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화살 많은 탐정소설들이 미국 백만장자의 시체를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된 다. 이런 사건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일종의 불운으로 다루어진다. 다 행스럽게도 이 이야기 역시 살해당한 백만장자로 시작된다. 사실 어 떤 의미에서는 주체하기 어려울 정도의 재산을 가진 세 백만장자의 피살사건으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이 보통의 사 건과는 달리 실질적으로 특수한 문제를 제시한 것도 주로 이 우연의 일치, 또는 범행목적의 계속성에 있다. 그들은 모두 본질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큰 가치가 있는 한 골동품 을 소유했기 때문에 그 물건에 붙어 다니는 어떤 저주 또는 액운에 의해서 희생이 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통설이다. 그 골동 품은 값진 보석으로 장식한 일종의 성배였는데, 보통 코프틱 잔이라 고도 불렀다. 그 유래는 확실치 않으나 용도는 종교적인 것으로 추측 되어서, 어떤 사람은 그것을 소유하는 사람에게 불운이 따라 다니는 원인을 그런 신성한 물건이 물질주의 자산가에게로 넘어가는 것에 대 경실색한 동방의 광신적 기독교도의 탓으로 돌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 불가사의한 살인자는 과연 광신자인지는 몰라도, 저널리 즘과 가쉽의 세계에서 무시무시하면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흥미 로운 존재가 되었고, 이 알려지지 않은 존재에 대해 별명이 붙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와 관련된 것은 세 번째 희생자에 관한 이야 기로, 그 이유는 브라운 신부가 등장할 기회를 얻은 것이 이 사건뿐 이었 기 때문이다. 브라운 신부는 대서양 항로의 기선을 내려 미국땅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이때 그는 다른 영국인들도 그런 경험을 겪었을테지만 본인이 스스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발견 했다. 작은 키, 근시안에 수려하지못한 이목구비, 약간 허름한 신부복 -그의 차림새는 영국에서라면 어떤 무리의 군중 속에 있어도 눈에 뜨 이지 않았을 테지만 미국이라는 나라는 명성을 부채질하는데에 유난 히 극성을 부리는 데가 있어서, 그가 기묘한 범죄사건에 한두 번 얼 굴을 내밀었다는 사실, 범죄자였던 플램보 탐정과의 오랜 인연, 그리 고 영국에서라면 잡담거리에 불과한 몇토막의 일화 등등으로 인해 신 부는 이 나라에서 확고한 명성을 얻고 있었던 것이다. 부두에서 마적 떼같은 신문기자들에게 둘러싸여진 자신을 발견하자 신부의 둥근 얼 굴은 놀라서 무표정해졌다. 기자들은 별 질문을 다했다-여자복장의 상세한 부분, 겨우 주목받기 시작한 나라의 범죄통계, 그리고 신부가 자신이 그런 문제의 권위자라고는 한 번도 생각치못했던 문제들에 관 한 질문들. 사람들이 이렇게 브라운 신부를 꼼짝못하게 에워싸고 있 었기 ㄸ문에, 그들과 대조적으로 찬란한 계절의 작열하는 햇빛을 등 지고 그들과 완전히 동떨어져 서있는 또 하나의 모습이 더욱 뚜렷하 게 돋보였는지도 모른다. 그 존재는 키가 크고 약간 노르스름한 얼굴 에 바람막이 안경을 쓴 남자로, 신문기자들의 질문이 끝나자 브라운 신부를 붙들고 말했다. "실례합니다만 웨인 대위를 찾고 계실테지요?" 이 질문도 매우 뜻밖이라 브라운 신부는 어리둥절했다. 그는 정말로 무슨 사과의 말이라도 하고싶었다. 신부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처음인 데다가 남자가 쓴 안경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잊지말아 야한다. 브라운 신부가 처음 받은 인상은 잠수부의 헬멧이 어렴풋하 게 연상되면서 눈알이 튀어나온 바다의 괴물을 보고있다는 것이었다. 안경만 빼면 그 남자의 복장은 더할나위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브 라운 신부로서야 아무것도 몰라서였겠지만, 그 안경은 멋쟁이에게는 괴상망측한 용모손상인것만 같아서, 마치 우아한 맛을 더하려고 목발 을 짚은 것처럼 보였다. 그 남자가 한 질문도 신부를 놀라게 했다. 프 랑스에 있는 그의 친구들의 친구인 웨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미국비행 가는 미국 방문 중에 만나보기를 희망한 사람들 명단에 실제로 있었 으나, 이렇게 빨리 그의 소식을 들 을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치못했던 것이다. "실례합니다." 브라운 신부는 의심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당신이 웨인 대위인가요? 