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 별장의 미스테리 (1) ◎ 길버트 K.체스터톤(Gilbert K.Chesterton) 「정말이야. 나는 언제든지 개를 좋아한다구. 개(dog)의 스펠링을 거꾸로 쓰지(god)만 않는다면 말이야.」 브라운 신부가 말했다. 잽싸게 말을 잘 하는 사람들이 남의 말을 듣는 데도 잽싼 것은 아니다. 입 을 빠르게 놀리기 때문에 어떤 때는 오히려 바보같은 말을 하기도 한다. 브 라운 신부를 무척이나 따르는 친구 피네스는 기지가 넘치고 쉴 새 없이 이 야기를 해대는 정열적인 젊은이였다. 그의 이글거리는 눈은 푸른빛이었고 뒤 로 넘긴 갈색머리는 빗으로 손질한 것이 아니라 세파에 시달려 넘어간 듯 했다. 그럼에도 신부의 아주 단순한 생각 앞에서는 오히려 순간적으로 황당 해져서 지껄여대던 이야기들을 멈추곤 했다. 「사람들이 개를 지나치게 소중히 여긴다는 말씀이세요?」 그가 말했다. 「글쎄요, 하긴 개란 정말로 신기한 동물이니까요. 때로는 사람보다도 아는 게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브라운 신부는 아무 말 없이 훈련이 잘 된 듯한 커다란 사냥개의 머리를 반은 멍한 모습으로, 반은 평온한 모습으로 계속 쓰다듬어주고 있었다. 피네스는 다시 말을 시작했다. 「일전에 제가 말씀드렸던 그 개 말씀이에요. 보이지 않는 살인사건이라는 사건에 연류된 개말입니다. 참 이상스런 얘기긴 하지만 제 생각에는 그 개의 속에 무언가 신비한 것이 들어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물론 범죄 자체도 미궁에 빠져 있지만 말입니다. 드루스 노인 혼자 여름 별장에 있 는 동안 어떻게 살해당할 수가 있겠어요?」 개를 쓰다듬던 규칙적인 동작을 잠시 멈추고 브라운 신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 그곳이 여름별장이었나?」 「신문에서 읽으신 줄 알았는데요.」 피네스가 대답했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신문에서 오려 둔 것이 있을 거예요.」 그는 주머니에서 신문 조각을 꺼내어 신부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신부는 눈 을 깜박거리며 기사를 읽으려고 한 손으로는 그것을 눈 가까이 갖다 댔고, 또 한 손으로는 무의식적으로 개를 쓰다듬었다. 그건 마치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출입구나 창문이 모두 잠겨진 채 살인이 일어나고 살인자는 출입구를 이용 하지 않고 도망쳐 버린 수많은 미스테리 사건중 하나가 요크셔 해안에 있는 크랜스톤에서 실제로 발생했다. 그곳에서 드루스 대령은 등허리를 단도에 찔 린 상처를 입은 채 발견되었는데, 그 단도는 현장에서 뿐만 아니라 근처에서 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가 살해된 여름별장은 입구에서부터 쉽게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었고, 그 평범한 대문에서는 집으로 향해 나 있는 정원의 가운데길이 잘 내려다보 였다. (우연이라고는 해도 일련의 사건들의 연관성으로 미루어 볼 때) 결정 적으로 살인이 일어난 결정적인 시간 동안에는 오솔길이나 입구의 상황이 사람들의 눈에 띄게 되어 있었고, 그것을 확인하는 증인들은 서로서로 연결 이 되어 있었다. 그 별장은 정원 맨 끝 쪽에 자리잡고 있고 또 다른 입구는 없었다. 그 정원의 가운데 길에는 큰 제비 고깔나무들이 양쪽으로 아주 빽빽 하게 심어져 있어서 그쪽으로 도망을 갔더라면 흔적이 남을 수밖에 없는 상 황이었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침입을 당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피살자의 비서였던 패트릭 플로이드는 드루스 대령이 대문을 들어설 때부 터 사체로 발견될 때까지 줄곧 정원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있었다고 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는 정원수를 손질하느라고 사다리 위에 올라가 있 었다는 것이다. 피살자의 딸 자넷이 이 사실을 증명했는데, 그녀는 그 시간 내내 별장 테라스에 앉아 플로이드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 보았다고 했다. 다 른 시간에 이 사실은 그녀의 오빠 도날드도 확인했는데, 그는 잠자리에서 늦 게 일어나 가운을 입고 침실 창문 앞에 서서 정원을 내려다보았다고 한다. 그 사실은 드루스 양을 만나러 테라스로 왔던 이웃의 발렌타인 의사와 대령 의 변호사로 피살자의 모습을 맨 마지막에 본 것으로 여겨지나 살인 혐의는 없는 것으로 보이는 오브리트레일 씨에 의해서도 역시 입증되었다. 모든 사람들은 사건이 일어난 과정이 다음과 같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였 다. 오후 세시 반쯤 드루스 양은 길을 따라 내려가 아버지께 언제 차를 마시겠 는지 여쭈어 보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차를 마시고 싶지 않다고, 그의 변호 사 트레일 씨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아버지와 헤어져 돌아오던 딸은 도중에 길을 내려오는 트레일을 만났다. 그녀는 아버지가 계시는 곳을 가리 켰고, 그는 안내받은대로 안으로 들어갔다. 30분쯤 경과한 후 그는 밖으로 나왔으며 대령도 그와 함께 문까지 따라나왔는데 건강해 보였고 기분도 좋 은 듯했다. 그는 자기 아들의 불규칙적인 생활 때문에 이른 아침에는 좀 짜 증스러워 했으나 기분을 정상으로 회복한 듯 했고, 그 날 그곳을 방문한 두 면의 조카들을 위시해 다른 손님들을 맞이하는 일에도 매우 즐거운 표정이 었다. 그러나 비극이 진행되는 동안 그들은 밖에서 산책하고 있었기 때문에, 증거를 줄 만한 게 없었다. 사실 대령은 발렌타인 의사와 사이가 좋지 않았 다고 사람들은 말했고, 그 때문에 그 젊은이는 자기의 깊은 관심을 보여 주 고 싶은 대령의 딸과 잠깐 동안 밖에는 만날 수가 없었다. 변호사인 트레일은 별장에서 혼자 대령을 떠나왔다고 말하고 있고 이 사실 은 정원에서 내려다본 플로이드도 확인된 바, 하나밖에 없는 출입구를 통과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다. 10분 후, 드루스 양은 다시 정원을 지나 길을 다 가기도 전에 아버지를 발견했는데 그가 하얀 린넨 겉옷을 입은 채 마루에 나동그라져 있었다는 것이다. 그녀가 비명을 지르는 바람에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안에 들어가 넘어진 등나무 의자 옆에 대령이 죽어 있음을 확인 했다. 아주 가까운 이웃에 있던 발렌타인 의사는 대령의 상처가 단검류에 의 한 것임을 확인했다. 경찰은 대령의 살인에 이용된 무기를 찾기 위해 부근을 수색했으나 아무것도, 그 어떠한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다. 「드루스 대령이 흰색 겉옷을 입었다고 했지?」 