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주드 (하) 지은이: 토머스 하디 출판사: 영풍문고 제4부 셰스톤에서 4-3 수의 고통스런 고백은 밤새도록 주드를 슬프게 했다. 다음날 아침 그녀 가 가야 할 시간이 되었을 때, 이웃사람들은 수와 주드가 쓸쓸한 알프레드 스턴 거리로 통하는 언덕길 아래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았다. 한 시간 정도 지나서 그는 같은 길을 따라 되돌아왔다. 한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조용한 신작로에서 헤어지려고 서 있었다. 긴장과 열정적 기분에 휩싸여 두 사람은 서로의 애정이 어느 정도까지 깊어져도 괜찮은지에 대해 당황해하면서 탐색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 언쟁직전까지 갔었다. 아무 리 작별 인사라지만, 그가 키스하고 싶다고 해서 하는 것은 장차 목사가 되려는 사람으로서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고 그녀는 눈에 눈물을 글썽이 면서 말했다. 그러다가 그녀는, 키스 자체는 아무 의미도 없으며 그보다는 마음가짐이 문제라는 것을 인정했다. 만일 주드가 사촌이나 친구라는 입장 에서 키스를 하겠다면 별문제겠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으로 한다면 그 것을 허락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랑의 감정에서 하지 않겠다고 맹세할 수 있어요?" 그녀가 말했다. 아니. 그는 맹세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사이가 틀어진 채로 돌아섰 다. 그리고 각각 돌아섰다. 2, 30야드쯤 떨어졌을 때, 두 사람은 동시에 돌 아보았다. 이때 그동안 남아 있던, 근근히 그들을 버티게 해주었던 자제심 이 일시에 무너져버렸다. 그들은 달려가 서로 포옹을 하고 오랫동안 키스 를 했다. 그들이 떨어졌을 때 수의 뺨에는 홍조가 나타났고 주드의 심장은 마구 뛰고 있었다. 이 키스는 주드의 일생에 전환점이 되었다. 그는 오두막집으로 돌아와서 반성해 본 결과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 정령같은 여인과의 키스 가 결점 투성이인 그의 생애 중 가장 순수한 순간으로 비쳐졌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도저히 허락받지 못할 연정을 품고 있는 한, 잘해 봐야 유혹 이고 잘못하면 파멸로 빠질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목사가 되고 싶다는 그 의 뜻을 관철한다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하고 그는 생각했다. 수가 흥분해서 주장한 것은 사실상 냉정한 진리였다. 필사적으로 그의 애정을 지켜나가고 그녀에 대한 열정적인 사랑을 다한다는 것이 전적으로 그의 것 이 되었을 때는, 그가 지켜왔던 기존의 도덕관은 근본적으로 쓸모 없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전에 그의 사회적 지위가 그러했듯 천성적으로도 역시 그는 성직에 앉기에는 부적당하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박학학 학자가 되고 싶다는 그의 최초의 대망도 여자 때문에 저지당했고 고위 성직에 오르고 싶다는 제 2의 포부 또한 여자 때문에 좌절된다는 것 은 불가사의했다.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건 여자 탓일까, 아니면 정상적인 성 충동이 인위적인 제도 때문에 저주받을 함정과 덫이 되어 진보를 지향하는 자들을 빠뜨리고 잡아두려는 탓일까?" 비록 그의 신분은 비천했지만, 고생하는 동족을 위해 사리사욕 없는 선 도자가 되겠다는 것이 그의 오랜 욕망이었다. 그러나 아내는 그와 별거한 후 다른 남자와 살고 있고 그 자신은 궤도를 벗어난 사랑에 빠졌다. 이렇 게 사랑하는 애인의 고통에만 관심을 쏟고 있으니 일반적인 관점에서 생각 하더라도 그는 존경받을 만한 구석이 조금도 없었다. 더이상 앞일을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틀을 지키는 종교가로서의 자신이 이미 사기꾼으로 전락했다는 명백한 사실을 인정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날 저녁, 어두워졌을 때, 그는 정원으로 나와 구덩이를 파고 모든 신학 서와 윤리학 서적들을 끄집어내 거기에 묻었다. 이런 진실한 신앙인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서 이 책들은 폐지보다 결코 나은 값으로 팔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책들을 파기시키고 싶다는 자신의 기분을 살리기 위해 그는 금 전적으로 약간의 손해를 보더라도, 자기 방식대로 그것들을 없애버리고 싶 었다. 우선 철해져 있지 않은 팜플렛에 불을 붙이고, 두꺼운 책들은 할 수 있는 한 가늘게 찢어 세발갈퀴를 이용해 불속으로 던져넣었다. 그것들은 활활 타오르면서 집의 뒤편과 돼지우리와 그의 얼굴을 환하게 비추었다. 그 광경을 보고, 이 마을에서는 이미 낮선 사람과 마찬가지였던 그에게 지나가던 소작농들이 정원의 생울타리 너머로 말을 걸어왔다. "대고모의 물건들을 태우고 있군요. 그렇지, 한 집에 80년 동안 살다보면 집안 구석구석에 버릴 물건들도 많은 법이지요." 제레미 테일러, 비틀러, 돗드리지, 페일리, 퓨지, 뉴먼과 기타의 책들이 재가 되어 버렸을 때는 이미 새벽 1시가 가까워 있었다. 밤은 조용했고, 그 는 갈퀴로 종이조각을 뒤적이며, 이제 자신이 더이상 위선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기분이 평온해졌다. 이전처럼 신앙생활은 계속해 나가겠지만 그 무엇도 공언하거나, 신앙의 수단을 승인하고 그것을 과시하는 일 등은 하지 않을 것이다. 수에 대한 열정이 살아 있는 한 그는 평범한 죄인으로 도, 희게 칠한 묘지(마태복은, 23장 27절. 위선자를 뜻함)와 같이 탈을 쓴 남자로도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다. 한편 그날 일찍 주드와 헤어지고 나서 역으로 간 수는, 그에게 달려가 키스한 것을 후회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제는 주드가 정말 연인이 아니라 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 관습을 무시하도록 충동질하고 그녀를 굴복시킨 것은 그였다. 수의 마음은 그것이 옳지 않았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그러나 그녀의 논리는 유달리 복잡해서, 실행을 하기 전에는 옳아 보이던 것도 막 상 실행하고 나면 옳지 않아 보였다. 환언하면 논리상 올바랐던 일도 실제 에서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너무 나약했었나봐!" 수는 눈물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연인의 키스처럼 불타고 있었어. 아, 바로 그것이었어! 이제 난 더이상 그에게 편지를 써서는 안되지. 내 단호함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오랫동안 말이야! 내일 아침 편지를 기다리다가 그 다음날 그리고 또 그 다음날도 편지가 오지 않으면 그는 매우 상처입게 될 거야. 그렇게 되면 그는 불안 감으로 고통받겠지. 그뿐이야. 그럼 되는 거야!" 그녀는 자신 때문에 괴로워하게 될 주드의 고통과 자신에 대한 동정심에 서 눈물이 뒤범벅되었다. 성격이 맞지 않는 한 남편의 아내인 수는, 몸집이 작고 호리호리한데다 원래 민감하고 신경이 섬세하며 감성적인 여자였기 때문에 기질적으로나 본능적으로 필로트슨과 맞지 않았다. 그녀는 아무런 의욕도 없이 터덜터덜 걸었다. 역에는 그녀를 마중하러 필로트슨이 나와 있었다. 그는 그녀가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대고모의 죽음과 장례식 탓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 동안 그가 한 일들을 말했고,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이웃의 교사이며 친구인 질링엄이 방문했던 일도 말했다. 마을로 향하는 동안 마차 안에 남편과 나 란히 앉아 있던 수가 흰색 도로와 무성한 개암나무 숲을 바라보며 갑자기 말했다. "리처드, 폴리 씨가 한참 동안 내 손을 잡고 있도록 허락했어요. 당신이 그걸 잘못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군요?" 그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다가 깨어난 듯 모호하게 말했다. "아, 그랬소? 어쩌다 그렇게 됐소?" "모르겠어요. 그가 그렇게 하고 싶어했어요. 그래서 나는 그에게 허락했 어요." "그가 만족했다면 됐소. 별다른 일은 안 생긴 걸로 알겠소." 이후 그들은 말없이 돌아왔다. 만약 박식한 명판관이 있었다면, 그는 수 가 열정적인 키스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하찮은 문제만 언급 한 사실에 주목했을 것이다. 그날 저녁 차를 마시고 난 뒤 필로트슨은 학교 장부를 대조해 보고 있었 다. 수는 여느때와 달리 침묵으로 긴장하고 있다가 피곤하다는 말과 함께 먼저 잠자리에 들었다. 필로트슨이 번거로운 계산에 지쳐 윗층으로 올라간 것은 12시 15분 전이었다. 그들의 침실에서는 대낮에는 3, 40마일 떨어진 블랙무어 골짜기까지, 심지어는 웨섹스 지방까지도 볼 수 있었다. 그는 그 침실의 창가에 서서 창유리에 얼굴을 갖다 대고 멀리 웅대한 광경을 뒤덮 고 있는 신비스런 어둠을 숨죽이며 응시하다가, 마침내 얼굴도 돌리지 않 은 채 입을 열었다. "교육위원회 측에 요구해서 학교용품을 납품하는 지정 업체를 바꿔야겠 소. 이번에 보내온 습자책은 모두 잘못됐소." 아무 반응이 없었다. 수가 졸고 있을 뿐 깊은 잠은 빠지지 않았다고 생 각한 그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리고 교실의 통풍장치도 바꿔야겠소. 바람이 심하게 불어오면 귀가 다 아플 지경이오." 침묵이 여느때보다 더 오래 가는 듯해서,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황폐한 '올드 그로브 하우스'의 위층과 아래층을 감싸고 있는 무겁고 우울한 참나 무 벽판과 천장까지 닿을 만큼 탄탄한 벽난로 선반은, 번쩍번쩍 빛나는 새 놋쇠침대와 그가 수를 위해 장만한 새 가구 한벌과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 었다. 이 새롭고 낡은 두 가지 양식은 흔들리는 마루 위에서 3세기의 간격 을 두고 서로 끄덕이고 있는 것 같았다. "수!" 그가 말을 걸었다(그는 그녀의 이름을 항상 이런 식으로 불렀다). 그녀는 침대에서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침구가 젖혀져 있는 걸 보면 방금 전까지만 해도 거기에 있었음이 틀림없었다. 그는 그녀가 잊고 온 부엌일이 있어 잠시 아래층으로 내려갔을 거라 생각하고, 상의를 벗은 다음 잠시 동안 기다렸다. 그러나 조체로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촛 불을 들고 층계참까지 내려와 그녀를 발렀다. "수!" "네!" 그녀의 목소리가 멀리 부엌 쪽에서 들려왔다. "한밤중에 거기 내려가서 뭘 하는 거요. 별일도 아닐텐데, 쓰러지려고 그 러오!" "잠이 오지 않아서요. 책을 읽는 중이에요. 이쪽 불이 더 밝거든요." 그는 침실로 돌아가 잠자리에 들었다. 몇 시쯤인지 몰라도 그는 밤에 잠 이 깼다. 그녀는 그때까지도 침실로 돌아와 있지 않았다. 그는 촛불을 켜들 고, 급하게 층계참으로 내려와 그녀의 이름을 다시 불렀다. 그녀가 전처럼 대답했다. "네!"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는 작고 짓눌리는 듯해 어디에 있는 것인지, 목소 리가 어디에서 들려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계단 아래쪽에, 옷을 보관하 는 창문도 없는 방이 있었는데 목소리는 거기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문 은 닫혀 있었으나 자물쇠나 어떤 잠금장치도 없는 곳이었다. 필로트슨은 놀라서 그녀가 갑자기 정신이 돌지나 않았는지 생각하며 그곳으로 갔다. "거기서 뭘하는 거요?" 그가 물었다. "밤이 너무 늦어 당신을 방해할까봐 여기에 있어요." "하지만 거긴 침대도 없잖소? 그리고 통풍도 안되고! 밤새 거기 있다간 질식할 거요." "아, 아니에요. 그렇지는 않아요. 걱정마세요." "그렇지만..." 필로트슨은 문고리를 잡고 문을 당겼다. 그녀는 안쪽에 끈을 묶어 놓았 었는데, 그가 잡아당기는 바람에 끊어졌다. 침대도 없이 그녀는, 옷가지를 쌓아 겨우 몸을 누일 정도의 자리를 만들어 놓고 있었다. 그가 그녀 쪽을 들여다보자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몸을 떨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렇게 문을 열면 어떡해요!" 그녀는 흥분해서 소리쳤다. "그런 행동은 당신답지 않아요! 아, 저리 가세요. 제발 부탁이에요!" 캄캄한 벽장을 배경으로 하얀 잠옷을 입고 애원하는 아내가 너무 측은해 보여 그는 몹시 걱정이 되었다. 그녀는 제발 자신을 귀찮게 하지 말아달라 고 계속해서 애원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난 그동안 당신에게 친절했고 자유도 주었소. 그런데 이런 식의 행동을 보이다니, 이건 너무 지나치지 않소!" "그래요." 그녀가 울면서 말했다. "그건 저도 알아요. 제 잘못이고 제가 나빴어요! 정말 미안해요. 하지만 저만이 전적으로 나쁜 건 아니에요!" "그럼 또 누가 있단 말이오? 나란 말이오?" "아뇨. 모르겠어요! 이 세상, 모든 삼라만상이 나쁜 건지도 몰라요. 왜냐 하면 그들은 너무 무섭고 잔인하니까요!" "자, 아무리 그런 말 해봐야 소용이 없소. 이런 밤중에 무슨 흉칙한 꼴이 오! 우리가 조심하지 않으면 엘리자(가정부)가 들을 거요. 이 읍의 목사 중 누군가가 지금의 우리 꼴을 본다고 생각해 봐요! 난 이런 엉뚱한 짓을 싫 어한단 말이오. 수. 당신의 감정에는 어떤 질서나 규율도 없는 거요! 더이 상 당신을 귀찮게 하지 않겠소. 다만 충고 한마디 하자면, 문을 너무 꽉 닫 고 있지는 마시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내일 질식돼 있는 당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다음날 아침 그는 즉시 옷방으로 가보았으나 수는 이미 아래층으로 내려 가고 없었다. 거기엔 그녀가 누워 있던 작은 흔적이 나 있었고, 머리 위에 서 거미줄이 처져 있는 게 보였다. "여자의 혐오감은 굉장히 강한가 보지. 평소에 무서워하던 거미도 무서 워하지를 않으니!" 필로트슨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그는 그녀가 식탁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거의 침묵속에서 식사가 시 작되었다. 주민들이 보도 위를 걸어 지나갔다 - 이곳엔 보도가 드물었기 때문에 차라리 차도라 해야겠지만 - 그 길은 거실 바닥보다 2, 3피트 정도 높았기 때문에 주민들은 지나가면서 이 한쌍의 부부를 슬쩍슬쩍 훔쳐보곤 했다. "리처드." 그녀가 갑자기 말했다. "우리 떨어져 살면 어떨까요?" "나와 떨어져 살겠다고 했소? 이유가 뭐요? 그건 당신이 결혼하기 전에 해오던 생활인데 그렇다면 결혼이 무슨 의미가 있는 거요?" "제가 그 이유를 말한다 해도 당신이 절 더 좋아하게 되지는 않을 거예 요." "그래도 알고 싶소." "그 무엇도 할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에요. 기억나시지요. 오래전에 제 가 당신에게 한 약속 말이에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다보니 당신과의 그 결 혼 약속이 후회됐어요. 그 약속을 명예롭게 깰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려고 노력했었지요. 그러나 전 그렇게 할 수 없었어요. 오히려 관습에 무심했고 개의치 않게 되었어요. 그리고 어떤 추문이 나돌았는지, 당신이 나를 위해 시간까지 허비하면서 입학시켜주신 교육대학에서 어떻게 퇴학당했는지 당 신은 알고 있을 거예요. 그 퇴학처분에 저는 놀랐지요. 그때 제가 할 수 있 는 한 가지 일은 약혼을 깨지 않고 성사시키는 것이었어요. 물론 남들이 어떤 욕을 하든 저는 마음을 쓰지 않았어요. 그건 제가 생각도 못한 소문 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전 겁쟁이였어요 - 많은 여자들이 그렇듯이요 - 그 래서 인습을 무시하겠다는 소신도 깨지고 만 거지요. 그때 이런 식으로 사 타가 전개되지만 않았더라도, 결혼 전에 단 한번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하 고 말았을 거예요. 결혼해서 전생애를 통해 당신을 아프게 하는 것보다는 그게 훨씬 낫죠. 당신은 그때 그 소문을 조금도 안 믿으셨으니, 참으로 관 대하셨죠." "솔직히 말하자면, 그 문제에 관해 있을 수 있는 여러가지 일들을 숙고 해 보았고, 또 당신 사촌오빠를 만나서도 그것을 확인해 보았소." "아!" 그녀는 고통스러운 놀라움으로 소리를 질렀다. "당신을 의심했던 것은 아니오." "그렇지만 당신은 캐물었지요!" "난 그의 말을 받아들였소." 그녀의 눈은 눈물로 가득 찼다. "그 사람 같으면 캐묻진 않았을 거예요!" 그녀가 말했다. "그런데 당신은 아까 질문에 대답하시지 않았어요. 절 떠나게 해주실 건 가요? 이런 부탁을 하는 것이 얼마나 비정상적이라는 것도 알아요." "비정상적이지." "그렇지만 정말 부탁이에요! 부부간의 문제는 서로의 기질에 따라 해결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질에도 여러 종류가 있으니까요. 여자쪽의 성격이 유별나다면 상대방에게 편안함을 주는 그 질서 때문에 오히려 괴로워해야 할 테니까요! 저를 보내주시겠어요?" "그러나 우린 결혼했소." "만일 당신이 아무런 죄도 저지르지 않았는데 법칙이나 종교적 예전 같 은 것이 당신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면요. 그것들을 생각한들 무슨 소용 이 있겠어요?" "당신은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 가지 죄를 범하고 있소." "전 당신을 정말 좋아해요! 하지만 그런 말을 하실 줄은 생각 못했어요. 여자와 남자가 절친한 사이로 살아간다면 어떤 상황에서 아무리 합법적이 더라도 결국 간음에 지나지 않는 거예요. 절 보내주세요, 리처드?" "당신은 끈질기게 날 괴롭히는군, 수잔나!" "서로가 자유로워지는 것에 대해 왜 동의하지 않으시죠? 우리는 계약을 맺은 만큼 그것을 취소할 수도 있어요. 물론 합법적으로는 아니지만 그러 나 도덕적으로는 할 수 있지요. 특히 우린 애도 없으니까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는 없어요. 그러고 나면 우린 친구도 될 수 있고 고통 없이 서로 만날 수도 있어요. 아, 리처드. 내 친구가 되어 주시고 동정심도 베풀어주 세요! 어차피 우리는 몇년 안 있으면 다 죽을 텐데요. 저를 속박에서 잠시 풀어준다고 무슨 지장이 있겠어요? 아마 당신은 저를 괴팍하다든가 지나치 게 민감하다든가 아니면 좀 뚱딴지 같다고 생각하시겠지요. 좋아요. 그렇지 만 왜 저는 타고난 기질 때문에 번민하며 살아야 하나요? 타고난 이 기질 의 죄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괴로움을 겪어야 하 는 건가요?" "그러나 피해를 주고 있지 않소! 그리고 당신은 날 사랑한다고 맹세했 소." "그래요, 그랬었죠! 제가 나빴어요. 전 항상 못됐죠! 항상 변함 없이 사랑 한다고 자신을 속박하는 것은 항상 한가지 신조만을 믿겠다는 것과 같은 과실이지요. 그리고 특정한 음식이나 음료를 항상 좋아한다고 맹세하는 것 만큼 어리석은 짓이지요!" "그렇다면 당신은 나를 떠나 살겠다는 거요?" "글쎄요, 당신이 그걸 고집한다면 혼자 살아가겠어요. 그러나 저는 주드 와 함께 살고 싶어요." "그의 아내로서 말이오?" "그건 제가 선택할 따름이지요." 필로트슨은 고통스런 표정을 지었다. 수는 계속 말을 이었다. "여자든 남자든 '인생을 결정하는 데 세상 혹은 자신이 속한 세계로 하 여금 그 선택을 맡긴다면 원숭이처럼 모방하는 능력 외엔 아무런 능력도 필요치 않다.'고 J.S.밀이 말했지요. 책을 읽다가 발견한 말이죠. 당신도 이 말처럼 행동할 수 없나요? 전 항상 그렇게 행동하고 싶어요." "J.S.밀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아!" 그는 신음하듯 말했다. "나는 단지 조용한 삶을 살고 싶을 뿐이오! 당신과 결혼 전에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을 듣고 싶소? 당신은 주드 폴리와 연애를 했고 현재도 연애 중이라는 거지!" "어차피 당신이 그런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면 당신 맘대로 추측하셔도 좋아요. 그러나 만일 제가 연애를 해왔다면 그 사람과 동거할 수 있도록 진작 별거 요청을 했어야 했다 그런 말씀이신가요?" 그때 한교 종이 울렸기 때문에 필로트슨은 까다로운 이 문제에 당장 답 변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녀가 너무 불안하고 혼란스러워 보였기 때문 에 그는 평소 아내가 챙기던 것들을 직접 처리했다. 두 사람은 평소와 같이 학교에 갔고 수는 교실로 들어갔다. 필로트슨은 시선만 돌리면 유리 칸막이를 통해 그녀의 뒷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수업을 계속하는 동안, 생각에 집중하느라 이마와 눈썹을 씰룩거렸다. 마침 내 그는 종이 한 장을 찢어 편지를 섰다. '당신이 한 요구가 방해돼 수업에 전념할 수가 없소.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소! 당신의 그 말은 진심이었소?' 그는 종이를 아주 작게 접어 아이 편으로 수에게 보냈다. 그 아이는 교 실로 또박또박 걸어갔다. 필로트슨은 그의 아내가 쪽지를 받는 것과 그것 을 읽기 위해 그녀의 아름다운 머리를 숙이는 것을 보았다. 많은 아이들 앞에서 감정을 내색하지 않으려고 입술을 굳게 다무는 것도 보았다. 그는 그녀의 손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녀는 자세를 바꾸었고, 곧 아무 회답도 받지 못한 채 아이가 돌아왔다. 그러나 2, 3분이 지나자 수 학급의 한 아이 가 그가 보낸 것과 유사한 작은 쪽지를 가지고 나타났다. 연필로 이런 말 이 적혀 있었다. '정말 유감스럽지만, 그 말은 진심이에요.' 필로트슨은 전보다 더 혼란된 표정을 지으면서 미간에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10분쯤 후 그는 좀 전의 그 아이를 다시 불러 또 하나의 쪽지를 그녀에게 보냈다. '어떤 방법으로도 당신을 고통스럽게 하고 싶지 않소. 나의 이 마음을 하 느님은 알고 계실 거요. 난 당신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해주고 싶소. 그러나 당신이 애인과 동거하겠다는 생각에는 동의할 수가 없소. 그렇게 되면 당 신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호의를 잃고 경멸당하게 될 거요. 그리고 나 또한 그렇게 할 거요!' 잠시 후 조금 전과 비슷한 광경이 교실에서 이루어지고 나더니 회답이 왔다. '당신이 절 위해 그러신다는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전 세상의 체면 따 위를 염두에 두고 싶지 않아요! '가장 풍요한 다종 다양성을 통한 인간의 발전'(당신이 좋아하는 훔볼트를 인용한 거예요)은 체면을 극복할 때 나타 난다고 봐요. 당신의 관점에서 보면 제가 저열하겠지요! 당신이 제가 그이 한테 가는 걸 허락하지 않겠다면, 그러면 이 한 가지 요구는 들어주시겠어 요? 당신의 집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살 수 있도록 말이에요.' 여기에 대해 그는 답장을 쓰지 않았다. 그녀가 다시 쪽지를 써보냈다. '나는 당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계시는지 알아요. 하지만 저를 동정해 주 실 수는 없나요? 부탁이에요. 제발 자비심을 베푸셔서 저를 용서해 주세요! 이렇게 참기 힘들지만 않아도 이런 부탁을 하진 않을 거예요! 이브가 나무 의 열매를 따먹지 않아서(원시 그리스도 교도들이 믿는 것처럼) 사람들이 죄 짓지 않고 낙원에서 살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을 저만큼 원하는 여자도 없을 거예요. 농담이 아니에요! 제게 친절을 베풀어주세요. 비록 제가 당신 에게 친절하진 못했지만요! 저는 떠나겠어요. 외국이든, 어디든간에 가겠어 요. 당신에게 절대 폐가 되지 않도록 하겠어요.' 거의 한 시간이 지난 후 그가 답장을 보내왔다. '나는 당신에게 고통을 주고 싶지 않소. 그런 내 심정을 당신도 잘 알거 요! 나한테 시간을 좀 주시오. 당신의 마지막 요구에는 동의할 생각이 있 소.' 그녀로부터 한 줄의 서신이 다시 왔다. '진심으로 감사해요, 리처드. 당신의 친절은 분에 넘칩니다.' 그날 필로트슨은 하루종일 유리 칸막이를 통해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았 다. 그리고 그는 그녀를 알기 전과 마찬가지로 외로움을 느꼈다. 그는 약속을 지켜 한 집에서 그녀와 별거하자는 데 동의했다. 처음 그들 이 식사시간에 조우하게 되었을 때 그녀는 이 새로운 상황에 비교적 잘 적 응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들 사이의 어색함은 그녀의 기질에 영향을 미쳤 다. 그래서 그녀의 신경은 하프의 줄처럼 긴장된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그 가 조리에 맞는 말을 하지 못하게 하려고 애매하면서도 불투명하게 응대했 다. 4-4 필로트슨은 밤 늦게까지 책상 머리에 붙어 있었다. 이런 일은 흔히 있었 지만, 오늘밤은 오랫동안 등한시해 온 영국 점령시대의 로마군에 대한 유 적을 조사하는 자료를 정리하고 있었다. 이 연구 주제를 부활시키고 나서 처음으로 그는 옛날의 흥미가 되살아남을 느꼈다. 그는 시간과 장소도 잊 고 일에 몰두했는데 제정신이 들어 위층으로 올라갔을 때는 2시가 다 되어 있었다. 요즈음 그는 수와 침실을 달리 쓰고 있었지만, 오늘밤의 그는 정신이 멍 해서 처음 '올드 그로브 플레이스'의 임대인이 되었을 때 수와 함께 기거했 던 본래의 방으로 관성적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이 방은 수와 불화가 생긴 이래 그녀가 혼자 쓰고 있던 침실이었다. 침대 쪽에서 고함소리가 나더니, 재빠르게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그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깨닫기 전에, 수가 반쯤 깬 상태로 깜짝 놀라 그 를 노려보다가 창문 쪽으로 향하는 것을 보았다. 창문은 침대위로 늘어뜨 린 차양 때문에 약간 가려져 있었는데 곧 그녀가 창틀을 열어젖히는 소리 가 들렸다. 단순히 환기를 시키려고 하는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도 전에 그녀는 창문턱으로 올라가 밖으로 뛰어내렸다. 그녀의 모습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그는 그녀가 아래로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필로트슨은 놀라서 아래층으로 뛰어 내려가다가 난간 기둥에 심하게 부 딪쳤다. 그가 묵직한 대문을 열고, 땅바닥까지 두세 계단을 내려가니 그의 눈앞 자갈 위에 하얀 물체가 누워 있는 게 보였다. 필로트슨은 수를 양팔 로 안고 거실로 들어와 의자 위에 앉혔다. 그리고 계단아래 놓아 두었던 깜박이는 촛불을 통해 그녀를 들여다보았다. 그녀는 분명 목이 부러지지 않은 것만은 확실했다. 그를 바라보는 그녀 의 눈동자는 평소와 달리 크게 벌어져 있었다. 그녀는 고통스러운 듯 옆구 리를 누르기고 하고 팔을 쓰다듬기도 했다. 그의 시선을 받는 것이 싫었던 지, 그녀가 괴로운 듯 얼굴을 돌리며 일어섰다. "세상에, 많이 다치진 않았소? 왜 이런 짓을 한 거요?" 사실 그녀가 2층에서 떨어지기는 했지만 부상이 심한 것은 아니었다. 오 래된 방이어서 위치가 낮았고 바깥 도로의 평면은 높았기 때문이었다. 팔 꿈치와 옆구리에 철과상과 타박상을 입은 것 외에는 거의 다치지 않았다. "잠을 자고 있었어요!" 그녀는 창백한 얼굴로 그를 외면한 채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무엇인가가 저를 위협했어요. 무서운 꿈이었어요. 당신의 얼굴이 었어요." 그때의 악몽이 다시 생각나는 듯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망토가 문 뒤에 걸려 있었으므로 필로트슨은 그 망토를 그녀의 어깨에 걸쳐주었 다. "위층까지 부축해 줄까?" 그는 우울하게 물었다. 오늘밤의 사건을 생각하자 자신을 포함해 만사가 싫증이 났다. "아니, 됐어요, 리처드. 별로 다치지 않았어요. 걸을 수 있어요." "자신의 방문은 잠궈야 하는 거요." 그는 마치 학교에서 강의를 하듯 기계적으로 말했다. "그래야, 어쩌다 실수해서 방으로 들어가는 일을 막을 수 있으니까." "잠그려고 했지요. 그러나 잘 안 돼요. 문들이 다 망가졌어요." 상황은 조금도 개선되지 않았다. 펄럭이는 촛불을 들고 그녀는 천천히 계단을 올라갔다. 필로트슨은 그녀가 자기의 방으로 들어가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그녀를 지켜보기만 했다. 그는 현관문을 잠그고 아래쪽 계단에 앉 아 한 손으론 난간을 잡고 다른 또 한 손으론 그의 얼굴을 가렸다. 그는 그렇게 한참을 있었는데 누가 보더라도 측은한 모습이었다. 마침내 그는 머리를 들고 아내가 있든 없든 자신의 의무만은 다 해야 한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촛불을 들고 층계참 맞은편에 있는 자신의 외로운 방으로 올라갔다. 다음날 저녁때까지 그들은 이 문제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자, 필로트슨은 차를 마시지 않겠다는 말과 함께 행선지도 알 리지 않은 채 셰스톤을 떠났다. 그는 북서 방향의 가파른 길을 따라 마을 을 내려갔다. 그리고 계속해서 아래 쪽으로 내려갔다. 마침내 희고 건조한 흙이 붉은 점토질로 바뀌는 곳까지 갔다. 그는 지금 다음과 같이 노래불려 지는 낮은 충적층에 와 있었다. '던클리프 언덕은 나그네가 가는 쪽에 솟아 있고, 황수련 꽃피는 스투어 강은 검게 흐르고 있네.(윌리엄 반스의 시에서 인용. 반스는 하디의 고향인 도싯 주 출신의 시인으로 하디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함)' 그는 점점 짙어가는 저녁의 풍경을 여러번 되돌아보았다. 하늘을 배경으 로 셰스톤이 희미하게 보였다. '팔라도의 정상, 회색의 고지대에 어슴푸레한 하루가 여위어 갈 때...(상 기 시의 인용)' 방문 창문에서 켜진 등불이 마치 그를 주시하고 있는 것처럼 빛나며 타 오르고 있었다. 그 중에는 그의 방에서 나오는 빛도 있었다. 그 위쪽 너머 로는 트리니티 교회의 소첨탑이 달린 탑도 보였다. 여기 아래족의 공기는 차분한 점토층의 습기 때문에 고지대와는 달리 눅눅했고, 너무 부드러워 몸을 녹일 듯해서 2, 3마일을 걷자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야만 했다. 그는 왼쪽에 솟아 있는 던클리프 언덕을 뒤로 하고, 어둠 속에서 어렸을 때 놀 던 그 지역을 망설임 없이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는 전부해서 약 4마일 반 정도를 걸었다. '맑디맑은 여섯 군데의 샘물로 정기 받아 스투어 강의 물이 불어나는 언 저리(드레이턴의 '행복의 나라' 중에서)' 그는 스투어 강의 지류를 건너 레든텐 - 3, 4천 명이 거주하고 있는 작 은 읍 - 에 도착해, 남자초등학교가 있는 데까지 계속 걸어가 교장 사택의 문을 두드렸다. 아직 소년티가 가시지 않은 조교가 나와 문을 열어주었다. 그가 질링엄 선생님이 계시냐고 묻자 조교는 계신다고 대답하고는 곧장 자기방으로 들 어갔으므로 필로트슨은 스스로 찾아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기의 친구가 저녁 수업을 하고 난 책들을 정리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파라핀유 등에 비친 필로트슨의 얼굴은 친구의 냉정하고 실제적인 모습과는 대조적 으로 창백하고 비참해 보였다. 두 사람은 소년시절부터 같이 학교를 다녔 고 윈톤체스터 교육대학의 동창이었다. "만나서 반갑군, 딕! 그런데 안색이 좋지 않은데? 무슨 일이라도 있나?" 필로트슨은 말없이 그에게 다가섰고 질링엄은 찬장에서 컵을 꺼내 친구 앞에 놓았다. "왜 그동안 안 왔나. 결혼한 후 처음이지? 일전에 찾아갔을 때는 자네가 없더군. 날이 어두워지면 언덕을 올라오기가 너무 힘들어서 해가 좀 길어 지면 찾아가볼 생각이었지. 어쨌든 자네가 기다리지 않고 먼저 와줘 기쁘 군." 그들은 훌륭한 교육을 받은 능력있는 교장들이었지만, 가끔 사적인 장소 에서는 어린시절에 쓰던 방언을 사용했다. "조지, 내가 여기 온 것은 앞으로 내가 하려는 행동에 대해 자네한테 설 명하기 위해서라네. 다른 사람들이야 내 동기에 관해 다소 의아해할 수도 있겠지만 자네만은 그렇지 않겠지. 지금의 내 상황이 너무 나쁘네. 자네는 제발 나처럼 괴로운 일을 당하지 말게!" "우선 앉게. 자네와 부인 사이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겠지?" "바로 그렇다네. 내 처지가 갑갑해. 나는 아내를 사랑하지만 아내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네. 뿐만 아니라, 글쎄, 말할 수가 없군. 아내의 기분은 알 고 있지! 차라리 아내가 날 증오라도 했으면 하네!" "이런!" "그런데 슬프게도, 아내가 나만큼이나 잘못이 없다는 거네. 자네도 알다 시피 아내는 내 감독하에 있던 교생이었지. 나는 그녀의 순진함을 이용해 산책하자고 유혹했고, 그녀가 자기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기도 전에 약혼하 자고 설득했지. 그런데 그후 그녀가 다른 남자를 알게 됐네. 물론 결혼은 예정대로 진행됐지만." "다른 남자를 사랑하고 있단 말인가?" "그렇다네. 이상할 정도로 열의를 다해서 말이지. 그 남자에 대한 아내의 진정한 기분이 나에게는 수수께끼지만 - 그리고 그 남자한테도 수수께끼겠 지만 - 아내 자신한테도 마찬가지로 그럴 거라고 생각하네. 아내는 내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이상한 사람이야. 그러나 나는 두 가지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네. 그 두 사람 사이의 예사롭지 않은 공감과 유사성일세. 두 사람은 이종사촌지간인데, 이 사실이 그 유사성을 다소 설명할 수 있는 요 소가 되겠지. 그들은 한 사람이 둘로 쪼개진 것과 같네! 그리고 남편인 나 에게 갖고 있는 그녀의 극복할 수 없는 혐오감은, 비록 아내가 나를 친구 로서 좋아할지라도 너무 심해 더이상 참을 수가 없네. 물론 아내도 이런 자신의 마음에 대항해 싸우는 눈치였지만 별로 소용이 없네. 나는 그걸 참 을 수가 없어. 나는 아내의 논쟁 상대가 못 되네. 아내는 나보다 열 배 정 도는 책을 많이 읽는다네. 아내의 지성은 다이아몬드처럼 번쩍번쩍 빛을 발하는데, 난 마치 타지 않는 갈색 포장지와 같아서 그을음만 나올 뿐이라 네. 아내는 나한테 너무 과분한 여자야!" "그녀는 점차 극복할 걸세." "결코 그렇지 않아! 거기엔 몇 가지 이유가 있네. 아내는 단호하게, 나를 떠나 그 사람에게 가도 되겠냐고 물어왔다네. 사건의 절정은 지난 밤에 발 생했지. 내가 실수로 그녀의 방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아내는 그만 창문 밖 으로 뛰어내렸다네. 나에 대한 아내의 두려움은 그정도로 대단했던 거야! 아내는 이 사건을 꿈의 연장인 것처럼 가장했지만 그건 나를 달래기 위한 수단이었다네. 목뼈가 부러지건 말건 창문 밖으로 뛰어내릴 수가 있다니, 그녀는 실수를 한 게 아니네. 그러니 이쯤 되면 결론이 뻔한 것 아닌가. 난 아내를 더이상 괴롭혀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네. 이런 비극적인 상황 을 계속 연장하는 몰인정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이 말이지!" "뭐라고? 그녀를 보내주겠다는 건가? 그리고 그 남자와 살게 하겠다는 건가?" "누구와 함께 살든 그건 내 알 바 아니지. 난 그녀를 보내주겠어. 그 남 자와 살고 싶으면 그것도 할 수 없는 일이지. 잘못은 내 편에 있는지도 몰 라. 난 지금 그녀의 요구에 대해 논리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수용하기 힘들 다는 것을, 내 몸에 젖어 있는 주의와 조화시킬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 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하네. 그녀의 소망을 거절하는 건 나쁘다는 거지. 내 가슴 속에 있는 무엇인가가 내게 그렇게 말하고 있어. 솔직히 나도 다 른 남자들처럼, 감금해서라도 아내를 지키고 싶고 정 안 되면 애인이라도 살해해서 남편의 명예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네. 그러나 그것이 과 연 정당하고 명예로운 수단일까? 경멸스런, 비열하고 이기적인 수단이 아 닐까? 어느쪽인지 결단을 내릴 수가 없었네. 단지 본능에 의해 행동할 뿐, 주의는 어디까지나 주의에 맡겨두겠네. 눈 먼 사람이 늪에 빠져 도와달라 고 한다면 도와주는 게 본능이라고 생각하네." "그러나, 이웃과 사회의 평판이라는 문제가 남아 있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만일 사람들이..." "아, 난 더이상 따지고 싶지 않네! 단지 눈앞의 현실만 생각하겠네." "글쎄, 난 자네의 본능에 동의하지 않네, 딕!" 질링엄은 엄숙하게 말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자네같이 침착한 남자가 그런 미친 생각을 하다니, 일시적이든 어쨌든 나는 너무 놀랐네. 언젠가 내가 찾아갔을 때, 자네는 아 내가 수수께끼 같고 특이한 여자라고 말했었지. 이제 생각해 보니 자네가 바로 그렇군!" "자네는 선하다고 믿었던 여자가 자유를 갈구해 오면, 우두커니 서서 보 고만 있겠는가? 그녀가 무릎을 꿇고 애원을 하는데도?" "고맙게도 그런 적이 없었네." "그렇다면 자네는 나한테 그런 말할 자격이 없네. 난 바로 그런 경험을 한 사람이지. 그리고 만일 그 남자 안에 조금이라도 남자다운 혼이 있다면, 즉 기사도 정신이 있다면 이 문제에 대한 의견의 차이는 더욱 벌어지겠지. 비록 여러 해 동안 여자 근처에도 가지 않고 살아온 것은 사실이지만, 여 자를 교회로 데리고 가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줬다는 이유만으로 매일매일 을 비극적으로 살도록 강요할 만큼 냉정할 수는 없네!" "하긴, 부인이 혼자 살겠다면야 모르지. 하지만 정부와 함께 놀아난다면 그거야 문제가 다르지 않겠나." "그게 그거네. 아내는 그 남자와 떨어져 살겠다고 언질하느니 비참하더 라도 현재의 비극적 상황을 지탱하면서 살고 말걸세. 문제는 당사자의 마 음이네. 이건 남편과 함께 살면서 남편을 속이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지. 어쨌든 아내는 그 남자와 함께 살겠다는 뜻을 아직 정확히는 밝히지 않고 있네. 결국엔 그렇게 되겠지만. 그리고 내가 알기로는, 그들 사이의 감정이 저열한 동물적 본성에 바탕을 두고 있는게 아니라는 거네. 이것이 내겐 더 괴로운 사실이지. 왜냐하면 그들의 애정이 영원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네. 자네에게 털어놓고 싶지는 않지만, 나는 결혼한 지 얼마 안돼서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들은 적이 있었네. 학교에서의 늦은 저녁때였는데, 부끄러운 이야 기지만 나는 그것을 남편으로서의 합법적인 권리행사라고 생각했지. 그들 의 태도에는 어떤 특별한 친화력과 공감 같은 것이 흐르고 있어 비열한 데 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네. 그들의 최상의 욕망은 함께 있고 싶다는 것, 서로의 감정과 환상과 꿈을 공유하고 싶다는 것이었지." "플라토닉하군!" "아니, 그게 아니야. 셜리적인 사랑에 더 가깝지. 그들의 이름이 뭐였지? 그래, 레이온과 시드나(영국 낭만주의 시인셜리(1792-1822)의 장시 '이슬람 교의 반란'의 여주인공. 여성의 해방에 몸바친 소녀로 레이온과 정신적인 사랑에 빠졌음)였군. 또 폴과 버지니아(프랑스 작가 베르나르뎅 드 생피에 르(1737-1814)의 소설 '폴과 버지니아'의 주인공. 순정적인 사랑을 나눔)도 생각나고. 그들을 생각하면 할수록 점점더 아내 편에 서게 된다니까!"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자네처럼 생각한다면 가정은 붕괴되고 말걸세. 가족이 더이상 사회적 구성 단위가 되지 못하는 거지." "그렇군. 나는 어떻게 하면 좋겠나!" 필로트슨은 슬프게 말했다. "자네가 기억하는 것처럼 난 결코 총명한 이론가가 아니었어. 하지만 왜 남자 없이 여자와 아이들만으로는 사회적인 단위가 될 수 없는지 모르겠 군." "맙소사! 모계사회를 생각하고 있다니 놀랍군! 이것도 전부 아내가 말해 주던가?" "아니야, 이런 문제를 내가 아내 이상으로 말할 수 있다고는 그녀도 생 각 못할 거야. 이런 생각은 오늘 반나절 동안 숙고한 것들이네." "자네의 생각은 아주 반체제적일세. 맙소사, 셰스톤에서 이런 얘길 들으 면 뭐라고들 할까!" "자네 말을 부정하진 않겠네. 하지만 난 정말 모르겠네, 모르겠어. 나는 감정적인 사람이지 이성적인 사람은 못 되네." "자, 이제 조용히 생각해 보자구, 그리고 뭔가 좀 마시면서 얘기하세." 질링엄이 말했다. 그는 아랫층으로 내려가 사과주 한 병을 들고 왔고 그 들은 큰 컵에 따라 그것을 한 잔씩 마셨다. "자넨 신경이 곤두서 있네. 자네답지 않아." 그가 말을 이었다. "집으로 돌아가서 기분을 다잡고 마음을 굳건히 하게. 그리고 아내를 붙 들어두게. 그녀가 매력적이고 젊다는 소문을 나는 여러 곳에서 들었네." "아, 그거야! 그것 또한 씁쓸한 점이라네! 자, 이제 가봐야겠네. 갈 길이 멀군." 질링엄은 1마일쯤 친구를 배웅하고 나서 헤어질 무렵, 이번 만남을 기화 로 더욱 우정이 돈독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녀를 붙들어두게!" 이것이 그의 마지낙 말이었다. 친구의 대답이 어둠 속에서 되돌아 왔다. "그래, 그래!" 그러나 필로트슨은 혼자 남아, 밤의 장막 속에 스투어 강의 물줄기가 소 용돌이치며 흘러내려가는 소리 외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을 때,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질링엄. 자네는 어떤 반대 논리를 가지고 있는가, 결국 아무 런 논거도 없이 반대하는 것 아닌가!" 질링엄 또한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런 여자는 맞아야 제정신을 차리지. 이것이 내 생각이야, 필로트슨!"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아침식사 시간에 필로트슨은 수에게 말했다. "당신은 떠나도 좋소. 가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누구하고 어디를 가든 상관 않겠소. 절대적으로 무조건 동의하오." 일단 이런 결론에 이르자 필로트슨에게는 그것이 더욱더 논의를 허락하 지 않는 참된 결론이라고 생각되었다. 그의 자비에만 의지하고 있는 여자 를 의리를 다해 지키고 있다는 자각 때문에 그는 온후하고 차분한 기분이 되어, 그녀를 포기해야 한다는 슬픔을 거의 억누르고 있었다. 그로부터 2, 3일 뒤, 그들은 마지막으로 저녁식사를 함께 하게 되었다. 바람이 불고 구름이 낀 저녁이었다. 이 고원지대에서 바람이 없는 날은 거 의 없었다. 가벼운 식사를 들기 위해 거실로 들어서는 그녀의 표정, 홀쭉하 고 가냘픈 자태, 밤낮을 가리지 않는 고뇌 때문에 마음의 휴식을 잃은 흔 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는 창백한 얼굴, 쾌활했던 예전의 모습과는 판이하 게 달라 비극적 가능성조차 암시해 주고 있는 그녀의 표정, 이러한 것들이 이날 저녁 얼마나 영구히 그의 환상 속에 각인될 것인가. 그녀는 식사를 하긴 했지만 음식이 목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자신 때문 에 남편이 상처받을 것을 배려해 그랬던 것이지만, 다른 사람의 눈에는 그 태도가, 얼마 남지 않은 마지막 수분조차도 필로트슨을 보는 것이 불쾌해 서 그런 것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었다. "차와 함께 햄이나 계란도 좀 먹어두는 게 나을 거요. 버터 바른 빵만으 로는 여행하기가 힘들 테니." 그녀는 남편이 잘라준 햄을 먹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가사에 대한 세 밀한 문제들을 언급했다. 찬장의 연쇠는 어디에 있으며 처리해야 할 청구 서는 어떤 것들이 있다는 등 속의 얘기였다. "난 결국 독신으로 살 팔자인가 보오, 수." 그는 그녀를 편하게 해주려는 영웅적인 태도에서 말을 했다. "아내가 없더라도 다른 남자들처럼 큰 불편을 겪진 않을 거요. 내 머리 속엔 다만 '웨섹스의 로마 유적'을 써보겠다는 생각만 있소. 이일이 나의 남은 여가들을 채워주겠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청서할 원고가 있으면 보내주세요. 기꺼이 그 일을 하겠어요!" 그녀는 마치 그럴 의무가 있다는 듯이 상냥하게 말했다. "전 아직도 친구로서 당신을 돕고 싶어요." 필로트슨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아니오. 내 생각엔, 기왕 헤어질 바엔 완전히 헤어지는 게 좋을 것 같 소. 그렇기 때문에 당신한테 어떤 질문도 하고 싶지 않소. 당신이 어디서 무얼 하든 알고 싶지 않소. 돈이 좀 필요할 거요. 어느 정도면 되겠소?" "물론 필요하지요, 리처드. 하지만 곁을 떠나면서 당신 돈을 가지고 갈 순 없어요. 당분간은 제가 가지고 있는 돈만으로 충분해요. 그리고 주드가 도와줄 테니까요." "내 앞에서 그 사람 이야기는 안했으면 좋겠소. 당신은 이제 완전히 자 유요. 앞으로의 방침도 당신 마음대로 세우는 거지." "좋아요. 하지만 갈아입을 한두 벌의 옷과 그밖의 제 물건 한두 개를 챙 겼다는 건 말씀 드려야겠어요. 트렁크를 닫기 전에 당신이 좀 봤으면 해요. 그리고 작은 꾸러미가 하나 있는데, 이것은 주드의 가방에 들어갈 거예요." "나는 당신의 짐을 조사하는 따위의 일은 하고 싶지 않아요. 그러나 가 재도구의 4분의 3정도는 당신이 가져갔으면 하오. 그것들로 신경쓰고 싶지 않으니까. 가엾은 부모님이 쓰셨던 가구들에는 애정을 가지고 있지만, 나머 지 것들은 언제든 당신이 원할 때 기꺼이 보내주겠소." "사양하겠어요." "6시 30분 기차로 떠날 게 아니오? 지금 6시 15분 전이오." "당신은 ... 당신은 내가 떠나는 걸 별로 슬퍼하지 않는 것 같군요, 리처 드." "그래요. 아마 그럴 거요." "방금의 당신 행동으로 당신이 무척 좋아졌어요. 당신을 남편으로서가 아니고 옛날의 은사님으로 좋아하려고 했는데 이런 생각이 들다니, 이상한 일이네요. 전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할 만큼 애정을 갖고 있지는 않아요. 친 구로서가 아니라면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당신도 알고 있기 때문이 지요. 하지만 당신은 정말 저한테는 친구로 밖에 안 보이는 걸요!" 수는 이런 감상에 젖어 눈물을 흘리면서 역으로 가는 상합마차에 올랐 다. 필로트슨이 그녀의 짐이 마차 꼭대기에 실리는 것을 보고 그녀의 손을 이끌어 마차에 태웠다. 그는 작별인사를 하고 싶다면서 키스하는 시늉을 했고, 그녀 역시 그의 기분을 알아차리고서는 같은 동작을 취했다. 마부는 그들의 다정한 이별을 보고는 아내와 잠깐 헤어지는가 보다고 생각했을 것 이다. 필로트슨은 집으로 돌아와 마차가 사라지는 방향 쪽의 창문을 열었다. 곧 바퀴소리가 멀리 사라져갔다. 필로트슨은 다시 아랫층으로 내려와 고통 을 참으려는 사람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는 황급히 모자를 쓰고 밖 으로 뛰쳐나와 거의 1마일 정도를 따라가다가 다시 돌아서서 집으로 왔다. 그가 집에 들어서자마자, 친구 질링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기척도 없고 문도 열려 있어서 들어와 좀 쉬고 있었네. 내가 한번 들 르겠다고 말했었지." "그래. 특히 오늘밤 같은 날 와주어서 고맙네, 질링엄." "자네 부인은 잘 지내는가?" "아내는 아주 잘 지내지. 그녀는 가버렸네. 지금 막 갔지. 저게 바로 한 시간 전에 그녀가 마셨던 찻잔이라네. 그리고 저 접시도..." 필로트슨은 목이 메어 더이상 말을 계속할 수가 없었다. 그는 돌아서서 찻잔을 치웠다. "그건 그렇고, 자네는 차 마셨나?" 그는 목소리를 가다듬어 물어보았다. "아니, 됐네. 신경쓰지 말게." 질링엄이 급히 말했다. "떠났다고? 그녀가 정말 떠났단 말인가!" "그렇다네. 그 여자를 위한 일이라면 목숨을 바쳐도 좋다고 생각했지. 하 지만 법의 힘을 빌려 그녀를 잔인하게 대할 수는 없었네. 내가 알기로 그 녀는 애인에게 갔을 걸세. 그들이 무슨 계획을 갖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엇을 하건, 난 이 결별에 완전히 동의했네." 필로트슨의 언명에는 확고부동함과 어떤 사려가 배어 있었기 때문에 그 의 친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럼 난 가 봐도 되겠나?" 그가 말을 했다. "아니, 자네가 와준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좀 정리하고 치워둬야 할 물건도 있으니 도와주지 않겠나?" 질링엄은 동의했다. 필로트슨은 위층 방으로 올라가 서랍들을 열고는 수 가 남기고 간 옷가지들을 끄집어내 그것들을 큰 상자에 넣기 시작했다. "다 가져가라고 했는데, 그녀는 그러질 않았군." 그는 말을 이었다. "난 이미 그녀의 요구대로 해주어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네." "다른 남자들 같으면 쉽지 않았을 텐데." "나 역시 쉽진 않았네. 결혼문제에 대해서만큼은 누구보다도 보수적인 인간이 나였다네. 지금도 그렇제. 사실 난 결혼의 윤리성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네. 그런데 마침 이러한 문제들이 발생한 거야. 감당하 기가 힘들었지." 그들은 조용히 상자에 짐을 싸는 일을 계속했다. 일을 마치고 난 필로트 슨은 상자의 뚜껑을 닫고 열쇠를 채웠다. "이제는, 누군가의 사랑을 받든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나는 일은 없겠지!" 그가 말했다. 4-5 이보다 하루 전 수는 주드에게 편지를 썼다. 당신에게 전에 말씀드렸던 대로 되었어요. 내일 저녁에 떠나요. 리처드와 저는 어두워진 후가 더 나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전 오히려 두려운 기분이 에요. 그래서 오빠가 멜체스터 승강구로 마중나와 줄 것을 확신하면서도 다시 또 부탁하는 거예요. 저는 7시 조금 전에 도착할 거예요. 그리운 주 드, 물론 오빠가 마중나와 줄 것을 알아요. 하지만 저는 너무 소심해져서 시간에 맞추어 나와 달라고 간청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분은 모든 면에서 너무 친절하게 대해 주셨어요. 그럼 우리 만날 때까지! - 수 그날밤, 수는 단지 한 사람의 승객으로 승합마차에 몸을 싣고 이 산정의 도시로부터 점점 멀어져 가는 도로를 슬픈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녀의 얼굴에는 어떤 주저하는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타고 갈 상행열차는 신호를 보내야만 정차했다. 합법적인 가정을 버리고 도망치는 자기 같은 인간을 태우겠다고 열차처럼 강력한 물체가 때 맞추어 나타난다는 것이 그녀에게는 이상하게 느껴졌다. 20분간의 여행이 끝나자 수는 열차에서 내리려고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기차가 멜체스터 승강구에 정차했을 때, 손 하나가 문에 나타나더니 주드 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즉시 객실 안으로 들어왔다. 손엔 검은 가방을 들 고 있었고, 언제나 일이 끝난 후의 저녁이나 일요일이면 그렇듯이 짙은 정 장 차림이었다. 대체로, 그는 아주 잘생긴 젊은이로 보였고 그녀를 향한 그 의 열렬한 애정이 그의 눈속에 불타오르고 있었다. "아, 주드!" 그녀는 양손으로 그의 손을 꼭 잡았고, 눈물은 흘리지 않았지만 긴장된 탓인지 약간 훌쩍거리는 울음소리를 냈다. "너무 기뻐요! 여기서 내려야지요?" "아니야. 기차를 더 타야해, 수! 난 짐을 쌌어. 이 가방 외엔 큰 트렁크 하나만 꼬리표를 붙여 실었지." "하지만 여기서 내리면 안 되나요? 우린 여기서 지내기로 하지 않았나 요?" "안돼. 여기는 우리의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 너무 많아. 어쨌든, 나는 아주 많이 알려져 있거든. 얼드브릭험까지의 차표를 샀어. 자, 이건 동생 차표야. 동생은 여기까지의 차표밖에 없을 테니 말이야." "제 생각에는 우리가 여기서 살아야 할 것 같은데요." 그녀가 다시 되풀이했다. "그건 좀 곤란해. 내가 결정한 장소를 알려주려고 했지만 편지할 시간이 없었어. 얼드브릭험은 인구가 6, 7만 명 정도 되는 큰 도시야. 거기라면 우 리에 대해 아는 사람이 별로 없을 거야." "그럼, 오빠는 여기에서 하던 대성당 공사도 그만뒀나요?" "그래. 좀 성급했지만, 동생의 연락이 갑자기 오는 바람에. 사실 그일은 이번주까지 마무리지었어야 하는 건데, 급한 일이 있다고 통사정을 해서 허가를 받아냈지. 동생이 원한다면 날짜가 문제겠어? 난 그 이상의 것도 버릴 각오가 돼 있어!" "제가 오빠한테 해만 끼치는 것 같아 두렵군요. 성직자가 되겠다는 소망 도, 일도 제가 다 망쳐놨어요, 주드!" "교회 따윈 내게 중요하지 않아. 될대로 되라지! 난 이제 더이상 '천국을 향해 대오를 이루고 있는 성도의 용사들'(브라우닝의 시 '조상과 흉상' 중 에서 인용)이 아니야. 나의 행복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여기 지 상에 있는 거야." "아, 전 너무 나빠요. 이렇게 한 남자의 일생을 뒤집어 놓다니!" 그녀가 말했다. 주드의 음성에 나타나 있는 그런 감정이 그녀의 목소리 에도 실려 있었다. 그러나 기차가 12마일쯤 달리자, 그녀는 다시 마음의 평 정을 회복했다. "저를 떠나게 해주시다니 그분은 너무 좋은 분이에요!" 그녀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리고 여기, 제가 경대 위에서 발견한 편지가 있어요. 오빠 앞으로 보 내는 거예요." "그래요. 그분은 존경받지 못할 사람은 아니오." 주드가 편지를 훑어보면서 말했다. "동생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그분을 미워했던 내가 부끄러워지는군." "변덕스런 여자의 관점이긴 하지만, 저는 갑자기 그분을 사랑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참으로 관대하게도 뜻밖에 절 보내 주셨으니 까요." 그녀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 "하지만 난 너무 차갑고 배은망덕한 여자인가봐요. 이런 관대함까지도 제가 그분의 아내로서,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살게 하지 못했으니 말예요. 후회의 감정도 안 들게 했고, 함께 살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어요. 비록 그의 관용이 좋게 느껴지고 그를 어느때보다도 존경하게 되긴 했지만요." "만약 그분이 덜 친절했거나, 동생이 그분의 뜻에 반대해서 도망쳐 나왔 다면 그런 말은 할 수 없을 거야." 주드가 중얼거렸다. "저는 남편의 뜻을 거역하면서까지 도망치는 짓은 결코 하지 못할 거예 요." 사색에 잠긴 주드의 시선이 수의 얼굴에 머물렀다. 그는 갑자기 그녀에 게 키스를 하더니 다시 한번 키스를 하려고 했다. 그녀가 외쳤다. "안 돼요. 한 번이면 됐어요. 제발, 주드!" "그건 잔인한데." 하지만 그는 그녀의 의견에 따랐다. "이상한 일이 생겼어." 주드가 잠시 침묵한 후 말을 이었다. "아라벨라가 나한테 이혼을 청하는 편지를 보내왔어. 자기에게 친절을 베풀어 달라는 거야. 그녀는 이미 결혼한 그 남자와 정직하고 합법적으로 결혼하고 싶다더군.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는 거야." "오빠는 어떻게 했어요?" "승낙했어. 처음엔 애를 좀 먹이고 재혼에 대해 동의해줄 생각이었지. 하 지만 그녀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어. 그녀도 결국 나와 다를바 없는 인생이잖아! 다행히도, 이 근방에는 나와 아라벨라와의 관계를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니, 절차가 그리 어렵진 않을 것 같아. 만일 그녀가 새 롭게 출발하기를 원한다면 구태여 그녀를 방해할 이유는 없지." "그럼, 오빠도 자유롭게 되는 건가요?" "그렇지. 나도 자유롭게 되는 거지." "우리 차표는 어디까지 끊은 거지요?" 수는 단절감이 밴 어조로 물었다. "얼드브릭험까지, 아까 말했잖아." "하지만 우리가 거기 당도하면 너무 늦겠네요?" "그래. 그래서 이미 대책을 마련해 두었지. '템프런스 호텔'에 전보를 쳐 방 하나를 잡아놓았어." "하나라구요?" "그래, 하나지." 그녀는 그를 바라보았다. "아, 주드!" 그녀를 이마를 객실 칸막이 모서리에 기대며 말했다. "전 오빠가 그럴 줄 알았어요. 제가 오빠를 속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그런 뜻은 아니었어요!" 잠시 이야기가 끊어지는 동안, 주드는 멍청한 표정으로 맞은편 자리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그가 말했다. "... 그러면!" 그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가 무척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고, 수는 그의 뺨에 교녀의 얼굴을 갖다대며 중얼거렸다. "화내지 말아요, 오빠!" "아, 아무렇지도 않아." 그가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알았는데... 별안간 마음이 바뀐거야?" "오빤 저한테 그런 질문할 권리가 없어요. 저는 대답하지 않겠어요!" 그녀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동생, 동생의 행복은 내게 그 무엇보다 중요해. 비록 우리가 너무 자주 싸우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동생의 뜻은 내게 법과 같지. 바라건대, 내가 단지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길! 뭐든, 동생의 뜻에 따르겠어." 한참 심사숙고한 그의 얼굴에는 당황한 빛이 나타났다. "하지만, 설마 동생이 나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겠지. 설마 세상 도덕률의 포로가 되어 버린 탓은 아니겠지! 동생의 가르침 때문 에 나는 도덕을 많이 혐오하게 되었어. 그러나 차라리, 동생이 도덕심 때문 에 그러는 것이기를 바래. 다른 이유로 그러는 거라면 그건 너무 비참한 일이 될 테니까." 이처럼 허심탄회한 순간을 맞아서도 그녀는 자신의 이해 못할, 신비스런 감정을 속시원히 털어 놓을 수가 없었다. "제가 소심해 그럴 거예요." 그녀는 급히 도망치듯 말했다. "위기에 닥쳤을 때 본능적으로 갖게 되는 소심한 탓이겠지요. 오빠뿐만 아니라 저 역시 오빠와 함께 살 완전한 권리가 있어요. 정상적인 혼인관계 에서 한 여자의 아이 아버지는, 자신의 속옷을 재단하는 것처럼 그 여자의 사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그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또는 어 떤 남자인지 등에 대해 시비할 권리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부분적 으로는, 아마도 그분의 관용으로 내가 지금 자유로워졌으니까 좀 엄격해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만일 줄사닥다리라도 걸쳐 놓았고 그분이 권총을 손에 들고 우리를 뒤쫓아왔다면 사정이 좀 달라졌을 거예요. 저도 다르게 행동했을지 모르죠. 그러니 절 재촉하고 비난하진 마세요, 주드! 제 행동에 대해 자신감을 갖고 있지 못한 저를 이해해 줘요. 저도 제가 측은 하고 불쌍한 여자란 걸 알아요. 저의 천성은 오빠처럼 그렇게 열정적이지 는 못해요!" 그는 단지 같은 말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자연스런 거야. 그러나 만일 우리가 연인 이 아니라면, 실제로 아닌 거지. 그러나 필로트슨은 확실히 우리를 연인으 로 생각했을 거야. 자, 여기에 그가 쓴 편지가 있어." 그는 그녀가 가지고 온 편지를 펴서 읽어보라고 주었다. '한 가지 조건을 제시하겠소. 그녀에게 부드럽고 친절하게 대해 달라는 거요. 당신이 그녀를 사랑하고 있는 걸 잘 아오. 당신들은 서로를 위해 태 어났고, 이 사실은 편견 없는 제 3자의 눈으로 볼 때 분명한 사실이오. 당 신은 내가 그녀와 함께 살아온 짧은 기간 동안 늘 '제3의 그림자'였소. 다 시 말해 두지만 수를 잘 보살펴주시오.' "그분은 좋은 사람이에요, 그렇지요!" 그녀는 눈물을 머금은 채 말했다. 생각에 잠겼던 그녀는 덧붙여 말을 이 었다. "그는 완전히 체념하고 저를 보내줬어요. 제가 편안히 떠날 수 있도록 여러 모로 신경을 써주셨고 돈까지도 주겠다고 했어요. 그때는 그를 사랑 할 수도 있을 것 같았죠.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어요. 만일 제가 아내로 서 그를 조금이라도 사랑했다면 당장이라도 그에게 돌아갔겠지만요." "하지만, 돌아가지는 않겠지, 그렇지?" "그건 사실이에요. 아, 너무 무서운 사실이지요! 저는 가지 않아요." "나마저 사랑하지 않는 거지. 나도 반쯤은 두려워!" 그는 토라지듯이 말했다. "아마 사랑하지 않는 건지도 몰라! 수, 때때로 나는 동생 때문에 화가 나 면, 동생은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없는 여자라는 생각이 들어." "그건 안 좋은 말이에요. 그런 말을 하시다니!" 그녀는 말하고 나서 그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져 어둠속을 내다 보았 다. 그리고 몸을 돌리지도 않은 채, 감정이 상한 어조로 말을 덧붙였다. "오빠를 좋아하는 제 마음은 다른 여자들과 달라요. 오빠와 함께 있다 보면 아주 이상하게 즐거워요. 미묘한 즐거움이죠. 더이상 깊이 들어가는 모험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아요. 이런 감정을 더 강렬하게 하려는 시도 말 이에요! 이런 경우 보통의 여자와 남자라면 금방 위험해지겠죠. 그러나 오 빠와 함께 있으면, 오빠의 만족을 초월해서 오빠가 저의 바람대로 해줄 것 같은 신뢰감이 들어요. 이런 얘긴 더이상 그만둬요, 사랑하는 주드!" "물론이야. 그것이 동생 자신을 비난하는 일이 된다면 그만두지. 그러나 수, 동생은 정말 나를 사랑하는 거야? 사랑한다고 말해 줘. 내 사랑하는 것 의 4분의 1만이라도, 아니 10분의 1만이라도 날 사랑한다고 말해 줘. 그러 면 난 만족할 테니까!" "오빠가 키스하도록 해줬잖아요. 그걸로 충분히 말한 거예요." "다만 한 번만이라도 말해 봐!" "그렇게 욕심 많은 소년처럼 굴진 마세요." 그는 뒤로 물러서서 한참 동안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녀가 주드에 게 말해 주었던, 크리스트민스터의 그 불쌍한 청년도 그녀가 이런 식으로 다루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그의 뇌리를 스쳤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이러한 고문을 당하는 운명에 처한 두번째 사람이 아닐까 우려되었다. "이건 이상한 사랑의 도피군!" 그가 중얼거렸다. "아마도 동생은 지금 필로트슨과 나를 주무르고 있는 것 같아. 내 생각 엔 정말 그런 것 같아. 동생이 그렇게 멋지게 앉아 있는 걸 보니까." "자, 화내지 마세요. 더 화를 내면 가만 있지 않겠어요!" 그녀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와 그를 달래며 말했다. "오빠는 조금 전 저한테 키스했지요. 그리고 오빠가 그렇게 하는거, 저는 싫은 내색 보이지 않았어요. 안 그래요, 주드. 다만 또다시 키스당하고 싶 지는 않아요. 지금은, 우리가 처한 상황이 어떤가를 생각해야지요. 안 그래 요!" "그녀가 변명을 늘어놓았을 때, 그는 그녀에게 저항할 수가 없었다. 그녀 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곧 바짝 붙어앉아 손을 잡았는데, 무 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그녀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런 내용의 전보를 치고 난 후라면 전 그 '템프런스 호텔'에 묵을 수 없어요!" "왜 그러는 거야?" "잘 아시면서 그래요!" "그럼 좋아요, 틀림없이 문을 닫지 않은 여관이 어디 있을 거야. 부질없 는 소문 때문에 필로트슨과 결혼한 동생은 결혼 후에는 어떤 것에도 구애 받지 않는 독자적인 의견을 갖고 있는 듯해 보이면서도 내가 아는 그 어떤 여자보다도 사회적 관습의 노예가 된 것 같아!" "정신적으로는 속박받지 않아요. 하지만 아까도 말한 것처럼, 저는 제 의 견을 행동으로 옮길 만한 용기가 아직 없어요. 그리고 전 전적으로 추문 때문에 그이와 결혼한 건 아니에요. 때때로 사랑받고 싶다고 원하는 여자 의 애정이 자신의 양심을 압도하는 걸 느껴요. 그래서 한 남자를 가혹하게 대우했다는 생각 때문에 괴로워하기도 하고, 전혀 사랑하지 않는 순간에도 그 남자만은 자신을 사랑해 주길 원하지요. 그리고 나서 그 남자가 고통스 러워하는 모습을 보고서야 후회하며 자신의 잘못을 고치려고 한 것이지 요." "결론적으로 말하면 동생은 불쌍한 늙은이를 마음대로 희롱하다 그것을 후회하고 보상하기 위해 결혼했지. 그러나 그로 인해 스스로 죽도록 괴로 워하게 된 것이란 말이지." "글쎄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그렇게도 말할 수 있겠죠. 추문 탓도 있었 고, 게다가 오빠가 고백했어야 할 일을 숨겼던 탓도 있었어요." 그녀는 그의 말에 분개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달래려 는 듯 그가 말했다. "신경쓰지 말아! 동생이 그러고 싶으면 날 교수형에 처해도 좋아! 잘 알 잖아. 동생이 무슨 일을 하든 동생은 내게 이 세상의 전부나 다름없어!" "전 아주 나쁘고 무정한 여자예요. 오빠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저도 알아요!" 그녀는 말하고 나서 넘치는 눈물을 감추려고 애썼다. "사랑스런 수, 동생은 내 사람이오. 설사 창이 날아오고 불이 내려와도, 현재나 미래나 동생은 나와 떨어질 수 없어!" 수는 여러 가지 면에서 지적인 여자였지만 이런 면에 있어서는 아이 같 은 구석도 있었다. 그들은 사이가 좋아졌고 여행의 목적지에 다달았다. 그들이 북웨섹스의 주청 소재지인 얼드브릭험에 도착한 것은 10시쯤이었 다. 수가 '템프런스 호텔'에는 가지 않겠다고 해서 주드는 다른 곳을 물색 하고 있었다. 젊은 심부름꾼이 자진해서 호텔을 찾아보겠다고 나섰고, 그는 짐을 손수레에 싣고는 멀리 조지 여관으로 두 사람을 안내했다. 이곳은 언 젠가, 주드가 오랫만에 아라벨라를 만날 기회가 있어 함께 투숙했던 곳이 었다. 그러나 그들이 다른 문으로 들어갔고, 수에게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 에 주드는 그러한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들은 각기 다른 방을 잡아 놓고 늦은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주드가 잠시 자리 를 비운 사이 시중들던 여종업원이 수에게 말을 건넸다. "부인, 동행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전에도 한번 지금처럼 늦은 시간 에 아내와 투숙했었다는 걸 알아요. 오늘밤의 두 분처럼 말이죠. 아무리 봐 도 손님하고는 다른 여자분이었어요." "어머, 그래요?" 수는 쓰라린 심정으로 말했다. "뭔가 착각하고 계신 것 같은데요! 그게 얼마 전이죠?" "한두 달쯤 되었습니다. 예쁘장하고 통통한 여자였어요. 바로 이방에 묵 으셨죠." 주드가 돌아와 저녁식탁에 앉았을 때, 수는 의기소침해지고 비참해 보였 다. "주드." 그날밤 층계참에서 그들이 헤어질 때 그녀가 애원하듯이 말했다. "우리는 전처럼 행복하지가 않아요! 여기서 자는 게 싫어졌어요. 이곳이 너무 싫다구요! 그리고 오빠도 전과 달라 보여요!" "왜 이리 마음이 변한 거야?" "여기로 저를 데려오다니, 너무 잔인해요!" "뭐요?" "오빤 지난 번에 아라벨라와 함께 여기 왔었지요. 바로 여기에요. 그 사 실을 제가 지금 여기에 서서 말하고 있다니!" "저런, 그래..." 