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이의 소망이야기 지은이: 토머스 하디 외/차은숙 옮김 출판사: 푸른샘 붉은 고양이 그놈의 붉은 고양이 새끼의 일이 자꾸만 생각나서 나는 견딜 수가 없다. 내가 그런 짓을 한 것이 옳은 일인지 아닌지도 분간할 수가 없다. 우리집 뜰에는 폭탄이 떨어져서 커다란 구덩이가 생겼는데, 이야기는 그 언저리의 돌무더 기에 내가 앉아 있었던 때부터 시작된다. 돌무더기라고 했지만, 우리 집은 반 이상이 파괴되어 그것이 산처럼 쌓였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나머지 반도 못되는 집 속에 우리 가족, 즉 나와 어머니와 페터 그리고 레니가 살고 있었다. 페터와 레니는 나의 동생들이다. 하여간 나는 그 돌더미 위에 앉아 있었다. 그 긴 사각형의 집터에 쐐기풀과 이름 모를 잡초들이 우거져 있었다. 나는 빵을 한 조각 손에 들 고 있었다. 벌써 단단하게 굳어버린 빵이었지만, 어머니는 늘 묵은 빵이 새로 구운 빵보다 건강에 좋다고 말씀하셨다. 사실 묵은 빵은 오랫동안 씹어야 되고, 그래서 조금만 먹어도 배 가 부르다고 어머니는 생각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배가 불러본 적이라곤 없었다. 갑자기 그 빵조각이 내 손에서 떨어져 나갔다. 나는 몸을 구부려 주우려 했지만, 그 순간 에 쐐기풀 가운데서 붉은 앞발이 쑥 나오더니 빵조각을 채어가고 말았다. 나는 어이가 없어 멍하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눈 깜짝할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윽고 나는 쐐기풀 사이 에 고양이란 놈이 웅크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여우같이 붉고 깡마른 놈이었다. 이놈의 새끼! 나는 소리를 지르면서 돌을 그놈한테 내던졌다. 그러나 맞힐 생각은 조금 도 없었고, 다만 쫓아버릴 생각 뿐이었다. 그러나 그 돌에 얻어맞았는지 그놈은 꽥 하고 소 리를 질렀던 것이다. 단 한 번 꽥 했을 뿐이었지만, 꼭 어린애가 지르는 소리 같았다. 그러 나 도망치지는 않았다. 돌을 던지다니 몹쓸 짓을 했다고 생각해서 나는 이리 오라고 손짓을 했다. 그러나 그놈은 쐐기풀 속에서 나오지도 않았다. 화가 난 듯 숨만 헐떡였다. 배에 들러 붙은 붉은 털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놈은 줄곧 푸른 눈으로 나를 바라보 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도대체 너는 어쩌자는 거야? 하고 그놈에게 말을 걸었다. 그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그놈이 인간이 아닌 바에야 말을 걸어서 무엇하랴. 그렇게 생각하자. 나 는 그 고양이놈에 대해서도, 나 자시에 대해서도 화가 치밀어 왔기 때문에 이젠 그놈을 쳐 다보지 않기로 하고, 아주 급하게 내 빵을 입에 구겨 처넣다시피 했다. 마지막 한 입은 아직 큰 덩어리였는데, 그것을 고양이놈에게 던져주고는 화가 난 채 그곳을 떠났다. 집 앞의 정원까지 오니 페터와 레니가 그곳에서 완두콩을 따고 있는 중이었다. 둘이 다 그 완두콩을 입 안에다 쑤셔넣고 있었기 때문에, 그저 서걱서걱하는 소리만 날 뿐이었다. 레 니가, 오빠는 아직 빵을 한 조각 가지고 있지 않으냐고 들릴까말까 한 소리로 물었다. 그래 서 나는 말해주었다. 그래, 어쩌란 말이냐. 너희들도 나하고 똑같은 빵을 받지 않았니? 그 리고 너는 겨우 아홉 살이지만, 난 열세 살이란 말이야. 큰 사람이 더 먹어야 하지 않니? 그렇지. 하고 여동생은 말했을 뿐, 더는 아무 말도 없었다. 그러자 페터가 말참견을 했다. 레니는 빵을 고양이한테 줘버렸단 말이야. 어떤 고양이한테 줬니? 하고 내가 묻자 레니가 말했다. 어떤 고양이냐고? 빨간 고양이 가 한 마리 왔었는데 조그만 여우같은 거였어. 아주 말라빠지고 내가 빵을 먹으려고 하니까,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던 걸. 바보같으니. 하고 나는 화가 나서 말했다. 우리들 먹을 것도 없는데... 그러자 여동생은 다만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 슬쩍 페터쪽을 바라보았다. 페터가 얼굴이 새빨개졌기 때문에 나는 틀림없이 저놈도 고양이한테 빵을 주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나는 정말 화가 나서 후다닥 그 자리를 떠났다. 큰길로 나가니 미제 자동차가 서 있었다. 크고 기다란 차였는데, 아마 비크였었다고 생각 된다. 운전하고 있던 사람이 시청이 어디냐고 물어왔다. 영어로 물어본 것이었으나 나도 영 어쯤은 좀 할 줄 아니까 대답해 주었다. 다음 거리예요, 그리고 왼쪽... 그리고... 똑바로라 는 말을 영어로는 뭐라고 하는지 몰랐기 때문에 그것은 손짓으로 가리켜 주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은 내가 말하는 것을 바로 알아들은 것 같았다. 그리고 교회 뒤에 광장이 있는데, 시청은 거기 있어요. 아마 그것은 멋진 영어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차 안에 있던 여자가 내게 몇 조 각의 흰 빵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새하얀 빵이었고, 빵과 빵 사이를 쪼개 보니 어마 어마하게 두꺼운 소시지가 끼여 있었다. 