브라운 신부가 신문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야 더운 지방에서는 다 그렇지 않아요?」 피네스가 당연한 듯 대답했다. 「그 사람 말로는 그곳에서 조금은 신기한 모험을 했다고 하더군요. 그가 발렌타인을 싫어하는 이유도 역시 그가 열대지방 출신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그 이유는 좀처럼 알 수가 없어요. 그곳의 문제는 아주 예민하거든요. 저는 그 비극이 문제의 표출이라고는 보지 않아요. 저는 젊은 그의 조카들과 개 한 마리와 산책을 했었지요. 바로 그 개에 대해서 한 번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그러나 저는 신문에 나온 그대로의 현장도 보았어요. 푸른 꽃들 사이로 난 길은 어두컴컴한 입구까지 곧게 뻗어 있 었어요. 변호사는 검은 옷을 입고 실크 모자를 쓰고 그 길을 내려갔고, 빨간머리의 비서는 커다란 전정가위를 들고 푸른 사다리 위에 높이 올라 가 있었어요. 그 빨간머리는 아무데서라도 또 누구라도 볼 수 있었겠지 요. 그곳 사람들이 그 빨간머리가 내내 그곳에 있는 것을 보았다는데 믿 어도 될 것 같아요. 그 빨간머리의 비서 플로이드는 정말 좋은 성격의 소 유자라서 말없이 책임을 다했고, 정원사 노릇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일 까지도 열심히 해주는 그런 사람이래요. 제가 보기엔 미국사람 같았는데, 미국적인 인생관과 감정을 가진 게 분명했어요.」 「변호사라는 사람은 어땠나?」 브라운 신부가 물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피네스는 아주 조용히 그에게 말했다. 「트레일이라는 자는 특히 나를 놀라게 했어요. 그는 아주 멋있고 좋은 천 으로 만든 검은 양복을 입었음에도 멋지다는 생각은 들지 않더군요. 게다 가 그 사람은 빅토리아 시대 이후로는 보기 힘든 길고도 윤기나는 검은 수염을 길렀더라구요. 아주 근엄한 얼굴 표정에 훌륭한 매너를 지니고 있 긴 했는데, 이따금씩 억지로 미소를 짓는 듯했어요. 그가 흰 이를 드러낼 때면 그가 지녔던 위엄은 사라지고 조금은 알랑거리는 모습으로 보이더 라구요. 그러면서도 그건 수줍음 때문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했어요. 왜냐 하면 그는 넥타이와 타이핀을 무척 어색한 태도로 만지작거렸거든요. 그 것들은 자기의 모습만큼이나 멋을 낸 독특한 것들이었어요. 그리고 다른 사람이라면……. 하지만 모든 것이 오리무중인데 이런 생각들이 무슨 소 용이 있겠어요? 어떻게 그런 일이 생겼는지……. 그런데 딱 한 가지 있어 요. 분명히 그 개는 알고 있을 거예요.」 브라운 신부는 그가 한심한 듯 한숨을 쉬더니 멍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자네는 그 젊은 도날드의 친구여서 그곳에 갔었던가? 그 젊은이는 자네 와 함께 산보하지 않았나?」 「안 했어요.」 피네스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 건달같은 녀석이 글쎄, 아침에서야 잠이 들더니 오후가 돼서 일어났지 뭐예요. 저는 그의 사촌이면서 인도에서 온 젊은 관리 두 명과 산보를 했 어요. 그래서 우리들의 대화는 자연히 사소한 것들이었지요. 제 기억으로 는 형의 이름이 허버트 드루스였고 말을 사육하는 일에 권위가 있는 사 람이었어요. 그가 한 얘기라고는 그가 산 암놈 말과 그 말을 팔아 버린 사람의 도덕성에 관한 것이었어요. 그리고 그의 동생 해리는 몬테카를로 에서 당한 불운에 골몰하는 눈치였어요.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사건은 우리들이 산책하는 중에 일어났기 때문에 우리들과 아무런 상관 이 없다는 거예요. 단지 문제가 되는 것은 개였어요.」 「어떤 종류의 개였나?」 신부가 물었다. 「바로 저 개와 같은 종류였어요.」 피네스가 대답했다. 「그래서 제가 말을 꺼낸 겁니다. 신부님은 개에게 영력이 있다는 것을 믿 지 않으신다고 하셨지요? 그 개는 녹스라는 이름을 가진 아주 훈련이 잘 된 커다란 검은 개였어요. 이름 기억하기가 아주 쉬워요. 그놈이 한 짓은 살인보다도 더욱 음험한 어떤 미스테리가 숨겨져 있는 것 같아요. 드루스 의 집과 정원이 바닷가에 있다고 했지요? 우리는 모래를 밟으며 한 1마 일 가량 산책을 하다가 돌아올 때는 다른 길로 왔어요. 우리는 `운명의 바위'라는 참 이상스럽게 생긴 바위를 지나게 되었지요. 다른 바위들과는 전혀 균형이 맞지 않아 그 두드러진 모습은 이미 이웃사람들에게 잘 알 려진 것이었고, 건드리면 흔들거리며 소리가 났어요. 그리 큰 것은 아니 었지만, 흔들거리는 모습이 조금은 흉칙하고 불길하게 보였어요. 어쩌면 저만 그렇게 느꼈을지 모르죠. 나와 같니 산책하던 젊은 친구들은 그 모 습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나 제가 그런 분위기를 느낀 것도 당연한 일인지도 몰라요. 왜냐하면 바로 그때 차를 마시러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또 바로 동시에 그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예요. 허버트 드루스와 나는 시계를 차고 있 지 않았어요. 그래서 우리는 몇 발 뒤에 처져 있던 동생에게 소리쳤어요. 작은 나무 밑에서 파이프에 불을 붙이려고 멈춰 서 있던 그는 우리들을 향해 큰 소리로 4시 20분이라고 시간을 알려 주었는데, 불현듯 그 큰소리 는 점점 붉어지던 저녁 노을을 헤치며 무언가 엄청난 일을 선언이라도 하듯 겁나게 들렸어요. 무의식적인 그의 행동이 더욱 그렇게 느끼도록 했 는지 모르지만 불길한 징조는 늘 그렇게 예감되는 게 아니겠어요? 특히 시계가 똑딱거리는 소리는 아주 기분이 나빴어요.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발렌타인의 말에 의하면 그 불쌍한 드루스가 죽은 시간이 4시 30분경이 었다는 거예요. 사건은 바로 그 10분 사이에 일어난 거예요. 그러나 우리들은 10분간의 차이를 알지 못했어요. 우리들은 급하게 집으로 가야 할 이유도 없고, 그 렇다고 특별히 할 일도 없으면서 그저 모래사장을 따라 좀더 멀리 산책 을 했어요. 돌을 던지기도 하고 지팡이를 바닷속으로 던져 개에게 그것을 쫓아가도록 하는 일 따위를 하릴없이 한 것 뿐이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도 내게는 그 노을빛이 내 마음을 점점 압박하고, 높이 걸린 `운명의 바 위'의 검은 그림자가 자꾸만 무거운 짐처럼 느껴지지 뭐예요. 게다가 아 주 이상한 일이 일어났어요. 녹스가 바다 속에 던져진 허버트의 지팡이를 물고 나오니까 해리도 자기의 지팡이를 바다로 던져 버렸지요. 개가 지팡 이를 향해 헤엄쳐 가다가 4시 30분이 되는 시간 쯤에 진행을 멈추고 해 변으로 나와 우리들 앞에 딱 버티고 서는 게 아니겠어요? 그러더니만 갑 자기 머리를 쳐들고 애통한 소리를 짖어 대는 거였어요. 세상에서 그런 개의 소리는 처음 들어 봤어요. 『저놈의 개가 왜 저러나?』 허버트가 물었지만 우린 아무도 대답을 할 수가 없었어요. 그 짐승의 통 곡하듯 애처로운 소리가 해변에서 사라진 후에, 침묵의 시간이 흐르고 나 서 드디어 그 적막의 순간이 깨져 버린 거예요. 주위에는 알 수 없는 침 묵이 얼마간 지속되었지요. 