끓고, 계집애들이 시끌시끌하고, 거리 쪽으론 유리창이 있고, 문 앞에 포도나무 한 그루가 서 있으며, 그 문 위엔 사과 한 알과 여자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밤이 내리고 있었다. 촛불이 가득 켜진 술집은 멀리서 어둠 속에 대장간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술잔 부딪치는 소리, 음식 먹는 소리, 싸움 소리, 욕하는 소리들이 깨어진 유리창으로 새어 나왔다. 한 사나이가 소란스런 술집 앞을 태연히 거닐면서 끊임없이 바라다보고, 파수보는 병사처럼 거길 떠나지 않았다. 그는 코까지 망토를 푹 뒤집어쓰고 있었다. 이 망토를 그는 근처에 있는 헌옷 가게에서 방금 샀던 것인데, 물론 저녁의 추위를 막기 위해서였겠지만, 한편 자신의 복장을 감추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른다. 때때로 그는 납고리가 붙은 흐려진 유리창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바라다보며 발을 구르곤 했다. 마침내 술집 문이 열렸다. 그리고 두 술꾼이 거기서 나왔다. 문에서 새어나온 불빛이 순간 그들의 쾌활한 얼굴을 빨갛게 물들였다. 망토를 걸친 사나이는 거리 반대쪽의 한 여관으로 들어가서 지켜보았다. "이런 벼락 맞을!" 두 술꾼 중의 하나가 말했다. "곧 일곱 시를 치겠구나. 그건 내 밀회 시간인데 말야" "난 말이야" 그의 동행자가 혀꼬부라진 소리로 말을 받았다. "악담의 거리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 그 말이야. 난 장 뺑 몰레 거리에 숙소가 있단 말씀이야. 당신이 만일 그 반대의 말을 한다면, 당신은 외뿔 짐승보다 더 뿔이 많다 그 말이야. 그런데 당신은 너무 단 것 쪽으로 코를 돌리고 있다 그 말씀이야..." "장, 이 친구, 넌 취했구나. 젠장맞을! 좀 똑바로 걷도록 해봐. 알다시피 난 너와 작별을 해야 한단 말야. 일곱 시가 다 됐고, 난 어떤 여자와 만날 약속이 있어" "그러니 날 내버려 두고 가란 말야! 난 눈에서 별이 튀는데, 당신은 지금 뱃가죽이 터지도록 웃는 거야?" "이건 정말 헛소리가 심하구나. 그런데 장, 돈 좀 남았느냐?" "총장 나리, 잘못이 없어" "장, 이봐 친구! 너도 알다시피 난 생 미셀 다리 끝에서 그 계집애와 만날 약속을 했는데, 그 다리의 갈보 파루르델의 집으로밖에 데리고 갈 수 없단 말야. 제발 부탁이다... 우린 그 사제의 전대를 다 마셔 버렸나? 한 닢도 안 남았나?" "다른 시간을 잘 소비했다는 의식은 정당하고 맛 좋은 식탁의 양념이야" "빌어먹을! 부질없는 말은 구만둬!" 그리고 페뷔스가 곤드레만드레가 된 학생을 와락 떠미니, 그는 벽으로 미끄러져 길바닥에 힘없이 쓰러졌다. 술꾼의 마음을 결코 버리는 법이 없는 저 우애로운 연민의 정이 아직도 좀 남아 있었는지라, 페뷔스는 장을 발길로 차서, 파리의 보든 차량 차단석 모퉁이에 하느님의 섭리가 늘 준비해 놓은, 부자들이 멸시하여 '쓰레기 더미'라는 이름으로 모욕하는 저 가난뱅이의 베개들 중 하나 위로 굴려 보냈다. 중대장이 양배추 뭉치의 경사면 위에 장의 머리를 올려놓은즉, 학생은 바리톤과 베이스의 화려한 중간음으로 당장 코를 골기 시작했다. 망토를 뒤집어쓴 사나이는 계속 뒤따라오고 있었는데, 누워 자는 학생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가, 깊은 한숨을 쉬고는 중대장의 뒤를 따라 자리를 떠났다. 독자가 좋다고 한다면, 우리도 그들처럼 아름다운 별의 다정한 눈길 아래에서 장이 자도록 놓아 두고 그들 뒤를 따라가 보자. 생 탕드레 거리로 나왔을 때, 페뷔스는 누가 자기 뒤를 따라오고 있음을 알아챘다. 어쩌다가 눈을 돌렸더니, 그림자 같은 것이 자기 뒤에서 벽을 따라오는 것이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조금밖에 걱정하지 않았다. "체! 난 한푼도 없는걸" 중대장은 용감했으므로, 도둑놈이 손에 칼을 쥐고 있는 것을 보고도 별로 걱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걸어오는 자는, 이 화석 같은 사람은 그를 오싹하게 했다. 이때 세상엔 밤중에 파리의 거리에 나와서 얼쩡거린다는 도사 귀신 얘기가 돌고 있었다. 그는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되도록 웃으려고 애쓰면서 침묵을 깨뜨렸다. "여보시오, 난 당신이 도둑놈이길 바라는데, 만일 그렇다면 당신은 호두 껍질에 덤벼드는 개미 같은 효과밖엔 내게 끼치지 못하오" 그림자의 손이 망토 아래에서 나와 독수리 발톱처럼 묵직하게 페뷔스의 팔 위에 떨어졌다. "페뷔스 드 샤토페르 씨요?" "아니 뭐라고요? 내 이름을 알고 계시는군요?" "이름만 알고 있는 게 아니오. 당신은 오늘 저녁에 밀회가 있죠" "그렇습니다" 페뷔스는 어리둥절하여 고분고분 대답했다. "일곱 시에 파루르델의 집에서" "바로 그렇습니다" "망측하오. 어떤 여자하고요?" "에스메랄다라고 해요" 페뷔스는 쾌활하게 대답했다. 그는 시나브로 여느 때와 같은 태연스러움을 완전히 되찾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시나브로 여느 때와 같은 태연스러움을 완전히 되찾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 이름을 들은 귀신의 손톱은 페뷔스의 팔을 사정없이 흔들었다. "페뷔스 드 샤토페르, 넌 거짓말을 하는구나!" 중대장도 마침내 이를 갈았다. 이때 그는 도사 귀신도, 망령도,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에겐 이제 한 사나이의 모욕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는 칼을 뺐다. 그리고 공포와 마찬가지로 분노로 몸을 떨면서 더듬더듬 외쳤다. "이리 나오너라! 당장 칼을 맞대자! 이 길바닥 위에 피를 흘리자!" 그러자 상대방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중대장이 금세라도 쳐들어오려고 하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페뷔스 중대장" 하고 말했는데, 그 어조는 고통스럽게 떨리고 있었다. "당신은 밀회 약속을 잊었군요" 페뷔스와 같은 사내들의 흥분은 우유 스프와 같은 것이어서, 찬물 한 방울이면 끊다가도 식어 버린다. 그 말 한 마디에 번쩍거리던 칼은 수그러졌다. "중대장, 내일이고 모레고, 한 달 후에고, 당신의 목을 벨 수 있는 나를 당신은 또 만날 수 있소. 그러나 우선 밀회 장소로 가시오" "여보시오, 당신의 그 정중한 태도에 감사하오. 사실 내일이라도 우리는 베고 찌르고 할 수 있소. 난 먼저 당신을 개골창에 쳐 누이고 그 미인을 만나려 했소. 더구나 이런 경우 여자들을 좀 기다리게 하는 것이 멋이니까 말이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당신은 호탕한 사람인 것 같으니, 승부를 내일로 미루는 것이 더 안전할 것 같소... 그럼 이제 난 밀회 장소로 갑니다" 이때 페뷔스는 그 알 수 없는 사나이의 싸늘한 손이 자기 손 안에 한 닢의 커다란 동전을 넣어 주는 것을 느꼈다. 그는 그 돈을 받곤 그 손을 꼭 쥐지 않을 수 없었다. "아, 당신은 참으로 좋은 분이군요!" "조건이 하나 있소" 그 사나이가 말했다. "그 여자가 정말로 당신이 아까 말한 여자인지 아닌지 내가 볼 수 있도록 어디 한쪽 구석에 나를 숨겨 주시오" "그런 것쯤 아무려나 상관없죠" 페뷔스는 유쾌하게 대답했다. "우린 생트 마르트에서 방을 잡을 테니 당신은 옆 오두막에서 마음대로 볼 수 있겠지요" "그럼 갑시다" "좋습니다. 당신이 마귀인지 아닌지 난 모르겠군요. 그러나 오늘 저녁엔 의좋게 지냅시다. 내일이면 내가 빚진 것을 모조리 다 갚아 드리죠" 그들은 다시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몇 분 후 냇물 소리가, 당시는 아직도 집이 즐비했던 생 미셀 다리 위에 그들이 당도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먼저 당신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페뷔스가 자신의 동행자에게 말했다. "그런 다음 나는 광장 근처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그 미녀를 데리러 가렵니다" 동행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들이 나란히 걷기 시작한 이후 그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페뷔스는 어느 나지막한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사정없이 두드렸다. 불빛이 문 틈으로 나타났다. 이어서 노파 하나와 낡은 램프 하나가 보였다. 노파는 허리가 꼬부라지고, 남루한 옷을 입고, 머리를 근들거리고, 조그만 눈이 뚫리고, 이마에 걸레를 두르고, 어디고 다 쪼글쪼글했으며, 입술은 잇몸 아래 옴쏙 들어가고, 입 둘레엔 온통 솔처럼 흰 털이 나 있어서 꼭 어루만져 달래진 고양이와 같은 몰골이었다 집의 내부에 대해 말하자면, 천장의 들보는 새카맣고, 벽토는 부서지고, 구석마다 거미줄이 걸리고, 한가운데엔 한떼의 절름발이 탁자와 의자들이 비트적거리고, 재 속에 꾀죄죄한 어린애 하나가 있었으며, 안쪽엔 층계라기보다 오히려 나무 사다리 같은 것 하나가 천장의 뚜껑문으로 통하고 있었다. 이 소굴 속에 들어가면서, 페뷔스의 동행자는 망토를 자기 눈 위까지 치켜 올렸다. 그 사이 중대장은 뭐라고 입에 발린 욕설을 하면서, 얼른 한 닢의 에퀴 금화 속에 불빛이 반짝거리게 했다. 노파는 그를 대감처럼 떠받들고, 에퀴 금화를 서랍에 넣었다. 여자가 등을 돌리고 있는 사이, 재 속에서 놀고 있던 누더기를 걸친 더벅머리 소년이 교묘히 서랍으로 접근해 그 금화를 훔쳐 내고, 대신 나뭇가지에서 뜯은 가랑잎 하나를 놓았다. 노파는 손님들에게 자신을 따라 오라 신호하고, 앞장 서서 사다리를 올라갔다. 위층에 이르자 그녀는 램프 불을 궤짝 위에 내려놓았으며, 페뷔스는 이 집의 단골 손님답게 스스럼없이 컴컴한 다락방으로 통하는 문 하나를 열었다. "그리 들어가십시오" 하고 그는 동행자에게 말했다. 망토의 사나이는 한 마디도 않고 시키는 대로 했다. 문은 그의 뒤에서 다시 닫혔다. 그는 페뷔스가 노파와 함께 도로 내려가는 소리를 들었다. 불빛도 사라졌다. 7 클로드 프롤로(독자는 이 모든 사건 속에 부주교밖엔 다른 도사 귀신을 보지 않았으리라)는 중대장이 자기를 넣고 문에 빗장을 건 그 캄캄한 방 안에서 한참 동안 더듬거렸다. 그것은 건축가가 때때로 지붕과 벽의 접합점에다 내놓는 그런 종류의 구석의 하나였다. 수직으로 잘린 이 개집 같은 방은 세모꼴로 되어 있었다. 게다가 창문도 채광창도 없었으며, 지붕의 경사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는 서 있을 수가 없었다. 클로드는 자기 아래에서 으스러지는 먼지와 벽토 속에 웅크리고 앉았다. 그의 머리는 타는 듯했다. 이때 부주교의 어두운 마음속에서는 무엇이 일어나고 있었을까? 그 어떤 숙명적인 명령에 의해 그는 자신의 생각 속에서 에스메랄다를, 페뷔스를, 자기가 진흙 속에 내버리고 온 사랑하는 동생을, 자신의 부주교의 법의를, 그리고 또 아마 파루르델의 집에까지 끌고 온 자기의 평판을, 이 모든 인상과 이 모든 모험을 처분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는 15분 가량 기다리고 있었는데, 마치 자기가 백 살이나 더 늙은 것 같이 여겨졌다. 그러자 갑자기 나무 층계의 널빤지가 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누가 올라오고 있었다. 이어 천장의 뚜껑문이 열리고 다시 불빛이 나타났다. 그가 있는 다락방의 벌레 먹은 문엔 꽤 넓은 틈 하나가 있었다. 그는 거기에 얼굴을 꼭 붙였다. 그렇게 하여 그는 이웃방에서 일어나는 것을 다 볼 수 있었다. 고양이의 얼굴을 한 노파가 먼저 뚜껑문에서 램프 불을 손에 들고 나왔고, 그 다음에 페뷔스가 콧수염을 쓰다듬어 올리면서, 또 그 다음엔 세 번째의 사람, 그 아름답고 어여쁜 에스메랄다가 나왔다. 클로드는 그녀가 마치 눈부신 유령처럼 땅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의 혈맥은 심하게 뛰었다. 모든 것이 그의 주위에서 윙윙거리고 빙빙 돌았다. 그가 제정신으로 돌아와 보니, 페뷔스와 에스메랄다만이 나무 궤짝 위 램프불 앞에 앉아 있었는데, 부주교의 눈엔 그 두 젊은이의 얼굴과 다락방 안쪽의 초라한 침대 하나가 불빛에 두드러져 보였다. 처녀는 얼굴에 홍조를 띠고 어쩔 줄 모르며 가슴을 두근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기다란 눈썹은 그 뺨에 그늘을 던졌다. 차마 그녀가 눈을 들고 쳐다보지 못하는 장교는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귀엽고도 어색한 몸짓으로 걸상 위에 손가락 끝을 대고 갈피 잡을 수 없는 선을 그으면서 자기 손가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발은 보이지 않았다. 염소 새끼가 그 위에 쭈그리고 있었다. 중대장은 매우 멋스러운 옷차림이었다. 그의 목과 팔엔 리본의 술이 달려 있었는데, 그것은 당시의 풍류였다. 클로드는 관자놀이에서 끓어오르는 피가 윙윙거리는 바람에, 그들의 대화를 쉽사리 알아들을 수 없었다. "제발" 하고 처녀가 눈을 들지 않고 말했다. "저를 멸시하진 마세요, 페뷔스 도련님. 제가 하는 것이 나쁜 짓 같네요" "당신을 멸시하다니, 아가씬 왜 그런 말을 하시지?" 장교는 다시없이 다정한 표정으로 대꾸하는 것이었다. "제가 뒤쫓아 다녔으니 말이에요" "그 점으로 말하자면, 아가씨, 우린 오해를 하고 있어. 난 당신을 멸시할 것이 아니라 미워해야 할 거요" 아가씨는 깜짝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 "저를 미워하다니요! 대체 제가 무슨 짓을 했다고요?" "그토록 비싸게 굴었으니 말이오" "아, 슬픈 일이지만 그건 제가 맹세를 저버리게 되기 때문이에요... 그러면 저는 제 부모를 다시 만나 보지 못하게 돼요... 부적이 효능을 잃게 되거든요" 이렇게 말한 아가씨는 기쁨과 애정으로 눈물이 글썽거리는 그 커다란 검은 눈으로 중대장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무슨 말인지 통 못 알아듣겠구먼" 에스메랄다는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더니, 이윽고 가느다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오, 도련님... 당신을 사랑해요!" 처녀의 주위엔 하도 강렬한 순결의 향기와 정절의 매력이 감돌고 있었으므로, 페뷔스는 그 곁에서 온전하게 마음이 편하질 않았다. 그러나 그 말은 그에게 기운을 북돋워 주었다. "나를 사랑하신다고!" 하고 그는 집시 아가씨의 허리를 자기 팔로 감았다. 클로드는 그것을 보고, 품속에 감추고 있던 단도의 끝을 손가락으로 시험해 보았다. "페뷔스" 하고 집시 아가씨는 자신의 허리에서 중대장의 끈덕진 손을 살그머니 떼어 내며 말을 이었다. "당신은 친절하신 분이에요, 아름다운 분이에요. 당신은 저를 살려 주셨어요! 방랑 생활 속에 타락한 가련한 계집애에 불과한 저를 말이에요. 전 오래 전부터 꿈꾸고 있었어요. 당신을 알기도 전에 제가 꿈꾸고 있었던 건 바로 당신이었어요. 제 꿈은 당신과 같은 아름다운 제복이었고, 늠름한 풍모였고, 긴 칼이었어요. 당신 이름은 페뷔스인데, 그건 훌륭한 이름이에요" 페뷔스가 또 이 기회를 타서 그녀의 아름다운 목덜미에 입을 맞추니 처녀는 버찌마냥 얼굴이 새빨개져 몸을 일으켰다. 부주교는 그 컴컴한 방구석에서 이를 갈았다. "페뷔스" 집시 아가씨는 말을 이었다. "당신에게 제가 얘기하게 해주세요. 어디 좀 걸어 보세요. 후리후리한 당신을 보여 주세요. 그리고 당신의 박차가 울리는 소릴 들려 주어요. 당신은 어쩜 그렇게도 아름다우실까!" 중대장은 아가씨의 환심을 사기 위해 일어나서, 만족스러운 양 빙긋 웃으면서 그녀를 꾸짖었다. "당신도 참 어린애로군! 그런데 참, 예쁜 아가씨, 내가 예식의 군복 차림을 하고 있는 걸 봤나?" "불행히도 아직 못 봤어요?" "아름다운 건 바로 그것이야!" 페뷔스는 다시 그녀 곁에 와 앉았으나, 먼저보다 훨씬 더 가까이 앉았다. 아가씨는 마냥 즐거워 어쩔 줄 모르는 귀여운 어린애 모양으로 그 고운 손으로 그의 입술을 건드렸다. "아, 페뷔스. 그런데 저를 사랑하세요? 절 사랑하신다면 그렇다고 말씀해 주셔야 해요" "암 사랑하고 말고. 내 생명의 천사! 내 몸도, 내 피도, 내 마음도, 모두 당신 것이야. 아, 난 당신을 사랑해. 그리고 당신밖엔 결코 사랑해 본 적이 없어" 중대장은 이와 비슷한 말을 하도 여러 번 되풀이했었기 때문에, 단 하나의 오류도 없이 단숨에 지껄였다. 이런 정열적인 고백을 듣고, 집시 아가씨는 천국을 대신하고 있는 그 더러운 천장을 행복에 가득 찬 눈으로 우러러보았다. 한편 페뷔스는 이 순간이야말로 그녀로부터 또 하나의 새로운 키스를 훔쳐내기에 좋은 때라고 생각했는데, 이 키스는 그 다락 구석의 가련한 부주교에게 고통을 주었다. "사랑하는 스밀라르... 에스메나르... 미안해. 하지만 당신 이름은 참으로 사라센 사람의 이름 같아서 아무래도 잘 나오질 않는군. 꼭 가시덤불에 걸려드는 것만 같아" "어머나, 전 제 이름이 예쁘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는 걸요! 그러나 그것이 당신 마음에 안 드신다니, 제 이름을 '고통'이라 부르고 싶군요" "아, 그까짓 하찮은 일로 울지 마, 예쁜 여인! 이름이야 익숙해지면 될 돌 가지고 뭘 그래! 이봐요, 사랑하는 스밀라르, 난 당신을 열렬히 진정으로 사랑해. 우리 어디다 조그만 예쁜 집을 갖자구. 난 내 부하들을 당신 방의 창아래 늘어 세워 놓겠어. 그들은 모두 말을 타고 있지. 그리고 파리 시민의 대행렬에도 데려가 줄게. 그건 참으로 장관이야. 수만 명의 무장병과 수만 개의 흰 갑옷, 수십 개의 깃발, 그리고 어마어마한 대행렬! 구리고 또 대궐에 가서 사자도 구경시켜 줄게" 중대장은 계속 말하면서 동시에 아가씨의 허리띠를 사르르 풀었다. "아니, 뭘 해요?" 아가씨는 힘있게 말했다. 그 폭행이 아가씨를 몽상에서 깨어나게 한 것이다. "아무것도 아냐. 난 다만 당신이 나와 같이 있게 될 땐 이 모든 요란스런 길거리의 옷차림을 벗어 던져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을 뿐이야" "그럼요. 제가 당신과 같이 있게 될 때엔, 나의 페뷔스!" 처녀는 정답게 말하곤 또다시 생각에 잠겨 침묵을 지켰다. 중대장은 그 부드러운 태도에 힘을 얻어 다시 아가씨의 허리를 안았으나 그녀는 저항하지 않았다. 그런 뒤 그는 가련한 소녀의 코르셋을 살살 끌러 그 깃장식을 젖혔으므로, 숨을 헐떡거리고 있던 부주교는 마치 지평선의 안개 속에서 솟아오르는 달과도 같이 포동포동한 아름다운 어깨가 엷은 천에서 쑥 불거져 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페뷔스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고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알아챈 것 같지도 않았다. 대담한 중대장의 눈은 반짝거리고 있었다. 갑자기 그녀는 그를 돌아보며, "페뷔스" 하고 무한한 사랑을 담은 표정으로 말했다. "제게 당신의 종교를 가르쳐 주세요" "내 종교를? 내 종교를 가지고 뭘 하겠다는 거지?" "우리가 결혼을 하기 위해서지요..." 중대장의 얼굴은 순간 놀람과 멸시의 태연스러움과 방종한 정열이 한데 뒤섞인 표정을 띠었다. "체, 누가 결혼한댔나?" 그 순간 집시 아가씨는 얼굴이 새파래져서 슬픈 듯 가슴 위로 머리를 떨어뜨렸다. "아름다운 연인이여, 미친 짓이 뭐겠어? 결혼이 그렇게도 큰일이란 말인가! 신부의 사업장에서 라틴어를 내뱉지 않았다고 해서 과연 덜 사랑하는 것일까?" 더할 나위 없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면서 페뷔스는 집시 아가씨 곁으로 바짝 접근하고, 정다운 손은 그 가늘고 나긋나긋한 허리를 다시 감아 안고, 눈은 더욱더 불타올랐다. 클로드는 모든 것을 보고 있었다. 문은 다 썩은 널빤지로 만들어져 있어서, 그 틈새는 그의 맹금 같은 눈에 널따란 통로를 열어 주었다. 이때껏 수도원의 엄격한 동정 생활을 해오지 않을 수 없었던, 살갗이 거무스름하고 어깨가 딱 벌어진 이 신부는, 그 사랑과 밤과 쾌락의 장면 앞에서 몸을 떨고 피가 끓고 있었다. 그 열렬한 청년에게 아무렇게나 몸을 내맡기고 있는 그 아리따운 아가씨는 그의 혈관 속에 녹인 납물을 부어 넣었다. 그의 눈은 선정적인 질투심을 가지고 그 풀어 헤쳐진 옷 아래를 샅샅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동자는 문틈을 통해 촛불처럼 반짝였다. 갑자기 페뷔스는 날쌘 동작으로 아가씨의 깃장식을 벗겨 버렸다, 창백한 얼굴로 몽상에 잠겨 있던 소녀는 벌떡 일어나듯 깨어났다. 그녀는 대담한 장교 곁에서 얼른 떨어져 나와, 자신의 발가벗겨진 젖가슴과 어깨를 흘끗 보곤, 수치심으로 얼굴이 새빨개지고 당황하여, 말없이 그 아름다운 두 팔을 마주 끼어 가슴을 감추었다. 중대장은 그녀가 목에 차고 있는 신비로운 부적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게 뭐지?" 그러면서 그것을 핑계삼아 그 아름다운 소녀에게 다시 접근을 시도했다. "이건 만지지 마세요! 이건 제 수호신이에요. 만일 제가 언제까지나 그 자격을 잃지 않는다면, 이것은 제게 부모님을 다시 만나 볼 수 있게 해줄 거에요. 아! 저를 놓아 주세요, 중대장님 나리! 어머니, 가엾은 나의 어머니! 페뷔스 씨, 제 깃장식을 돌려주세요!" 페뷔스는 뒤로 물러나며 쌀쌀한 어조로 말했다. "오, 아가씨!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난 잘 알겠어!" "제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요!" 가련한 소녀는 이렇게 외치며 동시에 자기 곁에 앉은 중대장의 팔에 매달렸다. "제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요, 페뷔스! 그게 무슨 소리예요, 나쁜 사람... 아! 저를 가지세요, 모두 가지세요! 저를 원하시는 대로 하세요. 저는 당신 것이에요. 제게 부적이 무슨 소용이겠어요? 페뷔스, 나의 사랑하는 페뷔스, 저를 보고 계셔요? 당신은 이 계집을 쫓아 버리려 하시지 않는군요. 제 발로 걸어와 당신을 찾고 있는 이 계집애를... 제 목숨도, 제 마음도, 제 몸도 모두 당신 것이에요. 나의 사랑이여, 네, 좋아요, 결혼하지 말아요, 당신이 싫으시다니까요. 다만 저를 사랑해 주세요! 저희 보헤미아 여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그것뿐이에요, 공기와 사랑뿐이에요..." 이렇게 말한 그녀는 팔을 던져 장교의 목을 감고, 애원하는 듯 눈물로 가득찬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면서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는데, 그 여자의 섬세한 젖가슴은 사나이의 딱딱한 나사 저고리에 문질러지고 있었다. 그녀는 무릎 위에서 반쯤 벌거숭이가 된 그 아름다운 육체를 비틀었다. 중대장은 도취해 불타는 입술을 아가씨의 어깨에 꼭 붙였다. 처녀는 뒤로 넘어져서, 천정을 멀거니 쳐다보면서, 그 키스 아래 가슴을 두근거리며 떨었다. 별안간 그녀는 페뷔스의 머리 위로 또 하나의 머리를, 영벌 받은 눈을 한 창백하고도 새파랗고 경련하는 얼굴 하나를 보았다. 그 얼굴 옆으로 단도를 쥐고 있는 손 하나가 보였다. 그것은 신부의 얼굴과 손이었다. 페뷔스는 그를 보지 못했다. 아가씨는 그 무시무시한 유령 아래 꼼짝 않고 얼어 말도 못하고 있었다. 마치 흰꼬리 수리가 그 동그란 눈으로 보금자리 속을 들여다볼 때 머리를 쳐드는 비둘기와도 같이. 그녀는 외마디 소리조차 지르지 못했다. 그녀는 단도가 페뷔스의 위로 내려왔다가 김을 뿜으며 다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중대장은 비명과 동시에 쓰러졌다. 그녀는 까무러쳤다. 그녀의 눈은 감겨지고, 모든 감각이 몸 속에서 흩어져 가고 있을 때, 그녀는 자기 입술 위에 불같이 뜨거운 것을, 불에 달군 쇠보다 더 뜨거운 키스가 떨어지는 것을 느낀 듯하였다. 그녀가 의식을 회복했을 때, 그녀는 순경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고, 사람들은 자기 피 속에 잠긴 중대장을 떠메어 갔고, 신부는 사라져 버렸고, 강 쪽으로 트인 방 안쪽 창문은 활짝 열려 있었으며, 중년 남자의 것으로 추측되는 망토 하나가 발견됐는데, 그녀는 자기 주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중대장을 칼로 찌른 건 마녀다!" 그녀는 다시 정신이 혼미해졌다. 제6장 마녀 재판 1 그랭구아르와 기적궁 사람들은 모두 걱정에 잠겨 있었다. 한 달 전부터 그 거지 친구들을 퍽이나 슬프게 만들고 있었던 것은, 에스메랄다가 어찌됐는지, 그리고 또 그 염소가 어찌 됐는지 아무도 모르고 있다는 점이었다. 어느 날 저녁 그녀는 자취를 감추었던 것인데, 그때 이후 아무 소식도 없었다. 모조리 찾아보았지만 허사였다. 우리의 시인은 이 잠적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은 큰 슬픔이었다. 그가 만일 더 이상 빠질 살이 있었다면, 그 때문에 살이라도 빠졌으리라. 그런 어느 날 홀로 거리를 지나가던 그는 파리 재판소의 문 앞에 군중이 모여 있는 것을 보았다. "뭡니까?" 그는 거기서 나오는 청년 하나에게 물었다. "모르겠습니다. 헌병을 암살한 여자를 재판한다고들 그럽디다. 거기엔 마술의 냄새를 풍기는 것 같다고 하여, 주교와 종교 재판소 판사도 이 사건에 관여한 바람에, 부주교인 우리 형님은 이 일에 날을 보내고 있죠" 우리 시인은 자기도 그의 형 부주교를 안다고 감히 말할 수가 없었다. 성당에서 옥신각신했던 뒤로 그는 부주교에게 가지 않았었는데, 그렇게 무심했던 탓으로 미안스러웠던 것이다. 학생은 길을 지나가 버렸고, 그랭구아르는 대광실의 계단을 올라가고 있는 군중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울적함을 풀기 위해서는 형사 소송 구경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고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법정은 넓고 침침했는데, 그래서 더욱 넓어 보였다. 해가 지고 있었다. 기다란 첨두형 창들로는 이제 희번한 햇살밖엔 스며들지 않고 있었는데, 그 햇살은 둥근 천장까지 으르기도 전에 스러져 갔다. 벌써 여기저기 탁자 위엔 촛불이 밝혀져, 문서 더미 속에 파묻힌 서기들의 머리 위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실내의 앞부분은 군중이 차지하고, 좌우측 탁자에는 법의를 입은 사람들이 있었으며, 안쪽 단 위엔 수많은 판사들이 있었는데, 이 판사들의 마지막 줄은 어둠 속에 들어가 그 움쩍 않는 얼굴이 좀 음산해 보였다. 미늘창이 곳곳에 늘어서 있어 그 끝이 촛불 빛에 번득였다. "여보시오" 그랭구아르는 옆사람 하나에게 물었다. "저기 엄숙하게 줄줄이 앉아 있는 분들은 대관절 웬 사람들이오?" 그러자 옆에 있던 사람이 혀끝으로 입술을 닦은 다음 말했다. "오른쪽에 있는 건 대광실의 판사들이고, 왼쪽에 있는 건 심문관이고, 검은 법의를 입은 건 공증인이고, 붉은 법의는 변호사요" "누굴 재판하는 건가요? 피고는 보이지 않는데요" "피고는 어떤 여자인데, 당신에겐 보이지 않을 거요. 그 여잔 우리들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데다가 군중들로 가려져 있으니까요. 저것 보시오, 그 여잔 저기 저 미늘창이 늘어서 있는 곳에 있어요" 이때 옆에 있던 사람들이 조용히 하라고 말했다. 바로 그때 중요한 증언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나으리들, 저는 수십 년 동안 생 미셀 다리에서 살면서 집세와 재산세를 정확히 지불하고 있는 사람으로, 현재는 이렇게 가련한 노파지만 예전엔 어여쁜 처녀였지요. 나으리들, 며칠 전부터 사람들은 제게 이런 말을 해왔어요. '파루르델, 저녁엔 너무 물레를 잣지 말아요. 악마는 제 뿔로 늙은 여자의 토리개의 실을 빗질하길 좋아하니까요. 도사 귀신이 예전엔 탕플 쪽에 있었지만, 지금은 시테 안에서 얼쩡거리고 있음이 확실해요' 어느 날 저녁 물레를 잣고 있었는데 누가 문을 두드렸어요. 문을 열었더니 두 남자가 들어왔어요. 그들은 제게 에퀴 금화 한 닢을 주었어요. 저는 그 금화를 제 서랍 속에 넣고 그 돈으로 내일 글로리에트 박피장에서 내장을 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위층 방에 도착해 제가 등을 돌리고 있는 사이 검은 옷을 입은 남자는 사라져 버렸어요. 그래서 전 좀 얼떨떨했지요. 백작처럼 늠름한 장교는 밖으로 나갔어요. 그 후 실타래를 얼마쯤 자았을 때, 그분은 예쁜 처녀 하나를 데리고 왔는데, 만일 그 여자가 모자만 쓰고 있었다면 태양처럼 빛나는 인형 같았을 거예요. 저는 처녀와 장교를 위층 방에 안내하고 내려와서 다시 실을 잣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위에서 별안간 비명 소리가 들렸고, 뭔가 타일 바닥 위에 떨어지고, 창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제가 창 아래 있는 제 방의 창문으로 달려갔더니, 새카만 덩어리 하나가 제 눈앞을 지나 물 속에 떨어지기 때문에 전 그걸 똑똑히 볼 수 있었어요. 그것은 시테 쪽으로 헤엄쳐 갔어요. 전 와들와들 떨면서 야경대원을 불렀어요. 순경 나으리들이 들어왔는데, 그들은 기뻐하고 있던 차에, 처음엔 무슨 일인지를 몰라 저를 때리기까지 했어요. 우리들은 올라갔는데, 거기서 뭘 발견했겠습니까? 제 방은 가엾게도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고, 장교는 목에 칼이 꽂힌 채 뻗어 있고, 처녀는 죽은 시늉을 하고, 염소는 질겁을 하고 있었어요. 아, 잠깐 기다리세요... 무엇보다 나쁜 것은, 이튿날 내장을 사려고 서랍에 넣어 두었던 금화를 꺼내어 봤더니, 그 자리엔 가랑잎 하나만 있지 않겠어요!" 노파는 입을 다물었다. 공포의 중얼거림이 청중 사이에 일어났다. "그 유령이며 염소며 모두 마술 냄새가 나는군. 그리고 그 가랑잎도 그렇지! 그건 도사 귀신과 마녀가 야합한 거요. 의심할 여지가 없어!" "파루르델 부인, 더 이상 할말은 없소?" 재판장이 위엄 있게 말했다. "없습니다, 나으리" 하고 노파는 대답했다. "다만 한 가지,보고서에 저희 집을 삐뚤어지고 악취나는 오두막이라고 불렀는데, 그런 말은 모욕적인 언사입니다요. 물론 다리의 집들은 당당하진 못하지요. 그렇긴 하지만 푸주장이들은 여전히 거기 살고 있는데, 그들로 말하자면 부자요, 매우 깔끔한 미녀들과 결혼을 하고 있거든요" 그러자 법관 하나가 일어섰다. "조용히! 나는 여러분에게, 피고의 몸에서 단도 하나가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 주기를 당부합니다. 그런데 파루르델 부인, 금화가 변했다는 그 가랑잎을 가져왔소?" "네, 나으리, 여기 있습니다요" 집달관이 그 마른 잎을 전달하자, 법관은 음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그것을 재판장에게 건네 주고, 재판장은 그것을 또 성당 재판소의 집사에게 건네 주고 하여, 결국은 법정을 한 바퀴 빙 돌게 되었다. "이것은 자작나무 잎이다" 하고 검사 자크 사르몰뤼가 말했다. 마술사의 새로운 증거인 셈이었다. 판사 하나가 천천히 일어서더니 물었다. "증인, 두 남자가 동시에 당신 방에 올라갔지요. 그 두 남자 중 어느 쪽이 금화를 주었소?" 노파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그건 장교예요" 군중 사이에 소음이 돌았다. 그 사이 국왕 특별 변호사인 필립 나리가 관여했다. "여러분께서도 기억하고 계시겠지만, 암살 당한 장교는 그의 머리맡에서 적은 공술서에 의하면, 검은 사나이가 자기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을 때, 그것이 도사 귀신일지도 모르리란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고 언명하면서, 그 유령이 자기더러 어서 가서 피고인과 어울리라고 성화같이 재촉했으며, 자기가 돈이 없다는 말을 하자 에퀴 금화를 주어, 장교는 그 금화로 파루르델에게 값을 치렀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런고로 그 금화는 지옥의 화폐인 듯합니다" 이런 결론적인 지적은 그랭구아르를 비롯한 방청석의 다른 회의적인 사람들의 모든 의심을 풀어 주는 것 같았다. 이때 피고가 벌떡 일어섰다. 그녀의 머리는 군중 위에 환하게 솟아났다. 그랭구아르는 에스메랄다를 알아보곤 깜짝 놀랐다. 그 여자는 핼쓱했으며, 예전엔 그렇게도 아름답게 땋고 금화 모양의 쇠조각으로 장식했던 머리털은 이제 어수선히 헝클어져 있고, 입술은 파랗고, 쑥들어간 눈은 겁에 질려 있었다. "페뷔스!" 그녀는 넋을 잃고 외쳤다. "그인 어디 있어요? 오, 나으리들! 저를 죽이기 전에 제발 그이가 아직도 살아 계신지 어쩐지 좀 말해 주세요!" "입 닥쳐, 그건 우리가 알 바 아니니까!" "오! 불쌍히 여기시고, 제발 말해 주세요!" "좋아!" 국왕 변호사가 무뚝뚝히 말했다. "그는 죽어 가고 있다. 그대는 기쁜가?" 불행한 아가씨는 말도 없고 눈물도 없이, 밀랍의 상처럼 새하얘져서는 심문석 위에 쓰러졌다. 재판장은 자기 아래쪽에 자리잡고 있는 한 사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정리, 제2의 피고를 끌고 와" 모든 사람의 눈이 조그만 문 하나가 열린 쪽에 쏠렸는데, 거기서는 금빛의 뿔과 발이 달린 예쁜 염소 한 마리가 나왔다. 그것을 본 그랭구아르는 몹시 가슴이 설레었다. 이 아리따운 짐승은 문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서서 목을 쑥 뻗쳤는데, 그 모양은 마치 바위 끝에 서서 눈 아래 광막한 지평선을 내려다보는 것과도 비슷했다. 염소는 갑자기 아가씨를 보곤, 한 서기의 책상과 머리 위를 뛰어넘어 폴딱폴딱 그 여자의 무릎 아래로 갔다. 그런 뒤 염소는 제 여주인의 발 위에 귀엽게 뒹굴면서 한 마디 걸어 주거나 한 번 쓰다듬어 주길 간청했으나, 피고는 꼼짝 않고 있을 뿐 가엾은 잘리를 한 번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성당 재판소 검사인 자크 샤르몰뤼가 외쳤다. "여러분께서 좋으시다면, 염소의 심문에 착수하겠습니다. 만일 이 염소에 붙은 악마가 모든 기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 염소의 요술 속에 존속하여 이 법정을 놀라게 한다면, 우린 부득이 그에 대해 교수형 또는 화형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음을 예고해 두는 바입니다" 그랭구아르는 식은땀이 났다. 검사는 책상 위에서 방울 달린 북을 집어 염소에게 일정한 방법으로 내밀면서 물었다. "지금 몇 시냐?" 염소는 영리한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곤 그 금빛 발을 들어 일곱 번을 쳤다. 과연 일곱 시였다. 군중 사이에 공포의 떨림이 퍼졌다. 네거리에서라면 이 잘리의 죄없는 장난에 대해 박수 갈채를 보냈을지도 모를 똑같은 구경꾼들은, 법정 공판의 특유한 착시로 말미암아 도리어 겁을 집어먹었다. 염소는 확실히 악마였던가? 그보다 더 나빴던 것은, 검사가 잘리의 목에 매달려 있는 글자로 가득한 가죽 주머니 하나를 타일 바닥에 쏟았는데, 흩어져 있는 알파벳에서 염소가 저 숙명적인 '페뷔스'란 이름을 발로 추려 내는 것을 사람들은 보았던 것이다. 중대장이 그 희생이 된 마술은 반박할 수 없이 증명된 것 같았으며, 모든 사람들의 눈을 그 아리따움으로써 그렇게도 감탄케 했던 매혹적인 무희 아가씨는 이젠 한낱 무서운 마녀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 그녀는 조금도 살아 있는 듯한 기색도 없었다. 그녀를 깨우기 위해서는, 정리 하나가 사정없이 어깨를 흔들고 재판장이 엄숙하게 고함을 질러야 했다. "소녀여, 그대는 마술에 종사한 보헤미아 족속이다. 그댄 지난 3월 29일 밤에 마술에 홀린 염소와 공모하고, 주문에 의해 악마들의 협력을 얻어서, 친위 헌병대위 중대장 페뷔스 드 샤토페르를 단도로 찔러 상해하였다. 그대는 계속 부인하는가?" "에구머니나!" 아가씨는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외쳤다. "나의 페뷔스! 오! 여긴 지옥이야!" 재판장은 퉁명스럽게 계속했다. "그렇다면 그대는 그대에 대한 공소 사실을 어떻게 설명하는가?" "오, 저는 몰라요! 그건 어떤 신부예요. 제가 모르는, 제 뒤를 따라다니는 악마 같은 신부예요" "그게 바로 도사 귀신이다" "오, 나으리들, 가엾게 여겨 주세요! 저는 한낱 불쌍한 계집애에 지나지 않아요..." 이때 검사 나리가 발언했다. "재판장님, 피고가 끝내 고집을 부리는고로, 본관은 심문을 가할 것을 요구합니다" "수락하는 바이오" 불쌍한 아가씨는 온몸을 떨었다. 그러나 그녀는 경관들에게 끌려 일어나 검사 샤르몰뤼와 종교 재판소 성직자들의 뒤를 따라 중간문을 향해 걸어갔는데, 그 문은 갑자기 열렸다가 그녀가 나간 뒤 다시 닫혀 버려, 슬픈 그랭구아르에겐 그것이 마치 그녀를 삼켜 버린 무서운 괴물의 아가리 같은 인상을 주었다. 재판은 휴정에 들어갔다. 한 판사가, 여러분들이 피곤해서 고문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기란 퍽 지루할 것이라고 지적하자, 재판장은 입을 열어, 법관은 자신의 의무를 위해 스스로 희생할 줄 알아야 된다고 대답했다. 2 너무도 어두워 대낮에도 램프불로 밝혀 놓고 있는 복도에서 층계를 몇 번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 뒤에, 에스메랄다는 재판소의 순경들에 의해 험상궂은 방 속으로 밀어 넣어졌다. 원형으로 된 이 방은, 탑들 중 하나의 맨 아래층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 지하실엔 창도 없고, 거대한 철문을 단 나지막한 입구밖에 다른 구멍이라고는 없었다. 그러나 거기 빛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가마 하나가 두꺼운 벽 속에 꾸며져 있었다. 