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십자가 1장 그 날 아침 하와위치 항구에 들어온 배에서 내린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는, 세계적으로 유 명한 봐란탄 탐정도 끼여 있었다. 그는 연한 회색 자켓에 새하얀 조끼를 걸치고, 푸른 리본이 달린 밀짚 모자를 쓴 가벼운 몸차림이었다. 거무스름한 피부의 이 사나이는 턱에 까칠까칠한 수염이 돋아 있었다. 이러한 그를 누가 보아도, 회색 자켓 속에 총알을 잰 권총이 감추어져 있고, 조끼 주머니 에 경찰 수첩이 들어 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가볍게 눌러 쓴 밀 짚 모자 밑에, 온 세계에 이름을 떨치고 있는 파리 경찰국의 이름 높은 탐정 봐란탄의 놀라 운 두뇌가 있다고, 그 누가 생각이나 할까. 그는 지금 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는 도둑 '프랑보우'의 뒤를 쫓아, 벨기에에서 런던 으로 가는 길이었다. 영국으로 건너온 도둑 프랑보우는 때마침 런던에서 열리고 있는 가톨릭 교도들의 감사절 미사 소식을 듣고, 그 복잡한 때를 이용하여 한몫 단단히 보려고 기회를 노리는 참이었다. 도둑의 왕자라고 할 만큼 그 이름이 유명한 프랑보우가, 갑자기 도둑질에서 손을 떼고 감 쪽같이 자취를 감추어 버림으로써 온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은 벌써 몇 해 전의 이야 기였다. 그는 구름이라도 잡을 수 있다는 엉뚱한 뱃심을 가진 사나이로서, 대담한 짓을 잘하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언젠가는 재판소에서 판사를 거꾸로 치켜들고, "피가 온몸에 고루고루 잘 돌게 해 주마." 하며, 한참 들고 서 있었던 일도 있었다. 또 어떤 때는 경찰관을 양쪽 겨드랑이에 한 사람 씩 껴안고는 파리의 거리를 쏜살같이 달리기도 했다. 그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어마어마한 범죄를 저지르는가 하면, 교묘하기 짝이 없는 범 죄를 저지르는 등 번번이 경찰을 골탕 먹이곤 했다. 목장을 경영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1마리의 젖소도 기르지 않으면서, 더구나 1대의 마 차나 1홉의 우유도 없으면서 체로리앙이란 우유 상회를 벌여 놓고, 수많은 집을 단골로 매 일 우유를 배달해 준 일도 있었다. 즉, 남의 집 문 앞에 배달해 놓은 우유병을 자기 단골집 에다 살짝 옮겨 놓으면서 돌아 다니는 것이었다. 또, 그는 단 한 사람의 나그네를 골탕 먹이기 위하여, 집집마다 붙어 있는 문패를 밤중에 모두 지워 버리고도 했다. 그뿐만 아니었다. 그는 자그마한 우체통을 만들어 조용한 시골이나, 시가지에서 좀 떨어진 교외에 세워 놓 고, 그 통에 넣은 편지를 모두 거두어 간 일도 있었다. 또 그는 몸놀림이 아주 빨랐다. 몸집은 엄청나게 컸지만 귀뚜라미처럼 잘 뛰어다녔고, 원숭이처럼 나무에 잘 올라갔다. 그래서 그는, 제아무리 파리에서 이름을 날리는 탐정 봐란탄이 자기의 뒤를 따라다닌다고 해도, 조금도 겁을 내거나 당황하지 않았다. 이러한 프랑보우였으므로, 봐란탄 탐정도 어떻게 하면 그를 잡을 수 있을까 하고 곰곰 생 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단 한 가지, 프랑보우를 찾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 있었다. 그것은 프랑보우가 아무리 몸이 날쌔고, 꾀가 많고, 변장을 잘한다 해도 워낙 키가 컸기 때문에, 더디를 가나 대번에 우뚝 솟아 보이는 것이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봐란탄 탐정은 사과를 파는 여자를 보거나 또는 귀부인을 만나거 나, 키가 큰 사람이면 남자고 여자고 간에 무심히 지나치지를 않았다. 만약 지금, 프랑보우가 교묘하게 변장을 해 가지고 봐란탄 탐정이 타고 있는 이 기찾간에 뛰어든다고 해도, 그것은 목이긴 기린이 변장한 것과 다름이 없으므로 곧 알아 낼 수 있을 것이다. 찻간에는 하아위치에서 탄 사람과 도중에서 탄 사람을 합쳐 모두 여섯 사람뿐이었다. 몸집이 작은 역원 한 사람이 종점까지 간다면서 둘째 번 역에서 탔다. '웨섹스'주의 시골 정거장에서는 장을 보러 가는 농부 세 사람과 홀아비 한 사람이 탔는 데, 모두 키가 큰 편이 아니었다. 그 중에서 맨 마지막에 올라탄 사람은 가톨릭교의 신부로 서, 그는 런던까지 간다고 멀했다. 이 신부의 모습을 보자, 봐란탄 탐정은 저절로 웃음이 터질 것 같았다. 그러나 꾹 참고 있 었다. 신부는 마치 방금 선잠에서 깨어 어리둥절한 농부의 얼굴 같았고, 또한 공처럼 동그 란 얼굴에 왕방울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신부는 종이로 싼 보따리를 4개나 들고 있었는데, 매우 소중한 물건이나 되는 듯이 그것 들을 건사하느라고 쩔쩔맸다. 게다가 함께 들고 있는 허름한 우산이 자주 떨어지는 바람에, 이것을 줍는 모습이 여간 우습지 않았다. 봐란탄 탐정은 신을 믿고 있지 않는 터라, 신부에 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그 신부는, 자기가 들고 있는 이 종이 보따리 속에 푸른 보석을 박은 순은제 귀중 품들이 들어 있다고 손님들에게 자랑삼아 이야기했다. 