그러나 어디선가 비명소리가 들렸어요. 육지 쪽 관목이 들어선 곳에서 들리는 소리는 여인의 비명 같았어요. 물론 그 때는 그것이 무슨 소리였는지 몰랐지요.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것은 아 버지의 죽음을 처음 발견한 딸의 울부짖음이었던 거예요.」 「그래서 다들 집으로 돌아갔겠군.」 브라운 신부가 맥없이 말했다. 「그때 어떤 상황이 벌어졌던가?」 「이제 말씀 드리지요.」 피네스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이 되었다. 「우리가 정원을 들어서자 처음 만난 사람은 변호사 트레일이었어요. 지금 도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해요. 그는 그 여름별장 입구까지 만발해 있던 푸른 꽃들과는 대조적으로 검은 모자를 쓰고 검은 수염을 달고 있었어 요. 그리고 일몰과 '운명의 바위'의 모습이 그 집에서부터 멀찍이 보였어 요. 비록 그의 얼굴과 몸은 지는 해를 등지고 있었지만, 나는 그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다는 사실을 포착했어요. 그런데, 녹스가 그를 향해 달려가더니 길 가운데 버티고 서서 미친 듯 이 짖어대는 것이었어요. 죽일 듯이 말이예요.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저 주를 퍼붓듯이 말이예요. 그러니까 트레일이 몸을 굽히더니 꽃밭 사이의 길을 따라 도망쳐 버리더라구요.」 갑자기 브라운 신부는 참을 수 없다는 듯 벌떡 일어섰다. 「그렇다면 개가 제일 먼저 고발한 셈이군.」 신부는 계속해서 말했다. 「개가 짖은 것은 그를 저주하는 것이었다는 말이지. 자넨 그때 새들이 날 아 다니는 것도 보았나? 그것들이 오른쪽에 있었는지 왼쪽에 있었는지 확실히 알 수 있는가? 제물 때문에 점쟁이를 찾아가 보기라도 했었나? 개를 잡아서 그 속을 조사해 보지는 않았겠지? 그 따위 짓은 사람의 목 숨이 위태롭다거나, 명예를 저버려야 할 때 자네처럼 야만적인 인도주의 자들이나 믿는 과학적인 실험일 거야.」 피네스는 잠시 어안이 벙벙한 채로 입을 벌리고 있다가 숨을 들이쉬고 말 했다. 「아니, 갑자기 왜 이러세요? 지금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요?」 어떤 불안감 같은 것이 신부의 눈가에 어렸다. 마치 어둠 속에서 출발점을 뒤로 하고 달려온 후 어디 다친 데라도 없는지 잠시 염려하는 사람의 불안 감 같은 것이. 「미안하네.」 아주 괴로운 듯 그가 말했다. 「너무 퍼부어서 정말 미안해. 제발 용서해 주게.」 피네스는 야릇한 기분이 되어 그를 바라보았다. 「때로 당신은 어떤 미스테리보다도 더 이해하기 힘든 때가 있어요.」 피네스가 계속해서 말했다. 「어쨌거나 신부님은 개 안에 있는 영력은 믿지 못하신다 해도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는 신비는 부정하지 못하시겠지요? 개가 바다에서 막 돌아온 순간에 마구 짖어대었던 사실은 인정하시는 거지요? 그의 주인의 영혼이 육신 밖으로 나와서 살아 있는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따라갈 수도, 상상 할 수도 없는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의해 날아가 버린 것이었어요. 그 렇지만 변호사의 경우는 개의 바로 옆에 있었으니 달리 어쩔 수가 없지 않아요? 이상한 얘기는 또 있어요. 변호사는 점잖은 모습으로 웃기만 하는데도 내게는 애매모호한 느낌을 주더군요. 그가 꾸민 하나의 계략이 마치 한 가지 힌트처럼 보였어요. 의사와 경찰들이 굉장히 빨리 그곳에 나타났지 요. 발렌타인이 그 집에 왔다가 돌아간 후 곧 다시 와서 전화를 했던 모 양이예요. 외떨어지고 사람 수도 적은 뻔한 지역이어서 근처에 있던 사 람들로 하여금 살인에 쓰인 무기를 찾아보도록 했지요. 모든 이들이 무 기를 찾아 샅샅이 뒤졌어요. 집 안을 온통 뒤지고 정원과 해변을 온통 이 잡듯 했어요. 그런데도 결국 찾지 못했죠. 단도가 없어진 것이나 범인 이 사라진 것이나 참으로 희한해요.」 「단도가 없어졌단 말이지.」 브라운 신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요.」 피네스가 말을 계속했다. 「트레일이 타이와 타이핀 때문에 어색한 몸짓을 했다고 말씀드렸지요? 특 히 타이핀 때문에요. 그 타이핀은 그 사람만큼이나 구닥다리였는데 눈에 띄는 것이었어요. 타이핀에는 마치 눈동자처럼 색이 있는 둥근 테를 두른 보석이 박혀 있었는데, 그가 자꾸만 그것에 신경을 쓰는 것이 나의 신경 을 건드렸어요. 흡사 몸 중간에 외눈이 박힌 사이크롭스(외눈박이 거인 족) 같았거든요. 타이핀은 또 크고도 길다란 것이었어요. 그가 자구만 그 것을 보면서 불안해 한 것은 그것이 보기보다 훨씬 길었기 때문인 듯해 요. 사실 단도의 길이만큼이나 말이예요.」 브라운 신부가 깊은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의심이 갈 만한 다른 기구는 없었나?」 그가 물었다. 「또 의심이 가는 것이 있긴 했어요.」 피네스가 말했다. 「사촌들, 젊은 드루스 중 한 사람에게서 얻어낸 것이었어요. 허버트도 해 리도 처음에는 과학수사 보조원들처럼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 하는 듯 했어요. 허버트는 말 수비대에 소속해 말이나 돌보던 기병인 반면에 그의 동생 해리는 인도 경찰관 소속이었기 때문에 그런 일에 대해 뭔가 좀 아 는 편이었어요. 정말 나름대로 아주 똑똑하더라구요. 지나칠 정도로요. 녀 석은 붉은 끈으로 표시해 놓은 출입금지 선을 넘어 들어가 위험을 무릅 쓰고 경찰을 대신해 스스로 책임을 지려는 듯 했어요. 어쨌든 녀석은 수 사에 아마추어 역량 이상으로 투신하더라구요. 그러던 중 그와 저는 살인 흉기 때문에 다투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 논쟁이 새로운 사실을 알게 해 주었어요. 그 논쟁은 개가 트레일을 향해서 짖어댔다는 나의 설명에 그가 반대함으로써 시작되었어요. 그의 말로는 개라는 놈들은 자신의 기분이 아주 좋지 않을 때면 짖어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으르렁댈 뿐이라는 것 이었어요.」  「그 사람 말이 옳군 그래.」 사제는 무언가 알고 있는 듯 말했다. 「이 젊은 친구가 말을 계속했지요. 그리고 그 전에도 녹스가 사람들을 향 해 으르렁대는 소리를 들었다는 것이었어요. 그 중에도 특히 플로이드를 향해서 말이예요. 나는 그의 주장에 반박했어요. 왜냐하면 그런 범행은 집 안에 두세 사람을 끌어들일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더구나 철없이 순 진한 국민학생같은 플로이드라니요. 그리고 빨간 앵무새처럼 눈에 띄는 빨간머리를 과시하며 정원수 위에서 전정을 하는 모습이 모든 사람들에 게 보이지 않았던가요? 『어쨌건 참 어려움이 많아』하고 그 친구가 말 했어요. 그리고 보여 줄 것이 있다며 나더러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어요. 사건 현장은 모든 게 그대로였어요. 바로 그 날 있었던 일이고 정원도 전 과 다름없었어요. 