거기에는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어서, 붉은 반사광이 지하실을 가득 채워, 방 한쪽 구석에 켜 놓은 한 자루의 초에서 그 불빛을 깡그리 뺏아 버렸다. 가마는 마치 전설 속의 불꽃 뿜는 용의 입을 방불케 했다. 거기서 나오는 불빛으로 여죄수는 방 주위에 널린 무엇에 쓰는지도 알 수 없는 무시무시한 연장들을 보았다. 방 한가운데엔 가죽 매트 하나가 땅바닥에 거의 닿을락말락 놓여져 있는데, 그 위에 구리쇠 고리에 비끄러맨 가죽끈 하나가 드리워져 있었다. 집게며 노루발이며 널찍한 모습들이 가마 안에 가득 차 새빨갛게 달구어져 있었다. 그 가마의 피 같은 불빛은 온 방 안에서 끔찍한 것들의 뭉치만을 비춰 주었다. 가엾은 처녀는 아무리 기운을 내어 보아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 방 안에 들어오자 그녀는 아주 겁이 났다. 한쪽으로 재판소 순경들이 늘어서고, 다른 한쪽으론 종교 재판소의 성직자들이 늘어섰다. 검사 나리는 매우 상냥한 미소를 지으면서 아가씨에게로 다가갔다. "귀여운 아가씨, 그래 계속 부인하는 거야?" "네..." 그녀는 꺼져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다면 우리로서는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더 간곡한 심문을 해야 되려나 봐" 에스메랄다는 멍하니 서 있었다. 수많은 불쌍한 사람들이 몸을 비틀어 꼬았던 그 가죽 침대가 그녀는 무서웠던 것이다. 공포감은 그녀의 뼛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검사의 신호에, 두 하인이 여죄수를 잡아 침대에 앉혔다. 그들은 그 여자를 아프게 하진 않았으나, 그 사내들이 자기 몸에 손을 댔을 때, 그 가죽에 몸이 닿았을 때, 그녀는 자신의 피가 온통 심장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가씨" 하고 샤르몰뤼 검사의 다정스런 목소리가 말을 이었다. "세 번째로 묻겠는데, 아가씨에 대한 기소 사실을 계속 부인하는가?" 이번에 그녀는 머리를 흔들어 신호할 뿐이었다. 그녀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계속 부인해? 그렇다면 나는 직무를 수행하지 않을 수 없겠군" "검사 나으리, 어디서부터 시작할까요?" 피에라가 물었다. 샤르몰뤼는 하나의 낱말을 찾는 시인과 같이 얼굴을 애매하게 찌푸리고 망설이다가, "반장화부터"라고 말했다. 이 불행한 아가씨는 하느님과 인간들로부터 결국 이처럼 버림받고 말았다는 생각이 너무나도 사무치게 느껴져, 마치 자체 속에 힘이 하나도 없는 무기력한 사물처럼 머리를 가슴 위에 떨어뜨렸다. 고문관과 의사가 한꺼번에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와 동시에 두 하인은 그들의 끔찍한 무기고 속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 무시무시한 쇠붙이들이 부딪치는 소리에 불쌍한 소녀는 전기를 통한 개구리처럼 몸을 떨었다. "오, 나의 페뷔스!" 순간적으로 외친 그녀는 다시 대리석 같은 침묵과 부동 자세로 되돌아갔다. 판사들이 아니라면 어떤 사람도 이런 광경을 보곤 가슴이 찢어졌으리라. 그 무서운 톱니바퀴며 고문 도구의 더미가 이제 막 달라붙으려는 가련한 육체, 그 가혹한 망나니의 집게손이 이제 바야흐로 다루려는 인간, 그것은 바로 부드럽고 희고 연약한 여인이었던 것이다. 인류의 정의가 무서운 고문의 맷돌에 넣어 부수려는 가엾은 좁쌀알! 그 사이 고문관의 하인들의 투박한 손은 그 아리따운 다리를, 그 귀여움으로써 행인들을 그토록 감탄케 했던 조그만 발을 난폭스레 발가벗겨 놓았다. 검사는 그 섬세한 자태를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참 유감이로군. 만일 부주교가 이 자리에 계셨더라면, 그분은 틀림없이 거미와 파리의 상징을 회상하셨을 텐데" 이윽고 불쌍한 아가씨는 자기의 눈 위에 퍼지는 구름 너머로 '반장화'가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자기 발이 쇠를 붙인 널빤지 사이에 끼여 그 무시무시한 기계 아래로 사라지는 걸 보았다. 그러자 공포심이 그녀에게 기운을 돌려주었다. "제발 이걸 벗겨 주세요!" 하고 그녀는 흥분해 외쳤다. 그녀는 검사의 발 아래 몸을 던지려고 침대 밖으로 내리 닫았으나, 다리가 무거운 쇠사슬 속에 끼여 있었으므로 기진해 반장화 위에 쓰러져 버렸다. 검사의 신호로 그녀는 다시 침대 위에 앉혀지고, 두 개의 큼직한 손이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잡아 천장에 드리워진 가죽끈으로 비끄러맸다. "이제 마지막으로 묻거니와, 기소 사실을 시인하는가?" "저는 무고합니다" "계속해!" 검사는 피에라에게 외쳤다. 피에라가 손잡이를 돌리니 반장화는 죄어들고, 불행한 아가씨는 인간의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비명을 질렀다. "멈춰" 샤르몰뤼가 피에라에게 말했다. "시인하겠는가?" "시인해요!" 불쌍한 처녀는 외쳤다. "시인해요! 모두 시인해요!" 그녀는 심문에 직면했을 때 자신의 힘을 계산하지 않았던 것이다. 여태까지의 생활이 그렇게도 즐거웠고 그렇게도 유쾌하기만 했던 가엾은 소녀는 첫 고통에 그만 굴복하고 말았던 것이다. 검사는 주의를 주었다. "나는 인정상 그대에게 말하지 않을 수 없거니와, 시인을 하면 그대는 죽음을 기다려야만 한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어요..." 검사가 소리를 질렀다. "서기, 적어. 아가씨. 그대는 마귀나 마녀들과 더불어 지옥의 밤 연회에 참석했음을 시인하는가? 대답하라" "네..." 그 말소리는 하도 작아서 그녀의 숨소리 속에 꺼져 버렸다. "그대는 벨제뷔트가 밤 연회를 소집하기 위해 구름 속에 나타내는 신호를 보았음을 시인하는가?" "네..." "끝으로, 그대는 지난 3월 29일 밤에, 도사 귀신이라고 불리는 유령과 마귀의 도움을 얻어, 페뷔스 중대장을 살해했음을 자백하는가?" 그녀는 그 커다란 눈을 들어 법관을 쳐다보며, 경련도 전율도 없이 그저 기계적으로 대답했다. "네..." 분명 그녀 속에서는 모든 것이 부서져 버렸던 것이리라. 그녀가 그 창백한 얼굴을 숙인 채 절름거리면서 재판정으로 돌아왔을 때는, 기쁨의 중얼거림이 온 방 안에 퍼졌다. 청중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마지막 막간이 끝나 다시 또 막이 오르고 바야흐로 끝이 시작되려 할 때 느끼는 그런 흐뭇한 감정이었다. 판사들에게 있어서는 이제 곧 저녁밥을 먹겠구나 하는 희망이었다. 염소 새끼 역시 기뻐서 울었다. 염소는 여주인 쪽으로 달려가려 했으나, 이미 의자에 비끄러매져 있었다. 완전히 캄캄한 밤이 되어 있었다. 그래도 촛불을 더 켜진 않아서 불빛이 퍽 희미하여 모든 물건을 일종의 안개 같은 것으로 싸 놓고 있었다. "보헤미아 처녀" 재판장이 입을 열었다. "그대는 마술과 매춘과 페뷔스 드 샤토페르의 암살에 관한 모든 사실을 시인하는가?" 처녀는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어둠 속에서 그녀의 흐느낌 소리가 들렸다. "뭐든 다 시인하겠어요. 그러니 빨리 죽여 주세요!" "성당 재판소 검사 나리, 그럼 법정은 당신의 논고를 듣겠습니다" 재판장의 말에 검사는 무시무시한 공책을 펴 들곤, 마냥 몸짓을 하고 변론술의 과장된 억양을 쓰면서 라틴어 연설문을 읽기 시작했다. 그 연설 속엔 모든 공소 사실의 증거가 그 자신이 좋아하는 희극 시인 플라우투스에서 따온 인용문을 곁들인 표현법으로 꾸며져 있었다. 우리는 여기서 그 결론만 듣기로 하자. "여러분, 사실임이 확인된 한 마녀 앞에서, 그 범죄가 확정적이기 때문에, 이 고결한 곳에서 모든 사법권을 지니고 있는 노틀담 대성당의 이름으로, 본관은 첫째로 약간의 벌금을, 둘째로 노틀담 앞에서의 공개 사죄를, 끝으로 이 마녀와 염소를 그레브 광장이나 또는 센 강변의 적당한 지점에서 처형할 것을 요구하는 바이올시다" 검사가 자리에 앉자 법의를 입은 다른 사나이 하나가 피고 옆에서 일어났다. 그것은 변호사였다. 시장한 판사들은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변호사 간단히 말씀하시오" 재판장의 말이었다. "재판장 나리, 피고인이 죄를 자백한 이상, 본인은 이제 여러분께 한 마디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살리카 법전의 조문 하나에 이렇게 돼 있습니다. '마녀가 사람을 잡아먹고 그것을 시인하는 경우, 마녀는 8천 드니에게 해당하는 벌금을 지불해야 한다' 그러므로 법정은 본인의 의뢰인에게 벌금을 과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쓸모없는 법조문이오" 검사가 말했다. "투표합시다!" 한 배심 판사가 말했다. "죄는 명백하고 시간은 늦었습니다" 법정은 투표에 들어갔다. 가련한 피고는 판사 나리들을 바라보는 것 같았으나, 그녀의 흐린 눈엔 이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얼마 후 불쌍한 아가씨는 민중이 움직이고, 창들이 서로 부딪치고, 싸늘한 목소리가 다음과 같이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보헤미아 처녀여, 국왕 폐하께서 정하시는 날 정오의 시간에, 그대는 셔츠 바람에 맨발로, 목을 끈으로 맨 채 수레를 타고 노틀담의 정문 앞에 끌려 와, 양초 한 자루를 켜 들고 공개 사죄하고, 거기서 다시 그레브 광장으로 끌려가 시의 교수대에서 목매달아 교수형에 처해질 것이며, 그대의 저 염소도 역시 매일반이며, 또 그대가 자백한 마술과 마법과 음란 및 상해의 죄에 대한 배상으로 금사자화 세 닢을 종교 재판소에 지불해야 한다. 하느님은 그대의 영혼을 가져가시리라!" "아, 이건 꿈이다!" 하고 아가씨는 중얼거렸다. 그리고 거친 손이 자신을 이끌고 가는 것을 느꼈다. 3 중세에는 하나의 건물이 완전한 경우, 땅 속에도 바깥과 비슷한 건물이 있었다. 노틀담처럼 말뚝 위에 세워져 있지 않은 궁궐이나 성당은 으레 이중의 토대가 있기 마련이었다. 대성당에 있어서는, 밤낮으로 파이프 오르간과 종소리가 울리고 불빛으로 넘쳐흐르는 지상의 홀 아래 낮고 캄캄한, 신비롭고 무서운 또 하나의 성당이 있었다. 말하자면 상부의 건축과 마찬가지로 땅 속에 방과 회랑과 계단 같은 형태로 뻗어 가는 뿌리가 있었던 셈이다. 그리하여 성당과 궁궐과 성들은 하반신이 땅 속에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한 건물의 지하실은 사람들이 그리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려가는 또 하나의 건물이었으며, 그것은 마치 호숫가의 숲과 산이 호수 속에 거꾸로 비쳐 보이는 것과도 흡사했다. 생 탕투안 성이나 파리 재판소, 그리고 루브르 궁에 있어서는, 그러한 지하 건물은 감옥이었다. 이 감옥들의 층은 땅 속으로 깊이 들어감에 따라 더욱 좁아지고 어두워졌다. 그것은 온갖 종류의 공포가 펼쳐져 있는 지대였다. 어떤 가련한 인생이 한번 거기 들어가는 날에는 공기도, 햇빛도, 생명도, 희망도 영영 이별이었다. 그가 거기서 나오는 건 다만 교수대나 화형장으로 가기 위해서일 뿐이다. 때론 거기서 썩어 버리는 수도 있었다. 인간의 정의는 그것을 '망각'이라고 불렀다. 교수형을 선고받은 에스메랄다를 넣은 것도 그런 종류의 거대한 파리 재판소의 지하 감옥 속이었다. 그녀는 거기 어둠 속에 외롭게 파묻혀 갇혀 있었다. 그 소녀가 햇빛 아래서 웃고 춤추고 한 것을 본 뒤 그런 상태 속에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면 누구나 소름이 끼쳤으리라. 밤처럼 춥고, 머리털 속에 한 점의 바람도 통하지 않고, 귀엔 사람 소리 하나 들리지 않고, 눈 속에 햇빛 한 줄기 스며들지 않고, 쇠사슬에 으스러지고, 꼬부라지고, 물병과 빵 한 조각 옆에서, 지하의 벽에서 물이 배어 나와 흥건히 괴어 있는 웅덩이 곁에 짚을 깔고 웅크려 앉아서, 손가락 하나 까딱 않고 거의 숨도 쉬지 않고 있던 그녀는 이제 고통조차 느끼지 않고 있었다. 페뷔스며 태양, 대낮, 공기, 파리의 거리, 박수 갈채를 받던 춤, 사랑의 달콤한 속삭임, 그 다음엔 신부, 노파, 단도, 피, 고문, 교수대, 이런 모든 것들이 그녀의 머리 속을 때론 노래부르는 금빛 환영처럼, 때론 무서운 악몽처럼 스쳐 가곤 한 것은 사실이었으나, 그것은 이미 어둠 속에 스러져 가는 끔찍하고 막연한 음악에 불과했다. 그렇게 얼고, 화석처럼 굳어진 그녀는, 자기 머리 위 어딘가에 틔어 있는 천장의 뚜껑문이 하루에 두세 번씩 여닫히는 소리도 제대로 알아들을까말까 했는데, 그럴 때면 사람의 손이 검은 빵 한 덩이를 던져 주는 것이었지만, 햇빛이라고는 한 줄기도 들어오지 않았다. 또 단 한 가지의 것이 기계적으로 그녀의 귀를 차지하고 있었다. 즉 머리 위에서 습기가 천장의 돌을 통해 스며 나와 고른 간격으로 한 방울씩 떨어졌던 것이다. 그 물방울이야말로 그녀의 주위에서 아직도 움직이고 있는 유일한 운동이요, 시간을 새기고 있는 유일한 시계요, 지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소리 중에서 들리는 유일한 소리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간수가 빵을 가져다 줄 때 내는 것보다 더 큰 소리가 위에서 나는 것을 들었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지하 감옥의 천장에 난 일종의 뚜껑문 같은 것의 틈바귀를 통해 불그스름한 한 줄기의 빛이 보였다. 동시에 그 육중한 쇠가 소리를 내고 뚜껑문이 녹슨 돌쩌귀 위에서 뻐걱거리며 돌아가더니, 초롱불과 손 하나와 두 남자의 하반신이 보였다. 불빛이 너무나 부시어 그녀는 눈을 감았다. 그녀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문은 다시 닫혀 있었고, 초롱불은 계단의 층계 위에 놓여 있었으며, 사나이 하나가 홀로 앞에 서 있었다. 검은 겉옷이 발 밑까지 내려져 있었고, 같은 빛깔의 두건이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그의 육신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서 있는 기다란 검은 수의 같았는데, 그 아래에서 무엇이 조금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이 유령을 한참 응시했다. 그러나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늘상 바라보고 있는 두 조각상과도 같았다. 한참 후 여죄수는 침묵을 깼다. "누구세요?" "신부요. 준비는 다 됐소?" 그 말이며 말투는 그녀를 떨게 했다. "무슨 준비 말인가요?" "죽을 준비 말이오" "어머나!... 그럼 곧 죽게 되나요?" "내일이오" "오늘은 왜 안 되지요?" "당신은 퍽 불안한 모양이로군...?" "전 매우 추워요" "햇빛도 없고! 불도 없이! 물 속에서... 참 무서운 일이오!" "그래요. 난 여기서 나가고 싶어요. 춥고 무서워요. 그리고 벌레들이 기어올라와요" 그러더니 그녀는 갑자기 어린애처럼 울기 시작했다. "그럼 나를 따라오구려" 그렇게 말한 신부는 아가씨의 팔을 잡았다. 이 불쌍한 죄인은 뼛속까지 얼어 있었으나 그래도 그 손은 그녀에게 차가운 느낌을 주었다. "에구머니! 이건 죽은 사람의 손이네...아, 대체 당신은 누구인가요?" 신부가 두건을 걷어올렸다. 그녀는 바라보았다. 그것은 그토록 오래 전부터 그녀 뒤를 따라다니던 그 무서운 얼굴이었다. 다리 위의 할멈 집에서, 그토록 사랑하는 페뷔스의 머리 위에 나타났던 그 악마의 머리였다. 이 출현은 그녀를 마비 상태에서 끌어냈다. 그녀는 자기 기억 위에 짙게 드리워져 있던 장막이 찢어지는 듯했다. 그 서글픈 사건의 온갖 세부가, 다리 위의 할멈 집에서부터 법정에서의 사형 선고에 이르기까지, 막연하고 어렴풋이가 아니라 뚜렷하고 생생하고 생동하는 듯이 떠오른 것이다. "아! 그 신부로군요!" 그녀는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 와들와들 떨면서 소리를 질렀다. 신부는 아가씨를 바라보았다. 마치 밀밭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가엾은 종달새의 주위를 오래오래 빙빙 돌면서 소리 없이 그 무서운 살해의 원을 차츰 좁혀 가다가, 별안간 번개같이 그 먹이 위에 내려와 놀란 새를 그 발톱으로 낚아채는, 그런 심술궂은 매의 눈을 하고서. 아가씨는 아주 낮은 소리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마저 해치우세요... 저도 마저 해치우세요... 마지막 타격을 가하세요...!" "내가 무서운가요?" 아가씨의 입술은 마치 빙그레 웃는 듯 오그라졌다. "그래요... 오, 몹쓸 사람 같으니! 당신은 누구길래 나를 그렇게도 미워한단 말이에요? 아, 내게 무슨 원한이 있어요?" "난 당신을 사랑해!" 신부가 외쳤다. 아가씨는 눈물을 뚝 그치고 백치 같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신부는 무릎을 끊고 불꽃 같은 눈으로 여자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알겠어? 난 당신을 사랑하오!" "무슨 사랑이 그럴까!" 불행한 여인은 떨면서 말했다. 신부가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대꾸했다. "영벌 받은 자의 사랑이지"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내 말 들어 봐" 이윽고 신부는 말했는데, 그는 이상하게도 침착을 되찾고 있었다. "당신은 이제 알게 돼. 주님에게도 우리가 보이지 않으리라 싶어질 정도로 어둡고 컴컴한 밤의 저 으슥한 시간에 나 스스로 은밀히 양심에 물을 때, 나 자신에게도 차마 말할 수 없었던 것을 당신에게 말하겠어. 들어 봐, 아가씨, 당신을 만나기 전엔 난 행복했었어..." "나도 그랬어요!" "내 말을 막지 마. 그래, 난 행복했어. 적어도 그렇다고 믿고 있었지. 난 순수했고 내 마음은 투명한 빛으로 가득 차 있었어. 신부들은 순결에 관해 내게 물었고, 박사들은 학설에 관해 내게 물었어. 그래, 학문은 내게 있어서 생의 전부였어. 그것은 누이동생과 같았고, 누이동생 하나만으로 내겐 충분했었어. 그렇다고 해서 나이를 먹음에 따라 다른 관념이 내게 떠오르지 않았다는 건 아니야. 내 육신이 한 여자의 모습이 지나가는 걸 보고 흥분한 건 한두 번이 아니었어. 그러나 단식과 기도, 그리고 수도원의 고행은 다시 영혼이 육체를 지배할 수 있게 해주었어. 아! 그렇지만 승리가 내게 남아 있지 않은 건 주님의 잘못이야. 주님은 인간과 악마를 똑같은 힘으로 만들어 놓지 않았으니까 말야" 신부는 여기서 말을 멈추었는데, 그녀는 그의 가슴으로부터 단말마의 고통과 같은 한숨 소리가 새어 나오는 것을 들었다. 그는 말을 이었다. "어느 날, 난 내 독방의 창에 기대에 있었지... 대관절 나는 무슨 책을 읽고 있었던가... 창문은 광장 쪽으로 틔어 있었지. 난 북과 음악 소리를 들었어. 몽상 속에 잠겨 있다가 방해받은 나는 화가 나서 광장을 내려다봤어. 내가 본 것은...한 여자가 춤을 추고 있었어. 그 여자의 눈은 새까맣고 반짝거렸으며, 그 검은 머리 속에서 어떤 머리카락들은 햇빛이 스며들어 금실처럼 반짝이고 있었어. 그녀의 발은 빨리 돌아가는 수레바퀴의 살 모양으로 발의 움직임 속에 사라져 보이지 않았어. 여기저기 쇠붙이를 단 그녀의 드레스는 여름밤처럼 파랗게 반짝이고 있었어. 그 나긋나긋한 팔은 두 개의 숄처럼 허리 주위에서 서로 마주쳤다 떨어졌다 하고 있었어. 그 여자의 몸매는 그렇게도 아름다울 수가 없었어. 오! 햇빛 속에서마저도 그 어떤 빛나는 것으로 부각되는 찬란한 모습!...아, 그것은 바로 당신이었어" 신부는 숨이 막혀 또 잠시 말을 끊었다. 그러고 나서 계속했다. "반쯤 홀린 나는 무엇엔가 매달려 추락을 막으려고 해봤어. 난 사탄이 이미 내 앞에 파 놓은 함정을 생각했어. 내 눈 아래 있었던 여자는 하늘이 아니면 지옥에서밖에 볼 수 없는 그런 미인이었어. 그것은 천사, 그러나 암흑의 천사... 불꽃의 천사였지 광명의 천사는 아니었어. 그 사이 마력은 시나브로 작용하고, 당신의 춤은 내 머리 속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었으며, 난 신비로운 마술이 내 속에서 이루어져 가는 것을 느꼈어. 내 마음속에선 눈뜨고 있어야만 할 것이 잠들고 있었는데, 백설 속에서 죽어 가는 사람들 모양으로 난 그렇게 잠들어 가는 것에 쾌감을 느끼고 있었어... 갑자기 당신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어.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야. 당신의 노래는 당신의 춤보다 더 매력적이었어. 난 달아나려고 했어. 그러나 불가능했어. 나는 모든 구제책을 다 써 보려고 했어. 수도원도, 제단도, 연구도, 책도... 참 미쳤지! 오, 정열만이 머리에 가득 차서 절망적으로 학문에 부딪힐 때, 학문이란 얼마나 공허하게 보이는 것일까! 그 후 난 책과 나 사이에 늘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 알겠나? 당신이었어, 당신의 그림자였어. 몽상으로 지새는 밤에 당신의 자태가 줄곧 내 육신 위를 스쳐 가는 것을 느끼고, 나는 당신을 다시 보고 싶었고, 당신 몸을 만져 보고 싶었고, 당신이 누군지 알고 싶었고, 또 어쩌면 현실로써 내 환상을 깨뜨리고 싶었어. 그래서 난 당신을 찾았어. 그런데 당신을 두 번 보았을 때 나는 천 번이라도 보고 싶었고, 항상 보고 싶었어... 나는 흐리멍덩해져 쏘다니게 됐어. 난 이집 저집 현관 아래서 당신을 기다리고, 길모퉁이에서 당신을 지켜보고, 종탑 위에서 당신을 엿보곤 했어. 그러고는 저녁마다, 나는 당신에게 더 매혹되고, 더 슬프고, 더 타락하여 집에 돌아오곤 했어!... 어느 날 나는 당신이 보헤미아 여자라는 걸, 집시 여자라는 걸 알았어. 그러니 어떻게 마술을 의심 할 수 있었겠어? 들어 봐, 난 소송이 나를 그 마력에서 벗어나게 해줄 줄 알았어. 브뤼노 다스트는 한 마녀에게 홀렸었는데, 그는 그 여자를 화형에 처한 뒤에 나았어. 난 그 방식을 시험해 봤어. 난 처음에 당신을 노틀담 앞뜰에 나타나지 못하도록 금지시키려 해봤지. 당신이 다시 오지 않으면 당신을 잊어버리게 되리라 기대하고, 그런데 당신은 그걸 무시했어. 당신은 다시 왔어. 그 후 난 당신을 겁탈할 생각을 가졌어. 그리고 어느 날 밤 난 시도했어. 우린 둘이었어. 우린 벌써 당신을 붙잡고 있었는데, 그때 저 고약한 장교가 뜻밖에 덤벼들었던 거야. 그래서 결국, 어찌될지도 모르고, 난 당신을 종교 재판소에 고발했어. 그리고 나는 어렴풋이나마 공판은 당신을 내게 넘겨 주게 되리라고, 감옥에서 난 당신을 내 손아귀에 넣고 차지하게 되리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당신은 고통스러웠겠지? 당신은 춥고, 어둠은 당신을 소경으로 만들고, 지하 감방이 당신을 둘러싸고 있지만, 그래도 아마 당신은 아직도 마음 밑바닥에 어떤 햇빛을 갖고 있을 거야. 비록 그것이 당신의 애정을 가지고 놀던 그 방탕한 사내에 대한 어린애 같은 사랑에 지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말야! 그런데 난 어떠냐 하면, 난 내 속에 지하 감방을 가지고 있어. 내 속은 겨울이고, 얼음이고, 한없는 절망이야. 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당신은 알겠어? 난 당신의 공판에 참석했었어. 난 종교 재판소의 걸상 위에 앉아 있었단 말이야. 그래, 당신이 끌려왔을 때 난 거기 있었어. 당신의 이마 위에 서서히 세워지는 걸 보고 있었던 것은 바로 내 범죄였고 내 교수대였어. 난 당신이 고통스런 길을 갈 때 당신의 발걸음 하나 하나를 셀 수가 있었어. 그리고 또 내가 보는 앞에서 그 흉악한 짐승 같은 놈이... 오! 난 그 고문실까지 당신 뒤를 따라갔어. 난 당신의 옷을 벗기고 반나체가 된 당신을 그 고문관의 더러운 손이 다루는 것을 봤어. 난 당신의 발을 봤어. 그 발이 인간의 육신을 피의 진창으로 만드는 그 무서운 반장화 속에 끼워지는 걸 봤어. 오, 가련한 놈! 그걸 보고 있는 동안 난 내 옷 아래 단도를 품고 있다가 그것으로 내 가슴을 파고 있었어. 당신이 비명을 질렀을 때, 난 그걸로 내 살을 찔렀어. 당신이 두 번째로 비명을 질렀을 때, 그것은 내 염통 속까지 들어갔어. 이것 봐, 아직도 피가 흐르고 있을 거야" 그는 자신의 법의를 열어 보였다. 과연 그의 가슴은 짐승 발톱에 긁힌 것처럼 뭉개져 있었으며, 옆구리엔 꽤 넓은 상처 하나가 아직도 잘 아물지 않고 있었다. 여죄수는 무서워서 뒷걸음질쳤다. "오! 아가씨, 날 가엾게 여겨 줘! 당신은 스스로 불행하다고 믿고 있지만, 아! 당신은 불행이 뭔지를 모르고 있어. 오, 한 여자를 사랑한다는 것! 성직자라는 것! 미움을 받고 있다는 것! 발광적으로 그 여잘 사랑한다는 것, 그녀의 사소한 미소 하나를 위해 자신의 피와 오장육부와 불멸성과 영원성과, 이승과 저승을 바쳐도 좋겠다고 느낀다는 것, 밤낮으로 자기의 꿈과 생각으로 그 여자를 껴안는다는 것, 그리고 그녀가 군인의 제복에 반해 있는 걸 본다는 것, 그런데 자기 자신은 그 여자가 두려워하고 싫어할 꾀죄죄한 법의 하나밖에 바칠 것이 없다는 것! 어떤 보잘것없는 어리석은 허풍선이에겐 그 여자가 사랑과 아름다움의 보화를 아낌없이 뿌려 주고 있는 동안, 자기는 질투심과 분노를 품고 있다는 것! 그 자태가 자신의 간장을 녹이는 그 육체, 감미롭기 그지없는 그 젖가슴이 딴 사내의 키스 아래 팔딱거리는 모양을 본다는 것! 오, 하늘이여! 그리고 그 여자를 위해 꿈꾸었던 모든 애무가 결국은 고문으로 끝나는 걸 본다는 것! 그녀를 고문대 위에 뉘는 데밖엔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 오, 이것이야말로 지옥의 불에 새빨갛게 단 진짜 집게가 아니고 무엇인가! 여인이여, 제발 살려 주오! 이 불 위에 재를 좀 끼얹어 주오! 제발 내 이마 위에 철철 흘러내리는 이 땀방울을 씻어 주오!" 신부는 바닥의 물 속에 뒹굴면서, 돌층계의 모서리에 머리를 치고 있었다. 그녀는 그 말을 들으면서 그냥 바라다보고 있었다. 그가 지치고 숨이 차서 입을 다물었을 때, 그녀는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 나의 페뷔스!" 신부는 그녀 쪽으로 두 무릎을 짚고 기어갔다. "제발 애원이니, 당신이 인정이 있다면 날 거절치 마! 오, 난 당신을 사랑해! 난 불쌍한 놈이야! 당신이 불행하게도 그 이름을 입 밖에 내면, 당신이 내 염통을 갈가리 씹어 먹는 것만 같아! 제발 살려 줘! 당신이 지옥에서 왔다면 나도 함께 지옥으로 가겠어" 그러자 처녀는 무시무시한 폭소를 터뜨려 그의 말을 중단시켰다. "이봐요, 신부님! 당신은 손톱만 있는 줄 알았더니 피도 있군요!" 신부는 한동안 화석이 된 것처럼 자기 손을 응시했다. "그래, 좋아!" 이윽고 그는 매우 부드러운 어조로 말을 이었다. "날 모욕해도 좋고 비웃어도 좋아! 그러나 어서 가자구. 내일이란 말야, 그레브의 교수대는. 알겠어? 그건 끔찍한 일이야! 오, 날 따라와! 당신이 날 사랑하는 건 내가 당신을 살려 낸 뒤에도 할 수 있어. 또 당신이 그러고 싶다면 언제까지라도 날 미워해도 좋아. 그러나 어서 와, 내일이야! 어서 달아나!" 그는 그녀의 팔을 잡고는 정신 없이 끌고 가려고 했다. 그러는 그를 그녀는 똑바로 바라보더니 말했다. "나의 페뷔스는 어떻게 됐나요?" "아, 당신은 매정하구려...!" "빨리 말해 줘요" "그는 죽었어!" "죽었다고?" 그녀는 꼼짝도 않은 채 뇌까렸다. "그렇다면 왜 저더러 살라는 거죠?" 신부는 계단에서 맥없이 비틀거렸다. 그는 말없이 초롱을 집어들고, 천천히 문으로 통하는 층계를 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그 문을 가만히 열고 나갔다. 갑자기 그녀는 그의 머리가 다시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그의 얼굴은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절망으로 숨을 헐떡거리면서 외쳤다. "그는 죽었단 말야!" 그녀는 땅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이 지하 감방 안에서는 이제 어둠 속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의 한숨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4 자기 아기의 조그만 신을 보았을 때 어머니의 마음속에 생겨난 생각들보다 더 기꺼운 것이 이 세상에 있으리라곤 생각되지 않는다. 특히 그것이 생일이나 주일이나 영세 받을 때 신긴 신이라면, 정성껏 수놓은 신이라면, 그 신을 아기가 신고 아직 한 번도 걷지 않은 신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 신은 무척 곱고 조그마하며 아기가 아직 신고 걸을 수 없으므로, 어머니가 그 신을 보면 마치 자기 아기를 보는 것과 같은 것이다. 어머니는 그 신에 미소를 짓고, 입을 맞추고, 얘기를 한다. 어머니는 정말 발이 이렇게도 작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면, 비록 어린애가 없더라도 그 예쁜 신민 보고도 눈앞에 그 보드랍고 야들야들한 아기를 보는 듯하다. 때가 겨울이라면, 그는 양탄자 위를 기어다니고, 힘들여 걸상 위로 기어오르고, 어머니는 행여 그가 불 옆에 갈까 걱정을 한다. 때가 여름이면, 그는 마당이나 정원에서 기어다니고, 포석 틈바구니에서 풀을 뽑아 내고, 순진한 눈으로 무서워할 줄도 모르고, 커다란 개들과 커다란 말들을 바라다보고, 조개껍질이며 꽃들을 가지고 놀고, 꽃밭에 모래가 섞여 있고 통로에 흙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보는 정원사로 하여금 투덜대게 한다. 그의 주위에서는 그처럼 모든 것이 웃고 빛나고 뛰논다. 그의 곱슬곱슬한 흩어진 머리털 속에서 뛰노는 바람결과 햇살에 이르기까지. 아기의 신은 그 모든 것을 어머니에게 보여 주고, 마치 불이 양초를 녹이듯 어머니의 마음을 녹여 준다. 그러나 아기가 없어졌을 때는, 그 조그만 신의 주위에 몰려드는 기쁨과 애정의 숱한 영상은 그만큼 무시무시한 것들로 변한다. 고운 신은 이제 영원히 어머니의 가슴을 찢는 고문의 도구에 불과해지고 만다. 그것은 언제나 똑같이 가장 깊고도 예민한 심금이지만, 천사가 그것을 쓰다듬어 주는 것이 아니라, 악마가 꼬집어 뜯는 것이다... 어느 날 아침, 저 짙고 푸른 하늘에 5월의 태양이 떠오르고 있을 때, 투르 롤랑의 수녀는 그레브 광장에서 수레바퀴와 말과 쇠붙이 소리가 들려 오는 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덜 시끄럽게 하려고 귀 위로 머리카락을 잡아 매고, 15년 이래 그녀가 그렇게 열렬히 사랑하고 있는 그 생명 없는 물건을 무릎 끓고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 조그만 신은, 이미 말ㅎ나 바와 같이 그 여자에게 있어서는 전세계였다. 이 귀여운 분홍 장난감을 앞에 놓고 그 여자가 하늘을 향해 던진 고통스런 저주며 서글픈 한탄, 기도, 그리고 흐느낌은 오직 투르 롤랑의 어두컴컴한 지하실만이 알 것이다. 이날 아침, 그 여자의 고통은 여느 때보다 한결 격렬히 쏟아져 나오는 것 같았으며, 가슴을 에는 듯한 단조로운 목소리로 한탄하는 것이 바깥에서도 들렸다. "오, 내 딸, 가엾은 귀여운 아가! 그래, 다시는 너를 못 보게 된단 말이냐! 그것은 언제나 꼭 어제 일어났던 일만 같구나! 오, 하느님이시여, 그렇게 빨리 제게서 그 애를 뺏어 갈 양이었으면 차라리 주시지 않는 게 더 좋았을 것을... 그래, 당신은 모르시나요, 우리 아기들은 우리들의 배에서 나온다는 것을. 그리고 자기 아이를 잃은 어머니는 하늘을 믿지 않게 된다는 것을? 아! 내가 몹쓸 년이지, 그 날 외출을 하다니! 주여! 그 애를 그렇게 제게서 뺏아 가시다니, 그 애가 저와 같이 정답게 있는 것을 그래 보시지도 않았던가요? 그렇게도 즐거워하는 그 애를 제가 불에 쬐어 주고 있었던 것을, 그 애가 제 젖을 빨면서 제게 웃고 있던 모습을? 오, 하느님, 만일 당신이 그것을 보셨더라면, 제 기쁨을 가엾게 여기시고 제 가슴에 남아 있던 그 단 하나의 사랑을 뺏어 가시진 않았을 것을! 아, 슬프구나! 그 신은 여기 있는데 발은 어디 있단 말인가? 아가는 어디 있는가? 내 딸아, 그네들은 너를 어떻게 했느냐? 주여, 그 앨 제게 돌려주소서. 당신께 15년 동안이나 기도 드리느라 제 무릎은 껍질이 벗겨졌는데 그래도 충분치가 않나요? 그 앨 제게 돌려주소서. 하루만이라도, 한 시간만이라도, 단 일 분만이라도 좋아요. 주여, 그런 뒤엔 저를 영원히 악마에게 던져 주소서! 그 애의 예쁜 조그만 신이 당신은 가엾지도 않으신가요. 하늘에 계신 착한 마리아여! 내 아기, 그 귀염둥이를 제게 돌려주소서. 누가 내게서 그 앨 뺏아 갔나이다, 히이드가 우거진 황야에서 그 앨 잡아먹었나이다. 그애의 피를 마셨나이다. 착한 마리아여, 저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오! 저는 땅바닥에서 몸을 비틀고, 제 이마로 돌을 빠개고, 그리고 지옥에 떨어지겠나이다. 그리고 주여, 당신을 저주하겠나이다, 만일 당신이 끝내 네 아기를 가지고 계신다면! 자비로운 하느님이여, 저는 죄많은 계집에 불과하지만, 제 딸은 제게 두터운 신앙심을 갖게 해주었나이다. 저는 딸을 사랑하는 까닭에 독실한 믿음을 갖고 있었나이다. 그리고 저는 마치 하늘에 열린 구멍을 통해 보듯 제 딸의 미소를 통해 당신을 보고 있었나이다...오! 꼭 한 번만, 다시 한 번만, 그 예쁜 장밋빛 발에 이 신을 신겨 줄 수 있도록 해주소서. 그러면, 착한 마리아여, 저는 당신을 축복하면서 죽겠나이다!...아! 그 앤 이제 아가씨가 됐을 텐데 불쌍한 아기! 그래 이게 정말 사실일까, 그 앨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이, 하늘에서조차도! 오! 얼마나 비참한 일이냐! 여기 그 애의 신은 있는데, 오직 그뿐이라니!" 이 불행한 여인은, 그토록 여러 해 전부터 자기의 위안이자 절망인 그 신위에 몸을 던졌다. 그녀의 가슴 속은 첫날과 같이 흐느낌으로 갈기갈기 찢기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어린애를 잃은 어머니에게 있어서는 항상 첫날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때, 생생하고 즐거운 어린이들의 목소리가 독방 앞을 지나갔다. 어린애의 모습이나 목소리가 눈에 띄고 귀에 들려올 때마다 이 가엾은 어머니는 으레 그 무덤 같은 방의 가장 컴컴한 구석으로 뛰어들어가, 마치 어린애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돌 속에 머리를 처박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번엔 반대로 그 여자는 벌떡 일어나듯 몸을 일으켜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소년 하나가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오늘 집시 계집애를 목매달아 죽인대" 그녀는 거미줄이 흔들릴 때 파리에게 달려드는 저 거미처럼 별안간 폴짝 뛰어 그레브 광장 쪽으로 트인 채광창으로 달려갔다. 아닌게 아니라, 상설 교수대 옆엔 사다리 하나가 세워져 있었으며, 사형 집행인이 녹슨 쇠사슬을 손질하고 있었다. 그 주위엔 약간의 군중이 있었다. 유쾌한 어린애들의 떼는 이미 멀리 지나가고 없었다. 자루 수녀는 말을 물어 볼 수 있을 만한 행인을 찾아보았다. 그녀는 자기 방 바로 옆에 신부 하나가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는 시민을 위한 성무 일과서를 읽고 있는 체하고 있었으나, 사실은 교수대에 더 정신이 팔려 있는 터라 우울하고 격한 눈초리 때때로 교수대 쪽을 바라보곤 했다. 그녀는 그것이 저 거룩한 사나이 클로드 부주교임을 알아보았다. 그 여잔 물었다. "신부님, 오늘 교수형에 처하려는 건 누구인가요?" 그는 한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대꾸했다. "나도 몰라요" "아까 어린애들이 말하긴 집시 계집애라고 하던데요?" "그런 것 같소" 그러자 파케트 라 샹트 플뢰리는 잔인한 여자처럼 깔깔 웃어 댔다. "수녀" 부주교가 말했다. "당신은 정말 집시 여자들을 미워하는가요?" "제가 그들을 미워하느냐고요? 그들은 마녀예요. 어린애 도둑년들이에요. 그년들은 제 어린 딸을 잡아먹었어요. 제 아길, 단 하나밖에 없는 제 아기를요!" 그녀는 무시무시해 보였다. 신부는 냉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말을 이었다. "특히 제가 저주한 계집애가 하나 있어요. 그건 젊은 계집앤데, 만일 그년의 에미가 제 딸을 잡아먹지 않았더라면, 그년은 제 딸과 동갑일 거예요. 이 독사 같은 계집애가 독방 앞을 지나갈 때마다 전 피가 끓어올라요!" "그렇다면 수녀, 기뻐하구려" 하고 묘지의 석상처럼 쌀쌀하게 신부는 말했다. "바로 그 여자가 곧 죽게 되는 걸 당신은 보게 될 테니까" 그의 머리는 가슴 위에 떨어지고, 그는 천천히 그 자리를 떠났다. 수녀는 기뻐서 자기 팔을 잡아 비틀었다. 그리곤 채광창의 쇠살 앞을 성큼성큼 거닐기 시작했다. 머리는 풀어 흐트러진 채, 눈은 이글이글 타오르고, 오래 전부터 배가 고픈 울 속에 갇힌 이리가 식사 시간이 다가옴을 느낄 때와 같은 표정을 하고서. 5 페뷔스는 그러나 죽지 않았다. 이런 부류의 인간은 목숨도 질긴 것이다. 특히 변호사 필립 나리가 가엾은 에스메랄다에게 "그는 죽어 가고 있다"고 한 것은 잘못 알고 그랬거나 농담으로 그랬던 것이다. 부주교가 "그는 죽었다"고 말한 것은 사실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렇게 말했던 터이지만, 그는 제발 그랬기를 바라고 있기는 했다. 페뷔스의 상처가 위독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순경들은 처음에 그를 몰 약사의 집으로 떠메고 갔었는데, 이 몰 약사는 그의 생명이 위험하다고 말했었다. 자연의 힘은 의사를 조롱하듯 환자의 목숨을 살려 냈다. 그는 종교 재판소 조사관들의 첫 심문을 받은 것은 아직도 이 몰 약사의 집 침대에 누워 있을 때였는데, 그는 그것을 아주 귀찮게 여겼다. 그래서 어느 날 아침, 병이 좀 나았다고 생각되자 그는 치료비로 자신의 황금 박차를 벗어 놓곤 줄행랑을 쳐 버렸다. 그러나 그것은 이 사건의 심리에 조금도 지장을 주지 않았다. 당시의 재판은 죄인에 대한 그것으로써 충분했다. 판사들은 에스메랄다에 대해 충분한 증거를 갖고 있었다. 그들은 페뷔스가 죽은 줄 알았으며, 그것으로서 모든 일은 결정됐던 것이다. 한편 페뷔스는 멀리 도주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파리에서 좀 떨어진 쾨 앙브리에 주둔하고 있는 자기 부대로 갔을 뿐이었다. 