아니면 그를 아십니까?" "글ㅆ요. 제가 웨인 대위가 아니라는 것은 꽤 자신합니다만." 이상한 안경을 낀 남자가 무표정한 얼굴로 대꾸했다. "저기 세워둔 자동차에서 그가 신부님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확실해지더군요. 그런데 다음 질문은 약간 문제가 있는데요. 제 생 각에 저는 웨인과 그의 숙부, 그리고 머튼 노인을 알지만 머튼 노인 은 저를 모르지요.그래서 그는 자기가 유리 하다고 생각하고 저는 제 가 유리하다고 생각하지요. 아시겠습니까?" 브라운 신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눈만 껌벅이면서 바다 경치와 시가지의 뾰족탑을 바라보다가 다시 안경을 쓴 남자에게로 눈 을 돌렸다. 이 사람이 어딘가 불가해한 인상을 주는 건 안경 탓만은 아니었다. 그의 누런 얼굴에는 거의 아시아적인, 심지어 중국인다운 구석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대화는 비꼬임이 켜켜이 쌓여 있는 것같 았다. 그는 저 굳세고 사교적인 사람들 사이 여기저기에서 발견할 수 있는 유형이었다. 그는 불가사의한 미국인이었다. "제 이름은 드레이지입니다." 그가 말했다. "노만 드레이지. 미국시민이지요. 이것 하나로 모든게 설명됩니다. 적 어도 제가 상상하기로는 신부님 친구인 웨인이 설명하고싶어 할테니 까요. 그러나까 우리는 7월 4일 행사를 다른 날로 연기할 겁니다." 브라운 신부는 약간 어리둥절한 상태로 조금 떨어진 곳에 서있는 자 동차쪽으로 끌려갔다. 차 안에는 헝클어진 금발머리에 삐쩍 마르고 만사가 귀찮은듯한 표정의 청년이 앉아 있었다. 그 청년은 피터 웨인 이라고 자기소개를 했다. 브라운 신부는 제정신을 차리기 전에 차 안 으로 밀려들어갔고, 차는 상당한 속도로 시내를 통과하여 빠져나갔다. 브라운 신부는 이런 성급한 미국식 행동양식의 효율성에 대해 길들여 져있지 않았기 때문에 용이 끄는 마차를 타고 별나라로 가는 것처럼 얼떨떨했다. 이런 어수선한 상태로 신부는 코프틱 잔과 그와 관련되 어 발생했던 두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웨인이 주로 그 긴 이 야기를 했고, 드레이지가 짤막하게 한 마디씩 거들었다. 그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웨인에게는 크레이크라는 숙부가 있고, 그 의 동업자인 머튼이라는 사람이 세 번째로 그 잔을 소유한 부유한 실 업가였다. 첫 번째 소유주였던 광산왕 타이터스 트란트는 다니엘 둠 이라고 밝힌 어떤 사람으로부터 협박장을 받았다. 이름은 아마 가명 이었을테지만 인기가 있는 인물은 결코 못되더라도 로빈 훗과 살인마 잭을 합친 것만큼 잘 알려진 이름이 되었다는 사실은 확실했다. 왜냐 하면 협박장을 쓴 자는 결코 앉아서 협박만 한 것이 아니었기때문이 었다. 어쨌든 트란트는 자기 집의 백합 연못에 머리를 처박은 시체로 발견되었고, 살인범에 대한 단서는 그림자도 잡을 수 없었다. 다행히 그 잔은 은행금고 속에 있어서 안전했다가, 트란트의 다른 재산과 함 께 그의 사촌인 브라이언 호더에게로 넘어갔다. 그도 역시 큰 부호였 고, 이름모를 적으로부터 역시 협박을 받았다. 그는 해변 저택의 벼랑 발치에서 죽어있는 상태로 발견되었고, 잔은 이번에도 무사했지만 유 가증권과 계약서 같은 것들이 상당수 도둑맞았다. "브라이언 호더의 미망인이," 웨인이 설명했다. "남편의 귀중품 대부분을 매각했는데, 브랜더 머튼은 틀림없이 그때 잔을 구입했을 겁니다. 제가 처음 그를 알았을 때부터 그것을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신부님도 짐작하셨겠지만 그 잔은 가지고 있기 에 마음편한 물건이 아니지 요." "머튼씨도 협박장을 받은적 있나요?" 브라운 신부가 잠시 사이를 두고 물었다. "있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드레이지가 말했다. 그런데 그의 음 성에는 무언가 신부로 하여금 이상한 눈으로 그를 보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 이상한 안경을 낀 이 남자는 조용히 웃고 있어서 신부는 몸 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확실히 그런 일이 있었을 겁니다." 웨인은 양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했 다. "저는 협박장을 보지는 못했지만요. 대사업가는 마땅히 그래야겠지만, 그는 자기 사업에 대해서는 말을 잘 안하는 성미라 편지도 어떤 것이 든 비서만 볼 수 있어요. 그렇지만 저는 그분이 편지 때문에 화를 바 락바락내고 비서가 보기도 전에 찢어버리는 것을 보았지요. 비서도 신경이 예민해져서 누군가 노인을 노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된겁니다. 신부님, 이런 상황이니 신부님의 조언을 들을 수 있다면 정말 고맙겠 습니다. 