사다리도 나무들 옆에 그대로 서 있었는데 관목 바로 밑에서 그 친구가 몸을 굽히더니 무성한 풀섶 사이에서 무언가를 들어냈 어요. 그건 관목을 자르는 큰 가위였었는데 한쪽 끝에 핏자국이 있더라구 요.」 잠시 침묵이 흐른 후 브라운 신부는 피네스에게 뚱딴지 같은 말을 했다. 「변호사는 무엇 때문에 거기에 갔다던가?」 「그 사람 말로는 대령이 유언의 내용을 바꾸려고 자기를 불렀다더군요.」 피네스가 대답했다. 「그런데 말씀이지요. 그의 유언을 바꾸겠다던 일에 대해 한 말씀드려야겠 어요. 실제로 대령은 그 날 오후 그 별장에서 자신의 유언장에 서명을 한 것이 아니었어요.」 「그러지 못했겠지. 두 사람의 증인이 있어야 하는 것이니까.」 브라운 신부가 말했다. 「사실은 그 전날에 이미 유언장에 서명을 했었더랬지요. 그런데 대령이 당 시 증인 중 한 사람이 의심스러워 재확인을 하기 위해 다음날 다시 변호 사를 불렀던 것이었어요.」 「증인들은 누구 누구였던가?」 브라운 신부가 물었다. 「문제는 바로 그 점이에요.」 피네스는 아는 대로 열을 내어 대답했다. 「증인들은 비서인 플로이드와 외국인이라고 생각되는 외과의사인지 무엇 인지 하는 발렌타인 의사였어요. 그런데 둘이 서로 다툰 거예요. 플로이 드는 정말 바쁜 사람이었고, 열성적이고 몸이 재빠른 사람인데, 불행하게 도 그런 그의 다혈질 때문에 싸움을 하고 의심을 불러 일으킨 거예요 그 러니 사람들은 그들을 믿을 수 없게 되었고 혼동을 하게 된 것이지요. 빨 간머리에 불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들은 대체로 잘 속든지 아니면 의심이 많든지 또 때로는 둘 다이든지 하지요. 그리고 그는 누구보다도 아는 게 많은 만물박사예요. 그러면서 또 사람들에게 서로 믿지 말라고 경고했지 요. 그것 때문에 발렌타인에게 의심을 받게 되었나 봐요. 그러나 그런 특 별한 경우에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있겠지요. 플로이드에 의하면 발렌 타인이라는 그 자는 진짜 발렌타인이 아니라는 것이었어요. 그는 드 비용 이라는 이름의 가짜 발렌타인을 어디선가 보았다는 거예요. 그의 말에 의 하면 그런 사실은 대령의 유언을 무효가 되게 할 것이라더군요. 물론 그 는 변호사에게 충분히 설명해 주었고 그 점에 관한 법에 대한 이야기도 했지요. 그들은 둘 다 아주 노발대발했어요.」 브라운 신부가 소리를 내어 웃었다. 「사람들은 자주 그런 유언에 증인이 되어야 할 때가 있지.」 그가 말했다. 「한 가지 말하면 그런 상황에서는 그들에게 전혀 유산이 돌아가지 않는 거야. 헌데 발렌타인 의사는 뭐라던가? 말할 것도 없이 그 보편적인 비서 는 그 의사가 한 행위보다는 그 의사의 이름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있었 겠지. 그렇지만 그 의사도 자기 자신의 이름에 대한 정보는 좀 가지고 있 지 않겠는가?」 피네스는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대답했다. 「발렌타인 의사는 좀 고집불통이었어요. 좀 이상스러운 사람이었어요. 외 모가 별다른 것은 아닌데 이국적이었어요. 젊은 사람이 반듯하게 깎은 수 염을 달고 있었지요. 얼굴은 아주 창백했는데 무서우면서도 아주 심각해 보였어요. 그의 눈엔 고통같은 것이 서려 있었어요. 마치 안 보이는 것은 애써 보려고 하는 사람처럼, 무얼 생각하느라고 두통이 생긴 사람처럼요. 그러나 그는 아주 잘생긴 사람이었고, 항상 정장을 했고, 신사모에 짙은 색의 겉옷을 입었으며, 작은 빨간 장미 모양을 달고 있었어요. 그의 태도 는 좀 냉정하면서도 거만해 보였고, 상대방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바람에 당황하게 만들곤 했어요. 이름을 바꾸었다는 사실로 추궁을 당하자 그는 스핑크스와 같은 눈초리로 미국사람들은 바꿀 만한 이름이 없다며 웃으 면서 말했어요. 그 일 때문에 대령도 불안해졌고 의사에게 노발대발했으 리라는 생각이 들어요. 대령이 더욱 화가 난 것은 의사가 마치 장래의 가 족이기나 한 것 같은 행동을 했기 때문이었어요. 그렇지만 그 비극이 발 생한 이른 오후에 우연히 들은 몇 마디가 아니었다면 별로 많은 생각을 못했을 거예요. 저는 그 말들을 머리에 떠올리기도 싫어요. 왜냐하면 그 말들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들을 수 없는, 엿듣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나 들을 수 있는 그런 종류의 말이었기 때문이지요. 제가 그 두 젊은 친 구들과 또 그 개와 함께 정문을 향해 걸어가다가 잠시 집을 빠져나온 발 렌타인 의사와 드루스 양이 그늘진 꽃밭이랑 뒤에서 정열적으로 속삭이 는 소리를 들었거든요. 그 소리는 마치 서로를 꾸짖는 소리처럼 들렸어 요. 그것은 연인들의 밀회라기보다 연인들의 싸움이었으니까요. 그들이 이야기하는 종류의 말은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반복해서 말하지 않게 되는데, 그들의 대화에서는 누군가를 죽인다는 말이 몇 번 반복되더라구 요. 사실은 소녀가 남자에게 아무도 죽이지 말라고 애걸하는 듯 했어요. 누군가를 죽인다는 것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이었지요. 그런 말은 차를 마시기 위해 잠시 들른 신사에게 정상적으로 할 말은 아니지 않겠 어요?」 「비서와 대령이 만난 것을 목격한 후, 다시 말해서 유언에 증인이 되는 그 일을 끝마친 후 발렌타인은 매우 화가 나 있지 않던가?」 신부가 물었다. 「사람들의 말로는 그는 비서만큼 화가 났던 것은 아니래요. 증인의 서명을 한 후 정말 화가 난 것은 비서였거든요.」 「그런데 그 유언은 어떻게 되었나?」 브라운 신부가 물었다. 「대령은 매우 부유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의 유언은 중요한 것이었지요. 트레일은 그 당시에는 수정된 내용에 대해 말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실은 오늘 아침에 유산의 대부분을 아들에게서 딸에게로 넘겼다는 소리를 들 었어요. 왜 제가 드루스 씨가 제 친구 도날드의 무절제한 행동 때문에 몹 시 화가 났었다는 말씀을 드렸었잖아요.」 「살해 동기가 살해 방법의 문제 때문에 가려져 있는 것이군.」 브라운 신부가 의미있게 말했다. 「그때 분명히 드루스 양도 아버지의 죽음에 간접적으로 가담을 했던 거 야.」 「원 세상에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세요?」 피네스가 신부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놀라움을 나타냈다. 「그녀가 진짜 그랬으리라고 말씀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그 처녀가 발렌타인 의사와 결혼할 거라고 하나?」 신부가 물었다. 「몇 사람은 반대를 하고 있지요.」 피네스가 대답했다. 「그렇지만 그 이는 이 고장에서 사랑과 존경을 받는 사람이고, 게다가 기 술도 좋고 헌신적인 외과의사예요.」 「그렇게 헌신적인 사람이라 젊은 처녀와 차를 마시러 갈 때에도 외과기구 를 가져갔군. 그 이는 분명히 란세트(피를 빼는 침)나 뭔가를 가져갔고, 집으로 돌아간 것 같지가 않아.」 피네스는 벌떡 일어나 의문에 가득 차 흥분된 모습으로 신부를 바라보았다. 