그러나, 남에게 거리낌없이 털어놓고 이야기하는 이 순박한 신부의 태도에, 봐란탄 탐정은 약간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2장에서 계속- 『추리문학동호회-일반연재 (go CHURI)』 1474번 제 목:[체스터턴] 푸른 십자가 2 올린이:soomin1 (채수민 ) 99/01/19 00:00 읽음: 98 관련자료 없음 ----------------------------------------------------------------------------- <푸른 십자가> 지은이 : 체스터턴 올린이 : 채 수 민(soomin1) 2장 이윽고 기차가 스트래트퍼드역에 닿자, 신부는 짐을 껴안고 찻간을 내려갔다. 그러다가 신 부는 깜박 잊고 내린 우산을 가지러 다시 찻간으로 올라왔다. 이 때 봐란탄 탐정은 그를 붙들고, 아무에게나 자기의 물건을 자랑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짓이라고 친절하게 귀띔해 주었다. 물론 신부와 이야기하는 이 짧은 동안에도 봐란탄 탐정의 눈은 쉴 새 없이 신부의 아래 위 를 주의 깊게 살폈다. 부자건 가난한 사람이건, 여자건 남자건 닥치는 대로 키가 1미터 80센 티미터가 넘는 사람이면 모두 살펴보는 것이었다. 도둑 프랑보우의 키는 1미터 90센티미터 나 되었다. 봐란탄 탐정은 리버푸울역에서 차를 내렸다. 우선 그는 런던 경찰국으로 가서 필요한 일에 대한 의논을 했다. 그러고는 리버푸울 거리를 두루 돌아다니기로 했다. 빅토리아 거리를 지나 넓은 광장으로 나선 그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광장은 순 런던 식으로 되어 있었고, 지붕이 높다란 집들은 모두 빈집같이 조용했다. 광장 한복판에는 관목 이 네모꼴로 심어져 있었는데, 그것은 마치 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섬처럼 외롭게 보였다. 그 런 집들 가운데 유난히 우뚝 솟은 식당이 한 채 있었다. 그 건물은 이상하게도 사람의 마음을 끌었다. 문 앞에는 조그마한 나무를 심은 화분이 놓 여 있었고, 오렌지빛과 흰무늬가 엇갈린 차일이 드리워 있었다. 봐란탄 탐정은 담배를 피워 문 채 한참 동안 이 건물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순수한 프랑스 사람인 봐란탄 탐정은, 모든 사건을 자신의 지혜로운 머리를 써서 해결했다. 지금 그는 그러한 논리의 실마리를 잡은 것이다. 만약 프랑보우가 런던에 나타났다면, 그는 윔블던의 가난한 사람으로, 또는 메트로폴의 호 텔에 묵고 있는 돈 많은 사람으로 그때 그때 변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넓은 범위 속 에서 그를 찾아내기란 여간 힘드는 일이 아니다. 그는 이렇게 막연할 때면 곧잘 우연한 것에 의지해 보려는 습성이 있다. 실마리를 찾아 그 것을 풀어 가면서도 때때로 그 실뭉치가 잘 풀리지 않으면, 그는 다시 실마리를 찾기 시작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경찰이나 일반 시민들이 자주 드나드는 곳과는 전혀 먼 곳에 관심을 두었 다. 빈집이라든가 막다른 골목 등, 뒷골목이란 뒷골목은 모두 찾아다녔다. 봐란탄 탐정은 지금 이 식당의 그 의젓한 모습에서 그 무엇을 깨달은 것이다. 그는 식당 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돌층계를 올라가서 창문 곁에 있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 고 커피를 청했다. 시간은 벌써 아침 식사 때가 지났지만, 봐란탄 탐정은 아직 조반을 먹지 않았다. 테이블 위에는 아직 사람들이 아침 식사를 하고 간 자취가 남아 있었다. 그것을 보니 그도 갑자기 시장기가 돌았다. 그는 간단히 요기할 수 있는 달걀 프라이를 시키고 나서, 커피에 설탕을 넣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의 머릿속은 프랑보우의 일로 가득 차 있다. 프랑보우가 이 때까지 잡히지 않고 교묘하 게 피해 다니는 것을 생각하면, 새삼스럽게 탐정이라는 직업에 슬픔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 나 그는, 자기의 탐정으로서의 두뇌가 프랑보우의 범죄적 두뇌에 결코 지지 않는다고 생각 했다. <범죄자가 독창적인 예술가라면, 탐정은 그 비평가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쓸쓸히 웃으면서 커피를 한 모금 마시다가 얼른 잔을 도로 내려놓았다. 커피잔에 무 심코 소금을 넣었던 것이다. 그는 설탕 그릇을 조사해 보았다. 틀림없이 '설탕'이라고 씌어 있었다. 그런데 무슨 까닭으 로 이 속에 소금이 들어 있을까? 그는 그 옆에 있는 소금 그릇을 살펴보았다. 그릇에는 '소금'이라고 분명히 씌어 있으나 맛 을 보니 설탕이었다. 그는 갑자기 어떤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밖에 또다른 이상이 없는가 하고 식당 안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흰 종이를 바른 벽에 무슨 국물을 뿌린 것 같은 자국이 눈에 띄었다. 봐란탄 탐정은 얼른 보이를 불렀다. 아직 졸음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보이가 달려왔다. "이 설탕 맛 좀 보게. 그래 이 식당은 이것으로 손님을 끄는건가?" 그러자 보이는 정신이 번쩍 드는 모양이었다. "이 집은 매일 손님에게 이런 짓궂은 장난을 하나? 