주드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래, 똑같은 곳이군! 정말 몰랐어, 수. 하지만 우린 친척으로서 함께 머 물기 위해 여기 온 거니까 그렇게 잔인한 짓은 아닐 거야." "여기 온 게 얼마 전이죠? 말해 보세요!" "크리스트민스터에서 동생을 만나기 전 날이지. 우리가 메리그린으로 함 께 돌아간 때였지. 내가 그녀를 만났었다고 동생한테 말했었잖아." "그래요, 오빠가 그녀를 만났다고 말했었지요. 하지만 모든 것을 제게 털 어놓진 않았어요. 오빠는 그때 사이가 소원해진 상태에서 만났다고 했어요. 부부로서 만난 것도 아니었을 뿐더러 그녀와 다시 어울리게 되었다는 말도 하지 않으셨어요." "우린 다시 화해한 게 아니었어. 이봐요, 수, 더이상은 설명할 수 없지 만." 그는 슬프게 말했다. "오빠는 나를 가식으로 대했어요. 오빠는 제 마지막 희망이었는데! 전 결 코 잊지 못할 거예요, 결코!" "하지만 동생의 희망에 따른 거잖아, 수. 우린 단지 친구 사이일뿐, 연인 이 아니라면서! 동생은 너무 변덕스럽군." "친구라도 질투 같은 건 할 수 있어요!" "그렇지 않아. 동생은 내게 하나도 양보하지 않으면서 나보곤 모든 것을 양보하라고 하다니, 동생은 그 당시 남편과 잘 살고 있었잖아." "아니에요, 그렇지 않았어요, 주드. 아, 오빠는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아무리 오빠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나를 여기로 데려온 건 오빠 예요." 그녀가 너무 흥분한 상태여서 그는 손님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그녀를 방 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이 방이었나요? 그렇군요. 오빠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지요! 이 런 방을 내 방으로 하진 말았어야지요! 아, 그 여자와 다시 합치다니, 오빠 는 배신자예요! 난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기까지 했는데!" "그렇지만, 수. 그녀는 결국 나의 합법적인 아내였기 때문에, 설사 아무 리..." 수는 미끄러지듯 무릎을 꿇고 침대에 얼굴을 묻은 채 울었다. "이렇게 외골수 인지는 몰랐어. 그리고 이렇게 심술ㄱ은 감정을 갖고 있 는지도." 주드가 말했다. "동생에게는 도저히 접근할 수가 없군. 누구든 말이야!" "아, 오빠는 제 기분을 너무 몰라주는군요! 왜 모르지요! 오빠는 왜 그렇 게 둔하세요! 난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는데!"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다구?" "말로는 설명할 수가 없어요!" 그가 그녀의 감정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조금 은 이해한다고 믿었고 사랑한다고 믿었다. "저는, 당시 오빠가 저 외엔 어느 누구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또 그렇게 해주기를 바랐어요." 수는 말을 이었다. "그건 사실이야. 난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어!" 주드도 그녀 만큼이나 난처해하며 말했다. "하지만 오빠는 그 여자를 대단히 생각하고 있음에 틀림없어요! 아니라 면..." "아니오, 나는 그럴 필요가 없었어. 동생 또한 날 이해하지 못하는군. 여 자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어! 왜 아무것도 아닌 일로 그렇게 화를 내는 거 야?" 수는 침대에서 얼굴을 쳐들고 화난 듯이 말했다. "만일 이런 일만 없었어도 전 오빠의 계획대로 '템프런스 호텔'로 갔을 거예요. 왜냐하면 저는 오빠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시작했으니까요." "그건 중요치 않아!" 주드가 소원한 감정으로 말했다. "물론 저는, 그 여자가 여러 해 전 오빠를 떠난 뒤로 오빠의 진정한 아 내가 결코 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제 생각으로는, 오빠가 그 여자와 헤 어지고 제가 남편과 헤어짐으로써 결혼을 끝난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더이상 얘기하면, 아라벨라를 욕하게 될 뿐이야.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는 않아." 그가 말했다. "하지만 동생에게 이것 한 가지는 꼭 짚고 넘어가야겠소. 이것으로 문제 가 해결될 수도 있지. 즉, 그녀는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는 거요. 실제적으 로 말이오. 그 여자와 이곳에 왔다 간 뒤 비로소 안 사실이지만."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구요? 그건 범죄예요. 세상 법대로 따지자면요. 아 무도 그런 걸 믿지 않을 거예요." "자, 이제야 동생은 자신을 회복하기 시작했군. 그래, 그건 범죄지. 동생 이 그걸 주장하지는 않았지만 두려워하며 인정하는 것처럼 말이야. 하지만 나는 결코 그녀를 욕하지는 않겠어. 그 남자와 합법적으로 재혼하도록 내 게 이혼해 줄 것을 요청해 온 건 분명히 양심의 가책을 느꼈기 때문이겠 지. 그러니 이제 내가 그 여자를 다시는 안 만날 거라는 것쯤은 동생도 알 수 있겠지?" "그러면 오빠는 그녀를 만났을 때 정말로 이런 사실에 대해 아무것도 알 지 못했다는 건가요?" 수는 일어나면서 전보다는 상냥하게 말했다. "몰랐어. 이런 모든 사실들을 고려하면 동생이 화낼 일은 없어, 수!" "화내지 않았어요. 하지만 '템프런스 호텔'에는 가지 않겠어요!" 그는 웃었다. "상관없어! 동생이 내 곁에 있기 때문에 나는 굉장히 행복해. 나같은 속 물에게 동생은 과분한 사람이야. 동생이라는 정령은, 동생이라는 육체의 해 탈자는, 귀엽고 사랑스럽고 흥미를 유발하는 영혼이오. 보이지 않는 육체, 창조물. 내가 팔로 동생을 안으면 마치 공기를 스쳐가는 것처럼 동생을 뚫 고 나가버릴 것만 같아. 나의 이 아둔한 행동을 용서해 줘! 실제로는 남남 이면서도 우리가 서로 종형제간이라 일컬었던 것은 사실은 하나의 함정에 불과했어. 우리들 양친 사이에 적의가 있었을 뿐이지. 그만큼 동생이라는 여자는 내 눈에 짜릿한 존재였어. 대개의 첫만남에서 느끼게 마련인 단순 한 호기심보다 훨씬 강렬한 자극을 주었지." "셸리의 시, '에피사이키디언'(1921, 이상미 탐구와 자유연애를 노래한 604행의 장시)의 아름다운 일절은 마치 저를 말하는 것 같네요?" 그녀가 나란히 서 있는 주드에게 기대면서 말했다. "그 일절을 모르세요?" "나는 시는 거의 몰라." 그는 슬프게 대답했다. "그래요? 이런 거예요." 환상을 좇아 저멀리 높이 헤매고 다니던 내 영혼이 가끔 만나는 한 존재가 있었노라. 현세의 인간이기에는 너무 고상한 하늘의 천사는 찬란한 여인의 모습으로 둘러싸여 있었노라. "아! 너무 자화자찬했나 봐요, 그만 두겠어요! 하지만 그게 나라고 말해 줘요! 그건 나라고요!" "그것은 바로 동생이야, 내 사랑. 정확히 동생과 같아!" "그럼 오빠를 용서하겠어요! 그리고 바로 여기 한 번 키스하게 해드리지 요. 별로 길지 않게 말이에요." 그녀는 조심스럽게 손가락 끝으로 자기의 볼을 가리켜 보였다. 주드는 시키는 대로 했다. "오빠는 저를 무척 좋아하시지요, 그렇지요? 오빠는 알고 있지요?" "그럼, 내 사랑!" 그는 한숨을 쉬면서 그녀에게 잘 자라는 인사말을 했다. 4-6 필로트슨이 초등학교 교장 선생으로 그의 고향읍인 셰스톤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주민들의 관심을 끌어 옛날의 추억을 환기시켰다. 주민들은 그가 딴 곳에서 근무할 때처럼 그의 학식을 높이 사지는 않았지만, 진심으로 경 의를 표했다. 그가 귀향한 지 얼마 안 되어 예쁜 아내를 맞이했을 때, 주민 들은 그녀의 지나친 미모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긴 했지만 두 내외가 정착 하게 된 것을 기뻐했다. 수가 집을 떠나고 나서도 한참 동안 마을 사람들은 그녀의 부재에 대해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녀의 부재로 인해 보조교사가 바뀌었음에 도, 불과 5, 6일만의 짧은 기간을 거쳐 일어난 변화였긴 했지만 사람들은 의심하지 않았다. 수의 자리가 임시직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났을 무렵, 필로트슨이 아내의 거처를 모르고 있다는 사연을 지나 가는 말처럼 친척들에게 털어놓았을 때,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한 마을 사 람들은 마침내 수가 부정한 짓을 저지르고 도망가 버린 것이라고 대담하게 단정짓게 되었다. 여기엔 학교일에 무기력과 무관심을 보인 교장 선생의 태도도 일조를 했다. 필로트슨은 친구인 질링엄 외에는 이 문제에 대해 가능한한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수의 행적에 관한 오해가 널리 퍼지자 정직하고 직선적인 그는 더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어느 월요일 아침 이사장이 학교를 방문해 교무를 시찰하고 난 뒤, 아이 들이 없는 조용한 곳으로 필로트슨을 데리고 갔다. "미안합니다만, 필로트슨 선생. 모든 사람들이 선생의 가정문제에 대해 떠들고 있는데 알고 계십니까? 선생의 부인께서 잠시 외출한 게 아니라 애 인과 눈이 맞아 줄행랑을 쳤다는 거 말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정말 안 된 일이오만." "아닙니다." 필로트슨이 말했다. "그 일에 관해서라면 아무 비밀도 없습니다." "부인께서 친구를 방문하러 간 건가요?" "아닙니다." "그렇다면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그녀가 가버린 상황을 보통 남편들이었다면 이해할 수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내가 동의한 일입니다." 이사장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이 말은 모두 사실입니다." 필로트슨이 성급하게 말을 이었다. "집사람이 애인과 함께 떠나게 해달라고 요청해왔기 때문에 그렇게 해준 겁니다. 왜냐구요? 그녀는 성인입니다. 그 일은 그녀 자신의 양심에 관한 문제일 뿐, 내 문제는 아닙니다. 내가 집사람의 교도관은 아니잖습니까? 더 이상 설명할 수가 없군요. 더이상은 묻지 말아 주십시오." 지나가던 아이들이 두 사람의 심각하게 굳어 있는 얼굴을 알아차리고는 집으로 돌아가 부모들에게 필로트슨 선생의 부인한테 뭔가 새로운 일이 생 긴 것 같다고 말했다. 게다가 막 졸업한 뒤 필로트슨 선생의 하녀로 일하 고 있던 소녀가 마지막 날 있었던 일들을 모두 발설하고 말았다. 필로트슨 이 부인을 도와 짐을 쌌다는 것과 얼마든지 필요한 만큼 돈을 주겠다고 말 했다는 것, 또 그 젊은 애인에게 친절한 편지를 써서 집사람을 잘 돌봐달 라고 당부했다는 것 등등을 속속들이 털어놓았던 것이다. 이사장은 이 문 제를 숙고한 끝에 학교측의 다른 이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마침내 필 로트슨한테 그들과의 비공식 모임에 나오도록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회의 는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회의가 끝난 후 귀가한 필로트슨은 여느때처럼 창백하고 지친 표정이었다. 질링엄이 그의 집안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글쎄, 자네가 말했던 대로야." 필로트슨이 지친 몸을 의자에 던지면서 말했다. "고통받는 집사람한테 자유를 준 내 행위가 물의를 일으켰다며 학교를 떠나라고 하는군. 그들은 내가 집사람의 간통을 너그럽게 봐줬다고 생각하 네. 그러나 나는 사임하지 않겠어!" "나 같으면 사임하겠네!" "난 그렇게 못해. 그 일은 그들과 상관없는 일이야. 공적인 일과는 무관 한 일이지. 정 그들이 원한다면 강제로 날 해고할 수는 있겠지." "만일 자네가 그 일을 문제삼으면 서류상에 기록되고 말 거야. 그렇게 되면 자네는 결코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갈 수도 없게 되네. 그들은 사표를 보여야 할 선생인 자네가 교육에 미칠 영향과 마을 사람들의 풍기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서 그러는 걸 거야. 일반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자네의 행 동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네." 그러나 이 친절한 충고에도 필로트슨은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상관없어." 그가 말했다. "해고되지 않는 한 난 나가지 않겠네. 만일 내가 사임한다면, 난 집사람 의 행동이 잘못됐다는 걸 인정하는 꼴이 될 거야. 그런데 난 정직한 인간 성에 기초하여 볼 때 조금도 부끄럽지 않은 짓을 했다는 확신이 날로 드 네." 질링엄은 자신의 고지식한 친구가 이러한 입장을 계속 유지할 수는 없을 거라고 여겼지만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 있는 동안, 불과 15분 정도밖에 안 되었지만, 학교에서 보내온 해직 통고문이 도착했다. 필 로트슨이 자리를 뜬 후 이사들이 남아 작성한 문서였다. 편지 말미에는, 필 로트슨이 면직을 수락할 수 없다면 공개적인 회의를 가질 수도 있다고 제 안했다. 그가 너무 지쳐 있었고 피곤해 보였기 때문에, 그의 친구는 집에 있으라고 만류했지만 그는 결국 그 회의에 참석했다. 그가 이사회의 결정 에 이의를 제기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일어섰을 때, 그는 그의 친구에게 말했던 것처럼 확고하게 논지를 펴나갔으며 더욱이 이 문제는 그들이 관여 할 문제가 아닌 사적인 가정 문제라며 논쟁을 이끌었다. 그들은 이 의견을 무시하고, 일개 교사의 변난 개인적인 행동이라 해도 학생들의 풍기에 영 향을 주는 이상 전적으로 자신들의 감독 범위에 들어간다고 주장했다. 필 로트슨은 자연스런 자비의 행위가 도대체 어떻게 풍기문란의 범주에 드는 지 알 수가 없다고 반박했다. 셰스톤의 덕망있고 존경받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필로트슨의 이 의견에 반대하고 나섰다. 그러나 놀랍게도 약 10여명 정도의 주민들이 그를 옹호 하며 편들고 나섰다. 셰스톤이 여름과 가을 몇 달 동안 웨섹스의 여기저기에서 벌어지는 수많 은 장날이나 시장에 종종 나타나는 희한하고 흥미있는 뜨내기 패들의 정박 지라는 것은 이미 말한 바 있다. 비록 필로트슨이 이 사람들 중 어느 누구 에게도 말을 건네본 적은 없지만, 그들은 지금 기특하게도 그를 옹호하고 나섰다. 이 친구들은 두 명의 장사꾼, 사격장 주인, 탄환을 넣는 여자들, 2 인조 권투사, 기관차가 달린 회전 유희대의 지배인, 자칭 과부라고 부르는 두 명의 떠돌이 빗자루 장수, 생강빵집 주인, 배모양의 그네집 주인, 그리 고 '힘겨루기'집 주인 등등이었다. 이 관대한 지지자들과 순조롭지 못한 부부생활의 경험으로 독자적인 판 단력을 가진 사람들이 나와서 그에게 따뜻한 악수를 청하기도 했다. 그들 이 이사들을 향해 자신들의 생각을 강하게 피력하는 바람에 상반되는 주장 은 격렬한 논쟁을 일으켰고 결국은 난투가 벌어졌다. 칠판이 부서지고 교 사 유리창 3개가 깨졌으며, 읍위원의 셔츠 앞부분에 잉크병이 엎질러졌다. 또 교구위원은 팔레스티나 왕국의 지도걸이에 얻어맞아 그의 머리가 바로 지도의 사마리아 비장을 뚫고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눈에 멍이 들고 코피가 났다. 코피를 흘린 사람 중의 하나가 목사였다는 사실에 는 모두가 섬뜩했다. 필로트슨의 편에 서서, 인습에 구속받지 않는 굴뚝 청 소부가 정면으로 그를 구타했기 때문이었다. 필로트슨은 교구장의 얼굴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을 때,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이런 상황에 대해 거의 신음소리를 내면서 한탄했고, 사직 권고를 거절한 사실을 후회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너무 아파 다 음날 아침이 되어서도 그는 침대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어처구니없고 우울한 이 사건이야말로 그에게는 심각한 병의 시작이 되 었다. 그는 결국 직장이나 가정에서 자신의 인생이 실패하고 비참하게 되 었다는 심경에 빠져 외롭게 침대에 누워 있었다. 저녁에는 질링엄이 자주 그를 찾아왔다. 가끔 수의 이름도 거론되었다. "그 여자는 나한테 조금도 신경쓰지 않겠지." 필로트슨이 말했다. "그 여자는 왜 그래야 하지?" "그녀는 자네가 아픈 것을 모르고 있겠지." "모르는 게 서로를 위해 좋을지도 몰라." "애인하고 어디서 살고 있대?" "멜체스터겠지. 적어도 얼마 전까지는 그 남자가 거기에 살고 있었거든." 질링엄은 집에 돌아와 깊이 생각한 끝에, 편지가 수에게 들어가기를 바 라면서 익명으로 편지를 썼다. 편지는 사교관구의 수도인 멜체스터의 주드 앞으로 된 봉투에 넣어서 부쳐졌다. 그곳에 도착된 편지는 북웨섹스의 메 리그린으로 회송되었다가 다시 주드의 현재 주소를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 인, 대고모를 돌보아주었던 에드린에 의해 얼드브릭험으로 전해졌다. 그로부터 3일 후 저녁때, 태양이 블랙무어 저지대 너머로 저물어 가고 그 골짜기에 사는 사람들의 눈에 셰스톤의 창문들이 불길의 혀처럼 보일 즈음, 병상에 누운 필로트슨은 누군가가 집으로 들어와 침실 문을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용히 문이 열렸고 수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가벼운 여름옷을 입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출현은 마치 유령 같았고 또 나방이 훨훨 나는 것도 같았다. 그녀를 알아본 필로트슨의 얼굴 은 붉어졌다. 그는 말하고 싶은 충동을 참고 있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이 있어서 여기 온 건 아니에요." 수가 겁에 질린 얼굴을 그에게서 돌리며 말했다. "하지만 당신이 아프다고 들었어요. 아주 아프다고요. 남녀 사이에는 육 체적인 사랑과는 다른 감정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당신도 인식하고 있다 고 생각하기 때문에 제가 이렇게 온 거예요." "난 많이 아프지는 않아, 그리운 친구. 단지 기분이 좋지 않을 뿐이야." "그런 줄 몰랐어요. 몹시 편찮으시지 않아도 제가 올 수는 있는 거잖아 요." "그래요... 그래. 그러나 당신은 오지 않는 편이 나았을 거요! 내 말은 당 신의 방문이 조금 이르지 않았나, 그런 말이지. 이왕 온 거니까, 잘된 일이 라 생각합시다. 당신은 학교일에 관한 소식은 못 들었겠군?" "네, 뭔데요?" "그냥, 이곳을 떠나 딴 곳으로 갈 작정이오. 이사들과 뜻이 맞지 않아 서 로 헤어지기로 한 거지. 그게 전부요." 수는 그가 자기를 보내준 대가로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 지금 이순간 이나 그후로도 깨닫지 못했다. 이런 생각은 그녀의 마음에 단 한번도 스쳐 간 적이 없는 듯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녀는, 셰스톤으로부터 어떤 소식도 들은 것이 없었다. 그들은 부질없고 사소한 주제들에 관해 이야기했다. 필로트슨이 마실 차 가 나왔을 때, 그는 어린 하녀에게 수를 위해서도 차를 준비해 달라고 말 했다. 그 어린 하녀는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그들의 일에 관심이 많 았다. 그래서 소녀는 계단을 내려가면서도 눈을 치켜뜨고 기묘한 표정으로 귀를 쫑긋 세웠다. 그들이 차를 마시는 동안 수는 창가로 가서 상냥하게 말했다. "너무 아름다운 석양이네요, 리처드." "석양 빛이 계곡의 안개를 통과하기 때문에 여기서 보는 것이 더 아름답 지. 하지만 내가 누워 있는 어두운 구석까지는 빛이 비치지 않기 때문에 난 볼 수가 없군." "이 특별한 광경을 보고 싶지 않으세요? 마치 하늘이 열린 것 같아요." "아, 보고 싶어! 하지만 그럴 수가 없소." "보실 수 있게 도와드릴게요." "아니오, 침대는 움직일 수 없게 되어 있소." "제가 어떻게 하는지 두고 보세요." 수는 거울이 있는 데로 가서 손으로 그것을 가져다가 창문 옆의 빛을 반 사시킬 수 있는 지점에다 놓았다. 그리고 빛이 필로트슨의 얼굴을 비출 때 까지 거울을 움직였다. "자, 이젠 저 커다란 붉은 태양을 볼 수 있지요!"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이 빛이 나와 당신에게 활기를 줄 거라고 확신해요. 아니, 그렇 게 되길 바라요!" 그녀는 마치 그를 위해서라면 아무리 잘해 줘도 부족하다는 듯이 어린아 이의 뉘우침 같은 친절함으로 말했다. 필로트슨은 슬퍼 보이는 듯한 웃음을 지었다. "당신은 참 이상한 사람이오!" 그가 중얼거렸다. 마치 태양이 그의 눈속에서 이글거리는 것 같았다. "그런 일이 있는 후에도 날 찾아와 주다니!" "우리 옛날로 돌아가지 말아요!" 그녀는 재빨리 말했다. "제가 여기 온 걸 주드는 모르고 있기 때문에 기차역까지 가는 마차를 타야만 해요. 제가 출발할 때 그는 밖에 있었거든요. 그래서 난 곧 집으로 돌아가야 해요. 리처드, 당신이 좋아져서 저는 기뻐요. 당신, 저를 미워하지 않겠지요, 그렇지요? 당신은 제게 다정한 친구처럼 대해 주셨었지요!" "당신이 그렇게 생각해 주니 나도 기뻐요." 필로트슨이 쉰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난 당신을 미워하지 않소!" 그들이 띄엄띄엄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 동안 음침한 방안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촛불이 켜졌고 그녀가 떠날 시간이 되자 그녀는 그의 손에 자 기의 손을 놓았다. 사실은 그의 손을 스치고 갔을 뿐이지만. 그녀가 거의 문을 닫으려고 하자 그가 그녀를 불렀다. "수!" 그는 자기로부터 돌아선 그녀가 눈물을 흘리고 입술을 떨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를 다시 불러들인다는 것은 변변치 못한 술책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는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가 되돌왔다. "수." 그가 중얼거렸다. "우리 화해하고 여기서 함께 살면 안 될까? 난 당신을 용서하고 모든 허 물을 탓하지 않겠소!" "아, 당신은 그렇게 할 수 없어요. 할 수 없다구요!" 그녀가 서둘러 말했다. "이제 와서 그런 일을 너그러이 용서할 수는 없어요." "당신 말은, 지금은 그 남자가 당신의 사실상 남편이라는 말인가?" "그렇게 추측해도 좋아요. 그 사람은 그의 아내인 아라벨라와 이혼 수속 중이니까요." "그의 아내라구! 그에게 아내가 있다니, 나는 전혀 몰랐던 일이군." "잘못된 결혼이었죠." "당신의 결혼처럼 말이지." "저의 결혼처럼요. 그는 그 일을 자기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아라벨라를 위해 하고 있어요. 그 여자가 편지를 써서 자기에게 친절함을 베풀어 달라 고 말했대요. 그렇게 하면 그녀도 결혼할 수 있고 체면도 유지하며 살 수 있다나요. 그래서 주드가 동의한 거예요." "아내에게... 아내에게 친절을 베푼다고. 아, 그래. 완전히 해방 시켜주는 게 친절을 베푸는 거지. 하지만 그 말의 어감이 마음에 들지 않는군. 용서 해 줄 순 있지만, 수." "아니에요, 아니에요! 당신은 이제 저를 돌아오게 할 수는 없어요. 제가 그런 짓을 하게 된 것부터가 너무 사악한 짓이었어요." 필로트슨이 친구의 얼굴로부터 남편의 얼굴로 바뀌게 되자 그녀의 얼굴 엔 공포의 빛이 나타났다. 그래서 그녀는 서둘러 방어선을 치면서 남편을 물리쳤다. "지금 가봐야만 해요. 다시 올게요. 그래도 되겠지요?" "지금도 당신에게 가라고 말하진 않았소. 나는 당신에게 머물 수 없겠느 냐고 물어봤을 뿐이오." "고마워요, 리처드. 하지만 떠나야 해요. 당신이 그렇게 아프시지는 않으 니까. 저는 더이상 머물러 있을 수가 없어요!" "이재는 완전히 그의 것이 된 거야. 입술부터 발뒤꿈치까지!" 필로트슨이 말했다. 그러나 문이 닫히는 소리에 묻혀 너무 희미하게 들 렸기 때문에 그녀는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수는 필로트슨의 감정에 대 한 반동적인 변화가 생기는 것을 두려워했을 것이다. 그리고 바뀐 새 남편 에 대한 정절도 남자의 관점에서 볼 때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일관됨이 결 여된 것인가를 전남편에게 알리게 되는 것이 약간 부끄러웠을 것이다. 어 쨌든 이 두 가지 감정이 함께 합쳐져, 필로트슨의 말은 수에게 전달되지 못했다. 그는 지옥에 떨어진 사람처럼 침대에 누워, 자신의 성을 가진 여자 가 예쁜 옷을 입고 그의 집을 나가 서둘러 애인에게 돌아가는 모습을 미리 속으로 그려보았다. 질링엄은 필로트슨의 사건에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 있어고, 또 그를 몹 시 걱정했기 때문에 일주일에 두세 번씩 셰스톤으로 왔다. 학교에서 힘든 일이 끝나면 차 시간과 저녁 사이에 왕복 9마일을 걸어야 했지만 그럼에도 그는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 수의 방문이 있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가 들렀을 때 그의 친구는 아래층에 있었다. 질링엄은 필로트슨의 기분이 다소 안정적이고 침착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지난번 자네가 다녀가고 나서 그녀가 왔었네." 필로트슨이 말했다. "설마 자네 부인은 아니겠지?" "그녀였네." "아! 화해한 건가?" "아니야... 집사람은 그냥 왔어. 그녀의 흰 손으로 내 베게를 만져주는 등 30분 정도를 지각 있는 간호사처럼 굴더니 가버렸어." "그래? 이런 경우가 있나! 막 돼먹은 계집 같으니!" "자네 무슨 소릴 하는 건가?" "아, 아무것도 아닐세." "무슨 말이었느냐구?" "내 말은, 남을 애태우게 하는 변덕스런 여자라는 거지! 만일 그 여자가 자네의 아내만 아니었다면..." "그녀는 내 아내가 아니네. 성과 법적인 문제만 제외한다면 다른 남자의 아내지. 그래서 나는 쭉 생각중이라네. 그녀와 대화를 나누면서 떠오른 거 지만, 그녀에게 친절을 베푸는 의미에서 법적인 끈을 풀어주어야만 할 것 같네. 아주 이상한 일이지만 나는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네. 그녀를 용서해 준다고 말하고 나서 함께 머물러 달라는 내 청원을 그녀가 거절하고 가버린 뒤 든 생각이지만. 지금이야말로 그녀를 해방시켜 줘야 할 때라고 믿네. 사실상 그녀가 내게 속해 있지도 않은데 묶어놓고 있는다 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나? 나는 알고 있네. 절대로 확신하네. 이것 은 그 여자에게 최대의 자비가 된다는 것을. 그녀는, 동료로서는 나에게 동 정을 베풀고 가련하게 여겨 나를 위해 눈물도 흘릴 줄 알지만 남편으로서 의 나는 참기 힘들어하네. 그녀는 나를 싫어하지. 터놓고 말하지만 아내는 나를 혐오하네. 그래서 내가 선택해야 할, 남자답고 위엄 있으며 자비심 많 은 유일한 행동은, 내가 벌여놓은 일을 내가 마무리해야 한다는 것이지. 그 리고 세속적인 이유에서 말해도 나와 인연을 끊고 독립해서 사는 것이 그 녀로선 더 나을 거네. 그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서로를 위해 최선의 길을 선택한 죄로 나는 이제 위기에 봉착했네. 내게 남은 것은, 발밑에서 무덤까지 보이는 것은 다만 찢어지게 가난한 미래만 남았다는 거지. 나는 앞으로 교사직도 수행할 수 없을 테니까. 여생을 보낼 만한 일거리가 충분 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직업마저 잃고 말았네. 하지만 난 잘 참고 견딜 거야. 실업을 견디어내는 데도 독신이 낫겠지. 아내를 완전히 풀어주겠다는 생각을 갖게 한 것은 그녀가 가지고 온 소식 때문이었는데, 주드 역시 나 와 같은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고 있다는군." "아, 그 남자도 배우자가 있었던가? 이상한 한쌍이군, 그 연인들은!" "글쎄, 그 일에 대해 자네의 의견을 듣고 싶진 않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아내를 풀어주는 것만이 그녀를 온전하게 한다는 거지. 그래야만 그 녀가 여태까지 꿈속에서도 생각하지 못한 행복의 기회를 열어줄 수 있을 거고, 또 그렇게 되면 두 사람은 결혼도 할 수 있을 거야. 진작 했어야 할 결혼을 이제 하게 되는 거지!" 질링엄은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었다. "나는 자네의 그 행위에 찬성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네." 그는 온화하게 말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가 동의하지 못하는 의견에도 경의를 표시하는 남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네의 결심은 옳다고 생각하네. 만일 자네가 결심한 대로 실행 할 수만 있다면 말이네. 그러나 실행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군." 제 5 부 얼드브릭험, 스톡 베어힐스, 케넷브리지와 쿼터쇼트에서 그대의 영묘한 부분과 그대 속에 섞여 있는 모든 불꽃 같은 부분들은, 천성적으로 하늘로 오르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주의 성 향에 의해 흔히 육체라고 불리는 복합체의 지배를 받는다. - M. 안토 니누스 5-1 잇따른 사건들과 함께 쓸쓸한 몇 달이 계속해서 지나가고 다음 해 2월의 어느 일요일이 찾아왔을 때, 질링엄이 품었던 의혹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는 머지않아 분명해질 것이었다. 수와 주드는 얼드브릭험에서 살고 있었는데, 두 사람의 사이는 지난 해 에 수가 셰스톤을 떠나 그에게 갔을 때의 관계와 똑같은 상태였다. 법정에 서의 소송 절차는 이해하지 못할 공문서가 가끔 날아오는 정도였으므로 별 로 절실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들 두 사람은 주드의 문패가 붙은 작은 집에서 평상시처럼, 아침식사 때 만났다. 주드는 이 집을 연 15파운드로 세냈고, 기타 지방세와 국세로 3 파운드 10실링을 냈다. 그리고 그의 대고모가 사용하던 오래되고 어수선한 가구류를 비치했다. 그것들을 메리그린으로부터 운반만 하는 데도 거의 새 로 사는 것만큼의 비용이 들었다. 수는 집을 지키며 모든 살림을 맡아 했 다. 주드가 방안으로 들어섰을 때 수는 방금 도착한 편지를 들어 보였다. "그런데, 무슨 내용이지?" 그는 그녀에게 키스를 하고 나서 물었다. "필로트슨이 수 필로트슨 부인과 폴리를 상대로 반년 전에 공시했던 잠 정 이혼판결이 결국 확정되었다는 거예요." "아..." 주드는 의자에 앉으면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 주드가 아라벨라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도 1, 2개월 전쯤 같은 결과가 되 었었다. 이들 두 건의 소송은 하찮은 사건이어서 신문의 기사거리도 되지 못했고 단지 변호사가 할당되지 않는 기타의 많은 사건들의 긴 명단 속에 이름이 올라있을 뿐이었다. "자, 그렇다면, 수. 어쨌든 이제는 하고 싶은 대로 할 수가 있겠군!" 그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애인을 바라보았다. "우리-오빠와 나-는 이제 한번도 결혼한 적이 없는 사람처럼 자유롭게 되었다는 건가요?" "자유롭지. 다만 목사님은 우리가 재혼하는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 반대 하기 때문에 누군가 다른 목사에게 결혼식을 넘기게 될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난... 궁금해요. 오빠는 정말 우리가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하세 요?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것은 알지만요. 하지만 나의 자유가 부부관계를 가장했기 때문에 얻은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네요!" "어떻게?" "글쎄요. 우리에 대한 진실이 알려졌다면 이런 판결이 공시되지는 않았 을 거예요. 이렇게 된 것은 단지 우리가 변호사를 내세우지 않았기 때문에 재판소에서도 잘못된 추정을 하게 된 것이 아닐까요? 그러므로 나의 자유 는 아무리 적절하다고 해도 합법적이진 못하겠지요?" "글쎄, 그렇다면 너는 왜 이번 일을 거짓으로 가장하자고 했지? 너는 너 스스로를 비난하고 있을 뿐이야." 그는 짓 게 말했다. "주드, 제발 그러지 말아요! 오빠는 아직 그 문제에 대해 초조하게 서둘 면 안 돼요. 오빠는 나를 이대로 받아주어야 해요." "알았어, 수. 그렇게 할게. 네가 옳을지 모르지. 그 문제의 핵심에 대해서 꼭 무엇인가를 증명해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 확정판결을 위해 추론하는 것은 법률가의 일이야. 어쨌든 우리는 동거하고 있는 거야." "그래요. 비록 그들의 억측과는 다르지만요." "한 가지는 분명해. 어떤 식으로 법률상의 명령이 떨어지든 결혼은 현실 적으로 붕괴될 때 없어지는 것이 확실해. 우리처럼 가난하고 그늘에서 사 는 서민들에게는 한 가지 이점이지. 이번과 같은 일이 대단히 거칠고 재빠 르게 해결된다는 것이지. 나와 아라벨라의 경우도 똑 같았지. 그녀의 범죄 적인 재혼이 혹시 발각되어 처벌받지나 않을까에 대해 나는 걱정했지만 어 느 누구 한 사람 그녀에게 흥미 같은 것을 품지 않았고, 묻는 사람도 없었 어. 의심하는 사람도 없었지. 만일 우리가 특권이 있는 귀족들이었다면 우 린 분명히 곤경에 빠져 몇 날 몇 주를 조사받게 되었을 거야." 주드가 들떠서 떠들어대는 해방감 속으로 수도 점점 빠져들어갔다. 그녀 는 저녁은 차가운 음식으로 먹는 한이 있더라도 들판으로 산책을 나가자고 제안했다. 주드는 그말에 동의했다. 그리고 수는 위층으로 올라가서 출발 준비를 하고 그녀의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화려한 겉옷을 걸쳤다. 주드도 더 밝은 색의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자, 이제 우리 팔짱 끼구 걷자구. 약혼한 사람들처럼 말야. 우리는 합법 적으로 그렇게 할 권리가 생긴 거야." 그가 말했다. 그들은 걸어서 읍내를 빠져 나왔다. 읍내와 경계가 되는 저지대의 길을 따라 걸어갔다. 그곳에는 마침 서리가 내려 광대한 들판은 푸르지도 않고 곡물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 두 사람은 자신들에게만 너무 몰두해 있어 그 들 주변에서 멀어지는 일들은 거의 알아차리지 못했으며 그들의 의식 속으 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귀여운 수, 결국 우리는 상당한 기간이 지나고 나면 결혼할 수 있다는 거야." "그래요. 우리는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수는 차분하게 말했다. "그렇게 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 "꼭 그렇다고는 말할 수 없어요, 주드. 하지만 나는 지금도 역시 결혼에 대해서는 여태까지 줄곧 느껴온 것과 똑같은 생각이 들어요. 난 지금도 어 떤 철칙 같은 계약으로 인해 오빠의 다정함과 나의 애정을 잃어버리지나 않을까 두렵기만 해요. 마치 과거에 불행했던 우리의 부모님처럼 말이에 요!"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겠어? 나는 너도 알다시피, 정말 너를 사랑해, 수."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내 생각엔 늘 그랬던 것처럼 연인 사이로 지냈 으면 좋겠어요. 현재 우리가 살면서 낮에만 만나는 것처럼 말이에요. 이런 것이 훨씬 더 아름답지 않아요? 적어도 여자에게 있어서는 그래요. 그리고 여자가 남자의 마음을 믿을 때만 말이에요. 그래서 지금부터는 우리는 과 거처럼 이러쿵저러쿵 체면을 따질 필요는 없다고 봐요." "우리가 각자 다른 사람과 결혼 생활했던 경험이 애초부터 용기를 북돋 아주지 못했다고 생각돼." 그는 약간 음울하게 말했다. "우리의 불가사의한 비현실적인 성품 때문이거나, 아니면 우리의 불행 때문이겠지. 그러나 우리 두 사람은..." "언제나 불만에 가득 찬 두 사람이 결합하면 전보다 두 배는 나빠지겠지 요... 주드, 내 생각은 오빠가 행정당국의 도장을 받아 나를 소중히 받들겠 다는 계약을 맺고 같은 지붕 밑에서 내가 오빠에게 사람받는다는 허가를 얻는 그 순간에 오빠를 두려워하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워요. 아, 얼마 나 무섭고 몸서리쳐지는 일인지! 오빠와 함께 자유로워진다 해도 나는 이 세상의 어떤 남자보다도 오빠를 깊이 믿고 있어요." "아니, 안돼. 내가 변심할 것이라고 말하지 마!" 그는 타일렀다. 그러나 목소리도 역시 불안으로 떨고 있었다. "우리 두 사람의 기분과 우리의 가족에 얽힌 불행하고 특이한 성질은 고 사하고, 남자의 본성에는 본래 한 여자의 애인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든가 또는 되어야 한다는 소리를 듣게 되면 오히려 그 여자를 사랑하지 않게 되 는 희한한 특성이 있는 것 같아요. 사랑해서 안 된다고하면 오히려 더욱더 사랑하게 되지요. 결혼식이 서로를 소유하는 것이 허락된다는 것을 고려하 여, 그날 이후에는 사랑하는 것을 그만두고, 가능하면 두 사람은 공석에서 서로 만나지 않는다는 맹세를 하고 서약서에 서명하는 것이라면 서로 사랑 하는 부부가 지금보다는 더 많아질 거예요. 그런 식으로 마음에도 없는 서 약을 한 부부가 남몰래 만나 몰래 침실 창문을 기어올라 옷장에 숨는다는 경우를 상상해 봐요! 그렇게 되면 부부간의 애정이 식는 법이 없겠지요." "그래. 하지만 네가 말하는 것, 아니 그와 같은 이야기가 사실이라고 인 정해도 이 세상에서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너만은 아니야. 사랑하 는 수, 많은 사람들은 아마 일개월의 쾌락을 위해 일생의 불쾌함을 희생으 로 치루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자연력에 항거할 수 없기 때문에 모 두가 결혼을 하는 거야. 우리 부모님이나 너의 부모님도 틀림없이 그것을 알고 계셨을 거야. 만일 그분들이 생각하는 습관이 있는 우리를 조금이라 도 닮았었다면 그런 것은 아셨을 거야. 그러나 그들도 알면서도 같은 길을 걸었을 거야. 결혼한다는 것은 일반적인 정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 그 러나 수가 그런 식으로 망령처럼 보이는 육체없는 사람이라면-이렇게 말하 면 나쁘지만-동물적인 정욕이 전혀 없기 때문에 이런 일을 이성으로 처리 하는 것이 가능하지. 하지만 우리같이 아주 멋없고 육중한 몸뿐인 천하고 가엾은 자들은 이성적으로 처리할 수가 없지." "글쎄요."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들도 아마 비참한 결과가 될 거라고 오빠는 말했지요. 그리고 나는 오빠가 생각하는 그런 예외적인 여자는 아니에요. 여자들 중에 결혼을 좋 아하는 여자가 오빠가 생각하는 것보다 적어요. 단지 결혼하면 품위가 생 길 것이라고 생각되고 때로는 사회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결혼 할 뿐이에요. 나는 품위나 이익 같은 것이 없어도 아무렇지도 않아요." 주드는 할 수 없이 옛날에 생각해 보았던 불평을 연상했다. 두 사람은 친했지만 그녀가 그를 사랑한다든가 또는 사랑하는 것이 가능하다라는 정 직하고 솔직한 선언을 단 한번도 수로부터 들은 적이 없다는 푸념이었다. "때때로 나는 네가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 정말 두려워." 그는 분노에 가까운 의아심을 나타내며 말했다. "그리고 너는 말수가 너무 적어. 여자들은 남자에게는 자신들의 이야기 를 전부 털어놓아서는 안 된다고 다른 여자들한테서 배운다는 것은 나도 알지. 그러나 애정의 최고의 모습은 남자와 여자의 완전한 성실함에 기본 을 두고 있는 거야. 그런 것을 배운 여자들은, 남자가 아니기 때문에 남자 는 훈훈한 관계를 맺은 사람들 중에서도 진심어린 행위를 나타내 준 여자 에게 가장 마음이 끌린다는 것을 몰라. 견실한 남자는 회피하기도 하고 얼 버무려 넘기기도 하는 실속없는 애정에 끌리기는 해도 그것에 구애받지 않 지. 언제나 슬쩍 빠져나가는 연애의 유희를 즐기는 여자에게는 네메시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율법의 여신)와 같은 복수의 신이 아주 자주 따라 다니지. 옛날에 그녀를 좋아하던 사람들이 조만간 그녀에게 느끼는 최악의 경멸 상태에서 말이지. 그런 여자는 멸시받아서, 무덤으로 갈 때도 누구 한 사람 슬퍼해 주지 않아." 어딘가를 멀리 바라보고 있던 수의 눈빛에는 죄책감이 나타나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비극적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주드, 오늘 나는 여느때처럼 오빠를 좋아하고 있다고 느껴지지 않아요!" "좋아하지 않는다구? 왜?" "아, 글쎄요. 오빠는 친절하지 못해요. 너무 설교조에요. 사실 나는 너무 못됐고 가치없는 여자라서 어떤 심한 잔소리를 들어도 마땅하다고 생각하 지만요!" "아니야. 너는 나쁘지 않아! 너는 사랑스런 여자야. 하지만 내가 너한테 서 어떤 고백을 듣고 싶어할 때면 뱀장어처럼 슬금슬금 빠져나가 버리는 거야." "아, 아니에요. 나는 나쁘고 고집도 센 그런 여자에요! 내가 그렇지 않다 고 해도 아무 소용없어요. 좋은 사람이라면 나처럼 꾸지람당할 필요가 없 어요. 그러나 지금 나한테는 오빠밖에는 없고 나를 감싸줄 사람도 없어서, 어떤 식으로 오빠와 생활할까 그리고 오빠와 결혼할까 말까를 결정하는 데 내 맘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너무 가혹해요!" "나의 동지이자, 사랑하는 수. 나는 너에게 결혼, 아니면 다른 일을 강요 하고 싶지는 않아. 물론 안하지! 지금처럼 지나치게 토라지는 것은 좋지 않 아! 이제는 이 일에 관해서 더 이상 얘기하지 말자. 그리고 지금까지와 같 은 식으로 지내자. 지금부터 산책할 때는 목초지와 홍수와 금년의 수확량 에 대한 전망 등등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하자." 이런 일이 있고 나서 며칠 동안 결혼이란 주제는 그들 사이에서 거론되 지 않았다. 이제까지 층계참 하나만을 사이에 두고 생활했기 때문에 그들 두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끊임없이 마음에 걸렸다. 수는 지금은 상당히 실질적으로 주드를 돕고 있었다. 주드는 요즈음 독 립해서 묘비를 만들기도 하고 비명을 새기기도 하는 일에 몰두해 있었다. 그의 작은 집 뒤에 있는 작은 뒤뜰에는 석재들이 놓여 있었고 수는 가사일 을 틈타서 비문의 문자 하나하나를 조각할 큰 글씨로 디자인도 하고 주드 가 조각한 후에 먹물을 넣기도 했다. 대사원의 전문적인 석공직과 비교하면 이것은 훨씬 품격이 떨어지는 수 공업에 지나지 않고 그리고 그의 단골이라고 해봤자 그의 이웃에 살고 있 는 가난한 사람들뿐이었다. 그의 단골들은 이 '석비직인, 주드 폴리'(문패에 는 이렇게 씌어 있다)에게서 죽은 사람을 위한 간단한 석비를 만들어 받는 데 얼마나 싸게 할 수 있는가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전보다 더 독립 성이 확실해 보였다. 그리고 수는 그에게 어떤 부담도 주지 않으려고 특히 마음을 썼기 때문에 그를 도와주는 일이야말로 두 사람이 화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5-2 그 달도 끝나가는 어느날 저녁이었다. 주드는 멀지 않은 공회당에서 고 대사 강의를 듣고 막 집으로 돌아온 참이었다. 그가 집안에 들어섰을 때, 그가 없는 동안 집에 틀어박혀 있던 수가 그를 위해서 식탁에 저녁식사를 차려놓았다. 그녀는 평상시와는 달리 말이 없었다. 주드는 어떤 그림이 있는 신문을 집어들고 읽다가, 눈을 들어 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에 근심 이 있는 것을 느꼈다. "기분이 안 좋아, 수?" 그가 말했다. 그녀는 잠시 말이 없었다. "당신에게 전할 말이 있어요." 그녀가 말했다. "누가 날 찾아왔어?" "그래요. 어떤 여자분이었어요." 수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저녁준비를 갑자기 멈추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손을 무릎에 얹고는 불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나는 내가 옳았는지 아니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녀는 말을 계속했다. "난 당신이 집에 없다고 말했어요. 그녀가 기다리겠다고 말했을 때, 나는 만나볼 수 없을 거라고 말했지요." "왜 그렇게 말했어? 그 여자는 묘비가 필요했던 것이 아니었나? 상복을 입지 않았어?" "아니오, 그녀는 상복을 입지 않았어요. 그리고 묘비도 필요하지 않았고 요. 난 당신이 그 여자를 만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수는 그를 애원하듯이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여자가 누구였는데? 그녀가 말 안해?" "예, 그녀는 자기 이름을 대려 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난 그녀가 누구였 는지 알았어요. 짐작할 수 있었어요. 아라벨라였어요!" "맙소사! 무슨 일로 아라벨라가 왔지? 당신은 어째서 그녀가 아라벨라라 고 생각한 거야?" "아, 말로 할 순 없어요. 하지만 난 알았어요! 그녀가 나를 바라볼 때 그 녀의 눈빛으로 확실히 알 수 있었지요. 그녀는 뚱뚱하고 거친 여자였어요." "글쎄, 말버릇을 제외하면 아라벨라를 정확히 거칠다고 부를 수는 없지. 하긴 술집에서 일을 하다 보니 지금은 그렇게 되었을 수도 있지. 내가 그 녀를 알고 있을 때만 해도 그녀는 약간 예뻤거든." "예쁘다고요! 하지만, 그래요! 그 여자가 예쁘다고요!" "당신의 작은 입이 떨리고 있군. 좋아, 그건 그렇고, 그 여자는 이제 나 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야. 이미 다른 남자와 결혼했는데, 왜 이제와서 우리 를 곤란하게 만드는 거지?" "그녀가 결혼한 게 확실해요? 당신 정확한 소식을 들었어요?" "아니, 정통한 소식은 아니야. 하지만 그 때문에 그녀가 나한테 자기를 자유롭게 놓아 달라고 한 것이 아니겠어. 그 여자와 그 남자는 둘다 정당 한 생활을 할 수 있길 원했겠지." "아, 주드. 그건, 그건 바로 아라벨라였어요!" 수는 손으로 눈을 가리며 소리쳤다. "그래서 난 너무 비참해요! 그녀가 무슨 일로 왔는지 모르지만 이건 흉 조 같아요. 당신 그녀를 가능한 한, 만나지 않을 거지요. 그렇지요?" "만나지 않을 거야. 그녀와 지금 얘기한다는 것은 너무 고통스런 일이야. 나 못지않게 그녀를 위해서도 말이지. 하지만 그녀는 갔잖아. 그 여자가 다 시 온다고 말했어?" "아니요, 하지만 마지못해 가는 것 같았어요." 하찮은 일에도 마음이 산란해지는 수는 저녁식사를 전혀 먹을 수 없었 다. 주드는 저녁식사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 준비를 했다. 그가 불을 끄고 문을 잠그자마자 노크 소리가 들렸다. 수는 그녀의 방에서 당장 뛰쳐나왔 다. "그녀가 다시 왔나 봐요!" 수는 놀란 어조로 속삭였다. "당신이 어떻게 알아?" "그녀가 지난 번에도 그렇게 노크를 했으니까요." 그들이 귀를 기울이자 노크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이 집에는 가정부가 없어서 만일 누군가가 노크 소리에 대답해야 한다면 그들 중 한 사람이 직 접 나가야 했다. "내가 창문을 열어보지." 주드가 말했다. "누구든간에 이 시간에 집안에 발을 들여놓게 할 수는 없으니까." 그는 그의 침실로 들어가 창틀을 올렸다. 일찍 집에 돌아가는 외로운 노 동자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거리엔 인적이 없었다. 또 한 사람의 모습은 몇 야드 떨어진 가로등 옆을 왔다갔다 하고 있는 여자였다. "거기 누구요?" 그가 물었다. "폴리 씨인가요?" 그 여자가 말을 했고 아라벨라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주드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 여자예요?" 수는 입을 벌린 채 문간에서 물었다. "그래." 주드가 말했다. "뭘 원하는 거요, 아라벨라?" 그가 물었다. "밤늦게 미안해요, 주드." 아라벨라는 겸손하게 말했다. "하지만 아까도 찾아왔었지요. 오늘밤 특별한 용무가 있어서 그럴수만 있다면 만나보려구요. 난 곤경에 빠졌어요. 그리고 아무도 날 도와주지도 않고요!" "곤경에 빠졌다고?" "그래요." 침묵이 흘렀다. 주드의 가슴 속엔 그 호소에 대해 불편한 동정심이 일어 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당신은 결혼하지 않았어?" 그가 말했다. 아라벨라는 주저했다. "아니에요, 주드. 결혼 안했어요." 그녀는 대답했다. "그 남자가 결국에는 결혼하지 않으려고 해요. 그리고 난 지금 무척 어 려움에 처해 있어요. 난 다른 술집에서 여급일을 해야 할 것 같아요. 하지 만 시간이 걸려요. 난 정말 지금 굉장한 곤란에 빠졌어요. 왜냐하면 오스트 레일리아로부터 내 신상에 부담이 될 일이 닥쳐왔어요. 그렇지 않았다면 난 당신을 곤란하게 하지 않을 거예요. 정말로 어렵게 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 일에 대해 당신에게 말했으면 좋겠어요." 수는 고통스런 긴장 속에서 한마디 한마디 놓치지 않고 듣고 있었지만 직접 말은 하지 않고 바라보고만 있었다. "당신 돈이 궁한 건 아니겠지, 아라벨라?" 그는 분명히 부드러운 어조로 물어보았다. "오늘밤 묵을 숙박비를 지불할 만큼은 가지고 있어요. 그러나 다시 돌아 가는 데 필요한 여비는 충분치 않아요." "지금 어디서 살고 있어?" "아직 런던에서요." 그녀는 막 주소를 대려고 하다가 멈추고 말했다. "누군가가 들을까봐 두려워요. 난 이렇게 큰 소리로 내 자신의 사사로운 일을 외치고 싶지 않아요. 만일 당신이 내려와서 내가 오늘 밤 묵고 있는 프린스 여관 방향으로 나와 함께 좀 걸어가 주신다면 모든 것을 설명해 드 릴게요. 옛정을 생각해서라도 당연히 그렇게 해 주시겠지요!" "가엾어라! 난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들어줘야 해." 주드는 매우 당황하면서 말했다. "그 여자는 내일이면 돌아갈 테니까 별 문제는 없을 거야." "하지만 내일 그녀를 만나보러 가도 되잖아요, 주드! 지금은 가지 마세 요, 주드!" 문간에서 애원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 당신은 걸려들고 말 거예요. 난 알아요. 그 여자가 전에 그랬던 것 처럼 말이에요! 가지 말아요. 가지 마요, 여보! 그 여자는 너무 음탕한 여 자예요. 난 그녀의 생김새에서 그것을 알았고 그녀의 목소리에서도 느꼈어 요!" "하지만 난 가야 해." 주드가 말했다. "나를 붙들려고 하지 말아 줘, 수. 나는 지금 그녀를 전혀 사랑하지 않 아. 하지만 난 그녀에게 잔인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아." 그는 계단으로 돌아섰다. "하지만 그 여자는 당신의 아내가 아니잖아요!" 수는 미친 듯이 외쳤다. "그리고 난..." "그런데 당신도 역시 내 아내가 아니지, 아직은." 주드가 말했다. "아, 당신은 그 여자한테 갈 건가요? 집에 있어 줘요! 제발 집에 있어 줘 요, 주드. 그리고 그녀한테 가지 마세요. 이제 그 여자는 나와 마찬가지로 당신의 아내가 아니잖아요!" "글쎄, 누가 실제로 아내인가를 따지자면, 그 여자가 당신보다 오히려 앞 서지." 그는 결연한 자세로 모자를 집어들면서 말했다. "난 당신이 그렇게 되어주길 바랐지. 그리고 나는 욥의 인내심으로 기다 렸어. 난 금욕에 의해 얻은 바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난 확실히 그녀 에게 무언가를 해 주어야 해. 그리고 그녀가 나에게 몹시 말하고 싶어하는 것을 들어 주어야겠지. 남자라면 그 정도는 할 수 있는거야!" 수는 그의 태도로 보아 반대해 보았자 아무 소용없다는 걸 알았다. 그녀 는 더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순교자처럼 온순하게 그녀의 방으로 돌 아가서, 그가 아래층으로 내려가 문의 빗장을 벗기고 문을 닫고 나가는 소 리를 들었다. 자신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게 되자, 그녀는 한 여자가 자기의 체면을 무시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빠른 걸음으로 아래층으로 내려가 소리 없이 흐 느꼈다. 그리고 그녀는 귀를 기울였다. 그녀는 아라벨라가 묵고 있는 곳이 얼마나 떨어진 곳인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보통 걸음걸이로 그곳에 당도하는 데 7분 정도 걸리고, 다시 돌아오는 데 7분 정도 걸렸다. 그녀는 시계를 쳐다보았다. 11시 25분 전이었다. 그들 이 문 닫기 전에 그곳에 도착한다면 그가 아라벨라와 여관에 들어가 그녀 와 술이라도 한잔 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그때 그에게 어떤 재앙이 떨어질지도 모른다. 고요한 긴장감 속에 그녀는 계속 기다렸다. 문이 다시 열리기 전까지 마 치 모든 시간이 흘러가 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주드가 나타났다. 수는 약간 황홀하게 비명을 질렀다. "아, 난 당신이 믿을 수 있는 분이라는 걸 알았어요! 당신은 너무 좋은 분이에요!" 그녀가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난 이 거리 어디에서고 그 여자를 찾을 수가 없었어. 난 실내화를 신고 나갔었거든. 그녀는 내가 자신의 요청을 완전히 거절할 정도의 냉혈인이라 고 생각하면서 갔나 봐. 불쌍한 여자지. 부츠로 갈아 신으려고 돌아왔어. 비가 오기 시작했거든." "아, 하지만 당신에게 그렇게 나쁘게 대해 온 여자를 위해 왜 이런 수고 를 해야만 하는 거지요!" 수가 실망에 찬 질투를 터뜨리면서 말했다. "그러나 수, 그녀는 어디까지나 여자야. 그리고 한때는 내가 좋아했던 여 자지. 이런 상황에서 잔인한 사람이 될 수는 없는 거야." "그녀는 더이상 당신의 아내가 아니잖아요!" 수가 흥분되어 열정적으로 고함을 질러댔다. "당신은 그녀를 찾으러 밖으로 나가선 안 돼요! 옳지 못한 짓이에요! 당 신은 그녀를 만나선 안 돼요. 이제 그녀는 당신에게 타인이니까요. 당신은 어떻게 그런 일들을 잊을 수 있지요? 여보, 여보!" "그 여자는 전처럼 헛점투성이이며 부주의하고 무분별한 여자처럼 보였 어." 그는 부추를 신으며 계속해서 말했다. "런던에서 변호사들이 어떤 장난을 친다 하더라도 그녀와 나의 현실의 관계를 바꿔놓지는 못해. 그녀가 내 아내였다면 오스트레일리아로 다른 남 자와 가버렸어도 그녀는 내 아내임엔 틀림없어." "하지만 그녀는 그렇지 않았어요! 그건 내가 알고 있어요! 불합리한 일 이지요! 그런데 당신, 몇 분 후면 바로 돌아오실 거지요? 그렇지요? 그 여 자는 오랫동안 얘기하기엔 너무 천박하고 거친 여자예요. 주드, 항상 그랬 듯이 말이에요!" "아마, 나 역시 거칠어진 거 같아. 운도 나쁘고! 모든 인간의 결점이 내 안에 싹트고 있는 것이 확실해. 때문에 내가 목사가 되려고 생각햇던 것이 너무 터무니 없었다는 것을 알았지. 술마시는 버릇은 고쳤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새로운 형태의 억압하는 악이 내 안에서 일어날지는 알 수가 없어! 난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수, 그렇게 오랫동안 숨가쁘게 당신만을 사랑해 도 별로 달라지는 것이 없긴 하지만! 내 안의 모든 고귀한 요소는 당신을 가장 사랑해. 구차한 모든 일들로부터 해방된 당신의 자유로운 마음은 내 사기를 높여주었고 또한 1, 2년 전의 나로서는-어떤 사람도-할 수 있을 거 라고 도저히 꿈에도 꾸지 못했던 일들을 할 수 있게 해 주었지. 극기에 대 한 충고나 여자에게 무리하게 강요하는 나쁜 점에 대한 충고도 모두 좋아. 하지만 아라벨라와 있었던 과거에 대해서 나를 꾸짖고 그리고 지난 몇 주 동안 당신에게 애태우던 나의 입장에 관해서 꾸짖어 줄 도덕적인 사람들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지 모르겠어! 그들은 내가 언제나 당신의 의향을 존중 해 왔다는 것을 알아줄 거야. 우리는 여기 한집에 살면서 우리 사이에 전 혀 제 3자를 개입시키는 일은 없었으니까." "그래요. 당신은 나한테 잘해 주셨지요, 주드. 당신이 그렇게 해준걸 알 아요. 나의 보호자여." "그런데... 아라벨라는 나에게 도움을 호소해 왔어. 따라서 나는 나가서 적어도 그녀의 얘기 상대는 되어 주어야 할 것 같아, 수!" "난 더 이상 할말이 없어요! ... 아, 만일 당신이 꼭 그렇게 해야만 하신 다면, 꼭 그래야 한다면!" 그녀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이 흐느끼면서 말했다. "나한테는 당신밖에 없어요, 주드. 당신은 날 버리시는 거예요! 당신이 이런 분인지 몰랐어요. 난 참을 수가 없어요. 참을 수가! 만일 그 여자가 당신의 사람이라면 얘기가 또 다르겠지만요!" "그러지 말고 허락해 줘." "좋아요. 내가 해야 한다면 그렇게 해야지요. 당신이 그렇게 하신다면 나 도 동의해요! 하겠어요. 그렇게 할 생각은 없지만요! 그리고 재혼하고 싶지 도 않았지만요! ... 그렇지만, 동의해요. 동의한다고요! 난 정말 당신을 사랑 해요. 결국은 이렇게 당신이 승리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어야만 했어요!" 수는 뛰어가 주드의 목을 팔로 끌어안았다. "내가 당신에게 거리를 두었다고 해서 성적감정이 없는 차가운 인간은 아니에요! 난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식해요! 기다려 보 면 알 거예요! 난 정말 당신의 사람이에요. 그렇지요? 복종하겠어요!" "그렇다면 내일이라도, 아니면 가능한 한 빨리 당신이 바라는 대로 우리 결혼해." "그래요, 주드." "그러면 난 그 여자를 가라고 하겠어." 그는 수를 부드럽게 안으면서 계속해서 말했다. "난 당신이 그 여자를 만나는 게 부당한 것 같고 그녀에게도 부당할 거 예요. 그 여자는 당신 같지 않아요, 여보. 과거에도 그랬지. 솔직하고 냉철 하게 판단해서 그렇다는 거요. 더 이상 울지 말아요. 자아, 자아!" 그는 수의 양볼과 이마에 키스했다. 그리고 정문의 빗장을 다시 걸었다. 다음날 아침에는 비가 내렸다. "자아, 당신." 주드는 아침식사 시간에 즐겁게 말했다. "오늘이 토요일이니까 난 즉시 결혼 예고(결혼식 전에 교회에서 3회 계 속 일요일에 공고하여 이의의 유무를 물음)를 부탁하러 갈 생각이야. 그래 서 내일 첫번째 예고를 공고하게 말이야. 그렇지 않으면 우린 한주를 잃게 되는 거야. 결혼 예고만 할 거니까, 우리는 1, 2파운드를 절약할 수 있을 거야." 그녀는 멍청히 결혼 예고에 동의했다. 그러나 이때 그녀는 마음속으로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불그스름했던 그녀의 얼굴빛이 퇴색되면서 맥 빠진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내가 지난밤 너무 이기적으로 굴었나 봐요!" 그녀는 중얼거렸다. "아라벨라를 그런 식으로 다루다니. 너무 불친절했어요. 아니 그보다 더 한 짓이었어요. 난 그녀가 어려운 처지에 있다는 것이나 그녀가 당신에게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관심도 없었지요! 아마 그녀는 당신에게 말할 정당성이 있는 무언가가 진짜 있었을 거예요. 그것이 나를 더 나쁜 사람으로 만든 것 같아요! 사랑이라는 경쟁 의식이 생기면 천성적인 음험 한 생떼 같은 억지가 나타나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않더라도 적어도 나의 경우에는요. 그 여자가 어떻게 됐을까요? 그녀가 여관에 잘 도착했으면 좋겠는데, 가엾게도." "아마, 잘 갔겠지." 주드는 조용하게 말했다. "그녀가 쫓겨나서 비오는 거리를 헤매고 다니지 않았기를 바래요. 내가 비옷을 걸치고 그녀가 잘 갔는지 가보고 와도 될까요? 오늘 아침내내 그녀 생각이 났었거든요." "글쎄, 그럴 필요가 있을까? 당신은 아라벨라가 어떻게 혼자 꾸려나갈 수 있는 사람인지 전혀 상상할 수 없어. 그러나 당신이 가보고 싶다면 가 봐요." 자신의 죄를 회개할 기분이 되었을 때의수는 별나게 행동했다. 그녀는 불필요한 속죄 행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되풀이했다. 분명히 다른 사람들이 었다면 만나는 것조차 꺼려했을, 자신과는 어느 모로보나 엉뚱한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것이 그녀의 천성적인 버릇이었기 때문에 이 요청이 주드를 별로 놀라게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당신이 돌아오면 난 결혼 예고를 하러 갈 준비를 하고 있겠어. 나와 함께 나갈까?" 주드는 덧붙였다. 수는 동의했다. 주드에게 마으껏 키스를 하게 내버려 두면서 외투를 입 고 우산을 쓰고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전에 결코 그런 적이 없었던 키스 로 답례했다. 사태는 결정적으로 변했다. "작은 새가 결국은 잡혔군요!" 그녀는 미소에 슬픈 빛을 띠며 말했다. "아니야. 단지 보금자리를 찾은 거지." 그는 그녀를 안심시키는 것처럼 말했다. 그녀는 아라벨라가 말했던 술집까지 진창길을 따라 걸어갔다. 그리 멀지 않았다. 그녀는 아라벨라가 아직 떠나지 않았다는 얘기를 듣고 주드의 전 애인격인 그녀에게 자신을 어떻게 밝혀야 할지 몰라서 스르핑가에 사는 친 구가 찾아왔다고 말을 전하고 주드의 주소를 댔다. 수는 2층으로 올라가서 한 방으로 안내되었다. 그 방은 아라벨라의 침실 이었다. 아라벨라는 아직 일어나 있지 않았다. 아라벨라가 침대에서, 들어 와서 문을 닫으라고 말할 때까지 그녀는 발걸음을 멈추고 서 있었다. 그리 고 그녀는 그 말대로 따랐다. 아라벨라는 창문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누워 있었는데, 즉시 머리를 돌 리지는 않았다. 수는 회개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악한 생각으로 잠시 동안 주드가 먼저 와서 대낮의 햇빛을 받고 있는 이 여자를 봤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램프 불빛 아래에서는 옆모습이 멋지게 보였을지 모르지만 오늘 아침에는 어딘지 모르게 단정하지 못한 데가 있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신선한 매력있는 모습을 확인한 수의 태도는 쾌활해졌다. 이 여자에게 얼 마나 야비한 성적감정이 깃들여져 있는가를 생각할 때 그녀는 그것이 몹시 싫어졌다. "난, 단지 당신이 지난 밤에 잘 돌아왔는지 보러 왔어요. 그게 전부예 요." 그녀는 부드럽게 말했다. "난 당신이 무슨 불행한 일이라도 만나지 않았을까 하고 걱정했거든요." "아, 이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난 나의 방문객이 - 당신의 친구 - 아니 당신의 남편인 폴리 씨인 줄로만 알았지요. 왜냐하면 당신이라면 스 스로를 폴리 부인이라고 부를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아라벨라는 실망하면서 베개에 머리를 파묻었다. 그리고 그녀는 애써 만 들어 냈던 보조개도 없애 버렸다. "난 그렇게 말하진 않아요." 수가 말했다. "아, 난 비록 그 남자가 정말로 당신 사람이 아니더라도 당신이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지요. 체면은 어디까지나 체면이니까요. 24시간 어 느 때고요."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요." 수는 거북하게 말했다. "그 분은 내 남편이에요. 만일 당신이 그런 식으로밖에 말할 수 없다면 말이지요!" "그 분은 어제까지만 해도 안그랬는데." 수는 장미 색깔처럼 얼굴이 붉어지며 말했다. "당신이 어떻게 알지요?" "문간에서 당신이 내게 말했을 때의 당신의 태도로 알았지요. 이봐요, 당 신은 상당히 급했군요. 그리고 내가 지난 밤에 방문한 것이 일을 서두르게 했군요. 호호! 하지만 난 당신한테서 그이를 빼앗으려는 것이 아니에요." 수는 비가 오고 있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리고 너저분한 화장대 덮개 와 거울에 아라벨라가 따로 떼어놓아둔 가발을 보았다. 이것은 아라벨라가 주드와 함께 살던 무렵의 모습과 꼭 같은 것이었다. 수는 오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잠시 후 에 문간에서 노트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호텔 하녀가 카트리트 부인 앞 으로 온 전보를 가져왔다. 아라벨라는 누운 채로 그것을 펴보고, 화났던 안 색이 풀어졌다. "나에 대해 걱정을 하게 해서 미안해요." 하녀가 가버리자 그녀는 부드럽게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그 사람이 결국 나 없이 살수 없 다는 걸 알게 되었고 지금까지 미루어왔던 재혼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겠다 고 동의하고 있어요. 여봐요! 내가 보낸 전보의 답장이 온거예요." 그녀는 수에게 읽어 보라고 전보를 내밀었으나 수는 그것을 받지 않았 다. "그이가 나한테 돌아오라고 했어요. 람베스에 있는 그의 작은 소매 술집 은 내가 없으면 산산조각이 날 지경이래요. 그러나 그 양반이 술을 마신다 해도 우리가 영국의 법에 의해 결합되고 나면 이제는 전처럼 날 학대하지 는 못할 거예요. ...당신에게 해 줄 말은 만일 내가 당신의 입장이라면 주드 를 설득해 목사님 앞으로 데려가 일을 끝내 버리고 말 거예요. 이건 친구 로서 하는 충고예요." "그는 언제까지라도 기다릴 거예요." 수는 냉랭한 자존심을 가지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꼭 그렇게 하도록 하세요. 결혼 후에는 남자와의 생활은 더욱 사무적이 되지요. 그래서 돈 문제가 훨씬 중요하게 되는 거지요. 그러면 당 신도 알다시피 만일 싸움이라도 벌어져서 그가 당신을 집 밖으로 쫓아낸다 면 당신을 보호해 줄 법을 찾겠지요. 하지만 남자가 도망가지 못하게 칼로 반쯤 찌르고 부지깽이로 당신의 머리를 때린다면 그렇게 할 수는 없겠지 요. 그리고 만일 그가 당신을 져버린다면 - 난 우정으로 하는 말인데요, 여 자 대 여자로서 말이에요. 남자들이란 무슨 짓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지요. 그런 때는 가구들을 꽉 붙들어요. 아무도 도둑으로 보지는 않을 테니까요. 나는 그 사람과 다시 결혼할 것이며 지금 그는 기꺼이 그렇게 할 거예요. 우리들의 첫번째 결혼엔 약간의 흠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 지난 밤에 보낸 나의 전보에 대한 답장이지요. 난 그에게 주드와 거의 화해했다고 말했지 요. 이것이 그를 놀라게 했나 봐요! 아마도 당신이 없었다면 완전히 끝장났 을 거예요."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그랬다면 오늘부터 우리들의 인생이 얼마나 달라졌겠어요! 주드같은 바 보는 만일 여자가 곤란에 처해 있다면 견디지 못했을 거예요. 그러니 그를 좀 꾀어 보라고요! 마치 그가 예전에 새와 다른 것들에 대해 그랬던 것처 럼요. 그러나 공교롭게도 내가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처럼 되어 버렸군요. 난 당신을 용서해요. 그리고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당신이 가능한 한 빨 리 법적 수속을 해 두라고 충고하고 싶군요. 당신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후에 아주 귀찮게 될 거니까요." "내가 당신한테 말했듯이 그는 내게 결혼하자고 청했어요. 우리의 자연 스런 결혼을 합법적인 것으로 만들자는 거지요." 수는 더욱 위엄을 보이며 말했다. "내가 자유로워질 때까지 그 분이 청혼하지 않은 것도 나의 바람이었지 요." "아, 그래요. 당신도 나같이 이기주의자였군요." 아라벨라는 그녀를 찾아온 방문객에게 재미있다는 듯이 비평적인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 "첫번째 남자한테서 버림을 당한 거지요? 그렇지요? 마치 나처럼요?" "안녕히 계세요! 난 가봐야겠어요." 수가 서둘러 말했다. "나도 역시 일어나 가봐야 해요!" 그녀는 대답하면서 침대에서 너무 급히 일어났기 때문에 유방이 흔들렸 다. 수는 당황해서 옆으로 비켜났다. "어머, 난 단지 여자에 불과해요. 6척 장신의 병정도 아닌데!... 잠깐만 기 다려요." 그녀는 수의 팔에 손을 얹으며 말을 계속했다. "내가 주드에게 말했던 것처럼 어떤 일로 주드에게 의논하고 싶어요. 난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있어 온 거예요. 