「그가 바로 그 란세트를 사용했으리라는 말씀이군요?」 브라운 신부는 머리를 가로 저었다. 「지금은 상상일 뿐이야. 문제는 누가 무엇을 사용해 그런 짓을 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그런 일이 발생했냐는 거야. 우리는 핀이나 전정가위, 또 란세트같은 많은 기구들을 생각해 낼 수 있겠지. 그러나 그 사람은 어떻 게 방으로 들어갈 수가 있을까? 또 핀이 어떻게 방에 들어갈 수가 있었 겠나?」 신부는 말하는 동안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물끄러미 천장만 바라보았다. 마 지막 말을 할 때에는 갑자기 천장에서 괴상한 파리라도 발견한 듯 시선을 집중하는 것이었다. 「그럼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피네스가 물었다. 「당신은 경험이 많잖아요? 이제 어떤 충고를 해주시겠어요?」 「내가 무슨 경험이 그리 많나?」 브라운 신부가 한숨 섞인 말을 했다. 「나는 살인 현장에 가까이 있지도 않았고, 또 사람들과도 접촉을 하지 않 았기 대문에 내 생각을 얘기하기가 곤란하군 그래. 우선 자네가 지리적인 문제점을 생각해 보게나. 그 인도 경찰관 출신의 자네 친구가 자네의 의 문점에 다소간 무얼 알고 있다고 생각되는데, 먼저 그가 알아낸 것이 무 엇인지 알아보면 좋을 것 같아. 아마츄어 탐정으로 그가 한 일들을 말이 야. 이미 그것에 암시가 있지 않겠나?」 손님으로 와 있던 피네스와 개가 자리를 뜨자 브라운 신부는 펜을 들고 잠 시 중단했던 에 대한 강의 계획으로 돌아갔 다. 주제가 매우 방대해서 몇 번씩 다시 정리해야만 했다. 커다란 검둥개가 브라운 신부에게 좋아라고 어쩔 줄 모르고 달려들기까지 그는 이틀 정도를 꼬박 일에 매달렸다. 개를 따라온 주인도 같은 기분이 아니긴 해도 함께 좋 아했다. 전과 달리 피네스의 푸른 눈이 더 쑥 들어가 보이고, 진지한 얼굴이 더욱 창백해 보이는 것으로 보아 그의 기분이 유쾌한 것은 아닌 성 싶었다. 그는 서두도 없이 갑자기 뚱딴지 같은 말을 꺼냈다. 「신부님은 제게 해리 드루스가 한 일들을 찾아보라고 하셨지요? 그가 무 슨 짓을 했는지 아세요?」 신부가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하자 그 젊은이는 끈적끈적한 말투로 말을 계속했다. 「그가 자살을 했어요.」 브라운 신부의 입술이 가늘게 떨렸다. 그러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런 경우 무슨 할 말이 있을까? 「당신은 때로 나를 섬칫하게 해요.」 피네스가 말했다. 「이 일을, 이런 일을 상상이나 하셨어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지.」 브라운 신부가 말했다. 「그래서 내가 자네에게 그가 한 일을 가서 보라고 부탁한 게 아닌가? 자 네가 한 발 늦지 않기를 바랬지.」 「그를 발견한 건 저였어요.」 피네스가 좀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지금까지 제가 보았던 일들 중에서 가장 추하고 기분 나쁜 일이었 어요. 저는 그 고풍스런 정원을 내려가다가 살인 사건 말고도 새롭고 부 자연스러운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았지요. 꽃들은 여전히 그 음침한 여름 별장의 어둑한 입구까지 뻗친 채 양편에서 푸른 무리를 지어 흔들 거리고 있었어요. 그러나 제게는 그 푸른 꽃들이 지하세계의 어두운 동 굴 앞에서 춤을 추고 있는 푸른 악마처럼 보이더라구요. 난 주위를 살펴 보았지요. 얼핏 모든 것이 본래의 모습대로 있는 것 같았어요. 그러나 자 꾸만 이상한 생각이 내게 엄습해 왔어요. 그리고 곧 나는 하늘의 모양이 무언지 좀 다르다는 생각을 했어요. 전에는 분명 운명의 바위가 항상 정 원의 관목 너머로 바다를 등진 채 배경을 만들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운 명의 바위가 없어진 거예요.」 브라운 신부는 고개를 들고 경청했다. 「풍경화 속에서 산이 걸어나오고 달이 하늘에서 떨어진 격이지요. 물론 언젠가는 운명의 바위가 떨어질 것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요. 난 무엇인 가에 홀려서 바람처럼 정원을 달려내려가 거미줄을 헤치듯 관목 사이를 헤치고 돌진해 갔어요. 그것은 정말 가는 관목이었어요. 그렇지만 정갈하 게 손질해 놓은 모양은 울타리로 사용하기에 손색이 없었어요. 해변에서 저는 그 흔들거리던 바위가 그 받침대에서부터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 어요. 그리고 해리 드루스는 그 밑에 깔려서 박살이 나 있었어요. 한쪽 팔은 그가 스스로 바위를 잡아당겼던 듯 감싸 안은 모습으로 휘감겨 있 었구요. 그 옆 누런색의 넓은 모래 사장에는 미친 듯이 큰 글씨로 그가 글을 갈겨 놓았더라구요. 『운명의 바위가 바보에게 굴러 떨어지다.』」 「그렇게 된 것은 대령의 뜻이었겠지.」 브라운 신부가 진지하게 말했다. 「그 젊은이는 도날드를 삼촌의 눈 밖에 나게 하고는 무엇이든지 자기에게 이롭게 하려고 했었지. 특히 그의 삼촌이 변호사와 같은 날, 자신을 불러 놓고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으니 더욱 그렇지 않았겠나? 그리고 그는 다 끝내 버리지 않았나? 경찰직을 잃고 몬테카를로에서 얼마나 힘들었겠어? 그런데 그가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이 친척만 죽인 게 됐으니 자살할 수 밖에.」 「잠깜, 잠깐만요! 당신은 너무나 지나치군요.」 신부를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피네스가 소리쳤다. 「대령의 유언에 관해 얘기해 보게.」 브라운 신부가 조용히 말을 계속했다. 「잊어버리기 전에 좀더 큰 문제부터 시작하세. 내 생각에 의사의 이름 문 제에 대해서는 간단히 설명이 되겠는데……. 그 두 이름을 어디선가 들 어 본 것 같단 말이야. 그 의사는 드 비용 후작이라는 작위를 가진 프랑 스의 진짜 귀족이야. 그런데 또 그이는 열성적인 공화당원이어서 그의 작위를 포기하고 다 잊어버린 옛 가문의 성을 사용한 것이지.」 「무슨 말씀이세요?」 피네스는 정신나간 듯 질문을 했다. 「진정해.」 신부가 말했다. 「십중팔구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교활한 행위이지. 그러나 이번 경우는 광기라고나 할까? 그것은 바로 호칭이나 작위를 갖지 않는 미국인들에 대한 그의 빈정거림 같은 거야. 지금 영국에서는 하링턴 후작을 절대로 하링턴 씨라고 부르지 않아. 그렇지만 프랑스에서는 드 비용 후작을 M. 드 비용이라 하고 있어. 그러니 그것은 이름을 바꾼 것처럼 보이는 게 당연해. 사람을 죽인다는 것에 대해 얘기하자면 내 생각엔 그것 또한 프 랑스 예절이야. 그 의사는 플로이드에게 결투를 신청하겠다는 얘기를 한 것이고, 그 소녀는 그러지 말라고 설득하는 것이었어.」 「아! 그랬었군요!」 피네스가 감탄의 말을 뱉었다. 「이제 그녀의 의도를 알겠군요.」 「과연 어떤 의도였겠나?」 신부가 웃으며 그에게 물었다. 「글쎄요. 제가 그 불쌍한 친구 녀석의 시신을 발견하기 직전에 제게 일어 났던 일 같은 것이 아닐까요? 그 엄청난 일을 보니 그런 것은 제 머리 속에서 싹 달아나 버렸지요. 