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명 : 노인과 바다 저자 : 헤밍웨이 (이종한 옮김) 출판사 : 교육문화연구회 출판년도 : 1994년 4월 30일 입력 봉사자 : 이철호 부천점자도서관 올림 전화:(032)652-9963 지은이 헤밍웨이 Ernest Miller Hemingway는 미국 시카고 교외의 오크파크에 서 태어났다. 캔자스시티의 신문기자를 지냈고 제1차 세계대전의 종군 경험을 토 대로 한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 <무기여 잘 있거라>를 발표해 명성을 얻기 시 작했다. 1921년 해들리 리처드슨과 결혼했다. 1953년 <노인과 바다>로 퓰리처상 을 받았고 이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킬리만자로의 눈>,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옮김이 이종한은 번역 문학가. 1927년 서울에서 태어남.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해외 여러 공관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하였음. 번역한 책으로는 <직장 범죄 론>, <노랑방의 비밀>, <장난꾸러기 쌍둥이> 등 다수가 있음. 차 례 1 노인과 바다 2 작품 해설 그는 멕시코 만에서 조각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하는 노인이었다. 대부분은 혼자 배를 타고 나가곤 했는데, 고기 한 마리 낚지 못하고 허송세월만 보낸 지 벌써 84 일째였다. 처음 40일간은 어떤 소년과 함께 있었다. 그러나 단 한 마리의 고기도 낚지 못한 채 40일이 지나자 소년의 부모가 아들에게 이러는 것이었다. 그 노인은 이제 확실히 불운을 만난 것이라고. 그것도 마침내 최악의 불운인 '살라오'가 분명 하다고. 그래서 소년은 그날 이후 부모의 명령대로 다른 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나 갔다. 소년이 타고 나간 배는 첫 주에 제법 큼직한 고기를 세 마리나 낚았었다. 그러나 소년은 내심 노인이 날마다 빈 배로 돌아와 무겁게 발걸음을 옮기는 것을 보는 게 슬펐다. 그래서 소년은 노인이 돌아올 시간이면 바닷가에 나와 기다렸다 가 노인을 도와 사린 낚싯줄이며 갈고리며 작살과 돛대에 감긴 돛을 나르곤 했다. 돛은 밀가루 푸대로 군데군데 기워져 있었는데, 그것을 둘둘 말면 마치 영원한 패 배자의 깃대같이 보였다. 노인의 목덜미에는 깊은 주름이 잡혀 있었고, 볼은 형편없이 야위었으며, 전체 적인 몰골이 너무나 초췌했다. 그 야윈 볼에는 열대지방 특유의 태양과 바다가 만 들어 준, 양성 피부암의 흔적인 갈색 반점이 있었다. 그 반점은 얼굴 양쪽으로 해 서 아래까지 쭉 번져 있었다. 손에는 큰 고기를 잡을 때 밧줄의 힘을 견디어 내느 라 생긴 깊은 상처가 훈장처럼 박혀 있었다. 그러나 그 상처는 최근에 새로 생긴 것은 아니었다. 고기 없는 사막의 썩어 문드러진 흔적처럼 오랜 세월에 걸쳐 생겨 난 상처들이었다. 노인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모든 것이 다 낡고 늙어 있었다. 그러나 그의 눈빛 만은 바다처럼 항상 젊고 명랑한 듯 했으며, 패배를 몰랐다. "산티아고 할아버지." 조각배를 끌어 올려놓은 뒤 두 사람은 둑으로 같이 올라가고 있었다. 그때 소년 이 노인에게 말했다. "실은 할아버지 하고 다시 배를 탔으면 해요. 그동안 우린 돈을 좀 벌었으니까." 노인은 소년에게 전부터 고기잡이를 가르쳐 왔었고, 그래서 소년은 노인을 무척 좋아했다. "아니야." 노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넌 이제 재수 있는 배를 탔으니까 그냥 거기 남아 있어." "하지만 할아버지는 84일동안 고기 한 마리 못 잡았는데 우린 3주 동안 매일같 이 큰 놈을 잡은 걸 기억하시죠?" "그럼, 알고 있지." 노인은 조용하게 대답했다. "네가 내 실력을 의심해서 내곁을 떠난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어." "아버지 때문에 떠났던 거예요. 난 아직 어리니까 아버지 말을 들어야 했구요." "그래, 알아."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말했다. "암, 물론 그래야지." "우리 아버지는 신념이 별로 깊지 못해요." "그래?" 노인이 소년을 돌아보며 눈을 꿈쩍했다. "하지만 우리는 신념이 있어. 안 그래?" "네, 그래요." 소년은 잠시도 쉬지 않고 노인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은 테라스에서 맥주를 한 잔 대접하고 싶어요. 그러고 나서 저 어구들을 집으로 나르지요." "좋지." 노인이 즐거운 투로 말했다. "우린 어부사인데 뭐." 그들은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노인을 보자 주변에 있던 어부들이 노인 을 놀렸지만 그는 절대 화를 내지 않았다. 다른 나이든 축들은 그 노인을 바라보 며 괜스레 마음 언짢아했다. 그러나 그들은 섣불리 굴지는 않았다. 단지 조류라든 지 낚싯줄을 드리웠던 당시의 바다 깊이라든지, 최근의 좋은 날씨에 대해, 아니면 그들이 고기잡이 나갔다가 본 것들에 대해 점잖게 이야기를 할 뿐이었다. 그날 재 미를 본 축들은 이미 그들이 잡은 마알린(돛새치)에 가차없이 칼질을 한 뒤 두 개 의 널빤지에 기다랗게 눕히고 있었다. 그리고 매우 무거운 듯 그 판자를 한쪽에 두 사람씩 매달려 비틀거리면서 어류 저장고로 운반해 갔다. 그곳에서 아바나 시 장으로 운반해 갈 냉동 화물차를 기다리는 것이다. 상어 공장으로 그것을 가져 가 는데, 그곳에서는 도르래와 밧줄로 상어를 달아 올린 뒤 우선 간을 빼내고, 지느 러미를 자르고, 껍질을 벗지고, 살을 소금에 절이기 위해 토막을 쳐대는 등 갑자 기 바빠지는 것이다. 바람이 동쪽에서 불어올 때면 상어 공장에서 항구 건너 쪽까지 그 냄새가 풍겨 왔다. 그러나 오늘은 바람이 북쪽으로 불다가 그나마 그치고 말았기 때문에 냄새 도 풍기는 듯 마는 듯 했다. 마침 테라스에는 햇볕이 잘 들었고 기분도 좋았다. "산티아고 할아버지." 소년이 노인을 불렀다. "응." 노인이 대답했다. 그는 맥주잔을 든 채 옛날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나가서 내일 쓸 정어리를 좀 구해 올까요?" "아니야, 넌 가서 야구나 하렴. 아직은 나 혼자서도 노를 저을 수 있고 로헬리오 가 어망을 던질 테니까." "하지만 전 지금 나갔다 왔으면 좋겠는데요. 할아버지 하고 같이 고기잡이를 할 수 없으니까 아무 거나 다른 일이라도 도와드리고 싶은 걸요." "벌써 맥주를 샀잖아. 그걸로 됐어." 노인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너도 이젠 어른이야." "할아버지가 저를 처음 배에 태워 주셨을 때 제가 몇 살이었었지요?" "아마 다섯 살이었지. 내가 그때 꽤 힘이 센 놈을 하나 잡아 올렸는데,아 그놈이 배를 산산조각 낼 뻔했지. 너도 하마터면 죽을 뻔했었어. 생각나니?" "지금 기억나는 건 그놈이 꼬리를 철썩거리고 쿵쾅거리는 통에 가로대가 부러지 고, 할아버지가 몽둥이로 그놈을 후려 갈기던 소리예요. 할아버지가 그때 저를 젖 은 낚싯줄 사리가 있는 뱃머리로 던져 버리던 거며, 배 전체가 흔들리듯 요동치던 일, 그리고 마치 큰 나무를 찍어 넘기듯 몽둥이로 그놈을 내려치던 소리가 났었 고, 이윽고 내 몸에서 들큰한 피비린내가 나던 것도 기억해요." "정말 그때 일을 다 기억하고 있는 거냐, 아니면 나중에 내가 이야기해 준 거 냐?" "우리가 함께 배를 타고 나갔던 이후의 일은 무엇이나 다 기억하고 있는 걸요." 노인은 햇볕에 그을린 얼굴을 들더니 자신만만하고 자애로운 눈으로 물끄러미 소년을 바라 보았다. "네가 내아들이라면 너를 데리고 나가서 한번 모험이라도 해 보겠는데...." 노인의 표정이 약간 쓸쓸하게 바뀌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너는 너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아들임이 분명하고, 또 너는 지금 재수 있는 배를 타고 있으니 어림없겠지..." "정어리를 구해 올까요? 미끼도 네 개쯤은 구해 올 수 있어요." "내 것은 오늘치도 아직 많이 남았다. 궤짝에 소금으로 절여 뒀어." "싱싱한 걸로 네 개만 가져 올게요." "그렇다면 하나만 가져 오너라." 노인은 말했다. 노인은 언제고 희망과 자신을 버린 적이 없었다. 이제 미풍이 일자, 희망감과 함께 더욱 자신이 넘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둘만." 소년이 자꾸 고집을 부렸다. "그래, 둘만." 마침내 노인도 빙긋이 웃으며 동의했다. "설마 훔치지는 않았겠지?" "훔칠 수도 있었겠지만요, 그러나..." 소년은 자랑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이건 산 거예요" "고맙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노인은 워낙 단순해서 언제 자기가 겸손한 적 이라도 있었던가 생각해 볼 줄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만큼은 겸손하다는 것이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며, 진정한 자부심에 손상을 주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조류가 이대로만 유지 된다면 내일은 재수가 있겠다." 노인이 자위하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내일은 어느 쪽으로 가시려고요?" 소년이 물었다. "바람이 바뀌면 돌아올 수 있을 만큼만 멀리 나갈까 한다. 그리고 날이 밝기 전 에 나갔으면 좋겠다." "저도 주인을 졸라서라도 멀리 나가도록 하겠어요." 소년이 다짐하는 투로 말했다. "할아버지가 만일 진짜 큰 놈이라도 잡게 되면 우리가 달려가서 할아버지를 도 와 줄 수 있도록 말예요." "너의 주인은 아마 너무 멀리 나가는 건 싫어할 걸." "그래요. 할아버지 말이 맞아요." 소년이 체념하듯 말했다. "그래도 새가 날아가는 것 같은, 이를 테면 주인이 못 보는 것을 부러 찾아내어 돌고래를 쫓아서 멀리 나가도록 해보겠어요." "그 사람 눈이 그렇게 나쁜가?" "거의 장님이니까요." "그래? 그것 참 이상하구나." 노인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 사람은 한번도 거북잡이를 간 적이 없었는데, 왜냐하면 거북잡이가 눈을 상 하게 하거든." "하지만 할아버지는 몇 해 동안이나 모스킷토 해안으로 거북이를 잡으러 나갔잖 아요. 그런데도 할아버진 아직 눈이 좋잖아요?" "나야 원래 좀 특이한 늙은이니까." "참 할아버지, 정말 큰 고기를 이겨 낼 만큼 지금도 힘이 남아 있어요?" "아마 그럴 거야. 그리고 난 여러 가지 요령도 알고 있으니까." "어구를 집으로 나르지요." 소년이 말했다. "그래야 투망을 가지고 정어리를 잡으러 가지요." 노인과 소년은 배에서 고기잡는 도구를 집어 들었다. 노인은 어깨에 돛대를 메 었고, 소년은 단단히 꼰 낚싯줄이 들어 있는 나무 궤짝이며, 갈고릿대와 창이 달 린 작살 등을 날랐다. 미끼가 들어있던 통은 배의 고물 아래쪽에 몽둥이와 나란히 놓여 있었다. 그 몽둥이는 큰 고기를 뱃전으로 끌어 올렸을 때 날뛰는 고기의 힘 을 빼기 위해서 사용되는 것이다. 물론 누구도 노인의 물건을 훔쳐갈 리야 없지 만, 돛이랑 굵은 밧줄은 이슬을 맞으면 좋지 않으니까 집으로 가지고 가는 편이 나을 것이었다. 그 지방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노인의 물건을 훔쳐 가지는 않는다 고 믿고 있었지만 갈고릿대나 작살을 배에 놔두는 것은 쓸데없이 남을 유혹에 빠 뜨릴 수도 있을 거라고 노인은 생각했다. 그들은 노인이 사는 판잣집으로 올라가서 열린 문으로 들어갔다. 노인은 우선 돛대를 벽에 기대어 놓았고, 소년은 궤짝과 다른 도구들을 그 옆에 놓아 두었다. 돛대의 길이는 그 판잣집의 단칸방 길이만큼이나 길었다. 판잣집은 '구아노'라고 하는 종려나무의 탄탄한 껍질로 만든 것이었는데, 방에는 침대 하나와 테이블 하 나, 의자 하나가 덜렁 놓여 있었다. 그리고 땅바닥에는 숯으로 음식을 만들 수 있 도록 되어 있었다. 구아노 잎을 겹쳐서 편편하게 만든 갈색 벽에는 예수와 성모 마리아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그 사진들은 여러 색으로 채색되어 있었는데, 이것 들은 아내의 유물이었다. 전에는 아내의 사진도 벽에 붙어 있었다. 그러나 그 사 진을 보고 있노라면 까닭없이 쓸쓸해져서 그것만은 구석 선반위에 있는 깨끗한 셔츠 밑에다 넣어 두었다. "뭐 좀 드실 거라도 있어요?" 소년이 물었다. "누런 쌀밥 한 냄비와 생선이 있지. 참, 너도 좀 먹을래?" "아녜요. 전 집에 가서 먹겠어요. 불 좀 피워 드릴까요?" "아니 괜찮아. 내가 나중에 피우지. 그냥 찬 것으로 먹어도 되니까." "저 투망은 가져가도 돼요?" "좋고말고." 그러나 노인에게는 투망이 없었다. 소년은 노인이 그것을 언제 팔아 버렸는지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날마다 이런 꾸민 얘기들을 주고 받고는 했다. 물론 누런 쌀밥도 생선도 없었다. 소년은 그것도 알고 있었다. "여든 다섯이란 꽤 재수 있는 숫자야." 노인이 소년을 보며 말했다. "내가 내장을 빼고도 천 파운드가 넘는 놈을 잡아 오는 것을 봤으면 좋겠지?" "전 투망으로 정어리나 잡으러 가겠어요. 할아버지는 문가 쪽에 앉아 계시겠어 요? 햇볕이 따뜻한데." "그래 어제 신문이 하나 있으니까 야구 기사나 읽어야겠다." 하지만 소년은 어제 신문이 있다는 것도 거짓으로 꾸며낸 얘기인지, 아닌지 통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노인은 침대 아래에서 정말로 신문을 꺼내 오는 것이었 다. "반찬 가게에서 페리코가 이 신문을 주더구나." 노인이 소년의 표정을 살피며 설명했다. "정어리를 잡으면 바로 돌아올게요. 할아버지 것하고 내 것하고 같이 얼음에 채 워 놓은 다음 아침에 나누어 가져요. 대신 내가 돌아 오거든 야구 얘기 좀 들려 주세요." "물론 양키즈 팀이 질 리가 없지." "그래도 클리블랜드의 인디언즈 팀이 걱정되는데요." "얘야, 양키즈 팀을 믿어라. 위대한 디마지오를 생각하란 말이다." "하지만 디트로이트의 타이거즈 팀과 클리블랜드의 인디언즈 팀 둘 다 모두 겁 나는데요." "그러다가는 신시네티의 레스 팀이나 시카고의 화이트 삭스 팀까지 겁내겠는 걸." "어쨌든 할아버지가 잘 보시고 돌아 오거든 얘기해 주세요." "그렇지! 끝수가 85로 된 복권을 한 장 사는게 어떻겠니? 내일이 바로 여든 다 섯 번째 날이거든." "그렇게 하세요." 소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위대한 기록인 85를 네가 찾아 낼 수 있겠니?" "바로 그걸로 한 장 주문하지요, 뭐." "그래, 한 장만. 2불 50전이야. 그런데 돈은 누구한테서 꾸지?" "그건 쉬워요. 2불 50전쯤은 언제든지 꿀 수 있어요." "아마, 나도 마음만 먹으면 꿀 수 있을 거야. 그러나 내가 꾸려고 하질 않는게 문제지. 왜냐하면 처음엔 꾸어 오지만 다음엔 구걸하게 되니까." "할아버지, 우선 몸을 따뜻하게 하세요." 소년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지금은 9월이란 것을 생각하셔야죠." "9월은 큰 고기가 오는 때지." 노인이 말했다. "5월에는 누구든지 어부가 될 수 있단다." "전 정어리 구하러 가겠어요." 소년이 말했다. 그리고 한참후 소년이 돌아왔을 때 노인은 의자에 앉은 채로 잠 들어 있었다. 이미 해도 진 후였다. 소년은 침대에 있던 낡은 군용 담요를 벗겨서 의자 뒤로 가 노인의 어깨에 둘러 주었다. 늙었지만 아직도 힘찬, 이상한 힘이 넘 치는 두 어깨였다. 목도 아직 튼튼했으며, 노인이 머리를 앞으로 숙이고 잠들어 있었기 때문에 오늘따라 주름살도 별로 보이지 않았다. 노인의 셔츠는 하도 여러 번 기워서 그의 돛처럼 패잔병의 해어진 전투복 같았고 기운 조각이 햇볕에 바래 각각 여러 가지 색깔로 변해 있었다. 그래도 노인의 머리는 숨길 수 없는 백발이 었으며, 눈을 감고 있으니까 산 사람 같지가 않았다. 신문이 무릎에 펼쳐진 채 놓 여 있었지만, 그 무게 때문에 저녁 미풍에도 날아가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발은 맨발이었다. 소년이 노인을 그대로 두고 갔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도 노인은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 "할아버지, 이제 그만 일어나세요." 하고 소년이 말하면서 노인의 한쪽 무릎 위에 손을 올려 놓았다. 그러나 노인은 눈을 뜨고도 먼 꿈나라에서 현실로 되돌아 오느라고 한참이나 걸렸다. 이윽고 노인이 웃음을 띠었다. "그게 뭐지?" "저녁밥이에요." 소년이 말했다. "저녁은 잡수셔야지요." "하지만 난 그리 배가 고프지 않다." "그래도 드세요. 밥을 먹지 않으면 고기도 못 잡아요." "전엔 잡았었는데." 노인은 신문을 접으면서 일어났다. 그리고 담요를 개려고 했다. "담요는 그냥 두르고 계세요." 소년이 말렸다. "제가 곁에 있는 한, 밥을 먹지 않고는 고기잡이도 못 하시게 할 거예요." "그럼, 오래 살고 몸조심해야지." 노인이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뭘 먹을 거냐?" "검정콩과 쌀밥, 바나나 후이한 것과 스튜예요." 소년은 테라스에서 가져온 음식들을 2중으로 된 양재기에 담아 왔다. 그러더니 주머니에서 종이로 싼 나이프와 포크, 스푼 따위 등을 꺼냈다. "이걸 누가 주든?" "마틴이오, 우리 주인 말예요." "그 사람한테 고맙다고 해야겠구나." "제가 벌써 그 말을 한 걸요." 소년이 말했다. "할아버지까지 그러실 필요는 없어요." "이번에 큰 고기를 잡으면 그 사람한테 뱃살이라도 주어야겠다." 노인이 말했다. "이번 말고도 여러 번 음식을 주곤 했었니?" "네, 그래요." "그렇다면 뱃살 이상의 것을 줘야겠구나. 그 사람, 우리한테 퍽 친절하구나." "맥주도 두 개나 줬어요." "나는 깡통 맥주가 제일 좋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오늘 건 병맥주예요. 햇티 맥주요." "고맙다." 노인의 목소리가 잦아 들었다. "자, 그럼 먹어 볼까?" "그래서 아까부터 들자고 했잖아요." 소년이 다정한 말투로 노인에게 말했다. "할아버지가 마음의 준비가 될 때까지 뚜껑을 열고 싶지가 않았어요." "이젠 준비됐다." 노인이 말했다. "난 그저 손 씻을 시간이 필요했던 것 뿐이야." 하지만 손을 어디서 씻었지? 소년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말 뜻을 생각했다. 마 을의 물긷는 곳까지 갔다 오려면 큰 거리를 둘씩이나 거쳐 내려가야 했다. 맞아.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할아버지를 위하여 물을 길어 와야 하는 건데. 그리고 비 누랑 깨끗한 타월도 가져오고. 난 어째 이렇게 생각이 모자랄까? 다음엔 겨울에 입을 셔츠와 자켓과 신발과 담요도 한장 더 갖다 드려야겠다. 소년은 계속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스튜가 아주 맛있구나." 노인이 말했다. "야구 얘기나 해주세요." 소년은 마치 자기 생각을 들키기라도 한 듯 짐짓 노인을 졸랐다. "아메리칸 리그에서는 역시 내가 말한 대로 양키즈 팀이야." 노인은 유쾌하게 말했다. "하지만 오늘은 졌는 걸요." 소년이 노인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위대한 디마지오가 다시 활약할 거니까." "그 팀에는 다른 선수들도 있는 걸요." "물론이지, 그렇지만 디마지오가 나타나면 달라지지. 브룩클린과 필라델피아 사 이의 다른 리그라면 나는 단연 브룩클린 쪽이야. 그러나 딕 시슬러의 그때 모습이 며 낯익은 야구장에서 멋있게 직구를 던지던 일들이 생각난다." "정말 그런 멋진 강타는 없었어요. 내가 본 것 중에서 제일 길게 쳤을 거예요." "그게 테라스에 모습을 나타냈던 때의 일을 기억하니? 나는 그를 고기잡이에 데 리고 가고 싶었지만 너무 소심해서 말도 못 꺼냈어. 그래 널 보고 말해 보라고 했 지만 너도 차마 말을 못했지." "알고 있어요. 그땐 참 바보 같았어요. 만약 말을 했으면 우리하고 함께 갔을지 도 모를 텐데. 그랬다면 우린 평생 자랑 거리가 하나 생겼을 텐데 말예요." "나는 지금도 그 위대한 디마지오를 고기잡이에 한번 데리고 나갔으면 좋겠어." 하고 노인이 말했다. "그의 아버지도 어부였다고들 말하던데, 아마 디마지오도 한때는 우리처럼 가난 했을 거야. 그러니까 우리를 이해할 거야." "위대한 시슬러의 아버지도 가난했던 적이 있었잖아요. 그리고 내 나이 때는 대 리그에서 뛰었었죠." "내가 네 나이 때는 횡범을 타고 아프리카로 다니는 배를 탔었는데.... 저녁 때는 해안까지 나와서 어슬렁거리는 사자들을 봤어." "알아요, 전에도 얘기하셨어요." "그래? 그럼 아프리카 얘기를 할까, 야구 얘기를 계속할까?" "야구 얘기요." 소년이 재빨리 말했다. "위대한 존 제이(J) 맥글로우에 대해 얘기를 해주세요." 소년은 제이(J)를 호타라고 했다. "예전엔 그도 이따금 이 테라스에 나타나곤 했었지. 그렇지만 성질이 사납고 말 투가 거칠어서 한번 술에 취하면 다루기가 힘들었어. 그는 야구 이외에도 경마에 관심이 많았었지. 늘 호주머니 속에 말 일람표가 들어 있었고, 전화를 할때조차 말 이름을 댔거든." "그는 훌륭한 매니저였어요. 우리 아버지는 그가 최고래요." 소년이 단호한 어투로 말했다. "그가 주로 여기에 나타났었으니까 그렇지." 노인이 웃으며 말했다. "만일 듀로처가 매년 잊지 않고 이곳에 나타났었다면 네 아버지는 듀로처가 제 일 훌륭한 매니저라고 말했을 게다." "그럼 진짜 누가 제일 훌륭한 매니저예요? 류크예요? 아니면 마이크 곤잘레요?" "아마 둘 다 비슷비슷하겠지." "그리고 가장 훌륭한 어부는 바로 할아버지예요." "아니야, 나보다 더 훌륭한 어부들도 있는 걸." "천만에요." 하고 소년이 말했다. "그중에는 괜찮은 어부들이나 훌륭한 어부들도 더러 있겠죠. 하지만 역시 할아 버지가 최고라는 건 사실이에요." "고맙다. 네 말을 들으니 무척 기쁘구나. 너무 큰 고기가 나타나서 지금 우리가 한 말이 잘못이라는 걸 보여주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대로 아직 튼튼하시다면 그런 고기란 세상에 없을 거예 요." "하지만 내가 그렇게 튼튼하지 않을지도 몰라." 하고 노인은 말했다. "그래도 난 여러 가지 비결을 알고 있고 각오도 단단히 되어 있어." "아침에 새로운 힘이 솟아날 수 있게 이제 잠자리에 드세요. 나는 이 그릇을 테 라스에 갖다 두겠어요." "그럼 잘 자라. 아침에 내가 깨우마." "할아버지는 날 깨워주는 시계라니까." "그리고 나이는 내 시계이고." 노인이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늙은이는 왜 그렇게 일찍 잠이 깨는지 몰라. 영원히 잠들 시간이 가까웠으니까 하루를 좀 더 길게 보내라는 걸까?" "그건 잘 모르겠군요." 하고 소년이 대답했다. "반대로 젊은 애들은 늦게까지 곤히 잔다는 것밖엔 모르겠어요." "그건 나도 기억할 수 있어." 노인이 다시 다짐하듯 말했다. "제 시간에 깨우마." "난 우리 주인이 날 깨우는게 싫어요. 왜냐하면 그럴 때마다 내가 그 사람만 못 한 것 같은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 알겠다." "그럼 편히 주무세요, 할아버지." 소년은 나갔다. 그들은 그때까지 불도 켜지 않고 식탁에서 저녁를 먹고 있었다. 노인은 어둠속에서 바지를 벗고 잠자리에 들었다. 노인은 바지를 둘둘 말아서 그 속에 신문을 넣어 베개를 만들었다. 그리고 담요로 몸을 감은 뒤 요 대신 침대 스 프링을 덮어 놓은 다른 헌 신문지 위에서 잤다. 노인은 잠이 들자 곧 어렸을 적에 보았던 아프리카의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길 게 휘어진 금빛 해안과 너무 희어서 눈이 아플 정도였던 백색 해변과 높은 갑과 거대한 갈색 산들을 보았다. 노인은 요즈음 잠만 들면 날마다 그 해안에서 살다시 피했고, 꿈속에서 부딪치는 파도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그 거친 파도를 헤치고 원주민의 배들이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그는 자면서도 갑판의 타르 냄새와 뱃밥 냄새를 맡았고, 아침이면 뭍에서 불어오는 미풍 속에서 아프리카의 냄새를 맡곤 했다. 노인은 뭍의 미풍 냄새를 맡게 될 때쯤 습관적으로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옷 을 입고 소년을 깨우러 가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그 미풍 냄새를 너무 일찍 맡 은 것 같았다. 꿈을 꾸면서도 너무 이른 시각이라는 것을 느낀 노인은 다시 꿈속 으로 돌아가 바다에서 솟아 오르는 섬의 흰 봉우리를 보았고, 다음에는 카나리아 국도의 여러 항구며, 정박장에 대한 꿈을 꾸었다. 노인은 이제 더 이상 폭풍우나 여자, 큰 사건이나 큰 고기, 싸움, 힘겨룸과 아내 에 대한 꿈같은 것은 꾸지 않았다. 다만 그 동안 돌아다녔던 여러 장소며 해안의 사자 꿈을 꿀 뿐이었다. 