내가 떠날 때 역으로 달려나 와 말해줄 수 있을까요? 당신은 아니라고 생각하겠지요. 편지를 쓰겠어요. 쓰고 싶지는 않았지만 난 편지를 쓰겠어요." 5-3 수가 집에 당도했을 때, 주드는 자기들 결혼에 대한 첫 조치를 취하기 위해 문간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팔을 잡았고 마치 진 짜 친구들이 종종 그렇게 하는 것처럼 그들은 함께 조용히 걸어갔다. 그는 수가 생각에 잠겨 있는 것을 보고 그녀에게 질문하는 것을 삼갔다. "아, 주드. 그녀와 얘기를 좀 했어요." 결국 그녀가 말을 꺼냈다. "안했으면 좋았을 것을 그랬어요! 여러가지 일들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 었거든요." "난 그 여자가 교양 있게 굴었길 바래." "그랬어요. 난 그녀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아주 조금. 그녀는 관 대하지 못한 성품은 아니에요. 그리고 난 그 여자의 어려운 일이 모두 갑 자기 해결되어 반가워요." 그녀는 아라벨라가 어떻게 되돌아가게 되었는가를 설명하고 그녀가 제자 리를 되찾을 수 있을 거라는 얘기도 했다. "난 우리의 오랜 문제를 언급했지요. 아라벨라가 내게 말해준 것은 내게 합법적인 결혼이 얼마나 희망 없고 세속적인 제도인가를 느끼게 했지요. 남자를 잡기 위한 덫 같은 것이지요. 난 그것에 대해 생각하면 참을 수가 없어요. 오늘 아침에 결혼 예고를 공고하자는 약속을 하지 않았더라면 좋 을 뻔했어요!" "아, 내 걱정은 하지 마. 나에겐 어느 때라도 괜찮으니까. 지금은 당신이 그 문제를 빨리 극복해 내는 것이 좋겠어." "사실 난 전보다 더 걱정하지는 않고 있어요. 아마 다른 남자와 함께 있 다면 좀 걱정했을지도 모르지만요. 그러나 당신 가족과 내 가족이 가지고 있는 약간의 미덕이라고 생각되는, 아주 적지만 그래도 충실 견고한 정신 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난 당신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은 아닌 지에 대해서는 조금도 두렵지 않아요. 이제 난 정말 당신 것이고 당신은 정말 나의 것이 된 거예요. 사실 그 전보다 내 마음은 더 편해졌어요. 왜냐 하면 리처드에 대한 나의 양심이 명백해졌으니까요. 그분도 지금은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을 테니까요. 난 전에는 우리가 그를 속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수, 당신은 이럴 땐, 굉장했던 옛날 문명시대의 여인 같아. 그런 여인들 은 단순한 일개 그리스도교국의 주민 따위가 아니고 내가 일찍이 무위도식 하면서 고전만 뒤지던 때의 책 속에 나오던 당당한 여자들이지. 요즈음 당 신은 비아 사크러(로마의 가장 신성한 큰 길)에서 만난 친구와 함께 옥타 비아(옥타비아누스의 누이이며 마크 안토니우스의 아내)나 리비아(옥타비 아누스의 아내)의 최근 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든가, 또는 아사파시 아(아테네의 정치가인 페리크레스의 정부)의 웅변에 귀를 기울인다거나 아 니면 파렉스텔리스(그리스의 유명한 조각가)가 그의 최근의 비너스상을 다 듬고 있는 것을 지켜 본다거나, 아니면 피리인(파렉스텔리의 유명한 조각 의 모델)이 모델로 포즈를 취하다가 지쳐 불평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든 가 하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두 사람은 이제 교구 서무계원의 집에 당도해 있었다. 수는 그녀의 애인 이 대문 쪽으로 올라서자 뒤로 물러섰다. 그가 막 노크를 하려고 손을 들 어올렸을 때 그녀가 말했다. "주드!" 그는 돌아보았다. "잠깐 기다리세요. 그렇게 해 주시겠어요?" 그는 그녀에게로 돌아왔다. "우리 다시 생각해 봐요." 그녀는 소심해져서 말을 꺼냈다. "난 간밤에 무서운 꿈을 꾼 것만 같아요! ...아라벨라가...." "아라벨라가 당신에게 뭐라고 말했지?" 그가 물었다. "아, 그 여자 말로는 사람들이 결혼했을 때, 만일 남자가 때린다면 그 남 자를 고소하면 승소한다나요. 그리고 부부가 싸울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은 지에 대해서도 말했지요... 주드, 당신이 법으로 나를 당신에게 묶어 두고도 우리가 지금처럼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우리 가족의 남자와 여자 는 모든 일이 자신들에게 호의적일 때는 상당히 관대해지지만 그들은 강요 에 대해서는 항상 반발하지요. 법적인 제약 때문에 일어나는 것들이 두렵 지 않으세요? 정열의 본질은 근거가 없을 때 파괴되는 것이라고 생각지 않 으세요?" "정말이지, 또 당신은 그런 불길한 예감에 대한 말로 나를 두렵게 만들 이 시작하는군! 좋아, 돌아가서 다시 생각해 보자고." 그녀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래요, 우리 그렇게 해요!" 그녀가 말해다. 그래서 두 사람은 교구 서무계원의 집 현관 앞에서 즉시 등을 돌리고 집을 향했다. 수는 주드의 팔을 잡고 걸으면서 중얼거렸다. '당신은 벌들이 꽃을 찾아 날아다니지 못하게 할 수 있는가 또는 비둘기의 목둘레의 털빛이 변하는 것을 막을 수가 있는가 안돼! 속박하는 연애도... (토머스캠벌의 '노래'에서 인용) ' 두 사람은 그 일을 신중히 생각했다. 아니 생각하는 것을 연기했다. 확실 히 실행에 옮기는 것도 연기했다. 그리고 꿈같은 낙원에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2주일이 지나고 또 3주일이 지났지만 사태는 진전이 없었고 결혼 예고의 통지는 얼드브릭험의 어떤 장로회에도 알려지지 않았다. 그들이 이렇게 연기에 연기를 거듭하고 있던 어느 날, 아침 식사 전에 아라벨라로부터 편지와 신문이 왔다. 주드는 편지를 보고 나서 수의 방으 로 올라가 그녀에게 사실을 말했다. 그녀는 옷을 갈아입자마자 급히 내려 왔다. 수는 신문을 펴 보았다. 주드는 편지를 보았다. 그녀는 신문을 샅샅 이 보고 나서 주드 앞에 내밀고 제1면의 어느 기사를 가리켰다. 그러나 주 드는 편지에 너무 몰두해 있어서 돌아다 보지 않았다. "이것 봐요!" 그녀가 말했다. 그는 신문기사를 읽기 시작했다. 그 신문은 남부 런던에서만 배포되는 것이었다. '카트리트-돈'이라는 이름으로 게제된 광고는 워털루 로드에 있 는 성 존 교회에서 있었던 결혼식을 간단히 알리는 광고였다. 신랑과 신부 는 아라벨라와 술집주인이었다. "그래요, 이건 만족스러워요." 수가 흡족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나 지난 번과 비슷하게 행한 처사는 저속해 보이는군요. 그런데 나 는 기뻐요. 왜냐하면 그녀가 이번에는 그런 대로 자리를 잡은 것 같아요. 그녀에게 어떤 과오가 있었더라도 가엾게 생각하겠어요. 우리가 그녀에 관 해서 불안해하는 것보다 이편이 속은 훨씬 편해요. 나도 리처드에게 편지 를 써야겠어요. 그가 어떻게 지내는지 물어봐도 되지요?" 그러나 주드는 딴 생각에 빠져 있었다. 그는 언뜻 결혼 광고에 눈을 돌 렸을 뿐 잠시후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편지 좀 봐요. 난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지?" 사랑하는 주드(난 당신을 폴리 씨라고 부를 만큼 거리를 두고 싶지 않아 요.). 오늘 신문을 보내 드립니다. 고지서 난을 살펴보면, 지난주 화요일 카 트리트와 재혼했다는 사실을 아시게 되겠지요. 마침내 일은 잘 되었고 바 르게 수습되었어요. 그러나 내가 특별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내가 얼드브릭험에 갔을 때 당신에게 말하고 싶은 사적인 일입니다. 난 차마 당신의 여자 친구한테는 그것을 말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난 꼭 직접 당신에게 그 일을 알려드리 고 싶었는데, 난 편지보다 말로 전하는 것이 더 잘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 했지만요. 주드, 사실은 내가 전에 한 번도 이야기한 적이 없었지만 우리사이에는 사내아이가 있습니다. 당신과 헤어지고 나서 여덟 달 후에 내가 양친과 함 께 시드니에 있을 때 낳은 아이입니다. 이것은 모두 용이하게 설명할 수 있어요.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하고당신과 헤어진 후 부모님에게 갔 습니다. 거기서 우리는 지독하게 싸움을 했기 때문에 출산에 대해서는 알 리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어요. 당신 훌륭한 직장을 찾았기 때문에 부 모님이 그 아이를 떠맡아 주셨고, 그후 줄곧 부모님 슬하에 있었습니다. 때 문에 크리스트민스터에서 당신을 만났을 때나, 이혼수속으로 법적 절차가 진행 중일 때는 이 말을 할 수 없었어요. 아이는 물론 이제는 분별력 있는 나이가 되었어요. 그런데 부모님이 최 근에 보낸 편지에서 말씀하시길 그들이 거기서 어렵게 살아가고 있고 난 여기서 편안하게 정착해 있는데 왜 아이 때문에 고생햐야 하는지 모르겠다 고 말씀하셨어요. 그 아이의 부모들이 살아 있는데 말이에요. 난 그 애를 물론 여기서 데리고 있고 싶지만 술집에서 데리고 있기에는 너무 어리고 또 오래 동산 여기 있을 수도 없어요. 카트리트도 그 애를 자연히 귀찮게 대할지도 모르니까요. 그런데 부모님 께서는 공교롭게도 이곳으로 오는 몇몇 친구분들에게 아이를 맡겨 나한테 로 내쫓아 버렸습니다. 그래서 난 그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아 이가 도착하면 좀 맡아달라고 당신한테 부탁하는 거예요. 그 애는 법적으로 당신의 아이라는 것을 엄숙히 맹세해요. 만일 누가 아 니라고 한다면 나를 위해 지독한 거짓말쟁이라고 매도해 주세요. 결혼 전 후에 내가 어떤 일을 했든간에 결혼한 그때부터 이별을 하는 날까지는 난 당신을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 아라벨라 카트리트 씀 수는 의기소침한 표정이었다. "어떻게 하실 거예요. 당신?" 그녀는 힘없이 물었다. 주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수는 그를 걱정스럽게 지켜보다가 무겁 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날벼락이군!"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 사실일 거야! 이해가 안되는군. 만일 아라벨라가 말하는 대로 그때 아이가 확실히 태어났다면 그 애는 내 아이인 것이 확실해. 왜 그녀가 크 리스트민스터에서 만났을 때 내게 말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그날 저녁 그녀 와 함께 여기에 왔을 때 왜 말하지 않았는지 알 수가 없어! ...아, 이제야 기억나는군. 만일 우리가 다시 함께 살게 된다면 내게 알려주고 싶은 어떤 얘기가 있다고 말했던 것 말이야." "가엾게도 그 아이가 누구에게나 버림을 받다니!" 수는 눈에 눈물이 고인 채로 대답했다. 주드는 이미 제정신을 차렸다. "내 아이건 아니건간에 그 애도 어떤 인생을 가져야 하지 않겠어!" 그는 말했다. "내가 만일 좀더 나은 생활을 하고 있다면 그 애가 누구의 자식인 가는 잠시라도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그 애를 데려와서 키우겠어. 부모 가 누구냐는 문제, 그것이 어떻다는 거야?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아이와 혈연 관계가 있느냐 없느냐라는 것은 대단한 문제는 아니잖아? 이 시애에 태어난 모든 어린아이들은 이 시대 어른들의 아이들이고, 모든 어른들로부 터 보호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어. 세상의 부모들이 자기 자식만 지나치게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의 아이들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것은 계급 의식과 애국심 그리고 말세가 가까우니 네 영혼을 구하라고 설교하는 주의라든가, 그외의 다른 미덕들처럼 그 바닥에는 비열한 배타주의가 깔려 있어." 수는 벌떡 일어나 정열적인 애정으로 주드에게 키스를 했다. "그래요. 바로 그거예요, 여보! 우리 그 애를 여기로 데려와요! 그리고 만 일 그 애가 당신 애가 아니라도 좋아요. 난 정말 그 애가 당신애가 아니길 바래요. 물론, 그렇게 느껴서는 안 되겠지만! 만일 아니라면 난 그 애를 우 리 양자로 삼으면 더 좋을 것 같아요!" "글쎄, 그 애에 관해서는 당신이 좋을 대로 생각하라구!" 그는 말했다. "어쨌든 나는 그 불행한 꼬마 아이를 팽개쳐 버리고 싶지가 않아. 람베 스의 술집에서 있을 아이의 생활을 생각해 봐. 현재 변변히 그 애의 얼굴 을 본 적도 없고 키우고 싶지도 않은 어머니와 그 애를 전혀 알지도 못하 는 계부와 함께 람베스의 술집에서 어떤 생활을 보낼지, 어떤 나쁜 영향을 받을지 등을 생각해 봐요. '내가 태어난 그 날을 멸망하게 하라. 그리고 남 자아이를 배게 된 그날 밤도 멸망하게 하라!'(욥기, 3장 3절) 그 아이가, 어 쩌면 내 아이일 수도 있는데, 머지않아 이런 말을 중얼거리게 될 것을...!" "아, 아니에요!" "내가 이혼 소소의 신청인이었기 때문에 실제로 그 아이의 후견인이 될 자격은 있다고 생각해요." "어떻든간에, 그 애를 데려와요. 이제 알겠어요. 난 그 애한테 좋은 엄마 가 되도록 최선을 다할 거예요. 그리고 우리는 그 애를 기를 여유가 어느 정도는 있으니까요. 더 열심히 일하면요. 그 애가 언제 도착할까요?" "2, 3주 내에 도착하겠지." "그랬으면 좋겠네요. 우리는 언제쯤 용기를 내서 결혼할까요, 주드?" "당신이 용기만 있으면 언제라도 가능하지. 그거야 전적으로 당신에게 달린 거야. 결혼하겠다고 말만 하면, 결혼은 한 거나 같지." "그 아이가 오기 전에요?" "물론이지." "그게 어쩌면 그 아이한테 더욱 자연스러운 가정을 만들어 주는 일이 되 겠어요." 그녀는 중얼거렸다. 마침내 주드는 그 아이가 도착하는 대로 자기들에게 곧 보내주기를 바란 다는 것을 한껏 격식을 차린 어투로 부탁했다. 그리고 아라벨라가 보낸 소 식에 대한 느낌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또 이 아이의 아버지에 대한 것이라든지 또한 진상을 완전히 파악했다 하더라도 아라벨라에 대한 자신의 태도 어떠했을 거라는 것에 대해서도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 다음날 저녁 10시쯤 얼드브릭험 역에 도착하는 하행 열차에서 키가 작고 창백한 얼굴을 한 아이가 어두운 3등칸 객실에서 보였다. 이 아이는 놀란 듯한 커다란 눈을 가졌고, 흰 털목도리를 두르고 있었다. 그 위에는 흔한 줄에 열쇠를 하나 달아서 두르고 있었다. 이 열쇠가 이따금 등불에 비쳐 번쩍였기 때문에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모자끈에는 이 아이의 반액 기차표가 달려 있었다. 아이의 시선은 맞은편 좌석 뒤쪽에 고정되어 있었 다. 역에 도착해서 역명이 들려와도 결코 창문 쪽을 돌아보지도 않았다. 맞 은편에는 두서너 명의 승객이 앉아 있었다. 그 중의 한 사람은 바구니 하 나를 무릎 위에 올려놓은 노동자 차림의 여자였다. 그 속에는 얼룩무늬 새 끼 고양이가 들어 있었다. 그 여자가 가끔 뚜껑을 열면, 고양이는 머리를 내밀고 익살을 부렸다. 이것을 보고 모든 승객들이 웃었다. 그러나 열쇠와 기차표를 가진 이 쓸쓸해 보이는 아이만은 예외였다. 이 아이는 접시처럼 둥근 눈으로 고양이를 지켜보면서 말하는 것 같았 다. '모든 웃음이란 오해에서 생기는 거야. 사태를 올바르게 바라보면 태양 아래 이 세상에는 웃을 일은 하나도 없어.' 때때로 정차할 때면 차장이 칸막이 안을 들여다보면서 이 소년에게 말했 다. "괜찮아, 얘야. 너의 짐은 화물차 속에 안전하게 있으니까." 소년은 기운없이 대답했다. "알았어요." 소년은 웃음을 지으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이 아이는 '소년'의 가면을 쓴 '노인'이었다. 게다가 가면을 쓴 것이 지극 히 서툴렀기 때문에 여기저기의 틈바구니로부터 이 아이의 본래의 모습이 보였다. 옛날의 영원한 어두움에서 생겨난 대지는 이렇게 아직 인생의 여명기에 있는 아이를 때때로 높이 들어올리는 것 같았다. 이때, 이 소년의 얼굴에는 막막한 '시간'이라는 대해원을 멀리 뒤돌아보고 무엇 하나 마음에 새기려는 모습이 조금도 없었다. 다른 승객들이 하나씩 눈을 감았고 새끼 고양이조차도 지루한 놀이에 지 쳐 바구니 안에서 몸을 웅크렸다. 소년만은 전과 같은 상태로 남아 있었다. 소년은 마치 노예가 되어 왜소해진 신처럼, 두 배로 눈이 커진 듯했다. 수 동적으로 앉아 다른 승객들을 바라보는 모습이 마치 바로 눈앞에 있는 모 습을 보는 것보다 그들이 다 살고 난 전생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아이가 바로 아라벨라의 아들이었다. 아라벨라는 몇 주 전부터 근간 에 아이가 곧 도착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편지에 열심히 쓴 것처럼 올 드브릭험을 방문했던 주요한 이유는 아이가 있다는 것과 근간 그 아이가 돌아올 것이라는 것을 주드에게 알리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평 상시의 부주의 때문에 아이가 도착하는 전날까지 주드에게 편지 쓰는 것을 미루고 있었다. 그녀가 전 남편으로부터 답장을 받은 바로 그 날 오후에, 아이는 런던의 부두에 도착했다. 그를 데려다 주기로 했던 가족은 람베스로 가는 마차에 아이를 태우고 어머니 집으로 데려다 주라고 마부에게 지시하고는 아이에 게 작별을 고하고 떠나버렸다. 아이가 호른 3번가에 도착했을 때, 아라벨라는 그 아이가 자신이 예상했 던 것과 너무 똑같다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빤히 쳐다보았다. 그 후 아이에게 먹을 것을 잘 먹이고 돈도 조금 주어 늦기전에 다음 기차편으 로 주드에게로 보냈다. 이것은 오로지 외출중인 남편 카트리트의 눈에 아 이가 띠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기차가 얼드브릭험에 도착했다. 아이는 쓸쓸한 승강구에 내려 짐꾸러미 옆에 섰다. 개찰 계원이 아이의 표를 거두고 사태가 정상적이 아니라는 생 각이 들어서 아이한테 이 밤중에 혼자서 어디를 가느냐고 물었다. "스프링가에 갑니다." 작은 아이는 태연하게 말했다. "거긴 왜 가니? 거긴 여기서 먼데. 시골에서도 가장 외진 곳이란다. 그리 고 사람들은 이미 잠자리에 들었을 거야." "난 거기에 가야 해요." "짐꾸러미도 있으니 마차를 타거라." "아니에요. 걸어가야 해요." "아, 그래. 네 짐꾸러미는 여기다 맡겨놓고 나중에 사람을 보내 찾아가거 라. 거기는 반은 버스로 가지만 나머지는 걸어가야 한단다." "난 무섭지 않아요." "친구들한테 마중 나오라고 하지 그랬어?" "내 생각에 그분들은 내가 오는 것을 모를 거예요." "너의 친구분들이 누군데?" "엄마가 말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걸 맡아주는 것밖에 없겠구나. 자, 되도록 빨리 걸어가거라." 소년은 더이상 대답하지 않고 거리로 나왔다. 누가 따라오거나 그를 살 피고 있지는 않는지 주위를 둘러보았다. 얼마간의 거리를 걸어간 다음 아 이는 행선지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 도시의 교외까지 곧장 걸어가라는 말 을 들었다. 아이는 기계처럼 일정하게 느린 발걸음으로 걸어갔다. 그러나 그 발걸음 하나하나는 무엇인가 인간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마치 파도와 바람과 구 름이 움직이는 것과 흡사했다. 가르쳐 준 그 길을 더듬거리면서 걸었고 주 변의 것들에 대해서는 눈길 하나 주지 않았다. 소년의 생활관은 이 고장의 애들과는 달랐다. 대개의 아이들은 우선 부 분적인 것부터 시작해서 일반적인 것을 배우고, 인접한 것에서 시작하여 보편적인 것을 배운다. 이 아이는 인생의 일반적 원리에서 출발하여 자세 한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았다. 이 아이에게 있어서 집들과 버드 나무와 멀리 어둠에 싸인 들판은 실제로 사람이 살고 있는 벽돌집이고, 가 지 자른 나무이며, 목초지 따위로 보이지는 않았고 다만 추상적인 주거, 추 상적인 식물, 단지 넓은 암흑의 세계로만 생각되었다. 소년은 작은 골목으로 들어서서 주드의 집 대문을 노크했다. 주드는 피 곤해서 막 잠자리에 들었고 수가 옆에 있는 그녀의 방으로 막 들어가려고 하다가 노크 소리에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여기가 아버지가 사시는 곳입니까?" 아이가 물었다. "누구 말하는 거니?" "폴리 씨요. 그분 이름인데요." 수는 주드의 방으로 뛰어올라가 그에게 말했다. 그는 되도록 빨리 서둘 러 내려왔지만 조바심에 차 있는 수에겐 그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뭐 - 그애라구 - 이렇게 빨리?" 주드가 이렇게 말하며 들어섰을 때 그녀는 아이의 모습을 샅샅이 훑어보 고다가 옆에 있는 작은 거실로 가버렸다. 주드는 아이를 자기와 같은 위치 에 올려놓고 침울하고 부드러운 표정으로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렇 게 금방 올 줄 알았더라면 마중을 나갔을 거라고 그 아이한테 말했다. 그 아이를 임시로 의자에 앉히고 나서 수에게 갔는데, 극도로 예민한 성 품을 지닌 그녀는, 그가 생각했던 대로 마음이 혼란스러운 것 같았다. 그는 어둠 속에서 안락의자에 기대고 있는 그녀를 발견했다. 그는 팔로 그녀를 안았고, 그녀의 얼굴에 자기의 얼굴을 갖다 대었다. 그리고 속삭였다. "무슨 일이 있는 거야?" "아라벨라가 말한 게 사실이에요. 사실이라구요! 난 그 아이한테서 당신 의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그럴지도 모르지. 그렇다면 여하튼 나의 분신이니까 당연하겠지." "그러나 그 아이의 나머지 반은, 그 여자예요! 그걸 생각하면 도저히 참 을 수 없어요. 하지만 참아야지요. 그러나 익숙해지도록 하겠어요. 그럼요, 힘써야지요!" "질투심 많은 귀여운 수! 당신한테 성적감정이 없다고 말했던 것은 취소 하겠어. 걱정하지 말아요!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그리고 수, 나한테도 생각이 있지. 대학을 목표로 그 아이를 교육시킵시다. 나 스스로 못한 일을 아마도 그 아이에게는 시켜볼 수 있을 거야. 이제는 가난한 학생이라도 대 학 가는 것쯤은 마음만 먹으면 훨씬 쉽게 할 수가 있으니까." "아, 당신도 몽상가예요!" 그녀가 말하고 나서 그의 손을 잡고 아이한테로 돌아왔다. 그 소년은 그 녀가 자신을 쳐다보았던 것처럼 그녀를 쳐다보았다. "아줌마가 결국 내 진짜 엄마가 되는 겁니까?" 소년이 물었다. "왜? 내가 네 아버지 부인같이 보이니?" "글쎄요, 그런 것 같네요. 아버지가 아줌마를 좋아하시고 아줌마가 아버 지를 좋아하시는 걸 보면요. 엄마라고 불러도 돼지요?" 그런 다음 소년의 얼굴은 사람을 그리워하는 빛으로 변하더니 울기 시작 했다. 그러자 수도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가슴에서 나오는 한 가닥의 최소한의 감정이라도 그녀의 마음을 쉽사리 뒤흔들 수 있도록 만들어진 하프와도 같았다. "네가 부르고 싶다면 엄마라고 불러도 좋다. 가엾게도!" 그리고 그녀는 눈물을 감추기 위해 아이의 뺨에 자기 뺨을 갖다 대었다. "목에 두르고 있는 이건 뭐야?" 주드가 애정이 가득한 침착한 태도로 물어보았다. "역에 맡겨둔 내 짐꾸러미 상자 열쇠예요." 두 사람은 각각 부산하게 움직여 아이에게 늦은 저녁밥을 차려 주었다. 그리고 임시로 잠자리도 만들어 주자 아이는 곧 잠이 들었다. 두 사람은 아이가 자고 있는 방으로 가서 그 애를 쳐다보았다. "이 녀석이 잠들기 전에 두서너 번이나 당신을 엄마라고 불렀지." 주드가 중얼거렸다. "그 애가 그렇게 불러보고 싶어하다니 희한한 일인데!" "글쎄요, 색다른 의마가 있는 것 같아요." 수가 말했다. "하늘에서 반짝이는 모든 별들보다도, 이 어리고 배고픈 한 사람의 마음 을 우리가 더 생각하지 않으면 안돼요. ...내 생각으로는 우리도 용기를 내 어 결혼식을 올리는 게 어때요? 시류에 반대해서 싸워 봤자 아무 소용이 없군요. 난 여성이라는 나 자신의 신분에 차츰 스스로 얽매이는 듯한 느낌 이 들어요. 아, 주드, 당신은 이제부터 날 많이 사랑해 주실 거지요? 그렇 지요! 난 이 아이한테 친절을 베풀고, 이 아이의 엄마가 되고 싶어요! 우리 의 결혼에 합법적인 형식만 갖춘다면, 내가 이런 일을 하는 게 훨씬 쉬워 질 거예요." 5-4 두 사람의 두번째의 시도는 더욱 신중하게 행해졌다. 비록 그 일이 그들 집에 이 이상한 아이가 도착한 다음날 아침에 시작되긴 했지만 그들은 아 이가 조용히 앉아 있는 습관이 있고 그 애의 얼굴 생김이 이상하고 불가사 의한 데가 있다는 것과 아이의 시선이 그들이 실질적인 세계에서는 볼 수 없는 것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애의 얼굴은 멜포미니(그리스 신화의 비극의 신)의 비극적인 얼굴 같아요." 수가 말했다. "너의 이름이 뭐지, 얘야? 우리에게 말했었니?" "애들이 나를 '꼬마 영감'이라고 불렀어요. 이건 별명이에요. 왜냐하면 내 가 너무 나이들어 보인다고 애들이 그랬어요." "그런데 넌 말도 그렇게 하는구나." 수가 부드럽게 말했다. "주드, 이렇게 불가사의한 고대의 소년들은 언제나 대부분 새로운 나라 에서 온다는 게 이상하죠? 그런데 너의 세례명은 뭐니?" "안받았어요." "왜 안받았지?" "왜냐하면 지옥에서 죽으면 기독교식 장례비용이 절약된데요." "오, 너의 이름이 주드는 아니구나?" 그의 아버지는 약간은 실망하며 말했다. 그 소년은 머리를 저었다. "그런 이름은 못 들어 봤어요." "물론, 못 들어 봤겠지." 수가 잽싸게 말했다. "왜냐하면 그 여잔 항상 당신을 미워했을 테니까요!" "우리가 이 애를 세례받게 해주자구." 주드가 말했다. 그리고 수에게 은밀히 말했다. "우리가 결혼하는 그날에 말야." 그러나 그 아이의 출현은 그에게 당장 지장을 주게 되었으며 그들의 처 지를 어색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그들은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것보다 는 경정의 등록사무실에서 은밀하게 결혼 절차를 밟기로 했다. 그들은 이 번엔 교회를 피하기로 결정했다. 두 사람은 결혼을 통고하기 위해 그 경정의 사무실로 갔다. 그들은 그렇 게 동행을 했기 때문에 서로에게 동행이 되어 준다는 것 외에는 더 이상의 어떤 중요한 일도 할 수가 없었다. 주드 폴리는 통지서 양식에 서명을 했다. 수는 그의 어깨 너머로 낱말들 을 쫓아가는 듯한 그의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에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사각형 보증서를 보았을 때 그 안에 자신의 이름과 주드의 이름이 적혀 있 었다. 그것에 의해 서로에 대한 그들의 사랑이 가변적인 본질이 영구적인 것이 된다는 생각이 들자 그녀의 얼굴에는 고통스런 표정이 짙어지는 듯했 다. '양쪽의 이름과 성'(그들은 이제 결혼하는 양측이지 애인이 아니라고 그 녀는 생각했다), '신분'(끔찍한 생각), '지위 혹은 직업', '나이', '거주지', '거 주시간', '결혼식이 거행될 교회 또는 건물명', '양측 당사자가 각각 거주하 는 지역과 지방'. "정말 기분을 망치게 하는군요. 그렇잖아요!" 그녀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교구회에서 계약에 서명하는 것보다 더 너저분한 일인 것 같아 요. 교회엔 약간의 과정이 있잖아요. 하지만 우리가 그 일을 끝내도록 노력 해야겠지요." "그래야지. '여자와 혼약을 맺어놓고 아직 그 여자를 자기 것으로 만들지 않는 자 누구리오? 그로 인하여 그의 집으로 돌아가게 할지어다. 그가 싸 움터에서 죽으면 다른 남자가 그녀를 차지하리라'('구약성서' 신명기, 20장 7절)라고 유대인의 율법자는 말했지." "당신 성경을 정말 잘 아시네요, 주드! 당신은 정말 목사가 되었어야 해 요. 난 세속적인 작가들의 글만 인용할 수 있어요!" 결혼 허가증이 나오기 전까지 수는 가끔 집안일로 사무실을 지나다녔다. 어느날 슬쩍 안을 들여다보니 두 사람의 결합을 매듭짓기 위한 고지서가 벽에 붙어 있었다. 그녀는 고지서를 보자 참을 수가 없었다. 이전에 결혼 생활에 대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현재 상황을 같은 범주에 놓고 본다면 그들 애정의 모든 낭만은 사라져 버리게 될 것 같았다. 그녀가 곧잘 꼬마 영감의 손을 잡고 다녔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애를 그 녀의 자식으로 생각할 거라 짐작되었다. 그리고 옛날의 잘못을 보상하는 마음으로 결혼식은 꼭 올려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동안 주드는 메리그린에서 보낸 그의 어린시절과 연결되는 이 세상에 남은 유일한 사람을 결혼식에 초대하여 작게나마 그의 현재를 과거와 이어 놓겠다고 결심했다. 그 사람은 대고모의 친구이며 임종 때까지 그녀를 돌보아주던 에들린 부 인이었다. 그녀도 이제 나이도 들었고 혼자 살고 있었다. 그 노파가 와줄 것인가는 기대하기 어려웠는데, 그 노파는 사과와 잼, 놋쇠로 만든 심지 다 듬기, 낡은 백랍접시, 난방용 냄비 그리고 침대보에 넣은 거대한 거위털 꾸 러미 같은 진귀한 선물들을 가지고 왔다. 그녀는 주드의 집에 있는 빈 방에 숙소를 정했다. 방으로 일찌감치 들어 간 그는 예배의 규정에 있는 대로 큰소리로 하나님의 기도문을 제창했으면 그 소리는 천장을 뚫고 아래까지 들려왔다. 그러나 그녀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수와 주드가 자지 않고 있는 걸 알아차린 그녀는 - 사실 10시밖에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 다시 옷을 입고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그들은 모 두 늦게까지 난로 옆에 앉아 있었다. 꼬마 영감도 함께 앉아 있었는데 전 혀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거의 그를 인식하지 못했다. "그런데 난 너의 대고모가 그랬던 것처럼 반대하지는 않겠다." 과부댁이 말했다. "그리고 난 이번엔 어느 모로보나 너희를 위해 즐거운 결혼식이 되길 바 란다. 어느 누구도 나만큼 너희 집안에 대해 아는 사람도 없으므로 현재 살고 있는 어떤 사람도 나만큼 기쁘지는 않을 거다. 왜냐하면 폴리 집안 사람들은 연본은 맺는 것에는 운이 없는 편이건든." 수는 불안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또, 항상 마음씨가 좋았지. 파리 한 마리도 죽이지 못하는 사람 들이었단다." 결혼식에 초대 받은 손님은 말을 계속했다. "그러나 뜻밖의 일들이 생겨났고 만약 모든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그 들은 뒤죽박죽이 되곤 했지. 정신이 이상해지고 말았기 때문에 그런 짓을 저지르고 말았겠지만... 그 사람도 너희 집안 사람 중의 한 사람이지."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주드가 물었다. "응, 그 얘기 너도 알고 있잖니. 브라운 하우스 옆 언덕 위에서 교수형을 당한 그 남자 말야. 메리그린과 알프레드스톤 사이에 마일 표지석을 조금 지나 다른 길로 갈라지는 그곳 말이야. 하느님 맙소사! 우리 할아버지 때의 일이었다. 그 미친 사람이 너희 가족 중의 하나였을지 몰라." "교수대가 서 있던 곳은 아주 잘 압니다." 주드가 중얼거렸다. "그러나 들어보지 못했는데요. 우리 조상이며 수의 조상인 이 사람이 무 슨 일을 했나요? 그의 아내를 죽였나요?" "정확히 그렇지는 않아. 마누라가 애를 데리고 친구의 집으로 도망을 쳤 는데 그러는 동안 그 애가 죽어 버렸다는군. 그는 조상들이 묻혀있는 곳에 묻으려고 그 애의 사체를 달라고 했으나 그녀가 내어주지 않았지. 그 여자 의 남편은 어느날 밤에 수레를 끌고 와서 집에 침입해 관을 훔쳐가려 했는 데 그만 잡히고 말았지. 화가나서 무엇 때문에 그집에 들어왔는지 말하지 않았던 거야. 사람들은 그것을 강도죄로 몰아 잡아갔고 그는 브라운 하우 스 언덕에서 교수형을 당했어. 그의 아내는 그가 죽은 후에 미쳐 버렸고. 하지만 그 사람은 우리쪽보단 너희 가문에 속한 사람인 것 같아." 작고 느린 목소리가 땅에서 솟아나는 것처럼 난로 그늘 쪽에서 들려왔 다. "만약 내가 엄마라면 난 아빠와 결혼하지 않겠어요!" 그 소리는 꼬마 영감 입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들 모두 놀랐던 것은 지 금까지 그를 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그건 단지 얘기일 뿐이야." 수가 명랑하게 말했다. 예식 전날 밤에 할머니로부터 어처구니 없는 이 야기를 듣고 난 후에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손님에게 잘 자라고 인사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신경이 곤두서기 시작한 수는 집을 나 서기 전에 은밀히 주드를 거실로 불렀다. "주드, 애인이었을 때처럼 키스해 주세요." 그녀는 속눈썹이 젖은 채로 떨면서 그에게 바짝 다가서면서 말했다. "더 이상 이런 기분이 들지는 않겠죠? 그렇겠죠! 우리가 이 일을 시작하 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걸 그랬어요. 하지만 그 일을 계속해 나가야만 한다 고 생각해요. 어젯밤 그 얘기는 너무 무서웠어요! 그 얘기가 오늘 내 기분 을 망쳤어요. 아트레우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 아가멤논의 아버지) 의 집안에 덮인 것 같은 비극적인 운명이 우리 가운데도 덮여 있는 것 같 은 느낌이 들어요." "아니면 에로보암(B.C 926-906년 재위 ; 처음에는 솔로몬 왕에게 기용되 었다가 나중에 반란을 일으켜 이집트로 도망간 이스라엘 북왕조의 창시자 의 집안. '구약성서' 열왕기 상 2장 26-40절)의 집안같이 말이야." "그래요. 결혼하러 간다는 것이 우리 두 사람에게는 너무 무모한 짓인 것 같아요! 내가 전 남편에게 맹세했던 것과 같은 말로 맹세를 하게 되겠 죠. 그리고 당신도 당신의 전 아내에게 했었던 것과 같이 나에게 맹세하겠 지요. 우리가 이미 예전의 경험에서 배운 교훈을 고려하지 않은 채." "만약 당신이 불안하다면 나도 붕행하게 될 거야." 그가 말했다. "난 당신이 정말 즐겁게 느끼길 바랐는데 만약 당신이 그렇지 않다면 그 렇지 않은 거겠지. 즐거운 척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지. 당신에게 무시무 시한 일이라면 내게도 그런 거야!" "어제 아침같이 기분이 좋지 않아요. 그뿐이에요." 그녀는 중얼거렸다. "자, 이제 가요." 그들은 팔짱을 끼고 앞서 말한 사무실을 향해 출발했다. 에들린 할머니 를 제외하고는 그들과 동행하는 증인은 아무도 없었다. 날씨는 흐리고 쌀쌀했으며 '왕위가 있는 탑이 비치는 템즈강'(밀튼의 시, 'At a vacation Excercise')에서 불어오는 냉습한 안개 바람이 도시를 통과 하여 불어왔다. 사무실 계단에는 그곳으로 들어간 사람들의 진흙 발자국이 찍혀 있었고 입구에는 물기있는 우산들이 있었다. 사무실에는 몇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군인과 젊은 여자의 결혼식이 진행되고 있는 것을 그 두 사람은 볼 수 있었다. 수, 주드 그리고 에들린 할머니는 이 예식이 진행되는 동안 뒤쪽에 서 있었다. 수는 벽에 붙어 있는 결혼통지서를 읽고 있었다. 그 방은 자주 드 나드는 사람에게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방이었지만 현재의 수와 주드에게는 불쾌한 곳이었다. 5-5 여러 가지 감정이나 여러 행위를 기록하는 기록자에게 앞서 말한 중대한 논쟁에 대한 그의 개인적 견해를 표현할 것을 요구받지는 않는다. 그 한쌍 의 남녀는 행복했다-그들의 슬펐던 시간들 사이에서도-는 것은 의심할 여 지가 없었다. 그리고 주드의 아들의 뜻하지 않은 출현도 처음의 양상만큼 방해가 되는 사건도 되지 못했다. 그 일은 오히려 그들에게 새로운 삶과 자잘구레한 일들에 대해 부드러운 관심을 갖게 해주었다. 그들의 행복을 해치기보다는 오히려 행복해지기를 도와주는 사건이 되었다. 또한 확실히 상냥하면서도 근심스러워하는 존재인 그들에게(토마스 그레 이, '시골 묘지에서 쓴 애가'의 86행) 그 소년이 온 것은 미래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특히 그 아이가 소년시절에 흔히 갖는 일반적인 희망이 결여되어 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더 그랬다. 그러나 두 사람은 적어도 잠시동안은 너무 지나친 기대는 걸지 않으려 노력했다. 북웨섹스에는 2천 내지 1만 명의 인구가 사는 오래 된 도시가 있다. 스 톡 베어힐스라고 불리는 곳이다. 그 도시에는 백악층 곡물지대와 볼품없고 오래된 교회 그리고 새로 지은 붉은 벽돌의 교외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리 고 얼드브릭험의 시내와 윈톤세스터 그리고 쿼터쇼트의 중요한 군사기지를 연결하는 삼각형의 중앙 부분에 위치해 있는 곳이었다. 런던에서부터 뻗은 커다란 서부 외곽도로가 그 도시를 통과해 가면 얼마 안되는 지점에서 둘로 갈라지고 멀리 서쪽으로 20마일쯤 되는 곳에서 다시 합쳐진다. 나뉘었다가 다시 만나는 이 길은 철도 시대 이전에 마차로 여행하던 사 람들 사이에서는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을 제공하던 곳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일도 옛날 할당세를 분수에 맞게 잘 지불 하던 자유 소지주나 가도의 마차꾼, 우편마차의 마부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오늘날 스톡 베어힐스 주민 중 단 한사람도 자기 마을 통과한 두 길이 다시 만난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왜냐하면 서부 대로를 왕래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늘날 스톡 베어힐스에서 가장 친숙한 대상물은 철도 뒤의 묘지였다. 근대식 예배당과 근대식 무덤, 근대식 관목숲이 덩굴로 뒤덮여 사그라진 고대의 성벽에 에워싸여 주제넘게 끼어든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 이야기는 특정한 해의 어느 날에 이르게 된다. - 그달의 초순이었다. 이 도시의 모습은 조금도 흥미로운 것이 없었지만 기차를 이용해 많은 방문객 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특히 하행열차는 여기서 거의 텅텅 비게 되는 것이 었다. 대 웨섹스 농업 쇼가 열리는 주간이었다. 그 쇼를 위해 광대한 천막촌이 포위 부대의 천막처럼 그 도시의 확 트인 외곽에 퍼져 있었다. 몇 줄이고 줄줄이 이어 선 대천막, 가장자리에 있는 유숙장, 토막집, 아케이드, 현관, 주랑들에 이르기까지 영구적인 구조물이 아닌 모든 종류의 가건물이 반 마 일 정도 사방에 걸쳐 녹색의 들판을 뒤덮고 있었다. 이곳에 도착한 군중들은 떼를 지어 시내를 통과해 그 전람회장으로 곧바 로 갔다. 거기까지 가는 길에는 여러 가지 전시물과 가게들과 봇짐장수들 이 있어서, 전람회장으로 가는 길 전체를 상설시장으로 만들어 놓고 있었 다. 그래서 구경하러 온 박람회 문이 채 도착하기도 전에 호주머니가 가볍 게 되어 버리는 사람도 약간 있었다. 대중들을 위한 날이며 1실링의 날이었다. 그래서 서로 다른 방향에서 오 는 빠른 유람열차가 거의 같은 시간에 역사에 들어오기도 했다. 하나는 턴 에 도착했던 몇 개의 열차처럼 런던으로부터 온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교차 하는 지선에 의한 것으로 얼드브릭험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런던에서 온 열차에서 한 쌍의 남녀가 내렸다. 키가 작고 비만인 편이며, 불룩한 배 아래로 짧은 다리가 솟아 나와 못 두 개 위에 얹혀 있는 팽이같 이 보이는 사나이와 동행한 사람은 약간은 얼굴빛이 붉고 세련되어 보이는 자태의 여인이었다. 그녀는 의상 전체가 검은색이었는데 보닛에서 스커트까지 염주 구슬로 뒤덮여 있었기 때문에 쇠사슬로 엮어 만든 갑옷을 입고 있는 것 같이 반짝 이고 있었다. 그들은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남자가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대여 마차를 빌리려고 하자 여자가 말했다. "그렇게 서두를 것 없어요. 카트리트. 전시장까지는 그리 멀지 않아요. 그곳까지 우리 걸어가요. 어쩌면 싸구려 가구나 오래된 도자기를 건질 수 도 있잖아요. 내가 여기 온 지도 오래 되었군요. 얼드브릭험에서 아직 처녀 였을 때를 빼고는 온 적이 없군요. 젊은 남자친구와 가끔씩 짧은 여행을 하곤 했었죠." "유람 열차로 가구 같은 건 가져갈 수 없어." 그녀의 남편이자 람베스의 술집 주인인 사내는 무뚝뚝한 소리로 말했다. 그들은 '진짜로 술꾼이 많고,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인 람베스의 술집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그 남편도 그의 손님들과 마찬가지로 그가 거래하는 술 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는 것을 그의 몸짓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만약 값어치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 부치면 되죠." 그의 아내가 말했다. 그들이 어슬렁어슬렁 걸으며 시내를 들어서는 순간 아이를 동반한 젊은 부부의 모습이 그녀의 시선을 끌었다. 그들은 수증기 를 내뿜는 얼드브릭험에서 온 열차가 있는 2번 플랫폼에서 나온 사람들이 었다. 그들은 선술집을 경영하는 부부 바로 앞을 걷고 있었다. "이런, 세상에!" 아라벨라가 말했다. "뭔데?" 카트리트가 물었다. "저 부부가 누구라고 생각해요? 당신 저 남자 모르시겠어요?" "모르겠는데." "사진으로 보여준 적이 있잖아요. 그래도 모르겠어요?" "폴리란 말야?" "예, 확실해요." "오, 그래. 그 사람도 우리들처럼 관광을 하고 싶었나보지." 주드에 대한 카트리트의 관심은 아라벨라가 그에게 다시 돌아왔을 때에 는 어느 정도 있었지만 그녀의 매력, 그녀의 기벽, 그녀의 여분의 가발 그 리고 그녀가 순식간에 만들어낸 보조개가 모두 거짓이었다는 것이 밝혀지 고 나서는 시들해져 버렸다. 아라벨라는 자기 발걸음과 남편의 발걸음을 조절해서 세 사람의 바로 뒤 를 따르도록 보조를 맞추었다. 보행자들의 큰 흐름 속에서 남의 눈에 띄지 않고 그 일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카트리트의 질문에 대한 그녀의 대답은 애매하고 미온적이었다. 왜냐하면 그녀에겐 주위의 어떤 광경보다 그녀 앞에서 걸어가는 그 세 사람이 더 관심을 끌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서로 좋아하기 때문에 그들의 아이도 좋아하는 것 같은데." 술집 주인이 말을 이었다. "그들의 아이라고요! 저 애는 그 사람들의 애가 아니에요." 아라벨라는 기묘하고도 탐욕스러운 말투로 갑자기 이렇게 대답했다. "그들은 저 정도 나이의 애를 가질 만큼 결혼생활을 오래 하지 않았어 요." 남편의 추측을 정면으로 논파하고 싶을 만큼 끓어오르는 모성 본능이 강 했지만, 그녀는 필요에서라기보다 공정한 판단 아래 그만 두자는 생각이 들었다. 카트리트는 그의 아내가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는 오스 트레일리아에 있는 외조부모와 함께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래, 내 생각도 그래. 저 여자는 처녀같아 보여." "그들은 단지 연인이거나 아니면 최근에 결혼해서 저 아이를 맡아 기르 고 있는 거예요. 누구라도 알 수 있어요." 모두가 앞으로 움직여 나갔다. 아무것도 의식하지 못한 수와 주드는 자 기 마을에서 20마일 내에서 개최되고 있는 농업 박람회에 당일치기 유람여 행을 하기로 결정했다. 적은 비용으로 학습과 오락을 겸할 수 있었기 때문 이었다. 그들 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은 꼬마 영감을 데리고 왔던 것이다. 그들은 다른 소년들처럼 그 애도 떠들고 웃게 만들려고 모든 수단을 써서 노력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여행을 즐기면서 나누려 했던 친밀한 분위기 에는 다소 장애가 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곧 그 애를 감시자로 여기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수줍어하는 연인들도 못내 감추지 못할 상냥한 마음씀씀이를 서로 에게 베풀면서 여행을 즐겼다. 완전히 낯선 사람들 사이에 있다는 생각에서인지 그들은 집에서 그렇게 했던 것보다 더 그들의 감정을 감추려 하지 않았다. 새로 지은 여름옷을 입은 수는 새처럼 유연하고 가벼워 보였으며, 그녀의 작은 엄지는 흰 면직 양산의 손잡이를 받쳐 세우고 있었다. 그녀는 거의 땅에 닿지 않는 듯한 걸음걸이로 걸어갔다. 그래서 마치 강한 바람이 한번 불면 그녀는 울타리 를 넘어 옆 들판으로 떠올라 버릴 것 같았다. 밝은 회색의 휴일용 정장을 입고 있는 주드는 그의 동반자를 진정으로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녀의 외적인 매력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녀의 동 정 어린 말과 태도 때문이었다. 매번의 눈길과 움직임 속에 상호간의 완전 한 이해는 그 둘 사이에 정보를 교환하기 위한 언어로서 효과적이었고 그 들을 한 개의 원을 구성하고 있는 두 부분으로 만들어 놓고 있었다. 맡아 기르고 있는 아이를 데리고 있는 이 한쌍이 통행문을 지날 때, 아 라벨라와 그의 남편은 그들 뒤에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다. 구내에 들어섰을 때 선술집의 여자는 앞의 두 사람이 살아 있거나 죽어 있는 수많 은 흥미로운 대상들을 가리키며 어린아이에게 애써 무엇인가를 설명하려고 하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애의 무관심을 깨뜨려 보려는 그들의 노 력이 매번 실패하자 그들 얼굴에 스치는 슬픔도 볼 수 있었다. "어떻게 저 여자는 그에게 저렇게 붙어 있지!" 아라벨라가 말했다. "오, 이런, 그들은 아직 결혼하지 않은 거야. 아니면 저렇게 서로에게 다 정할 수 없지. 의심스럽군!" "그런데 당신은 저 남자가 저 여자와 결혼했다고 말했잖아?" "난 그가 그럴 예정이라는 말까지만 들었어요, 그 뿐이에요. 한두번의 연 기 후에 다시 시도할 예정이라고... 두 사람 사이에 관한한 그들은 쇼에 나 오는 사람 바로 그들과 같죠. 내가 만약 저 남자의 처지였다면 내 자신을 그렇게 어리석게 만든 것에 대해 부끄럽게 여겼을 거예요!" "난 저 사람들의 행동에서 어떤 주목할 만한 게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 데? 만약 당신이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면 난 저들이 사랑하고 있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거야." "당신은 결코 어떤 것도 볼 수 없겠죠." 그녀는 되받아 대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트리트의 연인이나 결혼 한 부부의 행동에 대한 견해가 일반 군중의 견해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아라벨라의 예리한 시야가 꿰뚫어 볼 수 있는 것이 일반 대중의 주의를 끌 길은 없는 듯 보였다. "저 남자는 마치 그 여자가 요정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녀에게 홀려있어 요!" 아라벨라가 계속해서 외쳐댔다. "보세요. 그가 얼마나 그녀를 두루 보아주는지. 그리고 그녀에게만 시선 을 두고 있잖아요. 어쩐지 그가 저 여자를 사랑하는 만큼 그녀가 그를 좋 아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녀는 내 생각엔 특별히 다정한 여자는 못 되는 것 같아요. 하긴 그녀는 그를 웬만큼 좋아하는 것 같긴 해요. 그녀 가 할 수 있는 한은 말이죠. 그래서 그가 그렇게 하려고만 한다면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도 있겠죠. 그는 너무 순진해서 그렇게 할 수 없겠지 만요. 저기, 그들이 짐마차 전시장으로 건너가네요. 어서 가요." "난 짐마차 같은 건 보고 싶지 않아. 저 두사람을 따라다니는 게 우리 일도 아니잖아. 쇼를 보러 왔으면 우리 식대로 구경하고 그들은 그들 식대 로 하도록 하자고." "그럼, 우리 한 시간 후에 어딘가에서 다시 만나는 게 어때요? 저기 다 과점 천막 있는 데가 어때요? 각각 돌아다니면? 그러면 당신은 당신이 선 택한 것을 볼 수 있고 그리고 나 역시 그렇고요." 카트리트가 주저 없이 동의했기 때문에 그들은 따로 떨어졌다. 남편은 맥주를 양조해 내는 과정을 진열한 천막 쪽으로 가고, 아라벨라는 주드와 수가 지나간 방향으로 갔다. 그러나 아라벨라는 그 부부의 흔적을 찾아내 기도 전에 어떤 웃는 얼굴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녀는 처녀시절의 친구 애 니와 마주친 것이었다. 애니는 너무나 우연한 재회라는 사실에 애정 어린 웃음을 터뜨렸다. "나 아직 거기 살고 있어." 웃음이 그치자마자 그녀가 말했다. "나 곧 결혼할 거야. 그런데 내 약혼자는 오늘 여기 못 왔어. 우리 모두 같이 유람여행으로 여기 왔어. 지금은 뿔뿔이 헤어졌지만." "너 주드와 그의 젊은 여자를 만났지? 아내인지 뭔지 말야? 조금전까지 도 그들을 봤는데." "아니, 몇 해 동안 코빼기도 못 봤는 걸!" "그래? 그들이 여기 어딘가 가까이 있었는데. 그래, 저기 그들이 있다. 저기 회색말 옆에!" "오, 저쪽이 그의 현재 젊은 여자 아니 아내라고 말했지? 그가 다시 결 혼한 거니?" "몰라!" "저 여자 예쁘구나. 그렇지!" "그래. 흠잡을 데가 없구나. 하지만 덤벼들 정도는 안되어 보이는데, 저 런 여자는 쓸 만하지 않아. 호리호리하고 저렇게 침착하지 못한 여자는." "그도 멋진 남자가 되었구나! 아라벨라, 너 저 사람에게 달라붙어 있을 것 그랬다." "모르겠어. 하지만 그랬으면 좋았겠어." 그녀는 중얼거렸다. 그러자 애니가 웃어댔다. "아라벨라, 그게 너야! 항상 자기 남자보다는 다른 남자를 원하잖아." "글쎄, 그런데 남의 남자를 탐내지 않는 여자도 있니? 그와 함께 있는 저 여잔 적어도 내가 사랑이라 부를 만한 그런 사랑이란 걸 모른다구. 그 녀가 사랑을 모른다는 건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어." "하지만 아라벨라. 아마도 넌 그녀가 사랑이라 부르는 것이 뭔지 모르는 것 같은데." "그런 건 몰라도 돼! ... 아! 그들이 그림이 전시되어 있는 쪽으로 움직이 기 시작했어. 나도 그림을 좀 보고 싶은데. 우리 저기로 갈까? 놀랍구나. 웨섹스의 모든 사람들이 다 여기 있는 것 같지 않니! 저기 몇 해 동안 보 지 못했던 빌버트 의사 선생도 있구나. 그런데, 그는 내가 전에 그를 알았 을 때보다 조금도 나이가 들어 보이지 않는데? ... 안녕하셨어요. 의사 선생 님? 전 지금 방금 선생님께서 제가 처녀시절을 알던 때보다 조금도 나이든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를 하고 있었어요." "오로지 나의 환약을 규칙적으로 복용한 결과입니다. 부인, 한 상자에 2 실링 3펜스밖에 안하는, 효능은 정부 면허의 보증품이죠. 나의 예를 따라 세월의 맹위로부터 똑같이 면역을 얻을 수 있는 약의 구입을 권해 드려도 될까요? 단돈 2실링 3펜스." 의사는 조끼 주머니에서 상자를 끄집어냈고 아라벨라는 그 말에 현혹되 어 약을 사게 되었다. 그녀가 약값을 치르려 하자, 그가 물었다. "어느 댁 부인이시더라...? 몰라봐서 죄송합니다. 부인은 확실히 한때 미 스 돈이었고 메리그린 마을 근처에 살던 폴리 부인이군요?" "네, 하지만 지금은 카트리트 부인이에요." "아, 사별하신 건가요, 그럼? 유망한 젊은이였는데! 당신도 아시다시피 내 제자였죠. 난 그에게 라틴어 같은 사어를 가르쳤죠. 그는 거의 내가 알 고 있는 정도는 금방 알게 되었지요. 믿어주세요." "난 그를 잃었어요. 하지만 당신이 생각하는 것 같은 것은 아니에요." 아라벨라는 냉정하게 말했다. "법률가들이 우리를 갈라 놓았죠. 그는 살아 있어요. 보세요. 원기 왕성 하잖아요. 저 젊은 여자와 나란히 무술 전람회장에 들어가고 있잖아요." "아, 이럴 수가! 분명히 저 여자를 좋아하나 본데." "그들은 사촌간이란 말이 있던데." "사촌간이 오히려 그들의 감정 교류에는 편리할 수 있다고 말할수 있어 요." "그래요. 그래서 저 여자의 남편도 그렇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가 그녀 와 이혼할 때 말예요. 우리들도 그림을 구경할까요?" 이 세 사람도 풀밭을 가로질러 그곳에 들어섰다. 주드와 수는 어린 아이 를 데리고 그들의 관심을 깨닫지 못한 채 그 건물의 한쪽 구석에 있는 모 형으로 가서 그들이 다가오기 전까지 오랫동안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 었다. 아라벨라와 그녀의 친구들이 그것에 다가가서 보니 거기엔 '크리스트민 스터 대승정의 모형' J. 폴리와 SFM 브라이드헤드 작이라는 문구가 새겨 져 있었다. "자화자찬하고 있었군." 아라벨라가 말했다. "얼마나 주드다운 일인지. 오로지 대학과 크리스트민스터에 대해서만 생 각하고 있다니까!" 그들은 그림들을 호기심 있게 훑어보다가 야외 연주장으로 걸어갔다. 그 들이 군악대의 연주 음악을 들으며 잠시 서 있을 때 주드와 수 그리고 그 아이가 반대편에 나타났다. 아라벨라는 그들이 자신을 알아보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너무 깊게 자신들의 삶에 빠져 있었고 군악대 의 음악에 빠져 있어서 구슬 달린 베일 속의 그녀를 알아 보지 못했다. 그녀는 음악을 듣고 있는 군중의 바깥쪽을 돌아서 그 연인들의 뒤를 스 쳐 지나갔다. 그들의 거동은 오늘따라 그녀에겐 뜻하지 않은 매력을 던져 주고 있었다. 뒤에서 주의깊게 관찰해보니 주드의 손이 수의 손을 찾고 있 다는 것을 아라벨라는 알아차렸다. 그 두 사람은 서로간에 나타내는 무언의 표현을 숨길 수 있다고 여겼는 지 그렇게 가까이 함께 서 있었다. "멍청한 바보들, 마치 두 명의 어린애들 같군!" 아라벨라는 내뱉듯이 혼잣말을 하고 그녀의 동반자들과 합류했지만 그녀 는 생각에 잠긴 듯 침묵을 지켰다. 그러는 동안 애니는 아라벨라가 그녀의 첫 남편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하 고 있다며 농담조로 빌버트에게 말했다. "그런데, 부인." 좀 떨어져 있는 아라벨라에게 의사가 말을 건넸다. "이런 것 좀 써 보시지 않겠습니까? 이건 내 정규 약국에서 제조한 것은 아니지만 가끔 이런 걸 원하는 사람이 있죠." 그는 맑은 액체가 든 작은 약병을 끄집어 냈다. "고대 희랍인들도 약효가 뛰어나서 애용하던 사랑의 묘약이죠. 그들의 문헌을 연구해 발명해낸 것인데, 실패했다고 알려지지는 않은 물건이죠." "뭐로 만들어졌죠?" 아라벨라는 호기심에 차서 물어보았다. "그건 말이죠. 작은 비둘기의 심장, 아니면 보통 비둘기의 심장에 있는 주요 성분 중 하나죠. 이 작은 병 하나를 다 채우려면 거의 100마리의 심 장이 있어야 하죠." "그렇게 많은 비둘기를 어떻게 손에 넣었죠?" "이건 비밀인데 비둘기는 무턱대고 암염을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우리 집 지붕에 있는 비둘기 집에 그걸 넣어 두죠. 몇 시간 내에 사방 동서남북 에서 비둘기들이 모여들기 때문에 난 내가 원하는 만큼 손에 넣을 수 있 죠. 당신이 이 물약을 쓰려면 우선 마음에 드는 남자에게 이걸 10방울 정 도 떨어뜨린 술을 마시게 하는 겁니다. 그러나 명심하세요. 당신이 사겠다 는 의사를 보였기 때문에 당신 질문에 이 모든 것을 말해준 겁니다. 당신 은 신의를 지켜 주시겠죠?" "좋아요. 한 병쯤은 상관없겟죠. 친구나 다른 사람들에게 그들의 남자들 에게 시험해 보라고 주면 되죠." 그녀는 15실링을 꺼냈다. 그리고 그 물약을 그녀의 풍만한 가슴사이에 밀어 넣었다. 남편과 만날 약속 시간이 다 되었다고 말하며 그녀는 식당 쪽으로 슬슬 걸어가 버렸다. 그곳에서 아라벨라는 장미가 떼지어 피어 있는 곳에 그들 이 서 있는 것을 힐끗 보았다. 그녀는 그들을 관찰하며 몇 분 정도 더 서 있다가 그의 남편에게 갔지만 어떤 사랑스런 감정도 생기지 않았다. 그녀 는 그 바에서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그에게 술을 가져다 준 화려한 차 림의 여자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그를 발견했다. "이런 일은 집에서도 충분하실 텐데!" 아라벨라는 침울하게 말했다. "당신은 또 다른 술집에 머므르려고 50마일이나 되는 길을 온 것은 아니 시죠? 이리 오셔서 다른 남자들이 그의 아내에게 하듯이 내게 쇼를 구경시 켜 주세요! 당신 자신 이외에는 아무도 돌볼 줄 모르니 사람들이 당신을 젊은 미혼 남자라고 여길 거예요!" "하지만 우리 여기서 만나기로 약속했었잖아. 내가 기다리는 것 말고 뭘 할 수 있었겠어?" "이제 만났잖아요. 따라오세요." 그녀는 되받아 말했다. 그녀는 자신에게 비치는 태양하고라도 싸울 기세 였다. 그래서 그들은 함께 그 천막을 나왔다. 배불뚝이 남편과 사치스런 아 내는 평범한 그리스도 교도 부부들의 반감과 비난 속에 있었다. 그러는 동안 가장 예외적인 한쌍의 부부와 소년은 꽃이 있는 천막안을 여전히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관상에 취미가 있는 그들에겐 마법의 궁전과 같은 곳이었다. 평상시엔 창백한 수의 뺨에 그녀가 바라보는 장미의 분홍 빛이 반사되어 있었다. 즐거운 광경과 공기와 음악 그리고 주드와 함께 밖 에 나온 날의 흥분이 그녀의 혈액을 빠르게 순환시켰고 그녀의 눈을 활기 로 빛나게 했다. 그녀는 장미에 대해 찬탄하고 있었다. 아라벨라가 확인할 수 있는 바로 는 수는 다양한 종류의 꽃이름을 배우며 주드의 의사에 반하여 그를 붙들 어 두고 있었다. 그리고 냄새를 맡으려고 그녀의 얼굴을 꽃 가까이에 갖다 대고 있었다. "꽃 속에 얼굴을 파묻고 싶을 정도예요. 사랑스런 것들!" 그녀는 말했다. "하지만 그들을 만지는 건 규칙 위반이죠. 주드?" "그래, 내 사랑." 그는 말했다. 그리고는 장난스럽게 그녀를 살짝 밀자 그녀의 코가 꽃잎 사이로 들어갔다. "경찰이 와서 나무라면 내 남편 잘못이라고 말할 거예요!" 그리고 나서 그녀는 주드를 올려다보며 웃었는데 그 태도가 아라벨라의 마음에 거슬렸다. "행복해?" 그가 중얼거렸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왜지? 당신이 웨섹스 대 농업 쇼에 왔기 때문이야? 아니면 우리가 함께 왔기 때문이야?" "당신은 항상 내게 모든 종류의 불합리함을 고백하게 하려고 노력하시는 군요. 물론 이런 증기 경작기나 탈곡기, 건초 절단기, 암소나 양 같은 것을 봄으로써 내 마음이 호전되었기 때문이죠." 주드는 도피하는 동반자의 애매한 대답에 꽤 만족해 했다. 그러나 그가 그런 질문을 했던 걸 잊어버릴 때쯤, 그리고 그가 더 이상 대답을 바라지 않게 되었을 때 그녀는 말을 계속했다. "난 우리가 희랍시대의 환희로 되돌아 간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 자신 의 아픔과 슬픔으로 눈이 멀어서 그들 시대 이래로 그 종족에게 2천 5백년 세월 동안 가르쳐 온 것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있었다고요. 당신이 좋아하 는 크리스트민스터의 석학의 말을 빌면, 눈앞에 다가선 그림자 하나가 있 으니, 오직 하나뿐이라고요." 그녀는 나이 들어 보이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비록 그들이 그 아이의 어 린 지성을 끌 만한 모든 것을 가져다 주었지만 그의 흥미를 끄는데는 완전 히 실패했다. 그 아이는 그들이 무엇을 말하며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고 있 었다. "정말, 정말 미안해요! 엄마, 아빠." 꼬마가 말했다. "하지만 제발, 신경 쓰지 마세요! 나도 어쩔 수가 없어요. 나도 꽃을 무 척 좋아하긴 하지만 그들도 며칠이 지나면 모두 시들거란 생각이 자꾸 들 어요!" 5-6 지금까지 남의 눈에 띄지 않았던 두 사람의 생활은 결혼식을 연기한 그 날로부터 아라벨라 이외의 사람들에게도 관찰되기 시작하면서 입에도 오르 내리게 되었다. 스프링 가 주변의 사회와 이웃들은 수와 주드의 사적인 마 음과 감정, 지위나 두려움을 이해할 수 없었고 아마 이해되어질 수도 없었 을 것이다. 그들에게 뜻밖의 한 아이가 들어오게 된 이상한 사실 그리고 그 아이가 주드를 아빠라고, 수를 엄마라고 부르는 점, 등기소에서 조용히 결혼식을 올리려다 지장이 생긴 점이 이런 여러 가지 기묘한 사실을 도저히 변호할 수 없는 재판소 소문과 함께 평범한 사람들에게 한 가지 해석만을 낳게 했 다. 꼬마 영감- 비록 그는 공식적으로 '주드'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지만 그에 겐 적절한 별명이 붙어 있었다 -은 저녁때 학교에서 돌아와서 다른 소년들 로부터 들었거나 얘기했던 것을 반복해서 말해 주었다. 주드는 커다란 고 통과 슬픔으로 그 얘기를 들었다. 따라서 그들은 등기소 사건 이후 얼마 안되어서 어딘가로 - 런던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 소년을 돌볼 사람을 고 용해 두고 며칠간 가버렸다. 두 사람은 돌아와서 결국 법률상 정규의 수속 을 밟아서 결혼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나마 알리려는 말들을 비치기 시 작했다. 전에는 브라이드 헤드라고 불리던 수는 이제 공개적으로 폴리 부인이란 이름을 택했다. 여러 날 동안의 그녀의 무디고, 겁먹은 듯했던 멍한 태도는 이 모든 사실을 입증해 주는 것처럼 보였다. 그 일을 하기 위해 아주 비밀리에 집을 떠났었던 그 잘못(그들은 그렇게 표현했다)은 그들 삶에 대한 더 많은 수수께끼를 더해 주는 결과가 되었 다. 그래서 그들이 이웃과 관계가 좋아지리라 기대했던 것 만큼의 진전은 없었다. 살아있는 수수께끼는 죽은 추문보다는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빵집 젊은이와 식료품 가게 소년은 그들이 용무를 보러왔을 때 처음엔 수에게 친절하게 모자를 벗어가며 인사를 했으나 요즘에는 더이상 그런 경 의를 보이려 애쓰지 않았다. 그리고 이웃의 아낙네들은 보도에서 그녀와 마주쳐도 길을 따라 똑바로 앞만 보고 갔다. 어느 누구도 그들을 방해하지 않았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숨막힐 듯한 분위기가 그들의 영혼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특히, 그들이 농업 쇼를 보러 갔던 유람 여행 후엔 더 그랬다. 마치 그 나들이 자체가 그들을 억누 르는 사악한 영향을 가져다 준 듯했다. 그리고 그들의 기질은 이런 분위기 로부터 분명히 고통받는 그런 종류의 것이었고 단호하고 공개적으로 성명 을 발표함으러써 그것을 밝힐 마음도 내키지 않는 것이었다. 명백히 보상 하려는 그들의 시도는 너무 늦어서 효력을 발휘할 수가 없었다. 묘의 두판석이나 비명의 주문도 줄어들었다. 2, 3개월이 지나 가을이 다 가오자 주드는 출장 일을 다시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지난해의 소송비용을 지불하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지게 된 부채를 아직 정리하지 못해서 지금 더욱 불행한 과정을 겪고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 어느 날 저녁 그는 평상시처럼 수와 그의 아이와 함께 평범한 식사를 하 고 있었다. "내 생각엔 말이야." 그가 수에게 말했다. "난 더이상 이곳에서 살 수가 없을 것 같아. 생활면에서 이곳은 우리에 게 알맞은 곳이지만. 만약 우리가 잘 알려지지 않은 곳으로 간다면 우리는 더 가벼운 마음이 될 테고, 더 나은 기회를 가질 수 있겠지. 당신에겐 어색 하겠지만 여기 일은 청산해 버리자고!" 수는 항상 자신이 연민의 대상이 된다는 생각이 들 때면 몹시 동요를 일 으켰다. 그래서 그녀는 슬퍼졌다. "그런데 난 슬프지 않아요." 그녀는 곧 말했다. "난 여기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태도에 많이 짓눌려 있었어요. 당신은 나와 아이를 위해 이 집과 모든 가구를 유지해 왔죠! 당신은 스스로 그걸 원치는 않았고 따라서 비용은 불필요한 것이었죠. 그러나 우리가 무엇을 하든 어디에 가든 당신은 내게서 아이를 떼어놓지는 않을 거죠, 주드? 난 이제 이 아이를 보낼 수가 없어요! 그 어린 마음 속에 있는 어두운 구름이 내겐 너무 애처롭게 여겨져요. 난 언젠가 그것을 모두 걷어주고 싶어요! 그 리고 아이는 날 너무 사랑하고 있어요. 당신은 나에게서 이 아이를 떼어놓 지 않으실 거죠!" "틀림없이 그렇게 안할 거야. 아, 사랑스러운 사람! 어디든 다른 곳으로 가서 집을 얻을 수 있을 거야. 아마도 난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일해야 할 것 같아." "나도 뭔가 해야겠어요. 물론, 지금, 지금까지는... 그런데 난 비문을 새기 는 일에는 소용이 되지 못하니까 그밖의 다른 일을 내 손으로 찾아봐야 겠 어요."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서두르지 마." 그는 불만스러운 듯 말했다. "난 당신이 그런 일을 하길 원치 않아. 당신이 그 일을 하지 않았으면 싶어, 수. 저 애와 당신 자신에게만 신경 쓰는 걸로 충분하니까."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으므로 주드가 나가 보았다. 수는 그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폴리 씨 계신가요? 바일즈 앤 윌리스 건축 청부회사에서 왔는데요. 당 신이 최근 이 근처의 시골에 재건축을 하는 작은 교회의 십계의 비문을 다 시 새기는 일을 맡아주실 수 있는지를 알아보라고 하더군요." 주드는 생각 끝에 그 일을 맡을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 일은 예술적인 일은 아닙니다." 심부름 온 사람이 말을 계속했다. "목사님이 너무 구식인 분이라 교회를 청소하고 수리하는 일 외에 더 이 상의 일은 어떤 일도 하기를 거부하신답니다." "훌륭한 노인이군!" 수는 혼잣말을 했다. 그녀는 지나치게 이루어지는 교회 재건축의 처참한 실상에 감성적으로 반대하고 있었다. "십계는 동쪽 끝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심부름꾼의 말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나머지 벽면도 손봐주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일반적인 거래 방식대로라면 건축업자의 소관일 뿐인 낡은 재료들을 마차로 실어 나 르는 걸 목사님이 원치 않으시거든요." 조건에 관한 것도 정해지자 주드는 집안으로 들어왔다. "그것 봐." 그는 명랑하게 말했다. "어쨌든 한 가지 일이 더 생겼군. 그러니 당신도 그 일을 도울 수 있어. 당신이 할 수 있는 데까지. 나머지 일은 끝났으니까 우리끼리만 교회 전체 를 가질 수가 있어." 다음날 주드는 2마일밖에 떨어지지 않은 그 교회로 갔다. 건설 청부업자 의 서기가 한 말은 사실이었다. 유태 법률이 씌어진 명판은 그리스도교적 인 우아함이 충분한 성기류 위에 엄숙하게 솟아 있었고, 그것이 교회당 안 의 동쪽 끝에 주된 장식으로 되어 있었다. 지난 세기의 가늘고 건조한 문체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액자세공은 장식 달린 백토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수선을 위해 따로 떼어낼 수가 없었 다. 어떤 부분은 습기로 가루가 되어 부서져서 재생을 해야 했다. 그리고 이 일이 모두 끝나자 전체를 깨끗이 하고 그는 다시 글씨를 새기기를 시작했 다. 둘째날 아침에 수는 그녀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는가 보기위해 왔다. 그리고 또한 그들이 함께 있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그 건물의 고요함과 공허는 그녀에게 자신감을 주었다. 그래서 주드가 만들어 준 낮고 안전한 단 위에 서 있었다. 거기서 그녀는 높은 곳으로 올 라가는 것을 두려워함에도 불구하고 그가 제2명문 어떤 부분을 수선하고 있는 동안 그녀는 제1명문의 글자를 칠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의 능력 에 꽤 흐뭇해하고 있었다. 크리스트민스터의 교회용 미술 장식점에서 일하 면서 경문류의 글자체를 쓰곤 했을 당시에 얻어진 능력이었다. 어느 누구도 그들을 방해하지 않는 듯했다. 새들의 즐거운 지저귐과 10 월의 나뭇잎의 살랑거림이 열린 창문을 통해 들어왔고 그들의 말과 함께 섞였다. 그러나 아늑하고 평화로운 시간은 오랫동안 계속되지 않았다. 12시 반쯤 자갈길을 밟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늙은 목사와 집사가 들어왔다. 일 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를 보기 위해 왔다가 젊은 여자가 보조를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놀라는 듯했다. 그들은 복도로 통과해 갔으나 바로 그때 문이 다시 열리더니 다른 사람 이 나타났다. 작은 사람, 바로 꼬마 영감이 울고 있었다. 수는 수업시간 중 에 언제라도 그가 바란다면 그녀를 만나볼 수 있게 장소를 알려주었다. 