그는 자기가 그 공판정에 나가면 우스운 꼴이 되리라는 것을 막연하게나마 느끼고 있었다. 사실 그는 이 사건을 어떻게 생각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군인에 지나지 않는 모든 군인이 그러하듯 믿음이 없고 미신적이었던 그는 스스로 이 사건을 생각해 볼 때, 그 염소에 관해서나, 자기가 에스메랄다를 만나게 된 해괴한 경위에 관해서나, 그 여자가 자기에게 사랑을 암시하던 그 이상한 태도에 관해서나, 그 여자가 집시라는 점에 있어서나, 그리고 끝으로 그 도사 귀신에 관해서나, 모두 도대체 안심이 되지 않았다. 그는 이야기 속의 사랑보다는 훨씬 더 마술과 마녀를 보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페뷔스는 마녀 에스메랄다, 또는 그가 말하고 있었던 것처럼 스밀라르의 공판 결과에 관해 이내 마음의 평온을 얻었다. 그런데 그의 마음이 그런 면에서 비게 되자마자, 거기엔 플뢰르 리스의 모습이 되돌아왔다. 페뷔스의 마음은 그 육체와 마찬가지로 공허를 싫어하고 있었다. 게다가 쾨 앙브리란 참으로 무미 건조한 체류지 였으니, 그곳은 제철공과 손이 튼 소치는 여자들이 살고 있는 마을로, 5리에 걸쳐 신작로 양쪽에 기다랗게 늘어서 있는 오막살이와 초가집뿐이었다 리스는 그가 품은 마지막에서 둘째의 정열로서, 매혹적인 지참금을 가진 예쁜 처녀였다. 그러므로 어느 날 아침, 완쾌한 그는 두 달이나 지났으니 집시 계집애의 사건도 이제 다 잊혀졌으리라고만 추측하고 의기양양히 공들로리에 댁의 문 앞에 도착했다. 그는 노틀담 정면 현관 앞 광장에 모여 있는 꽤 많은 군중에 별로 주의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이 5월이라는 것을 생각하곤 무슨 종교 축제가 있는 것이리라 짐작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아리따운 약혼녀 방으로 올라갔다. 그녀는 어머니와 단둘이 있었다. 리스는 그 마녀의 일을, 그 염소와 저주스런 알파벳과 페뷔스의 오랜 잠적을 늘 원망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중대장이 들어오는 것을 보았을 때, 그녀는 그가 퍽 안색이 좋고, 번쩍번쩍 새 군복을 입고, 퍽 정열적인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곤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다. 이 귀족 아가씨 자신도 전에 없이 아리따웠다. 그녀의 땋아 늘인 아름다운 금발은 참으로 매혹적이었고, 썩 잘 어울리는 하늘색 옷으로 온몸을 휘감고 있었으며, 하염없는 사랑의 표정을 눈에 가득 담고 있었다. 페뷔스는 사실 앙브리에서 미인이라곤 하나도 보지 못했으므로 그만 리스에게 매혹되어 버렸다. 그래서 이 장교의 태도는 썩 은근하고 다정스러웠으며, 이내 침착을 잃게 되었다. 리스는 창가에 앉아 역시 수를 놓고 있었다. 중대장은 그녀의 의자 등받이에 기대고 섰으며, 그녀는 그에게 나직한 목소리로 그 애무하는 듯한 꾸지람을 던지고 있었다. "아니, 맹세하는데 말야... 이 순간 당신은 대주교 같은 이도 꿈꿀 만큼 아름다워" 리스는 생긋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좋아요, 좋아요, 제가 아름답다는 말은 그만두고, 제가 물은 말에나 대답하세요. 정말 멋진 사촌 오빠!" "그건 말야, 사랑하는 사촌 누이, 난 수비대에 주둔하도록 소집돼 갔댔어요" "어디로 가셨댔죠? 그런데 왜 작별 인사를 하러 오지 않았나요?" "쾨 앙브리에 가 있었댔어요" 페뷔스는 첫째 질문이 둘째 질문을 슬쩍 피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을 기뻐하였다. "그렇다면 퍽 가까운 곳이군요. 도련님, 어떻게 해서 단 한 번도 저를 만나러 오지 않았나요?" 여기서 페뷔스는 꽤 곤란했다. 그래서 퍽 더듬거렸다. "그건... 근무 때문에... 그리고 또, 아름다운 사촌 누이, 난 아팠어" "아프셨다고요!" 리스는 놀라서 물었다. "응... 상처를 입었댔어" "상처를 입었다고요!" 가엾게도 이 처녀는 놀라 어쩔 줄을 몰랐다. "아니! 그렇게 질겁하진 말아요. 아무것도 아냐... 싸움 한 번 한 건데, 뭐가 어떻다고 그래요?" "뭐가 어떻다고 그러느냐고요?" 리스는 눈물이 가득 찬 아름다운 눈을 들면서 외쳤다. "아! 당신은 그런 말을 하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 말씀하시진 않는군요. 그 싸움이란 뭐예요? 난 속속들이 알고 싶어요" "그건 말야, 사랑하는 미인, 난 마에 페디와 싸운 거야. 소대장 말야. 그래서 우리는 쌍방이 살가죽을 조금씩 쨌을 뿐이야" 이 거짓말쟁이 중대장은 결투란 언제나 여자의 눈에 사나이를 두드러져 보이게 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과연 리스는 두려움과 찬미의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이 완쾌되셨으면 좋겠는데요, 페뷔스! 그 마에 페디라는 사람은 모르지만, 그는 참 비열한 남자군요. 그런데 어째서 싸우게 되셨나요?" 페뷔스의 상상력은 별로 보잘것없었으므로, 여기서 그는 자기 무용담을 어떻게 끝마쳐야 좋을지를 알 수 없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야. 말 한 마디 때문에! 한데 아름다운 누이, 대체 저 성당 앞뜰에서 들려 오는 소리는 뭐죠?" 하면서 그는 창가로 갔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마녀 하나가 교수형을 받기 전에 성당 앞에서 공개 사죄를 하려는 모양이에요" 중대장은 에스메랄다 사건이 끝나 버린 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리스의 말을 듣고도 별로 놀라지 않았다. 페뷔스는 다시 돌아와서 자기 약혼녀의 의자등에 기대고 섰는데, 그것은 그의 방종한 눈이 리스의 장식깃 속을 들여다보기에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이다. 그 깃장식이 움직일 때마다 그에게는 가지가지의 근사한 것들이 보이고, 그 밖의 수많은 것들을 상상할 수 있게 해주므로 기분이 좋았다. "페뷔스 오빠" 갑자기 리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불렀다. "우린 석 달 후면 결혼을 해요. 당신은 저 외엔 어떤 여자도 결코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 맹세해 주세요. 저는 꼭 듣고 싶어요" "암 맹세하고 말고, 아름다운 천사여!" 페뷔스는 흔쾌히 대답했는데, 그의 정열적인 눈은 약혼녀에게 확신을 주기 위해 진지한 어조와 합세하고 있었다. 그 자신도 아마 이 순간엔 자신의 말을 진실로 믿었으리라. 그러는 동안, 착한 어머니는 두 남녀가 그토록 의좋게 지내는 것을 보고 무척 기뻐하면서, 무슨 사소한 집안일을 처리하기 위해 곧 방에서 나갔다. 페뷔스는 그것을 알아챘다. 그래서 이렇게 단둘이만 남아 있게 되자, 이 모험을 좋아하는 중대장은 자못 대담해져서 머리 속에 퍽 이상한 생각이 떠올랐다.-리스는 자기를 사랑하고 있다, 그녀는 자기와 홀로 있다, 그녀에 대한 자기의 옛 기분은 완전히 싱싱하지는 못하지만 되살아났다, 어쨌든 장래 자기 것이 될 과실을 미리 좀 따먹은들 큰 죄가 되진 않을 것이다.-이런 생각이 그의 머리 속을 스쳐 갔는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플뢰르 리스가 그의 눈의 표정에 갑자기 겁을 집어먹었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어머나!" 그녀는 얼굴이 새빨개지고 불안해져서 말했다. "몹시 덥네요!" "아닌게 아니라 정오가 멀지 않은 것 같군요. 햇볕이 따갑지요? 휘장을 닫기만 하면 될 거예요" "아녜요, 아녜요. 전 도리어 바람을 쐬고 싶어요" 그러면서 그녀는 마치 사냥개 떼의 숨결을 느낀 암사슴처럼 일어나서 달려가 창을 열곤 발코니로 뛰어나갔다. 페뷔스는 적이 화가 나서 여자의 뒤를 따라 나갔다. 알다시피, 이 발코니는 노틀담 광장 쪽을 향해 있었는데, 이때 성당 앞뜰 광장은 무시무시한 이상한 광경을 보여 주고 있어서, 소심한 리스의 공포는 갑자기 다른 성질로 바뀌어 버렸다. 인접한 모든 거리거리로부터 밀려들어오는 군중은 광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성당 앞뜰을 둘러싸고 있는 조그만 벽이 만일 화승총을 손에 든 병사와 순경들의 두꺼운 담으로 다시 둘러싸여져 있지 않았더라면, 그 벽은 성당 앞뜰을 비워 놓게 하기엔 충분치 못했으리라. 그 숲처럼 에워싼 화승총 덕택으로 성당 앞뜰은 텅 비고 있었다. 성당의 넓은 문들은 닫혀져 있었는데, 그것은 활짝활짝 열린 광장 주변의 수많은 창들과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이 군중의 표면은 회색이고 꾀죄죄했다. 그들이 기다리는 구경거리는, 시민 중에서 가장 천한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불러 모으는 특전을 갖고 있는 것의 하나임에 분명했다. "원 세상에!" 플뢰르 리스가 말했다. "참 불쌍한 여자도 있군!" 이런 생각은 군중을 둘러보고 있는 그녀의 눈을 연민으로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천민들의 떼보다는 약혼녀에게 더 정신이 팔려 있는 중대장은 연정을 품고 그녀의 허리띠를 뒤에서 구기적거리고 있었다. 이때 노틀담의 큰 시계가 천천히 정오를 쳤다. 기쁨의 함성이 군중 속에서 터졌다. 열두 번째의 마지막 종의 울림이 다 꺼지기도 전에, 모든 사람의 머리가 흔들리고 커다란 고함 소리가 거리와 창문과 지붕에서 일었다. "저기 그 여자가 온다!" 한 대의 죄수 호송 수레가 한 마리의 살찐 말에 끌리고, 보랏빛 제복을 입은 기병대에 둘러싸여서 생 피에로 거리에서 방금 광장으로 나왔다. 이 숙명적인 수레 속엔 처녀 하나가 앉아 있는데, 두 팔은 등 뒤로 묶여 있었다. 그녀는 셔츠를 입고 있었으며, 그 기다란 검은 머리는 절반은 드러나 그녀의 젖가슴과 어깨 위에 헝클어진 채 드리워져 있었다. 그 머리칼 사이로, 까칠까칠한 회색 밧줄 하나가 비끄러매져, 꽃 위의 벌레처럼 이 가련한 처녀의 사랑스런 목 주위를 감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밧줄 아래엔 초록빛 유리 세공품으로 장식된 조그만 부적 하나가 반짝이고 있었는데, 바야흐로 죽어 가는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거절할 수 없는 까닭에 그냥 달고 있게 내버려 두었으리라. "어머나!" 플뢰르 리스는 중대장에게 세차게 말했다. "저걸 봐요, 사촌 오빠! 저건 염소를 데리고 다니는 그 집시 계집애예요!" "염소를 데리고 다니는 집시 계집애라니?" "아니! 그렇게 생각이 안 나세요?" "누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난 모르겠는걸" 그는 돌아가려고 한 발을 옮겼다. 그러나 리스의 질투심은 전에 그 집시 여자로 인해 심히 자극 받은 바 있었거니와 이제 또다시 고개를 쳐들게 되었는지라, 꿰뚫어 보는 듯한 불신의 눈으로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왜 그러세요? 저 계집애 때문에 당신 마음이 흔들리는 것 같네요" "내가! 천만에, 당치 않은 소리!" "그렇다면 그냥 계세요. 그리고 끝까지 보아요" 이 운 나쁜 중대장은 부득이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틀림없이 에스메랄다였다. 그 욕됨과 불행의 마지막 단계에서도 그 여자는 여전히 아름다웠고, 그 커다란 검은 눈은 그녀의 볼이 수척한 까닭에 더욱 커 보였으며, 그 창백한 옆모습은 순결하고 숭고하였다. 그녀의 눈동자엔 아직도 눈물이 괴어 있는 것이 보였으나 마치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수레 행렬은 함성과 호기심으로 가득 찬 사람들 속을 통과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해 두지 않을 수 없거니와, 그렇게도 아름답고 핼쓱한 그 여자를 보고 불쌍해 하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가장 냉혹한 사람들도 역시 그러했다. 죄수 수레는 성당 앞뜰 안으로 들어갔다. 중앙 현관 앞에서 수레는 멎었다. 그러자 호위병이 양쪽에 전투 대형으로 늘어섰다. 군중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고, 엄숙과 불안으로 가득 찬 그 침묵 속에, 대문 두 짝이 피리 소리를 내며 돌았다. 그러자 고풍의 성당이 저 안쪽까지 보였는데, 성당은 어두컴컴하고, 멀리 주제단 위에서 반짝거리는 몇 개의 촛불로 희미하게 밝혀져 있었으며, 그것이 햇빛으로 눈부신 광장 한가운데 마치 동굴의 아가리처럼 열려져 있었다. 맨 안쪽으로 성당 후진의 어둠 속에, 하나의 거대한 은 십자가가 검은 나사 위에 뻗치어 있었다. 중앙 홀엔 사람 하나 없었다. 그러더니 멀리 성가대석에서 몇 명의 신부의 머리가 움직이는 것이 어렴풋이 보이고, 대문이 열리는 순간 성당에서 장엄하고 우렁차고 단조로운 노래 소리가 들려 왔다. "나를 둘러싼 수천 명의 사람을 나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주여, 일어나시라. 하느님이시여, 나를 구하시라!" 불쌍한 아가씨는 겁을 먹고 있었는데, 그녀의 시선도 생각도 캄캄한 성당의 내부를 헤매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의 하얀 입술은 마치 기도라도 드리는 것처럼 움직이고 있었는데, 사형 집행인의 하인이 수레에서 내려오게 하려고 그 여자 옆에 갔을 때, 그는 그녀가 나지막한 소리로 다음과 같은 말을 뇌는 것을 들었다. "페뷔스..." 그는 그녀의 결박지은 손을 풀어 주고, 역시 결박에서 풀려나 자유의 몸이 된 것을 느끼고 기뻐 매애 울고 있는 염소와 수레에서 내리게 하여, 단단한 포석 위를 맨발로 계단 아래까지 걷게 했다. 그녀의 목에 매여진 밧줄이 뒤에 질질 끌리고 있었는데, 마치 뒤를 따라가는 한 마리의 뱀과도 같았다. 이때 노래 소리가 그쳤다. 커다란 금 십자가와 한 줄의 촛불이 어둠 속에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신부들과 부제들의 긴 행렬이 성가를 읊조리면서 사형수를 향해 장엄하게 오고 있는 것이 죄수와 군중의 눈에 보였다. 그러나 그녀의 시선은, 십자가를 든 사람 바로 뒤에, 행렬의 선두에 서서 걸어오는 사람 위에서 멎었다. "오!" 하고 그녀는 나지막한 소리로 떨면서 말했다. "또 그 사람이네..." 과연 부주교가 자신의 직책을 상징하는 단장을 든 성가 대원을 거느리고 있었다. 은빛 제복으로 몸을 휘감고 높다란 정문 아래 나타났을 때, 그는 어찌나 창백했던지, 성가대석의 묘석 위에 무릎을 끓고 있는 대리석 주교상의 하나가 일어나서, 무덤 입구에서 죽어 가는 여인을 마중하러 온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 사람들이 군중 속에 한둘이 아니었다. 그녀도 그에 못지 않게 창백하고 그에 못잖게 조각상 같았는데, 불을 붙인 묵직한 양초 한 자루를 손에 쥐어 준 것도 그녀는 잘 알아채지 못했으며, 그 숙명적인 공개 사죄문을 읽고 있는 서기의 날카로운 음성도 잘 듣지 않았다. 신부가 자신의 호위자들에게 자리를 비키라고 신호하고 홀로 자기 쪽으로 걸어오는 것을 보았을 때야 비로소 그녀는 약간의 생명과 힘을 되찾게 되었다. 그녀는 자기 머리 속에서 피가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꼈고, 남아 있던 분노가 이미 마비되고 냉각된 넋 속에 다시 타올랐다. 그는 천천히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이 극단의 경우에서조차, 그녀는 그가 자신의 발가숭이 몸을 질투와 정욕으로 번쩍거리는 눈으로 살피는 것을 보았다. 그런 뒤 그는 그녀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그대는 그대의 잘못과 무신앙에 관해 하느님께 용서를 빌겠는가?" 그는 그녀의 귀에 몸을 기울이고 덧붙였다(구경꾼들은 그가 마지막 참회를 받는 줄 알았다) "넌 나를 원망하느냐? 난 아직도 널 살려 낼 수 있어" 그녀는 그를 쏘아보았다. "가라, 악마야! 그렇잖으면 널 고발하겠다" 그는 무시무시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도 네 말은 곧이듣지 않을 것이다. 빨리 대답하라! 넌 나를 원하느냐?" "넌 나의 페뷔스를 어떻게 했느냐?" "그는 죽었다" 이 순간 가련한 부주교는 기계적으로 머리를 들었다가 광장 반대쪽 끝의 공들로리에 댁 발코니에, 플뢰르 리스 옆에 그 중대장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비틀거리며, 손으로 눈을 가렸다가 다시 바라보는 그의 표정엔 격렬한 경련이 일었다. 그는 집시 처녀 쪽으로 손을 올리고 비통한 목소리로 외쳤다. "가라, 이제, 흔들리는 넋이여, 하느님께서 그대에게 자비를 베푸시기를!" 그것은 이 음산한 의식을 끝마칠 때 으레 쓰는 무서운 말이었다. 그것은 사형 집행인에게 하는 신부의 관례적인 신호였다. 민중은 무릎을 끓었다. 부주교는 사형수에게 등을 돌리고, 머리를 가슴 위에 떨어뜨린 채 성직자들의 행렬로 되돌아갔는데, 잠시 후 십자가와 촛불, 그리고 여러 제복들과 더불어 그가 대성당의 침침한 둥근 천장 아래로 사라져 가는 것이 보였으며, 그의 우렁찬 목소리가 다음과 같은 절망적인 시구를 노래하면서 차츰차츰 성가대의 합창 속에 꺼져 들어갔다. "그대의 모든 소용돌이가, 그대의 모든 파도가 내 위로 지나갔다" 사형수는 제자리에 우두커니 선 채 처분만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검사가 돌아서서 신호를 하자, 사형 집행인의 하인인 누런 옷을 입은 두 사내가 집시 아가씨의 손을 다시 결박하기 위해 다가갔다. 아가씨는 숙명적인 죄수 호송차에 올라타 마지막 대기소를 향해 갈 때, 아마도 가슴을 에는 듯한 생애의 미련을 느꼈으리라. 그녀는 그 큰 눈을 쳐들고 하늘을, 태양을, 여기저기 널린 은빛 구름을 우러러보고, 다시 눈을 떨어뜨려 지상을, 군중을, 집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별안간, 누런 옷 입은 사내가 자신의 팔을 묶고 있을 때, 그녀는 무시무시한 고함을, 기쁨의 탄성을 질렸다. 저 아래, 광장 모퉁이의 발코니에서 그녀는 그를 보았던 것이다. 그를, 자기 애인을, 페뷔스를, 자기 생명의 또 하나의 출현을...! "페뷔스!" 그녀는 외쳤다. "페뷔스!" 아가씨는 떨리는 팔을 그에게 내뻗치려 하였으나 그것은 묶여 있었다. 이때 그녀는, 중대장이 눈살을 찌푸리고, 그에게 몸을 기대고 서 있는 아름다운 처녀 하나가 경멸적인 입술과 성난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것을 보았는데, 조금 후 페뷔스는 몇 마디 말을 했으나 그건 들리지 않았으며, 두 남녀는 얼른 발코니의 유리창 뒤로 사라져 버리고 창은 닫혀 버렸다. "페뷔스!" 에스메랄다는 미친 듯 외쳤다. "당신도 정녕 그런 줄로만 알고 있나요?" 끔찍스런 생각 하나가 그녀의 머리에 떠올랐던 것이다. 그녀는 자기가 그의 몸에 상해를 가한 죄로 사형 언도를 받았다는 사실을 회상했던 것이다. 그녀는 이때까진 모든 것을 참아 왔다. 그러나 이 마지막 타격은 너무나도 가혹했다. 그녀는 포석 위에 쓰러져 꼼짝도 않았다. "자, 저 여자를 수레로 떠메고 가라. 그리고 어서 해치워 버리자!" 지휘자인 검사가 말했다. 현관 바로 위에 새겨 놓은 역대 왕의 조각상이 있는 회랑 속에서, 이상한 구경꾼 하나가 그때까지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는 것을 알아챈 사람은 한 명도 없었는데, 그는 어떻게나 태연스럽고 어떻게나 목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던지, 만일 그가 자줏빛 옷을 입고 있지 않았더라면, 저 돌의 괴물들 중의 하나로 사람들은 잘못 알았으리라. 이 구경꾼은 노틀담의 현관 앞에서 정오 이후에 일어났던 일을 무엇 하나 놓치지 않고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미 첫 순간에, 아무도 그의 거동을 살펴볼 생각조차 못 했을 때에, 그는 회랑의 원기둥 하나에다 끝이 아래쪽 돌층계 위에 닿을 만한 굵직한 밧줄 하나를 단단히 비끄러매 놓았었다. 그렇게 하고 난 그는 태연스럽게 바라보기 시작하고, 티티새가 자기 앞을 지나갈 적엔 때때로 휘파람까지 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사형 집행관의 하인들이 명령을 수행할 차비를 차리는 순간, 그는 회랑 난간을 뛰어넘고 발과 무릎과 손으로 밧줄을 붙잡더니, 창유리를 따라 흘러내리는 빗방울처럼 성당 전면 위를 미끄러져 내려, 지붕에서 떨어진 고양이처럼 날쌔게 두 망나니 쪽으로 뛰어가 그 어마어마한 주먹 아래 그들을 때려 누이고, 어린애가 제 인형을 집어들듯 한 손으로 집시 아가씨를 집어 어깨 위로 들어올리곤, 단 한 번 폴짝 뛰어 성당 안으로 들어가면서 무시무시한 목소리로 "성역이다!" 하고 외쳤다. 그것은 어떻게나 신속히 행해졌던지, 만일 밤이었더라면 단 하나의 번갯불 빛에 모든 것을 볼 수 있었으리라. 이 요란스런 소란에 사형수 아가씨는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눈을 뜨고 이 구원의 손길을 바라보다가 얼른 다시 감아 버렸다. 마치 구원자에게 겁이라도 난 것처럼. 그는 바로 카지모도였다. 법정 관리들은 모두 어리둥절해 있었다. 사실 노틀담의 울타리 안에서는 사형수를 어쩔 수 없었다. 성당은 하나의 피신처였다. 카지모도는 현관 정문 아래서 발을 멈추었다. 그의 널따란 발은 육중한 로마네스크의 원기둥처럼 성당의 포석 위에 단단히 버티고 있었다. 머리털이 더부룩한 그의 커다란 머리통은 갈기만 있고 목은 없는 사자의 머리같이 어깨 속에 쑥 들어가 있었다. 그는 팔딱거리는 처녀를 하얀 휘장처럼 손에 드리워 쥐고 있었으나, 매우 조심스레 들고 있어서 행여나 그녀를 부숴뜨릴까 봐 또는 시들게 할까 봐 두려워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마치 그것은 섬세하고 미묘하고 소중한 것으로, 자기 손이 아닌 다른 손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느끼고 있는 것과도 같았다. 때때로 그는 그 여자에게 감히 손을 대지 못하는 듯한, 숨결만으로도 접촉하지 못하는 듯한 표정을 짓곤 했다. 그러더니 느닷없이 그는 아가씨를 품안에, 그 울퉁불퉁한 가슴 위에 꼭 껴안았다. 마치 소중한 자기의 보물처럼. 볼품없는 그의 눈은 그녀를 내려다보며 애정과 고통과 연민을 듬뿍 떨구고 나서야 다시금 빛나며 쳐들리곤 했다. 그러자 여자들은 웃고 울고 하였으며, 군중은 열광하여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던 중 열렬한 갈채를 받고 난 카지모도는 그의 짐을 가지고 후닥닥 성당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군중들이 아쉬워하는 사이 그는 탑 꼭대기에 다시 나타났다. 거기서 그는 온 도시에 자기가 살려 낸 여인을 자랑스럽게 보여 주는 것 같았으며, 사람들이 좀체로 들어 본 적이 없던 그 우렁찬 목소리로 미친 듯 구름에까지 울리도록 "성역이다! 성역이다! 성역이다!" 하고 되풀이했다. "좋구나, 좋다!" 군중들도 이같이 부르짖고 있었으며, 이 커다란 함성은 강 건너편까지 울려 퍼져서 거리의 군중을 놀라게 하고, 교수대를 응시한 채 여전히 기다리고만 있던 그 자루 수녀를 놀라게 했다. 제7장 연정과 정욕 1 부주교가 그 집시 아가씨를 사로잡고 자기 자신도 사로잡혔던 그 올가미의 매들을 그의 양아들이 느닷없이 끊어 버리고 있는 동안, 이 불행한 남자는 노틀담 안에 있지 않았다. 그는 제의실로 돌아와서 제복과 띠를 홱홱 벗어 던지고, 수도원의 비밀문으로 빠져 나가, 테랭의 뱃사공에게 명하여 센 강의 왼쪽 둑으로 실어가 달라 하고, 점점 기복이 심한 거리로 정처 없이 걸어가면서, 마녀의 목을 달아매는 것을 구경하는 데 아직은 늦지 않았겠지 하는 희망에서 즐겁게 몰려가고 있는 남녀 무리를 한 걸음마다 만났는데, 그의 얼굴은 창백하고 얼이 빠져 나간 듯했으며, 대낮에 한떼의 어린이들에게 쫓기는 밤보다 더 당황하고 눈앞이 캄캄하고, 또 더 사나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자기가 어디 있는지, 무얼 생각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는 그저 걷고 있었다. 어느 길이든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다만 언제나 자기 뒤에 있음을 어렴풋이 느끼는 그 무서운 처형장에 떠밀려 전진할 뿐이었다. 그는 그렇게 생트 죄느비에브 산을 따라 가다가 이윽고 생 빅토르 문으로 해서 시내를 벗어났다. 그는 계속 달아났다.-돌아봤을 때 탑들이 솟아 있는 성벽과 드문드문한 집들이 보이는 한. 그러다 마침내 암벽 하나가 그 추악한 파리를 그의 시야에서 완전히 가려 주었을 때, 파리에서 아득히 떨어진 들판이나 사막에 와 있다고 믿을 수 있었을 때, 그는 걸음을 멈추고 비로소 숨을 쉬었다. 그러자 무서운 생각들이 그의 머리 속에 몰아닥쳤다. 그는 자기 마음속을 똑똑히 보았다. 그리고 떨었다. 그는 자기를 파멸시켰고 자기가 파멸시킨 그 불행한 여자를 생각했다. 그는 마음껏 나쁜 생각 속에 빠져 들어갔으며, 더욱 깊이 그 속에 잠겨 듦에 따라 자신 속에 악마의 웃음이 터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자기 마음속을 깊이 파고 들어가면서, 자연이 얼마나 넓은 자리를 거기 정열을 위해 준비해 놓았던가를 알았을 때, 그는 더욱더 고통스레 비웃었다. 그는 자기 마음 밑바닥에 자기의 모든 악의를 휘저어 보고, 환자를 진찰하는 의사와 같은 냉철한 눈으로, 그 증오와 악의는 부패된 사랑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간에서 있어서 모든 미덕의 원천인 사랑은 신부의 가슴 속에서는 끔찍한 것으로 변한다는 것을, 그리고 자기처럼 생긴 인간은 성직자가 됨으로써 악마가 된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런데 페뷔스는 아직 살아 있다, 요컨대 쾌활하고 즐거워하고 있다, 여느 때보다도 더 호화로운 군복을 입고 있고, 새로운 애인이 있어서 옛 애인이 교수형을 당하는 것을 구경하기 위해 같이 데리고 다닌다는 생각을 하고, 그는 또다시 웃었다. 자기가 죽기를 바라는 사람들 중에서 자기가 미워하지 않는 유일한 인간인 집시 아가씨만이 자기가 과녁을 맞힌 단 하나의 여인이란 것을 생각했을 때 그는 가이없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자 그의 생각은 중대장으로부터 군중으로 옮아 가 엄청나 질투심에 사로잡혔다. 군중도 또한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를, 셔츠 바람의 거의 다 발가벗은 그녀를 눈 아래에 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혼자 그늘 속에서 그 자태를 어렴풋이 보았을 때 그 여잔 최고의 행복이었는데, 이제 향락의 밤과 같은 옷차림을 하고 대낮에 한떼의 군중에게 내맡겨졌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는 팔을 비틀었다. 영원히 모독당하고 모욕당한 그 모든 사랑의 비밀을 생각하고 그는 분해서 울었다. 얼마나 많은 추잡한 눈이 그 풀어 헤쳐진 셔츠에서 즐거움을 느꼈을까! 만일 그 여자가 집시가 아니고 자기가 신부가 아니었더라면, 만일 페뷔스가 존재하지 않고 그녀가 자기를 사랑했더라면, 이 세상에서 발견할 수도 있었을 행복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하는 걸 생각해 보았을 때 그는 가슴이 저렸다. 바로 이 순간에도 이 지상 여기저기엔 오렌지 나무 아래서, 시냇가에서, 저물어 가는 석양 앞에서, 별이 총총한 밤하늘 밑에서, 끝없는 이야기에 잠긴 행복스런 남녀들이 있으리라. 그리고 만일 하느님께서 그러길 바라셨더라면, 자기도 그녀와 더불어 그 축복 받은 쌍들 중의 한 쌍을 이룰 수도 있었으리라. 또 때로는 악마처럼 자기 자신을 비웃으면서도, 그 첫날 보았던 대로의 에스메랄다, 즉 발랄하고, 쾌활하고, 춤을 추고, 조화로운 에스메랄다와 동시에 마지막날 밧줄을 목에 감고, 맨발로 교수대의 사다리를 올라가고 있는 에스메랄다를 한꺼번에 상상해 보는 때도 있었다. 그는 이 두 가지의 그림을 머리 속에 떠올리다가 그만 무시무시한 고함을 지르기까지 했다. 이 절망의 폭풍우가 그의 마음속에서 모든 것을 찢고, 부숴뜨리고, 뽑아 내고 하는 동안 그는 주위의 자연을 바라보았다. 발 아래서는 닭 몇 마리가 덤불 속을 뒤져 부리로 쪼아 먹고, 알록달록한 풍뎅이들이 햇볕에 뛰어다니고, 머리 위에 몇 무더기의 잿빛 양떼 구름이 푸른 하늘을 지나가고, 지평선엔 생 빅트로 수도원의 첨탑이 언덕의 곡선 위로 납꼭지를 우뚝 솟아 올리고 있고, 코포 언덕의 방앗간 주인은 자기의 풍차 날개가 부지런히 돌아가는 것을 휘파람을 불며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주위에서 수만 가지 형태로 나타난 그 모든 부지런하고 짜임새 있고 조용한 삶은 그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는 다시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는 이처럼 저녁때까지 정처 없이 달렸다. 때때로 그는 얼굴을 땅에 처박고, 손톱으로 밀싹을 쥐어뜯곤 했다. 해가 뉘엿뉘엿 기울어질 무렵, 그는 다시금 자신을 살펴보곤 자기가 거의 미칠 지경에 있음을 발견했다. 그녀의 목숨을 살려 낼 희망을 잃었을 때부터 그의 속에서 계속되고 있었던 폭풍우는 그의 의식 속에서 거의 완전히 부서져 있었다. 그의 머리 속엔 두 개의 뚜렷한 영상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즉 에스메랄다와 교수대, 그 밖의 것은 모두 새까맸다. 하나의 영상은 매력과 아름다움과 빛을 더해 가는 것 같고, 다른 하나의 영상은 끔찍함을 더해 가는 것 같았다. 그 결과 마침내 에스메랄다는 그에게 하나의 별처럼 나타나 보이고, 교수대는 뼈만 앙상한 거대한 팔처럼 나타나 보이는 것이었다. 한 가지 주목할 것은, 그 모든 고통을 겪고 있는 동안에도 진정 죽고 싶은 생각은 그에게 떠오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 비참한 사나이는 그렇게 삶에 애착하고 있었던 것이다. 해는 계속 떨어져 가고 있었다. 그의 속에 아직도 존재하고 있던 생명은 어렴풋이 돌아갈 것을 생각했다. 그는 프레오 클레르 목장을 따라 쓸쓸한 오솔길을 걸어 마침내 강가에 이르렀다. 거기서 뱃사공 하나를 발견해 파리 주화 몇 개를 주니, 사공은 센 강을 거슬러 올라가 가느다란 지대 위에 그를 내려놓았다. 배의 단조로운 흔들림과 살랑거리는 물소리는 불행한 클로드를 어느 정도 마비시켜 놓았다. 뱃사공이 떠나자 그는 멍청히 모래밭 위에 서서 앞을 바라보고 있었으나, 그의 눈에 비치는 모든 물건은 자꾸만 켜져 가는 동요 속에 일종의 환영처럼 보일 따름이었다. 해는 높다란 네슬 탑 뒤로 지고 있었으며, 하늘도 희고 강물도 희었다. 그 두 흰빛 사이에, 그가 응시하고 있는 센 강의 왼쪽 둑은 그 검은 덩치를 던지고 있었다. 그가 거리로 돌아갔을 때, 가게의 진열장 불빛에 서로 떠밀고 있는 행인들이 그에겐 자기 주위에서 영원히 오락가락 하는 유령 같은 인상을 주었다. 그의 귀에는 알 수 없는 괴상한 소리가 들리고, 이상한 환상이 머리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바리유리 거리 모퉁이에 식료품 가게가 하나 있었는데, 그 처마엔 아득한 옛날부터의 관습으로 그 둘레에 양철 테가 붙어 있고 테에 둥그렇게 나무초가 매달려 있었다. 그런데 그것은 바람에 마치 캐스터네츠처럼 딸각거리는 것이었다. 그는 어둠 속에서 그것을 해골 묶음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인 줄 알고 중얼거렸다. "오! 밤바람이 그들을 불러 서로 부딪치게 하는구나. 그리고 그들이 쇠사슬 소리를 뼈 소리에 섞어 주고 있구나! 그 여자도 아마 거기, 그들 사이에 있겠지!" 얼이 빠진 그는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얼마쯤 후 그는 생 미셀 다리 위에 와 있었다. 어느 집 아래층 창에 불빛이 보였다. 그는 다가갔다. 갈라진 창문 틈으로 더러운 방 하나가 보였는데, 그것은 어렴풋한 추억을 불러일으켰다. 램프 불에 희미하게 밝혀진 그 방 안엔 즐거운 얼굴을 한 싱싱한 젊은이 하나가 무척 큰 소리로 깔깔 웃으면서 매우 뻔뻔스럽게 몸치장을 한 계집애 하나를 껴안고 있었다. 그리고 램프 불 옆에서는 노파 하나가 실을 자으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노래하고 있었다. 젊은이가 줄곧 웃진 않았으므로 늙은이의 노래는 단편적으로 들려 왔는데, 그것은 뜻을 알 수 없는 무시무시한 노래였다. 그레브야 울어라, 그레브야 수런거려라! 자아라, 자아라, 내 실토리야. 안마당에서 휘파람 불고 있는 망나니에게 밧줄을 자아 주려무나! 눈곱 낀 교수대에 목을 매다는 마녀를 보고 위해선, 창문이 눈이라네. 그레브야 수런거려라, 그레브야 울어라! 이때 젊은 사내는 웃으면서 계집애를 애무하고 있었다. 노파는 파루르델이고, 계집애는 창녀고, 젊은이는 바로 동생 장이었다. 그는 장이 방 안쪽 창으로 가서 창문을 열고, 멀리 숱한 유리창에 불빛이 반짝거리는 것을 흘끗 보는 모양을 보았으며, 그가 창문을 도로 닫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제가랄! 벌써 밤이 되어 버렸군. 시민들은 불을 켜고 하느님은 별을 켜는구나" 창녀는 웃었고, 장은 밖으로 나갔다. 클로드는 동생이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도록 겨우 땅바닥에 엎드릴 틈밖에 없었다 다행히 거리는 어두웠고, 학생은 취해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부주교가 길바닥의 흙 속에 누워 있는 것을 보았다. "어렵소! 이 친구 재미 톡톡히 봤구나" 그는 형을 발길로 흔들었으나, 클로드는 숨을 죽이고 있었다. 클로드는 그가 떠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야 어쨌든, 아아, 내 형님 부주교는 얌전하고 돈이 있으니 퍽 행복한 사람이야" 이윽고 부주교가 일어나 노틀담 쪽으로 달려갔는데, 그 거대한 종탑들이 어둠 속에 솟아 있는 것이 보였다. 숨을 헐떡거리면서 성당 앞뜰에 도착한 그는 뒷걸음질치며 감히 그 불길한 건물을 쳐다보지 못했다. "오! 그런 일이 여기서 바로 오늘 아침에 있었다는 게 사실이란 말인가!" 그러다가 마침내 그는 용기를 내어 성당을 바라보았다. 정면은 검었으며, 그 뒤에서 하늘은 탑 꼭대기에 멎어 있어, 가장자리가 검은 클로버잎 모양으로 된 난간가에 마치 한 마리의 새처럼 앉아 있다. 문은 닫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실험실이 있는 종탑 열쇠를 몸에 지니고 있었으므로 그것을 사용해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성당 안에 동굴 같은 어둠과 고요를 발견했다. 사방에서 떨어지는 커다란 그림자들 속에, 그는 이날 아침의 의식의 장막들이 아직도 철거되지 않고 있는 것을 알아보았다. 그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창백한 얼굴들이 빙 둘러서서 자기를 바라보는 듯이 느껴졌다. 그는 성당을 지나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성당 역시 흔들리고, 움직이고, 생명을 가진 것 같았고, 그 퉁퉁한 원기둥 하나 하나가 거대한 다리가 되어 널따란 돌의 발로 땅바닥을 차고 있는 것 같았으며, 그 거대한 대성당이 일종의 어마어마한 코끼리가 되어 숨을 내뿜고, 그 원기둥들이 발이 되고 두 종탑이 코가 되고 거대한 검은 장막이 옷이 되고 걷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처럼 신열이랄까 정신 착란이 극도에 달했는지라, 이 불행한 사나이에게 있어 외부 세계는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무시무시한 계시록인 듯했다. 난간 아래로 들어갔을 때, 그는 육중한 원기둥들 뒤에 불그스름한 불빛을 보았다. 그는 그리고 달려갔다. 그것은 성무 일과서를 밝혀 주는 램프 불이었다. 그는 무슨 위안을 발견할 수도 있을까 하는 희망에서 성서를 향해 달려갔다.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오는 대목이 펼쳐져 있어서, 그의 얼어붙은 듯한 눈은 그것을 훑어보았다. "하나의 말소리가 살그머니 들려와 내 귀는 그 가벼운 속삭임을 들었다. 하나의 정령이 내 앞을 지나갔다. 내 살의 털은 곤두섰다" 이 글을 읽었을 때, 그는 마치 장님이 자기가 주운 지팡이에 찔리는 것을 느낄 때와 같은 충격을 받았다. 무릎에서 기운이 쑥 빠져 나가 머리 속으로 괴이한 연기가 가득 흘러들고 스쳐 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아무 생각도 없이 악마의 손 아래 빠져 꼼짝도 못한 채, 오랫동안 그런 자세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윽고 그는 자기의 충복인 카지모도의 옆에 있는 종탑 속으로 피난해 갈 것을 생각했다. 그는 일어섰다. 그리고 무서웠으므로, 앞을 밝히기 위해 성무 일과서의 램프를 집었다. 그것은 신성 모독이었지만 그런 것에 정신을 쓸 수가 없었다. 그는 남모를 공포심에 가득 차 종탑 계단을 천천히 올라갔는데, 그렇게 밤늦게 위로 올라가고 있는 신비로운 불빛은, 드문드문 지나가는 성당 앞의 행인들에게도 공포감을 주었으리라. 갑자기 그는 얼굴이 좀 서늘해짐을 느꼈고, 자기가 가장 높은 회랑의 문 아래에 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공기는 차가웠고. 하늘에 구름이 흘러가면서 모서리가 부서지는 꼴은, 마치 겨울에 강물이 얼음에서 풀리는 모양과도 같았다. 그는 두 종탑을 연결하는 난간의 작은 기둥들 사이에 서서 멀리 안개와 연기의 엷은 장막을 통해, 뾰족뾰족하고 헤아릴 수 없이 밀집한 파리의 고요한 지붕들을 잠시 바라보았다. 이때 쾌종 시계가 둔중한 그 목소리를 울렸다. 자정을 친 것이다. 부주교는 정오를 생각했다. 