소금과 설탕을 바꿔 넣어 주니, 서비스 치고는 너무 고약하군." 보이는 손님이 빈정거리는 까닭을 알자 떠듬떠듬 변명을 늘어놓았다. "예예, 죄송합니다. 그런 싱거운 수작을 할 리가 있겠습니까? 어쩌다 실수를 해서 이렇게 실례를 범한 것이니, 너그럽게 용서해 주십시오." 보이는 굽실거리며 설탕 그릇과 소금 그릇을 찬찬히 들여다 보았다. 그러고는 잠깐 기다려 달라고 하더니, 안으로 들어가서 곧 주인을 데리고 나왔다. 설탕과 소금을 맛본 주인은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때 보이가 무엇인가 갑자기 생각난 듯이 소리쳤다. "앗, 그렇지 그래! 아깐 신부 두 사람이 여기 앉았었지!" "뭐? 신부 두 사람이?" "예, 두 사람의 신부였습니다. 저 벽에다 수우프를 끼얹어 놓고 갔어요." "뭐, 벽에다 수우프를 끼얹어?" 보이는 벽을 가리켰다. 주인은 그제야 말을 시작했다. "예, 제 얘길 좀 들어 보십시오. 저 꼴이 된 얘기를......." 봐란탄 탐정은 수상스럽다는 듯 눈초리를 날카롭게 빛내며 그 이야기를 재촉했다. - 3장에서 계속- 『추리문학동호회-일반연재 (go CHURI)』 1475번 제 목:[체스터턴] 푸른 십자가 3 올린이:soomin1 (채수민 ) 99/01/19 00:01 읽음: 85 관련자료 없음 ----------------------------------------------------------------------------- <푸른 십자가> 지은이 : 체스터턴 올린이 : 채 수 민(soomin1) 3장 "실은 오늘 아침, 문을 열기가 바쁘게 임찌감치 두 사람의 신부가 들어와서는 스프를 주 문했습니다. 스프를 다 마시고 나자 한 신부가 셈을 치르고 그냥 나가 버렸는데도, 나머지 한 신부는 느린 성미 탓인지 자기의 짐을 건사하느라고 꾸물꾸물 늑장을 부리는 것이었습니 다. 그런데 갑자기 자기가 마시다 남긴 스프를 저 벽에다 끼얹는 것이 아니겠어요? 마침 나도, 저 애도 안에 들어가 있다가 놀라 뛰어 나오니 벌써 벽은 저 지켱이 되었고, 그 신부 는 문 밖으로 나간 뒤였습니다. 손해가 될 것은 별로 없지만 괘씸한 생각이 들어 뒤쫓아 거 리고 나갔습니다만, 그 땐 벌써 저 골목을 두 신부가 막 돌아서고 있었습니다." 봐란탄 탐정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모자를 쓰고 스틱을 들었다. 여태까지 캄캄하게 막혔던 일이 환히 트이는 듯 싶었다. 그는 이 이상한 일을 캐 보기로 했다. 그는 셈을 치르고 문 밖으로 나와, 두 신부가 사라 진 골목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봐란탄 탐정의 눈은 어떤 흥분 상태에서도 냉정과 날카로움을 잃지 않았다. 어떤 과일 가게 앞을 막 지나치려 할 때, 마침 그의 눈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다시 걸음 을 돌려 가게 앞으로 와보니, 여러 가지의 과일들이 가득히 쌓여 있고, 그 과일의 이름과 값 을 적은 푯말이 죽 꽂혀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사람의 눈을 끄는 것은 먹음직스런 귤 과 밤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밤이 쌓인 곳에는, <탄지이르산 최고급품. 귤 2개에 1페니.> 라는 푯말이 꽂혀 있고, 반대로 귤이 쌓인 곳에는, <최상 최고의 맛, 브라질산 밤. 1파운드에 4펜스.> 라고 가격표가 바뀌어 꽂혀 있었다. 과일 가게 주인은 몹시 못마땅한 표정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봐란탄 탐정은 주인을 향해, 푯말이 잘못 꽂혀 있다고 일러주었다. 주인은 고맙다는 말 한 마디 없이 잔뜩 화가 난 채로 푯말을 바꿔 꽂았다. 봐란탄 탐정은 가게 안을 기웃거리며 주인에게 넌지시 말을 걸었다. "이런 말을 묻는 것은 당치 않은 일이라고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좀 알아볼 이링 있어서 그럽니다." 가게 주인은 여전히 화가난 얼굴이었다. "도대체 푯말이 바뀌어 꽂힌 이유가 무엇입니까? 어디 참고로 좀 듣고 싶은데요. 이 밤 과 귤의 가격표가 엇갈려 꽂힌 것은 두 사람의 신부와 무슨 관계는 없는지요?" 봐란탄 탐정의 이 말에, 과일 가게 주인은 놀랍다는 듯이 눈을 둥그렇게 뜨며 말했다. "여보, 여보시오!" 상점 주인은 꽥 소리를 질렀다. "뭐, 뭐라구요? 당신으 무엇 때문에 여기에 나타나서 공연히 참견이오? 당신은 아까 그 패들과 잘 아는 사이란 말이요? 그럼 그 녀석들한테 말이나 전해 주시오. 두 번 다시 물건 들을 엎어놓기만 하면 천하에 없는 신부라고 하더라도 용서하지 않겠다고! 당장 그 자리에 서 목을 비틀어 버리겠다고 말이오." "뭐요? 신부가 이 과일을 엎어 버렸다구요?" 봐란탄 탐정은 동정하는 듯한 표정으로 주인의 기색을 살피면서 물었다. "예, 마구 엎었소. 이 사과들이 구럴 한길까지 흩어져 나갔을 정도로..... 이렇게 다시 쌓 아 놓지 않았다면 나한테 혼났을 거요. 암, 단단히 혼을 내주고 말고!" "대체 그 신부들은 어디로 갔습니까?" "저 두 번째 골목에서 왼쪽으로 사라졌습니다. 아마 광장쪽으로 갔을 겁니다." "그래요? 대단히 고맙습니다." 봐란탄 탐정은 과일 가게에서 나와 두 번째 골목으로 걸어갔다. 그 곳에는 순경 한 사람 이 있었다. "여보시오, 혹시 이 근방에서 신부 두 사람이 지나가는 걸 못 보았소?" "예, 보았소. 한 사람은 주정군같이 길 한복판에 떡 버티고 서 있었소." "어느 쪽으로 갔소? 어느 쪽으로?" "저 길로 다니는 노란 버스를 타고 햄스테드 쪽으로 갔소." 