그녀는 단에서 내려와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무슨 일 있었니, 아이야?" "난 학교에서 저녁식사를 먹기 위해 남아 있을 수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애들이 이상한 말을 해서..." 그는 어떤 아이들이 네 엄마는 진짜 엄마가 아니라고 그를 조롱했다고 설명했다. 수는 너무나 슬퍼져서 단 위에 있는 주드에게 그녀의 분노를 터 뜨렸다. 그 아이가 묘지 쪽으로 가버리자 수는 자신의 일로 돌아왔다. 그러는 사이 문이 다시 열리고 무슨 용무로 왔는지 발을 질질 끌며, 하 얀 앞치마를 두른 여자가 들어왔는데, 그녀는 교회를 청소하는 여자였다. 수는 그 여자가 스프링 스트리트에 있는 그녀의 친구들을 가끔 방문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교회 청소부는 수를 보더니 벌어진 입을 안다물어지는 듯 양손을 들어올렸다. 그녀는 분명히 수가 그녀를 알고 있는 것처럼 그녀 를 주드의 동반자로 인지하고 있었다. 이어서 두 명의 부인이 들어왔다. 그 리고 수가 위쪽으로 발을 뻗치고 서있을 때 그들은 수의 손이 벽면의 경문 을 따라가는 것을 응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수의 신경은 몹시 예민해지면서 남의 눈에도 띄일 정도로 몸이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그 두 부인은 다른 사람들이 서 있는 곳으로 돌아가 작은 목소리로 소근 거렸다. 그 중 한 사람이 말했다. "저 여자가 그 사람의 아내인가?" 이 말을 수는 들을 수 없었다. "어떤 사람은 맞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아니라고 해요." 청소하는 여자가 대답했다. "마누라가 아니라고? 그렇다면 내연의 처이거나 다른 남자의 아내겠지. 아주 분명하잖아!" "아무튼 저들은 결혼한 지 몇 주밖에 안되었다고 하더군요." "십계명의 명문을 저 이상한 부부에게 칠하게 하다니! 바일즈 앤 윌리스 건축회사가 하필이면 저런 사람들을 고용할 생각을 했을까!" 교회 집사가 바일즈 앤 윌리스 건축회사는 잘못이 있는 걸 전혀 몰랐을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늙은 여자에게 말을 하고 있던 다른 한 부인이 그 녀가 왜 그들을 이상한 사람들이라 불렀는지를 설명했다. 대략 어떤 일을 근거로 귓속말을 했는지가 명백해진 것은 교회 집사가 갑자기 어떤 일화를 말하기 시작한 때부터였다. 교회에 있는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였으며 분명히 현재 상황에 의해 나온 말이었다. "글쎄, 현재론 그 일도 이상한 일이지만 내 할아버지께서 가장 부도덕한 어떤 이상한 얘기를 내게 해주셨죠. 여기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는 게이미 드 옆에 있는 한 교회에서 십계의 명문을 새길 때 생긴 일이죠. 그 시절에 십계는 거의 검은 판 위에 금박 글씨로 썼는데 지금은 다 벗겨지고 말았 죠. 그 낡은 교회가 재건되기 전의 일이니까요. 여기 우리 교회가 하는 거 처럼 약 백년 전에 그들도 십계를 수리하려고 했었다는군요. 그래서 그들 은 얼드브릭험으로부터 그 일을 할 사람을 벌렀대요. 그들은 특정한 일요 일까지 그 일을 끝마쳐지기를 바랐고 그래서 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토요 일 밤 늦게까지 일을 해야만 했죠. 왜냐하면 계약한 시간을 넘기는 것은 지금과 같이 돈이 지불되지 않았거든요. 그 당시 그 고장에는 성직자며, 교 회 서기며 사람들에게 신실한 신앙이란 게 없어서 인부들이 그들의 일을 계속하게 하기 위해 목사가 그날 오후 내내 충분한 술을 마시도록 해 주었 대요. 그런데 저녁때가 되면서 술을 더 마시게 해 들라고 그들이 요청하자 목사님은 빚을 내서 럼주를 내놓으려 했다는군요. 밤이 점점 더 깊어 가자, 그들은 점점 더 취해갔죠. 결국 그들은 럼주병과 큰 술잔을 성찬대 위에 올려놓고 의자 대신에 발판을 한 두 개를 끌어다가 탁자 둘레에 술자리를 차려 놓고는 다시 배짱 좋게 잔이 넘치도록 말술을 마시게 되었답니다. 마 침내 술을 있는 대로 다 마신 그들은, 이 얘기가 중요한데, 모조리 정신을 잃고 쓰러졌대요. 얼마나 오래 그렇게 있었는지 몰랐으나 그들이 정신이 들었을 때 그곳은 몹시 천둥이 치고 있었는데 희미한 어둠 속에서 아주 가 는 다리에 이상한 부츠를 신은 사람이 사다리 위에 서서 그들의 일을 마무 리하고 있는 것을 본 듯했다는군요. 날이 밝자 그들은 일이 정말 끝마쳐 진 것을 볼 수 있었죠. 그런데 그들은 스스로 그 일을 끝낼 마음이 없었죠. 그들은 집으로 가버렸고 그 다음 그들의 귀에 들린 것은 그 일요일 아침 교회에서 커다란 사건이 발생했다는 거였죠. 왜냐하면 사람들이 와서 미사 가 시작되었는데, 금방 칠한 십계에 '말지어다'가 빠져 있는 걸 모두가 보 았기 때문이었죠. 점잖은 사람들은 한동안 그 교회의 미사에 참석하려 하 지 않았죠. 그 교회의 봉헌 재개의 기원식을 올리기 위해 주교가 파견되었 다는군요. 이게 바로 내가 어렷을 때 들었던 얘깁니다. 당신들도 이 이야기 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생각해 봐야 해요. 오늘 이 경우가 내게 그 일을 생각나게 했습니다." 그 방문자들은 마치 주드와 수가 그와 같이 '말지어다'가 빠진 십계문을 쓰는지 보려는 듯 한 번 더 힐끗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서 제각기 교회를 떠났고 마침내 청소하는 늙은 여자까지 나가 버렸다. 일을 멈추지 않고 있 던 수와 주드는 아이를 학교로 돌려보내고 말없이 남아 있었다. 그녀 쪽을 주의 깊게 바라보았을 때 그는 조용히 울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신경 쓰지마!" 그는 말했다. "다 알고 있으니까!" "어떤 사람들이 그들 방식대로의 삶을 선택했다는 이유로 모두가 그들을 사악한 사람이라 생각한다는 건 참을 수 없어요! 가장 최상의 의도를 가진 사람들을 무분별하고 부도덕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다름 아닌 바로 이런 의견들이죠!" "그렇게 낙심하지마! 그건 단지 우스꽝스러운 얘기에 불과한 거라고." "아, 하지만 우리가 그 얘기를 연상시켰다고 하잖아요! 주드. 와서 당신 을 돕기는 커녕 난 당신에게 해를 끼치게 되었어요!" 그런 얘기를 연상시켰다는 것은 심각한 그들의 처지에서는 분명히 매우 유쾌한 일은 못되었다. 그러나 몇 분이 지나자 수는 오늘 아침에야 그들의 처지를 깨닫기라도 한 듯 눈물을 닦고는 웃어 보였다. "결국 모든 사람들 중에서 이상한 경력을 가진 우리 두 사람이 여기서 십계의 경문을 칠하고 있다는 것이 우스운 일이 된 거죠. 당신은 신에게서 버림받은 사람이고 난 이런 처지에 있다니, 오 이런!" 그리고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다가 다시 조용히 띄엄띄엄 웃기는 했으나 그녀는 왠지 상당히 약해져 있었다. "더 좋군." 주드는 쾌활하게 말했다. "우리가 또 옳았던 거야, 안그래, 귀여운 사람!" "아, 하지만 역시 그 일은 심각한 거죠!" 그녀는 한숨을 쉬면서 솔을 꺼내고 자세를 바로 잡았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결혼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당신도 잘 알 고 계시죠? 그들은 믿으려 하지 않아요!" "그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을 하건 말건 내겐 상관없어." 주드가 말했다. "그 사람들에게 그런 생각을 하도록 수고하는 건 난 딱 질색이란 말야." 그들은 시간에 구애를 받지 않으려고 싸가지고 온 점심을 먹기 위해 앉 았다. 점심을 다 먹고 나서 막 새로 일에 착수하려 할 때 한 남자가 교회 안으로 들어왔다. 주드는 그가 건축 청부업자 윌리스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주드를 손짓해 부르더니 따로 떨어져 그에게만 말했다. "사실, 이 일에 대해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는 숨을 죽여가며 어색하게 말했다. "무슨 사정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난 문제를 만들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 래서 난 당신과 저 여자가 떠나줄 것을 요청해야만 할 것 같군요. 그리고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이 일을 끝내 달라고 해야겠습니다. 모든 불쾌한 일 은 피하는 게 최선입니다. 일주간의 임금은 지불해 드리죠." 주드는 너무 자립심이 강해서 어떤 소란도 일으키지 않았다. 따라서 건 축 청부업자는 그에게 임금을 지불하고 떠나버렸다. 주드는 그의 연장들을 집어 들었고 수는 솔을 깨끗하게 씻었다. 그때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우린 함께 이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죠!" 그녀가 슬픈 어조로 눈물을 떨구며 말했다. "물론 우리가 해서는 안될 일이거나 내가 있어서는 안될 일이었나봐요!" "이렇게 외진 곳까지 와서 우리를 볼 사람이 있다고는 생각지 못했던 거 지!" 주드가 대답했다. "자, 할 수 없군, 수. 난 여기 머물러 있으면서 윌리스의 장사를 망치고 싶지 않아." 그들은 몇 분 동안 앉아 있다가 교회 밖으로 나왔다. 앞서 나간 아이를 따라잡고는 얼드브릭험까지 사색의 길을 걸어갔다. 아직까지 폴리는 교육의 대의에 대단한 열의를 가지고 있었고, 그와 같 은 경험을 한 사람에겐 자연스러운 일이겠지만, 그는 어떤 비굴한 방법으 로든 그에게 열린 '기회의 균등'을 외곬으로 밀어붙이려 했다. 그가 이 도 시에 왔을 당시에 설립된 직공상호 향상 협회에도 지체않고 입회했다. 그 회원은 영국 국교도, 조합교회신도, 침례교도, 유일신회파, 실증주의파 등을 포함한 온갖 신조나 종파에 속한 젊은이들이었다. 불가지론자라는 말 은 그 당시 거의 들어보지 못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을 넓혀 가 고 싶다는 공통된 하나의 희망은 그들을 결속시키기에 충분했다. 불입금은 작았고 방은 검소한 편이었다. 그러는 동안에 주드의 활동이나 수준 이상의 학식이 특히, 어떤 서적을 읽어야 하는지, 어떤 일을 착수해야 하는가에 대한 특이한 직감- 좋지 못한 운세와 여러해 맞붙어 싸워온 고투 에서 생겨난 -이 스스로로 하여금 그 모임의 위원의 자리에 참석케 했다. 그 교회 수선에서 해고된 후 어느 저녁 때, 그는 다른 일을 얻기 전에, 앞서 말한 위원회의 회의에 참석하러 갔다. 그의 도착이 약간 늦었기 때문 에 다른 사람들은 이미 와 있었다. 그가 들어왔을 때 그들은 의심쩍은 눈 으로 바라볼 뿐 반기는 말은 좀처럼 하지 않았다. 뭔가 자신과 관계 있는 일이 의제가 되어 논의되고 있는 중이란 걸 주드는 직감했다. 그러나 별다 른 얘기는 없었고 사무적인 논의가 처리되고, 이번 4분기 동안에 기부 건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는 사실이 발표되었다. 한 사람의 위원- 정말 선의 적이고 정직한 사람-은 그 원인에 대해서 수수께끼 같은 어조로 말했다. 그는 위원회의 체질을 잘 조사할 필요가 있고, 만일 위원회가 존중받지 못 한다면 또 각각 다른 행동을 해서 품행이라는 일반적인 기준에 만 분의 일 이라도 미치지 못하는 행위가 있다면 위원회는 깨지고 말 것이라고 말했 다. 주드는 그 자리에서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지만 그는 이것이 무엇을 의미 하는지 알았다. 그는 그 자리에서 즉시 사표를 써서 테이블 쪽을 향해 홱 던져 버렸다. 이제 극도록 민감해진 이 부부는 더욱더 이곳을 떠나야만 했다. 그러자 계산서들이 날아들었다. 또 여러가지 문제점들이 생겼다. 만약 그가 어딘지 알지 못하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기 위해 이 도시를 떠난다면 대고모의 무 겁고 오래된 가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러한 가구들을 현금으로 바꿀 필요가 있었으므로 그는 어쩔 수 없이 경매에 부칠 결심을 했다. 그는 가능하다면 가치 있는 물건들은 간직하기 를 더 좋아했지만... 매각하는 날이 왔다. 그리고 그가 가구를 비치해 두었던 그 작은 집에서 수는 자신과 아이 그리고 주드의 아침식사를 마지막으로 요리하고 있었다. 마침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수는 몸이 좋지 않았다. 그녀는 이런 우울한 분위기 속에 불쌍한 주드를 내버려두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잠시동안은 그곳에 있어야 했기 때문에 그녀는 경매인에게 부탁하여 2층 방으로 몸을 숨겼다. 그곳은 방이 가지고 있어야 할 안락함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래서 경매 자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잠가두었다. 잠시 후 주드가 그녀를 발견해냈다. 아이와 그들의 몇 개 안되는 트렁크와 바구니와 꾸러미들 그리고 두 개의 의자와 탁자, 팔지 않은 것들과 함께 두 사람은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했다. 깔 것이 없는 맨 계단을 오르내리며 꽝꽝 소리를 내는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물건을 보러 온 사람들이었다. 물건들 중 일부는 너무 기이하고 고풍스러운 것이라 예술품으로도 충분히 값어치가 있는 것도 있었다. 그들 이 있는 방문을 열려는 시도가 한두 번 있었다. 이러한 방해로부터 자신들 을 보호하기 위해 주드는 '사실'이라고 쓴 종이조각을 문의 경판에 붙여 두 었다. 두 사람이 이내 발견한 사실은 경매 참가자들이 가구 대신에 그들의 개 인적인 경력과 과거의 행동에 대해 의외로 그리고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논 의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남의 눈에 띄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바보들의 천국에서 그들이 지금껏 살아왔다는 것을 그들은 그제야 알게 되었다. 수는 조용히 주드의 손을 잡고 서로의 눈을 마주치며 이런 스쳐 지나는 말들을 듣고 있었다. 꼬마 영감의 이상하고 신비한 성격이 화제가 되는 듯했고, 그것이 암시와 풍자의 주된 구성요소가 되어 있었다. 마침내 바로 아래 방에서 경매가 시작되었다. 그래서 자신들이 소중하게 소유했던 예술품들이 최저가로 팔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살 때는 비 싼 것이었는데 예상치 못했던 헐값으로 팔려 나갔다. "사람들은 우리를 이해 못해." 그는 무겁게 한숨을 쉬었다. "우리가 떠나기로 결정하길 잘 했어." "문제는 어디로 가느냐죠." "런던으로 가야겠지. 거기에선 자신이 선택한 대로 살 수 있을 테니까." "아녜요. 런던은 안 돼요. 난 잘 알아요. 우린 거기서 불행하게 될거예 요." "왜지?" "생각 안나세요?" "아라벨라가 거기 있기 때문인가?" "그게 주된 이유죠." "그러나 시골에서 살면 이번 경험보다 더한 일이 있지 않을까 항상 불안 할 텐데. 그리고 난 이 아이의 연혁에 대한 모든 것을 설명하고 싶지 않아. 이 애의 과거로부터 이 애를 떼어내기 위해서라도. 난 침묵을 지키기로 결 심했어. 난 이제 교회의 일엔 신물이 난다고. 그래서 만약 내게 일을 준다 해도 그 일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당신은 희랍과 로마의 고전을 공부했어야 했어요. 고딕 양식은 야만적 인 예술이죠. 푸진(1912-52, 영국의 고딕양식 건축가 오거스틴 푸진, 장식 적 섬세함을 숭상하는 고딕 건축 부흥의 선구자로 유명)은 틀렸고, 렌 (1632-1723, 영국의 고전식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 그의 대표적 건축은 런 던에 있는 성 파울로 사원)이 괜찮았어요. 크리스트민스터 성당의 내부를 기억하세요? 우리가 서로의 얼굴을 처음으로 보게 된 곳이죠. 노르만식 세 부 장식의 그 그림같은 취향 속에는 이상한 유치함이 있었죠. 거친 민족이 소실해 버린 고대 로마의 형식을 흉내내려고 시도해 본 거죠. 어두운 전통 만이 연상될 뿐이었죠." "그래, 당신이 전에 말했던 그 견해로 나도 반쯤은 개종되었지. 그러나 사람은 일을 할 수도 있고 자신이 한 일을 경멸할 수도 있지. 만일 고딕이 아니라면 다른 일을 해야 하겠지." "개인적인 상황이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직업을 우리들이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녀는 무언가를 동경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웃어 보였다. "당신이 교회의 예술품을 만들 자격이 없는 거처럼 나도 가르치는 일을 할 자격이 없어요. 당신은 철도역이나 다리나 극장, 음악 홀, 호텔 같은 곳 에 의지할 수밖에 없겠군요. 사사로운 행동과 관련이 없다면 무엇이든 말 예요." "난 그런 일엔 재주가 없어. 난 빵 굽는 일을 해야겠어. 난 대고모와 빵 굽는 일을 하며 자랐거든. 당신도 알겠지만. 그러나 그나마도 단골을 얻으 려면 빵 굽는 사람도 관습을 따라야만 하지." "시장이나 장날에 케이크와 생강빵을 파는 가게 같은 것을 열면 어떨까 요?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제품의 질 외에는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으니까 요." 그들의 그런 생각은 경매꾼의 목소리에 의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자, 이제 고풍스런 참나무의 등높은 긴 의자입니다. 옛날 영국 가구의 독특한 예로 모든 수집가들의 주목을 끌 가치가 있는 물건입니다!" "저 물건은 나의 증조부님 거였어." 주드가 말했다. "저 불쌍한 오래된 물건을 가지고 있었으면 했는데!" 하나씩 하나씩 가재도구들이 팔려 나가면서 그날 오후가 다 지나가고 있 었다. 주드와 다른 두 사람은 지치고 배가 고파졌다. 그러나 그들은 구매자 들이 그 두 사람에 대해 했던 이야기 때문에 구매자들이 물러간 후에도 방 밖으로 나가기가 부끄러웠다. 그러나 마지막 물건이 팔려 나가자 임시숙소 에 있는 수의 물건들을 옮기기 위해 곧 비속으로 나와야 했다. "자, 다음은 두 쌍의 비둘기입니다. 모두가 팔팔하고 통통합니다. 다음 일요일 만찬에 손님을 위해 좋은 파이를 만들기에 적당하겠군요!" 이 새들의 매각이 임박했다는 것은 그날 오후에 일어난 모든 일 중에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걱정거리였다. 그것들은 수의 애완 동물이었다. 그녀는 그들을 곁에 둘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자 모든 가구들과 헤어지는 것보다 더 큰 슬픔으로 몸부림쳤다. 수는 눈물을 떨쳐버리려고 애썼다. 왜냐하면 그녀는 소중한 새가 결국 경매에 붙여져서 값이 오를 듯 말 듯하다가 하찮 은 가격에 팔리는 걸 결국 듣고야 말았기 때문이었다. 구매자는 이웃의 새장수였다. 의심할 것 없이 비둘기들은 다음 장날 전 에 죽을 운명이 될 것이었다. 수가 애절한 고통을 떨쳐내려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주드는 그녀에게 키스를 해 주었다. 그리고 숙박 준비가 다 되었는지 가봐야 할 시간이라고 말했다. 그는 소년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가 곧 그녀를 데리러 올 거라고 말했다. 그녀는 혼자 남겨지자 인내심 있게 기다렸다. 그러나 주드는 빨리 돌아오 지 않았다. 주위에 인기척이 없어지자 결국 그녀도 그 집을 출발했다. 그리 멀지 않은 새장수의 가게를 지나면서 그녀는 자신의 비둘기가 문 옆에 뚜 껑 달린 큰 새장에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을 보게 되자 그녀의 감정은 더욱 격렬해졌고 저녁의 짙어가는 땅거 미에 힘입어 그녀는 충동적인 행동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먼저 주위를 잽 싸게 둘러보고서 뚜껑 아래에 채워진 자물쇠를 빼내 버리고는 재빨리 걸어 갔다. 뚜껑이 안으로부터 밀려 올라와 열리고 비둘기들은 날개를 펄럭거리 며 날아가 버렸다. 이 소리에 달려 나온 새장수는 이를 갈며 문을 향해 욕 을 퍼붓고 있었다. 수는 떨면서 하숙집에 도착했다. 주드와 소년이 그녀를 위해 그곳을 편 안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구매자들이 물건을 가져 가기 전에 돈을 지불하나요?" 그녀는 헐레벌떡 물었다. "그래, 그러리라고 생각하는데, 왜?" "왜냐하면 내가 아주 나쁜 짓을 했거든요!" 그리고 그녀는 그 이유를 몹시 후회스러워하며 설명해 주었다. "만약 새장수가 비둘기들을 잡지 못하면 내가 그 값을 지불해야 할지도 모르지." 주드가 말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 당신이 그런 일로 조바심낼 것 없어." "너무 어리석었어요! 오, 왜 자연의 법칙은 서로 살생하는 것을 일삼게 되었죠!" "그런 건가요, 엄마?" 소년이 진지하게 물어보았다. "그렇단다." 수는 격한 감정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그들은 이제 그들의 기회를 잡아야겠군. 불쌍한 것들!" 주드가 말했다. "매각에 대한 계산이 끝나고 우리가 계산할 돈만 지불하고 나면 바로 떠 나자." "어디로 가는 거죠?" 걱정스러운 듯 꼬마 영감이 물었다. "우리는 극비리에 떠나야만 한다. 아무도 우리를 추적할 수 없게. 우리는 알프레드스톤이나 맨체스터나 셰스톤 혹은 크리스트민스터로 가서는 안 돼. 그런 곳과 멀리 떨어진 곳이라면 어디든지 갈 수가 있단다." "왜, 우리는 그곳엔 가서는 안 되는 거죠, 아버지?" "우리 머리 위로 먹구름이 모여들이 때문이지. 비록 나는 누구에게도 불 의를 저질렀거나 그 누구를 해쳤거나 속여 빼앗은 일은 없다!('신약' 고린 도 후서 7장 2절)와 같은데 말야. 그리고 비록 우리 눈에 올바로 비친 일 만을 해왔지만('구약' 사사기 7장 6절) 말이야." 5-7 그 후로 주드 폴리와 수는 더이상 얼드브릭험 마을의 거리를 걷지 않았 다.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몰랐는데 왜냐하면 가장 큰 이유로써 어 느 누구도 그 사실에 대해서 알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처럼 불 행하기만한 그 남녀의 종적을 찾아내려고 하는 호기심이 가득찬 사람이 있 다면, 그들이 도처에서 적응할 수 있는 직공기술을 이용해서 주소불명의 유목민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리라는 것 그리고 그러한 일에는 한동안 즐 거움이 없으리라는 사실을 별로 큰 어려움 없이 발견해 낼 수가 있었을 것 이다. 주드는 석회석에 가공할 일이 있다면 어디든지 찾아갔다. 다만 자신이 옛날에 자주 들렀던 곳이나 수의 연고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만을 골라 다녔다. 그는 장기간 일을 할 때도 있었고 짧게 할 때도 있었다. 그는 일을 했고 그 일이 끝나면 다시 이동해 갔다. 2년 반의 세월이 이처럼 흘러갔다. 가끔 그는 시골 저택에 있는 장식용 세로 중방 창살을 바로잡았고, 때로는 공회당의 흉벽을 손질했다. 어떤 때 는 샌드본 호텔에서 벽돌을 쌓았고, 가끔씩은 캐스터브리지, 또 이따금씩 멀리는 엑손베리 그리고 어떤 때는 스톡 베어힐스에 있는 박물관에서 벽돌 을 쌓고 있는 모습이 발견되었다. 한참 후에 그는 케닛브리지에 있었는데, 그곳은 메리그린에서 남쪽으로 12마일도 채 떨어져 있지 않은 번창하는 도시였다. 그 때의 그는 자신에 대해 알려져 있는 마을에 가장 가까이 근접한 셈이었다. 그의 열렬한 학구열과 희망으로 가득찬 청춘 시절 동안에 일어났던 짧았 지만 불행했던 결혼 생활의 내막을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이 현 재 자신의 생활상태나 신상 이야기를 물어볼까봐 그는 민감한 두려움을 품 고 있었다. 주변 마을 중의 몇몇 곳에서는 그를 몇 개월씩 잡아두는 곳도 있었는가 하면, 기껏해야 2, 3주 정도 있으면 되는 곳도 있었다. 감독 교회파와 비국교파 어느쪽이든 교회라는 곳에서 하는 공사에 대해 주드는 기묘하고도 갑작스런 반감을 품기 시작했다. 그러한 반감은 오해받 아 왔다는 쓰라린 의식 속에서 생겨났지만 냉정한 상태로 돌아온 지금도 여전히 그와 함께 있었다. 세상의 비난이 다시 되살아 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그의 인생 방침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로부터는 생계의 도움을 받지 않겠다는 결백성 때문에 그 반감이 생 겼던 것이다. 아니, 그뿐 아니라 교리에 대해 품어왔던 그의 신념과 그의 현재의 실천 사이에 나타난 모순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그것은 생겨났던 것 이다. 처음 크리스트민스터로 나갔을 당시의 신념은 이제 눈곱만큼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가 수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가 점하고 있던 그 위치에 정 신적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농업 박람회에서 아라벨라가 수와 주드의 모습을 확인한 후 거의 3년이 다 되어 가는 5월의 어느 토요일 저녁에, 우연히 만나게 되었던 그들이 또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 날은 케닛브리지의 봄 장날이었다. 비록 이 오래된 거래의 행사가 옛날보다는 훨씬 규모면에서 축소되기는 했지만 자치구의 긴 외길은 한낮의 활기로 가득 차 있었다. 바로 그때 이륜 경마차 한 대가 북쪽 가도에서 다른 차들과 섞여서 시내 로 들어서서 금주여관의 문 앞에 정차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내렸다. 한 사람은 흔히 볼 수 있는 시골 사람에 불과한 마부 그리고 다른 한쪽은 모 습이 대단히 훌륭한 인물로 그녀의 거무스름한 정장은 그녀를 지방 장날의 시끌벅적한 모습에 어울리지 않는 존재처럼 보이게 했다. "어디인가를 찾아봐야겠어. 애니." 어쩐지 과부인 듯한 여자가 그녀의 동료에게 말했다. 바로 그때 밖으로 나온 남자에게 마차를 맡기면서 그녀가 말했다. "곧 돌아올게. 여기서 기다려 줘. 그리고 안에 들어가서 뭔가 좀 먹도록 해. 나도 배가 고파 쓰러질 것 같아." "알았어." 동반한 여자가 대답했다. "나 같으면 왕수헌(영국 수상 별장)이나 재크정 같은 데서 머므르겠어. 이런 금주여관 같은 데서는 제대로 얻어먹지 못할 테니까." "그런데, 아귀같이 먹어대서는 안돼." 상복을 입은 여자가 꾸짖듯이 말했다. "이곳이 딱 알맞군. 그래 좋아. 나랑 함께 가서 새 예배당의 부지가 어딘 지 찾아주지 않으려거든 30분 후에 다시 만나면 어떨까?" "상관없어. 나중에 나에게 말해 줘." 일행인 두 사람은 제각기 다른 길을 걸어갔다. 검은 옷차림의 여자는 잡 다한 주위 환경과는 무관하다는 태도로 곧바로 걸어갔다. 이곳저곳을 물어 가면서 그녀는 저장소에까지 오게 되었는데, 그 안에는 구멍이 몇 군데 패 여 있었으며 그것은 그곳에 건축물의 기초가 깔려질 예정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내부의 판벽에는 커다란 포스터가 한두 장 붙어 있었고 예배 당의 초석이 오후 3시에 런던의 인기 있는 어느 목사에 의해 세워지게 된 다는 공고가 나붙어 있었다. 그러한 사실들을 확인한 상복을 입은 과부는 다시 여관으로 되돌아왔다. 그러자 장날의 움직임을 바라보고 싶은 여유가 생겨났다. 이윽고 그녀의 관심은 케이크와 생강이 들어 있는 당밀과자를 팔고 있는 조그마한 가게로 이끌려졌다. 가게는 커다란 기둥에다 넓은 캔버스를 두른 매우 큰 건축물 사이에 있었다. 가게는 무늬 없는 천으로 덮여 있었고 어쩐지 장사에 익숙 해 보이지 않는 젊은 여자가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그녀는 사내아이의 도 움을 받고 있었는데, 그 아이는 80대의 노인과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럴 수가?" 그 미망인은 혼자 중얼거렸다. "주드의 처 수가 틀림없어. 만약 그녀가 법률적으로 입적이 되어 있다 면!" 그녀는 그 가게에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안녕사셨어요, 폴리 부인?" 그녀가 부드럽게 말했다. 수의 안색은 변했고 그 흑사의 베일을 통해 아라벨라를 알아보았다. "안녕하세요, 카트리트 부인?" 그녀는 딱딱하고 말했다. 그리고 나서 아라벨라의 상복을 알아보고는 수 의 목소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동정적으로 변했다. "어머, 바깥 분께서...?" "네, 돌아가셨어요. 6주 전에 갑작스럽게. 비록 그는 생전에 제게 친절했 지만 혼자가 되고 보니 편치 않답니다. 술집을 경영하고는 있지만 양조업 자들이 모든 이익을 차지해 버리고, 소매업자에게는 돌아오는 것이 없죠... 네가 바로 내 아들이구나! 너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구나?" "예, 알아요. 잠시 아줌마가 우리 엄마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그러나 당신 은 우리 엄마가 아니에요." 꼬마 영감은 대답했다. 그의 말에는 이제 자연스럽게 웨섹스 사투리가 배어 있었다. "좋아요. 신경쓰지 말아요. 난 친구일 뿐이니까." "얘야!" 수가 갑자기 말했다. "이 접시를 가지고 아래 정거장에 다녀오너라. 또 다른 기차가 들어올 테니까." 아이의 모습이 보이게 되지 않자 아라벨라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앤 미남이 되긴 틀렸나 봐요. 불쌍한 아이! 그 아이는 내가 자기 진짜 엄마인줄 알까요?" "아뇨, 그 애는 자신의 태생에 대해서는 어떤 불가사의한 점이 있다고 생각하죠. 그게 전부예요. 그가 좀더 자라면 주드가 그에게 얘기할 거예 요."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이런 일을 하게 되었죠! 놀랐어요." "임시로 하는 장사일 뿐이에요. 우리가 어려울 때 잠시 재미로 하는 것 뿐이죠." "그럼 그 분과 여전히 함께?" "네." "결혼하셨어요?" "물론이죠." "애들은 있어요?" "둘이요." "그리고 또 한 아이가 태어날 것 같군요." 수는 딱딱한 심문을 받는 듯한 느낌이 들어 몸을 떨었다. 그녀의 부드러 운 작은 입술이 떨리기 시작했다. "어머나... 나는 나쁜 뜻에서 그런 것은 아닌데... 왜 우시죠? 남들은 자랑 스럽다고들 하는데!" "부끄러워서 그러는게 아니에요... 댁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고요! 그 러나 이 세상에 생명체를 가져 온다는 것은 매우 끔찍하고 비극적인 일 같 아요... 너무 외람되는 것 같기도 하고... 때때로 내가 그럴 권리가 있는가 하고 의문스럽기도 하고요!" "진정하세요. 그런데 당신은 왜 이런 물건을 팔고 있는지 나에게 말하지 않았어요. 원래 주드는 기품 있는 양반이었거든요. 거의 어떤 장사든 내려 다보곤 했지요. 하찮게 보고 어찌되든 내버려 두었는데..." "내 남편은 그때 이후로 좀 바뀌었어요. 나는 그가 지금은 거만하지 않 다고 확신해요." 그리고 수의 입술은 또다시 떨렸다. "이런 일을 내가 하게 된 것은 올해 초에 그이가 쿼터쇼트에 있는 어떤 음악홀 공사에서 벽돌 쌓는 일을 했는데 정해진 기간 내에 끝마쳐야 했기 때문에 비를 맞아가며 하다가 감기에 걸린 뒤부터죠. 그때보단 건강이 좋 아졌지만 워낙 길고 피곤한 시간이었죠! 혼자 사시는 친척 할머니의 도움 을 받았지만 곧 그분도 세상을 떠나시겠죠." "그런데, 남편을 잃고 나서부터는 나도 이제 진지한 생각을 하게 되었어 요. 당신은 어째서 생강이 들어 있는 당밀과자 같은 것을 팔 생각을 하셨 죠?" "그건 아주 우연한 일이었죠. 그는 빵집에서 태어난 거나 다름없었죠. 그 래서 한 번 이걸 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되었어요. 우리는 이것들을 크 리스트민스터 케이크라고 해서 팔고 있어요. 대성공이었죠." "난 이런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어머나! 창의 형태와 탑과 그리고 소첩탑의 모양을 한 것까지 있군요! 게다가 아주 맛있네요." 아라벨라는 격식도 차리지 않고 케이크 한 개를 집어 와삭와삭 먹기 시 작했다. "그래요. 크리스트민스터 대학을 추억하는 과자예요. 트레이서리 장식의 창도, 수도원식 회장도. 정말 그분다움 변덕이에요. 한결같이 크리스트민스 터에 집착하고 있군요... 케이크까지!" 아라벨라는 웃었다. "완전 주드식이네요. 절대적인 정열이야. 어쩌면 이렇게 괴상한 분일까! 앞으로도 계속 그러겠지만." 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주드가 비판당하는 것을 참을 수 없다는 듯이 곤혹스러워했다.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어서 말해 보세요. 비록 당신이 그 분을 좋아하지만 사실 그렇죠!" "물론 크리스트민스터는 그분에게 있어서 일종의 고정된 환상일지도 모 르죠. 나는 그분이 그러한 믿음에서 벗어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분 은 또 그곳이 고상한 장소이며 두려움을 모르는 사상의 중심지라고 생각하 지요. 하지만 진짜 현실은 전통에 대한 비굴한 아첨으로 특정지을 수 있는 평범한 교사들의 소굴일 뿐이죠." 아라벨라는 수가 얘기하고 있는 내용보다는 수가 처해 있는 상황에 빗대 어 그녀를 놀리고 있었다. "케이크를 파는 여자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들으면 사람들이 얼마나 이 상하게 생각하겠어요?" 그녀는 말했다. "왜, 당신은 교직 생활로 다시 돌아가지 않죠?" 수는 머리를 저었다. "그들이 받아주지 않아요." "이혼했기 때문인가요?" "다른 이유도 있죠. 게다가 지금은 다시 돌아갈 이유도 없고요. 우린 모 든 야망을 포기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그 분이 병에 걸리기 전까진 평생 처음으로 행복했죠." "지금 어디에 살고 계시죠?" "말하고 싶지 않아요." "여기 케닛브리지에요?" 수의 태도는 아라벨라에게 자신의 추측이 들어맞았음을 보여 주었다. "애가 다시 돌아오네요." 아라벨라가 계속해서 말했다. "내 자식이며 주드의 아들이죠." 수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될텐 데요." 그녀는 소리쳤다. "알았어요... 그렇지만 내 곁으로 그 애를 데려가고 싶어요! 그러나 걱정 마세요. 당신에게서 그 애를 빼앗아가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렇게 얘기하다 간 벌받게 되죠. 당신의 자식들로만 충분하다면 모르지만. 그 애가 보살핌 을 잘 받고 있다는 건 나도 알아요. 나는 하느님께서 정해주신 일에 대해 비난하는 여자는 아니에요. 사실 나는 더욱 체념한 상태죠." "정말이겠지요! 나도 제발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노력해야겠지요." 아라벨라가 대꾸했다. 이 말은 정신적으로뿐만 아니라 사회적 우월감을 의식하고 있는 사람의 편안함에서 나온 말이었다. "내가 각성했다는 것을 자랑하고 있는 게 아녜요. 단지 저는 옛날의 제 가 아니죠. 카트리트의 죽음 이후에 우리 가게의 다음 거리에 있는 교회를 지나다가 소나기를 만나 비를 피하기 위해 그 안으로 들어갔죠. 나는 남편 과 사별 후에 뭔가 의지할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독한 술에 의지하기 보다는 예배당에 의지하는 것이 더 옳았죠. 나는 그곳에 정기적으로 갔고, 큰 위안을 얻었죠. 그러나 나는 지금 런던을 떠나 당신도 알다시피 현재 알프레드스톤에서 친구 애니와 함께 살고 있어요. 고향도 가깝고 해서요. 오늘 장날 때문에 여기에 온 것은 아니에요. 낮부터 새로운 예배당의 초석 을 까는 예식이 있어요. 유명한 런던의 목사님에 의해서 이루어지지요. 그 래서 나는 지금 애니와 함께 마차를 타고 왔어요. 이제 나는 그녀를 만나 러 다시 돌아가야만 해요." 그리고 나서 아라벨라는 수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떠나가 버렸다. 5-8 그날 오후에 케닛브리지의 장날에 부산스럽게 돌아다니는 수와 그밖의 다른 사람들은 거리의 아래쪽에서 플랭카드가 붙은 저장물 축적소로부터 노래가 흘러나오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안을 들여다본 사람들은 검은 옷 을 입은 한떼의 사람들이 그들의 손에 성가집을 들고 새 예배당 벽을 만들 기 위해 파낸 구덩이 둘레에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상복을 입은 아라벨 라 카트리트가 그들 속에 서 있었다. 그녀의 깨끗하고 힘찬 목소리는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에 맞추어서 곡조 에 맞게 올라갔다 낮아졌다 하면서 명확하게 들려왔다. 그녀의 부푼 가슴 이 함께 움직이고 있는 것도 보였다. 애니와 카트리트 부인이 금주여관에서 가벼운 식사를 끝내고 케닛브리지 와 알프레드스턴 사이에 널리 펼쳐진 고지를 걸어 귀로의 여행을 시작했던 것은 같은 날 두 시간 뒤였다. 아라벨라는 상념에 젖어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생각은 애니가 처음에 생각했던 것처럼 그 새로운 예배당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아냐, 그건 딴 일이야." 마침내 아라벨라가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나는 오늘 여기에 와서 불쌍한 카트리트 외에는 딴 사람에 대해서 결코 생각하지 않았어. 또 오후부터 시작한 예배당을 짓는 일을 계기로 해서 복 음을 전해야겠다는 생각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어. 그러나 내 마음을 딴 곳으로 돌려놓는 일이 발생했어. 애니, 나는 또 그 사람에 대한 얘기를 들 었어. 나는 오늘 그녀를 만났단 말이야!" "누구 말야?" "주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그의 부인을 만났단 말이야. 그리고 구후 부터 쭉 내가 무엇을 하든 전심을 다해 찬송가를 불러 보려고 해도 나는 그 사람에 대한 생각으로 어쩔 수가 없었어. 나는 예배당 회원으로서 찬송 가를 부를 권리가 없어." "오늘 런던에서 오신 목사님의 설교가 네 마음을 꽉 잡아두지 못했다는 말이냐? 그래서 그렇게 떠돌아다니는 너의 바람기를 없애려고 노력하지 않 았다는 말이야?" "몰론 했지. 그러나 나의 사악한 마음은 나도 모르게 날뛰고 있는 거야." "그래... 나도 마구 날뛰는 마음이 어떤지 알아! 나도 가끔 내뜻과 상관없 이 어처구니 없는 꿈을 꾸는데 만약 네가 안다면, 넌 내가 갈등에 빠졌다 고 얘기할 거야!"(애니 또한 그녀의 애인이 자신을 버렸기 때문에 최근에 조금 심각해 있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아라벨라는 신경질적으로 재촉해 물었다. "죽은 전 남편의 머리카락 한줌을 너의 상복 브로치에 꿰매 두었으면 좋 을 뻔했구나. 하루종일 그것을 쳐다볼 수 있을 테니까." "한줌도 없단 말이야... 그리고 만약 내가 그것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소용없는 짓이야... 종교로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가 있다고들 얘기하지만, 주드를 되찾았으면 좋겠어!" "안돼. 너는 그 감정에 맞붙어 용감하게 싸워나가야 해. 그는 남의 남편 이잖아. 그리고 나는 또 하나의 좋은 방법에 대해서 들었어. 정이 깊은 과 부가 그러한 감정으로 괴로워지면 저녁때의 야음을 틈타 죽은 남편의 묘지 에 가서 오랫동안 고개를 숙이고 서 있는다는 거야." "흥, 내가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이미 익히 알고 있었어. 단지 그렇게 하지 않을 뿐이지." 그들은 한동안 침묵하면서 일직선의 길을 따라 마차로 달렸다. 마침내 길가의 왼편으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메리그린 마을이 지평선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그 마을로 통하는 울타리 길과 본도로가 십자로로 만나 는 교차점에 다다랐을 때, 마을 교회의 탑이 비스듬한 들판을 통해 아라벨 라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곳에서 조금 더 먼곳의 아라벨라와 주드가 처음 몇 개월 동안 결혼 생활을 했던 외딴 집과 돼지 도살을 했던 장소를 지나 칠 때 아라벨라는 더이상 자신을 절제할 수 없게 되었다. "그 분은 그 여자의 것이 아니고 내 거야." 아라벨라는 갑자기 외쳤다. "그 여자가 무슨 권리를 가졌다는 거야. 난 알고 싶어! 할 수만 있다면 난 그를 뺏고 말 테야!" "저런, 안돼! 네 남편은 고작 6개월 전에 세상을 떠났어! 기도를 해서 그 런 생각을 없애버려!" "기도 같은 건 이제 그만 둘 테야. 감정은 감정이라고! 나는 더이상 위선 자의 탈을 쓰고 싶지 않아. 이 꼴을 보라고!" 아라벨라는 그 순간, 장날에 모인 사람들에게 줄 생각으로 가지고 왔던 회당 건립 취지서 다발에 손을 넣어 그 중에서 몇장을 꺼내 내동댕이쳐 버 렸다. "기도고 예배고 다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어. 난 그냥 타고난 대로 살 거 야." "그만! 너 흥분했어! 조용히 집으로 돌아가서 차나 한잔 하자. 그리고 그 얘긴 이제 그만 하기로 하자. 다시는 이 길을 벗어나서 그 분이 사는 데로 는 가지 말자. 그쪽으로 가기만 하면 너는 이렇게 흥분하니까, 너는 이제 곧 괜찮아질 거야." 아라벨라는 차츰 흥분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구릉의 등성 이를 가로질러 갔다. 그들이 그 길고 쭉 뻗은 언덕의 내리막길에 닿았을 때 조그만한 키의 한 노인이 멍한 자세와 생각에 잠긴 걸음으로 그들 앞을 터벅터벅 걷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손에 광주리를 들고 있었다. 그 복 장에는 단정치 못한 데가 있었기 때문에 혼자서 가정부, 식료품 배달인, 상 담의 세 가지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이란 걸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를 위해 그러한 자격으로 일해주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다시는 없었기 때문이었 다. 그 여정의 나머지는 내리막길이었고, 그 노인도 알프레드스톤에 가는 것 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그에게 마차에 타라고 했고 그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아라벨라는 그를 보았다. 그리고 또 다시 보았다. 마침내 그녀가 말했다. "제가 잘못 봤는지 모르지만 당신은 필로트슨 씨가 아닙니까?" 그 노인은 돌아다보면서 차례로 아라벨라를 쳐다보았다. "예, 맞습니다. 내 이름은 필로트슨이요. 그러나 나는 당신을 모르겠는데 요, 부인." "나는 선생님이 메리그린에서 교직에 계실 때를 잘 기억합니다. 그리고 나는 선생님 제자 중의 한 사람이에요. 저는 매일 크레스콤에서 그곳으로 걸어다녔죠. 왜냐하면 크레스콤에는 여자 선생님 한 분만이 계셨는데 선생 님의 교수법이 훨씬 좋았죠. 그런데 선생님은 저처럼 저를 기억하시지는 못하세요? 저는 아라벨라예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그는 고개를 저으며 점 게 대답했다. "기억하지 못하겠는 데요. 현재의 부인의 당당한 풍채 속에서 아마도 그 당시의 훌쭉한 학생을 기억해내는 것은 무리일 것입니다." "글쎄요, 전 항상 뼈에 살이 많이 붙어 있던 편이었죠. 그러나 나는 현재 몇몇의 친구들과 여기에 정착하고 있어요. 아시는지요. 제가 누구와 결혼했 는지?" "모르겠는데요." "주드 폴리예요. 그 또한 당신의 제자였죠. 야간반이었어요. 잠깐 다녔던 걸로 생각되는 데요? 제가 착각하지 않았다면 나중에 그가 선생님과 가까 이 지냈던 것으로 아는데요." "이럴 수가, 이럴 수가." 필로트슨은 놀라며 그의 딱딱한 태도를 없앴다. "당신이 폴리 군의 부인인가요? 확실히, 그의 부인이 있었나보군! 아! 알 겠소." "저와 이혼해 버린 거예요. 선생님이 이혼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아마 도 더 좋은 사연이 있었나 보죠." "정말로?" "글쎄요, 그가 저와 이혼한 것은 잘한 일인지는 모르죠. 아니면 두사람 모두에게 잘된 일인지도 모르죠. 왜냐하면 저는 곧 재혼했거든요. 그리고 제 남편이 최근에 돌아가실 때까지 꽤 잘 살았죠. 그런데 선생님은... 선생 님은 결정적으로 이혼을 잘못한 거예요!" "아니오." 그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나는 차라리 이것에 대해서 얘기하지 말았어야 해요. 그러나 나는 내가 옳은 일을 했다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정당하고 도덕적이기도 하지요. 나는 내 행동과 생각으로 인해 고통을 당했지만 난 여전히 내 소신을 지키고 있 소. 비록 그녀를 잃은 것이 여러 가지 면에서 내게 손실을 가져다 주었지 만 말이오!" "선생님은 그녀 때문에 선생님의 학교와 좋은 수입을 잃어버렸죠, 그렇 지 않나요?" "나는 그것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소. 어쨌든, 나는 최근에 이곳 메리그 린에 다시 돌아왔소." "선생님은 그 전처럼 다시 메리그린에서 학교를 운영하실 건가요?" 솟아오르는 슬픔이 그의 가슴속을 열어놓았다. "나는 저기에 있소만." 그는 대답했다. "그러나 그 전처럼이라니, 그건 말이 되지 않소. 나는 지금 남에게 폐를 끼치고 있는 중이오. 그것은 내 마지막 보루요. 내가 높은 지위를 얻어 난 후에 그리고 오랜 세월의 소망 끝에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보잘것 없는 출 발이지만. 남에게 굴욕을 톡톡히 당한 후에야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 같군 요. 그러나 그곳은 은신처이기도 해요. 나는 그곳의 속세를 떠난 것 같은 분위기를 좋아해요. 그리고 그 마을의 목사는 내가 마누라에 대해서 기괴 한 행동을 한 것 때문에 학교 교장으로서의 명성을 망치기 전부터 서로 알 고 지내던 친구로 그는 다른 모든 학교들이 나로부터 등을 돌릴 때 나를 구원해 주었죠. 비록 다른 곳에서 연간 200파운드 이상을 받았지만 이곳에 서는 단지 50파운드뿐이예요. 그렇지만 나는 옛날의 부부생활에 대해서 꼬 치꼬치 흠을 잡히기 보다는 이 생활에 만족하고 있소. 내가 전입이라도 해 보려고 하면 그런 곤경에 빠지기가 일쑤이기 때문이오." "선생님 말씀이 맞아요. 만족해 하는 마음만이 끊임없는 향연이죠. 그녀 도 당신보다 더 잘 지내고 있지는 못해요?" "그녀가 잘 지내지 못한다고 말했소?" "나는 오늘 우연히 케닛부리지에서 그녀를 만났어요. 그리고 다시 한번 얘기하는 것이지만 선생님은 그 여자에게 과분한 배려를 하신거예요. 게다 가 선생님은 자신의 보금자리를 자신의 손으로 더럽히셨지요. 그것이 되돌 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말이오?" "그녀는 죄를 짓지는 않았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들은 그 재판에서 변호조차 하지 않았소!" "그것은 단지 그들이 변호하기 싫어했기 때문이죠. 제 얘기는 선생님이 이혼 소송에서 승소하셨지만 선생님을 소송에서 이기게 했던 죄에 대해 그 녀는 전혀 혐의가 없다는 말이죠. 재판이 끝난 후에 저는 그녀를 만났고 그때 그녀와의 대화에서 전 확신하게 되었어요." 필로트슨은 용수철 달린 경마차의 가장자리를 꽉 쥐었다. 그는 이 얘기 에 몹시 충격을 받고 괴로워하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그녀는 집을 나가고 싶어했소." "그래요. 그러나 선생님은 그녀가 그렇게 나가도록 해서는 안 되었죠. 죄 가 있든 없든간에 그렇게 건방지게 이치나 캐는 여자는 내보내지 않는게 상책이예요. 여자란 다 그렇죠! 습관은 어쩔 수 없는 것이거든요. 결국엔 다 똑같죠! 그런데 그 여자는 여전히 자기 남편을 좋아하고 있는 것 같아 요. 그 남자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선생님은 그녀에 대해서 너무 성급하셨어요. 저 같으면 못 가게 했을거예요! 사슬에 매어 놓아서라 도 -비록 그녀가 차버리고 뛰쳐 나가려 할지라도 말예요. 우리 여자들을 길들이는 최상의 수법은 뭔가로 묶어두는 거지요. 게다가 완고하다면야 더 할 나위 없을 텐데. 그것은 모세도 잘 알고 있었죠. 그분이 하신 말씀을 기 억 못하시겠어요?"(민수기, 5장. 여자의 불의와 남자의 태도에 관한 법) "기억이 안나는데요, 부인. 미안한 말이지만." "그러니까 학교 선생님이시죠! 저는 교회에서 읽을 때마다 항상 그말을 생각하고 실천도 했어요. 조금이지만요. '이렇게 함으로써 남편된 자를 죄 없게 하며, 아내는 그 죄가를 짊어지게 되리라'(민수기 5장 31절). 그것이 우리 여자에게 가혹하다고 생각돼나요? 그러나 빙긋웃고 그것을 참아내며 살아가야 되지요. 하하! 그렇지만, 이제 그녀는 자신의 업보를 받게 된 거 예요." "그렇군." 슬픔을 참으려는 듯 이를 악물며 필로트슨이 대답했다. "잔혹함 - 그것만이 인간사회와 자연계에서 통하는 법이지. 그것으로부 터 우리는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 수 없지!" "그렇지만 잊지 말고 다음 기회에는 지금 얘기한 대로 해보셔야 해요." "부인, 나로선 그것에 대답할 수 없소. 나는 여인들의 변덕스러움을 다 경험한 사람은 못 되니까요." 이미 그들은 알프레드스톤 경계의 낮은 평지에 도달해 있었다. 그리고 곧 방앗간에 다다랐다. 필로트슨은 그곳에 용무가 있다고 말했다. 거기에서 다다르자, 필로트슨은 마차에서 내려 정신없이 두 여자에게 작별인사를 했 다. 그때쯤 수는 케닛브리지 시장에서 시험적으로 케이크를 판매하는데 주목 할 만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 성공은 슬픔에 젖은 그녀의 얼굴을 일시적으 로 밝게 만들었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크리스트민스터 케이크가 모두 팔려 그녀는 빈 바구니를 팔에 끼고 좌판과 덮고 있던 천을 거두었다. 다른 물건들은 소년에게 들게 하고 그 애와 함께 그 거리를 떠났다. 그 들은 반 마을쯤 좁은 길을 따라 가다가 양 손에 짧은 옷을 입은 아이와 아 장아장 걷는 아이를 데리고 가는 늙은 여자와 마주쳤다. 수는 아이들에게 키스를 했다. "그 분은 어떠세요?" "훨씬 좋아졌어!" 에들린 부인이 쾌활하게 말했다. "네가 2층에 올라가기 전에 네 남편은 아마 다 나을 거다. 걱정하지 마 라." 그들은 모퉁이를 돌아 약간 오래되고 붉은 기와가 얹혀 있는, 작은 마당 과 과실 나무가 있는 오두막집들이 있는 곳으로 왔다. 그 집들 중의 한 곳 으로 그들은 노크도 하지 않고서 자물쇠를 열고 들어갔다. 그곳엔 바로 객 실 겸용의 거실이 있었다. 거기서 그들은 안락의자에 앉아 있는 주드에게 인사를 했다. 원래 섬세한 그의 얼굴은 수척해져서 더 섬세하게 보였고 그 의 눈에 내비치는 어린아이 같은 기대의 눈빛은 그가 중병을 앓고 난 사람 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말해주고 있었다. "뭐, 당신이 다 팔았다고?" 그가 말했다. 희미한 빛이 그의 얼굴을 밝게 했다. "그래요. 아케이드도, 박공도, 동종면창도 모두 다요." 그녀는 그에게 매상 결과를 말하고는 주저앉았다. 그들 둘만 남겨지자 그녀는 아라벨라와의 뜻밖의 만남에 대해서 그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미망인이 된 사실도 말했다. 주드는 침착성을 잃었다. "뭐, 그 여자가 여기에 산다고?" "아니요, 알프레드스톤에서요." 주드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난 당신에게 말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는데요?" 그녀는 걱정스러운 듯이 말했다. "그래, 잘했어. 여보! 아라벨라가 런던 밑바닥에서 살지 않고 여기서 살 다니! 시골길로 가게 되면 알프레드스톤까지 12마일이 조금 넘는 거리밖에 안되지. 그 여자는 거기서 뭘하는데?" 수는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그에게 말했다. "예배당에 다니기 시작했다던데요. 그 여자 말에 의하면요." 수는 말을 덧붙였다. "그래, 우리가 이사가기로 결정한 것은 참 잘한 일이야. 오늘은 아주 좋 아졌어. 한두 주 후면 떠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좋아질 거야. 그러면 에들 린 부인도 다시 집에 갈 수 있겠지. 우리에겐 너무 고마우신 분이야. 이 세 상에서 우리가 가진 유일한 친구지!" "어디로 가실 생각이세요?" 수가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걱정스러움이 섞여 있었다. 그래서 주드는 그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털어 놓았다. 너무 오랫동안 정 든 옛 고장을 피해 다닌 후라서 그가 말하는 것이 그녀를 놀라게 할 지도 모른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이모저모 따져보고서 최근에 그는 크리스트 민스터를 많이 생각하게 되었고 만약 그녀가 상관없다면 그곳으로 되돌아 가고 싶다고 했다. 그들의 얼굴이 알려지든 말든 그것에 대해 그들이 왜 걱정해야 하겠는가? 그렇게 신경쓰는 건 쓸데없는 과민 반응이라고 생각했 다. 그들은 그곳에서 케이크 파는 일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이고 그도 더이 상 가난하게 사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었다. 더군다나 그의 건 강이 회복된다면 거기서 석공일을 하는 가게도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 다. "왜 당신은 그렇게도 크리스트민스터를 좋아하시죠?" 그녀는 생각에 잠겨 말했다. "크리스트민스터는 당신을 조금도 돌봐주지 않는데, 가엾은 분!" "그래도 난 거기가 좋아. 어쩔 수가 없어. 난 거기가 좋아. 나같은 소위 독학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업신여김을 받는지, 노동해가며 힘들 게 얻은 우리의 교양과 지식에 대해 그곳만은 앞장서서 존경해 줄만도 한 데, 오히려 그 얼마나 경멸하는지 난 잘 알아. 그곳은 우리들의 성조와 발 음이 잘못되었다고 낄낄거리며 웃어대지. 그곳도 알고 있어. 정말 미안하지 만 그 점은 교정을 받도록 하시오 하면 될텐데 말이야. 일부러 사람을 보 고 낄낄대지 않아도 될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어린시절 꿈 때문 인지 그곳은 나의 우주의 중심이거든. 어떤 일이 있어도 그것을 바꿀 수는 없어. 아마도 그곳은 깨어날 거고 관용도 가지게 되겠지. 난 그렇게 되길 기도해! 돌아가서 난 거기서 살고 싶어. 아마도 그곳에서 숨을 거두게 되겠 지! 2, 3주 안에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해. 그러면 벌써 6월이 되겠군. 난 그곳을 아주 특별한 날에 가고 싶어." 완쾌되어 간다고 보는 그의 희망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었다. 그로부터 2, 3주가 지나 그들은 많은 추억이 깃들어 있는 그 도시에 도착했다. 그는 결 국 꿈이 아닌 현실에서, 크리스트민스터의 보도 위에 두발을 딛고 허물어 져 가는 벽에 기대어 따가운 햇살을 받은 것이다. 제6부 다시 크리스트민스터에서 ...그리고 그 여자는 몸을 대단히 미천하게 여겨 늘 기꺼이 꾸미는 모든 부분을, 흐트러진 머리칼로 메꾸었노라.('구약성서' 에스더, 경외전 14장 2 절) 기울어진 두 사람, 그대와 내가 있어, 그리고 여기 암흑 속에서 죽음을 누리고 있다. (로버트 브라우닝, '때는 너무 늦다'의 10절) 6-1 두 사람이 역에 도착했을 때 그곳은 젊은 여자들을 맞이하기 위해 나온 밀짚모자를 쓴 젊은이들로 북적거렸다. 여자들은 환영나온 젊은 남자들에 게 눈에 띌 정도로 가족 같은 친밀함을 보여 주었으며 모두가 밝고 가벼운 옷을 차려입고 있었다. "온 시내가 들떠 있는 듯한 분위기군요. 아, 그렇군요! '기념일'이로군요! 주드, 당신은 알고 있었지요? 일부러 오늘 이곳에 온 것이군요!" "그래. 다른 날보다는 오늘 오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어." 주드는 조용히 대답했다. 그동안 그는 어린아이를 돌보았고 아라벨라의 아이에게도 가까이 오라고 했다. 수는 그들 사이에서 제일 먼저 태어난 아 이를 돌보았다. "그렇지만 이런 것들이 당신의 기분을 우울하게 할까봐 두려워요!" 그녀는 걱정스러운 듯이 그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아, 그런 일로 우리의 일에 지장을 주어서는 안되지. 그리고 여기서 정 착하기 전에 먼저 많은 일들을 처리해야만 해. 우선 셋방 얻는 일부터 말 이야." 그들은 역에 짐을 내려두고 낯익은 거리를 걸어갔다. 축제일을 맞이한 사람들의 무리가 같은 방향으로 밀려갔다. 그들이 퍼웨이스(옥스퍼드의 카 팍스 네거리)에 도착하여 셋방이 있을 것 같은 방향으로 막 돌아서려던 때 였다. 주드는 시계와 부산하게 움직이는 군중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축제 행렬이나 구경하지. 셋방은 나중에 구할 수도 있으니까." "먼저 우리들이 머물 집부터 구해야 되지 않겠어요?" 수가 반문했다. 그러나 그의 정신은 이미 기념 축제 쪽으로 쏠려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 문에 일행은 함께 치프 스트리트(옥스퍼드의 번화가)를 내려갔다. 주드는 막대아이를 안고, 수는 어린 딸의 팔을 붙잡고 걸어갔다. 아라벨라의 사내 아이는 생각에 잠겨 그들의 곁을 따라 말없이 걸었다. 산뜻한 옷차림을 한 예쁜 자매들과 온순하고 무지한 부모들의 무리가 그 들 형제와 자식들에게 둘러싸여 같은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렇지만 부모들 은 자신들이 젊은 시절에는 대학 같은 것은 꿈에서도 생각해보지 못했었다 - 게다가 그들 형제들과 자식들의 얼굴에는 자신들이 지금 이곳에 빛을 주 기 전까지는 정당한 자격을 갖춘 인간 따위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는 듯한 표정이 만면이 나타나 있었다. "저 젊은 친구들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나의 실패가 생각나. 자만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이 바로 오늘 나를 기다리고 있어! 나에게는 굴욕의 날이 야! 여보, 만일 당신이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면 나는 절망으로 파멸했을 거 야!" 그녀는 주드의 표정에서 그가 격력한 자기 학대적인 기분이 젖어들고 있 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지금 당장은 우리의 일부터 처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이런 일들 을 보고 있으면 옛날의 슬픔이 되살아나서 좋지 않을 거예요." 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글쎄 - 이제 다 왔어. 곧 볼 수 있을 거야." 주드가 말했다. 그들은 이탈리아식 현관이 있는 교회 옆을 왼쪽으로 접어들었다. 두 개 의 나선형 기둥은 무성한 덩굴로 덮여져 있었다. 그들은 다시 좁은 길을 따라 걸어갔다. 주드의 시야에 그 유명한 꼭대기탑이 붙어 있는 팔각 강당 이 나타났다. 그것은 그가 마음 속에서 이미 포기했던 숱한 희망의 슬픈 상징처럼 솟아 있었다. 그가 깊이 명상에 잠겨 있던 그날 오후에 마지막으 로 '대학의 도시'를 바라본 것이 바로 그 망루에서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깊은 상념에서 빠져나와 마침내 대학의 아들이 되어보겠다는 시도가 무모 하다는 것을 확인했던 것이다. 오늘 이 건물과 바로 이웃 대학 사이의 광장에는 긴장되어 마른침을 삼 키며 기다리고 있는 군중들이 있었다. 군중 한가운데에는 두 줄의 목책으 로 보호해 놓은 통로가 대학 입구와 강당 사이에 있는 큰 건물 입구까지 뻗어 있었다. "자, 여기다. 사람들이 곧 이곳을 자나갈 거야!" 주드는 갑자기 흥분하여 외쳤다. 그리고 막내아들을 안고서 인파를 헤치 며 제일 앞까지 헤집고 들어가 목책과 맞닿는 장소에 자리를 잡았다. 수와 막내아들 외에 다른 아이들도 주드 바로 뒤를 따라갔다. 그들의 뒤를 꽉 메우고 있던 군중들은 대형마차가 차례로 대학의 현관에 와닿고 핏빛처럼 빨간 예복을 입은 엄숙한 인물들이 마차에서 내리기 시작하자 떠들고 농담 하며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하늘은 구름으로 뒤덮혀 납빛으로 변해 있었고 천둥소리가 이따금씩 울려퍼졌다. '꼬마 영감'(주드와 아라벨라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의 별명)은 몸을 떨었 다. "마치 최후의 심판일 같네!" 그는 속삭였다. "저 사람들은 오로지 지식만을 쌓아올린 박사님들일뿐이야." 수가 말했다. 그들이 기다리는 동안 굵은 빗줄기가 머리와 어깨 위에 떨 어져 내려 이제는 기다리는 것이 지루해졌다. 돌아가자고 수가 다시 말했 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주드는 무신경하게 대답했다. 그러나 행렬은 아직도 나타나지 않았고 군중 속에서 누군가가 지루한 시 간을 보내기 위해 이웃 대학의 정면 한가운데에 라틴어로 씌어 있는 명각 문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질문했던 사람과 가까이에 있던 주드가 그것 을 설명해주었다. 주드는 주위 사람들이 관심있게 경청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계속해서 원주 위의 소벽에 새겨진 조각(그가 여러 해 전에 조 사한 바 있는)에 대해 설명하고 이 도시에 있는 다른 대학의 현관에 있는 돌세공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논평했다. 문을 지키고 있던 두 명의 경찰을 포함하여 한가로이 서 있던 사람들은 바울을 바라보는 리카오니아 사람들(사도행전 14장 11절)처럼 눈을 크게 떴다. 주드에게는 눈앞의 일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열중하는 버릇이 있었고 이 고장사람들은 외지 사람이 이 도시의 건물에 대해서 어떻게 자신들보다 더 자세히 알고 있는가에 대해 의아해 했다. 이 공장 출신의 어떤 사람이 드 디어 입을 열었다. "아, 나는 저 남자를 알지. 수년 전에 이곳에서 일을 한 적이 있어. 그의 이름은 주드 폴리야! 성 슬럼가의 선생이라는 별명을 기억하지 못하겠나? - 그는 이 계통의 일을 하려고 했어. 그리고 보니 그는 결혼도 했군. 지금 데리고 있는 아이들은 저 사람의 자식들이야. 테일러가 저 사람에 대해 알 고 있을 거야. 그는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는 주드가 대학의 돌세공을 보수할 때 함께 일했던 잭 스태그라는 사 람이었다. 대장장이인 테일러가 가까이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테일러는 울타리 너머로 주드를 향해 외쳤다. "어이, 친구. 돌아와 주다니 영광일세!" 주드는 고개를 끄덕여 답례했다. "그런데 자네는 이 고장을 떠난 후에 자신에게 이로운 일을 한 것같이 보이지는 않는군!" 주드는 그의 이 말에도 동의를 표시했다. "먹여 살릴 식구가 많아졌다는 것 외에는 말이야!" 다른 목소리가 이렇게 말했다. 주드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조 아저씨 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주드가 이전에 알았던 또 한명의 석공이었다. 주드는 아니라고는 못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기분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는 사이에 그와 한가로운 사람들 사이에 무 엇인가 공통적인 화제 같은 것이 생겼다. 이야기하는 도중에 대장장이인 테일러가 주드에게 라틴어로 씌어진 '사도신경'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지 그리고 술집에서 도전에 응했던 밤의 일도 기억하고 있는지를 물었다. "그런데 행운의 여신이 그곳에는 없었던가?" 조가 끼어들었다. "자네 힘으로는 견뎌내는 데 무리스럽던가?" "저 사람들에게 더이상 대답하지 말아요!" 수가 애원했다. "나는 크리스트민스터가 싫어요." '꼬마 영감'이 서글프게 중얼거렸다 - 그는 서 있었지만 사람들틈에 파묻 혀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주드는 자신이 호기심과 조롱과 논평의 중심 인물이 되어 있지만 그다지 부끄러워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것을 대담하게 터놓고 선언 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잠시 후에 그는 흥분해서 주변의 사람들로 북적거 리는 거리를 향해 큰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러분, 젊은이로서 현재 자신이 걸어가는 행로가 과연 자신에게 적합 한지 아닌지를 고려하지 않고 아무런 비판도 없이 더듬어가야 하는 것인 지, 아니면 자신의 소질과 기호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고 그것을 좇아서 인생 행로를 전환해야 하는지는 어려운 문제입니다. 이것은 내가 마주하여 싸워야만 하는 문제이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발전하는 이 시대의 바로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나는 후자의 길을 택했 다가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나의 실패에 의해서 내 생각의 오류가 입 증되었다든가 성공에 의해 나의 생각이 올바르게 되었다든가 등은 고려하 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시도를 본질적인 건전함에 기대지 않고 우연의 결과에 의해 평가합니다. 그러나 만일 내가 숙원을 달성하고 지금 이곳으 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던 그 적과 흑의 옷차림을 한 신사분 중의 한 사람 처럼 되었다면 여러분들이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저것 봐, 저 젊은이는 아주 현명했기 때문에 타고난 재질을 발휘할 수 있었던 거야!' 그러나 제자 리에 되돌아온 신세가 된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것 봐, 저 친구 는 망상에 빠져 있는 아주 멍청이야!'라고 말입니다." "그렇지만 패배에 동의했던 것은 나의 빈곤이지 나의 의지는 아니었습니 다. 내가 한 세대에 이루어 보려고 했던 일은 아마 두세 세대가 걸릴 지도 모릅니다. 나의 충동 - 애정 - 이것을 아마 악덕이라고 부르겠지만 - 이것 은 지나치게 강해서 유리한 지위를 차지하지 못했던 사나이를 좌절시켰습 니다. 국가의 명사가 될 절호의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물고기같이 냉철하 고, 돼지같이 이기적이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나를 비웃을 겁니다 - 나는 기꺼이 바보가 되겠습니다 - 확실히 나는 그런 놀림을 받아 마땅한 사람입 니다. 그러나 요즘 2, 3년 동안에 내가 경험한 것을 알아주신다면 여러분들 은 오히려 나를 가엾게 여겨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만일 저 사람 들이 알아준다면요." 그는 학감들이 잇달아 도착하고 있는 대학 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그들도 분명히 당신들처럼 나를 가엾게 생각해 줄 겁니다." "저 사람은 병에 들어 아주 지쳐버린 것 같아요. 정말이에요!" 어떤 부인이 말했다. 수는 더욱 감정이 격해졌다. 그러나 그녀는 주드 가까이에 서 있었지만 사람들에게 가려 눈에는 띄지 않았다. "나는 죽기 전에 어떤 좋은 일을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 해서는 안 될 일의 무서운 실례로 어떤 성공을 거둘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결과 도덕 적인 한 가지 이야기의 예증이 될지도 모릅니다." 주드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는 아주 평온하게 이야기했지만 점점 고통스 러운 기분이 되었다. "아마 나는 결국 오늘날 대단히 많은 사람들을 불행하게 하는, 정신적으 로나 사회적으로나 불안한 정신의 하찮은 희생자가 되었을 겁니다." "이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해서는 안돼요!" 수는 주드의 마음 상태를 알아차리고 눈물을 흘리면서 중얼거렸다. "당신은 하찮은 희생자가 아니에요. 당신은 지식을 얻기 위해 멋지게 싸 운 거예요. 