사자는 마치 고양이 새끼처럼 황혼에서 뛰놀았고, 노인은 소년을 사랑하는 것처럼 그 사자들을 사랑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노인은 소년의 꿈을 꾼 적은 없었다. 노인은 곧 잠에서 깨어 열린 문으로 달을 쳐다보며, 주섬주 섬 바지를 입었다. 베개를 대신 해주던 그 바지였다. 판잣집 바깥에서 오줌을 누 고 소년을 깨우러 올라갔다. 그는 아침 냉기가 대단하다고 느끼며 몸을 오싹 떨었 다. 그러나 잠시 떨고 나면 곧 몸이 따뜻해지고 또 힘차게 노를 젖게 되리라고 생 각했다. 소년이 사는 집 문은 늘 잠겨 있지 않은 채였다. 노인은 문을 열고 맨발로 가만 히 걸어 들어갔다. 소년은 첫 번째 방 침대에서 자고 있었는데 희미해져 가는 달 빛을 받아 그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노인은 가만히 소년의 한발을 잡고 소년이 눈을 뜰 때까지 그대로 있었다. 이윽고 소년이 눈을 떴다.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 자 소년은 옆의 의자에서 바지를 가져다가 침대에 앉은 채로 옷을 입었다. 노인이 문 밖으로 나가자 소년도 따라 나섰다. 소년은 아직도 졸린 모양이었다. 노인은 자기 팔을 소년의 어깨에다 두르면서 말했다. "너무 일찍 깨운 모양인데, 미안하다." "천만에요." 하고 소년이 말했다. "어른이 되면 그것도 해야 할 하나의 일인 걸요." 그들은 노인이 살고 있는 판잣집까지 걸어 내려갔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길가에서 맨발 벗은 사람들이 자기네 배의 돛대를 나르느라 부산히 움직이고 있 는 것이 보였다. 노인이 사는 판잣집에 이르자, 소년도 갑자기 바빠졌다. 소년은 광주리에 담긴 낚싯줄 고리와 갈고릿대와 작살을 들었고, 노인은 돛을 감은 돛대를 어깨에 메고 배로 날랐다. "커피 드시겠어요?" 소년이 물었다. "이 도구들을 배에 갖다 두고 와서 들자." 그곳에는 이른 새벽마다 어부들에게 음식을 파는 곳이 있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연유통으로 커피를 마셨다. "할아버지, 어젯밤에 잘 주무셨어요?" 소년이 물었다. 소년은 그때까지도 말끔하게 잠에서 깨기가 힘든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졸음이 가시는 중이었다. "응, 잘 잤다. 마놀린." 노인이 말했다. "어쩐지 오늘은 자신이 생기는데." "저도 그래요." 하고 소년이 말했다. "자, 이젠 우리 정어리하고 할아버지가 쓸 싱싱한 미끼를 가져올게요. 우리 주인 은 어구를 직접 가지고 오거든요. 남이 자기 도구를 나르는 걸 싫어하지요." "하지만 우리는 달라." 하고 노인이 말했다. "나는 네가 다섯 살 때부터 도구를 나르게 했었지 않니." "알아요." 하고 소년이 말했다. "곧 돌아올게요. 커피나 한 잔 더 드세요. 여기서는 외상으로 해도 돼요." 소년은 맨발이었다. 그는 산호석 위를 겅중겅중 뛰며 미끼가 저장되어 있는 얼 음집으로 걸어갔다. 노인은 천천히 커피를 마셨다. 그것이 하루 동안 자기가 먹을 식량의 전부이기 때문에 끝까지 먹어 둬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노인은 먹는 것이 싫어진 지 오래된다. 그래서 점심을 가지고 나가지 않는 것이 편했다. 뱃머리에 물 한 통만 달랑 달고 나가는데 그것만 있으면 온종일 견딜 수 있었다. 소년이 신문에 싼 정어리와 미끼 두 개를 가지고 돌아왔다. 그들은 미끼를 들고 자갈섞인 모래의 감촉을 느끼면서 배가 있는 데까지 오솔길을 따라 내려갔다. 노 인과 소년은 말없이 배를 들어 물에 띄웠다. "할아버지, 행운을 빌어요." "너도 행운을 빈다." 노인도 답례를 했다. 그는 노를 묶어둔 밧줄을 노꽂이에다 비끌어 매고 노깃을 물에다 밀어 넣으며 몸을 앞으로 구부렸다. 그리고 천천히 어둠을 헤치며 항구 밖 으로 노를 저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때쯤 벌써 다른 배들도 바다로 나가고 있었 다. 달이 산 너머로 넘어간 시각이어서 이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노 인은 그들이 노를 물에 담그고 물을 밀어내는 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간혹 배에서 말을 하는 소리도 들려왔다. 그러나 대개의 고깃배에서는 노를 저 어 나가는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전달되어 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 배들은 항 구 밖으로 나가면 뿔뿔이 흩어져서 각기 고기가 있음직한 곳을 향해 뱃머리를 돌 리는 것이다. 노인은 오늘 하루는 멀리 나갈 생각이었다. 그래서 항구의 물 냄새 를 뒤로 하고 넓은 대양의 맑은 냄새를 쫓아 노를 저어 나아갔다. 어부들이 큰 샘 이라고 부르는 곳까지 왔을 때 노인은 물속에서 해초의 인광을 보았다. 큰 샘이라 는 이곳은 별안간 물 깊이가 7백 길로 떨어지는 지점인데, 해륙가 바다 밑바닥의 가파른 장벽에 부딪쳐서 소용돌이를 이루기 때문에 여러 종류의 고기가 모여 드 는 곳이다. 대부분은 새우와 미끼 고기가 수없이 많았으며, 가끔은 아주 깊숙한 굴 속에 오 징어 떼들이 몰려 있기도 했다. 이것들은 밤이면 수면 가까이로 올라 오기도 했는 데, 수면 위로 떠 다니는 고기들에게 잡아 먹히기도 했다. 노인은 어둠 속에서도 아침이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노를 저어감에 따 라 날치가 물을 차고 올라올 때의 물의 진동이 느껴지기도 했는데, 그놈이 어둠 속에서 공중을 날 때 빳빳하게 세운 날개가 공기를 가르는 '쉿'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날치를 대단히 좋아했는데, 바다에서는 노인의 제일 친한 친구였다. 그는 새들을 가엾게 여기는 사람 중 하나였다. 특히 작고 가냘픈 검정색 제비갈매 기는 언제나 물 위를 날며 먹이를 찾고 있었지만 거의 구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 욱 불쌍했다. 노인은 생각했다. 파리매라든지 크고 힘센 새들이 아니라면, 새들은 우리 인간보다 더 살기가 어렵겠구나 라고. 바다는 종종 저다지도 잔인한 때가 있는데, 어쩌자고 신은 바다제비 같은 저런 약하고 섬세한 새를 만들었을까? 바다는 대부분 친절하고 대단히 아름답지만 갑 자기 잔인하게 변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가냘프고 구슬픈 소리로 노래를 부르 며 먹이를 찾아 떠도는 새들은 이 심술궂은 바다에서 살기에 너무나 연약한 존재 였던 것이다. 노인은 언제나 바다를 '라 마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스페인 사람들이 바다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을 때 붙인 이름이다. 간혹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나쁜 말을 할 때가 있지만, 그말도 결국 바다를 여자로 생각하고 하는 말이다. 간혹 젊 은 어부들 가운데서는 낚싯줄을 뜨게 하려고 찌를 사용했다든지, 아니면 상어의 간으로 돈을 많이 벌어서 모터보트를 사게 되었을 경우 바다를 남성으로 생각해 서 '엘 마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들은 바다를 경쟁자나 경쟁 장소라고 생각하는 듯했고, 심지어는 적이라고까지 말했다. 그러나 노인은 언제나 바다를 여성으로 생각했고 큰 은혜를 베풀거나 간직하고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가끔 바다가 사나 워지고 나쁜 일을 할 때도 그건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어서 그러는 것이라고만 여겼다. 달이 여인에게 영향을 미치듯 바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던 것이 다. 노인은 쉬지 않고 노를 저었다. 배는 적당한 속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따금 해류가 소용돌이 치는 것 외에는 너무나 잔잔해서 노젓는 것이 전혀 힘들지 않았 다. 조류의 덕택으로 3분의 1의 노력을 덜 수 있었다. 이윽고 동이 트기 시작했을 때는 처음의 목적지보다 훨씬 멀리 나가 있는 것을 깨달았다. 노인은 생각했다. 나는 일주일 동안이나 깊은 곳에서 낚시질을 했지만, 매일 허 탕이었다. 오늘은 칼고등어와 다랑어 떼가 모이는 곳에서 작업을 해야 할 것이다. 거기에는 큼직한 놈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날이 완전히 밝아지기 전에 노인은 미끼를 꺼내려고 노를 놓았다. 이제 배는 조 류에 맡길 심산이었다. 우선 미끼 하나를 40길 아래로 던졌다. 두 번째 것은 75길 아래로, 세 번째 것과 네 번째 것은 각각 100길과 125길 아래의 깊은 물속으로 던 졌다. 낚시 바늘의 몸대는 미끼고기 안으로 밀어 넣어 단단히 꿰매고, 구부러지고 뾰족한 부분은 싱싱한 정어리로 쌌기 때문에 미끼는 모두 머리를 아래로 두고 매 달려 있었다. 정어리들은 양쪽 눈을 꿰어 달아 놓았는데 그 모양이 마치 돌출된 낚시바늘에 반달 모양의 화환을 씌운 것 같았다. 오늘 낚시의 미끼들은 훌륭했다. 미끼의 구수한 냄새가 고기들의 입맛을 돋울 만했다. 소년이 노인에게 싱싱한 다랑어 새끼 두 마리를 주었는데, 그것은 제일 깊이 던 진 줄에 매달려 있었다. 다른 줄에는 한번 썼었던 푸른 정어리와 누르스름한 빛을 하고 있는 연어 수놈을 매달았다. 아직은 물이 좋았고 정어리 냄새도 썩 좋은 걸 보니 전에 쓰던 미끼라도 괜찮았다. 연필만큼 굵은 낚싯줄에는 하나같이 초록색 막대기가 묶여 있어서 고기가 미끼를 조금 잡아 당기거나 닿기만 해도 막대기가 물 속에 잠기도록 되어 있었다. 또 낚싯줄에는 40길짜리의 낚싯줄 두 벌이 같이 있어서 재빨리 남은 낚싯줄에 이을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따라서 필요한 경우에 는 고기가 3백 길 이상까지 줄을 끌고 갈 수도 있었다. 이제 노인은 뱃전 너머로 낚싯대 세 개가 물속에 잠기는 것을 지켜 보면서 낚 싯줄이 적당한 수심에서 위아래가 팽팽하게 당겨지도록 가만히 노를 저었다. 날이 상당히 훤해졌다. 이제 곧 해가 솟아 오를 것 같았다. 해가 희미하게 떠오르자, 바다 위에 떠 있는 다른 고깃배들이 보였다. 고깃배들 은 대부분 멀리 해안 쪽 바다에서 조류를 가로질러 야트막하게 흩어져 있었다. 날 이 더욱 밝아지자 갑자기 눈부신 햇빛이 물 위로 쏟아졌다. 잠시 후에 해가 선명 하게 모습을 드러냈고, 잔잔한 수면이 해를 반사시켜 눈이 아팠다. 노인은 물 위 에서 시선을 거두며 천천히 노를 저었다. 노인은 가끔 물 속을 내려다보았다. 어 두운 물 속 깊이 곧게 내리뻗은 낚싯줄이 보였다. 그는 누구보다도 낚싯줄을 똑바 로 드리울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물 속 어디서 건, 그곳을 오가는 고기가 바로 미끼를 먹을 수 있도록 원하는 곳에 정확히 미끼가 놓여 있었다. 다른 어부 들은 종종 조류에 낚싯줄을 담가 놓기 때문에 1백 길 되는 곳에 낚시를 드리웠다 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60길 수심에 떠 있는 수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항상 정확하지. 노인은 생각했다. 단지 난 운이 없을 뿐이야. 그러 나 누가 알아?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인지. 하루하루가 새로운 것이니까 재수가 있 으면 더욱 좋겠지만, 그러나 나는 항상 정확하게 해야 해. 그래야 운이 닿아도 놓 치지 않을 테니까. 해가 뜬 후 두 시간이 지나자 이젠 동쪽을 보아도 그다지 눈이 아프지 않았다. 이제 시야에 들어오는 배는 세 척밖에 없었고, 그나마 그 배들도 멀리 해안 쪽에 서 야트막하게 보였다. 노인은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난 아마 한평생 바라본 아침해 때문에 눈이 상 했을 거야.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괜찮아. 저녁때는 해를 똑바로 쳐다 보아도 깜 깜해지지는 않으니까. 사실 저녁 햇빛도 강하기는 해. 그러나 이놈의 아침해는 눈 이 너무 아프단 말이야. 바로 그때였다. 노인은 군함새 한 마리가 길고 검은 날개를 편 채 머리 위 하늘 을 빙빙 돌고 있는 것을 보았다. 새는 날개를 뒤로 뻗은 채 비스듬한 자세로 급히 하강했다가는 다시 하늘로 날아 올랐다. "뭘 봤구나." 노인은 혼자 소리를 내어 중얼거렸다. "그냥 먹이만 찾고 있는 것이 아니야." 노인은 새가 빙빙 돌고 있는 곳을 향해 천천히 계속해서 노를 저었다. 그는 절 대 서두르지 않았다. 대신 다시 한번 낚싯줄이 위아래로 팽팽하게 드리워져 있도 록 조정을 했다. 그리고 잠시 후 조류를 헤치며 약간 속력을 내었다. 새를 이용하 지 않고 고기잡이 할 때보다 조금 더 빠른 속도였다. 그래도 정확하게 낚시질을 할 수 있을 정도로만 속력을 내었다. 새는 더 높이 날아올라 가더니 날개를 움직이지도 않은 채 다시 그 자리에서 빙빙 돌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아래로 내려왔다. 그때 날치가 물 밖으로 튀어 나 오며 필사적으로 수면 위를 날으는 것이 보였다. "돌고래다." 노인은 짧게 소리쳤다. "큰 돌고래야." 그는 노를 노받이에 걸고 이물 밑창에서 작은 낚싯줄을 하나 꺼냈다. 그 줄에는 철사로 된 낚시걸이와 보통 크기의 낚시가 달려 있었다. 노인은 거기에다 미끼로 정어리 한 마리를 달았다. 그것을 그물 쪽에 있는 고리 쇠에 단단히 붙들어 맨 뒤 뱃전 너머로 드리웠다. 그리고 계속해서 다른 낚싯줄에도 미끼를 달아서 이물 구 석진 곳에 감아 놓았다. 그는 다시 노를 저으며 아까 그 검은 새가 물 위를 얕게 날면서 먹이를 찾는 모습을 지켜 보았다. 새는 날개를 비스듬히 한 채 잠깐 해면에 내려 앉는 것 같더니 날치를 꽃아서 쓸데없이 마주 활개를 쳤다. 노인은 큰 돌고래가 고기를 쫓을 때 물이 약간 일렁 대며 올라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돌고래는 날치가 도망가고 있는 바로 아래 쪽에서 물살을 헤치고 달리고 있었다. 전속력으로 달려가다가 날치가 다시 물 속 으로 떨어질 때 그 자리에서 잡으려는 것이었다. 노인은 큰 돌고래 떼가 널리 퍼 져 있어서 그 날치가 살아날 길은 거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검은 새가 날 치를 잡아먹을 가망도 전혀 없음을 알았다. 날치는 새가 잡아 먹기에는 너무 크고 빠르기 때문이었다. 노인은 날치가 자꾸만 튀어오르는 모습과 새의 헛된 동작을 지켜보고 있을 따 름이었다. 이윽고 그는 돌고래 떼가 멀리 가버렸다고 생각했다. 놈들은 너무나 민 첩하게 멀리 달아나기 때문에 쉽게 따라 잡을 수가 없었다. 노인은 생각했다. 그 래도 아마 혼자 뒤떨어진 놈을 잡아 올릴 수 있을지도 몰라. 혹 그놈을 놓친다 해 도 그 근방에 큰 고기가 있을지 몰라. 내 큰 고기가 말야. 그 녀석, 어딘가엔지 반 드시 있을 거야. 저 멀리 육지 위로는 구름이 산처럼 피어나고, 해안은 연푸른 산을 배경으로 한 긴 초록빛 선으로 보였다. 물빛은 짙은 청색이었는데 너무 짙어서 아예 자줏빛에 가까웠다. 어두운 물 속을 들여다 보니까 붉은 가루를 뿌려놓은 듯한 플랑크톤이 보였고, 이따금 햇빛의 반사로 생긴 이상한 색채같은 것도 눈에 띄었다. 노인은 낚싯줄이 물 속의 보이지 않는 깊은 곳까지 똑바로 드리워져 있는가를 살펴 보았 다. 수많은 플랑크톤이 떠 있다는 것은 바로 가까이에 고기가 있음을 뜻하는 것이 어서 몹시 기뻤다. 해가 더욱 높이 떠 감에 따라 물 속에 보이는 이상한 빛이라든 지 육지 위의 구름 형태로 보아 오늘 날씨는 틀림없이 좋을 것 같았다. 이제 새는 시야 밖으로 사라져서 거의 보이지 않았다. 수면 위로 보이는 것이라고는 햇볕에 바랜 해초와 뱃전 가까이 떠 있는 고깔해파리의 자줏빛 찬란한 아교질로 된 고른 형태의 기포뿐이었다. 그것은 물살에 의해 앞뒤로 뒤집히며 기분좋게 거품을 이루 고 있었는데, 뒤로는 1야드 가량의 길이로 무서운 독이 있는 자줏빛 섬유상 세포 가 물 속으로 늘어져 있었다. "이건 '아구아말라'로군." 노인은 혼자 중얼거렸다. "갈보년 같으니라구." 가만히 노를 저으면서 물 속을 들여다 보니까 길게 늘어진 섬유상 세포 같은 색깔의 조그마한 고기들이 그 사이사이로 헤엄쳐 다니기도 하고, 떠 있는 거품때 문에 드리워진 조그만 그늘 아래에 숨어 있기도 했다. 그 고기들은 이미 해파리의 독에 면역이 되어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지가 않았다. 노인이 그렇게 오랜 세월 고기잡이를 했는데도 그 독세포가 조금이라도 낚싯줄에 묻어서 끈끈하 게 자줏빛으로 남아 있다가 실수로 팔이나 손에 묻으면 옻등나무를 만졌을 때와 같은 자국이나 종기가 생기는 것을 경험했던 것이다. 이 '아구아말라' 독은 금새 온몸으로 퍼져서 마치 채찍으로 맞은 것처럼 부풀어 오르게 된다. 그러나 지금은 그 무지개빛 거품조차 아름다웠다. 그것은 바다에서 가장 허망한 존재였고, 노인은 커다란 바다거북이 이것을 먹어 대는 것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 았다. 거북들은 이것을 보면 주저하지 않고 똑바로 접근해 와서 완전무장을 하듯 아예 눈을 감고는 섬유상 세포들을 죄다 먹어 버리는 것이었다. 노인은 거북의 먹 는 모습이 또한 보기 좋았다. 그리고 폭풍이 지난 뒤의 해변을 걸어다닐 때면 곳 곳에 널려 있는 해파리들이 단단한 구두창 아래에서 '펑펑' 하고 터지곤 했는데, 그 소리를 듣는 것이 즐거웠다. 노인은 특히 녹색 거북이나 대모 거북이 품위가 있고 빠르며 값이 나가기 때문에 더 좋아했다. 그는 크고 우둔한 왕바다거북을 볼 때마다 일종의 우정을 담은 눈길로 깔보기도 했는데, 그것은 등껍질이 누렇고 교 미하는 모습이 매우 특이했다. 그놈들은 눈을 감고 고깔해파리를 즐겨 먹었다. 노인은 몇 해 동안 거북잡이 배를 타기도 했었지만 거북에 대해서 선비한 생각 은 갖고 있지 않았다. 그는 모든 거북에 대해서 단지 측은하다는 동정심을 갖고 있었다. 심지어는 길이가 조각배만하고 무게가 1톤이나 되는 큰 거북을 보아도 그 런 생각이 들곤 했다. 거북은 칼질을 해서 잡아 놓은 후에도 몇시간 동안이나 심 장이 뛰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북에 대해서 냉혹한 태도를 취한다. 그러 나 노인은 나도 이런 심장을 갖고 있으며, 내 손발도 거북의 것과 비슷하다고 생 각하곤 했었다. 노인은 정력제로 거북의 흰 알을 먹었다. 9월과 10월이 되면 보란 듯이 큰 고기를 잡기 위해서 힘을 기르려고 5월 내내 그 알을 먹었던 것이다. 노인은 또 어부들이 어구를 보관해 두는 판잣집으로 가서 상어 간유를 매일 한 잔씩 마셨다. 상어 간유는 큰 드럼통에 담겨 있었는데, 원하는 어부들은 누구나 마시도록 그곳에 놓아둔 것이었다. 대부분의 어부들은 그 독특한 맛을 싫어했다. 그러나 간유를 먹는 일은 그들이 일어나야 하는 시각에 일어나는 것보다는 덜 괴 로웠다. 또 간유는 사소한 감기나 유행성 감기에 효과가 있었고, 눈에도 좋았다. 노인은 머리 위에서 다시금 새가 빙빙 도는 것을 보았다. "고기를 찾았구나." 그는 소리내어 말했다. 그러나 아까처럼 해면으로 뛰어 오르는 날치도 없었고 미끼고기들도 흩어져 있지가 않았다. 다랑어 새끼 한 마리가 공중으로 뛰어 올랐 다가 물속으로 곤두박질치며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다랑어의 몸통은 햇빛을 받아 찬란한 은빛으로 빛났다. 한 마리가 물 속으로 떨어지고 나자 연달아 다른 다랑어 들이 뛰어 오르더니 사방으로 곤두박질치며 정신을 혼란시켰다. 그놈들은 물을 마 구 휘저으며 미끼를 따라 길게 뛰어 올랐다 떨어지곤 했다. 머리 위의 새는 바로 그 미끼 주위를 맴돌며 쫓고 있는 것이었다. 저것들이 저렇게 빨리 도망가지만 않 는다면 내가 따라갈 텐데,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노인은 고기 떼가 물결을 하얗 게 일으키며, 겁을 먹고 물 위로 쫓겨 올라오는 것을 지켜 보았다. 그리고 그 순 간을 놓칠새라 먹이를 따라 쏜살같이 내려와서 물 속에 주둥이를 처박는 새의 모 습을 지켜 보았다. "낚시에는 새가 큰 도움이 된단 말이야." 노인이 중얼거렸다. 바로 그때였다. 고리를 만들어 밟고 있던 고물 쪽 낚싯줄이 순간 팽팽해졌다. 노인은 재빨리 손에서 노를 놓고 줄을 단단히 잡아 끌어들이려 했다. 그때 다랑어 새끼가 몸을 부르르 떨며 낚싯줄을 잡아 당기는 것이 느껴졌 다. 줄을 잡아 당길 수록 진동은 더해 갔고 물속에서 푸득이는 고기의 푸른 잔등 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노인이 고기를 뱃전으로 휙 끌어들이기 직전에 배가 금 빛으로 번쩍이는 것이 보였다. 단단한 총알처럼 생긴 다랑어가 크고 멍한 두 눈을 뻐끔하게 뜬 채 그물 쪽에서 햇빛을 받으며 누워 있었다. 그놈은 균형잡힌 꼬리로 배의 널빤지를 푸드득 때리면서 생명을 재촉하고 있었다. 노인은 친절한 마음을 발휘하여 다랑어의 머리를 때려서 즉사시켰다. 그리고 아직도 떨고 있는 그 몸둥 이를 고물 구석진 곳으로 던졌다. "다랑어야." 노인은 기분좋게 중얼거렸다. "좋은 미끼가 되겠구나, 못해도 10파운드는 나가겠는 걸." 노인은 자신이 언제부터 혼자 있을 때도 소리내어 말하기 시작했는지 잘 기억 할 수가 없었다. 옛날에는 혼자 있을 때 곧 잘 노래를 불렀다. 고깃배나 거북잡이 배를 타고 밤에 당직을 하면서 혼자 노를 젓고 있을 때는 이따금 노래를 불렀다. 아마 소년이 떠난 후 혼자 있게 되면서부터 이렇게 소리내어 말하기 시작했으리 라. 그러나 노인은 그것을 정확하게 기억할 수 없었다. 노인과 소년이 함께 고기 잡이를 할 때도 꼭 필요한 때만 얘기를 하곤 했었다. 그들은 밤이라든지 악천후로 인해 별수없이 갇혀 있을 때에만 얘기를 했다. 바다에서는 쓸데없는 얘기를 않는 것이 좋다고들 생각했고, 노인도 늘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부들은 대부분 그런 습관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노인의 얘기를 귀찮아 할 사람이 아무도 없으 니, 노인은 자기의 생각을 자꾸만 소리내어 말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 었다. "남들이 내가 혼자서 이렇게 소리내어 말하는 것을 들으면 아마 미친 줄로 생각 하겠지." 노인은 다시 소리내어 말했다. "그러나 내가 미치지 않았으니까 상관할 것 없어. 그런데 돈 많은 사람들은 배 에서도 원하면 언제든지 말을 해주고 야구 얘기를 들려주는 '라디오'란 친구를 가 지고 있어." 하지만 지금은 야구 생각을 할 때가 아니라고 그는 생각했다. 지금은 꼭 한 가 지 일만 생각할 때인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 내가 태어난 것이니까 말이다. 고기 떼 주위에는 반드시 큰 놈이 있을 거야. 노인은 생각했다. 나는 지금 먹이를 쫓고 있는 다랑어들 중에서 낙오한 놈 한 마리를 잡았을 뿐이다. 그런데 다른 놈들은 이미 재빨리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 오늘은 어째 물 위로 떠 오른 놈마다 죄다 빨 리 달리고, 또 동북 쪽으로 달린단 말인가. 때가 그럴 때인가? 아니면 내가 모르 는 무슨 날씨의 변화라도 있다는 얘긴가? 노인은 이제 더 이상 해안의 초록빛을 볼 수가 없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마치 눈으로 덮인 듯 희고 푸른 산봉우리와 위로 또 하나의 높은 설산처럼 솟아 있는 구름밖에 없었다. 바다는 대단히 짙은 색이었고 광선이 물 속에서 무지개 색깔을 내고 있었다. 해가 높이 솟았으므로 무수한 플랑크톤의 조각들은 사라졌다. 대신 푸른 물 속으로 들여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곧바로 드리운 낚싯줄과 더불어 거대 한 프리즘 현상뿐이었다. 다랑어 떼는 다시 물 속 깊이 내려가 버렸다. 어부들은 이들 고기의 종류를 보 통 다랑어라 불렀고, 고기를 팔러 나올 때나 미끼 고기와 바꾸려고 할 때만 제 이 름을 부르며 구별했다. 이제 햇살이 뜨거워질 시간이었다. 노인은 목덜미에 햇살 의 따가움을 느끼게 되었다. 노를 저을 때마다 땀이 등을 타고 줄줄 흘러 내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노인은 생각했다. 이대로 가만히 배를 띄워 놓고, 고기가 물 면 깨어나게끔 발가락에다 낚싯줄을 감아놓고 잠을 자면 될 것이다. 그리고 오늘 은 여든 닷새째 날이다. 정신차려서 낚시질을 해야 한다고. 바로 그때였다. 물 위에 나와 있던 초록색 막대기 중 하나가 물 속으로 쑥 들어 가는 것이 보였다. "오냐." 노인은 눈을 빛내며 배에 부딪치지 않게끔 조심해서 노를 노받이에 걸었다. 그 리고 팔을 뻗어 낚싯줄을 잡은 뒤 오른손 엄지와 검지 사이에 끼우고 가만히 들 었다. 그러나 낚싯줄이 당겨지거나 무거운 감각이 없어서 그냥 가볍게 잡고만 있 었다. 그때 또 그런 느낌이 전해졌다. 그러나 이번에도 한결같이 무게를 느끼도록 당기는 것이 아니고, 시험삼아 건드려 보는 것이었다. 