이미 열두 시간이 흐른 것이다. "그녀는 지금쯤 싸늘해져 있을 것이다!" 별안간 한 무더기의 바람이 램프 불을 끄고, 그것과 거의 동시에 종탑 반대쪽 모퉁이에 한 그림자가, 하나의 흰빛이, 한 여인이 나타나는 것이 보였다. 그는 몸을 떨었다. 여자 곁에 작은 염소 한 마리가 있어, 마지막 종을 치는 시계 소리에 울음소리를 섞고 있었다. 그는 힘을 내어 바라보았다. 집시 처녀였다. 그녀는 창백했고 침울했다. 그 머리는 아침때와 같이 어깨 위에 드리워져 있었다. 그러나 목엔 밧줄이 없고, 손도 묶여 있지 않았다. 그녀는 풀려 있었고 죽어 있었다. 그녀는 흰 옷을 입고 머리에 흰 베일을 쓰고 그를 향해 오고 있었다. 천천히,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신비로운 염소는 그녀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는 자기가 돌로 변한 것 같이 느껴져 달아나질 못했다. 그녀가 한 걸음 한 걸음씩 걸어나올 때마다, 그는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났다. 그렇게 하여 그는 계단의 컴컴한 궁륭 아래로 다시 들어갔다. 그는 여자도 역시 들어오리란 생각으로 얼어붙어 있었다. 그러나 잠시 걸음을 멈추고 어둠 속을 응시했으나, 거기 누가 있는 것을 본 것 같지는 않아 그냥 지나가 버렸다. 그에겐 그녀가 살아 있을 때보다도 더 키가 커 보였다. 그는 그녀의 흰 옷을 보았으며, 숨소리를 들었다. 2 중세에는 모든 도시가 저마다 피신처를 갖고 있었다. 이 피신처들은 범람하는 형법과 야만적인 사법권의 홍수 속에서 인간을 향해 우뚝 솟아 있던 일종의 섬과도 같았다. 거기에 닿은 죄인은 누구나 구제되었다. 왕의 궁전과 제후의 저택, 그리고 특히 성당은 면죄권이 있었다. 때때로 인구를 불릴 필요가 있는 어떤 도시는 그 도시 전체를 임시로 은신처로 만드는 수도 있었다. 일단 피신처 안에 발을 들여 놓기만 하면 죄인은 불가침이었다. 그러나 거기서 나오지 않도록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한 걸음만 성역 밖으로 나오면, 그는 다시 물결 속에 떨어지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죄수들이 수도원에서, 궁전의 계단에서, 성당의 문 아래에서 백발이 되는 것을 사람들은 볼 수 있었다. 이처럼 피신처도 역시 일종의 감옥이었다. 성당들은 보통 애원자들을 맞아들이기 위해 준비된 조그만 방 하나씩을 갖고 있었다. 노틀담에 있어서는 그것은 수도원 맞은편의 지붕틀 위에 세운 하나의 독방으로서, 그다지 보잘것은 없었다. 종탑과 회랑 위를 미친 듯 달린 뒤 카지모도가 에스메랄다를 내려놓은 곳은 바로 거기였다. 그렇게 달음박질을 치고 있던 동안, 처녀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꿈인 듯 생시인 듯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으나, 다만 자기가 공중으로 올라가고, 공주에서 둥둥 뜨고, 무엇이 자기를 지상에서 휘몰아 가고 있는 듯만 싶었다. 때때로 그녀는 카지모도의 요란스런 목소리를 듣고 방긋이 눈을 뜨곤 했는데, 그럴 때면 저 아래에 붉고 푸른 모자이크처럼 무수한 지붕으로 얼룩진 파리가 어렴풋이 보이고, 자기의 머리 위엔 카지모도의 무시무시하고도 즐거운 듯한 얼굴이 보이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녀의 눈꺼풀은 다시 감겨지고, 이젠 모든 것이 끝났다. 자기가 까무러쳐 있는 동안 이미 사형이 집행된 것이다. 자기의 운명을 주재했던 기괴한 정령이 자기를 다시 잡아가고 있는 것이라고만 믿곤 했다. 그녀는 감히 그 정령을 바라보지도 못하고 그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머리가 헝클어지고 헐레벌떡거리는 종치기가 은밀한 독방에 자기를 내려놓았을 때, 그의 투박한 손이 팔에 상처를 입힌 밧줄을 살살 풀어 주는 것을 느꼈을 때, 그녀는 캄캄한 밤중에 뭍에 닿는 배의 손님들을 깜짝 깨워 일어나게 하는 종류의 동요를 느꼈다. 그녀는 자기가 성당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생각났다. 자기가 죽음의 손에서 구출되었다는 것이, 페뷔스가 살아 있다는 것이, 페뷔스는 이제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녀는 자기 앞에 서 있는 카지모도를 돌아보았는데, 그는 그녀에게 공포감을 주었다. 그녀는 그에게 말했다. "왜 나를 살려 냈나요?" 꼽추는 마치 그녀가 자기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 내려는 듯 걱정스런 눈으로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가씨는 같은 질문을 또 했다. 그러자 꼽추는 몹시 슬픈 눈으로 그녀를 흘끗 보더니, 그만 달아나 버렸다. 잠시 후 그는 꾸러미 하나를 가지고 돌아와 발 아래 던졌다. 그것은 자비로운 부인네들이 성당 문 앞에 놓고 간 옷이었다. 그때야 그녀는 자기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고 거의 발가벗고 있음을 깨닫곤 새빨개졌다. 카지모도는 그 같은 수치심을 느끼는 듯이, 이번엔 느릿느릿 걸어갔다. 그녀는 얼른 옷을 입었다. 그것은 흰 베일이 달린 하얀 드레스로서, 시립 병원의 수련 수녀복이었다. 그녀가 채 갈아입기도 전에 카지모도가 돌아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한쪽 손에는 큰 바구니를, 다른 쪽 손에는 보료를 들고 있었다. 바구니 속에는 병 하나와 빵과 몇 가지의 먹을 것이 들어 있었다. 그는 바구니를 땅바닥에 내려놓더니, "잡수쇼" 하고 말했다. 이 종치기는 자기 자신의 식사와 이부자리를 가져왔던 것이다. 아가씨는 그에게 감사하려고 쳐다보았으나, 한 마디의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이 불쌍한 사내는 정말로 보기 흉했으므로 그녀는 무서워 떨면서 그만 고개를 수그렸다. 그러자 그는 그녀에게 말했다. "제가 무섭죠? 저는 정말 추하지요? 저를 보지 말고 제 말을 듣기만 해요. 낮엔 여기에만 계세요. 밤엔 성당 안을 다 돌아다녀도 좋아요" 그녀는 대답하려고 고개를 들었는데, 그는 이미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그려는 홀로 남아 괴물 같은 그 사내의 괴상한 말소리를 생각하고, 그렇게도 목이 쉰 그러나 그렇게도 부드러운 그 목소리에 놀라고 있었다. 그 후 그녀는 자기의 독방을 살펴보았다. 그것은 넓다고는 할 수 없는 방으로서, 납작한 돌지붕의 느슨한 경사면에 하나의 조그만 채광창과 문이 달려 있었다. 그녀가 자기의 외로운 신세를 여느 때보다 더 가슴 아프게 느끼고 있을 때, 그녀는 부드러운 털과 수염 달린 머리 하나가 자기 손 안으로, 무릎 위로 슬그머니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몸을 떨고 바라보았다. 그것은 그 가엾은 염소 잘리였다. 아가씨는 염소에게 마구 입을 맞추었다. "오! 잘리, 내가 널 잊고 있었구나!" 그와 동시에 그녀는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의 손이, 그토록 오래 전부터 자기 가슴 속에서 눈물을 억누르고 있던 어떤 무거운 것을 들어내 버리기라도 한 듯 마구 울기 시작했으며, 눈물이 흐름에 따라 자신의 고통 속에 있는 가장 쓰라린 것이 스러져 가는 것을 느꼈다. 이튿날 아침, 그녀는 잠에서 깼을 때 자기가 잠을 잤음을 깨달았다. 그녀가 잠자는 버릇을 잃은 지는 퍽 오래였던 것이다. 떠오르는 태양의 신선한 빛살 한 줄기가 채광창으로 들어와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햇빛과 동시에 그녀는 창에 나타난 물체 하나를 보고 놀랐는데, 그것은 불쌍한 카지모도의 낯바닥이었다. 본의 아니게도 눈을 감아 버렸으나 소용없었다. 자신의 떨리는 눈꺼풀을 통해 앞니 빠진 그 난쟁이의 상판이 여전히 보이는 것만 같았다. 그러자 그녀는 하나의 거친 목소리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무서워하지 마세요. 전 아가씨의 친구니까요. 전 아가씨가 주무시는 걸 보러 와 있었댔어요. 아가씨가 눈을 감고 계실 때 제가 여기 있은들 어떻겠어요? 이젠 가겠어요. 봐요, 전 벽 뒤로 들어갔어요. 이젠 눈을 또도 좋아요" 이런 말보다도 더 애처로운 것은 그 어조였다. 집시 아가씨는 감동하여 눈을 떴다. 아닌게 아니라 그는 이제 채광창에 있지 않았다. 그녀가 채광창으로 가 보니, 가련한 꼽추는 벽 모퉁이에 고통스럽고 체념한 듯한 태도로 웅크리고 있었다. "이리 와요" 하고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아가씨의 입술 움직임을 보고 카지모도는 그녀가 자기를 쫓아 내는 줄로만 알았다. 그는 일어나서 절뚝거리면서 천천히 고개를 수그리곤 절망으로 가득 찬 눈을 그녀를 향해 감히 쳐들지도 못하고 물러갔다. "오라니깐" 그녀는 다시 외쳤으나 그는 계속 떠나갔다. 그녀는 방에서 뛰어나가 그의 팔을 잡았다. 그녀의 손이 자기 몸에 닿은 것을 느낀 카지모도는 사지를 떨었다. 이어 그녀가 자기를 곁으로 데려가는 것을 본 그의 얼굴은 기쁨과 애정으로 온통 반짝였다. 그녀는 그를 독방 안으로 들어오게 했으나, 그는 끝내 문턱 위에 서 있었다. "안 돼요, 안 돼요! 부엉이는 종달새의 보금자리엔 들어가지 않는 법이에요" 그래서 아가씨는 잠든 염소를 발 옆에 두고 자기 잠자리 위에 아리땁게 쭈그리고 앉았다. 두 사람은 한동안 꼼짝 않고 말없이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그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것을, 그녀는 추하기 그지없는 것을 보고 있었던 셈이다. 시시각각으로 그녀는 카지모도에게서 보기 흉한 것을 자꾸 더 발견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길은 다리가 X자로 휜 무릎에서 곱사등으로, 곱사등에서 애꾸눈으로 옮아 가고 있었다. 그녀는 세상에 이렇게도 서투르게 그려지다 만 인간이 존재하리라곤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 위엔 슬픔과 부드러움이 담뿍 퍼져 있었으므로 점차 그것에 예사로워지기 시작했다. 그가 먼저 침묵을 깨뜨렸다. "그래, 아까 저더러 돌아오라고 하셨댔어요?" 그녀는 머리를 끄덕이면서 "그래" 하고 대답했다. 그는 머릿짓의 뜻을 알아챘다. "아!" 하고 그는 망설이듯이 말했다. "사실은... 저는 귀머거리거든요" "가련한 사람!" 집시 아가씨는 연민의 표정을 지으면서 외쳤다. 그는 고통스러운 듯 미소 짓더니 말했다. "제가 설상가상으로 그런 병신이기까지 하냐고 생각하시겠죠? 그래요, 전 귀머거리예요. 끔찍하지요? 아가씨는 참으로 아름다운데, 저는 지금처럼 제 추함을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전 제 자신을 아가씨에게 견주어 볼 때 무척 부끄러워요. 전 틀림없이 아가씨에게 짐승 같아 보일 거예요, 그렇죠? 그런데 아가씨는 한 줄기의 햇살이에요, 한 방울의 이슬이에요, 새의 노래 소리예요" 그런 다음 그는 웃기 시작했는데 그 웃음은 이 세상에서 가장 비통한 것이었다. 그는 계속했다. "그래요, 전 귀머거리예요. 그러나 아가씨는 제게 몸짓으로, 신호로 얘기하면 돼요. 전 아가씨의 입술과 눈을 보고 이내 뜻을 알게 될 거예요" "그런데..." 아가씨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말해 봐요, 왜 당신은 나를 살려 냈는지?" 그는 그녀가 말하는 동안 아주 유심히 바라보았다. "알았어요" 이윽고 그는 대답했다. "아가씬 왜 제가 아가씰 살려 냈냐고 묻고 계신 거죠? 아가씬 잊어버리셨어요. 어느 날 밤 자기를 겁탈하려 했던 악당을. 그리고 아가씬 바로 그 이튿날 그 수치스런 죄인 공시대 위에서 그 악당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쳐 주셨어요. 한 방울의 물과 약간의 동정... 그것은 제 목숨을 가지고도 다 갚을 수 없을 거예요. 아가씨는 몹시 감동해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한 방울의 눈물이 종치기의 눈 속에 돌고 있었으나 떨어지진 않았다. 그는 눈물을 집어삼키는 데 일종의 명예를 걸고 있는 것 같았다. "들어 보세요" 하고 그는 눈물이 떨어질 염려가 없어지자 말을 이었다. "저기 퍽 높은 종탑이 있지요? 만일 거기서 떨어지는 사람은 길바닥에 닿기도 전에 죽어 버릴 거예요. 제가 거기서 떨어져 주었으면 싶으실 때엔, 한 마디의 말도 필요 없이 눈짓 한 번으로 충분해요" 그는 주머니에서 금속으로 된 조그만 호각 하나를 꺼냈다. "제가 필요하실 때엔, 저를 보는 것이 그다지 무섭지 않으실 땐 이걸 부세요. 그 소린 제게도 들리니까요" 그는 호각을 땅바닥에 내려놓곤 달아나 버렸다. 3 날이 감에 따라 에스메랄다의 마음속엔 차츰 안정이 찾아오고 있었다. 극도의 고통은 극도의 기쁨과 같이 조금밖에 계속되지 않는 격렬한 것이다. 사람의 심정이란 극단 속에 오래 머무를 수 없다. 안정과 더불어 그녀에겐 희망도 되살아나고 있었다. 그녀는 사회 밖으로 쫓겨 나와 있었으나, 거기로 되돌아가기란 불가능하지 않으리란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자기 무덤의 열쇠를 따로 가지고 있는 죽은 사람과도 같았다. 그리고 또 페뷔스가 살아 있었다. 그녀는 그걸 확신하고 있었다. 두 눈으로 그를 보았었으니까. 페뷔스의 삶, 그것이 전부였다. 그녀 속에서 모든 것을 허물어뜨려 버린 일련의 숙명적인 충격이 지나간 뒤, 그녀는 자기 마음속에 단 한 가지밖엔, 즉 중대장에 대한 사랑밖엔 살아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없었다. 사랑이란 나무 같은 것이기 때문에 저절로 자라나고, 우리의 온 생명 속에 깊이 뿌리 내리고, 폐허가 된 가슴 위에서도 무성하다. 물론 에스메랄다는 고통 없이 중대장을 생각할 순 없었다. 그녀는 여러 가지 해괴한 일에 관해 공개 사죄를 하던 날 공교롭게도 페뷔스가 나타났던 일이며, 그와 함께 있던 그 아가씨에 관해 눈을 감으려고 했다. 그것은 아마 그의 누이동생이리라. 이것은 조리에 닿지 않는 설명이었지만 그녀는 그런 설명으로 만족했다. 왜냐하면 그녀로서는 페뷔스가 여전히 자기를 사랑하고 있고 자기밖엔 사랑하지 않는다고 믿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한 마디 덧붙여 두거니와 성당은 사방에서 그녀를 둘러싸 지키고 있었으며, 그 가련한 처녀의 목숨을 구하고 있는 광막한 성당은 그 자체가 최고의 진정제였다. 이 건축물의 엄숙한 윤곽, 둘러싸고 있는 모든 물체들의 경건한 태도-말하자면 그 돌의 모든 털구멍으로부터 스며 나오는 종교적인 고요한 상념들이 그녀에게 부지불식간에 작용하고 있었다. 특히 종소리들이 그녀를 흔들어 재워 주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그 거대한 기구들이 그녀 위에 강력한 최면술을 퍼뜨려 주는 것과 같았다. 그러므로 아침마다 떠오르는 해는 그녀가 더욱 진정돼 있고, 더욱 숨결이 고르고, 더욱 창백한 것을 발견하곤 했다. 마음속의 상처가 아물어 감에 따라 그녀의 아리따움은 다시 그 얼굴 위에 피어 오르고 있었으나, 그것은 한결 고요하고 차분한 아리따움이었다. 그녀의 옛날 성격도 또한 되돌아오고 있었다. 그 쾌활한 어떤 면까지도, 입술을 비쭉거리는 예쁜 모습도, 노래 부르는 취미도, 염소에 대한 사랑도, 수줍어하는 태도도, 이웃 다락방에 사는 사람이 행여 채광창으로 들여다보지나 않을까 두려워서, 그녀는 아침에 자기 방 구석에서 옷을 입을 때도 조심하는 것이었다. 페뷔스에 대한 생각이 약간 틈을 줄 적엔, 집시 아가씨는 때때로 카지모도를 생각하는 수가 있었다. 그것은 인간들과 살아 있는 사람들과 그 여자와의 사이에 남아 있는 유일한 유대였다. 그녀는 카지모도보다 더 세상 밖으로 나와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우연히 얻게 된 그 이상한 벗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종종 그녀는 눈을 감아 버리는 것을 스스로 뉘우치곤 했으나, 아무래도 그 가엾은 종치기에게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가 자기에게 준 호각을 그냥 땅바닥에 내버려 두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지모도는 처음 며칠 동안은 때때로 나타나곤 했다. 그가 먹을 것을 담은 바구니나 물병을 가지고 올 때며, 그녀는 너무나 불쾌해 외면하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썼지만, 그는 그런 몸짓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가를 깨닫고 쓸쓸히 돌아가곤 하는 것이었다. 한 번은 그녀가 잘리를 쓰다듬고 있을 때, 그가 불쑥 찾아와 한동안 앞에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윽고 그는 그 못생긴 둔중한 머리통을 흔들면서 말했다. "제 불행은, 제가 아직도 인간을 너무 닮았다는 거예요. 전 차라리 짐승이라면 좋겠어요" 아가씨는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어깨를 늘어뜨리곤 가 버렸다. 또 한 번은, 에스메랄다가 스페인의 옛 민요 하나를 부르고 있을 때 그가 문 앞에 나타났는데, 그 흉한 낯을 본 처녀는 본의 아니게 움찔 놀라 노래를 그쳐 버렸다. 순간 불쌍한 종치기는 문턱 위에 무릎을 끓고 앉아 애원하는 듯 손을 마주 잡았다. "오! 제발 애걸합니다... 계속해 주세요" 그녀는 그에게 고통을 주고 싶지 않아 부들부들 떨면서 그 로맨스를 다시 부르기 시작했다. 그는 마치 기도라도 드리듯 무릎을 끓고 두 손을 마주 잡은 채 숨도 제대로 쉬지 않고 아가씨의 타는 듯한 눈동자를 응시했다. 그녀의 눈 속에서 노래를 듣고 있는 것만 같았다. 또 엔젠가 한 번은, 그가 주저주저하는 태도로 그녀에게 왔다. "제 말을 들어 주세요" 그는 힘들여 말했다. "아가씨에게 할말이 있어요" 그녀는 그에게 듣겠다는 신호를 했다. 그러자 그는 한숨을 짓기 시작하고, 입술을 반쯤 열고, 한때 말을 하려고 하는 것 같더니, 조금 있다가 그녀를 바라보고는 아니라는 듯 머리를 살래살래 흔들면서 손으로 이마를 움켜 싸곤 천천히 물러가 버려, 에스메랄다는 어리둥절했었다. 그런 어느 날 아침, 에스메랄다는 지붕의 가장자리까지 걸어나가, 생 장르롱의 뾰족한 지붕 너머로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카지모도도 거기, 그 여자의 뒤에 있었다. 갑자기 집시 아가씨는 떨었다. 눈물과 기쁨의 빛이 한꺼번에 그녀의 눈 속에서 반짝였다. 그녀는 무릎을 끓더니 고통스레 광장 쪽으로 두 팔을 뻗치면서 외쳤다. "페뷔스! 이리 오세요! 한 마디만, 꼭 한 마디만... 제발 페뷔스!" 카지모도가 광장 위를 굽어보니, 그 미칠 듯한 애원의 대상은 한 청년이었는데, 전신이 반짝거리는 미모의 기사로서, 그는 말을 타고 의젓하게 광장 안쪽을 지나가며, 발코니에서 생글생글 웃고 있는 한 미녀에게 군모의 깃털 장식으로 인사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장교는 자기를 부르는 집시 소녀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었다. 너무나 멀었던 것이다. 그러나 가엾은 귀머거리는 그 소릴 듣고 있었다. 긴 한숨이 그의 가슴에서 새어 나왔다. 그는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의 가슴은 그가 집어삼키고 있는 눈물로 부풀어 올라 있었다. 아가씨는 꼽추에겐 아무런 주의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무릎을 끓은 채 비상한 흥분 속에 외쳤다. "오! 그이가 말에서 내리신다! ...저 집안으로 들어가시려고 한다! ...페뷔스! ...내 소리가 안 들리는 거예요! ...페뷔스, 페뷔스!" 귀머거리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그 무언극의 뜻을 이해했다. 가련한 종치기의 눈은 눈물로 가득 차 있었으나, 한 방울도 떨어뜨리진 않았다. 그는 갑자기 그녀의 소맷자락을 가만히 끌어당겼다. 아가씨는 돌아보았다. 그는 침착한 표정을 되찾아서 말했다. "제가 가서 저분을 데리고 올까요?" 에스메랄다는 기쁨의 탄성을 질렀다. "아, 그래! 어서 가! 자, 어서! 빨리빨리! 저이를! 저이를 내게 데려다 줘! 그럼 난 당신을 사랑할 거야!" 그는 고통스러운 듯 머리를 끄덕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가서 저분을 데려다 드릴게요" 그는 약한 목소리로 말한 뒤 고개를 돌리고, 계단 아래로 성큼성큼 뛰어갔다. 흐느낌에 숨이 막혀 가지고. 그가 광장에 도달해 보니, 공들로리에 댁의 문에 비끄러매 놓은 그 아름다운 말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중대장은 방금 문 안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그는 성당 지붕 쪽을 쳐다보았다. 에스메랄다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같은 자세를 하고 있었다. 그는 쓸쓸히 그녀에게 머리를 끄덕거려 보였다. 그런 뒤 중대장이 나오는 것을 기다리기로 마음먹고, 공들로리에 집 앞의 돌 하나에 곱사등을 기댔다. 공들로리에 댁에서는, 결혼식 전에 베푸는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카지모도는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는 것을 보았으나, 나오는 것은 아무도 보지 못했다. 마부가 나와 말을 풀어서 주택의 마굿간으로 들여보냈다. 이날 하루가 꼬박 그렇게 지나가고 마침내 밤이 왔다. 카지모도는 어둠 속에 싸여서, 그들이 모두 횃불로 밝혀진 현관문 아래로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 중에 중대장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슬픈 생각으로 가득 차 때때로 공중을 쳐다보곤 했다. 검고, 무겁고, 큼직큼직한 구름들이 별이 총총한 밤의 궁륭 아래 마치 해먹처럼 매달려 있었다. 그러던 중 그는 별안간 발코니의 유리문이 살그머니 열리는 것을 보았다. 그 유리문에서 두 사람이 나오더니 문은 소리 없이 닫혔다. 그것은 한 사나이와 한 여자였다. 사나이는 그 미남 중대장이고, 여자는 아까 아침에 장교에게 환영의 뜻을 표하던 그 아가씨라는 것을 카지모도가 알아보기에 이르렀을 때, 그는 마음이 아팠다. 젊은이와 아가씨는, 우리의 귀머거리가 판단할 수 있는 한, 매우 정다운 밀담을 나누고 있는 것 같았다. 아가씨는 장교에게 그의 팔로 자신의 허리를 감는 것을 허용한 것 같았으며, 키스를 살살 피하고 있었다. 카지모도는 아래에서 그 장면을 보고 있었는데,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꾸며진 것이 아닌 만큼 더욱 사랑스러운 것이었다. 그는 그 행복을 고통스런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요컨대 본능은 이 불쌍한 사내에게 있어서도 벙어리는 아니었으며, 그의 등뼈는 굉장히 심술궂게 비틀어지긴 했지만 다른 사람의 등뼈에 못잖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여자와 사랑과 향락은 영원히 자기 눈 아래로 지나가 버리고, 자기는 언제까지나 남들의 행복을 보고만 있어야 할 신세라는 것을 생각했다. 그러나 더욱 가슴 아픈 것은, 만일 이것을 그 예쁜 아가씨가 본다면 얼마나 괴로워할까 하는 생각이었다. 다행히(왜냐하면 처녀의 저항은 이제 힘을 잃어 가기 시작했으니까) 발코니의 문이 느닷없이 열리고 늙은 부인 하나가 나타나, 미녀는 당황한 듯하고 장교는 분해하는 것 같았으며, 셋이 다 도로 들어가 버렸다. 잠시 후, 말 한 마디가 대문 아래서 땅을 차고, 망토로 몸을 싼 찬란한 장교가 카지모도 앞을 지나갔다. 종치기는 그가 거리 모퉁이를 돌아가게 둔 다음, 원숭이처럼 날쌔게 뒤쫓아 가며 외쳤다. "여보시오! 중대장님!" 중대장은 걸음을 멈추었다. "뭘까?" 그는 흔들거리면서 자기 쪽으로 뛰어오는, 허리뼈를 삔 것 같이 생긴 그 형상을 보고 말했다. 그 사이 카지모도는 따라붙어 그의 말 고삐를 대담하게 붙잡았다. "저를 따라오세요, 중대장님. 저기에 나리께 얘기하고 싶어하는 분이 있어요" "이런 젠장맞을! 이 더벅머리 추남은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내 말 고삐를 놓지 못하겠니?" "중대장님, 그게 누구냐고 물어 보지도 않으세요?" "내 말이나 놓으란 말이야. 이 불한당이 내 군마의 이마에 매달려서 어쩌자는 거야?" 카지모도는 말 고삐를 놓기는 커녕, 그에게 길을 돌아서게 하려고 들었다. 중대장이 거역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던 그는 황급히 이렇게 말했다. "오세요, 중대장님. 여자 한 분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중대장님을 사랑하는 여자예요" "별놈의 자식 다 보겠네! 날 사랑하거나 사랑한다는 계집애라면 다 가 봐야 된다는 거냐! 만일 그 계집애가 네 상판을 닮았다면, 이 부엉이 같은 놈아? 널 보낸 계집애에게 가서 일러라. 난 곧 결혼한다고" "여보세요, 중대장님이 잘 아시는 그 춤추는 아가씨예요!" 그 한마디는 과연 페뷔스에게 커다란 감명을 주었으나, 귀머거리가 기다리고 있던 그런 감명은 아니었다. 카지모도가 에스메랄다를 구출하기 조금 전에 멋쟁이 장교가 리스와 함께 물러갔었다는 것은 독자도 기억하고 있으리라. 그런 뒤로 공들로리에의 저택을 방문했을 때마다, 그는 그녀의 얘기를 다시는 하지 않도록 무척 조심했고, 한편으로 리스도 집시 아가씨가 살아 있다는 말을 그에게 한다는 것은 그닥 좋지 않다고 판단했었다. 그러므로 페뷔스는 그 '스말라르'가 죽은 줄로만 알고 있었으며, 그것도 벌써 한두 달 전의 일이라고 믿고 있었다. 또 한 가지 덧붙여 두고 싶은 것은, 얼마 전부터 중대장은 칠흑 같은 밤의 어둠을, 그 이상한 심부름꾼의 비상한 추악함을, 그 음울한 목소리를 생각하고 있었으며, 때는 자정을 지났고, 거리는 도사 귀신이 와서 말을 걸었던 그날 밤처럼 적적했다는 사실이다. "춤추는 아가씨라고!" 그는 질겁하다시피 외쳤다. "그렇다면 넌 저승에서 왔느냐?" 그러면서 단검에 손을 올려놓았다. "빨리 빨리" 귀머거리는 달려들어 말을 끌어가려 했다. "자, 이리로!" 장교는 그의 가슴팍에 장화를 한 대 호되게 먹였다. 카지모도의 눈이 반짝였다. 그는 상대에게 덤벼들려고 움찔하였으나 곧 몸을 움츠리면서 말했다. "오! 당신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오,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으니!" "미친 놈!" 페뷔스는 욕을 하면서 황급히 떠나갔다. 카지모도는 그가 거리의 안개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바라보다가 노틀담으로 돌아가, 등에 불을 켜고 종탑으로 올라갔다. 아가씨는 여전히 똑같은 자리에 있었다. 멀리서 그가 보이자마자 그녀는 재빨리 달려왔다. "혼자군!" 그녀는 고통스러운 듯 그 아름다운 두 손을 맞잡으면서 외쳤다. "그분을 다신 볼 수가 없었소" 카지모도는 쌀쌀하게 말했다. "밤새도록이라도 기다려야 했을 텐데!" 아가씨는 흥분해서 말했다. "다음번엔 더 잘 지켜보겠어요" "꺼져!" 아가씨가 소리쳤다. 그는 그녀 곁에서 떠났다. 그는 그녀에게 고통을 주느니보다 차라리 그녀로부터 구박받는 게 더 좋았던 것이다. 모든 괴로움을 자기 혼자 짊어진 것이었다. 이날부터 집시 아가씨는 다시는 그를 볼 수 없었다. 그녀는 가련한 꼽추의 이 고의적인 부재를 그닥 괴로워하지 않았다. 내심으론 오히려 고맙게 여기고 있었다. 게다가 카지모도도 그 점에 대해서는 착각을 하고 있진 않았다. 그녀는 다시는 그를 볼 수 없었지만, 자기 주위에 한 착한 사람의 현존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의 생활 필수품은 자고 있는 사이에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보급되었다. 어느 날 아침, 그녀는 자기 창 위에서 새장 하나를 발견했다. 또 그녀의 방위엔 그녀가 무서워하는 조각물 하나가 있었는데, 어느 날 아침 그것이 보이지 않았다. 누가 그것을 치워 버린 것이다. 그 조각물까지 기어올라간 사람은 목숨을 걸지 않으면 안 되었으리라. 때때로 저녁에 그녀는, 종탑 아래 숨은 목소리가 마치 자기를 재우려고 하듯 이상하게 슬픈 노래 하나를 부르는 것을 들었다. 얼굴을 보지 마시고 마음을 보세요. 전나무는 아름답진 않지만, 겨울에도 그 잎을 간직한다오. 아! 말은 하여서 무슨 소용... 아름답지 않은 것은 사는 것이 잘못인 것을. 어느 날 아침, 그녀는 잠에서 깼을 때, 자기 방의 창 위에서 꽃이 가득 찬 두 개의 꽃병을 보았다. 하나는 매우 아름답고 반짝이는 수정 꽃병이었으나, 금이 가 있었다. 거기 가득 채워 놓았던 물은 새어 나가 버려 꽃들은 이미 시들어 있었다. 또 하나는 질그릇 단지로서, 허름하고 평범한 것이었으나 물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서, 꽃들은 여전히 싱싱했다. 누가 그렇게 한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에스메랄다는 그 시든 꽃다발을 집어 하루 종일 가슴 위에 안고 있었다. 그 날, 그녀는 종탑의 목소리가 노래하는 것을 듣지 못했다. 4 그 동안 부주교는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로 집시 아가씨가 어떻게 기적적으로 구출되었는가를 알게 되었다. 그가 그것을 알았을 때, 과연 어떤 감상을 느꼈는지 자기 자신도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는 에스메랄다의 죽음에 만족했었다. 그리하여 그는 평온했으며, 가능한 고통의 맨 밑바닥에 닿았던 것이다. 인간의 심정이란 어떤 정도의 절망밖엔 포함할 수가 없다. 해면이 물을 듬뿍 빨아들였을 땐 그 위로 바다가 지나가도 한 방울도 흡입할 수 없듯이. 그런데 에스메랄다가 죽었을 때, 해면은 물을 듬뿍 빨아들이고 있었고, 클로드로서는 이 지상에서 모든 것이 끝장나 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그 아가씨가, 그리고 페뷔스로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낀다는 건 고통이 다시 시작되는 셈이었다. 그래서 그는 모든 것에 지쳐 있었다. 그 소식을 알았을 때, 그는 수도원의 자기 독방 안에 들어박혀 버렸다. 그는 참사회에도, 제의식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심지어 주교에게마저도 문을 잠그곤 열어 주지 않았다. 몇 주일간을 그는 그렇게 갇혀 있었다. 사람들은 그가 병인 난 줄 알았다. 그렇게 들어박혀 그는 무얼 하고 있었을까? 이 불행한 사나이는 어떤 생각들 아래 몸부림치고 있었을까? 그는 자신의 무서운 정열과 마지막 싸움을 하고 있었을까? 그 여자에겐 죽음을, 자기에겐 영벌을 줄 마지막 계획을 꾸미고 있었을까? 한 번은 그의 사랑하는 동생 장이 그 문 밖에 와서 두드리고, 고함을 지르며 여남은 번이나 애걸복걸했으나 클로드는 열지 않았다. 그는 자기 방의 유리창에 얼굴을 꼭 붙이고 꼬박 며칠을 보냈다. 수도원 안에 있는 이 창에서 그는 에스메랄다를 보고 있었다. 또 그 여자 자신과 더불어 그 염소도 보았으며, 때론 카지모도도 보았다. 그는 이 보기 흉한 귀머거리의 세심한 보살핌이며, 고분고분한 태도를 보았다. 그는 그 춤추는 아가씨를 바라보던 종치기의 이상한 눈이 자꾸만 떠오르곤 했는데, 그는 카지모도가 어떤 동기에서 이 여자를 구출하게 되었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그는 아가씨와 귀머거리 사이에 있던 갖가지 자질구레한 장면을 목격했는데, 귀머거리의 구 무언극을 멀리서 보았을 때, 그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질투심이 자기 마음속에서 고개를 쳐드는 것을 느끼고, 수치와 분노로 얼굴이 새빨개졌다. -'중대장하고라면 또 좋다고 치자. 하지만 저런 놈하고!' 그는 날마다 무서운 밤을 보내고 있었다. 아가씨가 살아 있다는 것을 그가 알게 된 뒤로, 어느 날 하루 종일 그를 괴롭혔던 싸늘한 유령과 무덤의 생각들은 사라져 버리고, 육욕이 되돌아와 그를 자극하고 있었다. 그는 그녀가 바라 자기 옆에 있음을 느끼고 잠자리에서 몸을 비틀었다. 그의 광적인 상상력은 밤마다 에스메랄다의 온갖 자태를 눈앞에 그려 보여, 마냥 피를 끓어오르게 하는 것이었다. 단도에 찔린 중대장의 몸 위에, 그녀가 눈을 감고, 그 아름다운 젖가슴이 페뷔스의 피로 흠뻑 젖어서는 누워 있던 모습이 눈앞에 퍼부었을 때, 불쌍한 그녀는 반쯤 죽어 있으면서도 그 키스의 뜨거움을 느꼈었다. 그는 또 마지막 날 보았던 그녀의 모습-어깨도, 발도, 온몸이 거의 발가숭이가 되어 목에 밧줄을 매고 셔츠만 걸치고 잇던 아가씨의 모습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런 밤 중에서도 특히 어느 날 밤은, 그런 영상들이 혈관 속에 그의 동정과 신부의 피를 너무나도 무자비하게 끓어오르게 한 나머지, 그는 베개를 물어뜯고, 침대 밖으로 뛰어 내려 셔츠를 걸치고, 램프 불을 손에 들고 독방에서 나왔다. 절반 벌거벗은 몸으로, 얼굴은 얼어 빠진 듯하고, 눈은 이글이글 타오르면서... 그는 포르트 루즈 문의 열쇠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었으며, 종탑 계단의 열쇠는 늘 몸에 지니고 있었다. 이날 밤, 에스메랄다는 망각과 희망과 달콤한 생각에 가득 차 자기 방에서 잠들어 있었다. 그녀는 얼마 전부터 여느 때와 같이 페뷔스의 꿈을 꾸면서 자고 있었는데, 그럴 때 자기 주위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그녀는 불안한 선잠을, 새와 같은 잠을 자고 있었다. 그녀는 눈을 떴다. 밤은 매우 캄캄했다. 문득 그녀는 채광창에서 한 얼굴이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거기에는 램프 불이 있어서 그 인상을 비추었다. 순간 그 얼굴은 얼른 불을 불어서 껐다. 그래도 그녀는 그 얼굴을 볼 겨를이 있었다. 그녀는 질겁을 하고 눈을 꼭 감았다. 지난날의 모든 불행이 번개처럼 머리에 떠올라 그녀는 그만 침대 위에 쓰러졌다. 잠시 후 그녀는 자기 몸에 무엇이 닿는 것을 느끼고 소스라치게 놀라, 미친듯 벌떡 일어났다. 신부가 슬그머니 곁에 들어와 있었다. 그는 두 팔로 그녀를 안고 있었다. 그녀는 고함을 지르고 싶었으나, 입이 잘 열리지 않았다. "나가라, 이 악마! 나가라, 이 살인자!" 그녀는 겨우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용서해 줘! 용서해 줘!" 신부는 그녀의 어깨 위에 입술을 누르면서 중얼거렸다. 그녀는 그의 대머리에 남아 있는 머리카락을 잡고, 야수를 피하듯 그 입맞춤을 물리치려고 애썼다. "제발 용서해 줘! 너에 대한 내 사랑이 어떻다는 걸 알아 줬으면! 그것은 내 가슴 속에서 불과 같고, 녹은 납과도 같아!" 그러면서 그는 무시무시한 힘으로 아가씨의 두 팔을 붙잡았다. 그녀는 미친 듯 날뛰며, "놓아라! 그렇잖으면 네 얼굴에 침을 뱉겠다" 하고 악을 썼다. "나를 모욕해도 좋고, 쳐도 좋고, 하고 싶은 대로 해라! 그러나 제발 날 사랑해 다오!" 그러자 그녀는 성난 어린애처럼 그 아름다운 손에 단단히 힘을 주고 그의 얼굴을 후려치는 것이었다. "나가라, 악마야!" "날 사랑해 줘! 날 사랑해 줘!" 가련한 신부는 외치면서, 여인의 몸 위에 자기 몸을 감고, 그녀가 칠 때마다 애무를 퍼부었다. 갑자기 그녀는 자기가 그의 힘에 미치지 못함을 느꼈다. "끝장을 내야겠다!" 하고 그는 이를 갈면서 말했다. 그녀는 정복당하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기진맥진하고, 그의 품안에 들어가 있었다. 그녀는 음란한 손이 자기 몸 위를 헤매는 것을 느끼고 마지막 안간힘을 다해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사람 살려요! 흡혈귀야!" 아무도 오지 않았다. 잘리만이 잠이 깨어 고통스레 울어 댔다. "조용해 해!" 신부가 헐떡거리면서 말했다. 갑자기, 몸부림치며 땅바닥을 기고 있을 때, 집시 아가씨의 손엔 싸늘한 쇠붙이 같은 것이 닿았다. 카지모도의 호각이었다. 그녀는 희망에 떨면서 그것을 집어 입술로 가져가, 남아 있는 힘을 다해 불었다. 호각은 맑고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그게 뭐지?" 신부가 물었다. 잠깐 사이, 그는 자기가 하나의 억센 손에 들어올려지는 것을 느꼈다. 독방은 어두워서 누가 그러는지 그는 똑똑히 알아볼 수 없었으나, 분노로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렸으며, 자기 머리 위에 식칼의 넓은 날이 반짝이는 것은 충분히 보였다. 신부는 차츰 그것이 카지모도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칼을 쥐고 있는 팔에 달려들면서 외쳤다. "카지모도!" 그는 이 비통한 순간에, 카지모도가 귀머거리란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눈 깜짝할 새 신부는 땅바닥에 쓰러뜨려지고, 묵직한 무릎 하나가 자기 가슴을 누르는 것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어찌하면 그에게 자기를 알아보게 할 수 있단 말인가? 파멸이었다. 식칼은 머리에 다가오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꼽추는 웬지 주저하는 것 같았다. "아가씨에게 피를 뿌려선 안 돼!" 하고 그는 희미한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신부는 그 투박한 손이 자기 발을 잡고 독방 밖으로 끌어가는 것을 느꼈다. 거기서야말로 그는 죽게 될 것이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조금 전부터 달이 떠올라 있었다. 방문을 넘어서자, 희멀건 달빛이 신부의 얼굴 위에 떨어졌다. 카지모도는 그를 바라보고는 떨기 시작하더니 신부를 놓고 물러섰다. 문턱 옆에 있던 집시 아가씨는, 갑자기 두 사람의 역할이 바뀌는 것을 보고 놀랐다. 