브라운 신부님의 명성은 모두들 알고 있고, 머튼 씨의 비서가 곧장 머튼씨의 저택으로 오실 수 있는지 부탁드려보라고 ㅎ지요." "알겠습니다." 하고 브라운 신부가 말했다. 이 납치사건의 의미를 마 침내 깨닫기 시작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당신들이 했던 이상의 무엇을 제가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요. 당신들은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우연히 방문한 사람보다는 과학 적 결론을 내리기에 필요한 자료들을 백 배는 더 가지고 있을 테니 말이오." "그렇습니다." 드레이지가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가 내린 결론은 너 무나 과학적이어서 진실같지 않습니다. 제 생각에는 무엇이 되든 타 이터스 트란트의 경우처럼 사람을 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과 학적 설명 같은건 기다릴 필요없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일 겁니다. 소 위 청천벽력이라는 거죠." "설마 초자연적 힘이라는 뜻은 아닐테지?" 웨인이 소리를 버럭 질렀 다. 그러나 그가 어떤 사람에 대해서 아주 영리한 사람이라고 말하면 십중팔구 그 사람이 바보라는 뜻이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드레이지의 말이 정말로는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쉽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잠시 후, 명백히 목적지라고 생각되는 장소에 자동차가 멈출 때까지 드레이지는 불가사의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곳은 약간 괴상한 곳이었다. 그들은 나무가 드문드문 서있는 지대 를 지나서 넓은 들판으로 나왔다. 그러자 바로 앞에 건물이 있었는데, 그것은 하나로 이어진 벽과 매우 높은 담장으로 되어있고 로마군의 병영처럼 둥근 모양이어서 전체적으로 비행장같이 보였다. 벽은 목재 나 석재같지 않아서 가까이 가서 보니 철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모두 차에서 내렸다. 금고문을 열 때처럼 조작을 하자, 벽에 뚫린 조그만 문이 상당히 조심스럽게 스르르 열렸다. 브라운 신부가 매우 놀란 이유는, 드레이지가 들어가려고 하지않고 상서롭지 못한 유쾌한 태도를 보이면서 그들과 헤어진 점이었다. "저는 안들어갑니다." 하고 그가 말했다. "제가 들어가면 머튼 노인에게 지나친 즐거운 흥분을 줄테죠. 그는 저를 너무 좋아해서, 좋아서 죽을지도 모르거든요." 『추리문학동호회-일반연재 (go CHURI)』 1465번 제 목:[체스터턴] 하늘의 화살 2 올린이:mayha (황민정 ) 99/01/07 23:46 읽음: 88 관련자료 없음 ----------------------------------------------------------------------------- 드레이지는 어슬렁거리면서 떠났고, 브라운 신부는 점점 더 이상하 다는 느낌을 받으며 강철로 만든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문은 금새 짤깍 소리를 내고 닫혔다. 안에는 여러 종류의 크고 정교한 정 원이 있었지만, 키가 큰 관목이나 꽃나무는 하나도 없었다. 그 한가운 데 아담하고 놀랍기조차한 건물이 서있었다. 그 건물은 너무 높고 좁 아서 탑처럼 보였다. 건물 꼭대기의 유리지붕 곳곳에는 불타는듯한 햇빛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지만 건물 아랫부분에는 창문이 전혀 없 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이 티없이 깨끗하고 번쩍거려서, 맑은 미국의 공기에 잘 어울렸다. 정문을 들어서자 그들은 찬란한 대리석과 아름다운 빛깔을 가진 금 속류와 에나멜에 둘러싸였다. 계단에 보이지 않았다. 견고한 벽 사이 로 승강기를 위한 굵은 철 기둥이 한가운데 솟아 있었고, 평복차림의 경관같은 체격좋고 힘세보이는 남자가 가까이 오는 것을 감시하고 있 었다. "꽤나 공들인 방범시설이죠." 웨인이 말했다. "브라운 신부님, 머튼씨가 사람이 뒤에 숨을 수 있는 나무 한 그루도 없는 요새에서 살아야한다는 사실에 비웃으실 수도 있을테지요. 하지 만 우리가 이 나라에서 어떤 상대와 맞서야 하는지 신부님은 모르실 겁니다. 아마 브랜더 머튼이라는 이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잘 모 르실테죠. 그분은 조용해 보이는 사람이고, 누구든지 거리에서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밀폐된 차를 타고 가끔 나갈 뿐이니까 요즈음 거리에서 그분을 볼 수 있는 기회도 별로 없지만요. 