노인은 그것이 무엇을 뜻하 는가를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백 길 물 속에서 지금 '마놀린'이 낚시 바늘과 그 뾰족한 끝을 감싸고 있는 정어리를 먹고 있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또 새끼 다랑어 의 머리통이 있었고, 손으로 벌려서 만든 낚시가 삐죽 튀어 나와 있을 것이었다. 노인은 왼손으로 낚싯줄을 조심스럽게 잡은 뒤 낚싯대에서 풀어 내었다. 고기가 아무런 눈치도 채지 못하도록 손가락 사이로 슬슬 줄을 풀어 놓아 줄 단계가 된 것이다. 노인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이처럼 멀리 나왔겠다. 그리고 9월이니 까 아마 틀림없이 큰 놈일 것이다. 고기야, 먹어라, 먹어. 어서 제발 먹어다오. 600 피트 아래의 어둡고 찬 물 속에 있으니 너나 미끼나 얼마나 싱싱하겠니, 어둠 속 에서 한 바퀴 더 돌고 와서 나머지 미끼까지 마저 먹어 주려무나. 노인은 고기가 미끼를 가볍게 가만가만 잡아 당기는 것을 느끼며 부탁하듯 혼 잣말을 했다. 그러나 낚시에 끼워 놓은 정어리 머리를 뜯어내는 것이 어려운지 더 힘차게 잡아 당기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가 잠시 또 잠잠했다. "자," 노인은 자신있게 소리내어 말했다. "한 바퀴 더 돌아라. 그리고 어서 냄새를 좀 더 맡아 봐. 구수하잖아? 자, 실컷 먹어라. 다랑어도 있지 않은가, 단단하고 차가운 것이 맛이 좋단다. 고기야, 망설 이거나 부끄러워하지 말고 어서 먹어라." 그는 엄지와 검지 사이에 낚싯줄을 잡아들고 끈질기게 기다렸다. 고기가 아래 위로 헤엄칠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 줄과 다른 줄을 동시에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 자 고기가 조금 전처럼 살며시 미끼를 건드려 보는 것이었다. "틀림없이 먹을 거야." 노인은 마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느님, 제발 먹게 해주십시오." 그런데도 고기는 더 이상 미끼를 먹지 않았다. 멀리 가버렸는지 아무 반응이 없 었다. "아냐, 그럴 리가 없을 텐데." 하고 그는 중얼거렸다. "절대로 가 버릴 리가 없어. 아마 이 주위를 한 바퀴 돌고 있을 거야. 전에 낚시 에 한 번 걸린 적이 있어서 의심이 많은 놈인가 보지." 그때 노인은 낚싯줄이 다시 약하게 떠는 것을 느끼고 뛸듯이 기뻤다. 그리고 잠 시후 무엇인지 세찬, 믿을 수 없을 만큼 무서운 것을 느꼈다. 고기의 무게였다. 그 래서 노인은 아래로 아래로 자꾸만 줄을 풀어 주었다. 이미 두 개의 예비 사리 중 하나를 다 풀어 주었다. 엄지와 검지 사이로 줄이 풀려 나갈때는 거의 줄을 누르 지 않고 있었지만 그래도 대단한 무게만은 느낄 수 있었다. "이 녀석 봐라." 하고 그는 말했다. 그는 중얼거리다 말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제 미끼를 옆으로 물고 달아나고 있구나. 하지만 그러다가 한 바퀴 돌아와서 미끼를 삼켜 버리겠지. 그러나 노인은 결코 그 생각만은 말하지 않았다. 좋은 일일수록 방정맞게 지껄여 대면 될 일도 잘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놈이 얼마나 큰 고기인지를 가 늠하고 있었다. 고기가 어둠 속에서 다랑어를 물고 달아나는 모양을 상상했다. 그 때 고기의 움직임이 정지하는 것을 느꼈으나 무게는 아직도 그대로였다. 그러다가 더 무거워지는 것을 느끼자 노인은 서둘러 다시 줄을 또 풀었다. 그는 엄지와 검 지를 잠시 꽉 쥐어 보았다. 고기의 무게가 더욱 무겁게 느껴지면서 줄이 똑바로 아래로 내려갔다. "드디어 먹었군." 노인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이제는 더 잘 먹도록 해야지." 노인은 손가락 사이로 줄이 계속 풀려 나가도록 해놓고, 왼손으로는 끄트머리를 옆에 있던 낚싯줄의 두 예비 사리 고리에다 단단히 묶었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 난 것이다. 노인은 지금 쓰고 있는 사리 이외에도 40길짜리의 사리를 세 개나 더 갖고 있었던 것이다. "조금만 더 삼켜라 " 그는 주문하듯 중얼거렸다. "토하지 않도록 잘 삼키란 말이다." 그래서 마침내 낚시 끄트머리가 심장에 박혀 너를 죽일 수 있도록 꿀꺽 삼켜 버려라, 하고 노인은 주문했다. 그리고 최후에는 쉽게 떠올라서 작살로 널 찌를 수 있게 해다오. 자, 다 됐지? 실컷 먹었겠지? "됐어." 노인은 소리내어 말한 뒤 두 손으로 힘있게 줄을 낚아 챘다. 1야드쯤 낚싯줄을 끌어들인 다음에 팔힘을 다하여, 또 몸의 무게를 축으로 한뒤 좌우 팔을 열심히 움직이며 연거푸 낚아 챘다. 그러나 놈은 꿈쩍도 안 했다. 고기는 오히려 천천히 달아나기 시작했다. 노인은 그놈을 한치도 끌어올릴 수가 없었다. 노인이 쓰는 낚싯줄은 매우 튼튼하며 무겁 고 큰 고기를 낚는데 알맞게 만든 것이다. 그것을 등에 메고 있자니 마침내 팽팽 해지며 줄에서 물방울이 튀었다. 그러더니 물 속에서 천천히 쉿쉿하는 소리가 났 다. 노인은 노좌석에 버티고 앉은 채 끌리는 힘에 맞서 몸을 뒤로 젖히며 계속 줄 을 잡고 있었다. 배가 서북 쪽을 향해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기도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겉으로 보면 그저 평온하게 잔잔한 바다 위 를 천천히 달리는 것 같았다. 다른 미끼는 아직 물 속에 있었지만 입질이 없어서 손댈 필요도 없었다. "이럴 때 그 애가 있었으면." 하고 노인은 소리내어 말했다. "나는 지금 고기한테 끌려가는 중인데, 내 몸에 밧줄을 걸고 있으니 마치 끌려 가는 닻줄 기둥이 된 셈이군. 줄을 더 세게 당길 수도 있지만 그러다가 고기란 놈 이 줄을 끊어 버릴지도 모르니까 조심해야 해. 나는 힘이 닿는 데까지 그놈을 잡 고 있어야만 해. 또 그놈이 필요로 할 때는 줄을 풀어 주어야 한다. 그래도 놈이 옆으로만 달리고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것만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노인은 고기에게 끌려 가면서도 끊임없이 생각했다. 만약 녀석이 아래로 내려갈 작정을 하면 그땐 어떻게 하지? 그러다가 혹 물 밑으로 내려가서 죽기라도 한다 면 어쩌지? 그러나 무슨 방도가 있겠지. 상황에 따라 내가 취할 수 있는 방도란 여러 가지가 있으니까. 노인은 줄을 등에 메고 물 속으로 뻗은 줄의 경사와 서북 쪽으로 달리는 배를 지켜보며 잠시 두려움을 느꼈다. 이러다가 죽을지도 몰라. 이 짓을 영원히 계속할 수는 없을 테니까. 그러나 네 시간이 지난 후에도 고기는 여전히 줄기차게 배를 끌고 바다 멀리로 헤엄쳐 나가 고 있었다. 그때까지 노인도 여전히 줄을 등에 멘 채 버티고 있었다. "이 녀석을 낚은 것이 정오였지, 아마?" 하고 그는 중얼거렸다. "그런데 아직 한번도 네 얼굴을 보지 못했구나." 노인은 이 고기를 낚기 전부터 밀짚모자를 푹 내려쓰고 있었으므로 이마가 아 팠다. 그리고 목도 말랐으므로 어찌해야 좋을지 잠시 난감해졌다. 할수없이 그는 무릎을 꿇고 앉아서 갑자기 줄을 당기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될 수 있는 대로 이 물 쪽으로 가까이 다가 가서 한 손으로 물병을 잡았다. 마개를 열고 물을 조금 마 셨다. 그러고는 이물에 기대어서 잠시 쉬었다. 장좌에 꽂지 않은 돛대에 앉아 쉬 면서 아무 생각도 않고 고기와의 싸움에서 버텨 보리라 생각했다. 뒤를 돌아 보았 지만 육지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것은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언제든지 마 음만 먹으면 '아바나'에서 비치는 빛을 따라 항구로 들어갈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해가 지려면 아직 두 시간이 더 남아 있었다. 녀석이 그 전에는 올라 오겠지. 그 렇지 않으면 달이 뜰 때까지는 올라 오겠지. 그것도 아니라면 다음날 해가 뜰 때 는 올라 오겠지. 아직 쥐는 나지 않는다. 버틸 만하다. 별다른 이상도 없다. 입에 낚시를 물고 있는 것은 바로 저 녀석이다. 그런데 저렇게도 힘차게 당기다니 대단 한 놈이야. 틀림없이 철사를 문 채 입을 꽉 다물고 있을 것이다. 그 모습을 좀 보 았으면 좋으련만. 나하고 겨루고 있는 놈이 어떤 놈인지 알기 위해서라도 꼭 한번 만 녀석을 보았으면 좋겠다. 노인은 별을 보고 낮 동안의 상황을 판단해 보았다. 고기는 밤새도록 길도 방향 도 바꾸지 않았다. 오직 한 방향으로만 달리고 있는 것이다. 해가 지고 나니 추워 졌다. 등과 팔과 다리에서 흘러 내렸던 땀이 차갑게 말라붙었다. 낮에 노인은 미 끼통을 덮었던 부대를 햇볕에 널어 말렸었다. 그는 해가 지자 그 부대를 목에다 비끄러 묶고 등으로 내려가게 한 다음, 양 어깨를 가로지르고 있는 낚싯줄 밑으로 조심스레 밀어 넣었다. 부대가 일종의 쿠션 노릇을 했으므로 줄의 힘이 덜 느껴졌 다. 그리고 이물에다 대고 적당하게 앞으로는 기대는 법을 알아 내어서 거의 편안 한 자세를 취할 수 있었다. 실제로는 그 자세가 그저 약간 견딜만한 정도였지만 노인은 거의 편안한 자세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나도 녀석을 어떻게 할 도리가 없고 녀석도 나를 어쩌지 못하고 있는 거야. 노인은 생각했다. 다만 녀석이 이 짓을 계속하는 한 저나 나나 어쩔 수가 없다는 건 분명해. 노인은 중간에 한 번 일어서서 뱃전 너머로 오줌을 누고 별을 보며 현재의 방 향을 알아 보았다. 낚싯줄은 그의 어깨에서 물 속으로 곧게 뻗어 내려가 있었는 데, 그 모양이 마치 인광의 줄무늬 같았다. 이제 그들은 더 한층 천천히 나아가고 있었으며, '아바나'의 불빛이 그다지 강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서 조류가 그들을 동 쪽으로 데리고 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만일 '아바나'의 불빛이 안 보이게 된다 면 더욱 확실하게 동쪽으로 가고 있음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는 생각했다. 만일 고기가 정확히 제대로만 나아가고 있다면 아직 몇 시간은 더 불빛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늘 '그랜드 리그'의 야구 경기는 어떻게 되었을까. 배 위에서 라디오로 야구를 듣는다는 건 얼마나 희한하고 즐거운 일일까. 그러다가 문득 노인은 고기 생각이 났다. 이젠 고기 생각만 계속 해야지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나 신경쓰자. 어리석은 행동은 금물이야. 그러고는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다시 소리를 내어 말했다. "그 애가 있었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나를 도와주고 이런 근사한 구경도 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늙을수록 혼자 있을 게 아니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나로서도 어쩔 수가 없는 일인 걸. 이젠 더욱 힘을 낼 수 있도록 다랑어가 더 상하기 전에 먹어 둬야 한다. 잊지 말고, 아무리 먹기 싫더라도 아침 에는 저 다랑어를 꼭 먹어야 해." 그는 중얼거렸다. 밤새 돌고래 두 마리가 배 주위를 왔다갔다 했다. 그들이 물 속에서 뒹굴고 물 을 뿜는 소리가 들려왔다. 노인은 수컷이 물뿜는 소리와 암컷이 한숨 쉬듯 물뿜는 소리를 정확하게 구별할 수 있었다. "착한 놈들이야." 하고 그는 말했다. "함께 놀고, 장난하고 부러울 정도로 서로 사랑한단 말이야. 날치나 마찬가지로 우리는 서로 형제간이야." 그러다가 노인은 그가 낚은 큰 고기가 갑자기 불쌍하게 생각되었다. 오늘 잡은 놈은 놀랍도록 이상한 놈이다. 얼마나 나이가 든 놈인지도 알 수가 없고, 이렇게 힘센 고기를 잡아 본 적도 없었지만, 이처럼 이상하게 구는 놈도 처음 보는 것이 다. 아마 너무 영리한 놈이라 쉽게 물 밖으로 뛰어 오르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만 약 놈이 갑자기 뛰어 오르거나 사납게 돌격이라도 해오면 나는 질 수밖에. 그러나 아마 전에 여러번 낚시에 걸려 본 경험이 있었을 거야. 그러니까 놈은 이렇게 싸 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몰라. 저하고 겨루고 있는 상대가 겨우 한 사람이 라는 것을, 그것도 노인이라는 것을 녀석이 알 수가 없지. 그런데 이놈은 얼마나 큰 고기일까? 살이 좋은 고기라면 값이 얼마나 나갈까? 미끼를 먹는 걸로 보아서 는 분명 수컷 같았다. 끌고 가는 것도 그렇고, 인간과 싸우는 데도 전혀 당황하는 기색이 없다. 녀석이 무슨 계획으로 이러는 것인지, 또 나처럼 필사적인지도 통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하다. 노인은 한때 마알린 한 쌍 중에서 한 마리를 낚은 적이 있었다. 불현듯 그때 일 이 생각났다. 고기들은 언제나 수컷이 암컷을 먼저 먹게 하는 법인데, 그날도 예 외는 아니었다. 먼저 미끼를 먹던 암컷이 낚시에 걸린 공포에 질려서 맹렬하고 필 사적인 투쟁을 하더니 마침내 기진맥진해 버렸다. 그때 그 수컷은 시종 암컷 옆에 붙어서 낚싯줄을 넘나들며 암컷과 더불어 해면을 돌고 있었다. 수컷이 너무나 바 싹 붙어 있는 통에 노인은 조마조마했었다. 왜냐하면 수컷의 몸통에서 낫처럼 날 카롭고, 크기나 모양마저 낫처럼 생긴 꼬리가 보였는데, 그 꼬리로 낚싯줄을 끊어 버리지나 않을까 염려되었던 것이다. 노인은 염려했었다. 노인이 암컷을 갈고리로 끌어 올려서 몽둥이로 후려갈겼다. 가장자리가 사포지처럼 생긴 창날 같은 부리를 잡고서 정수리를 갈긴 것이다. 마침내 고기가 거의 거울의 뒷면 같은 색깔로 변하 게 되자 소년이 도와서 배안으로 끌어들였다. 그때까지도 수컷은 뱃전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노인이 낚싯줄을 정리하고 작살을 준비하는데 수컷은 암컷이 어디 있나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공중으로 높이 뛰어 올랐다. 그러더니 잠시 가슴 지느 러미인 엷은 자줏빛 날개를 활짝 펴서 화려한 무늬를 보여 주더니 이내 물 속 깊 이 들어가 버렸다. 녀석, 참으로 아름다운 놈이더군. 그리고 참 오랫동안 암컷 곁 에 붙어 있었지, 하고 노인은 당시의 정경을 떠올렸다. 그것이 평생 고기잡이를 하다가 본 중에서 제일 슬픈 광경이었다고 노인은 생 각했다. 그 애도 슬퍼했고, 그 애와 나는 그 고기에게 용서를 구하기까지 했었다. 그리고 이내 칼질을 했었는데. "그 애가 지금 여기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노인은 습관적으로 중얼거리며 이물의 둥그스름한 널빤지에다 몸을 기대었다. 어깨를 가로질러 메고 있는 낚싯줄을 통해서 스스로 선택한 방향으로 꾸준히 달 리고 있는 고기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너도 일단 내게 걸려든 이상 어 떤 짓이든 선택해야만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 대부분 고기의 선택이란 모든 올가미나 함정이나 배신이 미 치지 못하는, 멀리 깊고 어두운 바다 속에 남아 있자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선택 이란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다 제쳐두고서라도 바로 내 자신이 그를 찾아서 그곳 으로 가는 것이었다. 우리는 정오부터 오로지 둘만이 같이 있게 될 것이다. 고기 나 나를 도와줄 대상이 아무도 없으니 둘 다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다. 아마 나 는 어부가 되지 않았어야 했는지도 몰라. 노인은 순간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나 나는 어부가 되려고 태어났었다. 그건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 따라서 날이 밝거 든 잊지 말고 꼭 다랑어를 먹어야 한다. 노인은 다시 다짐을 해두었다. 날이 밝기 조금 전에 무엇인가 뒤에 있는 낚시 중 하나에 걸리는 느낌을 받았 다. 잠시 후 막대가 부러지고 줄이 뱃전 너머로 마구 풀려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어둠 속에서도 노인은 선원용 나이프를 빼어 들고는 큰 고기의 중량을 왼편 어깨 로 버티어 내면서 뱃전에다 댄 낚싯줄을 끊어 버렸다. 그리고 더듬더듬 어둠 속에 서 예비 사리의 끄트머리까지 단단히 비끄러 매었다. 그는 한 손으로도 솜씨있게 일을 끝낼 수 있었다. 매듭을 맬 때는 한쪽 발을 사이에다 대고 눌렀다. 이제 노 인은 여섯 개의 예비 낚싯줄 사리를 가진 셈이 되었다. 막 잘라낸 데서 두 개가 생겼고, 둘은 고기가 미끼를 따먹어 버린 데서 거두어 들인 것이었다. 이제 그것 들을 모두 연결해 놓았다. 날이 밝거든 40길짜리 줄이 있는 곳으로 가서 그것도 끊어서 예비 사리에 이어 놓아야지. 잘못하면 200길짜리 질좋은 '카달로니아'산 낚시와 목줄을 읽고 말겠구 나. 하지만 그것들은 언제든지 새로 구할 수도 있다. 내가 다른 고기를 낚느라고 이 녀석을 놓쳐 버린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지금 막 미끼를 따먹은 고기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마알린이나 황새치기나 상어였겠지. 줄을 잘라 내기에 바빠서 미처 어떤 놈인지 느껴 보지도 못했네. 노인은 소리내어 말했다. "그 애가 있었으면 오죽이나 좋아."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지금 그 아이는 없지 않은가 하고 그는 생각했다. 혼자밖 에 없다. 이제 어둡든 밝든 마지막 낚싯줄이 있는 데로 가서 그 줄마저 끊어 버리 고 두 개의 예비 사리를 마저 만들어 두는 것이 최선책인 것 같았다. 노인은 주저없이 그렇게 했다. 어두운 데서 이런 일을 하기란 결코 쉽지가 않았 다. 한번은 고기가 푸득거리는 통에 얼굴을 처박고 넘어졌는데, 그만 눈 아래가 찢기고 말았다. 피가 조금 뺨을 타고 흘렀다. 그러나 피는 턱까지 내려오기도 전 에 응고되고 말았다. 노인은 이물 쪽으로 돌아가서 뱃전에 기대어 쉬었다. 노인은 부대를 잘 조정하면서 낚싯줄을 조심스레 옮겼다. 지금까지 걸치고 있던 어깨 부 위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 메고는 그 자리에다 다시 줄을 고정시켰다. 고기가 끄는 힘을 조심스레 감지해 보며 손을 물에 담가서 배의 속력을 알아 보기도 했다. 고기가 무엇 때문에 갑자기 요동을 쳤을까 하고 노인은 생각해 보았다. 틀림없 이 낚싯줄이 그 커다란 잔등 위를 스쳤을 거야.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녀석의 등 이 내 등만큼 아프지는 않을 것이다. 녀석이 이 배를 영원히 끌고 갈 수는 없을 것이다. 제놈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말이다. 이제 성가신 일은 다 해결된 셈이 고 예비 사리도 많이 준비해 두었다. 이 이상 바랄 것은 없다. "고기야." 하고 노인은 가만히 말했다. "나는 죽을 때까지 너하고 같이 있으마." 물론 저도 나하고 같이 있겠지. 하고 생각하면서 노인은 어서 날이 밝기를 기다 렸다. 날이 밝기 직전이라 몹시 추웠다. 그래서 노인은 몸을 녹여 보려고 뱃전에 다 대고 이곳저곳을 문질렀다. 녀석이 할 수 있는 데까지는 나도 버틸 수 있어,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날이 훤히 밝아오자 갑자기 낚싯줄이 팽팽히 당겨지더니 물 속으로 내려갔다. 배는 계속 끌려가고 있는 중이었다. 해가 한쪽 이마를 내밀 었을 때쯤 되자 빛이 노인의 어깨 위에 닿았다. "녀석이 북쪽을 향하고 있구나." 노인은 예사롭게 중얼거리며 조류가 배를 훨씬 동쪽으로 몰고 갈 것이라고 생 각했다. 녀석이 조류를 따라서 돌아 주었으면 좋겠다. 그건 바로 고기가 지쳤다는 표시니까. 해가 한층 높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고기가 지치지 않았음을 노인은 눈치챌 수 있었다. 단 한가지 좋은 징조가 눈에 띄었다. 낚싯줄의 경사로 봐서 고 기가 덜 깊은 곳에서 헤엄쳐 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반드시 놈이 뛰어 오르리라고는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최소한 가망은 있다. "하느님, 제발 뛰어 오르게 해주소서." 노인은 기도하듯 말했다. "제게는 아직 녀석을 다룰 만한 줄이 충분히 있습니다." 내가 만일 조금만 더 줄을 팽팽히 당겨도 놈은 아파서 금방 뛰어오를 것이다. 이제 날이 밝았으니 녀석을 뛰어오르도록 해야겠다. 그리고 등뼈에 붙어 있는 주 머니에 공기가 차서 더 이상 깊은 데로 내려가서 죽지 못하도록 해야지. 노인은 낚싯줄을 좀더 당겨 보려고 애썼지만 줄은 고기를 처음 낚았을 때부터 줄곧 팽팽한 상태 그대로였다. 조금만 당겨도 곧 끊어질 듯했다. 그래도 노인이 잡아 끌려고 몸을 뒤로 젖히자, 곧바로 고기의 거친 반응이 전해져 왔다. 순간 더 이상 잡아 당겨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인은 생각했다. 아무렴. 홱 잡 아 당겨서는 안 되고말고. 왈칵 잡아 당길 때마다 낚시에 찢긴 상처가 넓어져서 어느 순간 녀석이 뛰어 오를 때 바늘이 빠져 나갈지도 몰라. 여하튼 해가 뜨니까 기분이 한결 나아지는 것 같은데. 이번에는 해를 똑바로 쳐다보지 않도록 자리를 잡아야지. 줄에는 누런 해초가 걸려 있었지만 노인은 고기가 그것까지 끌려면 더 힘들 것 이라고 생각하자 오히려 기분이 좋아졌다. 그것은 밤에 그렇게도 인광을 내던 모 자반류의 누런 해초였다. "고기야, 난 네가 좋다. 또 너를 대단히 존경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오늘 해 안 으로는 반드시 너를 죽여 놓고 말겠다." 아니 그렇게 되기를 기도 하자고 노인은 다짐했다. 그때 마침 작은 새 한 마리 가 북쪽에서 배를 향해 날아왔다. 휘파람새였다. 새는 해면 위를 얕게 날고 있었 다. 노인이 보기에 그 새는 무척 지쳐 있었다. 잠시 후 새는 배의 고물로 날아와 앉았다. 그러다가 노인의 주변을 빙빙 돌더니 조금 안심이 되었는지 좀 더 편한 낚싯줄 위에 앉았다. "넌 몇살이지?" 하고 노인은 새에게 물었다. "이번이 첫 여행이냐?" 노인이 말을 하자 새가 그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새는 너무 지쳐서 낚싯줄을 미 쳐 살펴 보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가냘픈 발로 줄을 꽉 잡고는 고기가 움직 이는 힘에 의해 위아래로 기우뚱거렸다. "하지만 줄은 튼튼하단다." 노인이 새한테 말했다. "아주 튼튼하다. 간밤에는 바람도 별로 없었는데 그렇게 지치다니. 너같은 새들 은 결국 어떻게 되는 것일까?" 언제나 즐겁지만은 않을 것이다. 조금 있으면 매가 저것들을 찾아 바다로 나오 겠지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그러나 그 말을 새한테는 하지 않았다. 해 봐야 알아 듣지도 못할 테고, 또 얼마 안 있어 그 새도 주변에 매가 있음을 알게 될 테니까. "푹 쉬어라, 작은 새야." 하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어디든 열심히 날아가서 사람이나 새나 고기처럼 되든 안 되든 모험을 한번 해보렴." 밤새 낚싯줄을 메고 있었더니 등이 뻣뻣해지고 이제는 정말이지 너무 아팠다. 그래서 자꾸 말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너만 좋거든 아예 여기 내 집에서 살아라, 새야." 하고 노인이 말했다. "미풍이 일기 시작했으니 돛을 감아 올려서 너를 미풍에 실어 줄 수 없어 미안 하구나. 그러나 너는 내 친구야." 바로 그때 고기가 갑자기 요동을 쳤다. 노인은 그만 이물 쪽으로 고꾸라졌다. 노인이 반사적으로 발로 버티면서 줄을 좀 놓아 주지 않았더라면 물 속으로 끌려 들어갈 뻔했다. 낚싯줄을 홱 당길때 이미 새는 날아가 버렸다. 그러나 노인은 그것도 보지 못했 다. 노인은 오른손으로 조심스럽게 줄을 만져 보다가 손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보 았다. "뭔지 모르지만 저 고기를 아프게 했군그래." 노인은 중얼거리다 말고 고기의 방향을 돌릴 수 있는지 알아 보기 위해 살짝 줄을 당겨 보았다. 줄이 끊어질 지경으로 팽팽해졌지만 노인은 줄을 꼭 쥔 채 뒤 로 몸을 버티어 보았다. "너도 이젠 내가 끄는 것을 느끼는구나." 하고 그는 말했다. "그런데 사실은 나도 마찬가지야." 새가 같이 있어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하지만 사방을 둘러 보아도 새 는 이미 날아가 버리고 없었다. 얼마 쉬지도 못하고 가 버렸구나 하고 노인은 생 각했다. 그러나 해변에 닿을 때까지는 더욱 길이 험할 거야. 