봐란탄 탐정은 바삐 경찰 수첩을 꺼냈다. "자, 당신의 동료 두 사람만 속히 불러 주시오. 그들의 뒤를 쫓아야 할 테니....." 봐란탄은 이렇게 내뱉듯이 말을 던지고 버스 정류소로 뛰어 갔다. 이윽고 아깐 만났던 경찰관이 다른 경찰관 한 사람을 데로 헐레벌떡 뛰어왔다. "우린 무슨 일을 해야지요?" 봐란탄 탐정은 스틱 끝으로 버스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저 버스 위층에 올라가서 얘기합시다." 봐란탄 탐정과 두 사람의 경찰관은 노란 버스의 2층에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택시로 가면 버스로 가는 것보다 갑절은 빠를 텐데요." 경찰관이 이렇게 말하자, 봐란탄 탐정은 아주 태연한 얼굴로 대답했다. "옳은 말이오. 가는 방향을 분명히 알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할 텐데....." "그럼 이제부터 어디로 가는 겁니까?" 봐란탄 탐정은 침울한 얼굴로 연방 담배만 빨았습니다. "우리는 지금 구름을 잡는 듯한 일을 하고 있소. 단 한 가지 우리가 명심해 둘 것은, 어디 서든지 좀 이상한 일이 없는가 사방 팔방을 잘 살펴야 되는 일이오." "이상한 일요? 무슨 일인데요?" "이상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대답을 마친 봐란탄 탐정은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노란 버스는 북쪽을 향해 천천히 달 렸 다. 이미 몇 시간이 지난 듯 버스는 지루하게 달렸으나, 봐란탄 탐정은 다른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4장에서 계속- 『추리문학동호회-일반연재 (go CHURI)』 1476번 제 목:[체스터턴] 푸른 십자가 4 올린이:soomin1 (채수민 ) 99/01/19 00:03 읽음: 89 관련자료 없음 ----------------------------------------------------------------------------- <푸른 십자가> 지은이 : 체스터턴 올린이 : 채 수 민(soomin1) 4장 두 경찰관은 탐정의 목적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공연히 버스에 흔들리고 있는 것이 화도 났으나, 한편으로는 은근히 불안하기도 했다. 게다가 배도 고파지기 시작했다. 점심 시간은 훨씬 지났는데도 런던의 북쪽 시골길은 끝없이 이어지고만 있었다. 그러나 아직 타프넬 공원 가까이밖엔 오지 못했다. 버스는 여전히 털털거리며 달렸다. 봐란탄 탐정은 여전히 입을 다문 채 창 밖의 경치만을 바라보았다. 겨우 캄텐타운을 막 지나갔을 때, 두 경찰관은 견디다 못해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이윽고 봐란탄 탐정은 불쑥 자리에서 일어나 두 경찰관을 깨우고 버스를 세웠다. 두 경찰 관은 깜짝 놀라 굴러 내리듯 버스에서 내렸다. 봐란탄 탐정의 손가락은 길 왼쪽에 있는 창문 하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것은 오색이 찬 란한 궁정과도 같은 커다란 호텔 창문이었다. 창문 위에 큼직한 글씨로 '요리'라고 쓴 걸 보니, 호텔의 식당인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 창 문에는 다른 창과 달리 한가운데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드디어 단서를 잡았다!" 봐란탄 탐정은 스틱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저 깨어진 유리창이 바로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이다!" 탐정은 두 경찰관에게 이렇게 말하고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세 사람은 천천히 점심을 들 면서 깨어진 유리창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여보게, 저것 좀 보게. 유리창이 깨어진 것 같은데?" 점심값을 치르면서 봐란탄 탐정은 호텔의 보이에게 너지시 물었다. "예, 그렇습니다." 보이는 허리를 굽혀 잔돈을 거슬러 주며 대답했다. 봐란탄 탐정이 그 거스름돈에 더 많은 팁을 보태어 다시 건네주자, 호텔 보이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리고 묻지도 않은 얘기를 수다스럽게 늘어놓았다. "그런데 손님, 꼭 여우한테 홀린 것처럼 이상한 일이 있었어요!" "이상한 일이라니, 무슨 일인데?" 봐란탄 탐정의 가슴은 몹시 뛰었다. "사실은 조금 아까 이 근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골뜨기 신부 두 사람이 들어와서, 아주 값싼 런치를 먹었습니다. 그런데 셈을 치를 때, 한 신부가 돈을 내더니 거스름돈도 받지 않 은 채 그냥 나가 버리는 거여요. 그래 그 때까지 나가지 않고 있던 키가 작달막한 신부에게 거스름돈을 내주다 보니, 글쎄 돈이 계산서의 세 배나 되지 않겠어요? 그래서 제가 말했죠? '신부님, 돈을 더 내셨습니다.' 그러니까 키가 작은 신부가, '음, 그래?' 하며, 별로 놀라는 기색도 아니더란 말씁입니다. 그래서 제가 다시 말했습니다. '신부님, 돈을 더 내셨습니다.' 