하지만 브랜더 머튼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다면, 알래스카에서 카니발 군도까 지 지진이 일어날 겁니다. 제 생각에 일찍이 어떤 황제도 이만한 권 력을 가진 적이 없었죠. 하여간 러시아 황제나 영국왕이 신부님을 초 청한다면 호기심에서라도 받아들이실 겁니다. 아마 황제니 백만장자 니 하는 사람들을 대수롭지않게 생각하시겠죠. 하지만 그와 같은 권 력은 항상 재미가 있답니다. 그러니까 머튼씨처럼 일종의 현대판 황 제를 방문하는 일이 신부님의 원칙에 반대되는 것이 아니기를 바랍니 다." "천만에요." 브라운 신부는 조용히 말했다. "죄수 또는 갇혀있는 모든 불쌍한 사람들을 방문하는 일은 제 의무입니다." 침묵이 흐르고 청년은 야윈 얼굴에 이상한-거의 능청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이윽고, 그는 이런 말을 꺼냈다. "그런데, 그분의 상대는 흔한 깡패나 범죄집단이 아니라는 걸 잊지마 십시오. 다니엘 둠이라는 자는 악마와 비슷해요. 트란트는 자기집 정 원에서, 호더는 집 밖에서 해치웠고 소리도 없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굉장히 두꺼운 벽을 두른 이 저택의 상층부는 두 개의 방으로 되어 있었다. 그들이 들어간 바깥방과 억만장자의 성소인 안쪽방이 그것이 었다. 그들이 바깥방으로 들어갈 때 다른 두 명의 손님이 안쪽방으로 부터 나왔다. 그중 한 사람을 웨인이 숙부라고 부르면서 인사를 했 는데, 왜소하지만 단단해보이는 체격에 머리는 대머리처럼 보이게 면 도를 했고, 얼굴은-하애질만한 일이 있을 것 같지않게-갈색이었다. 이 사람이 크레이크 노인으로, 레드 인디언 전쟁에서의 명성 때문에 유 명해진 히코리라는 이름을 추억하기 위해서 보통 히코리 크레이크라 고 불렀다. 그의 동행은 완전히 대조적이었다-검은 옻칠을 한 것처럼 새까만 머 리칼, 외알안경에도 넓은 검정색 리본이 달려 있었다- 이 사람이 버 나드 블레이크로, 머튼 노인읜 고문 변호사였으며 공동경영자와 회사 의 업무를 상의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네 사람은 바깥방 한가운데에서 만나 서로 오가는 길에 잠깐 멈춰서 서 은근한 대화를 나누었다. 이런 모든 과정 가운데 또 하나의 인물 이 안쪽방 문 앞에 줄곧 앉아 있었다. 안쪽방 창문으로 비친 희미한 불빛 아래 거대한 체구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어마어마하게 벌어진 어ㄲ를 가진 흑인 남자였다. 미국의 자기비평적 유머감각으로 농담을 한다면 그는 악인이고, 그의 친구는 경호원이라고 하겠고, 적은 흉한 이라고 할 사람이었다. 이 사람은 움직이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일어나 인사를 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바깥방에 그가 앉아있는 것이 웨인의 신경에는 거슬 리는 듯 질문을 했다. "누가 두목하고 같이 있지?" "법석부리지마라, 피터." 웨인의 숙부가 킬킬거렸다. "비서 윌튼이 같 이 있는데, 그 사람만 있으면 안심이지. 윌튼은 머튼씨를 지키느라고 잠도 안잘거야. 그 사람이면 경호원 스무 명보다도 낫지. 인디언만큼 이나 날ㅆ고 은밀하니까 말이야." "글쎄요." 조카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제가 소년이었을 때 숙부님께 서 늘 레드 인디언의 재주를 가르쳐주셨던걸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런데 제가 읽은 인디언 책에서는 항상 레드 인디언이 지는 것으로 되 어 있는 것 같았어요."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어." 늙은 전사가 심각하게 말했다. "정말입니까?" 상녕한 블레이크가 물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백인의 무기를 상대로는 어쩔 수 없었을 것 같은데." "내 눈으로 목격했지만, 백개의 총을 겨눈 앞에서 가죽 벗기는 칼 한 자루 밖에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인디언이 보루 꼭대기 내 옆에 서있 던 백인을 죽인 일도 있었어." "아니, 그 칼을 어떻게 했길래요?" "던진거야." 블레이크가 대답했다. "총을 쏘기 전에 번개처럼 던진거야. 그런 재주를 어디에서 배웠는지 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숙부님께서는 그런 재주를 안배우셨기를 바랍니다." 조카가 말하면서 껄걸 웃었다. "내가 보기에는," 하고 브라운 신부가 생각에 잠겨서 말했다. "그 이 야기에는 교훈이 있을 것 같군요." 그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안에 비서 윌튼이 안쪽방에서 나와 기 다리고 서있었다. 안색은 창백하고 금발에 턱은 네모지고 개처럼 생 긴 눈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집 지키는 개 같은, 옆눈질하지도 않 는 눈을 가졌다. 