그래서 나는 곧장 그 빵을 가지고 집으로 달려갔다. 내가 부엌으로 들어가자, 동생들이 놀란 듯 무엇인가 소파 밑에다 감췄지만 나는 벌써 눈치 채고 있었다. 그것은 그 붉은 고양이였다. 게다가 마룻바닥에 우유가 좀 흘려져 있었기 때문 에 무슨 짓을 하고 있었는지 모든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너희들은 미쳤구나. 하고 나는 호통을 쳤다. 우리는 하루에 단지 반그릇밖에는 탈지분유 를 배급받지 못한단 말이다. 더구나 네 식구나 되고. 그리고 나서 나는 그 고양이를 소파 밑에서 끄집어내서는 창 너머로 내던져 버렸다. 동생 들은 한마디 말도 안 했다. 그런 다음 나는 미국인한테서 받은 흰 빵을 넷으로 잘라 어머니 몫을 부엌 찬장 안에다 감춰두었다. 어디서 났어? 하고 그 녀석들은 물으며 아주 불안하게 쳐다보는 것이었다. 훔쳤다. 나는 그렇게 대꾸를 하고는 밖으로 뛰어나갔다. 길바닥에 석탄이 떨어져 있지 않나 빨리 살펴보려고 했던 것이다. 그것은 석탄을 실은 차가 막 지나갔기 때문인데, 가끔 그런 차들이 석탄을 흘리고 가는 경우가 많았다. 집 앞 정원에 나가 보니 그 붉은 고양이가 웅크리고 앉아서 나를 쳐다보는 것이었다. 저리 가! 하고 나는 발로 그 고양이를 걷어차 버렸다. 그렇지만 그놈은 꼼짝도 하지 않았 다. 단지 조그만 주둥이를 벌리고서 야아옹 했을 뿐이었다. 그 고양이는 다른 고양이와는 달 리 마구 울어대지를 않고 단지 야아옹 할 뿐이었는데, 나는 그 꼴을 설명할 수가 없다. 그놈 은 그렇게 울면서 푸른 눈으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잔뜩 화가 치밀어 미국사람이 준 빵 부스러기를 고양이를 향해 내던졌다. 나중에 생각하니 후회가 되 었다. 길에 나가 보니, 벌써 다른 녀석들이 둘이나 와 있었다. 나보다도 큰 아이들이었는데 벌써 석탄을 주워가 버렸다. 그래서 나는 그대로 지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 놈들은 양동이 하나 가득히 주웠다. 나는 그 속에다 얼른 침을 퉤 하고 뱉어주었다. 고양이놈하고 실랑이만 안했 더라면 이것이 모조리 내 것이 됐을 판이었다. 이것만 있었더라면 저녁 한 끼는 끓일 수가 있었을 것이다. 정말 번쩍번쩍하는 좋은 석탄이었다. 그 대신 나는 나중에 감자를 실은 마차 를 만났다. 내가 좀 쑤셔 보았더니 감자 몇 개가 마차에서 굴러 떨어졌다. 나는 그것을 호주 머니 속에 집어넣고 모자에도 담았다. 마부가 돌아다보길래 나는 이렇게 말했다. 아저씨, 감자 잃어버리겠어요. 그리고는 빨리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는 어머니 혼자뿐이었다. 그런데 어머니의 무릎 위에 는 그 붉은 고양이가 앉아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을 했다. 제기랄, 이놈의 고양이 벌써 또 왔구나. 그러자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그렇게 지독한 말을 하지 말아라. 이 고양 이는 주인을 잃었단다. 얼마나 오랫동안 아무 것도 못 얻어먹었는지 모른다. 자 보렴, 이렇 게 말랐구나. 우리들도 그렇게 마르지 않았어요? 하고 내가 말하자 어머니는, 나는 내 몫의 빵을 주 었단다. 하고 말씀하시면서 나를 곁눈으로 보시는 것이었다. 나는 우리들의 빵과 우유와 그 흰 빵을 생각했지만,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그 감자를 삶아 먹었다. 어머 니는 기쁘신 듯했다. 그런데 내가 그런 것을 어디서 가져왔는지 묻지도 않으셨다. 나중에 커피를 마실 때가 되 자 어머니는 오늘따라 커피에다 우유를 넣지 않으셨다. 그 붉은 고양이가 우유를 핥아먹는 것을 모두들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고양이놈은 창으로 해서 뛰어나가 버렸다. 나는 재빨리 문을 닫아버리고, 이젠 됐 다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튿날 아침 여섯시에 나는 야채를 얻기 위해 줄을 서려고 나갔다. 여덟시에 집으로 돌아와 보니 동생들은 아침을 먹고 있었다. 둘 사이의 의자 위에는 그놈 의 고양이가 쪼그리고 앉아서, 레니의 받침접시에서 커피에 적셔 무르게 한 빵을 처먹고 있 는 것이었다. 잠시 후에 어머니가 돌아오셨다. 어머니는 다섯시반부터 푸줏간 앞에 가서 줄을 서고 계셨던 것이다. 그 고양이놈은 곧 어 머니에게로 뛰어갔다. 어머니는 내가 눈치채지 못했다고 생각하셨는지 소시지 한 조각을 떨 어뜨려 주셨다. 그것은 배급표가 필요없는 회색빛의 소시지였지만, 우리들은 그런 것이라도 빵에다 끼워 먹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것쯤은 어머니도 알고 계셔야 할 것 아닌가. 나는 부 아가 끓어오르는 것을 억지로 삼키며, 모자를 집어들고 뛰어나갔다. 나는 지하실에서 낡은 자전거를 끄집어내어 그것을 타고 교외로 달렸다. 그곳에는 작은 연못이 있어서 물고기가 살고 있었다. 낚시 도구가 있을 리 없고, 다만 뾰족한 송곳이 달린 작살같은 것이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것을 고기를 찍었다. 그것을 나는 벌써 여러 번 성공 했었는데, 이번에도 잘 되었다. 열시도 채 되지 않았는데, 나는 벌써 아주 굉장한 놈을 두 마리 잡았다. 점심에는 이것이면 충분할 것이다. 나는 될 수 있는대로 빨리 집으로 달려왔 다. 그리고 그 물고기를 부엌의 식탁 위에다 올려놓고 곧 지하실에 내려가서 어머니께 말씀 드렸다. 어머니는 거기서 세탁을 하고 계셨던 것이다. 