이렇게 말하며 나는 다시 계산서를 들여다보았지요,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나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무슨 일인데?" "저는 틀림없이 계산서에 4실링으로 적었는데, 글세 다시 보았을 땐 14실링으로 되어있지 않겠어요." "그거 참, 이상하군!" 봐란탄 탐정의 눈은 반짝 빛났다. "그래서?" "그런데 신부님은 참 이상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냥 밖으로 나가면서, '여하튼 귀찮게 해서 미안하네. 그러면 그 남은 돈은 창에 낄 유리 값으로 쓰도록 하게.' 라고 말했습니다. 그래 저는 다시, '예? 창이 어떻게 되었는데요?' 하고 되물었지요. '음, 이렇게 깨뜨려 줄 테니.'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우산 끝으로 멀쩡한 유리창에 저렇게 구멍을 뚫어 놓았어요."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세 사람은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 중의 한 경찰관이 말했다. "우린 미친 사람을 뒤쫓고 있는 게 아닙니까?" 보이는 더욱 신이 나는 듯 말으 말을 계속했다. "참 저도 정말 어이가 없었습니다. 얼마 동안으 어처구니가 없어 멍하니 서 있었지요. 그 사 이에 키 작은 신부가 급히 밖으로 뛰어나가 먼저 나간 신부를 따라서 파록가 쪽으로 사라지 고 말았습니다." "파록가!" 봐란탄 탐정은 외치듯 한 마디를 남기더니, 밖으로 뛰어나와 파록가로 걸음을 재촉했다. 어느 새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다. 길바닥에는 벽돌이 깔려 있는데, 가로등이 없어 어둑어둑 했다. 모든 것이 쓸쓸하기만 한 거리에 저녁빛이 점점 짙어 갔습니다. 아무리 런던에서 태어나 런던에서 자라난 경찰관들이라 해도, 지금 자기가 어디를 걸어가고 있는지조차 몰랐다. 햄스 테드 광장으로 나가는 길 정도로 짐작할 뿐이었다. 일행은 갑자기 불빛이 환한 거리고 나섰다. 봐란탄 탐정은 화려하게 꾸며진 과자점 앞에 서자, 잠시 망설이다가 안으로 들어가 초콜렛 1개를 샀다. 그리고 무얼 좀 물어 보려고 우물 쭈물하고 있는데, 안주인이 먼저 말을 건넸다. 나이보다 더 늙어 보이는 바싹 마른 이 여자는, 봐란탄 탐정의 훌륭한 옷차림을 유심히 보 다가 그의 뒤에 서 있는 경관을 보자 두 눈이 빛났다. "저, 혹시 선생님께서는 조금 전에 놓고 가신 종이 보따리 때문에 오신 게 아닌가요? 만약 그러시다면 그 물건은 벌써 소포로 부쳤으니 안심하셔요." "예? 종이 보따리라니요?" "예, 아까 두 신부님이 잊고 가신 건데요." 봐란탄 탐정은 저도 모르게 한 발 다가섰다. "그 종이 보따리에 대해 좀 말씀해 주십시오." "예예, 그건 저........" 안주인은 당황하는 눈치였으나 곧 이야기를 시작했다. "얼마 안 됩니다. 한 30분 전이지요. 신부님 두 분이 오셔서 박하 사탕을 사시고는, 한 두어 마디 무슨 얘길 하신 다음 그대로 저 광장 쪽으로 나갔다. 그런데 그 중의 한분이 다시 들 어와서는, 지금 종이 보따리 하나를 두고 가지 않았느냐고 묻는 것이었어요. 그래 두루 찾아 보았지만 아무것도 눈에 띄질 않았습니다. 신부님은, 그 보따리가 별로 소중한 것은 아니지 만, 어디서든 발견하는 대로 좀 보내달라고 하시면서 저에게 주소를 일러 주셨지요. 그리고 우편요금까지 내 주고 가셨답니다. 그런데 신부님이 계실 때는 그렇게 찾아도 없던 부따리 가 엉뚱하게도 나타났단 말입니다. 그래서 곧 소포로 부쳤지요. 그 주소는 똑똑히 기억되지 않습니다만 웨스트민스터.......뭐라든가? 웨스트민스터 뭐라고 했는데.....? 그 일 때문에 무슨 사건이라도 일어난 것 아닙니까?" "뭐 좀 알아볼 일이 있어서요. 그런데 햄스테드 광장은 어딘가요?" "예, 저 길로 곧장 10분쯤 가시면 됩니다" 봐란탄 탐정이 더 묻지도 않고 뛰어가는 바람에 두 경찰관도 그 뒤를 따랐다. 그 길은 좁고 어두컴컴했다. 이윽고 넓은 광장에 나왔을 때, 일행은 걸음을 멈추고 사방을 휘이 둘러보았다. 하는 저쪽에는 밝은 빛이 조금 남아 있어싿. 하늘에는 벌써 하나 둘 수정 같은 별들이 빛나기 시작했다. 저녁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벤치에 앉아있는 남 녀들도 있고, 그네를 뛰는 어린이들의 모습도 보였다. 한쪽 언덕에 서섬 멀리 초원을 바라보던 봐란탄 탐정은 그가 찾으려는 것을 끝내 찾고야 말았다. 움푹 팬 길가에서, 뿔뿔이 흩어지는 많은 사람들 틈에 끼여있는 검은 옷차림의 신부를 보 았던 것이다. 두 신부는 마치 2마리의 개미처럼 아득하게 보였다. 봐란탄 탐정은 곧 한 시부는 키가작고, 또 한 신부는 키가 크다는 것을 알았다. 키가 큰 신부는 약간 허리가 굽어 있었다. 탐정은 스틱을 내두르며 바그게 뒤쫓아갔다. 그들과의 거리는 차차 가까워졌다. 두 사람의 모습이 뚜렷해지자 봐란탄 탐정의 가슴은 울 렁거리기 시작했다. 키가 큰 신부는 아직 잘 모르겠으나, 작은 신부는 전에 그가 기찻간에서 만났던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봐란탄 탐정은 이것으로 이미 짐작되는 것이 있었다. 그 키가 작은 신부는 웨섹스주의 신 부인 브라운으로서, 이번 런던에서 열리는 감사절 미사에서 여러 나라로부터 모이는 교구 신부들에게 자기의 십자가를 보여 주기 위해 가는 중이었다. 그 십자가는 푸른 보석을 박은 은십자가였다. 그 시골 신부가 기찻간에서 '푸른 보석이 박힌 은십자가'라고 지껄였던 것이 바로 문제으ㅢ 십자가임에 틀림없었다. 