비극의 최고점에 다다르게 되니 조금은 낭 만적이던 전원의 기분은 거의 기억나지 않더군요. 얼마전 대령의 옛집에 이르는 길을 따라가다가 저는 발렌타인 의사와 드루스 양을 만났어요. 물론 그녀는 상중이라 검은 의복을 입었고, 그 남자는 언제나처럼 검은 옷을 입고 있었어요. 그들의 모습이 꽤나 밝고 기분 좋아 보였던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그들이 걸음을 멈추고 내게 인사를 했어요. 그리고 그녀가 내게 말하더군요. 그들은 결혼을 해서 교외의 작은 집에서 살고 있으며 그곳에서 개업을 하고 있다구요. 그 말은 나를 좀 놀라게 했지요. 왜냐하면 저는 그녀에게 유산을 남기라는 대령의 유언을 알고 있었기 때 문이지요. 저는 그녀에게 대령의 옛집으로 가는 길이라며, 유언에 대해 살짝 귀띔을 해주면서 그곳에서 만나자고 했지요. 그런데 그녀는 웃으며 말하는 거였어요. 『우리는 모든 걸 포기했어요. 제 남편은 유산 받은 여자를 종아하지 않 는데요.』 그리고 저는 그들이 정말로 불쌍한 도날드에게 대령의 유산을 주라고 고집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는 매우 놀랐지요. 그의 그런 건전한 충격이 그 일을 잘 처리하기를 바랄 뿐이예요. 정말 그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 었어요. 그 이는 앞길이 창창한 젊은이였는데 그의 아버지가 현명하지 못했던 거예요. 그러긴 한데 그녀가 그 당시에는 알지 못할 말을 한 것 과 연관이 지어졌던 것이지요. 그런데 이제는 신부님 말씀대로 확실해졌 어요. 그녀는 갑작스런 상황에서 완전히 남을 더 생각하는 마음으로 자 신만만하게 이렇게 말했어요. 『이제는 저 빨간머리의 바보가 그 유언에 대해 더 이상 시끄럽지 않도 록했으면 좋겠어요. 그 사람은 십자군만큼이나 오래된 방패나 문장같 은 것도 다 포기해 버린 제 남편이 유산을 노리고 제 아버지를 죽였을 거라고 생각하나요?』 그리고 또 한바탕 소리내어 웃더니 이렇게 말했어요. 『제 남편은 직업상으로 어쩔 수 없는 때는 예외지만 누구도 죽이지 않 아요. 그 이가 무엇 때문에 비서를 방문하라고 친구에게조차 부탁을 하지 않았겠어요?』 이제 그녀가 무슨 얘기를 한 것인지 알겠지요?」 「나도 그녀가 말한 것을 부분적으로는 알겠네만…….」 브라운 신부가 말했다. 「그녀가 말하는, 대령의 비서가 유언에 대해 시끄럽게 굴 것이라는 진정 한 의미는 무엇일까?」 피네스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브라운 신부님이 그 비서에 대해 잘 아시면 좋겠는데. 그가 큰소리를 내 며 활기차게 일하는 것을 보시면 당신도 즐거워질 거예요. 그는 슬픔 어 린 집을 활기있게 만들었어요. 그는 장례식장에 유쾌한 운동경기같은 정 력과 활기가 있도록 했어요. 정원을 가꾸면서 정원사 노릇을 해왔다는 사실과 변호사에게 법률적인 것에 대한 지적을 했다는 사실은 이미 말씀 드렸지요. 말할 필요도 없이 그는 발렌타인이 외과병원을 개업하는 일에 도 발렌타인에게 지시를 했을 거예요. 수술을 잘못한 것보다 더욱 나쁜 짓을 한 것으로 발렌타인을 고소하고는 일을 끝내려 한다는 것을 이제 확실히 아실 거예요. 비서는 의사가 죄를 저질렀다는 생각을 그의 빨간 머리에 고정시켜 놓고 있었어요. 경찰이 도착했을 때 그는 분명히 의기 양양해 있었구요. 그가 아마추어 탐정 중에서 가장 초점을 받게 된 것도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셜록 홈즈라고 해도 드루스 대령의 죽음에 대해 수사하는 경찰보다 더 심사숙고하는 드루스의 개인 비서처럼 타이탄 신 의 자존심과 냉소를 띤 채 런던 경찰국을 넘나들지 못했을 거예요. 그를 보고 있노라면 즐거워진다고 할 수 있어요. 기분이 들떠 돌아다니는가 하면 빨간 머리칼을 흩날리며 무뚝뚝하게 짜증스런 대답을 하곤 했어요. 최근의 그의 행동 때문에 드루스의 딸이 그에게 화를 내기도 했어요. 그 러면서도 나름대로의 논리가 있었어요. 그 이론은 책 속에 있음직한 그 런 것이었어요. 그러니 플로이드는 책 속에나 있음직한 그런 사람이었어 요. 그는 책 속에서 재미있는 사람이지, 누구를 괴롭히는 자는 아닐 거예 요.」 「그의 이론이란 게 무엇인가?」 신부가 물었다. 「아! 그 이론에 대해 플로이드느 아주 자신만만해요.」 피네스가 무겁게 대답했다. 「그가 말하기를 그들이 대령을 여름 별장에서 발견했을 때만 해도 대령은 살아 있었는데, 의사인 발렌타인이 옷을 자르겠다고 하고선 외과 기구를 가지고 들어가서 대령을 죽였다는 것이지요.」 「알겠어.」 사제가 말했다. 「낮잠을 자는 모습으로 먼지 투성이의 마룻바닥에 얼굴을 대고 납짝 엎드 려 이었겠군.」 「신기할 정도로 눈치가 빠르시군요.」 피네스가 얘기를 계속했다. 「어쨌든 간에 플로이드가 그의 거창한 이론을 서류로 꾸며서 발렌타인이 체포되도록 했을 거예요. 그런데 '운명의 바위' 밑에 깔린 해리의 시체가 발견됨으로써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가게 된 거지요. 그래서 결국 우리 가 이 시점까지 온 것이구요. 자살로 죄를 고백한 것이 아니겠나구요. 그 러긴 해도 진실은 아무도 모르지요.」 얼마간의 침묵이 흐른 후 신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진실을 알 것 같네.」 피네스가 신부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아니, 어떻게 진실을 안다는 거예요? 또 어떻게 그것이 진실이라고 확신 하시는 건가요? 당신은 사건현장에서 100마일이나 떨어진 곳에 앉아서 강론할 준비나 하고 계시지 않았습니까? 그런 당신이 무슨 일이 생겼었 는지 어떻게 알 수가 있다는 겁니까? 당신이 정말 진실을 아신다면 처음 부터 말씀해 보세요. 이야기는 어떻게 시작되지요?」 브라운 신부가 평소같지 않은 흥분한 모습으로 몸을 세워 앉더니 탄성같은 소리를 질렀다. 「그 개야! 정말 그 개야! 자네가 그 개를 잘 관찰했다면, 해변가에서 그 개를 잘 살펴보았다면 사건의 전모를 쉽사리 알아차릴 수 있었을 거 야.」 피네스는 신부를 더욱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그렇지만 조금 전에 신부님은 개에 대한 저의 감정이 우스꽝스럽고, 또 그 개는 이 일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하셨잖아요?」 「그 개는 모든 것과 관계가 있어.」 신부가 말했다. 「만일 자네가 그 개를 사람의 영혼을 판단하는 전지전능한 신으로서가 아 니고 개를 그저 하나의 개로 취급했다면 알아낼 수 있었겠지.」 잠시 어줍잖은 듯 침묵을 지키다가 조금은 동정적인 사과의 마음으로 신부 가 다시 말했다. 「사실, 나는 개들을 끔찍이도 좋아하게 됐지. 그런데 개에 대한 그런 허무 맹랑한 잘못된 생각이 오히려 개를 불쌍하게 하는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 각을 못하는 것 같아. 작은 문제부터 시작해 보자면 그 개가 변호사를 보면서 맹렬히 짖어대던 것하고, 또 비서를 보고 으르렁거렸던 것부터 얘기할 수 있지. 자네가 내게 물었지? 100마일이나 떨어져 있으면서 어 떻게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느냐고? 그건 다 자네 덕분이야. 자네가 대령 의 주변 인물들을 아주 잘 설명해 주었거든. 