어머니와 나는 함께 부엌으로 올라왔 다. 그러나 물고기는 한 마리밖에 없었다. 그것도 하필이면 작은 것만이 남아 있었다. 얼른 창틀을 바라보니 붉은 고양이놈이 그곳에 올라앉아 물고기를 깡그리 먹어치우고 있는 중이 었다. 나는 화가 치밀어 나무토막을 한 개 집어 던졌더니 이번에도 제대로 들어맞았던 것이 다. 고양이는 창틀에서 굴러 떨어졌는데, 마치 무슨 자루가 떨어질 때처럼 마당에서 털썩 하 는 소리가 났다. 이놈의 새끼, 꼴 좋다. 하고 나는 말했다. 그러나 그 순간 어머니의 손이 찰싹 하고 내 뺨을 갈겼다. 나는 열세 살이 될 때까지 최근 오 년 동안 한번도 얻어맞은 적이 없었다. 왜 동물을 못살게 구니? 하고 어머니는 소리를 치시고, 내가 한 짓에 화가 나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셨다. 나는 당장 도망치는 것 이외에는 별 도리가 없었다. 점심상에 생선 샐러 드가 나오기는 했으나, 그것은 감자가 물고기보다 훨씬 많은 것이었다. 어쨌든 우리는 그놈 의 붉은 고양이를 쫓아낸 셈이 되었다. 그렇지만 그것으로 일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동생들 은 여기저기 정원을 뛰어다니면서 고양이를 불렀고,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저녁마다 우유가 든 작은 접시를 문 밖에 놓아두고는 내 얼굴을 원망스럽게 쳐다보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 자신도 구석구석 고양이를 찾아다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병이 들었든지 혹은 죽어서 어 디 가서 뒹굴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사흘만에 고양이가 되돌아왔다. 그놈은 절룩거리고 있었는데, 그것은 발에 상처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오른쪽 앞 다리의 상처는 내가 나무토막을 내던졌기 때문에 생긴 것이었다. 어머니는 그곳에다 붕대를 감아주고 게다가 먹을 것까지 주었다. 그 후로는 고양이놈이 매일같이 찾아왔다. 식사를 할 때마다 반드시 그 붉은 고양이가 나타나기 때문에 우리들은 아무 것도 그놈 몰래 감추어 둘 수가 없었다. 우리들이 무엇을 먹기 시작하면 그놈은 꼭 그 곁에 앉아서 누군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들은 모두 고양이가 먹고 싶어하는 것을 주고 마 는 것이다. 나도 그렇게 했다. 물론 화가 나기는 했지만. 그놈은 점점 살이 쪄갔다. 원래가 그놈은 품종이 좋은 고양이였던 것 같다. 이렇게 해서 1946년에서 47년에 걸친 겨울이 닥쳐왔다. 그 무렵 우리들은 말 그대로 먹을 것이 없었다. 몇 주일에 걸쳐서 약간의 고기도 얻을 수 없었고, 단지 얼어터진 감자뿐일 때 도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입은 옷이 몸에서 헐렁거릴 지경이었다. 어느 날 레니가 허기진 나머지 빵가게에서 빵 한 개를 훔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알고 있는 것은 나뿐이었다. 2월초였지만 나는 어머니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이제 저 동물 을 처치하기로 하지요? 어떤 동물을 말이냐? 하고 어머니는 물으시면서, 나를 노려보시는 것이었다. 저 고양이지 뭐예요? 하고 나는 말하면서 대수롭지 않은 척했지만, 그 말로 해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나는 벌써 알고 있었다. 모두들 일제히 내게 대드는 것이었다. 뭐라고? 우리 들의 고양이를? 부끄럽지도 않아? 뭐가 부끄럽니? 하고 나는 대답해주었다. 우리들은 그놈의 고양이를 우리들이 먹을 것 으로 살찌게 했어. 그놈은 돼지새끼처럼 살이 찌고 더군다나 아직도 어려. 그러니까 어떨 까? 그랬더니 레니는 왕왕 울부짖기 시작했고, 페터는 식탁 밑에서 나를 발길로 걷어차고, 어 머니는 슬픈 얼굴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네가 그렇게도 마음이 고약한 줄 나는 몰랐구나. 고양이는 부뚜막 위에 배를 깔고 자고 있었다. 정말 통통하게 살이 찌고 게으른 버릇까지 생겨서, 이제 집에서 쫓아내기조차 어렵게 되었다. 이윽고 4월이 되자, 감자마저 떨어지게 된 우리는 무엇을 먹고 살아야할지 걱정이었다. 어 느 날 나는 완전히 미칠 지경이 되어 단단히 마음먹고 고양이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 이놈 아, 들어보란 말이다. 우리는 먹을 것이 없단 말이야. 너는 그것도 모른단 말이냐? 그리고 나는 텅텅 빈 감자 상자와 빵그릇을 그놈에게 보여주었다. 나는 그놈에게 이렇게 타일렀다. 자, 나가란 말이다. 우리집이 어떤 형편인지 너는 모른단 말이냐? 그러나 그놈은 눈만 껌벅거리고 부뚜막 위에서 돌아눕기만 하는 것이었다. 나는 화가 나 서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식탁을 탕 하고 두들겼다. 그러나 그놈은 대수롭게 여기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놈을 움켜쥐고 겨드랑이에 끼운 채 밖으로 나왔다. 벌써 집 밖은 어 두워지고 있었다. 동생들은 차도에서 석탄을 줍기 위해 어머니와 함께 나가고 없었다. 그런 데 붉은 고양이놈은 게으르기 짝이 없어, 붙들려 가는대로 잠자코 있었다. 나는 강가로 걸어갔다. 