이제 윽박지르고 있는 것은 신부였고, 애원하는 것은 카지모도였다. 노염의 몸짓을 퍼붓고 있는 신부는 그에게 물러가란 신호를 세차게 했다. 귀머거리는 머리를 수그리고, 그런 뒤 집시 아가씨의 문 앞에 가서 무릎을 끓었다. "나으리" 하고 그는 엄숙하고 체념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중에 뭐든지 마음대로 하세요. 그러니 먼저 저를 죽여 주세요" 그는 신부에게 식칼을 내밀었다. 제정신이 아닌 신부는 그것에 달려들었으나, 집시 아가씨는 그보다 재빨랐다. 그녀는 칼을 잡아들고 미친 듯 소리쳤다. "흥, 감히 다가오지 못하겠지, 비겁한 자 같으니!" 그런 뒤 무자비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말이 신부의 가슴을 벌겋게 단 쇠젓가락처럼 후비리란 사실을 감지하면서 덧붙였다. "아! 난 페뷔스 님이 죽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어!" 신부는 꼽추의 등을 한 번 걷어차 바닥에 쓰러뜨리고 분노로 치를 떨면서 아래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의 야릇한 뇌까림이 밤 공기를 흔들었다. "아무도 그녀를 갖지 못하리라!" 제8장 기적궁 사람들 1 피에르 그랭구아르는 그 모든 사건이 어떻게 돌아가며, 그 연극의 주인공들이 결국은 어떤 불쾌한 일을 당하고 말리란 것을 알게 된 뒤부터 그 일에 끼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는 거지떼들을 궁극적으로 파리에서 최선의 무리라 생각하고 그들 속에 머물러 있었는데, 그래도 거지떼들은 아가씨에게 계속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는 항아리를 깨뜨리고 혼인한 자기 아내가 노틀담에 피신했다는 사실을 들었으며, 그것을 퍽 기뻐 했다. 그러나 거기 가서 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는 때때로 그 염소 새끼를 생각하곤 했지만 낮엔 살기 위해 곡예를 하고, 밤엔 파리의 주교를 공격하는 논문을 저술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주교의 방앗간 물레바퀴에 언젠가 흠뻑 젖었던 일을 잊지 않고 원망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그는 생 제르맹 거리의 '포르 레베크'라고 불리는 저택 모퉁이에서 걸음을 멈추고 그 외부의 조각물들을 경건히 관찰하고 있었다. 그는 이때, 예술가가 세계 속에서 예술밖에 보지 않고, 세계를 예술 속에서 보는 그런 순간에 잠겨 있었던 것이다. 그런 판에 그는 갑자기 하나의 손이 자기 어깨 위에 묵직히 놓이는 것을 느꼈다. 그는 홱 돌아보았다. 그것은 그의 옛 스승인 부주교님이었다. 그는 부주교를 본 지 오래되었기에 무척 어리둥절하고 있었다. 부주교는 한참 침묵을 지키고 있었는데, 그 동안 그랭구아르는 유유히 그를 살펴보았다. 그는 스승이 많이 변한 것을, 겨울 아침처럼 희멀겋고, 눈은 쑥 들어가고, 머리는 거의 백발이 다 된 것을 발견했다. 이윽고 신부가 먼저 침묵을 깨뜨려 침착하면서도 냉정한 어조로 말했다. "어떤가, 피에르 군?" "제 건강 말씀인가요?" 그랭구아르가 대답했다. "글쎄올시다! 그야 이렇게도 말할 수 있고, 저렇게도 말할 수 있죠. 그러나 총체적으론 좋은 편입니다. 저는 아무것도 지나치게 탐하는 일이 없거든요. 선생님도 아시겠죠? 건강의 비결은 히포크라테스에 의하면,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잠도 비너스도 절제가 있어야 한다 이거죠" "그래, 자넨 아무런 걱정도 없단 말이지, 피에르 군!" "암, 없고말고요" "그런데 지금은 무얼 하고 있나?" "선생님께서 보시는 대로 저는 돌들의 돋을새김이 어떻게 돼 있는지를 관찰하고 있지요" 부주교는 씽긋 웃었다. 입의 한쪽 끝이 올라가는 씁쓸한 미소였다. "그래, 그건 재미가 있는가?" "그렇고 말고요! 저는 처음엔 여자를, 다음엔 짐승을 사랑했지요. 그런데 지금은 돌을 사랑하고 있답니다" "그래, 자넨 아무런 욕망도 없나?" "네" "그리고 아무 미련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요. 저는 생활을 정리했답니다" "그런데 생활비는 어떻게 벌고 있나?" "저는 아직도 여기저기서 서사시와 비극을 짓고 있지만, 그래도 제게 가장 많은 수입을 주는 건, 잘 알고 계시는 바와 같이 이빨 위에 의자의 피라미드를 쌓아 올리는 재주입죠" "자넨 그래도 꽤 가난하지?" "가난하긴 하지만, 불행하진 않습니다" 이때 말들이 달리는 소리가 들려와 두 대화자들이 본즉, 거리 저쪽 끝에서 친위 헌병대의 한 중대가 창을 높이 쳐들고, 장교를 선두에 세우고선 줄지어 지나가는 것이었다. 가마 행렬은 현란하고, 길바닥을 요란스럽게 울리고 있었다. "선생님은 저 장교를 유심히 바라보시는군요!" "그를 알아볼 것 같아서 그러네" "이름이 뭔데요?" "페뷔스라고 하지" "페뷔스? 이상한 이름인걸!" "이리 좀 오게나... 자네에게 할 얘기가 있다네" 그 기마대가 지나간 뒤로 약간의 흥분이 부주교의 냉정한 외관 아래 나타나고 있었다. 그는 걷기 시작했다. 지배력이 넘쳐흐르는 이 사나이에게 한번 접근한 자라면 누구나 그렇듯 그에게 복종하는 것이 습성이 되어 있던 그랭구아르는 그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꽤 한산한 베르나르댕 거리에까지 말없이 온 부주교는 거기서 걸음을 멈추었다. "제게 하실 말씀이 뭣입니까, 선생님?" "아까 우리가 본 그 기병들의 옷은, 자네 옷이나 내 옷보다 더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나?" "천만에요! 저는 그 쇠와 강철의 비늘보다 저의 이 붉고 노란 옷이 더 좋아요" "그렇다면 그랭구아르, 자넨 저 군복을 입고 있는 멋들어진 사내들을 부러워해 본 적이 없었겠네 그려?" "뭘 부러워합니까. 그들의 힘인가요? 갑옷인가요? 규율인가요?... 누더기를 입고 있는 철학가 자유가 더 낫지요. 저는 사자의 꼬리가 되기보다 파리의 머리가 되는 것이 더 좋아요" "그건 이상한데" 부주교는 몽상에 잠겨 말했다. "자넨 그런데 그 춤추는 집시 소녀를 어떻게 했는가?" "그건 자네 마누라가 아니었던가?" "그렇습니다. 항아리를 깨뜨리고 얻었지요. 4년의 기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항상 그 생각을 하고 계시는군요?" "그럼 자넨 이제 그녀를 생각하지 않나?" "별로... 전 할 일이 너무나 많거든요" "그 집시 아가씬 자네 목숨을 살려 주지 않았나?" "그건 사실이지요" "그런데! 이봐, 그 여잔 어떻게 됐어? 자넨 그 여잘 어떻게 했느냐 말야?" 느닷없는 고함에 그랭구아르는 움찔했다. "말하고 싶지 않지만... 그 여잔 교수형을 당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뭐, 확실한 건 모르지요. 그들이 교수형에 처하려고 하는 걸 보았을 때 전 관계를 끊어 버렸으니까요" "자네가 알고 있는 건 그것뿐인가? 내가 그 이상의 것을 지금 알려 줌세" 이때까지 나지막하고 느릿느릿하던 그의 목소리는 불현듯 우렁찬 소리가 되었다. "그 여자는 사실은 노틀담 안에서 은신하고 있네. 그렇지만, 사흘 후에 재판소는 그 여잘 거기서 다시 체포해 그레브에서 교수형에 처하기로 돼 있어. 최고 법원의 판결이 내렸어" "그건 유감이군요" "그 여잘 위해 자넨 아무것도 해주고 싶지 않은가?" "그랬으면 오죽이나 좋겠어요" 그러자 부주교는 이마를 탁 쳤다. 겉으로 꾸미고 있는 침착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격렬한 동작이 그 내부의 경련을 드러내 보이곤 했다. "이봐, 어떻게 그 여자를 구출할 수 없을까?" 이번엔 그랭구아르가 자기 이마를 탁 쳤다. "이것 보세요, 선생님. 저는 상상력이 있지요. 제가 방법을 찾아 드리겠습니다... 잠시만요. 음, 처녀가 임신을 했다고 신고하면서 제가 낙태 전문 산파에게 청원서를 제출하면 어떨까요?" 그러자 부주교의 움푹 들어간 눈동자가 무섭게 반짝였다. "임신을 했다고! 미친 수작! 입 닥쳐라!" "그렇게 역정내시는 건 잘못입니다. 집행 유예를 받는다 해도 아무에게도 해로울 건 없어요. 또 그렇게 되면 가난한 산파들에겐 40드니에를 벌어 주게 되지 않습니까" "닥쳐! 그 여잔 거기서 나가야만 해! 체포는 사흘 이내에 집행된다... 이봐, 피에르 군. 그 여잔 자네 생명의 은인이라는 걸 잊지 말게. 난 자네에게 솔직히 내 생각을 말하겠네. 사람들은 밤낮으로 성당을 지키고 있고, 거기 들어간 것을 본 자들밖에 내보내지 않아. 그러므로 자넨 들어갈 수 있어. 자네가 오면, 내가 그 여자 옆으로 자넬 인도하겠네. 자넨 그 여자와 옷을 바꾸어 입는 거야" "거기까진 좋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엔요?" "그 다음엔, 그 여잔 자네 옷을 입고 나가고, 자넨 그 여자 옷을 입고 남아 있게 돼. 자네는 교수형을 당하겠지만, 그 여잔 구출되는 거야" 이 뜻밖의 제안에, 시인의 명랑하고 온화하던 얼굴은 갑자기 흐려졌다. 마치 한 무더기의 바람이 느닷없이 불어와 구름을 태양 위에 부스러뜨렸을 때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경치가 그렇듯이. "어떤가, 그랭구아르 군? 그 여자는 자네 목숨을 구했어. 자네도 남자로서 이제 그 빚을 갚는 거야" "제가 갚지 않은 빚은 그 밖에도 수두룩합니다. 저는 왜 제가 남 대신에 느닷없이 교수형 당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대관절 뭣 때문에 자넨 그렇게도 생명에 애착을 가지나?" "그 이유야 얼마든지 있지요! 공기도 하늘도, 아침빛도 달빛도, 거지 친구들도, 그 밖에 또 뭐가 있더라? 참, 저는 날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라는 하나의 천재와 지낼 수 있다는 행복을 누리고 있는데, 그것은 참으로 유쾌한 일이죠" "이봐, 그렇게 즐겁게 살아가는 그 목숨을 누가 붙어 있게 해줬나? 누구 덕분에 자넨 이 공기를 숨쉬고, 저 하늘을 보는 거지? 그래, 자넨 그 여자가 죽길 바라는 거야? 그 아름답고 부드럽고 사랑스런 여자가? 자, 그랭구아르! 이번엔 사내인 자네가 아량을 가질 때야!" 신부는 격렬했다. 그랭구아르는 처음엔 결심이 서지 않는 듯 그의 말을 듣고 있었으나, 이윽고 비통한 표정을 지어 말하기에 이르렀다. "선생님은 비장하십니다. 저도 잘 생각해 보겠습니다만, 선생님은 참으로 괴상한 생각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그들은 저를 교수형에 처하지 않을지도 몰라요. 제가 그 방 안에서 치마에 괴상한 옷차림을 하고 있는걸 본다면, 그들은 깔깔 웃겠지요... 만일 그들이 제 목을 매단다면, 좋아요! 교수도 또한 다른 죽음이라고 말하는 편이 더 낫겠군요. 그것은 평생을 동요했던 천재에 어울리는 죽음, 진정한 회의주의와 망설임의 자국이 찍힌 죽음, 하늘과 땅 사이에 중간을 차지하는 사람을 허공에 매달아 놓는 그런 죽음이오. 사람이 살았던 것처럼 죽는다는 건 훌륭한 일이죠" "그럼 결정됐나?" 부주교의 말소리를 들은 그랭구아르는 현실 세계로 돌아왔다. 그는 어처구니없는 듯 잠에서 깨어나는 사람과 같은 어조로 말했다. "아니! 천만의 말씀입니다! 교수를 당하다니 너무나 어이없는 일이오. 난 싫어요" "그럼 잘 있어" 부주교는 혼잣말로 덧붙였다. "어디 두고 보자!" '저 악마 같은 사나이가 나를 두고 봐서야 되겠나' 하고 그랭구아르는 생각했다. 그러곤 클로드의 뒤를 쫓아갔다. "보세요, 부주교님! 오랜 친구 사이에 의가 상해서야 되겠습니까! 선생님은 그 아가씨에게, 아니 제 아내에게 관심이 많으신데, 그건 좋습니다. 만일 제가 다른 방법이 있다면! 하하하! 방금 제에게 썩 좋은 생각 하나가 떠올랐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선생님이 만족하시기 위해서는 제가 반드시 교수를 당해야만 되겠습니까?" "그 방법이란 뭐냐?" "거지떼들은 용맹스런 자식들입니다. 그들은 그 여자를 사랑합니다. 그들은 한 마디의 말만 떨어지면 일어설 겁니다. 즉 습격을 하는 거죠. 혼란을 틈타 쉽사리 그 여잘 탈취할 수 있을 겁니다" "어떻게 된다는 거야!" "가만 좀 계세요! 저도 지금 궁리하고 있는 중이 아닙니까... 이리 오세요, 귀엣말로 해야겠으니까요. 이건 정말 유쾌한 방책이어서, 우린 모두 곤경을 타개할 수 있답니다" 그랭구아르는 부주교의 귀에 몸을 기울이고,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는 거리를 불안스런 눈으로 훑어보면서, 매우 나지막한 소리로 얘기했다. 그가 말을 끝내자, 부주교는 그의 손을 잡고 쌀쌀하게 말했다. "좋아, 내일 보자" 그랭구아르는 부주교가 한쪽으로 떠나가는 동안 다른 쪽으로 가면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이건 굉장한 사업이다. 사람이 키가 작다고 해서, 대사업에 놀라리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 할미새와 딱새는 큰 바다를 건넌다..." 얼마 후 부주교는 수도원으로 돌아와 보니, 독방 앞에서 아우 장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는 기다리는 무료함을 풀기 위해 숯으로 벽 위에 어마어마한 코가 달린 형의 옆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클로드는 동생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는 딴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형님, 뵈러 왔습니다" 부주교는 쳐다보지조차 않고 대꾸했다. "그런데?" "형님, 형님은 제게 잘해 주시고, 퍽 좋은 충고를 해주시기 때문에, 저는 늘 형님에게로 돌아오곤 합니다" "그래서?" "형님, 지금 형님이 보고 계시는 것은, 하나의 죄인, 하나의 악한, 하나의 지독한 놈이올시다. 사랑하는 형님, 하느님은 지극히 정당하십니다. 돈이 있는 한, 저는 잘 먹고 즐겁게 지냈습니다. 오, 방탕이란 그 앞은 그렇게도 매력적인데, 그 뒤는 얼마나 추악한 것이겠어요!" "그 밖에는?" "아! 너무나 사랑하는 형님, 전 이제 착실한 생활을 하겠어요. 전 회개심에 가득 차서 형님에게 왔어요. 전 속죄하고 있어요, 전 지금 큰 주먹으로 가슴을 치고 있어요. 형님이 제가 장래 토르시 학교의 학사가 되고 조교가 되길 바라시는 건 참으로 옳은 생각이에요. 전 지금은 그 작업에 대단히 소질이 있다는 걸 느끼게 됐어요. 그러나 잉크가 떨어졌으니, 다시 사야만 하겠어요. 그러기 위해서 저는 조금의 돈을 무척 필요로 하고 있어요" "돈 없다" 그러자 학생은 엄숙하고도 단호한 태도로 말했다. "그렇다면 형님, 이런 말씀을 드리게 되는 건 섭섭한 일이지만, 한편에서는 저에게 매우 훌륭한 제의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 드리겠어요. 형님은 제게 돈을 주고 싶지 않은 거죠? 그렇다면 전 거기가 되겠어요" 부주교는 쌀쌀히 말했다. "거지가 되려무나" 장은 휘파람을 불면서 수도원 계단을 성큼성큼 내려갔다. 그가 형의 독방 창문 아래를 지나는데, 그 창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 코를 들고 보니, 창구멍으로 부주교의 준엄한 이마가 나오는 것이 보였다. "어서 꺼져라, 이게 내게서 받게 될 마지막 돈이다!" 이 외침과 동시에 부주교는 장에게 지갑 하나를 던져 이 학생의 이마에 커다란 혹을 만들어 주었는데, 장은 얻어맞은 강아지처럼 화가 나면서도 기뻐하면서 그것을 갖고 사라져 버렸다. 2 저 요란스런 기적궁의 일부는 도시의 옛 성벽에 의해 둘러싸여 있었는데, 그 성벽의 탑들은 대부분이 벌써 허물어져 가기 시작하는 중이었다. 이런 탑들 중 하나는 거지들에 의해 유흥장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낮은 방엔 술집이 있었고, 그 밖의 것은 위층에 있었다. 이 탑은 거지 왕국의 가장 활기 띤 장소이며 따라서 가장 추악한 장소였다. 정녕 그것은 밤낮으로 윙윙거리는 일종의 끔찍스런 벌집이었다. 밤에 광장 정면에 불 켜진 창문 하나 남아 있지 않을 때, 도둑놈과 창녀와 훔친 아이 또는 사생아들이 득실거리는 그 소굴로부터 고함 소리 하나 들려 오지 않을 때, 사람들은 언제나 그 탑을 거기서 나오는 새빨간 불빛으로 알아볼 수 있었다. 어느 날 저녁, 파리의 모든 망루에서 소등의 종소리가 울렸을 때, 야경원들이 만일 이 무시무시한 기적궁에 들어 갈 수 있었다면, 이 거지들의 선술집이 평소보다 더 소란스럽고 사람들은 더 많은 술을 마시고 있고 더 요란스레 욕설을 퍼붓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으리라. 바깥에도 많은 사람들이 군데군데 모여 마치 무슨 커다란 계획이라도 꾸미고 있는 듯 나지막하게 쑥덕거리고 있었으며, 여기저기 불량배가 쭈그리고 앉아 포석 위에 흉기의 날을 갈고 있었다. 바로 이 선술집에서는, 포도주와 노름이 이날 저녁 거지떼들의 머리 속을 점유하고 있는 생각들에 대해 대단한 기분 전환이 돼 주고 있었으므로, 술꾼들이 무엇에 관해 얘기하고 있는지 그들의 말소리를 들어 봤다 하더라도 짐작하기 어려웠으리라. 다만 그들은 평소보다 더 유쾌해 보였으며, 모두들 다리 사이에 시퍼런 도끼나 커다란 쌍날 장검, 또는 낡은 화승총 같은 무기를 번쩍거리고 있었다. 방은 둥글고 매우 넓지만, 탁자가 매우 촘촘히 놓여져 있고, 술꾼들이 너무도 많아, 이 안에서는 남자, 여자, 술병, 취한 자, 곯아떨어진 자, 몸이 성한자와 병신 할 것 없이, 모든 게 마치 굴껍질더미 같은 꼴을 이루고 있는 것 같았다. 몇 군데 탁자 위에 짐승의 기름으로 불을 켜 놓았으나, 이 술집의 진짜 등불로서 마치 오페라 극장 안의 샹들리에 구실을 대신하고 있는 것은 장작불이었다. 이 골방은 하도 습해서 한여름에도 벽로에 불이 꺼지게 두는 일이 없었는데, 조각을 한 거대한 벽로엔 묵직한 장작 받침쇠와 취사 도구가 잔뜩 놓여 있고, 장작과 탄의 큰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커다란 개 한 마리가 재 속에 의젓히 앉아 불 앞에서 고기를 꿴 쇠꼬챙이를 돌리고 있었다. 비록 혼란하긴 했지만, 한 번만 둘러보면 이 군중 속에 세 개의 주요 집단을 식별할 수 있었는데, 그들은 독자가 이미 아는 세 인물 주위에 모여 있었다. 그 인물들 중 예의 노인은 온몸을 동양식 의복으로 이상야릇하게 휘감고 있는데, 그는 두 다리를 엇걸고 탁자 위에 앉아 손가락을 공중에 쳐들고서, 입을 딱 벌리고 있는 주위의 숱한 얼굴들에게 큰 소리로 요술과 마술의 지식을 나눠 주고 있었다. 또 하나의 무리는 완전 무장을 한 저 용감한 거지왕을 중심으로 모여 있었다. 클로팽 트루유프는 진지한 태도로 약탈한 무기를 처리하고 있었는데, 그의 앞의 큰 구멍이 뚫린 통에서는 도끼며 칼, 철모, 쇠사슬, 창촉과 화살촉 같은 것이 듬뿍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 무더기에서 어떤 사람은 투구를, 어떤 사람은 장검을, 또 어떤 사람은 손잡이가 달린 단검을 저마다 집어들고 있었다. 어린애들마저 무장하고 있었으며, 심지어 앉은뱅이들까지도 갑옷을 입고 있는 것이었다. 끝으로 가장 소란스럽고 가장 수효도 많은 세 번째의 무리는 벤치와 탁자들을 가득 메우고 있었는데, 그 한복판엔 투구로부터 박차에 이르기까지 완전 중무장을 한 사내가 장광설과 상말을 마구 지껄이고 있었다. 이 사내는 전투복 아래 완전히 가려질 지경이어서, 그의 신체는 뻔뻔스럽게 생긴 뻘건 들창코와 불그스럼한 입과 열기 오른 눈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의 허리띠엔 단검과 단도가 주렁주렁 달려 있고, 옆구리엔 한 자루의 장검을 차고, 앞엔 커다란 포도주병 하나를 놓고 있었으며, 오른쪽엔 옷을 거의 풀어 헤친 뚱보 계집애 하나가 있었다. 그 밖에도 많은 떼들이 있었는데, 술병을 갖고 뛰어다니는 심부름꾼을 비롯해 한구석에서 몸을 웅크리고 당구 치기며 주사위 놀이를 하는 노름꾼들과 난장패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쪽 구석에선 키스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소음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난타되는 종의 내부와도 같았다. 불고기의 기름받이 그릇 속에 비처럼 떨어지는 기름이 계속 토닥토닥 튀는 소리가, 방 안 구석구석에서 주고 받는 그 무수한 대화의 사이사이를 메웠다. 이런 법석판에, 술집 안쪽 벽로의 한 벤치 위에 철학자 하나가 앉아 재 속에 발을 뻗고, 깜부기를 바라보면서 사색에 잠겨 있었다. 그것은 피에르 그랭구아르였다. "자, 어서 빨리 무장을 해라! 한 시간 후면 출발이다!" 클로팽 트루유프가 가끔 외치는 것이었다. 그렇긴 해도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무장하고 있는 한 젊은 놈팡이의 목소리가 그 와글와글한 판 속에서도 가장 압도적이었다. "얼씨구 좋다!" 하고 그는 소리치며 말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내 첫 출전이다! 아, 나는 거지다! 제기랄, 내게 술을 따라라! 내 친구들아, 내 이름은 장 장 프롤로 뒤 물랭이다. 형제들, 우린 지금 바야흐로 근사한 원정을 나가려 한다. 우린 용맹한 사람들이다. 성당을 포위하고, 문을 부수고, 거기서 그 미녀를 끌어내 판사들로부터 구출하고, 수도원을 파괴하고, 주교관에서 주교를 태워 죽이고, 이런 모든 일을 단시간 내에 해치울 것이다. 우리의 명분은 정당하다! 노틀담을 약탈하자. 카지모도의 모가지를 매달자. 여러 부인들께선 카지모도를 아시나이까? 그가 종 위에서 헐레벌떡 거리고 있는 꼴을 보셨나요? 마치 악마가 걸터앉아 있는 것 같죠. 친구들아, 내 말을 들어 보게. 난 진심에서 거지다. 난 매우 부자였는데, 재산을 다 날려 버렸다. 아, 그러나 기쁨이여, 만세! 여보 아줌마, 포도주 한 병 더 줘! 난 아직도 돈이 있어. 이젠 쉬레느 포도주는 싫어. 그걸 마시면 목구멍이 짜증을 내거든..." 그러는 동안 어중이떠중이들은 너털웃음을 웃으며 박수 갈채를 보내고 있었는데, 자기 주위에서 더욱 와글거리는 것을 본 장은 외쳤다. "오! 아름다운 소음이여! 격분한 민중의 대중적 흥분이여!" 그런 뒤는 그는 황홀경에 빠진 듯한 눈을 했다. 그 동안 거지들은 술집 저쪽 끝에서 수군거리며 계속 무장을 갖추고 있었다. "가엾은 에스메랄다!" 집시 하나가 말했다. "그건 우리 누이동생이야. 그 여잘 꼭 꺼내 와야만 해" "그렇다, 친구들!" 다른 거지가 외쳤다. "노틀담으로 가자! 더구나 그럴 것이 성자 예배당엔 두 개의 조각상이 있거든, 그건 모두 금인데 금의 무게는 수십 마르크다" 한편 그랭구아르는 명상에서 깨어나, 떠들썩한 주위 광경을 바라보면서 입 속으로 중얼거렸다. "포도주와 소란스런 수정은 음란한 것이다. 아! 내가 마시지 않은 건 잘한 일이다" 이때 거지왕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자정이다!" 그 말이 떨어지자, 남자 여자 어린애 할 것 없이 모든 거지들은 무기를 요란스레 흔들면서 술집 밖으로 와그르르 뛰어나갔다. 달이 구름에 가려져 기적궁은 칠흑같이 캄캄했다. 불빛 하나 없었으나 적막하진 않았다. 한떼의 남녀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어둠 속에서 온갖 무기가 번쩍거리는 것이었다. 클로팽은 커다란 돌 위로 올라갔다. "얘들아, 줄을 서라! 이제 파리를 통과하기 위해 정숙을 지켜라. 암호는 '어슬렁 불꽃'이다. 노틀담에서밖엔 횃불을 켜지 마라! 전진!" 얼마 후 집이 촘촘하게 들어선 중앙시장 지대를 사방팔방으로 꿰뚫고 있는 꼬불꼬불한 거리들을 지나 풍토 샹즈 다리 쪽으로 내려가는 조용한 한 무리의 긴 행렬을 만난 야경 대원들은 질겁하여 줄행랑을 쳐 버렸다. 3 바로 그날 밤, 카지모도는 자지 않고 있었다. 그는 지금 막 마지막 경내 순시를 돌고 난 참이었다. 그가 성당 문을 잠그고 있을 때, 부주교가 옆을 지나가다가, 자기가 그 널따란 문짝들을 성벽처럼 견고하게 해주는 거대한 철골에 조심스레 빗장을 걸고 자물쇠를 채우는 것을 보고 불쾌한 기색을 한 것을 꼽추는 알아채지 못했다. 부주교는 어느 때보단 한결 딴데 정신이 팔려 있는 것 같았다. 그날 밤 그 독방에서의 사건 이후로 그는 줄곧 카지모도를 학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구박하고 후려치기까지 해도, 이 충성스런 종치기의 복종과 헌신적인 체념을 꺾을 순 없었다. 부주교에 대해서라면 그는 모든 것을 참는 것이었다. 한 마디의 비난도 중얼거리지 않고, 한 마디의 불평도 투덜거리지 않았다. 부주교가 종탑 계단을 올라올 때면 근심스런 눈으로 그를 지켜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부주교는 집시 아가씨의 눈앞에 다시 나타나기를 스스로 삼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밤, 카지모도는 그토록 버림받고 있던 자신의 종들을 문득 한번 돌아본 뒤 북탑 꼭대기까지 올라가 거기서 파리를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말한 바와 같이 밤은 매우 캄캄했다. 카지모도는 멀리 떨어져 있는 한 건물의 창 하나에서밖엔 불빛을 볼 수 없었는데, 그 건물의 어렴풋한 검은 그림자는 생 탕투안 성문 쪽에, 집집의 지붕들 위에 우뚝 솟아 있었다. 거기에도 역시 깊은 밤에 자지 않고 있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이 사람은 루이 11세이며, 멀리 떨어져 있는 건물은 바스티유 궁전이었다. 그 어둠이 지평선 속에 외눈을 헤매게 하면서 이 종치기는 내심으로 형언할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그는 경계를 하고 있었다. 그는 고약한 얼굴을 한 사내들이 그 아가씨의 은신처에서 눈을 떼지 않고 성당 주위를 끊임없이 얼쩡거리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그 불행한 아가씨에 대해 음모가 꾸며지고 있나 보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가 그 외눈으로 그 큰 도시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을 때, 별안간 비에유펠르트리 강둑의 윤곽이 이상해지고, 움직임이 일어나고, 하얀 강물 위에 아주 새카맣게 두드러진 난간의 선이 꼿꼿하고 고요한 것이 아니라, 마치 물결처럼 또는 전진하는 군중의 머리들처럼 눈 아래서 일렁거리는 것 같아 보였다. 그는 더욱 주의해 보았다. 그 움직임은 시내 쪽으로 오고 있는 듯했다. 게다가 불빛 하나 없었다. 움직임은 강둑 위에서 한참 동안 계속되더니, 그런 뒤엔 마치 섬 안으로 들어오는 듯 조금씩 흘러들고, 이어서 완전히 그쳐 버려, 강둑의 선은 다시금 꼿꼿해져 미동도 하지 않았다. 카지모도가 숱한 억측을 하고 있을 때, 노틀담의 정면과 수직으로 시내 안에 뻗어 있는 성당 앞 거리에 그 움직임이 다시 나타나는 것 같아 보였다. 이윽고 한 종대의 선두가 그 거리로 쑥 튀어나오더니, 삽시간에 한떼의 군중이 광장에 퍼지는 것을 보였는데, 어둠 속에서 그것이 한떼의 군중이란 것밖엔 아무것도 식별할 수가 없었다. 그 광경엔 무시무시한 점이 있었다. 그 해괴한 행렬은 깊은 어둠 속에 형체를 감추려고 애쓰는 것 같았는데, 비록 그것이 발자국 소리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무슨 소리가 나고 있었음엔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의 귀머거리에겐 그 소리가 들려오지조차 않았으며, 이 대군중이 바로 지척에서 걸어오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거의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있었으므로, 마치 그것은 그에게 연기 속에 잠긴 만져지지 않는 망령들의 군집과 같은 인상을 주었다. 그러자 그는 다시금 공포심이 일어나고 예쁜 아가씨를 해치려 한다는 나쁜 생각이 다시금 머리에 떠올랐다. 그는 어떤 격렬한 상황이 다가오고 있음을 어렴풋이 느꼈다. 이런 위기에 직면해 그는 마음속으로 재빠른 추리력을 갖고 검토했다. 그 아가씨를 깨워야 할까? 그래서 달아나게 할 것인가? 달아난다면 어디로? 거리는 포위돼 있었고, 성당은 강 쪽으로 몰려 있었다. 배도 없고 출구도 없다! 한 가지 방책밖엔 없었다.-노틀담의 문 앞에서 죽음을 당하자. 적어도 구원의 손길이 뻗칠 때까지는 맞서자. 그리고 사랑스런 아가씨의 그윽한 잠을 방해하지 말자. 한번 결심이 서자, 그는 한결 침착하게 적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군중은 성당 앞뜰에 시시각각 불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별안간 불빛 하나가 반짝하더니, 순식간에 7,8개의 횃불이 어둠 속에서 그 숲 같은 불꽃을 흔들면서 머리들 위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카지모도는 그제야 누더기를 걸친 남녀들의 무시무시한 떼가 번쩍거리는 창이며, 낫, 도끼 등으로 무장하고 물결치는 것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여기 저기에 새카만 쇠스랑들이 그 끔찍스런 얼굴들에 마치 뿔처럼 돋아 있었다. 카지모도는 초롱을 집어들고 더 자세히 살피고 방어 수단을 강구하기 위해 종탑 사이의 지붕 위로 갔다. 클로팽은 노틀담의 높다란 현관 앞에 이르러 졸개들을 전투 대형으로 배치하였다. 그는 아무런 저항도 예상하지 않았지만, 신중한 장군답게 야경대나 순경대의 기습에 대항할 수 있는 질서를 유지하고 싶었던 것이다. 거지들이 이때 노틀담을 향해 시도하고 있었던 것과 같은 시도는 중세의 도시들에 있어서 드문 일은 아니었다. 오늘날 경찰이라고 일컫는 것은 당시엔 존재하지 않았다. 인구가 많은 도시에 있어서 중앙 권력은 단일적인 규제력이 없었다. 하나의 도시는 무수한 영지들의 집합체였고, 이것들이 하나의 도시를 온갖 형태의 구획으로 나누어 놓고 있었다. 거기서 무수한 대립적인 경찰이 유래했으니, 즉 경찰이 없는 셈이었다. 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약탈이 자기네 집에까지 이르지 않는다면 사건에 관계하지 않았다. 그들은 화승총 사격에 귀를 막고, 겉창을 닫고, 분쟁이 야경대의 개입 여부간에 해결되도록 내버려 두며, 이튿날 이런 말을 주고받는 것이었다. "지난 밤에 에티에느가 약탈 당했다네.-클레르몽 원수가 체포됐어" 아무튼 이윽고 첫 배치가 끝났을 때, 이 무리들의 위풍당당한 왕은 성당 앞뜰의 난간 위에 올라가, 노틀담 쪽으로 돌아서서 횃불을 흔들면서, 그 무뚝뚝한 쉰 목소리를 높이 질렀다. "너 파리의 주교이자 최고 재판소 판사에게 나 클로팽 트루유푸, 기적궁의 왕이 말한다. 우리의 누이동생은 마술이란 죄목으로 억울하게 사형 선고를 받아, 너희 성당 안으로 피신했다. 그런데 최고 재판소는 그녀를 다시 거기서 체포해 가려고 하고, 너는 그것에 동의했다. 그래서 만일 하느님과 거지들이 여기에 있지 않다면, 그녀는 내일 그레브에서 교수형을 당하리라. 그러므로 우리들은 너에게 온 것이다. 주교야, 네 성당이 신성하다면, 우리의 누이동생 역시 그렇다. 우리의 누이동생이 신성하지 않다면, 네 성당 또한 그렇지 않다. 그런 까닭에, 네가 네 성당을 구하고자 한다면 우리에게 처녀를 돌려줄 것을 엄숙히 권고하는 바이다. 그러지 않는다면 우린 처녀를 탈취하고 성당을 약탈하겠다. 그 증거로 나는 여기에 내 군기를 꽂는다!" 거지 하나가 수령에게 군기를 건네 주니, 그는 그것을 엄숙히 두 개의 포석 사이에 꽂았다. 그것은 하나의 작살이었는데, 끝에 피가 철철 흐르는 시체 살점이 매달려 있었다. 그렇게 하고 난 거지왕은 돌아서서 자기 무리를 휘둘러보다가 느닷없이, "다들 진격!" 하고 호령했다. 살팍한 팔다리에 우악스런 얼굴을 한 30명의 사내들이, 망치와 장도리와 철봉을 어깨에 메고 대열에서 나왔다. 그들은 성당 정문 쪽으로 걸어가 계단으로 올라가는가 했더니, 이내 문을 부수기 시작했다. 한떼의 거지들이 그 뒤를 따라가 혹은 그들을 돕고 혹은 서서 바라보았다. 그런데 문은 까딱도 않고 있었다. "이런 제기랄 문을 봤나! 어떻게나 단단한지 꿈쩍도 않네!" 그 중 한 사람이 말했다. "용기를 내, 친구들" 하고 클로팽이 대꾸했다. "떨어진 고무신에 내 목을 걸고 장담하지만, 너희들은 1분 내에 문을 열어 처녀를 탈취하고 놈들의 껍질을 벗길 수 있다. 이것 봐라, 자물쇠가 빠개질 것 같다!" 거지왕은 그 순간 자기 뒤에서 꽝 하고 울린 무시무시한 소리에 말을 중단하지 않은 수 없었다. 그는 돌아보았다. 거대한 대들보 하나가 하늘에서 떨어져, 성당의 섬돌 위에 있던 거지들을 열두어 명이나 으깨 버린 뒤, 요란스런 소리를 내면서 다시 포석 위에 튀어 올라 동냥아치의 무리들 속 여기저기서 또 몇 놈의 다리를 부숴뜨려, 그들은 무시무시한 비명을 지르며 비켜나고 있었던 것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성당 앞뜰은 텅 비어 버렸다. "큰일날 뻔했구나!" 하고 장이 외쳤다. "내 옆을 바람처럼 휙 지나갔다. 지랄 같구나!" 이 대들보에 의해 거지들에게는 얼마나 큰 공포가 떨어졌는지를 말할 수도 없었다. 그들은 만 명의 친위대 순경들보다 이 나무 기둥에 더 혼비백산하여, 한참 동안 허공만 응시하고 있었다. "이키! 이건 마술 냄새가 풍기는걸!" 그 동안 그들은 성당 정면 위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 꼭대기엔 횃불빛이 미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육중한 기둥은 성당 앞뜰 한복판에 누워 있었으며, 돌층계의 모서리 위에서는 타격을 받고 배때기가 두 동강난 불량배들의 신음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거지들의 왕은 처음의 놀람에서 깨어나자, 마침내 졸개들에게 수긍이 갈 만해 보일 설명 하나를 발견했다. "빌어먹을 것 같으니! 이건 참사원 놈들이 저항을 하는 거다! 겁먹지 말고 공격하라!" "공격하자!" 군중은 맹렬한 함성을 지르면서 복창했다. 그리고 성당 정면을 향해 강철활과 화승총의 일제 사격을 가했다. 그러나 그들은 가까이 접근하진 못했다. "진격하라, 투사들! 문을 부숴라!" 하고 클로팽은 외쳤다. 그러나 아무도 한 걸음도 나가지 않았다. "염병할 것! 그래, 사내 녀석들이 서까래 하나를 무서워한단 말야?" 클로팽이 투덜거리자 늙은 투자 하나가 그에게 대꾸했다. "대장, 우리가 걱정하는 건 서까래가 아니오. 문이 철봉으로 꼭꼭 잠겨져 있거든요. 장도리 같은 건 쓸모가 없어요" "그럼 뭐가 있어야겠단 말이냐?" "아, 천둥의 망치가 있으면 좋겠지만!" 거지왕은 그 무시무시한 기둥으로 걸어가 그 위에 발을 올려놓았다. "여기 있잖아! 이건 참사원 놈들이 선물로 보내 준 것이다" 이런 허세는 좋은 효과를 빚었고, 벼락의 마력은 풀려 버렸다. 거지들은 다시금 용기를 냈다. 2백 개의 실팍진 팔로 거뜬히 들어올려진 그 육중한 대들보는 이내 대문 위에 가서 맹렬히 부딪혔다. 거지들의 드문드문한 횃불이 광장 위에 퍼뜨리고 있는 희미한 불빛 속에, 그 기다란 대들보를 그 무수한 군중이 들고서 달음질쳐 성당에 들이박는 광경을 보면, 마치 천 개의 발이 달린 한 마리의 괴이한 짐승이 머리를 수그리고 공격하는 것을 보는 듯했다. 대들보의 타격에 절반은 금속으로 된 문은 거대한 북처럼 울렸다. 문이 부서지지는 않았으나, 대성당 건물의 깊은 공동들이 쿵쿵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큼직큼직한 돌멩이가 성당 정면 위쪽으로부터 비오듯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발동은 걸려 있었고, 거지왕은 솔선 수범하고 있었고, 이제 정녕코 주교가 저항하고 나선 것으로 보였는지라, 돌멩이들이 좌우에서 머리통을 깨뜨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지들은 더욱 맹렬히 문을 쳤다. 그런데 그 돌멩이들은 하나씩 떨어지고 있었지만, 사이가 뜨지 않고 연속되었다. 거지들은 언제나 한꺼번에 두 개의 돌멩이를 느끼고 있었으니, 하나는 다리에 또 하나는 머리에 였다. 맞히지 않는 돌멩이란 거의 없었고, 이미 널따랗게 쌓인 사상자의 더미는 피를 흘리며 퍼덕거리고 있었으나, 공격자들은 미칠 듯이 날뛰면서 끊임없이 밀려들고 있었다. 독자는 아마 짐작하고 있겠으나, 거지들을 쩔쩔매게 한 이 뜻밖의 저항은 카지모도로부터였다. 그가 종탑 사이의 지붕 위에 내려왔을 때 그의 머리는 온갖 생각으로 혼란했다. 그는 한참 동안 미치광이처럼 회랑을 따라 이리저리 왔다갔다 뛰어다니고, 바야흐로 성당에 쳐들어오려는 그 밀집한 떼들을 내려다보면서, 하느님에게 아가씨를 구해 줄 것을 빌었다. 그는 남쪽의 종각으로 올라가 경종을 울릴까 하는 생각도 떠올랐으나, 줄을 채 흔들기도 전에 성당 문은 열 번이라도 파괴당할 만할 시간이 있지 않았던가? 그것은 바로 공격자들이 쇠붙이를 가지고 성당을 향해 진격해 오는 순간이었다. 문득 이 병신은 그날 하루 종일 석공들이 남탑의 벽과 지붕의 수리 공사를 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벽은 돌로, 지붕은 납으로 되어 있었다. 그는 그 탑으로 달려갔다. 위기감으로 배가 된 힘을 가지고, 그는 가장 무겁고 긴 대들보 하나를 들어올려, 채광창으로 내보낸 뒤 종탑 밖에서 그것을 다시 붙잡고, 지붕 주위의 난간 모서리 위로 밀어 뜨려, 심연 위에 내려뜨렸다. 이 거대한 목재는 백 수십 척의 높이에서 떨어지면서 가는 풍차의 날개처럼 몇 번이고 빙글빙글 돌았다. 그것은 마침내 땅에 닿아 무시무시한 소리를 냈으며, 포석 위에 튀어 오르는 이 새카만 대들보는 폴딱폴딱 뛰는 한 마리의 뱀과 같았다. 꼽추는 그들이 놀란 틈을 이용하여, 즉 그들이 하늘에서 떨어진 망치를 미신 어린 눈으로 바라다보고 있는 동안 자갈과 돌멩이와 석회들을 또 급히 나르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이 대문을 치기 시작하자마자 돌멩이의 우박이 떨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대문이 비칠거리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에게 들리진 않았지만 타격은 번번이 효과를 얻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위급한 순간에, 그는 자기가 서 있는 난간보다 조금 아래에, 돌로 된 두 개의 긴 빗물받이 홈통이 대문 바로 위로 뚫려 있는 것을 보았다. 그 홈통의 앞쪽 구멍은 지붕의 돌바닥에 끝이 닿아 있었다. 한 가지 생각이 꼽추의 머리에 황홀하게 떠올랐다. 