그는 다만 이렇게 말했을 뿐이었다. "머튼씨는 약 십분 뒤에 두 분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잡담을 주고 받던 사람들에게는 헤어지는 신호역할을 했다. 크레이크 노인은 가봐야겠다고 했고, 그의 조카가 그와 동행인 변호사를 배웅하러 나갔기 때문에 브라운 신부는 잠시 비서와 단둘이 남았다. 왜냐하면 방 저쪽 끝에 앉아 있는 흑인 거인은 사람이라거나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넓은 등을 그들에게 돌리고 안쪽방만 지켜보면서 꼼짝도 않고 앉아 있었다. "여기서는 꽤 공을 들여서 경호를 합니다만."하고 비서를 말했다. "아마 다니엘 둠 이야기는 다 들으셨겠지만, 머튼씨를 혼자 계시게 하는건 안전하지 않아요." "그러나 바로 지금은 혼자지요. 안그렇습니까?"하고 브라운 신부가 물었다. 비서는 심각한 회색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십 오분 동안입니다."하고 그가 말했다. "24시간 중에서 십 오분입니 다. 그 시간만이 그분이 혼자 계시는 시간이죠. 그것도 그분이 고집하 신 겁니다. 상당히 중요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요." "그 이유가 뭡니까?" 신부가 물었다. 비서인 윌튼은 여전히 흔들리지 않는 시선을 바꾸지 않았으나 지금 까지는 단지 심각하기만 하던 그의 입이 엄숙해졌다. "코프틱 잔,"하고 윌튼이 말했다. "아마 코프틱 잔을 잊어버리신 모양 이군요. 하지만 머튼씨는 어떤 것도 결코 잊어버리는 일이 없습니다. 코프틱 잔에 대해서는 우리중 누구도 안믿으시죠. 그것은 저 방 어디 엔가에 어떤 방법으론지 모르지만 잠가서 감춰놓았기 때문에 그분만 이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모두 비키고 난 후가 아니면 그 것을 꺼내려고 하시지 않죠. 그래서 그분이 앉아서 그것을 감상하시 는 십 오분 동안을 혼자 계시게하는 모험을 할 수 밖에 없답니다. 아 마 그것만이 그분이 탄복하면서 감상할 수 있는 물건일 겁니다. 실제 로 무슨 위험이 있다는 건 아닙니다. 제가 이 장소 전체를 하나의 덫 으로 만들어놓았으니까 제아무리 귀신이라도 들어올 수 없거니와-아 니라면 여기서 적어도 나가지는 못합니다. 우리를 방문한다면 만찬이 나 또는 그보다 휠씬 늦게까지 머물러 있어야 할 겁니다. 저는 여기 서 15분 동안 앉아서 기다리다가 총성이나 격투하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이 단추만 누르면 전류가 저 정원 담장을 뺑 둘러 흐르게 되어 있어서 그것을 넘는다든지 기어오른다는 건 바로 죽음을 의미할테니 까요. 물론 총격이란 있을 수 없어요. 이문이 유일한 입구니까요. 그 리고 머튼씨가 그 밑에 앉아있는 유일한 창문도 기름때가 묻은 기둥 처럼 미끄러운 탐을 휠씬 올라간 곳에 자리잡고 있어요. 그러나 물론 우리는 전원이 무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만약 둠이 저 방에 들어갈 수 있었더라도 나오기 전에 죽을 것입니다." 브라운 신부는 갈색 융단을 눈을 껌벅거리면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윽고 느닷없이 벌에 쏘인 듯 말했다. "제가 이런 말을 해도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바로 이 순간에 내 머리에 약간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어요. 그것은 당신에 관한 생각이에요." "저런!" 윌튼이 말했다."그래서 제가 어떻다는 겁니까?" "내가 생각하기에 당신은 한 가지 생각만 하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하고 브라운 신부가 말했다. "그리고 브랜더 머튼을 보호하는 것보다 다니엘 둠을 잡는 것이 목적 인 것 같다고 말하는 것을 용서하시오." 윌튼은 약간 놀라더니 계속해서 신부를 뚤어지게 보았다. 한참만에 야 아주 천천히 그의 엄숙한 입이 일그러지면서 조금 이상한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그런-무슨 근거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셨습니까?" "당신 말에 의하면 총성이 들리기만 하면 즉각 도망치는 적을 전류로 죽일 수 있다고 했지요."하고 신부가 말했다. "그런데 전류의 총격이 적을 죽이기 전에 이미 당신 주인은 총격으로 죽는 다는 생각이 떠올 랐을 텐데요. 내 말은 당신이 할 수만 있다면 머튼씨를 보호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그것이 당신 생각에는 이차적인 것 같다 는 말입니다. 준비는 당신이 말했다시피 무척 정밀하고, 모두 당신손 으로 준비한 모양이군요. 그러나 그것은 한 사람을 구하려는 것보다 살인범을 잡기 위해서 설계된 것 같습니다." "브라운 신부님."