도중에서 어떤 한 남자를 만났는데, 그 사람은 고양이를 팔 생각이 냐고 내게 물었다. 그래요. 하고 나는 대답하면서 살 사람이 나타난 것으로 생각해 좋아했다. 그러나 그 사 람은 그저 웃었을 뿐, 그대로 가버리고 말았다. 어느덧 나는 강가에 이르렀다. 강에는 얼음 이 떠내려가고 안개가 자욱했으며 몹시 추웠다. 고양이는 내게 몸을 바싹 붙이고 있었다. 나 는 털을 쓰다듬어 주면서 고양이에게 타일렀다. 나는 이제 더 바라볼 수가 없다. 내 동생들 이 허기져서는 안 되겠다. 그런데 너는 이렇게 통통하게 살이 쪘어. 나는 그것을 더는 바라 볼 수가 없단 말이다. 그리고 나는 갑자기 큰 소리를 지르며, 그 붉은 고양이의 뒷발을 잡고는 어떤 나무기둥에 다 패대기를 쳤다. 그러나 그 놈은 비명을 지를 뿐, 그렇게 쉽사리 죽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얼음 덩어 리를 향해 내리쳤더니만 머리를 다쳤을 뿐이었다. 머리에서 피가 솟아나와서 사방에 깔린 눈 위에 검붉은 핏방울이 번졌다. 고양이는 어린애처럼 울어댔다. 나는 그만두고 싶었으나, 이렇게 된 이상 끝까지 해치울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나는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얼음 덩 어리에다 고양이를 내리쳤다. 딱 하고 부러지는 소리가 났지만, 그것이 뼈가 부러지는 소리였는지 얼음이 깨지는 소리 였는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여전히 고양이는 죽지 않았다. 고양이는 일곱 번 다시 살아난다고들 하지만, 그놈은 더 많은 목숨을 가지고 있었다. 패대기를 칠 때마다 고양이는 큰 소리로 울었다. 나도 엉엉 큰 소리로 울었다. 무섭게 추웠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전신이 땀으로 축축했다. 이윽고 고양이는 죽어버렸다. 나는 그놈을 강에다 던져 버리고 두 손을 눈 으로 씻었다. 다시 한번 그쪽을 바라보니, 그놈은 벌써 저쪽 강 한가운데로 떠내려가 곧 안 개 속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나는 오싹 한기가 들었다. 그러나 아직 집으로 가고 싶은 생 각은 없었다. 갈 곳도 없이 시내를 서성거리다가 결국은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너, 어떻게 된 거냐? 하고 어머니가 물으셨다. 얼굴빛이 새파랗구나! 그리고 웃저고리에 묻은 피는 뭐냐? 코피가 나왔어요. 하고 나는 대답을 했다. 어머니는 별로 내 얼굴도 쳐다보지 않고 부뚜막이 있는 쪽으로 가시더니 박하차를 달여주 셨다. 갑자기 나는 기분이 언짢아졌다. 아무리 해도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어서 나는 곧 잠 자리에 들었다. 나중에 어머니가 오셔서 아주 조용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난 다 알고 있단다. 이젠 더 이상 그 일을 생각하지 말거라. 그러나 그 후에 나는 페터와 레니가 얼굴을 베개 속에 파묻고 밤이 깊도록 엉엉 우는 소 리를 들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 붉은 고양이놈을 죽인 일이 옳았는지 어떤지 나는 알 수가 없게 되었다. 원래 그런 정도의 동물이란 별로 많이 먹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 다. 루이제 린저: 독일 바이에른 태생의 여류작가. 작품으로는 와르소에서 온 사나이 얀 로 벨 , 생의 한가운데 , 니이라 , 투명한 굴레 등이 있으며, 여기 실린 붉은 고양이 는 소년의 모습에 비친 전쟁 후의 혼란기를 간결하게 묘사하고 있다. 신호 세몬 이바노프는 철도의 선로지기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가 근무하는 간수 초소에서 한쪽 역까지의 거리는 13베르스타, 다른쪽 역까지는 10베르스타였다. 지난해 그곳으로부터 약 4베 르스타 떨어진 곳에는 커다란 방적 공장이 생겨 그 높은 굴뚝이 숲 너머로 보였지만, 그보 다 가까운 곳에는 이웃 간수 초소들을 제외하고는 인가라고는 없었다. 세몬 이바노프는 병약한 여윈 남자였다. 9년 전에 그는 전쟁터에 있었는데, 어떤 장교의 부하가 되어 함께 먼 행군도 했었다. 무더위와 강추위 속에서 굶주린 채 하루 40베르스타, 50베르스타씩 행군을 했었다. 총탄이 빗발치는 아래에서 행군한 경우도 있었지만, 부상 하나 당하지 않은 것을 천만다행이었다. 그의 연대가 최전방에 나갔을 때에는 한 주일 내내 터키 군과 교전한 일도 있었다. 이쪽편에 전초기지가 있으며, 오목한 골짜기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저쪽편은 터키군의 전초기지가 있어,. 아침부터 저녁까지 서로 총질하는 것이었다. 세몬이 섬기는 장교도 그 전초기지에 있었다. 매일 세 번씩 세몬은 골짜기에 있는 연대의 주방에서 끓고 있는 사모바르 주전자와 식사를 그 장교에게 날라다 주었다. 사모바르를 들 고 탁 트인 곳을 갈 때면, 총탄이 피융 소리를 내며 날아와 탁탁 바위를 맞히곤 했었다. 세 몬은 무서워서 울기도 했지만 언제나 그대로 걸어갔다. 장교들은 그의 행동에 매우 만족했 다. 그의 덕택으로 항상 뜨거운 차가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무사히 전쟁터에서 돌아오기는 하였지만, 그 후로는 팔다리가 쑤시기 시작했으므로, 적잖은 비애를 맛보지 않으면 안되었다. 우선 집에 돌아와보니 늙은 아버지는 세상을 떠난 후였다. 