당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람들이야말로 세상에서 제일 비겁한 사람들이에요." 주드는 어린아이를 더욱 편안하게 끌어안으면서 계속해서 말했다. "그리고 지금의 나의 겉모습- 병들고 가난한 남자 -은 나의 최악의 모습 이 아닙니다. 나는 어둠 속을 헤매면서 선례를 따르는 것이 아니고 본능에 의지해 행동하면서 - 여러 신념의 혼돈 속으로 빠져 들고 있습니다. 8년 전인가 9년 전에 내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나는 여러 가지 고정관념을 정연하게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하나씩 떨어져 나갔고 그럴 수록 확신을 잃게 되었습니다. 현재의 생활방식은 나에게는 해롭지만 다른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으며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실질적인 기쁨 을 주는 여러 경향을 따라가는 일 - 그 이상의 것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자, 여러분 나의 생활에 대해서 알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씁드렸습니다. 이 이야기가 제발 여러분을 위한 것이 되 기를! 여기에서 더 이상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나는 사회의 규범이 어딘가 잘못된 곳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무엇인가는 적어도 우리의 시대에 는 나보다도 더욱 통찰력 있는 그 누구에 의해서 - 언젠가 실제 그들이 이 것을 찾을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의 이야기입니다만 - 발견되겠지요. 이 세상의 어느 누가 어떤 일이 사람을 위해서 좋은 것인가를 알겠습니까 - 또 누가 자신의 몸 뒤에 태양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을 것인가를 그 누가 말할 수 있겠습니까?"('구약성서' 전도서 6장 12절) "옳소, 옳소!" 사람들이 외쳤다. "설교가 참 멋있소!" 대장장이 테일러는 그렇게 말하며 근처 사람들에게 나직하게 말했다. "글쎄, 우두머리 성직자들이 쉬고 싶을 때 대신 설교를 하는, 이 주변에 떼지어 활동하고 있는 직업목사 중의 어느 누구도 1기니 이하의 대가로는 이런 설교를 하지 않아요. 잘했어요! 혼자서 할 수도 있을까요! 예를 들어 설교를 한다 해도 초안을 잡지 않고서는 할 수 없거든요. 그런 것을 이 젊 은 남자, 즉 노동자에 불과한 신분의 사람이 잘 한다, 이겁니다!" 주드의 설교에 대해 일종의 객관적 해석을 내리고 있던 바로 이때, 어떤 박사가 식복을 입고 숨을 헐떡거리며 마차를 타고 늦게 도착했다. 손님을 내려주어야 하는 정확한 장소에 말이 멈출 수가 없어서 손님은 마차를 박 차고 나와 현관으로 들어섰다. 마부는 내려와서 말의 배를 차기 시작했다. "종교적으로나 교육적으로 세계 최고라는 도시의 대학 정문에서 그런 일 이 허락된다면 우리들의 진보의 정도에 대해서 도대체 뭐라고 해야 하겠습 니까?" 주드가 말했다. "조용해요!" 여태까지 동료 한 사람과 함께 대학 맞은편의 큰 문을 열고 있던 경찰관 이 말했다. "여봐요, 행렬이 통과하는 동안은, 당신의 혀를 조용히 놔둘 수 없소?" 비가 세차게 내렸다. 우산을 들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우산을 폈다. 주드 에게는 우산이 없었고 수는 양산 겸용의 작은 우산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 다. 그녀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러나 그때 주드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 했다. "여보, 가요." 수는 작은 우산을 주드에게 씌워주며 속삭였다. "아시지요, 우리는 아직 숙소도 정하지 않았고 짐도 역에 있으며 당신은 아직도 완쾌되지 않았어요. 그리고 이렇게 비를 맞으면 몸에 해롭다는 것 말이에요!" "그들이 이제 곧 나오겠지. 조금만 기다리면 돼요. 그러면 가겠어!" 여섯 개의 화음종이 울려퍼지고 사람들의 시선이 주변의 창문 있는 곳으 로 모이기 시작했을 때 학장들과 새로운 박사들의 행렬이 나타나고 빨간색 과 검은색의 가운을 착용한 그들의 모습이 망원경의 대물렌즈를 가로지르 는 접근하기 어려운 혹성처럼 주드의 시야를 스쳐갔다. 그들이 지나갈 때 그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이름을 외쳐댔다. 그리고 그들이 렌(1632-1723, 영국의 고전 건축가로 그의 대표작은 런던의 '성 바울 사원')이 세운 오래된 팔각 강당에 도착했을 때 일제히 환호성이 일어났다. "저쪽으로 가요!" 주드는 외쳤다. 이제 비는 줄기차게 쏟아지고 있었지만 그는 그것을 전 혀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그들을 끌고 대강당 쪽으로 갔다. 여기에서 그들은 귀에 거슬리는 마차바퀴 소리를 없애기 위해 깔아놓은 보 릿짚 위에 올라섰다. 건물을 에워싸고 있는 풍상을 겪은 돌로 만들어진 흉 상들이 창백하고 불길하게 행렬을, 특히 지저분한 주드와 수와 어린아이들 을, 마치 이곳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바보스런 인물이라도 되는 것처 럼 내려다보았다. "들어갈 수만 있다면 좋을 텐데!" 그는 그녀에게 열을 올리면서 말했다. "이봐 - 여기에 서 있으면 라틴어 연설 가운데 몇 마디는 들을 수 있을 지도 몰라. 문이 열려 있으니까." 그러나 주드가 빗속에서 서 있을 때 오르간의 화음과 연설 사이사이의 절규 소리와 환호 소리의 떠들썩함 외에는 이따금식 움이나 이브스 등의 어미형이 잘 울리는 단어 정도만 들렸고 그 이상의 라틴어는 의미를 알 수 있을 정도까지는 들리지 않았다. "아, 나는 생명이 다 할 때까지 문외한이로군!" 그는 잠시 후에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자, 나가요. 잘 참아줬어, 수. 쭉 빗속에서 기다려주다니, 너무 고마웠어. 나의 들뜬 기분을 깨우쳐 주기 위해서 말이야! 나는 지옥 같은 이 저주받 은 도시에 대해 두 번 다시 참견하지 않을 거야. 절대로 상관않는다구! 그 렇지만 울타리 있는 곳에 있을 때, 당신은 왜 그렇게 떨었지? 게다가 얼굴 빛도 굉장히 창백하더군, 수!" "난 건너편의 혼잡한 사람들 사이에서 리처드를 보았어요." "아, 그랬군!" "그분도 확실히 나처럼 제전을 구경하기 위해 예류살렘으로 나왔나 봐요 ('신약성서' 요한복음 2장 23절). 아마,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겠지 요. 그분도 마찬가지로 대학을 동경하고 있었어요 - 더욱 부드러운 형식이 었지만. 날 보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사람들을 향해 당신이 말하는 것을 들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요. 그러나 그분은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아요." "글쎄... 그렇지만 알아차렸다면. 수, 당신의 마음이 그 사람 때문에 괴롭 진 않겠지?" "네, 그래요. 그렇지만 나는 몸이 약해요. 우리의 생활 방식이 올바르다 고는 생각하면서도 희한하게 그분을 생각하면 무섭게 느껴져요. 세상의 인 습같은 건 믿지도 않았는데, 거기에 외포, 아니 공포를 느끼기도 하지요. 이것은 이따금 살며시 다가오는 마비처럼 엄습해와서 나는 지독하게 슬픈 기분이 되어 버려요!" "당신 피곤하지, 수. 아... 내가 잊고 있었군! 빨리 가자구." 그들은 셋집을 얻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마침내 밀듀레인에서 무척 괜찮다고 생각되는 곳을 발견했다. 이곳은 주드에게는 저항할 수 없 는 매력이 있었지만 수에게는 별로 매혹적이지 않았다. 어느 대학과 등을 맞대고 있었는데 그 대학과는 하등의 관계도 없는 좁은 골목길이었다. 작 은 집들이 대학의 높은 건물들의 그늘이 되어 음산한 분위기를 띠고 있었 다. 단지 한 장의 두터운 벽이 그들을 갈라놓고 있을 뿐이지만 대학에서의 생활은 지구의 양 끝처럼 골목길 사람들의 생활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두 서너 채의 집에 '셋집 있음'이라는 표시가 나붙어 있어서 그들은 어느 한 집에 다가가 문을 두드렸다. 어느 여자가 문을 열었다. "아, 들어보세요!" 주드는 그녀한테 말을 거는 대신 갑자기 말했다. "뭘요?" "저 종소리 말입니다 - 저것은 도대체 어떤 교회입니까? 저 음색은 자주 들었던 것이지만요." 다른 복합종의 화음이 상당히 먼 곳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내가 어떻게 알아요!" 여주인은 딱딱거리면서 말했다. "당신, 그것을 듣기 위해 문을 두드린 거요?" "아닙니다. 셋집을 알아보려고요." 주드는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집주인은 수를 잠시 아래위로 뜯어보았다. "방 없어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문을 닫아버렸다. 주드는 당황했으며 소년은 슬퍼했다. "주드, 내게 맡겨요. 당신은 방을 얻을 줄 모르니까요." 그들은 근처에서 두번째 장소를 찾아냈다. 그러나 이번에는 집주인이 수 뿐만 아니라 소년과 어린애들을 보고서는 점잖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어린애들이 딸린 사람에게는 셋방을 드리지 못합니다." 그리고는 문을 닫아버렸다. 꼬마 아이는 입을 모나게 삐죽이며 소리없이 울었다. 아이는 재난이 어 렴풋이 박두해 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소년은 한숨지었다. "난 크리스트민스터가 싫어! 저기 크고 오래된 집은 교도소인가요?" 소년이 물었다. "아니다, 대학이란다. 너도 아마 언젠가는 저기에서 공부를 할 거야." "난 싫다니까요!" 소년이 대답했다. "그럼 다시 찾아보기로 해요." 수가 말했다. "난 외투를 걸쳐야겠어요. 케넷브리지를 뒤로 하고 이곳으로 온 것이 마 치 케어퍼스에서 파일럿('신약성서' 마태전 26장 57절 및 27장 2절)에 온 기분이에요! 여보, 내가 어떻게 보여요?" "이번에는 아무도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거야." 주드가 대답했다. 또 한 집을 찾아낸 그들은 세번째로 시도해 보았다. 여주인은 더욱 상냥 했지만 여분의 방은 여유가 별로 없어서 주드가 어딘가 다른 장소로 가는 것이 가능할 때까지만 수와 아이들을 두어도 괜찮다고 말했다. 그들은 그 제안에 할 수 없이 동의했다. 그들은 그렇게까지 셋방 찾기가 늦어진 데 대해서 긴장감을 느끼고 - 방 세는 호주머니 사정에 비해서 약간 비싼 것처럼 느껴졌지만 집주인과 흥정 을 했다. 주드도 더 오래 동안 살 수 있는 집을 얻을 여유가 생길 때까지 는 할 말이 없었다. 이 집 안에서 수는 3층의 뒷방을 얻어들고 그 방의 안쪽에 있는 작은 칸 막이방을 아이들용으로 정했다. 주드는 잠시 쉬었다가 홍차를 마시고 창문 을 통해 대학의 뒤쪽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기뻐했다. 그는 네 사 람 모두에게 키스를 하고 나서 두서너 가지 필요한 물건을 가지러 가기 위 해 그리고 자신의 숙소를 찾기 위해 방을 나섰다. 그가 나가자 여주인이 올라와서 수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녀의 하 락한 가족상황을 살펴보았다. 수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최근의 어려움과 방랑에 대해 몇 가지의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여주인이 갑자 기 물었다. "그러면 진짜 결혼은 한 거예요?" 그녀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리고 충동적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남편과 자 신은 각각 첫번째 결혼으로 불행을 맞보았기 때문에 그후 또다시 돌이킬 수 없는 결혼을 해야 한다는 것이 생각만 해도 무서웠으므로 계약으로 인 해 서로의 애정이 사그라들 것이 걱정이 되면서도 함께 있기를 바라기 때 문에 문자 그대로 결혼을 되풀이할 용기를 갖지 못했으며 두서너 번 그렇 게 해보려고는 했다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사용하는 말의 의미 상으로는 결혼한 여자이지만 여주인의 말 뜻으로는 결혼하지 않은 것과 같 다고 말했다. 여주인은 당혹한 얼굴로 내려갔다. 수는 빗발을 쳐다보면서 생각에 잠겨 창가에 걸터 앉았다. 그녀가 즐기던 적막은 누군가 이 집으로 들어오는 소 리와 그 뒤를 이어 아래층의 복도에서 들려오는 남녀의 말소리로 깨져 버 렸다. 여주인의 남편이 돌아온 것이었다. 그가 집에 없는 동안 하숙인이 들 어왔다는 것을 여주인이 설명하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갑자기 노여움으로 높아졌다. "그래, 그따위 여자를 여기에 들여놓으라고 누가 말했어? 게다가 그 여 자의 아이들... 게다가 난 애들은 질색이라고 말하지 않았어? 막 새로 칠한 현관과 계단도 애들이 마구 밟아 못쓰게 될 것이란 말이야! 그 식구들은 어딘가 꺼림칙한 사람들이겠지. 당신은 그런 걸 알고 있으면서! 그런 꼴로 왔을 텐데도 말이야. 독신자를 넣으라고 했는데도 어린이들을 채워넣다니!" 집주인은 아내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고집을 굽히지 않는 것 같았 다. 머지않아 수가 있는 방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여주인이 나타 났다. "이런 말을 하게 되어서 미안합니다만, 손님. 일주일 동안 방을 빌려드릴 수가 없게 되었네요. 남편이 반대를 하는군요. 그래서 부탁입니다만 나가주 셨으면... 오늘은 이미 늦었으니까, 오늘밤에는 있어도 괜찮지만 내일 아침 일찍 나가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수는 한 주일 동안은 숙박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주인집 부부간에 다툼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나가겠다고 했다. 여주인이 가버리자 수는 다시 한번 창 밖을 내다보았다. 비가 멈추자 그녀는 소년에 게 동생들을 재우고 나서 함께 나가 지금처럼 쫓겨나는 일이 없도록 내일 을 위해 하숙을 예약해 놓자고 했다. 이렇게 해서 주드가 역에서 마침 도착한 트렁크의 짐을 푸는 동안 두 사 람은 비가 젖기는 했어도 불쾌하지는 않은 거리로 나섰다. 수는 숙소를 얻 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주드에게 방을 비워달라는 통고를 받았다고 알림으 로써 번거로운 일이 생기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그녀는 소년과 함께 이곳 저곳을 찾아 헤매었다. 그러나 열두 채의 집을 다녀보았지만 주드와 함께 다닐 때보다도 혼자 다니는 것이 더욱 힘들었으며 다음날 머물 수 있는 방 을 약소해주는 사람도 전혀 없었다. 집주인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날이 어두워졌는데도 방을 구하러 다니는 그녀와 어린애를 오히려 이상한 눈으 로 쳐다보았다. "난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는데요, 그렇지요?" 소년은 불안한 기분에 빠져들어 말했다. 수는 그다지 환영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나마 임시로라도 머물 수 있는 숙소로 완전히 지친 몸을 끌고 돌아왔다. 그녀가 방을 비웠던 동안에 주드 가 자신의 주소를 남겨놓고 가버렸다. 그러나 그녀는 그가 얼마나 약해져 있는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음날까지 그를 괴롭히지 말아야겠다는 결 심을 단단히 다졌다. 6-2 수는 자리에 앉아 아무 것도 깔려 있지 않은 마룻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다. 집 은 사방이 온통 낡은 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시골의 오두막집과 다를 바 없었다. 그녀는 커튼이 없는 창을 통해 바깥 경치를 내다보았다. 맞은편의 약간 떨어진 곳에 - 조용하고 어둠에 싸여 창문도 없는 - 사코퍼거스 대학의 외벽이 4세기 에 걸친 음산함과 편집과 쇠퇴의 그늘을 그녀가 들어 있는 작은 방에 드리우며 밤에는 달빛을, 낮에는 햇빛을 가리고 있었다. 루브릭 대학의 윤곽도 그 너머로 보였고 더욱 멀리에는 또 다른 대학의 뾰족탑이 눈에 띄었다. 그녀는 순진한 남자를 지배하고 있는 정열의 불가사의한 움직임에 대해 생각 했다. 그것이야말로 아내와 자식들을 그토록 상냥하게 사랑하는 주드를 아직도 그 꿈에 흘리도록 하여, 우울하게 만드는 이런 빈민가로 자진해서 그들을 이끌 고 흘러들게 만든 것이었다. 지금도 그는 저 학문의 벽이 자신의 소망을 꺾어버 리는 얼음 같은 거절의 반향을 보내고 있는 것을 듣고 있지 못했다. 다른 셋집을 찾아내는 데 실패했다는 것과 지금 이 집에 아버지의 방이 없다 는 사실이 소년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 어느 틈엔가 자신에게 스며들어 잠자코 있던 두려움이 그를 사로잡은 것 같았다. 소년의 말소리에 의해 침묵은 깨졌다. "어머니, 내일은 도대체 어떻게 할 거예요!" "나도 모르겠단다!" 수는 힘없이 말했다. "이 일로 아버지께서 괴로워하시겠지!" "아버지가 건강하시면 좋겠어요. 그리고 아버지한테도 방이 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되면 이런 정도의 일은 대단한 일은 아닐 텐데! 가엾은 아버지! "그렇겠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하긴 뭘 해! 이 세상은 곤궁, 재액 그리고 고뇌뿐인데!" "아버지는 우리 애들을 위해 방을 얻어주려고 나가셨지요?" "어느 정도는 그럴 거야." "이 세상에 있는 것보다 세상 바깥에 있는 편이 좋겠지요?" "그럴지도 모르지, 얘야." "어머니, 좋은 셋방을 빌리지 못하는 것도 우리 얘들이 있어서 그런 거겠지 요?" "그렇단다. 사람들이 가끔은 아이들을 거부하는 일도 있단다." "그럼, 아이들이 그렇게 성가시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얘를 낳지요?" "아...... 그것은 자연의 법칙이니까." "그렇지만 우리가 낳아달라고 부탁하지는 않았잖아요." "그래, 물론이지." "게다가 저에게 더욱 괴로운 사실은 어머니가 나의 진짜 어머니가 아니기 때 문에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나를 길러줄 필요도 없다는 겁니다. 나는 어머니에 게 와서는 안돼는 건데요 - 이 말은 사실이에요! 난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그쪽 사람들을 곤란하게 했는데! 여기에 와서는 이쪽 사람들을 골탕먹이고 있어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요!" "얘야, 너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단다." "필요 없는 아이가 태어나면 흔히 생기기 전에 당장 죽여 커서 돌아다니지 못 하도록 하면 돼요!" 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지나치게 내성적인 이 아이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불안하기만 했다. 그녀는 마침내 사정이 허락한다면 마치 동년배 친구처럼 자신의 어려움을 이 해해주는 소년에게 정직하고 숨김없이 대해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제 조금 있으면 우리 가족이 또 한 사람 늘어난단다." 그녀는 머뭇거리면서 말했다. "어떻게요?" "또 갓난애가 생긴단다." "뭐라고요!" 소년은 사납게 펄쩍 뛰었다. "아, 세상에, 무슨 말씀이지요? 어머니는 또 갓난애를 데려오기 위해 누군가를 보낸 건 아니겠지요. 지금 있는 아이들만으로도 이렇게 형편이 어려운데요!" "그래, 데려오도록 했단다. 말하기는 안됐지만!" 수는 중얼거렸다. 눈물이 맺힌 그녀의 눈은 빛을 받아 반짝였다. 소년은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아, 아무 생각이 없군요, 어머니는 아무런 생각이 없어요!" 그는 격하게 비난하듯이 외쳤다. "어쩌면 어머니는 그토록 마음씨 나쁘고 잔혹하세요? 우리가 더욱 잘 살게 되 고 아버지가 좋아질 때까지는 그런 걸 할 필요가 없는데! 우리 모두를 더욱 어 렵게 만드시다니! 우리에게는 방도 없고 아버지는 나가지 않으면 안되고, 내일이 면 우리도 쫓겨나야 한단 말이에요. 그런데도 어머니는 또 사람을 늘리시다니! 그런 일을 일부러 하시다니! 어떻게!...... 그런 일을 말이에요!" 그는 울면서 왔다갔다 서성거렸다. "얘야..... 넌 날 용서해 주어야 한다. 꼬마 주드야!" 수는 간청했다. 그녀의 가슴은 지금 소년과 마찬가지로 크게 흔들렸다. "설명할 수 없어...... 네가 더 자라면 설명해 줄게. 이렇게 어려울 때, 내가 일 부러 식구를 늘린 것으로 생각하겠지! 나는 설명할 수 없어! 그런데 그건...... 일부러 한 건 아니다...... 어쩔 수 없었어!" "아니에요, 일부러 한 거예요 - 그건 틀림없어요! 어머니가 동의하지 않으면 누구도 그런 식으로 우리를 방해하지 않을 테니까요. 용서 못해요, 결코! 어머 니가 나와 아버지와 어린애를 걱정한다는 건 더 이상 믿어지지 않아요!" 그는 일어나 옆에 있는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방바닥에는 침대가 놓여 있었 다. 방에 들어간 소년이 뭔가 지껄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애들이 없다면 재난도 완전히 없어질 텐데!" "그런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녀는 엄숙하게 외쳤다. "그만 자도록 해라!" 다음날 아침 그녀는 6시 조금 지나 일어났다. 아침식사 전에 주드가 자신의 숙소라고 알려준 곳으로 가서 그가 떠나기 전에 이곳에서 일어났던 일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생각했다. 그녀는 어린애들이 깨지 않도록 조용히 일어났다. 아이 들이 어제의 일로 틀림없이 지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셋방 비용을 상쇄할 목적으로 선택한, 이름도 모르는 음식점에 서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 주드를 발견했다. 그녀는 숙박할 셋집이 없어지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밤새도록 그녀에 대해 걱정했노라고 말했다. 어쨌든 아침 이 되어 셋방을 나가라고 하더라도 지난 밤처럼 기가 죽을 것 같지는 않았고 설 령 그녀가 다른 곳을 찾는데 실패했다 하더라도 수의 가슴을 아프게 하지는 않 았다. 주드는 일주일 동안 거주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할 만한 가치도 없으며 오히려 그곳을 떠날 준비를 빨리 하자는 그녀의 의견에 찬성했다. "모두들 하루 이틀 정도는 이 숙소에서 보내야겠어. 이곳은 형편없는 숙소이 고 어린애들한테도 좋지는 않지만 새 거처를 찾는 데는 시간이 걸리니까, 교외 에 - 옛날 내가 살던 베르셰바에는 셋방이 많아요. 때마침 당신이 왔으니까 당 신도 함께 식사를 하고 가요. 당신 분명히 괜찮은 거지? 돌아가서 애들이 깨기 전에 애들 식사를 준비할 시간은 충분히 있어. 사실, 나도 함께 갈 생각이야." 수는 서둘러서 주드와 할께 식사를 하고 15분 정도 지났을 무렵, 그들에게는 너무 훌륭한 그 셋방을 당장 비우기 위해 함께 일어나 바깥으로 나왔다. 수가 하숙집에 도착해서 이층으로 올라갔을 때 아이들이 있는 방이 아주 조용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조심스럽게 여주인에게 주전자와 아침식사용 음식을 달라고 부탁했다. 여주인이 편의를 봐 주었기 때문에 수는 가지고 온 달 걀 두 개를 꺼내 물이 끓고 있는 주전자 속에 넣었고, 8시 반이 되어 아이들을 깨우러 가는 사이에 아이들의 입에 적당하도록 달걀을 봐 달라고 주드에게 부탁 했다. 주드는 손에 시계를 들고 달걀이 익을 시간을 계산하면서 주전자 쪽으로 허 리를 굽혀 아이들이 잠들어 있는 방 쪽으로 등을 향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수가 비명을 지르는 바람에 주드는 놀라 돌아보았다. 벽장의 문 을 열었을 때 그 돌쩌귀에서 묘하고 무겁게 끽끽거리며 움직이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문은 열려 있었고 수는 입구 언저리의 마룻바닥에 스러져 있었다. 주드 는 그녀를 일으키기 위해 달려가면서 상판 위에 펼쳐진 작은 침대를 보았다. 그 위에 아이가 없었다. 그는 당황해서 작은 방 안을 사방으로 둘러보았다. 문 뒤쪽 에는 옷걸이 두개가 걸려 있었고 그곳에 어린 두 아이가 목에 트렁크의 끈이 감 긴 채 매달려 있었다. 또 그곳에 2, 3야드 떨어진 곳에 다른 아이 둘과 마찬가 지로 꼬마 주드의 시체가 매달려 있었다. 뒤집혀진 의자가 소년 옆에 있었고 소 년의 흐리멍텅한 눈은 비스듬히 방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여자아이와 갓 난 사내아이의 눈은 감겨 있었다. 주드는 그 장면의 기묘함과 극도의 공포스러움에 반은 백치가 되어, 수를 바 로 누이고 호주머니칼로 줄을 끊고 세 아이들을 참대 위에 나란히 뉘였다. 그러 나 순간적으로 아이들의 몸을 만졌을 때 애들이 이미 죽어버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기절한 수를 들어올려 다른 방의 침대로 옮겼다. 그 후에 그는 숨 가쁘게 여주인을 불렸고 의사를 부르기 위해 뛰어나갔다. 그가 돌아왔을 때, 수는 제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그는 아이들에게로 허리를 굽혀 소생시키려고 미친듯이 몸부림치고 있는 무력한 두 여인과 나란히 누워 있 는 세 구의 어린 시체를 보자 그의 자제력은 무너졌다. 제일 가까운 곳에 잇는 외과의사가 들어왔는데, 주드의 예상대로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이제 아이들의 생명은 돌이킬 수가 없었다. 체온이 아직 완전히 식은 것은 아니었지만 한 시간 이상 끈으로 목이 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이 사건을 이성적으로 판단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들이 생각한 것은, 아마 소년이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수를 찾기 위해 바깥방을 보았지만 그녀가 없었고 지난밤의 일과 또 다른 아이 가 태어날 것이라는 이야기가 그의 우울한 기질에 절망감이 발작적으로 덧붙여 졌을 것이라는 것이다. 한 장의 종이조각이 마룻바닥에서 발견되었다. 그곳에는 소년이 자기가 가지고 있던 연필토막으로 다음과 같이 쓴 글이 있었다. 식구가 너무 많아서...... 수는 그 글을 보고 나서 완전히 기운을 잃었다. 소년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 던 일이 이 참극의 원인이라는 무서운 확신이 발작적인 고뇌 속으로 그녀를 몰 아갔다. 사람들은 그녀의 뜻과는 달리 그녀를 아래층의 방으로 옮겼다. 수의 홀 쭉한 몸은 거기에 누워 있어도 헐떡거리며 떨었고 눈은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 다. 여주인이 아무리 그녀를 달래려고 해도 허사였다. 그 방과 위층에서 사람들이 서성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수는 그 방으로 다시 돌아가도록 해달라고 간청했다. 만일 소생할 희망이 있을 때 그녀가 함께 있으 면 오히려 좋지 않을 것이라고 설득도 하고 새로 태어나게 될 생명을 위태롭게 해서는 안되기 때문에 스스로를 보살펴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기도 하여 겨 우 억제시켰다. 그녀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끊임없이 물어보았기 때문에 마침내 주드가 내려와서 희망은 없다고 알려주었다. 수는 간신히 말을 할 수 있게 되자 소년에게 했던 말을 주드에게 알리고 이번 사건의 원인은 자신이라고 말했다. "그렇지 않아. 그 일을 저지른 건 그 아이의 성격 때문이야. 의사선생의 말에 의하면 현대에는 그런 아이들이 태어난다는 거요 - 전 세대에는 알려지지 않았 던 종류의 아이들 - 새로운 인생관의 결과가 - 이런 아이는 저항력을 갖기 전 에 무서움을 보아 버린 것 같아. 이것은 살고 싶지 않다는, 장차의 보편적인 소 망의 시작이라는 거야. 그 의사 선생님은 남보다 앞선 분이요. 그렇지만 그분은 위로를 할 줄 모르더군." 주드는 수를 위해 자신의 슬픔을 억제해 왔지만 이제 그도 무너지고 말았다. 이제 수가 주드를 위로해 주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격한 자기 비난은 어느 정도 피할 수가 있었다. 모두가 나가버린 후에, 수에게 어린아이들을 보는 것이 허락 되었다. 소년의 얼굴은 현재 그들의 생활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작은 소 년의 얼굴에는 주드의 첫 번째 결혼을 어둡게 했던 온갖 불길한 음영과 새 결혼 의 온갖 사건들, 실수, 두려움, 착각 둥이 나타나 있었다. 소년은 그들 괘도의 교 점이기도 했으며 초점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바로 두 사람의 모습이 였다. 부모의 무분별 때문에 소년은 고민을 했으며 부모의 불균형 때문에 전율 하고, 이러한 불행 때문에 결국 목숨까지 끊은 것이었다. 집안이 조용해지고 검시를 기다리고 있을 때 억눌린 듯한 낮은 목소리가 두터 운 벽 뒤쪽에서 방안으로 들려왔다. "무슨 소리지요?" 수는 그렇게 말하고 숨을 죽였다. "대학 예배당의 오르간 소리요. 오르간 연주자가 연습하는 거겠지. (시편) 73 장의 찬미가인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향해 진정으로 은혜를 베풀다'야." 수는 다시 한번 흐느꼈다. "아아, 나의 아이들! 이 아이들은 아무 나쁜 짓도 하지 않았는데! 왜 이 아이 들을 빼앗아 갔단 말인가요! 왜 나는 데려가지 않고!" 또다시 주변이 조용해졌다. - 이 적막은 밖에서 이야기하는 어느 사람들의 대 화로 깨졌다. "우리에 대해 얘기하고 있군요!" 수는 신음하듯 말했다. " '우리는 우주의 것, 즉 천사나 사람들한테도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신약성 서) 고린도 전서, 4장 9절)" 주드는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아니야 - 우리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야. 목사 두 사람이 성찬식에서 사제가 동쪽에 면한 위치를 차지해야 하는가 아닌가를 두고 논란을 벌이고 있는 거야. 저럴 수가 - 모든 피조물의 한탄에 대해서는 소홀히 하고(로마서, 8장22 절) 위치를 논하고 있다니! 그리고 침묵이 또다시 계속되다가 마침내 수가 억제하기 어려운 슬픔의 발작 에 사로잡혔다. "저 밖에서 누군가가 '하지 말지어다!' 라고 하는군요. 처음에 이것은 '너희 배 우지 말지어다!' 라고 했어요. 다음에는 '일하지 말지어다!' 라고요. 이번에는 '너 희 사랑하지 말지어다!' 라고 하는군요." "그건 너무 심해." 주드는 그녀를 위로했다. "그렇지만, 정말이에요!" 이렇게 그들은 기다렸으며 수는 곧 다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소년이 죽 었을 때 의자 위에 놓여 있던 소년의 옷과 신발과 양말을 그녀는 치우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주드는 그것들을 그녀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 감추고 싶어했다. 그가 그런 물건에 손을 댈 적마다 수는 그 자리에 놓아달라고 간청했고 이 집의 여주인이 치우려고 했을 때는 사납게 대들 듯한 기색을 보였다. 주드는 그녀의 발작보다 오히려 답답하고 무감정한 침묵을 두려워했다. "주드, 왜 나한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예요?" 이런 침묵이 한번 지나고 나서 그녀는 외쳤다. "나에게서 얼굴을 떼지 말아요! 당신이 보이지 않는 상태의 외로움은 견딜 수 없어요!" "여보, 나 여기 있어." 주드는 얼굴을 그녀의 얼굴에 가까이 대고 말했다. "그래요...... 아, 당신, 우리의 완전한 결합 - 우리의 일심동체는 이제 피로 물 들여지고 말았어요!" "죽음의 그늘에 은폐된 거야 - 그뿐이지." "아, 그렇지만 그 애를 진짜 충동질한 건 나였어요. 그러나 내가 그런 것을 선 동하고 있었다는 건 나도 미처 몰랐어요! 난 그 애한테 어른들에게만 통하는 식 으로 말했어요. 세상이 우리에게 이렇게 가혹하게 대한다면, 그리고 이런 희생을 감수하게 한다면 사는 것보다 오히려 죽는 게 낫다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그 애 는 이 말을 곧이곧대로 들은 거예요. 게다가 애기가 곧 태어날 거라고까지 말했 어요. 그 애는 이 소리에 정신이 나간 거예요. 그 애는 그때 얼마나 심하게 나를 비난했는지 몰라요!" "왜 그런 소릴 했어. 수?" "나도 모르겠어요. 정직해지고 싶었었어요. 인생의 사실에 대해서 그애를 속이 는 건 견딜 수 없었어요. 그렇지만 나는 정직하지 않았어요. 헛된 배려로 그 애 한테 너무 완곡하게 이야기를 했으니까요. - 내가 세간의 여자보다 반발짝만 현 명했더라면? 너무나 현명하지 못했어요! 왜 그 애한테 절반의 현실보다도 즐거 운 거짓말을 하지 못했을까요? 이건 내 자제심이 부족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사실을 은폐하거나 폭로할 줄도 몰랐어요!" "당신이 하는 일은 대부분의 경우 정당했었지. 다만 우리 처지가 특이해서 끔 찍한 일이 생긴 거야. 그 애도 조만간 알게 되었을 테지만." "그리고 나는 갓난애한테 입힐 새옷을 막 만들고 있었어요. 이제는 이것을 입 을 그 애를 보는 것이나 말을 걸 수도 없게 되었어요! 내 눈은 이렇게 부어서 아무것도 안 보여요. 그렇지만 바로 일년 전만해도 나도 내 자신이 행복하다고 스스로 말했었는데! 우리는 서로 너무 사랑했어요 - 서로 완전한 자기 본위에 탐닉한 거예요! 우리가 기쁨을 덕으로 삼겠다고 말한 거 기억하세요? '자연' 이 우리에게 준 어떤 본능도 - 문명이 굳이 막으려고 했던 본능을 - 즐기는 것이 야말로 '자연' 의 의도요, '자연' 의 법칙이며 존재 이유라고 말했지요. 난 얼마 나 무서운 소리를 한 걸까요! 그리고 이제 '자연' 을 말 그대로 받아들일 정도로 바보였다는 죄로서 '운명' 이 우리의 등을 찔러버린 거예요!" 그녀는 조용히 생각에 잠겨 있다가 마침내 말을 꺼냈다. "그 애들이 죽어버린 건 아마 가장 잘된 일일 거예요 - 그래요 - 그렇구말구 요! 이 세상에 있으면서 비참하게 시들어버리는 것보다는 신선할 때 잘리는 편 이 좋을 거예요. "그렇구말구. 자기 아이들이 어려서 죽었을 때 '기쁘다'라고 말한 사람들도 있 어." "그러나 그들은 몰라요! 아, 내 어린 아이들, 내 애기들, 내 애기들. 지금 너희 가 살아 있다면! 그 애는 죽고 싶어했었지. 그렇지 않다면, 이런 짓은 하지 않았 을텐데라고 말할지도 모르지요. 그 아이가 죽은 이유를 알지 못한다는 건 아니 에요. 그것은 가엾게도 그 아이의 고치지 못할 슬픔에 빠져드는 성격의 일부였 으니까요.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다른 아이들은 - 나의, 그리고 당신의 아이 들은!" 수는 다시 옷걸이에 걸려 있는 작은 옷과 작은 양말, 신발 등이 있는 곳으로 눈을 돌렸다. 그녀의 몸은 현처럼 떨렸다. "나는 가련한 존재예요. 이제는 하늘이나 땅에서도 있지 못할 거예요! 여러 가지 일 때문에 정신이 나갔나 봐요! 어떻게 해야 하지요?" 그녀는 주드를 빤히 쳐다보며 그의 손을 꽉 잡았다. "어쩔 수 없지. 모든 일은 있는 그대로이고 정해진 결과에 따르는 것뿐이지." 그녀는 숨을 돌렸다. "그래요! 누가 그런 소리를 했어요?" 그녀는 침울한 어조로 물었다. "(아가멤논)의 합창(그리스의 비극 시인 아이스킬로스의 작의(아가멤논)의 끝 부분)에 나오지. 이번 일이 일어난 후에는 나는 쭉 그것을 생각했어." "가엾은 주드 - 당신은 모든 것을 다 잃었군요! - 나보다 더! 내가 당신을 얻 었기 때문이에요. 누가 도와주지도 않고 독서만으로 이런 것까지 알고 게다가 빈곤과 절망에 시달리는 것을 보세요!" 잠시 동안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다시 수의 슬픔은 파도처럼 되돌아왔다. 배심원이 와서 사체를 검시하고 심문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우울한 장례날의 아침이 찾아왔다. 구경꾼들이 신문기사를 읽고 찾아 들었다. 그들은 창유리와 벽 의 돌을 세는 척하며 서 있었다. 두 사람의 진짜 관계에 대한 의혹이 그들의 호 기심을 부채질했다. 수는 묘지까지 어린 두 자식을 따라가겠다고 했지만, 마침내 그 시간이 다가오자 그녀는 쓰러졌고 관은 그녀가 누워 있는 사이에 조용히 집 에서 운구되어 나갔다. 주드가 영구차에 타자 영구차는 곧 출발했고 하숙집 남 자주인은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 남자는 이제 수와 그녀의 짐만을 떠맡고 있는 것이었지만 그것도 이 날 치 워버림으로써 불행하게도 아내가 받아들인 이 악명 높은 타인 때문에 이번 주에 당한 화가 치미는 악명으로부터 집을 해방시켜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는 오후가 되자 조용히 집주인과 의논하여 그들이 이곳에서 생긴 비극으로 인해 어떤 지장이 초래된다면 이 집의 번지를 변경해 받도록 한다는 데 의견 일 치를 보았다. 주드는 두 개의 작은 관 - 한 개는 소년 주드를, 또 하나는 두 애기를 입관시 킨 - 이 땅 속에 매장된 것을 보고 나서, 급히 수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그 녀가 아직도 자기 방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녀를 방해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걱정이 되기 시작해 4시경에 다시 가 보았다. 여주인도 수가 아직도 누워 있다고 생각했는데 마침내 그녀가 침실에 없다는 것을 알려왔 다. 그녀의 모자와 상의가 없어졌다. 수는 어딘가로 가버렸다. 주드는 서둘러 자 기가 머물고 있는 선술집으로 갔다. 그녀는 그곳에도 없었다. 그러고 나서 주드 는 이것저것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하면서 도로를 따라 공동묘지로 가 보 았다. 묘지로 들어서자 조금 전에 매장했던 장소로 가로질러 갔다. 비극 때문에 여기까지 따라왔던 구경꾼들도 이제는 아무도 없었다. 손에 삽을 든 남자가 세 어린이를 함께 묻은 묘에 흙을 덮고 있었는데, 그의 팔을 붙들며 반쯤 묻힌 빈 자리 속에 서 있는 한 여인이 제발 중지해 달라고 간청하고 있었다. 수였다. 그 녀는 주드가 사주었던 색깔있는 옷이 상복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 었다. 이것은 오히려 바라보는 사람의 눈에 인습적인 상복보다도 더욱 깊은 슬 픔을 전해주었다. "이 사람이 저 애들을 묻고 있어요. 내 가련한 애들을 다시 한 번 보기 전에 는 묻지 못하게 할 거예요!" 그녀는 주드를 보자 미친 듯이 외쳤다. "저 애들을 다시 한번 보고 싶어요. 아, 주드...... 부탁이에요...... 저 아이들을 보고 싶어요! 내가 잠든 사이에 애들을 데리고 갈 거라고는 미처 생각 못했어 요! 관의 뚜껑에 못질하기 전에 다시 한 번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당신이 말했잖 아요. 그런데 그렇게 해주지도 않고 데리고 가셨어요! 아, 주드, 당신도 나에게 너무 해요!" "묘를 다시 한번 파서 관 있는 데까지 보여달랍니다." 삽을 들고 있던 남자가 말했다. "이런 상태라면 그녀를 집으로 모셔가는 게 좋겠어요. 가엾게도 어딘지 거의 분별력이 없어진 것 같군요. 부인, 지금 와서 되파낼 수는 없습니다. 바깥양반하 고 함께 댁으로 돌아가시고 꾹 참고 계시다가 곧 애기를 더 낳으셔서 부인의 비 극을 진정시켜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그러나 수는 계속 애원했다. "다시 한 번 볼 수 없을까요 - 꼭 한 번만요! 안 돼요? 잠깐이면 되는데요, 주드?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예요!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기쁠까요, 주드! 그렇 게 해준다면 나는 좋은 여자가 될 거고 두 번 다시 당신한테 부탁 같은 건 하지 않겠어요, 네? 그 후에는 조용히 집에가서 그 애들을 보고 싶다는 말을 다시는 안 할 거예요?" 그녀는 계속해서 간청했다. 주드는 가슴이 메이는 듯한 슬픔 속에 젖어들었기 때문에 그 일꾼에게 그렇게 해주라고 기키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렇게 한 다고 해서 좋은 결과가 오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수를 더욱 악화시킬 수도 있었다. 그는 그녀를 즉시 집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 가장 좋겠다고 생각했다. 주 드는 그녀를 달래보기도 하고 부드럽게 말하기도 하면서 그녀의 몸을 떠받치기 위해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 수는 할 수 없이 굴복하고 묘지를 빠져나왔 다. 그는 그녀를 태우고 갈 마차를 부르고 싶었지만 돈이 없었고 수도 그에게 그 런 일은 하지 말라고 했다. 주드는 검은 크레이프 비단 복장을 하고 있었고 수 는 다색과 빨간색의 옷을 입고 있었다. 두 사람은 천천히 걸어갔다. 그들은 이날 오후 새로운 셋집으로 옮기기로 되어 있었지만 주드는 아무래도 그럴 수는 없겠 다고 판단하여 당장은 미움을 받고 있지만 그 집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수는 곧 잠자리에 들었고 주드는 의사를 불렀다. 주드는 아래층에서 저녁 내내 기다리고 있었다. 꽤 긴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조산아가 태어났지만 그 아이도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죽은 채로 태어났다 고 알려왔다. 6-3 수는 죽기를 원했지만 서서히 회복되고 있었다. 주드는 또한 옛날단골 근처에 서 일자리를 얻었다. 이제 그들은 베르셰바 쪽의 의식교회 - 성사일러스 교회 - 로 부터 멀지 않은 셋방에서 살게 되었다. 두 사람은 말없이 앉아 있을 때가 많았다. 이것은 매사가 무감각하고 둔중하 게 방해가 되는 것보다는 오히려 직접 적대시되고 있는 흉조였다. 수의 지성이 별처럼 반짝이는 날에는 몽롱하고 기묘한 상상력이 그녀에게 자 주 나타났다. 세계는 꿈 속에서 만들어진 한 가락의 노래나 선율과 흡사해서 이 것은 반각성의 지능을 가진 사람에게는 훌륭하고 뛰어난 것이지만, 각성한 사람 에게 있어서는 절대적으로 부조리하다든가 또는 '제일원인' (흔히 조물주, 즉 하 느님이지만 여기서는 그 내용상 영국의 사회학자 허버트 스펜서(1820~1903)의 저서 (제일원리)에 영향을 입은 바가 많은 관념, 이것은 하디의 (패왕들)에서는 '우주내재의지' 라고 대체되어 쓰여 있다)은 몽유병자처럼 자동적으로 움직이지 만 현인처럼 사려 깊게 움직이지는 않는다든가, 또 지구의 여러 상황이 최초에 형성될 때 그러한 상황의 영향하에 있는 생물 중에서는 오늘의 사색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이 도달하는 정서적인 지각의 발달은 전혀 계산에 넣지 않은 것은 아 닌가 등등을 수는 상상했다. 그러나 고뇌라는 색안경으로 바라볼 때 자신에게 적대하는 여러 힘은 인간의 모습이라는 탈을 쓰고 불쑥 가로막아섰다. 그 때문 에 그러한 관념은 지금은 주드와 그녀 자신이 한 사람의 박해자로부터 도망가야 한다는 의식으로 대체되었다. "우리는 복종하지 않으면 안 돼요!" 그녀는 슬픔에 젖어 말했다. "우리를 지배하는 '그 힘' 이 '그의' 가엾은 피조물인 우리에게 전부터의 모든 노여움을 발산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굴복하지 않으면 안 돼요. 다른 길은 없 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돼요. '하느님' 과 싸워봤자 아무 소용이 없어요!" "싸움은 단지 인간들과 무정한 환경에 대해서만 하는 거요." 주드가 말했다. "그 말은 맞아요!" 그녀는 중얼거리둣이 말했다. "어떤 걸 내가 생각해 왔겠어요! 나는, 야만인처럼 미신에 빠져들고 있어요! 그렇지만 우리의 적이 누구든, 그리고 어떻든 나는 이제 겁이 나서 굴복한 거예 요. 나는 패배했어요, 패배했다구요! '우리는 우주의 것, 즉 천사와 사람들에게도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요즈음, 나는 늘 그렇게 말해요!" "내 생각도 똑 같아!" "어쩌면 좋아요? 당신은 일할 수 있지만 한 번 생각해 봐요. 이것은 우리의 경력이나 관계가 전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이에요. 정식으로 결혼 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알려지면 분명히 알드브릭험의 사람들처럼 당신의 일거 리를 빼앗고 당신을 추방하겠지요!" "잘 모르겠어. 아마 그런 일은 하지 않겠지. 그러나 현재로서는 법률 수속을 밟아야 한다고 생각해 - 당신의 외출이 가능해지면 말이야."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물론이지." 주드는 생각에 잠겼다. "나는 요즈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 나는 유덕한 사람들에게서 미움을 받 는 사내들 집단의 회원이 아닌가 - 바람둥이라고 불리는 사내들 중의 한 사람이 아닌가 하고 말이야. 이런 걸 생각하면 아찔해! 나는 이런 일, 아니. 나 자신보 다 더 사랑하는 당신에게 어떤 나쁜 일을 했다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어. 그렇지 만 내가 이런 패거리 중의 한 사람이라니! 그들은 모두 나처럼 똑같은 반맹이고 우매한 놈들인가? 그렇지, 수 - 나는 이런 인간이야. 내가 당신을 유혹한 거야. 당신이야말로 독특한 부류의 인간이었어 - '자연' 마저도 손대지 않고 내버려두 고 싶었던 멋진 사람이었어. 그러나 나는 당신을 내버려둘 수가 없었던 거야!" "그렇지 않아요. 아니예요,주드!" 수는 얼린 대답했다. "자신을 사이비라고 나무라지 마세요. 비난받아야 할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 로 나예요." "내가 당신을 부추겨서 필로트슨과 헤어지도록 했어. 내가 없었다면 아마 당 신은 그분께 떠나가게 해달라고 서두르지도 않았을 거야." "나 역시 서둘렀어요. 우리들 자신으로 말하면, 우리가 법률적인 계약관계로 들어가지 않았다는 사실이 우리 결합에 있어서는 그래도 구원받을 수 있는 면이 었지요. 그렇게 해서 소위 우리들의 첫번째 결혼의 신성함을 오염시키지 않는 거였어요." "신성하다구?" 주드는 약간 놀라 그녀를 바라보며 그녀가 이전의 수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요." 그녀는 약간 목소리를 떨면서 말했다. "나는 너무 무서웠어요. 내 자신의 행동이 거만했다는 것을 무섭게 느꼈어요. 나는 아직도 그분의 아내라고 생각했어요!" "누구의?" "리처드의 아내요." "뭐라구, 당신! - 어떻게?" "아, 설명할 수는 없어요! 다만 그런 생각이 떠오를 뿐이에요." "몸이 허약해져서 - 병든 기분이니까 이유나 의미가 없겠지! 이런일로 고민하 지 말아요." 수는 불안한 둣이 한숨을 쉬었다. 이런 대화를 상쇄라도 시켜주듯이 그들의 살림살이는 호전되어 갔다. 이전의 그들 같았더라면 이런 일만으로도 유쾌해졌을 것이다. 주드는 이곳으로 오자마 자 옛날 단골들로부터 아주 뜻밖의 좋은 일거리를 얻게 되었다. 게다가 여름의 날씨는 그의 약한 채질에 적합했다. 표면상으로 그의 일과는 이런 인생의 변화 뒤에는 이것 자체가 고마울 정도로 변화없는 단조로움 속에서 지나갔다. 사람들 은 그가 보기 흉한 탈선을 저질렀다는 사건 등을 잊은 것처럼 보였다. 그는 매 일 이제는 결코 들어갈 수 없는 대학의 흉벽과 갓돌에 올라서서 마치 자기가 달 리 하고 싶은 일이 없는 것처럼, 그 자신 내부에서 꿰뚫어보지 못하는 창살막이 창의 허물어져가는 돌을 바꾸기도 했다. 주드에게 변화가 생겼다 - 주드는 예배를 보기 위해 교회에 가는 일이 적어졌 다. 그를 무엇보다 괴롭히는 것이 하나 있었다. 수와 자신에게 그 비극이 생긴 이래 정신적으로 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인생과 법률, 관 습, 교의 등에 관해 그의 식견을 확대시켰던 사건들이 그 동일한 작용을 수의 생각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녀는 이제 자유독립했던 시대와 같은 인간은 아니었 다. 그때의 수의 지성은 주드가 당시 숭상했던 인습과 형식적 의례를 해치우고 서 마치 번쩍하는 번개처럼 번쩍 떠올랐었다. 어느 일요일 저녁에 주드는 꽤 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집에 없었지만 오래지 않아 돌아왔다. 그때 그는 그녀가 말이 없고 생각에 잠겨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보, 뭘 생각하고 있어?" 그는 그녀의 생각을 알고 싶은 것처럼 물었다. "아, 꼬집어서 말할 수는 없어요! 내가 생각해보니, 당신이나 나나 우리가 여 태까지 살아온 걸 더듬어보면, 이기적이고 경솔했으며 하느님께 불경스러운 일 을 저질렀어요. 우리는 인생에서 우리 자신의 환락만을 좇으며 헛되게 보냈어요. 그렇지만 자기부정이야말로 더욱 고상한 길이에요. 우리는 억제하지 않으면 안 돼요 - 육체를 - 무서운 육체를 - 아담의 저주를!"((구약성서) 창세기, 14장 15 절 및 17장 19절) "수! 도대체 무엇에 흘려서 이런 소릴 하는 겨야?" "우리는 의무라는 제단에 계속해서 우리 자신을 희생양으로 바쳐야하는 거예 요! 그러나 나는 언제나 내 자신의 희생양으로 바쳐야하는 거예요! 그러나 나는 언제나 내 자신의 쾌락을 추구해 왔어요. 이런 징벌을 내가 받을 만했어요! 어 떤 위대한 힘을 갖춘 자가 있다면 사악, 무서운 잘못, 죄 많은 행위 등을 나로부 터 싹 뽑아 주었으면 좋겠어요!" "수......자신을 너무 괴롭히고 있어!...... 당신은 나쁜 사람이 아니야. 당신의 본성은 아주 건전하오. 내가 바라는 것만큼 정열적은 아니지만 선량하고 매력적 이며 순순하지. 내가 자주 말했듯이 당신만큼 성스럽고 육욕이 없는 여자는 없 소. 게다가 비인간적으로 될만큼 성적 욕망이 없는 여자도 아니오. 어떻게 해서 당신의 생각이 이렇게 변했소? 우리는 이기적이지 않았어 - 우리가 이기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이득을 보지 못한 경우는 별도이겠지만, 당신은 인간의 본성은 고귀하고 참을성이 강해서 비열해지거나 부패하지 않는다고 자주 말하지 않았어? 그래서 나는 당신이 말하는 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어. 그런데 지금 당신은 너무 비하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 "나는 겸허한 마음과 억제하는 정신을 바랍니다. 그런데 그런 마음씨를 아직 도 가져본 적이 없어요!" "당신은 사상이나 감정에 있어서도 두려움을 몰랐었지. 내가 당신에게 바쳤던 이상으로 존경을 받을 만한 사람이었어. 당시 편협한 교의로 가득차 있던 나는 그것을 몰랐었지." "그런 말은 하지 마세요, 주드! 두려움을 모른다는 나의 말이나 생각은 모두 내 과거에서 송두리채 빼버려 줬으면 해요! 자기 포기, 이제는 이것이 전부예요! 아무리 내 자신을 비하해도 부족해요. 핀으로 이 몸 속을 찔러서 내 몸 속의 악 을 피와 함께 흘려 버렸으면 좋겠어요!" "그만!" 주드는 외치면서 마치 어린아이를 끌어 안듯이 그녀의 작은 얼굴을 자기 가슴 에 끌어안았다. "당신이 이렇게 된 것도 다 어린애가 죽었기 때문이야! 그러한 양심의 가책은 감수성이 강한 함수초처럼 민감한 당신에게는 어울리지 않아! 그런 것은 세상에 득실거리는 어울리지 - 그런 패들은 양심의 가책 같은 건 느끼지 못하니까!" "언제까지나 난 이런 짓을 해서는 안 돼요." 수는 오래동안 똑같은 자세로 있으면서 중얼거렸다. "왜 그렇지?" "그건 탐닉이니까요." "아직도 똑 같은 소릴 하는군! 그렇지만 서로 사랑한다는 것보다 더 좋은 일 이 달리 있을까?" "있어요. 그건 사랑의 종류에 달려 있어요. 당신의 - 우리의 - 사랑은 잘못된 것이었어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수! 자, 교회 사무실에서 우리의 결혼에 서명하 는 날은 언제로 할까?" 그녀는 숨을 죽이고 불안하게 그를 쳐다보면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 "결코 할 수 없어요." 주드는 그녀의 말을 명확하게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에 그 거부의 말을 조용히 받아들이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잘시 후에 그는 그녀가 잠에 빠져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드가 다시 차분히 말을 꺼내기 시작하자 수는 똑바로 몸을 세우며 한숨을 내쉬었다. "수, 오늘밤 당신에게는 불가사의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향기와 분위기가 감돌고 있어. 내가 말하는 것은 정신뿐만은 아니라 당신의 옷에서도 말이요. 어 떤 식물의 향료인 것 같군. 알 것 같으면서도 생각이 나질 않네." "향이에요." "향이라니?" "성 사일러스 교회에서 예배를 보고 왔어요. 교회의 향연속에 있었어요." "아, 성 사일러스에서." "네, 난 가끔 거기에 가요." "그렇지, 당신 거기에 가지!" "주드, 주일 오전, 당신이 일하러 가고 나면 이곳은 쓸쓸해지고 나는 그만 - 생각이 나지요 - 나 자신의 문제가요." 그녀는 목구멍까지 치밀어오르는 덩어리를 억누르지 않고서는 이야기를 계속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거리도 가깝고 해서 그곳에 가게 되었어요." "아, 그랬군. 나는 그것에 반대할 아무 이유가 없어. 다만 당신이 이상하다는 거지. 어떤 사람이 끼어들었는지 그 교회에서는 꿈에도 몰랐을 거요!" "무슨 말씀이에요. 주드?" "응 - 솔직히 말하자면, 그리스도교를 불신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이지." "내가 이렇게 괴로워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런 고통을 줄 수가 있지요. 주드! 당신의 말이 그런 뜻은 아니라고 알지만 당신은 그렇게 말하면 안 돼요." "안할게. 그렇지만 너무 놀랐어!" "그런데 -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주드, 화내지 않으시겠지요? 애들이 죽고 나서 그일을 많이 생각했어요. 나는 이렇게 생각해요. 이제 - 나는 당신의 아내로 - 아내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무슨 소리야? 그렇지만 당신은 내 아내잖아?" "당신의 생각으로는 그렇지요. 그러나......" "물론 우리는 결혼식을 두려워했지. 두려워할 만한 그런 강력한 이유가 있었 다면 다른 사람들도 우리와 같은 입장을 취하는 사람이 상당히 있었을 거요. 그 러나 경험으로 우리의 판단이 잘못된 것을 알았고 우리의 결점을 과대평가했다 는 것을 알았지. 만일 당신이 가끔 눈에 띄는 것처럼, 의식과 예의를 중시하기 시작한다면 왜 바로 식을 올리자고 말하지 않았어? 수, 당신은 법률 이외의 점 에서는 틀림없이 내 아내요. 당신이 말하는 것이 무슨 소리요?" "나는 당신의 아내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니라구? 그렇지만 우리가 결혼식을 올렸다면? 그때는 내 아내라고 생각하 겠지?" "아니에요. 그때도 당신의 아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거예요. 지금보다 더 괴 롭게 생각하겠지요." "왜 그래? - 그것이 심술이라는 거요." "나는 리처드의 아내니까요." "아...... 전에도 그런 뚱딴지 같은 생각을 말한 적이 있어!" "그때는 단지 감상에 불과했지만,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확신하게 된 거예요. 나는 그 분의 사람이고 다른 누구의 사람도 아니에요." "맙소사 - 우리의 입장이 완전히 역전되었군!" "그래요. 그럴지도 모르지요." 2, 3일 후의 여름날 저녁, 어둠이 깔렸을 때 두 사람은 아래층의 작은 방에서 앉아 있었다. 그때, 두 사람이 하숙하고 있는 목공소의 현관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에는 그들의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두 사람이 문 을 미처 열기도 전에 방문자가 먼저 문을 열었고 한 여자의 모습이 나타났다. "폴리씨 있습니까?" 주드와 수는, 주드가 자동적으로 그렇다고 말했을 때 놀랐다. 왜냐하면 그것은 아라벨라였기 때문이다. 주드는 건성으로 그녀에게 들어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들어와서 창문 가에 있는 의자에 않았다. 그래서도 사람은 불빛을 배경으로 그녀의 윤곽을 뚜 렷하게 볼 수 있지만 그녀의 전체적인 모습이나 태도를 평가할 수 있는 특징은 찾아낼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카트리트가 생존했을 때처럼 쾌적하게 생활한 다던가 멋있는 복장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세 사람은 그 비극에 대해 어색한 대화를 시도했다. 주드는 그 사건에 대해 알리는 것을 자신의 의무처럼 느껴 이미 그녀에게 알린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녀는 그의 편지에 아무런 답장도 보낸 적이 없었다. "나는 지금 막 묘지에서 돌아왔어요. 사람들에게 물어 그 아이의 무덤을 알았 어요. 장례식에는 오지 못했어요 - 그렇지만 초청까지 해주셔서 고마워요. 난 신문에서 그 아이에 대한 자초지종을 알았어요. 난 소외된 것처럼 생각했어요 - 아니, 장례식에는 올 수 없었어요." 아라벨라는 되풀이해서 말했다. 그녀는 아무래도 그 비극의 종말에 어울릴만 한 이상적인 태도에는 이르지 못하는 듯이 같은 말을 더듬거렸다. "그러나 묘지를 찾았을 때 기뻤어요. 주드, 당신의 사업이니까, 당신의 아이들 에게 멋진 묘비를 세워줄 수 있겠네요." "묘비는 내가 세워주지." 주드가 쓸쓸하게 말했다. "그 애는 내 아이였으니까 나는 당연히 가엾게 생각해요." "그렇지. 우리도 모두 불쌍하게 생각했어." "내 아이가 아닌 남의 작한테는 별로 동정하지 않지만요. 그건 당연하지요. "물론이지." 수가 앉아 있던 어두운 구석에서 한숨 소리가 들렸다. "내 아이는 내 옆에 두고 싶다고 자주 생각했어요." 카트리트 부인이 계속해서 말했다. "그랬다면 아마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테지만요. 그렇지만 당신의 아내 로부터 그 애를 빼앗고 싶지는 않았어요." "난 이분의 아내가 아니에요." 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드는 그녀의 뜻밖의 대답에 조용히 있었다. "아, 죄송해요. 나는 당신이 이 사람의 부인인줄로만 알았어요." 주드는 수의 목소리에서 새롭고 분명한 의견이 그 말속에 숨어 있다는 것을 느 낄 수 있었다. 그러나 아라벨라는 당연하게도 그 분명한 의미 외의 마음 속까지 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수의 말에 압도된 듯하던 아라벨라는 본연의 자세로 돌 아가 '자신의 ' 자식에 대해서 침착하고 무뚝뚝하게 말을 꺼냈다. 생전에는 전혀 돌보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 아이에 대해 의례적인 애도의 뜻을 나타내고 양심의 가책을 달래보고 싶은 심정인 것 같았다. 그녀는 과거의 일에 대해 무슨 말인가 를 하면서 수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그러나 대답은 없었다. 수는 두 사람이 눈 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방을 떠나버렸다. "그 여자가 당신의 아내가 아니라고 말했지요?" 아라벨라는 사람이 변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 그런 소리를 하는거죠?" "당신에게는 말할 수 없어." 주드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녀가 하는 말에 대해서는 이러쿵저러쿵 말하지 않기로 했어." "아......알겠어요! 그런데 벌써 시간이 되었네요. 나는 오늘밤 이곳에서 머물려 고 했어요. 우리는 서로가 곤경을 겪은 후라서 방문 정도는 해도 괜찮을 것이라 고 생각했어요. 오늘은 내가 여급생활을 했던 곳에서 머물고 내일 알프레드스턴 으로 돌아가요. 아버지도 귀향하셨어요. 그래서 함께 살고 있어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아버님도 돌아오셨다구?" 주드는 별로 내키지 않아 하면서 물었다. "돌아오셨어요. 그쪽에서는 지내실 수가 없대요. 고생을 하셨다는군요. 어머니 는 기후가 더워서 - 뭐라든가 - 이 질병으로 돌아가셨소 아버지는 두 아들과 함께 돌아오셨어요. 아버지는 옛날에 살던 마을 근처에 집을 얻게 되었고 당분 간은 아버지를 위해 내가 집을 돌보고 있어요." 주드의 전처는 수가 나가버리고 난 지금도 엄격한 양가집에서 태어난 것 같은 딱딱한 태도를 유지하면서 가장 고상한 품위에 어울리는 것처럼 오래 머물지는 않았다. 아라벨라가 떠나자 주드는 한시름 놓고서 수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걱정 하면서 계단으로 가서 그녀를 불렀다.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셋방을 관리하는 목수가 그녀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고 대답했다. 주드는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시간도 늦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수가 없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었다. 목수가 물어보자 목수의 아내는 수가 성 사 일러스 교회에 갔을지도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녀가 이즈음에는 그곳에 자주 갔 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이런 밤에는 그곳에 가지 않았을 겁니다. 문이 닫혔을 테니까요." 주드가 말했다. "그녀는 열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잘 알고 있어요. 열쇠를 갖고 싶으면 언 제든지 가질 수 있어요." "그녀가 여기에서 얼마나 지냈지요?" "아, 2, 3주쯤은 되겠지요." 주드는 막연하게 교회 쪽으로 걸어갔다. 그곳은 몇 년 전, 젊었을 때의 그가 현재보다도 신비주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던 때 이후에는 한 번도 가까이 가보 지 못한 곳이었다. 교회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문은 분명히 잠겨 있지 않았 다. 그는 소리내지 않고 걸쇠를 벗기고 문을 손으로 밀어 뒤쪽으로 제치면서 안 으로 조용히 들어섰다. 쥐죽은듯한, 적막감마저 감도는 고요 속에서 희미한 어떤 소리가 났다. 숨소리 같기도 했고 흐느끼는 소리 같기도 했는데, 그 소리는 건물 건너편 끝에서 들려왔다. 어둠 속을 지나쳐 그 쪽으로 갔지만 바닥에 깔려 있는 양탄자 때문에 그의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어둠은 밖에서 들어오는 아주 희 미한 밤의 종야등에 의해 깨졌다. 주드는, 머리 높은 곳에 교회당 안쪽의 계단위로 견고하게 만들어진 기다란 십자가가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 기념비로 설계되어 있는 실물처럼 기 다란 것이었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철사로 공중에 매달아 놓은 것 같았다. 그곳에 박혀 있는 커다란 보석이 소리도 없이,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의 십자가 의 흔들림에 따라 밖에서 들어오는 약한 광선을 받아 희미하게 비쳤다. 바로 그 아래의 마룻바닥 위에 검은색의 덩어리가 누워 있었다. 그가 아까 들었던 흐느 낌이 이곳에서 계속에서 새어나왔다. 포석위에 엎드려 있는 수의 모습이었다. "수!" 그는 작은 소리로 불렀다. 어떤 하얀 것이 나타났다. 그녀가 얼굴을 들었던 것이다. "무엇을 - 지금 여기에서 나한테서 무엇을 원하세요. 주드?" 그녀는 냉정하게 말했다. "여기 오면 안돼요! 난 혼자 있고 싶었어요! 왜 불쑥 나타났어요?" "어떻게 그런 식으로 말할 수가 있지!" 그는 재빨리 원망조로 대꾸했다. 왜냐하면 그를 대하는 그녀의 태도로 그는 가슴속 깊은 곳까지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왜 내가 왔느냐구? 만약 내가 이곳에 올 자격이 없다면 그럼 누가 여기에 올 자격이 있단 말이요. 알고 싶군! 난 내 자신보다 당신을 더 사랑하는데 - 더 사 랑하지 -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사랑하지! 왜 당신은 나를 보리고 혼자 이런 곳에 온 거요?" "나를 비난하지 말아요. 주드 - 난 그것은 못 참겠어요! - 이미 몇 번이나 말 했둣이 지금의 나를 본래의 나로 생각해 주세요. 난 비참한 여자예요 - 나는 거 듭되는 번민에 의해 좌절당한 여자예요! 아라벨라가 왔을때 견딜 수 없었어요 - 너무 비참함을 느꼈어요. 그래서 떠나야만 했던 거예요. 지금도 그녀가 당신의 아내이고 리처드가 나의 남편 같아요!" "그렇지만 그 사람들은 다 나한테는 아무 것도 아니야!" "아니에요, 주드, 그렇지 않아요, 난 지금 결혼에 대해 달리 생각하는 거예요. 이런 것 나한테 깨우쳐주기 위해 우리 애들을 나한테서 앗아간 거예요! 아라벨 라의 아이가 내 애를 죽인 건 심판이었던 거예요 - 올바른 것이 나쁜 것을 무너 뜨린 거예요. 어떻게 하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나는 비열한 인간이에요 - 세 상의 평범한 사람들과 교류할 가치도 없다구요!" "이건 너무하오!" 주드는 쏟아지려는 눈물을 참으면서 말했다. "아무런 나쁜 짓을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고민하다니, 생각도 못할 일이고 부 자연스러운 일이요!" "아 - 당신은 내가 저지른 나쁜 짓을 모르는군요!" 주드는 격하게 반박했다. "알고 있어! 하나부터 열까지! 그리스도교든 신비주의든 승권존중주의든 또는 어떤 이름으로 불리어지든 당신을 이렇게 퇴화시키는 것이라면, 이것을 나는 증 오하오. 여류 시인, 여류예언자, 마음이 다이아몬드처럼 번쩍이는 여자 - 세상의 현자들도 모두 자랑하던 사람이 이렇게 타락했다는 것은! 당신을 이렇게 파괴시 키려고 한다면 하느님과 관계를 갖지 않는 것이 기쁘지 - 제기라! 오히려 기쁠 거요!" "당신은 화나셨군요. 주드, 그리고 나에게 다정하게 대해 주지도 않는군요. 사 정도 알아주지 않으면서요." "그렇다면, 나와 함께 집으로 갑시다. 그러면 아마 내가 알게 될 거요. 나는 너무 과로로 지쳐 있어요 - 그리고 당신도 지금은 마음이 흐트러져 있어요." 그는 그녀를 팔로 끌어안아 들어올렸다. 그녀는 함께 걷기는 했지만 부축을 받으며 걷는 것은 좋아하지 않았다. "당신을 싫어하는 건 아니에요. 주드." 그녀는 차분하게 애원하는 듯한 소리로 말했다. "지금도 당신을 사랑해요! 단지 - 당신을 사랑해서는 안되지만 요 - 이제는 아, 사랑해서는 안돼요." "나는 그렇게는 할 수 없어." "그렇지만 나는 당신의 사람이 아니라고 마음을 굳혔어요! 나는 그분의 사람 이에요 - 나는 그분과 일생을 같이 하기로 하느님께 맹세했어요. 무슨 일이 있 더라도 그것을 바꿀 수는 없어요!" "그렇지만 이 세상에 부부가 있다면 우리야말로 확실한 부부야. 의심할 여지 없이. '자연' 의 결혼이지!" "그러나 하늘의 축복을 받은 결혼은 못돼요. 다른 결혼이나를 위해 하늘에서 맺어지고 맨체스터의 교회에서 영원한 효력을 나타낼 거예요." "수, 수...... 당신이 괴로운 나머지 이렇게 불합리한 생각을 하게 되리라고는 몰랐어! 여러 자기 문제에 관해 당신의 의견으로 나를 개심시켰던 당신이 갑자 기 이렇게 돌변해 버리다니 - 아무런 이유도 없이. 당신이 전에 말했던 것은 모 두가 그저 감상적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겠지! 오랫동안 교회에 대해 품고 있던 약간의 애착이나 존경심마저도 나에게서 없애 버린 것도 당신이요. 내가 이해할 수 없는것은 지금의 당신이 이전의 논리에 대해 이상할 정도로 맹목적이 라는거야. 이것이 당신만의 특이한 자질인가, 아니면 여성에게 일반적으로 나타 나는 특질인가? 여자는 과연 생각하는 하나의 단위인가, 그렇지 않으면 언제나 완전하기를 바라기만 하는 파편인가? 결혼은 단지 부질없는 계약이다! 이 말은 사실이야 - 당신은 언제나 그렇게 주장을 했었지. 그리고 결혼의 온갖 부질없음 - 온갖 부조리를 당신이 지적해 보이지 않았던가! 우리가 함께 살며 행복했을 때 알고 있었던 것들이 진실이라면 그것들은 지금도 분명히 진실이 아내야? 