그런데 고기가 이 정 도로 한번 성급히 잡아당겼다고 해서 다치다니, 도대체 내가 어떻게 된 거 아냐? 틀림없이 내가 멍청해지고 있는 모양이지. 아니면 아까 그 작은 새를 쳐다보다 정 신을 놓고 있었든지. 이젠 고기 일에나 정신을 쏟고, 더 힘이 빠지기 전에 다랑어 나 먹어 둬야겠다. "그 애가 여기 있었다면 정말 좋으련만, 그리고 소금도 좀 있었으면 얼마나 좋 을까." 그는 다시 중얼거렸다. 낚싯줄의 무게를 왼쪽 어깨로 옮긴 뒤, 그는 무릎을 꿇고 조심조심 바닷물에 손 을 씻었다. 한동안 손을 물에 담그고 있자 피가 길게 꼬리를 끌며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계속해서 배가 나아가고 있었고, 그때마다 손에 물이 찰싹거렸다. "훨씬 느려졌구나." 하고 그는 말했다. 노인은 좀 더 오랫동안 물에 손을 담그고 싶었지만 고기가 또 갑자기 요동을 칠까 봐 두려워졌다. 그래서 몸을 똑바로 편 뒤 발로 버틴 채 손을 쳐들어 햇볕에 말렸다. 살이 터진 것은 낚싯줄에 베어서일 뿐이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베인 부분 이 손에서는 제일 요긴하게 쓰이는 부분이었다. 노인은 이 일이 끝나기까지 손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손을 다치고 싶지 가 않았던 것이다. "자." 손이 다 마르자 노인은 말했다. "이젠 다랑어 새끼를 먹어야겠다. 갈고릿대로 끌어다가 여기 앉아서 편하게 먹 어야지." 그는 무릎을 꿇고 갈고릿대로 고물 아래쪽에서 다랑어를 찾아 내었다. 그리곤 사려 놓은 낚싯줄에 닿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자기 앞으로 끌어당겼다. 다시 왼편 어깨로 줄을 옮겨 메고 왼손과 팔로 몸을 버티면서 갈고릿대에서 다랑어를 빼낸 다음 갈고릿대는 도로 제자리에 갖다 두었다. 노인은 한쪽 무릎으로 고기를 누르 고 뒤통수에서 꼬리까지 세로로 길게 칼집을 낸 뒤 검붉은 살점을 발라 내었다. 고기가 쐐기 모양이 되자 바로 등뼈에서 배까지 바싹 칼질을 해서 잘랐다. 그것을 다시 여섯 조각으로 잘라서 이물 판자 위에 펴놓은 뒤 칼은 바지에다 문질러 닦 았다. 나머지 뼈대는 꼬리 쪽을 잡어서 뱃전 너머로 던져 버렸다. "한쪽을 통째 다 먹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은데." 노인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살점을 칼로 잘랐다. 노인은 큰 고기가 여전히 줄을 세차게 끌어 당기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왼손에 쥐가 났다. 무거운 줄을 잡 은 손이 오그라들고 있었다. 노인은 넌더리를 치면서 손을 쳐다보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놈의 손이야?" 하고 그는 말했다. "쥐가 나려면 나 보라지, 제 마음대로 매 발톱처럼 오그라들라면 들라지. 그래봐 야 아무 소용이 없을 걸." 그는 중얼거리면서 컴컴한 물 속으로 비스듬히 내려가 잠겨있는 낚싯줄을 쳐다 보았다. 지금 먹어야 이 손이 펴질 것이다. 손이 잘못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벌써 여러 시간 동안 고기와 씨름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나 나는 언제까지라도 싸울 수 있다. 이제 다랑어나 먹어 두리라. 노인은 살점을 한 점 집어 입에 넣고는 천천히 씹었다. 맛이 괜찮았다. 천천히 잘 씹어서 국물까지 죄다 섭취해야 돼,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이럴 때 '라임'이나 '레임'이나 소금이라도 조금 있었으면 더욱 먹기가 좋을 텐데. "손아, 넌 좀 어떠냐?" 거의 사후 강직의 상태처럼 빳빳해진 손에다 대고 노인은 걱정스레 물었다. "내 너를 위해 먹기 싫어도 좀 더 먹어 두마." 노인은 두 쪽으로 잘라 둔 것 중 남은 한쪽을 먹었다. 조심해서 씹다가 껍질만 뱉었다. "손아, 이젠 좀 어때? 좀 더 있어야 알겠니?" 노인은 한쪽을 더 집어서 이번에는 통째로 씹었다. 다랑어란 놈은 살이 단단하 고 피가 많은 고기란 말야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그래도 돌고래 대신 이놈을 잡게 된 것이 다행이다. 돌고래는 너무 달단 말이 야. 이것은 거의 단맛이 없고 아직도 살이 단단한데그래." 역시 실질적인 생각 이외는 모든게 다 무의미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소금이 조 금 있으면 좋겠다. 물론 그것은 바램일 뿐이다. 그런데 나머지 살점이 햇볕에 썩 을 것인지 마를것인지 알 수가 없으니까 별로 시장하지는 않지만 먹어 두는 것이 낫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물 속에 있는 고기는 아직도 잠잠하고 침착하다. 나도 이걸 다 먹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손아, 네가 좀 참아다오." 하고 그는 말했다. "너 때문에 이걸 먹는단다." 그는 순간 물 속에 있는 저 고기에게도 이것을 좀 먹였으면 하고 생각했다. 왜 냐하면 형제간이니까. 하지만 나는 그 고기를 죽여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만 한다. 노인은 쐐기 모양의 고깃점을 천천히 조심해서 죄다 씹어 먹었다. 그는 허리를 쭉 펴 보며 바지에다 손을 닦았다. "자." 하고 그는 말했다. "손아, 이젠 줄을 놓아도 좋다. 네가 그 뻣뻣해지는 바보짓을 그만둘 때까진 오 른팔로만 고기를 다루겠다." 노인은 왼손으로 붙들고 있던 줄을 왼발로 밟았다. 그리고 몸을 젖히면서 등을 눌러대는 무게를 버티어 내려고 애썼다. "하느님, 제발 쥐가 낫도록 도와 주십시오." 노인이 기도하듯 말했다. "고기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도대체 알 수가 있어야지요." 그러나 고기는 침착하게 제대로 자신의 계획을 진행시키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런데 그 고기의 계획이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 하고 그는 생각해 보았다. 또 나의 계획이란 무엇인가? 하지만 고기가 엄청나게 크니 내 계획은 녀석의 계획에 맞추 어서 임시변통으로 변경하지 않을 수 없단 말이야. 놈이 물 밖으로 뛰어 오르기만 하면 죽일 수가 있는데, 녀석은 언제까지나 물 속에 있을 참인가. 그렇다면 나도 언제까지나 녀석과 함께 물 위에 있을 것이다. 노인은 쥐가 난 손을 바지에다 대고 문질러서 손가락을 풀어 보려고 애썼다. 그 러나 손은 쉽게 펴질 것 같지가 않았다. 해가 나면 펴지겠지 하고 노인은 스스로 를 위로했다. 금방 먹은 싱싱한 날다랑어가 소화되면 펴질 거야. 만일, 이 손이 꼭 필요한 경우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펴놓고 말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억지로 펴 고 싶지가 않았다. 노인은 무심코 바다 저편을 바라보았다. 순간 그는 자기가 지금 얼마나 외로운 가를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깊고 어두운 물 속의 프리즘 현상을 볼 수 있었 고 팽팽하게 앞으로 뻗어나간 낚싯줄과, 잔잔한 가운데서도 이상한 파동이 이는 현상을 볼 수가 있었다. 무역풍 때문에 어디선지 구름이 모여들고 있었다. 앞을 보니 한떼의 물오리가 바로 위의 하늘을 배경으로 뚜렷이 나타났다가는 흐려지고 다시 또 뚜렷이 나타나곤 했다. 노인은 그런 모습들을 보며 어느 누구도 바다에서 는 외롭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작은 배를 타고 육지가 보이지 않는 먼 바다까지 나가는 것을 두렵다고들 하는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하고 그는 고개를 갸우뚱했 다. 하긴 갑자기 악천후가 겹치는 계절에는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은 태풍이 부는 계절이고, 만약 태풍만 불지 않는다면 기후는 일 년 중 가장 좋은 때인 것이다. 만일 태풍이 오려고 할 때 바다에 나가 있으면 언제나 며칠 앞서 하늘에 그 징 조가 나타나게 마련이다. 다만 육지에서는 무엇을 봐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그 징 조를 못 보는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육지가 구름의 모양을 바꾸어 놓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구름의 모양을 보아하니 태풍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하늘을 보니 친근한 아이스크림 같은 흰 적운이 보이고, 창공에는 드높은 9월 하 늘을 배경으로 엷은 깃털 같은 권층운이 널려 있었다. "가벼운 미풍이군." 하고 그는 말했다. "고기야. 오늘은 너보다는 나한테 유리한 날씨로구나." 왼손은 아직도 쥐가 풀리지 않은 상태이므로 노인은 천천히 쥐를 풀어 주고 있 었다. 이런 경우는 정말 질색이었다. 쥐가 난다는 것은 자신의 신체를 배반하는 일이다. 남 앞에서 '프토마인' 중독으로 설사를 한다든지, 구토를 하는 것은 창피 한 노릇이다. 그런데 쥐라는 것은 - 그는 스페인어로 '까랍브래'라고 생각했는데 특히 혼자 있을 때는 그것을 스스로 창피하게 여기곤 했다. 만일 소년이 지금 여기 있었다면 팔을 주물러서 근육을 풀어 주었을 것이다. 그 러나 결국은 풀어지기는 할 거야, 라고 노인은 생각했다. 그는 이제껏 오른손 줄에 느껴지던 힘이 달라진 것을 느꼈고, 뒤이어 물 속에서 낚싯줄이 천천히 위로 올라오는 것을 보았다. "드디어 녀석이 올라오는군." 하고 그는 말했다. "어서 가까이 오너라, 제발 가까이 와." 줄은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올라왔다. 어느 순간 갑자기 배의 앞쪽 해면이 소 용돌이 치더니 고기의 몸통을 중심으로 해서 양쪽으로 물이 갈라지며 쏟아져 내 렸다. 드디어 놈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햇빛을 받아 번쩍거리는 머리와 등은 짙은 자줏빛이었고 옆구리는 야구 방망이처럼 길고 끝이 쌍날 칼처럼 뾰족했다. 그러나 놈은 잠깐 물 밖으로 전신을 드러내 보이더니 잠수부처럼 유유히 다시 물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노인은 고기의 낫날 같은 꼬리가 물 속으로 들어가면서 동 시에 줄이 재빨리 풀려 나가는 것을 보았다. "이 배보다 두 피트는 길구나." 노인은 감탄조로 중얼거렸다. 줄이 풀려 나가는 속도가 빠르기는 하지만 일정하 게 풀려 나가는 것으로 보아 고기가 당황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노인은 두 손으로 줄이 끊어지지 않을 정도만 당겨 보려고 했다. 일정하게 당겨서 고기의 속 력을 늦추어 놓지 않으면 줄을 있는 대로 끌고 가서 마침내 끊어 버릴지도 모르 기 때문이다. 굉장한 고기다. 그러나 반드시 놈을 해치워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제 힘이 얼마나 되는지, 또 자기가 달아나기로만 마음 먹으면 어떤 짓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서는 안된다. 내가 저 고기라면 지금 당장 어떤 짓이라도 해서 요절 을 내놓고 말 텐데. 그러나 고맙게도 고기들은 그들을 죽이는 우리 인간처럼 영리 하지를 못하거든. 물론 어떤 때는 우리들보다 훨씬 기품이 있고 능력이 있기는 하 지만. 노인은 그동안 큰 고기를 많이 보았었다. 1000 파운드 이상 나가는 것도 많이 보았고, 평생에 그런 큰 고기를 두 마리나 잡기도 했었다. 물론 그때는 혼자서 잡 은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단지 혼자서, 육지도 보이지 않는 이곳 먼 바다 에서, 평생에 처음 보는 큰 고기를, 그것도 말로 들어 본 것보다 훨씬 더 큰 고기 와 맞붙어 있다. 그런데 왼손은 아직도 오그라든 채 매의 발톱처럼 꼭 붙어 있다. 그래도 곧 풀릴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틀림없이 쥐가 풀려서 오른손을 도와 줄 거야. 나에게는 형제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셋이 있다. 바로 저 고기와 내 두 손이다. 그러니 쥐난 손이 언젠가 풀리기는 반드시 풀릴 것이다. 쥐가 나다니, 못 난이같이. 고기는 다시 속력을 늦춘 채 평소와 같은 속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아까는 어째서 녀석이 뛰어 올랐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고기는 마치 제가 얼마나 큰지 한번 보라는 듯이 뛰어 오른 모양이다. 하여튼 이 제 나는 너란 놈을 알 것 같다,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그리고 나도 내가 어떤 사 람인지 너에게 알리고 싶구나. 그렇게 되면 너는 나의 쥐난 손을 보게 되겠지. 그 렇게 되면 큰일이다. 어떻게 해서든 내가 실제보다 더 강한 인간으로 보여지도록 해야지. 또 반드시 그렇게 되고 말 것이다. 그는 계속해서 생각했다. 의지와 지혜 밖에 없는 나에게 맞서고 있는, 모든 것을 가진 저 고기가 부럽구나. 노인은 가능하면 편한 자세로 뱃전에 몸을 기댄 채 고통을 견디려 애썼다. 고기 는 꾸준히 헤엄쳤고, 배는 어두운 물을 헤치며 천천히 나아갔다. 샛바람이 불자 약간 파도가 일었고, 한낮이 되자 노인의 왼손에 났던 쥐도 풀렸다. "고기야, 너에게는 좋지 않은 소식이다." 그는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중얼거리면서 어깨를 덮고 있던 부대를 매만지며 다시 줄을 옮겨 놓았다. 조금은 편안해졌지만 그래도 금방 고통스러워졌다. "나는 종교를 믿는 사람은 아니지만." 하고 그는 중얼거렸다. "지금부터 이 고기를 잡게 해주십사고 주기도문 열 번, 성모송 열 번을 외우겠 다. 그리고 만약 고기를 잡기만 한다면 '코브르'로 순례를 가겠다. 맹세한다." 그는 기계적으로 기도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이따끔 그는 너무나 피곤해서 기도 문을 기억할 수가 없을 지경이 되곤 했지만, 다시 재빨리 외워 보면 자동적으로 뒷구절이 나오곤 했다. 그가 생각하기에는 성모송이 주기도문보다 더 쉬웠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기뻐하소서. 주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 며, 태풍의 아들 예수 또한 복되시도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여, 이제와 우리 죽을 때에 우리 죄인을 위하여 빌으소서. 아멘." 그리고 노인은 덧붙여서 한 마디 더했다. "복되신 마리아여, 마지막으로 이 고기의 죽음을 위하여 기도하여 주십시오. 훌 륭한 고기이긴 합니다만." 기도를 마치고 나자 한결 기분이 나아졌으나 고통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아 니 아까보다 좀 더한 것 같았다. 그래서 노인은 이물의 판자에 몸을 기댄 채 기계 적으로 왼손 손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풍이 가볍게 일고 있었으나 햇볕도 제법 따가웠다. "작은 줄에 미끼를 새로 달아서 그물 쪽으로 드리워 두는 것이 좋겠는데." 하고 노인은 말했다. "만일 녀석이 이대로 하룻밤을 더 견뎌 볼 생각이라면 나도 뭐든지 좀더 먹어야 되니까. 병의 물도 거의 떨어질 지경이 되었고... 그런데 여기서는 돌고래밖에 잡 힐 것 같지가 않구나. 오늘 밤엔 날치가 배 위로 날아와 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날치를 끌어들일 만한 불이 있어야 말이지. 날치는 날로 먹어도 맛이 썩 좋고, 칼 질을 할 필요도 없는데... 이젠 최대한 내는 힘을 아껴야겠다. 놈이 이렇게 클 줄 은 정말 몰랐단 말야. 그래도 끝까지 죽여야지." 노인은 마지막 말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의 모든 위대함과 영광을 누릴 수 있도록." 생명을 죽인다는 것이 옳은 일은 아니더라도,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어떤 것 인지, 그리고 인간이 얼마나 역경에 잘 견뎌 낼 수 있는지를 고기에게 보여 주고 말테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나는 그동안 나 자신이 이상한 노인이라고 아이에게 말하곤 했었다. 지금이야 말로 그 말을 증명할 때다." 하고 그는 중얼거렸다. 그동안 수천 번 증명을 했어도 지금은 다 무의미한 것 같았다. 지금 또다시 새롭게 증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늘 처음하는 일 같았고, 새롭게 자신의 말을 증명할 때는 과거의 일은 일체 생각하지 않았다. 녀석이 잠들고, 나도 잠들어서 사자 꿈이나 꾸었으면 좋겠는데 하고 그는 생각 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어째서 갑자기 사자가 중요한 존재로 되었담? 늙은이, 아무 생각도 하지 말게. 노인은 계속 중얼거렸다. 뱃전에 기대어서 쉬기나 하고, 아무것도 생각지 말게. 고기란 녀석은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단 말일세. 그러니 자 네는 될수록 움직이지 말라구. 힘을 아껴야지. 오후로 접어들었다. 배는 아직도 천천히, 꾸준히 움직이는 중이었다. 그러나 동 풍은 이제 잠잠해졌다. 노인은 잔잔한 바다를 노를 저어 나아갔다. 밧줄 때문에 등이 아프던 것도 한결 덜했고, 느낌이 부드러워졌다. 오후에 한 번 더 줄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기는 약간 높은 수면으로 올라와 계속해서 물 속을 헤쳐 나아갈 뿐이었다. 햇볕이 노인의 왼팔과 어깨 위에 앉아 있다가 이제는 동쪽으로 옮아갔다. 그래서 노인은 고기가 동북쪽으로 방향을 돌린 것을 알았다. 노인은 고기를 한번 보았기 때문에, 고기가 물 속에서 그 멋진 자줏빛 가슴지느 러미를 날개처럼 활짝 편 채 크고 꼿꼿한 꼬리로 어두운 물 속을 가르면서 나아 가는 모양을 그려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녀석의 눈은 굉장히 컸었다. 전에 보니 까 말은 그보다 훨씬 작은 눈으로도 어둠 속에서 무엇이든 볼 수 있었다. 나도 전 에는 어둠 속에서 썩 잘 볼 수 있었는데, 아주 깜깜한 데서는 못 보지만, 그래도 고양이만큼은 볼 수 있었던 것이다. 해도 나고 손가락도 꾸준히 움직인 탓에 이제 왼손의 쥐가 완전히 풀렸다. 그래 서 이제부터는 힘을 왼손에다 옮겨 놓기 시작했다. 등의 근육을 조금씩 움직여서 줄이 닿아 아픈 곳을 살살 풀었다. "고기야, 만약 네가 지치지 않았다면." 하고 그는 소리내어 말했다. "너도 나처럼 참 이상하구나." 노인은 이제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곧 밤이 될 것 같아서 노인은 다른 일이나 생각하려고 했다. 그는 야구 리그를 떠올렸다. 노인은 그것을 서반아 어로 '그란 리거스'라고 하는 편이 좋았다. 노인은 뉴욕의 '양키즈' 팀과 디트로이트의 '타이거 즈' 팀이 시합중인 것을 알고 있었다. 오늘이 벌써 이틀째인데, 아직 시합의 결과도 모르고 있다니. 그러나 내 일에 신념을 가져야지. 뒤꿈치 뼈가 아프면서도 끝까지 시합을 해내는 위대한 '디마지 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해야 된다. 뒤꿈치 뼈 타박상이란 것은 어떤 병일까? 그 는 자신에게 그 병에 대해서 물었다. 우리는 그런 병은 안 걸리는데, 그것은 싸움 닭의 박차를 인간의 뒤꿈치에 박은 것만큼 아플까? 나는 싸움닭처럼 쇠발톱을 다 는 아픔을 견딘다거나, 한쪽 또는 양 눈이 빠지고도 계속해서 싸울 수는 없을 것 이다. 인간은 훌륭한 새나 짐승과 비교할 바가 못 된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저 컴컴한 바다 속에 있는 고기가 되고 싶다. "상어만 나타나지 않는다면." 하고 그는 큰소리로 말했다. "상어가 오면 이제 너나 나나 볼장 다 본다." '디마지오'가 만약 나와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내가 지금 이 녀석을 이겨내는 것만큼 고기와 겨루어서 견디어 낼 수 있을까 하고 그는 생각했다. 물론 그럴 수 도 있겠지. 그는 젊고 힘이 있으니까 더 잘 버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때 는 그의 아버지도 어부였으니까. 그런데 뼈 타박상이란 것이 그렇게도 아픈 병일 까? "그야 알 수 없지." 하고 그는 소리내어 말했다. "나는 아직까지 뼈를 앓아 본 일이 없으니까." 해가 지자 노인은 자신에게 좀더 자신감을 부어 넣으려고 노력했다. 노인은 카 사블랑카에 있는 술집에서 사이안피고에서 왔다는 부두에서 제일 힘세다는 검둥 이와 팔씨름하던 일을 기억해 냈다. 그때 그들은 테이블에 분필로 줄을 긋고 그 위치에 팔꿈치를 놓고 팔을 꼿꼿이 세웠다. 그리고 서로 손을 움켜잡은 채 하루 낮, 하룻밤을 새웠다. 서로 상대방의 손을 테이블 위에 넘어뜨리려고 애를 썼다. 돈을 거는 사람이 많았고, 석유 불빛 아래서 사람들이 웅성웅성하며 들락날락했 다. 그는 검둥이의 팔과 손과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처음 여덟 시간이 지나자, 심판이 잠을 잘 수 있도록 네 시간마다 심판을 바꿨다. 두 사람의 손톱 밑에서 피 까지 나왔다. 두 사람은 서로 상대방의 눈과 손와 팔을 쳐다본 채 꼼짝을 안했고, 돈을 건 사람들은 초조한 심정으로 방을 들락거리며, 높다란 의자를 벽에 기대어 놓은 채 그곳에 앉아서 시합을 지켜보고 있었다. 판자 벽은 하늘색으로 칠해져 있 었으며, 램프불이 벽에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 검둥이의 그림자도 엄청나게 컸 는데, 미풍이 불어서 램프불이 흔들릴 때마다 벽의 그림자도 흔들렸다. 밤새도록 승부는 결정이 나지 않았었다. 사람들은 검둥이에게 럼주를 먹이고 담 배를 물려 주었다. 술을 마신 다음 검둥이는 사력을 다해 안간힘을 쓰더니, 마침 내 노인을, 아니 그때는 노인이 아니라, 산티아고 선수의 손을 거의 3인치 가량 눕혔다. 그러나 그도 죽을 힘을 다하여 다시 손을 세웠다. 그때 노인은 잘 생기고 훌륭한 체력을 가진 이 검둥이를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새벽이 되자 돈을 건 사람들이 무승부 판결을 원했지만 심판이 이를 거부하며 고개를 가로젓 고 있었다. 그때부터 그는 힘을 쓰기 시작해서 검둥이의 손을 점점 아래로 꺾어 내리더니 마침내 테이블에 닿게 만들었다. 결국 시합은 일요일 아침에 시작해서 월요일 아침에야 끝이 났다. 그때 대부분 돈을 건 사람들은, 부두에 나가서 설탕 부대를 지거나, 아바나 석탄 회사에 나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무승부 선언을 청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않았다면 누구나 시합이 끝까지 가기를 원했을 것이다. 여하튼 노인은 그때 그 사람들이 일하러 가 야 할 시간이 되기 전에 시합을 끝냈던 것이다. 그 일이 있은 후 오랫동안 사람들 은 그를 챔피언이라 불렀었고 봄에는 복수전이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시합에 돈을 많이 걸지 않았고, 첫 시합에서 '사이안피고'에서 온 검둥이를 꺾어 놓았기 때문에 누구든 쉽게 노인을 이길 수가 없었다. 그 후 그는 몇 차례 더 시합을 하 고 다시는 시합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원하기만 하면 누구든지 이길 수 있었지 만 이런 시합이 결국에는 고기잡이를 해야 하는 오른손에는 해롭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왼손으로 몇 번 시합을 해 보았지만 왼손은 언제나 배반자의 위치를 고수했다.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하려 들지를 않자 그때부터 노인은 왼손을 믿지 않게 되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따뜻한 햇볕을 쪼이면 쥐가 나을 테지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밤에 몹시 추워지면 몰라도, 그러나 다시 쥐가 나서는 안 된다. 오늘 밤엔 또 어 떤 일이 생기려나. 마침 마이애미로 가는 비행기 한 대가 머리 위를 지나갔다. 그 그림자에 놀라 한 무리의 날치 떼가 뛰는 것이 보였다. "날치가 저렇게 많은 것을 보니 틀림없이 돌고래가 있겠어." 하고 그는 말했다. 그러고는 고기를 조금이라도 당길 수 있을까 싶어서 다시 한 번 줄을 잡아당겨 보았다. 그러나 더 이상 끌어 당길 수도 없었고, 끊어질 듯 팽 팽해진 줄이 부르르 떨면서 물방울을 튕겼다. 