아들도 역시 네 살 되던 해에 인후염으로 죽고 없었다. 남은 것은 세몬과 그의 아내 두 사람뿐이었다. 살림살이도 시원치 않았고, 게다가 퉁퉁 부은 팔다리를 가지고서는 농사일은 어림도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 기 고장에서는 도저히 살 수가 없어서 무작정 새로운 고장으로 떠났다. 세몬과 그의 아내는 국경 지방에도, 헤르손에도, 그리고 돈강 지방에도 잠시 머물러 보았 다. 그러나 아무 곳에서도 뜻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 아내는 가정부로 보내고, 세몬은 홀로 여전히 방황하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기차를 타고 여행했었는데, 어느 한 역에서 역장을 보니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사람같았다. 세몬이 역장을 쳐다보자 역장도 역시 찬찬히 세몬의 얼굴을 쳐다보는 것 이었다. 그때서야 그들은 서로 생각이 났다. 그가 소속해 있던 연대의 장교였던 것이다. 자네 이바노프가 아닌가? 하고 장교가 말했다. 네, 그렇습니다. 장교님, 제가 바로 이바노프입니다. 어떻게 이런 곳에 왔지? 세몬은 그에게 자초지종을 말했다. 그럼 이젠 어디로 갈 건가? 알 수 없습니다, 장교님. 무슨 바보같은 소리냐, 알 수 없다구? 그렇습니다, 장교님. 갈 곳이 없으니 말입니다. 뭔가 일자리를 구하는 중입니다. 역장은 그를 쳐다보면서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여보게, 당분간 이 역 에 있어보게. 자네는 아마 아내가 있었지? 그래 아내는 지금 어디에 있나? 예, 장교님. 처가 있습니다. 처는 지금 쿠르스트시의 상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래, 그러면 아내에게도 이리 오도록 편지를 쓰게. 무임 승차권을 주선해보지. 마침 우 리 선로지기 간수초소에 빈 자리가 생긴단 말이야. 관구 과장에게 자네를 부탁해 보겠네. 대단히 감사합니다, 장교님. 하고 세몬은 대답했다. 이바노프는 그 역에 있게 되었다. 역장의 집 주방일을 도왔고, 장작을 팼으며, 구내의 플 랫폼을 청소했다. 2주일 후에는 아내가 도착했기 때문에, 세몬은 수동차를 타고 자기가 근무 하는 간수 초소로 되돌아갔다. 간수 초소는 새것이어서 따스했고, 장작은 얼마든지 있었으며, 조그마한 채소밭도 전임자 가 남기고 간 것이 있었다. 그리고 선로의 양쪽에도 작은 밭이 있었다. 세몬은 매우 기뻤다. 이것을 어떻게 경작해 나갈까, 소와 말을 사들일까 하고 생각했다. 필수품은 모두 지급받았다. 초록색 기, 붉은 기, 휴대등, 호루라기, 망치, 드라이버, 지렛대, 삽, 빗자루, 볼트, 자, 쇠못 등등. 그리고 근무 규정집 2권과 열차 시간표도 받았다. 처음 얼 마동안 세몬은 밤에도 자지 않고 시간표를 모조리 암기하였고, 열차가 아직 두 시간이 지나 야 올 터인데도 담당 구역을 순찰했으며, 간수 초소의 벤치에 앉아서 선로가 진동하지나 않 는지, 열차의 소리가 들리지나 않는지 살피곤 했던 것이었다. 근무 규정집도 모조리 암기해 버렸다. 잘 읽지는 못하는 편이어서 더듬더듬 읽기는 했지만 여하튼 모두 암기했다. 그것은 어느 여름날의 일이었다. 일은 힘들지 않았고, 눈을 치울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이 선로에는 지나가는 열차도 드물었다. 그래서 세몬은 일주일에 두 번, 자신의 담당 구역을 순시하고 여기저기의 나사를 다시 조이고 자갈을 고르고 통수관을 검사하면 그만이었고, 그 리고는 집에 돌아와 농사일을 했다. 그의 농사일에는 단 한가지 귀찮은 일이 있었다. 그것은 무엇 하나 하는 데에도 낱낱이 그것을 선로 감독에게 신청하고, 거기서 또 관구 과장에서 상신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데 문제는 신청한 것이 허가되어 돌아왔을 때에는 이미 때가 지나버렸던 것이다. 그래서 세 몬은 처와 함께 지리함을 불평하게까지 되었다. 약 두 달이 지났다. 세몬은 이웃의 선로지기들과도 알게 되었다. 한 사람은 이미 늙은 노 인이어서 그를 교체한다는 말도 나왔고, 초소 밖에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아내가 그를 대신해서 순찰도 하곤 했었다. 또 한 사람의 역에 가까운 선로지기는 아직 젊 은 친구로, 여윈 힘줄이 눈에 띄는 사내였다. 그가 세몬과 처음 만난 것은 순찰할 때에 이웃 간수 초소의 중간 선로 위에서였다. 세몬은 모자를 벗고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이웃 양반. 이웃 친구는 곁눈길로 그를 보고는, 안녕하시오? 하고 말했다. 그리고 돌아서더니 그만 성큼성큼 가버렸다. 안사람끼리도 그 뒤에 만났다. 세몬의 아내 아리나는 이웃집 부인에게 인사했지만, 상대방은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만 가 버렸다. 세몬도 한 번 그녀와 만난 일이 있었다. 아주머니, 댁의 바깥주인은 말이 별로 없으신가봐요. 아낙네는 잠시 말이 없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그래 그이가 댁과 무슨 할 말이 있겠어 요? 누구나 자기 일이 있잖아요... 그만 빨리 돌아가세요! 그러나 그 후 또 한 달이 지나고 나서는 그들과도 서로 친해졌다. 세몬과 바실리는 선로 위에서 만나면, 한쪽 끝에 앉아서 파이프 담배를 피우면서 각기 살림살이 이야기를 하는 것 이었다. 