되 풀이하는 변화에 대해 나는 도통 이해할 수가 없어!" "아, 주드. 그것은 당신이 음악을 듣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는 완전한 귀머거리 같기 때문이에요. 당신은, 아무 것도 없는데. 그들이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이냐고 묻고 있는 것이에요. 그렇지만 무언가는 있어요." "당신이 그렇게까지 말하다니 너무 심하군. 그건 올바른 비유가 아니야! 당신 은 편견의 낡은 껍질을 던져 버렸고 나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가르쳐 주었어. 그 런데 이제 당신은 자신의 말을 취소했어. 솔직히 말하자면 당신의 말을 따르다 가 나는 완전한 바보가 되었어!" "나의 친구, 나의 유일한 동반자, 주드! 나를 핍박하지 마세요! 나는 지금의 나처럼 되지 않을 수가 없어요. 나는 철두철미하게 내가 옳다고 - 마침내 광명 을 찾았다고 확신해요. 하지만 아, 어느 정도 가치가 있는 것일까요!" 잠시 후 그들은 발걸음을 옮겨 건물 밖으로 나왔다. 수는 열쇠를 돌려주고 돌 아왔다. "도대체 이 사람이 바로 그 여자였다는 말인가?" 주드는 넓은 길로 나오자 약간 쾌활해진 듯했다. 그리고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이 사람이 가장 그리스도교적인 이 도시에 이교의 신들을 끌고 온 그 아가씨 일까? - 그 신들의 상이 신발 뒤축으로 짓밟혔을 때 폰토버 양을 비웃었던 아 가씨 - 기본(영국의 역사가)과 셸리(영국의 낭만파 시인)와 밀(영국의 철학자 겸 역사가)을 인용한 그 아가씨일까? 귀여운 아폴로와 귀여운 비너스는 지금 어디 에 있는가?" "그만해요, 주드. 잔인한 말을 하지 마세요 난 비참해요!" 그녀는 흐느껴 울었다. "난 견딜 수가 없어요! 내가 잘못했어요 - 그 이유를 말할 수는 없지만요. 내 가 잘못했어요 - 우쭐해서 분수를 잊고 있었어요! 아라벨라가 왔던 것이 결정적 이었어요. 나를 놀리지 마세요. 내 마음은 칼로 벤 것처럼 아파요!" 주드는 수를 부둥켜안고 그녀가 피할 겨를도 없이 격렬한 키스를 했다. 그리 고 나서 두 사람은 마침내 작은 커피 하우스 근처까지 왔다. "주드." 그녀는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당신 여기에 계속 머물 거예요?" "그럴 거야 - 만약 당신이 그렇게 하기를 원한다면 말이오. 그렇지만 정말이 요? 집에 가서 당신의 생각을 차분히 들려주오." 그는 그녀를 부축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저녁 식사는 하고싶지 않다고 말했고, 어두운 이층으로 올라가 등불을 켰다. 그녀가 돌아섰을 때 주드가 뒤따 라와 방문간에 섰다. 그녀는 주드에게로 가서 그의 손에 자기의 손을 얹고 말했 다. "잘 주무세요." "그런데, 수! 우리는 지금 함께 사는 것 아니야?" "당신은 내가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하셨잖아요!" "그랬지. 알았어! 아마 이렇게 불쾌한 논쟁을 벌이게 된 건 내 잘못이겠지! 전 에 우리가 옛날식 결혼을 기피했을 때 헤어졌어야 하는건데. 이 세상은 우리가 겪었던 일들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열려 있지는 않아! 그런데 우리는 겪었던 일들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열려 있지는 않아! 그런데 우리는 우리 같은 사 람들이 선구자로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지!" "당신이 알아주시니 기뻐요!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아니었어요. 질투 때문에 흔들려 그만 이런 잘못에 빠져들게 된 거예요!" "분명히 사랑하기 때문일 거야...... 나를 사랑하는 거지?" "그래요. 하지만 사랑 속에서 오로지 연인으로만 지내기를 원했었는데. 언제까 지나......"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들이 언제까지나 이렇게 살아간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 었어!" "그렇게 사는 것은 여자들에게는 가능하지만 남자들은 그럴 수 없어요. 남자 들은 -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하니까요. 일반적으로 여자가 이런 점에서는 남자 보다 우월하니까요 - 여자는 결코 먼저 충동질하지 않고 다만 반응만 보일 뿐이 에요. 우리는 마음의 교류만으로 살았어야 했는데...... 그 이상을 원하지 말았어 야 했어요."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불행하게도 당신을 바꿔놓은 장본인이요! 그래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해! 그렇지만 인간의 본성만은 거부할 수 없는 것이지." "아, 그래요 - 그것이야말로 알고 있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예요 - 요컨대 자기 억제라는 것을요." "반목되는 말이지만 - 어느 쪽이 나빴던가를 따져보자면 당신이 아니라 나였 소." "아니에요 - 아셨어요. 당신은 나쁘게 생각한 점은 사실은 여자를 소유하고 싶어하는 남자에게 있어서는 자연스러운 욕망에 지나지 않았어요. 나의 경우에 는 아라벨라를 내쫓고 싶은 기분이 생겨나기 전까지는 당신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욕구가 없었어요. 가엾다고 생각해서 당신이 접근해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 옛날의 그 친구들한테 한 것처럼 당신을 괴롭히는 것은 이기적이라고 - 생각했었어요. 그러나 당신이 아라벨라에게로 돌아가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에 빠져 나를 무너뜨리지 않았더라면 난 굴복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러나 이런 것 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하지 않기로 해요! 주드, 지금의 나를 나 자신의 모습 그 대로 내버려 두시겠어요?" "좋아, 그러나 수 - 당신은 내 아내야! 옛날 내가 당신을 비난했던 것이 결국 에는 옳은 것이었어/ 당신은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만큼 나를 사랑해 주지 않 았어 - 결코 - 조금도! 당신의 마음속에는 정열이 없었어 - 당신의 마음은 불 꽃이 되어 타오르지 않아! 당신은 말하자면 일종의 요정이거나 마귀야 - 여자는 아니야!" 주드는 격하게 말했다. "처음에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던 것은 인정해요. 주드, 처음에 당신을 알았을 때에는 단지 사랑을 받고만 싶었어요. 반드시 당신을 농락하려고 했던 건 아니 지만 고삐를 놓쳐버린 정열보다도 더욱 여자의 도덕성을 해치는 타고난 욕구 - 남자에게 위해를 가하게 되어도 관계없이 끌어당겨 포로로 잡아두고 싶은 욕구 - 그런 것이 나에게는 있었어요. 그래서 당신을 사로잡았다는 것을 알았을 때에 는 겁이 났어요. 그리고 그때 - 왠지는 모르겠지만 - 아마 당신을 아라벨라에게 로 또다시 보내야 한다는 걸 참을 수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당신을 사랑 하게 된 거예요. 그렇지만, 아무리 다정한 상태로 끝난다고 하더라도 처음은 이 기적이고 잔혹한 욕망이었어요 - 당신을 위해 나의 마음을 고통스럽게는 하지 않으려 하면서도 당신의 마음만은 나를 위해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거예요." "지금도 마찬가지로 당신은 나를 버리고 잔혹한 짓만 거듭하는 거야!" "아...... 그래요! 발버둥치면 발버둥칠수록 나는 타인에게 상처를 주게 되지 요!" "아, 수!" 그는 갑자기 자기 자신만의 두려움을 느끼며 말했다. "도덕적인 이유로 부도덕한 짓은 하지 말아요! 당신은 나를 사회적으로 구해 준 거야. 제발 인간다운 자비를 베풀어서라도 나와 함께 있어줘요! 당신은 내가 얼마나 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거야. 나의 가장 커다란 두 가지 적 은 - 여자에게 약하다는 것과 술에 빠져버린다는 거야. 수, 오직 당신만의 영혼 을 구제하기 위해 나를 그런 곳에 빠지도록 내버려두지 말아요! 당신이 나의 수 호천사가 되고나서부터 적들은 나로부터 아주 멀리 도망가 버렸다오! 당신을 얻고나서부터는 어떤 류의 유혹에도 두려움없이 대적할 수가 있었어. 내 안전을 위해 교의상의 주의를 약간 희생하는 것이 가치없는 일일까? 당신이 다를 버린 다면, '몸을 씻은 돼지가 또다시 진흙탕 속에서 뒹군다' ((신약성서)베드로후서, 2장 22절)라는 꼴이 되지 않을까 하고 무서워지는군!" 수는 울음을 터뜨렸다. "아, 그렇게 되어서는 안돼요. 주드! 그것은 안돼요! 낮이나 밤이나 당신을 위 해서 기도하겠어요!" "그래 - 걱정 말아요. 슬퍼 말아요." 주드는 관대하게 말했다. "정말 나는 그 당시에는 당신의 일로 인해서 고통을 참아냈던 거야((신약성 서)고린도 전서, 13장 4절). 그리고 지금도 또 나는 견디고 있어. 그렇지만 이 고통도 당신의 고통만은 못할 거요. 여자는 대개 결국에 가서는 사태를 불리하 게 만들어 버리지." "그래요." "시시하고 치사한 여자라면 모를까. 어딜 보나 내 앞의 당신은 그런 여자가 아니야!" 수는 신경질적으로 한두 번 숨을 고르면서 말했다. "여기 있는 이 여자도 그래요 - 틀림없이! 자, 주드 안녕...... 안녕히 주무세 요!" "여기에 있으면 안 될까? - 꼭 한 번만 더? 그토록 여러 번 함께 있었으니까 - 아, 수, 내 아내, 그래도 되겠지!" "아니에요 - 아니에요 - 아내가 아니에요! 그렇지만 나는 결국 당신의 수중 에 들어 있어요. 주드 - 여기까지 온 나를 유혹해서 되돌아가지 않게 해주세 요!" "좋아. 당신이 말하는 대로 하겠어. 당신의 의지를 최초로 되엎었던 것에 대한 속죄로써 당신이 하라는 대로 따라 해야 할 의무가 있지. 아! 나는 얼마나 이기 적이었던가! 아마, 아마 나는 일찍이 남자와 여자 사이에 교환되는 지고지순한 사랑 하나를 오염시켰던 것 같아! 그렇다면 이 시간부터 우리 성소의 막이 찢어 져 둘로 되어라!((신약성서) 마태복음, 27장 51절)" 그는 침대로 가서 그 위에 있는 한 쌍의 베개 중에서 하나를 집어들어 가지고 마룻바닥 위로 던져버렸다. 수는 주드를 바라보며 침대 손잡이 위에 엎드려 소리없이 울었다. "이 일은 내 양심의 문제인 것이지. 당신이 싫어서가 아니라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군요!" 그녀는 띄엄띄엄 중얼거렸다. "당신이 싫다니요! 하지만 그 이상은 말할 수 없어요 -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아요 - 말하자면, 내가 시작한 일이 다 무너져버리는 것이에요! 주드, 안녕히 주무세요!" "잘 자요!" 그는 말하고 나서 몸을 돌려 떠나려고 했다. "아. 그렇지만 키스는 해도 좋아요!" 그녀는 뛰어 일어나면서 말했다. "참지 못하겠어 - 참을 수 없어요! - " 주드는 수를 껴안고 눈물이 흐르는 그녀의 얼굴에 전과는 다른 태도로 키스했 다. 그리고 두 사람은 잠시 말없이 있었지만 마침내 수가 말했다. "안녕, 안녕!" 그녀는 그를 부드럽게 밀어버리고 몸을 도사리며 슬픔을 달래보려고 말했다. "주드, 우리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마음의 친구가 되겠지요? 그 리고 언젠가는 만나요 - 그리고 이런 일은 다 잊어버리고 옛날처럼 지내도록 노 력해요?" 주드는 잠자코 있었다. 그러나 몸을 돌려 계단을 내려갔다. 6-4 정신적으로 방향을 바꾸게 된 수가 결코 헤어질 수 없는 남편으로 여기고 있 는 그 남자는 아직도 메리그린 마을에서 살고 있었다. 어린아이들의 비극이 있 기 전날, 필로트슨은 수와 주드가 크리스트민스터의 빗속에 서서 팔각 강당으로 향하는 행렬을 구경하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그러나 그때 필로트슨은 동행자인 질링엄에게 자신이 보았던 것에 대해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옛 친구인 질링 엄은 메리그린에서 그와 함께 머물고 있었는데, 크리스트민스터로 가는 하루 동 안의 여행을 제안한 것도 사실은 바로 그였다. "뭘 생각해요?" 그들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질링엄이 말했다. "당신이 취득하지 못한 학사 학위를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오, 아냐." 필로트슨은 무뚝뚝하게 말했다. "내가 오늘 보았던 사람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거요." 그는 곧 덧붙여 말했다. "수잔나 말이요." "나도 보았어요." "아까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잖은가?" "나는 당신이 그 여자에게 주의를 집중시키도록 하고 싶지 않았소. 그렇지만 그녀를 보았다면 인사말을 했어야지요. '안녕하신가, 옛날의 내 아내?' 라고 말 이요." "아, 그렇군. 그렇게라도 말했더라면 좋을 뻔했겠군. 그런데 이 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오? 내가 수와 이혼했을 당시, 수에겐 아무런 죄가 없었던 거요 - 나쁜 건 나였다고 생각할 수 있을 만큼 나한테는 멋진 이유가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말이오. 그것은 사실이오! 어색했겠지. 그렇지요?" "어쨌든, 분명한 것은 그녀가 그 이후로 당신의 잘못을 고쳐준 것같군." "흥, 이건 값싼 조롱이군. 확실히 난 좀더 기다렸었더라면 좋았을거요." 주말에 질링엄은 셰스톤 근처에 있는 그의 학교로 돌아갔으며 필로트슨은 습 관에 따라, 알프레드스틴의 시장으로 갔다. 그는 아라벨라가 전해 준 소식을 다 시금 곰곰이 생각하면서 긴 구릉길을 내려갔다. 그가 이 언덕길을 주드보다 먼 저 알고 있었지만, 당시의 그의 이력으로 보아 그가 이 내리막길을 이렇게 비참 하게 밟아본 적은 없었다. 시내에 도착한 그는 언제나처럼 지방 주간지를 샀다. 어느 여관에 앉아서 되 돌아갈 5마일의 여정을 감안해서 기운을 차렸을 때 호주머니 속에서 아까 사두 었던 신문을 꺼내어 잠시 읽었다. '어느 석공의 어린 자식들의 기묘한 자살' 이 라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평소에는 감정이 잘 흔들리지 않는 필로트슨도, 그것에 대해서는 비통한 생각 이 들었고 적잖게 당황했다. 장남의 연령이 기사대로라면,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문 기사가 어쨌든 진실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들의 슬픔의 술잔은 바야흐로 가득차 넘치도다!' (마태복음 26~29)라고 중 얼거리면 필로트슨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수에 대해 거듭 생각했으며 자기를 떠 나간 그녀가 무엇을 얻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생각했다. 아라벨라는 알프레드스턴에 살고 있었으며 교장 선생이 토요일마다 그곳의 시 장에 왔기 때문에 2, 3주 후에 두 사람이 재회하게 된 사실은 별로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라벨라가 크리스트민스터에서 돌아온 직후의 일이었다. 그녀는 이곳에서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오래 머무르고 있었으 며 비록 주드는 그녀를 더 이상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그녀는 주드를 관심깊게 지켜보고있었다. 필로트슨은 아라벨라와 마주쳤을 때,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이었으며 그녀가 알프레드스턴 읍에 가까이 다가오고 있을 때였다. "이 길로 산책하는 것을 좋아하시는군요, 카트리트 부인?" "이제 막 다시 걷게 된 거예요. 처녀 시절과 결혼하고 나서도 살았던 곳이라 서, 저의 복잡한 감회에 호소해 오는 과거 내 삶의 모든 일들이 이 길과 뒤섞여 있지요. 그리고 요즈음 또 이런 일들이 지금 제 마음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습니 다. 크리스트민스터에 다녀와서부터입니다. 그래요. 주드를 만났어요." "아, 그 두 사람이 그 무서운 고통을 어떻게 견디고 있던가요?" "아주 이상한 방법으로 견디고 있더군요 - 무척 이상한 방법으로 말예요! 그 여자는 이제 주드와 함께 살고 있지 않아요, 그곳을 떠나기 직전에 들었던 이야 기이지만, 확실해요. 하긴, 그들을 찾아갔을 때, 두 사람의 태도에서 사태가 그런 쪽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요." "남편과 함께 살지 않는다구요? 왜 그렇지요? 나는 그 사건으로 해서 두 사람 이 더욱 굳게 맺어질 걸로 생각했는데요." "결국, 주드는 그 여자의 남편이 아니 것이지요. 두 사람은 남편과 아내로서 오랫동안 지내왔지만, 그녀는 정식으로 주드와 결혼하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이 제 그 슬픈 사건으로 인해 그들은 서둘러 사태를 합법적으로 해결하려고는 하지 않고 그 여자는 묘하게 종교의 길로 빠져들었어요. 카트리트가 세상을 떠난 후 에 제가 괴로운 나머지, 그랬었던 것과 똑같은 방식이지요. 다만, 그녀의 경우는 좀더 히스테리의 일종이라고나 할까요. 그래서, 제가 들었던 바로는 그녀는 자신 이 하느님이나 교회의 입장에서 볼 때, 선생님의 사모님 - 선생님의 유일한 사 모님이라고 말했다고 하더군요. 인간의 탈을 쓰고 있다면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이에요." "아, 사실이요? 그들이 헤어졌다는 것이!" "아시다시피, 제일 큰 아이는 제 아이였어요..." "아 - 당신의 아이였다구요1" "네, 가엾게도 - 정실 결혼으로 생긴 자식이었어요. 고맙게도, 아마 그 여자는 무엇보다도, 제가 그 여자의 처지에 있어야만 했던 것이라고 느끼는 것 같아요. 제가 뭐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그렇지만 제 입장을 말씀드리자면 저는 곧 여기 를 떠납니다. 지금은 친정아버지의 뒷바라지를 해야 하지만요. 그렇지만 다시 이 런 지루한 곳에서는 더이상 못살겠어요. 곧 크리스트민스터나 다른 큰 도시의 술집으로 다시 나가고 싶어요." 그들은 헤어졌다. 필로트슨은 언덕을 두서너 걸음 정도 올라가다가 멈추어 서 서 급히 되돌아와 그녀를 불렀다. "두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 어디요? 아니, 어디였소?" 아라벨라는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을 알려주었다. "고맙소, 그럼 안녕히 가시오." 아라벨라는 다시 걸음을 옮기면서 입가에 냉혹한 미소를 지었다. 가지를 잘라 낸 버드나무 가로수가 시작하는 곳에서 시내의 첫 번째 거리의 오래 된 구빈주 택지역까지 이르는 길을 내내 걸어가면서 그녀는 보조개 만드는 연습을 했다. 그 사이에 필로트슨은 메리그린으로 가는 길을 오르고 있었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난 지금 그는 처음으로 희망을 품게 되었다. 그는 영락한 자신의 처지 같 은 보잘 것 없는 교장 사택 쪽을 향했다. 풀밭의 커다란 나무 아래를 질러갈 때, 그는 잠시 멈추어 섰다. 그리고 그는 현관에서 나와 자기를 맞이하는 수를 마음 속에서 그려보았다. 그리스도인이건 이교도이건 간에 수를 놓아준 것으로 해서 필로트슨이 고민했던 것만큼이나, 자신의 자선행위에 의해 피해를 입은 사람은 일찍이 없었다. 그는 덕이 있는 사람들에 의해 거의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이곳저곳의 학교로 옮겨다녔다. 그는 굶어죽기 직전의 경험도 했지만 지금은 이 마을의 학교에서 지불해주는 아주 적은 급료에 의존하고 있었다(이곳에서는 그를 도와주고 있다 는 것 때문에 마을 목사의 평판이 좋지 않았다). 그는 수에게 좀더 엄격했어야 했으며, 그랬더라면 그녀의 반항 정신도 이내 무너지고 말았을 것이라는 아라벨 라의 말이 자꾸 머리 속에 생각났다. 그러나 그는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자기가 신이 훈련받은 원칙등을 완고하고 비논리적으로 무시했기 때문에 아내에 대해서 주장하는 태도가 옳았다는 믿음에 대한 확신은 흐트러뜨릴 줄을 몰랐다. 감정에 의해 한 방향으로 뒤집혀질 수 있는 원칙은 다른 방향으로도 똑같이 급변하기 마련이다. 수에게 이유를 주는 것을 그 자신에게 허용했던 본능이 이 번에는 주드와 동거를 했어도 그 때문에 그녀가 그만큼 타락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도록 했다. 설령 그가 그녀를 사랑하고 있지 않는다 하더라도 자기 나름대로 는 희한하게도 그녀를 여전히 원하고 있었다. 심려는 차지하고라도 어쨌든 언제 라도 수가 기꺼이 돌아와 주기만 한다면 그녀를 다시 자기의 아내로 맞이한다는 것이 그의 소망이라고 곧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생각의 경멸이라는 차갑고 냉혹한 바람을 막기 위해서는 묘책이 필요 하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그리고 그 기초는 이미 만들어져 있었다. 그녀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품었었고 부당하게 이혼을 하고 말았다는 허울좋은 구실로 수를 되찾아와서 그녀와 다시 결혼함으로써 그는 다소의 위안을 받을 수도 있고 옛날의 경력을 되찾아 유자격 목사로서 교회에 돌아가지는 못하더라도 셰스톤 학교로는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질링엄에게 자신의 의견과 자신이 그녀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에 대해 어 떻게 생각하는지를 묻는 편지를 써서 부쳤다. 질링엄은 그녀가 집을 나갔으니 그 여자를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라고 당연한 듯이 답장을 보 내왔다. 그리고 그녀가 적어도 누군가의 아내라면, 세 아이를 낳아주고 그와 같 은 비참한 처지를 책임져야 하는 남자의 아내라고 본다는 내용을 보내왔다. 소 에 대한 주드의 애착이 유달리 강하기 때문에 아마 그 사랑하는 두 사람은 그 사이에 법률적인 수속을 밟아 결혼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만사가 잘 풀릴 것이 고 온건하게 제대로 되어나갈 것이라고도 부언했다. "그러나, 그 두사람이 그렇게는 하지 않을 거야 - 수가 그렇게 하지 않을 거 야." 필로트슨은 중얼대듯 외쳤다. "질링엄의 생각은 언제나 너무 판에 박은 듯하지. 수는 크리스트민스터의 정 서와 교의의 영향을 받았어. 결혼의 영원함에 대한 그녀의 생각을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지. 그리고 그런 생각을 어떻게 갖게 됐는지도 알고 있어. 나는 그 여 자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녀의 생각을 이용해서 내 생각대로 일을 만들어보기로 해야겠어." 그는 질링엄에게 짧은 회신을 냈다. "내가 전적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지만, 당신의 의견에 는 동의할 수가 없네. 수가 주드와 동거해서 아이 셋을 낳은 일에 관해서 말하 자면 내 생각으로는(옛날의 방침 같으면, 논리적 혹은 도덕적 변명은 않겠지만) 그런 경험이 그녀의 인생 교육을 완성시켜 주었다는 것이야. 나는 그 여자에게 편지를 써서 그 여자가 한 말이 사실이었는지를 알아보려고 해." 그는 친구에게 편지를 써 보내기 전에, 이미 이와 같은 일을 하겠다고 결심하 고 있었기 때문에 친구에게 편지를 써야할 마땅한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것이 말하자면 필로트슨의 방식이었다. 따라서 그는 조심스럽게 숙고하여 작성한 서한을 수 앞으로 보냈다. 그녀의 감정적인 기질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는 편지 속의 여기저기에 라다만토스(그리 스 신화에 나오는 저승의 세 재판관 중 하나. 강직하고 정의를 지킴)적인 강직 함을 불어넣었고, 자신의 이단적인 감정은 신중하게 감추어 버림으로써, 그녀에 게 겁을 주지 않으려고 했다. 그는 그녀의 생각이 상당히 변했다고 들어 알고 있는데, 그 자신의 생각도 역 시 그들이 헤어진 후에 일어난 여러 가지 사건들로 해서 크게 변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썼다. 정열적인 사랑으로 이 편지를 보내는 것인 아 니라는 자신의 생각을 그는 감추려고 하지 않았다. 서로의 인생을, 성공이라고까 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당시의 정의와 자애와 이성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한 주 의에 근거해서 자신이 행동했기 때문에 최소한 지금 빠져들고 있는 비참한 실패 로부터 구하고 싶은 것이 바람이라고 말했다. 본능적이고 통제할 수 없는 그 정의감에 탐닉한다는 것은 우리가 지니고 있는 것과 같은 낡은 문명 세계에서는 벌을 받지 않고서는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을 그 는 깨닫고 있었다. 세상 나름의 위안과 명예를 일반적으로 공유하고 꾸밈 없는 '자애' (이 단어는 하디가 시와 산문을 통해서 애용한 단어이다) 힘을 빌리고 싶 다면, 이미 확립되고 세련된 정의감의 토대 위에서 행동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 다. 그는 수가 메리그린에 있는 자기에게로 돌아오기를 권했다. 거듭거듭 생각한 끝에 그는 마지막에서 두번째 절은 지워버렸다. 편지를 고쳐 써서 즉시 부치고 난 후, 그는 약간 흥분 상태에 빠져 결과를 기다렸다. 2, 3일 후, 크리스트민스터의 베르셰바 교외를 뒤엎은 하얀 안개속을 헤치면 서, 주드 폴리가 수와 별거하고 난 이후에 하숙을 하고 있던 숙소를 향해 어떤 사람이 걸어갔다. 머뭇거리면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녁이었다 - 주드는 집에 있었으며 어떤 예견이라도 있었던 듯이 벌떡 일어 나 곧바로 현관 쪽으로 달려나갔다. "나와 함께 나가실래요? 안으로 들어가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당신과 얘기를 나누면서 - 함께 묘지까지 가 보고 싶으니까요." 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주드는 모자를 썼다. "당신이 밖에 있다는 건 쓸쓸한 일이지만, 들어오고 싶지 않다면 할 수 없지." "네 - 그래요.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주드는 너무 가슴이 메어져서 처음에는 말을 이을 수도 없었다. 수도 역시 이 제는 단순한 신경덩어리가 된 것처럼 이야기를 시작할 힘조차 사라져버리고 만 것처럼 보였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아케론 가(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저승 에 있는 강)를 건너는 죽은 자의 망령처럼 소리나 몸짓도 없이 안개 속을 걸어 갔다. "당신께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윽고 그녀가 말을 꺼냈다. 그녀의 목소리는 때로는 빠르고 때로는 느렸다. "당신이 우연히 듣게 되는 것 싫어요. 난 리터드에게 돌아갈 거예요. 그분께서 - 관대하게도 - 모든 것을 다 용서해 주신다고 약속해 주셨어요." "돌아가다니? 도대체 어떻게 그런일을......." "그분이 나하고 다시 결혼하시려고 해요. 이건 형식을 갖추기 이해서이고 있 는 그대로 사물을 봐 주지 않는 세상을 만족시키기 위해서이지요. 그러나 물론 난 이전부터 그분의 아내였어요. 어느 것도 이 사실을 변화시키진 못해요." 주드는 거의 분노에 가까운 고통스런 표정으로 그녀와 얼굴을 마주 대했다. "그렇지만 당신은 나의 아내야! 그래, 내 사람이란 말이야. 당신도 알잖아. 체 면치레 때문에 멀리 외지로 나갔다가 법적으로 결혼을 하고 돌아온 양, 위장했 던 그 겉치레를 난 항상 후회해 왔어. 난 당신을 사랑했어. 당신도 날 사랑했잖 아. 그리고 우리는 서로 의지하며 살아왔어. 그것이 바로 결혼을 한 거지. 우리 는 아직도 서로를 사랑하고 있어 - 나와 마찬가지로 당신도 그것을 알고 있어. 수! 그러니까 우리들의 결혼은 무효가 아니야." "그래요. 당신의 생각은 나도 알고 있어요." 수는 절망적인 상태로 자제하면서 대답했다. "그러나 난 그 분과 다시 결합하겠어요. 당신의 말씀을 빌려서 말하자면요. 엄 밀히 말하자면, 당신도 - 이런 말씀드리더라고, 신경쓰지 마세요. 주드 - 당신도 불러와야 해요. 아라벨라를요." "불러와야 한다구? 이럴수가...... 그 다음은 뭐지! 그러나 우리가 만일 결혼하 려 했을 때, 당신과 내가 법률상으로 결혼을 한 상태였더라면 어떻게 하겠어?" "똑같이 느꼈을 거예요 - 우리의 경우는 결혼이 아니였어요 - 그리고 그가 날 원하기만 한다면, 난 하느님께 맹세를 되풀이하지 않고 리처드에게 돌아가겠 어요. 그렇지만, '세상과 그 습관은 다소의 가치를 갖는 법이다.'(로버트 브라우 닝의 장시에서 인용)라고 난 생각해요. 그러니까, 두번째 식을 올리는 데 대해 동의한 거예요. 풍자나 논쟁으로 나의 모든 생명을 앗아가지는 말아 주세요. 제 발 부탁이에요. 한때 난 어디까지나 강했어요. 알아요. 그리고 아마도 당신을 잔 혹하게 대했을지도 몰라요. 그러나 주드, 악에 대해 선으로 갚아주세요! 지금의 난 더없이 약해졌어요. 보복은 하지 말아 주세요. 친절히 대해주세요. 아, 나한 테 부드럽게요...... 회개하려고 애쓰고 있는 이 가엾고 나쁜 여자한테요!" 주드는 절망에 빠져 머리를 흔들었다. 그의 눈은 젖어 있는 체였다. 어린 자식 들을 잃은 타격이 수의 이성을 파괴해 버린 것만 같았다. 이전의 예리한 통찰력 은 흐려져 있었다. "모든 것이 잘못됐어. 모든 것이 잘못됐어!" 그가 목쉰 소리고 말했다. "과오 - 외고집! 이것이 내 마음을 바꾸어 놓는군. 그 사람이 좋은가? 그 사 람을 사랑하고 있어? 그렇지 않다는 걸 당신 자신이 잘 알고 있을 텐데! 그렇게 되면 광신적인 매음행위가 되어버리는 거야 - 하느님, 용서해 주소서 - 그건 매 음 행위가 되고마는 거라니까!" "난 그분을 사랑하지는 않아요 - 이것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지요. 깊은 양심의 가책으로 말이에요! 그러나 그분에게 복종하는 일로 해서 그분을 사랑하 는 방식을 배우려고 할 거예요." 주드는 설득하고, 강요하고, 호소했다. 그러나 그녀의 확신은 어떤 말을 해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것만이 세상에서 그녀가 확신하고 있는 유일한 것 같았다. 그런데, 이런 실의 신념은, 그녀가 지니고 있는 다른 모든 충동과 소망에 있어서 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난 신중하게 생각하고 당신에게 진실을 모두 알려드렸고, 이것도 내가 직접 전했기 때문에 배려는 충분히 했다고 봐요. 다른 사람으로부터 전해 듣고 무시 당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말이에요. 그분을 사랑하고 있지는 않는다는 극단 적인 사실까지도 인정했어요. 이렇게 한다고 해서 당신이 나에게 심하게 대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난 당신에게 부탁하려고 했어요." "당신을 그에게 인도하는 일 말인가?" "아니에요. 배웅해 달라구요 - 내 트렁크를 - 당신이 해주신다면요. 그러나 해주시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는 않아. 물론 배웅해주지. 그런데 왜 그 사람이 당신을 데리러 와서 이곳에서 당신과 결혼하지 않는 것이지? 그 정도의 친절도 보이지 않는 거기?" "아니에요. 내가 그분에게 그렇게 해달라고 하지 않을 거예요. 내가 자진해서 그분에게 가는 거예요. 그분 곁을 내가 떠났을 때와 마찬가지로요. 메리그린에 있는 그분의 작은 교회에서 결혼할 예정이에요." 수는, 주드의 표현으로 하자면 옹고집이 있지, 거기에는 애처롭게도 다정한 구 석이 있었다. 그래서 주드는 그녀가 측은해서 여러 번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속죄의 고행을 당신만큼 충동적으로 여자를 일찍이 알고 있었던 적이 없었 어. 수! 유일하게 합리적인 길인 듯이 곧장 걸어가는가 하면, 어느 틈엔가 벌써 모퉁이를 뛰어 돌아가버리니!" "아, 좋아요. 그런 얘긴 이제 그만둬요! 주드, 이젠 헤어져야 해요! 그렇지만 당신이 함께 공동 묘지까지 가줬으면 했는데요. 거기서 작별을 해요...... 죽음으 로서 내 생각이 잘못이었다는 걸 깨닫게 해 준 그 애들의 묘지 옆에서요." 그들은 묘지쪽으로 접어들었고 문을 열어달라고 부탁했다. 수는 자주 그곳에 갔었기 때문에 어둠 속에서도 무덤으로 통하는 길을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그 지점에 도착해서는 아무말 없이 서 있었다. "바로 여기에요 - 내가 작별하고 싶었던 곳은요." 수가 말했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 "내가 신념대로 행동했다고 해서, 나를 무정하다고는 생각하지 말아요. 나에게 바쳤던 당신의 크고 헌신적인 사랑은 어느 무엇에도 비할 데가 없어요. 주드! 당신이 이 세상에서 실패한 것은,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당신의 명예가 되면 됐 지, 비난받을 일은 아니에요. 인류 중에서 가장 선하고 가장 위대한 사람들은 자 신의 세속적인 명리를 찾던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성공한 사람은 많든 적든 이기적인 사람이에요. 헌신적인 사람들은 실패하지요. '사랑은 스스로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도다'(고린도 전서, 13장45절)라는 것이지요." "성서의 고린도 전서, 13장에서는 두 사람은 모두 하나인 거야, 언제나 가장 사랑받는 연인이요 - 그것에 따라 친구로서 헤어지자구. 당신이 종교라는 이름 으로 부르는 다른 모든 말이 사라져 없어져도 지금의 이 시 구절만은 영원히 남 아 있을 테니까!" "자아, 토론은 그만두어요. 안녕, 주드. 나의 공범자. 끝없이 친절했던 사람!" "잘 가요. 내가 잘못 생각했던 아내여. 안녕!" 6-5 다음날 오후에도 크리스트민스터의 명물인 안개가 땅 위의 모든것들 위를 뒤 덮고 있었다. 정거장으로 가는 수의 가녀린 모습을 가까스로 분간할 수 있을 정 도였다. 주드는 그날은 일하러 갈 힘도 없었다. 수가 지나갈 것 같은 방향으로는 어느 곳에도 갈 수가 없었다. 그는 반대편의 음울하고 눈에 익지 않은 단조로운 풍경 쪽으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큰 가지에서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으며 기침과 폐 병이 잠복해 있는, 지금까지는 한전도 가본 적이 없는 장소였다. "수가 나에게서 떠나버렸어 - 가버리고 말았어!" 그는 비참하게 중얼거렸다. 그동안 수는 벌써 기차를 타고 떠나. 알프레드스턴 로드에 도착해 있었다. 그 녀는 그곳에서 증기궤도차로 바꾸어 타고 거리로 들어섰다. 그녀는 필로트슨에 게 마중을 나오지는 말아달라고 했었다. 그리고 그 집의 마석까지 그녀가 자진 해서 가겠다고 말해 두었던 것이다. 시간을 금요일 저녁 때로 선택한 것은, 교장 선생의 자유시간이 그날 4부터 다음주 월요일 아침까지였기 때문이었다. 메리그린까지 가기 위해 베어 술집에 서 고용한 작은 마차가 마을에서 반 마일 정도 떨어진 신작로가 끝나는 지점쯤 에서 그녀의 생각대로 그녀를 내려 주었다. 그리고는 그녀가 가지고 온 짐을 싣 고서 교장 사택으로 앞질러 달려갔다. 그녀는 되돌아오는 마차와 마주치게 되자 마부에게 교장선생 집의 문이 열려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마부는 문이 이미 열 려 있다는 것과 그녀의 짐이 교장 선생이 직접 집 안으로 들고 갔다고 알려주었 다. 이제 수는 자신을 흥미롭게 쳐다보는 눈길과 마주치지 않고 메리그린으로 들 어설 수 있게 되었다. 우물 옆을 지나 나무 아래를 통과해서 건너편의 예쁘장한 신교사 쪽으로 질러가서 문을 두드리지도 않고 사택의 걸쇠를 벗겼다. 필로트슨 이 방 한가운데 서서 부착했던 대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가 왔어요. 리처드." 창백해진 얼굴과 떨리는 목소리고 그렇게 말하고서 그녀는 의자에 푹 않아 버 렸다. "믿어지지 않아요 - 용서해 주신다니 - 당신의 아내를!" "모든 걸 용서했어. 사랑스런 수잔나." 필로트슨이 대답했다. 열의 없이 짐짓 만들어서 지껄이는 말이긴 했지만 그녀는 그가 부르는 애칭에 놀랐다. 그러자 그녀는 다시 용기를 냈다. "저의 아이들은...... 죽었어요...... 그렇게 된 것은 정당한 일이었어요! 전 기 쁘기까지 해요...... 어느 정도는요. 그 애들은 죄의 씨앗이었기 때문이지요. 저에 게 삶의 길을 가르쳐주기 위해 희생되었어요. 그 애들의 죽음은 저를 정화시킨 첫단계예요. 이것이 그 애들이 헛되이 죽지 않은 것이라는 이유예요! 저를 받아 주시겠어요?" 그는 수의 가련한 말과 어조에 너무 감동을 받아 자신이 하려고 마음먹고 있 던 이상의 행동을 저지르고 말았다. 필로트슨은 허리를 굽혀 그녀의 뺨에 키스 했다. 수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고 그의 입술이 닿은 살은 떨고 있었다. 필로트슨의 마음은 가라앉았다. 그의 내부에서 욕망이 되살아났기 때문이었다. "당신은 아직도 날 싫어하고 있는 거요!" "아,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저는 안개 속을 오느라고 추웠어요!" 그녀는 당황한 나머지 불안스런 웃음을 띠며 서둘러 말했다. "결혼식은 언제 하지요? 곧바로 하나요?" "내일 아침 일찍 하려고 생각했었는데 - 당신이 원한다면 말이요. 사람을 보 내 당신이 왔다는 것을 목사님에게 알릴 참이요. 내가 목사님에게 모두 얘기했 어요. 목사님은 흔쾌하게 찬성하셨소. 결혼이 우리들의 생애를 결과적으로 승리 와 만족으로 끝나게 해줄 것이라고 하셨지. 그러나, 당신 확실하겠지? 지금 거절 해도 늦진 않아요. 만일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말이오. 무슨 말인 지 알겠소?" "네, 네, 할 수 있구 말구요! ! 빨리 했으면 해요. 목사님께 즉시 말씀해 주세 요. 그 일로 저의 강인함을 시험할 수가 있어요 - 오래 기다릴 수 없어요!" "그런데, 뭐라도 좀 먹고 나서 에들린 부인댁에 마련한 당신 방으로 건너 가 도록 해요. 목사님께는 내일 아침 여덟시 반이라고 내가 말씀드려 두겠소. 사람 들이 일어나기 전에 말이오. 당신이 너무 이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말이요. 친구인 질링엄이 식을 돕기 위해 와줄거요. 그 사람은 착해서 수고스럽더라도 셰스톤에서 일부러 와줄 사람이오." 수는 물질적인 것에 열성적인 보통 여자들과는 달리 두 사람이 지금 있는 방 이나 주변의 자질구레한 것들을 전혀 보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부인용 토시를 내려놓으려고 응접실을 지나쳤을 때 그녀의 얼굴은 '앗!' 하고 외마디 탄성을 지 르고는 더욱 창백해졌다. 그녀의 표정은 자신의 관을 본 사형수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 "뭐요?" 필로트슨이 말했다. 사무용 책상의 뚜껑이 우연히 열려 있었는데, 그 위에다 토시를 놓으려고 하 다가 거기에서 서류를 발견했던 것이다. "아, 단지...... 별것 아닌 일로 놀라다니!" 그녀는 테이블로 돌아왔을 때, 놀라 소리친 것을 웃음으로 얼버무리려고 그렇 게 말했다. "아! 그렇소 결혼 허가증이요. 방금 도착한 거요." 질링엄이 2층의 방에서 내려와 두 사람과 함께했다. 수는 필로트슨에게 흥미 를 끌만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화제로 삼아 그에게 상냥하게 대해 주려고 신경 을 썼다. 다만 그녀 자신에 관한 일은 조금도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야말 로 그가 가장 듣고 싶어하는 것이었다. 수는 조용히 저녁식사를 하고 나서 근처 의 숙소로 갈 준비를 했다. 필로트슨이 그녀와 함께 풀밭을 가로질러 에들린 부 인의 집 문간까지 가서 그곳에서 저녁 인사를 나누었다. 노부인은 수를 따라 임시 주거지까지 와서 짐을 푸는 일을 도와주었다. 여러 가지 물건 가운데서 색채가 화려한 자수 놓은 잠옷을 펼쳤다. 노부인은 수를 따라 임시 주거지까지 와서 짐을 푸는 일을 도와주었다. 여러 가지 물건 가운데서 색채가 화려한 자수 놓은 잠옷을 펼쳤다. "어머, 그런 것이 들어 있는 줄은 몰랐어요!" 수는 황급히 말했다. "그걸 넣지 않으려고 했었는데, 여기 다른 게 있어요." 그녀는 질감이 거칠고 표백하지 않은 무명천으로 만든 지극히 평범한 새옷을 건네주었다. "그렇지만. 이게 제일 예쁜데." 에들린 부인이 말했다. "그것은 성서에 나오는 바로 그 마대 복장(창세기, 37장 34절에, '그리하여 야 곱은 의복을 찢고서 거친 천을 몰에 걸치고서, 오랫동안 그자식 때문에 한탄하 다' 를 인용)같군요!" "네 - 그렇게 할 생각이었어요. 그것은 이리 주세요." 수는 그것을 받아들고 있는 힘을 다하여 찢기 시작했다. 그 찢어지는 소리가 올빼미 같은 소리를 내며 집 전체에 울려 퍼졌다. "그렇지만, 잠깐, 잠깐, 이봐요!...... 도대체 왜 그러는 거예요!" "이건 불의의 표시에요! 지금의 제 기분은 이것으로는 나타내지 못해요 - 저 는 이걸 오래 전에 샀었어요 - 주드를 기쁘게 하려구요. 이런 건 찢어 없애버려 야 해요!" 에들린 부인이 두 손을 놓아 버렸다. 수는 흥분해서 린넨천의 잠옷을 계속 갈 기갈기 찢더니 불 속에 던져버렸다. "나에게 줘도 괜찮은데! 그렇게 좋은 옷감이 타고 있는 걸 보니까 가슴이 아 프군. 화려한 잠옷은 나 같은 늙은이한테는 별로 쓸모가 없을 거야. 이런 걸 입 을 수 있는 세월은 다 지나가 버렸거든!" "그건 저주받은 물건이에요 - 잊어버리고 싶은 걸 생각나게 해요!" 수는 되풀이해서 말했다. "태워버리는 것이 좋아요." "어머나. 너무 심한 소릴 다 하는군! 뭣 땜에 그런 소릴 해서 죄없이 죽은 귀 여운 애들을 지옥에 떨어뜨리려는 거지! 맹세코 나는 그런걸 종교라고는 생각하 지 않아!" 수는 침대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껴 울었다. "아. 그만하세요. 그만하세요! 그런 말씀은 저를 죽이는 거예요!" 그녀는 슬픔에 싸여 몸을 떨다가 미끄러져 내리면서 무릎을 끓고 말았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 자넨 그 사람과 다시 결합해서는 안 돼!" 에들린 부인은 분개하며 말했다. "아직도 저쪽 남자를 사랑하고 있으면서!" "아니에요, 해야해요 - 저는 이미 그분의 사람이 되었으니까요!" "흥! 자네는 저쪽 남자의 사람이야. 처음에는 두 번 다시 부부 관계를 맺고 싶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것이 오히려 자네의 양심적 행동이었던 거야. 이럭저럭 살다보면 결국에는 만사가 잘 돼간다. 이거야, 누가 뭐래도 결과적으로 다른 누 구의 일도 아닌 바로 자네들 두 사람의 일이지만." "리처드가 저에게 다시 오라고 한다면 저는 가야 해요! 그분께서 거절했다면 주드를 단념하는 게 저의 의무는 아니었을 거예요. 그렇지만...... 그녀는 여전히 얼굴을 침대에 파묻고 있었다. 에들린 부인은 방을 나가 버렸 다. 그 동안 필로트슨은 친구인 질링엄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그는 아직도 저 녁 식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은 곧 일어나, 풀밭으로 나가 잠시담배를 피 웠다. 수의 방에는 등불이 밝혀져 있었고 사람의 그림자가 이따금 창문의 커튼 을 가로지르며 움직이고 있었다. 질링엄은 수로부터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매력을 분명히 느꼈다. 잠시 침묵 이 흐른 후에 그가 말했다. "어쨌든, 자네는 결국 그녀를 자네에게로 다시 돌아오게 했네. 이제는 그녀가 자네를 쉽게 떠날 수가 없게 된 거야. 배가 자네 손아귀에 굴러 들어온 셈이지." "그렇군! 그녀가 말한 대로 믿어도 괜찮을 것 같아. 고백하지만, 그 말에는 아 무래도 이기적인 일면이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어. 그녀가 어떤 여자라는 건 차지하고라도, 나 같은 구태의연한 사람에게는 과분하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 번 일로 성직자들이나 도덕적인 속인들의 눈에 결국 내가 정당한 사람이라는 것 이 알려지게 된 거야. 그들은 그 여자를 해방시켜 준 일을 용서해 주려고 하지 않았어. 그렇게 해서 어느 정도는 옛날의 경력으로 되돌아 갈 수도 있게 된 것 이지." "글세, 자네가 그녀와 재결합할 만한 당연한 이유가 있다면, 이제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하도록 하게나! 나는 자네가 새장 문을 열어주어 분명한 자살이란 것 을 알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새를 놔 준다는데 대해서는 늘 반대해 왔지. 자 네가 그 여자의 일로 그토록 약한 마음을 먹지 않았다면 지금쯤은, 장학관이나 목사가 되어 있을 거야." "난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었네 - 그건 나도 알고 있어." "일단 그 여자를 다시 집안으로 들어오게한 이상은 그녀한테 잘하게나." 필로트슨은 오늘 저녁은 여느 때보다도 말끝을 많이 흐렸다. 수를 대차 받아 들이는 것이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녀를 놓아준 일에 대한 후회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과 이 행위가 무엇보다도 관습이나 교육직을 능욕하는 인간 본능의 발 현이라는 것 등에 대해서는 정직하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야겠지 - 나는 그렇게 할 걸세. 지금은 전보다 그 여자에 대해 좀더 알 수 있을 것 같아. 그 여자를 놓아주었던 것이 아무리 정당했다 하더라도 다른 문제에 대해서나와 똑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그 논리가 전 혀 통하지 않았던 것 같군." 질링엄은 그를 차분히 바라보았다. 그런 다음, 세간의 조소와 그 자신의 육욕 에 의해 생긴 반동적인 생각 때문에, 필로트슨은 이전에 허물없고 완고하게 그 녀에게 보여주었던 친절에서 갑자기 돌변하여 이번에는 오히려 교의에 의해 더 욱 잔혹하게 수를 대하지는 않을까 하고 질링엄은 생각했다. "충동에 굴하는 것은 좋지 못하다고 생각해." 필로트슨은 자신의 위치에 걸맞게 행동해야 할 필요성을 더욱 강하게 느끼면 서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난 '교회'의 가르침을 능욕했지만 악의는 없었어. 여자란 묘한 영향력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에 어느 틈엔가 사람들을 끌어들여 잘못된 친절 속에 빠져버리게 하지. 그러나 지금의 나는 예전의 나보다도 나 자신을 더욱 잘 알고 있네. 약간 은 현명하고 엄한 행동으로 표현하게 될지는 몰라도 말일세. 아마......" "그래, 하지만 자네는 서서히 고삐를 잡아당겨야 할 걸세. 처음부터 너무 세게 잡아당기지는 말게. 언젠가는 그녀도 어쨌든 꺾여둘 테니까." 비록 필로트슨이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사실 그러한 그의 조언은 필요 없 었다. "셰스톤에 있을 때, 내가 그 여자의 가출에 동의했던 일로 인해 소동이 벌어 지고난 후에 내가 떠나려 했을 때, 목사가 했던 말이 생각나네 - '선생과 부인 의 지위를 회복하기 위해서 해야 할 유일한 일은 강력하고 현명한 방법으로 부 인을 잡아두지 않았던 과오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나중에 그녀가 돌아오려고 하 거든 그녀를 받아들여 장래에 의연한 태도를 취하시는 게 종을 성싶소'라고 말 일세. 그러나 그 당시에 난 완고했었으니까 그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지는 않았 었지. 아물며, 헤어진 후에도 그 여자가 돌아올 생각을 할 줄은 꿈에도 미처 생 각하지 못했다네." 에들린 부인의 시골집 문이 딸깍거리더니 누군가가 학교 쪽으로 가로질러 걸 러가기 시작했다. 필로트슨이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아, 필로트슨 선생님이시군요." 에들린 부인이 대답했다. "선생님을 만나러 가던 참이었어요. 2층에서 그녀가 짐 푸는 걸 도왔어요. 선 생님, 이런 일은 절대 하셔서는 안될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무슨 말씀인지요 - 결혼 말씀이신가요?" "그렇습니다. 그녀는 억지로 결혼을 하겠다는 거예요. 가엾게도, 선생님은 그 녀가 얼마나 괴로워하고 있는지 모르실 거요. 나는 종교를 별로 좋아하지도, 싫 어하지도 않지만 - 그녀에게 이런 일을 하게 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선생님 이 그녀를 잘 타일러서 그만두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선생님이 그녀를 다시 받아들임으로해서 사람들이 선생님을 친절하고 인자하다고 말할지 는 몰라도 난 그렇지 않습니다." "그 여자의 소원이고 저도 기꺼이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필로트슨은 진지하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는 그렇게 하지 말라는 그녀의 말 을 듣고 나서 즉시 막무가내로 완고해져 있었다. "크게 방종했던 일들이 고쳐질 겁니다." "난 그것에 대해 믿지 않아요. 그녀는 누가 뭐라해도 사내의 아내요. 그 사람 의 애를 셋이나 낳았어요. 더욱이 다른 그 남자도 그녀를 끔찍이 사랑하고 있소. 가엾게도, 벌벌 떨고 있는 사람을 충동질해서 이런 일을 하게 하다니, 이건 너무 수치도 모르는 일이요. 그녀에게는 힘이 되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단 말이오. 의논 상대가 되어줄 만한 단 한 사람을, 이곳의 완고한 선생님은 그녀의 곁에는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할 것이구요. 처음에는 무엇이 그녀를 이런 기분 속으로 몰 아넣었을까요!" "모르겠습니다. 전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전부가 그녀가 자발적으로 행했던 것입니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입니다." 필로트슨은 완고하게 대꾸했다. "에들린 부인께서도 태도를 바꾸셨군요. 이건 부인한테는 어울리지 않는 말씀 이십니다!" "글쎄요.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선생님께서 화를 낼 줄은 잘 알고 있었지만, 그 러나 난 꼭 이렇게 말해두어야겠다고 생각했었소. 어쨌든 사실은 사실이니까 말 입니다." "에들린 부인, 저는 화를 내고 있지는 않습니다. 부인께서는 너무 친절하신 이 웃이시니까 그런 말씀을 하셨겠지요. 그건 그렇다 치고, 저와 수잔나의 관계에서 무엇이 최선책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그렇다면, 부인께서는 저희들과 함께 교회 에 와 주시지 않으시겠군요?" "그래요. 제기랄 거...... 세상이 어떤 모양으로 돌아가고 있는지 난 도통 모르 겠소! 요즘 세상에는 혼례도 꽤나 어렵게 돼버리고 부부가 되는 것도 덜컥 겁이 나요. 우리네가 젊었던 시절에는 이렇게 쓸데 없는 일들에는 신경들을 안 썼어 요. 그렇다고 우리가 결혼을 했다고 해서 더 나빠지는 것도 아니었구! 나하구 가난한 우리 집 양반이 결혼 할 땐 한 주 내내 잔치를 벌였었다오. 교구 사람 전부가 실컷 마셔대다 보니 우리가 신혼살림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반 크라운(영 국의 2실링 6펜스 화폐)의 은화 한 닢을 빌려야만 할 정도였다구요!" 에드린 부인이 그녀의 시골집으로 돌아가버리자 필로트슨은 시무룩하게 말했 다. "해야 하는 건지. 안 해야 하는 건지. 나도 통 모르겠네 - 아무튼 이렇게 서 두르면서까지." "왜?" "그 여자가 자신의 진심을 어겨가며 - 다만 새로운 의무감이나 또는 종교심에 서 - 무리하게 결혼을 감행하는 것이라면 그 여자를 얼마간 기다리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자네가 여기까지 와서 꽁무니를 빼서는 안된다구. 이게 내 의견이라네." "지금에 와서 미룬다는 건 도저히 있을 수 없어 - 그래, 그러나 결혼 허가증 을 보고서 그 여자가 낮은 비명을 질렀을 땐 나도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 "자아, 불안해 할 필요는 없어. 내일 아침이면 내가 그 여자를 자네에게 넘겨 줄 것이고 자네는 받아들이기로 되어 있지 않은가. 자네가 그 여자를 자유롭게 해주는 것을 내가 좀더 강하게 반대하지 않았던게 내 양심에 걸렸었네. 여기까 지 온 바에는 자네를 도와서 일을 완결지어야겠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나는 만족하지 못할 거야." 필로트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금도 동요의 빛을 보이지 않는 친구를 보고서 그는 어느 정도 솔직해졌다. "물론 내 일이 알려지면 나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팔푼이 바보 취급을 받게 될 것일세. 그러나 그들은 내가 아는 만큼 수를 알지는 못해. 워낙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이지만 근본은 정직하기 때문에 그녀가 양심에 역행하는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네. 폴리와 동거했다는 사실은 아무 문제도 아니야. 나를 떠나서 그 친구에게로 달려갔을 당시에 그 여자는 자기의 권한에 속하는 일을 했다고 생각했었지. 지금은 그 여자의 생각이 변한 겨야." 다음날 아침이 밝아왔다. 그리고 스스로 본래의 원칙이라고 즐겁게 부르는 제 단 위에 몸을 바치는 여자의 자기 희생은 이 두 친구에 의해서 각기 자신이 지 니고 있던 관점에서 묵인되었던 것이다. 필로트슨은 8시가 조금 지나 수를 맞아 들이기 위해 에들린 미망인의 집을 향해 갔다. 엊그제 저지대에 끼었던 안개를 한아름 잡아서 굵은 물방울로 바꿔 놓았다. 신부는 보닛과 모든 장신구로 몸을 치장하고 떠날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창 백한 아침 햇살을 받고 있는 그녀가 그때만큼이나 수잔나라는 이름이 뜻하는 백 합꽃을 닮아보인 적은 그녀의 생애에서는 한번도 없었다. 징벌을 받고서 세상이 귀찮아지고, 그로 인해 양심의 가책을 받아 그녀의 온 신경은 긴장할 대로 긴장 해 있고, 그녀의 육신을 괴롭혔다. 가장 건강했던 시절에도 몸집이 큰 편은 아니 었지만 이날 아침에 수는 이전보다 더 작은 모습으로 보였다. "서두르세요." 교장 선생이 말하고 나서 사뭇 관대하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러나 어제 그 녀가 몸을 움츠렸던 일이 떠올라 그는 키스하고 싶다는 충동을 억눌렀다. 그 유 쾌하지 않은 기억이 그의 마음속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질링엄이 두 사람과 함께 했다. 그들은 집을 나섰다. 에들린 미망인은 여전히 완강하게 결혼식에 참석하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교회는 어디에 있어요?" 수가 물었다. 낡은 교회가 부서지고 난 후로는 오랜 기간 동안 이 마을에서 살지 않았었음으로 방심상태에 빠져들어 있는 그녀는 새 교회가 있다는 것을 잊 고 있었다. "바로 저 위쪽에 있지." 필로트슨이 대답했다. 이윽고 탑이 안개 속에서 커다랗고 엄숙한 모습으로 흐 릿하게 보였다. 목사는 이미 교회에 도착해 있었고 그들이 들어서자 쾌활한 목 소리로 말했다. "거의 촛불이 필요할 정도로군요." "리처드, 정말 저를 원하세요? 저를 당신의 사람으로 만들고 싶으세요?' 수는 헐떡이면서 속삭였다. "물론이지, 여보,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원하고 있소." 수는 그 이상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목사와 교회서기 그리고 당사자 두 사 람과 질링엄 등이었다. 성스러운 예식이 즉시 시작되었다. 교회의 본당에는 두서 너 명의 마을사람들이 있었다. 목사가 '신이 합쳐주신 부부'(마태복음, 9장 6절) 라는 말까지 했을 때 마을 사람들 속에서 한 여자의 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하느님께서 합쳐 주셨군!" 이것은 마치 수년 전에 멜체스터에서 일어났던 것과 같은 장면이 옛날의 그 두 사람의 유령에 의해 재연되고 있는 것 같았다. 대자에 이름을 올리자 목사는 부부가 소중하고 올바르게 서로를 용서하는 일을 한 것에 대해 축복의 말을 했 다. 그는, '끝맺음이 좋으면 만사가 좋은법' 이라면서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 "함께 오래 행복하기를 이처럼 '불 속에서 탈출해 나오듯 구해진'(고린도전서, 3장 15절)것이니." 그들은 거의 텅 비어 있는 교회를 내려와 풀밭을 가로질러 교장 사택으로 갔 다. 질링엄은 이날 밤 안으로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위해 일찌감치 출발했다. 그 도 역시 그들 부부에게 축하의 말을 했다. 배웅을 하기 위해 나온 필로트슨과 헤어질 때 그가 말했다. "이제는 자네 고향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훌륭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걸세. 모두들, '잘했어'라구 말할 거야. 틀림없어." 교장 선생이 돌아왔을 때 수는 마치 이 집에서 줄곧 살아온 주부처럼 뭔가 가 사일을 돌보고 있는 척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접근해 오자 그녀는 겁먹은 듯 한 태도를 보였다. 그 모습을 보자 필로트슨의 마음은 아팠다. "여보, 물론 나는 전과 다름없이 당신의 개인적인 사생활을 간섭할 생각은 없 어." 그는 사뭇 무거운 어조로 말을 꺼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사회적으로 우리 두 사람을 위해 도움이 되기 때문이지. 그러니까, 이런 방식이 내가 세운 구실은 아니었지만, 이것은 바람직한 일이야." 수의 표정은 약간 밝아졌다. 6-6 크리스트민스터의 교회 - 성 사일러스 교회 부근에서 훨씬 떨어진 주드의 하 숙집 문간이었다. 실의에 빠진 나머지 주드는 앓아누워 있었다. 비가 오고 있었 다. 초라한 상복 차림의 한 여인이 문전의 층계에 올라서서 주드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그녀는 손으로 대문을 붙잡고 있었다. "나는 고독하고 무일푼이며 집도 없어요 - 이게 지금의 나예요! 아버지는 내 가 자졌던 돈을 몽땅 빌려 사업을 하다가 다 날렸고, 내가 단지 일자리를 기다 리고 있는데도 게으름만을 핀다고 야단을 치시더니, 나를 집에서 쫓아냈어요, 나 는 이제 세상 사람들의 손에 달려 있어요! 주드, 당신이 나를 받아주지 않는다면 구빈원이거나 아니면 더욱 지독한 곳으로 가야 할 거예요. 지금도 이리로 막 오 는 길에 대학생 두 사람이 나한테 눈짓을 했어요. 젊은 남자들이 우글거리는 곳 에서 여자가 정숙을 지키기란 어려운 일이에요!" 빗속에서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는 여인은 아라벨라였다.. 수가 필로트슨 과 재결합한 이튿날 저녁 때였다. "미안하지만, 나 역시 하숙 생활을 하고 있잖소." 주드는 냉정하게 말했다. "그럼 나를 모르는 체하겠다는 건가요?" "며칠 동안의 숙식비는 줄 수 있지." "아, 나를 집안으로 들어오게 할 친절도 베풀 수 없다는 말이에요?" 술집으로 자러 가야하다니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해요. 그리고 나는 너무 쓸쓸해요. 제발, 주드. 옛날의 정을 생각해서라도요!" "안돼. 안돼." 주드는 재빨리 말했다. "옛날 일은 되새기고 싶지 않아. 과거의 일을 끄집어낸다면 도와주지 않겠어." "그렇다면 가야겠네요!" 아라벨라는 그렇게 말하며 문기둥에 머리를 대고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이 집에는 더 이상의 공간이 없어. 더군다나 내 방은 헛간이나 다름없는 작 은 방이고 여기에 내가 쓰는 도구나 형판이나, 얼마되지는 않지만 아직 수중에 있는 책은 죄다 버리지 않고 가지고있어!" "그렇지만 나에게는 궁전이에요!" "이곳에는 침대도 없어!" "제가 누울만한 잠자리는 마루 위에도 만둘 수가 있어요. 그것만으로도 나에 게는 충분해요." 주드는 그녀를 냉정하지도 못할 처지였으며 그렇다고는 해도 뾰족한 수도 없 어서 하숙집 주인을 불러 이 여자가 자신의 친지인데 잠시 머물 곳이 없어 몹시 난처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에 내가 '램 엔드 플래그' 술집에서 여급 노릇하던 기억이 나요?" 아라벨라는 큰 소리로 말했다. "오늘 오후에 아버지가 나를 구박해서 무일푼인데도 집을 뛰쳐나온 거예요!" 집주인은 안면이 없는 얼굴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폴리 씨의 친지라면 하루 이틀은 어떻게 봐드리도록 하지요. 만일 당 신이 책임을 져 준다면 말입니다?" "그럽시다. 그렇게 하지요. 이 여자는 아무런 연락도 없이 나를 찾아왔지만 위 급한 처지이니 도와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주드는 헛간으로 쓰이는 방에 침대를 넣었다. 아라벨라는 - 자기 탓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는 - 곤경에서 빠져나와 다시 아버지에게 돌아갈 때까지는 이곳에서 안심하고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이 일이 결정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아 라벨라는 말했다. "그 소식 아시지요?" "당신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짐작은 가지만 난 아무것도 모르고 있어." "알프레드스턴에 있는 애니로부터 오늘 편지가 왔어요. 결혼식이 어제 있었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는군요. 제대로 잘 거행되었는지의 여부는 모른다고 써보 냈어요." "그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면 해." "그래요. 물론 말씀하고 싶지 않겠지요. 간단히 그런 일만으로도 그녀가 어떤 여자라는 것은 알 수가 있어요." "그 여자 얘기는 하지 말아줘! 그 여자는 바보야. 그리고 가엾게도 그 여자는 천사이기도 해!" "애니의 편지에서는, 재혼이 성사되면 필로트슨은 원래 자기의 자리로 돌아간 다니 봐요. 모두 그렇게들 알고 있대요. 주교를 포함해서 그분한테 호의를 갖는 사람들은 모두가 기뻐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제발 날 좀 살려줘, 아라벨라." 아라벨라는 작은 다락방에 그럭저럭 잠자리를 꾸몄다. 처음에 아라벨라는 주 드에게 가까이 가지 않았고 자기 일을 하며 여기저기로 뛰어다녔다. 두 사람이 계단이나 복도에서 잠시 마주쳤을 때 그녀는 자신이 제일 잘 할 수 있는 장사 중에서 일자리를 구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런던 같으면 술집에 자리를 쉽게 얻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주드가 말하자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돼요. 유혹이 너무 많아요. 나한테는 그것보다 보잘 것 없더라도 시고르이 술집이 어울려요." 다음 일요일 아침, 주드가 평소보다 늦게 아침 식사를 하고 있을 때, 괜찮으면 그녀가 방에 들어와서 자기와 함께 식사를 하면 안 되겠느냐고 부드럽게 물어왔 다. 찻주전자를 깨어버렸는데 가게는 닫혀 있고 해서 지금 당장 대신할 것이 없 다고 했다. "좋아, 당신 마음대로 해." 주드는 무관심하게 말했다. 두 사람은 말없이 앉아 있었다. 잠시 후에 그녀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 "당신은 온통 생각에만 잠겨 있는 것 같군요. 그렇게 있는 것이 안되어 보이 네요." "생각이 꽤 많아." "그 여자에 관한 거지요, 알고 있어요. 내 일은 아니지만, 바로 그 결혼식에 관해서는 모두 알아낼 수 있어요. 혹시 당신이 알고 싶으시다면요." "어떤 방법으로?" "나는 알프레드스턴으로 가서 거기에 남겨둔 두서너 개의 물건을 늘 가져오고 싶었어요. 그러면 애니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그 애는 메리그린에 친구가 있으 니까, 그 일에 관해서는 분명히 들어서 다 알고 있을 거예요." 주드는 그녀의 이 제안을 묵살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 나 이내 그의 불안이 분별심을 눌러버렸다. "그 일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으면 물어봐요. 나는 그곳으로부터 아무런 소식 도 듣지 못했어. 틀림없이 비밀스럽게 했을 거야. 만약 그들이 결혼을 했다면 말 이야." "그곳에 다녀올 만한 돈이 없어요. 돈이 있었으면 벌써 오래 전에 갔었지요. 조금이라고 돈을 모을 때까지는 기다려야 할 것 같아요." "아, 당신의 여비는 내가 주겠어." 그는 초조해하면서 말했다. 이렇게 해서 주드는 수의 행복이나 그녀의 결혼에 대한 소문으로 인한 걱정 등으로, 신중히 생각했더라면 선택해서는 안될 사자를 정보 수집을 위해 보내게 되었다. 주드는 늦어도 7시 기차로 귀가하라고 일러주었고 아라벨라는 곧 출발했다. 그녀가 떠났을 때 그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특정한 시각까지 돌아와야 한다고 왜 지시했는지! 그 여자는 나에게는 아무 런 의미가 있는 존재도 아닌데 - 그쪽 여자도 마찬가지인데!" 그러나 주드는 일을 끝내고 나서 아라벨라를 마중하기 위해 역으로 가야 했 다. 그 여자가 가지고 올 소식을 , 그리고 최악의 사태를 - 빨리 알고 싶다는 열기에 싸여 서둘러 그곳으로 이끌려가고 말았다. 아라벨라는 귀로에 아주 성공 적으로 보조개를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기차에서 내릴 때는 방긋 웃어 보였다. 주드는 전혀 무뚝뚝한 표정으로 '어땠어?' 라고 말했을 뿐이었다. "그들은 결혼을 했대요." "물론 그랬겠지!" 그가 대답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말했을 때 그의 입술에 일어난 경련을 그 녀는 놓치지 않고 살펴보았다. "메리그린의 친척인 벨린더에게 들었다는데. 애니의 말로는 매우 슬프고 게다 가 희한한 결혼식이었대요!" "슬프다는 건 무슨 소리야? 그 여자는 그 사람에게 스스로 재결합을 하기 위 해 갔잖아? 그리고 그 사람도 기꺼이......!" "네, 그래요. 어떤 의미에서는 그 여자가 바랐던 것이었지만 또 다른 의미로는 그렇지 않았다는 군요. 에들린 부인은 그 사실을 알고 기절초풍해서 필로트슨씨 에게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는군요. 그러나 수는, 몹시 흥분해서 당신을 완전 히 잊으려고, 당신을 위해 입던 최상품의 자수를 놓은 옷을 태워버리고 말았다 지 뭐예요. 아무튼 여자는 그렇게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야만 하는 거지요. 나는 그 일에 대해서는 그 여자를 칭찬하고 싶어요. 누가 뭐라 해도요." 아라벨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 여자는 필로트슨만이 유일한 자신의 남편이고, 그가 살아 있는 한은 전능 하신 하느님 앞에선 다른 누구의 아내도 아니라고 느꼈던 거예요. 아마 또 한 명의 여자 역시 자신의 일로 그와 똑같이 느끼고 있을는지도 모르지요!" 아라벨라는 또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허울좋은 말은 듣고 싶지도 않아!" 주드가 소리쳤다. "허울좋은 말이 아니에요. 나도 그 여자와 똑같이 느끼고 있어요!" 그는 갑자기 그녀의 이야기를 중지시켰다. "글쎄, 이젠 알고 싶었던 것을 다 알게 됐어. 알아봐 줘서 고마워요. 하숙집에 는 지금 돌아가지 않겠어. 그리고 곧바로 그는 아라벨라와 헤어졌다. 주드는 비통함과 절망감에 빠져 옛날에 수와 함께 가본 적이 있는 도시의 거 의 모든 장소를 걸어가 보았다. 그는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후에 그는 언제나처럼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선에 대응하는 모든 악을 가지고도 여분의 악이 있기 때문에, 그는 방향을 돌려 여러 달만에 처음으로 술집으로 들어섰다. 수는 자기가 결혼하게 되면 주드에게 어떤 결과가 생길 것인가를 추측은 하고 있었지만 현재와 같은 처지가 되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 동안에 아라벨라는 집으로 돌아와 있었다. 