그는 다락방으로 뛰어가 한 묶음의 나무 다발을 가져다가, 그 나무 위에 많은 연판을 올려놓고, 그 다발을 두 개의 홈통 구멍 앞에 배치한 다음, 거기에 초롱불을 갖다 댔다. 그러는 동안 이제 돌멩이가 떨어지지 않으므로, 거지들은 공중을 바라보길 그만두고 마치 멧돼지를 굴 속으로 몰아 대는 사냥개 떼마냥 헐레벌떡거리면서 대문 주변에 와글와글 모여들고 있었다. 대문은 완전히 이지러졌으나 아직도 서 있긴 했다. 그들은 몸을 떨면서 결정적인 타격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문이 열릴 때, 이 풍요로운 대성당 안으로 갈 수 있도록 하려고 너도나도 앞다투어 될수록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어쩌면 그들의 대부분에 있어서 에스메랄다는 한 구실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도둑놈에게도 구실이 필요했다면 말이지만... 이윽고 그들이 마지막 힘을 기울이기 위해 숨을 죽이고 힘살을 긴장시키고 있는 순간, 그 대들보 아래서 터졌다가 사라진 비명보다 더욱더 무시무시한 비명이 그들 한복판에서 터져 나왔다. 고함을 지르지 않는 자들, 다시 말해 아직도 살아 있는 자들은 바라보았다. 두 줄기 녹은 납의 분류가 건물 위로부터 가장 밀접한 군중 위에 떨어지고 있었다. 그 사람들의 바다는 그 뜨거운 금속 아래 쓰러져 버렸던 것인데, 그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그 금속이 떨어지고 있는 두 지점엔, 마치 뜨거운 물을 백설 위에 부은 것처럼, 군중 속에 두 개의 연기나는 새카만 구멍이 뚫려 있었다. 거기엔 절반이 타서 고통에 울부짖는 사람들의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 두 줄기의 커다란 분류 주위에서, 그 무시무시한 방울이 공격자들에게로 튀어 불의 송곳처럼 그들의 대갈통에 박혀 들어가고 있었다. 고함 소리는 비통한 것이었다. 그들은 용감한 자나 비겁한 자나 모두 대들보를 시체 위에 내던지고, 엎치락뒤치락 달아나 버려서, 성당 앞뜰은 또 다시 텅 비게 되고 말았다. 거지들 사이에선 한참 동안 공포의 침묵이 흘렀는데, 그 동안 들린 것이라고는 다만 수도원 안에 갇혀진 채, 불타는 마구간 안에 든 말들보다 더 놀란 참사원들의 고함 소리, 살그머니 열었다가 후다닥 닫아 버리는 창문 소리, 인가와 시립 병원 안에서 나는 법석 소리, 화염 속에 불어 대는 바람 소리, 죽어 가는 사람들의 단말마 소리, 그리고 포석 위에 쉴 새 없이 떨어지는 납비의 토닥토닥 튀는 소리뿐이었다. 그 동안 고위급 거지들은 공들로리에 댁의 현관 아래로 물러가서 회의를 열고 있었다. 클로팽은 울화통이 터져 제 투박한 주먹을 물어뜯었다. "들어갈 수가 없다니 원!" "이런 염병할! 성당의 이무기들이 녹은 납을 토해 내다니!" "저 불 앞에 오락가락하는 악마가 보이나? 저건 그 지옥에 떨어질 놈의 카지모도란 종치기야" 저마다 한 마디씩 지껄였다. "그래, 저 문을 부술 길이 없단 말이냐? 그래 대로를 걸어가는 종들처럼 처량하게 떠나가야 된단 말이냐?" 거지왕은 다시금 발을 구르면서 외쳤다. "한 번 더 해봅시다" 뚱보 거지가 대꾸했다. 노인 거지는 그러나 머리를 흔들었다. "정문으로 못 들어갈 테니 허점을 찾아 내야 해. 구멍이라든가, 뒷문이라든가, 또는 무슨 이음 자리라든가 말야" "누가 날 따르겠느냐?" 결국 거지왕이 말했다. "난 나가겠다. 헌데 참, 그렇게도 많은 쇠토막을 몸에 달고 있던 그 어린 학생 장은 대관절 어디 있느냐?" "아마 죽었나 봐요" 하고 누가 대답했다. 거지왕은 눈살을 찌푸렸다. "거참 안됐군. 그 허풍 아래엔 씩씩한 마음이 들어 있었는데, 그리고 피에르 그랭구아르 선생은?" "그 녀석은 미처 다리 앞에 이르기도 전에 삼십육계를 놓아 버렸습니다" 클로팽은 발을 굴렀다. "육시랄 놈 같으니! 우릴 이런 일에 밀어 넣은 건 제놈이었는데도, 일이 한창 벌어진 마당에 우릴 버리고 가다니!" "클로팽 대장" 하고 전봇대처럼 키가 큰 거지가 성당 앞뜰을 바라보고 있다가 말했다. "저기 그 어린 학생이 있습니다" "어, 기쁜 일이로다" 하고 거지왕은 말했다. "헌데 저 녀석은 대관절 뭘 끌고 오는 거야?" 그것은 과연 장이었는데, 저보다도 스무 곱절이나 더 긴 풀잎을 끌고 가는 개미보다 더 헐떡거리면서, 그 방랑 기사 같은 무거운 옷과 길바닥 위를 씩씩하게 끌고 오는 하나의 긴 사다리가 그에게 허락하는 한의 빠른 걸음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승리다! 기뻐하라!" 하고 학생은 부르짖는 것이었다. 클로팽이 그에게 다가갔다. "이봐, 그 사다리론 대체 뭘 하려는 거냐?" 장은 재주 있고 영리한 표정으로 왕을 바라다보곤 캐스터네츠처럼 손가락을 울렸다. 그는 이 순간 장엄했다. 그는 머리에 투구를 쓰고 있었는데, 그것은 꼭지에 열 개의 뾰족한 쇠끝이 돋아 있는 것이었다. "이걸로 뭘 하려고 하느냐고요? 저 회랑 끝엔 빗장으로밖엔 잠그지 않은 문 하나가 있는데, 이 사다리로 그리 올라가면 난 성당 속으로 들어간단 말이에요!" 장은 사다리를 끌고 광장으로 달려가기 시작하면서 외쳤다. "나를 따르라, 얘들아!" 순식간에 사다리는 회랑의 난간에 걸쳐졌다. 거지떼들은 떠들썩하게 환호성을 지르면서 그 아래로 몰려 닥쳤다. 장은 자기의 권리를 지켜 맨 먼저 사다리의 가로장 위에 발을 올려놓았다. 도정은 퍽 길었다. 장은 입은 갑옷이 꽤 거추장스러워 한 손으로는 가로장을, 다른 한 손으로는 옷을 붙잡고서 천천히 올라가고 있었다. 사다리의 중간쯤 올랐을 때 그는 층계에 깔려 있는 그 죽은 가련한 거지패들을 우울한 눈으로 흘끗 내려다보았다. "아, 불쌍하도다!" 그런 뒤 그는 계속 올라갔다. 거지들도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사다리의 가로장마다 거지 하나씩이 매달렸다. 이 갑옷을 입은 등들의 열이 어둠 속에 물결치면서 올라가는 것을 보면, 마치 강철의 비늘이 달린 한 마리의 뱀이 성당에 붙어 우뚝 서 있는 것 같았다. 앞장을 서서 휘파람을 불고 있는 장은 그런 환상을 더욱 완전한 것으로 만들어 주었다. 학생은 마침내 회랑의 발코니에 닿아, 온 거지패들의 찬양 속에 거뜬히 그리로 건너뛰었다. 그리하여 성채의 주인이 된 그는 탄성을 지르다가, 느닷없이 화석처럼 굳어져 소리를 멈췄다. 한 조각상 뒤에 카지모도가 숨어서 눈을 번쩍거리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둘째 포위병이 미처 회랑 위에 내려딛기도 전에 꼽추는 사다리의 머리맡으로 뛰어가, 한 마디 말도 없이 두 끝을 움켜잡고 그것을 들어올려 벽에서 멀리하고, 위에서 아래까지 거지들이 가득 달린 그 기다란 휘청거리는 사다리를 한참 흔들다가 갑자기 초인적인 힘으로 사람이 주렁주렁한 그 인간송이를 광장에 내던졌다. 뒤로 던져진 사다리는 잠시 꼿꼿이 선 채 망설이듯 하더니 문득 반경의 무시무시한 원호를 그리면서 포석 바닥 위에 넘어졌다. 한때 어마어마한 저주의 소리가 일어나더니 뚝 그쳐 버렸다. 그리고 팔다리가 잘린 몇몇 불행한 사람들이 죽은 사람들의 더미 아래서 기어 나왔다. 장으로 말하자면 위태로운 처지에 빠져 있었다. 그는 수척의 깎아지른 벽에 의해 자신의 친구들과 격리되어, 회랑 속에 그 무시무시한 종치기와 단둘이 있었던 것이다. 카지모도가 사다리를 갖고 놀고 있는 동안, 학생은 그것이 열려져 있는 줄 알고 뒷문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그러나 열려 있지 않았다. 귀머거리는 회랑으로 들어오면서 그것을 잠가 놓았던 것이다. 장은 옆쪽의 석상 하난 뒤에 숨어, 차마 숨도 쉬지 못하고, 그 괴물 같은 꼽추를 겁에 질린 얼굴로 응시하고 있었는데, 그 꼴은 마치 어떤 동물원지기의 아내에게 구애하는 사나이가 어느 날 저녁 사랑의 데이트에 나가면서 담을 잘못 알고 뛰어넘었다가 갑자기 백곰 한 마리와 딱 마주치게 된 것과도 같았다. 첫 순간 귀머거리는 그를 경계하지 않았으나, 이윽고 머리를 돌리더니 쑥 일어섰다. 그는 학생을 보았다. 장은 호된 타격이 오리라고 예상하고 있었으나, 귀머거리는 꿈쩍도 않았다. 그는 다만 학생 쪽으로 돌아서서 가만히 바라다보고 있었다. "얘! 얘!" 하고 장은 말했다. "왜 그런 우울한 애꾸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니?" 그렇게 말하면서 젊은 장난꾸러기는 엉큼하게 활을 쏠 채비를 했다. "카지모도!" 하고 그는 외쳤다. "내가 네 별명을 바꿔 주겠다. 넌 앞으로 소경이라 불릴 것이다!" 학생은 활을 쏘았다. 날카로운 화살은 바람을 가르며 날아가 꼽추의 왼쪽 팔뚝에 꽂히었다. 카지모도는 팔에서 화살을 잡아 뽑아 그 투박한 무릎 위에서 태연히 분질렀다. 그런 뒤 그는 그 두 토막을 땅바닥에 던졌다기보다 오히려 떨어뜨렸다. 장은 다시 활을 쏠 겨를이 없었다. 화살을 부러뜨린 카지모도는 숨을 거칠게 내뿜곤, 메뚜기처럼 폴짝 뛰어 학생 위에 떨어졌다. 그러자 횃불이 일렁거리는 어슴푸레한 속에 무시무시한 광경이 보였다. 꼽추는 왼손으로 장의 두 팔을 꼭 붙잡고 있었다. 오른손으로는 그는 말없이 음산하리만큼 천천히, 장의 모든 무장을, 투구, 갑옷, 칼, 단도 할 것 없이 하나씩 하나씩 벗겨 냈다. 마치 한 마리의 원숭이가 호두 껍질을 벗기고 있는 것 같았다. 학생은 무장이 해제되고, 옷이 벗겨지고, 그 무서운 손 안에서 무력한 알몸이 되자, 그 귀머거리에게 말을 해보려고 하진 않았으나 문득 그의 얼굴에다 대고 뻔뻔스레 웃기 시작했다. 그는 그러나 웃음을 끝마치지 못했다. 카지모도가 회랑의 난간 위에 서서, 한쪽 손으로 장의 두발을 붙잡고, 투석기처럼 그를 벽 위에 휘두르는 것이 보였다. 그러자 둔탁하게 부딪쳐 터지는 소리가 들리고, 무엇이 떨어지는 것이 보였는데, 그것은 얼마쯤 떨어지다가 건물의 불쑥 나온 한 모서리에서 멎었다. 그것은 허리가 부러지고 머릿골이 쏟아져 나온 끔찍한 시체가 되어 거기 걸렸다. 무시무시한 함성이 거지들 속에서 일었다. "복수다! 공격이다! 쳐들어가자!" 가련한 학생의 죽음은 군중 속에 분노의 불을 질렀다. 군중은 치욕감에 사로잡히고, 성당 앞에서 한낱 꼽추에 의해 그토록 오랫동안 저지 당했다는 그런 분노에 사로잡혔다. 격분은 사다리들을 찾아 내게 하고, 더욱 많은 횃불에 불을 붙이게 했으며, 잠시 후 카지모도는 그 무시무시한 개미떼들이 노틀담을 공격하여 사방팔방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고 어리둥절했다. 사다리가 없는 자들은 고를 낸 밧줄을 갖고 있었다. 밧줄이 없는 자들은 조각물의 돋을 새김을 붙들고 기어오르는 것이었다. 그 표독스런 얼굴들은 분노로 번쩍거리고 있었고, 흙빛 이마엔 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광장은 무수한 횃불로 총총 빛났다. 여지껏 어둠 속에 파묻혀 있던 이 어지러운 무대는 갑자기 불빛이 타올랐다. 성당 앞뜰은 반짝이며 밝은 빛을 하늘로 던지고 있었다. 거지들은 아우성치고, 숨을 헐떡거리고, 욕지거리를 하면서 올라오고 있었고, 카지모도는 그토록 많은 적들에 대해 어쩔 바를 모른 채, 아가씨를 위해 치를 떨고, 격노한 얼굴들이 회랑으로 점점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 하늘에 기적을 빌고 있었다. 4 밤중의 거지떼들을 보기 전에 카지모도가 종탑 위에서 파리를 살폈을 때, 그는 생 탕투안 문 옆의 한 높은 건물 위층에 있는 유리창 하나를 반짝이게 하는 불빛 하나밖에 보지 못한 것을 독자는 기억하리라. 이 건물은 곧 바스티유였으며, 불빛은 루이 11세의 촛불이었다. 루이 11세는 이틀 전부터 파리에 와 있었다. 그는 이틀 후 그의 몽틸 레투르 성채를 향해 다시 떠날 예정이었다. 그는 파리에 드문드문 잠깐씩밖엔 나타나지 않았는데 그 까닭은, 파리에선 자기 주위에 충분한 함정과 교수대와 친위대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날 바스티유로 자러 왔었던 것이다. 그가 루브르 궁에 가지고 있던 25평짜리 방과 큰 침대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그 모든 큰 것들 속에 있으면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것이었다. 이 평면적인 왕은 작은 방 하나와 작은 침대 하나가 있는 바스티유를 더 좋아했다. 그리고 또 바스티유 성은 루브르 궁보다 방비가 견고했다. 국왕이 이곳에 자기 몫으로 잡아 두고 있던 작은 방은 그래도 꽤 넓었으며, 평범한 걸상도 볼 수 없었다. 거기엔 팔걸이가 달린 매우 훌륭한 접는 의자 하나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 나무는 붉은 바탕에 장미꽃들이 그려져 있고, 앉는 자리는 주홍빛 가죽에 가장자리가 기다란 명주 술로 장식되고, 수많은 금못이 박혀 있었다. 이 의자만 오똑하니 있는 것을 보면, 이 방 안에선 단 한 사람만이 앉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의자 옆으로 바로 창가에 무늬가 놓인 보를 씌운 책상 하나가 있었다. 이 책상 위엔 몇 장의 양피지와 몇 개의 깃털 펜과 한 개의 은잔이 있었다. 좀더 저쪽으론 금장식을 한 진홍빛 벨벳의 기도대가 보였다. 끝으로 안쪽엔 노랑과 살빛 무늬의 피륙으로 된 수수한 침대 하나가 놓였는데, 장식끈도 없고 가장자리의 술 장식도 변변치 않았다. 필자가 거기로 독자를 안내했을 때 이 은거처는 퍽 캄캄했다. 소등 신호는 한 시간 전에 울렸는데, 방 안엔 책상 위에 놓인 촛불 하나만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다섯 명의 인물을 밝혀 주고 있었다. 불빛이 떨어지고 있는 첫째 인물은, 짧은 바지에 주홍빛 저고리, 금나사의 소매가 달린 옷차림을 한 관리였다. 이 옷엔 불빛이 뛰놀고 있어. 그 주름마다 불꽃의 광이 나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사나이는 허리띠에 훌륭한 단도 한 자루를 차고 있는데, 도금한 은 손잡이엔 투구 꼭대기 꼴의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그는 험상궂고 교만하고 건방지게 생겼다. 그 얼굴엔 첫눈에 거만한 티가 보였고, 뜯어보면 교활한 태도가 보였다. 그는 기다란 종이를 들고, 그 팔걸이 달린 의자 뒤에 서 있는데, 이 의자 위엔 매우 초라한 옷차림을 한 인물 하나가 몸을 구부리고, 두 무릎을 위아래로 포개고, 책상에 팔꿈치를 짚은 채 앉아 있었다. 테두리를 두른 보잘것없는 모자를 쓴 사람을 실제로 상상해 보라. 이런 것이 이 앉아 있는 인물에 관해 알 수 있었던 것의 전부였다. 그는 머리를 가슴 위에 어떻게나 푹 수그리고 있던지, 그림자로 가려진 그 얼굴은 아무것도 볼 수 없었으나, 다만 그 위에 불빛 한 줄기가 떨어져 있는 코끝만은 보이고 있었는데, 그 코는 퍽 길었음에 틀림없었다. 쭈글쭈글한 그 손이 빼빼 마른 것으로 보아 그가 늙은이란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바로 루이 11세였다.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플랑드르 식으로 재단된 옷을 입은 두 사나이가 나직한 소리로 지껄이고 있었는데, 어둠 속에 완전히 파묻혀 있진 않았으므로, 그랭구아르의 희곡 상연에 참석했던 사람이라면, 그들이 플랑드르 사절단의 두 주요 멤버인 교므 랭과 자크 코프놀이란 걸 알아볼 수 있었을 것이다. 끝으로, 맨 안쪽 문 옆에, 건장한 사내 하나가 조각상처럼 꼼짝 않고 있는데 기사의 갑옷을 입은 그의 팔다리는 실팍지고, 그 네모진 얼굴엔 두 눈이 툭 불거져 있고, 커다란 입이 째져 있어서, 개와 호랑이의 상판을 동시에 닮았다. 왕을 제외하곤 모두 모자를 쓰고 있지 않았다. 의자 옆에 서 있는 그 관리는 기다란 계산서 같은 것을 읽고 있는데, 왕은 그것을 주의 깊게 듣고 있다가 말했다. "짐의 하인들 옷에 50솔, 왕실 성직자들의 망토에 12리브르! 잘한다, 몇 톤이고 금을 퍼붓게나! 그댄 머리가 돌았나, 올리비에?" 그렇게 말한 늙은이는 머리를 들었다. 그 목에 걸린 성 미카엘 목걸이의 금조가비들이 번쩍거렸다. 촛불은 살이 빠지고 침울해 보이는 그의 옆모습을 환히 비춰 주었다. 그는 상대방의 손에서 종이를 잡아챘다. "그댄 짐을 파산시키는 군! 이게 다 뭐야? 무엇 때문에 짐이 이렇게 굉장한 집을 필요로 한단 말이요? 매월 일 인당 100솔! 한 명의 사환에게 연 90리브르! 네 명의 조리사에게 일 인당 연 120리브르! 고기 요리사 한 명, 스프 요리사 한 명, 소스 요리사 한 명, 생선 요리사 한 명, 식료품 보관 무사 한 명, 소년 요리사 두 명에게 매월 10리브르씩! 짐꾼 한 명, 과자 제조인 한 명, 빵 제조인 한 명에 각각 일 인당 연 60리브르! 게다가 국고금 출납 실장에 120리브르! 게다가 감사관에 500리브르! ...난 뭐가 뭔지 모르겠군. 이건 어처구니가 없는데! 우리 하인들의 급료는 숫제 프랑스를 약탈에 내맡겨 놓은 셈이다. 루브르 궁에 넣어 둔 재보는 이와 같은 비용의 불에 싸그리 녹아 버리겠다!" 그는 기침을 몇 번 하고 말을 계속했다. "올리비에 경, 대영주들 위에 군림하는 국왕과 군주들은 자기 왕실 안에 사치가 싹트게 해선 안 되는 거요. 왜냐하면 그 불은 왕실로부터 시골로 번져 가기 때문이오. 올리비에 경, 이 점을 잘 알고 있어야 되오. 짐의 경비는 해마다 증가해 가고 있는데, 짐은 그걸 좋아하지 않소. 어찌 된 거야, 우라질! 79년까지만 해도 경비는 3만 6천 리브르를 넘어서지 않았어. 80년엔 4만 3천 6백 19리브르에 달했고,-난 머리 속에 숫자를 딱 넣어 놓고 있거든-81년엔 6만 6천 6백 80리브르에 달했는데! 금년엔 8만 리브리에 달했단 말이야! 4년 동안에 갑절이 된 셈이오!" 그는 숨이 찬 듯 잠깐 쉬었다가 다시 격하여 말을 이었다. "내 주위엔 내 야윔으로써 살쪄 가는 사람들밖에 보이지 않아! 그대들은 내 모든 털구멍으로 돈을 빨아 먹고 있는 거야!" 모두들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 있었다. 그것은 터뜨리는 대로 내버려 두어야 하는 그런 격노였다. 여기서 그는 자기의 강력함을 느껴 미소를 짓고, 따라서 역정도 좀 누그러져서는, 플랑드르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안 그렇소, 교므 나리? 요리장도, 시종장도, 하찮은 하인만 못하단 말이오. 이 점을 잊지 마오, 코프놀. 그 녀석들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소... 음, 나도 에드워드 왕과 같은 의견이야. 즉 '민중을 구하고 영주들을 죽이라'는 의견 말이야, 계속하게, 올리비에" 그가 그런 이름을 부른 인물은 그의 손에서 다시 장부를 집어다가, 음성을 높여 읽기 시작했다. "파리 시 국새상서의 고용인에게, 종전의 다른 도장들이 낡고 헐어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까닭에, 새로 만들게 한 대가로 파리 주화 12리브르. 성 프란체스코 회의 수도사 한 명에게, 한 죄인의 고해료로서 파리 주화 4솔..." 왕은 말없이 듣고 있었다. 그는 때때로 기침을 했다. 그럴 때면 은잔을 자기 입술로 가져가, 얼굴을 찌푸리면서 한 모금씩 마시곤 했다. "푸우! 고약스런 탕약이로군!" 올리비에는 다음으로 넘어갔다. "파리 재판소의 수석 사형 집행관에게 파리 주화 60솔의 금액. 이것은 파리 시장이 그에게 액수를 정 해 주고 지시한 것으로, 재판에서 죄과로 말미암아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들을 처형하고 참수하는 데 쓰는 큰 칼을 갖추기 위해서 소요되었으며..." 왕은 중단시켰다. "그만하면 됐어. 난 기꺼이 그 금액의 지불 명령을 내리겠소. 난 그런 비용은 아끼지 않아. 그런 돈을 아깝게 여겨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어" 그 말이 끝날 무렵, 문이 열리더니 새로운 인물 하나가 헐떡거리며 방 안으로 뛰어들어와 외쳤다. "폐하! 파리 시내에 민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루이 11새의 근엄한 얼굴은 긴장했으나, 그의 감동 속에서 눈에 보였던 것은 번개처럼 지나가 버렸다. 그는 자제하여, 태연하고 준엄한 낯으로 말했다. "여보게 자크, 왜 그렇게 느닷없이 들어오나!" "폐하! 반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자크라는 친구는 헐떡거리면서 거듭 말했다. 왕은 그의 팔을 덥썩 잡고 격분하여, 플랑드르 사람들을 곁눈질하면서 그에게만 들리도록 말했다. "아무 말 말거나 조용히 말해" 이 사나이는 그제야 알아채고, 매우 나지막한 소리로 매우 무서운 얘기를 하기 시작했으나, 왕은 침착하게 듣고 있었으며, 한편 교므 랭은 코프놀에게, 새로 온 사나이의 얼굴과 옷을, 그 모피 두건과 그리고 회계 감사원 원장임을 알려주는 그의 검은 빌로드 법의를 가리켜 보이고 있었다. 이 인물이 왕에게 약간의 설명을 해주자마자, 루이 11세는 깔깔 웃으면서 외쳤다. "과연! 그런 거라면 크게 얘기하게나, 쿠악티에 군! 그렇게 작은 소리로 말할 필요가 뭐 있겠나? 우리가 우리 플랑드르의 좋은 친구들에게 감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건 성모 마리아께서 알고 계신다네" "그러하오나 폐하..." "크게 얘기하게! 그러니까 우리 파리 시에 민중의 동요가 일어났다 그 말이지?" "네, 페하" "그리고 그것은 파리 재판소의 원장에게로 몰려가고 있다고 그랬겠다?" "그렇습니다" "그래, 그들은 법원장에게 무슨 불만이 있나?" "그야 그가 그들의 영주 노릇을 한다고 해서 불만이지요" "정말?" "그렇습니다, 폐하. 그건 기적궁의 불한당들입니다. 벌써 오래 전부터 그들은 법원장에게 불평을 품어 오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를 재판관으로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법원에 대한 그들의 모든 청원에 있어서 그들은 폐하와 그들의 신이라는 두 주인밖에 모시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 신이라는 건 악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음! 음!" 왕은 만족스런 듯 빙그레 웃으며 대꾸했는데, 그는 그런 미소를 감추려고 애썼지만 허사였다. 그는 물었다. "그들은 다수인가?" "줄잡아 6천은 됩니다. 폐하께서 속히 구원군을 보내시지 않는다면 그는 파멸입니다" "보내겠다" 왕은 겉으로 정색을 해 보이면서 운을 떼고, 한동안 있다가 말을 이었다. "좋아! 물론 보내고 말고. 법원장은 짐의 친구거든. 대담한 놈들이로군. 뻔뻔스럽기가 이만저만 아닌 데에 짐은 몹시 화가 나는걸. 그러나 오는 밤 짐의 주위에는 사람이 얼마 없어. 내일 아침이라도 늦지 않겠지?" 자크라는 친구는 부르짖었다. "즉시 보내십시오, 폐하! 그때까지 재판소는 스무 번이라도 노략질 당하고, 법원장은 교수를 당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왕은 그를 똑바로 쏘아보았다. "내일 아침이라고 그러지 않았나!" 그것은 그 앞에서 아무도 대꾸할 수 없는 그런 시선이었다. 갑자기 그는 폭발했다. "우라질! 짐의 나라에서 재판관이다, 영주다, 상전이다 하고 주장하고 있는 그 작자들은 다 뭐야? 걸핏하면 통행세를 받고, 재판을 하고 잠의 백성들 속에 네거리마다 망나니를 갖고 있는 그 작자들은? 그런 격과, 마치 희랍인이 샘마다 신이 있다고 믿고, 페르시아인이 별마다 신이 있다고 믿었던 것과 같이, 프랑스인은 자기들에게 보이는 교수대만큼이나 많은 왕을 갖고 있는 셈이다! 이건 정말 틀려먹었다. 이런 혼란은 싫다. 파리에 국왕 외에도 도로 관리관이 짐의 최고 최고 법원 외에 재판소가 있고, 이 제국에 짐 이외에 국왕이 있다는 것이 하느님의 은혜인지 어떤지 알고 싶구나!" 그는 자기 모자를 들어올리고 그 어떤 몽상에 잠겨 마치 사냥개떼를 몰아 대는 사냥꾼 같은 표정으로 계속했다. "좋아! 내 백성들아! 용감하라! 저 가짜 영주들을 분쇄하라! 자, 어서! 어서! 그들의 목을 매달고 그들을 노략질하라!" 여기서 그는 갑자기 말을 뚝 끊고, 누설된 자기 생각을 도로 움켜 넣으려고 하는 듯 입술을 깨물고, 자기 주위에 있는 다섯 인물을 하나하나 번갈아 쏘아보고, 그러고는 갑자기 자기 모자를 두 손으로 움켜 잡고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오, 네가 만일 내 머리 속에 있는 것을 안다면 난 너를 태워 버리겠다!" 그런 뒤 엉큼하게 제 굴 속으로 돌아오는 여우와 같은 조심스런 눈으로 다시 좌우를 돌아보면서 뇌까렸다. "상관없다! 짐은 법원장을 구원하겠소. 불행이 지금 여기엔 그렇게 많은 민중에 대항하는 데 쓸 군대가 조금밖에 없소. 내일까지 기다려야만 되겠소. 시내에 다시 질서를 회복시키고, 잡히는 것은 모조리 가차없이 교수해 버릴 것이오" "그런데 참, 폐하!" 쿠악티에라는 친구가 말했다. "처음엔 경황이 없어 아룁기를 잊었는데, 야경대가 낙오자 둘을 체포했습니다. 폐하께서 그자들을 보시려면 저기 있습니다" "암 보고 말고! 우라잘! 그런 걸 다 잊어버리다니! 어서 그들을 데려 오라" 그러자 그는 나갔다가 잠시 후 친위 헌병대원들에게 둘러싸인 두 포로를 데리고 돌아왔다. 첫째 포로는 술에 취하고 놀란 바보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둘째 포로는 창백하고 생글생글 웃고 있는 얼굴이었다. 왕은 잠시 아무 말 없이 그들을 살펴보다가, 느닷없이 첫째 사내에게 말을 걸었다. "네 이름이 뭐냐?" "지에프루아 팽스부르라고 합지요" "넌 폭동에서 무슨 짓을 하려 했느냐?" 거지는 얼빠진 듯 두 팔을 흔들거리며 왕을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이 가길래 저도 갔습죠" "그대의 영주인 재판소 원장을 무엄하게 공격하려던 것이 아니었더냐?" "제가 알고 있는 건, 사람들이 누군가의 집에 가서 뭔가를 훔치려 했었다는 것. 그것뿐이에요" "저기 저 사내는 너의 한패렷다?" 루이 11세는 다른 포로를 가리키면서 물었다. "아닙니다. 저는 저 사람을 모르는뎁쇼" "그만하면 됐다" 왕은 말하고는 앞서 말한 바 있었던, 문 옆에 꼼짝 않고 서 있는 인물에게 손가락으로 신호를 했다. "트리스탕, 이놈을 네게 준다" 트리스탕은 절을 했다. 그는 이 가련한 거지를 끌고 온 두 헌병에게 나직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그러는 동안, 왕은 둘째 포로의 옆에 가 있었는데, 포로는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있었다. "네 이름은?" "폐하, 피에르 그랭구아르올시다" "네 직업은?" "철학자올시다, 폐하" "고얀 놈 같으니, 너는 어떻게 감히 짐의 친구인 파리 재판소 원장을 공격하러 갈 수 있느냐!" "폐하, 신은 거기 가담하질 않았나이다" "아니, 이런 놈 봤나! 넌 그 불량배들과 같이 있다가 체포된 게 아니냐?" "아니올시다, 폐하. 사람들이 착각을 한 겁니다. 신은 비극을 짓는 사람이올시다. 폐하, 신은 시인이올시다. 밤중에 거리에 나간 것은 신과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우울증 때문입니다. 신은 엊저녁에 거길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잘못 알고 신을 체포했습니다. 폐하께 간절히 바라옵건데..." "닥쳐!" 왕은 탕약을 한 모금 마시고는 다시 말했다. "년 매우 말이 많은 놈이로구나" 트리스탕이 한 발 걸어나와 그랭구아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폐하, 저놈도 교수를 해도 좋겠습니까?" 하고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흥!" 하고 왕은 건성으로 대답했다. "별로 나쁠 게 없겠지" 이 순간 우리의 철학자는 올리브보다도 더 새파랬다. 그는 국왕의 냉정하고 무관심한 얼굴에서, 이제 그 어떤 비장한 것에 호소할 수밖엔 딴 길이 없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폐하께서는 부디 신의 말씀을 들어 주소서. 폐하! 신과 같은 하찮은 것에 천둥을 치지 마소서. 하느님의 큰 벼락은 배추 같은 것을 때리진 않는 법이외다. 폐하, 얼음 조각이 불꽃을 일게 할 수 없는 것 이상으로 반란을 선동할 수 없는 이 가련한 사나이를 측은하게 여겨 주옵소서! 온화함은 사자와 군왕의 미덕이옵니다. 신은 폐하의 충성스런 신하로소이다. 아내의 정조를 위해 남편이 갖는 질투심, 아버지를 사랑하기 위해 자식이 품는 효심, 이런 것들을 착한 신하는 자기 군왕의 영광을 위해 가져야 하고, 자기 봉사의 증가를 위해 노심초사해야 합니다. 그를 열중케 하는 그 밖의 모든 정열은 발광에 불과합니다. 폐하, 이것이 국가에 대한 신의 신조올시다. 그러므로 팔꿈치가 헌 신의 옷을 보시고 신을 폭도나 강도라고 판단하진 마소서. 아아! 신이 지극히 부자가 아님은 사실입니다. 신은 오히려 가난한 편이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못돼 빠지진 않았나이다. 가난한 건 제 탓이 아닙니다. 문학에선 큰 부자가 나오지 않고, 훌륭한 책에 가장 정통한 자들이라 해서 반드시 겨울에 따스한 불을 갖게 되진 않는다는 건 누구나 다 잘 아는 바이올시다. 엉터리 변호사들만이 곡식알을 모두 차지해 버리고, 다른 학문적인 직업들엔 짚밖에 남겨 놓지 않습니다. 철학자들의 구멍 뚫린 외투에 관해선 매우 훌륭한 속담이 마흔 개나 있는 터입니다. 오! 폐하! 인자함은 다른 모든 미덕 앞에서 횃불을 들어 줍니다. 자비로움은 인자함과 같은 것으로, 신하들의 사랑을 얻게 하며, 신하들의 우러름을 얻게 하며, 신하들의 사랑은 군주의 몸엔 가장 강력한 호위대가 되는 것이올시다. 이 지상에 신 같은 가련한 사나이가 하나 더 있은들, 불행의 암흑 속에서 절벅거리고 있는 처량한 철학자가 하나 더 있은들 폐하께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그뿐 아니라 폐하, 신은 문학자올시다. 신은 플랑드르 공주와 왕태자 전하를 위해 매우 적절한 축혼가 하나를 지었나이다... 신은 교수를 당한다는 생각에 매우 놀라고 있음을 단언하나이다!" 그렇게 말하면서 그랭구아르는 왕의 실내화에 입을 맞추고 있었는데, 교므 랭은 코프놀에게 나지막하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땅바닥에 엎드리는 건 잘하는 일이오. 왕들이란 크레트의 쥬피터와 같아서, 그들은 발에밖에 귀가 없거든요" 그랭구아르가 마침내 몹시 헐떡거리면서 말을 그쳤을 때, 그는 떨면서 왕을 우러러보았는데, 왕은 자기의 짧은 바지의 무릎에 있는 하나의 얼룩을 긁고 있었다. 그런 뒤 왕은 탕약의 은잔으로 약을 마시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고 있었는지라, 그 침묵은 그랭구아르에겐 무척 고통스러웠다. 왕은 마침내 그를 바라보았다. "이건 이만저만 시끄러운 놈이 아니로군! 좋아, 저놈을 놓아 줘라!" 그랭구아르는 너무나도 기쁨에 놀라 뒤로 나동그라져 버렸다. "아이고 살았다! 참으로 위대하신 군왕이시다!" 그리곤 행여 취소 명령이라도 내릴까 두려워서, 트리스탕이 마지못해 열어준 문 쪽으로 뛰어나갔다. 법원장에 대한 반란이 알려진 이후, 왕의 기분 좋아함은 모든 것 속에 드러나 보이고 있었다. 그는 의자와 팔걸이 위에서 즐거운 듯 손가락으로 행진곡을 치고 있었다. 이는 속을 드러내지 않는 군주였으나, 기쁨보다는 고통을 훨씬 더 잘 감출 줄 아는 사람이었다. 어떤 희소식을 들었을 때에도 겉으로 기쁨을 드러내는 그 태도는 때로 무척 심한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폐하!" 자크 쿠악티에가 불쑥 외쳤다. "폐하께서 소신을 부르시게 한 그 병환은 어찌 되었나이까?" "오!" 왕은 말했다. "참으로 고통이 심하오, 친구. 귀에선 휘파람 소리가 나자, 가슴에선 불갈퀴가 긁는 것 같아" 쿠악티에는 왕의 손을 잡고 유능한 표정으로 맥을 짚기 시작했다. "보시오, 코프놀" 교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저분은 쿠악티에와 트리스탕 사이에 끼여 있어요. 이것이 그의 조정 신하의 전부요, 그를 위한 한 의사와 다른 사람을 위한 한 망나니와..." 국왕의 맥을 짚으면서, 쿠악티에는 더욱더 근심스런 얼굴을 해 가고 있었다. 루이 11세는 좀 걱정스런 듯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의사는 눈에 띄게 얼굴이 흐려져 가고 있었다. 이 정직한 사내는 국왕의 나쁜 건강밖엔 다른 정답이 없었으므로 그것을 가능한 이용하기로 했다. "허허!" 그는 마침내 중얼거렸다. "이건 아닌게 아니라 위중하십니다" "그렇지?" 왕은 걱정스런운 눈으로 대꾸했다. "이것은 사흘 안으로 그 사람을 앗아갈 수 있습니다" "아뿔사! 그래, 약은?" "그걸 생각하고 있습니다, 폐하" 그는 루이 11세에게 혀를 꺼내게 하고, 고개를 끄덕거리고, 얼굴을 찌푸리고, 그리곤 짐짓 인상을 쓰면서, "아, 정말 폐하, 꼭 아뢰고 싶은 말씀이 있는데요. 교구 세리직 하나가 비어 있고 소신에겐 조카 하나가 있답니다" 하고 불쑥 말했다. "그 세리직을 그대 조카에게 주겠다, 자크. 그러나 가슴에서 이 불을 끌어내 줘" 하고 왕은 대답했다. 쿠악티에는 코가 땅에 닿게 절을 하곤 말했다. "폐하, 소염제가 폐하의 병환을 쾌유시킬 것입니다. 납연고와 아르메니아 진흙과 달걀 흰자위와 기름과 그리고 초로 조제한 커다란 약제를 폐하의 허리에 붙여 드리겠습니다" 반짝이는 촛불은 한 마리의 각다귀만 끌어당기지 않는다. 올리비에라는 친구는 국왕이 선심을 쓰는 것을 보고, 이때야말로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며 자기도 다가갔다. "폐하..." "또 뭐냐?" "폐하께선 시몽 라댕 나리가 죽은 걸 알고 계시겠지요?" "그래서?" "그는 국고 감사 담당 국왕 보좌관이었습니다. 자리가 비어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올리비에의 거만한 얼굴은 교만한 표정을 떠나 비열한 표정으로 변해 갔다. 왕은 그를 똑바로 쏘아보더니 무뚝뚝한 어조로 말했다. "알겠다. 올리비에 경, 이걸 들어 보오. 짐은 기억력이 좋아. 짐은 68년에 그대를 시종을 시켰고, 69년엔 투르 주화 100리브르의 녹봉을 받는 퐁드 생클루 성의 관리자를 시켰어. 73년 11월엔 시종 질베르 아클 대신 뱅세느 숲의 관리인을 시켰고, 75년엔 루브레 레생 클루 숲의 영주로 봉했고, 78년엔 생제르맹 학교에 위치하는 시장을 관리케 하여, 친절하게도 그대와 그대의 아내에게 파리 주화 10리브르의 연금을 주었고, 그 다음엔 로슈 성의 대장을, 그 다음엔 생 캉탱의 사령관을 그 다음엔 퐁 드 묄랑의 대장을 시켜, 그댄 묄랑 백작으로 불리고 있는 터이오. 축제일에 면도질해 주는 이발사 누구나가 지불하는 5솔의 벌금에서 3솔은 그대에게 돌아가고, 짐은 그 나머질 받을 뿐이오. 우라질! 그댄 포만하지도 않는가? 그리고 그댄 한 마리의 연어가 더 생기면 그대의 배를 뒤집어 엎을까 염려되지도 않는가? 교만 뒤엔 항시 몰락과 치욕이 따르는 법이오. 이 점을 생각하고 잠자코 있으오" 이 준엄한 꾸짖음을 듣고, 올리비에의 오만 불손한 태도엔 원망의 표정이 떠올랐다. 루이 11세는 눈을 껌뻑거리더니 잠시 후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여보게나, 우리는 틀어지지 말았으면 하네. 우린 오랜 친구가 아닌가. 이제 밤도 매우 깊었고, 짐은 정무를 끝마쳤소. 내게 면도질이나 해주오" 독자들은 이 '올리비에 나리' 속에, 하느님의 섭리가 그렇게도 교묘히 루이 11세의 긴 유혈극에 섞어 놓은 저 무서운 피가로의 모습을 알아보았으리라. 이 국왕의 이발사는 두 가지 별명을 갖고 있었다. 조정에서는 그는 예의 바르게도 '사슴 올리비에'라 불리고, 백성들 사이에서는 '악마 올리비에'라 불렀다. "암 그렇고말고!" 루이 11세는 이상하게도 친절하게 말을 이었다. "의사가 그대보다 더 신임이 있는 건 간단한 이치지. 그는 짐의 전신을 손아귀에 쥐고 있지만, 그댄 짐의 턱밖에 쥐고 있지 않으니 말일세. 자, 나의 이발사, 그대의 청을 들어줄 기회가 또 오겠지. 내가 만일 한 손으로 자기 수염을 붙잡고 잇는 버릇이 있었던 저 실페릭 왕과 같은 임금이라면, 그댄 대관절 뭐라고 할 것이며, 그대의 직책은 뭣이 되겠는가? ...여보게, 어서 자네 할 일이나 하게. 가서 필요한 연장을 가져와" 올리비에는 왕이 웃기로 마음을 먹었는지라, 그를 성나게 할 길조차 없음을 보고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투덜거리며 나갔다. 왕은 일어나서 창가로 다가가더니 갑자기 비상하게 흥분해서 창문을 열며 "아! 그렇군" 하고 손뼉을 치면서 외쳤다. "시테 위의 하늘이 빨갛구나. 법원장이 타고 있는 거다. 아! 내 갸륵한 백성들아! 드디어 그대들은 나를 도와 영주권을 타도하는구나!" 그러고는 플랑드르 사람들 쪽을 돌아보았다. "여러분, 이리 좀 와서 보오. 저것에 저항하기란 어렵지 않을까?" "물론이죠, 폐하! 몇 중대의 군사를 축내도 허사일 겁니다" "아! 난 그렇지 않아. 만일 내가 원한다면..." 옷장수는 대담하게 대꾸했다. "만일 저 반란이 제가 추측하는 그대로의 것이라면, 폐하께서 아무리 원하셔도 소용없을 것입니다" "노형" 하고 루이 11세는 말했다. "내 친위대 2개 중대와 세르팡틴 대포의 사격만 퍼붓는다면, 저런 천민의 오합지졸쯤이야 문제도 없소" 옷장수는 교므 랭이 자꾸 눈짓을 하는데도 아랑곳없이, 끝내 왕에게 대항하려 드는 것 같았다. "폐하, 스위스의 용병들 역시 천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부르고뉴 공작은 대귀족이어서, 그 하층민들을 깔보고 있었습니다. 결국 농민들에 부딪쳐 부르고뉴의 번뜩거리는 군대는 돌에 얻어맞은 유리처럼 부서져 버렸습니다" "그댄 전쟁 얘기를 하고 있는데, 지금 문제가 되는 건 폭동이오. 그러니 내가 눈살 한 번만 찌푸리고 싶어질 땐 몽땅 쓸어 버릴 수가 있소" "그럴 수도 있겠지요, 폐하. 그러나 그런 경우엔, 민중에게 아직 때가 안왔기 때문이겠죠" 루이 11세는 옷장수의 어깨 위에 친히 손을 올려놓았다. "그래, 나리, 지금 뭐라고 했더라...?" "제 말씀은, 폐하, 아마 폐하의 말씀이 옳을지도 모르며 민중의 때가 폐하의 나라엔 아직 안 온 것이라고 했나이다" "그럼 언제나 그때가 올까요, 나리.?" "폐하는 그때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는 것을 들으시리다. 폐하, 여기 평민들과 군사들이 있습니다. 저 망루가 웅성거릴 때, 대포들이 울릴 때, 저 주루가 요란스럽게 무너질 때, 종은 울리리다" 루이 11세의 얼굴은 침울해지고 멍해졌다. 그는 한참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마치 군마의 엉덩이를 어루만지듯, 그 주루의 두꺼운 벽을 손으로 다독거렸다. "오! 그렇지 않다! 넌 그렇게 쉽사리 무너지진 않을 게 아니냐, 나의 훌륭한 바스티유야!" 