그러나 바실리 쪽은 대체로 말이 적었으며, 세몬이 자기 마을 이야기와 행군하던 이 야기를 하곤 했다. 이래봬도 나는 적잖이 고생을 겪어왔으니 이제부터 얼마나 더 살지 모 를 일이요. 결국 하늘의 도움은 못 받은 게지요. 운수라는 것은 일단 하느님에게서 받으면 바뀌지 않나봐요. 정말이야, 바실리 스체바노비치. 그러나 바실리 스체바노비치는 파이프로 선로를 딱딱 두드리며 일어서서 말하는 것이었 다. 뭐 피차에 일생을 먹힌 거요. 운수가 아니요, 인간들이지. 이 세상에 인간처럼 욕심이 많고 악독한 짐승은 없고. 늑대도 끼리끼리 잡아먹지 않는데 인간은 인간을 산 채로 잡아먹 거든. 아니야, 늑대도 끼리끼리 잡아먹기도 하지. 그런 소린 하지도 마시오. 말하다 보니 그런 말이 나왔소. 그러나 역시 인간처럼 가혹한 것은 없어. 만일 인간의 가 혹성과 탐욕이 없었더라면 모두가 잘 살 수도 있었을 거요. 그러나 너 나 할 것 없이 상대 방을 산 채로 먹겠다고, 한 입에 먹어버리려고 노리고 있거든. 세몬은 생각에 잠겼다. 모르겠소. 어쩌면 그럴지도 몰라. 그렇지만 그건 그것대로 역시 하느님이 정하신 거죠. 하고 말했다. 그렇게 말한다면... 하고 바실리가 말했다. 뭐 당신과 이러쿵저러쿵 말할 것도 없고. 언 짢은 것은 무엇이든 하느님에게 뒤집어씌우고 가만 앉아서 참는다는 말이지? 그렇다면 사람 일 필요가 없지. 짐승이면 족하지. 내가 할 말은 그것뿐이요. 그는 돌아서서 인사도 없이 그만 가 버렸다. 세몬도 일어섰다. 여보게, 친구! 하고 그는 외쳤다. 뭐 그렇게 화낼 건 없잖소? 이웃 친구는 돌아보지도 않고 성큼성큼 가버렸다. 세몬은 산을 깎은 굽이돌이에서 바실리 가 안 보이게 될 때까지 오랫동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서 아내에게 말하기를, 여보 아리나, 바실리는 지독한 놈이요. 그건 악마지 사람이 아니야. 그러나 그들은 싸우지는 않았다. 만나면 또 여전히 말을 했고 그 화제는 여전했다. 제기랄, 이게 사람이... 그 뭐가 아니라면 우리도 피차에 이런 간수 초소 속에서 어물거리 고 있지는 않을 거요. 안 그렇소? 하고 바실리가 말했다. 간수 초소 속에서 어떻다는 말인가... 그럭저럭 살 수는 있잖소? 살 수 있다? 살 수 있단 말이지? 제기랄. 이건 나이는 먹었어도 세상을 모르고 눈에는 통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모양이로군. 이 따위 간수 초소 속에서 살고 있는 가난뱅이가 이 래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소? 당신도 백정에게 먹히고 있단 말이요. 단물을 모조리 짜먹 고, 늙어빠지면 깻묵처럼 내던지는 돼지먹이밖에 더 돼? 그래 당신 월급은 얼마 받고 있 소? 뭐 하찮은 거요, 바실리 스체바노비치. 12루블이요. 나는 13루블이요.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이지? 규정상으로는 상부에서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게 되어 있거든. 한 달에 은화로 15루블, 그리고 연료와 조명비도 지급하고 말이야. 그렇 다면 대체 누가 당신은 12루블, 나는 13루블이라고 정했단 말인가? 누구의 배때기를 살찌웠 고, 나머지 3루블이나 2루블은 누구의 호주머니에 들어가야 한단 말이요? 당신에게 묻고 싶 군... 그래도 당신은 살 수 있다고 말하지! 그러나 나는 그 2루블이나 3루블에 대해서 말하 는 건 아니요. 그거야 몽땅 15루블 받았댔자 마찬가지요. 지난 달 내가 역에 갔을 때의 일이 지만, 마침 국장이 거기를 지나가는 길이었어. 그래서 나는 그를 보았소. 그런 영광을 가졌 다는 말이요. 그 친구 전용 차량에 타고 있었는데 플랫폼에 내려선 것을 보니, 금줄을 배에 돌리고 두 뺨이 붉은 것이 기름기가 넘쳐흐르더군... 우리의 피를 실컷 빨아먹은 거요. 제기 랄, 힘과 권력을 가졌다면... 나도 여기 오래 있지는 않겠어. 아무 데나 마음 내키는 곳으로 갈 거요. 대체 어디로 가겠단 말이요, 바실리? 위를 보면 한이 없는 거요. 여기에만 있다면 따뜻한 집도 있고, 조그마한 땅도 있으며, 당신 처는 살림꾼이구 말이요... 땅이라! 당신은 내 땅을 좀 보고나 말하시오. 나뭇가지 하나 서 있지 않아. 봄에 양배추 를 심으려고 하니, 당장 선로 감독놈이 와서 이건 뭐야? 왜 보고 안했어? 왜 무허가로 하느 냔 말이야? 당장 흔적도 없게 몽땅 파버려. 하지 않겠소? 한 잔 먹었던 모양이지. 다른 때 같으면 아무 말도 없었을 텐데. 그때에는 잊지도 않고 벌금을 3루블이나 부과하지 않겠소... 바실리는 잠시 말없이 파이프를 한 모금 빨고 나서 작은 목소리로 자칫했으면 나는 그 놈 을 죽도록 패 줄 뻔했소. 이것 봐, 이웃 친구. 그렇게 흥분해선 안 되요. 흥분 안 해. 내 말이나 생각은 옳단 말이요. 그 술꾼놈 두고 보라지. 관구장에게 직접 탄 원할 거야. 두고봐! 그것은 사실이었다. 때마침 관구장이 선로를 검사하러 나왔다. 바로 사흘 후에 베체르부르그에서 온 상관들이 선로를 지나가게 되었고, 게다가 그것이 검열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통과하기 전에 모든 것을 구비해 놓아야 했던 것이다. 자갈을 깔고 고르고, 침목을 검사하고 큰못을 다시 박고 너트를 조이고 말뚝을 다시 칠해야 했고, 건널목에는 노란 모래를 더 깔라는 명령까지 내렸다. 이웃 초소의 노파는 늙은 남편을 풀 베러 들로 내쫓았다. 세몬은 한 주일 내내 일했다. 모든 것을 잘 정돈하고 나서, 이번에는 자기의 작업복을 수 선하여 손질했고, 구리로 된 마크도 광이 나도록 벽돌가루로 닦았다. 바실리도 일했다. 관구 장은 궤도차를 타고 왔다. 