이러한 이야기가 봐란탄 탐정의 귀에까지 흘러들어왔으니, 도둑 프랑보우의 귕에도 들어갔 을 것은 뻔한 일이다. 그렇다면 도둑 프랑보우가 그 귀중한 십자가를 훔치려고 계획할 것은 물론이었다. 더구나 보석을 들고 가는 신부는, 우산과 종이 보따리를 아무렇게나 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어리석 게도 보석 자랑까지 늘어놓지 않던가! 양같은 어리석은 이 신부는 이리같이 사나운 프랑보우에겐 도무지 문제가 될 수도 없을 것 이다. 프랑보우같이 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도둑이, 일류 배우처럼 신부로 변장하고, 브라운신 부를 이 햄스테드 광장으로 끌고 오기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봐란탄 탐정은 조롱 속에 갇힌 새의 신세가 된 저 순박한 신부를 불쌍하게 여겼다. 한편, 고양이같이 앙큼하게 신부의 탈을 쓰고 있는 프랑보우에 대해서는 치가 떨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까지 이상 야릇한 사건들이 자기를 여기까지 인도해 온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었다. 도대체 웨섹스에서 런던으로 올라오는 신부한테는 푸른 보석이 박힌 은십자가를 훔친다는 사건이, 식당 벽에다 수우프를 끼얹은 일이랑, 과일 가게에서 귤과 밤의 가격표를 바꾸어 꽂 은 일이랑, 유리 값을 먼저 내놓고 유리창을 깨뜨린 일 등, 이 잇달은 사건들과 어떤 관련을 갖고 있는 것일까? 이런 것들을 생각하는 봐란탄 탐정의 머릿속은 복잡하기만 했다. 바로 눈앞에 도둑 프랑보우를 바라보는 그는, 이 놈을 체포하는 것도 시간 문제라고 생각 했다. 봐란탄 탐정의 걸음은 저절로 빨라졌다. 그토록 줄기차게 프랑보우를 쫓아다녔지만 번번히 놓치기만 했던 지금까지의 분함을, 이번 기회에 깨끗이 씻어 버려야만 했다. - 5장에서 계속 - 『추리문학동호회-일반연재 (go CHURI)』 1477번 제 목:[체스터턴] 푸른 십자가 5 올린이:soomin1 (채수민 ) 99/01/19 00:04 읽음: 82 관련자료 없음 ----------------------------------------------------------------------------- <푸른 십자가> 지은이 : 체스터턴 올린이 : 채 수 민(soomin1) 5장 검은 두 그림자는 정신 없이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푸른 빛으로 뒤덮인 언덕을 걷고 있었 다. 자기들이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조차 모리는 성싶었다. 이윽고 쓸쓸한 언덕배기에 이르렀다. 봐란탄 탐정과 두 경찰관은 그들과의 거리가 점점 가 까워지자 노루를 잡는 사냥꾼처럼 나무 뒤에 숨기도 하고, 덤불 속을 기어가기도 하면서 그 들의 뒤를 따랐다. 이제는 그들이 이야기하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무엇에 관한 이야기인지는 알 수 없었다. 가끔 '이성'이란 말이 아이들 같은 목소리로 되풀이되는 것을 들을 수 있을 뿐이 었다. 이윽고 그들은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뒤따르던 세 사람은 갑자기 빽빽이 들어찬 나무 들 때문에 두 사람을 놓치고 말았다. 당황한 봐란탄 탐정은 언덕 위로 올라가 사방을 살폈 다. 두 신부는 호젓한 나무 밑에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금빛으로 물들어 있던 서녘 하늘은 벌써 잿빛으로 변하고, 별들은 보석처럼 빛나기 시작했 다. 봐란탄 탐정은 두 경관에게 몸을 숨기라 이르고, 살금살금 나무 뒤로 기어가 그들의 이야 기를 엿들었다. 잠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봐란탄 탐정은 어이가 없었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이 세 상의 어느 신부가 하는 이야기와도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두 신부는 상당히 고상한 학식을 가진 듯, 종교적인 문답을 조심스럽게 벌이고 있었다. 키가 자그마한 신부는 별다른 이야기가 아닌데도 눈을 반짝이며 열심히 지껄였다. 그러나 상대방 신부는 아까부터 머리를 수그린 채 대답이 없었다. "중세기에 살던 사람들은 하늘나라를 더없이 훌륭하게 생각했다오." "아무렴." 키 큰 사나이는 갑자기 머리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요즘 사람은 툭하면 이성을 쳐들지만 그러나 몇 억이나 되는지 모를 저 별들을 쳐다볼 때면, 누구든지 우리 머리 위에는 이성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상스런 우주가 있다는 걸 알게 될 거요." "아니지, 아니야. 이성은 어디에나 두루 필요한 것이지. 가령 지옥의 끝이라 해도 그것이 필요할 것이오. 세상에서는 교회가 너무 이성을 무시한다고 비난하지만 당치도 않은 말이오. 이 땅 위에서는 단지 교회 하나만이 이성에 의해 하느님과 이어져 있는 것이오." 키가 큰 사나이는 엄숙한 표정으로 별이 반짝이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 누가 알리오, 저 무한한 우주를......." "무한이라고 하는 것은 다만 물질적인 의미에서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작달막한 신부는 무릎을 고쳐 세우고 상대방을 마주 보며 힘있게 말해다. "진리의 법칙을 벗어날 수 있는 의미는 무한이 아닙니다." 