계속해서 배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고, 노인은 비행기가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지켜 보고 있었다. 비행기를 타고 있으면 기분이 이상할 거야,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저렇게 높은 곳에서는 바다가 어떻게 보일까? 너무 높이 날지만 않는다면 고기도 잘 볼 수 있 을 거야. 나도 한 번쯤은 비행기를 타고 200 길 높이로 아주 천천히 날면서 고기들을 보 고 싶다. 거북잡이 배에서는 돛대 꼭대기의 가름대에 올라가 보기도 했었지만, 그 만한 높이에서도 보이는 것이 썩 많았었어. 돌고래는 더 진한 녹색으로 보였었지. 그리고 줄무늬며 자줏빛 반점도 보이고 고기 떼가 헤엄쳐 나가는 것도 죄다 볼 수 있었어. 어째서 깊은 물 속에 사는 물고기들은 자줏빛 잔등에다 대개는 자줏빛 줄무늬나 반점을 가지고 있을까? 돌고래는 사실은 황금빛이기 때문에 노란색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말 배가 고파서 먹이를 먹을 때는 마치 마알린처럼 배에 자줏빛 줄무늬가 나타난다. 고기가 화가 나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한층 더 속력을 내기 때문일까? 날이 어둡기 직전이었다. 조그만 섬처럼 큰 모자 반류의 해초가 해면 가까이로 떠올라서 흔들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누런 담요 아래에서 바다가 누군가와 사랑을 주고 받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막 그 지점을 지날 때였다. 작은 낚싯줄에 돌고래 한 마리가 물렸다. 처음 그놈을 본 것은, 그 돌고래가 공중으로 뛰어오르 면서 마지막 햇빛에 진짜 금빛으로 빛나던 모습이었다. 놈은 공중에서 사납게 몸 을 푸득거리고 있었다. 겁에 질린 돌고래는 곡예 비행을 하는 것처럼 이리저리 날 뛰었다. 노인은 고물쪽으로 조심조심 옮겨가서 몸을 웅크리고는 오른손과 팔로 큰 줄을 잡고, 왼손으로는 돌고래를 끌어당겼다. 당길 때마다 끌어들인 줄을 왼쪽 발 로 밟아 가면서 줄을 당겼다. 고기가 고물 가까이까지 끌려오자 거의 절망적으로 뛰어오르면서 날뛰었다. 노인은 고물 너머로 몸을 내밀어서 자줏빛 반점이 어린 금빛 고기를 들어서 그대로 배에 던져 넣었다. 낚시를 성급히 물어 뜯느라, 턱이 발작적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길고 넙적한 몸뚱이와 꼬리와 머리로 뱃바닥을 세차 게 쳐대었다. 마침내 노인은 번쩍이는 그 금빛 머리를 향해 몽둥이를 내리쳤다. 그러자 돌고래는 잠시 몸을 떨더니 곧 조용해졌다. 노인은 돌고래로부터 낚시를 빼낸 뒤 그 줄에다가 다시 정어리를 매달아서 물 에 던졌다. 왼손을 씻고는 바지에다 닦았다. 이젠 반대로 무거운 낚싯줄을 왼손에 옮기고 오른손을 바닷물에 씻었다. 그러면서 해가 바다 속으로 사라져 가는 모습 과 굵은 줄이 비스듬히 드리워져 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저 아래에 있는 고기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구나." 하고 노인은 중얼거렸다. 그러나 손에 물이 닿는 모양을 보니, 속도가 눈에 띄 게 느려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젠 고물에다 노 두 개를 가로질러 묶어 놓으면 밤새 고기의 속력을 느리게 할 수 있겠구나." 하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고기는 오늘 밤도 끄떡없을 테고, 나도 괜찮다." 돌고래 살에서 피가 흐르지 않도록 내장을 좀더 있다가 빼는 것이 좋을 것 같 았다. 그럼 조금만 있다가 돌고래에 칼질도 하고, 저 큰 고기 녀석이 끌기 힘들도 록 노도 묶어두자. 지금은 그냥 조용히 내버려 두고 해질녘이니까 성가시게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어떤 고기든 해질 무렵에는 다루기가 더 어려운 법이니까. 노인은 바람에 손을 말린 후 다시 줄을 잡고는, 될 수 있는 대로 몸을 편한 자 세로 하려고 애썼다. 그는 뱃전에 몸을 기대어 이물 쪽으로 젖혀서 그냥 줄을 잡 고 앉아 있는 것 보다는 배가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도록, 즉 고기가 끌기 힘들도 록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렇게 해서 또 새로운 방법을 하나씩 배우는구나. 어떻게해서든지 상황에 따라 써먹을 수 있는 방도가 있게 마련이지. 노인은 생각했다. 그리고 또 알아 두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녀석은 미끼를 물었을 때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것과, 덩치가 크니까 먹는 양도 많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나는 다랑어 한 마리를 다 먹 었었다. 내일은 또 돌고래를 먹을 것이고. 노인은 돌고래를 '도라도'라고 불렀다. 내장을 빼낼 때 조금 먹어 두어야 될 것 같았다. 물론 다랑어보다 먹기가 힘들겠 지.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어디 쉬운 일이 있겠는가. "고기야, 좀 어떠냐?" 하고 그는 소리내어 물었다. "나는 기분이 괜찮은 편이다. 왼손도 많이 나았고. 그리고 나에겐 하룻밤 하루 낮동안 먹을 것도 있다. 어디, 너 혼자 계속해서 배를 끌어 보려무나, 고기야." 그러나 사실은 전혀 괜찮은 기분이 아니었다. 등에 메고 있는 낚싯줄 때문에 너 무 고통스러웠는데 이제는 아픈 정도를 지나서, 그가 믿으려 하진 않았지만, 무감 각 상태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한 경우도 있었는데, 하고 노인은 자신 을 다독거리는 것이었다. 오른손이 좀 상처났을 뿐, 왼손의 쥐도 다 나았는데. 그 리고 두 다리도 성하고, 또한 식량 문제라면 내 편이 훨씬 유리하지 않은가. 9월이면 해가 떨어지기가 바쁘게 날이 어두워지곤 했다. 주변은 벌써 어둑해졌 다. 노인은 이물 쪽 낡은 뱃전에 기댄 채 될 수 있는 대로 편히 쉬려고 애썼다. 첫 별이 나타났다. 노인은 그 별의 이름이 '리겔' 성이라는 것을 몰랐지만, 그 별 이 보이기 시작하면, 곧 다른 별들도 나타나서 모두 자기의 친구가 되리라고 생각 했다. "물론 저 고기도 내 친구다." 하고 그는 소리내어 말했다. "저런 고기에 대해서는 내 평생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단 말이야. 그렇지만 나 는 너를 죽이지 않을 수가 없구나. 이럴 땐 인간이 별을 죽일 필요가 없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노인은 생각했다. 날마다 사람이 달을 죽여야 한다고 상상해 보라. 아마 달은 달아나 버릴 것이다. 또 날마다 해를 죽여야 한다고 상상해 보라. 얼마나 큰 사건 이 생길지 그건 모르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얼마나 행운인가. 그러자 노인은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큰 고기가 불쌍해졌다. 하지만 불 쌍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고기를 죽이겠다는 결심은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았다. 저 고기를 잡으면 도대체 몇 사람이 먹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도 해보았다. 그런 데 사람들이 과연 저 고기를 먹을 자격이 있을까? 아니지, 물론 자격이 없다. 고 기의 저 침착한 태도라든지 저 당당한 위엄을 생각해 보면 틀림없이 보통 고기는 아닐 것이다. 따라서 아무도 그것을 먹을 자격이 없다. 그러나 나는 이런 어려운 것은 잘 모른다. 그렇더라도 우리가 해나 달이나 별을 죽일 필요가 없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저 바다에서 살면서, 우리의 참다운 형제를 죽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노인은 복잡한 생각을 일단 거기에서 멈추고 현실적인 문제로 되돌아왔다. 자, 이제는 항력에 대해서나 생각해 봐야지. 여기엔 분명 장단점이 있다. 고기가 계속 달아나려고 애를 쓰고, 한편 노가 제동을 거는 역할을 해서 배가 무거워진다 면, 녀석은 끝까지 발악을 해서 줄을 한없이 끌고 가게 될 것이다. 그러면 줄이 너무 풀어져서 잘못하다가는 고기까지 놓칠지도 모른다. 반대로 배가 가벼우면 서 로의 고통은 연장되겠지만 고기에게는 아직 다 쓰지 않은 대단한 속력이 남아 있 을 테니, 나로서는 가벼운 편이 오히려 안전할 것이다. 하여간 어떤 일이 있든지 간에, 나는 힘을 축적해 두지 않으면 안 된다. 돌고래가 상하지 않도록 빨리 내장 을 빼내고 살점을 좀 먹어야겠다. 그리고 한 시간을 더 쉰 다음, 녀석이 계속 끄 떡없나를 알아보고 나서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그러는 동안에 고기가 어떤 짓 을 하는지, 또 무슨 변화라도 일어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노를 묶어둔 것은 단순한 요령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안전한 방향으로 나갈 때가 된 것 같았다. 아직도 녀석의 힘은 대단하다. 얼핏 보기에는 낚시 바늘이 입구석에 꽂혀 있었고, 놈은 입을 꽉 다물고 있다. 저런 큰 고기에게는 낚시가 주는 고통은 문제 가 아니겠지. 단지 굶주림이라는 고통과, 알지도 못하는 대상과 겨루고 있다는 사 실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늙은이, 이제 자네는 좀 쉬지. 다음 할 일이 생길 때까지 녀석이 마음대로 애를 쓰게 놔 두라구. 그는 두 시간쯤 쉬었다. 오늘은 달이 늦도록 뜨지 않아서 시간을 짐작해 볼 수 가 없었다. 그래도 비교적 많이 쉰 셈이지. 하지만 정말 쉬었다고 볼 수 없었다. 노인은 아직도 고기가 끄는 힘을 양 어깨로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제 왼 손으로 이물의 뱃전을 잡고서 요령을 부렸다. 고기를 끌어 당기는데 스스로 힘을 쓰지 않고, 배 자체에다 지우려고 애썼다. 만약 이 줄을 고정시킬 수만 있다면, 일은 얼마나 간단하겠는가. 그러나 그렇게 하면 고기가 조금만 요동을 쳐도 줄이 끊어져 버릴 것이다. 내 몸으로 버텨서라도 줄이 끌려가는 것을 어느 정도 막아 내고, 언제든지 양손으로 줄을 풀어 놓을 준 비를 하고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자네는 아직 한번도 잠을 자지 못했어, 늙은이." 하고 그는 소리내어 말했다. "반나절과 하룻밤을, 그리고 또 하루를 못 잤어. 그러니까 고기가 저렇게 점잖게 잠잠하게 있는 동안 조금이라도 잠잘 방도를 강구해야만 해. 잠을 안 자면 머리가 흐려질 테니 말이야." 하지만 내 머리는 아직 아주 맑은데 뭘, 하고 그는 생각했다. 너무나 맑고 명료 해서 먼 곳에 있는 친구인 별들처럼 초롱초롱했다. 그래도 잠을 자야 한다. 별도, 달도, 해까지도 잠을 자지 않는가. 심지어 바다마저도 조류가 없는 조용한 날이면 이따금 잠을 자는 걸 노인은 보아왔었다. 그러니 잠자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그는 생각했다. 억지로라도 자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낚싯줄에 대해서는 뭐 좀 쉬우면서도 확실한 방도를 강구해 보아야 할 것만 같았다. 이젠 돌고래를 요리할 시간이다. 잠을 자려면 노를 비끄러매어 닻처럼 만들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지만 그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나는 안 자고도 견딜 수 있는데." 그는 스스로에게 혼잣말을 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위험한 일이기도 했다. 그는 고기에게 조그만 충격이라도 줄까 봐 조심하며 양손과 무릎으로 기어서 고물 쪽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는 지금 자기가 반쯤은 자고 있는지도 모른다 고 생각했다. 그러나 고기를 쉬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놈이 죽을 때까지 끌어야 하고말고. 고물로 돌아온 노인은 몸을 돌려서 왼손으로 어깨에 멘 줄을 잡았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칼집에서 칼을 뽑았다. 별빛이 밝아지자 돌고래가 똑똑히 보였 다. 그는 칼날로 돌고래 머리를 찔러서 고물 밑창에서 놈을 꺼내었다. 한쪽 발로 몸 통을 밟고 항문에서 아래턱 끝까지 재빨리 배를 갈랐다. 칼을 내려놓고, 오른손으 로 내장을 빼내고 난 뒤 아가미도 죄다 뜯어내었다. 밥통이 보이길래 손으로 만져 보니 묵직하고 미끈했다. 그것을 가르자 밥통 속에서 날치가 두 마리나 나왔다. 날치는 아주 싱싱하고 단단했다. 노인은 그것을 나란히 내려놓고, 내장과 아가미 를 꺼내어 뱃전 너머로 던져 버렸다. 그것이 물 위에 인광의 꼬리를 남기며 가라 앉았다. 돌고래의 몸통은 차디찼다. 그리고 이젠 별빛을 받아 문둥이처럼 희뿌연 색깔로 보였다. 노인은 오른쪽 발로 고기의 머리를 누르고 한쪽의 껍질을 벗겼다. 그리고 다시 뒤집어서 다른 쪽의 껍질을 마저 벗긴 뒤 머리에서 꼬리까지 살을 발랐다. 그는 뼈를 물에 던지며 물 속에 소용돌이가 있나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희 미한 빛을 남기며 천천히 가라앉을 뿐이었다. 그는 몸을 돌렸다. 돌고래의 저며 낸 살점 가운데다 날치 두 마리를 놓고 칼을 칼집에 꽂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이 물 쪽으로 되돌아왔다. 노인의 등은 낚싯줄의 무게 때문에 한껏 구부러져 있었다. 그는 고기를 오른손으로 들고 갔다. 이물로 돌아온 노인은 판자 위에다 돌고래 살점 두 쪽을 내려놓고 날치도 곁에 놓았다. 그런 다음에 어깨에 메고 있던 줄을 옮기고 뱃전에 올려 놓았던 왼손으로 다시금 그 줄을 잡았다. 그는 뱃전에 몸을 기댄 채 손에 와닿는 물의 속도를 주시 하면서 날치를 물에다 씻었다. 고기 껍질을 벗기느라 손에 인광이 묻었는데 거기 에 닿는 물결이 확연하게 보였다. 물결은 먼저보다 더 약해졌다. 손을 널빤지에 문지르니까 인광 조각들이 떨어져 나가 배 뒤로 천천히 떠내려갔다. "지금은 녀석도 지쳤거나 쉬고 있는 것일 거야." 하고 노인은 말했다. "자, 이젠 나도 이 돌고래를 먹은 다음 좀 쉬거나 아니면 잠을 자도록 해야겠 지." 밤이었고, 날씨는 점점 추워지고 있었다. 별빛 아래서 노인은 아까 집어온 돌고 래 살점 중에서 한쪽의 반을 먹고, 내장과 머리 쪽을 떼어버린 날치 한 마리를 마 저 다 먹었다. "돌고래는 요리를 해서 먹으면 썩 좋은 음식인데." 하고 그는 중얼거렸다. "그런데 날로 먹으면 형편없단 말이야. 앞으로는 배를 탈 때 소금이나 라임을 꼭 가지고 타야겠어." 하지만 조금만 더 머리를 썼더라면 아까 낮에 바닷물을 뱃전에 뿌려놓고 말려 서 소금을 만들 수도 있었다. 그러나 돌고래를 낚았을 때는 벌써 해질 무렵이 아 니었던가. 그래도 역시 준비 부족인 것은 틀림없었다. 하지만 생살도 잘 씹으니까 구역질은 나지 않는군. 동쪽 하늘에 구름이 덮이는가 싶더니 이내 별들이 하나씩 사라졌다. 마치 거대 한 구름의 계곡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바람도 멎었다. "사나흘 후에는 날씨가 나빠지겠다."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러나 오늘 밤이나 내일 밤까지는 괜찮아, 여보게, 늙은이. 이제 생각은 그만 하고 고기가 잠잠한 동안 잠이나 좀 자 두도록 하지." 노인은 오른손으로 줄을 단단히 잡고 몸 전체의 무게를 이물의 판자에다 실으 면서 허벅다리를 오른손에다 갖다 붙였다. 그리고는 낚싯줄을 어깨에서 약간 아래 로 낮추고 왼손을 그 위에 얹어서 줄을 팽팽하게 했다. 이 오른손은 줄이 팽팽한 한 끝까지 잡고 있을 수 있을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만일 자는 동안 줄이 느슨해지더라도 줄이 풀려 나가는 순간 왼손이 나를 깨울 것이다. 오른손은 왼손보다 좀 더 힘이 들겠지만 고통을 이겨 내는 데 익숙하니까 아마 괜찮을 것이다. 한 20분이나 반 시간만 자도 좋을 것 같았다. 그는 몸 전체 를 앞으로 웅크린 채 낚싯줄에 기대고, 전신의 무게를 다시 오른손에 의지한 채 잠이 들었다. 그러나 노인은 사자 꿈을 꾸지 않았다. 그 대신 8마일이나, 10마일쯤 뻗어 있는 돌고래의 대군을 보았다. 놈들은 한창 교미기여서 공중으로 높이 뛰어 올랐다가는 뛰어오를 때 생긴 구멍으로 다시 떨어지곤 했다. 그러다가 마을로 돌아와 침대에서 자는 꿈을 꾸었다. 날씨는 북풍이 불어서 무 척 추웠고, 베개 대신 팔을 베고 자서 오른팔이 저렸다. 그런 다음에는 예외없이 길게 뻗은 황금 해안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초저녁에 첫 번째 사자가 바닷 가로 내려왔다. 그 뒤에 다른 사자들도 내려왔다. 노인은 저녁 미풍을 받으며 닻 을 내리고 있는 배의 이물 쪽 판자에 턱을 고이고 앉은 채 더 많은 사자가 나타 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아주 즐거웠다. 달이 뜬 지도 벌써 오래되었건만, 노인은 계속 잠을 자고 있었다. 고기는 쉬지 않고 낚싯줄을 끌어 가고 있었고, 배는 구름의 터널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오른손 주먹이 얼굴을 탁치고, 오른손이 뜨겁게 탈 정도로 줄 이 풀려 나가는 바람에 노인은 잠을 깨었다. 왼손에는 아직 아무런 감각이 없었으 나 그는 풀려 나가는 줄을 오른손으로 힘껏 막았다. 그래도 줄은 급속도로 풀려 나갔다. 드디어 왼손도 줄을 찾아서 잡아당겼다. 그러자 등과 왼손이 동시에 타는 듯했다. 왼손이 낚싯줄을 도맡아 끌다시피 하자, 금방 심하게 상처를 입고 말았다. 노인은 낚싯줄 사리를 돌아다보았다. 순조롭게 풀려 나가고 있었다. 바로 그때 고 기가 바다를 가르며 뛰어올랐다가 무겁게 떨어졌다. 그러더니 연달아 뛰어오르기 시작했고, 줄은 계속해서 빠르게 풀려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는 계속 빠른 속도로 끌려갔다. 노인은 줄이 팽팽해지도록 바싹 당기고, 풀려 나가면 또 팽팽히 잡아당기곤 했다. 그는 엉겁결에 이물께까지 끌려가 있었으므로 돌고래 살점에 얼 굴을 처박은 채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기다리던 일이 드디어 일어났군. 그러니 이제는 모든 일을 침착하게 받아들여야 지. 낚싯줄 값을 치르게 해야지. 암, 낚싯줄 값을 치르게 해야 하고말고. 그는 고 통을 잊으려고 그런 생각도 했다. 노인은 고기가 뛰어오르는 것을 볼 수가 없었다. 그저 바닷물이 갈라지고 고기 가 떨어질 때마다 철썩 물이 튀는 소리를 들었을 뿐이었다. 낚싯줄이 하도 빨리 풀리는 바람에 손을 심하게 베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언제나 일어나게 마련이라 고 말하곤 했었으므로, 될 수록 손바닥으로 해서 낚싯줄이 미끄러져 나가거나 손 가락을 베이는 일이 없도록 굳은살 박힌 곳으로 줄을 쥐려고 애를 썼다. 이럴 때 소년이 여기 있었다면 낚싯줄 사리를 적셔 주었을 텐데 하고 그는 생 각했다. 그래, 그 아이가 여기 있었으면, 그 애만 여기 있다면... 낚싯줄은 풀려 나가고 또 계속 풀려 나갔지만 이제는 그 속도가 점점 떨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노인은 고기가 조금이라도 더 여유있게 줄을 끌도록 배려 하고 있었다. 이제 그는 널빤지에서 머리를 들 수 있었고, 또 볼이 짓이겨 놓은 생선의 살점에서도 얼굴을 들 수 있었다. 그는 무릎을 세우고는 천천히 일어섰다. 그는 줄을 놓아 주고는 있었지만, 조금씩 천천히 놓아 주고 있었다. 그는 발로 더 듬어서 낚싯줄 사리가 있는 곳으로 갔다. 아직도 줄은 충분히 있었다. 이제 저 고 기는 새로 물 속으로 풀려 나간 낚싯줄들이 물에서 받는 마찰까지 이겨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하고 그는 생각했다. 이제 녀석이 서너 번은 더 뛰어 올랐으니, 등줄기 에 붙어 있는 공기통에 공기가 잔뜩 들어갔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내가 끌어올 릴 수 없을 정도로 깊이 내려가서 죽을 염려는 없다. 곧 녀석이 주위를 돌기 시작 하면 그때 놈을 좀 다루어 보아야지. 그런데 왜 그렇게 갑자기 뛰어 올랐을까? 배 가 고파서 갑자기 자포자기 상태에 빠진 것일까? 아니면 죽음의 암흑 속에서 무 엇인가를 보고 놀란 것일까? 아마, 갑자기 무서워졌는지도 모르지. 그러나 그렇게 도 침착하고 당당했던 녀석이었는데. 전혀 겁도 없고 그렇게도 자신만만해 보였는 데, 이상한 일이다. "이봐, 늙은이, 자네나 무서워 말고 자신을 갖는 것이 좋겠어." 그는 멋적게 중얼거렸다. "자네는 다시 고기를 손아귀에 넣고 있다고는 하지만, 지금도 줄을 당길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곧 돌게 될거야." 노인은 다시 왼손과 양 어깨로 줄을 붙잡았다. 그리고 엎드려서 오른손으로 바 닷물을 떠서 돌고래 살점이 짓이겨진 얼굴을 씻어 내었다. 만약이라도 그것 때문 에 구역질이 나서 토하게 되면 힘이 빠질 것 같아서 두려웠던 것이다. 얼굴을 씻 고 나자 이번에는 뱃전 너머로 오른손을 물 속에 담그고 씻었다. 해가 뜨기 전이 었다. 노인은 먼동이 트는 것을 바라보면서 그대로 소금물에 손을 담그고 있었다. 고기가 동쪽으로 머리를 두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고기가 지쳐서 조류 를 따라 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곧 회전을 안 할 수 없지. 그때 가면 진짜 우 리들의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노인은 오른손이 물 속에 있을 만큼 있었다고 판 단했다. 그리고 오른손을 꺼내 바라보았다. "대단찮군." 하고 그는 말했다. "사나이가 이 정도 아픈 게 뭐 그리 문젠가." 그는 새로 생긴 상처에 낚싯줄이 닿지 않게 조심하면서, 다시 줄을 고쳐 쥐고는 고기의 무게를 다른 쪽으로 옮겼다. 그리고는 왼손을 반대편 뱃전으로 내밀어 물 에 담갔다. "네가 가치없는 짓을 하느라고 이렇게 심하게 다친 것은 아니야." 하고 노인은 자기의 왼손을 향해 말했다. "그러나 네가 어디 갔는지 종종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단 말이야." 노인은 생각했다. 왜 나는 두 손 다 튼튼하게 해서 태어나지 못했을까? 물론 그 동안 오른손만 주로 써서 왼손을 제대로 훈련시키지 못한 내 잘못도 있겠지. 그러 나 배울 기회란 얼마든지 있었던 게 아닌가. 하지만 단 한 번 쥐가 나긴 했어도, 간밤에는 그리 형편없이 굴지는 않았다. 만약 다시 한번 쥐가 난다면 왼손 너는 낚싯줄에 끊겨 버리도록 놔두고 말겠어.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그는 자신의 머리 속이 맑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래서 돌고래를 좀 더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먹을 수가 없어, 하고 혼잣 말을 했다. 괜히 몇점 더 먹었다가 구토로 기운이 빠지는 것보다는 머리가 좀 멍 한 편이 나을 것이다. 게다가 얼굴을 그 속에 처박기까지 했으니. 지금 와서 그 고깃점을 먹는다고 해도 토해 낼 것이 틀림없었다. 상할 때까지 그저 비상용으로 놓아 두자, 이제 양분을 취해서 힘을 얻기에는 너무 늦었어. 이런, 너란 놈은 참 어리석기도 하구나. 노인은 혼자 중얼거리며 날치를 보았다. 한 마리 남은 저 날 치를 먹으면 될 것 아니냐. 날치는 언제든지 먹을 수 있게끔 깨끗하게 요리되어 있었다. 노인은 그것을 왼 손으로 집은 뒤, 뼈를 조심스레 씹으며 꼬리까지 죄다 먹어 버렸다. 날치는 어떤 고기보다도 양분이 많은 고기라고 노인은 생각했다. 적어도 내게 필요한 힘을 줄 수는 있는 것이다. 그는 이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고 생각했다. 고기가 회전을 하도록 유도해서 싸움이나 해보자. 노인이 바다로 나온 후 세 번째로 해가 솟아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서야 비로소 고기가 회전을 시작했다. 하지만 낚싯줄의 경사만 보아서는 고기가 돌고 있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아직 은 너무 일렀기 때문이다. 그는 고기가 줄을 끄는 힘이 약간 약해진 것을 느끼고 오른손으로 가만히 당기기 시작했다. 언제나처럼 줄은 팽팽해졌다. 그러나 금방 끊어질 듯한 정도로까지 당기자 조금씩 줄이 끌려오기 시작했다. 