인부 네 사람이 핸들을 돌렸고 톱니바퀴가 소리를 냈다. 그렇게 한 시간에 20베르스타나 달리는 것이니 차바퀴는 내내 요란하게 울렸다. 세몬의 간수 초소 에도 그렇게 달려왔다. 세몬은 뛰어가서 군대식으로 보고했다. 모든 것이 잘 되어 있다는 것 이었다. 자네는 여기 온 지 오래 되었는가? 하고 관구장이 물었다. 5월 2일부터입니다, 관구장님. 좋아, 수고했어. 164 간수 초소는 누구지? 궤도차로 관구장과 동행하고 있던 선로 감독이 대답하기를, 바실리 스체바노비치올시다. 스체바노비치, 스체바노비치라... 지난해에 자네가 요주의 인물이라던 바로 그 사람인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그래 좋아, 바실리 스체바노비치의 간수 초소를 보기로 하지. 자, 가세. 인부들이 핸들을 돌렸다. 궤도차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몬은 궤도차를 전송하면서 생각했다. 이웃 친구가 저들과 한판 벌일까? 몇 시간 후, 그는 순찰에 나섰다. 살펴보니 산을 깎은 곳에서 선로를 따라 누군지 걸어오 는 사람이 있었다. 머리에는 뭔가 하얀 것이 펄럭이고 있었다. 세몬이 자세히 보니 바실리였 다.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어깨에는 조그마한 보따리를 매었으며, 뺨은 수건으로 동여매고 있었다. 이웃 친구, 어디로 가는 거요? 하고 세몬은 외쳤다. 수도로. 하고 그는 말했다. 모스크바로 가는 거요... 본부로 말이요. 본부로... 그렇군! 말하자면 탄원하러 가는 거로군? 그만 둬. 바실리 스체바노비치. 잊어버 려요... 아니오, 그럴 수는 없어. 참기에는 늦었소. 보다시피 그놈은 내 얼굴을 때려 피투성이로 만들었단 말이요. 내가 살아있는 한 잊지 않겠어. 그대로 둘 순 없어. 본보기를 보여줘야지. 그 흡혈귀 놈들에게 말이요... 세몬은 그의 팔을 붙잡았다. 그만 둬, 스체바노비치. 진심으로 말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 을 거요. 뭣이 뾰족하겠어! 뾰족한 일이 없으리라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소. 당신이 언젠가 말한 운수라는 건 옳은 말이요. 나에게 뾰족한 일이 없더라도 정의를 위해서는 나서야지. 그렇지만 좀 말해봐요, 당신 뭣 때문에 그렇게 되었지? 뭣 때문이냔 말이지... 모조리 검사를 받았소. 궤도차에서 내려 간수 초소 안까지 들여다 보았소. 지독하게 검사할 것이라고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잘 정돈해 뒀지. 무 사히 끝나고 막 돌아가려고 하는 판에 내가 직접 탄원을 했소. 그러자 그 놈은 당장에 소리 를 질렀소. 이제 정부의 검열을 받아야 할 판국에 네놈은 야채밭에 대한 탄원을 한단 말이 냐? 하고 말이요. 이제 각하들께서 오신다는데 네놈은 양배추가 어쩌구저쩌구! 나도 화가 치밀어 한마디 해줬지. 대수로운 말은 아니었소. 그것이 놈은 지독히 못마땅했던 모양이지. 다짜고짜 한 대 먹였소. 우리의 참을성이 원수란 말이야! 거기서 그 놈을 그냥... 그렇지만,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뻣뻣이 서 있었소. 놈들이 가버린 다음에 나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곧 세수하고 이렇게 뛰쳐나온 거요. 그래 간수 초소는 어떻게 했지? 집사람이 남아 있소. 빈틈없이 할 거요. 뭐 놈의 선로가 어떻게 되든 알게 뭔가! 바실리는 일어서서 떠나려고 했다. 잘 있소, 이바노프. 올바른 판결을 해 줄지 모르겠지만. 그래 걸어갈 셈이오? 역에 가서 화물차를 부탁해 보겠어. 내일은 모스크바에 가있을 거요. 두 이웃은 작별했다. 바실리는 떠났다. 그리고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아내는 밤 이나 낮이나 자질 않고 그를 대신해서 일했다. 남편이 돌아오기를 고대하느라 몹시 수척해 졌다. 사흘째 되던 날 예정된 검열이 있었다. 기관차에 수화물차가 하나, 일등차가 두 대 왔 지만 바실리는 보이지 않았다. 나흘째 세몬은 그의 아내를 만났다. 얼굴은 눈물에 젖어 부풀 었고 눈은 새빨개져 있었다. 주인은 돌아왔어요? 하고 물었다. 아낙네는 손을 저었을 뿐 아무 말도 없이 자기 집 쪽으로 가버렸다. 세몬은 언젠가 아직 어릴 때에 버들피리를 만드는 것을 배웠다. 버들가지 속을 태워서 도 려내고 적당히 구멍을 뚫어놓고, 끝에 소리나는 장치를 만들면 그것으로 훌륭한 피리가 되 는 거이었다. 그는 틈나는 대로 이 피리를 마들어 안면이 있는 화물 차장에게 부탁하여 시 내의 시장에 보내곤 했다. 그것은 하나에 2꼬베이카씩 받았다. 검열이 있은 지 사흘째 되는 날에도, 그는 저녁 일곱시 차를 맞도록 아내를 남겨놓고 자 신은 칼을 가지고 버들가지를 베러 숲으로 갔다. 그의 담당 구역 끝까지 왔다. 여기서 선로 는 급커브를 그리고 있었다. 그는 둑으로 내려가 숲을 빠져나가 산기슭으로 갔다. 반 베르스 타쯤 더 가서 커다란 늪이 하나 있었고, 그 주위에는 피리 만들기에 매우 적당한 버드나무 숲이 우거져 있었다. 그는 버들가지를 크게 한 단 잘라 가지고 집으로 향했다. 숲은 지났다. 해는 이미 낮게 기울어져 있었다. 죽음같은 고요였다. 들리는 것은 새들이 재잘거리는 소리 와 마른 나뭇가지를 밟는 소리뿐이었다. 세몬은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이제는 선로가 가 까웠다. 그때 뭔가 또 다른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어디선가 쇠와 쇠가 마주치는 듯한 소리였다. 