봐란탄 탐정은 두 경찰관이 킥킥거리며 웃음을 참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임나를 찌푸리며 손톱 끝을 자근자근 깨물었다. 두 경찰관은, 그들이 어떤 잘못을 저질러, 쓸쓸한 저녁에 이 언덕으로 끌려 나와 신부들의 잠꼬대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라고 생각할지돔 hffkT다. 그래서 그들은 투덜거리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이런 생각이 들자, 봐란탄 탐정은 저도 모르게 화가 났다. 그러나 그는 다시 신부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작달막한 신부가 말했다. "이성과 정의의 법칙은 하늘의 별에까지 이어져 있지요. 우리들 머리 위에 있는 저 하늘을 보십시오. 저 별 하나하나가 다이아몬드 아니면 사파이어 같지만, 저기에도 이성과 정의의 법칙이 다 마련되어 있는 것입니다. 오팔의 평원에도 진주의 골짜기에도 '너희는 훔치지 말 라'는 표지가 다붙어 있지요." 봐란탄 탐정은 이제 더 참을 수 없어, 살금살금 길가로 기어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크 큰 사나이가 하도 잠잠하게 앉아 있는 바람에 의심스러워 다시 주저앉았다. 두 손을 무릎 위에 놓은 채 여전히 머리를 수그리고 있던 키 큰 사나이는 비로소 입을 열 었다. "과연 지당한 말씀. 그러나 역시 올바른 세계란 우리들의 이성을 초월한 높은 곳에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천체의 신비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지요. 우리는 다만 그 앞에 머리를 숙 일 뿐........" 여기까지 이야기한 키 큰 사나이는 갑자기 목소리와 태도를 바꾸어 가지고, 뜻하지 않은 말을 내던졌다. "이봐, 자네가 가지고 있는 푸른 십자가를 이리 내놔! 어물어물하면 짓밟아 버릴 테야!" 그런데, 당연히 소스라치게 놀랐어야 할 작달막한 신부는, 의외로 동그란 얼굴을 들어 태연 히 하늘만 쳐다보는 것이었다. 조금도 놀라는 빛이 없었다. 이 시골뜨기 신부에게는 공갈과 위협도 통하지 않는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기가질려 넋을 잃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넌 내가 누군 줄 아나?" 이렇게 외치며 키 큰 사나이는 다시 소리쳤다. "난 프랑보우라는 도둑이야! 얼른 푸른 십자가를 내놔!" "안 돼!" 작달막한 신부는 단 한 마디로 딱 잡아떼었다. 그러자, 신부의 가면을 벗은 프랑보우는 어이가 없어 웃어버렸다. "허허....., 그럴 것이다. 넌 그걸 내놓고 싶지 않겠지? 네가 왜 내놓기 싫어하는지 말해 볼 까? 내가 벌써 선수를 쳐서 갖고 있기 때문이야. 여기 이렇게." 작달막한 신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모기 소리만하게 물었다. "그게 정말입니까?" 프랑보우는 아주 신이 나서 말했다. "정말이지, 거짓말이 어디 있어? 나는 똑같은 종이 보따리를 만들어 진짜인 네 것과 바꿔 쳤단 말야. 네가 들고 있는 건 가짜야 가짜. 이 수법은 좀 낡은 것이지만 이번에 써먹었지." "옳지, 옳아!" 작달막한 브라운 신부는 이상하다는 듯 손으로 머리를 긁적거렸다. "과연 나도 전에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프랑보우는 브라운 신부의 말에 흥미를 느끼며 물었다. "너도 들은 일이 있다고? 어디서 그걸 들었어?" 브라운 신부는 태연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 이야기를 내게 들려 준 사람은 우리 교회에 참회하러온 신사였다. 그의 이름은 밝힐 수 없지만, 어쨌든 그 사람은 20년 동안 종이로 포장한 물건을 바꿔치는 일을 전문으로 하 여 호사스럽게 살았다고 합니다. 나는 벌써부터 당신을 의심했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참회하 던 사람이 머리에 떠오릅니다." "나를 의심했다고?" 프랑보우의 목소리는 살기에 차 있었다. "그래 어떻게 눈치를 챘지? 이런 곳으로 끌고 온 게 수상해서.....?" "아닙니다. 실은 오늘 아침, 당신을 만났을 때부터 수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당 신 소매 밑에 숨겨둔 팔목의 비밀 장치를 보았기 때문이지요." "뭐라고?" 프랑보우는 깜짝 놀라 부르짓었다. "어떻게 그런 것까지 다 알고 있어?" "적어도 교구를 가지고 있는 난데......." -6장에서 계속- 『추리문학동호회-일반연재 (go CHURI)』 1478번 제 목:[체스터턴] 푸른 십자가 6 완결 올린이:soomin1 (채수민 ) 99/01/19 00:06 읽음: 92 관련자료 없음 ----------------------------------------------------------------------------- <푸른 십자가> 지은이 : 체스터턴 올린이 : 채 수 민(soomin1) 6장(완결) 신부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신부의 뜻밖의 말에 프랑보우는 눈썹을 여덟 팔자로 만들며 어리둥절해했다. "바로 하아틀플에서 내가 보좌 신부로 있을 때였습니다. 