그는 양 어깨와 머리를 줄 밑으로 뺀 뒤 꾸준히, 그리고 가만가만히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그는 두 손을 앞뒤로 휘두르는 동작을 취하면서 몸과 두다리를 최대한 활용하고자 했 다. 그래서 될 수 있는 대로 줄을 많이 끌어 당기려고 애를 썼다. 그는 자신의 늙 은 다리와 어깨를 줄을 끌어당기는 동작의 추축으로 삼았다. "대단한 회전이야." 하고 그는 혀를 내둘렀다. "그러나 저 녀석이 지금 돌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어." 그러나 더 이상은 끌려오지 않았다. 노인은 햇빛을 받아 줄에서 물방울이 구슬 처럼 튈 때까지 팽팽하게 줄을 잡아당겼다. 그러나 다시 줄이 풀려 나가기 시작하 자 노인은 무릎을 꿇고 마지 못해서 어두운 물 속으로 다시 줄을 놓아 주었다. "녀석은 지금 원주의 먼 쪽을 돌고 있는 거야." 그는 말했다. 하지만 될 수 있는 대로 줄을 늦추지 말고 당기고 있어야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당기고 있으면 돌 때마다 회전거리가 단축될 것이다. 어쩌면 한 시간 후에는 다시 그 엄청난 고기를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저 고기에게 혹독한 맛을 보여줄 때가 왔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고기는 계속해서 천천히 돌고 있었다. 그런 상태로 두 시간이 지나자 노 인은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고 뼛속까지 지쳐 버렸다. 그러나 회전거리는 아까 보다 많이 줄어 들었고, 낚싯줄의 경사로 보아 고기가 헤엄치면서 줄곧 위로 떠올 라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한 시간 동안이나 노인은 눈앞에서 검은 반점이 어 른거리는 것을 느꼈다. 땀이 흘러들어 눈이 따가웠다. 눈 외에도 이마에 난 상처 까지 마구 쓰라렸다.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검은 반점 따위는 전혀 무섭지 않았다. 그런 현상은 그가 줄을 당기느라 애를 쓸 때면 으레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벌써 두 번이나 아찔한 현기증을 느낀 터였다. 노인은 그것이 걱정이었다. "이런 고기를 놓치고 죽을 수도 없다." 그는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말했다. "지금까지 이렇게 멋있게 끌어올렸는데. 하느님, 제발 제 육체가 견딜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다시 한번 주기도문과 성모송을 백번 외우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못 외우겠습니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지금은 외운 것으로 해두자. 틀림없이 나중에 외울 테니 까, 라고. 바로 그때 두 손으로 잡고 있던 줄이 갑자기 팽팽하게 당겨졌다. 그 느낌이 매 우 뚜렷하고도 세차게 느껴졌으며, 또한 힘이 들었다. 녀석은 지금 철사로 된 목줄을 그 창날 같은 주둥이로 치고 있을 거야. 노인은 생각했다. 그것은 언젠가는 오고야 말 일이었다. 그리고 꼭 그렇게 되어야 할 일 이었다. 그러나 그 때문에 고기가 갑자기 뛰어오를지도 모른다. 이제 저 스스로 도는 걸 계속하도록 그냥 놓아 두는 것이 나을 것이다. 공기를 채우기 위해서 뛰 어오를 필요도 있었겠지만, 뛰어오를 때마다 낚시에 찔린 상처가 크게 벌어져서 어느 순간에 낚시를 빼 던져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뛰지 마라, 고기야." 하고 그는 당부하듯 말했다. "제발 뛰지 마라." 고기는 대여섯 번이나 더 철사를 쳤다. 그리고 고기가 머리를 흔들 때마다 노인 은 줄을 조금씩 놓아 주었다. 고기의 고통을 이 정도로 유지시켜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나의 고통은 문제가 아니다. 나는 스스로 고통을 억제할 수 있지만, 그 러나 고기는 여기에서 조금만 더 고통스러우면 미쳐 버릴 것이다. 잠시 후 고기는 철사에 부딪치는 동작을 중지하고 다시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노인도 쉬지 않고 줄곧 줄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또다시 정신이 아찔 해지며 현기증이 나는 것을 느꼈다. 왼손으로 바닷물을 퍼서 머리를 적셔 보았다. 몇 번을 더 퍼서 머리를 적시고는 손으로 목덜미를 문질렀다. "그래도 쥐는 안 나니까." 하고 그는 말했다. "곧 고기가 올라올지도 모른다. 물론 나는 견딜 수 있다. 아니, 견뎌야만 해. 말 할 필요도 없이 당연한 일이지." 그는 뱃머리에 몸을 의지하고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잠시동안 줄을 등에서 내 렸다. 고기가 원주의 먼 쪽을 돌 때는 자기도 좀 쉬고, 가까이에서 돌 때는 다시 힘을 내서 싸워 보자는 계산이었다. 노인은 뱃머리에 앉아 쉬면서, 줄을 당기지 않고 고기가 저 혼자 한 바퀴 돌도 록 내버려 두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시 뿐이었다. 노인 은 줄의 인력을 통해서 고기가 회전을 하면서 다가오고 있음을 알자 벌떡 일어섰 다. 그리고는 줄을 잡아끌면서 베를 짜듯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에는 이렇게 피로해 본 적이 없었는데 하고 그는 생각했다. 이제 무역풍이 부 는구나. 이 바람이 불면 고기를 끌어들이기에 유리하다. 나에게는 절실히 필요한 바람이다. "다음에 회전을 하려고 고기가 헤엄쳐 나가면 그때 쉬어야지." 노인은 스스로를 달래듯 그렇게 말했다. "그래도 기분이 훨씬 좋아졌다. 두세 번만 더 돌고 나면 잡히겠지." 노인의 밀짚모자는 뒤통수에 걸려 있었다. 노인은 고기가 회전하는 것을 감지하 자 다시 줄을 끌어당기면서 이물에 주저앉았다. 고기야, 너는 지금 힘차게 움직이 고 있구나. 하지만 굽이 돌 때 내 너를 잡으마. 그는 각오를 단단히 했다. 파도가 꽤 높이 일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좋은 날씨를 예고하는 미풍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그리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려면 이 바람이 꼭 필요했다. "서남쪽으로 저어 가기만 하면 된다." 하고 그는 말했다. "감히 남자가 바다에서 길을 잃을라구. 게다가 육지는 아주 길다란 섬이니까." 그가 문제의 그 고기를 처음 본 것은 세 번째 회전 때였다. 처음에는 배 밑을 한참 동안 지나가는 검은 그림자가 눈에 띄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노인은 도저히 그 길이를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야." 하고 그는 말했다. "저렇게 클 리가 있나." 그러나 고기는 그 그림자만큼 컸다. 회전을 마친 후 고기는 배에서 겨우 30야드 떨어진 물 위로 떠올랐었다. 그때 노인은 물 밖으로 나온 고기의 꼬리를 보았다. 그것은 큰 낫의 날보다도 더 길었고 검푸른 물을 배경으로 하여 아주 창백한 '라 벤더' 빛깔로 보였다. 꼬리는 뒤로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었다. 고기가 해면 바로 아래를 헤엄치기 시작하자 비로소 노인은 그 거대한 몸집과 띠를 두른 것 같은 자줏빛 줄무늬를 볼 수 있었다. 등 지느러미는 누워 있었고 커다란 가슴 지느러미 는 넙적하게 퍼져 있었다. 그때쯤에야 노인은 고기의 눈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고기의 주위를 헤엄치 는 회색 빨판상어 두 마리도 보았다. 두 마리의 상어는 그 고기한테 달라 붙어 있 다가 어느 때는 떨어져 나오기도 했다. 아니면 큰 고기의 그늘에서 유유히 헤엄을 치기도 했다. 두 마리 다 길이가 3피트는 넘을 것 같았다. 빨리 헤엄칠 때는 몸 전체를 뱀장어처럼 세차게 움직였다. 노인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것은 비단 햇빛이 뜨거워서만이 아니었다. 고기 가 조용히 차분하게 돌 때마다 그는 줄을 당겼다. 이제 두 번만 더 돌면 작살을 꽂을 수 있으리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더 가까이, 아주 바싹 끌어와야 한다. 그리 고 머리에 작살을 꽂으려고 해선 안 된다. 단 한 번에 심장을 찔러야 한다. "침착히 굴어라. 그리고 더욱 힘을 내라, 늙은이." 하고 그는 말했다. 예상대로 다음 회전 때 고기는 등을 물 밖으로 내밀었다. 그 러나 거리가 좀 멀었다. 그 다음 회전 때도 역시 너무나 멀었다. 그러나 물 밖으 로 몸을 훨씬 더 많이 드러냈으므로 노인은 조금만 더 줄을 끌어들이면 고기를 배에 나란히 댈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그는 벌써부터 작살을 준비해 두었었다. 작살에 달린 가는 밧줄을 감아놓은 사 리는 둥근 광주리 안에 담아 두었고, 끝은 이물의 말뚝에 단단히 매어 놓았었다. 고기는 이제 천천히 그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며 다가오고 있었다. 간혹 커다 란 꼬리만이 움직일 뿐이었다. 노인은 고기를 배 가까이 몰아오려고 있는 힘을 다 해 끌어당겼다. 고기는 잠깐 동안 배를 드러내더니 약간 뒤뚱거렸다. 그러나 잠시 후 몸을 바로 하더니 다시 회전을 시작했다. "저것 봐. 내가 녀석을 움직이게 했다." 노인은 기분이 무척 좋아졌다. "내가 움직이게 해서 배를 드러냈던 거야." 그는 또다시 현기증이 났으나 있는 힘을 다해서 고기를 붙잡고 있었다. 내가 녀 석을 움직였다. 아마 이번에는 끝장을 낼 수 있을 거야. 손아, 끌어당겨라. 그는 간절한 마음으로 중얼거렸다. 다리야, 버텨라. 머리야, 날 위해 견뎌다오. 제발 여 기서 정신을 차려라. 제발 정신을 잃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번에는 틀림없이 고 기를 끌어오련다. 그러나 온 힘을 기울여서 고기를 끌어당기려고 했지만, 고기는 약간 뒤뚱거렸을 뿐 다시 자세를 바로잡고 헤엄쳐 나가 버렸다. "고기야." 노인은 말했다. "고기야, 너는 어차피 죽어야 하지 않니. 그렇다고 네가 나마저 죽여야 되겠니?" 만약 그렇게 된다면 아무것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입이 말라서 소리내어 말을 할 수도 없었으나, 이젠 물 있는 데까지 갈 힘도 없었다. 이번에는 틀림없이 뱃전으로 끌어와야 해. 녀석이 계속 돈다면 내 몸이 온전치 못 할 거야. 아니, 그래도 괜찮을 거야, 언제까지나 괜찮을 거야. 노인은 중얼거렸다. 또다시 고기가 회전을 시작했다. 그때는 거의 고기를 잡을 뻔했다. 그러나 또다 시 고기는 자세를 바로잡고 유유히 헤엄쳐 나가 버렸다. 네가 나를 죽이는구나 고기야. 노인은 생각했다. 그러나 너에게는 충분히 그럴 권리가 있다. 나는 일찍이 너처럼 크고 아름답고 침착하고 위엄이 있는 고기를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네가 날 죽인다 해도 조금도 서운할 것 같지가 않다. 형제여, 자, 어서 와서 날 죽여라, 누가 누구를 죽이건 상관없다. 이제 머리 속이 혼미해지고 있구나,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머리를 좀 식혀야지. 머리를 식히고, 끝까지 남자답게 고통을 견디어 내도록 온갖 지혜를 모아야지. 아 니면 저 고기처럼이라도 말이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정신차려라, 머리야." 그는 자기 귀에도 거의 안 들릴 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신차려!" 고기는 이후로도 두 번이나 더 회전을 했으나 형세는 마찬가지였다. 이젠 더 이 상 모르겠다,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그때마다 그는 의식을 잃고 기절할 것 같은 상태에 빠지곤 했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그러나 다시 한번만 더 해 보자. 그는 한번 더 힘을 써 보았다. 마침내 고기가 뒤뚱거렸다. 순간 그 자신도 정신 이 아찔해짐을 느꼈다. 그래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고기는 다시 몸을 바로잡고 거대한 꼬리를 휘저으며 또다시 유유히 헤엄쳐 가 버렸다. 한번 더 해 보겠다고 노인은 결심했다. 그러나 이제 두손은 제멋대로 짓무르고 눈도 희미해져서 잠깐잠 깐 순간적으로만 보일 뿐이었다. 다시 한번 해 보았으나 마찬가지였다. 역시 같군,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시작하기도 전에 의식이 희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또 한번 해 보자. 그 는 혼미한 정신 속에서 습관적으로 중얼거렸다. 노인은 온갖 고통을 억누르고자 애썼다. 자신의 남은 힘과 과거의 긍지까지 다 동원하여 고기가 던져주는 극심한 고통과 겨루었다. 마침내 고기는 주둥이를 뱃전 에 닿을락말락하면서 노인의 곁으로 유유히 헤엄쳐 오더니 그대로 배를 스쳐 지 나가기 시작했다. 길이가 길고 높고, 넓은, 자줏빛 줄무늬가 보였다. 그리고 온 몸 이 온통 은빛으로 보이던 그 무한히 큰 고기가 배를 지나쳐 가기 시작한 것이다. 노인은 손으로 잡고 있던 줄을 놓고 발로 밟았다. 그리고 드디어 작살을 높이 쳐들어 있는 힘을 다해서, 아니 지금까지 써왔던 힘과는 비교도 안 되는 그런 힘 을 내어서, 물 위로 드러난 거대한 가슴 지느러미 바로 뒤 옆구리를 내리 찔렀다. 노인은 쇠작살이 꽂힌 것을 느끼며 작살에 몸을 기대었다. 고기의 몸 속에 작살이 더 깊이 박히도록 몸의 전 중량을 실었다. 그러자 고기는 자신이 죽게 되었음을 느꼈던지, 마지막 기운을 내어 물 위로 높 이 솟구쳤다. 그 고기는 마침내 거대한 몸 길이와 넓이를 남김없이 드러내 보여 주었다. 또 온갖 힘과 아름다움을 아낌없이 보여 주었다. 그 모양은 마치 배에 타고 있는 노 인의 머리 위에 매달리는 듯 하더니 잠시 후 고기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물 속으 로 떨어졌다. 그 바람에 노인의 몸과 배는 흠뻑 물보라를 맞고 말았다. 노인은 의식이 몽롱해지고 구역질이 나는 것을 느꼈다. 이제는 앞도 잘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쉬지 않고 작살의 줄을 간추렸다. 그리고는 터져서 생살이 드러난 손에 그것을 쥔 채 천천히 풀어 주었다. 눈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고기가 은빛 배를 드러내고 떠 있는 것을 보았다. 작살 자루가 고기의 어깨쪽에 비스듬히 꽂혀 있었고, 심장에서 흘러나온 피에 바닷가 붉게 물들고 있었다. 그 피는 처음에는 1마일도 더 깊은 푸른 물 속에 있는 고기 떼처럼 시커멓게 보이더 니, 곧 구름처럼 퍼져 나갔다. 은빛으로 빛나던 고기의 몸뚱이는 이제 조용히 파 도에 둥실 떠 있었다. 노인은 희미한 시력을 온통 집중시켜 그 광경을 바라 보았다. 그런 다음, 작살 줄을 말뚝에다 두 번 감아 놓고는 머리를 두 손 사이에 파묻었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는 이물의 널빤지에 기대면서 자신을 다그쳤다. "나는 늙은이이고, 또 너무나 지쳐버렸어. 하지만 나는 방금 내 형제인 이 고기 를 죽였다. 따라서 이제는 뒤처리 노역만 남아 있을 뿐이다." 고기를 배에다 나란히 묶을 수 있도록 올가미와 밧줄을 준비해야지 하고 그는 생각했다. 설사 지금 당장 이 배에 두 사람이 있다 해도 저 고기를 배에 싣는 것 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고기를 배에다 실을 때 배에 물이 찰 것이고, 아무리 열심히 물을 퍼내도 이 배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으니까. 고기를 배 가까이로 끌어와서 밧줄로 잘 묶은 다음, 돛대를 세우고 돛을 펴서 집으로 가야 되겠다. 밧줄은 아가미를 통해 끼어서 입으로 빼야겠다. 그리고 머리를 이물에 꽉 비끄 러맬 수 있도록 고기를 끌어들여야만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순간 그는 저 몸뚱이 를 만지거나 더듬어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고기는 내 재산이다. 그러나 단지 그 때문에 만져 보고 싶은 것은 아니다. 조금 전에 심장을 만져 본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작살 자루를 박아 넣을 때 말이다. 자, 이제 끌어들여서 비끄러매어라. 저 놈을 배에 비끄러맬 수 있도록 꼬리와 허리를 올가미를 하나씩 걸어야 한다. "늙은이, 어서 일을 시작하시지." 하고 그는 말했다. 그는 물을 조금 마셨다. "싸움이 끝났으니까 이젠 뒤치닥거리만 남아 있다." 그는 하늘을 쳐다본 후 다시 고기를 바라보았다. 해를 찬찬히 살펴보니 오정이 지난 지 얼마 안 된 모양이었다. 무역풍이 일고 있었다. 이제 낚싯줄은 아무래도 괜찮다. 집에 가서 그 아이와 둘이서 풀어 가지고 새로 이으면 되니까. "이리 오너라, 고기야." 노인이 그렇게 말했지만 고기는 오지 않았다. 오기는커녕 이제는 바다를 침대 삼아 뒹굴거리며 누워 있었다. 노인은 배를 끌어 고기쪽으로 다가갔다. 노인은 고기 옆으로 가서 고기 머리를 뱃머리에다 대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그 크기를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는 고기의 크기에 다시 한번 놀라면서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차근차근 진행시켰다. 우선 말뚝에서 작살 밧줄을 풀어서 고 기의 아가미를 통해 턱으로 빼낸 뒤 칼처럼 뾰족한 부리를 한번 감아서 다른 쪽 아가미로 빼내었다. 그것을 다시 한번 부리에다 감아서 양끝을 매듭지은 뒤 이물 에 있는 말뚝에다 단단히 비끄러매었다. 그리고 나서는 밧줄을 끊어 내었다. 이젠 꼬리에다 올가미를 씌우는 일이 남았다. 그는 고물 쪽으로 갔다. 고기는 본래의 색깔인 자줏빛과 은빛 일색으로 변해갔다. 줄무늬는 꼬리와 마찬가지로 엷은 보랏 빛이었다. 줄무늬는 손가락을 쫙 편 것보다도 넓었다. 고기의 눈은 잠망경의 렌즈 처럼 보였고, 눈빛은 행렬 기도에 참례한 성자처럼 표정이 없었다. 고기를 죽이자니 그럴 수밖에 없었어, 하고 노인은 중얼거렸다. 물을 조금 마시 자 기분이 좀 나아졌다. 의식은 잃지 않을 것 같았다. 머리도 개운했다. 저 정도라 면 1500파운드는 넘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아니, 훨씬 더 넘을 지도 모르지, 내장 을 빼내고도 약 삼분의 이가 남을 텐데, 파운드당 30센트씩 받는다면 모두 얼마나 될까? 계산하려면 연필이 있어야겠는 걸. 하고 그는 말했다. 지금 내 머리는 그 정도로 맑지가 못해. 그러나 오늘은 저 훌륭한 디마지오 선수와 비교해도 결코 부끄럽지 않을 것 같다. 디마지오처럼 발뒤꿈치 뼈는 아프지 않았지만 사실 나도 두 손과 등이 정말 아팠으니까. 노인은 또 생각을 해 보았다. 정말 뒤꿈치 뼈 타박상이란 어떤 것일까. 어쩌면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순간에 그 병에 걸릴지도 몰라. 그는 그 큰 고기를 이물과 고물, 그리고 배 허리께에 단단히 비끄러매었다. 고기의 크기는 큰 배 한 척을 나란히 매어놓은 것만큼 컸다. 노인은 마지막으로 밧줄을 한 가닥 끊어서 고기의 입이 벌어지지 않도록, 아래턱을 부리에 갖다 대어 묶어 놓았다. 될 수 있는 대로 배를 미끄럽게 저어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 다음에는 돛대를 세우고 갈고릿대와 가름대 등장비 등을 정리한 뒤, 조각조각 기운 돛을 폈다. 마침내 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노인은 나침판이 없어도 서남쪽이 어느 방향인가를 알 수 있었다. 무역풍의 촉감을 느낄 수 있었으므로 돛이 이끌어 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이제는 가는 낚싯줄을 이용해 뭐든 먹을 것을 낚아 보도록 하자. 그리고 목도 축여야지. 그러나 꾐 낚시는 보이지도 않았고 미끼로 쓸 정어리마저 상해 있었다. 할 수 없이 누런 모자반류 해초가 한 조각 지나가는 것을 갈고리로 건져서 털어 보았다. 그러자 그 속에 있던 잔 새우가 뱃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중 서너 마리는 그래도 꽤 먹을 만해 보였다. 새우들은 노인의 발 밑에서 모래벼룩처럼 튀고 차고 했다. 노인은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새우의 머리를 따낸 뒤 껍질이며 꼬리까지 죄다 씹어 먹었다. 아주 조그마한 새우였지만 노인은 그것들이 영양이 풍부하고 맛도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직도 물병에는 물이 두 모금쯤 남아 있었다. 노인은 새우를 먹고 나서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배는 무거운 짐을 실었는데도 잘 달렸고, 그는 키의 손잡이로 배의 방향을 조종했다. 고기가 잘 보였다. 노인은 상처투성이의 두 손을 보았다. 그리고 고물에 닿은 등의 아픔을 느끼고서야 비로소 이 일이 정말 일어났었다는 걸 깨달았다. 고기와의 싸움이 끝나 갈 무렵에는 몹시 고통스러워서 아마 이것이 꿈일 거야, 하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고기가 물 밖으로 나와서 바다로 떨어지기 직전 공중에 잠시 걸려 있는 모양을 보고서 뭔지 참으로 이상스런 것이 있구나, 하고 여겼던 것이다. 노인은 도저히 그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은 눈이 평소처럼 잘 보이지만 그때는 눈도 잘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노인은 고기도 실존하고 손과 등도 실제로 아프다는 것을 알았다. 그건 분명 꿈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이 정도의 상처는 얼마 안 가서 나으리라고 그는 생각했다. 피도 나올 만큼 나왔으니 소금물에 담그면 금방 낫게 될 것이다. 정말로 깊은 바닷 속의 컴컴한 그 물은 우리 같은 어부들에겐 무엇보다도 제일 잘 듣는 약이야. 손은 제 할 일을 훌륭히 해냈고, 또 우리는 순조롭게 달리고 있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머리를 맑게 하는 것뿐이다. 고기는 입을 꽉 다문 채 꼬리만 수직으로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다. 우리는 형제처럼 항해하고 있다. 그러다가 머리가 조금 희미해지기 시작하자 노인은 다른 생각을 했다. 지금 대체 고기가 나를 데리고 가는 건가, 아니면 내가 고기를 데리고 가는 건가? 내가 고기를 뒤에 매달아 끌어가고 있다면 문제는 없다. 또 만일 고기가 배 안에 실려 있다면 역시 문제는 없다. 그러나 노인은 그들이 한 데 묶여서 나란히 함께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자꾸만 그런 혼란스러운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그러다가는 또 문득 고기가 원한다면 나를 데리고 가라지, 하는 생각도 했다. 내가 저 고기보다 좀 낫다는 것은 꾀가 있다는 것뿐이다. 사실 고기는 나를 해치려고 하지도 않았었다. 그들은 순조롭게 나아가고 있었다. 노인은 짠물에 손을 담근 채 정신을 차리려고 애를 썼다. 하늘에 떠 있는 적운과 권운으로 보아서 밤새도록 미풍이 불 것임에 틀림없었다. 노인은 자신이 고기를 잡았다는 것이 사실임을 확인하려고 고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첫 번째 상어가 고기를 공격해 온 것은 그로부터 한 시간이 지난 후였다. 상어의 공격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검은 피구름이 1마일이나 깊은 바다 속까지 퍼지자, 피냄새의 흔적을 맡은 상어가 푸른 수면을 박차고 물 위로 솟아 오른 것이다. 그리곤 다시 물 속으로 들어가서 피냄새를 쫓아, 배와 고기가 지나온 길을 따라 헤엄쳐 왔던 것이다. 상어는 때로 그 냄새의 흔적을 잃어 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다시 냄새를 찾아 내거나 그 흔적이나마 찾아내곤 해서 재빨리 따라왔다. 그것은 바다에서 가장 빨리 헤엄칠 수 있다는 덩치가 큰 마코상어였다. 그 상어는 흉악한 주둥이만 빼고는 몸 전체가 아름다웠다. 잔등은 황새치처럼 푸른빛이었고, 배는 은빛이며 껍질은 매끈하고 아름다웠다. 빨리 헤엄칠 때는 커다란 주둥이를 꽉 다물고 있어서 꼭 황새치 같이 보였다. 