트레일같이 늘 찡그리고 있 다가 갑자기 웃는 사람, 물건을 특히 목 부분을 만지작거리는 사람은 신 경질적이고 부끄럼을 잘 타지. 플로이드도 의심할 여지가 없어. 유능한 비서로 날고 뛰는 사람이야. 그런 양키 사기꾼들은 보통 그렇거든. 그리 고 피가 묻은 가위는 그가 자넷 드루스의 비명을 듣고 가위를 떨어뜨리 는 바람에 손을 베어 묻은 것이 아니었겠나! 그런데 말이야, 개란 놈들은 신경질적인 사람들을 몹시 싫어한다구. 그런 사람들은 개도 신경질적이 되게 하는지, 원래 개란 놈들이 야수니까 겁을 주는 건지, 아니면 자기들 이 사랑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 허세부리듯 단순히 하얀 이를 드러내어 방어를 하는 건지는 모르겠어. 아무튼 그 불쌍한 녹스로서는 그 사람들 을 방어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어. 오직 자기가 두려우니까 그들을 싫어했던 것 뿐이야. 난 자네가 무척이나 똑똑하다고 알고 있네. 아무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말이야. 그런데 어떤 때는 참 이상해. 예를 들어 자네는 너무 영리해서 동물을 이해하지 못하더라구. 또 어떤 때는 너무 영리해서 사람을 이해하지 못해. 특히 그 사람이 동물처럼 단순한 행동 을 할 때면 말일세. 동물들은 참 단순해서 너무도 뻔한 세계를 살고 있 지. 이번 경우를 보게나. 개가 어떤 사람을 보고 짖었는데, 그 사람이 개 에게서 도망가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그런데 자네는 그 사실을 단순 하게 보지 않는 것 같군 그래. 그러나 그것은 개는 그 사람을 싫어해서 짖어댄 것이고, 그 사람은 개가 두려워서 도망간 것뿐이네. 그들에게는 아무런 동기도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었네. 그렇지만 자네는 그 사건에 심리적인 미스테리를 부가하고 개가 초자연적인 투시안을 가진 것으로 상상해 그 개를 신비한 운명의 대변인으로 생각했던 거야. 자네는 그 사 람이 개로부터 도망간 게 아니라 형집행인으로부터 도망가려던 것으로 상상한 거야.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한다면, 자네의 그런 심오한 심리는 정말 가당치도 않은 이야기지. 만일 그 개가 자기 주인의 살인자를 알고 있다면, 그 살인자 앞에서 귀를 내리고 있지는 않았을 게 아닌가? 아마 목을 향해 몸을 날렸을걸! 또 달리 생각해 보면 아무리 변호사의 심장이 강하다고 해도 옛 친구를 살해하고 친구의 딸과 검시의가 보는 앞에서 웃으며 걸어나갈 수 있는가? 그리고 그런 사람이 개 한 마리가 짖는다고 해서 그렇게 몸을 사리며 도망가겠는가? 거기에 비극의 아이러니가 있지 않나? 여느 다른 비극의 요소처럼 그의 영혼을 흔들었을 거야. 그렇다면 그는 말도 하지 못하는 유일한 증인으로부터 도망가기 위해 그 긴 정원 을 미친 듯이 달려가지는 않았을 걸세. 그러나 사람들이 비극의 아이러 니가 아니라, 이빨에 겁을 먹으면 그처럼 대단한 무서움이 생기게 되어 있어. 사실은 자네가 아는 것보다 훨씬 단순하다네. 한 번 바닷가에서의 일을 생각해 보게. 그 일은 훨씬 재미있어. 처음 자네가 그 얘기를 했을 때는 아주 헷갈리더군. 개가 바다 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온 얘기를 이해할 수가 없었지. 그건 개들이 하는 짓이 아닌 듯했거든. 만일 녹스가 무언가 석연찮은 일이 발생했다는 낌새를 챘다면 지팡이를 쫓아가는 일 따위는 애초부터 거부했을 거야. 그리고 아마 어느 방향으로든지 코를 들이대지도 않았을걸? 내 경험으로 개란 놈들은 실제로 일단 어떤 물건 을 쫓으면 그것이 돌이든지 지팡이든지 아니면 토끼이든지 간에 엄한 명 령이 떨어지지 않는 한 그 행동을 멈추지 않아. 그런데도 개의 기분이 바뀌어 스스로 되돌아왔다니 난 도무지 알 수 없더군.」 「그렇지만 그놈은 되돌아왔다구요! 지팡이도 가지지 않고 말이에요.」 피네스는 고집을 피우는 아이처럼 신부에게 말했다. 「그놈이 지팡이를 가지고 오지 않았던 것은 무슨 이유가 있어서겠지.」 신부가 대답했다. 「그놈은 찾을 수가 없어서 돌아온 거야. 또 그렇기 때문에 구슬픈 소리를 냈던 거이고. 그런 경우엔 정말 개가 구슬픈 소리를 낸다구. 개란 놈들은 그런 놀이엔 아주 능해. 아이들이 동화를 정확히 구연하듯 그런 놀이엔 특출하단 말이야. 그런데 지팡이를 찾지 못하는 경우란 개한테는 무언가 잘못된 놀이지. 바로 그 개는 지팡이가 없어지도록 던진 자네들에게 심 한 불평을 한 것이었지. 전에는 그런 일이 전혀 없었으니까. 어떻게든 지 팡이를 가져가야 영리하고 뛰어난 개로 칭찬받을 테니까.」 「그럼 지팡이는 어떻게 된 건가요?」 피네스가 물었다. 「가라앉은 거야.」 신부가 말했다. 피네스는 아무말도 못하고, 다만 계속 그를 뚫어지게 쳐다 볼 뿐이었다. 신부가 말을 계속했다. 「그건 진짜 지팡이가 아니었지 때문에 가라앉아 버린거라구. 그건 얇은 수수껍질을 씌운 끝이 날카로운 쇠막대기였던 거지. 다시 말해서 그건 칼지팡이였다고. 살인자들은 피 묻은 칼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다른 어 떤 방법보다도 아주 자연스럽게 개들을 훈련하는 척하고 바다 속으로 던 져 버리곤 하지.」 「아! 이제야 당신 말을 알 것 같군요.」 피네스가 신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살인자가 살인에 그 칼을 사용한 것이라면 어떻게 사용했을지 도 무지 감이 안 잡히는데요?」 「내가 좀 생각을 해봤지.」 신부가 말했다. 「자네가 여름별장이라는 말을 하기 시작할 무렵부터 말이야. 그리고 드루 스가 하얀 겉옷을 입었다는 말을 했을 때에도 말야. 모든 사람들이 살인 에 쓰인 단도를 찾으려고 애쓰는 한은 아무도 단서도 찾지 못하게 돼어 있었어. 그러나 눈을 결투나 펜싱에 쓰이는 날이 긴 칼 쪽으로 돌리면 그건 불가능한 게 아니었어.」 신부는 벽에 등을 기대고 천정을 바라보며 처음의 자신의 생각과 기본법칙 들을 정리했다.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잠긴 문 안에서 사람이 죽은 채로 발견되는 일련 의 탐정소설을 검토하는 식으로는 이번 사건을 취급할 수는 없어. 왜냐 하면 살인현장은 바로 여름별장이 아닌가? 보통의 방에는 벽이 있어서 칼로 뚫을 수도, 들여다볼 수도 없지. 그러나 여름별장은 그렇게 만들어 지질 않았어. 여름별장은 촘촘히 짜놓긴 했어도 가닥가닥으로 이루어진 나뭇가지나 나무껍질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여기저기 틈새가 있게 마련이 야. 대령이 등을 기대고 앉은 바로 그곳에도 그런 틈새가 있었지. 대령의 방에 있는 의자도 역시 바구니처럼 된 것이어서, 거기에도 또한 구멍이 있었던 거야. 마지막으로 그 여름별장은 관목들 아래 아주 가까이 있어 서 자네도 그건 마치 가느다란 관목같았다고 하지 않았나? 집 밖에 있는 사람이라도 나뭇가지나 줄기, 또 수수깡을 엮어 놓은 사이로 과녁의 흰 점처럼 선명하게 대령의 하얀 겉옷을 쉽사리 볼 수 있었겠지. 자네는 여 름별장의 주변 정황을 좀 흐리멍텅하게 설명했지만, '운명의 바위'도 그리 높은 것은 아니어서 산봉우리처럼 솟은 모습을 정원에서 볼 수 있다고 했잖나? 