세몬은 더욱 빨리 걸었다. 그의 담당 구역에서는 지금까지 수리를 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었 다. 무슨 소릴까? 하고 생각했다. 숲을 빠져나오니 철도 둑이 눈앞에 높이 보였다. 위쪽 선로 위에서 웅크리고 앉아 무엇인 가 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세몬은 조용히 둑에 올라 그 남자 쪽으로 갔다. 누가 볼트를 훔치러 왔구나 하고 생각했다. 보고 있노라니 그 남자는 일어섰다. 손에는 쇠로 만든 지렛대 를 들고 있는 것이었다. 선로가 옆으로 빠져나가게 그 지렛대로 손질해 놓은 것이다. 세몬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소리를 지르려고 했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건 바실리가 아닌가. 그는 뛰어 올라갔다. 그러나 상대방은 쇠로 만든 지렛대와 집게를 들고 둑 반대편으로 곤두박질하듯 뛰어내려 갔다. 바실리 스체바노비치! 제발 돌아와요! 지렛대를 이이 줘! 아직 아무도 몰라. 선로로 돌아 와요. 죄를 짓지 마시오! 그러나 바실리는 돌아보지도 않고 숲 속으로 사라졌다. 세몬은 빠져버린 선로 위에 서 있었다. 버들가지 다발도 떨어뜨렸다. 다음 열차는 화물차 가 아니다 객차다. 그러나 그는 정차시킬 도리가 없었다. 신호기가 없는 것이다. 선로를 제 자리에 돌려놓을 수도 없었다. 맨손으로 큰못도 박을 수 없었다. 뛰어가야 했다. 뭔가 연장 을 가지러 간수 초소로 뛰어갈 수밖에 없었다. 아아, 하느님 도와주십시오! 세몬은 간수 초소 쪽으로 뛰어갔다. 헐떡이면서 마구 뛰었다. 금새 고꾸라질 것 같았다. 숲을 빠져나갔다. 이제 간수 초소까지는 1백 싸궤(1싸궤는 2.134미터)밖에 안 된다. 이때 공장에서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여섯시다. 여섯시 이분에는 열차가 온다. 아아, 하느 님! 죄없는 사람들을 구원하옵소서! 그러는 사이에도 세몬의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을 기관 차의 왼쪽 바퀴가 선로가 끊긴 곳에 충돌해 크게 흔들리고, 기울어지면서 침목을 부숴 산산 조각을 내는 광경이었다. 거기에다가 급커브에 경사, 그리고 둑이 있다. 11싸궤는 구를 것이 틀림없다. 특히 3등차는 사람이 꽉 찼을 것이다. 그 속에는 어린것들도 있을 터인데... 그들은 지금 모두 아무런 생각도 없이 앉아 있을 것이 아니겠는가. 하느님, 저에게 가르침을 주소서... 안 되겠다. 간수 초소까지 갔다가 돌아오면 늦다. 간수 초소까지 뛰어가지 않고 세몬은 뒤로 돌아서서 전보다도 더욱 빨리 뛰었다. 정신없 이 뛰었다. 자신도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다. 겨우 뽑힌 선로까지 돌아왔다. 그의 버 들가지가 묶인 채로 놓여 있었다. 그는 몸을 굽혀 버들가지 하나를 뽑아가지고, 무엇 때문인지도 모르면서 또 뛰기 시작했 다. 이제는 열차가 오는 것 같았다. 먼 곳에서 기적 소리가 들렸다. 선로는 희미했지만 규칙 적으로 진동하기 시작하는 것이 들렸다. 더 뛸 힘이 없었다. 그는 위험 지점에서 약 1백 싸 궤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이때에 번갯불처럼 그의 머리에 떠오른 것이 있었다. 그는 모자 를 벗어 그 속에서 손수건을 꺼내고 장화목에서 칼을 꺼냈다. 그리고 성호를 그었다. 하느 님 구원하소서! 그는 칼로 왼쪽 팔굽 위를 찔렀다. 피가 솟아올라 뜨거운 냇물처럼 흘렀다. 그는 손수건을 피에 적셔가지고 펴서 버들가지에 비틀어 매어 붉은 기를 세웠다. 버티고 서서 그는 깃발을 흔들고 있었다. 열차는 이미 보였다. 기관사는 그를 보지 못한 듯 자꾸 접근해 왔다. 1백 싸궤의 거리로 저 무거운 열차를 멈출 수 있을지! 피는 자꾸 흘렀다. 세몬은 상처를 옆구리에 대고 눌러 그것을 막으려고 했지만 피는 멈추 지 않았다. 상처가 깊었던 것이다. 세몬은 현기증이 나기 시작했다. 눈에서는 검은 얼굴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그것도 아주 컴컴해졌다. 귀에는 종소리가 들렸다. 그에게는 열 차도 보이지 않았고,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머리 속에는 단 한가지 생각뿐이었다. 이제는 서 있을 수가 없다. 넘어지겠다. 기를 떨어뜨리겠구나. 나는 열차에 치이겠지... 도 와주십시오, 하느님. 교대할 사람을... 그대로 눈앞은 캄캄해졌고, 그는 정신을 잃고 기를 떨어뜨렸다. 그러나 그 피묻은 기는 땅 에 떨어지지 않았다. 누구의 손인지 그것을 붙잡아 난폭하게 달려드는 열차를 향해서 높이 들어올렸다. 기관사가 그것을 보고 조절기를 닫아 증기의 흐름을 바꿨다. 열차가 멈춰섰다. 여기저기 차량에서 사람들이 뛰어나와 구름같이 모였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한 남 자가 기절해 쓰러져 있고, 또 한 남자가 그 옆에 피묻은 헝겊을 나뭇가지에 매어 들고 서 있었다. 바실리는 모든 사람들을 둘러본 다음 고개를 푹 수그리며 말했다. 나를 묶어주시오. 내가 선로를 끊었소. 보세볼로드 가르신(1855-1888): 러시아의 소설가. 그는 인간에 대한 인도주의적 태도와, 인간 사회에 불행을 가져오는 악에 대한 뼈저린 감정을 예술의 기조로 삼았고, 작품으로는 상봉 , 겁쟁이 , 병사와 장교 , 병사 이바노프의 회상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