저녁 시간이 지나가도 주드는 돌아오지 않았다. 9시 반경에 그녀도 집을 나와 그녀의 아버지가 최근에 보잘것 없고 아직은 불안정한 돼지고기 일품 요리집을 열고 있는 강 근처 시내의 외곽 지구로 먼저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요." 그녀가 아버지에게 말했다. "저번날 밤에 저를 몹시 욕하셨던 일 때문에 잠깐 들렸어요. 말씀드릴 것이 있어요. 저는 재혼해서 다시 자리를 잡으려고 해요. 꼭 저를 도와주실 일이 있어 요. 제가 참아온 걸 생각하신다면, 그런 정도의 일은 해주실 수 있을 거예요." "널 보내기 위한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못하겠느냐!" "좋아요. 저는 이제부터 그이를 찾으러 나서겠어요. 그이는 거나하게 취해 있 을 테니까 집으로 데리고 와야 해요. 오늘 저녁 아버지가 하실 일은 대문을 잠 그지 않는 거예요. 제가 이 집에서 잘지도 모르고, 여기에 늦게 올지도 모르니까 요." "네가 잘난 체하고 집에 들어오지 않는 것에 곧 싫증을 낼 것이라고 생각했 다." "어찌 되었든 대문은 잠그지 마세요. 부탁드릴 것은 그것뿐이에요." 그리고 그녀는 다시 집을 나섰다. 그녀는 먼저 서둘러 주드의 하숙집으로 돌 아가서 주드가 아직도 돌아와 있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그를 찾기 위 해 집을 나섰다. 주드가 왔을 만한 곳을 곰곰이 생각한 끝에 주드가 전에 자주 갔었고 또 그녀가 잠시 동안 여급으로 일했던 술집으로 곧장 향했다. 그녀가 술집에 있는 '개인용 방'의 문을 열자마자 주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 다. 그는 칸막이가 된 방 뒤편의 그늘진 곳에 앉아 멍한 눈초리로 마룻바닥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독한 술을 마시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 다. 그는 아라벨라를 보지 못했다 . 그녀가 안으로 들어가 그의 옆에 앉았다. 주드는 놀라는 기색도 없이 말했다. "한 잔 하러 왔나. 아라벨라? 그 여자를 잊으려고 해. 그뿐이야! 그러나, 잊혀 지지가 않아. 난 집으로 가겠어." 약간 취기가 있기는 했어도 그다지 심하게 취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녀는 알 수 있었다. "나는 당신을 찾으러 온 거예요. 여보. 기분이 안 좋군요. 좀더 좋은 술을 마 셨어야 했는데." 아라벨라는 여급을 향해 손가락을 들었다. "리큐어를 들어요. 교양인에게는 맥주보다는 이것이 더 어울릴 테니까요. 마라 스키노나, 드라이하면서도 달콤한 큐라소나 체리 브랜디가 좋아요. 가엾게도 술 값은 내가 낼게요!" "무슨 술인들 상관 있겠어! 글쎄, 체리 브랜디면 어때요. 수는 나에게 너무 했 어. 해도 너무 했어. 수가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지! 난 수에게 충실하게 대했는 데, 그러니 그녀도 나에게만은 충실했어야만 했는데, 그녀를 위해서라면 나는 내 영혼이라도 팔았을 거야. 그러나 그 여자는 나를 위해서는 혼을 내놓는 위험 같 은 것은 감수하지 않을거야. 그녀는 자신의 혼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나의 혼 같 은 것은 지옥속에 빠뜨려도 상관하지 않을 거야. 그러나 그것이 그 여자의 잘못 은 아니지. 가엾은 여자. 그렇지 않다는 것은 나도 확실히 알고 있어!" 아라벨라가 어떻게 해서 돈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그녀는 리 큐어를 한 잔씩 주문하고 돈을 지불했다. 그들이 주문한 술을 함께 마시고 나자 그녀는 다시 한 잔을 권했다. 주드는 말하자면, 그 길의 심오한 경지를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가지각색의 술이 주는 쾌락을 몸소 안내받는 기쁨을 맛보게 되었다. 아라벨라는 주드보다는 훨씬 느리게 마셨다. 그가 꿀꺽 삼키면 그녀는 홀짝거 리는 정도로 마시면서 정신을 잃지 않을 정도의 아슬아슬한 경지까지만 술을 마 셨다. 빨갛게 달아오른 그녀의 얼굴이 말해주듯이 그녀도 적지 않은 양의 술을 마신 것이었다. 오늘밤 주드를 대하는 그녀의 말투는 시종 상냥스럽게 위로해 주는 듯한 어조 였다. 주드가 입버릇처럼 쉴 새 없이 내뿜는 '내가 어떻게 되든 무슨 상관이란 말이야' 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녀는 '그렇지만 나는 상관이 있어요!' 라고 대 답했다. 술집이 문을 닫을 시간이 다가오자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술집에서 나와야 했다. 그러자 아라벨라는 그의 허리에 팔을 감고서 비틀거리는 그를 부 축하며 걸어갔다. 그들이 거리로 나왔을 때 그녀가 말했다. "이런 상태로 당신을 데리고 가면 하숙집 주인이 뭐라고 할지 모르겠어요. 아 마 문을 닫아버린 후이기 때문에 우리를 들여보내기 위해서는 주인이 내려와야 할 것 같군요." "모르겠어. 아무것도 모르겠어." "이런 일이 바로 집이 없어서 겪게 되는 최악의 경우이지요.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가르쳐 드리지요. 우리 아버지 집으로 가는 거예요. 오늘 잠깐 들려서 화해했어요. 당신도 들어가실 수 있어요. 누구도 당신을 보지는 못 할 거예요. 내일 아침까지는 기분도 상쾌해질 거예요." "그 무엇이든, 어디든 상관 없어." 주드가 대답했다. "그런 일들이 도대체 나에게 무슨 상관이란 말이야?" 그들은 다른 술취한 남녀가 그러는 것처럼 하고서 걸어갔다. 여자는 여전히 그의 허리에 팔을 감고 있었고 남자도 마침내는 여자의 허리를 팔로 안았다. 욕 정에 자극받은 것이 아니라 주드는 다만 지쳐 있는데다 발걸음도 비틀거려 버팀 목이 필요했던 것뿐이었다. "여긴......순교자들의......화형소군." 그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때 그들은 넓은 거리(옥스퍼드 중앙의 중심거리)를 다리를 질질 끌면서 가로질러 갔다. "이 옆을 이렇게 지나가니까 생각 나 - 늙은 풀러(1608~61, 영국의 성직자 겸 작가)의 (성스러운 나라)에 쓰여 있었던 말이 생각나는군(성스러운 나라)에서 늙은 풀러는 이렇게 말했어. 리들리를 화형시킬 때 스미드 박사가 설교하고, 설 교 제목에는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 느니라'(고린도 전서, 1장 3절)라는 성구를 인용했었어. 여길 지나칠 때면 난 그 말들을 떠올리곤 해. 리들리는......" "바로 그거예요. 당신은 정말 생각이 깊은 분이에요. 그런 것들이 현재의 우리 에게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하지만요." "아니야. 관계가 많아! 나는 내 몸을 불태우도록 건네주고 있으니까! 그러 나......아...... 당신은 몰라. 수는 알고 있지! 내가 그 여자를 유혹했었지. 가엾은 여자! 그리고 그 여자는 가버렸어. 그러니까, 나는 내 자신의 일 같은 건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 날 어떻게 하든 마음대로 해! 그러나 그 여자는 양심 때문에 그 랬지. 가엾은 수!" "그런 병신같은 여자!......내 말은...... 그 여자가 옳았던 거 같아요." 아라벨라는 딸꾹질을 했다. "나도 역시 그 여자와 생각이 같아요. 하느님의 눈에는 나는 당신의 것이고 죽을 때까지 그 누구의 것도 아니라고 말이에요! 되돌이키는 것......아직은 그 리......늦지 않았어요!" 아라벨라는 말하면서 계속 딸꾹질을 해댔다. 그들은 아라벨라의 아버지가 살고 있는 집에 도착했다. 아라벨라가 문을 살짝 열고 안으로 들어가 성냥을 주섬주섬 찾았다. 그 상황은 아주 오래 전에 크레스콤의 시골집에 들어섰을 때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아라벨라의 동기도 그 때와 비슷했다. 그러나 아라벨라는 그런 생각을 했지만 주드의 생각은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성냥을 못 찾겠네요." 그녀는 문을 닫으면서 말했다. "그렇지만 괜찮아요. 이쪽으로 오세요. 되도록 조용히, 어서요." "칠흑같이 어두워." 주드가 말했다. "손을 내밀어요. 잡아드릴게요. 그래요. 잠깐 여기에 않아 있어요. 부츠를 벗 겨드릴 테니까요. 아버지가 깨시면 곤란해요." "누가?" "우리 아버지 말이에요. 일어나시면 시끄러우실 테니까요." 그녀는 그의 부츠를 벗겼다. "자아." 그녀가 속삭였다. "나를 붙잡아요. 당신이 무거운 건 상관없어요. 자아, 첫번째 계단, 두번째 계 단......!" "그런데, 지금 우리가 메리그린 교외의 옛날 그 집에 와 있는 거 아냐?" 거의 얼이 빠져 있는 주드가 물었다. "지금까지 벌써 몇 해 동안은 오지 않았었지! 이봐, 내 책들은 어디에 있어? 그게 내가 알고 싶은 거야." "지금 우리는 나의 집에 와 있는 거예요. 여보, 당신이 얼마나 가슴이 아픈가 를 아무도 알아낼 수가 없는 것이에요. 어서요! 세번째 계단, 네번째 계단......좋 아요. 자아, 조금만 더요." 6-7 아라벨라의 아버지가 최근 세를 들어 살게 된 이 자그만한 주택의 아래층 뒷 방에서 그녀는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앞쪽의 조그마한 돼지고기 일품 요 리점에 그녀가 얼굴을 내밀어 식사준비가 다 되었다는 것을 돈 씨한테 알렸다. 기름기 있는 푸른 작업복을 입고 허리에 두른 끈에다 줄을 매달고서 사뭇 돼지 백정의 우두머리인 양 뽐내면서 그가 불쑥 들어섰다. "오늘 아침 나절은 네가 가게를 봐 줘야겠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럼즈던에 가서 돼지 내장과 반신을 사들여 놓고 난 어딜 좀 가야겠구나. 여 기서 살려거든, 너도 한몫 해서 도와야 한다. 적어도 이 장사가 궤도에 오를 때 까지 말이다!" "그런데, 오늘은 가게를 못 보겠는데요." 그녀는 아버지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2층에 전리품이 있어요." "무엇? 그게 뭐지?" "남편이에요. 물론 틀림없이 남편이지요." "거짓말하지 마라!" "맞아요. 주드예요. 저에게로 돌아온 거죠." "옛날의 본래 그 남편 말이냐? 뭐라고? 한 대 얻어 맞은 기분이구나!" "그래요. 언제고 그이를 좋아하고 있었다고 말할 참이에요." "그런데, 왜 2층에 와 있는 거냐?" 돈은 기분이 좋아져서 천장을 턱으로 가리키면서 말했다. "곤란한 질문일랑 하지 마세요. 아버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이를 여기에 잡아두는 거예요. 예전처럼 저하고 그이가 다시 합해질 때까진." "어떻게?" "부부가 된다 그 말이에요." "하. 그래? 난 그런 이상한 소리는 처음 들어보는구나. 전 남편과 다시 부부 가 되다니. 세상에는 새 남자도 수두룩한데! 그 사람이 뜻밖에 얻은 횡재라고는 생각 안해. 나 같으면 새로운 녀석을 물어올 텐데 말이야." "여자가 체면상 본래의 남편을 되찾는다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에 요. 남자가 본처를 되찾고 싶어하는 건......그야, 다소 우스운 일이겠지만!" 그렇게 말하고 나서 아라벨라는 갑작스레 발작적인 웃음을 쏟아냈다. 그녀의 아버지도 조심스럽게 그녀를 따라 웃었다. "그이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셔야 해요. 뒷일은 제가 맡을 테니까요." 진지함을 회복한 그녀가 말했다. "그이가 오늘 아침에는 머리가 빠개지도록 아프다고 하더군요. 어디에 와 있 는지도 모르는 것 같더라구요. 당연하죠. 간밤에 그가 술을 얼마나 섞어 마셨는 지...... 하루 이틀간 이곳에 머물게 해서 흥겹고 즐겁게 해줘야 해요. 하숙으로 돌려보내지 않도록 해주세요. 먼저 쓰게 되는 돈은 나중에 갚겠어요. 그건 그렇 구, 2층에 올라가서 가엾은 그이가 어떤지 봐야겠어요." 아라벨라는 계단을 올라가 첫째 침실의 문을 살며시 열고서 방안을 들여다보 았다. 머리카락이 깎인 그녀의 삼손이 잠들어 있음을 보고서 아라벨라는 침대 머리로 가서 주드를 빤히 들여다보며 서 있었다. 전날 밤의 폭음으로 그의 얼굴에 나타난 열띤 홍조는 평상시에 그의 외모에 나타나는 허약함을 어느 정도는 감추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긴 속눈썹과 검은 눈썹, 흰 베개와 대조되는 검은 고수머리와 턱수염은, 정평이 난 정열의 여 인인 아라벨라가 다시 포획할 가치가 있다고 여전히 느끼고 있는 남자 - 생계난 평판이 모두 곤궁에 빠져 있는 여자로서 지금 자기에게 되돌아올 가치가 있다고 느끼고 있는 한 사람의 남자 - 의 인상을 완벽한 것으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녀의 타오르는 듯한 시선이 남자에게 어떤 영향을 끼친 것 같았다. 빠르던 호흡이 낮아지더니 그가 눈을 떴다. "기분이 어떠세요. 여보?" 그녀가 그에게 말을 건넸다. "저......아라벨라예요." "아! 어디? 아 그래. 기억이 나! 날 재워준 거로군......진퇴양난의 궁지에 몰려 병들고 타락한 악인! 그게 바로 나요!" "그렇다면 여기서 편히 쉬세요. 집엔 아버지와 저밖엔 아무도 없어요. 완전히 나을 때까지 쉬셔도 돼요. 석공들에겐 당신이 녹초가 되었다고 전할게요." "하숙집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제가 들러서 설명해 놓도록 하지요. 숙박비를 지불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 군요. 안 그러면 우리가 도망친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니까요?" "응, 그 정도의 돈이라면 저게 내 호주머니 속에 충분히 있어." 주드는 너무도 욱신욱신거리는 안구에 무심하게 비쳐드는 대낮의 빛을 견딜 수 없어 눈을 감고 다시 졸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아라벨라는 그의 지갑을 꺼 내들고 살며시 방을 나갔다. 그리고 외출복을 걸치고서 엊저녁에 그들이 나왔던 하숙집을 향해 떠났다. 반 시간도 채 되지 않아 그녀는 집모퉁이를 돌아 다시 모습을 나타냈다. 그녀 옆에는 주드의 가재도구 전부와 짧은 체재기간 중에 자신이 하숙집에 가지고 갔 었던 짐 몇 개를 실어올린 이륜 손수레를 어느 소년이 끌고 오고 있었다. 주드는 전날 밤의 불운한 만취로 인해 육체적으로 괴로웠고, 수를 잃고 게다 가, 반은 정신자간 상태로 아라벨라에게 굴복하고 만 일 등으로 해서 정신적으 로도 격심한 고통을 받고 있었다. 낯선 침실에서 부인복과 뒤섞여가며 자신의 가재 꾸러미가 풀리고 눈앞에 늘 어세워지는 것들을 보았을 때 그는 그것들이 어떻게 해서 거기에 와 있는지 또 그런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납득이 가질 않았다. "저어." 아래층에서 아라벨라가 그녀의 아버지에게 말했다. "앞으로 2, 3일 정도는 집에다 좋은 술을 많이 갖다 둬야 할 것 같아요. 그이 의 성격을 잘 알고 있으니까요. 이따금 기분이 무섭게 가라않는 상태에 빠져들 게 되면 나에게 좋은 일은 절대 아닐 테니까요. 날 곤경에 빠뜨리고 모른 체할 거예요. 그이를 기분좋게 해드려야 해요. 그이는 은행에 약간 예금해 둔 것도 있 구. 필요한 데 지불하라고 나에게 지갑도 주셨어요. 그런데 필요한 게 있다면 감 찰이겠죠. 기분이 좋을 때 그이를 잡아두기 위해서 항상 곁에다 둬야 하기 때문 이죠. 술값은 아버지가 지불해 주셔야 해요. 친구 몇 사람 불러다가, 준비할 수 만 있다면 조용한 친목회가 제격이겠는대요 - 돼지고기 요리점의 광고도 되고, 나에게도 도움이 되구." "그런 건 안주와 술내기에 달렸지. 그걸 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사 로 할 수가 있지...... 그래. 그렇구말구. 가게의 광고도 되고.......정말 그래." 그로부터 사흘 후 주드는 눈과 머리의 심한 통증에서는 다소 회복되었지만, 그녀가 표현한 대로 그를 기분좋게 해주기 위해 - 아라벨라가 그 기간 중에 그 에게 베풀어 준 것으로 인해서, 그의 정신은 여전히 매우 혼란해져 있었다. 바로 그 틀을 이용해서 아라벨라는 주드를 바짝 조여서 일을 마무리 지을 양으로 그 녀가 제안했던 예의 조용하고 유쾌한 모임을 준비했다. 돈씨는 보잘것없는 자그마한 돼지고기와 소시지 가게를 마악 개점했던 터라, 아직 단골이라고는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파티를 통해 적잖이 가 게를 광고하게 되었고, 그래서 돈가는 크리스트민스터에서 대학의 사명이나 기 풍같은 것은 모르는 부류의 사람들 사이에 꽤나 현실적인 평판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아라벨라가 아버지가 거명한 손님 외에도 초대할 손님이 있으면 말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주드는 완전히 될대로 되라는 암울한 기분으로, 조 할아버지와 스 태그 그리고 망해 버린 경매인과, 수년 전 그가 한바탕 발작을 일으켰을 당시에 그 유명한 술집의 단골이었던 친구로서 기억나는 이름들을 말했다. 그는 또, '주 근깨' 아줌마와 '복집딸'의 이름도 댔다. 아라벨라는 남자에 관한 주드의 말대로 했지만 여자들은 손님에서 제외했다. 품절되었다고는 했지만 다음 날에는 구입할 수 있다는 약속을 받았다. 이런 저런 질문 도중에 테일러가 방안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손님들이 둥그렇게 둘러 앉아 카드놀이를 하고, 술을 마시고 있는 것으로 보아 돈 씨가 한턱 쓰고 있는 듯한 광경이 눈에 띄었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으나 이튿날 아침, 일을 나가는 길에 파티 가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졌다. 전날 밤 늦게까지 흥청댔다면 돈 씨도 딸도 아직 안 일어났을 것이므로 그 시각에 식품을 사러 가게에 가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돈의 가게 앞을 지나치려 할 때 문이 열려 있는 것 을 발견했다. 고기 진열대의 셔터는 아직 열려 있지 않았지만 그는 안에서 들려 오는 말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안으로 들어가서 거실의 문을 두드 리고 문을 열었다. "이거, 참말!" 그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주인도 손님도 모두 11시간 전에 그가 떠났던 때와 마찬가지로 그대로 트럼프 놀이를 하고, 담배를 피우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밖은 2시간 전에 태양이 솟아올라 햇빛을 내리쬐고 있었지만 가스등은 여전히 켜져 있었고 커튼도 쳐져 있는 그대로였다. "그래요!" 아라벨라가 웃으며 외쳤다. "우리들은 아직도 이렇게 그대로 있어요. 부끄러운 일이지요! 그러나 그저 신 장개업을 한 것에 대한 축하 같은 것이죠. 친구들도 급히 서두르지는 않는 것이 구요. 들어와서 앉으세요. 테일러 씨." 대장장이라기보다는 망해버린 그 철물상은 마다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가 자리 를 잡았다. "15분쯤 늦어지는데, 어떨라구." 그가 말했다. "사실, 안을 들여다보고 난 내 눈을 의심했어! 갑자기 간밤으로 되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니까." "그랬군요. 테일러 씨에게 술을 가져다 주세요." 이제서야 그는 아라벨라가 주드의 옆에 앉아 있음을 알아챘다. 그녀는 팔을 주드의 허리에 감고 있었다.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주드의 얼굴에도 과음을 한 표시가 나타나 있었다. "사실 우리들은 법적 수속을 밟을 수 있는 시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중이 었어요." 그녀는 수줍어하면서 말을 이었고 술로 빨개진 얼굴빛을 되도록 처녀의 홍조 처럼 보이려 했다. "주드와 저는 결국 서로가 헤어져서는 살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다시 매듭을 묶어 우리 사이의 문제들을 해결하기로 결정했어요. 그래서 모두가 좋은 생각이라고 동의해서 늦게까지 앉아 있다가 즉석에서 그렇게 하기로 의견의 일 치를 보았던 거예요." 주드는 그녀가 피력하고 있는 사실에 대해 그다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같 이 보였다. 아니, 그밖의 어떠한 일에도 그런 것 같았다. 테일러가 새로 들어옴 으로 해서 자중에 새로운 활기가 생기게 되어 어느 누구도 자리를 뜨지 않게 되 었다. 이윽고 아라벨라가 부친에게 속삭였다. "지금 가는 것이 좋겠어요." "그렇지만, 목사님은 모르시고 계시는 일 아니냐?" "알고 계셔요. 8시와 9시 사이에 우리가 갈지 모른다고 간밤에 말해 두었거든 요. 체면상 되도록 아침 일찍 조용히 식을 올리고 싶고 또 두번째 결혼이니까, 남들이 알게 되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기 때문이기도 하구요. 흔쾌히 허락하 셨어요." "아, 그거 잘했군. 난 언제라도 갈 수가 있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몰을 한바탕 흔들어댔 다. "그럼, 옛사랑. 약속하신 대로 함께 가실까요?" 주드를 향해 그녀가 말했다. "언제 내가 무엇을 약속했지?" 그가 물었다. 그녀는 자신이 지닌 그 방면의 특수한 실력으로 이때쯤 되면 남 자를 거의 정신을 차리지 못할 만큼 - 그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제정신으로 보일 정도로만 - 취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어머나!" 낙담한 체하면서 아라벨라가 말했다. "간밤에 이곳에서 몇 번이고 저하고 결혼하겠다고 약속해 놓구서, 이 신사분 들도 다 들어 알고 계신답니다." "난 그런 기억이 없는데." 주드는 완강하게 말했다. "당신에게는 오직 한 여자밖에 없군요 - 나는 여기 이 카페르나움(예수의 갈 릴리 전도의 근거지가 된 호수의 도시명, 마태복음, 7장 5절)에선 그 여자의 이 름을 언급하기는 싫군요!" 아라벨라는 그녀의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폴리 군, 수치를 알란 말이요." 마침내 돈 씨가 입을 열었다. "자네와 내 딸은 최근 2, 3일간 여기서 살고 있었네 - 그것으로 자네가 딸과 결혼하겠다는 의미로 이해했지. 그런 뜻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당연히 나는 내 집에서 그런 일이 저질러지는 것을 내버려 두지는 않았을 거네. 자네의 체면 을 위해서라도 당장 이행을 해야 하네." "네 명예를 짓밟는 소리는 하지도 마십시오!" 주드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격하게 말하였다. "불명예스러운 짓을 할 바엔 차라리 바빌론의 음부(요한 묵시록 17장 5절)와 결혼하겠소! 아. 이건 당신을 책망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수사적으로 과장된 표현일 뿐입니다 - 흔히 책에서들 말하는 과장법이란 거지요." "자기를 돌봐준 것에 대한 빚은 갚아야지." "명예 때문에 이 여자와 결혼해야 한다면 - 아무래도 그럴 성싶지만 - 더욱 이 어떻게 해서 이 사람과 여기에 있게 되었는지,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는 나로 선 납득이 가지 않지만, 결혼하겠소. 할 수 없지요! 난 여자들에게나 땅 위의 어 떤 생물에게도 불명예스런 행동을 해온 일이 없단 말입니다. 난 약한 사람을 희 생시켜 내 몸에 도움되기를 바라는 그런 사람은 아닙니다!" "저어......아버님의 말씀을 맘에 두지 마세요." 아라벨라는 주드는 뺨에 자기 뺨을 갖다 대면서 말했다. "2층에 가서 세수를 하고 몸단장을 깨끗이 하고 오세요. 그리고 나서 떠나도 록 해요. 아버지와 화해하시고." 두 사람은 악수를 했다. 주드는 그녀와 2층으로 올라가서, 곧 몸치장을 하고 내려왔다. 아라벨라도 서둘러 단정히 치장을 했다. 돈씨와 함께 두 사람은 떠났 다. "돌아가시지들 마시고, 그대로 계셔요." 출발 무렵에 그녀가 손님들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없는 동안에 아침식사를 준비하도록 어린 계집아이에게 일러 뒀으니 까요. 우리가 돌아오면 함께 식사하도록 하세요. 훌륭한 홍차가 있으니 진하게 타서 드시고 나면 모두가 거뜬하게 댁에 가실 수가 있을 거예요." 아라벨라와 주드 그리고 돈 씨가 결혼식 때문에 사라지고 났을 때 모여 있던 손님들은 정신이 들어 하품을 해댔다. 그러자 그들은 흥미 진진하게 그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대장장이 테일러는 그중에서 가장 제정신을 차리고 있었기 때문에 가장 명석 하게 논리를 펴나갔다. "나야 친구 욕을 하기는 싫소만." 그가 입을 열었다. "부부가 재차 결혼을 하게 되다니 이건 진기한 일이 아니겠소! 서로에 대한 마음이 따뜻했을 초혼 때에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면, 내 생각엔 두번째라고 잘 될 리는 만무하오." "그 친구가 합칠 것 같아?" "그 여자가 명예를 덧씌웠으니, 그가 합치게 될지도 모르지요.' "그가 이렇게 급작으럽게는 안할 텐데, 허가증도 아무것도 아직 얻지 못하고 있으니까." "어림없는 소리 말게. 그 여잔 벌써 다 받아 놓았다니까. 자기 아버지한테 하 던 말 못 들었어?" "글쎄." 대장장이 테일러는 가스불로 파이프에 불을 붙이면서 말했다. "그 여자의 수족을 하나하나 계산해서 보면, 그다지 나쁜 물건도 아니란 말야 - 촛불 밑에서 보니까 각별한 데가 있던데. 허긴, 긴 세월 통용되던 반 펜스짜 리 동전이 조폐국에서 갓 나온 새 동전처럼 보일리야 만무하지. 그렇긴 해도 한 동안 세상의 이곳저곳을 흘러다니던 여자치고는 충분히 쓸만한 편이야. 옆구리 에 살이 좀 있기는 해도...... 나는 바람에 금방 날려갈 그런 여자는 싫더라. 그들의 눈은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테이블에 쏟아져 있는 술찌꺼기도 닦지 않 고서 아침 식사를 위해 식탁보를 펼치고 있는 작은 소녀의 동작을 지켜보고 있 었다. 커튼은 걷어 올려졌고 집안 분위기는 사뭇 아침다워졌다. 그러나 몇 명의 손님은 의자에 앉은 채로 잠에 빠져 들었고 한두 사람은 문으로 걸어가서는 몇 차례 거리를 바라보았다. 이들 중에서는 대장장이 테일러가 그 우두머리로 한참만에 짓궂은 곁눈질을 해가면서 들어왔다. "저런, 그들이 돌아오는데! 식이 끝났나 보네!" "아냐." 그 뒤를 이어 들어온 조 할아버지가 말했다. "내 말을 믿게나. 그 친구 마지막 순간에 태도를 바꿔 말을 듣지 않았을 거야. 모두가 야릇한 걸음걸이를 하고 있잖아. 그게 사실을 의미하는 것인데!" 그들은 아무말 없이 기다렸고 이윽고 결혼식에 갔던 일행이 들어서는 소리가 들렸다. 선두에는 아라벨라가 소란을 피우며 방안으로 들어왔는데, 그녀의 얼굴 표정은 자신의 책략이 맞아들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폴리 부인이 되신 게요?" 대장장이는 청중을 가장하여 말했다. "그렇습니다. 다시 폴리 부인이 된 거죠." 아라벨라는 부드럽게 대답하고는 장갑을 벗어들고 왼손을 내밀었다. "여기 손가락에 자물쇠가 채워져 있지요......그런데, 그분은 진정한 신사분이 셨어요. 목사님 말씀이에요. 식이 마무리 되자 어린애에게 하듯 상냥스럽게 말씀 해 주셨어요. .폴리 '부인,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라고 하셨죠. '부인과 바깥분 의 과거지사를 듣고서 당신들이 옳고 적절한 일을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아내로 서 당신 과거의 과오와 바깥분의 과오는 두 분께서 서로를 용서하게 된 것처럼 현재 사회에서도 용서받으리라 생각합니다' 라고 하시지 않겠어요. 그래요. 그분 은 너무나 좋으신 신사분이셔요. '엄밀하게 말해서. 교의상 교회는 이혼을 인정 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인연인 즉, 사람은 이를 떼어놓지 못하느니 라((기도서)의 '결혼식 기도')하는 예배의 말씀을 그대들은 듣고 나갈 때 언제든 지, 명심하도록 하라' 고 말씀하셨어요. 너무나 훌륭하신 신사분이셨어요...... 그 런데 주드는 고양이도 웃을 정도로 사람을 웃겨댔어요! 그렇게 당신이 똑바로 걸으려고 하고 또 당신의 진지함이 지나쳐서 당신이 마치 재판관 견습이라도 하 고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거예요. 당신이 제 손가락을 더듬어 찾는 것을 보고 당신의 눈에는 모든것이 이중으로 보이고 있다는 걸 알게 됐 죠." "난 뭐든 다 하겠다고 했었지 - 여자의 명예를 구하기 위해선." 주드는 중얼거렸다. "그래서 내가 한 겨야!" "자아, 어서, 오셔서 식사를 하세요." "난, 저어...... 위스키를 좀더 마시고 싶어." 주드가 둔중하게 말했다. "소용없어요. 지금은 안 돼요. 남은 술도 더는 없어요. 차를 마시게 되면 술이 깨게 되죠. 그렇게 되면 종달새처럼 상쾌해질 거예요." "알았다구. 내가 한 거지 - 당신과의 결혼을, 그 여잔 말했었지. 난 당신과 재 혼해야 한다구. 그래서 곧 하고만 거야. 이게 진정한 좋교인가! 하! 하!" 6-8 미가엘제의 날이 오는가 싶더니 곧 지나가 버렸다. 두 사람의 재결합 후 아내 의 아버지 집에서 잠시 살고 있던 주드와 아라벨라는 중심가에서 가까운 어떤 주택의 맨꼭대기 층으로 옮겨 그곳에서 셋방살이를 있었다. 그 일이 있은 직후 2, 3개월 동안 주드는 2, 3일밖에 일을 하지 않았지만, 건 강이 나빠지더니 이제는 불안전한 상태에 있었다. 그는 난로 앞의 의자에 앉아 끊임없이 기침을 해댔다. "다시 한번 당신가 결합하려고 그토록 애를 쓴 보람 덕택에 전 지금 득을 톡 톡히 보고 있군요!" 아라벨라가 그에게 말하고 있었다. "온전히 내가 당신을 돌보아야 할 지경까지 이르렀어요! 내가 검은 냄비나 소 시지를 만들어서 시내로 팔러 돌아다녀야 할 판이에요. 오로지 병든 남편의 병 구완을 하려구요. 내가 떠맡아야 할 까닭이 전혀 없는 병든 남편을 말이에요. 왜 당신은 건강을 돌보지 않으셨죠? 사람을 이렇듯 속이다니. 식을 올릴 때만 해도 당신은 아주 건강하셨단 말예요!" "아. 괜찮았었지!" 쓴웃음을 지으며 주드가 말했다. "처음 우리가 부부생활 시작했을 당시 당신과 내가 함께 죽였던 그 돼지가 생 각나는군. 내가 품었던 부질없던 감정말이야. 그런 짓을 했던 나에게 만일 최대 한의 자비가 주어진다면 내가 그 돼지에게 했던 행동들이 이런저런 형태로 똑같 이 나에게 일어났어야 했다는 기분이들어." 요즈음 그들 사이에서 오가는 대화라고는 고작 이런 종류의 것뿐이었다. 그들 이 이상한 커플이라는 남의 소문을 듣게 된 하숙집 주인은 과연 두 사람이 정식 결혼을 했는지를 의심하고 있었다. 어느날 저녁, 리큐어를 약간 마신 아라벨라가 주드에게 키스하는 장면을 보고 난 후로 집주인은 더욱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는 두 사람에게 나가달라고 할 시기를 노리고 있었던 참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발에 집주인은 거친 말투로 남자를 매도하는 여자의 열변을 우연히 엿듣게 되었다. 그리고는 여자가 끝내 남자의 머리를 향해서 구두를 내동댕이치는 소리를 듣고 나서 이들이 진정한 부 부라는 것을 깨닫고서 더 이상 손가락질 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으며 그 후로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주드는 건강은 그 이상 좋아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매우 주저하면 서 아라벨라에게 그를 위해 어떤 임무 하나를 수행해 주도록 요청했다. 그녀는 어떤 용무인가 냉담하게 물었다. "수에게 보낼 편지를 써 줘요." "어머, 도대체...... 무엇 때문에 저에게 편지를 쓰게 하지죠. 더구나 그 여자 앞으로." "어떻게 지내는지 안부를 전하고, 나를 보러 와달라고 말야. 내가 아프니까. 다시 한번 그녀를 만나고 싶다고." "나에게 그런 일을 해달라고 부탁해서 합법적으로 아내인 나를 모욕하다니, 당신답군요!" "당신을 모욕하지 않기 위해서 당신에게 편지를 써달라고 부탁하는 거야. 알 다시피, 난 수를 사랑해. 완곡하게 말하고 싶지는 않아. 사실은 사실일 뿐이지 - 내가 수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 당신 모르게 그녀에게 편지를 보내는 방법을 굳이 찾는다면 열 가지 이상은 쉽게 찾을 수 있겠지. 그러나 당신의 눈을 속이 고 그리고 그 여자의 남편을 속여가면서까지 그러고 싶지는 않았어. 만나러 와 달라구 당신이 편지를 써준다면 적어도 비밀스러운 일이라는 의심은 받지 않겠 지. 그 여자에게 원래의 기질이 남아 있다면 그녀는 와줄 거요." "도대체 결혼이란 것에 대해 존중하는 마음이 전혀 없군요. 부부의 권리나 의 무 같은 것들 말예요." "내 견해가 어떻든, 그런 것은 문제가 안돼 - 아무렴, 나 같은 존재에게는! 지 금처럼 한 발을 묘지 속에 쑤셔 넣고 있는 그런 나를 단지 30분 정도 보러 와 줄 사람에게 내 지론이고 견해 같은 게 무슨 상관이냔 말이야!......어서 아라벨 라, 제발 좀 써줘!" 그는 그녀에게 호소했다. "허심 탄회한 내 심정에 약간의 관용을 베풀어 보답을 해줘!" "그렇게 헤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꼭 한번인데도 안 된다는 건가? 제발 부탁이오!" 육체적인 쇠약이 그의 모근 위엄을 앗아가고 말았다는 사실을 그는 느꼈다. "무엇 때문에 당신이 아프다는 걸 그 여자에게 알리고 싶으신 거예요? 그 여 잔 당신을 만나고 싶어하지 않을 텐데요. 침몰 직전의 배를 버리고 도망친 생쥐 가 바로 그녀예요!" '그만 둬, 그만 두라구!" "이런 바보에게 매달려 살다니...... 나도 어지간히 바보같은 년이지! 그런 매 춘부 같은 년을 집에다 들여놓기만 해보라지, 가만 안둘테니까!" 그 말이 입에서 튀어나온 순간 주드는 의자를 박차고 벌떡 일어나서 아라벨라 가 자기 위치를 채 잡기도 전에 거기에 있던 작은 취침용 의자 위에다 그녀를 밀쳐버렸다. 그리고 그는 아라벨라 위에 올라타 소리쳤다. "그런 소릴 한 번만 더 해봐. 죽여버릴 테니까. 당장 이 자리에서! 죽여서 당 장 득을 보게 되는 사람은 바로 나야 - 내 자신의 죽음 같은 건 그 중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소득이지. 지금 내가 하는 말을 헛되게 듣다간 엄청난 일을 겪고 말 거야!" "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죠?" 아라벨라가 헐떡이며 물었다. "그 사람 얘기는 두 번 다시 입밖에 내지 않겠다고 약속해." "좋아요. 약속할게요.' "지금 한 말을 그대로 믿기로 하지." 그는 경멸조로 말하면서 그녀를 놓아주었다. "그러나 당신의 약속이 얼만큼이나 가치가 있는지는 모르겠군." "돼지 한 마리 제대로 못 죽이는 당신이 날 죽이겠다구!" "아, 그 점에선 내가 졌어! 그래, 난 널 못 죽여, 아무리 화가 나 있어도, 얼마 든지 비웃으라구!" 그리고 그는 몹시 심하게 기침을 했다. 소름끼칠 정도로 창백해진 그가 털썩 주저앉자 아라벨라는 가격을 감정하는 사람의 눈빛으로 그의 생명을 측정하고 있었다. "문병오도록 편지 쓸게요." 아라벨라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 여자가 여기에 와 있는 동안엔 저도 이 방에서 당신과 함께 있어도 좋다 고 허락해 주신다면." 주드의 성정의 유약한 측면, 수를 만나고 싶다는 욕망이 지금의 이 제안에 대 해 그로 하여금 저항불능으로 만들어 놓고 말았다. 무척 화가 나긴 했지만...... 그래서 그는 숨을 몰아쉬며 대답했다. "응, 좋아. 와 달라고 써서 보내줘!" 저녁 때 그는 그녀에게 편지를 썼는지를 물었다. "그래요." 그녀가 대답했다. "짧게 썼어요. 당신이 앓고 있으니, 내일이나 모래쯤 와 줬으면 한다구요. 그 걸 아직 부치지는 않았지만." 그 다음 날 주드는 과연 아라벨라가 편지를 부쳤는지가 궁금했지만 그것을 입 밖에 내어 묻지는 않았다. 물 한 방울, 빵 한 조각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어리석 은 '희망'이 그를 기대감으로 불안정하게 만들어 놓았다. 그는 기차의 도착 시간 을 다 알고 있었고 그 시각마다 그녀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지 않을까 하고 귀 를 기울였다. 그녀는 끝내 오지 않았다. 그러나 주드는 그 일에 대해 아라벨라에게 다시 말 하려 들지 않았다. 그는 그 다음날도 내내 희망과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었다. 그래데도 수는 나타나지 않았고 간단한 응답조차 전혀 보내주지 않았다. 그래서 주드는 마음 속으로 결론을 내렸다 - 아라벨라는 써 놓기는 했지만 결코 부치지 않았다고, 그녀의 태도에는 그러한 기미가 있었다. 급격하게 몸이 쇠약해진 그는 그녀가 만나러 와 주지 않은 것에 대해 낙담하여 눈물을 흘렸다. 사실상 그의 의심은 충분한 근거가 있었다. 다른 간호사들과 마찬가지로 아라벨라도 병자의 어떤 요구에도 상관없이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병자를 안정시켜야 한다는 생각 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숙원이나 억측에 대해서 아라벨라에게 두 번 다시 입을 떼지 않 았다. 무언의 정체모를 어떤 결의가 그의 마음 속에서 다져졌고 그것이 그에게 힘을 주지는 못했지만 안전과 평온을 주게 되었다. 어느날의 정오, 두 시간 정도 집을 비웠다가 방에 돌아온 아라벨라는 비어 있 는 의자를 보게 되었다. 그녀는 털썩 침대에 주저 앉아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도대체 지금 이 시간에 어디를 갔단 말이야!" 그녀는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날 아침 내내 북동풍이 몰고 온 휘몰아치듯 내리는 비가 다소 간헐적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창에서 몰아치는 비를 내다보고 있으니 중환자가 거의 확실한 죽음의 길로 감히 외출했다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외출했을 것이라 는 확신은 아라벨라를 사로잡았고 그것은 그녀가 집안을 뒤져보고 났을 때 확실 해졌다. "이런 바보는 제멋대로 하게 내버려 둬!" 그녀가 화가 나서 소리쳤다. "이제 나로서는 더 이상 어쩔 수가 없어." 주드는 그 순간에 알프레스턴으로 가고 있는 기차 속에 있었다. 그는 이상한 복장을 하고 있었으며 설화석고에 새겨놓은 기념비 상처럼 창백해진 모습으로 인해 다른 승객들의 눈길을 받고 있었다. 1시간 후쯤에는 긴 방한외투 위에 모포를 덮어 쓴 수척해진 그의 모습이 우산 도 없이 메리그린 마을로 가는 5마일의 길을 따라 걸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 었다. 그를 지탱해 주는 단호한 목적의식만이 그의 얼굴에 나타나 있었다. 허약 한 몸은 그러한 목적에 보잘것 없는 기초 외에는 제공해주지 못하고 있었다. 오르막길로 접어들 때 그는 몹시 숨이 차올랐지만 온갖 힘을 짜내고 있었다. 그리고 3시 반 경에는 메리그린의 낯익은 우물가에 멈추어 섰다. 비로 인해 마 을 사람들은 모두 집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주드는 남의 눈에 띄지 않게 풀밭을 가로질러 교회 쪽으로 갔고 그 건물의 문 이 열려져 있음을 알았다. 그곳에 서서 그는 안쪽의 학교를 바라보았다. 학교로 부터 그는 아직 '삼라만상의 고민'((신약성서) 로마서, 8장 22절에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다 아니니' 의 장면을 인용) 의 신음소리에 대해 이제 배우기 시작하는 어린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의 음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자 학교에서 작은 남학생 한 명이 나왔다. 어떤 일 이 있어 조퇴를 허락받은 학생 같았다. 주드가 손을 들자 그 애가 가까이 왔다. "부탁이 있는데, 교장 선생님 사택에 가서 필로트슨 부인에게 여쭈어 주겠니 - 지장이 없으시다면 잠시 교회까지 와 주실 수 없으실까하고." 그 학생이 떠나고 잠시 후에 주드는 그 소년이 사택의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 리를 들었다. 그는 천천히 교회 안으로 들어섰다. 허물어진 옛날 건물에서 떼어 내 새로운 벽면에 꽂아놓은 조각 장식 두세 개를 제외하고 나머지 모든 것들이 새로웠다. 그는 그러한 과거의 유물 옆에 서 있었다. 그것들은 선조나 수의 선조 였다가 그 고장에서살다 죽어 없어진 친척들같이 보였다. 마구 쏟아지는 빗줄기에 더해지는 물방울 소리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경쾌한 발걸음 소리가 현관 쪽에서 들려오자 그는 뒤돌아보았다. "아......설마 당신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설마......아, 주드!" 그녀의 숨결이 한번 히스테릭해지자 그 상태는 계속 유지되었다. 그는 한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그녀는 급히 원상태로 뒤로 물러섰다. "가지 말아요...... 가지 말라니까!" 그는 애원했다. "이것이 내겐 마지막이야! 당신의 집으로 가는 것보다 여기가 방해가 안될 것 이라 생각했소. 더욱이, 이젠 두 번 다신 안올 거야. 그러니까 너무 무자비하게 대하지는 말라요. 수, 수! 우린 의문에 휘말려들고 있는 거야. 그러나 '의문은 죽 이는 거요'(고린도후서, 3장 6절)라는 것을 생각해야만 해!" "여기 있겠어요. 냉정하게 대할 수는 없지요!" 그녀가 말했다. 그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에 대해 허락할 때 그녀의 입술은 떨 렸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렇지만 당신은 왜 오신 거예요. 그리고 왜 이런 잘못된 일을 하시는 거지 요? 그렇게 올바른 행동을 해놓구서?" "올바른 일이라는 게 뭐요?" "아라벨라와 재혼한 거 말예요. 알프레드스턴의 신문에 나와 있던데요. 그 여 자는 - 본래의 의미에서 - 주드, 당신 사람이었죠. 그러니까 당신은 아주 잘 하 셨어요. 아, 잘하셨어요! 그 점을 다시 생각하셔서 - 다시 당신의 부인으로 삼으 셨다는 건." "하늘에 계신 신이시여...... 내가 와서 그녀에게 들어야 하는 말이 고작 이것 인가요? 내 일생에서 저지른 일 중에 가장 타락하고 비도덕적이며 부자연스런 일이 있다면 그것은 제대로 옳은 일을 했다고 당신이 말하고 있는 아라벨라와의 음탕한 계약이었어! 그리고 당신도 마찬가지야. 당신은 자신을 필로트슨 부인이 라고 부르고 있어! 그 사람의 아내라니! 당신은 내 아내인데." "그러지 말아요. 나를 당신으로 부터 도망치게 하지 말아요! 이젠 더 못 참겠 어요! 나는 이미 마음을 정리했어요." "왜 그런 결심을 하게 됐는지 나로선 이해가 가질 않아 - 왜 그런 생각이 들 게 됐는지 - 이해가 안가!" "그 일에 대해서는 이제 잊어 버리세요. 그인 나에게는 매우 친절한 남편이죠. 그래서 난 스스로 이겨 내려고 투쟁하고 몸부림치며, 가슴조이고, 기도해 왔어 요. 그리고 이제야 내 몸도 완전한 복종상태에 놓이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이젠 안 돼요. 당신이 그래선 안 돼요. 당신의 눈도 언젠가 깨어날 때가 있을 거예 요." "아, 보고 싶었던 나의 바보! 당신의 이성은 어디로 갔단 말야? 당신의 그 귀 한 능력을 어쩔 수 없이 잃고 만 듯하군. 당신가 같은 감정상태인 여자는 당신 의 지성에 아무리 호소해 본들 소용없는 짓이라는 걸 내가 몰랐었더라면, 당신 과 토론하였을지도 몰라. 아니라면, 이런 일로 많은 여성들이 그러하듯이, 당신 도 자기 자신을 기만하고 있는건가? 그리고 겉치레뿐이라는 것을 실제로 믿지 않고서 짐짓 꾸민 신념이 불러일으킨 사치에 탐닉하고 있을 뿐이 아니겠는가?" "사치라니요! 어떻게 그렇게 잔인한 말씀을 하실 수가 있어요!" "슬프고도 부드러운 그대여 - 처음 우리가 만났을 때의 그 전도 유망했던 인 간적인 지성은 너무 슬프게도 사라지고 말았군! 세상의 인습에 대한 당신의 경 멸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나는 용감하게 싸우다 죽고 싶었는데!" "주드, 날 망가뜨릴 생각이신가요. 그냔 들어넘길 수 없는 모욕이로군요! 어서 나라줘요!" 그녀는 재빠르게 돌아섰다. "가구말구. 다시는 당신을 만나러 오지 않을 거야. 설령 만나러 올 수 있는 체 력이 있다 해도...... 그 힘도 곧 없어지고 말 테지만, 수, 수, 당신은 남자의 사 랑을 받을 만한 사람이 못돼!" 그녀의 가슴은 벅차게 복받쳐오르고 또 무너져내리곤 했다. "그런 말씀을 하시는 당신을 난 도저히 못 참겠어요!" 그녀는 그렇게 내뱉고서 잠시 눈길을 주드에게 모으다가 충동적으로 홱 돌아 서 버렸다. "그만 두세요. 나를 나무라지 마세요. 키스해 줘요. 아. 키스해 줘요. 몇 번이 고! 그리고 말해 주세요. 나는 비겁한 사람도, 몹쓸 사기꾼도 아니라구요 - 그런 말을 난 참을 수가 없어요!" 그녀는 그에게로 달려들어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까이 갖다대며 말을 이었다. "난 꼭 당신에게 말해 둬야겠어요 - 아, 꼭 해야겠어요. 나의 사랑스런 애인 에게! 그건 단순한 - 교회의 결혼에 불과했어요. 표면상의 결혼 말예요! 그는 처음에도 그런 것을 제안했어요!" "어째서 그런 일이?" "이름뿐인 결혼만이라구요. 내가 그분한테로 돌아온 후로도 그 이상으로 진전 된 일은 전혀 없었어요!" "수!" 그가 소리쳤다. 양팔로 그녀를 끌어안고서 그는 그녀의 입술에 멍이 생길 정 도로 키스를 퍼부었다. "비참한 신세로도 행복을 누릴 수 있다면, 지금 바로 이 순간일 거야! 이제 당신의 지론대로 신성한 모든 것의 이름으로 나에게 진실을 말해줘. 거짓말은 하지 말고, 아직도 날 진실로 사랑하고 있소?" "사랑하고 있어요! 당신이 너무도 잘 알고 계시잖아요!...... 그렇지만 난 그래 선 안 돼요! 마음 같으면 그렇게 하고 싶지만, 당신의 키스는 돌려드리지 않을 거예요!" "그렇지만 그렇게 해줘!" "그렇지만 몹시 그리웠던 님! 당신의 안색이 좋지 않군요!" "당신의 안색도 좋지 않아! 자아, 어서 한번 더, 죽어버린, 당신과 나의 어린 자식들을 기념하기 위해서라도!" 그 말은 그녀에게 타력을 주었고 그녀는 머리를 푹 숙여버렸다. "안 돼요. 이런 짓을 계속해선 안돼요!" 그녀가 헐떡이며 말했다. "아니, 아니에요. 여보, 돌려드릴게요. 하구 말구요!...... 이렇게 되면 나는 나 의 죄 때문에 제 자신을 영원히 미워하게 될 거예요!" "아냐, 나의 마지막 호소인 거야. 내 말을 들어! 우리 둘은 잠시 자신들을 망 각한 채로 제각기 재결합을 하게 된 거지. 난 술에 취한 김에 그렇게 했구. 당신 도 마찬가지야. 난 진에 취해 있었고, 당신은 교리에 취해 버렸던 거야. 어떤 식 으로든 고귀한 환상을 잃게 되는 거야...... 그러나 우리들이 지은 과오를 팽개치 도록 하자구, 그리고 도망을 치자구!" "안 돼요. 두 번 다신, 안 돼요...... 왜 날 이렇게 유혹하시는 거죠. 주드! 너 무나 무자비해요!...... 그러나 이제 나는 나 자신을 극복했어요. 날 따라오지 마 세요. 날 보지도 마시구요. 제발 날 내버려두세요. 부디 가엾게 생각하셔서!" 그녀는 교회의 동쪽 끝으로 뛰어가고 말았다. 그리고 주드는 그녀의 요구대로 그녀의 뒤를 쫓지는 않았다. 그는 뒤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그의 모포를 집 어들고서 곧바로 나와 버렸다. 그가 교회의 서쪽 입구를 통과했을 때 그의 기침 소리가 창을 후려치는 빗소리에 섞인 채로 그녀에게 들여왔다. 그녀를 얽어매는 족쇄에 의해 아직도 진압되지 않은 인간적인 애정의 마지막 충동에 끌려 그녀는 벌떡 일어났다. 마치 그를 뒤쫓아가 구원의 손을 내뻗고 싶은 것처럼, 그러나 그녀는 다시금 무릎을 끓고 말았다. 그리고 그가 일으키는 소리들이 사라져 없어질 때까지 손 으로 양쪽 귀를 막아버렸다. 그때쯤 그는 정원의 모퉁이까지 와 있었다. 그곳에서 들판을 가로질러 작은 길이 뻗어 있었다. 소년 시절에 그가 까마귀떼를 쫓던 그 들판이었다. 그는 뒤돌 아서서 수가 있을 교회의 건물을 한번 더 바라다 보았다. 그리고나서 그의 눈이 두 번 다시는 그 풍경을 보지 못하리라 생각하면서 그곳을 지나쳐 버렸다. 웨섹스에는 늦가을과 초겨울에 가장 추위를 느끼게 되는 곳이 여기저기에 많 이 있었다. 북풍이나 동풍이 불어올 때 그 중에서 제일 추운 곳은 바로 그 '갈색 의 집' 옆 고지의 맨꼭대기 언저리였다. 이것에서 알프레드스턴으로 가는 가도가 옛날의 '언덕배기 기' 과 교차되고 있었다. 이곳은 겨울이 다가옴을 알리는 첫 진눈개비와 오는 대로 쌓인 눈과 봄 서리 등이 녹지 않은 채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다. 이곳에서 주드는 북동에서 불어닥치는 비바람을 무릅쓰고 함빡 젖어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더욱이 조금 전과는 달리 저하된 체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늦어지는 걸음걸이는 체열을 유지하기에도 불충분한 정도였다. 그는 낯익은 이정표 앞에 도달했다. 비는 내리고 있었지만 그는 모포를 펼쳐 놓고 그곳에 누워 잠시 쉬었다. 다시 길을 가기 전에 그는 그 돌의 뒤편으로 돌 아가 자기 자신이 새겨놓았던 흔적을 더듬어 찾았다. 그가 새긴 명은 그대로였지만 이끼에 덮혀 거의 사라질 듯했다. 그는 그와 그 리고 수의 선조이기도 한 어떤 사람이 처형되었다는 교수대가 서 있는 지점을 지나쳐 언덕길을 내려갔다. 알프레드스턴에 도착했을 때 날은 어두워져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차 한잔을 마셨다. 그는 마시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한 자신의 몸으로 뼛속까지 스며든 심 한 추위를 도저히 견뎌낼 수가 없었다. 집으로 가기 위해서 그는 앞으로 증기궤 도차로 여행을 해야 할 판이었고, 두 개의 철도지선을 이용해야 하며 환승 정거 장에서는 무작정 기다려야 했다. 그가 10시까지 크리스트민스터에 도착하기는 무리였다. 6-9 플랫폼에 아라벨라가 서 있었다. 그녀는 주드를 아래 위로 훑어보았다. "당신, 그 여자 만나러 갔다 오는 거죠?" "만나고 왔어." 주드가 추위와 피로로 비틀거리면서 대답했다. "그럼, 이젠 집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게 최선일 거예요." 그가 걷기 시작하자 그의 몸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그리고 기침을 하는 동 안에 벽에 몸을 기대어 자신을 지탱해야 하는 정도였다. "당신이 혼자 힘으로 저지른 일이에요. 당신이! 이렇게 될 줄 뻔히 알았으면 서 그랬는지도 모르지만요." "물론 그랬지. 혼자서 하려고 했지." "뭐요? 그렇다면 자살하려고?" "분명히." "어머, 이럴수가! 여자 때문에 자살을 하다니!" "내 말 좀 들어봐요. 아라벨라. 당신은 자신이 더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 그리고 또 육체적인 의미에서는 그럴지도 모르고. 당신이 나를 밀어 구주의인형 처럼 벌렁 나자빠지게 할 수도 있겠지. 당신은 그 편지를 보내지 않았어. 그런데 난 그러한 당신의 행위를 원망할 수는 없었어. 그러나 난 다른 면에 있어서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약하지는 않아. 난 결심했지. 폐렴으로 방안에 갇히고만 사내. 더욱이, 어떤 특정한 여자를 만나는 일과, 그 후에 죽는 일, 이 세상에서 남겨진 이 두개의 소망밖에 없는 사내가 이와 같이 빗속을 여행하여 두 개의 소 원을 단번에 말끔히 이룰 수만 있다면...... 내가 해 버렸지. 마지막으로 난 그녀 를 보고 왔어. 그리고 내 자신도 끝맺음을 해야지.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는데도 열병을 앓으며 지금까지 끌어온 생명에 종말을 지어야지!" "어머나, 당신은 꽤나 고귀한 말을 하시네요! 뭐 따뜻한 마실 것 좀 안 드시 겠어요?" "고맙지만, 괜찮소. 집으로 갑시다." 두 사람은 조용한 대학 기숙사의 옆길을 따라 걸어갔다. 그리고 주드는 멈추 어 섰다. "뭘 보고 있어요?" "바보 같은 환상들. 이 길을 처음 거닐었을 때 보았던 고인들의 망령들을 난 지금 어느 정도는 보고 있지. 이번이 내게는 마지막 나들이인데도!" "당신이란 사람은 정말 기묘한 사람이군요!" "난 망령들을 본 듯해. 그들이 법석을 떠는 소리도 들은 것 같고. 난 옛날에 그랬던 것처럼 이제는 그들을 존경하지는 않아. 나는 그들을 반도 믿지 않아. 신 학자, 변론학자와 그와 동류의 형이상학자, 거만한 정치가 같은 친구들은 이젠 나의 흥미를 끌지 못해. 냉엄한 현실에 묻혀서 말아서 형체도 없어지고 만 망령 들뿐이니까!" 가로등 불에 비친 비에 젖은 시체처럼 보이는 주드의 표정은 마치 무인지경에 서 사람을 바라볼 때의 바로 그 표정이었다. 이따금 그는 그곳에서 나오는 사람 들을 지켜보는 것처럼 아치 통로 옆에 멈추어서곤 했다. 그리고 그는 안에 있는 낯익은 얼굴들을 식별이라도 하는 사람처럼 창을 유심히 바라보곤 했다. 그는 온갖 소리를 듣고 있는 듯했다. 그는 마치 그들이 내는 소리의 의미를 종합이라도 하는 듯한 표정으로 되뇌었 다. "그 사람들이 비웃고 있는 것 같아!" "누가 말예요?" "아참, 내가 혼잣말을 하고 있었지! 대학 기숙사의 아치 통로에도, 창구에도, 여기 이 일대는 유령투성이지. 그 유령들이 예전엔 호의를 베풀어 주기도 했어. 그 중에서도 에디슨과, 기번과, 존슨과, 브라운 박사와 그리고 켄 승정." "어서 가요, 정말! 유령이라니! 이 부근에는 빌어먹을 경찰관 외엔 산 자도 죽 은 자도 한 사람도 눈에 띄지 않아요! 이렇게 텅 비어 있는 거리는 본 적이 없 어요." "환상이야! '자유의 시인'(셀리를 일컬음)은 곧잘 여기를 산책했던 거야. 그리 고 또 위대한 '우울의 해부가'(영국 17세기의 목사이면서도, 기서를 쓴 로버트 버튼(1577~1640)을 일컬음)가 바로 저곳에!" "그들에 대한 얘기는 듣고 싶지도 않아요! 지겨워요." "월터 롤이(1522?~1618: 엘리자베드조에 아메리카에의 식민을 계획하고 탐험 했던 영국의 정치가, 문인)가 저 길에서 나에게 손짓하고 있어. 위클리프도, 하 베이도, 후커도, 아놀드도 그리고 '시사논설책자파' (시사논설책자)를 간행해서 구교와 신교의 중간쯤에 위치하는 그리스도교를 설교한 옥스퍼드 운동을 했던 사람들, 세 사람이 그 주역) 망령의 유령떼들도 한패거리가 되어서 마이야." "그 사람들의 이름은 알고 싶지가 않아요. 정말! 죽어 없는 사람들을 내가 무 엇 때문에 상관하겠어요? 맹세코 당신은 술 취했을 때가 안 취했을 때보다 더 제정신이 있어요!" "나 잠시 쉬어야 되겠어!" 난간에 매달려 멈추어 섰을 때, 그는 어떤 대학의 정면 높이를 눈대중했다. "이건 오래된 루불릭 대학이지. 그리고 저건 살카퍼거스 대학이고, 저 작은 길 안쪽에 있는 게 크로지어 대학이고, 튜더 왕조 대학이지. 그리고 저 언저리는 전 부가 카디널 칼리지로 기다란 정면과, 치켜뜬 눈썹형 장식이 달린 창문들이 달 려 있지. 나와 같은 석공들의 노력으로 종합 대학으로서의 의젓한 면모를 갖추 고 있는 거야." "어서 오기나 해요. 오늘밤에 제가 잘 보살펴 드릴게요!" "좋았어. 그렇게 되면 귀가하는 데 도움이 되지. 카디널 칼리지의 저지에 있는 풀밭에서 냉랭한 안개가 엄습해 오는 느낌이 드니까. 마치 사신의 손톱이 이 내 몸에 파고드는 것아. '안티고네'(소포클레스의 희랍 비극의 여주인공)가 말했듯 이, 나는 산 사람 사이에도 유령들 사이에도 살지 않고 있다 그건가. 그러나 아 라벨라, 내가 죽고 나면, 당신은 내 혼이 이 언덕배기의 건물들 사이를 휘저으며 헤매고 다니는 것을 보게 될 것이요!" "흥, 그래도 당신은 결코 죽지 않아요. 아직은 그런 대로 힘이 있으니까요. 이 늙은 양반아." 메리그린에는 밤이 이슥해 있었고 오후부터 내리던 비는 꺾일 기세가 보이지 않았다. 주드와 아라벨라가 집을 향해 크리스트민스터의 거리를 걷고 있을 무렵, 과부 에들린은 풀밭을 가로질러 교장 사택의 뒷문을 열었다. 이 노파는 잠자기 전인 그즈음에 으레 그랬는데 수가 설거지하는 일을 도와주기 위해서였다. 수는 부엌에서 어쩌할 바를 모르고 갈팔질팡하고 있었다. 좋은 주부가 되려고 애썼지만 원래가 그렇지를 못했고, 자질구레한 집안 일에 짜증이 났다. "귀여운데 그래. 왜 자신이 직접 일을 하지? 내가 일부러 이렇게 와 주었는 데! 알고 있었잖아. 내가 온다는 걸." "아, 모르고 있었어요. 잊어버렸죠! 아니, 잊진 않았었지만 내 마음을 다져보 려고 그랬어요. 9시부터 계단을 문지르고 있었어요. 우리 집 일은 꼭 내 손으로 해나가야 하니까요. 부끄럽게도 지금까지는 내팽개쳐 왔었지만!" "왜 당신이 해야 하지? 그분이 더 좋은 학교도 할당받게 되고, 얼마 안 있어 교구목사가 되실 게구, 그러면 가정부를 둘씩이나 둬야 할텐데. 그 예쁜 손을 망 가뜨리게 하다니 너무 아엾어라.' "예쁜 손이라는 말씀은 하지 마세요. 에들린 부인, 저의 이 예쁜 몸이란 건 이 미 다 망가져 버렸어요!" "별말을 다 하네! 자네는 몸다운 몸을 갖추지 못했지! 혼만 남아 있는 것같이 보이는데. 그렇지만, 어쩐지 오늘 저녁따라 좋지 않은 일이 있는 것 같아. 바깥 주인 기분이라도 나쁘신가?" "아녜요. 한번도 그런 일 없었어요. 그인 일찍 잠자리에 드셨어요." "그럼 또 왜 그러지?" "말씀드리지 못하겠어요. 제가 오늘 무언가를 잘못했어요. 그걸 지워버리고 싶 어요...... 저어, 이것은 얘기해 드릴게요. 오늘 오후에 주드가 여기에 왔었어요. 그리고 전 여전히 그일 사랑하고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아, 끔찍해라! 그 이상 은 말할 수 없어요." "아!" 에들린 부인이 말했다. "어떻게 될 건지를 얘기했잖았어!" "그렇지만, 그렇게는 안 돼요! 남편에겐 그이가 방문했었단 얘기를 아직 안했 어요. 그런 일로 걱정시켜 드리고 싶지가 않아서요. 더 이상은 주드를 만날 생각 이 없으니까요. 그러나 리처드에 대한 의리를 생각해서라도 제 양심에 부끄럽지 않도록 하겠어요. 속죄를 행함으로써, 궁극에 이른 행동이죠. 그렇게 해야만 해 요!" "나라면 그렇게 안하겠어. 그분 역시 그렇게까지는 안해도 된다고 동의하셨으 니. 요 3개월간은 아무 탈없이 잘 보냈잖아." "그래요. 그는 제가 하자는 것에는 동의하죠. 그런데 오늘 일만은 그가 양보해 주길 강요해서는 안될 방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 자신도 나의 그런 행위를 허용해서는 안 돼죠.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무서운 일이죠. 그러나 남편에게 저 는 좀더 정직해야 해요. 아, 전 왜 그렇게 결단성이 없었을까요!" "대체 주인의 어디가 그렇게 맘에 안드는 것일까?" 에들린 부인이 호기심에 차서 물었다. "당신에게 말할 수는 없어요. 뭔가가 있어요...... 말하지 않겠어요. 슬픈것은, 누구도 제가 지니고 있는 감정을 이유로 인정해주려 들질 않는다는 거예요. 그 러니까 저에겐 변명의 여지가 없는 거예요." "그런 감정을 주드에게 털어놓은 일이 있었어?" "한번도 없었어요." "우리 땐 남편들이 하는 묘한 얘길 다 들었지."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성인들께서 이 지상에 계셨을 때 악마들이 밤이면 남편들의 형체를 하고 나 타났다는 거야, 그리곤 가엾은 여자들을 온갖 종류의 고생과 재난 속에 빠뜨리 곤 했다지. 그런데 왜 그런 생각이 별안간 내 머리에 떠오르게 됐는지 모르겠네. 고작 옛날 얘기에 지나지 않는데...... 오늘 저녁은 무슨 비바람이 이렇게 퍼붓 지! 그런 그렇구, 서둘러서 일을 변화시키진 말아야 해. 잘 생각해서 해야지." "아녜요! 전 약한 마음에 채찍질을 해서 그이를 좀더 정중하게 대해 드려야겠 다고 결심해 버린 걸요. 지금이어야만 해요. 한시바삐, 제가 쓰러지기 전에!" "하고 싶지 않은 일은 억지로 안하는 것이 좋을 성싶어. 어떤 여자도 거기까 지 할 거라고 생각되지는 않아." "그게 저의 의무죠. 잔을 바닥까지 다 마셔버릴 거예요!" 그리고 반 시간쯤 지나서, 에들린 부인이 보닛을 쓰고 숄을 걸치고 떠나가려 하자, 수는 막연한 공포에 사로잡힌 것같이 보였다. "아녜요, 아녜요, 가시지 마세요. 에들린 부인." 그녀는 크게 뜬 눈으로 애원했고, 흠칫 신경질적으로 뒤를 돌아다 보았다. "그러나, 이젠 잘 시간이야. 애기씨." "그래요 하지만, 작은 빈 방이 하나 있거든요. 제가 쓰던 방 말이에요. 거기 같으면 금방 쓸 수가 있어요. 제발 부탁이니 있어주세요. 에들린 부인! 내일 아 침에 당신을 만나고 싶을 거예요." "아, 그럼 좋아. 그렇게 원한다면, 난 상관없어. 비워두든 않든, 우리 집에 무 슨 변은 없을 테니까." 그러자 그녀는 여기저기의 문을 잠그었고, 두 사람은 2층으로 함께 올라갔다. "여기서 기다려 주셔요. 에들린 부인, 제가 혼자서 잠깐 제 방을 들여다볼께 요." 층계참에 과수댁을 남겨두고 수는 메리그린에 도착한 이래로 사람을 안 들이 고 혼자 쓰던 방으로 들어서더니, 조용히 문을 밀어 닫고는 침대 옆에 2, 3분 동안 무릎을 끓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일어섰고, 베개 위에서 나이트 가 운을 집어들어 옷을 갈아입고 나서 에들린 부인에게로 왔다. 반대쪽의 방에서는 남자의 코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에들린 부인에게 저녁인사를 했고, 과수 댁은 방금 수가 비운 방 안으로 들어갔다. 수는 다른 방의 손잡이를 돌렸으나, 그 순산 실신 상태에 휩싸인 듯 방 바깥 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다시 몸을 일으켜서 그녀는 문을 바쯤 열고, "리처드"하 고 불렀다. 그 이름이 입에서 새어나왔을 때 그녀는 두드러지게 몸을 떨고 있었 다. 수는 다른 방의 손잡이를 돌렸으나, 그 순산 실신 상태에 휩싸인 듯 방 바깥 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다시 몸을 일으켜서 그녀는 문을 바쯤 열고, "리처드"하 고 불렀다. 그 이름이 입에서 새어나왔을 때 그녀는 두드러지게 몸을 떨고 있었 다. 코고는 소리가 잠시 동안 멈추었지만 그는 별달리 대답은 하지 않았다. 그녀 는 안심하는 듯하더니 황급히 에들린 부인이 있는 방으로 되돌아와서 물었다. "주무셔요. 에들린 부인?" "아니." 문을 열면서 과수댁이 말했다. "늙어서인지 동작도 느림보가 돼서, 옷 벗는 데도 꽤 시간이 걸리거든. 아직도 점퍼 스커트의 끈도 못 풀었어." "안, 안 들려요! 하마터면, 하마터면......" "뭘 말하는 거야?" "혹시, 돌아가신 것은 아닌가 해서요." 수는 숨을 헐떡거렸다. "만약 그렇다면, 전 자유의 몸이 될 수가 있겠죠. 그리고 주드에게도 갈 수 있 겠구!...... 아, 안 돼. 그녀를 잊고 있었어. 그리고 하느님이 계시는 걸!" "어디 가서 한번 들어보지. 아냐. 그가 다시 코를 골고 있잖아. 그렇지만 비바 람 소리가 워낙 세차기 때문에 사이사이 네가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는 거야." 수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되돌아갔다. "에들린 부인, 그럼 안녕히 주무셔요! 불러내서 죄송해요." 노파는 재차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혼자 있게 되자 수의 얼굴에는 긴장과 체념의 표정이 다시 찾아들었다. "해야 하는 거야. 해야 해! 바닥까지 다 마셔버려야 해!" 그녀는 작은 소리로 지껄였다. "리처드!" 다시 그녀가 불렀다. "이봐요. 왜 그래? 수잔나, 당신이오?" "네." "무엇 때문에 그래? 무슨 일이라도 있어? 잠깐 기다려요." 그는 옷을 걸치고 문간까지 나오며 "왜 그래?" 하고 말했다. "셰스톤에서 당신이 방 안으로 들어왔을 때 제가 창문 밖으로 뛰어 내렸던 일 이 있었지요. 저는 지금까지 그런 결례를 만회할 기회가 없었어요. 지금 전 그 일에 대해 당신의 용서를 구하러 온 거예요. 부탁이니 저를 방 안으로 들어가게 해 주세요." "당신은 이렇게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내가 말했던 것처럼, 본래의 감정에 역행해 가면서까지 당신이 이렇게 찾아오는 걸 나는 원치 않아." "그렇지만 절 들어가게 해주세요." 잠시 기다렸다가 다시 그녀가 되뇌었다. "들어가게 해주세요! 제가 지금까지 잘못했어요 - 오늘까지도 말이에요. 저에 게 주어진 권리 이상의 짓을 하고 말았어요. 당신께는 말씀드리려고 하지 않았 는데 말씀을 드려야겠어요. 오늘 오후에 저는 당신께 죄를 짓고 말았어요." "어떻게?" "주드를 만났어요! 그가 오는 줄도 모르고 있었죠. 그리고......" "그래서?" "그 사람에게 키스를 했어요. 그리고 그 사라에게 키스하도록 내버려 두었죠." "아...... 그 옛날 얘기군!" "리처드, 정신을 차려보니 제가 키스를 하고 있었어요. 깨닫게 됐을 때까진 설 마 두 사람이 그럴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어요!" "몇 번이나?" "많이...... 모르겠어요.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져요. 그 후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 이렇게 당신에게 오는 일뿐이었죠." "이봐, 이건 얘기가 잘못되어 가는군. 내가 이렇게까지 해 왔는데! 그밖에 고 백할 일은?" "없어요......" 그리고 그녀는 '그이를 저의 그리운 연인이라고 불렀어요' 라고 말하려고 했 다. 그러나 회개한 여자는 언제나 자신의 고백 중에서 약간 내용은 빼놓기 마련 이어서 바로 그 정경에 대한 부분만은 얘기하지 않은 채 남겨두었다. 그녀는 계 속해서 말을 했다. "이젠 두 번 다시는, 절대 그이를 만나지 않겠어요. 그이는 과거의 여러 가지 일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그래서 저도 가슴이 지어들었던 거예요. 그인 그렇게 말했어요. 그 죽은 애들 얘길...... 그렇지만, 언제나 제가 말한 것처럼, 기뻐요. 아니, 기뻐서 못 견딜 지경이에요. 애들이 죽어버린 것 말이에요. 리처드, 그건 제 이전의 생활을 지워주니까요!" "글쎄, 그 사람을 더 이상 다시 만나지 않는 일에 대해서인데, 당신이 정말 그 렇게 하겠다는 거요?" 그렇게 말하는 필로트슨의 어조에는 수와의 3개월 동안의 재혼 생활이 그의 관대함 내지는 사랑의 인내가 기대했던 바대로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었다는 그런 변조의 느낌이 깃들어 있었다. "네, 네!" "그렇다면, (신약성서)에 대고 그것을 맹세하겠소?" "맹세하겠어요." 그는 방 안으로 들어가서 갈색의 작은 성경을 가지고 왔다. "그럼, 그리하여 신이시여, 그대를 구해 주소서!" 그녀는 맹세했다. "좋아!" "그럼 제가 속해 있고, 제가 숭배하고 복종하겠다고 맹세한 리처드, 당신에게 간절히 부탁드리겠어요. 이제 맹세를 했으니 저를 안으로 들어가게 해 주세요." "다시 잘 생각해 보시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겠지. 이 집의 뒷방 에 있게 하는 것과 이 방에 들어오게 하는 것과는 전혀 성질이 다르오. 그러니 그 점을 다시 생각하시오." "생각했어요. 저는 이곳을 원해요!" "가상한 마음이로군. 그리고 당신의 생각이 틀림없다는 것이로군. 본래의 애인 과 돌아다녔다가는 절반의 결혼도 완전한 결혼으로 바꾸지 않을 수 없게 돼. 그 러나 세번씩이나 되풀이해서 말해 두거니와 이번이 마지막이니, 잘 생각해서 하 도록 하시오." "저의 소원이에요!...... 아, 하느님!" "왜 하느님을 찾지?" "모르겠어요!" "그래 당신은 알고 있는 거야! 그러나......" 그는 우울한 감정에 휩싸여 여위고 허약한 그녀의 몸을 바라보고 난 후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 그녀는 잠옷 바람으로 그의 앞에 웅크리고 앉았다. "아무래도, 이런 식으로 끝날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그가 곧 말을 꺼냈다. "오늘의 일을 보면 나는 당신에게 빚을 한푼도 지지 않고 있는 것같군. 그러 나 당신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도록 하지. 그리고 당신을 용서하겠소." 그가 그녀를 껴안아 들어올리려고 그녀의 몸에 한족 팔을 두르려 했다. 수는 흠칫하며 몸을 도사렸다. "왜 그러지?" 그는 처음으로 엄한 목소리를 내어 물었다. "또다시 나에게서 몸을 도사리고 있는 것인가? 옛날과 똑같이!" "아녜요. 리처드. 전, 저는 꺼려하지 않아요." "당신 이곳에 들어오고 싶은 건가?" "네." "그게 무슨 뜻을 가지는지 알고 있겠지?" "네. 그것이 저의 의무죠!" 옷장 위에 촛대를 놓고 나서 그는 그녀를 이끌어 문 안쪽으로 들어오게 했다. 그리고 나서 그녀를 몸통째로 들어 올리고서 키스를 했다. 언뜻 혐오의 표정이 수의 얼굴 위를 스치고 지나갔지만 그녀는 이를 악물고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이즈음 에들린 부인은 잠옷으로 갈아입고 막 잠자리에 들려다가 문득 혼잣말 을 했다. "아, 잠깐 나가서 보고 오는 게 좋겠군. 그 애가 괜찮은지. 비바람이 심하게 들이치는군!" 과수댁은 계단의 층계참에 나왔지만 이미 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 가엾은 것! 결혼은 곧바로 장례인 거야. 요즘엔 곧잘 그런 생각이 드는구 먼. 55년 전에 이미 타락이 시작되었던 거야. 돌아가신 그분하구 내가 결혼했던 것! 그 때부터 시세는 변화하고 있으니!" 6-10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드는 어느 정도 회복되었고, 수주일 동안 자신의 일 을 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가 지나자 그는 다시 허물어지고 말았다. "그때 벌었던 돈으로 그는 시내의 중심부로 거처를 옮겼다. 그러나 아라벨라 는 그가 그다지 오래도록 많은 일을 하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었으며 그렇기 때 문에 그녀는 그와의 재혼 이후에 겪게 되었던 이런저런 이들을 생각하며 몹시 기분이 상해 있었다. "이번의 변만 해도 당신은 앞을 빤히 내다보고 한 짓이 틀림없어요. 나를 마 누라로 삼은 건 무료로 간호사를 얻은 격이죠!" 그녀는 입버릇처럼 이렇게 뇌까렸다. 