달리 말해 그것은 여름별장 정원 끝 쪽에서 아주 가까이 있었단 말이 되지. 자네가 그곳까지 가는 데 시간이 좀 걸린 것은 돌아갔기 때 문일세. 그리고 대령의 젊은 숙녀께서도 반 마일이나 떨어진 곳까지 소 리가 들리도록 정말 비통하게 통곡을 한 것 같지도 않았구. 그런데 자네 가 해변에서 그 소리를 들었다고 하지 않았나? 결국 그 거리가 가깝다는 셈이지. 자네가 한 말 중에서 또 재미있는 것은 해리 드루스가 관목 밑 에서 담뱃불을 붙이기 위해 좀 처져 있었다는 것인데 기억나나?」 피네스가 가볍게 진저리를 쳤다. 「그럼 칼을 그곳에 두었다가 관목 사이를 뚫고 대령을 찔렀다는 말씀이군 요. 그렇지만 확실히 그건 기회도 좋지 않았고, 또 아주 갑작스러운 선택 이었어요. 더구나 그에게는 대령의 돈이 자신에게로 양도된다는 확신도 없었어요. 결국 그렇게 안 됐지만요.」 브라운 신부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자네는 그 남자의 성격을 잘못 알고 있어.」 신부는 마치 해리 드루스를 전 생애를 통해 잘 알고 있기나 한 것처럼 말 했다. 「괴상하고 알 수 없는 성격의 소유자야. 자신이 유산을 상속받는다는 사 실을 정말 알았더라면, 그는 절대로 그 따위 짓을 하지 않았으리라고 난 확신하네.」 「그건 좀 독설이 아닐까요?」 피네스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그 인간은 도박꾼이었어.」 신부가 말했다. 「그리고 또 위험한 짓을 해서 불명예 상태에 있었고 명령만 기다리고 있 었잖나! 그건 아주 비양심적인 행위였지. 왜냐하면 황실경찰이란 우리가 생각하고 싶어하는 것보다 훨씬 러시아 비밀경찰과 비슷하거든. 그런데 그가 국경을 넘다가 실패한 것이었지. 그와 같은 사람은 위험한 일을 해 놓고, 그것을 아주 멋진 일이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미친 짓을 잘 해. 그리고는 이렇게 말하지. 『나밖에는 아무도 그런 기회를 잡을 수 없을 뿐더러 기회가 바로 지금이라는 사실을 알 수도 없다구. 이거 얼마나 모 험적이고도 멋진 생각이야? 모든 상황들이 잘도 맞아떨어졌어. 도날드는 불명예 상태인 데다, 변호사도 와 있고, 허버트와 내가 동시에 와 있게 되었으니 말이야. 게다가 대령이 그를 아주 반갑게 맞이해 주었고 악수 도 했으니 더 이상 무엇이 필요있나? 사람들은 말하겠지? 그런 위험한 짓을 하다니, 나보고 미쳤다고……. 그러나 행운은 앞을 볼 수 있는 사람 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가』라고. 그러나 해리의 그런 생각은 너무 허망한 생각이었어. 도박꾼의 과대망상이지. 그는 자신이 대령을 죽 이는 것은 세상사람들의 소망이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일단 운명을 생각 하고, 도 즉흥적으로 결정을 내리면 아주 쉽사리 기회를 잡을 것 같은 생각이 들게 마련인 거야. 결과적으로 관목 사이로 보이는 대령의 하얀 실루엣과 여름 별장의 빈 틈이 그를 자극시킨것이지. 결국 해리는 자신 을 부추기는 영특하고도 비열한 환상에 넘어간 거야. 그것은 도박꾼의 귀에 들리는 마귀의 소리일 뿐이야. 그리고 마귀는 결코 그 불행한 사람 이 천천히, 아주 신중한 방법으로 그의 나이 든 삼촌을 죽이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지. 그건 참으로 존경할 만해.」 신부는 잠시 말이 없다가 무슨 강조할 일이라도 생각난 듯 말을 계속했다. 「자네도 그곳을 직접 보았겠지만 한 번 더 그 장면을 떠올려 보게나. 살 인자가 자기의 잔악한 행위에 얼떨떨해 있는데, 위를 올려다보니 마치 자기의 비틀거리는 영혼의 모습과도 같은 괴상한 것이 보였단 말이야. 그것은 마치 피라미드 위에 놓인 것처럼 위태스럽게 보였고, 순간적으로 그는 그것이 바로 '운명의 바위'라는 것을 기억했지. 해리같은 사람이 어 떻게 그 순간에 그런 모습을 볼 수 있는지, 자네 상상이 가나? 내 생각 으로는 그것이 그의 마음을 끌어 행동으로 옮기도록 했고, 더구나 자기 를 지키도록까지 한 것이 아닌가 싶네. 탑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탑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두려워하면 안 되는 거야. 어쨌든 그는 행동 으로 옮겼고, 곧 증거를 없애려고 했어. 피 묻은 검, 그 칼을 수색하는 작 업이 이루어지리라는 것은 확실하지 않은가? 그는 칼을 바다 속에 은폐 시키는 아주 자연스러운 방법을 생각해냈어. 자네도 알다시피 아주 좋은 생각을 해낸 것이지. 그리고 그는 일행들에게 시계가 없다는 것을 이용 하여 그들에게 아직 돌아갈 시간이 아니라고 말했고, 더 멀리 돌아다니 면서 개를 훈련시키는 것처럼 지팡이 던지기를 반복했던 거야. 해결점을 개에게서 찾기까지 그 황량한 해변에서 그의 눈동자가 얼마나 번득였겠 나?」 피네스가 깊은 생각에 잠겨 허공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마 음은 신부와의 대화중 비현실적인 것으로 되돌아오는 느낌이었다. 그가 말했다. 「참 이상하지요? 결국 그 개가 이야기의 중심이 되었지 않아요?」 「개가 말만 할 수 있다면 자네에게 모든 걸 얘기해 주었을 텐데…….」 신부가 말했다. 「내가 불만스러운 것은 개가 말을 할 수 없다고 해서 자네가 마음대로 얘 기를 꾸며 사람이나 천사의 말을 한것처럼 했다는 것이야. 그런 일은 현 대 세계에서 점점 많이 접하게 되는 것이긴 하지. 온갖 종류의 신문에 나타나는 소문들, 지껄여대는 선전구호들은 아무 권위 없는 쓸데없는 것 들이잖나? 사람들은 전혀 증거가 없는 것들을 이것저것 받아들이고 있 지. 그것은 사람들의 오랜 합리주의와 회의주의들을 몽땅 침몰시키고 있 어. 그것은 마치 조수처럼 밀려오고 있고, 그건 바로 미신이나 다를 바 없네.」 신부는 벌떡 일어서더니 고뇌하는 듯한 침통한 얼굴로 마치 혼자 있는 사 람처럼 계속 말했다. 「사람이 상식을 잃고, 사실을 사실대로 보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음으로 생기는 첫 번째 결과야. 어떤 사람이 말한 것에 뭔가 있다고 생각되면 그것은 악몽에 나타난 광경처럼 무한정 확대되어 버리지. 개는 나쁜 징조이고, 고양이는 신비로운 것이며, 돼지는 마스코트요, 또 딱정벌 레는 쇠똥구리 부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이집트나 고대 인도의 다신교로 부터 유래된 온통 동물원에서 끌어낸 상징뿐이라네. 아누비스(Anubis: {이집트 신화] 개 모양의 머리를 한 신으로 死者의 안내자) 개나 푸른 눈 의 커다란 파시(Pasht), 거룩하게 울부짖는 바산(Bashan)의 황소들, 이것 들은 모두 태초의 동물신들인데 거슬러 가면 코끼리, 뱀, 악어까지도 나 타나게 돼. 그래서 사람들이 이 말을 두려워하지. 『그것이 사람이 되었 다!』」 피네스는 좀 무안해져서 일어섰다. 그는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개 와 함께 떠나기 위해 개를 불렀다. 그러나 그는 개를 두 번씩이나 불러야만 했다. 개는 마치 늑대가 성 프란시스를 바라보던 모습처럼 브라운 신부를 응시하며 한동안 움직이지 않고 뒤에 가만히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