상어는 바로 수면 아래에서 높은 등지느러미를 꼿꼿이 세운 채 노인의 배를 뒤쫓고 있었다. 등지느러미가 가차없이 물을 베었다. 꽉 다문 주둥이 속에는 여덟 줄의 이빨이 죄다 안으로 굽어져 있을 것이다. 그것은 보통 상어의 이빨처럼 피라밋 형으로 생긴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사람의 손가락을 매 발톱처럼 오그렸을 때의 모양과 같았다. 이빨의 길이는 거의 노인의 손가락 정도이고, 양쪽 끝이 면도날처럼 날카롭다. 바다에사는 어떤 고기라도 잡아 먹히게 생긴 이빨인 것이다. 게다가 놈은 매우 빠르고 힘세고 무장이 잘 되어 있어서 당해 낼 고기가 없었다. 바로 그 공포의 상어가 신선한 피냄새를 맡자 전 속력으로 쫓아온 것이다. 노인은 상어가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저 상어는 무서워하는 것이 전혀 없고, 저 하고 싶은 대로 하고야 마는 놈이라는 것을 대번에 알아 챌 수 있었다. 그는 상어의 동태를 지켜 보면서 작살을 준비하고 거기에다 밧줄을 단단히 묶었다. 그런데 고기를 비끄러매느라 밧줄을 잘라 썼기 때문에 짧았다. 이제 노인의 머리는 맑고 정상적이었다. 상어를 보자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었지만 희망은 거의 없었다. 좋은 일은 결코 오래 가지 않는 법이야. 노인은 중얼거리면서 상어와 배에 매단 큰 고기를 한번 쳐다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것 역시 차라리 꿈이라면 좋겠다. 상어가 공격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잘하면 그놈을 잡을 수 있을지도 몰라. 덴투소 란 놈, 이 망할 놈의 자식아. 상어는 빠른 동작으로 고물 가까이 바싹 다가왔다. 상어가 고기를 공격하려 했다. 그때 노인은 상어의 그 벌린 입과 이상한 눈을 보았다. 놈이 바로 꼬리 위쪽의 살점을 향해 덤벼들 때 이빨로 찰칵 소리를 내면서 물어뜯는 것이 보였다. 잠시 동안 상어의 머리가 물 밖으로 나왔다. 노인은 상어의 머리통을 겨누었다. 그리고 두 눈 사이의 줄과 코에서 뒤로 똑바로 올라간 줄이 교차되는 지점에 작살을 꽂았다. 그때 큰 고기의 가죽과 살이 찢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노인의 눈앞에는 그저 크고 날카로운 푸른 머리와, 커다란 눈과, 거친 이빨을 찰칵거리며 무엇이나 삼켜버리는 툭 튀어나온 주둥이가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곳이 상어의 골이 있는 위치였으며, 노인은 바로 그곳을 내리친 것이다. 그는 있는 힘을 다해서 피투성이가 된 손으로 작살을 내리친 것이다. 별로 희망은 없었지만 무서운 결의와 철저한 증오심으로 작살을 꽂았던 것이다. 상어가 빙그르 돌기 시작했다. 노인이 언뜻 보기엔 이미 상어의 눈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니었다. 상어는 밧줄로 몸을 두 번 감더니 다시 한번 돌았다. 노인은 상어가 죽었다는 것을 알았으나 상어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상어는 거꾸로 뒤집혀졌음에도 불구하고 꼬리로 물을 후려치고 주둥이를 연속 찰칵거리면서 경주용 보트처럼 물을 헤치고 달리는 것이었다. 상어의 꼬리가 요동치는 바람에 해면은 온통 하얗게 물보라가 튀었다. 이어서 밧줄이 팽팽해지고 부르르 떨리더니 뚝 끊어지는 게 아닌가. 그때 상어의 몸뚱이가 거의 대부분 물 위로 드러났다. 상어는 잠시 수면에 가만히 떠 있었다. 노인도 움직이지 않고 상어를 지켜 보았다. 이윽고 상어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가라앉았다. 40파운드는 족히 가져가 버렸어. 노인은 자못 억울하다는 듯이 소리내어 말했다. 작살과 밧줄도 모두 가져가 버렸다. 그런데 내 고기는 또다시 피를 흘리다니, 그렇다면 언제든 다른 놈들이 또 나타날 것이다. 고기는 병신이 되고 말았다. 노인은 더 이상 고기를 보고 있지 않았다. 고기가 뜯길 때 노인은 마치 자기 자신의 살점이 뜯기는 것 같았었다. 그러나 내 고기를 물어뜯은 상어를 나는 죽였어. 노인은 생각했다. 그런데 그놈은 내가 본 중에서 가장 큰 덴투소 야. 사실 나는 큰놈들을 많이 보아 왔었는데... 이렇듯 엄청난 행운이 오래 갈 리가 있나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차라리 이것이 꿈이었으면. 고기를 낚은 일도 없고, 신문지를 깔고 침대에 혼자 누워 있는 중이라면 차라리 좋겠다. 그러나 사람은 이 정도의 일에 지지 않아. 하고 그는 말했다. 사람은 죽을지언정 고기에게 지지는 않는다. 그래도 내가 고기를 죽인 것은 참 안된 일이야 하고 그는 생각했다. 이제부터는 더 큰 시련이 닥쳐올 텐데, 나에게는 작살마저 없으니. 덴투소 상어는 대부분 잔인하고 유능하며 힘세고 영리하다. 그러나 내가 저 상어보다 더 영리했어. 하지만 내가 더 영리한 것이 아니라, 다만 내가 저들보다 무장이 잘 되어 있었던 것뿐인지도 몰라. 쓸데없는 생각일랑 말라구, 늙은이. 그는 스스로를 꾸짖듯 말했다. 이대로 가다가 상어가 오면 그때 상대할 일이지, 벌써부터 걱정은 무슨 걱정이람. 노인은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어. 남은 것이라고는 그것밖에 없으니. 오직 그것하고 야구뿐이다. 내가 상어의 골통을 찌르던 멋진 순간을 디마지오 가 봤으면 어떻게 생각했을까? 뭐 그리 대단한 솜씨는 아니었지만. 그건 사실 누구나 할수 있는 일인 걸. 그러나 내 손이 뒤꿈치 뼈가 아픈만큼 불리했던 조건이었을까? 알 수가 없구나. 옛날에 한번 헤엄을 치다가 가오리를 밟았을 때 가오리에 찔린 적이 있었지. 그땐 하반신이 마비되고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팠었어. 그때 말고는 뒤꿈치에 이상이 생긴 적은 없었지, 아마. 이봐, 기왕이면 뭐 좀 유쾌한 일이나 생각하지, 늙은이. 그는 중얼거리며 나름대로 계산을 해보았다. 이제 시시각각 집이 가까워지고 있다. 아까 40파운드를 잃었으니 더 가볍게 달리지 않겠는가. 그러나 배가 조류의 안쪽으로 들어가면 어떤 일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노인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아니야, 반드시 다른 방도가 있어. 하고 그는 큰소리로 말했다. 노 손잡이에다 칼을 묶어 놓으면 되겠지. 노인은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 겨드랑이에 끼고 있던 키 손잡이와 밟고 있던 돛자락을 이용해서 그렇게 만든 것이다. 자, 나는 틀림없이 늙은이에 불과해. 그렇지만 무장은 되어 있잖아. 미풍이 좀 세어지는 것 같았다. 배는 잘 달렸다. 그는 고기의 앞부분만을 바라보기로 했다. 그러자 얼마쯤 희망이 생겼다. 희망을 안 갖는다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심지어 그것은 죄라고까지 생각했다. 하지만 늙은이, 지금은 죄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마라, 지금은 죄 말고도 얼마든지 생각해야 할 문제가 많다. 또한 죄가 뭔지도 잘 모르겠다. 나는 죄가 뭔지 잘 모르겠고 또 그런 게 있다고 믿고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그렇더라도 아마, 그 고기를 죽인 것은 죄가 될 거야. 내가 살기 위해서, 또 여러 사람에게 먹이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 할지라도 그것은 죄일 것 같다. 그렇다면 무엇이든 죄가 아닌 게 없을 것이다. 아무튼 지금은 죄를 생각하지 말자. 이제와서 그런 생각을 하기에는 너무 늦었고, 또 돈을 받고 그러한 일을 해주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그런 사람들이나 그런 것에 대해 실컷 생각하라지. 고기가 고기로 태어난 것처럼 너는 어부가 되려고 태어난 거야. 성베드로 도 디마지오 의 아버지처럼 한때 어부였어. 노인은 자기에게 관련된 모든 일을 즐겨 생각했다. 노인에게는 읽을 것도 라디오도 없었기 때문에 자연히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으며, 죄에 대해서도 계속 생각했다. 너는 다만 살기 위해서라든지 팔기 위해서 고기를 죽인 것은 아니다. 다만 긍지를 위해서, 또 어부이기 때문에 고기를 죽인 것이다. 너는 고기가 살아 있을 때도 사랑했고, 죽은 뒤에도 역시 사랑했다. 만약 진정 고기를 사랑한다면 죽이는 것는 죄가 아니다. 오히려 아니, 죄보다 더한 것은 아닐까? 늙은이, 자넨 생각이 너무 많군. 하고 그는 소리내어 말했다. 그러나 너는 덴투소 상어를 즐겨 죽이진 않았었지. 그는 계속 생각했다. 그놈은 너처럼 산 고기를 먹고 산다. 어떤 상어는 썩은 고기나 먹고 돌아다니기도 하지만, 그놈은 아름답고 고상하며 아무런 두려움도 모르는 멋진 고기다. 맞아! 나는 정당방위로 그 고기를 죽였어. 노인은 소리내어 말했다. 그리고 나는 놈을 솜씨 좋게 해치웠다. 게다가, 하고 노인은 생각해 보았다. 실제로 모든 동물들도 대부분 다른 동물들을 죽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고기잡이가 나의 목숨을 연명시켜 주는 것처럼 나를 죽이기도 한다. 그는 아이가 자기를 살려주고 있다고도 생각했다. 나 자신을 너무 속여서는 안된다. 그는 뱃전으로 몸을 굽혀 상어가 물어뜯어 놓은 고기의 살점을 한 점 떼어냈다. 그리고 그것을 씹으면서 고기의 질과 맛을 음미했다. 그 고기는 쇠고기처럼 살이 단단하고 물이 많았으나 붉지는 않았다. 힘줄도 없었다. 시장에서 최고가로 팔릴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그런데 냄새가 물 속으로 퍼져 나가는 것만은 막을 도리가 없었다. 노인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무언가 불행한 일이 닥쳐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여전히 미풍이 불었다. 동북쪽으로 약간 방향이 바뀌는 듯 했으나 미풍이 잦아들 것 같지는 않았다. 노인은 멀리 앞을 내다보았다. 그러나 사방을 둘러보아도 돛도 선체도, 배에서 올라오는 연기같은 것조차 보이지 않았다. 날치가 이물 쪽에서 뛰어올랐다가 뒤로 빠져나가 버리고, 누런 해초 조각들만 무심하게 떠 있을 뿐이었다. 새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노인은 고물에 기대어 앉아 쉬면서 기운를 차리려고 애썼다. 이따금 마알린 고기를 씹으면서 두 시간 정도를 보냈을 때였다. 노인은 쫓아오던 상어 두 마리 중 앞의 놈을 보고야 말았다. 아! 노인은 절망적인 비명을 토했다. 그건 도저히 다른 말로 옮길 수도 없는 그런 것이다. 못이 사람의 생손을 뚫고 나무에 박힐 때 무의식 중에 나올 법한 그런 소리이리라. 갈라노. 하고 그는 소리내어 말했다. 그리고 노인은 앞놈 뒤로 유유히 따라오고 있는 두 번째 놈의 지느러미도 보았다. 갈색 삼각형 지느러미와, 스치고 지나가는 꼬리의 동작으로 보아서 이놈들은 코가 삽같이 생긴 신락상어가 틀림없었다. 그들은 피냄새를 맡고 흥분되어 있었다. 상어들은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잠시 멍청해져 냄새를 잃어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반드시 다시 냄새를 찾아내곤 했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노인은 돛을 비끄러매고 키의 손잡이도 끼워 놓았다. 그리고는 칼을 묶어놓은 노를 잡았다. 하지만 손이 아파서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노인은 될 수 있는 대로 노를 힘 안 들게 쳐들려고 노력했다. 그리곤 손을 풀기 위해서 가볍게 폈다 오므렸다 했다. 그는 고통을 참아내기 위해서, 또 뒤로 물러서지 않을 결심으로 두 손을 꽉 쥐었다. 노인은 상어가 다가오는 것을 지켜 보았다. 이제 상어의 넓적하고 평평하고 또 삽처럼 뾰족한 머리도 보였다. 끝이 흰 넓은 가슴지느러미도 보였다. 놈들은 상어 중에서도 가장 가증스러운 상어였다. 이런 종류의 상어는 냄새가 고약하고, 산 것이나 죽은 것이나 가리지 않고 먹으며, 배가 고플 때는 심지어 노든지 키든지 마구 물어뜯기까지 한다. 해면에 잠들어 있는 거북이의 다리나 발을 잘라 먹는 것도 바로 이놈들이다. 배만 고프면 생선의 피 냄새나 비린내가 나지 않아도 물 속에서 사람들에게 덤벼들기도 한다. 아. 노인은 다시 짧은 비명을 토했다. 갈라노, 너냐! 어서 오너라, 이놈 갈라노야. 상어가 다가왔다. 그러나 아까의 마코상어와는 행동이 좀 달랐다. 한 놈이 몸을 돌리더니 배 밑으로 들어가 버려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놈이 몸부림치며 고기를 물어뜯어 낼 때마다 배가 흔들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른 한 놈은 가늘게 찢어진 눈으로 노인을 쳐다보고 있다가 반원형 주둥이를 크게 벌리며 쏜살같이 덤벼 들었다. 그놈은 이미 물어뜯긴 자리를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갈색 정수리에서부터 골이 척추와 만나는 뒤통수에 이르기까지 줄이 선명하게 이어져 있었다. 노인은 노에 묶인 칼을 이용하여 그 부분을 냅다 찔렀다. 그런 다음 다시 고양이같이 생긴 상어의 누런 눈을 향해 칼을 내리꽂았다. 상어가 고기를 놓고 떨어져 나갔다. 우습게도 그놈은 죽으면서도 물어뜯은 고기를 삼키고 말았다. 그러나 나머지 다른 한 놈은 여전히 고기를 물어뜯고 있었다. 살점이 뜯겨 나갈 때마다 배가 흔들렸다. 노인은 뱃전을 돌려서 상어를 물 밖으로 끌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돛을 내려 버렸다. 상어가 나타났다. 그는 기회를 놓칠세라 뱃전에 몸을 기대고 찔렀다. 그러나 껍질이 단단해서 살만 찢어졌을 뿐 깊이 찔린 것 같지는 않았다. 너무 힘껏 찌르느라 손뿐만 아니라 어깨까지 아파왔다. 그러나 상어는 또다시 머리를 쳐들고 쏜살같이 올라왔다. 상어의 코가 물 밖으로 나오더니 고기한테 달려 들었다. 상어가 고기의 살점에 코를 박고 있을 때 노인은 평평한 정수리 한 가운데를 겨냥하고 칼을 찔렀다. 계속해서 칼날을 뽑아서 다시 같은 곳을 찔렀다. 그래도 상어는 주둥이를 처박고 고기에 매달려 있었다. 이번에는 왼쪽 눈을 찔러 보았다. 그래도 상어는 떨어지지 않았다. 이놈! 그래도 안 떨어져? 노인은 최후의 일격을 가하듯 칼날로 척추골과 두개골 사이를 찔렀다. 이번에는 칼이 쉽게 들어갔다. 상어의 연골이 쪼개지는 것을 느꼈다. 노인은 노를 뽑았다. 그리고 상어의 주둥이를 벌리려고 칼날을 주둥이 사이로 밀어 넣었다. 상어의 입 속에서 칼날을 비틀자 상어가 힘없이 떨어져 나갔다. 노인은 말했다. 죽어라, 이놈 갈라노야. 어둠 속 깊이깊이 가라앉아서 먼저 간 네놈의 친구인지 어머인지나 만나 봐라. 노인은 숨을 몰아쉬며 칼날을 닦고 노를 놓았다. 돛이 바람을 안고 있었다. 그 모양을 보면서 노인은 배의 방향을 제대로 잡았다. 고기의 사분지 일이나, 그것도 제일 맛있는 부분을 잃어버렸군. 노인은 침통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것이 꿈이라면, 아니 차라리 내가 고기를 잡지 않았었다면 좋으련만. 미안하다, 고기야. 결국은 모든 일을 그르치고 있구나. 그는 말을 잃고 말았다. 이제는 고기를 쳐다보기조차 싫었다. 너무 많은 피를 흘리고 물에 씻기고 불어서 고기의 색깔은 거울 뒷면의 탁한 은빛 같았다. 그래도 아직 그 줄무늬는 보였다. 그렇게 멀리 나가지 말 걸 그랬다, 고기야. 하고 그는 또다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게 너를 위해서나 나를 위해서도 더 좋았을 텐데... 미안하다, 고기야. 그는 계속 혼잣말을 했다. 이젠 칼이 잘 묶여져 있나 살펴보고 끊어진 데가 없나 봐야지. 아직도 상어가 더 올 테니 손도 제대로 쓸 수 있게 운동을 해 두어야지. 이럴 때 칼을 갈 숫돌이 있으면 좋겠는데. 노인은 노 손잡이에 칼이 잘 묶여져 있나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안타까운 듯이 말했다. 정말 숫돌을 가지고 나왔어야 하는데. 물론 다른 것들도 모두 가지고 나왔어야 했었어,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그러나 늙은이 그런 생각을 하면 뭘 하나. 자네는 안 가지고 나왔는데. 지금은 없는 것을 생각할 때가 아니야. 있는 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라구. 여러 가지 좋은 충고를 해주는군. 하고 그는 소리내어 말했다. 하지만 이젠 그것도 싫증이 났어. 그는 키를 겨드랑이에 낀 채 배가 앞으로 나아가는 대로 맡겨놓고 손을 물에 담그고 있었다. 마지막 놈이 얼마나 뜯어 먹었는지 모르겠다. 하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덕분에 배는 훨씬 가벼워졌어. 그는 물어 뜯긴 고기의 아래쪽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상어가 쿵 하고 치받을 때마다 살점이 뜯겨 나갔을 것이고, 이제는 그 고기가 바다의 모든 상어들을 다 불러들일 만큼 고속도로처럼 널찍한 길을 닦아 놓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이 고기는 한 사람이 겨우내 먹을 수 있는 양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그런 생각은 하지 마라. 최대한 휴식을 취하면서 남은 고기나 지킬 수 있는 방도를 생각해 두어라. 지금쯤 바다에 온통 고기 냄새가 퍼져 있을 텐데, 내 손에서 나는 피비린내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게다가 내 손은 피를 많이 흘린 것도 아니다. 상처도 걱정한 만큼 큰 것도 아니고, 피를 흘렸으니까 쥐도 안 날 것이다. 이제 뭐 또 생각할 게 없을까. 그는 생각해 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이제는 아무 생각도 말고 다음에 올 놈들이나 기다려야 한다. 정말 이것이 꿈이라면 좋겠다. 그러나 혹시 또 모를 일이지 않은가? 어쩌다 결과가 좋게 될지도 말이다. 다음에 나타난 놈은 신락상어였다. 만일 사람 머리가 들어갈 만큼 넓은 주둥이가 달린 돼지가 있다면 바로 그런 돼지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놈은 돼지가 죽통을 향해 달려들 듯이 다가왔다. 노인은 그놈이 고기를 물게 놔 두었다가 노에 비끄러맨 칼로 단 한번에 골통을 찔렀다. 그러나 상어가 몸통을 뒤집으며 퉁겨나갔기 때문에 칼을 빼앗기고 말았다. 노인은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노를 잡았다. 노인은 그 커다란 상어가 물 속으로 천천히 가라앉는 모습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처음에는 살아 있을 당시의 크기에서 조금 작아지고 그러다가 아주 작아지면서 천천히 가라앉는 모습을 보면 언제나 황홀하곤 했었는데, 그러나 이젠 아무런 흥미도 느끼지 않았다. 나에겐 아직 갈고릿대가 남아 있어. 하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별 소용은 없을 거야. 그래도 아직 노가 두 개에다, 키 손잡이와 짤막한 몽둥이가 하나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결국 나는 저놈들한테 지고 마는구나, 하고 그는 생각했다. 나는 이제 너무 늙어서 몽둥이로 상어를 때려 죽일 수도 없다. 그러나 내게 노와 짧은 몽둥이와 키 손잡이가 있는 한은 끝까지 싸워 볼 것이다. 노인은 다시 두 손을 짠물에 적시려고 바다에 담그었다. 벌써 날이 저물어 가고 있었으며, 바다와 하늘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늘에는 아까보다 바람이 더 세게 일고 있었다. 곧 육지가 보였으면, 하고 그는 생각했다. 자네는 지쳤군, 늙은이. 그는 중얼거렸다. 정말 속속들이 지쳤어. 해지기 바로 직전에 다시 상어들이 덤벼들었다. 노인의 고기가 바다에다 닦아 놓은 넓은 길을 따라 정확하게 놈이 다가오고 있었다. 먼저 갈색 지느러미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놈들은 냄새를 찾아서 이리저리 몰리지도 않았다. 서로 나란히 헤엄치며 똑바로 배를 향해 달려왔다. 노인은 손잡이를 끼우고 돛을 비끄러매었다. 그리고 고물 밑창에서 몽둥이를 꺼냈다. 그것은 부러진 노를 약 2피트 반의 길이로 자른, 노 손잡이로 만든 몽둥이였다. 손잡이가 달려 있기 때문에 한 손으로라야 효과적으로 쓸 수 있었다. 노인은 그것을 오른손으로 꽉 쥐고는 손목 관절을 구부렸다 폈다 하면서 상어들이 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둘 다 갈라노 상어였다. 첫 번째 놈이 고기를 물면 콧등이나 정수리를 겨냥하고 쳐야지, 하고 그는 생각했다. 상어는 두 마리였다. 노인은 가까이에 있는 상어가 고기의 은빛나는 배에다 주둥이를 처박는 것을 보자 몽둥이를 높이 들고 상어의 정수리를 힘껏 내리쳤다. 몽둥이가 부딪칠 때 고무처럼 단단한 감을 느꼈다. 그러나 뼈에 부딪친 듯한 딱딱한 느낌도 들었다. 상어가 고기한테서 미끄러져 나가려 할 때 다시 한번 콧잔등을 세차게 갈겼다. 다른 한 놈은 물 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하더니 주둥이를 다물고 나타났다. 상어의 주둥이 양 옆으로 허옇게 살점이 삐져나온 것이 보였다. 노인은 몽둥이를 휘둘러서 놈의 머리를 쳤다. 그러나 상어는 노인을 경계하면서도 다시 고깃점을 물어뜯었다. 상어가 그 살점을 삼키려고 빠져나올 때 노인도 다시 몽둥이를 휘둘렀다. 그러나 단단한 고무 같은 곳을 쳤을 뿐이었다. 오너라, 이놈 갈라노야. 하고 노인은 말했다. 어서 오너라. 상어가 쏜살같이 달려와서 다시 고기를 물고 주둥이를 다물었고, 그때마다 노인도 역시 몽둥이로 내리갈겼다. 그것도 아주 호되게, 될 수 있는 대로 몽둥이를 높이 쳐들었다가 내려친 것이었다. 이번에는 골통 밑바닥 뼈에 몽둥이가 닿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상어가 살점을 천천히 뜯고 떨어져 나갈 때 또 한번 같은 곳을 후려쳤다. 노인은 상어가 또다시 덤벼드나 살펴보았다. 그러나 둘 다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다음 순간, 한 마리가 빙빙 돌면서 물 위를 헤쳐 오는 것이 보였다. 다른 한 마리의 지느러미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놈들을 죽일 수 있다고는 생각지 말아야겠다고 노인은 마음먹었다. 물론 한창 때라면 죽일 수도 있었을 테지만. 그러나 두 놈 다 몹시 심한 상처를 입었으니 기분은 좋을 수 없겠지. 두 손으로 방망이를 쓸 수만 있었다면 첫 번째 놈은 확실히 죽일 수 있었을 텐데. 아니 지금이라도 당장 그렇게 할 수 있는데,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완전히 고기를 외면하다시피 했다. 이미 반은 뜯겼음을 알 수 있었다. 노인이 상어와 싸우는 동안 해가 지고 말았다. 곧 어두워질 거야. 하고 그는 말했다. 그럼 아바나 의 불빛도 보이겠지. 너무 동쪽으로 나왔다면 낯선 해안의 불빛이라도 보일 것이고. 이제는 거리상으로 짐작해 보아도 해안에서 그리 멀지는 않을 텐데, 하고 그는 생각했다. 아바나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 걱정들을 안 했으면 좋겠는데, 물론 그 아이만은 걱정하고 있을 거야. 그러나 그 애는 끝까지 믿고 자신을 가질 거야. 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인정이 넘치는 마을에서 살고 있으니까. 고기는 너무 심하게 뜯겨 버려서 더 이상 고기를 상대로 말을 할 수도 없었다. 그때 문득 어떤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다. 반어야. 하고 그는 말을 시작했다. 너는 지난 날 분명 고기였는데, 내가 너무 멀리 나갔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어. 정말 미안하구나. 내가 우리 둘을 모두 망쳤다. 그러나 우리는 상어를 여러 마리 죽였어. 바로 너하고 나하고 말이다. 여러 놈에게 상처도 입혔고 말이다. 고기야, 너는 그동안 몇마리나 죽였었니? 네 머리에 있는 그 창날 같은 부리가 쓸데없이 붙어 있는 것은 아니겠지. 만일 이 고기가 지금도 자유롭게 바다 속을 헤엄쳐 다니고 있다면 상어하고 어떻게 싸울 것인가. 노인은 고기에 관해 생각하는 것이 즐거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참에 상어하고 싸우도록 주둥이에 맨 밧줄을 끊어 버릴 걸,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노인에겐 지금 도끼도 칼도 없었다. 만일 그런 것이라도 있어서 노 손잡이에다 비끄러맬 수만 있다면 훌륭한 무기가 될 텐데. 그러면 우리 둘이서도 얼마든지 상어하고 싸울 수 있을 텐데. 