하고 비서가 말했다. 이제는 조용한 어조로 돌아와 있었다. "신부님은 현명하십니다. 그리고 신부님께는 현명함 이상의 무언가가 있어요. 왜그런지 모르겠지만 신부님께는 진실을 말하고 싶 어지는군요. 더구나 신부님은 그것을 아마 들어주실테지요. 하여튼 그 것은 벌써 어떤면에서는 저에 대한 농담거리랍니다. 모두들 하는 말 이 저를 이 범인을 잡아내려는 편집증환자라고 합니다. 그리고 아마 그렇기도 할겁니다. 그러나 그들이 전혀 모르는 사실 한 가지를 말씀 드리지요. 제 완전한 이름은 존 윌튼 호더입니다." 브라운 신부는 잘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으나, 상대는 이야기 를 계속했다. "둠이라고 자칭하는 녀석은 제 아버지와 숙부를 죽이고 제 어머니를 파산시켜 놓았습니다. 머튼이 비서를 구한다기에 저는 그 잔이 있는 곳이라면 조만간 범인이 나타나리라고 생각하고 취직을 했습니다. 하 지만 저는 누가 범인인지 알지 못하고 그저 기다릴 수 밖에 없을 뿐 입니다. 그래서 머튼에게 충실히 봉사하려는 것입니다." "알겠소." 브라운 신부는 부드럽게 말했다. "그건 그렇고, 이제는 그분 을 만나러 갈 시간이 아닙니까?" 『추리문학동호회-일반연재 (go CHURI)』 1467번 제 목:[체스터턴] 하늘의 화살 3 올린이:mayha (황민정 ) 99/01/11 00:44 읽음:110 관련자료 없음 ----------------------------------------------------------------------------- "아, 그렇죠." 하고 윌튼이 말했다. 그는 무슨 생각에 잠겨있다가 놀란 듯 해서, 브라운 신부는 그의 광적인 복수심이 다시 그를 사로잡았었 나보다라고 생각했다. "이젠 어쨌든 들어가죠." 브라운 신부는 곧장 안쪽방으로 걸어 들어갔다. 인사도 없이 방 안 은 쥐죽은 듯 고요했는데, 신부는 순식간에 다시 복도로 나왔다. 이와 동시에 문 가까이 앉아있던 소리없는 경호원이 갑자기 움직였다. 그 것은 마치 거대한 가구가 생명을 얻어 살아움직이는 것 같았다. 신부 의 태도 자체가 그 신호인 듯 했다. 그의 머리는 안쪽 방 창문의 불 빛을 등지고 얼굴은 그늘 속에 있었다. "그 단추를 누르시려는 줄 알았습니다."하고 그는 한숨을 쉬면서 말했 다. 윌튼은 번쩍 정신이 드는 듯 벌떡 일어났다. 목소리가 꽉 막혔다. "사격은 없었어."하고 그가 외쳤다. "글쎄요,"하고 부라운 신부가 말했다."사격의 의미 여하에 달렸지요." 윌튼은 앞으로 뛰어나갔고 두 사람이 함께 안쪽방으로 뛰어들었다. 그 방은 비교적 작은 방이고, 간소하지만 우아한 가구가 배치되어 있 었다. 그들의 맞은 편에는 넓은 창문 하나가 활짝 열려있었고, 정원과 숲이 우거진 들판이 내다보였다. 창문 바로 앞에 의자와 조그만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갇힌 사람이 고독의 사치를 즐길 수 있는 짧은 동안만이라도 자기에게 허용된 최 대한의 공기와 햇빛을 원한 것 같았다. 그 창문 아래의 조그만 테이블 위에 코 프틱 잔이 놓여 있었다. 그 잔의 주인은 햇빛이 가장 잘 들어오는 곳에서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 음이 분명했다. 그렇게 바라볼 만한 가치가 있는 물건이었다. 밝고 찬 란한 햇빛이 그 잔에 박힌 귀중한 보석을 색색가지의 불길처럼 보이 게 했기 때문에, 그것은 그리스도가 최후의 만찬에 쓴 성배의 견본이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것은 넋을 잃고 바라볼만한 가치가 분 명히 있는 물건이었다. 그러나 브랜더 머튼은 잔을 바라보고있지 않 았다. 그의 머리는 위자 뒤로 젖혀졌고, 갈기같은 백발은 방바닥을 향 해서 드리웠고, 반백의 턱수염 끝이 천장을 향해서 치켜 올려졌고 그 의 목에는 끝에 붉은 깃털이 달리고 갈색으로 칠해진 긴 화살이 하나 꽂혀 있었던 것이다. "소리없는 사격이군."하고 브라운 신부가 나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나는 방금 전에도 총의 소음을 없애는 새로운 발명에 대해서 생각중 이었어요. 하지만 이것은 아주 옛날의 발명품이고 완전히 소음이 없 어요." 그리고 조금 후에 다시 덧붙였다. "아마도 이미 죽은 것 같은데, 어 떻게 하시겠소?" 새하얗게 질린 비서는 돌연히 단호한 태도로 성큼 나섰다. "물론 저 단추를 누르겠습니다." 하고 그가 말했다. "그래도 다니엘 둠에게 아 무런 효과도 없다면 찾아낼 때까지 전 세계를 뒤지고 다닐 생각입니 다." "그것이 우리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지 않도록 조심하시오." 하고 브 라운 신부가 말했다. "그들은 멀리 가지 않았을 것이니, 그들을 부르 는게 좋겠소." "그분들은 담장에 관해서 잘알고 있습니다."하고 윌튼이 말했다. "아 무도 담장을 기어오르려하지는 않을겁니다. 그중에 한 사람이라도 혹 시...매우 성급하지않다면 말입니다." 브라운 신부는 화살이 날아들어왔음에 틀림없는 창문 앞으로 걸어가 서 바깥을 내다보았다. 