주드는 그녀가 하는 말에는 절대적으로 무관심했으며 자신을 매도하는 말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따금 그의 기분은 더 진지해지기도 했으며 자리에 누워 일을 때에 그는 자신의 청운의 끔이 좌절된 데 대해 횡설수설하곤 했다. "모든 남자는 무엇이든 한 방향으로는 어느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법이 지." 그는 혼자 이렇게 중얼거리곤 했다. "사실 나는 석공직, 특히 돌조각 작업을 해낼 만큼은 튼튼하지 못했어. 돌덩리 를 움직이는 일은 늘 나를 긴장시켰고, 또 창틀이 잘안 박힌 건물 안에서는 나 를 여윌 듯이 불어들어오는 틈새 바람을 맞고서는 곧잘 감기에 들곤 했지. 지금 와 생각하니, 그것이 바로 내 내면의 불생의 시초였던 것이야. 그러나 내게 그 기회만 주어진다면 나도 뭔가 한가닥 할 수가 있었을 거라고 느꼈지. 석괴처럼 관념을 쌓아올려 그것을 남에게 전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 창립자들이, 과연 나 같은 사람이 그러했듯이, 염두에 두기나 했겠느냐 그 말이야. 그런 일 이외엔 소 용될 수 없는 사람을 ?...... 옛날의 나와 같이 도움 못 받는 학생을 위해 좀더 나은 기회가 있으리라는 소문이 있던데. 종합대학이 폐쇄성을 완화시키고, 그 감 화력을 확대하려는 계획도 진행중이라 했었는데, 자세한 것은 난 몰라. 그렇더라 도 이젠 너무 늦었어. 나는 너무 늦고 만 거야! 아 - 나 이전에도 더 가치가 있 는 친구들이 얼마나 많이, 그 얼마나 자주 이젠 너무 늦었다고 말했었던 것일 까!" "헛소리를 잘도 하시네요! 지금까지 당신이 서적광이라는 그 열병을 이겨냈다 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시작해 보겠다는 분별만 있었다면, 당신은 그렇게 했을 텐데요. 처음 결혼했을 때나 지금이나 당신은 여전히 틀렸어요." 이와 같은 독백을 하소 있던 어느 때 무의식 중에 그는 아라벨라를 '수' 라고 불렀다. "당신이 누구하고 얘기하고 있는가를 알고 싶네요!" 아라벨라는 분개해하며 말했다. "결혼한, 의젓한 여자를 남의 여편네 이름으로 부르다니, 뻔뻔스럽게......" 그 다음에 자신이 했던 말을 그녀는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는 듣지 못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태의 진행을 그녀가 알라차렸을 때 그리고 수와 의 경쟁이 두렵지 않게 되었다는 상황을 알아챘을 때, 그녀는 관대함이라는 발 작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당신의 수를 만나고 싶으시겠지요? 당신의 수 말이에요? 그러지 않아도 돼 요. 그 여자가 당신을 만나러 와도 난 개의치 않겠어요. 당신만 괜찮으시다면 여 기서 그녀를 만나도 돼요." "다시는 그녀를 만나고 싶지 않아." "호, 당신 변하셨군요!" "그녀에게 나에 관한 얘기는 절대 한마디도 하지 마. 내가 아프니 어쩌니 하 고 말야. 그녀는 자신의 갈길을 선택했어. 보내줄 수밖에 도리가 없어!" 어느날 그는 예상치 못한 방문을 받았다. 에들린 부인이 전적으로 그녀 자신 의 생각으로 주드를 찾아왔던 것이다. 그가 품고 있는 애착의 중심이 어디에 있 는가에 대해서는 이미 절대적인 냉담이라는 감정 상태에 돌입해 있었던 주드의 아내는 노파를 주드와 함께 남겨 놓고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는 충동적으로 수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를 물어보았지만 수가 이전에 그 에게 했던 말을 상기하고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여전히 단지 명의상의 부부에 불과하다는 건가요?" 에들린 부인은 주저했다. "그런데..... 아니야. 지금은 달라졌어. 수 쪽에서 아주 최근에 다시 시작을 했 지. 전적으로 자기 자신의 자유의사로 말야." "언제부터 시작한 겨죠?" 그는 지체하지 않고 물었다. "자네가 찾아왔었던 밤이야. 그렇지만 자기가 지은 죄의 보상이라면서 가엾게 도...... 그 애 남편도 마음에 내켜하지 않았지만 그 애가 고집을 피웠어." "수, 나의 수여. 그대, 그리운 바보여. 참을 수가 없군!...... 에들린 부인, 제가 하는 헛소리를 들으시고 놀라지는 마세요. 오랫동안 혼자 누워 있으니까, 헛말이 나오게 되는군요...... 이전에 그녀는 석유램프와 같은 나의 머리에 비교하면 찬 란하게 빛나는 별 같은 지성을 갖췄던 여성이었죠. 믿는 미신을 그녀의 말 한마 디로 떨러낼 수 있는 거미줄이라고 보았던 사람이었죠. 그러나 비참한 고뇌가 우리 두 사람에게 들이닥쳤고, 그 후에 그녀의 지성은 붕괴되어 버렸고 그녀는 진로를 갑자기 바꾸고서 암흑 속으로 떠나가버린 거예요. 일반적으로 남성의 식 견을 넓혀주는 시간과 환경이 거의 틈림없이 여자들의 견해를 좁아들게 하는 것 은 참으로 기이한 남녀간의 차이점이죠. 그리고 지금 최후의 공포가 찾아오게 된 거죠. 그녀는 이처럼 본래부터 싫어했던 것에 자신을 내맡기고서 형식의 노예가 되 고 만 거예요! 한갓 일진강풍이 그녀를 엄습하여 복종심을 갖게 했던 것처럼 그 토록 민감하고 뒷걸음만 치던 그 사람이!...... 오래 전, 우리가 최선의 상태에 놓 여 있었던 때, 그 때의 수와 나 두사람으로 말하자면 우리들의 정신은 맑았고, 진리에 대한 애정으로 두려움을 몰랐었죠. 그맘때의 수와 나에게는 그 시기가 아직 미숙해 있었던 거죠! 두 사람이 지녔던 관념은 50년이나 앞서 있었기 때문 에 우리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던 거죠. 그래서 그러한 관념이 마주치게 된 저항은 그녀 속에서 반작용을 초래했고 나에게는 무모함과 파멸을 가져다 준 거 지요! 자아, 에들린 부인, 누운 채로 이런 식으로 쉴새없이 뇌까려서 정말 미안 합니다. 부인을 너무 지루하게 해드린 것 같군요." "천만에, 이 사람아. 하루 종일이라도 자네의 얘기를 들을 수 있네." 수의 소식을 듣고 나자 주드는 더욱더 깊은 생각에 잠겼으며 더욱 불안해 했 다. 그는 정신적인 고민 속에서 사회의 인습에 대해 극심한 모독적인 말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기침의 발작을 일으켰다. 이윽고 아래층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그것에 대답하는 사람이 없자 에들린 부인이 직접 내려갔다. 찾아온 사람은 정중하게 말했다. "의사입니다." 키가 큰 것으로 보아 어김없는 의사 빌버트였는데 그는 아라벨라로부터 와서 봐달라는 부탁을 받았던 것이다. "환자는 현재 어떤 상태이십니까?" 의사가 물었다. "아, 나빠요. 아주 나빠요! 가엾어라. 흥분되어 있고. 무섭게 악태를 부리고 있 는 중이에요. 제가 자칫 잘못해서 세상 이야기를 입밖에 내어 말해주었더니만, 그건 제 잘못이죠. 그렇지만 저기, 그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선생님은 고통스러 워하는 그를 용서해 주시도록 하세요. 심한 병자라 하느님도 그를 용서해 주실 겨예요." "아, 제가 올라가 보도록 하지요. 폴리 부인께선 댁에 계신가요?" "지금 없습니다만 곧 돌아올 겁니다." 빌버트가 위층으로 올라갔다. 이제까지 주드는 아라벨라의 손으로 인후에 불 어넣어진 그 숙련된 개업의사의 약을 아무 생각없이 무관심한 상태로 복용했지 만 지금 그는 이런저런 일로 궁지에 몰리고 있어서 느닷없이 의사의 면전에서 충격적인 별명을 불러대며 장본인인 빌버트에게 호되게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 자 빌버트는 곧바로 살금살금 아래층으로 도망쳐 내려와 버렸다. 문간에서 그는 아라벨라와 마주쳤고 에들린 부인은 떠난 후였다. 아라벨라는 현재 남편의 상태가 어떠한지를 물었고 당황해하는 의사를 보자 무엇이든 한 잔 하겠느냐고 그의 의향을 떠보았다. 그는 그녀의 제안에 그러고마 했다. "여기 복도에 계시면 제가 가져다 드릴게요. 오늘은 이 집에 저 이외엔 아무 도 없어요." 그녀가 병과 컵을 가지고 왔고 그는 그것을 마셨다. 아라벨라가 참았던 웃음 을 터뜨리자 그녀의 몸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것 보시오. 이건 대체 뭐요?' 그가 입맛을 다시면서 물었다. "아, 포도주 한 방울과 그 어떤 것이 들어 있죠." 다시 웃으면서 그녀가 말했다. "선생님께서 손수 제조하신 미약을 부었죠. 농업전람회에서 제게 판 바로 그 약, 기억 안 나세요? "기억하다마다요! 영리한 여자! 그러나 이 약의 효험에 대해선 챔임져야 해 요." 그리고 그는 그녀의 양어깨에 한 팔을 두르며 키스했다. "안 돼요, 안 돼요." 그녀는 쾌활하게 웃으며 속삭였다. "제 남편이 듣겠어요." 그녀는 그를 집 밖으로 내보내고 돌아와서는 혼잣말을 했다. "괜찮단 말야! 연약한 여자는 어려운 때를 대비해 준비를 해 둬야지. 만일 2 층의 저녀석이 가엾게도 정말 사라지게 된다면 - 그 날도 가까워진 생각이 드니 - 여러모로 남편을 물색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이젠 나도 젊을 때와는 달 라서 고르고 자시고 할 수도 없지. 만일 젊은 녀석을 못 얻게 된다면 노인이라 도 잡아야 하는 거야." 6-11 이러한 여러 가지 생활의 연대기에 있어서 작가가 독자에게 주의해 주기를 바 라는 마지막 페이지들은 푸른 잎이 무성한 여름이 다시 돌아왔을 때쯤, 주드의 침실 안팎의 정경과 관계가 있다. 주드의 얼굴은 너무도 여위어서 옛날부터 알고 있던 사람조차 거의 그를 알아 보지 못할 지경이었다. 오후였다. 아라벨라는 거울 앞에 앉아 머리를 매만지고 있었다 켜놓았던 촛불에 양산의 철골을 달군 수 흘러내린 머리 다발에다 그것을 갖다내는 작업이었다. 그녀는 이것을 끝마치고 나서 보조개 만드는 연습을 했고 몸치장을 하고 났을 때 주드에게 시선을 던졌다. 옆으로 누워 있는 것이 병에 좋지 않아서 상반신을 일으키고 있는 자세였으나 잠들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모자를 쓰고, 장갑을 끼고서 떠날 준비가 된 아라벨라는 앉아서 기다렸다. 누 군가가 와서 그녀 대신 간호사가 되어 주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처럼. 바깥에서 울려오는 어떤 소리는 그 도시가 지금 축제중임을 알려 주었다. 그 것이 제아무리 법석을 떨어도 축제가 벌어지고 있는 곳의 풍경은 여기에서는 거 의 보이지 않았지만, 사방에서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했고 종소리가 내는 여러 계조는 열려 있는 창을 통해 방안으로 들어와서 주드의 머리 주변을 헤매 돌아 하나의 소음을 이루었다. 그 소리에 그녀는 더욱 들떴고 마침내 혼잣말을 내뱉 었다. "아버지는 왜 안 오시는 걸까!" 그녀는 다시 주드를 바라보며 점점 쇠약해가는 그의 생명을 비평적으로 계측 해 보았다. 그녀가 최근 몇 개월 동안 몇 번씩이나 했던 것처럼, 그리고 괘종시 계 대신 매달아 놓은 남편의 회중시계를 힐끗 쳐다보고 나서는 초조한 듯 이러 섰다. 그는 여전히 잠자고 있었다. 아라벨라는 어떤 결심을 하고 나서 방을 빠져나 와 소리 안 나게 문을 닫고서는 계단을 내려갔다. 그 집은 비어 있었다. 아라벨 라를 움직여 밖으로 나가게 한 그 힘이 다른 동숙인들을 이미 오래 전에 유인해 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구름 한점 없는, 따뜻하고 매혹적인 날이었다. 문을 닫고서 그녀는 서둘러 모 퉁이를 돌아 치프 스트리트로 나가 디어터 가까이까지 왔을 때 그녀는 파이프 오르간의 음조를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오늘 저녁 있을 콘서트를 위한 연습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올드 게이트 칼리지의 아치 통로에 들어섰는데 그 곳에서 남학생들은 이 날 저녁에 대강당에서 개최되는 무도회를 위한 방정의 주위에 천막을 치고 있었 다. 이 날을 위해 시골에서 올라온 구경꾼들은 풀밭에서 피크닉식으로 식사를 하 고 있었어 아라벨라는 해묵은 보리수 그늘 밑을 자갈길을 따라 거닐었다. 그러 나 이곳이 다소 활기가 없음을 알고 그녀는 다시 거리로 되돌아와서 마차들이 콘서트를 위해 몰려들고 수많은 교수들과 부인들, 화려한 여성 동반자를 데리고 온 학생들이 이같이 모여드는 것을 지켜보았다. 곳곳의 문이 닫히고 콘서트가 시작되었을 때 그녀는 그 자리를 뜨고 말았다. 대음악회에서 울려나오는 힘찬 음조는 열려진 창문들의 흔들리는 노란 블라인드를 통해서 가옥들의 꼭대기를 넘어 고요하고 작은 길의 대기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 음조는 주드가 누워 있는 방에까지 들려왔다. 그의 기침이 다시 시작해 그의 잠을 깨게 한 것은 바로 이 맘때였다. 입을 뗄 수 있게 되자마자 그는 눈을 감은 채로 중얼거렸다. "물을 좀, 제발." 버림받은 방 외에는 그의 이러한 호소를 받아주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는 발작적인 기침 때문에 다시 지칠대로 더욱 약한 목소리고 말했다. "물...... 물 좀...... 수 ......아라벨라!" 방은 여전히 고요하게 텅빈 채였다. 이윽고 그는 헐떡이며 말했다. "목이...... 물...... 그리운 수! 물 한 모금만...... 제발, 아, 제발!" 한 방울의 물도 없었고 꿀벌의 날개 소리처럼 희미한 파이프 오르간이 울리는 소리만 전과 같이 흘러왔다. 얼굴의 표정이 변해가면서 그가 그렇게 있을 동안 환호의 외침과 만세소리가 강이 있는 방향 어디쯤에선가 들려왔다. "아, 그렇구나! '기념일'의 경기가 있는가 보군. 그런데 나는 여기에 이 상태로 있군. 그리고 더렵혀진 수!" 만세의 함성이 되풀이됨에 따라 희미한 오르간의 음조는 사라지고 말았다. 주 드의 얼굴은 더욱 변해갔다. 열로 타는 듯한 입술은 거의 움직이지 않은 채 주 드는 천천히 속삭였다. "내가 태어난 그 날을 멸하게 하라. 남자아이를 배었다 하던 그 밤도 멸하여 없어져라.((구약성서) 욥기, 3장 3절) - 만세! "그 날을 암흑이 되게 하라. 신이시여, 그를 돌보지 마실 지어다. 빛이여 밝게 하지 말라. 보라, 그 발을 적막케 하려니, 기쁨의 소리 그곳에 없게 하라." - 만세! "어찌하여 이 내 몸 태에서 죽어나오지 않았던가? 어찌하여 태에서 나올 적에 숨이 막히지 아니하였던가?...... 그리하였더라면 이 내 한 몸은 편안히 누워 잠 들었으리라. 그리하여 고요히 쉬어 있을진대!" - 만세! "저기 저곳엔 잡힌 몸도 함께 고요히 쉬나니, 압제자의 소리조차 아니 듣 고...... 작은 자, 큰 자 모두 저기 저곳에 있나니 노예 또한 주인에게서 풀려나도 다. 그 어찌하여 가난에 처한 자에게 빛을 주시고 마음을 앓는 자에게 생명을 주셨는가?" 그러는 동안 아라벨라는 행사장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던 중에 좁은 거리와 이름 모를 구석을 빠져 지름길을 따라 카디널 칼리지의 대방정으로 들어섰다. 그곳은 소란으로 가득차 있었으며 이곳 역시 대무도회를 위해 꽃과 그밖의 장식 으로 햇빛 속에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전에 주드와 함께 일하던 동료의 한 사람이었던 어떤 목공이 아라벨라에게 고 개를 끄덕여 보였다. 방정의 입구에서 대강당의 계단까지 나무로 건너갈 수 있 게 하는 복도가 한창 건립 중이었으며 목조에는 붉고 노르스름한 장식천으로 감 겨져 있었다. 그 언저리에는 꽃이 만발한 식물들이 담겨진 한무더기의 나무상자 가 이곳저곳에 놓여지고 있었고 또 계단은 붉은 천으로 덮여져 있었다. 그런 일 을 맡아 하고 있는 직공 중의 한두 사람에게 그녀는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서 그 들과 안면이 있는 것을 믿고서 대강당으로 올라갔다. 그곳에는 춤을 출 수 있도 록 새로이 마루를 깔고 있었으며 이런저런 장식을 하고 있었다 바로 옆에 있는 대성당의 종이 5시의 미사를 위해 울리기 시작했다. "저기에서 젊은이의 팔에 허리를 감기고서 한 번쯤 돌아봐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군요." 그녀는 직공 중의 한 사람에게 말을 건넸다. "그렇지만 저어, 난 곧 집으로 돌아가야겠어요. 해야 할 일일 많아서요. 저에 게 춤 같은 것은 어림도 없겠지요!" 그녀가 집에 도착했을 때 그녀를 문간에서 기다리고 있던 스태그와 마주쳤다. 주드의 동료였던 다른 석공들도 한두 명 있었다. "우린 보트 부딪치기 시합을 보러 강가로 막 가는 중입니다. 잠깐 들러본 겁 니다. 남편의 용태가 궁금해서 가는 중에 잠깐 들렸죠." 스태그가 말했다. "그린 잘 자고 계세요. 고마워요." "아라벨라가 대답했다. "그거 잘 됐군요. 그건 그렇구, 저어, 폴리 부인, 반 시간 정도 바람을 쐬러 우 리들과 함께 사기지 않겠어요? 당신에게도 좋을 겁니다." "가보고 싶네요. 보트 경기 같은 건 평생 한번도 본 적이 없거든요. 아주 재미 있다고 들었어요." "가십시다!" "함께 갈 수만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녀는 거리를 동경이라도 하는 듯 내려다 보았다. "그럼,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그이가 지금 어떠신지 잠시 가서 보고 올 테니까 요. 아버지께서 옆에 계시겠죠. 그럼, 아마 갈 수 있게 되겠죠." 남자들은 그곳에서 기다렸으며 그녀는 안으로 들어섰다. 아래층의 동숙자들은 그녀가 나가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사실 한 무리를 지어 몇 십 척의 보트 행렬이 통과하게 될 강가로 가버렸던 것이었다. 그녀가 침실에 이 르렀을 때 아버지가 지금까지 와 있지 않음을 알아챘다. "이럴 리가 없는데, 왜 안 오셨을까!" 그녀는 초조하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런, 아버지도 보트 경기를 구경하고 싶으셨던 것일까. 틀림없어!" 그러나 침대 쪽을 돌아보자마자 그녀의 얼굴은 밝아졌다. 주드는 분명 깊은 잠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기침 때문에 취하지 않을 수가 없는 자 세를 하고 있었으며 상반신을 일으킨 자세는 아니었다. 그는 미끄러져 내려와서 평평하게 누워 있었다. 다시 한번 힐끗 그를 바라본 그녀는 흠칫하며 놀랐다. 그 녀는 침대에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몸에는 온기가 아직 남아 있었지만 손가락 은 차가웠다. 그녀는 그의 가슴에 귀를 갖다대 보았다. 몸 속의 모든 것이 조용했다. 거의 30년간 끊임없이 뛰던 박동은 이미 멎어버리고 만 것이었다. 이미 일어난 사태에 대해 섬뜩한 깨달음을 알게 된 후에 군악대나 브라스 밴 드에서 울려오는 희미한 음조가 강가로부터 그녀의 귀에 와 닿았다. 그러자 그 녀는 하난 어조로 외쳤다. "하필 지금 죽어야 하는 거지! 왜 지금 죽는 거야!" 그리고 나서 잠시 생각하던 그녀는 문 쪽으로 걸어가서 전처럼 그것을 조용히 닫고 다시 계단을 내려갔다. "저기 오네요!" 직공 한 사람이 말했다. "과연 당신이 가실 수 있을까를 걱정했었는데, 어서 오십이요! 좋은 장소를 차지하려면 서둘어야만 해요...... 그건 그렇구. 주인은 좀 어떠신가요? 아직 잘 주무시고 계신가요? 물론, 부인을 무리하게 끌어낼 생각은 없는데요. 혹시......" "아, 그래요. 아주 곤히 자고 계세요. 아직은 안 일어나실 거예요." 그녀는 당황하는 빛을 역력히 보이며 말했다. 그들은 군중 사이를 비집고서 카디널 스트리트를 내려갔다. 그곳에서 이내 다 리에 이르게 되자 색채가 화려한 한 무리의 보트가 그들의 시야를 가득채웠다. 그리고 나서 좁은 길을 따라 걸어나가서 하반의 소로로 접어들었다. 지금 그곳 에는 먼지가 부옇게 끼어 있었고 무더웠지만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그들 이 거의 하반에 도착하자마자 수많은 보트의 대행진이 시작됐다. 보트의 무리들 이 급사면에서 흔들릴 때마다 강물 표면은 일제히 철썩거리며 요란한 소리를 냈 다. "어머나 재미있군요! 오기를 잘 했어. 게다가 제가 밖에 나와 있는 것이 남편 에게 그다지 해가 되는 것도 아니구요." 강 건너편에는 매어 있는 잡다한 거룻배 위에 녹색과 핑크색 그리고 청색과 백색의 유행하는 옷차림으로 화려하게 꾸민 호화스런 꽃다발과 같은 미인들이 있었다. '보트 클럽' 의 청색 깃발은 흥미가 이곳에 집중되고 있음을 나타내주고 있는 것 같았으며 그 밑에서는 붉은 제복을 입은 악대가 임종의 방에서 이미 그 녀의 귀에까지 들려왔던 그 음조를 자아내고 있었다. 숙녀들과 함께 카누를 타고, 저마다 환호하는 '우리들의' 보트를 정신 없이 바 라보며 대학생이라고 이름 붙는 모든 칼리지의 학생들은 강상의 아래 위를 가볍 게 오가고 있었다. 그런 생기발랄한 광경을 보고 있는 동안 누군가 아라벨라의 옆구리를 살짝 찔 렀다. 그래서 돌아다보니, 다름아닌 빌버트였다. "그 미약의 효험이 너무 좋더군!" 곁눈질을 하며 그가 말했다. "남의 심장을 이렇게 난파시켜 놓구서 당신의 죄는 무겁소!" "사랑 얘긴 오늘은 하지 못하겠어요." "왜 안 되는 거지? 모두가 노는 휴일인데." 그녀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빌버트의 팔이 살짝 아라벨라의 허리를 감아 둘 렀는데 그의 그런 행동은 군중 속에서 남의 눈에 띄지 않고서도 이루어질 수 있 었다. 감겨져 있는 팔을 느낀 아라벨라의 얼굴에는 장난스런 표정이 퍼져나갔지 만 그녀의 시선은 전혀 그 포옹을 의식 못하고 있는 것처럼 여전히 강을 바라보 고 있었다. 군중은 물결치듯 동요했고 아라벨라나 그녀의 동행자들을 때때로 강 속으로 밀쳐 떨어뜨릴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녀가 조금 전에 보았던 창백한 석고 같은 얼굴이 그녀의 심안에 꽉 박혀 그녀가 자못 진지하지 않았던들 계속 이어지고 있는 부질없는 소란을 보고 아라벨라는 마음 속으로부터 크게 웃었으리라. 물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환락은 흥분의 절정에 달해 있었다. 강 속으로 풍덩 떨어 지는 사람이 생겼으며 고함치며 떠들어대는 소리도 들려왔다. 조정경기에서는 패하기도 하고 이기기도 했다. 핑크색과 청색과 황색의 숙녀들은 보트에서 물러 나왔고 구경꾼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너무 좋았어요." 아라벨라는 큰 소리로 말했다. "그렇지만, 우리 가엾은 양반에게 돌아가야겠군요. 아버지가 붙어 있을 줄 알 지만, 저도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왜 그리 급하게 서둘지?" "그렇지만, 전 가야 해요. 어머나, 이거 야단났네요!" 하반의 소로에서 다리 쪽으로 올라가는 좁은 길목에 군중들은 문자 그대로 마 구 밀려 뜨거운 한무더기를 이루고 있었다. 아라벨라와 빌버트도 그들과 함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옴짝달싹 못하게 되자 아라벨라는 점점 초조해 하며, '어머, 어머, 어떻게 헤!' 하고 외쳐댔다. 만일 주드가 홀로 죽어갔음이 발견된다면 배 심원 입회 하의 검시관의 사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인정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 녀가 문뜩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왜 이렇게 안절부절 못하는 거지. 내 애인은!" 의사가 말했다. 그는 군중에 밀려 그녀의 몸에 꽉 눌려 있어서 접촉을 위해 자신이 노력을 할 필요가 없었다. "서둘지 말고 참아야 하는 거요. 아무래도 아직은 빠져 나갈 수가 없어요!' 거의 10분이 지나서야. 움직일 줄을 모르던 많은 사람들이 슬슬 움직였으므로 두 사람은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거리 쪽으로 다 올라가자 그녀는 서둘 러 발걸음을 옮겼으며 의사가 오늘은 더 이상 따라오지 못하도록 막아버렸다. 그녀는 집으로 곧장 가지 않았다. 빈곤한 사자에게 마지막으로 필요한 일을 해 줄 어느 여자의 집으로 향하였다. 아라벨라는 문을 두드렸다. "남편이 방금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가엾은 분." 그녀가 말했다. "입관준비하러 올 수 있겠어요?" 아라벨라는 잠시 기다렸다. 그리고 나서 이 두 여인은 함께 카디널 대학 '초 지' 에서 쏟아져 나오는 상류사회의 인파를 밀어제치고 나아갔다. 자가용 대형마 차에 거의 치일 뻔한 위험을 겪기도 했다. "매장 종의 신호를 상의하러 무덤 파는 일꾼을 만나보러 가야 해요." 아라벨라가 말했다. "바로 여길 좀 돌아가면 되죠? 집 문간에서 만나도록 하죠." 그날 밤 10시에 벌써 주드는 하숙집 침대 위에서 시트로 덮인 채로 화살처럼 빳빳하게 똑바로 누워 있었다. 조금 열린 창을 통해서 카디널 대학의 대무도회 장에서 즐거운 왈츠의 맥박소리가 들어왔다. 이틀 후에, 하늘은 한결같이 구름 한점 없고 공기도 사뭇 고요하였다. 작은 침 실의 뚜껑이 열려 있는 주드의 관 옆에 두사람이 서 있었다. 한 쪽에는 아라벨 라가, 다른 한 쪽에서는 과수댁 에들린이, 그들 두 사람은 주드의 얼굴을 바라다 보고 있었다. 에들린 부인의 지친 늙은 눈까풀은 빨개져 있었다. "그는 너무 아름다워!" 노파가 말했다. "그래요. 시체이기는 하지만 잘 생겼네요." 아라벨라가 대답했다. 창이 여전히 열린 채로 있었기 때문에 방 안의 통풍은 잘되고 있었다. 정오경 이어서 바깥의 맑은 공기는 움직일 줄 모르는 듯 고요하기만 했다. 먼 곳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많은 수의 사람이 내딛는 발자국 소리가 분명했다. "무슨 소리일까?" 노파가 중얼거렸다. "아, 저 소리는 극장에서 박사님들이 햄턴셔 공작을 위시해서 같은 부류의 더 욱 높은 사람들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는 식장에서 나는 소리죠. 지금은 '기념제 주간' 이니까요. 저 갈채소리는 젊은 학생들이 내고 있는 소리죠." "아, 그래. 젊은이들은 심장이 강한가 보군! 이 관 속의 가엾은 친구와는 다르 게." 극장의 열려진 창에서 누군가의 연설이 이따금 한마디씩 띄엄띄엄이 조용한 구석까지 똑바로 들러들어 왔다. 대리석 같은 주드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 듯 이 보였다. 그러나 가까운 책꽂이에 이미 폐간되어 버린 베르길리우스와 호라더 우스의 델핀판 낡은 책들과 낡아서 종이의 모서리가 접힌 '희랍어 성서' 또 잠시 도 손에서 떼지 않았던 두세 권의 서적들이 늘어서 있었다. 이 책은 그가 일하 면서 틈틈히 여가시간에 손에 쥐어 들던 습관 때문에 돌먼지에 거칠어졌고 지금 의 이 소란과 소리의 엄습을 받게 되자 창연히 색조를 잃고 병적인 취향을 띠는 것같이 보였다. 종소리가 즐겁게 울려 퍼졌다. 반향되어 돌아오는 그 소리는 침실 주변을 맴 돌았다. 아라벨라의 시선은 주드에게서 에들린 부인에게로 옮겨갔다. "그 여자가 올 거라고 생각하세요?" 그녀가 물었다. "오지 못할 것 같아. 주드를 두 번 다시는 안 만나겠다고 맹세를 했으니." "그 여자는 지금 어떻지요?" "지쳐 있고 비참해요. 가엾게도, 거기다 그 애를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보다 몇 살이나 더 들어보이지. 지금은 찌들고 지친 여자가 되어 버렸지. 그 남자 때문에 그렇게 된 거야. 지금도 그 사람을 참아내지 못하겠다는 거야." "만일 주드가 살아 있어서 수를 만난다 해도, 이제 그는 그 여자를 더 이상 원하지 않을 거예요." "그 점은 누구도 모르는 일이야...... 수를 불러달라도 당신에게 편지 써 줄 것 을 주드가 부탁하지 않던가. 그런 몰골을 하고서 주드가 그녀를 만나러 왔던 이 후에 말야?" "아뇨, 그 정반대였죠. 제가 편지를 써주겠다고 했더니 그이는 않고 있다는 사 실조차 그 여자에게 알리지 말라고 하더군요." "주드가 수를 용서하고 있었어?" "제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어요." "그래, 어린 것이 가엾게도! 틀림없이, 수는 용서를 받은 것 같다고 했는데! 마음의 평온을 발견했다고 말했지!" "그 여자는 자신의 목걸이에 매달려 있는 성스러운 십자가 앞에 무릎을 끓고 목소리가 쉴 때까지 그것을 맹세했을지도 모르죠. 그렇지만 그것이 진실은 아닐 거예요!" 아라벨라가 말했다. "그의 팔에서 빠져나간 후부터 수는 결코 마음의 평온을 찾지 못했어요. 그리 고 두 번 다시는 마음의 평온을 찾지 못할 거예요. 지금의 주드처럼 말이죠. 언 제까지나!" - 끝 - [해설] 토머스 하디와 그의 작품 세계 서울시립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김희진 1.하디와 그의 시대적 배경 작품은 시대의 산물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하디를 둘러싼 시대는 어떠했으며 그 시대가 작가에게 끼친 영향은 무엇이었을까? 이런 시대적 배경의 측면에서 하디가 품고 있었던 그의 양면성을 살펴보기로 하자. 하디가 태어난 시대의 영국은 산업혁명의 급격한 사회적, 기술적, 경제적 변 혁의 물결을 타고 그 변화에 의한 여러 자기 모순-빈곤, 기계적 합리주의, 물 질적 윤리의 사고력-을 안으면서 사상 유례없는 풍요로운 생활 양식을 서서히 서민들 사이에도 침투시키고 있던 시대였다. 그러나 물질적인 번영과는 반대로, 사람들의 정신생활을 지배하여 온 기독교적 세계관의 지주가 약해지면서 회의, 불확실, 불안의 기운이 확대되고 있었다. 이것은 신학과 철학의 분야에 국한되 지 않는 시대적인 사조이기도 했다. 이 시대 사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 1859년에 출판된 다윈의 (종의 기원)이었고 진화론적 사고였다. 진화론적 사고는 이 시대의 사상 및 종교면에서 사람들에게 일대 충격을 안겨 준 시대인데 첫째로 들 수 있는 것이 다윈의 학설이다. 이때까지의 사람들은 문 명의 원동력이라고도 할 수 있는 학문, 특히 자연과학의 발달에 대해서는 무한 의 희망과 신뢰를 품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과학의 발달은 인간의 생활을 쾌적 하고 풍요롭게 해주었고 미래에 대해 밝은 전망을 주었다. 생물학의 발달은 의 학의 발달로 이어졌으며 인간을 병에서 구해줌과 동시에 행복의 증진을 가져다 주었다. 그런데 1859년 다윈의 (종의 기원)을 발표했을 때 위와 같은 소박한 낙 관론은 일대 충격을 받게 되었다. 인간이 사실은 원숭이로부터 진화된 동물이라 는 설이 많은 사람들을 동요시켰고, 심지어는 절망으로까지 몰고 갔던 것이다. 요컨대 숙명적인 절망을 불러왔던 것이다. 이 학설이 발표되고 나서 유럽의 문 명국들간에는 지대한 비관론의 흐르게 되었다. 에밀 졸라의 인간에 대한 이러한 생물학적인 숙명론-결정론을 가장 잘 표현한 자연주의 소설가-은 당시의 사람들로부터 인간의 신성을 모독하는 부도덕하기 짜기 없는 소설가라고 해서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이것이야 말로 문학의 참모습이라는 점에 동의하면서 자연주의를 환영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신봉하여 창작활동을 한 작가들도 있다. 둘째는 기독교에 대한 회의이다. 과학의 발달이 종교에 대한 회의를 불러왔던 것이다. 종교에서 말하는 '사랑'을 예로 들어보자 사랑이야말로 인간이 신의 아 들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가장 중요한 특성이었지만 만일 인간이 동물 중의 하나 에 불과하다면, 사랑은 결국 종족 보존을 위한 성충동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 된다. 인간은 스스로의 이성 및 감성에 의해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우주의 커다 란 의지-신의 의지가 아닌 맹목적 의지-의 이끌림에 의해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결론이 성립되는 것이다. 인간이 신의 아들-아담과 이브의 자손이라는 것이 이렇게 다윈의 학설에 의해 근저로부터 흔들렸고, 또한 성서 속에서 설명되고 이때까지 무조건 믿어왔던 것 이 이윽고 과학적 연구의 결과로 인해 전부 하나의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실 증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서 몇몇 학자들은 과학적 실증정신에 의해 성서의 내용을 재검토했고 그 신화성에 근거를 두어 유럽 전체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 다. 즉 이때까지 믿어온 기독교의 교의에 대해 회의를 품게 된 것이다. 이리하여 하디는 해로운 세계와 구세계, 물질적 번영과 정신적 불안이라는 대 립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던 것이다. 인간이란 구사상과 구제도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그런 구형태에서 벗어나기를 갈망한다. 이런 '현대서'는 특히 과도기에서 더욱 심해 새로운 것의 추구로 이 어지고 그것에 수반해 고독과 좌절도 맛보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디의 모더니즘은 이런 과도기의 양서동물이-19세기의 저변에서 20세기를 깊 이 내다보는 사람이-품지 않을 수 없는 양면성에서 이루어질 것이리라, 특히 (비운의 주드)에서는 이러한 양극단이 잘 나타나 있다고 사무엘 츄는 말한다. 그리고 그림스디취는 이 작품을 가리켜 하디의 최악의 작품이라는 평과 최우수 작이라는 평이 엇갈릴 정도로 논쟁적인 작품을 하디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납득 할 수 있는 소설임과 동시에 가장 납득하기 어려운 소설이라고 말한다. 이런 평 가들은 바로 19세기에서 20세기로의 전환기에 처한 하디의 양면성을 두고 말한 것들이리라. 2. (비운의 주드)의 문학적 배경 흔히 논란이 되는 모든 작가들이 그러하듯이 토머스 하디의 작품들도 되풀이 해서 읽어보면 그때마다 새로운 모습이 보인다. 이것은 그의 작품들속에 다양한 얼굴이 숨어 있어 독자의 흥미와 관심의 방향이 영합되어 새로운 양상을 나타내 기 때문이리라. 그렇다면 이 작품에서 제시되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란 어떤 것들인가? 첫째 는 결혼과 이것에 있어서의 법의 모순이다. 부부간에 불화가 생겼을 때 어느 한 쪽 또는 양쪽의 자만에 의해 영구히 그 괴로움이 계속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 혼제도의 모순이 그것이다. 이것은 폴리가(주드와 수의 가족)를 덮고 있는 어두 운 숙명일 뿐만 아니라 주드와 아라벨라, 수와 필로트슨의 결혼생활 속에서도 제기되는 문제이다. 둘째는 재산이 없는 가난한 젊은이가 높은 지식(전문기술이 아니고 인문, 정신 관계의 지식)을 얻으려고 할 때의 어려움에 관한 것이다. 이 문제는 주드의 크리스트민트터에서의 악전고투를 통해 기성의 권위에 신랄한 아 이러니와 비판을 가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세번째 문제는 사회제도와 인습 의 '녹슬고 진절머리나는 틀' 속에 인간의 본능적인 활동을 무리하게 쑤셔넣으 려고 하는 힘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조금 추상적으로 말하고 있는 데, 사실은 앞의 두 문제들을 포함시키면서 보다 넓은 의미에서의 사회와 개인 의 투쟁의 문제를 제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앨버트 조셉 게라드는 이 작품에 관한 문제들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1. 빈자의 교육의 기회 및 계급 폐지의 사회적, 경제적 문제 2. 결혼, 이혼 및 억압적 도덕 검열의 사회문제 3. 성욕의 심리적 문제 4. 교회개혁의 종교문제 5. 도덕상의 윤리문제 6. 유전, '생존부정의 의지' 의 생물학적 문제 7. 근대적 불안, 우울, 고독, 자기부정 등의 정신적 문제 8. 기타 대학의 자세, 사회의 편견, 빈자의 주거문제, 인습과 미신 이런 문제들은 바로 작가 자신의 생애를 통해 늘 논리에서 떠나지 않았던 고 유한 문제들이다. 이런 문제들을 하디는 (비운의 주드)에서 총망라해 일거에 대 결해 보려고 했다. (비운의 주드)는 하디의 모더니즘이 잘 나타나 있는 작품이다. 19세기발에 사 회로부터 심한 비난을 받은 이 작품이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자주 읽혀지고 대작 이라고 호평도 받으며 (때로는 혹평도 받았지만) 그 이후의 작가에 의해 다시 평가되고 칭찬받고, 또한 같은 주제가 계승되어 더욱 추구되고 있다는 점에서 하디의 모더니즘은 커다란 의의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D. H 로렌스는 (토머스 하디의 연구)에서 이 작품이 하디의 작품 중 유일하게 개성행위의 진전이 나타난 작품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로렌스는 (사랑하는 연인들)에서 (비운의 주드)에서 다루어진 이 문제를 계승하고 있다. 이와 같이 (비운의 주드)는 로렌스와 같은 작가들에게 이어지는 자아연구의 현대소설에 교량적인 역할을 한 작품이기도 한 것이다. 3. (비운의 주드)에 나타난 모더니즘 : 표층 대 심층 하디의 모더니즘은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교육제도에 대한 반권위와 결혼문제에 대한 반인습을 표층이라고 한다면, 그의 심층은 유아성 지향, 성숙 의 기피라고 할 수 있다. 편의상 전자를 '의문은 죽이는 것이다'라 하고 후자를 '만일 그가 스스로 성장하는 것을 막을 수가 있다면'이라고 분류해 보기로 한 다. 1. 의문은 죽이는 것이다. 이 인용문은 본 작품의 표제의 페이지에 있는 말로서 (신약성서) 고린도후 서, 3장 6절에서 인용한 것이다. 이 인용문엔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데 하나는 정신을 상실하 고 형식만이 위엄을 가지고 있는 문자, 즉 마음의 바탕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낡은 비석에 새겨져 있는 것에 불과한 문자에 탐닉하고 있는 자는 아무 리 박학해도 인간으로서 망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는 의미이고, 이것에 의해 형 식만의, 권위만의 대학을 비판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결혼제도와 결부시킬 수 있는데, 단지 애정도 없이 형식적이고 법률적으로 얽어놓는 결혼의 문제를 제시 하고 있다. 하디의 모더니즘을 중심으로 표층면에서 본 교육제도의 반권위성과 결혼제도 에 대한 반인습적 비판을 고찰해보기로 하자. (1) 교육제도 하디가 쓴 1887년 4월 22일의 일기에서 옥스퍼드 대학에 가지 못한 한 청년의 기사가 본 작품의 주인공의 모델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하디 자신이 대 학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옥스퍼드와 캠브리지 대학은 상류계급이 다니는 특권적인 대학이었고 신분이 천하고 가난한 자는 입 학이 불가능했다. 하디는 이런 대학제도를 비판하고 대학은 누구에게나 개방되 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본 작품의 주인공 주드를 통해 대학제도를 고찰해 보자. 최초에 주드의 학문 및 대학에 대한 희망은 다음과 같다. 그는 독학으로 소년 시대에는 직업과 학문을 양립시켰다. 그러나 독학에는 한계가 있어서 대학에 가 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때는 크리스트민스터의 대학촌을 멀리서 바라보기도 하고 한번은 지나가는 마부로부터 크리스트민스터는 '광명의 도시'라는 말을 들 으면서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어느 대학이든 한 군데쯤은 나에게 문호를 개방할 것이고 지금 당장은 나를 외면할지 몰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환영해 줄 것이다. 그러나 이 꿈은 아라벨라와의 연애, 결혼 때문에 깨지고 만다. 아라벨라와 헤어진 후에 주드는 혼자서 크리스트민스터를 찾아간다. 저녁 무 렵 주드는 크리스트민스터 거리에 접어들어 난생 처음으로 고색이 창연한 학교 기숙사들을 바라본다. 마치 이 거리의 숨결을 느끼는 듯하고 여기서 참된 목표, 즉 이상의 완성에 정진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주드는 밤에 이 대학에 서 위대한 사람들의 소리를 듣고 망령을 보는 듯한 느낌을 갖는다. 그래서 감격 한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이 되어 그는 건축가로서의 대학의 건물을 보았을 때 발 에는 완벽하고 이상적이었던 것을 느끼게 된다. 주드는 대학에 진학하는 몇 가지 방법을 생각해 본다. 그러나 어떤 계획도 주 드에게는 희망이 없는 일이었다. 그는 시내의 몇몇 장소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학장들을 발견한다. 그 중에서 자기의 진가를 꿰뚫어보아 줄것 같은 인상의 소 유자를 우선 다섯 사람만 골라 그들에게 짤막하게 자신의 곤경을 술회하고 자신 이 번민하고 있는 사정에 대해서 고견을 바란다는 편지를 띄운다. 한동안 답장이 없다. 그러다가 겨우 대학의 한 학장에게서 회신이 온다. 귀하의 편지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직공으로서의 귀하의 편지 내용을 판단 해 보건대 귀하는 다른 일을 하는 것보다 귀하의 환경에 충실하는 것이 더 많은 성공의 기회를 가지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귀하에게 드리고 싶은 저의 조언입니다. 이것이 주드에게 충고하는 글이다. 그의 실망과 분개는 또한 작가의 대학에 대한 비판이기도 한 것이다. 가난한 자, 즉 신분이 천한 자에 대한 대학의 자세 를 하디가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 주드는 자기가 하숙하고 있는 집 주변의 노동자들, 이런 시민이 없었던들 각고근면한 독서가도 책을 읽을 수 없을 것이고 고매한 사상가도 살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다음과 같이 생 각한다. 그는 도시 생활이 학교 생활보다 한없이 풍부하고 변화무쌍하며 인간을 고찰 할 수 있는 방대한 서적이라는 것을 알기 시작했다. 지금 그의 눈앞에서 고투하 고 있는 남녀의 무리는 그리스도나 대성당은 잘 몰라도 그들이야말로 크리스트 민스터의 실체였다. 이곳저곳을 흘러다니는 학생들과 교수들은 지방적 의미에서 말한다면 크리스트민스터의 실질을 구성하는 개체들이 전혀 아니었다. 주드는 술에 취해서 자기의 학적을 마구잡이로 주장했다. "대학의 학장이든, 총장이든, 연구원이든, 석사든 뭐든 말이야! 그들이 내게 기회만 준다면 난 그들의 분야에서 그들을 이길 수 있어. 그리고 그들이 아직 하지 못한 일을 내가 해보일 수 있다. 이거야!" 그러나 주드는 지옥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결국 어리석은 짓을 깨달은 것 이다. 대학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는 것보다 성직에 오르는 기회를 놓쳤다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주드를 통해서 하디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는 노동자 들이야말로 도시를 지탱하고 있는 것이고 오히려 대학인보다 더 중요한 면도 있 다고 말한다. 하디는 대학에 대해서 특별히 공격을 한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일반대중에 대 한 교육제도의 중요성을 통감했다. 다음은 수를 통해 교육제도의 비판을 고찰해 보자. 수가 최초로 제도와 충돌하는 것은 교육대학의 무단탈출 사건이었는데, 그녀 에게는 학교측이 혐의를 덮어씌울 만한 그런 잘못은 일체 없었다고 생각한다. 함께 외출한 상대는 명실공히 이종사촌이었고 외박을 하게 된 것은 부득이하게 기차를 놓쳤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수는 학교측이 오해를 하지 않도록 변명을 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학교측은 수에게 일주일간 독방생활을 명하였고 이에 학교 친구들은 수업거부와 탄원서 제출로 대항했다. 여기서 수는 독방에서 도망 침으로써 다른 처벌까지 받게 된다. 학교측은 수가 학교의 질서를 어지럽혔기 때문에 당연히 처벌받아야 한다는 논리를 펴는데 이것은 하디가 학교측의 비인 간성을 드러내어 수의 제도에 대한 반항을 역설적으로 정당화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수는 탈출 후 셰스톤 근처에 머물다가 사건이 가라앉으면 다시 학교로 돌라가겠다는 낙관적인 생각을 갖는다. 이것은 학교측에 대한 낙관적인 기대로 인간성에 대한 낙관적 믿음에서 나온 생각이다. 학교가 자신을 인간적으로 이해 해 줄 것이라는 여기서의 믿음은 수의 인간관에 대한 순진함과 더불어 제도에 대한 수의 무지를 암시한다. (2) 결혼제도 비운의 주드가 출판된 1895년의 전후 시대는 결혼 이혼의 문제가 논쟁의 표적 이 된 해였다. 1889년 12월, 법정에 내세워진 '파넬'의 사건에서 법원은 파넬에 대해 이혼 임시 판정과 더불어 일체의 소송비용을 부담할 것을 선고했다. 이에 파넬의 결혼제도에 대한 반대 투쟁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 지만 비국교주의인 영국의 자유당은 이 판결에 반대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영 국은 결혼제도에 대한 심각한 논쟁에 빠졌고 당사자인 파넬은 지도권과 사회적 명성, 그리고 생명까지 잃게 된다. 연애, 결혼, 이혼이 논쟁의 대상이 된 이때 입센의 희곡이 나오고 비운의 주드는 이 입센의 영향 아래 씌어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같이 본 작품은 주드, 아라벨라, 수, 필로트슨 등의 관계를 통해 결혼제 도의 문제점을 밝히고 있다. 등장인물들은 처음엔 각각 법률적으로 정식결혼을 한다. 그러나 그 형식적인 제도가 가지는 모순과 형식을 초월한 사랑의 묘사는 결국 이들의 결혼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의문은 죽이는 것이다'는 결혼 이혼 의 문제를 취급한 곳에서도 인용된다. 이 의미는 형식적이고, 애정이 없는 법으 로 속박된 결혼을 지적한 대목이다. 본 작품 중에서 제기된 결혼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주 드와 아라벨라와의 관계에서 주드는 우연한 일로 아라벨라와 교제하게 되고 뜻 하지 않게 결혼까지 하게 된다. 이 결혼으로 주드는 목표한 학업도 포기하게 된 다. 아라벨라의 거짓말에 의해 하게 된 이 결혼은 처음부터 주드에겐 속박이었 다. 일시적인 감정으로 선택한 결혼은 두 사람 모두를 불행하게 했고 결국 이 결혼은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주드를 떠난 아라벨라는 오스트레일리아로 가게 되고 거기서 그녀는 또 결혼을 하게 되는데 그곳에서도 그녀가 법률적으로 하자 가 없는 결혼을 하게 된다는 것도 아이러니컬한 설정이다. 아라벨라와 헤어진 주드는 수와 동거를 하게 되고 그 사이 아라벨라는 남편의 죽음으로 다시 영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뜻하지 않은 아이들의 죽음으로 주드와 수는 헤어지게 되고 제도에 굴복한 수는 필로트슨에게 되돌아간다. 혼자 남은 주드에게는 다시 아라벨라가 나타나 재혼의 올가미를 씌우고 주드는 결국 죽음 에 이른다. 여기에서의 아라벨라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주단과 방법을 가 리지 않는 인물로, 이들의 관계는 삼손과 데릴라의 관계로 비유될 수 있다. 둘 째, 필로트슨과 수의 관계이다. 여기에서의 수는 교육을 받은 신여성으로 지적 이고 자기 생각이 뚜렷한 사람이다. 그녀는 아라벨라와는 반대로 영적 교감을 중요시한다. 과거에 크리스트민스터 학생과 교제를 할 때에도 15개월 동안 동거 를 하며 친구 관계를 유지한 수는, 필로트슨과의 결혼 생활에서도 존경하는 관 계임을 내세워 각 방을 쓰는 한편, 주드와도 계속 교제를 한다. 자신이 결혼을 할 때 신중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수는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세상의 규범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꾼다. 반면 수와 결혼한 필로트슨은 이같은 수의 태도에 번민하고 친구 질링엄에게 이렇게 말한다. "남편인 나에게 갖고 있는 그녀의 극복할 수 없는 혐오감은, 비록 아내가 나 를 친구로서 좋아할지라도 너무 심해 더이상 참을 수가 없네. 물론 아내도 이런 자신의 마음에 대항해 싸우는 눈치였지만 별로 소용이 없네. 나는 그걸 참을 수 가 없어. 나는 아내의 논쟁 상대가 못 되네. 아내는 나보다 열 배 정도는 책을 많이 읽는다네. 아내의 지성은 다이아몬드처럼 번쩍번쩍 빛을 발하는데, 난 마 치 타지 않는 갈색 포장지와 같아서 그을음만 나올 뿐이라네. 아내는 나한테 너 무 과분한 여자야!" 필로트슨이 '우리 결혼했으니까'하고 생각하는 부분을 수는 '죄가 아니라면 형식에 얽매여 불행해질 필요는 없어요'라고 여긴다. 나아가 수는 '둘이 맺은 계약이 취소가 안될 리 없잖아요. 물론 합법적이지는 않지만 도덕적으로는 가능 하잖아요...... 친구가 되어 주세요. 우린 언젠가 죽을 테니까 지금 절 풀어 준 다고 해도 당신에겐 별 지장이 없을 거예요'라고 말한다. 친구로 남기를 바라는 수에게 필로트슨은 이혼을 해주고, 기쁨에 들뜬 수는 필로트슨에게 이렇게 말한 다. "방금의 당신 행동으로 당신이 무척 좋아졌어요. 당신을 남편으로서가 아니고 옛날의 은사님으로 좋아하려고 했는데 이런 생각이 들다니, 이상한 일이네요." 수와 필로트슨의 결혼은 단지 계약에 불과한 것으로 육체적, 정신적 결합과 거리가 먼 사제간의 친밀감 같은 것이다. 필로트슨의 번민은 단지 법률상의 문 제에 국한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주드와 수의 관계를 알아보자. 처음부터 수를 사모해왔던 주드는 필로트슨과 헤어진 수와 마침내 동거를 시작한다. 그러나 법률적으로 자유로운 두 사람은 결혼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혼하지 않는다. 주드가 법률적, 육체 적으로도 결합을 원하는 반면 수가 정신적인 관계만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들의 관계는 아라벨라의 급작스런 출현으로 수가 질투를 하면서 끝을 맺게 된 다. 그러나 수는 비록 사랑 때문에 육체는 허락했지만 마지막까지 결혼이라는 제도에는 승복하지 않는다. 한편 법률적인 결혼을 하지 않은 이들에 대해 세인의 관심은 날로 높아만 가 고 이는 생계 유지에도 막대한 지장을 가져온다. 어쨌든 이들은 동거를 통해 두 아이까지 낳지만 불행한 사건 이후 수는 필로트슨에게 돌아간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사랑하지만 법률적인 관계는 거부하는, 이들을 통해 하디 는 애정없는 결혼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결혼제도의 모순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 고 있다. 2. '만일 그대가 스스로 성장하는 것을 막을 수만 있다면' 교육제도의 권위주의와 결혼제도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 시각이 작가의 모더니 즘을 나타내는 외형이라면 그의 내면은 유아성지향, 성숙해지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비운의 주드)에 나타난 하디의 모더니즘의 문제를 생각해 보면 이것이 작가 의 현대관을 나타내면서 동시에 작가의 생애를 통한 고유의 문제와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작가의 내면적인 성숙의 기피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수의 경우를 들 어보자. 주드는 어느 날 워더 성으로 수를 유인해서 산책을 간다. 귀로에 길을 잃어 기차시간에 늦는 바람에 어느 농가에서 부득이하게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전, 이런 곳이 좋아요." 집주인이 접시를 치우고 있는 동안 수가 말했다. "중력과 발아의 작용 외에는 어떤 법칙에도 속박되어 있지 않거든요." "너는 좋아한다고 생각만 하는 거야.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 너는 전적으로 문명의 산물이야." (중략) "어머, 난 그렇지 않아요! 오빠는 내 자신을 속속들이 모르고 계시나 봐요." "그건 또 무슨 말이지?" "전 이스마엘족(아브라함과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과 같이 버림받은 자를 가 리킴)인 걸요." "너는 도시에서 자란 엄연한 숙녀야." 수는 주드 이상으로 풍부한 독서 경험을 쌓았고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모더니 스트다. 그녀의 독서 리스트를 보면 그녀가 당대의 여인들과는 상당히 다른 독 서 판력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수는 타고난 성격과 독서로 인습에 얽매 이지 않는 자유로운 생활 방식을 지향할 수 있었는데 주드는 이것을 새로운 시 대의 새로운 여성이라고 규정짓는 반면, 수는 자신의 이러한 성향을 끝임없이 부인한다. 수는 주드의 이러한 견해에 대해 자신의 마음 속에 잠재된 사회 인습 에 대한 강한 반발에 대해 강조한다. 여기에서 '문명의 부정'이라는 하디의 문 명비판 입장을 볼 수 있다. 수의 반발은 중세로부터 빅토리아 시대까지 계속되어온 기독교의 세계관과 도 덕관을 향한 것이다. 예를 들어 수가 처음에 '워더 성'으로 가는 것을 거부한 것은 그곳이 고딕의 폐허이기 때문이다. 주드가 코린트 양식이라는 것을 가르치 자 그때서야 비로소 가는 것에 동의한다. 그리고 멜체스터의 대사원 안에 들어 가 앉자는 주드의 권유에 대해서도 수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저 대성당에 가서 앉아 몰까?" 그들의 식사가 끝났을 때, 그가 제의했다. "대성당요? 네, 좋아요. 그렇지만 앉아서 쉬느니 차라리 정거장으로 가요." 어딘지 그녀의 목소리에는 괴로운 듯한 여운이 섞여 있었다. "정거장이 요즘은 이 읍의 생활 중심지지요. 대성당 같은 건 이미 구식이에 요." "너는 정말 현대적이군 그래!" "나처럼 오빠도 지난 몇 해 동안을 중세의 분위기 속에서 지냈더라면 틀림없 이 현대적이 되었을 거예요! 4, 5세기 전만 같아도 대성당이 훌륭한 곳이었겠지 만 이젠 볼장 다본 거지요...... 저 역시 현대적이진 않아요. 전 중세적이라기 보단 오히려 고대적이거든요." 수의 모더니즘 근저에 있는 것은 기독교를 바탕으로 하는 근대 문명사회에 대 한 부정일 뿐만 아니라 이전 사회로의 지향이다. 여기서 우리는 작가의 모더니 즘이 문명발생 전의 어두움과 결부되어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개인의 성장 역사에 투영되어 '어렸을 때의 자유로운 생활로 돌라가고 싶다' 또는 '중력 이 외의 어떤 틀에도 속박되지 않겠다'라는 주인공의 희망으로 표현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수의 모더니즘 심층은 유아성 지향과 성숙 기피증으로 이루어져 있 다. 이것들은 성의 부재와 미발달로 설명할 수도 있다. 이러한 수의 미성숙은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난 세상의 남성들에 대해 전혀 두려움이 없어요. 남성들이 쓴 책 같은 건 두 렵지도 않아요. 여러 남성들과 어울려본 적도 있고요. 그중 한두 사람과는 각별 했죠. 이런 경우 대부분의 여자들은 어떤 종류의 기분을 갖게 되는데, 말하자면 정조를 뺏기지 말아야지 하는 식으로요. 내가 사귄 남자들에게서 전 그런 기분 을 안 가져 봤어요. 미개에 가까운 육감적인 남자의 경우라면 별 문제겠지만요. 여느 남성은 여자 쪽에서 먼저 유인하지 않으면 낮이든 밤이든 집 안이든 집 밖 이든, 여자를 괴롭히지는 않지요." 위의 말은 인습으로부터 벗어난 수의 강인함을 나타내는 것 같지만 사실은 수 의 성적 미분화 상태를 의미하는 부분이다. 여기에서의 자유란 성인으로서 책임 지는 자유가 아닌 어렸을 때의 자유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른으로서 책임 이 따르는 자유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자신을 구속할 사회의 제도를 기피하는 그녀의 원초적인 공포심이 근본적으로 여자로서의 약한 생명력으로부터 약함에 기인한다는 것은 결혼 직후의 그녀의 묘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녀는 자신 때문에 괴로워하게 될 주드의 고통과 자신에 대한 동정심에서 눈 물이 뒤범벅되었다. 성격이 맞지 않는 한 남편의 아내인 수는, 몸집이 작고 호 리호리한데다 원래 민감하고 신경이 섬세하며 감성적인 여자였기 때문에 기질적 으로나 본능적으로 필로트슨과 맞지 않았다. 그녀는 아무런 의욕도 없이 터덜터 덜 걸었다. 이상으로 수의 성격과 생활방식 속에 나타난 근대 문명사회의 불안요소-성적 미성숙과 현실사회에 안주할 수 없는 약함의 문제-를 살펴 보았다. 다음은 주드의 심층 부분을 살펴보자. 수에게서 나타난 성숙에의 공포는 주드 의 출발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또한 작가 자신의 소년시대 경험과도 관 계가 깊다. 주드는 농부인 트라우댐의 밭에서 까마귀 쫓는 일을 하다가 문득 자연계의 잔 혹함을 깨닫고 성장에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존재 자체가 그렇게도 모순에 가 득찬 것이라면 책임이 따르는 성장은 두려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주드의 이러한 두려움 이면에는 역시 남성적인 면의 미성숙과 정신적, 정서적 미성숙이 까려 있다. 그러나 주드는 수와는 다르게 현실을 기피하고 꿈을 추구 하는 경향으로 현실에 적응하고자 한다. 이에 대해 하디는 주드의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 다. "정말 싫증나는 곳이야!" 그는 중얼거렸다. 씨레질해서 북돋아 놓은 신선한 골의 열은 새 골댄천의 홈처럼 퍼져 주위에 전반적으로 야박한 공리주의적인 분위기를 더했고 그 농담의 구분을 벗겨버리고 요즈음 두서너 달 간을 넘어서 거슬러 올라가는 모든 역사를 제거했다. 하지만 사실 이 주위의 흙덩이 하나 돌멩이 하나에도 많은 연상이 남아 있었 다 - 그 옛날의 추수날로부터 전해오는 노래, 사람의 입에서 새어나온 말들, 용 감한 공적 등의 메아리가 남아 있었다. 땅의 어느 구석이나 다 옛날의 활기와 행락과 말놀이와 언쟁과 권태 등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은 곳은 없었다. 들판의 어떤 장소에도 이삭줍는 무리들이 햇빛을 쬐며 웅크려 않지 않았던 곳은 없었 다. 인근 부락의 인구를 늘어나게 했던 연애와 결합도 보리베기와 그 곡물의 운반 작업 중에 이루어졌다. 이 들판을 저 멀리 있는 농경과 갈라놓는 생울타리 아래 에서 아가씨들은 다음 수확까지는 자신을 돌아다보지도 않게 될 연인에게 몸을 맡겼다. 그리고 그 오래된 보리밭에서는 많은 남자들이 한 여인에게 사랑의 약 속을 하고 가까운 교회에서 약속을 이행한 후엔 다음 해의 파종기까지는 또다시 여자의 소리를 들어도 몸이 떨리지 않게끔 되었다. 그러나 이런 일들에 대해 주드나 그의 주위에 있는 까마귀들은 관심이 없었 다. 이곳은 그들에게는 쓸쓸한 장소에 지나지 않았다. 주드의 입장에서 보면 그 곳은 일하는 장소에 지나지 않았으며 까마귀떼들의 입장에서 보면 먹을 거리가 풍부한 곡창이라는 그런 차이를 지닌 것에 지나지 않았다. 위의 인용문은 주드의 편파적인 시각을 암시하는 부분이다. 현대는 인기척도 없는 쓸쓸한 풍경이지만 계절이 돌아오면 곡물이 익고 사람 들이 모이고, 일하고, 연애하고, 결혼하는 삶의 터전이다. 이곳은 또한 남녀의 결혼이 지극히 당연한 한 세계이기도 하다. 그러나 주드에게는 이곳이 흉칙하고 고독한 장소일 뿐이다. 여기에 현대인으로서의 주드의 문제점이 있다. 이처럼 주드는 현실에서 혐오감만을 발견하고 그곳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으로 학문 에 매달린다. 학문의 세계만이 구원이라는 그의 믿음은 주드가 꿈에 흘려 '갈색 의 집'이라는 창고 위에서 크리스트민스터쪽을 바라보는 장면에 적절히 묘사되 고 있다. 그 중의 한 장면이다. 소년은 차가운 백악의 단단한 장벽을 넘어 북쪽으로 늘 화려한 도시를 엿보고 있었다. 그 도시야말로 소년이 새로운 예루살렘으로 비유한 꿈속의 장소였다. (묵시록)의 저자가 품은 꿈보다고 화가의 상상이 많이 담겨 있었지만 다이아몬 드 상인과 같은 상상은 아니었다. 그 도시가 구체성과 영구성을 가지고 소년의 생활 속으로 분명하게 파고 들어 온 것은 주로 소년이 그 지식과, 목적을 대단히 존경하는 사람이 현재 거기에서 살고 있다는-단지 그것뿐만 아니라 보다 사려깊고 정신적으로 빛나는 사람들 속 에서 생활한다는 사실에서 생겨났다. 주드의 이야기는 '꿈을 꾸는 조셉', '비극의 돈키호테'와 같이 꿈이 늘 현실 에 의해 배반당하는 과정의 이야기이다. 주드의 꿈의 붕괴는 빌버트에게 문법서 를 부탁했다가 배반당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다. 필로트슨이 보내준 그리스어와 라틴어의 입문서도 주드가 생각한 언어의 정연한 법칙성에 위배되는 것이었다. 힘든 독학의 위상도 사춘기의 성욕에 의해 힘없이 무너져버리고 결혼의 파탄에 서 다시 크리스트민스터의 꿈을 꾸지만 이젠 꿈과 현실의 엄청난 차이를 깨닫게 된다. 석고인 그에게 대학은 냉담하기만 하고 그가 존경해 마지않던 필로트슨마 저 뜻을 이루지 못했음을 알고 주드는 절망한다. '자신이 의지해야 할 무엇'으 로서의 학문의 꿈은 철저히 그를 배신한 것이다. 그후 주드는 수와의 사랑도 목 사의 꿈도 이루지 못하고 생계를 위한 그의 일도 날품팔이의 비천한 묘석조각의 일로 전락하고 만다. 수와의 동거 중에 수와 사랑의 감정을 나누기는 하지만 세 상으로부터의 소외와 생활고, 자식들의 죽음 등 어느 것 하나 편안한 것은 없 다. 수의 성격과 생활태도에서, 인간의 성적 미성숙과 현실사회에 안주할 수 없는 근대 문명사회의 불안요소를 읽어냈듯이 주드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그의 꿈과 꿈을 이루려는 노력에서 근대사회의 불안요소를 읽어낼 수 있다. 주드가 처음으로 크리스트민스터에 들어와 직업을 얻기 위해 석공의 작업장을 찾아가는 대목이다. 잠시 동안 주드에게는 진짜 광명이 찾아왔다. 그것은 장중한 대학의 내부에서 학문의 연구하는 미명으로 따라다니는 위엄어린 노력에 뒤지지 않게 가치 있는 노력의 중심이 이 석세공장에도 있다는 깨닫음이었다. 그는 이전 고용주의 추천 에 힘입어 자기에게 할당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나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나 고 작해야 임시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불안이라는 근대병이 그에게는 이런 형태 로 나타났다. 위 인용문은 작가 자신의 젊은 날의 직업선택의 문제를 상기시킨다. 하디는 20대 후반에 커다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는데 그것은 성장에 따르는 책임의 문 제였다. 그는 미래를 보장해 주는 건축사무소의 일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온 다. 곧 근처에 있는 건축의 일이라고 하는, 확실하고 안전한 길을 선택하지 않 고 지금까지 계속 보지해온 문학이라고 하는 불확실, 불안정한 꿈을 추구하는 길을 선택한다. 현실에 안주하는 자세를 피하고 늘 열려진 미래에 몸을 바치려 는 작가의 배후에 그의 남성적인 미성숙과 그 불안의 근원을 발견한 것이다. 이 런 문제가 늘 일시적인 일밖에 종사할 수 없는 주드의 생활방식을 통해 현대의 악, 즉 불안으로 제시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이상으로 수와 주드의 심층면을 살펴보았다. 유아성 지향, 성숙의 기피는 바 로 작가의 정서와도 통한다. 소년기의 하디에게는 성장해서 어른이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이다. 남성으로서의 성숙의 지연은 정서적인 면에서의 지연이라든가 인간으로서의 성숙의 지연이라는 의미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를 포함하고 있다. 모친의 엄하지만 따뜻한 비로의 세계에서 외부의 세계를 보았을 때 소년의 직 관은 이것을 정연한 운율에 의해 규정되지 않는 무질서한 공간으로 포착한 것이 다. 뚜렷하지 않은 열려진 세계는 판단의 기준을 부여하지 않고 따라서 타당한 판단과 거기에 근거하는 결단을 불가능하게 한다. 소년 하디가 성장이 가져오 는 책임에 의해 이 세계와 대항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는 것을 두려워한 것은 이 직관적인 인식에 의한 것이다. 이런 두려움은 작가의 성숙의 지연과 밀착되어 있다. 그는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어 일생의 직업의 선택에 있어서조차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결국 자기 의 성숙을 지연시키고 '25세까지 청년'에 머문 것이다. 하디가 자기의 일생을 통해 그의 성격과 행동의 대다수를 해결하는 실마리가 생식능력의 면에서 성장 의 지연에 있다고 한 말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의 결혼의 불결단, 직업선택의 불결단 등등의 근원이 이 '생식능력'의 면에서의 성장의 지연에 있다고 생각되 기 때문이다. 주드와 수의 특이한 성격이 서로 흡사하고 민감하고 감수성이 예민하고 섬세 함에 있어 희한하게 서로 호응하고 서로 이해하는 것은 그들 두 사람이 함께 이 불안의 희생자이고 또한 이것을 의식하는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본 작품의 끝에 서 작가는 이 두 사람에게 각각 다른 길을 택하게 한다. 하나는 자유와 열려진 미래를 버리고 현실의 사회에 안주하는 길이다. 꼬마영감에 의해 일어난 비참한 사건이 있고 나서 충격을 받은 수는 주드를 뿌리치고 한 번 결혼했다가 헤어진 필로트슨의 곁으로 돌아가 다시 결혼하기로 한다. 이것은 최초의 결혼을 정당화 하려는 사회의 규범으로서 귀순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수의 근대인으로서의 특질 이 이런 자기에게 억지로 강요된 귀순에 의해 극복될 수 없다는 것이 필로트슨 의 침실로 도저히 들어갈 수 없는 그녀의 내면적인 저항에 의해 드러나고 있다. 이런 귀순은 진정으로 수의 정신적인 자살행위를 나타낸다. 한편 꿈이 깨지고 좌절을 맛본 주드는 크리스트민스터의 군중을 향해 이렇게 외친다. 지금의 나의 겉모습-병들고 가난한 남자-은 나의 최악의 모습이 아닙니다. 나 는 어둠 속을 헤매면서 선례를 따르는 것이 아니고 본능에 의지해 행동하면서- 여러 신념의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8년 전인가 9년 전에 내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나는 여러 가지 고정관념을 정연하게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하나씩 떨어져 나갔고 그럴수록 확신을 읽게 되었습니다. 현재의 생활 방식은 나에게는 해롭지만 다른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으며 가장 사랑하는 사 람들에게는 실질적인 기쁨을 주는 여러 경향을 따라가는 일-그 이상의 것을 가 지고 있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자, 여러분 나의 생활에 대해서 알고 싶다는 이 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이 이야기가 제발 여러분을 위한 것이 되기를! 여기에서 더 이상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나는 사회의 규범이 어 딘가 잘못된 곳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드는 한때 자신의 꿈의 도시였던 크리스트민스터의 구석진 방에서 욥의 고 민에 탄 자조의 말을 외치며 죽어간다. 정연한 질서와는 거리가 먼 모순으로 가 득찬, 이 잔혹한 논리가 통하는 자연계에서는 자신의 노력만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는 없다. 사람은 흔히 일의 결과를 통해 그 사람의 됨됨이를 평가 하지만 그것은 그 사람의 참된 평가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인간이 만일 진실을 좇아 살려고 한다면 사회의 인습이나 규범에 얽매여 살 수는 없을 것이다. 밀 (영국의 철학자)의 말처럼 그는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여 자신의 꿈을 좇 아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의 꿈은 깨어지고 그의 삶은 실패와 파멸이라 는 비극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하디는 (비운의 주드)를 통해 현대인이 겪는 삶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보여주 고 있다. 본 작품에서 하디는 자신의 내면의 고유한 문제에 여러 삶의 모습을 부여함으 로써 문제에 일반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갖게 하는 예술적인 형식을 사용하고있 다. 이것은 인습에 안주하지 않고 진실을 찾아 헤매는 동시에 고난으로 고통받 으면서도 기존의 가치관을 거부하고 거기에 맞서지 않을 수 없는 어리석고도 고 상한 돈키호테 풍의 진보주의자의 모습이다. 이것이 바로 작가의 모더니즘이라 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