만약 한밤중에 상어가 덤벼들면 어떻게 하지? 그땐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싸우는 거야. 하고 그는 말했다. 죽을 때까지 싸우겠어. 그러나 이제 날은 어둡고 사방 어디에도 환한 빛은 없었다. 성냥불만한 불빛도 없다. 다만 바람이 불고 있었고, 그 바람은 꾸준히 배를 끌고 갈 뿐이었다. 그는 자신이 이미 죽은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는 두 손을 모아 쥐고서 손바닥을 만져보았다. 손바닥은 아직 죽지 않았다. 그저 손을 폈다 오므렸다 함으로써 희미하게 남아있는 생명의 고통을 의식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등을 고물에 기대어 보고서야 자기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만일 고기를 잡기만 하면 기도를 드리겠다고 약속했었는데.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 지쳐서 기도조차 할 수가 없다. 부대를 가져다 어깨를 덮는 것이 좋겠다. 그는 고물에 누워서 키를 잡았다. 그리고 하늘이 밝아 오기만 기다렸다. 고기는 아직 반이 남아 있다. 아마 전반부는 가지고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운이 조금은 있을 테지. 아니야, 불현 듯 그는 중얼거렸다. 내가 너무 멀리 나갔을 때부터 이미 내 행운은 깨진 거야. 어리석은 생각은 말아라. 하고 그는 소리내어 말했다. 정신차리고 키나 잡고 있도록 해. 아직 운이 많이 남았는지도 모르니까. 그는 생각했다. 행운을 파는 곳이 있다면 지금 당장 좀 샀으면 좋겠다. 하지만 뭘로 사오지? 하고 그는 자신에게 다시 반문했다. 잃어버린 작살과 부러진 칼과 못 쓰게 된 이 두 손으로 도대체 무엇을 사올 수 있단 말인가? 그럴 수 있지. 하고 그는 말했다. 바다에서 허송세월하며 지낸 48일이란 값을 치르고 행운을 사려고 했다. 그런데 그 값에 거의 팔 것처럼 될 뻔했었지.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행운이란 여러가지 형태로 찾아오는 것인데 누가 그것을 미리 알 수 있을 것인가. 그렇지만 나는 행운이 어떤 형태로 오든 그것을 좀 갖고 싶다. 그리고 행운이 요구하는 값을 치르겠다. 어서 환한 불빛이 보였으면 좋으련만, 하고 그는 생각했다. 이봐 늙은이. 자네는 한꺼번에 너무 여러 가지를 바라는군. 그러나 내가 당장 바라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노인은 좀 더 편한 자세로 키를 잡으려고 애썼다. 아픔을 느끼게 되자 그는 자기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했다. 밤 열 시쯤 되었을 때 도시의 불빛에서 반사된 빛이 보였다. 그러나 그 빛도 처음에는 달이 뜨기 전 하늘이 약간 밝아진 것처럼 겨우 알아볼 정도였다. 그러더니 바람이 점점 강해지고 파도가 일었다. 마침내 대양 저 건너편에 불빛이 보였다. 그는 빛의 안쪽을 향해 키를 돌리며 이제 곧 물가에 닿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구나, 하고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 안심할 수는 없다. 상어가 또다시 공격해올지 모른다. 만약 상어가 오면 무기도 없이 컴컴한 데서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노인은 몸이 뻣뻣해지는 것을 느꼈다. 온몸 구석구석이 고통스럽게 쓰라렸다. 상처와 함께 몸의 모든 긴장했던 부분이 풀어지면서 차가운 밤공기로 인해 더욱 쑤셔 댔다. 이제 다시는 싸우지 않아도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자정께쯤 노인은 또 싸워야만 했다. 이번에는 싸움이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다. 상어가 떼를 지어 몰려 왔는데, 지느러미가 해면에 긋는 선과 고기한테 덤벼들 때의 인광만이 보였다. 노인은 몽둥이로 상어의 머리를 후려갈겼다. 수시로 살점을 뜯어먹는 소리가 들렸으며, 배 밑에 있는 놈이 고기를 물어뜯을 때마다 배가 흔들흔들했다. 그는 몽둥이로 어디쯤이라고 짐작되는 곳과 소리나는 곳을 필사적으로 후려쳤다. 그러다 마침내는 몽둥이마저 빼앗기고 말았다. 그는 키에서 손잡이를 떼어냈다. 그리고 그것을 두 손으로 움켜잡고는 상어들을 몰아내기 위해 정신없이 두들겨 팼다. 그러나 상어들은 이제 이물 쪽으로 몰려가더니 서로 번갈아 가며, 또는 한꺼번에 덤벼들어 고기의 살점을 뜯어내는 것이었다. 그들이 또 한번 몰려오려고 한바퀴 돌 때 노인은 바다 밑에서 고기의 살점들이 빛나는 것을 보았다. 마지막으로 한 놈이 고기를 향해서 덤벼들었다. 이제 노인은 모든 것이 끝난 것을 알았다. 그놈은 뜯기지 않는 고기 머리까지 물고 늘어졌다. 노인은 상어의 머리를 향해 키 손잡이를 휘둘렀다. 한 번, 두 번, 또 한번 휘둘러 쳤다. 키 손잡이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노인은 내친 김에 부러진 끝으로 상어를 찔렀다. 노 끝이 둔탁하게 상어의 몸통을 뚫고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끝이 뾰족한 것은 틀림없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찔렀다. 상어는 물었던 것을 놓고 맥없이 떨어져 나갔다. 그것이 몰려든 상어 떼 중에서 마지막 놈이었다. 고기는 더 이상 먹을 것이 없었던 것이다. 노인은 이제 거의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입 속에서 이상한 맛을 느꼈다. 그것은 구리쇠 같은 맛이었는데, 갑자기 입이 달아서 잠시 겁이 났다. 그러나 양이 많지는 않았다. 그는 그것을 바다에다 뱉어 버리고 나서 말했다. 갈라노야, 이거나 먹어라, 그리고 사람 죽인 꿈이나 꾸어라. 노인은 마침내 구제될 길 없이 완전히 지고 말았다는 것을 알았다. 배의 고물로 돌아가 보았다. 키 손잡이의 부러진 끝이 키를 잡기 좋게 키 구멍에 잘 맞혀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어깨에다 부대를 두르고 배의 방향을 바로잡았다. 이제는 배가 아주 가볍게 달렸다. 그는 아무 생각도 느낌도 없었다. 이제 모든 것은 다 지나가 버렸다. 그는 어서 빨리 모항으로 돌아가기 위해 될 수 있는 대로 솜씨 있게, 기민하게 배를 몰고 갔다. 잠시 후에 상어 떼가, 식탁에 남은 찌꺼기를 주우려는 사람처럼 고기의 잔해를 향해 덤벼들었다. 그러나 노인은 더 이상 신경쓰지 않았다. 키를 잡는 일 외에는 이제 모든 일에 무관심했다. 무거운 짐이 없으므로 배가 아주 가볍게 잘 달린다는 것을 느낄 뿐이었다. 배는 아직 괜찮구나 하고 그는 생각했다. 배는 온전했다. 키 손잡이 이외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키 손잡이는 쉽게 바꿔 달 수 있으니까. 그는 이제 조류의 안쪽으로 들어왔다고 느꼈다. 해안을 따라 늘어선 해변 부락의 불빛이 보였다. 그는 자기가 어디쯤에 와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집에 돌아가는 것은 이제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쨌든 바람은 우리의 진실한 친구야,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렇다. 바다에는 우리의 친구도 있고 적도 있었다. 그리고 침대라는 것은, 하고 그는 생각했다. 침대도 내 친구다. 그런데 바로 침대가 말이야, 하고 그는 생각했다. 침대란 정말 훌륭한 친구이다. 내가 지쳐 버렸을 때는 편안하거든, 그 침대란 놈이 얼마나 편안한 것인지 미처 몰랐었어. 그런데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지친 것일까. 그는 곰곰 생각해 보았다. 바다에서의 일이 꿈만 같았다. 아무것도 아닌 걸 가지고. 그는 소리내어 말했다. 단지 내가 너무 멀리 나갔던 탓이야. 마침내 노인이 작은 항구에 들어왔을 때, 테라스의 불은 이미 꺼져 있었다. 사람들도 모두 잠자리에 들었음을 알 수 있었다. 미풍이 계속 불더니 이젠 심하게 불기 시작했다. 그러나 항구는 조용하다. 아무 인기척도 없었다. 그는 바위 밑 좁은 자갈밭에다 배를 대었다. 도와 줄 사람도 물론 없었다. 그래서 그는 될 수 있는 대로 배를 뭍에 바싹 갖다 대었다. 그리고 배를 바위에 단단히 묶어 놓았다. 그는 돛대를 내리고 돛을 감아서 묶었다. 그의 행동은 민첩하고 정확했다. 그 다음 돛을 어깨에 메고 해변을 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그는 자기가 얼마나 피로한가를 절실히 깨달았다. 그는 잠시 걸음을 멈춘 채 뒤를 돌아보았다. 가로등의 반사된 불빛으로 배의 고물에 고기의 거대한 꼬리가 빳빳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등뼈가 하얗게 노출되어 생긴 선과 주둥이가 튀어나와 있는 검은 부분이 매우 대조적이었다. 그 사이는 텅 비어 있는 앙상한 모습이었다. 그는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꼭대기까지 와서 그는 힘없이 넘어졌다. 돛대를 어깨에 멘 채 그대로 잠시 동안 누워 있었다. 일어나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너무나 힘들어서 돛대를 어깨에 메고 앉은 채 망연히 길 쪽을 바라보았다. 고양이 한 마리가 볼 일을 보러 저 멀리 길을 건너가고 있었다. 노인은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마냥 그 길을 쳐다볼 뿐이었다. 이윽고 그는 돛대를 내려놓고 우선 몸부터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다시 돛대를 집어서 어깨에 멘 채 걷기 시작했다. 자신의 판잣집까지 가는 동안 그는 다섯 번을 앉아서 쉬어야만 했다. 판잣집 안으로 들어가서 벽에다 돛대를 세워 놓았다. 어둠 속에서도 그는 익숙하게 물병을 찾아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는 침대에 드러누웠다. 담요를 끌어당겨 차례로 어깨와 등과 다리를 덮은 다음, 신문지에 얼굴을 파묻고는 두 팔을 밖으로 쭉 뻗었다. 그리고 손바닥을 위로 편 채 그대로 잠이 들었다. 아침에 소년이 판잣집의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 보았을 때도 노인은 그대로 잠들어 있었다. 소년은 바람이 심해지자 노인의 판잣집이 걱정되어 찾아온 것이었다. 소년은 노인이 곤하게 잠들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노인의 두손을 보고 울기 시작했다. 그는 커피를 가져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소년은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길을 내려가면서도 소년은 내내 울었다. 여러 어부들이 노인의 배 주위에 모여서 배 곁에 묶여 있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한 사람은 바지를 걷고 물 속에 들어가서 줄자로 뼈의 골격을 재고 있었다. 하지만 소년은 그 곳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벌써 가 보았었기 때문이다. 어부 한 사람이 배를 점검하고 있었다. 노인은 좀 어떠시냐? 한 어부가 소리쳤다. 계속 주무시고 계세요. 하고 소년이 소리쳤다. 소년은 사람들이 자기가 울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개의치 않았다. 절대로 할아버지를 깨우지 마세요. 코에서 꼬리까지 무려 18피트야. 골격을 재고 있던 어부가 소리쳤다. 그럴 거예요. 소년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그는 테라스로 내려가서 커피 한 깡통을 청했다. 뜨겁게 해 주세요. 그리고 밀크와 설탕을 많이 치세요. 뭐 다른 것은 필요 없니? 아니오, 나중에 뭘 드실 수 있나 알아보구요. 정말 대단한 고기야. 하고 주인이 말했다. 이런 고기는 처음 봤어. 그리고 어제 네가 잡은 두 마리도 괜찮았었다. 그까짓, 내가 잡은 고기는 아무것도 아닌 걸요. 하고 소년은 말하다 말고 또다시 울기 시작했다. 너도 뭐 좀 마시련? 하고 주인이 물었다. 아니오. 하고 소년이 말했다. 대신 사람들한테 산티아고 할아버지를 귀찮게 하지 말라고 전해 주세요. 곧 돌아올게요. 내가 마음 아파한다더라고 전해라. 고마워요. 소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소년은 뜨거운 커피가 든 깡통을 조심스럽게 들고 노인의 판잣집으로 갔다. 그리고 노인이 깰 때까지 옆에 앉아 지키고 있었다. 노인은 딱 한 번 잠을 깰 듯 하더니 다시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소년은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커피가 식어 버린 것이다. 그는 길을 건너 커피를 데울 나무를 얻으러 갔다. 마침내 노인이 깨어났다. 일어나지 마세요. 소년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우선 이걸 마시세요. 그는 커피를 잔에 조금 따랐다. 노인은 그것을 받아서 마셨다. 마놀린, 그놈들이 나를 이기고 말았어. 하고 노인이 말했다. 정말 나한테 이겼단 말이야. 하지만 고기가 할아버지를 이긴 건 아니었어요. 저 고기는 아니란 말예요. 그렇지, 정말. 내가 놈들한테 진 것은 나중이었다. 페드리코가 배와 어구를 점검하고 있어요. 고기 머리는 어떻게 할까요? 페드리코더러 쪼개어서 고기 덫에나 쓰라고 해. 그 창날부리는요? 갖고 싶거든 네가 가지렴. 좋아요. 정말 갖고 싶어요. 하고 소년이 말했다. 이제 그 일을 잊고 다른 계획을 세워야지요. 다들 날 찾았었니? 물론이죠. 해안 경비대와 비행기까지 날았는 걸요. 하지만 바다는 너무나 크고 배는 작으니까 발견하기 어렵지. 하고 노인은 말했다. 순간 노인은 새로운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자기 자신과 바다를 상대로만 말을 하다가 진짜로 얘기를 나눌 상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를 말이다. 그 동안 네가 얼마나 아쉬웠는지 몰라. 하고 그는 말했다. 너는 뭘 좀 잡았니? 첫날은 한 마리, 둘째 날에도 한 마리, 그리고 셋째 날은 두 마리 잡았어요. 잘했다. 이제 우리 같이 잡으러 다녀요. 아니야, 나는 운이 없어. 이제 나는 운이 다 했나 봐. 아니, 운이라니요? 하고 소년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내가 운을 갖고 갈게요. 너희 식구들이 뭐라고 하지 않을까? 상관없어요. 난 어제 두 마리를 잡았어요. 하지만 나는 아직 배울 것이 많이 있어요. 우리 이제부터 같이 나가요, 네? 좋은 작살을 하나 구해서 늘 배에 싣고 다녀야겠어. 아마 고물 포드 차의 스프링 조각을 이용해서 날을 만들 수 있을 거야. 구아나바코아 에 가서 갈아 오면 돼. 아주 날카로워야 한다. 부러지기 쉬우니까 버려서는 안 돼. 내 칼은 이미 부러졌어. 아예 칼도 하나 더 구하고 스프링도 갈아 오지요. 이번 강풍이 며칠이나 갈까요? 사흘쯤, 아니 좀 더 오래 갈지도 모르겠다. 제가 모든 걸 잘 챙겨 놓을게요. 하고 소년이 말했다. 할아버지는 이제 그 손이나 잘 보살피세요. 손이야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고 있으니까 별 문제는 아냐. 하지만 지난 밤에 뭔가 이상한 것을 뱉었었는데 마치 가슴 속의 뭐가 깨진 것 같았어. 그것도 고치세요. 하고 소년이 말했다. 누우세요, 할아버지. 제가 깨끗한 셔츠를 갖다 드릴게요. 뭐 좀 드실 것 하고요. 그리고 내가 없는 동안에 온 신문이 있으면 아무 거나 좀 가져 오너라. 하고 노인이 말했다. 난 앞으로 배울 것이 많고 할아버지는 뭐든지 다 가르쳐 주셔야 하니까 빨리 나으셔야 해요. 그동안 얼마나 고생하셨어요? 좀 심했지. 하고 노인이 말했다. 드실 음식과 신문을 가지고 오겠어요. 약방에 가서 손에 바를 약도 사가지고 올게요. 페드리코한테 고기 머리는 그 사람이 가지라고 꼭 전해라. 네, 잊지 않겠어요. 소년은 문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닳아빠진 산호암 길을 내려가면서 또다시 울었다. 그날 오후에 테라스에 관광단 일행이 도착했다. 빈 맥주 깡통과 죽은 꼬치어가 흩어진 사이로 바다가 내려다 보였다. 그들 중 바다를 보고 있던 한 부인의 눈에 무언가 띄었다. 항구 바깥쪽에서는 동풍이 불어 쉴 새 없이 큰 파도가 일고 있었고, 그때마다 조류에 밀려 떠올랐다 흔들렸다 하는 거대한 꼬리가 달린 엄청나게 긴, 흰 뼈대가 보인 것이다. 저게 뭐예요? 그녀가 웨이터에게 물었다. 그녀의 손 끝은 이제는 조류에 쓸려 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 커다란 고기의 긴 등뼈를 가리키고 있었다. 티뷰론이지요. 하고 웨이터가 말했다. 상어의 일종이죠. 웨이터는 그 동안 이 해변에서 일어났던 일을 설명하려 했다. 그러자 그녀가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상어가 저렇게 멋있고 아름답게 생긴 꼬리를 가지고 있는 줄 몰랐는데요. 나도 몰랐어. 부인의 동행인 남자가 말했다. 그때 길 위에 있는 판잣집에서는 노인이 또다시 깊은 잠에 빠져 들고 있었다. 그는 아직도 얼굴을 파묻은 채 엎드려서 자고 있었다. 소년은 미동도 없이 옆에 앉아서 노인을 지켜 보고 있었다. 노인은 사자 꿈을 꾸고 있었다. @[작품 해설@] 노인과 바다를 쓴 어네스트 헤밍웨이는 1899년 7월 21일 미국의 오크파크에서 출생했다. 가정 환경은 좋은 편이었는데, 아버지 클러렌스 에드먼스 헤밍웨이는 의사였고, 어머니 그레이스 홀은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던 여성이었다. 헤밍웨이는 장남이었다. 그의 양친은 미시건 주의 북부에 있는 위룬이라는 호수를 즐겨 찾았는데, 이 호수의 야성적인 자연 환경이 어린 시절의 헤밍웨이에게 많은 인상을 남겼다. 후에 문학적 감성을 싹틔우게 하는 주요한 요소가 되기도 했다. 특히 그의 최초의 단편집인 <우리들 시대에>는 당시 소년 시절의 경험이 잘 반영되어 있다. 1913년 오크파크 고등학교에 진학한 그는 갖가지 스포츠를 비롯하여 문학에 뛰어난 재능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 시기에 학생 신문 등에 참여하는가 하면, 비록 습작이긴 하지만 그가 평생 동안 즐겨 다룬 자연과 폭력 문제가 담긴 단편을 쓰기도 했다. 1917년 4월, 미국이 제1차 세계 대전에 참가하였고, 그 해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헤밍웨이는 전장에 나가려다가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쳐 포기하고 말았다. 대신 그는 <캔자스시티아>라는 신문사에 입사, 이 곳에서 정식으로 문장 수업을 할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타오르는 종군열을 억누르지 못하고, 결국은 이듬해 적십자사의 부상병 운반 대원 자격으로 이탈리아 전선의 중위에 배속되었다. 한달 후 밀라노 교외 전선에서 교전을 하게 되었고, 그러던 중 북이탈리아 전선에서 다리에 심한 부상을 입기도 했다. 당시의 경험은 <무기여 잘 있거라>라는 작품에 많이 묘사되어 있다. 1919년 1월, 군에서 제대한 그는 뉴욕으로 돌아왔다. 이때부터 캐나다 터론토의 주간지 <스타 위클리>지의 임시 기자가 되어 정식으로 문장 수업을 할 기회를 가졌다. 그해 가을 헤밍웨이는 다시 시카고로 가서, 시카고 문예 부흥 기에 속에 있었던 기존 문인들과 교제를 가졌다. 특히 셔우드 앤더슨과 교분이 두터웠고, 많은 영향을 받기도 했다. 헤밍웨이가 첫 번째 아내인 허들리 리차드슨과 결혼하여 <스타 위클리>지의 해외 특파원으로서 유럽으로 건너갔을 때, 당시 앤더슨이 써 준 소개장 덕분에 파리에 기거하던 세계적인 작가와 시인 및 비평가들과 접촉할 기회를 가질 수도 있었다. 파리에 머무는 동안 헤밍웨이는 제임스 조이스 등의 일류 문인들과 어울리며 문학 지도를 받기도 했다. 특히 많은 영향을 준 사람은 거트루드 스타인 여사와 시인 에즈라 파운드였다. 그들은 간결한 문장을 바탕으로 한 엄격한 문장 수업에 지대한 도움을 주었다. 1923년 마침내 <3편의 단편과 10편의 시>가 처녀 출판되었다. 이후 헤밍웨이는 터론토의 신문과는 관계를 끊고 본격적인 작가로서의 집필 생활을 시작했다. 1924년에는 <우리들의 시대에>를 발표하였는데, 투우, 전쟁, 살인 등 평화와는 동떨어진 어두운 폭력과 내면의 세계를 그린 작품이었다. 이듬해에는 <봄의 분류>를 출판하였고, 1926년에 최초의 장편인 <태양은 또다시 떠오른다>를 발표함으로써 굉장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이때부터 작가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1927년 1월에는 이미 1년 이상이나 별거해 온 아내와 정식으로 이혼했다. 그러나 그 해 여름 <보그>지의 특파원으로 파리에 와 있던 포올린 파이퍼와 재혼하여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 헤밍웨이는 1928년 초부터 장편 <무기여 잘 있거라>를 쓰기 시작했고, 6개월 후에 불후의 명작을 완성했다. 이 두 번째 장편 소설은 이듬해인 1929년 스크립너사의 잡지인 <스크립너스>에 연재되기도 했으며, 9월 말에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다. <무기여 잘 있거라>는 간행된 지 불과 4개월 만에 8만부 이상이 판매되면서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결국 이 소설은 무대에서 상연되기도 했고, 1932년에는 영화화 되기도 하였다. 1931년 여름에는 스페인 여행에서 얻은 경험를 바탕으로 하여 <하오의 죽음>을 탈고했다. 헤밍웨이는 세계의 이곳저곳을 여행하기도 했는데 동아프리카로 수렵 여행을 갔다가, 그 기록을 모아서 <아프리카의 푸른 언덕>이라는 제목의 단행본을 출판하기도 하였다. 그는 수렵 여행에서 얻은 경험을 살려 그의 가장 대표적인 단편의 하나로 알려진 킬리만자로의 눈 을 썼다. 이 작품은 헤밍웨이의 작품 중 가장 자전적인 요소가 짙은 작품으로 꼽힌다. 1936년 7월, 스페인에서 내란이 발발하자 헤밍웨이는 반파시즘 투쟁이라는 이름으로 활발한 활동을 재개했다. 덕분에 좌익 진영으로부터도 갈채를 받았다. 결국 내란은 파시스트측의 승리로 끝났는데, 헤밍웨이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쓴 것은 그 직후의 일이었다. 1940년 10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가 발간되었고, 이듬해 4월까지 무려 50여만 부나 팔리는 기록을 세웠다. 헤밍웨이는 이 작품을 완성한 뒤 둘째 부인과도 이혼하고, 마드리드에서 만난 여류작가 머더 갤혼과 다시 결합했다. 그들은 아바나 근교의 대 저택을 사들여 그곳에서 세 번째 신혼 생활을 시작했다. 1939년 9월,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다. 당시 미국이 참전하게 되자, 헤밍웨이도 특파원으로 유럽에 건너가 저 유명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가했다. 그는 1년간의 종군 생활을 마치고 돌아왔으나 이듬해 12월에는 머더와도 이혼하고 말았다. 그리고 메어리 웰쉬와 결혼하였다. 그의 중편 소설 <노인과 바다>는 1952년에 출간되었는데, 비평가들의 아낌없는 찬사를 받았던 작품이다. 노인과 바다는 쿠바 해안에 사는 한 늙은 어부가 자기의 고깃배보다 더 큰 고래를 발견하고 이틀 밤낮을 그 고기와 싸운 끝에 겨우 잡기는 했으나, 상어 떼의 습격으로 새벽에 항구로 돌아왔을 때는 머리와 뼈만 남은, 고기의 잔재밖에 없었다는 내용이다. 어찌 보면 매우 단순한 이야기 같지만, 이 단순함 속에는 무한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것은 마치 예술가의 창조적인 고투를 상징하고 있는 듯도 하다. 온갖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끝까지 용기와 신념을 잃지 않았던 인간의 모습이 늙은 어부를 통해 잘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헤밍웨이는 1953년 여름 다시 아프리카로 수렵 여행을 떠났다. 그러나 1954년에 비행기 사고를 당해 두개골이 파열되고 내장까지 손상을 입게 되었다. 결국 이 사고로 급속히 건강을 해치게 되었고, 그 해 <노인과 바다>로 노벨상을 받게 되었으나 수상식에조차 참석할 수가 없었다. 1960년 봄, 헤밍웨이는 쿠바에서 아이다호 주 케참으로 옮겨 왔다. 그러나 이듬해인 1961년 7월 2일, 자신이 애용하던 엽총으로 스스로의 머리를 쏘아 목숨을 끊었다. 장례식은 7월 6일 케참에서 행해졌고, 그의 유해는 케참 북쪽에 위치한 조그마한 언덕 위에 매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