평평한 화단이 있는 정원은 휠씬 밑이라 마치 정교하게 채색된 세계지도 같았다. 창에서 내다보이는 광경은 너무나 광대하고 텅비어 있었으며, 탑은 하늘 높이 솟아올라있는 것 같아 브 라운 신부는 어떤 구절이 기억에 되살아났다. "청천에 벽력이라."하고 그가 말했다. "누가 청천에서 벽력이나 하늘 에서 죽음이 왔다고 말했는데 그것은 무슨 뜻이었소? 모든 것이 얼마 나 멀리 있나 보시오. 화살이 이렇게 멀리까지 날아온다는 것은 이상 한 것이오-하늘에서 쏜 화살이 아니라면." 윌튼은 돌아와 서있었으나 대답하지 않았고, 브라운 신부는 독백처럼 중얼거렸다. "비행 생각을 하게 되는군. 웨인에게 물어봐야겠어." "여기선 얼마든지 있지요." "매우 오래된 것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무기인 경우," 브라운 신부가 말했다. "숙질 간은 아주 가까운 사이일테니 화살에 관해서 물어봐야 할 것이오. 이건 레드 인디언이 쓰는 화살 같군. 레드 인디언이 어디 에서 이 화살을 쏘았는지 모르지만 그분이 한 이야기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 이야기에 교훈이 있다고 내가 말했지요." "그 이야기에 교훈이 있다면요." 하고 윌튼이 흥분해서 말했다. "진짜 레드 인디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먼 거리에서 무엇이든 지 쏠 수 있다는 것뿐이에요. 이 경우와 유사성을 암시하시는 것은 말도 안돼요." "교훈을 올바로 파악한 것 같지 않군요." 하고 브라운 신부가 말했다. 다음 날 신부는 뉴욕의 수백 만 인구 속으로 녹아들어간 것 같았다. 복잡하게 번호를 붙인 거리의 군중 속의 하나 이상이 되려는 생각은 전혀 없는 것 같았으나 사실 다음 주 두 주일 동안 그에게 위임된 임 무 때문에 남의 눈에는 안뜨이게 은근히 분주했다. 그는 잘못해서 오 판을 할까봐 심각한 두려움에 차있었던 것이다. 그는 새로 사귄 사람 들 중에서, 그들만 골라내는 것 같은 별난 인상을 주지않으면서 최근 에 이 사건에 관련을 맺은 두어 사람과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이 쉽다 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특히 히코리 크레이크와 괴상하고도 흥미있 는 대화를 나누었다. 그것은 중앙공원의 벤치에서 이루어졌는데, 노병은 거기에 있는 짙 은 주홍색 나무로 만든 단장의 아마도 전부를 본딴 모양의 손잡이 위 에 깡마른 두 손과 도끼처럼 생긴 얼굴을 올려놓고 있었다. "글쎄, 먼 거리를 쏠 수도 있지만," 하면서 그는 머리를 흔들었다. "인 디언의 화살이 어느 정도 멀리 나가느냐에 대해서 너무 자신있게 말 하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소. 내가 아는 어떤 사수는 총탄보다도 곧장 나가고, 날아간 거리를 생각하면 놀라울만큼 정확하게 과녁을 맞췄오. 물론 오늘날에야 실제로 활과 화살을 가진 레드 인디언이 있다는 이 야기는 듣지못했고, 더구나 레드 인디언이 이 근방을 배회한다는 것 은 말도 안돼. 그러나 무슨 우연으로 늙은 인디언 궁수가 그들이 사 용하는 옛날 활을 가지고 머튼 가의 외벽에서 수백 야드 떨어진 저 나무 숲에 숨는다면-글세, 그때는 그 고상한 야만인이 담장 너머로 화살을 쏘아보내서 머튼가의 창문으로 들여보낸다든지, 아니 심지어 머튼을 맞히는 것까지도 불가능하다고는 생각치 않소. 옛날에는 사실 그정도로 놀라운 일이 이루어지는 걸 목격한 적이 있으니까." "그리고 틀림없이,"하고 신부가 공손히 말했다. "당신은 눈으로 본 것 같은 놀라운 일을 몸소 해보기도 했겠지요." 크레이크는 킬킬 웃고나서 무뚝뚝하게 말했다."아아, 그건 다 옛날 일이오." "어떤 사람들은 옛날 일을 연구하는 방법을 알고 있으니까요."하고 신 부가 말했다. "아마 당신의 옛 기록에는 이 사건에 관해서 사람들이 불쾌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근거가 아무것도 없다고 봐야겠습니다." "그건 무슨 뜻이오?" 크레이크가 물었다. 도끼날처럼 생긴 그의 붉 고 무표정한 얼굴에서 비로소 눈이 날카롭게 움직였다. "글쎄요,, 당신은 인디언들의 모든 기술에 대해 잘알고 있으니....." 브 라운 신부는 천천히 말했다. 크레이크는 그 괴상하게 생긴 단장 손잡이 위에 턱을 괴고 앉아 있 었을 때는 허리가 구부정한 늙고 쭈그러진 노인이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는 지팡이를 몽둥이처럼 움켜쥐고 마치 전사처럼 길 한가운 데 꼿꼿이 버티고 섰다. "뭐요?" 그는 귀에거슬리는 목쉰 소리를 질렀다. "나참! 그래, 내 앞 에서 내가 머튼을 죽였을 지도 모른다고 하는건가?" 길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여러 개의 벤치에 앉은 사람들이 길 한가운데 서로 마주 서서 말다툼하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대머리 인 사나이는 괴상한 단장을 몽둥이처럼 휘둘렀고, 신부복을 입은 검 고 땅딸막한 사람은 그저 눈을 껌벅껌벅하는 것 이외에는 미동도 않 고 그를 바라보고 서있었다. 