이때 '사슴 올리비에'가 되돌아왔다. 그의 뒤엔 국왕의 화장 도구를 받드는 두 시종이 따르고 있었지만, 루이 11세가 놀란 것은, 그는 그 밖에도 파리 시장과 야경대장을 옆에 거느리고 있었고, 그들은 모두 당황하고 있었다. 앙심을 품은 이발사 역시 당황한 얼굴을 하고 있었으나, 속으로는 은근히 기뻐하고 있는 듯했다. 그가 입을 열었다. "폐하, 소신이 상서롭지 못한 소식을 드리게 되는 것을 부디 용서하소서" "무슨 일이냐?" "폐하!" 하고 올리비에는 격렬한 타격을 가하게 되는 것을 기뻐하는 사람과 같은 심술궂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저 민란은 법원장에 대해 일어나고 있는 게 아닙니다" "그렇다면 누구에 대해 일어나고 있는 거냐?" "폐하에 대해서올시다" 늙은 왕은 젊은이처럼 벌떡 똑바로 일어섰다. "그 이유를 대라, 올리비에! 그 이유를 대라! 그리고 네 머리를 잘 지켜라. 왜냐하면, 만일 그대가 이 시간에 짐에게 거짓말을 한다면 뤽상부르공의 목을 벤 칼이 또 네 목을 썰지 못할 만큼 이가 빠지진 않았다는 것을 생 로의 십자가에 대고 맹세하기 때문이다!" 맹세는 무시무시했다. 이 성당의 십자가에 대고 맹세한 것을 어기는 사람은 그 해 안으로 죽는다고 당시 사람들은 믿고 있었다. 루이 11세가 이 십자가에 대고 맹세한 적은 평생에 두 번밖에 없었다. 올리비에는 대답하려고 입을 열었다. 그러나 국왕은 사정없이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무릎을 끓어라! 트리스탕, 이 사나이를 감시하라!" 올리비에는 무릎을 끓고 냉정하게 말했다. "폐하, 마녀 하나가 폐하의 최고 법원 재판에 의해 사형 선고를 받았었습니다. 그런데 사형 직전에 그 여잔 노틀담 안으로 피신했습니다. 민중은 폭력으로 거기서 그 여자를 다시 끌어내 가려 하고 있습니다. 헌병대장과 야경대장이 폭동 현장으로부터 여기 와 있으니, 만일 소신의 말이 진심이 아니라면 부인할 것입니다. 민중이 포위 공격하고 있는 것은 노틀담이올시다" 왕은 분노로 새파랗게 질려 와들와들 떨면서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노틀담을! 그놈들이 저 노틀담 대성당 안의 내 주 성모를 포위 공격하고 있다고? 일어나라, 올리비에! 네 말이 옳다. 네게 시몽 라댕의 자리를 주겠다. 네 말이 옳다, 놈들이 공격하는 건 바로 나다. 그 마녀는 성당의 보호 아래 있고, 성당은 나의 보호 아래 있다!" 그는 격분으로 되젊어져서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그는 이제 웃고 있지 않았다. 그는 무시무시했다. 여우는 하이에나로 변해 있었다. 입술은 실룩거리고, 야윈 주먹은 경련하고 있었다. 그는 갑자기 고개를 들었는데, 쑥 들어간 그의 눈은 유난히 반짝였으며 그 목소리는 나팔처럼 터졌다. "트리스탕! 그 악당들에게 칼을 내려라! 자, 트리스탕! 이리 오라, 짐의 옆에. 이 바스티유 성 안에 지프 자작의 창병 50명이 있으니, 합하여 3백 기병이 되는 셈인데, 그댄 그것을 지휘하라. 또 샤토페르 의 친위 대원들을 지휘하라. 생 폴관에는 태자의 새 위병대원 40명이 있으니 그것도 지휘하라. 이 모든 병력을 거느리고 노틀담으로 달려가라. 몰살하라, 트리스탕! 모조리 잡아 몽포콩의 형장으로 보내라" 트리스탕은 절을 하였다. "좋습니다, 폐하! 그리고 그 마녀는 어떻게 하오리까?" 국왕은 곰곰이 생각했다. "그 마녀 말이지! 에스투트빌 씨, 민중은 그 여잘 어떻게 하려고 했던가?" 파리 시장은 대답했다. "폐하, 소신의 생각으로는, 민중이 그 여자를 노틀담의 피신처로 와서 끌어내 가려고 하는 것으로 보아, 그 여자가 처벌되지 않은 데에 분개해 직접 목을 매달려고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왕은 심사숙고하는 것 같더니, 트리스탕을 향해 명하였다. "좋아! 민중을 몰살하고 마녀를 교수하라" 5 바스티유에서 나온 그랭구아르는 생탕투안 거리를 냅다 내려갔다. 보두아예 문에 이르자 그 광장의 한복판에 서 있는 돌십자가를 향해 똑바로 걸어갔는데, 마치 그는 어둠 속에, 그 십자가를 섬돌 위에 앉아 있는 검은 옷과 검은 두건을 쓴 한 사나이의 얼굴을 알아보고 그렇게 하는 것 같았다. 검은 옷 입은 사람은 일어섰다. '이런 죽일 놈 같으니! 넌 날 애끓게 하는군, 그랭구아르!" "오, 선생님" 하고 그랭구아르는 대꾸했다. "그게 제 탓이 아니라 야경대와 임금님 탓입니다. 전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넌 만사를 그르쳐 놓는다. 하지만 빨리 가자. 암호는 알고 있나?" "상상 좀 해보세요, 선생님, 제가 임금을 뵈었다는 걸. 거기서 오는 길이거든요. 임금은 짧은 바지를 입고 계시더군요. 기막힌 모험이었죠" "오! 무슨 말이 그렇게 많은가! 네 모험이 내게 무슨 상관이야? 거지들의 암호는 알고 있느냐 말이다!" "알고 있으니 안심하십쇼. '어슬렁 불꽃'입니다" "좋아. 그렇잖으면 우린 성당까지 뚫고 갈 수가 없을 테니 말야. 거지들은 거리를 막고 있어. 다행히 그들은 저항을 당한 것 같아. 어쩌면 아직도 늦지 않을지 몰라. 자, 빨리 가자!" 두 사람은 시테 쪽을 향해 성큼성큼 내려갔다. 한편, 독자는 아까 필자가 카지모도를 위기에 빠뜨려 놓고 온 것을 알고 있으리라. 이 귀머거리는 사방에서 포위되어, 모든 용기를 잃어버리진 않았다 하더라도 적어도 아가씨를 구출하는 희망은 전혀 잃어버리고 있었다. 그는 넋을 잃고 회랑 위를 뛰어다녔다. 노틀담은 바야흐로 거지들에게 점령당하려 하고 있었다. 그러던 판에, 난데없이 말들이 달리는 소리가 이웃 거리에 요란스레 울리더니, 기다란 횃불의 대열과 전속력으로 내딛는 밀집한 기마대 행렬이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면서 광장 위로 쏟아져 들어왔다. "위대한 프랑스! 천민들을 무찔러라! 샤토페르의 구원병이 출동했다! 헌병대다!" 거지들은 질겁하여 방향을 전환했다. 그러나 그들은 씩씩하게 행동했다. 그들은 결사적으로 저항했다. 혼전은 무시무시했다. 그것은 늑대의 살을 물어뜯는 개의 이빨 격이었다. 국왕의 기병들 한복판에서는 페뷔스 드 샤토페르가 용감히 행동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가차없이 찔러 대고, 쳐서 죽지 않는 자들은 베어서 죽였다. 거지들은 무장이 변변치 않은지라, 땀을 뻘뻘 흘리면서 물어뜯고 있었다. 남자 여자 어린애 할 것 없이 모두들 말 엉덩이와 어깨에 달려들고, 이빨과 네발의 발톱으로 매달려 있었다. 어떤 자들은 기병들의 목을 쇠갈고리로 찔러 끌어당기고 있었다. 그들 중 한 사람은 번쩍거리는 커다란 낫 한 자루를 갖고, 오랫동안 말다리를 베어 넘기고 있었다. 그는 콧노래를 부르면서 쉴 새 없이 낫을 밀었다 당겼다 하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주위엔 둥그렇게 다리들이 잘려 쓰러지는 것이었다. 그는 그렇게 침착하고 유유히, 밀밭을 베어 들어가는 농부처럼 머리를 흔들고 숨을 고르게 내쉬면서, 가장 밀집한 기병들 속으로 쳐들어가고 있었다. 그것은 클로팽 트루유프였다. 그러다가 화승총의 사격에 그는 쓰러져 버렸다. 그러는 사이에 집집의 창문이 열렸다. 근처 사람들은 국왕의 군사들이 싸우는 소리를 듣고 사건에 가담했는지라, 모든 집의 창으로부터 총알이 비오듯 거지들 위에 떨어졌다. 마침내 거지들은 흔들렸다. 피로와 무장의 부족, 창문에서의 사격, 국왕 군사들의 용감한 타격, 이런 모든 것들이 그들의 힘을 꺾었다. 그들은 공격자들의 신을 뚫고 뿔뿔이 달아나기 시작했다. 성당 앞뜰에 시체를 산더미처럼 남겨 두고... 카지모도는 그 동안 한시도 싸우기를 그치지 않았었는데, 그렇게 도주하는 것을 보자 털썩 무릎을 끓고 두 손을 하늘로 쳐들었다. 그런 뒤 기쁨에 취해, 그렇게도 과감하게 거기 접근하는 것을 막았던 그 독방으로 뛰어올라 갔다. 그는 이제 꼭 한 가지의 생각밖에 없었다. 그것은 자기가 두 번째로 목숨을 구해 준 그 여자 앞에서 무릎을 끓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들어가 보니, 독방은 텅 비어 있었다. 제9장 땅으로, 하늘로 1 거지떼가 성당을 공격했을 때 에스메랄다는 자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일까, 건물 주위에서 자꾸만 커져 가는 소음과 먼저 잠을 깬 염소의 불안스런 울음소리가 그녀를 잠에서 깨웠다. 그녀는 침대 위에 벌떡 일어나 앉아 귀를 기울이고 바라보다가, 불빛과 법석 소리에 겁이 나 방 밖으로 뛰어나가 보았다. 광장에서 움직이고 있는 그림자들, 그 야습의 혼란, 어둠 속에 희미하게 보이는 숱한 개구리떼들처럼 폴딱폴딱 뛰어다니는 머리들, 그 목쉰 아우성 소리, 어둠 속을 달리는 붉은 횃불, 이런 모든 광경이 마녀 잔치의 인상을 그녀에게 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질겁하고 다시 방으로 뛰어들어가 웅크리고 있었다. 그러나 시나브로 처음 느꼈던 공포는 스러져 가고, 끊임없이 커져 가는 소음과 그 밖의 여러 가지 현실적인 표적으로, 그녀는 자기가 유령들에게 포위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에게 포위되어 있음을 느꼈다. 다시 한 번 목숨을 잃게 되는가 하는 생각, 항상 자신의 미래 속에 어렴풋이 그려 보고 있던 페뷔스, 달아날 길이 완전히 막혀 버렸다는 생각, 이런 온갖 생각들로 그녀는 허탈 상태에 빠졌다. 사람들이 뭘 하고 있으며, 뭘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고, 다만 무서운 결과만을 예감하면서... 그렇게 한참 고뇌 속에 빠져 있을 때 별안간 자기 옆을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돌아보았다. 두 사나이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약한 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조금도 두려워하지 말아요" 한 목소리가 말했는데, 그녀가 모르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누구죠, 당신은?" "피에르 그랭구아르" 그 이름은 그녀를 안심시켰다. 그녀가 쳐다보니 아닌게 아니라 그 사람은 시인이었다. 그러나 그의 옆엔 머리에서 발끝까지 새카맣게 가린 사람 하나가 있었으므로 그녀는 말문이 막혔다. "아!" 그랭구아르는 비난하는 투로 말했다. "잘리는 당신보다 먼저 날 알아보았는데!" 과연 염소 새끼는 그랭구아르가 자기 이름을 댈 때까지 기다리진 않았다. 그가 들어오자마자, 염소는 그의 무릎에 정답게 몸을 문지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랭구아르도 염소를 애무해 주었다. "저기 당신과 함께 있는 건 누구예요?" 아가씨는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안심해요" 하고 그랭구아르는 대답했다. "내 친구예요. 그보다 아가씨, 아가씨의 목숨은 지금 위태로워요. 그리고 잘리의 목숨도 역시. 사람들은 당신을 다시 잡아가려 하고 있어요. 우린 당신을 구출하러 온 거요. 우릴 따라와요" "정말이세요?" "그럼, 정말이고 말고요. 어서 와요!" "좋아요. 그런데 왜 당신 친구는 말을 하지 않죠?" "아! 그건 그의 부모님이 괴팍스런 사람이기 때문이죠" 아가씨는 그 설명으로 만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랭구아르는 그녀의 손을 잡고, 그의 동행인은 초롱을 집어들고 앞장 서서 걸었다. 아가씨는 무서워서 넋을 잃고 있었다. 반면 염소는 폴딱폴딱 뛰면서 그들을 따라가고 있었는데, 그랭구아르를 다시 보게 된 것이 하도 기뻐 줄곧 그의 다리 사이로 뿔을 쑤셔 넣어 그를 비틀거리게 했다. 그들은 종탑 계단을 내려가 성당을 건너서 포트르 루즈 문을 지나 수도원 마당으로 나갔는데, 캄캄하고 적막하며 바깥과는 무시무시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참사원들은 수도원을 버리고, 기도를 드리기 위해 주교관으로 달아나 버렸다. 마당은 텅 비고 있고, 놀란 하인들 몇이 어두운 마당 구석에 쪼그리고 있었다. 그들은 테랭 쪽으로 난 문을 향해 걸어갔다. 검은 옷의 사나이가 갖고 있는 열쇠로 그 문을 열었다. 테랭은 시테 쪽으로, 담으로 둘러싸여 있는 하나의 기다란 반도로서, 성당 뒤 동쪽에서 섬의 끝을 이루고 있었다. 그 거기만 해도 거지들의 법석 소리는 더 희미하고 덜 시끄럽게 들려 왔다. 강물의 흐름을 따라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은 벌써 감지할 수 있을 만큼 소리를 내어, 테랭 끝에 심어진 단 한 그루의 나뭇잎을 흔들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도 위험 옆에 있었다. 그들에게 가장 가까운 건물은 주교관과 성당이었다. 주교관 안에 분명 큰 혼란이 빚어지고 있었다. 그 캄캄한 건물 덩이 속에서는, 불빛이 이 창에서 저 창으로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는데, 그것은 마치 종이를 막 태우고 났을 때 거기 남아 있는 새카만 잿더미에서 세찬 불똥이 이상하게 이리저리 튀며 나는 것과 같았다. 초롱을 든 사나이는 테랭의 끝 쪽으로 똑바로 걸어갔다. 거기 물가엔 말뚝을 오리목으로 엮어 세운 낡아 빠진 울타리가 있는데, 나지막한 포도 넝쿨 하나가 마치 펼쳐진 손가락 모양 몇 개의 말라 빠진 가지를 그 위에 뻗쳤고, 그 윗가지의 그늘 속에 조그만 배 한 척이 숨겨져 있었다. 사나이는 그랭구아르와 집시 아가씨에게 그 속으로 들어가라고 신호했다. 염소도 그 속으로 따라 들어갔다. 사나이는 맨 뒤에 배 안으로 내려왔다. 그런 뒤 그는 배의 동아줄을 끊고, 긴 갈고리 하나로 배를 뭍에서 밀어 내고, 두 갱의 노를 잡고 앞에 안장, 전력을 다해 강 쪽으로 배를 저었다. 그곳에선 센 강의 물살이 매우 빨랐으므로, 섬 끝을 떠나는데 여간 힘이 들지 않았다. 그랭구아르는 배 안으로 들어가자 무엇보다 염소를 자기 무릎 위에 올려놓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는 뒤쪽에 자리잡았고, 집시 아가씨는 그 알 수 없는 사나이가 말할 수 없이 걱정되므로, 시인 옆에 와서 바싹 몸을 대고 앉았다. 배는 오른쪽 둑을 향해 천천히 나아갔다. 아가씨는 은근히 겁을 먹고 그 알 수 없는 사나이를 살펴보았다. 그는 이미 초롱 불빛을 조심스레 가려 놓고 있었다. 그는 뱃머리의 어둠 속에 유령처럼 어렴풋이 보였다. 그의 두건은 여전히 푹 씌워져 가면 구실을 하고 있었고, 노를 저으면서 펑퍼짐한 넓은 소매가 드리워져 있는 그 두 팔을 펼 때마다, 그것은 마치 박쥐의 커다란 두 날개 같았다. 뿐만 아니라, 그는 아직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 배 안에서는, 뱃전을 따라 살랑거리는 물결 소리에 섞여 오락가락 하는 노의 소리밖엔 다른 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그랭구아르가 외쳤다. "정말 우린 마치 물고기와 같은 침묵을 지키고 있군요! 우라질! 보세요, 제발 누가 네게 얘기 좀 해줬으면 좋겠소. 사람의 목소리는 사람의 귀에 음악이라오. 이런! 아무도 내 말에 대답하지 않네. 당신네 두 분은 모두 기분이 언짢으시군요! 나 혼자 말을 해야 되겠군요. 이건 연극에서 이른바 독백이라는 거요... 난 방금 루이 11세 왕을 만나 봤는데, 그는 참 심술궂은 늙은 왕이더군요! 그는 전신을 모피로 휘감고 있어요. 그는 아직도 내게 축혼가의 대가를 치르지 않고 있는데, 고작 한다는 게 어젯밤 나를 교수형에 처하지 않게 한 것뿐이오. 그는 민중 위에 붙어 돈을 빨아먹는 해면이라오. 그가 절약하고 있는 건 비장뿐이어서 이건 다른 모든 사지가 여윔에 따라 부풀어 가고 있어요. 난 이 왕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런데 선생님은 어떻습니까?" 검은 옷의 사나이는 이 수다스런 시인이 제멋대로 비난하게 내버려 두었다. 그는 오늘날 생 루이 섬이라고 불리는 노틀담 섬의 앞과 시테 섬의 뒤 사이를 흐르고 있는, 거세고 빠른 강물을 거슬러 계속 싸우고 있었다. "그런데 참, 선생님!" 그랭구아르가 불쑥 말을 이었다. "우리가 저 날뛰는 거지들 사이를 뚫고 성당 앞뜰에 도착하고 있었을 때, 그 꼽추가 회랑 난간 위에서 한 젊은이의 머리통을 박살 내고 있었는데, 그 가련한 청년을 선생님께선 보셨습니까? 저는 시력이 약해 그게 누군지 알아 볼 수 없었습니다" 알 수 없는 사나이는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노 젖는 것을 뚝 그치고, 그의 팔은 부러진 듯이 힘이 쑥 빠지고, 머리는 가슴 위에 떨어졌으며, 에스메랄다는 그가 경련적으로 한숨을 쉬는 소릴 들었다. 동시에 그녀 자신도 부르르 떨었다. 그녀는 이미 그 한숨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던 것이다. 제멋대로 내버려 둔 나룻배는 한동안 물이 흐르는 대로 흘러갔다. 그러나 이윽고 그 검은 옷의 사나이는 몸을 다시 일으키고, 다시 노를 잡아, 강물을 세차게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는 노틀담 섬의 끝 쪽을 지나쳐 포르트 푸엥의 선창을 향해 나아갔다. 2 노틀담 주위에선 더욱 소란이 심해져 가고 있었다. 그들은 귀를 기울였다. 승리의 외침 소리가 똑똑히 들려 왔다. 그러더니 갑자기 전사들의 투구들 번뜩거리게 하는 수백의 횃불이 성당 위 높은 곳 도처에 나부꼈다. 그 횃불들은 무엇을 찾고 있는 것 같더니 곧 멀리에서, "마녀를 찾아라! 집시 계집앨 잡아 죽여라!" 하는 외침이 들려 왔다. 불쌍한 아가씨는 두 손 위에 머리를 떨어뜨렸고, 그 알 수 없는 사나이는 강가를 향해 미친 듯 노를 젓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우리의 철학자는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염소를 품안에 꼭 껴안고 보헤미아 아가씨로부터 슬그머니 떨어져 나왔는데, 그 여자는 더욱더 바싹 그에게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마치 자기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피난처로 다가오듯이... 그랭구아르가 심히 난처한 입장에 빠져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그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염소도 역시, 만일 다시 잡히는 날엔 현존법에 의해 교수를 당하리라. 그렇게 된다면 대단히 유감스런 일이다. 가엾은 잘리! 이렇게 사형수가 둘씩이나 내 뒤에 매달려 있다는 건 너무 과하다. 결국, 내 동행인은 좋아라며 아가씨를 맡겠지. 마침내 배의 동요로 그들은 배가 둑에 닿은 것을 알았다. 험악한 소요는 여전히 시테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사나이는 일어나 집시 아가씨에게로 와서, 그녀가 내리는 것을 부축하기 위해 팔을 잡으려 했다. 아가씨는 그를 뿌리치고 그랭구아르의 소매에 매달렸는데, 그랭구아르는 그랭구아르 대로 염소에만 정신이 팔려, 그 여자를 거의 뿌리치다시피 했다. 그러자 그녀는 혼자서 배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녀는 하도 얼떨떨해서 자기가 무얼 하는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녀가 좀 정신이 돌아와서 보니, 자신은 그 알 수 없는 사나이와 둘이서만 항구에 있었다. 그랭구아르는 배에서 내리는 틈을 타서, 염소와 함께 그르니에 거리로 줄행랑을 놓아 버린 모양이었다. 가엾은 아가씨는 사나이와 단둘이 있게 된 것을 보고 소름이 끼쳤다. 그녀는 말하려 하고 고함지르려 했으나, 혀가 움직이지 않아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다. 그녀는 갑자기 알 수 없는 사나이의 손이 자기 손 위에 닿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싸늘하고 억세었다. 그녀의 이는 덜덜 떨렸고, 그 얼굴은 자기를 비추는 달빛보다 더 창백해졌다. 사나이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의 손을 붙들고 그레브 광장 쪽으로 성큼성큼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 순간 그녀는 운명이란 불가항력이란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그 아가씨는 이제 맥이 풀려 끌어가는 대로 끌려갔다. 이곳의 강둑 길은 사뭇 올라가고 있었으나, 그녀는 자기가 비탈을 내려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지나가는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강둑은 그야말로 적적했다. 그녀는 걸어가고 있는 지점이 어딘지 조금도 기억에 떠오르지 않았다. 불이 켜진 어느 창문 앞을 지나갈 때 그녀는 갑자기 힘을 내어 냅다 외쳤다. "사람 살려요!" 창문의 주인은 창을 열고 잠옷 차림으로 창가에 나타나, 어리둥절한 듯이 강둑을 둘러보면서 그녀에겐 들리지 않는 말을 몇 마디 뇌까리더니 도로 창을 닫아 버렸다. 검은 옷의 사나이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여자를 꼭 붙잡은 채 더욱 빨리 걷기 시작했다. 이따금 그녀는 힘을 좀 모아 길바닥의 울퉁불퉁함과 달음박질의 헐떡임으로 도막도막 끊기는 목소리로, "당신은 누구죠? 당신은 누구죠?" 하고 묻곤 했으나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들은 줄곧 강둑을 따라 그렇게 꽤 커다란 광장 하나에 당도했다. 달빛이 조금 있었다. 그것은 그레브였다. 한복판에 새카만 십자가 같은 것이 서 있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는데 그건 교수대였다. 사나이는 걸음을 멈추고, 그녀에게로 돌아서서 두건을 걷어올렸다. "어머나!" 그녀는 화석처럼 굳어져 더듬거렸다. "당신이란 걸 난 진작 알고 있었어!" 그는 신부였다. 그는 달빛의 작용으로 그 자신의 망령 같았다. "이봐" 하고 그는 말했는데, 그녀는 벌써 들은 지가 오래 된 그 음산한 목소리의 음향에 몸을 떨었다. 그는 짤막짤막 끊어 한 마디씩 하고 있었는데, 그 어조의 동요를 통해 마음속 깊이 떨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봐, 네게 얘기하겠다. 여긴 그레브야, 여긴 극단점이야. 운명이 우릴 서로에게 넘겨 주고 있다. 나는 내 영혼을 각각 결정지으려는 순간이다. 이곳과 이 밤의 저 너머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내 말을 잘 들어라. 첫째, 그 페뷔스 얘길 하지 마라. 만일 그놈 이름을 입 밖에 내면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나도 모르지만, 그건 무서운 일이리라" 그렇게 말한 그는 짐짓 태연해졌으나, 그 말은 여전히 흥분을 가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갈수록 낮아졌다. "그렇게 외면하지 말고 내 말을 들어. 이건 중대한 일이야. 최고 법원은 널 다시 교수대로 보낼 결정을 내렸다. 난 방금 그들의 손에서 널 끌어냈다. 하지만 그들은 저렇게 널 뒤쫓고 있지 않느냐. 봐라!" 그는 시테 쪽으로 팔을 뻗었다. 아닌게 아니라 수색은 계속되고 있는 듯했다. 소란은 더욱 다가오고 있었다. 그레브 맞은편에 위치한 경찰 대리관의 저택 탑은 떠들썩하고 불이 훤히 밝혀져 있었으며, 반대쪽 강둑 위를 군사들이 횃불을 들고 달리면서, "집시 계집앨 잡아 죽여라!" 하고 외치는 것이 들렸다. "저것 봐라, 저들이 널 뒤쫓고 있지 않느냐? 난 널 사랑한다. 입을 열지마, 날 미워한다고 말한 테면 말야. 이젠 그런 말은 안 듣기로 마음먹었으니까. 난 너를 완전히 살려 낼 수 있다. 난 모든 준비를 갖춰 놓았어" 그리고는 그 여자의 손을 놓지 않고 있었으므로 자기가 달음질을 침으로써 그 여자에게도 달음질을 치게 해 교수대로 똑바로 걸어가, 교수대를 가리키면서, "우리 둘 중 하나를 골라라" 하고 쌀쌀하게 말했다. 아가씨는 그의 손에서 빠져 나가 교수대 아래 쓰러져 그 죽음의 받침돌을 안았다. 그런 뒤 그 아름다운 얼굴을 반쯤 돌려 신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는 깊은 절망에 빠져 길바닥을 바라보았다. "만일 이 돌들이 말을 할 수 있다면, 그래, 저 돌들은 말하리라. 여기 매우 불행한 사나이가 있다고" 그는 말을 계속했다. 아가씨는 그 기다란 머리채를 풀어 흐뜨린 채 교수대 앞에 무릎을 끓고 앉아 그의 말을 가로막지 않고 이야기하게 내버려 두고 있었다. 그는 이제 애처롭고 부드러운 어조로 말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의 준엄한 용모와 처량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오! 난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 그래, 내 가슴을 태우고 있는 이 불이 바깥으론 조금도 나오지 않는단 말인가! 아! 밤이고 낮이고 내 가슴은 타고 있는데, 그래 조금도 가엾지 않아? 난 너무나도 괴로워하고 있어. 가련한 소녀여! 당신도 보다시피 난 이렇게 당신에게 가만가만 얘기하고 있잖아? 난 당신이 내게 대한 그 공포심을 버리게 되길 얼마나 바라고 있는지 몰라. 그래, 당신은 영원히 날 용서하지 않겠다는 건가? 그래, 모든 것은 끝장이 났단 말인가...! 바로 그런 까닭에 나는 성미가 고약해지고 스스로 악독해진 거야. 당신은 나를 거들떠보지조차 않아! 내가 이승의 경계에 서서 떨며 얘기하고 있는 동안에도, 당신은 아마 딴 생각을 하고 있는 거겠지! 그러나 당신은 마음속엔 다정하고 너그러운 것밖엔 아무것도 없고, 이 세상에 다시 없는 유순한 빛으로 반짝이고 있고, 아리따움과 상냥함과 사랑스러움이 온몸에 가득 차 있어. 그런데 아, 슬프게도 당신은 오직 나에 대해서만 심술궂기만 하오!" 그는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아가씨는 그가 우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자신의 몸 아래서 발을 빼는 아가씨의 가볍게 스치는 소리에 그는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그는 자기의 쑥 들어간 볼을 손으로 천천히 만지다가, 눈물에 젖은 손가락을 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런 얼굴로 아가씨 쪽으로 몸을 홱 돌렸다. "아! 당신은 내가 우는 걸 냉정히 바라보고 있었군! 아가씨, 이 눈물은 용암이라는 걸 알겠나? 그렇다면 그게 정말 사실인가, 미워하는 사람은 무슨 짓을 해도 상대방을 감동시키지 못한다는 건? ...그렇지만 아! 난 네가 죽는 걸 보려 하지 않았는데! 한 마디만 용서한다고 말해 줘! 날 사랑한다고 말할 필요는 없어. 다만 네가 좋다고만 말해 준다면, 난 널 살려 주겠다. 그렇지 않다면... 오! 다정한 말 한 마디만! 한 마디만 해다오!" 아가씨는 대답하려고 입을 열었다. 그는 후닥닥 그녀 앞에 무릎을 끓고, 그 입술에서 나오려는, 어쩌면 감동된 말일지도 모를 말을 열렬한 사랑으로 맞아들이려 했다. 그녀는 또박또박 말했다. "당신은 용서 못할 살인자야!" 신부는 미친 듯 불쑥 그녀를 품안에 끌어안더니 끔찍스런 웃음을 웃기 시작했다. "오냐, 그렇다! 난 살인자다! 그러니 널 해치겠다. 난 너를 노예로 삼고자 하지 않으니 넌 나를 주인으로 가져라. 난 너를 끌어갈 굴이 있다. 날 따라오너라. 미인 아가씨, 너는 죽거나 아니면 내것이 돼야만 한다! 이 신부의 것이 돼야만 한다! 이 살인자의 것이 돼야만 한다! 바로 오늘밤부터! 자, 내게 키스를 해라. 무덤이냐, 내 잠자리냐!" 그의 눈은 음란과 분노로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의 음탕한 입은 처녀의 목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말았다. 그녀는 그의 품에서 버둥거리고 있었다. 그는 아가씨에게 마구 부글거리는 키스를 퍼부었다. "물어뜯지 마라, 이 악마야! 놓아라! 난 내 페뷔스의 것이란 말이다, 내가 사랑하고 있는 분은 페뷔스란 말이다. 페뷔스야말로 미남이란 말이다! 넌 늘고 못생겼다!" 그는 마치 단근질을 당하는 불쌍한 사내처럼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그의 매서운 눈을 보고 달아나려 했다. 그는 여자를 다시 붙잡아 흔들어 길바닥에 쓰러뜨린 뒤, 그 아름다운 손을 잡고 포석 위로 질질 끌면서, 투르롤랑의 탑집 모퉁이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거기 이르러 그는 그녀를 돌아보았다. "마지막으로 묻겠는데, 넌 내것이 되겠느냐?" "싫다, 악마야!" 그러자 신부는 정말 악마같이 외쳤다. "귀뒬! 여기 그 집시 계집애가 있으니 와서 복수해라!" 3 아가씨는 누가 느닷없이 자기 팔을 움켜잡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바라보았다. 빼빼 마른 팔 하나가 벽에 뚫린 채광창에서 나와 쇠손처럼 자신을 붙잡고 있었다. "꼭 붙들고 있어!" 신부는 말했다. "이게 그 탈주한 집시 계집애야. 난 가서 순경들을 불러오겠다. 이 계집애가 교수 당하는 걸 그댄 볼 것이다" 벽 안에서, 목구멍으로부터 나오는 웃음소리가 그 무자비한 말에 대답했다. "하! 하! 하!" 아가씨는 그 심술궂은 은자를 알아보았다. 그녀는 무서움에 펄떡거리면서 빠져 나가려고 해보았다. 그녀는 몸을 비틀고, 고뇌와 절망으로 마구 날뛰었으나, 상대방은 아주 무지막지한 힘으로 붙잡고 있었다. 뼈뿐인 손가락들은 상처를 입히면서 살 속을 깊이 파고들었다. 그 손은 마치 그녀의 팔에 박혀 있는 것 같고, 하나의 영리한 살아 있는 집게가 벽에서 나와 있는 것 같았다. 아가씨는 기진맥진하여 벽 옆에 쓰러졌다. 그러자 죽음의 공포가 그녀를 사로잡았다. 그녀는 생각했다. 삶의 아름다움을, 젊음을, 자연의 광경을, 사랑을, 사라져 가는 모든 것을, 다가오고 있는 모든 것을. 그러자 그녀는 공포심이 자기의 머리칼 뿌리 속까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아! 내가 당신에게 무슨 짓을 했다고 그러시죠?" 은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여자는 성난, 비웃는 듯한 어조로 노래 부르듯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집시 계집애! 집시 계집애!" 불쌍한 에스메랄다는 자기가 상대하고 있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고개를 푹 수그려 머리칼 속에 파묻혀 버렸다. 그러자 은자는 별안간 외쳤다. 마치 집시 아가씨의 질문이 자기 생각에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시간이 걸려야 했던 것처럼. "네가 내게 무슨 짓을 했기에 그러냐고? 아! 네가 내게 무슨 짓을 했느냐고? 요 집시 계집애야! 자, 들어봐라! 내겐 어린애가 하나 있었다! 알겠니? 예쁜 계집애 하나가 있었단 말이다... 내 아네스가! 은자는 어둠 속에서 무엇엔가 입을 맞추면서 얼빠진 듯 말을 이었다. "그런데 말이다! 집시 계집애야? 누가 내 어린애를, 내 어린애를 훔쳐 갔다. 내 어린애를 잡아먹었다. 그게 바로 네년 짓이란 말이다!" 아가씨는 새끼양처럼 대답했다. "어머나, 난 그때 아마 태어나 있지도 않았을 거예요" "천만에! 넌 틀림없이 태어나 있었다. 내 딸이 살아 있다면 네 또래일거다! 벌써 내가 이곳에 있은 지 15년이다. 15년째 난 기도를 드리고 있다. 내 귀여운 아기를 훔쳐 간 것은 집시 계집애들이란 말이다. 그리고 그년들이 그 이빨로 우리 아기를 먹었단 말이다. 하느님도 그걸 잘 알고 계시다! 이젠 내가 집시 계집앨 잡아먹겠다. 오! 이놈의 창살만 방해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잘 네년을 깨물어 먹을지 모르겠건만, 가엾은 우리 아기! 아기가 자고 있는 동안에 그만! 그리고 만일 그년들이 우리 아길 집어 가다 깨웠다 하더라도, 아기는 아무리 울어도 소용없었을 것이다. 내가 거기 없었으니까. 아, 네년들은 우리 아길 잡아먹었다!" 은자는 웃는 것인지 이를 가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 두 가지 것은 그 성난 얼굴 위에서 서로 비슷비슷했다. 동이 터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뽀얀 햇빛이 이 장면을 어슴푸레 비추고 있었고, 교수대가 광장에서 차츰차츰 뚜렷해져 오고 있었다. 반대쪽의 노틀담 다리 방면에서는 기마대의 말굽 소리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 이 가련한 여죄수에겐 들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두 손을 마주 잡고 두 무릎을 끓고, 공포에 떨면서 외쳤다. "아주머니, 가엾게 여겨 주세요! 그들이 오고 있어요. 난 아줌마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요. 난 이렇게 죽고 싶진 않아요!" "내 아기를 내놓아라!" 아가씨는 기진맥진하여 이미 무덤 속에 들어간 사람처럼 유리알 같은 눈을 하고서, "어머나! 아줌마는 어린앨 찾고 계시는군요, 난 부모를 찾고 있는데" 하고 더듬거렸다. "내 딸 아네스를 내놓아라! 그 애가 어디 있는지 아느냐, 내 귀여운 딸이? 옜다, 이걸 봐라, 이게 내 딸의 신이다. 다른 한 짝이 어딨는지 알겠느냐? 그게 있는 곳이 이 세상 끝이라도 난 그걸 찾으러 갈 테다" 그렇게 약간 실성한 듯 말하면서 은자는 채광창 밖으로 뻗친 다른 쪽 팔로 아가씨에게 수놓은 조그만 신 한 짝을 보여 주었다. 벌써 날은 밝아서 그 신의 모양과 빛깔을 알아보기엔 충분했다. "어머나, 어머나!" 아가씨는 탄성과 동시에 자유로운 한쪽 손으로 자기 목에 달고 있던, 녹색 우리 세공품으로 장식된 조그만 주머니를 얼른 열었다. "오냐! 오냐!" 귀뒬은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네 악마의 부적을 뒤져 봐라!" 그러더니 벽안간 말을 뚝 끊고, 온몸을 떨면서 부르짖었는데, 그 목소리는 그 여자의 가장 깊숙한 폐부로부터 솟아오르는 것이었다. "아, 내 딸아!" 집시 아가씨는 그 작은 주머니로부터, 그 한 신짝과 똑같은 또 다른 신짝 하나를 꺼냈던 것이다. 번갯불이 한 번 번 반짝이는 것보다 짧은 시간에, 은자는 두 짝의 신을 맞추어 보고 나서, 채광창의 창살에 천사 같은, 기쁨으로 빛나는 얼굴을 꼭 붙이고 외치는 것이었다. "내 딸아! 오, 내 딸아!" "어머니!" 집시 아가씨도 맞불렀다. 벽과 쇠창살이 그들 모녀 사이에 있었다. "오! 딸을 보고도 껴안지 못하다니... 네 손을! 네 손을!" 아가씨는 채광창 너머로 자기 팔을 넣어 주었고, 은자는 그 손에 달려들어 입을 맞추며 그 키스 속에 잠겨 있을 뿐, 때때로 그 여자의 어깨를 들먹거리게 하는 흐느낌밖엔 전혀 살아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 여자는, 밤비처럼 어둠 속에서 말없이 억수 같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 가련한 어머니는, 그 모든 고통의 15년 이래 거기 방울방울 스며들어 왔던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어둡고 깊은 눈물의 우물을, 그 열렬히 사랑하는 손 위에 콸콸 쏟아 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는 별안간 몸을 세우고, 이마 위에서 그 희끗희끗한 긴 머리를 헤친 다음, 아무 말 없이 두 손으로 맹렬히 창살을 흔들기 시작했다. 창살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 여자는 방 한쪽 구석으로 가서 베개로 사용해 오던 커다란 돌멩이 하나를 집어들고 와, 창살에 어떻게나 세차게 던졌던지 창살 하나가 숱한 불똥을 튀기면서 부러졌다. 두 번째의 타격에 창살을 막고 있던 낡은 쇠십자가는 완전히 무너졌다. 그 여자는 녹슨 창살 동강이를 먼저 꺾어 자신의 독방 안으로 끌어당겼다. "오너라, 너를 구렁텅이에서 건져 올리련다!" 딸이 독방 안으로 들어오자, 그 여자는 땅바닥에 살그머니 내려놓았다가 다시 들어올려, 그것이 마치 옛날 그대로의 어린 아네스인 것처럼 품안에 안고, 그 좁은 방안을 왔다갔다 하면서, 소리를 지르고 노래를 부르고 딸에게 입을 맞추고 이야기를 하고 깔깔 웃고 눈물을 쏟고 하였는데, 이 모든 것은 한꺼번에 열광적으로 행해졌다. "내 딸! 내 딸! 내게 딸이 있는 걸 와서 봐 줄 사람이 아무도 없나? 아, 내 딸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느님, 당신은 저를 15년이나 기다리게 하셨지만, 이렇게 아름답게 만들어서 돌려주려고 그랬던 것이었군요? 집시 여자들은 내 딸을 잡아먹은 게 아니었구나! 내 귀여운 딸아! 내게 입맞춰 줘. 그 착한 집시 여자들! 난 집시 여자들을 좋아한다. 이게 바로 너로구나. 그럼, 그래서 네가 지나갈 때마다 내 가슴이 두른거리곤 했던 게로구나. 날 용서해 다오, 나의 아네스야. 넌 나를 매우 고약한 년으로 알았겠구나? 네 목에 있는 조그만 표적을 넌 여전히 갖고 있느냐? 어디 보자, 옳지!... 넌 참으로 아름답다. 아가씨, 내게 입을 맞춰 다오, 난 널 사랑한다. 다른 어미들에게 어린애가 있든 말든 내겐 아무런 상관도 없다. 난 이제 그 여자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다들 와서 보려무나, 여기 내 어린애가 있다. 오! 난 단언한다. 얘에겐 장차 반하는 사내들이 많을 것이다! 나는 15년간이나 눈물을 흘렸다. 그래서 내 아름다움은 모조리 가버렸는데, 그것이 내 딸에게 옮아와 있구나..." 그 여자는 딸에게 그 밖에도 온갖 이상한 말을 다 하고 있었는데, 그 말의 억양은 그지없이 아름다웠으며, 가련한 딸의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처녀의 옷을 헤치고, 그 명주실 같은 머리칼을 손으로 쓰다듬고, 발과 무릎과 아마와 눈에 키스를 퍼붓고, 모든 것에 황홀하여 넋을 잃고 있었다. 처녀는 어머니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고 있었으나, 이따금 매우 나지막하고 한없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어머니" 하고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또다시 딸을 품안에 꼭 껴안았다. "오너라, 네게 입을 맞춰 주고 싶다! 