그곳 교구민 가운데 팔목에 비밀 장치를 한 사람이 셋이나 있었습니다. 나는 당신도 그런 사람들과 같은 인간이란 것을 대번 에 알 수 있었지요. 그래서 나도 소중한 푸른 십자가를 잘 보호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바꿔치기를 해서 도로 그 푸른 십자가가 든 종이 보따리를 찾아 가지고 이리로 오 는 도중에 두고 왔습니다." "뭣, 도중에 두고 왔다고?" 프랑보우의 목소리는 떨렸다. "뭐 그런 정도입니다." 브라운 신부는 여전히 태연했다. "내가 아까 과자점에서 박하 사탕을 살 때, 종이 보따리를 놓고 가지 않았느냐고 안주인에 게 물으면서, 그 보따리가 나오건든 우편으로 부쳐 달라고 주소를 일러 주고 왔습니다. 실은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았지만, 두 번째로 과자점에 갔을 때 슬쩍 그 보따리를 두고 온 것 입니다. 지금쯤은 아마 과자점 안주인이 그것을 찾아 웨스트민스터에 있는 내친구에게 부쳤 을 것입니다. 하아틀플 교회에서 참회하던 신자로부터 들었는데, 그 사나이는 언제나 정거장에서 훔친 손가방을 이런 수법으로 자기 집에 보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꾀가 많은 녀석이지요. 교회 를 가지고 있으면 별의별 사람이 다 있으니까 여러 가지를 배우게 된답니다." 프랑보우는 얼른 자기가 가지고 있던 종이 보따리를 꺼내어 포장을 찢었습니다. 그러나 안 에서는 십자가는커녕 길쭉한 납덩이가 나왔을 뿐이다. "나는 도저히 네 말을 믿을 수가 없다! 너 같은 시골뜨기 신부한테 그런 꾀가 있다고 믿어 지질 않아. 어디에다 푸른 십자가를 감춘 것이 틀림없어. 이 근처는 아무도 얼씬하지 않는 으슥한 곳이야. 얼른 내놓지 않으면 빼앗아 버리고 말 테다!" "힘으로는 안 됩니다. 첫째 내게는 그 십자가가 없고, 둘째로 이 근처에 전혀 다른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니까요." 프랑보우가 브라운 신부에게 한 발 다가섰으나, 신부는 태연하게 말했다. "저 나무 밑을 보십시오." 브라운 신부는 봐란탄 탐정이 숨어 있는 곳을 가리켰습니다. "힘이 센 경찰관 두 사람과 세계적으로 유명한 탐정이 숨어있습니다. 저 사람들이 어떻게 이곳까지 따라왔는지 이상하지요? 사실은 내가 데리고 온 것입니다. 어떻게 데리고 왔는지 말씀드릴까요? 나도 많은 범인들과 접촉이 있었기 때문에 상당히 여러 가지를 알고 있습니 다. 처음에 나는 당신이 도둑인지 아닌지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라도 당신의 정 체를 알아 내려고 생각했지요. 보통 사람의 경우 커피 속에 소금이 들어가면 뭐라고 한 마 디 할 텐데, 당신은 그냥 아무 말도 없이 태연한 얼굴로 커피를 마셨습니다. 또한 보통사람 이라면, 식당의 계산서에 자기가 먹은 것보다 값이 3배나 비싸게 적혀 나오면 주인에게 따 질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계산서에 장난을 해 놨었지요. 그런데도 당신은 잠자코 그 값을 치 렀습니다." 나무 뒤에 숨어 있는 봐란탄 탐정은 프랑보우가 사납게 브라운 신부에게 달려들리라 생각 했다. 그러나 봐란탄 탐정은 마술에 걸린 사람처럼 꼼짝달싹도 못하고 서 있었다. "그래서 말입니다. 당신이 아무런 단서도 남겨 두지 않으려고 그러는 줄을 알았습니다. 그 래 단서를 남겨 놓는 역할을 내가 했지요. 그리하여 여기까지 오는 동안, 들르는 곳마다 소 문거리가 될 것을 남겨 두느라 무척 애를 썼습니다. 별로 큰 일이 아닙니다만 식당 벽에다 수우프를 끼얹었는다든가, 과인 가게의 사과 상자를 엎어 버리고 귤과 밤의 가격표를 바꿔 놓는다든가, 유리창을 깨뜨려 놓는다든가, 일부러 그런 일들을 저지른 것입니다. 그 덕분에 내 푸른 십자가를 무사히 보호할 수가 있었고, 경찰관에선 좋은 단서를 남겨 주었지요. 어쨌 든 당신은 죄악의 밑바닥에까지는 가 있지 않습니다. 당신은 나와 같은 사람이, 남의 못된 짓을 눈치채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건 그렇고, 나는 내 직업으로 도 당신이 진짜 신부가 아닌 것을 잘 알 수 있었지요." "어떻게?" 프랑보우도 열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만큼 얼이 빠져 있었다. "당신은 이성을 몹시 공격했는데, 그것은 엉터리 신학자만이 하는 수작입니다." 여기까지 말한 브라운 신부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물건을 건사하기 위해서 몸을 돌렸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나무 뒤에 숨어 있던 세 사람이 재빨리 뛰어나왔다. 프랑보우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서더니 깊이 머리극 숙여 봐란탄 탐정에게 인사를 했다. 봐란탄 탐정은 인사를 막으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닐세. 내게 인사를 해선 곤란해, 프랑보우. 우리 둘은 저 신부님에게 경의를 표해야 하 네." 봐란탄 탐정과 도둑 프랑보우는 모자를 벗고 브라운 신부에게 경의를 표했다. 그러나 이 키가 작달막한 시골 신부는 여전히 동그란 눈을 껌벅거리며 우산을 찾기에 바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