금방이라도 땅딸막한 사람이 머리를 한 대 얻어맞고 진짜 인디언같은 기민한 동작으로 뻗어버릴 것만 같았 다. 그래서 아일랜드인 순경의 커다란 몸집이 멀리서 나타나더니, 이 들을 향해서 달려오기 시작했다. 신부는 일상적인 인사에 대답하듯이 조용히 말했다. "그에 관해서는 나름대로 결론을 얻었으니까 보고서를 작성할 때까지 는 밝히지 않겠습니다." 순경의 발자국 소리때문이지 신부의 눈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히 코리 노인은 지팡이를 겨드랑이 밑에 끼고 다시 모자를 쓰면서 뭐라 고 투덜거렸다. 신부는 조용히 작별인사를 하고, 서두르지않으면서 공 원을 벗어나 웨인을 만나기로 한 호텔의 라운지를 향해서 걸어갔다. 청년은 인사를 하면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걱정거리가 있는지 전보다 초췌했고 괴로워 보여서, 신부는 이 젊은이가 미국헌법의 최종조항을 회피하는 일에 최근 종사하지않았는 지, 그리고 그것에서 성공을 거둔게 아닌지 하는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그의 취미 또는 좋아하는 과학이 화제에 오르자마자 그는 빈 틈없었고, 정신을 집중했다. 브라운 신부는 우연히 지나가는 이야기처 럼 이 지역에서 비행을 많이 하느냐고 묻고, 처음에 머튼의 둥근 담 장을 비행장으로 잘못 봤다고 말했다. "우리가 거기 있을 때 하나도 못보셨다는 것은 좀 이상한데요." 웨인 대위가 말했다. "어떤 때는 파리떼처럼 우글우글하지요. 넓은 들판이 적합한 장소거 든요. 말하자면 저같은 비행기 조종사가 그 땅에서 난다고 해도 이상 하지 않지요. 저 자신도 물론 그 장소에서 많이 비행해보았습니다. 그 리고 전쟁 동안에 비행기 조종사로 일했던 것을 이 고장 사람들은 대 개 알고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너나 할 것없이 비행에 취미를 붙인 사람들이 많아서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도 많아요. 제 생각에는 비행기 조종이 아마 곧 자동차운전처럼 보편화될 겁니다." "하느님이 생명과 자유와 운전의 권리를 부여했지만-비행기 조종 이 야기는 없는데요."브라운 신부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서 어 떤 시간에 이상한 비행기가 그집 위로 지나갔더라도 사람들 눈에 띄 지 않았겠군요." "그럼요."하고 젊은이가 말했다. "눈에 띄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요." "심지어 그 사람이 알 수 있는 사람이더라도,"하고 신부는 말을 이었 다. "자기 소유가 아닌 비행기를 구할 수 있을 겝니다. 가령 당신이 정상적인 비행을 한다면 아마 머튼씨나 그의 친구들이 생김새를 알아 볼 수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모양이 다른 비행기라든지, 하여튼 다른 비행기를 타고 그 창문에서 가까운 거리를 비행할 수 있을 겁니다. 실제목적에 적당할정도로 가까운 거리를 말이죠." "그야 그렇겠지만....."하고 웨인은 거의 반사적으로 말을 멈추고는 입 을 크게 벌렸다. 눈알이 머리에서 튀어나올 것만 같은 표정으로 신부 를 노려보았다. "이런!" 그는 나직한 소리로 말했다. "이런!" 이윽고웨 인은 라운지의 의자에서 일어나 창백한 얼굴로 머리에서 발끝까지 후 들 후들 떨면서 신부를 노려보았다. "신부님, 정신이 이상해지신겁니 까?"웨인이 말했다. "머리가 돌았어요?" 침묵이 흐르다가 다시 웨인은 씩씩거리기 시작했다. "신부님은 일부 러 여기까지 와서 그런 암시를-" "아닙니다. 암시를 수집할 따름이지요." 브라운 신부는 자리에서 일어 났다. "잠정적인 결론은 형성되었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보류해두는 편이 좋겠군요." 신부는 여전히 공손한 태도로 인사를 하고는 호텔에서 나와 기묘한 순례를 계속했다. 날이 저물 무렵, 신부는 지저분한 거리와 강쪽으로 형편없이 만들어 진 계단을 내려가서 이 도시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복잡한 지역으 로 들어갔다. 그는 곧 중국음식점 입구를 알리는 채색 초록등 밑에서 전에 만난 적 있는 어떤 인물과 만났다. 그러나 그는 전에 만난 일이 있다 하더라도 결코 알아볼 수 없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노만 드레이지는 여전히 커다란 안경 뒤에서 침울 하게 세상을 대하 고 있었다. 안경은 마치 어두운 유리로 만든 가면처럼 그의 얼굴을 가려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안경을 제외하고는 살인사건 이후의 시간 동안에 그의 외모는 이상하게 변해 있었다. 신부가 생각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