어쩜 이렇게도 귀엽게 말을 할까! 우리가 고향에 돌아가면, 성당의 아기 예수에게 이 조그만 신을 신겨 주자꾸나. 우린 성모 마리아께 이 은혜를 꼭 갚아야 한다. 아! 네 목소린 참 곱기도 하구나..." 이때 그 조그만 방은 무기 부딪치는 소리와 달리는 말발굽 소리로 쿵쿵 울렸는데, 말발굽 소리는 노틀담 다리에서 쏟아져 나와 강둑 위로 자꾸만 전진해 오는 것 같았다. 아가씨는 어머니의 품안에 비통하게 몸을 던졌다. "저를 살려 주세요! 어머니, 그들이 저기 오고 있어요!" 은자는 얼굴이 새파래졌다. "얘야! 그게 무슨 소리냐? 그래, 내가 깜빡 잊고 있었구나! 넌 쫓기고 있는 몸이지.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그러느냐?" "저도 몰라요. 하지만 전 사형 선고를 받았어요" "사형을?" 은자는 한동안 화석처럼 까딱도 않고 있더니, 이윽고 의아스러운 듯 머리를 갸우뚱하고는 느닷없이 웃음을 터뜨렸는데, 전에 보았던 그 무서운 웃음이 되돌아와 있었다. "호! 호! 넌 지금 잠꼬대를 하고 있는 거야. 내가 딸을 잃어버린 지 15년간이나 되었다가 다시 만나 보게 됐는데, 그게 1분밖에 계속되지 않는다고! 그리고 내게서 내 딸을 다시 뺏아 가다니! 그것도 내 딸이 아름다워지고 장성해서 내게 얘기하고 있는 지금 바로 이런 때 놈들이 와서 내게서 내 딸을 잡아먹어? 바로 어머니인 이 내 눈앞에서!" 이때 기마대는 걸음을 멈춘 것 같았고, 멀리서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쪽입니다. 트리스탕 나리. 신부는 그 계집이 '구멍방'에 있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은자는 절망적인 소릴 지르면서 벌떡 일어섰다. "달아나라, 달아나라! 아가, 이젠 다 생각이 난다. 네 말이 옳다, 널 잡아 죽이려는 거다" 그 여자는 채광창으로 머리를 내밀었다가 얼른 들여 벌렸다. 그리곤 딸의 손을 경련적으로 움켜쥐면서 낮고 짧은 소리로 말했다. "가만 있어, 숨쉬지 마! 놈들이 다가온다. 내가 놈들에게 네가 도망쳐 버렸다고, 너를 놓쳤다고 얘기하겠다. 어서 저 구석에 숨어라" 그 여자는 독방 한쪽 모퉁이에 딸을 웅크려 앉히고, 손도 발도 어둠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조심스레 해놓았다. 그리곤 한결 침착해진 얼굴로 무릎 끊고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이제 막 동이 트기 시작했는지라 아직도 독방엔 어둠이 깃들어 있었다. 이때 신부의 목소리가, 그 끔찍한 목소리가 독방 바로 옆을 지나가며 외쳤다. "이쪽이요, 페뷔스 중대장!" 그 이름을 듣고, 방구석에 쭈그리고 있던 에스메랄다는 움찔했다. 곧이어 사람과 칼과 말들의 요란한 소리가 독방 주위에 와서 멎었다. 어머니는 후닥닥 일어나 채광창을 막기 위해 그 앞으로 갔다. 그 여자는 기병 보병 할 것 없이 대부대가 그레브 광장에 늘어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을 지휘하는 자가 말에서 내려 그 여자 쪽으로 왔다. "노파, 우린 교수형에 처할 마녀 하나를 찾고 있다. 그 마녀가 네게 있다고 했다" 가련한 어머니는 세상에도 태연스런 표정을 하고서 대답했다. "그게 무슨 말씀인지 전 잘 모르겠는뎁쇼" "이런 빌어먹을! 그 넋빠진 부주교란 놈이 대관절 무슨 소릴 지껄이고 있었던 거냐? 그놈은 어디 있느냐?" "각하, 사라져 버렸습니다" 병졸 하나가 대답했다. "여봐라, 미친 할미야, 거짓말 마라! 마녀 하나를 지키고 있으라고 네게 맡겼잖느냐" 은자는 의심을 사선 안 되겠다 싶어 모조리 부인하려곤 하지 않고, 진실하고 무뚝뚝한 말투로 대답했다. "나리 말씀이 아까 막 누가 제 손에 떠맡기고 간 처녀 얘기라면 말씀드리겠는데, 그년이 저를 물어뜯어서 놓쳐 버렸습죠. 그뿐이니 더 이상 귀찮게 마오" 지휘관은 얼굴을 찌푸렸다. "이 늙은 귀신아, 내 이름은 트리스탕이며 임금님의 친구다. 내게 거짓말을 하려 들진 말거라, 알아들었느냐?" "그밖엔 당신에게 할말이 없고 난 당신이 두려울 게 없어요" "빌어먹을! 아니 그래, 그 마녀란 계집애가 달아나 버렸단 말이냐! 그럼 어느 쪽으로 갔나?" "무통 거리 쪽으로 갔죠 아마. 더 묻지 마시오, 난 그년을 가장 미워해요" 이때 늙은 야경대원 하나가 열 중에서 나와 대장에게 말했다. "사실 미친 년이죠. 저 여자가 집시 계집앨 놓쳤다 하더라도 저 여자 잘못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저 여자는 집시 여자들을 좋아하지 않으니깐요. 저는 저녁마다 저 여자가 보헤미아 여자들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저주하는 걸 들어오고 있답니다" 다른 야경대원들의 일치된 증언은 대장에게 늙은 야경원의 말을 확증해 주었다. 트리스탕은 머릴 돌리고 자기 부대에게 다시 출발할 준비를 하라고 신호했다. 은자는 숨을 쉬었다. 가련한 소녀는 그 동안 내내 구석에서 자기 앞에 있는 죽음을 생각하면서 숨도 안 쉬고 있었다. 그녀는 어머니와 트리스탕 사이에 벌어지는 대화를 하나도 빠짐없이 듣고 있었으며, 자기 어머니의 고통 하나 하나가 마음속에서 쩡쩡 울리고 있었다. 그녀는 줄곧 자신을 심연 위에 매달아 놓고 있는 줄이 끊어지려는 소리를 듣고 있었으며, 그 줄이 끊어지는 것을 수십 번도 더 보는 듯했었는데, 이제야 마침내 숨을 쉬기 시작했다. 이때 그녀는 한 목소리를 들었다. "젠장맞을! 현병대장, 마녀의 목을 매다는 건 장교인 내가 할 일이 아니오. 천민들이 저기 있소. 이 일은 당신 혼자 하게 두겠소. 내 중대를 위해 내가 내 중대로 돌아가는 걸 당신도 마땅스레 여길 거요" 그건 페뷔스의 목소리였다. 집시 소녀의 마음속에 일어난 충격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그이가 저기 있구나, 내 애인이, 내 피난처가, 내 페뷔스가!-그녀는 일어나서 어머니가 미처 가로막기도 전에 채광창으로 뛰어가 외쳤다. "페뷔스! 나의 페뷔스!" 페뷔스는 이미 거기 없었다. 그는 이제 막 말을 달려 거리 모퉁이를 돌아가 버렸던 것이다. 은자는 으르렁거리며 딸에게 달려들었다. 그 여자는 딸의 목에 손톱을 박아 사정없이 뒤로 낚아챘다. 어미 호랑이도 그렇게까지 세심한 주의를 하진 않으리라. 그러나 이미 너무나 늦었다. 트리스탕이 벌써 본 것이다. "흐흥!" 하고 그는 잇몸을 모조리 드러내 놓고 웃었는데, 이때 그의 얼굴은 흡사 늑대의 낯바닥 같았다. "앙리에트 쿠쟁은 어딨느냐?" 군복도 입지 않고 군인같이 생기지도 않은 사내 하나가 열 중에서 나왔다. 그는 회색과 갈색으로 이등분된 옷을 입고, 머리털이 빳빳하며, 그 투박한 손엔 한 꾸러미의 밧줄을 들고 있었다. "여보게" 트리스탕은 그에게 말했다. "우리가 찾고 있던 그 마녀가 저기 있는 것으로 보이네. 그년의 목을 매달아라!" 은자는 자기 딸이 트리스탕의 눈에 들켜 모든 희망을 잃고 나서부터 아직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여자는 빈사 상태에 빠진 가엾은 딸은 한쪽 구석에 던져 놓고, 채광창 앞으로 다시 와서, 맹수의 두 발톱처럼 두 손을 짚고 섰다. 앙리에트 쿠쟁은 채광창으로 다가왔다. 분노한 어머니의 눈초리 앞에서 그는 적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아주머니..." "뭘 원하는 거냐?" "당신이 아니라 다른 여자요" 어머니는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외쳤다. "아무도 없다! 아무도 없다! 아무도 없다!" "안 그리!" 망나니는 말을 이었다. "당신은 잘 알 텐데. 그 젊은 계집을 잡아가게 해주시오. 우리 대장님의 명령이야" 어머니는 미친 사람처럼 되풀이했다. "아무도 없다니까. 그런 말 말고 들여다보지 그래!" 망나니는 어머니의 손톱을 보고 감히 그러질 못했다. "빨리 해라!" 트리스탕이 외쳤는데, 그는 주위에서 자기 부대를 삥 둘러 세워 놓고 말 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앙리에트는 당황하여 대장에게 되돌아왔다. 그는 밧줄을 땅바닥에 내려놓고, 거북살스러운 듯 두 손으로 모자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나리, 그런데 어디로 들어간다죠?" "창문으로" "너무 좁습니다" "그럼 넓혀라" 트리스탕은 성이 나서 말하곤 다시 물었다. "곡괭이가 없느냐?" 사냥감 앞의 사냥개처럼 여전히 멈추고 서 있던 어머니는 자기 소굴 안에서 바라다보고 있었다. 그 여자는 이제 아무런 희망도 없이, 자기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망나니는 연장을 가지고 왔다. "노파" 헌병대장이 준엄한 어조로 말했다. "그 계집앨 우리에게 순순히 넘겨라" "안 된다, 그 앤 내 딸이야" "벽을 뚫어라" 트리스탕은 단호히 명령했다. 충분히 넓은 구멍을 내기 위해서는 채광창 아래서 한 줌의 돌을 뽑아 내기만 하면 되었다. 곡괭이와 지렛대가 자기 요새를 무너뜨리는 소릴 들었을 때, 어머니는 무시무시한 고함을 지르고, 이어서 울 안에 갇힌 야수처럼 방 안을 빠른 속도로 빙빙 돌기 시작했다. 그 눈엔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군사들도 가슴 속으로는 얼어 있었다. 그러는 동안, 해는 아직도 솟아오르지 않았지만 날은 훤히 밝아, 아름다운 연분홍빛이 집의 굴뚝을 장식해 주었다. 그것은 이 대도시의 가장 이른 창문들이 지붕을 향해 즐겁게 열리는 시각이었다. 파괴자들의 작업이 진척되어 보임에 따라, 어머니는 기계적으로 뒤로 물러나 딸을 더욱 벽으로 몰아붙였다. 별안간 은자는 돌이 허물어지는 것을 보고, 부하들을 격려하는 트리스탕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허탈 상태에서 벗어나 소리를 질렀다. "이 살쾡이 같은 놈아, 넌 한 번도 암살쾡이와 살아 본 적이 없느냐? 그래서 한 번도 살쾡이 새끼를 낳아 본 적이 없느냐? 그리고 네게 새끼들이 있다면, 네 새끼들이 울부짖을 때 네 오장육부 속엔 아무것도 느껴지는 게 없더냐?" 지렛대들이 무거운 돌을 무너뜨렸다. 그것은 어머니의 마지막 성채였다. 그 여자는 그 돌 위로 달려들어 그것을 붙들려고 발버둥쳤으나, 그 육중한 돌덩이는 여섯 사나이들이 떠미는 바람에 그 여자 손에서 벗어나 스르르 내려앉았다. 어머니는 입구가 뚫린 것을 보고, 구멍 앞에 가로 쓰러져 몸뚱어리로 그 돌파구를 마고, 이마로 포석을 치며 잘 알아들을 수도 없는 소리로 절규했다. "사람 살려! 불이야! 불이야!" "자, 이젠 계집애를 잡아라" 트리스탕은 냉정히 말했다. 병사들이 다가드는 모양을 본 어머니는 벌떡 일어나 무릎을 끓고, 얼굴에서 머리칼을 젖혔다. 그러자 굵은 눈물 방울이 눈에서 나와, 움푹 팬 내의 밑으로 격류가 흘러내리듯 볼을 따라 떨어지고 있었다. 동시에 그 여자는 말을 하기 시작했는데, 하도 부드럽고 하도 비통하여 트리스탕마저도 어리둥절할 지경이었다. "나으리들, 꼭 한마디만 말씀드려야겠어요... 이건 제 딸이에요. 여태껏 잃어버리고 있던 사랑하는 귀여운 딸이에요. 제 말씀을 들어 주세요. 여러분이 아시게 되면 여러분은 제 딸을 놔두실 거예요! 전 가련한 창녀였어요. 보헤미아 계집들이 제 딸을 훔쳐 갔어요. 제 딸은 이 작은 신을 신고 있었지요... 랭스의 샹트 플뢰리! 여러분도 아마 그걸 알고 계실 거예요. 그게 저였어요. 저는 그 애가 죽은 줄로만 알고 있었어요. 이 조그만 사랑스러운 신! 제가 하도 울부짖었더니 하느님께서 제 소원을 들어주셨어요. 제 딸은 죽지 않고 있었어요. 여러분은 그 애를 제게서 뺏어 가시지 않겠지요. 오! 높으신 헌병대장 나으리, 그 애의 손가락에 상처를 입히느니보단 차라리 제 창자에 구멍이 뚫리는 걸 전 바라겠어요! 나으리께선 지금 제가 말씀드린 것으로 사정을 아셨을 게예요. 요컨대 두 여자가 지나가는데, 그 중 하나는 어머니고 다른 하나는 딸이니 그들을 지나가게 내버려둬야지요. 오! 여러분은 참으로 좋으신 분이에요. 순경 나리들, 전 여러분을 모두 사랑해요. 제 사랑스러운 딸을 제게서 뺏어 가지 마세요. 절대로 그럴 순 없어요! 우리 아가! 우리 아가!" 그 여자의 몸짓이며 말투, 말하면서 흘리는 눈물, 마주 잡았다가 비틀었다가 하는 손, 비통한 미소며 한숨, 갈피 잡을 수 없이 두서없는 말에 섞여 드는 가슴을 에는 듯 가련한 울부짖음... 그 여자가 입을 다물었을 때 트리스탕은 눈살을 찌푸렸으나, 그것은 그의 호랑이 같은 눈 속에 핑 도는 눈물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그는 그러나 약해지는 마음을 극복하고, 짤막히 말했다. "폐하의 뜻이다" 망나니와 병사들은 그 작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조금도 저항하지 않고, 다만 자기 딸 쪽으로 기어가 맹렬히 몸을 던졌다. 아가씨는 병사들이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죽음의 두려움이 그녀에겐 기운을 되살려 주었다. "어머니!" 하고 그녀는 형언할 수 없는 고통스런 어조로 외쳤다. "어머니, 저를 지켜 주세요!" "오냐, 내 아가야, 지켜 주마!" 어머니는 가물가물 꺼져 가는 목소리로 대답하고, 딸을 품안에 꼭 껴안곤 마구 키스를 퍼부었다. 어머니가 딸 위를 감싸고, 그렇게 두 여자가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꼴은 참으로 측은하였다. 망나니는 처녀의 아름다운 어깨 아래로 몸통 한가운데를 잡았다. 그 손이 닿음을 느끼자 아가씨는 "으악!" 하곤 까무러쳐 버렸다. 딸의 허리띠 주위에 두 손을 비끄러매 놓다시피 하고 있던 어머니를 떼내려 해보았으나, 그 여잔 어떻게나 굳세게 매달려 있던지 뗄 수가 없었다. 쿠쟁은 그대로 처녀를 방 밖으로 끌어내고, 어머니는 딸 뒤에 붙어 나왔다. 이때 해가 떠오르고 있었으며, 광장엔 벌써 꽤 많은 군중이 모여 그렇게 교수대 쪽으로 포석 위를 끌고 가는 것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었다. 왜냐하면 트리스탕은 그런 식으로 구경꾼들을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괴벽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집집의 창문엔 아무도 없었다. 다만 그레브 쪽으로 우뚝 솟은 노틀담의 종탑 꼭대기에, 맑은 아침 하늘 속에 새카맣게 드러난 두 사나이가 보였다. 쿠쟁은 끌고 온 것과 함께 그 숙명적인 사다리 아래서 걸음을 멈추고, 아가씨의 사랑스런 목에 밧줄을 감았다. 불행한 소녀는 그 삼끈의 끔찍스런 촉감을 느꼈다. 그녀는 눈을 뜨자 자기 머리 위에 뻗어 있는 돌 교수대의 앙상한 팔을 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부르르 떨곤 가슴을 찢는 듯한 높은 목소리로 외쳤다. "싫어! 난 싫어! 싫어!" 어머니는 딸의 옷 아래 머리를 파묻고 있었는데 말 한 마디 하지 않았다. 다만 사람들은 그 여자가 전신을 떠는 것을 보았고, 자기 딸에게 더욱 세차게 입 맞추는 소리를 들었다. 망나니는 그 틈을 타서 사형수를 꼭 껴안고 있는 어머니의 팔을 풀었다. 기진맥진해서인지 절망해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여자는 그가 하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이어서 그가 처녀를 어깨 위에 메니 이 어여쁜 아가씨는 그 망나니의 커다란 머리 옆에서 허리가 탁 구부러져 아리땁게 늘어졌다. 그런 뒤 그는 올라가려고 사다리에 발을 딛었다. 이때, 어머니는 포석 바닥에 웅크린 채 완전히 눈을 떴다. 소리 하나 지르지 않고 그 여자는 무서운 표정으로 벌떡 일어나더니, 먹이에 달려드는 짐승처럼 망나니의 손 위에 달려들어 물어뜯었다. 그것은 번개 같았다. 망나니는 비명을 질렀다. 병사들이 쫓아와 어머니의 이빨 사이에서 그 피투성이가 된 손을 빼냈다. 병사들은 그 여자를 난폭하게 밀어젖혔으며, 그 여자의 머리가 포석 위에 철썩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병사들은 그 여자를 일으켰으나, 여자는 다시 넘어졌다. 그 여자는 죽었던 것이다. 망나니는 처녀를 둘러메고 다시 사다리를 오르기 시작했다. 4 독방이 텅 비고 아가씨가 없어진 것을 보았을 때, 카지모도는 두 손으로 머리털을 잡아뜯고, 놀라고 슬퍼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런 뒤 그는 성당 안을 샅샅이 뛰어다니면서 아가씨를 찾기 시작하고, 여기저기 벽 모퉁이에서 이상스런 고함을 지르고, 그 붉은 머리카락을 위에 뿌리곤 했다. 그것은 바로 국왕의 군사들이 기세등등하게 노틀담에 들어와서 역시 아가씨를 찾고 있을 때였다. 이 가련한 꼽추는 그들의 흉악한 속셈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들을 도왔다. 그는 아가씨의 적은 거지떼들인 줄로만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스스로 트리스탕을 인도해 숨어 있을 만한 곳을 샅샅이 뒤져 보게 하고, 비밀문이며 제단 속으며 뒷방 등을 열어 보았다. 여간해선 지칠 줄 모르는 트리스탕이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하고 지쳐 버렸을 때도 카지모도는 혼자서 찾기를 계속했다. 그는 수십 번, 수백 번 성당을 돌았다. 종횡으로, 위아래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뛰고, 부르고, 외치고, 냄새 맡고, 속속들이 뒤지고 온갖 구멍 속에 머리를 쑤셔 넣고, 절망하여 외치고 미칠 지경이 되어서... 제 암컷을 잃은 수표범도 이토록 이르렁거리진 않았으리라. 마침내 그녀가 이미 거기 없다는 것을, 누가 그녀를 훔쳐가 버렸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을 때, 꼽추는 종탑 계단을 천천히 다시 올라갔다. 그 아가씨를 구출했던 날은 그다지도 의기양양히 뛰어올라 갔던 그 계단을 그는 머리를 수그린 채 말없이, 숨도 거의 쉬지 않고 그때 그 장소들을 다시 지나갔다. 성당은 시나브로 적적해져 다시금 고요 속에 빠져 있었다. 군사들은 시테로 마녀를 추격하기 위해 이미 떠나 버렸던 것이다. 좀 전까지 그처럼 포위되어 왁자지껄했던 이 광대한 노틀담 안에 홀로 남게 된 카지모도는, 아가씨가 자신의 경비 아래 여러 주일 동안 잠잤던 그 독방 쪽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독방으로 다가가면서 그는 어쩌면 그녀를 다시 만나 보게 될지도 모르리라고 생각했다. 지붕 쪽으로 향한 회랑 모퉁이에서, 흡사 가지 아래 매달린 새집과 같이 조그만 문이 달린 그 방이 눈에 띄었을 때, 가엾게도 이 사나이는 기운이 쑥 빠져 넘어지지 않으려고 기둥에 몸을 기대었다. 이윽고 그는 용기를 내어, 발끝으로 살금살금 걸어 들어갔다. 비었다! 독방은 여전히 텅 비어 있었다. 가련한 애꾸는 천천히 방 안을 돌아보고, 마치 아가씨가 방바닥과 매트 사이에 숨어 있을 수도 있는 것처럼 침대를 쳐들고, 그 아래를 보고, 그런 뒤 머리를 흔들며 멍청히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횃불을 발로 사정없이 밟아 뭉개 버리고는, 말 한 마디 않고, 한숨 한 번 쉬지 않고, 힘껏 달려가 벽에 머리를 부딪히곤 기절하여 바닥에 쓰러졌다. 그는 정신이 돌아오자 침대 위에 몸을 던지고, 거기서 뒹굴고, 처녀가 잠자던 아직도 미적지근한 자리에 미친 듯 입을 맞추고, 거기서 마치 숨이라도 지는 듯 한참 동안 꼼짝도 않고 있더니, 이윽고 숨을 헐떡거리며 정신없이 다시 일어나, 종의 추와 같이 끔찍하리만큼 규칙적으로, 그리고 머리를 깨뜨리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단호히, 자기 이마로 벽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기진해 또다시 쓰러졌다. 그는 무릎으로 기어 방 밖으로 나와, 놀란 듯 문 앞에 웅크렸다. 그는 몸하나 까딱하지 않고 적적한 독방을 응시하며, 텅 빈 요람과 가득 찬 관 사이에 앉아 있는 어머니보다도 더 침울하고 더 생각에 잠겨 몇 시간이고 그렇게 웅크려 있었다. 그는 한 마디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다만 이따금씩 흐느낌이 터져 나와 그의 온몸을 맹렬히 흔들곤 했으나, 그것은 마치 소리 없이 치는 여름의 번갯불처럼 눈물 없는 흐느낌이었다. 이때에야 비로소 그는 슬픈 몽상 속에서, 아가씨의 불의의 겁탈자가 과연 누구일까 하고 찾고 있다가, 부주교에게 생각이 미쳤던 것 같다. 오직 동 클로드만이 독방으로 통하는 계단의 열쇠를 갖고 있다는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다. 꼽추는 아가씨에 대한 부주교의 야간 겁탈 미수 사건들이 회상되었는데, 첫번째 사건 때는 카지모도 자신이 거들었고, 두 번째 사건 때는 그가 방해했었다. 그의 기억엔 온갖 사실들이 다 떠올랐으며, 아가씨를 자기한테서 뺏어 간 것이 부주교임을 그는 이내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신부에 대한 존경이 이만저만 굳은 것이 아니었으므로, 그에 대한 감사와 헌신과 사랑이 여간 깊이 가슴 속에 뿌리 박고 있지 않았으므로, 그 뿌리들은 이 순간에마저도 질투와 절망의 손톱에 저항하고 있었다. 그런 분노는 이 가엾은 귀머거리 속에서 극심한 고통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그의 생각이 그렇게 신부에게로 쏠리고 있었을 즈음 새벽빛이 희번하게 물들이고 있었으므로, 노틀담 위층의 성당 후진을 둘러싸고 있는 바깥 난간 모퉁이에, 사람 그림자 하나가 걸어가는 것이 애꾸눈에 띄었다. 그 그림자는 그의 쪽으로 오고 있었다. 그는 그것이 누구인지 알아보았다. 부주교였다. 클로드는 무겁고 느린 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그는 걸어가면서도 앞을 바라보고 있진 않았다. 그는 북탑 쪽을 향해 가고 있었으나, 그 얼굴은 옆으로 센 간의 오른쪽 둑으로 돌려져 있었으며, 마치 지붕들 너머로 무얼 보려고 애쓰는 것처럼 머리를 높이 쳐들고 있었다. 올빼미는 흔히 그런 곁눈질을 한다. 신부는 카지모도를 보지 않고 그렇게 그 위를 지나갔다. 그렇게 난데없이 그가 나타난 데 깜짝 놀란 애꾸는, 그가 북탑 계단의 문 아래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애꾸는 일어나서 부주교의 뒤를 밟았다. 카지모도는 종탑을 올라가기 위해, 신부가 왜 그 계단을 올라가는지 알기 위해 계단을 올라갔다. 뿐만 아니라, 이 가엾은 종치기는 자기 자신이 무슨 짓을 할 것인지, 무슨 말을 할 것인지,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는 분노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가슴 속에서는 부주교와 아가씨가 맞부딪치고 있었다. 종탑 꼭대기에 다다랐을 때 계단의 어둠에서 나가 옥상으로 들어가기 전에, 그는 부주교가 어디 있는지 조심스레 살펴보았다. 부주교는 그에게 등을 돌리고 있었다. 그는 종탑의 옥상 난간에 가슴을 기대고 도시 위를 굽어보고 있었다. 카지모도는 그 뒤로 살금살금 걸어가 그가 무엇을 그렇게 내려다보고 있는지 살폈다. 부주교의 정신은 잔뜩 딴데 팔려 있었으므로 꼽추가 옆에 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여름 새벽의 선명한 햇빛에 노틀담의 종탑 위에서 보는 파리는 장려하고 매력적이었다. 하늘은 맑디맑았다. 늦별들이 여기저기 스러져 가고 있었는데, 동녘의 가장 밝은 하늘엔 별 하나가 유난스레 반짝거리고 있었다. 해는 솟아오르는 순간에 있었고, 파리는 웅성거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새하얗고 맑디맑은 햇빛이, 동쪽으로 향한 수많은 집들의 모든 면을 뚜렷하게 눈에 띄게 해주는 것이었다. 성당 앞뜰에서는 손에 우유 단지를 든 노파들이 노틀담 정문의 이상한 파손과 굳어진 납을 놀란 듯 서로 가리켜 보이고 있었다. 그것이 간밤의 소동에서 남은 자취의 전부였다. 종탑 사이에서 카지모도가 태운 장작불은 꺼져 버리고 없었다. 트리스탕은 이미 광장을 청소하고 시체들을 센 강에 던져 버리게 했다. 루이 11세와 같은 왕들은 학살 후에 얼른 청소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종탑 난간 밖으로, 부주교가 걸음을 멈춘 지점 바로 아래엔 고딕 건축물들에 뾰족뾰족 솟아난, 괴상하게 깎아 세운 저 이무기틀 하나가 있었고, 그것의 틈새 하나엔 두 송이의 예쁜 꽃이 마치 살아 있는 듯 산들바람에 나부끼며 목례를 교환하고 있었다. 저 멀리 하늘 높이, 종탑 위에서는 새들의 울음소리가 들려 왔다. 그러나 부주교는 아무것도 듣지 않고 아무것도 보지 않고 있었다. 그에겐 아침도 없고, 새도 없고, 꽃도 없는 것 같았다. 주위에서 그토록 온갖 양상을 나타내고 있는 그 광막한 지평 속에서, 그의 응시는 단 하나의 점 위에 집중돼 있었다. 카지모도는 그에게 아가씨를 어떻게 했느냐고 물어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나 부주교는 얼이 세상 밖으로 빠져 나가 버린 사람 같았다. 그는 분명히 땅이 무너져도 모르는 그런 생의 격렬한 순간 속에 있었던 것이다. 어떤 장소를 변함없이 응시한 채, 그는 말없이 까딱 않고 있었는데, 그 침묵과 부동 자세가 웬지 모르게 하도 무서워 종치기는 옆에서 떨고 있을 뿐 감히 부딪치진 못했다. 다만, 그리고 이것도 부주교에게 물어 보는 방법의 하나였는데, 그는 그의 눈길의 방향을 쫓았고, 그렇게 하여 이 불쌍한 애꾸의 시선은 그레브 광장 위에 떨어졌다. 그리하여 그는 부주교가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사다리가 상설 교수대 옆에 세워져 있는 광장엔 약간의 군중과 수많은 병사들이 있었다. 한 사나이가 흰 것 하나를 길바닥 위에 끌고 있는데, 거기엔 검은 것 하나가 매달려 있었다. 이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데, 카지모도는 잘못 보았다. 그것은 그의 외눈의 시력이 미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대부대의 병사들 때문에 모든 것을 다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때 해가 솟아올라, 엄청난 빛의 물결이 지평선 위에 범람해서, 첨탑이며 굴뚝 같은 파리의 온갖 꼭대기는 마치 한꺼번에 불이 붙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는 사이 그 사나이는 사다리를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카지모도는 그가 다시 똑똑히 보였다. 그는 여자 하나를 둘러메고 있었는데, 흰 옷 입은 아가씨로서 이 아가씨의 목엔 노끈이 매어져 있었다. 카지모도는 그녀를 알아보았다. 이윽고 사나이는 사다리 꼭대기에 이르렀다. 거기서 그는 끈을 고쳐 맸다. 이때 부주교는 더 잘 보려고 난간 위에 무릎을 끓었다. 별안간 사나이는 사다리를 발뒤꿈치로 툭 차서 떠밀어 버렸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 숨도 못 쉬고 있던 카지모도는, 밧줄 끝에서 그 불쌍한 아가씨가 그녀의 어깨 위에 쭈그려 앉은 사나이와 더불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밧줄은 여러 번 뱅글뱅글 돌았으며, 카지모도는 아가씨의 몸뚱어리를 따라 무서운 경련이 흐르는 것을 보았다. 한편 부주교는 목을 쑥 빼고, 눈이 튀어나오도록 그 거미와 파리의 끔찍스런 비극을 보고 있었다. 가장 무시무시한 순간에, 악마의 웃음이, 인간이 이미 인간이길 그만두었을 때밖엔 낼 수 없는 그런 웃음이 부주교의 얼굴 위에서 터졌다. 카지모도에겐 그 웃음이 들리진 않았으나, 그것이 보였다. 꼽추는 부주교의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가 격분하여 그에게 달려들어, 그 투박한 손으로 동 클로드가 굽어보고 있는 심연 아래로 그 등짝을 밀어 버렸다. 부주교는 "으악!" 하고 단말마를 외치면서 떨어졌다. 그는 떨어지다가 그 아래에 있는 이무기틀에 걸렸다. 그는 절망적인 손으로 거기 매달려, 다시 고함을 지르려고 입을 열려는 순간, 자기 머리 위의 난간 가장자리로 카지모도의 복수심에 불타는 무서운 얼굴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는 입을 다물었다. 죽음의 심연이 저 아래 있었다. 2백 척도 더 되는 추락의 공포, 그 무서운 처지에 빠진 부주교는 한 마디 말도 못하고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다만 다시 올라오려고 무진 애를 쓰며 바둥거렸다. 그러나 그의 손은 화강암 위에서 잡을 데가 없었고, 그의 발은 가파른 벽에서 걸리지 않았다. 그의 아래 있는 것은 죽음의 벽이라기보다는, 그 벽의 아래서 자꾸만 달아나는 것 같았다. 카지모도가 그를 심연에서 끌어올리려면 손을 뻗치기만 하면 되었으련만, 그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는 오로지 광장의 교수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아가씨를 바라보고 있었다. 꼽추는 조금 전에 부주교가 있던 자리에서 난간에 팔꿈치를 짚고, 거기서 지금 이 세상에 자신에게 존재하는 유일한 여인으로부터 눈을 떼지 않고, 벼락 맞은 듯 까딱 않고 있었으며, 이제껏 한 방울도 흘려 본 적이 없는 그 눈에서 그만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지고 있었다. 한편 부주교는 헐떡거리고 있었다. 그의 대머리에서는 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고, 그의 손톱은 돌 위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는 이무기틀에 걸린 자기 법의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찌직찌직 찢어지는 소릴 들었다. 설상가상으로 그 이무기틀의 끝은 연관으로 돼 있어 그의 체중 때문에 휘고 있었다. 부주교는 그 연관이 서서히 구부러지는 것을 느꼈다. 이 불쌍한 사나이는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내 손이 지쳐 빠지면, 법의가 찢어지면, 저 연관이 구부러지면 떨어져야 되리라 하고. 그러자 온몸이 공포에 사로잡히는 것이었다. 때때로 무심결에, 그는 약 열 자쯤 아래에, 조각의 기복으로 형성된 좁다란 언덕같이 생긴 것을 바라보고, 고통스런 마음으로 비록 백 년이 계속될지라도 좋으니 그 두 가량의 표면 위에서 생애를 마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하늘에 비는 것이었다. 한 번은 그는 자기 아래의 광장을, 그 죽음의 심연을 내려다보았다. 다시 머리를 쳐든 그는 눈이 감기고 머리털이 곤두섰다. 부주교는,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자신에게 남아 있는 그 취약한 생명줄을 흔들 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이젠 다시 움직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시나브로 그는 지반을 잃어 가고 있었으니, 그의 손가락은 이무기틀 위에서 미끄러져 내리고, 팔에서 더욱더 기운이 빠져 가고 몸은 더욱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으며, 받쳐 주고 있는 구부러진 연관은 시시각각 조금씩 낭떠러지 쪽으로 휘어지고 있었다. 그는 종탑의 조각물들을 하나씩 하나씩 바라보았는데, 그것들도 자기처럼 낭떠러지에 매달려 있었으나 스스로 두려워하거나 그를 가엾게 여기는 기색은 없었다. 그의 주위에 있는 것은 오로지 돌뿐이었다. 마침내 부주교는 분노와 공포로 거품을 뿜으면서 모든 것이 허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 노력을 다하기 위해 자기에게 남아 있는 모든 힘을 모았다. 그는 이무기틀 위에서 온몸에 힘을 주어, 두 무릎으로 벽을 밀고, 양손으로 돌 틈바귀 하나에 매달려, 아마 한 자쯤은 기어오르는데 성공 했으리라. 그러나 이 동요에 그가 의지하고 있던 연관의 위쪽이 갑자기 휘어져 버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법의가 쫙 갈라져 나갔다. 그러자 자기 아래엔 아무것도 없음을 느꼈고, 이제 무엇엔가 붙어 있는 것이라곤 기운 빠진 뻣뻣한 손뿐이었다. 불행한 사나이는 눈을 감고 이무기틀을 놓아 버렸다. 그는 떨어졌다. 카지모도는 그가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아득한 추락은 좀처럼 수직일 수 없는 법이다. 허공에 던져진 부주교는 처음엔 머리를 아래로 하고 양팔을 펴고 떨어지다가, 이어 여러 번 뱅글뱅글 돌았다. 그는 바람에 날려서 어떤 집 지붕 아래로 떨어져, 거기서 이 불운한 사나이는 부서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아직 죽진 않았다. 종치기는 그가 또다시 손톱으로 합각머리를 붙잡으려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합각머리의 면은 너무나 가파랐고, 그에겐 이미 기운이 없었다. 그는 떨어져 내리는 기왓장처럼 지붕 위를 미끄러져 포석 위에 떨어졌다. 거기서 그는 이제 꼼짝하지 않았다. 그러자 카지모도는 아가씨 쪽으로 눈을 들어, 교수대에 매달린 육체가 멀리서 그 흰 옷 아래 마지막 단말마의 전율로 떨리는 것을 보고, 이어 양아버지에게로 다시 눈을 숙여, 종탑 아래 인간의 형체도 불분명한 채 뻗어 있는 걸 보았다. 그러더니 가슴을 세게 들썩거리고 문득 흐느끼면서 말했다. "오! 난 저 모든 것을 사랑했었는데!" 5 이날 저녁 무렵, 주교의 사법관들이 노틀담 성당으로 와서, 부주교의 산산조각 난 시체를 치우려고 했을 때 카지모도는 이미 이 대성당에서 종적을 감추어 버리고 없었다. 이 사건에 관한 여러 가지 소문이 나돌았다. 그들의 원래 계약대로 카지모도 즉, 악마가 클로도, 즉 마슬사를 데려가기로 예정돼 있던 날이 온 것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사람들은, 그가 영혼을 가져가면서 육체를 부서뜨린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원숭이가 호두알을 먹기 위해 그 껍질을 깨뜨리듯. 그리하여 부주교는 성스런 땅에 묻히지 못했다. 루이 11세는 이듬해 8월에 세상을 떠났다. 피에르 그랭구아르로 말하자면, 그는 연극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점성술과 철학과 연금술과, 그 밖의 온갖 미친 짓을 다 맛본 뒤 그는 온갖 미친 짓 중에서도 가장 미친 짓인 연극으로 되돌아왔던 모양이다. 그건 바로 그가 말하던 "극적인 결말을 지었다"는 것이다. 페뷔스는 역시 결말을 보았으니, 그는 결혼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에스메랄다를 처형한 다음날 밤 잡역부들은 교수대에서 그녀의 시체를 풀어, 관례에 따라 몽포콩의 지하실로 운반했다. 몽포콩은 가장 역사가 오래 되고 가장 훌륭한 교수대였다. 파리 성벽에서 좀 떨어진 곳, 그 경사는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완만하지만 사방에서 눈에 뛸 만큼 높은 한 언덕 꼭대기에, 이상한 형태의 건축물이 보였는데, 그것은 켈트족의 고인돌을 닮은 것으로, 거기서는 희생도 또한 바쳐지고 있었다. 그 거대한 평행 육면체의 석조 공사물을, 그 문과 외부의 난간과 옥상과 더불어 상상해 보라. 그 옥상에 다듬지 않은 거대한 돌기둥 열 여섯 개가, 그것들을 떠받치고 있는 토대의 사면 중 삼면 주위에 쭉 늘어서 있는데, 기둥과 기둥 사이는 그 꼭대기에서 튼튼한 들보로 연결돼 있고, 그 들보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쇠사슬이 매달려 있으며, 그 쇠사슬엔 해골이 매달려 있다. 그 근처 들판엔 하나의 돌십자가와 두 개의 교수대가 꺾꽂이 가지처럼 꽂혀 있는데, 그 모든 것 위의 공중에서는 까마귀들이 끊임없이 날고 있다. 1328년에 세워진 이 끔찍한 교수대는, 15세기 말엔 이미 퍽 낡아 빠져 있었다. 들보들은 케케묵고, 쇠사슬은 녹슬고, 기둥은 곰팡이가 슬어 새파랬다. 토대의 석재들은 그 이음 자국이 모두 갈라졌고, 사람의 발이 닿지 않은 옥상엔 잡초가 우거져 있었다. 이 건축물의 상부는 끔찍스런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밤이 되어 그 하얀 두개골 위에 달빛이 좀 비치거나, 저녁 바람이 쇠사슬과 해골들을 강타하여 그것들을 어둠 속에서 움직이게 할 적엔 더욱 그랬다. 이 끔찍한 건물의 토대가 되고 있는 초석은 속이 빈 상태였다. 그 속엔 거대한 하나의 지하실을 만들어 놓았고, 고장난 낡은 쇠살문 하나로 닫혀 있었던 것인데, 거기엔 몽포콩의 쇠사슬에서 떼어 낸 인간의 잔해뿐만 아니라, 파리의 다른 교수대에서 처형된 불쌍한 시체들도 던져 넣고 있었다. 숱한 인간의 육신과 숱한 죄악이 함께 썩는 이 깊은 납골당 속에, 이 세상의 수많은 귀인들과 무고한 사람들이 그 주검을 차례로 가져왔던 것이다. 카지모도의 신비스런 잠적으로 말하자면, 다음에 적는 것이 필자가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의 전부이다. 이 이야기를 마무리한 사건들이 있은 지 일 년 반쯤 후, 사람들이 몽포콩의 지하실로 '사슴 올리비에'의 시체를 찾으러 왔을 때(그는 이틀 전에 교수형에 처해졌는데 샤를르 8세가 특사를 내려 훌륭한 장례를 갖춰 생 로랑 성당에 이장케 했던 것이다) 그 모든 끔찍스런 해골들 사이엔, 한 송장이 또 하나의 송장을 이상하게 껴안고 있는 것이 발견됐다. 이 두 송장들 중 하나는 여자였는데, 아직도 그 흰 베옷이 몇 조각 붙어 있었으며, 그녀의 목 주위엔 녹색 유리 세공품으로 장식한 조그만 명주 주머니 하나가 보였다. 이 송장을 꼭 껴안고 있는 또 한 송장은 남자였다. 그것은 등뼈가 구부러졌고, 머리가 어깨 속에 들어가 있고, 한쪽 다리가 다른 쪽보다 짧은 것을 사람들은 알아볼 수 있었다. 그 목뼈가 조금도 상하지 않은 점으로 미루어 교수형을 당하지 않은 게 분명했다. 그러므로 이 송장의 본인은 거기 와서 죽은 것으로 추측되었다. 그가 껴안고 있는 송장에서 그를 떼어 내려 하자, 그것은 먼지로 화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